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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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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대하소설 졸혼 제4권 (51) 김장혁 댓글:  조회:1427  추천:0  2022-10-22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권                  61. 다이로교수의 꿈   지나친 격분은 다이로교수의 애간장을 여지없이 부셨다. (어쩜 길러준 개 발뒤축을 문단 말인가? 며칠 안 기른 개도 주인을 보면 꼬리를 친다는데. 개쌍년, 20여년이나 길러줬건만 나를 망신줄 수 있단 말인가? 더러운 죠센진(조선인). 개보다도 못한 년.) 그는 복도에 나가 연신 주먹을 휘두르며 묻고 또 물었다. (마끼를 어떻게 해놓으면 원쑤를 갚을가?) 다이로는 누가 볼가 봐 화장실에 들어가 앉아 한참 궁리했다. (내 꿈은  아들딸을 한 구들 낳아 기르는 것이다. 난 그 황홀한 꿈을 이르려고 은인이나 다름없는 본댁 모모에를 내보냈지. 모모에 본가집 아버지 교수가 아니였던들 내 오늘이 있었겠는가? 그는 내가 춘희를 관심한 것처럼 나를 친아들처럼 관심했지. 학잡비를 대주고 장학금을 타게 도와주었고 나중엔 자기 집에 데려다 공부를 시키면서 박사학위까지 타게 하지 않았던가. 건데 뭐야? 난 본댁을 눈물을 흘리게 하면서 내보냈다. 나도 사람인가? 차마 못할 짓을 했지. 난 춘희를 관심하는 척하면서 나꿔채  후처로 들여앉혔지. 그런데 춘희는 10여년 동안 애 하나도 낳아주지 않았잖은가.  건데 난 10여년 동안 마른 방아만 찧었잖은가. 애를 얻기는 고사하고 사막에 물 붓듯이 춘희 모녀한테 숱한 돈만 처넣지 않았는가? 난 꿈을 이루긴 고사하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했지 뭐야?)        본댁은 다이로교수를 보고 은밀히 귀띔해주었다.       "왜  숱한 일본 녀자들을 두고 죠센진을 선택했는가요? 이제라도 일본 녀제자 가운데서 골라잡으세요."       "안돼. 어느 일본 녀자애가 늙은이 애를 가지자겠는가? 민족기시를 받는 죠센 온나(조선 녀자)를 관심해주면 감동돼 애를 낳아줄 거야." "또 그 소리군요. 죠센진이라고 그리 쉽게 넘어가겠어요? 눈이 멀거나 바보 아니고서야. 흥. 당신 꼭 후회할 거요."       그러나 다이로는 본댁의 충고를 듣지 않고 꿈의 어머니를 춘희 대신 나나로 대체해놓았다. 그는 모든 심혈을 몰부으면서 머리를 숙이고 인간의 고행을 겪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다이로는 오늘 마끼한테 모욕당하기까지 했다. 그의 가슴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화산이 폭발하고 먹물처럼 새까만 파도가 세차게 흉벽을 부셔댔다. "어떻게 하면 꿈을 이룰까?" 그는 과단성있게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난 이젠 화장터에 가서 한줌의 연기로 돼 염라대왕을 찾아갈 사람이지. 헌데 나나는 어떻게 머리를 들고 학교를 다닌단 말인가? 안되겠어. 이젠 춘희 모녀를 가차없이 잘라버릴 때야.) 한참 후에야 다이로는 간신히 화장실에서 나와 스적스적 걸어 교실에 들어갔다. 쑤군덕거리던 학생들은 다이로교수를 보자 순식간에 쥐 죽은듯이 조용해졌다. 교실에는 바늘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라도 다 들릴 지경으로 적막했다. 숨 막힐듯한 적막강산이 공포로 돼 마끼와 학생들한테 엄습해왔다. 학생들은 누구라 없이 머리를 숙이고 책상머리만 내려다보았다. “교수를 시작하겠습니다.” 다이로교수의 말소리가 나직이 울리며 교실의 정적을 깨우쳤다. “오늘 특별강좌에선 교과서에도 없는 내용을 강의하겠습니다.” 학생들은 일제히 기대에 찬 눈길을 다이로교수한테 보냈다. “참을 ‘인’자 세개면 살인도 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졸업 전에 우리 모든 학생들은 중국 유교학설을 좀 공부해야겠습니다. 공맹지도에서는 ‘자기를 억제하고 례에 맞게 행동하라.’고  설교했습니다. 의료과학을 배우는 우리 학생들은 우선 인도주의가 무엇이라는 것부터 배워야겠습니다. 남을 곤경에 몰아넣고 잘코사니를 부르는 것이 옳은가? 이제 당장 졸업해 사회로 나가 의료사업에 종사할 제군들이 곰곰히 생각할 바입니다. 앓는 사람을 치료하고 죽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려는 의료일군은 정신적으로도 남을 돕는 것을 락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지요?” 그 몇마디 말을 듣고 대학생들은 다이로교수가 지금 뭘 두고 말하는지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오늘 이 주제로 쎄미나를 하겠습니다. 제군들의 열띤 토론 희망합니다.” 다이로교수는 교수안을 닫고 마끼와 나나한테 번갈아 피뜩 눈길을 주더니 교실을 나갔다. 그는 어떻게 이를 꼭 깨물며 꼭두까지 치미는 성을 참았던지 눈에 피 다 지지 않았겠는가. 그는 도요다표찌프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 마끼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춘희는 다른 때와는 달리 일찌기 퇴근한 다이로교수 가방을 받아든다, 신까지 벗겨 신궤에 넣는다, 커피를 타온다 하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런데 다이로교수의 얼굴 표정이 어딘가 모르게 침울해보여 불안했다. “학교에서 무슨 기분 상한 일이라도 있었는가요?” 춘희는 커피잔을 차탁에 가져다 놓고 쏘파에 다가와 다이로교수 옆에 앉으며 물었다. 그러나 다이로교수는 원격조종기를 쥐여 텔레비죤을 켜고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텔레비죤을 뚝 꺼버리고 춘희를 마주 바라보았다. “조용할 때 말하기오.” “네. 무슨 일인가요?” 다이로교수는 춘희한테 돌아 앉으며 정색했다. “우리 갈라지기오.” “네?! 불시에 왜서요?” 춘희는 깜짝 놀라 외까풀눈이 휘둥그래졌다. 다이로교수는 명확히 말했다. “우리 이젠 정도 사랑도 없소.” 춘희는 커피잔을 차탁에 뚝 떨어뜨렸다. 커피가 쏟아져 차탁에서 바닥에 주르르 흘러내렸다. 춘희는 그걸 개의치도 않고 다이로 옆에 바싹 다가앉으면서 다잡아물었다. “무슨 말인가요? 그래 교수선생님은 이제껏 저를 사랑하지 않았던가요?” 다이로교수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오. 지금까지 춘희는 내 사랑 느껴보지 못했는가요?” 춘희는 다이로교수의 두 손을 덥썩 잡았다. 그녀는 다이로 사랑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아니, 다이로교수의 돈줄을 놓을 수 없었다. “저는 온 몸과 마음으로 선생님의 아빠와 같은 사랑을 느꼈어요. 그런데 불시에 왜 이런 말 해요? 오늘 혹시 학교에서 기분 상한 일이라도 있었는가요?” 다이로는 커피잔을 들어 후- 후- 불며 마셨다. “이제 마끼한테 물어보오.” 그는 커피잔을 차탁에 놓으며 춘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춘희는 제꺽 일어나 걸레를 가져다가 차탁과 바닥에 흘러내린 커피를 말끔히 닦았다. “선생님이 저를 사랑하는 이상 무슨 힘든 일이라도 우린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이로교수는 허구푼 웃음을 웃었다. “허허. 안되겠소.” “왜요?” 춘희 외까풀눈은 화등잔같이 돼버렸다. 이전처럼 당당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었다. 눈귀에 잔주름이 늘어섰다. 다이로교수는 바로앉으며 춘희를 쏘아보며 물었다. “춘희는 이전처럼 날 사랑하오? 성폭행과 성학대에 진절머리나지 않아?” 춘희는 한참이나 궁리했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로실히 말할가? 그럼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이 끝날게 아닌가? 나는 모든 걸 털어버리고 자유로운 새가 돼 고향에 돌아가 내 인생을 살게 되겠지.) 그러나 춘희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마끼를 위해서라면 자기 모든 삶을 희생할 수 있었다. 아니,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었다. “저는 선생님의 은총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무한히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저의 마음과 몸을 다 바쳐 선생님을 사랑해왔습니다. 장래에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다이로교수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쳇.” 다이로교수는 콧방귀를 뀌면서 손사래를 쳤다. “영화 대사를 암송하오? 소설을 쓰오? 얼마나 화려한 말이오? ㅋㅋ. ” 춘희는 다이로교수 앞에 무릎을 털썩 꿇고 애원했다. “선생님, 제가 그간 선생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는데요. 죄송해요. 이제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네? 제가 선생님을 잘 모셔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다이로교수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 틀렸네. 우린 근본 서로 사랑하지도 않았고 결혼도 하지 않았댔소.” “아니, 무슨 말씀인가요?” 갈수록 심산이오, 의아한 일이 아닌가! “가짜결혼이였네. 난 새파란 춘희를 후처로 삼아  내 아들을 낳으려고 했지. 그러나 내 꿈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네. 춘희는 내 돈과 유산에 눈이 어두워 억지로 나하구 살아야 했잖아? 마끼 전도를 위해 지금 나를 떠나지 못하고 있잖은가. 난 모든 걸 다 간파했네. 이렇게 살바에는 당장 갈라져야지. 량심 있는가? 내 널 얼마나 사랑하고 아꼈는데. 나를 속여? 당장 갈라지자. 그래야 서로 행복할 수 있네. 아니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알만해?” 다이로교수의 퉁사발눈에는 이상한 빛이 번쩍여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니, 아주 무서웠다. 공포가 방안을 점점 두텁게 휩싸고 있었다. “선생님, 절대 오해하지 마세요. 이러면 저는 이 세상에 살 필요없습니다.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혹시 나나 때문이 아닌가요?” “왜 나나를 곁들어?” “나나를 두번째 후처로 들여다 자기 애를 낳으려고 그러지 않아요?” “난 궁리한지 오래네. 내 어떻게 살든 걱정할 필요없네.” 그때 마끼가 집에 들어섰다. 그녀는 수업시간을 볼 여유가 없어 황급히 아빠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춘희는 마끼 방에 따라 들어갔다. “혹시 오늘 아빠를 노엽게 군 일은 없느냐?” 마끼는 머리를 강하게 가로 흔들었다. “없어요.” “제대로 말해라. 아빠 왜 저리 기분 상해 돌아왔어?” 그러나 마끼는 어머니한테 교실에서 생긴 일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어째? 아빠 뭐랍디까?” 춘희는 문께를 힐끔 뒤돌아보더니 문을 꼭 닫고 나직이 말했다. “아빠, 나하구 갈라지잔다. 우리 당장 이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어.” “네? 아빠 정말 그래요?” 춘희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 일을 어쩌느냐? 엄마 십여년 동안 드린 정성이 단꺼번에 물거품으로 됐어.” 마끼는 모든 것이 짐작됐다. 그는 어머니 귀에 대고 뭐라고 종알거렸다. 춘희는 딸의 말을 들으며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아빠 듣겠어.” 마끼는 어머니 손을 잡고 다이로교수한테 나갔다. “아빠, 제가 잘 못했습니다.” 마끼는 다이로교수 앞에 무릎을 털썩 꿇었다. “제가 나나를 질투해 그랬습니다.” 다이로교수는 성이 나 세길네길 펄쩍 뛰였다. “길러준 개 발뒤축을 문다고 그게 뭐냐?” “제가 잘 못했습니다. 나나를 망신주려고 그랬어요.” “그림을 아주 잘 그렸더구나. 네가 아빠를 망신줄줄은 몰랐어. 참 섭섭하구나. 애지중지하며 사랑한 딸이 내 잔등에 비수를 박을줄이야…” 다이로 교수는 너무나도 섭섭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아빠, 정말 잘못했습니다. 락루하지 마세요.” 마끼는 일어나 어릴 때처럼 다이로교수한테 안기며 백지장 같은 손으로 아빠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드렸다. “아빠 울면 이 딸도 마음이 아픕니다. 잘 못했습니다.” 다이로교수는 마끼의 손을 내리우며 흐느끼까지 했다. “내겐 친딸도 친아들도 없다. 널 친딸처럼 아끼고 사랑했건만 어쩜 그럴 수 있느냐?” 다이로교수는 눈물을 손등으로 쓱 닦았다. “흑판 그림은 남학생들이 내 말 듣고 그린 거예요. 저는 거기에 설명을 달았을뿐인데요. 죄송해요. 아빠.” 춘희는 그 말을 듣고 모든 걸 알아차렸다.        찰싹! 그녀는 딸애 귀뺨을 호되게 갈겼다. “어쩜 아빠를 망신시켜?” 춘희는 아빠 같은 은인을 모욕한 때문에 격분했던 것이다. 마끼는 얼얼해나는 뺨을 만지며 울면서 재차 꿇어앉아 잘 못 을 빌었다. 그러나 다이로교수는 바로 앉으며 똑똑히 말했다. “딱 오늘 일 때문이 아니야.  너네 모녀 간은 이젠 내 꿈을 실현하는데 걸림돌이 될 뿐이야. 나는 내 꿈을 원만히 실현하기 위해선 너네 모녀를 가차 없이 잘라버리기로 마음먹었어.” 다이로교수의 벌건 네모얼굴이 바위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춘희는 이렇게 물앉을 수 없었다. 그녀는 비장한 결심을 내렸다. “다이로교수선생님, 당신 여생의 꿈은 자기 애를 낳아 기르는 것이 아닌가요?” “그럼?” “제가 그 꿈을 이룩해드리죠.” “네가?” 다이로교수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안돼, 넌 안돼. 이미 늦었어.” 춘희는 자기 결심을 들으면 다이로교수가 기뻐하겠는가 했다. 그런데 다이로교수의 말을 듣자 너무나도 뜻밖이였다. 그녀는 의아해 물었다. “늦다니요?” “춘희는 이젠 50대 고개를 바라봐. 또 피임약까지 십여년 동안 너무 썼기에 애를 낳을 수 없어. 이건 자연법칙이야.” 춘희는 희망의 끈을 절대 놓을 수 없었다. “아니예요. 저는 아직 생리도 가지 않았어요. 현대 녀자 40대 후반에도 애를 가지기는 한창인데요.” “애를 가지려면 허무한 세월 왜 한번도 임신하지 않았어? 또 이젠 애를 가질 확률도 30프로도 없어. 나도 이젠 늙었어. 이제 또 10여년을 기다릴 시간도 없어. 설사 애를 가져도 늙은 엄마가 온전한 애를 가지겠어?” 다이로교수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사래까지 쳤다. 춘희가 또 뭐라고 말하려는데 마끼가 말렸다. 마끼는 우쭐 일어서더니 다이로교수한테 다가가 손을 덥썩 잡았다. “아빠, 제가 아빠 꿈을 이뤄드리겠어요.” “뭐라고?” 다이로교수나 춘희나 그 기절나는 말에 깜짝 놀랐다. 다이로교수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네가 금방 뭐라고 했느냐?” 마끼는 아주 명확하게 말했다. “제가 교수선생님의 애를 가지면 안돼요? 저는 서너살부터 아빠 태산 같은 사랑을 받아오면서 자랐어요. 그 은공을 갚기 위해 아빠 마지막  꿈을 이룩해드리렵니다. ” 다이로교수는 마끼와 춘희를 번갈아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가? 아니야, 넌 내 딸이야." 다이로교수는 미심쩍어 나나를 쏘아보다가 또 도리머리를 거세게 가로저었다. 춘희는 마끼 팔을 쥐여 홱 나꿔챘다. “얘, 무슨 미친소리냐? 미쳤어? 넌 아빠와 내 딸이야. 새파란 네가 어찌 저런 늙은이... 아이고, 이 일을 어쩌니?” 그러나 마끼는 무섭게 고집을 부렸다. “미치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절대 나나한테 아빠 꿈을 맡길 수 없어요. 나나가 할 수 있는 일을 제가 왜 못하겠어요?  나나가 애 하나를 낳아주면 난 아빠한테 아들딸 한구들을 낳아줄 수 있어요.” 찰싹! 춘희는 마끼의 귀썀을 한대 갈겼다. 그녀는 조선말로 호통쳤다. “가은아, 정신 나갔어? 엄만 네 전도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데. 네가 이렇게 전도를 망치면 어쩌느냐? 어째 엄마 죽는 거 보겠느냐?”  그런데 다이로교수가 내뱉는 말 또한 열통이 터질 소리다. “봐라! 너네 모녀간은 재물에 미쳤어! 내 유산을 독차지하려고 모녀간이 서로 내 애기를 낳겠다고 나서잖느냐? 재물에 눈이 어두운 년들, 인륜을 해쳐도 한두가지 아니구나. 너네 더러운 피를 받아 애를 낳았다간 내 후대 망치겠어.” “아이고, 이 일을 어떻게 해? 모든 꿈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구나. 흐흐흑, 흑흑.” … 드높은 푸른 하늘에서 울리는 메아리-        -에잇, 세상 망신스러운 일! 천만갈래 누런 빛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흐느껴 우는 모녀간을 어루만지며 추파를 보낸다. 황혼의 황금빛 락조는 명암이 분명한 신성한 꿈마저 누렇게 물들이며 색바리지게 한다.
286    대하소설 졸혼 제4권 (50) 김장혁 댓글:  조회:1385  추천:0  2022-10-20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권        60. 나나와 마끼         별아가씨들이 바르르 떨며 세집 창문을 살며시 열고 사뿐 들어와 나나랑 작은할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밤이 가는줄도 모르고 주고 받는 말을 귀담아 듣는다.       먹칠을 한 듯한  밤하늘에 눈섭달이 처량하게 걸려  어두운 밤을 밝히려고 안간힘을 쓰며 가을바람에 스치여 점점 밝아진다.       성호는 주방 밥상에 마주 앉아 커피를 후후 불어 마시면서 나나와 광문을 대견스레 바라보았다.  그는 오누이가 일본에서 어머니를 여의고 힘들게 살아온 눈물겨운 이야기를 듣고 여간 감탄하지 않았다.       나나와 광문은 작은할어버지가 딱 아버지와 생김새가 비슷한데 놀랐다. 세귀눈이라든지 말투라든지 진짜 아버지 같았다. 그리하여 비록 몇번 만난 적은 없지만 거리감이 훌 사라지고 무람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오누이는 그간 작은할아버지가 광고업으로 간고하게  창업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연신 감탄했다.       “작은할아버지, 작은할머니는 지금도 미국에 있는가요?” 성호는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고향을 떠나 한국과 미국으로 돌아다닌지도  20년이 넘는다. 미국 백인들이 어찌나 아세아 인들을 기시하고 못살게 구는지. 당장 한국에 오겠다더라.” 나나도 한숨을 호- 내쉬였다. “어딘들 기시를 받지 않고 살겠습니까? 양키들은 아세아인이라고 깔보죠. 그런데 섬나라 오랑캐들은 우리 보다 뭐가 잘나서 우릴 기시하는가요?” 광문도 도리머리질하며 끼여들었다. “한국 인들은 우릴 깔보지 않습니까? 타민족이  깔보는 건  그래도 억지로 개짓거니 하겠는데요.” 광문의 세귀눈에서는 적개심이 빛발쳤다. “같은 민족끼리 깔보는 건 정말 참기 힘들어요. 한 겨레는 어디에 가서도 단합해 살아야 하는데요.” 나나는 머리를 끄덕이며 한숨을 호-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마끼를 봐라. 일본에 귀화해 일본 국적을 올렸느라고 얼마나 으시대면서 우릴  깔보니?” 성호는 두 손으로 손자와 손녀의 손을 하나씩 덥썩 잡았다. “그게 다 우리 민족의 흠집이고 비극이야.  꽤나 총명하고 기동령활하지만 옛날부터 잘 단합되잖지. 자꾸 모래알처럼 흩어졌지. 그래서 망한 적이 어디 한두번이냐? 또 우리 업신여김받는 건 너무 가난한 때문이기도 해. 나라나 가정이나 매한가지야. 우린 꼭 힘써  가정 경제도 춰세워야 해. 그래야 남의 업신여김을 덜 받을 거야.” “맞습니다.” 광문은 세귀눈을 슴벅이며 맞장구를 쳤다. “얘들아, 우린 돈을 벌어야지만 절대 법과 량심을 어기지 말고 인격을 팔지 말아야 해.” “네.” 성호는 간곡히 부탁했다. “마사지방에서 이젠 나오너라. 아무리 돈을 벌어도 그렇지. 일본 보스 어디 사람대접 하니?” 성호 말에 나나도 동감이였다. “그래요. 이달 로임만 타면 나와야겠습니다. 진짜 노예취급한단 말입니다. 우리 오누이 어느 마사지방에 가면 그만큼 벌지 못하겠습니까?” 광문은 주먹으로 탁자를 탁 쳤다. “밸 같아선 주먹으로 보스 면상을 장마당으로 만들어놓고 싶습니다. 그저 다이로센세이(다이로선생)를 보고 참고 참았습니다.” 나나는 말렸다. “절대 손을 대선 안돼. 우린 졸업할 때까지 이를 옥물고 참아야 해. 어디로 가서 알바를 해도 그만한 갑질이나 스트레스 받지 않겠니?” 광문은 억지로 참느라고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사실 다이로교수가 잡아준 세집은 양광이 좋은데다가 침실 두칸에 주방과 화장실까지 따로 있어 원래 세집만은 비할데없이 아주 편리했다. 그러나 다이로교수가 관심하면 할수록 나나의 마음은 더 불안해갔다. (세상에 어디 공짜가 있는가? 다이로교수 뭐하려고 이렇게 은총을 베푸는지 몰라.) 성호는 지갑에서 엔 몇십장을 꺼내 나나한테 내밀었다. “저그마한 성의니깐. 학잡비에 보태 써라.” 나나는 받지 않고 되밀어주었다. “할아버지, 어쩌다 일본에 오셨는데요. 관광비를 보태주지 못할 망정 이 돈 받지 못하겠습니다. 관광에 쓰십시오.” 성호는 기어이 밀어주었다. “이번에 광광하러 온게 아니야. 성의를 받아라.” 나나는 마지못해 작은할아버지가 준 돈을 받았다. “할아버지, 잘 쓰겠습니다.” “그래. 이번에 너네를 만나보기도 하고 검찰원 반탐오국을 협조해 부패분자들을 자수하라고 권고하러 왔다.” 광문이 짙은 눈섭꼬리를 쳐들며 세귀눈을 치켜뜨고 바라보았다. 그는 세귀눈이랑 심통히도 작은할어비지를 똑 떼닮았다. “부패분자라는 건 누구를 그럽니까?” 성호는 정호와 나영의 죄행을 쭉 이야기하고나서 사진 두장을 꺼내보였다. “이 자들이다. 어디서 보면 인차 기별해라.” “네.” 나나가 사진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라했다. “아니, 이 번대머리 며칠 전에 우리 마사지방에 왔댔는데요.” “그래?” 광문도 사진을 가져다 보고 말했다. “맞아요.” 나나는 사진을 되가져다보고나서 성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날 춘희박사하구 남자 손님이 마사지하러 왔댔습니다. 그런데 남성 손님이 2층에 올라가 번대머리를 때리겠다고 달려들었댔습니다.” 성호는 대개 짐작이 갔다. “그 남자는 아마 리문걸일 거야. 외까풀눈이 아니데?” “맞습니다. 번대머리하구 대판 싸웠습니다. 번대머리는 녀자 둘을 데리고 부랴부랴 도망쳤습니다.” 성호는 또 짐작이 가는데 있었다. “두 녀자 중 하나는 50대 중반이고 하나는 30대 초반 아니더냐?” “맞아요.” 광문의 대답을 듣고 성호는 단정했다. “하나는 황선희박사구. 하나는 나영 부관장일 거야.” 그는 뒤이어 황선희박사는 일본 류학생 출신이기에 일본통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년놈들이 어디로 도망쳤을가? 도쿄에는 겁나 있지 못할 건데…” 성호가 량미간을 찌프리며 생각하는데 나나가 짐작이 가는데 있는 모양이였다. “조선 사람들이 많은 오사까에 가지 않았겠는지요?” “너희들도 그 년놈들을 보면 내한테 인차 알려라.” “네- 그 사진을 다시 봅시다.” 광문은 핸드폰을 꺼내 인차 정호와 나영의 사진을 찰칵찰칵 찍었다. “이제 우리 조선족친구방에 이 사진을 올리고 수사협조를 부탁하겠습니다.” “부패분자란 말을 하지 말라. 괜히 풀을 건드려 뱀을 놀래우겠다.” “알았습니다. 그저 중국 조선족동포관광객을 찾는다고 하면 어떻습니까?” 광문의 말에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너네 안전에 주의해라.” “네. 할아버지, 우리 집에서 쉬여도 돼요.” “아니야. 나와 동행한 검사들이 날 기다릴 거야.” “할아버지도 안전에 주의하세요. 언제 작은 할아버지께 밥 한끼 대접해야겠는데요.” “그래. 시간 나지면 또 올게.” 오누이는 바깥에 나가 택시까지 잡아주었다. “우리 도움 필요하면 인차 알리세요.” “그래.” 성호가 택시를 타고 떠나가면서 차창 너머 허리 굽혀 인사하는 오누이를 오래도록 대견하게 되돌아보았다. 오누이는 세집에 들어오자 인차 정호와 나영의 사진을 위챗 친구방과 여러 그룹에 올렸다. 물론 단서를 제공한 분에게는 약정 사례금을 드리겠다고 하였다. 밤중에 보이지 않는 그물이 재일본 조선족사회에 널리 퍼졌다. 이튿날 나나가 학교에 나가자 마끼가 시물시물 웃으면서 빈정거렸다. “나나, 이젠 정탐알바까지 하느냐?” 나나는 시치미를 땄다. “아니야, 대륙에 있는 가족들이 그를 찾더라.” “그래? 넌 부패분자 정호와 나관장하구 무슨 관계돼 그리 관심 많니? 사례금까지 주고 ‘사람 찾는 광고’까지 내?” 나나는 쌍까풀눈을 살며시 내리깔며 마끼의 외까풀눈을 피해 교실로 들어갔다. 속심의 말 하기도 싫었다. “나나!” “왜?” “좀 보자." "무슨 일이냐? "      마끼는 사례금이 욕심나 번대머리와 나영의 행적을 알려줄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기실 며칠 전에 황선희박사가 옛은사라고 다이로교수를 찾아 집에까지 왔던 것이다. 황선희는 정호와 나영의 려권까지 세개나 내놓으면서 해관에 차압된 숱한 금은장신구와 딸라를 찾아달라고 했다. 그때 다이로는 공항 해관에서 한자리 하는 외조카한테 부탁해 어떻게 하나 찾아주겠다고 답복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끼는 황선희가 아빠 맏녀제자인지라 감히 입에 올리지 못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넌 언제까지 그 썩어빠진 조선족 꼬리표를 달고 다니겠니?” 나나는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넌 조선족이 아니냐?” “난 일본 귀화 대화민족이야.” 나나는 주춤 멈춰서 청포도쌍겹눈으로 똑바로 마끼를 쏘아보았다. “가짜 대화민족, 꼴불견이야. 똑똑히 말해두마. 사람이 아무리 가난해도, 잘 살아도 절대 뿌리를 잊지 말아야 해.” 마끼는 외까풀눈을 흘기며 호들갑을 떨었다. “호호호. 대단한 인생철학이로구나. 친구기에 충고할게. 창창한 전도를 위해선 어서 일본에 귀화해라. 아무리 이름만 고치고 화복을 빼입는다고 다 본 대화민족인가 하니? 가짜야, 가짜!” 말이 한 곬으로 흐를 수 없었다. 나나는 다시 걸음을 재우쳤다. 원래 나나와 마끼(허가은)는 절친 사이였다. 중국에서 어려서부터 한 학급에서 아주 친한 동기였고 둘 다 어머니를 따라 일본에 와서 나이를 속이고 의과대학에 입학했던 것이다. 마끼(真姬)라는 이름은 일본에 귀화시킬 때 다이로교수가 지어준 이름이였다. 마끼는 어려서부터 다이로교수와 김춘희박사의 귀공주로 곱게 자랐다. 그녀는 멋을 따기 좋아하고 공부에는 별로 열중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늦어서야 겨우 나이를 속이고 입학했던 것이다. 나나와 마끼는 의과대학에서 한 학급에서 공부하면서 아주 친하게 지냈다. 마끼는 동정심이 많아서 항상 말 한마디라도 나나를 도와나섰다. 처음에 다이로교수는 마끼의 독립생존능력을 키워주려고 항상 이것저것 마끼한테 알바를 시키려고 들었다. 마끼는 하기 싫어 항상 자기한테 차례진 알바를 나나한테 밀어주었다. 그러나 양아빠 부탁대로 나나가 해온 알바의 비밀을 지켜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어느 하루, 춘희는 다이로교수가 출근하자 집이 빈 틈을 타서 마끼를 조용히 귀띔해주었다. “나나가 장차 엄마 자리를 차지해 유산을 빼앗아갈 수도 있어.” “네?” 그때 나나는 외까풀눈으로 어머니를 아니꼽게 흘겨보았다. “어머니, 왜 나나를 그렇게 저급적인 동물로 보는가요?” “내 말 좀 들어라.” “듣기도 싫어요. 어째 우리 친구 사이에 리간 노는가요?” 마끼는 외까풀눈을 흘기며 대뜸 성을 냈다. 그러나 혹여나 해 의아한 눈길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나나가 새파란 나이에 아빠 첩으로 되겠다고나 한단 말인가요?” 춘희박사는  경고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나나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어. 걔는 광문이를 위해사라면 무슨 짓이든 다 할 애야. 네 양딸자리도 빼앗고 다이로교수 유산을 독차지할 거야.” 그 말에는 마끼도 조금 동감이 갔다. 평소에 나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난 광문일 남보다 못잖게 살게 하기 위해선 무슨 짓이라도 다 할 수 있어.” 지금도 마끼의 귀전에는 나나의 말소리가 쟁쟁했다. 춘희가 정색해 하는 말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외까풀눈은 가을 뱀처럼 독이 올라 서슬이 시퍼랬다. “어머니는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절대 나나가 네 걸 빼앗아가는 걸 보지 못하겠다. 난 네 전도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다 할 수 있어.” 마끼는 학교에 가려다가 가방마저 훌 내던지더니 쏘파에 물앉았다. “나나 사태 그리 심각한가요?” 춘희는 따뜻한 손으로 마끼의 백지장 같은 손을 잡고 준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너네 아빠 젤 문제야. 다이로교수는 나나라면 핥을 상 하잖니? 딱 옛날에 나하고 하던 수작으로 나나를 얼리고 있어.” 마끼도 정색하며 측은한 눈길로 어머니 외까풀눈을 들여다보며 종알거렸다. “글쎄요. 아빠가 나나를 그저 동정하는 정도는 아닌 거 같애요. 미쳤어요.” 춘희는 마끼한테 더 다가앉으며 한술 더 떴다. “넌 어째 아직도 눈치채지 못했느냐? 다이로는 혹시 나나를 첩으로 들여앉히고 자기 애를 낳으려고 할 지도 몰라. 그게 아빠 평생 소원이야. 이제 황혼에 남은  꿈이야.” 나나는 처음엔 어머니가 너무 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렇게까지야. 나나는 나하고 오랜 극친인데요. 부모를 여의고 의지가지 없이 살잖아요? 진짜 아빠 첩으로 된다면 가슴 아픈 일인데요.” 마끼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빠가 그런다고 해도 나나가 들어줄가요? 늙은 령감태기 애를 낳자고 하겠어요? 미친 년 아니고야. 호호호.” 그러나 춘희는 머리를 끄덕였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우린 나나가 우리 집에 발을 붙히지 못하게 해야 해.” 마끼는 외씨 같은 얼굴이 대뜸 새파랗게 질렸다. “나나, 친군데요. 어찌 친구끼리 돈 때문에 원쑤처럼 싸울 수 있겠어요?” “넌 너무 천진해.” 춘희는 마끼의 손을 덥썩 잡았다. “얘, 갠 오누이 살아나가기 위해선 널 잡아먹을 수도 있어. 왜 이다지도 정신 못 차려?” 그제야 마끼는 이를 옥물었다. “간나새끼, 가만 놔두는가 봐라. 내 얼마나 동정해 아빠한테 좋은 말해 살게 만들었는데. 장학금이랑 어떻게 탔는데. 언감 우리 모녀 발등을 밟아?" 춘희는 마끼 귀에 대고 뭐라고 한참 쑤군거렸다. "예- 예, 알았습니다." 마끼는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어디 대가리를 들고 학교에 다니는가 두고 보자.” 모녀간은 나나를 모해할 음모를 한참 꾸며나갔다. 어머니  충동질을 들은 후 마끼의 마음 속에는 나나가 친구가 아니라 일약 암투의 라이벌로 돼버렸다. 아니, 그 놈의 개도 안 먹는 돈과 재물 때문에 친구가 순식간에 라이벌로, 아니, 원쑤로 돼버린 것이 아닌가.       돈은 흑사심이라고 돈은 친구를 라이벌로 만들고 원쑤로 만들 수도 있었다. 돈은 량심을 어기고 친구를 무함하고 죽이게까지 할 수도 있었다. 친구를 세치불란지설로 헐뜯어 낯에 먹칠을 해놓고 뼈도 추릴 수 없게 만들 수도 있었다. 돌려댄 뒷잔등에 비수를 콱  박아놓을 수도 있지. ㅋㅋㅋ (자기 쏜 화살을 맞고 친구가 가슴에 피 흘리면서 쓰러지는 그 처참한 모습… 잘코사니야. 아, 상상만 해도 참 무서운 일이야.) 마끼는 학교로 가면서도 공포에 떨며 착잡한 생각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나나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그럴 애야. 실 한오리 걸치지도 않고 라체로 교타이모리 스시상에 올랐잖은가. 우리 집에서도 숱한 손님들 앞에서 라체로 걸상에 앉아 아빠한테 똥을 싸 먹이지 않았던가. 자기 남동생네 학급 인체해부학 시간에 라체모델을 다 서지 않았던가. 다이로가 유산을 다 주겠다고까지 하면 애를 줄줄 낳아줄 수도 있어. 어디 죽어봐라. 아, 우리 어쩜 이렇게 돼가지?) 적은 항상 가까이에 있었다. 왕왕 제일 가까운 친구가 순식간에 라이벌로 되고 원쑤로 될 수 있었다. 흔희 젤 가까운 친구가 빈 틈을 제일 잘 안다. 그 틈을 파고 들면서 뒤잔등에 치명적인 비수를 박을 수도 있다. 젤 가까운 친구가 젤 위험한 적이다. 때문에 안전하게 살려면 젤 가까운 친구부터 경계하고 아무 말이나 허타히 해서는 안된다. 자기 흠집이나 빈 틈을 제일 가까운 친구라고 마구 로출시켜서는 안된다. 마끼는 그때부터 나나에 대한 태도와 립장이 180도로 홱 돌아섰다. 그는 이젠 라이벌이 돼버린 나나를 어떻게 망쳐버리겠는가, 무슨 음흉한 수라도 써써 재껴버겠는가, 그 속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리게까지 되였다. 마끼의 머리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천지를 지동쳤다. (그래, 나나가 한 추접스런 알바 비밀을 세상에 꽝 터뜨려 봐. 머리나 들고 학교를 다니겠구나. 흥.) 며칠 후 나나가 교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애들이 미칠듯이 떠들썩하며 박수까지 쳐댔다. “신부 등장! 박수!” “다이로교수와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나나는 깜짝 놀라 애들을 둘러보았다. 마끼는  조소의 빛이 번쩍이는 외까풀눈을 흘기며 머리로 흑판을 가리키며 깨고소해 캐득거렸다.     나나는 흑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흑판에는 “다이로교수와  나나 결혼을 축하해요!”라는 대문짝 같은 글씨가 박혔다. 그 아래 백발로인과 젊은 녀자가 십자가 앞에 걸어가는 그림까지 그려놓지 않았겠는가. 그 뿐이 아니였다. 인체해부학시간에 라체모델로 돼 동생한테 생식기를 구경시키는 그림으로, 교타이모리 스시상에 오른 녀자의  그림으로, 라체로 다리를 벌리고 다이로교수한테 똥을 싸 먹이는 녀자 그림까지 그려놓지 않았겟는가. 그림 아래에 “다이로”와 “나나”라고 딱 찍어 락서까지 해놓지 않았겠는가! ㅋㅋ.       필적을 보면 마끼 필체 같았다. “당장 지우지 못해?” 나나가 애들을 무섭게 둘러보며 호통쳤다. 남자애들은 “우-” 하고 손가락질하며 조소하였다. 어떤 애들은 혀를 삼복지간에 빼문 개 혀처럼 길게 빼물어 내두르며 놀려댔다. “너무 해!” “아무리 조센진(조선인)이래도 그렇지. 너무 해” 여기저기서 간혹 질책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나나는 인차 마끼를 돌아보았다. 그때 마끼는 애들을 말리기는 고사하고 외까풀눈으로 나나를 흘겨보며 조소까지 해대면서 붙는 불에 키질을 해댔다. “사실 아닌가?! 창피한줄도 모르고 학교를 다 다녀?” 진짜 상처에 소금을 치는 격. 찰싹! 나나는 더는 참을 수 없어 손바닥을 부채처럼 펼쳐 마끼의 낯빤대기를 한대 갈겼다. “누굴 쳐?” 마끼도 나나한테 달려들어 허비고 뜯고 야단쳤다.  “야메나싸이(그만둬)!” 갑자기 우뢰소리 같은 고함소리와 함께 다이로교수가 나타났다. 마끼는 교실에 들어서는 아빠를 힐끔 곁눈질해보고 손을 뗐다. 교실은 물 뿌린듯 조용해졌다. 나나도 머리를 틀어쥐였던 손을 놓고 서로 원쑤처럼 쏘아보았다. 다이로교수는 흑판을 돌아보고서야 모든 것을 눈치챘다. 그는  흑판의 그림을 둘러보며 뜻밖에 희쭉 웃으면서 고개까지 끄덕였다. “누가 그렸는지. 참 걸작이로구나! 허허허. 당장 졸업하겠는데 졸업론문은 쓰지 않고 이런 짓거리하면서 놀 새 다 있어?” 다이로는 변태 아닌가? 희스테리가 발작한 사람처럼 허구프게 웃어대더니 핸드폰을 꺼내들고 그림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쥐 죽은듯이 조용한 교실에서는 샷타를 누르는 소리만 들릴뿐이였다. 그 인내와 정적이 마끼랑 애들이랑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다이로교수는 사진을 찍으면서 락서필체를 보고 대뜸 마끼가 한 짓이라는 것을 직감하였다. 그의 내심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일촉즉발할 시한탄과도 같았다. (빌어먹을 계집년, 나와 나나 진상내막은 마끼 밖에 몰라! 그런데 마끼는 내 양딸이고 나나는 내…) 나나는 책상에 머리를 파묻고 가냘픈 어깨를 들먹였다. 마끼는 죄가 두려워 아빠를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바늘방석에 앉은듯이 조마조마해 했다. 그러나 다이로교수는 마끼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이 그림을 지워도 괜찮겠지요? 수고스레 그렸겠는데.” 마끼는 아빠의 퉁퉁한 네모얼굴에 억지로 웃음짓는 퉁사발눈을 정면으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핼끔 곁눈질해보니 웃음 속에 서슬이 퍼런 칼날이 번뜩이고 있었다. 이윽고 다이로교수는 그림을 지우기 시작했다. 마끼는 다이로교수 뒤더수기를 바라보면서 더욱 조마조마하고 불안해났다. 아니,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기 시작하였다.        이제 다이로교수가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겠는가?        마끼한테 무슨 생벼락이 떨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외까풀눈과 청포도쌍겹눈이 마주쳐 불찌 탁탁 튕긴다.        교실에서는 보이지 않는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지동쳤다.        황금은 씨꺼먼 아가리 벌리고 암전을 쏘아 뜨거운 동기애를 쓸어뜨린다.        저고리 동전을 풀어헤치고 피 즐벅한 가슴에서 화살을 뽑아든다.        풀떡풀떡 뛰는 심장이 화살에 묻어나와 비명을 지르며 한 많은 빨간 씨앗을 휘뿌린다.         
285    대하소설 졸혼 제4권 (49) 김장혁 댓글:  조회:1382  추천:0  2022-10-14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권            59. 알바생의 피눈물        은행나무 누런 잎이 우스스 지는 소리  처량한 서정시를 읊는다.      에덴동산의 누런 옷을 갈아입고 맥없이 바람개비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호수물에 은행나무 잎이 톨랑톨랑 뛰여내린다.       숙명의 눈물 방울을 튕귀며 아무런 미련도 없이 땅바닥에 춤추며 우수수 가냘픈 노래 부르며  은행나무 잎이 날아내린다.         상처 입은 누런 입사귀들이 땅바닥에 나뒹굴며 속절없이 흐느끼며 쓰라린 비명을 지른다.       가을의 처량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은행나무 잎사귀 한겹한겹 덧 쌓여가며 땅과 포옹하고 키스한다. 사명을 다 완수한 은행나무 잎사귀들이  후대들의 새 봄 사랑을 미리 선언하며  상처 입은 넓은 가슴에 문안을 드린다.        나나네 오누이는 다이로교수 신세를 너무 져 오희려 오시러웠다. 물론 그의 덕분에 마사지방에 취직도 하고 장학금도 타고 세집살이를 면했지만 어쩐지 불안했다. (준 게 없이 받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안되지.) 나나는 오늘 밤에도 다이로교수의 동생 이찌로네 마사지방에서 마사지알바를 하면서도 내심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이찌로 보스가 오늘 밤에는 느닷없이 마사지방 대청에 나타났다. “광문이, 여기 오라구.” 1층 마사지방에서도 보스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짜증나게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심심해 못 사는 것 같았다. “예. 보스님.” “어제 밤 그거 뭐야?” “뭘 그래요?” “어째 손님을 마사지해주지 않고 나왔어? 손님을 가려서 해서야 되는가?  손님을 다 빼우겠어.” “잘 못했습니다. 다신 안그러죠.” “이달 로임에서 벌금 만원 떼내겠어.” 광문은 허리를 구십도로 굽히며 잘못을 빌었다. “옛,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찌로의 네모얼굴 근육과 봉이눈섭은 노기로 푸들푸들 뛰놀았다. 나나는 기분이 상해 걀죽한 얼굴에 대뜸 먹장구름이 흘러지나갔다. 하나꼬는 카운터에서 그 광경을 보고 외까풀눈을 흘기며 종알거렸다. “아버지, 광문이 불쌍하지 않아요? 한달에 얼마나 번다고 만엔이나 떼내는가요?” “삐치지 말엇!” 이찌로는 퉁사발눈을 부릅뜨며 성을 벌컥 냈다. “마스지방 보스는 네가 아니야.” 그는 원래 무남독녀 하나꼬와는 별로 성낸 적이 없었다. 하나꼬는 아버지 지지벌개진 퉁퉁한 네모낯을 보고 곱잖게 눈을 흘겼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면서 걀쭉한 얼굴에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이윽고 그녀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도도거렸다. “이제 백부한테 일러바치지 않는가 봐요. 백부 보낸 오누이하구 떽떽거린다고.” 그제야 이찌로는 광문을 놓아주었다. 광문은 그때까지 허리를 굽힌 채 까딱하지도 않고 서서 훈계를 받다가 간신히 자리를 떴다. 이찌로는 카운터에 다가가 하나꼬한테 억지로 웃음지어보였다. “귀여운 것아, 내 이러는게 다 널 위한 거야.” “쳇,” 하나꼬는 아빠를 외면하면서 콧방귀를 뀌였다. 이찌로는 하나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걀죽한 얼굴과 외까풀눈을 들여다보며 구슬렸다. “넌 무남독녀 아니고 뭐냐? 아빠 이젠 예순도 넘었으니 돈을 벌어 뭘 하겠느냐? 하나라도 더 벌어서 귀여운 무남독녀한테 넘겨주려는 거지. 아빠 죽으면 이 큰 마사지방을 메고 가겠느냐? 백부도 자식 하나도 없잖니? 우리 형제 건 장차 다 네 거지. 안 그래? 요 귀여운 것아.” 이찌이로는 손수건을 꺼내 하나꼬의 걀죽한 얼굴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 손수건 있어요. 땀냄새 나.” 하나꼬는 아빠의 손수건을 밀어버리며 자기 손수건을 꺼내 닦았다. “이후에는 오누이를 작작 욕하세요. 어려서 부모를 여읜 오누이 불쌍하지도 않아요?” “오- 그래. 알았어.” 이찌로는 하나꼬를 구슬려놓고서도 어제 오누이 행동거지가 속에 내려가지 않았다.  (어제 온 손님과 무슨 원쑤라도 졌는가? 광문이마저 마사지방에 들어갔잖아?) 이찌로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후에도 이찌로는 쩍하면 광문의 흠집을 들춰내 로임에서 돈을 자꾸 뜯어냈다. 물론 하나꼬 몰래 이른바 마사지방의 규칙을 집행한다고 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기 마련이였다. 며칠 안돼 또 조선족 손님이 광문을 찾아왔다. 손님은 예순 좌우 돼 보였다. 그런데 광문은 그 손님을 딱 떼닮지 않았겠는가. 후에 알고 보니 광문의 작은할어버지 성호라고 했다. 그날 광문은 다른 손님방에서 마사지를 해주다가 성호가 찾자 황급히 달려나가 끌어안고 엉엉 울었댔다. 나나도 무슨 일인가고 그리로 달려갔다가 작은할아버지를 보고 붙안고 대성통곡쳤다. 그때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땅에서 솟아났는가? 이찌로가 마사지방에 나타나 손을 홱 저으며 꽥 고함쳤다. “이게 뭔가? 마사지방이 상가집 갔네. 마사지는 하지 않고  울긴 왜 울어?” 그제야 그들 셋은 울음을 끄쳤다.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보스님, 작은할아버지를 오랜만에 보고 그만.” “주책머리 있는가? 영업집에 와서 면회하면 어떡해? 오늘 영업 또 끝장났군.” 그러자 성호는 지갑을 꺼내 5만엔을 꺼내더니 카운터에 가서 하나꼬한테 건넸다. “미안해요. 오랜만에 만나다나니 그만, 이걸 받으세요.” 하나꼬는 이찌로와 오누이를 번갈아보면서 받지 않았다.” 이찌로는 성을 발칵 내며 성호 손에서 지페를 홱 채갔다. “남의 영업을 파괴했으면 이만이야 내야지. 흥!” 뒤이어 그는 광문이랑 나나랑 데리고 조용한 보스실로 들어갔다.  “하나꼬야, 여기 와서 말하자. 괜히 손님들을 다 빼우겠다.” 성호는 이찌로 뒤더수기를 쏘아보면서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고 부르르 떨었다. 밸 같아선 이찌로를 한대 갈겨 주고 싶었다. 주먹이 윙윙 울고 있었다. 그러나 복화(나나)와 광문의 처지를 생각하고 억지로 참으며 주먹을 천천히 풀었다. 하나꼬는 억이 막혀 도리머리질을 하다가 외까풀눈을 흘겼다. “아빠, 왜 이래요? 아빠는 친척도 없고 인정도 없는가요?” 이찌로는 오히려 제쪽에서 노발대발했다. “무슨 허튼 소리냐? 네처럼 인정을 베풀다간 마사지방이 다 망하겠다.” 이찌로는 광문과 나나를 손가락질하면서 나나한테 눈을 흘겼다. “넌 절대 이런 애들과 한데 뒹굴면서 놀지 말라. 네가 정 광문을 동정하면 광문한테 시집보낼 거야.” 그때 나나가 뜻밖에 뭐라는지 아는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몽땅 깜짝 놀라게 하였다. “아빠, 광문한테 시집가라면 못 갈 거 같애? 아빠 자꾸 광문이랑 업신여기면 진짜 광문과 확 결혼해버리잖는가 봐라!” “미친 소리!” 이찌로는 눈앞이 새까매졌다. 그는 머리 아찔해나 부둥켜안았다. “얘, 정신나갔잖았니?” 그는 하나꼬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머리도 뜨겁지 않고 정신도 올똘똘한데.” 이찌로는 하나꼬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정신 나가잖았으면 왜 그런 미친 소릴 칠 수 있느냐? 일순간 성이 나 한 소리지?” 하나꼬는 측은한 눈길로 광문을 바라보다가 그의 손을 잡고 보스실에서 나가며 도도거렸다. “어째 다 같은 일해도 광문의 로임은 항상 적게 줘요? 그게 어디 공평한가요?” “얘, 그 손 놓지 못하겠느냐?” 그러자 하나꼬는 광문의 팔까지 끼면서 기를 채웠다. “또 광문일 욕해보지. 래일 당장 얘하구 결혼식 올리잖는가 봐.” “광문아, 내 딸 손 놔라! 이 놈, 언감 금이야, 옥이야 하는 공주 손을 마구 잡아? 어서 놓지 못할가?!” 광문은 덴겁해 하나꼬의 손을 풀려고 했다. 그러나 나나는 대수로워 하지 않았다. 그녀가 내뱉은 말은 더 충격적이였다. “괜찮아. 난 네가 마음이 고와서 사랑하고 있어. 일본 남자들은 다 바람둥이야. 아빠처럼 모두 안팎이 달리 독해. 겉으로는 웃으면서 깎듯이 인사해도 돌아서면 잔등에 칼을 박는 음흉한 자들이야. 난 성실한 조선인 광문이 제일 좋아.” 이찌로는 울상이 돼 보스실에서 나가며 애원했다. “아이구, 우리 집안 망했구나. 하나꼬야. 죠센진(조선인)과는 절대 안돼. 광문아, 그 더러운 손 놔라. 제발 놔라! 하나꼬야!” 하나꼬는 기를 채우려는지 아빠를 돌아다보지도 않고 콧바귀를 “흥” 뀌였다. 성호는 자기 때문에 광문이네 오누이를 욕보이는 거 같아 저으기 미안했다. 그는 보수실 앞에 가서 허리굽혀 낮은 문턱에 들어갔다. “보스님, 스미마센(미안합니다). 제가 그만 오랜만에 손자손녀들을 만나서 기쁜 김에 떠들썩해 미안해요.” 이찌로는 거들떠도보지 않으면서 두덜거렸다. “젊은게 할아버진가? 그 할애비에 그 손군들이구먼. 어쩜 모두 조용히 할줄 몰라도 한창 몰라? 죳도 시즈까데 꾸다싸이(좀 조용해 주세요).” 성호도 일본인들이 특별히 “시즈(静)까“를 선호하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조용한 것은 일본인들뿐만이 아니라 독일 사람들 그리고 한국인들 어느 나라 인들이 좋아하지 않겠는가. 유독 대륙 사람들은 식당에 가나 어디로 가나 목주래를 빼들고 떠들기를 좋아하지. 섬나라 사람들은 “조용한” 걸 좋아하고 뭐나 겉에 드러내지 않고 참는 인내성이 강하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젤 음험한 뭔가를 온양하는 무서운 독종들이였다. 아무리 욕해도, 귀뺨을 얻어맞으면서도 상전 앞에서 “하이”, “하이” 하고 참는다. 그러나 인내성이 한계를 넘으면 비수를 뽑아 상전이고 부모고 뒤잔등에 찌르고 자기도 할복해 자살하는 독한 스찔이 있다. 성호와 광문, 나나, 그들의 극적인 만남과 환희는  “시즈까”라는 리성의 방뚝을 허물고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찌로는 가히 량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찌로는 인내성이 한계에 이르러 세길네길 뛰였다. 그는 보스실에서 나가더니 광문을 한쪽으로 나지막하게 불렀다. “이리 와.” 목소리는 낮아도 보스의 위엄이 있었다. 하나꼬는 아빠를 흘겨보았다. “뭐하려고 또 불러요. 좀 약자를 너무 업신여기지 말아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힘들게 사는 오누이를 작작 괴롭혀요.” 이찌로는 하나꼬가 뭐라든 개의치 않았다. “너, 오늘부터 마사지방에 들어가지 말라. 울안이나 쓸어라.” 광문은 나지막하게 “예.” 하고 대답하고 빗자루를 가지러 창고 쪽으로 갔다. 하나꼬는 아빠 손을 잡고 애원했다. “아빠, 진짜 이럼 난 광문과 결혼해버릴 거야.” 이찌로는 멍해 하나꼬를 돌아보더니 변명했다. “은행나무 잎이 널려 손님들이 게으름뱅이네 마사지방이라고 하잖겠니?” 하나꼬는 아빠한테 다가서며 외까풀눈을 치켜뜨면서 바투 들이댔다. “그럼 마당을 다 쓸면 광문이를 계속 마사지를 시키는 거죠?” 이찌로는 툭 튀여나온 퉁사발눈을 띠룩 굴렸다. “오, 그래. 마사지 시키지.” 광문은 빗자루를 찾아들고 마당에 널린 은행나무 잎을 썩썩 쓸기 시작했다. 그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도 쓸고 서러움도 썩썩 쓸었다. 쓰레받기에 피눈물과 함께 쓰라린 알바도 쓸어담았다. 나나는 보다 못해 돌아서서 어깨를 들먹였다. 동생이 불쌍해 차마 보기도 눈물겨웠다. (무슨 로동개조라도 시키는 건가? 이 놈 집에서 알바 못하겠다,) 옆에서 보는 성호는 속이 더 쓰라렸다. 10여년만에 일본까지 와서 감격적인 상봉을 했건만 못 볼 것을 본 것 같아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얼마나 고생스레 살아왔겠는가.  어쩜 얘들을 이렇게도 못살게 군단 말인가?) 이찌로는 나나를 손가락질하면서 호통쳤다. “울긴 왜 울어? 마사지방을 초상집으로 만들 예산이냐? 어서 손님 방에 들어가지 못해?” 이찌로는 보스실에 들어가면서 지지벌거렸다. “저 오누이 때문에 영업 다 망쳐 먹게 생겼어. 형님은 왜 저런 애들을 보냈어?” 그는 보스실 문을 닫고 두덜거렸다. “뭘 보고 형님은 쟤들을 나꿔? 나나 반반한 얼굴 보고? 흥!” 성호는 밸 같아선 당장 나나와 광문을 훌 끌고 이 놈의 마사지방에서 나가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나 눈치를 보고 그만 두었다. 하나꼬는 보스실에까지 따라들어와 푸념질했다. “아빠, 작작 오누이를 섧게 굴어요. 오누이 가면 우리 마사지방이 망가져요. 걔들 얼마나 성실하고 부지런히 일했어요? 오누이 찾는 단골부부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흥!” 이찌로는 하나꼬의 말에 오히려 밸을 왈칵 썼다. “넌 걔들하구 휩쓸리지 말아. 광문과 친하지 말라. 정 그럼 오누이 둘 다 쫓아내겠어.” “뭐라고? 쫓겠다고?” “못 쫓아낼 거 같아?” 하나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빠, 순박한 농민 감정 어디로 갔어요. 시내에 와서 많이 변했어요. 광문이를 쫓아내면 난 광문과 도망가지 않는가 봐요.” 이찌로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하나꼬! 제정신 있니? 도망간다고?” “그럼 도망가 결혼하지 못할 거 같애?” 그제야 이찌로는 누그러들었다. “그러지 말라. 아빠 잘 못했어. 넌 내 무남독녀야. 넌 내 생명의 모든 게야. 넌 형님과 나의 생명 연속의 전부야. 네가 도망가면 아빠 죽어.” “그럼 광문을 잘 대하세요.” 이찌로는 보스실에서 달려나가 하나꼬의 손을 다잡고 거듭 머리까지 조아리면서 다짐했다. “그래. 알았어. 잘 대할게.” 그러나 속으로는 이빨을 악물고 못된 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리고 있었다. (집 안에 도둑놈을 기를 순 없어. 광문을 쫓아내지 않다간 귀여운 딸애마저 두둑맞히겠다.) 그렇다. 대개 일본 사람들은 속으로는 굴하지 않지만 컽으로는 꼽싹꼽싹 허리 굽히며 “하이”, “하이” 하는 습관이 있었다. 하나꼬는 음흉한 아빠의 퉁사발눈을 꿰뚫어보고 앙심을 먹은 아빠의 심보를 꿰뚫어보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녀는 아빠 손을 잡아 끌고 보스실로 되들어갔다. “이찌로선생, 귀를 까시고 명심해 들으세요.” 그녀는 아빠 손아귀에서 손을 핵 뿌리치면서 외까풀눈을 흘기며 위협조로 호통쳤다. “이제 광문을 쫓아내는 날엔 난 진짜 광문과 함께 도망친다는 걸 아세요.” 이찌로는 겁기 띈 퉁사발눈으로 하나고를 바라보며 애원했다. “그러지 마. 제발 그러지 말라. 내 애간장을 태우는 거 보려고 이래? 엉? 아빠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사랑하면 명심해두세요.” 하나꼬는 아빠의 약점을 딱 틀어쥐고 다짐을 단단히 땄다. “첫째, 광문을 쫓지 못해요.” “그래, 그래. 네만 도망치지 않으면 백가지라도 대답하마.” 하나꼬는 손꼽아가면서 다짐을 땄다. “둘째, 다른 일본인 안마사만큼 보수를 줘야 해요. 일전한푼 골아도 안돼요.” “그래. 그래.” “광문이네 오누이 주숙할 방을 하나 무료로 내줘야 합니다.” 이찌로는 억이 막혀 입을 버치처럼 쫙 벌렸다. “얘, 형님이 나나넬 세집 마련해줬다던데 왜 여기다 또 방을 마련해야 해?” “오누이 쓸데 없는 교통비 팔면서 한밤중에 집으로 가려면 힘들잖아요?” 이찌로는 기막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일본인 안마사들보다도 우대하는데. 이 집 보스는 너냐? 내지.” 하나꼬는 외까풀눈을 곱게 흘기며 아빠를 얼리고 닥치고 했다. “딸의 말 안 듣겠으면 말아요. 아빤 왜 어려서 부모 잃고 의지가지 없이 사는 오누이를 그렇게 괴롭히는가요? 아빠도 딸 가진 분 아닌가요? 상처도 많은 오누이한테 왜 새 마음의 상처를 주는가요? 바꿔 놓고 당신 딸이 남의 집에 가서 일하면서 상처받으면 좋겠는가요?” “어느 놈이 감히 내 따님을, 흥! 가만놔둘 거 같애?” 이찌로는 딸의 말에 끌려들어 한바탕 열변을 내쏘고나니 딸한테 진 것 같아 하나꼬한테 허구픈 웃음을 지어보였다. “쟤들은 쟤들이고 넌 네야. 넌 달라. 내 귀공주야. 알아?” 하나꼬는 아빠한테 눈을 흘기더니 정색했다.   “이젠 더 길게 말할 필요없어요. 랠 당장 광문과 함께 달아나 살겠다니깐.” “얘, 제발 그러지 마.  내 귀여운 딸아. 다 들어주마.” 하나꼬는 아빠를 끌어안고 네모번듯한 지지벌건 얼굴에 뽀뽀를 뽁 해주었다. 하나꼬가 보스실에서 나와 광문이네를 찾았다. 그런데 바깥 울안에서 처량한 울음소리 들리지 않겠는가. “엄마-“ “아버지-“ 오누이가 글쎄 오누이와 할아버지 서로 부둥켜 끌어안고 엉엉 대성통곡치지 않겠는가. 하나꼬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광문아, 울지 마. 네가 울면 난 죽을만큼 괴로워. 울지 말아요.” 그들 넷은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쳤다. 이찌로는 광문이랑 꽉 껴안고 우는 하나꼬를 먼발치를 내다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생에 가진게 많은 자의 게트름소리 꼬리치며 운명의 음흉한 칼질을 하고 있다.        처랑햔 울음소리에 맞춰 속절없이 은행나무 략엽이 지는 소리 더 쓸쓸해진다.         전생에 무슨 죄라도 지었소?        땅바닥에 나뒹구는 은행나무 락엽처럼 알바생 오누이 피눈물나는 고행 눈물겹기만 하구나. 
