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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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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대하소설 졸혼(31) 김장혁 댓글:  조회:1079  추천:0  2022-08-10
  대하소설               졸혼                  김장혁                      41. 괴짜         아침 햇살이 침대머리를 비추며 춘희를 깨웠다. 춘희는 너무 피곤해 늦잠을 자다가 간신히 눈을 떴다. 옆에는 다이로교수가 코를 드렁드렁 골고 있었다.  춘희는 어제 밤에 다이로교수한테 온밤 “강간”당하고나니 온몸이 들쑤셔나고 녹작지근해났다. 그녀는 다이로교수의 손을 치우고 살며시 일어나 잠옷을 여몄다. 그런데 허리 너무 아파 한 손으로는 허리를 짚고 한 손으로는 벽을 짚고서야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녀는 허리 너무 아파 살살 주물렀다.        춘희는 샘물을 한컵 받아 꿀꺽꿀꺽 마시고나서야 숨이 좀 트이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거울 앞에 다가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춰올리다가 초췌해진 얼굴을 보고 놀랐다.      그녀는 살며시 샤와실에 들어가 샤와를 틀어놓고 엉망진창이 된 몸을 샤와하면서 복잡한 마음을 달랬다. 그녀는 아주 모순된 심리상태에 빠진 채 다이로교수와 그럭저럭 되는대로 살고 있었다. 다이로교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게 말을 잘 듣지 않자 점점 변태적으로 놀았다. 섹스에 대한 요구도 점점 다양해지고 높아갔다. “우리 일본 녀성들은 남편이 퇴근하면 남편을 최대한 기쁘게 해드리지. 남편이 집에 도착할 시간 전에 문어귀에 나와 대기하지. 가방을 받아든다, 옷을 벗겨 건다, 신을 벗겨준다 하면서 분주히 돌아치지. 어디 그뿐인가? 어떻게 오늘 밤엔 남편의 피곤을 풀어드리고 성욕을 만족시킬까 미리 잘 궁리해둔단 말이야.” 다이로교수가 늘 두덜거리는 말이다. “어떤 때 남편이 혹시 너무 일찌기 퇴근하거나 얼굴이 어둡고 우울해 집에 돌아오거나 하면 안해는 어쩌는지 아는가? 좀 배워두라고. 안해는 남편 보고 낮에 바깥에서 기분상한 일이 있느냐고 문안하면서 기분 좋게 만드느라고 남편 주위에서 섬섬거리며 맴돌아치지.” 다이로교수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대륙 녀성들은 뭔가? 그저 남편이 와도 무뚝뚝해 왔는지, 갔는지 문안은커녕 근본 눈길조차 돌리지도 않는단 말이야.” 이건 춘희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뭐? 남녀평등을 주장한다는가. 그러면서 남편을 청소까지 하라고 부려먹고 짜증나게 잔소리만 한단 말이야. 남편과 달려들어 싸우잖으면 다 괜찮은게라면서? 흥! 세상에, 그게 무슨 안해란 말인가?” 다이로교수는 날따라 체위변화도 아주 염오스러울만치 변덕스러워져갔다. 날따라 변태적으로 변해가는 다이로교수를 대할 때마다 래일이라도 갈라지고 싶었다. (이 늙다리는 주정뱅이 전 남편보다 더 한 바람둥이고 변태야. 하루도 더 삐치지 못하겠어.) 춘희는 래일이라도 짐승 같은 다이로교수와 갈라지고 싶었다. 그러나 딸애  전도를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할수도 없었다. 단지 다이로교수 재산 때문이 아니였다. 다이로교수는 그녀가 류학하는 7년 동안 여러 모로 정성들여 도와준 지도교수이자 은인이 아닌가. 춘희가 앓을 때도 다이로교수는 친오빠처럼 관심해주었고 위병으로 앓을 때 자기 소속 병원에 입원시키고 치료비까지 다 대주면서 직접 정성을 다해 치료해준 의사였다. 그녀가 7년 동안 도꾜 모 의과대학에서 석사, 박사 공부할 때 앞길을 밝혀준 밝은 등대 같은 지도교수였다. 또 학비를 몽땅 대준 은인이였다. 그 은공을 생각해서라도 다이로교수를 버릴 수는 없었다. (절대 배은망덕할 순 없어. 그런데 언제까지 다이로한테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지긋지긋하게 살아야 해? 하루가 삼추 같아. 이런 생활 언제면 끝날가? 이것도 내 타고난 운명이겠지.) 그러기에 그녀는 그저 보은하고 딸애를 위해 자기 청춘을 바쳐왔다. 그런데 이번에 와서 다이로교수가 어찌나 밤마다 변태적으로 노는지 하루 밤도 더 배기지 못할 지경이였다. 그녀는 이전에 그랬듯이 또 다이로교수한테 “휴가”를 맡고 하루라도 빨리 고향에 돌아가 병을 보면서 피신해 있고 싶었다. (이제 며칠 있으면 문걸씨와 함께 고향에 돌아가 피신해버려야지.) 그녀는 다이로교수와의 결혼생활에 신물이 났다. 이젠 진짜 졸혼하고 홀가분하게 자기만의 삶을 살고 싶었다. 그녀는 고즈넉한 자기 생활에 뛰여든 문걸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남편감이야 리문걸선생이 젤 훌륭한 분이지. 본댁을 대하는 것만 봐도 그렇고. 리혼한 암환자 본댁을 살리려고 얼마나 진심으로 애썼는가. 화실을 다 팔고 국제인체화전시회 수상 상금까지 다 안해 치료비로 주었지. 심지어 한국에 나와 건설현장에서 삼복염천에 고된 일을 다해 치료비를 보충하려고 애썼지. 안해는 자기를 수십년 동안 속이고 살아왔지만 리선생님은 그런줄도 모르고 안해를 마지막까지 살리려고 애쓰고 지극한 정성과 사랑을 몰부었지. 진짜 리선생님은 안해를 진심으로 사랑한 어리무던한 남편이였지. 그는 진짜 진심으로 참사랑을 추구하는 분이야. 바람기도 없는 남자 같아. 지금 개방세월에 진짜 찾기 힘든 금욕주의자, 참사랑주의자야.) 그녀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았다. (어머, 내 리선생님과 결혼하려고 이래? 아니야, 이젠 결혼이란 말만 나와도  신물나. 진짜 졸혼하고 나만의 인생을 살고파.) 그러나 그녀는 자기 백설 같은 몸매와 한창 피여나는 홍조오른 이쁜 얼굴을 들여다보는 순간 또 모순되는 심리에 빠졌다. (그래, 마흔을 갓 넘어선 한창 나이에 청상과부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럼 또 재혼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저 리문걸씨처럼 정파답고 참사랑을 추구하는 남친이나 친해 사교무나 추면서 보내야 하는가?) 춘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자기 마음과 몸이 점점 리탈되고 있는 것을 느겼다. 몸은 다이로교수한테 얽매여 있는데 마음은 점점 리문걸선생한테 가고 있는 감을 느끼게 되였다. (다이로교수는  절대 날 오랫동안 고향에 놔두지 않을 거야. 그는 내 고향에 온 틈을 타서 바깥에서 더 젋고 이쁜 화류계 기생들과 마음껏 즐겼을 거야. 그러려고 날 고향에 보냈을 뿐이야. 절대 날 완전히 놓아주지 않을 거야.) 다이로교수는 명예를 아주 중히 여기는 유명한 생물학자였다. 그는 절대로 사회에서나 대학교에서 안해도 없는 홀아비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춘희는 거울을 다시 들여다보며 온 몸과 얼굴에 흠집이 없는가 꼼꼼히 살피면서 복잡한 마음을 정리해나갔다. 그러나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 것을 서서히 느꼈다. 어쩐지 모순된 자기 마음을 보고 서글프기만 했다. (나도 마끼 전도나 다이로교수의 은정을 봐서 절대 다이로교수와 리혼할 순 없어. 량심에 허락되지 않아. 그런데 다이로교수는 자기 애를 갖자고 하잖는가. 그럼 마끼는 한쪽으로 밀려나게 되고. 장차 재산분쟁도 생길게 아닌가. 절대 애는 낳아줄 수 없어.” 춘희는 이를 옥물었다. “리문걸씨와 등산하러 가서 눈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린 서로 참사랑을 고백하지 않았던가. 마음의 문을 삐끗 열어보였잖아. 롱담도 아니고 생사선에서 헤매는 절망의 협곡 눈구덩이에서 아주 진지하게 서로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않았는가. 이것도 운명이겠지. 이제 와서 엎지른 물을 어쩐단 말인가?” 그녀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당장 무인지경 협곡에서 죽는가 해서 너무나도 경솔했지. 그럼 나는 어째야 한단 말인가.) 춘희는 좀처럼 마음이 한곬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그녀는 잠옷을 바로잡고 샤와실에서 나와 주방으로 들어갔다. 보모가 한창 아침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하이요 고자이마쓰(안녕하세요)?” “오하이요 고자이마쓰.” 춘희는 손을 걷고 나섰다. “아침밥 다 됐어요. 마님께선 교수님을 모시고 나와 식사만 하면 돼요.” 보모의 말에 춘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죠. 오랜만에 왔는데요. 교수님께서 젤 좋아하는 카레를 대접하고 싶어요.” “그래요? 수고하겠어요.” 춘희는 땀을 흘리면서 한참 서둘러 카레를 손수 지어놓았다. 그녀가 손을 씻고 주방에서 나오는데 복화가 침실에서 나와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이 피뜩 보였다. 춘희는 복화의 눈인사를 받고 마끼 침실로 가면서 속궁리를 돌렸다. (다이로교수가 복화를 특별히 관심하고 있잖아. 영양실조를 다 근심하면서. 옛날 다이로교수는 나한테 관심을 돌리더니 내 심신을 점유했잖아. 안돼. 절대 안돼. 복화는 마끼에겐 아주 위험한 라이벌이야. 다이로는 복화를 나꿔채고 내하구 리혼할 수도 있어. 이 일을 어쩐담.) 그녀는 문을 떼고 들어가 한창 자고 있는 마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얘를 위해서라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어떻게 하나 다이로와 복화를 떼놓아야 해. 복화를 하루 빨리 내보내야 해.)  춘희는 곤하게 자는 마끼한테 이불을 여며주고 나와 곧추 자기 침실로 돌아갔다. 그녀는 금방 부시시 일어난 다이로를 보고 구십도경례를 올렸다. “오하이요 고자이마쓰.” “음.” 춘희는 시원한 샘물을 한컵 따라다 드렸다. “인차 식사하시죠. 선생님께서 젤 반가워하는 카레를 지어놓았어요.” “그래? 오랜만인데. 춘희 지은 카레를 다 먹게 됐군. 난 춘희 카레를 젤 좋아 해.” 다이로는 퉁방울눈을 치켜뜨며 희죽이 웃었다. “엊저녁에 재밌게 놀았지?” “네- 그런데요. 너무 과격해서 견디기 힘들었어요. 허리도 좀 아프고.” 다이로는 춘희 허리를 끌어안고 이마에 뻑 키스를 안겼다. “스미마쎈(미안해).” “어서 샤와하고 진지 드세요.” “오- 그러지.” 다이로교수는 그제야 침대에서 일어나 잠옷을 입은 채 샤와실로 들어갔다.     한참 후 주방에서 아침식사가 시작되였다.  춘희는 손수 정성들여 지은 카레를 한접시 담아 다이로한테 드렸다. ‘제가 지은 카렌데요. 선생님, 맛있게 드세요.” “감사하네. 맛있게 먹겠어. 허허.” 다이로는 카레접시를 들여다보면서 희죽이 웃으며 연신 감탄했다. “오- 카래 색갈도 곱고 향도 진하구만. 일본에 와서 카레 지을줄까지 다 배웠구만. 참, 맛있게 먹겠소. 감사하오.” 다이로는 숟가락을 들어 카레부터 한술 퍼 먹어보았다. “아- 오이씨이(맛있구만.)” 그는 카레를 먹으며 복화를 건너다보았다. “복화, 이 맛있는 걸 먹지 못하게 돼 마음이 아프다.’ 춘희는 대뜸 마끼한테 카레를 무룩이 담은 접시를 내밀었다. “마끼야, 네나 많이 먹어라.” 그제야 다이로는 실수한 걸 느끼고 마끼한테 눈길을 돌렸다. “마끼야, 어서 카레 많이 먹어. 진짜 맛있어.” 한마디 마치자 다이로는 또 눈길을 복화한테 돌렸다. “복화는 바나나나 사과를 많이 먹어.” “네- 고맙습니다.” 인물이나 체격을 보아도 복화는 마끼보다 훨씬 월등했다. 춘희는 슬그머니 질투했다. “이후엔 복화는 따로 먹어라.” 춘희 뜻밖의 말에 다이로는 퉁방울눈을 치켜떴다. “왜?” “카레도 먹지 못하는데 괜히 군침만 흘리게 하지 맙시다.” “안돼. 난 복화를 보면서 먹어야 밥맛이 있단 말이야.” “뭐래요?’ 춘희는 놀라며 손으로 자기 입을 막았다. 언성이 꽤나 높았던 것이다. (이 령감태기 진짜 복화한테 미쳤구나.) 다이로교수는 카레를 질근질근 씹으면서 한마디 더 했다. “복화 이름을 고치자.” “왜?” 춘희가 묻자 다이로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복화. 조선인 이름이야. 일본에서 살려면 일본 이름 달아야지.” 복화가 좋아라고 끼여들어 물었다. “그럼 저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가요?” 다이로교수는 미리 생각해둔 이름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나나. 어때?” 복화는 환성을 질렀다. “나나, 이쁜 이름인데요. 참 좋아요.” 춘희와 마끼는 모두 질투의 눈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마끼도 아빠가 자기보다 복화를 더 이뻐하는 것 같아 슬그머니 질투났던 것이다. 다이로교수는 그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보모가 올린 고래고기점을 포크로 찍어 들면서 뜻밖의 말을 했다. “나나, 오늘 남동생을 우리 집에 데려 오너라.” “뭐라구요?” 춘희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안돼요. 복화네 남동생 잘 침실이 어데 있는가요?” 다이로는 춘희한테 눈길을 흘겼다. “나나, 부모 없이 동생을 데리고 살면서 공부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하는가? 의사라는 사람이, 인도주의는 어데 갔어? 흥!” 그래도 춘희는 견결히 막아나섰다. “우리 집은 그런 인정 베푸는 교회당이나 고아원이 아닌데요. 복화 반년 있는다니 놔두었는데. 이젠 동생까지 끌어들여요?” 복화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일어났다. “교수님의 성의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데려오지 않겠습니다. 저도 이제 반년만 차면 하던 일 끝마치고 제 세집에 돌아가겠습니다. 동생이 절 기다리고 있어요.” 말을 마치자 복화는 자기 침실로 돌아갔다. 마끼가 뒤따라나갔다. 다이로는 숟가락을 밥상에 팽개치면서 성을 냈다. “개수작 작작 햇! 네가 뭐 돼서 나나 오누이를 어쩌꾸 저쩌구 해?! 응?!” 춘희는 가정보모 보기 민망해 꾹 참고 다이로 팔을 끼고 침실로 돌아갔다. 침실문을 꼭 닫자 춘희도 물러서지 않았다. “난 당신 마누란데요. 고만한 권한도 없는가요? 침실 모자라 마끼하구 복화 한 침실에서 자는데 복화 남동생까지 끌어들여 어데서 자게 한단 말인가요?” 다이로는 고집을 부렸다. “정 잘 침실 없으면 나나 오누이 한 침실에서 자고 마끼 우리 침실에서 자면 되지.” “말이나 되는가요?” 춘희는 허구픈 웃음을 지으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복화 오누이를 한사코 끌어들이려고 해요?” “지금 날 의심해? 난 순전히 인도주의를 발휘할 뿐이야.” “픽, 인도주의? 다른 생각 없는가요?” “이전에 앓는 널 관심하듯이 걔들 오누이를 관심할 뿐이야. 부모도 없이 이국 타향에서 의지가지없이 헤매는 오누이 불쌍하지도 않아? 랭혈동물이라구야. 참.” 춘희도 한발 물러섰다. “글쎄 오누이를 관심하는 건 가상하지만요. 우리 집 형편이 그렇지 못하잖아요? 집에 끌어들이지 않고서도 오누이를 돌봐줄수도 있잖는가요?” “어떻게?” “세집값을 얼마간 대준다든가.” “이전에 춘희를 왜 우리 집에 데려왔어?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우리 집에 와 있으면서 박사공부까지 시키잖았어?” “거야 그랬죠.” “그럼 왜 오누이는 안돼? 난 걔들도 춘희나 마끼처럼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공부를 시키고 싶어.” “실제형편에 어디 맞는가요? 당신 날마다 밤 그러잖고는 견디지 못하면서 다 큰 딸과 어떻게 한 방에서 자는가요? 말도 안돼요.” 다이로도 더 할 말이 없었다. 나중에 복화 오누이 세집 값을 얼마간 대주기로 하는것으로 잠시 결론지었다. 춘희는 문걸더러 도꾜를 구경하게 하려고 아침 일찌기 마끼와 함게 도요다찌프에 앉아 문걸이 든 호텔로 떠났다.  그녀는 쓸데 없이 다이로한테 의심받지 않으려고 마끼를 데리고 갔다. 또 문걸과 단둘이 도꾜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혹시 문걸이 그들 사이 잠재한 민감한 문제를 물을가봐 겁나기도 했다. 그녀는 진짜 문걸한테 복잡한 자기 내심을 드러낼가봐 저으기 걱정됐던 것이다. 그들 셋은 호텔에서 만나 서로 반갑게 인사했다. 그들은 문걸이 오사까에서 정성들여 그린 그림 몇폭을 도요다찌프 후미상자에 싣고 먼저 해변가 도꾜만으로 달렸다. 일본은 땅이 적어 귀하기로 금값이였다. 특히 도꾜 시내에서는 땅이 더욱 귀중했다. 그리하여 도꾜시에서는 도꾜만의 바다를 메워나가면서 고층건물과 아파트를 건축하였다. 문걸은 춘희와 마끼의 안내하에 도꾜만 항구에서 유람선을 타고 푸른 파도를 헤가르면서 고층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대안으로 헤여갔다. 시원한 바다바람에 심신을 적시노라니 문걸이나 춘희나 모두 심신이 홀가분해졌다. 모든 고민과 스트레스가 다 바다바람에 흩날려가는 것만 같아 기분이 아주 좋았다. 한참 후 대안에 이르러 그들은 무인조종궤도차를 타고 몇십분 달렸다. 드디여 도요다차전시관에 이르렀다. 천정이 아주 높고 광장 같은 으리으리한 전시관에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도요다찌프와 도요다승용차가 전시돼 있었다. 전시관 별관에 천황이 탔던 으리으리한 도요다찌프와 도요다승용차도 특별히 전시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황의 도요다승용차는 춘희가 문걸을 싣고 달려온 도요다찌프와 똑 같은 것이 아닌가. “지금 일본 도요다회사에선 수소차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요.” 춘희는 수소차 전시대로 문걸을 데리고 갔다. “장차 물에서 축출한 수소로 휘발유를 대신해 차를 움직이고 수소로 전기를 내서 아프트조명까지 한대요. 그럼 에너지위기도 극복할 수 있고 지구 생태환경개선에도 좋을 거죠. 가스배출량이 훨씬 줄어들어 지구온난화도 완화할 수도 있어 일거량득이죠.” 문걸은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문걸은 천황이 탔던 도요다승용차에 다가가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아보았다. 참 호화로운 도요다찌프였다. 춘희 말에 의하면. 일본 차값이 아주 눅다고 했다. 천황이 탔던 도요다승용차도 일본에서 인민페로 100만원 좀 더 주면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고향에서 일본 차를  사려면 관세가 많이 붙어 엄청 비싸진다고 했다. 문걸은 머리를 끄덕이며 전시관에서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그들이 도요다전시관에서 나오니 벌써 운전수가 도요다찌프를 몰고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도요다찌프를 타고 도꾜 시내 중심가 -아끼하바라(秋叶原) 상업거리에 달려갔다. 문걸은 춘희 안내하에 아사꼬와 마끼와 함께 도꾜 중심전자상업거리 아끼하바라에서 여기저기 전자상점들에 들러보았다. 그들이 한창 아끼하바라전자상업거리를 거닐 때 저 쪽에서 뭔가 떠메고 시위행진하는 한패의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였다. 좀 먼 거리에서 보니 시위대에서 하늘을 짜를듯한 커다란 상아조각 같은 것을 떠멘 것 같았다. 그런데 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춘희와 문걸 그리고 마끼의 눈을 의심케 할 정도였다. 글쎄 시위대에서는 하늘을 찌른 커다란 남자 그걸  떠메고 웃기는 구호까지 목청  터지게 부르고 있지 않겟는가. “인류의 아버지  XXX를 보호하자!” “시들어가는 XXX를 꿋꿋하게 살리자!” 누군가 구호를 부르자 뒤에서 조각상을 떠멘 숱한 사람들이 따라 불렀다. 어디 그뿐인가. 춘희와 마끼는 눈이 휘둥그래 자기들의 눈을 의심했다. 글쎄 시위대 젤 앞에서 거폭의 XXX조각상을 떠멘 사람은 다름 아닌 야마구찌 다이로교수와 복화가 아니겠는가! 눈을 부비고 다시 봐도 퉁퉁한 얼굴에 콧수염을 기른 다이로교수 맞았다. “어우, 미치겠어. 못살아!” 마끼는 창피해 손으로 눈을 가리며 외면하였다. 그녀는 아빠가 지나가기를 기다려 손을 치우고 시위대오를 다시 찬찬히 여겨보았다. 거대한 거시기를 떠멘 20여명은 거의 다 아빠의 남녀제자들이 아니면 자기와 복화의 남녀동기들이 아니겠는가. 마끼는 어머니를 돌아보면서 나직이 종알거렸다. “엄마, 오늘 날 데리고 리선생님이랑 관광 나오길 잘했어요. 아님, 아빤 꼭 나보고 저 시위대에 끼여들라고 했을 거예요. 아빤 날 가만두지 않았을 거예요.” 춘희는 문걸을 보기도 민망해 마끼를 끌고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때 다이로가 이쪽을 피뜩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제꺽 눈길을 돌리더니 가슴을 쑥 내밀고 머리를 쳐들고 의연히 보기도 민망한 조각상을 떠메고 앞으로 나아갔다. (미쳤어. 다이로는 정신나갔어. 아무리 자기 그게 말을 잘 안 듣는다고 저런 망칙한 시위행진까지 하다니? 창피해 못살겠어.) 그때 젤 앞에 다이로와 복화가 나란히  서서 그 조각상을 떠메고 나가면서 구호를 불렀다. “인류의 부친 XXX를 살려내라!” “XXX 자유를 보호하자!” “성자유와 성해방을 방해하지 말라!” 마끼는 눈이 휘둥그래 복화를 쏘아보면서 중얼거렸다. “아니, 복화, 어쩜 창피한줄도 모르고 저럴 수 있어?” 춘희도 멀어져가는 시위대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복화는 보기와는 달리 괴짜야. 아무리 돈이 딸려도 어쩜?” 문걸과 아사꼬는 다이로를 외면한 채 못 본척하며 전자상점에 들어가버렸다. 문걸은 금욕주의자, 참사랑주의자라고 불리웠다. 그는  진짜 그런 저급적인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아사꼬는 옆에서 문걸을 말리였다. “피하긴, 기실 인간은 동물의 속성을 버릴 수 없어요. 성을 떠나 생존할 수 있는가요? 사는게 무슨 멋인가요?” “작작 자본주의 성자유와 성문화를 불어대라.” “호호호. 리선생님도, 현시대 봉건통이라구야. 원, 참!” 아사꼬는 문걸의 팔을 끼면서 아양을 떨었다. “솔직히 말해 리선생님은 아사꼬를 왜 떠나지 못해요? 바로 날마다 퐁퐁 솟구치는 정욕을 해소할 길이 없어 그런 거 아닌가요?” “그만해.” “아니, 속이지 말고 말하세요. 이번에 일본엔 왜 왔는가요? 바로 뽕도 따고 님고 보고 그런 거 아닌가요?” 문걸은 주춤 멈춰서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춘희와 야마구찌 마끼가 아직도 거리에 서서 시위대오 뒤꽁무니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사꼬는 계속 종알거렸다. “이번에 괜히 일본에 왔어요. 춘희박사도 붙잡지 못하고 오히려 다이로교수한테 톡톡이 당하지 않는가 보세요. 리선생님은 근본 다이로교수의 라이벌이 못돼요. 그는 사회 위망도 있고 돈도 많은 부호 아닌가요?” “입 다물지 못해?” “이젠 야마구찌 다이로 가족을 알만큼 알았겠으니깐. 춘희박사 포기하는게 좋을 거 같애요.” “입 좀 다물지 못해?” 문걸이 성내서야 아사꼬는 입귀를 비쭉거리더니 빗장을 질렀다. 문걸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이로교수는 진짜 괴짜야.) 순간, 비참한 춘희박사 인생이 불쌍해 콧마루가 시큼해났다.  
266    대하소설 졸혼(30) 김장혁 댓글:  조회:1149  추천:0  2022-08-01
대하소설 卒婚                                     40. 저승사자   최혜영 국장은 정호라고 서명한 괴상한 메시지를 받고 머리가 삼검불처럼 복잡했다. 그는 사무실에서 왔다 갔다 거닐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이 메시지는 확실히 정호가 보낸 건가? 자기 위치 탄로날 걸 뻔히 알면서도 이런 메시지를 보냈단 말인가? 그런 바보는 아닌데. 관대처리를 받자고 허병칠을 고발하는 건가?) 혜영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호 의도를 잘 알 수 없었다. (정희가 허병칠을 보고 60만원 내라고 협박한 건 사실이야. 정호가 박국장한테도 적발했지. 그때도 허병칠이 살인협의가 있다고 제보했지.) 사실 정호는 확실히 숱한 범죄자들의 죄행을 적발했다. 하여 최혜영 국장을 비롯한 검사들이 오청룡 국장, 리굉팔 총경리, 정희 부총경리, 강도 혐의자 오정룡, 허병칠, 나영 등 숱한 부패분자들의 사건을 수사해내는데 도움이 아주 컸다. (그런데 왜 도망쳐? 단지 보마찌프에 뒀던 금은보화 때문일가? 아니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무슨 죄행이라도 있는가?) 공안국 정보과에서 수집한 핸드폰위치추적정보에 의하면, 허병칠을 적발한 메시지를 보낸 핸드폰은 지금 로씨야 변경 쪽에 위치한 수분하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로씨야로 도망치려는 건가?) 최혜영 국장은 이미 수사일군들을 파견해 핸드폰 이동위치에 따라 추격하게 했다. 그녀는 동시에 공안국 박동묵 국장에게 전화해 허병칠 수사정황을 료해했다. 그러나 허병칠의 행방이 불명했다. 최혜영 국장은 속이 답답해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사무실에서 급촉히 왔다 갔다 했다. 그때 그의 머리에 피뜩 성호가 떠올랐다. 성호는 개체광고회사 보스였다. 그는 혜영이 검찰원 형사처 처장으로 있을 때부터 의난해명사건, 중대사건을 해명하는데 아주 큰 계발을 준 적이 있었다. “옳지. 성호 오빠 도움을 좀 받아야지. 뽕도 따고 님도 보고. ㅎㅎㅎ.” 그녀는 손벽을 치더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리총경린가요? 참, 오랜만인데요. 다른 일 아니고. 오빠, 시간 좀 있어요? 네. 그럼 제가 점심 한끼 사지요. 네. 이전에 만나던 선녀음식점에 오세요. 네. 아니, 오빠한테 좀 도움받을 일도 있어요. 만나서 얘기하지요. 빠이, 빠이.”      부패분자들한테 “저승사자”로 불리우는 로처녀 최혜영 국장에게도 로맨틱하고 애잡짤한 련애사가 있었다.      혜영은 지금도 후회됐다.       (그때 승호를 선택하지 말고 성호를 선택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럼 이렇게 로처녀로 늙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모든게 운명이야.)      그녀는 30년 전 일을 회상하기도 싫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점점 그때 회상에 빠져들어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아직도 성호와 함께 빙장에서 은제비들처럼 나래치던 일로, 빙장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빙무를 추던 일로, 성호네 고향  칼산에 가서 스키를 타고 절벽을 날아내리던 일로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혜영은 저으기 흥분됐다. 그녀는 아직도 성호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에 자기를 데리고 대학교 북쪽 소나무 우거진 뒷산에 가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하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성호는 혜영을 와락 포옹하며 거친 숨을 토하면서 사랑을 고백했더랬지. “은영이, 내 심장은 지금 은영에 대한 사랑으로 세차게 높뛰고 있소. 난 뜨거운 심장이라도 바쳐 은영을 사랑하고 싶소. 내 진지한 사랑을 받아주오.”       그러나 혜영은 성호의 홧홧 달아오른 뜨거운 가슴을 밀어냈다.       “나는 이미 사랑하는 남자가 있어요.”       “누군데?”       그때 혜영은 아주 랭정하게 성호를 마주보며 똑똑히 말했다.        “우린 동기생이기에 더 애를 먹이려고 하지 않아요. 미련을 두지 말고 마음을 돌리세요. 오빠나 내나 다 편할 거요.” 너무나 쌀쌀한 대답이였다. “도대체 누구요?” “차차 알게 될 거요.” “내 농민의 아들이라고 그러오?” “아니, 그런 건 아니죠.” “부모를 모셔야 할 처지라고 거절하오?” “내 맘 속에 사랑하는 남자가 있기 때문에 오빠를 품을 공간이 바늘귀만큼도 없는데요.” “그럼 우리 이제껏 함께 한 모든 건…” 혜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두 동기로서 한 것에 불과한데요.” 그래도 성호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후에도 성호는 오랫동안 끝없는 미련을 끊지 않았댔다.   “호- 그때 성호 오빠는 얼마나 사랑을 절절하게 호소했던가. 그런데 난 그만 뒷똘을 치고 말았지. 모든게 운명인 걸.” 혜영은 무남독녀였는데 진짜  금이야 옥이야 하는 최시장의 공주였다. 그녀는  부친이 공안국 과장을 하는 가정배경을 보고 승호를 선택했던 것이다.        아직도 혜영은 자기 때문에 성호가 승호와 결투까지 벌리던 장면을 방불히 보는 것만 같았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학교 뒷산 소나무밭에서 갈범처럼 고함치며 치고 박고… 피 터지고 쓰러지고… 혜영은 피씩 웃었다.      후에 알고보니 뜻밖에도 승호가 성호 배다른 맏형의 아들이라지 않겠는가.      사실 승호 어머니는 성호 맏형과 결혼날자까지 다 받았놓은데다가 승호까지 임신한 처지였다. 그런데 성호 맏형이 급병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승호 어머니니는 임신한 것을 속이고 재가했던 것이다. 승호와 성호가 대학을 졸업한 썩 후에 성호 아버지(승호 할아버지) 림종 전에 승호 어머니가 찾아와 밝히지 않았더라면 승호와 성호는 친숙질간인 걸 모르고 계속 질투하고 싸웠을 것이다.      혜영은 승호와 성호를 생각하면 할수록 우스웠다.      혜영에게 있어서 승호는 원한으로 찬 증오대상으로 남아 있었지만 성호만은 좋은 동기로, 오빠로 남아 있었다.   성호는 그때 혜영(은영)한테 실련당하고 얼마나 실련의 고통을 겪었는지 모른다. 성호는 혜영을 만나러 가면서도 그때 당한 일이 씁쓸했다.  후에 성호가 자꾸 따져묻자 혜영은 마지못해 알려 주었다. “내 사랑하는 남자는 승호예요.” “승호?” 성호는 처음 승호라는 말을 듣자 자기 귀를 의심했다. 좀처럼 믿고 싶지 않았다. (승호 뭣이 나보다 나아?) 그러나 농민가정 출신인 그는 시내 공안국 과장의 아들 승호와의 엄연한 차이를 느꼈다. 성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후에 승호와 혜영이 뒷산에서 련애하다가 강도들한테 혜영이 륜간까지 당했다는 비보를 듣고 성호는 마음이 칼로 어이는듯이 아팠다. 혜영은 그때부터 남자라면 딱 질색이였다. 집에서 아빠 최시장이 아무리 시집가라고 해도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녀는 남자라면 그때 세 강도들에게 륜간당한 악몽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날 이때까지 다신 련애도 하지 않고 로처녀로 한해 두해 나이를 먹어갔던 것이다. 그때 성호는 주동적으로 그의 이모부 강운룡 부국장을 찾아가 수사에 협조할 것을 표명했다. 그리하여 그가 사인정탐처럼 수사일군들의 수사를 협조해 혜영을 륜간한 강도 셋을 끝내 몽땅 나포했다.        성호는 혜영이 륜간당한 일로 해 가슴이 아팠다.        (내가 사랑했던 첫련인이 아닌가. 그녀가 그런 일을 당하다니.)        후에 승호가 자기 친조카라는 것을 안 다음에는 승호한테도 혜영을 빼앗을내기나 다름없이 싸우고 질투하고 험담한 것에 미안했다.        20여년 동안이나 서로 모르고 지내다가 승호가 성호의 친조카라는 것이  처음 밝혀졌을 때 승호나 성호나 모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혜영을 두고 서로 질투하고 싸우던 일을 후회하고 서로 량해를 구했다.       그후 성호는  혜영이 얼마나 지독한 녀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혜영은 승호와 열련하는 척하면서 승호의 귀두를 면도칼로 벴다는 것을 뒤늦게나나 승호한테서 들어서 알게 됐던 것이다. 그후 성호는 혜영과 거래를 완전히 끊었다. 40대 초반 한창 나이에 에이즈병으로 가버린 조카 승호를 생각하기만 하면 자연히 떠올리기도 싫은 혜영이 묻어나왔다.      (못된 년, 진짜 저승사자야. 살지 않겠으면 말게지. 어쩜 악감 먹고 남의 귀두까지 잘라버려? 넌 남의 인권을 해친 범죄자야.)       이날도 혜영이 부르자 성호는 잔등이 섬찍해났다. 그러나 혜영이 부르자 저도 몰래 아무 고려도 없이 선녀음식점에 달려온 자기를 발견하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빠, 여게 오세요.” 성호가 선녀음식점에 들어서자 저쪽 구석에서 혜영이 마주나오며 미소를 지었다. 옛날 생글방글 웃던 처녀 은영이(혜영이) 아니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젠 버들잎눈섭아래 어글어글한 쌍까풀눈 눈귀에 잔주름이 죽죽 갔다. (세월이 무섭긴 무섭구나. 어쩜 그렇게 이쁘던 처녀를 벌써 쉰고개를 다 넘긴 로처녀로 만들어버렸어?) “국장님이 바쁘겠는데 무슨 일로 찾았는지?” 자리를 정해 앉자 성호가 궁금해 물었다. “국장은 무슨 국장? 오빠, 참 오랜만인데요. 자, 차물이나 먼저 마시세요.” 혜영은 컵에 차물을 따르면서 권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요? 또 사람 잡는 일이요?” “저승사자한테 또 무슨 일 있겠소? 그저 점심이나 먹으면서 도움 받을 일이 있어 그래요.” “저승사자? 최국장은 범죄자들한텐 저승사자지만 나라와 백성들에겐 보호신이 아니고 뭐요?” “호호호. 오빠도, 왜 그렇게 짧은 바지를 자꾸 춰 올리는가요?” 혜영은 인차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최정호와 허병칠, 나영이 몽땅  도망쳤소.” “나영은 정호하구 이만저만한 관계 아닌 거 같던데. 혹시 정호하구 함께 도망친 건 아니오?” “그럴 수도 있죠. 경로원 개업식 날에 정호는 나영을 오디차에 태워 부랴부랴 망아산 기슭에 있는 별장에 실어갔죠. 그런데 수사일군들이 나포하러 갔다가 별장에서 나영의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잖았겠소? 그 놈 별장에 분명 나영과 정호 들어갔는데 나오는 걸 발견하지도 못했죠. 후에 안 일이지만 별장에는 지하갱도가 있잖았겠소. 십중팔구는 그 갱도로 해 도망친게지. 숱한 수사일군들을 보내 추격했는데 정호와 허병칠을 아직도 나포하지 못했어요. 무슨 좋은 방도 없을가요?” 성호는 차물을 마시면서 한참이나 궁리했다. (수사는 수하 검사들이나 경찰들과 의논하면 되는데 왜 하필 날 찾았을가? 수사정보 루설되면 어쩔라구? 혹시…) “지금 아무런 단서도 없소?” “있어요. 오늘 아침에 정호한테서 메시지가 오잖았겠어요.” 성호는 혜영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메시지?” 최혜영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정호는 허별칠이 정희를 살해한 살인범이라고 했소. 왜냐하면 정희가 돈 60만원이나 내라고 협박했기 때문이라오.” 성호는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지.” 성호는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정호 보낸 메시지란 걸 어떻게 알았소?” “메시지에 ‘제보자 최정호’라고 딱 밝혀 보냈는데요.” “오-“ 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정호가 그래 자기 위치 탄로난다는 걸 모르고 우둔하게 그런 메시지를 보냈겠소?” “그럼, 메시지 보낸 사람 정호 아니란 말인가요?” “혹시 정호가 연막탄을 쏜게 아닌지?” “글쎄.” 성호는 혜영을 정면으로 보면서 물었다. “지금 메시지를 보낸 핸드폰 위치는 어디오?” “타성인데요. 수분하 쪽으로 이동하고 있어요.” “혹시 로씨야로 도망치자는 건 아닌지?” “그럴 수도 있지. 수사일군들에게 꼭 나포해오라고 파견했어요. 당지 수사기관에도 협조해달라고 했소.” “음.”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 료리 몇접시에 맥주가 올라왔다. “술은 그만두기오. 괜히 오후 사업에 영향 주겠소.” 성호의 말에 혜영은 맥주병을 따서 잔에 찰찰 넘치게 부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요. 한잔씩만 마시지요.” 성호는 마지못해 맥주잔을 들었다. “자, 우리 우정을 위해.” 딩둥 댕. 맥주잔이 가볍게 마주치는 소리 귀맛을 즐겁게 했다. 성호는 잔을 들어 권했다. “정호 나포작전에 성공하길 바라오.” 성호는 저가락을 들어 료리를 집으면서 물었다. “이전에 내 박국장한테 정호가 오정룡한테서 금은보화와 현금 다섯묶음을 되찾은 걸 얘기했는데 그후에 아무런 회답도 없더구만. 그걸 찾았소?” 혜영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금은보화 정호한테 있겠는데 정호한테서 수사해내지 못했지요. 정희네 명도다방에도 없고 정호 별장에도 없더군요.” 성호는 또 이런 말을 했다. “박국장한테 오정룡이 망아산의 숱한 형사사건에 혐의가 있다고 제보했는데 여직껏 아무런 소식도 없더구만. 전번에 시내에서 오정룡이 오토바이를 타고 낚시질하러 가는 거 같더구만.” “박국장이 어쩌자고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물만 치고 고기는 하나도 잡지 못하고. 참, 나 원.” 성호도 한숨을 후 내쉬였다. 뒤이어 그는 이렇게 물었다. “정호 도망칠 때 어떻게 시내를 벗어났소?”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쳤지요. 문걸이네 미녀로봇이 추적해 똑똑히 보았다더군요. 정호가 오토바이에 한 녀자를 싣고 도망치더라고. 그 녀자가 나영일 수도 있지.” “오토바이가 승용차보다 도망치기엔 퍽 편리할 수도 있지. 승용차를 타고 숱한 도로카메라와 차단봉이 늘어선 큰길로 도망치면야 나포될게 뻔하지. 그러나 오토바이는 카메라추적과 차단봉도 순경도  다 피해 령길로도 도망칠 수 있지.” 혜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참 교활한 놈이죠. 정호는 일정한 반정탐능력이 있는 놈이죠.” 성호도 머리를 끄덕였다. “내 한가지 제의하기오.” “뭘?” 성호는 목소리를 낮췄다. “이전에 선녀식당에 도청기 있던데. 이렇게 마주 앉아 말해 되겠소? 혹시 수사정보가 흘러나가면 어쩌오?” “근심말아요. 선녀음식점 선희는 우리 이목인데요.” “오-” 성호는 자세를 바로잡아 앉더니 입을 열었다. “내 정호를 잡아오라오?” “오빠가?” 혜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광고는 어쩌고?” 혜영은 도리머리를 저였다. 성호는 대수로워하지도 않았다. “광고야 연화랑 아래 애들이 하면 되고. 정호나 허병칠을 잡지 못하면 최국장이나 수사기관이나 뭐요?” “안돼요. 수사는 우리 수사일군들에게 의거해야죠.” 성호는 왼고집을 썼다. “수사일군들은 정호 면목도 모르잖소? 정호가 환골탈태한다 해도 난 다 알아 볼 수 있어.” 그래도 혜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빠 정탐능력은 알만한데. 혹시 정호를 발견해도 오빠 혼자 무슨 수로  나포해요?” 성호는 호언장담했다. “정호 태권도하구 유도 솜씨는 알만한데. 그래도 몇십년 사귀여온 친구 사이니깐. 자수하라고 권고해볼 작정이야. 무슨 죽을 죄를 진 것도 아닌데.” “그 독종이 자수할 거 같아?” “한번 시험해보지.” 혜영은 일이 풀리지 않아 답답해 성호의 계발이라도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성호가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나올줄은 몰랐다. 혜영은 성호의 마음을 읽고도 남음이 있었다. (오빠는 극력 날 도우려고 왼심을 쓰고 있어.) 그러나 혜영은 사적인 관계로 비수사일군이 수사에 달라붙는 것을 용허할 수는 없었다. “오빠 정호를 나포하러 가는 걸 동의할 수 없소. 건 우리 수사원칙에 어긋나오.” “이전에도 난 숱한 범죄자들을 붙잡았소.” “건 다 지나간 얘기고. 지금은 절대 동의할 수 없소.” “건 네 권리고.” 어망간에 성호는 야, 자 했다. “호호호. 최국장님, 국장님, 하더니. 이젠 ㅋㅋ.” “아차, 실례했군. 최국장님.” “걷어치워. 오빠. 너무 그러지 말라. 멀어진다. 멀어져. 야, 자 하니 허물 없이 참 좋아. 호호호.” 혜영은 허물없는 성호를 보자 아주 기쁜 모양이였다. 혜영은 광어생회를 와사비에 찍어 성호 앞에 내밀었다. “오빠, 아,” 성호는 하 벌리고 혜영이 집어주는 생회를 받아 맛있게 먹었다. 남이 보면 뭐라고 할가? 이럴 거야. “한창 놀고 나자빠졌어.” 혜영은 밥사발을 성호 앞에 놓아주면서 물었다. “지금 정희언니랑 미국에서 잘 보내고 있는가요?” 성호는 밥사발 뚜경을 열면서 콧방귀를 뀌였다. “흥, 잘 있다마다.” 혜영은 버들잎눈섭을 모으며 쌍겹눈을 치켜떴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소?” 성호는 정희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혜영이 이상하리만치 놀라웠다. 성호 안해 정희는 십여년 전에 미국으로 가버렸다.       정희는 교수네 외동딸로 곱게 자라 그런지. 조그마한 곤난에도 머리를 숙이였다. 그녀는 한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한국에서 온 백경란 사장이란 사기군의 다단계판매에 휘말려 들어 숱한 돈을 떼웠을뿐만 아니라 숱한 동료와 친구, 친척들의 돈도 사기당했다. 정희는 체포돼 5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형기가 차 석방되자 또 백사장을 따라 한국에 나갔다가 미국으로 따라 갔던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 가서도 부지런히 일해 돈을 벌 궁리는 하지 않고 주식놀음을 하다가 애나게 번 돈마저 다 떼우고 집으로 돌아올 면목이 없게 되였다. 그리하여 정희는 이젠 성호와 졸혼하고 제마음대로 살자고 했다. 딸애 하나도 정희를 따라 미국에 류학갔는데 글쎄 흑인교수하구 좋아 따라다닌다고 하지 않겠는가.      진짜 성호네 가정은 엉망진창이 됐다. “문화국 인사과장 알지?” “알구말구. 지금 한창 수사중인데.” “전번에 그 인사과장이 미국에 갔다가 정희를 남자목욕탕에서 봤단다.” 성호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그는 개고기점을 우물우물 씹어넘기더니 에둘러댔다. “정희는 이젠 완전히 변했어. 뭐라는지 아니?” “?” 혜영은 짙은 버드나무잎눈섭이 한데 모아질 지경, 쌍까풀눈을 치뜨며 성호를 마주 보았다. 성호의 대답은 놀라웠다. “하나도 다 컸지. 근심없으니깐. 이젠 졸혼하구 서로 편하게 자기만의 삶을 살잔다.” “뭐? 졸혼? 리혼이라도 하자는 건가요?” “리혼은 아니고 명색은 부부지. 그런데 정희는 결혼생활 그만하고 이젠 자기는 미국에서 자기만의 미국식으로 자유롭게 살겠으니깐. 자기를 놔 달란다.” “그게 리혼이지. 뭔가. 말도 안돼. 언니 어쩜 10여년이나 기다리며 홀로 살아온 오빠하구 그래?” 성호는 답답해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인사과장이 돌아와 정희 남자목욕탕에서 양대가리들 때밀이를 한다고 소문냈단 말이야. 이젠 머리를 들고 살기 힘들어. 숱한 찬구들과 광고주들도 나한테 귀띔하더라. 정희하구 리혼하라고.” 혜영은 슬그머니 성호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어찌 조강지처하구 리혼하니? 하나는 어쩌고?” 헤영은 성호 처지 답답했다. “그러고 보면 내 결혼하지 않길 잘했지. 결혼하구 리혼하구 바람 피우고. 세상 사람들 사는게 꼴도 보기도 싫어. 난 한뉘평생 결혼 안해. 남자들은 다 개 같구 강도 같아. 생각만 해도 신경질이 나.” 성호는 혜영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성호 눈에는 혜영은 국장 같지 않고 당년에 그의 앞에서 서적 쓰던 활발한 은영 같았다. 성호는 항상 우울해 있던 혜영이 옛날 마음의 상처를 잊고 활발한 국장님으로 된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부터 기뻤다.        “지금 미국 양키들 종족기시 말이 아니야. 글쎄 아무런 원쑤도 지지 않았는데  아시안계 사람들을 보면 마구 주먹을 휘두르지 않으면 지하철에 마구 밀어뜨린단 말이야.” “어디 미국만 그렇소? 유럽에서도 우리  조선족들은 항상 종족기시받고 양키들 눈치 보면서 산다지 않소?” “글쎄 말이오. 그런 미국에서 무슨 돈을 번다고 남자들 때밀이를 하면서 살겠니. 난 정희 이젠 진짜 실망이야. 미국이 무슨 천국인가?” “오빠도 답답해.” “진짜 미치겠어.” 정희 말을 하다나니 성호는 밥맛도 나지 않았다. 혜영은 성호 기분을 돌리려고 화제를 바꿨다. “우리 이전에 대학교 때 스케트 타던 일 기억나지?” “기억나구 말구.” “아, 그땐 진짜 즐거웠는데.” “그래.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이지.” 순간 그들은 묵묵히 추억의 쪽배를 타고 대학시절로 훨훨 날아 돌아갔다. 랑만적인 음악에 맞춰 판들판들한 빙장에서 쌍무를 추면서 빙글빙글 돌아갔다. “우리 이제 겨울이 되면 스케트를 타러 갈가?” “그래. 내 정호를 나포해 돌아오면 사교무청에 가서 사교무 추겠니?” “그러죠.” 그러나 혜영은 인차 부정했다. “아니, 오빠 정호 나포하러 가는 걸 난 동의한적 없어.” “건 네 권리고.” 정호는 개의치 않았다. “범죄자를 나포하면 마음껏 승리흘 경축해 춤을 출 판이지. 판들판들한 빙장에서 쌍쌍이 빙무를 출 생각만 해도 기뻐.” 혜영은 뜻밖의 제의를 했다. “오빠, 우리 시간 나질 때 종종 만나 맥주나 마시면서 한담도 하고 사교무나  출가?” “그래. 인생이 얼마라고 마음껏 즐겨보자.” 순간  그들은 30여년 전에 대학교 시절 무람없이 스케트를 타면서 즐겁게 놀던 청춘시절로 돌아간듯해 기분이 얼마나 상쾌했는지 모른다…  
265    대하소설 졸혼(29) 김장혁 댓글:  조회:1251  추천:0  2022-07-27
   대하소설                  졸혼                                      김장혁               39. 숨박곡질         암흑이 두텁께 지지누르는 령길에 풀냄새가 코를 간지른다. 어데선가 부엉이 우는 처량한 소리가 귀청을 아프게 한다. 찔리개들이 수림에 뒤덮인 산마루 여기저기서 찌르륵거린다.     풒밭 언덕에 오토바이 한대가 맥없이 쓰러져 잠시나마 달콤하게 쿨쿨 자고 있다. 오토바이 바퀴에는 싯누런 진흙이 더덕더덕 발려 있었다.        쑥냄새가 물씬 풍기며 신음하는 푸른 언덕에서 나영은 정호의 팔베개를 베고 나란히 누워 아물거리는 별을 세고 있다. 오늘도 뭇별은 처량하게 바르르 떨며 눈이 시리게 빛나고 있었다.       정호와 나영은 온 밤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달리다나니 엉망진창이 되게 지쳤다. 한밤중에 그들은 끝내 지역 법망을 벗어났다고 여기고 잠간 눈을 붙이기로 하였다. 뭇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지붕으로 삼고 풀벌레들이 찌르륵거리는 풀밭언덕을 구들로 삼고 어둠을 이불로 삼고 힌들 들누워버렸다.       정호는 경계에 찬 눈길로 주위동정을 살폈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자기 옆에서 모로 누워 두 다리를 오그리고 곤하게 자는 나영을 보고 불쌍하기 그지 없었다. 자기를 따라 풍찬로숙하며 도망치는 가녀린 나영의 두다리를 내려다보노라니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정호는 자기 외투를 벗어 조용히 나영의 허리를 스르르 덮어주었다.       (그저 평범한 직원에 색시로 살았더라면 무슨 이런 고행을 겪겠소? 모두 내가 널 해쳤어. 미안해. 죄송해. )      자는 나영은 봄바람에 웃는듯한 아름다운 녀자였다. 항상 눈웃음을 살살 짓던 녀자, 한창 싱싱한  복숭아 같은 녀자였다.한입 통채로 떼먹어도 비릿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색시였다.      실로 녀자는 잠을 잘 때 제일 이뻤다. 실로  저으기 수줍음을 타며 넘실거리는 수양버드나무 아래 서서 누군가를 가만히 기다리는듯한 숫처녀의 교태, 하늘을 날아게 만들듯 한 고 표정 사람 죽인다. 금방울 은방울 굴리는듯한 청아한 목소리, 나영은 참말로 청순한 녀자, 정호를 뇌쇄시킬 정도로 매력있는 녀자였다.      정호는 순정이나 영희처럼 눈만 뜨면 앙칼진 목소리로 잔소리하는 녀자는 진짜 짜증났다. 그런 녀자와 살면 살수록 남자들은 수명이 감소된다. 그러나 나영은 남편과 애, 직업마저 다 버리고 목숨을 걸고  자기를 따라왔지만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 먹거리나 잠자리 변변찮아도 잔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 이런 녀자야 말로 진짜 좋은 녀자, 고운 녀자이다.      나영은 자꾸 잡소리를 쳤다. “빨리 달아나라!” “경찰이 온다!” “개새끼들이 오기만 해라. 도끼싼장해놓겠다.” “빨리, 빨리! 강도 온다!” 나영은 온종일 경찰들한테 쫓기우다나니 아마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나영이, 나영이. 깨나오.” “예~” 나영은 와닥닥 놀라 발딱 일어났다. “경찰이 왔습니까?” “아니, 꿈을 꿨소?” “예- 한창 강도한테 쫓기웠어요.” 나영은 정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우린 언제까지 이렇게 경찰들과 숨박곡질하면서 살아야 하는가요?” 정호는 나영을 품에 꼭 끌어안아주었다. “이제 인차 숨박꼭질이 끝날 거요.” 정호는 나영의 걀죽한 볼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넘어 쓸어넘겨주었다. 달빛에 휘날리는 검은 머리카락, 공포에 젖은 이마는 당황한 가운데 무한한 정과 한을 머금은듯하였다. 밤하늘 높이 흐르는 구름 속으로 스며드는 맑은 음성에 달빛에 꿈을 잡는 눈매가 항상 새물새물 눈웃음을 지어 퍽 매력적이였다. 그러나 오늘은  달빛 아래 그 눈매에  눈웃음보다도 공포와 고통이 어려보였다. 정호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미안하오. 날 따라 고생시켜서. 한가지만은 믿어주오. 내가 그대를 내 심장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걸.” “믿어요. 믿지 않으면 그대를 따라 험산준령까지 왔겠는가요?” “그래. 서로 굳게 믿고 살자. 이제부터 널 곱절로 행복하게 만들어줄게.” 나영은 머리를  정호 품 속에 더 깊게 파묻으면서 어깨를 들먹였다. “절대 미안해하지 마세요. 다 제가 최국장님이 좋아서 따라 나선게 아닌가요?” “날 믿어다오. 꼭 나영을 지켜줄게. 이 목숨 다할 때까지 널 지켜줄게. 행복하게 만들어줄게.” 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신심 가득히 말했다. “이제 이 고개를 넘으면 저승사자년도 우릴 찾지 못할게오. 그년이 어떻게 우리 이런 곳에 오리라 생각했겠소?” 나영은 얼굴을 떼더니 정호를 쳐다보았다. 어둠 속이여서 어떤 표정인지는 똑똑히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부드럽고 정겨운 말은 그녀의 표정을 너무나도 빤히 읽을 수 있게 하였다.  “최국장님, 전 자꾸 경찰들한테 쫓기우는  악몽을 꿉니다. 우린 언제든지 붙잡힐 수 있잖아요? 붙잡혀 자유를 구속받기 전에 나머지 인생을 즐기면 어때요?” 정호는 기다리기라도 한듯 기뻐했다. “그래. 즐겨야지.” “저는 모든 걸 최국장님께 주고 싶어요. 마음도 몸도 모든 걸 말이예요.” “그래?” 나영은 나직이 말했다. “네. 바로 여기서 말이예요. 절 처음 사무실에서 만났던 때처럼  뜨겁게 즐겁게 해드리고 싶어요.” 그 말소리는 그녀가 해설원시절 하던 해설사처럼 발음이 너무나도 똑똑했다.    정호는 너무나도 기뻐 나영을 안고 일어나 한바퀴 빙 돌려주었다. “추격”이란 일본 영화의 남녀 주인공들이면 어디 이들 같겠는가. 그들이 어찌 정호와 나영처럼 야외 풀밭에서 랑만적이고 로맨틱한 랑만을 즐겼겠는가.        하늘에 붕- 뜨는 기분에 잠겨 어둠 속을 헤집고 뭇별들이 반짝이는 어둠을 꿰뚫고 구중천에 날아올라간다. 숨박곡질하며 추격당하던 모든 고통과 공포, 스트레스가 한 순간에 어둠과 함께 산산히 부서져 사라진다.        찬란한 아침햇살이 은침을 주어다 주옥알을 주어 주옥목걸이를 꿰는 순간순간 희열을 씹어삼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동산마루가 희붐히 밝아오는 하늘과 구불구불한 경계선을 맥없이 허물고 있었다. 그들의 자유를 지꿎게 얽동이고 내리누르던 어둠은 물러가고 아침 햇살이 몇가닥의 금침을 대지에 내리 꽂는다. 찬란한 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나영은 정호의 팔베개를 베고 나란히 누워  밝아오는 동녘 하늘을 바라보고 더럭 겁났다. 그녀는 옆에서 코를 드렁드렁 구르는 정호의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최국장님, 국장님,” 정호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물었다. “어째?” 나영은 곤기 풀린 쌍까풀 청포도눈을 치켜뜨고 주위를 살피면서 종알거렸다. “좀 쉬였는가요?” “그래. 잠간 눈을 붙였지.” 정호는 팅팅 부은 우멍눈을 손으로 부비였다. 기실 그는 자는척하며 무시로 실눈을 살며시 뜨고 나영의 일거일동을 살폈다. 그녀가 고행을 겪으면서 변심할가봐 겁났던 것이다. 제일 가까운 친구가 제일 두려운 적이 될 수도 있었다. 나영은 정호를 마주 바라보았다. “자리를 뜨는게 옳지 않는가요?” “그래. 이 자린 너무 오래 있을 곳이 못돼.” 쫓기는 몸들인지라 풍찬로숙하면서 련 며칠 야반도주해야만 했었다. 정호는 배낭을 메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잠간만.” 나영은 일어나 정호 품에 얼굴을 묻었다. 정호는 나영을 꽉 껴안아주었다. “모든게 풀릴게야. 우린 꼭 저승사자들을 떼버리고 자유세상에 갈 거야.” 나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네. 우린 꼭 행복한 앞날을 맞이할 거예요.” “어서 가자.” 정호는 오토바이쪽으로 발걸음을 뗐다. “잠간만.” 그때 나영이 정호 팔을 잡았다. 정호는 몸을 돌리며 나영에게 눈길을 돌렸다. (혹시 마음이 변했는가.) 순간 정호는 경계심이 부쩍 동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주 상냥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할 말이라도 있나?” “예. ” 나영은 정호 품 속에서 머리를 떼고 물었다. “우리 지금 어디까지 왔는가요?” 정호는 손목시계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타성에 들어섰소.” 나영은 저으기 놀랐다. “혹시 로씨야로 도망가는 건 아니죠?” “가면 안돼?” “거긴 강도가 욱실거린다던데요. 그런 델 가서 어떻게 살아요?” “로씨야 갔다가 맞갓잖으면 일본으로나 한국으로나 가버리지.” 그윽한 정이 담긴 눈길로 번대머리 아래 우멍눈을 올리다 응시했다. “려권도 없는데.” 정호는 배낭을 끌러 열어보였다. 숱한 가짜려권이 드러났다. “근심하지도 마오.”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도망가야 하는가요? 도대체 최종목적지는 어딘가요?” 정호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우리 목적지는 자유롭게 사는 세상이야. 썩어빠진 낡은 도덕관념의 거미줄에 묶이지 않고 사람의 잠재본능과 성자유를 본연 그대로 펼 수 있는 데로 가는 거야.  개성해방과 성해방을 맘껏 하고 소리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이 최종목적지야.” 나영은 허구픈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도 멀고도 먼 추상적인 목적지군요. 저는 최국장을 따라와 꿈을 꾸는 것 같아요. 그렇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지구촌 어디에 있는가요? 굴레 벗은 말처럼 살려는 거군요. 너무나도 허무한 꿈 같은 자유세상이군요.” “우린 꿈대로 리상세계에 가서 맘껏 살자.” 정호는 말수가 적었다. 그런데 이쁜 아가씨들 앞에서는 쉴새 없이 횡설수설했다. 숱한 수사일군들한테 쫓기우는 오늘 새벽에도 그는 나영한테 강의하듯 하였다. “들어보오. 지금 내 숱한 친구들이 날 비도덕적이라고 하면서 날 왕따로 만들었소. 뭣 때문이겠소. 그들은 내가  형수이자 처제 되는 영희를 가로채 애까지 낳게 했다고 날 세상 못쓸 놈이라고 하오.” “그거야 그렇죠.” 나영은 솔직히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아무리 녀자 없어도 어떻게 처제를 다칩니까? 친구 안해를 다치면야 친구들이  최국장을 량심없는 놈이라고 하기야 마련이죠.” 정호는 답답해 가슴까지 탕탕 쳤다. “내 말 좀 듣소. 이건 모두 오해요. 오해.” 나영은 오토바이 쪽으로 걸어가면서 물었다. “오해라니요?” 정호는 나무가지를 꺾어쥐더니 오토바이 바퀴에 묻은 진흙을  긁어버리며 뒷말을 이었다. “들어보오. 사실 순정과 영희는 둘 다 내 제자였소.” “그게야 진작 알죠.” “자, 오토바이에 앉소.” 정호는 나영이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기를 기다려 배낭을 메고 오토바이에 올라 탔다. 부르릉, 브르릉. 오토바이는 가벼운 엔진소리를 내면서 강가로 내리달렸다. “잠간!” “어째?” “세워요!” “소변 보겠소? 금방 세웠을 때 눌게지. 여긴 오래 있을 곳이 못되오.” “세워요.” 정호는 두덜거리면서도 별수 없이 오토바이를 멈춰세웠다. 나영은 오토바이에서 내리더니 무릎을 털썩 꿇고 물앉아 한숨을 호 내쉬였다. “맥이 풀려 더 못 가겠어요.” 정호는 그저 억지로 가자고 해서는 안되겠다고 느꼈다. 나영은 가녀린 어깨를 들먹였다. “아들애랑 어떻게 보내는지? 아들애 생각하면 죽을 것만 같아요.” 정호도 무릎을 털썩 꿇고 나영의 두 어깨를 꼭 끌어안고 다독여주었다. “나영은 지금 도망치는게 옳소. 생각해보오. 나영이 탐오범으로 감옥에 들어가면 아들애가 어떻게 되겠소? 머리를 들고 학교에나 다니겠소? 아예 아들애 시선에서 사라지면 적어도 애한텐 범죄자 엄마란 딱지는 붙진 않을게오. 집에 애비 있으니깐. 아들애를 건사하겠지. 너무 근심하지 마오. 우리 목적지에 가서 안착되면 아들애를 가만히 데려가잔 말이오. 난 나영의 아들애를 내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하면서 키워주겠소.” 나영은 정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상해 아들에 손자까지 찾아내가지구서두 내 아들을 잘 키워줄가?) 그러나 최국장 말을 믿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영은 후회했다. (애까지 버리고 이게 무슨 개고생이냐?) 진짜 녀자들 마음이란 갈대와 같다고나 할가. 이래서 녀자들은 문턱을 넘으면서도 열두가지 생각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정호는 숱한 녀자들을 다뤄보았기에 녀자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들애 이름이 뭐지?” “성림이.” 나영은 나직이 애 이름을 불렀다. 정호는 가슴을 치며 다짐했다. “하늘땅에 맹세하오. 이제부터 성림인 내 친아들이오. 내 만약 제 아들처럼 사랑하지 않으면 천벌을 면치 못할 것이오. 하느님이여, 우리 성림을 보우해주옵소서.” 순간 그녀는 더는 참지 못하고 정호를 활 밀어버리고 땅을 치면서 대성통곡쳤다. “아이고, 성림아! 엄마 나쁜 엄마야! 널 버리고 어디로 도망가!” 당황해난 정호는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우멍눈으로 주위 동정을 살폈다. 어데선가 오토바이 소린지 들리는 것 같았다. “나영이, 어서 여기서 도망치기오. 경찰들이 오는 것 같소.” 화닥닥 놀란 나영은 황급히 오토바이 뒤좌석에 올라탔다. 정호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고 오토바이를 몰고 터덜터덜한 호박길을 달렸다. “모두 날 처제를 다쳤다고 욕하지만 내 말 들어보오. 난 예술대학에서 무용교원 할 때 벌써 영희를 사랑했고 량성관계까지 발생했단 말이오.” 나영은 뒤에서 코웃음쳤다. “픽, 미성년인 영희 언니를 재꼈다는 걸 온 문화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몇인가요? 흥!” “로실히 말해 그 땐 난 진짜 순정보다 영희를 더 사랑했소. 그래서 영희하구 가만히 자주 살았소.” “무용강당에서 영희 언니를 재꼈다더군요.” “그래. 이제야 속일게 없지.” 턱! 오토바이가 돌부리에 부딪쳐 삐둘거리며 하마트면 힌들 넘어질 번했다. “오토바이나 잘 모쇼.” “근심하지 마오.” “그런데 왜 순정언니하구 살았는가요?” “그때 부시장이였던 순정의 아빠가 날 사위를 삼으려고 욕심냈지.” 늙은 너구리는 또 거짓말로 나영을 미혹시키고 있었다. 그런줄도 모르고 나영은 아주 흥미진진해 곧이듣고 있었다, “나도 생각해보니 시장네 무남독녀 순정과 결혼하면 전도개척에 나을 것 같더란 말이오.” “그래서 영희를 헌 신짝 버리듯이 차 버렸겠구만요.” “아니오. 난 사랑하는 영희를 아까운대로 문걸한테 소개해줬단 말이오. 사랑하는 녀자를 친구한테 줘 보낼 때 내 심정인들 오죽했겠소. 진짜 칼로 심장을 찌르는 것만  같았소. 그렇게 아까운 영희를 문걸한테 줬는데 내 량심없단 말이오? 친구들도 너무 하지 않고 뭐요?” “그때까진 글쎄 그렇다 치고. 영희언니 결혼한 후에도 자꾸 데리구 살아 임신까지 시킨 건 아니지요. 그러니깐. 친구들이 모두 최국장을 량심없고 친구 의리도 없는 서문경 같다구 하지.” “그만, 그만. 너까지 왜 이래?” 정호는 오해를 풀려다가 오히려 나영의 조롱을 받았다. 그들은 어느새 산에서 다 내려와 강을 따라 제방뚝으로 달렸다. 량쪽에 버드나무 우거지고 모래불뚝이여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기 제창 좋았다. 그들이 한창 말을 주고 받으면서 달릴 때였다. 제방뚝 옆길에서 오토바이 한대가 씽 달려 제방뚝에 날아올라왔다. 오토바이에는 한 사람뿐이였다. “서랏!” 오토바이가 씽 날아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마나!” 나영은 정호 허리를 꽉 껴안으며 비명을 질렀다. 삑- 정호가 급히 오토바이를 급정거했다. 여겨보니 다행히 경찰은 아니였다. 복면까지 한 날강도가 시퍼런 비수를 빼들고 앞길을 막았다. 웬 일일가? 그 강도놈은 정호와 나영을 여겨보더니 천천히 비수를 내리고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러나 강도놈은 생각이 바뀌였는지 인차 비수를 되쳐들었다. “미녀와 배낭만 두고 갓!” 한어를 답새기는 걸 보아 한족 같았다. 그런데 퍽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정호는 랭소하며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정호는 나영을 뒤로 물러서게 했다. 나영은 질겁해 뒤로 비실비실 물러나다가 한아름 되는 버드나무 뒤에 달려가 숨어버렸다. 그녀는 정호의 솜씨를 믿었다. 하지만 타향이라 겁나 손에 땀을 그러쥐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죽어봐라!” 날강도는 비수를 빼들고 씽 덮쳐들었다. “가만!” 정호는 손사래치면서 뒤로 물러섰다. “호한! 배낭을 줄게. 제발 아가씨만은 다치지 마오.” “그럼 그렇겠지.” 날강도는 비수를 거두면서 정호가 벗는 배낭을 건너다 보았다. “배낭을 버렷!” 정호는 배낭을 벗어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날강도는 탐욕에 찬 눈길로 배낭을 뚫어지게 쏘아보면서 고함쳤다. “돌아서 갓!” “예, 예. 옜소. 가지고 가오.” (저 놈 또 당했어.) 버드나무 뒤에서 나영은 미국에서 정호가 흑인 강도를  순식간에 때려부시던 장면을 피뜩 련상했다.      날강도가 다가와 허리를 굽히고 배낭을 쥐려고 했다.      찰나, 정호가 홱 돌아서며  발길을 날렸다. 면바로 날강도 손목을 탁 걷어찼다.      비수가 저만치 날아가 제방뚝에 떨어졌다.      쟁강! 정호는 재차 주먹으로 엉거주춤 서 있는 그 놈의 아랫배를 꿍 들이쳤다.  “억!” 비명소리와 함께 날강도는 배낭을 툭 떨어뜨리고 배를 부둥켜안았다. “얏, 핫!” 정호는 날아올라가면서 무릎으로 날강도 턱주가리를 올리걷어찼다. “으악!” 뒈지는 소리. 날강도는 손도 못 쓰고 털썩 무릎을 꿇고 푹 꼬끄라졌다. “죽어랏!” 정호는 풀쩍 뛰여오르면서 두 발로 짓밟아버리려고 했다. “가만! 살려주쇼!" 조선말로 애걸하는 소리에 정호는 고양이처럼 그놈 옆에 날아내렸다. "얏, 핫!" 정호는 기합소리를 지르며 오른주먹으로 땅바닥을 질렀다. "뚱!" 땅바닥의 넙죽한 돌이 산산히 박산났다. 강도나 나영이나 눈이 뒤짚힐 정도로 휘둥그래졌다. "최선생님! 냅니다. 살려주십시오!” 아가리 장마당이 된 그 놈은 황급히 연신 조선말로 고함쳤다. “누구냐?” 정호는 그 놈 날강도의 낯을 가린 복면보를 훌 벗겼다. “아니, 이게!” 그 날강도는 제자 허병칠이 아닌가. 정호는 아연실색했다. “이게 허부장 아니냐? 어떻게 돼 여기까지 와 이런 짓 해?” 정호는 허병칠이 정희를 살해하고 도망친 것을 대개 짐작하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했다. 허병칠은 부러진 이빨을 뱉어버리고 아가리 피를 쓱쓱 닦으면서 일어나 앉았다. “선생님, 미안합니다. 죽이십시오.” “이놈아, 아무렴 날 뻔히 보고서도 시퍼런 비수를 휘둘러?” 정호는 불어댔다. “내 이젠 늙었어. 허나 네 같은 강도 놈은 둘이 달려들어도 적수가 아니야.” 정호는 유명한 바레리나였지만 태권도 6단과 유도 4단 사범이기도 했다. 평소에 사생들이나 동료들 앞에서 전혀 솜씨를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사생들이나 동료들이나 그의 솜씨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다만 나영이 이젠 두번째로 정호의 솜씨를 직접 목격했을뿐이다. (진짜 무서운 놈이야!) 나영은 또 감탄했다. “선생님, 저는 이젠 살 길이 없습니다.” “웬 말이냐?” “정희하구 하영이 짜고 들어 날 물어먹었습니다. 정희란 년은 글쎄 나보고 돈 60만원을 가져오라잖겠습니까? 돈 가져오지 않으면 이전에 하영을 데리고 논 걸 대학교 당위에 몽땅 고발하겠다고 하잖겠습니까?” "건 이전에 병원에 와서 내게 한 소리구. 하영도 그랬는가?" "예. 나보고 돈 50만원 가져오랍디다. 안그러면  대학교에 고발하겠답디다."  정호는 나영을 오라고 손짓해 부르면서 병칠한테 물었다. “이전에 내 뭐랬니? 정희하구 하영의 입을 틀어막으라고 했잖았니?" "가져다 줬는데두 쓸데 없습니다. 꼭 항아리만한 욕심독에 돈을 꼴똑 챙기려고 듭디다." "그래서? 강도로 됐느냐?” 허병칠은 제방뚝에 펑덩 들어앉았다. “내 어데 가서 불시에 100만원 가져 옵니까? 집을 팔자고 하니 녀편네 정신나갔다고 딱 잡아떼지. 선생님, 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습니다. 정희하구 하영한테 돈 가져가지 않으면 끝장납니다.” 정호는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병칠의 수염이 더부룩한 병칠의 볼을 매만졌다. “이놈아, 정희는 왜 죽였어?” 정호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나영은 다가와 적개심과 조소를 입귀로 흘리면서 허병칠을 쏘아보았다. “얘, 그래도 어찌 길러준 개 발뒤축 무니? 응? 임마, 널 대학교 학생부장으로 키워준 선생님한테 비수를 휘두르다니? 흥!” 허병칠은 자포자기하는 투로 토설했다. “최선생님도 량심없습니다. 사제간에 어찌 하영을 가무단 부단장으로 임명하는 대가로 70만원이나 요구합니까? 내 하영을 데리고 논 일을 정희란 년이 어떻게 압니까? 하영이 말했을 순 없구. 십중팔구는 최선생님이 말했겠지. 아닙니까?!” 정호는 병칠이 정희를 살해했다고 이젠 확정하게 됐다. (이놈은 이젠 살인마, 강도로 다 됐구나.) “그래서 내게 칼을 휘둘렀니?” “예. 어째, 금방 달려들었다가 선생님인 걸 보고 그만둘가 했댔습니다.  도둑놈은 살려줘도 정을 버린 놈은 살려두지 않는다고. 흥! 날 배신했는데 최선생님이 다 뭡니까? 이틀이나 굶어서 이젠 죽게 됐는데.” “그래? 이 배은망덕한 놈아.” 정호는 경계심을 회복하면서 일어났다. 허병칠은 정신나간듯이 게두두벌거렸다. “욕하겠으면 욕하고. 공안국에 잡아가겠으면 잡아가구. 여기서 죽이겠으면 죽이고 마음대로 하십시오. 아무래도 죽을 바엔 선생님 손에 죽는게 낫지.” 정호는 어떻게 병칠을 리용해 먹을가고 속궁리를 번개처럼 굴렸다. 그는 피뜩 묘수가 떠올랐다. “나영이, 배낭에서 과자를 가져오오.” 나영은 아직도 겁나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자기 배낭에서 과자 한 봉지를 꺼냈다. “한봉지 더 꺼내오.” 나영은 허병칠을 아니꼬운 눈길로 흘끔 곁눈질하면서 도도거렸다. “이젠 두봉지 밖에 없는데요. 다 주고 우린 뭘 먹고 살아요? 흥!” 정호는 자비를 베푸는 척했다. “잔말 말고 가져오라는데두. 그래도 사제간인데 굶어죽게 내버려 둘 순 없잖소?” 나영은 울며 겨자먹기로 한봉지만 남기고 다 꺼내다 주었다. 정호는 과자봉지를 병칠한테 내밀었다. “옛다, 먹어라. 참 불쌍하구나. 어쩜 허부장이 이런 신세 됐느냐? 다 내 잘 못이야. 내 잘 가르치지 못한 때문이야.” 허병칠은 과자봉지를 받아쥐자마자 게걸스레 과자를 입 안에 처넣고 우물우물 씹어 삼켰다. 정호는 웃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돈지갑을 꺼내 병칠한테 통채로 주었다. 지갑에는 백원짜리 댓장 들어 있었다. “옛다, 써라. 굶고 다니진 말라. 이제라도 강도질 하지 말고 가서 자수해라.” 병칠은 넙적 받아 웃호주머니에 걷어넣었다. “지갑까지 다 주고 우린 어떻게 관광해요?” 정호는 반쯤 돌아서서 손목시계를 조절했다. 나영이 볼라니 문자메시지를 날리는 것이였다.      최국장, 정희는 십중팔구 허별칠이 살해했소. 정희와 하영 돈 백만원 가져오라고 그를 협박했다고 살해한 혐의 있소.                                                     신고자 최정호.        정호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후 인차 삭제해버렸다.      순식간에 모든 걸 끝냈다.      나영은 정호 뜻밖의 행위에 섬찍해났다.      (진짜 음험하구나. 금방 제자라고 생각는척하구. 어쩜 저승사자년한테 고발해?)     허병칠은 눈치채지도 못하고 정호 눈치를 흘끔거렸다.     정호는 손목시계를 끌러냈다.     "옛다. 가져라."     “걸 다 줘요? 발뒤축 무는 개놈인데.” 정호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야. 그래도 허나새나 사제간이 아니오. 이 놈도 막다른 골목에 드니  별수 없어 그랬겠지. 스승인데 바다처럼 넓은 흉금으로 용서해야지.” 정호는 병칠한테 다가가 보석손목시계를 내밀었다. “스승으로선 마지막으로 줄게 이것 밖에 없구나. 바쁠 때 팔아서 써라. 이제 보니 바뗄이 거의 나갔구나. 이제 태양열을 받으면 자동으로 켜질 수 있다."           병칠은 보석이 반짝이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너니 넙쩍 엎드려 절까지 했다. “선생님, 구명은혜 백골난망입니다. 감사합니다.” 말을 마치자 허병칠은 엉덩이 먼지를 툭툭 털며 일어나더니 제방뚝에 가서 비수까지 찾아들고 오토바이 쪽으로 다가갔다. 그 놈은 제방뚝에 벗겨진 복면보까지 주어 챙기더니 오토바이를 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꼬리빳빳해 도망쳤다. “헤이, 어쩜 허부장이 날강도까지 됐어? 죄악이야, 죄악이야.” 정호가 도리머리를 저으며 먼지 새뽀얗게 일구면서 달아나는 혀병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놈아!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 천벌맞을게야!” 나영은 울상을 지었다. "잘도 한다." "왜 또 이래?" 나영은 눈이 새똥그래졌다. "이보십시오. 