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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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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6권 96 김장혁
2023년 06월 03일 06시 59분  조회:1259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제6권

       
                      김장혁


          96. 락태

 

망망한 바다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한다고 나영은 곤경에 빠지자 풋면목이나 아는 기자 종호를 찾아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그녀는 허의사한테 떼운 돈을 꼭 찾고 싶었다. 살고파 그런 것보다도 세상천하에 의사 허울을 쓴 사기군한테 돈을 떼우고 말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한국 이국 타향이라고 해도 시비 있고 법이 있겠지.)

나영은 모텔 침대에 누워 끊없이 속궁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이 혹을 떼버릴가? 어느 병원에 갈가? 의사들이 낙태죄 두려워 락태시술을 해주겠는가? 그럼 어쩐다? 락태약은 글쎄 중국에 있는 사촌녀동생 춘영한테 부탁하면 되겠는데. 이젠 애 넘 커서 락태약으론 안될게 아닌가. 참 답답해. )

그녀는 답답해 아랫배를 꽝꽝 치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기자선생은 허의사한테서 돈을 찾았는지? 어째 까딱 기별이 없지? 사기군놈이 그리 쉽게 천만원이나 내놓을가? 헤이참, 이 놈 세상에선 진짜 선전을 척 내놓기 무서워.)

똑똑똑

그때 조용한 노크소리 들렸다.

나영은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두근닥근 뛰며 당장 바깥으로 튕겨나올 것만 같았다.

나영은 발뼘발뼘 문께에 다가가 나직이 물었다.

“누구세요?”

당연희 한어로 물었다.

“종호요.”

“네, 들어어세요.”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찾아온다더니 종호가 용케도 지영이 알려준대로 햇빗모텔에 찾아왔다.

나영이 문을 절컥 열자 종호가 헤벌쭉 웃으며 모텔방에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은행종이박스가 쥐여져 있었다.

“어서 앉으세요. 모텔방이 콧구멍만해 아수선한데요.”

종호는 사람좋게 웃으며 침대 맞은켠 걸상에 마주 앉았다. 종호가 둘러보니 돌아설 자리도 없었다.

“괜찮소. 돈이 바쁜데 언제 으리으리한 호텔방 다 잡겠소?”

그는 나영 앞에 누런 은행종이박스를 척 내놓았다.

“자, 받소. 그 놈 사기군한테서 천만원을 찾아왔소.”

나영은 두 손을 가슴에 마주 쥐며 놀라했다.

“어마나, 이리 빨리 찾아냈군요. 고맙습니다.”

나영이 누런 종이박사를 들여다보니 5만원권 두 묶음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이때만큼 종호가 고마울 수 없었다. 감지덕지했다.

 그녀는 돈묶음을 핸드빽에 챙기고나서 오쫄 일어났다.

“갑시다. 맥주나 한잔 나누죠.”

그러나 종호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 몸이 불편하겠는데 그만두오.이젠 밤도 깊은데.”

그러나 나영은 기어이 고집을 부렸다.

“기회를 좀 주세요.”

종호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전 아직 건강이 회복되지 못했는데. 어떻게 술 마시오?”

나영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좀 궁리하다가 머리를 들었다.

“그럼 커피라도 마실가요? 이야기를 좀 나누면 안돼요?'

그제야 종호는 일어났다.

“그럼 커피 딱 한잔 마시는 걸로 하기오.”

“네. 그래요.”

종호는 나영의 돈을 많이 팔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모텔방을 나와 골목길에서 빠져나갔다. 나영은 습관적으로 뒤에 꼬리 있는가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그들의 뒤에는 행인 그림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서울의 밤은 불야성을 이루었다.  연분홍 네온등불빛이 명멸하는 밤거리에서 청춘남녀들이 팔을 끼고 희희락락 거닐고 있었다.

나영과 종호는 부근 근사한 커피점에 들어갔다. 그들은 참대숲이 우거진 커피점 구석진 좌석에 가 마주 앉았다.

하얀 앞치마를 두른 아가씨가 사뿐사뿐 다가왔다.

“뭘로 할가요?”

나영은 5만원권 한장 내놓았다.