284    대하소설 졸혼 제4권 (48) 김장혁 댓글:  조회:1477  추천:0  2022-10-11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권            58.  변강쇠의 뒷모습        사랑 한담패설 꼬리가 창문을 두드리며 기생거리에 추파를 보내고 있다.      가을 밤의 소슬한 바람에 은행나무 락엽이 우스스 지며 고즈넉한 밤의 정적을 깨운다.      아가씨들의 체취 추파를 타고 해물관에 사뿐 보선발을 들여놓으며 미소짓는다.      유혹의 분내가 해물관 술상에 타리대를 치고 앉아 맥주잔을 기울인다.      변강쇠의 혼이야 벌써 유령처럼 기생거리에 날아가 아가씨들의 체취에 취해 목마를 타고 팔자걸음을 친다.      정호 우멍눈에는 색갈에 갈망의 빛이 번쩍였다. 그는 이상한 불길이 활활 타번지는듯한 우멍눈길로 자꾸 창문 밖에 지나가는 화복차림의 아가씨들을 흘끔흘끔 곁눈질했다.      그는 웃고 떠드는 일본 아가씨들을 쳐다보면서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황선희 말하던 교토 기생거린 거 같아. 어서 가봐야지. 내내 쫓겨다니다나니 어디 일본 아가씨 맛 볼 새 있었니?  에잇 참, 개판이야. 언제 붙잡힐지도 몰라. 기생거리 코밑까지 왔다가 평생 소원도 못 끄고 말겠는가. 일본 간나새끼들을 깔고 들어앉아 질탕하게 놀아봐야지.) 정호는 아가씨들을 멍해 내다보며 마른 입을 쩝쩝 다시였다.   나영은 맥주잔을 들어 정호의 우멍눈 앞에 대고 휘저었다. “여보쇼, 최사장, 호호호. 맥주 안 들래요.” “어, 그래. 한잔 들자구.” 나영은 해쭉해쭉 웃으며 지껄였다. “어째? 일본 아가씨 생각나는가요? 어데 가서 실컷 발산해보세요.” “엉? 아, 아니. 난 나영만 있으면 돼.” 정호는 그제야 제정신이 펄쩍 들어 술잔을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잔 마시기오.” “호호호. 우리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술잔을 굽내자 정호가 바지멀춤을 춰 입으면서 바쁜 소리를 했다. “내 소피 보구 올게.” “올 때 아이스크림 몇대 사오세요.” “오. 그래.” “배낭을 인주세요.” “아니, 근심 말어." 금은보화 들어찬 배낭만은 손에서 떨어질 수 없었다. "배낭메고 갈테야. 인차 올테니깐.” 나영은 모든 걸 눈치챘다. 정호는 며칠만 오입하지 않으면 못 견딘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화장실에 가? 이 해물관에도 화장실 있을 건데. ㅋㅋ. 오줌 마려워? 아니지. 다른게 더 마렵겠지. 본 병이 뛰여나올 때도 됐지. ㅋㅋㅋ.) 그는 문 밖을 나서자 뒤를 힐끔 되돌아보았다. 나영이 따라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기다리던 시각인가. 일본 와서 일본 아가씨 하나도 맛보지 못하고 어떻게 떠나가겠는가. 허허허.” 정호는 국내외 어데를 관광하러 가도 꼭 먼저 산수경치를 구경하고 밤이면 꼭 당지 아가씨를 맛봐야 시름 놓았다. 그렇잖으면 꼭 두고 두고 후회하군 하였다. (절대 일본에서 후회를 남길 순 없어.) 그는 이전에 순정과 함께 관광갈 때마다 순정한테 관광기념품을 많이 사주고 기뻐하는 틈을 타서 스리슬쩍 빠져나가 당지 기생들을 맛보군 하였다. 오늘도 례외가 아니였다. 일본에 건너와서 도쿄 시내 아가씨도 데리고 놀지 못하고떠났 것이다. 그게 내내 속에 내려가지 않았다. 그는 나영을 떼놓고 기생거리에 들어서자 흥분을 갈아앉히지 못했다. 뒤이어 그는 해물관에서 잘 보이지 않는 왼쪽으로 굽어들었다. 뒤를 흘끔 되돌아봐도 꼬리가 없었다. 그는 부랴부랴 큰 길을 꿰질러 쥐새끼처럼  달려지나갔다. 삑-삑- 교통경찰이 호르래기를 불렀다. “왜 인행횡도도 아닌 데로 건넙니까?” 정호는 들었는둥 마는둥 큰길을 건너 기생골목에 불여우처럼 굽어들었다. 기생집마다 문 앞에 벌건 초롱과 연분홍초롱이 디룽디룽 걸려 있고 문 옆에 화려한 화복을 입은 이쁜 아가씨들이 비단필처럼 촘촘히  줄느런하게 늘어서서 웃음 팔면서 손님을 기다렸다. “어서 오세요.” “아니상(오빠),잘 모셔드릴게요.” 걀죽하게 생긴 이쁜 기생이 연분홍 초롱불 아래서 몸을 배배 탈며 청아한 목소리로 유혹했다. 정호는 기생거리를 더 구경하려고 못 본체하며 계속 앞으로 걸어나갔다. “에이씨, 오늘 마수걸이도 못하겠구나.” (아니, 저게 한국 말을 해? 한국 계집인 모양이구나.) 정호는 깜짝 놀라 되돌아보았다. 아가씨도 그를 응시하며 해쭉 웃어보였다. 정호는 되돌아가 물었다. “한국 아가씨인가요?” “네. 오빠 어서 들어오세요. 일본 아가씨는 3만원이나 하는데요. 우리 한국 아가씨와 대륙 아가씨는 한번에 2만원 밖에 안 받아요. 더 싼 것도 있는데요. 조선족아가씬 만원 밖에 안 해요. 그래도 우리 한국 아가씨가 비싸지도 않고 눅지도 않고 젤 좋지요. ㅋㅋ” 그러나 정호는 조선족을 깔보는 거 같아 슬그머니 아니꼬왔다. “그게 그게겠지. 기생년 주제에 민족기시를 해?” 욕설을 퍼부우려다가 웃는 낯에 침을 뱉을 수 없어 그만뒀다. 그는 점잔을 빼면서 될수록 부드럽게 말했다. “미안해유. 일본에 와서 일본 아가씨를 맛봐야죠. 일본 년들 거기에 황금테라도 둘렀나? 우리 겨레 아가씨들을 깔보는 섬나라 오랑캐년들 죽여줘야지!” “오빠, 대륙 동포 같은데요. 불쌍한 누이를 좀 도와주면 안돼요. 그게 겨레애 있는 사내재장부라요.” 정호는 그저 지나갈 순 없어 아가씨를 따라 들어갔다. “고마워요. 오빠, 잘 모셔드릴게요.” 아가씨는 허리를 구십도로 굽히며 곱게 인사했다. 비좁은 단칸방에는 아가씨들이 여럿이 앉아 있었다. 그녀들은 정호가 들어서자 눈인사를 하며 자리를 피해주었다. 아가씨는 다른 방에 가서 화복을 벗고 짧은 치마로 갈아입고 돌아왔다. 그녀는 정호 팔을 끼더니 침대 쪽으로 안내했다. "이름 뭐라고 부르지?” "미희라고 불러요." "어디서 왔지?" "부산에서 왔어요. 저기 일본 대마도 알죠? 저의 고향 대마도에서 별로 멀지 않는 어촌마을에 있으니께." "오- 그래?" 순간, 정호는 번개불처러럼 피뜩 령감이 떠올랐다. (미희하구 련계해 배를 타고 부산으로 도망가면 어떨가? 그래.) 그는 눈이 새까맣게 기다릴 나영의 청포도눈이 떠올랐다. 그는 앞날에 리용가치를 따져서 미희한테 백딸라짜리 두장을 꺼내들었다. 아가씨는 짧은 치마를 훌렁 들어보이며 꼬셨다. 부드러운 연분홍네온등 불빛아래 하얀 허벅다리가 매력의 꼬리를 쳐들고 하느작거렸다. “아니오. 이 돈 받소. 친누이 같애 차마 못 그러겠소.” “아니, 무슨 일 그리 급해요.” 아가씨는 눈이 데꾼해 이상하게 정호를 여겨보았다. “혹시 무슨 힘든 리유라도 있는가요?” 정호는 딸라 두장을 뿌려주고 나오며 정색해 말했다. "후에 무슨 일 있으면 올게."  아가씨는 딸라를 주어들고 흔들면서 "오빠, 일 있으면 꼭 저를 찾으세요." 하고 간드러지게 소리쳤다. 그녀는 자못 아쉬운지 거듭 허리굽히며 인사했다.  "딸라 고마워요. " 캐득캐득, 키득키득. 등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 정호는 옆방 문 앞에 가서 일본 아가씨들한테 눈길을 돌렸다. 화려한 화복차림의 일본 아가씨 걀죽한 외씨얼굴이 꽤나 이뻤다. 일본 아가씨는 여우처럼 해쭉거리며 꼬리를 살래살래 저었다. “어서 오세요. 아니(오빠)상, 잘 모셔드릴게요.” "이름이 뭐지?" "사꾸라예요." 정호는 다짜고짜 사꾸라를 보고 호통쳤다. “너네 일본 년들이 금테라도 둘렀니? 뭐 그리 대단해 만엔이나 더 받아? 기생 주제에  민족기시를 다 해?!” “웬 놈이 떠들어?!" 갑자기 등뒤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  정호가 홱 돌아섰다. 웬 무사 화복차림의 일본 사내가 비수를 뽑아들고 퉁사발눈을 부릅뜨고 고함치며 다가왔다. "더러운 죠센진, 우리 일본 아가씨를 지껄여? 흥! 어디 죽어봐라." 미희랑 사쿠라랑 숱한 기생들이 여기저기서 나와 구경했다. 일본 사내들이 아니꼬운 눈길로 정호를 쏘아보았다. 정호는 또 관용된 반격동작을 했다. "아니, 제발 살려주소. 이 배낭 안의 금은보화 줄게." "뭐? 금은보화?" "예, 예. 꺼내 줄게." 정호는 배낭을 내려 열고 금팔찌 하나 꺼내 내밀었다. 그 놈은 멋도 모르고 다가와 비수를 내리며 손을 내밀어 금팔찌를 받아쥐려고 했다. 순간, 정호는 번개같이 날아오르며 발길을 날려 비수를 차 떨구었다. 거의 동시에 무릎으로 턱주가리를 걷어차올렸다. "억!" 그 놈은 허리를 굽히며 비명을 질렀다.  "얏! 태권!" 정호는 씽 한고패 몸을 돌리며 그 놈의 아래배를 걷어찼다. "억!" 외마디비명소리와 함께 그 놈은 보기좋게 푹 꺼꾸러졌다. 정호는 하늘로 씽 날아올랐다가 뛰여내리며 무릎으로 그 놈의 옆구리를 꽝 짓쫗았다. 그 놈은 죽는 소리를 지르며 까딱하지도 못했다. 아마 륵골이 몇대 분질러졌을 것이다. "조선 사람들을 다시 기시해봐라! 죽여치운다. 흥! 더로운 일본 놈새끼. 퉤!" 미희랑 사쿠라랑 정호 날랜 동작에 탄복해 혀를 끌끌 찼다. 그때 일본 사내들이 욱  달려들었다. 정호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씽-씽- 날아다니며 일본 놈들을 치고 차 눕혔다.  삑- 삑- 경찰들이 호르래기를 불며 달려왔다. 그제야 싸움은 끝났다. 정호는 금팔찌를 주어 배낭에 챙기고 메고 골목으로 도망쳤다. …        한편 나영은 소피보러 간다던 정호가 인차 들어오지 않자 버럭 초조해났다. 정호가 결산도 하지 않고 나갔기에 해물관에서 한발자욱도 나갈 수도 없었다. (보나마나 또 일본 아가씨 맛보러 갔겠지.) 나영은 정호가 어떻게 거짓말 하는가 보려고 해물관 카운터에 가서 자기 지갑을 꺼내 결산해버렸다. 다행히 정호가 나눠준 비상용 딸라 한 묶음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카운터 보고 “피뜩 나갔다가 돌아와 먹겠으니깐요. 상을 치지 마세요.”라고 부탁해두었다. 뒤이어 그녀는 해물관에서 나와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큰길 맞은 쪽에  연분홍초롱불이 줄느런히 걸린 환한 골목이 피뜩 눈에 들어왔다. “저기겠구나.” 나영은 도적고양이처럼 발끝걸음으로 맞은켠 골목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골목 한쪽으로 해 숨어 동정을 살폈다. 저쪽에서 변강쇠가 기생 골목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영은 황급히 기생골목에서 빠져나와 큰길을 건너왔다. 이윽고 정호가 해물관에 들어섰다. 나영을 흘끔 보니 홀로 고독하게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나영을 여겨보았다. 억지로 웃음짓는 나영의 까만 포도눈동자에 불타는 질투와 어두운 실망의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미안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나영은 억지로 격분을 갈아앉히며 나직이 말했다. “소피 보러 간게 왜 그리 오래요?” “어! 허허허.” 정호는 자리에 앉아 맥주잔을 들고 바깥을 내다보면서 번개같이 속궁리를 굴렸다.  (금방 있은 일을 다 말할가? 한국 아가씨 미희를 만난 일만 말할가? 배를 타고 한국에 건너갈 일을 말해보느라고  늦었다고 훌 말할가?" 그러나 인차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절대 말해선 안돼. 황선희를 봐라. 죽자살자 하던 년이 배신하잖았어? 나영이라고 례외겠는가. 나영이 배신하면 배를 타고 한국에 도망칠 길까지 막혀버려.)       기실 정호는 황선희를 보고 한국 출국비자를 해라고 부탁해놓음으로써 딱 마치 오사카공항으로 해 한국에 도망갈 가상을 꾸몄다. 황선희가 고발해도 경찰들의 시선을 공항쪽으로 돌려놓고 한국 기생 미희와 거래를 해 배를 타고 한국에 도망칠 궁리를 했다.      그러나 정호는 나영한테 그런 말까지 하잖고 홀딱 벗겨질 거짓말을 했다. “공중화장실찾기 힘들더구만. ㅎㅎ. 오래 기다리게 해  미안해.” 나영은 가랑잎으로 자기 눈을 가리고 야옹 하는 정호가 가소로웠다. “아이스크림은?” “추운데 무슨 아이스크림이야?” 나영은 단통 뽀로통해났다. “제 좋은 멋에 내 부탁은 서울에 감투끈이 돼버렸군요.” “아니야. 그만 급히 소변 보고 오다나니 깜빡 잊었어.” “쳇!” 나영은 콧방귀를 뀌였다. “이제라도 사올가?” 정호는 일어나기까지 했다. “아니, 그럴 필요없어요.” 나영은 안팍이 다른 변강쇠 뒷모습을 밟아보고 실망했다. 순간 모든 믿음이 와그르르 무너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동영상을 찍은 걸 보이며 한바탕 해낼가 하다가 그만 두었다. 대신 에둘러 비양거렸다. “소원 성취했으면 됐어요. 오줌을 쏴 씨원히 내싸고 나면 얼마나 씨원하겠어요? 안 그래?” 정호는 깜짝 놀랐다. (다 눈치챘구나.) 정호는 몸둘바를 모르면서 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실망의 포도눈동자를 보는 순간 마음 한쪽 구석이 좀 쓰르르해났다. (별수 없어. 그렇다고 일본 아가씨를 놀지 않을 순 없지.) 그는 왕게 다리를 쑥 뽑아 나영의 입가에 가져다 주며 입을 틀어막으려고 서둘렀다. “래일 교토 시내 쏘핑이나 하지. 화려한 옷 몇벌 사 입소.” 쏘핑한다는 말도 나영의 실망에 찬 포도눈동자를 가셔주지 못했다. 눈시울에 소외감과 실망감이 가득 찬 눈물이 그윽하게 담겼다가 수척해진 가냘픈 두 볼을 적시며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녀가 아찌 다 알겠는가,  일본 시내에는 도처에 기생집이 있어 소피 보는 시간이면 얼마든지 오입할 수 있다는 것을.      기실 정호가 바라는 자유는 기실 일본에서처럼 성해방하고 섹스자유를 누리는 짐승 같은 본능적인 자유, 제일 저급적인 자유였다. 젤 추접스러운 자유가 아닌가.       나영은 정호의 우멍눈을 흘끔 쳐다보고 머리를 폭 숙이면서 한숨을 호- 내쉬였다.    (변강쇠는 수캐야. 그저 수캐처럼 아가씨들이나 쫓아다니는 색마야. 성해방과 섹스자유를 선호하는 수캐에 불과해.)  
283    대하소설 졸혼 제4권 (47) 김장혁 댓글:  조회:1316  추천:0  2022-10-10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권                        57. 실망의 포도눈동자         공포의 바람이 꼬리치면서 정수리를 무섭게 휙- 스치고 지나갔다.         까만 포도눈동자에 불꽃이 튕기면서 아찔해났다.         (누굴가? 경찰이 아닐가?)         나나가 신깐센 렬차 화장실 문을 열고 누군가 쳐다보았다.        살기등등한 눈확에 우멍눈이 자기를 쏘아보지 않겠는가.        (앗!)        나영은 어망간에 비명을 질렀다.        숱한 려객들의 의아한 눈길이 일제히 화장실 쪽에 쏠렸다.        다행히 경찰은 아니고 정호였다. 그럼 경찰도 아닌데 나영은 왜 비명을 지르면서 놀랐을가? 그녀는 화장실에서 나와 우멍눈을 피해 다른 바곤으로 스리슬쩍 가버렸다. 자칫 아는 사이라고 하면 경찰한테 잡힐가 봐 미리 모르는체 하자고 약속하고 각기 다른 바곤에 나뉘여 앉았던 것이다. (최국장이 금방 화장실에서 한 말을 다 듣지 않았을가?) 나영은 바로 그게 두려워 정호를 보고서도 놀라 그만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그들 둘은 다 보이지 않는 눈길이  여겨보고 있는 것 같아 서로 모르는 척하며 갈라졌다. 정호는 우멍눈으로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나영을 보고 웃지도 않고 놔버렸다. 숱한 눈길도 잠잠히 자리를 옮기는 나영을 보고 의문을 풀려고 뒤따라갔다. 나영은 너무나도 놀란 가슴을 눅잦히면서 한 바곤 더 건너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는 차창 밖으로 휙휙 뒤로 밀려가는 어둠을 내다보면서 장탄식했다. 그녀의 까만 포도눈동자에는 실망의 그늘이 서서히 비꼈다. 복스럽던 복숭아 이마에는 잔주름이 건너가기 시작하였고 눈확에는 추적당한 공포흔적이 거므스름하게 찍혀 있었다. (자유, 자유! 자유를 찾아 수많은 간난신고를 겪었건만 차례진 것이  뭔가? 이게 자유인가? 날마다 심장이 두근닥근하게 쫓기워다니는 꼴, 이게 바로 자유란 말인가?) 그녀는 금방 아들과 충격적인 화상대면을 한 후 정호를 따라다니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새 감옥은 가지 않고 향수했다. 석달 동안에 섬나라 구경도 잘했다. 후지산, 도꾜, 오사까, 혹가이도 가보지 않았던가. 도쿄 아끼하바라거리나 긴자거리에 가서 쏘핑도 하고, 고운 일본 옷을 사입기도 했지. 내 새 화복을 입고 곱게 화장하고 나서면 행인들은 진짜 일본 아가씬가 할 지경이였지. 도꾜만에서 유람선도 탔지. 1만 2천엔짜리 신선로 왕게, 오, 산해진미도 맛있게 먹어보았지. 남자 같지 않은 철석의 성학대를 피해 행복했다. 거의 반년 동안 진짜 변강쇠와 거의 날마다 오르가슴에 올라보았어.) 그녀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모든 공포를 잊고 가슴이 설례여 혼자 쌔무룩이 웃었다. (진짜 온 몸이 찡찡 전기 통하는 듯하고 하늘에 붕 뜨는 기분이였지. 철석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진짜 남자 자극이였지. 말초신경까지 짜릿짜릿한 자극, 숨이 넘어갈듯한 흥분. 오- 온몸이 해나른해나게 너무 행복했어.) 그 설레이는 기분은 잠시뿐, 이윽고 그녀의 눈동자에는 실망의 그늘이 서서히 퍼졌다. (비록 자유를 박탈당하진 않았지만 형용하기 어려운 간난신고를 다 겪었지. 최국장이 말하는 자유를 찾아 온 대가가 무엇인가. 그저 자유란 성해방과 섹스자유를 말하는 건가? 항상 경찰들한테 쫓겨다니면서 발편 잠을 자지도 못했는데 자유인가? 국내에서는 항상 하늘을 이불 삼아 덮고 풍찬로숙하면서 흑룡강성으로부터 숱한 성과 도시를 도적놈처럼 오토바이와 택시를 타고  S시까지 야반도주했지.)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젠 경찰들한테 쫓겨다니던 나날을 생각하면 진절머리났다. 온 몸에 소름이 쪽 끼쳐 더 회상하기조차 싫었다. (자유는 기실 변강쇠와의 섹스자유였지. 그 놈의 거물에 하신이 마구 피터지면서도 짜릿한 맛이 좋아 내내 그 지랄을 했지. 섹스자유 대신 잃은 것도 많지. 사실상 우리 가정은 깨졌고 남편도 버렸다. 날따라 성림이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야.) 쓰라린 눈물이 실망에 찬 눈동자를 스르르 덮어버렸다. (이제야 뭐, 뭐 해도 모성애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뭐니 뭐니 해도 내 마음 속에는 아들뿐이야. 내 품속에서 나온 성림이 제일 크지.) 그러나 나영은 아들을 볼 수 없게 됐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경찰들에게 나포돼 감옥에 들어가야 해. 몇년 감옥살이 하겠는지? 아들도 만나지 못해. 성림도 감옥살이 하는 엄마를 보면 얼마나 울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영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아니야, 절대 그런 모습 보여줄 순 없어. 황차 내가 탐오죄를 낱낱이 탄백하고 자수한다고 해도 몇년 징역을 감형하겠는지도 몰라. 박동묵 국장이나 저승사자 최혜영 국장이 한 승낙도 확실찮아. 철석이 말을 믿을 순 없어. 나를 빨리 돌아오게 하려고 박국장이 관대하게 처분한다고 꿍꿍이를 꾸몄을 수도 있어.) 현실은 그녀로 하여금 쫓겨다니면서도 감옥살이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쪽으로 또다시 기울게 하였다. 신깐센 렬차는 어느덧 잠간 사이에 교토 역에 들어섰다. 역광장까지 나가니 정호가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들은 서너메터 간격을 두고 웅멍눈과 까만 포도눈을 마주 치고는 서로 소 닭 보듯하는 척했다. 그런데 거의 마지막 사람까지 나오는 걸 써캐 훑듯해도 황선희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정호와 나영은 불길한 감이 들었다. 정호는 비상용 손목시계핸드폰을 쳐들었다. 아무리 핸드폰을 쳐도 받지 않았다. “달아나겠으면 달아나라지. 오히려 언니 없으면 더 자유로울 거 같애요.” 나나가 도도거리자 정호는 우멍눈이 튀여나올 지경으로 데꾼해졌다. “무슨 소리야?” 나나는 스리슬쩍 그럴듯하게 돌려댔다. “셋이 붙어다니면 꼬리 밟히기 더 쉽잖아요?” “아니야. 우리 한국에 달아나기 전엔 일본통인 황박사 필요해. 그를 리용해야 할 일이 많어.” 그 말에 나나는 입에 빗장을 지르고 공포에 찬 포도눈으로 사위를 살폈다. 그 사이 정호는 팔을 내리더니 손목시계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황박사, 웬 일이야, 지금 어딘가?    황선희한테서 인차 메시지 왔다.    호텔에 비자를 두고 와서 떨어졌어.  나영과 함께 교토 일지화(一枝花)거리에 가서 놀라구. 큰길 하나 건너면 기생거리야. 일본 아가씨, 한국 아가씨 비단필처럼 꽃혀 있어. 변강쇠 손을 펼 때 왔어. 얼마나 좋아? 소원성취 하게 됐어.   쓸데 없는 소리 말고 어서 교토에 오라.    며칠 후에 갈게. 내 도쿄서 류학시절 도사 야마구찌 다이로교수를 만나보고 가야겠어.   우릴 저승사자한테 물어먹진 않겠지?   사람을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린가?   좋다. 한가지 부탁하자.   뭔데요? 우리 한국에 갈 비자를 맞아달라.  공항에 차압당한 금은장신구와 딸라를 찾아달라. 우린 체포될 가 봐 찾지 못해. 그걸 찾아다달라.   힘들어요. 당신 김사장 려권 있어야지.   쿄토에 오면 김사장 려권 줄게.   알았어요. 다이로교수한테 부탁해보죠. 그는 사회관계가 아주 넓습니다. 문자도 길게 하지 맙시다. 보이지 않는 눈이 우릴 여겨볼 수도 있어요. 행운을 빕니다. 빠이, 빠이! 변강쇠! ㅋㅋ   정호는 나영을 돌아보았다. “위험해. 빨리 자리를 뜨자.” 나영은 대답도 할 새 없이 황급히 정호를 뒤따라갔다. 정호는 택시를 보자 손을 척 들었다. 그들은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교토역 광장을 빠져나갔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정호는 벙어리 상을 하면서 웃호주머니에서 필을 꺼내 손바닥에 일어로  다음과 같이 썼다. “一枝花마찌에 갑시다.” “네?” 운전수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기생거리 쪽으로 가는데 웬 이쁜 아가씨까지 데리고 가? 사창가에 팔아먹을 아가씬가?) 정호는 곧추 호텔에 가기 싫었다. (황선희 경찰에 신고했을 수도 있어. 또 택시 운전수가 경찰에 신고나 하면 납짝 붙잡힐게 아닌가.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나영까지 포함해서.) 그는 기실 신깐센 렬차 화장실에서 나영이 울고 불고 하며 남편과 한 말을 다 엿들었던 것이다. 그때 그는 깜짝 놀랐다. (이년, 자수?! 탐오한 돈도 다 게우고? 어쩐다? 떼버리고 달아날가?) 그는 당장 나영을 떼버리고 신깐센 렬차에서 내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다른 손님이 와서 화장실 문을 쾅쾅 두드렸다. 드디여 문이 벌컥 열렸다. (잠시 나영을 달고 다니자. 저년 하들하들한 몸으로 기본 욕구는 말려야지.) 정호는 마지못해 나영을 달고 교토에 오기까지 했다. 택시는 어느덧 이찌에다하나(一枝花)마찌 어귀에서 천천히 멈춰섰다. 나영은 고풍스런 목조건물이 줄느런히 늘어선 거리를 둘러보며 어리둥절해났다.  “여긴 어딘가요?” “이찌에다하나거린데 한번 와 볼만한데야.” 나영은 정호를 따라 내리면서 두덜거렸다. “쫓기는 신세에 한밤중에 무슨 구경인가요? 곤한데 호텔이나 먼저 잡지오.” 정호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면서. 작작 말하라구.” 그러나 나영은 계속 도도거렸다. “호텔방도 잡지 않고 무슨 구경입니까? 좀 주책있게 놀았으면.” 정호는 배낭을 춰 업더니 우멍눈으로 나영을 돌아보며 씨무룩이 웃었다. “물론 호텔방을 잡아야지. 건데 지금 황선희 우릴 배신해서 경찰에 신고했을 수도 있어. 우린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야 해.” 나영은 단통 까만 포도눈이 데꾼해졌다. “그렇게 외우던 자유세상 이런 건가요?  자유세상에서도 또 풍찬로숙하면서 상가집 개처럼 쫓겨다니면서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정호는 될수록 얼굴에 웃음을 처바르고 자애로운 모습을 보이면서 언성도 낮추고 부드럽게 말했다. “곧추 호텔방에 갔다가 그놈 택시운전수 신고하면 어떻게 해?” 그제야 나영은 더 도도거리지 않고 머리를 좀 수그렸다. 정호는 안팎이 다르기로 이름났다. 그는 기실 일지화거리를 구경하는 척 하면서 길 건너 편에 있는 기생거리에 가 가만히 기생놀이를 하려고 작심하였다. 그러고서도 하영을 스리슬쩍 얼려넘겼다. 일지화거리에는 교토에서 묵은 옛집들이 줄느런히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 목조건물에 거므스럼한 칠까지 해놓아 거리에 들어서 구경하노라니 진짜 옛날로 돌아간 듯한 감이 들었다. 집집이 디룽디룽 걸려 있는 벌거스름한 초롱불은 은은한 정취를 더해주었다. 자그마한 울타리에는 참대와 은행나무가 소슬한 가을 밤바람에 설레이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밤참 드시죠.” “사께오 노미마쇼(술 드시죠).” 가게마다 화려한 화복을 입은 아가씨들이 손님을 불러들인다. 정호는 화복을 입은 아가씨 짙은 버드나무눈섭에 끌렸다. 그는 어글어글한 깊은 눈 속을 들여다보며 먹방에 들어가며 나영을 돌아다보았다. “해물이나 먹고 호텔에 가기오.” “네- 그러잖아도 배 촐촐해요.” 나영이 따라들어서서 시름놓였다. 정호는 나영과 마주 앉으며 아가씨를 보고 나영이 젤 좋아하는 해물을 이것저것 시켰다. “이 집에서 젤 비싸고 맛있는 걸로 다 가져오게나.” 나영은 눈을 흘겼다. “아니, 그게 뭔가요? 비싸다고 다 맛있겠어요. 그저 맛있는 걸 가져오라 할게지.” 나영은 점점 잔소리 많아졌다.  정호는 나영을 보고 그저 씨무룩이 웃었다. 그는 녀자를 다루는 엘리트였다. 고만한 잔소리는 그저 희죽이 웃어주면서 넘어가면 그뿐이였다. 그러잖고 맞장구를 치면 옥신각신 다투게 될게 아닌가. 사내대장부란 안해나 애인과 자질구레한 일을 가지고 옴니암니 따지지 말고 그저 안해나 애인의 잔소리는 자장가로나 들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별의별 성격을 가진 녀자들도 다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이제껏 정복자의 력사기록을 창조해오지 않았던가.) 그는 오히려 나영의 화를 유모아적으로 풀어주면서 스리슬쩍 얼리기도 했다. “래일 백화점에 가서 화려한 옷이나 둬 벌 사 입소. 미처 씻기도 시끄러원데. 이젠 화복을 곱게 입고 일본 녀자인척 하란 말이오. 우리 둘은 이제부터 특수 경우를 내놓고는 일어로 말하기오.” “왜 일어로 말해요? 남들 다 듣는데.” “그러잖으면 꼬리를 밟힐 수도 있소. 이젠 최사장과 나아가씨로 되돌아가기오.” 나영은 청포도눈이 데꾼해졌다. “정신 나갔는가요? 왜 진짜 이름 써요?” “지금 일본 땅에선 김사장과 허비서를 추적해. 우린 이젠 일본 땅에서 놀 때나  한국에 갈 때나 진짜 최사장과 나비서 려권으로 들어가야 하오.” 나영은 단통 걀죽한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고 해시시 해졌다. “알았어요. 이제 최사장 덕분에 처음으로 한국 구경 다 하게 됐네요. 호호호.” 정호는 기실 일지화거리에 온 것도 큰길 건너편 기생거리에 가서 일본 아가씨들을 질탕하게 놀아보자는 것이였다. 그러나 아무리 성자유와 성개방을 주장하는 나영이라고 해도 정호는 내놓고 기생놀이를 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녀자들은 대부분 자기는 놀기 싫어하면서도 남편이나 애인이나 다른 녀자와 그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투하고 심지어 독한 마음을 먹기도 했다. 그것이 젤 무서운 암장된 시한폭탄이고 공포 자체였다. 때문에 정호는 아무리 성개방형 애인이라고 해도 그 방면 언행을 눈치를 봐가며 주의를 돌렸다.     황선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섬나라에 온 뒤 변강쇠가 달려들면 한두번은 아주 즐기며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이 들어 그게 간지도 몇해 돼 아파나면서 어쩐지 변강쇠의 강렬한 섹스가 점점 싫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는 싫어하면서도 정호가 나영과 그래는 건 슬그머니 질투했다. 나영은 한방에서 정호와 구을며 신음소리를 호텔방이 떠나가게 냈다. 황선희는 옆침대에서 구경하면서 슬그머니 질투심이 북받쳐오르군 했다. 침대에서 뒹굴면서 오래동안 즐겁게 노는 정호와 나영을 구경하면서 슬그머니 소외감도 몸서리쳤다.      나영은 변강쇠 성애를 혼자 독차지하지 못하는 것이 한이였다.      드디여 김이 문문 나는 왕게랑 조개랑 소라랑 상다리 부러지게 올랐다.       나영은 반기기는 고사하고 또 푸념질을 했다.       “아니, 이젠 딸라도 별로 없는데 언제 다 먹는다고 이리 많이 시켰나요?” “다 그대 젤 좋아하는 해물이오. 잘 먹고 보기오.” 정호는 젖은 휴지로 손을 닦고 왕게 다리를 쑥 뽑아 껍질을 발가 나영한테 내밀었다. “아- 하오” “고마워.” 그제야 나영은 쌔무룩이 웃음지으며 앵두입을 아 하고 벌려 들이댔다. “왕게 다리 들어간다.” 정호는 왕게 다리 속살을 나영의 나팔처럼 벌린 앵두 입에 넣으주면서 중얼거렸다. “난 그대 까만 포도눈으로 새물새물 눈웃음 칠 때면 젤 좋아.” 나영은 미소 지으며 게다리 속살을 받아 잘근잘근 씹으면서 눈을 곱게 흘겼다. “녀자를 얼리는데야 이골이 텄지요. 엿발린 말로 녀자 간을 다 녹일 지경. 호호호. 맛있게 먹겠어요.” “그래. 잘 먹고 보자.” 나영은 왕게 다리를 집어 껍질을 발가 속살을 빼먹다 말고 술잔에 일본 술을 부어 정호에게 드렸다. “저도 한잔 드오.” “네. 해물을 보니 맥주 생각나는군요.” 정호는 아가씨를 불러 맥주도 시켰다. 이윽고 맥주가 오자 정호는 매주병을 들어 나영한테도 부어주었다. “자, 한잔 들기오. 인생이 얼마라고 잘 먹고 보기오.” “네. 초상집 개처럼 쫓겨다니는 신세에 배 터지게 먹고 봅시다.” 나영은 술잔을 들어 딩둥댕 마주치고 단 모금에 쭉 들이마셨다. “맨날 쫓겨다니다가 오랜만에 맥주 마시니 기분 참 좋네요.” 정호는 잔을 내려놓고 이쑤시개로 소라 속살을 뽁 뽑아 나영의 입에 가져갔다. “아, 맛있다. 일지화거리 진짜 기분 돋구네요.” 나영은 차창 밖에서 지나가는 화복차림 아가씨들을 내다보면서 연신 감탄했다. “김사장, 진짜 녀자 다루는덴 엘리트라니깐.” 정호는 사위를 둘러보며 허리 굽히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래? 이젠 김사장이라고 하지 말고 최사장이라고 불러라는데.” 나영은 의아해했다. “왜? 또 최사장인가요?” “이봐, 지금 섬나라에선 김사장을 쫓지 최사장은 추적하지 않아.” “네- 알았어요.” “우린 아무리 쫓겨도 붙잡히지 않아. 모든 걸 운명으로 받아들여라.  우리 둘이 붙어사는 것도 운명의 조화야. 운명적으로 우린 한 몸이 되기로 됐어. 알만해?” “네?” 나영은 눈이 데꾼해졌다. “그래 우리 둘이 새 가정이라도 무어야 한다는 건가요?” “아니, 그런 거야 아니지. 내 정체를 다 아는 나영이 날 받아주겠냐?” 정호는 정색해 기대에 찬 눈길로 나영의 청포도눈을 들여다보았다. 나영은 청포도눈을 딱 감고 한참 속궁리를 돌렸다. (최국장이야 좋은 남편 감은 못되지. 늙은 건 들째구 저런 바람둥이하구 누가 살아? 누가 살아도 불행이야. 저 사내는 애인으로는 좋지. 섹시한 남자구. ㅋㅋㅋ.) 뒤이어 나영의 빨간 앵두입에서 이런 말이 새여나왔다. “우린 결코 재혼은 아니지. 애인으로 보내는게 나아요. 안 그래요?”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재혼해 뭐 하느냐? 졸혼하고 아무런 부담도 없이 이렇게 자유롭게 나영과 즐기니 얼마나 좋아?” “네. 저도 졸혼하고 자유롭게 사는 거 같아 참 행복해요.” “나하구 사니 그렇지.” “네. 그래요. 최사장님을 알고부터 진짜 사내란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되고 늘 하늘에 붕 뜨는 기분에 살지요. 저는 꿈만 같아요. 제가 한 남자를 따라 여기까지 온 게 딱 한편의 환상소설을 쓴 거 같아요.” 정호는 술이 서너잔 들어간지라 열변을 토했다. “그래. 소설가들이 다 눈이 멀었어. 우리 둘의 사랑이야기로 사랑환상소설을 쓰면 단통 명작품이 되겠는데. 나영인 원래 대학 문학학부를 다니잖았어? 문학적수양도 있지. 소설을 기대할게. 소설을 써서 사랑도 없이 마지 못해 가정에 얽매여 사는 숱한 사람들을 깨우쳐 주라구. 우리처럼 졸혼하고 정신쇠사슬로 얽동인 가정을 뛰쳐나와 자유를 즐기고 행복하게 살아라고.” 나영도 알짝지근해 맞장구를 쳤다. “나도 저 자신에게 자주 물어보았어요. 이때까지 남편을 사랑이나 하면서 살았는가? 아들애 성림이를 보고 얼마나 허위적으로 살았는가? 이젠 어떻게 살아야지?” 정호는 나영한테 엄지를 척 내들었다. “나영이, 세상 젤 똑똑해.” 그는 맥주를 따라주었다. 나영도 정호 술잔에 소주를 따라드렸다. “소설에선 자기한테만 묻지 말고 독자들에게도 물어야 해.” “뭘 묻지요?” “당신은 남편을, 안해를 사랑하면서 사는가고?” “나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최국장, 당신 그저 변강쇤가 했더니. 참, 문화수양이 높아.” 나영은 엄지를 내둘렀다. “이래서 내 그대를 따라 여기까지 왔지.” “자, 아직도 졸혼하지 못한 불행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자, 한잔 들자.” “네. 그대는 진짜 남녀 사랑과 혼인, 가정, 리혼, 졸혼 박사구려.” “박사 위에 박사지. 내 얼마나 사랑을 잘 하니? 별의별 녀자들하구 별난 사랑을 다 해보잖았느냐? 내 애인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 내 련애사로 소설을 써봐라. 모두 읽으면서 오줌을 셀셀 싸며 감탄할 거야. 허허허.” “호호호.” 정호와 나영은 부르고 쓰고 하면서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282    대하소설 졸혼 제4권 (46) 김장혁 댓글:  조회:1785  추천:0  2022-10-07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권                   56. 자유세상       택시 한대가 일남이녀를 싣고 급촉히 해변가로 달렸다.      검푸른 파도에서 무시로 악어나 상어가 덮쳐나올 것 같다. 무시무시한 공포가 택시 꼬리를 물고 뒤따라오면서 정신쇠사슬을 절그럭거리며 죽음의 노래를 부른다. 택시는 해변가 호텔 앞에 달려가 유유히 멈춰섰다. “빨리, 경찰이 덮쳐오겠다.” 정호는 황급히 호텔로 뛰여들어가며 소리쳤다. ‘나영아, 카운터에 가 호텔방을 빼라.” “네.” 황선희는 오히려 당황하지도 않았다. “달아다니지 말어. 괜히 무슨 일인가고 경찰에 신고하겠다.” 그제야 나영은 억지로 태연자약한 체 하면서 천천히 호텔 카운터에 다가갔다. 그녀는 당황한 심경을 가랑잎으로 가리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이며 호텔방을 빼는 수속을 해나갔다. 어제 밤까지도 호텔은 그들 셋이 자유분방한 섹스파티를 벌리던 보금자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경찰한테 붙잡힐 감방이 될수도 있었다. 정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키를 찾아들고 호텔방에 뛰여갔다. 그는 호텔방에 들어가 부랴부랴 금은보화배낭부터 찾아메고 나영과 황선희 트렁크도 찾았다. 배낭만 있으면 섬나라에서 얼마간은 향락을 누릴 수 있었다. “에이, 개쌍년들, 무슨 옷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왔어?” 정호는 두덜거리며 량손에 황선희와 나영의 트렁크까지 끌고 호텔방에서 부랴부랴 나왔다. 맞은 쪽에서 황선희가 느릿느릿 마주 왔다. “빨리 이걸 끌고 가오.” “좀 작작 뛰세요. 괜히 경찰을 불러오겠어요.” “알았다, 알았어. 제 트렁크 건사하오.” 정호가 어망간에 나영이 트렁크를 내밀자 훌 밀어버리고 자기 트렁크를 쥐여 활 당겼다. “나영일 질투하오?” “에이유, 엊저녁에 하는 꼬락서니 메스껍더라. 오늘 아침 먹은 걸 다 토할 지경이다. 흥!” “뭘?” “몰라서 물어?” 황선희는 두툼한 입술을 찡긋해보이며 쌍까풀눈을 흘겼다. “메스껍다. 내 앞에서 나영을 핥고 빨고 하던게. 참, 어쩜 짐승처럼 노오? 게걸이 들었소?” 정호는 엘리베이터에 오르면서 빈정거렸다. “사랑은 그렇게 열렬히 해야지. 맨 물에 거시처럼 싱거우면 되기나 하겠소?” “오- 섹스를 그렇게 열렬히 해야 나나를 곁에 붙들어 두지. 나나 남편이 이전에 내한테 병 보이러 왔댔어. 그게 형편없이 시들었더구만. 그래서 나영이 변강쇠를  좋아하는게지.” 황선희는 엘리베이터에 단 둘인지라 정호 그걸 툭툭 치면서 지껄였다. “이걸 맛 들였어. 그년, 엿으로 딱 붙여놓은 것처럼. 이젠 이걸 떨어지지 못해. 호호호.” 정호는 언짢은 기색이 완연했다. “귀찮아. 그만 하우.” 그는 선희와 나영이 서로 자기 앞에서 상대방을 헐뜯는게 싫었다. 슬그머니 질투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 셋이 모이면 장마당이 된다더니. 어쩜 많찮은 식솔에 이리도 말썽이 많아? 우리 조선족들은 쩍하면 모래알처럼 흩어지지. 융합이 잘 안돼.) 정호는 기실 일본이 아니면 나영만 곁에 있으면 늙은 페허소 같은 황선희는 필요도 없었다. (황선희는 옛날 처녀시절 성욕이 강한 녀자 아니야. 이젠 늙어 쇄빠져서 녀자질을 제대로 하지 못해. 아니, 그도 이젠 생리적으로 남자를 싫어할 때지.) 정호는 다만 일본에서 황선희 아니면 어디가 어딘지 한치 앞도 깜깜해  떼놓지 못하였다. 그때 불시에 엘리베이터 문이 훌 열렸다. 나영의 버들잎 눈섭끝이 귀밑까지 쳐들리고 청포도눈알이 화등잔같이 데꾼해졌다. “아니, 엘리베이터에서 그걸 마구 만져요?” 나영은 자기 트렁크를 받아 챙기며 비양거렸다. “낫살이나 처먹은 색마들이, 원, 참. 감시카메라 있는데두 창피한줄도 모르고. 참.” 황선희는 단통 네모진 얼굴이 불그락푸르락해졌다.  “뭐라니? 제 애비에미 같은 사람들 보고 무슨 말버릇이냐?” 당장 잡아먹을 것 같은 황선희. 나영은 무서워 인차 빌고 들었다. “잘못했어요. 언니, 믿고 그랬는데요. 호호호.” 정호는 귀찮아하며 재촉했다. “그만들 하라구. 어서 여길 빠져나가야 해.” 그제야 말다툼이 끝났다. 그들은 호텔에서 빠녀나가 큰길에서 또다시 택시를 잡아탔다. “우리 지금 어디로 가요?” 나영은 답답해났다. 정호는 뒤좌석의 두 녀자를 돌아보았다. “글쎄 어디로 갈가? 도꾜에는 문걸 때문에 있을 거 같지 못해.” 나영도 머리를 끄덕이며 종알거렸다. “그래요. 그 금욕주의자 우리 같은 자유주의 분자들을 용납하겠어요?” “황박사, 우리 어데 가 숨으면 좋겠소?” 황박사는 한참 궁리하더니 입을 천천히 열었다. “교토로 갑시다.” “교토로 모십시오.” “네.” 운전수는 목적지를 알자 속도를 내 몰았다. “아니, 왜 오사까로 가지 않고 교또로 가오?” 정호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오사까에 그래두 우리 조선인들이 많이 살지 않소? 오사까가 편리할 거 같은데.” “모르는 소릴.” 황선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문걸이네 오사까에 따라올 수도 있어요. 보통조선족들은 거의 다 일본에 오면 오사까에 있기 좋아합니다. 조선족들이 많이 모여산다고. 그러나 당신 처지는 그렇지 못하잖아요?” “그래, 거야 그렇지.” 정호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였다. 나영도 한숨을 호- 내쉬더니 두덜거렸다. “항상 자유세상으로 간다더니. 일본이란 자유세상에 와도 맨날 상가집 개처럼 쫓겨다녀야 하는구만요.” “아니야, 잠시야. 우린 여기 살기 불편하면 한국에 도망가야 해. 거긴 우리 진짜 자유세상이야.” 정호가 위안해도 나영은 이젠 잘 믿지 않았다. “거기라고 인터폴이 없겠습니까? 텔레비 보면 한국은 부패분자를 젤 세게 척결하는 나라더구만요. 영란법인지 뭔지 내와가지고 10만원 넘는 선물 받아먹어도 위법이 돼서 코를 다치더구만요.” “우리야 중국인인데. 한국 법과 무관해. 한국에 가서 재차 한국 법을 위반하지 않으면 괜찮아.” 정호는 눈 앞이 좀 환해지는 걸 느꼈다. “혹시 한국 동포들의 보호를 받았겠는지.” 정호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극단적 자유주의 국가 미국에 가야 해. 그런데 이왕에 보면, 미국이나 카나다나 서양 사회에서는 경제범을 받아주지 않고 체포해 인터폴을 통해 중국에 이송했단 말이야. 에이구, 경제범은 어디든 자유가 없어.) 택시 운전수가 도쿄 시내 중심을 벗어나자 물었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금방 교토로 간다고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교토?” “네, 교토로 갑시다.” “아니, 이 밤중에 교토로 못 가겠습니다.” 아마 운전수는 그들이 주고 받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행색이 수상했던지 교토로 가지 않겠다고 딱 잡아뗐다. (가능하게 재일동포 운전수일 수도 있잖은가? 조선말을 하면 못 알아들을가 했는데.) 운전수는 택시를 큰길 옆에 대더니 세우는 것이였다. “그 먼 교토로 못가겠습니다. 손님들이 교토로 가겠으면 왜 신깐센을 타지 않습니까?” 정호는 그럴듯하게 둘러댔다. “불시에 나오다나니 려권을 두고 와서 찾으러 가는 길입니다.” 택시 운전수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는 확실히 재일동포 맞았다. 그는 녀자 둘에 남자 하나 섞였기에 위험성은 덜하다고 여겼지만 그들이 주고 받는 말을 들어보면 무슨 말 못할 범죄행각이 있어 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 먼 교토까지 몰기 딱 싫었다. (돈을 벌지 못해도 한밤중에 흉수들을 싣고 교토까지 갈 순 없어.) 운전수는 운전석에서 내려 길 옆에 서서 뒷좌석 차문까지 열고 말했다. “미안합니다. 저는 집에 일이 있어 교토까지 가지 못하겠습니다. 어서 내리십시오.” “별수 없소. 내리기오.” 정호가 말하자 황선희 말렸다. “신깐센으로 가기오. 이 시간대에 렬차 있을 거예요.” “그래?” 정호는 내리려다가 말고 황선희한테 물었다. “신깐센을 탔다가 경찰들 눈에 포착되잖을가?” “괜찮아요. 우리 따로 따로 앉읍시다.” 나영의 주의였다. “그러죠.” 황선희도 흔쾌히 대답하더니 택시 운전수를 내다보았다. “여기서 젤 가까운 신깐센 데이류쇼(정류소)에 갑시다.” 택시 운전수는 머뭇거리다가 신깐센정류소로 가자고 하자 생각이 바뀌였다. “알았습니다.” 운전수는 다시 운전석에 들어와 핸들을 잡았다. 택시는 다시 시내에서 질주했다. 가로등불빛이 환한 됴쿄 시내 야밤은 아주 황홀할 지경으로 아름다웠다. 피뜩피뜩 지나가는 상가들의 오색령롱한 샨데리아불빛은 불야성을 이루었다. 정호와 나영은 넋을 놓고 도쿄 시내 오색령롱한 불야성 풍경을 내다보았다. 진짜 도쿄 구경도 마지막이 될 수도 있어 될수록 눈에 많이 담아가려고 애썼다. 택시를 타고 야반도주하면서  도쿄 야밤 풍경을 흠상하는 것이 마치 드라이브를 하는 상 싶게 소중하게 느껴졌다. 섬나라는 의학과학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날마다 숱한 사람들이 코로나에 감염돼가고 한줌의 연기로 돼 유령처럼 저승사자가 지키는 염라전으로 날아가  떠돌아다녔다. 그들 셋이 신깐센 역에 가서 티켓을 사가지고 렬차 타려고 나가도 “건강마를 보자.”,  “마스크를 껴라.”, “안그러면 자가격리한다.”, “구류한다” 등 이러루한 말 한마디도 없었다. 드디여 신깐센 렬차가 플래트홈에 서서히 들어섰다. 그들 셋은 따로 따로 흩어져 렬차에 올라 다른 바곤에 앉았다. 황선희는 렬차 젤 마지막 바곤에 올랐다. 그녀는 정호와 나영이 렬차에 올라 자리를 찾을 때 렬차에서 훌 되내렸다. 더는 정호와 나영과 함께 한바지를 입고 춤을 추기 싫었다. 신깐센 렬차가 서서히 미끌어져나갔다. 황선희는 쪼그리고 앉아 쏜살같이 달려가는 렬차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호- 길게 내쉬더니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풀러덩 물앉았다. “에이, 시름 싹 놨다. 네놈들을 따라다니다가 언제 감옥에 들어갈지 누가 알아?” 그녀는 꼬리를 감추는 렬차를 향해 손을 저었다. “잘 가오, 최국장.” 뒤이어 풀래트홈에서 개찰구로 되나오면서 손을 또 저었다. “빠이, 빠이! 변강쇠!” 그녀는 진작 정호가 자기를 가이드로 리용할 뿐 살뜰한 정이 없다는 것을 깨닿게 되였다. (변강쇠 마음 속엔 나영 밖에 없어. 내 무슨 거치장스럽게 정호하구 나영이 가이드에 보초군질을 하면서 묻어다니겠어? 이젠 변강쇠하구 섹스도 싫어. 엊저녁에두 봐라. 변깅쇠는 마지못해 나하구 먼저 했어.) 사실 그들 셋은 나뉘여 자면 편리했다. 그런데 정호는 기어이 섬나라에 떨어진 날부터 한방에서 합숙하자고 했다. (누구를 빼고 누구와 한방에 든단 말인가? 나와 함께 한방에 들지 못한 년은 꼭 단통 입이 뾰로통해지겠는데. 소외감과 질투란 무서운 거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아? 그렇다고 셋이 다 나뉘여 자자면 주숙비가 엄청 들게 아닌가?) 일본 해관을 거치고 나니 배낭이 훌쭉해졌다. 정호는 우멍눈으로 두 애인의 눈치를 흘끔흘끔 곁눈질해보며 말했다. “자유세상에 왔는데 뭐라오? 우리 한 방에서 자유롭게 살아보기오.” “어머, 정신나갔소?” 황선희 반대해 나섰다. 나영은 좀 개방성적이여서 미국 방문공연 때부터 정호가 다른 녀자들과 그래도 별문제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리 나왔다. “한방에서 어떻게 셋이나 자겠는가요? 불편할텐데요.” 나영은 어쩐지 황선희와 함께 자기 싫었다. 황선희도 마찬기지로 나영과 함께 자기 싫었다. 그러나 정호는 계속 고집을 썼다. “차차 습관될 거요.” 정호는 오사까 호텔에서 자게 된 첫날 밤에 목욕부터 슬슬 하고 중간침대에 벌렁 들어누웠다. “나영이 먼저 목욕하오. 내 황박사를 오랜만에 좀 기쁘게 해드려야겠소.” “호호호. 알았어요. 실컷 재미를 보세요.” 나영은 잠옷을 들고 샤와실에 들어가면서 정호한테 청포도눈을 곱게 흘겼다. 드디여 샤와실에서는 물소리가 쏴 들렸다. 황박사는 정호의 우멍눈과 눈길을 마주치더니 쌔무룩이 웃었다. 황박사와 정호가 운우지정을 열렬하게 나누었다. 황박사는 이 한 순간을 위해 숱한 돈을 팔아 그들 셋의 일본출국수속에 항공편까지 마련했던 것이 아닌가. 황박사는 푹신푹신한 침대에 털렁 들어누워 희미한 불빛에 걸려 있는 천정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복잡한 생각을 굴렸다. (변강쇠는 변태야. 이젠 이전의 살뜰한 맛도 없어. 젊었을 때 살갑던 정도 다 없어졌어….) 그녀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순간 이전에 망아산 소나무숲 속에서  열렬히 운우지정을 누리던 일이 떠올랐다. (오- 그때는 얼마나 열렬했던가! 하늘에 붕 뜨는 기분이였지.) 그러나 지금 호텔방에서 고독하게 침대에 누우니 머리가 삼검불 같았다. 절절했던 갈망이 절망의 꼬리를 물고 사처에서 허우적거리며 괴롭혔다. 그녀는 정호한테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감이 더 컸다. (섹스도 젊었을 때 할 짓이야. 예순고개를 바라보면서 이게 웬 미친 짓이야.) 그녀는 독한 마음을 먹었다. (래일 고향으로 돌아가야지. 숱한 위중환자들이 황박사를 기다리는데….) 그녀도 이젠 50대 중반이 넘어서 묵은 정이 있는 변강쇠를 내놓고는 생리적으로 남자들이 싫어질 때가 됐던 것이다.   한편 이 시각 정호는 항선희가 변심해 신깐센에 오르지도 않은 것도 깜깜했다. 그러나 그도 이젠 신변의 녀자들이 하나, 둘 배신하고 떨어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의 자유세상도 혼잡해지고 쇠망해가고 있었다. 오히려 자유를 추구하면 할수록 정신쇠사슬이 얼기설기 점점 옥죄여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배낭을 멘 채 걸상에 기대앉아 신깐센 렬차 차창 밖의 어둠 속을 누비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그는 배낭을 짐받이에 놓을 수 없었다. 배낭만 잃어지면 모든 것이 끝장이였기 때문이였다.        일본 공항에 날아내린 첫날부터 재수 없이 배낭이 훌쩍 줄어들었다.     황박사는 봉이눈섭을 치켜뜨며 정호한테 귀띔해주었다.     “숱한 딸라하구 금은장신구를 가지고 해관을 빠져나가기 힘들어요. 우리 셋이 나눠 휴대하고 나갑시다.”     황박사는 일본에서 7년 동안이나 류학한 적 있어 일본통이였다. 정호는 나눠줬다가 찾을 수 없을가 봐 좀 주춤거렸다. “최국장, 아니, 김사장, 우리 가지고 도망갈가봐 근심 말아요.” 나영도 새물새물 눈웃음을 지으며 빈정거렸다. “누가 그 개도 안 먹는 돈을 욕심내는가 해요. 이젠 우리 둘 다 김사장님한테 매운 목숨인데요.” 정호는 황박사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해관에 빼앗기보다 애인들한테 인심을 내는게 낫지.) 그는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고 배낭을 내리워 끄르고 금은장신구와 딸라를 꺼내 황선희와 나나한테도 얼마간씩 나눠 주었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 황선희와 나영한텐 은장신구를 나눠주었다. 딸라도 딱 두 묶음씩만 주고 자기가 네묶음을 휴대했다. 그런데 뭐야? 정호가 해관 검사구를 나가려고 할 때였다. “뭐야? 무슨 금장신구와 딸라를 이리 많이 휴대했어?” 두리모자가 배낭을 열라고 명했다. 끝내 욕심 때문에 화를 자처했던 것이다. 해관 세수일군은 숱한 벌금을 물리고도 모자라 금은장신구와 딸라 두 묶음을 차압했다. “아니, 전 무역상인데요. 왜 이럽니까?” “무역일군이란 사람이 해관규정을 이리도 모릅니까?” 두리모자는 딱 잡아뗐다. “무역일군이라도 금과 딸라 제한액을 초과하면 안됩니다.” 정호는 뒤에서 상을 찡그리는 황선희를 돌아보면서 딸라뭉치를 하나 쥐여 황선희한테 건네려고 했다. “왜 이래?!” “저 분은 내 안해인데요. 나눠 휴대하면 초과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두리모자는 황선희를 오라고 손짓했다. “하나도 속이지 말고 말하십시오. 딸라 얼마나 휴대했습니까?” “2만딸라.” “안돼. 2만딸라도 많아.” 황선희박사는 눈이 데꾼해졌다. “왜 많다는 건가요?” “남편 만딸라까지 주면 3만딸라 아닌가? 금장신구도 이리 많잖은가?” 두리모자는 점점 목청을 돋구었다. 이렇게 돼 딸라 다섯 묶음에 금은장신구도 수태 차압당했다. “아니, 무역회사 회장님께 드릴 금장신구도 몰수하면 어떻게 합니까?” “몰수 아닙니다. 차압했다가 귀국할 때 가지고 가세요. 다만 보관비만 내면 됩니다.” 그 말에 정호나 황선희나 한숨을 후 내쉬고 순순히 복종하는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선희나 나영이나 오사까공항을 벗어나자 나눠 휴대했던 금은장신구와 딸라를 몽땅 정호한테 되돌려주었다. 그러나 석달동안이나 셋이 흥청망청 놀면서 쓰고나니 이젠 배낭이 훌쭉해졌다. 정호는 이 시각 신깐센 렬차를 타고 달리면서 황선희나 나영이 없어질가봐 근심한 것이 아니였다. 다만 명줄이나 다름 없는 금은장신구와 딸라가 근심될 뿐이였다. (돈만 있으면 계집이야 어데 가서 못 얻겠는가. 알거지만 되면 계집이고 뭐고 다 없어져. 생존도 어려워.)   한편 이 시각 나영은 한창 신깐센 렬차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홀로 떨어진 기회에 가만히 아들과 화상통화하려고 했다. 아무리 국외에서까지 쫓기는 신세라고 해도 모성애는 모든 위험을 이기고 말았다. 그녀는 결연히 남편의 핸드폰 번호를 꼭꼭 눌렀다. 다행히 남편 철석이 화상통화를 받아주었다. 그는 박국장한테 불리워가서 법률교육을 한창 받고 설복되였던 것이다. 철석은 나중에 명확하게 태도표시를 했다. “제가 꼭 안해를 자수하라고 설복해보겠습니다.” 박국장은 예리한 눈길로 철석을 쏘아보며 명했다. “좋소. 나영은 꼭 아들애를 보고 싶어 화상통화를 하자 할 거요. 그 기회에 설복해 보오. 나관장은 죽을 죄를 진 것도 아니오. 몇해 징역살이를 하면 함께 살겠는데…” “예. 꼭 돌아오게 설복하겠습니다.”   “엄마,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아? 보고파, 엄마- 어엉엉, 헉헉, 엄마 빨리 돌아와.” 눈물범벅이 돼 대성통곡하는 아들애를 보고 나영도 울음보를 터뜨렸다. “오- 그래, 아들, 사랑하는 아들, 엄마도 성림이 보고파.” “엄마, 지금 어데 있어? 빨리 비행기 타고 날아와.” “오- 그래. 엄만 지금 한국에 있어. 돈 많이 벌어가지고 날아갈게. 성림한테 사탕이랑 과자랑 요그르트랑 수태 사줄게…” “엄마, 싹 다 싫어. 돈도 싫어. 엄마만 오면 돼. 난 날마다 엄마 안고 자고 파. 어, 어,어, 엉, 엉, 헉, 헉…” “그래. 이제 엄마 집에 가면 성림하구 날마다 안구 잘게. 울지 마. 성림이 울면 엄마 마음이 아파. 흐흐흑, 흑흑,” “엄마, 아프지 마. 안 울게.” “그래. 사랑해 아들아…” 천석이 네모난 낯이 화면에 떴다. “여보, 이제껏 무슨 짓을 했든 간에 다 량해할게. 공안국에서 자수해라더라. 몇만원 탐오했니? 죽을 죄 아니라더라. 자수해 로실히 탄백해라.” 나영은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다. “떼먹은 거 게우고 정호랑 나쁜 놈들 죄행과 지금 어데 있는 걸 적발하면 징역형이 감형된다더라. 빨리 돌아와 자수해라. 그것만이 네 유일한 출로야. 새끼를 홀로 떼두고 상가집 개처럼 쫓겨다닐게 뭐야? 어째 아무 말도 없어? 자수하지? 응?” 나영은 한참 묵묵부답하다가 한마디 했다. “부탁 한가지 하면 들어주겠는가요?” “그래. 어서 말해라.” “공안국에 가서 내 자수하겠다더라고 전하세요. 난 전람관 재건비용 5만원을 탐오했소. 잘못했어요. 그러나 탐오한 돈 일전한푼 다치지 않고 카드에 저금해뒀어요. 내 카드 가지고 가서 5만원 찾아 공안국에 가져다 바치세요. 비번은 내 생일이예요. 이제 언제 몸을 빼면 돌아가 자수하겠으니깐요. 박국장한테도 잘 말해두세요.” “알았다. 애를 봐서 빨리 돌아오라.” “알았어요. 그간 당신 애 데리고 수고하겠어요.” “알았다. 타처에서 몸 건강 주의해.” “그래, 아들 바꾸세요.” 눈물범벅이 된 성림의 수척해보이는 얼굴이 다시 떴다. “성림아, 귀여운 아들, 사랑해.” “엄마, 어서 돌아와.” “그래. 엄마 인차 간다. 기다려. 울지 말고. 네가 울면 엄만 가슴이 미여지는 거 같애 흐흑, 흑흑.” 엄마가 우는 화면을 보자 성림은 억지로 울음을 참았다. “엄마, 뽀뽀해달라.” “응, 그래.” 성림은 핸드폰 화면 속 엄마 낯에 뽀뽀했다. 그러나 인차 왕 하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나영도 핸드폰을 얼굴에 대고 뽀뽀하며 울었다. 쾅, 쾅, 쾅. 갑자기 화장실 문을 다급히 두드리는 소리. 깜짝 놀란 나영은 아들애한테 손을 저어보였다. “빠이, 빠이, 아들!’ 나영은 핸드폰을 바삐 꺼버렸다. 그녀는 눈물을 훔친 후 거울에 얼굴을 대충 비춰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뒤로 넘겼다. 드디여 화장실 문을 훌 열었다. 그녀는 나가려고 하다가 주춤 멈춰섰다. “앗!” 공포에 찬 비명소리 렬차 안의 숱한 고막을 때렸다. 그녀가 마주친 사람은 누구기에?