최혜영 국장한텐 왜 메시지 보냈습니까? 그럼 그 저승사자년이 우리 위치를 알게 아닙니까?" "허허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면서." 정호는 오토바이 쪽으로 스적스적 걸어가면서 나영을 힐끔 돌아보더니 득의양양해 말했다. "문자메시지가 우릴 구할 거야." 나영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허병칠이 정희를 죽인걸 제보했다고 최국장이 우릴 놔줄 거 같아요? 오산입니다. 오산. 최국장도 어리석을 때 있구만요." "아니야. 하나는 우린 죽기 전까지 정의롭게 산 것으로 되지." "감옥에 끌려가 죽은 담에 정의용사란 비석이나 세워주겠구만." "더 중요한 다른 건 말이야. 그 메시지  최국장이 보면 내 보낸 걸 알 거 아니야?" "그럼, 우리 지금 도주위치 다 폭로됐지. 헛, 참. 기막힌 량반이라구." 정호는 헬멧을 바로잡아쓰면서 말했다. "그런데 이제부터 허병칠이 내 대신 시계를 차고 달아다니게 되지. 그럼 최국장은 허병칠을 우리로 알고 추격할게 아니냐? 허병칠이 나포되면 우린 정부를 위해 살인범을 나포해 립공속죄한게 되지. 또 우린 수사일군들이 허병칠을 추격하는 새 유유히 법망을 벗어날 수 있지." "만약 저 놈이 손목시계를 팔아먹으면 허사잖아요?" "팔면 더 좋지. 손목시계를 산 면목도 모를 놈이 또 우리 대신 아무데나 도망다니게 되지. 허병칠은 나포되면 우릴 불게지만 시계 산 놈은 우릴 본 적도 없잖아? 경찰들은 또 그 놈을 추적할게구. 그럼 우린 숱한 시간을 벌어 멀리 멀리 도망칠 수 있지.ㅇㅎㅎㅎ." "호호호. 참 묘수구만요." "이거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기지." 정호는 엄지와 식지를 딱 튕겼다. "건데 그 좋은 시계 아깝습니다." "저 배낭엔 더 좋은 시계 가득해." "그래요?" "음. 어디 두고보자. 이번 숨박곡질에서 누가 이기는가?" "당연히  최국장님의 영명한 령도하에 우리 이기지. 호호호." "가자! 사랑하는 나영이." "최국장 만세!" 나영은 정호를 와락 끌어안아 들어올렸다.     그들은 한바탕 웃고 떠들며 오토바이를 타고 허병칠이 사라진 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264    대하소설 졸혼 제3권 (28) 김장혁 댓글:  조회:1248  추천:0  2022-07-24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3권             38. 山口太郎 교수        춘희는 문걸과 작별한 후 도요다찌프를 타고 도꾜에 돌아와 울창한 열대나무가 우거진 별장식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유유히 들어갔다.       그녀는 지하주차장에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아파트로 올라가면서 피곤해 엘레베이터에 머리를 가볍게 기댔다.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녀가 금방 널바닥재를 깐 복도에 들어섰을 때였다.      집 안에서 웬 처녀애 목소리가 들렸다.       “목욕 다 했어요.”      “구석구석 깨끗이 닦았어? 오래잖으면 행사해야겠는데.”     “예, 말끔히 씻었어요?”     “뭐야?” 춘희는자기 귀를 의심하며 주춤 멈춰섰다. 그녀는 출입문께로 살금살금 발끝걸음으로 다가가며 귀를 도사렸다. (마낀가? 아니야? 마끼 목소리 같잖아. 그럼 웬 녀자를 끌어들였어? …) 그녀는 의심이 부쩍 들었다. (내 없는 사이 외간 녀자를 집에까지 끌어들였어? 어젠 외간녀자를 보지 못했는데.) 그녀는 감히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성욕이 강한 다이로 충분히 그럴 수도 있어. ) 그러나 집 안에서는 귀에 익은 마끼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겠는가. “아빠, 보꾸하나, 얘, 가시(과자) 먹으려고 해요.” 다이로의 다급한 목소리. “안돼. 먹지마.” (뭐? ‘보꾸하나’? 조선어로 ‘복화’ 아닌가? 언제 저런 애를 들여왔어? 새로 받아들인 제자인가? 그럼 그렇겠지.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마끼 있는데 외간 녀자를 끌어들여?) 춘희는 다이로를 의심한 걸 뉘우치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똑똑똑. 그녀는  노크하고 집 문을 뗐다. “가에리마시다(다녀왔습니다.)” 다이로는 네모번듯한 얼굴에 미소지었다. “가에다까(돌아왔나)? 다노시꾸 아소비마시다까(즐겁게 놀았습니까)?” “네. 덕분에. 문걸선생도 최고접대 받았다고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던데요.” 다이로는 헤벌쭉 웃었다. “문걸센세이는 춘희 박사의 절친인데유.” “절친은 무슨 절친? 구급환자일뿐인데요.” “이이에(아니), 이제 우리 집에 청해다 최고접대해야지. 허허허.” 춘희는 의아해했다. “오늘 대접한 뇨탸이모리보다도 더 고급료리 있는가요?” 다이로교수는 살진 유들유들한 무턱을 쳐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 있구 말구. 긴상은 아무래도 중국 시골병원에 가 있다나니 새로운 료리 모를 수도 있지. 이제 어느 날 눈이 확 뜨이게 견식 넓히게 될 거야.” “곤방와(안녕하세요)?” “곤방와?” 춘희가 인사를 받으면서 여겨보니 마끼와 나이 비슷해 보이는 처녀애가 금방 젖은 머리카락을 드리우며 샤와실에서 나오면서 깎듯이 구십도 경례로 인사하는 것이였다. 아마 금방 샤와를 한 것 같았다. “나마에와(이름은)?” “하이, 보꾸하나 또 이이마쓰, 하지메데 도조 요로씨꾸.(네. 보꾸하나라고 부릅니다. 처음 뵙는데요. 잘 부탁드립니다.” “하이(예.) 보꾸하나와 죠센진 나마에요우가시라(보꾸가와는 조선인 이름 같은데요.)” 보꾸가와는 류창한 조선어로 대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요. 저는 중국 조선족인데요.” 춘희는 저으기 놀라 조선말로 말을 받았다. “그래요?” 마끼가 옆에서 끼여들었다. “얘 이름은 복화인데요. 우리 고향의 한 시내 친구인데요. 나와 한 중학교 한 학년에  다닌 동창생이예요.” 춘희는 복화 손을 잡고 친절히 말했다. “오- 그래? 이국 타향에서 서로 자매처럼 잘 지내라.” “예. 반년 전에 제가 아버지께 소개해서 우리 집에 뎌려왔어요.” “오- 그래? 잘했다.” 그제야 춘희는 의혹이 좀 풀렸다. 차탁에 과자가 놓여 있는 것이 피뜩 보였다. (혹시 복화가 과자 먹는다고 마끼가 새된 소릴 치진 않았겠지?) 다이로가 다가와 과자봉지를 쥐더니 복화를 돌아보았다. “넌 이걸 먹어선 안돼. 과일만 계속 먹어야 돼.” 그러자 복화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젠 여섯달이나 과일만 먹어서 질려요. 쌀 한알 먹지도 못해 과자라도 먹고 싶은데요.” 다이로는 퉁방울눈을 부릅뜨고 고함쳤다. “건 안돼, 절대 안돼!” 뒤이어 그는 과자봉지를 들고 휑 객실을 나가더니 쓰레키통에 훌 처넣었다. 춘희는 못 본 척하고 침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객실에 나왔다. 그새 복화는 젖은 머리를 닦고 객실에 나왔다. 춘희는 복화를 보고 쏘파를 가리키면서 옆에 와 앉으라고 했다. 찬찬히 보니 별로 어데서 본 것 같았다. 순간 춘희는 깜짝 놀랐다. 점심에 오사까 교타이모리 스시관에서 스시상에 올랐던 라체미녀 아니겠는가. 복화는 눈치챘는지 머리를 천천히 숙였다. 춘희는 복화의 잔등을 다독여주면서 물었다. “일본에는 언제 왔어?” 복화는 천천히 머리를 무겁게 들었다. “온지 3년 밖에 안돼요.” “그래? 혼자 일본에 왔어?” “아니죠. 어머니와 남동생 함께 왔어요.” 다이로는 복화한테 꼬치꼬치 캐묻는 춘희를 못마땅한 눈길로 흘겨보고는 자기 서재로 훌 들어가버렸다. 춘희는 복화를 보고 “엄마는 어데 계시느냐?” 하고 다잡아물었다. 순간 복화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부모 다 세상떴어요.” “그래? 참 안됐구나. 괜히 물었구나.” 춘희는 괜히 복화 상처를 건드린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런데 오히려 복화가 눈물도 흘리지 않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아마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 눈물이 다 말라붙은 것 같았다. “엄마는 우리 오누이를 데리고 일본 와서 공부시키느라고 별의별 고생을 다 했어요. 목욕탕이랑 카레점이랑 돌아다니면서 일해서 우리 공부뒤바라지를 했지요. 그런데 아빠가 사망했다는 비보를 받은 후 너무 상심한데다가 그만 페암에 걸려 사망했어요.” 복화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머리를 숙이면서 울컥했다. 사실, 복화 아빠 리승호는 리성호의 친조카였다. 그는 친삼촌 성호와 동갑이다. 승호는 최혜영 국장과 대학교 시절에 련인 사이였다. 승호는 대학교에 오기 전에 벌써 중학교 동창생인 허경옥의 정조를 짓밟고서도 선후하여 대학동기 최헤영과  홍희 정조를 짓밟았다. 그 사실을 뒤늦게나마 알게 된 최혜영은 경옥과 홍희를 대신해 복수하려고 작심했다.     어느날 밤에 최혜영(당시 은영임)은 학교 뒤산 소나무숲 속에서 승호를 불러내 섹스를 하고나서 그걸 닦아주는 척하면서 면도칼로 귀두를 썩 베버렸다.       그때 강도 셋이나 덮쳐들어 승호를 제압해 바줄로 소나무에 비끌어매놓고 그 앞에서 짐승들처럼 혜영을 륜간하였다.        그후 승호는 녀동생 선금의 중매로 친구 선희를 속이고 결혼해 복화와 광문을 낳았다.        승호는 친삼촌 성호의 양보를 받아 한 신문사 광고과 과장, 광고공사 부총경리를 하게 되였다. 그런데 계속 “열집 사위”로 돼 숱한 아가씨들을 재끼다가 그만 에이즈병에 걸렸다.          그러자 선희는 머리를 들고 고향에서 살 수 없어 복화와 광문을 데리고 일본으로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승호가 에이즈병으로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선희는 모진  정신타격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밤낮 뛰여다니면서 일했기에 과로로 인해 암병에 걸려 이국 타향에서 치료도 제재로 받지 못하고 한많은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복화는 낮에는 학교에 가고 밤이면 자정까지 엄마가 일하던 카레점에서 알바를 하였다. 그러다가 그녀는 우연하게 카레점에서 다이로교수와 가은이를 만나게 되였다. 그때 마끼가 아빠한테 말해 복화를 집에 데려왔다. 그런데 마끼는 아빠가 복화를 보고 교타이모리 스시상에 오르게 한 일은 깜깜부지였다.       춘희는 복화가 너무 불쌍해 품에 끌어 안아주었다. 보나마나 복화는 생존하기 위해 부득불  교타이모리 스시상에 오른 것 같았다.  몸을 팔지도 않고 짧은 시간에 두툼한 목돈을 벌 수 있었다. 처녀로서 어데 가서 몸을 팔기보다는 아주 "숙녀다운"  고급돈벌이라고 여겼다. 어진간해서는 교타이모리 스시상에도 오를 기회 없었다. 교타이모리 스시상에 오르려면 여러가지 조건이 구비돼야 했다.      우선 숫처녀야야 하고, 다음 인물체격이 뛰여나야 했다. 다음 슈퍼미녀여야 했다. 그 다음 피부가 깨끗하고 백지장처럼 새하얘야 했다.     그외에도 여러가지 조건이 구비돼야 했다. 그런데 복화는 다이로교수의 심사조건에 부합됐던 것이다. 보통 일본 숫처녀를 선호했지만 다이로교수는 문걸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감안한데다가 복화에게 생활비를 마련해주려고 그 조건만은 하향해 수용했던 것이다.         이런 일은 일본에 류학가거나 돈벌이를 간 취약자계층에게서 흔히 있는 일이다.      어떤 남학생들은 시간은 없고 취직하기도 힘들어 피를 팔았다. 또 두툼한 목돈을 보고 초상집에 가서 사체를 층집에서 메내려오는 일도 해 학비를 마련했다.       춘희는 마끼를 보고 조선말로 물었다.      “너 혹시 복화 과자를 먹는다고 새된 소릴 친게 아니냐?”       “그래요.”      “왜?” 마끼는 다이로가 서재에 들어간 것을 보고 말했다. “아빠가 복화를 보고 과일만 먹으라고 했어요. 과자나 밥을 먹어선 안된다고 했어요.” 춘희는 의혹이 더 커졌다. “왜?” “잘 몰라요. 아빤 그저 복화 영양부족이라면서 과일만  먹어야 한다고 했어요.” 춘희는 점점 더 의아해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사람이 밥을 먹잖고 과일로 편식해 어떻게 산다니?” 마끼는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아빤 반년 동안 우리 집에 와서 밥도 안 먹고 과자도 안 먹고 과일만 먹으면 생활비를 많이 준대요.” “그래? 세상에 그렇게 좋은 알바도 있대?” 복화와 진희(마끼)는 서로 마주 보며 새물새물 웃었다. (다이로가 혹시?) 똑똑똑.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곤방와(안녕하세요?" "이럇샤이마쓰까(계십니까)?이샤데스네(의사입니다).” 다이로가 부랴부랴 달려나가 문을 열어주며 인사했다. “ 도조 하잇데고자이마세요(어서 들어오세요).” 새하얀 방호복을 입은 남녀의사 넷이나 우르르 들어섰다. “복꾸하나(복화), 고이(오라).” 춘희는 의아해 쏘파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지금 뭐 하는가요?” 다이로는 헤벌쭉 웃으며 두팔을 벌리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미국 류학 출신인 그는 제법 서양사람처럼 행동하군 했다. “복화영양부족이 심하오. 혼자 알바 해서 온전히 먹고 살았겠소? 건강검진해 잘 치료해야겠어.” “네- 감사해요. 복화는 부모 없는 불쌍한 앤데요. 많이 관심해주세요. 도조 요로씨꾸고자이마쓰(잘 부탁드려요. ” 다이로는 복화 침실로 들어가면서 선선히 대답했다. “좋아. 근심하지 마. 딸처럼 도와주지.” 춘희는 머리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춘희는 속궁리했다. (복화를 퍽 관심하는군. 건강챙기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녀는 의사들을 둘러보면서 피뜩 번개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복화를 야마구찌 다이로교수의 양딸로 삼으면 어떨까?) 의사들은 복화를 데리고 복화가 림시 든 침실로 우르르 들어갔다. 춘희는 객실에서 텔레비죤을 보는 마끼를 보더니 쏘파에 앉아 계속 속궁리를 돌렸다. (복화를 양딸로 삼으라면 다이로교수는 좋아할 거야. 자식 하나도 없으니깐. 그런데 복화한테 남동생이 있다잖는가. 남동생은 어쩌지? 아예, 걔도 양아들로 삼으라고 할까?) 그러나 마끼를 돌아보자 생각이 인차 바뀌였다. (아니야, 안돼. 그럼 장차 다이로교수 유산을 3분 해야 되잖는가?) 춘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내가 칠순이 다 된 다이로와 연을 끊지 못하는 것도 진희 때문 아닌가. 다이로 재산을 보고 가은이마저 일본 놈 성을 타고 일본 이름까지 달아서 일본에 귀화시키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춘희는 쏘파에 자세를 바로잡으며 앉으면서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난 첫 혼인에 실패하고 이젠 졸혼이야. 인생이 망가질대로 다 망가져버렸어. 내 고생하는 건 괜찮아. 그러나 마끼(진희)만은 고생시키지 말고 남 못잖게 살게 해야 해.) 춘희는 뇨타이모리 스시관에서 짐승 같던 다이로 모습이 피뜩 떠올랐다. 저가락으로 스시를 집어 복화 하신에 마구 저어내 냄새를 맡으면서 게걸스레 먹어대던 다이로, (다이로가 복화를 양딸로 삼아도 가만놔두겠는가.) 춘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돼, 자칫 불쌍한 복화를 해칠 수도 있어. 진짜 라체로 돈을 벌기보다도 복화 전도를 더 해칠 수도 있어.) 춘희는 여러 모로 고려해도 복화를 도우려다가 해칠 것만 같았다. 진희를 생각해서라도 집에 끌어들이지 말고 집 바깥에서 다른 방도로 도와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한편 의시들은 침실에 들어가 복화 전신을 꼼꼼히 검사하기 시작했다. “후꾸오 누레데 꾸다싸이(옷을 벗으세요.)” 복화는 부끄러워 돌아서서 옷을 한겹, 한겹 벗었다. 남의사가 복화를 침대에 반듯이 눕혀 놓고 비디오촬영기로 복화의 우유빛 몸을 촬영했다. 찰칵찰칵. 복화는 남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이를 옥물고 라체를 드러내야 하는 수치감을 참아야만 했다. 한 남의사는 복화의 백지장 같은 새하얀 피부를 꼼꼼히 매만지면서 살피더니 엄지를 내둘렀다. “o-k! Good(좋아)!)” 한 녀의사가 복화를 보고 입을 벌리게 하고 입 안에 PCR면봉을 넣어 휘젓더니 타액을 채취해 실험관에 챙겨넣었다. 녀의사가 복화 팔을 쥐여 이리저리 살피기도 하고 청진기를 들고 가슴으로부터 배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청진하기도 하였다. “다이죠부데쓰(괜찮아요)!” 그러자 다이로교수는 엄지를 척 내들었다. 녀의사는 복화를 보고 다리를 벌리라고 했다. 복화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다리를 오무리더니 이리곰실 저리곰실 탈았다. “하즈까시이데스네(부끄러운데요.) 다이로교수가 복화를 조선말로 설득했다. “반년에 500만엔 버는데. 뭘 꾸물거려? 마끼 엄마 박사라도 일본에서 500만 벌자면 쉽잖아. 너 언제 사창가에 가봐. 몸을 팔아도 3만엔 밖에 벌지 못해. 그것도 보스한테 주고나면 고작 1만 오천엔 밖에 벌지 못해.” 다이로 교수는 상냥한 표정을 지으면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의사들이 그저 처녀막이 온전한가 검사하는 거야. 그저 병을 보인다 치고 눈을 질끈 감고 넘어가. 자. 어서.” 복화는 의아해했다. 복화는 돈을 벌기 위해 마지못해 눈을 살며시 감으면서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다이로교수는 점잖게 훌 나가버렸다. 의사가  현미경을 들고 세심히 관찰했다. 의사는 또 복화 손등 정맥에 주사바늘을 꽂고 피를 시험관에 받아냈다. 의사는 나와서 다이로교수를 보고 말했다.  "별 이상은 없습니다. 이제 성병이 있는가 화험해볼게요.” 다이로 교수는 제자벌 의사들이였지만 허리까지 굽히면서 인사했다. “도모 아링아도(너무 고맙소). 도조 요로씨꾸(잘 부탁드리오).” 남의사가 말했다. “소변과 대변도 받아가야 되겠습니다.” “알았네.” 다이로교수는 침실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변기 붙은 특제의자를 가리켰다. “복화, 저기 앉아 먼저 소변과 대변을 봐라.” 복화는 의사들 앞이라 부끄러웠지만 별수 없이 특제의자에 앉아 소변과 대변을 보았다. 뒤에서 녀의사가 바삐 실험병을 들이대 대소변을 받아냈다. 녀의사는 더러워하기는커녕 대변을 받은 실험병에 코를 대고 냄새까지 흡흡 맡아보는 것이였다. “니오이가 다이죠부데쓰네(냄새가 괜찮아요).” 복화는 더러워 상까지 징그리면서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었다. “됐습니다. 이제 병원에 돌아가 대소변을 화험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녀의사는 다이로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뒷말을 이었다. “건강상태도 좋고 대변 색갈도 좋습니다. 십중팔구는 대변이 영양가 높을 것 같습니다.” 다이로는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감사합니다. 반년 동안이나 이 시각을 기다렸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의사들은 검사를 마치자 복화 침실에서 우르르 나왔다. 춘희와 진희도 일어나 곱게 인사했다. “도모 아링아도 고자이마쓰.(감사합니다.).” 진희도 손을 저으며 인사했다. “빠이, 빠이!” 의사들도 답례하고 총총히 가버렸다. 한참 후에도 복화는 다시 객실에 나오지 않았다. 아마 부끄러워 그러겠지. 춘희와 진희는 복화한테 더 찾아가지 않고 각자 자기 침실로 돌아갔다. 다이로 교수는 칠순 고개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이와는 달리 정력이 아주 왕성했다. 그는 춘희를 보자 벌떡 일어나 마주 나가더니 춘희를 와락 안아 침대에 내동댕이쳤다. “가만! 좀 기다려요. 몸을 씻고 올게요.” “그래? 서두르라고. 난 반년 동안이나 녀자 어떻게 생긴 걸 모르고 지냈어.” 춘희는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픽 코웃음쳤다. (누가 곧이듣겠어? 아마 내 고향에 날아간 날 밤부터 굴레벗은 말처럼 기생거리 사창가에 뛰여갔을 거야.) 춘희는 바꿔 입을 잠옷을 벗겨들고 샤와실로 들어갔다. 다이로는 오늘 밤에는 웬 일인지. 춘희를 보고 어느 색갈의 잠옷을 입으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해 서산에서 돋지 않는가?) 춘희는 샤와실에 들어가 샤와기로 온 몸에 뜨거운 물을 끼얹으면서 피씩 웃었다. (내 어디 세살짜리 앤가? 누굴 속이려고. 변태 같은 령감쟁이.) 춘희는 샤와를 하면서 다이로에 대한 이왕지사를 떠올렸다.   춘희는 처음부터 다이로교수 재산을 넘보고 다이로교수 집에 들어선 건 아니였다. 또 처음부터 다이로교수를 무턱대고 염오한 것도 아니였다. 처음 일본에 류학 왔을 때만 해도 그녀는 다이로교수를 아주 존경하고 믿고 따랐다. 춘희는 분망히 공부하면서 카레점에서 밤중까지 아라바이트까지 하다나니 온전히 먹지 못해 영양결핍에 위병과 페병에까지 걸려 입원치료를 받게 되였다. 그때 담당의사이자 그녀의 지도교수인 다이로교수는 춘희를 동정하면서 정성들여 치료해주고 여러 모로 살뜰히 보살폈다. 심지어 치료비마저 다 대주었다. 다이로교수 덕분에 춘희는 인차 건강을 회복하고 대학교에 가서 인차 공부할 수 있게 되였다.       여름방학에 춘희는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남편이 바람 피우다가 성병에 걸린 것을 발견하고 리혼하고 말았던 것이다.       춘희는 일본에 돌아가  공부하면서 더 없는 고독감을 느꼈다. 물론 함께 일본에 류학온 황선희가 친언니처럼 서로 의지했지만 리혼후유증으로 인한 고독증은 말릴 수 없었다. 그녀는 누군가에 의지하고 싶었다.      그때 다이로교수가 그녀 마음의 대문을 슬그머니 두드렸다. 다이로교수는 그녀의 학비까지 다 대주려고 했다.      “알바를 하면서 어떻게 공부하겠는가? 또 중병에 걸리면 어쩌자고?”     그 문안소리, 그 가벼운 노크소리에 그녀는 저도 몰래 스르르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마음의 대문을 빠끔히 열고 말았다. 다이로는 생물실험실에서 춘희를 꼭 끌어안았다. 춘희는 감동돼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다이로 품 속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다이로의 손이 부지부식간에 가슴에 스르르 들어와 살갑게 애무하는 것도 다 잊어버렸다…       (그때만 해도 다이로는 오빠 같고 아버지 같았지.)       그후 다이로는 애도 낳지 못하는 늙은 본댁과 리혼하고 춘희를 본격적으로 집에 데려갔다. 결혼 초기에는 그래도 20여세 차나는 세대 차이를 훌쩍 뛰여넘어 아기자기하게 지냈다. 다이로는 젊은 안해를 맞은 기쁨에서였을까. 춘희를 아주 살갑게 굴었다. 심지어 가은이마저 딸로 삼겠다면서 일본에 데려와 함께 살자고 했다. 그때 춘희는 다이로교수한테 얼마나 감복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감동도 얼마 가지 못했다. 날이 감에 따라 다이로는 대남자주의를 부리기 시작했다. 쩍하면 춘희와 떽떽거리고 신경질을  썼다.       설상가상으로 칠순고개를 바라보는 다이로는 생물학자여서 그런지, 미국과 중국의 수입제정력제를 많이 써서 그런지 나이와는 달리 정력이 아주 왕성했다. 그는 얼핏 보면 50대 같아 보였다. 그는 한주일에도 대여섯번씩 춘희를 깔고 들어앉았다. 그러나 그는 날이 감에 따라 자기가 점점 시들어가는 감이 들었다.      다이로는 침대에서 그게 잘 되지 않자 점점 변태적으로 놀기 시작했다.     춘희를 보고 침대 앞에서 본댁이 입던 열몇벌이나 되는 잠옷을 갈아입으면서  일본 춤을 추게 하는가 하면, 라체모델 표현까지 하라고 억지로 요구했다. 보나마마 다이로는 젊어서 본댁과 침실에서 놀던 추억을 되살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처음에는 춘희도 다이로교수를 될수록 조화롭게 만족을 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다이로는 항상 불만족해하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네 대륙 녀성들은 일본 녀성들에 비해 엄청 차해. 일본 녀성들은 집에서 가무를 돌보면서도 남편이 퇴근해 오면 가방을 받아 걸고 옷과 신까지 다 벗겨주지. 침대에서는 어떻게 하나 남편을 만족시키려고 무등 신경을 쓰지. 샤와를 하고 열서너가지 잠옷을 골라 입으면서 어떻게 하면 남편의 피로를 풀어들이고 성욕을 만족시켜주겠는가고 애쓰지. 그러나 너넨 어떤가? 그저 침대에 올라와 옷을 훌 벗고 의무적으롤 몸을 들이대면 그만이지. 완전히 기계적이지. 아양도 좀 간드러지게 떨고 지랄발광 다 해야는데. 이건, 어우, 쯧쯧쯧, 맛도 없어.”        다이로는 두덜거리더니 나중에  춘희를 보고 별의별 저급적인 변태로 탈바꿈 했다.      “야메데 나(그만두지 않겠어요)?! 난 사람이지 짐승 아닌데요!” “으하하하, 이래야 새 자극받지.” 다이로는 자극을 받으려고 섹스비디오를 사다가 돌려보면서 날마다 밤이면 침대 위에서 천방백계로 새 수작을 해댔다. 그것도 모자라 쩍하면 사창가로 달려가 기생들과 한바탕 놀아대군 했다. 심지어 춘희가 보는데서 황선희한테 지분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춘희는 아무 것도 못본 척했다. (좋아하겠으면 해라지. 날 시끄럽게 굴지 않았으면 돼. 진짜 신물이 날대로 나.) 다이로는 각양 각색 녀성들의 매력을 단념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춘희 앞에서는 달콤한 소리만 골라했다. “우리 만남과 사랑은 우연한 사랑이였지만 필연적인 것이였네. 이것은 운명이기도 하지. 난 그대를 세상에서 제일 부유하고 지적인 부인, 아니, 젤 아름다운 부인으로 만들테야.” 춘희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다이로를 응시했다. 춘희는 가은이 앞날을 위해 그저 한쪽 눈을 감고 한쪽 눈을 뜨고 억지로 살아나갔다. 다이로한테 신물이 날대로 난 그녀는 더 배기지 못하고 마끼(가은)를  일본에 남겨둔 채 고향에 훌 돌아가 병원에서 일했던 것이다. 그때 춘희는 진짜 다이로 교수의 가정에서 훌  졸혼하고 나홀로만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홀가분한지 몰랐다. 그녀는  여유시간에 문걸과 함께 사교무나 추고 등산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랐다. 춘희는 항상 혼자 중얼거렸다. (고향에서 다빈치를 안고 살아도 다이로하구 살기만 낫지.) 문걸은 혈변을 보고 쓰러져 춘희네 병원 구급실에 입원했던 것이다. 그 바람에 춘희 생활권에 우연하게 들어섰다. 그녀는 의사의 직업적인 인도주의 리념으로 사선에서 헤매는 문걸을 자기 피마저 수혈해 구해냈다. 그런데 운명희 조화라고나 할가. 그녀는 문걸과 함께 눈덮인 야산에 등산하러 갔다가 협곡 눈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사선에 헤매게 되면서 춘희는 그만 문걸한테 사랑을 고백하고 말지 않았겠는가. 이번에도 다이로 집에 오기 싫은 것도 사랑하는 본댁을 잃고 정신타격을 받은 문걸의 정신건강에 조금이라도 위안되겠는지 해 오기 싫은 일본행을 결심했던 것이다. 또 문걸을 보고 일본에서의 자기 과거 생활형편을 알게 하려는 것도 있었다...   춘희가 샤와을 다하고 잠옷을 입고 나오자 다이로교수는 그녀 아래 위를 찬찬히 바라볼뿐이였다. 반년만에 만났으면 이전 같으면 샤와실에서 나오기 바쁘게 침대에서 뛰여내려와 춘희를 안아 침대에 내동댕이쳤을 것이다. 그러나 침실에 갓 들어섰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다이로는 입맛을 쩝쩝 다실뿐이였다. 춘희는 지껄이지 않으니 오히려 좋았다. 그녀는 잠옷바람에 주춤 멈춰섰다. “라체무나 추게나.” 춘희는 잠옷을 슬슬 벗으며 몸을 이리저리 탈며 섹시한 자태를 취하면서 백지장 같은 몸을 스리살살 놀리기 시작하였다. 다이로는 연분홍전등불빛 아래서 퉁방울눈을 가슴츠레 뜨고 바라보았다. 춘희가 아무리 섹시하게 몸놀림을 해도 어쩐지 사창가 가부기 기생들의 발 밑에도 가지 못했다. 이젠 어진간해 다이로교수에게 자극을 주지 못했다. “에이, 그만, 그만! 곤하겠는데. 침대에 올라와.” 춘희는 침대에 기여올라가면서 종알거렸다. “또 기계적으로 들이댄다고 하진 않겠지요?” “아니야. 오늘 새 프로 있어. 우리 일본에선 고대로부터 이런 프로로 놀았지.” 다이로는 말을 마치자 침대머리 상자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비닐바줄?! )  “당신 뭐 하자는 건가요?” “가만 있어 봐. 얼마나 자극적인가 맞 봐!” 다이로는 춘희를 짐승처럼 깔고 들어앉아 비닐바줄로 손을 뒤로 묶고  검은 띠로 눈도 동졌다. 춘희는 더럭 겁났다. “지금 뭘 합니까?” “널 바줄로 묶어놓고 강간하면서 새 자극을 반자는 거야. ㅇㅎㅎㅎ.” “애들 있는데 작작 연극 놀아요.” 춘희는 하루 밤이 삼추 같았다. 그녀는 온 몸을 바르르 떨며 속으로 오열했다. (못 살아, 번태하구 하루도 더 못 살아, 오- 언제 이 밤이 다 갈가?)
263    대하소설 졸혼(27) 김장혁 댓글:  조회:1277  추천:0  2022-07-18
          37. 오사까 로맨스                  비행기는 활주로 미끌어져나가다가 기체를 건뜻 쳐들며 푸르른 하늘로 서서히 솟아올라갔다.       발 밑에 푸르른 소나무로 뒤덮인 망아산이 모래무지처럼 내리다보였다. 망아산 소나무 숲 속 그 더러운 참사랑의 블랙홀도 거머리처럼 보이다가 시선에서 사라졌다. 고향 땅도 뒤로 하고 비행기는 안개인지 구름인지 무연한 구름층을 뚫고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비행기는 구름바다를 유유히 날아갔다.     순간 문걸은 모든 고민을 뒤로 하고 춘희 요청으로 함께 일본광광을 떠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한 감을 느꼈다.     비행기는 두 시간도 날지 않고 무연한 바다를 가로 질러 섬나라 상공으로 진입하였다. 이윽고 저 멀리 한 비행장이 나타났다.      “저게 오사까공항인데요. 땅이 적은 일본 사람들은 땅을 남느라고 바다를 메우고 오사까공항을 닦았어요.” 춘희 말에 문걸은 부지중 감탄했다. “오- 참 대단하구만. 깊고 깊은 바다를 메우고 커다란 섬을 만들고 그 섬에 이렇게 큰 공항까지 만들다니. 섬나라 사람들 참 대단해. 인간기적을 쌓았구만. 허허허.” 평소에 섬나라에 대한 문걸의 태도와는 완전히 다르지 않는가. 백문불여일견이라고 일본 상공에 이르자 감탄부터 나왔다. “이제 우리 일본 감탄할 일이 많고도 많을 거예요.” 아사꼬가 종알거리자 문걸은 괜히 울컥했다. “너도 무슨 일본 사람이라구 그래느냐?” 아사꼬는 눈을 곱게 흘겼다. “그래요. 일본 산 미녀로봇이면 일본 미녀죠. ㅎㅎㅎ. 깔깔깔.” 비행기에서 내려 PCR 검사와 안전검사를 무난히 마치고 짐대기실에 나왔다. 일본에는 코로나가 심했지만 검사가 그리 까다롭지 않아 모든게 순조로왔다. 그들이 짐을 찾고 있는데 코수염쟁이 사나이와 10대 말 돼 보이는 처녀애가 마중 나왔다. 코수염쟁이는 머리도 희지 않은 걸 피뜩 보아 50대 말이나 돼 보였다. 그런데 후에 알고 보니 코수염쟁이는 칠순고개를 바라보는 늙은일줄이야.         코수염쟁이와 춘희는 완전히 일어로 인사말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춘희는 코수염쟁이한테 문걸을 소개해주었다.        “고노까다와 와다시노 간샤 리분게쯔센세이데쓰(이 분은 저의 환자 리문걸선생입니다).” 문걸은 일어를 배운터라 자기를 친구 아닌 환자로 소개하는 것을 얼핏 알아들었다. “이분은 남편 야마구찌 다이로(山口太郎)입니다.” 다이로는 문걸의 손을 잡고 허리를 구십도로 굽히고 악수하며 류창한 조선말로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문걸도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하지메데 도조 요로씨꾸(처음 뵙는데 잘 부탁드립니다).” 다이로는 인사를 받으면서도 눈길이 그리 곱지 않았다. 별로 첫 인상에 의심하는 눈빛이 번쩍이는 것 같았다. (내 너무 신경이 예민한가?) 문걸은 개의찮고 처녀애한테 눈길을 돌렸다. 춘희는 다이로 곁에서 미소 짓고 서 있는 처녀애의 손을 잡으면서 소개했다. “얘는 제 딸 야마구찌 마끼(山口真姬입니다.” 야마구찌 마끼는 다가와 허리를 굽히며 조선말로 곱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한테서 리선생님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요. 유명한 화가님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지사마(아저씨)님께서 일본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문걸은 류창한 조선말로 인사하는 야마구찌 마끼를 보고 놀랐다. “반갑소. 김박사한테서 미스 얘기 많이 들었소.” 다이로는 아사꼬를 보고 인사하자고 춘희한테 얼굴을 돌리며 머뭇거렸다. “고노 까다와 리센세이노 오꾸상데스(이 분은 리선생님의 안해입니다).” 문걸은 춘희 말에 저으기 놀랐다. 그러나 아사꼬는 기뻐 해쭉해쭉 웃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말수 적은 다이로는 좀 반색하면서도 이상한 눈길로 아사꼬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오- 소우데스네(그렇네요). 곤니찌와(안녕하세요?)” “初めまして、お会いできて、とてもうれしいです。(처음 뵙는데요.  매우 반갑습니다.)” 다이로와 아사꼬는 서로 구십도 경례를 꼽싹거리며 인사했다. 다이로는 아사꼬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리센세이노 오꾸상와 닛뽄진데스까?(리선생님 부인님은 일본 분입니까?" 다이로교수의 말에는 어찌 일본 녀자가 조선인한테 시집갔는가는, 아쉬움이 알게 모르게 묻어나왔다. "하이, 소우데스. 하지메마스데, 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네. 그렇습니다. 처음 뵙는데요. 잘 부탁드립니다.)" "부인님 고향은 어뎁니까?" 다이로 교수가 조선말을 하자 아사꼬도 조선말을 했다. "저의 고향은 오사까죠.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서 정말 기뻐요." "아, 그런가요. 즐겁게 노십시오." 아사꼬는 득의양양해 진짜 안해인 척 문걸의 팔을 끼더니 턱을 쳐들고 당당하게 걸어나갔다. 문걸은 아사꼬한테 팔을 맡기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요놈, 진짜 안해 역을 놀 예산이군. 옳아. 아사꼬가 안해인 척하면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 춘희도 남편 앞에서 편할게구.)’      문걸은 부인 대접 받고 기뻐 어쩔줄 모르는 아사꼬 손을 잡고 걸으면서 춘희의  아량있는 처사에 감탄했다.      그들은 무인조종버스를 타고 공항광장을 나왔다. 그들은 주차장에 가서 두 고급도요다표 승용차에 갈라탔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도요다표승용차는 일본 천황이나 타는 젤 비싼 도요다표승용차였다. 아사꼬와 문걸이 한 차를 타고  춘희는 다이로와 딸애를 따라가 한 가족이 다른 도요다표 찌프에 탔다. 순간 문걸은 소외감이 들면서 춘희와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이로 교수는 첫 인상에 아주 부자라는 감이 확 들었다.  얼굴에는 아주 득의양양하고 자신만만한 표정이 내비치고 있었다. 친히 차를 몰고 나왔는가 했더니 두 차 다 운전수들이 운전했다.         문걸은 공항으로부터 오사까 시내로 달리면서 보노라니 포장도로가 아주 가늘었다. 일본은 땅이 적어 길도 개밸처럼 가늘고 꼬불꼬불했다.      고급승용차들은 오사까 시내 복판에 자리잡은 호텔 앞에서 멈춰섰다. 다이로 가족 셋이 다 차에서 내려와 이쪽 차 앞으로 다가왔다. 춘희는 미리 예약한 호텔에 문걸의 주숙을 마련해놓고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래일 제가 올게요.” “감사하오.” “즐거운 밤 되십시오.” 다이로도 인사하고 떠나갔다. 호텔 카운터 로봇미녀안내원도 인사했다. “안녕히 다녀가세요. 좋은 밤 되세요.” 피뜩 보아선 로봇미녀안내원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아사꼬도 미녀로봇과 미소지으며 인사했다. 미녀로봇은 아사꼬의 정체를 알아보았는지 이것저것 주고 받았다. 아사꼬와 함께 호텔방에 들어간 문걸은 옆에서 아사꼬가 아양을 떨어도 고독감이 스물수물 몰려오는 것이 이상했다.         (춘희는 남편이 있는데 무슨 미련을 두고 일본까지 따라 왔어? 왜 춘희한테 그렇게 관심 갖지? 바보야. 영희한테 속듯이 또 춘희한테 당하려고? 춘희는 이상하게 이중적으로 놀지 않았어? 감발을 쓰고 쌍까풀눈인척 성형하고 사교무장에 나타났지 않았는가. 등산하러 다닐 땐 그저 개체호라고 했는데 기실 의사 아니였던가. 그것도 일본 류학 출신 박사! 천길 물 속은 알아도 한치 사람 속은 알기 힘들어. 힘들어.) 순간 문걸은 어처구니 없고 허탈하기만 했다. 고독감이 밀물처럼 마구 밀려왔다. “이럴줄 알았으면 섬나라에 왜 왔어?” “뭔가요? 너무나 열정적인 접대를 받는데요. 왜 그래요? 또 춘희 생각나는가요?” 아사꼬는 문걸을 침대에 깔고 넘어갔다. “이러지 마. 오늘 그런 기분 없어.” “우린 부부야. 춘희도 인정하는 부부.” “아니야. 이러지 마.” 문걸은 발버둥질치며 단말마적으로 아사꼬를 밀어냈다. 그러나 힘으로 미녀로봇을 어떻게 당하랴? 갑자기 미녀로봇이 문걸의 옆으로 스르르 쓸어졌다. 문걸이 미녀로봇의 스위치를 꺼버렸던 것이다. 그제야 문걸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의 눈 앞에 야마구찌 다이로의 짙은 눈섭과 콧수염이 떠올랐다… 이튿날 춘희는 도요다표찌프차에 문걸과 아사꼬를 싣고 오사까성으로 달려갔다. 저기 저 멀리 벌써 화창한 봄날을 맞아 탑식으로 높이 우뚝 솟은 오사까옛성 둘레 공원에 새하얀 사꾸라꽃이 그들을 반겨 웃음꽃을 활짝 꽃피우고 있었다. 사꾸라꽃나무숲 속에 들어서니 흐드러지게 핀 연분홍 사꾸라꽃이 반겨맞아주었다. 문걸은 사진기 샷타를 연신 눌렀다.     찰칵찰칵.     문걸이 촬영하다가 춘희를 돌아보고 물었다.     "사꾸라꽃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장 찍을까?"       춘희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사색에 잠기더니 도리머리를 저었다.       "건 아니죠. 괜히 의심을 사겠어요.":        문걸은 리해되지 않았다.       "아니, 아사꼬까지 셋이 찍는데도 의심은 무슨 의심이오."      "그렇게 됐어요."     춘희는 문걸한테 다가서며 사진기에 손을 내밀었다. "제가 기념사진 촬영해주죠. 촬영재간없지만요." "그게 좋아요." 아사꼬가 또 끼여들었다. 그리하여 문걸은 아사꼬와 나란히 서서  사꾸라꽃밭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찍었다. 아사꼬는 기쁜 나머지 문걸의 팔을 껴안고 해쭉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찰칵.       ;그들은 사꾸라꽃밭을 꿰질러나가 뒤로 하고 그들은 오사까옛성으로 다가갔다.       우람진 둔덕에 우뚝 솟은 오사까 옛성- 熊本城은 괴수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몇백년 전에 축조한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궁전이였다. 오사까  熊本城으로 올라가는 공원길에 몇백년 전 섬나라 괴수 도요도미히데요시와 도꾸가와가 거액을 들여 축조했다는 높다란 돌문과 돌성이 굽이굽이 도고히 들어앉아 있었다. 돌성의 바위돌들이 어찌나 큰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춘희가 요청한 미녀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도요도미 히데요시나 도꾸가와는 천황궁에 쓴 돌들보다도 엄청 큰 바위돌로 천황궁보다도 더 높고 웅장한 오사까성을 축조했다.  그만큼 도요도미 히데요시나 도꾸가와의 야심이 천황을 엄청 릉가했다는 것을 상징했다.      기실  오사까 熊本城 에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들어앉은 도요도미 히데요시나 후세의 도꾸가와의 정치, 경제, 군사 실력은 당시 천황을 훨씬 릉가했다. 그러나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천황을 상징하는 태양신을 믿었고 "천황은 하늘이 내린 것이다."고 여기고 절대 천황을 뒤엎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2인자로 억지로 남아 살기로 했다고 한다.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막부 사무라이의 호전광기를 천황과는 쓰지 못하고 국내를 다 평정하자 조선을 침략하는데 광기를 썼다고 했다. 결과 그가 파병한 침조 일본군은 영용한 명나라와 조선 련합군의 타격을 받아 여지없이 패망했다. 특히 조선 수군 명장 리순신 장군이 이끄는 거북선의 습격을 받아 노량, 명랑 등 해전에서 여지없이 패배했다.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 전쟁에서 패망하자 천하 제일 사무라이로 자처하던 도요도미히데요시 정권은 결국 패망하게 되고 도꾸가와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고 한다. 도꾸가와는 히데요시를 지우기에 혈안이 돼 날뛰였다고 한다.      "저 큰 바위돌을 어떻게 실어다 쌓았을가? 참 사람 손이란 무서운게야."     괴수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오사까 熊本城에 쌓은 젤 큰 바위돌은 무려 60톤이나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옆에 후임 도꾸가와 정부가 쌓은 절벽 같은 바위돌은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쌓은 바위돌보다 도 엄청 더 컸다. 무게도 무려 90톤이나 된다고 했다.       도꾸가와는 그만큼 자기가 히데요시보다 더 센 사무라이라는 것을 세상에 과시하려는 것이였다고 한다.       오사까 옛성-熊本城을 둘러쌓은 구불구불한 토성에 들어서는 돌대문 우에 이상하게 커다란 까마귀돌조각상이 도고하게 앉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상에 숱한 고운 새를 두고, 원, 참, 까마귀 뭐 곱다고 까마귀조각상까지 대문에 높이 올려놨지? ㅋㅋㅋ.”       문걸이 이상해하자 춘희가 나직이 설명해주었다.      “일본 사람들은 천황을 태양신으로 여기면서 태양신을 믿었지요.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까마귀신도 믿고 있습니다.”      문걸은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세상에 어디 신이 있다고? 까마귀신을 다 믿어? 흥! 섬나라 사람들은 참 기괴하단 말이오.”     춘희는 문걸에게 내심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보통 까마귀를 미운 새로 여겨 항상 나쁜 놈으로 견주어 추화하는데요. 적지 않은 일본 사람들은 까마귀를 효성이 지극한 효자새로 여기죠. 까마귀는 늙으면  털이 다 빠져 날지 못해 먹이를 잡아 먹지 못해 죽게 되죠. 그래서 까마귀는 부모가 늙어 털이 다 빠지기 전에 자기 둥지에 모셔다가 세상 떠날 때까지 먹이를 날라다 먹이고 비가 오면 자기 날개로 덮어주면서 효성을 다 한대요.” “오- 까마귀가 그렇게 효성이 지극할줄은 정말 몰랐는대요.”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까마귀신도 믿는대요.” 문걸은 그제야 머리를 끄덕였다. 순간 문걸은 령감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까마귀로 훌륭한 새 동화그림책을 창작할 수 있을 거 같아.” 춘희는 문걸의 기발한 착상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시간 나지면 까마귀 동화그림을 창작해보세요.” “그렇게 하지. 내 착상을 들어보오.” 문걸은 자기 기발한 착상을 말했다. “백조와 까마귀를 대조시켜 등장시킨단 말이오.” 그의 머릿 속에는 벌써 련속 그림이 펼쳐져나갔다. “그림 1, 호수가에서 백조는 바레를 추면서 잘난 척하며 까마귀를 자꾸 새까만게 못났다고 조롱한다. 그림 2. 까마귀는 남을 자꾸 조롱하는 백조를 보고 겉은 새하얗지만 속은 새까맣다고 반격한다.” 아사꼬가 감탄했다. “네- 참 그럴듯해요.” 춘희는 하회를 기다렸다. 문걸은 흥이 나서 창작령감을 손시늉하면서 말했다. “그림 3. 까마귀는 호수에서 잉어를 물고 하늘로 날아올라 어데론가 훨훨 날아가지오. 그림 3. 백조는 까마귀가 어데 가는가고 뒤쫓아가 보았지요. 그림 4. 까마귀는 높은 백양나무가지에 튼 둥지에 날아가서 털 하나 없는 엄마한테 잉어고기를 대접하고 있었죠. 소낙비가 쏟아지자 까마귀는 날개를 펴서 털없는 엄마 알몸을 덮어주었다. 그림 5. 백조는 까마귀 효성에 못내 감복됐지요. 그제야 백조는 까마귀를 못났다고 자꾸 욕한 것을 뉘우치면서 감탄했어요. ‘아, 원래 까마귀는 겉은 새까매도 속에는 효성이 가득 찬 효자였구나.’” 문걸은 춘희를 돌아보았다. “어떠오?” “참 멋지구만요. 까마귀에 대한 사람들의 인상을 확 바꿔놓을 명 동화그림으로 될 거 같아요.” 문걸은  그림창작 흥이 부쩍 올랐다. “이제 저녁에 호텔에 돌아가 그림 그려서 섬나라 관광기념으로 야마구찌 일가에 드리죠.” 춘희는 일본 녀인처럼 허리까지 굽히며 인사했다. “네, 고맙습니다.” 아사꼬는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왔는지라 그들을 좀 떨어져 걸으면서 사꾸라꽃 나무에 다가가 꽃향기도 맡아보고 카메라로 꺼내 찰칵 찰칵 기념촬영을 하기도 하였다. 문걸은 피뜩 의문이 떠올랐다. “한가지 문의해도 되겠소?” 춘희는 주춤 멈춰서면서 그를 마주 바라보았다. “네. 괜찮아요.” 문걸은 외까풀눈으로 춘희 외까풀눈을 정시하면서 물었다. “야마구찌 마끼는 성씨를 보면 일본 처녀애인데 조선말을 너무 잘하더군.” 춘희는 문걸이 묻는 의도를 제꺽 알아맞췄다. “걔는 원래 조선족인데 당연히 조선말을 잘 할 수 있죠.” “조선족?” 문걸은 저으기 놀랐다. “그럼 야마구찌 마끼는 야마구찌 다이로 선생의 친딸이 아니란 말이오?” “그래요.” 춘희는 문걸한테 모든 것을 속이고 싶지 않았다. “그 애는 전 남편의 딸애입니다.” “오- 그렇구만.” 문걸은 발부리를 내려다보면서 걷다가 머리를 건뜻 쳐들더니 주춤 멈춰서서 춘희를 마주 바라보았다. “좋은 조선족 성씨는 어쩌고 일본 성을 탔소?” 춘희는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된 사연 있습니다.”      그녀는 오사까 熊本城 토성에 기대 토성 밑에 흐르는 맑은 해자에 눈길을 돌리며 솔직히 말했다.      “야마구찌 마끼에게는 원래 허가은이란 좋은 이름 있었지요. 그런데 제가 리혼한 후 저의 도사인 야마구찌 다이로 교수와 재혼하게 됐지요. 야마구찌 다이로 교수는 리혼한 전 안해 사이에 자식이 하나도 없었지요. 그래서 저의 딸을 무척 욕심내고 엄청  고와했지요. 그래서 저는 가은이 보고 배신자 전 남편의 허씨 성을 떼버리고 야마구찌 성을 따르게 했어요. 또 딸애가 장차 일본에서 발을 붙이고 살려면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선 어렵게 되지요. 그래서 부득불 그렇게 됐어요. 호-” 문걸은 그제야 야마구찌 일가 족보에 덮였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문걸에게는 아직도 걷히지 않은 안개 속에 묻힌 의문이 수두룩이 있었다. (그럼 왜 춘희는 이리 부유한 교수네 집에서 살지 않고 시골 고향 병원에 돌아가 일할가? 그들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벌겨 생활을 할가? 그들 사이에 무슨 간극이라도 생겼는가?...) 그러나 문걸은 단번에 궁금한 것을 다 파헤치려고 서두르지 않았다. 자칫 아픈 춘희 아픈 상처를 건드릴 수도 있기 때문이였다. (서두룰 필요야 없지. 춘희는 완전히 야마구찌 일가에 깊이 박혀 있지 않는가.) 문걸은 저도 모르게 이상해났다. (춘희는 재혼해 일본에 행복한 가정이 있는 녀인인데 왜 자꾸 관심을 가지지? ㅉㅉㅉ.) 이때 춘희 핸드폰이 울렸다. “모시모시(여보세요), 하이(예), 이송아씨이데(다망한데요.). 죳또 맛데꾸다씨이마쎈까?(좀 기다려주시지 못하겠습니까?) 춘희는 전화를 받으면서 한쪽 구석으로 걸어갔다. 문걸은 고급일어수준이여서 춘희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마 남편과 대화하는 것 같았다. 춘희가 나직이 말하는 것이였다. “저의 환자를 환대해주셔서 매우 감사해요.” 춘희는 돌아와서 문걸한테 말했다. “점심에 저의 남편이 초대하겠답니다.” “감사하다고 인사 전해주오.” 문걸은 오사까 熊本城을 사진기에 담은 후 옛성을 내려오다가 사꾸라꽃밭에 발길을 돌렸다. 그는 사꾸라꽃을 스케치촬영하려는지 사꾸라꽃에 다가가 연신 근접촬영했다. “이제 시간 나지면 오사까 옛성을 그려드리죠.” “고맙습니다.” “야마구찌 가족 집에 걸어두세요.” “오사까는 다이로교수 고향이죠. 그도 오사까 옛성 그림을 보면 기뻐할거예요.  기념그림으로 잘 걸어두지요.” 점심에  그들은 도요다찌프에 앉아 음식점으로 달려갔다. “아차, 아사꼬를 어쩐다?” 문걸이 아사꼬를 돌아보면서 근심했다. “쟤는 아무 음식도 먹지 못하는데. 괜히 다이로교수한테 의심받지 않겠소?” “오- 깜빡했군요. 호텔에 두고 오면 어떨까요?” 아사꼬가 뽀로통해했다. “안돼요. 저도 연회에 참가하겠어요.” “아무것도 먹지 못하면서 무슨 연회냐?” “구경이라도 하면 안돼요? 참, 너무 무정해요.” “넌 감정없다더니? 참. 호텔에서 날 기다려.” 아사꼬가 그들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귀띔해주었다. “다이로교수님께서 모처럼 차린 연회석에 내 없어봐요. 다이로센세이 더 의심하지 않는가?” “그것도 그래. 부인 없으면 더 의심하겠는데.” “그럼 데리고 가자요.” 문걸은 별 수 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찌프에 앉아 가면서 문걸은 아사꼬한테 주의사항을 구구히 얘기해주었다. 문걸이 오사까옛성이며 사꾸라꽃이며 대문 위 까마귀 조각상을 촬영하느라고 음식점에 좀 늦어 도착했다. 음식점은 카레점도 아니고 아주 으리으리한 고급음악스시관이였다. 다이로교수는 벌써 스시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곤니찌와? (안녕하십니까?) 오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는 문걸 “부부”한테 깎듯이 인사했다. “곤니찌와? (안녕하십니까?) 다망하시겠는데 환대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문걸은 류창한 일어로 다이로교수한테 인사했다. “늦어서 미안해요.) “이이에(아니죠.). 들어가시지요.” “고맙습니다.” 다이로교수는 문걸 “부부”를 데리고 스시관으로 들어갔다. 이게 뭔가? 널다란 스시관에는 빙 돌아가며 의자뿐 료리상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걸은 의아해하면서 의자에 들어앉았다. 갑자기 전등불이 꺼지고 대신 은은한 음악이 울렸다. 스시방 문이 열리자 흑백이 분명한 레이자불빛이 그리로 비추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아가씨들이 커다런 침대 같은 긴 스시료리상을 밀고 들어왔다.       오색령롱한 레이자조명등불빛이 료리상을 환히 비추었다.     문걸은 깜짝 놀라 그만 “와-“ 하고 소리칠 번했다.       아사꼬가 옆구리를 툭 쳤다.      문걸은 실례한 것을 알고 머리를 약간 숙였다. 다이로교수는 그저 빙긋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 속에는 촌뜨기를 비웃는듯한 웃움기가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문걸이 다시 보아도 자기 눈을 의심할 지경이였다.      침대만한 료리상 복판에 미녀 라체가 반듯이 누워 가딱하지 않고 있었다. 미녀의 백지장 같은 라체 위에 스시접시가 다닥다닥 놓여 있지 않겠는가.      봉긋한 젖가슴 위에는 사꾸라꽃 위에 스시접시 두개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마에는 사꾸라꽃과 백합생화가 누워  있었다. 우유빛 젖가슴으로부터 배와 허벅다리에 내려오면서 꽃에 싼 스시와 양념간장종지랑 와사비접시랑 줄느런히 놓여 있었다.     라체의 미녀는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스시료리상에 누워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살풋이 내리감고 담담히 누워 있었다.     다이로교수 부부는 문걸 “부부”한테 일본 최고료리 뇨타이모리(女体盛り)상을 챙겨 최고대우로 접대하고 있었다. 뇨타이모리는 엄청 비싼 일본 최고료리인데 진짜 미녀라체에 차린 스시상이였다.       문걸은 바삐 자리에서 일어나 배낭에서 사진기를 꺼내 찰칵찰칵 촬영하기에 바빴다.  핸드폰을 들어 비디오촬영까지 했다. 그러자 스시상 위 미녀가 새물새물 웃으면서 포즈를 취하는 상 싶었다.       문걸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사진기를 배낭에 되넣고나서 자리에 앉았다.       (진짜 희귀한 새 세상에 들어선 것 같아. 이래서 일본은 개방된 자유세상이란 말인가?)            아가씨가 돌아가면서 문걸과 다이로교수 술잔에 양주를 찰찰 넘치게 부었다. 춘희와 아사꼬 술잔에도 부었다.       다이로교수는 술잔을 높이 들었다. "도조. 사께오 논데꾸다싸이(자, 술 마십시오.)"      다이로교수는 술잔을 들고 문걸 부부한테 다가와 류창하고 친절한 조선어로 권주했다. "리문걸선생님 부부님, 우리 일본에 놀러 오신 걸 열렬히 환영합니다. 자, 한잔 듭시다.”         문걸은 일어로 화답했다.        “이쏭아씨이데모 간다이데 도모 아링아도 고자이마쓰(다망하신데도 환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이로교수는 문걸 부부와 잔을 딩둥 마주치고나서 잔을 반쯤 굽내고 살짝 내려놓았다.       그는 좌석에 돌아가더니 아주 스스럼없이 저가락을 집어들고 젖가슴에 놓은 접시에서 스시(생선회)를 집어 와사비에 뚝뚝 찍어 콧수염 밑에 가져갔다.      문걸은 저가락을 집어들고 춘희 눈치를 흘끔 보더니 종아리에 놓은 접시의 스시를 한점 집어 와사비에 찍어 먹었다.      춘희와 아사꼬도 술잔을 들어 조금씩 홀짝 마시고 스시를 집어 먹는 척 했다. 아사꼬는 생선회를 넘길 수 없어 오물오물 씹는 척하다가 입질을 스리슬쩍 멈췄다.      이윽고 그녀는 “시쯔레이데, 스미마센(실례해 미안해요.” 하고 한마디 하고는 오쫄 일어나 자리를 비웠다.      다이로교수의 량 눈섭이 코마루 위쪽 이마에 올라가 찰싹 붙더니 한데 모아졌다. 순간 의심에 찬 눈빛이 번쩍이며 아사꼬 잔등을 뒤따라갔다.       미녀로봇 아사꼬는 잔등에 다이로교수의 눈총을 맞으며 화장실에 가서 술과 생선을 마구 토해버렸다.       아사꼬는 화장실에 앉아 거울에 얼굴을이랑 옷매무새랑 비춰보며 시간을 끌었다.      한편 뇨타이모리 스시관에서 다이로교수는 또 잔을 들고 다가와 문걸의 잔과 마주쳤다. “자, 통쾌하게 마십시다.” 다이로교수는 문걸이 보라는듯이 잔을 들어 쭉 굽냈다.      문걸도 잔을 냈다.      다이로교수는 저가락으로 미녀라체 아랫배 위 접시의 스시를 집어 와사비에 툭툭 찍더니 미녀 하신에 문질러댔다. 그는 춘희와 손님의 눈치를 조금치도 보지 않고 미녀 하신 즙액이 묻은 생선회를 코에 대고 냄새를 흡흡 맡아댔다. "오- 니오잉아 혼또니 O_K!(어- 냄새  참 좋아!)" 교수라기보다 한마리 짐승 같아 보였다. 춘희는 징그러워 과일을 집어 씹으며 외면했다. 다이로교수는 입에 대고 혀로 스시(생선회)를 핥아보더니 입 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연신 감탄했다. “O- Ye- 오이씨이네(오우예- 맛있어.) 혼또니 아마이(진짜 달콤하구나)!“ 다이로 교수는 주인의 체모도 잃고 입을 하 벌리고 감탄했다. 그때 미녀는 하신이 너무 아려 우유빛허벅다리를 약간 들더니 바들바들 떨지 않겠는가. 딸라당. 순간 허벅다리에 놓았던 스시접시가 주르르 료리상에 떨어졌다. “나니(뭐야)?!”       성난 다이로교수는 네모번듯한 얼굴이 대뜸 지지벌개졌다. 그러자 미녀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다시 다리를 도로 내리우고 까딱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그러나 미녀의 눈확에는 쓰디쓴 눈물이 고여올라오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모두 다이로교수의 징그런 상통을 보고 상을 찡그렸다.      그때까지 아사꼬는 스시상에 얼굴을 보이지도 않았다.      다이로교수의 의심에 찬 눈길이 자꾸 문께로 흘끔흘끔거렸다.      문걸과 춘희도 다이로교수의 눈길과 문께를 흘끔,핼끔 곁눈질해보면서 바늘방석에 앉은듯이 조마조마해했다.      뇨타이모리 스시관에는 은은한 음악이 울리며 오묘한 분위기로 반전해나갔다…      
262    대하소설 졸혼(26) 김장혁 댓글:  조회:1161  추천:0  2022-07-12
      36. 야반도주   “잠간 멈추세요!”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하영이 고함쳤다. 정호는 오토바이를 수림 속 령길에 멈춰 세우면서 물었다. “왜?” 하영은 오토바이에서 내려 헬멧을 벗어쥐고 어둠 속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우린 지금 어디로 도망가는 거죠?” “살 델 도망가.” “목적지는 어딘가요?” “목적지? 나도 몰라. 생존할 수만 있다면 어디로든지 가야지.” 늙은 너구리 머리에는 아주 면밀한 도주계힉이 서 있었다. 그러나 나영한테 지금 말할 수 없었다. (도중에 나영이 또 마음 바꿀지 누가 아는가? 금방 봐. 내 몰래 금은보화를 메고 갱도로 도망치려고 했지 않았는가?) “어마나. 목적지도 없이 어디로 이렇게 도망가요?” 정호는 나영의 어깨를 다독였다. “겁내지 마. 너도 봤지? 숱한 수사일군들이 지금 널 체포하자고 꼬리를 딱 물고 쫓아다니지 않아? 우린 우선 여기를 빠져나가야 돼.” “이게 무슨 개고생인가요?” “그래, 개고생할 걸 알았으면 자초부터 공금에 손을 대지 말게지.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있니? 넌 체포되면 감옥밥을 먹어야 돼.” 나영은 헬멧을 땅바닥에 탕 메쳤다. “차라리 감옥에 가도 이렇게 밤중에 수림 속을 헤매기보단 나을 거 같아. 씨, 흐흐흑, 흑흑,” 나영은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껴 울었다. 정호는 나영을 꼭 끌어 안아주었다. “짧은 생각하지 말라. 감옥에 가면 그리 좋을 거 같아? 지옥은 자유를 가두는 염라전이야. 우린 자유를 위해 밤중에 날아가고 있는 거야. 훨훨 날아 이놈의 지옥 같은 지역을 벗어나면 꼭 자유를 맞이할 거야. 힘내라.” 나영은 정호한테 기대 어깨를 들먹였다. “그래, 내가 있는 한 널 꼭 행복하게 만들 거야.” “저는 이젠 최국장님 밖에 믿을 사람 없어요. 남편도 아들도 다 버리고 최국장님만 믿고 따라 왔는데요.” 정호는 머리를 끄덕이며 나영의 볼에 키스를 뽁 해주었다. 그는 맹세하듯 진심어린 고백을 했다. “그래. 나도 너 밖에 없다. 나영아, 사랑해. 난 목숨이라도 바쳐 널 지켜줄 거야. 미국 로스안젤레스에서도 그랬잖아. 이제부터 내 모든 걸 다 바쳐 널 행복하게 만들 거야.” 순간 나영은 적수공권으로 흑인강도를 차눕히고 사경에서 자기를 구하던 정호가 떠올랐다. 그녀는 다시 한번 감동을 먹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정호 품에 안겨 흐느꼈다. “미안해요. 제가 철없이 놀았어요.” “무슨 소리야. 미안하다. 널 고생시켜서.” 나영은 솔직이 정호한테 미안했다. 그녀는 별장 차창 밖으로 두리모자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정호가 해지기 전에 별장에 돌아오지 않자 나영은  벽단스에 숨어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벽단수 뒷벽이 열리면서 갱도입구가 나지지 않겠는가. 그녀는 너무 놀라 한참만에야 놀란 가슴을 쓸어넘기면서 핸드폰 조명등을 켜들고 갱도로 한 발자욱, 한 발자욱 들어가 보았다. 방공굴이 꽤나 깊었다. 한 30메터 나가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별장 갱도는 방공굴과 이어져서 여러개 출구가 있지 않겠는가. (허허. 여기로 도망치자.) 그녀는 망아산 중턱에 있는 방공굴 출구까지 갔다. 그런데 출구가 소나무와 누런 진흙에 거의  막혀 있었다. 이전에 문걸이 참사랑의 블랙홀이라고 소나무를 찍어 쑤셔넣어 막고 흙으로 파묻어놓은 출구였다. 그 방공굴은 정호가 영희, 황선희, 하영 등 숱한 미녀들을 데려다 놀던 더러운 자리기도 했다. 나영도 몇번 여기 와서 정호와 속살을 섞은 적이 있었다. 하영은 이 방공굴 출구 부근에서 정호와 맥주를 마시다가 강도들의 쇠뭉둥이에 맞아 쓰러졌다. 이 곳은 피비린내 나는 죄악의 현장이기도 했다. 나영은 말라버린 소나무가지 사이로 내다보이는 수림과 황혼이 비낀 하늘을 내다보면서 망아산 수림 속을 빠져나갈 속궁리를 굴렸다. 그녀는 소나무 가지만 빼내면 바깥으로 기여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안간힘을 다해 소나무가지를 빼려고 애썼다. 그런데 워낙 소나무가 깊숙이 파묻혀 빼내는 수 없었다. 그녀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물앉았다. 한참 후 그녀는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다. “아차, 도망가도 별장에 둔 딸라와 금은보화를 가지고 도망가야지.” 나영은 방공굴의 어둠을 더듬으면서 다시 별장으로 되돌아갔다. 이윽고 그녀는 갱도 입구로 해 다시 벽단스에 나갔다. 그녀는 바깥동정을 살피면서 살금살금 옷장에 다가가 배낭을 주어들고 벽단수에 들어갔다. “이 돈이면 어데 가 못 살겠느냐? 내 혼자 실컷 쓰면서 호강하겠다. 에라, 정호구 뭐구 모르겠다. 그놈 색마를 따라 숨어다니다가 무슨 경 칠라고. 흥!” 그녀는 경찰들이 벽단수 입구를 찾아 뒤쫓아올가봐 겁나 벽단수 입구를 잘 닫아놓고 갱도로 도망쳤다. “빠이, 빠이!” 그녀는 다시 방공굴 입구에 돌아가자 배낭을 내려놓고 소나무가지를 빼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안간힘을 다 써도 빠지지 않았다. 설성가상으로 어둠이 덮쳐오자 더럭 겁났다. “하영처럼 이 곳에서 강도나 만나면 어쩌지?” 그녀는 또다시 물앉았다. 기실 방공굴에는 숱한 출구가 있었다. 그런데 나영은 모르고 있었다. 공포에 잠겨 더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방공굴 출구로 여겨보니 어둠이 깔린 온 망아산에 경찰들이 우글거렸다. 밤하늘에 드론이 떠도는 엔징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도망치지 못하고 숨이 한줌만해 방공굴 한쪽 구석에  숨어 있었다. 이제야 뒤늦게 방공굴로 해 찾아온 정호와 딱 마주쳤던 것이다. 그들 둘은 모두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미안해요. 최국장님.” “아무 말도 할 필요없어.” 늙은 너구리는 나영의 검은 속내를 대개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면서 능청을 떨었다. “나영이, 참 잘했어. 네가 금은보화 메고 도망쳤기에 저놈들의 시선을 따돌렸어. 저 놈들 별장에서 금은보화 찾지 못했잖아. 나영이 내 때벗이를 해줬어. 허허허.”   사실 정호는 검찰원에서 문 밖을 나서면서 어떻게 하면 수사일군들을 따돌리고 나영을 차고 도망칠가 번개같이 속궁리를 굴렸다. 그때 검찰원 상공에서 드론이 떠돌았다. 그놈 드론은 자기 꽁무니를 따라 정희네 다방까지 오지 않겠는가. 정호는 정희를 찾아가 한바탕 해내고 싶었다. “더러운 년, 다방까지 차려줬는데. 길러준 개 발뒤축을 물어? 배은망덕한 년, 제 명에 죽지 못할 년.” 그런데 다방에 들어서자 피비린 내가 물씬 풍겼다. 그가 다방에 들어가 사위를 둘러보니 정희가 카운터에 피못 속에 쓰러지지 않았겠는가. “이크!’ 정호는 뒤저참하면서 물러났다. (자칫 혐의를 쓰겠다.) 그는 몸소리치며 밤거리에 달려나가 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달려와 멈춰섰다. “망아산으로!” “아니, 이 밤중에 망아산으로 가요?” 택시 운전수는 뒷좌석을 돌아보면서 주저했다. “이 사람 몰라면 몰게지. 왜 꾸물거려?” “거긴 강도가 출몰하는 곳이여서…” “그래? 내 강도 돼 보여?” “그건 아닌데요.” “그럼 뭔가? 어서 몰라구.” 그래도 택시는 움직일줄을 몰랐다. “정 가기 싫으면 그만두게.” 정호는 짜증나 택시에서 내렸다. 그는 밤거리에 서서 다음 택시를 기다렸다. 그는 택시를 타고 망아산으로 달리면서 정희 처참한 말로를 두고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괘씸한 년, 천벌을 맞아 싸. 길러준 개 발뒤축을 물더니 끝내 썩어졌어. 뺑덕이어미 같은 년, 량심없는 더러운 년, 제명에 썩어지지 못했어.) 그러나 인차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루 밤 부부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데. 필경 내 애인이 아니였는가. 후-) 순간 정호는 정희와 운우지정을 나누던 추억에 잠겼다.  (이젠 허리 활등처럼 휘여져 올라오던 정희를 다신 볼 수 없구나.) 참 이상했다, 원쑤처럼 증오하다가도 애잡짤해나는 것이. “택시를 세우세요.” “왜?” “잠간. 핸드폰 치고 가기오.” “예.” 택시가 멈춰섰다. 정호는 택시에서 내려 손목시계를 입가에 가져다댔다. “박국장이오? 양, 처남, 명도다방에서 살인사건 발생했소. 보스 정희 살해됐소. 금방 내 거기 갔다가 똑똑히 보았소. 확실히 머리 쪼개진 채 살해된 것 같소. 양, 즉시 가 보오.” 정호는 다방의 녀복무원이 사건을 신고한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는 어쩐지 정희를 위해 마직막으로 사건신고라도 해주고 싶었다. 흉수를 나포해 정희 원쑤라도 갚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자기 핸드폰으로 처남한테 전화하면 자기 위치가 탄로난다는 것도 짐작이 갔다. 그러나 사건신고를 함으로써 자기는 정의감이 있는 사람으로서 수사기관을 도왔다는 평판도 받을 것이며 무죄한 시민이기에 여유작작하다는 것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는가. 이거야 말로 일거량득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최혜영 국장은 정호가 박국장한테 사건신고를 한 걸 즉시 파악했다. 그러나 박국장과는 그런 내색을 내지 않고 정호사건수사에서 회피하라고만 일러뒀던 것이다.   정호는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곧추 망아산 별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별장 주위에 숱한 두리모자들이 우글거리지 않겠는가. 어두운 하늘에는 숱한 드론이 떠돌고 미녀로봇까지 날아지나갔다. 로련한 늙은 너구리는 모든 것을 개의치도 않고 별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나영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옷장을 열어보니 금은보화 가방도 보이지 않았다. (이년, 이게.) 그녀는 지하주차장에까지 내려가 두리번거렸다. 나영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혼자 금은보화 가지고 도망쳤어?) 그의 판단은 맞았다. 벽단스를 열고 보니 밑바닥에 굽 높은 구두발뒤축 자리가 찍혀 있지 않겠는가. (아니, 비밀갱도 입구는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여기로 도망갔어?) 정호는 벽단스 갱도 출구가 발각돼 꼬리를 밟힐가 봐 걸레를 가져다 벽단스 밑바닥을 말끔히 닦아놓았다. 그때 남검사를 비롯한 수사일군들이 뛰여들어와 수색했다. 정호는 수사일군들이 헛물켜고 물러가자 회마창(回马枪) 하기 전에 벽단수 문을 열고 스리슬쩍 갱도로 들어가 방공굴로 도망쳤던 것이다. 그는 혹시나 해 방공굴 여기저기를 헤매면서 나영을 찾아헤맸다. 과연 유서 깊은 그 방공굴 출구 쪽에서 물앉아 있는 나영을 발견했다. 그때 나영은 두 무릎 사이에 턱을 고이고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물앉아 있었다. “누구야?” “나영이, 나야.” 그들 둘은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나영은 우쭐 일어나 멍해 서 있었다. 정호가 다가가 와락 끌어안았다. “여기 있었구나.” 나영은 미안하기도 하고 어선을 만나 기쁘기도 했다. 그녀는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오랜만에 만난 아빠 품에 안기듯이 정호 품에 안겨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흐느꼈다. 정호는 나영의 잔등을 가볍게 어루만지면서 문안했다. “놀랐지? 겁내지 마. 내 있잖아.”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정호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 나중에 그녀는 폴깍 뛰여 정호한테 안기더니 두 다리로 정호 허리를 꽉 껴안았다. 정호는 나영을 끌어안아든 채 핸드폰 조명등으로 여기저기 비춰보았다. 방공굴 한쪽 구석에 배낭이 얼핏 보였다. (살았구나.) 그는 나영을 둘쳐업더니 배낭을 들고 방공굴 안으로 걸어나갔다. 나영이 잔등에서 내렸다. “최국장님을 련루시켜 미안해요. 고생시켜 죄송해요.” “괜찮아. 우린 빨리 여기서 벗어나가야 해. 경찰들이 우글거려. 핸드폰 몽땅 버려.” “이걸 버리고 뭘로 련락해요?” 나영은 주춤 멈춰섰다. “경찰들이 우리 둘 핸드폰 위치를 보고 추격해올 거야. 이 핸드폰은 이미 경찰들한테 위치 폭로됐어. 또 따로 준비해둔 핸드폰 배낭에 있어.”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방공굴 바닥에 동댕이쳤다. 정호는 핸드폰을 주어들더니 바뗄을 쑥 빼냈다. 그는 방공굴 출구쪽으로 스적스적 다가갔다. 그는 소나무가지로 가려진 방공굴 출구로 핸드폰을 내던지려다가 그만뒀다. 그는 자기 핸드폰도 꺼내더니 바뗄을 빼낸 후 함께 방공굴 어귀 흙더미에 파묻고 소나무가지로 잘 가려 놓았다. 최혜영 국장이 통제센터에서 정호 핸드폰 위치를 발견한 것은 정호가 핸드폰을 파묻기 딱 직전이였다. 최혜영 국장은 통화내역을 훑어보았다. 나영이 정호를 찾느라고 핸드폰을 친 시간대는 정호가 한창 검찰원에서 심문받을 때였다. 나영은 묵은 핸드폰에도 여러번 쳤고 무신분증핸드폰과 손목시계핸드폰에도 여러번 쳤다. 그러나 묵은 핸드폰과 무신분증핸드폰은 검찰원에 압수돼 정호가 받지 못했고 손목식계핸드폰은 진동에 놓은데다가 심문받느라고 감히 받지 못햇던 것이다. 아무리 핸드폰을 쳐도 받지 않자 나영은 무척 심상치 않음을 느겼다. 아니, 심지어 다른 마음을 먹기도 했다. “경찰에 붙잡혔어? 어쩐다?” 한참 고민에 빠졌다가 나영은 정호를 기다리지 않고 혼자 도망칠 궁리가 머리를 쳐들었다…   정호는 나영이 손을 잡고 다른 출구쪽으로 달려갔다. “저게 오토바이 아닌가요?” 나영이 여겨보니 방공굴 출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새 오토바이가 벽에 기대 서 있지 않겠는가. “그래. 며칠 전에 미리 가져다 놨지.” “네- 최국장님은 뭐나 참 주도면밀하군요.” “그래. 오디승용차는 이미 수사일군들의 감시대상으로 돼버렸어.” 정호는 헬멧을 건넸다. “자, 쓰오.” 정호는 자기도 헬멧 썼다. “타오.” 나영은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 뒤좌석에 앉아 정호 허리를 꼭 껴안았다. 부르릉부르릉. 오토바이는 어두운 방공굴 정적을 깨우면서 출구로 빠져나갔다. 남검사가 수사일군들을 이끌고 별장으로 회마창(回马枪) 해 쳐들어갈 딱 동시간대였다. 그때 정호는 오토바이를 몰고 산 중턱의 방공굴 출구를 빠져나와 산고개를 넘어갔던 것이다…   “최국장님, 미안해요. 련루시켜서 죄송해요.” 정호는 헬멧을 주어다가 나영이 머리에 씌워주었다. “무슨 소리. 우린 빨리 이 자리를 떠나야 해. 두리모자들이 뒤쫓아올 수 있어.” 나영은 다시 오토바이 뒤좌석에 올랐다. 그녀는 정호 허리를 꼭 껴안고 잔등에 머리를 파묻었다. (이것도 운명이겠지.) 그녀는 모든 운명을 정호한테 맡겨버렸다. 순간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야밤에 오토바이에 앉아 령길을 달리며 불어오는 산바람마저 아주 신기하게 시원하지 않겠는가. (나영아, 미안해. 모든 건 너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그래.) 정호는 오토바이 유문발브를 힘있게 밟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영아, 용서해달라. 널 너무 사랑했기에 심계국에 고발한 거야. 심계국에서 네 탐오죄를 수사해내지 않았더라면 네가 이렇게 따라 오겠느냐? 내겐 이젠 너 밖에 없어. 본댁은 내게서 마음이 떠난지 오래. 가짜리혼은 허위에 얽맨 허울 밖에 남지 않았어.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은 다 떼버렸어. 정희는 도끼에 찍혀 죽었어. 하영인 가무단 단장으로 됐이게 이젠 내 필요없을거구. 제 애비 같은 날 따라 오자겠어?) 오토바이는 칡흙 같은 어둠을 뒤로 하며 시원한 산공기를 간음하면서 번개처럼 나래쳤다. “서랏!” 갑자기 하늘에서 청천벽력 치는 듯한 녀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정호와 나영은 거의 동시에 머리를 쳐들었다. 그들의 딱 머리 위 상공에서 웬 녀인이 훨훨 날면서 추격하지 않겠는가. “어디로 도망쳐?!” “이걸 어쩝니까?” 나영은 기겁했다. 그러나 정호는 녀인인걸 보고 대수로워하지도 않았다. “넌 누구냐? 귀신이냐? 뭐냐?” 녀인은 노란 금발머리를 흩날리며 을러멨다. “서지 않을래? 오토바이를 박산낸다.” “왜 이래? 남이야 어디로 가든 무슨 상관이냐?” 녀인은 훨훨 날아와 오토바이에 덮쳐들었다. 정호는 오른팔을 휘둘러 녀인의 손을 막았다. 이게 뭐야? 녀인의 가는 팔은 보기와는 달리 어찌나 힘이 센지 막을래야 막을 수 없었다. 녀인은 반사경을 잡아 훌 뜯어냈다. “이번엔 핸들을 뜯어버릴테야.” “잠간. 오토바이를 세울게.” 정호는 오토바이를 천천히 세웠다. “누가 파견한 년이냐?” 정호는 나영을 뒤로 세우고 싸우려고 손을 걷고 나섰다. 나영도 땅에 날아내리는 녀인을 노려보며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너네 년놈들이겠냐? 하이!” 녀인은 그 무거운 오토바이를 꽁기돌 다루듯해 길옆에 훌 내동댕이쳤다. 정호와 나영은 깜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섰다. “어서 오라를 지지 못하겠어?” “아니, 댁은 누구신지요? 우리 무슨 죄 있다고 이래요?” “난 리문걸 화가가 보낸 미녀로봇이야.” “오- 알았어. 아사꼬녀사군요.” “네놈들은 경찰들을 따돌려도 이 금발미녀만은 속이지 못해? 내겐 최첨단도청기와 천리혜안이 장치돼 있어. 경찰들은 보아내지 못했지만 난 진작 네놈들이 별장에서 방공굴 쪽에 도망갔다는 걸 알았어. 오토바이 타고 도망쳐도 날 따돌리진 못해.” 그제야 정호는 미녀로봇을 스피드나 힘으로는 따돌리 못할 것을 알고 다른 수를 대기로 했다. 이전에 공원에서 그는 문걸과 함께 거니는 미녀로봇을 지껄였다가 혼난 적이 있었다. 그때 미녀로봇이 허망 둘러메치는 바람에 목덜미를 꺾이울번 했다. 문걸이 말리잖았더라면 미녀로봇이 날리는 태권도 발길질에 죽을번 하지 않았던가. “아사꼬 녀사, 금발미녀, 제발 우릴 놔주오.” “가자, 우리 리선생님 널 기다린다. 량심없는 놈, 어쩜 친구 안해를 다 몇십년이나 간통해? 그러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정호는 헬멧까지 벗고 번대머리를 조아리면서 빌었다. “아사꼬 녀사, 사실 잘 모르는 것 같은데요. 사실 영희는 문걸보다 내 먼저 사랑했는데요. 난 사랑하는 녀인을 친구한테 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내 마음은 얼마나 찢어지는듯 아팠는지 아오?…” 어둠 속에서 미녀로봇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정호를 손삿대질하면서 질책했다. “궤변 작작 부렷! 어서 가자!” “내 말 좀 들어보소.” 정호는 미녀로봇에게 뒤덜미를 잡혀 끌려가면서도 감언리설을 주어대면서 미녀로봇을 얼리려고 했다. “문걸과 나는 죽마고우오. 나는 이제껏 관건적인 시각마다 문걸을 도와주었소. 대학졸업 때도 그를 건축설계원에 배치해줬고 앓아서 죽는다 산다 할 때도 내 그래두 병문안 가구 치료비도 대주었소. 날 내놓고 누가 그처럼 병시중하겠소? 성호랑 종호랑 친구 몇이 있어두 그저 한두번 병문안하고 다시 찾기나 했겠소? 그래도 내 나서서 끝까지 문걸을 구해냈지…” 미녀로봇은 정호 멱살을 쥐여 흔들었다. “개소릴 작작 쳐. 난 기계여서 그따위 감정 몰라. 내 몰인정스런 걸 아직도 몰라. 난 그저 기계적으로 우리 주인님의 명령을 집행할 뿐이야. 가자!” “이 못된 년, 누굴 모욕해? 놓지 못할가?!” 나영이 보다 못해 씽 달려나가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미녀로봇은 어데서 그런 괴력이 나왔을까. 그녀는 한 손으로 정호를 건뜻 쳐들어 휘둘러 팽개쳤다. 정호는 저만치 뿌려나가 나영을 깔아뭉개면서 쓰러졌다. “호호호. 년놈들, 이제야 이 아사꼬 무서운줄 알겠는가? 오늘 본때를 보여주마!” 정호는 기여 일어나며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아사꼬 녀중호걸이시여, 내 둘도 없는 친구 문걸도 야반도주할 처지에 처한 나를 보면 용서해줄 거요.” 그때 갑자기 어둠 속에서 문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사꼬는 주인 말 들으라. 그 년놈들을 놔줘라. 그래도 날 구한 친군데. 놔둬라.” “놔주다니오? 어떻게 잡은 년놈이라고.” 미녀로봇은 정호가 문걸의 성대모사를 하는 줄도 모르고 주인의 말인줄로 알고 기계적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별수 없군요. 주인님 자비를 베푸니깐.” 미녀로봇 아사꼬는 정호를 놔주면서도 손삿대질하면서 날카롭게 경고했다. 다시 나쁜 짓 해봐라. 이 아사꼬 손에 죽을줄 알아라!” 정호는 손을 저어 작별인사까지 했다. “돌아가 문걸한테 일러라. 친구는 영원한 거야. 빠이, 빠이!”  정호는 나영을 데리고 오토바이를 잡아타고 또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미녀로봇 아사꼬는 이상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윽고 그녀는 씽 날아오르더니 어둠 속 수림을 누비며 주인을 찾아 헤맸다.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 해.) 정호의 머리 속에는 위기감이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아사꼬가 문걸을 만나는  순간 모든게 탄로나. 문걸은 우리 오토바이 타고 도망친다고 공안국에 신고할 거야. 좀 지나면 오토바이도 표적이 될 거야. 그 전에 멀리 도망쳐야지.) 정호는 발로 유문발브를 연신 밟았다. 오토바이는 어둠을 꿰뚫고 질풍같이 수림을 달렸다. 저 멀리 발 밑에 별무리처럼 내린  불야성이 내려다보였다. 순간 정호는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몇십년을 살아온 정다운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그의 심정인들 오죽하랴. (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올가? 별수 없어. 후회되지 않아. 이제껏 고삐 끊은 들말처럼 풍류아로 살았잖아. 숱한 아기씨들을 데리고 즐겁게 살았지. 후회나잖게 즐겼어. 숱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어. 죽어도 이젠 원이 더 없어. 허허허.) 그는 정든 고향과 모든 걸  버려야 했다. (이놈의 고장에서 이젠 발붙힐 곳이 없어. 죽마고우 문걸이나, 성호나 친구들도 모두 날 의리도 없는 죽일 놈이라고 이빨을 쁙쁙 갈아. 저승사자년은 나를 지옥에 처넣을 거야. 자유를 위해 이젠 공직이고 뭐고 다 버리고 도망쳐야 해.) 그는 잔등에 딱 붙은 나영, 그리고 딸라뭉치와 금은보화가 불룩한 배낭이 있어 마음이 든든했다.  오토바이는 혜성처럼 어둠을 헤가르면서 령길로 야반도주하며 씽씽 달렸다. 어둠을 뚫고 자유로운 려명을 찾아 훨훨 나래쳤다. 지지리 못난 어둠은 두 팔을 벌리고 뒤쫓아오다가 맥없이 뒤로 물러갔다…
