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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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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대하소설 졸혼 제6권 100 김장혁 댓글:  조회:1058  추천:0  2023-06-12
대하소설     졸혼             제6권                   김장혁       100. 사랑의 오아시스    쓸쓸한 달빛은 얼굴을 반토굴에 들이밀고 이리지리 살펴본다. 달밤이 깊어가도 나영과 종호는 누구도 잠들지 못하였다. 나영은 쓸쓸한 가슴을 두 손으로 내리누르며 착잡한 생각에 빠졌다.그녀는 날마다 경찰들에게 쫓기다가 두렁허리처럼 종호네 셋집에 들어와 누운 자기 처지 가련하기만 했다. (다 정호 그 놈 색마 때문이야. 지금 보면 정호는 나를 사랑했다기보다 풍만한 몸을 탐낸 거야. 뭐? 본댁 순정의 가슴은 비행장 활주로처럼 빤빤하다는가. 그래서 그 놈 항상 내 가슴을 보면 풍만한게 좋다면서 만지고 게걸스레 핥고 빨았지.개놈 새끼.) 나영은 이를 쁘드득 갈았다. (어떻게 하면 원쑤를 다 갚을가? 그 놈 처음 날 사무실에서 재낄 때 아마도 커피에 수면제를 탄 거 같아. 안 그럼 왜 그날 머리가 아찔해나며 어슴푸레 잠들어버렸겠어?  그 놈 색마 뒤로 달려들어 그러는데도 사지 나른해 버둑거리지도 못했잖아.반항하지도 못하고 당하잖았어.그후부터 날 더러운 탐욕의 구렁텅이에 빠뜨려 놓고 날마다 불러내 올라탔지.나쁜 놈 새끼, 감옥에서 제 명에 죽는가 봐라.흥.) 그녀는 이불을 여미며 살며시 모로 돌아누웠다. 희읍스름한 달빛에 부엌 궤 앞에 맨봉당에 요를 대충 깔고 꾸불뜨리고 모로 돌아누운 종호의 모습이 어슴푸레 보였다.   (바보야. 기자선생님은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야.누가 그런 책을 본다고 저렇게 고생을 사서 할가? 뭐? 사회 약체군체인 불구자들한테 저 책을 나눠준다는가? 우편료를 십몇만원이라도 남자고 책짐을 메고 귀국하면서 고생하잖는가. 그렇게 애나게 찍어 가져간 책을 공짜로 나눠줘? 진짜 경제의식은 영펼이야.) 나영은 허구푼 웃음을 웃으며 눈을 맥없이 감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종시 잠들 수 없었다. 종호도 마찬가지로 이 불혹의 밤에 잠들지 못하고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그는 눈풍설이 이는 엄동설한에 삼도만 심심산골에 가서 토비숙청전투를 취재하며 겪은 잊지 못할 고행을 떠올렸다. 70년대 말 눈풍설이 기승스레 불어치는 엄동설한에 종호는 안해 류려평이 말리는 것도 마다하고 기어이 가방에 목책과 원주필 두개를 달랑 넣어가지고 삼도만으로 뻐스를 타고 떠났다.  삼도만공사 당위 사무실에 찾아가니 공사간부는 그를 데리고 한 생산대 마구간에 가서 한 한족마부로인을 소개주었다. 공사 간부는 종호한테 그 한족로인은 해방전 삼도만 토비두목 전소흥 소교의 문서질을 한 적이 있다고 하였다.종호가 삼도만토비숙청전투를 취재하려고 찾아왔다고 하자 그 로인은 또 문화대혁명 때처럼 무슨 꼬리라도 잡아가지고 투쟁하려고 그러는가 해 입을 열지 않았다. 종호는 그 마부로인을 도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작두로 말먹이짚을 산더미처럼 썰어주고 산더미 같은 말먹이를 창고에 안아들여다주기까지 하였다.그러자 종호의 로동에 얼었던 마음이 녹았던지 입을 끝내 열었다. 그 로인은 종호한테 삼도만토비 내부정황과 숙청전투 전반과정을 아주 상세히 이야기해주었다. "삼도만토비숙청 첫번째 전투는 평강촌에서부터 시작됐네." 종호는 취재를 마칠 때 토비문서로인이 하던 말을 듣고 이튿날에 삼도만에서 30여리 떨어진 뻐스를 타고 평강촌으로 달려갔다. 갈때만 해도 날씨는 바람도 안 불고 활짝 개였댔다.그는 평강촌에 가서 평강촌토비소굴에 들어가 담판하러 왔던 김지도원이 생매장당한 산골짜기 어귀도 돌아보고 평강촌 주위 토비소굴의 지형이며 당시 전투정황이랑 촌민들한테서 일일이 취재하였다. 넋을 놓고 취재하다나니 점심 때도 훨씬 넘었다.그런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바람에 원래 오후에 돌아가기로 한 평강촌에 왔던 뻐스는 함박눈에 길이 막힐가봐 점심 전에 삼도만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걸 어쩌는가?" 배고파 꼬르륵 소리날 지경이였다.낯선 산골에 와서 무턱대고 점심을 구걸할 수도 없는 일이이였다.그땐 개혁개방 세월도 아니여서 평강촌에는 개인상점도 없었다. 종호는 별 수 없이 꼬르륵거리는 배를 끌어안고 도보로 귀로에 들어섰다.점심을 굶고 30여리 평지길을 걷자고 해도 힘든 일이 아닌가. 그런데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30여리 산골길을 걷는다는 것은 진짜 힘겨웠다. 종호는 너무 배고프면 길가에서 하얀 눈을 한웅큼씩 쥐여 입에 넣고 씹어넘기면서 터벅터벅 걸었다. 토끼 꼬리만한 겨울해가 꼴깍 넘어가자 어두운 수림 여기저기서 굶주린 이리들의 울음소리 공포를 자아내며 들려왔다. 종호는 길가에서 마른 나무가지와 주먹만한 돌멩이를 주어들고 수림을 살피며 걷고 또 걸었다. 그는 혼자 되뇌였다. "삼도만토비숙청에 참가한 아버지랑 투사들에 비하면 이건 아무 곤난도 아니야. 적어도 삼도만토비숙청전투 때처럼 총알은 날아오지 않찮은가.이리들이 다 뭐냐? 아무리 흉악해도 총을 든 토비들보다 더 흉악하겠는가? 배고픈게 다 뭐냐? 항일렬사들과 토비숙청하러 왔던 민주련군 용사들은 이 보다 더 큰 곤난을 전승하면서도 발톱까지 무장한 일본 놈들을 족치고 토비들을 소멸하지 않았던가.걷자,항일투사들처럼 더 힘차게 걷자.홍군은 기아에 허덕이면서도 설산을 넘고 초지를 건너지 않았던가. 요만한 곤난이 다 뭐냐?" 그는 이렇게 강한 의지를 다지면서 밤도와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무인지경 산골 눈길을 힘겹게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난 쓰러지면 안돼. 여기서 얼어죽을 수도 있어. 절대 물앉지 말고 계속 걸어야 한다. 그래, 걸어야 해." 종호는 기아에 기진맥진할 지경이 돼가지고 산골짜기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그는 몇시간을 걸어 어두운 밤에 산골짜기 저 아래 희미한 전등불빛이 보이자 어찌나 기뻤는지 환성을 질렀다.   "아, 끝내 삼도만에 이르렀구나.이젠 살았다, 살았어." 그는 삼도만공사 초대소에 이르러 방에 들어서자 맥없이 쿵 쓰러졌다. 그는 동복도 벗지 못한채 까무러쳤다. 이튿날 종호는 정신을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는 아침을 먹자마자 목숨걸고 취재한 삼도만토비숙청전투 자료를 정리해나갔다. 종호가 그렇게 애나게 취재해 쓴 삼도만토비숙청전투를 글쎄 종호의 대학교 스승이란 한 교수가 자기 이름을 달아 조선족백년사화에 내지 않았겠는가.수개해달라고 보였더니 자기 이름 석자를 번듯이 달아 발표하지 않았겠는가. 종호는 대학교 교수란 작자의 글비리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어쨌든 민주련군의 삼도만도비숙청전투와 력사업적이 사라지지 않고 세상에 남게 된 것으로만 해도 기뻤다.종호는 그 교수와 저작권을 가지고 옴니암니 따지지도 않고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 종호는 이 밤에도 삼도만토비숙청 그렇게 애나게 취재해 쓴 우리 민족의 이민사책이 출판돼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한국에서라도 책을 내서 천만다행이야.이제 저 책을 한어와 일어,영어로 번역해 일본과 미국이나 영국에서 출판해야지.)         종호는 밤이 깊어가도 잠을 이를 수 없었다.  (취재하기나 책 쓰기도 힘들지만 책을 내긴 어디 쉬운가?) 순간 그는 눈풍설이 이는 날에 책을 내려고 원고묶음을 안고 한국 파주 출판단지에 가서 달아다니던 고행을 떠올렸다.  지하철을 타고 종호는 파주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타고 눈풍설이 이는 눈길을 달려 파주 출판단지에 이르러 내렸다.  그가 둘러보니 숱한 층집들이 산골을 따라 길 량켠에 듬성듬성 늘어서 있었다. "이 많은 출판사 가운데서 내 책을 내줄 출판사가 없겠는가." 종호의 가슴은 책을 낼 희망으로 해 한없이 부풀어오르고 설레였다. 그때 웬 이쁜 30대 중반 돼보이는 이쁜 녀성도 택시에서 금방 내렸다. 종호는 다가가 물었다. "XX출판사 어떻게 가면 돼요?" 그 녀성은 종호 아래 위를 훑어보더니 새하얀 이 드러나게 생글 웃어보였다. "저를 따라 가면 돼요.출판할 책 있는가요?" "예." "무슨 책인데요? 제가 그 출판사 편집부장인데요." "하, 귀인을 만났군요." 종호는 아가씨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는 그 녀성을 따라가면서 말했다. "중국 조선족들의 항일투쟁과 이민사를 보여준 책입니다." "그래요?" 그 녀성은 주춤 멈춰서며 단통 종호를 바라보며 상을 찡그렸다. "중국 조선족이민사라? 중국 교포인가 봐요." "네, 그렇습니다. 중국 신문사 기자출신입니다.부장님, 해외에서 힘겹게 왔는데요. 좀 도와주십시오." 부장아가씨는 털끝만치도 속이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말했다. "우리 한국과 중국 조선족 이민사 무슨 상관 있는가요? 우리 한국인들은 그런 책 보지도 않아요. 다른 출판사에 가보세요." 말을 마치자 부장아가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씨영씨영 가버렸다. 종호는 뒤따라가면서 말했다. "한국인들도 아마 이 책을 보면 중국 항일투쟁에 대해 료해할 수 있겠는데요.출판하면 꼭 새로운 책이라고 볼 건데요." 부장녀성은 처음 만났을 때 그 부드러운 표정 가뭇없이 사라지고 청얼음처럼 퍼러뎅뎅한 표정을 지었다. "됐어요. 그런 책 내면 우리 출판사 부도나요.두말 마세요. 저 아래 출판사 많찮아요? 저리로 가보세요.전 바빠요." 부장녀성은 휑 하니 가버렸다. (이런 놈의 문전박대라고? 참.) 처음 출판사 부장녀성한테 코를 떼운 종호는 금방 부풀어올랐던 희망에 찬 가슴이이 구멍 뚫려 김빠진 공처럼 돼버렸다.  그러나 맥을 버릴 수 없었다. 그 아래 출판사에 찾아갔다.그런데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먼저 문어귀에 걸린 공중전화박스 같은데서 전화로 사연을 말하고 예약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여보세요.책을 내려고 찾아왔는데요." "무슨 책인데요?" "전 기자 출신 중국 교포인데요.중국 조선족 항일투쟁과 이민사를 쓴 책인데요." "그런 책 우리 출판사에선 내지 않아요." 상대방은 전화를 덜컥 놓는다. "에이참,이 사람들 사람을 보기로." 종호는 사람대접하지 않는 것이 괘씸해 전화를 다시 걸었다. "여보세요. 전 기자출신인데요. 사람을 뭐로 봅니까? 만나지도 않고 책 내용 보지도 않고 문전박대하겠습니까? 어째 기자들을 부를가요?" "여보세요. 기자선생님, 기자들 불러와도 그 말인데요.언제라고 그런 책 내요? 중국 조선족이민사와 우리 출판사 무슨 상관 있는가요? 우린 책 한권 잘못 내면 부도나요. 당신 책 내주고 우리 밥통 깨라는가요?왜 중국에서 내지 못하고 시끄럽게 굴어요? 바쁘니깐 다시 찾지 마세요." 십여개 출판사 문을 두드려도 별의별 소리 다 했다. 다. “누가 지금 그런 책 보자고 해요? 애잡짤한 사랑이야기나 보지. 안 그래요? 남이 보지도 않는 책을 내라고? 참 어이없어.” “출판비용 엄청 비싼데요. 한 2천만 내면 고려해볼 수도 있는데요.” "우리 한국에서 왜 빨갱이들이 공산주의를 한 이야기책 내야 하는가요?" " 우리 한국도 북방사회주의 문화침투를 방지하려고 엄숙한 심열제도 있는데요. 책에 공산주의요, 공산당이요. 뭐 이런 거 한마디만 있어도 내기 힘들어요. 물론 지금은 지난 세기 90년대 이전만 심열제도 좀 느슨해졌지만요.중공 빨갱이들에 원한을 품은 보수세력이 집권할 때면 우리 출판사 문 닫으라고? 그만 둡시다." “우편료에 세금까지 다 물 각오를 해야 하는데요.” “우편세도 안아야죠.”  “짐세를 내세요.”  “30부 넘으면 세금 내야 해요. 기자선생님, 해관세 내야 한다는 것도 모릅니까?” 여기저기서 듣기 싫은 소리 시끌벅짝하다.  여기저기서 악어들이 비게덩이를 만났다고 이빨을 다신다. (오호, 내 무슨 일을 하고 있지? 세상 한국 사람들이 다 리해하지 못할 일을 하는건가?) 마라톤 사나이는 사막으로 달리면서 관문마다 들리는 삐꺽소리, 리속에 어두운 소리에 서글프기만 했다.  세상만사가 한없이  괴롭기만 했다.  그는 눈풍설이 이는 경복궁에 가서 조상왕님들의 발자욱을 쓸쓸히 더듬었다. 뒤이어 광화거리에 가서 세종대왕님의 동상을 우러러보며 가슴 치며 한탄했다. "세종대왕님, 우리 전주 리씨는 500년 조선을 쥐락펴락하던 왕족이 아닙니까? 이게 뭡니까? 조상님들 후손이 책 한권을 내려고 조상님들의 고향으로 찾아왔건만 이게 뭡니까? 별의별 문전박대 다 받았습니다. 이 가난한 선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종대왕님 동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종호를 가엽게 쓸쓸히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종호는 반토굴집에 누워서 창문에 비껴드는 쓸쓸한 달빛을 살며시 바라보면서 물었다. (하느님이여, 그래, 내가 사막에 사랑의 샘물이 퐁퐁 소는 사랑의 오아시스를 가꾸려는 건 헛된 꿈인가요?"    아니야, 그는 혹시 자유의 녀신 헤라의 현시대 화신인가?  헤라, 헤라 녀신은 칼을 들 대신 괭이를 들고 올리브를 심어 고대 백성들을 잘 살 수 있게 한 구세주녀신, 헤라는 사랑의 오아시스를 가꾼 녀신, 백성들의 구세주 녀신이 아닌가.  헤라는 아버지 제우스, 독재자 같은 제우스신과는 판판 다른 녀신이였어. 제우스는 자기를 초월하는 딸 헤라마저 한입에 삼켜버리지 않았는가. 그러나 헤라는 백성들을 위해 칼을 든 것이 아니라 올리브를 심어 올리브란 과일을 따다가 백성들을 살려낸 구세주 녀신이 아니였던가. 헤라는 만백성의 마음 속에 살아 있는 녀신이 아닌가.  사막으로 책짐을 메고 달리는 사나이, 아니, 민족의 혼을 사명감으로 떠멘 마라토너,  그  마라토너는 그래 헤라처럼 책을 널어놓아 무지한 백성들을 구하려고 저러는건가? 그래. 그는 헤라 녀신처럼 사막과도 같은 야박한 세상에 정신올리브를 심어 돈에 눈이 어두운 창생들의 눈을 뜨게 만들려는거야. 망망한 사막바다에 밝은 등대를 밝혀주려는 것이리라.     아닌가? 모래바람이 기승스레 불어치는 사막에 샘물이 퐁퐁 솟고 올리브가 다닥다닥 달린 파란 오아시스를 가꾸려는 것이 아닌가.  아, 그는 사막에 진달래 만발하는 사랑의 오아시스를 만들고 그 오색령롱한 오아시스에  항일투사들의 기념비를 세워고 민족의 혼이 살아숨쉬는 진달래고향을 건설하려는 것이리라. 그는 확신했다, 자기 책으로 어두워가는 삭막한 사막을 밝히고 말라가는 사막에 한방울의 물이라도 얻어오리라고.  에이구, 사막에 물을 얼마나 날라다 부으면 말라가는 나무와 풀 뿌리 파랗게 살아날가? 사막에 얼마나 많은 우물을 파면 퐁퐁 솟아나는 샘물에 파란 초목이 무성한 사랑의 오아시를 가꿀 수 있을까? 올리브가 다닥다닥 달린 만무과원을 다룰 수 있을까? 모래바람이 기승스레 불어치는 사막. 모래바람에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힘든 사막, 그 삭막한 사막에서 책짐을 메고 달리는 마라톤 사나이, 아, 바보 같아 너무나도 처량하기만 하다.  마로톤사나이는   사막의 모래불에 몸을 숨기고 한쪽 눈깔만 내놓고 팬들거리며 길목을 지키는 독사와 전갈이 더없이 미웠다. 높은 책문턱을 지키면서 황금알을 꿀꺽 삼키려는 관문 문지기들, 주산알만 딸깍딸깍 튕기면서 도리머리를 흔드는 수전노들이 한없이 꼴사납기만 했다…
326    대하소설 졸혼 제6권 99 김장혁 댓글:  조회:1343  추천:0  2023-06-10
    대하소설     졸혼      제6권        김장혁            99. 사막에서 마라톤을 하는 사나이   눈풍설이 기승을 부리며 얼굴을 에이는듯이 갉아먹으려고 이빨을 뻑뻑 갈며 언 한국 땅바닥을 핥아간다.  야박한 인심의 세상이 린색을 베고 누워 코를 드렁드렁 군다. 남이야 얼어죽든지, 로숙자가 굶어죽든지 무슨 상관인가. 린색한 수전노들은 양옥에 들어 편안히 낮잠이나 자고 있다. 리속에 어두운 구두쇠들이 깨진 구리사발을 두드리며 수전노의 더러운 돈벌이 성경을 읊조린다. 나영은 잠실역 부근 롯데에 가서 근사한 겨울외투를 사 입고 털실수건으로 머리를 꽁꽁 감쌌다. 심한 코로나류행 때문에 마스크까지 꼭 눌러 끼니 경찰들의 눈을 가리기는 제창 좋았다. 나영은 한시름 놓으며 한숨을 호 내쉬였다. 그러나 공개수배녀도주범의 습관처럼 힐끔힐끔 뒤돌아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잠실역 쪽으로 도적고양이처럼 발뼘발뼘 다가갔다. 그녀가 어둠을 등지고 지하철을 갈아타며 신도림에 이르렀을 때였다.  지하철 출구 아츠란 층계에서 웬 사내가 배낭을 메고 두 손으로 묵직한 트렁크를 안고 힘겹게 한 층계, 한층계 올라가고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숱한 사람들은 그 사내한테 막혀 주춤거리다가 옆으로 에돌아 지나가버렸다. 그때 갑자기 그 사내가 무거운 트렁크를 쥔 채 괴춤이 탁 풀리며 바지가 훌렁 벗겨졌다. 속내복이 훌렁 드러났다. 그 사내는 숱한 사람들 앞에서 창피해 트렁크를 층계에 내려놓고 괴춤을 훌 춰입었다. 웬 일일가? 그 사내는 바지멀춤을 쥐고 까딱하지 못했다.  그저 애타게 위로 아츠랗게 뻗은 층계를 쳐다볼뿐이였다. 피뜩 보아도 중국 교포 같았다. 나영은 부지중 그리로 다가갔다. “아저씨, 제가 도와드릴가요?” “괜찮습니다.” 그 사내는 털실수건에 꽁꽁 싸인 낯모를 녀인을 마주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 무거운 짐 어떻게 혼자 들고 올라가겠어요? 인줘요.” 그 사내는 좀 귀에 익은 목소린지 몸을 돌려 천천히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마스크를 꼭 눌러 낀 녀인이 누군지 몰라보았다. “괜찮아요.” 그 사내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나영은 환성을 올렸다. “아니, 기자선생님. 어떻게 돼?” 그제야 종호는 나영을 알아본 것 같았다. “저는 어떻게 돼?” 종호와 나영은 습관처럼 주위를 둘러보며 층계 한쪽으로 갔다. 건데 이상하게 종호는 한 손으로 바지멀춤을 쥐고 걷지 않겠는가. “미영이, 짐 지켜주오.” 종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층계 위쪽을 가리켰다.  “내 저기 매대에 혁띠 있는지 가보고 올게.” 그제야 나영은 종호가 왜 바지멀춤을 쥐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혁띠 뚝 끊어졌댔구나.) 나영은 허구픈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마스크를 끼고 있어 다행이였다. “네. 갔다가 오세요.” 나영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우습깡스레 바지멀춤을 쥐고 층계를 올라가는 종호의 뒷모습을 보며 터져나오는 웃음을 더는 참지 못했다. (이건 뭔데. 바지멀춤이 다 풀리게 안고 달아다니지?) 나영은 짐을 한층계라도 더 올려가려고 두 손으로 트렁크를 들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 “아이구,” 그녀는 외마디 질렀다. 트렁크가 어찌나 무거운지 아녀자의 힘으로는 근본 움쩍할 수도 없었다. 이윽고 종호가 헐금씨금 달려내려왔다. 이번엔 바지멀춤을 쥐지 않고 날래게 층계로 탕탕탕 뛰여내려왔다. 나영은 종호 어깨에서 배낭을 내리우려고 했다. “제가 배낭을 메지요.” “아니, 괜찮소.” “큰짐은 못들어도 배낭이라도...” 종호는 트렁크를 훌 들어 메면서 말했다. “금방 수술했는데 그만두오.” 종호는 트렁크를 메고 터벅터벅 층계를 올라갔다. 나영은 뒤에서 두 손으로 트렁크를 받쳐주면서 따라올라갔다. 종호는 지하철을 갈아타고 대림동으로 가야 했다. 그는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나영을 데리고 장의자에 걸터앉아 숨을 돌렸다. “어째 우리 집에서 나왔소? 내 얼마나 근심했는지 모르오.” 종호의 말에 나영은 한숨을 호 내쉬였다. “저 때문에 근심하지 말아요.” 종호는 근심에 찬 표정으로 나영을 돌아보며 물었다. “요즘 어데서 잤소?” “모텔에서요.” “아니, 우리 집에서 잘게지. 취직도 못해가지고 모텔비를 낼 돈이 어디 있다고 그러오?” “선생님이 찾아준 돈도 있는데요.” 종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그래도 그렇지. 한달에 모텔비 백만원씩 내고나면 그걸 몇참 쓰겠소? 우리 집에 가기오.” 그러나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찮은 저 때문에 신경쓰지 말아요. 선생님은 저를 잘 몰라요. 저는 선생님이 관심할만한 녀자 아닙니다. 나쁜 년입니다.” 종호는 진정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리오? 사람이 어찌 착오를 질 때 없겠소? 잘못을 저질렀으면 잘 반성하고 고치면 되지.” 종호는 나영의 처지를 아는 것 같았다. (하긴 한국 텔레비에 다 난 인기인물이 아닌가. 난 지구 촌 어데도 살데 없어.) “따님이 참 인물쳐격이 물찬 제비처럼 예쁘더군요.”  나영은 이렇게 말하려다가 화제를 돌렸다. “이건 뭔데요? 이렇게 힘겹게 메고 다닙니까?” 종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책이오.” “네?” 나영은 놀라했다. “무슨 책인데요?” 종호는 긍지감에 차 말했다. “항일렬사들의 항일투쟁사랑, 우리 조선족 이민사랑 쓴 책이오.” “혹시 선생님이 쓴 책인가요?” 종호는 가슴을 쑥 내밀며 아주 자랑스레 말했다. “그렇소. 내 얼마나 고생스레 쓴 책이라고. 끝내 세상에 내놓게 돼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소.”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걸 내자고 기자선생님이 건축현장에 가서 고된 일 했는가요?” “그렇소.” 나영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누가 이런 책을 본다고 이런 고생 다 합니까?” 종호는 도리여 어이 없다는듯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내 딸이 하는 말과 똑같구만. 걔는 두대가 문학을 하면 집 안이 망한다고 하오.” 나영은 혀를 홀랑 내밀었다. “리선생님, 널리 량해하십시오. 횡설수설해서요.선생님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어서 미안해요.” 종호는 오히려 개의치 않았다. “솔직한 말 괜찮소. 사실 지금 사람들은 오늘의 행복은 항일렬사들이 목숨 바쳐 찾아온 것이란 거 생각하지도 않지. 바로 그래서 내 이런 책을 내는게오.” 종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지금 내 딸이나 숱한 사람들은 애잡짤한 련애이야기나 처참한 비극적 혼인사 같은 거 좋아하는 건 사실이오. 그러나 우리는 민족의 이민사나 항일투사들의 혼을 잊어선 안되오. 한 민족이 전통력사도 문화전통도 없으면 안되오. 지금 우리 조선족들의 집산지가 산산히 흩어지고 있소. 민족 대이동시기에 처했소.국외로, 대도시로 이동하고 있지. 우리 진달래 고향이 종적을 감추고 있소. 이럴수록 민족은 한데 뭉치고 전통을 바로 세워 후대들에게 넘겨줘야 하오.” 나영은 좋은 충고를 해주고 싶었다. “그렇긴 하죠. 그러나 이전에 내 전람관 해설을 하면서 봐도 그랬죠. 항일이요. 해방전쟁이오. 이런 도편전람을 해선 찾아오는 사람들이 몇이 없었죠.” 나영은 종호 눈치를 흘끔 보며 뒷말을 이었다. “지금은 온라인시대입니다. 모두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책을 별로 보지 않아요. 서점에 선생님이 쓴 거 같은 책들이 먼지 새뽀얗게 낄 지경입니다. 누가 봅니까? 핸드폰에 올리면 그래도 보는 사람이 많아요. 선생님도 애나게 돈을 벌어 책을 내느라고 하지 말고 핸드폰에 올려 보세요. 보는 사람이 더 많을 건데요.” 종호는 허리를 꿋꿋이 펴더니 얼굴에 장엄한 빛을 띠웠다.  “참 좋은 말이오. 이후엔 핸드폰에도 올리고 책에도 계속 내야겠소. 난 기어이 항일렬사들의 투쟁사와 우리 민족의 이민사를 계속 책으로 내겠소. 그런 책을 우리 후세에 남겨주고 싶소.” 나영은 내심으로 탄복했다. 어떻게 보면 바보 같아 보였지만 민족을 위해서라면 이런 “바보”도 필요하다고 여겼다. 지하철이 육중한 노래를 부르며 들어섰다. 종호는 우쭐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부터 다른데 가지 말고 우리 집에서 자오. 난 현장에 나가봐야 하오.” (겨울에 무슨 현장인가? 또 종각에 가서 쪽잠을 자려고?) 나영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종호를 창피하게, 불편하게 굴가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영은 아빠와 같은 종호의 진심어린 호의를 저버릴 수 없어,  못이기는 척하면서 종호의 배낭을 마구 벗겨 메고 뒤따라 지하철에 올랐다. 녀자 몸으로 늦겨울에 종호처럼 지하철에서 쪽잠을 잘 수도 없고 맨날 모텔방을 돌며 살수는 없었다.   지하철에는 행인이 별로 많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손님과 손님 사이도 너르게 앉아야만 했다.  나영은 종호와 나란히 앉아 나직이 물었다. “어째 국내에서 책을 못 냅니까? 이걸 국내에 가져가자고 해도 운비랑 들겠는데요.” 종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그렇소. 한국 출판사 사장들도 도리머리질하면서 이상해할 정도요. '어째 국내에서 내지 않는가?” , '당신들 중국 조선족이민사 우리 한국 무슨 관계 있어?' 그들은 주산알을 딸깍딸깍 튕기면서 퇴자를 놓지 않겠소? 다행히 민족의 정의감이 있는 한국 리완표 사장이 이 책을 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소. 몇백 책은 우정국에 가서 부쳤는데 국제우편이다 보니 우편료만 해도 백만원도 넘어 들어갔소. 우편세에 해관세까지도 물리지. 비용이 국내만 못잖게 들어갔소."    나영은 의아해했다. "그럼 국내에서 책을 내면 낫잖은가요? 운비나 해관세도 들지 않겠는데요." 종호는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국내에서 내면 얼마나 좋겠소? 그런데 출판비용이랑 엄청 비싸오. 잘 팔리지 않는 책을 어데서 내자 하겠소? 지금 출판사들 형편도 넉넉하지 못하오. 출판사에서 책을 얼마 팔아야 내 책 출판비용을 대주겠소? 지금 책이 어디 팔리오? 특히 이런 책 말이오. 이게 우리 출판시장의 현실이오. 그래도 출판사에서 어려운 형편에도 전문번역일군을 배치해 항일투사들의 이야기를 한어로  번역해 중점도서항목으로 세우고 우에서 돈을 얻어다가 내준다오. 출판사 사장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오. 하,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소. 출판사에서 나서는데 내라고 가만 앉아 있어 되겠소? 그래서 난 집을 다 팔아 책을 냈소.이젠 국내 출판사 사장들한테 손을 내밀기도 미안하오. 그래서 한국 출판사들을 찾아 다니지.” 나영은 의아해 물었다.  “집을 다 팔다니요? 책이 그렇게 중합니까?" 종호는 책짐을 매만지더니 대답했다. "그렇소. 집이 없는 것보다 민족의 전통력사가 사라지는게 더 큰 일이오.한 민족이 혼이 날아나는 것 만큼 가슴 아픈 일이 어디 더 있겠소?" 나영은  다가앉으며 물었다. "책이 안 팔리면 이 숱한 책을 어쩌자고 그럽니까?” 종호는 안타까운 현실을 토설했다. “누가 사서 보오. 훌훌 나눠줘야지. 이 책을 봐주기만 해도 감사한 일이지. 지금 마작을 놀면서 한판에 몇십원씩 떼워선 씁쓸해도 책을 사는데 들어가는 돈은 아까워하잖고 뭐요?”  나영은 안타까워 종호를 따라 한숨을 호- 내쉬였다. 집에 이르자 종호는 책짐을 구들구석에 내리워놓고 나영을 보고 말했다. “다른 생각말고 이젠 여기서 자오. 난 현장에 바삐 나가봐야 하오.” 나영은 종호를 측은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겨울에 현장일을 하다니오?” 종호는 아닌보살을 떨었다.  “아니, 현장에 가서 밤보초를 서야 하오.”   “선생님이 정 여기서 쉬지 않으면 제가 종각역에 가서 쪽잠을 잘게요.” 그 말에 종호는 깜짝 놀랐다. “아니, 그걸 어떻게…?” 나영은 종호의 손을 잡고 애원하다싶이 말하였다. “선생님, 딸 같은데요. 뭐랍니까? 여기서 쉬세요.” “그렇긴 하오. 부녀간처럼 모든 건 자연스럽게 스스럼없이 지내기오.” 종호는 그날 밤 부엌에 내려가 이불을 훌훌 펴고 드러누웠다. 나영은 미안한대로 구들에 이불을 들쓰고 다리를 꼬불뜨리고 누웠다. 그러나 둘 다 밤이 깊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반토굴 집에는 달빛에 비낀 책짐이 덩그렇게 놓여 그들의 어색한 첫날밤을 지켜고보고 있었다...   어디라 분간하기 어렵게 모래폭풍이 불어치는 사막이다. 웬 사나이가 바보처럼 묵직한 책짐을 메고 마라톤을 하는 것이 희미하게 보인다.땀을 뻘뻘 흘리며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을 힘겹게 한발자욱한발자욱 걸어나간다. 누가 물 한방울도 주지 않는 야박한 사막에서 뭘 보고 터벅터벅 힘겹게 걸을가?  모래알이 눈을 못뜨게 아프게 덮쳐들면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눈을 지그시 감고 앞으로 앞으로 걸어나간다. 갈증이 나서 목 안이 타는 것 같아도 필승의 신념으로 앞으로 앞으로 걸어나간다.  그의 눈 앞에는 그 책을 가져다 눈뿌리 아찔하게 쭉 뻗은 모래언덕을 넘어 저 멀리 민들레 흩날리는 고향마을에 가져다 주면 어두운 마을에 환한 등대를 밝히리라 믿는 것 같았다.그 사내는 물 한방울도 없는 사막에 샘물이 퐁퐁 솟는 개똥녀네 동화 같은 오아시스를 가꿀 것만 같은 그런 꿈으로 가슴이 설레이고 있었다.   아, 십자가를 메고 힘겹게 골고다언덕을 올라가던 그 성인의 화신인가.아니면 분신인가? 왜 그렇게 신념이 강하다 못해 사막의 사나운 모래폭풍에도 책의 향연의 신념을 굽힐줄 모를가?그러나 그 사내는 만민이 우러러보는 그리 위대한 인물도 아니다. 그저 책을 애나게 써서 나눠주는 "바보짓"을 하는 그런 "바보" 사내일뿐이다. 꿈인가? 나영이 깨나보니 희읍스름한 달빛이 반토굴 집 안을 들여다 보며 울고 있지 않겠는가. 나영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호 내쉬였다. (기자 선생님은 집을 팔아 책을 만드는 바보. 물 한방울도 주지 않는 사막에서  책짐을 메고 마라톤을 하는 사나이야.)
325    대하소설 졸혼 제6권 98 김장혁 댓글:  조회:1327  추천:0  2023-06-07
대하소설     졸혼           제6권             김장혁            98.로숙자  별이 바르르 떨며 추워 구름으로 몸을 가리는 늦겨울의 밤하늘, 달도 한 녀인과 기자선생님의 애처로운 모습을 이슬맺힌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나영은 세집에서 나와 골목길로 사라지는 종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눈바램하였다. 그녀는 쓸쓸히 몸을 돌려 셋집 문고리를 잡았다가 손을 내리웠다. (아니야, 좋은 기회야. 저 기자 어떤 사람인가 보자. 진짜 건축현장에 가서 자는가 봐야지. 신분에 맞지 않게. 글쎄 한국에 오면 네남 모두다 신분이 땅에 떨어지긴 하지만...) 나영은 문 자물쇠를 절컥 잠가놓고 황급히 종호 뒤를 쫓아갔다. 종호는 대림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나영은 머리를 풀어헤쳐 얼굴을 가리고 종호의 눈치를 흘끔거리며 뒤따라가 지하철에 올랐다. 다행이 손님이 지하철에 꽉 차서 종호는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  종호 어디로 가는가 뒤따라보니 지하철을 타고 종각역에 가서 내리는 것이였다. “혹시 내 자살하기 전에 찾았던 종각역 로숙자 우글거리는 거기 가서 자려는게 아닌가?” 그때 종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추 로숙자들이 자리다툼하는 그리로  진짜 가는 것이였다. 나영이 먼발치에서 보니 교보문보로 통한 텐넬 쪽 2층에 길다란 장의자가 놓여있었다. 어둑시그레한 층계와 장의자에 숱한 로숙자들이 들어누워 쿨쿨 자고 있었다.  종호는 지하철에서 주은 것 같은 신문 몇장을 땅바닥에 쭉쭉 폈다. 아주 숙련된 솜씨였다. 그는 신문지 위에 훌 들어앉아  무릎 위에 올려 놓은 두팔에 머리를 파묻고 쪽잠을 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마나! 기자선생님, 이건 아닌데요.” 나영은 하마트면 고함칠 번했다. 그녀는 간신히 손으로 입을 막으며 놀란 가슴을 쓰러내렸다.  순간 나영은 코마루가 시큼해나며 눈물이 당장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자기를 편히 자게 하려고 로숙하는 종호가 감사하기보다는 죄송한 감이 가슴을 아프게 허볐다. 나영은 벽에 기대 개탄했다. (기자선생님, 저 때문에  로숙까지 할 필요있습니까? 신분에 맞잖게. 저는 선생님 딸처럼 보호받을 년이 못됩니다. 전 색마한테 혼을 빼앗겨 졸혼하고 미쳐 나돌아다닌 못쓸 화냥년입니다. 졸혼하고 나만의 성쾌감을 느끼려고 가정을 마스고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도망친 뺑덕어미입니다. 절대 저를 위해 그렇게 하지는 말아주세요. 리선생님, 전 어쩌면 좋아요?)  그녀는 당장 달려가 종호 손을 잡아 일으켜 셋집으로 데리고 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몇발자욱 내딛다가 주춤 멈춰섰다. 종호 앞에 나설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뒤를 밟아 따라온 자기를 발견했을 때의 종호의 난처한 기색 또한 어쩌겠는가. (아니야, 기자선생님을 난처하게 만들지 말자. 못 본 척하자. 그게 상책이야.) 나영은 도적고양이처럼 발뼘발뼘 로숙자들을 깨울세라 그 어둠컴컴한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종각역에서 다시 종호네 셋집으로 돌아오면서 무한한 자책감을 느꼈다. (진짜 친딸처럼 생각하는 기자선생님을 의심하다니?” 뒤이어 이상하게 긍지감도 떠오른 것이 아니겠는가. (참 넌 팔자 좋아 다행이야. 천하에 둘도 없는 귀인을 만난 것 같아. 네년은 남자 복이 있어. ㅋㅋ.) 그러나 나영은 인차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돌다리도 두드려보면서 건너라지 않는가. 정호를 봐라. 처음에야 얼마나 날 생각하는 것처럼 했는가? 날 부관장으로 제발시키고 그러나 결국엔 그놈이 날 무참히 유린하고 해치잖았어? ” 순간 정호가 미국 로스안젤레스에서 밤중에 목숨걸고 흑인강도의 손에 걸린 자기를 구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날 밤 나영은 정호와 함께 해변가에 가서 맥주를 마시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들어섰다. 그들이 십자길에서 금방 큰 길가 가로수 밑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갑자기 꺼먼 구새통 같은 육중한 체구의 흑인강도가 뛰쳐나왔다. 그 놈은 승냥이처럼 덮쳐들어 나영의 목을 끌어안고 뒤통수에 권총을 들이대고 정호한테 을러멨다. “딸라를 내놔!' 문학과 대졸생인 나영은 그 흑인강도가 영어로 뭐라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마나!” 나영은 비명을 질렀다. “딸라를 달라고 해요.” 불시에 일어난 사태에 정호도 처음엔 어정쩡해 두 손을 들고 서 있었다. 그러나 인차 정신을 차렸다. “딸라를 꺼내 주오.” 나영은 영어로 “딸라를 줄게.” 하고 말하고나서 핸드빽에서 딸라를 두툼하게 꺼내 흑인강도한테 주었다. 흑인강도놈은 잠간 나영을 놓고 딸라를 챙기고는 또 어두커니 서 있는 나영의 목을 끌어안고 이번엔 정호한테 총을 겨누고 을러멨다. “네놈 딸라도 몽땅 내놧!” 정호는 바지엉덩이 호주머니에서 딸라를 꺼내 땅바닥에 내려놓고는 돌아섰다. “그놈 보고 가져가라고 하오.” 흑인놈이 나영의 말을 듣고 권총으로 정호를 겨눈 채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 놈이 땅바닥의 딸라를 주으려고 허리를 굽힐 때였다.  정호가 갑자기 홱 돌아서며 발길로 그 놈의 시꺼먼 대가리를 걷어차올렸다. 그 놈이 “억!”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엉거주춤 일어나려고 했다. 정호는 그 놈 꺽다리 무릎을 딛고 씽 날아올라가면서 무릎으로 그 놈의 턱주가리를 걷어찼다. 그 놈은 맥없이 푹 엉덩방아를 찌으며 쓰러졌다. 정호는 흑인강도 권총을 탁 차버렸다.  “얏!” 야무진 고함소리와 함께 하늘공중에 후닥닥 날아올라갔다가 날아내리며 무릎으로 그놈의 고무풍선처럼 불룩한 배때기를 꽝 깔아뭉갰다. “어우예!' 흑인 강도놈은 비명소리와 함께 반주검이 돼 까딱하지도 못했다.  “태권!” 정호는 호랑이처럼 고함치며 발길로 연신 흑인강도놈의 낯빤대기며 배때기를 걷어찼다. “최국장!” 나영은 정호의 품에 와락 안겨 발을 구르며 통곡쳤다.  “내 있는 한 무서워 말아라. 목숨 걸고 널 지킬테니까.” 정호는 딸라를 주섬주섬 주어 나영의 핸드빽에 쑤셔넣어주었다…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땐 정호는 얼마나 세상 둘도 없는 사내였던가. 날 구해준 은인이였지. 그는 날 위해선 목숨도 바칠 것 같았잖아. 그러나 뒤에선 날 함정에 빠드리고 고발하고 육신을 유린할 대로 다 하지 않았던가. 세상 남자들은 다 믿을 수 없어.) 나영은 한숨을 호 내쉬며 셋집에 들어섰다. 그는 코구멍만한 셋집 구들에 벌렁 드러누워 어두운 천정 한 곳을 멍하니 쳐다보며 상념에 잠겼다.  쪼각달은 서쪽에 기운지 오래건만 나영은 종각역에서 로숙자들과 함께 자고 있을 종호를 생각하면서 잠들래야 잠들 수 없었다. 그녀는 반토굴 셋집 구들에 다리를 옹송그리고 누운 채 언제 쪽잠에 빠졌는지 몰랐다. 이튿날은 신경을 느슨하게 하는 일요일이였다. 나영은 어젯밤에 편이점에서 사온 빵과 우유로 아침끼니를 대충 에때우고 텔레비죤을 켰다.  그녀가 금방 뉴스를 볼 때였다. 문께에서 문 자물쇠를 여는 절그럭 소리 나는 것 같았다. 뒤이어 나직이 들리는 노크소리. 나영은 깜짝 놀랐다. (리선생님이 건축현장에 가잖고 왔을 린 없겠는데. 경찰이 또 추적해왔어?) 그녀는 쿵쿵 뛰는 심장을 눅잦히며 문께에 다가갔다.  감시구멍으로 내다보니 웬 새파란 30대 중반녀성이 아니겠는가? “누군가요?” “어마나, 딸인데요. 어서 문 열어요.” “네. 잠간 기다리세요.”  나영은 역으로 돌린 잠금쇠를 열어주었다. 셋집엔 엄청 훤칠한 녀성이 들어섰다.  그녀는 궁금증이 스치는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으로 나영의 아래위를 쓸어보면서 물었다. “누구신지요? 혹시 아빠 전화한 미영씨인가요?” “그래요. 종호선생님이 구해준 불쌍한 녀자입니다.” “네. 전  딸인데요. 리향이라고 불러요.” “리선생님의 박사따님이군요.” 그제야 리향은 한숨을 호- 내쉬더니 더 캐묻지 않았다. (아빠한테 이렇게 새파란 여자 생겼어? 딸 같은 후처? ㅋㅋㅋ. 후처에 감투끈이 풀리는줄도 모른다더니. 아빠 엄마하고 리혼하더니 새파란 녀자 운이 텄나?) 리향은 바줄에 걸린 부래지어가 눈에 거슬렸는지 아님 민망했던지 걷어 멜가방에 쑤셔넣었다. 그때 텔레비죤에 다음과 같은 뉴스가 쏟아져나왔다.  “나영이라고 부르는 중국 교포 공개수배범이 어제 밤 모텔방에서 도망쳤습니다.” 리향과 나영의 눈길이 거의 동시에 텔레비죤에 쏠렸다. 텔레비죤 화면에 나영의 사진도 올랐다. 기자가 마이크를 들고 뒷창문과 가스관을 가리키는 장면이 나탔다. “공개수배범은 바로 이 뒷창문을 열고 가스관을 타고 도망쳤습니다. 진짜 정탐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야간탈주였습니다. 공개수배범 나영은 중국에서 전람관의 돈 5만원, 한화 약 천만원 좌우 떼먹고 애인 정호와 함께 일본으로 도망쳤다가 우리 나라에 숨어들었댔다고 합니다. 최정호는 중국 모  시 문화국 국장이였다고 합니다. 그는 중대부패분자여서 홍색공개수배범으로 한국 인터폴에 나포된 적이 있습니다. 최정호는 홍대입구 부근에서 인터폴의 손에서 벗어나 한국 기생 미희 오랍누이의 도움을 받아 어선을 타고 남태평양까지 도망쳤다가 최근에 끝내 중국 녀검사한테 나포돼 중국에 인도돼 투옥됐다고 합니다. 지금 공개수배범 나영은 최정호가 탐오, 남용한 숱한 돈과 금은장신구를 탕진한 중대범죄혐의를 가진 인터폴 공개수배범입니다. 나영은 서울 모처에 종적을 감추었을 것입니다. 경찰 부문에서는 전체 시민들에게 공개수배범 나영 나포에 협조할 것을 바란다고 했습니다...” 나영은 텔레비에서 눈을 떼 리향을 쳐다보았다. 리향과 나영의 눈길이 공중에서 부딪치며 뻘건 불찌가 튕겼다. 나영은 오쫄 일어나 외투를 주섬주섬 주어입고 핸드백을 주어들고 리향에게 하직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한테 전해줘요. 저는 도와줄 필요없는 녀자라고, 경찰들이 추적 중인 죄인을 로숙까지 하면서 자기 집에 재울 가치 없는 녀자인데요.” 말을 마치자 나영은 문을 훌 열고 나왔다. 뒤에서 리향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간! 아빠를 만나 직접 말하세요. 오늘 아빠와 만나기로 했기에 이제 곧 올건데요.” 나영은 돌아서서 허리굽혀 인사했다. “ 고맙습니다. 당신들 부녀까지 련루시키고 싶지 않아요.” 나영은 셋집에서 나가자  선불맞은 노루처럼 공포에 찬 골목길을 꺾어들어 도망쳤다. 멀리 갈수록 더 좋았다.      어디든지 자유를 위해서라면 도망갈 수 있는 그녀였다.       
