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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6권 94 김장혁
2023년 05월 28일 11시 03분  조회:1341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제6권

          김장혁

 

        94. 고통의 쁠랙홀

녀자들의 마음은 문턱을 넘는 사이에도 열두번씩 변한다고 한다. 나영은 경찰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면서 삶의 욕망이 고개를 쳐드는 감을 느겼다.

구급실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만 해도 나영은 살고 싶은 마음마저 없었다. 

(뱃 속에 음험한 색마의 새끼를 떼버리지 않고 더 살고 싶지 않아. 믿을게 없는 이 놈의 세상에서 누굴 믿고 살아? 동전을 빡빡 긁어모아 모텔방비를 내면서 살아 뭘 해?)

순간 주름살투성이 허보수의 음충한 퉁사발눈길, 김보수의 가슴츠레한 외까풀눈이 떠올랐다.

(몽땅 색마들이야. 숱한 색마들한테 씹히고 짓밟히면서 살아 뭘 해? 고달파. 정호, 그놈 색마 날마다 달려들어 한동이씩 싸넣던게 뱃 속에 혹을 달았잖아. 번마다 콘돔을 끼웠댔는데 어떻게 혹이 생겼지? 그놈이 너무 세서 콘돔이 째졌어? 아니야, 번마다 끝나면 내 콘돔을 빼서 검사해보았잖아?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혹시 그놈이 미리 콘돔에 바늘귀만한 구멍을 내놓았을가? 개놈새끼, 항상 순정과 리혼하고 젊은 첩을 해가지고 아들딸 한구들 낳으면서 살겠다더니. 참, 음흉한 놈이야. 제 명에 썩어지질 못할 색마야. )

순간 그녀는 정호에 대한 원한으로 해 이발을 빡빡 갈았다.

나영은 지영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자기를 구한 의사들마저 원망스러웠다. 

(훌 죽어버리면 모든게 끝나는데. 고통의 쁠랙홀에서 해탈되겠는데.)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점차 몸에 힘이 생기자 몇번이고 경찰과 간호사들의 눈을 피해 병실 창문을 훌 열고 뛰여내리려고 기회면 노렸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안간힘을 다해 일어나려고 조금만 움찍거려도 줄줄이 째진 배 동통이 심해 신음소리를 내면서 쓰러졌다.

(죽자고 해도 죽을 수 없구나.)

그러나 처음 지영의 위안을 받으면서 생각이 점차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지영을 보자 나영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통탄했다.

“날 죽게 놔둬라. 훌 죽어버리면 모든게 끝이야. 날 제발 고통스런 천길나락에서 해탈되게 놔둬라.”

지영은 이상야릇한 눈길로 나영의 정기 잃은 눈 속으로 들어가보았다. 나영의 심장이 마지못해 맥없이 벌걱벌걱 뛰고 있지 않겠는가. 머리 속에는 온통 먹칠한듯한 암흑천지였다. 속에는 정호에 대한 배신감, 증오감, 원망감 밖에 남지 않은 것이 아닌겠는가.

지영은 나직이 물었다.

“뱃 속에 애는 누구 애냐?”

나영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눈을 감아버렸다.

“걸 알아 뭘 해? 이 개새끼를 달고 어떻게 머리 들고 사니?”

지영은 나영이 정호와 장기동거한 일을 떠올렸다.

“정호 거냐?”

“그만 해라. 그 색마 말을 하지도 말라. 그 색마 새끼를 낳고서야 어떻게 창피해 사니?”

지영은 십중팔구는 정호 애라는 거 알게 됐다. 그는 자살하려고 드는 친구에게 삶의 용기를 북돋아주어야 했다.

“성림을 봐서라도 살아야 해. 성림이 엄마 없이 어떻게 사니?”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돼. 성림인 이런 못난 엄마 없으면 나아. 난 이 병실에서 나가면 감옥에 들어가야 해. 성림을 볼 면목도 없어. 차라리 죽어버리면 엄마 없거니 할게 아니냐?”

지영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요 며칠 전에도 네 남편한테서 전화 왔더라. 요즘 전화 받지 않는다면서 네하고 통화하고 싶어한다더라.”

성림의 말을 듣자마자 나영은 가슴을 치며 울기 시작하였다.

지영은 나영의 불룩하게 부풀어오른 배를 내려다보면서 위안해주었다.

“뱃 속의 애는 방법을 대보자. 내 아는 의사와 말해보든지?”

나영은 손사래를 쳤다.

“그만둬라. 나도 이전에 애를 떼버리려가다 이 병원 산부인과 의사한테 천만원이나 떼웠다."

"뭐라고?"

지영은 펄쩍 뛰였다.

"어느 놈이냐? 그 놈을 놔두는가 봐라.꼭 그 돈을 찾아내야지.애를 떼버리는 건 내 수소문할테니 근심하지 말라."