261    대하소설 졸혼 제2권 (25) 김장혁 댓글:  조회:1449  추천:0  2022-07-10
              35. 추격       여름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갔다. 시내에는 가로등불이 하나, 둘 환히 켜지고 있었다. 금바늘이 어둠을 쏙쏙 찔러 몰아내고 누런 빛을 깔아주고 있었다.       최혜영 국장은 공안국 박동묵 국장에게 전화해 시 공안국 경제대대 수사일군들에게 일체 정찰수단을 다 동원해 정호 행적을 면밀히 감시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녀는 포치가 끝나자 의자 등받이에 허리를 붙이고 뒤로 기대 앉아 눈을 살며시 감았다.       (망아산 별장에 금은보화를 감춰덨다면 정호는 곧추 그리로 달려갈 거야. 금은보화를 부랴부랴 다른 곳으로 옮길 거구.)        갑자기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정화번호를 피뜩 보니 박동묵 국장한테서 온 전화였다. “예. 박국장, 뭐라고?” 최혜영 국장은 벌떡 일어났다. “명도다방에서 살인사건 발생했다고? 예? 정희 살해됐다고? 아니, 웬 일입니까? 곧 갈게요.” 최혜영 국장은 사무실 문을 박차고 지하주차장에 내려갔다. 그녀는 경찰차에 앉아 쏜살같이 명도다방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정희가 불쌍했다. 량심적으로 정희한테 미안했다. 그간 정희는 자기 죄행을 낱낱이 탄백했고 검찰원의 사업을 협조해 최정호의 죄행도 아주 세세히 적발했다. 심지어 정호의 숱한 애인들의 정황도 몽땅 적발했었다. 그때 정희 적발자료를 보고 최혜영 국장과 검사들은 모두 입을 딱 벌렸다.       최정호한테 애인관계가 그렇게 복잡할 줄은 몰랐다. 영희, 선희, 정희, 나영, 하영을 내놓고도 가무단의 애된 무용수애인도 여럿이 있었다.       (정호가 정희 입을 틀어막으려고 살해했을가? 국장까지 해먹은 늙은 너구리가 그런 도깨비짓을 했겠는가?)      최혜영 국장이 명도다방에 도착하자 박동묵 국장과 형사수사 주관 부국장, 형사수사대대 대대장 등이 마중했다.      명도다방 사건현장은 보기 끔찍할 정도로 피비린내 나고 처참했다. 카운터에는쓰러진 정희 시체에서 뻘건 피가  줄줄 아직도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희는 카운터에 푹 쓰러져 있었는데 머리가 보기 흉하게 수박처럼 두 쪼각으로 쪼개져 있었다. 쪼개진 머리에서는 아직도 뻘건 피와 뇌즙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박동묵 국장은 최혜영 국장을 한쪽에 데리고 가서 사건현지 수사정황을 간단히 회보하였다.      “다방 녀복무원의 말에 의하면, 저녁 7시 10분 쯤 돼 복면강도가 뛰여들어와 다짜고짜 정희를 도끼로 찍어 살해했다고 합니다. 복면강도는 카운터 서랍을 뒤져 현금을 챙겼고 뒤이어 다방 여기저기를 뒤적였다고 합니다. 복면강도는 도끼로 녀복무원을 위협하면서 “돈 어데 뒀어?!” 하고 을러멨답니다. 조선말을 하더랍니다. 녀복무원이 바들바들 떨면서 ‘모른다.’고 하자 ‘다 저금했는가? 재수없어.’ 하고 부랴부랴 도망쳤다고 합니다.” 최혜영 국장은 오랜 형사수사일군 출신이였다. 그녀는 박동묵 국장에게 수사방향을 물었다. “보복살인이라고 봅니까? 아니면 단순 강탈살인이라고 봅니까?” 박동묵 국장은 부국장과 형사수사대대장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단순 강탈살인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보복살인강탈 가능성이 아주 많아 보입니다. 강도는 다방 보스 정희만 살해하고 녀복무원을 살해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을 보면 보스 정희와 원한이 있는 놈이라고 보입니다.” 최혜영 국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박국장은 형사주관 부국장과 형사대대장을 둘러보았다. 부국장이 입을 열었다. “아무리 담대한 놈이라고 해도 카운터 현금 몇장 뺏자고 살인까지 하겠습니까? 강도놈이 한 말을 보면 이 점을 충분히 증명해줍니다. 그 놈은 ‘다 저금했는가?’라고 했답니다.” 형사수사대대 대대장도 한마디 했다. “정희한테 무슨 돈이 있다는 걸 아는 놈인 것 같습니다.” “그럼 누가 젤 혐의 큽니까?” 최혜영 국장의 물음에 형사수사대대장이 대답했다. “아직 확정할 순 없습니다. 혐의자들을 수사해 렬거하는 중입니다. 지금 젤 혐의가 큰 자는 대학교 허병칠 부장과 문화국 최정호 국장입니다.” 최혜영 국장과 박동묵 국장은 저으기 놀랐다. “녀복무원의 말에 의하면 요즘 정희한테 웬 남성이 자주 전화도 오고 40대로 보이는 남자도 찾아도 왔는데 옥신각신 말다툼도 했다고 합니다. 주로 돈 때문에 다투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정희 보스가 ‘사흘 안에 10만 가져오라.’고 을러메기도 하는 걸 들었답니다. ” 그 말에 최혜영 국장은 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다방 몰카를 떼내 잘 살펴보십시오. 다방 어디엔가  도청기도 있는가 보십시오. 정희 보스는 다방에 장치한 도청기로 정호와 순정의 대화도 록음도 우리 검찰원에 제공했댔습니다.” 수사일군들은 즉시 명도다방 대청에 걸린 몰카를 뜯아내 돌려보면서 분석에 들어갔다. 몰카에는 확실히 강도가 정희를 살해한 동영상이 영화필림처럼 기록돼 있었다.      복면한 강도가 다방으로 들어섰다. 강도는 가방에서 도끼를 빼들고 카운터로 씽 덮쳐갔다. “앗!” 정희는 머리를 싸쥐고 비명을 질렀다. 강도는 다짜고짜 도끼를 휘둘러 정희 머리를 내리찍었다. 정희가 비명을 지르며 팔로 도끼를 막았다. 강도는 연신 도끼를 휘둘러 내리찍었다. 정희는 머리를 찍히고  카운터에 푹 쓰러졌다. 머리에서는 피와 뇌장이 솟구쳤다. ‘”앗!” 녀복무원이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처참한 참경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화장실 쪽으로 도망쳐 숨었다. 복면강도는 카운터 서랍을 뒤져 현금을 챙겼다. 뒤이어 다방 여기저기를 뒤적였다. 복면강도는 도끼로 녀복무원을 위협하면서 조선말로 “돈 어데 뒀어?!” 하고 을러멨다. 녀복무원이 바들바들 떨면서 목 안으로 기여드는 소리로 대답했다. “돈을 어데 뒀는지 난 모릅니다.” “다 저금했는가? 재수없어.” 강도는 중얼거리며 도끼를 가방에 넣고 부랴부랴 도망쳤다. 한참 후 녀복무원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쳐서 공안국에 사건을 신고했다…   한참 후 독수리복을 입은 누군가 피뜩 다방에 들어섰다가 살인참경을 본 후 스리슬쩍 나가는 것이였다.   최혜영 국장이 손을 쳐들었다. “잠간! 저게 정호 아닌가? 찬찬히 보기오.” 동영상을 되돌려 멈춰세우고 찬찬히 보니 독수리복을 입은 자는 확실히 정호가 아닌가. 최혜영 국장은 박국장과 부국장 등 수사일군들을 둘러보면서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정호 탄백에 의하면,  정희가 허병칠 부장과 가무단 림하영 부단장과의 추문을 퍼뜨리겠다고 협박했답니다. 정희는 허병칠 부장을 보고 집을 팔아서라도 배상금을 내라고 강요했다고 했답니다. 지금 보면 허병칠 부장이 젤 큰 혐의자입니다.  최정호가 사건조작 시간이 있는가, 복면과 변장을 하고 살인흉기 도끼를 갖출 새 있었겠는가, 그가 살인했으면 사건현지에 재차 나타날 필요 있겠는가 등등 여러 모로 잘 분석해보시길 바랍니다. 그가 금방 우리 검찰원 심문실에서 독수리복을 입고 나갔는데요.” “이제 드론 추적이 들어올 겁니다. 분석하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박동묵 국장도 한마디 했다. “검사들이 망아산 별장에 정호를 추격하러 갔습니다. 그들이 돌아오면 정호가 혐의 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때 박국장의 핸드폰 벨이 다급하게 울렸다. “뭐? 정호 별장에 들어갔다고? 나영인 별장에 계속 있소? 뭐라고? 별장에서 나온 적 없다고? 뭐? 정호가 들어갔는데도 전등불만 켜지고 아무런 동향도 없다고? 알았소. 개미 한마리 새나갈 틈 없이 포위하고 면밀히 감시하오.” 박동묵 국장은 형사수사대대장을 돌아보고 지시했다. “허병칠은 중대살인강탈 혐의가 있소. 당장 련행하십시오.” “옛!’ 수사대대장이 부랴부랴 뛰쳐나갔다. 최혜영 국장은 정희피살사건에 정호가 혐의 적은 것을 보고 박동묵 국장을 다방 한쪽 구석에 데리고 갔다. “박국장은 최정호와 친척관계 있잖고 뭡니까. 최정호사건을 회피하고 정희피살사건해명에 총력을 기울이십시오. ” “예. 비록 정호와 순정누나 리혼한 사이지만 회피하는게 저도 편할 것 같습니다. 여기 수사정황 수시로 보고하겠습니다.” 최혜영 국장은 떠나가면서 박국장을 보고 당부했다. “구체적인 수사방향 같은 건 검찰원 형사처에 보고하고 청시하도록 하십시오. 저에게는 수사 결과를 인차 알려주십시오.” 박국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최혜영 국장은 경찰차를 타고 쏜살같이 검찰원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녀는 경찰차에 앉아 정희를 두고 개탄에 빠졌다. (정희는 참 운명이 기구한 불쌍한 녀자야. 남편과 헤여지지도 않고 이른바 졸혼하고 숱한 남자들과 관계를 벌리면서 돈을 뜯어내고 사기치며 돌아다니지 않았는가. 나중에 검찰원에 찾아와 자기 죄행을 탄백하고 정호 죄행을 적발하고서도 또 허병칠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고 했다. 돈이 그렇게 귀중한가? 그래 돈을 긁어모으려고 졸혼했는가? 참, 기막힌 졸혼이야. 답답한 인생이야. 그래서 난 아예 결혼하지도 않아. 무슨 결혼, 리혼, 졸혼, 재혼이야? 사는게 너무 복잡하잖아? 독신으로 홀로 사는 내 인생 그래서 간단하고 홀가분해 좋지.) 최혜영 국장은 저녁식사할 새도 없이 사수실에 들아가 검사들의 새 정보를 기다렸다. 핸드폰 벨이 급촉하게 울렸다. “박국장, 네? 허병칠이 도망쳤다고? 그놈 확실히 중대혐의 있군요. 모든 수단을 다해 허병칠을 나포하십시오.” 최혜영 국장은 핸드폰을 끄고 머리를 탁탁 쳤다. (지금 정호 꼬리를 밟느라고 정신 없잖은가. 설상가상으로 허병칠이 딱 요때 끼어들어 수사망을 두개로 쪼개? 정호한텐 더 없이 좋은 엄호이지. 안돼. 정호 꼬리를 밟은 이상 절대 놓쳐선 안돼.)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그녀의 세귀눈이 무섭게 치떴다. “각 수사소조, 즉시 정호를 나포하고 별장을 수색해 금은보화를 색출하라.” 남검사와 경제대대 수사일군들은 명령을 받자 포위망을 좁히면서 별장을 접근했다. 남검사 핸드폰 벨이 또 급촉하게 울렸다. “예. 최국장, 예? 만약 금은보화 없으면 별장에서 나왔다가 재차 습격하랍니까? 예. 그 말머리 되돌려 창으로 찌르기 전술 참 좋습니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남검사는 핸드폰을 내리더니 수사일군들에게 이리이리 하라고 하였다. “예.” 수사일군들은 두개 소조로 나뉘였다. 한개 소조는 별장을 포위한 채 별장 주위에 매복해 있었고 한개 소조가 대문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대문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 화면에 번대머리가 환히 드러났다. “누군가?” “경찰이야.” “경찰?” 정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긴 웬 일인가?” “당신을 불의지재 은닉죄로 체포하러 왔어. 어서 대문을 열지 못하겠는가?!” 정호는 자못 시끄러운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두덜거렸다. “무슨 불의지재? 금방 검찰원에서 심문했댔네. 아무 문제도 없다는게 밝혀져 석방된지 한시간도 안돼 또 체포하는가? 검찰원 최국장한테 신고하라오? 흥!” 남검사가 을러멨다. “금방 최국장의 명을 받고 재차 체포하러 왔소. 별장을 물샘틈 없이 포위했으니깐. 다른 수작할 궁리 말고 어서 대문을 열엇!” 정호는 낮에 최국장과 함께 자기를 심문하던 남검사를 보자 덴겁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문 자물쇠를 절컥 벗겼다. 남검사와 수사일군들이 대문을 열고 별장 안으로 우르르 뛰여들어갔다. “에이, 못 살겠다. 원, 맨날 체포, 체포야?” 정호는 마중 나와 두 팔을 내들었다. “쇠고랑이를 채우십시오. 또 석방하지 않는가 보오.” “나영인 어디로 빼돌렸는가?” 정호는 쇠고랑이를 찬 손을 쳐들어보였다. “나영이라니? 듣다 첫소리오. 나영이 어째 이런 골안에 오겠소?” 남검사는 바투 들이댔다. “시치미를 따지 말고 말하시오. 오전에 오디차에 나영이를 여기 싣고 온 걸 다 아오.” “오- 그런 일 있었는가? 심문받느라고 해감해 깜빡.” “나영을 어디에 감췄소?” 정호는 검사의 질문에 능청을 떨었다. “아니, 무슨 보배라구 감추겠소? 어디 갔는지 나두 이상하오. 잘 찾아보오. 나도 나영이를 찾으면 회보하지.” 남검사는 정호 턱 밑에까지 다가와 질문했다. “금은보화를 어디에 감췄소?” “야, 또 금은보화입니까? 내겐 금은보화란게 없습니다. 들춰보십시오.” 남검사는 수사일군을 보고 정호 손목에 쇠고랑이를 채우라고 했다. 정호는 쇠고랑이를 채운 손목을 쳐들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수사일군들은 수색에 달라붙었다. 혹시 갱도 있는가 해 물독을 치우고 보았다. 갱도는 보이지도 않았다. 벽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몇몇 수사일군들은 지하주차장에 들어가 수사했다. 오디표찌프가 그대로 서 있었다. 몇몇 수사일군들이 차문을 열고 서캐 훑듯 샅샅이 뒤졌다. “이걸 보십시오 .” 숫사일군이 차 뒤꽁무니 짐상자에서 옥구슬 몇알을  쳐들어보였다. 남검사는 전지불로 이리저리 비춰보더니 중얼거렸다. “분명 여기에 금은보화를 감췄다가 어디에 치운 거 같소.” 지하주차장 벽도 샅샅이 살펴보았다. 갱도 입구로 보이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수사일군들은 별장 밖에 나가 마당도 여기저기 뚜져보았다. 정호는 열린 창문으로 번대머리를 내밀고 빈정거렸다. “보라니깐. 땅바닥까지 열길을 파보란 말이오. 무슨 금은보화 있는가?” 남검사는 정호를 돌아보더니 별장 안에 들어왔다. 그는 서류가방에서 옥구슬 몇알을 꺼내 들고 따졌다. “이건 뭐냐? 오디차 안에서 발견됐어. 금은보화를 차에 감췄다가 어디에 숨겼어?” “흥. 아마 순정이 차에 떨군 거 같소. 오디차는 순정의 차오. 오늘 개업식에 갔다가 빌었을 뿐이오. 이른바 금은보화도 몽땅 순정한테 있지. 내게 하나라도 있으면 내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소…” 남검사는 옥구슬을 서류가방에 되넣으면서 날카롭게 말했다. “우린 꼭 금은보화를 찾아내 당신의 부패상을 백일하에 밝혀낼 것이오.” 정호는 남검사를 비웃었다. “하하하. 참 장하오. 검사라면 그래야지. 드높은 책임성에 감복하오. 그러나 아무런 증거도 없이 억울한 사람을 자꾸 체포하는 건 아니지. 안 그래? 자칫 잘못 사람을 잡았다가 자기도 다칠줄 아오.” “지금 검사를 위협하는 거야?” “내 어찌 언감 대검사님을 위협하겠소. 쇠고랑이를 찬 주제에. 안 그래?” 늙은 너구리는 우멍눈을 찔끈 감아보였다. “쇠고랑이나 풀게. 무죄하다는 걸 이젠 알만하겠지?” 한 수사일군이 쇠고랑이를 풀어주었다. 한 수사일군이 남검사를 불러 한쪽으로 가더니 뭐라고 회보하는 것 같았다. 정호는 수사일군들이 헛물을 켠 것을 보고 득의양양해 능글거렸다. “손목이 아파 죽겠소.” 정호는 퍼렇게 이문 손목을 매만지면서 남검사를 보고 빈정거렸다. “참 답답한 친구라구. 정치야 이 어른이 더 잘 알지.” 뒤이어 조롱까지 해댔다. “그렇게 검사를 해선 안되오. 선배로서 충고하오. 그저 우에서 시키는대로만 해서 되오? 검사는 법과 도리를 지키고 자기 머리로 사건을 수사하고 처리해야 하오. 이렇게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시달리게 하고서야 언제 정치실적을 쌓겠소. 괜히 처분이나 받지 마오. 치적해 최국장 밑까지 올라가기는 고사하고 다치겠소.  ㅋㅋㅋ. 참 가소롭소. 금은보화 나질데 가서 파보란 말이오. 참 코 막고 답답한 친구라구. ㅎㅎㅎ.” “닥쳣!” 남검사는 숱한 수사일군 앞에서 자기를 조소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간신히 인내성있게 참아냈다. “최국장, 미안하오. 편히 쉬십시오. 우린 절대 무고한 사람을 체포하지 않습니다. 또 범죄자를 한놈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언제든지 죄를 탄백하러 찾아오는 것을 환영합니다.” “시끄럽소. 무고한데 뭘 탄백하란 말이오? 이젠 다시 오지도 마오. 괜히 또 헛물켜겠소. “ 정호는 번대머리를 쓱 닦으면서 빈정거렸다. “빠이! 빠이!” 수사일군들은 모욕감까지 느끼면서도 별수 없이 수사책략대로 별장에서 철수했다. 그들은 별장에서 한 백메터 떨어진 수림에 이르자 몽땅 찰싹 땅바닥에 배를 붙이며 단풍나무숲 속에 엎드렸다. 드론이 밤하늘을 가르며 별장 부근에서 배회했다. 갑자기 별장 부근에 어둠 속을 헤치며 웬 녀성이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살금살금 별장으로 다가왔다. 레이자망원경으로 보니 웬 금발미녀가 아닌가? 남검사가 망원경으로 찬찬히 뜯어봐도 나영은 아니였다. (정호한텐 애인이 많지 않은가. 혹시 나영 말고 하영인가? 하영은 금발머리 아닌데. 누굴가?) 남검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수사일군 몇을 불러 나직이 분부했다. “저 금발미녀를 불러오세요. 자칫 저 금발미녀 때문에 우리 수사계획을 망치겠소.” “예.” 몇몇 수사일군들이 단풍나무 숲을 헤치고 살금살금 금발미녀한테로 다가갔다. 저게 뭐야? 수사일군들이 접근하는 것을 발견한 금발미녀는 나는듯이 달렸다. 수사일군들이 거의 따라잡자 금발미녀는 갑자기 두 팔을 쫙 펼치더니 수림 속에서 어두운 밤하늘에 훨훨 날아올랐다. “저런, 저게 뭐냐?” 금발미녀는 별장 주위 상공에 날아올라 드론과 함께 배회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남검사나 수사일군들이나 모두 아연실색했다. “아니, 우린 드론 밖에 띠운게 없는데. 갑자기 저게 뭔가?” 금발미녀는 문걸이 정호를 감시하라고 보낸 미녀로봇이였다. 미녀로봇은 별장 상공을 배회하며 별장 안을 감시하다가 산중턱으로 훨훨 날아올라가는 것이였다. 이때 갑자기 망아산 중턱 소나무숲 속에서 한가닥의 헤드라이터가 이쪽을 비추며 내려왔다. 오토바이 엔징소리가 고즈넉이 잠들었던 수림을 깨우며 수림 길로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별장을 재차 수색합시다. 출발!” 남검사가 손을 홱 휘둘렀다. 그는 이때 쯤이면 정호가 한창 금은보화를 다른 곳에 옮겨 치우리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수사일군들은 수림 속에 매복해 있다가 별장으로 맹호처럼 덮쳐갔다. 그들은 고개 넘어 사라지는 오토바이와 미녀로롯에는 하나도 개의치 않고 별장을 에워싸고 대문으로 접근해갔다. 몇몇 수사일군들이 대문 초인종을 눌렀다. 쥐 죽은듯이 조용한 별장 안에서는 아무런 동정도 반응도 없었다. 남검사가 고함쳤다. “최정호! 대문 열엇!”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빨리 대문을 넘어가기오.” 수사일군들은 대문을 바라올라가 넘어갔다. 그들은 대낮처럼 환히 전등불이 켜진 별장 문을 박차고 뛰여들어갔다. 그런데 정호나 나영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수사일군들은 아연실색해지고 말았다. “이 놈이 하늘로 증발했어?” “땅 밑으로 스며들었어?” “한 반시간 전에 정호가 별장에 들어오지 않았는가? 나영인 오전에 들어와서 근본 나간 적도 없잖은가?” 수사일군들은 너무 이상해 서로 마주보며 중얼거렸다. “우리 물샘틈없이 포위한데다가 드론까지 24시간 감시했는데 어디로 도망쳤단 말인가?” 최혜영 국장은 정호와 나영이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고 나포행동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느꼈다. “최정호, 교활한 놈, 도적이 발등이 저리다고 죄가 두려운게지? 도망치면 어디로 도망쳐?” 최혜영 국장은 녀검사를 불렀다. 녀검사도 밤늦도록 집에 가지 않고 근무하고 있었다. “위치추적기로 최정호 핸드폰 위치를 추적하오. 그리고 정호 애인들의 핸드폰도 동시에 감시하오.” “네.” 녀검사가 전자기무실에 들어가 위치추적기를 작동했다. 최혜영 국장도 따라 가 살폈다. 그들이 살펴보니 정호의 손목시계형핸드폰은 망아산 수림 속에 멈춰 있었다. 최혜영 국장은 인차 정호 손목시계핸드폰 위치를 도편으로 캡쳐 검사 위챗그룹에 올렸다. “아니, 이 놈이 어느새 포위망을 뚫고 산 중턱까지 도망갔어? 날개라도 달렸단 말인가?” 가자!” 남검사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최혜영 국장은 수사일군들에게 말했다. “별장에 가능하게 지하갱도 있을 거요. 세심히 수색하오!”  수사일군들은 두개 소조로 나뉘여 한 소조는 망아산 중턱 소나무 밭으로 올라갔다. 한개 소조는 남검사가 이끌고 별장을 재차 수색했다. 몇몇 수사일군들이 벽단스를 훌 열어제꼈다. 남자 옷견지 몇벌 걸려 있었다. 옷을 훌 젖히자 벽단수 밑바닥에 구두발자욱이 찍혀 있었다. “벽단수에 갱도 입구가 있습니다.” 남검사가 황급히 지하주차장에서 별장 안으로 뛰여올라왔다. 남검사가 수사일군이 가리키는 벽단수 뒤벽을 미니 갱두 입구 문이 훌 열리지 않겠는가. 한키나 되는 갱도 입구가 드러났다. “교활한 놈, 여기서 빠져나갔구나.” 남검사는 수사일군들을 돌아보았다. “추격!” 수사일군들은 우르르 갱도로 뛰여들어갔다. 갱도는 한 30메터 좌우 들어가 세멘트로 꾸민 망아산 수림 속 방공굴과 통했다. 방공굴에는 출구가 여러개 있었다. “잠간!” 남검사는 금방 수림 속에서 본 오토바이 헤드라이터 불빛이 떠올랐다. “혹시 그놈이 이 갱도로 해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치지 않았을가?” 그러나 수사일군들이 별장 쪽 갱도 흙바닥을 살펴보니 오토바이 바퀴자국은 하나도 없었다. 남검사는 이상해 도리머리를 젓더니 수사일군들에게 손을 홱 휘둘렀다. “두개 소조로 나눠 추격합시다. 한개 소조는 갱도를 따라 추격, 한개 소조는  수림속에 나타난 수상한 오토바이 행적을 추격합시다.” 남검사는 즉시 핸드폰을 들었다. “최국장님, 별장에서 지하갱도를 발견했습니다. 정호와 나영은 모두 이 갱도로 도망친 것 같습니다. 예. 알았습니다. 두갈래로 나뉘여 추격하고 있습니다. 예. 새 정황 있으면 보고하겠습니다.” 남검사는 한개 조를 데리고 경찰차를 몰고 쏜살같이 망아산 수림을 벗어났다… 최혜영 국장은 사무실로 돌아가 컴퓨터에 마주 앉아 마우스로 이것저것 클릭해 열어보고 살폈다. 컴퓨터에는 정호와 숱한 애인 관계 및 핸드폰 번호, 단위와 주거지 위치 등 설명도가 나타났다. 지금 공안국 정보처와 검찰원 정보처에서는 정호와 숱한 동생들과 친척, 친구, 심지어 애인들의 통화내역까지 일거일동을 도청하고 감시하면서 정보를 분석해 도표를 작성하고 있었다.         최혜영 국장이 정보처에서 제공한 정보도표를 보면서 놀랐다.        정호에게는 본처 순정 외에도 영희, 정희, 나영, 하영 등 애인 여럿이 있었다. 그녀들 가운데서 정호와 제일 통화가 제일 많은 녀성은 나영과 하영이였다.       "어째 정호와 정희 통화가 상대적으로 적을가. 정호가 잠시 정희네 명도다방에 얹혀 살기에 대면할 기회가 많을 수 있지. 그래서 통화가 적었을가? 아니면, 정희가 돈을 자꾸 달라고 떼를 써서 고의로 멀리한 걸가?"       이때 핸드폰 벨이 급촉하게 울렸다.              "예, 박국장, 뭐? 정희네 다방에도 금은보화 없다고? 예. 저금통장 밖에 없다고? 예. 알았습니다."        최혜영 국장은 핸드폰을 내리고 중얼거렸다. "정희네 다방에도 두지 않았다지. 교활한 놈, 금은보화를 도대체 어디에 두었지? 림하영 부단장한테 뒀을가?"         최국장은 인차 핸드폰을 들었다.        "박국장, 가무단 림하영 부단장을 면밀히 감시하십시오. 네. 림단장은 정치야심이 있을뿐만 아니라 꽤나 탐욕스러운 녀자입니다. 혹시 정호의 금은보화가 림단장한테 갔을지 누가 압니까? 네. 꼭 림단장을 주시해주십시오."        최혜영 국장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예지로 번쩍이는 세귀눈으로 창 밖을 잠간 응시하였다. 뒤이어 그녀는 통화내역과 정보자료 도표를 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심지어 황선희 주임의사도 정호와 꽤나 많이 통화하지 않았겠는가.         “헛참, 일본까지 류학갔다가 온 박사가 왜 이런 색마와 사귀지? 참, 어처구니없어. 구경 정호한테 무슨 엿이라도 달렸어? 남편도 아니고 정호와 함께 일본에 관광가려고 수속까지 해주느라고 손수 뛰여다녀? 구경 정호한테 무슨 매력이 있기에 숱한 녀성들이 줄을 서서졸졸 몸까지 바치면서 묻어다녔지? 후-”      최혜영 국장은 허구픈 웃음을 지으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호 같은 색마를 만났더라면 무슨 개고생했겠지 몰라. 그때 그만두고 시집가지 않은게 잘했지. 세상에 정호 같은 남자 어디 하나 둘이겠어?” 그녀는 잠간 30년 전 정호와 있은 혼사를 두고 추억에 잠기고 말았다. 최혜영 국장은 대하소설 “진달래 소약곡”에도 등장했던 인물로서 원명은 최은영이였다. 그녀는 대학교 시절에 승호라는 선배를 사랑했다. 승호는 이 세상에 남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첫사랑이였고 지금까지 유일한 련인이였다. 그런데 최은영은한밤중에 대학교 뒷산 소나무 숲속에서 승호와 련애하다가 세 놈 강도들에게 붙잡혀 불행하게도 륜간당했다.      최혜영은 지금도 륜간당하던 일을 회억하기조차 몸서리쳐졌다.             그녀와 승호가 달밝은 밤에 한창 학교 뒷산 소나무숲 속  우묵히 꺼져들어간 구덩이에서 열련에 빠져 키스할 때였다.      "꼼짝 말엇!'      강도 세 놈이 굶주린 승냥이들처럼 덮쳐들었다.       "은영이, 빨리 도망치오!"      승호는 은영을 보호하면서 세놈과 피어린 박투를 했다. 그는 젤 먼저 비수를 휘두르는 강도놈을 슬쩍 피하면서 뒤따라 덮쳐드는 강도놈을  발길로 차넘겼다. 세놈은 와락 달려들어 비수로 승호 허벅다리며 엉덩이며 비수로 마구 찍었다. 승호는 피못 속에 털썩 쓰러졌다. 두 놈은 승호를 소나무에 비끌어맸다. 한 놈은 그때까지 얼마 달아나지 못한 은영을 쫓아가 붙잡아 둘러메쳐놓고 발로 팔을 꽉 밟았다.      세놈은 야수처럼 달려들어 포승줄로 은영마저 두 팔을 뒤로 결박해놓고 치마를 벗겼다. 강도들은 고의로 소나무에 결박해놓은 승호 앞에까지 그녀를 끌고 와서 보란듯이 륜간하였다.     구덩이에서는 은영이 다 죽어가는 비명을 질렀다...             세상을 놀래운 그번 륜간사건은 완전히 승호가 짓밟힌 허경옥이란 녀자의 사촌형제들이 한 짓이였다. 륜간범들은 셋 다 사형당했다. 그러나 그 처참한 륜간사건으로 인해 그녀의 인생은 엉망진창이 되게 망가지고 말았다.  최은영은 대학교를 졸업할 때  최혜영으로 이름을 고치고 타현 검찰원에 검사로 배치받아 사업하였다.       그때 창인 문걸이 자기 친구 최정호를 그녀한테 소해해주었다. 그런데 최혜영은 륜간사건에서 너무나도 충격받은데다가 승호가 배후에서 자기를 배신하고 숱한 처녀들의 정조를 유린한 것을 안 후 아무와도 련애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사랑이란 가슴 쓰라린 쓰디쓴 한과 공포 밖에 남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남자들은 배신자, 위선자로 보이기만 했다. 그녀에게는 남녀 사랑과 성을 생각하면  단맛과 쾌락이 아니라세 강도놈들한테 륜간당한 기절초풍할 공포 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색마를 한없이 증오하고 격분해한다.      색마에 대한 증오는 그녀로 하여금 심지어 자기를 그렇게 따르던 대학선배  성호마저 거절하고 종신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려고 지독한 마음을 굳히게까지 했다. 그리하여 최혜영은 문걸이 연 친구파티에서 종호, 범송 등 선배들이 모인 장소에서 한번 피뜩 정호를 보았을뿐 다시는 만나주지도 않았다.       문걸은 혜영과 성호 사이 애매한 관계를 모르고 당시 부시장이였던 혜영의 아버지를 찾아가 정호를 하늘만큼 번쩍 높이 춰주면서 정호와 혜영의 혼사를 성사시키려고 들었다.        뜻밖에도 혜영의 아버지는 문걸한테 정호의 이것저것 묻더니 단마디로 반대해나설 줄이야.        “이 혼사는 절대 안되오. 그 총각 충주 최씨라고 하잖았소. 어떻게 충주 최씨끼리 집안혼사를 한단 말이오.”       최시장은 말은 그렇게 완곡하게 거절했지만 혼사말을 거절한데는 그뿐만이 아니였다. 정호는 시골농촌 출신인데다가 맏이기에 부모를 모셔야 할 자리였다. 설상가상으로 정호는 아래에 숱한 동생들도 있었다. 무남독녀 딸을 개고생시키자고  그런 농민 자식한테 주겠는가.        그리하여 정호와 혜영의 혼사는 끝장나고 말았던 것이다. “아버지, 아버지가 저를 구했어요. 이런 색마를 다 대학교 교원이라고 만났더라면 내 무슨 고생했겠습니까? 아버지, 이래서 제가 시집가지 않아요. 세상 남자들 믿을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녀는 타현시로 가서 검사로 된 때부터  정호와 같은 부패분자들과 녀자들의 정조를 짓밟는 색마들을 한없이 증오했다. 검사로 돼서부터 그녀는 부패분자들과 색마들이라면 쌍불을 켜고 수사해내고 법에 의해 처벌했다. 그녀는 그것을 인생의 락으로 삼고 살아왔던 것이다.   최혜영 국장은 혼자 중얼거리면서 컴퓨터 마우스로 아래 쪽으로 내려가면서 클릭했다. 컴퓨터에는 뒤이어 최정호가 미리 떼놓은 숱한 국내 비행기표와 출국 비자가 줄줄히 나타났다. (이놈, 부패분자 도대체 어디로 도망치려는 건가?) 살펴보니 국내선만 해도 곤명행, 상해행, 북경행, 해남도 삼아행  비행기티켓이 있었다. 국제선도 수두룩했다. 울라지보스또크행, 오사까행, 도꾜행, 로스안젤레스행, 인천행, 부산행 비행기티켓도 있었다.  그런데 리륙공항은 북경, 상해 포동, 청도, 연태, 남경, 장춘, 할빈, 항주, 광주, 해남도… 전국 산지사방에 다 있었다. 그중 미국 로스안젤레스행 비자는 나영과 동행으로 돼 있었다. 미국행 출국수속은 문화국 인사과장이 나서서 해결해놓았던 것이다. 일본 오사까행 출국 수속은 병원 황선희 박사와 동행으로 돼 있었고 도꾜행은 나영과 동행으로 돼 있었다. 오사까 자유관광비자는 황선희의사가 수속해놓았다고 했다. (황선희와 나영이 행방을 주목해야 해. 그럼 수박 넝쿨을 따라 수박을 찾아내듯이 정호 행방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로씨야 울라보지또크행 수속은 놀랍게도 정희와 묶여 있었다. “뭔가? 정희를 살해할 예산이였으면 출국계획까지 했을가?” 최혜영 국장은 량미간을 갸우뚱하며 세귀눈을 찡그렸다. “아니야. 단순하게 볼 순 없어. 숱한 출국 수속을 해놓아 살인계획에 연막탄을 쳐놓았는지 누가 알겠는가?” 최혜영 국장은 눈쌀을 찌프리며 추격나포작전을 두고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분명 정호가 미리 자기 도주선로를 혼란하게 만들어 연막탄을 쳐놓고 수사망을 피하려는고 한 짓임이 틀림없었다. 검찰원에서도 그 숱한 곳에 수사일군을 보내기도 힘들었다. 물론 당지 공안국과 공항 파출소들의 협조를 받을 수는 있었다. (고약한 놈, 우리 수사망을 흔들어보려고? 네놈이 날개 달렸다고 해도 인민법망을 벗어나지 못해.) 최혜영 국장은 우선 정호가 시 구역에서 벗어날 시간이 없은 점을 고려해 먼저 시 교외에까지 수사망을 물샘 틈 없이 치고 서캐 훌듯 수사할 것을 전 시 수사일군들에게 지시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수사에 여지를 두고  최정호와 나영, 허병칠을 나포할데 관한 공개수배령을 전국 각지에 공포하기로 결정하였다. 또 시를 벗어나 지역상급검찰원과 성 검찰원에 최정호와 나영 나포건을 보고해 지역과 성 범위를 벗어나 전국적인 협조를 구했다. 밤하늘을 타고 전보가 오가고 인터넷을 통해 공개수배령이 전국 각지에 전파됐다. 하루 밤사이에 무선전을 타고 넓고 넓은 천라지망이 널리 펼쳐져나갔다. 보이지 않는 천군만마가 추격작전에 동원되였다…
260    대하소설 졸혼(24) 김장혁 댓글:  조회:1210  추천:0  2022-07-06
              34. 고발       경찰차가 경적을 요란히 울리며 시내 복판에서 쏜살같이 검찰원으로 달려갔다.       정호는 쇠고랑이를 차고 압송돼가면서도 우멍눈을 감고 번개같이 속궁리를  굴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목에 걸린 올가미를 벗어버릴가?)      어느 결에 검찰원 지하주차장에 경찰차가 들어섰다.      정호는 경찰차에서 내리자마자 어둑시그레한 지하주차장에서 번대머리를 스치는 찬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돼, 절대 포기할 수 없어. 살아나가기 위해선 모든 수를 다 써야지.)      늙은 너구리는 법망에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못된 궁리가 피뜩피뜩 떠올랐다. 지하심문실 철문이 육중한 드르릉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마치 염라전의 저승사자가 잡아먹자고 아가리를 쩍 벌리는 상 싶었다. 정호는 지하심문실에 들어서면서 머리를 숙이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두 법경이 양쪽에서 정호 양팔을 붙잡고 어둑컴컴한 지하심문실 복판에 놓인 쪽걸상에 끌고 가서 앉혔다. 어둠 속에서 가벼운 발걸음소리가 귀를 쑤셨다. 탁! 누군가 사무상에 노트를 놓는 소리 귀청을 때렸다. 불시에 코 앞에 놓은 조명등이 켜지면서 정호 번대머리를 따갑게 비추었다. “성명?!” 녀검사 목소리 아닌가! 그러나 녀검사 모습은 껌껌한 어둠에 가리워져서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귀에 익은 목소린데. 최혜영? 저승사자!) “왜 대답 안해?” 정호는 강한 조명등 불빛에 우멍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대답했다. “내 이름 알면서 묻소?” “묻는 말이나 대답해. 성명?” 정호는 별 수 없어 대답하기 시작했다. “최정호.” “년령?” “58세.” “직업?” “문화국 1급순시원.” “최정호, 어째 여기 련행됐는지 아는가?” “모르겠습니다.” “펀펀해가지고서도, 뭐? 급병에 걸린 체 하면 체포를 연기할 것 같은가?” 정호는 아닌 보살을 떨었다. “난 급성뇌막염에 걸려 머리 빠개지는 것 같소. 오늘 순정이 차린 경로복지원 개업식에도 억지로 참가했소. 난 한평생 아껴 먹으면서 남긴 돈을 몽땅 경로복지원에 후원했소. 의지가지 없는 로인들과 고아들을 돕는 자선복지사업을 했소. 날 어째 잡았는지 도저히 리해 안됩니다.” “닥쳣!” 녀검사는 사무상을 탁 쳤다. “꾀병을 작작 부리라구. 복지사업을 하는 척하면 범죄자를 체포하지 않을 거 같은가? 자기 죄행을 낱낱히 탄백하지 못하겠는가?!” “최국장, 무슨 죄 있다고 이럽니까?” “아직도 자기 죄를 모르는가? 내 말해야 되겠는가?” 정호는 쇠고랑이를 찬 손으로 번대머리에 돋은 땀을 쓱 닦으며 조명등 건너 상대를 보려고 하다가 눈이 시려 우멍눈을 내리깔았다. “정말 억울합니다. 쵱국장 검찰사업도 돕고 자기 잘못도 반성했는데요. 내 잘못이라면 탐욕스러운 녀편네하구 수하 간부들을 잘 관리하지 못한 것 밖에 없습니다.” “거짓말! 똑똑이 들으라구. 보마차에 감췄던 돈과 금은보화 어쨌는가?” 늙은 너구리는 능청을 떨었다. “아니, 무슨 소리오? 전번에도 말했지만 보마차에 근본 그런게 없었습니다. 금시초문입니다.” “닥쳣! 당신과 순정 통화 록음이 다 여기 있어.” “아니, 이건!”  어둑컴컴한 지하심문실에 록음기에서 자기와 순정이 나눈 대화가 흘러나오지 않겠는가.         순정이, 참 날래구만. 집도 팔고 보마차도 팔아먹고. 핸드폰으로 말하기 불편하니까. 여기 공원 정자 아래 오오. 양. 누가 도청이라도 하면 어쩌오? 네- 알았어요. 곧 갈게요.   록음기 뚝 꺼진다. “어떤가?” “참, 특무정치군요. 남의 사생활까지 도청했군. ㅉㅉㅉ.”  “또 록음 듣겠는가?”          “순정이, 최국장을 딱 물고 늘어지란 말이오. 그럼 최국장, 그 저승사자년인들 우릴 어쩌겠소? ㅎㅎㅎ. 금고 안에 건 몽땅 최시장이 저네 부친한테 가져다 준게라고 물고 늘어지란 말이오.”       “어찌 그렇게야? 그럼 한뉘 청렴하게 산 아빠 수뢰죄를 뒤집어쓸게 아닌가요? 명예는 땅에 떨어지고.” “아니, 살아남겠으면 내 말대로 해. 최시장을 물고 늘어져야 최국장도 우릴 어쩌지 못하고 금은보화를 실어오지 않는가 보오. 허허허.” “그럼 최선생님 부탁대로 하죠. 선생님은 아주 음험한 정객인데요. 나쁜 사람입니다.” “뭐? 선생님? 언제부터 선생님이라고 불러? 우린 필경 30년 동안 함께 산 조강지처 아니오?” “조강지처? 픽, 숱한 아가씨들을 안고 돌면서도 조강지처? 흥! 변강쇠, 색마! 당신은 스승으로도 나쁜 선생님이야.” …   록음기 소리 툭 끊겼다. (아니, 저건 명도다방에서 순정과 한 말이 아닌가? 저게 어떻게 저승사자년한테 들어갔어?) 피뜩 눈웃음을 살살 웃으면서 꼬리를 살래살래 차던 불여우가 떠올랐다. (정희, 그년, 저런 짓을 했어?) 사실 정희는 검찰원 최혜영 국장을 찾아와 보마차 안의 금은보화 행방을 다 고발하고 자기를 선처해달라고 애걸했던 것이다. 최혜영 국장은 정희를 보고 광고회사 돈을 횡령해 한국에 도망친 죄행을 탄백하게 한 후 죄를 뉘우치는 표현이 좋기에 잠시 내보냈던 것이다. 최국장은 정희를 내보낼 때 정호를 면밀히 감시하고 일단 일이 있으면 보고하라고 포치했다. 오늘도 정호가 음악다방 연회청 사교무판에 나타났다는 것도 정희가 고발했던 것이다. 그래서 검사들은 정호를 아주 손쉽게 음악술집에서 체포했던 것이다. (끝내 그년한테 물렸구나.) 정호는 속으로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앞에서는 눈웃음을 새물새물 지으면서 꼬리를 살래살래 젓다가도 뒤에선 뒤잔등에 시퍼런 비수를 박는 년이구나. 어디 제 명에 썩어지는가 봐라.) “최정호, 우린 단서를 딱 쥐고 있어. 어서 탄백하라.” “뭘 말입니까?” “보마차에 치워뒀던 금응보화와 현금을 어쨌는가?” 정호는 번대머리에 송골송골 돋은 땀을 뚝뚝 찍으면서 우멍눈을 띠룩 굴리다가 슬며시 감았다. (이놈들 금은보화를 정룡한테서 찾은 거 아는 같잖구나. 오청룡이나 정룡이 고발했을까? 아니야, 그 놈들 언감?) “정호, 탄백하라. 자는가?” “예? 최국장, 참 답답하오.” “누가 최국장인가?” 남검사 목소리 아닌가! “보마차에 치웠던 금은보화 어쨌는가?” 정호는 우멍눈을 뜨지도 않고 능청을 떨었다. “보마차를 순정이 팔아먹었는데 나와 무슨 상관입니까? 난 거기에 금은보화라는 걸 둔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순정과 그런 토론했어?” “무슨 토론했단 말입니까? 순정을 데려다 조사해보시오. 우리 부부는 그런 금은보화 본 적도 없습니다. 명도다방에 와서 조용히 말하자고 했는데 무슨 죕니까?” “닥쳣! 보마차에 금은보화 없었으면 순정이 금은보화 찾으면 자기한테 달라고 했겠는가.” “순정이 말 기억나지 않습니다. 건 순정한테 물어보십시오.” “최정호, 또 우리 단서를 대야 승인하겠는가?” 이번에는 귀에 익은 녀검사의  목소리 아닌가. “당신은 리성호, 리종수, 최범송을 데리고 오정룡을 찾아가 협박해 금은보화를 찾아가지 않았는가?” “뭐라고?” 정호는 벌떡 일어나며 눈을 번쩍 떴다. “앉앗!” 법경이 량쪽에서 정호의 어깨를 꽉 눌러 걸상에 물앉혔다. “금은보화를 어디에 감췄는가? 탄백햇!” 정호는 쪽걸상에 물앉아 머리를 푹 숙였다. (성호랑 날 팔아먹었구나. 종수한텐 만원을 줬으니깐 물어먹지 않았을게구. 필경 성호새끼야. 어쩐다?) 한참 후 정호는 번대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오정룡한테서 찾은 액세서리하구 현금은 경로복지원을 건설하는데 쓰라고 순정한테 부조했습니다. 나머지는 몽땅 정희를 주었습니다. 어찌나 돈을 달라고 징징거리는지.” “몽땅 줬는가?” “예. 의지가지 없는 로인들과 어린이들을 돕는 성스럽고 착한 자선복지사업에 다 기부했습니다. 황차 나는 순정과 리혼했기에 순정의 모든 재산과 털끝만한 관계도 없습니다.” “쳇, 도마뱀처럼 멋드러지게 꼬리를 잘라버리고 도망치는구만.” 남검사의 말에 뒤이어 최혜영 국장의 야무진 목소리가 들렸다. “최정호, 아닌 보살 떨지 마시오. 당신은 문제 많습니다. 래원이 불명확한 숱한 불의지재, 불정당한 남녀관계. 어떤가? 보마차나 숱한 아파트와 별장, 정희한테 다방을 차리라고 준 돈…진짜 법원에서 무기징역에 언도해도 과할게 없습니다.” 그 말 마디마다 비수로 돼 정호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선처를 받겠으면 자기 죄행을 낱낱이 탄백하라. 먼저 보마차 안에 감춰뒀던 현금 50만원과 금은보화를 어디에 뒀는가? 불의지재 래력까지 낱낱이 탄백하라.” 정호는 자기 목에 올가미가 꽉 조여오는 감을 느꼈다. 그는 속으로 번개같이 속궁리를 굴렸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올가미를 벗어버려야 해. 살아남을 탈출구를 찾아야지.) 그는 번대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물을 좀 주십시오. 목이 말라 어디 견디겠습니까?” 남검사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탄백하고 다리를 쭉 펴고 자게나.” 법경이 물컵을 가져다주었다. 정호는 쇠고랑이를 찬 손으로 물컵을 받아 꿀꺽꿀꺽 물을 마셨다. “어, 시원하다. 한가지 요구 있습니다.” 그는 물컵을 법경에게 넘겨주면서 말했다. “어덯께 이 조명등을 끄면 안됩니까?” 남검사가 사무상을 꽝 치며 호통쳤다. “여기 어디 당신 순시원 사무실인가 하는가?” “가만,” 최혜영 국장이 남검사와 뭐라고 나직이 말하는 상 싶었다. 조명등이 꺼지고 천정의 일광등이 켜졌다. 복판에 확실히 저승사자 같은 최혜영 국장이 퉁사발 같은 세귀눈을 부릅뜨고 자기를 쏘아보고 있었고 량옆에는 자기를 체포할 때 왔던 남녀검사가 앉아 있었다. “어서 탄백하시오. 불의지재를 어디에 감췄습니까?” 최혜영 국장이 독살스런 눈길로 쏘아보며 바투 들이댔다. “불의지재 래력을 탄백하시오.” 정호는 더는 뻐길 수 없었다. “최국장님, 좌우를 물려주십시오. 말하기 불편합니다.” “괜찮습니다. 여기 계시는 분들은 모두 심문비밀을 지킵니다.” “내 이 사건은 최국장과 관계되기 때문에 최국장은 나를 심문할 자격이 없습니다.” 최혜영 국장은 눈 한번 깜짝하지도 않고 물었다. “무슨 말입니까?” “최국장은 이 사건수사를 회피해야 합니다.” “무엇 때문인가?” 정호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그는 머리를 건뜩 쳐들고 최혜영 국장을 쳐다보았다. “몽땅 사실대로 말하지. 어험. 세상은 둥글둥글합니다. 이전에 최혜영 국장의 아버지는 내 당 상급이였습니다. 너무 날 핍박하지 마십시오. 때문에 최국장이 이 사건에서 회피해야 법을 공정하게 집행할 수 있단 말입니다.” 최혜영 국장은 정호를 쏘아보면서 똑똑히 말했다. “정호, 당신의 부패사건과 내 아버지가 무슨 관계 있습니까?” “말하기 불편합니다. 이제 기회 되면 말하겠습니다.” 최혜영 국장은 대뜸 정호의 말귀를 알아차렸다. 그가 옆의 검사와 뭐라고 나직이 주고 받더니 이번에는 남검사가 계속 심문했다. “모든 걸 구애받지 말고 사실대로 탄백하라. 이제부터 모든 건 법적 책임을 진다는 걸 기억하오.” 정호는 최혜영 국장을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정의용사입니다. 두려울게 없습니다. 전번에 우리 국 산하 전람관 부관장 겸 재무과장 나영이 탐오한 죄행을 심계국 조국장한테 신고해 사출하게 했습니다.” 남검사가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남의 죄행을 고발하는 것도 죄행을 뉘우치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선 자기 죄행부터 탄백하오.” 정호는 고의로 계속 동문서답하는 식으로 남을 고발했다. “오청룡 국장한테 숱한 문제 있습니다.” “자기 문제를 탄백하라는데 또…” 남검사가 신경질을 쓰자 최혜영 국장이 팔굽으로 남검사 팔을 툭툭 쳤다. 남검사가 눈치채고 최정호 고발하는 것을 묵인했다. 정호가 힐끔 쳐다보니 녀검사가 자기 말을 따라 적고 있었다. 그는 열이 후끈 올라 오청룡을 고발했다. “오청룡은 근본 정신병에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똥이랑 처먹으면서 정신병환자인 척 하면서 보석받았습니다. 그는 감옥의 법의를 매수해 정신병자로 진단서를 떼게 했습니다.” “당신도 오청룡이 보석받게 수고 많았더구만.” “아니, 무슨 왕청 같은 소릴. 또 있습니다.” “뭔가?” 남검사는 시끄러워했다. “오청룡은 동생 오정룡한테 내 보마차를 사라고 돈을 대줬습니다. 맨 로임으로야 오청룡한테 어데서 백여만원이나 되는 돈이 날데 있겠습니까? 꼭 불의지재라고 생각됩니다.” 정호는 숱한 범죄자를 고발하는 것으로 얼마간이라도 선처를 받으려고 서둘렀다. “좋습니다. 또 있습니까?” “예.” 정호는 입을 연 바 하고는 다 고발해버리기로 작심했다. “정희는 광고회사 숱한 돈을 탐오하고 광고비까지 빼가지고 한국으로 도망쳤잖습니까. 귀국 후에도 명도다방에 잠복해 있으면서 지금도 숱한 사람을 협박해 불의지재를 긁어모으고 있습니다.” 남검사가 물었다. “불의지재를 긁어모았다는데 그럼 구체적으로 말해보십시오.” 정호는 녀검사가 적는 것을 보고 사기나서 고발에 열을 올렸다. “정희는 가무단의 전도 창창한 20대 부단장 림하영을 협박해 돈을 짜낸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적어도 10만원 내놓지 않으면 대학교 때 미인계를 써서 학생총회 부회장 되고 조직문제를 해결한 추문을 폭로하겠다고 했답디다.” “건 누구한테서 들었습니까?” “림하영한테서 들었습니다.” “거짓말.” “?” 남검사는 코방귀를 뀌였다. “최국장이 정희한테 임하영을 협박하라고 하영의 추문까지 제공해주지 않았습니까?” “아니, 건…” “우린 다 장악하고 있습니다. 최국장은 얼마나 음험합니까? 자기 수하를 협박하라고 뒤통수를 치고 여기 와선 그들을 고발하고. 참.” 최혜영 국장이 옆에서 팔굽으로 또 툭툭 쳤다. 그러자 남검사는 실수했음을 느끼고 계속 심문했다. “최정호, 또 적발할 것이 있습니까?” “예. 정희는 YB대학 허병칠 학생부장을 협박해 돈 60만원을 요구한 적이 있습니다.” 최혜영 국장과 남검사가 놀란 눈길을 마주 치는 것을 정호는 똑똑히 우멍눈으로 곁눈질해보았다. (잘코사니야. 정희, 이년, 네년도 무사하진 못할 거야.) 최혜영 국장은 녀검사가 다 잘 적었는가고 심문기록부를 들여다보기까지 했다. “그래, 허병칠 부장이 어쨌다고 정희가 협박한단 말입니까? 또 얼마나 협박했는가? 똑똑히 말하세요.” 정호는 최혜영 국장을 쳐다보면서 고발했다. “정희가 림단장과 짜고들어 각각 5만원씩 협박해 가졌답디다.”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똑똑히 압니까?” “허병칠 부장한테서 들었습니다. 사실 허병칠 부장은 저의 제자입니다. 어느 하루 그가 정희한테 협박당하고 너무 당황해 저를 찾아와 하소연합디다.” 검사들은 머리를 끄덕였다. 정호는 정희를 고발해놓고서도 허병칠한테서 70만원이나 얻어먹자고 한 일이 뒤 켕겼다. 하여 허병칠의 죄행을 고발하려다가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정호가 물컵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켜는데 최혜영 국장이 세귀눈으로 독살스레 쏘아보면서 심문했다. “최정호, 또 적발할게 있는가?” “이제 생각나는대로 적발하겠소.” 최혜영 국장은 자세를 바로잡아 앉으면서 심문했다. “최정호, 이젠 자기 죄행을 탄백하오.” “뭘 말입니까?” “시치미를 딸 텐가? 순정이네 본가집 금고에서 나진 현금 50만원과 숱한 금은액세서리 래원을 탄백하오.” “네?” 정호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건 순정 건데. 나하구 무슨 상관 있습니까? 우린 리혼한 관계인데.” “당신은 전번에 체포될 때 순정이네 집에서 밥까지 먹고 한창 금은액세서리를 가방에 넣다가 체포되지 않았습니까? 비밀번호를 공유하지 않고서야 어찌 금고를 열어제낄 수 있단 말입니까? 공동재산이 아닙니까? 불의지재 래원을 밝히시오.  순정이 로임으로 어떻게 그 많은 액세서리를 산단 말입니까?” 정호는 참다 못해 입을 열었다. “금고의 비밀을 그리 알고 싶습니까? 우린 리혼한 사이인데 왜 이다지도 나하구 순정을 한 뀀에 꿰들려고 합니까?”     탕! 최혜영 국장은 사무상을 치며 벌떡 일어서기까지 했다. “거짓말 작작 햇!” 그녀는 정호를 손가락질하면서 까밝혔다. “진짜 리혼했는가? 어디 또 들어볼가?!”   녀검사가 록음기를 눌렀다.   “조강지처라니? 우린 리혼증까지 내지 않았는가요?” “건 가짜리혼증이야. 우리 둘이 리혼했다구 해야 당신 그 숱한 금은액세서리를 당신 거로 만들지.” “가짜리혼이라니? 법적 리혼증을 냈으면 리혼이지.” “당신은 영원히 내 조강지처요. 잠시 수사를 회피하려고 갈라 살 뿐이지.” “가짜리혼이든 진짜리혼이든 내 마음 속에 리혼인데요. 내 마음 속에는 당신 없어요.” “그럼 스승과 제자로 남아도 안되겠소?” “당신은 스승으로서도 좋은 스승 아닙니다. 아니, 아주 나쁜 스승입니다.” …   “이만하면 당신 순정과 가짜리혼했다는 걸 충분히 증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궤변할텐가?” 정호는 우멍눈을 감고 한참 속궁리를 굴렸다. 한참 후에야 그는 우멍한 눈을 슬며시 떴다. “똑똑히 들어보십시오. 나는 한사코 가짜리혼이라고 하는데. 순정은 진짜 리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느 말을 믿어야 합니까? 민정국에서 내준 리혼증도 법적으로 무효입니까?” 최혜영 국장은 더 할 말이 없었는지 화제를 돌려 심문했다. “이젠 자기 죄행을 탄백하시오.” 정호는 난색해했다. “아까 말씀드렸는데. 저의 사건은 최혜영 국장 일가와 관계되기 때문에 최국장은 회피하길 바랍니다. 이건 집법일군으로서 최저한도로 지켜야 할 법규칙 아닙니까?” 그러나 최혜영 국장은 개의치도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저의 일가와 관계됐는지 구애받지 말고 말하십시오. 진짜 제가 관계되면 이 사건 수사에서 회피하겠습니다.” 정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야 생각납니다.” 검사들의 눈길이 일제히 정호한테 쏠렸다. “인터넷광고회사 리성호 말인데요. 리성호 총경리는 불법술광고를 한 죄가 있습니다. 리굉팔은 숱한 광고비를 바치지 않고 오청룡을 데리고 다니면서 유흥주점이나 마사지방, 노래방에 다니면서 향락을 누렸습니다. 광고회사 공금을 람용하고 탕진했습니다…” 최혜영 국장이 듣다못해 또 사무상을 손바닥으로 탕탕 두드렸다. “또 동문서답인가? 나하구 관계된다는 사실부터 말해보십시오.” 최정호는 난감해했다. “그래도 어찌 차마 최국장을 말 듣게 하겠습니까? 저는 이제껏 최국장 검사사업을 도와 숱한 걸 적발하지 않았습니까?” “어서 말하십시오. 뭐 큰 일 있는 것처럼 놀지 말고.” 최정호는 뒤로 물러설 자리 없었다. “그럼 좋습니다. 내 적발했다고 절대 보복하지 마십시오.” “허튼 소리 치지 말고 빨리 탄백하지 못할가?!” 최혜영 국장의 세귀눈이 이마쪽으로 더 이글어져 올라가 붙는다. 정호는 마른 침을 꼴깍 넘기더니 입을 무겁게 열었다. “순정한테서 들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건 몽땅 사실입니다. 최국장은 벗어멜 궁리도 하지 마십시오. 순정의 부모 집 금고 안의 금은액세서리는 몽땅 최 국장의 아버지, 최시장이 내 가시아버지한테 생전에 가져온 선물입니다. 이래서 내 이 사건수사에서 최국장은 회피해야 한다는 겁니다…” “허튼 소리!” 남검사가 반박했다. “당신은 순정과 짜고들어 당신의 불의지재 래원을 최시장한테 덮어씌워 죄책에서 벗어나려고 했소. 우리 수사일군들이 뭐 세살짜리 애들인가 하는가?” 정호는 독사처럼 우멍눈에 음흉한 빛이 어렸다. “검사들도 문제요. 내 지금 중대한 단서를 제공하는데 왜 수사도 해보지 않고 덮어놓고 최국장 부친이 준 선물이 아니라고 단정합니까? 분명 검사들끼리 상전을 싸고 도는게 아닌가? 엉?!” 그때 최혜영 국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심문실에서 나가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당신이 저의 부친을 적발한 이상 내 이제부터 회피하겠습니다. 아는대로 적발하십시오. 만약 내 부친이 확실히 준 것이라면 내 부친도 법적 책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정호는 깨고소해 최혜영 국장을 노려보았다. “흥!” 그는 심문실에서 나가는 혜영 국장의 가녀린 뒤잔등을 보면서 어깨 축 처진 것 같아 어깨 으쓱해졌다. “계속 말하십시오. 남을 무함하면 무함죄를 더 지게 된다는 걸 아십시오.” “지금 고발인을 협박하는 거요?” “말해보십시오.” 남검사와 녀검사는 태연했다. 정호는 허리를 펴고 바로 앉더니 포문을 열었다. “구체적으로 실례 들어 적발하겠습니다. 순정이네 부모 남긴 금고에 은띠가 있습니다. 피뜩 봐도 몇만원 할 거 같습디다. 순정이 자랑하던데 그 은띠는  최시장이 부시장으로부터 시장으로 제발되려고 당시 순정의 부친이 시당위 서기 겸 지위 상무위원 할 때 선물한 것입니다.” “닥쳣!” “또 당신 뭐랬는가 들어봐야 알겠는가?” 녀검사는 록음기를 재차 틀었다.   “순정이, 아버지 금고 안의 금은보화를 몽땅 최국장 아버지 준게라고 하오. 죽은 최시장이 뭐라고 변명할 수 있겠소? 그래야 최국장 입을 틀어막지. 그럼 최국장이 이제 압수해간 금은보화를 되실어오지 않는가 보오.” “호호호. 당신 진짜 로련한 정객이군요.  참 음험하군요.” “또 한가지. 본가집 금고 재물 몽땅 가시아버지 물려준게라고 하오.” “아니, 그럼 세상 청렴한 아버지 명예 땅바닥에 떨어질게 아닌가요?” “얘, 생각해 봐. 안 그러면 내 죽고 너도 죽어. 죽은 아버지 게라면 죽은 사람을 어쩌겠느냐?” “난 그 불의지재하구 아무 관계없는데 겁날게 뭔가? 긁어들인 당신 감옥이나 가겠지. 흥!” “우린 한 배를 탄 부부야. 내 긁어들였으면 넌 금고에 받아 챙겨넣은 죄 면할 거 같아? 돈도 다 네가 쏘핑해서 올리감고 내리감고 했잖아?” “아이고, 우리 아빠 불쌍해. 불효한 우리 땜에 황천에서 불명예를 뒤집어쓰게 됐잖아?” “아빠도 구천에서 자식 감옥에 보내지 않기 위해 고만한 희생은 달갑게 할 거야? 그래 부모로서 자식 감옥 가는 걸 보자 하겠느냐?” “아빠, 이 불효녀를 용서해주세요. 아이고, 불쌍한 우리 아빠- 흐흐흑, 흐흑,” “울지마. 귀여운 순정아, 내 숱한 녀자들 친해도 재물은 그래도 조강지처한테 물려주잖니?” “픽, 당신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이젠 믿을 거 같습니까? 나쁜 선생님. ㅎㅎㅎ.”   “어떤가? 당신 부부 얼마나 음험한가?” “우리 부부는 원래 서로 믿지 않기에 거짓말을 잘 합니다.” 정호는 개의치 않고 한입 더 물어먹었다. “최국장 아버지 선물 준 건, 이건 다 사실입니다. 은띠를 순정의 아버지한테 가져다주고 시장으로 제발된 것도 사실입니다.” “닥치지 못해? 이걸 보라. 뭔가?” 녀검사가 령수증뭉치를 뒤지더니 한장 꺼내 법경한테 주었다. 법경이 그 령수증을 가져다 정호 앞에 쳐들어보였다. 그것은 그들 부부가 운남 서쌍판납 태족마을에 갔을 때 은띠를 산 령수증이였다. 령수증을 뗀 시간은 2017년 6월 15일 아닌가. “당신도 부인하지 않겠지? 이건 순정의 본가집 금고에서 들춰낸 거요. 금고에선 은띠 말고도 숱한 액세서리 산 령수증이 무더기로 발견됐소. 당신도 최시장은 2013년도에 사망했다는 걸 알겠지? 죽은 사람이 4년 후인 2017년도에 운남 서쌍판납에 가서 은띠를 사서 선물했다는게 말이나 되는가? 최시장은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시장을 했는데… 년도 차가 얼만가? 거짓말을 해도 좀 년대나 시간을 고려하고 비슷하게 하라구. 흥!” 검사는 정호를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전번에 당신 그러루하게 최시장을 무함하기에 령수증에 남긴 전화번호로 운남 태족마을에 련계해 문의했소. 태족마을에 가서 당신네 부부가 어찌나 숱한 액세서리를 샀는지 태족아줌마는 아직도 당신이 은띠를 사서 안해한테 준 사실도 기억하더군. 그래도 최시장을 무함하겠는가?” 정호는 우멍눈을 끔쩍하더니 궤변을 부렸다. “아차, 깜짝 했군. 최국장이 그때 검찰원에 들어가려고 내 가시아버지한테 선물한 액세서리도 있습니다.” 녀감사가 심문기록부에 뭔가 적어넣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액세서리입니까?” “룡이 새겨진 은컵입니다.” “가격은 얼마나 됩니까?” “적어도 만원 밑은 됩니다.” 녀검사가 또 령수증을 뒤졌다. “이겁니까?” 정호는 아연실색했다. 령수증엔 또 전화번호가 박혀 있지 않겠는가. “이 번호에 전화해 확인할가? 계속 최국장을 무함하겠는가?” 정호는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아무리 고발하고 물어뜯고 해도 올가미를 벗어멜래야  벗어멜 수 없지 않는가.) 오히려 올가미는 점점 더 조여지고  스스로 판 함정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갔다. 그러나 순순히 물러설 정호가 아니였다. “글쎄 은띠와 은컵은 최시장이 내 가시아버지께 선물한 건 분명합니다. 또 한가지는 나와 순정은 리혼한 사이입니다. 순정이네 본가집 금고에서 뭐가 나왔던 지간에 나하구 무슨 상관입니까? 순정이 아버지 어데서 얻어먹었지 난 알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순정을 보고 본가집 아버지 어데서 얻어먹은 선물인지 사실대로 탄백하라고 권고했을뿐입니다. 진짜 억울합니다.” 남검사가 우쭐 일어나 심문실에서 나갔다. 정호는 녀검사를 흘끔 쳐다보면서 정신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금고의 현금 50만원에 금은액세서리를 순정이 몽땅 경로복지원과 음악술집에 처넣었는데. 흥! 내게 무슨 죄 있다고 이다지도 억울하게 들볶는가? 돈은 누가 쓰고 죄는 누가 지는가? 참 법이 불공평하단 말이야.” 녀검사는 계속 따라 기록했다. 심문실 철문이 드르릉 열리더니 최혜영 국장이 들어섰다. 아까보다는 아주 온화한 눈길로 정호를 내려다보는 것이였다. “최정호, 모든 의문 풀렸습니까? 다신 나와 저의 아빠를 무함하지 마십시오. 아무런 증거도 없이 남을 물면 무함죄까지 더 해진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어디 증거 같은 증거를 대야지. 뭡니까?” 그녀는 남녀검사와 함께 밖으로 나가 한참 수사책략을 검토하고 다시 들어왔다. “최정호, 당신 자기 죄행을 초보적으로 탄백했고 다른 자들의 죄행도 적발해  표현이 좋았습니다. 우리 수사에 협조하면 선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최혜영 국장은 엄숙한 표정으로 정호를 쓸어보면서 말했다. “아직도 당신은 많은 죄행을 탄백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곰곰히 생각하고 검찰원에 스스로 찾아와 탄백하십시오.” 정호는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래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날 석방합니까?” 녀검사가 기록부를 들고 말했다. “네. 즉시 석방합니다. 거처를 대십시오.” “명도다방. 난 아직도 정희네 명도다방에 얹혀 삽니다.” “그래요?” 최혜영 국장과 남녀검사는 서로 눈길을 주고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놈, 별장에 뭔가 숨겨뒀는 모양이구나.) 검사들은 오전에 정호가 오디차에 나영을 싣고 부랴부랴 망아산 기슭의 별장으로 달려간 것을 진작 드론 위치추적기로 파악했었다. 검사들은 진작 순정의 오디차와 최정호의 보마차에도 위치추적기와 도청기를 장착해놓았던 것이다. 검사들은 모든 걸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했다. 그들은 법망을 널리 쳐놓고 보마차에 감춰뒀던 금은보화를 어디에 옮겨 감췄는가를 알아내려고 고의로 정호를 잠시 석방하고 있었다. “핸드폰을 바치십시오.” 남검사가 열쇠로 쇠고랑이를 열어주었다. 정호는 난감해하면서도 항상 쓰던 핸드폰을 꺼내주었다. “아니, 이걸 주고 난 어떻게 삽니까?” 남검사가 다가섰다. “이쪽 것도 내놓으십시오.” “뭘?” 남검사가 웃호주머니를 가리켰다. “신분증을 쓰지 않고 올린 핸드폰.” “아, 깜빡이야.” 정호는 다 내줬다. “시계도 압순가요?” “아니. 시계는 그만 두세요.” 검사들은 기실 시계가 신분증도 쓰지 않고 번호를 올린 핸드폰이자 위챗, 메신저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짐짓 모르는 척하면서 빈 틈을 내주었다. “됐습니다. 이젠 나가십시오. 죄행 생각나면 꼭 찾아오십시오.” “네, 네. 알았습니다.” 정호는 번대머리에 돋은 식은 땀을 뚝뚝 찍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심문실에서 비틀비틀 걸어나왔다. 속으로는 오만가지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무슨 수작이야? 당장 천길 감옥에 처넣을 상 하더니. 흥. 선심이나 쓰는 것처럼 내놔? 최국장 입을 틀어막는다는게 헛총질만 하지 않았는가. 헛참, 혹시 최국장은 자기를 물어먹어도 보복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자는게 아닐가? 자비를 베푸는 척하면서. 흥, 궁량이 아주 넓은 국장이야. 무서운 저승사자년이야.) 순간 음험한 정호는 최국장을 골려주고 싶어났다. “잠간, 최국장 조용히 봅시다.” “그래요? 무슨 적발할게 있는가요?” 최국장은 정호를 데리고 심문실이 아니라 이번에는 작은 회의실로 들어갔다. “무슨 탄백할게 있는지 어서 말하세요.” 정호도 우멍눈에 가는 웃음기를 담았다. “최국장, 내사 리혼한 사람이라 숱한 녀자들과 놀든 말든 무슨 상관이오? 자유련애하는데 무슨 범죄라도 했소?” 최혜영은 가소로웠다. “최정호라는 국장 이렇게 저질아일줄은 몰랐소. 어쩜 남을 물어먹어도 그렇게 얼토당토않은 짓거리를 해요?” 정호도 내놓고 말했다. “나도 최국장이 이렇게까지 못될줄은 몰랐소. 돈이나 금은보화나 몽땅 순정이 다 챙겨가졌소. 왜 순정과 하나도 죄를 따지지 않고 나하구 이러오?” 최혜영 국장은 아주 분명히 립장을 밝혔다. “순정의 죄는 꼭 물을 거요. 잠시 수사책략을 고려해 놔줬을 뿐이오. 우린 어떤 범죄자도 법망에서 하나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럼 난 죄 없다고 놔주는게 아니오?” “회개표현이 좋다고 심사숙고할 기회를 주는 거요. 언제든 죄목이 드러나면 다시 체포할 거요.” 정호는 최혜영 국장을 쏘아보면서 빈정거렸다. “진짜 사람잡이에 이골이 튼 저승사자구만.” “남을 모욕하지 마오.” “최국장, 최국장 인생이 참 안타깝소. 사람잡이만 하지 말고 이제라도 로처녀로 늙지 말고 시집이나 가오.” 최혜영 국장은 우쭐 일어났다. “이런 롱지거리를 하겠으면 더 할 말이 없소.” 정호는 최혜영의 잔등에 대고 또 빈정거렸다. “정 남자 없으면 나하구 결혼하기오. 난 리혼한 홀아비오. 그 나이 로처녀면 나 같은 변강쇠 생겨도 땡이지. 난 아직도 모든게 녹쓸지 않았소. 퍼러 싱싱한 로총각이오. 히히히.” 순간 최혜영이 문 밖으로 나가려다가 홱 돌아섰다. 정호는 또 횡설수설 지껄였다.  “아차, 우린 같은 충주 최씨군. 그러잫으면…” 찰싹! 최혜영 국장은 정호의 귀쌈을 호되게 갈겼다. “짐승 같은 놈, 난 전문 너 같은 부패분자들을 붙잡아 천길지옥에 처넣는 모야차야! 그게 내 인생 락이야. 다시 지껄여 봐라. 뼈다귀도 추리지 못하지 않는가!” 정호는 얼얼해나는 박대가리를 매만지면서 이를 갈며 검찰원 회의실을 나섰다.