324    대하소설 졸혼 제6권 97 김장혁 댓글:  조회:1306  추천:0  2023-06-05
대하소설              졸혼                       제6권            김장혁           97. 나영과 기자의 로맨스   나영은 마취약이 효력을 잃자 점점 수술자리가 아파남을 느꼈다. 그러나 색마의 더러운 혹을, 쓰라진 바람둥이 쓰디쓴 열매를 떼버렸다는데서 내심으로 더 없는 희열을 느꼈다. 황선희는 시술을 끝내자 지영한테 나영을 간호할 때 여차여차 주의하라고 알려주고는 부랴부랴 귀국하지 않으면 안되였다.코로나가 전세계적으로 완화되면서 코로나 백신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하강되였다. 그리하여 백신공장을 세운지 1년도 되지 않아 파산의 변두리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제약공장에서는 새 약을 제조하는데 전향해야 했다. 황선희는 시술(수술)이 끝나자 나영의 뱃 속에서 떼낸 태아, 혹이랄가, 그 놈의 변강쇠 더러운 씨를 비닐주머니에 담아 밤도와 쓰레기장에 내다버렸다. "더러운 개새끼, 이 세상에 태여나선 안되는 바람둥이 쓴 열매야.정호, 네놈새끼, 변강쇠 놈아, 숱한 아가씨들을 짓밟고. 어린 아가씨들을 얻어 숱한 아들달을 한 구들 낳고 살겠다더니, 더러운 씨를 사처에 뿌려? 꿈도 꾸지 말라." 그때 야생개가 달려들어 그 놈의 더러운 고기덩이를 물고 달아났다. 저쪽에서 한무리 개들이 서로 고기덩이를 먹겠다고 서로 물고 뜯으며 빼앗을내기 하였다. 나영은 황선희한테 비행기표라도 떼라고 백만원을 꺼내 주었다. 그러나 황선희는 한푼도 받지 않았다. 대신 자기가 가져온 성기능제고중초약을 한꾸러미 내놓더니 팔아달라고 부탁하고는 총총히 떠나가버렸다. 황선희가 떠나간 후 지영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아 한달만에 나영은 완전히 생활을 자립할 수 있게 되였다. 그는 모텔방에서 더운 물을 틀어놓고 목욕재계하였다.그 놈 변강쇠한테 더러워진 몸을 깨끗하게 씻고 싶었다.깨끗한 몸으로 새 생활을 하고 싶은 욕망이 부지중 괴여올랐다. 그녀는 가로 세로 째진 상처투성이 아랫 배를 내려다보면서 정호에 대한 원한으로 이를 쁙쁙 갈았다. 그녀는 색마의 더러운 손때가 더덕더덕 묻은 몸을 샤와기로 이리저리 깨끗이 물을 치며 샴푸를 여러번 치고 빡빡 닦고 또 닦았다. 그녀는 풍만한 복숭아젖가슴을 내려다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개놈새끼, 매번 달려들면 젖가슴부터 게걸스레 빨고 핥고 개지랄했지. 항상 변강쇠 그걸로 날 하늘공중에 뿡 뜨는 기분에 잠기게 하고는 변강쇠느라고 으시댔지. 나도 미쳤지. 그놈 색마한테 속이워 미쳐 따라다녔잖아. 그 놈이 음험하게 뒤에서 심계국에 날 고발한 것도 모르고 속히운 걸 생각하면 원통해죽겠다. ” 그녀는 샤와기로 젖가슴에 물을 뿜고 샴푸를 발라 씻고 또 씻었다. “그놈 색마놈은 항상 뒤로 달려들어 날 유린할대로 했지.” 나영은 샤와기로 펑퍼짐한 엉덩이에 물을 쏴- 쳤다.  순간 그녀의 눈 앞에는 정호가 사무실에서 자기를 처음 간음하던 몸서리치는 장면이 떠올랐다. 정호는 나영을 부관장 겸 재무과장으로 제발시키겠다고 해 얼려놓고 불시에 뒤로 달려들어 사무상에 쓰러뜨리고 짧은 치마를 훌렁 내리웠다. “왜 이래요? 전 기생이 아닌데요.” 정호는 누런 이발을 드러내면서 구슬렸다. “녀자는 자기 몸에 달린 무기를 잘 쓸줄 알아야 하오. 제 돈도 가져오지 않고 몸도 안 주면 누가 저를 제발시키겠소? 눈을 지긋이 감고 들이대오.” (아니, 내 남편도 이렇게 들이대라고 강요한 적이 없어.) 그러나 색마 정호는 나영이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았다. 그 놈 색마의 육실한 그게 벌써 그녀의 몸 속으로 깊숙이 쑥 들어와 아프게 찔러댔다. “개새끼, 날 뒤로 얼마나 해재꼈어? 이 더러운 엉덩이를 썩뚝 베서 개를 줘라. 퉤, 더러워 어떻게 살아?” 나영은 엉덩이를 꼬집어놓으며 샤와기로 물을 뿜고 씻고 닦아댔다.  몸은 비록 백옥처럼 씼었지만 마음 속의 더러운 상처는 지우기 힘들었다. “이젠 죽어도 외간사내하곤 아니야. 철석을 볼 면목도 없어. 리혼할가? 건데 성림이 불쌍해. 애비에미 얼마나 꼴사나워? 성림을 한국에 데려와 공부시켜야지.” 그런데 그녀는 지금 자기 주위에서 제일 가까이 다가오는 종호가 부지중 부담스러웠다.  (안돼. 아무리 기자라도 어떻게 알아? 정호를 봐라.  단위에서는 천하없는 군자처럼 행세했지만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 위군자, 천하에 둘도 없는 색마 아니였던가. 기자라고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 천길물 속은 알아도 한치 사람 속은 알기 힘들지.) 나영은 이젠 모든 남자들을 경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지금 지영을 심부름시키자니 경찰들한테 꼬리 밟힐 거 같았다. 별 수 없이 젤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종호를 림시 의지하는 수 밖에 없었다. 종호는 문안하러 모텔에 찾아왔댔다. 그는 락태시슬을 아주 순조롭게 한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그는 나영을 보고 근심스러운 일부터 일깨워주었다. “모텔을 옮겨야 하오. 경찰들이 뒤를 밟아 찾아올 수도 있소.” 종호는 나영을 보고 충고했다. “어떻게 항상 모텔에 돌아다니면서 경찰들과 숨박꼭질하겠소? 허물하지 않으면 내 집에 가 있소.” “그렇게야 어찌...?” 나영은 고맙긴 했으나 주저했다. 종호는 그 자리에 있는 지영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달리 생각하지 마오. 난 건축현장에 나가 회사 숙사에서 자면서 일하오. 집이 텅텅 비였소. 그래도 모텔보다 더 너르고 안전할게오.” 지영은 나영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라. 안전이 제일이야.” 지영은 종호가 화장실에 간 틈을 타 나영의 귀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얼마나 정직한 기자선생님이냐? 이 인심이 야박한 세상에 기자선생님만한 사람이 있니?  믿어라.” 나영은 황선희와 지영을 번갈아보았다. 나영은 믿음에 찬 눈길을 모텔방에 들어서는 종호한테 돌렸다.  종호 손에는 먹거리가 한꾸러미 들려 있었다. 그는 먹거리를 침대머리에 내려놓고 호주머니에서 키와 무슨 메모지를 꺼냈다. “이건 내 셋집 열쇠오. 언제든지 필요하면 여기 주소대로 찾아가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오. 건축현장 일이 바빠 먼저 가야겠소.” 종호는 말을 마치자 사람좋게 미소를 짓더니 문 밖에 나섰다.  그러나 나영은 맥없이 머리를 끄덕일뿐 종호를 따라 갈 용기는 없었다.       “잠간만요."       지영이 종호를 따라나섰다.       "나영을 널리 량해세요. 색마한테 혼나서 어진간해서 남자들을 믿지 않기 마련이죠. 제가 대신 선생님 집 위치를 알아뒀다가 나영한테 알려주지요."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고 지영을 데리고 가서 자기 집을 보였다. 나영은 종호를 떠올리자 마음 속으로 감사하면서도 경계의 탕개는 늦추지 않았다. 전번에 병원에서 부랴부랴 간호사복을 입고 도망치다나니 옷 한벌도 없었다. 자살하기 전에 모텔에 둔 온 트렁크와 옷은 몽땅 경찰들의 손에 들어가 차압당했다. 그래도 친구 지영이 있어 입던 옷이라도 가져다 주어 허망 벗지는 않게 됐다. (몸도 깨끗이 씻고 나가 옷도 사입어야지.) 그녀가 속옷을 껴입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보름달얼굴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대신 수척해진 해바잔 박씨얼굴이 불쌍했다.      "그놈 색마는 항상 내 보름달얼굴이 어떻구, 볼우물이 옴폭파이는 보름달얼굴이 이쁘다는지, 볼우물에 퐁당 뛰여들어 목욕하고 싶다는지 하면서 날 구슬렸지. 뭐 새물새물 웃는 눈웃음 매력이 사람 다 죽인다는가? ㅋㅋ,"     나영은  거울에 비낀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며 정호를 욕하다가 저도 몰래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해 킬킬거렸다. "개놈새끼 항상 달콤한 미사려구로 날 꼬셨지?"     그녀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빗을 때였다. 꽝꽝꽝. 갑자기 다급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 열엇!” (경찰들이 왔잖아? 이걸 어쩌나?) 나영은 발뼘발뼘 문께로 가서 감시구멍으로 내다보았다. 두리모자들이 얼른거렸다. (아차, 이걸 어쩌나? 절대 감옥밥을 먹을 순 없어. 성림은 엄마 없이 못 살아.) 그녀는 문께에 대고 소리쳤다. “네, 곧 열지오. 샤와하는데요. 좀 기다리세요.” “딴전 부리지 말고 어서 문 열엇!” 나영은 부랴부랴 옷을 주어입고 핸드빽을 찾아들고 모텔방을 휘 둘러보았다. 뒤창문이 보였다. 뒤창문을 활 열고 뛰여내리려고 내다보았다. (4층에서 어떻게 뛰여내리?) 그녀는 주춤거렸다.  불현듯 그녀의 눈에는 아래로 쭉 뻗은 가스관이 보였다. 그녀는 아직 젊어서 그렇게 날랬는가. 아니야. 감옥에 가지 않고 자유롭게 살려는 욕망이 그녀를 그렇게 용감하게 만든 것이리라. 나영은 주저없이 가스관을 꽉 끌어안고 아래로 미끌어져내려갔다. 모텔방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자 경찰들은 보스를 시켜 문을 열게 했다. 뒷창문이 열려 있었다. “진짜 정탐영화에서나 있을 일이군.” 경찰들은 뒷창문께에 다가와 가스관과 눈이 아찔한 아래 골목길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녀자라고 너무 깔보았군.”   나영은 허망 쫓겨나 갈데없었다. 그녀는 엄동설한에 찾아간 적 있던 지하철 종각역에 갈가도 생각했다. 그러나 인차 머리를 가롤 로 저었다.         순간 그녀의 눈 앞에는 자기 집에 옮겨가라던 종호의 순박한 얼굴이 피뜩 떠올랐다.         나영은 핍박에 의해 량산에 오르는 수 밖에 없었다.          "기자선생님을 한번 믿어보자." 그녀는 그날 밤에 도적고양이처럼 어둠을 살금살금 밟으며 대림동 부근에 있는 종호네 집으로 스리슬쩍 스며들었다. 지영을 따라 미리 종호네 집을 알아둔 것이 지금 보면 다행이였다. 종호네 집은 모텔만은 좀 더 큰 단칸방 셋집이였다.  콧구멍만한 셋집을 둘러보아도 서발막대를 휘둘러도 걸칠게 없었다. 그런데  부엌쪽 빨래줄에 부래지어가 유표하게 걸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기자가 왜 살기 힘든 모양이지? 안해와 함께 한국에 돈 벌러 왔는가?) 나영은 놀랐던 가슴을 부여안고 셋집 구들에 맥없이 물앉았다. 똑똑똑. “뭐야? 여기까지 추적해왔어?” 나영은 깜짝 놀랐다. “나요. 종호요.” 나영은 놀란 가슴을 쓰러내렸다. 그녀는 쌍까풀 포도눈을 살며시 내리깔며 한숨을 호 내쉬였다.  그녀가 문을 열자 종호가 들어섰다.  “끝내 왔구만.” 그는 어정쩡해 우두커니 서 있는 나영을 보고 해석이나 하듯 중얼거렸다. “오늘 딸이 오기로 해서 찾아왔소. 곧 현장에 가야겠소.” “아니, 얘기나 좀 나누고 가요.” “그럴까?” 종호는 신을 벗고 구들에 올라와 텔레비죤을 켰다. 어색한 침묵을 깨뜨리려는 상 싶었다. 나영은 궁금해 물었다. “기자기에 살기 괜찮겠는데요. 힘들게 건축현장 일을 딱 해야 하는가요? 딸 뒷바라지를 하자고 그러는가요?” 종호는 스스럼없이 말했다. “딸이 한국에 류학와서 박사공부를 하는 중이오. 그 애 뒷시중도 해야 하고. 또 이전에도 말했지만 항일렬사이야기 책도 더 내자고 그러오. 돈이 없이 어떻게 책을 내겠소?” “그렇군요.” 나영은 바줄에 걸린 부래지어를 다시 쳐다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종호도 궁금해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경찰들이 쫓아다니오?” 나영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였다. “한마디로 말하기 힘든데요. 차차 알게 되겠지요.” 종호는 구태여 더 캐여묻기 싫었다. 그는 우쭐 일어났다. “밤도 깊었는데 가봐야겠쏘. 안심하고 푹 쉬오.” 나영은 문께로 나가는 종호를 바래며 머리를 숙였다. “미안해요. 저 때문에...” “그런 말 말고 푹 쉬오. 나영은 내 딸 리향과 딱 정동갑입데. 바꿔놓고 내 딸이 이런 일 있으면 누구라도 이렇게 도울게 아니오? 날 그저 아빠 같은 아저씨라고 여기면 되오.” “네, 아저씨, 의지가지 없는 저를 조카처럼 도와주어서 고맙습니다.” 나영은 어둠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종호의 믿음직한 잔등, 그 드넓은 잔등을 바라보며 송구한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보름달얼굴에는 믿음직한 아저씨 한분을 모시게 된 것으로 해 감격의 눈물이 즐 끊어진 구슬처럼 주르르 흘러내렸다.   날이 감에 따라 정기 없던 그녀의 눈에는 새 삶의 빛이 반짝였고 백지장 같은 보름달얼굴에는 삶의 용기가 다시 움트기 시작하였다. 안개 속처럼 헤아리기 어려운게 나영의 막막한 현실이였다.이제 나영은 기자선생님과 어떤 로맨스를 엮게 되겠는지? 
323    대하소설 졸혼 제6권 96 김장혁 댓글:  조회:1258  추천:0  2023-06-03
대하소설        졸혼              제6권                               김장혁           96. 락태   망망한 바다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한다고 나영은 곤경에 빠지자 풋면목이나 아는 기자 종호를 찾아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그녀는 허의사한테 떼운 돈을 꼭 찾고 싶었다. 살고파 그런 것보다도 세상천하에 의사 허울을 쓴 사기군한테 돈을 떼우고 말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한국 이국 타향이라고 해도 시비 있고 법이 있겠지.) 나영은 모텔 침대에 누워 끊없이 속궁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이 혹을 떼버릴가? 어느 병원에 갈가? 의사들이 낙태죄 두려워 락태시술을 해주겠는가? 그럼 어쩐다? 락태약은 글쎄 중국에 있는 사촌녀동생 춘영한테 부탁하면 되겠는데. 이젠 애 넘 커서 락태약으론 안될게 아닌가. 참 답답해. ) 그녀는 답답해 아랫배를 꽝꽝 치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기자선생은 허의사한테서 돈을 찾았는지? 어째 까딱 기별이 없지? 사기군놈이 그리 쉽게 천만원이나 내놓을가? 헤이참, 이 놈 세상에선 진짜 선전을 척 내놓기 무서워.) 똑똑똑 그때 조용한 노크소리 들렸다. 나영은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두근닥근 뛰며 당장 바깥으로 튕겨나올 것만 같았다. 나영은 발뼘발뼘 문께에 다가가 나직이 물었다. “누구세요?” 당연희 한어로 물었다. “종호요.” “네, 들어어세요.”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찾아온다더니 종호가 용케도 지영이 알려준대로 햇빗모텔에 찾아왔다. 나영이 문을 절컥 열자 종호가 헤벌쭉 웃으며 모텔방에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은행종이박스가 쥐여져 있었다. “어서 앉으세요. 모텔방이 콧구멍만해 아수선한데요.” 종호는 사람좋게 웃으며 침대 맞은켠 걸상에 마주 앉았다. 종호가 둘러보니 돌아설 자리도 없었다. “괜찮소. 돈이 바쁜데 언제 으리으리한 호텔방 다 잡겠소?” 그는 나영 앞에 누런 은행종이박스를 척 내놓았다. “자, 받소. 그 놈 사기군한테서 천만원을 찾아왔소.” 나영은 두 손을 가슴에 마주 쥐며 놀라했다. “어마나, 이리 빨리 찾아냈군요. 고맙습니다.” 나영이 누런 종이박사를 들여다보니 5만원권 두 묶음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이때만큼 종호가 고마울 수 없었다. 감지덕지했다.  그녀는 돈묶음을 핸드빽에 챙기고나서 오쫄 일어났다. “갑시다. 맥주나 한잔 나누죠.” 그러나 종호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 몸이 불편하겠는데 그만두오.이젠 밤도 깊은데.” 그러나 나영은 기어이 고집을 부렸다. “기회를 좀 주세요.” 종호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전 아직 건강이 회복되지 못했는데. 어떻게 술 마시오?” 나영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좀 궁리하다가 머리를 들었다. “그럼 커피라도 마실가요? 이야기를 좀 나누면 안돼요?' 그제야 종호는 일어났다. “그럼 커피 딱 한잔 마시는 걸로 하기오.” “네. 그래요.” 종호는 나영의 돈을 많이 팔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모텔방을 나와 골목길에서 빠져나갔다. 나영은 습관적으로 뒤에 꼬리 있는가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그들의 뒤에는 행인 그림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서울의 밤은 불야성을 이루었다.  연분홍 네온등불빛이 명멸하는 밤거리에서 청춘남녀들이 팔을 끼고 희희락락 거닐고 있었다. 나영과 종호는 부근 근사한 커피점에 들어갔다. 그들은 참대숲이 우거진 커피점 구석진 좌석에 가 마주 앉았다. 하얀 앞치마를 두른 아가씨가 사뿐사뿐 다가왔다. “뭘로 할가요?” 나영은 5만원권 한장 내놓았다. “랭커피 두잔 주세요.” “네, 고맙습니다.” 아가씨는 5만원권을 쥐고 돌아갔다. 이윽고 아가씨가 랭커피 두잔을 쟁반에 들고와 달랑 차탁에 내려놓고 거스럼돈을 두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돌아서갔다.  나영은 커피잔을 들어 권했다. “기자선생님, 의지가지 없는 저를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종호는 커피잔을 들고 소탈하게 말했다. “이후에도 무슨 일 있으면 스스럼없이 말하오. 있는 힘껏 도와주지.” “감사합니다.” 나영은 종호가 너무 극진해 다른 생각도 들었다. (기자선생님은 왜 나를 이렇게 돕지? 일도 바쁠텐데. 전번엔 위문금까지 내놓고. 혹시 날 욕심내는 건 아닌지?) 나영은 종호보다 20여세나 어렸다. 나영의 아버지보다 대여섯살 차 돼보였다. 나영의 눈 앞에는 색마 변강쇠가 피뜩 떠올랐다. (세상 남자들은 다 믿기 어려워.) 나영은 핸드빽에서 5만권 열장을 꺼내 종호 앞 차탁 위에 내놓으며 용기를 내 나직이 말했다. “적은대로 감사한 마음에서 드리는 건데요. 꼭 받으세요.” 종호는 그 돈을 나영의 앞에 되밀어주었다. “오해했군. 내 감사비나 얻어 쓰자고 도운게 아니오.” 나영은 감사비나 드리고 심리부담을 덜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종호가 나올줄은 몰랐다.  “그럼 미천한 저를 왜 이렇게 도와주는가요? 저는 선생님께 해준 일도 없고 어떻게 해줄 것도 없는데요.” 종호는 나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나영이 이상하게 보였다. 전번에도 병문안 하러 갔다가 나영이 들어 있는 구급실 문 앞 복도에서 지키는 경찰 둘을 보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댔다. (무슨 죄를 졌기에 자살까지 하려고 해? 경찰들까지 지키고? 이름도 자꾸 바뀌잖아. 냉면음식점 허보스는 나영이라던데. 지영은 뭐 미영이라고 했다가도 나영이라고도 하고. 무슨 개판이야?) 지영은 종호가 갓 면목익혔다. 그런데 왜 나영은 병원에서 도망쳐나와 모텔에 들었는가?  종호는 생각할수록 안개 속 같은 오리무중에 빠졌다.  나영은 병원에서 구급한지 보름도 안되지 않는가, 그런데 온전히 걷지 못한다던 나영이 펀펀하지 않는가? 병원에서 나와 모텔에 도망치다니. 너무 이상했다.  (오늘 밤엔 거리에 나와 커피까지 마실 수 있다? 병원에서 도망치려고 걷지도 못한 척해 경찰들의 경각성을 쏙 빼버리게 했는가? 옳아. 바로 그거야.) 그는 나영의 속을 환히 꿰뚫어본 것처럼 커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우린 이국 타향에서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하오. 다른게 없소.”  그제야 나영은 자기가 너무 야박하게 논 것을 느꼈다. 그러나 늦었다. 종호는 나영을 마주 바라보았다. (앓고나서 좀 신경에 좀 이상이 생겼는가.) 나영은 정호한테 짓밟힌 후부터 당연히 웬간해서는 남자들을 믿기 어렵기 마련이였다. 종호는 우쭐 일어났다. 착한 마음으로 도와나섰는데 오해하는 나영이 얄밉기도 하였다. “밤도 깊었는데. 이만 하지. 건강을 잘 챙기오. 새파란 나이에 너무 짧게 생각하지 말고 굳건히 살기 바라오. 죽음도 두렵지 않으면 왜 살 용기는 없소? 널리 생각하오. 삶의 용기 내서 곤난한 문제는 하나하나 헤쳐나가면서 굳건히 살아야 하오. 모텔도 인차 바꾸오. 경찰들이 뒤를 밟을게 아니오? 이후에 무슨 일 있으면 알리오.” 종호 말에 나영은 마음씨 착한 종호한테 미안해 어쩔줄 몰라했다.  그녀는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하다가 오쫄 일어나 종호를 커피점 바깥까지 바랬다. 나영은 모텔에 돌아오자 발길질하는 뱃 속의 그 놈 혹 때문에 또 고민의 쁠랙홀에 빠졌다. “이 놈부터 떼버려야 하는데. 누굴 찾아갈가?” 그때 지영이 허겁지겁 모텔에 찾아왔다. “몸은 어떠냐?” 지영은 핸드빽을 침대머리에 놓으며 해쓱한 나영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넌 작작 찾아다녀라. 괜히 꼬리를 묻혀 오겠다.” 나영은 친구라도 있어 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얘, 이 놈 혹을 떼는게 우선이야.” 지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병원 다른 산부인과 의사한테 문의했다.” “너네 과냐?” “그래. 건데 그 의사도 한 500만 없인 공 해줄 거 같잖아. 지금 어디 공짜 있느냐? 비법락태죄를 질가봐 겁나하면서도 돈 보고 하자는 거 같더라.” 나영은 한참 지영을 마주 보라보다가 무거운 입을 뗐다. “아니야. 너네 병원에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되붙이겠다.” 지영은 의아해했다. “무슨 말이냐?” 나영은 지영의 손을 잡고 말했다. “거기 갔다가 경찰한테 잡히면 어쩌니? 설상가상 네한테도 련루시키게 돼.” 지영은 나영의 거친 손을 매만지며 말했다. “난 괜찮아. 그런데 산부인과 주임인 허의사 눈을 피할 수 있겠니? 허주임한테 발각되는 날엔 끝장난다. 그러나 그 의사를 모텔에 데려다 락태시슬하면 어떻겠는가도 궁리했다. 나도 의학대학 졸업생이 아니냐? 시슬은 못해도 간호사로는 격이 넘치지.” 나영은 손사래쳤다. “한국 의사는 그만두자. 모텔에서 시슬하면 경찰들한테 들킬 념려없어 좋지만도. 이젠 한국 의사라면 딱 질색이야. 다 사기군 같아. 그 의사 경찰에 밀고하겠다면서 돈을 엄청 내라고 협박이라도 하면 어쩌겠니?” 지영은 외까풀눈을 치켜뜨며 답답해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럼 무슨 수 있느냐?” 나영은 머리를 들고 지영을 믿음에 찬 눈길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렇게 하면 어떨가? 황선희라는 친구언니 있어. 일본 의대 류학출신 녀박사야. 그 언니를 한국에 청해다가 모텔에서 낙태시슬하면 어떨가?” 지영은 걀죽한 얼굴에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위험하긴 하지만 그게 좋을 거 같아. 그런데 어떻게 아는 친구인지 한국에까지 오자 하겠느냐?” 그러나 나영의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에는 일루의 희망의 빛이 어렸다. “당장 련락해보렴.” 지영의 말에 나영은 핸드폰을 들었다가 천천히 맥없이 내리웠다. “안돼. 내 직접 전화하면 경찰들 덫에 치울 수 있어.” “내 전화하래?” “아니야.” 나영은 지영의 손을 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별 수 없구나. 종호. 그 기자 신세를 지자.” 지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종호라면 경찰들은 아직 의심하지 않을 거야.” 이튿날 오전, 종호는 지영이 제공한 핸드폰 번호에 국제전화를 쳤다. 그는 황선희한테 사정얘기를 쭉 했다. 황선희는 제약공장에서 코로나 백신생산 때문에 개미 채바퀴 돌듯 바삐 맴돌아쳤다. 하지만 곤경에 처한 나영의 처지를 알고는 흔쾌히 대답했다. “어쩜 나영이 임신됐어? 그 놈 변강쇠 혹을 떼붙혔겠구나.” 벙어리가 벙어리 고충을 안다고 선희는 나영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색마 정호의 피해녀라고 여겨 동정심이 움직였던 것이다.  그녀는 당장 군철한테 고향 집에 부모가 편찮아 급히 가봐야겠다는 구실로 청가맡았다. 그리고 시슬에 필요한 수술칼과 핀센트 등을 준비해하지고 한국으로 날아갔다. 마취약은 괜히 공항에서 마약을 휴대했다고 잡힐가봐 휴대하지 못했다. 황선희와 지영은 나영의 전도를 생각해 큰 마음먹고 모텔방에서 모험적인 락태시슬을 했다. 물론 마취약을 비롯한 시슬에 필요한 약물과 의료기는 몽땅 지영이 병원에서 과주임인 허의사 눈을 피해 가만가만 장만해뒀다가 모텔에 가져 왔던 것이다. 락태 시슬은 아주 성공적으로 됐다. 황선희박사의 능란한 시슬 솜씨로 해 반 시간 남짓해 나영의 뿔룩한 배 속에서 끝내 그 놈의 죄악과 피눈물로 얼룩진 혹덩이를 떼버렸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나영은 혹을 떼버렸다는 말에 어두운 그림자가 흘러가는 수척해진 얼굴에 가냘픈 미소를 지었다.         졸혼의 더러운 죄악의 혹떵이를 떼버리고 고민의 쁠랙홀에서 해탈되는 순간의 말 못할 기쁨,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승리의 쾌감이 아니겠는가.        참사랑으로 부글부글 끓는 호수에서 게는 코웃음쳤다.        바람쟁이들이 고통의 놀부 박을 떼버렸다고나 해라. ㅋㅋㅋ
322    대하소설 졸혼 제6권 95 김장혁 댓글:  조회:1252  추천:0  2023-05-30
    대하소설    졸혼       제6권          김장혁           95. 혹달개 (내 어쩜 이런 혹달개 처지 됐어. 색마 놈을 달고 어떻게 사는가? 하루 빨리 혹이 더 크기 전에 떼버려야는데.)  나영은 침대에 누운 채 밑도 끝도 없는 착잡한 고민에 빠졌다. “수술비 없는 건 둘째고 병원에 수술하러 갔다가 경찰들한테 나포되면 어쩌지? 먼저 수술비를 마련해야 해. 지영한테서 가진 300만원으론 어림도 없어. 성림이 아빠 보고 돈 부치라고 할가?” 그녀는 인차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내 임신까지 한 거 알면 도끼로 찍어죽이자고 하겠다. 이담 성림을 한국에 데려다가 내 옆에서 학교를 다니게 해야지. 자칫 남편이 성림을 한국에 보내지 않을 수도 있어.) 순간 나영은 정호한테 미쳐 졸혼하고 가정과 성림을 버리고 도망쳐다닌 걸 후회하며 쓰라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세상에 후회약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가.) 비록 남편과의 성생활은 불감증과 반죽해 행복하진 않았지만, 애났지만,  단위 돈을 탐오하지 않고 평범한 가정과 성림을 지키면서 살지 않은 것이 못내 후회되였다.  그녀는 엄마를 눈이 빠지게 기다릴 성림을 생각하자 가슴을 칼로 에이는듯하였다.  순간 콧마루가 시큼해나면서 눈물이 줄줄 흘러 베개잇을 적셨다. 그때 나영의 눈 앞에는 며칠 전에 자기를 병문안하러 찾아왔던 신문사 기자 종호의 순박하고 로실해 보이는 얼굴이 떠올랐다.  (참 가슴 뜨거운 분이야. 진심이야.) 순간 나영은 불현듯  종호한테 도움을 청하고 싶은 마음이 꿀뚝같이 생겼다.   그녀는 렴치를 불구하고 천천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인차 핸드폰을 내리웠다. (안돼, 이 핸드폰은 경찰들이 도청할 거야.) 그녀는 몇해 동안 정호를 따라 국내외로 쫓겨다니면서 반정탐능력이 꽤나 늘었다. 나영은 신음소리 내며 아픈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나섰다. 그녀는 이 모텔을  찾아 들어올 때 골목 귀퉁이에 공중전화박스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도적놈의 쌍까풀눈으로 골목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전화박스에 들어갔다. 동전 몇잎 걷어넣고 지영의 핸드폰번호를 다급히 꼭꼭 눌렀다. 나영은 일부러 한어로 말했다. 한국에서 한어로 말하면 일반적으로 한국 인들은 알아듣지 못한는 걸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지영아, 종호를 내한테 보내라. 응? 오, 종호는 우리 음식점 단골이야. 응. 그래 그리로 가면 련락 될 거야. 언약대로 아침 해 뜨는 모텔에 들었어. 종호한테도 이젠 날 미영이라고 해라. 넌 다신 얼씬거리지 말라. 꼬리를 밟힐 수도 있잖아? 그래, 끊는다.” 나영은 누가 도청이라도 할가봐 인차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더는 지영을 련루시키고 싶지 않았다. 혹시 종호라면 경찰도 자기와 련계시켜 추적할 거 같잖았다. 지영은 점심시간에 병원 정원에 스리슬쩍 나갔다.  그녀는 구석진 앙상한 나무 밑에 가서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정원에 있는 공중전화박스에 들어가 종호 전화번호를 꼭꼭 눌렀다. “안녕하세요? 저 미영의 녀친인데요. 네, 연길랭면하던 음식점 녀주방장 말인데요. 예, 전번에 병원에 문안하러까지 왔다고 감사하다고 하던데요. 네. 지금 급한 일 있는데요. 저와 만날 수 있는가요? 네, 퇴근한 후에 한 여섯시 쯤에 신도림역에서 만날 수 있겠어요? 네, 리선생님도 전번에 병원에 와봐서 알겠지만요. 주위가 좀 불편해서요. 네. 그럼 만나 얘기 합시다.” 종호는 나영을 만나러 왔다가 별스럽게 경찰들이 복도 장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이상스럽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는 건설현장에서 일을 마치자마자 약속대로 신도림역에 부랴부랴 달려갔다. (그녀한테 무슨 일 생겼는가? 어째 병원에서 만나지 않고 신도림에서 지영과 만나야지?) 그가 지하철 입구에 들어가 층계를 부랴부랴 내려가는데.  웬 선글라스를 낀 30대 중반 녀성이 그에게 눈길을 유심히 주는 것이였다. 혹시나 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녀가 다가와 허리 굽혀 인사했다.  그녀는 종호를 한쪽 구석 쪽으로 데리고 가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종호가 따라가면서 유심히 살펴보니까, 그녀는 전번에 병원에 나영을 보러 갔다가 피뜩 본 적 있는 지영이 아니겠는가. 지영은 종호를 데리고 사람들이 뜸한 구석진 곳에 가서 종호를 믿음에 찬 외까풀눈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미영은 병원에서 나와서 동대문 부근 햇빛모텔에 들어 있어요. 도와줄 수 없겠는가 해서 미영의 부탁받고 찾았는데요.” “돕고 말고요. 뭐든 말하오. 그래, 미영인 지금 몸이 어떤 정황인데? 벌써 출원했소?” 지영은 주위를 둘러보고나서 조용히 말했다. “미영이 입원했던 그 병원 산부인과에 허씨라는 의사 있는데요. 그 놈 허의사는 락태시켜주지 않고 미영의 돈 천만원이나 허망 떼먹었는데요."      "뭐라고?"      종호는 깜짝 놀라했다.      “세상에 그런 일도 다 있소?"     지영은 뒷말을 이었다.    " 어떻게 찾아줄 수 없겠는가요? 물론 제가 그 의사를 찾아갈 수도 있어요. 그러나 리선생님은 기자 출신이지 찾아가면 더 낫을 거 같아 그래요.”      종호는 두말없이 대답했다. "내 방법을 대보지.” 그는 잠간 사색에 잠기더니 뒷말을 이었다. “그 놈 의사 돈 돌려주지 않고 견디는가 봐라. 미영이 무슨 일 있으면 허물없이 알려주오. 내 나설게. 우리 조선족들은 한국 이역에서 친형제처럼 한덩어리로 뭉쳐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하오.” 지영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의지가지 없는 미영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시겠다니 시름 놓입니다. 저는 경찰들의 요시찰 인물이기에 돌아가야겠습니다. 선생님도 절 만났기에 지금부터 요시찰인물이 될 수도 있는데요. 큰 일 없인 나영을, 아니, 미영을 찾아가지 마십시오.” “알았소. 미영이 림시 쓸 돈이 있는지, 돈을 찾으면 찾아가지.” 지영은 한숨을 호 내쉬였다. “전번에 나와 리선생님이 준 돈으론 한달이야 살겠죠. 뱃 속 애를 떼버려야겠는데요. 그 놈 의사한테 혹을 뗄 돈을 떼워 큰일인데요. 리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한참 후 종호는 지영과 작별하고 곧추 병원으로 그 놈 의사를 찾아 달려갔다.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그 날 밤 그 놈 허의사는 밤당직이 돼 산부인과에 있었다. 종호는 곧추 허의사 사무실로 찾아갔다. 노크하고 사무실 문을 뚝 떼고 들어가자 갱핏하게 생긴 50대 중반 의사가 우쭐 일어났다. “어느 환자 때문에 찾는가요?” 종호는 옆에 다른 의사 없는 것을 보고 단도직입으로 따지고 들었다. “당신도 의산가? 어떻게 애를 떼주지도 않고 돈을 떼먹어?” 허의사는 대뜸 올 것이 왔구나 하면서도 외까풀눈을 가슴츠레 뜨고 딴전을 피웠다. “무슨 소린가요? 돈을 떼먹다니? 생사람 작작 잡아먹어요.” 종호는 어처구니 없어 고래고래 고함쳤다. “아닌 보살 떨겠어? 미영이, 알지? 네놈이 미영의 돈 천만원이나 떼먹지 않았어? 검찰에 신고하면 당신 이 자리에 있기나 하겠어? 당장 감옥에 들어가고파! 엉?!” 허의사는 그래도 능청스레 아닌 보살 떨며 불그락푸르락해 시치미를 땄다. “고발할테면 하라고. 무슨 근거 있는가?” “그럼 좋아. 내 검사를 데리고 와야겠어?” 그제야 허의사는 풀이 좀 죽었다. “아님, 숱한 깡패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당신 그걸 베갈까?” 허의사는 질겁해 손사래쳤다. “가만, 자, 여기 앉으세요. 천천히 상의합시다.” 종호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눈길로 쏘아보면서 의자에 앉았다. 허의사는 겁기 띤 외까풀눈으로 종호를 쳐다보며 목구멍에 들어가는 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미영한테 전해주세요. 제가 애를 떼주면 어떤가고? 그 돈 다 써버렸는데요.” 종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잔꾀를 부리지 말라고. 난  당당한 중국 기자야. 너 같은 놈 많이 보았어? 수술하는 척하고 환자를 해치면 어떻게 해? 당장 천만원 가져와.” 허의사는 간교한 웃음을 지었다. “당장 낼 돈 없어 그러는데요. 다른데 가서 애를 지우려고 해도 그만한 돈은 들어야 해요. 황차 그 녀성은 려권도 없던데요. 무슨 녀자인지, 어떻게 알고 락태시켜요? 락태죄 범하면 역시 감옥에 가요.” “픽! 고양이 쥐 생각하는구먼.” 종호는 코웃음쳤다.  “한달에 몇백만원씩 벌면서 딴전 부려? 불쌍한 중국 교포녀성의 피나는 돈 다 뜯어먹어? 어떻게 번 피눈물의 돈이라고 그래? 당신 량심 개 뜯어먹었는가? 당장 돈 가져오지 못할가?! 감옥밥 먹어야 알겠어.” 그는 허의사를 손가락질하면서 련주포를 쏘아부쳤다.  “이 기자를 어떻게 알어? 어째 네놈 그 더러운 이름  신문에 내줄가? 온 세상사람들이 비렬한 만행을 알게. ” 허의사는 종호 앞에 무릎을  털썩 꿇고 물앉아 손사래를 쳤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돈 당장 찾아다 줄게요. 용서해주세요. 잘 못했습니다.” “당장 가져오지 못할가?' “그러죠. 함께 은행에 가자요.” 종호는 그 자리로 허의사와 함께 택시 타고 은행에 달려가서 천만원을 돌려받았다. 종호는 갈라지면서도 허의사를 손가락질하며 을러멨다. “다시 불쌍한 중국 조선족녀성들을 사기쳐봐. 절대 용서하지 않을테야!” “네, 네. 잘못했습니다.” 허의사는 허리를 굽신거리면서 빌었다. 그는 5만원권 몇장 꺼내 내밀면서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이걸 받고 절대 신문에 내지 마세요.” 종호는 그 더러운 돈 훌 뿌려주고 택시를 타고 바람결처럼 나영을 찾아갔다. “날 뭐로 알어? 네놈 같은 사기군인가 해?” 종호는 택시에 앉아 코웃음쳤다. (흥, 세상도 한심하지. 미영은 뭐 혹달갠가? 무스게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되달고 온다더니. 참, 어쩜 저런 놈 다 믿고 돈 천만원을 척척 내밀어? 얼마나 사악하고 험난한 세상인심인가.) 사기군의 꼬리는 휘파람 불며 아우성친다.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되달고, 혹달개 혹은 더러운 똥굴레처럼 구을며 비명을 지른다. ㅋㅋㅋ 당당한 기자 앞에 사기군의 허위는 부서지고 어두운 밤에 파렴치한 황금몽이 천길나락으로 떨어져 산산히 박산났구나.