281    대하소설 졸혼 제4권 (45) 김장혁 댓글:  조회:1411  추천:0  2022-10-04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권        55.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쑤                 푸르른 파도가 무서운 아우성을 치며 백사장을 와락 덮친다.         하얀 물보라가 백사장을  껴안고 키스하며 무서운 갈등의 씨를 뱉어버린다.         썰물은 음흉한 발톱을  감추며 스리슬쩍 물러난다.        검푸른 바다에서 악어가 덮쳐나올지, 상어가 톱날이발을 드러내고 수영객을 덮칠지?  누구도 장담하기 힘들다.        바다는 오늘도 포효하며 알지도 못할 공포의 아가리를 쩝쩝 다신다.       춘희는 문걸과 함께 해변가 해물관에서 나오자 택시를 잡아타고 도심의 마사지방으로 달려갔다. 어둠이 누러스름한 황혼의 락조를 밀어내고 서서히 흑흑칠야의 장막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택시는 해변가 한적한 골목에 뿌리내린 근사한 마사지방 앞에 달려가 멈추었다. 문걸이 춘희를 따라 마사지방에 들어가며 피뜩 여겨보았다.      울 안에 대나무숲이 소슬한 가을 바람에 설레이고 은행나무 노란 잎이 톨랑톨랑 떨어져 한겹한겹 덧쌓이는 소리만이 울 안의 고즈넉한 정적을  조용히 깨울 뿐이였다.  정호와 나영이 마사지방 울 안으로 들어가자 뒤에서 누런 은행 잎을 밟는 소리가 바지멀춤을 들추면서 동행했다.      2층으로 된 마사지방 문 량켠에 벌거스름한 초롱불이 디룽디룽 걸려 있어 어둠 속에 조용하고 그윽한 정취를 더해주었다. 아마 주인은 어둑시그레하고 조용한 정취에 잠기고 싶어하는 상 싶었다. “온 하루 피곤했겠는데요. 피곤을 풀고 돌아갑시다.” 문걸은 춘희를 따라 마사지방에 들어갔다. 분수가 뿜기는 가산 둘레에 화복을 입은 아가씨들이랑 제비넥타이에 하얀 와이샤쯔를 입은 곷제비들이랑 비단필처럼 꽂혀 있었다. 문걸은 꽤나 근심됐다. “그만 두기오. 늦어 들어가면 괜히 다이로교수 의심을 받겠소.” “괜찮아요. 다이로교수가 집에 돌아가기 전에 끝날 수 있어요. 이 시각에 그는 한창 밤생활을 즐기고 있을 거예요.” 일본 사내들은 대부분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이면 거의 일찌기 집에 들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동료들이거나 상전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거나 술 한잔을 기울이며 우정을 돈독히 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결산할 때면 습관대로 A, A제를 선호했다. 식사가 끝나 시간 좀 있으면 기생거리에 가서 와까에 반주한 가무를 구경하고 끓어번지는 욕정을 열렬히 발산하는 것이 관례로 됐다. 안해는 남편이 너무 일찌기 집에 돌아오면 욕하기는커녕 오히려 이상해한다고 한다. 혹시 남편이 바깥에서 기분 상한 일을 당하지 않았는가고 근심하며 문안한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남편의 고민을  부드러움으로 사그라들게 하는 슬기라고나 할가. 춘희는 일본 녀성들처럼 그렇게 부드럽게 다이로교수의 더러운 바깥 밤생활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히려 늦어들어오면 다이로교수에게 화를 내군 했다. 다이로교수는 부동한 문화차원으로 오는 그런 푸대접에 항상 도리머리를 홰홰 젓군 하면서 두덜거렸다. (언제면 일본 성문화에 눈이 뜰까?) 그러나 춘희는 일본 녀성들과는 달리 배신감에 보복심이 묻어나왔다. 그녀는  대륙에서 받은 교육대로 남존녀비를 증오했고 남녀평등을 주장했다. 대륙과 섬나라 문화충돌이 불티를 일게 했다. (네놈은 그게 달렸다고 바깥에서 개처럼 달아다니면서 밤생활을 즐기는데. 내라고 마사지마저 즐기지 못한다는 법이야 없어. 흥! 당신도 즐기고 나도 인생을 즐기자.) 이 마사지방은 춘희가 이전에 별로 다니지도 않던 생소한 마사지방이였다. 이쁜 아가씨들이 허리를 구십도로 굽히며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녀성손님이 온 걸 미리 본 총각도 깎듯이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목조건물로 된 마사지방 복도 천정에도 커다란 초롱이 디룽디룽 걸려 있었다. 초롱불이 희미하게 내리비추고 어둑시그레한 실내에서는 은은한 섬나라 서정곡이 유유히 흘러 신비한 감을 더 해주었다. 훤칠한 총각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춘희를 마주 바라보았다. 순간 웬 일인지 주춤 물러섰다가 허리굽히며 춘희를 단간방에 안내했다. 아가씨는 문걸을 다른 방으로 안내하며 종종걸음을 쳤다. 아가씨는 호리호리하게 생겼는데 꽤나 이쁘장했다. 단칸방에 들어가자 아가씨는 머리를 숙이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나직이 물었다. “무슨 마사지 해드릴가요?” 문걸이나 춘희나 들어올 때 총각과 아가씨를 별로 주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걸은 단간방에서 아가씨를 찬찬히 여겨보니 별로 눈에 익어보였다. (아니, 이게 누구냐? 나나 아닌가?) 거의 동시에 춘희도 옆방에서 자기를 안내해 들어온 총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나 남동생 아닌가!” 그녀는 하마트면 소리를 지를 번했다. 그러나 용케도 참았다. (광문이라던가? 외나무다리에서 적수 남동생을 만나다니?) 춘희는 당장 이 마사지방을 떠나고 싶어졌다. 그런데 광문이 마사지항목을 주문받더니 훌 나가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행이야.) 춘희는 한숨을 후 내쉬며 옷을 갈아입었다. 오누이가 카운터 하나꼬와 쑤군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다른 안마사를 배치해요.” “나도 못하겠어요.” “왜?” 하나꼬는 버들잎눈섭을 치켜뜨며 이상해했다. “왜 모두 이래?” “저 녀자손님 싫어요.” “왜? 무슨 문둥이병이라도 있더냐?” “아니, 그저.” “알았어.” 광문은 끝내 춘희 방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나만은 산뜻한 화복차림을 하고 문걸의 방에 다시 들어섰다. 문걸은 나나를 내려다보면서 불쌍한 감이 들어 마사지를 받기도 오시러웠다. 마치 자기 딸애한테서 마사지를 받는 것처럼. 나나도 문걸이 눈에 익어보였다. (아니, 다이로교수네 집에서 교타이모리 스시상에 올랐을 때 날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 화가 아닌가!) 문걸은 다이로교수가 대변을 대접하는 연회상에서 나나 라체를 본 적이 있었다. (맞어. 그 화가야. 적수 춘희 남친이라던가.) 서로 알아보는 순간 눈길을 피하면서 착잡한 생각에 빠져들어갔다. 나나는 문걸을 보기 꽤나 부끄러웠다. 그러나 하나꼬가 기어이 안마하라고 하기에 별 수 없어 재차 들어섰던 것이다. 하나꼬는 이 마사지방 주인의 딸인데 두번째 보스나 다름없었다. 이 마사지방의 주인은 큰 일이 없이는 가게에 별로 나타나지도 않고 막후에서 감독하였다. 나나는 복도에 나가더니 참대초롱에 따뜻한 약물을 담아 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문걸이 자기를 알아본 걸 짐작하면서도 조선어 아니라 일어로 말했다. “발을 불구세요.” 문걸은 일어나 발을 불구면서 나나를 가엽게 훑어보았다. “물 온도 어때요?” “괜찮소.” 문걸은 고의적으로 조선어로 대답했다. “여긴 아무도 없으니깐. 조선말을 하기오.” 나나는 걀죽한 얼굴에 쌔무룩이 웃음기를 띠웠다. “네. 좋아요.” 그녀는 문걸의 발을 물에 불궈 살살 씻어주었다. “내 절로 씻을게.” “아니, 제가 씻어 드릴게요. 이건 봉사항목에 든 건데요.” “미안하오.” “아니, 편안히 누워 마사지 받으세요.” 나나는 발을 말끔히 씻고 수건으로 닦은 후 아주 살뜰하게 발마사지부터 하기 시작하였다. 문걸은 눈을 스르르 감고 안마를 받았다. 한참 후 그는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저는 조선족이 아니오?” 나나는 속이려고 하지도 않았다. “네. 조선족인데요.” 문걸은 나나가 거부감이 없는 것을 보고 또 한술 더 떴다. “아까 마중하던 총각은 제 남동생 아니오?” “네. 제 남동생 맞습니다.” 나나는 세귀눈을 치켜떴다. “그걸 어떻게 아는가요?” 문걸은 또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혹시 승호 딸이 아닌지?” 나나는 개의치 않고 반문했다. “저의 아버지를 아는가요?” “양. 알다뿐이겠소? 승호는 오랜 친구오. 저를 처음 봤을 때 10대인가 했는데. 대학을 다닌다면서?” 나나는 머리를 들고 문걸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네. 제가 20대 후반인데요. 대학에 입학하려고 나이를 속였지요.” “그럼 동생도 20대요?” “네. 우리 오누이는 10대에 어머니를 따라 일본에 왔는데요. 이젠 10년 세월이 흘렀는데요.” 나나의 세귀눈에는 무언의 빛이 반짝였다. “화가선생님은 저의 작은할아버지도 잘 알겠군요.” “작은 할아버지라니?” “리성호경리 말인데요.” “오_ 알다뿐이겠소? 우린 생사고락을 함께 한 친구지. 또 우린 다 전주 리씨, 종친이지.” 문걸은 아주 긍지감에 넘쳐 뒷말을 이었다. “우린 조선을 오백년이나 통치한 리씨왕족, 전주 리씨 후손들이오.” “네, 그래요? 그럼 우린 집안 집 친척이군요.” “그래, 친척이지.” 나나는 환한 얼굴로 문걸을 쳐다보며 발을 꽁꽁 주물렀다. “저의 작은할아버지 잘 계신지요?” “그래, 잘 있지.” “그 집 따님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요?” “이전에 성호한테서 들을라니 미국 하버드대학 석사를 졸업하고 지금 남방 어느 한국 회사에 다닌다던데.” 문걸은 말하다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물었다. “가만, 성호하구 화상통화해볼까?” “네. 좋아요.” 나나는 기대에 찬 눈길로 문걸이 차탁에서 핸드폰을 주어드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화상통화가 련결되였다. “성호, 지금 어디냐?” “남방 딸집에 있어.” “오, 그래?” “넌 지금도 일본에 있니? 이게 마사지방 아냐? 세월이 좋긴 좋구나.” “오- 그래. 여기 네가 그리도 찾던 큰형님네 손자, 손녀를 만났네. 통화하겠느냐?” “뭐라고? 오, 바꿔라.” 문걸이 넘겨준 핸드폰 화면에는 성호의 얼굴이 보였다. 나나는 놀랐다. 어쩜 쌍둥이처럼 자기 아버지 모습과 똑 같지 않겠는가? “안녕하세요? 작은할아버지!” “오, 그래, 복화, 야, 너네 오누이를 얼마나 찾았다고. 진작 전화라도 할게지. 통 련계할 방법이 없었구나. 이게 몇해만이냐? 광문이 잘 있느냐? 너네 부모도 없이 얼마나 이국 타향에서 고생했겠느냐?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작은 할아버지- 어헝, 흑, 흑흑, 보고파요.” “옆에 광문이 있느냐?” “네- 제가 데려오죠.” 이윽고 광문이 단칸방에 들어섰다. “광문아, 작은할아버지 다 잊어먹었겠다. 너네 정말 보고싶구나. 빨리 고향에 돌아오너라. 우리 모여서 함께 살자.” 광문은 누나한테서 작은할아버지네 말을 자주 들었는지라 인차 아주 깎듯이 인사했다. “네- 작은할아버지, 우리도 할아버질 그렸습니다. 작은 할아버지랑 작은 고모랑 모두 잘 계십니까?” “그래, 다 컸구나. 하나는 지금 남방 한국 회사에서 일한다. 너네도 이제 돌아오면 하나랑 함께 살아라.” 나나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우리 이제 졸업하면 작은고모 찾아가지요.” 그때 마사지방 문이 벌컥 열렸다. “아니, 일하잖고 무슨 지껄이냐?” 60대 초반의 사내가 들어오자마자 퉁방울눈을 부라렸다. 피뜩 보니 생김새가 딱 다이로교수 같지 않겠는가. “사업시간에 핸드폰을 쳐? 이러다간 손님을 다 빼우겠어. 엉?!” “예, 미안합니다.” 나나는 연신 허리를 구십도로 굽히며 사과했다. 그녀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마지막으로 인사말을 했다. “작은할아버지, 여기 일 빠쁜데요. 후에 련락드리죠. 안녕히 계십시오.” “오- 그래.” 나나와 광문은 눈물이 글썽해 아쉬워하며 핸드폰을 문걸한테 넘겨주었다. 광문이 나가자 나나는 문걸의 어깨를 꿍꿍 눌러주며 마사지를 다시 시작하였다. “저건 누구요?” 나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대답했다. “주인입니다.” 이제부터 나나는 조선말을 했다. “난 다이로교수인가 했소.” “다이로교수 동생인데요. 이찌로라고 불러요.” 나나한테서 알고 보니 이 마사지방은 다이로교수가 남동생 이찌로한테 차려준 마사지방이였다. 이찌로는 형 다이로교수와는 달리 성격이 아주 조폭해보였다. “허허. 일본에 이리 좋은 마사지방이 다 있어?” 이때 출입문 초롱불 밑에 일남이녀가 나타났다. “어서 오세요.” “그래, 그래. 이 어르신님이 오랜만에 마사지 받아보는구나. 허허허.” 일본 사람들은 조용한 문화를 선호했다. 마사지방에 들어오자마자 떠들썩하는 것을 보면 대륙의 손님들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대륙 사람들이 쪽팔린다. 사내가 두 녀자를 뒤돌아보며 조선어로 지껄여댔다. “황박사, 질탕하게 놀아볼가?” “나영이하구 노세요. 온 하루 돌아다니고나니 피곤해요.” “그래? 허허허.” 그들은 아마 일본 사람들이 조선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아무 지껄이나 하는 것 같았다. 광문은 우멍눈을 힐끔 유심히 들여다보며 안방으로 안내했다. 그 사내는 광문을 일본인으로 알고 보리일어로 횡설수설했다. “우릴 갈라놓지 말게나. 한방에서 마사지 받을 거야.” 그들이 복도로 해 안마방 쪽으로 다가왔다. 문걸과 춘희는 그들이 가까와질수록 말소리가 점점 더 똑똑히 들렸다. “최국장님, 좋겠다. 일본 아가씨 마사지도 다 받아보고.” (뭐? 최국장? 아니, 그럼 저놈이 정호 아닌가?) “내 어디 마사지나 받아보고 만족할 사람이오?” “그럼 오늘 밤에 또 일본 년한테 장가나 들어보세요. 호호호.” “그래요. 일본 녀자 맛이 어떤가 실컷 보세요. 어떤 년인지. 변강쇠 그 큰게 생겨서 좋겠다.” “나나, 벌써 질투하는 거야?” “질투는 뭘? 오늘 밤엔 황박사나 제나 좀 폭 쉬고파요. 작작 지껄여요. 어쩜 날마다 그 지랄인가요? 늙지도 않았군요.” 문걸은 그 목소리 너무나 귀에 익었다. (뭐? 최국장? 나영이?) 문걸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다. “리선생님, 마사지 끝나지 않았는데요.” “가만,” 문걸은 손사래를 치더니 귀를 도사렸다. (정호. 그 새끼 어떻게 돼 여기까지 왔어?) 그러나 마사지방에 들어갔는지 복도는 또다시 잠잠해졌다, 문걸은 끌신을 신고 침대에서 내려가 문을 살며시 열고 복도 앞뒤를 훑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침대에 되돌아와 누웠다. 그의 눈 앞에서는 번개가 치고 우뢰가 지동쳤다. (저 놈을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다니? 어디 죽어봐라.) 문걸은 마사지을 어떻게 다 받았는지 몰랐다. 그는 정호를 어떻게 복수할가고 천만가지 속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렸다. 그의 뇌리에서는 보이지 않는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지동쳤다. 문걸은 나나한테 팁으로 만엔지페를 몇장 쥐여주었다. “수고했소.” “아니, 이건 안돼요.” “작은할아버지 친구 아니냐? 학잡비에 보태 쓰오.” 나나는 따라나오면서 돌려주려고 했다. 문걸은 기분 상해 눈까지 흘기며 끝내 돌려받지 않았다. “보스 보겠소. 어서 넣소.” 나나는 복도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받겠어요. 잘 쓰겠습니다.” “그래.” 문걸은 나나한테 부탁했다. “금방 들어온 손님이 어느 방에 들어갔는가 알아봐 주겠소?” “네-“ 나나는 카운터에 가서 하나꼬한테 알아보고 돌아왔다. “2층 4호 방에 들어갔대요.” “수고했소.’ 문걸이 몸을 홱 돌려 곧추 2층으로 쏜살같이 뛰여올라갔다. 그는 “4호”방을 찾아내자 다짜고짜 문을 박차고 뛰여들어갔다. 한 사내가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발이 훌렁 벗겨지면서 번대머리가 환히 드러났다. 문걸은 외까풀눈으로 찬찬히 뜯어보았다. 우멍눈도 뛰여든 자를 쏘아보았다. 외까풀눈길과 우멍눈길이 공중에서 딱 부딪쳤다. 날카로운 두 시선의 량극이 부딪치며 씨뻘건 불티가 튕겼다. “앗!” 비명소리! “정호! 이 개새끼야!” 문걸은 다짜고짜 주먹을 쳐들고 덮쳐들었다. “앗!” 황선희와 나영이 비명을 지르며 발딱발딱 일어났다. 안마사들도 눈이 화등잔이 돼 이쪽을 쏘아보았다. 정호는 당황해하지도 않고 발길을 날려 문걸의 아래배를 걷어찼다. 문걸은 저만치 튕겨나가 허망 엉덩방아를 찧었다. 쿵! 머리가 벽에 부딪쳤다. “개새끼, 너도 사람이냐? 처제를 다 몇십년이나 강간해?!” 문걸은 일어나며 정호를 손가락질하며 일어났다. “하하하. 어째 일본까지 와서 지랄이야?” “오늘 니 죽고 내 죽고 생사결판을 내자!” 문걸은 주먹을 쳐들고 덤벼들었다. “넌 내 상대 아니야! ㅋㅋ.” “개새끼, 죽여치우겠다!” 문걸이 재차 덮쳐들자 남안마사 둘이 달려들어 뜯어말렸다. 문걸은 억대우 같은 남안마사들한테 두 팔을 뒤로 비틀려 용빼는 수가 없었다. 문걸이 연신 욕설을 퍼붓자 정호는 오히려 제쪽에서 적반하장격으로 빈정거렸다. “아참, 별새끼 다 본다. 영희는 내 첫사랑이야. 네놈 사람새끼라구 첫사랑마저 양보해 준게 잘못이지.”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주인 이찌로가 네모번듯한 얼굴까지 지지벌개 안마사들을 데리고 뛰여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안마방에서 싸워? 경찰에 신고할테야.” 문걸은 대수롭잖았다. 그러나 정호는 당황해해났다. (경찰에 신고하는 날엔 꼬리를 밟힐게 아닌가? 어서 이 자리를 떠야 해.) 그는 배낭에서 백딸라자리 지페 다섯장이나 꺼내 이찌로한테 찔러주면서 구슬렸다. “아니, 미안해요. 주인님, 우린 친구 사이입니다. 저 친구 술이 과했는 모양입니다.  절대 싸우지 않아요. 다툴뿐이지. 이젠 저 작자 술 깼을 겁니다. 괜찮아요.” 이찌로는 돈에 눈이 어두운 자였다. 그는 생각 밖으로 딸라를 받아쥐고 정호를 놓아주었다. 문걸은 몸부림치며 정호를 쏘아보면서 고함쳤다. “주인님, 저 놈은 중국에서 지명수배하는 흉수입니다.” 정호는 문걸을 손가락질하며 버럭 소리 질렀다. “작작 무함해라! 누가 범죄자냐? 도둑놈 같은게. 네놈이 강도질 하지 않았느냐?” “개새끼, 제 명에 죽는가 봐라!” 이찌로나 안마사들이나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어리둥절해했다. 문걸은  이찌로와 남안마사들한테 애원했다. "저 놈들을 먼저 붙잡아두세요. 누가 범죄자인가든 우리 둘을 다 붙잡아 경찰서에 가져가면 밝혀질 겁니다. 당장 우리 중국 검찰원 쵷혜영 국장을 련계할 수도 있습니다. 제발 저 년놈들을 붙잡으십시오. 저 젊은 녀자도 지명수배 탐오범입니다. 어서 붙잡으십시오..." “닥치지 못하겠니? 외국에서두 우릴 잡아먹자고 개소리냐?" "영희 들었으면 널 동정할 거 같으냐?” 문걸은 두팔을 꽉 붙잡혀도 외까풀눈으로 정호를 쏘아보면서 계속 줄욕설을 퍼부었다. “오- 니하구 사통한게 뭐. 널 초상집 개처럼 쫓겨다닌다구 동정할 거야. 개새끼, 인륜도 모르는 개새끼, 배신자, 사기군, 부패분자. 좋은 끝장 있을 거 같아?” “네년들도 다 더러운 물건짝들이야!” 문걸은 황선희를 쏘아보면서 질책했다. “황박사도 저런 놈들하구 한바지를 입고 춤을 추오?” 황선희는 여기서 문걸을 만날줄은 몰랐다. “리화가선생, 이전에 구급해준 은정을 생각해서라도 날 신고하진 않겠지요?” 문걸은 피씩 웃었다. “저 놈을 작작 돕소. 어서 절벽에서 말머리를 돌리세요. 좀 늦어 말고삐를 챘다간 절벽에 곤구박힐줄 아오.” 황박사는 얼굴에 대뜸 기겁한 기색을 띠웠다. 그녀는 주섬주섬 옷을 찾아 들고 문발뒤로 가서 바꿔 입었다. 문발 뒤에서 이런 궤변의 꼬리를 휘젓는 소리가 렴치를 잃고 새여나왔다. “저는 이번에 류학왔을 때 도사교수님을 만나러 왔을 뿐인데요.” “나관장도 눈이 멀었소. 왜 저런 색마 뒤꽁무니를 따라다니오? 어서 자수하고 그리운 아들이나 만나보오.” 나영은 덴겁해 아무 대구도 하지 못하고 옷을 주섬주섬 주어들고 문발 뒤에 가서 입고 마사지방에서 훌 나가버렸다. 황선희는 나가면서 문걸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리화가, 심장병 도지면 또 찾아와요. 빠이, 빠이!” 문걸은 쓴웃음을 지었다. “생각해줘 고맙습니다. 흥!” 이찌로는 오히려 문걸을 나무랐다. “당신, 1층에서 마사지 받지 않고 왜 여기 올라와 시끄럽게 굴어? 손님들이 시끄러워 다 가버렸단 말이오. 영업 얼마나 손실 보는지 아는가?” 그때 나나가 나섰다. “마사지 끝났어요. 이분이 싸움 건게 아니라 금방 떠나간 저 사람들이 시끄럽게 굴었어요. 떠들어대면서…” “됐다. 됐어.” 이찌로는 나나한테 눈을 흘겼다. "저 놈들을 빨리 경찰에 신고하십시오. 범죄자들입니다. 당신은 꼭 후회할 겁니다." 그러나 이찌로는 정호한테서 딸라를 받아먹었는지라 문걸을 흘겨보면서 코웃음 치더니 자리를 떴다. 나나는 형 다이로교수가 소개한 안마사였으니 다행이였지. 다른 안마사 같으면 이찌로한테 당장에서 잘리웠을 것이다. 그제야 안마사들도 문걸의 팔을 놓아주었다. 문걸은 아파나는 팔을 주무르면서 2층에서 내려갔다. “무슨 일인가요?” 춘희가 눈이 휘둥그래 문걸한테 다가왔다. “정호, 그 개새끼 여기 왔습데.” “오- 그래요?” 춘희는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저 사람들까지 와서 여기 더 복잡해지겠구만요.” 그녀는 황선희가 다이로교수네 집에 끼여들어올가봐 저으기 근심되였던 것이다. 문걸은 핸드폰을 꺼내면서 중얼거렸다. “저를 이런 데 두고 가자니 마음이 놓이지 않소. 마음이 아프오." “내 걱정말고 인차 인터폴에 신고해야죠.” “알았소. 저 놈들이 멀리 도망치기 전에 직접 신고할테오.” 문걸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전화번호를 찾았다. “최혜영 국장하구 성호한테도 알려야겠소.”        급촉한 신호가  일본 땅 사처에 발송돼나갔고 바다 건너편에까지 날아갔다. 드디여 보이지 않는 그물이 일본 땅에 널리 펼쳐져나갔다.
280    대하소설 졸혼 제3권 (44) 김장혁 댓글:  조회:1486  추천:0  2022-09-29
       김장혁 작 대하소설 제3권                                                  졸혼                                    54. 충고        도꾜만의 바다바람이 수심에 찬 얼굴에, 고민에 붐비는 가슴에 스며든다.        유람선 배머리에 문걸과 춘희가 란간을 잡고 나란히 서서 해변가 경치를 흠상한다.        수만갈래 금침, 은침이 바다를 찌르며 스며들었다가 뛰놀며 자맥질한다.        유람선 선미에서 복잡한 심리갈등이 하얀 물보라를 튕기면서 꼬리친다.        춘희는 문걸을 데리고 마지막으로 도꾜만에 바람 쏘이러 나왔다. 문걸의 자유관광 날자가 아득바득 다가왔다. 문걸은 정작 일본에 춘희를 남겨두고 떠나려니 아쉬운 나머지 착잡한 생각에 잠기군 했다. 춘희의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을 간지른다. 그는 춘희 얼굴 측면을 곁눈질하면서 말해야 하는지 저울질하다가 무거운 입을 뗐다. “춘희,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 예산이오?” 춘희는 침울한 표정으로 문걸을 돌아보면서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래요.” “무엇 때문이오?” “야마구찌 마끼를 혼자 두고 가지 못하겠어요.” “그럼 마끼도 데리고 가면 안되오?” 춘희는 외까풀눈을 흘기기까지 했다. “천만에 말씀.” 문걸도 외까풀눈으로 똑바로 마주 보았다. “왜? 그래 가은이마저 완전히 야마구찌 가족으로 만들 예산이오?” 춘희는 잔주름이 늘어가는 외까풀눈을 살며시 내리감았다. “가은이만은 저처럼 살게 할 수 없어요.” 문걸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참 답답하오. 저네 모녀간은 왜 일본에 이리 집착하는지 모르겠소. 저는 박사 아니고 뭐요? 고향 병원에서도 몇만원씩 벌겠는데…” 춘희는 선두에 사람들이 몰려오자 복잡해 선미쪽으로 걸어갔다. 문걸은 뒤따라가며 뒷말을 이었다. “가은이도 야마구찌 다이로 교수 양딸로 있으면 행복할 거 같지 않소.” 춘희는 홱 돌아서면서 홰를 썼다. “고양이 방정을 작작 떠세요. 가은인 친아빠도 없으나 다름없어요. 그 앤 다이로교수 품에서 자라나나 다름 없어요. 마끼는 다이로교수 양딸로 있어야 돼요.” 문걸도 언성을 높였다. “딱 야마구찌 일가 일원으로 돼야 장차 전도를 개척할 수 있단 말이오?” 춘희는 선미 이쪽에 눈길을 돌리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언성을 낮추었다. “전 다이로교수 신세를 많이 졌어요. 다이로교수를 배신하고 훌 가버릴 수 없어요.” 문걸은 코웃음쳤다. “그래 야마구찌 다이로교수를 진정으로 사랑하오?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어 그래오?” 문걸은 “어째 고향으로 훌 돌아가지 않소? 다이로교수 재산 때문이 아니오?” 하고 물으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억지로 꿀꺽 삼켜버렸다. 선미에서 새하얀 갈등이 파도로 둔갑해 쏜살같이 쏟아져 나간다. 사품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춘희는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내가 진정 다이로교수를 사랑하는가?) 그녀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다이로교수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 다이로교수 감사해 감은할뿐이다.  다이로교수는 내 박사도사이고 젤 어려울 때 친 아빠처럼 도와준 은인이야. 나는 그를 존경할뿐 결코  사랑하진 않아. 그의 박식함을 존경하고 그의 은정에 감은하고 감격했을뿐이다.) 그러나 춘희는 문걸 앞에서 그런 내심의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믿는 사이라고 해도 그런 험담을 할 수 없었다. “저는 다이로교수를 마음 속으로부터 사랑해요. 그이는 일본에서 보기 드문 훌륭한 교수입니다. 민족기시가 험한 섬나라 오랑캐들과는 달리 아주 착하고 동정심이 많은 분입니다.” 춘희는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제가 조선인이라고 업신여기지 않았어요. 저를 정성을 다해 아빠처럼 도와주고 이끌어준 등대와도 같은 분입니다. 바람잦은 바다가의 부두와도 같은 분입니다. 그에게 기대면 아주 믿음직하고 편했습니다. 그는 저의 구명은인입니다. 저는 그를 절대 배신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마음과는 다른 말을 한데 저으기 놀랐다. 그러나 그것은 다 다이로교수에 대한 지나친 평가에 지나지 않았다. 또 어디까지나 복잡한 내심의 갈등과 고민을 가리려고 내든 방패에 불과했다. 문걸은 춘희 말을 듣고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내 보건대, 춘희박사하구 다이로교수는 스승과 제자 관계라고 보오. 아빠와 같은 은인과 딸 같은 제자 관계뿐인 거 같소. 절대 사랑하는 관계인 거 같잖소. 다이로교수는 아마 춘희를 사랑했는지는 모르겠소. 다만 애도 못낫는 본댁과 갈라지고 제처럼 젊은 녀자를 관심하는 척하면서 나꿔채 애나 낳으려고 했을뿐인지도 모르오. 지금 애도 낳아주지 않은 저를 이전처럼 사랑한다고 보오?” “그만 합시다. 이젠 다신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춘희는 쓰라린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돌아섰다. 갈매기들이 고민의 덮개를 물고 수면을 스치며 파란 하늘과 퍼런 바다 사이를 헤가른다. 사색의 끈은 은인 관심과 방조 사랑도 분명하게 갈라놓으며 쓰라린 고민의 서정시 꼬리를 파도 밑에 감춰 매놓는다. 풀고 풀어도 끝이 없는 실망의 삼검불이 하얀 물바래로 바다 물에 부서지며 만갈래 파문을 파다히 일으킨다. 춘희는 사실 다이로교수와 함께 하루 밤을 지내는 것이 삼추와도 같았다. 다이로교수한테서 밤이면 밤마다 성학대를 당하고 “강간”당하는 것에 신물이 날 지경이였다. 그러나 딸애한테 다이로교수 유산을 물려받게 하려고 억지로 참으면서 물앉아 있었다. (난 딸애를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 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어. 하나 밖에 없는 딸애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딸애를 데리고 훌 고향으로 돌아가기오. 나와 함께 참사랑을 향수하면서 재미나게 살면 어떻소?” 문걸의 도전적인 말에 춘희는 몸서리를 쳤다. “아니, 이러지 마세요. 저는 딸애 전도를 중도에서 망가뜨리고 고향에 돌아갈 순 없어요. 마끼는 아직 졸업하지도 못했어요. 그는 다이로교수 제자이자 양딸인데요. 저는 마끼가 다이로교수 심목 중에 나나한테 밀리는 걸 가만놔둘 순 없어요.” “왜? 더는 나를 속이고 저를 속이지 마오.” 문걸은 춘희 손을 잡으면서 애원에 찬 눈길로 그녀를 마주 바라보았다. “나를 사랑하지 않았단 말이오? 그래, 이전에 등산하러 가서 지하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맺은 참사랑이 다 거짓이였단 말이오?” 춘희는 연신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닙니다. 그땐 협곡 눈구덩이에 빠져 당장 죽는 걸로 알고 그만…” 춘희는 뒷말을 인차 잇지 못햇다. “리선생님은 행복지수가 높은 분입니다. 제가 항상 존경하는 화가입니다. 마음씨도 착하고 안해한테 잘해준 남편이죠.” “그럼 왜 돌아가지 못하오? 충고하오. 이제라도 늦지 않았소. 고향으로 돌아가기오. 그게 우리 삶의 터전이오. 일본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우리 조선족들이 살 곳은 아닌 것 같소.” 춘희는 진정이 넘치는 눈길로 문걸을 돌아보았다. “저는 아직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어요.” “언제까지 그 소리오?” “물론 제가 혼자 행복하게 살려면 딸이고 뭐고 다 버리고 여길 훌 떠나가면 다죠. 그러나 저는 지금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널리 량해하세요.” 문걸은 피뜩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전번에 다이로교수가 훌 죽었더라면 모든게 끝났겠는데…” 륜선이 종착항구에 도착해 서서히 부두에 다가갔다. 손님들이 내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걸의 일본 자유관광도 모든 일정을 마친 셈이였다. 륜선에서 내리자 춘희는 문걸을 돌아다보면서 물었다. “일본 관광 인상이 어때요?” 문걸은 도꾜만을 휘 돌아보면서 대답했다. “참 인상 깊소. 덕분에 일본 자연경치 잘 구경했소. 그보다도 춘희박사 처지를 잘 알게 돼 관광가치 있소.” 그것은 춘희가 문걸을 일본에 관광하러 데리고 온 목적이기도 했다. 춘희는 문걸을 피끗 곁눈질해보며 속으로 물었다. (이젠 제가 다이로교수와 어떻게 사는가를 다 보았겠지요? 그래도 날 사랑하는가요?) 춘희는 문걸과 함께 택시를 타고 해변가 해물관으로 달려갔다. 갈매기들이 누렇게 번지면서 타오르는 저녁노을 맞받아 누렇게 물드는 바다를 날아예면서 자유의 기발을 펄럭인다. 백사장이 가슴을 열고 새하얀 물바래를 받았다가도 다시 만날 약속과 미련을 심어주고는 활 놓아준다.      해변가 해물관은 마치 선경과도 같았다. 커다란 창문 밖으로 햐얀 돛배가 푸르른 파도를 헤가르며 쏜살같이 내달린다. 신사숙녀들이 백사장에 들어누워 백지장 같은 몸을 드러내고 짙어가는 락조에 해볓쪼임을 즐긴다.     춘희는 문걸과 마주 앉아 메뉴노트를 들고 해물을 골라 시켰다.     “간단히 먹기오.” ‘마지막만찬일 수도 있겠는데요. 맛있는 해물을 대접해드려야죠.” “마지막이라니? 참.” 문걸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춘희는 새물새물 웃었다. “걱정 마세요. 여기 일 잘 정리되면 고향으로 돌아가겠어요.” “엉?! 진짜?!” 문걸은 자기 귀를 의심할 지경으로 놀랐다. 언성이 어찌나 높았는지 건너 상의 손님들마저 문걸을 돌아보았다. 문걸은 머리를 숙이며 나직이 물었다. “그래, 진짜 고향에 돌아오겠소?” 춘희는 쌔무룩이 웃음지어 보였다. “그럼요. 제가 일본을 좋아서 못 떠나는가 해요? 아무리 부유하게 살아도 누가 민족기시와 학대를 받으면서 일본에서 살자고 하겠어요?” 문걸은 머리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소. 가은이 학업을 마치면 돌아오려는 거요?” 춘희는 메뉴책을 놓으면서 정색했다. “마음이 제대로 정리되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어요.” 춘희는 다이로교수가 이젠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아냈다. 다이로교수는 춘희한테 아들을 낳아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안고 있었다. 하여 그는 본댁 모모에와 협의리혼을 하였다. 그러나 10년이 넘도록 춘희는 애를 하나도 낳아주지 않았다. 다이로교수와 사는 것이 피곤해 구실을 대고 고향으로 돌아가 거의 1년 넘게 피신해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이젠 확실히 그젯날 감격과 사랑이 메말라가고 있었다. 다이로교수도 춘희에 대한 갈망과 열정이 뚜렷하게 식어갔다. (다이로교수의 마음은 나나한테 가 있어. 그는 딱 옛날에 날 관심하던 것처럼 나나를 관심하고 있잖은가. 새파란 나나를 채서 애도 낳으려는거겠지. 다이로는 세상에 못해 본 짓이 없어. 다만 자기 애를 낳아 뒤를 잇게 하려는게 최종목적이야. 그 념원 밖에 남지 않았어.) 문걸도 다이로교수의 그런 내심번화를 다 간파해냈다. 그는 춘희 내심도 다 읽은듯이 머리를 끄덕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였다. “나는 이제껏 춘희를 아주 순박하고 량심적이고 베풀줄 아는 박사로만 알았소. 그런데 지금 보면 저도 그리 순박하진 못하오.” 춘희는 피씩 웃었다. “무엇 때문인가요?” “제 생각해보오. 저는 분명 다이로교수를 사랑하지 않고 있소. 그에게서 마음이 떠날대로 떠났다고 보오.” 춘희는 맥주잔을 들어 권하려다가 내려놓았다. “아닌데요. 오해했어요. 저는 다이로교수 사랑을 흠뻑 받은 녀자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요. 다이로교수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난 일본 류학초기에 벌써 병도 온전히 치료하지 못하고 죽었을 거예요. 다이로교수가 아니였으면 저는 석사, 박사 공부는 커녕 진작 고향으로 돌아갔어야 했을 겁니다.” “그거야 나도 알지.” 춘희는 이쑤시개로 소라 살을 쏙쏙 뽑아 문걸의 앞 사라에 놓아주고나서 뒷말을 이었다. “그는 저의 학비와 생활비를 다 대주었는데요.” 문걸은 왕게 다리를 쑥 뽑아 춘희 앞의 접시에 놓아주며 말했다. “그거야 다이로교수가 저를 쟁취하자고 들인 노력이지. 지금 다이로교수는 나나한테 딱 춘희한테 하던대로 잘 해주고 있잖소?” “호- 그래요. 마끼한테도 딱 저한테 하던대로 하죠. 그게 근심스러워요.” 문걸은 저가락을 놓으면서 정색해 춘희를 마주 바라보면서 말했다. “춘희는 확실히 다이로교수 동정과 관심을 많이 받았고 신세도 많이 졌소. 지만 결코 사랑하지 않고 있소. 오히려 증오할 수도 있소. 그저 아빠 같은 은인과 딸 같은 제자관계일뿐이라고 보오.” 춘희는 눈을 곱게 흘겼다. “아니죠. 리선생님, 사랑은 동정과 관심으로부터 전변될 수도 있지요. 저와 리선생님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선생님의 말대로라면 저와 리선생님 관계는 그저 의사와 환자 관계 아닌가요?” “아니, 단지 그런 관계 아니지. 나의 몸 속에는 김박사 뜨거운 사랑의 피가 흐르고 있소. 저는 구명은인이오. 그뿐이 아니오…” 춘희는 손사래를 쳤다. “그만 합시다.” 문걸은 뒷말을 이었다. “친구기에 충고하오. 다이로교수 유산을 노리지 말고 고향으로 돌아가 참된 사랑을 누리기오. 자칫 다이로교수도 해치고 자기도 해칠 수 있소. 나나하구 작작 경쟁하오. 오누이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살겟다고 모지름 쓰는게 얼마나 불쌍하오? 나나 오누이를 놔주오. 잘못하면 나나하구 마끼도 해칠 수 있소.” 춘희는 대뜸 걀죽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진짜 너무 합니다. 저를 뭐로 아는가요? 마끼보다 나나를 더 동정하는 거 같군요.” “나나 오누이는 내 친구 승호의 아들딸들이오. 걔들은 어려서 부모 잃고  일본에서 살겠다고 아글타글하잖소? 얼마나 불쌍하오? 춘희박사는 베푸는 인생을 살지 않고 뭐요? 오누이를 돕는 셈치고 말머리를 돌리오. 지금대로 계속 나가면 아주 위험하오.” 춘희는 억이 막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충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나가 우리 모녀를 다이로교수네 집에서 밀어내는 거  보고만 있을 순 없어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절대 안돼요.” “한심하오. 어째 다이로교수한테 그렇게 집착하오. 진짜 돈이란게 얼마나 무섭소?” 문걸은 이렇게 뒷말을 잇고 싶었다. “어쩜 다이로교수 유산에 이다지도 눈이 어둬워졌소?” 그러나 그는 간신히 그만 두었다. 춘희는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고향에 돌아가더라도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저는 두번이나 혼인에 실패했어요. 이젠 재혼 말이 나와도 신물이 날 지경인데요. 리선생님은 저를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없어요.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새 출발을 하는게 좋을 거 같아요. 사람의 마음은 요사하니깐요. 사랑은 요술쟁이니깐요." 문걸은 억이 막혀 멍해 춘희 눈귀의 잔주름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한참 후에야 간신이 이렇게 물었다. "그래 새파란 나이에 홀로 살 예산이오?" "그럴 수도 있죠. 이젠 진짜 다이로교수와 졸혼하고 혼자 조용히 나홀로만의 인생을 살고 싶어요. 지금 졸혼은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류행돼요. 새로운 혼인풍속도인데요. 서로 피곤하지 않고 자유로워서 좋을 거 같아요." 문걸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래 다이로교수와 리혼은 하지 않고 졸혼계약서라도 쓰겠다는 거요." 춘희는 문걸의 말에 개의치도 않고 솔직히 대답했다. "네. 그게 다이로교수나 저에게나 다 좋은 상책인 거 같아요. 리혼을 두번씩이나 했다는 말도 듣지 않고. 다이로교수는 마음대로 더 젊은 녀자를데리고 살아보고. 저도 다이로교수의 성학대를 벗어나 조용히 제 삶을 살면서 자유를 누릴 수 있잖겠어요. 이젠 진짜 사는게 피곤해요." 문걸은 휴지로 입을 닦으면서 솔직하게 말했다. "나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댔소. 그런데  점차 사람은 마음맞는 남녀가 함께 사는게 옳다고 생각하게 되오." 춘히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예요. 지금 일본의 3분의 1이나 되는 녀성들이 성랭담증에 걸리나 다름없다고 해요. 그들은 남자가 필요없다고 해요." "그럼 성적욕구는 어떻게 해결한다오?" 춘희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녀자들의 해결방법은 아주 많아요. 녀자들은 딱 신체접촉할 필요없어요. 남자들과 따뜻한 말을 주고 받아도 일정하게 성적 만족을 얻을 수도 있어요."  "지금처럼?" 춘희는 희쭉 웃으며 머리를 숙였다. 문걸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러자 춘희는 쌔무룩이 웃더니 고개를 더 숙였다. "창피하지만요. 또 남자들이 필요없이 자위로라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어요. 녀자들을 웃지 마세요. 리선생님도 아사꼬한테서 성적욕구를 위안받지 않는가요?" 춘희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춘희는 옆상 손님들의 눈치를 핼끔 곁눈질해보더니 맥주잔을 들고 화제를 돌렸다. “오늘 왜 아사꼬를 데리고 오지 않았어요?” 문걸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말도 마오. 어찌나 끼어드는지. 스위치를 꺼서 호텔 침대에 훌 눕혀놓고 나왔소.” “호호호.” 춘희는 입을 싸쥐고 웃었다. “어째 그 고운 로봇미녀를 그렇게 홀대해요?” “이젠 귀찮소.” 그러자 춘희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문걸한테 다가앉으며 언성을 낮춰 말했다. “이번에 귀국할 때 미녀로봇을 두고 가겠어요?” 문걸은 쥐였던 왕게 다리를 접시에 놓으며 춘희를 마주 바라보며 물었다. 눈귀에 잔주름이 확 끼였다. “어째? 저도 돌아가지 않으면서. 흥, 아사꼬마저 없으면 내 적적해 어떻게 사오?” 춘희는 목소리를 낮춰 정색하며 말했다. “제가 요긴하게 쓸 일이 있어 그래요.” “뭣에 쓰려고?” 춘희는주위를 둘러보더니 신비한 눈길로 문걸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녀는 문걸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뭐라고 종알거렸다. 그러자 문걸은 싱글벙글 웃으며 엄지를 척 내들었다. “참 묘수로군. 허허허.” 춘희 얼굴에 수심의 그림자가 잠시나마 사라지고 한가닥의 희망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자, 한잔 들지요. 일본 관광을 즐겁게 마무리지은 걸 축하해요.” 문걸도 잔을 들었다. “이번 관광 때문에 수고 많았소. 어떻게 하나 여기 일을 잘 마무리하고 고향에 돌아오기를 바라오.” 그들은 맥주잔을 딩둥댕 마주치고 씨원히 들이마셨다. 순간이나마 즐거움이 사교무를 추며 고민의 삼검불을 불태워버린다. 일루의 희망의 꿈이 마차에 앉아 콧노래 부르며 낮잠을 잔다.     해물관 커다란 유리창문 너머 락조 비낀 해변가 백사장이 입을 헤벌리고 거세찬 파도의 키스를 받을 준비를 서두른다.     검푸른 파도가 살진 고민의 가슴을 집어삼키더니 하얀 물보라 치마를 들고 아우성치며 신비한 이벤트의 꼬리로 처절썩 다독여주고 서서히 물러간다.  