259    대하소설 졸혼 제2권(23) 김장혁 댓글:  조회:1223  추천:0  2022-06-30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2권                33. 늙은 너구리      정호 병실에 정장차림을 한 낯선 30대 초반 녀성이 들어섰다.     “인사과장!”’     “예-“      “시간 없는데 아무나 들여보내지 마오.”      “예. 그분은 꼭 봐야 될 분인 거 같아서 들여보냈습니다.”      정호는 그제야 알은 체하며 그 녀성을 쳐다보았다.      그 녀자는 꽤나 엄숙한 표정으로 침대 옆에 다가왔다.      “최국장이시죠?”     “예, 아니, 순시원인데. 누구신죠?”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검찰원에서 왔습니다.”      “검찰원?”      정호는 벌떡 일어나 쏘파에 자리를 권했다.     “네. 최혜영 국장께서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병원 앞에 법경차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어서 준비하십시오.” “아니, 전화하면 되는 건데. 모처럼 찾아까지 왔습니까?” 금방까지도 굽신거리던 정호, 저게 뭔가? “아이고, 대가리 아파라.” 정호는 머리를 싸안고 때굴때굴 구을면서 양병을 부렸다. 초인종을 누르자 간호원이 황급히 들어왔다. “어데 불편한가요?” “아이고, 머리 터지는 거 같소.” 간호원은 대화기로 황선희 주임의사를 불렀다. 황선희가 부랴부랴 달려들어왔다. “어디 아픈가요?” 황선희는 정호 가까이 다가가 기미 박힌 이마를 짚어본다, 우멍눈 눈까풀을 뒤번지고 동공을 들여다본다 하면서 야단쳤다. “좀 나가 있으세요. 환자 정서와 치료에 영향주면 안돼요.” 그러자 그 녀검사는 잠시 복도에 나가 기다렸다. 황선희는 간호원을 돌아보았다. “저도 나가오.” “예-“ 황선희는 정호와 단둘이 남자 나직이 말했다. “일본관광수속 됐어요.” “그래?” 정호는 언제 땔땔 구을던 사람이냐 싶이 고개를 번쩍 들고 만면춘풍이 됐다. "감사하오.” 황의사는 목소리를 더 낮췄다. “나와 함께 일본에나 놀러 갑시다. 이제 비행기표만 끊으면 돼요.” “감사하오. 전번에 준 진짜 신분증으로 수속했소?” “네.” “가짜 신분증으로 다시 수속해 주오.” “네? 무슨 소린가요? 자유관광 얼마나 수속 힘든지 아는가요? 도꾜의과대학 다닐 때 박사도사를 통해 겨우 수속한 건데요.” 정호는 호주머니에서 돈가방을 꺼내더니 가짜신분증을 꺼내 황선희한테 건넸다. “자, 함께 가겠으면 내 말 들으라니깐. 비행기표는 동시에 상해, 북경 공항을 출발공항으로 떼오.” “두개 공항?” “양, 시키는대로 하오. 그래요 저 검사들을 따돌리지.” “알았습니다. 소식을 기다리십시오. 쳇, 내 남편도 이렇게 해주지 못했는데.” “감사하오.” 정호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또 땔땔 구을면서 야단쳤다.  “아이고, 대가리야! 살려달라!” 정호는 문께를 힐끔 돌아보며 교활한 웃음을 입귀로 흘렸다. “날 살려주오. 황의사, 뇌출혈이 왔다고 하오.  최혜영, 그 저승사자 생각만 해도 몸서리칠 지경이야.” 정호는 또다시 머리를 붙안고 침대 위에서 대굴대굴 구을며 숨 넘어가는 소리를 쳤다. “아이고, 대가리야, 날 살려라!” 그때 녀검사와 남검사가 문을 뚝 떼고 쌩 바람이 일게 들어왔다. 황선희는 정호 여기저기를 여겨보더니 녀검사를 돌아보았다. “오늘 아침까지 괜찮았는데 웬 일이지? 손님이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이 지경입니까? 환자를 절대 자극을 심하게 줘선 안 됩니다.” 녀검사는 어이없어했다. “검찰원에서 왔는데요. 반탐오부패국 최혜영 국장의 호출령을 전달했을뿐입니다. 그런데 불시에 대굴대굴 구을면서 머리 아프다고 했습니다. 참, 알고도 모를 기괴한 일입니다.” 황선희는 대개 짐작이 가 정호한테 눈길을 돌렸다. 정호는 손으로 머리를 마구 부둥켜안고 땔땔 구을다가 슬며서 황선희를 곁눈질하더니  눈을 찔끔해보였다. 황선희는 제꺽 눈치챘다. 그는 필경 새파란 나이 때부터 사귀여온 오랜 애인인지라 직권을 빌어 정호를 엄호해나섰다. “환자 정서는 건강치료에 아주 중요해요. 먼저 정서 온정된 담 호출해도 되지 않을가요?” 남검사는 정호를 날카롭게 쏘아보며 호령했다. “흥! 장마당에서 흥정하듯 흥정하겠는가?” 녀검사도 을러멨다. “펀펀해가지고 꾀병을 부리겠는가? 어서 검찰원에 갑시다!” (어쩐담? 최혜영 국장, 그 저승사자한테 가면 가차없이 염라전에 갈 건데. 으흐흑, 흑흑.) 그때 황선희 또 나섰다. “이 환자는 급성뇌막염에 걸린 거 같아요. 우리 병원에선 치료할 수 없습니다. 아마 북경이나 상해 큰 병원에 보내야 될 거 같아요.” 녀검사는 정색하며 황선희를 보고 엄숙하게 말했다. “뭐라고? 안돼. 먼저 심문받고 치료하러 가야 됩니다.” “이 환자 무슨 죽을 죄라도 범했습니까? 뇌막염에 걸려 제 정신이 아닌 환자를 치료도 하지 않고 어떻게 심문합니까?” 녀검사는 고집을 부렸다. “양병을 하는 걸 모르는 거 같습니까?” 남검사가 불호령했다. “일어낫!” 정호는 머리를 붙안고 때굴때굴 구을며 죽는 상을 했다. “아이고, 대가리야, 대가리 다 빠개져!” 남녀검사는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두 검사는 한쪽 구석으로 가서 쑤군거렸다. “저걸 어쩌오? 최국장은 기다리겠는데.” “제 정신 아닌 환자야 어떻게 심문하겠어요?” “그래도 최국장한테 청시하고 결정하기오.” 남검사가 복도 한쪽 구석으로 가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한참 후 녀자검사가 다가와 황박사한테 말했다. “별수 없군요. 호출을 잠시 미루겠습니다. 치료시간이 얼마나 걸릴 거 같습니까?” 황박사는 능청을 떨었다. “먼저 관찰해봅시다. 아마 한 보름 걸릴 거 같아요.”   “네- 알았습니다.” 녀검사는 남검사를 돌아보았다. 남검사도 다가왔다. “먼저 치료하십시오. 돌아가기오.” 검사들이 사라지자 늙은 너구리는 그물에서 잠시 빠져나왔다. 그리하여 연극을 그만 놀았다. “황박사, 감사하오.” 정호는 침대머리 궤에서 빨간 봉투를 두개 꺼내 주었다. “자, 채포될 위험이 있을 때 구해줘서 감사하오. 황박사 아니였으면 하마트면 저승사자한테 잡혀 갈 번했소. ㅋㅋㅋ.” 황박사는 정호 우멍눈을 들여다보며 지껄여댔다. “국장 나부랭이질 했기에 좋긴 좋구만. 앓아도 숱한 돈을 넙쩍넙쩍 받아먹는게. ㅎㅎㅎ,” 정호는 우멍눈에 귀찮은듯한 빛이 스쳐지나갔다. “좋긴 뭐 좋아? 남은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조마조마해 못 살겠는데.” “오- 그래, 머리 빠개지는 거 같잖소? ㅋㅋ, 어쩜 아직도 숱한 미녀들을 거느리고 풍류남아로 향수할 수 있소? 얼마나 좋겠소? 항상 폭신폭신한 미녀들 배 위에서 개발헤염을 치는게.” “무슨 말이오?” “저기 복도를 보오. 숱한 미녀들이 줄을 서지 않았는가요? 범은 늙어도 범의 가죽은 아직도 위엄이 이만저만 아니구만요.”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 진짜 귀찮소.” 정호는 정색해 물었다. “황박사, 어떤 사람들은 너무 색을 밝히면 오래 살지 못한다던데 의학적으로 맞소?” 황박사는 침대옆 쏘파에 앉으면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뭐나 적당해야죠. 안 그러면 단명이죠. 옛날 황제들이 왜 대부분 단명인지 압니까? 모두 주색을 너무 밝혔기에 일찍이 죽었죠. 황제는 낮에는 나라를 다스리는데다가 누가 자기를 노리는가고 속을 태우고 밤에는 날마다 황후 외에도 숱한 황비와 궁녀들을 다스리느라고 신장이 다 잘못됐죠. 그래서 단명이였죠.” 정호는 허구푼 웃음을 지었다. “내 무슨 황제요?” “최국장은 황제 못잖게 미녀 많잖은가요? 자꾸 너무 주색을 밝히면 신장이 못쓰게 돼 진짜 오래 못 삽니다.” “난 아직도 단번에 처녀 몇을 데리고 놀 수 있단 말이오. 무슨 놈의 의학과학이 그러오? 매일 그래도 몸이 나빠진 거 모르겠는데. 흥!” “쓸데 없이 녀자 숫자만 채우지 말고 하나라도 진짜 마음 속으로 따르고 사랑하는 녀자를 골라 친해두란 말이오. 아무리 졸혼했다고 마구 놀지 말란 말이오.” 정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진짜 이젠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 귀찮소. 하나하나 떼버려야지.” “잘 했어요.” 정호는 정색해 물었다. “일부 성지식책에서는 너무 참고 섹스를 하지 않아도 건강에 좋지 않다던데. 의학적으로 맞소?” 황박사는 제대로 알려주었다. “맞아요. 너무 참아도 진짜 음양조화가 잘 되지 않아 건강을 해치게 되죠. 또 부단히 성자극을 받아야 엔돌핀도 생기고 음양조화도 잘 돼 건강에 좋지요. 남자나 녀자나 성고조에 올라 극도로 흥분돼 하늘에 붕 뜨는 감이 들 때 온 몸의 세포가 흥분돼 전에 없이 활약하고 인슐린과  엔돌핀이 분비되면서 면역력도 증강되죠. 그래서 퍽 젊어지기도 하죠.” “오- 그럼 내 숱한 미녀들을 바꿔가면서 하는 것도 건강엔 좋구만. ㅎㅎㅎ.” "그렇긴 해요. 성생활을 억제하면 대뇌 성신경이 압축되고 호르몬과 인슐린, 엔돌핀 등이 잘 분비되지 않죠. 그래서 남자나 녀자나 자꾸 억제하면 나중에 면역력이 저하되면서 건강이 나빠지죠.  남자는 음위가 오게 되고 녀자는 자궁이나 질에 병이 오게 되고 로화가 빨리 되죠. 심지어 남자는 전립선염이나 고환염이 오게 되죠." "금욕주의자 문걸이 세상 병이란 병 다 앓는 거 이제야 원인 알 거 같소. 미녀로봇에 대고 그러니 온전하겠소? 장염에 장암에까지 걸리잖았어. 코로나는 더 말할 것두 없구. 흥!" "춘희 그 남친 말이죠?" "그래. 녀성과 그러지 원인도 있겠지?" "그런 거 같아요. 녀자들은 오랫동안 참으면 자궁암이나 유방암도 오죠. 유방도 남자들의 손이 자주 가야 혈액순환도 잘 되고 점점 풍만해지죠. 그런데 장시간 매만지지도 않으면 유방암이 오기 쉬워요. 우리 언니랑 참 불쌍하죠. 서른살에 중풍을 맞은 남편과 한뉘 생과부로 살았죠. 그래서 팍팍 늙습니다. 숱한 지병에 오래 살 거 같잖습니다. " "그래 지금 황선생님 잘 계시오? 본지도 오래오. 찾아가 봐야 하는데." "칠순인데 팔순로파처럼 됐어요." "참 안됐구만. 내 자주 찾아가 봐야는데. 에이, 참." "변강쇠야 언제 우리 언니를 다 배려할 수 있겠어? 숱한 미녀들을 다루느라고. ㅋㅋ." 정호는 정색했다. "황선생님이 지금 날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지금도 난 황선생님이 날 가르쳐준 인생도리 잊어지지 않소." 황선희 박사는 호기심에 차 물었다. "뭐라고 했는가요?" "'무용예술을 하고 전도를 개척하려면 자기를 희생할줄 알아야 한다.' 얼마나 철리 있는 인생철학이오. 난 황선생님의 말씀을 명기하고 무용예술과 전도를 위해 내 마음과 육체, 재물을 아끼지 않았지. 그래서 문화국 국장이라도 주어 했지. 난 내 제자들한테도 항상 황선생님의 말씀을 외웠소." "언니 한마디 가르침 덕에 숱한 재물을 긁어모으고 숱한 미녀들을 데리고 놀았겠군요. ㅎㅎㅎ." "무슨 소리? 언제 황선생님을 찾아가 위로해줘야지." "우리 언니 병신 나그네하구 생과부로 살면서 글쎄 항상 스스로 자위를 하다나니 뭔가요? 성의식이 다 잘못 됏어요. 젊은 나이에 성생활이 원만하지 못해 즐거  파파 로파로 됐잖아요.  비극이죠." "황박사는?" "그만 해. 난 스스로 섹스비법이 있어. 괜찮아." "하긴 섹스박사 아니오. 그래도 종종 변강쇠를 찾아오오. ㅎㅎㅎ." 황선희는 퉁방울 같은 봉이 쌍까풀 눈을 흘겼다. "짐승 같은 놈." 뒤이어 그녀는 인차 정색했다. “남은 생각해 말하는데도. 흥! 최국장 나이엔 너무 과도하게 해도 건강을 해칩니다. 신장이 망가지면 단명하게 됩니다.” 최정호는 진짜 성의학강의를 하듯 하는 황선희를 보고 지껄였다. “황박사처럼 50대 초반 나이엔 남자들을 싫어한다던데. 정말이오? 황박사는 어떻소?” “내야 성갈증이 날 지경이죠. 전번에도 말했지만 나그네 그게 병신 같아서 성불만족이죠.” 정호는 때를 만났다고 지껄였다. “그럼 날 자주 찾아올게지. 참. 나쁜 국장이라고 그리 랭담하오?” 황선희 박사는 헤쭉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국장이야 수컷으로는 상등수캐지. 변강쇠 그게 어떻게 돼 그렇게 아가씨들을 끄는지, 아직도 그렇게 센지, 좀 연구해보고파. ㅎㅎㅎ. 급성뇌막염에 걸린 주제에 작작 날 건드려.” 황선희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정호는 제꺽 알아들었다. (그래, 난 급성뇌막염환자야. ㅋㅋ. 검찰원에 잡혀가면 끝장이야. 병원에 누워 있으면 숱한 빨간 봉투나 받지. 흥.) 이튿날 정호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아차, 깜짝 잊을 번했구나. 오늘 5월 26일 아닌가.) 그는 백사불구하고 순정이네 음악다방 개업식에 가기로 했다. 그는 침대머리 궤에 쌓인 숱한 빨간 봉투를 꺼내 가방에 걷어넣었다. (병원에 뒀다가 누구 좋은 일 하자고?) 그는 미리 준비한 물품을 다 챙기자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개업식에 가자고 동원했다. “하영이오? 우리 집에서 음악다방을 차렸는데. 오늘 개업식에 꼭 오오. 양, 9시 전에 오오. 꾀꼴새처럼 노래 부르오. 양, 아니, 평양 아가씨처럼 노래를 좀 선물하오.” 정호는 이번엔 정희한테 전화했다. "사랑하는 이, 우리 집 개업식에 오오. 아홉시 전에 꼭 오오." 그러자 정희가 게두두벌거렸다. “아니, 그리 일찌기 가서 뭐 하는가요?” “개업식을 세상 멋지게 하자고 그러오. 꼭 시간을 지키오.” 누가 감히 늙은 너구리 부르는데 가지 않겠는가. 비위를 거슬렸다간 진짜 언제 어디로 날아가 처박힐지 모를 판이 아닌가. 늙은 너구리는 개업식을 빌어 또 숱한 부조금을 받아 순정한테 주려고 들었다. (웃는 낯에 침을 뱉지 못한다고 아무리 배신감을 받은 순정도 잘 해주면 날 선처할 거야.) 음악다방 개업식에는 문화국의 김국장 외에도 공상국 오청룡 국장과 리굉팔 총경리, 공안국 박동묵 국장, 심계국 조국장을 비롯한 숱한 국장들과 총경리, 그리고 문화국 산하 인기 연예인들과 미녀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두터운 부조금봉투를 축의금상자에 쑤셔넣었다. 그들은 모두 최정호 국장의 이런저런 신세를 진 사람들이였다. 아직도 최정호라는 뿌리 깊고 가지 많고 커다란 나무 그늘 밑을 벗어나서는 살기 힘든 정객들과 경제유지인사,  문예귀족들과 배우, 가수, 무용수, 미녀들이였다.       순정은 입이 함박만해 어쩔줄 몰라했다. 그러나 주인공인 최정호 국장의 모습은 시종 보이지 않았다.       미국에 갔던 미녀군단 미녀들도 대부분 왔다. 저쪽에 황선희와 춘희도 보이고 문걸도 지예와 함께 보였다. “우릴 오라고 전화 해놓고 어째 최국장은 보이지조 않지?” “글쎄 말이야.” “잘 못 오지 않았는가?” 하영은 한쪽 구석에 가서 핸드폰을 쳤다. “어째 안 오십니까?” “내 진작 왔어.” “어디 계신가요?” “어디 있나 찾아봐라.” 하영은 정호 전화 한통에 가무단 예술부 부장 겸 부단장으로 제발됐다. 그녀는 입이 함박만해질 지경이 돼 정호를 찾아헤맸다, 정희는 아니꼬운 눈길로 하영을 흘겨보았다. (간나새끼, 뭐? 부장에 부단장 됐다구 개턱처럼 쳐들고. 흥. 뭐 장차 단장될 후비간부로 됐다구? 흥!) 뺑덕이에미도 허병칠한테서 5만원 받아먹었는지라 잠시 허부장을 놔주고 하영을 더 어쩌지는 않았다. 그녀는 지금 정호의 보마차에 뒀던 그 금은보화만 욕심날 뿐이였다. 하여 정호가 언제 나타나겠는가고 살피고 있었다. 하늘에는 이상하게 드론 둘이나 떠돌아다녔다. 개업식을 비디오촬영하자고? 아니면? 이때 순정이 마이크를 잡더니 청아한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했다. “개업식에 찾아온 여러분, 감사합니다. 먼저 뻐스에 오르십시오.” 음악다방 앞 광장에는 숱한 버스가 줄느런히 늘어서 있었다. 정희는 뻐스에 오르면서 제 좋은 소리를 했다. “아마 식당에 가는가 보지.” 하영이 도리머리질 했다. “열시도 안됐는데 벌써?” 불여우 같은 정희는 뒤에서는 검찰원에 가서 최국장을 고발해놓고 하영과 허병칠한테서 돈을 짜내면서도 앞에서는 새물새물 눈웃음을 지으면서 정호한테 아첨하는 척했다. 오늘도 그녀는 오기 싫은 것도 아직 정호한테서 보마차에 뒀던 금음보화를 얻어가지려고 왔던 것이다. 그녀들은 뻐스에 오르면서 저쪽 오디차 옆에서 탈을 쓰고 걸레질을 하는 허름한 옷차림의 사내를 발견했다. 웬 보스네 운전수 같았는데 몸집이나 행동거지를 보면 딱 최국장 같았다. 정희는 핸드폰을 꺼내들더니 한쪽구석으로 가서 어디엔가 전화를 걸었다. "늙은 너구리 나타났습니다. 예. 오디차를 몰고 왔습디다. 예. 새로운 정황이 있으면 인차 알리겠습니다." 나영이 먼저 정호를 알아보고 사위를 흘끔거리면서 다가갔다.  하늘에서 드론이 나영의 뒤를 따라 오디차 상공으로 멀찍이 배회했다. “최국장님, 왔어요?” 늙은 너구리는 짐짓 능청을 떨었다. “누굴 찾소? 난 최국장 모르오.” “거짓말. 탈 벗으세요. 최국장 아닌가?” 그제야 정호는 나영을 오디차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목소리 낮춰.” “왜 탈까지 쓰고 연극 놀아요?” “이젠 공식 장소에서 탈 쓰고 남의 눈을 피해 살 신세 됐어.” 나영은 급한 일부터 꺼냈다. “최국장님, 큰 일 났습니다. 요즘 심계국에서 찾아와 우리 단위 재무장부를 활딱 번집니다.” 늙은 너구리는 암암리에 하영을 고발해놓고 앞에서는 능청을 떨었다. “뭐라오? 큰 일 났구만.” “어쩜 좋아요? 최국장, 살려주십시오. 네?” 나영은 발을 동동 구르기까지 했다. 늙은 너구리는 속으로 깨고소해했다. (이젠 날 따라 다니지 않고 배기겠느냐? ㅎㅎㅎ.) 늙은 너구리는 나영을 생각하는 척하면서 아닌 보살을 떨었다. “별수 없군. 이젠 여기서 살기 곤난하오. 어서 피신해야겠소.” “그럼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남편과 애는 어쩌고?” 늙은 너구리는 녀포로를 손아귀에 꽉 틀어쥐였다. “남편과 애를 붙들고 있다가 감옥에 가겠소? 아니면 피신하겠소? 이젠 결단 내릴 때 된 거 같소.” “어마나. 내 팔자야. 애랑 어쩌고 피신합니까? 피신하면 어디로 피신합니까? 도처에 법망을 쳐놓았겠는데요.” 늙은 너구리는 나영을 슬쩍 데리고 오디차에 올라탔다. 그 오디차는 순정의 자가용이였다. 오디차는 버스 행렬을 뒤로 하고 망아산 기슭으로 달려갔다. 하늘에서 드론이 오디차 꼬리를 물고 뒤따라 날아갔다. 최혜영 국장이  검사들을 시켜 날린 수사드론이였다.     정호는  그런줄도 모르고 오디차를 쏜살같이 몰았다. 드디여 울울창창한 수림 속에 별장 하나 나타났다.      “어딘가요?” “우리 나영을 별장에 모시려고. ㅎㅎㅎ.” 정호는 원격조종기로 별장 대문을 열고 오디를 몰고 지하주차장에 들어갔다. “여긴 어딘가요?” “누구도 모르는 비밀별장이오. 잠시 여기 피신해있소.” 사실 정호는 정희네 명도다방에 얹혀 살자니 힘들었다. 뺑덕이에미가 어찌나 보마차에 뒀던 금은보화와 돈을 달라고 졸라대는지 하루도 더 배기기 힘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유일한 비밀피신처 -별장으로 옮겨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정호는 나영을 데리고 별장 몸채로 올라갔다. 으리으리한 별장은 황홀한 별유천지였다. 정호는 이제껏 아무도 데리고 이 별장에 온 적이 없었다. “어떠오?” 정호는 열쇠를 꺼내 맡겼다. “비밀번호는 내 생일로 돼 있소. 알만 하지?” “네. 해마다 쵝국장 생일에 축수드리러 갔는데 잊을 수 있겠는가요?” 정호는 나영을 쏘파에 물러앉히면서 정색했다. “이젠 핸드폰도 쓰지 마오. 핸드폰부터 추적하면 여기 있는 위치도 다 드러날게 아니오?” 나영은 머리를 끄뎍였다. “이걸 쓰오.” 정호는 가방에서 핸드폰 두개를 꺼냈다. “이건 신분증도 필요없이 산 거요. 딱 우리 둘이 단선련계할 핸드폰이오.” 나영은 핸드빽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럼 이건 버릴가요?” “아니오. 이제 관건적일 때 쓸 일이 있소. 여기서 까딱 아무데도 나가지 말고 숨어 있소. 먹을 거랑 근심하지 마오.” 정호는 가방을 열어보였다. “옛소. 잘 보관하오. 내 일 보고 밤에 돌아올게. 오늘부터 우린 여기 피신해 살기오.” “네- 고맙습니다.” 정호는 나영의 손을 잡고 뒤방에 놓인 커다란 랭장고를 열어보였다. “아니!” 나영은 너누 황홀한 금빛에 눈이 실 지경이였다. 랭장고 안에는 금은보화가 황금빛을 빛뿌리고 있었다. “이건 몽땅 나영 거요.” 나영은 정호의 믿음과 관심에 못내 감동됐다. 냉장고 아래서랍을 여니 딸라따발  일여덟개나 쌓여 있었다. 피뜩 봐도 몇십만 딸라 될 거 같아보였다. “아무것도 근심하지 말라. 나만 따르면 뭐나 다 있을 거야.” 나영은 털이 부시시한 품에 와락 안겨 눈물이 글썽해 종알거렸다. “고맙습니다. 랑군님. 이젠 최국장님을 애인 아닌 랑군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정호는 나영을 꽉 끌어안고 보슴털이 보송보송난 이마에 키스를 살짝 해줬다. 그는 나긋나긋한 나영을 완전히 자기 손아귀에 넣은 것에 못내 웃음주머니 흔들거렸다. 한편 버스행렬은 개업식에 참가한 백여명 손님들을 싣고 망아산 중턱에까지 달려올라갔다. 단풍나무숲이 우거진 수림 속에 별장 같은 집채가  드러났다. 자그마한 호수가에 물레방아도 하얀 물을 맞아 빙빙 돌아갔다. 손님들은 눈 앞에 나타난 정경에 놀랐다. 글쎄 오고보니 숱한 로인들이 오고 가는  경로복지원이 아니겠는가! 순정이 자비를 베풀어 본가집 부모와 정호가 남긴 돈과 금은보화로 차린 경로복지원이였다. 한복을 차려입은 순정이 보마차에서 내려 사뿐사뿐 경로복지원 마당 앞에 림시로 꾸린 자그마한 무대에 올라갔다.    그녀는 마이크를 잡고 다음과 같이 페부로부터 우러나오는 말을 했다.     “여러분, 보귀한 시간 내서 여기까지 찾아주셔셔 감사합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부모 없이 자란 자식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로인을 존경하며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 조선민족의 훌륭한 전통이며 미풍량속입니다. 저는 이젠 보모도 계시지 않고 저의 신변에는 자식 하나 없습니다. 저는 이젠 졸혼하고 저만의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저는 여생에 음악다방과 경로복지원을 잘 차려 의지가지 없는 빈곤한 로인들을 자기 부모처럼 살뜰히 모시고 의지가지 없는 고아들을 친자식들처럼 보살피면서 살려고 합니다."       여기까지 말하고나서 순정은 울먹거리면서 겨우 뒷말을 이었다.       "오늘 여러분들의 축의금으로 이 세상에서 의지가지 없이 살고 있는 경로복지원의 수십명 로인들과 고아들한테 복지의 선물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자비로운 지성에 감사합니다.”     직원들로 보이는 젊은 녀성들이 차에서 옷견지며 식료품이며를 넣은 숱한 상자를 날라다 경로복지원 문 앞에 쌓아놓았다. 경로복지원 로인들과 고아들은 기쁜 나머지 싱글벙글 웃으며 어쩔줄 몰라했다.       순정은 마이크를 잡고 무대 아래를 둘러보다가 뒷말을 이었다. “이 경로복지원은 문화국 최정호 국장님께서 아글타글 벌어서 아껴 먹고 쓰면서 남긴 돈을 투자해 차린 것입니다. 이밖에 상해에 있는 저의 5촌 외조카 군철 부장이 해마다 달마다 3만원씩 고아워원에 보내 온 돈도 경로복지원에 투자했습니다. 오늘 비록 최정호 국장님과 군철 부장께서 이 자리에 오시지 못했지만 저는 경로복지원의 로인들과 고아들을 대표해 최국장님과 군철 외조카의 복지정신에 깊은 사의를 드립니다. 최정호 국장님은 앓는 몸으로 병원 구급실에 입원해 계시면서도 다음과 같은 축하의 말씀을 보내왔습니다.” 순정은 정호가 온 것을 뻔히 알면서 핸드빽에서 축사를 꺼내 대독했다. 그때 하영이 무대에 뛰여올라갔다. 하영은 금방울 은방울 굴리는듯한 청아한 목소리로 축사를 읽었다.             경로복지원에 드리는 축사        저는 비록 앓는 몸으로서 오늘 개업식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순정 리사장의 효심에 받들려 일떠선 경로복지원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부모에게 효성하지 않는 자식이 어찌 사회와 백성들을 위해 봉사하고 일할 수 있겠습니까? 의지가지 없이 사는 불쌍한 독거로인들과 부모를 잃고 홀로 이 세상에 남아 의지가지 없는 어린이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사람의 생명은 유한합니다. 저는 몸이 불편해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약자를 돕는 착한 마음으로 박순정 리사장을 도와 이 세상에서 의지가지 없이 사는 불쌍한 로인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복지사업에 자그마한 힘과 정성을 보태주고 싶습니다. 하느님은 덕을 쌓은 사람을 용서하고 약자를 꼭 도와줄 것입니다.      하느님이여, 집도 없이 홀로난 불쌍한 로인들과 고아들에게 집을 내려주시고 먹거리를 내주시는 박순정 리사장을 잘 굽어살피시고 굳이 도와주옵소서.      저는 더 많은 녀성들에게 자유와 해방, 복을 마련해드리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오늘 경로복지원 탄생일에 변강쇠 최정호 하나님께 비나이다. 아직도 가정의 속박에서 해방받지 못해 자유와 복을 잃은 녀성들, 그리고 의지가지 없는 불쌍한 로인들과 고아들에게 복음을 내려주실 것을 두 손 모아 빌고 또 빕니다.        축사가 끝나자 장내에서는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방미미녀군단의 아가씨들은  눈물까지 글썽해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특히 “많은 녀성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해방, 복을 마련해드리지 못해 늘  죄송합니다.”는 말에 감동을 먹었다.      순정은 필경 정호와 함께 30년을 살아온 조강지처였다. 하여 정호를 미워도 했지만 체포해가지 못하게 암암리에 엄호하고 있었다. 그녀도 자기 속셈이 있었다. (그래야 정호가 보마차에 뒀던 금은보화까지 찾아다가 복지원에 쓰지. ㅋㅋㅋ.)    정호는 정은 아가씨들한테 주고 재물은 조강지처 순정한테 남겨 주었다. 나무 잎도 떨어지면 뿌리에 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한편 정호는 자기 하나만 30년 동안 해바라기처럼 쳐다보며 따르며 사랑하고 살아온 순정을 배신한 것이 량심적으로 미안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나마 잘해 주고 있었다.    정호는 순정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오디차 안에서 중얼거렸다.     (순정아, 숱한 녀자 데리고 놀아 그렇지. 난 그리 마음 나쁜 사람 아니야. 난 착한 면이 있어. 나도 자선사업과 복지사업에 나서서 약체를 도우면서 덕을 쌓으며 살고 싶다. 그러나 아가씨들을 많이 거느리다보니 돈잎이 딸려 마음과 같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아.)  순정은 정호의 그런 마음이 와닿는지 계속 연극을 놀아갔다. “우리는 이 자리까지 오신 여러분의 지지를 받아 착한 복지사업을 해나갈 것입니다. 여러분 재삼 감사합니다.” 박수소리가 우뢰처럼 울려퍼졌다. 순정은 숱한 선물을 복지원 원장과 로인 대표, 그리고 고아 대표한테 드렸다. 복지원 직원들이 산더미 같은 선물상자를 복지원에 들여갔다. 순간 탈을 쓰고 먼 발치 오디차 옆에서 구경하던 정호 마음도 흐뭇해났다. 그는 이제까지 다욕하고 주색에 빠져 살다가 어쩌다가 한번 쯤은 착한 일을 한 것 같아 속이 후련했다. 기실 이것도 늙은 너구리가 순정과 짜고 들어 사회에서 선량한 형상을 부각하려고 꾸민 연극이였다. (저승사자년도 선량한 간부, 청렴한 간부를 체포한다는 부담을 가질게 아닌가. 흐흐흐.) 그러나 정희는 두덜거렸다. “진짜 양 대가리를 걸고 개고기를 파는 판이구나.” 하영이 맞장구를 치며 게두두벌거렸다. “글쎄 말이오. 오늘 음악다방 개업식을 한다고 해놓고 효성경로복지원을 구경시켜?” “쳇, 진짜 다욕한 보스야. 우리 돈을 가져다 제 면목내잖아?” “돈을 빨아내는덴 이골이 튼 년놈들이야. 흥!” 그때 정호는 탈을 쓴 채 오디차를 몰고 경로복지원에 다가왔다. 그는 오디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순정한테 전화해 개업식을 일일이 막후조종했다. “사회자를 시켜 림하영 가수를 노래를 시키오…” 순정은 핸드폰을 끄고 무대에서 내려 사회자한테 다가가 뭐라고 분부했다. 원래 사회는 해설원 출신인 나영을 시키기로 됐는데 녀아나운서로 바꾸지 않으면 안되였다.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갔다. “아래에 가무단 부단장이며 유명가수인 림하영씨가 로인들에게 노래를 선물하겠습니다. 열렬한 박수로 환영합시다.” 하영은 벌써 헬기를 타고 성악조 조장으로부터 일약 부단장으로 임명됐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영은 허병칠 부장을 잠시 놔주었다. 정희도 잠시 대학교로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 미녀군단은 정호와 순정이 미리 짜놓은 순서대로 무대에 몰라 공연하기 시작하였다. 평양 아가씨 같은 하영이 무대에 올라가 청아한 목소리로 로인들이 즐겨듣는 노래를 몇곡 간드러지게  불렀다. 뒤이어 한복을 곱게 입은 방미 미녀군단이 무대에 올라가 “아리랑” 곡에 맞춰 너울너울 학처럼 신나게 춤 추었다.  경로복지원의 로인들은 주름살을 활짝 펴고 박수갈채를 보냈다.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 다음 공연순서를 공포하였다. “아래에 바레 ‘호수가 백조와 독수리 련가”를 특별초청한 저명한 바레리나들께서 공연해드리겠습니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백조 탈을 쓴 하얀 백조(순정이)가  모둠발로 바레를 추며 무대 중간으로 미끌어지듯 나왔다. 비록 오색령롱한 조명은 없었지만 유명한 바레리나의 바레라는 것을 한눈으로 보아낼 수 있었다. 갑자기 별장 지붕으로부터 새까만 독수리(정호)가 갈고리로 쇠바줄을 타고 미끌어져 내려왔다. 독수리는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면서 무대에 날아내려왔다. 주둥이 뾰족한 독수리 탈을 쓰고 까만 독수리 복을 입은 독수리는 백조를 끌어안고 커다란 날개를 펴면서 쌍쌍이 나래치는 조형을 한다. 흑백이 조화된 독수리와 백조는 음악리듬을 타고 경쾌하게 멋진 쌍무를 췄다.  백조는 독수리 무릎을 딛고 훌 어깨에 날아올라가 외발로 서서 살짝살짝 옮겨딛이며 날개를 파닥이면서 멋진 바레를 추었다. 미국에서 영희와 추던 바레를 이번 무대에 성공적으로 옮겨 놓았다. 그러나 미국에서 영희가 독수리 머리에 올라서서 바레를 추던 것과 섹스시늉을 하던 조형은 그만 두었다. 백조가 독수리 탈을 밟아 번대머리가 드러날가봐 겁난 것도 아니였다. 섹스시늉은 국내에서는 너무 한 것 같았기 때문에 절제했던 것이다. 무대 아래에서는 처음 이렇게 정채로운 수준급바레를 보고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정호는 무용으로 이어진 사제간의 정성을 다해 로인들에게 프로급바레를 선물했던 것이다. 올가미를 목에 건 정호는 어찌 보면 이번 바레가 무용예술가로서는 마지막 무대일 수도 있었다. 그는 바레를 마치자 눈물이 글썽해 순정을 꽉 포옹했다. 순정은 새까만 독수리 품에 안겨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어깨를 들먹였다. 정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랭정한 그는 리지적으로 독수리 대가리 탈을 벗는 실수는 범하지 않았다. (녀저승사자 눈에 띠면 큰 경을 칠라.) 순정 리사장 부부간은 로인들과 고아들을 한순간이라도 기쁘게 해드리고 무대에서 내렸다. 모두들 축하인사를 보내려고 모여들자 독수리는 무대 뒤로 어디론가 바람결처럼 사라졌다. 모두들 버스와 자가용을 타고 음악다방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연회장에는 벌써 진수성찬 술상 열몇상이나 은은한 음악 속에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걸과 춘희, 황선희, 성호, 종호, 범송이랑 한 술상에 앉았다. 범송은 여기저기 살피더니 이상해 중얼거렸다. “어째 정호 보이지 않는다.” 성호가 툴툴거렸다. “기다리지도 말라. 의리도 없는 놈새끼. 흥!” 종호랑 문걸의 눈치를 흘끔 보았다. 친구들은 모두 정호가 문걸의 처를 30년 동안이나 간통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고 격분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문걸이 속상해할가 봐 더 말하지 않았다. 음악다방 연회대청 벽에는 문걸이 증송한 숱한 벽화들이 걸려 있었다. 춘희는 소나무와 미인송이 꽉 끌어안은 선남선녀 벽화를 보고 문걸에게 눈짓했다. 문걸은 희죽이 웃었다. 벽에는 또미인이 물동이를 어깨 넘어 물을 부으면서 목욕하는 라체벽화도 있었다. 그 벽화는 정희를 라체모델로 그린 벽화였다. 그림을 그릴 때 정희는 고의로 물동이를 어떻게 들고 물을 붓는 조형을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문걸이 가까이 다가가 물동이를 어깨 넘어 들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했다. 그때 정희는 새물새물 눈웃음을 지으며 추파를 던지면서 문걸을 유혹했다. 그리하여 끝내 문걸을 섹스까지 하는 실수까지 저지르게 유인했던 것이다. 정희는 탈을 쓰고 한상에 앉은 문걸을 흘끔 흘겨보았다. 나영을 모델로 그린 벽화도 손님들의 눈길을 끌었다. 나영은 쏘파에 모로 누워 턱을 고이고 손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님들은 독수리 탈을 쓴 바레리나가 정호인줄도 모르고 술상에서도 바레를 수준급으로 잘 췄다고 혀를 끌끌 찼다. (나영이 오지 않기를 잘했지. 괜히 봉변당하겠다.) 문걸은 얼굴을 그대로 그리지는 않고 예술적으로 다른 미녀 얼굴을 살짝 바꿔 그려놓았다. 하지만 정희는 창피해 얼굴이 다 빨개 머리를 다소곳이 숙였다. 연회가 끝나자 음악다방에서 자유로운 사교무판이 펼쳐졌다. 하영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숱한 악사들의 반주에 맞춰 서정적인 서양노래를 영어에 조선어로 은은하게 불렀다. 문걸은 춘희와 함께 은은한 노래소리에 맞춰 왈쯔를 슬슬 추며 음악다방 대청 중심으로 미끌어져나갔다.      그때 탈을 쓴 독수리와 백조도 음악에 맞춰 사교무를 추며 음악대청 중심으로 미글어져 나왔다. 그들은 안고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다가도 척 멈춰섰다. 백조는 독수리에게 안겨 뒤로 몸을 뒤번지며 아름다운 조형을 이루며 또 뱅글뱅글 돌아갔다.       오색령롱한 불빛아래 미녀군단 미녀들도 춤판에 끼여들어 빙글빙글 돌아가는 소용돌이 속에 휘감겨들었다. 정희와 하영 등 미녀들은 종호랑 범송이랑 성호랑한테 다가와 춤을 청했다. 성호랑 미녀들을 끌어안고 문걸과 춘희랑 따라 성수나게 빙글빙글 돌아갔다.      가무단 미녀들이 경쾌하고 절주 빠른 음악에 맞춰 현대댄스를 췄다. 음악다방의 춤판은 황홀한 절정을 이루었다.      갑자기 오색령롱한 샨데리아 조명이 꺼지고 네온등이 대낮처럼 환히 켜졌다.      “오락판 정지!” 두리모자들이 뛰여들었다. 순정이 하얀 백조 탈을 벗으면서 경찰들한테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경찰은 종이장을 쳐들어보였다. “체포장입니다.” “뭐라고? 남의 개업식에 와서 누굴 체포한단 말입니까?” “탐오수뢰죄로 최정호를 체포합니다. 여러분, 미안합니다.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네? 개업식에 진짜 재수없이 논다.” 그때 독수리는 늙은 너구리처럼 허리를 굽히며 슬금슬금 뒤로 빠져 화장실 쪽으로 비실비실 물러갔다. “최정호 어디 있습니까?” “네? 최정호 국장? 왜? 그는 우리 경로복지원의 특등공신입니다. 아버지 같은 분이십니다. 그렇게 착한 간부를 다 체포하다니? 흥!” 경찰 우두머리가 경고했다. “박보스는 모든 언행에 법적책임을 져야 합니다. 최국장 어데 갔습니까?” 순정은 입에 빗장을 질렀다. “꼼짝 말엇!” 화장실 쪽에서 들리는 고함소리. 순정은 어깨를 축 늘여뜨렸다. 경찰들이 그리로 우르르 뛰여갔다. “늙은 너구리 같은 놈,” “어디로 도망쳐?” 경장이 독수리 탈을 훌 벗겼다. 박대가리 같은 번대머리가 훌 드러났다. “독수리 탈을 쓰면 네놈을 모를 거 같애?” 경장이 정호 손목에 차디찬 쇠고랑이를 절컥 채우면서 랭소했다. 정호는 독수리 탈을 훌 벗으면서 헤벌쭉 허구프게 웃었다. “무슨 짓인가? 아무 죄도 없는 나를 왜 체포해?” 그는 연회대청에 대고 고함쳤다. “박국장! 뭐 해?” 박동묵 국장은 희죽이 웃으면서 천천히 다가오면서 두팔을 벌려보였다. “낸들 어쩌는 수 있소? 검찰원에서 보낸 법경들인데..,” 정호는 고래고래 고함쳤다. “체포해도 쓸데 없어! 며칠 안 되면 또 내놔야 해!” “가자!”      늙은 너구리 같은 정호는 겉으로는 대수롭잖게 여기는 척하며 경찰들을 따라 음악다방을 나갔다. 기실 속은 얼음덩이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문걸과 성호 등은 놀랍고도 깨고소해해하는 복잡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서라!"      갑자기 문걸이 새까만 독수리복을 입은 정호한테 덮쳐갔다.     문걸은 정호한테 주먹을 마구 휘두르며 욕설을 퍼부었다.     "네놈도 사람새끼야? 개 같은 놈!"     "뭐 하는 짓인가?!"      경찰들이 문걸을 마구 뜯어말렸다.      "왜 이럽니까?"      "저놈과 물어보시오. 처제를 어쨌는가?"      문걸의 눈에는 시뻘건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정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쇠고랑이를 찬 두 손을 들어 문걸한테 손사래를 쳤다. 그는 번대머리를 툭 떨어뜨리며 경찰한테 바깥으로 끌려나갔다.       바깥에는 경찰차가 줄느런히 서서 정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258    대하소설 졸혼(22) 김장혁 댓글:  조회:1141  추천:0  2022-06-27
       32.   최국장          병칠은 허둥지둥 문화국 사무청사에 달려갔다가 정호가 구급실에 입원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허병칠은 은행에 가서 만원짜리 두 묶음을 찾아냈다.        그 돈은 허병칠이 학생부장이란 직권을 리용해 학생들에게서 긁어모은 검은 돈이였다. 그는 뭐나 도와주면 회뢰표준을 정해놓고 꼭꼭 받아먹었다. 연구생은 최저로 만원 받아먹어야 입학시켜주었다. 학생회 간부는 요직여부에 따라 5천원 내지 3만원씩 얻어먹고서야  임명했다. 그중 학생총회 회장은 5만원이나 받아먹고 임명했고 하영에게서는 3만원 받아먹고 부회장으로 임명했던 것이다. 학생간부들의 조직문제도 치사하게 만원 받아먹고야 해결해주었다. 그는 그간 학생부장질하면서 천방백계로 받아먹은 뭉치돈을 내놓기는 자기 밸을 빼주는듯이 아깝고 속이 아팠다. 그러나 최국장한테는 절대 빈손으로 찾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탐욕스러운 최국장한테 빈손으로 찾아가면 일이 제대로 될 때 한번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정치곤경에 빠진 허병칠은 지금 그런 걸 다 따질 때가 아니였다. 정치올가미를 벗어 버리는 것이 최대정치, 경제이고 급선무였다. 그는 병원으로 들어가 건강카드를 보인 후 무거운 발걸음을 구급병실로 옮겼다. 정호가 입원한 구급병실 복도에는 병문안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 속에는 최정호 국장 덕분에 가무단이나 문화관에 들어가 인기인물로 된 가수, 무용수, 개그맨들도 있었고  한자리를 얻어 한 간부들도 있었다. 미국에 갔던 미인군단 인기미녀들도 더러 눈에 띠였다. 허병칠이 주춤거리며 구급병실에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문화국 인사과장이 문께서 막아서며 물었다. “최국장과 어떻게 되는 분이신지요?” 병문안객이 어찌나 많은지 인사과장이 순서를 정해주고 있었다. “전 최국장님 제자 허병칠입니다. 지금 대학교 학생부장입니다.” “아, 알았습니다. 좀 기다리십시오.” 인사과장은 병실에 들어가 정호한테 알렸다. “허병칠? 그 자식 무슨 일로 왔어? 몇년 동안이나 음력설에도 찾아오지 않더니. 흥.” 정호는 나영과 한참 희희닥거리며 얘기하며 귀찮아하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나영 관장하구 조용히 할 말 있으니깐. 좀 있다가 보지. 당신 그간 수고 많았소.” 인사과장은 그간 밤낮이 따로 없이 나영이랑 함께 정호 병시중을 들었던 것이다. 그는 정호 눈치를 흘끔거리더니 머뭇거리며 나가지 않았다. 정호는 이상해 인사과장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 또 있소?” 인사과장은 두 손을 맞잡고 나영을 힐끔 건너다 보았다. “괜찮소. 내 녀동생이나 마찬가지니깐.” 그러자 인사과장은 공손히 말했다. “제 직무문제를 해결해주십시오.” “어, 옳지. 깜빡 잊었군. 내 훌 죽었더라면 진짜 인사과장한테 평생 빚을 갚지 못할 번했군. 이전에 미국 갔을 때도 당신 안해 신세를 많이 졌지.” “아니, 건 다 지나간 일인데요. 잊어버리십시오.” “난 은혜를 절대 잊지 않소. 사람은 배은망덕해선 안되오.” 정호는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들었다. “김국장이오? 양, 인사과장문제 때문에 전화하오. 내 거길 가라오? 양? 오겠다고? 바쁜데 김국장 올게 있소? 양. 전화로 말하기오. 인사과장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표현이 아주 좋소. 인사과장만큼 사리에 밝고 능력있는 간부 우리 국에 몇이 있소? 뭐? 지금 어디 학력만 볼 때오? 보이라공 출신? ㅉㅉㅉ, 퇴대군인출신이면 어떻소? 간부는 능력을 보고 써야 하오.” 정호는 인사과장을 잔뜩 춰올려주었다. “인사과장 참 인정미 있고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이오. 이후에 김국장도 미국에 잘 모실게요.” 정호는 인사과장 눈치를 흘끔 쳐다보았다. “양. 여름에 휴가내고 미국에 한번 가서 푹 쉬라니깐. 양,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떠오? 인사과장을 복직시키오. 장차 부국장으로 제발시키기오. 양, 인사과장 겸 부국장 말이오. 조직부에 몇해 후비간부로 추천해 키우다가 제발시키면 될게 아니오? 그럼 이렇게 결정하기오.” 주고 받는 말을 들어보면 정호는 김국장을 쥐고 흔들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문화국 부국장은 어느 순시원이나 국장이 임명할 권한은 없지만 시당위와 조직부에서는 기층당조직 책임자의 추천에 근거해 후속 주요책임자 인선을 결정하기 마련이였다. 서당개 3년이면 글을 안다고 인사과장은 그래도 인사공작을 여러해 했기 때문에 조직인사절차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어디 과장인선을 추천하는 것인가? 지금 마구 지시하고 있지 않는가. 김국장도 정호 신세에 국장으로 올라갔기에 별 수 없잖은가? 내 일이 잘 풀리겠구나.) 최순시원은 계속 꺼리낌없이 지껄여댔다. “뭐? 아니, 김국장이야 제 능력으로 올라갔지. 내 언제 힘을 썼겠소. 양, 감사하오.  은공 잊지 않아서. 양, 내야 항상 능력 있는 간부를 써주지.” 그는 인사과장이 들으라고 을러멨다. ”배은망덕하는 새끼들은 가차없이 찍어버려야 하오. 사람질 못한다니까. 아까운 간부편제를 랑비할게 있소? 김국장은 참 능력있고 인간답소. 그래서 제발시킨게지. 양. 전번에 안해까지 데리고 왔다 갔는데 무슨 또 병문안 오겠다고? 고맙소. 여기 일 좀 있어 끊겠소. 안녕히.” “최국장님, 이전에…” “가만” 정호가 손사래쳤다. “국장은 무슨 국장? 물러앉은 국장도 국장인가? 이젠 최순시원이라고 편안히 부르라구.” 인사과장은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네, 네, 이전에 제 사리밝지 못하게 처사했습니다. 다 널리 량해하고 써주니 진짜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인사과장은 꾸벅 구십도경례를 올리며 딸라 묶음을 척 내놓았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혀바닥이 다슬게 옛 상전을 개여 올리였다.   “최국장님, 이 은혜…” “또, 또.” “네, 말버릇이 돼서 자꾸. 에헴, 최순시원님 덕을 맣이 쌓으셨기에 보십시오. 매일 문턱이 다슬게 병문안을 하러 오지 않습니까?” “아니, 전번에 가져오고. 또 무슨 … 허허허. 인사과장은 참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이야.” 정호는 딸라묶음을 받아 침대머리 궤 문을 열고 훌 걷어넣었다. 궤 안에는 빨간 봉투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기실 정호가 정신을 잃었을 때는 오청룡 국장과 리굉팔 총경리, 그리고 공안국 박동묵 국장을 내놓고는 별로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이젠 별로 쓸모 없을 것 같았겠지. 그러나 정호가 일어나앉자 병문안객이 점점 더 많아졌다. 이것이 생존정치이고 세상 인심의 흐름이였다. “음, 한가지 부탁해도 되겠소?” “네?” 인사과장은 눈이 데꾼해졌다가 인차 머리를 조아렸다. “네. 뭐든 분부만 하십시오.” “당신 안해한테 미국 수속 부탁해 보오.” “몇분 가겠습니까?” 정호는 꺼리낌없이 부탁했다. “단둘.” “예, 근심하지 마십시오.” 인사과장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바쁘면 그만두기오.” “아니, 웬 말씀을, 신분증을 주십시오.” 정호는 나영을 돌아보았다. “신분증 가져 왔소?” 순간 나영의 걀죽한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였다. “저와 함께 갈래요?” “그래, 요 귀여운 것아, 내겐 이젠 네 밖에 없어.” “어머, 좋아라.” 나영은 인사과장 있다는 것도 다 잊고 정호 기미 달린 이마에 뽁 키스했다. “건데 전번에 일본 수속을 하느라고 황선생한테 신분증 가져갔잖아요? 이제 찾으면 가져오지오.” “그래.” 정호는 나영을 흘겨보며 눈짓했다. (일본 수속 말 왜 꺼내?) 나영은 인차 혀를 쪽 내밀었다. “내하구 리관장 미국 가는 일 비밀에 붙이오.” “네. 알겠습니다.” “나가보오.” 인사과장은 어깨가 무거운 감을 느꼈다. (어떻게 안해한테 말한다? 또 안해 반년 일한 돈 까먹게 생겼는데.) 인사과장은 최국장한테 음력설에 등한히 했다가 철직받은 후 보이라실에도 못가고 당직설에 가서 단위 사무청사 보초를 섰댔다. 인사과장을 할 땐 직함평의, 전근수속, 인사변동 때 숱한 돈을 푹푹 받아먹었댔다. 어떻게 보면 인사과장은 인사권을 가진 최정호 국장보다도 어간에서 더 받아챙겼다. 썩 후에 하영에게서 들어 알았는데 하영을 가무단에 받아넣을 때 정호는 갓 졸업한 녀대생이라고 만원 밖에 받아먹지 않았는데 인사과장이 1만 5천원을 받아 먹지 않았겠는가. 그 일을 안 후 정호는 노발대발했다. (개자식, 언감 내 앞에서 권력을 휘둘러? 어디 인사과장 며칠 더 하는가 보자.) 두루두루해 인사과장은 정호 국장 눈에 나 해임됐던 것이다. 인사과장은 자리를 훌 내자 개뿔도 먹을 알이 없었다. 그래서 안해 말대로 공직을 남겨두고 은퇴해 미국에 갔댔다. 그는 미국에서 처음에는 아파트 화원관리를 했다. 커다란 전지가위를 들고 다니면서 나무를 전지하고 화초에 물을 주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보냈다. 그래도 겨우 입살이를 할 지경이였다. 할수 없이 그는 목욕탕에 때밀이를 하러 들어갔다. 목욕탕 일은 좀 더러웠지만 빨깍빨깍하는 딸라를 버는 재미가 있었다. 목욕탕에는 아시안계 때밀이군 외에 놀랍게도 고향 텔레비죤에서도 자주 보던 개그맨들이 쫄딱 벗고 서서 금발로파들의 때밀이를 썩썩 하고 있었다.     이런 이성때밀이를 하는 목욕탕에는 젊은 금발녀성들은 찾아오지 않고 대부분 금발로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대부분 때밀이보다도 아시안계 남자 맛을 보려고 찾아왔다. 젊은 녀성이면 몰라도 금발로파들의 더러운 때를 밀어주고 그걸 요구하면 그것까지 해줘야 했다. 손님이 요구했는데 만족을 주지 않으면 목욕탕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인사과장은 30대여서 처음 금발미녀 몇은 만족을 줄 수 있었다. 금발로파들은 때를 밀 때부터 자꾸 지껄였다.  “O -ye, very  Short(어우, 너무 짧아)!” “OK, OK!” 일이 끝나자 금발로파는 50딸라를 척 꺼내 주었다. 어떤 금발로파들은 100딸라도 주었다. 만족을 얻지 못한 늙은 할머니들은 보스를 찾아가 삿대질을 하면서 항의했다. “조 피그(돼지) 같은 놈, 날 업신여겼어. 인권을 무시했다. 쫓아내라.” “당장 나가!” 보스는 마지못해 욕하는 척하면서 찔끔 눈짓했다. 그는 쫓겨나가는 척했다가 그 손님이 떠나가기를 기다려 다시 돌아왔다.     대부분 때밀이군들은 성흥분제(비아그라드)를 먹고 섹스봉사해 돈 버느라고 안간힘을 다 썼다. 과도할 땐 코피까지 막 터졌다. 날마다 그렇게 섹스봉사를 하다나니 신장이 허해 음위까지 오기도 했다.     인사과장은 미국에서 더는 성노예를 하는데 배기지 못하고 귀국했다.       그는 싫은대로 문화국으로 다시 출근했다. 그는 그래도 최국장을 잘 해드리고 인사과장에 복직하는게 편안히 사는 기름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정호 병실을 찾아와 밤낮없이 병시중을 들며 아첨했다. 결과 그는 끝내 목적을 달성했던 것이다. 인사과장이 나가자 정호는 나영을 나무랐다. “우리 일본 출국수속은 비밀에 붙여야 하오.” “네.” 나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우리 일본과 미국, 남방까지 숱한 수속을 넣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자고 그럽니까?” “음-“ 정호는 우멍눈으로 창 밖을 내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때 되면 알려주지.” 나영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정호는 우멍눈을 무섭게 나영한테 돌렸다. “요즘 어데서 찾아가진 않았습데?” “네?” 나영은 외씨처럼 걀죽한 얼굴에 긴장한 빛을 띠였다. “아니, 심계국에서도 아직 찾아오지 않았는데요. 괜히 놀란 거 같애요.” 나영은 문께를 흘끔 곁눈질하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우린 먼데 도망칠 필요까진 없는 것 같아요.” 정호는 하영이 건너짚는 것에 저으기 놀랐다. “글쎄.” 정호는 나영을 뚫어지게 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얼마나 좋겠소. 그러나 언제 발등에 불이 떨어질지 어떻게 아오?” 나영은 한숨을 호 내쉬며 무릎을 두드렸다. 정호는 금방 인사과장한테서 받은 딸라랑 빨간 봉투랑 꺼내 나영한테 주었다. “가져다 몽땅 딸라로 바꿔놓소. 국외에 관광가면 딸라를 쓸 일 많소.” “어마나, 감사해요.” 나영은 핸드빽에 딸라랑 챙겨넣었다. 이때 문소리 나더니 허병칠이 헐끔씨금 들어섰다. 나영은 허병칠을 핼끔 쳐다보면서 나가버렸다. “최선생님, 괜찮습니까?” “허허허. 허부장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왔소? 이게 몇년만이오? 허허허.” 허병칠은 옆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돈뭉치부터 꺼내놓았다. “적은대로 병치료에 보태십시오.” “이 사람, 뭘 들고 오긴.” 정호는 돈뭉치를 받아 훌 궤 안에넣었다. “선생님, 은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최선생님 덕분에 제가 조직문제를 해결했고 대학교 학생부장까지 되지 않았습니까?” 정호는 옛 제자를 마주보면서 어디를 찌르면 피가 흐르겠는가 궁리하고 있었다. “그간 잘 보냈소? 몇해 동안 보이지도 않더니. 하긴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허병칠은 손사래를 쳤다. “요즘 뜻밖에 일이 터져서 머리 아픕니다.” “아니, 무슨 일?” 정호는 능청스레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무단 가수 하영이라고 알지요?” “그래, 알지. 당년에 자네 소개해서 가무단에 받아줬잖아?” “예.” 허병칠은 침대머리에 옹송그리고 앉아 두 손을 마주 비비면서 말했다. “최선생님이 나서서 하영을 말려주십시오.” “도대체 무슨 일인가?” “내 덕분에 조직문제 해결하구 학생총회 부회장까지 했잖습니까? 가무단에도 제가 최선생님께 소개해 들어가 가잖았고 뭡니까? 그런데 배은망덕하게도 내가 3년 동안이나 강간했다구 물고 늘어집니다.” “뭐라고? 큰 일 났군.” 정호는 금시초문인 척했다. 그는 야단쳤다. “3년 동안이나 강간하거나 간음했다면 공직을 떼우는 건 둘째고 감옥에 가게 생겼구만. 알만해?” 기실 그는 돈을 달라고 징징거리는 정희를 떼버리고 싶어 정희를 보고 허병칠한테서 돈이나 뜯어내라고 허부장이 하영을 간음한 죄상을  알려주었다. 그는 또 이마에 털도 마르지 않은 하영이 자꾸 가무단 단장을 시켜달라고 해 귀찮았다. (정희가 하영의 일을 떠들어대면 허부장에게서 돈을 뜯어낼 수 있을게고 하영의 정치허영심도 꺾어놓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일석이조 어디 있겠는가. ㅎㅎㅎ.) 그도 진작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영은 가무단 단장이나 얻어하겠는가고 자기한테 마지못해 성상납을 할뿐, 장구하게 자기를 따라다닐 미녀가 아니라는 것을. (20대 미녀가수가 제 애비보다도 늙은 령감한테서 뭘 바라고 묻어다녀? 돈 아니면 정치허영심을 채우려는게지. 흥! 하영 같은 년은 그때, 그때 데리고 놀아야지. 간나새끼, 허파에  허영심이 꽉 들어찬 년, 너도 1회용으로 됐어.  불리할 땐 가차없이 쳐버릴테야.) 정호는 음험하기 짝이 없는 정객이요, 둘도 없는 색마였다. 허병칠은 이런 악마스승한테서 잘 못 물먹어 대학교 교정에서 삐뚤렁 정치를 여지없이 하면서 녀대학생들을 유인해 꽃처럼 보드라운 청춘과 색을 여지없이 수탈하였다. 허병칠은 정호를 찾아와 하영과의 사건경과를 구구히 다 말하고나서 도움을 구했다. “어떻게 하영을 좀 말려주십시오.” “내게 무슨 수 있겠나?” 정호는 침대 등받이에 잔등을 기대면서 시치미를 뗐다. 조급해난 허병칠은  갑자기 정호 침대 앞에 털썩 꿇어앉아 애원했다. "아버지! 날 살려줍소!" 정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아버지라니? 헛참, 허부장, 아버진 북망산에 갔잖아?" 허병칠은 체모도 잃고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아버지, 저를 이제껏 도와준 최선생님은 저의 재생아버지이십니다.  곤경에 빠진 이 못난 아들을 구해주십시오." 정호는 마지못해  일어나 허병칠을 안아 일으켰다. "정녕 내 양아들이라도 하자는 건가?" "네. 양아들 아니라 친아들이라도 하겠습니다." 정호는 어이없었다. (이 자식은 옛날 내 최시장한테 아첨할 때보다 더 한심한 놈이구나.) 그는 속으로 흐뭇했다.  (기름도 짜내고 개처럼 부려먹어야지.)  "어떻게 하면 양아들을 구할 수 있을가?" 정호는 머리를 툭툭 치면서 속궁리를 굴렸다. 허병칠은 날개쭉지를 축 늘어뜨리고  서서 중얼거렸다. “선생님, 하영한테 가무단 단장을 시키겠다고 얼리면 어떻습니까?” “하영이 배은망덕하다니. 참. 천길 물 속은 알아도 한치 사람 속은 알 수 없군. 처처에서 주의해야 하오. 데리고 놀아도 물지 않을 애들을 데리고 놀아야지. 그게 뭐요?” 정호는 우멍눈이 데꾼해 능청을 떨었다. “하영한테 가무단 단장시키면 입을 틀어막겠는지는 모르겠소. 그런데 가무단 단장도 우리 시키자면 시키오? 우에는 시당위 상무위원회와 조직부가 있단 말이오. 조직부만 해도 간부과, 조직과를 거쳐야 한단 말이요.  다 얻어먹자고 들겠으니 웬간한 재력에야 흥, 촉도 걸지 못하오. 설상가상으로 정치자본도 없는 20대 하영을 가무단 단장을 시키면 온 문화국 하늘땅이 마구 뒤번져질게오. 숱한 연예인들이 납득하겠소?” “최선생님, 아니, 양아버지,  하영이 입만 틀어막아놓으면 집을 팔아서라도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이게 웬 떡이냐?) “그래? 하영이 입만 딱 다물면 어쩌지 못하오. 인증이 없으니깐. 강간이나 간음했다는게 성립되지 않지. 내  잘 말해보지.”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김국장이오? 양, 아니, 안해를 데리고 병문안 왔으면 됐지. 뭐 몇만원이나 가지고 왔소? 감사하오. 양? 이런 일 부탁하기오. 가무단에 하영이라고 있잖소? 양, 인기가수지. 20대지만 참 일찌기 정치에 눈을 뜨고 사리도 밝소. 대학교 때 벌써 학생총회 부회장 하지 않았소? 양,  그저 가수나 성악조 조장이나 시키기는 아까운 동무요. 우리 지도간부들은 정치인재를 잘 발견하고 제때에 양성하고 써줘야 하오. 이번에 림하영을 파격적으로 가무단 부단장으로 제발시키기오. 양, 조직부야 김국장과 내 말하면 되겠지. 양? 그럼 먼저 예술부 부장으로 임명했다가 인차 부단장으로 제발시키기오. 예술부장은 조직부에 등록할 간부 아니니깐. 그래, 그렇게 하기오. 이담 내 죽은 다음에라도 단장으로 제발시키오. 꼭 김국장을 잘 모실게오. 양. 은공도 꼭 갚을게구. 고맙소. 김국장." 정호는 핸드폰을 넣으면서 식지를 딱 튕겼다. "오케이!" "선생님, 아니, 양아버지 정말 감사합니다. 은공을 꼭 갚겠습니다." 기실 정호는 핸드폰을 들고 김국장과 통화하는 시늉을 했을뿐 근본 통화하지도 않았다. 돈따발을 받지 않고선 근본 부탁한 일을 끝낼 그가 아니였다.       정호는 정희 탐욕도 채워주려고  말했다.      “정희도 얼마간 주고 입을 틀어막소. 미운 애를 떡 더 많이 준다는 말이 있잖소?  하영이 떠들지 않는다 해도 정희 계속 대학교에 가서 떠들면 마찬가지로 큰일이오.” 허병칠은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하영을 단장으로 임명하게 김국장과 말했으니 이젠 됐습니다.” 정호는 낚시줄을 바싹 쥐여 당겼다. “지금 세월에 뭐나 맨 입으로 말하지 못하오. 김국장을 한번 움직이자면 무척  힘드오.” “얼마나 들가요?” “아마 이만큼.” 정호는 두 손을 쳐들었다. 허병칠은 눈이 화등잔처럼 데꾼해진 채 스승이 손가락을 하나, 둘 펴는 것을 보았다. 딱 일곱개였다. “예, 알만합니다. 7만원이지요?” 정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야. 70만원.” “아니, 무슨 돈 그리 많이 듭니까? 어디 가서 그리 많은 돈 가져오랍니까?” 정호는 가라고 문께로 손짓했다. “그럼 그만 두기오. 강간죄로 감옥살이나 해야겠구만. 명예는 땅에 뚝 떨어져봐야 알겠소?” “선생님, 돈 마련해보겠습니다. 그럼 하영을 잘 부탁드립니다.” “오- 그래. 허부장 참 마음에 드오. 배은망덕하지 않고 신의를 지키니깐. 준비되는대로 인차 가져오오. 이런 일은 물이 늘면 안되오. 소 뿔은 당긴 김에 빼야지. 안 그래? 허허허.” “네, 네, 천만에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허병칠은 연신 굽신거리더니 자리를 떴다. 정호는 문께까지 따라나가 바랬다. “젤 사랑하는 제자자 양아들이니 나서지. 누가 이런 밑구멍 씃개를 하자 하겠소?” “선생님, 아니, 말버릇이 돼서 미안합니다. 양아버지 은공을 꼭 보답해드리겠습니다.” 허병칠이 사라지자 정호는 문을 절컥 닫아 걸었다. 뒤이어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조국장이오? 오랜만이오. 전번에도 왔댔는데 또 무슨 문안 오겠다고? 감사하오. 뭐? 다 조국장이 능력 있어 올라갔지. 뭐 내 가시아버지 힘썼다고 그러오? 양, 잊지 않아 감사하오.” 정호는 문께를 힐끔 곁눈질하면서 나직이 말했다. “다른게 아니오. 조국장네 심계국에서 할 일이 생겼소. 우리 전람관을 재건축하지 않았고 뭐요? 양. 우에서 내려온 돈을 재정규칙에 맞게 썼는지 심계했으면 좋겠소. 양. 시름이 놓이지 않아 그러오. 양. 결론 나면 알려주오. 수고하오.” 정호의 우멍눈에 음흉한 빛이 번쩍였다. 이튿날 심계국에서 전람관에 가서 재무를 심계했다. 그런데 전람관 재건비용 사용에 숱한 문제점들을 발견했다. 조국장한테서 정황을 알게 된 정호는 또 핸드폰을 들었다. “김국장이오? 양, 자꾸 찾아 미안하오. 나영을 해임하오. 양, 부관장이구 재무과장이구 다 해임하오. 양? 누가 나영을 심계국에 신고했다오. 금방 조국장이 심계국 일군들을 보내 재무심계를 했는데 문제 가득 있다고 합데. 말을 듣기 전에 해임하면 우리 책임이 없잖고 뭐요. 양. 인차 락실하오.” 정호는 앞에서는 하영한테 딸라뭉치랑 주고 뒤에서는 뒤통수를 쳤다. 아니, 나영의 뒤잔등에 비수를 박았다.  얼마나 음흉한가? (저년을 놀래워놓지 않고서야 날 따라 가자고 하겠는가. 으흐흐흐.) 정호는 창 밖을 내다보면서 코웃음쳤다. 똑, 똑, 똑. “들어오세요.” 문소리와 함께 마스크를 낀 훤칠한 녀성이 들어섰다. “어때요? 괜찮아요?” 아니, 뜻밖에 글쎄 순정이 목소리지 않겠는가. 창문쪽으로 모로 누워 있떤 정호는 일어나 앉았다. “이젠 괜찮소. 음악다방을 차리느라고 바쁘겠는데…” 순정은 여러번 병문안을 왔었다. (오늘 해 서산에서 뜨지 않았는가?) 순정은 바나나며 복숭아며 비닐주머니에서 꺼내 침대머리에 놓았다. 그녀는 바나나 껍질을 발라 정호 앞에 내밀었다. “자, 잡수세요.” 정호는 마지못해 받아 몇입 먹고 훌 들어누웠다. “음악다방 영업을 시작하겠는데요. 개장식 날에 오지 않겠어요?” “그래? 우린 합법적인 부부니깐. 가야지.” 순정은 정중하게 요청장까지 꺼내 주었다. “이날에 꼭 오세요.” 정호는 요청장을 받아 들여다보고 머리를 끄덕였다. “5월 26일이라. 참 좋은 날이구만. 몇사람 더 데리고 가도 괜찮겠소?” 순정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네, 코로나 잠잠해졌으니깐요. 괜찮아요. 노래도 부르고 춤을 춰야 흥성흥성하지.” 정호는 일어나더니 침대 머리 궤를 열고 두툼한 봉투 서너개 꺼내 주었다. “아니, 오기만 해도 감사한데요.” “음악다방 개장하는데 축의금을 내야지. 빈손으로 어떻게 남편이느라고 나서겠소?” “국장을 내놔두 막후조종하더니 숱한 빨간 봉투를 받아먹었군요.” 순정은 축의금을 슬쩍 받아 핸드빽에 걷어넣었다. “그런데 그날 공식석상에서 당신 남편이느라고 나서면 큰일인데요.” “그래, 그럼 무슨 방법을 대야지.” 정호는 우멍눈을 감고 이마를 짚더니 베아링처럼 속궁리를 돌렸다. “그날 보나마나 숱한 손님들이 오겠는데 성분도 복잡할게 아니오? 날 알아보는 날엔 확실히 큰 일이오. 저네 본가집 금고가 우리 둘이 거라는 것도 탄로날게 아니오? 검찰원이나 감찰국 저승사자들이 아는 날엔 큰 일 날게 아니오?” “네, 그래도 최선생님이 뭐나 주도면밀하죠. 전번에 최혜영 국장이 불러 갔을 때도 최선생님이 시켜준대로 했더니 그 저승사자도 꼼짝 못합디다. 금고 걸 어쩌지 못하고 몽땅 실어왔죠. ㅎㅎㅎ.” 순정은 입이 함박만해 웃다가 정색했다. “한가지만은 똑똑이 말해둡시다. 최선생님은 금고 안에 건 건너다보지도 마세요.” “뭐? 최선생님?” “아, 최국장님.” “아니, 우린 조강지처 아니고 뭐요? 이젠 최선생님, 최국장님 하오?” 순정은 코웃음쳤다. “픽, 조강지처? 선생님으로 불러도 좋은줄 모르고. 흥!” “필경 30년 가까이 산 부부잖소? 리혼도 가짜리혼이고.” “어째 아직도 이렇게 물고 늘어져요? 내 졸혼하고 이제부터 홀로만의 인생을 살가하니 아직도 부부라고 생각해요? 리혼수속까지 한   마당에.” “가짜리혼증인데. 부부지 뭐야?” “부부? 그럼 자, 보마차 안에 치워뒀던 돈과 금은보화를 몽땅 바치세요.” 순정은 두 손을 내밀었다. “바라지도 마오. 찾지 못했으니깐.” “거짓말!” “집과 차까지 팔아 다 가졌으면 됐지. 뭐 모자라 이래?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 “뭐?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 순정은 핸드빽을 들고 훌 일어났다. “순정이, 저를 욕하는게 아니오.” “흥, 졸혼하고 진짜 풍류남아로 돼 참 좋겠구나.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 많이 친해서.  변강쇠 그거 썩뚝썩뚝 썰어서 개나 콱 줘라!” 순정은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정호는 벌떡 일어나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 씩씩거렸다.