321    대하소설 졸혼 제6권 94 김장혁 댓글:  조회:1338  추천:0  2023-05-28
  대하소설                  졸혼                                      제6권           김장혁           94. 고통의 쁠랙홀 녀자들의 마음은 문턱을 넘는 사이에도 열두번씩 변한다고 한다. 나영은 경찰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면서 삶의 욕망이 고개를 쳐드는 감을 느겼다. 구급실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만 해도 나영은 살고 싶은 마음마저 없었다.  (뱃 속에 음험한 색마의 새끼를 떼버리지 않고 더 살고 싶지 않아. 믿을게 없는 이 놈의 세상에서 누굴 믿고 살아? 동전을 빡빡 긁어모아 모텔방비를 내면서 살아 뭘 해?) 순간 주름살투성이 허보수의 음충한 퉁사발눈길, 김보수의 가슴츠레한 외까풀눈이 떠올랐다. (몽땅 색마들이야. 숱한 색마들한테 씹히고 짓밟히면서 살아 뭘 해? 고달파. 정호, 그놈 색마 날마다 달려들어 한동이씩 싸넣던게 뱃 속에 혹을 달았잖아. 번마다 콘돔을 끼웠댔는데 어떻게 혹이 생겼지? 그놈이 너무 세서 콘돔이 째졌어? 아니야, 번마다 끝나면 내 콘돔을 빼서 검사해보았잖아?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혹시 그놈이 미리 콘돔에 바늘귀만한 구멍을 내놓았을가? 개놈새끼, 항상 순정과 리혼하고 젊은 첩을 해가지고 아들딸 한구들 낳으면서 살겠다더니. 참, 음흉한 놈이야. 제 명에 썩어지질 못할 색마야. ) 순간 그녀는 정호에 대한 원한으로 해 이발을 빡빡 갈았다. 나영은 지영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자기를 구한 의사들마저 원망스러웠다.  (훌 죽어버리면 모든게 끝나는데. 고통의 쁠랙홀에서 해탈되겠는데.)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점차 몸에 힘이 생기자 몇번이고 경찰과 간호사들의 눈을 피해 병실 창문을 훌 열고 뛰여내리려고 기회면 노렸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안간힘을 다해 일어나려고 조금만 움찍거려도 줄줄이 째진 배 동통이 심해 신음소리를 내면서 쓰러졌다. (죽자고 해도 죽을 수 없구나.) 그러나 처음 지영의 위안을 받으면서 생각이 점차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지영을 보자 나영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통탄했다. “날 죽게 놔둬라. 훌 죽어버리면 모든게 끝이야. 날 제발 고통스런 천길나락에서 해탈되게 놔둬라.” 지영은 이상야릇한 눈길로 나영의 정기 잃은 눈 속으로 들어가보았다. 나영의 심장이 마지못해 맥없이 벌걱벌걱 뛰고 있지 않겠는가. 머리 속에는 온통 먹칠한듯한 암흑천지였다. 속에는 정호에 대한 배신감, 증오감, 원망감 밖에 남지 않은 것이 아닌겠는가. 지영은 나직이 물었다. “뱃 속에 애는 누구 애냐?” 나영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눈을 감아버렸다. “걸 알아 뭘 해? 이 개새끼를 달고 어떻게 머리 들고 사니?” 지영은 나영이 정호와 장기동거한 일을 떠올렸다. “정호 거냐?” “그만 해라. 그 색마 말을 하지도 말라. 그 색마 새끼를 낳고서야 어떻게 창피해 사니?” 지영은 십중팔구는 정호 애라는 거 알게 됐다. 그는 자살하려고 드는 친구에게 삶의 용기를 북돋아주어야 했다. “성림을 봐서라도 살아야 해. 성림이 엄마 없이 어떻게 사니?”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돼. 성림인 이런 못난 엄마 없으면 나아. 난 이 병실에서 나가면 감옥에 들어가야 해. 성림을 볼 면목도 없어. 차라리 죽어버리면 엄마 없거니 할게 아니냐?” 지영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요 며칠 전에도 네 남편한테서 전화 왔더라. 요즘 전화 받지 않는다면서 네하고 통화하고 싶어한다더라.” 성림의 말을 듣자마자 나영은 가슴을 치며 울기 시작하였다. 지영은 나영의 불룩하게 부풀어오른 배를 내려다보면서 위안해주었다. “뱃 속의 애는 방법을 대보자. 내 아는 의사와 말해보든지?” 나영은 손사래를 쳤다. “그만둬라. 나도 이전에 애를 떼버리려가다 이 병원 산부인과 의사한테 천만원이나 떼웠다." "뭐라고?" 지영은 펄쩍 뛰였다. "어느 놈이냐? 그 놈을 놔두는가 봐라.꼭 그 돈을 찾아내야지.애를 떼버리는 건 내 수소문할테니 근심하지 말라." 웬 일일가?  그래도 친구가 있어 좋았다. 나영은 련 며칠 지영의 위안을 받고 웬 일인지 삶의 욕마이 꿈틀거리는 감을 느꼈다. 그러나 나영은 정작 병실에서 경찰들의 손아귀를 벗어나 택시를 잡아타고 도망치면서 또 머리가 삼검불 같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쫓겨다니면서 살아야지? 언제까지 고통의 쁠랙홀에서 헤매면서 심장을 조이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때 철길 갈림길에서 차단봉이 택시 앞을 척 가로 막았다. (뭐야? 경찰이 닥쳐왔어?) 나영은 질겁해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저쪽에서 요란한 경적소리 울리며 육중한 화물차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에이, 훌 죽어버리면 모든게 끝이야.” 순간 나영은 자살하려고 차문을 벌컥 열었다. “왜 이래요? 문 닫으세요.” 나영은 문 밖으로 튀여나가 차단봉 밑으로 빠져나갔다. “뭘 해?!”차단봉을 지키던 철도직원이 황급히 덮쳐나가 나영의 팔을 붙잡아 뒤로 홱 잡아쳤다. 나영은 철도직원을 깔고 뒤로 넘어갔다.       화물차가 나영의 발끝을 스치며 육중한 죽음의 노래소리와 함께 지나갔다. 염라전의 저승사자가 소름끼치게 스쳐지나가는 순간이였다.        철도직원은 쓰러져서도 나영을 안고 뒤로 한고패, 두 고패 구을렀다. “나요. 죽게 내버려둬요!' 나영은 발버둥질치며 철길 쪽으로 기여가려고 손가락끝으로 세멘트바닥을 긁으며 아득바득 발악했다. “미쳤어?! 새파란 나이에 왜 죽어?!” 나영은 단말마적으로 발악하며 미친듯이 고함쳤다. “손을 떼지 못해. 고통 속에서 해탈되게 놔두지 못해?!” 철도직원은 벌떡 일어나 나영을 안아 철길에서 좀 떨어진 둔덕까지 끌고 가며 고함쳤다.  “왜 이래? 아가씨, 무슨 일 있어도 죽으면 안돼. 굳게 살아야 해.” 택시 기사도 뛰여와 나영을 부축해 끌고 갔다. 나영은 미친듯이 도리머리를 홰홰 저으며 고함쳤다. “이 놈의 더러운 세상에서 살아서 뭘 해? 죽게 날 나둬요. 으흐흑, 흑흑흑,” 그녀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머리를 홰홰 저으며 애처롭게 울었다. 그의 눈앞에는 불현듯 성림이 떠올랐다. 순간 모성애는 그녀를 살고 싶게 만들었다. (안돼, 난 성림을 봐서라도 죽을 수 없어.) 정신이 펄쩍 든 나영은 경찰이 쫓아오지 않았는가고 쌍까풀눈으로 사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택시 기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기사님, 어서 갑시다.” “어디로?” 기사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피기 없는 나영의 복숭아 이마를 바라보았다. “홍대입구 쪽으로 모세요.” 기사는 나영의 정신상태를 반신반의하면서도 헛일을 하고 싶지 않아 나영을 부축해 택시에 다가갔다. 기사는 나영의 탄력 있는 허리를 끌어안고 가며 부지중 아래 그게 꿋꿋이 쳐드는 감을 느꼈다. 순간 정욕이 부글부글 끓어번져 온 몸을 부르르 전률했다.  세상 수캐는 다 이런가? ㅋㅋ 나영은 반사경으로 음충한 눈길로 자기 몸을 흘끔거리는 기사를 보고 코웃음쳤다. 기사는 택시를 느릿느릿 몰면서 물었다. “아씨, 택시비를 먼저 결산해주겠나요?” “그러세요. 얼마 드릴가요?” “먼저 2만원만 주세요.” “알았시오.” 나영은 지갑에서 5만원 한장 꺼내 기사한테 훌 주었다. 그제야 기사는 한숨을 후 내쉬며 쏜살같이 질주했다. 나영은 홍대 입구 쪽으로 달리다가 생각을 고쳤다. “기사님, 동대문 쪽으로 모세요!” “네?” 택시기사는 벼룩눈을 흡떴다. “5만원으론 안돼요.” 나영은 지영이 금방 준 300만원이 있어 뒤근심을 하지 않아도 되였다. “택시비 근심 말고 빨리 동대문으로 모세요.” “네.” 나영은 속궁리를 번개같이 굴렸다. (홍대입구 쪽 모텔은 안돼. 경찰들은 꼭 내 들었던 모텔을 지킬 거야. 지영이네 집에도 안돼.) 나영은 동대문에 가서 택시에서 내렸다. 그녀는 부근 좁은 골목에 자리잡은 모텔에 들어갔다.  모텔 주인아줌마는 나영의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이상야릇한 눈길을 보냈다.  지푸라기 달라붙은 머리카락, 먼지 씨부옇게 묻은 람루한 간호사복, 흘끔거리는 공포에 질린 쌍까풀눈... (좋은 아씨 같잖아.) 주인아줌마는 나영을 받기 싫었다. “빈 방이 없어요.” 나영은 5만원권 서너장 꺼내 척 내밀었다. ”선전 받으세요. 모텔방이 깨끗하면 여러 날 들게요.” 견물생심이라고 돈을 보자 중년주인아줌마는 반색하며 모텔 안으로 들여놓았다. 나영은 모텔방에 들어가자 샤와실에 들어가 샤와부터 했다. 그녀는 뜨신 물을 틀어놓고 때투성이 머리부터 내리씻었다. 그녀는 가로 세로 베여진 아랫배 흉터를 보자 뱃 속의 꿈틀거리는 혹이 괘씸해났다. 그녀는 이를 옥물고 아랫배를 주먹으로 마구 패댔다. 뱃 속 고통의 씨앗은 꿈틀거렸다. 아파  발길질하는지 배가 마구 아파났다. 얼기설기 내리 뻗친 상처와 수술자리는 아직 채 아물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철길에서 또 들볶는 바람에 배가 동통이 심했다. 그녀는 샤와를 말끔히 하고 거울로 자기 쌍까풀눈을 들여다보며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아직 죽을 나이는 아니야. 새파란 나이에 왜 죽어?” 그녀는 이불을 들쓰고 침대에 누워서도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젤 먼저 뱃 속의 이 놈 혹부터 떼버려야 해. 그럼 아무데나 가서 일하면 살겠는데.” 나영은 마음 속으로 지영이 고마웠다. 살고 싶을 땐 자기를 구한 지영이, 철도직원, 택시기사까지 다 고마웠다.  그러나 죽고 싶을 땐 그들이 다 미웠다. 고통의 쁠랙홀에서 지루하게 허우적거리게 만든 그들은 은인이 아니라 원수로까지도 생각됐다. 그녀는 성림 때문에 살고 싶었다. 고통의 쁠랙홀에서, 생사선에서 헤매면서도 이상하게 아들을 위해 악착스레 살고 싶었다. 강렬한 모성애는 그녀로 하여금 또다시 고통의 쁠랙홀에서 헤여나오도록 단말마적으로 몸부림치게 했다. 나영은 도대체 어떻게 고통의 쁠랙홀에서 벗어날까? 고통의 쁠랙홀에 호수 물이 차고 넘치며 세찬 파도를 일구었다. 저쪽 들쑥날쑥한 커다란 바위 뒤 파도가 잔잔한 호수에서 암암리에 원앙새들이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그때 게와 거부기들이 모여왔다. 그들은 한창 바람 피우면서 짝짓기를 하는 원앙새들을 쫓아버렸다. 원앙새들은 호수물 위에 동동 떠 도망가면서 불평을 부렸다. “왕바 같은게. 보기도 싫어.”  “맨물의 거시처럼 남의 좋은 일에 삐치긴? 진짜 가증스러워!” 거부기가 도도거리며 남의 눈을 피해 도망가는 원앙새들을 보고 도리머리질했다. “세상이 더럽게 바뀌었어. 잉꼬부부라던 원앙새도 다 바람 피우잖아. 저러게 내 몇백년 살아도 참사랑 별까지 있단 말은 못 들었어.” 게가 맞장구쳤다. “글쎄, 견우성과 직녀성이 있단 말은 들었는데. 참사랑별이 있단 말은 못들었어.” 거부기는 짧은 목을 빼들고 여기저기 살피며 개탄했다. “요즘 또 졸혼이란 우수운게 생겨났잖아? 숱한 남녀들이 졸혼에 미쳐 가정과 애들을 버리고 미쳐날뛴다잖아? 사내들은 나이 든 안해를 버리고 젊은 아가씨들이 어떨꿍해 게침을 질질 흘리면서 쫓아다니구. 뺑덕에미들은 졸혼하고 나홀로만의 삶을 산다고 남의 눈을 가리우려고 군스나를 해가지고 싸다닌다잖아.” 게도 집게다리로 손사래를 쳤다. “졸혼에 미쳤어. 그래서 숱한 가정이 핵폭탄을 맞아 산산히 부서져 쑥대밭이 됐지. 참 답답해. 요즘 인간들 왜 이래?” 거부기와 게 한탄소리에 호수물이 다 세찬 파도로 화답하고 평화의 비둘기가 애정비곡을 부르며 울며 날아옌다.   
320    대하소설 졸혼 제6권 93 김장혁 댓글:  조회:1259  추천:0  2023-05-23
  대하소설             졸혼                                          제6권                   김장혁           93. 야간도주   온통 새하얀 세상이다. 새하얀 모자가 희미하게 피뜩피뜩 뜨인다.  "정신차린 거 같아." "글쎄요.눈을 살며시 떴잖아?"      진절머리나는 허연 마스크들이 들여다본다.       환성소리 귀청을 간지른다. "끝내 살아났군요." "건데 이상해. 왜 유리쪼각으로 배를 찔렀을가?" "글쎄,말 못할 무슨 사연 있겠지." "글두 뱃 속의 애한테 무슨 죄 있어? 애 불쌍해." 하얀 모자들이 주고 받는 소리. (이게 어딘가?) 나영은 안간힘을 다해 천근무게나 되는 눈까풀을 살며시 떴다. "나영아, 아이구, 끝내 살아났구나." (귀에 익은 목소린데.) 나영은 물끄러미 소리 임자를 막연하게 바라보았다. "날 알아볼만 해? 지영이야." "지영이?" "그래,지영이야." 나영은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그러나 옴달싹하기도 힘들었다. "가만 누워 있어라.아직 건강이 회복되잖아 안돼." 지영은 나영을 안아 돌려눕혀 주었다. 나영은 간호사복을 입은 지영을 보고 꿈만 같아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래도 친구가 제일이야.) 지영은 녀간호사들이 병실에서 나가자 나직이 물었다. "왜 이렇게 바보짓을 했니?" 그제야 나영은 꿈에서 깨여나는 것 같았다. (내 어떻게 돼 여기 왔지?) "여긴 어디야?" 나영의 물음에 지영은 제꺽 대답했다. "병원 구급실이야. 넌 보름 동안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기서 구급치료받았다." 나영은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나직이 말했다. "왜 날 구했어? 난 이 세상에서 살기 싫어. 훌 죽어버리면 다 끊난 건데. 뱃 속 이 애를 어쩌니?” “왜 자살해? 뱃 속 애가 무슨 죄 있다고 그랬니?" 그제야 나영은 지나간 일이 천천히 떠올랐다. "왜 날 구했어? 죽게 놔두지 못하고. 난 색마 애를 가지고 싶지 않단 말이야. 으흐흑, 흑흑흑." 나영은 이불을 들쓰고 흐느껴 울었다. 녀간호사가 황급히 들어와 제지했다.  "환자를 이렇게 흥분하게 하면 안돼요.쉬게 놔두세요." 지영도 환자 병간호하다가 왔기에 인차 가 봐야 했다. "내 또 올게." 나영은 들었는지 마는지 울면서 응대도 하지 않았다. 지영은 보름동안이나 경찰들이 구급실을 떠나지 않는 것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나영이 공개수배범이라고 저래? 건강이 회복되면 잡아갈 거 같은데.) 그녀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도 나영이 근심스러웠다. 이튿날 지영은 간호사복차림으로 또 구급실 복도에 나타났다. 녀간호사들이 구급실에서 침대를 밀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지영은 황급히 달려가 물었다. "나영을 어디로 옮기는가요?" "건강이 회복됐기에 일반 중환자실에 옮겨가요." "네.감사해요." 지영은 침대에 누워 눈을 딱 감고 있는 나영의 곁에 다가가 이불을 여며주었다. 경찰들은 침대에 딱 붙어 따라갔다. 나영은 자기를 그림자처럼 딱 붙어 다니는 두리모자들이 보기 싫어 아예 눈을 딱 감아버렸다.  경찰들은 나영이 공개수배도주범이기에 3교대로 구급실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지켰다. 일반중환자실은 더 위층에 있었다. 녀간호사들은 침대를 밀고 엘레베이터에 들어갔다. 지영은 바로 이 층의 일반중환자들을 간병하기에 나영을 찾아와 보기 더욱 편리해졌다. 그는 간병하다가도 틈만 있으면 종종 나영한테 와서 이것저것 돌봐주고 한담도 하면서 동무해주었다. 어느 날,지영이 나영을 보러 갔는데 한 륙십대 초반의 사내가 찾아 왔다.한창 경찰들과 자기 신분을 말하고 무슨 관계라는 것을 밝히고 있었다. 지영은 그 남자가 누군지 잘 몰랐다. 그런데 피뜩 들으니 그 남자는 "나영의 한 고향 친척오빠"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영은 과일꾸럭을 들고 병실에 들어선 그 남자를 보자 첫눈에 신문사 로기자 종호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종호는 연길냉면이 맛있다고 자주 나영이 일하는 음식점을 찾던 단골손님이였다. 한 고향 조선족들인지라 종호와 나영은 고향친구랄가,오랍누이처럼이랄가, 좌우간 한국 땅에서 저도 몰래 친숙해진 관계로 되였다. 종호가 식당에 나타날 때마다 나영은 종호 냉면그릇에 소고기 몇점이라도 더 얹어 드리군 했다.종호는 감사한 마음으로  숱한 지인들을 데리고 나영이 음식점에  냉면을 먹으러  오군 하였다.음식점은 한때 호황을 이루었다. 하여 허보스마저 단골 종호를 무척 반겼다. 종호는 일이 바빠 보름만에야 연길냉면을 먹자고 나영의 음식점에 찾아갔다가 허부스한테서 나영의 사연을 듣고  병문안을 하러 왔던 것이다. "나영이, 어떻소? 건강이 좀 회복됐소?" 나영은 간신히 일어나 앉았다. "리기자,일 바쁘겠는데요. 찾아줘 감사해요." 종호는 바나나 껍질까지 벗겨 나영한테 내밀면서 말했다. "웬 말이오? 구급실에 있단 말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오. 우린 아무리 살기 어려워도 꿋꿋이 살아야 하오. 이후엔 무슨 바쁜 일 있으면 알리오. 이럴 때 옆에 사람이 있어야지." 나영은 바나나를 받아 한 입 먹고나서 인사했다. "감사해요. 일이 바쁘겠는데 찾아왔군요." 종호는 아직도 피기 없는 얼굴을 보더니 외투 안호주머니를 들추더니 두툼한 돈뭉치를 꺼내 나영의 앞에 내밀었다. 몽땅 5만원권이 아니겠는가. "적은 대로 치료비에 보태 쓰오." 나영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 이러지 마세요. 지영이 다 선대해줘서 치료비 걱정 안해도 돼요." 지영은 나영이 돈이 거덜난 걸 알고 돈뭉치를 받아 나영의 앞에 놓으며 말했다. "리기자님 성인데 받아둬라. 이후에 은혜를 갚으면 돼." 기실 나영은 전번에 뱃 속의 애를 절개수술해 떼버리려고 하다가 이 병원 산부인과 한 사기군의사한테 떼웠던 것이다.하여 모텔 방세도 제때에 내지 못해 쩔쩔 매다가 호주머니에서 동전마저 싹 다 들춰 마지막날 방세를 겨우 냈던 것이다.김보스는 나영한테서 방세로 동전을 한 웅큼 받아쥐고 나영의 난처한 처지를 대개 짐감하였던 것이다.하여 김보스는 나영의 행동거지를 주시하게 되였다. 김보스는 나영이 자살려고 하는 것을 인차 발견하고 경찰과 구급대에 제때에 신고했던 것이다. 나영은 남의 신세를 지기 싫어했다. 그러나 손에 동전 한푼 없는 형편에서 별 수 없었다. "감사해요. 제가 출원하면 꼭 갚겠습니다." 종호는 손사래를 치더니 사람좋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절대 갚을 필요없소. 한 고향 오빠 병문안 온게오." "그래서 되겠습니까?" "아니, 이국 타향에서 우린 한 고향 형제자매 아니고 뭐요? 어려운 일 있으면 서로 도와야지." 지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요.리기자님, 참 촣은 분이예요."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기자님, 저는 도와줄 필요없는 나쁜 녀자인데요." 종호는 이상야릇한 눈길로 나영을 바라보았다. 나영을 재확인하려는 상 싶었다. 나영은 미상불 아무 때건 밝혀질 자기 신상을 종호한테 밝히고 싶었다.마음씨 착한 종호한테 거짓짓거리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저는 죄 짓고 쫓겨다니는 신센데요." 지영은 나영을 흘겨보며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만해라.무슨 말을 다 해?" "괜찮아. 리기자님은 오빠처럼 믿는 분이야." 지영이 앞질러 나영의 입을 틀어막았다. "얘, 아직 정신상태 회복 안됐어요.아무 말이나 해 미안해요." 그제야 나영은 제정신이 들었는지 말꼬리를 슬쩍 바꿔 휘둘렀다. "저는 남편한테 죄를 짓고 한국에 도망쳐 나온 나쁜 녀자입니다." 그제야 종호는 알았다는듯이 허리를 펴더니 한숨을 후 내쉬였다. "피차 마찬가진데요. 지금 부부불화로 깨진 가정이 어디 한둘이오? 나도 안해와 리혼하고 하국에 나왔소." 이때 녀간호사가 들어와 말렸다. "환자와 너무 오래 면회하지 마세요. 환자는 충족히 쉬셔야 해요." "알았습니다." 종호는 우쭐 일어나 나영한테 얼굴을 돌리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후에 또 찾아올게.무슨 필요한 일 있으면 알리오. 하루속히 건강이 회복되기를 바라오." 나영은 이국 타향에서 오빠처럼 따뜻한 손길을 보낸 종호 마음 속으로 고마웠다. 그녀는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순간 뜨거운 눈물을 줄 끊어진 구슬처럼 주르르 흘렸다.  "리기자님, 고맙습니다." 종호는 복도에 나와 문 어귀를 지키는 경찰을 둘러보고 무척 이상해났다. 그는 따라나온 지영한테 나영의 사연을 더 물으려다가 그만 두었다. (더 알 필요없어.그저 한 고향 녀동생을 돕는 거야.) 지영은 자기 간병실에 돌아가면서 나영이 부탁한 말을 되새기며 속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렸다. (어떻게 나영을 경찰들 손에서 빼낼가?) 별로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골치 아팠다.   겨울 해는 토끼 꼬리처럼 짧았다. 해가 서산에 꼴깍 지자 어둠의 장막이 주원실 복도에도 서서히 내리였다. 다만 희미한 네온등이 어두운 그림자와 아귀다툼하며 흑백격돌을 일으킬뿐이다. 경찰들은 복도에 간호사복을 입고 마스크를 꼭 낀 녀자가 다가오는 것을 피뜩 보았다. 가까이 다가온 걸 보니 나영의 지인- 지영이 아니겠는가. 경찰들은 이젠 지영과도 낯익어 아무 말도 묻지 않고 나영의 병실에 들여보내고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나영이 땅바닥에 내려서서 걷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경찰들의 경각성은 눈뜨이게 느슨해졌다.  한참 후 간호사복을 입고 마스크를 꼭 눌러 낀 한 녀성이 병실에서 나왔다.  경찰들은 장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그녀를 피뜩 쳐다보았다.  그 녀성은 경찰들한테 머리를 한번 까땍 끄덕여보이고는 사뿐사뿐 엘레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한 경찰은 금방 들어간 녀자라고 여겼는지 인차 머리를 숙이더니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한 경찰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아님,그래도 혹시나 했는지, 병실 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침대에 환자복을 입은 녀성이 이불을 들쓰고 누워 쿨쿨 자고 있었다. 경찰은 문을 쿵 닫고 장의자에 들어앉아 시름놓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알아보니, 저 녀자 큰 죄도 지지 않았더구만" "그러게. 회사 돈을 한화로 한 천만 뜯어냈는 모양이더라." "건데 중국에선 인터폴에 공개수배범으로 올렸잖아." "아마, 돈 뜯어낸 거보다 적색수배범 정호란 범죄자와 함께 도망치며 숱한 검은 돈을 탕진하며 싸다닌 거 문제 된 거 같아." "아무렴, 까짓거 천만원 때문에 저게 뭐야?" 그 때 녀자는 엘레베이터 안에 들어가자 1층 단추를 꼭 눌러놓고 한숨을 후- 길게 내쉬였다. 그녀는 1층 대청 봉사대를 핼끔 곁눈질하고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두 손을 맞잡고 문 밖으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녀는 병원 문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쏜살같이 떠나갔다. 금방 택시에 앉아 도망친 그녀가 바로 공개수배도주범 나영이였다. 지영은 온하루 궁리 끝에 나영한테 미리 준비한 간호사복을 입혀 자기로 가장시켜 병실에서 도망치게 하려고 첫 방안을 세웠다. 지영은 나영 대신 병실에 나영의 환자복을 입고 누워 있었다. 공포의 반시간 쯤 흘러지나갔다.  (나영이, 이젠 멀리 도망 갔겠지.경찰들도 교대시간이 됐어. 이 틈에 도망쳐야지.) 그때 녀간호사가 들어왔다. "환자분, 퇴근 전 순회검사하러 왔는데요." 녀간호사가 침대에 다가섰을 때였다. 지영이 벌떡 일어나며 녀간호사의 목을 틀어쥐고 미리 준비한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강렬한 마취제 묻은 손수건으로 녀간호사를 쓸어뜨렸다.  지영은 환자복을 벗어 간호사한테 대충 입혀놓고 이불 안에 묻어놓았다. 지영은 녀간호사복을 주섬주섬 갈아입었다. 그녀는 간호사복을 입고 마그크를 꼭 눌러끼고 병실에서 나갔다. 경찰들은 장의자에 앉은 채 간호사복을 입은 지영을 피뜩 쳐다보며 머리를 끄덕이고는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지영이 엘레베이터로 다가갔을 때였다. 엘레베이터에서 경찰 둘이 불쑥 나왔다.아마 교대하러 온 경찰들인 거 같았다. 지영은 엘레베이터를 타고 일층으로 총총히 내려갔다. 그녀는 병원 바깥에 나가자 택시를 잡아 타고 나영과 만나기로 한 홍대입구 부근으로 바람결처럼 도망쳤다.   한편 교대한 경찰들은 병실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침대에 이불 덮고 쓰러져 있는 환자복 입은 녀자는 나영이 아니라 녀간호사라는 것을 발견한 순간이였다.ㅋㅋㅋ 이건 지영이 꾸민 나여의 야간도주 첫 방안이였다.        “그 방안 안돼."       나영이 다짜고짜로 반대했다. "내 살겠다고 널 련루시킬순 없어. 나중에 모든 진상내막이 밝혀지는 날엔 넌 공개수배도주범을 협조한 죄는 둘재고, 간호사를 상해한 상해죄를 지게 돼. 그 방안은 안돼." 궁리 끝에 지영과 나영은 야간도주 두번째 방안을 세웠다. 지영은 수면제를 몇 알 복용하고 나영의 환자복을 입고 이불 들쓰고 모로 누워 굳잠에 빠져버렸다.  나영은 지영의 간호사복을 갈아입었다. 그녀는 마스크까지 꼭 눌러끼고 주사기쟁반을 들고 병실에서 나가 경찰들의 눈을 속여넘기고 유유히 병원을 빠져나갔던 것이다. ㅋㅋㅋ 교대한 경찰들이 병실에 들어와 나영을 아무리 불러도 모로 누운 “환자”는 아무 대답조차 없었다. 경찰이 다다가 이불을 훌 들고 “나영”을 돌려눕혔다. “이게 뭐야? 나영이 아니야.” 경찰들은 깜짝 놀랐다. “나영이 도망갔어?” “여보세요!” “깨나세요!” “일어나세요!” 경찰들이 아무리 흔들어도 지영은 눈을 깨나지 못하고 쿨쿨 자는 것이였다. “간병원에게 마취약을 먹여놓고 옷을 갈아입고 도망친 거 같아.” “빨리 추격해야지.” 이윽고 병원 앞에서 경찰차 한대가 경적을 요란하게 울리며 쏜살같이 달려갔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된 경찰들은 나영을 놓치고 병실에 재차 나타났다. 지영은 몇시간 후에야 간신히 깨여났다.  경찰들이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지영은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내 어떻게 돼 여기 누워 있었지?”   그녀의 세귀눈길이 나영의 침대머리 차탁위에 댕그라니 마주 놓여 있는 음료병 두개에 가 멈춰섰다.  “아, 맞지. 나영이 주는 음료 마셨는데. 필림이 끊어졌나?” ㅋㅋㅋ  아저씨, 한국 경찰아저씨들이여, 집 잃고 외양간 고칠 수 있을가? 나영은 이제 또 어떻게 가시덤불 길을 헤쳐나가면서 살아나갈가?
319    대하소설 졸혼 제6권 92 김장혁 댓글:  조회:1465  추천:0  2023-05-21
대하소설     졸혼       제6권         92. 기사회생(起死回生)   어둠의 이불이 서서히 내려 모텔에서 초저녁부터 바람 피우는 벌거숭이들을 가려준다.  신음소리, 아우성소리, 비명소리, 개 죽을 먹는 쩝쩝 소리,  흐느낌소리 반죽돼 귀를 어리럽게 간음한다. 모텔의 김보스는 젤 안방에서 이상한 비명소리 나는 감을 느꼈다. (중국 교포아가씨 방 아닌가?) 순간 김보수의 눈 앞에는 금방 숙박비로 동전 한줌을 쥐여 주던 아가씨 초췌한 몰골이 떠올랐다. (돈도 빡빡 거덜났어? 동전으로 숙박비를 내다니? 눈도 정기 없었어. 혹시 무슨 일 있었나?) 김보스는 그 방 문께에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다른 방에서 어찌나 바람쟁이들이 아우성치고 신음소리 심한지 방 안의 동정을 똑똑히 들을 수 없었다. “아니, 이게 뭐냐? 피 아닌가!” 방 문쯤으로 씨뻘건 피가 주르르 흘러나오며 비린내 물씬 풍기지 않겠는가.  김보스는 콩알눈이 데꾼해졌다.  원래 호텔방 비좁은 바닥은 복도보다 높다보니 피가 문 밖으로까지 흘러나왔던 것이다. 김보스는 깜짝 놀라 문을 꽝꽝 두드렸다. “아가씨! 아가씨! 웬 일인기여? 문 열어! 아가씨!” 방 안에서 신음소리 날뿐 문은 열리지 않았다. 김보스는 부랴부랴 카운터에 달려나가 열쇠뭉치를 꺼내 가지고 달려왔다.  그는 황급히 열쇠로 문을 절컥 열고 침실에 뛰여들어갔다. 이게 뭔가? 반라체 아가씨가 침대 피못 속에 반듯이 누워 있는데 팔목에서 씨뻘건 피가 땅바닥에 줄줄 흘러내렸다. 반쯤 걷어올린 불룩한 아랫배도 이리저리 째져 있지 않겠는가. 깨진 술병사리 쪼각이 피 랑자한 침대머리께 땅바닥에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분명 깨진 술병사리쪼각으로 손목을 베고 배를 푹푹 찌르고 가로세로 짼 것 같았다. “아니, 아가씨, 무슨 짓인기여?” 김보스는 당황망조해 뺑뺑 맴돌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는 파출소와 구호대에  신고했다. 김보스는 아가씨의 팔목을 꽉 잡아 눌러 지혈시키려고 시도했다.  얼마 안지나 경적소리 요란히 들렸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쏜살같이 달려와 골목에 들어섰다. 경찰들은 모텔에 들어오자마자 먼저 신고자를 찾았다. 그들은 김보스를 따라 아가씨가 쓰러진 모텔방으로 들어갔다. 발들여놓고 돌아설 자리도 없는 비좁은 코구멍방에서 피비린내가 물씬 코를 찔렀다.   그들은 사건 현지에서 피못 속에 쓰러진 나영의 처참한 광경을 보고 김보스한테 아가씨 신원과 사건경과를 조사하였다.  그때 음식점의 허보수가 허둥지둥 모텔에 나타났다. “나영이, 어느 방에 있는가? 아니, 이게 뭐요? 나영이! 음식점에서 자라니께. 엄동설한에 기어이 나가? 참.” 경찰은 허보스한테 아가씨를 어떻게 아는가 물었다. “아니, 음식점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던 아가씨야.” “아가씨 이름은 뭔데요?” “나영이야, 나영.” 경찰들은 목책에 나영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경찰들은 허보수를 카운터에 데리고 나가 조용히 음식점에서 벌어진 일을 조사하였다. 허보스는 뜨물에 빠진 멧돼지 퉁사발눈이 돼가지고 마스크를 벗더니 엇저녁에 있은 사연의 자초지종을 쭉 이야기했다. “음식점에선 별 다른 일은 없었어유. 요즘 식당에서 나가겠다는 걸 내 로임을 높여주고 붙잡아두려고 했지요. 그런데 나영은 몸이 저래가지고서도 기어이 모텔에 나가 자겠다고 하지 않겠어요. 엄동설한 밤중에 어데 간다고 그러는가고 음식점에서 자고 래일 낮에 가도 된다고 했지요. 그런데도 기어이 엄동설한에 트렁크를 끌고 나가버렸죠. 난 나영이 근심돼 어데로 가는가고 뒤따라 이 모텔까지 왔댔지요. 나영이 모텔에 들자 난 한시름 놓고 음식점에 돌아갔지요. 오늘 일손이 딸려서 나영을 찾아왔는데. 이런 일 있을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요....” 구급대원들은 먼저 아가씨 팔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시키고 담가에 담아 구급차에 실어 병원으로 쏜살 같이 달려갔다. 김보스가 제때에 발견하고 신고했기에 다행이였다. 구급차에 실려가는 나영은 아직 숨이 가늘게 붙어 있었다.  그러나 병원 구급실에서도 의연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경찰들은 병원 구급실 복도에서 나영을 지키면서 신원을 밝혀내는데 전력했다. 그들이 나영의 방에 있는 소지품들을 다 들춰보아도 려권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경찰들의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그들은 먼저 나영의 핸드폰부터 열어보고 친척이나 지인을 찾으려고 서둘렀다. 중국에 친 전화 외에 젤 전화를 많이 친 전화는 최정호와 박지영의 한국 전화번호였다. 정호한테 아무리 전화를 쳐도 뚜뚜 소리만 날뿐이였다. 경찰들은 경찰청 서류실에 련계해서야 정호와 나영은 모두 인터폴 공개수배범, 도주범이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정호는 체포중 도망쳤다고 했다.  경찰들은 일단 병원에서 나영을 지키면서 구급되기를 기다려 체포해 구금하기로 했다. 경찰은 먼저  박지영한테 전화를 쳤다. “여보세요. 박지영씨인가요? 우린 경찰인데요.  네? 네. 나영씨 친척인가요? 네? 친구라구요? 네. 다른 일 아니고 나영씨 지금 병원에 사고로 입원했는데요. 네. 인차 병원에 올 수 있는가요? 네. 병원에서 구급하고 있는데요. 나영의 신변에 친인척이 하나도 없어 그래요. 네.  여긴 XX대병원인데요. 네. 인차 올 수 있는가요? 네, 협조해 줘 감사해요. 병원에서 기다리겠어요.” 십분도 안돼 박지영이 눈이 황황해 병원 구급실 복도에 나타났다. “아니, 나영아, 무슨 일이냐?”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가와  경찰들을 만났다. “경찰아저씨, 제가 박지영인데요.” 경찰은 마주 인사했다. “생각보다 퍽 빨리 왔는데요.” “네. 제가 이 병원에서 간병하고 있는데요.” “그래요?” 경찰들은 파란 색 간호사 복을 벗지도 않고 달려온 박지영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반색했다.   “참 잘됐어요.” 박지영은 경찰들한테서 대개 사건경과를 들었다. “에이, 애도 죽긴 왜 죽어?” 지영은 친구의 불행에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녀는 구급실에서 나온 의사한테 물었다. “생명에는 지장 없는가요?” “피를 많이 흘려 모진 빈혈이 왔어요. 제때에 수혈해 구급했기에 모자가 다 생명에는 지장 없어요. 며칠 보양하면 정신차길 거 같애요.” 박지영은 포도눈이 데꾼해졌다. “애라니요?” 의사는 지영의 놀란 포도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환자분은 임신 다섯달이나 됐는데요. 유리쪼각으로 아랫배를 여러 곳 찌른 걸로 압니다. 아랫배 상처를 수술해 유리쪼각을 다 주어내고 째진 배도 꿰매놓았는데요. 수술이 아주 성공적으로 잘 됐어요. 넘 근심 마세요.” 지영은 머리를 끄덕이며 한숨을 호- 몰아내쉬였다. (임신한 건 이제껏 내한테도 속였구나. 정호를 따라다니더니 임신까지 했구나.) 여기까지 생각하자 지영은 나영의 처지가 불쌍했다. 나영은 그래도 친구가 있어 다행이였다. 지영은 죽마고우 나영의 치료비를 먼저 척 선대해주었다.  며칠 후 나영은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였다. 머리에서는 제3차 대전을 하고 있었다. 모텔인지 음식점인지 어둑시그레 한 곳이다.  정호인지 음식점 허보수인지 뒤로 달려들어 나영을 와락 끌어안는다. “왜 이래요?” “인생이 얼마라고 내캉 놀자.” 경상도 말 하는 걸 보면 허보수 같았다. “메스꺼워. 이걸 놔!” 허나 그자는 나영을 놓지 않고 침대에 쓰러눕힌다. 나영은 손으로 그 자의 턱을 치받쳐올리고 발버둥질치며 아우성쳤다. “몸이 이런데 어째 사정도 안 봐주고 짐승처럼 마구 달려드는가요?” “괜찮아. 살살 다룰터니.” 그자는 나영의 치마를 와락와락 쳐들고 덮쳐들었다. 나영의 백지장 같은 허벅다리 훌렁 드러났다. 나영은 단말마적으로 저항하며 고함쳤다. “아, 아, 이러지 말라. 경찰에 신고할테야!” 그 놈은 싯누런 승냥이 톱이를 드러내며 씨벌였다.  “나영이, 그대를 사랑해.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걸 누가 체포해간대? 안 잡아간다는기여. 히히히.” ... 그놈은 끝내 그걸 한동이나 싸넣고 뿍 빠져나가 철써덕 쓰러졌다.   환각인가? 배가 불시에 둥둥 불어나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임신시켰어? 그 놈 정자는 뭔데 단통 임신해? 변강쇠게 돼 그런가? 이걸 어쩌나?)       나영은 속이 한줌만해져 둥기배를 끌어안고 근심이 태산 같았다.  그런데 그 놈이 숨을 돌리자 또 달려들었다. “이 개놈새끼, 물러가지 못해?!” 나영은 마구 몸부림치며 고함쳤다. “나영아, 왜 이래? 꿈을 꿨니?” (누군가?) 갑자기 귀에 익은 녀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영이 눈을 스르르 떠보았다. 눈까풀이 천근무게나 돼 조금도 뜨기 힘들었다. 그러나 쌍겹눈은 기적적으로 천천히 틈이 생겼다. 사면이 온통 새하얗고 파란 간호사복을 입은 낯익은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나영아, 끝내 살아났구나.” (누군가?) “나영아, 날 알아보겠니? 나 지영이야.” (지영이?) 나영은 그제야 시름놓고 눈을 다시 감아버렸다. 온통 새까만 천길나락으로 다시 서서히 빠져들어갔다.  저승사자들이 들 것을 들고 길목을 지키다가 안되겠다 싶어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더니 사라져버렸다. 뺀질뺀질한 번대머리, 희죽거리는 우멍눈, 게슴츠레한 퉁방울눈, 보기도 싫다하니 피뜩피뜩 나타났다. 며칠 후 허보스가 구급실 복도에 나타났다. 허보스는 울상이 돼 경찰한테 물었다. “나영이 없어 냉면 한그릇도 못해유.  나영이, 어떤가요? ” “괜찮아요. 이제 곧 정신 차릴 거요.”  허보스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쾌자를 불렀다. “살았어. 우리 음식점 살았어.” 경찰은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나영은 병세가 호전되면 체포해가야 되는데요. 달리 방도를 구하세요.” 허보스는 혼비백산했다. “지금 뭐라고? 달리 방도를 구하락꼬? 안될 소리. 우리 음식점은 나영 같은 주방장이  없인 안돼.” 경찰은 나직이 말했다. “나영은 인터폴 공개수배범인데요. 꼭 체포해가야는데요.” 허보수는 아연실색했다. “뭐라고? 저렇게 곱게 생긴 아가씨 웬 공개수배범인기여? 배 뚱뚱해가지고 무슨 못된 짓 해?” 경찰은 더 해석하지 않았다. “달리 주방장을 구해요.” 허보스는 발길을 돌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음식점 다 망해빠지게 생겼네그려.” 그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묶음을 만지작거렸다. (세상 일은 실로 짐작키 어려워. 하마터면 공돈을 치료비로 내놓을번 했잖아?) 허보스는 원래 나영의 치료비를 선대해주려고 돈 500만원이나 가지고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돈을 지금 남아가지고 가게 돼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한편 허보스는 속으로 나영이 없을 음식점 주방에 생각이 미치자 속이 재가루로 돼버렸다.  그는 엘레베이터에서 나영의 불룩한 배와 당장 젖폭포가 터질듯한 풍만한 젖가슴이 떠올랐다. 순간 괴춤 속에서 그게 머리를 천천히 쳐들고 아랫배개 찡해나면서 정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참 아쉽구나. 입에 다 들어온 비게덩이를 놓치다니.) 그는 은근히 부풀어올랐던 정욕도 맥없이 쓰러지는 감을 쓸쓸하게 느꼈다.  저승사자가 죽음을 재촉하는 북소리 귀가를 아프게 때렸다.  사선에서 헤매던 혼이 염라전 재빛 토성 넘어 구리문을 두드린다.         백골이 시끄럽다고 입을 쩝쩝 다시더니 하품을 하며 낮잠을 청한다.           빨간 나리꽃이 염라전에서 시들지 않고 기사회생하오니 염라전 썩은 문턱에 자란 잡초가 하느적거리며 작별인사를 하누나.