279    대하소설 졸혼 제3권 (43) 김장혁 댓글:  조회:1241  추천:0  2022-09-23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3권                 53. 자수      보이지 않는 그물이 하늘을 스치면서 별의별 구름과 도깨비들을 다 걸여낸다. 그러나 그물 두새로 몇몇 미꾸라지들이 솔솔 빠져나간다. 저승사자 퉁방울눈에 서린 고민에서 자수의 미련이 튕겨나온다. 저승사자는 입귀로 기다림과 미련을 련이어 뱉어 수사망에 심어놓고 고기가 걸려들기를 길목을 지키며 고이 기다린다.       최혜영 국장은 사무상에 이마를 고이고 앉아 걀죽한 얼굴을 찡그리며 고민의 수렁에 빠졌다. 그녀는 수사일군들을 사처에 파견해 나영과 정호를 추격하다가 놓치고 만 것으로 해 잠도 잘 오지도 않았다. 그녀의 찌프린 이마에 실주름살이 더 늘어갔다. 량미간에도 흰머리 드문드문 보였다.        그녀는 사무상을 꽝 치며 이를 뻑 갈았다. 봉이 눈섭 아래 세귀쌍까풀눈에서 무서운 빛이 발산했다.         (나영과 정호 핸드폰은 몽땅 다른 사람이 주어 쓰고 있지 않는가. 못된 년놈들, 너무 얕잡아 봤어. 흥!) 실로 나영과 정호는 국내에서 꼬리도 보이잖게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최혜영 국장은 정호가 이다지도 반정탐능력이 강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성호는 정탐능력이 강하기로 “사인정탐가”, “정의용사”로소문났잖은가.) 그러나 정호는 성호보다 반정탐능력이 더 강했다. (참 무서운 놈이야. 어쩜 우리 핸드폰 위치로 추적할 거 같으니. 핸드폰을 역리용해 우리 수사일군들의 시선을 따돌렸어?)        사 후 공항파출소와 최혜영 국장은 감시카메라를 추적해 “김성수”와 “허가인”이 바로 최정호와 나영이라고 확인했던 것이다.        “교활한 놈, 공안국 방호복까지 입고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갔어?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어. 흥!” 박동묵 국장은 최혜영 국장한테 인터폴을 가동하자고도 했다. 어떻게 말하면 그는 정호와 6촌매형이라는데서 대의멸친을 보여줘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직 인터폴까지 가동할 여건은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정호는 살인범도 아니고 중대경제범죄자도 아닙니다. 위에서도 인터폴에까지 상정하라고 비준할 것 같지 않습니다.” 박동묵 국장은 의아해 최국장을 쳐다보았다. “그럼 정호와 나영을 놔둔단 말입니까?” 최혜영 국장은 사무실을 한참 뚜벅뚜벅 왔다갔다 거닐다가 뚝 멈춰섰다. “나영은 5만원 밖에 탐오하지 않았습니다. 왜 정호를 따라다니는지 모르겠습니다. 죄행을 낱낱히 탄백하고 장전을 바치면 징역형도 경하게 판결받을 수도 있는데요.” “글쎄 말입니다.” 최혜영 국장은 사무상에 돌아가 의자에 앉아 정색했다. “정호 아들과 나영의 남편을 찾아가 나영을 보고 자수하게 설득해보랍시다.” 박동묵 국장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일본까지 달아난 자들이 자수하겠습니까?” 최국장은 박국장의 심드렁한 표정을 치켜보면서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10프로 가능성만 있어도 노력해봅시다. 황차 그들은 가짜려권을 가지고 일본에 나가지 않았습니까? 자유관광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오래잖아  불법체류입니다. 일본에서 더 배길 수 있겠습니까?” 박국장은 의연히 도리머리를 저었다. “정호 옆에 일본통 황선희박사가 있잖습니까? 또 무슨 수를 댈지 누가 압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일본 경찰서 쪽에 다른 도경으로 정호 체포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해봅시다.” “예, 그게 좋겠습니다.” “정호와 나영의 식구들과 자수를 설복하게 하는 일도 늦추지 맙시다.” “예. 알았습니다.” “나영의 남편 철석과 친구 박지영한테는 박국장이 경찰을 배치하십시오.” “예. 박지영한텐 녀경을 보내죠.” “예. 녀경이면 녀성들의 고통도 알고 접근하기 쉽죠.” 최혜영 국장은 창문 밖을 멀리 응시하다가 박국장을 마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정호와 나영보다도 오정룡을 시급히 나포해야 합니다. 그는 망아산 중대형사사건 중심혐의자입니다.” 최국장은 세귀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지금 오정룡의 단서 있습니까?” 박국장도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전번에 성호한테 얻어맞고 도망친 후 종적을 감췄습니다. 혹시나 해 로씨야로 통한 해관들까지 수사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없습니다.” “오정룡, 그 날강도를 하루라도 나포하지 못하면 백성들의 생명재산에 아주 큰 위험을 주게 됩니다. 하루속히 나포해야 합니다.” 박동묵 국장은 네모진 얼굴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예. 꼭 나포하겠습니다.” 최혜영 국장은 박국장을 쏘아보면서 명을 내렸다. “누가 정호와 나영의 미국행 비자를 수속해줬는가 수사하십시오. 그자도 엄벌해야 합니다.” “예” 박동묵 국장이 떠나간 후 최혜영 국장은 성호한테 전화했다. “오빠, 지금 어데 있는가요?” “딸 집에 있소. 무슨 일 있소?” “전화받기 괜찮은가요?” “말하오.” “그게 뭐요? 숱한 사람이 멀쩡하게 정호를 놓치다니?” “정호 그렇게 교활할줄은 몰랐소. 속담에 사람 열이 도적놈 하나 막지 못한다고 하잖소?” “오빠, 미안한 부탁 한가지 하기오.” “뭔데?” “지금 나영과 정호는 확실히 일본에 달아났어요. 군철이 방호복이랑 얻어준 거 같아요. 군철인 정호를 엄호해 도망치게 하잖았고 뭔가요? 군철도 엄정한 처벌 피할 순 없죠.” 최혜영 국장은 봉이 눈섭이 이마에 철싸닥 올라가 붙을 지경이다. “오빠, 군철을 한번 찾아가 설복해보세요. 정호를 보고 자수하게. 좋기는 군철한테서 정호 일본 주소도 알아내세요.” “아들이 애비를 잡아먹자 하겠소?” 혜영은 핸드폰을 들고 언성을 낮췄다. “오빠,  정호는 죽을 죄를 진 것도 아니잖고 뭔가요? 숱한 다른 범죄자들의 죄행도 적발했으니깐. 죄가 많이 삭감됐어요. 이제 불의지재까지 바치면 형벌이 훨씬 줄어들 수 있어요. 자수하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출로죠.” “알았다. 그런데 군철이 말을 듣겠는지 모르겠다. 금방 애비로 받아들인 거 같은데 애비를 팔아먹자고 할가? 내 하나하구 알아보니 군철도 애비를 닮아 그리 호락호락할 거 같잖소. 애비보다 더 교활하고 반정탐능력이 더 강한 거 같소. 청화대학 수석인재 아니고 뭐요? 연구생학생회 회장도 한 적이 있다오. 그러나 한번 부딪혀보지.” “수고하겠어요. 이번 일만 끝나면 돌아오세요.” “오정룡은 나포했소?” “아직은. 오빠, 그 일에선 손을 떼세요.” 최혜형 국장은 전화를 덜컥 놓고 의자에 기대앉으면서 눈을 스르르 감았다.   한편 하나는 아버지 옆에서 전화 소리를 엿듣고 야단쳤다. “아빠, 어째 딸의 밥통을 깨버리자고 이럽니까? 아빠 경찰입니까? 검사입니까? 왜 하필 군철오빠네 아빠를 잡는데 삐칩니까?” “삐치지 말라.” 하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성호 두 팔을 붙잡고 애원했다. “아빠, 부탁입니다. 군철오빠네 일에 작작 삐치세요. 전번에 그러잖아도 군철오빠 날 불러다놓고 야단쳤습니다.” 성호는 신을 껴신으려다가 말고 홱 돌아섰다. “뭐라고?” 하나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아빠한테 자기 정황이랑 알려줬는가고 따집디다. 그를 잘못 건드렸다간 내 어디 허망 날려가 꽂힐지 모릅니다. 군철오빠 우리 회사 부총경리 됐습니다. 2인자지만 기실 회사 1호 실세입니다. 본사에도 그의 뿌리가 얼기설기 깊이 박혀서 박총경리도 그를 어쩌지 못합니다. 진짜 우리 회사 초패왕입니다. 군철오빠를 잘못 건그렸다간 이 딸이 썩뚝 잘려요.” 그제야 성호는 심각성을 느꼈다. “너 자릴 옮겼느냐?” 하나는 울상을 지었다. “박총경리 비서로 들어갔습니다.” “너무 좋아서? “좋다니오? 그 음충한 눈길만 봐도 몸서리치는데도.” “그러지 말라. 박총경리를 잘 모시기만 하면 벼슬길이 활짝 열릴지 아냐?” “아빠!” 하나는 울상이 돼 몸부림까지 쳤다. “어쩜 그런 말 다 해요? 그래 딸이 잘못될가 봐 근심되지도 않아요?” “네만 똑똑하게 놀면 감히?! 네가 지혜롭게 대처해야 해.” 하나는 쏘파에 다가와 아빠와 나란히 앉으며 두 손을 잡고 하소연했다. “윤선도 내 박총경리 비서로 들어간 걸 좋아하지 않습디다. 어쩌면 좋겠는지 모르겠어요.”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의 눈확에 잔주름이 확 느는 것이 눈에 띠였다. “그럴테지. 어느 남자 자기 사랑하는 녀자 그런 자리에 들어간 걸 좋아하겠느냐?” 그는 딸의 머리를 어루쓸어주면서 뒷말을 이었다. “그래, 총경리 비서면 직급과 로임은 어떻게 되니?” “과장급에 년금 30만원이래요. 말로는 장차 잘하면 팀장급으로 승급시키고 년금 50만원으로 올려주겠다고 했어요.” “그래?”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박총경리 2년 후면 훌 가버리겠는데. 경쟁이 심한데다가 본사의 제발규정이 있는데 박총경리 2년 임기 내에 팀장으로 승급시킬 수 있겠습니까?” “군철인 얼마냐?” “부총경리 아마 년금이 백만원도 훨씬 넘을 거예요.” “참 좋구나. 너네 년령층이 고향에서야 언제 그렇게 벌겠니? 한 20년 벌어도 백만원 벌가?” “돈은 돈이구. 윤선일 보기 민망해요. 자꾸 다른 자리에 옮기라고 해요.” “윤선도 차차 리해하겠지.’ 성호는 하나 손을 잡아주면서 일깨워주었다. “너무 그 회사에 얽매우지 말라. 미국 하버드대 졸업생이 어데 가서 고만한 일자리를 못 찾겠니?” “아빠, 몰라요. 이젠 30대 중반이기에 우리 이젠 다른 기업에 가려고 해도 잘 안 받아요. 전번에 미국 회사에 서류를 넣어보았어요. 건데 우리 직급과 대우 요구 높다고 받지도 않았어요. 우린 또 지금보다 대우 낮은덴 가지 않으려고 하죠. 이 시내에 미국과 일본, 대만, 싱가포르 숱한 회사 있어요. 일본 회사에선 미국 류학생보다도 일본 류학생을 선호해요. 회사 옮긴다는게 쉽지 않아요. 조선족은 그래도 한국 회사 젤 좋아요.” “잘릴가봐 너무 근심하지 말라. 돈만 돈이라고 하지 말고 자기 인격을 지키면서 살아야 해. 알만해?” “박총경리 노는 꼬락사니 눈에 거슬릴 때 많습니다. 그저 꾹 참고 견딜뿐입니다.” “이제 비서로 간지 며칠이라구 그래.” “자주 회식에 불리워 가서 총경리 루추한 꼬락서니를 한두번만 본게 아닙니다.” “얘, 한국인들이 원래 그래. 넌 꼭 자기 인격을 직켜야 한다. 한국인들이 우리 조선족들을 너무 깔보고 괴롭히는 거 진짜… 살자면 별 수 없어. 낮은 문턱에 머리를 숙이면 머리 덜 터져.” 총명령리한 하나는 아빠 말을 제꺽 알아들었다. “아빠를 봐라. 국영광고회사 총경리도 다 훌 버리고 개체로 광고회사를 차리잖았느냐? 자유로워서 너무나 좋다.” 그러나 성호는 “남의 밑에서 벌벌 기지 않고 자유롭고.” 하고 말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괜히 하나가 비서를 훌 그만두고 고향이라도 돌아오면 어쩌겠는가. 그는 화제를 돌렸다. “얘야, 언제 결혼하니?” 하나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결혼해 뭐 해요? 아빠하구 엄마 보세요. 아빠는 중국에, 엄마는 이젠 미국에 간지도 20년이 거의 되잖는가요? 어디 부부 같습니까? 그저 명의상 부부지. 사실 남남이나 다름 없잖아요?’” “그러게 너넨 빨리 결혼해. 엄마하구 아빠처럼 갈라지지 말고 잘 살아라. 나도 이젠 예순고개에 오르니 손자를 안아보고 싶구나.” “조급해 말아요. 내나 윤선이나 다 고험을 겪어야 해요.” “야, 미국 류학 때부터 10년이나 지내보내고서두 아직도 더 고험해야 하니?” 하나는 정색했다. “아빠, 내 박총경리 비서로 들어가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아요?” “넌 인격을 꼭 지켜라. 윤선은 널 믿어야지.” 하나는 아빠 두손을 꼭 잡았다. “아빤 절대 군철 오빠나 건드리지 마세요. 그럼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다. 나도 군철을 어찌자는게 아니구. 그를 설복해 정호를 자수하게 권고하자는게야. 그게 군철의 아빠를 구하는 길이야.” “그래도 그렇지. 아빠 무슨 경찰입니까?” “아니야. 정호와 친구니깐. 선의로 자수하라고 권고하자는게야. 지금처럼 상가집 개 신세로 쫓겨다닐게 있니? 자수하고 몇해 감옥살이하다가 나와서 자유롭게 사는게 낫지.” 그래도 하나는 극구 말렸다. “알았다. 절대 네 전도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게.” “손을 떼라는데도.” “그래, 그래. 알았다.” 그러나 하나가 부랴부랴 출근한지 얼마 안돼 그는 군철을 찾아갔다. 대문 앞에서는 진붉은 오성붉은기와 하얀 태극기가 나란히 휘날리고 있었다. 성호는 회사 대문에 다가가서 당직실 당직과 찾아온 사연을 말했다. "리부총경리께서 들어오시랍니다.” 군철이 그를 들여놓을줄은 진짜 천만뜻밖이였다. 3층 부총경리실에 노크하고 들어가자 군철이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마중했다. “삼촌, 어떻게 돼 왔습니까? 어서 여기 앉으십시오.” 그는 성호 두 손을 잡더니 푹신푹신한 쏘파에 모시고 갔다. 하나 대신 경희가 커피잔과 차잔을 받쳐들고 오더니 차탁 위에 올려놓았다. 경희는 하나 대신 군철의 녀비서로 됐다. “맛있게 드십시오.” 경희는 성호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커피잔을 들어 후후 불며 마시면서 부총경리실을 둘러보았다. 90평방도 더 되게 널다란 사무실 좀 높은 단상에는 커다란 보스사무상이 놓여있고 회전의자에 군철이 번대머리를 손으로 짚고 틀스레 앉아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용건이 뭣이기에 여기까지 찾아왔습니까?” 군철의 눈길이 금방 마중할 때와는 달리 곱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하나를 비서자리에서 내보낸 걸 잘한 일이라고 느꼈다. (이젠 내놓고 날 수사하러 왔군. 흥! 배은망덕한 놈. 하나한테 진작 경고했건만. 쳇, 할대로 해봐. 누가 이기는가? 누가 밑지는가?) 성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호 지금 일본 어데 있소?” 군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 “모릅니다. 재간 있으면 직접 조사해보십시오. 경찰들이 붙잡아오랍디까? 앞잡이질 작작 하십시오.” “얘, 그런게 아니다.” “픽-“ 옆에서 보던 경희가 입귀를 비쭉거렸다. (별게 다 우리 총경리님을 보고 야, 자 해? 흥!) “경희, 자리를 내주겠소?” “네- 총경리님.” 경희는 나가면서도 성호한테 눈을 핼끔 흘겼다. 군철은 성호한테 다가오면서 대성질호했다. “내게서 최정호선생 정황 알아내려니 하지도 맙소. 길러준 개 발뒤축을 문다고. 얼마나 배은망덕한 개들입니까?” “얘, 아니, 리총경리, 욕하지 말고 내 말 들어보오.” 군철은 우멍눈을 부라리기까지 했다. “정호선생 말이면 하지도 말고 가십시오. 바쁜 사람 좀 붙잡지 말구.” “아니, 리총경리, 정호를 좀 자수하라고 권고하면 어떻소?” “자수?”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군철은 번대머리를 홰홰 저으면서 딱 잡아뗐다. “그가 어데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런 련계방식도 없습니다.’ “리총경리, 곰곰히 생각해보오. 정호는 죽을 죄를 진 것도 아니오. 내 친구로서 정호한테 권고하지만. 자수하는게 상책이오.” 그러나 군철의 실눈이 돼버린 우멍눈에서는 의심하는 빛이 번쩍였다. (친구? 아빠를 잡아먹자면서도. 흥!) 군철은 이렇게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간신히 꿀꺽 삼켰다. 성호는 번대머리 그런 음침한 표정을 다 읽으면서도 계속 했다. “검찰원 반탐오회뢰국 최혜영 국장이 보증하던데. 자수하구 불의지재를 다 바치면 감형될 수 있답데. 정호는 숱한 범죄자들을 적발한 것만 해도 훨씬 감형될 수 있다오. 지금처럼 상가집 개처럼 이국 타향에 가서까지 쫓겨다니면서 살게 있소?” (쳇, 고양이 쥐 생각한다고나 해라.) 그러나 군철도 아버지를 보고 자수하라고 한 적이 있지 않는가. 군철은 우멍눈을 슬며시 감고 한참이나 베아링처럼 궁리를 돌렸다. 이윽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수하는게 맞습니다. 이제 련락이 닿으면 자수하라고 권고해보지오.” 성호는 쏘파에서 일어났다. “잘 생각했소. 난 딱친구 정호가 구렁텅이에 점점 더 깊이 빠지는 걸 보고 있을 수 없소. 오해하지 마오.” “녀비서!” “네-“ 경희가 바삐 달려들어왔다. “운전수를 부르오. 이분을 잘 모셔가라 하오.” “네- 곧 련락하죠.” 군철은 성호를 대문 밖까지 바래였다. 대문 앞에는 보마찌프가 대기하고 있었다. 군철은 보마찌프가 떠나가는 뒤에 대고 코방귀를 “흥!” 하고 뀌였다. 그의 우멍눈에는 무서운 빛이 서렸다. 그는 엘레베터를 타고 사무실에 올라가면서도 이를 옥물고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네놈새끼 아빠를 팔아먹기만 해봐라. 하나 살아남을 거 같애?) 아이고, 이걸 어쩌나? 지금 시에미 역정에 개배때기를 찰 예산이 아닌가? 저쪽 총경리 비서실 창문에 하나의 근심스런 얼굴이 엿보인다. 아득바득하는 생존의 허리에 곰팡이가 코웃음치며 들어앉는데 서슬푸른 빛이 살며시 문 열고 어디를 찌르면 피 날가고 기웃거리며 음흉한 눈깔을 떼룩거린다…
278    대하소설 졸혼 제3권 (42) 김장혁 댓글:  조회:1405  추천:0  2022-09-21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3권              52. 날강도       땅! 땅! 땅!       “서랏!”      총알이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어깨를 스쳐 날아간다.      “억!”     검은 그림자가 어깨를 붙들고 비칠거린다.     이윽고 검은 그림자가 허리를 굽히고 어둠을 파먹으며 어슬렁어슬렁 수림 속으로 도망친다.      뚜루룩, 뚜루룩.     총알이 수림을 어데라 없이 마구 훑는다. 나무잎들이 흩날려 우스스 떨어진다.     (제길할, 로씨야도 자유롭진 못하군. 재수없이  쫓겨다녀? 강도질 몇번 밖에 하잖았는데? 참.)       검은 그림자는 푹신푹신한 땅바닥에 납짝 엎드려 굼벵이처럼 벌벌 기여나갔다. 한참 후 용케도 수림을 엉금엉금 빠져나갔다. “참, 재수없어. 그 놈 어디로 갔지?” “돌아가자.” “그놈 총 있는지 어떻게 알아?” “괜히 깜장콩알에 허파 구멍 뚫리겠다.” 휘휘-  드디여 들리는 휘파람소리. 금발머리 마우재들이 두덜거리면서 돌아갔다. 그제야 검은 그림자는 부시시 일어나 아름드리나무에 붙어서서 귀 뻘쭉해 로씨야 경찰들의 동정을 살폈다. 드디여 원시림에는 무서운 정적과 함께 공포를 몰고 왔다. 검은 그림자의 주인공은 바로 날강도 오정룡이였다. 그는 이젠 중국과 로씨야 경찰들의 협동수사 대상으로 되였다. 그는 몇달째 국내에서 날강도질을 하다가  수사에 배기지 못해 밤중에 로씨야 국경 철조망을 넘어 원시림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부근 한 농가에 뛰여들어 빵을 훔쳐먹다가 들켜 경찰들과 마을 마우재들한테 추격당했던 것이다. 오정룡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중국을 벗어나면 자유세상인가 했더니. 에잇, 참. 로씨야 마우재경찰들이 못 살게 굴어? 그놈들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도 추격해올 수 있단 말인가?) 씨원한 가을바람이 칠칠흑야 공포의 어둠을 밀어내고 동녘하늘에 희붐한 아침 노을을 몰아왔다. 날강도 오정룡은 허겁지겁 원시림을 벗어나 비틀거리며 개울가에 이르렀다. 졸졸졸 흐르는 맑은 개울물을 보자 털썩 들어앉아 넋을 잃고 두 손으로 개울물을 퍼 게걸스레 마셨다. 그는 뒤를 힐끔 둘러보고 개울물에 대충 세수까지 하고 나니 좀 제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인차 어깨의 상처 통증과 곤기에 기아까쳐 덮쳐들어 괴롭혔다. 후- 오정룡은 개울가 버드나무 숲에 마주 서서 괴춤을 까고 소변을 쏴 내쏘았다. 그는 손바닥으로 오줌을 받아 어깨 상처에  발랐다. 소변으로  상처를 소염시키려는 것이였다. 개똥도 약에 쓰자면 없다고 오줌도 별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괴춤을 춰 입고 풀숲에 털썩 드러누웠다. 희붐히 밝아오는 동녘하늘이 공포로 엄습해왔다. 희읍스럼한 해빛이 이새끼처럼 스물스물 기여와 피 랑자한 어깨와 흙때 더덕더덕 묻은 바지가랭이를 들추며 비추기 시작하였다. 날강도는 해빛이 너무 두렵고 싫었다. 날강도와 도둑놈들은 항상 쥐새끼처럼 어둠침침한 밤이 좋았다. 날강도 오정룡, 그는 어려서부터 공부는 빼돌이오, 싸움질과 강탈에 악돌이여서 다 커서도 직업마저 찾기 힘들었다. 그는 일하기는 싫어하고 공 건 얻어먹기 좋아해서 날따라 건달로 썩어갔다. 공상국에서 한자리 하는 형 오청룡이 그에게 그 좋은 공상국 공직자리를 하나 알선해주었다. 하건만 그는 사무실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기 싫어 맨날 술이나 처마시고 싸움이나 하며 녀성들을 겁탈했다. 그래서 경찰들한테 붙잡혀 파출소에 제집 나들듯했다. 그러나 번마다 형 오국장이 나서서 인맥을 통해 돈을 찔러주고 류치소와 로동개조소, 감옥에서 끌어내오군 했다. 그는 수풀 속에 들누워 풀냄새를 맡으면서 눈을 스르르 감았다. 눈앞에는 자기가 저지른 죄악으로 사무치는 장면들이 피뜩피뜩 떠올랐다…   어느날, 망아산 소나무 숲속 방공굴 부근에서 웬 사내와 처녀가 싱갱이질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룡은 강도친구 둘에 동생 오군룡까지 데리고 어슬렁어슬렁 수풀을 헤치면서 다가가 살펴보았다. 아니, 저게 뭔가? 번대머리사내가 한창 새파란 처녀를 껴안고 키스하지 않겠는가. 건데 번대머리 사내 눈에 퍽 익어보였다. 찬찬히 보니 형 오청룡의 친구 정호가 아니겠는가. (저게 뭐야?! 무용가 영희 아닌가.) 정호는 영희를 껴안고 치마, 와이샤쯔를 아득바득 벗겼다. 영희는 두 손으로 번대머리를 올리떠밀고 발버둥질치며 발악했다. 날강도는 그 장면을 보고 심장이 마구 바깥으로 튀여나올 것만 같았다. 쿵쿵, 쿵더쿵. 심장이 널뛰기를 하였다. 정룡이 손을 홱 휘저으며 휘파람을 불었다. 날강도 서넛은 복면하고 일제히 정호한테 달려들었다. 정호는 벌떡 일어나 적수공권으로 날강도들과 박투하였다. 정호는 날강도 셋이나 되는 걸 보자 냅따뛰였다. 그는 닫다가 소나무를 안고 홱 돌며 쫓아오는 강도를 발길로 차넘겼다. 저쪽에서 날강도가 영희를 겁탈하려고 덮쳐들었다. 바레리나인 영희가 발길을 날려 날강도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억!” 강도는 사타구니를 붙안고 허리를 굽혔다. 영희는 발길을 날려 대가리를 걷어찼다. 날강도가 비틀거렸다. 그 새 처녀는 옷을 와락 끌어안고 수림 속으로 냅따뛰였다. 정룡이 영희를 쫓아 갈 때였다. 난데 없는 성호와 문걸이 패거리들이 강도들을 막아나섰다. 성호 날래게 허공 어깨 넘어 날아넘어가며 뒷발질했다. 정룡은 대가리를 채워 비틀거렸다. 그는 피뜩 성호를 보자 얼굴을 싸쥐고 부랴부랴 수풀 속으로 도망쳤다. (복면하길 다행이야. 번대머린 정호가 아닌가. 정호는 형의 친구야. 그때 복면했기에 정호한테 내 신분이 발각되잖은게 다행이야. 허나 그때 영희 허벅다리 하나 만져보지 못한게 한이야. 재수없이 붙잡힐 번도 했잖아.) 그는 몇십년이 지나도 경찰이 자기를 찾지도 않자 망아산 날강도 행각은 꼬리를 감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야?)  몇십년 후에 성호가 그때 기억을 살려 최혜영 국장한테 자기를 망아산 날강도로 의심해 지목할줄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다. 정룡은 수풀 속에 누워 영희 라체를 회상하면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상가집 개처럼 로씨야까지 쫓겨다니면서도 성욕만은 용암처럼 부글거렸다. (정호, 그 놈 참 미녀 복은 있어. 어쩜 번마다 가무단 미녀들이냐? 전번엔 무용가, 이번엔 가수? 하영은 요즘 무대에서도 자주 보는 유명가수 아닌가? 그것도 20대 중반 가무단 부단장 아닌가!) 날강도는 미녀복이 많은 정호가 부러웠다. (정호, 그놈 색마 또 망아산 방공굴 옆에서 하영을 데리고 놀고 자빠졌지. 그 놈이 어찌 자기 차에다 위치추적기와 도청기를 가만히 장치해놓은 걸 알겠어?) 날강도 오정룡은 이 시각 수풀에 들누워 허구픈 웃음을 지으며 더러운 추억에 잠겼다. 그는 정호가 보마차에 뒀던 금은보화와 현금 50만원이나 찾아간 후 너무나 허전해 이를 옥물었다. (개새끼, 그것도 모자라 내보구 나머지 차값 30만원을 가져오라고 위협해? 한무리 친구들을 끌고 와서 시퍼런 비수까지 들이대? 개새끼, 어디 살아남는가 봐라.) 그후 날강도는 음흉하게 정호한테 복수할 기회만 노렸다. (그날 위치추적기 신호를 따라 내 차를 몰고 망아산 수풀 속까지 따라간 걸 정호는 몰랐댔지.) 정호 보마차에 장치한 도청기에서 정호와 하영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날강도는 음흉한 표정을 지으면서 귀에 꽂은 耳机를 바로잡았다. "최국장님, 퍽 보고팠는데요. 변강쇠 그게 젤 좋아요." "ㅎㅎ. 그래, 너도 이젠 남자 맛을 들였구나." " 미국 로스안젤레스 호텔에서 놀던게 젤 잊어 안져요." "그래?" "네. 나영 언니랑 우리 셋이 한 침대에서 딩굴던 로맨틱한 섹스, 깔깔깔. 젤 자극적이였죠." "그래. 오늘도 노래 불러볼래." "수풀 속에서 섹스하면서 하늘에 붕 떠 올라갈 생각하니 기분 참 좋아요." "얘ㅡ 벌써 흥분하지 말고 차나 잘 몰아." "알았어요. 최국장님, 저를 가무단 부단장으로 제발시켜줘 진짜 고맙습니다. 그 은공을 뭐로 다 갚을가요?" "잘해." "알았어요. 이 한 몸 다 바쳐  은인님을 잘 모셔드리겠습니다." "내 늙어서 쓸데 없을 때 배신이나 하지 말라." "그럴 리야 있겠어요? 당신은 평생 내 랑군님이죠. 호호호." "그래? 허허허. 세월이 좋다. 내 딸 같은 하영이 내 애인이라. ㅋㅋㅋ."   뒤이어 하영의 간간한 노래소리 들렸다.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날강도는 뒤따라가보고 깜짝 놀랐다. 정호는 .하영과 시퍼런 대낮에 방공굴 옆 수풀 속에서  그걸 치르는 판이였다. 산새들이 지저귀는 수림 두 전극이 맞부딪쳐 불티가 탁탁 튕겼다. 날강도는 하마트면 고함칠번 했다. (개놈새끼 담대하구나. 어디 죽어봐라!) 정호와 하영이 맥주잔을 부딪치며 희희닥닥거릴 때였지. 날강도는 이를 악물고 쇠파이프를 들고 어슬렁어슬렁 정호 뒤로 다가갔다. “얏!’ 날강도는 정호의 정수리를 쇠파이프로 땅 내리쳤다. 단매에 정호는 비명지르며 푹 꺼꾸러졌다. 마시던 맥주 쿨쿨 쏟아졌다. “썩어졋!” 재차 대가리를 내리쳤다. 번대머리는 피못이 돼 까딱하지도 못했다. 하영은 비명을 지르며 와이샤츠를 부랴부랴 주어 입었다. “살려주세요!” 하영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마주비볐다. “제발 살려주세요!” 날강도는 정욕을 채우고나서 쇠파이를 휘둘러 잔혹하게 하영의 머리를 연신 내리깠다. “네년을 살려둘 순 없어! 훙!” … (오우, 그년놈들 목숨이 질기긴 질겨. 쇠파이프로 대갈통을 묵사발을 만들어줬는데도 어떻게 둘 다 되살아났어? 끝내 후환을 남겼지. 뭐야?) 날강도는 로씨야 땅에 누워서 추억에 흥분돼 온 몸을 부르르 전률했다. (오- 그땐 정말 행복했지. 내게 깔린 녀자들 몇이던가!) 순간 날강도는 눈을 지그시 감고 손가락을 꼽으면서 강간한 녀성들을 세여보았다. (기수부지지.) 한참 날강도 미몽을 꾸고나니 배 촐촐해났다. 오정룡은 수풀을 털고 부시시 일어났다. 그는 로씨야 땅에 금방 들어오다나니 르불 한푼 없었다. 그간 국내에서 강도행각을 벌려 번 돈은 갈비뼈 골절을 치료하는데 다 쓰고 한푼도 남지 않았다. 그것도 PCR검사를 맞힌 건강마가 없어 큰 병원에는 감히 가지 못하고 자그마한 개인 병원에 돌아다니며 숨어 치료하다나니 돈도 더 많이 팔았던 것이다. (재수없어. 어쩜 성호, 그놈 굴뱀을 다 만났어.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에잇, 참.) 날강도는 전번에 성호를 만나 갈비뼈를 상하던 일만 생각해도 잔등에 소름이 쪽 끼쳤다. 날강도는 시내물가에 가서 재차 세수하였다. 푸덕덕. 이게 뭔가? 글쎄 멀건 시내물에 팔뚝만큼한 잉어들이 지느러미를 흐느적거리며 헤여다니고 있지 않겠는가.  (살았다.) 사실 해변가에 사는 로씨야 사람들은 대부분 바다 물고기만 먹지 내물 물고기는 맛이 없다고 먹지 않았다.  그래 그런지 시내물에는 잉어 외에도 뱀장어 같은 미꾸라지들이 무리를 지어 헤여다녔다. 오정룡은 바지가랭이를 걷우고 조심조심 내물에 발을 들여놓았다. 잉어와 미꾸라지들은 겁내기는커녕 헤여와 주둥이로 종아리를 툭툭 건드렸다. 그리하여 오정룡은 순식간에 팔뚝만한 잉어를 잡았다.  날강도는 배고파 시내물에 선채 펄떡이는 생 잉어를 물어뜯어 게걸스레 먹었다. 그는 허기찬 배를 달래고나서 잉어 몇마리를 더 잡아 내물가에 훌훌 올리던졌다. 이윽고 그는 내물에서 나와 잉어를 주어 풀숲에 치워놓았다. 그는 련 며칠 쌀 한알 먹지도 못해 밥 생각이 났다. 하여 수림을 스적스적 걸어나가면서 사위를 흘끔흘끔 살폈다. 내물을 따라 한참 내려가니 외로운 자그마한 집 한채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꿀뚝에서 연기가 피여오르지 않았다. (빈 집인가?) 날강도는 본능적으로 허리춤에서 시퍼런 비수를 쑥 뽑아들었다. 그는 실눈을 하고 칼날을 들어 해빛에 비춰보며 손끝으로 칼날을 썩썩 만져보았다. 칼날이 선뜩선뜩했다. 그는 허리를 구부정하고 서양식으로 지붕이 뾰족한 시골집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집 울 안을 기웃거리며 들여다보니 쥐 죽은듯이 고요했다. 그는 도적고양이처럼 발끝걸음으로 벽에 딱 붙어 다가갔다. 창문으로 귀를 기울여보았다. 집 안에선 아무런 자취도 없었다.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담대하게 창문으로 집 안을 들여보았다. 텅텅 빈 집 같았다. 날강도는 처음 국외에서 강도질하기에 각별히 조심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집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동정을 더 살피다가 문을 살며시 열고 집 안으로 쥐새끼처럼 스리살짝 기여들어갔다. 아마 집 주인은 일찌기 밭에 가을걷이를 나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날강도는 때를 만났다고 서양식 부뚜막에 다가가 가마뚜껑을 열었다. 신짝 같은 찐 빵이 몇개 있었다. “이게 웬 떡이냐?” 날강도는 비수를 부뚜막에 내려놓고 빵을 쥐여 게걸스레 주둥이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 꿀떡 삼켰다. 쿨룩쿨룩. 너무 급히 빵을 씹어 삼켜서 마른 목 안에 떡 걸렸다. 겨우 숨을 조절하고나서 한 입, 두 입 뜯어먹으면서 빵을 몽땅 주어 옷섶에 담아  싸들었다. 된불에 구운지 오랬지만 먹을만 했다. 그는 냉장고 문을 활 열어제끼고 먹을게 없는가 와락와락 들췄다. 냉장고에는 먹다 남은 양고기 냄새가 확 풍겼다. 더 가릴 새 없었다. 양고기 덩이도 있는대로 싹 쓸어 옷섶에 담았다. 그가 돌아서려는 때다. “앗!” 등뒤에서 녀성의 비명소리 들렸다. 정룡은 몸을 홱 돌리며 반사적으로 부뚜막에서 시퍼런 비수를 주어들었다. 뚱보 중년녀성이 손으로 쫙 벌린 입을 가리며 못 박힌듯 서 있지 않겠는가. 절구통 같은 뚱뚱보녀성은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며 문밖으로 뒷걸음질쳤다. 날강도는 비수를 든 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집 안을 가리켰다. 그러나 뚱뚱보녀성은 도리머리질하면서 뒤걸음질을 멈추지 않았다. 날강도는 오랜만에 녀자를 보자 갑자기 성욕이 온 몸에 부글부글 끓어번졌다. 그는 비수를 들고 뚱보녀성을 뒤쫓아나갔다. 뚱보녀성은 기겁해 죽는 소리를 지르며 펑퍼짐한 엉덩이를 비우뚱거리면서 디뚱디뚱 달음박질쳤다. “서랏!’ 날강도는 쫓아나가 안걸을 턱 걸었다. “앗!” 똥보녀성은 아우성치며 땅바닥에 쿵 쓰러졌다. 날강도는 뚱보녀성을 깔고 넘어갔다. 뚱보녀성은 소다리 같은 다리를 버둑거리면서 반항했다.    "쓰빠씨바(감사해.)” "뭐? 死吧!씹할?! " 로어를 모르는 날강도는 제나름대로 해석했다. 뭐야? “하라쇼(좋아)!” “에따 하라쇼(이게 좋아)!” “응, 하라쇼!” 뜻밖에 로씨야 금발뚱보는 연신 뒤쪽을 가리키면서 웃고 떠들어댔다. 날강도는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몰랐다.   “다와이(햇)!” 갑자기 등뒤에서 사내 걸걸한 목소리 들렸다.        날강도는 뒤를 흘끔 뒤돌아보았다.         (에크!)      언제 왔는지. 뒤에 웬 억대우 같은 금발사내가 떡 벋티고 서 있지 않겠는가!      누런 구렛나룻사내가 반달형낫을 든 채 파란 퉁사발눈으로 바라보지 않겠는가. 이상하게도 누런 구레나룻마우재는 장승처럼 떡 버티고 서서 구경하면서 헤벌쭉거리기만 하지 않겠는가. 근본 성내는 기색이 보이지도 않았다. 날강도는 벌떡 일어나 땅바닥에 놓았던 비수를 주어들었다. 억대우 같은 마우재는 구레나룻을 슬슬 매만지면서 헤벌쭉 웃으며  제 뚱보마누라 가리키며 계속하라고 손시늉했다. “다와이!” 날강도는 질겁해 비수를 든 채 울 안에서 쥐새끼처럼 빠져나갔다. “다와이!” 날강도가 울안을 벗어나며 힐끔 뒤돌아보았다. 뚱뚱보가 벌벌 기여 일어났다. 그녀는 둥기배를 붙안고 날강도를 보고 연신 지껄여댔다. "다스비따냐(再见)!" 뚱뚱보년 부부는 감사해 했다. 그러나 무지막지한 날강도는 어떻게 들었는지 아는가? "뭐?‘ 打死B, 打你呀’?" 구레나룻사내는 날강도가 질겁해 도망치는 걸 보고 자기 마누라를 가리키며 루추한 손시늉을 계속했다. (저 놈, 저게. 별난 바보 다 보겠다.) 아무리 녀자에 미친 날강도라도 언감 그 놈 울안에 되돌아가겠는가. 날강도는 선불 맞은 노루처럼 꼬리빳빳해 수림 속으로 도망쳤다. (아차, 빵을 두고 왔구나. 참, 아까운데.) 아쉬움이 날강도 꽁무니를 뒤따라가면서 장탄식했다.
277    대하소설 졸혼 제3권 (41) 김장혁 댓글:  조회:1655  추천:0  2022-09-13
                                        김장혁 작 대하소설 제3권                       51. 총경리       째는듯한 해빛이 수만개 금침으로 푸르른 호수물을 찌르며 푸른 파도와 키스한다. 공원을 방불케 수풀이 우거진 호수에서 잠자리들이 빨간 꽁지로 잔잔한 호수물에 입맞춤한다.       S시반도체전자유한회사 대문 앞에서 진붉은 오성붉은기와 하얀 태극기가 나란히 서서 휘날린다.        회사 울안에는 거울 같은 인공호수에서 하얀 구름이 오리떼처럼 자맥질하고   부석돌이 들쑹날쑹한 가산에는 림대옥의 치마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상 싶다.        인사팀 직원들이 한창 자기들의 수장 최군철의 짐을 부총경리실에 날라가느라고 분주했다.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하나와 경희, 은희, 운전수 왕용애 숱한 측근들까지 다 모여왔다. 심지어 생산직장의 윤선마저 달려와 2층에서 3층으로 커다란 사무상과 보스의자를 옮기느라고 땀을 뻘뻘 흘렸다. 군철은 아니꼬운 눈길로 하나를 쏘아보았다. (알락거리긴? 흥! 잘라버리지 않을 거 같아?) “하나, 좀 보기오.” “네, 이거 올려가고 갈게요.” “필요없소. 당장 오오.” “네. 알았습니다.” 하나는 의자다리를 놓고 군철을 따라 3층 회의실로 들어갔다. 군철은 쏘파에 앉으면서 옆자리를 손짓했다. “앉소.” 하나는 오시러워 옆에 감히 앉지 못했다. “앉소. 여긴 우리 둘 밖에 없소.” “그래도 어떻게 언감 부총경리님 옆에…” 군철은 역정을 냈다.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설게지. 웬 잔소리 그리 많소?” “네. 미안해요.” 그제야 하나는 군철과 한메터나 간격을 두고 앉았다. 군철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와 함께 한 뻐스에 앉아 통근하자니 불편하잖소?” 하나는 감히 군철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목 안으로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아요.” 군철은 하나를 우멍눈으로 쏘아보면서 따져물었다. “그래. 한 뻐스 타면 날 감시하기 좋지.” 하나는 머리를 들고 번대머리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씀인지요?” 군철은 벌컥 성을 냈다. “아직도 시치미를 딸 작정이오? 전날 저네 아버지 어떻게 내 어디로 간 거 그렇게 신속히 알 수 있소? 분명 통근뻐스에서 어떤 녀자를 만나는 거 보고 저네 아버지한테 알려줬지?” “아니, 생사람을 작작 잡으세요.” 군철은 벌떡 일어서면서 대성질호했다. “그래, 그날 통근뻐스 고장나 섰을 때 내 어떤 녀자를 만난 걸 못 봤단 말이오?” “아니죠. 보았습니다. 어찌 그런 지저분한 일까지 아빠한테 다 말했겠는가요?” 하나는 상전의 불티 탁탁 튀는 우멍눈을 쳐다보며 변명했다. 군철은 하나를 손가락질하면서 질책했다. “뭐? 지저분한 일? 날 지금 모욕하는 거야?” 하나는 제꺽 일어나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허리까지 굽히며 빌었다. “금방 ‘지저분하다’는 말만은 죄송합니다. 량해하세요.” “그래 아빠한테 내 말을 하나도 한게 없겠구나.” “했지요. 우리 부장님, 아니, 리부총경리님께서..." "이제부턴 최부총경리라고 부르라구." "네? 불시에 성을 바꿨습니까?" "그래." "왜?" "후에 알게 될 거요. 아버지한테 내 뭘 말한 거나 말하오." "어떻게 회사 조선족직원들을 친형제자매처럼 보살피고 어떻게 능력이 있구 한바탕 자랑했죠.” “됐다, 됐어. 앞에선 입에 엿 발린 소리 하구. 뒤에선 잔등에 비수나 박지 말라. 이젠 알락거리는 엿 발린 소릴 듣기도 싫어.” “무슨 랭수에 생이 부러질 말씀을 다 하는가요?” “그래? 저네 아버지 내 아버지와 내 정황을 하나도 묻지 않습데?” “부총경리님 아버지를?’ “그래.” “묻습디다. 이모부 회사에 왔댔는가고 물었죠.” “이모부 아니구 내 아버지야.” “아버지 바뀌였는가요? 저는 이모부로 아는데요.” “무슨 소리요? 최정호 국장은 내 친아버지오.” “리총경리님은 리씨인데 최국장이 친아버지라니오. 리문걸 화가님이 친부친님 아니세요.” “양아버지야.” 군철은 하나한테 구구히 설명하기 싫었다. “그건 그렇구. 그래 내 아버지 정황도 말했어?” “예. 그래요. 보지도 못했다고.” “음.”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날 속이진 않는구나.) 하나는 너무나 솔직한 녀자였다. 그래서 군철은 비록 배신감은 났지만 앞뒤가 다른 녀자보다는 좋아했다. 그러나 군철은 지금 성호가 자기 아버지를 붙잡아 감옥에 처넣자고 쫓아다니는 형편에서 하나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됐다. 군철은 쏘파에 잔등을 붙이며 틀스럽게 한마디 내뱉았다. “저는 누구 신세에 입사했는지 다 잊어먹었지?” “은인을 어떻게 잊어요. 리총경리님, 아니, 최총경리님 덕분에 입사했죠. 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데요.” “흥, 기억은 하는구만, 그때 저네 아버지 내 아버지한테 찾아와 너무 지청구를 들이대는 바람에 저를 입사시켰지. 그런데 왜 길러준 개 발뒤축을 무는가?” “네- 절대 그럴 수 없죠. 전 최총경리님 은혜를 한평생 잊지 않으려는데요. 리총경리, 아니, 최총경리가 부인과 리혼하니 대신 종종 애들도 집에 데려다주지 않았는가요?” “크게 베풀었구만. 흥.” 하나는 진정으로 말했다. “글쎄 최총경리님 은공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요. 저의 조그마한 성의죠. 그때문에 얼마나 뒤에서 직원들의 손가락질을 받는지 아는가요? 유치원에 가선 또 송림이 엄마한테 얼마나 별의별 욕을 다 먹는지 압니까? 어제도 리나한테 송림이 후에미질 하려는가고 별의별 쌍욕을 다 얻어먹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남친 윤선도 저를 의심하기 시작하는데요. 그래도 저는 리총경리님을, 아니, 최총경리님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아랑곳하지도 않고 했지요. 장차도.” 하나는 두 볼에 억울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참 대단하구만.” 군철은 자라에서 일어나면서 물었다. “제 말대로 그래 저네 아버지 내 아버지 회사에 오지 않았는가 묻지도 않았단 말이오?” “물었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아버진 최총경리 정황을 아주 상세히 물었어요. 자가용으로 통근하는가? 집은 어느 부근에 있는가? 최총경리 아버지 회사에 온적이 없는가? 전화라도 온게 없는가? 이러루한 걸 다 물었습니다.” 군철은 속이 섬찍해났다. 우멍눈이 거슴츠레해 하나를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어떻게 대답했댔소?” “최총경리님 아빠 회사에 온적도 전화한적도 없다고 했지요. 혹시나 해 총경리님은 자가용찌프로 통근한다고 거짓말을 했댔습니다.”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조만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 하나였지만 아빠한테 거짓말을 했다는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속으로 천평질해보았다. 한참 후 군철은 아주 무거운 어조로 경고했다. “계속 그 자리에서 일하고 싶으면 그저 조용히 앉아 있소.” “네. 알겠습니다. 저를 믿어주세요. 제가 아무리 못나도 언감 자기 머리 꼭대기 상전을 팔아먹겠습니까? 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까겠습니까? 절대 리부총경리한테 미안한 일, 미안한 말 한마디라도 안 할 겁니다.” 군철은 얼리고 닥치각질하는데는 아버지만 못지 않았다. 진짜 훌륭한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니까. “하나를 믿겠소. 우린 세교가 아니고 뭐요? 우리 아버지대에 몇십년 동안 죽자 살자 하는 친구가 아니고 뭐요? 혹시 그들 사이에 금이 슬어도 우린 절대 분렬돼선 안되오.” “네, 저의 아버진 리총경리님 이모부, 아니, 아버지를 친구로서 자수하라고 권고하러 왔다고 하더구만요.” 군철은 속이 띠끔해났다. 그러나 그런 속내를 보이지 않으려고 우쭐 일어나 사무상에 다가가 보스의자에 앉더니 우멍눈을 스르를 감았다. 한참 후에야 뒷말을 천천히 이었다. “그래.  저네 아버지 친구지간에 잡자고 쫓아다닐 순 없지.” 그는 우멍눈을 슬며시 뜨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한테 뚜벅뚜벅 다가왔다. “하나, 이제부터 날 리총경리라고 부르지 마오.” “네?” “최군철 부총경리라고 부르라구.” “네- 알겠습니다.” 하나는 제꺽 알아들었다. 군철은 하나 곁에 와 나란히 앉아 친절한 어조로 말했다. “우린 다 부모형제와 고향을 멀리 떠나 남방에 진출해 이 회사에 오지 않았소. 우리 회사에 조선족들이 있으면 몇이겠소? 한국인들까지 다 해도 몇천명 되는 이 회사에 몇십명에 불과하오. 우린 진짜 친형제자매처럼 단합돼 서로 의지해 도우면서 살아야 되오.” 하나는 코마루가 시큼해나 일어났다. “네. 그래요. 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리총경리, 아니, 최총경리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저에겐 오빠도 없습니다. 저는 리총경리님을 영원히 친오빠처럼 따르겠습니다.” 군철은 하나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래. 나도 하나를 이제부턴 녀동생으로 여기겠소. 우리 오누이처럼 지내자구.” “네. 고맙습니다. 리총경리님, 아니, 입버릇이 돼서. 최총경리님, 미안해요.” “아무도 없는 사적인 장소에선 오빠라고 불러도 좋아.” “네. 오빠.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귀여운 녀동생 하나야. ㅎㅎㅎ.” 하나는 감동을 먹고 뜨거운 눈물을 훔쳤다.   군철이 3층 총경리실에 부랴부랴 달려올라갔다. 그가 문을 떼고 들어서니 박총경리가 울상이 돼 쏘파에 앉아 있었다. “지난 밤 잘 주무셨는가요?” “아우, 난 오래 삐칠 것 같지 못해.” 박총경리는 길죽한 얼굴을 가로 저었다. “왜요?” “난 밤이 무서워요. 고독하단 말이야. 와이프도 없지 어떻게 살아?” 군철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박총경리님, 그럼 왜 와이프를 모셔오지 않는가요? 시정부에서 별장 같은 아파트도 주었지. 그 아파트는 진짜 우리 시에서 젤 경치 좋고 공기 좋은 풍수지리 좋은 황금보지에 지은 아파튼데요. 뭐가 모자라요?” 박총경리는 그래도 울적한 표정이였다. “와이프는 죽어도 중국에 안 온대. 정든 대한민국을 떠나 중국에 가서 어떻게 사는가고 해? 더구나 빨갱이들 속에 가서 어떻게 사냐고 해.” 기실 그것은 박총경리 내심의 고통이기도 했다. “이봐, 리총경리, 한국에서는 옆에 와이프 없으면 술잔이나 나누고 기생집에 가면 이쁜 아가씨들하구 질탕하게 놀면 다 해소돼. 서울에 가봐. 청량리역 부근이나 용산역 부근이나 미아리 부근 집창촌거리에 가면 이쁜 젊은 기생들이 연분홍거리에 비단필처럼 늘어서 있지. 허나 여기선 아가씨도 마음대로 놀지 못하잖아.” “ 법이 무서워 마음대로 그러지 못하죠.” 군철은 억처구니 없어 도리머리질을 했다. “사모님은 중국에 한번도 와보지 못했는가요?” 그는 “사모님은 어쩜 중국을 그렇게도 모르는가요?” 하고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한국인들은 “잘 모른다.”면 좋아하지 않았다. 모르는 것도 “참 잘 아는군요.” 라고 해야 해시시 웃는다. “와이픈 장백산 구경이나 한번 와본 정도야.” “전임 김총경리님한테서랑 여기 정황을 듣지 못했는가요?” “내야 들었지만 와이프 어디서 듣겠어? 내 아무리 중국에 가자고 말해도 듣지 않아. 그는 빨갱이들은 진짜 머리에 뿌리 돋은 마귀들인가 해.” 군철은 이런 일을 한두번 겪은 것이 아니다. 회사 총경리는 2년에 한번씩 바뀌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군철이 이 회사 초창기로부터 여지껏 모신 한국인 전임 총경리는 넷이나 되였다. 박문 총경리는 다섯번째로 모시는 회사 총수이다. 련이어 부임돼오는 한국인 총경리를 잘 모시는 것이 부모를 모시기보다, 아니, 황제를 모시기보다 더 어렵다고나 할가.       군철은 총경리들을 모시고 술집이랑 마사지방이랑 노래방이랑 드나들다나니 항상 곤드레만드레 취해 밤중이거나 새벽에야 들어올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리하여 리나 눈에 나기 마련이였다.       리나는 군철이 집에 들어설 때까지 애들을 재워놓고 침대머리에 앉아 책이나 티비를 보면서  기다리군 했다.        “아니, 이게 뭔가요? 맨날 밤중돌인가요?!” 그땐 문걸과 영희가 손자 둘을 보러 와서 꽤나 창피했다. 리나는 시부모가 들으라고 고의로 대성질호했다. “당신 그 잘난 부장하면서 날마다 술만 처먹겠습니까? 당신 마음 속엔 이 가정이 있습니까? 안해 있습니까? 언제 애들을 유치원에서 데려온 적이 있습니까?” “작작 떠들어라. 부모 쉬는데.” 리나는 점점 갱갱 살아났다. “부모 들으면 어째? 부모도 이 잘난 아들이 어쩌는가 알아야지.” 영희도 들어와 아들을 말렸다. “얘, 이후엔 술을 작작 마셔라. 간이 다 못쓰게 되겠다.” “그래도 아들 귀한 건 아는구만요. 흥!” “이 간나새끼, 계속 아갈질하겠니?” 찰싹! 군철은 리나의 귀쌈을 한대 갈겼다. “지금 날 쳐? 아이구, 분해라. 날 때려?” 리나는 마구 달려들어 얼굴을 허비고 번대머리를 쥐여 끄집어당기며 야단쳤다. 군철은 리나를 안아 침대에 훌 줴던졌다. “아이구, 분해라.” 리나는 침대에서 발버둥질치며 야단쳤다. “뭐? 간나새끼, 내 아들 둘이나 낳아줬더니, 날 간나새끼라고 욕해? 네놈한테 맞아대고 살 거 같아? 아이구, 원통해라. 에미, 애비, 아들이 한편 해서 날 잡아먹는구나.” 애들도 깨나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그후 얼마 안가서 리나는  끝내 군철과 리혼까지 하고 애 둘도 다 버리고 훌 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오, 불쌍한 애들이여, 엄마 없이, 모성애 없이 어떻게 살겠는가?       하느님이여, 굽어 살피소서. 지금 젊은이들은 부모고 자식이고 없어. 어제까지 알콩달콩하다가도 하루밤 사이에 리혼도 하고 애고 다 버리고 달아난다니까. 어쩜 좋아요? 춘향이 우오. 리몽룡이 장탄식하오. 물론 군철한텐 애리씨와의 애매한 관계문제 외에도 회사 숱한 녀직원들과의 문제도 수두룩했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리나는 군철과 한 회사에 있었기에 신경이 꽤나 예민해졌다. 글쎄 한번은 마사지방에서 한국인 총경리가 아가씨들과 더러운 교역을 벌리다가 그만 경찰한데 붙잡혔다. 군철도 함께 잡혀 파출소에 련행돼갔다. 성매매알선 혐의가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둘 다 벌금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한국인 김총경리를 루차 데리고 그런데로 갔다가 붙잡혀 로동개조형에까지 처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군철이 시정부 공업부시장에게 전화해 간청해서야 열흘만에 한국인 총경리와 군철 부장이 풀려나온 적도 있었다. 한국인 총경리와 군철 부장이 없으면 이 회사 생산이 돌아갈 수 없다는 리유로 부시장이 공안국장한테 사정 절반, 행정명령 절반 했던 것이다. 열흘이나 회사에서 자취를 감추자 온 회사에 별의별 추측과 소문이 파다히 퍼졌던 것이다.  리나는 참고 참다가 끝내 인내력이 한계에 이르러 리혼까지 했던 것이다. 박문 총경리는 이 회사 5임 총경리였다. 력임 총경리들은 갓 이 회사에 와서 거의 다 박총경리처럼 정도부동하게 중국에 대한 리해가 별로 없어 이러루한 문제에 부딪쳤었다. 그런데 박총경리는 온지 며칠도 안돼 너무 주색에 빠지고 있어 군철은 골치 아팠다. 박문은 군철을 보고 또 지청구를 들이댔다. “아우, 회사에서 믿을 건 아우 밖에 없어. 와이프 없는 고통 해소할데 없어? 부탁드리네.” 군철은 박총경리 가정문제가 실제문제라고 여겼지만 용 빼는 수 없어 대답하지 못했다. 한참 궁리하던 군철은 “유일한 방법은 사모님을 모셔오는 겁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박총경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이프는 죽어도 안 온대. 내 중국에 들어오는데 잘 됐다고 해. 이젠 뭐 둘 다  졸혼하고 두 나라에 갈라져 제각각 자기만의 인생을 살자는기여. 헛참, 뭐 일본이나 한국에서 자기 또래들이 졸혼하구 너무나도 자유롭게 산다잖나.” “사모님은 관광 좋아하는가요?” “좋아하지. 내 애나게 번 돈 다 관광에 쓸어넣었어.” “그럼 좋아요. 사모님을 여기 관광하러 오자고 하세요. 사모님도 아름다운 우리 도시에 와보면 생각이 바뀔 거예요.” 박문 총경리는 안경알을 춰올리더니 기대에찬 눈길로 군철을 바라보았다. “글쎄 말이야. 건데 오자 하겠는지 몰라.” “사모님은 관광 외에 과외흥취 더 없는가요?” “있지. 문학이야. 소설을 읽고 소설을 쓴다고 맨날 그 놈의 글감옥에 갇혀 살아.” “오- 그래요?” “그래. 소설 책자랑 몇부 냈어.” “네. 소설가군요. 참 대단해요.” “리총경리, 와이프는 와이프구. 언제 먼 곳의 물로 눈 앞의 불을 끄겠나? 여기선 현지처를 얻어줄 수 없나? 좀 알아보라고.” “불시에 별 수 없어요.” “천천히 얻어보란 말이여.” “글쎄요.” “마사지방에서라도 아가씨를 얻어달라고.” 군철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여긴 한국과 달라요. 아가씨들하구 기생놀음하다가 경찰한테 잡히면 벌금을 인민페 만원 좌우 해야 돼요.” “만원? 괜찮아.” 박총경리는 박수까지 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가자. 어제 갔던 마사지방에도 그런 아가씨 있나?” “몰라요. 마사지방 아가씨 알선해주는 건 박총경리를 해치고 저를 해치는 짓거립니다. 절대 할 수 없어요.” “왜 그래? 그렇게 겁나? 마사지방에 당장 가자. 이게 어디 해소해야지. 살겠나?” 군철은 손사래를 쳤다. “붙잡히면 류치장에 보름동안이나 치안구류를 당해야 해요. 총경리님, 너무나도 창피하잖아요?” 그 말에 박총경리는 되물앉았다. “만약 루범으로 나포되면 반년 동안이나 류치장에 갇혀 로동개조를 해야 해요.” 박총경리는 두 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죽는 상을 했다. 반년이나 자리를 비우면 본사에서 총경리직을 경질하고 다른 인선을 물색해 보낼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였다. (반년씩이나 총경리자리를 비우면 한국 본사에서 가만 놔두겠는가.) 박총경리는 사무상에 앉아 두 손으로 턱을 고이고 궁리하더니 이마를 툭툭 쳤다.  한참 후에야 박총경리는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그의 뇌리에는 어제 풍무뀀성에서 만지던 경희와 은희 말랑말랑한 우유빛허벅다리가 피뜩 떠올랐다. (그래, 걔들이야. 내 손 안에 넣어야지.) 그는 의자에 틀스레 앉으며 정색했다. 이때만큼은 회사 총수 같아 보였다. “생활문제는 그만두고 엊저녁에 피뜩 말하던 인사문제를 토론합세. 하나와 경희, 은희 몽땅 과장으로 진급시킵세. 난 우리 회사에서 조선족을 우선 중용하겠네.” “네. 그렇게 합시다. 이젠 입사한지도 4년 남짓한데요. 진급시켜야죠.  진작 총경리님께 청시하려고 했는데요. 술 마신 좌석에선 말씀 드리지 못했어요. 한가지 지적헤도 괜찮겠어요?" "뭔데? 무람없이 말하게나." "너무 협애한 민족주의 사상에 빠지면 안돼요. 우리 회사에는 수천명 다른 민족 직원들이 있어요. 그들을 몽땅 포옹하고 공정하게 대해야 합니다. 그러잖으면 큰 일 납니다." 박문 총경리는 리부총경리가 협애한 민족주의를 방패로 하나랑 진급시키는 것을 막으려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반감이 났다. " 나는 사업실적에 따라  공정하게 사람을 쓰고 진급시키네. 하나나 경희, 은희나 모두 다 우리 주변에서 중요한 비서직을 감당하게 되잖는가? 진작 과장으로 진급시켜야지." "네, 알겠습니다."  군철은 핸드빽까지 열고 목책과 필을 꺼내 들었다. “저의 비서 리하나를 운영팀에 옮기려고 하는데요.” 박총경리는 어이없다는 표정. “왜? 하버드대학 졸업생도 비서 안돼요?” “아무리 명대를 나와도 자리를 옮겨야겠어요.” “그래. 아우 비서야 아우 나름대로 해.” 박문은 뒷말을 이었다. “하나 다 좋은데. 어제 보니 그 눈길 하나만은 꽤나 맵더라. 이렇게 하자고.” “?” “하나를 내 비서로 쓰면 어때?” 군철은 뜻밖의 말에 불안했다. (에잇, 참. 혹을 떼러 왔다가 혹을 붙이고 가는 격 아닌가? 하나가 박총경리한테 찰싸닥 가 붙으면 큰일 아닌가? 이건 아니지. 하나를 크게 길러줬다간 역풍을 맞을 수도 있잖은가?) 군철은 속으로 주산알을 복잡하게 튕겼다. “총경리님께선 은희 있잖아요? 은희 얼마나 부드럽고 친절해요?” “총경리 비서 둘을 둘 수도 있잖어?” “되구 말구요. 건데 하나는 표독스럽고 거친 랭혈동물입니다. 전주 리씨네 녀자들 얼마나 사무럽다고 그래요?” 박문은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리총경리는 무슨 리씬가?” “저도 전주 리씨입니다.” “그래? 건데 왜 한 집안집 하나를 그렇게 폄하해?" "박총경리님께 말씀 드릴게 있는데요." 박문은 뒤로 물러앉으며 하회를 기다렸다. "이제부터 저의 성을 최씨로 고치렵니다." 박총경리는 외까풀눈이 데꾼해졌다. "왜?" 군철은 정색했다. "저는 어려서 리씨 성을 가진 이모부네 집에서 자라다나니 이모부의 리씨 성을 따랐는데요. 이제부턴 충주 최씨로 바로잡아야겠습니다." "오- 그래? 그래야지." 박문은 원 화제로 돌아갔다. "아무리 무서운 암펌이라도 내 손 안에 들어오면 모두 순한 양이 돼버려. 하나를 걱정말게. 또 인사건 더 있어?” 군철은 원래 하나를 운영팀이나 전자부품 생산직장에 보낼 예산이였다. (어디 색마 곁에 가 혼나보라지.) “경희를 저의 비서로 쓰자고 그러는데요.” “오- 엊저녁 술좌석에 왔던 그 아가씨 말이여?” “네. 북경대학 석사생인데요. 심리상담실에 두긴 아까운데요.” “음-” 박문은 못내 아쉬운 표정이였다. 하들하들한 경희 허벅다리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언감 밭머리 뱀, 실세의 뜻을 거역하겠는가. “좋아. 인사건이야. 나하구 묻지도 말고 단행하게나. 황차 리부총경리님 비서 아닌가?” “감사합니다." “또 용건 있나? 빨리 끝내. 저녁에 술 한잔 해야지.” 군철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그는 숨을 고르고나서 젤 큰 의제를 꺼냈다. “박총경리님, 전임 김총경리님한테도 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는데요. 그저 내부로 준비소조까지 세웠다가 김총경리님께서 가면서 흐지부지해지고 말았어요.” 박문은 사무상에 두 팔을 올려놓으며 앞으로 몸을 내밀며 엄숙하게 물었다. “무슨 건인데?” 군철은 큰 마음 먹고 말했다. “회사에 공회를 세우면 어떤가요?” 박문은 이마살을 찌푸렸다. “공회? 금시초문인데. 뭐지?” 군철은 정색했다. “한국으로 말하면 노조 비슷한 건데요.” “뭐라고? 노조?’ “네. 회사에 공회 세우면 회사 운영에도 좋아요.” “안돼. 노조 절대 안돼!” 박문 총경리는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 그는 뒷짐지고 광장 같은 사무실을 뚜벅뚜벅 왔다갔다 거닐면서 말했다. “김총경리님한테서 그러루한 걸 세우자고 한다는 거 들은 거 같애. 대륙은 이래. 노조 세우면 직원들이 쩍 하면 시위하면 어떻게 해? 한국 본사에도 노조 없어. 이건 우리 회사 관리리념이여.” 군철은 끈질기게 들어붙었다. “중국 회사마다 다 공회가 있어요. 공회는 직원들의 합법적인 권리를 보호하는 단체입니다. 꼭 있어야 합니다.” 박총경리는 조개턱을 쳐들고 군철한테 다가서며 말했다. “지금 빨갱이정책으로 날 협박하는 건가? 내 겁나할거 같애? 노조, 절대 안돼.” 군철은 좀  부드럽게 차근차근 해석했다. “공회가 있으면요. 직원들을 묶어세워 제때에 직원들의 각종 사상동태와 힘든 문제를 미리 장악할 수 있죠. 직원들의 힘든 문제를 제때에 해결해주고 직원들의 문화생활도 풍부하고 다채롭게 조직할 수 있죠. 그럼 직원들의 생산적극성을 남김없이 발휘하게 할 수 있죠. 그럼 생산에도 좋고요. 그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할 수도 있어요. 회사운영에도 아주 좋지요. 리는 많고 해는 하나도 없어요.” 군철이 아무리 공회 좋다는 리유를 련주포를 쏘듯이 수태 렬거했지만 박문은 의연히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총경리도, 아니, 최총경리도 혹시 빨갱이 아닌가?” 군철은 머리를 척 들고 가슴을 쑥 내밀고 차렷자세로 똑바로 서며 격앙된 목소리로 위풍 당당하게 말했다. “네. 저는 절대 자기 신분을 속이지 않습니다. 당당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영광스러운 중국 공산당 당원입니다.” 그는 어조를 좀 부드럽게 고치며 말했다. “박총경리, 충고합니다. 중국에 와서 회사 차리자면요. 여기 정부와 조직을 존경하고 믿어야죠.” 박문은 군철이 이다지도 강경하게 나올줄은 몰랐다. 그도 뒤로 좀 물러서며 의자에 가 풀썩 물앉았다. “알았어. 그러나 명확히 말해줄게. 공회는 안돼. 절대 안돼. 이건 한국 기업이야. 프로레타리아 빨갱이조직 우리 회사에까지 들어와 똬리를 틀고 들어앉게 할 순 없어.” 군철은 총경리실을 나오면서 흐리멍텅한 하늘을 쳐다보더니 도리머리를 홰홰 저으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절망의 꼬리가  먹장구름 속에서 구렝이처럼 기여 내려와 조소의 꼬리를 사납게 휘두른다.      가련한 미련이 휘파람을 불며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리념의 락엽을 지레밟으며 그네를 뛴다.      썩어빠진 악어 아가리에서 악취가 쥐새끼처럼 뛰여나와 잘난 체하며 독수리 날개에 앉아 저 멀리 호수 물에 흩날려내리며 퍼런 파도와 키스한다.      색마의 허파가 팔딱이면서 몰렴치한 리념의 불티를 풍무질하며 중이 굿하듯 목탁을 똑또그르 두드리며 중얼거린다.      이데올로기 악마 높은 토성을 쌓고 깊은 협곡을 파고도 모자라 리념의 아가리를 쫙 벌리고 뻘건 이발을 드러낸다.      눈물 젖은 미련은 부풀어오르는 젖가슴에 기다림의 씨앗을 심어놓고 희망의 노조 오아시스는 호수가에 퍼더버리고 물앉아 너울너울 춤추며 환상의 꼬리를 휘둘러 푸르른 호수에  꿈의 서정시를 쓴다.