257    대하소설 졸혼(21) 김장혁 댓글:  조회:1182  추천:0  2022-06-23
       31. 허부장          으리으리한 대학교 강당에서 숱한 대학생들과 교수님들이 시루속 콩나물처럼 들어앉아 연설을 듣고 있었다. 연단에서는 40대 중반 간부가 한창 숱한 사생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었다. 빨간 넥타이를 척 매고 양복차림을 한 그 간부는 안경을 닦아 다시 걸고 연변을 토했다.       “교수님들, 학생 여러분, 아무리 금전시대이고 개혁개방세월이라고 해도 우리 대학교 사생들은 절대 금전에 미혹돼선 안됩니다. 특히 미인관을 잘 넘겨야 합니다. 옛말에 영웅도 미인관을 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대학교 울 안의 사생들은 모두 미인관을 넘길 수 있는 영웅호한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단 아래에서는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연설자가 바로 허병칠 학생부 부장 겸 당총지 서기였다.     “우리 간부들은 마땅히 청렴하고 금전과 주색 앞에서 머리를 숙이지 말아야 하고 무자비해야 합니다. 특히 학생들을 관리하는 담임교원을 비롯해 보도원, 학생부 매개 간부들은 학생들의 맥주 한잔, 돈 한푼 얻어가지지 말아야 하며 학생들의 전도와 생활을 친자매처럼 관심해야 합니다. 우리 간부들은 사람마다 학생들의 훌륭한 스승으로 되기 위해 천방백계로 노력해야 합니다…” 연설이 끝나자 장내에서는 또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졌다. 젊은 간부는 연단 옆에 물러나 허리를 굽혀 구십도 경례를 하고는 턱을 쳐들고 연단에서 내려와 학생들 속으로 걸어갔다.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간부가 장내를 다 나갈 때까지 손바닥이 아프게 박수치며 경의를 표시하였다. 화는 눈섭 끝에서 떨어진다는가. 그 간부가 회의가 끝나 사무실에 걸어갔을 때였다. 문어귀에서 정희가 막아섰다. “허병칠 부장 맞죠?” 허병칠 부장은 정희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물었다. “네. 어떻게 돼 저를 찾아왔습니까?” “아주 연설을 그럴듯하게 하더구만요.” 정희는 단통 표독스런 표정에 새물새물 눈웃음을 지으면서 독사처럼 혀바닥을 날름거리기 시작했다. “허부장, 아주 긴급한 일이 있어 찾아왔는데요. 시간 좀 낼 수 있는가요?” 허부장은 정희 쪽 빠진 체격을 훑어보았다. “네. 어서 사무실에 들어가 얘기합시다.” 허부장은 자기 신변에 아주 요사한 독사가 감겨들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정희를 사무실로 안내했다. 개 똥 먹는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고 그는 자꾸 정희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에 눈길을 박았다. (이놈 색마놈새끼, 언감 이 마마한테도 눈길을 팔아? 흥, 어디 죽어봐.) 정희가 속으로 윽벼르면서 사무실에 들어가보니 길다란 사무상과 높다란 의자, 그리고 쏘파에 침대도 위풍스러운 감을 주었다. “사무실이 꽤나 멋지군요.” “예? 여기 앉으세요.” 정희가 침대에 앉는 것을 보고 허부장은 쏘파를 가리켰다. 정희는 눈귀에 독기를 흘리면서 일어날 념도 하지 않고 엉덩이로 침대를 굴러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침대 푹신푹신한게 아주 편하고 좋구만요.” “아니, 이거.” 허부장은 귀찮은 눈길로 정희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왔는지, 요건만 말하십시오. 전 바쁩니다. 학교 당위에 회의 있어 가야 합니다.” 정희는 픽 코웃음쳤다. “날마다 회의해서 뭘하는가요?” 허부장은 이상한 녀자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네? 쓸데 없는 말을 하지 말고 요건만 말하고 돌아가십시오. 집의 학생 때문에 왔는가요?” “네- 비숫하게 맞췄군요.” 허부장은 틀스레 사무상에 척 앉으면서 물었다. “집의 학생은 어느 학부에 다닙니까?” “저의 녀동생인데요. 예술학원 성악전업에 다닙니다.” “오- 그래요? 학생 무슨 난제 있습니까? 제가 도와드리죠.” 정희는 동문서답하며 먼 서산을 쳐다보았다. “아까 강당에서 연설을 잘 하시더군요. 참말 대학교에서 참 훌륭한 스승님을 두었군요.” 허부장은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뭐, 우리 대학교 교수님들과 간부들은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려고 합니다. 아직 상급 조직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데유.” 정희는 쓴 외 바라보듯 허부장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특히 대학교 교수님들과 간부들은 금전관과 미인관을 잘 넘긴 영웅호걸이겠지요? ㅎㅎㅎ.” 허부장은 자리에서 훌 일어났다. “집의 학생이 무슨 일 있습니까? 찾아온 요건만 말하십시오. 여기서 아줌마하구 한담이나 할 그런 시간이  없습니다. “ “아니, 손님 두고 가겠다는건가요?” 허부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회의하러 가야 합니다.” 정희는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허부장의 앞에 다가가 사무상을 꽝 쳤다. “허부장, 영원히 회의하러 가기나 할 거 같은가!” “아니, 무슨 일입니까?” 허부장은 죄를 지은 놈이여서 그런지 다소 얼굴 근육이 굳어지면서 눈덕이 푸들푸들 뛰였다. 그는 의자에 되앉으면서 경계하는 눈길로 정희를 가늠해보았다. 정희는 문께를 핼끔 곁눈질하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대학교 간부들 문제 많아. 몇십년 전에 여기서 무용교원질 하던 최정호를 알겠지?” “네. 최선생님은 저의 스승인데요.” “참 훌륭한 스승에 그럴듯한 제자 있군요. 정호 선생님을 나도 잘 알아. 허부장은 정호한테 돈을 먹이구 학교에 남아서 학생부장까지 바라올라갔다는 것도 다 아오.” 허부장은 깜짝 놀랐다. (도대체 이 녀자 정체 뭔가?) 그러나 허부장은 인차 랭정해졌다. “아니, 무슨 내 래력 조사하러나 왔습니까? 집에 학생 무슨 일인지 말하고 갑소. 바쁜 사람 붙잡고 이러지 말고.” 정희는 침대에 앉으면서 날카롭게 허부장을 쏘아보았다. “허부장, 여기 이 침대에서 녀대생들을 몇이나 강간했소?” 허부장은 속이 띠끔해나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인차 침착성을 회복하고 천천히 의자에 앉으면서 능청스레 아닌 보살을 떨었다. “아니, 이 아줌마, 지금 무슨 헛소릴 치오? 점점 망탕소릴 치는구만. 난 이 대학교에서 청렴하고 훌륭한 학생공작간부로 이름이 높소. 이 상장과 축기를 보십시오.” “호호호. 이따위가 무슨 소용있는가? 허부장은 숱한 사람들 앞에서는 청렴하고 깨긋한 척하지만 뒤에서는 암암리에 부뚜막에 올라 엉덩이로 호박씨를 까지 않았소? 뭐, 날 보고 망탕소리 한다고? 호호호. 그래, 망탕소린가. 들어보겠어?” 정희는 허부장한테 다가가 표독스런 눈길로 자기 사냥물을 노려보았다. “허부장, 좀 똑똑하게 노오.” 정희는 허부장의 빨간 넥타이를 틀어쥐어 당기기까지 하면서 혀바닥을 날름거렸다. “허부장, 하영이라고 알지?” “네? 하영이? 어째? 이걸 놓고 말합소. 하영이 무슨 일 생겼습니까?” 허병칠은 입술까지 바들바들 떨면서 눈이 데꾼해졌다. “허병칠 부장님, 임하영은 내 녀동생이야. 허부장, 넌 학생총회 부회장 자리를 미끼로 내 녀동생을 유인해 처참하게 유린했지.” 허병칠은 손사래를 마구 쳤다. “아니, 생사람을 잡지 마십시오.” 정희는 허병칠한테 점점 다가들었다. “그래 다 잊었단 말인가? 넌 이 침대에서 3년 동안이나 사흘이 멀다하게 하영을 짓밟았다. 그러고도 수염을 쓱 닦을 작정인가? 네놈한테서 정치를 잘 못 배워서 하영은 가무단에 가서도 몸을 팔아 가무단 단장으로 되려고 했다. 하영은 네놈의 모든 죄악을 내게 다 말했다. 그래도 변명할테냐? ” 정희의 말마디마다 비수로 돼 허병칠의 허위에 찬 허파를 찔러 더러운 피를 줄줄 흘리게 했다. 이른바 “미인관을 잘 넘긴 청렴한 간부”의 허울이 한벌한벌 벗겨지는 순간이였다. “어떠냐? 억울하면 변명해라.” 허병칠은 머리를 푹 숙였다가 천천히 들었다. “아주머님, 미안합니다. 사실 우린 련인관계입니다. 절대 강간한 건 아닙니다. 하영하고 물어보십시오. 하영이 날 좋아서 따라다녀 생긴 사고입니다.” “이 놈아, 애 둘이나 달린 유부남이 녀대생, 응? 그것도 숫처녀를 깔고들어앉아 련애한다는게 말이나 되니? 너도 박사라는게 뭐야? 될 말인가, 아닌가 좀 가려 해라. 알겠지? 넌 하영의 전도를 짓뭉개버린 나쁜 놈이야. 그러고도 숱한 사람들 앞에서 훌륭한 학생공작간부인 척 해?” 허부장은 그래도 변명하려고 들었다. “아줌마는, 아니, 저 선생님은 내막을 모르고 하는 말씀입니다. 기실 나는 하영의 전도를 끝까지 책임졌습니다. 나는 하영을 보고 우리 네식구 가정을 깨지 말라고 교육해 겨우 마음을 돌리게 해 떼놓았습니다. 그리고 내 사생관계를 리용해 정호 국장한테 다리를 놔서 하영을 가무단에 배치해줬고 성악조 조장까지 시켰습니다. 이제 하영은 부장, 아니, 단장도 될 겁니다.” “뭐라고?!” 정희는 사무상을 꽝 쳤다. 그녀는 허병칠을 의자에서 밀어내고 자기사 부장자리에 덜렁 들어앉아 허병칠을 심문하듯 했다. “허부장, 하영을 해치고서도 도와준 척 하는구나. 봐라. 나쁜 스승 하나만 있으면 그 아래 숱한 학생들이 화를 입어. 정호 그 나쁜 놈, 제자한테 나쁜 인생관을 관수했기에 너도 이런 기로에 들어섰지. 또 너 같은 량면파, 위선자 학생공작간부가 하영과 같은 정치허영심에 들뜬 불쌍한 녀대생들을 나쁜 정치를 하게 유인했어. 숫처녀마저 너 같은 놈한테 바치게 했다. 네놈은 이 사무실에서 기실 전문 녀대생들에게 못쓸 인생관과 련애관, 혼인관, 가정관을 관수하는 공작이나 했지? 뭐 했느냐?” 허병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목석처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어떠냐? 네놈 오늘 이 아줌마한테서 정확한 정치관, 인생관, 미인관 교육을 받았지? 좀 정신 차렸느냐?”  허병칠은 가만 있을수만 없어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난 절데 강간하지 않았습니다. 하영과 물어보십시오. 걔가 주동적으로 내 품에 안겼댔습니다.” “으흠, ㅎㅎㅎ. 부장 자리 꽤나 푹신푹신하구나.” 정희는 잔등을 의자등받이에 대고 빙그르 돌아 허병칠과 마주 앉았다. “그럼 좋다. 네 말대로 련인관계이구, 강간이나 간음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럼 우리  대학교 당위나 기률검사위원회에 가서 내놓고 시비하자.” “아, 아니, 건 아니구,” 허병칠은 기겁해 황급히 문께로 가더니 문 고리를 절컥 잠갔다. “뭐 하자는 거야? 이 침대에서 날 강간이라도 하려는 거냐? 아님, 죽이려는 거야?” 정희는 의자에서 발딱 일어났다. “어째, 소리친다.” 허병칠은 당황한 나머지 손사래를 마구 쳐댔다. “아니, 아닙니다. 조용히 말합시다.” 그는 부장 틀을 차리며 거만하게 놀던 아까와는 달리 허리까지 굽신거리면서 컵에 커피까지 타서 공손히 드렸다. “커피를 마시면서 천천히 얘기합시다.” “어째 당위에 회의하러 가지. 시간 없잖은가? 나도 대학교 당위하구 기률검사위원회 어떤 곳인가 구경도 하구. 일거량득이 아닌가? 오면서 보니 아래층에 기률검사위원회구 당위구 나란히 있더구만.” 허병칠은 연신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여기서 조용히 말합시다.” 정희는 자기 날린 화살을 맞고 쓰러져 바들바들 떠는 사냥물을 쏘아보며 흐뭇해  외까풀눈에 새물새물 눈웃음을 지었다. “나도 허부장은 똑똑한 사람이라고 여겨서 먼저 여길 찾아왔소. 내 당위나 기률검사위원회에 찾아가면 허부장 어떻게 되겠소? ㅋㅋㅋ” 허병칠은 정희를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하영이 뭐라고 합디까?” 정희는 이젠 단도직입했다. “그래, 하영은 널 갈기갈기 찢어놔도 원쑤를 다 못하겠다고 했다.” “그래요? 그럴 것까지야. 참.” “이놈, 참 철면피하구나. 네놈은 대학생들을 우습게 보는구나. 네놈은 하영을 여기 사무실에 데려다가 개별조직담화하는 척하면서 노리개로 데리고 놀았지. 또 하영을 보고 뭐라고 했니? 무슨 ‘승급하려면 몸이라도 바쳐야 한다.’고? 다 네놈이 그렇게 삐뚤렁 정치를 관수한 죄과야. 하영이는 미인계로 가무단 단장해먹고 정호 국장나부랭이를 삼자고 망아산에 갔댔어. 강도한테 쇠몽치에 대갈통을 얻어맞고 쓰러졌다.” “뭐라고? 하영이 지금 어데 있습니까?” “구급실에 있어.” 정희는 눈이 데꾼해진 허병칠을 쏘아보며 랭소했다. “찾아갈 필요없어. 네놈을 보기도 싫어하니깐.” 정희는 마지막 속내를 드러냈다. “허부장, 어떻게 하겠소? 내 당위 기률검사위원회를 찾아갈가?” 허병칠은 이제껏 숱한 투자를 해 쌓은 부장자리가 닭알무지처럼 와그르르 무너지는 감을 느꼈다. 정호 선생을 비롯해 위 간부들한테 숱한 돈을 먹여서 오늘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았던가. “아니, 제발 가지 마십시오. 사사로이 조용히 해결하깁소.” 허병칠은 황망히 정희 앞에 무릎까지 꿇고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빌었다. 그때라고 정희는 최후일격을 가했다. “그럼 좋소. 나도 전도창창한 허부장을 해치고 싶진 않아.  허부장 전도는 허부장 본인의 태도에 달렸소.” 허병칠은 벌벌 기여 정희 발 밑에까지 다가와 두 손을 맞잡고 물었다. “대체 바라는게 뭡니까? 저를 살려주십시오. ” 정희는 활을 거두면서 요구를 내놓았다. “간단하오. 당장 배상금으로 50만원을 가져오오. 하영의 구급치료비에 보태게.” “50만원이나?!” 허병칠은 기절초풍할 지경이였다. “제게 무슨 돈이 50만원이나 있다고 이럽니까? 애 둘을 공부시키느라고 근근득식하는데…” 녀사냥군은 활을 활집에 걷어넣으면서 치마를 툭툭 털었다. “별 수 없군. 당장 당위에 찾아가 결판내기오.” 허병칠은 눈물까지 글썽해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아니,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제가 돈 좀 구해보죠. 그러나 당장 무슨 수로 50만원이나  구하겠습니까?” 정희는 허병칠의 볼까지 매만지면서 나지막이 을러멨다. “내 수를 대줄가?” 허병칠은 눈이 퀭해 간사한 요정의 입에서 무슨 사악한 말이 떨어질지 기다렸다. “집을 팔아라.” “집이 인차 팔리겠소?” “그럼 당장 각서를 써라. 네놈의 집을 이 정희한테 준다고.” “하영을 주는 것도 아니고. 아줌마한테?” “그래. 허부장, 시간이 없어. 사흘 내에 돈 50만을 명도다방에 가져와. 알만해?” 정희는 말을 마치자 자리를 훌 털고 일어났다. 녀협잡군은 되돌아보지도 않고 독사마냥 허병칠의 사무실을 스르르 나와버렸다. 허병칠은 그제야 무서운 협잡군한테 협박당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였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무릎을 털었다. “아니, 이러고 있을 때 아니야.” 그는 황급히 웃호주머니를 들추며 바깥으로 뛰여나갔다. 층층계까지 가니 정희가 2층에 내려가 당위 쪽을 기웃기웃하고 있지 않겠는가. (아니, 하느님 맙시사!) 허부장은 체모도 잃고 뛰여가며 소리쳤다. “정희선생님, 여기 좀 봅시다.” 정희가 이쪽으로 돌아서며 표독스런 눈길을 보냈다. “웬 일이오? 허부장.” 허병칠은 정희를 층계 저쪽 수도실로 끌고 갔다. “선생님, 택시나 타고 가십시오.” 그는 웃호줘머니에서 백원짜리 몇장을 꺼내 들었다. “이러지 말라고.” 정희는 지전을 수도실 구석에 훌 쥐여 뿌렸다. “내 세살짜리 앤가 해?” 요정은 언성을 낮췄다. “이 따위로 얼리려고 말고 당장 50만원 가져와. 알았어? 50만원!” “예. 알았습니다.” 그때 50대 간부가  컵을 씻으러 수도실에 들어섰다. “김서기님, 안녕하십니까?” 김서기라는 간부는 그들 둘을 이상한 눈길로 번갈아보았다. “어째 회의하러 오지 않았소?” “네. 긴급한 일이 있어서요. 네. 곧 가겠습니다.” 정희도 맞장구를 쳤다. “네, 허부장과 아주 긴급한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김서기는 땅바닥에 널린 지전을 보고 허부장을 돌아보았다. “네, 금방 떨어뜨려서…” 허병칠은 황급히 흩널린 지전을 주으면서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조마조마해 어쩔줄 몰라했다. 정희는 깨고소해 허병칠을 핼끔 쳐다보면서 손사래를 쳤다. “허부장, 그럼 잊지 마세요. 빠이, 빠이!” “예, 예. 잘 다녀가십시오.” 허병칠은 수도실에서 김서기와 정희와 갈라지자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는 그날 무슨 정신으로 당위 확대회의에 참가했는지 몰랐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허병칠은 택시를 타고 저금소에 달려갔다가 병원으로 달려갔다. (협잡군년한테 가져다 줘서야 밑굽 빠진 항아리에 물 붓기지. 하영을 찾아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봐야지.) 그는 연신 길죽한 낯에 흐르는 식은 땀을 훔쳤다. 눈 앞이 아찔해나고 뇌리에서는 우뢰가 울고 번개가 번쩍였다. (하영도 한심해. 어쩜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일을 저런 년한테 공개한단 말인가?) 허병칠은 병원 구급실에 달려가 간호원과 물어서 인차 하영이 입원한 구급실을 찾을 수 있었다. 그가 병실을 열고 들어가니 하영이 혼자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영이, 어떠오?” 하영은 세귀눈이 화등잔이 돼 허병칠을 쏘아보았다. 그녀는 앓음소리를 내면서 몸을 모로 탈더니 외면했다. 허병칠은 허겁지겁 침대에 다가갔다. “어떠오? 강도한테 당했다더니.” 하영은 대답도 하지 않고 이불을 들썼다. 허병칠은 누가 들어올가봐 프롤로그를 접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하영이, 어쩜 우리 둘 일을 다 공개하오? 그러고서야 가무단 단장은커녕 이담 어떻게 시집가겠소?” 하영이 이불을 홱 제쳤다. “뭐라고? 내 전도를 망친게 어느 놈인데. 작작 고양이 쥐 생각하는 척하세요.” 허병칠은 또 한번 하영을 얼리려고 다가들었다. “내야 항상 하영을 생각해 말하지. 보오. 학교 때 저를 얼마나 도와 주었소? 일반학생인 하영을 입당시켰지, 학생총회 부회장을 시켰지. 가무단에 배치해주었지. 뭐가 모자라오? 왜 배은망덕하오? 뭐가 모자라서 언니까지 보내 협박하오?” “픽.” 하영은 코웃음쳤다. 그녀는 정희가 자기한테 알리지도 않고 선수를 칠줄은 몰랐다. (안되겠어. 주동을 쟁취해야지.) 그녀는 와닥닥 일어나 세귀눈으로 독살스레 허병칠을 노려보았다. “허부장, 죄값을 톡톡이 치를줄 아세요. 숫처녀 정조를 짓밟고서도 아주 떳떳하구만요. 당년에 허부장이 사무실 침대에서 저를 몇백번 강간했어?" "몇백번이나 강간했다고? 흥, 처음에는 글세 그렇다고 치자." 순간 허부장이나 하영이나 모두 그때 정경이 피뜩피뜩 떠올랐다. "하영이, 그저 노래만 불러서야 언제 출세하겠소? 최저한도로 대학교 때 학생총회 간부랑 해야 사회에 나가 정치자본으로 삼아 문예귀족이 되지." 허부장은 하영을 사무실에서 이른바 조직담화를 하는 척하면서 꼬시기 시작했다. "이 허부장 한마디면 저를 2만여명이나 되는 학생총회 부회장으로 만들 수 있소." "네? 허부장, 저를 도와주세요." "이전에도 말했지만 조직적으로 발전하려면 허부장한테 좀 뭔가 해줘야지." "조직문제를 해결할 때처럼 또 돈을 가져오랍니까?" "아니, 이젠 돈 싫어." "그럼?" 허부장은 하영의 보들보들한 손을 스리슬쩍 잡고 매만졌다. "정치를 하려면 자기를 희생할줄도 알아야 하오. 이건 한 스승님이 나한테 가르친 인생철학이오. 참 인생철리 있다고 보오. 생각해보오. 세상에 어디 공게 있소? 뭔가 주지 않으면 누가 저를 발전기키겠소?" 허부장은 쏘파에 다가와 하영의 허리를 껴안았다. "이러지 마세요." 하영은 허부장의 손을 풀어 떠밀었다. "이럼 가겠어요." 허부장은 하영을 활 놓아주었다. "가겠으면 가오. 다신 날 찾지 마오." 하영은 가도오도 못하고 물앉고 말았다. "하영은 참 이쁘오. 딱 평양아가씨처럼 청순미가 있단 말이오. 요 쌍까풀에 청포도눈, 요 빨간 앵두입은 더 이쁘단 말이오." 쪽- 허부장은 하영의 입에 키스를 살짝 안겼다. 어망간에 당한 일이라 하영은 당황해 어쩔줄 몰라 손으로 입을 가리며 허부장을 쏘아보았다. 허부장은 음충한 눈길로 하영을 곁눈질하면서 와닥닥 끌어안았다.  색마는 청렴한 간부, 미인관을 넘긴 간부의 허울을 훌렁 벗어버리고 색마의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   "허부장이 날 강간한 증거가  다 있습니다. 이제라도 그걸 들고 학교 당위에 찾아가 시비를 따질가요?” 허병칠은 하영이 나오는 걸 보고서야 사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아니, 무슨 증거?” “몰라서 물어요? 그날 제가 강간당할 때 허부장 손으로 침대에 깔았던 피 묻은 손수건이 있습니다. 이건 피로 물든 철증이란 말입니다.” “아니, 날 잡아먹으려고 아직도 건사했어?” “그래.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놔도 원쑤 되지 않아.” 하영은 허부장의 창백한 낯빤대기를 보고 깨고소해했다. 허부장은 괴변을 부렸다. "3년 동안이나 강간했다면 누가 믿어?" 하영은 허부장을 치켜보았다. "생각해보오. 첫날엔 학생총회 부회장을 시키기로 흥정하고 한 게 아니오? 그 후엔 내 싫으면 그만 뒀을게 아니오? 강간했으면 그때 왜 사법기관에 신고하지 않았소? 분명 저도 좋아한게 아니고 뭐요?" 하영은 가랑잎으로 자기 눈을 가리고 아웅하는 색마의 몰골을 쏘아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참 그럴듯한 궤변이구만. 날 3년 동안이나 사흘이 멀다하게 유린하고서도 뻔뻔하게 놀겠어? 그럼 좋다."  하영은 벌떡 일어나면서 대성질호했다. “래일 숱한 남친들을 거느리고 학교 당위에 찾아가 한바탕 네놈의 강간죄를 가지고 시비를 따질 거야.” 허병칠은 황급히 가방에서 돈꾸러미를 꺼냈다. “자, 받소. 5만원이오.” “요까짓 걸로 내 입을 틀어막으려고? 어림도 없어!” 하영은 돈따발을 툭 쳐버렸다. 땅바닥에 돈이 지저분하게 널렸다. “이러지 마오. 요구 있으면 천천히 말하오. 언니는 자기네 명도다방에 돈을 가져오랍데. 하영을 믿고 병문안하러 찾아온게오.” “헛소리장단 그만하라고. 죄값으로 당장 60만원 가져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두고 봐!” 허병칠은 돈을 주어 하영의 앞에 가져다 놓으면서 빌었다. “하영이, 급히 오다나니 불시에 돈 더 구하지 못했소. 이제 돈 구하면 더 가져올게.” “숱한 대학생 간부들한테서 얻어먹은 건 다 어쨌어? 허부장, 그 얼마나 많은 녀대생 간부들 전도를 망쳤어? 내게선 얼마나 악랄하게 몸도 빼앗고 돈도 얻어먹었어? 우리 엄마 아빠 한국에서 얼마나 뼈빠지게 고생하면서 번 돈인데. 네놈은 쩍하면 몸을 빼앗고서도 돈 달라고 윽박질렀지. 이제 학교 기률검사위원회에 신고해 조사해볼가? 아님, 공안국이나 검찰원에 신고해 수사에 붙힐가?” “하영이, 옛 사제간 정을 봐서 제발 다 그만두오. 그래 돈 가져다주면 이전에 그 일 다 무덤까지 가지고 갈 수 있지?” 하영은 이젠 내놓고 탐욕을 드러냈다. “돈만 가져오면 그럴 수도 있죠.” “다신 정흰지 뭔지 학교에 보내지 마오.” “어째 겁나지?” 하영은 허병칠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러나 허병칠은 태연자약하게 능청을 떨었다. “가무단 단장 되겠으면 나하구 말할게지. 내 최정호 국장을 잘 아오. 최국장은 내 예술학원 때 스승이잖아.  돈을 많이 팔 필요도 없소.” 하영은 허병칠을 대성질호했다. “그만하지 못할가? 여기 어디 흥정하는 장마당인가? 네놈은 최국장이란 색마정객한테서 더럽게 사람잡이정치와 색갈을 배웠어. 그래서 지금 죄값을 톡톡이 치러.  더 할 말 없어. 당장 60만원 가져오든지 당위에 찾아가 시비하든지 둘 중 하날 선택하라고.” “알았소, 알아. 병문안하러 왔는데. 받아두오. 돈 구하면 더 가져올게.” 허병칠은 돈꾸러미를 침대머리 차탁에 놓아두고 자리를 떴다. 그때 문소리가 나더니 정희가 들어와 허병칠과 딱 마주쳤다. “호호호. 허부장, 급하긴 급하구만.” 하영은 돈꾸러미를 훌 이불안에 치웠다. 허병칠은 정희를 본 척도 하지 않고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하영은 정희 들으라고 꽥 소릴 질렀다. “허부장, 다시 빈 손으론 찾아오기만 해 봐라. 가만 놔두는가 봐라.” 허부장 나으리는 소낙비를 맞은 쥐새끼처럼 어깨 축 처진 채 복도에서 비틀거리며  나갔다. “아니, 저 놈,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왔어? 그래 빈손으로 왔댔니?” 간사한 두 녀자는 병실에서 아닌 보살을 떨면서 연극을 놀았다. “그래요. 불시에 병문안 오느라고 빈손에 왔다지 않겠소.” 하영은 다가오는 정희를 보면서 이불을 꽁꽁 여몄다. (뺑덕이에미, 어떻게 돼 허부장과 내 일을 속속들이 알가? 진짜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사실 정희는 최정호 국장한테서 하영의 과거를 속속들이 알아냈던 것이다. 한편 허병칠은 병원 대문을 나서다가 주춤 멈춰섰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자면 그래도 최정호 선생님을 찾아가야 해. 필경 하영은 최정호 국장 수하 아닌가.) 허부장은 이번 사건의 막후조종자가 바로 요사한 정호라는 것도 모르고 헤덤볐다. 그의 앞날은 갈수록 암담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256    대하소설 졸혼(20) 김장혁 댓글:  조회:1195  추천:0  2022-06-20
            30. 기구한 운명         태평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구급병실, 하늘이 정해준 기구한 운명인가?       사람의 목숨이 질기기는 질겼다. 하영은 강도가 휘두르는 쇠몽둥이에 머리를 얻어맞고 강간당하고 쓰러졌댔다. 하지만 그녀는  황선희 박사와 김춘희 박사의 극진한 구급을 거쳐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하영은 신음소리를 내면서 눈을 살며시 뜨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간호원의 해맑은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고 링겔병 두병이나 디룽디룽 걸려 있는 것이 눈에 희미하게 띠었다. 손등에 링겔주사바늘이 아프게 꽂혀 있었다. 24시간 동안이나 줄이어 링겔주사를 맞은 덕에 밥알 한알도 먹지 못하고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하고서도 살아남았다.  하영은 팔굽으로 침대를 짚으며 머리를 들려고 애썼다. 그러나 머리가 어찌나 무겁고 아픈지 들래야 들 수 없었다. “가만 누워 있으세요. 아직 무리하게 일어나선 안 돼요.” 간호원은 하영을 안착시켰다. “에헴, 헴.’ 그때 옆 병상에서 녀인의 기침소리가 들렸다. 하영은 피뜩 그리로 얼굴을 돌렸다. “아니! 저게!” 하영은 소리칠 번했다. (뺑덕이에미 아닌가!) 하영은 자기 눈을 믿을래야 믿을 수 없었다. 두번 다시 여겨봐도 분명 정희였다. (아니, 글쎄 고양이와 쥐 같은 정희와 한 병실에 누워 있다니. 어쩌는가?) 정희는 강도가 휘두른 비수에 가슴과 팔을 여러번 찔렸다. 그러나 체육학원 졸업생인 정희가 태권도를 좀 익힌 덕에 손발로 막으며 반항했기에 다행히 빗찍힌 것이였다.  그녀는 류혈이 너무 심해 병원 구급실에 실려와서 수사일군들한테 강도 체모특징을 겨우 대고는 인차 쑈크까지 왔댔다. 하지만 황선희박사와 김춘희박사 등 의사들이 최선을 다해 구급했기에 목숨을 부지했던 것이다. 하영은 정희를 보기만 해도 잔등에 소름이 쪽 끼쳤다. 이불을 훌 뒤집어 쓰고 돌아누워 온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 바람에 손등에 꽂았던 주사바늘이 다 빠졌다. “갑작스레 이러지 마세요.” 간호원은 하영의 손등에 다시 주사바늘을 꽂아놓고 조용히 나갔다. 구급병실에는 하영과 정희 둘만 남았다. “하영이, 살아났구나.” 하영은 이불을 들쓰고 못 들은 척했다. 저쪽에서 계속 지껄여댔다. “얘야, 우린 둘 다 기구한 운명을 가졌구나. 다 불행한 녀자들이야. 우리 서로 원쑤진 일도 없는데 하필 서로 개 닭 보듯 하겠느냐?” 하영은 숨을 딱 죽이고 듣기만 했다. 정희 목소리 듣기만 해도 진절머리 났다. 햐영의 눈 앞에는 전번에 정희가 다방에서 돈을 내놔라고 협박하던 장면이 떠올라 기절날 지경이였다. “하영아, 언니 말 들려?” “…” “자나?” “자는 척하긴. 내 말 좀 들어라.” 정희는 일어나더니 하영한테 다가왔다. 뺑덕이에미는 누가 곱다는 것 처럼 하영이 침대에 앉더니 손을 내밀어 이불을 활 제꼈다. 하영은 별 수 없이 눈을 살며시 떴다. 순간 정희가 요정처럼 독살스레 째려보고 있었다. 순간 하영은 몸살이 날 지경으로 온몸이 옹송그려졌다. 그러나 하영은 필경 자질이 뛰어난 20대 처녀였다. “오, 언니군요, 우리 살아남은 것도 하느님이 내려준 운명이겠죠?” “그래. 우리 둘이 여기서 만난 것도 다 정호 국장님 덕분이지. 우리 둘이 최국장을 동시에 따른 것도 운명이구. ㅋㅋㅋ.” 정희는 손으로 서쪽 벽을 가리켰다. “너 아니? 이 벽 건너 병실에 변강쇠도 입원했어.” “네? 최국장님이?” 정희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것도 운명이겠지. 난 다 알아, 너네 망아산에서 무슨 짓을 한 걸.” 하영은 외면하며 돌아누웠다. “우리 어쨌다고?” “모르는가 해? 수사일군한테서 다 들었데도.” 하영은 숨을 딱 죽였다. 끌신이 짝짝 소리내며 다가왔다. “이것도 하느님이 내린 운명이겠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응? 미국에서 호텔에 한 방에 든 것도 하느님이 배치한 운명인 거 같다. 한 모텔에서 우리 둘이 변강쇠하구 질탕하게 논 것도 모두 하느님 조화야. 봐라, 우린 둘다 망아산 방공굴에서 변강쇠와 놀다가 병실에 나란히 눕게 됐어. 모든 걸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해. 하느님은 공정한 거야.” 정희는 하영의 손을 잡기까지 하고 지껄였다. “하영아, 전번에도 말했지만 넌 전도창창한 20대 가수야. 네가 가무단 단장으로 승급하고 싶어한다는 거 다 알아. 언니 좀 도와줄가?” 하영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필요없소. 단장하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소.”’ “호호, 언제부터 거짓말하는 재간 늘었어? 귀신을 속여도 날 못 속여.” 정희는 하영의 하얀 목을 살살 매만지면서 지껄였다. “요 가는 목에서 어쩜 그렇게 청아한 노래를 잘 뽑아내니? 침대 위에서 뽑는 노래는 더욱 섹시하고 간드러져. 변강쇠 미치지 않을 수 있어? ㅉㅉ. 허나, 기억해 둬. 난 널 유명한 가수로 만들 수도 있고 천길지옥에서 버러지처럼 벌벌 기게 만들 수도 있어. 널 철창 속 죄수로 만들 수도 있다는 거야. 강도 비수를 맞고 죽을번 하다가 살아남은 난 무슨 짓인들 못하겠느냐. 내 말 알아들었지?” 하영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또 협박하는 거요?” “협박은? 널 생각해서 정신차리게 하는 거야.” 정희는 이 시각 더는 인기모델이 아니라 독사같고 요귀 같았다. 그녀는 독살스런 눈길로 하영을 쏘아보며 을러멨다. “어떠냐? 돈을 내놓겠느냐? 아님, 미국 모텔에서 우리 둘이 최국장과 함께 논  섹스쇼를 만천하에 공개할가? 어때? 단장은커녕 다시 머리 들고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를 수 있겠구나? 아니, 감옥살이라도 하고 싶은 거냐?” 하영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자꾸 협박하면 경찰에 알리지 않는가 봐.” “ㅋㅋㅋ. 경찰이 날 어쩔 수 있어? 난 박동묵 공안국장의 애인이야.” “철면피하군요.” “뭐라고?” 정희는 하영의 외씨볼을 살짝 꼬집어놓았다. “요년아, 이 낯빤대기 두껍기도 소 엉덩짝 같구나. 20대에 제 애비 같은 늙다리한테 엉덩이를 들이댄 주제에  누굴 모욕해?” 하영은 신음소리를 가냘프게 냈다. 그녀는 정희가 악마처럼 두려워났다. 까딱 할 수 없는 자기를 어떻게라도 해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공포가 온 병실에 이새끼처럼 스물스물 기여오는 감이 들어 온몸을 옹송그렸다. 정희는 세살짜리 애를 다루듯이 얼리고 닥치기 시작했다. “우리 서로 싸우면 다 불리해. 난 망쳐먹은 못쓸 년이야. 그러나 넌 전도창창한 가수야. 널 도와주고 싶구나. 지하들한테 덕을 쌓고 싶구나. 그래야 염라전에 가면 염라왕이 날 극락세계에 보내줄게야. 악을 너무 쓰면 사람은 염라전에 가서도 죄를 지고  지옥살이를 한다더구나.” (픽, 고양이 쥐 생각한다고나 해라.) 하영은 이불을 들썼다. 정희는 다시 이불을 벗기면서 지껄여댔다. “하영아, 우리 둘 다 불운한 운명을 타고난 녀자야. 내 시위 서기를 잘 안다. 내 한마디면 가무단 단장이겠느냐, 문화국 국장도 시켜줄만해. 어떻니? 지금 세월에 돈 좀 팔지 않고 어떻게 자기 정치리상을 실현할 수 있겠느냐?” 하영은 정희 말을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고 싶지 않았다. “서기를 잘 알면 언니나 국장을 될게지 그러오?” 정희는 목소리를 낮췄다. “얘, 난 전도를 망쳤어. 숱한 사내들 친한 모델년을 누가 모르겠느냐? 그러나 넌 다르지. 나이 어린데다 정치자본도 있지. 내 입만 터지지 않으면 충분히 가무단 단장을 하고 이담 문화국 국장도 할 수 있지. 그런데 넌 세상을 너무나도 잘 모른다.” 정희는 선배로 자처하면서 자기 더러운 인생관을 토설했다. “이 선배 경험교훈을 들어 봐. 넌 아직 어려서 세상물정을 잘 몰라. 미인계만 써서야 어찌 지금 금전만능 세월에 승급하니? 미인계도 한도 있는 거야. 녀자 나이 들어 색이 바래지고 꽃집이 시들어 앵돌아지면 사내들은 싫어해. 그래서 어진간해선 미인계에 넘어가지 않아. 아니, 아무리 이쁘고 야들야들한 몸이래도 반년만 데리고 놀면 헌신짝 버리듯해. 사내들은 그래. 희신염구라는 말 듣지 못했느냐? 사내들은 새 걸 좋아하고 낡은 걸 싫어해. 새 이쁜 녀자를 자꾸 바꿔 새 자극을 얻으려고 해.” 이 방면 체험이야 숱한 사내들을 겪어본 정희를 따를 녀자는 둘도 없을 것이다.       (정직한 상 하는 문걸도 한가지야. 딱 한번 나하구 놀아보고는 다신 찾지도 않았어. 심지어 모델 서달라는 말도 다신 꺼내지 않았어. 자꾸 라체모델비를 많이 달라고 징징거린  때문이겠지. 허나 화가는 색에 더 밝은 놈들이야. 영희나 문걸이나 다 그랬어. 자꾸 새 모델을 바꿔야 화가의 령감이 번개처럼 번쩍 떠오른다고 했잖아.)  정희는 하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계속 유인했다. “알만해? 최국장 녀자 어디 내하구 네뿐이냐? 미국 가서 보았지. 그 숱한 미녀들이 모두 최국장 애인후보야. 네하구도 이젠 한 반년 놀아댔기에 이젠 새 미녀로 바꿔 타려고 할 거야.” “픽!’ 하영은 이불 안에서 코웃음쳤다. (최국장 이제 내하구 살 거야. 내 같은 야들야들한 처녀를 놓자겠구나. 너처럼 쇄빠진 40대도 녀자라구 하겠구나!) 정희는 계속 제 좋은 소리를 지껄였다. “최국장만 믿지 말고 언니를 한번 믿어봐. 더 빨리 단장으로 되지 않는가.” 하영은 더 듣기도 싫었다. 그러나 뒤가 켕겨 정희 말을 듣는 척 할뿐이였다. 진짜 미국에서 경솔히 정희와 함께 모텔에 가 최국장과 논 것이 후회막급이였다. (최국장님 말 맞아. 아이고, 내 어째 그렇게 머절싸한 짓을 했을가? 이 독사년한테 꼬리를 꽉 밟혔잖아? 이 일 어쩌는가? 저 년 썩어도 안 지고. 진짜 경치겠네. 하느님, 제발 요귀년을 훌 데려갑소.) 정희는 또 협박했다. “어쩔테냐? 주는 술을 공손히 마시겠느냐? 아님, 벌주를 마시겠느냐? 내 입이 탁 터지는 날엔 보기 좋을 거야. 가불간 오늘 내로 결정해라. 내 말 안들으면 래일부터  이 세상에 머리 들고 살 궁리 하지 말라.” 이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간호원이 들어왔다. “그만 하세요. 하영 환자는 푹 쉬여야 합니다. 이렇게 오래 말하면 환자 건강에 나쁩니다.” 정희는 우쭐 일어나 자기 침대로 돌아가면서 중얼거렸다. “이젠 입이 아프게 더 말하지 않겠다. 오늘 밖에 시간 없다. 흥!” 간호원은 아니꼬운 눈길로 정희를 흘겨보았다. “왜 그래요? 자꾸 자극하는 말 하지 마세요.” 정희는 간호원한테 네가 다 뭐냐는듯한 표정을 짓더니 볼로부터 입귀에 비웃음을 흘리면서 병실에서 훌 나가버렸다. 하영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저년 입이 터지는 날엔 진짜 가무단 단장은 고사하고 이 세상에서 머리를 들고 살 수 없어. 이 일을 어쩐담?) 하영은 애나 이불을 홱 젖히고 문께를 바라보았다. 간호원이 나가 얼마 안돼 또 문소리가 났다. 하영이 돌아누우면서 보니 악마 같은 정희가 또 되돌아오지 않았겠는가. (안 되겠어. 병실을 바꿔달라고 해야지.) “ㅎㅎㅎ. 하영아, 언니 왔는데 왜 돌아누워? 널 잡아먹자고 하는 것도 아닌데.” 정희는 또 하영의 침대머리에 다가와 걸상에 앉았다. 독사가 스르르 기여드는 것 같아 몸서리를 쳤다. 정희는 기어이 손을 이불 안에 넣었다. 그런데 무의식간에 그랬을가. 그만 하영의 풍만한 가슴을 만졌다. “왜 이래요?” “미안, 고의 아니야. 어쩜 애도 낳지 않은 처녀애가 가슴 이렇게 풍만하냐. 변강쇠 너 이 왕가슴에 미쳐 느침을 질질 흘리면서 게걸쓰는 거 보는 같다. ㅉㅉㅉ.” 정희는 이불을 홱 젖히고나서 눈을 감은 하영의 귀에 입을 가져다대다싶이 했다. “언니, 좋은 수 하나 있어. 우리 둘이 다 부자 될 수도 있어.” 하영은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려고 했다. 정희는 하영의 손을 툭 쳐버렸다. “왜 이래? 널 생각해 좋은 수를 내놓는 건데. 좌우간 먼저 들어보고 싫으면 그만 두면 돼.” 하영은 손사래를 주춤 멈췄다. “그래. 언니 묘수를 들어봐. 내 알건대. 네가 대학시절에 학생총회 부회장 되잖았고 뭐야?” “그런데 왜?” 하영은 홱 돌아누워 정희를 쏘아보았다. 정희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태연자약하게 언성을 낮춰 나직이 말했다. “지금 널 세심히 관찰해보면 학생총회 부회장은커녕 한개 학급 문예위원도 하기 힘들어. 건데 무슨 재간으로 학생총회 부회장으로 됐니?” 하영은 와닥닥 일어났다. “당당한 실력으로 부회장 됐소.” “픽!” 정희는 코웃음쳤다. “당당한 실력? 누굴 속여? 난 다 알아. 네가 학생부 선생님한테 미인계를 썼다는 걸.” “헛소릴 작작 치오. 무함죄를 지고 싶은가요?” “무함죄? 난 최국장한테서 다 들었어. 네가 자꾸 가무단 단장 벼슬 달라고 해 골치 아프다 했어. 네가 학생 때부터 엉덩이를 팔아 벼슬하려고 했다는 추악한 내막도 다 말했다.” 하영은 기절초풍할 지경이였다. “아니, 변강쇠 그 놈, 어쩜 날 다 팔아먹었어.” 정희는 하영의 두 팔을 붙잡고 짐짓 위안했다. “변강쇠는 그런 놈이야. 미녀들 단즙을 다 빨아먹고는 가래처럼 퉤 뱉어버리는 거야.” 하영은 벽쪽으로 돌아앉아 가녀린 어깨를 들먹였다. “내 말 좀 들어. 좋은 수 있어.” “어쩔 셈인가?” “가무단 단장 되겠다는 정객이 왜 이렇게 어린 애처럼 놀아? 울긴 왜 울어? 좀 리지적으로 나와야지.” 정희는 하영을 안아 돌려앉혀 놓고 외까풀눈으로 새물새물 눈웃음을 지으며 눈물이 글썽한 청포도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넌 내 입을 틀어막을 돈도 없는 거 안다. 다신 없는 고름 짜내듯하지 않을테야. 언니 량심에 가책돼.” 하영은 선심을 쓰는 척하는 정희를 보고 해 서산에 뜨지 않는가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희는 계속 했다. “대학교 그놈 학생부 서기란 놈을 가만 놔누겠느냐? 숫처녀 정조를 짓밟고 고작 학생총회 부회장을 시키다니. 그놈 젤 량심없어. 간부라는게 뭐냐?” “고발하자는 건가요?” “먼저 거래해봐야지. 그놈이 거금을 내놓으면 그만두고. 안 그러면…” 하영은 한참 궁리하더니 정희 손을 잡고 물었다. “그놈한테서 피값을 받아내야죠. 그놈한테 속히워 난 정조를 잃었어요. 그 놈의 감언리설에 나는 정치기로에 들어서게 됐지요. 미인계로 정치를 하고 벼슬하려고 나쁜 길에 들어섰단 말이오.” “그래. 이제야 우리 임단장께서 똑똑해지는구나. 우린 련합해 그놈 학생부 서기와 최국장놈을 줴짜서 돈이라도 챙기잔 말이야. 돈을 챙기지 못하면 그 놈들을 사법기관에 신고해버리잔 말이다. 그럼 그 놈들인들 어쩌겠느냐? 공직을 떼우고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 판에. 집을 팔아서라도 우리 두 미녀들한테 가져오지 않고 되겠느냐? 호호호.” “그게 좋을 거 같소.” 하영은 정희를 마주해  바로 앉으면서 물었다. "언니 이렇게 돈을 벌어서 뭘 하겠소?" 정희는 나름대로 지껄여댔다. "사람마다 가치관과 인생관이 달라. 봐라. 넌 가무단 단장으로 돼 정치를 하려고 하지. 그러나 난 돈을 벌어 향락한 생활을 하려는 거야. 알만해?" "오- 그렇군요." 하영은 한술 더떴다.  “그럼 이젠 날 보고 돈 내놓으라고 더 협박하지 않겠죠?" “그래, 더 근심하지 말라. 난 요즘 치료비 낼 돈이 좀 바빠서 그랬는데. 미안해. 언닌 네한테서 바쁜 돈 좀 드텨 쓰려고 한 거뿐이야. 알만하지?” 하영은 연기를 제법 잘 놀았다. “네, 언니 마음 좋은 거야 알다뿐이겠소?” “우리 둘이 잘 합작하면 최국장도 꼼짝 못하고 돈을 내놓을 거란 말이야. 우린 단통 백만부자 될게 아니야? 그 놈이 꼬리를 밟히면 바빠서 너도 인차 가무단 단장으로 올려놓을 거야. ㅎㅎㅎ.” 하영도 손벽을 치며 맞장구를 쳤다. “제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야 무슨 겨를이 있겠소? 날 즉시 가무단 단장으로 임명해야지. 언니두 광고회사 총경리로 임명하든지 하다못해 도서관 관장이나 문화관 관장이라도 시켜야지. 그 잘난 나영이도 엉덩이질 몇번 하고 전람관 관장 됐는데.” “난 벼슬엔 흥취없어. 사람 다루는 정치는 딱 질색이야. 돈이 젤 좋아, 허위로 꽉 찬 세상에선 돈만이 젤 로실하고 진실한 거야. 이 세상에선 돈이 힘이야. 돈이 많으면 귀신도 매돌을 갈게 한다고. 흥.” “언니, 참 훌륭한 선배요. 진작 언니 말 들었겠는 걸.” “그래, 우리 손을 맞잡고 학생부 서기하구 최국장을 줴짜자. 이때까지 그놈들 무릎 밑에서 노리개질하면서 당한 수모 얼마더냐? 피값은 피로 몽땅 받아내자. 우리 둘이 미국 모텔에서 함께 그 짓을 한 걸 물고 늘어지면 최국장인들 무슨 수가 있겠니? 손오공이라도 이 여래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해. 히히히.” 정희는 진짜 사람을 물어먹으려고 달려드는 악마 같았다. 그녀는 악마의 싺아버린 누런 송곳이까지 드러내며 변태적으로 징글스레 웃어댔다. 하영도 정희 잔등을 주먹으로 치며 맞장구를 치며 통쾌하게 웃어댔다. 그녀도 제 살려고 최국장이고 서기고 물어먹어야 할 판이였다. “학생부 서기란 놈 이름이 뭐냐?” “허병칠.” “사무실 어데 있니?” “대학사무청사 3층에 있소.” “알았다. 그 음충한 놈 어디 두고 보자.” 정희는 하영과 허병칠의 이것 저것 상세히 령탐해냈다.     요사한 정희는 하영을 뒤로 하고 정호가 입원해 있는 옆 병실에 살며시 들어갔다. 병실에는 간호원을 내놓고 옆에 아무도 없었다. 억대우 같은 변강쇠가 침대에 누워 우멍눈을 감고 조용히 누워 있었다. (개자식, 네놈이 죄값을 치르느라고 천벌 맞았어.) 정희가 다가가자 간호원이 손사래를 치며 나가라고 문께로 손짓했다. “이 분은 무슨 지도자이기에 숱한 미녀들이 찾아와 분주해 못살겠다.” 정희는 간호원한테 다가가 귀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전 건너 병실에 있는 환자예요. 최국장의 수하 동료입니다.” “알아요. 환자가 금방 잠들었어요. 깨우지 마십시오. 금방 공안국장이란 분도 와서 ‘매형’이라고 부르며 울다가 갔소.” “네. 제가 좀 보고 가겠습니다.”  간호원은 머리를 끄덕였다. “환자 병세 어떻습니까?” “머리를 둔기에 맞아 까무러쳤는데요. 외상입니다. 내출혈도 없습니다. 며칠 지나면 괜찬을 거 같습니다.” “네- 다행이군요.” 정희는 안팎이 다르게 속으로는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목숨이 질기도 질기구나. 나쁜 놈새끼. 썩어지지 못하고 또 살아나?) 정희는 침대머리에 다가가 번대머리를 증오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눈길로 쏘아보았다. (야, 이 놈새끼야, 어쩜 그럴 수 있단 말이냐? 강도가 내게 서슬푸른 비수를 휘두르는데 떡 서서 구경해? 뭐? 그러고도 내 물으면 적수공권이어서 강도를 당하지 못해 그랬다구 하겠느냐? 아니야, 괴변이야. 넌 미국에서 적수공권으로 총을 든 흑인강도마저 차눕히고 나영을 구하지 않았느냐? 그 용기하구 솜씨를 뒀다가 뭐 했니? 넌 근본 날 구할 생각이 없었어. 내가 그렇게 피못속에 쓰러지면서 네놈 보고 구해달라고 소리질러도 네놈은 바보처럼 멍해 서서 내 강도 손에 한칼한칼 맞고 피못 속에 쓰러지는 걸 구경했다. 아니, 네놈은 강도 손을 빌어 날 죽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순간 정희는 이를 쁘드득 갈았다. (무성권총이 있었으면 이 번대머리 대갈통에 깜장콩알 한방 먹여놓고 싶어.) 간호원은 정희를 이상해 쳐다보았다. 정희는 억지로 허구픈 미소를 새물새물 입귀로 흘리며 간호원한테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는 악이 딱딱 치받쳐 더는 그 놈 옆에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잠자코 있지 못하고 무슨 일을 칠 것만 같은 충동이 거센 심장박동과 함께 벌컥 튕겨나올 것만 같았다. 정희는 거센 숨을 몰아쉬며 온 몸을 부르르 떨며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였다. 뒤이어 억지로 거센 충격과 격분을 가까스로 참느라고 침대 머리를 잡고 눈을 스르르 감아버렸다. “왜 이래요?” 간호원은 몸을 비틀거리는 정희를 부축하며 물었다. “괜찮아요?” 정희는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며 손사래를 쳤다. “오- 괜찮아요. 갑자기 눈앞이 새까매나서.“ 정희는 용케 참으며 침대머리에서 한발작한발작 뒤로 물러섰다. 뒤이어 표독스레 변강쇠를 쏘아보더니 간호원한테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이며 병실에서 물러나왔다. (다행이다. 네놈은 강도한테 맞아 죽어선 절대 안돼. 내 손에 시달림받다가 죽어야 해. ) 정희는 긴 가지색머리를 쓸어 어깨 넘어 넘기면서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두고 봐라. 네놈을 어떻게 피를 말려 죽이는가. 내 입이 터지면 넌 죽는다. 네놈은  정치, 경제 다 끝장나고 애인년들도 다 다친다. 네놈의 숱한 처첩과 애인년들도 몽땅 네놈과 함께 순장시켜주마.” 정희는 마녀로 둔갑했다. 그녀는 진작 악귀였다. 그는 이전에도 미인계로 리굉팔과 오청룡 국장을 꾀여냈다. 그녀는 후에 망아산 기슭 별장에서 속살을 섞은 비디오테프를 내들고 오국장을 협박해 광고유한회사 부총경리 겸 재무과장 자리를 차지했고 숱한 돈을 챙겼다. 나중에 광고회사 몇백만 돈을 몽땅 빼내가지고 한국으로 도망갔댔다. 정희는 박동묵 국장과 최혜영 국장이 수사일군들을 파견해 해외에서 나포하려고 하자 대담히 귀국해 이 시내에 기여들어와 잠복했다. (등잔불이 어둡다고 누가 내 귀국했으리라고 생각하겠는가?) 정희는 정호를 등에 업고 다방까지 차리고 숨어 살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하루가 삼추처럼 여겨졌다. 정희는 언제 수사일군들한테 나포돼 차디찬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들어갈지 모르는 막다른 골목에 이렀다.  그녀는 앞날이 길지 않다는 것을 점점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젠 더 볼게 없어. 챙길게나 다 챙기자. 돈이 귀신을 매돌 갈게 한다는데 수사일군들한테 돈을 써서라도 목에 내려진 올가미를 벗어버려야지. 개지랄 발광 다 하다가 죽으면 다야.) 정희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돈을 긁어모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랑데 같은 정호가 돈을 푹푹 주지 않아 속이 다 재가루로 될 지경이였다. 이젠 애디디한 나영이나 하영이나 찾아가지 자기는 별로 찾지도 않았다. 아무리 갖은 수단을 다해 얼리고 협박해도 돈을 주련장하지도 않았다. 나영이나 하영의 앞에서 자기 육체는 이젠 색바래진 감을 실감했다. 그래서 나영과 하영을 한없이 질투하고 증오했다. “네놈이 날 죽이자고 드는 판에 나도 이젠 가만놔둘 수 없다. 고기 죽으면 그물도 판난다. 어디 내 죽든지 네놈이 죽든지 해보자.” 정희는 병원 대문으로 나갔다. 택시를 잡아탔다. “시공안국으로 모세요.” 택시는 곧추 시공안국으로 달려갔다. 드디여 택시는 시공안국 대청 앞에 멈춰섰다. 정희는 머리를 탁 치는 생각이 번개쳤다. (아니야, 박국장은 정호 처남이야. 그놈은 항상 박국장을 자기 올려놨다고 하지 않았는가. 거기 가선 안돼. 괜히 나만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여들겠어. 봐라. 전번에도 나하구 정호 일을 친 날에도 박국장은 날 보고서도 나포하지 않았어. 수사일군들도 날 알아보지 못했을가? 박국장은 자기 매형과 관계된 녀자란 걸 알고는 날 지금 봐주는 거 아니고 뭐야. 분명 최혜영 국장의 지시에 할 수 없이 한쪽 눈은 뜨고  한쪽 눈을 감아주는 거야.) 그러나 기실 공안국에서는 정희를 진작 알고서도 그물을 크게 쳐서 큰 고기-정호의 정체를 낚으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특히 래원을 밝히기 어려운 정호의 재물을 밝혀내라는 최혜영 국장의 지시를 따라 수사고삐를 좀 느슨히 놓아주고 있었다. 정희는 택시 문고리에 손을 걸었다가 떼였다. (검찰원 최혜영 국장을 찾아갈가?) 그녀는 망설였다. “공안국에 도착했습니다.” 택시 운전수가 기다리다가 짜증났던 모양이였다. “되돌아갑시다.” “네? 어디로?” “병원으로 돌아갑시다.” “네, 알았습니다.” 택시는 머리를 돌려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 문 앞에 가서 택시가 멈춰섰다.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오- 검찰원에 갑시다.” “네? 어디로 간다구요?” 택시 운전수는 정희를 뒤돌아보았다. 정신 나간 녀자 아닌가 힐끔 눈길을 주는 눈치였다. “시검찰원으로 모세요.” “네, 이번엔 검찰원입니다.” 정희는 굳은 마음을 먹었다. (내 죽더라도 그 놈새끼를 놔둘 순 없어. 난 먹은 걸 다 게우고 죄값을 치르면 다야. 그러나 네놈은 죄가 하도 많아서 무기징역을 받을 거야. 아니, 네놈은 총살받을 수도 있어.) 정희는 마녀처럼 악이 받쳐 웃음통을 터뜨렸다. 희스테리가 발작한 것 같았다. “으흐흐, 우리 다 죽을 팔자야! 이것도 하느님이 내린 운명인 거야. 핫하하하.” 택시 운전수는 미친듯이 욕설을 퍼붓고 박장대소하는 정희를 되돌아보며 무릎을 탁탁 쳤다. (오늘 돈 다 벌었어. 싣다 싣다 오늘 별 미친 녀자 다 실었어. 아이고!)  