318    대하소설 졸혼 제6권 91 김장혁 댓글:  조회:1388  추천:0  2023-05-13
대하소설            졸혼              제6권                김장혁        91. 자유와 참사랑의 신이여 철조망이 촘촘히 박힌 높다란 재빛벽돌담장을 두른 감옥, 재빛토성 네귀의 초소에서 법경이 총가목을 쥐고 경각성 높이 사위를 둘러보며 보초를 서고 있다. 희미한 해빛 몇가닥이 간신히 비껴드는 어둠침침한 감방에 번대머리가 차디찬 벽에 기대 앉아 있다. "빨리 죽여라! 개새끼들아, 난 성자유를 위해 싸우다가 죽는다.죽어도 자유남신이 될 거다. 졸혼의 샛별이 될 거야!씨," 그때 몇간 건나 독감방에에서 욕설이 쏟아져나왔다. 날강도,사형수 허병칠의 목소리다.  허병칠의 옆방에서 오정룡은 코웃음쳤다. “흥, 죽어 신이 되면 뭘 한다고 저래?” 오정룡은 공상국 부패분자 오청룡 국장의 동생인데 숱한 녀성들을 강간하고 살해하였으며 날강도질하다가 로씨야에서 인터폴에 나포돼 국내에 인도됐던 것이다. 사형을 앞둔 오정룡은 감방에 힌들 들어누워 수음을 하며 강간하던 녀성들을 떠올렸다. 그의 머리 속에 젤 인상깊은 일은 망아산 소나무숲 속에서 동료강도들과 함께 쇠파이프로 정호를 까눕히고 가무단의 림하영을 륜간하던 일이다. (오호,가수 림하영,얼마나 예뻤는가.) 오정룡은 림하영의 우유빛 허벅다리와 엉덩이를 떠올리자 그것이 꿋꿋이 머리를 쳐들었다. 사람은 당장 죽게 돼도 그것만은 본능인가. 괴춤을 내리고 그걸 쥐여 손놀림을 빨리 했다. 끝내 걸죽한 옥수수죽 같은 걸 내쏘며 신음했다.생명의 마지막 순간,마지막으로 쾌감을 느끼고 맥없이 손을 스르르 놓으며 눈을 스르르 감았다. "날강도, 살인범 오정룡, 나와!" 오정룡은 질겁해 몸을 옹송그리더니 뒤로 앉은걸음을 비실비실 하며 중얼거렸다. “안가겠다.왜 죽으러 가겠니?" 쇠살창문이 절커덩 열렸다.  법경 서넛이 우르르 쓸어들어와 독수리가 병아리 덮치듯이 오정룡의 팔을 붙잡아 끌고 나갔다. 사형장은 감옥과 별로 멀지 않은 화장터 토성 밖에 있었다. 재빛단층건물에 들어서자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법경은 오정룡의 신분을 확인한 후 호령했다. "침대에 누워!" 그러나 오정룡은 도살장에 끌려들어가는 소처럼 퉁사발눈을 부릅뜨고 뒤걸음질쳤다. "싫어!죽기 싫어!" "이 놈 눕지 못해?!" 법경들이 덮쳐들어 오정룡을 침대에 쓰러눕히고 네각을 바줄로 꽁꽁 묶었다. 오정룡은 별 욕설을 다 퍼부었다. 녀법경이 주사바늘을 정맥에 꽂고 안락사주사기계 단추를 눌렀다.  오정룡은 30초도 지나지 않아 까딱하지 못했다. 한때 망아산 수림 속을 누비며 강간, 략탈, 살인을 일삼던 날강도 오정룡은 끝내 처단되였다.   오정룡에 뒤이어 살인범,부패부장 허병칠도 사형당했다.허병칠은 직권을 빌어 림하영 등 숱한 녀학생들한테서 돈과 성 착취를 했고 자기 부패한 죄행을 덮어감추려고 정희를 도끼로 머리를 찍어 처참하게 살해했던 것이다.   허병칠은 사형장에서 침대에 사지를 꽁꽁 묶여 까딱 할 수 없게 되자 세상이 보기 싫어 눈을 스르르 감았다. 저승사자가 죽음을 재촉하는 북소리 어디선가 울렸다.온통 잿빛벽돌이 쳐다보였다. 법경이 허병칠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없는가?" 허병칠은 눈을 스르르 감더니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띄염띄염 말했다. "새는 먹이를 위해 죽는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은 먹이를 너무 탐내지 말아야 한다. 당간들한테 전해달라.공걸 훌훌 받아넣지 말고 법을 지키면서 사는게 젤 행복하다고.난 후회없이 살았다. 이쁜 림하영이랑 숱한 미녀대생들을 데리고 실컷 살았기에 후회없다. 한이... " 말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안락주사약이 정맥으로 흘러들어 목숨을 거둬갔다. 정호는 법률학습시간에 허병칠이 사형 직전에 남긴 말을 법경에게서 듣고 머리를 끄덕였다. 정호는 감방에 누워 비껴드는 몇가닥의 해빛을 바라보며 끊임없는 속궁리를 굴렸다.  (저승사자 최혜영을 태평양 무인도 사지에서 구해주고 숱한 부패분자들의 죄행을 적발한 '립공속죄'로 해 나는 죽음은 면했다. 하지만  오정룡이나 허병칠의 끝장과 단지 종이 한장을 두고 있을 뿐이야.저승사자는 어찌 그렇게 몰인정해. 목숨 걸고 구해줬건만 그럴 수가? 쌍불을 켜고 내 죄행을 밑굽까지 파헤쳐 15년 징역살이를 다 하게 한단 말인가?) 뜻밖에도 웬 녀성이 면회하러 왔단다. (누군가?순정인가? 왔다간지 며칠도 안되는데.) 그러나 면회실에 나가 보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금발미녀 아사꼬가 아니겠는가. 그녀는  남태평양 무인도 해적들의 손에서 자기와 최혜영을 구해낸 미녀로봇이였다. "안녕하세요? 최국장님,무사히 보냈는가요?" "아니, 어떻게 돼 여기까지 왔어?" 아사꼬는 금발을 뒤로 쓸어넘기면서 주위를 둘러보면서 앵두입으로 나직이 종알거렸다. "어때요? 감옥살이 하기 싫은가요? 제가 구해줄가요? 요까짓 쇠살창이야 무슨?"         아사꼬는 두 손으로 면회실의 쇠살창을 잡아 비틀었다. 그러자 쇠살창이 쭉 벌어졌다. 정호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절대 그러지 마. 이제 또다시 법을 어기고 싶잖아." 그러자 아사꼬는 비틀어벌렸던 쇠살창을 제대로  쭉 펴서 바로잡아 맞춰놓았다. 그녀는 도리머리를 잘래잘래 저었다.       정호는 뒷말을 이었다.     "혜영 덕분에 감옥에서 무탈하게 잘 보내고 있어.남태평양 무인도겠어? 먹을 근심, 잠자리 근심 없이 무탈하게 보내네." 아사꼬는 머리를 끄덕였다. "최국장님도 준법교육을 받을만하구만요.무슨 어려운 일 있으면 저한테 말하세요.언제든지 도와줄게요." 아사꼬는 기실 문걸한테서 태평양 무인도에서해적들의 손에 혜영이 걸려들었다는 기별을  듣고 망망한 바다를 날아가 혜영과 정호를 구해냈던 것이다.정호는 아사꼬한테서 문걸이 보내서 아사꼬가 구하러 오게 된 사연을 듣고 속으로 놀랐다. 문걸의 깊은 죽마고우정이랄가, 인도주의 정신이랄가, 가슴깊이 맞혀왔다. 아사꼬가 떠나간 후 정호는 감방에 들어누워 눈을 스르르 감았다. 순간 공포의 파도가 덮쳐오는 망망한 남태평양의 무인도에서 벌어진 일이 눈 앞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정호는 해적들의 몰사격을 당할 수 없어 칼을 버리고 해안가 절벽에서 바다에 풍덩 뛰여들었다. 푱! 푱! 푱! 무수한 총알이 바다물 속에서 그의 머리를 스쳐지나가며 죽음의 노래를 불렀다. 정호는 바다 복판으로 헤염쳐나가지 않고 잠수해 절벽 밑에 헤여가 들쑥날쑥한 바위돌에 딱 붙어 있었다.하영이랑 데리고 대학가 수영장에 다니면서 수영을 한 덕에 파도 세찬 바다에서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해적들은 한참 바다물에 헛총질하다가 뭐라고 씨벌이더니 혜영을 끌고 소굴로 떠나가버렸다. 정호는 사선에서 벗어나자 다  혜영이 해적들한테 잡혀간 걸 떠올랐다. 아직도 혜영이 구해달라고 애원하던 고함소리 귀전을 아프게 때렸다.       정호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또 한편으로는 자기를 나포하려고 미쳐날뛰던 혜영이 해적들한테 살해당하면 모든 것이 끝날게 아닌가는 생각도 떠올랐다.그러나 그는 인차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돼, 절대 혜영을 해적들 손에 죽게 놔둘 순 없어. 날 잡으려고 쫓아온 건 괘씸하지만 한 고향  녀성인데. 꼭 구해야 한다.그런데 맨손으로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검푸른 공포의 파도가 덮쳐와 해안가 바위돌을 처절썩 들부시고 허연 물보라를 일궜다. 배가 촐촐해나면서 허기났다. 파다닥 파다닥 정호가 여겨보니 바위돌 틈에 손바닥만한 물고기가 파닥거리며 끼어 있지 않겠는가. 파도에 밀려왔다가 바위에 부딪쳐 끼워 미처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물고기였다. 정호는 손을 홱 날려 제꺽 물고기를 붙잡아 우두둑 우두둑 뜯어 질근질근 씹어 넘겼다. 그러나 허기를 달래긴 역부족이였다.     정호는 해안가 바위틈에 손가락을 박으며 한걸음한걸음 간신히 절벽을 기어올라갔다. 절벽 돌틈에 비수가 있잖겠는가. 분명 그가 해적들의 총알을 피해 바다에 뛰여들 때 버린 비수였다. (혜영을 구해야지.) 정호는 비수를 쥐자 혜영을 구할 신심이 솟구쳐올랐다. 그는 손으로 비수날을 닦아 달빛을 빌어 서슬푸른 칼날을 훑어보면서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서슬푸른 비수를 들고 달빛을 빌어 수풀 속을 헤치며 절벽을 타고 협곡의 해적들의 소굴로 한발작한발작 더듬어 나갔다. 한식경이 지나 정호는 천신만고 끝에 해적들의 소굴에 접근했다. 그가 수풀을 헤치고 희미한 등불빛이 비낀 자연석굴을 들여다보았다. 떠들썩하는 자연석굴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글쎄 반라체 혜영은 해적놈들한테 집단륜간당하고 있지 않겠는가!         혜영은 해적들한테 깔린 채 개 목을 다는 비명소리를 질러대며 대성통곡치고 욕해댔다. "짐승 같은 개놈새끼들, 어디 죽어봐라!" 정호는 비수를 빼들고 자연석굴로 덮쳐나가려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잠간!" 갑자기 머리 뒤 하늘공중에서 들리는 웬 녀인의 목소리, 정호가 머리를 홱 돌려보니 달밤에 하늘에서 웬 금발녀인이 수풀에 날아내리지 않겠는가. "누구야?" 금발미녀는 식지로 정호 입을 막았다. "쉿-" 그녀는 나직이 말했다. "미녀로봇 아사꼰데요.문걸선생이 보내서 왔어요. 혼자 어떻게 숱한 해적들을 당한다고 그래요?"        순간 정호는 저도 몰래 문걸의 의리심에 감동을 먹었다.         (생사선에서 헤맬 때 그래도 문걸이구나, 아주 속이 깊은 놈이구나. 아직도 날 절친으로 보는가? 네 안해를 빼앗고 짓밟은 량심도 없는 놈인데.) 정호는 아사꼬의 손을 뿌리치며 앞으로 나가려고 했다. "혜영이 해적들한테 륜간당하는 걸 어떻게 가만놔두오. 목숨 걸고라도 구해야지." 아사꼬는 정호의 팔을 붙잡았다. "헤덤비지 말아요. 내 말 좀 들어요. 이제 해 밝으면 저 놈들이 또 강도질하러 바다로 나갈 겁니다.그때 우리 혜영을 구하는게 상책입니다." 정호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아사꼬와 함께 절벽 수풀 속에 납짝 엎드려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지루한 시간이 공포와 함께 천천히 흘러지나갔다.  하늘이 서서히 푸름히 밝아왔다. 남태평양은 북반구와는 달리 동북쪽 바다에서 해가 불쑥 뜨더니 북쪽하늘에 서서히 걸려 있는 것이였다. 아사꼬 말처럼 해적들은 해적선을 부르릉부르릉 발동을 걸더니 바다로 나갔다. 석굴 주변을 둘러보니 몇몇 해적들이 보초를 서고 있을 뿐이였다. 아사꼬는 옆에 엎뎌 있는 정호를 돌아보며 나직이 말했다. "강공을 해선 안돼요.지혜롭게 구출해야죠.내 먼저 자연석굴에 접근해 보초병 놈들을 해치우면 그때 쳐들어 오세요." 정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아사꼬는 적수공권으로 자연석굴로 스적스적 걸어나갔다. 해적들은 아마 서라고 꽥 고함치는 것 같았다. 아사꼬는 해쭉해쭉 웃으며 두 손을 쳐들고 주춤 멈춰섰다. 해적들은 꿈처럼 무인도에 나타난 금발미녀를 보자 총을 거두고 덮쳐들었다. 그런데 저게 뭐야? 아사꼬는 불시에 허망 날아나가며 발길을 날려 보초병을 쓰러눕혔다.그녀는 어데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섬약한 손으로 한놈을 허망 들어 태를 쳐놓았다. 나머지 보초병놈은 총을 갈겼다. 아사꼬는 하늘로 씽 날아올랐다.그는 슈퍼맨처럼 씽-씽 -날아나가며 보초병의 목을 잡아 비틀어 줴뿌렸다. 쿵! 보초병놈의 대가리 바위돌에 부딪혀 서리맞은 박대가리처럼 우글어들었다. 그때 정호도 비수를 빼들고 자연석굴로 덮쳐내려갔다.그는 아사꼬한테 채워 쓰러진 보초병놈들을 비수로 푹푹 찍어 숨을 거둬버렸다. 온 밤 혜영과 녀성들을 륜간하고 곤하게 자빠져 자던 해적 두목은 바깥이 소란스러워 눈을 번쩍 떴다.그는 바깥 뜻밖의 정경에 질겁해 선불 맞은 노루처럼 자연석굴에서 빠져나와 해안가로 도망쳤다. "어디로 도망쳐!" 아사꼬가 씽 하늘로 솟구쳐 올라 날아갔다. 두목 놈은 하늘공중에 날아오는 미녀한테 권총을 휘둘렀다.  푱! 푱! 총알이 금발미녀 몸에 맞아 불꽃을 튕겼다.그러나 금발미녀는 끄떡하지 않고 계속 추격해 날아갔다. 질겁한 두목 놈은 권총을 버리고 바다물에 풍덩 뛰여들었다.아사꼬는 하늘로 씽 날아가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두목을 한손으로 붙잡아 씽- 절벽가로 날아가 바위돌에 탕 태를 쳐놓았다. 개 목을 다는 비명소리, 두목놈의 피섞인 뇌장이 바위돌에 더럽게 튕겼다. 정호는 아사꼬와 함께 권총과 자동카빈총 빼들고 자연석굴로 쳐들어갔다.녀성들이 아우성치며 석굴 구석에 숨는다. 해적 두 놈이 총을 쏘며 반격했다. 정호가 련발사격해 두 놈을 쓰러뜨렸다. "최국장!" 혜영은 정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녀성들은 정호를 다른 해적인가고 두려워 흘끔거렸다.               정호가 보니 혜영의 초췌한 몰골은 그제날 언제 위풍이 당당한 현퇀급 검사였는가 의심될 정도. ㅋㅋ.       검불이 다닥다닥 붙고 푸시시한 파뿌리머리카락, 독기 빛나던 어글어글한 눈은 어데 가고 정기를 잃은 두 눈, 팔에서 너펄거리는 람루한 와이샤쯔, 가랭이 다 째지고 피 즐벅한 청바지,  너무나 처참한 몰골.      정호는 해적의 시신에서 군복을 와락와락 벗겨 헤영을 입으라고 주었다. 혜영은 주춤 주저하다가 별 수 없이 한쪽 구석에 가서 해적의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었다. 랍치당해 온 이국 녀성들도 해적들의 시신에 달려들어 옷을 벗겨 입고 반라체를 가리었다.     옆에서 아사꼬가 거들면서 혜영의 삼검불 같은 머리에 붙은 검불을 뜯어주었다.    아사꼬와 정호는 바다로 나간 해적들이 무인도에 되돌아올가봐 근심됐다. 그들은 혜영 등 녀성들을 구해가지고 재빨리 한 많은 무인도를 떠나야만 했다. 그들은 해적들이 해안가에 정박해뒀던 나머지 해적선에 해적들의 소굴의 금은덩이와 식량, 휘발유를 싣고 무인도를 서서히 떠났다...      그런데 항해경험이 없는 정호는 그만 지구 남반구에 속하는 남태평양에서는 해가 북반구와는 달리 남쪽에 뜨는게 아니라 북쪽에 뜬다는 걸 몰랐다. 하여 그는 조국이 있는 북으로 간다는 것이 그만 남쪽으로 해적선을 몰고 망망한 바다에서 헤맸다. 설상가상으로 휘발유마저 다 떨어져 해적선은 방향도 없이 표류하였다. 다행히 남태평양의 자그마한 섬나라 경비정이 바다에서 표류하던그들을 구원하였다.       남태평양 섬나라에서는 정호와 아사꼬가 자기 나라 녀성들을 해적들의 마수에서 구하고 숱한 금은보화를 섬나라에 기부했다고 영웅으로 상대접하였다. 원시마을 추장 같은 자그마한 섬나라 까마잡잡한 딸맹이 국왕은  자기 나라에  남아 해적들을 다 잡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정호와 아사꼬는 황선희를 귀국할 때까지 보필하면서 조국에 돌아왔던 것이다.       (죽어도 조국의 귀신이 되고 싶었지.)   정호는 여기까지 생각하자 감방을 둘러보며 저으기 허전하고 쓸쓸한 감이 들었다.     (혜영이 야속하다, 야속해. 목숨걸고 구해줬건만 대의멸친해 날 15년징역에 구형해 법원에 기소했다.)      무인도에서 헤영의 옷이 다 해진 져 가슴이 다 훌렁 드러난 걸 보고 정호는 자기 와이샤쯔를 벗어 입혔다. 그런데 석굴에서 해적들한테 륜간당하면서 그 와이샤쯔마저 다 째졌다. 정호와 아사꼬는 해적들을 처단하고 두목의 시신에서 얼룩덜룩한 군복을 벗겨 헤영한테 입혀가지고 해적선에 올라 한많은 남태평양 무인도를 벗어났던 것이다. (전번에 혀영은 머리도 염색하고 남색검찰복을 척 입고 면회하러 감방에 나타나잖겠어? 파뿌리처럼 허옇고 푸시시한 머리카락, 갈기갈기 찢어진 람루한 와이샤쯔를 입었던 무인도 혜영의 처참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지. 그런데 그게 뭐야? "무인도에서 제 륜간당한 비밀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라. 만약 탄로나는 날엔 가만놔두지 않겠다." 진짜 육친도 구명은인도 모르는 저승사자야.)   그는 억지로 심리균형을 유지하려고 들었다.  (그래도 저승사자 덕분에 난 힘든 로동개조는 안하잖는가. 감옥에서 죄수들의 문화과 교원노릇을 하면서 춤도 추고. 이게 내 여생에 인생의 가치를 실현하는겐가? 아, 서글프구나. 내 인생, 참 자유와 성해방을 추구하던 사랑의 유령, 졸혼의 신이 이게 무슨 처지람?원통하다. 원통해. 이젠 하소연할 데도 없어. 또 하소연해 뭘해?)  얼마 지나지 않아 군철이 면담하러 왔다고 하였다. 면담실에 나가보니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번대머리가 우멍눈에 뜨거운 눈물범벅이 돼 기다라고 있지 않겠는가. (딱 나를 떼닮았구나. 저 대머리,우멍눈을 봐라. ㅎㅎ.) "아버지!태평양 무인도에서 해적들한테까지 붙잡혔다던데 얼마나 고생했겠습니까?어떻게 해적들 손에서 빠져나왔는지 살아오기만 해도 천만다행입니다." "하느님 안배겠지. 다 아사꼬가 구해준 덕분이야." 정호는 군철에게 태평양 무인도에서 있은 일을 쭉 이야기하고 나서 정색했다.       그는 아들의 두 손을 꼭 잡고 신신당부했다. "군철아, 넌 절대 아버지 전철을 밟아선 안돼. 남이 돈뭉치를 줘도 훌훌 받아먹지 말라. 사람은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직권을 빌어 공걸 탐내지 말고 법을 지키면서 사는게 젤 행복하다.나를 봐라. 공걸 훌훌 받아먹구 이게 무슨 꼴이냐?" 그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뒷말을 이었다. " 졸혼이구 뭐구 다 그만둬라. 졸혼은 비극의 프롤로그, 크라이막스야. 나를 봐라. 졸혼하구 얼마나 숱한 녀성들을 해쳤느냐?네 엄마 영희,이모 순정도 해친게 마음이 아프다. 어디 그뿐이야? 황선희, 나영이, 정희, 임하영이, 미희… 그 외에도 숱한 녀성들을 데리고 질탕하게 놀았지.난 숱한 녀자들을 해쳤다. 나영은 내하구 살아서 임신해서 자살하고 정희는 도끼에 찍혀 죽었어. 하영은 륜간당하고 제명당했지. 하영이 불쌍하다. 황선희랑 하영이랑 너네 회사에 갔다는데 네가 잘 보살펴라. 내 죄과 를 네가 씻어주고 보듬어 줘라. 너네 엄마도 불쌍하다. 한뉘 속을 태우며 살다가 사망했지. 그땐 졸혼하고 미녀들의 육감에 좋아 놀아났지.난 사랑을 일종 유희로 보았다."      정호는 우멍눈으로 군철을 마주 보며 물었다.     "문걸이 정신병에 걸렸다더니 어떠냐?"    "지금 춘희박사랑 옆에서 보살펴서 많이 낫습니다."    "그래, 문걸은 기실 정신병자 아니야. 아사꼬를 보내 우릴  구한 걸 봐라. 속이 얼만 깊은 사람이냐? 다만 참사랑인지 뭔지 너무 집착하는게 흠이야. 지금 세상에 어디 티없이 맑고 깨끗한 참사랑이 있느냐? 춘향이 사라진지 몇백년인데. 허이구, 참 답답하다. 난 문걸이 주장하는 정신적인 사랑, 전통적인 사랑을 부정하고 나는 육감적인 사랑을 추구했다. 그래서 숱한 녀성들을 몇해에 하나씩 갈아타면서 놀았지. 나는 졸혼하고 가정을 벗어난 자유로운 생활을 추구했지. 순정을 속이고 문걸을 속이고 영희를 데리고 몇십년을 살았어. 지금 생각해보면 숱한 녀성들을 즐기는 것이 참된 사랑이나 락이 아니지.진정한 행복한 사랑은 녀성의 미모나 수량에 있는게 아니야. 한 녀성을 진정으로 깊이, 넓게 사랑하는 사랑이야 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랑이지." 정호는 원래 말수 적었다. 그러나 아들과 말할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아서인지, 아니면 군철의 장래가 근심돼서인지 숨돌릴새도 없이 죽 이야기했다. "얘야, 넌 이젠 절대 졸혼이구 뭐구 그냥 해선 안돼. 아서라.졸혼은 구름처럼 떠돌아다니는 사랑의 유령이야. 졸혼은 구름 속의 허황한 신기루야. 실체가 없이 구름 속에서 숨박곡질하면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바람결처럼 사라지는 괴물이야. 졸혼은 바람쟁이야. 숱한 사람들을 유혹해 행복한 가정을 파괴하고 떠돌이 사랑유령에 홀리워 환각과도 같은 사랑의 바다에서 떠돌게 하는 방랑객이야. 넌 어서 졸혼 그만두고 리나하구 복혼해 애들을 데리고 행복하게 살아라.그게 사랑의 자유보다 낫고 더 행복해." 군철은 그저 건성으로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이렇게 되뇌였다. "아버지, 리나를 지내보지 못해 잘 모르고 하는 말씀입니다. 리나는 싸가지없는 녀잡니다. 양아버지를 어찌나  괄시했는지 양아버진 딱 질색입니다. 자기 먼저 밥을 먹겠는데 양아버지 애를 봐주지 않는다고 뭐라고 욕했는지 압니까? '며느리를 배려할줄도 모르는 바보 령감태기'라고 욕했습니다. 리나는 또 한심하게 탐욕스럽습니다. 이번에 회사에서 아파트를 짓자 직권을 빌어 양아버지와 춘희, 이모를 받아 아파트를 더 타자고 꿍꿍이를 합니다. 얼마나 과욕합니까? 리나는 꼭 이후에 부패분자로 될 위험한 녀자입니다. 애들을 보면 불쌍하지만요. 어떻게 그런 탐욕스럽고 싸가지도 없는 녀자와 삽니까?애들과 내 전도를 망치고 우리 집안을 망치라고 그럽니까?" 사실 리나는 군철이 아파트를 더 챙기려고 하지 않자 끝없이 도도거렸다. “당대표라는 명예를 위해 그럽니까? 아니면, 더 높은 벼슬자리에 기여오르려고 그러는가요? 그런데 어째 성당위 조직부에서 조직건설처 처장으로 제발시키려 할 땐 가지 않는가요?” 군철은 당시 성당위 조직부의 요구에 따라 성내 대도시 대기업에 돌아다니면서 어떻게 외자기업에서 당조직을 건설했는가는 사적보고를 하였다. 그리하여 성당위 조직부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조직처 처장으로 임명됐었다. 그러나 군철은 미국 상무부의 간섭과 압력으로 해 회사와 직원들의 밥통문제가 위기에 처한 시기에 회사를 훌 떠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정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그래도 송림과 길림의 에민데 너무 참혹하게 굴지 말라. 손자들이 퍽 보고 싶구나.” 군철은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애들이 크면 데리고 오죠." "아니야, 내 감옥에서 나가기 전엔 애들을 데리고 오지도 말라. 애들이 할애비 이런 모습 보면 장차 좋찮다."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 저와 리나 일은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아량있게 처리할테니까.졸혼은 글쎄 아버지 말씀처럼 가정을 파괴하고 병주고 약주는 요사한 뺑덕에미죠. 양아버지도 이렇게 인정합디다. 보십시오. 졸혼 때문에 양아버지와 어머니 리혼하고 가정이 깨여지고 얼마나 망신스럽습니까? 아버지도 졸혼 때문에 이모와 리혼하고 이게 뭡니까?" 부자간은 면회실에서 호심탄회하게 소설 같은 인생사, 가정사를 담론하고 사랑과 결혼, 졸혼과 재혼, 가정과 자녀들에 대해 한참이나 이야기하고 혜여졌다. 정호는 면회실에서 돌아서나가는 아들의 넓직한 뒷잔등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때 한 나이 이슥한 녀검사가 군철을 불러세웠다. 그녀는 군철을 한 사무실에 데리고 가더니 나직이 말했다.                  "난 황선희라고 부르오. 최국장 아드임이죠?"        "예, 무슨 일입니까?"        황선희는 정색했다.       " 아버지 옥바라지를 근심하지 말고 회사 일이나 잘 보오."       "네?"       뜻밖의 말에 군철은 저으기 놀라 우멍눈을 흡떴다.       황선희는 인정이 넘치는 어글어글한 눈으로 군철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 최국장은 내 구명은인이오.  내 이제 당장 퇴직하게 되는데 아버지 옥바라지를 도맡겠소."        군철은 아버지한테서 들은 것과는 달리 황선희 국장검사는 대의멸친하지만 인정과 의리도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후에 황선희가 면회하러 와서 "옥바라지를 도맡겠다."고 하는 말을 하자 정호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뒤이어 정호는 무인도 비극의 어두운 그림자를 채벗어나지 못한 까마잡잡한 황선희 모습을 보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덕은 쌓은 데로 가고 죄는 지은데로 가는구나. 이게 다 인과보응이지.)         정호는 황선희와 헤여진 후 끝없는 상념에 잠겼다. 사랑이란 무엇이고 졸혼이란 무엇인가? 구경 졸혼에 사랑 자유가 있고 인생 자유가 있는 걸가? 졸혼은 왜 이다지도 사람들을 들볶고 속타게 하는 걸가? 정호는 쇠살창을 거머쥐고 흐리멍텅한 밤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 자유와 졸혼의 신이여! 그대는 지금 이게 뭡니까?” 그때 하늘에서 문걸의 목소리가 울리는 상 싶었다.      “아, 참사랑의 유령이여, 그대는 어데 있는가?” 순간 강남의 안개 자오록한 호수에서 원앙새들이 쌍쌍이 호수물에 떠노닐면서 종알거리지 않겠는가.        "세상에 순박한 참사랑이 어디 있는가요? 우리 원앙새도 기실 짝꿍이 눈을 피해 가만가만 바람 피우는데요."         찰나, 어둠침침한 하늘에서 성자유의 람루한 깃발이 졸혼을 걸치고 보기 싫게 펄럭거리며 날아지나가며 콧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갑자기 성자유의 유령과 참사랑신이 밤하늘에서 꽝 격돌해 폭발했다.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하얀 별찌가 강남 호수에  퉁퉁  떨어진다. 호수에 강렬한 기포가 일어나고 호수물이 부글부글 끌어번진다. 원앙새들이 어둠침침한 호수에서 암암리에 바람 피우다가 깜짝 놀라 푸드득푸드득 흐리멍텅한 하늘로 풍겨오른다.       웬 일일가?       흐리멍텅한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졌는가?     거부기들과 게들이 모여왔다.      "아니야, 참사랑의 별이야." "아니야, 전번에 호수에서 건진 뻘건 참사랑의 심장이야."       자유와 참사랑에 슴배인 펄떡펄떡 높뛰던 심장이 하늘로 솟아올라 참사랑의 별이 되지 않았던가.      그 자유와 참사랑의 신이 별찌로 떨어져 호수물 속에서 북극 상공의 오로라처럼 빨갛고 파란 한줄기 빛이  빛발친다. 백길 물 속에서도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아닌가.      참사랑의 오라라 찬란한 빛발에 음침한 허위가 산산히 부서지는 순간이다.     후수에서 시뻘건 번개가 번쩍이며 뻘건 혀로 호수의 잡 것들을 핥아버린다.  천둥소리 하늘땅을 진동하며 호수를 들었다 놓으며  격조 높은 참사랑의 서정시를 폭발시킨다.        어둠침침한 호수에서 암암리에 바람 피우며 짹짹거리던 원앙새와 사다새들이 푸드득푸드득 도망간다.      밤하늘에서 뜨거운 심장으로 연주하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은은히 메아리친다.     참사랑의 신은 자유와 참사랑 유령마저 사라진 세상에서 살기도 싫었으리라. "졸혼의 허울을 훌훌 벗겨버리고 참사랑의 한줄기 밝은 빛으로 어지러운 세상을 밝게 비주치라."      저게 뭔가?      아사꼬와 영희, 춘희, 순정이, 하영이, 나영이, 정희 등이 숱한 미녀들이 밤하늘에서 사랑의 유령처럼 너울너울 졸혼원무를 추고 있지 않는가.               탐욕스런 색마가 쇠살창을 거머쥐고 우멍눈을 뚝 부릅뜨고 미녀들을 노려보며 게춤을 흘리며  버둑질한다.      성자유의 람루한 깃발이 철조망을 두른 쇠살창에 걸려 발버둥질친다.     아, 졸혼의 유령이여! 자유와 참사랑의 신이여! 