“랭커피 두잔 주세요.”

“네, 고맙습니다.”

아가씨는 5만원권을 쥐고 돌아갔다. 이윽고 아가씨가 랭커피 두잔을 쟁반에 들고와 달랑 차탁에 내려놓고 거스럼돈을 두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돌아서갔다. 

나영은 커피잔을 들어 권했다.

“기자선생님, 의지가지 없는 저를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종호는 커피잔을 들고 소탈하게 말했다.

“이후에도 무슨 일 있으면 스스럼없이 말하오. 있는 힘껏 도와주지.”

“감사합니다.”

나영은 종호가 너무 극진해 다른 생각도 들었다.

(기자선생님은 왜 나를 이렇게 돕지? 일도 바쁠텐데. 전번엔 위문금까지 내놓고. 혹시 날 욕심내는 건 아닌지?)

나영은 종호보다 20여세나 어렸다. 나영의 아버지보다 대여섯살 차 돼보였다.

나영의 눈 앞에는 색마 변강쇠가 피뜩 떠올랐다.

(세상 남자들은 다 믿기 어려워.)

나영은 핸드빽에서 5만권 열장을 꺼내 종호 앞 차탁 위에 내놓으며 용기를 내 나직이 말했다.

“적은대로 감사한 마음에서 드리는 건데요. 꼭 받으세요.”

종호는 그 돈을 나영의 앞에 되밀어주었다.

“오해했군. 내 감사비나 얻어 쓰자고 도운게 아니오.”

나영은 감사비나 드리고 심리부담을 덜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종호가 나올줄은 몰랐다. 

“그럼 미천한 저를 왜 이렇게 도와주는가요? 저는 선생님께 해준 일도 없고 어떻게 해줄 것도 없는데요.”

종호는 나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나영이 이상하게 보였다. 전번에도 병문안 하러 갔다가 나영이 들어 있는 구급실 문 앞 복도에서 지키는 경찰 둘을 보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댔다.

(무슨 죄를 졌기에 자살까지 하려고 해? 경찰들까지 지키고? 이름도 자꾸 바뀌잖아. 냉면음식점 허보스는 나영이라던데. 지영은 뭐 미영이라고 했다가도 나영이라고도 하고. 무슨 개판이야?)

지영은 종호가 갓 면목익혔다. 그런데 왜 나영은 병원에서 도망쳐나와 모텔에 들었는가? 

종호는 생각할수록 안개 속 같은 오리무중에 빠졌다. 

나영은 병원에서 구급한지 보름도 안되지 않는가, 그런데 온전히 걷지 못한다던 나영이 펀펀하지 않는가? 병원에서 나와 모텔에 도망치다니. 너무 이상했다. 

(오늘 밤엔 거리에 나와 커피까지 마실 수 있다? 병원에서 도망치려고 걷지도 못한 척해 경찰들의 경각성을 쏙 빼버리게 했는가? 옳아. 바로 그거야.)

그는 나영의 속을 환히 꿰뚫어본 것처럼 커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우린 이국 타향에서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하오. 다른게 없소.” 

그제야 나영은 자기가 너무 야박하게 논 것을 느꼈다. 그러나 늦었다.

종호는 나영을 마주 바라보았다.

(앓고나서 좀 신경에 좀 이상이 생겼는가.)

나영은 정호한테 짓밟힌 후부터 당연히 웬간해서는 남자들을 믿기 어렵기 마련이였다.

종호는 우쭐 일어났다. 착한 마음으로 도와나섰는데 오해하는 나영이 얄밉기도 하였다.

“밤도 깊었는데. 이만 하지. 건강을 잘 챙기오. 새파란 나이에 너무 짧게 생각하지 말고 굳건히 살기 바라오. 죽음도 두렵지 않으면 왜 살 용기는 없소? 널리 생각하오. 삶의 용기 내서 곤난한 문제는 하나하나 헤쳐나가면서 굳건히 살아야 하오. 모텔도 인차 바꾸오. 경찰들이 뒤를 밟을게 아니오? 이후에 무슨 일 있으면 알리오.”

종호 말에 나영은 마음씨 착한 종호한테 미안해 어쩔줄 몰라했다. 