255    대하소설 졸혼(19) 김장혁 댓글:  조회:1297  추천:0  2022-06-16
                     29. 신기루     문걸이 눈을 살며시 뜨자 온통 새하얀 세상이 안겨왔다. 쇠살창 문이 흐리마리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감옥인가? 무슨 죄를 졌는가?)  문걸은 눈을 번쩍 떴다.  “아빠, 깨났습니까?”  “리선생님, 깨났군요.” 귀에 익은 여자들 목소리. (누군가?)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사위를 둘러보았다. 침대 옆에서 지예와 만금이, 춘희의사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지 않겠는가. “지예야, 여긴 어디냐?” 지예는 자기를 알아보는 아빠를 보고 너무나도 기뻐 어쩔줄 몰랐다. “아빠, 여긴 병원입니다.” 지예는 아빠 곁에 앉아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춘희박사,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문걸은 미소를 짓는 춘희를 쳐다보았다. “네. 잠시 특수병실에 입원했습니다.” “왜 감옥처럼 쇠살창 있소?” 춘희는 문걸의 옆에 다가와 내심하게 설명했다. “이제 리선생님 병세가 호전됐으니깐요. 여기서 나가면 돼요.” “오-” 문걸은 신경과에 입원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춘희를 보고 물었다. “여기 며칠 누워 있었소?” 춘희는 눈물이 글썽해 수척해진 문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장장 석달이나 누워 있었어요. 이젠 나갈 때도 됐는데요. 제가 이제 담당의사한테 퇴원신청을 넣어보죠.” 문걸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이젠 모든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이윽고 담당의사가 병실에 들어섰다. 그 남자의사는 문걸의 병상에 다가와 문걸을 이리저리 살피였다. “의사실에 갑시다.” “예.” 문걸은 의사를 따라 갔다. 의사는 사무상 맞은켠에 있는 걸상에 문걸을 앉으라고 했다. 문걸은 순순히 걸상에 앉았다. “이제부터 묻는 말에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남자의사의 딱딱한 물음에 문걸은 인차 대답했다. “예.” “이름이 뭡니까?” “아니, 입원할 때 다 등록했겠는데 왜 이런 걸 묻습니까?” “묻는 말에 대답하십시오.” 문걸은 남자의사의 엄숙한 표정을 흘끔 쳐다보고는 나직이 대답했다. “네.” “이름?” “리문걸입니다.” “나이는 얼마입니까?” “62살입니다.” “퇴직 전 직업은 뭡니까?” “고급설계원, 화가입니다.” 의사는 지예와 춘희의사를 건너다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무슨 병으로 우리 입원했죠?” “건...” “무슨 병에 걸렸습니까?” “아니, 병원 의사들 치고 저의 병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몇입니까? 다 알면서 묻습니까?” 의사는 무표정하게 재차 물었다. “무슨 병에 걸렸습니까?” “아마 정신이상인가 해서 날 신경과에 입원시킨 거 같습니다.” “오- “ 담당의사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 황선희 주임도 들어섰다. 그들은 문걸의 전신을 회진한 후에도 시름놓지 못하고 문걸의 전신 화험과 채색CT를 비롯한 여러가지 기계검사를 재차 체계적으로 하였다.  검사결과 암치료도 깨끗하게 되였지만 코로나 후유증은 주의해야 하였다. 김춘희의사가 문걸한테 다가와 친절하게 말했다. “오늘 출원해도 되겠는데요. 후에 시간 나면 함께 등산도 하고 춤도 춥시다.” 황선희 주임은 춘희와 문걸이 조용하게 말하게 자리를 비웠다. 지예는 따라나가면서 인사했다. “선생님들의 정성 덕분에 아빠를 구해냈습니다. 구명은혜 감사합니다.” 문걸은 춘희를 응시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유를 되찾게 되였다. 이젠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그는 지예의 부축을 받으면서 택시에 앉아 세집에 돌아왔다.  만금이 반가와 말을 잇지 못했다. “리선생님, 건강이 회복돼 돌아오시게 돼 기쁩니다.” “수고 많았소.” 실로 그간 만금은 문걸을 간병원처럼 간호하고 밥도 지어가고 하면서 정성을 다해 뒤시발을 했던 것이다. 그는 침실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누워 천정 한 곳을 멍하니 바라보며 또다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만금이 커피잔을 침대머리에 가져다 살짝 놓고 나갔다. 그녀는 주방에 나가 점심준비를 하느라고 분주히 서둘렀다.  지예는 침대 옆 쏘파에 앉아 아빠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빠가 한없이 불쌍했다.  문걸의 뇌리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번개가 치고 우뢰가 울었다. (모든 걸 잃었다. 영희를 잃고 사랑도 잃었다. 집과 화실도 다 잃어버렸다. 아들과 손자 둘을 몽땅 잃고 말았다. 군철이, 그 새끼, 항상 에미 역세를 들면서 날 집 호적에서 긁어버리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진짜 그렇게 되지 않았는가. 그 놈새끼 에미 남긴 돈마저 몽땅 가지고 상해로 갔다고 하지 않는가.) 순간 그는 자기가 30년 가까이 한평생 아글타글 하면서 꾸려온 가정이  무너진 신기루처럼 떠올랐다. 그러나 그 꿈만 같던 신기루는 정호가 30여년 동안 사기치며 일으킨 허위광풍에 단번에 와그르르 무너지는 감을 느꼈다. 그 가정신기루는 파도도 사나운 바다 위 구름처럼 산산히 박산났다. 형체도 찾아볼길 없이 흐리멍텅한 하늘나라로 사라졌다. 순간 징그럽게 웃는 번대머리가 불쑥 떠올랐다.  “군철은 정호 새끼하구 심통해. 종지달은 속일 수 없어. 지독한 놈이야. 인정머리라곤 하나도 없는 랭혈동물이야. 독사야.  그런데 난 여직껏 그 놈을 친아들로 여기지 않았던가. 애나게 그림을 한장한장 그려 그 놈새끼한테 그 비싼 상해 아파트를 다 사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군철은 내 절망에 빠져 쓰러졌는데도 상해로 훌 달아나 기별도 없잖은가. 에미한테서 돈과 마노목걸이랑 비취팔목걸이랑 채가지고 도망쳤잖아?” 문걸이 쉼없이 중얼거리자 지예는 또 병이 발작하는가 하여 쏘파에서 오쫄 일어났다. “아빠, 자꾸 지난 일을 생각하지 마세요. 이젠 오빠를 잊으세요. 그러게 내 뭐라 했습니까? 미리 유서라도 써놓으라고 했잖았는가요?” 문걸은 지예 손을 덥석 잡았다. “어쩜 군철이 정호새끼를 닮은줄도 몰랐을가? 내 혼자 오리무중에 빠져 아무것도 모르고 속여 살지 않았니? 그 년놈들이 짜고 들어 날 속이고 뒤에서 개짓을 하지 않았니? “ 지예는 아빠가 불쌍해 울었다. “아빠, 모든 걸 다 훌 잊어버리세요. 쓸데 없는 걸 다 버리세요. 엄마와 오빠도 다 잊어버리세요. 어머니 이젠 다른 세상 사람인데 과거를 자꾸 생각하지 마세요. 아빠 건강에 나빠요. 이젠 아빠만의 인생을 찾으세요. 이젠 진짜 졸혼하셨으니깐요. 새 인생을 홀가분하게 사세요.” 문걸은 지예를 꼭 껴안았다. “그래. 지예야, 이젠 내겐 너 밖에 없다. 안해도 없고 아들과 손자도 없다. 인정미 있는 딸이 있어 참 다행이구나.” 문걸은 눈물을 텀벙텀벙 내쏟았다.  구슬픈 울음소리에 지예도 아빠 품에 안겨 대성통곡쳤다. “아빠, 근심하지 말아요. 제가 아버지 여생을 옆에서 지켜드릴게요...”   그는 지예를 놓고 또다시 침대에 쓰러졌다. “안된다, 안돼! 넌 재혼해야 해. 내 때문에 네 인생을 망칠 순 없어. 그럼 아'빠는 더 마음이 아파.” “아빠, 저도 이젠 졸혼했어요. 가정이고 나그네고 하나도 필요없어요. 이젠 효녀로 돼 아빠한테 효성을 다해 잘 모셔드릴게요.” 문걸은 벌떡 일어나더니 지예의 귀쌈을 찰싹 갈겼다. 지예는 뺨을 맞으면서도 아빠한테서 물러나지 않았다. 까딱하지도 않고 앉아 있었다. “얘, 내 널 쳤니?” “치세요. 아빠 속이 풀리면 치세요. 딸이 아까우면 엄마를 친다고 생각하고 호되게 치세요.” 지예는 도리여 얼굴을 아빠 앞에 내대고 외까풀눈을 살풋이 내리깔았다. “널 치다니? 아프잖느냐?” 문걸은 지예의 뺨을 매만지면서 중얼거렸다. “안돼, 너만은 영희처럼 살지 말라.” “무슨 말입니까?” 문걸은 자못 정색했다. “너네 엄만 가정도 모르고 무용 밖에 모르는 그런 바레리나야. 동네집 나그네들과 마작이나 땅땅 놀고 그런 녀자야. 멋이나 빼고 시내돌이나 좋아하는 그런 녀자야. 새끼들도 모르고 그런 쌍년이야...” 그러나 지예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아니, 지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칫하면 아빠를 마음이 아프게 할 수 있었다. 신경병이 도지게 할 수 도 있기 때문이였다. 문걸은 엄마 흉을 한다고 덤덤히 앉아 있는 딸의 심정을 읽기라도 한듯이 말머리를 홱 돌렸다. “너 에미처럼 가정을 깨면 나쁜 녀자야. 새끼도 다 던지고 달아나는 녀자 얼마나 나쁜 녀자냐? 넌 절대 그런 뺑덕이에마 되지 말라.” 지예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나직이 대답했다. “알았습니다. 아빠. 좀 쉬십시오.” 문걸은 또다시 침대에 누워 또다시 끝없는  절망의 블랙홀에 빠졌다. 아무리 모지름을 써도 좀체로 헤여나오기 힘들었다.  (내 그렇게도 사랑한 영희, 영희가 어쩜 그렇게 고약하게 날 속일수 있어. 그것도 30년이나 배신했단 말인가? 숫처녀인 척하면서 내 아래서 허리를 요리조리 탈며 신음소리를 내면서. 날 얼려? 사랑한다고? 련애편지는 얼마나 많이 썼던가.) 그는 침대에서 부시시 일어나 옷궤 쪽으로 걸어갔다. 옷궤을 열고 무언가를 뒤졌다.  지예가 다가가보니 아빠가 옷궤 밑에 있는 자그마한 함에서 숱한 누런 편지봉투를 들춰냈다. “뭔가요?” “옛다, 봐라. 뭔가.” 지예는 조심스레 편지봉투를 받아 편지를 하나 하나 뽑아 보았다.  아빠와 엄머가 30여년 전에 주고 받은 련애편지가 아니겠는가. 지예는 읽으면 읽을수록 눈물이 없이는 내리 읽을 수 없었다.  아빠는 엄마가 보내온 그 련정이 담긴 한글자, 한글자마다 진정한 사랑으로 믿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절절한 사랑으로 가슴에 받아들여 못박혀 빼버리기엔 너무나도 가슴이 쓰리지 않겠는가. 숫처녀로 안 엄마가 글쎄 이모부 애까지 낳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충격에 정신기둥이 와그르르 무너져버리지 않았던가. 지예는 필경 영희가 배아프게 난 딸이기에 아빠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엄마 처지도 불쌍했다. 아니, 엄마가 한없이 가여워 동정하기까지 하였다. (엄마는 아빠 먼저 이모부를 사랑했을 수도 있어. 그래서 이모부한테 먼저 숫처녀의 모든 것을 주었을 수도 있지. 그래서 오빠도 임신했구...) 여끼까지 생각하자 지예는 이모부 정호가 얄미웠다. 아니, 가증스러웠다.  (어쩜 미성년학생인 엄마를 그렇게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대낮에 자기가 숱한 녀학생들한테 무용을 가르치던 무용강당에서 밤을 타서 강간하듯 한단 말인가.) 순간 지예는 엄마 대신 정호에 대한 분노가 가슴에서 폭발하는 것 같았다. (날강도 같은 놈, 어쩜 엄마와 아빠 인생을 그렇게도 무참히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얼마나 후안무치한 인면수심 독사인가? 허위적인 위군자. 자기가 롱간해놓고 엄마를 책임지지도 않고 진상을 모르는 아빠한테 소개해 보내버려? 그래서 생긴 비극이 아닌가. 엄마는 누구 앤지도 모르고 품에 오빠를 열달이나 잉태해 낳지 않았던가. 오빠가 자라면 자랄수록 엄마는 얼마나 속이 조마조마했겠는가. 아빠한테 정호 새끼를 낳았다는 것이 들통나면 무슨 일이 발생할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지 않았겠는가. 그런 시한폭탄 같은 오빠를 키우면서 엄마는 얼마나 속을 태웠겠는가. ) 손바닥이 다르고 손등이 다르다고 지예는 필경 영희가 낳은 딸이니깐. 문걸의 생각과는 달랐다. 그는 아빠와 엄마가 겪은 비극을 다 가슴이 아파하면서도 엄마의 불행한 처지도 동정하고 있었다. 문걸은 침대에서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며 계속 상념에 잠겼다. (영희는 군철이 자라면서 정호를 닮았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어. 그런데 나를 줄곧 속이지 않았는가. 영희 유서에서 말한 일 외에도 년놈이 무슨 지랄을 다 했는지도 몰라. 영희는 유서에서 왜 정호를 폭로했을가? 무용강당에서 자기를 억지로 간음한 사실을, 상해에서 돌아올 때 지하주차장에서 영희를 지껄인 사실을, 망아산 소나무숲 속 방공굴에서 간음하려 했을 때 강도를 만난 일도 다 토설하지 않았는가. 죽어가면서도 영희는 정호가 강도들한테 자기를 버리고 혼자 도망친 비굴한 모습까지도 폭로했다. 이제 와서 정호한테 속히운 것에 격분했을가. 그럼 영희는 정호를 마음 속으로 사랑하지 않았단 말인가? 아니야, 더러운 년, 변강쇠 같은 정호 새끼 걸 한번 맛을 보면 내 걸 좋아하기 만무했어. 짐승처럼 어떻게 미친듯이 짓밟아놓았으면 그게 그렇게 헐럭했지. 내 처음 헐럭하다는 감각이 맞았어. 그런데 영희, 그 년 사기치는 말에 얼리워 의심하지 않고 눈 감고 결혼해 살았지. 죽기 전에 정호를 물어먹는 걸로 날 사랑했다는 걸 보여주고 위안하려는 거였을가? 영희 말해보오. 날 징정 사랑이나 했소? 전생에 지은 죄 두려워 저세상에 가기 전에 모든 거 폭로했어? 정호를 공소했어? 정호를 증오한 건 맞기나 하니? 날 보고 정을 떼게 하자고 그랬느냐?” 문걸은 생각하면 할수록 깊고 깊은 사랑의 블랙홀의 비밀을 알 길 없이 묘연했다. (영희, 나도 그리 깨끗한 사람은 아니야. 나도 인기모델 정희하구 그러루한 일이 있었어. 어쩌겠느냐? 암캐가 살살 꼬리를 치는데 열혈청년때 참을 수 있어?”   그날 문걸은 정호한테서 인기모델이라는 정희를 소개받았다.  문걸은 눈웃음을 새물새물 살살 치는 정희 표정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라체모델을 설 수 있겠소?” “어마나!“ 정희는 짐짓 아닌 보살을 떨었다. “처음 만나자마자 어떻게 그런 라체모델을 설 수 있겠습니까?” “예술을 위해서 좀 희생하면 안 되오?” 정희는 그런 소리를 영호한테서도 들은 적이 있었다. (화가는 다 이런가?) “그래요?” 정희는 문걸의 눈치를 핼끔 보면서 아양을 떨었다. “모델비용은 얼마나 주겠는가요? 저는 인기모델이여서 어진간해선 옷을 벗을 수 없는데요."     "돈은 근심하지 마십시오."    "네. 알았습니다. 그럼 예술을 위해 어떻게 희생햐야는지요? 리화가께서 좀 가르쳐주시면 몰라도요. ㅎㅎㅎ.” 그만하면 된다는 말이였다. 문걸은 그날로 정희를 데리고 화실로 갔다.  정호는 친구한테서 소개비마저 째째하게 받아가지고 마른 기침을 깇으면서 자리를 떠났다.      (잘코사니야.)     그는 정희가 어찌나 돈을 달라고 칭칭 감겨드는지 신물이 났다. 그러던차 문걸한테 모델로 붙여놓고 혹을 떼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정호는 혹을 뗀 것 같아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숨을 후- 내쉬면서 화실에서 나와버렸다.   문걸은 정희를 보고 저고리로부터 옷견지를 하나, 하나 벗게 하면서 사진부터 찍었다. 찰칵, 찰칵. 정희가 눈웃음을 살살 치며 짧은 치마를 홀랑 내리는 순간, 문걸은 정신나간 사람처럼 멍해 서 있었다. “어서 샷타를 눌러요.” 정희가 나직이 귀띔해서야 샷타를 찰칵 눌렀다. “아, 우유빛 허벅다리, 풍만한 젖무덤, 예술조화를 이룬 저 섹시한 육체미!” 문걸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번했다. 정희는 추파를 보내면서 인기모델의 육체무기를 휘둘렀다. 그녀가 라체로 서서 아주 능란하게 각종 매력적인 조형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문걸은 감탄하며 촬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니, 정희 육체미를 구경하며 감탄에 뒤이어 신음소리를 마구 냈다. “호호호. 보기만 해서야 어찌 유명모델의 진선미를 제대로 알겠습니까?” 정희는 대담히 제안했다. “어서 와서 인기모델의 몸을 만져보세요.” 그제야 제정신이 펄쩍 든 문걸은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정희한테 다가가 체취를 맡으면서 따뜻하고 보들보들한 손부터 잡아 매만졌다. 뒤이어 야들야들한 팔과 하들하들한 우유빛허벅다리를 매만져보았다. 정희는 문걸의 손을 잡아 자기 가슴에 스르르 가져갔다. “여긴 더욱 매력적인데요. 그림 그릴 때 미리 손감각을 찾으세요.” 문걸은 오홍 신음소리를 내며 손을 빼갔다. “아니, 리선생님도 남자인가요?” “난 화가요.” “이렇게 참을게 뭔가요? 금욕주의자가 무슨 그림 제대로 그리겠어요? 세계 유명화가로 되긴 다 틀렸군요. 사상을 활짝 개방하세요.” 정희는 미친듯이 구호까지 불러댔다.  “성자유 만세!” 칠정육욕이 있는 사내대장부가 어찌 갈보가 눈웃음을 새물새물 지으면서 알랑거리는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겠는가. ( 어디까지나 주동이 된 건 아니였어. 간사한 요정이 날 유인해 간음한 거나 다름없어. 변명이 아니야. 난 수동적이였어. 딱 그때 한번이였어. 정희는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야. 그후 다신 찾지도 않았어. 그래도 항상 너한테 미안했다. 영희야, 죄송해. 구천에서 용서해달라. 미안해서 널 더 사랑했고 내 모든 걸 너한테 걸고 다 주었지.)    ...      “영희, 미안하오. 널리 량해하오. 나도 잘못했소.” 순간 또다시 재색염라전에 휘말려들어가던 영희가 떠올랐다. 염라전에 들어가면서도 영희는 바레리나노라고 정호 어깨 위에 외발로 올라서서 모둠발뜀까지 하면서 바레를 추지 않았던가.  (미국에 가선 뭐 “호수가의 백조와 독수리 련가”를 췄다지 않는가. 독수리 번대머리에 날아올라가 외발로 모둠발을 뛰면서, 해쭉해쭉 웃으면서. 바레를 추며 사진까지 찍지 않았던가.  날 골려주자고?) 지금 보면 염라전은 영희를 연기로 날래보낸 화장터 같았다. 문걸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화장터 아니야. 안락사형장 같아. 저승사자가 주사를 놓아 총살하는 안락사형장이야. 그 사형장은 화장터 토성 밖에 있는 낮다란 재색벽돌과 기와를 지은 집이야. 바로 그거야. 그게 사형장이야. 염라전이야. 정호새끼 염라전에 가야 했는데. 에잇, 영희가 글쎄 바로 거기로 들어가 온몸이 화신이 돼 염라전으로 훌 날려들어갔어. 불이 활활 타오르는 염라전으로 들어가 한가닥의 새까만 연기로 돼 하늘나라로 날아올라갔어.”   그는 이를 쁙쁙 갈았다. “정호, 그 놈새끼를 놔둘 수 없어. 량심도 없는 개새끼, 뭐? 둘도 없는 친구? 자기 짓밟은 영희를 소개해주고 마치 친구를 생각하는 척하지 않았는가. 그땐 어째 소개비는 받지 않았어? 린색한 놈, 정희를 모델로 소개해주고 소개비까지 받은 친구. ㅋㅋㅋ.” 지예는 아빠가 병이 도지지 않는 것을 보고 못 들은 척하며 일어나 침실에서 나갔다. 그녀는 화장실에 들어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닦고 말끔히 씻었다. 구구구, 구구구... 문걸이 착잡한 생각에서 깨나며 창 밖을 내다보았다. 아니, 저게 뭔가? 하얀 비둘기 두마리가 오랜만에 찾아와 창문 턱에 앉아 집 안을 들여다보며 구구거렸다. “참 오랜만이구나. 넌 재혼했니? 우리 집에서 홀로 외롭게 살더니. 어데서 짝을 무어 데리고 왔니? ” 문걸은 중얼거리면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께로 다가갔다. 그는 바빠 창문을 열고 손을 뻗쳐 비둘기를 잡아 집 안에 들여놓았다. “만금이! 만금이!” “예- 주인님.” 만금이 바삐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주방에서 침실로 달려들어왔다. “만금이, 집 떠났던 비둘기 돌아왔소. 종지에 새우깡을 가져오오. 쟤들이 쪼아먹게.” “불시에 없는데요.” 구구구, 구구구. 비둘기들은 알아들었는지 문걸의 손바닥을 똑똑 쪼았다. “좀 기다려.” 문걸은 오랜만에 만난 식구처럼 반가워했다. 미녀로봇도 창가에 다가가 반겼다. 문걸은 비둘기를 놓으면 날아날가봐 근심하듯이 조심조심 침실 창턱에 놔두었다. 그는 끌신을 짝짝 끌고 바깥에 나거더니 밑층식품상점으로 달려내려갔다.  그는 새우깡을 사다가지고 돌아와 종지에 담아 침실 쏘파 앞의 차탁 위에 올려놓았다. “자, 실컷 먹어라.” 그는 차탁 위에 날아올라가 새우깡을 똑똑 쪼아먹는 비둘기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너희들이 어떻게 세집까지 다 찾아왔니? 진짜 반갑구나.” 구구구, 구구구. 비둘기들은 머리를 쳐들고 뭐라고 구구거렸다. “우린 병원에도 찾아가 유리창에 매달려 주인님을 찾았거든요.” “오- 그래, 그래. 그랬지. 우린 한집 식구니깐. ㅎㅎㅎ. 귀여운 요것들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문걸은 비둘기를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정신병자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비둘기들아, 귀여운 아가들아, 너희들 말해보렴. 영희 날 사랑했니? 사랑하지 않았니?” 구구구. 구구구. “아직도 몰라요? 주인님, 녀주인님은 근본 주인님을 사랑하지도 않았어요.” “구구구, 어서 빨리 잊어버리세요. 고통의 블랙홀에서 헤매지 마십시오” “그래?” 문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을 해야겠구나.” 지예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면서 노는 아빠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빠는 가방에 련애편지를 걷어넣고 침실에서 나가는 것이였다. 그녀는 아빠 손을 잡았다. “뭘 하려고 그래요?” “너하구 상관없다. 가만 놔둘 수 없어.” 문걸은 신궤에 다가가더니 시퍼런 조막도끼와 자그마한 공병삽을 꺼내들었다.  “아빠, 어쩌려고?” “아니, 아무 일도 없어.” 문걸은 지예를 뿌리치고 신을 신고 문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지예는 황급히 말렸다. “아빠, 무슨 일 치자고 이래요?” “아니, 근심하지 말라.” 그는 검은 그림자가 흐르는 지예 외씨 얼굴을 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가자, 나하구 같이 가자.” “누구와 싸우려는가요?” “아니야. 절대 싸우지 않으니깐. 근심하지 말라. 날 따라가면 알 거야.” 문걸은 영희와의 누런 련애편지봉투를 몽땅 가방에 넣더니 둘러멨다. 지예는 아빠가 광기를 부리면 혼자 말릴 거 같지 못해 춘희의사한테도 전화로 알리고 만금까지 불러 함께 따라나섰다. "나도 갈래." 미녀로봇도 따라나섰다. 문걸은 그녀들을 데리고 택시를 잡아타고 망아산 수림으로 달려갔다. 춘희의사는 지예와 핸드폰으로 위치추적공유를 해놓았기에 인차 택시를 타고 망아산 수림으로 뒤쫓아갔다. 울긋불긋한 수림에는 한가닥의 오솔길이 나타났다. 그 오솔길은 정호라는 색마가 갖은 비렬한 수단을 다해 숱한 미녀들을 유인해 와서 생긴 더러운 오솔길이였다. 얼마나 많은 녀성들이 여기 방공굴에 얼리워와서 청춘을 짓밟히고 억울한 강간과 간음을 당했는지 모른다. 황선희, 영희, 순정, 나영, 정희, 하영, 그리고 이름도 모를 녀인들이 여기 와서 변강쇠 같은 색마의 허위사랑에 사기당해 짓밟혔다. 돈을 주고 권력을 주겠다는 함정에 빠져 숱한 미녀초보정객들이 참사랑의 블랙홀에 빠지고 말았다. 그녀들은 다시는 그 지옥 같은 정신블랙홀에서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게 됐다. 문걸의 귀에는 여기저기서 영희의 신음소리, 흐느낌소리, 대성통곡치는 소리 들리는 상 싶었다. “난 색마한테 숫처녀 정조를 억울하게 빼앗겼어요.” 영희 한 많은 소린가? (그래, 30년 전에 여기서 영희는 부래지어와 팬티 바람으로 강도들한테 쫓기웠지. 영희 유서에도 명확히 여기서 정호한테 간음당하고 강도들한테 쫓기웠다고 하지 않았는가. 량심 없는 놈, 어찌 강도들한테 영희를 버리고 비굴하게 혼자 살자고 도망쳐버렸단 말인가?) 어디선가 분명 영희의 목소리가 우렁우렁 울려왔다.   "여보, 당신, 정호가 여기서 저를 간음한 정체를 폭로하는 건 진실을 당신한테 알리는 량심고백입니다. 30년 동안 당신을 속여와서 죄송해요. 원래 무덤까지 내막을 가지고 가려고 했는데요. 이번만은 진실을 고백했습니다. 저를 죽여주십시오." 문걸은 코방귀를 뀌었다. "뭐? 량심선언? 흥! 죽기 전에 한번만은 진심이란 말이냐? 네가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을 머저리 없다." 또 한 녀인의 목소리가 반공중에 들렸다.  “절대 자원해 여기 끌려온게 아니예요.” 나영의 목소린가. “아니야. 넌 첨엔 사무실에서 정호한테 당했지만. 변강쇠 허위적인 성애에 푹 빠져 따려다녔어.” 하늘에서 누군가 꼬집는 소리.  (하늘에 무슨 판관이라도 있는가?) “색마 정치사기군의 감언리설에 얼리웠어요!” 뺑덕이에미 거짓말인가? 아니면, 미녀로봇의 작간인가? 문걸이 미녀로봇을 뒤돌아봐도 묵묵히 따라 올뿐이였다.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 죄를 만나 강도 칼에 찔려 입원해 있잖아? 흥! 퉤!” 하늘에서 또 욕한다.   “전 억울하게 당했어요! 가무단 단장 시켜준는 말에 20대 처녀를 바쳤어요!” 하영의 목소린가. “하영이, 더러운 권세욕에 눈이 먼 년, 천벌맞아 싸다. 강도들 쇠몽치에 맞아 쓰러졌잖아. 뭐? 부끄러워 경찰들 앞에서 입에 빗장을 질렀다고? 정호와의 더러운 권색거래를 숨기려고?  에이, 더러운 년아.”       문걸은 그 한 많은 망아산 수림 속 방공굴 어귀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다. “아빠, 여기 와서 뭘 해요?” 지예는 사위를 둘러 보며 공포에 몸이 오싹해나 바들바들 떨었다. “겁나 말라. 이 곳은 내가 너네 엄마와 첫사랑을 불태우던 곳이야. 얼마나 유서 깊은 곳이냐?” 지예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무심히 볼 소나무숲이 아니였다. 문걸은 한숨을 후- 길게 내쉬며 숙연히 머리를 숙였다.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져갔다.  (얼마나 날 오리무중에 빠지게 한 곳인가. 얼마나 어둡고 침침하고 깊고 깊은 수렁인가! 나를 그 얼마나 절망에 몰아넣은 참사랑의 블랙홀인가! 그 얼마나 참된 사랑으로 오인하고 청춘을 불태웠던 사기와 허위로 차넘치는 함정인가.) 그는 방공굴 어귀 둔덕 위에 아직도 “사랑” 글자를 박은 채 서 있는 소나무에 도끼를 들고 다가섰다. 그는 “사랑”이란 글자를 어루만지면서 지예를 돌아보았다. “이 글자는 30년 전에 너네 엄마와의 사랑을 기념해 이 비수로 새긴 거야.” “네-” 지예도 아빠와 함께 철갑을 두른듯한 소나무의 송진을 머금고 빛나는 “사랑”이란 글자를 어루만졌다. “물러나라.” 문걸은 지예와 만금을 한쪽으로 물러서게 했다. “뭐 하려고 그래요?”      문걸은 대답 대신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더니 도끼를 휘둘러 송진을 머금은 채 울고 있는 “사랑” 글자 박힌 소나무를 팡팡 찍기 시작했다.          “얼마나 허위로 물든 글자냐!”     미녀로봇이 옆에서 박수까지 치면서 응원했다.     "잘 한다, 잘해! 진작 싹 다 찍어버려야 했어요." 문걸은 도끼을 거두고 “사랑” 글자를 찍어낸 나무껍질을 주어 방공굴 어귀에 무져놓았다. 가방에서 싯누런 련애편지를 꺼내 나무껍질 위에 올려놓고 후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달았다. “허위적인 사랑아, 퉤! 싹 타버려라!” 순간 송진을 먹은 소나무껍질과 싯누런 련애편지들이 불타면서 시꺼먼 연기가 삽시에 소나무숲 상공에 타올랐다. 문걸은 타오르는 불길과 타래쳐오르는 연기를 눈물이 글썽해 바라보며 목놓아 고함쳤다.       “어, 씨원하다. 한뉘 평생 날 속인 개쌍년아, 이젠 다신 찾아오지 말라. 영영 천국에 가라! 퉤!”     "뭐 하는 짓인가?"     갑자기 삼림경찰 서넛이 나타났다.    "어서 불 끄지 못하겠는가?!"     뢰성 같은 호령이였다.    문걸은 멍해 삼림경찰들을 둘러보았다.     만금과 지예가 부랴부랴 가방에서 샘물병을 꺼내 모닥불에 끼얹었다.     칙-    모닥불에서 김이 피여오르면서 불이 꺼져갔다. 지예는 아버지 손에서 삽을 빼앗아 흙을 파 마구 모닥불을 뒤덮었다. 만금은 나무가지를 주어 모닥불을 마구 두드렸다. 미녀로봇은 할끔거리면서 삼림경찰을 곁눈질했다.    모닥불이 잘 꺼지지 않았다. 누런 편지와 사랑 글자가 박힌 소나무껍질은 다 타버렸다.   삼림경찰들이 소방도구로 꺼서야 불은 간신히 꺼져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연기와 김이 모락모락 피여올랐다.    삼림경찰은 문걸을 쏘앙보며 경고했다.   "다시 방화하면 체포하겠소."  이윽고 불이 다 꺼지자 삼림경찰들은 눈을 부라리며 가버렸다.     문걸은 도끼에 찍힌 소나무를 주먹으로 마구 꽝꽝 치며 대성통곡쳤다. "하느님이여, 이 세상에 참사랑이 있습니까? 대답해보십시오." 그때 미녀로봇이 종알거렸다. "쳇, 인간세상에 무슨 참사랑이고 떡대가리고 있다고 이래요. 진작 저와 살면 될 걸. 미녀로봇은 인간세상의 미녀들처럼 간사하지 않고 솔직한데요."     만금은 미녀로봇을 주제넘게 논다고 흘겨보았다. “아빠!” 지예는 아빠 팔을 붙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빠- 이젠 몽땅 끝났어요. 싹 다 잊어버리세요. 네?" 문걸은 지예를 물리치고 도끼를 휘둘러 사랑이 새겨졌던 소나무 밑둥을 팡팡 내리찍었다. 허위로 꽉 찬 가짜 “사랑”을 쾅쾅 찍어내는 순간이였다. 지예는 아빠 심중을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내심으로 기뻤다. 아빠는 분명 허위로 찬 “사랑”을 찍어버리고 새로운 출발하려는 것이였다. 지예의 전화를 받고 황급히 뛰여온 춘희가 먼 발치에서 이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걸은 소나무를 찍어눕히고서도 성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소나무를 끌어다가 방공굴 어귀에 쑤셔넣었다. 뒤이어 그는 공병삽으로 죄악적인 방공굴에 흙을 파서 마구 처넣었다. “아빠, 왜 이래요?” 문걸은 정신나간 사람 같았다. 그러나 정신이 나가지 않았다. 너무나도 정신이 똑똑했다. “여긴 더러운 교역을 벌린 함정이야. 숱한 녀자들을 훌러덩 빠지게 한 추악한 수렁이야. 죄악의 구렁텅이야!” 지예는 소나무에 가려진 방공굴 어귀를 들여다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빠, 방공굴인데요. 함정이라니요?” 문걸은 삽으로 흙을 처넣으면서 중얼거렸다. “여긴 참사랑의 블랙홀이야! 몽땅 파묻어버려야 해.”      지예는 억이 막혔다.      "언제까지 파묻어야 이 깊은 방공굴을 다 파묻는다고 이래요?" 그제야 지예는 조금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어찌 분통이 터지는 아빠의 심정을 다 알 수야 있으랴!        혹시 춘희 박사나 알가? 춘희박사는   저 먼 발치에 오도카니 서서 묵묵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녀로봇은 문걸이 하는 행세가 납득되지 않아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삼림경찰들은 먼 발치에서 다가오면서 불편한 말을 주고 받았다. "저 사람, 저게 미쳤잖아?"      "애꿎은 소나무는 왜 찍어?"      "함정이라니?"      "정신병자야!"      "아니오. 체포하기오."     문걸이 아글타글하면서 한뉘 쌓아올린 참사랑 신기루가 억장이 무너지듯이 와그르르 무너져 참사랑의 블랙홀을 파묻어버리고 있었다. 산새들이 놀라 포로롱포로롱 날아났다. 깸알을 물어들이던 다람쥐도 놀라 소나무 위로 쪼르르 바라올라갔다. 고놈은 나무가지를 타고 매달려 놀란 눈을 깜빡이며 문걸이 방공굴에 삽으로 흙을 퍼치는 것을 바라보았다.       
254    대하소설 졸혼(18) 김장혁 댓글:  조회:1177  추천:0  2022-06-12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28. 망아산 수림 미스터리(mystery)       록음이 짙은 여름의 어느 날, 황혼락조가 소나무숲에 부채살처럼 누렇게 비껴들었다.       어느 하루 정호는 수사망에서 잠시 풀려나자 정희를 데리고 망아산 수림에 등산하러 갔다.         며칠 전에 정호는 성호와 함께 문걸의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문걸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미친 소리를 치면서 침대 옆에 놓은 보온병이랑 마구 땅바닥에 내팽개치며 광기를 부렸다. 정호는 도리머리질하면서도 속으로는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문걸이 정신을 차리는 날에는 친구지처마저 릉욕한 자기 추악한 정체가 드러나기 때문이였다. (그럼 어떻게 낯을 들고 살아? 의리심이 강한 성호랑 범송이랑 종호랑 나를 가만 놔두겠는가.) 문걸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츰 간혹 정신을 차릴 때도 있었다. 그는 불현듯 망상인지 환각인지 눈 앞에 떠올랐다. 글쎄 망아산 수림에서 영희가 부래지어 바람에 사자머리들에게 쫓기우는 장면이 피뜩 떠올렸다. “저 강도를 잡아라!” 문걸은 병상에서 뛰여내려 신짝을 벗어쥐고 문을 박차고 뛰여나갔다. “아버지!” 지예가 뒤쫓아나갔다. 춘희의사와 간호원도 뒤쫓아나갔다. 남자 의사 몇몇이 뛰여와 붙잡아서야 문걸을 병실에 압송하듯 데려다 침대에 앉혀 놓을 수 있었다. 순간 문걸은 오만가지 추측이 다 머리 터지게 번개쳤다. (혹시 그때 영희는 망아산에서 사자머리한테 당하지 않았을가? 영희는 그날 왜 혼자 망아산에 갔을가?) 생각할수록 미궁 같은 미스테리에 빠졌다. (죽은 영희하구 물어본들 무슨 쓸데 있는가?) 문걸은 숫처녀 하나 차례지지 않은 자기 인생 너무 허무했다. 이제껏 허위에 속혀 영희와 산 자기 30년 인생이 너무나도 허무해 김빠진 공처럼 쏘파에 풀썩 물앉아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였다. “안돼. 흉수 사자머리를 나포해 진실을 밝여내야 해.” 그는 지예와 함께 택시에 앉아 공안국 형사수사대대로 달려갔다.         정호는 명도다방을 차려줬는데도 정희가 자꾸 새 다방을 차리겠다고 돈을 대달라고 징징거려 시끄러웠다. 아니, 어떤 때에는 소리 없는 총이 있었으면 죽여치우고 싶었다.       (이년은 날 좋아한게 아니라 내 돈을 빨아내자는게야. 언제든지 오국장을 배신한 것처럼  날 배신할 뺑덕이에미야. 요즘엔 하영을 찾아가서 협박한다고 하잖는가. 뭐? 자기한테 30만원 가져가지 않으면 미국 모텔에서 나하구 하영이, 자기까지 셋이 벌린 집단섹스한 추문을 세상에 다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고 하잖는가. 음험하기 짝이 없는 년. 네년 오국장도 그렇게 협박해서 광고회사 부총경리까지 해먹었지? 재무과장까지 겸해 광고회사 돈을 람용하고 떼먹고 한국에 달아났댔지. 이년 그저 ...)       정호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는 정희를 시름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정호는 이제껏 형사사건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는 항상 형사와 민사 사이에서 맴돌면서 교묘하게 법망을 벗어나군 했다. 설상가상 검사와 경찰들의 감시를 받는 처지에서 집이 있어도 들어갈 수 없어 정희네 명도다방에 물러앉아 사는 형편이 아닌가. 그래서 아직 그녀를 떼버릴 수도 없었다. 정희를 달래려고 그저 “후에 보자”고 슬슬 달래는 수 밖에 없었다. (이년은 장구하게 데리고 살 년이 아니야. 그저 림시로 이용해 먹으면 다야.)       정호는 의심스런 녀자라고 일단 점 찍으면 속으로 경계하면서 놀았다.       이날도 정희 속뽑이도 해보고 다독이려고 망아산 수림으로 들놀이를 하자고 데리고 왔다. 정호가 어찌나 많은 미인들을 데리고 와서 놀았던지 이젠 방공굴로 가는 수림에 한가닥의  빤빤한 오솔길이 났을 지경이였다.      정호는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날가 봐 앞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방공굴 쪽으로 들어가는 수림 속 언덕에 난 오솔길을 따라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뒤에서 멀찍이 정희가 느릿느릿 따라왔다.      정희는 뒤따라 걸으면서 사진을 찍는다, 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 머리에 얹는다 하면서 걷다나니 남편과 점점  멀리 떨어졌다. 정호는 정희가 인차 뒤따라 오겠지 하고 앞에서 오솔길을 따라 걸음발을 다그쳤다. 정희는 앞에서 정호가 멀리 간 줄도 모르고 계곡에 내려가자 찰찰 흐르는 맑은 벽계수를 물병에 담아 마시고 스적스적 맞은편 수림 속 둔덕 오솔길로 올라갔다. 그녀가 단풍나무숲이 우거진 수림 속 오솔길에 이르렀을 때였다. “꼼짝 말엇!” 갑자기 단풍나무 숲에서 텁쑥한 사자머리가 뛰쳐나왔다. “소리치면 죽인다!” 그 놈은 시퍼런 비수를 그녀의 목에 대며 위협했다. 그 놈은 그녀의 목에서 금목걸이를 벗겨냈다. “사람 살려라!” 그녀는 단말마적으로 고함치며 그놈의 비수를 틀어쥐고 반항했다. 그 놈은 등산객들이 모여들면 붙잡힐가 봐 겁나 비수로 그녀의 가슴을 푹푹  찔렀다. 그러나 그녀가 악을 쓰며 손으로 비수를 막는 바람에 비수는 빗나가며 살갗을 긁어놓았다. “강도를 붙잡아라!” 그녀는 피못 속에 쓰러지면서도 흉수의 바지가랭이를 붙잡고 고함쳤다. “놔!” 흉수는 발길로 그녀를 차넘겼다. 그러나 정희는 바지가랭이를 꽉 붙잡고 강도의 사투구니에 손을 넣어 그걸 꽉 틀어쥐였다. “아야!마야!(哎呀!妈呀!)” 그 놈이 사타구니를 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 찰나 정희는 입으로 강도의 손을 꽉 깨물었다. 정호는 뒤에서 나영의 고함소리를 듣고 부랴부랴 달려왔다. 정희는 그때도 강도를 놓지 않고 박투했다. 정호는 강도가 정희를 비수로 마구 찍고 발길로 차는데도 멍청히 서서 주춤거렸다. “최국장! 빨리 강도를 붙잡아요!” 그러나 정호는 떡 서서 구경했다. (죽어라. 더러운 년,) 정호는 이 기회에 강도 손을 빌어 정희를 죽이자고 들었다. (네년은 죽어야 해. 네 년이 죽어야 나와 하영을 구할 수 있어. 돈달라고 징징거릴 년도 없어질게구. 내 정체를 만천하에 공개해? 네년은 강도 란도질에 썩어져야 해!) 정희는  애원에 찬 눈길을 보내며 정호 구원의 손길을 바랐다. 그러나 정호는 멍청히 팔짱을 끼고 서서 구경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비굴한 겁쟁이!) 정희는 원망에 찬 눈길로 정호를 바라보며 손가락질했다. 이윽고 그녀는 가슴을 붙안고 피못속에 푹 쓰러졌다. 정희가 손을 놓자 흉수는 정호를 노려보며 비수를 휘두르면서 위협하고는 나무숲 속으로 꼬리빳빳해 도망쳤다. 정호는 등산객들의 도움을 받아 피못 솟에 쓰러진정희를 120구급차에 실어 병원 구급실에 호송했다. 사건 신고를 받은 수사일군들은 구급실에서 아직 완전히 정신 잃지 않은 나영에게서 사건 경위와 흉수의 체모특징을 료해했다. 정희는 가슴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복수심에 완강한 의력으로 사신과 박투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30대 중, 중반 한, 한족, 내 금목걸이 빼앗아갔어요.” ‘체모특징은 기억나오?” “볼, 볼에 까만 기, 기미… 원, 원쑤를…” 정희는 말도 채 마치지 못하고 눈을 스르르 감았다. 쑈크가 왔다. 구급은 계속 됐다. 정호는 수사일군들 앞에서 정희를 모르는 등산객, 아니, 지나가다가 흉수와 싸우고 정희를 구한 정의용사로 자처하면서 자리를 슬그머니 떠났다. 시 공안국 수사일군들은 박동묵 국장의 지시에 따라 정희와 정호가 제공한 흉수의 체모특징 등 단서에 근거해 망아산 주변의 의심스런 사람, 혐의자들에 대한   주단식수사에 달라붙었다. 한 파출소 호적관리를 하는 민경은 인차 역 부근에서 안휘성에서 온 림시거주자 형모를 주요혐의자로 색출해냈다. 그자는 30대 중반이자 흉수의 체모특징처럼 볼에 까만 기미가 있었다. 관할구역 민경은 수사가운데서 형모가 든 세집 주인한테서 형모가 요즘 거동이 수상스럽다는 제보도 받았다. 형모는 녀자친구가 있었는데 세집에서 항상 돈 때문에 말다툼하군 했다. 그런데 어느 하루 저녁에 세집 주인이 들을라니, 녀자친구가  “이 금목걸이는 어데서 난 거야?”라고 묻자 형모가 “길에서 주었다.”고 했다. 수사일군들은 즉시 역부근 세집에서 한창 녀자친구와 희희닥거리는 형모를 나포해 차디찬 쇠고랑이를 절컥 채웠다. 동시에 그자의 녀친의 목에 걸린 금목걸이도 압수했다. 수사일군이 보니 피해자 정희의 목걸이가 틀림없었다. 형모는 수사일군들이 이틀만에 자기를 나포하러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진짜 귀신이 곡할 노릇, 쥐도 새도 모르게 한 짓인데 잡힐줄이야.) 형모는 처음에는 수사일군들의 심문에 딱 잡아뗐다. 그도 살인했으면 죽는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물증- 금목걸이 있는데야 무슨 수로 생떼질을 계속한단 말인가. “탄백하겠습니다. 그날 내가 강도질했습니다.” 형모는 대가리를 푹 숙였다. 탄백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녀자친구 어찌나 돈 없어 못 친하겠다는지. 강도질해 녀자친구한테 돈을 주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날 망아산 수림에서 면바로 혼자 등산하는 녀자를 보고 강도질했습니다. 그날 금목걸이를 빼앗아다가 녀자친구한테 줬습니다.” “왜 피해자를 살해했는가? 원쑤 진 일 있는가?” “살해라니오? 그 녀자 죽었습니까?” 그는 아직 피해자 정희 생사를 모르고 있었다. “난 그저 돈과 금목걸이를 빼앗자고 그랬지. 죽이자고 하진 않았습니다. 금목걸이를 빼앗자는데 그 녀자 반항하기에 비수로 위협했을뿐입니다. 죽을줄은 진짜 몰랐습니다.” “닥쳣! 비수로 여러번 찍어놓고서도 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다른 범죄사실도 탄백하라.” 수사일군들은 형모가 다른 범죄사실이 있는가 해 속뽑이를 하려고 피해자 정희가 죽었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형모는 다른 형사사건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 딱 잡아뗐다. 기민한 수사일군들은 이틀만에 이 사건을 해명하였다. 그러나 그에 그치지 않고 해명하지 못한 망아산 수림 사자머리들의 숱한 형사사건을 형모와 다른 혐의자들과 련계시켜 계속 수사했다. 수사일군들은 형모 왼쪽볼의 기미와 사자머리를 눈박아보았다. 이전에 문걸이 제보한 단서와 영희 생전에 제공한 흉수의 체모특징에 근거해 옛날 망아산 수림에서 영희를 강간하려던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판단했다. 그 강간미수사건은 3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형모 나이랑 봐서 맞지 않았던 것이다. 사인정탐으로 소문난 성호가 박동묵 국장을 찾아가 오정룡이 딱 30년 전 영희강간미수사건에 혐의가 있다고 신고했다. “오정룡은 공상국 오국장의 동생 아닌가? 그가 그럴 수 있겠소?” 박국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뒤를 달았다. “천천히 관찰해보기오.” 망아산에서 련이어 악성형사사건이 발생하자 공안국에서는 망아산 등산구에 경찰수를 늘였다. 그러나 몇해 사이 련속부절히 망아산 수림에서 계속 형사사건이 발생했다. 그리하여 이번에 수사일군들은 오정룡을 수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사일군들은 일루의 사건해명의 실마리라도 놓칠 수 없었다. “넌 다 탄백하지 않은 죄행이 있다.” “뭘 말인가요?” “망아산 수림 방공굴 부근에서 무슨 짓을 했는가?” “아니, 방공굴에서 뭘 한게 없는데요. 난 강도질한 적도 없는데두.” “방공굴 부근에서 술 마시면서 련애하던 녀자를 네놈이 쇠몽치로 때려죽였다는 혐의가 있다.”  “아니, 생사람 잡지 마오.” “단서가 있다.” 며칠 전에 망아산 수림 방공굴 부근에서 정호는 하영과 함께 명태에 맥주를 마시면서 희희닥거리고 있었다. 20대 말 하영은  어린 나이에  야심이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최정호 국장한테 미인계를 써서 가무단 단장이 될가고 너덜거렸다.        이날도 하영은 정호를 불러내 어디가 놀자고 했다. 그러자 정호는 하영을 데리고 여기 수림 속에 왔던 것이다. 하영은 마른 명태를 쪽 찢어 초장에 묻혀 정호 입에 가져갔다. "아, 하시오." 정호가 두툼한 입술을 쫙 벌리자 마른 명태를 밀어넣어줬다. "최국장님, 절 언제쯤 단장으로 제발시키겠습니까?" 정호는 마른 명태를 질근질근 씹으며 말했다. "얘, 야심도 엉큼하구나. 예술인은 정치에 너무 관심을 가지면 예술을 하지 못해. 네 나이에 성악조 조장을 해도 괜찮아. 가수는 노래로 인기를 모으고 세상에 이름을 남겨야 하느니라." 하영은 정호의 무릎에 올라앉으면서 서적을 썼다. "최국장님, 전 단장자리를 바라고 처녀 몸도 다 최국장님께 드렸습니다. 미국 모텔에서, 그것도 정희 언니 앞에서 창피한 것두 모르고 추태를 보이면서 제 모든 걸 다 주었습니다. 최국장님, 전 성악조 조장만 하긴 너무 아까운 인재 아닙니까?" 정호는 억이 막혀했다. 하영은 근본 정치를 할 싹이 아니였다.         "하영이, 하영이 귀엽고 믿기에 충고해줄게. 정치를 하려면 남에게 빈 틈을 절대 보이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넌 이미 정희한테 빈 틈을 보여주었어." "뭔데요?" "봐라. 뭔지 기억도 나지 않지? 미국 모텔에서 있은 일이지. 나하구 그런 일은 아무도 몰래 은밀히 해야 하는데. 그날 뭐야? 정희한테 꼬리를 단단히 밟혀서 지금 협박당하지 않아? 정희 입이 터지면 언제든지 우리 둘 다 끝장이야. 단장은 하기는 커녕 가무단에서 머리를 들고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를 수 있겠느냐? 그런 민감한 일 손톰만큼이라도 등한히 해선 안돼." "정희 언니 물고 늘어질줄은 정말 몰랐죠. 정희나 내나 다 최국장님을 믿고 따르는 녀자니깐. 일 없으리고 여겼는데요. " 하영은 울상이 돼 정호를 흘겨보았다. "어째 그때 날 따라오지 말라고 말리지 않았는가요?"  정호는 하영을 끌어안고 잔등을 다독여주었다. "그날 우릴 따라가자고 악을 딱딱 쓰는 널 어떻게 말리니. 내 있는 한 너무 근심하진 말아라." 하영은 정호 넓은 품에 안기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글쎄, 자기도 함께 놀았는데 정희 그 일을 감히 공개하겠습니까? " "정희는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음험한 뺑덕이에미야. 꼭 제 명에 썩어지지 못할 년이야." " 전번에두 천벌을 맞아 망아산에서 강도를 만났지. 흥!" "정희, 그 개쌍년은 진짜 시한폭탄이야. 내야 이젠 성 쌓고 나머지 돌이지만. 하영이, 넌 전도 창창한 인기가수인데. 어쩌지?" "병원에서 구급한다던데요. 그 년이 썩어지지 않았습디까?" "병원에 보러 갔댔는데 아직 숨이 간들간들 붙어있더라." "그년 콱 급살맞아야 하는데. 목숨이 질기기도 하다. 참."   하영은 정호의 목을 꼭 끌어안고 깊숙한 우멍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전 최국장만 믿겠습니다. 우리 둘이 그런 일 없다고 딱 잡아떼면 정흰들 무슨 수 있겠습니까? 기왕 이렇게 된바하고는 절 단장으로 만들어주십시오. 예?" 그러나 정호의 대답은 허무맹랑했다. "얘, 요 귀여운 것아, 너 언제까지 미인계로 바라오를거냐? 대학교에서도 미인계를 써서 학생회 부회장 했지?" "천만에 말씀." 정호는 하영의 오똑코를 살짝 비틀었다. "요 귀염둥이야. 내한텐 괜찮아. 솔직이 말해라. 그래야 널 도와주지." 하여간 정호는 녀자들 속뽑이 하는데는 이골이 텄다. 정치상에서 천진한 하영은 숨기지 못하고 토설했다. "대학교 학생부 서기한테 좀 알락거렸을 뿐인데요. ㅎㅎㅎ. 가무단 단장 정말 욕심나는데요. 최국장님, 대답할 거죠?" "힘써 보자. 학생회는 어지간히 알락거려도 될 수 있어. 그러나 가무단 단장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야." "그럼 제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호는 자못 정색했다. "조직원칙도 있는 거야." "꽤나 비싸게 놉니다. 처녀 몸을 1년 넘어 들이댔는데 아직도 안돼요?" "허허허." 정호는 허구픈 너털웃음을 웃었다. "어떻게 성악조 조장으로부터 단통 단장으로 뛰여올라가니? 적어도 부장, 부단장 쯤 한 경력이 있어야지. 황차 난 국장도 아닌데." "흥!' 하영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무릎에서 내려앉으면서 앵돌아졌다. "내 세살자리 앤가 하는가요? 국장을 내놔도 막후조종하는 태상황 아닙니까?" "국순시원은 아무 것도 아니야. 2선에 물러난 페물짝이지. 성 쌓고 나머지 돌이야." "아니죠. 전번에 인사과장도 최순시원 한마디 말에 나떨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런 일 있어. 요새  인사과장을 복직시킬 예산이야." "그러게. 최국장님이야 말로 문화국을 쥐락펴락하는 실세죠. 새 국장 어디 힘씁니까? 그도 최국장이 올려놓은 국장이니깐. 매사에 최국장 눈치 보지 않습니까." "허허허. 이런 말 마구 하지 말라. 국장 눈에 나면 끝장이야. 내 훌 죽으면 누가 널 보호해주겠느냐?" "그때 그때 정치를 하면 되죠. 먼 훗날까지 언제 생각할 새 있는가요?" "귀여운 것아. 내 없어진 그때 국장한테 매달리면 된다. 이거지? 응?" 정호는 두 손으로 하영의 볼을 매만지며 앵두입을 들여다보았다. 하영은 뭘 기다리는지 눈을 살며시 감고 익어 벌어진 조개속살처럼 빨간 입을 빠끔히 벌리며 정호 앞에 내댔다. 산 바람에 가지색머리카락이 흩날려 감아버린 그녀의 눈을 하느작하느작 건드린다. 정호는 고 연분홍복숭아 속 같은 앵두입에 뽁 키스해주었다. "난  요 입으로 부른 노래소리가 젤 듣기 좋더라." "무대  위 노래를 그래는가요? " "무대 위 노래보다도 침대 위에서 부른 노래 더 듣기 간드러지더라. 허허허." "그래요? 그럼 오늘 신음노래 맘껏 들어봐요." 정호는 고 앵두입에 재차 뽁 키스를 안겼다. "귀여운 요것아, 나이에 비해 진짜 정치에 민감하구나. 제 앞의 생존정치는 하겠구나." "적어도 예술학원 때 대학학생총회 부회장인데요." "그래, 그래. 알지." 정호는 제법 선배 틀을 차리며 하영에게 귀띔해주었다.  "넌 정치에 일찌기 눈을 뜬  야심가야. 그러나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 벼슬도 한계단씩 밟아 올라가야 한다. 어떤 땐 지나친 조급정서가 아까운 인재를 해치는 경우가 있느니라. 정치는 미인계에만 의거해선 안돼. 넌 가수이기에 노래로 이름을 날리고 노래를 실무자본으로 삼아 정계에도 발을 딱 붙이고 한발작한발작 바라올라가야 해. 자기 실력으로 올라가야 한단 말이다. 이건 내 교훈이야.  자기 실력으로 올라가면 얼마나 당당하냐?" 하영은 외까풀눈을 흘겼다. "픽," "내하구 영희 며칠 전에 로스안젤레스에서 춘 바레무를 봤지?" "노벨예술상이라도 탈수도 있는 걸작이죠." "영희를 봐라. 국가1급무용수 아니냐? 그러나 영희는 권력에 흥취없고 무용예술에만 전념한단 말이야." :"그래도 영희언닌 무용과장 아닌가요?" "무용권위니깐. 누가 그가 과장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느냐?" "아이구, 제가 언제 영희언니처럼 실력으로 선배가수들을 이기고 올라가겠습니까? 나영언니는 무슨 실력이 있어서 해설과 과장으로부터 부관장 됐습니까? 오래잖아 부관장 그만두고 관장으로 부임된다면서요. 나이 어리다고 모르는가 합니까? 여자들 눈은 속이지 못합니다. 미국 간 미인군단에서 한자리씩 하지 않은 미녀 어디 있는가요? 흥!" 순간 정호는 온밤 자기한테 정성을 다하던 정희와 하영을 떠올리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자기 실력에만 의거해선 안되지. 외교도 해야 하는 거야. 넌 이 도리를 너무 일찌기 안는 거 같다. 자기  실력에 외교를 해야 직승비행기를 탈 수 있지. 실력과 외교를 결합해 병진해야 해."  미국에 가서 정희와 하영을 데리고 모텔에 가서 논 그날 밤중,  그들 셋이 희희닥닥거리며 호텔로 들어서자 창문이 벌컥벌컥 열렸다.  "최국장님, 밤생활 즐거웠습니까?!" "승리적인  개선을 환영합니다!" 미인군단의 고함소리 일제히 우뢰처럼 들렸다 그때까지  미인군단은  밤중까지 자지 않고 정호의 침실 문과 바깥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뚝이 터졌다...  정호는 유쾌한 추억을 떠올리며 인차 대답해버렸다. "알았다. 알았어. 한자리 시킬게." 그는 돈을 자꾸 달라고 칭얼거리는 정희보다 권력을 달라는 나영이나 하영이 퍽 쉬웠다. 나영은 처음에는 관장을 욕심냈지만 후에는 진짜 정호와의 섹스사랑(성애)에 빠져 관장이고 돈이고 덜 욕심냈다. 그런데 하영은 달랐다. 나이에 비해 권세욕이 강했다.   "그럼 절 뭘 시키겠습니까?" 색과 권력의 더러운 교역이 이뤄지는 순간이였다. "어디 보자. 우리 귀여운 하영을 뭘 시킬가? 예술부 부장 시킬가?" "아니, 고작 고걸, 부단장 시켜줍소서. 네? 태상황마마 평생 잘해들릴게요." 하영은 다시 정호의 무릎에 앉아 목을 끌어안고 애교를 부렸다. "오. 부장을 얼마간 시켰다가 부단장 시킬게." "부단장 몇해 하면 단장 시킬거죠." "그래."  하영은 정호 목을 꼭 끌어안고 토설했다. "최국장님, 실언하지 마십시오." "그래, 근심하지 말라." 년놈은 수작을 주고 받으며 연기를 했다. "최국장님, 사랑해요. 저의 모든 걸 최국장님께 다 드릴게요." 정호는 우멍눈을 화등잔처럼 뜨고 하영의 청순한 눈을 들여다보며 웃으며 능청을 떨었다.  "날 다 주고 이담 신랑한텐 뭘 주겠느냐?" 하영은 피씩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시집은 누구나 다 가죠. 그러나 가무단 단장은 누구나 다 합니까? 오늘 최국장님께 저의 처녀를 다 바쳐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 "ㅎㅎㅎ. 아우, 요 귀염둥이야! 언제 우리 어디 놀러 갈가?" 정호가 불시에 내놓은 제안에 하영은 눈을 화등잔처럼 뜨고 기대에 찬 눈길을 보냈다.  "그때 가서 알려줄게. 난 널 어디로든 데리고 다니고 싶구나."       하영은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최국장님, 진짜 미인계에 훌러덩 깊숙이 빠졌군요. 하영의 함정에 빠지면 나올 궁리 마세요.) 하영은 속으로 이렇게 잘코사니를 부르면서도 겉으로는 이렇게 종알거렸다.  "하영도 그래요. 전 태상황마마를 따라 천애지각까지라도 따라 가겠어요."       하영은 오쫄 일어나 성감 나는 엉덩춤까지 당실당실 추었다.       년놈들이 거치른 숨을 씩씩거릴 때였다.         갑자기 복면강도가 이리처럼 슬슬 나무숲을 헤치면서 다가올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복면강도는 불시에 덮쳐들어 정호의 뒤통수를 쇠몽치로 까눕혔다.      그 놈은 바들바들 떨며 아우성치는 하영한테 다가가 쇠몽치로 머리를 내리쳐 쓰러뜨리고 괴춤을 내리깠다. 하영이 반항하자 또 쇠몽치로 머리를 내리쳤다.       그 놈은 까무러친 하영을 미친듯이 강간하였다.        그때 까무러쳤던 정호가 기적적으로 정신을 차리였다. 그는 천천히 머리를 매만지며 일어나 앉았다. 그는 슬그머니 일어나 한창 하영을 깔아뭉개는 복면강도 대가리를 발길로 걷어찼다. 강도 놈은 뒤에서 인기척이 나자 옆으로 날래게 피하며 발길을 날렸다. “억!” 정호가 아래배를 끌어안으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복면강도는 종아리에서 비수를 쓱 뽑아 들었다. 정호는 도정신하며 하영을 보고 소리쳤다. “빨리 도망쳐!” 하영은 정호가 강도를 막는 틈에 벌벌 기여 일어나 다리야 날 살려라고 수림 속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강도는 이를 악물고 비수를 휘두르면서 정호한테 덮쳐들었다. 정호는 필사적으로 쇠몽치를 휘둘러 비수를 막았다. 쟁강! 비수와 쇠몽치가 부딪쳐 불찌가 튕겼다. 그런데 정호는 쇠몽치에 맞은 미열이 세서 정신이 흐리마리한데다가 힘도 빠졌고 반응도 굼떴다. 복면강도는 비수로 헛찌르며 달려들다가 쇠몽치가 쳐들리는 순간 허리를 굽히며 비수로 정호의 배를 푹 찔렀다. “억!” 정호는 쇠몽치를 툭 떨어뜨리며 배를 부여안았다. 극악한 강도는 정호의 배에 비수를 재차 푹 박았다. 쿵! 정호는 피못 속에 쓰러졌다. "썩어져라!" 복면강도는 쓰러진 정호 사타구니를 걷어차며 욕설을 퍼부었다. "개새끼!" 강도는 비수를 뽑아들고 하영을 뒤쫓아갔다. “사람 살려라!” 하영은 고함치며 수림에서 달아났다. 그러나 다리 떨려 빨리 도망치지 못했다. 그리하여 드디여 강도놈한테 뒤덜미를 잡혔다. “순순히 말들엇. 안 그럼 죽어!” 강도놈은 한어로 경고했다. 하영은 마구 반항하며 울고 불고 아우성쳤다. “소리치지 말엇! 죽인다!” 하영은 정호가 비수에 찔려 쓰러지는 걸 보았는지라 단말마적으로 반항했다. 강도놈은 칼등으로 하영의 머리를 강타했다. “앗!” 비명소리와 함께 하영은 또 까무러쳤다.  복면강도놈은 하영을 수림 속 우멍한 방공굴로 끌고 갔다. 수풀이 우거진 방공호에서 그 놈은  시름놓고 하영을 미친듯이 강간했다.      가까워오는 등산객들의 말소리에  강도놈은 아쉬운대로 부랴부랴 괴춤을 춰 입었다.       강도놈은 자기를 본 녀성을 살려뒀다간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극악무도한 강도놈은 쇠몽치를 들어 하영의 머리를 연신 내리쳤다. 하영은 신음소리 한번 지르고는 공포에 지른 눈으로 방공굴 천정 한 곳을 쏘아보며 까딱하지도 못했다. 강도놈은   방공굴에서 기여나와 수림속으로 허둥지둥 사라졌다 …        이튿날 피해자 가족에게서 사건신고를 받은 수사일군들은 인차 공안국 제7처에 련계해 피해자 핸드폰의 위치를 추적하였다. 수사일군들은 제7처에서 제공한 피해자 핸드폰 위치에 따라 망아산 수림에서 피해자 정호와 하영을 찾아냈다. 정호는 머리에 중한 둔기상을 입고 비수에 여러군데 찔린 상처를 입고 까무러처져 있었다. 하영은 정호와 그리 멀지 않은 수림 방공호에서 발견됐다. 그런데 정호와 하영은 모두 기적적으로 숨이 가늘게 붙어 있었다. 수사일군들은 즉시 구급차에 정호와 하영을 실어 병원 급진외과에 호송했다. 황선희 박사와 김춘희 박사 등 의료일군들이 정성들여 수술하고 구급한데서야 정호와 하영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수사일군들은 정호와 하영의 신분을 인차 확인했다. 박동묵 국장은 인차 리혼한 6촌매형 정호를 확인해냈다. 그런데 수사일군들은 뒤이어 확인한 피해자녀성은 가무단 유명한 20대 가수 하영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수사일군들은 하영에게서 사건경위와 흉수의 단서를 얻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서른살이나 이상인 국장, 아빠보다도 나이 더 많은 정호와 혼외련을 한 사실이 드러날가봐 입에 빗장을 지르고 열지 않았다. 수사일군들이 그녀의 부모와 에둘러 공작해서야 끝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하영은 강도 체모특징은 말했지만 정호는 입에 담기 꺼려했다. 다만 정호가 자기를 구하려고 강도와 목숨걸고 싸운 사실만은 말했다. 수사일군들은 경탄했다. (놀아도 이렇게 참하고 똑똑한 녀자와 놀아야 하는데. ㅉㅉㅉ) … “넌 이미 살인했기에 사형당할 놈이야. 죽을바엔 어서 탄백해라.” 그러나 형모는 억울해 했다. “아니, 절데 그런 일 없습니다. 내 살해했으면 탄백했을 겁니다. 내 하지 않은 걸 뭘 탄백하란 말이오? 내게 죄를 들씌우진 맙소.” 수사일군들은 서로 눈길을 마주치더니 심문을 한단락 마무리지었다. 그리하여 망아산에서 벌어진 강간, 살인미수사건은 미스터리로 남았다. 그러나 망아산 수림에서 발생한 적지 않은 강간, 강탈, 살인미수, 상해치사사건,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자꾸 정호와 련계되는 것이 이상했다. 박동묵 국장은 량미간을 찌프리고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정호는 가시아버지한테 다리를 놔서 교통민경을 하던 그를 공안국장으로 만든 6촌매형, 아니, 진짜 백골난망의 은인이였다. 한참 후 박국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매형은 참 한심한 사람이야. 아무리 누나와 리혼한 독신이라도 그렇지. 쩍 하면 녀자들을 망아산 수림에 데리고 가서 놀지? 그것도 망아산 수림 속 방공굴 어귀, 그  동일한 지점에서 녀자들을 번갈아 데리고 가서 논단 말인가? 참 한심한 사람이야.)  
253    대하소설 졸혼(17) 김장혁 댓글:  조회:1381  추천:0  2022-06-11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27. 뺑덕이에미      정호는 미국에 간 나흘 밤에야 정희를 불러냈다. 정희는 속으로는 반기면서도 겉으로는 별로 시답잖은 표정을 지었다.       정희는 못내 젤 큰언니 영희와 젤 막내 나영을 몹시 질투했다.      (픽, 낫살이나 처먹은게 주책 있소? 저 주름투성이 조개턱을 보기만 해도 구역질 나. 무대에서 바레나 온전히 출게지. 부끄럽지 않아? 아무리 자유 미국이라도 그렇지. 무대에서 어떻게 섹스시늉을 해? 숱한 사람들 눈이 무섭지도 않아? 귀국하면 보자. 내 입이 터지면 네년이 다시 무대에 오르는가?) 로스안젤레스에서 나영이 패션모델무대에 오르자 정희는 못내 질투하며 째려보았다. (픽, 너도 모델이냐? 전람관에서 해설사나 할게지. 뭐? 부관장? 갈보년, 감히 이 명모델과 한 패선무대에 올라? 흥! 보기도 눈꼴사납다.) 정희는 시내에서도 인기모델이였다. 처음에 그녀는 광고모델로 활약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정호가 정희를 알게 된 건 우연한 파티 기회였다. 한번은 오청룡 국장이 부른 파티에 갔다가 정희를 처음 만났다. 그날 오청룡은 정호 국장한테 애인상납하려고 이런 애인파티를 열었던 것이다. 아닌걸싸나, 호색한 정호는 첫눈에 아양을 떠는 정희한테 반해버렸다. 그는 오국장이 발라맞추면서 뭐라고 지껄이던지 듣지도 못하고 멍청히 앉아 정희 박바가지 같은 가슴에만 눈길을  오르내렸다. 정호는 눈독을 들인 미녀를 자기 무릎 아래에 깔고 들어앉지 않고서는 놔두지 않았다. 정희도 숱한 사내들을 자기 치마폭에 감싸본 갈보년인지라 제꺽 정호의 불타는 눈길에서 이상한 빛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해쭉 눈웃음을 지으며 은근히 정호한테 살짝살짝 추파를 보냈다. 년놈들의 눈길이 술상 위에서 부딪혀 누구도 몰래 번개불이 번쩍였다. 오청룡은 모든 걸 모르는 척하였다. 그는 진작 자꾸 돈을 달라고 칭얼거리는 정희한테 배기지 못해 떼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정호한테 줘버릴 작정으로 오늘 성상납중매파티를 열었던 것이다. 오청룡은 정희 앞에서 고의로 정호를 “형님”, “형님” 하면서 깎듯이 대접하고 올리춰댔다. 그래야 정희가 정호한테 반변해 넘어갈게 아닌가. 정희는 리해득실에 따라 남자를 갈아타기로 밥 먹듯 하는 배신자, 갈보였다. 그녀는 젤 처음에는 남편이 돈을 벌지 못한다고 타발하더니 그 남편을 배신하고 영호라는 화가한테 붙어서 모델을 했다. 후에 영호를 통해 광고회사 총경리 굉팔을 알자 굉팔한테 붙어서 광고회사 모델로 들어갔다. 얼마 안 가서 영호 화가를 배신하고 리굉팔 총경리한테 붙어서 돈깨나 벌었다. 그런데 광고모델만 해선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굉팔을 버리고 로씨야 울라지보스또크에 가서 한국 패션공장에 들어갔다. 거기에서 한국 사장의 현지처로 행세하며 한국 출국수속을 부탁했다. 그러나 사장은 정희를 실컷 데리고 놀고는 한국출국수속도 해주지 않고 수염을 쓱 닦고는 한국으로 훌 가바렸다.       귀국한 후 정희는 또다시 리굉팔한테 붙어서 광고모델을 하다가 동료 해연의 남편과 눈이 맞아 바람피운 사실이 발각되였다. 그래서 광고모델도 하지 못하고 광고회사에서 쫓겨났다.     그후 굉팔을 통해 우연한 술좌석에서 오청룡 국장을 알게 되면서 총경리 리굉팔을 배신하고 오청룡 국장한테 찰싸닥 붙었다. 그런데 음험한 굉팔은 오청룡과 정희가 그걸 하면서 노는 장면을 옆방에서 몰카로 비디오촬영을 해두었다.      정희는 오국장이 키스하려고 하자 고의로 빨간 립스틱으로  오국장의 온 낯에 다닥다닥 빨간 입술도장을 찍어놔 망신시킨다. 리굉팔은 여자 입술도장이 다닥다닥 찍힌 낯빤대기를 확대해 복사해두고 오청룡 국장을 위협하며 총경리 직을 유지하려고 들었다. 정희는 오국장과 굉팔을 등에 업고 광고회사 부총경리 겸 재무과 과장까지 해먹었다.     오국장과 리굉팔이 최헤영 국장한테 나포돼 탐오죄와 공금람용죄로 법원에 기소되자 정희는 오국장과 굉팔을 버리고 기공으로 돈을 깨나 버는 고승준이라는 의사를 갈아턌다. 그녀는 광고회사 돈을 빼내가지고 고승준과 함께 한국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한국 보건복지부의 감시가 너무 심해 한국 의사자격증이 없은 고의사가 기공으로 돈을 잘 벌지 못했다. 오국장과 굉팔이 감옥에서 나왔다는 말을 듣자 정희는 고의사를 가차없이 버리고 귀국해 오국장한테 붙어 돈을 짜내려고 들었다. 그런데 오국장은 정신병자로 가장하고 감옥에서 보석치료로 나왔기에 항상 정신병자처럼 놀아야 했다.     정희는 정신병자질하는 오국장과 살기 싫어하던 차 최정호 국장을 마나 또 오국장을 배신하고 최국장을 갈아 탈 작정이였다.     애인파티에서 정희와 나영의 감수는 정반대였다. 나영은 어깨 으쓱해 큰아주머니 행세를 하며 정희마저 째려보며 깔보기까지 했다. 그럴수록 정희는 정호 앞에 굽실거리는 오국장이 비굴해보이고 바보처럼 보였다. 정희는 나영을 질투에 찬 눈길로  보면서 속으로 이를 갈았다. (누구 앞에서 개턱을 쳐들어? 네년이 나이 어린 걸 턱대고 으시대지. 어디 두고 보자. 최국장을 내 남자로 만들지 않는가?)       정희는 살살 실웃음을 지으며 맥주병을 따가지고 최국장 가까이 다가섰다. 정희가 실웃음을 살살 지으며 볼우물을 옴폭 팔 때면 진짜 매력적이였다. 웬간한 남자는 간이 녹아붙고 만다. 정호는 처음에는 정희가 간사한 뺑덕이에미인줄도 모르고 확 끌려들었다. 정희는 아양을 떨기 시작했다. “최국장님, 이렇게 알게 돼 기뻐요. 한잔 드리죠.” 정호는 오청룡의 눈치를 힐끔 보며 잔을 들었다. 정희는 떨리는 손으로 술병을 들어 맥주를 주르르 붓기 시작했다. 술병이 바드드 떨려 맥주잔을 뜨드득 맞쪼았다. 그녀는 고의로 정호 술잔에 맥주가 넘치게 부었다. 맥주가 주르르 흘러 최국장의 팔소매아 바지가랭이를 적셨다. “아이구머니, 이걸 어쩌나?” 그녀는 황급히 휴지를 쏙 빼들고 상 밑에서 정호 바지를 닦는 척하며 허벅다리 안쪽을 살짝 꼬집어놓았다. “아!” 정호는 펄쩍 덴겁한듯, 아니, 전기에라도 붙은듯이 잔을 탕 떨어뜨렸다. “어마나!” 술잔이 박산났다. 정희는 두 손을 맞잡고 우쭐 일어났다. 나영은 옆으로 다가와 손수건으로 맥주벼락을 맞은 정호 바지를 닦아드렸다. 정희는 두 손을 맞잡고 어쩔줄 모르면서 종알거렸다. “어쩜 좋아? 제가 빨아드릴가요?” 그 말에 정호는 능청을 떨었다. “뭘? 여기서 뭘 빤다고 그러오? 허허허.“ 그러고 나서 정호는 나영의 눈치를 힐끔 곁눈질했다. 정희는 한걸음 더 나갔다. “그럼 제가 배상해드리죠.” 정호는 황급히 표정관리부터 하며 사양했다. “아니, 천만에 말씀. 난 녀자들한텐 주면 줬지. 배상 따위 받아 본 적 없소.” 그러나 정희는 최국장을 놔주려고 하지 않았다. “래일 최국장님 사무실에 새 바지 사가지고 가죠.” “아니, 날 뭘로 보오. 째째하게 여자들한테서 바지를 배상받았단 말 다 듣겠소. 세상 사람들이 뭐라겠소.” 그런데 이튿날 정희는 진짜 고급 바지와 외투 한벌을 사가지고 최국장을 찾아갔다. 암캐가 꼬리 치는데 굴러떨어진 비게덩이를 먹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정호는 옷을 드리며 자기 품에 와락 안기는 정희를 밀어내면서 짐짓 아닌 보살을 떨며 가면극을 놀았다. “이러지 마오. 정희는 오국장의 애인 아니고 뭐요? 난 친구 애인을 빼앗았단 죄명을 쓰기 싫소.” “네?” “오국장이 알면 날 뭐라겠소. 세상 사람들이 최국장을 친구, 형제도 모르는 의리도 없는 놈이라고 욕하지 않겠소?” 정희는 또 눈웃음을 치며 다가들었다. 그녀는 폴짝 뛰여 정호의 목을 끌어안고 매달렸다. “빼앗다니요? 제가 자원해서 안겼는데요. 전 알아요. 최국장님이 절 좋아한다는 걸.” 정호는 정희를 또 밀어내는 척하였다. “이게 무슨 말이요? 내 언제 절 좋아한다고 했소?” 정희는 식지로 정호의 눈을 가리켰다. “어제 요게 말해주던데요. 날 사랑한다고.” “그래? 꽤나 경험이 있구만.” “그래요. 전 오국장 같은 무골충을 좋아하지 않아요. 최국장 같은 사내대장부를 좋아해요.” “그래두 그렇지. 오국장이 저를 얼마나 금덩이처럼 귀해하오. ㅋㅋ.” “금싸락? 페!” 정희는 뺑덕이에미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국장을 팔아먹고 배신하기 시작하였다. “오국장은 술이나 좋아했지. 진정한 남자 아닙니다.” “어째서?” “술에 절어서 그것도 맥을 추지 못해요. 어쩌지 못하면서도 어찌나 치근거리는지 보기만 해도 구역질납니다.” “오? 그래?” 순간 정호는 청룡과 목욕하러 갔을 때 본 그게 떠올라 피씩 웃었다. “하하하.” 그는 속으로 웃었다. (그러게 본댁도 달아나고 애인들도 몇번 지내보고는 달아났지. ㅉㅉㅉ.” 정희는 오국장을 또 한입 물어재꼈다. 정호 입술에 키스를 쪽 해주고 아양을 떨었다. “오국장은 얼마나 째째하다구. 용돈도 바로 안주고 그저 굉팔한테 손을 내밀게 한단 말입니다.” “오- 그래? 참 사람이. 어쩜 애인을 그렇게 홀대한단 말이오.” 정호는 정희를 내려놓고 문께로 다가가더니 문 밖을 내다보고 쾅 닫아버렸다. 뒤이어 사무실 자물쇠를 절컥 잠갔다. 그는 정희한테 다가와 허리부터 슬슬 끌어안으며 수작을 걸었다. “그래, 이젠 오국장을 배신하고 나하구 친하겠단 말이지.” “네. 그래요. 최국장이야 말로 사내대장부 같아요.” “좋아. 그럼 어디 즐겨보자꾸나.” ...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호는 정희를 여러번 만나 즐기면서도 흠집을 발견하기 시작하였다. 정희는 숱한 남자를 겪어본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그저 오국장의 애인인가 했더니 그렇게 간단한 여자 아니였다. 누가 더 재력이나 권력이 있으면 제꺽 참새가 나무가지 가려 옮겨 앉듯 했다.       정희는 진짜 숱한 남자들을 갈아탄 갈보였다. 그녀는 선후하여 남편, 영호, 한국 사장, 굉팔을 배반했고 나중에 오청룡을 배신하고 정호 품에 안겼다. (또 언제 날 배신할지 누가 아는가? 믿지 못할 년이야. 간에가 붙고 슬개에 붙는 량면파, 배신자야. 아니,  국 순시원까지 내놓으면 언제든지 버리고 도망칠 뺑덕이에미야. 아직 내게 돈이 있으니깐. 잠시 붙어있을 뿐이지. 돈을 다 빨아내면 꼭 떠나갈 거야.” 그러나 정호는 정희를 이용해 먹어야 했다. 미국에 갔을 때도 노래소리 같은 정희의 신음소리 듣기 싶어 나흘 되는 날 밤에 불러냈던 것이다. 그들이 택시를 잡아 타려고 할 때였다. “어데 가는가요? 저도 가요.” 가수 하영이 기다린듯이 호텔 앞 나무숲 속에서 불쑥 나타났다. “아니, 네가 웬 일이냐?” 정희는 아니꼬운 눈길로 하영을 쏘아보았다. “잘 됐소. 함께 가기오.” 정희는 하는 수 없었다. “함께 가서 놀자.” “언니 제일이야.” 정희와 하영은 정호의 량팔을 하나씩 끼고 택시에 다가갔다. 택시는 파도가 넘실거리는 해변가로 달려갔다. 영희를 데리고 왔던 해변가 음악술집 앞에서 택시가 멈춰섰다.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출렁이는 푸르른 바다를 바라보며 각자 제 좋은 생각을 하면서 시원한 맥주를 들었다. 서늘한 바다 바람이 불어와 그들의 끓어번지는 정욕을 시원히 달래주었다. 정희가 대담한 제안을 했다. “우리 모텔에 가서 셋이 즐길가요?” “어떻게?” 하영이 짐짓 눈이 데꾼해졌다. “남녀가 뭘 즐기겠나?” 하영이 환성을 질렀다. “그래도 언니 제일이야. 우리 둘이 이인창을 불러드리면 최국장님이 얼마나 기뻐하겠어요? 안 그래요?” “이인창? 허허허. 듣기 좋아하지.” “우리 무슨 기쁨조요?” “호호호.”      귀국 시간이 점점 닥쳐왔다. 정호는 할 수 없이 하루 밤에 단번에 한 침실에 든 두 미녀를 불러내 놀기도 하였다. 그러잖으면 11명 미녀를 한돌개도 다 돌면서 놀기 어려웠던 것이다. 물론 그 속에 아직 한번도 다쳐보지 못한 애인후부도 있어 다행이었다. 귀국한 후 정희는 탐욕스런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최국장님, 숱한 돈을 해 뭘 해요.” (또, 또, 돈타령이구나. 에이유, 징징거리는게 딱 질색이야.) 그는 선수를 쳐서 정희 입을 틀어막아놔야 했다. “내게 돈이 어디 있니? 순정이 집과 차마저 다 팔아 먹어 일전한푼 없어. 너네 다방에 얹혀 사는 신세 아니냐? 난 언제 감옥에 들어갈지도 몰라.” 정희는 따지고 들었다. “전번에 보마차에 실었던 금은보화하구 돈 찾지 않았는가요? 전번에 순정 언니랑 우리 다방에서 꿍꿍이 치는 걸 다 들었는데요. 누굴 속이려고?” “그걸 찾았으면 널 안줬겠니?” “찾으면 날 좀 주세요. 다방을 더 큰 걸로 차려야겠어요. 순정언니 음악술집처럼 차려놨으면 좋겠는데요.” 정호는 화제를 돌렸다. “정희, 우리 로씨야에 관광가지 않겠소?” “네?” 정희는 외까풀눈을 치켜떴다가 인차 반색했다. “또 미녀군단 친선공연입니까? ㅋㅋㅋ.” “아니, 우리 단둘이.” “단둘이면 참 좋아요.건데 로씨야엔 강도 많다던데요.” “관광단체로 가면 괜찮소.” “네, 그럼 갑시다.” 며칠 후 정희가 여행사에 다녀왔다. 물론 관광비용은 정호가 내놓았다. 정호는 속으로 기뻤다. (아직 공안국에서 날 출국제한조치를 대지 않았을 때 나가 놀자구나. 황선희 보구 빨리 일본 관광수속을 해달라고 재촉해야지. 인사과장 보고도 미국 관광수속을 해달라고 해봐야지. 최혜영 국장님, 저승사자님, 좀 날 놔주시구려.) 정호는 정희를 데리고 관광팀을 따라 로씨야로 달려갔다. 먹칠한듯한 밤중에야 로씨야 한 W시 호텔에 들어섰다. 정호와 정희가 트렁크를 끌고 호텔대청 안에 들어갔다. 허리에 권총을 찬 몇몇 경찰이 걸상에 줄느런히 앉아 카빈총을 무릎에 놓고 여기저기 쏘아보며 입으로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껍질을 퉤퉤 뱉어냈다. 강도가 어찌나 많았으면 호텔을 무장경찰이 다 지키겠는가. 이튿날 그들은 관광뻐스에 앉아 해변가 시내 복판 둔덕에 있는 레닌광장에 가서 레닌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뒤이어 그들은 관광뻐스에 앉아 해변가 백사장으로 갔다. 자유시간이 돼 정호와 정희는 해변가 백사장에서 즐겁게 거닐며 놀았다. 그때 로씨야 사내가 몇몇 금발아가씨들을 데리고 오다가 그들을 만났다. 한 사내가 다가와 정호의 선글라스를 손가락질하며 욕심냈다. “젭쓰까(처녀).” 그 사내는 자기 곁에 있는 금발미녀를 정호한테 밀어주면서 선글라스를 벗어달라고 손가락으로 선글라스를 가리켰다. 정호는 선글라스를 벗어 그 사내를 주었다. 사내는 선글라스를 받아쥐고 금발미녀를 정호한테 안겨주면서 헤벌쭉거리며 로어와 영어로 너스레를 떨었다. “다스비따냐(감사합니다). 프리즈 섹스(섹스하세요.)” 금발미녀는 스스럼없이 정호 팔을 끼더니 손가락으로 백사장 한쪽 구석에 있는 버드나무 아래를 가리켰다. 정호는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면서도 정희 눈치를 흘끔 보았다. 금발미녀도 정희를 건너다보며 “오케이!” 하고 손을 들어 엄지와 식지를 딱 튕겼다. “오케이!” 정희는 동양 여인답잖게 흔쾌히 허용했다. “가서 맘껏 노세요. 제 남편이라고 말리겠습니까? 당신은 국제 미녀들의  공용인데요. 오늘 저녁에 곤한데 잘 됐어요. 호호호.” 정호도 유모아를 했다. “이 금발미녀하구 놀아두 오늘 밤에 근심하지 말라.  ㅎㅎㅎ.” 정희는 정호를 보고 희죽이 웃었다. (나쁜 놈, 국제 바람둥이야. 내 입이 터지면 넌 죽어!)    