317    대하소설 졸혼 제5권 (80) 김장혁 댓글:  조회:1273  추천:0  2023-05-11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90.사랑의 유령   천태만상의 구름 사이로 희미한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파묻었다 한다. 구름 그물은 해빛을 잃은 해와 달을 건졌다 토했다 하며 세상을 변덕스럽게 만든다.  휴가일이 되자 군철은 양아버지 병문안하러 떠났다.리나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리나는 원래 시양아버지를 곱게 보지 않았다. 양아버지도 리나를 잔소리쟁이라고 좋아하지 않았다. 괜히 리나를 데리고 갔다가는 혹 떼러 갔다가 혹 하나 더 달고 올가봐 근심되였다. "전 가지 말고 집에서 애들과 노오." 그러자 리나는 함박꽃처럼 활짝 웃음을 지었다. "당신 수고하세요.빠이, 빠이!" 리나는 애들을 데리고 공원으로 나가버렸다.  보마차 바람에 번대머리 위에서 몇대 안되는 머리카락이 뒤로 흩날린다. 군철은 보마차를 몰고 다리는 길에서 양아버지와 친아버지 완전히 다른 사랑사를 회억하며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그는 마음이 비길데 없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양아버지를 보라.사랑의 첫 츄피터 화살을 잘 못 쏘니 어디 녀자 복이 있는가? 어쩜 친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한 것도 간파하지 못하고 어머니한테 사랑의 츄피터 화살을 날린단 말인가?어머니 마음 속에는 친아버지가 있었는데. 마지못해 눈을 찔끈 감고 어머니는 양아버지와 결혼했지. 그것도 배 속에 친아버지 아들인 나를 품은 채. 글쎄 그때 당시 어머니는 누구 아들인 걸 모르긴 했지. 다 친아버지 잘못이야.어쩜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순정 이모와 결혼한단 말인가? 아무리 벼슬이 중하다고 해도 어쩜 정치결혼을 한단 말인가? 그게 사랑 사기군 아니고 뭔가?어머니 잘못도 있어.내가 양아버지 아들이 아니란 걸 안 다음에도 어찌 양아버지를 한평생 속이고 살았는가. 글쎄 핍박에 의해 그랬다고 해도 량심이 없는 거지.양아버진 내가 자기 친아들이 아니고 친아버지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정신타격을 받고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던가.) 군철은 우멍한 눈에 눈물이 핑그르 돌았다. (양아버지는 나를 친아들로 알고 얼마나 사랑했는가. 손자들도 자기 친손자들로 알고 키워주느라고 리나한테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 설겆이까지 하면서 고생했지.그러나 그 모든 것이 허황한 짓임을 알았을 때, 어머니 허황한 가짜사랑에 얼마나 큰 정신충격을 받았겠는가. 바꿔놓고 내가 그런 뜻밖의 비극을 당하면 어떻겠는가. 내 두 아들이 몽땅 리나가 외간 남자와 살아서 난 애들이라면 어떻게 됐겠는가? 난 살인이라도 했을 거야.하도 양아버지 마음이 착하고 어질어 그저 넘어갔지." 한편 군철은 어머니도 불쌍했다. (양아버지와 친아버지 두 남자 사이에서 얼마나 속을 태우면서 살았겠어? 어머니도 보면 친아버지를 사랑한 것 같은데.양아버지를 그리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내심갈등 속에서 몇십년 살지 않았겠는가. 양아버지와 함께 딸까지 낳으면서. 허위로 포장된 가정에서 한 이불을 쓰고 몇십년이나 살았어.) 군철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랑은 얼마나 변덕스러워? 세상 풍운조화보다도 더 변덕스러워.눈 앞을 헤아리기 힘들어.음-) 갑자기 차창 밖에 안개가 자오록이 덮쳐왔다. 차 앞을 어디 어딘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군철은 불시에 차를 급정거했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자오록한 안개 속이야. 코 앞을 분간하기 어려워.어머니가 사망한 후 양아버지는 구급실에서 면목익힌 춘희박사의 참사랑을 추구했지.춘희박사는 어쩜 그럴 수 있어?  자기 피를 수혈해 양아버지를 구해준 것만은 감사하지. 그런데 어찌 도쿄에 일본 남편 다이로교수를 두고 양아버지를 그렇게 따르게 만들어? 애태우게 만들어? 처음부터 맺고 끊어야지. 아버지가 미련을 두지 말게 썩뚝 관계를 끊어버려야지.) 그때 어데선가 춘희박사의 소명소리 들리는 상 싶었다. "군철이, 모르는 소리. 다 저네 양아버지 탓이오. 난 처음부터 저네 아버지를 존경했을뿐 재혼할 생각은 없었소.저네 양아버진 내 구급환자여서 동정했고 인도주의 차원에서 구해줬을 뿐이오. 저네 양아버지 어머니 비정사실을 안 후 정신타격을 받았소.난 또 쓰러질가봐 저으기 근심됐던 거요. 저네 양아버지 비운의 사랑 쁠랙홀에서 헤여나오게 하려고 애썼소. 함께 등산도 하고 교제무도 추면서 위문했소.그런데 저네 양아버지 날 짝사랑할 줄을 누가 알았겠소?…" "닥치시오!" 군철은 핸들을 탁 치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당신 등산 갔다가 협곡에 빠졌을 때 뭐랬습니까?누굴 속이렵니까? 후에 양아버지한테서 다 들었습니다.양아버지를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댔습니까? 양아버지는 뭐 행복지수 높은 분이요,존경하고 사랑할만한 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직도 누굴 속이렵니까?" 유령이 대답하는가? 아니, 분명 춘희박사 목소리가 귀전을 아프게 때린다. (환각인가?) "군철이,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구만.그때 우린 협곡 눈구덩이에 빠졌댔는데 아무리 기여나오려고 해도 기여나오지 못하게 됐소.그런 정형에서 저네 양아버지와 나는 생사선을 헤매게 됐소.저네 아버진 심장병환자인데 아직 그때까지만 해도 완쾌되지 못한 형편이였소. 그때 구급신호를 보내려고 등산복까지 불태워버려서 너무 추워 저네 양아버진 체온이 급격히 내려갔소. 난 그를 내 무릎에 올려놓고 끌어안아 체온을 보장했소. 구급대를 기다리며 위로의 말을 하느라고 그랬던 거요. 내 무슨 죄를 졌소? 저네 양아버지를 구해주고서도 이게 무슨 일이오? 이게 무슨 죄를 만났소?배은망덕해도 한두가지 아니오.정말.흐흐흑, 흑흑." (지금 울고 있어? 협곡 눈구덩이에선 그렇다 치고 왜 울 아빠를 도쿄에까지 데리고 가서 함께 살 것처럼 사람을 간질렀습니까?) "그땐 내 어떻게 일본에서 사는가 보여주려고 그랬소. 더 말해 뭘 하겠소?" 하늘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더 없었다. 자오록하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세상 변덕스러운 만물이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군철은 착잡한 생각에서 깨여나 보마차를 몰고 쏜살같이 달려 병원에 도착하였다. 그는 정신병과 주원실에 갔다가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쇠살창으로 병실을 들여다보니 양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의사사무실에 가서 담당녀의사한테 물어보았다. "40대 돼보이는 녀성 모녀가 환자를 모시고 바람 쏘이러 나갔어요." "아버지 요즘 병세가 어떱니까?" "많이 호전돼가고 있어요.정신이 말쑥할 때가 많아요. 특히 저 모녀간이 자주 찾아온 다음부터 병세가 눈에 뜨이게 호전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정신상에서 큰 위로를 받은 거 같아요." "네,사람은 알아봅니까?""아직은 알아보는 것 같지 않은데요." "네. 감사합니다." 군철은 인사하고 나오면서 피뜩 물음표가 떠올랐다. (누굴가?지예가 왔는가?어머니라는 녀성은 누굴가?) 문걸은 주원실 울 안으로 나갔다.  강남은 사철푸른 화창한 봄날과 같았다.울창한 월계화나무숲이 우거진 정원에 웬 녀성 둘이 휄체어를 밀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뒷모습이 별로 눈에 익었다.  (아니,춘희박사와 마끼?!) 우멍눈에 놀라움이 번쩍 번개쳤다.  춘희 모녀가 아버지를 휄체어에 태워가지고 산보하지 않겠는가.         (춘히는 내게 즉살나게 욕먹고 뭔가 깨닫고 병문안 왔을까? 아니면, 마끼를 위생소 소장으로 임명했다고 감사해 왔을까?)  군철은 천천히 다가가 춘희박사한테 허리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김박사님, 어떻게 돼 여기까지 왔습니까? 감사합니다.미안합니다." 춘희는 마주 인사하였다. "네. 리선생님은 저의 환자인데 당연히 찾아봐야죠." 군철은 마끼한테도 인사했다. "쉬는 날에 쉬지 못하고. 고맙소." 마끼는 또 당돌한 말을 했다. "최전무 아버님이자 저의 아빠나 다름없는데요." 춘희는 외까풀눈으로 마끼를 흘끔 곁눈질하더니 흘겨보았다. (무슨 망년된 소릴?최전무는 애 둘이나 달린 홀애비야.) 순간, 군철은 내심의 갈등을 어쩔 수 없었다.그는 춘희 모녀 손에서 휄체어를 받아밀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 마끼는 뭘 념두에 두고 내 양아버지를 아버지라고 하는 걸가? 자기 어머니와 아빠 그런 사이라고 아버지라고 할가? 아니면 나를 사랑하기에 아버지랄가?춘희박사는 아버지와 관계를 회복하려는 걸가? 아니면 아빠와 그만두고 마끼를 내한테 붙여놓으려는 걸가?) 군철은 원피스를 입은 마끼 우유빛얼굴부터 하얀 종아리까지 내리 곁눈질해 쓸어보았다. (마끼는 확실히 매력이 톡톡 쏘는 처녀애야.나이는 어려도 다이로교수를 대처한 걸 봐. 얼마나 총명하고 슬기로운가?조 초롱초롱한 새까만 쌍까풀눈을 봐. 얼마나 평양 아가씨처럼 매력적인가. 저 탄력있는 우유빛몸매는 얼마나 탐스러운가? 애어린 요 처녀애는 사과배처럼 사박사박할 거야. 한잎 똑 떼 먹으면 얼마나 시원하고 달콤할가? 애어린 처녀의 매력은 핵폭탄처럼 위력이 있어.마끼 탄력있는 몸매는 꽃잎이나 비단처럼 보들보들할 거야. 내 무슨 못된 생각이야? 진짜 촌수가 개판이구나.) 군철은 뜨거운 피가 끓어번져 그저 땅이 꺼지게 한숨만 후- 길게 내쉬였다. (사랑은 알고도 모를 일이야. 사랑은 마술사야, 요술쟁이야. 아버지 좋아하는 녀성의 딸마저 좋아하게 요술을 피우는구나. 사랑은 구름 속의 신기루와 같은 거야. 사랑의 신기루는 구름 속에 안개 속에 잠겼다가도 구름을 헤치고 자기 모습을 나타내지. 그러다가도 한순간에 무너지고 바람결처럼 사라지지.) 그때 군철의 복잡한 내심 격돌에 화답하듯이 문걸이 고래고래 고함쳤다. "참사랑은 바람이야. 10급 태풍이야. 구름을 몰아오고 소낙비를 몰아오고 우박을 몰아온다!오, 변덕스러운 사랑이여! 졸혼이여, 그대는 어찌나 변덕스러운지 걷잡을 수 없는 백두산 천지 풍운조화여라!졸혼은 병 주고 약 주는 간사한 뺑덕에미야!" 문걸은 정신이 나갔는지 아니면 정신병인 척하면서 속심의 말을 하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사랑은 사기군이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하는 척 하면서 몇십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한 이불을 들쓰고 아들딸을 낳으면서 산다. 사랑은 허위적인 거야. 사랑은 허위적인 신사숙녀야.사랑은 흑사심이야.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척하는 사랑도적놈이야.사랑좀벌레야. 사랑하면서도 함께 살지 않는 생리별하는 성노예야.참사랑은 황금 흑사심에 죽는다.참사랑은 참 불쌍해.황금에 눈이 어두우면 사랑이고 뭐고 다 벗어던진다. 사랑은 헐값에 파는 고물단지야. 금전만능시대에 사랑은 한푼어치 값도 없어. 금전을 위해서라면 참사랑도 헌신짝처럼 차버린다… 참사랑은… 참사랑은 개팔자야. 떠돌이야…" 춘희는 문걸이 자기를 빗대고 욕하는 것 같아 바늘에 가슴을 쏙쏙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 군철은 아버지가 자기 친어머니를 욕하는 것 같이 들렸다. (지금 아버지는 정신이 말쑥해진 것 같다. 절대 정신환자의 말 같잖아.그런데 아버진 아직도 날 알아보지 못한다. 그게 마음이 아파구나.언제면 아빠 제정신을 차릴가?) 이때  병원 정원에 리나가 나타났다. 뒤에는 또 지예도  나타났다. "시아버님!"  뜻밖에도 문걸은 사람을 알아보는지 리나는 아니꼬운 눈길로 피뜩 쳐다보고는 외면했다. "아버지!" 지예가 아버지를 부르며 두 팔을 벌리고 달려왔다. "오, 지예! 내 딸 지예야!" 갑자기 문걸은 휄체어에서 일어나 지예를 와락 끌어안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아버지! 나를 알아보는구나! 아버지!" 지예는 아버지 품에 안겨 줄 끊어진 구슬처럼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군철은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이래서 피는 가리지 못한다고 하는구나.아빠는 양아들은 알아보지 못해도 친딸은 먼저 알아보는구나.ㅋㅋ.) 군철은 좀 서글펐지만 양아버지가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해 기뻤다. 그는 춘희박사를 불러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박사님, 전번에 무례하게 굴어 미안해요. 그 사이 저의 아버지 병문안해 정신위안해줘 고맙습니다." 춘희는 군철의 대머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천만에 말씀,당연히 제가 위안해줘야죠. 미안해요. 아버지 병은 저에게도 책임이 있는데요." 군철은 우멍눈으로 춘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당돌한데요. 김박사는 도대체 우리 아버지를 사랑하는가요? 병이 치료되면 재혼해 함께 살 예산인가요?" 춘희는 정색했다. "아직 재혼까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그러나 리문걸선생님은 행복지수가 높고 존경하고 사랑할만한 분입니다.병세도 이제 곧 나아질 겁니다." 군철은 습관처럼 대머리 위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엄숙하게 말했다. "또 그 말씀이군요.아버지 병세가 기적적으로 나아지기 시작하는데요. 이젠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우리 아버지를 사랑하든 말든 질질 끌지 말고 맺고 끊듯 하십시오.괜히 두번 다시 저의 아버지한테 상처를 주지 마십시오.아버진 이제 정신타격을 받으면 자살할가 봐 두렵습니다." 춘희는 머리를 끄덕였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저는 이제 일본에 건너가서 다이로교수와 리혼수속을 해야겠습니다."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한가지 당돌하게 부탁드립시다. 이젠 그까짓 다이로교수 유산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괜히 자기를 해치고 남을 해치겠습니다.황차 다이로교수는 김박사님의 은사 아닙니까? 젤 간고할 때 친딸처럼 도와준 은인이 아닙니까? " 춘희는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듣다가 번쩍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 "그건 저의 일이니깐. 삐치지 말아주십시오.마끼를 잘 부탁드립니다." 군철은 춘희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알았습니다. 마끼를 위생소 소장으로 임명했습니다.우린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서로 도우면서 삽시다." "당연히 그래야죠.고맙습니다."     군철은 문걸한테 걸어가는 춘희 뒷모습을 보면서 한탄했다. (아, 사랑이란 실체가 도대체 무엇인지,누구도 정확한 해답을 하기 어렵다.사랑은 변덕스러운 요술쟁인가 봐!사랑은 바람에 흩날리는 구름송이야. 사랑은 바람쟁이, 사랑은 사기군이야,사랑은 신기루야. 사랑은 눈물의 녀신, 사랑은 유령이야!하느님이여 대답해보시라. 도대체 사랑은 무엇입니까?) 하늘도 땅도 대답이 없다. 아, 사랑의 유령이여, 사랑의 신이여, 그대는 어느 하늘 나라에 계십니까?
316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9) 김장혁 댓글:  조회:1191  추천:0  2023-05-09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9. 미녀들의 추파 신경을 느슨하게 만는 일요일,  흐리멍텅한 하늘에 어쩌다가 희미한 아침해가 흐리마리하게 나타났다.  똑,똑, 똑, 휴가일을 알리는 노크소리와 함께 여느 때처럼 리화가 들어섰다. "어머니!" 애들은 기다렸다는듯이 엄마를 보자 환성을 지르며 두 팔을 벌리고  문께로 달려나갔다.  리나는 눈물이 글썽해 두 아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 정경을 보는 군철의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둘째 길림은 어머니 목을 꼭 끌어안고 애원했다. “어머니, 이젠 일요일에만 오지 말고 날마다 와.” 형인 송림은 더구나 한심한 소리를 했다. “엄마, 오늘부터 저녁에 가지 마. 우리 한 집에서 자자.” 길림이 맞장구를 쳤다. “그래. 엄마, 난 엄마 목을 꼭 끌어안고 잘테야.” 리나는 멍해 서 있는 군철을 힐끔 곁눈질하며 대답했다.  “오, 건데 엄마 일이 바빠 저녁에 가야 돼.” 리나는 한 손에 하나씩 애들의 손을 잡고 침실로 들어갔다. 군철은 세 모자를 돌아보면서 마음이 쓰려났다.  (애들을 보면 리나와 복혼해야 해. 졸혼도 한도 있지. 애리싸도 미국 경제간첩으로 잡혀갔지. 언제까지 졸혼을 끌어야 한단 말인가? 어머니와 양아버지를 봐라. 졸혼하고 뭐 자기 인생을 산다더니. 엄마는 암으로 사망했지. 양아버지는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는가. 친아버지는 졸혼하고 숱한 젊은 미녀들한테 푹 빠지더니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는가. 졸혼이란 가정을 깨는 허황한 개짓이야. 자손들한테 오물을 들씌워주는 짓거리야. 애들이 있고야 무슨 졸혼인가? ) 군철은 쏘파에 앉아 한숨을 후- 내쉬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그렇다고 리나와 딱 복혼해야 하는가? 도대체 나하구 리나에겐 사랑이 남아 있는가? 리나 말처럼 사랑의 불씨는 의연히 남아 있는 건가? 아니면 뭔가? 근근히 사랑의 열매 둘 밖에 남은게 더 있는가? 글쎄 리나하구 복혼하면 애들한테도 좋고 회사에 주는 영향도 좋을 수 있지. 나는 당위 서긴데. 차마 아버지처럼 그렇게 못 살아... 나는 절대 부패분자 아버지처럼 살아선 안돼. 색마로 살아선 안돼. 인생의 가치가 그저 육감적으로 주색을 즐기는 건가? 너무나도 저렬한게 아닌가? 숱한 녀자들을 얼려내려고 각종 비렬한 수단을 다 써가면서 부정축재를 하고. 나중에는 감옥에 들어가고. ) 군철은 내심의 갈등이 심하게 격돌했다. (언제 아버지를 면회하러 고향 감옥에 가봐야는데. 양아버지도 병문안하고.) 바깥에서는 먹장구름이 파도치며 밀려왔다. 번개가 번쩍이며 집 안에까지 쳐들어왔다가 하늘 땅을 진동하는 우뢰소리를 남기고 사라졌다.  순간 뜻밖에 그의 눈 앞에는 회사의 숱한 숫처녀들의 추파가 빛나는 눈길이 떠올랐다.  제일 먼저 비서 경희가 떠올랐다. 하나도 떠오르고 추파를 보내던 마끼도 떠올랐다. (그 녀자애들은 모두 훌륭하고 참한 녀자들이지.) 경희는 항상 군철이 출근하면 새물새물 웃는 얼굴로 맞이하고 커피를 타온다, 사무상을 닦는다 하면서 군철의 주위를 젤 근거리에서 맴돌았다. 한번은 경희가 군철의 사무상을 닦다가 그만 탄력있는 엉덩이가 그만 의자 앞에 서 있는 군철의 팔을 스쳤다. “어허.” 군철은 감전이나 된듯이 어색하게 웃었다. 경희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더니 침묵하며 사무상을 대충 닦고 물러갔다. (경희는 30대 초반인데다가 북경대학 졸업생이지. 리나에 비하면 나이는 일여덟살 어려도 참 수양있지.) 순간 경희가 박문의 비서로 있을 때 술상에서 박문이 허벅다리를 막 만지면서 치근거려도 들이대고 있던 일이 불쑥 떠오르며 마음을 비길데 없이 했다. (그땐 어쩔 수 없어 들이대고 있은 거야.)  군철은 너그럽게 량해하려고 들었다. 그는 경희의 항상 맑고 밝은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환한 웃음을 새물새물 짓는 것이 녀신처럼 퍽 사랑스러웠다. 항생 생글방글 웃는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모습이 좋았다. 그 눈길 속에 들어가보고 군철은 놀랐다.  (경희가 날 사랑하고 있는 건가?) 군철이 회사에서 아무리 좋은 총각들을 소개해주면서 대상에 대한 요구가 어떤지 물으며 속뽑이를 해보았다. 그때마다 경희는 다 거절했다. “전 시집 안가요.” 경희는 새무룩이 웃으면서 사양했다. “쳇, 처녀 시집가지 않는다는 거야 다 새빨간 거짓말이지.” 군철은  넌짓이 물어보았다. “경희는 도대체 어떤 총각한테 시집가려고 그러오?” 경희는 자기 대상문제에 무척 관심 가지는 군철이 은근히 좋았다. 그러나 그녀는 속과는 달리 머리를 들며 정색했다. “전무님, 다신 저의 결혼문제를 묻지 마세요. 전 독신주의자예요. 전 최전무님의 비서로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족해요.” 군철은 능청스레 물었다. “그래 한뉘평생 시집가지 않고 내 비서로 늙을 수야 없잖소? 말도 안돼.” 경희도 꽤나 흥분된 것 같았다. “괜찮아요. 한평생 최전무님 곁에 있어도 행복해요.” 경희는 속을 뒤번져보인 걸 느끼고 빨간 혀를 홀랑 내밀며 머리를 다소곳이 숙였다. 군철은 속으로 웃었다. “누굴 속여? 누구한테 곁에서 항상 추파를 보내더니, 참, 누구한테 꼬리를 쳐들어보여?” 경희는 그런 군철의 마음을 읽었을가? “결혼해 뭘 해요? 전무님처럼 애들 둘이나 낳고 리혼하자고 결혼해요? 미안해요. 제가 그만...” 그녀는 혀를 홀랑 내밀었다. “괜찮소. 나하구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 참 좋소.” 그제야 경희는 한숨을 호 내쉬였다. 경희는 내심으로 군철을 탄복하였다.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종알거렸다. (전무님, 저는 전무님 같은 총각이면 시집 갈 거예요. 애 둘이 없어도 어떻게 될지 몰라요. 리나 언니가 옆에 없어도 또 몰라요... 아니, 내가 무슨 못된 생각을.) 경희는 스스로 귀 밑까지 붉히였다. 그녀는 군철의 우멍눈이 자기 속마음을 꿰둟어본 것 같아 바늘방석에 앉은듯이 불안해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전무님, 다른 일 없으면 나가보겠습니다.” “잠간, 경희, 이젠 내겐 바라볼게 하나도 없소. 이번에 직원들의 아파트 건축비용으로 내 전재산을 다 내놓은 걸 저도 알잖소?”      경희의 쌍까풀눈 귀에 조서가 섞인 독살이 흘러지나갔다.      "저를 뭐로 보고 하는 말입니까? 제가 뭘, 최전무 재산이나 넘보고 따르는 저렬한 녀자로 보입니까?" 경희는 군철을 곱게 흘겨보고는 오쫄 일어나 비서실로 종종걸음쳐 나가버렸다.       (조, 핼끔 흘겨보는 모습, 오-호-, 톡톡 쏘는 모습 얼마나 이쁜가? 아버지도 저렇게 이쁜 녀자들 추파에 유혹됐겠다. 오, 어쩌나? 안돼, 난 아빠처럼 주섹에 빠져 살아선 절대 안돼. 아빠 결과는 얼마나 비참한가? 절대 아빠 전철을 밟아선 안돼.) 군철도 사내대장부였다. 그에게도 칠정육욕이 있었다. 그에게도 사랑도 있고 리별의 아픔도  있고 눈물도 있었다. 그에게는 소설 같은 인생사가 있었다. 그는 전무 사무실에서 탄력있는 몸매를 흔들며 나가는 경희 뒷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저 탄력 있는 몸매, 항상 추파를 보내는듯한 까만 포도눈, 저 밝은 표정,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러나 내가 어찌 경희한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 경희보다 거의 열살이나 이상인데. 나에겐 애 둘이나 달려 있어. 나에게는 정신환자 양아버지에 감옥살이를 하는 친아버지가 있어. 아니, 그것보다도 난 당위 서기이고 당대표야, 수천명 직원들의 신임을 받는 당대표야. 그들의 리익을 대변하는 당위 서기, 전무야. 그럼 난 어쩜 좋아?..) 리나와 애들을 집에 두고서도 군철은 기나긴 묵념에 잠겼다. 그의 눈 앞에는 피뜩 하나의 어글어글한 쌍겹눈이 떠올랐다.  군철은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할끗 할끗 쳐다보는 눈길, 아, 그윽한 추파 담긴 그 눈길, 꼭 깨문 입, 항상 군철에게 소름이 끼치게 하던 그 조그마한 입, 공포 자체의 칼날 같은 입이였지.) 문뜩 뚫어지라고 쳐다보는 하나의 쌍겹눈에 운선의 부릅뜬 눈이 겹놓여 보였다. (안돼, 하나는 운선의 녀친이야. 그들은 하버드대 동창생이자 10여년이나 사귀여온 죽자살자 하는 련인이야. 절대 의리도 없이 비도덕적으로 아우의 녀자를 가로챌 수 없어.” 군철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나는 련애관이 이상한 녀자야. 미국에 있을 때 흑인지도교수와 좋아했다지 않는가? 그것도 함께 미국 하버드대에 류학간 남친 김운선을 옆에 두고 톰이란 흑인교수와? 으흐흐, 량심없는 년, 배신자야, 애비와 똑 닮았어. 애비는 내 아빠를 배신하고 물어먹고 잡아가고. 흥, 네년은 운선을 배신한 년, 배를 갈아타고 톰교수한테 올라타고 이젠 또 나한테? 어림도 없어. 안그래도 배신자 같은 년 너무 섬찍해서 박총경리한테 비서로 보내버렸는데. 절대 그년의 추파에 유혹돼선 안돼.)        군철은 숱한 미녀들이 추파를 보내는 것이 도저히 리해되지 않았다. (혹시 내가 돈깨나 버는 걸 보고 숱한 처녀애들이 추파를 보내는 걸가? 30대 경희, 하나, 심지어 20대 마끼까지... 아니면, 내가 오해했는가? 하나는 물론 능력은 있어. 직원들의 아파트도 하나가 건축설계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짓겠는가? 미국 하버드 대학을 석사생이 달라. 동양과 서양 건축 예술을 결합하고 우리 조선족의 전통건축예술을 계승하는 풍격으로 설계하지 않았겠는가. 이제 고향의 진달래까지 아프트 울안에 심어놓으면 고향 조선족마을 같겠는데. ㅎㅎㅎ. 하나는 운선의 련인이 아닌가? 더구나 하나 애비는  일본과 한국에까지 쫓아가 내 친아버지를 나포하지 않았던가? 어찌 친아버지 원쑤를 용서한단 말인가? 어찌 원쑤의 딸과 한 이불을 쓰고 산단 말인가? 안돼, 절대 안돼!) 그는 쏘파에 앉아 차탁을 탕 쳤다. 커피잔이 번져지면서 커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군철은 황급히 걸레를 가져다가 커피를 닦아버렸다. 그는 창 밖을 내다보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성호는 배신자야, 죽마고운데 어찌 내 아버지를 붙잡으려고 미쳐 날뛴단 말인가? 뭐? 정의용사 위용을 떨치려고? 흥, 아버지가 하도 날래서 한국 홍대입구에서 화장실에 들어가는 척 하면서 정철의 차에 앉아 도망쳤으니 말이지. 정철은 미희란 한국 기생 오빠라는가. 아버진 기생 덕에 도망친 거지. 아버지도 참, 어쩜 태평양 무인도에까지 도망쳤다가 붙잡혀 온단 말인가?)  군철은 아버지 일을 생각하니 기막혔다. (아버진 잘 있는지? 언제 애들을 데리고 감옥에 면회하러 가봐야는데. 아버진 친손자들을 한번도 보지 못했는데...) 그는 이일 저일 생각만 해도 골치 아팠다. 요즘엔 마끼가 꽤나 복잡하게 굴어 골치 아팠다. (요먼저 봐라. 단둘이 남으니 꼬리를 치는 거. 고약한 년. 아버지를 정신병에 걸리게 해놓고 피해버린 춘희박사 때문에 그런게 아니야. 마끼가 어쩐지 꽉 씹어놓고 싶을 정도로 미운게 이상해. )   순간, 군철의 눈 앞에는  할끔할끔 쳐다보며 추파를 보내던 마끼 쌍까풀눈이 삼삼거렸다.  (유리알처럼 밝은 그 눈, 그 빛뿌리는 강렬한 추파, 오, 사람 죽인다, 죽여. 전번에는 다이로교수를 보내놓고 단둘이 남자 그게 뭔가? 홀딱 벗고 꼬리를 치지 않았던가.)     군철은 마끼한테 물었다. “전번에 무슨 롱담을 그렇게 하오?” 마끼는 쌍까풀눈을 치켜떴다. “뭘 말인가요?” “뭐요? '첩'이구 뭣이구. 당대표를 어떻게 보고 그런 허망소릴 하오? 그래 내 첩을 둘 놈이라고 보오?” 그제야 마끼는 해시시 웃으며 머리를 다소곳이 숙였다. “미안해요. '첩'소린 잘 못했습니다. 반성해요. 그러나 진심의 말을 했어요. 저는 최전무님을 존경하고 사랑는데요.” “쳇, ㅉㅉㅉ.” 군철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러나 마끼의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은 계속 종알거렸다. “최전무님은 진짜 땅을 밟고 하늘을 떠인 사내답습니다. 얼마나 모든 인간관계를  아량있게 처사했는가요. 이번에도 저를 천방백계로 보호해주었지요. 다이로교수 마음도 상하지 않게 해 백신생산에 의료기술지원을 계속 받게 됐지요. 그보다도 최전무는 인간적으로 그냥 좋아요...” (그때 분명 내심장은 쿵쿵 높뛰고 있지 않았던가?) 군철은 마끼의 당돌한 말에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만, 그만, 안 될 소릴. 이젠 볼 일 다 봤으니깐. 돌아가오.” 그때 군철은 어색한 국면을 타개하려고 화제를 바꿔 마끼를 회사 위생소 소장으로 임명한다고 했다. 마끼는 어색하게 히쭉 웃었다. “혹시 저를 좋아하는가요? 나나, 아니, 복화도 있는데요. 복화를 소장으로 임명하는게 나을 거 같은데요. 저의 어머니는 최전무 양아버지를 괴롭힌 장본인인데요. 저도 밉겠는데요. 왜 저를 위생소 소장으로 임명하죠? ” 군철은 믿음에 찬 눈길로 마끼를 바라보며 정색했다. “저네 어머니는 어머니고 마끼는 마끼지. 나는 간부를 제발할 때 절대 개인감정으로 대하지 않소. 주요하게 인간성과 도덕품질, 지식수준, 그리고 관리능력을 보오. 마끼는 이번에 다이로교수를 아주 지혜롭게 대처했소. 위생소 소장을 충분히 잘할만한 관리인재요.” “어마나!” 마끼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감동을 먹었다. “최전무님, 사랑해요. 꼭 저한테 숫처녀장가 들 생각 전혀 없는가요? 이건 한 숫처녀의 소박한 첫사랑인데요. 소중히 여기고 심중하게 고려하길 바래요. 기회는 단 한번뿐인데요. 기회를 놓치고 이담 가슴치며 후회하지 말아요.” 추파는 번대머리에 닻을 내리는데 유혹은 꼬리 치며 서정시를 쓴다.         (조 백지장처럼 새하얀 우유빛 얼굴을 봐. 얼마나 매력적인가.) 로맨틱하고 파격적인 사랑의 서정시는 황혼을 빨갛게 불태우더니 날개를 서서히 펴고 빨간 하늘을 훨훨 날고 있었다. “또, 또, 또. 쓸데 없는 헛소릴, 횡설수설, 얼마나 사람 해치는가 생각이나 해보고 그러오? 돌아가 위생소나 잘 관리하오. ” “전무님은 조만간에 한 숫처녀의 순박하고 로맨틱한 사랑을 느끼게 될 거예요. ㅎㅎㅎ” 마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문 밖으롤 뛰여나갔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군철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마끼의 강렬한 빛 뿌리는 밝은 눈길을 피하지 않고 그저 웃어보였다. (같은 값에 분홍치마라고 사랑스런 어린 숫처녀를 사귀는게 낫지 않겠는가! 어허, 내 무슨 망년된 궁리, 렴치도 없어. 열살이나 지하 숫처녀를 어찌...) 그때 리화가 애들을 데리고 객실에 나왔다. “아빠하구 함께 놀자. 아빠를 뽀뽀해줘라!” 길림이 먼저 달려갔다. 애들은 군철의 품에 안겨 량볼에 뽀뽀했다. 군철은 저쪽에서 자기를 쳐다보는 리나의 화기없는 눈길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 외까풀눈에는 신심도 없어보였다. 확실히 군철을 따르는 숱한 처녀애들을 이길 용기와 신심이 없었다.  (그래, 리나, 넌 다만 송림과 길림, 유일한 재산이자 무기이지. 두 아들을 무기로 삼아 피동적으로 방어만 할뿐이잖은가.) 리나는 두 아들의 어머니일뿐이지 그녀에 대한 군철의 불평은 많고도 많았았다.   (이전에 그게 뭔가? 머리 허연 문걸 양아버지 우릴 돕느라고 애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데려가고 심지어 날마다 설겆이까지 해줬는데. 넌 뭐랬어? 애만 안고 놀고 잔소리만 해댔잖은가? 양아버지 고향에 돌아갈 때 넌 엉덩이도 들지 않고, 인사는커녕 내다보지도 않았지? 며느리로서 어쩜 인정도 없이 그럴 수 있어? 허나사나 대학 석사생까지 졸업한 문화가 있는 인간으로서 그럴 수 있어? 넌 양아버지 뭐란다고 '검정개 돼지 흉 한다고나 해라.'고 욕까지 하지 않았어? 참 인간수양이 너무 너무 모자라. 사람이 아니야. 지금 숱한 처녀들이 날 따르니 질투하고 떼버리려고 별 비렬한 수단을 다 쓰고 있잖니? 심지어 내 침실에 도청기까지 장치해놓고 도청까지 하고. 물론 애리싸를 붙잡은 건 잘 했지만. 그때 너의 추악한 본성은 끝내 드러났다. 네 같은 년과 복혼해도 절대 행복할 수 없어.) 그는 리나 벌린 추악하고 비렬한 일을 두루 생각하면 치떨리고 진절머리 났다. 그러나 애들을 보면 이상하게 또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였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어쩌란 말인가? 계속 졸혼해 살아보았지만 그저 그래.  애리싸가 미국 경제간첩일줄이야. 으흐흐, 생각만 해도 치떨려.) 군철은 숱한 처녀들과 리화를 놓고 비교하면서 선택하는 관건적인 시각이 돌아왔다. 그 선택과정도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꼈다. 미녀들의 매력적인 추파가 핵충격파처럼 강렬한 빛 뿌리며 군철의 흉벽을 쿵, 쿵 쳤다. 두 아들을 내세운 리나의 심리방파제는 가련하게 한겹한겹 무너져갔다. (아, 하느님이여,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조물주여, 당신은 왜 이 세상에 사랑을 만들어놓고 또 자유를 구속하는 가정을 만들어놓고 두 아들까지 만들어 주었습니까? 참된 사랑은 남녀 피끓는 두 심장으로 연주하는 사랑신의 멜로디 아닙니까? 두 아들을 위해 다 식어버린 옛 사랑에 다시 불을 달아야 합니까? 아니면, 참된 뭇 처녀들의 추파 오선보에 새 사랑의 노래를 엮어 목청껏 불러야 합니까?)        미녀들의 강렬한 추파가 핵복사마냥 군철의 마음을 지지고 볶는 콧노래소리 은은히 귀를 간음한다. 허허허.  
315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8) 김장혁 댓글:  조회:1206  추천:0  2023-05-05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8. 다이로교수와 마끼   군철은 집 안의 이일 저일에 골치 아팠다. 친아버지는 감옥에 갇혀 있고 양아버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리화와 애들 문제도 골치아팠다. 회사 일도 골치아팠다. 요즘 박문 총경리 말을 듣어보니 미국 상무부와 재무부의 압력을 받아 회사 풍비박산날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을 알게 되였다. 설상가상으로 회사는 베트남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아주 컸다. 수천명 직원들의 앞날이 파도 세찬 망망한 대해에 밀려나갈 위기도 있었다. 군철은 회사 가산 옆의 백신공장건물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였다. (다행이야,백신제약공장에서 이젠 백신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됐어. 자체로 생산한 백신이 우리 수천명 직원들의 코로나예방에 큰 도움이 됐지. 지금 코로나 심해 대외판매도 잘 되고 있어. 우린 이젠 살아남으려면 이제부터 우리 중국 직원들의 새 길을 탐구해야 해.) 백신공장이 리윤을 내게 돼 군철에게는 조그만치 위안되였다. 밴신공장도 그리 쉽게 성공한 것이 아니였다. 황선희는 박사였지만 백신까진 연구한 바는 전혀 없었다. 근근히 페병환자들을 치료한 처방이 전부였다.  위생소 소장에 백신공장 공장장을 맡은 황선희 박사는 밤낮이 따로 없이 맴돌아쳤다.  그는 군철을 찾아와 대머리를 쳐다보면서 백신제조의 애로사항을 피력했다. "야마구찌 다이로교수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 백신을 연구제조할 수 없습니다. 다이로교수를 너무 박대하지 마세요.마낀지 마귄지 하나쯤 없어도 백신연구엔 지장이 될게 없습니다.복화만 있어도 돼요." 군철은 우멍눈으로 황소장을 힐끔 건나다보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어떤 땐 마끼를 수하직원이라면서 보호하는 척하더니. 참, 이젠 다이로교수의 희생양으로 내몰 작정인가?) 황선희는 진작 김춘희 모녀를 질투했다. 게다가 이번에 그들 모녀간이 다이로교수한테 배은망덕한데다가 숱한 돈을 사기쳤다고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기회에 마끼(가은)마저 위생소와 백신공장 기술과에서 몰아내고 싶었다. "백신 때문에 그래 죄도 없는 마끼를 희생양으로 만들어서야 됩니까?" 군철은 기어이 마끼를 법정에 내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군철의 눈치를 챈 황선희박사는 제꺽 번져누웠다. "다이로교수 때문에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다이로교수 무리한 요구와 위협공갈 때문에 마끼를 법정에 세우지 않아도 됩니다. 이젠 백신도 시험생산에 성공했고 곧 대량생산에 투입되게 됐습니다. 음력설을 쇠고나면 가능하게 코로나도 정점을 찍고 사멸될 수 있습니다.백신 수요량도 급감할 수 있습니다.때문에 코로나에 너무 기대하지 마십시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황박사는 의료지식은 빵점인 번대머리를 쳐다보며 이실직고했다. "무슨 질병이나 아무리 살상력이 강한 병독을 가지고 있더라도 발병, 고조,사멸의 계단을 겪게 됩니다.지금 국제 코로나흐름새를 분석하면 이제 봄이 오면 전세계 코로나는 사멸의 길을 걸을 거 같습니다." 그제야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기대에 찬 우멍눈으로 황선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멀잖아 백신도 대량 생산할 필요없게 되겠군요. 그럼 우리 회사에서 백신 대신 생산할 새 약종을 미리 연구해두십시오." 황선희는 자신있게 말했다. "금심하지 말아요. 저에게는 성기능제고 특효비방강장제약처방이 있습니다.다이로교수가 저에게만 가만히 전수해준 비방인데요.한국에 나가 시험해 봤는데요. 성기능제고에 특효입디다.한국제 비아그라드보다도 효과가 빠르고 좋았습니다. 성기능제고약을 수요하는 국내외 환자들이 아주 많다고 생각합니다." 기실 황선희는 그 성기능제고약으로 일찍 정호한테 써보았다. 그런데 정호는 놀랍게 변강쇠로 변모해 날마다 녀인사냥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 되였던 것이다. (최전무, 자네 애비도 내 약 먹고 변강쇠로 된 거야. 순정도 내가 수란관을 잘라버려서 애를 못 낳았어.) 황박사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던 비밀을 헤쳐보면서 번대머리를 쳐다보며 속으로 희죽이 웃었다.  군철은 그런 진상내막을 전혀 모르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알았습니다. 차차 강장제생산을 연구해봅시다." 군철은 황박사를 보내놓고서도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강장제도 다이로교수와 련관되는군. 그렇다고 시비를 떠나 다이로교수 눈치만 볼 수 없잖은가?다이로교수는 고양이처럼 회사 위생소에 쏠락거리면서 끝내 마끼도 회사 위생소에 있다는 것을 알아내지 않았는가.다이로교수는 만약 회사에서 마끼를 법정에 세우는 것을 협조하지 않으면 백신합작연구제조를 철회하겠다고 을러멨다.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군철에게는 또 하나의 골치거리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면서 사무실에서 왔다 갔다 거닐며 궁리를 번개같이 굴렸다. (마끼를 더는 위생소에서 빼돌려 숨길 수는 없어. 다이로교수와 마끼를 사무실에 불러 시비를 갈라야지.) 다이로교수는 통지를 받은 이튿날 아침 일찌기 벌써 군철의 사무실에 와 쏘파에 틀스레 앉아 있었다. 이윽고 마끼가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녀는 마스크를 벗으며 놀라운 눈길로 어색하게 다이로교수를 보면서 허리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양아버님, 그간…" "닥쳣!무슨 양아버님? 사기군 같은 년!" 다이로교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퉁사발눈에 쌍불을 켜고 마끼를 쏘아보면서 손가락질하였다. "너, 이년, 사기군 같은 년, 내 애를 낳아주겠다고 해놓고 숱한 예약금과 금은장신구를 사취해가지고 중국에 도망치지 않았어? 어디 내 돈을 내놓지 않고 감옥에 가지 않는가 두고 봐! "가만,가만." 군철이 손사래를 쳤다. "다이로교수님,조용히 말하십시오." 다이로는 그제야 쏘파에 되앉으면서 두덜거렸다.  "네년,도망치긴 어디로 도망쳐?! 너네 중국에 이런 말 있잖아? 손오공이 아무리 날뛰여도 여래불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군철은 다이로교수를 재차 제지시키고나서 다이로와 마끼를 번갈아보며 무거운 입을 떼였다. "오늘 두분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시비를 가려야겠습니다. 저는 어느 한쪽 말을 듣고 결론을 내리지 않고 공정한 립장에서 이 문제 시비를 가리려고 합니다." "쳇, 공정하긴 뭐 공정해?"    다이로교수는 군철의 말을 중도무이하며 두덜거렸다. "쳇, 공정했으면 사기군년을 다 위생소에서 빼돌려 감춰 놓았겠는가? 편파적으로 작작 나오라고.흥." 군철은 털끝만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다이로교수님, 어찌나 죽일상 하는지 저는 마끼를 보호해야 했습니다.저도 그간 이 사건을 여러 측면으로 조사했기에 진상내막을 얼마간 알고 있습니다." 다이로교수는 퉁퉁한 네모낯을 들어 군철을 바라보며 애원했다. "진짜 사기입니다. 최전무, 내 돈을 찾아주십시오.억울합니다. 내 돈만 찾아주면 당신네 회사에선 백신 내놓고도 나와 합작하면 숱한 새 약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군철은 마끼를 건나다보며 물었다. "마끼, 사건 진상이 어떤지?한다미도 거짓말을 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하오." "네." 군철은 법관처럼 심문하듯이 마끼 말을 유도해냈다. "마끼, 다이로교수 말에 의하면, 마끼는 다이로교수의 애를 낳아주겠다고 하고 숱한 돈과 금은장신구를 가지고 중국에 들어왔다는데 맞소?" "네.그런 일 있습니다." 마끼는 다이로교수를 쏘아보며 말했다. "우린 계약까지 맺었습니다. 이걸 보십시오." 군철은 사전에 마끼가 지금 쳐든 계약서를 미리 보았다. 그러나 짐짓 처음 본 상하며 쇼를 놀았다. "아니,건  계약서 아닌가?" 그는 계약서를 들고 보다가 다이로교수 앞에 가서 쳐들고 물었다. "다이로교수님, 이런 계약서를 맺은 적이 있습니까?" 다이로교수는 자기 친필서명과 도장이 박힌 그 계약서를 보는 순간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년이 꾸민 불평등사기계약서야!내 미리 알았더라면 서명했겠는가?" 마끼는 코웃음쳤다. "쌍방이 체결한 계약서도 부인해서 되는가요?생떼질이지.흥!" 다이로는 억이 막혀 마끼를 손가락질했다. "네년이 내 애를 낳아주지도 않고 예약금과 금은장신구를 사기쳐가지 않았느냐? 사기행각이 불 보듯 뻔하지 않는가?!" 마끼는 한발작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나섰다. "다이로교수님, 제가 당신의 애를 낳아주겠다고 했습니다. 당신의 애를 낳아주면 당신의 예약금을 가져도 되겠지요?" 다이로교수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따지고 들었다. "넌 어디 애를 낳아줬는가?" 마끼는 해죽거리며 또 다이로교수한테 물었다. "당신의 애를 낳아주면 유산을 몽땅 나한테 주겠다고 계약하지 않았는가요?" 그 말에 다이로교수는 일루의 희망의 빛이 어린 퉁방울눈으로 마끼의 몸을 살폈다.  마끼의 배는 아직도 홀쪽하지 않겠는가.  "그랬지? 애만 낳아주면야. 유산뿐이겠느냐? 그러나 넌 지금도 배가 홀쪽 하잖느냐?나하구 섹스한 적도 없고. 돈 가지고 훌 도망쳤잖아?" 다이로는 마끼를 괘씸해 당장 잡아먹을 상 했다. "배은망덕한 년,주리를 틀어놓을 년." "호호호." 마끼는 코를 싸쥐고 웃었다. 다이로는 약을 올리는 마끼를 보고 벌떡 일어나 손가락질하며 고함쳤다.  "웃긴? 왜 웃어?날벼락 맞아 뒈질 년!" 그러나 마끼는 깔깔 웃더니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을 꺼냈다. "다이로교수님, 양아버님, 당신은 섬나라에 돌아가 나한테 유산마저 넘겨줄 준비나 하세요" "무슨 소리야?" 다이로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마끼의 말은 한심했다. "당신의 애는 이제 곧 세상에 태여나게 되는데요.어서 돌아가 포동포동한 당신 애나 안아볼 준비나 하세요." 군철도 그 뜻밖의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해 마끼를 내려다보았다.  "넌 배 홀쪽한데? 어데서 내 애가 태여나?" 다이로교수는 어안이 벙벙해하며 어처구니없어 마끼를 손가락질했다. "또 사기치려고 꿍꿍이지?" "아니예요."         다이로는 퉁방울눈으로 마끼를 쏘아보았다.        "너 혹시 로봇미녀 아사꼬 배에 임신시킨 건 아니겠지? 그년한테 난 혼났어."        "호호호."       마끼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사꼬는 잘 있지요?"       "오, 너네 가짜엄마,  어디로 도망갔는지 몰라. 스위치를 꺼놨는데 어떻게 저절로 켜고 어디로 도망쳤어." 마끼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는 핸드빽에서 자그마한 명함을 꺼내 다이로교수한테 건넸다. "이 녀자를 찾아가세요.이 녀자 배에 양아버님의 애가 있는데요. 오래잖으면 이 세상에 태여날 때 됐습니다.돌아가서 잘 보살피세요." "뭐라고?" 다이로교수는 명함을 몇번이고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교토,이찌하나 기생거리, 야마구찌 사꾸라?" 그는 머리를 쳐들고 퉁사발눈으로 마끼를 쳐다보면서 미심한 표정을 지었다. "난 이 녀자 하구 섹스한적도 없어. 내 애가 어떻게 생겼어?" 마끼는 코를 싸쥐고 사무실이 떠나게 깔깔깔 웃었다.  "양아버진 이럴 땐 유명한 생물학자, 성학자 같잖아요. 지금 세월에 딱 성교해야 임신하는가요? 실험관 애를 만들 수도 있잖아요?" "엉?" 다이로교수는 호기심에 찬 눈길로 마끼의 앵두입을 흘끔거리며 하회를 기다렸다. 마끼는 군철을 쳐다보며 종알거렸다. "최전무 앞에서 말하긴 부끄럽긴 한데요." 군철은 손사래를 쳤다. "괜찮소. 어서 이실직고하오." 마끼는 꺼리낌없이 낱낱히 말했다. "나와 어머니 짜고들었는데요.어머닌 양아버지 정액을 은밀히 실험관에 받아뒀지요. 제가 기생거리에 가서 사쿠라한테 돈을 주고 란자를 받아내 가져다가  실험관에서 양아버지 정액을 수정시켰지요. 그 수정란을 다시 사쿠라 자궁에 넣어 시험관애를 임신하게 하는데 성공했지요." 다이로교수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명함장을 다시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사쿠라? 사쿠라?" 그는 명함을 품 속 호주머니에 잘 간직하고 마끼를 쳐다보며 생떼질을 썼다. "애는 사쿠라가 낳게 됐는데. 돈을 왜 너한테 줘?계약을 어겼기에 일전한푼도 줄 수 없어. 내 돈 내놔!" 군철은 다이로교수가 가소로웠다. "이보세요. 다이로교수님, 계약서도 있고 애도 보게 해줬으면 됐지. 생떼질을 쓰지 마십시오." 마끼도 한마디 했다. "다이로교수님, 당신은 저의 양아버지이자 지도 교수인데요. 어쩜 그럴 수 있어요. 계약서에 당신 애를 낳아주면 돈도 주고 유산도 주겠다고 명명백백히 쓰여 있지 않는가요? 제가 꾀를 써서 사쿠라 배를 빌어 당신 애를 낳아주게 했는데요.뭐가 다르다고 이래요?감지덕지해 할 대신 고까짓 돈이 아까워 이게 뭔가요?" 마끼는 최후일격을 가했다. "다이로교수님, 부끄럽지 않아요? 양딸과 딱 쌀아서 애를 낳아야 하는가요? 섬나라 교수에겐 인륜도 없는가요?" 다이로교수는 퉁퉁한 네모얼굴을 어디다 감출데 없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여들억가고 싶었다. 살진 낯은 귀밑까지 벌거희데데하게 번져갔다.    그는 품 속에서 명함을 꺼내더니 핸드폰을 들었다. "모시모시, 사쿠라씨인가요? 안녕하세요? 네, 전 의과대학 교수 야마구찌 다이로입니다. 네. 야마구찌 마끼라고 기억나는가요?네. 그래요. 그의 말에 의하면, 당신이 내 애를 품었다고 하는데요.사실인가요?네? 그래요? 감사해요. 저의 애를 낳기만 하면 전 전부 재산을 다 드리겠습니다. 네, 지금 제가 중국에 있는데요. 당장 돌아가 당신을 만나야겠습니다.네, 빠이, 빠이," 확인한 다음에야 다이로교수의 바위처럼 굳어졌던 퉁퉁하고 유들유들한 얼굴이 느슨히 풀렸다. "마끼,감사해. 예약금은 가져라. 그러나 내 유산은 넘보지 말라. 또 금은장신구는  돌려달라.사쿠라한테 기념품으로 줘야겠다." 군철은 조소가 흐르는 우멍눈으로 야비한 다이로교수를 내리쓸어보았다. "너무 야박합니다.마끼 은공을 갚을 대신 옹졸하게 뭡니까? 황차 그 금은장신구는 일본 공항에 차압된 저의 아버지 거 아닙니까?" 그제야 다이로교수는 창피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최전무님, 금은장신구 가지구려,후에 제약공장 계속 힘껏 지원해주지." 그러나 군철은 손사래를 쳤다. "금은장신구는 당신이 마끼한테 사례금으로 준 걸로 합시다." 그는  다이로교수를 바래며 악수까지 했다. "다이로교수님, 애를 보게 된 걸 축하합니다.이제 기회 있으면 황박사와 합작해 성기능제고약을 생산해봅시다." 다이로교수는 애를 보게 돼 입이 함박만해 연신 머리를 조아리렸다.  갑자기 다이로교수는 마끼한테 머리를 돌리더니 고래고래 을러멨다. “이제 사쿠라 낳은 애 DNA를 검사해봐야 알 수 있어. 내 앤지, 아닌지? 또 사기쳐 봐라. 하늘도 용서하지 않을 거야. ” 퉁발눈에는 분명 미심한 빛이 어려 있었다. 마끼는 해쭉 웃으며 빈정거렸다. “양아버님, 분명 교수님의 훌륭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포동포동한 아드님일 건데요. 저에게 유산 넘겨줄 일 잊지 마세요. 양아버지 어머니한테 써준 유서대로 유산을 엄마한테도 줘야 해요.” 다이로교수는 퉁사발눈을 뚝 부릅뜨며 주먹을 건뜻 쳐들어보였다. "당장 춘희와 리혼수속해야 해. 유산은 무슨 유산이야."       다이로교수는 마끼한테 헤벌쭉거리면서 바람결처럼 떠나가버렸다. 군철은 사무실에 돌아와 마끼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왜 하필 일본 기생한테 임신을 부탁했소?"         마끼는 해쭉 웃으며 대답했다.        "성변태를 조롱하려고 그랬습니다. 아무리 교수라 해도 기생년과나 짝이 맞죠. 평소에 다이로교수는 사쿠라라는 기생을 자주 찾아갔죠. 다이로는 성의료과학자를 벗어나 성변태예요. 성변태에겐 기생과 만든 실험관애나 차례져도 대득이죠. ㅋㅋㅋ." 군철은  어이없어 마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다림은 하품하며 부채질하더니 초저녁 잠을 청한다.        어데선가 녀인의 앙칼진 푸념소리 귀를 간음하며 신음한다.        숫처녀의 순박한 자장가소리 한수의 천진한 동요처럼 가슴을 애절하게 설레이게 한다...     