웬 일일가? 

그래도 친구가 있어 좋았다.

나영은 련 며칠 지영의 위안을 받고 웬 일인지 삶의 욕마이 꿈틀거리는 감을 느꼈다.

그러나 나영은 정작 병실에서 경찰들의 손아귀를 벗어나 택시를 잡아타고 도망치면서 또 머리가 삼검불 같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쫓겨다니면서 살아야지? 언제까지 고통의 쁠랙홀에서 헤매면서 심장을 조이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때 철길 갈림길에서 차단봉이 택시 앞을 척 가로 막았다.

(뭐야? 경찰이 닥쳐왔어?)

나영은 질겁해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저쪽에서 요란한 경적소리 울리며 육중한 화물차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에이, 훌 죽어버리면 모든게 끝이야.”

순간 나영은 자살하려고 차문을 벌컥 열었다.

“왜 이래요? 문 닫으세요.”

나영은 문 밖으로 튀여나가 차단봉 밑으로 빠져나갔다.

“뭘 해?!”차단봉을 지키던 철도직원이 황급히 덮쳐나가 나영의 팔을 붙잡아 뒤로 홱 잡아쳤다. 나영은 철도직원을 깔고 뒤로 넘어갔다. 

     화물차가 나영의 발끝을 스치며 육중한 죽음의 노래소리와 함께 지나갔다. 염라전의 저승사자가 소름끼치게 스쳐지나가는 순간이였다.
       철도직원은 쓰러져서도 나영을 안고 뒤로 한고패, 두 고패 구을렀다.

“나요. 죽게 내버려둬요!'

나영은 발버둥질치며 철길 쪽으로 기여가려고 손가락끝으로 세멘트바닥을 긁으며 아득바득 발악했다.

“미쳤어?! 새파란 나이에 왜 죽어?!”

나영은 단말마적으로 발악하며 미친듯이 고함쳤다.

“손을 떼지 못해. 고통 속에서 해탈되게 놔두지 못해?!”

철도직원은 벌떡 일어나 나영을 안아 철길에서 좀 떨어진 둔덕까지 끌고 가며 고함쳤다. 

“왜 이래? 아가씨, 무슨 일 있어도 죽으면 안돼. 굳게 살아야 해.”

택시 기사도 뛰여와 나영을 부축해 끌고 갔다.

나영은 미친듯이 도리머리를 홰홰 저으며 고함쳤다.

“이 놈의 더러운 세상에서 살아서 뭘 해? 죽게 날 나둬요. 으흐흑, 흑흑흑,”

그녀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머리를 홰홰 저으며 애처롭게 울었다.

그의 눈앞에는 불현듯 성림이 떠올랐다. 순간 모성애는 그녀를 살고 싶게 만들었다.

(안돼, 난 성림을 봐서라도 죽을 수 없어.)

정신이 펄쩍 든 나영은 경찰이 쫓아오지 않았는가고 쌍까풀눈으로 사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택시 기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기사님, 어서 갑시다.”

“어디로?”

기사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피기 없는 나영의 복숭아 이마를 바라보았다.

“홍대입구 쪽으로 모세요.”

기사는 나영의 정신상태를 반신반의하면서도 헛일을 하고 싶지 않아 나영을 부축해 택시에 다가갔다.

기사는 나영의 탄력 있는 허리를 끌어안고 가며 부지중 아래 그게 꿋꿋이 쳐드는 감을 느꼈다. 순간 정욕이 부글부글 끓어번져 온 몸을 부르르 전률했다. 

세상 수캐는 다 이런가? ㅋㅋ

나영은 반사경으로 음충한 눈길로 자기 몸을 흘끔거리는 기사를 보고 코웃음쳤다.

기사는 택시를 느릿느릿 몰면서 물었다.

“아씨, 택시비를 먼저 결산해주겠나요?”

“그러세요. 얼마 드릴가요?”

“먼저 2만원만 주세요.”

“알았시오.”

나영은 지갑에서 5만원 한장 꺼내 기사한테 훌 주었다.

그제야 기사는 한숨을 후 내쉬며 쏜살같이 질주했다.

나영은 홍대 입구 쪽으로 달리다가 생각을 고쳤다.

“기사님, 동대문 쪽으로 모세요!”

“네?”

택시기사는 벼룩눈을 흡떴다.

“5만원으론 안돼요.”

나영은 지영이 금방 준 300만원이 있어 뒤근심을 하지 않아도 되였다.

“택시비 근심 말고 빨리 동대문으로 모세요.”

“네.”

나영은 속궁리를 번개같이 굴렸다.

(홍대입구 쪽 모텔은 안돼. 경찰들은 꼭 내 들었던 모텔을 지킬 거야. 지영이네 집에도 안돼.)