252    대하소설 졸혼(16) 김장혁 댓글:  조회:1208  추천:0  2022-06-05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26.나영이       정호는 다방 쏘파에 앉아 커피를 후후 불며 마시면서 우멍눈을 감고 은은한 음악을 감상했다. 순간 미국에 친선공연하러 갔을 때 나영을 데리고 놀던 일이 피뜩피뜩 떠올랐다.       “그때는 참 행복했지.”       한인회에서는 그들 일행을 관광버스에 싣고 세계에서 제일  큰 폭포 니꽈라과폭포를 구경시켰다. 그 웅장한 폭포가 쏟아지면서          천둥 같은 소리 천지를 진동했고 폭포 아래에는 칠색무지개가 곱게 피였다.      정호는 미녀군단과 함께 집체기념합영을 촬영했다.      한인회 사무총장은 미녀들을 따라다니며 군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미녀 하나라도 채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사무총장은 그들을 싣고 이번에는 워싱턴시로 달려갔다.      때마침 일요일이여서 백악관에 들어가 대통령 집무실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정호는 그날 밤에 나영과 미리 약속하고 밤야경을 구경하러 나왔다.       그는 미국에 간 후 밤마다 미녀들을 갈아가면서 불러내 재미를 보았다. 미국에 간지 사흩날 되는 밤에는 영희 다음으로 두번째로 젤 나어린 나영을 불러냈다…        전람관 해설원 출신인 나영은 30대 중반의 애티나는 녀성이였다. 몇해 전에 최정호 국장이 사무실에 그녀를 유인해다가 얼리고 닥쳐 간음해 애인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한번은 최정호 국장이 전람관에 현지검사하러 갔다가 짧은 치마를 입고 해설하는 나영한테 홀딱 반해버렸다. (아, 한 입에 삼켜도 비린내 날거 같잖아.) 정호는 그날 검사는 대충하고 어떻게 하면 나영을 챌 것인가고 궁리했다. 점심에 전람관 관장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게 됐다. 정호는 관장 보고 나영을 불러라고 했다. 눈치빠른 관장은 진작 최국장이 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미리 전람관 1호 미녀 나영을 해설사로 내세웠던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과연 최국장은  나영한테 눈독을 들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관장은 즉시 핸드폰으로 나영을 점심식사하자고 불러내 최국장한테 붙여놓았다. 그후부터 최정호 국장은 쩍하면 나영을 불러 식사하자고 하면서 느슨히 접근해 뭉치돈도 쥐어주면서 구슬렸다. 그런데 나영은 몸값을 잔뜩 높이면서 고까짓 돈 몇푼  받고 선선히 스무살이나 이상인 국장한테 몸을 내번지려는 막돼먹은 녀자는  아니였다.       정호는국장 사무실에서 량미간을 찌프르고 궁리했다. 번개불처럼 피뜩 떠오르는 령감에 번대머리를 탁 쳤다.         어떤 사람들은 정호가 항상 무슨 일을 고민하다가도 피뜩 생각이 떠오르면 대머리를 탁 치는 버릇이 있어서 머리털이 다 빠져 번대머리로 됐다고 했다. 또 어떤 녀인들은 녀자들을 너무 많이 재낀 탓이라고 했다. 바빠맞은 녀자들이 정호의 머리털을 줴당겨 다 뽑아놔서 번대머리로 됐다고도 했다.  그는 사무실 전화기를 들었다. “나영이오? 양, 최국장이오. 내 사무실에 인차 오오. 양? 점심에 시간이 없다구? 아니, 점심을 먹으려는 게 아니오. 더 중요한 일이 있소. 양, 사실 지금 국에서 전람관 해설과 과장 후보를 결정하게 되오. 저하구 개별조직담화를 하려고 그러오. 양, 기다리겠소.” 그는 커피잔을 두개 가져다 커피를 풀었다. 철궤를 열고 쪽지모양종이봉지를 꺼내 하얀 분말을 커피잔에 털어넣고 숟가락으로 슬슬 저었다. 그는 수면제를 탄 커피잔을 맞은 쪽에 놓고 음흉하게 헤쭉 웃었다. “네년이 너무 몸값을 높이기에 별 수 없어. 량해해라. 다 선의적인 악수야.”       나영은 백사불구하고 사무실로 달려왔다. 그녀는 빨간 외투에 파란 짧은 치마 바람에 사무실에 사뿐 들어섰다. “앉소. 나영이,” 정호는 맞은 켠 쏘파에 자리를 권하면서도 나영의 하얀 허벅다리에 음충한 눈길을 박았다. “커피나 드오.” “고맙습니다. 최국장님,” 정호는 음흉하게 수면제를 탄 커피잔을 나영한테 건네고 자기도 커피잔을 들고 점잖게 사무상에 가 앉았다. “금방 말했잖소. 지금 전람관 해설원들을 잘 관리하고 조직하려고 국에서는 해설과 과장을 두기로 했소.” “네- 그래요?” 나영은 커피잔을 든 채 기대에 찬 눈으로 말똥말똥 최국장을 쳐다보았다. “지금 과장후보를 고르고 있소. 내 보건대, 아, 저 커피를 들면서 얘기하기오.” “네,  고맙습니다. 국장님.” 나영은 그윽한 미소를 보내더니 커피잔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호호 불며 홀짝홀짝 마셨다. “툭 찍어 말해서 난 나영을 아주 이쁘게 보오.” “고맙습니다. 이쁘게 봐줘서 감사합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나영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면서 연신 꼽싹거렸다. “저네 전람관 관장은 명모델 정희를 과장으로 전근시키자고 하던데. 난 나영을 과장으로 임명할가 하오. 나영은 인물체격이 좋지. 해설도 잘하지. 젊고 이쁘지. 전도가 창창하오.” 나영은 오쫄 일어나 허리를 꼽싹거렸다. “감사합니다. 그 은공 꼭 갚겠습니다. 국장님, 잘 해드릴게요.” 정호는 때가 됐다고 우쭐 일어나 문 밖을 내다보더니 스리슬쩍 출입문을 잠궈버렸다. 그는 나영한테 다가가며 말했다. “나영은 보은할줄도 알지. 이후에 과장뿐이겠소? 부관장도 할 수 있소. 내 한마디면 래일이라도 과장할 수 있소.” 나영은 하늘에 붕 뜨는 기분에 잠겨 몸둘바를 몰라했다. “제가 어떻게 해야 부관장까지 하겠습니까?” 정호는 정희 어깨를 눌러 앉히더니 옆에 나란히 앉았다. “내 말을 곰상곰상 들으면 관장도 할 수 있소. 어떻소?” 정호는 나영의 손을 덥썩 잡았다. 나영은 화들짝 놀라 손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음충한 우멍눈과 부딪치는 순간 어색하게 웃으면서 손을 내맡겼다. “손이 진짜 부드럽군. 요 허벅다리는 더 이쁘구만. 허허허.” 정호는 손으로 나영의 야들야들한 허벅다리를 슬쩍 만졌다. 나영이 옆으로 물러앉자 정호는 실망한 소리를 했다. “녀자들이 별게 있소? 자기 몸에 붙은 무기를 쓸줄 알아야 하오. 그 무기로 과장도 하고 부관장자리도 쏴 떨굴 수 있소. 알만하오?” “네? 예, 알았습니다. 최국장님, 절 과장을 시키는 바에는 재무과장을 시켜주십시오. 해설과 과장이라야 해설원 대여섯을 령도하는데요. 먹을알도 없죠. 재무과장 부탁드립시다.” 나영은 제꺽 최국장의 무릎에 살짝 올라앉았다. 정호는 제꺽 나영을 받아안고 구슬렸다. “녀자들이 어떻게 정치 해야 하는가를 배워줄게.” “네~가르쳐주십시오.” “녀자들은 한자리 하자면 돈을 내밀지 않겠으면 하다못해 몸이라도 들이대야 하오. 지금 세월에 하늘에서 어디 공 떨어지는 빵이 있겠소? 숱한 녀자들이 모두 한자리 하자고 아글타글하잖소? 자기를 희생할줄 모르면 아무리 애써도 올라가지 못하오.” 정호는 구슬리면서 나영의 나긋한 허리를 끌어안았다.  똑똑똑. 노크소리 울렸다. 인사과장이 복도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오?” “네. 전람관 관장이 찾습니다. 전화를 아무리 걸어도 받지 않는다고 합디다.” “시끄럽소. 관장이구 누구이구 내 자리에 없다고 하오. 지금 국 산하 과장후보들과 개별담화를 하고 있소.” “예. 알았습니다.” 인사과장은 알았다는듯이 헤벌쭉 웃으며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홱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 정호는 인사과장 뒤잔등에 손가락질하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 눈치코치 없는 놈이야. 먹물을 먹은게 다르긴 달라." 이윽고 그는 사무실에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절컥! 문을 잠그는 소리를 듣더니 인사과장은 문께에 대고 입을 쭝긋했다… 그후 최정호 국장은 나영을 전람관 부관장 겸 재무과 과장으로 임명하였다. 원래 재무과 과장은 돈도 가져오지 않았는지라 해설과 과장으로 자리를 옮겨놓았다. 정호는 그래도 국장의 체모를 지켜 나영을 사무실에 다시 불러 두손을 싹싹 비비며 검토했다. “전번에 술에 취해 그만 사무실에서 사고를 쳐서 미안하오. 용서하오.” 나영은 오히려 발가우리한 볼에 볼우물을 옴폭 파면서 미소를 지었다. “천만에 말씀을요. 그날 전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그래?” “네-“ 나영은 자기 고충을 털어놓았다. “저의 남편은 고자나 다름없어요.  진짜  얼마나 애난지 몰라요.” “그래?” "국장님과 이런 가내 말 해도 됩니까? 미안합니다." 정호는 나영의 손을 잡고 정색했다. “아니, 그만큼 날 믿고 속심의  고충을 말하는게 아니겠소. 후-" “네, 최국장이야 말로 천하 제일 남자던데요.  최국장을 겪어보고서야  저는 처음 만족감을 느껴봤어요. 남자란 어떤 건지 알게 됐어요. 호호호.” 락조가 해변가를 벌겋게 불태우며 비추고 있었다. 나영은 최국장을 따라 택시에 앉아 해변가 백사장으로 달려갔다. 나영은 전날 밤에 한방에 들기로 한 영희가 밤중에야 돌아오자 대개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짐작했다. 녀인들은 이런 일에는 누구보다도 감각이 예민했다. 그러나 나영은 아무 것도 모르는체하였다. 그녀는 이튿날 온 하루 무슨 정신으로 무대에 올라 패션모델공연을 했는지 몰랐다. 정호와 영희가 로천무대에 올라 아주 파격적인 바레 “호수가 백조와 독수리 련가”를 공연해서야 나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출국 전 리허설에서 근본 없은 파격적인 바레동작을 하지 않았겠는가. “아니, 어쩜 무대에서 섹스하는 시늉까지 다 한단 말인가? 그래 그게 바레무의 극치라고?” 나영은 슬그머니 눈에 거슬렸다. 정희도 무대 아래서 질투의 눈총을 보냈다. “흥! 보기도 메스껍다.” 최국장의 다른 애인들도 질투해 두덜거렸다. “낫살이나 처먹은게 무슨 꼴이람?” 나영은 최국장 부탁대로 그 파격적인 바레무대를 기념으로 촬영해주었다. 나영은 저녁이 돼가자 은근히 언제 자기 차례되겠는가고 목이 빠지게 고대했다. (영희언닌 최국장의 학생이라니깐. 정이 들대로 든 1호애인이겠지. 그래도 젤 젊고 이쁜 내가 2호 쯤은 안될가?) 최국장이 저녁에 만나자고 하자 나영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럼 그렇겠지. 아무렴 내가 2호쯤은 돼야지.” 그는 속으로 장차 자기가 최국장의 1호 애인으로 되리라고 굳게 믿었다. 그것은 영희 언니 쌍까풀눈귀와 긴 목에 생긴 주름살을 보았기 때문이였다. 해가 완전히 지지 않은 해변가 백사장은 아직도 무더위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런데 바다가 백사장에는 벌구숭이 금발남녀들이 우글거렸다. 진짜 자기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꿈은 아닌가? 정호는 사전에 한인회 사무총장한테서 여기 해변가에 오면 좋은 백사장라체공원에 구경거리 많다는 것을 정찰해냈던 것이다. 나영한테 세상 성자유와 성해방이 뭔가는 랑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영은 공원 문어구에서 깜짝 놀라 주춤했다. “여게 뭐하는 곳인가요?” 나영은 라체로 입장하는 남녀들을 보고 두 손을 맞잡고 발뿌리 내린 듯 서 있었다. 정호는 입장권을 떼가지고 나영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여긴 해변가 라체공원이라는데오. 서방 자유세계 어떤가 구경하기오.” “아니, 이건 아닙니다.” 나영은 손을 뿌리치고 한쪽으로 도망가듯 피해버렸다. 정호는 하는 수 없이 나영을 데리고 해변가 백사장을 떠나 택시를 잡아타고 아쉬움을 달래며 달려갔다. 어느결에 전날 밤에 영희를 데리고 갔던 모텔 앞 십자거리를 지나 택시가 멈춰섰다. 그들이 택시에서 내려 십자길을 건널 때였다. 맞은켠에서 웬 흑인사내가 팔에 옷을 걸고 다가오더니 그들의 앞을 막았다. “Look the this(이걸 봐.)” 흑인이 나직이 말하며 옷을 걸친 팔을 약간 쳐들어보였다. 정호가 피뜩 흑인의 팔을 여겨보니 시꺼먼 권총 총구가 삐쭉 드러났다. 그 놈은 나직이 위엄있게 을러멨다. "Show me the money!(돈 내놔!" 정호는 영어를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what(뭐)?" "Dol’lar(딸라)!” 딸라 말에 제꺽 눈치챘다. “O-K! O.K! Take it(오케이! 오케이! 돈 줄게)!" 정호는 사무총장한테서 들은 말이 있어 순순히 손을 쳐들고 한손으로 웃호주머니에서 백딸라짜리 석장을 꺼내 천천히 건넸다. "Dol’ lar(딸라!)” 흑인강도는 눈에 차지 않는지 총구를 나영한테 돌렸다. “달러를 줘버리오.” 나영은 아까운대로 핸드빽에서 달라를 몇장 꺼내 주었다. 그 놈은 총구로 핸드빽을 가리켰다. “다 줘라! 살고 보자.” 나영은 핸드빽채로 건네주었다. “O.K.” 흑인강도는 핸드빽을 홱 채가더니 나영의 목을 끌어안았다. "사람 살려요!" 나영이  고함쳤다.  흑인강도는 나영을 끌어안고 뒤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최국장, 날 살려주세요!" "겁나 말라. 내 있으니깐." 정호는 따라가며 웃호주머니에서  딸라뭉치를 내들었다. 정호는 딸라를 쥐고 흑인과 돌아섰다. 그러자 흑인강도는 나영의 목을 활 놓고 딸라를 가지러 다가왔다.      그놈이  권총을 내리며 손을 내밀어 딸라를 받아쥐려는 찰나. 갑자기 정호가 몸을 홱 돌려 날아올라가면서  발길을 날려 흑인강도 손에 쥔 권총을 걷어찼다. 권총이 저만치 날아가 떨어졌다. 딸라도 온 땅바닥에 흩날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변에 흑인놈은 어정쩡해 서 있었다. 그때 정호는 펄쩍 뛰여 날아올라가면서 무릎으로 성성이 같은 그 놈의 턱주가리를 올리 걷어찼다.  "억!' 흑인강도는 비명을 지르며 모래주머니처럼 무릎을 꿇고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그 놈이 정신차릴 새도 없이 정호는 발길로 대가리를 걷어찼다. 또 아랫배에도 가격했다. 흑인놈이 꺼떡하지 못하자 정호는 저만치 날아간 권총을 주어들었다. 나영은 딸라를 줏기 시작했다.       원래 한뉘평생 바레무를 춘 정호는 날랜데다가 태권도 5단 쯤은 됐다. 나영이 생사관두에 처하자 다른 생각없이  흑인강도한테 태권도 맛을 제대로 보여줬던 것이다. 나영은 강도 총구 앞에서 용감히 발길을 날려 흑인강도를 제압하는 정호의 용감한 모습에 놀랐다. 아니, 진짜 사내대장부의 패기까지 처음 보고 못내 감탄했다.  그때 경보기 울리면서 경찰차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경찰들은 정호와 흑인, 나영을 경찰서에 련행해 심문했다. 사건경과를 조사한 후  흑인강도한테 쇠고랑이를 채우고 정호와 나영은 내놓았다. 모텔에 들어간 후 나영은 정호의 목을 꼭 끌어안고 아직도 공포에 떨었다. "겁나 말라." 정호는 나영의 호리호리한 허리를 끌어안고 달랬다. "내가 있는 한 어느 놈도 널 다치지 못해. 난 목숨으로 나영을 보호할테야." "최국장님, 감사해요. 절 두번째로 구했습니다." "아니, 감사는 무슨 감사. 넌 제일 사랑스런 애인이야." "아니, 저는 최국장님의 색시로 되고 싶어요." "그래? 건 모르는 소리야.  지금 제일 좋아." 나영은 정호의 품에서 머리를 들고 정호 목을 꼭 껴안고 물었다. "무엇때문인지요? 최국장님은 리혼하지 않았는가요?" 정호도 정색했다. "우린 가짜리혼했어." "네?" "그래. 난 남편으로는 좋은 남편 아니야. 그러기에 우리 둘이 결혼하면 서로 제약하고 속이고 좋지 않아. 부부로 되면 서로 의심하고 멀어지게 되지. 황차 네까지 리혼하면 난 남의 가정을 깬 나쁜 남자로 되잖아?" 나영은 맥없이 정호의 목을 끌어안았던 팔을 스르르 풀고 침대에 물앉았다. "가정? 그 진저리 나는 가정 신물난단 말입니다. 저는 밤이 무섭습니다. 애납니다. 계속 이렇게  살진 못하겠습니다." "애도 있잖소?" 나영은 정호를 치켜보며 똑똑히 말했다. "네. 아들 있어요.  저는 애고 뭐고 그 허울 밖에 없는 감옥 같은 집을 버리고  남들처럼 졸혼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정호는 침대에 앉으면서 나영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는  천정을 쳐다보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더니 아닌 보살을 떨며 가면극을 놀았다.      "아, 하느님이여, 이 불쌍한 녀인을 구해주옵소사. 어쩜 하느님께서는 전문 성불감증에 걸린 불쌍한 녀자들을 몽땅 내한테 맡깁니까? 병신 같은 남자들을 만나 피눈물 흘리는 이 녀자를 어쩌랍니까?"       나영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애원했다.     "저를 구해주십시오. 최국장님. 하느님도 최국장님이  저 같은 불쌍한 녀자를 구해준 은덕을 잊지 않을 겁니다. 최국장님이 쌓은 은덕을 황금으로도 못 바꿉니다. 저는 최국장님의 녀자입니다. 이젠 1호 애인으로 만들어주세요. 불쌍한 녀자한테 행복을 주세요. 네? "     나영은 정호 목을 꼭 끌어안았다.     "아, 그 얼마나 많은 수난당한 녀성들이 이 품에  안겨 울었던가? 그 얼마나 많은 불쌍한 녀자들을 이 몸으로 구했던가? 난 전문 너처럼 부부 생활이 원활하지 못한 녀성들을 구했단 말이다. 즐겁게 해주고 행복을 안겨주었지. ㅎㅎㅎ."  정호는 나영한테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호는 아주 엄숙하게 나영을 쳐다보았다. 나영은 앵두입으로 까치처럼 종알거렸다. "하느님도 저와 최국장님을 용서할 겁니다." 정호는 머리를 끄덕이며 일어나더니 바지호주머니를 들춰 딸라뭉치를 주었다. 그 딸라는 인사과장의 안해가 정호한테 준 피나는 돈이였다. “자, 미국에서 용돈으로 쓰오.” “최국장님, 참 용맹하더군요." "난  목숨도 서슴찮고 나영을 구할 거요." "최국장님  전 이젠 당신의 충실한 녀자입니다. 1호애인입니다." "오- 내 사랑스런 1호애인이여. ㅎㅎㅎ." 정호는 어느 애인을 만나도 다 "젤 사랑스러운 녀자", "황후"라고 하며 구슬렸다. 녀자들은 거개 춰올리면 짧은 바지가랭이 다 나가는줄도 모르고 좋아했따. 나영은 딸라뭉치를 훌 받아 챙겼다. "최국장님 용돈 잘 쓰겠어요.” “그래, 나영이, 요 귀염둥이야, 널 위해서라면 뭐든 아까운게 없어.” ... 시계는 자정 12시를 가리켰다. (그때는 세상 랑만에 빠져 즐거웠지. 세상 모든 걸 다 가진듯이 행복했지. 정호는 눈을 지긋이 감고 미국에서 즐기던 미녀들을 하나 하나 떠올리며 행복감에 잠겨 희죽이 웃었다. “안돼. 난 여기를 빠져나가더라도 나영을 데리고 가야 해. 고 야들야들한 비게덩이 아까워서 어떻게 놔두고 가겠니?” 그는 쏘파에서 우쭐 일어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나영이, 전화받기 괜찮지?” “네- 너무 한가한데요.” “그래. 전화로 말하기 불편하니깐. 어서 오라.” “어딘가요? 또 명도다방인가요? 괜히 정희언니 질투하겠어요.” “아니야, 이번엔 자리를 옮기자. 선녀다방으로 오라.” “네, 알았습니다. 곧 갈게요.” 이윽고 정호와 나영은 선녀다방에서 만났다. 다방에서는 은은한 음악이 흘렀다.   “무슨 일인가요?” 정호는 이전과는 달리 그것에 급해하지 않고 나영을 끌어안고 나직이 말했다. “우리 남방 관광하러 갈가?” 나영은 쌍까풀 포도눈을 슴벅이며 물었다. “어디로?” 정호는 목소리를 낮췄다. “관광 수속되면 알려주마. 신분증이나 가져다달라.” “네- 신분증 여기 있습니다.” “그래, 내 말대로 해라. 즉시 현금과 금은보화 잘 챙겨둬라. 언제라도 가지고 떠나게.”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의아해하였다. “관광가는데 제가 금은보화 메고 가야 합니까?” “내 돈 아까워 그러는게 아니야. 내 널 전람관 부관장 겸 재무과 과장으로 임명한게 잘못이야.” “뭐라구요?” “재무과장을 시키지 않았더라면 너도 감옥문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는 걸  그랬다.” “무슨 일로 감옥에 간다고 야단입니까?” 정호는 스리슬쩍 거짓말로 나영의 속뽑이를 해보았다. “누군가 심계국에 신고했는 모양이더라. 심계국에서 국에 찾아와 나에게 통보하더라. 요즘 네 재무장부를 들출 가능성이 있다.” “이걸 어쩝니까?” “내 뭐라던? 내 주는 돈이나 쓰고 단위 돈엔 손을 대지 말라는데. 흥.” 정호는 눈을 흘기며 우멍눈으로 나영을 허를 찔러보았다. “그래, 그새 얼마나 해먹었니?” “한 5만원 챙긴 거 같은데요.” “5만원이나? 안되겠다. 5만원이면 적어도 5년 쯤은 감옥살이 해야 해. 공직도 떼우고.” “아이고, 이걸 어쩝니까? 어떻게 낯을 들고 이 시내에서 살겠습니까?” 정호는 낚시에 걸려든 나영을 놓치려고 하지 않고 죄상을 더 파고 들면서 나꿔챘다. “시내에서 살아? 감옥에 가진 않고? 전람관에 무슨 돈이 있어 5만원이나 떼먹었니?” “전람관 전시장을 재건하라고 내려온 돈을 떼먹었습니다.” “어떻게?” “지출령수증에 더 써넣고 뜯어냈습니다.” “한심하다. 재무학교를 나오지도 못해 그랬을가. 도깨비구나.” 때가 됐다고 정호는 마치 살길이나 틔워주는 것처럼 선심을 썼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관광이나 가자는게야.” 나영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정호 품에 안기며 애원했다. “관광가면 문제 해결됩니까? 최국장, 날 살려주십시오. 공안국 박국장이 6촌 처남 아닙니까? 좀 사정해주세요. 네?” 정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나 너무 믿지 말라. 머절싸한 아즈바이 믿다가 감옥 가겠다. 박국장이 다 뭐냐? 반탐오회뢰국 저승사자 같은 최혜영 국장 손에 사건이 들어가기만 하면 누구도 빠져나오지 못해.” “이걸 어쩝니까?” “그러게 내 말 들으라. 내하구 남방으로 관광 가는 거야. 거기 가서 다시 어떻게 할가 궁리해보자.” “알았습니다. 인차 이 위험한 시내를 벗어나고 봅시다.” “그래. 내 준 금은보화 잘 챙겨라. 무슨 말인지 알만하냐?” 나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최국장의 품에 파묻고 가녀린 어깨를 들먹였다. 정호는 자기 손에 든 포로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최국장님, 저의 모든 걸 다 줄테니깐요. 꼭 살려주십시오.” “그래, 사랑하는 나영아, 근심하지 말라. 날 믿고 천애지각이라도 따라 오너라. 그게 네 살길이야.” “알았습니다. 전 최국장님만 믿고 따라가 살렵니다. 절 구해주면 이 몸이 열백번 부서지더라도 그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그래, 그래. 나도 나영을 세상에서 젤 사랑해. 황후처럼 행복하게 만들어줄테야. 내 목숨을 바쳐사라도 널 보호해줄게.ㅎㅎㅎ.” 나영은 미국 로스안젤레스에서 흑인날강도 마수에서 자기를 구해주던 정호를 떠올리면서 정호 말을 딱 곧이들었다. 아, 불쌍한 나영이, 그녀의 운명은 어떻게 될가? 음침한 다방도 저으기 근심돼 잔잔히 흐르는 쓸쓸한 음악과 함께 운다…  
251    대하소설 졸혼(15) 김장혁 댓글:  조회:1353  추천:0  2022-05-26
      대하소설                 졸혼                                  김장혁                     24. 울고 웃는 아가씨들       청청하늘에서 숱한 올가미가 구렁이처럼 매지구름을 타고 기여내려와 디룽디룽 드리워진다. 얼룩뱀처럼 얼럭덜럭란 올가미는 저승사자 이빨을 다시며 다래넝쿨처럼 내리뻗치며 어느 어느 목에 걸가고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노려본다.     정호는 올가미가 점점 독사처럼 자기 목에 스르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저 멀리 최혜영 국장이 쌍까풀눈을 부릅뜨고 자기를 쏘아보고 있지 않겠는가.     (여기서 더 배길 것 같잖구나. 빨리 빠져나갈 방책을 대야지.)     정작 모든 것을 버리고 빠져나가려고 하니 아까운 아가씨들이 많고도 많았다.     (아, 어떻게 숱한 애인과 아가씨들을 버리고 혼자 훌 빠져나간단 말인가? 아, 아가씨들이 아깝다, 아까워.)     그는 영희를, 아니, 이쁜 애인 하나 잃은 것으로 해 못내 아쉬워했다.     “영희, 참 아깝다, 아까워. 그 풍만한 젖가슴만은 참 매력적이였어.)     정호는 애인 정희네 다방 쏘파에 앉아 눈을 스르르 감자 영희를 데리고 놀던 행복한 추억에 잠겼다.      (그때는 참 행복했지. 진짜 자극적이였지.)   “아, 선생님, 왜 이래요? 전 아직 미성년 학생인데요.” 정호의 귀전에는 아직도 영희가 무용강당에서 당할 때 아우성소리가 들렸다. “쉿, 누가 듣겠어.” “아, 선생님, 이러지 마세요.” “무용을 크게 하려면 스승한테 몸을 바칠줄도 알아야 해. 예술전도를 개척하려면  희생정신이 필요해. ㅇㅎㅎ.” “아, 이러지 마세요. 선생님, 앗! 진짜 이럴줄 몰랐습니다.” 드디어 울리는 비명소리 무용강당을 자극적으로 허비였다…        (아, 아주 짜릿했지. 영희를  데리고 미국에 가서 공연할 때 젤 자극적이였지.)         정호는 기실 순정보다 썩 먼저 영희를 무용강당에서 처음 간음했고 그후에도 여러번 데리고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전도를 위해 시위 서기 귀공주 순정도 마른 나무가지 꺾듯 무용강당에서 간음하고 결혼까지 했던 것이다. 그는 무용교원 출신이 돼 그런지 녀자들의 마음보다 육체미를 특별히 선호했다. 또 녀성의 마음보다도 육체부터 빼앗고 점유욕에 미친듯이 날뛰였다. 그는 숫처녀 여럿을 정복하는 것에 눈이 아홉이 됐다.  색마는 애인들의 각기 다른 단점을 다른 애인한테서 보충받으면서 즐겼다.       어느날, 정호는 황선희의사를 찾아갔다. 그런데 황선희의사는 박사로 된 후엔 정호를 잘 만나주지 않았다. 그러나 영희가 입원 했을 때 만난 후부터는 드문드문 만나주었다.       그날 정호는 선희를 보마찌프에 싣고 망아산 수림 그 방공호로 갔다. “야, 이전엔 얼마나 힘들었소. 여길 한번 오자면 자전거를 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와야 했지.” “그때 난 바보였지. 함께 살지도 못할 최선생한테 어떨꿍해 머절싸해 졸졸 따라다녔지.” 추억을 몰아오는 방공호에 이르자 정호는 그녀를 끌고 숲속의 방공호에 들어가려고 했다. “안돼. 황박사를 보기로 뭘로 압니까?” “박사도 녀자겠지?” 황선희는 자못 도고한 자태로 정호한테 눈을 흘겼다. “이런 루추한데서 어쩌려고?” “오- 황박사 몸값이 퍽 올라갔구만. 여기야 말로 우리 청춘시절 사랑을 추억하게 만드는 행복한 요람이 아니겠소? ” “호호호. 국장이 되더니 말을 닭콤하게 하는 재간이 늘었구만요.” 정호는 황선희를 안고 방공굴로 들어갔다.   색마는 우멍한 눈에 이상한 빛이 번쩍였다. "난 죽어서라도 미녀들을 정복하고 싶단 말이요. 아니, 저승에서도 녀성들의 성자유와 성해방을 위해 분투하겠단 말이오." 그 미친듯한 소리를 들으며 황선희박사는 속으로 코웃음쳤다.       (야, 너 아니? 네 녀편네 궁외임신을 수술할 때 내 네 녀편네 수란관을 다 잘라버렸어. 그래 네놈은 그 더러운 씨를 영영 받지 못하게 된 거야. ㅋㅋㅋ. 날 버린 죄값을 톡톡이 치르고 말았어.)       지독한 황선희 속내는 모르고 색마는 계속 횡설수설하려고 했다. 그는 단위에서 정치를 할 때나  평소나 말수가 아주 적었다. 수하들은 항상 머리를 숙이고 우멍눈을 스르르 감고 무거운 침묵을 지키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저으기 두려워했다. 눈을 감는 것은 마음의 창문을 닫고 자기 속심을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무서운 잡도리였다. 그러나 황선희랑 미녀들을 만나기만 하면 정호는 흥분돼 저도 몰래 횡설수설했다.       "녀성 성자유? 성해방? 허허허. "       "호호호. 건 순전히 녀성들 보고 당신 야욕을 채우게 성상납하라는게 아니고 뭔가요? 호호호. 세상에 더러운 이름이나 남기지 마시라구. " 황선희는 방공호 둔덕에 솟아 있는 소나무에 새긴 "사랑" 글자를 가리켰다. "저걸 보세요. 누가 우리 사랑을 기념해 저기에 '사랑'이란 글자를 새겨 놓았군요." "아니야, 건 내 친구 새긴 거야." "누가?" "문걸이," "네?" "바보 같은 자식, 들을라니  문걸이 영희하구 영원히 사랑하자고 저 '사랑' 글자를 칼로 새겼다오." "최국장 어떻게 남의 일 그리 잘 알아요?" "알다뿐이겠소. 영희는 원래 내 녀자였소. 내게 자기네 부부 생활을 미주알고주알 다 신고했댔소. 건데 내 문걸한테 소개해 보내줬댔소." "영희 본댁보다 퍽 이쁘던데요. 최국장 꽤나 아까웠겠군요. 호호호." " 권력이 더 크지. 그런 계집 하나 뭐 그리 대단해? 황차 내 색시 아니라고 해도 밖에서 계속 데리고 놀면 되는게지. 흥!" "정치야심가! 량심 없는 바람둥이." 정호는 황선희를 끌어안고 정색했다. “한가지 부탁하기오. 일본 출국수속을 해줄 수 있겠소?” “왜? 국급순시원 그만두고 출국하려고?” “아니, 관광가려고 그러오.” “관광회사를 찾아갈게지.” “아니, 자유관광하자고 그래. 류학갔을 때 대학 박사도사랑 있잖소?  아무도 몰래 좀 도와주오.” “알아보죠.” 정호는 가방에서 금목걸이와 비취목걸이를 꺼내 선희 목에 걸어주었다. 황선희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하얀 손으로 정호의 볼을 매만지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정호는 그래도 영희를 미국에 데리고 놀던 일을 젤 잊을 수 없었다.       최정호 국장은 인사과장이 상납한 미국 출국기회를 빌어 영희를 미국에 데리고 가 질탕하게 놀려고 했다. 그런데 순정과 단위 숱한 애인들의 눈이 무서워 단둘이 가기는 주춤하게 되였다. 그는 인사과장을 보고 미국 한인회에 련계를 달아보라고 했다. 인사과장은 자리를 떼울가 봐 미국에 있는 안해를 통해 끝내 해냈다. 그리하여 최국장은 미국 한 도시 한인회 요청으로 조선족친선문예공연팀을 무어가지고 미국으로 날아갈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조선족친선문예공연팀 12명 가운데는 남자라고는 최국장 하나 밖에 없고 몽땅 미녀들이였다. 미녀들도 영희를 비롯한 가무단의 4명 무용수를 내놓고는 무대에 올라본 적도 없는 미녀들이였다. 미녀들 속에는  전람관의 해설과 과장 나영, 명도다방의 보스 정희, 처녀가수 림하영 등이  들어 있었다. 미녀들은 대부분 최정호 국장의 애인이거나 애인후보거나 최국장한테 평소에 협찬을 많이 했거나 신세를 많이 진 명모델들이였다. 진짜 이 미녀군단은 최정호 국장의 애인미녀군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최국장은 미녀들을 데리고 문화국의 숱한 눈을 피해 예술학원 무용강당을 빌어 며칠간 무용프로와 모델공연을 련습시켰다. 그때 순정이 예술학원 무용강당 련습장에 가서 공연리허설을 보고 집에 돌아와 도도거렸다. “공연팀을 찬찬히 보니 진짜 어중이떠중이더군요. 거게 어디 진짜 무용수들이 있습니까?” 순정은 정호의 팔에 매달리면서 애원했다. “최국장님, 저도 미국에 데리고 가세요. 네?” 그러나 정호는 보초를 데리고 갈 순 없어 떽 했다. “공금으로 미국 가는데 당신까지 데리고 가면 뭐라겠소? 래일이면 고발당해 국장자리를 떼우지 못해서. 흥, 좀 눈치있게 노오.” “픽, 처제는 데리고 가면서, 난 왜 데리고 못 가요?” “처제하구 본댁 같으냐? 처제는 데리고 가도 말썽이 없어도 녀편네는 데리고 가면 단통 말밥에 오를게 뻔하지 않아? 정치를 개뿔도 모르면서. 흥!” 기실 그번 출국공연은 공금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몽땅 인사과장의 안해가 연줄을 달아 미국측 한인회에서 비용을 댔던 것이다. 영희와 정호의 용돈은 몽땅 미국에 있는 인사과장 안해가 댔던 것이다. (널 데리고 가서 어떻게 애인들과 놀아?) 미꾸라지 같은 정호는 순정이란 꼬리를 떼버리기 위해 공금으로 출국한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그들이 미국에 도착하자 한인회장과 인사과장 안해가 공항에서 그들 일행을 마중했다.      40대 중반의 인사과장 안해는 정호한테 깎듯이 인사했다. 그녀는  남들의 눈을 피해 정호를 구석진 곳에 데리고 가서 두툼한 딸라뭉치를 건넸다. 그 돈은 그녀가 미국 목욕탕에서 금발사내들의 갖은 멸시와 릉욕을 다 받으면서 반년동안이나 때밀이를 해 번 딸라, 피땀이 슴밴 딸라였다. “저의 남편 잘 부탁드려요.” 정호는 눈물이 글썽해 자기 두 손을 꼭 잡는 인사과장 안해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허허, 이번 출국에 수고 많았소. 인사과장 근심하지 마오.” “감사해요.” 한편 물에 퍼져 팅팅 붓긴 그녀의 손을 잡고나니 좀 애잡잘한 것이 씹혀 한마디 더 보탰다. “장차 표현을 봐서 인사과장이겠소? 부국장도 시킬 수 있소.” “고맙습니다. 최국장님.”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구십도경례를 허리 아프게 연신 했다. 그날 저녁에 한인회 회장은 성대한 연회를 베풀고 그들 일행을 환영했다. 이튿날 한인회 회장은 전문관광뻐스에 그들을 싣고 자유녀신동상과 맨허튼거리를 구경시켰다. 정호는 11명 미녀들을 데리고 어깨 으쓱해 맨허튼거리를 거닐었다.  저녁에 한인들을 위한 친선공연무대가 열렸다. 부근 도시의 한인들이 소문을 듣고 구경하러 모여와 무대 아래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영희 등 4명의 무용수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무대에 올라 민족특색이 짙은 무용 “아리랑”을  공연하였다. 수백명에 달하는 한인들은 한 겨레의 정에 감동돼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공연이 끝나자 공연팀 일행은 호텔에 투숙했다. 정호는 독방에 들었다. 그는 먼 려로의 피로도 잊고 어떻게 영희 등 미녀애인들을 하나하나 데리고 놀가 궁리했다. 그런데 미녀들이 질투가 어떻게 센지 서로 눈을 밝히기 쉬웠다. 비록 고향과는 멀고도 먼 국외 타향이지만 자칫 경거망동했다간 큰 사단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이튿날 LS한인들을 위한 친선공연의 무대를 펼쳤다.      영희가 무대에 올라 도라지 곡에 맞춰 독무를 췄다. 학처럼 너울너울 춤을 추는 영희 춤사위가 미국 한인들을 겨레의 정으로 물켤치게 만들었다. 한인들은 미국에서 민족기시를 받으면서 살다가 오랜만에 길거리 로천무대에서 민족특색이 짙은 조선족미녀들의 공연을 보고 못내 경탄했다.    그날 저녁에 정호는 무대에서 내려온 영희를 슬며시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밤에 시내 야경 구경할가?” “네, 좋아요.” 정호는 한창 무대에 오르는 미녀모델들을 흘끔 곁눈질하며 나직이 말했다. “호텔에 돌아가면 화장실에 갔다가 조용히 대문 밖으로 빠져나오라.” “단둘이?” “그래.” “숱한 눈이 괜찮겠습니까?”       영희는 대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을 알았는지 꽤나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나오라면 나올게지. 여긴 미국이지 고향이 아니야." 영희는 아무 말도 못하고 머리를 다소곳이 숙였다.       그날 밤, 공연이 끝나 호텔에 돌아간 후 정호는 슬며시 대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영희는 스리슬쩍 화장실로 들어갔다. 미녀들이 키를 찾아가지고 호텔방으로 올라가자 도적고양이처럼 발끝걸음으로 살그머니 대문 밖으로 쪼르르 빠져나왔다.      정호는 영희를 데리고 택시를 잡아타고 해변가로 번개같이 달렸다. 해변도시의 해변가 야경은 오색령롱하여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호호호. 참 기분 좋은데요.” “그래? 난 네가 좋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거야.” “저에 대한 선생님의 애잡짤한 마음이야 미성년 때부터 알고도 남음이 있지요.” “그럼 그때 무용강당에서 있은 일을 나쁘게 기억된 건 아니겠지?” “말도 마십시오. 그때야 최선생님한테 속히웠죠. 진짜 저만 사랑한다고 해놓고 뭡니까? 내 전도를 책임진다고 거짓말해 처녀를 빼앗아가고 그게 뭡니까? 량심없이 순정을 또 그 무용강당에서 그럴 수 있습니까?” “난 너네 둘을 다 사랑했어. 그러나 기실 널 더 사랑했어.” “에이, 누가 믿습니까?” “하늘이 믿고 땅이 믿지.” 남자와 녀자는 수작을 주고 받았다. 어느 결에 그들은 택시에서 내려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해변가 한인이 차린 로천해물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푸르른 파도가 태평양 건너 멀리에서 온 그들을 환영이라도 하는듯이 하얀 치마자락을 날리며 다가왔다가도 물러가며 처절썩처절썩 환성을 질렀다. 피부가 다른 남녀들이 맥주잔을 기울이며 바다가 야경을 감상하며 즐겼다. 영희는 황홀한 바다가 야경을 바라보며 정호와 마주 앉아 생신한 소라 속살을 이쑤시개로 뽁뽁 뽑아 맛있게 먹었다. “자, 기쁜데 한잔 하자.” 정호는 맥주잔을 내들었다. “감사해요. 형부.” 영희는 잔을 들어 부딪치며 기꺼이 마셨다. 정호는 또 잔을 들었다. “우리 친선을 위해 건배!” “아니, 건 아닌데요.” 영희는 맥없이 잔을 내리웠다. “왜?” “순정이 알면 뭐라겠어요? 내 머리 성해 있겠습니까?” “헛, 우리 둘이 서로 좋아하는데. 흥, 순정하구 무슨 관계 있니? 기실 난 널 마음 속으로 더 사랑했어. 이건 진정이야. 널 문걸한테 보낼 때 내 마음 오죽했겠니?” 정호는 우멍한 눈확에 눈물까지 글썽했다. “거짓말 하지도 마세요. 우린 너무 멀리 왔습니다.” “오. 그래, 그래.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구. 자, 맥주나 들자.” 정호가 잔을 들어 권했다. “자, 우리 군철을 위해 건배!” “이러지 말라는데도.” 영희는 쌍까풀눈을 화등잔처럼 치켜떴다. “여긴 아무도 없어. 군철은 우리 둘의 애 아니고 뭐야?” “말도 마세요. 군철이 형부 앤 걸 알았더라면 진작 긁어버렸을 겁니다. 문걸하구 살면서 내 얼마나 량심가책받았는지 압니까?” 정호는 영희 두 손을 잡으면서 정색했다. “군철은 내 아들, 너도 원래 내 거야.” “픽, 제 좋은 생각하는구만요. 언니하구 결혼해가지고 량심 있습니까? 문걸과 저를 어떻게 보고 그래요?” 정호는 더 시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한마디만은 딱 하고 싶었다. “사실이 모든 걸 증명한다. 넌 내 애까지 낳았다. 우린 사실상 부부야. 네가 문걸의 안해라는 건 다 거짓이야. 명색이 부부지 허위에 찬 빈 허울뿐이야. 이제 군철이 커가면 모든게 발각날 거야. 그때면 어쩔 셈이냐?” “말도 마세요. 미치겠어요.” “근심하지 말라. 그때 넌 문걸을 버리고 나한테 오라.” “언니를 어떻게 보고 미친 소리 합니까?” “순정은 더 필요없다. 난 네가 더 좋아. “쳇, 량심있습니까? 이젠 국장도 됐겠다. 큰아버지 시위 서기에서 물러났으니깐. 이젠 순정이 더 필요없다는게죠? 참 후안무치합니다. 최국장 같은 남자를 누가 믿고 살겠습니까? 에이고, 순정 언니 불쌍해." 영희는 우쭐 일어났다. "량심없는 위군자!” 영희는 맥주잔을 들어 정호 낯에 탁 치고 자리를 떴다. “영희!’ 정호는 부랴부랴 뽀이한테 결산하고 팁까지 몇딸라 쥐어주고는 황급히 영희를 따라갔다. “어디로 행방없이 간다고 그래? 여긴 미국 로스안젤레스야.” 그는 해물점 한인보스하고 뭐라고 묻더니 영희를 붙잡아 세우고 택시를 불렀다. 택시는 웬 모텔 앞에 가서 멈춰섰다. 모든 것은 정호가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였다. “호텔로 돌아갑시다.” 영희는 머리를 붙잡고 몸을 휘청거렸다. 고만한 맥주를 마시고 결코 취할 영희는 아니였다. “그래, 알았다. 여기서 좀 쉬고 돌아가자.” “놔! 날, 날, 놓으라구.” 영희는 휘청거리다가 한쪽으로 스르르 쓰러졌다. 정호는 제꺽 품에 받아안았다. (이게 웬 떡이냐?) 호박이 넝쿨채로 굴러 떨어진 격이 아닌가.     ...     (오- 그날 밤 참 즐거웠지.)       이튿날 로스안젤레스 당인거리 로천무대에서 정호와 영희는 진짜 파격적인 바레무 "호수가 백조와 독수리 련가"를 공연하었다.       백조 날개를 단 영희가 호수가 무대배경 앞에서 백조 모둠발바레를 춘다. 뒤이어 백조는  독수리 날개짓을 하는 정호 어깨에 푸르르 날아올라가 오른발끝으로 서서 날개를 활짝 펴고 한다리는 뒤로 쳐들어 날아예는 조형포즈를 취한다. 여기저기서 섬광등이 반쩍였다. 무대 아래서 나영이 핸드폰 샷타를 눌렀다.       반짝! 반짝! 그 멋진 예술조형을 영원히 기억의 렌즈에 련속 담았다.    뒤이어 백조는 독수리의 번대머리에 홀짝 뛰여올라가 왼발끝으로 서서 뛰노는 바레를 추다가  한 다리를 뒤쪽으로 하늘 높이 쳐들어올리고 두 날개를 량쪽으로 활짝 벌리며 훨훨 날아가는 조형포즈를 취였다.      재미 중국인들 외에도 재미 한국인과 아시안들이 바레무 '호수가 백조와 독수리 련가'를 보고 환호하는 파도가 넘실거렸다. 그때다.  "앗!" 저게 뭐냐? 백조가 그만  독수리가발을 빗밟아  미끌어져 떨어진다. 전날 영희 제의대로 정호는 가발을 쓰고 무대에 올랐댔다. 그런데  가발이 벗겨지면서 독수리 보기 싫은 번대머리가 훌렁 드러났다.          무대 아래서 숱한 관중들이 "어우예!", "어우예!" 하면서 환성을 질렀다.      정호는 백조를 제꺽 받아안아 한바퀴 빙 돌리다가 포옹한다. 백조가 가슴을 열며 뒤로 몸을 번지는데 독수리는 백조 허리를 안고  나는 시늉을 하며 바레무를 크라이막스로 끌어올렸다. 진짜 바레무예술의 극치가 부각되는 순간,  무대 아래에서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졌댔지. 백인관중들마저 엄지를 척 내밀었다. "어우예! 어우예!" "O.K!" 양키들은 자기들이 깔보는 아시안계 인들이 이렇게 파격적인 개방된 바레를 추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것도 머나먼 태평양 건너에서 날아온 중국 조선족남녀무용가들이 그런 바레무예술의 극치를 공연했으니 말이다.     (아, 너무나도 행복한 추억이야. 그런데 그 격렬한 예술의 극치를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고 영희가 간게 한이야. 영희는 저승에 가서 염라전 앞에서도 나와 함께 그 바레무를 추면서 떠나갔을 거야. 다행히 누구도 미국 공연장면을 상부에 고발하지 않아 처분은 받지 않았지. )      정호는 회상에서 깨여나면서 다시한번 온 몸을 전률했다.       (영희하구 30년 가까이 몇백번이나 살았지. ㅎㅎ. 그런데 영희는 번마다 반항하는 것처럼 하다가도 들이댔지. 어떤 땐 자는 척하면서 순종했지. 영희도 속으론 문걸보다 날 더 좋아한 게 분명했지. 황차 영희를 녀자로 만든 건 내가 아닌가. 녀자는 처음 그걸 한 남자를 잊을 수 없는 거야.)     정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나쁜 년, 량면파, 갈보! ㅋㅋㅋ,)      그는 영희를 회상하면서 못내 아쉬워 했다. (영희 불쌍해. 사랑하는 나하구 내놓구 못 살구 죽었어. 림종시에야 내가 준 마노목걸이를 꺼내 걸구 비취반지를 끼고 갔구나.  영희야, 네가 떠나가다니? 참 아쉽다, 아쉬워.)            25. 미꾸라지           정희가 커피를 풀어 커피잔을 쟁반에 받쳐들고 사뿐사뿐 다가왔다.         “커피나 드세요.”        “오, 요 보배야.” 정호는 커피잔을 받으며 오른 손 엄지와 식지로 정희 걀죽한 볼을 살짝 꼬집어놓았다. “아갸-“ 정희는 아양을 떨었다. “최국장님, 상팔자군요. 떡 앉아 있어도 맛있는 거 다 생기잖아. 이런 황제 어디 있어요? 호호호.” “내 아가야, 넌 황후야, 황후.” 정희는 쌍까풀눈을 곱게 흘겼다. “최국장님한테 황후 몇인가요?” “너 밖에 없어. 내 본댁마저 버리고 너한테 왔잖아? 이제부터 우리 자유롭게 살아보자.” 정호는 정희를 품에 끌어안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제 금은보화 근심할 필요없을 거야. 흐흐흐.” “그래요? 그래서 제가 우리 최국장님을 황제처럼 모시지 않는가요?” “그래. 잘 모셔라. 이 세상 모든 행복 다 차례질 거야.” 정호는 요즘 수사망을 피해 정희네 다방에 숨어버렸던 것이다. 명도다방도 최정호 국장님이 애인 정희한테 차려준 것이기에 마음놓고 있을만도 하였다. 전번에 정호는 순정의 본가집 금고에서 금은보화를 챙기다가 붙잡혔댔다.  그는 가시아버지와 순정한테 오락미를 들씌워놓고 미꾸라지처럼 스리슬쩍 빠져나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시일뿐이였다. 최혜영 국장은 그물을 널리 쳐서 큰 고기를 낚으려고 했을 수도 있었다. (한시도 시름놓을 수 없어. 아무런 미련도 두지 말고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정호의 눈앞에 최혜영 국장의 비수처럼 날카로운 눈길이 떠올랐다. 등곬에 식은 땀이 돋아났다. 저도 몰래 몸서리쳤다. (변태 같은 년, 시집도 안 가고 전문 나 같은 간부들과나 독살 피우면서우쭐해라.) 그는 정희네 다방에 숨어있으면서 핸드폰으로 순정을 불렀다. “여기 명도다방에 오오. 긴히 할 말이 있소.” “당신과 할 말이 없어요.” “어서 오오. 저네 아빠 때문에 그러오. “네? 무슨 일인가요?” “전화로 말하기 불편하니깐. 어서 여기 오오.” 그제야 순정은 대답했다. “곧 가지요.’ 이윽고 순정이 명도다방에 들어섰다. 은은한 음악이 흐르는 다방은 어둑시그레해 꽤나 신비하고 음침했다. 구석진 방 미닫이가 쓱 열리며 번대머리가 반쯤 나타났다. “여기 오오.” 정호가 번대머리에 몇대 안되는 머리카락을 씃어넘기며 손짓했다. 순정은 그쪽 구석으로 다가가며 뒤잔등에 눈총을 보내는 다방 마담 정희를 되돌아보며 눈인사를 했다. 보스 정희도 순정이 단골손님인지라 앞에서는 허리 굽히며 알은체 했다. 순정은 방에 들어가 번대머리한테 눈을 흘겼다. “왜 여기서 만나요?” 정호는 우멍눈을 치켜떴다. “왜?” 순정은 목소리를 낮췄다. “다방 보스 정희 아닌가요? 그 유면한 모델!” “저도 아오?” 순정은 커피를 풀어 숟가락으로 저으면서 나직이 종알거렸다. “알다뿐이겠습니까? 광고회사 돈을 빼가지고 한국에 도망쳤다고 소문이 자자했는데. 혹시 최국장 애인인가요?” “아무 소리나 하지 마오.” “무슨 일인지요? 저 년이 들으면 어쩝니까?” “쓸데 없는 소리 작작 하라는데.” 정호는 커피를 후루룩 마시고 나서 정색했다. “오늘 이런 말하려고 온게 아니오. 요건부터 말하기오.” 정호는 화제를 제꺽 돌렸다. “이런 걸 생각해보오. 가짜리혼했기에 우리 집과 금은보화는 몽땅 순정의 것으로 되지 않았소?” 순정은 쌍까풀눈을 흘기며 째려보았다. “픽, 내 어디 당신한테 속혀 살던 세살짜리 앤가 하는가요? 자기 법망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꼬리를 잘라버린게라고나 해요. 숨겨놓은 집이랑 혼자 가지자고 그러죠?” “물론 나도 무사할 수 있소. 그 금은보화는 내게 아니니깐. 그러나 난 우리 둘이 다 빠져나가나는 방도를 대려고 그러오.” “픽, 당신 말은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못해요.” 정호는 어린애처럼 노는 순정이 안타까웠다. “이게 언제라고 이러오. 내 말 명심하오. 문제는 그 금은보화가 최헤영 국장 마수에 걸리지 않았고 뭐요? 우린 그 금은보화 올가미에 목을 맬 수 없소. 꼭 빠져나가야 살아남을 수 있소.” 순정은 한숨을 호 내쉬였다. “국고에 다 실어갔는데. 이제 용빼는 수가 있습니까?” “그 금은보화를 빼내오긴 틀렸소. 우린 금은보화나 우리 인생 다 잃을 수도 있소.” “무슨 소립니까? 금은보화 가져갔으면 다지.” “너무 단순하군. 그 금은보화 래력이 밝혀지면 우리 둘은 다 감옥밥을 먹어야 해.” “네?” 순정은 쌍까풀눈을 치뜨며 기겁했다. 그러나 인차 쌍까풀눈을 살풋이 내리깔며 커피잔을 들었다. “내하구 무슨 관계 있는가요? 내 얻어먹은 것두 아닌데.” “야, 내 얻어먹은게라 하자. 그러나 너도 한배를 탄 공범이야.” “뭐?” “내 받아먹은 거 몽땅 누가 챙겼니?” “그럼 어떻게 해요?” 정호는 목소리를 낮첬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우린 한 배를 탄 사람이야.” 순정이 머리를 숙이자 정호는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 방법 하나 있소.” 순정은 문께를 흘끔 보더니 나직이 물었다. “무슨 방법?” “그 금은보화와 현금은 가시아버지 거라면 다요.” “네?” 순정은 쌍까풀눈이 뒤집힐 정도로 새똥그래졌다. “아니, 그럼 우리 아빠 부패분자로 될게 아닙니까? 당신, 정말 묘합니다. 우리 아빠한테 검정가마를 들씌우고 자긴 미꾸라지처럼 슬쩍 빠져나가자고? 어림도 없어. 흥!” 정호는 순정의 두 손을 잡으면서 정색했다. 순정은 손을 빼갔다. 정호는 내심하게 순정한테 일깨워주었다. “절대 그런게 아니오. 가시아버지 거라고 해야 우리 둘이 다 살아남을 수 있소. 가시아버지한텐 문제 될게 없소. 사망한 분이기에 금은보화래력을 수사할 방법이 없소. 딱 얻어먹은게라는 무슨 증거 있소? 뭣이 있소? 시장이 한뉘평생 딸한테 이만한 선물 사줄 수도 있지 않겠소? 아버지가 딸한테 사준게라면 다지. 그렇게 되면 금은보화가 제한테 되돌아올 수도 있소. 정당한 수입으로 딸한테 사준 건데 무슨 리유로 압수한다오.” 순정은 한숨을 호 내쉬었다. “그래도 그렇지. 아버지가 부패분자 혐의를 받을 건 뻔하지 않는가요? 세상사람들 어디 세살짜리 애들입니까? 금은보화를 찾지 못하더라도 사망한 아버지한테 불명예스런 일을 당하게 할 순 없어요.” 정호는 신신당부했다. “순정이, 내 말을 듣소. 저세상에 간 가시부모도 딸을 위해 고만한 희생은 달갑게 할 거요. 딸이 감옥에 가는 걸 보자겠소?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서슴치 않을라니.” 순정은 그 말에 좀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정호는 계속 했다. “생각해보오. 아버지 불명예를 지는게 옳소? 딸을 감옥에 보내는게 옳소?” 순정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그렇지.” 정호는 입을 순정의 귀 가까이에 대고 목소리를 낮춰 쑤근거렸다. "그 서쌍판납 태족마을에서 산 은띠 있잖고 뭐요?" "네.  왜?" "그걸 내 최혜영 국장네 아버지 최시장한테 준게라고 딱 잡아떼오. 내 국장으로 되려고 회뢰했다고 하오." "어떻게 거짓말 해요?" "그래야 최혜영 국장 입을 틀어막는단 말이오. " "네- 살자니 남을 물어먹어야 하는구만요." "또 그 은띠를 내 가져다 최시장을 준 거 최시장이 다시 우리 가시아버지한테 준게라고 하오." "그런 거짓말 어떻게 하오?" "가시아버지 금고 안의 은띠랑 금은보화 대부분 최시장한테서  가진게라고 해야 하오. 그래야 가시 아버지를구하고 우릴 다 구할 수 있단 말이오." 정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금이빨을 드러내며 헤벌쭉거렸다 "오- 그래야 최국장 입을 틀어막을 수 있겠군요. 호호호." "그래. 내 이미 최혜영한테 장훈을 쳤으니까. 우리 둘이 입을 맞춰 딱 물고 늘어지면 최혜영인들 무슨 수가 있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최국장이 금고의 은띠랑 금은보하를 몽땅실어오지 않는가 보오. 흐흐흐." 역어빠진 순정은 인차 태도를 바꿨다. “이제야 알겠군요. 당신 참 로련한 부패분자입니다. 아니, 교활한 미꾸라집니다.” “ㅎㅎㅎ. 총명한 순정이 옳바른 판단을 내리리라 믿소.” “알만 해요.” “또 한가지 있소.” “뭔가요?” “한가지 부탁하기오. 내 보마차에 있던 돈과 금은보화 말이요. 꼭 찾아내야겠소. 그런 어중이떠중이한테 떼운다는게 괘씸하단 말이오. 금은보화 찾으면 몽땅 저를 줄게.” “누가 당신 말 믿겠소? 우리 아버지 금고에 손을 다 댄 도둑놈. 흥!” “최혜영 국장이 뭐랍데?” “당신 무슨 짓을 한 거 모를 거 같습니까? 거러지처럼 내 본가집에 기여들어가 밥까지 다 훔쳐 먹고 금은보화를 챙겨넣다가 나포되잖았는가?” “됐소. 돼. 그저 내 준게 다 있는가 들춰 본 걸 가지고. 금은보화부터 찾고 보기오.” “차를 산 놈이 딱 들어눕는데 무슨 수로 찾습니까?” “공안국 박국장과 찾아달라고 부탁하오. 분명 그놈새끼 떼먹으려는게 아니고 뭐요?” “내 어째 좋은 6촌동생을 생각하지 못했을가? 그래도 당신, 아니, 최국장이 머리 베아링처럼 뱅뱅 잘 돌아간다니깐.” “박국장이 그놈한테 갔다오면 내게 기별하오.” “알았어요. 최국장님. 호호호. 신용을 지켜요. 금은보화 찾으면 몽땅 줘야 해요.” 순정은 아양까지 떨어댔다. “그래. 근심하지 말라. 내 인격으로 담보하마. 기별할 때 전화로 ‘박씨가 땅에 박혔다.’ 고 말해라.” “어째?”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쓰는 암호야.” “알았어요. 참 묘하군요. 에잇, 진짜 특무정치구나.” 정희는 저쪽에서 듣기도 역겨웠다. (리혼한 주제에, 흥, 저 바보 또 최국장한테 사기당하는구나. 금은보화 찾으면 다 내 거야, 내 거. 최국장이 이젠 날 황후로 여긴다, 여겨, 널 황후로 여기는가 하니? 쳇, ㅋㅋㅋ.” “순정이, 우린 필경 30년을 살아온 조강지처 아니고 뭐요.” “흥, 이젠 리혼했잖은가요?” “아니오. 건 다 우리 둘이 살아남기 위해 가짜리혼을 한 거요.” “가짜리혼? 법적으로 리혼수속했으면 리혼한게지. 가짜리혼이란게 어디 있습니까? 지금 남들도 가짜리혼이 몽땅 진짜리혼으로 됩디다.” 순정은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리혼수속을 했으면 리혼이지. 가짜리혼이라면 가짜리혼인가? 난 마음 속으로 이미 리혼한 거야. 누가 네한테 미련두는가 해? 이젠 졸혼하고 홀로 내 인생을 살겠다.) “그럴 수도 있소. 그럼 부부 아니라도 이전 스승과 제자로 돌아가기오.” “픽, 메스꺼워. 당신은 나쁜 남편인데요. 좋은 스승은 더구나  아닌데요. 음험하고 허위적인 위군자, 주색에 미친 부화타락한 부패분자입니다.” “내 아니면 영희하구 너네 예술학원에나 왔겠구나. 국가1급무용수로 됐겠구나.” “쳇, 우리 아빠 시위 서긴데. 날 예술학원에 하나 입학시키지 못했겠구나. ” 순정은 콧방귀를 뀌였다. “당신은 영희한텐 좋은 스승으로 될 수도 있습니다. 무용도 가르치고 섹스도 배워줬잖아요? ㅋㅋ.” “무슨 소리야.” “로실히 말하세요. 무용강당에서 영희를 그랜 거 모르는가 하는가? 누굴 속여? ” “지하주차장에서 영희를 재꼈지? 이젠 로실히 말해.” 정호는 아닌 보살을 떨었다. “무슨 소리야?” 사실 그날 정호는 영희를 공항에서 마중해 지하주차장에서 재끼려고 들었다. 그런데 영희 마구 발버둥질치면서 반항하는 바람에 야욕을 채우지 못했던 것이다. “군철이 누구 앤지 알아?” “무슨 헛소리오?” “시치미를 따지 마세요. 군철이 누굴 딱 떼닮았는지 여겨보지도 않았습니까?” “됐다, 됐어. 이런 말 할 새 없어. 여기서 헛소리장단 말고 어서 가.” 순정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도도거렸다. 순정이 택시를 타고 가버리자 정호는 안도의 숨을 후 내쉬었다. 오후에 순정한테서 핸드폰이 왔다.  “여보세요. 금방 ‘박씨가 땅에 박혔습니다.’” “알았네.” 핸드폰을 놓자 정호는 친구들인 성호랑 종호랑 범송이랑 데리고 택시에 앉아 차를 산 자의 집으로 달려갔다. “제길할, 문걸이 정신병에 걸리잖았으면 이럴 때 함께 하면 얼마나 좋겠어? 개똥도 약에 쓰자면 없단 말이야.’ 성호는 게두덜거리는 정호를 보고 말했다. “고까짓 놈을 줴짜는덴 우리 몇이면 족해. 그 놈이 성이 뭔지 아니?” 정호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오씨라고 하더라.” “오씨?” 성호는 량미간을 찌푸렸다. 그들이 택시를 타고 차를 산 오씨네 집에 이르렀을 때였다. 때마침 웬 사내가 텁쑥한 사자머리를 흩날리며 집 대문 밖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까지 꼈지만 정호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저놈새끼야.” 성호가 택시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며 고함쳤다. “서랏!” “어디로 뻗어?!” 성호가 번개같이 덮쳐나갔다.  "썩 꺼지지 못하겠니?!" 사내는 홱 돌아서면서 품 속에서  시퍼런 비수를  뽑아 휘둘렀다. 성호가 날아나가며 발길을 날렸다. 손목을 채인 그 놈이 비수를 떨어뜨렸다. 사자머리가 어찌 시내에 소문난 정의용사 사인정탐 성호 적수가 되겠는가.  그때 정호가 덮쳐나가 그 놈 발뒤꿈치를 걷어차 넘겼다. 뒤따라 간 정호와 범송이 그자의 팔을 비틀어쥐여 일으켜 세웠다. 마스코를 줴당겨 훌 벗기고 보니 바로 오씨였다. 정호는 비수를 주어들고 칼날을 보며 을러멨다. "개새끼, 어디라고 비수를 휘둘러?" 그들은 범죄자를 압송하듯 오씨를 끌고 그 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오씨를 쏘파 앞에 꿇어앉히고 쏘파에 늘어앉았다. 정호가 을러멨다. “이 도둑놈아, 네 놈이 내 금은액세서리하구 돈을 떼먹고 살아남을 거 같아?” “아니, 난 차에서 돈과 금은부치라곤 본적도 없소.” 정호가 을러멨다. “이 사건은 이미 공안국에서 수사하기 시작했어. 로실히 금은보화하구 돈만 내놓으면 이 일 없는 걸로 할 수 있다. 어떤가? 감옥에 가겠니? 남의 재물 순순히 내놓겠니?” 바로 이것이였다. 그는 순정을 리용해 공안국 박국장을 불러 오씨한테 압력을 가하게 한 후 친구들을 불러가지고 덮쳐와서 재물을 조용히 찾아가려고 했다. 만약 공안국에서 계속 수사하면 금음보화는 수사해내도 불의지재를 얻은 자기가  꼬리를 밟힐 수도 있었다. 정호는 시퍼런 비수를 빼들고 목에 지렁이 같은 핏줄을 세우면서 을러멨다. “이놈아, 내 재물 내놓지 않고 편안할 거 같아? 직업도 없는 놈이 어데서 돈이 있어 보마차를 다 사?! 응?! 내 재물 내놓지 않으면 보마차라도 가져가야겠어.” “우리 형님이 돈을 대줘서 보마차를 샀소.” “뭐? 너 형님 무슨 놈이 돼서 보마차를 다 사줘? 응? 로실히 말해라. 죽을줄 알아. 어째 피를 봐야 내 재물 내놓겠니?” 정호는 비수를 오씨의 목에 대고 당장 찌를 상했다. "내 무슨 돈이 있겠소. 보마차 값을 아직도 다 물지 못했소." "뭐라고? 얼마 못 물었어?" "30만원이나 못 물었소." "그래?" 정호는 비수로 오씨 볼을 슬슬 문대며 을러멨다. "잘 됐다. 나머지 30만원 내한테 가져와. 그 보마차는 내 거야. 녀편네가 내 없을 때 팔아먹은 거야." "예?" "나머지 돈 가져오라. 알았니? 안 그러면 보마차를 끌어가겠다." 오씨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볼멘소리로 곰상곰상 대답했다. "알았소. 돈 얻으면 형님한테 줄게." 성호는 오씨가 눈에 퍽 익어보였다. “당신 혹시 오청룡 국장네 동생 아닌가?” 모두들 여겨보니 두부모처럼 네모나고 퉁퉁한 얼굴이나, 수수빛처럼 벌건 낯이나 오청룡과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겠는가. “우리 사촌형님을 어떻게 아오?” 성호는 정호를 마주 보았다. “알다뿐이겠니? 공상국 오국장은 나하구 죽자살자 하는 친구야, 친구!” 정호의 말에 담이 커진 오씨가 이실직고했다. “맞소. 우리 사촌형님이 오국장이오.” 성호는 오씨를 일으켜 쏘파에 앉혔다. "널 어데서 본 것 같다." "양?" 오씨는 성호를 피뜩 쳐다보더니 덴겁했다. 그러나 인차 침착을 회복하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성호는 오씨를 뚫어지게 쏘아보며 중얼거렸다. "딱 어데서 본 거 같은데. 불시에 생각나지 않는다." 정호는 비수를 거두면서 어설프게 피씩 웃엇다. “야, 임마, 오국장 사촌동생이라구?” 정호는 오씨 옆에 가 앉아 오씨 어깨에 팔을 올려놓았다. “야, 당장 오국장한테 전화해라. 너네 형님하구 물어봐라. 너네 형님을 누가 국장으로 만들었는가.” 오씨는 인차 다른 방에 가서 전화했다. 이윽고 반시간도 안돼 오국장이 들어섰다. “형님, 어떻게 돼 내 사촌동생네 집에 왔소?” 오청룡 국장은 정호를 보고 반색했다. “어, 성호 경리하구 범송 부경리도 왔구만. 허허허.” 오청룡 국장은 알은 체하는데 정신병자 같지도 않게 펀펀했다. 정호는 오국장을 데리고 다른 방에 들어가 한참 쑥덕거렸다. "정룡아, 여기 오라." 오청룡은 동생 정룡을 데리고 다른 방에 들어갔다. 이윽고 나온 오씨는 묵직한 큰 가방을 들고 나와 머리를 푹 수그렸다. “형님, 잘못했소.” 그는 묵직한 가방을 정호 앞에 척 내려놓았다. “세보오. 다 여기 있소. 형님, 눈이 있어두 태산을 알아보지 못하구 그랬는데 용서해주오.” 정호는 가방을 열어보았다. 피뜩 보니 금은액세서리로, 마노, 비취 목걸이 그대로 있는 것 같았다. 10만원짜리 돈묶음 5개도 그대로 있었다. “됐어. 진작  진짜 임자한테 돌려줘야지. 공안국 수사는 면제야. ㅎㅎㅎ.” 정호는 오정룡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오늘 일은 없는 비밀로 하자.  공안국에도 알리지 말라. 알았니?" "양. 알았소. 공안국에 알리지 않겠다니  고맙소." 정호는 당장에서 만원짜리 묶음 하나 꺼내 오정룡한테 내주었다. 얼리고 닥치는데야 뛰여난 국장이지. “아까 너무 한 걸 량해하게나. 싸우지 않으면 사귀지 못한다구. 오국장이 내 아우니깐. 우린 이젠 형제야.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 해. 박국장은 내 처남이니깐. 근심하지 말게.” 정호는 오국장과 함께 다른 방에 들어가 뭐라고 쑤근덕거리고 나왔다. 오국장은 또 정신병자처럼 정호한테 이걸 먹어라는 시늉했다. “야, 임마, 똥 먹지 않고 가니? 내 똥에 오줌맥주나 처먹고 가라!” 정호는 오국장한테 주먹을 쳐들어보이고는 성호랑 범송이랑 데리고 술 마시러 바람결처럼 사라졌다. 교활한 미꾸라지가 먹이를 찾아가지고 돌틈에서 빠져나가는 순간이였다. 술상에 앉아서 성호가 무릎을 탁 쳤다. "바로 그 놈이야!" 정호랑 범송이랑 모두 성호를 쳐다봤다. "누굴 그래?" 성호는 저가락으로 밥상을 두드렸다. "바로 그 놈이야. 우리 문걸이랑 망아산 수림에 들놀이 갔다가 영희를 구한 적이 있지 않고 뭐냐?" 범송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게 몇십년 전 일이 아니냐?" "그래." 성호는 확정적으로 말했다. "아마 30년 전 일이지. 그때 영희를 뒤쫓다가 우리하구 맞붙었던 놈이 바로 오국장네 동생이야." "엉?" 정호는 눈이 데꾼해졌다. "글쎄 나도 그 놈을 어데서 본 것 같았는데. 오. 맞아. 그날 그 놈새끼 날 발길로 걷어찼지." "뭐라구?" 모두 정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정호는 인차 말을 바꾸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아니야. 난 그날 망아산 수림에 갔지만 그런 놈을 본적도 없어. 영희를 쫓은 것두 몰라." 기실 정호는 그날 망아산 수림 방공호에서 영희 부래지어를 벗기려고 허둥거리다가 정룡이랑 강도를 만났던 것이다.      (이 자리에서 정룡을 아는 척했다간 안돼. 모든 내막이 탄로날게 아닌가. 영희는 이제껏 비밀을 지키고 가버렸지.  만약 내 문걸의 처를 데리고 논 걸 아는 날엔 친구 안해를 다쳤다고 어느 친구 나하구 놀겠어. 친구 의리도 없다고 놀겠는가? )  정호는 친구들의 시선을 다른데 돌려야 했다. "자, 옛다. 종호." 정호는 만원짜리 돈묶음을 척 내놓았다.  "이건 뭐냐?" 종호는 돈묶음을 되밀어주었다. "받아라. 네가 우리 민족 항일투사들의 장렬한 사적을 수집해 책을 내고 있는데 나도 좀 힘을 보태주자. 들을라니 성호도 부조했다더구나." 하여간 관계처리를 척척 처리하는 거나 인심을 내는 거나 최국장을 누가 당하겠는가. "최국장 성의를 받아라." 성호가 종호를 보고 말했다. "최국장의 돈을 민족의 정의로운 사업에 쓰는게 옳다." 그제야 종호는 돈을 받았다. "감사하다. 정호. 이 돈을 우리 민족 항일투사들의 사적 책을 내는데 잘 쓰겠다."       미꾸라지는 인심을 내면서 깊은 진흙탕에 꼬리를 감추며 숨어들어갔다. "자, 술이나 마시자. 오늘 감사하다. 너네 도와줬기에 내 돈을 찾았다. 감사하다. 그래도 친구가 제일이다. 돈으로 바꾸지 못하는게 친구야. 안 그래?" "맞다. 친구 제일이야!" 모두들 미스터리를 한쪽에 잠시 밀어두고 술잔을  부딪치며 쭉쭉 기울였다.