314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7) 김장혁 댓글:  조회:1220  추천:0  2023-05-02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7.둥지  휴일이다.     다른 때 같으면 휴일이면 군철은 애들과 함께 천륜지락을 즐기는 휴식의 한때를보내는 행복한 날이였다. 그러나 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먹장구름이 사품치며 흐르는 아파트 창 밖을 내다보면서 근심이 태산 같았다.  그는 아침을 대충 챙겨먹고 애들을 보모한테 맡겨놓고는 보마차를 타고 회사 아파트 건축공지로 부랴부랴 달려갔다.      (만약 반도체회사를 진짜 베트남으로 옮겨간다면 어쩌는가? 숱한 직원들은 하루 새에 허망 바깥에 나앉게 되지 않겠는가.)     그는 생각할수록 회사와 직원들의 앞날이 암울하기만 했다. 저도 몰래 땅이 꺼지게 장탄식이 나갔다.    (아파트라도 다 지어 직원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새들도 둥지 있는데 우리 직원들이 아파트도 없이 허망 나앉아 셋집살이를 시킬순 없다.)     그는 수천명 직원들의 아파트를 짓는 사업이 급선무였다.    "평방당 10만원씩이나 하는 아파트 한채씩만 가져도 직원들은 살 수 있겠는데.자금난으로 이제사 호수를 메꿔놓고 기초공사를 하고 있지 않는가. 아파트건축공사를 다그쳐야지.건데 자금난이 문제야.) 군철은 시정부 공업주관 부시장한테 가서 비난사정해 회사 앞의 호수 자리에 직원들의 35층짜리 고층아파트를 짓는 토지사용허가와 건축허가를 맡아냈던 것이다.  그런데 박문 총경리보고 건축비용을 대달라고 하자 말상을 흔들면서 딱 잡아뗐다. "말도 안돼. 지금 미국 놈들의 통제로 해 반도체 생산과 판매가 부진상태인데. 아파트 건축비용까지 대달라고? 되지도 않을 소릴." 군철은 미리 생각한 수를 대지 않으면 안되였다.그는 당대표, 당위 서기로서 수천명 중국 직원들을 위해 나서서 바른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우리 반도체회사에서 해마다 얼마나 많은 수입을 올렸습니까? 그래 아파트건축비용 한푼도 대주지 않겠습니까?말도 안됩니다.본사에서 량심이 있습니까? 어떤 땐 우리 중국 직원들을 리용해 숱한 돈을 벌고 이젠 헌신짝 차버리듯 할 예산입니까?" 박문 총경리도 난처한 처지가 있었다. "글쎄 낸들 대주고 싶지 않겠나? 지금 인건비 높아간다고 본사 리회장님이 생 야단치시는데. 어떻게 해?인건비 때문에 숱한 직원들을 내보내라고 하지 않았어?" 사실 코로나가 심한데다가 미국 양키들이 이른바 반도체동맹을 강요하고 날따라 통제가 심해졌다. 인건비는 올라가고 생산과 판매가 부진하자 회사에서는 본사 지시대로 약 3분의 1이나 되는,천여명 직원을 정리해 회사에서 내보냈던 것이다. 박문 총경리는 손바닥날을 가로 홱 날리는 시늉까지 해댔다. "우리 회사에서 아파트까지 져준다면 내나 자네나 무사할 거 같아? 썩뚝 잘릴 거야." 그러나 군철은 당대표, 당위 서기 직책을 잊을 수 없었다. 이 시각에도 그의 뇌리에는 수도 북경 인민대회당에 가서 전국당대표대회에 참가하던 일이 떠올랐다. 그의 눈앞에는 조선족대표들 모습이 떠올랐다. 소장 별이 박힌 군복을 입은 리현옥 소장은 중국인민해방군 모 로케트연구소 소장이며 우리 나라에서 첫 조선족녀장군이였다. 연변조선족자치주 홍경 주장의 당당한 모습도 우렷이 떠올랐다.      군철은 리현옥 소장과 홍경 주장의 이름이 당중앙 후보위원의 반렬에 오른 것을 보고 당의 현명한 민족정책과 민족의 긍지감을 한없이 느꼈다.  그때 군철은  당과 인민을 위해 목숨바쳐 열심히 일할 것을 마음 속으로 다지고 또 다지였다. 그는 이 시각 수천명 직원들의 리익을 위해 전무직위를 잘릴 위험도 무릅쓰고 추호의 양보도 없이 당당하게 시비를 따졌다. "그까짓 거, 전무자리 잘리면 잘렸지요.더는 참을 수 없습니다!" 그의 우멍눈에서는  무서운 빛이 번쩍이며 번개쳤다. 그는 우뢰 같은 소리로 따지고 들었다. "중국 정부와 직원들이 아니면 당신들 한국 회사에서 중국 땅에 회사를 차리고 숱한 돈을 벌 수 있었겠습니까?저는 전무직을 걸고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회사에서 마땅히 건축비용을 대주지 않으면 배은망덕하는 행위로서 용서할 수 없습니다. " 박문은 군철의 날카로운 말에 기가 좀 꺽여들었다. "쳇, 바로 중국 정부 대변인 거 같아." 군철은 속이지 않고 말했다. "저는 이 회사 당위 서기이자 공회 주석입니다. 직원들을 위해 한마디 말도 안하면 저를 해서 뭘 해요.저는 중국 직원들의 대변인이자 대표입니다.  " 군철은 박문을 얼리고 닥치고 했다. 박문은 이렇게 노기등등해 로골적으로 자기한테 대들고 뜨고 언성을 높이는 번대머리 군철을 처음 보았다. 그는 금방까지도 무서운 빛이 번쩍이던 우멍눈에 조금 웃음기를 담더니 박문의 사무상에 다가가면서 나직이 귓속말을 했다. "박총경리님,그럼 회사 돈을 좀 빌려 씁시다. 아파트를 다 지은 다음 직원들에게서 건축비용을 회수하면 돌려드리죠." "뭐?" 그 말에 박문 총경리는 길죽한 말상을 쳐들고 군철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도리머리를 가로저었다. "안돼. 직원들에게 무슨 돈이 있어 건축비용을 회수한다고 그래?평방당 10만여원이나 하는 집을 직원들이 살 수 있어?직원들한테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이 있으면 어째 직원들의 돈으로 아파트 지을게지." 군철은 박문의 태도에 하나도 개의치 않고  한술 더 떴다. "직원들에게 아파트시장 가격보다 퍽 싸게 팔 예산인데요." 박문은 우멍눈을 치켜보며 물었다. "그래 평방당 얼마에 팔 예산인가?" "이 위치에 시가는 평방당 10만원은 훨씬 넘어 받을 수 있지요. 그러나 직원들에게 평방당 한 5만원에 팔 예산입니다.그래도 직원들은 평방당 5만원은 번 셈이죠.백평방짜리 아파트 한채면 500만원은 식은 죽 먹기로 벌 수 있으니깐. 직원들도 모금하면 적극 동참할 겁니다. 그럼 건축비용을 일정하게 마련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쁜 목만 열어주세요." 박문은 어이없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직원들이 몇백만원씩 낼 수 있겠는가?" "이제 아파트를 다 지으면 저 아파트를 차압하고 은행대부금을 내면 돼요.직원들이 먼저 선불금만큼 모금하면 돼요.” 박총경리가 관심하는 건 건축비용이 아니였다. 군철도 그걸 간파했다. “박총경리께도 건축비용 대준 감사비로 아파트 둬채 드리죠." “안돼, 안돼. 난 중국 시정부에서 준 아파트 있잖아? 괜히 회사 자금람용죄에 걸려 감옥에 갈 걸. 난 감옥밥 먹기 싫어.” “박총경리님, 물러나기 전에 아드님과 따님한테 한채씩 미리 장만하면 좀 좋아 그래요?” 박문도 뒷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사실 그는 이제 반년도 안돼 총경리를 그만두고 귀국하면 퇴직해야 했다. (무러나기 전에 권력을 빌어 챙길 건 챙겨야지. 에라, 모르겠다.) 박문은 몇십억(한화)이나 아파트 몇채 앞에 넘어가고 말았다. "아파트 두채라? 해볼만한 장사거래구먼, ㅎㅎㅎ,아우가 그래도 항상 못난 히아(형)을 위해 아량있게 처사하네.” 그제야 박문 총경리는 선선히 대답했다.  “그럼 직원들과 계약을 맺고 건축비용을 선대해주지." 군철은 기쁜 나머지 통쾌하게 말했다. "회사에서 아파트건축비용은 얼마간이라도 대주는 걸로 하고요.그럼 본사 리회장님께도 아파트 주지요, 아님, 현찰로 감사비를 드려도 돼요."  "그래? 건 엄밀한 비밀로 하게.발각되면 회사 돈 람용죄로 감옥살이 할 수도 있어.선대는 해줄 수 있어. 그러나 본사 리회장님의 비준을 맡아야 해." "감사해요.리회장님과 박총경리님께 사례비로 아파트 두채씩 꼭 드리겠습니다." 박문은 군철을 힐끔 건너다보며 횡설수설했다. "참, 아우 오늘 왜 특별히 이래? ㅎㅎㅎ.아우도 애들 둘이나 되는데 둬채 가지게나."  그러나 군철은 손사래질했다. "아니, 나한테 차례진 한채면 족해요." 박문은 리해되지 않는다는듯이 도리머리질했다. "아우,새도 먹이를 위해 죽는다고 하잖아? 자네 아파트 짓자고 시정부랑 뛰여다니고 내하고 건축비용 얻어내지 않았으면 아파트 지을 수 있나? 사례비로 한채 쯤 더 가져서야 문제 될게 없잖아?" 그러나 군철은 정색하며 손사래쳤다. "당위 서기가 어찌 권력을 빌어 아파트를 한채 더 가질 수 있겠습니까?" 박문은 콧웃음쳤다. "흥,당위 서기는 사람 아닌가? 욕심이 그래 꼬물만치도 없어?" 군철은 정중하게 말했다. "우리 중국 공산당원은 법률과 직권에 규정된 리익 외에 직권을 빌어 불정당한 사리를 도모해선 안돼요. 이것이 바로 당원이 일반사람들과 다른 점이죠." 그러자 박문은 군철을 곁눈질하며 두덜거렸다. "그러고 보면 나도 두채 가져선 안될 거 아뇨?당위 서기가 날 더 줬다고 뒷말을 달고 다닐게 아닌가?" 군철은 내심하게 해석했다. "아니죠. 한채는 박총경리님께 차례진 몫이고요. 한채는 건축비용을 대준 사례금이죠. 은행대부금을 내도 그보다 더 많은 리자를 갚아야죠." "리자 대신 경제권을 쥔 총경리한테 아파트를 준다?" "그래요." "그럼 최전무도 두 채 가져 문제 없어." 박문은 정색해 말했다. "보라고,자네 시정부랑 국토자원국에랑 건설국에랑 가옥관리국에랑 뛰여다니지 않았더라면 아파트 지을 수 있었겠나? 응당 사례금으로 한채 더 줘야지." 박문은 최군철을 끌어들여 입을 틀어막고 아파트를 두채 가지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했다.그러나 군철은 두채 가질 수 없었다. "저는 시정부에서 준 집 한채 있잖아요? 그리고 리화와 난 리혼했기에 리화 과장도 한채 탈 수 있어요. 장차 애들 집까지 언제 근심하겠어요.몇천명 직원들의 아파트문제가 더 긴요한데요. 저는 저한테 차례진 한채 외에 한푼도 안 가지렵니다." 박문은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다가 이렇게 뒤근심했다. "나도 두채 그만두겠네.본사에서 알면 괜히 뒷말을 듣겠네.괜히 철창 속에 갇히겠네." 그러자 박문은 말상을 비뚤렁하며 한참 궁리했다. "내캉(내게) 뒷말도 안 듣게 할 묘책이 있습니다." "?" 박문은 말상을 들어 군철의 번대머리를 쳐다보았다. "내 아들과 딸을 우리 회사 직원으로 받아들입세. 그럼 사례금이란 명목도 필요없이 난 세 사람 몫으로 세채나 탈 수 있잖은가요?" "그래요?허허허. 그게 묘책이군요." 박문은 꾀망둥이였다. 자기 사리를 도모하는데는 진짜 이골이 텄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 회사 간부들의 특성이였다.        그는 군철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 놈 박대가리 비상해. 별의 별 꾀가 다 쑥쑥 빠져나온단 말이야.) 그러나 그는 속과는 달리 짐짓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우. 이래 되겠나?본사 리회장님은 인건비 올라가단고 자꾸 직원을 줄이라는데. 내 아들과 딸을 받아들여 되겠나? 뒷말이 두려워." "소주대학의 영국 켐푸리치대학 분원 석사생과 프랑스 리오대학 분원 박사생을 우리 직원으로 초빙하는데 웬 뒷말입니까?누가 당치도 않은 뒷소릴 해요? 당장 잘라버리겠습니다.흥." 박문 총경리는 이때만큼 날카롭게 결단하는 군철에게 못내 탄복했다. "아우를 옆에서 여겨보면서 당위 서기를 잘 뒀다고 보오. 언제나 회사와 직원들 리익부터 챙기는 자넬 보면서 나도 점차 적화돼가는 감을 느끼오. 당신들 공산당원들은 우리 부르죠아와는 판판 달라. 허허허."      그는 인차 랭정성을 찾으면서 말했다.     "아파트는 5년 이상 우리 회사에 근무한 직원들한테만 주게나." "아니, 그럼 박총경리님 아드님과 딸 어떻게 해요?" "어, 거도 그래..."     박문은 할 말이 더 없었다.     군철은 바로 이런 대목을 진작 내다보고 박문의 아들딸을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이다. 박문의 입을 틀어막고 직원들을 더 줄이지 않고 전체 직원들에게 한채씩 나눠주려는 것이였다.     아파트를 나눠주기 전에 직원을 대폭 줄이게나. 그래야 아파트 건축 부담도 줄고 회사의 인건비 부담도 덜 수 있잖겠나? 이건 일거량득이야." "네, 알았습니다. 줄이죠." 그러나 군철은 이젠 겉으로는 "예,예."건성으로 대답하면서 회사보다도 직원들의 리익을 챙기려고 자기 줏대대로 해나갔다. 하긴 본사에서 중국의 수천명 직원의 앞날을 등지고 회사를 베트남에 이전하려고 드는 판에야 . 그는 당대표로서 회사가 이전하기 전에 전무 직권을 빌어 수천명 중국 직원들의 앞날과 리익을 위해 뭔가 하나라도 챙겨줘야 했다. 그는 우선 박문 총경리를 푹 삶아 건축비용을 얻어내 아파트를 지어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급선무였다.   군철은 당장 인사과에 전화를 걸었다. "리과장, 어서 사무실에 오오." 그날로 군철은 소주대학 박사생 박슬기를  회사 인사과 직원으로 초빙했고 박문의 아들은 경영과에 초빙했다.하여 박문의 아들과 딸은 회사에 출근하네 하고 낯이나 보이고 소주대학에 가서 공부하면서도 아파트를 타게 되였다. 최군철 전무는 아파트 건축공사 총책임자로서  이렇게 간고하게 본사 리회장과 회사 박문 총경리한테서 아파트 건축비용을 얻어내는데 성공해 아파트공사를 벌려나갔던 것이다. "빨리 아파트를 지어야 해? 밤이 길면 꿈도 많아지지." 군철은 박총경리와 차용계약서를 쓰고 회사 돈을 얼마간 먼저 내다가 건설비용으로 썼다. 그러나 판 부족이였다.  군철은 공회회의를 열고 전체 직원들에게 자체로 모금해 아파트를 지을 것을 동원하였다.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모두 대찬성하였다.         공회 부주석 김운선이 앞장서 호응했다. “우리 아파트를 짓는데 건축비용을 모금합시다.” 직원들이 구호 부르듯 호응해나섰다. "옳습니다. 우리 힘으로 우리 아파트를 건설합시다!" 직원들은 삼삼오오 머리를 맛대고 의론이 분분했다. 경희가 나서 소리쳤다. “아파트 한채에 몇백만원씩 벌겠는데 돈을 내놔야지.” "그래. 옳소.언제 봐도 최서기는 우리 직원들을 잘 챙겨준단 말이오." 그 기회에 하나도 끼여들었다. "저런 당대표 어디 있소?" "옳소. 우리 당위 서기야 말로 우리 부모 같단 말이오." "자금을 모아 우리 아파트를 지읍시다!" 직원들은 너도 나도 앞장서 모금해 건축비용을 충족히 마련할 것을 다졌다.     군철은 시정부에서 준 아파트를 3분의 2 시가로 팔고 셋집을 잡고 나갔다. 심지어 양아버지한테 림시로 준 자기 아파트마저 팔아 건축비용으로 내놓았다. 물론 건축비용을 선대한 것이다. 그러나 리나는 야단쳤다. "집을 몽땅 헐값으로 팔고 어쩌자는 건가요? 애들을 데리고 셋집에 허망 나앉다니?" 리나는 번대머리를 쳐다보면서 바보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회사에서 아파트를 짓지 못하는 날엔 어쩔 예산인가? 제정신인가요? " 군철은 손사래쳤다. "집을 팔아 회사에 헌납한 것도 아닌데. 왜 이래? 내 일에 삐치지 마오. 건축자금이 시급히 수요되는데. 어쩌오? 회사가 무너지기 전에 아파트를 지어 직원들에게 한채씩 나눠줘야지." 리나는 어처구니없어했다. "어이구, 제 노릇을 못하라고 당위 서기를 하는가요?  당대표 되더니 진짜 새빨간 상 한다. 당대표는 사람이 아닌가요? 둥지 없어도 되는가요?" 군철은 정색해 엄숙하게 말했다. "저는 당원이 아니오? 우리 입당할 때 어째 입당했소? 아빠처럼 직권을 빌어 제 욕심만 차리자고 입당했소?" 리나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 말을 들어보세요. 법률과 도덕에 어긋나지 않는 한 챙길 건 챙겨야죠." 우멍눈이 무섭게 화등잔이 돼 리나 앵두입을 쳐다본다. "뭘 챙긴다고 그래?"  리나는 믿고 숨김없이 말했다. "림하영을 회사 공회 문예부장으로 받을게 뭡니까? 순정 이모를 하영 대신 부장으로 받아두었더라면 이 기회에 아파트를 타게 할 수 있잖겠습니까? 또 문걸 시아버지랑 춘희박사랑 회사에 받았더라면 아파트를 타게 하지." 번대머리는 버릇처럼 머리카락을 뒤로 빗어넘기며 피씩 조소했다. "무슨 리유로 양아버지와 김춘희 박사를 회사에 받아?" "시양아버진 건축설계사 아닙니까? 아직 늦지 않아요. 고층아파트 짓자면 고급건축설계사 리문걸씨 필요하다고 받으면 돼요. 김춘희 박사는 제약공장이나 위생소에 필요한 의료박사 아니고 뭔가요? 제가 인사서류를 회사에 제기하고 당신이 나서서 박총경리만 구슬려내면 도장을 꽉 박아서 오늘 내로 회사에 받아들일 수 있잖아요? 인사과장과 전무가 직원 몇을 받는 거야 식은 죽 먹기 아닌가요? 그럼 장차 우린 일약 몇천만원 유산을 상속 받겠는데." "닥치오." 우멍눈이 무서운 빛을 뿌린다. 그 한줄기 밝은 빛은 바늘로 되여 리나의 탐욕스런 가슴을 아프게 찔러주었다. 심장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나올 지경이다. "한가지 묻기오. 김춘희박사한테 아파트를 주는 것과 우리 유산상속이 무슨 상관이 있소?" 리나는 활짝 웃으며 나왔다. "보세요. 시양아버지와 김춘희박사가 그런 관계 아닌가요? 시아버지 병이 나으면 춘희박사와 어떻게 될지 아는가요? 춘희 박사가 지금 아버지 병문안을 다닌다던데요." 군철은 리나를 손가락질하며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무서운 핵산골이구만.아주 멀리 내다봤구만. 박총경리는 우리 회사에 5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만 아파트를 주라고 했소." 리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 박총경리 아들과 딸도 아파트 못 타겠는데요." "바로 그거야. 내 박총경리 아들 딸을 받은 것도 그 때문이야. 박총경리 아들과 딸한테 아파트를 주려면 임직 5년 안된 직원들한테도 아파트를 줘야 하잖겠소." "박총경리 입을 틀어막으려는 거군요."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리나를 정시하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우린 절대 인사과장과 전무라는 직권을 빌어 엄청난 사리를 도모해선 안되오. 우리 어째 입당했소? 한마음 한뜻으로 인민들의 리익을 위해 복무하자고 입당한게 아니오? 당의 취지가 뭐요? 나는 당대표이자 우리 수천명 직원들의 대표요. 직원들의 리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잖소? 이게 당대표의 사명감과 의무감이오."       그러나 리나는 도리머리를 홰홰 내저었다.       군철은 리화를 안심시켰다. "걱정마오. 나와 제게 한채씩 차례지면 애들 둥지 근심할 필요있소?" 리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아니, 그녀는 무등 기뻤다. (혹시 나하구 복혼하려는 건가? 이젠 졸혼 재미없지? 애리싸도 강제출국당하고... 그런데 애들 둥지말만 했지. 우리 둥지라고 하진 않았잖아? 허이구, 언제 이놈의 지루한 졸혼 끝날가?) 리나는 우멍눈을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군철은 집의 저금까지 빡빡 끌어모아 도합  2천 7백만원이나 건축비용으로 내놓았다. 전체 직원들의 모금과 회사 자금으로 아파트건축공사의 바쁜 목은 열어놓았다. 그리하여 아파트 건축공사는 지체없이 진척돼 나가게 되였다.  그런데 새로운 골치거리 생겼다.   변덕스러운 강남의 비가 자주 쏟아지는 날씨 때문에 건축공사가 지장을 받는 날이 많았다. “어떻게 하나 회사가 무너지기 전에 아파트를 다 지어 직원들에게 나눠줘야겠는데. 이 놈의 강남의 날씨가 돕질 않네.” 군철은 변덕스런 창 밖의 하늘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빌었다. “하느님이여, 제발 우리 직원들을 살려주옵소서. 회사가 베트남으로 이전하기 전에 아파트를 다 짓게 비를 내려보내지 마옵소서.제발. ” 그는 출근하는 날이고 휴일이고 차를 타고 회사 건축현지에 달려가 이것 저것 차질이 없는가 살피고 현지에서 해결해주었다. 호수 자리에 건축하는 직원들 아파트는 군철과 2천여명 직원들의 소원과 지극정성에 받들려 날에 날마다 놀라운 스피드로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어머, 벌써 20몇층까지 올라갔잖은가.
313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6) 김장혁 댓글:  조회:1183  추천:0  2023-04-29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6. 강남의 풍운조화 강남의 날씨는 변덕스럽기 그지없었다. 일년 4계절 맑은 날을 보기 힘들었다. 항상 하늘은 먹장구름에 뒤덮여 밝은 해가 난 날을 별로 볼 수 없었다. 맨날 흐리멍텅하게 상을 찡그린 을씨년스럽기로 짝이 없었다.  뭣이 불만이기에 두터운 먹장구름으로 지지누르다가도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대지를 뒤흔들고나서는 우박을 내리쏟아붓고 소낙비가 쏟아지는가?  동북의 오뉴월 소낙비는 소잔등을 다툰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남방의 소낙비는 시도 때도 없이 불시에 와르르 쏟아진다. 소낙비는 오래 내리지 않고  10분 내지 20분 와르르 쏟아붓고는 걷어치운다. 그러나 소낙비는 골물을 이루며 사납게 채마밭을 덮치고 행인들을 괴롭혔다. 그러기에 남방에서 안해 없이는 살아도 비옷이나 우산이 없이는 살기 힘들다. 하여 수많은 강남 촌사람들은 을씨년스럽고 변덕스러운 날씨에 일하기 힘들었다. 그들은 아예 비도 가리고 땡볕도 가릴 수 있는 커다란 참대살모자를 쓰고 일한다.  강남에 어쩌다 해 번쩍 뜨면 이젠 소낙비가 끊났는가 해 길 가려고 나서면 순식간에 또 소낙비가 쏟아진다. 겨울에도 먹장구름이 맨날 지지누르고 있어 보슬비가 부슬부슬 쏟아진다. 어떤 때에는 련 한달 반동안이나 먹장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어 해난 날을 별로 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해도 숨박꼭질하듯이 구름 속에 숨었다가 언제 불쑥 나올지 모를 지경이였다. 모두들 해가 난 날을 그렇게 고대했지만 하늘에는 종시 해가 나오지 않아 침침하고 습기 차 말이 아니였다. 이불장 안의 이불이 다 축축해 그대로 덮기조차 어려웠다. 해난 날만 오면 강남의 아낙네들은 누게 든 이불과 옷을 베란다에 내다 말리느라고 분주했다. 집집마다 베란다에 널어놓은 이불이 줄느런히 늘어선 풍경이야 말로 희한했다.   강남의 풍운조화는 변덕스럽기로 헤아리기 힘들었다.  또 소낙비가 오려나보다. 먹장구름이 강남 땅에 돛을 내리고 있다. 사나운 바람꼬리로 대지를 내리치며 휘파람을 분다.  제비도 둥지가 날려갈가봐 부랴부랴 둥지를 찾아 날아간다. 짹짹 주둥이를 벌리며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들이 근심된다. 헛참, 누구 탓인가? 지구온난화 탓인가? 알프스산맥 탓인가? 희말라야산맥 탓인가? 아니면, 동해바다 탓인가? 강남 땅 때문인가? 하늘과 물어보고 땅과 물어보아도 대답이 없다.  미라는 밤중에 홍두깨를 내밀듯이 박문을 보고 질문했다.  “왜 우리 한국은 4계절이 분명하게 날씨가 평온한데요. 거의 비슷한 위도에 처한 여긴 왜 이렇게 변덕스러운가요? 겨울에도 맨날 보슬비가 구질구질 내리고. 심지어 소낙비까지 쏟아져요? 불쑥 들이닥치는 하소연이 박문의 머리를 아프게 쳤다. ”글쎄.” “그래도 하늘과 강남 땅만 탓하겠는가요?” 자연의 철학자도 기상학자도 대답이 궁했다.  “그저 강남이 돼 그렇겠지... 오늘 보오. 해 반짝 나잖았어? 히히히.”  “죽잖으면 살 소리. 해 났을 때 이불이나 널어야지.”  (쳇, 당신도 이제 세상 풍운조화가 얼마나 변덕스러운가 알게 될거야.) 박문은 요즘 미라가 어찌나 날씨를 나무리며 두덜거리는지 골치 아팠다.그는 강남의 변덕스러운 날씨보다도 변덕스러운 안해 마음이 더 골치 아팠다. (어떤 때는 상해 신기루 어떻구. 황포강 어떻구 하더니,참, 이젠 상해나 소주에 더 볼거리 없으니깐.지루해?가뜩이나 코로나 때문에 회사 일이 골치 아픈데. 아내마저 골치 아프게 굴어. 건데 아내를 놓쳐선 안돼.한국에라도 훌 가버리면 어떻게 해? 또 밤이 무서운 세월을 보내야 할게 아닌가?) 그는  턱을 고이고 이불을 안고 나가는 안해를 바라보았다. "아이고, 어떻게 여기서 살아? 이불 축축한 거 보세요.이런 이불 덮으니 자꾸 허리 아프죠." 박문은 길죽한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고 궁리하였다. 그는 베란다에 나가 이불 너는 안해한테 다가갔다. 애들도 소주대학 숙사에 가고 없는지라 그는 미라를 꼭 끌어안았다. "왜 이래? 남들이 보면 늙은게 주책없다고 하잖겠어?" 미라는 두팔굽으로 뒤에서 찰떡처럼 달라붙는 남편을 마구 쳐놓으며 이불을 툭툭 털어널어놓았다. "여보,상해나 소주에서만 맴돌지 말고 다른데 관광 가 보오." "어델?" 미라는 이불을 널고 옷장을 열고 눅에 든 옷견지를 와락와락 꺼내 안고 베란다에 나갔다. 박문은 진지하게 권고했다. "절강 소흥이나 오진에 관광 가보오." "거긴 뭘 볼게 있대요?" 미라의 어리어리한 쌍까풀눈에는 벌써 호기심이 반짝였다. "최전무 말에 의하면, 소흥엔 중국의 유명한 작가 로신의 옛고향집이 있다고 해. 오진에는 중국의 유명작가 모순의 옛고향집이 있다고 하데.당신 작가니깐. 가 보면 느끼는 바가 많을 거야.” "그럼요. 당장 가야겠어." 미라는 단통 박수치며 환성을 질렀다. "그래, 이번 주말에 나와 함께 갈가?" "그래요." 박문은 중국의 명승고적으로 아내를 강남에 붙잡아두고 싶었다. (이젠 그저 명승고적으로는 안되겠어. 거진 봤으니깐. 미라는 작가 아닌가. 이젠 중국 유명작가들의 옛고향으로 유혹해야지.) 그저 강남의 수향보다도 작가라는 인문관광내용이 보태지자 미라의 마음을 끄는데 쉽게 성공할 수 있었다. 안해를 좀 안착시켜놓자 박문은 링컨승용차에 앉아 회사로 부랴부랴 달려갔다.한국 회사 총경리 위풍을 부리는 순간이 노래하며 번개같이 날아갔다. 그는 으리으리한 사무실에 들어가 사무상에 앉아서도 불안해났다. 집에서는 안해가 도도거리고 바깥에서는 미국 양키놈들 때문에 무언의 압력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녀비서 하나가 김이 몰몰 나는 커피잔을 차탁에 올려놓고 두 손을 맞잡고 분부를 기다렸다. 박총경리는 커피잔을 들어 후후 불며 마시고나서 입을 다시며 분부했다. “최전무를 부르오.” “네, 곧 부르겠습니다.” 하나가 허리 굽혀 인사하고 나갔다. 이윽고 군철이 헐금씨금 사무실에 들어서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밤새 무사했습니까? 박총경리님.” 박문은 길죽한 박대가리를 가로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골치 아파 죽겠네.” 박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군철의 앉은 맞은켠 쏘파에 앉았다. “미국 양키놈들은 말이 아니야. 날따라 우리 반도체를  한심하게 통제하네.” 그는 아내 때문에 골치 아팠지만 그건 빼고 회사 반도체문제부터 꺼냈다.   “아우도 세상형편이 돌아가는 걸 알겠지만 말이야.” 군철도 맞장구를 쳤다. “미국 양키놈들은 말이 아니죠. 날이 갈수록 우리 목을 조이고 있지요.” “그래.” 박문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미국 양키놈들은 우리 한국 본사 반도체생산을 통제하다못해 이젠 반도체 메모리와 칩 생산과 시장을 통제하네. 이번엔 미 상무부에서 우리 본사 보고 중국에 있는 우리 분회사 메모리(memory)와 칩(芯片)생산과 판매 명세장을 바치라고 한다네. 미국 양키들은 애리싸랑 숱한 경제간첩을 파견해 우리 상업비밀을 정탐하자고 날뛰다가 중국 안전부에 다 잡히니깐. 이젠 내놓고 우리 상업비밀을 내놓으라고 을러메는 거 아니고 뭔가?” 그는 너무나도 억이 막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군철도 답답해 두 손을 맞잡고 근심했다. “사업비밀은 우리 회사 목숨과도 같은데요. 어떻게 훌훌 내놓아요? 우리 속이고 가짜를 제공한들 그놈들이 어쩐단 말인가요? 무장간첩이라도 중국까지 파견해 우릴 붙잡아가겠는가요?”  박문은 손사래를 쳤다. “안되네. 가짜 명세장 미국 양키놈들한테 발각되는 날엔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도 몰라.” 군철은 납득되지 않았다. “우리 회사 중국 땅에 있는데도 미국 놈들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가요?” “별 수 있는가? 우리 한국은 미국 놈들의 식민지인데. 미국 상무부에서는 한국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네. '중국에 있는 반도체회사 생산과 시장판매 명세장을 제공하게 할 방법과 수단이 많고도 많다.”고 을러멨다네. 무슨 말인가? 제공하지 않으면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는 거야.” 군철과 박문은 둘 다 속이 타 오랜만에 권연을 붙여 물었다. 속이 탄 연기가 사무실을 채우며 천정으로 날아올라갔다. 하나가 담배연기 냄새를 맡고 노크하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녀는 두 손을 맞잡고 권고했다. “박총경리님, 최전무님, 흡연은 건강에 불리한데요.” “알어. 나가 보게나.” 박문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손사래만 쳤다. 하나가 도리머리질하며 나가버렸다. 박문은 뒷말을 이었다. “한국 정부는 안보를 위해, 미국의 핵우산을 제공받으려면 미국 말을 듣지 않으면 안되네. 미국에서 핵우산을 공짜로 제공해주려고 하겠는가? 한국 정부에 경제상으로 미국의 핵우산을 포함한 군사지원에 보답하라는 거야. 한국 기업들에서 미국에 투자하라고 동원하고. 한국 반도체도 미국 통제하에 대중국 견제에 동참해라고 하네. 미국에서는 한국뿐 아니야. 일본, 화란, 한국, 중국의 대만에까지 손을 뻗쳤네. 이런 동맹지역의 반도체회사는 모두 미국 편에 서서 중국의 반도체 생산물자반입과 반도체 생산을 고립켜 중국 경제를 파탄시키자는 거야.”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요. 미국에서는 내놓고 화웨이를 제재하고 맹부회장을 체포하기까지 했지요. 중국정부에서 하도 외교가 세기에 맹부회장이 풀려나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됐댔지요.” 박문은 어이없어 길죽한 말상을 홰홰 저었다. “미국에서는 얼마나 교활한가? 일본과 한국 반도체기업에서 미국에 공장을 짓고 반도체생산을 해야 한다네. 만약 미국에 공장을 세우면 5프로 보조금을 준다네. 그 보조금을 주고 반도체생산을 완전히 미국 통제하에 하라는게지.” 군철도 국제 반도체계의 풍운조화를 얼마간은 짐작하고 있었다. “중국 대만 台积电(TSMC,)반도체회사를 보세요. 미국에서 이른바 “군사보호”의 미명하에 군수물자를 제공해주고 대신 대만 台积电반도체 회사를 보고 미국에 회사를 옮겨 차리라고 강요했지. 그래 미국에 투자해 반도체공장건물을 짓고 생산준비를 했지요. 그런데 미국에서 신용을 저버렸지요. 보조금을 준다해놓고 해뜩 번져누웠지요. 그 놈들은 미국에 투자한  “세계 각지 120개나 되는 반도체회사 보조금신청을 심사한다.”는 미명하에 여직껏 보조금을 안주고 있지요. 신용이 없는 놈들이죠. 그러니 미국에 투자한 반도체회사들이 쫄딱 망하게 됐지요. 보조금은 일전한푼 못 받고 미국 양키놈들의 통제를 받기만 하게 됐죠. 그래서 일부 대만 반도체기술자들은 중국 대륙에 들어와 광주에 반도체회사를 차렸지요. 소주에도 중국 대만의 기업이 얼마나 많이 들어왔습니까? 중화민족으로서 중국 대륙에 와야만 허리를 펴고 회사를 차릴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박문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미국 양키놈들은 날강도야. 신용도 없고 무법천지야. 그저 힘센 걸 믿고 원자탄과 칼을 들이대고 회사를 통채로 빼앗아가지 못해 미쳐 날뛰고 있네. 그러나 무슨 수가 있는가? 이른바 미국 양키들의 안보지원을 받으려고 한국 정부는 미국에 머리를 조아리면서 아부하고 있잖나? 우리 회사는 또 한국 정부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가? 우린 또 한국 본사 말대로 명세장을 바치지 않을 수 있는가? 말을 안들으면 아우나 내나 당장 잘릴 판인데. ” 박문은 사무상에 돌아가 앉으면서 정색했다. “재무부와 생산부에 말해 명세장을 정리해 바치라고 하게나. 인차 본사를 통해 미국 상무부에 보내야 하네. 자칫 미국 상무부에 걸려들면 큰 일이네. 미국 상무부의 제재를 받으면 우리 회사는 망하네. 미국 양키들은 우리 회사가 중국에 반도체생산회사를 차린 것 마저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고 있네. 이젠 우리 분회사가 중국에서의 반도체 메모리와 칩 생산량까지 제한한다고 하였네. 기실 미국의 제재가 소리없이 이미 작동하기 시작했네. 이미 우리 회사 생산량이 3분의 2나 감소되지 않았나? 설상가상으로 이제 미국에서 생산량까지 제한해 통제하면 우리 회사는 무사하지 못해. 미국 놈들은 우리 회사를 중국에서 반도체회사를 차려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거야. 미국 양키놈들은 우리 회사를 비롯한 한국 일체 반도체회사에서 중국 시장에 칩과 메모리를 판매하는 것도 엄격히 통제하고 있네. 중국 시장을 잃으면 우리 회사는 전도가 암울하네. 우리 한국도 중국 시장을 잃으면 경제가 힘드네. 한국의 대중국 무역액은 전반 한국 무역총액의 24프로나 차지하네. 중국 시장을 잃으면 한국 무역총액의 근 4분의 1이나 떨어져 나간다는 말일세.” 박문 총경리는 너무 답답해 한참이나 뒷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최전무, 지금 까뜩이나 반도체시장이 침체상태인데. 미국 놈들의 제재까지 받으면 우리 한국 회사반도체회사에서 어떻게 중국에서 계속 회사를 차려나가겠는가? 자칫 회사에서...” 박총경리는 뒷말을 하려다가 주춤하더니 얼버무렸다.  기실 본사 리회장은 박문 총경리 보고 비밀리에 중국에서 계속 S시반도체유한회사를 계속 견지해 차려나갈수 있겠는가를 전면점검하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박문총경리는 그 내막을 중국측 대리인이나 다름없는 군철에게 미리 말할 수 없었다. (자칫 소란이 일어날게 아닌가? 그래도 지금 아직 중국에서 메모리와 칩 3분의 1 생산량과 시장판매를 유지하고 있잖은가?) 박문은속으로  근심하는 바와는 달리 말끝을 얼버무려버렸다.     “이게 미국의 식민지 한국 회사의 아픔이야. 이 릉욕과 수모를 언제까지 당해야 할지. 참 가슴이 답답하네.” 군철도 한국 기업에 기생해 사는 팔자가 개탄스러웠다. 그도 이미 본사 리회장이 미국의 통제와 제재를 받으면서 중국에서 더는 반도체회사를 차리기 힘들어한 나머지 근자에 베트남을 비밀리에 고찰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언제든지 중국 분사를 정리하고 베트남으로 훌 회사를 이전할 수도 있어.) 회사 위기가 먹장구름처럼 다가오고 있었다.세상의 풍운조화는 실로 짐작하기 어려웠다. 군철은 가슴이 미여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가슴을 쾅쾅 치며 속으로 통탄했다. (당당한 중국 공민인데. 한국 회사에 목을 매워 한국 기업인들을 따라 릉욕을 당해햐 하다니. 참. 언제면 한국 회사를 떠나 내 손으로 우리 중국 회사를 차리겠는가? 언제면 한국 회사 눈치를 보지 않고 허리를 펴고 살 수 있겠는가?) 한참 후에 군철은 천천히 머리를 들더니 강경하게 한마디 보탰다. “미국이 아무리 중국 반도체 생산을 통제해도 중국 반도체 생산과 경제 성장을 막을 거 같습니까? 중국은 최근 15개월 내에 한화로 169조원의 반도체영업수익을 올렸습니다. 중국에서는 지금 96조원(한화) 투자해 광동에 아주 방대한 반도체그룹을 건설합니다. 화워이에서도 1300여억딸라나 투자해 자체로 반도체 연구와 개발, 생산할 예산입니다. 이제 화워이는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 미국의 반도체생산물자와 부품이 필요없이 멀지 않은 장래에 자체로 반도체를 개발생산할 겁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화워이 리사장의 딸, 부회장인 맹녀사를 체포하는 연극을 놀았지만 중국과 국제사회의 강렬한 항의에 석방하지 않으면 안됐지요. 그래 맹부회장녀사를 일년여만에 석방했지요. 요먼저 맹녀사는 화워이는 이젠 미국 놈들의 조폭한 통제와 제재에 관계없이, 미국의 생산물자와 부품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메모리와 칩을 생산한다고 선포했습니다.”       박문도 한마디 보탰다.       "미국에서 이른바 반도체동맹을 결성하려고 하지만 네덜란드는 말을 듣지 않는다네. 네덜란드에선 이렇게 나온다네.  '미국에서 무슨 자격으로 이른바 반도체동맹이란 구실로 우리 나라 반도체생산까지 지배하려고 들어? 한심한 놈들, 우리 나라가 무슨 미국식민진가? 네덜란드 반도체가 거대한 중국 시장에 진출하지 않고 전도 있는가?' 이러니 미국의 이른바 반도체동맹은 구멍이 뚫린 거지."      "허허."      군철은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유럽의 프랑스, 독일 등 미국 동맹국들도  미국의 자사자리한 자기 나라 경제중심 이른바 '경제동맹'에 반기를 들고 나왔지요. 미국에선 유럽 동맹국들에 러시아를 제재한다면서 러시아산 석유를 사지 마라 했지요. 유럽은 석유난으로 이 추운 겨울에 얼어죽을 번했지요. 그 틈을 타 미국에선 자기 나라 석유를 러시아산 석유보다 더 비싸게 유럽에 팔아먹었지요. 미국에선 처처에서 재재요, 뭐요, 동맹이요 나발불면서 자기 나라 리익만 챙겼지요. 그래서 유럽 동맹국들의 반감을 사게 된 거죠. 유럽의 수많은 미국 동맹국 지도자들은 미국의 자사자리적인 외교관을 간파하였습니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중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자'는 미국의 말을 듣지 않고 중국을 방문하고 중국과 숱한 경제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박문은 가슴을 치며 통탄하였다.      "언제면 미국 양키놈들의 통제가 사라지고 회사를 살려낼가? 한국에서도 네덜란드처럼 당당하게 나와야 하는데."      "한국은 미국에 아부하고 의존하는 반식민진데 유럽의 네덜란드나 프랑스처럼 나올 수 있겠습니까?"  "언젠가는 당당한 자주국으로 나와야지. 어떻게 이렇게 계속 살아?"   박문 총경리와 최군철 전무는 속이 답답해 애꿎은 담배만 풀썩풀썩 태웠다.  뽀얀 연기가 사무실에 자오록했다. 니꼬찐냄새가 복도에까지 꽉 찼다.  그 고약한 담배 냄새에 비서실의 하나마저 골치 아팠다.  흐리멍텅한 바깥 하늘에서는 먹장구름이 사품치고 소용돌이치며 예측키 어려운 풍운조화를 온양하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미국 양키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들의 목을 옥조이는 것 같아 숨막히기만 했다. 머나먼 태평양 건너 양키놈들의 음흉한 파란 눈이 판들거리면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슬픔의 꼬리가 호수에 닻을 내리며 애처러운 비명을 지른다. 어디에선가 딸라때 더덕더덕 더럽게 묻은 양키놈들의 징글스러운 너털웃음소리 뭇사람들의 귀를 강간한다. 판난 딸라가 하늘에서 저승사자 손에 든 기발처럼 너펄거리며 대지를 괴롭히고 있다.   