276    대하소설 졸혼 제3권 (40) 김장혁 댓글:  조회:1395  추천:0  2022-09-11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3권                      50. 부총경리 로맨스        군철은 공항파출소에서 한참 심문당한 후 놓여나와 간신히 단위에 돌아왔다. 그러나 경찰이 하던 말이 무시로 뇌리를 쳐서 시름놓을 수 없었다.   “만약 정호가 오늘 우리 공항으로 도망쳤기만 해 봐. 범죄자 도망을 도운 죄 물을 거야.” 군철은 위엄에 찬 경찰들 앞에서도 머리를 숙이지 않고 따지고들었다. “생사람 잡지 마십시오. 난 애인과 함께 미국으로 가려고 했을뿐이오. 무슨 증거 있습니까?” 공항파출소에서는 군철의 핸드빽에서 정호의 려권을 들춰냈다. “이건 뭔가?” 경찰은 려권을 군철의 코앞에 들이댔다. “애비 려권으로 미국 가려고 하잖았어? 이것만 해도 남의 이름을 도용한 죄를 구성해.” “내 그래 미국에 날아갔습니까? 가지도 않은 사람을 물고 늘어지면 어쩝니까?” 그때 성호가 파출소에 들어섰다. 그는 이상하게 군철한테 세귀눈을 찔끔해 보이더니 경찰한테 다가가 나직이 말했다. “저 애는 출국하지 않았기에 아직 죄를 구성하진 않았다고 봅니다. 석방하면 어떻습니까?” 경찰은 시답잖은 눈길로 성호를 보며 뭐라고 두덜거렸다. 별게 다 수사에 끼여든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들은 군철과 황선희를 놔주었다. 파출소에서 나오면서 군철은 성호를 힐끔 치켜보았다. 성호는 머리를 끄덕이며 조선말로 한마디 하였다. “정호를 보면 전해라. 자수하는게 유일한 출로라고. 무슨 죽을 죄를 진 것도 아닌데. 사처로 도망치며 살게 있니?” 군철은 속으로 고양이 쥐 생각을 한다고 여겼다. (픽, 병 주고 약 주고 하면서. 하나 누구 신세에 우리 회사에 들어왔는데. 흥, 배은망덕해도 한두가지 아니구나.) 그러나 입으로는 속과는 다른 말을 했다.  “남방까지 쫓아와 생각해줘서 감사합니다.” 성호는 정색했다. “오해하지 말라. 난 친구로서 정호를 자수하게 하자고 쫓아다닐뿐이야.” (옛말이면 듣기나 좋지. 흥!) 군철은 성호한테 눈을 흘기면서 파출소에서 나왔다. (흥, 제 딸의 뒤가 근심되는 모양이지. 어떤 땐 우리 부자간을 다 잡아먹을 상하다가도. 흥!)   군철은 사무상 컴퓨터에 마주 앉았지만 일에 손이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 오사까공항을 무사히 빠져나갔을가?) 그는 오랜만에 권연을 한대 꺼내 붙여물었다. 속이 타다못해 연기로 돼 타래쳐올랐다. 똑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녀비서 하나가 커피잔을 들고 들어섰다. “리부장님, 커피 드세요.” “고맙소.” 하나는 커피잔을 군철의 앞에 내밀었다. “차탁에 놓소.” “네.” “이후엔 커피에 설탕을 좀 작작 타오.” “네, 알겠어요.” 하나는 커피잔을 차탁에 내려놓고 군철의 표정을 흘끔 곁눈질했다. 군철은 짙은  눈섭꼬리가 건뜻 쳐들린 채 량미간을 찌프리고 있었다. 군철은 하나가 나가자 커피잔을 들어 후후 불며 한모금 마셨다. 긴장으로 굳어졌던 대뇌피질이 스르르 풀리는 감이 들었다. (하나, 저년이 애비 대신 날 감시하지 않는지? 진짜 대대로 우리 가문을 망가뜨리려고 달려들어? 흥! 네년이 미국 하버드대학 석사를 나왔으면 다냐? 우리 회사에선 어림도 없어.) 군철은 커피잔을 들어 후루룩 들이켰다. 그는 청화대학 전자공학과 석사연구생 출신이여서 하나와 그의 남친 윤선을 쓴 외 보듯 했다. 이전에 성호와 정호, 문걸, 종수, 범송 등은 아주 가까운 친구였다. 성호는 몇해 전에 문걸한테서 군철이 남방 한국 반도체회사에서 인사부장을 하면서 잘 나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문걸한테 미국에서 헤매던 하나를 군철이네 회사에 들어가게 군철과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군철의 아버지는 정호가 아니라 문걸로 알려져 있었기에 성호는 문걸한테 부탁했던 것이다. 군철은 문걸의 부탁을 받고 하나와 윤선이 둘 다 미국 하버드대학 졸업생들이라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우리 회사에 한 고향 조선족이 하나라도 더 많으면 좋겠지.) 직원이 3000여명이나 되는 한국 대회사에 들어온다는 것은 그리 식은 죽 먹기 아니였다. 더욱 하나처럼 군철이 이끄는 인사팀에 들어가고 부장이나 부총경리나 총경리 녀비서로 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았다. 그러나 군철의 한마디 말에 하나와 윤선은 회사 전례를 깨고 식은 죽 먹기로 당날애 입사수속을 마쳤던 것이다.    그후 하나는 군철 부장의  최측근인 녀비서로 발탁됐다. 하나는 자기 남친까지 인사팀에 받아달라고 군철 부장한테 지청구를 들이댔다. “저네 한팀에 있으면 얼마나 불편하겠소? 제 남친은 생산직장에 있는게 더 좋소.” 하나는 단통 뾰로통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얼마 안가 리부장의 말에 도리가 있다고 여겼다. 군철은 속으로 성호를 증오했다. (누구 신시에 딸과 사위감까지 다 우리 회사에 들어왔는데. 우리 부자간을 잡자고 눈에 쌍불을 켜고 달려든단 말인가? 길러준 개 발뒤축을 물려고 들어도 한두가지 아니구나. 흥!) 군철은 억이 막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대포폰에 메시지가 날아왔다. 아버지한테서 날아온 메시지였다.       짐이 셋 다 무사히 도착했음.      군철은 벌떡 일어났다. “살았다, 살았어! 셋이 다 도착했군.” 그는 사무실 안을 뚜벅뚜벅 거닐면서 엄지와 식지를 딱 튕겼다. 똑, 똑, 똑똑. “또 무슨 일이야? 흥!” 군철은 황급히 대포폰을 사무상에 걷어넣으며 두덜거렸다. 하나가 또 들어왔다. (정말 보기 싫다하니 자꾸 시끄럽게 굴어?) “리부장님, 박총경리님께서 총경리실에 오시라고 합디다.” “알았소.” (제길, 직접 나한테 전화할게지. 보기도 싫은 년을 자꾸 들여보내?) 군철은 속으로 두덜거리면서 당장 윗층에 있는 총경리실로 올라갔다. 박문 총경리는 안경을 춰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맞아주었다. 녀비서 은희가 커피를 두잔 가져다 차탁에 놓았다. 박총경리는 사무상에서 무슨 증서인지 들고 다가왔다. “리부장, 아니, 리부총경리, 축하해요.” “네? 부총경리라니요?” 군철은 우멍눈이 데꾼해 박총경리 손에 든 걸 힐끔 곁눈질했다. “본사 리회장님께서 임명장을 보내왔어요.” 박총경리는 아주 엄숙하게 임명장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군철의 앞에서 읽었다.                                      임명장           리군철 귀하를 중국 S시 한국반도체전자유한회사    부총경리로 임명한다.            대한민국 반도체유한회사 회장: 리XX                                  2020년 7월 5일.   박총경리는 군철에게 증서를 드리고 손을 굳게 잡았다. “축하해요. 리부총경리님.” “감사합니다.” 군철은 임명장을 받고 허리 굽혀 인사했다. 박문 총경리는 쏘파에 다가와 군철과 나란히 앉았다. “리부총경리, 한가지 부탁하자요.” “예, 뭐든지 지령을 내리세요.” 박총경리는 안경을 춰슬리면서 군철을 건너다보았다. “리부총경리, 제가 본사로부터 갓 오잖았어요? 중국 대륙의 여러가지 정책을 잘 몰라요. 회사 정황도 익숙하지 못한데요. 잘 부탁드려요.” “아니, 천만에 말씀을, 박총경리님이야 말로 중국 통인데요.” 박총경리는 확실히 오기 전에 2년 동안이나 중국에 대한 공부를 했기에 중국통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아니, 제가 박총경리님 가르침을 많이 받아야죠.” 군철은 인차 머리를 조아렸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있는 힘꼇 박총경리님을 받들어 일하겠습니다.” 군철은 확실히 이 회사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은 밭머리 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진짜 청화대학 전자공학부 석사생이여서 반도체산업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회사 초창기부터 10여년 동안에 자기 능력으로 일반직원으로부터 인사대리, 인사주관, 인사과장, 팀장, 부장, 부총경리로 층층계단을 다 밟으면서 제발된 유능한 관리일군이였다. 회사 총경리는 한국 본사에서 2년에 한번씩 바꿔 보내기에 임기  2년 계약제 총경리에 지나지 않았다. 때문에 기실 군철이야 말로 이 회사 장기적으로 똬리를 틀고 들어앉은 밭머리 뱀- 실세라고 할 수 있었다. 또 회사의 대부분 직원은 군철이 초창기부터 인사공작을 하면서 회사에 초빙해 입사시킨 직원들이였다. 또 부장들이나 팀장들이나 과장들이나 대부분 군철이 력임 총경리와 협상해 제발시킨  조선족들이였다. 대부분 한족 초보직원들이나 간부들도 군철이 초빙해와서 제발시킨 자들이여서 군철의 말이라면 다 들었다.  한국 본사에서 보낸 팀장과 부장은 몇이 안되였다. 그리하여 군철은 회사 우로부터 일반직원에 이르기까지 얼기설기 인맥의 뿌리를 깊이 내렸기에 그의 기반은 반석처럼 아주 단단했다. 때문에 군철이 뭐라고  일단 호소만 하면 모든 직원들이 호응해나섰다. 그러나 군철은 아주 겸허히 한국 총경리를 깎듯이 모셨고 항상 허리와 머리를 숙이며 인간적으로 사람대접을 해주었다. 이번에 갓 온 박총경리는 본 회사에서 군철의 부총경리임명장을 가지고 왔기에 오자마자 군철과 좋은 인연을 맺게 되였고 확 가까워지게 됐다. 이 회사는 인구 천만이 넘는 S시 수천개 외국 기업과 합자기업에서도 첫손 꼽히는 회사라고 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는 세계 최첨단과학기술로 반도체부품을 생산하는데 일년에 S시에 납부한 세금액만 해도 900억원도 넘었다. 이는 S시 총세금액의 10분의 1이나 거의 차지했다. 그리하여 시에서도 이 회사를 소홀히 대하지 못했다.       시정부에 가서도 군철의 말이 섰다. 공상국, 공업국, 세무국, 공안국에서도 리군철 부총경리라면 한발 물러섰다. 군철은 시정부에 말해 2년에 한번씩 바뀌는 이 회사 총경리에게 아파트 한채씩 줘야 한다고 제기하였다. 시정부에서는 군철의 의견을 채납해 련꽃이 만발하는 맑은 호수가 수림이 우거진 무연한 언덕에  지은 아빠트 한채씩 한국인 총경리에게 주었다. 그 별장식 아빠트는 시세로 600만원도 넘었다.        이 회사에 온 총경리는 한해에 한화로 로임 3억을 받는데다가 돌아갈 때면 아빠트까지 팔아 일약 몇십억대 부자로 돼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 내막을 차차 알게 된 한국 본사 책임자들이 서로 앞다퉈 중국 이 분회사 총경리로 오려고 해 실로 머리터질 지경이였다. 그외에도 한국 본사에서 이 회사에 파견돼온 부장, 팀장들도 다 면적이 부동한 아빠트를 탈 수 있어 모두 몇십억(한화) 부자로 돼 돌아갔다. 한국 본사에서 온 총경리들이나 부장들이나 팀장들이나 모두 군철이 덕분에 팔자를 고치게 됐다고 엄지를 내둘렀다. 군철도 부총경리여서 이젠 년금이 인민페로 백만원이 넘는데다가 시정부의 우대를 받아 박문 총경리가 든  호수가 아빠트에 이웃으로 입주했다.        그런데 군철은 불만족도 있었다. 총경리와 너무 가까이 있어 불편한 점도 있었다.        한국인들이 다 그러하듯이 박문 총경리도 례외가 아니였다. 그는 쩍 하면 퇴근해 군철을 불러 회식하면서 밤생활을 즐기려고 했다. 그런데 골치거리는 술자리에 꼭 회사의 녀직원들을 불러내야 하는 것이였다. 진짜 회사 생산과 전체 직원들의 인사를 관리하기보다도 한국 본사에서 온 총경리를 모시기가 더 힘들었다. 중국 사회 법을 잘 모르는 총경리들은 자꾸 한국에서처럼 밤생활을 즐기려다가 궤도를 벗어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였다. 이날, 군철이 온 하루 피곤하게 일하고나서 너무 곤해 하품을 하면서 퇴근하려고 핸드빽을 옆구리에 낄 때였다.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박총경리 전화 아닌가. “또 밤생활을 즐기려고? 흥!” 군철이 이 핸드폰을 들자 박총경리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리부총경리, 저녁에 별 다른 일 없죠? 술 한잔 하면 어때?” “좋아요.” “리부총경리, 어쩐지 밤이 되면 집에 돌아가기 싫어. 와이프도 없는 아빠트에는 고독 밖에 기다라지 않아. 밤 고독이 젤 무섭네.” “알았습니다. 그러잖아도 저녁에 박총경리님을 모시고 밤생활을 즐길가 했는데요. 아가씨들을 데리고 갈테니깐요. 마음껏 즐겨 봅시다.” “참 좋아. 그래도 날 알아봐주는 이는 리총경리뿐이야. ㅎㅎㅎ.” “당연하죠.” “리비서를 꼭 데리고 오라구. 술상에는 사촌누이라도 있으면 좋다는 말 있잖아? ㅎㅎㅎ.” “네. 그럼요. 리비서보다 더 이쁜 아가씨도 데리고 가죠.” “뭐? 리비서보다 더 이쁜 아가씨 우리 회사에 있어?” “그럼요. 풍무뀀점에서 만나지요.” “참 좋아.” 군철은 원래 부총경리로 되자 리하나를 곁에 두지 않고 다른 부서로 보내려고 했다. 며칠 전에 공항에서 하나의 아버지 성호가 경찰들과 함께 자기와 황선희를 붙잡던 일에 앙금이 앉았던 것이다. (길러준 개 발뒤축을 문다고. 흥! 배은망덕해도 한두가지 아니군. 뉘 신세에 하나가 우리 일류회사에 들어왔는데. 가만놔두는가 보자.) 그런데 하나가 주색에 빠진 박총경리 눈에 들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썩뚝 잘라버려야겠는데. 참. 어쩐담.) 군철은 울며 겨자먹기로 퇴근하려는 하나를 불러세웠다. “하나, 다른 일 없으면 회식하러 가기오.” “네?” 하나는 눈이 데꾼해졌다. “아니, 제가 오늘 저녁에 신랑하구 약속 있는데요.” “취소하오.” “아니, 후에 가면 안 될가요?” “뭐라고? 비서라면 가자면 가는게지. 무슨 말이 그리 많아?” 하나는 자존심에 허락되지 않아 풍만한 가슴이 마구 오르내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였다. 그러나 그녀는 인차 군철의 독기서린 우멍눈을 보는 순간 별 수 없었다. "갈게요." "진작 그래야지." "오늘 애들은 누가 데려오는가요?" "아, 깜빡이야.애리싸 오늘 늦어 퇴근한다던데. " "근심 말아요.제가 애들을 데려다 두고 올게요.어데서 회식하는죠." "풍무뀀성이야.고맙소.인차 오오." "네-" 문걸은 돌아서 나가는 하나의 가녀린 어깨를 보며 측은한 생각까지 들었다. (알락거리긴?) 하나는 비서실에 돌아가 윤선한테 나직이 전화했다. “회사 회식이 있어. 저녁 파티 취소하자.” “뭐라고? 무슨 일에 날마다 회식이냐? 오늘은 누구하구 회식이냐?” “미안해. 리총경리 부르는데야. 무슨 수 있어?” “또 리총경리냐? 어째 날마다 널 부르니?” “비서가 무슨 수 있니?” “회사 비서지. 무슨 부총경리 밤생활 비서냐?” “끊자. 리총경리 기다린다.” 하나는 핸드폰에 대고 얼굴을 비춰보고 머리를 쓸어넘기더니 핸드빽을 들고 부랴부랴 회사 정문으로 나갔다. 정문 앞에는 벌써 보마찌프 운전수가 차문까지 열어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군철은 운전수까지 신변일군들을 몽땅 조선족으로 철통같이 배치해놓았다. 군철은 공회준비소조 경희를 불러 데리고 보마차에 올라탔다. 운전수는 차문까지 공손히 닫아주며 물었다. "리총경리님! 어디로 몰가요?" "풍무뀀성으로!" "넷, 알았습니다." 군철은 원래 부총경리로 임명되자마자 당장 하나를 잘라버리고 경희를 비서로 쓰겠다고 제출했다. 그런데 박총경리는 하나를 내치는 것을 반대했을뿐만 아니라 쩍하면 회식에 불렀다.       군철은 박총경리 뜻을 거역할 수 없었다. 하나가 눈에 든 가시 같이 미웠다. 그러나  하나와 리나 등을  몰아내는  인사단행을 잠시 미루었다.      기실 군철의 본처 리나도 갓 상해 복단대학을 졸업하고 이 회사 인사과에서 군철과 마주 앉아 함께 일했었다.      군철이 3년만에 인사대리로부터 인사주관을 월격해 인사과장으로 발탁되였다. 그러자 리나는 능력있는 군철한테 찰싸닥 달라붙기 시작하였다.        군철한테는 진작 청화대학에서 사귄 녀친구가 있었다. 그런줄을 알면서도 리나는 군철한테 기를 쓰고 천방백계로 달라붙었다. 군철의 원래 녀친구의 아버지는 미국 류학생출신 청화대학 교수이자 박사생 도사였다. 그 교수는 군철의 석사생도사를 맡았다. 그는 학생회 회장을 하는 군철이 장차 큰 일을 할 제자라고 여기고 자기 무남독녀를 소개해주었다. 그는 어느 하루 군철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만약 내 사위로 되면 석사학위겠는가. 박사학위도 타게 하고 미국에  류학보내 박사후 학위까지 타게 밀어줄테오. 어떻소? 우리 딸을 만나보겠소?” (이게 웬 넝쿨채로 떨어진 호박이냐?) 군철은 너무 기쁜나머지 그 자리에서 흔쾌히 대답했다. “만나보죠.” 그런데 교수 따님을 만나보니 키가 1.70메터도 넘고 너무 실팍해 녀자 같은 감이 들지 않았다. (수호전에 나오는 모야차?) 미국 류학의 꿈을 이루려고 군철은 그런대로 교수님 따님과 자주 만났다. 그런데 부모와 말하니 인물체격이 없는데다가 한족이라고 딱 질색일줄이야. 군철은 하는 수 없이 석사학위를 탄 후 교수님 따님과 그만두고 미국 출국의 꿈마저 접고  남방에 진출해 이 회사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교수님 따님은 그를 잊을 수 없다고 S시까지 따라왔다. 그녀는 쩍하면  회사에까지 찾아와 리나랑 숱한 직원들이 보는데서 행악질했다. “남의 정을 빼먹고 도망치면 단가?” 그녀는 군철을 손가락질하면서 무슨 “숫처녀를 짓밟은 건달”이라는지, “우리 아버지를 배신한 배은망덕한 놈”이라는지 별의별 욕설을 다 퍼부었다. 군철은 너무 창피해 머리를 들고 출근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는 숱한 직원들 앞에서 그녀한테 똑똑히 말했다. “네가 이렇게 행악질한다고 너하고 살 거 같애? 우리 둘은 절대 함께 못 살아. 몇번 만났을 뿐 난 네 손 한번 잡지도 않았다. 일찌기 단념하고 좋은 신랑 만나서 잘 살아라.” 교수 딸은 아무리 떼를 써도 안되자 다시는 회사에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어느날, 군철은 3천여명도 넘는 직원들의 로임조절로 해 저녁늦게까지 사무실에서 리나와 함께 일했다. 자정이 거의 돼서야 새 로임명세를 작성해냈다. “리과장, 우린 끝내 해냈군요.” “그래. 리주관!” 그들은 로동의 희열로 해 그랬을가? 저도 몰래 그만 와락 끌어안고 말았다. 그런데 리나가 글쎄  경계선을 마구 허물면서 군철한테 덤벼들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청춘의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정욕은 그만 엄연한 방파제를 마구  터지웠다. 화려한 침대가 없어도 좋았다. 비단이불이 없으면 뭐라나. 사무상 위라도 배기는 것 쯤은 괜찮았다. 쏘파에서라도 참고 참았던 운우지정을 나누기에는 안성맞춤하였다...  아하, 사랑이 뭐길래?  한순간에 청춘의 계곡을 훌쩍 뛰여넘고 말았다... “내 총경리로 된다는 말을 듣고 리나는 복혼하자는 거야.” 군철은 보마찌프에 앉아 달려가면서도 리나 때문에 골치 아팠다. 어느덧 풍무뀀성 지하주차장에 들어섰다. 축구장만큼 널다란 지하주차장에 차들이 시루 속의 콩나물처럼 빼곡이 들어섰다. 그만큼 영업이 잘된다는 표징이였다. 풍무뀀성은 조선족이 차린 것인데 이 시내 조선족들과 한국인들이 단골손임으로 우글거렸다. 이젠 한국 인들과 조선족들이 모이는 곳으로 돼버렸다.        군철은 경희와 함께 으리으리한 단칸방에 자리를 잡고 복무원을 불러 박총경리 젤 먹기 좋아하는 소고기랑 양고기랑 해물이랑 푸짐히 시켰다. 뒤이어 하나도 군철의 애를 집에 데려다 주고 들어섰다. 군철은 하나와 경희를 보고 박총경리를 잘 모시라고 일일이 침을 놓았다. 이윽고 박총경리 어깨 으쓱해 틀을 차리면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박총경리님. 여기 앉으세요.” 하나와 경희가 복도에 서 있다가 박총경리 량팔을 끼고 아양을 떨며 들어섰다. 군철은 마주 나가 오랜만에 만난 상전을 모시듯이 허리굽혀 인사하며 반겨맞았다. “어서 이리 와 앉으십시오. 길에서 고생하지 않았습니까? 좀 늦었군요.” 박총경리는 어깨 으쓱해 의례히 상좌에 다가갔다. 박총경리 녀비서 은희가 박총경리 외투랑 받아 옷걸개에 걸었다. 박총경리는 량옆에서 경희와 은희가 보질보질 굽는 소고기를 보자 군침부터 꼴깍 삼켰다. 한국인들은 거개 한식이거나 한가위, 음력설 같은 때나 소고기를 먹지 보통 때는 소고기도 사서 실컷 먹지 못해 그럴가? 박총경리는 군철이 권하는 술은 관심도 없고 경희와 은희가 륜번으로 입에 가져간 구운 소고기를 게걸스레 먹느라고 제정신이 없었다. 박총경리는 소고기를 게걸스레 배때 터지게 먹었다. 그런데 중국 술을 한국의 참이슬처럼 도수 낮은가 해 아가씨들이 권하는대로 쭉쭉 다 들이켰다.      그놈의 술 때문에 사달이 났다. 박총경리는 취해 체모도 잃고  경희와 은희 날씬한 허리를 안고 볼에 키스도 뻑뻑 안겼다. “총경리님, 죄송해요. 제 얼굴에 소고기기름이 묻겠어요.”      하나가 상을 찡그리며 얼굴을 외면해버렸다.      박총경리는 은희 허리를 껴안고 교배술을 마시자고 했다. 은희는 군철을 핼끔 곁눈질해보았다. 군철은 머리를 끄덕여보이며 하나와 점잖게 술잔을 마주쳤다. 하나는 박총경리를 곱지 않은 눈길로 쏘아보았다.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부르짓고 있었다. (박총경리, 우릴 어떻게 보고 이래? 기생인가 하는가?) 그 눈길 어찌나 사나운지 옆에서 보는 군철마저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아짜아짜해했다. (박총경리 저 표독스런 눈길을 보면 어쩌지?) 박총경리는 그런 눈치는 채지 못하고 이번엔 술상 밑으로 해 경희 짧은 치마 밑에 드러난 하얀 허벅다리를 슬슬 만지였다. 경희는 군철의 눈치를 보면서 모르는 척하며 놔두었다. "이름 뭐지?" "경희." "오. 그래. 경희 지금 무슨 직급이여?" "주관인데요." "회사 온지 몇해 되지." "4년 차입니다." "4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주관인가? 래일 과장으로 올려줘야지." "술상에서 한 말은 다 무효라던데요." 경희는 피끗 박총경리와 리총경리 눈치를 살폈다. "이 박총경리 말이면 단 기여." 경희는 좋아 해쭉거렸다. "래일 잊지 말고 과장임명장을 주세요." "그래. 얼마든지. 이쪽은 뭐여?" "전 은희, 저도 4년 차인데 주관인데요" "그래, 다 과장 시킬런다." 경희와 은희는 먹먹해 앉아 있는 문걸과 하나를 건너다보며 히쭉거렸다. "하나도 이젠 과장급 녀비서로 발탁해야지. 안 그래? 리총경리?" "네. 래일 사무실에 가서 잘 토론하고 락실해야죠." "무슨 또 토론 있어? 나하구 리총경리님 말이면 다지." "자, 자, 여러 과장아가씨들 축하해. 한잔 들자고." "네- 호호호. 한잔 들자고." 박총경리 주정이랄가 점점 눈꼴 사나울 지경이였다. (안되겠어. 개꼴망신당하겠다. 술상에서 인사문제를 론하다니? 참.) 군철은 술상을 파하고 하나랑 몽땅 먼저 집에 돌려보내려고 했다. 그러자 박총경리 군철을 손가락질하면서 야단쳤다. “리경리! 지금 뭐하는 거야?” “자리를 옮깁시다.” “왜? 아가씨들을 집에 보내? 난 집에 가면 고독해 죽겠어.” 군철은 도리머리질하는 하나랑 경희랑 둘러보면서 될수록 부드럽게 말했다. “수하 녀직원들 보내고 더 좋은데 단독으로 모시죠.” “뭐? 우리 한국인들은 자정 전에 집에 돌아가는 법 없어. 넘 일찍 집에 돌아가면 와이프 무슨 속상한 일 있는가 해. 지어 무능하게 봐. 그래서 새벽까지 밤생활을 즐겨야 해. 리총경리, 안 그래?” 박총경리는 안경을 춰올리면서 군철과 하나랑 둘러보며 손사래를 흔들었다. 군철은 하나랑 보기 민망해 박총경리 귀에 입을 대고 뭐라고 쑤근거렸다. 그러자 박총경리 마지못해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전번에 갔던 마사지방에 가자구. 아가씨들 꽤나 이쁘고 풍만하더라. ㅎㅎㅎ.” 군철은 억이 막혀 경희랑한테 가라고 손을 홰홰 저었다. 하나랑 때를 만났다고 우르르 쓸어 나가버렸다. 그러자 박총경리는 너무 아쉬워 군철을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리총경리, 끝내 아가씨들을 다 쫓아보냈구먼. 왜 이래? 그럼 리총경리네 집에 가자. 거, 미국에서 온 금발미녀하구 술 한잔 하자구. 리총경리, 재간 이만저만 아냐.어쩜 아메리컨 미스 다 얻어놨어? 참 별맛이겠지?ㅎㅎㅎ.”       군철은 성이 꼭뚜까지 울컥 치밀었다. 밸 같아선 한대 찰싹 갈겨주고 싶었다. 그러나 낮은 문턱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격분한 내심을 속이느라고 우멍눈을 감으면서 참는 수 밖에 없었다…       돈은 인격의 토성을 허물려고 하품하며 추파를 보낸다. 춘향의 철썩 같은 맹세를 보자기에 싸서 기승스레 불어치는 색갈바람에 방파제를 쌓아본다. 얄미운 욕정이  정조 뚝을 허물려고 독사의 혀를 날름거리며 스리슬쩍 기여와 비구니 얼굴에  키스 씨를 찔 뱉어버리고 꼬리를  스리슬쩍 감춘다.     
275    대하장편소설 졸혼 제3권 (39) 김장혁 댓글:  조회:1475  추천:0  2022-09-04
김장혁 작 대하장편소설 졸혼 제3권              49. 오누이      나나는 춘희 질책을 받고 세집으로 돌아오자 맥없이 2층 침대에 털렁 드러누웠다. 그녀는 반지하굴이나 다름없는 쪽방세집을 둘러보자 가슴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해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세집은 어둠침침하고 우기에 습기 차서 벽에는 얼룩덜룩  콤팡이 껴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애나게 알바를 해서 번 돈을 한잎이라도 남으려고 엄마가 암으로 사망한 후에 부득불 이런 반지하세집에 이사했던 것이다. 진짜 세집에는 아래위로 된 2층 침대를 놓고나니 돌아설 자리도 없었다. 주방도구를 내놓고 서발막대를 휘둘러도 걸칠게 하나도 없었다. 나나는 쓰라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이런 쥐구멍만한 세집에도 해볓이 들 날이 있을가?) 금방 춘희 질책하던 목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어쩜 새파란 나이에 인격 팔고 색을 팔아 사니? 넌 인격도 없니?  창피한줄도 몰라?!” 나나는 반발심이 났다. (누가 무슨 그렇게 살고 파 그랬는가? 흑, 흑. 카레점이나 편이점에 가서 알바나 해서야 언제 학잡비와 세집 값을 마련하겠는가?) 나나는 머리를 옆으로 돌려 눌물 고인 눈으로 반토굴 차창으로 흐리멍텅한 하늘을  내다보며 탄식했다. (알바를 하고나면 언제 공부할 새 있겠는가?) 순간, 나나는 금방 다이로교수가 병실에서 하던 말이 떠올랐다.   모모에와 춘희가 자리를 비우자 다이로교수는 측은한 눈길로 나나를 바라보면서 침대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나나는 두 손을 가슴에 모아쥐고 침대 가까이에 다가갔다. “앉아라. 조용히 말할게 있어.” 나나는 눈물이 글썽해 다이로교수를 바라바며 곁에 가 마주 앉았다. 다이로교수는 나나의 손을 잡고 나직이 말했다. “너네 오누이 얼마나 힘겹게 살면서 공부하는냐? 생각하면 내 마음이 아프다.” 언제나 그랬듯이 다이로교수는 자애로운 할아버지 같았다. 나나는 코마루 시큼해 훌쩍이며 머리를 다소곳이 숙였다. “나나야, 너네 오누이 다 우리 집에 들어와 살면서 공부하면 어때?” “아니, 괜찮아요.” 나나는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왜?” “아니, 그저… “ 나나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녀의 눈 앞에는 모모에와 춘희의 표독스런 눈길이 떠올랐던 것이다. “곰팡이 낀 반토굴셋집에서 어떻게 살아? 거기서 살다간 병에 걸려.” 다이로교수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전날 밤에 카레점에 갔댔다. 그는 나나가 퇴근하기를 기다려 자기 도요다찌프에 나나를 세집에까지 실어다주었댔다. 그는 그날 밤에 처음 나나네 반토글 같은 세집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때부터 다이로교수는 여러번이나 나나 오누이를 보고 자기 집에 와서 살라고 했던 것이다. 다이로교수는 나나 손을 놓으면서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한참 납덩이 같은 침묵이 흘렀다.       다이로교수는 머리를 천천히 들어 나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물었다. “혹시 내 본댁이나 춘희 무서워서 그러잖느냐?” 나나는 다이로교수를 흘끔 쳐다보더니 머리를 폭 숙였다. “아니예요. 절대 아니예요.” 그러나 다이로교수는 콧방귀를 뀌였다. “흥! 그년들 다 뭐 그리 대단해?” 뒤이어 그는 대성질호까지 했다. “그년들 이젠 애도 낳지 못하는 페허소야, 페허소! 알만해?!” 나나는 다이로교수한테 솔직히 내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선생님, 저를 항상 돕는 지극정성은 마음 속으로 고맙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찌 댁에 가서 살기까지야 하겠습니까?” 다이로는 의아해했다. “왜 안돼? 넌 가장 사랑하는 제자야. 넌 나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었다. 늙은 내 가슴을 설레이게  했다. 네가 옆에 있으면 기쁘고 즐거웠다. 널 영원히 우리 집에 두고 살고 싶다.” 나나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근본 안될 말씀입니다. 본댁과 춘희 놔두자 하겠습니까? 마끼 가만 있겠어요? 날마다 티격태격 싸우면서 어떻게 산다고 그래요? 우리 오누인 다 하루라도 눈치밥을 먹기 힘들거예요.” 다이로도 머리를 끄덕이며 가슴을 쾅쾅 쳤다. 나나는 다이로교수 무릎에 이불을 덮어주면서 물었다. “선생님, 몸 좀 괜찮죠?” “오- 그래. 그간 내 뒤바라지를 하느라고 수고 많았다.” “별 말씀을. 선생님한테서 숱한 사랑을 받았는데요. 당연히 해야 할 효성이죠.” 나나는 일어나 컵에 뜨거운 물을  부어 침대머리에 놓아주었다.“선생님, 한가지 부탁합시다.” “뭘? 백가지라도 부탁해라. 뭐든지 해줄 수 있어.” 나나는 정색했다. “선생님, 다신 안락사 같은 걸 하지 마십시오. 겁나 죽을 번했어요.” “허허허.’ 다이로교수는 너털웃음을 웃었다. “근심하지 말라. 난 아들딸을 보기 전에는 절대 죽지 못해.” 나나는 머리를 끄덕이다가 미심해 물었다. “전번엔 왜 후지산에까지 가서 그랬는가요?” 다이로교수는 희죽이 웃더니 정색했다. “한번 연극 논 거야.” 나나는 눈이 데꾼해졌다. “네? 어쩜 목숨을 가지고 연극 다 놀아요?” 다이로교수 얼굴에는 준엄한 표정이 서리였다. “모모에와 춘희 어떻게 노는가 속뽑이를 해본 거야. ㅎㅎㅎ.” 그제야 나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도 본댁이 진정이야.” 다이로교수는 무거운 어조로 뒷말을 이었다. “춘희는 봐라. 전번에 내 안락사를 하면서 남긴 유서를 감춰놓고 내놓지 않는다.” “유서요?” “그래.” “유서에 뭐라고 썼기에?” “유서에 유산을 본댁한테 5분의 2 주고 춘희와 마끼한테 5분의 2 주겠다고 했지.” 나나는 들을수록 오리무중에 빠져 다이로교수를 쳐다보았다. “춘희박사는 왜 유서를 감추는가요?” “유서를 잘 보관해 뒀다가 내 진짜 죽으면 유서를 내놓고 내 유산을 나눠가지자는 꿍꿍이이겠지.” “네-“ 나나는 그제야 머리를 끄덕였다. 다이로교수는 나나의 손을 잡고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하나 있어.” “네?” “유서에는 나머지 5분의 1 유산을 너와 마끼한테 나눠준다고 명확히 써놓았던  거야.” 나나는 두 눈이 화등잔만큼 휘둥그래졌다. “네? 마끼와 저에게?” 다이로교수는 나나의 손을 으스러지게 쥐였다. “그래. 내 죽으면 유산을 꼭 너한테 줄 거야.” “제가 무슨 자격으로 유산을 다 가져요?” 다이로교수는 정색했다. “너네 오누이 반토굴에서 살면서 얼마나 힘들게 공부하니? 너네 오누이 고생하는 거 보면 내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다. 난 어떻게 하나 너네 오누이를  반토굴에서 구하고 싶다. 너희들도 남들 못잖게 잘 살게 하고 싶다.” 다이로교수는 나나의 손을 잡고 진정에 찬 눈길로 마주보았다. “먼저 우리 집에 들어와 살아라.” 나나는 다이로교수 품에 안겨 흐느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은정을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래일 당장 우리 집에 들어오라.” 나나는 다이로교수의 품 속에서 머리를 들더니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요. 건 안돼요.” 다이로교수는 한참이나 창 밖을 내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럼 세집 값을 대줄게.” 나나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다이로교수는 의아해했다. “왜? 그것도 안돼?” “제가 선생님께 아무것도 해드린게 없어요. 받기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괜찮아.” 다이로교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사람이란 신세를 질줄도 알고 은혜를 갚을줄도 알면 돼. 황선희랑 춘희랑 다 내 사랑하던 제자였지. 지금 봐라. 모두 배은망덕하고 날 배신하고 고향으로 달아나지 않았어?” 다이로교수는 무거운 표정을 짓는 나나를 보고 어루쓸어주었다. “난 결코 네한테서 보답받자고 이러는 건 절대 아니야. 부담 가지지 말라. 이렇게 하자.” 그는 카드를 꺼내 나나한테 주었다. “여기서 2백만엔 찾아 근사한 세집을 맡고 생활비로 써라. 이제부터 절대 반토굴에서 살아선 안돼.” 그러나 나나는 그 카드를 차마 받을 수 없었다. “그럼 좋다. 세집을 잡아주마.” “그러지 마세요.” 다이로교수는 카드를 지갑에 되넣으면서 결단을 내렸다. “세집 잡아놓으면 그리로 이사해라.” 나나는 대답 대신 그저 묵묵히 자리를 떠났던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나는 꽤나 근심됐다. “계속 다이로교수 신세를 지는 건 아닌데. 그가 또 무슨 일 시키자고 그러는지 어떻게 아는가?” 그녀는 아까 다이로교수가 “아들딸을 보기 전엔 절대 죽을 수 없다.”던 말이 상기됐다. “다이로교수 꿈은 아들딸을 보는 거구나. 그래서 그는 애도 낳지 못한다고 본댁을 내놓고 춘희를 후처로 들여앉힌게 아닌가. 지금 춘희가 애를 낳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않는가. 심지어 본댁과 춘희를 페허소라고까지 욕하지 않는가.” (무서운 일이 아닌가?) 그러나 나나는 이번에도 녀제자에 대한 동정심에서 그러는 건 아니겠는가는 막연한 미련도 남았다. (다이로교수는 동정심이 많고 자애로운 할아버지였어.) 나나는 이전에 다이로교수가 자기를 동정해 도와주던 일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어머니가 사망한 후 다이로교수는 손수 찾아와 어머니 시신에 옷도 갈아입히고 입관까지 시켰다. 심지어 장례비까지 다 대주고 자기 동생 이찌이로까지 데리고 와서 후사까지 말끔히 처리해주었다.        나나는 오누이 학잡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하학하면 카레점에 가서 알바를 했다.       어느날 그가 부지런히 카레초밥을 부지런히 손님들한테 가져다 줄 때였다.      “복화!’ 나나가 머리를 들어바라보니 다이로교수가 아니겠는가.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서 앉으세요. 어떻게 돼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다이로교수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밤중까지 여기서 일하고 곤해 어떻게 공부했니?” 나나는 쌔무룩이 웃으며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다이로교수는 마사지방에 갔다가 오랜만에 카레 먹으려고 들렸던 것이다. 그는 보스 앞에서 복화 위신을 올려주려고 카레에 고마이구이, 광어스시에 술까지 가득 청했다. 카레점 주인은 복화 인연 때문에 매상고를 올리게 돼 입이 함박만해졌다. 다이로교수는 광어스시에 술을 마시고 고마이구이는 한점도 다치지 않았다. 나중에 그는 식당 주인 보고 비닐주머니를 가져 오라고 해 고마이구이를 담아 나나에게 주었다. "동생과 함께 먹어라.” 나나는 고마이주머니를 받아들고 다이로교수가 사라질 때까지 문 밖에 따라나가면서 허리 굽혀 인사했다. 후에 다이로교수는 이 카레점의 단골손님이 돼버렸다. 그는 나나 생각만 나면 숱한 생물학자까지 데리고 이 카레점에 왔다. 그는 이 카레점에만 오면 관례를 깨고 절약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점점 더 많은 료리를 시켰다. 주인은 다이로교수가 오기만 하면 입이 함박만해졌다. 다이로교수는 고마이구이나 광어스시는 입에 대지도 않고 남겼다가 나나한테  챙겨주군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이로교수는 나나가 카레점에서 알바를 하느라고 숱한 시간을 허비하면서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여겼다. 그는 학교에 말해 나나와 광문의 학비를 절반이나 삭감하게 해주었다. 또 나나와 광문이 장학금을 타게 하려고 암암리에 나나한테 시험출제를 사전에 미리 알려주군 하였다. 그리하여 나나와 광문은 해마다 손쉽게 의과대학 장학금을 탈 수 있었다. 그때 나나는 다이로교수가 자기 명예에 위태로운 것도 무릅쓰고 자기네 오누이를 도와준 일을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였다. 다이로교수는 나나를 보고 학교 생물연구실험실에서 실험관을 씻고 실험쥐를 키우는 알바를 시켰을뿐만아니라 실험용피를 뽑아 팔게도 하였다. 전번에는 아끼하바라 큰 길에 가서 자기와 함께 거시기조각상을 떠메고 시위행진하게 하고 두툼한 보수를 주기도 했다. 그리하여 부모도 없이 의지가지 없이 사는 복화와 남동생 광문은 다이로교수의 도움을 여러 모로 받아 기적적으로 생존하면서 대학공부도 제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다이로교수는 나나가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돈을 벌게 하려고 들었다. 어느날 그는 나나를 조용히 자기 연구실험실에 불렀다. 다이로교수는 나나를 보자 반색하며 손짓했다. “그래. 복화, 여기와 앉아라. 한가지 협상할게 있어.” 나나가 마주 앉자 다이로교수는 정색했다. "전번에도 말했지만, 일본에서 발을 붙히자면 일본 국적으로 고쳐야 해. 그러자면 일본 귀화신청을 해야 해." "아니, 일본에 귀화하다니요? 저는 당당한 중국 국민인데요." "그래, 장차 고향에 돌아갈래?" "글쎄요. 일본에서 살아도 저는 중국 공민으로 살려고 하는데요." 다이로교수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귀화하지 않으면 일본에서 어데 가나 민족기시를 받는다. 그래도 괜찮겠느냐?" "네. 민족기시를 하는 일본인들이 나쁘죠. 지금 우리 중국 세계에서도 제2경제강국이 아닌가요? 선진국으로 발전한 중국을 잘 모르면서도 우리를 기시하는 일본인들이 가소롭죠." 다이로는 무거운 입을 뗐다. “일본귀화는 더 강요하지 않겠다. 그러나 곰곰히 잘 고려하기 바란다." 다이로교수는 다가앉으면서 나직이 뒷말을 이었다. "또 한가지 있다. 래일 학생들에게 인체해부학을 배워줘야겠는데 맨 시체뿐이여서 그래. 네가 실험용모델을 할 수 없겠느냐?” “네?”] 나나는 금이발이 번쩍이는 다이로교수의 헤벌린 입을 바라보면서 저으기 놀랐다. “보수는 푼푼히 줄게. 한달 동안이나 힘들게 알바할게 있느냐?” “네-” 나나는 기실 인체해부학은 사체로 해도 얼마든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또  다이로교수가 쉽게 돈을 벌게 하려고 그런다는 것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다이로교수는 정색했다. “인체구조 표면을 설명하려면 각을 뜯는 건 아니지만 라체모델을 전시해야 더 생동하고 설복력 있어. 라체모델 설 수 있겠느냐?” 다이로교수는 기대에 찬 눈길로 나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나는 한참만에 한마디 물었다. “사체로는 안되는가요?” “사체로 설명할 순 있어. 그런데 생동하지 못해.” 다이로교수는 구구히 설명했다. “보통 사체 여럿을 전시해야 돼. 그런데 불시에 사체기증자가 나지지 않아서 그래.” 나나는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통쾌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숱한 학생들 앞에 라체로 나서기는 숫처녀로선 너무나도 창피한 일이 아닌가. 나나가 주저하는 것을 보고 다이로교수는 나직이 이런 말을 했다. “내 스승은 참 대단한 생물학자였어. 그는 일찍 미국에 가서 생물학을 전공해 유명한 생물학 박사로 됐지. 그런데 그때 아프리카에서 홍열병이 만연해 흑인들이 무리로 죽어갔지. 그때만 해도 의료과학이 발전하지 못해 지구상에 새로 터진 홍열전염병도 제대로 치료할 수 없었지.” 다이로교수는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스승님은 그때 미국에서 지위가 없는가 명예가 없었나? 그는 연구소 일을 그만두고 처자를 미국에 남겨둔 채 홍열전염병환자들을 구하려고 아프리카로  날아갔지. 그는 전염병이 도는 현지에서 흑인환자들의 몸에서 전염병균을 채집해 연구했지. 그런데 새로 터진 그 홍열전염병균을 제대로 연구할 수 없었지. 그러자 스승님은 그 홍열전염병균을 자기 몸에 주사한 후 수시로 증상변화를 연구했지.그는 반복적으로 병균연구하고 치료약물을 제조해 자기 몸에 주사해 실험했지.  스승님은 끝내 홍열전염병치료약을 제조해냈어. 그런데 스승님은 제때에 자기 몸의 홍열병은 치료하지 못해 끝내 사망했지. 그가 발명한 약은 끝내 전세계에 만연된 홍열전염병을 제때에 치료해내 숱한 생명을 구했다.” 다이로교수는 손수건을 꺼내 눈확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았다. “참 대단한 분이구만요.” 나나도 감동돼 눈시울에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그래, 그래서 우리 일본 화페에도 그 유명한 샘물학자, 내 스승님의 초상화가 새겨져 있지 않겠느냐? 난 스승님 초상화를 새긴 돈을 쓸 때마다 스승님을 기리게 돼. 우리 인류는 바로 이런 자기 희생정신이 있는 스승님과 같은 의료과학자들이 있어 새로운 전염병을 하나하나 전승해나가고 있는 거야. 지금 코로나도 언젠가는 그런 의료과학자들에 의해 꼭 전승할 거야.” 나나는 다이로교수의 말에 머리를 끄덕였다. 다이로교수는 나나의 손을 잡고 정중하게 말했다. “너도 후배들 수업을 위해 자기 헌신정신을 한번 발휘해보면 어떠냐?” 나나는 인차 대답했다. “네. 교수님, 의료과학교수를 위해 학생들 앞에서 옷을 벗는 것 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죠.” “고맙다.” 나나는 선선히 대답해놓고서도 뒤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교수선생님,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게 있는데요. 그 학급에는 저의 남동생이 있는데요. 그 애 앞에 어떻게 라체로 나서겠는가요?” 다이로교수는 나나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일어났다. “네가 누군지 모르게 복면하면 어때?” “네- 그럼 좀 나을 거 같아요.”     그후부터 인체해부학시간이면 나나는 라체모델을 섰다. 나나는 다이로교수가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것을 매우 고맙게 생각했다. 다이로교수는 교내외 일본인들과는 달리  복화(나나)가 조선인이라고 민족기시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정하고 지극정성을 다해 여러 모로 도와주었다. 나나는 다이로교수가 더욱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나나는 수치감을 눈물과 함께 삼키면서 인체해부학시간에 실험실에서 복면하고 학생들이 들어오기 전에 옷을 한겹한겹 벗었다. 그녀는 실 한오리도 걸치지 않은 라체로 인체해부대에 누워 숨을 죽이고 누워 있었다. 뒤이어 실험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발걸음소리들이 다가오는 것이 들렸다.  나나는 그 발걸음소리 속에 광문의 발걸음도 있으리라고 생각하니 수치감에 못이겨 저도 몰래 두 다리를 오무렸다.  광문은 녀라체모델을 보고 첫눈에 누나 아닌가고 의심했다. (저 목의 기미 너무나도 같애. 누나 아닐가?) 다이로교수는  복면한 녀모델의 다리를 벌리고 핀센트로 그녀의 생식기를 여기저기 집어번지며 녀성 생식기구조를 설명했다.      순간, 광문은   차마 더 볼 수 없었다. 그는 쓰라린 눈물을 흘리며 외면하고 말았다.  나나는 광문이도 자기 몸을 보는 것 같아 창피해 두 다리를 자꾸 오무렸다. 다이로교수는 나나의 오무린 다리를 손으로 내리눌러놓으며 생식기해부학을 구구히 설명해나갔다.      나나는 저도 몰래 복면한 두 볼에 수치심에 젖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광문은 혹시나 누나 아닌가 미심해 하학해 집에 돌아오자마자 누나 목부터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나나는 혹시 뭘 눈치채지 않았는가 해 광문을 훌 밀어놓았다.      “뭘 그리 눈자리나게 들여다 봐?” 그녀는 눈을 곱게 흘기면서 옷깃을 들어 목의 기미를 가려버렸다. 광문은 낯색이 단통 새까맣게 변했다. 그는 토굴집에서 바깥으로 훌 나가버렸다. 광문은 자전거를 타고 해변가에 가서 백사장을 주먹으로 꽝꽝 치면서 대성통곡쳤다. “누나!” 그는 누나가 한없이 불쌍했다. 그러나 이제껏 생활고에 허덕이면서 누나한테 기대 사는 그는 용빼는 수 없어 눈을 감고 모르는 척 했다. 광문은 그때부터 자기도 알바를 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러나 남자애들이 알바를 찾아 하기 어디 그리 쉬운가. 하여 광문은 하학하면 자전거에 고기그물을 싣고 교외에 달려나갔다. 그는  시내물에 뛰여들어 그물로 팔뚝 같은 잉어랑 붕어랑 잡아왔다.      일본 사람들은 바다 물고기만 먹고 시내물 물고기를 잡아 먹지 않아 시내물에는 물고기가 늙어죽을 지경이였다. 광문이 시내물가에 이르러 보니 맑은 시내물에 팔뚝만한 잉어가 지느러미를 하늘거리며 헤염치고 있었다. 잉어들은 광문이 그물을 들이대는 것도 겁내지도 않고  달아나지도 않았다. 광문은 그물을 슬슬 밀다가 훌 들었다. 팔뚝만한 잉어와 손바닥보다도 더 큰 붕어가 그물에서 펄떡펄떡 뛰였다. 광문은 한식경이나 그물을 들고 역사질해 한초롱 꼴똑 잉어랑 붕어랑 손쉽게 잡았다. 나나는 광문이 잡아온 잉어를 쥐여들고 보면서 너무 기특해  오라비를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광문이 잡아온 물고기 밸을 따 칼판에 놓고 식칼로 토막토막 잘랐다. 뒤이에 전기신선로에 낫또를 풀고 물고기장국을 보글보글 끓였다. 오누이는 마주 앉아 잉어낫또장국을 숟가락으로 떠서 후후 불면서  맛있게 먹었다. 나나는 밥반찬이 없어 근심했는데 물고기로 밥반찬을 하게 돼 오라비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광문은 잉어장국을 숟가락으로 떠서 후후 불면서 먹다가 엉뚱한 걸 물었다. “누나, 맛있는 물고기장국을 먹자니 부모 생각이 절로 나오. 어머니 있었으면 이 잉어물고기장국을 대접하겠는데.” 나나는 저도 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렇다. 오누이는 부모도 없이 의지가지 없이 이국 타향에서 얼마나 고생하며 눈물겹게 사는가! 오누이는 그 얼마나 부모의 자애로운 품이 그립겠는가. “할머니랑 다 무사히 계시는지? 자꾸 보고 싶소.” “그래. 나도.” 나나는 숟가락질을 멈추고 반쪽땅이 내다보이는 쇠살창 되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세상떴다더라.’ “양?” 나나는 눈물을 훔쳤다. “할머니는 우리 아버지를 잃은데다가 어머니마저 암으로 세상 떴다는 비보를 받고 불시에 뇌출혈이 와서 세상떴다더라. 할아버진 홀로 외롭게 살아계신다더라. 너도 알겠지만 할아버진 우리 친할아버지 아니잖니?” “그럼 우리 친할아버진 어떻게 세상떴소?" "우리 아버지 태여나기 전에 뇌출혈로 세상떴다고 하더라.' "할아버지나 아버지나 다 단명이구만. 아버지는 어떻게 세상떴소?" "나도 잘 몰라." 기실 나나는 아버지가 에이즈에 걸려 세상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속상해 차마 동생한테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젠 우린 중국에 친척이 하나도 없소?” “있어. 넌 작은할아버지를 기억하는지 몰라.” “누구 말이오?” “성호 작은할아버지 말이야.” “모르겠소. 한번이나 본 적이 있소?” “있지. 우리 어릴 때 성호 작은할아버지는 우리 세집에 찾아와 우리한테 돈 200원씩 주었댔지.” “작은할아버진 뭘 한다오?” “개인 광고회사를 경영한다더라. 유명한 '정의용사', '사인정탐가'야.” “에이유. 지금은 서로 거래하지 않으니깐. 남이 다 됐잖소?” “아니야. 작은할아버진 아버지하구 동갑이였어. 대학동기란다. 작은할아버진 꼭 우릴 찾을 거야.” “친숙질간에 동갑동기라구? 세상에, 별일 다 보겠다. 작은 할아버지 전화번호 수소문해 전화라도 하기오.” "그래야지. 작은 할아버진 아버지와 배다른 숙질간이였어. 우리 친할아버지와 성호 작은할아버진 이복형제였지. 넌 딱 작은할어버지처럼 잘 생겼어.” “오- 그래? 멀어서 닮지 않겠소?” 광문은 누나 말을 듣고 한탄했다. “아버지도 작은할아버지를 딱 떼닮았잖았구 뭐야? 첫 인상에 아주 인정미 있어 보이더라. 지금도 꼭 우릴 보고 파 할 거야.” “이후에 중국에 들어가면 작은할아버지를 찾아가 봐야지.” “그래야지.” “우리 중국에 돌아가 살면 어떻소? 여기서 섬나라 오랑캐들한테서 민족기시를 받으면서 살게 있소?” “그래.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구 돌아가야 해.” 오누이는 비록 일본 타향에서 반토굴세집에서 살아도 생존능력만은 아주 강했다. 다이로교수는 또 나나한테 돈을 벌 수 있는 일감을 여러모로 제공해주었다. 그는 나나를 보고 때때로 해부학교수를 할 때면 자주 인체모델을 서게 했을 뿐만 아니라 교타이모리 스시상에 라체로 나서게 해 생활비를 벌게 했다. 나나는 주저하다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한번만, 한번만 ,하면서 자꾸 교타이모리 스시상에 올랐던 것이다.  물론 나나는 다른 알바를 그만 둔 건 아니였다. 그는 될수록 자기 두손으로 부지런히 일해 생활고를 이기면서 공부하려고 하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나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이번엔 반년 동안이나 다이로교수네 집에 가 있으면서 500만엔이나 벌었잖은가. 물론 숱한 아는 사람들 앞에 라체로 나서서 대변을 보면서 돈을 벌었지. 창피하긴 했어. 허나 내가 무슨 수가 있겠는가. 우리 오누이 살기 위해선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그녀는 나어린 광문이 불쌍해서라도 그만한 수치심은 감내해야 했다. (카레점에서 온밤 일해도 한달에 20만엔 좌우야. 고렇게 벌어서야 우리 오누이 어떻게 공부한단 말인가?) 나나는 한참 궁리하다가 다이로교수가 세집을 잡아주면 일단 들고 보자고 마음먹었다. (절대 광문이만은 마음에 주름이 가게 해선 안돼.) 그때 반토굴 문이 벌컥 열렸다. “다녀왔소. 누나.” “왔니?” 나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마중 나갔다. “어째 오늘 이리 늦었니?” 나나는 오라비 손을 잡고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어깨에 묻은 흙먼지를  톡톡 털어버리면서 물었다. “이게 뭐야? 먼지도 털지 않고.” 광문은 싱글벙글 웃었다. “누나, 오늘 숱한 돈 벌었소.” “무슨 알바 했니? 하지 말라는데두.” “양. 옛소.” 광문은 지전 몇십장이나 꺼내 내밀었다. “무슨 돈 이렇게 많느냐?" 나나가 세여보니 20만엔이나 되지 않겠는가. “제대로 말해. 위법행윈 하잖았지? AN방 찍는데 같은덴 가진 않았지?” “누나, 무슨 소리?” “그래, 생활고에 허덕여도 절대 인격까지 팔아선 안돼. 법을 지키면서 제 두 손으로  부지런히 일해 살아야 해.” 광문은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누나를 마주 바라보았다. “누나, 내 말 듣고 절대 욕하지 마오.” “그래,” 광문은 침대에 앉으면서 우물쭈물 하다가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오늘 상가집에 가서 시체를 메내리웠소.” “뭐라고?” 나나는 침대에 다가가 광문의 량어깨를 쥐여 마구 흔들면서 대성질호했다. “아무리 곤난해도 그런 더러운 일 하잖아도 돼. 이 누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다신 널 그런 일 시킬 수 없어. 알았니?” “누나, 나도 이젠 대학생인데 밥벌이는 해야 잖소? 어찌 누나 번 거 넙쩍넙쩍 받아만 먹겠소?” 광문은 기실 전번에 세집에 돌아와 누나 목의 기미를 보고 인체구조해부학시간에 전시된 녀라체는 바로 누나라는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는 아직 누나가 교타이모리 스시상이나 라체로 변기에 오른 일까지는 몰랐다. 그러나 누나가 라체전시에 나서기까지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을 알게 된 그날부터 가슴이 미여지는 것만 같았다. (뭐든 알바를 해야겠어.) 그는 오늘 일거리를 찾아 사처로 헤맸다. 그런데 남학생이 할 알바나 일감이 조만에 없었다. 그가 직업소개소 앞에서 서성일 때였다. 소개소 직원이 광문을 보고 물었다. “한 상가집에서층집에서 시체를 메내려올 사람을 찾네. 삭값은 15만엔이라네. 어때? 뽀나스도 있을 거야.” “내 하겠소.” “나도!” "나도!" 그 자리에서 중국 류학생 알바군으로 넷이 찼다. 상가집은 15층이나 되는 고층집이였다. 좋은 엘레베이터를 두고서도 이웃들이 사체를 실어내리지 못하게 했다. 상가집에서는 부득불 삯일군을 불러 사체를 담가에 담아 들어서 층계로 해  운구차에까지 내려가야 했다. 광문이랑 넷이서 시체를 담가에 들어 층계를 내려 갈 때였다. 이웃들은 모두 자기 집 문어귀에 서서 시체를 내려놓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들 넷이 세층 내려갔을 때였다. “좀 쉬여갑세.” 시체를 여러번 나른 적 있는 동료가 시체담가를 내려놓으려고 했다. 광문은 눈치를 몰랐다. “이제도 12층이나 내려가야는데 쉬긴 왜 쉬여? 어서 내리워가고 말기오.”  동료는 눈을 찔끔했다. 그는 문어구에 떡 벋티고 서서 12층 집 주인의 눈치를 흘끔흘끔 보았다. “여기서 내려놓지 마시오. 적은대로 팁으로 만엔씩 드리죠.” 12층집 주인은 부랴부랴 만엔짜리 넉장을 내밀었다. 동료는 제꺽 챙겼다. “받으시오.” 집주인은 만엔짜리를 광문에게랑 매인당 한장씩 돌렸다. 일본인들은 사체를 자기 집 문 앞에 내려놓는 것을 불길하다고 자못 꺼렸다. 그리하여 광문이랑 넷은 15층에서 내려오면서 다섯번이나 시체를 내려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5만엔씩 팁을 더 벌었던 것이다. 광문의 말을 듣고나서 나나는 코마루가 시큼해나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녀는 오래비 손을 잡고 두 볼을 타고 줄줄 흐르는 눈물을 훔치면서 신신당부했다.       “얘, 다신 이런 힘든 돈 벌지 말라. 그러다 전염병에라도 걸리면 어쩌니?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아.”       “누나, 나도 이젠 다 컸소. 내 두 손으로 밥벌이를 하고 싶소. 누나 창피한줄도 모르고 숱한 동기 앞에 라체로 더 나서게 할순 없소. 내 가슴이 막 미여지는 것만 같소.”       나나는 깜짝 놀랐다.      광문도 나나의 두 손을 꽉 잡고 대성통곡쳤다.       “누나. 제발 다신 인격까지 팔면서 그런 돈을 벌지 마오. 창피해 못 살겠소. 양?”       나나는 광문을 와락 끌어안고 머리를 끄덕이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줄줄 흘렸다.       곰팡이냄새 나는 세집에는 기구한 운명을 가진 오누이 흐느낌소리가 밤늦도록 간간히 들리였다…    