250    대하소설 졸혼(14)김장혁 댓글:  조회:1127  추천:0  2022-05-22
                                             대하소설                            졸혼                        제2권                                             김장혁             23. 붕괴                 문걸은 머리가 뜨끈뜨끈해지며 새까만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어 붕 하늘로 날려올라갔다. “사랑”이 아프게 박힌 소나무껍질이 타버리며 신음소리를 낸다. 리지의 방선이 “사랑”을 거머쥐고 블랙홀에 휘감기고 분신쇄골이 돼 절망의 대문을 두드린다. 절망의 소낙비가 간사한 웃음을 머금고 희망의 푸르른 언덕을 스믈스믈 파먹으며 이발에 끼운 허위를 뱉어낸다. 망아산이 통채로 마구 꺼져들어가며 숫총각소나무와 숫처녀들의 팔을 마구 비틀어 실망스런 한줄기 연기로 타래쳐오르며 푸르른 하늘을  간음한다. 허위가 간사하게 웃으며 잔나무밭에 숨어 요사하게 란무하며 진실을 롱간하고 순박한 나그네를 유혹해 사랑의 블랙홀에 풀러덩 빠지게 한다. 청순을 잃은 대지는 요사한 여우한테 기만당해 풀친 발목을 붙안고 구슬프게 대성통곡친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소리에 뒤이어 세상의 귀가 뻥 뚤리며 세속의 어지러운 소리 다시 희미하게 들린다. “여보, 죄송해요. 난 더러운 녀자입니다.” (아니, 영희 목소리?) 눈을 뜨려고 해도 천근무게 돼 뜰 수 없다. 안간힘을 다 써 눈을 살며시 떴다. 저 앞에 영희가 허위에 찬 참사랑 블랙홀에 휘말려들어가면서 손사래를 치고 있지 않는가. “여보, 난 정호선생한테 정조를 잃은 녀자입니다. 당신이 사랑할만한 녀자 아닙니다.” 분명 영희 목소리다. “아니, 아니야!” “저를 잊으세요. 난 당신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녀자입니다.” “아, 아니야!” “아버지!” “아버지, 깨나세요.” 어디선가 귀에 익은 녀자애의 목소리. 문걸의 외까풀눈에 염라전이 희미하게 보였다. 음산한 블랙홀에 돌개바람이 불어쳐 홧홧 달아오른 기와장과 잿빛벽돌을 우당탕퉁탕 날려보낸다. 벌겋게 달아오른 염라전 층계마다 공포가 요사하게 도사리고 앉아 있고 저승사자가 퉁방울눈을 부릅뜨고 쏘아보고 있었다. 어떤 저승사자 부릅뜬 퉁방울눈에서 불길을 내뿜었고 어떤 저승사자 눈확에서는 독사가  디룽디룽 매달려 혀를 날름거린다. 매지구름이 우는 하늘에서 불비가 마구 쏟아져 염라전을 어지럽힌다. 이승에서 받은 실련과 파혼의 모든 고통을 훌훌 날려보내고 비명소리, 아우성소리 천지를 진동한다.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서라도 이루려고 미련을 가진 유령들이 총망히도 염라전으로 몰려간다. 염라왕은 너무나도 쉽게 유령들을 자기 식구로 먹어버린다. 그것도 미녀유령을 먼저 삼켜 뚱뚱하고 헐럭한 배에 잠재워버리고 놋뚜겅 같은 입짝을 쩝쩝 다신다. 드디여 썩은 악취가 염라전에 물씬 풍긴다. 쩍 아가리를 벌린 염라전 대문 안에 숱한 관작과 백골더미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얼룩반점이 박힌 얼룩독사들이 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푹 꺼져들어간 백골 눈확으로 스르르 기여들어가 대골을 파먹는다. 쥐들이 찍찍거리며 놀라 오르르 도망친다. 저 앞에 개턱처럼 쳐든 조개턱이 보인다. 이 좋은 세상을 두고 웬 일일가? (아니, 저게 영희 아닌가?) “여보!” “영희!” 그러나 영희는 손사래를 쳤다. “누가 당신 여보인가요?” “당신은 오누이 엄마 아니고 뭐요?” “헛소리. 난 근본 오누이를 낳은 적도 없소. 그게 순정의 아들딸인데요.” “뭐라고? 당신이 걔들을 낳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문걸은 손을 뻗쳐 영희 팔소매를 잡으려고 허우적거렸다. “가지 마오. 왜 이리 총망히 염라전에 들어가오?” “난 이승에서 낯을 쳐들고 살 수 없게 됐어요.” “누구 눈치 보고 사오? 당신은 내 안해요. 이건 사실이오.” “누가 당신 안핸가요? 난 두 남자의 안해인데요.” “정호?” “그래요.”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번대머리가 불쑥 나타났다. 영희가 어떻게 돼 저승사자들이 든 담가에 실려 홧홧 달아오른 염라전 층계로 올라가고 있었다. 정호가 뒤따라 달려나갔다. “날 두고 어디로 가오?” “따라오지 마세요. 당신과 나는 이젠 연이 끝났어요.” 그때 정호가 두 팔을 벌리고 추격해나갔다. “영희! 갈 때는 가더라도 그 풍만한 젖가슴만은 두고 가라. 그 풍만한 젖가슴 없인 난 못살아.” “아니, 정호, 이놈새끼!” 문걸이 정호 멱살을 잡으려 했다. 그런데 정호는 문걸을 활 밀어버리고 품 속에서 비수를 빼들고 저승사자들을 찔러눕혔다. 그는 담가에 달려들어 풍만한 영희 가슴을 마구 헤쳤다. 영희가 일어나 정호 번대머리에 뛰여올라가 바레무를 춘다. 그녀가 호수가 백조처럼 두 날개를 파닥이며 발끝으로 모둠발질하다가도 흰 외다리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번대머리 위에서 바레무를 춘다. 영희가 바레무를 추다가 그만 번대머리에서 쭉 미끌어 떨어진다. 정호가 영희를 훌 받아안고 가슴을 활짝 헤치고 마구 만지고 핥는 것이 아닌가. “이놈새끼!” 문걸이 정호한테 덮쳐나갔다. 영희는 반항하기는 고사하고 가슴을 벌려대며 해쭉 웃었다. “여보!” 문걸은 정호를 주먹으로 쳐눕히고 영희 길다란 다리를 덥석 잡았다. “가지 마오!” 영희 야들야들한 허연 허벅다리 쑥 빠졌다. 영희는 가슴과 다리 한짝을 각각 정호와 문걸한테 내주고 한줄기 연기로 타오르며 휙- 바람타고 염라전으로 날아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염라전에서는 별스레 귀신들의 웃음소리, 환호소리 요란했다. “우리 염라전에 미녀 왔어!” “하하하!” “여보!” 문걸은 손을 뻗쳐 영희를 잡으려는듯이 휘두르며 목메여 고함친다. “영희! 날 데리고 가오!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재혼 저승에 가서라도 이루기오.” “아버지, 깨나십시오.’ 남자애의 목소리. (누군가?) 귀에 익은 목소리인데. 염라전에는 남자애도 녀자애도 보이지 않는다. 손에는 영희의 야들야들한 허벅다리가 쥐여져 있지 않겠는가. “이건 뭐야? 다리만 내줘?” “아빠, 어서 깨나세요.” 귀에 익은 녀자애 목소리. “아버지, 아들 군철입니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문걸은 애써 눈을 살며시 떴다. 온통 새하얗다. 새하얀 옷들이 다가온다. “깨났군요.” 새하안 옷이 다가와 손으로 눈까풀을 뒤집어본다. “이젠 소생했습니다.” “아버지, 살아났습니다. 으흐흑, 흑흑흑.” 지예의 울음소리 아닌가. 그는 외까풀눈을 디룩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 여긴…?” “아빠, 병원 구급실입니다.’ 사실 문걸은 뜻밖의 사실 진상, 내막을 알고 망아산 수림에서 실신해 쓰러졌다. 군철과 지예가 황급히 120구급차를 불러 병원 구급실에 호송했던 것이다. 춘희박사는 정신을 잃은 문걸을 진찰해보고 살짝 뇌출혈이 와서 졸도했다고 진단했다. 황선희박사의 회진도 역시 춘희박사와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 두 박사의사의 지도아래 구급실 의료일군들의 주밀한 구급치료를 받아 문걸은 일주일만에 소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걸은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 나타난 정경에 몸까지 부들부들 떨었다. 번대머리, 우멍눈, 헤벌쭉가리는 두터운 입술… “앗! 정호!” 문걸은 손을 뻗쳐 멱살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팔이 천근 무게 되는 것 같아 좀처럼 들 수 없었다. “아버지, 군철입니다.” 군철이 문걸의 손을 잡았다. “군, 군철?” “예, 오빠입니다.” “오, 오빠? 넌 오, 오빠 없어.” “난 아버지 아들 군철입니다.” “아, 아니야. 넌, 넌, 넌, … 아니야.” 문걸은 아마 군철을 보고 정호로 오해한 것 같았다. 아니면, 군철을 자기 아들이 아니라 정호의 아들이라고 말하려는 상 싶었다. 문걸은 또다시 까물어쳤다. 한많은 눈확에서 눈물이 절망을 타고 슬피 울며 두르르 굴러내렸다. 눈초리에서는 너무나도 서러운 이슬이 맺혀 파르르 떠는 눈까풀과 함께 그네를 뛰고 있었다. “아버지!” “아빠!” 군철과 지예는 문걸의 량손을 잡고 울며 고함쳤다. “그만하오. 환자를 쉬게 하세요.” 춘희박사가 오누이를 말렸다. 황혼은 벌겋게 락조로 타오르며 창문 안에 벌건 얼굴을 들이밀고 기웃거렸다. 문걸의 병상 옆에는 두 녀인이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춘희박사와 지예였다. 춘희는 안해를 잃은 문걸이 한없이 불쌍했다. 이전에 그녀는 문걸과 자꾸 리혼하려 했다는 영희를 아니꼽게 보아왔댔다. 심지어 건뜩 쳐든 조개턱마저 보기 싫어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문걸이 아주 불쌍한 남자라고 여겼다. 이번에 안해를 잃은 문걸이 입원하자 그녀는 전보다도 더 살뜰히 보살폈다. “물, 물…” “예. 아빠.” 지예는 황급히 컵에 따뜻한 물을 따라 왔다. 춘희가 문걸을 안아 일으키고 숟가락으로 물을 퍼 입에 가져갔다. 문걸은 한술한술 물을 받아 삼켰다. 이윽고 문걸은 외까눈을 가슴츠레 뜨고 디룩거렸다. 그는 춘희를 보자 벌떡 일어나 와락 끌어안았다. “영희!” “아니, 춘흰데요.” “춘희?” “네, 의사 춘희 기억나요?” “아니, 영희야!” 문걸은 병상을 두리번거렸다. “난 영희 다리 차례졌어. 정호 그놈새끼 영희 젖가슴이 풍만하다고 가져갔어. 그놈새끼를 놔두지 않겠어.” 지예가 아버지를 껴안았다. “아빠, 딸 지예 기억나죠?” “아니야, 영희야!” 문걸은 정신이 이상했다. 너무나도 큰 충격에 정신이 완전히 붕괴됐다. “아빠- 으흐흑, 흑흑흑.” 문걸은 지예의 대성통곡도 뒤로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일어나 서성거렸다. 그는 춘희를 보고 중얼거렸다. “영희, 정호새끼한테서 당신 젖가슴도 찾아오고. 다리도 제자리에 맞추고. 야장간에 가야겠어.” 그는 병실을 두리번거리다가 주춤 멈춰섰다. “금방 정호새끼 여기 있더니 어데 갔어?” 그는 분명 군철을 정호로 오해했던 것이다. “정호 어데 갔어?” 군철이 자리에 없었다. 지예의 말에 의하면, 금발미녀 애리싸한테서 급한 전화가 왔다고 했다. 상해에 두고 온 막내가 코로나에 걸렸다고 했다. 그래서 군철은 문걸이 깨나는 것도 보지 못하고 부랴부랴 상해로 날아갔다고 했다. (오빠는 이젠 아빠가 제 친아빠 아니라고 간 거야. 아빠하구 엄마 아들이라고 자기를 얼마나 커했는데. 새끼 중하긴 중해. 사선에서 헤매는 아빠를 두고 가버려?) 지예는 속으로 군철을 욕했다. (내 리혼 잘 했지. 결혼해 뭘 해? 이젠 재혼도 안해. 새끼를 절대 낳지 않아. 새끼 신세 뭐 있어? 금이야 옥이야, 곱게 길러서 대학 보내고 시집장가까지 다 보내구 낑낑거리면서 집까지 해결해 줘도 차례지는게 뭔가? 우리 엄마 아빠 봐. 손자애들까지 기르느라고 아글타글하다가 암에 걸리니 훌 세상뜨지 않았는가? 사람이 사는게 뭘 위해 살아? 원, 손자애들까지 다 키우고나면 제 죽을 나이 되는데. 어머, 세상에, 아빠 엄마 인생 너무 처참하다.  난 절대 부모처럼 못 살아.) 지예는 정신나간 불쌍한 아빠를 달래여 병상에 도로 눕혔다. 딸은 크나큰 정신타격에 모든 것이 붕괴되고 절망블랙홀에 빠진 아빠가 솟아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했다. 또 지지리 암울한 보름이 흘러갔다. 문걸은 악몽에 악몽을 거듭하며 시달리고 있었다. 귀신들이 욱실거리는 염라전인데 이상한 장면이 연출됐다. 정호가 무용강당에서 영희 하얀 허벅다리를 만지지 않겠는가. “닥쳣!’ 문걸이 뛰여들어갔다. 경찰들도 들이닥쳤다. 염라전 저승사자들이 경찰들을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여긴 신성한 극락세계요. 염라전에 경찰들은 들어가지 못하오.” 저승사자들이 경찰들과 싱갱이질하는데도 정호는 경찰과 문걸을 아랑곳하지도 않고 영희를 훌 들어올려 안고 가슴을 헤치고  마구 빫고  핥아댔다. 뒤이어 치마마저 걷어올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영희는 반항은커녕 해쭉거리며 행복에 겨운 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닥쳣! 날 기를 채워 죽일 예산이야?!” 문걸이 덮쳐들어 무쇠주먹으로 정호 대가리를 쳤다. 정호 대가리가 무용강당에 뚝 떨어져 썩은 박바가지처럼 데굴데굴 굴렀다. “정호! 이놈새끼!” 문걸은 벌떡 일어나 주먹을 쳐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예가 옆에 앉아 있었다. 악몽이였다. “이년, 죽어 봐!” 문걸은 주먹을 휙 날려 지예를 쳤다. “아빠!” 지예는 손으로 날아드는 주먹을 막으며 피했다. “아빠, 지예입니다. 아빠 딸입니다.” “뭐라고? 영희가 어떻게 내 딸이냐? 네년은 정호 각시야! 허허허.” 문걸은 미친듯이 허구픈 너털웃음을 웃으며 광기를 부렸다. 춘희의사와 간호원, 만금이 달려들어 말려서야 문걸의 광기는 겨우 내리눌리웠다… 문걸은 영희를 붙잡으려고 귀신들이 아우성치는 염라전에 들어갔다. (이상해.)  염라전 여기저기에 사람 낯은 보이지도 않고 펄떡펄떡 뛰는 숱한 심장들이 디룽디룽 매달려 있지 않겠는가. “영희! 어데 있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문걸은 염라전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며 영희를 찾았다. “참, 불쌍한 영령이구나.” 염라왕이 허연 수염을 쓱쓱 쓰다듬으며 문걸을 내려다 보았다. “당신 뭐야? 염라전을 잘 관리하라구. 남의 새파란 색시를 벌써 열라전에 데려다 뭘 해? 혹시 당신들 염라전에서도 남의 색시를 간음하려는게 아닌가?” “허허허. 네 색시 원래 저런 년이야. 염라전에 와서도 저러는데 뭐가 그리 아까워? 찾아헤맬 가치 있어? ㅋㅋㅋ.” 염라대왕의 손길을 따라 둘러보았다. (아니, 저게 뭐야?) 글쎄 정호가 지하주차장 관 위에서 영희를 깔고 들어앉아 가슴을 마구 반죽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영희는 반항하기는커녕 관작에 누워서 해쭉해쭉 웃으며 허리를 요리곰실 조리곰실 요동치며 정호한테 아양을 떨고 있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최선생님, 이젠 죽어도 원이 없겠어요.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서라도 이룹시다. 우리 결혼식을 시작합시다. 어서 저를 진정한 녀성으로 만들어주세요. 행복한 갈보로 만들어주세요. 나는 당신의 녀자예요.” 문걸은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꽉 목메여 아우성쳤다. “영희! 여보, 어찌 차마 그럴 수야 있소? 그만두오.” “호호호. 남의 좋은 일에 작작 삐치세요.” “그럼 네가 핸드폰에 남긴 유언은 몽땅 거짓말이란 말이냐?” “내 죽었다고 당신 너무 슬퍼할가봐 걱정됐죠. 정을 떼자고 그런 유언 남겼죠. 좋을대로 생각하세요.” 정호는 문걸을 쏘아보며 꽥 고함쳤다. “썩 꺼지지 못해?! 여기까지 쫓아와 방애하겠니?” “정호! 이놈새끼!” 문걸은 고함치며 정호한테 덮쳐나갔다. “그만하세요. 재수없이 저놈한테 발각됐습니다.” 정호는 괴춤을 춰 입으며 되돌아보고 희죽이 웃기까지 하지 않는가. “야, 이놈새끼야!” 그런데 영희 또 저게 뭐냐? “남의 좋은 일에 끼여들긴? 흥! 에잇, 재수 없이 논다. 진짜, 미치겠다.” “뭐라고? 너희들 원래 좋아했어?” “좋아하면 어째? 우린 사제간이자 서로 사랑하는 련인인데요.” “뭐라고? 주둥이를 다물지 못해?” “왜 그래요. 진실을 말하는데도 잘못인가요? 당신 알기도 전에 최선생님과 전 얼마나 살았는지 압니까? 무용강당에서, 망아산 소나무숲에서, 당신과 처음 그래던 그 신비한 방공굴에서. 호호호.” “이년, 이게.” 영희는 가슴에 흘러내린 한복고름을 고쳐매며 두덜거리지 않겠는가. “항상 남의 좋은 일에 재수없이 끼어든단 말이야. 저게 끼어들지 않았더라도 내 최국장한테 시집갔을 수도 있었겠는데. 에이구, 내 팔자야. 그때 하도 나이 어려서 그랬지. 정조 잃어서 겁나 그랬지. 안 그럼 너 같은 떨거지한테 시집갔겠어? 어림도 없어. 어림도.” “이제야 네 속심의 말 하는구나. 사람은 죽어야 로실해지는구나.” “무슨 소린가요? 죽은 사람 억울해도 말할 수 있는가요?” “넌 사람이냐 뭐냐?” “영희 유령인데요. 호호호. 바보, 당신은 항상 바보.” “그래. 난 바보야. 정호하구 좋아하는 네년한테 속히워 한뉘평생 산 바보지.” “바보- 바보- 호호호.” 정호도 합세했다. “바보 같은게. 남이 좋아하는데 어서 꺼지지 못해!“ “뭐라고? 이 년놈들아, 죽어봐라.” 문걸은 벌떡 일어났다.     악몽에 악몽이 거듭되였다.     문걸은 한뉘평생 쌓아온 사랑탑이 와그르르 무너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문걸의 정신기둥이 산산히 붕괴됐다. 아니, 여지없이 풍비박산났다…  
249    대하소설 졸혼(13) 김장혁 댓글:  조회:1277  추천:0  2022-05-05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22. 참사랑 쁠랙홀         순정은 영희와 오랜만에 영상통화를 했다. 그런데 영희가 글쎄 자기 마노목걸이와 비취반지를 끼고 있지 않겠는가.       (아니, 저건 정호가 금고에서 빼내간게 아닌가! 너네 이만저만한 관계 아니구나. 저놈새끼 진짜 어사망파(鱼死网破)당하고파?! 내 입이 터지는 날엔 뼈다귀도 묻을 데 없을줄 알어.)       순정은 이를 빡빡 갈았다. 그러나 죽어가는 영희한테 속내를 드러내보일 수는 없었다.       ”영희야, 목걸이 이쁘구나.”       “그래? 오래잖으면 하늘나라 갈 사람 목걸이 해 뭐 하겠니?”       “얘, 어째 그리 이쁜 마노목걸이를 이때까지 걸지 않았니?” “이치저치 해 그리됐어. 너무나도 소중한 선물이 돼서.” “비취반지도 번쩍번쩍 하는게 멋있구나.” “그래? 내야 결혼해도 언제 한번 비취반지 하나 끼여 봤겠니? 이제야 뒤늦게 차례졌어. 언닌 흔해빠져도 하나도 주지 않고.” 순정은 분명 죽어가는 영희가 내놓고 터치우면서 자기를 골려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참는 수 밖에 없었다. “영희야, 언니 잘못이 많아. 널 질투하고 생각해주지 못한 걸 용서해달라.” “아니야, 언니, 난 언니에겐 죄인이오. 내 죽은 후에도 절대 속에 넣지 말고 널리 량해해주오. 그러잖으면 난 천당에 가서라도 눈을 감을 것 같지 않소.” 영희는 서리맞은 박처럼 앙상하게 시든 얼굴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핸드폰을 꼭 들고 정색했다. “언니, 생전에 한가지 부탁하기오.” 순정도 눈물을 훔치면서 물었다. “뭐냐? 말해라.” “언니,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자매라는 걸 잊지 마오.” “그럼 그거야 그렇지.” “언니, 내 하늘나라에 가면 언니 군철하구 지예를 친아들딸처럼 보살펴주오. 걔들이 에미없이 살 걸 생각하면 눈을 감지 못하겠소. 마지막 부탁이오. 걔들한테도 고독한 이모를 엄마로 잘 모시라고 부탁했소.” 순정은 눈물흘 흘리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영희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언니, 한가지  더 부탁해 되겠는지 모르겠소.” “백가지라도 부탁해라. 다 들어주마.” 순정은 핸드폰을 빤히 들여다보며 영희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겠는가 기다렸다. “언니, 최정호선생님을 량해하오. 이러나 저라나 그는 우리 은사가 아니고 뭐요? 절대 리혼하지 마오. 황혼기에 무슨 리혼이오? 우릴 보오. 자초에 난 졸혼하고 나 홀로만의 삶을 살려고 했소. 그런데 무슨 꼴이 됐소?” 순정은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욕설을 퍼부었다. (죽어가면서도 정호를 두둔하겠니? 흥! 참 대단하구나. 네야 큰 은혜 입은게 무슨, 더러운 간나새끼, 그러고도 새끼까지 부탁해? 어째 정호한테 부탁하지 못하니? 내 모르는가 하니. 문걸이 살인이라도 할가봐 유전자감정서를 보이지 않았다.  능청스런 간나새끼, 아닌 보살하긴. 흥!) 그러나 순정은 겉으로는 달래는 말을 했다. “약속하마. 군철과 지예를 딸처럼 생각하마. 한가지 들어 봐.  한국에서 말하는 졸혼은 우리 생각과는 달라. 한국에서는 우리 나이 아줌마들이 결혼생활에 지쳐서 졸혼하는 거야. 말하자면 리혼은 하지 않고 결혼생활을그만두고 별거하거나 홀로 사는 거야. 상대방은 서로 상대방 생활을 간섭하지 않고 사는 거야. ” 영희는 눈물이 글썽한 눈을 꼭 감으며 머리를 맥없이 끄덕였다. 순정은 죽어가는 영희가 알아두라고 자기 태도를 명확히 했다. "난 이젠 정호하구 못 살겠어. 나도 졸혼이야. 허나 한국 아줌마들과는 다른 졸혼이야." … 영희는 코로나가 치료돼 갓 출원한 군철과 지예와 화상통화를 했다. “엄마 저나라에 간 후 너넨 순정이모와 이모부를 부모로 모셔라. 자식도 없는 이모량주한테 정성 다해 효도해라.” 지예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엄마,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엄만 꼭 병마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힘 내세요.” 그러나 군철은 화를 벌컥 냈다. “이모는 글쎄 그런데. 그 나그넨 가만 놔두는가 봐라. 씨.” “어째 이모부하구 그러니?” 군철은 우멍눈을 부라렸다. “엄마를 모욕한 거 무슨?” “그런 일 없다. 없어. 이모부와 그러면 못써.” “이모 다 알려줬는데도 그럽니까?” “뭘 말이냐?” “최국장이 엄마 상해에서 돌아올 때 마중나갔다가 어찌구 저찌구 하던데.” “에이구, 아니야, 아니!” 영희는 조개턱을 맥없이 가로 흔들었다. “맥이 없어 길게 말 못하겠다. 넌 최정호, 그 분, 그 분을 잘 모셔야 해. 그는 우리 집 안의 은인이야. 내게 예술의 생명을 준 무용스승님이야. 네겐 그저 그런 분 아니야. 아이구. 군철아.” 군철은 들을수록 어리둥절해 했다. “군철아, 이후에 모든 걸 알아도 이 엄마를 욕하지 말라.” “알았습니다.” 군철은 또 욕설을 퍼부었다. “아버지를 가만놔두는가 봐라.” “어째 그러니? 네 아버진 불쌍한 사람이야. 세집에서 살면서 그림 그려 너네 오누이를 키우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니?” “엄마 앓는데 뭡니까? 리혼했다고 남처럼 취급하지 않았습니까? 엄마 치료부조 딱 만원 하고 지금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뭡니까. 씨.” “아니야. 넌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 갇혀 있다나니 잘 몰라.  너네 아버진 유일한 재산 화실마저 팔아서 엄마한테 보냈다. 국제인체화전시회에서 탄 상금마저 깡그리 보내왔다. 아버진 내 치료비를 대겠다고 지금 한국에 나가 간병일까지 한단다. 엄만 너네 아버지한텐 죄인이다. 죄인.” 지예가 한마디 톡 내쏘았다. “엄마 무슨 죄인입니까? 앓는게 무슨 죕니까? 남편이라면 안해 앓으면 당연히  정성을 다 해야죠.” “이만! 이만! 오래 통화하면 환자 치료에 나빠요.” 황선희 박사가 달려들어와 영희를 말렸다. 춘희 박사도 뒤따라 들어와 납득돼 하지 않는 영희한테 머리를 끄덕였다. 영희는 문걸한테 몸이 허약한데 온전히 자지도 못하면서 간병일을 그만두라고 전화했다. 그러나 문걸은 기어이 밤낮없이 일했다. 그런 남편이 불쌍했다. 그런 남편 보기 미안했다. 아니, 마음 한쪽 구석에 죄책감이 뼈 속까지 아프게 스며들었다. “지예야, 내 죽으면 내 핸드폰을 아빠께 드려라. 나는 너네 아빠한테 줄게 이 핸드폰 밖에 없구나. 이 핸드폰을 내 유물로 줘라.” 지예는 어머니 유언이나 다름없는 말에 머리를 끄덕이면서 쓰라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영희는 마지막으로 정호와 통화하려고 했다. 그런데 끝내 련계되지 않았다.      사실, 정호는 누가 뽀마찌프에 숨겨둔 50만원과 금은장신구를 반부패탐오회뢰국에 신고한 바람에 수사일군들한테 붙잡혀 심문받고 있었던 것이다.         최혜영 국장은 신고받자 정호를 나포해 50만원과 금은보화 래력을 심문했다.      정호는 오히려 반항했다.     “최국장, 검정개 돼지 흉 하지 마오. 최국장네 아버지 금고나 들춰 보오. 최시장 금고는 내 금고보다 엄청 더 클게요.” “닥쳣! 증거도 없이 무함하면 무함죄 가중될 수도 있어.” "증거를 대면 최시장을 처벌하겠소? 나를 제발시킨게 누구요? 당시 최시장이오. 최시장은 날 보고 뭐라 했는지 아오?" "뭐라 했소. 위법행위가 있으면 아버지라도 처벌해야죠. 이실직고하오." "나하구 개별담화할 때 이렇게 귀띰했소. " "?" "'네가 먹이지 않으면 누가 널 제발시키려고 하겠니? 돈을 아끼지 말고 지도자들을 찾아가보오." "닥쳣! 내 아버지 사망했다고 마구 물어먹지 말라. 무함해도 분수 있지." "띠끔하지? 순정네 본가집 금고에서 나온 은띠는 최국장네 아버지 우리 가시아버지한테 선물로 준 거요. 당시 최국장네 아버진 부시장이였소. 시장으로 바라올라가려고 말로는 순정의 생일선물이라고 우리 가시집에 가져온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소. 순정도 보았소."  세상에서 이름난 청렴한 간부 최시장을 업고 똥구덩이에 뛰여들다니? 이건 어처구니 없는 무함이였다. 진짜 쥐가 고양이를 물어먹는 판이 아니고 무엇인가? "닥쳣! 무함하지 마오." "무함? 아니오." 정호는 최국장의 눈치를 흘끔 쳐다보고 빈정거렸다. "우리 정계는 이렇게 얼기설기 얽혔단 말이오. 나를 자꾸 캐봐야 최국장도 편안하진 못할 거요." 최국장은 랭정함과 침착성을 잃지 않고 정호를 쏘아보면서 침묵을 지켰다. 정호는 그녀의 기를 꺾어놨다고 오산했다. "최국장, 우리 거래하기오. 최국장 아버지 은띠선물 없는 걸로 무덤까지 가지고 갈게. 최국장도 이젠 뽀마차 재물 말을 하지 마오." "..." "최국장 참 답답하오. 최국장 로처녀로 늙어가는게 마음이 아프오. 우리 충주 최씨 아니면 우리 결혼했을수도 있소." "닥쳣! 여긴 검찰원 반탐오회뢰국이오. 쓸데없는 말 말고 자기 죄행을 탄백하라." 최국장은 계속 심문을 했다. "뽀마자 50만원과 금은액세서리 래원을 말하오." "난 뽀마차에 그런 걸 둔적도 없소. 누가 추측해 날 무함하는 거요." "순정 본가집 금고  안의 재물래력을 말하오." “내 이미 순정과 리혼했는데 순정네  본가집 금고하구 무슨 관계 있다고 이러오? 흥!” “아닌 보살 떨지 말라.” "자, 보오. 리혼증이오." 정호는 진짜 리혼증을 꺼내 보였다.  "순정의 아버지-박서기네 금고에서 나온 건 나하구 관계없소. 죽은 박서기하구 물어보오." (박서기한테 들씌워? 미꾸라지 같은 놈.) 최혜영 국장은 리혼장을 보고 속으로 솜씨도 빠르구나 하고 개탄했다. "허허허. 순정한테 거짓말 했소. 내게 어디서 그렇게 많은 돈 있어 차에다 다 뒀겠습니까? 순정한테서 돈이나 얻어 쓰자고 그랬습니다. 보시오. 차를 산 사람도 차에 돈과 금은사치품 없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정호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순간이였다.      그럼 정호를 누가 신고했을가?       가능하게 뽀마찌프를 산 사람이 정호 국장이 자꾸 그 돈과 금은보화를 내놓으라고 재촉하자 닉면으로 신고했을 수도 있다. 혹은 순정이 정호가 내놓고 영희한테 마노목걸이와 비취반지까지 주자 괘씸해 신고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순정이 신고할 가능성은 아주 작았다. 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까자고?      순정은 아버지 기대와는 달리 사치부화타락했다. 박서기도 눈이 멀었지. 정호 같은 자를 사위로 삼다니?  박서기는 구천에 가서도 순정과 정호 때문에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아니, 절대 부화타락한 딸과 사위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누가 신고했는가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미스테리로 남고 말았다. 정호가 체포될 때도 희극적이였다. 그는 검사들과 경찰들이 자기를 나포하려고 하는 것을  눈치채고 낮에는 야산에 가서 은신했다. 그러나 며칠 못 버티고 먹을게 다 떨어져 순정의 본가집에 기여들었다. 등잔불 밑이 어둡다고 가장 위험한 곳이 젤 안전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는 순정의 생일로 된 비밀번호를 눌러 아주 손쉽게 문을 열고 순정의 아빠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집에 들어가자 먼저 주방에 달려들어가 찬장에서 먹던 밥을 게걸스레 먹었다. 뒤이어 랭장고를 들춰 삶아놓는 돼지고기랑 소고기랑 물고기랑 들춰냈다. 옷궤를 열고 두리번거리다가 자기가 향항에서 사준 악어가죽멜가방을 들춰내 먼저 먹을 것을 챙겨넣었다. 뒤이어 이딸리아에서 순정에게 사준 뮤뮤명품핸드빽을 들춰내 가지고 금고 앞으로 다가갔다. 순정의 아빠 금고는 정호 보험궤보다 엄청 컸다. 순정의 생일이 비밀번호인가 해 눌러보았다. 그런데 열리지 않았다. 장인의 생일을 눌러 보았다. 안 열렸다. 순정의 핸드폰번호를 눌렀다. 또 안 열렸다. 정호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혹시나 해 자기 생일날을 눌러 보았다. 절컥! “하하하! 순정아, 네년 참 묘하구나. 니겠니?” 커다란 금고 안에는 숱한 돈묶음과 자기가 한뉘 평생 준, 눈익은 금은액세사리가 쌓여 있었다.  (아니, 시위 서기질하면서 하나도 해먹지 않았단 말인가? 어째 딱 내 준 것 밖에 없어? 진짜 가시아버진 청렴한 간부는 맞구나.) 뒤이어 그는 웃음주머니 흔들거렸다. (순정아, 이건 몽땅 내 준 거야. 훔치는게 아니라. 임자가 찾아가는 거야. 흐흐흐.) 정호가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가방에 금은보화와 현금을 챙겨넣을 때였다. 쾅! 쾅! 쾅! 쾅쾅! 문이 둔기에 맞아 마사지고 두리모자들이 뛰여들었다. 경찰들은 정호의 손목에 차디찬 쇠고랑이를 절컥 채웠다. 금고에 꽉 찬 금빛금은보화와 돈묶음더미를 보고 모두들 아연실색했다. 최정호 국장이 한뉘 평생 긁어모은 금은보화와 검은 돈은 특제철궤에 담겨 국고로 실려갔다. 정호는 자기 앞에 나타난 최혜영 국장을 보자마자 마치 기민하고 용맹한 고양이를 본 쥐처럼 죄악의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며칠 뒤 정호한테서 단서를 쥔 최혜영 국장은 감옥에서 나와 “보석치료”를 받는  오청룡 국장과 리굉팔도 나포하라고 지시했다. 그자들은 노래방에서 아가씨들을 안고 돌아가다가 쇠고랑이를 차고 말았다. 뒤이어 감옥 지도부와 검사는 감옥 법의도 심문해나갔다.  그자들의 말로는 감옥 밖에 없었다. 감옥이야 말로 그자들의 명당자리였다. 영희는 문걸과 순정에 대한 죄책감, 자식들에 대한 근심에 싸여 속을 태우다가 염라전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깊고 깊은 암흑에 찬 쁠랙홀로 맥없이 빠져들어가는 감이 들었다. 소설 같은 인생사를 뒤로 하고 눈을 스르르 감으니 홀가분했다. 황선희 박사와 김춘희 박사는 영희의 생명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치료했다. 그들은 재래의 방사선치료와 화학치료를 결부해 치료한 외에도 일본과 미국에서 배운 최첨단 줄기세포의료기술로 영희 암증과 사투를 벌리면서 치료했다. 미국과 일본의 항암약도 인맥을 통해 수두룩이 수입해 치료했다. 김춘희 박사는 영희를 살리려고 아득바득 애쓰는 문걸에게 진한 감동을 입었다.  화실까지 팔고도 모자라 국제인체화전시회에서 탄 상금마저 다 치료비로 부치고도 간병일까지 하면서 아득바득 애쓰지 않는가. 춘희박사는 병상에 누워 있는 풍전등화 같은 영희를 내려다보면서 리혼한 전처에 대한 문걸의 정성을 보아서라도 영희를 구하고 싶었다. (문걸을 만난 영희는 얼마나 행복한가.) 김춘희 박사는 황선희 박사와 토론하고 줄기세포치료 외에도 암세포가 확산된 자궁과 간을 수술해 버리고 대담히 크론복제기술로 영희 유전자를 채취해 새 간을 복제해내 이식하는데 성공했다. 효과는 아주 좋았다. 간기능이 제대로 활성화되면서 전신의 피가 소독되고 혈공급이 잘 되였다. 신심을 가진 두 박사는  암세포가 확산된 페를 수술해 버리고 크론복제기술로 복제된 페를 영희한테 이식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효과가 역전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영희는 사멸돼 가는 몸이여서 수술을 받아당할 힘이 없었다. 그리하여 암세포는 끝내 한 많은 영희의 생명을 거두어가고 말았다. 비보를 들은 문걸은 당날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부터 고향으로 날아왔다. 코라나 때문에 한동안 격리돼야 했다. 자가 격리까지 마친 후 문걸은 사체랭동실로 황급히 달려갔다. 그는 흰 보에 싸인 영희 꽁꽁 얼어붙은 시체로 달려가 무릎을 쿵 꿇었다. “영희, 내 늦었소. 죄송하오. 영희, 야, 이게 무슨 일이오? 우린 한창 서로 사랑하면서 재미나게 살 나이인데. 날 홀로 두고 가다니? 으흐흑, 흑흑.” 군철은 옆에서 콧방귀를 뀌었다. “흥! 죽은 다음에 울어서 무슨 쓸데 있다구. 살았을 때 왜 잘해주지 못했습니까? 왜 리혼했습니까?” 문걸은 군철의 손을 쥐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군철아, 미안하다. 내 너네 엄마를 지켜내지 못했구나. 우린 기실 서로 상대방을 홀가분하게 좀, 좀 편하게 살게 하려고 가짜리혼을 한 거야.” "픽, 수속을 해가지고. 흥,  거짓말!" "수속은 했지만, 우린 서로 마음 속으론 리혼하지 않은 거야.' "법적으로 리혼했으면 리혼이지. 세상에 어디 그런 가짜리혼 다 있습니까?" “아버지!” 지예는 아빠 품에 안기면서 울었다. “아빠, 아빠는 정성을 다 했습니다. 저는 다 알고 있습니다. 엄만 유서에 다 말했습니다. 구천에 가서라도 아버지를 욕하지 않을 겁니다. 엄만 아버지한테 용서를 구했습니다. 흐흐흑, 흑흑.” 문걸은 군철과 지예를 꽉 끌어안고 영희 앞에서 왕왕 대성통곡쳤다. 사체실에는 문걸과 오누이의 대성통곡소리 구슬프게 울렸다. 진짜 눈물이 없인 차마 보기 힘든 처절한 비극이 아닌가. 그날로 영희는 한줄기 타래쳐오르는 까만 연기로 돼 하늘나라로 날아갔다. 한 많은 인생은 그저 타버리는 연기로 돼 혼이나마 사랑하는 오누이 곁으로 돌아올가.       순정은 장례를 마치자 슬그머니 빨간 봉투에 부조금인지 뭔지 문걸한테 넘겨주고 가버렸다. 그녀는 검찰원에서 호출장이 와서 길게 문걸과 이야기를 나눌 계제가 아니였다. 지예는 엄마의 유일한 유물- 핸드폰을 아빠한테 넘겨주었다. “아빠, 엄만 떠나기 전에 꼭 아빠한테 전하라고 했습니다. 아빠한테 줄 유일한 유물이라고 했습니다.” “알았다. 혹시 위챗구좌에 돈이나 남겼는지 열어볼게지.” 지예는 군철을 흘끔 보더니 도도거렸다. “엄만 아버지 준 돈까지 돈을 몽땅 오빠한테 넘겼습니다.” “오, 그래? 잘했다.” 문걸은 낡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다시 정기잃은 외까풀 눈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춘희 박사와 선희 박사는 무슨 말로 문걸을 위안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춘희 박사가 다가와 머뭇거리다가 한마디 했다. “리선생님 안해를 살려내지 못해 미안합니다.” “아니, 천만에 말씀. 그간 정말 수고 많았소.” 춘희 박사와 순정 박사는 문걸이 불쌍해 동정의 눈물을 훔치며 갈라졌다. 문걸은 군철과 지예의 부축을 받으면서 간신히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며 세집으로 돌아갔다. 싸늘한 세집에는 미녀로봇과 만금이 있어 그래도 조금 위안됐다. 흰 비둘기가 날아와 뭐라고 말하듯 구구거리며 돌다가 날아갔다. (비둘기도 문안하러 왔을가?) 그는 세집에 돌아오자 침대에 푹 쓰러졌다. 미녀로봇이 오누이 눈치도 보지 않고 문걸의 손을 매만지면서 문안했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몸을 상하겠어요.” 만금도 장례에 참가하고 돌아와 점심준비를 하느라고 주방에 나가서 덜커덕거렸다. 군철은 한쪽에서 씩씩거렸다. 문걸은 핸드폰을 만지막거리다가 맥없이 열어보았다. 젤 마지막으로 자기한테 보내려던 글줄을 보았다.   “여보, 미안해요. 죄송해요. 원래 세상 사람들 보기 창피해 이 비밀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다가 당신한테 거짓말 하면 재차 죄를 짓는 것 같아  진실을 밝힙니다. 마지막까지 읽어보고 저를 한바탕 욕하세요. 죄인인 저를 널리 용서하세요.”   어느날 밤늦게까지 내 무용련습할 때였죠. 진작 눈독을 들인 무용교원이 영희를 훔쳐볼줄이야. 하얀 어깨너머로 흘러내린 함치르르한 머리카락, 외씨처럼 걀죽한 얼굴, 착 들어붙은 무용적삼 밑 풍만한 가슴, 백설 같은 허벅다리… “오- 정말 이쁘구만. 미치겠다.” 무용교원은 온몸까지 부르르 떨며 무용강당에 들어섰다. 그는 무용을 가르치는 척하면서 초두부처럼 하들하들한 영희 허벅다리를 매만지기도 했다. 정욕에 불타는 눈길이 영희 몸에서 떨어질줄 몰랐다. 영희는 선생의 음충한 눈길을 눈치채지 못하고 무용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무용선생은 영희를 끌어안으면서 능청을 떨었다. “영희, 예술전도를 개척하려면 스승에게 몸을 바쳐야 하오. 이건 내 중학교 시절 무용교원이 가르쳐준 인생철학이오. 아주 철리 깊지. 세상에서 살려면 이 도리를 지켜야지.” 무용선생은 영희를 와락 끌어안고 가슴에 손을 넣었다. 그 악마의 손은 뱀처럼 가슴으로부터 아래로 스르르 미끌어져내려갔다. “아니, 이러지 마십시오. 선생님, 왜 이럽니까?” 그런데 어떻게 정욕이 미친듯이 발정한 우악한 색마를 당할 수 있겠는가. 영희는 발버둥질치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소리치려고 해도 들키면 퇴학당할가봐 그러지도 못했다. 강당에는 무용선생의 거친 숨소리와 영희의 가는 흐느낌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거칠게 톱질했다.   “용서하세요. 저를 재차 죽이세요. 이제껏 당신을 속인 죄 죽어도 마땅해요. 우리 만나던 망아산 소나무숲 속 방공호가 인상 깊죠. 거게 가서 끝까지 읽으세요. 애들 앞에서 그러지 말고…” “정호, 이놈새끼!”   문걸은 와닥닥 일어나 핸드폰을 들고 집 밖에 나갔다. “아빠, 어디로 가는가요?” 뒤에서 군철과 지예가 따라나갔다. 문걸은 택시를 타고 망아산 소나무숲 방공호에 달려올라갔다. 소나무에는 옛날 문걸과 영희가 새겨놓은 "사랑" 글자가 그대로 송진을 머금고 빛나고 있었다. 문걸은 호주머니에서 영희 핸드폰을 꺼냈다.          “그후 정호는 여러차례 저를 강간했어요. 당신도 기억날 거죠? 당신이 친구들과 함께 망아산에 산보 간 날, 제가 브래지어 바람에 강도들한테 쫓기우던 일을. 그날 기실 정호가 날 망아산 소나무숲 방공호에서 절 간음했지요. 한창 간음당하는데 사자머리 강도들이 덮쳐들었지요. 정호는 비겁하게 저를 강도들한테 내주고 도망쳤지요. 사람이 아닙니다. 난 구사일생으로 당신한테로 달려갔지요. 그날 당신이랑 친구 성호랑 아니였더라면 난 오늘까지 살았겠는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 두렵습니다. 정호는 말로는 절 사랑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거짓이였죠. 그는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내 정조를 유린할대로 다 하고서도 나를 버리고 순정을 선택했지요.      배신감과 질투심에 난 더는 참을 수 없어 정호 그 놈이 무용강당에서 순정을 간음하는 걸 보고 파출소에 신고했죠. 년놈들은 개꼴망신당했지요.      정호는 내 정조를 짓밟을대로 짓밟았어요. 그는 죄를 삭이려고 당신을 저한테 억지로 붙여놓았지요. 저는 항상 당신한테 미안했죠. 저는 숫처녀로 가장한 나쁜 년이예요. 최초에 나도 군철이 누구 앤지 몰랐어요. 정호한테 당해서 얼마 안돼 당신과 또 망아산 방공굴에서 그랬으니깐요. 지금 보면 정호가 만든 애예요. 자라면서 차츰 군철이 정호를 닮아가는 걸 보고 저는 당신한테 발각될가 봐 두려웠어요. 그러나 다행히 당신한테 이제껏 발각되지 않았지요. 그렇게 절 믿은 당신을 속여온게 정말  죄송해요. 저는 천번만번 죽어도 마땅한 죄인입니다. 절대 제가 죽어도 아까워하지 마세요. 정호는 위선자예요.       그는 당신과 친구라지만 나와 당신 결혼 후에도 기회만 있으면 자꾸 지껄이고 덤벼들었습니다. 전 색마놈한테 몇번 당했는지 몰라요. 기스부지죠. 일일이 말하기도 구차해요. 당신 마음만 아프게 할가 봐 일일이 더 말하지 못하겠어요. 그러나 난 가정을 위해 입을 꼭 다물고 참았지요. 당신이 자꾸 날 숫처녀 아니라고 의심할 때 나는 당황했어요. 극구 부인하면서 방어했는데 끝내 얼렁뚱땅 고비를 넘겼지요.       나중에 당신한테 너무 미안해, 량심의 가책을 받고  자꾸 리혼하자고 했지요. 지하주차장에선 절대 그럴 새 없었지만요. 이제 이런 말 해 뭘 해요? 이 편지를 볼 때 나는 이미 천당에 와 있겠는데요. 호- 참 기막힌 인생사입니다. 세상이 왜 이런가요?       당신은 이 세상에서 둘도 없이 참  좋은 남편입니다. 당신이 화실을 팔고 국제인체화전시회 상금을 주고서도 저를 살리겠다고 간병하면서 아득바득 헤매는 걸 보고 감동을 지나 마음이 아픕니다. 지나간 세월 당신을 홀대한 내가 밉습니다. 저는 염라왕국에 가서도 천당에 가고 지옥에 갈 거예요. 저의 시체는 두 남자가 뜯어갈 거고 한 맺힌 혼은 항상 한 많은 하늘에 둥둥 떠돌겁니다.     이제 래세가 있다면 저는 다시 당신과 재혼하려고 해요. 비록 자격은 없어도 천년이고 만년이고 당신을 사랑해요. ”   “영희!” 문걸은 “사랑” 글자 박힌 소나무를 주먹으로 꽝꽝 쳤다. 그는 화장터에서 순정이 준 봉투를 꺼내 열어 보았다. 종이장을 꺼내 보니 웬걸, 유전자 검증서였다. 정호와 군철의 유전자 검증서에는 모든 수치가 95프로나 일치했다. 다시 봐도 군철은 자기 아들이 아니라 정호의 아들이 아니겠는가!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정호, 이놈새끼야!’ 그때 군철과 지예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지예가 먼저 달려와 아빠를 끌어안았다. “아버지! 엄마를 용서하십시오!” “무슨 소리야? 아버지 엄마한테 용서를 구해야 해!” “아니야. 그런게 아니야!” 군철은 문걸이 손에서 떨군 종이장을 훑어보고 또 보았다. 예도 아래우로 뜯어보고 또 보았다. 그들의 시선은 일제히 문걸한테 쏠렸다.      문걸은 눈앞이 아찔해났다. 눈앞이 단통 새까매나면서 불찌가 튀였다.      자기를 멍해 쳐다보는 군철이 정호로 겹쳐보이지 않겠는가! 아주 분명하게 정호로 보였다. 그는 정호의 아들이였다.     “아!”      “번대머리!”      “우멍눈!”      “정호, 이 놈아!”     그는 30년 동안 안개 속 같은 허위에 잠겨 속히워 산 것이 원통했다.     쿵!     문걸은 끝내 쓰러졌다.     망아산 소나무숲이 통채로 훌렁 꺼지는 감을 느꼈다. "사랑" 글자가 새겨진 소나무도 그를 비웃으며 쁠랙홀에 빨려들어갔다.     정호는 아주 깊고 깊은 암흑 속으로, 쁠랙홀로 빨려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귀전에서 소나기가 울고 흐릿한 눈 앞에서 번개 치고 불티가 탁탁 튀였다.      시꺼먼 쁠랙홀에서 번대머리가 우멍눈을 부릅뜨고 비웃고 있었다. 영희가 비명을 지르며 아우성친다.       "여보! 당신!"      아, 세상에 이렇게 어둡고 깊고 처참한 참사랑의 쁠랙홀도 있단 말인가!        저자 주: 여러분께서는 지금까지 저의 장편소설 "졸혼" 제2권을 감상하고 계십니다. 이제 더 굴곡적이고 랑만적인 이야기와 괴짜 인물들로 이어집니다. 기대해주세요.
248    대하소설 卒婚(12) 김장혁 댓글:  조회:1259  추천:0  2022-04-30
                                                       21. 맑지만 않은 하늘      문걸은 화실을 부동산중개소에 맡기고 세집을 맡고 나갔다. 만금은 세집에 따라가기 미안해 나가려고 했다.      “어째? 다른 집에 가자고 그러오?”       “아니,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부담될가봐.”      “괜찮소. 난 교수급설계사니깐. 보모 로임 쯤은 아무 것도 아니오. 만금이 없으면  하루도 살 거 같지 못하오. 다른 불편 없으면 계속 도와주오.”      “감사합니다.”      만금은 눈물까지 글썽해 대답했다.      문걸은 통 큰 제안을 했다.     “아예, 세집을 따로 잡지 말고 애들을 데려오오. 이 세집을 보오. 130평방에 침실이 세개나 있소. 제 애들을 데리고 한칸 차지하고 살고 내 미녀로봇과 함께 한칸 차지하고 나머지 한칸은 화실로 쓰면 되오. 객실은 공용으로 하고. 애들을 데리고 들어오오.” “그래도 어찌?” “괜찮소. 그럼 저도 세집 돈이라도 남고 량쪽을 돌볼 필요없잖소?” “그렇긴 하지만요. 미안해서 어찌…” 만금은 옆에 서 있는 지예의 눈치를 살폈다. “미안하긴? 우린 한 집 식구나 다름없는데.” 눈치 약삭바른 지예도 동을 달았다. “그래요. 이모 덕분에 저희들도 아빠를 시름놓고 상해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계속 아빠를 보살펴주십시오.’ 미녀로봇 아사꼬도 끼여들었다. “그래요. 밥은 만금이 하고 잠자리나 심부름은 제가 맡고. 호호호.” “야메(그만)!” 문걸은 떠나가려는 만금을 오빠처럼 관심해 끝내 안심시켰다. 이때 핸드폰이 급촉하게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보니 영희한테서 화상통화메시지가 오지 않았겠는가. 화면에 눈물이 글썽한 영희 초췌한 얼굴이 나타났다. 그런데 눈물을 닦다가 그만 머리에 썼던 하얀 모자가 훌렁 벗겨졌다. 그 바람에 머리털이 다 빠진 까까머리 홀랑 나타났다. 영희는 황급히 모자를 되썼다. 그러나 팅팅 붓긴 시든 얼굴은 감출 수 없었다. 춘희의사의 말에 의하면 방사선치료를 했기에 영희는 머리털이 싹 빠지고 팅팅 붓겼다고 했다. 방사선치료나 화학치료를 하면서 영희는 아프고 구토가 심하고 설사를 자주 해 그 고통은 마지막고생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방사선치료나 화학치료로 인해 백혈구가 너무 많이 죽어갔다. 하여 자칫 백혈병에 걸릴 수도 있었다. 영희는 눈에 정기도 없이 초췌해 보였다. 문걸은 울먹거리며 위안했다. “여보, 못쓸 병에 걸려 얼마나 고생하오?” “괜찮아요. 여보, 당신 관심 고맙습니다. 지예 당신 한 말을 다 록음해 와서 다 들었습니다. 당신의  위안받고 이젠 죽어도 눈을 감을 것 같습니다.” “당신한테 해준게 하나도 없소. 당신 어디 하루라도 편안한 날 보냈소? 쓸데없는 의심을 하면서 고통을 많이 주어 죄송하오.” “그런 말 마세요. 저는 이제 조만간에 저세상에 가야 할 사림인데요. 절대 화실을 팔지 마세요. 늘그막에 집도 없이 어떻게 산다고 그럽니까? 우린 젊어서 얼마나 집고생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오. 당신을 구할수만 있다면 집이겠소? 아까울게 하나도 없소.” “저는 당신이 그렇게 아까워 할 녀자 아닌데요. 치료비 때문에 걱정하는 거 같은데요. 걱정 마세요. 우리 살던 집을 팔면 됩니다.” “아니오. 그 집 팔고 저는 늘그막에 집 없이 어떻게 살겠소? 우리 한뉘 살면서 당신한테 남겨준게 그것 밖에 없는데.” “미안해요. 저는 당신한테 해준게 없고 미안한 일 가득해요.” “천만에 말씀. 내 미안한 일 더 많소. 쓸데 없이  의심하면서 속을 태우게 했잖소? 널리 용서해주오. 다신 그런 일 없을게오.” “아닙니다. 암에 걸린 당신과 리혼하자고 한게 죄송해요. 제가 이렇게 암에 걸리고 보니 당신한테 죄지은게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습니다.” “내 본능적인 욕구를 이기지 못해 당신을 원망한게 잘못이었소. 애들을 당신한테 다 맡겨놓고 훌 온게 죄송하오. 당신 애들을 혼자 보느라고 너무 고생해 병에 걸린 거 같소.” “그게 어찌 다 당신 잘못이겠습니까? 애들도 자기 애를 스스로 키워야 하는데. 지금 애들은 부모한테 맡긴 것도 잘못입니다.” 곁에서 듣던 지예도 머리를 숙였다. “어머니, 다 오빠하구 내 잘못입니다. 이젠 내 리혼하구 애를 떼버리고 나왔으니깐. 내 애는 근심할 필요없습니다.” “리혼? 얘야,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 리혼해 속이 싹 타는데 네까지 리혼하겠니? 제발 리혼하지 말라.” “몇십년 살던 부모도 리혼하는데 우리 이제 산지 몇해라고 그럽니까? 그놈 새끼하고는 살지 못하겠습니다. 엄마, 내 근심하지 말고 병치료를 잘 하세요.” "얘야, 그런 말 말라." 문걸은 지예를 보고 정색했다. "금방 엄마와 아빠 주고 받는 말을 못 들었니? 지금 보면 우린 서로 사랑하면서도 마음에 없는 가짜리혼을 한 거야. 서로를 배려해서 어떻게 상대방을 자유롭게 살게 하겠는가 해서 말이야." 지예는 놀라운 눈길로 아빠와 핸드폰을 번갈아 보았다.       핸드폰에서 엄마는 엄숙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우린 리혼 수속은 했지만 사실 마음 속으로는 리혼하지 않았다. 우린 그저 잠시 갈라져서 졸혼을 겪었을뿐이야. 이젠 모든 것이 결론이 날 거야."   문걸도 진심으로 말했다. “맞소. 이제 래세가 있다면 난 또 당신과 결혼할 거요." 영희도 희죽이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런 말을 나직이 했다. "전 당신과 재혼할 자격이 없는 녀자예요." "당신은 충분히 자격 있소. 나에게 오누이를 낳아준 위대한 조선족 어머니, 사랑스런 안해요." 문걸은 영희를 보고 진심으로 말했다. "애들도 제 살 길을 찾아가겠지. 근심하지 말고 신심을 가지고 병치료나 잘 하오. 날 보오. 혈번을 보고 장암과 코로나에 걸렸지만 이렇게 살아남지 않았소. 당신도 코로나 치료됐는데 치료신심 가지오. 이제 암증만 이기면 되오. 지금 의료과학기술이 발전해서 치료되오. 꼭 신심을 가지오. 황선희박사나 김춘희 박사가 지금 세계 최첨단의료기술인 줄기세포와 클론복제기술까지 동원해 당신 암병을 치료한다오. 고까짓 병은 꼭 나을게요.” “고맙습니다. 난 내 병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조만간에 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량심을 속이곤 살아도 무의미하지요. 당신, 미안해요. 해준게 없이 미안한 일만 가득합니다. 흐흐흑, 흐흑흑.” 영희는 눈물을 흘리며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만하세요. 오래 통화하면 환자한테 좋지 않습니다.” 의사가 통화를 제지시켰다. “여보! 여보!” 문걸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지예도 눈물을 훔쳤다. 문걸은 영희를 더는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숫총각과 숫처녀를 불태운 후 영희 숫처녀 아니잖는가 의심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었던가. 만나기만 하면 영희를 보고 누구와 먼저 그랬는가 탄백하라고 족따지군 했다. 얼마나 눈물을 흘리게 했는지 모른다. 세월이 흐르면서 문걸은 그 의혹을 잊어버렸댔다.       그런데 황혼기에, 그것도 리혼한 후 순정의 귀띰으로 해 또 그 의혹이 새삼스레 수면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영희와 함께 한  30여년 삶을 몽땅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자기가 허위에 휘감겨 한뉘 눈이 멀어 살았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다 죽어가는 영희를 더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영희는 절대 그런 녀자 아니야. 순정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충분히 영희 보고 자기 집에 올라가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을 수도 있다. 만약 미적지근한 일이 있다고 해도 나하구 영희 둘 다 피해자야.) 그는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손으로 눈물을 쓱 훔쳤다. “지예야, 아빠 엄마 리혼하니 얼마나 비극이냐? 그런데 어째 너네마저 리혼하니?” “에이, 말도 마세요. 그놈과는 못 살아요.” “뭣 때문에?” 지예는 말하기조차 입이 쓰디썼다. “아빠, 알 필요없습니다.” “리혼이 어디 애들 장난이야?” 지예는 전날 아빠 품에 안겨 울던 딸 같잖게 나왔다. “아빠, 리혼 잘했어요. 서로 마음에 들잖으면 헤여지는게 옳지. 서로 불편하게 살게 뭡니까? 맨날 티각태각 싸우면서. 흥.” 문걸은 맥없이 쏘파에 물앉았다. 그는 지예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그렇게 알고파요?” “아빠하구 말하면 안되니? 너네 오누이 참 답답하다. 군철도 리혼했잖니?” “오빤 리혼 잘 했어요. 올케는 진짜 황후면 어디 그런 황후 있겠습니까? 올케는 하나 밖에 없는 딸이잖고 뭡니까? 공주로 자라서 시집와서도 황후질 하려고 들었지요. 우리 엄마 애 둘이나 키워주는데도 하는 일 뭐 있습니까? 항상 밥투정만하고. 울 엄마 혼자 앓으면서 애 둘 키워줄 때 올케  한게 뭔가요? 애를 낳고는 해놓은게 뭡니까?" "그래도 전주 리씨 집안에 씨를 둘이나 낳아준 위대한 조선족어머니 아니냐?" "또, 또, 또. 아빠 자꾸 춰줬기에 올케는 시집에서도 제 밖에 없는  황후 행세를 했죠. 또 올케네 본가집에서 한게 뭔가요? 애를 한번 봤습니까? 엄마 숨 돌리게 얼마간이라도 바꿔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도 올케 엄마 뭐라는지 알아요?” “?” “우리 딸이 전주 리씨네 아들 둘이나 배 아프게 낳아줬으면 됐지. 우리까지 고생할게 뭔가? 애들은 당연히 시집에서 키워야지.” 문걸은 답답해 권연을 꺼내 붙였다. “그래도 그렇지 어찌 그런 일 때문에 리혼하니? 애 둘까지 낳아가지고. 훌 떠나가면 애들은 어쩌니? 장차 애 둘이나 달린 군철한테 어느 눈먼 녀자 오자 하겠니?” “지금 우리 젊은이들은 그래요. 어제까지 좋다가 오늘 나쁘면 내일에 갈라지죠. 무슨 애들이고 뭐고.” “닥쳣!” 문걸은 재떨이로 차탁을 탁 치며 고함쳤다. “그것도 말이라고 하니? 일시 기분 상한다고 잠 자고 깨나면 밥 먹듯 리혼하면 되니? 고만한 일로 리혼한다면 날마다 리혼해야겠다. 꼭 군철네 무슨 일 있지?” 지혜는 아빠 눈치를 보며 머뭇머뭇하다가 입을 열었다. “오빠, 금발미녀한테 미쳤어요.” “금발미녀?” “네. 지금  미국 류학생 금발미녀하구 죽자살자 합니다.” “야, 그놈새끼, 진짜 가문을 망치는구나. 어쩜 애 둘이나 두고 그럴 수 있니? 장차 애들한테 죄짓자고 그래? 이 일을 어쩐담. 애들은 지금 누가 보니?” 문걸은 지예를 쳐다보았다. “보모를 찾았대요. 금발미녀는 자기 난 새끼 아니니깐. 근본 애들에 관심 없습니다. 그럴줄 알았더면 오빠하구 면목 익히게 하는게 아닌데.” "금발미녀 잘 아니?" "예, 미국 하버드대 석사동긴데요." "그래?" "오빠 리혼하구 적적해 할가봐 소개해줬는데. 참." 문걸은 머리를 끄덕였다. “넌 도대체 어째 리혼했니?” “그놈새끼두 오빠처럼 그러루한 일이 있습니다.” “뭐라고? 에이구. 온 집안이 몽땅 리혼이라라니? 이 일을 어쩌느냐?” 문걸은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탁 치며 안절부절 못했다. 그는 속으로 자기가 모범을 잘 못 보여준 것 같아 다시한번 리혼한 잘못을 가슴아프게 느꼈다. 졸혼하고 혼자 홀가분하게 살려고 했는데 모든 것은 그리 식은 죽 먹기 아니였다. 이렇게 별의별 곡절을 다 겪을 줄은 몰랐다. 며칠째 기다려도 화실은 팔리지도 않았다. 문걸은 너무 답답해 부동산중개소로 가려고 미녀로봇을 데리고  나갔다. 미녀로봇은 기분이 좋은지 문걸의 팔까지 끼고 걸었다. 행인들은 미녀로봇이 어찌나 이쁜지 되돌아볼 지경이었다. 문걸과 미녀로봇이 공원 정자 부근에 다가갔을 때였다. “장훈!” “멍훈!” 정자에서 누군가 장기 노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가보자.” “거길 가 뭘 해요? 산보는 안하고?” 미녀로봇은 쌍겹눈을 곱게 흘기며 팔을 쥐어당겼다. “아니야. 난 장기 귀신이야. 조금만 보다가 가자.” 미녀로봇은 별수 없이 따라갔다. 문걸은 장기판을 들여보다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글쎄 정호가 굉팔과 함께 장기를 두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옆에는 오청룡 국장까지 구경군들 속에 퍼더버리고 앉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국장은 글쎄 숱한 사람들 앞에서 소변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심지어 자기 눈 소변을 땅바닥에 엎드려 마구 핥아먹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신병자야!" 숱한 사람들이 오청룡을 손가락질하며 웃었다.  오청룡은 때 덕지덕지한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손에 묻은 오줌을 쪽쪽 빨아먹기까지 했다.      (굉팔과 오국장은  감옥에 들어갔다고 소문이 자자하잖았던가. 그런데 어떻게 돼 나왔을가? 아무 죄도 없는 것처럼 정자 아래서 오줌을 빨아먹으면서 장기를 떵떵 놀고 있지 않는가?) 문걸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푸르르게 맑지만은 않았다. 흐리멍텅한 매지구름도 있고 까마귀도 날아다니고 있었다. 공원 정자 꼭대기에 참새가 앉아  재잘거리고 있었다. 문걸은 너무 어이없어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그때 장기를 놀던 정호가 먼저 이쁜 미녀로봇을 보고 이쪽에 눈길을 돌렸다. “어, 문걸아, 어떻게 돼 여기 왔니? 한판 놀겠니?” “…” 정호는 자기 곁에 오라고 손짓했다. “오라, 여기 앉아 훈수나 좀 해달라. 리경리 어떻게 쎈지 질 거 같아.” 미녀로봇은 문걸의 팔소매를 잡아당겼다. “다른 데 갑시다.” “그래. 가자.” 문걸이 떠나려 할 때다. “잠간, 문걸아, 좀 기다려라.” 정호는 장기쪽을 장기판에 왈 내려놓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문걸한테 다가왔다. “잠간 보자. 할 말이 있다.” “너하구 할 말이 없다.” 정호는 문걸의 팔소매를 쥐고 한쪽으로 갔다. 늙은 비술나무 아래 조용한 곳에 가자 정호는 미녀로봇과 문걸을 번갈아보며 입을 뗐다. “우린 어린 시절부터 몇십년 사귄 친구 아니냐? 날 오해하지 말라. 친구지간에 고만한 일로 헤여지겠니?” 문걸은 발칵 성냈다. “관둬. 오해했단 말이야?” 정호는 습관처럼 몇대 안되는 머리카락을 번대머리 뒤로 쓱 빗어넘기면서 자못 정색해 말했다. “난 영희를 좋아한 건 사실이야. 허나 영희를 한번도 다치진 않았어.” “또, 또, 거짓말.” 정호는 번대머리를 손바닥으로 탁 치며 씨벌였다. “친구로 저 푸른 하늘에 맹세한다. 절대 거짓말 아니야.” “좋다. 넌 결코 그렇게 의리도 없는 무정한 불량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번 믿으마.” 정호는 시골에 있는 문걸의 외할머니네 마을에서 살았다. 여름방학이나 겨울 방학에나 문걸이 시골 외할머니네 집에 가면 정호와 그림자처럼 딱 붙어 다니며 놀던 짜개바지친구였다. 진짜 친형제처럼 친해진 딱친구였다. 그제야 정호는 긴장했던 낯 근육을 좀 풀었다. “그래. 우린 친구니까.” “전번에 널 오해하고 성 냈는데 량해해라. 절대 속에 넣지 말라.” 정호는 주먹으로 문걸의 가슴을 탁 쳤다. “그래. 우리 둘이 그럴 사이냐?” 정호는 문걸의 어깨를 잡으며 미녀로봇을 슬쩍 눈짓하며 나직이 말했다. “저 미녀로봇동지를 잠간만 다른데 가 있으라고 해라.” “어째?” “너하구 은밀히 할 말이 있다.” “알았어요. 제가 갈게요.” 눈치 빠른 미녀로봇이 스스로 저쪽 앵무새한테로 다가가버렸다. 원래 미녀로봇은 사람의 귀보다 더 청각이 예민했다. 필경 로봇이니까. 최첨단 청각계통을 장착하고 있었으니까. 저쪽 앵무새한테 가서도 이쪽 말이 다 들렸다. ㅎㅎㅎ. 정호는 미녀로봇이 가기 바쁘게 말을 꺼냈다. “난 아마 순정과 리혼해야 할 거 같애. 이전부터 콧개처럼 날 의심하더니 당장 리혼하자고 떠든다. 네 생각엔 어떠냐?” 문걸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너네 리혼하겠으면 하고 나하구 무슨 상관이냐? 흥!” 정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믿고 말하는데 그저 그래? 쳇,” “도대체 뭣 때문에 리혼하자는 거냐?” “순정은 내 영희하구 좋아했다면서 리혼하잔다.” 사실 정호는 리혼하자는 말이 나오기를 오래 전부터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차라리 이 기회에 순정과 갈라지고 내놓고 이제껏 숨겨둔 젊은 애인 정희와 함께 소리치며 살고 싶었다. 애들도 한드럼 낳고 깨알이 쏟아지게 살고 싶었다. 그보다도 순정이 너무 사치하게 치장하고 눈에 띄게 노는지.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언제든지 꼬리를 밟힐가봐 두려웠다. 이 기회에 순정이란 꼬리를 자르고 싶었다. 리혼하면 순정의 금고를 들추지 않을게 아닌가.       정호는 문걸과는 그런 속심을 스리슬쩍 감추고 아닌 보살을 떨었다. 기어이 순정이 먼저 리혼하자고 해 마지못해 리혼하려는 가상을 보였다. 문걸은 정색했다. “한가지 묻자. 영희 상해에서 돌아올 때 일 말이다. 영희를 뭐라고 찌껄였니?” “야- 너도 또 그 말이냐?” “이실직고해라. 한마디만 거짓말 해봐. 가만 놔두지 않을거야.” “야, 이건 버선 목이니 번져보이겠니? 무슨 일 있었다고 그러니?” “그날 밤 영희를 너네 지하주차장 차고에 싣고 가서 뭘 했니?” “또 그거야? 전번에도 말했잖아?” “어쨌니?” “야, 억이 막힌다. 한심하다, 한심해. 생사람 잡지 말라.” 정호는 억울한듯이 입을 함박만큼 쫙 벌리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번대머리 위에 머리카락 몇대가 흩날렸다. “순정이 리간도발을 믿지 말라. 그놈 간나새끼, 리혼하게 되니 쌍불을 켜고 잡자고 든다. 내 순정한테 해주지 않은게 뭐냐? 명품으로 올리감고 내리감게 해줬더니 나중엔 날 죽이자고 미쳐날뛴다. 제발 그 간나년 말 듣지도 말라.” “정 믿지 못하겠으면 영희하구 물어봐라.” “영희하구 리혼했으니깐. 이젠 제대로 말해라.” “또 이마빼기 얻어터지라고?” “이젠 안 칠게. 다 지나간 일인데. 그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고 싶어. 네가 영희를 순정보다 더 사랑했다잖았니? 이전엔 영희를 다친 적이 없니?” 정호는 한심했다. (자식, 이런 일까지 물어? 환장했구나.) 정호는 우멍한 눈을 떼룩 굴리더니 억울한 상 지었다. “절대 그런 일 없다. 하늘에 맹세한다. 그런 일 없다고.” 문걸은 피씩 웃었다. 도적놈하고 도적질했느냐고 물으면 어느 도적놈이 도적질했다고 하겠는가. 그는 저 멀리 정자 아래 장기판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굉팔과는 어떻게 아니?” “아- 리총경리 말이냐? 오국장을 통해 두루 안 친구야. 참 좋은 사람이지.” “돈 꽤나 있는 모양이던데?” “그래. 광고유한회사 총경리지. 건데 지난해 내부에서 터져서 감옥에 갔댔어.” “그 옆에 앉은 사람은 오국장 아니냐?” “그래. 너도 아는 모양이구나. 오국장은 내 가시아버지한테 다리를 놔서 제발시킨 경제통이야.” “그래. 오국장도 리경리 함께 감옥에 갔댔잖았니?" "이 최국장이 다리를 놓아 감옥에서 스리슬쩍 빼내왔지. 허허허.” “재간있구나.” “그래. 고만한 일이야 염낭취물이지.” 저쪽에서 미녀로봇은 그 말을 다 똑똑히  들었다. 그녀는 최정호 국장이 무슨 은밀한 말을 하자고 자기를 보내는가 의심한 후  자기 장착된 록음장치를 작동했던 것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최정호는 어깨 으쓱해 자랑을 늘여놓았다. “법정에서는 어쩔 수 없지. 지은 죄에 따라 판결하니까. 그러나 감옥에 들어간 다음에야  좀 변통할 수 있지. 개조표현이 좋다든지. 정신병자처럼 양병한다든지. ㅋㅋㅋ.” 문걸은 머리를 끄덕였다. “넌 진짜 송강처럼 의리 깊은 '호한'이구나.” “그래, 세상은 둥글둥글해. 서로 도와주면서 살아야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 굉팔은 오청룡 국장을 등에 업고 퇴직해서도 10년 동안이나 광고공사 총경리 하면서 숱한 돈 뜯어먹구. 심지어 아파트까지 가졌다던데 어떻게 1년도 안돼 감옥에서 나올 수 있니?” “넌 너무 천진해. 세상 하늘이 그저 푸르르고 맑게만 보이니? 정치를 개뿔도 모르는 놈, 소 귀에 경 읽기야.”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감옥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감옥에 들어갔다가 인차 나올 수 있니?” “그래. 저 굉팔과 오국장은 너무 미움깨를 많이 싸서 나오기 힘들었다. 특히 검찰원 부검찰장이자 반탐오회뢰국 국장인 최혜경한테 걸려 꼼짝달싹 못했어. 최국장이 누구냐? 로시장 외동딸이야. 아직도 시집가지 않고 전문 쥐새끼들을 잡아내는 매고양이야.“ 문걸은 무릎을 탁 쳤다. “최국장이란 녀자 성호 첫사랑 아니냐?” “맞다. 그런데 성호는 최국장을 친조카한테 빼앗겼지. 성호 조카는 에이즈병에 걸려 죽었다더라.” 정호는 미녀로봇이 저쪽에서 록음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흥이 도도해 옛말이나 하듯 했다. “다행히 감옥 의사는  내 가시아버지 제발시킨 분이야. 그래서 그 법의하구 짜고들어 겨우 구해냈다. 지은 죄야 감면할 수 없지. 내 변통해서 굉팔은 암에 걸렸다고 보석치료받게  감옥에서 꺼냈다.” “저 오국장은?” “너와 친구니깐 말하지만, 이런 말 누구와도 하지 말라.” 문걸은 머리를 끄덕였다. “저 오국장은 송강처럼 감옥에서 똥이랑 처먹으면서 정신병자처럼 놀았지. 법의가 정신병에 걸렸다고 확진해 보석치료받게 꺼냈다. ㅎㅎㅎ.” “참 대단하구나. 두 놈이나 감옥에서 꺼내주고 톡톡히 얻어먹었겠구나.” “그거야.  지금 세월에 어디 공게 있니? ㅎㅎㅎ.” 그러나 정호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여지를 두었다. 아무리 짜개바지친구라고 해도 공간을 두고 사는 것이 생존법칙이 아닌가. “내야 의리심으로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와줬을뿐이야. 친구끼리 얻어먹자고 구해주면 되니?” “쳇.” 문걸은 미녀모델을 소개해주고 수고비를 얻어먹던 정호를 떠올라 콧방귀를 뀌였다. “너덜거리다가 이제 지옥에 가지 않는가 봐라.” “얘, 재수없이 방정 떨지 말라. 저 두놈은 완전히 감옥에서 발을 뻬지 못했어. 그런데 굉팔은 눈치 없이 장기를 땅땅 논단 말이야. 오국장을 봐라. 숱한 사람들 앞에서 오줌까지 처 먹으면서 연극 노는 거. ㅎㅎㅎ.” 정호는 장기판 쪽을 돌아보았다. “됐다. 믿고 너무 숱한 말 했구나. 절대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라. 그럼 후에 다시 보자.” 문걸은 정자 쪽으로 떠나가는 정호 뒤모습을 보면서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미녀로봇이 살그머니 다가와 금방 대화를 록음한 일을 알려주었다. 문걸은 머리를 끄덕였다. (빨리 성호한테 알려야지. 성호는 최혜영과 잘 아는 사이 아닌가.) 사실 성호와 최혜영은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에서 등장한 주인공이였다. 그들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관계였다. (정의감이 있는 성호와 최혜영 국장은 굉팔과 오청룡을  절대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정호가 아직도 이 세상에서 마음대로 횡행하다니?)  문걸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피뜩 이상한 생각이 머리를 쳤다. 이전에 망아산에서 사자머리들한테 브래지어바람에 쫓기던 영희가 떠올랐다, (혹시 그때 영희가 그 놈들한테 당하진 않았을가?) 상상하기조차 싫은 가정적인 일이였다. 순간 문걸은 새로운 의혹과 함께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고통의 한 수렁에서 겨우 기여나와 또 새로운 고민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영희 때문에 진짜 속이 다 타다 못해 재가루 될 지경이였다.         문걸은 먹장구름이 떠가는 흐리멍텅한 하늘을 우러러 피눈물을 흘리며 연기가 쏟아져나오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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