312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5) 김장혁 댓글:  조회:1211  추천:0  2023-04-26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5. 마끼의 흐느낌소리                        회사 가산 바위돌의 우멍한 눈들이 갓 지은 백신공장 건물을 멍하니 바라보며 하품을 한다.        군철의 웅대한 설계도에 따라 숱한 자동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회사 앞의 호수에 흙을 실어다  쏟아넣느라고 분주히 오가고 있다. 이제 호수를 메우고 직원들의 고층아파트를 짓는단다.         S시에서 아파트 한평방에 10만원씩 하는데 직원들에게는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직원들은 일을 해도 희열에 잠겨 힘든줄 모르고 밤낮이 따로 없이 일하였다.  야마구찌 마끼는 위생소에서 나와 호수 옆의 가산을 꿰질러 나갔다. 그녀는 요즘 지꾸 왼눈까풀이 파들거려 불길한 징조 아닌가 하여 불안하기만 했다. 마끼는 행정사무실 쪽에서 한 콧수염쟁이가 회사 대문으로 나가는 것을 피뜩 보았다. “아, 아니, 깜짝이야.” 그녀는 눈에 익은 그림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가산의 들쑥날쑥한 바위 뒤에 몸을 찰싹 붙이며 대문 쪽을 면밀히 주시했다. 콧수염쟁이는 회사 행정사무실에 대고 꾸벅 허리를 굽혔다.  (행동거지 봐. 딱 정신병자 같애.) 나이와는 달리 파란 양복에 넥타이까지 척 매고 중절모를 꾹 눌러쓴 그 콧수염쟁이, 그 콧수염쟁이 퍽 눈에 익었다. (아니, 저게 다이로교수 아닌가?) 마끼는 가슴을 졸이며 가산 석굴에 몸을 깊숙이 숨겼다. 그녀는 얼굴만 반쯤 내놓고 다이로교수를 살폈다. (야마구찌 다이로는 산어구지(山口)에서 난 애라는가. 그래서 성씨도 山口 라고 하지 않아?) 마끼는 다이로교수를 모욕하닥 혀를 홀랑 내밀었다. “나도 야마구찌 성을 탔으니깐. 양딸이니깐. 기실 나도 욕한게 아닌가? 이래서 누워서 침을 뱉으면 제 낯에 떨어진다는게 아닌가?” 마끼가 여겨보니 다이로교수는 씨엉씨엉 회사 대문 앞으로 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바람결처럼 사라졌다. 마끼는 이제 무슨 태풍이 불어칠지 몰라 당황해났다. (다이로 왔다고 엄마한테 알려야지.) 마끼는 가산 주위를 흘끔거리며 부랴부랴 위생소에 불 맞은 노루처럼 뛰여들어갔다. “어마나!” 문을 떼고 들어가다가 복화와 딱 마주쳤다. “하마트면 이마를 쪼을번 했잖아? 무슨 일에 이렇게 달아다녀?”  복화의 이상해하는 눈길을 보고 마끼는 당황한 기색을 억지로 감추며 어색하게 해쭉 웃어보였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황선희박사는 어데로 갔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마끼는 천천히 자기 사무상으로 다가가며 속생각을 번개같이 굴렸다. (복화(나나)는 라이벌이야, 천적이야. 그저 놔뒀다간 무슨 일을 칠지 몰라. 안돼. 다이로한테 우리 모녀간이 여기 있다는 걸 알려주는 날엔 끝장이야.) 마끼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나나, 한가지 부탁하자.” “그래. 무슨 일?” 복화는 화기애애한 눈길로 마끼를 마주 바라보며 하회를 기다렸다. 마끼는 억지로 살살 눈웃음지으며 복화의 두 어깨를 끌어안기까지 했다. “왜 이래? 너 무슨 일 있어?” 마끼는 놀란 자기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굴을 복화 볼에 가져다댔다. “앗, 뜨거워. 네 얼굴 왜 이리 화끈화끈해?” 복화는 얼굴을 떼고 마끼의 당황한 빛이 얼른거리는 외까풀눈을 들여다보았다. 마끼의 눈 안으로 들어가보고 뭔가 느낌이 닿았다. 마끼는 더는 이실직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우린 죽마고우 아니고 뭐냐?” “거야 그렇지.” “네가 일본에서 라체로 교타이모리스시상에 오른 비밀을 내 여직껏 엄수했잖아. 이게 친구지간이지.” “그래, 친구지간이면 그래야지. 내 루추한 비밀을 지켜줘 고맙다.” 복화는 자기가 숱한 손님들 앞에서 라체로 교타이모리스스상에 누워 있은 추문과 생체관찰 수업시간에 라체모델을 선 일을 마끼가 폭로할가봐 저으기 두려웠다. 복화의 그 약점을 틀어쥐고 마끼는 복화에게 스스럼없이 말했다. “다이로교수가 여기까지 찾아왔어.” 복화도 저으기 놀라했다. “그래?” 마끼는 머리를 들어 복화의 쌍까풀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 여기 있다는 걸 다이로교수한테 절대 말하지 말라. 다이로교수 아는 날엔 난 끝장이야. ” 복화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어. 근심말라..” 복화의 그 한마디에 마끼는 주르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고마워. 이전에 일본에서 널 괴롭힌 걸 용서해달라. 그때 난 다이로교수의 사랑과 유산을 독차지하고 싶었어. 다 욕심이 부른 죄과야.” 복화는 진작 일본에 있을 때 마끼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마끼가 괘씸했지만 궁지에 빠진 마끼를 용서해주기로 했다.  “다 지나간 일이야. 이제부터 우린 서로 량심적으로 친자매처럼 서로 돕고 보호해주면서 살아야 해.” “고마워, 나나.” 마끼는 복화를 와락 끌어안았다. 복화는 마끼를 밀어내며 부탁했다. “이젠 날 나나라고 부르지 말라. 이젠 난 복화로, 중화인민공화국의 당당한 공민으로 살고 싶다. 알만해?” 마끼는 복화의 강인한 빛뿌리는 눈을 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는 복화에게 진 량심의 빚으로 해 죄송하고 미안했다. 또 복화의 언니다운 동정에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따르릉, 따르릉. 위생소 전화가 급촉히 울렸다. 복화가 전화를 받고나서 송수화기를 절컥 놓았다. “최전무가 널 부른다.” “알았어. 곧 갈게. 내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날 지켜달라. 알았지? 인생은 모든게 엎음갚음이야.” 마끼는 짤막히 말하고나서 부랴부랴 위생복을 벗어버렸다. 그녀는 옷장에 다가가 나들이 옷으로 갈아입고 마스크까지 끼고 핸드빽이랑 척 들도 문을 나섰다. “어쩐다? 훌 도망쳐버린다? 그럼 모든게 끝인데. 다이로교수한테 우리 모자간이 붙잡히면 형사죄를 질지 어떻게 알아? 위생소에서 몇년 일해야 5천만엔 벌어? 직업이고 뭐고 다 버리고 도망칠가?” 그녀는 가산을 꿰질러 행정사무대청으로 나가면서 별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다.  “긍정코 다이로교수가 나를 물어먹었을 거야. 이젠 끝장이야. 아니야. 난 10여년이나 강간당한 어머니를 대신해 피땀값을 받아냈을 뿐이야.” 그녀는 이를 옥물었다. “내 어디 공돈을 가지고 도망쳤는가? 어머니 대신 애를 낳아주는 대가를 가지고 온 것 뿐이지.” 녀자는 문턱을 넘어서면서도 열두가지 생각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대체 어쩌는가 보고 결단하자.” 마음을 정하자 마끼는 새로 지은 백신공장건물 옆으로 해 곧추 행정사무대청으로 향했다. 그녀는 2층 전무실에 가서 가볍게 노크했다. 비서실에서 경희의 걀죽한 얼굴이 문을 빠금 열고 나타났다. 뒤에 인사과장 리화의 경멸하는 눈길이 내비쳤다.  “최전무 기다리오. 어서 들어가오.” 경희는 문을 뚝 떼고 마끼 등을 들이밀다싶이 했다. 으리으리한 전무사무실 사무상에 번대머리가 전등불빛에 번쩍번쩍 번쩍였다. “안녕하세요? 최전무님.” “어서 앉소. 이후엔 내 앞에서 절대 마끼라는 이름을 쓰지 마오. 가은이 이름이 얼마나 이쁘오? 우리 조선어로 된 이름을 두고 왜 자꾸 섬나라 오랑캐 이름을 쓰겠소? 안그래?” 최전무는 무슨 사무가 바쁜지 서랍을 뒤적이다가 마끼한테 자리를 권했다. 마끼는 천천히 쏘파에 앉았지만 어쩐지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조마조마해 안절부절 못했다.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르는 침묵, 사람의 피를 말리는 침묵, 납덩이처럼 무거운 침묵이 독사처럼 똬리를 치고 도사리고 앉아있다가 천천히 흘러 지나갔다.  번대머리는 버릇처럼 몇대 안되는 머리를 대머리 뒤로 쓸어넘기더니 우멍눈을 스르르 감고 한참이나 속궁리를 굴렸다.  (가은은 진짜 다이로교수 말대로 사기쳤을가? 사실 진상이 규명되기 전엔 다이로한테 가은이를 내줄 순 없어.) 군철은 우멍눈을 살며시 뜨고 가은의 몸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조, 우유빛얼굴을 봐. 얼마나 귀여운가? 얼마나 귀여운 녀동생인가? 에크, 이게 뭔가? 절대 아빠처럼 녀색에 미쳐선 안돼. 난 당원이 아닌가?) 군철은 마른 침을 꼴깍 넘기며 우멍눈을 스르르 감고 계속 속생각을 굴렸다. (어찌 내 녀동생 같은 가은을 섬나라 오랑캐한테 팔아먹는단 말인가? 물론 량심과 법에 어긋났다면 별 수 없지만.)  드디어 그는 건가래를 떼며 입을 열었다. “한가지 묻기오. 가은이, 다이로교수를 잘 아오?” “네- 잘 알다뿐이겠습니까? 그분은 저의 도사인데요.” “그저 그뿐이오?” “다이로교수는 저의 어머니 박사생 지도교수인데요. 저의 양아버지인데요.” “그래?” 군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지개를 짓더니 마끼한테 우멍눈길을 돌렸다. “가은이, 다이로교수 찾아왔던데. 그의 금은보화와 숱한 돈을 사기쳤다던데...” “억울합니다.” 마끼는 벌떡 일어났다.  “복화 물어먹었습니까? 아님, 황박사?” “그게 중요한게 아니오. 묻는 말에나 솔직하게 대답하오.” 그녀는 단통 왕왕 대성통곡치며 하소연했다. “한쪽 말만 듣고 저의 모녀를 억울하게 굴지 마세요.” 경희는 커피잔을 들고 들어오다가 마끼의 고래고래 고함치는 소리에 주춤 멈춰섰다. 군철은 경희한테 커피잔을 두고 나가라고 바깥 쪽으로 손짓했다. “그래? 뭐가 억울하단 말이오?” 마끼는 더는 감출게 없었다.  두려울 것도 없었다. “다이로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10여년 동안이나 저의 어머니를 변태처럼 강간하고 릉욕했습니다. 밤이면 침실에서 어머니가 다이로, 그 변태한테 당하면서 죽어가는 비명을 지르는 걸 들을 때마다 내 가슴은 칼로 어이는 거 같았어요. 가슴이 갈길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마끼는 대성통곡치며 말했다. "저는 어머니 10여년 동안 릉욕당한 값을 대신해 받아냈을뿐입니다.” 군철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소리오? 그래 다이로교수 숱한 돈과 황금을 사취해가지고 중국에 도망쳤다던데. 지금...” 마끼는 격분해 쌍까풀눈에서 불이 이글거렸다. “저는 다이로교수가 어머니를 보고 애를 낳으라고 협박하는 걸 보고 어머니 대신 애를 낳아주겠다고 했어요. 전 다이로교수 애를 낳아줄 비용을 받아냈을 뿐입니다. 저에게는 당시 다이로교수와 맺은 계약서도 다 있습니다. 제가 어디 사기를 쳤는가요?” “그래? 계약서까지 있다고?” “네. 후에 가져오면 보세요.” 군철은 턱을 고이고 사무실을 뚜벅뚜벅 거닐었다. (계약서까지 썼으면 다른 문제지. 그런데 다이로교수를 너무 섭섭하게 굴면 백신 합작생산에 차질이 생길게 아닌가?)  그는 한참 거닐며 궁리하다가 우뚝 멈춰섰다. “한가지 묻기오? 그 금은장신구는 누구 건지 아오?” “당연히 내 거지요.” 군철은 사무상에 가서 앉더니 마끼를 독기어린 눈길로 쏘아보았다. 꽝! 갑자기 군철은 사무상을 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 금은장신구는 내 아버지 거야. 모르는가 해?” “네?” 마끼는 너무나도 뜻밖이여서 일어나며 군철의 번대머리와 우멍눈을 쳐다보았다.       (그거구나. 탐욕스런 부패분자. 금은장신구 욕심내? 황금흑사심이라고. )      마끼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윤기나는 번대머리를 훔쳐보았다.     (더러운 놈, 네놈 욕심을 채워주는 거야 간단하지. 아깝지만 그까짓거 가져다주고 화를 면하자.)      그녀는 우멍눈을 똑바로 보며 그 놈의 마음 속으로 벼룩처럼 뛰여들어가 보았다.      "제가 당장 그 금은장신구 가져다 드리죠. 그럼 모든게 끝이지요?"     "뭐라고?!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래?"       "그럼?"      마끼는 심리부담이 꼬리치는 것을 느꼈다. (그럼 처녀 몸을 원하는가? 더러운 색마!) "그럼 뭘 원하는가요?" 마끼는 우멍눈을 핼끔 쳐다보았다.        바깥에서는 또 번개가 번쩍였다. 우르릉 꽝, 꽝! 우뢰가 사무실마저 집어삼킬듯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창살 같은 소낙비가 와르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내다보니 눈 앞을 헤아리기 어렵게 물안개가 자오록이 피여오르기까지 했다.  “다이로교수가 며칠 찾아와 다 말했소. 내 친아버지 일본 건너갈 때 공항에 차압됐던 거라고. 그걸 다이로교수가 찾아다가 가은한테 주잖았는가?” 마끼는 자기를 뚫어지게 쏘아보는 군철의 우멍눈을 피하면서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며 끄덕였다. “알만해요. 복화가 말하던가요? 황박사 말하던가요?” “누가 말했는가는 관계없소. 제가 아는가? 모르는가? 그것만 대답하오.” 마끼는 도리머리를 가로저었다. “전 최전무님 아빠 건지는 몰랐어요.” 마끼는 자리에 물앉더니 베아링처럼 속궁리를 굴렸다. (더러운 놈, 네놈도 다 당위 서기냐? 그래도 나보고 당학습을 하라고? 퉤, 이때까지 부패분자 애비 금은장신구를 찾으려고 그랬구나. 그래서 우리 엄마 위생소에 안 받구 날 들볶아댔구나. 악어 주둥이엔 뭔가 물려줘야 물지 않는다잖아? 흥.) 그녀는 이윽고 파랗게 질린 앵두입을 열었다. “당장 최전무님께 그 금은장신구를 가져다 드리죠.” 군철은 대머리를 절레절레 가로 저으며 사무상에 앉더니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오. 그런게 아니오. 난 절대 그 금은장신구를 탐내 그러는게 아니오. 내 아빠 공항에 차압당한게지만 래원이 불명확한 거요. 그걸 내 가진다면 뭐요? 나도 부패분자로 될게 아니겠소? 아버지한테 가져갈 것도 아니오. 그는 이젠 황금 백냥이 있어도 쓸모없게 됐소. 죄만 가중해질뿐이오.” 천만뜻밖의 대답이였다. 바깥에서는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추녀 끝에서 실폭포가 점점 더 세차게 쏟아졌다. “그럼 도대체 어쩌랍니까?” 군철은 소홀히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 “좀 묻긴 그런데. 가은씨는 계약대로 다이로교수 애를 낳아줄 예산이오?” 마끼는 그 물음에 얼굴을 붉히는 것이였다.  부끄러워하는 표정이 대낮 같은 사무실 등불빛에 환히 드러났다. 가은은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아니죠.” “왜? 그럼 사기친 거로 될게 아니오?” “아무리 돈이 귀중해도 어찌 처녀 몸으로 그럴 수까지 있겠는가요?” “그럼 사기 아니고 뭐요?” “아니예요.” 마끼는 털어놓고 말했다. “한 일본 녀성 보고 저 대신 다이로교수한테 애를 낳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젠 오래잖아 다이로교수 애를 낳을 때도 됐습니다. 다이로 애를 낳아주면 저는 계약대로 다 한 것이 아니고 뭡니까?” 군철은 물끄러미 마끼 백지장 같은 걀죽한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뭐라고? 일본 녀성 보고 대신 애를 낳아달라 했다고?” “네. 저는 그 일본 녀성한테 보수를 다 주었는데요.” 군철은 우멍눈을 딱 감고 궁리했다.  한참 후에 그는 우멍눈을 천천히 뜨더니 깍지손을 사무상에 올려놓았다. 군철은 마끼한테 다가와 부드러운 손으로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주며 말했다. “그 말썽도 많은 금은장신구를 다이로교수한테 주고 발편잠을 자오. 나는 섬나라 오랑캐놈들한테 저네 모녀를 버리고 싶지 않소. 한겨레의 량심으론 차마 그렇게 못하겠소. 다이로교수가 법에 거는 날엔 편안한 날이 없을 거요. 난 형사법정에 피고로 나선  마끼 모녀간을 차마 눈을 펀히 뜨고 볼 순 없소.” 마끼는 군철이 오늘처럼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녀는 군철의 그 페부를 치는 말에 마끼는 눈물로 하얀 볼을 적시였다. 마끼는 헤아리기 어려운 군철의 깊은 마음을 깊이 깊이 느끼면서 흑흑 흐느껴 울었다.  드디여 대성통곡치며 말했다.  “최전무님, 구명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오빠라고 불러도 되겠는가요? 오빠, 저의 모든 걸 다 바쳐 그 은공을 갚으렵니다.”        군철은 마끼의 두 어깨를 가볍게 잡고 외까풀눈을 정겹게 들여다보며 말했다. “필요없소. 한 겨레 선배, 회사 책임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뿐이오. 나는 정의와 량심을 주장하오. 한겨레 녀동생을 인간적으로 구하려고 할뿐이오.” 마끼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더니 오쫄 일어났다. 그녀는 사무실에 최전무와 단둘인 것을 보고  번대머리 드넓은 품에 와락 안기며 왕왕 대성통곡치며 흐느꼈다.다. 그녀는 당돌하게 고백했다. “최전무님, 저를 꺼리지 않는다면요, 흐흐흑, 흑흑흑,  제가 한몸 다 바쳐 최전무님을 한평생 남편으로, 아니, 신랑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흐흐흑.” 말을 마치자 마끼는 몸을 홱 탈아 외면하며 문께로 걸어나갔다. 등뒤에서 이런 웅글진 말소리가 들렸다. “어처구니 없는 소릴!” 마끼가 문 밖에 나가다가 리나와 딱 마주쳤다. 리나는 마끼를 흘겨보았다.  "싸가지없는 간나새끼, 퉤!" 마끼는 리나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달음박질쳐 층계로 내려갔다. 등뒤에서 리나 과장과 최전무 옥신각신 다투는 소리 들렸다. “잘들 놀고 있네. 얼리고 닥칠만 하잖아? 20대 처녀 첩으로 들어서자는데. 얼마나 좋겠는가? ” “그 입 다물지 못해?” 경희는 황급히 비서실 문을 닫아버렸다.  이제 이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 누가 알겠는가?!
311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4) 김장혁 댓글:  조회:1272  추천:0  2023-04-23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4. 금은장신구의 비밀 회사 추녀 끝에서 쏟아지던 실폭포가 점점 가늘어졌다.  (날씨도 변덕스럽긴, 참.)  언제 소낙비 쏟아졌는가 싶게 불시에 해가 번쩍 떴다. 군철은 꼭뒤까지 올라간 성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폭우가 휩쓸고 지나간 회사 울안의 가산과 금방 지은 백신공장 건물을 두루 바라보며 속궁리를 굴리고 또 굴렸다. 따르릉, 초인종이 다급하게 울렸다. 녀비서 경희가 부랴부랴 들어와 화사하게 웃으며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최전무님, 불렀습니까?” 군철은 사무상에 앉으면서 분부했다. “황선희박사를 부르오.” “네.” 경희가 나가려고 할 때였다. “잠간!” 경희는 되돌아서 상전의 우멍눈을 바라보았다. “커피를 드릴가요?” “음.” 군철은 습관처럼 대머리 위 몇대 안되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더니 건가래를 떼며 틀스레 뒷말을 이었다. “황박사와 담화 끝나면 복화와 가은도 단독으로 부르오.” 경희는 허리를 꼽싹했다. “네, 즉시 대기하라고 통지하겠습니다.” “보안대에 말하오. 요즘 다이로교수를 회사에 한발작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라고 하오.” “네. 알겠습니다.” 경희는 황박사를 호출한 후 커피를 풀어 군철의 사무상 옆의 차탁에 올려놓고 나갔다. 이윽고 황선희박사가 전무 사무실에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황박사님.” 군철은 사무상에서 일어나 마주 나가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춘희를 쌀쌀하게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마음 속으로부터 황선희박사를 존경하고 믿었다.  군철은 우선 황박사의 깊은 의학지식을 존경했다.  사실 황선희박사는 맥살을 잘 못 추는 남성들의 성기능치료에 아주 능란한 치료경험이 있었다. 그는 한국에 나갈 때마다 성기능치료제중약을 한보따리씩 가지고 가서 기 죽은 한국 남성들의 성기능을 회복시켜주고 뭉치돈을 벌군 하였다.그 성기능치료제는 오래전부터 정호한테 실험해 성공한 약이였다. 정호는 그 약을 먹고 성기능이 놀랍게 강해져 변강쇠로 됐던 것이다. 정호는 숱한 아가씨들을 매일이다싶이 재끼지 않으면 몸에 열이 나고 불안해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한번은 황선희가 성기능회복치료를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억만부자 회장령감이 황선희를 찾아왔다. "황박사님, 아이고, 나를 살려주세요." 회장령감은 고양이 불알 앓는 상을 하면서 지청구를 들이댔다. "숱한 미녀들을 두고 그게 잘 안돼서 죽겠수다. 돈이 많아도 무용지물이죠. 어떻게 내 기를 살려주십시오. 네? 돈은 근심하지 말아요." 황선희박사는 자기 앞의 포로를 씨무룩이 웃으며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5천만원만 내놓으십시오. 꼭 치료해 기를 살려드리죠." 회장령감은 금방까지도 돈자랑을 한바탕 늘여놓아가지고도 생각 밖으로 깜짝 놀라며 뒤저참했다. "아니, 뭐? 5천만원이나?" "네. 5천만원입니다. 아까운가요?" "아, 아니, 그런게 아니고." "아까우면 기 죽은대로 아가씨들을 바라보며 군침만 흘리며 사세요." "아, 아니, 5천만원이면 5천만원이지.흐흐흐.당장 줄게." 회장령감은 카드를 꺼내다가 주춤 손을 멈췄다. "먼저 절반 드릴게요. 내 기 살아나면 그때 나머지 절반 드릴게요." 돈 앞에 보이는 기업인의 랭정성과 침착성이였다.  수전노의 주산알이 딱딱 튕기는 소리 들리는 순간이다. "그렇게 합시다." 이윽고 회장령감이 은행에 가서 2천 500만이나 든 돈봉투를 들고 되돌아왔다. "자,받으세요.어서 기회복약이나 주세요." "그러지요." 그런데 황선희박사가 내민 중약을, 비닐봉지에 싼 한봉지 중약을 보고 회장령감은 어이없어 도리머리마저 홰홰 돌려댔다. "아니, 요까짓 거 5천만원이야?내 준 돈봉투보다도 더 작은데?" 회장령감은 중약 한봉지를 쳐들고 보면서 어처구니없어했다.  유들유들한 얼굴에 단통 반신반의하는 기색의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지나갔다. "황금보다도 더 귀한 성기능회복 비방약인데요.가져다 술에 불궈 하루에 한잔씩만 딱딱 마셔요.한달 후이면 그게 변강쇠 거처럼 꿋꿋하게 되지 않는가 보세요.그때 나머지 2천 5백만원이나 잊지 말고 가져오세요."  그 회장령감은 한달 후에 돈봉투를 찾아가지고 황박사를 찾아와 인사했다. "황박사, 날 살려냈네. 기적이네. 아가씨들이 죽겠다고 고함을 막 치잖겠어? 으흐흐, ㅎㅎㅎ. 이제야 살맛이 나네. 그래. 허허. 그게 되살아나서 아가씨 은밀한 마음의 대문을 열고 씨원히 들어갈 때 얼마나 기분났는지 몰라. 씨원히 소변 보고 나올 때면 얼마나 기분이 상쾌하고 거뜬해? 섹스하고 난 통쾌한 기분, 딱 소변본 그 씨원한 기분이야.그게 안돼 얼마나 애먹었다고? 그게 안되면 살아 뭘 해요? 돈 해 뭘 해요? 안그래? 황박사님." 회장령감은 너무 감사해 황선희박사한테 뽀나스로 천만원이나 더 주고 갔다.  그후 그 회장령감을 통해 숱한 회장님들이 찾아왔다. 그리하여 황선희박사는 앉은 자리에서 숱한 돈을 벌었던 것이다. 군철은 그 소문을 아버지한테서 진작 들은바 있었다.그는 황선희박사 의료기술보다도 인도주의정신에 더욱 존경하였다. (황선희박사는 어머니가 암에 걸렸을 때 극진히 치료해준 분이 아닌가? 물론 그때 암 말기여서 구하진 못했지만 감사하지. 그때까지만 해도 김춘희의사도 아버지를 구하고 어머니도 극진히 치료해주었지.그런데 어쩜 김춘희의사는 돈에 눈이 어두워 저따위로 변질했을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칠 때마다 군철은 가슴이 쓰려났다.그는 김춘희로부터 다시 황선희한테 생각을 돌렸다.   (황박사는 적어도 아버지 출국비자를 수태 만들어주었고 공항에서도 자기 안위를 돌보지도 않고 아버지 출국을 엄호한 분이 아닌가.) 군철은 아주 친절히 두 손으로 황선희박사의 손을 잡아 흔들며 깎듯이 인사했다.  황선희는 인사를 받으며 징상내막을 잘 모르는 군철의 믿음에 속으로 미안했다.   “안녕하십니까? 최전무님.”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었다. (미안해. 최전무, 난 그대 아버지를 가지려고 수단을 가리잖았어.) 황선희는 순정의 수란관을 수술해버려 종신 임신하지 못하게 만들어놨댔다. 그녀는 순정이 임신하지 못하면 정호의 마음이 자기한테 돌려지겠는가고 오산했던 것이다. 그러나 군철은 황선희가 그런 비렬한 수단을 쓴 것은 깜깜했다.  황선희는 정호와 순정한테 지은 죄,  그것이 량심적으로 미안해  황선희는 정호가 부패죄행이 드러나 위기에 처했을 때 자기 전도와 안위를 돌보지 않고 정호를 외국으로 빼돌리는 일을 도와나섰던 것이다. 사실 진상내막을 잘 모르는 군철은 황선희를 무조건 믿어주었다.  그는 황박사한테 자리를 권하고나서 사무상에 가서 앉아 황박사의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을 믿음에 찬 우멍눈으로 들여다보았다. “황박사님, 지금 백신생산진척은 어떻게 됐습니까?” 황선희는 반반한 대머리와 어쩌다 웃음기 넘치는 우멍눈을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실험실에서 이미 코로나 백신 시험제조에 성공했습니다. 이제 백신을 시험사용해보고 대량생산하면 됩니다.” 순간 군철은 의자에 잔등을 기대며 한마디 했다. “오- 황박사, 끝내 성공했구만요.” 군철은 흥분된 나머지 자리에서 우쭐 일어났다. 그는 황선희한테 다가와 두 손을 뜨겁게 잡아 흔들기까지 했다. “축하합니다. 황박사님, 그대는 우리 회사 3천여명 직원들을 구해냈습니다. 아니, 우리 나라 숱한 코로나환자를 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황선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저 개인의 공이 아닙니다. 다 다이로교수의 의학지도 덕분입니다. 마땅히 다이로교수한테 감사를 드려야죠."  군철은 좀 의아해 물었다. “네? 그래  그간 다이로교수가 의학적으로 지도했단 말입니까?” 황선희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요. 다이로교수는 일본에서 코로나 백신을 발명한 분입니다. 제가 백신을 생산하려고 하는데 정보를 제공해달라고 부탁했더니만요. 두말없이  백신제조정보를 저에게 제공했는데요. 다이로교수 연구해낸 밴신은 일본 전리권과 전매권을 획득한 백신인데요.” 군철은 명예와 공을 뒤로 하고 너무나 솔직하게 나온 황선희박사가 더욱 믿어웠다. “다이로교수를 오해했구만요. 미안합니다. 전번에 사무실에 찾아온 걸 박대한게 후회됩니다.” 황선희는 자리에 돌아가 앉는 군철의 너부죽한 뒷잔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이로교수를 절대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와 합작해야 우리 회사에서 백신제조, 나아가서 기타 성기능회복제랑 개발생산할 수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황박사님.” 군철은 천천히 돌아가 창문 가에 다가가더니 우멍눈을 팬들거리며 베아링처럼 속궁리를 굴렸다.  황선희는 초조하게 하회를 기다는 수 밖에 없었다.  (정호와 결혼했더라면 저런 아들을 보았겠는 걸. 모두 팔자 탓이야!) 황선희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저도 몰래 희쭉 웃어버렸다. 한참 후에야 군철이 천천히 창문에서 돌아섰다. “황박사님, 한가지 물어봅시다. 혹시 다이로교수가 김춘희와 마끼 모녀간의 행방을 물은 적이 있습니까?” 황선희는 올 것이 왔구나고 생각했다. 에둘러대려고 해도 쓸데 없다는 것이 피뜩 머리를 쳤다. “네, 묻습니다.” 군철은 두 팔에 깎지를 끼더니 따지고 들었다. “그래, 여기 있다는 걸 말했습니까?” 황선희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모른다고 했습니다." "왜?" "다이로교수한테 그걸 말해주는 날엔 마끼는 끝장입니다. 마끼는 적어도 우리 위생소 의사 아닙니까? 제가 어찌 저의 수하 의사를 험지에 내몰겠습니까?” 군철은 반신반의하는 눈빛이 어린 우멍눈으로 황선희를 내려다보았다.  황선희는 그 이상한 눈길을 외면하며 머리를 숙였다. 군철은 우멍눈을 가슴츠레 뜨고 황선희를 쏘아보며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누가 아는가? 혹시 김춘희 모녀를 질투해 이 기회에 다이로교수 손을 빌어 제거하려고 들었을지.기실 백신제조는 황선희 말처럼 마끼가 필요없이 황선희박사와 복화가 다이로교수 지도아래 얼마든지 해낼 수 있잖았는가? 그러나 황박사와 더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야. 더 따져 봐야 다이로교수한테 마끼 행방을 대줬다고 승인하겠는가?) 그는 춘희 모녀를 보호하려다가 괜히 황박사마저 잃고 말고 싶지 않았다. (황박사가 다이로한테 대줬다면 다이로교수가 나한테 춘희와 마끼 행방을 물을 필요있겠는가? 또 회사에 나타나지 않고 직방 중국 사법기관이거나 인터폴에 소송해버리면 다지. 황박사를 믿자.) 마음을 정하자 군철은 어둡던 얼굴이 순식간에 해말쑥해졌다. 군철도 이젠 한다하는 성숙된 정객으로 번지고 있었다. “황박사님, 잘했습니다. 우린 다 고향을 떠나 강남에 온 한 고향 조선족들이 아닙니까? 우리 회사에 몇십명 밖에 안되는 조선족들은 다 형제자매처럼 한데 똘똘 뭉쳐야죠.”  군철의 뒷조사는 황선희로서도 대답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끈질겼다. “황박사님, 한가지 더 물어봅시다. 춘희 모녀와 다이로교수는 도대체 무슨 관계입니까?” 황선희는 군철의 앞에서 아는대로 이실직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이로교수는 김춘희의 박사 지도교수이자 후남편입니다. 마끼는 다이로교수의 양딸입니다.” “네- 그렇군요.” 군철은 서랍에서 종이 몇장을 꺼내더니 우쭐 일어나 황선희 앞에 다가와 내밀었다. “이걸 보십시오. 다이로교수는 김춘희 모녀가 자기 숱한 돈과 금은장신구를 사기쳐 달아난 범죄자라고 했습니다. 사법기관에 소송하겠다고까지 했습니다.” 황선희는 마끼의 이른바 죄악에 대한 공소편지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녀는 군철을 쳐다보면서 이실직고했다. “저도 다이로교수한테서 들었습니다. 다이로교수는 얼마나 고대했는지 압니까? 춘희가 아들을 낳아주었으면 하고.그런데 춘희는 10여년 동안 함께 살면서도 갖은 수단을 다해 다이로교수의 소원을 이뤄주지 않았지요. 다이로교수를 변태라면서도 춘희가 떨어지지 못한 건 무엇 때문입니까? 다이로교수의 유산때문입니다...” “건 다이로교수 말이 아닙니까?”  군철이 한마디 끼여들었다. 황선희는 머리를 끄덕였다. “다이로교수 분석이 맞습니다. 칠순이 다 된 다이로한테서 춘희가 바라볼게 뭡니까? 몇억엔도 넘는 다이로교수 재산에 눈이 어두워진게죠. 다이로교수 꺼벅 죽으면 몽땅 후처와 양딸 게 아니겠는가요? 마끼는 어머니 대신 다이로교수 애를 낳아주겠다고 얼려 다이로교수 숱한 돈과 금은장신구를 사취해가지고 중국으로 도망쳤습니다.” 군철은 자초지종을 다 듣고나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한심한 세상이구만." 뒤이어 이런 생각이 피뜩 머리를 아프게 치는데야. (돈에 눈이 어두워지면 후남편이나 양아버지도 살해할 수도 있지. 참 위험한 일이구만. ㅋㅋ.” 황선희는 군철의 눈치를 흘끔 쳐다보면서 한마디 보탰다. “최전무님이 사람을 잘 알고 대하는데 도움이 되겠는가 해 이실직고했는데요. 널리 살펴주십시오.” 그녀는 아들과 같은 군철을 존경했다. 나이와는 달리 아주 랭정하고 전면적이여서 고향병원의 류원장 부자간과는 달리 퍽 믿어웠다.  (군철은 애비보다 퍽 낫지, 저 높은 지위에 숱한 미녀들한테 휩싸여 살면서도 다치지 않는 걸 봐.) 군철도 미더운 눈길로 거의 엄마 나이 되는 황선희박사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황박사님의 충고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황선희는 군철이 자기 말을 믿자 한술 더 떴다. “기실 마끼가 가지고 도망친 금은장신구는 최전무 아버지 겁니다.” “뭐라고? 어느 아버지 말입니까?” 군철은 벌떡 일어났다. 황선희는 군철의 우멍눈을 직시하며 적발했다. “친아버지 거죠.” 군철은 황선희 옆에 와서 쏘파에 나란히 앉으면서 물었다. “좀 상세히 말씀해줄 수 없습니까?” 황선희는 커피잔을 들어 호로록 마시고 나서 무거운 입을 뗐다. “그 금은장신구는 최전무 친아버지가 저와 함께 일본에 건나갈 때 가지고 간 겁니다. 그런데 재수없이 공항에서 차압다했지요. 최국장은 저를 보고 다이로교수를 통해 공항에 차압된 그 금은장신구를 찾아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제가 귀국할 때까지도 그 일이 잘 풀리지 않았지요. 그런데 마끼가 다이로교수의 애를 낳아주겠다고 홀리는 바람에 다이로교수는 자기 친척집 동생을 통해 공항 직원한테 돈을 찔러주고 찾아내왔지요. 다이로교수는 마끼가 애를 낳아주겠다는 말에 해당 계약서에 따라 예약금 몇천만원에 그 금은장신구를 먼저 마끼한테 주었지요. 마끼는 그 금은장신구를 가지고 중국에 도망쳤지요.” 군철은 들을수록 너무 어처구니없어 입을 헤벌리고 말았다. “오- 한심한 사기군이구만.” 그러나 군철은 머리 너무 뜨거워나기는커녕 더욱 랭정하게 분석했다. “황박사 말씀 듣고보니깐. 마끼가 사기친 것이지. 춘희박사는 사기친게 아니구만. 건데 다이로교수는 왜 시기군 모녀라고 할가?”  황박사의 추측은 아주 날카로워졌다. “아마 에미와 딸이 짜고들었는가 했겠지요.” 군철은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 "이후에 무슨 새 소식이 있으면 인차 알려주십시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황선희는 사무실을 나서면서 나이에 비해 뭐나 랭철하게 분석하는 군철을 속으로 못내 탄복했다. (당대표가 뭐나 다르긴 달라.) 번개가 번쩍였다. 꽈르릉,꽝꽝, 머리를 쳐다보니 하늘에서는 먹장구름이 무섭게 덮쳐오고 있었다. (세상의 풍운조화는 헤아리기 힘들어.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310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3) 김장혁 댓글:  조회:1125  추천:0  2023-04-20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3. 콧수염쟁이와 마끼 먹장구름이 초원에서 달리는 말무리처럼 한데 엉켰다가도 흩어지면서 쏜살같이 질주한다.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 소리 천지를 뒤흔들어놓았다.  소낙비가 하늘에서 냄비로 퍼 붓듯이 억수로 쏟아졌다. 우박이 돌총질해 나무잎들이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떨어져 구을며 아우성친다. 강남의 날씨는 변덕스럽기로 그지없었다. 먹장구름이 걷히고 해가 반짝 나기 시작했다.  까치가 나무가지에 앉아 까만 꽁지를 달싹이며 기분좋게 깍깍 울어댔다.  전날과는 달리 이튿날엔 아침부터 어둠침침한 안개가 호수면까지 지지누르며 숨막히게 뒤덮인다.  변덕스런 날씨처럼 세상의 풍운조화도 진짜 한치 눈 앞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마끼(가은)는 군철이 그렇게 나올줄은 실로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어쩜 우리 엄마한테 그럴 수 있어. 그만하면 그대를 잘 해줬건만, 어쩜 그럴 수 있어. 우리 엄마 다이로와 류원장한테 당해서 의지가지 없는데. 뭐야? 우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긴 고사하고.흥, 우물에 돌을 던져? 당대표라는게 뭔가? 회사에서 백신공장을 차리려면 어머니 같은 의학박사 수요되는데. 엄마를 쫓아내?) 마끼는 침대에 쓰러져 이불을 머리 위에 들쓰고 누워 있는 어머니가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마끼(가은)는 군철을 잘해주느라고 모진 애를 썼다.  군철 전무는 가은이 복화를 질투하고 싸우면서 물어먹기까지 한 내막을 알면서도 회사 위생소에 받아주었다. (복화가 꼭 최전무한테 날 고발했을 거야? 건데 날 받아줘?) 가은은 회사 위생소에 초빙되리라고는 크게 희망을 걸지 않았었다. 그런데 최전무가 받아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랐다.  그녀는 인재를 중시하는 최전무가 마음 속으로부터 고마웠다.  가은은 입회한 후 군철의 사무실에 찾아가서 일본 돈 50만엔을 드렸다.  그러자 군철은 단통 우멍눈이 데꾼해졌다. “이건 뭐요?” 가은은 쌍까풀 포도눈을 말끔거리며 환하게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드디여 빨간 립스틱을 살짝 바른 앵두입을 곱게 열었다. “저를 위생소에 받아주어 고맙습니다. 적은 성의지만요. 일본 놀러 가는데 보태세요. 이후에도 전무님을 잘해드릴게요. 뭐든 부탁하세요.” 군철은 엔뭉치를 되밀어주었다. “내 당대표라는 거 모르오? 난 절대 이런 돈을 일전한푼 받지 않소. 아무리 경제시대라고 해도 그렇지. 이런 돈 받지 않아도 난 로임으로 얼마든지 일본에 유람갈 수 있소.” 가은은 외까풀눈으로 군철을 할끔 쳐다보면서 속으로 웃었다. (별, 청렴한 척하면서. 당대표는 뭐 돈을 쓰지 않는가?) "이미 내민 돈을 어찌 되받아요?" 가은의 말에 군철은 엔뭉치를 쥐여 가은의 손에 되쥐어주었다. "용건이 더 없으면 그만..." 가은은 어이없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군철의 훌렁 벗어진 번대머리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멍한 눈보다 까까머리가 전무의 체모에 맞지 않는 감이 들었다.  