274    대하소설 졸혼 제3권 (38) 김장혁 댓글:  조회:2004  추천:0  2022-08-31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3권              48. 라이벌         나나(복화)는 거의 날마다 대학교 수업만 끝나면 병원 구급실에 찾아와 다이로교수의 병치료 뒤시중을 들었다.       본댁 모모에와 후처 춘희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들은 륜번으로 번을 들면서 밤낮 다이로교수 옆을 지켰다.       모모에는 기시하는 눈길로 춘희를 째려보면서 나직이 도도거렸다.       “네따위가 다 다이로교수의 안해느라고 으시대느냐? 세상이 진짜 우습게 돌아간다.” 춘희는 처음에는 못들은 척 했다. 그러나 모모에는 점점 자못 도전적으로 나왔다. 일본 대화민족 대부분  인내성이 아주 강했고 내심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아마 다이로교수가 사망하게 될 거 같자 모모에는 모든 인내를 걷어장지고 표독스러운 내심을 드러냈다. 아마 춘희와의 악연을 끝장내려고 들려는 잡도리 같아 보였다. “다이로교수 옷을 씻으면서 뭔가 꺼내지 않았어?” 춘희는 언젠가는 한판 붙어봐야 할게 아닌가고 이번에는 그저 침묵만 지키지 않았다. “뭘 말인가요?” 모모에는 춘희를 흘겨보면서 따지고 들었다. “전번에 네가 다이로교소님 옷을 씻자고 가지고 가지 않았어? ” 춘희는 물러설 수 없었다. “그랬지요. 그런데 아무 것도 없던데요.” “모르쇠를 댈 작정이냐?” 그때 나나가 들어섰다. 그녀는 구급실의 팽팽한 분위기를 대뜸 눈치채고  나가려고 했다. 본댁과 후처가 말다툼하는데 서 있을 멋이 없었다. “얘, 여기 오너라.” 모모에가 나나에게 눈을 흘기며 손짓했다. “예-“ 나나는 찍소리 못하고 모모에 앞에 가서 허리 굽히며 깎듯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사모님? 아직도 날 사모님으로 아는 애도 있구나.” 모모에는 나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우유빛얼굴이라던가, 청순한 미목이 꽤나 예쁜 처녀애 아닌가. (얼마든지 다이로교수 혼을 빼먹을만한 미녀구나.) 모모에는 질투의 불찌가 뚝뚝 떨어지는 눈길로 쏘아보며 물었다. “넌 누구냐? 왜 날마다 여기 드나들어?” 나나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인 채 목 안에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 나나라고 부르는데요. 다이로교수의 제자입니다.” “흥! 그럴듯한 미녀제자 많기도 많구나.” 모모에는 눈을 흘기며 나나와 춘희를 둘러보았다. 분명 나나를 빗대 춘희까지 껴들어 비웃는 것이였다. “다이로는 좋겠다. 이렇게 예쁜 미녀제자들이 많아서. 조선 녀학생들 엉덩이에 뭐 엿가락이라도 붙었어? 미친 령감쟁이.” “뭐, 뭐라고?” 이게 뭔가? 갑자기 다이로교수가 입을 열지 않았겠는가? “교수님!” 춘희가 다가앉으며 다이로의 손을 잡았다. “선생님! 어서 일어나십시오.” 나나도 소리치며 다가가 다이로 손을 잡았다. “더러운 손 치웟!” 모모에는 나나와 춘희 손을 탁 쳐버리며 고함쳤다. “싹 다 꺼졋! 두번 다시 다이로교수 언저리에 나타나기만 해봐라. 가만 놔두는가. 흥!” 춘희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무슨 자격으로 저를 보고 이래요?” “무슨 자격? 난 디이롭교수 본댁이야. 알려주지. 내야 말로 다이로교수의 합법적인 안해야.” 다이로교수는 점차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였다. “시끄러워. 작작 떠들어. 에헴.” 다이로교수는 어느결에 자기절로 산소호흡기를 떼내고 말참견까지 했다. “목이 말라.” “네. 곧 가져올게요.” 나나가 보온병의 따뜻한 물을 컵에 부어 들고 다가왔다. 모모에는 물컵을 빼앗으며 두덜거렸다. “우둔한 년아, 죽어가던 사람이 어떻게 컵채로 마신다고 그래?” 그녀는 다이로교수 머리를 좀 들어 자기 무릎에 올려놓고 물을 한술, 한술 떠 입에 부어넣었다. 춘희는 모모에가 확실히 다이로교수의 사랑을 받을만큼 아름답고 정겨운  녀자라고 머리를 끄덕였다. 모모에는 다이로교수 상반신을 품에 안고 어린애를 내려다보는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표정을 지었다. “다이로교수님, 당신 진짜 태양신을 만나러 가는줄 알았어요. 제가 얼마나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는지 아세요? 교수님 훌 떠나가면 전 어떻게 살아요?” 그녀는 넉두리를 하더니 머리 들고 춘희와 나나를 둘러보았다. “당신 얘들 앞에 명확히 말해주세요, 내가 누군가를.” 다이로는 맥없이 눈을 뜨고 모모에를 올려다보았다. 그젯날 그렇게 아름답던 귀부인이 이젠 귀밑머리 희슥희슥하고 눈귀에 잔주름이 얼기설기 간 로파로 되지 않았겠는가. “당, 당신, 내 사, 사랑하던 본, 본댁이지.” 모모에는 그 말에 감동돼 다이로교수를 와락 끌어안고 대성통곡쳤다. “아유, 여보. 당신, 저도 사랑해요.” 다이로교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모모에는 춘희와 나나 앞에서 본댁의 “우세”를 과시하려는 상 싶었다. “제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한 건 당신도 알죠?” 다이로교수는 맥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당신한테 애 하나 낳아주지 못해 전 한평생 죄송해요. 당신 젊은 녀자 얻어서 아들딸을 보라고 제가 주동적으로 나서서 리혼을 제기했댔지요. 춘희가 들어선 걸 보고 내가 얼마나 마음이 쓰라렸는지 알았는가요?” 다이로교수는 춘희를 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모모에는 표독스런 눈길로 춘희를 흘겨보며 도도거렸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됐어요? 저 춘희 애는 낳지 않고 제 딸만 데려다 제 노릇만 하잖았어요?” 모모에의 넉두리와 원망은 끝이 없었다. “그래도 날 아직도 잊지 않아 다행이군요. 요년들이 당신 혼을 다 파먹었는가 했는데요.” 모모에는 다이로를 안고 한참 넉두리를 하더니 또 짐짓 물었다. “로실히 말해요. 얘들은 당신한텐 어떤 존재인가요?” 다이로교수는 아주 맥없는 눈길로 나나와 춘희를 둘러보았다. 나나와 춘희는 기대에 찬 눈길로 다이로교수 입을 들여다보았다. “몰, 몰라서 물어? 다 사, 사랑하는 제자들이지.” 다이로교수의 말은 아주 분명했다. 모모에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기대에 찬 눈길로 다이로를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그저 제자관계죠?” 그런데 다이로교수는 아주 흥분돼 도리머리를 젓기까지 했다. “아니야. 춘희 후, 후처. 나나 내 미, 미래야.” “뭐라고?” 모모에나 춘희나 다 눈이 휘둥그래 나나를 돌아보았다. 나나도 깜짝 놀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바깥으로 달아나기까지 했다. 모모에는 억이 막혀 다이로를 침대에 훌 내려놓고 물러났다. 다이로교수는 또다시 혼미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모모에는 한식경이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모모에는 눈을 감은 다이로를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분명 잠꼬대를 했어. 제 정신이면 그런 잡소리를 하겠어?” 다이로는 두 눈을 꼭 감고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그때 간호원이 나나와 함께 들어섰다. 간호원은 다이로교수 맥박도 짚어보고 눈시울을 번지고 동공도 들여다보더니  모모에와 춘희를 돌아보고 부탁했다. “너무 오래 떠들지 말아요. 환자는 조용히 푹 쉬여야 합니다.” “다이로교수 언제면 제정신을 차릴 수 있을가요?” “건강상태가 아주 빨리 회복되고 있습니다. 한주일 지나면 일어설 거 같습니다.” “네-“ 모모에는 아주 기뻐했다. “독약을 먹었는데 살아나다니오? 참 기적이군요.” 간호원은 다이로교수한테 산소호흡기를 다시 달아주면서 정색했다. “다이로교수는 근본 독약을 먹지 않았어요.” “네?” 그 말에 모두 놀랐다. “그럼 뭘 먹었는가요?” 모모에가 묻자 간호원의 대답은 귀를 의심케 했다. “수면제를 과다복용했을뿐입니다.” “네?” 모모에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다이로교수 왜 죽자고 하겠어요? 이렇게 훌륭한 미녀제자들을 수태 두고, 절대 죽을 수 없죠.” “허허허. 모두 연극을 잘 노는구만.” 갑자기 다이로교수가 산소호흡기를 떼내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에헴, 잘 잤구나. 이젠 깨날 때도 된 거 같구만. 그간 얼마나 연극을 잘 구경했는지 모르겠어.” 다이로교수는 이상한 눈길로 춘희를 쏘아보는 것이였다. “내 유서를 어쨌어?” “유서라니오?” “모르쇠를 댈 테냐? 내 웃옷호주머니에 넣었던 봉투를 어쨌어? 네가 그 옷 빨러 가져가지 않았어?” (어마나, 령감쟁이, 수면제를 먹고 죽은 척하면서 연극을 놀았구나. 다 알고 있으면서도 죽은체 하다니? 능구렁이령감태기!) 나나는 꿈인지 생신지 너무 놀라 두 손을 맞잡고 다이로교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실, 다이로교수는 수면제를 먹고 안락사를 하러 후지산 사망림에 간 척하면서 춘희와 나나를 떠보려고 들었던 것이다. 유서를 남겨서 자기 고통으로 얽힌 내심도 토로하고 죽은 자기를 둘러싸고 세 녀자가 어떻게 나오는가 구경하려고 들었다. 하여 그는 사망림에서 춘희와 문걸한테 업혀 나와 병원에 실려와서도 정신잃은 척하면서  라이벌로 돼 싸우는 세 녀자의 연극도 다 보았던 것이다. 그는 내심으로 결단을 내릴 때 됐다고 생각했다. 다이로교수는 침대에 훌훌 털고 일어나 바로앉으면서 정색했다. “나나와 할 말이 있으니깐. 다들 나가게.” “네? 나도?” “그래.” 모모에는 어이없다는듯이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녀는 나나를 손가락질하면서 도도거렸다. “쟤 뭐라고 남기는데 난 나가라는가요?” “그래. 싹 다 빨리 나가. 씨그럽다. 흥!” 춘희는 좋다고 훌 나가버렸다. 모모에는 손수건으로 눈물흘 훔치며 나가며 도도거렸다. “당신 너무해요. 저 계집애와 무슨 은밀한 얘기하려고 저까지 내쫓는가요? 흐흐흑, 흑, 흑.” “시끄럽다니깐! 어서 나가지 못해?!” 다이로교수는 퉁방울눈을 모모에한테 흘기까지 했다. 이그러진 입귀가 코수염에  올라가 찰싹 붙을 지경이였다. 춘희는 이제야 모든 걸 알 것 같았다. (다이로교수가 이제껏 자기를 그렇게 동정하고 아끼고 사랑한 것은 본댁을 아까운대로 밀어내고 자식을 보려는 일념뿐이였어. 그러나 내 피임약을 너무 오래동안 먹어 임신하지 못하게 되자 본댁처럼 날 밀어내고 나나를 새 후처로 들여앉히려는게 아니고 뭔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춘희는 허무한 나머지 일종 모욕감을 느꼈다. 이제껏 성학대와 성폭행을 이를 옥물고 참으며 쌓아온 닭알무지가 한꺼번에 와그르르 무너지는 감을 느꼈다. 아니, 허위에 찬 사랑산이 끝없는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감을 느꼈다. 춘희는 눈앞이 아찔해나며 캄캄해났다. 그녀는 벽을 짚고 간신히 한걸음한걸음 화장실로 들어갔다. 모모에는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오면서 시에미 역정에 개 배때기를 찼다. “봐라. 십여년 전에 넌 내 발등 밟았잖았니? 꼴 좋게 됐구나. 너도 이젠 내 꼴 됐잖았나? 이제 나나가 네 발등을 밟을 거야. 내 받은 고통 너도 받아봐라.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호호호.” 춘희는 화장실 변기에 열물을 왝왝 토하기까지 했다. 한참후에야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화장실에서 간신히 나왔다. 복도에서 금방 구급실에서 나오는 나나와 딱 마주쳤다. “얘, 복화야, 잠간 할 말이 있다.” “그래요? 이젠 촌스럽게 자꾸 복화라고 부르지 말고 나나라고 불러요. ” 다이로교수가 뭐라고 쑤근거렸는지 복화는 아주 당당한 기색이였다. 춘희는 나나를 데리고 병원 마당에 나갔다. 춘희는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 놓인 장의자에 가서 나나와 마주 앉았다. “얘, 우린 다 한 고향에서 온 조선족이야. 마끼하고는 또 중학교 때부터 동기 아니고 뭐냐?” 나나는 머리를 숙이고 눈길을 발끝에 떨어뜨렸다. “거야 그렇죠.” 춘희는 발가우리해진 나나 얼굴을 보며 나직이 말했다.  “우린 이국 타향에서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해.” “네. 거야 그렇죠.” “너네 오누이 부모도 없이 이국타향에서 살자고 아득바득하며 고생하는 걸 보고 나도 마음이 쓰리다. 너네 세집값을 얼마간이라도 대줄게.” “필요없어요. 제가 얼마든지 제절로 낼 수 있어요. 마음만은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나는 완곡하게 사양했다. “다이로교수 너하구 뭐라더니? 나하구 솔직히 말해라. 그래야 나도 널 도울 방책을 세우지.” 나나는 대수롭잖게 말했다. “래일부터 자기 아파트에 들어와 함께 살자고 합디다. 제발 제 근심하지도 마세요.” 춘희는 기다리던 것이 끝내 왔구나하면서도 저도 몰래 발끈 성을 냈다. “뭐라고? 그래 후처로라도 삼겠다더니?” 나나는 머리를 번쩍 들고 당당하게 말했다. “더 말씀드릴 순 없어요.” “난 널 딸처럼 생각해. 새파란 나이에 왜 그렇게 살려고 하니?” “남이야 어떻게 살든 마끼 엄마하구 무슨 상관인가요?” 춘희는 제 딸의 앞날을 생각해서라도 나나를 막아야 했다. “어쩜 새파란 나이에 그래?” “뭘 말인가요?” 춘희는 칼을 빼든바 하고는 피를 봐야 했다. “그게 뭐냐? 아무리 살기 바빠도 어찌 라체로 교타이모리 스시상에 다 오르니? 다이로교수한테 네 똥까지 다 팔아먹니? 네 엉덩이에 무슨 꿀이라도 묻었니? 부끄럽지도 않니?” 나나는 낯색이 푸르등등해나며 성을 냈다. “내가 어떻게 살든 마끼 엄마하구 무슨 상관인가요?” 춘희는 얼리고 닥치고 하려고 언성을 좀 낮추며 부드럽게 말했다. “글쎄, 너네 오누이 부모도 없이 이국 타향에서 의지가지 없이 사는 건 나도 불쌍하다. 널 생각해 말하는데. 자기 령혼을 다 팔면서 돈을 버는 건 아니잖니?” 나나는 코웃음쳤다. “내가 령혼을 다 팔았다구요? 쳇, 별 소릴 다. 그럼, 마끼 어머니는?” “내 어쨌단 말이냐?” “마끼 어머니는 다이로교수를 진짜 사랑해 함께 삽니까?” “그래. 난 다이로교수를 사랑한다.” “픽!” 나나는 또 코웃음쳤다. “다이로교수 재산을 탐낸 건 아니고?” “무슨 소리냐?” “사랑하면 고향에 돌아가 반년씩이나 돌아오지도 않았겠습니까? 그저 부부 허울을 쓰고 장차 다이로교수 유산이나 마끼한테 넘겨주려는게지.” “뭐라고?” 춘희는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어째, 심장 딱 찔렸죠?” 나나는 깨고소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비양거렸다. “그게 다 변상적인 성매매 아니고 뭡니까?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재산을 탐내 부부 시늉하는게.” “얘, 점점 못하는 소리 없구나.” “내 모르는가 하는가요? 다이로교수 나한테 춘희박사 별의별 흉을 다 했습니다. ㅋㅋ. 김박사 얼마나 허위적인가요?” “뭐라고? 다이로교수 뭐라고 했기에?” 나나는 쓴 입을 쩝쩝 다셨다. “입이 더러워질가봐 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밤에 침대에서 어쨌다는 거. ㅎㅎ.” 나나는 해쭉 웃어보이기까지 하며 기를 톡톡 채웠다. 춘희는 혹을 떼러 왔다가 혹을 붙힌 격. (얘를 너무 어리게 봤구나.) 나나는 점점 도고해 춘희한테 내놓고 반격의 대포를 쏘아댔다. “더 듣고 싶슴까? 마끼 엄마나 내나 뭐 다를게 있는가요? 다 잘 살아보려고 이러고 있잖은가요? 마끼 엄마는 변상적인 장기 성매매를 하고 난 색을 팔고. 그러나 난 몸까진 팔지 않았는데요. 그저 쫄딱 벗고 교타이모리 스시상이나 대변보는 변기에 올라가 색과 똥만 팔았지. 마끼 엄마처럼 울며 불면서 침대에서 갖은 릉욕을 참으면서 성학대나 성폭력은 당하진 않았는데요. 그게 재산을 탐내 안해 허울을 쓴 기생이지 뭔가요?” 찰싹! 춘희는 더는 참을래야 참을 수 없어 한대 찰싹 갈겼다. 나나는 벌떡 일어나며 얼얼해나는 얼굴을 매만지면서 춘희를 쏘아보았다. “왜 때려요? 말로 못 이기니 손을 대는가요? 이제 한대만 쳐봐라. 내 가만 놔두는가?” 춘희는 손을 쳐들었다가 내리웠다. 그녀는 나나를 손가락질하면서 호통쳤다. “이 개쌍년아! 우리 집에 발을 들여놓는가 봐라. 발만 들여놓는 날엔 종아리를 분질러 놓지 않는가.” 그러나 나나는 겁을 먹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춘희를 경고했다. “김박사, 당신도 본댁을 밀어내고 마님질 하지 않았는가요? 저도 선배님께서 잘 본받아야죠. 흐흐.” 나나는 기를 톡톡 채우면서 비양거렸다. “김박사, 좀 명지하게 노세요. 당장 쫓겨나게 된 신세에. 누굴 위협하는가요? 이제 내게 애걸복걸해도 모르겠는데.” “뭐라고?” “김박사는 이젠 늙었어요. 나하고 될 거 같아요? ㅉㅉㅉ. 어디 두고 보세요. 흥!” 나나는 “마끼면 몰라도.” 하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나나는 콧방귀까지 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씨엉씨엉 가버렸다. 춘희는 무릎을 꺾으며 풀썩 물앉았다…  
273    대하소설 졸혼 제3권 (37) 김장혁 댓글:  조회:1679  추천:0  2022-08-29
    대하소설                졸혼                             제3권                                    김장혁                           47. 유서       다이로교수는 산소호흡기를 단 채 구급실 침대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 옆 쪽걸상에는 춘희가 옹송그리고 앉아 보살피고 있었다.      비운의 후지산 사망림에서 춘희가 다이로교수의 맥박을 보니 미약하게나마 뛰고 있었다.     “빨리 구급실에 실어갑시다.”       그때 운전수가 먼저 다이로교수를 업고 사망림에서 령길쪽으로 내뛰였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운전수는 허망 넘어갔다. 너무 조급하게 내뛰다가 그만 해골을 밟고 넘어갔던 것이다. 운전수는 발목을 접질러 더는 다이로 교수를 업을 수 없었다. “내 업을게.” 문걸은 배낭을 벗어 춘희한테 주고 다이로교수를 둘춰 업었다. “리선생님, 심장 좋잖은데요. 되겠는가요.” “괜찮소. 죽는 사람을 어서 구해야지.” “감사해요.” 문걸은 다이로교수를 둘춰 업고 헐금씨금 사망림에서 내달렸다. 그런데 여기저기 미처 거둬가지 못한 해골들이 널려있어 등곬에 소름이 쭉 끼치게 했다. 문걸은 중간 쯤까지 다이로교수를 업고 나오다가 그만 쿵덩 쓰러졌다. “리선생님, 괜찮아요?” 문걸은 다시 일어나 다이로교수를 둘춰 업었다. 그러나 몇발자욱도 못가 비틀거리다가 물앉고 말았다. “제가 업을게요.” 춘희는 다이로교수를 빼앗다싶이 업고 안간힘을 다해 일어났다. 그녀는 한발자욱, 한발자욱 힘겹게 다이로교수를 업고 나갔다. 숨을 돌린 문걸은 보다못해 소리쳤다. “내려놓소. 내 업을게.” 문걸이 다시 다이로교수를 업고 비틀거리며 령길로 나갔다. 뒤이어 그들은 다이로교수를 도요다찌프에 싣고  도꾜 모 병원 구급실로 곧추 달려갔다… 구급실에서 춘희와 의료일군들은 다이로교수의 입과 항문에 고무호스를 꽂아넣고  의기로 그의 위와 밸에서 독물을 빨아내고 맨물로 몇번이고 희석해냈다. 다이로교수의 심장은 미약하게나마 뛰고 있었다. 생사선에서 헤매던 다이로교수는 저승사자 문턱에까지 갔다가 간신히 돌아왔다. 시간이 꽤나 흘렀는데도 다이로교수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다. 춘희는 쿨쿨 자는 다이로교수를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옆에 사람이 없는지라 그녀는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야마구찌선생님, 죄송해요. 선생님을 잘 보살펴드리지 못해 미안해요. 선생님은 저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어요? 그때 저는 금방 리혼하고 애까지 달고 일본에 류학왔지요. 알바하면서 눈을 집어뜯으며 공부하는 저에게 선생님은 7년 동안이나 학비를 대주었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선생님은 우리 모녀가 불쌍하다고 우리 생활비를 대주던데로부터 아예 본댁을 내보내고 우리 모녀를 집에 데려가 아버지마냥 아껴주고 사랑해주었지요. 제가 앓자 선생님은 저의 딸애를 집에 데려가 본댁에게 맡겨 보게 하고 저의 치료비를 대주고 뒤바라지까지 다 해주었지요. 나중에는 선생님 대학 소속병원에 입원시키고 무료치료수속까지 해주면서 정성을 다했지요. 선생님은 저의 박사도사이시자 저에게 무엇이 인간애인가를 가르치신 분이죠. 선생님은 저의 인생스승이기도 하지요. 선생님은 늘 저에게 사람이란 베푸는 인생을 사는게 제일 행복하다고 했지요. 선생님은 한평생 그렇게 사셨죠. 황선희 언니, 저 모녀, 그리고 지금은 복화 오누이에게 얼마나 많이 베풀었는가요? 그 은혜 태산과도 같아요.” 춘희는 다이로교수의 손을 잡고 흐느껴 울었다. “선생님, 어서 깨나십시오. 저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도 주지 않고 가시면 전 어떡해요? 저는 이렇게 비참하게 선생님을 보낼 순 없어요. 선생님은 저의 딸 마끼(허가은)를   친딸처럼 사랑하시고 일본 이름마저 지어주셨지요. 마끼도 아빠 은정을 잊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선생님의 은혜를 갚기는 고사하고 저는 쓸데없는 못된 궁리까지 했댔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저는 마음의 빚을 지고 살긴 힘들어요. 어쩜 좋아요?” 춘희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면서 끝없이 넉두리를 했다. 이상하게 다이로교수 몸이 조금 움직이는 것 같았다. “선생님, 물론 선생님이   밤마다 저를 가지고 장난질하면 좀 힘들긴 했지요. 심지어 성학대를 하기까지 했지만요. 저는 모든 걸 꾹 참으면서 응대하기란 정말 진절머리났지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에게 제대로 해드리지 못해 미안해요.” 춘희는 다이로교수의 손을 잡고 애원했다. “선생님 이 세상에 저를 홀로 두고 가지 마십시오. 저는 어떻게 홀로 살아요? 흐흑흑.” 춘희는 노크소리에 눈물을 훔치고 오쫄 일어나 문께로 돌아섰다. “들어오세요.” 뜻밖에 문걸이 찾아오지 않았겠는가. “어떠오?” 춘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해요.” 문걸은 눈물을 훔치는 춘희를 가긍하게 바라보았다. 순간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괜히 내 와서 혹시 다이로교수 짧은 생각을 한 건 아닌지?” “무슨 소립니까? 아닙니다. 절대 리선생님 때문이 아닙니다.” 춘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다이로교수는 나이 들면서 점점 이상하게 변했어요. 아마 제가 자기를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노여워서 징벌하려고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아끼고 사랑한 제자가 배신하는 것 같아 세상에 믿을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심리균형이 좀 파괴된 거 같습니다.” 그래도 문걸은 미안했다. “미안하오. 난 인차 돌아가야겠소.” 춘희는 문걸을 정정하게 마주 바라보며 말했다. “전날 사망림에서 리선생님이 제때에 업어내오지 않았더라면 저의 선생님은 세상을 달리 했을 겁니다. 리선생님, 다이로교수도 정신 차리면 고맙게 생각할 겁니다. 절대 달리 생각하지 마세요.” 간호원이 링겔을 바꾸러 들어왔다. 간호원은 문걸을 보고 부탁했다. “환자가 휴식하게 너무 오래 문안하지 말기를 부탁드려요. 미안해요.” 문걸은 일어를 알아듣는지라 춘희한테 문안을 거듭하고 구급실에서 나왔다. 그는 춘희와 작별하고 복도를 스적스적 걸으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춘희 불쌍해 못 보겠다. 다이로교수는 확실히 춘희에겐 둘도 없는 은인이지. 그러나 은인과 애인이 같을 수 있는가? 은정과 애정 등호일 수 있는가? 참.) 그는 너무나도 안타까워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뭘 보고 저런 늙은 령감을 계속 따르지? 혹시 다이로교수 유산을 보고 저래? 박사 출신이 고향 병원에서 주임의사질해도 한달에 수만원씩 벌면서 넉넉하게 살겠는데. 아님, 딸애 앞날을 보고 저럴가? 딸애를 만금을 넘겨줘도 그저 그래? 딸이라고 다 심청처럼 당신한테 효성할 거 같은가? 나를 봐라. 아들 딸을 키워도 늘그막까지 설거지 시켜먹으면서 부려먹지 않았는가? 딸의 인생 따로고 네 인생 따로야.) 문걸은 자기가 아들딸 집에 가서 겪은 고통을 생각하자 절로 도리머리질났다. 그는 친히 겪은 인생경험교훈에 따라 춘희 모순된 내심 가까이에 다가가며 귀띔하고  있었다. 춘희는 확실이 내심이 복잡하게 모순돼 갈래판을 잡기 어려워 했다. 오래동안 모순되는 심리갈등에 시달리면서도 시종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녀는 딸애 야마구찌 마끼 앞날을 생각하면 억지로 다이로교수한테 붙어 살아야 했다. 다이로교수는 물론 엄청 큰 동정과 사랑을 몰부은 은인이였다. 하지만 날따라 변태적으로 변해가면서 거의 날마다 밤에 별의별 섹스를 다하며 장난질쳤다. 그게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무참히 성학대를 해댔다. 진짜 춘희 인격마저 무시당하는 “강간” 같은 성학대도 서슴치 않았다. (내가 무슨 성노리갠가? 짐승 같은 다이로 정욕을 받아내는 도구인가?) 춘희는 이젠 다이로 변태적인 밤놀음에 신물이 났다. 밤이 다가오면 등곬에 소름이 오싹 끼칠 지경이였다. 그래서 그녀는 활 뿌리치고 고향에 돌아가 의사질하며 피신해 살았다. 그녀는 우연히 만난 문걸한테 직방 자기 처지를 말하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일본 남편 다이로교수와 자기 지금 처한 처지를 보라고 일부러 문걸을 일본관광하자고 해 함께 일본에 날아왔던 것이다. 춘희는 문걸이 이번에 일본에 와서 모든 것을 짐작했으리라고 여겼다. 그녀는 마음 속으로 문걸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은은히 느꼈다. 어떤 때엔 딸애고 뭐고 다 뿌리치고 문걸과 함께 고향에 돌아가 참사랑을 즐기면서 깨알이 쏟아지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또 아직 대학공부도 채하지 못한 딸애를 버리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진짜 마음의 갈등을 정리할래야 정리할 수 없었다. 이런 때 다이로교수가 글쎄 극단적인 선택을 할줄이야. 그녀의 량심은 다이로교수를 홀대하지 못하게 했고 량심천평으로 마음갈등을 정리하도록 서서히 선회하고 있었다. 춘희는 다이로교수 벗어놓은 어지러운 옷을 보자 빨아주려고 와락와락 걷어 가방에 넣었다. 그런데 다이로교수 양복을 들고 호주머니를 들추다가 뭔가 만지우는 것이 있었다. 봉투 하나가 나오지 않았겠는가. 춘희는 봉투에서 종이를 뽑아냈다. 펴보니 뭔가 깨알처럼 씌여 있지 않겠는가. “뭐야? 유서?!” 그녀는 하마트면 고함칠 번했다. 그 유서를 내리 읽으면 읽을수록 너무나도 경악할 지경이였다.                               유서 나는 이젠 이 세상에서 살 멋이 없다. 후지산 사망림에 와서 이 세상을 떠나 후지산을 타고 천국에 날아올라가 태양신을 뵈러 간다. 어째 살 멋이 없는가고? 남들은 한창 잘 나가는 내가 왜 바보짓을 하는가고 할 것이리라. 유명한 생물학자, 교수, 박사생 도사 아닌가? 사회에서 지위와 명예가 없는가? 돈이 없는가? 재산이 없는가? 남들은 한뉘 모지럼 써도 별장 같은 내 아파트 같은 데서 살지 못할 거야. 그러나 사람이 사는게 지위와 명예만 가지고 살 수 있는가? 사랑이 없이, 아무런 새 자극도 없이 그래 황금을 씹어먹으면서 식충처럼 살 수 있겠는가?        자유가 없고 새로운 자극도 없으면 살 멋이 없다. 죽기보다 못해.  나이를 먹어도 성생활에 만족받지 못하면 살 멋이 없다. 난 본댁과 30여년 동안 아마 몇 드람통은 싸 넣었을 거야. 허나 자식 하나도 남기지 못했다.       어떻게 자식 하나라도 볼까고 본댁 모모에와 리혼했다. 그것도 모모에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내놓은 제의에 의해 결행된 허위적인 행위다. 물론 모모에한텐 참  죄송하다. 처가집에는 배은망덕한 죄인으로 됐다. 처가집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대주지 않았더라면 농가 출신인 내가 알바를 해서 대학공부를 제대로 했겠는가? 생물학 박사까지 됐겠는가?  장인은 내 생물학박사생 도사였지. 래세에는 꼭 모모에와 장인어른께 지은 죄 말끔히 씻고 한평생 은혜 갚으면서 살 거야.      난 자식을 보려고 젊고 예쁜 녀제자 춘희를 후처로 맞이했어. 황선희도 어떨까 했는데 선희는 미국 생물연구소에까지 견학 보내줬건만 날 뿌리치고 고향에 돌아갔어. 어느 일본 녀자가 춘희처럼 늙은이한테 재가하려고 하겠어? 딸애를 가지고 생활고를 겪는 대륙의 춘희만이 재가할 수 있었지. 나는 춘희와 딸애를 동정하던데로부터 아끼고 사랑해주고 아낌없이 도와주면서 끝내 우리 아파트에 데려왔지. 그러나 춘희는 내 유일한 꿈인 애를 낳아주지 않았어. 콘돔을 끼고 살자면서 방패를 내들다 못해 나중엔 피임약을 너무 과하게 먹어서 임신 안됐어. 이젠 피임약을 십여년이나 먹었기에 춘희는 임신할래야 할 수 없게 됐어. 춘희는 점점 날 실망케 하고 있어. 잠자리에서도 마지 못해 그저 기계적으로 들이대고 있어. 그때면 어떻게 하나 내 정욕을 만족주려고 두 다리를 모두며 안간힘을 다 주던 본댁이 떠오른다. 남편을 만족주려고 신음소리마저 노래처럼 곱게 내고 얼굴 표정도 곱게 하려고 애쓰는 그런 일본 녀인 그립다. 본댁이 마구 그리웁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춘희는 침대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헐떡거리다가도 실망해 도리머리질하며 맥없이 내리며 애나하던 다이로교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저도 몰래 자책감을 느꼈다. 똑, 똑,똑. 노크소리가 울렸다. 춘희는 보던 유서를 제꺽 핸드빽에 걷어넣었다. 문이 열리며 한 50대 돼보이는 일본 녀성이 들어섰다. “다이로!” 그녀는 침대에 다가가며 부르짖었다. “좀 소리 낮춰요.” 그러나 그녀는 힐끔 춘희를 흘겨볼뿐 “다이로! 다이로!” 하고 부르며 손을 잡고 통곡쳤다. 춘희는 그녀가 바로 다이로교수의 본댁 모모에리라고 짐작했다. 이전에 옷장 안을 정리하다가 다이로 교수의 양복 웃호주머니에서 다이로교슈와 그녀가 찍은 사진을 피뜩 본 적이 있었다. 도꾜대학 교수의 딸로 자란 그녀는 젊어서 꽤나 이뻤겠다는 것이 한눈에 안겨왔다. 그녀는 60대였지만 피뜩 보면 50대 중반 녀성으로 보일만큼 젊고 예쁜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미안해요.” 그녀는 눈물을 훔치면서 춘희한테 얼굴을 돌렸다. “저는 다이로교수 본댁인데요. 잠간 자리를 비워줄 수 없겠는지요?” 춘희는 허리 굽혀 인사하며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다이로교수한테 무슨 짓 할가 봐 저으기 근심됐다. 그때 간호원이 마끼와 복화를 데리고 들어섰다. “너넨 어째 왔니?” “아빠를 보러 왔어요?” 마끼는 “아빠! 눈을 떠요!” 하고 울며 불며 침대에 다가갔다. 복화도 눈물을 흘리며 다이로교수한테 다가갔다. “센세이, 저가 왔어요. 깨나세요. 네? 다이로선생님.” 복화는 다이로교수의 머리 쪽에 다가가며 손을 내밀었다. “피햇!” 본댁은 복화 손을 탁 쳐버렸다. “어데다 더러운 손을 대?!” 민족기시 눈치가 확연히 보였다. 춘희는 보기 구차했다. “진희야, 여기 나오너라.” 그러나 마끼는 “아빠, 일어나세요. 흑흑.” 하며 다이로교수를 보고 엉엉 울었다. 춘희는 마끼와 복화를 내버려두고 씻을 옷들을 챙겨가지고 구급병실에서 나와버렸다. 그녀는 유서 생각이 떠오르자 부랴부랴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유서를 펼쳐들고 보는 그녀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눈시울마저 점점 파들파들 떨렸다.         이젠 믿을만한 녀자 하나도 없다. 내가 그렇게 지극정성을 다해 사랑한 춘희도 배신하고 고향에 돌아가 다른 남자를 따라가려고 한다. 춘희는 심지어 남친을 일본에까지 데리고 와서 관광을 시키고 있다.      나는 열정적으로 그 사람을 환대해주었다. 교타이모리 스시도 대접하고 500만엔이나 들여 가꾼 숫처녀 나나 영양가 높은 몸에서 배출한 대변도 대접했다. 그러나 문걸씨는 근본 입에도 대지 않았다.     물걸씨를 환대하면서 나는 그를 세밀히 관찰해보았다. 그는 개방세월에 보기 드문 철저한 금욕주의자였다. 그러나 그의 외까풀눈 눈빛에는 춘희에 대한 사랑이 찰랑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춘희를 처음부터 의심한게 아니였다. 그러나 문걸씨를 본 다음부터 춘희를 의심할만도 했다.        춘희는 속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더 읽어내려가기 힘들어 유서를 접어 쓰레기통에 훌 처넣고 나왔다. 그러나 뒤에 또 뭘 써놨는가 더 보고싶어지는 것을 어쩌겠는가. 그녀는 화장실에 되들어가 더러워진 유서를 주어들고 다시 대변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보기 싫은대로 다시 다이로교수의 유서를 펼쳐들었다.   문걸씨는 안해가 없는 모양이야. 그의 안해라는 아사꼬는 사람이 아니라 로봇미녀이다. 내가 오사까공항에 마중 나갔을 때 악수하면서 처음 이상한 감을 느꼈다. 그녀의 손이 아주 일반녀인의 손과는 아주 선뜩한 감이 들었다. 그 감각은 우리 집 연회석상에 왔을 때 악수하면서도 또 느꼈다. 누굴 속이려고? 문걸씨 안해라고 날 속인 점을 봐도 춘희는 나를 기만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나는 더는 속히우면서 살 멋이 없다. 난 이젠 춘희와 살아선 아들도 딸도 더 볼 수 없게 됐다. 춘희는 불임증에 걸렸다. 그렇다고 황선희나 나나로 대신할 수도 없잖은가? 나는 춘희와 살아서 내 자식을 보려고 사랑하는 본댁을 밀어냈는데. 또 애를 보려고 춘희를 밀어내고 나나를 들여앉혀야 하겠는가? 글쎄 나나 하들하들한 우유빛몸매는 탐나는 것만은 사실이다. 황선희는 이젠 갱년기에 들어섰는데 애를 낳을 수 있겠는가? 황선희 이전에 자기와 재혼하면 애 몇이라도 낳아줄 수 있다고 했지. 그때 그녀와 사는게 옳았는데. 참 후회막급이야. 이제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여기까지 읽고 춘희는 깜짝 놀랐다. “아니, 선희 언니 이런 일 있을줄은 진짜 몰랐는데. 언니는 좀 개방성적인 성격이여서 그저 다이로선생님과 은사라고 존경한다고만 여겼지. 이제껏 나한텐  속여왔구나.” 춘희는 몇번이고 은밀한 비밀이 적힌 그 대목을 몇번이고 읽어보고서야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을 믿게 되였다. 유서는 기막힐 지경이였다. 다이로교수는 죽기 전에 아마 한평생 숨겨뒀던 진실과 비밀을 몽땅 남기려고 한 것 같았다.   이제라도 좋긴 나나를 들여앉히는 거지. 어리지. 이쁘지. 애도 낳기 좋은 한창 나이지. 살자고 버둑질하는 그 애가 정말 가엽다. 그 녀자애는 나와 함께 살자고 하면 오누이 생존을 위해서라도 선뜻이 대답할 거야. 그러나 춘희한테 얼마나 미안한가? 마끼에게도 미안하구. 정신타격이 클게 아닌가? 이젠 진짜 살기 싫다.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봤고 먹고 싶은 것도 다 먹어보았다. 생물연구도 할만큼 다해보았다. 이젠 생물연구는 제자들에게 넘겨주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자식도 볼 수 없고 무슨 재미에 사는가? 이제 죽는 거 한가지 못해보았다. 죽는 재미만이 새로운 자극을 받을 거야. 이제 그 새 자극 어떤가 맛을 봐야지. 후지산 기슭에서 죽어 혼이나마 후지산을 타고 솟아올라가 태양신을 만나야지. ㅋㅋㅋ. 아차 한가지 잊었구나. 내 죽으면 유산을 가지고 모두 싸우지 말라. 유산을 다섯몫으로 나누라. 본댁 모모에가 나와 함께 30여년 살았잖은가. 5분의 2 를 모모에한테 주고 춘희 나하구 10여년 살았으니깐. 5분의 1주고, 내 동생 야마구찌 이찌로한테 5분의 1 주고 나머지 한몫은 양딸 마끼와 불쌍한 나나 오누이한테 절반씩 나누줘라.        나는 이제 약 먹고 안락사해 태양신 만나뵈러 간다.      이 어처구니 없는 세상 놈아, 안녕히!                                    야마구찌 다이로        유서에는 날자가 씌여져 있지 않았다.      춘희는 유서를 접어 핸드빽에 넣으며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선생님, 미안해요. 제가 잘 못했습니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화장실에서 살며시 나오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복도에서 복화와 딱 마주쳤다. 복화는 어색하게 가는 미소를 지으면서 스쳐지나갔다. 춘희는 복화를 다른 안목으로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면서 목송하였다. 그녀는 이제껏 복화 오누이를 불쌍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유서를 본 다음부터는 어쩐지 나어린 라이벌로 보이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구급실에 들어가 다이로교수 손을 잡고 우는 본댁을 보고 되돌아나왔다. 어쩐지 늙은 본댁도 무서운 라이벌로 보였다.     (유서에 황선희 언니 유산 몫이 없잖은가. 다행이야. 우, 미칠 거 같아.)     아, 이제 숱한 라이벌 속에서 춘희는 어떻게 해야 할가?
272    대하소설 졸혼 제3권 (36) 김장혁 댓글:  조회:1625  추천:2  2022-08-27
대하소설              졸혼                제3권                   김장혁      46. 모험 쇼        성호가 금무호텔 커피숍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끝내 나영이나 정호나 그림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별빛이 반짝이는 밤만 깊어갔다.       그때 초조한 정적을 깨뜨리며 핸드폰이 울렸다.       최혜영 국장한테서 온 전화였다.      “오빠, 나영이 핸드폰 지금 북경행 렬차를 타고 움직이고 있어요. 정호 핸드폰은 광주쪽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이미 렬차 승무경찰들한테 추적협조를 부탁했습니다.” 성호는 놀랐다. “그럼 나영과 정호가 고속렬차를 타고 북경과 광주로 나뉘여 도망친단 말이오? 실명제를 하는데 그런 바보 짓 할까?” “글쎄요. 이제 붙잡으면 알게 되겠죠. 교활한 정호가 이번에도 또 우리 시선을 따돌리자고 궤변을 부리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이제 출국하는가 공항 출입국검사소를    지킬 수 밖에 없군요.” 성호는 답답해났다. “최국장, 어째 당지 공안국에 협조수사를 단단히 청탁하지 못해? 경찰을 좀 더 풀어 온 시내를 철통같이 에워싸고 써캐 훑듯하면 정호과 나영이 숨을 곳 있겠니?” “오빠, 량해해요. 정호나 나영보다도 지금 엄청 중대한 살인, 강탈, 공개수배범도 수두룩한데 언제 5만원 밖에 해먹지 못한 나영 같은 부패분자를 붙잡자고 숱한 경찰을 동원할 수 있겠어요? 당지 경찰들도 지금 전력을 다해 정호와 나영을 추적하고 있소. 오빠는 이젠 공항 주변을 감시해주세요. 오래잖으면 황선희와 정호가 미국으로 출국할 시간 되니깐요.”       북경행 고속렬차가 밤을 헤가르며 북으로 달리고 있었다.      렬차 승무경찰들은 S시 공안국에서 위챗으로 보내온 정호와 나영이 공개수배령에 박힌 사진을 복사해 들고 렬차바곤마다 샅샅이 참빗질해나갔다. 한식경이나 마지막바곤까지 샅샅이 훑어보았지만 정호와 나영이 비슷한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유령 같은 의문의 나영이 핸드폰마저 꺼졌다.     사실, 군철은 담대하게 모험적인 쇼를 획책하고 연출해나가고 있었다.     그는 애리싸 오빠 마이클을 보고 공안국에 로출된 나영의 핸드폰을 가지고 렬차 타고 북경으로 떠나가라고 시켰던 것이다. 마이클은 정호가 시킨대로 북경행 고속렬차에 올라 일여덟 정가정을 지나간 후 잠간 나영의 핸드폰을 켜고 정호와 통화한 위챗에 정호가 써준 문자를 복제해 날렸다.   최국장, 난 당신과 헤여질래요. 이젠 더 찾지 말아요.   마이클은 메시지를 보내고는 인차 핸드폰을 꺼버렸다. 렬차 승무경찰도 용빼는 수 없었다. 북경역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리 렬차바곤마다 내리훑고 올리훑어 봐도 나영이나 정호 비슷한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교활한 마이클은 북경역에서 내려 택시에 앉아 시내로 들어가면서 정호 시킨대로 또 나영의 핸드폰을 켰다. 그러나 위챗 메시지도 날리지 않고 누구와 통화하지도 않았다. 고의로 나영의 핸드폰 위치를 로출시켜 수사일군들의 시선을 북경에로 따돌리려는 수작이였다. 한참 후 수사일군들이 낚시에 걸렸겠다 싶을 때 교활한 마이클은 핸드폰을 꺼버렸다. 그의 종적을 찾을 길이 없게 됐다. 한편 군철은 이러나 저러나 정호가 친아버지이란 걸 안 후부터 별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간 후부터 아버지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더욱 느끼게 되였다. 더구나 리혼한 후 아들애 둘을 고생스레 키우면서부터 점점 아버지와 아들 관계란 무엇인가를 자꾸 생각하게 되였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칡넝쿨처럼 얼기설기 뒤엉킨 관계, 뗄래야 뗄 수 없는 혈연관계라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안겨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버지란 존재 얼마나 귀중한 존재, 산 같은  존재라는 것을 가슴 아프게 느꼈다. 군철은 리화를 떠볼 겸 또 한가지 일을 부탁했다. 하여 리화는 애를 봐서라도 복혼하려고 군철이 시킨대로 꼬리를 밟힌 정호 핸드폰을 휴대하고 광주행 고속렬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서너역 지나간 후 렬차 화장실에 들어가 정호 핸드폰을 켜고 메시지 하나 보냈다.   나영이, 이젠 안녕히! 다신 찾지 말라. 빠이, 빠이!   리화는 렬차가 다음 역에 이르자 핸드폰을 켠 채 화장실 창턱에 올려 놓고 화장실에서 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렬차에서 내려버렸다. 렬차가 떠나자 화장실에 다른 남성손님이 들어갔다. 그는 창턱에 놓인 번쩍번쩍 빛나는 핸드폰을 보자 제꺽 핸드폰을 꺼버린 후 호주머니에 주어넣었다. 그는 광주 역에서 내리자 그 핸드폰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쳐보았다. 고급핸드폰 모든 기능이 아주 정상적이 아니겠는가. 그는 새 핸드폰을 주었다고 입이 함박만해졌다. 최혜영 국장은 제7과 감시실에서 보내온 보고를 들었다. “광주행 고속렬차에서 정호 핸드폰으로 위챗메시지를 전송. 지금 이 핸드폰은 광주 시내 사처로 움직이며 숱한 전화를 치고 있음.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혜영 국장은 코웃음쳤다. “이건 정호와 나영이 친 연막탄일 수도 있어. 전번에도 정호는 허병칠한테 핸드폰을 줘 로씨야로 도망치는 가상을 꾸며 우리 시선을 따돌리지 않았던가. 교활한 놈, 이번에도 그 간사한 계책이 통할 거 같은가? 흥.” 최혜영 국장은 코웃음치며 여기저기 수사지시를 내렸다. 며칠 후 정호와 황선히 미국 출국 시간이 됐다. 그때 마이클은 또다시 사처로 이동하면서 시간마다 나영의 핸드폰을 한 5분씩 켰다 죽였다 했다. 수사일군들의 시선을 공항 아닌 북경으로 분산시키려고 들었다. 한편 S시 공항, 수사일군들과 정호는 공항에 커다란 법망을 치고 황선희와 정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성호는 국제항선 입구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도 피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영이 진짜 정호와 혜여져 북경 쪽으로 도망친 건가? 정호는 오늘 나영이 아니라 황선희와 함께 미국으로 갈 예정이 아닌가?) 성호는 인차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그럴 수 없어. 바보 아닌 이상 어찌 실명이 박힌 려권을 가지고 황선희와 함께  미국행 비행기를 타자고 공항에 오겠는가?) 미국행 비행기 검표시간이 다가왔다. 성호와 수사일군들은 더욱 긴장한 눈길로 손님들을 하나, 하나 참빗질했다. 공항의 커다란 전자벽시계는 긴장하게 1분, 2분… 1초, 2초… 흘러지나갔다. 미국 뉴욕행 비행기 리륙을 반시간 앞뒀을 때였다. 공항 아나운서가 중, 영 두가지 언어로 안내방송을 하기 시작하였다. “손님 여러분, 미국 뉴욕행 비행기 등기검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할 손님들은 26호 등기처로 가서 탑승하시길 바랍니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국제선 입구에 진짜 황선희 박사 같아보이는 녀성이 사위를 둘러보면서 나타났다. 성호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다시끼더니 자리에서 우쭐 일어났다. 수사일군들도 성호가 보낸 암시를 받고 황선희 주위에 둘러섰다. 그들은 이제 정호가 나타나기를 기다릴뿐. 이윽고 정호가 진짜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겠는가. 성호는 코웃음쳤다. (네놈이 선글라스를 낀들 누굴 속여? 흥! 껍질을 벗겨놔도 내 눈은 못 속여.) 정호는 입구에 들어서 여기저기 사위를 둘러보았다. (에크, 저게 성호 아닌가! 사인정탐가, 저놈이 어떻게 귀신처럼 여기 나타났어?) 성호를 보자 그는 심장이 덜컥 물앉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인차 랭정성을 회복하며 트렁크를 끌고 천천히 황선희한테로 다가갔다. (미친 놈! 환장했어.) 성호는 정호한테 스적스적 다가갔다. 수사일군들도 황선희와 정호를 물샘틈없이 에워싸며 조여들었다. “정호, 자수해라. 넌 이미 포위됐어. 친구로서 충고한다. 자수해라.” 성호는 고함치며 정호한테 뛰여가다가 주춤 멈춰섰다. (어째 정호 같잖아.) 정호는 근본 성호 말을 못 들은 척하지 않겠는가. 정호가 찬찬히 뜯어보니 우멍눈이나 이마의 김이나 다 비슷한데. 키가 더 훤칠해보이고 젋어보였다.  “꼼짝 말엇!” 정호와 황선희는 와들짝 놀랐다. 숱한 수사일군들이 우르르 모여들어 정호와 황선희를 에워싸고 나포했다. “왜 이럽니까?” 수사일군들은 체포장을 내들었다. “부패분자 최정호를 법에 의해 나포한다.” 성호도 다가가 말했다. "정호, 이제라도 자수해라. 넌 죽을 죄는 지지 않았잖아?" “하하하.” 최정호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배터지게 웃었다. “성호삼촌, 뭐? 최정호? 똑똑히  보십시오, 내가 누군가.” 성호는 깜짝 놀라며 뒤로 주춤 물러거시까지 했다. (아니, 저 놈, 저게. 정호 아들놈 아닌가.) 사실 군철은 정호 시킨대로 정호인 척 꾸미고 공항에 와서 황선희박사를 만나 수사일군들 반응을 떠보려 했던 것이다. 그는 자기 안위를 무릅쓰고 아버지를 엄호하려고 수사일군들의 법망을 시탐하는 연극을 놀며 모험하고 있었다. 그것으로 이제껏 하지 못한 아들의 의무를, 뒤늦게 알게 된 아버지에 대한 효성을 하려고 들었다. 수사일군들과 성호는 너무나도 허황하고 어처구니없어 서로 마주 보며 정호와 황선희를 번갈아보았다. 성호는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선글라스를 벗기고 아무리 뜯어봐도 확실히 정호가 아니였다. “아닙니다.” “누굽니까?” “정호 아들 군철입니다.” 성호가 죽 설명하자 수사일군들은 어언이 벙벙해졌다. “공항파출소로 가자!” 수사일군들은 군철과 황선희 잔등을 떠밀었다. 군철은 몸을 마구 탈며 생떼질을 썼다. “왜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마구 붙잡습니까?” 수사일군들은 정호와 황선희를 파출소에 련행해 심문하기 시작했다. 황선희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우쭐 자라에서 일어나 야단쳤다. “항의합니다. 왜 무죄한 사람 앞을 막습니까? 난, 검표하러 가야겠습니다.” “안돼, 당신 조사받아야 해.” “비행기 놓치면 책임지겠습니까?” “당신도 도주범 최정호 출국에 도우미역할을 한 혐의가 있어.” 황선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항의했다. “도우미? 허튼 소리. 무함하지 말라고.” 수사일군은 퉁방울눈을 부라렸다. “무함? 쳇, 최정호한테 미국행 비행기표 누가 떼주었어? 그래도 생떼질 쓰겠는가?” 이쪽에서 수사일군들이 군철과 황선희와 싱갱이질 할 때였다. 오사까행 비행기 출입국검사구에서 양복 위에 방호복차림의 한 사내가 배낭을 메고 검사일군 앞에 다가갔다.       그는 군철과 황선희가 성호와 수사일군들의 시선을 확 끌어가는 틈에 건강마를 검사맞히고 서서히 출입국검사소에 다가갔다. 검사일군은 신분증과 려권을 대조해 상세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김성수?” “네.” 정호는 가슴이 띠끔했다. 심장이 벌컥벌컥 높뛰며 터질 것만 같았다. “방호복 모자와 선글라스 벗으시우.” “네, 네. 깜빡이야.” 정호는 심장이 밖으로 튀여나올 것만 같았다. (가짜 려권 탄로났는가?) 그러나 마음 한쪽구석으로 든든했다. (비짜까지 맡은 려권인데 문제 생기겠는가? 가짜려권이란게 탄로났으면 진작 비자까지 떨어지기나 했겠어?) 그는 헤벌쭉 웃어보이며 선글라스를 제꺽 벗어쥐였다. 그런데 검사일군이 려권과 정호 얼굴을 자꾸 대조해보며 상을 찡그리지 않겠는가. "어째 려권에는 번대머린데  아니지?" "예. 번대머리 보기 구차해 가발을 썼습네다." 그는 가발을 슬쩍 벗어보이고는 인차 되썼다. "음.이마에 기미 있는데 왜 없습니까?"  "네. 보기 싫어 미용수술해버렸습니다." "음-" 정호가 거금을 들여 만든 가짜신분증과 려권은 기적적으로 신기하게도 전자의기검사도 무난히 통과됐다. 검사일군은 우멍눈을 유심히 쏘아보며 물었다. “김성수.” “네.” “무슨 사업하는가요?” “일본과 무역을 좀 합니다.” “무슨 품목?” “전자제품.” “혼자 가는가?” “네? 네, 네.” 정호는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이쪽을 주시하는 나영을 힐끔 되돌아보며 그녀가 꼬리로 될가 봐 잘라버렸다. 뒤에서 나영은 까만 포도쌍까풀눈을 흘겼다. 검사일군은 정호 려권에 도장을 꽝 찍었다. “감사힙니다.” 정호는 한숨을 후 내쉬며 려권을 받아쥐고 나영을 뒤돌아보고 헤쭉 웃어보이며 안전검사입구로 다가갔다. "잠간 서시오!" (뭐야?) 출입국검사소 검사일군이 일어서서 되오라고 다급히 손짓했다. 정호는 간이 콩알만해졌다. 그는 방호복 모자를 쓴 채  억지로 태연자약한체하면서 스적스적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검사일군은 그의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물었다. "당신 공안국 사람인가?" "아니," "왜 공안국 글자가 잔등에 박힌 방호복을 입었어? 사기치는게 아닌가?" 그제야 사연을 알고 정호는 희죽이 웃으며 방호복모자를 벗으며 말했다. "불시에 방호복이 없어서 공안국에서 일하는 친구 방호복을 빌어 입었습니다." "오- 그래?" 검사일군은 머리를 끄덕였다. "가 보십시오." 정호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서히 안전검사구로 유유히 떠나갔다. 뒤이어 나영도 생각 밖으로 아주 순조롭게 출입국검사구를 순조롭게 빠져나왔다. 검사일군은 더는 나영의 의료일군 글자가 잔등에 박힌 방호복을 문제로 삼지 않았다. (살았다. 살었어.) 나영은 속이 한줌만해 하다가 한숨을 호 내쉬며 정호를 따라갔다. 그런데 안전검사구에서 사달이 생겼다. 정호 배낭이 짐검사의기를 흘러나가다가 그만 빨간 불이 켜졌다. "손님, 여기 오세요." 검사일군이 손짓했다. 정호와 나영은 심장이 덜컥 멈춰 서는 것 같았다. 정호는 가까스로 진정하면서 굳은 표정을 펴려고 억지로 헤벌쭉 웃으며 다가갔다. "배낭에  무슨 금은보화와 딸라 이리 많습니까?  몽땅 꺼내시오." 정호는 미리 준비한 말을 주어댔다. "선물인데요. 일본 전자회사 노하라 회장한테 줄 금은액세서립니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많잖습니까? 규정상 이리 많이 휴대하지 못합니다. 갑시다." 정호는 끌려가면서도 나영을 보고 먼저 가라고 눈치하고나서 검사일군에게 마지막수를 썼다. "당신들 령도를 보기오." "령도를 봐도 그렇지. 내가 바로 여기 책임자오." 검사소 외딴 사무실에 들어가자 검사일군은 핸드폰을 꺼냈다. 정호는 황급히 검사일군의 팔소매를 붙잡고 사정했다. 그는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 걸 보고 배낭에서 주옥목걸이와 옥팔찌를 한쌍 꺼내주었다. "좀 푸른 등 켜주세요." "흥. 날 뭘로 보고 이래? 숱한 딸라랑 못 가지고 나가." (이 탐욕스런 놈, 딸라 욕심났구나.) 정호는 머리를 끄덕이며 딸라 두 묶음을 꺼내주었다. 검사일군은 제꺽 받아넣더니 씨무룩이 웃었다. "다신 이러지 마십시오." 그자는 머리 숙이면서 경례까지 했다. "잘 다녀가십시오," "감사하오." 정호는 그 자의 어깨를 툭툭 쳐주기까지 하고 나왔다. 그는 모든 검사를 마치고 일본행 비행기 등기처에까지 다가갔다. 한편 이쪽에서 황선희는 필경 무죄이기에 파출소에서 놓여나왔다. 그러나 군철은 계속 심문당했다.  군철은 수사일군들과 걸고 들면서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그는 아버지를 엄호하려고 고의로 거짓말을 수태 둘러대면서 시간을 끌었다. “내 무슨 죽을 죄를 졌습니까? 그저 미국에 한번 가고 싶어 그랬을뿐인데.” 수사일군은 사무상을 꽝 쳤다. “넌 정호 이름을 도용해 미국으로 출국하려고 했어. 이게 그래 엄중한 죄 아닌가? 미친 놈, 흥!” 군철은 적반하장 격으로 생떼질을 썼다. “내 뉴욕행 비행기 놓치면 책임지겠는가?” 이때 공항 파출소 문 밖에서 애리싸 금발머리가 피뜩 얼른거렸다. “군철씨, 괜찮아요. 다음번에 제가 비자를 수속해주면 함께 미국 가요.” “그래도 그렇지. 비행기 놓치게 생겼잖아?” “NO, NO!” 이때 창 밖에서는 미국행 비행기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미국행 비행기를 놓친 황선희는 공항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는 황급히 오사까행 비행기 검사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황선희는 부랴부랴 비행기에 올라 정호 옆에 다가갔다. 황선희를 본 정호는 환성을 질렀다. "황박사! 끝내 성공했구만."  황선희는 보름달 같은 얼굴에 만면춘풍이 흘렀다. "당신 끝내 벗어났구만. 자유롭게 하늘을 훨훨 날게 됐구만. 축하해. 사랑해. 변강쇠야." 정호는 량 옆에 황선희와 냐영을 나란히 껴안고 푸르른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나영은 얼굴이 홍당무우로 돼 환선희를 건너다보고 쌔무룩이 웃었다. 황선희도 머리를 끄덕였다.  정호는 비행기에 앉아 일본 오사까로 날아가면서도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의 모험에  감동됐다. 또 애인 황선희의 진심어린 도움도 속으로 못내 고마웠다. 그는 비행기 차창 밖으로 발 아래 뭉게뭉게 떠올라 뒤로 밀려가는 구름을 내다보면서 속으로 부르짖었다. (어허, 좋구 좋다. 끝내 떠나가는구나. 자유세상으로 떠나가게 됐구나. 자유 만세!) 나영은 정호 어깨에 머리를 스르르 가져다댔다.황선희도 정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황선희와 나영은 자유세상으로 향한 하늘 길에서 의기투합해 허물없이 정호 한 남자를 사랑하고 있음을 표출하며 날아갔다. 정호는 황선희 둥기배와 나영의 날씬한 허리를 감싸안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우린 끝내 자유세상으로 가게 됐어.” “네. 이젠 살 것만 같아요. 뒤도 돌아보기 싫어요. 그저 영원히 이렇게 최국장 품에…” 정호가 나영의 허리를 살짝 꼬집어주었다. “아니, 저 김사장 품에 안겨 영원히 잠들고 싶어요.” “곤하면 한잠 푹 자라.” “네. 피곤이 탁 풀려요.” 정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황선희는 정호 얼굴에 얼굴을 부비면서 중얼거렸다. "며칠이라도 변강쇠와 살면 원이 없겠어요." "그래? 그럼 실컷 살아보지. 뭐." 옆에 앉은 50대 녀성은 아마 처음에는 정호와 황선희가 부처간이고 나영을 딸로 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 셋이 점점 노는 꼬락서니를 흘끔흘끔 곁눈질하더니 눈이 떼꾼해 혀를 홀랑 내밀었다. 정호와 황선희, 나영은 옆사람이야 뭐라든 말든 셋이 찰떡처럼 찰싹 녹아붙어 꺼리낌없이 말을 주고 받았다. 이윽고 그들 셋은 긴장이 풀리며 피곤이 몰려왔다.  그들은 눈을 스르르 감고 푸르른 자유의 꿈을 꾸며 오사까공항 상공에 날아갈 때까지 조용히 잠들어버렸다.                  