나영은 동대문에 가서 택시에서 내렸다.

그녀는 부근 좁은 골목에 자리잡은 모텔에 들어갔다. 

모텔 주인아줌마는 나영의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이상야릇한 눈길을 보냈다.

 지푸라기 달라붙은 머리카락, 먼지 씨부옇게 묻은 람루한 간호사복, 흘끔거리는 공포에 질린 쌍까풀눈...

(좋은 아씨 같잖아.)

주인아줌마는 나영을 받기 싫었다.

“빈 방이 없어요.”

나영은 5만원권 서너장 꺼내 척 내밀었다.

”선전 받으세요. 모텔방이 깨끗하면 여러 날 들게요.”

견물생심이라고 돈을 보자 중년주인아줌마는 반색하며 모텔 안으로 들여놓았다.

나영은 모텔방에 들어가자 샤와실에 들어가 샤와부터 했다.

그녀는 뜨신 물을 틀어놓고 때투성이 머리부터 내리씻었다. 그녀는 가로 세로 베여진 아랫배 흉터를 보자 뱃 속의 꿈틀거리는 혹이 괘씸해났다. 그녀는 이를 옥물고 아랫배를 주먹으로 마구 패댔다. 뱃 속 고통의 씨앗은 꿈틀거렸다. 아파  발길질하는지 배가 마구 아파났다.

얼기설기 내리 뻗친 상처와 수술자리는 아직 채 아물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철길에서 또 들볶는 바람에 배가 동통이 심했다.

그녀는 샤와를 말끔히 하고 거울로 자기 쌍까풀눈을 들여다보며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아직 죽을 나이는 아니야. 새파란 나이에 왜 죽어?”

그녀는 이불을 들쓰고 침대에 누워서도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젤 먼저 뱃 속의 이 놈 혹부터 떼버려야 해. 그럼 아무데나 가서 일하면 살겠는데.”

나영은 마음 속으로 지영이 고마웠다. 살고 싶을 땐 자기를 구한 지영이, 철도직원, 택시기사까지 다 고마웠다. 

그러나 죽고 싶을 땐 그들이 다 미웠다. 고통의 쁠랙홀에서 지루하게 허우적거리게 만든 그들은 은인이 아니라 원수로까지도 생각됐다.

그녀는 성림 때문에 살고 싶었다. 고통의 쁠랙홀에서, 생사선에서 헤매면서도 이상하게 아들을 위해 악착스레 살고 싶었다. 강렬한 모성애는 그녀로 하여금 또다시 고통의 쁠랙홀에서 헤여나오도록 단말마적으로 몸부림치게 했다.

나영은 도대체 어떻게 고통의 쁠랙홀에서 벗어날까?

고통의 쁠랙홀에 호수 물이 차고 넘치며 세찬 파도를 일구었다. 저쪽 들쑥날쑥한 커다란 바위 뒤 파도가 잔잔한 호수에서 암암리에 원앙새들이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그때 게와 거부기들이 모여왔다. 그들은 한창 바람 피우면서 짝짓기를 하는 원앙새들을 쫓아버렸다.

원앙새들은 호수물 위에 동동 떠 도망가면서 불평을 부렸다.

“왕바 같은게. 보기도 싫어.” 

“맨물의 거시처럼 남의 좋은 일에 삐치긴? 진짜 가증스러워!”

거부기가 도도거리며 남의 눈을 피해 도망가는 원앙새들을 보고 도리머리질했다.

“세상이 더럽게 바뀌었어. 잉꼬부부라던 원앙새도 다 바람 피우잖아. 저러게 내 몇백년 살아도 참사랑 별까지 있단 말은 못 들었어.”

게가 맞장구쳤다.

“글쎄, 견우성과 직녀성이 있단 말은 들었는데. 참사랑별이 있단 말은 못들었어.”

거부기는 짧은 목을 빼들고 여기저기 살피며 개탄했다.

“요즘 또 졸혼이란 우수운게 생겨났잖아? 숱한 남녀들이 졸혼에 미쳐 가정과 애들을 버리고 미쳐날뛴다잖아? 사내들은 나이 든 안해를 버리고 젊은 아가씨들이 어떨꿍해 게침을 질질 흘리면서 쫓아다니구. 뺑덕에미들은 졸혼하고 나홀로만의 삶을 산다고 남의 눈을 가리우려고 군스나를 해가지고 싸다닌다잖아.”

게도 집게다리로 손사래를 쳤다.

“졸혼에 미쳤어. 그래서 숱한 가정이 핵폭탄을 맞아 산산히 부서져 쑥대밭이 됐지. 참 답답해. 요즘 인간들 왜 이래?”

거부기와 게 한탄소리에 호수물이 다 세찬 파도로 화답하고 평화의 비둘기가 애정비곡을 부르며 울며 날아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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