그녀는 눈짐작으로 군철의 머리크기를 재여가지고 그 길로 가발상점으로 갔다.  그녀는 며칠 후에 가발상점에 가서 미리 예약한 가발을 찾아가지고 군철을 다시 찾아갔다. 군철은 가발을 받아 이리저리 보았다. “써보세요.” 가은은 촬영모드를 켠 핸드폰을 군철의 얼굴 앞에 가져다댔다. “퍽 젊어보여요. 요 콧수염만 깎아버리면 미남인데요. 호호호.” 그때 리화가 서류철을 들고 들어오다가 그 장면을 발견했다. (아니, 가은이?) 리화는 놀란 눈길로 군철과 가은을 번갈아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년놈들이 놀긴 논다. 언감 내 앞에서? 흥!) 리화는  경멸과 질투에 찬 눈길로 가은(마끼)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더러운 년, 여기까지 와서 뉘 남편을 사기치려고 꼬리를 쳐? 가차없이 잘라버려야 해!) 가은은 리화를 보자 덴겁해 뒤로 비실비실 물러나 사무실에서 나갔다. 리화는 가은의 뒤꽁무니를 쏘아보며 속으로 별렀다. (마귀 같은 년, 네년까지 남의 부부 사이에 끼여들어? 좋은 끝장 있는가 봐라.) 마끼, 회사에서는 가은을 뒤에서 마귀라고 별명을 지어 부르고 있었다.  리화는 어쩐지 깨고소해났다. 속으로 자기를 웃기도 했다. “내가 왜 마끼를 질투하지? 마끼는 상대도 아닌데. 난 군철의 아들 둘이나 낳아준 자본이 있지 않는가? 새파란 20대 말의 처녀가 40대 초반의 군철과 좋아한다? 생각만 해도 어림도 없지. 그러나 세상의 풍운조화는 짐작하기 어렵지...” 가뜩이나 회사에서 군철의 주위를 맴돌며 꼬리치는 미녀들이 많은데다가 가은이까지 끼여드는 것 같았다.  순간 리화는 속이 괴지게 불편해났다. 가은은 리화의 그런 질투하고 경계하는 눈치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춘희는 전날에 군철 전무한테 쫓기우다싶이 회사에서 나온 후 마끼의 세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푹 쓰러졌다.  그녀는 이튿날 아침까지 밥숟가락을 들지도 않고 누워 천정만 쳐다보았다. 가은은 그런 어머니를 보기 마음이 알알이 쓰려났다... 똑, 똑, 똑. 노크소리와 함께 경희와 리화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리화는 서류철을 펼치더니 종이 한장을 꺼내 사무상에 올려놓았다. “이걸 보세요.” “뭐요?” 군철은 가발을 뒤로 쓰다듬으며 문건을 들어 피뜩 보았다. “뭐? 국제 사기군? 야마구찌 마끼를 찾는다고?…” 군철은 의자 등받이에서 잔등을 떼며 우멍눈을 번쩍 뜨고 찬찬히 뜯어보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마끼는 사기군이라고?” 군철은 그 종이장을 사무상에 내려놓고 가발마저 훌 벗어 사무상에 내동댕이쳤다. 리화는 그 장면을 보고 깨고소했다. 리화의 가발을 쓰레기통에 처넣는 걸 보면 더 씨원할 거 같았다. 그녀는 속으로 잘코사니를 불렀다.  경희가 커피잔을 사무상 옆의 차탁에 올려놓고 두 손을 맞잡고 상전을 쳐다보았다. 군철은 경희를 보고 나가라고 하고나서 리화한테 나직이 물었다. “이 편지는 어데서 온 거요?” 리화는 군철의 옆에 다가오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전번에 우리 회사에 찾아온 일본 교수 생각나죠? 우리와 합작해 백신제조공장을 세우자고 찾아왔던 다이로교수 말입니다.” “오, 그래. 그 콧수염쟁이가 이런 편지를 보내왔어?” “예,” 군철은 다이로교수의 편지를 몇번이고 뜯어보았다. 그는 읽으면 읽을수록 마끼 모녀가 가증스러웠다. “어쩌면 이런 짓을 다 해? 마끼가 이런 사기군일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다이로교수 애를 낳아주겠다고 해놓고 애도 낳아주지 않고 예약금을 몇천만엔이나 떼먹고 도망쳤어. 숱한 황금도 떼먹고... 참 한심하구만.” 리화도 때를 만났다고 맞장구를 쳤다. “에미는 아버님 참사랑을 사기치고 딸은 양애비 돈을 사기치고. 참 심통한 마귀 같은 사기군 모녀군요.” 군철은 의자 등받이에 잔등을 대고 반쯤 의자를 돌려 창 밖을 향해 돌아앉았다. 그는 우멍눈을 딱 감고 대머리를 슬슬 어루만지면서 속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렸다. 리화는 챤스를 잡은 것 같아 옆에서 날카로운 입김을 불어넣었다. “전번에 춘희를 받지 않길 잘했어요. 사회에서 알면 뭐라겠어요? 우리 회사를 사기군 소굴이라고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군철은 아무 말도 없었다. 우멍눈을 꾹 감고 죽은듯이 앉아 있었다.  리화는 계속 서리낀 입김을 불어넣었다. “이번에 아예 사기군 마끼를 회사에서 잘라버립시다. 사기군 마끼 모녀를 다이로교수한테 바쳐버립시다. 사기군 모녀가 없어도 다이로교수와 합작하면 미국과 일본 선진 의약기술로 얼마든지 백신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때 군철이 우멍눈을 천천히 떴다. 우멍한 외까풀눈을 가슴츠레 뜨고 창 밖을 하염없이 내다보았다. “개인감정으로 처사하지 마오.” 천만뜻밖이였다. 군철의 그 한마디 말에 리화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낮은 돌을 밟지 마세요. 돌다리도 두드려보면서 건너라고 하지 않았는가요?” 군철은 생각을 정했는지 의자를 삥 돌려 사무상에 마주 앉으면서 한마디 내뱉었다. “알았소.” 리화는 퍽 근심돼 안절부절 못했다. “야마구찌 다이로교수가 찾아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군철은 정색해 리화를 마주 바라보았다. “이 일을 누구랑 아오?” “아직 경희를 내놓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군철은 무서운 빛이 번쩍이는 우멍눈으로 리화를 쏘아보았다. “이 일을 아직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오. 알았소?” 리화는 마지막으로 마끼를 한입 더 꽉 물어뜯었다. “네.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기군을 비호해서 뭘 해요? 마끼 엄마한테  수모를 덜 받아서 아직도 그럽니까?” 군철은 두손을 맞잡아 사무상에 올려놓고 엄숙하게 말했다. “이 일을 내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까딱 말하지 마오. 다이로교수 오면 회사에 들여놓지 마오.” “아니, 그럼 백신합작생산을 어떻게 해요?” “회사 밖 다방 같은데서 토론하면 되오. 사실 진상이 밝혀지기 전엔 뭐나 소홀히 결정하지 말아야 하오.아무리 그래도 우린 조선족류학생 마끼를 섬나라 오랑캐한테 바칠 순 없잖소?” 리화는 입을 꼭 닫아맸다. 그녀는 군철이 일단 생각을 정하면 벽이라도 박차고 나가는 성질이라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튿날 점심 때 거의 돼서 진짜 불청객이 리화와 함께 군철의 사무실에 찾아왔다. 마스크를 벗자 길게 기른 콧수염과 더부룩한 구렛나룻이 드러났다. “오하이요고자이마스(안녕하십니까)?” 군철은 대뜸 야마구찌 다이로교수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일어를 잘 모르기에 영어로 인사했다. “G00dmorning(안녕하십니까)?” 그는 못마땅한 눈길로 리화를 쏘아보았다.  리화는 몸둘바를 몰라하면서 해석했다. “보안이 그만 소홀해서 들어왔군요.” “참. 복화를 불러오오.” 군철은 한마디 흘리고는 인차 화기애애한 부드러움이 비낀 우멍눈으로 환하게 웃으면서 다이로교수를 마중했다. “교수님, 어서 앉으십시오. 백신합작사안으로 오셨습니까?” 군철은 우멍눈으로 다이로의 눈치를 흘끔 보았다. 이때 복화가 다급히 들어왔다. 그녀는 마스크를 벗으면서 다이로교수한테 깎듯이 인사했다. "교수님, 은사님, 오랜만인데요." 다이로교수는 복화를 보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나나, 여기 있었어?" "네. 최전무네 회사 위생소에서 일해요." 다이로교수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본 석사생이 회사 위생소에 있다니? 참." 나나는(복화)는 군철과 리화의 눈치를 흘끔 보며 말했다. "큰 병원은 아니지만요.3천여명 직원들의 코로나 등 질병 예방을 하기에 보람찬데요." "뭐나 만족하면 행복한 법이지." 다이로교수는 군철을 보고 복화를 치하했다. "나나는 세상 순박하고 착해요.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 노력으로 살려고 애씁니다. 참 참한 녀자애죠." 군철은 우멍눈에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다이로교수는 인사수작이 끝나자 군철을 보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전번에 귀 회사에 편지를 보낸 걸 보았습니까?" "네, 보았습니다만." 군철은 우멍눈으로 다이로교수를 응시했다. 다이로교수는 복화 앞인데도 날카롭게 털어놓고 말했다. "마끼는 국제사기군입니다. 마끼를 내놓으십시오! 그는 내 숱한 돈을 사기치고 중국으로 도망친 국제사기군입니다.” 그러라 군철은 잔등을 의자등받이에 붙이면서 시치미를 땄다. “마끼라니? 누굴 그럽니까? 우리 회사엔 그런 사람 없습니다.” 복화는 군철을 놀란 외까풀눈으로 쳐다보며 군철의 말을 그대로 통역했다. 다이로는 차탁을 탁 치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내 춘희를 미행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회사에 마끼 꼭 있을 겁니다. 춘희는 딸을 찾아 왔을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정말 금시초문인데요. 허망 건너 짚지 마십시오.” 다이로교수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회사에 춘희 오지도 않았단 말입니까?” “오긴 왔습니다. 우리 회사 위생소에 들어올가고 해서." "그래, 춘희를 초빙했습니까?" "건 우리 회사 인사비밀입니다만, 일단 초빙응하지 않았습니다." "참 잘했습니다. 회사를 망쳐먹을 년입닌다." 군철은 우멍눈으로 다이로를 쓸어보며 화제를 돌렸다. "마끼라는 사람 없습니다. 백신생산사항을 토론할가요?” 다이로교수는 대뜸 성을 벌컥 냈다. “안되겠구만. 춘희를 법에 걸어야겠습니다. 중국에도 정의와 법이야 있겠지.” 군철은 콧수염쟁이를 마주 보며 태연자약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다이로교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뭐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조선족들끼리 비호하는구만.백신이고 뭐고 모르겠습니다.어디 두고 봅시다. 량심없는 놈들." 다이로교수는 콧방귀를 흥 뀌면서 군철을 도끼눈으로 흘겨보면서 사무실에서 나갔다. "도대체 어쩌려는 겁니까?춘희박사를 초빙하지 않고 다이로교수마저 받아들이지 않으면 백신을 어떻게 생산합니까?" 리화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군철은 나나를 나가보라고 손짓하였다. 나나가 허리 굽혀 인사하고 나갔다. 군철은 리화를 보고 나직이 말했다. "우리가 마끼마저 바치는게 더 큰 손실이오.다이로교수는 백신생산 때문에 찾아온 거 같소? 마끼 허실을 탐문하려고 온 거요." 그 말에 리화는 알 도리가 좀 있는지 머리를 끄덕였다. 하늘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풍운조화를 온양하고 있다. 먹장구름이 꼬리치며 공포의 서정시를 구상하고 있다. 놀란 갈매기가 호수면을 스치며 부랴부랴 둥지를 찾아 날아가고 있었다.
309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2) 김장혁 댓글:  조회:1116  추천:0  2023-04-16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2. 초빙 거세찬 구풍이 하늘땅을 집어삼킬듯이 불어친다. 먹장구름이 몸부림치며 흩날려간다.   기와장이 마구 뒤흔들려 날려갈상 싶다.  회사 울 안의 계화나무가  무서운 비명을 지르며 허리 부러질 지경으로 맞절을 한다. 먹장구름 속에서 뻘건 독사가 시뻘건 혀를 몇가닥 뻗쳐 회사 건물을 핥아갔다.  번쩍, 섬광이 번쩍인다. 우르릉 꽝꽝! 꽈르릉 꽝꽝! 우뢰소리 하늘땅을 뒤흔든다. 드디여 회사 지붕에서 수천갈래 실폭포가 쏟아진다.  회사 전무 군철은 오랜만에 권연을 꺼내 물고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였다. 그는 권연을 길게 빨아들였다가 속 탄 연기를 후- 뿜어냈다. 파란 연기가 타래치며 천정으로 피여올라갔다. 요즘 그는 집안 일로, 회사 일로, 사생활로 해 고민의 망망한 바다에서 몸부림치면서  헤매고 있었다. 젤 골치 아픈 일은 양아버지 문걸의 정신병이였다.  양아버지가 짝사랑에 실련해 신경병이 도지는 바람에 고민의 절벽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전처럼 양아버지를 정신병원에 보내지 않고서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길바닥에서 헤매게 하는 건 너무 한 것 같았다.  (자칫 교통사고치거나 낯선 놈들한테 얻어맞아 상하면 어쩐단 말인가? 혹시 저라다가도 이전처럼 병원에 있다가 시간이 흘러가면 점차 호전되지 않을가? 그러나 이번엔 너무나도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히웠어. 그렇게 쉽게 호전될가?) 아버지 병이 심해질수록 군철은 춘희가 원망스러웠다. 마끼마저 사기군 같고 마귀처럼 슬그머니 미워지기 시작하는 감을 어쩔 수 없었다. (춘희는 춘희고, 마끼는 마끼지.) 군철은 군자 자태로, 회사 전무의 넓은 흉금으로, 당대표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들 모녀에 대한 염오감을 어쩌는 수 없었다. (어쩜 자기 때문에 신경병까지 걸린 아버지를 버리고 달아난단 말인가? 량심 있는가? 박사는 무슨 개 코 같은 박사. 인정머리도 없는 개똥박사라고나 해라. 어쩜 그렇게까지도 인간성이 없어. 네년도 그래 인간이냐?) 군철은 권연을 한모금 길게 빨아 담배연기를 후- 내뿜었다.  그는 창문 밖에서 쏟아져내리는 소낙비를 하염없이 내다보면서 이전에 리문걸 양아버지와의 이왕지사를 회억하였다. (내가 어릴 때 양아버지는 나를 친아들로 알고 그렇게 사랑했겠지. 여름이면 나를 자전거에 태워가지고 로천수영장에 가서 헤염치며 놀았댔지. 아, 그땐 얼마나 즐거웠어? 양아버진 날 자전거에 태워가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꼭꼭 양고기뀀집에 데리고 들어가 맛나는 양고기뀀을 먹였지. 아, 그때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보질보질 구워진 양고기를 함께 맛나게 먹던 그 시절이 그립구나.) 순간 군철은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는 사무상에 돌아가 앉아 권연을 재떨이에 비벼끄고나서 웃옷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두 볼을 적시는 뜨거운 눈물을 닦았다. 그는 회사 일이 바빠 한주일에 한번씩 밖에 병원 살창 속에 갇혀 사는 아버지를 찾아가 보지 못하였다. (친아버지야 어디 아버지 구실을 하나라도 했는가? 양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애지중지 길러 대학에 보냈구. 뒷바라지도 다 했지. 양아버진 나를 장가를 보내주고 상해에 그 비싼 아파트도 사주었지. 애나게 그림을 그려 자가용까지 사주었지. 아, 양아버지, 당신은 진짜 내 친아버지입니다. 아버지, 어쩜 그런 몹쓸 병에 걸렸습니까? 아버지, 꼭 치료하고 저와 함께 만년에 행복하게 삽시다.) 군철은 소리내 흐느끼며 울었다. “으흐흑, 흑흑, 흑흑흑...”    똑, 똑, 똑, 노크소리 조용히 들렸다. 군철은 황급히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단정히 사무상에 마주 앉았다. “들어오십시오.” 뜻밖에 불청객 가은이 밉다하니 찾아오지 않았겠는가. (마귀 같은 년, 보기도 싫어.) “최전무님, 안녕하세요?” 가은은 해사하게 해쭉 웃으며 인사부터 건넸다. 그러나 군철은 무뚝뚝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소?” 가은은 서성거리다가 맞은 쪽 쏘파 앞에 두 손을 잡고 선 채 무겁게 입을 뗐다. “최전무님, 믿고 찾아왔는데요. 저의 어머니를 회사 위생소에 받아주시겠나요?” “뭐라고?” 군철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반문했다.  (우리 널 제명해버려도 모자라겠는데 에미를 초빙하라고? 흥!) 그러나 군철은 인차 너무 했다는 것을 직감하고 침착성과 랭정성을 되찾으면서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는 버릇처럼 대머리 위의 몇카락 되지 않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면서 우멍눈을 가슴츠레 뜨고 가은을 뜯어보았다.  뒤이어 우멍눈을 딱 감고 어떻게 응부할가 한참이나 궁리했다. 무거운 침묵이 으리으리한 사무실에 공포스레 흘렀다. 가은은 저승사자 같은 군철의 딱 감아버린 우멍눈을 훔쳐보며 바늘방석에 앉은듯이 조마조마해 두 손을 맞잡고 서 있었다. 한참 후에야 군철이 우멍눈을 번쩍 뜨더니 틀스레 물었다. “이전에 높은 경제대우로 위생소에 초빙하려고 해도 저네 엄마는 응하지도 않았잖소?   건데 이번엔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이 불쑥 오겠다고 하니깐. 도대체 웬 일이요? 우리 회사 오자면 오고, 가자면 가는 정거장인가 하오?” 가은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간신히 입을 뗐다. “미안해요. 그땐 모녀간이 한 위생소에서 일하기 불편해서 제가 고향 병원에 가라고 권고했는데요.” 군철은 가은을 경멸에 찬 우멍눈으로 쏘아보며 빈정거렸다. “그런데 지금은 왜 오려 한다오?” 가은은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 몰라 서성거렸다. (엄마 고향 병원에서 제명된 말을 할 순 없어. 그럼 괜히 엄마 몸값만 내려갈게 아닌가?) 그녀는 에둘러대는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코로나가 심한데요. 어머니는 우리 위생소에 와서 최군철 전무의 영명한 지도아래 백신을 생산하는 제약공장을 차리자고 그래요. 중국의 숱한 코로나환자들을 생각해서라도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래 체면이 깎이줄 알면서도 우리 자그마한 위생소에 돌아오겠다고 하더군요.” “코로나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오겠다? 참 고상하구만. 인도주의정신이 다분하구만.” 가은은 제 좋은 생각을 했다. “그럼 저의 어머니를 위생소에 받아주는 거죠? 전무님,” 군철은 하품을 길게 했다. “그게 뭐요?” “네?” 가은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박사님이 무슨 일을 이렇게 처사하오? 저네 엄마는 뭐 하고  저를 보냈소? 저는 뭐 우리 회사 인사과장이오?  무슨 자격이 있어?” 뒤이어 전무어른은 나가라고 문 바깥 쪽으로 손짓했다. “네, 미안합니다. 제가 곧 어머니를 보내겠습니다.” 가은의 말에 군철은 시끄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일이 바쁘니깐. 먼저 어머니를 인사과장한테 데리고 가오. 뭐나 순서가 있는게지. 일본까지 류학갔다가 온 석사생이 그게 뭐요? 일본에서 그따위로 양성받았어? 섬나라 석새생은 자질이 고작인가?” 가은은 몸둘바를 모르고 뒤로 슬슬 물러서며 말했다. “예. 알았습니다. 리화언니한테 데리고 가지요.” 군철은 비실비실 뒤로 물러가는 가은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서랍을 열고 뭔고 뒤적였다. 한참 후, 전화벨이 자지러지게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군철은 송수화기를 들었다. 인사과장 리화한테서 온 전화였다. “김춘희 박사를 데리고 가랍니까? 네. 등록을 다 했습니다.” “데리고 오오.” 군철은 한마디 하고는 송수화기를 덜컥 놓고 자리에 앉아 우멍눈을 딱 감아버렸다. 그의 눈 앞에는 춘희 모녀의 지나간 일들이 피뜩피뜩 떠올라 괴롭혔다. (어쩜 자기를 그렇게 진정으로 사랑한 내 양아버지를 버리고 훌 떠나간단 말인가? 당신도 사람인가? 춘희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진짜 군철에게는 고통스러운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회사를 생각하면 춘희 같은 의학박사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양아버지를 배신한 걸 생각하면 괘씸하기로 그지없었다. 똑, 똑, 똑. 노크소리가 울렸다. 군철에게는 더 궁리할 시간적 여지가 더 없었다. “들어오십시오.” 문이 조용히 열리며 인사과장 리화와 비서 경희가 춘희를 데리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군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나갔다. “안녕하십니까? 김박사, 참 오랜만인데요.” 춘희는 선뜻이 인사부터 하면서 마주 걸어나갔다. “안녕하세요? 최전무님,” 군철은 춘희 내민 손을 잡아주지도 않고 회피하면서 맞은 켠 쏘파에 자리를 권했다. “앉으십시오.” 경희가 커피 두 컵을 들고 들어와 군철과 춘희 차탁 앞에 놓고 나갔다. 그 사이 리화는 춘희 서류를 사무상에 가져다 놓았다. 군철은 춘희 서류를 펼쳐보지도 않고 우멍눈으로 춘희를 쏘아보았다. “고향으로 훌 떠나가더니 어떻게 돼 되찾아왔습니까?” 춘희는 리화 눈치를 흘끔 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합니다. 최전무님, 사실 모녀간이 한 위생소에서 일하기 불편해 고향 병원에 돌아갔댔습니다.”         군철은 조소를 입귀로흘리면서 따지고 들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 우리 자그마한 위생소에 들어오려고 합니까? 지금은 모녀간이 콧구멍만한 위생소에서 머리를 맞대고 일해도 괜찮겠습니까?” 춘희는 병원에서 제명당했다는 말은 못하고 얼버무려고 들었다. “그땐 반도체회사에서 백신제약공장을 차려낼 수 있겠는가는 고려도 있었습니다. 그래 두루해서 돌아가게 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백신제약공장을 차릴 신심이 있습니다. 저와 황선희 언니가 최첨단의약제조기술을 제공하고 최전무가 제약공장 건설에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주면 성공할 거 같습니다. 황차 지금은 코로나환자가 급증하기에 세계 선진적인 백신수요량이 급증하고 있잖습니까? 판로도 있잖습니까? 인도주의 정신으로 제약공장 차리면 됩니다.” 군철은 사무상에 돌아가 앉아 엄숙히 춘희를 내려다보았다. (양아버지를 버리고 달아난 조 뺑덕이에미를 어쩌겠니? 량심을 버린 걸 생각하면 초빙하긴 고사하고 당장 사무실에서 쫓아내고 싶어.) 갑자기 군철의 눈에서 무서운 번개가 번쩍였다. 뒤이어  우뢰가 울리는듯한 고함소리 터졌다. “당신도 인간인가?! 앓는 사람을 훌 버리고 도망치다니. 그러고도 내 앞에서 언감 인도주의 정신을 담론합니까? 당신도 의학박사입니끼? 개똥박사라고나 해라. 자기를 그렇게 사랑한 사람을 헌신짝 차버리듯한단 말인가? 앓는 사람을 치료해줄망정 그게 뭔가? 최저한도의 의료일군의 직업도덕마저 꼬말치도 없는 인피를 쓴 쓰레기야!” 춘희는 모든 것이 틀려간다고 여기고 자리에서 우쭐 일어났다. “초빙문제를 담론하지 않고 욕설이나 퍼붓자고 저를 오라, 가라 했습니까?” 리화는 깜짝 놀랐다. 군철은 사무상을 꽝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빙은 둘째입니다. 사람의 량심부터 짚고 넘어가야지.”  리화는 둘 다 이렇게 나올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춘희는 문께로 나가면서 말했다. “위생소에 받지 않겠으면 마십시오. 내 이 위생소 아니면 살지 못할 거 같습니까?” 군철은 무서운 빛이 번쩍이는 우멍눈으로 무뚝뚝하게 춘희를 쏘아볼 뿐이다. 춘희는 문꼬리를 잡았다가 천천히 되돌아섰다. “당대표까지 한 전무라고 믿고 찾아왔더니만요. 옹졸하게 사적인 앙갚을 할줄은 진짜 몰랐군요.” 말을 마치자 춘희는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잠간만요.” 리화가 쫓아나가면서 춘희를 말렸다. “가겠으면 가라지. 놔둬! 인간의 량심을 버린 자는 쓰지 못해! 인간성도 없는 놈들이 무슨 약을 만들면 뭐 쓰게 만든다고? 흥!” 군철은 벌떡 일어나 사무실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거닐었다. 리화는 두 손을 벌려보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여보세요. 지금 백신제약공장을 세우려면 황선희 혼자 믿고 됩니까? 좀 참으면 어때요?” “그만해! 저런 인간성도 없는 개똥박사 없으면 우리 회사에서 백신을 생산하지 못할 거 같아? 흥! ”         군철은 계속 저주했다. "최저한도의 인간성마저 없는 개똥박사야. 그런 개똥박사 우리 회사를 위해 온전히 일할 거 같아?! 사기군 같은게. 믿기 어려운 떠돌이야. 어디 잘 되는가 두고 보자." 창문 밖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사무실 안에까지 번개 쑥 들어왔다가 나갔다. 퍽 공포스러운 분위기다. 꽈르릉, 꽝꽝!  우뢰소리가 하늘땅을 뒤흔들어 놓았다.  폭우가 앞을 가리지 못하게 억수로 쏟아졌다.
308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1) 김장혁 댓글:  조회:1151  추천:0  2023-04-13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1. 인과보응  낚시군들은 흔히 낚시로 물고기를 낚을 때 그 손맛이 좋아서 자꾸 낚시하러 간다고 한다. 잉어가 낚시에 걸려 새하얀 배때를 파닥이며 물위로 올라오는 순간, 낚시군은 약담배쟁이가 약담배를 빨아들이며 흥분할 때보다 더 흥분된다는가. 그래서 미끼를 넣어 물에 낚시를 드리우고 몇시간이고 멀건 물을 들여다보면서 기다리는게지.  그 기다림 속에 낚시를 하는 인생철학이 무르익어간다는가. 물고기를 먹긴 좋아하지만 인내성이 없는 사람들은 낚시를 못하지. 그래서 그물이나 전기고기잡이기구를 메고 강물에 가서 물고기를 잡지. 전기물고기잡이기구 량극막대기를 벌려 돌틈에 밀어넣고 전기를 탁 넣는다.  갑자기 방출된 전기로 물고기를 탁 쳐 정신을 잃게 하지. 그 다음 그물건지개로 스리슬쩍 물고기를 떠내면 손쉽게 잡을 수 있는게지.      류원장은 더 묘하게 “물고기”를 낚는 유명한 낚시군이다. 그는 물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전문 이쁜 수하녀성들을 낚아채는 유명한 낚시군이였다. ㅋ       그는 흔히 자기 권력을 리용해 수하직원의 승급문턱을 높이거나 꼬물만한 착오를 졌을 때 처분을 주거나 제명하는 등 비렬한 위협수단으로 잡기 매끄러운 “물고기”를 낚아서 손에 스리슬쩍 넣군 하지.       류원장도 례외가 아니였다. 그는 자기 사무실에서 물고기가 전기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보고 음흉하게 빙그레 웃었다. 사냥군이  깡충깡충 뛰놀던 노루가 자기가 쏜 화살을 맞아 쓰러지는 것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순간이랄가. 춘희는 쏘파에 물앉아 외까풀눈을 딱 감고 당장 까무러칠 지경에 빠졌다. “춘희, 난 일이 바빠. 나가보라구.” 그 소리에 춘희는 겨우 눈을 떴다. “어디 아파?” 반질반질한 박대가리가 시야에 흐리마리하게 들어왔다. 뒤이어 더러운 손이 슬쩍 와서 팔을 어루쓸며 잡아 일으킨다.  “이걸 놓으시오. 내 절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춘희는 가까스로 정신을 추술리고 일어나 앉았다.  그녀는 류원장의 안경알 밑에서 판들거리는 퉁사발눈을, 게슴츠레한 퉁사발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저를 제명합니까? 이건 국가 사업일군사용제도에 맞지 않습니다. 권력람용입니다.” 류원장은 어처구니없어했다. “뭐? 권력람용? 말도 안돼. 내 개인의 결정이 아니야. 병원당위 결정이야. 무조직, 무기률인 춘희를 제명하지 않고선 내 어찌 몇천명 직원들을 다스린단 말인가.” 춘희는 사정했다. 그러나 애걸복걸하진 않았다. “이제부터 병원 일을 열심히 하면 안되겠습니까?” 류원장은 이때라고 미끼를 슬쩍 던졌다. “그리 쉽게 넘어갈 순 없지. 그러나 당위 모든 결정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깐. 여지는 좀 있지 않겠는지.” 류원장은 습관처럼 박대가리를 긁적거리면서 흘끔 춘희를 곁눈질해보았다.  그 음흉한 눈길이 메스꺼웠다. “도대체 무슨 일로 저를 제명합니까? 그저 제때에 출근하지 않은 거, 그 한가지 때문입니까?” 춘희는 원인을 알고 싶었다. “그 한가지 때문이 아니지.” 류원장은 자리에 돌아가 높은 의자에 척 들어앉더니 위엄있게 박대가리를 쳐들었다. 그는 아주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춘희를 노려보았다. “춘희 때문에 우리 병원은 일본 모 대학 부속병원과의 의료기술합작에 파탄됐단 말이야. 아주 엄중한 책임이야. 또 금후 숱한 의료일군들의 일본 류학의 길마저 막힐 가능성도 있어.” “네?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춘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그럼 다이로의 마수가 여기까지 뻗쳤단 말인가? 비렬한 놈, ) 춘희는 대개 원인을 알 것 같았다.  (분명 다이로교수가 앙갚음으로 단위에 그간 있은 모든 걸 제보하고 병원에 압력을 가한 것이 뻔하지 않는가.) 춘희는 모든 걸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녀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춘희는 그간 모녀간이 일본에서 무슨 짓을 한 걸 잊지야 않았겠지? 그게 무슨 짓인가?” 박대가리는 사냥물-춘희를 얼리고  닥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지는 있지. 모든 건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가? 춘희 박사의 태도에 달렸소.” 그때 류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춘희한테로 다가왔다. “모든 건 대가가 있는 법이야. 이만한 도리 쯤이야 춘희박사도 알겠지?” 미끼를 물었는가고 스리슬쩍 건드려보는 판.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박대가리는 춘희한테 스리슬쩍 다가오며 지껄여댔다.          "춘희, 저 안방에 황금침대 있는데 어떤가 구경해 보겠소?"           "네?"     류원장은 오리무중에 빠진 채 어정쩡해 서 있는 춘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니, 이걸 놓으시오. 아니, 진짜, 물러나지 못하겠습니까? 소리치겠습니다.” 류원장은  춘희를 더 꽉 끌어안았다. “왜 이래?” 찰싹! 춘희는 박대가리 유들유들한 볼때기를 한대 갈겨주었다. 류원장은 춘희를 훌 놓아주었다. “가라! 넌 이젠 우리 병원 의사 아니야.” 류원장은 손가락으로 문 쪽을 가리켰다. “나가! 사기군 같은 년!” “가라면 못 갈 거 같은가? 이 병원이 아니면 박사가 살 길이 없을 거 같은가? 흥! ” 춘희는 콧방귀까지 뀌면서 문께로 척척 걸아나갔다.  등뒤에서 이런 말꼬리가 뒤따랐다.  “감옥에 갈 준비나 해. 일본 다이로교수가 널 가만 놔둘 거 같은가? 꼴 보기 좋게 됐구나. 흥! 이게 인과보응이라는 거야.” 그 뜻밖의 소리에 춘희는 몸을 홱 돌렸다. “뭐라구? 그래 다이로교수가 어디에 있습니까?” 류원장은 일어나 창문쪽으로 외면해버렸다. “어서 나가라! 보기도 싫어.” “내 입이 터지면 당신도 원장자리를 지키기 힘들걸 아십시오.” 춘희는 한마디 하고 문을 꽝 닫고 원장실에서 나왔다. 류원장은 띠끔하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네따위 사기군이 날 어쩐다고. 흥! 해볼대로 해봐!” 류원장은 의과대학 약학과 본과생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로원장인 애비 덕분에 숱한 의학박사들을 물리치고  원장으로까지 제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이 놈의 병원은 사제간이란 특수한 인간관계가 얼기설기 무섭게 얽혀있었다. 몇십년 동안 원장을 해먹은 류원장의 아버지는 이 병원의 왕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무서울 지경으로 기반이 든든하고 아래위로 인맥이 아주 넓었다. 그리하여 류원장은 의과대학을 졸업하자 애비 덕분에 이 병원 약국에 들어앉아 숱한 제약공장에서 뭉치돈을 받아먹었다. 그는 애비 덕분에 몇년 안돼 일약 약국 주임으로 제발됐고 또 몇해 뒤엔 부원장으로 직진했으며 애비가 퇴직하고 고문으로 물러앉자 헬기를 타고 원장자리에까지  직승진했던 것이다.  류원장은 의료지식은 보잘 것 없었지만 우점 한가지는 있었다. 사람관계만은 확실히 잘 처리했다. 사람관계를 잘 처리하는 으뜸가는 재간을 말할라치면,  돈을 아끼지 않고 아래위 사람들에게 푹푹 찔러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어떻게 말할가. 정치외교에 능하다고나 할가. 그는 게바라올라가기 위해선 돈을 아끼지 않았고 정치외교에 항상 남보다 선수를 치군 했다. 정치눈치도 꽤나 빨랐다. 기회를 잘 포착하고 재낄손이 남달랐다. 자기보다 우수한 라이벌을 갖은 비렬한 수단을 다해 무함하고 물어먹고 뒷다리를 잡아당기고 발로 숫구멍을 차 내리뜨렸다. 애비가 뒷받침해주는데다가 그의 능란한 정치외교술 덕분에 본과생에 불과한 그는 황선희나 춘희 같은 숱한 박사들도 쥐락펴락할 수 있었다. 권력의 맛을 들인 류원장은 병원 안에서 직권을 리용해 직위를 승진시켜주거나 처분으로 위협하거나 미끼를 던져주고 나꿔채는 등 비렬한 수단으로 암암리에 반반하게 생긴 녀성들을 유린하였다. “퉤, 더러운 놈, 제명에 죽는가 어디 두고 보자. 네놈이 없으면 내 살지 못할 거 같아?”      춘희는 집에 돌아가 주저없이 짐을 챙겨가지고 그 길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어쩐지 뒤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눈길이 자기를 뒤쫓는 감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택시 뒤를 돌아보아도 꽁무니를 바싹 따르는 차는 보이지 않았다. 공항에 나가 숱한 사람들 속을 꿰질러 안전검사구에 이르러서도 누군가의 눈길이 미행하는 것 같았다.  숱한 사람들 속에 웬 마스크도 끼지 않은 콧수염쟁이로인이 피뜩 스쳐지나갔다. “뭐야? 다이로교수?” 그러나 허연 콧수염쟁이를 먼 발치에서 뜯어봐도 다이로교수 같지 않아보였다. 황차 그 로인은 회색외투를 입고 있지 않는가. 사실 다이로교수는 회색옷을 입기 싫어했다. 나이에 비해 늙어보인다고 회색옷이라면 질색했던 것이다. 다이로교수는 나이와는 어울리지도 않게 젊어보이는 파란 외투나 하얀 외투를 입기 좋아했다. 춘희는 비행기에 탑승하면서도 어쩐지 누군가의 눈길이 자기 잔등을 누비는 것 같아 불안하였다. 드디여 고통의 심연과 절망에 빠진 그녀를 실은 비행기는 상해 포동으로 날아갔다. 비행기에서 그녀는 다이로교수를 한없이 증오했다. (네놈이 날 어떻게 압박하고 성착취했는데. 고까짓 돈을 마끼한테 준게 그렇게도 아깝는가? 제명에 죽지 못할 늙다리!) 춘희는 콧수염쟁이 다이로를 떠올리자 증오감에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놈 늙다리 혹시 중국에 들어와 우리 병원에 찾아왔댔는가? 아니야.) 춘희는 고민에 빠져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깍쟁이령감이라고 해도 고까짓 돈 때문에 여기까지 쫓아오기야 했겠는가? 그럼 류원장한테 고발신을 써보냈는가? 가능성이 높아.” 그녀는 중얼거리면서 구름이 파도치는 비행기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발 아래 뒤로 날려가는 고향 산천을 바라보자 콧마루가 시큼해났다. (아, 태줄을 묻은 정든 고향이 아닌가?) 20여년 일해온 정든 고향에서 쫓기워가는 신세 기막혔다. 류원장이 한없이 협오스러웠다. (박대가리나 콧수염쟁이나 다 개놈들이야. 인간도 아니야. 색마들이야. 사기를 치고 녀성들을 유혹해 나꿔채는 놈들이야. 악마들이야. 어쩜 우리 세상이 이다지도 더러워졌단 말인가?) 그녀는 자기가 더러운 세상에 물젖어 황금몽을 꾸는 개똥박사로 된 것은 꼬물만치도 깨닫지 못하였다. 그저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기만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남의 얼굴의 티만한 흠집은 보아내도 자기 얼굴에 묻은 커다란 검댕이는 보지 못한다고 한 것 같았다. (가은이 남 부럽잖게 살게 하기 위해선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수 있다.) 그녀는 이를 옥물었다. 그런데 피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콧수염쟁이, 그 늙다리 진짜 나를 뒤쫓아온다면 어쩌지? 가은을 중국 사법기관에 사기죄로 기소했다면 어쩌지? 인터폴에 소송해 가은을 잡아가려고 한다면 어쩌겠는가?) 여기끼지 생각이 미치자 춘희는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아 앞길이 막막했다. (아이고, 만약에 하나, 진짜 다이로가 그랬다면 어쩌지? 아이고, 하느님, 이 일을 어쩌는가?) 춘희는 두 손을 마주 쥐고 두 눈을 꼭 감고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하느님이여, 비나이다, 비나이다. 제발 우리 모녀간을 해치지 못하게 보우해 주옵소소.) 비행기는 어둠침침한 구름층으로 날아들어갔다. 세상만물을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비행기 차창 밖의 하늘은 흐리멍텅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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