271    대하소설 졸혼 제3권 (35) 김장혁 댓글:  조회:1436  추천:1  2022-08-26
     대하소설                            졸혼                                     제3권                                                    김장혁                 45. 아버지        S시 중심에 별을 찌르며 우뚝 솟은 금무호텔에 긴장이 뭉게뭉게 감돌아 피여오른다. 금무호텔을 감돌아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금잔디 은잔디 띠놀고 불빛도 오색령롱한 륜선이 붕- 경적을 울리며 긴장을 꿰뚫고 지나간다. 청춘의 활기로 넘치는 미녀들이 희희락락거리며 별무리와 키스하며 서정시를 쓰고  보름달은 얇은 구름 사이로 은침을 쏟아부으며 강물에서 륜선과 숨박꼭질하며 공포의 꼬리를  하느적거리며 물장구를 친다.       택시 한대가 금무호텔 앞에 달려와 멈춰섰다. 훤칠한 30대 초반 노랑머리 양아가씨와 양키가 금발남자애 하나 데리고 택시에서 내려 사위를 둘러보더니 호텔 안으로 유유히 들어갔다.      호텔 대청 커피숍에서 선글라스를 낀 한 50대 중반 사내가 커피를 후후 불어  마시며 분주히 오가는 손님들을 유심히 참빗질하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낀 그의 시선에 금발애 손을 잡은 양아가씨와 금발양키가 들어왔다. 그들 셋은 문어구에서 건강마를 검사맞히고나서 카운터에 다가가 뭐라고 주고받더니 엘레베터 쪽으로 총총히 걸어가는 것이였다. 사내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그들을 따라 엘레베터를 탔다. 양아가씨가 50을 꼭꼭 눌렀다. 사내는 인차 51을 꾹꾹 눌렀다. 엘레베터 번호를 다 누르는 순간 서로 눈길을 보냈다. 사내는  선글라스를 바로 잡아 끼는 척했다. 순간, 이상한 불빛이 번쩍였다. 양아가씨와 양키는 별로 개의치도 않고 50층에 이르자 선글라스를 낀 사내한테 히쭉 웃어보이면서 애 손을 잡고 엘레베터에서 나갔다. 선글라스를 낀 사내는 51층에서 내리자마자 쏜살같이 층계로 달려가 50층으로 뛰여내려갔다. 그는 50층 층계 구석에 고양이처럼 발볌발볌 다가가더니 얼굴을 반쯤 내밀고 복도를 내다보았다. 양키와 양아가씨는 애 손을 잡고 5027호를 지나더니 키로 30호 방 문을 절컥 열고 들어가지 않겠는가. 사내는 급히 외투에 달린 단추미형대화기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군철의 새 애인은 양아가씨 맞는데. 양키와 금발애는 뭔가? 방도 바꿨는가?” 선글라스에 메시지가 떴다. “금방 전송된 사진을 분석중. 좀 기다리세요. 최혜영.” 금방 엘레베터에서 사내는 선글라스를 바로잡아 끼는 척하면서 금발미녀와 양키를 촬영했던 것이다. 사내는 도적고양이처럼 27호 방에 다가가더니 키로 문을 열고 스리슬쩍 들어가 잠적했다. 그 사내가 누군가? 그가 바로 사인정탐가 리성호였다. 성호는 최헤영 국장한테 단추미형대화기로 알렸다. “금발아가씨 일행 3명 몽땅 30호 방에 들어갔소. 양. 정호는 안 보이오. 방을 바꿨는지 모르겠소.” “전송사진 분석결과 금발아가씨는 확실히 군철의 애인 애리싸군요. 오빤 이미 폭로됐어요. 30호 방은 당지 경찰에게 맡길게요. 호텔 대청에 돌아가 정호와 나영이 들어오는가 지키세요.” “알았소.” 사실, 성호는 허병칠을 나포해 수사일군들한테 넘긴 후 최국장과 토론하고 인차 비행기를 타고 S시로 날아왔던 것이다. 그들은 정호가 로씨야로 도망칠 것 같지 않다고 판단했다. 정호와 나영은 허병칠에게 준 손목시계핸드폰 이동위치와는 반대방향으로 도망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또 정호와 황선희 출국비자를 보면 나흘 지나 미국 행으로 일정표가 정해져 있었다. (아무리 둔해도 정호가 실명려권을 들고 출국하겠는가?) 최혜영과 문걸은 다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나 정호는 허허실실로 소문난 자여서 진짜 려권을 들고 미국으로 떠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1프로 그 가능성이라도  있어도 놓쳐서는 안되였다. 또 가능하게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있는 남방 S시로 꼭 올 것 같은 예감도 들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금방 나영이 꼬리를 밟히고 말았다. 사실 나영의 남편 철석은 색시가 애까지 버리고 온다 간단 말도 없이 불시에 실종되자 이튿날로 공안국에 신고했던 것이다. 수사일군들은 철석을 보고 나영한테서 전화 오기만 하면 신고하라고 했다. 금방 철석은 유치원에 애를 데리러 갔다가 아들애와 화상통화하는 나영을 본 후 인차  공안국에 찾아가 신고했다. 그는 수사일군들한테 나영의 위치라도 찾아달라고 애원했다. 수사일군들은 인차 나영의 친구 박지영을 찾아내 나영의 핸드폰번호를 장악한 후 철석을 보고 이제 나영한테서 전화 오면 계속 공안국에 즉시 알리라고 했다. 공안국 제7과에서는 즉시 전자위치추적기로 인차 나영이 S시에 있다는 것을 추적해냈다. 최혜영 국장과 박동묵 국장은 인차 나영은 가능하게 정호와 함께 S시에 있으며 금무호텔 5027호 방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하고 당지 공안국에 수사협조를 요구하였다. 당지 공안국 수사일군들은 정호의 아들이 출근하는 기업소 위치를 찾아냈을뿐만 아니라 군철의 모든 사회관계와 남녀관계, 출퇴근 경로 등까지 세심히 수사해냈다. 최혜영은 시름이 놓이지 않아  사사로이 성호를 보고 금무호텔을 감시하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사실 애리싸는 군철의 부탁을 받고 친오빠와 함께 오빠네 애를 데리고 금무호텔에 와서 수사일군들이 있는가를 두루 냄새를 맡으러 왔던 것이다. 애리싸는 30호 방에 들어가 인차 오빠를 시켜 군철한테 사전 암호대로 위챗으로 “N”자를 보내게 했다. ”N”자는 “NO”의 첫자모로서 군철과 애리싸는 사전에 “금무호텔에 와선 안된다.”는 암호로 정했던 것이다. 사실 정호나 군철은 모두 나영의 전화가 폭로됐는지는 확실하게는 몰랐다. 그러나 군철은 나영이 그 새 전화를 쓰지 않았다고 믿기도 어려웠다. 군철은 나영과 갈라져 가면서 뻐스에서 대포폰을 꺼내 위챗으로 나영이 알려준 정호 대포폰 번호에 문자와 사진을 보냈다.       쫙 벌린 입 사진, 버치 사진, ! “금무호텔-” “대못” 사진, “가지”  사진.   교활한 정호는 뭔지도 해리하기 전에 인차 대포폰으로 받은 그 문자와 사진을 복제해 그대로 나영의 대포폰에 보냈다. 그 시각 나영은 군철과 갈라져 택시를 잡아타고 정호를 만나러 공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부동한 장소에서 정호와 나영은 각기 그 이상한 메시지를 해리하려고 모지럼을 썼다. 그래도 정호가 해리 빨랐다. (금무호텔에 문제 생겼는가?) 정호는 입을 쫙 벌리고 감탄표를 련상했다. (“아” 아닌가? 건데 “버치”와 감탄표는 뭐지? 혹시 한데 붙여볼가. “아버치!”, 아- 그래. “아버지!”야. 그럼 군철이 보낸 거구나.) 정호는 놀랍고도 기뻤다. (대못과 가지는? 대못, 가지. 아니, “대못 가지”, “못 가지” 아닌가.) 그때 군철한테서 또 문자 왔다.   국제호텔. 택시 사진.   군철은 애리싸한테서 메시지 또 받고 금무호텔에 수사일군들이 늘어서 있다는 것을 알고 정호한테 문자메시를 재차 보냈다. 애리싸는 30호 방에서 수시로 정찰한대로 군철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한참 후 그녀는 오빠와 함께 조카를 데리고 유유히 금무호텔을 떠났다. 성호는 수사일군들과 함께 혹시나 해 계속  금무호텔에서 정호와 나영이 나타나기를 초조히 기다렸다. 밤은 깊어가는데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정호는 급해나 대포폰으로 나영의 대포폰에 문자를 보냈다.   금무호텔에 가지 말고 갈라진 곳으로 오라.   나영은 자기가 성림한테 전화한게 문제로 됐다는 것을 직감하고 혀를 홀랑 내밀었다. 그녀는 신변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택시를 바꿔 타고 정호와 갈라진 공원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교활한 정호는 공원도 안전한 곳이 아니라고 여기고 트렁크랑 끌고 녀화장실에 들어가 대변실에 들어앉아 기다렸다. (에이, 참, 진짜 무서운 저승사자들이야. 어떻게 그림자처럼 졸졸 묻어다닐 수 있어? 나영이 꼬리를 밟혔잖았을가? 만약 그렇다면 아쉬운대로 그년 꼬리도 가차없이 잘라버려야지.) 정호의 우멍눈에는 지독한 빛이 번쩍였다. 그때 대포폰이 울렸다. “오빠, 어딘가요?” 정호는 목소리를 죽여 알려주었다. “녀자화장실 마지막 변기에 앉아 있어.” 다행히 녀자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윽고 나영이 당황망조해 헐레벌떡 달려들어왔다. 똑똑똑. 그녀는 화장실 문을 노크하며 나직이 불렀다. “김사장님.” “으흠.” 문이 열렸다. 정호는 손으로 말하려는 나영의 입을 막으며 트렁크를 끌고 황급히 화장실에서 나갔다. 나영은 배낭을 메려고 손을 내밀었다. 정호는 나영의 손을 탁 쳐버렸다. (네년한테 금은보화배낭을 절대 맡길 수 없어. 흥.) 정호는 큰길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빨리 여길 떠나자!” “어디로?” 그때 택시가 달려왔다. 정호는 택시를 불러세웠다. 택시에 올라타자 정호는 나직이 한마디 내뱉었다. “국제호텔로.” “예.” 택시 운전수는 녀자복장을 입은 정호 목소리가 이상했는지 반사경으로 뒤좌석을 힐끔 곁눈질했다. 정호는 눈치채고 제꺽 선글라스를 끼였다. 어느덧 택시는 복잡한 시내를 쏜살같이 꿰질러 국제호텔 앞에 이르러 멈추려고 스피드를 죽이고 있었다. “잠간! 한고패 돕시다.” “네?” 정호는 언성을 높였다. “사람 찾자고 그래. 참 무더운데.” “예. 알았습니다.” 택시는 국제호텔 앞에 천천히 다가갔다. 대문 앞에30대 초반 녀자가 서서 초조히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어디라 없이 두리번거렸다. 대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화단에서 한 사내가 돌아서서 흡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까만 마스크를 껴서 잘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호텔 앞에 서 있는 그 녀성을 찬찬히 여겨보니 어쩐지 좀 눈에 익어보이지 않겠는가. (아니, 리나?) 정호는 군철의 본처 리나를 발견하고 어정쩡해졌다. (군철이 보냈을까? 아니야. 걔들은 리혼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혹시 군철이 보내지 않았을가 하는 미련도 남았다. (리나가 나타난 건 우연한 일이 아니야.) “가인아, 내려가 봐라. 미색원피스 입은 저 색시 군철의 본처 같아.” “지금 어쩐지 어데서 우릴 감시하는 거 같은데요.” “괜찬아. 아무리 귀신이라도 여기까지 따라왔겠니? 빨리 가 봐. 선을 달아야지.” (항상 날 앞에 내세우고 자기는 뒤로 빠지면서. 흥!) 나영은 속으로 게두덜거리면서 택시에서 내려 리나한테 발뼘발뼘 다가갔다. 그녀의 걸음마다 위험이 독사처럼 혀바닥을 날름거리면서 도사리고 있었다. 그때 저쪽에서 흡연하던 사내가 트렁크를 들고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섰다. 정호가 여겨보니 군철이 아니겠는가. 군철은 나영을 알아보고 택시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택시는 천천히 군철이 쪽으로 미끌어져나가다가 급정거했다. 군철은 택시 문을 열고 트렁크부터 들여놓고 택시에 올라탔다. “빨리 몰앗!” 군철이 고함치다싶이 했다. “가인을 데리고 가야 해!” “저 녀자는 탄로났슴다. 꼬리 밟히기 전에 잘라버리시오.” “아니야. 세웟!” 택시는 멈춰 섰다. “죽어도 저 녀자는 데리고 가야 해.” 나영은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택시에 올라타면서 게두두벌거렸다. “날 버리고 가려고?” “그럴리야. 운전수 오해야.” 군철은 택시 운전수를 보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공원으로 몰아.” “리나는 어쩌니?” “꼬리 길면 밟힙니다.” 택시는 다시 공원으로 달렸다. “얘, 공원은 위험해.” “공원에서 택시 바꿔 탑시다.” 군철의 주도면밀한 말에 정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한참 달리다가 군철은 웬 호텔 앞에서 택시를 멈춰세웠다. 운전수는 이상해 물었다. “아직 공원에 도착하지 못했는데.” “공원에 가지 않겠네. 내립시다.” 군철은 택시비를 결산하고 호텔 앞으로 다가가는 척했다. 택시가 멀리 사라진 후 군철은 또 다른 택시를 불러세웠다. “해변가로.” “네-“ 택시는 차들로 꽉 찬 큰길을 하나하나 지나갔다. 한식경이나 달려 해변가에 이르렀다. 정호는 택시가 떠나가자마자 군철을 와락 끌어안았다. “군철아, 미안하다. 련루시키지 말아야는데.” “괜찮아요. 이모부.” “아니, 이모부? 얘야. 난 네 친아빠야.” 정호는 가래짝 같은 두 손을 뻗쳐 군철의 얼굴을 매만졌다. 군철은 정호 손을 떼면서 말했다. “이러지 마십시오. 이모부.” 군철은 트렁크에서 방호복을 꺼내 주었다. “어서 입으십시오. 방역경찰을 누가 막겠습니까? 려권도 여기 있습니다. 이런  려권을 가지고 어디로 간다고 그럽니까?” 정호는 대수로워하지도 않았다. “근심하지 말라. 내게 묘책이 다 있으니깐. 건강마는 됐니?” 군철은 대포핸드폰 두개를 꺼내주었다. “이젠 이걸 쓰십시오.” “아니, 나영이 준 핸드폰도 대포폰인데.” “안돼요. 이미 아버지와 이분 핸드폰 다 공안국에 로출됐을 수도 있어요. 애리싸가 금무호텔에 가보니 선글라스를 낀 수상한 자가 벌써 냄새를 맡았는지 뒤쫓더랍니다. 내 준 대포폰이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 “음. 주밀하군.” 정호와 나영은 군철이 준 대포폰을 받아넣었다. 군철은 정호와 나영을 둘러보며 “대포폰에 건강마앱을 장치해놓았습니다. 래일 쯤 핵산검사를 꼭 하십시오.” 하고 당부했다. 나영도 허리 굽히며 인사했다. “감사해요. 지금 건강마 없인 아무데도 들어갈 수 없어요. 이젠 됐어요.” 군철은 횡설수설했다. “그래, 지금 엉덩이를 드러내놔선 괜찮아도 입을 드러내면 잡아가죠. ㅋㅋㅋ.” 나영은 청포도쌍까풀눈을 정호한테 곱게 흘겼다.  (저 놈새끼는 겉은 애비를 닮아도 속은 말수 적은 애비를 닮지 않았구나. 헛소리만 치는 거 봐라. 흥.)   군철은 뒤잔등에 공안국이란 글자가 박힌 방호복을 입는 정호와 나영을 보고 중얼거렸다. “참 답답합니다. 도대체 무슨 죄를 졌습니까? 이렇게 상가집 개처럼 쫓겨다니면서? 자수할게지...” “무슨 말버릇이냐? 아버질 보고. 흥!” “아버지? 이제야 와서 아버지질 하겠다고? 흥! 손자들 보기도 미안하지 않습니까?” "손자?" (그래, 네놈 이젠 속으론 날 애비로 인정하는구나. 그럼 그렇겠지.) 정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하얀 방호복 모자를 쓰면서  우멍눈으로 나영을 힐끔 곁눈질했다. “인사해라.” 그는 군철의 손을 잡아 나영의 앞에 세웠다. “나하구 생사고락을 하는 후어머니야.” “후어머니?” 군철은 어처구니없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삶은 소대가리 웃다가 꾸러미 터질 소릴! 흥!” 군철은 서너살 어려보이는 생소한 녀자를 어머니라고 부르라는 정호가 제정신인가고 여겨보았다. “좋다. 글쎄 불시에 입버릇을 고치긴 힘들겠지. 허나, 언젠가는 꼭  엄마라고 부르게 될 거야. 입버릇 꼭 고쳐라.” 군철은 두덜거렸다. “엄마한테 미안하지 않습니까? 구천에서 엄마 보면 뭐라겠습니까?” “엄마 구천에서 기뻐할 거야.” 군철은 어처구니없어 우멍눈으로 정호를 쏘아보았다. 정호의 우멍눈에는 이상한 유머가 번쩍였다. “생각해봐라. 엄마라구 내 홀애비로 살면 좋아하겠니? 구천에서도 대성통곡칠 거야.” 군철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글쎄 두분 지금 어디까지 갔는진 몰라도. 어울린다고 봅니까?” 나영이 끼여들었다. “어울리고 말고요. 우릴 근심하지도 말아요.” 군철은 정호와 나영을 둘러보며 물었다. “언제부터 아는 사입니까? 혹시 우리 엄마 생전부터 암암리에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량심 있습니까?” 정호와 나영은 머리를 숙이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군철은 정호를 질책했다. “아버진 엄마한테 영원히 죄인입니다. 엄마 날 임신해서부터 얼마나 고통 속에서 살았겠습니까? 내 커갈수록 문걸 아버지한테 진상이 드러날가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겠습니까? 세간의 눈이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예?” 군철은 정호 앞에 다가가 불찌 뚝뚝 떨어지는 눈길로 쏘아보며 질책을 거듭했다. “어째 내 생겼을 때 이모하구 훌 리혼하구 엄마하구 통쾌하게 결혼하지 않았습니까? 예? 엄마를 그래 그저 노리개로만 봤습니까? 네?” 정호는 간신히 머리를 들고 군철을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 “넌 그때 나하구 엄마 처지를 몰라 그래. 됐다, 됐어. 다 지나간 얘기야.” 정호는 군철의 두 팔을 붙잡고 화제를 돌리며 당부했다. “전번에 부탁한 일 마저 해달라. 련루될 수도 있고 위험한 모험이긴 해. 한번 좀 그럴듯하게 연극 놀아달라.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일 수도 있다.”       정호는 배낭을 열어제끼고 려권 하나를 꺼내 군철한테 주었다. "부탁하자." 군철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물었다. “실명 려권이군요. 출입경검사소에 맨 소경이 들어앉아 있는가 합니까?" "그래서 네가 시탐해보라는 거잖아." 군철은 려권을 핸드빽에 챙기며 물었다. "무슨 죽을 죄라도 졌습니까? 꼭 외국에 나가야만 됩니까? 공안국에 가서 자수하라는데.” “죽을 죄는 아니야. 그러나 자수하면 그날부터 자유를 박탈당해. 난 자유 없인 한시간도 못살아.” “자유를 좋아하고 있네. 경찰들한테 쫓겨다니는 초가집 개 신세에 무슨 자유!” 정호는 군철의 따귀라도 하나 얼얼하게 갈기고 싶었다. 그러나 용케 참고 대신 나영을 돌아보며 시물시물 웃었다. “그래. 개처럼 쫓기워도 우린 자유가 좋아.” 나영도 새물새물 웃어보였다. 정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뒷말을 이었다. “다  자손 만대 더 잘 살게 하려고 돈을 긁어모으다가 이렇게 됐다.  애나게 한뉘 번 걸 다 너네 이모한테 물려줬다. 후에 네가 지혜롭게 하나하나 찾아내야 해. 순정은 자식도 없어. 그러나 너무 조급하게 서둘러선 안돼. 너무 무례하게 대하지 말고 효성을 다해 잘 모셔라. 이모도 재산을 물려 줄 사람이 너 밖에 없잖니? 네 효성에 감동 먹으면 이모도 별 수 있니?” 군철은 속으로는 엉큼한 생각을 하면서도 속과는 달리 말했다. “그 더러운 재산 없어도 난 잘 살 수 있습니다. 이제 당장 부총경리로 올라가면 한해에 년금이 백만원도 넘습니다.” 정호는 또 한번 어깨 넘는 훤칠한 군철을 와락 끌어안았다. “아들아, 하나 밖에 없는 내 아들아, 네 같은 아들이 있어 정말 자랑스럽다.” 그러나 군철은 두 손으로 정호 가슴을 밀어버렸다. “어서 살 길이나 찾으십시오. 다신 날 찾지 마십시오.” 정호는 방호모자를 벗고 우멍눈에 눈물이 글썽해 머리를 끄덕였다. “미안해. 아버지 모자라서. 외국에만 날아가면 다신 시끄러움 끼치지 않을게. 애들을 키우면서 잘 살아라.” “근심 말아요.” “한가지 더 있다. 금방 리나 나왔던데. 도대체 복혼할 예산이냐?” “걱정마십시오. 리나는 애들 봐서 복혼하자고 합디다. 리나는 내 이전 일을 더 묻지 않겠답디다. 오늘 고험하느라고 이모부하구 련계달아달라고 내세웠댔습니다.” 정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어지간하면 송림의 에미를 받아들여라." "리화 말도 마십시오. 문걸 아버지는 리화라면 딱 질색입니다. 이전에 우리 집에 왔을 때 엄마하구 둘이 설거지까지 시켜먹으면서 어찌나 짜증나게 잔소리를 했는지. 아버지는 리화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문걸이는 문걸이구. 난 달라." 정호는 뭐가 피뜩 생각났는지 눈길이 곱지 않았다. "이제부터 문걸을 아버지라 말고 이모부라 해라. 네 아버진 여기 있잖니?" "촌수 개판이구만. 아버지 됐다. 이모부 됐다. 이모부 됐다가 아버지 되구. 세상 웃긴다," "그게 운명의 장난이야. 이제부터 넌 전주 리씨 아니구 충주 최씨야." "전주 리씨 왕가라던데. 이름도 없는 충주 최씨라?" "아니야. 우린 고려 말기 왕과 궁전을 지켜낸 유명한 장군의  후손이야." "참 대단하구만. 그래서 제 딸만한 후처도 하구. ㅋㅋ." 정호는 군철을 흘겨보면서도 제꺽 화제를 돌렸다.  “애리싸는 어쩌구?” “애리싸는 좋은 녀자죠. 그런데 동서방 문화가 너무 달라서 고려 중입니다. 미국 녀자들 자유와 개성해방 참 납득이 안되는게 많아요. 애리싸도 우리 인생 가치관과 풍속에 항상 도리머리질합니다. 계속 평행선을 달리죠. 언제 화학적으로 진정 하나로 결합되겠는지 모르겠습니다.  ” “누구하구 살든 넌 애비처럼 살지 말라. 가정을 중히 여기고 안해 되는 사람을 한 마음 한 뜻으로 아끼면서 살아라…” 나영은 정호 입에서도 그런 말 다 나오는가는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 내게 그런 말 할 자격이 있슴까?” “뭐? 금방 뭐랬니? ‘아버지’라 했어?” “이모부, 잘 가세요.” 정호는 떠나기 전에 군철을 와락 끌어안고 나직이 말했다. “얘, 이래 보면 마지막일지도 어떻게 아니? 아버지라고 한번만 불러달라." 나영은 물기어린  까만 포도쌍까풀눈을 동그랗게 뜨고 군철이를 바라보았다. 군철은 마지못해 입을 정호 귀가에 가져다 댔다. “아버지, 아버지 아니면 제가 오겠습니까? 아버지를 구하려고 아들이 온게 아닙니까? ” 정호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군철의 잔등을 두드리며 나직이 당부했다. “그래. 아들아, 넌 꼭 법을 지키면서 가정이 화목하게 살아라. 애비를 봐라. 한뉘 아글타글 해도 법을 어겼기에 청춘은 락화류수요, 인생은 허황한 일장춘몽이구나. 네 말처럼 날마다 초상집 개처럼 쫓겨다니잖니? 법을 지키면서 사는게 젤 자유롭고 행복하다. 알만하니?”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아버지, 꼭 명심하겠습니다.” 정호는 “아버지”란 말 한마디만 듣고서도 입이 함박만해 키 넘는 군철을 대견스레 쳐다보았다. “송림하구 길림이, 손자들을 못 봐서 한이구나.” “후에 볼 날이 꼭 있겠지요.” 군철은 정호 손을 꽉 잡고 흔들고 나서 나영한테 얼굴을 돌렸다. “혹시 다른 핸드폰 있는가요?” “네- 있어요.” “그 핸드폰도 이리 주십시오.” “왜?” “그 핸드폰은 이미 공안국에 로출됐습니다. 이제껏 이걸 썼는가요?” “아니,” “다행이군.” 나영은 핸드빽에서 핸드폰을 꺼내 건넸다. “이걸로 내 수사일군들을 다른 데로 따돌려야겠습니다.” 군철은 나영의 핸드폰을 핸드빽에 챙겨넣으면서 나영을 기대에 찬  눈길로 마주 바라보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아버지 만년을 잘 부탁드립니다.” 정호가 끼여들어 한마디 했다. “무거운 부탁하겠으면 후어머니라고 불러라.” “녀동생 지예만한 녀자를 어머니라고 불러라고? 아버지, 너무 합니다.” 군철은 나무나도 어이없어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럼 떠나갑니다.” "야, 임마, 후어머니라고 부르기 그러면 계모라고 불러라." "후엄마나 계모나 뭐 다릅니까? 진짜 촌수 개판이야." 군철은 허리를 굽히며 나영의 손만 잡아주고 성큼성큼 떠나갔다. 나영은 군철을 나무리지 않았다. (흥. 누가 제 새끼 두고 네 후에미 되자니? 남은 제 새끼 보고파 죽을 거 같은데.) 정호는 떠나가는 군철의 너부죽한 뒤잔등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우멍눈으로부터 주르르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순간, 나영은 성림이 생각나 그리움의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이래서 손바닥이 다르고 손등이 다르다는 건가?
270    대하소설 졸혼 제3권 (34) 김장혁 댓글:  조회:1225  추천:0  2022-08-21
대하소설    졸혼     제3권     김장혁                    44.아들        교활한 정호는 허병칠한테 손목시계핸드폰을 줘보내 수사일군들의 시선을 따돌린 후 오토바이에 나영을 태워가지고 도주방향을 돌려 성내로 되돌아왔다. (등잔불 밑이 어둡다고 네놈들 발 밑에 돌아왔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어? 흥!) 그는 오토바이가 수사일군들의 표적이 됐다는 걸 알고 수림 속 후미진 곳에   버리고 나무가지를 꺾어다가 잘 덮어놓았다. 정호는 나영을 데리고 고속도로 옆에 서 있다가 달려 오는 택시를 불러 세워 타고 순식간에 B시로 달려갔다. 정호는 나영을 데리고 한 미용리발실로 스적스적 다가갔다. 이 시내는 정호가 늘상 출장왔던 곳이여서 손금 보듯 했다. 그러나 나영은 겁나 사처를 힐끔거렸다. “겁내지 마. 괜히 경찰들 눈에 박히겠다.” “미용실에 들어가 뭘 해요?” “분장술을 써야 수사망을 피하지.” “네-“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정호 팔을 끼고 붙어서서 걸으며 한숨을 호- 내쉬였다. 미용실에 들어가 정호는 미용사를 불러 까만 사마귀 기미를 수술해 빼버렸다. 제일 큰 표적으로 될 수 있는 기미를 빼버리니 한숨이 절로 났다. 그는 리발사를 불러 한줌도 안되는 머리카락을 짧게 깎아버리고 꺼슬꺼슬한 콧수염과 부시시한 팔다리 털도 말끔히 밀어버렸다. 나영도 긴 머리카락을 썩뚝썩뚝 잘라버렸다. 아까운 가지색 머리카락이 발 밑에 떨어져 널렸다.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러지?) 그녀는 거울로 애지중지하던 머리카락이 한줌 한줌씩 잘려나가는 것을 들여다보며 아쉬운 한숨을 호- 호- 내쉬였다.        나영은 얼굴 피부미용과 전신 마사지 한 후 샤와실에 들어가 뜨거운 물에 샤와를 하였다. 순간 그간 추격당하면서 당한 피로가 스르르 풀렸다.       정호는 긴 가지색가발과 까만 짧은 가발을 하나씩 골라 사서 머리에 얹어보았다. 진짜 정호의 옛모습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나영도 긴 까만 가발을 하나 골라 썼다. 진짜 가지색머리 미녀로부터 검정머리미녀로 탈바꿈했다. 반나절이나 거의 돼 정호는 나영을 데리고 미용실에서 나왔다. 그는 구석진 골목에 들어가 배낭을 벗어 열어제꼈다. 인민페 몇 묶음을 꺼내 나영의 배낭에 걷어넣었다. “옷이랑 트렁크랑 근사한 걸로 갖추오. 내 몸에 맞는 녀자 옷도 사오. 바지는 청바지를 사오.” “네? 녀자로 분장하곤 공항에서 비행기 타지 못할 걸.” “잠시 녀자로 둔갑. ㅎㅎ.” 한참 후 나영은 녀자 옷 몇벌을 사 새 트렁크에 넣어 끌고 핸드빽을 팔에 걸고 나왔다. 진짜 미녀마님 같았다. “백화점에서 건강마를 보자고 해서 혼났어요.” “그래? 어떻게 들어갔어?” “불시에 건강마 어데서? 문지기를 구석에 데리고 가서 가만히 백원짜리 쥐여주고서야 겨우 혼입했죠.” “음. 건강마가 문제야.” “건강마 있기 전엔 그러루한 장소에 들어가지 말죠.” “안돼.” 정호는 주위를 두루 살피며 중얼거렸다. “시내에서 거지 행세할 생각 말라. 하루를 살아도 우린 고급호텔과 고급식당에 드나들면서 신사숙녀처럼 살아야 해.” “좀 좋아서. ㅎㅎㅎ.” 정호는 나영의 어깨를 다독여주고나서 원피스를 골라쥐였다가 그만 두었다. 다리에 난 부시시한 털은 말끔히 밀어도 털뿌리가 드러나 가릴 수 없었다.      그는 더운 대로 청바지에 녀자와이샤츠 하나 골라쥐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정호는 보기 어슬픈대로 걸음걸이부터 녀자처럼 비뚱거렸다. 나영은 코를 싸쥐고 웃었다. 그녀는 사위를 둘러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에이, 아무리 봐도 녀자 같잖아요.” “뭔 소리냐?” “그 팔 보세요. 부시시한 털. ㅋㅋ.” 정호는 거머스름한 팔을 내려다 보고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되겠어. 리발관에 가서 팔의 털을 밀어버릴가?” “아니, 그럴 필요없어요. 옷만 너무 눈에 띄우는 걸 입지 않으면 돼요. 남들이야 녀자인지 남자인지 알 턱이 뭔가요?” 정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윽고 나영은 화장실에 들어가 새 원피스를 갈아입고 도주할 때 입었던 때 묻은 청바지와 와이샤쯔를 벗어 화징실 쓰레기통에 훌 던졌다. 그녀는 화장실에서 나오자 정호의 팔을 끼고 자매처럼 나란히 걸었다. 어색하나마 신분을 속이기는 괜찮은 것 같았다. 가지색에 가리울락말락한 우멍눈에 메부리코… 정호는 딱 서양 녀성 같은 멋이 났다. 그들은 택시를 잡아타고 먼길을 떠났다. 택시는 건강마도 검사하지 않고 실명제도 하지 않기에 도망치기 젤 좋은 교통운송도구였다. 며칠 동안 그들은 련이어 택시를 십여번 갈아타고 몇개 성과 시를 꿰질러 끝내  S시에 이르렀다. “공항으로 가는가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나영이 물었다. 정호는 도리머리를 가로 저었다. “아니오.” “그럼 어디로 가는가요?” “먼저 내 아들 만나 도움을 받아야겠소.” 나영은 혼비백산했다. “아니, 무슨 소릴. 수사일군들이 당신 아들 핸드폰을 감시하겠는데.” “그만한 거야 나도 알지.” “그럼 무슨 수로 만난다고 그래요.” “다 궁리해놨소.” 정호는 공원 의자에 나영을 물앉혀놓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시내 서북쪽으로 해 자리잡은 공원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져 뜨거운 해볕을 막아주었다. 그늘진 수림에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정호는 자기들을 주시하는 사람이 없자 나직이 말했다. “이제부터 최국장이요, 뭐요 하지 마오. 우린 만족, 나는 사영기업인 김성수 사장. 려권에도 그렇게 돼 있으니깐.”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다가 청포도 쌍까풀눈으로 정호를 치켜보았다. “안돼요. 김씨는 조선족 성 아니고 뭔가요?” “모르는 소리. 만족에도 김씨 있소.” “네? 금시초문인데요.” 정호는 평소에는 말수가 적었는데 미녀들 앞에서는 말도 변설이였다. “아이신줴러 누르하치가 바로 김씨요.” 그는 큰 발견이나 한 것처럼 건가래를 떼며 말했다. “‘아이신줴러’는 바로 만족어로 ‘김씨’라는 말이라오. ‘줴러(觉勒:겨레)’는 한자어 어음을 따온 건데 고대조선어에선 ‘겨레’란 말이라오. ‘겨레”는 씨족(氏族)을 말한다오. 누르하치는 이름이고.  그러니깐. ‘아이신줴로 누르하치’란 이름은  ‘김씨 누르하치’ 즉 ‘김누르하치’란 말이라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진짜라니까. 이전에 나도 믿어지지 않았소. 어떤 학자가 북경도서관에까지 가서 중국 금조와 청조 력사책을 찾아보았단 말이오. 누르하치는 원래 중국 금태조 직계후손이라오.” “금조는 녀진족이 세운 나라 아닌가요?” “그렇지. 금조의 주체민족은 녀진족이지만. 금조 황가는 김씨라더군.” “최국장, 아니,” 나영은 제꺽 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사위를 살피고 나서 나직이 뒷말을 이었다. “김사장은 력사도 잘 아네요. 누르하치가 김씨 후손이라니요. 참.” “그럼 심심한데 력사 이야기 해줄가?” “그래요.” 나영은 정호의 팔을 안고 나란히 앉아 머리를 어깨에 대며 귀를 기울였다. 정호는 아녀자 앞에서 큰 걸 아는척하면서 일장연설을 해댔다.      "금태조는 흑룡강 동부 일대에서 녀진족의 우두머리로 돼 점차 세력을 확충해나가면서  동북의 녀진족부락들을 통일하고 금조를 세웠소. 그후 관내로 진군하는데 박차를 가해 중원을 다 점령했지. 금조를 어째 김씨라는 ‘금’자를 박아 금조라고 했겠소. 김씨가 세운 나라라는 걸 두드러지게 하자는게지. 금조가 망한 후 금조 황가 김씨네 후손 누르하치는 동북을 평정하고 녀진족후예들을 이끌고 후금조를 세웠고 후에 후금조를 청조로 고치고 녀진족을 통합해 만족으로 개칭했다오. 지금도 누루하치 직계후손들은 자기들은 김씨라는 걸 잊지 않고 있다오." "그럼 청나라 말대황제 부의도 김씨겠지요?" "그럼. 그도 아이신줴러(김씨) 황가 후손이니깐. 북경대학 한 아이신줴러(김씨) 만족녀교수도 아이신줴러는 김씨라고 분명히 밝힌바 있소. 그 녀교수 집에 있는 아이신줴러(김씨) 족보에는 직계조상 누루하치를 비롯한 ‘아이신줴러’ 가족은 김씨라고 밝혀져 있고 그들의 직계조상은 바로 아이신줴러(김씨) 누르하치라고 밝혀져 있다오. 금태조 조상이 어데서 왔는가를 더 깊이 파고 들면 더욱 놀라울게요. 그럼 넘 복잡하지. 음-" 말을 마치자 정호의 표정은 침울해졌다. “그럼 그 만족녀교수- 김교수는 말대황제 부의와도 촌수 있겠지요?" "촌수 있다뿐이겠소? 아주 가까운 친척이라오." "와-   참 내 이제껏 모른 력사이야기군요.” 나영은 정호를 쳐다보며 종알거렸다. "최국장, 아니, 김사장은 아는 것도 많아요. 참 아까운 사람이 이 지경 됐어요."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있겠소? 이젠 국장이구 뭐구 다 버리고 나영이 얼굴만 쳐다보고 살자고 뛰쳐나왔지." 정호는 나영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물었다. “이젠 내 성씨를 만족 김씨라고 해도 괜찮겠지?” “네- 괜찮을 거 같아요.” “김사장, 전 뭐라 할가요?” “김사장의 안해 허가인.” “네? 푸-” 나영은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좋은 조상이 남겨준 나씨를 두고 조상까지 바뀌였네요." "살자니 그렇게 됐네." 나영은 쌍까풀눈을 찔끔 해보이면서 능청을 부렸다. "딸이라는게 더 어울릴 거 같은데요.” 정호는 우멍눈이 데꾼해졌다. “왜? 부부라면 안돼?” “수무살이나 차 나잖아요. 어떻게 안해로 돼요?” 정호는 씨무룩이 웃었다. “어째 어울리잖나? 지금 세월에 무슨 나이타령인가? 우린 진짜 현실 부부잖아?” “거야. 그렇지만요. 공항에서 믿겠어요?” “믿고 믿지 않는 건 제 나름이지.” 정호는 나영의 무릎을 툭툭 쳐주었다. “얼마나 랑만적이오? 지금은 개방 세월이여서 별 사이비한 일 다 있잖소? 스무살이 아니라 서른살 차 나는 부부도 수두룩하잖소?” 나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최국장이야 충분히 그럴 수도 있어. 서른살이나 차 나는 애인, 딸 같은 애인 임하영도 점유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루한 애인 어디 한둘인가? 이번에 내 쫓아왔으니 말이지. 최국장은 얼마든지 하영을 데리고 왔을 수도 있잖은가.) 정호는 나영의 어깨를 꼭 끌어안고 다정하게 쑤근거렸다. “나영이, 수고해주겠소?” 나영은 정호 어깨에 머리를 가져다대며 물었다. “뭐든 말해요.” 정호는 주위를 살피면서 부탁했다. “내 아들 군철을 만나고 오오.” “네?” 나영은 새물새물 눈웃음짓던 청포도눈이 대번에 데꾼해졌다. 봉이 버들잎눈섭마저 한데 찰싹 붙을 지경이였다. “군철인지 뭔지. 당신 아들이라구 했죠?” “그래, 내 아들이지.” “아니, 당신 자식 하나도 없다고 본댁을 나무라더니. 허. 웬 아들 나졌어요?” 나영은 짐짓 이제껏 모른 것처럼 능청을 떨었다. “그렇게 됐어. 나도 처음엔 영희 뱃 속의 애가 내 아들인줄도 몰랐지.” 정호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몰라. 아들과 손자들을 퍽 만나고 싶구만. 송림이하구 길림인 이젠 아주 컸을 거야.” 그는 영희와의 비극적인 사랑로맨스를 간단히 죽 이야기해주었다. “최국장은 참 대단해요. 자기 노릇 다 했…” 정호는 손으로 나영의 입을 막으며 주위를 살폈다. “또, 또. 무슨 최국장이야?” “네, 김사장, 호호. 남의 배를 빌어 진짜 아들을 낳아 길렀군요.” 정호는 머리를 천천히 숙이며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무슨 남의 배야? 기실 영희는 내 젤 사랑하던 녀자야. 영희도 날 사랑했구. 우리 사이에 군철이 생긴 건 당연한 일이지.” “군철이 당신을 아빠로 생갹할가요? 괜히 코만 떼우지 못해. 흥.” “언제 그런 거 고려할 새 다 있소? 내 아들인 이상. 아들애 방조받아야 공항을 빠져나갈 거 같소.” “네?” 정호는 배낭을 다시 메고 나영을 데리고 공원 한쪽 구석으로 갔다. 그는 한아름이나 되는 나무에 기대 서서 배냥을 내리워 열고 려권 두개에 주옥목걸이와 옥팔찌 한쌍, 손목시계핸드폰 두개 꺼내 나영한테 건네주었다. 나영은 일일이 받아 핸드빽에 챙겨넣었다. 정호는 영희 귀에 대고 군철을 이렇게 만나서 이리이리 말하라고 했다.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우쭐 일어섰다. “헛 참. 이상 아들을 다 보러 가야겠군요. ㅉㅉ.” 정호는 나영이 몸을 돌려 떠나려는데 불러세웠다. “잠간.” 그는 배낭을 열고 손목시계핸드폰 하나 더 꺼냈다. “군철이 보고 무슨 일 있으면 이걸로 련락하라고 하오.” “아니, 도청하지 않을가요?” 정호는 사위를 흘끔거리며 나직이 말했다. “이건 신분증 없이 올린 대포폰이오. 허나 이걸로는 내 말고 다른 사람과는 통화하지 말라고 하오. 저도 절대 다른 사람과 통화는 금물이오. 알았소?” “그럼 군철한테도 전화하지 말란 말인가요?” “그래. 저승사자들이 지금 군철의 전화를 제일간 도청할 거야. 군철의 주위에 숱한 스파이들이 욱실거리면서 살피고 있을게요. 주의하오. 한 곳에 너무 오래 있지 마오.” “네. 제가 무슨 세살짜리 앤가 하는가요?” 나영은 곱게 눈을 흘겼다. “항상 강가에 내놓은 애 같아 내내 근심스럽소. 별일 없으면 이 공원에서 만나기오.” 나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정호는 떠나가는 나영의 훤칠하고 섹시한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였다. (제발 순조로와야겠는데. 하느님이 보우해주옵소서.) 한편 나영은 정호 시켜준대로 택시를 잡아타고 군철이네 기업소 부근에 달려갔다. 한참 후 푸른 잔디가 깔린 넓다란 광장과 해자를 사이 두고 오성붉은기와 태극기가 휘날리는 커다란 기업소 대문이 바라보였다. 나영은 택시에서 내려 광장 구석진 곳에서 기업소 대문을 지키면서 군철이 퇴근하기를 기다려야 했다. (에이, 언제 퇴근하겠니?)  아직도 한시간 넘어 기다려야 했다. 그는 손목시계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피뜩 군철한테 가만히 전화를 하고 싶었다. “저승사자들이 지금 제일간 군철의 핸드폰을 도청할 거야.” 정호가 하던 경고가 귀전을 때렸다. 나영은 감히 전화하지 못하고 한숨만 호- 내쉬었다. 그녀는 용빼는 수가 없어 지루한대로 대문 안에 세워진 통근뻐스를 살피며 기다려야만 했다. 정호 말에 의하면, 군철은 이 중한합자기업에서 년금 몇십만원을 타는 부장질을 한다고 하였다. “쳇, 부장이란 놈이 통근뻐스를 타고 다녀? 한국 기업이기에 청렴한 척 안해도 되겠는데. 흥!” 나영은 세상 만난 적도 없는 군철을 사진 한장 달랑 들고 대조해보면서 찾아내야 했다. “아니야. 뻐스에서 내리는 걸 만나나 집에 가 만나나 다 꼬리를 밟히기 쉬워.” 나영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어쩐다?”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자 그녀는 일단 군철이 퇴근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녀는 부지중 정호가 얄미웠다. (자기는 아들을 만나도 되고. 난 어째 아들을 만나면 안되니?) 그녀는 저도 몰래 아들이 보고 싶었다. 장간 아들을 보고 싶은 강한모성애와 충동은 그녀를 모험의 낭떠러지로  떠밀었다. (이 핸드폰으로 치면야. 누군지 알턱이 뭐냐?) 그녀는 요행을 바라고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감히 남편 철석한테는 직접 전화를 치지 못했다. 생각하던 중 소학교 동기가 떠올랐다. (걔는 저승사자들도 내 친구라는 걸 모를 거야.) 나영은 손목시계핸드폰을 들어 친구한테 전화했다. “얘, 나야. 응? 지금 타성에 있어. 응? 남편과 싸우고 가출했어. 응. 너도 알지만 우린 금술이 그닥 좋지 않아. 응. 그래, 부부 생활이 원활하지 못하면 화목할 수 없잖아? ㅋㅋㅋ. 그래. 우린 한창 나이니깐. 욕구가 강렬하지. 그저 어구지에서 맨지작거려서야 어떻게 만족감을 느껴? ㅎㅎㅎ. 그래 대판 싸우고 가출했어.” 나영은 진말 절반, 거짓말 절반해 친구를 그럴듯하게 얼려 넘겼다. “얘, 떠난지 오래니깐. 성림이 보고 싶구나. 응. 네가 좀 지금 수고해달라. 그래. 지금 인차 택시 타고 유치원에 가서 성림을 데려내다가 동영상 찍어 보내달라. 응. 될 수 있으면 성림과 화상통화를 하고 싶어. 응. 그럼 수고해라. 원쑤는 후에 톡톡이 갚을게. 응. 친구라도 그렇지. 신세야 갚아야지. 애를 유치원에서 데려내오면 이 번호에 전화해달라. 응.” 나영은 핸드폰을 끄려다가 또 뒷말을 이었다. “잠간. 이 전화번호 누구한테도 알려주지 말라. 네만 알고 있어라. 응, 그 잘난 나그네한테도 절대 알려주지 말라. 응. 철석이를 만나면 성림하구 영상통화 그만 둬라. 응. 그래, 수고해라.” 나영은 전화를 끊고 기업소 대문 안을 살폈다. 그러나 아직 때 일렀다. 한참 후 핸드폰이 울렸다. 나영은 황급히 핸드폰을 켰다. 자그만한 손목시계핸드폰위에 레이자빛확대화면에 성림과 녀친이 눈앞에  큼직하게 나타났다. “성림아!" "엄마-! 엉엉엉- 엄마! 빨리 오라! 엄마 보고 싶어-" "엄마 보고싶다고?” "응. 하늘만큼 보고 싶다. 빨리 오라. 엄마." 성림은 엄마를 보자 마구 손짓하며 엉엉 울었다. “엄마! 어데 갔어? 엄마 보고 싶어 죽겠다. 빨리 오라.” “응, 그래. 엄마 지금 아파서 주사 맞으러 멀리 왔어. 엄마 이제 네 좋아하는 놀음감이랑 수태 사가지고 갈게. 응. 그래. 과자랑 아이스크림이랑 하늘만큼 사 갈게. 성림아, 엄마 우리 귀여운 아들 성림이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개쌍년아, 애를 두고 어디 갔어?!” (아니, 이게 뭐야? ) 화면에 욕지거리하는 남편 철석이 나타나지 않았겠는가! 옆에서 성림은 엉엉 울고 있었다. “어디로 간단 말도 하지 않고 뭐야? 지금 어딜 갔어? 빨리 돌아오지 못해?” “ 지금 내 한국에 나와 있어요. 사전에 말하지 못해 미안해요. 부관장 철밥통 던지고 한국 나오겠다면 당신 동의했겠어요? 성림이 아빠, 지금 내 돈이 다 딸는데요. 내 로임카트 돈을 몽땅 찾아 보내줘요. 직접 보내기 그럼 지영한테 넘겨서 보내줘요.” “픽, 개소릴 다 친다. 일전한푼 줄 거 같아?” “이제 카드번호 알려주면 꼭 보내줘요.” “주는가 봐라. 집에 돌아오면 줄게. 전번에 심계국과 반부패국에서 널 찾더라. 네 어디 있단 소식 있거나 전화 오면 알려달라더라.” “절대 말하지 마쇼. 내 관장 돼 번 돈을 우리 삶림살이에 쓰잖았는가요? 절대 누구한테도 내 어데 있단 걸 알려주지 마쇼." 나영은 주위를 흘끔거리며 마무리했다. "여기 바쁜데요. 끊습니다. 성림아, 빠이, 빠이-” 나영은 인차 핸드폰을 꺼버렸다. 그녀는 인차 친구한테 위챗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얘, 어쩜 나그네 있는데 화상통화를 계속 해?   친구에게서도 메시지가 날아왔다.   유치원에서 낯도 모르는 나에게 애를 내놓자니? 그때 딱 네 나그네 애를 데리러 왔다가 마주 띄였다. 그래 애를 데리고 나온게야. 미안해.   큰 일 났어. 나그네 어디 있는 걸 알면 어쩌지?   돌아오라. 그런대로 살아라.   아니야. 이젠 그 나그네하구 하루도 못 살아. 이젠 졸혼하고 나 홀로만의 인생을 살겠다.   그래 언제까지 외지에서 떠돌이를 하겠니? 그게 졸혼하고 사는 네 인생이냐?   단 하루 살아도 녀자답게 살고파. 넌 몰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사내 같잖은 수아매하구 사는 고통을 몰라.   애를 봐서라도 돌아오라. 정 철석이하구 살기 싫으면 리혼하든지. 나도 봐라. 남편이 바람둥이지만 애를 보고 억지로 살지 않니?    너도 리혼하고 나처럼 자유로운 녀자로 살자. 난 너처럼 그럴 담이 없어. 함께 자유로운 녀자로 살 날, 그날 그다릴게.  한가지 부탁하자. 뭔데? 절대 철석이나 누구한테나 내 전화번호 알려주지 말라. 여기 바쁘구나. 끊자.   이윽고 나영은 자기가 큰 실수를 한 것을 서서히 느꼈다. “이 일을 어쩐담? 나그네 날 찾으려고 공안국에 찾아가 신고하면 어쩌지? 위치추적하면 어쩌지? 정호가 알면 큰 일인데.” 나영이 한창 바늘방석에 앉은듯이 조마조마해할 때였다. 기업소 대문이 활짝 열리면서 직원들이 퇴근해 우르르 쓸어 나왔다. 대부분 직원들은 주차장에 가서 자가용을 타고 퇴근하기 시작했다. 그때 통근뻐스 한대가 먼저 미끌어져 나왔다. (아차, 통화하다나니 놓쳐버렸군.) 나영은 황급히 뻐스가 달리는 쪽으로 뒤따라가 길가에서 택시를 불러 탔다. “저 앞의 뻐스를 따라 가세요.” “네- 알았습니다.” 택시는 통근뻐스 꼬리를 물고 달렸다. 나영은 손목시계핸드폰을 들어 통근뻐스 번호를 찰칵 찍었다. (통근뻐스 수태더구만. 어느 뻐스에 앉았는지 어떻게 알아? 좌우간 군철이네 집 부근에 가는 뻐스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통근뻐스가 다행히 군철이네 집으로 향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이였다. (다행이구나.) 도중에 통근뻐스가 서면서 한 직원이 내렸다. 그런데 뻐스가 몇번이고 부르릉, 부르릉 시동을 걸어도 웬 일인지 떡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나영이 백도지도를 훑어봐도 아직 군철이네 집에 가려면 멀었다. 나영은 무릎을 탁 쳤다. 그녀는 택시비를 결산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통근뻐스 고장났는지 운전수가 운전석에서 뭘 손질하는 것 같았다. 나영은 통근뻐스에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인가? 시끄럽게.” 운전수가 투박하게 투덜거렸다. “급한 일이 있는데요. 사람 찾아요.” “누굴?” “혹시 최군철 부장이 있는가요?” “네. 있습니다.” 운전수 말투가 인차 부드럽게 바뀌였다. 순간 나영은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자기 아들도 아니고 정호 아들이였지만.  만나자고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 만나게 돼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뻐스 안에서 운전수가 누군가와 뭐라고 말을 주고 받더니 이윽고 차문이 활짝 열렸다. 훤칠한 번대머리가 커다란 핸드빽을 옆구리에 끼고 성큼 내렸다. “어마나!” 나영은 하마트면 소리를 지를 번했다. 그 번대머리는 최정호를 딱 떼닮지 않았겠는가. 번대머리라든지 우멍눈이라든지 심지어 이마에 박힌 기미까지 너무나도 정호  복제품에 가까웠다. 다만 정호보다 퍽 젊어보일뿐이였다. 나영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우멍눈은 단통 실눈이 돼 가슴츠레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누군지요?” 나영은 활짝 웃으면서 나직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최부장, 이쪽으로 가서 천천히 얘기하죠.” 군철은 녀자 홀몸인데다가 조선말을 하는지라 경계심을 풀고 따라갔다. 뻐스에서 숱한 직원들이 그들의 뒤잔등에 눈길을 박고 쑤근거렸다. 나영은 통근뻐스와 좀 멀리 떨어진 곳에까지 가서야 머리를 돌렸다. “최부장, 아버지가 심부름 보내서 왔어요.” “네? 아버지라니? 저의 아버지 리문걸씨는 지금 일본에 갔는데요.” “아니예요. 지금 이 시내에 와 있어요. 최국장은 아들을 보고 싶어 이 시내까지 찾아왔는데요.” 그러나 군철은 랭소했다. “내겐 범죄자 아버지 없습니다. 내 아버진 리문걸 밖에 없습니다.” 찰싹! 나영은 손바닥을 쫙 펴 잽싸게 군철의 뺨을 한대 갈겼다. “이 놈아, 친애비도 모르는 개자식! 최정호 국장이야 말로 네 친아버지야. 에이구, 최국장도 눈이 멀었지. 이런 새끼도 아들이라고 날 보내? 흥, 너도 애를 둘이나 키우는 애 아빠 아닌가? 왜 아들로 생겨서 아버지 마음 그렇게도 모르니?” 군철은 재차 치려는 나영의 손목을 후려잡고 물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나영은 당당하게 말했다. “난 네 애비 애인이야. 아니, 지금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유일한 현실안해야.” “안해? 흥! 구천에 간 우리 엄마를 릉욕하지 마쇼. 최정호는 내 이모부인데. 뭘 보고 생소한 녀자를 이모부 안해라고 믿어야 하오? 지금 미녀사기군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군철의 립장에서는 참말로 그럴 수도 있었다. (낯선 녀자는 미녀사기군인지, 녀경찰인지? 저승사자 보낸 끄나뿔인지 누가 알겠는가?) 나영은 인차 군철의 립장을 리해하고 퍼러뎅뎅한 얼굴 근육을 스르르 풀었다. 그녀는 사위를 둘러보더니 군철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 한 아름이나 되는 가로수를 등지고 섰다. 뒤이어 핸드빽을 열고 주옥목걸이와 옥팔찌 한쌍을 꺼내 군철에게 내밀었다. “금방 너무 과했는데요. 널리 량해하세요.  최국장은 주옥목걸인 아들에게 주는 선물이고 옥팔찌 한쌍은 손자들께 하나씩 주는 선물이라고 했어요. 이게 마지막선물일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군철은 묵직한 선물을 보자 단통 굳었던 얼굴이 풀렸다. “아니, 이모부가 어쩜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다 보냈는가요?” 나영은 청포도 쌍까풀눈을 치켜떴다. “아직도 이모부요? 아버지란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요.” 군철은 선물을 핸드빽에 챙겨넣으면서 동문서답했다. “그분 지금 어데 있는가요? 어째 저를 직접 만나지 않는답니까?” 나영은 인차 용건부터 전했다. “그분 지금 수사일군들한테 쫓기는 몸이요.” “그럼 왜 나를 련루시키려고 든답니까?” “최국장은 구속받기 전에 마지막이겠는지 아들과 손자들을 꼭 만나고 싶다고 했어요.” “쳇, 황당하군. 이제 새끼들을 다 잡아먹을 예산이구먼.” 군철은 실수한 것을 눈치채고 말을 돌렸다. “이모부는 정말 무정한 사람이군요. 어쩜 범죄자 돼서 꼬리를 달고 다니면서 날 다 찾습니까?” 나영은 꼭두까지 치미는 분노를 가까스로 억제하면서 말했다. “최국장은 지금 시급히 건강마와 방역복이 수요돼요.” 나영은 정호 귀에 대고 뭐라고 쑤근거리더니 려권 두개를 꺼내 건넸다. 군철은 핸드폰을 꺼내 려권 두개를 다 찍고 되돌려주었다. "좋은 충주 최씨를 두고 조상까지 다 바꿔먹는군. 흥." 나영은 두덜거리는 군철의 팔을 붙잡고 간절히 부탁했다. “될 수 있으면 인차 도와주세요... '” “최부장, 차 수리됐습니다. 빨리 오르십시오.” 운전수가 저쪽에서 소리쳤다. “네- 곧 가겠습니다." 군철은 나영에게 얼굴을 돌리고 량미간을 찌프리더니 나직이 말했다. “금무호텔 5027호에 잠시 머무십시오.” 그는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더니 총망히 떠나갔다. (금무호텔 5027호?)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며 총총히 떠나가는 군철의 훤칠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들은 아들이구나. 피는 속이지 못하지.) 그녀는 너부죽한 군철의 뒷잔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부지중 마음이 든든해졌다. 하여 한가슴 가득히 숨을 한껏 들이 쉬였다가 한숨을 호- 후련하게 토해냈다. 나영은 군철이 탄 통근뻐스가 스르르 떠나가자 인차 자리를 떴다. 그녀는 남편한테 들킨 일이 뒤가 켕기였다. “최국장이 아는 날엔 또 펄쩍 뛰겠다. 전화질 한 거 절대 말할 수 없어.” 그러나 인차 이런 반발심도 생겼다. (네 아들만 아들이냐? 내 목숨 걸고 네 아들 만나 큰 일 해냈으면 고만한 건 용서해야지. 안 그래? 최동무. ㅋㅋ.) 나영은 혼자 중얼거리면서 손목시계핸드폰을 쳤다. “그 물건짝을 만났어요. 당장 금무호텔 5027에 가서 물건짝 찾으세요. 네. 거기 물건짝을 부치겠으니깐 거기 가서 물건을 찾으랍디다.” 나영과 정호는 진짜 암호를 주고 받으면서 특무들 같이 놀았다. ㅋㅋ. 말을 마치자 나영은 택시를 잡아타고 금무호텔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녀는 변해가는 자기 모습이 너무 허무해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해설원으로부터 재무과장, 부관장으로 되더니. ㅋㅋ. 이젠 추격당하며  특무놀음을 노는 도주자. ㅋㅋ.)       이제 그녀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질가?       
269    대하소설 졸혼 제3권(33) 김장혁 댓글:  조회:1213  추천:0  2022-08-15
      대하소설                 졸혼                                   제3권                                          김장혁   43. 사인정탐가       붕붕-      타성 경계선에 들어서는 령을 넘어 오토바이 한대가 수림이 뒤덮인 구불구불한 절벽령길로 달린다.   괴짜가 홀로 오토바이를 타고 사처를 두리번거리면서 달린다. 그가 살인혐의로 쫓기는 허병칠인가? 아니면, 강도로 추적받고 있는 오정룡인가? 다 아니다. 그는 “저승사자” 동의도 거치지 않고 부패분자 정호를 나포하러 떠난 괴짜, “사인정탐가”로 소문난 리성호였다. 정호가 오토바이를 타고 고속도로 아닌 항상 령길로 도망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성호도 오토바이를 타고 령길로 달리고 있었다. 정호가 흉악범도 아니기에 성호는 비수 한자루도 몸에 휴대하지 않았다. 그가 들쑹날쑹한 절벽 위에 굽이굽이 난 령길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릴 때였다. 갑자기 손목시계핸드폰 벨이 울렸다. 성호가 핸드폰을 피뜩 들여다보니 최혜영의 전화였다. 성호는 오토바이를 세우고  전화를 받았다.   “최국장, 무슨 일이오?” “오빠, 지금 어데 있소?” 성호는 거짓말을 했다. “회사에 있소. 무슨 일이 있소?” “거짓말, 어째 내 동의도 없이 타성까지 갔는가요? 그리로 가선 정호를 나포하지도 못해요.” (내 핸드폰 위치를 봤나? 벌써 손금 보듯하는구나. 진짜 여래불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무슨 새 정보 있소?” “금방 수분하해관으로 간 수사일군들한테서 전화 왔소.” “뭐랍데?” “근본 정호와 나영은 그리로 가지도 않았다오.” “그럼 정호 시계 위치는 어디오?” “수분하인데요. 정호 시계를 찬 자는 글쎄 로씨야 장사군이라오.” “그럼 로씨야 장사군을 매수했단 말이오?” “아니죠. 로씨야 장사군은 그 시계핸드폰을 어떤 중국 시계장사군한테서 샀다 해요.” “그래?” 성호는 들을수록 오리무중에 빠졌다. “그럼 정호가 그 시계핸드폰을 고의로 로씨야 장사군한테 팔아 수사일군들을 미혹시키려 했단 말이오?”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시계핸드폰을 판 사람의 체모특징을 보면 정호 같지 않아요. 로시야 장사군 말에 의하면 키도 정호보다 퍽 훤칠하다고 했어요. 번대머리도 아니고. 이마에 기미도 없었다고 해요.” “그럼 누굴가?” “체모특징을 보면 허병칠이 아닌가도 의심돼요.” “허병칠? 아니오.” 성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수 없소. 정호와 허병칠이 어떻게 함께 도망칠 수 있소?” “정호가 허병칠을 불시에 재차 검거한 걸 보면요. 정호가 전날 허병칠을 검거한 시각에 허병칠을 우연하게 발견했을 수도 있죠. 가능하게 정호가 우리를 미혹시키려고 시계핸드폰을 고의로 허병칠한테 줬을 수도 있죠. 그들은 사제간이니깐요. 또 둘 다 추격받는 범죄자니깐요. 정호는 허병칠을 돕는 척하면서 시계핸드폰을 줬을 수도 있지요.” “알았소. 정호는 반정탐능력이 강하구만. 새 정보 있으면 제때에 알려주오.” “오빠, 어서 돌아오세요. 오빠 이 사건에 나서는 걸 동의하지 않아요.” “난 사인정탐가니깐. 검찰원 비준받을 필요없소. 최국장은 내까지 이래라 저래라 할 순 없잖소?” “오빠, 돌아오세요. 괜히 흉악범한테 상하면 난 어떻게 살아요? 아니, 건 아니고…” 최혜영은 실수했다. “다른 일 없으면 전화 끝는다. 갈 길이 바빠.” “꼭 돌아오세요.” “알았어. 끊는다.” 성호는 전화를 끊고 또 오토바이를 타고 령길로 달렸다. 빽- 오토바이가 급정거했다. “아니야. 정호는 손목시계핸드폰으로 수사일군들을 미혹시키려 했어. 꼭 손목시계를 찬 자하구 반대방향으로 도망쳤을 거야.” 성호는 오토바이 머리를 돌려 오던 길로 달리기 시작했다.       황혼이 오토바이 앞길에 서서히 드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때 앞에서 오토바이 한대가 천천히 달려왔다. 오토바이를 탄 자가 복면하지 않았겠는가. 뒤에서도 복면한 자가 오토바이 타고 질풍같이 뒷따라 달려왔다. 성호는 복면한 강도들한테 앞뒤로 포위당했다. 빽- 맞은 켠에서 달려오던 오토바이 갑자기 가로서며 앞길을 가로막아섰다. 성호는 날래게 그 오토바이를 피해 달렸다. “서랏!” 오토바이 두대가 합세해 추격했다. “배낭을 벗어놧!” “살려줄게!” 성호는 바싹 뒤쫓는 두 놈을 피특 되돌아보았다. 두 놈은 시퍼런 비수를 빼들고 쫓지 않겠는가. (참, 재수 없어!) 성호는 삼십륙계 줄행랑이 제일이라고 오토바이 유문발브를 힘껏 밟았다. 그러나 좀체로 그 놈들을 떼버릴 수 없었다. 커다란 비술나무에 거의 이르렀을 때였다. 오토바이 한대가 씽 달려와 성호 오토바이를 탁 들이받았다. 성호가 날래게 옆으로 피했다. 하지만 령길에서 허망 밀려나 절벽으로 미끌어져갔다. 순간 성호는 제꺽 몸을 날려 비술나무 가지에 매달리며 뒷놈한테 발길을 날렸다. 그 놈은 발길에 채워 어쩔새 없이 절벽 아래로 허망 쿵 떨어졌다. 그런데 성호도 너무 힘차게 발길질을 한 탓으로 허망 비술나무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이때라고 다른 놈은 오토바이 앞대가리를 키보다 더 높게 쳐들고 비수를 휘두르면서 씽 성호한테  덮쳐들었다. 성호는 훌쩍 뛰여 옆으로 피하먼서 그 놈의 잔등을 걷어찼다. 강도놈은 제 힘에 저만치 날려나가 푹 쓰러졌다. 그놈도 헐찮은 놈이였다. 강도는 데굴데굴 구을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놈은 성호의 날랜 거동에 저으기 질겁했다. 그러나 시퍼런 비수를 빼들고 나무를 쳐다보며 허장성세를 부렸다. “배낭만 던져! 그럼 살려준다.” 성호는 쓴 웃음을 지었다. “쳇,” 강도는 가까이에 태권도자세를 취하면서 다가서는 성호를 찬찬히 뜯어보더니 뒤주춤하는 것이였다. (웬 일인가? 난 빈 손인데.) 성호는 의아해하면서 부지중 강도를 제압할 용기가 솟구쳤다. 그놈이 주춤주춤 하는 순간. “얏!” 성호는 공중잡이로 강도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강도는 하늘을 향해 비수를 휘둘렀다. 허나 성호가 날린 뒷발질에 목을 강타당해 비틀거렸다. “얏!” 성호는 재차 몸을 홱 돌려 날아오르며 원앙새다리를 날려 강도의 턱주가리를 걷어차 올렸다. 그 강도놈은 미처 손쓸새도 없이 썩박나무처럼 푹 꺼꾸러졌다. “핫!” 성호는 재차 뛰여올랐다가 맹호처럼 락하하며 무릎으로 강도놈의 배를 꽝 내리찧었다. “앗!” 강도는 밸이 다 터지는듯한 비명을 질렀다. 강도는 손사래를 쳤다. . “그만, 그만! 형님! 제발 살려주오.” 아니, 조선말로 아우성치는게 아닌가. “형님?” 성호는 복면한 보를 훌 벗겼다. “아니, 이게!” 그 강도놈은 오정룡이 아니겠는가. “야, 이 놈새끼, 낸줄 알면서 비수를 휘둘러?” 오정룡은 상을 찡그리면서 변명했다. “아, 형님, 잘못했소. 굴뱀형님, 형님인 걸 모르고, 참, 살 길이 없어 그랬소.” “굴뱀이라니? 이 새끼! 누굴 골려?” 성호는 의아해하면서 주먹을 쳐들었다. “아니, 형님이 시내에 소문난 굴뱀이란 거 누가 모르오?” 그러자 성호는 주먹을 내리웠다. (이 새끼, 내 승호인가 하는구나.)       성호와 동갑내기 친조카 승호는 생김새가 똑 같아 쌍둥이 같았다. 승호는 시내에서 소문난 싸움군 두목-굴뱀이였다. 승호네 싸움패거리는 어찌나 많은지 모두 그 무리와 승호를 굴뱀이라고 불렀다. 정룡은 지난 번에 정호와 함께 보마차에 둔 금은보화를 찾으러 온 성호를 피뜩 본 적이 있었다. 오정룡은 무릎을 접고 앉으며 절벽 아래를 가리켰다. “저 아래 놈은 누구냐?” “저, 저,” “말하지 말라!” 절벽 아랫 놈이 살았는지 고함쳤다. 성호는 오정룡을 놓고 절벽에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절벽이 그리 높지 않았다. 그래서 절벽에서 떨어진 강도놈은 요행 살아남은 것 같았다. 그 놈은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도망치려고 시도했다. “서랏!” 성호는 독수리처럼 두 팔을 활짝 펴고 나래치듯하면서 절벽에서 날아내려갔다. “어디로 도망쳐?” 그는 맹호가 승냥이를 덮치듯 뒤쫓아가 종아리를 걷어찼다. “앗!” 강도는 비명을 지르며 꼬꾸라졌다. 성호는 호랑이가 승냥이를 덮치듯해 그 놈의 손목을 비틀고 비수를 빼앗아냈다. 부르릉, 부르릉.ㅡ 그 틈에 절벽 위에 쓰러졌던 정룡이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쳤다. “서랏!’ 성호는 갈범처럼 고함쳤다. 그러나 오정룡은 손까지 흔들면서 도망쳤다. 성호는 황급히 손목시계핸드폰을 쳐들었다. “최국장, 여기서 강도 두 놈을 발견했소. 하나는 오정룡입데. 양, 즉시 수사일군들을 파견하오. 양? 몽땅 복면했소. 정호 같잖소.” 강도는 꺼꾸러져 다리를 붙들고 죽어가는 소리를 질렀다. 성호는 복면보를 훌 벗겼다. “넌 누구냐?” “몰라!” “이놈, 혹시 허병칠 아니냐?” “난 허병칠을 모르오.” “그놈 낯을 동영상으로 좀 보기오.” 성호는 손목시계핸드폰을 강도놈의 얼굴에 들이댔다. 강도는 손으로 낯을 가리면서 반항했다. 성호는 무쇠주먹을 한대 꽝 안겼다. 그 놈은 맥주가리 없이 까무러쳤다. 최혜영 국장은 환성을 질렀다. “허병칠이구만요. 그 놈은 명도다방 보스 정희를  살인했을 가능성이 있는 살인혐의자입니다. 당지 수사일군들이 그 곳에 곧 도착할 겁니다.” “됐소. 이 놈을 여기에 결백해 놓겠소. 오정룡을 추격해야겠어.” “그럴 필요없어요. 오빠, 곰이 옥수수 따듯 하지 마세요. 그 놈 놓치지 말고 딱  지키오. 정룡은 이미 그물에 든 고기니깐. 우리 수사일군들 손을 벗어나지 못하오.” 성호는 잔등에 멘 배낭을 내리워 바줄을 꺼내 허병칠의 손과 다리를 꽁꽁 묶어 커다란 버드나무에 얼기설기 동여놓았다. 다시 빈틈없는가 꼼꼼히 재확인하고서야 시름놓고 오토바이쪽으로 다가갔다.       몇해 전에 그는 내몽골에 젖소장사를 하러 갔다가 강도놈들한테 붙잡혔댔다. 그때  강도들은 그의 손을 뒤로 결박해 고목에 매놓았댔다. 그러나 다행히 다리와 발을 묶어놓지 않았다. 강도들이 떠나간 후 그는 다리를 머리 위로 들어올리고 입으로 종아리 각반에 꽂아둔 비수를 간신히 뽑아내 바줄을 베고 구사일생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그 때 경험과 교훈에 근거해 성호는 강도의 손 뿐만아니라 다리와 발까지 꽁꽁 묶었던 것이다. 성호는 가까이에 있는 강도놈의 오토바이를 세우고 시동을 부르릉, 부르릉 걸었다. 그런데 바퀴가 오그라들어 좀처럼 달릴 수 없었다. 그는 먼 발치에 있는 자기 오토바이를 일궈 세웠다. 역시나 앞바퀴가 옥창이 돼버리지 않았겠는가. “에이, 참 재수 없어.” 성호는 오토바이 바퀴를 탕탕 걷어차면서 한탄했다. (이런 산골에서 오토바이도 없이 어쩐단 말인가?) 그는 한탄하며 절벽에 스적스적 다가갔다. “이보소, 날 두고 어데 가오? 제발 가지 맙소!” 그때 허병칠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애걸했다. “주둥일 다물지 못해?! 정룡이 도망치는 날엔 주둥이를 찢어놓을테다!” “이보, 이렇게 꽁꽁 묶어놓고 가버리면 여기서 승냥이 밥이 될게 아니오?” 성호는 되돌아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흥! 살인범놈아, 넌 어차피 죽은 목숨이야.” 허병칠은 주둥이를 다물지 않았다. 그는 필경 대학교 부교수 출신인지라 삼촌불란지설로 이놈 용감하기만 해보이는  성호를 얼리려고 들었다. “죽을 땐 죽더라도 여기서 개죽음당하긴 싫소. 당신과 난 원쑤진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지독하게 노오?” 성호는 절벽에 기어오르려다가 손을 뗐다. (아니야. 혜영이 말처럼 곰이 옥수수 따듯 하지 말자. 저 놈을 지키는게 맞아. 괜히 오정룡도 붙잡지 못하고 허병칠마저 놓치면 어쩌는가? 혹시 부근에 숨어 있던 정룡이 저 놈을 풀어주기라도 하면 큰일 아닌가? 또  진상도 모르는 행인이라도 저 놈을 풀어주면 어쩌지? 안돼.   황차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간 놈을 어떻게 두 다리로 따라잡는단 말인가? 그 새 벌써 십리도 너머 도망쳤겠다.) 성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되돌아섰다. 그는 허병칠한테로 다가가다가 한가지 꾀가 피뜩 떠올랐다. (혹시 오정룡이란 놈이 저 놈 허씨를 구하자고 돌아오지 않을가? 두 놈이 그런 의리까지 있는 사이일가?) 그는 번개처럼 속궁리를 돌렸다. (충분히 있어. 아까 병칠의 이름을 물었을 때 오정룡은 끝내 대지 않았어.) 성호는 버드나무숲 속에 숨어 허병칠을 지키면서 수사일군들이 오기를 기다리기로 작심했다. 그는 버드나무숲을 헤치면서 병칠을 묶어놓은 늙은 버드나무 가까이에 다가갔다. 그는 배낭에서 세수수건을 꺼내 허병칠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했다. “왜 이래?” 허병칠이 덴겁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주둥이를 틀어막아야겠다. 자꾸 주둥이질 하면 오정룡이 여길 오겠니?” “가만! 내게 오정룡을 잡을 계책 하나 있습니다.” “잔꾀를 작작 부렷!” 허병칠은 횡설수설했다. “이보쇼. 남의 말 들어보지도 않고 입부터 막겠습니까?” 그러자 성호는 도리머리질하면서 입을 틀어막던 수건을 치웠다. 그는 허병칠한테서 새 단서를 알아보는 것도 무방하다고 여겼다. “오정룡을 아는 사인가?” “우린 동긴데 우연히 만났소.”  황혼의 락조를 받으면서 버드나무숲이 무섭게 설레였다. 사실, 오정룡과 병칠은 초중 동기였다. 허나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였다. 허병칠은 초중 때부터 학급의 반장이자 공부도 학교에서 첫손 꼽히게 잘했다. 그러나 정룡은 공부는 꼴찌고 싸움에는 악돌이였다. 그후 허병칠은 대학으로 갔고 정호의 도움을 받아 예술학원 무용부교수, 학생부장까지 하면서 잘 나갔다. 그러나 오정룡은 놀부여서 노라리만 치면서 항상 형 오청룡 국장한테서 돈이나 얻어 쓰지 않으면 망아산에 가서 강도질이나 했다. 오정룡은 형의 불의지재를 받아 정호의 보마차랑 산 죄행이 드러나자 부랴부랴 이 곳까지 도망쳐 왔던 것이다. 그는 꼬리를 밟혔기에 망아산에서 지은 숱한 형사죄행까지 드러날가봐 겁났던 것이다. 오정룡과 허병칠은 우연하게 이 곳에서 희극적으로 만나게 됐다. 허병칠은 정호가 준 돈을 다 쓰자 손목시계핸드폰마저 로씨야 장사군한테 몇푼 받지 못하고 눅거리로 팔아먹었다. 그 돈마저 며칠 가지 못해 바닥이 드러나자 또다시 강도질에 나섰던 것이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절벽이 드문드문 있고 비술나무숲이 우거지고 굽이굽이 굽인돌이 많은 이 령길을 강도질하기 제일 좋은 곳이라고 여겼다.  또 두 성의 경계에 시가지와 멀리 떨어진 심심산골이여서 수사일군들의 손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그는 이 천혜의 강도질해먹을 령길 목을 지키면서 홀로 지나가는 행인들을 보면 복면하고 강도질했다. 어느 하루, 오정룡이 오토바이를 타고 이 령길로 달릴 때였다. 맞은 켠에서 오토바이 한대가 마주 달려오고 있었다. 딱 이 늙은 비술나무 부근에서 복면한 강도가 비수를 빼들고 고함쳤다. “살겠거든 길세나 내라!” 오정룡은 그 목소리가 퍽 귀에 익었다. 그러나 시끄러워 오토바이를 돌려 도망치려고 했다. “서랏!” 강도는 뒤쫓아오면서 비수를 휘둘렀다. 오정룡은 강도가 거의 따라잡기를 기다려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몸을 훌 일궈세우며 뒷발질을 날렸다. 강도 놈은 목을 채워 저만치 나가 동그라졌다. 오정룡은 오토바이를 버리고 갈범처럼 고함치면서 덮쳐들었다. “가만! 정룡이 아니냐?” “?!” 쓰러진 강도는 복면보를 훌 벗었다. “아니, 병칠이 아니냐? 대학교수 이게 무슨 짓이냐?” “그렇게 됐다.” 허병칠은 속사정을 제대로 다 얘기하지 않았다. 사기군한테 숱한 돈을 떼운데다가 고리대빚을 갚을 길이 없어 이렇게 됐다고 두루 거짓말로 둘러댔다. 오정룡도 두루 거짓말로 둘러댔다. 그들 둘은 신세타령을 한참 하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만나 의기투합돼 함께 강도질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대학교 학생부장이란 놈이 왜 명도다방에서 살인했는가?” “절대 살인한 적이 없소. 다만 고리대빚을 갚을 길이 없어 이런 길에 들어섰을 뿐이오. 용사님, 날 도와주오. 우린 다 한 고향 사람, 그것도 조선족들이란 말이오.” “닥쳣! 네놈들은 조선족을 팔아먹은 망종들이야.” 성호는 자기를 얕잡아보고 거짓말하는 허병칠이 가증스러웠다. 그는 이제 허병칠의 살인죄는 수사일군들이 심문해서 해명하리라고 생각했다. “오정룡이 지금 어데 도망친 거 같은가?” “픽! 내 어떻게 아오?” “넌 총살받을 놈이야. 죽기 전에 오정룡이 도망친 곳이나 대라. 그러잖으면 진짜 승냥이 밥이 되게 이 무인지경에 묶으놓고 가버리겠어.” 허병칠은 성호가 오정룡을 추격하려고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 고개를 넘으면 타성 쪽이오. 한 50킬로메터 더 가면 자그마한 진이 있소. 우리 둘은 거기서 먹을 걸 사가지고 이 야산에 숨어 강도질했댔소.” “정호를 봤는가?” 수사일군들이 심문해도 대답하지 않을 허병칠인데. “봤으면 어째?” “정호 지금 어데 있는가?” “알면 대줄 거 같은가?” “이놈 허허벌판에서 뼈다귀도 못 추리자고 이래?” “픽!” 허병칠은 랭소했다. “아무래도 죽을 놈, 이실직고해라. 정호 지금 어데쯤 갔을 거 같아?” “어째 정호하구 묻지 못해?” 성호는 우격다짐으로는 안되자 언성을 좀 낮췄다. “정호는 내 친구였어. 그는 죽을 죄도 지지 않았네. 만나서 자수하라고 권고하자고  그래.” 허병칠은 쓴웃음을 지었다. "정호는 죽어 싼 놈이야. 날 다 물어먹은 부패분자야. 그놈이 아니면 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거야. 내 그놈을 죽여치우지 못하고 죽게 된게 한이야." "네놈이 죽을 죄를 진 게 사실이구나. ㅋㅋ." 허병칠은  성호를 얼리긴 고사하고 살인죄를 자인하는 말 실수한 걸 알고 입에 빗장을 질렀다. 그때 최혜영 국장한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피뜩 보니 허병칠의 간력과 사회관계, 범죄혐의 등이였다. 인차 뒷따라 전화가 왔다. “오빠, 수사일군들이 그리로 거의 도착하고 있소. 그쪽 지형특징을 구체적으로 말해주오.” “여긴 두 성 접경지오. 절벽이 드문드문 있고 굽이굽이 절벽령길이오. 길 옆에 커다란 비술나무들이 가득하오. 내 길 옆에 나가 마중할게.” “허병칠이나 잘 지키세요.” “아니, 허병칠을 버두나무에 꽁꽁 묶어놓았으니깐. 여기 거의 도착하면 내 혼자 올라가 마중할게.” “한 20분 좌우 있으면 수사일군들이 도착할 거요.” “알았소.” 수사일군들이 온다는 말을 귀동냥해 들은 허병칠은 묶인 몸을 마구 비틀면서 비명을 질렀다. “아이구. 날 풀어주오. 우린 원쑤진 일도 없는데 왜 이다지도 지독하게 노오?” 성호는 되돌아보며 물었다. “정호, 봤니?” “봤소.” “어디서?” “저 고개 넘어 강뚝에서 만냈댔소.” 성호는 한걸음 성큼 다가서며 물었다. “지금 어데 있어?” “아마 성내 지역으로 돌아갔을 걸. 나하구 반대방향으로 달아났으니깐.” “그럴리야?” 성호는 의아해하며 또 물었다. “혼자 도망쳤어?” “아니, 오토바이에 녀자 하나 태우고  도망갔소.” 이때 경적소리 요란히 울렸다. 경찰차 두대가 먼 발치에서 굽이굽이 새뽀안 먼지를 흩날리면서 달려왔다. "용사님, 날 풀어주오. 내 치워둔 금은보화랑 다 줄게." "흥! 주둥일 다물지 못해?" "아이고, 엄마, 내 죽게 됐소. 날 살려주오." 성호는 잽싸게 절벽을 톱아올라 늙은 비술나무 아래서 손을 휘저었다. 경찰차가 달려와 멈춰섰다. 경찰들이 경찰차에서 내려와 성호와 악수를 나누고 절벽 아래로 머리를 돌렸다. 뒤이어 수사일군들은 성호를 따라 바줄을 타고 절벽에서 내려가 허병칠을 버드나무에서 풀어내 차가운 쇠고랑일을 절컥 채웠다. 그들은 허병칠을 바줄로 묶은 채 절벽에 끌어올려 경찰차에 옮겨싣고 당지 공안국으로 쏜살처럼 달려갔다.  다른 경찰차는 성호와 함께 새 단서에 따라 굽이굽이 절벽길을 타고 고개를 넘어 황혼의 락조가 비낀 수림 속을 헤가르며 타성 지역으로 달려갔다.
268    대하소설 졸혼(32) 김장혁 댓글:  조회:1384  추천:0  2022-08-11
          대하소설                 졸혼                             김장혁                42. 비운의 후지산          춘희 뇌리에서 뭔가 번쩍 번개쳤다.       (다이로교수는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선 무슨 짓도 다 할 거야. 이제 아들을 보려고 나 대신 복화를 집에 끌어들일 수도 있어. 복화도 생존을 위해 그런 짓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춘희는 하나 밖에 없는 딸애를 돌아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복화는 진희한테 큰 위협으로 돼. 다이로와 복화한테 애가 있으면 장차 유산상속권쟁탈전이 시작될 거고. 나중에 야마구찌 다이로교수는 진희를 집에서 쫓아낼 거야. 안돼, 절대 안돼. 복화를 가만 놔둘 수 없어.) 춘희는 저 멀리 XXX조각상을 떠메고 멀어져가는 다이로교수와 복화를 보면서 이를 옥물었다. 다이로는 춘희를 보고 거의  십년 동안 아들애를 낳아달라고 닥달했다. 그러나 춘희는 애를 낳아야겠는데 임신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항상 다이로한테 콘돔을 끼웠다. “아니, 부부간에 이거 뭐야? 내게 무슨 성병이나 있다고 이래?” 다이로교수는 성을 벌컥 냈다. 그는 감각이 말짼 건 둘째고 부부간에 얇은 콘돔으로 인해 두터운 장벽이 생길 수 있다고 두덜거렸다. 춘희는 하는 수 없이 콘돔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됐다. 그녀는 궁리 끝에 콘돔 대신 다이로교수 몰래 피임약을 먹었던 것이다. 그래서 애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다이로교수는 춘희를 의심하면서도 용 빼는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애가 생기지 않는데야 별 수  있겠는가. 그러는 와중에 의과대학교 제자 복화가 시선에 들어섰다. 복화는 남동생을 데리고 공부는커녕 살기도 어려운 형편이였다. 그녀는 돈이 딸리자 자기 피를 팔기도 하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모델도 하면서 근근득식하고 있었다. 다이로교수는 마끼의 소개를 받아 알게 된 복화한테 돈이나 쥐여주면서 관심하는 척하면서 마음먹고 슬금슬금 접근하였다. 돈은 귀신을 보고 맷돌을 갈게 한다는 말이 있다. 고액의 삯전에 단맛을 본  복화는 처음에는 가부기처럼 다이로교수네 집에 와서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면서 알바를 했다. 나중에는 이른바 생물학교수 다이로의 인체 시험품으로도 됐고 이젠 교타이모리 스시상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제 복화는 더 한 짓도 할 수 있어.) 춘희 근심은 점점 더해갔다. 그녀는 무슨 정신에 문걸을 데리고 천황궁으로 가서 구경시켰는지 몰랐다. 그들은 천황궁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천황궁 앞 널다란 광장 먼 발치에서 해자 너머 천황궁으로 통한 다리만 구경할 수 있었다. 문걸은 일제시기 천황궁 앞 광장에서 천황과 위만주국 괴뢰황제 부의가 탄 마차에 폭탄을 던진 리봉창의사를 떠올리며 머리를 숙연히 숙였다. 그러나 춘희는 복화와 진희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면서 문걸의 심정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날 저녁, 다이로교수는 문걸과 아사꼬를 자기 집에 청해 또 희한한 연회를 베풀었다. 문걸과 아사꼬는 춘희가 보낸 도요다찌프에 그간 짬짬히 그린 숱한 그림을 싣고 다이로교수네 집으로 향했다. 다이로교수네 별장 같은 아파트 정원에는 사꾸라꽃이 만발하고 등불히 휘황찬란하였다.  다이로교수와 춘희, 마끼가 화복차림 한 숱한 미녀들과 함께  정원에서 대기하다가 문걸과 아사꼬를 마중했다. “반갑습니다. 화가 부부님, 어서 오세요.” “안녕하십니까? 다이로교수님. 환대해주셔서 참말 고맙습니다.” 문걸은 인사를 받으면서 다시 한번 다이로교수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다이로교수는 언제 낮에 보았던 저급적인 시위대장인가 싶게 점잖지 않겠는가. 문걸은 다이로교수 이중적인 몰골을 잘 새겨뒀다가 초상화를 희한하게 그리고 싶었다. 미녀들은 화복자락을 휘날리면서 은은한 “사꾸라” 곡에 맞춰 박수를 짝짝 치고 손을 위로 쳐들었다 내리웠다 하며 일본 춤을 췄다. 아사꼬도 미녀들 춤판에 끼여들어 제법 춤도 잘 추며 돌아갔다. “자, 어서 연회청에 들어가죠.” 다이로교수 안내하에 문걸과 아사꼬는 으리으리한 연회청(기실 널다란 주방)에 들어섰다. 그때 운전수와 보모가 도요다찌프에 실어온 그림 몇폭을 들여왔다. 문걸이 우쭐 일어나면서 그림을 들어 다이로교수한테 올렸다. “전번에 오사카 옛성에 갔다가 감촉받고 호텔에서 총망히 그린 그림입니다. 어수선한대로 교수님께서 기념으로 받아주십시오.” 다이로교수는 류창한 조선어로 반겼다. “오- 참 귀중한 선물이군요.” 문걸은 그림을 하나, 하나 설명해주었다. 첫 그림은 오사카 옛성 꼭대기에 앉은 커다란 까마귀 그림이였다. “일본 분들은 까마귀신을 믿는다고 해서 까마귀를 오사카 옛성에 모셨습니다.” “오마이가. 진짜 창발성있는 화폭입니다. 일본 일부 사람들은 까마귀신을 좋아하죠. 그러나 난 태양신을 더 좋아합니다. 나도 언젠가는 태양신을 뵈러 가야겠는데. 헛참.” 두번째 그림은 사꾸라꽃을 배경으로 까마귀와 백조가 오사까옛성 아래 해자를 배경으로 바레를 추는 장면을 그린 화폭이였다. “백조는 까마귀를 검다고 비웃지만 까마귀는 백조를 겉은 희지만 속은 검다고 조롱하죠.” 문걸의  해설에 다이로교수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허허허. 선명한 대조로군. 기실 까마귀는 아주 효성스러운 샌데. 사람들이 몰라봐주지. 특히 당신들 조선인들이 까마귀를 모르고 나쁘고 불길한 새로 욕하지. ㅉㅉㅉ.” “이 그림 보십시오.” 문걸은 다음 그림을 들어보였다.       소낙비 쏱아지는 날에 까마귀가 높은 사꾸라나무가지에 튼 둥지에서 날개로 털 하나 없는 어미를 날개로 덮어주고 물고기를 먹여주고, 그 상공에서 까마귀 효성에 탄복하며 나래치는 백조. “그래, 바로 그거야. 까마귀는 엄마를 죽을 때까지 효성을 다해 모시는 효성스러운 새지. 참 잘 그렸소. 한편의 동화 같소.” 세번째 그림을 보다가 다이로교수는 상을 찡그렸다. 오사카 옛성 꼭대기에 올라앉은 까마귀한테로 얼룩덜룩한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면서 기여올라가고 있는 장면이였다. 진짜 긴 여운을 남겨주는 그림이였다. “큰일났네. 까마귀한테 독사가 덤벼드는구만?” 다이로교수는 근심어린 눈길로 흘끔 문걸을 곁눈질했다. 숱한 미녀들도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량미간을 찌프렸다. “별로 까마귀한테 상서롭지 못해 보이는데요.” “글쎄 말이야.” 좌중은 각자 의론이 분분했다. 그러나 문걸은 한마디 대구도 하지 않고 목석처럼 묵묵히 앉아 듣기만 했다. 여운은 나름대로 관람객들에게 맡긴다는 말인가? 다이로교수는 박수까지 치면서 좌중을 둘러보았다. “음악을 울려라!” 운전수가 대형음향기를 틀어놓았다. 일본 와까음악이 은은하게 흘렀다. 기분이 전환돼갔다. “연회를 시작합시다.” 그러자 둥그런 료리상에는 일본식 산해진미료리가 상다리 부러지게 올랐다. 포도주에 위스키도 올랐다. 아릿다운 일본 미녀들이 술상을 돌아가면서 술잔에 와인을 찰찰 넘치게 따랐다. 야마구찌 다이로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권주사를 정중히 올렸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귀빈 리문걸 화가 부부를 위해 특별한 연회상을 준비했습니다. 자, 먼저 리문걸선생님 부부의 일본 관광 축하해 한잔 듭시다.” 문걸은 술잔을 들면서 다이로교수한테 재삼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특별한 연회상에는 일본에서는 최고료리라는 교타이모리 스시도 차리지 않았다. 다만 료리상 정면에 특별히 높다란 의자가 놓여 있어 눈길을 끌었다. “캬-“ 다이로교수는 술잔을 놓으면서 짙은 눈섭 아래 퉁방울눈을 굴리면서  문걸을 건너다 보았다. “어때요? 일본 음식문화 괜찮은가요?” “네- 아주 맛있습니다.” 다이로교수는 고마이구이를 한점 집어 문걸의 앞에 놓인 접시에 놓아주었다. “우리 일본 사람들은 바다 물고기만 먹지 민물에서 난 물고기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시내물에 가보면 팔뚝만큼한 물고기들이 이굴거리죠. 진짜 냇물고기 늙어 죽을 지경입니다. 허허허.” 그는 문걸의 눈치를 힐끔 보면서 비아냥거리는 것만 같았다. “리선생, 시간 있으면 물고기그물을 사가지고 시내물에 가보세요. 팔뚝만한 잉어 한마대는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흔해빠진 소릴 치긴? 흥!” 문걸은 이렇게 맞받아치고 싶었다. 그러나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꾹 참고 말았다. “낮에 제가 아끼하바라에서 시위행진했는데요.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네-“ 문걸은 피뜩 춘희 눈치를 살폈다. 다이로교수가 휴지로 기름이 게지지 발린 입술을 닦으면서 횡설수설했다. “동서방 성문화가 다르다지만 우리 일본은 활짝 개방된 동양 선진국가요. 이제 세상 모든 금욕주의자들도 우리 개성해방과 성자유를 리해할 날이 돌아올 겁니다. 나라나 민족이나 살리려면 모두 인류의 아버지인 XXX를 살려내야 합니다. 그게 시들고 죽으면 그 민족의 후대도 시들고 망하게 됩니다. 우리 동양사람들은 대부분 성을 속이고 안 그런 척 하지 않고 뭔가요? 사람이 어디 산 것처럼 삽니까? 사회와 가정 눈치나 보면서 성자유도 누리지 못하고 성욕을 꾹 참고 인생을 헛되게 랑비하지. 정욕을 참으면  병 나죠. 오래  못 살아요. 인생이 길면 얼마나 길다고 그래요?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짧디 짧은 인생에 그렇게  참으면서 피곤하게 살아요?” 춘희는 못 마땅한 눈길을 보냈다. (진짜 짐승 론리! 저런 짐승하구 어떻게 살아? 흥!) 그러나 대남자주의가 횡행하는 일본 습관 때문에 그녀는 숱한 사람들 앞에서 다이로교수를 제지시킬 수는 없었다. 또 그래서는 절대 안되였다. 당장 집 밖에 쫓겨 나가게 될 건 뻔했다. 다이로교수는 문걸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없이 자기 관점을 토설했다. “우린 이제 녀자 그걸 모형도 메고 시위행진 할 거요. 녀자들의 그걸 보호하지 않고서야 남자들의 그게 살아날 수 있소? 무슨 락이 있겠는가? 녀자들 없이야 후대 있을 수 있는가? 우린 모두  녀자 거기서  나오지 않았는가? 허허허. 녀자들의 자유를  보호해야죠. 녀자들이 활짝 개방돼야 우리 후대가 번성하지요. 허허허. 저명한 프로이더  성에 관한 학설이 아주 지당합니다. 모든 건 성으로부터 시작되고 성이야 말로 만가지 위업의 동력입니다. 성이 없으면 인류사회도  없습니다. 황차 식물마저 우리 동물의 위대한 성잠재의식을 답습해 음양이 있지 않습니까? 성해방과 성민주, 성자유, 성개성을 살려야 합니다.” 춘희는 속으로 다이로교수를 질책했다. (당신은 입으로는 성자유와 성해방, 성민주를 보호하자고 부르짖지만요. 왜 내 성자유와 성민주는 보호하잖고 마구 짓밟습니까? 날 밤마다 “강간”하고 내 성자유를 짐승처럼 유린하면서도 뻔뻔스럽긴? 흥!) 그러나 다이로는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일장 연설을 늘여놓았다. “음양조화가 잘 안되면 세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구도 남과 북 량극이 있짆습니까? 남극과 북국이 호상 대립되면서도 함께 공존하면서 지구를 온당하게 돌아가게 합니다. 암컷과 숫컷, 이런 깊고 깊은 철리 어디 가서 듣겠습니까? 이건 의학과학입니다. 미신도 아닙니다. 음란물 절대 아닙니다.허허허. ”       문걸은 언제 정호한테서도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론리는 문걸과는 물과 기름처럼 근본 어울리지 않았다. 만약 정호와 다이로교수 만난다면 진짜 의기투합될 것만 같았다. 다이로교수는 좌중을 둘러보더니 말이 길어진 걸 눈치챘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뜻밖에도 주먹을 불끈 쥐여 휘두르며 목청이 터지게 구호까지 불렀다. “성자유와 성해방 만세! 만만세!” 뒤이어 다이로교수는 손벽까지 짝짝짝 치며 소리쳐댔다. “자, 반년 동안 준비한 최고료리를 올려라!” “음악을 울려라!” “춤도 춰라!” 미녀들이 술상 앞에서 음악에 맞춰 이쁘게 박수를 쨕쨕 치며 일본 춤을 추었다. 문걸은 호기심에 차 눈이 휘둥그래 여기저기 살폈다. (도대체 무슨 료린가?) 그때 화복차람에 곱게 치장한 미녀가 의사 대여섯명의 부축을 받으면서 사뿐사뿐 술상에 다가왔다. (아니, 저게 복화 아닌가!) “자, 술상에 올려라!” 다이로교수의 명이 내렸다. 남녀의사들이 복화를 미리 술상 정면의 높은 걸상에 들어올려 앉혔다. 문걸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또 교타이모리 료린가?) 드디여 복화는 걸상에서 일어나더니 허리에 감은 화복 띠를 풀고 한겹, 한겹 벗어버렸다. 대신 베일에 싸인 백지장 같은 다리가 연분홍조명등 아래 어슴푸레 드러났다. 얊은 베일이 복화의 다리를 살짝 가려주고 있어 보일말락해 퍽 매력이 있었다. 광고사진사들이 급급히 샷타를 눌렀다. 문걸은 눈이 시릴 정도로 보기도 망측해 머리를 숙였다. 그는 미술가이기에 처녀들의 라체모델 많이 보아왔지만 이렇게 숱한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료리상에서 미녀 반라체를 보기는 일본에 와서 딱 두번째였다. 그때 복화가 높은 의자에 앉았다. 우유빛허벅다리가 연분홍조명등 아래 유표하게 드러났다.  그때 다이로교수는 엉거주춤 일어나 컵을 하나 쥐고 복화한테로 다가갔다. 마끼는 보기도 민망해 술좌석에서 오쫄 일어나 연회청에서 나가버렸다. 다이로교수는 컵을 들고 복화 뒤에 들이댔다. “나나, 화이팅!” 다이로교수의 지령에 따라 복화는  힘을 주었다. 싯누런 똥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다이로교수는 급히 컵으로 그 싯누런 똥을 받아냈다. 춘희는 대번에 상을 찡그렸다. 문걸과 아사꼬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이 함박만큼 벌어졌다. “죳또 맛데(좀 기다려.)” 그러자 똥이 더 떨어지지 않았다. 보아하니 복화는 의사들한테서 전문 훈련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다이로교수는 또 의사한테서 컵 두개를 받아 연신 두컵에 복화 뒤에서 떨어지는 싯누런 똥을 받아냈다. 술상에는 구린내가 물씬 풍겼다. 그런데 다이로교수는 정신병자처럼 컵을 들어 코에 대고 냄새부터 흡흡 맡아댔다. “오- 아주 향기롭군. 나나 똥이야 말로 세상에서 젤 영양가 높은 보약이지. 오케이!” 뒤이어 그는 똥을 훌훌 불더니 맛나게 먹어댔다. 그는 거의 한컵을 먹고나서 다른 두 컵을 들어 문걸과 아사꼬한테 내밀었다. “리선생님, 이건 내 반년동안 숱한 돈을 팔아 준비한 일본 최고 보약입니다. 저 나나는 반년 동안 우리 집에 있으면서 영양관리를 잘 했는데요.” 그는 진심에 찬 눈길로 문걸을 건너다보았다. “진짜 내가 개발한 장수약인데요. 자, 한컵씩 드시죠.” 문걸은 상을 찡그리면서 사양했다. “아니, 아니, 이렇게 진귀한 보약을 뒀다가 교수님께서 혼자 드시고 건강장수하십시오.” 아사꼬도 비아냥거렸다. “그래요. 돈도 많이 팔았다는데요. 아까운 보약을 다꾸상 논데 꾸다싸이(많이 마시세요).” 그런데 다이로교수는 이번에는 컵을 들고 복화한테 다가가 새 지령을 내렸다. “나나, 오줌약을 좀 줄 수 있느냐?” “하이(예).” 복화는 다이로교수가 내든 컵에 소변을  보았다. 다이로교수는 연신 컵을 들어 소변을 두 컵이나 더 받아냈다. 그는 누런 오줌 컵을 들고 술상에 다가와 문걸과 아사꼬한테 내밀었다. “자, 저 백설처럼 결백한 나나 몸에서 흘러나온 귀중한 소염약이나 드십시오.” 문걸은 황급히 일어나며 손사래를 쳤다. 춘희는 보다못해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그래 귀빈을 보고 오줌똥을 먹으라는 겁니까?” 다이로교수는 퉁방울눈을 흘겼다. “모르는 소리!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장수약이야.” 말을 마치자 다이로교수는 컵을 들어 단숨에 오줌을 쭉 굽냈다. 아사꼬는 입을 연바하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문걸의 난처한 국면을 풀어주었다. “교수님, 우린 너무 곤해 먼저 실례하겠어요.” 문걸도 제꺽 맞장구를 치면서 일어났다. “네, 네. 우리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춘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요. 제가 리선생님을 모셔다드리고 오죠.” 문걸은 자리를 뜨면서 다이로교수를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진짜 괴짜로군. 저런 더러운 괴짜하구 어떻게 살겠어.) 부지중 문걸은 변태 같은 다이로교수한테 춘희를 맡겨두는 것이 옳은가하는 의문이 저도 몰래 고개를 쳐들었다.       이튿날 춘희는 문걸을 안내해 후지산 구경을 떠났다. 마끼는 전날 아빠가 해괴망측한 행동거지에 너무나도 창피해 후지산관광에 동참하지도 않았다.      춘희도 문걸을 보기는 창피했지만 별수 없어 문걸을 안내해 후지산으로 떠났다. 그녀는 도요다찌프에 앉아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후지산은 도꾜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그들은 도요다찌프를 타고 도꾜에서 서남쪽으로  한시간 좌우 밖에 달리지 않았는데 벌써 산꼭대기에 백설을 뒤집어쓴 후지산의 모습이 바라보였다.      “후지산은 도꾜에서 아주 가깝구만.”     문걸의 말에 춘희는 살풋이 내리 깔았던 눈을 떴다.     “그래요. 80킬로메터 밖에 안돼요. 해발 3776메터인데요. 일본에서 젤 높은 산봉우리죠.” 그녀는 후지산 기슭에 구불구불 빨려들어간 도로 량 옆의 수림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수림이 바로 이전에 제가 말하던 후지산 사망림입니다.” 그제야 문걸은 수림을 그저 스쳐지나보낼 수 없었다. “수림의 적송을 살펴봐요. 피끗피끗 빨간 댕기 보이죠?’ 문걸이 내다보니 적송에 드문드문 빨간 댕기 보였다. “저 빨간 댕기는 모두 이전에 자살하러 왔던 사람들이 자살 전에 매놓은 댕기입니다.” 춘희 설명을 들으면서 문걸은 피끗피끗 뒤로 사라지는 빨간 댕기를 그저 지나칠 수 없었다. “일본 사람들은 괴짜 많아요.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요. 돈 많은 일부 괴짜 부호들은 세상 해보지 못한 걸 다 해보고 후지산에 와서 죽으려고 하죠. 그들은 일본에서 제일 높은 화산인 후지산에 와서 죽으면 하늘로 날아올라가 태양신을 뵙고 극락세계에 올라가게 된다고 여기죠.” 문걸은 저도 몰래 감탄했다. “진짜 허무하구만.” 춘희는 걀죽한 얼굴에 허구푼 미소를 지었다. “네. 창피한 일이지만요. 어제 봤지요.그들은 개성해방을 주장하고 자유와 인권, 무슨 민주를 떠들어대지요. 자기가 자유와 인권, 무슨 민주를 누리려고 타국이거나 남의 자유와 인권, 민주를 유린하는 것이 맞습니까? 저자들이 웨치는 자유와 민주, 인권, 개성해방은 모두 타국과 남을 짓밟고 유린하는 그런 독재적인 헛된 자유와 민주, 인권, 개성해방입니다.” 춘희가 내놓고 다이로교수를 비난하는 것에 문걸은 저으기 놀랐다. “다이로교수는 생물학자지만요. 괴상하게 생물과학이나 성기나 다 남이 해보지 못한 방법으로 연구하려고 들지요. 어디 유명한 생물학자 같은가요. 다이로교수는  해괴망측한 시위행진마저 꺼리낌없이 도꾜 중심가에서 하잖아요? 엊저녁 다이로교수가 연회장에서 한 짓을 제가 대신 사과드려요. 어쩜 해외에서 온 리선생님한테 똥을 다 대접한단 말인가요?” 문걸도 너무 했다하면서도 넓은 마음으로 량해했다. “괜찮소. 그는 진짜 진심으로 저에게 최고대접을 하느라고 그런게 아니고 뭐요.” “그래도 그렇지. 똥대접을 어찌 최고대접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문걸은 뭐나 좋게 생각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 다이로교수는 자기 먹자고 준비했지. 딱 나를 대접하자고 준비한 건 아니잖소?” 문걸의 말에 춘희도 동감이 가긴 갔다. “하긴 그래요. 그가 보약으로 먹으려고 반년 전부터 복화를 데려다가 영양조절해주면서 준비한 게 아니고 뭡니까? 절대 오해하진 말아요.” 춘희는 문걸이 널리 량해했지만 속으로는 미안했다. 도요다찌프는 산기슭의 사망림을 벗어나 후지산으로 굽이굽이 달려올라가고 있었다. 문걸이 차창 밖을 내다보니 산중턱으로 치달아올라갈 수록 화산재가 뒤덮인 민둥산이여서 볼 품 없었다. 춘희는 굳었던 얼굴 살을 좀 풀며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지금 똥을 먹는 일본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상해요. 일본 부자들은 세상 하고 싶은 일을 다해보고 이젠 똥을 먹어보지 못한게 한인가 봐요. 일부 일본 부자들은 장수하려고 샘물 대신 오줌을 샘물병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마셔요. 말로는 오줌이 소염작용한다고 해요.” 문걸은 너무나도 억이 막혀 도리머리를 흔들면서도 계속 듣기만 했다. “일부 부자들은 다이로교수처럼 몇백만엔이나 주고 숫처녀를 집에 데려다가 반년동안이나 과일을 먹이면서 영양조절을 한 후 똥을 받아 먹지요. 그 똥이 영양가 높다나요. 성기도 살굴 수 있구요.” 춘희는 창피한 것도 잊고 문걸이 알아라고 숨기지 않고 토설했다. “다이로교수는 그게 말을 잘 듣지 않으니 숫처녀 똥이라도 처먹고 시들어가는 그걸 살구려고 들죠. 그래서 제자들과 함께 성기도 메고 시위행진을 하죠. 심지어 의과대학교 생물화학연구실에서도 전문 남녀생식기만 가지고 별의별 연구를 다하죠. 그래도 자기 건 잘 살려내지 못해 애나는 모양이죠. 그래서 괴짜 성변태로 돼버렸습니다…” 아사꼬가 듣다못해 한마디 톡 내쏘아붙였다. “그런 변태하고 어떻게 살아요? 아예 리혼해버리고 우리 리선생님과 사세요.” “무슨 허튼 소릴!” 문걸은 손으로 아사꼬 허벅다리를 툭 쳤다. 춘희는 그저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문걸은 춘희 토설하는 하소연을 듣고서야 춘희가 다이로교수를 자꾸 피해 고향에 돌아가 사는 의문도 좀 풀리는 것 같았다. 또 그녀가 가발을 쓰고 쌍겹눈을 해가지고 등산팀에 다니고 자기와 함께 사교무청에나 드나들면서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것도 좀 리해돼갔다. (헤이, 그런 변태하구 어떻게 살아?) 문걸은 춘희가 자기 앞에서 다이로교수의 험담을 하는 것에 다시한번 놀랐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녀의 인생이 불쌍했다. 그녀는 진짜 자기를 희생해 마끼를 다이로교수네 집에 딸로 남겨 앞날을 기약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도 짐작이 갔다. 도요다찌프가 후지산 산중턱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자오록한 안개가 휩싸여 눈앞에 주먹이 날아들어와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였다. (하늘이 후지산을 보지 못하게 심술을 부리는구나.) 아사꼬는 자오록한 안개를 둘러보면서 또 뭐라고 말하려다가 문걸의 눈치를 할끔 쳐다보고는 입술만 다시였다. “숨이 차게 달려왔는데요. 좀 쉬면서 돌아보지요.” 춘희 말에 모두 차에서 내렸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후지산 꼭대기 모습은 자오록한 안개 속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춘희는 그들을 데리고 “후지산”이란 글이 새겨진 바위돌 앞에 가서 기념사진이나 한장 찍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안개가 사라질 거 같지 않아요. 후에 또 와서 후지산 꼭대기를 구경하지요. 등산로가 험한데요. 자칫 안개 점점 더 끼면 차도 내려가기도 힘들어요.” 문걸은 아쉬운대로 후지산 중턱에 있는 유람구 화장실에 들어가 오줌이나 싸놓고 도요다찌프에 올랐다. 도요다찌프는 험한 령길로 용케도 굽이굽이 내려왔다. 산기슭에 거의 이르자 안개가 옅어지면서 푸르른 적송이 어슴프레 보이기 시작하였다. 문걸은 사망림에 이르자 무심히 지나칠 수 없었다. 점점 안개가 걷히자  도요다찌프는 속도를 내 달리기 시작하였다. 빽- 갑자기 도요다찌프가 급정거했다. “난데(어째)?” 춘희가 물었다. “미마쇼. 슈닌노 찌프데스네(주인의 찌픈데요.)” 춘희도 앞에 세워놓은 도요다찌프를 보고 놀랐다. “아. 소우데스네(그렇군요). 하야꾸(빨리)! 잇데 미마쇼(가서 봅시다)!” 문걸도 뒤따라 차에서 내리면서 저으기 근심했다. (다이로교수가 사망림에 와서 뭘 해?) 춘희는 운전수와 함께 사망림에 들어가며 살피면서 먼저 다이로교수의 도요다찌프 운전수한테 전화를 걸었다. “오늘 후지산에 다이로교수를 데리고 왔나요?” “아니, 저 보고 오늘 쉬라고 했어요. 왜?” “다이로교수 찌프 후지산 사망림 길에 서 있군요.” “아니, 그럼. 제가 곧 갈게요.” 춘희는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다이로교수는 자살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녀는 대성통곡하면서 수림에 대고 고함쳤다. “다이로선생님!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제가 왔어요!” 그때 운전수가 고함쳤다. “부인, 이걸 보세요.” 운전수는 한 적송에 매여 있는 빨간 댕기를 풀어냈다. 춘희가 다가가보니 분명 다이로교수 명함과 함께 유언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난 숫처녀 똥까지 다 먹어보았다. 이젠 죽어도 한이 없어. 죽는 걸 내놓고 이 세상에  자극받을만한게 하나도 없다. 난 안락사약을 먹고 죽는 걸 체험한 후 후지산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태양신을 뵙고 극락세계에 들어갈 거야.                              야마구찌 다이로       “안돼! 다이로교수!”    춘희는 정작 다이로교수가 자살의 길을 선택하자 량심의 가책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변태가 언제 죽겠는가 고대했었다. 그럼 지긋지긋한 시달림도 끝나고 딸과 함께 다이로교수의 유산을 상속받아 홀가분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이 시각 그녀는 다이로교수한테 죄송했다. 그녀는 생전에 다이로교수에게서 받은 사랑과 은혜에 아무런 보답도 해주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웠다. 그녀는 울고 불며 사망림을 헤매면서 다이로교수를 찾았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꼭 주인님이 있을 겁니다.” 그들이 등산길에서 사망수림으로 한 백메터 들어갔을 때였다. “부인! 저길 보십시오.” 모두들 일제히 운전수가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다이로교수가 글쎄 한 적송나무에 기대에 앉아 있었다. “주인님을 찾았습니다!” 춘희랑 달려가보니 다이로교수는 눈을 살며시 감고 똑마치 적송나무에 기대 조용히 자는 것만 같았다. “선생님!” 춘희는 달려나가 다이로교수를 붙안고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그녀는 인차 다이로교수의 목동맥에 손가락을 대보았다. “빨리! 병원에 호송합시다!” “하이(예)!” 운전수는 다급히 다이로교수를 업고 사망림을 벗어나갔다. 춘희는 뒤에서 업혀 가는 다이로교수의 인중을 눌러보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문걸은 흐리멍텅한 구름이 감도는 비운의 후지산을 쳐다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교수가 어쩜 미신을 다 믿어? 후지산이 일본에서 젤 높다만, 후지산 사망림에 와서 자살하면 태양신을 볼 수 있다고 믿는가?  허허, 너무나도 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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