그녀는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하다가 오쫄 일어나 종호를 커피점 바깥까지 바랬다.

나영은 모텔에 돌아오자 발길질하는 뱃 속의 그 놈 혹 때문에 또 고민의 쁠랙홀에 빠졌다.

“이 놈부터 떼버려야 하는데. 누굴 찾아갈가?”

그때 지영이 허겁지겁 모텔에 찾아왔다.

“몸은 어떠냐?”

지영은 핸드빽을 침대머리에 놓으며 해쓱한 나영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넌 작작 찾아다녀라. 괜히 꼬리를 묻혀 오겠다.”

나영은 친구라도 있어 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얘, 이 놈 혹을 떼는게 우선이야.”

지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병원 다른 산부인과 의사한테 문의했다.”

“너네 과냐?”

“그래. 건데 그 의사도 한 500만 없인 공 해줄 거 같잖아. 지금 어디 공짜 있느냐? 비법락태죄를 질가봐 겁나하면서도 돈 보고 하자는 거 같더라.”

나영은 한참 지영을 마주 보라보다가 무거운 입을 뗐다.

“아니야. 너네 병원에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되붙이겠다.”

지영은 의아해했다.

“무슨 말이냐?”

나영은 지영의 손을 잡고 말했다.

“거기 갔다가 경찰한테 잡히면 어쩌니? 설상가상 네한테도 련루시키게 돼.”

지영은 나영의 거친 손을 매만지며 말했다.

“난 괜찮아. 그런데 산부인과 주임인 허의사 눈을 피할 수 있겠니? 허주임한테 발각되는 날엔 끝장난다. 그러나 그 의사를 모텔에 데려다 락태시슬하면 어떻겠는가도 궁리했다. 나도 의학대학 졸업생이 아니냐? 시슬은 못해도 간호사로는 격이 넘치지.”

나영은 손사래쳤다.

“한국 의사는 그만두자. 모텔에서 시슬하면 경찰들한테 들킬 념려없어 좋지만도. 이젠 한국 의사라면 딱 질색이야. 다 사기군 같아. 그 의사 경찰에 밀고하겠다면서 돈을 엄청 내라고 협박이라도 하면 어쩌겠니?”

지영은 외까풀눈을 치켜뜨며 답답해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럼 무슨 수 있느냐?”

나영은 머리를 들고 지영을 믿음에 찬 눈길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렇게 하면 어떨가? 황선희라는 친구언니 있어. 일본 의대 류학출신 녀박사야. 그 언니를 한국에 청해다가 모텔에서 낙태시슬하면 어떨가?”

지영은 걀죽한 얼굴에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위험하긴 하지만 그게 좋을 거 같아. 그런데 어떻게 아는 친구인지 한국에까지 오자 하겠느냐?”

그러나 나영의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에는 일루의 희망의 빛이 어렸다.

“당장 련락해보렴.”

지영의 말에 나영은 핸드폰을 들었다가 천천히 맥없이 내리웠다.

“안돼. 내 직접 전화하면 경찰들 덫에 치울 수 있어.”

“내 전화하래?”

“아니야.”

나영은 지영의 손을 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별 수 없구나. 종호. 그 기자 신세를 지자.”

지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종호라면 경찰들은 아직 의심하지 않을 거야.”

이튿날 오전, 종호는 지영이 제공한 핸드폰 번호에 국제전화를 쳤다.

그는 황선희한테 사정얘기를 쭉 했다.

황선희는 제약공장에서 코로나 백신생산 때문에 개미 채바퀴 돌듯 바삐 맴돌아쳤다. 하지만 곤경에 처한 나영의 처지를 알고는 흔쾌히 대답했다.

“어쩜 나영이 임신됐어? 그 놈 변강쇠 혹을 떼붙혔겠구나.”

벙어리가 벙어리 고충을 안다고 선희는 나영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색마 정호의 피해녀라고 여겨 동정심이 움직였던 것이다. 

그녀는 당장 군철한테 고향 집에 부모가 편찮아 급히 가봐야겠다는 구실로 청가맡았다. 그리고 시슬에 필요한 수술칼과 핀센트 등을 준비해하지고 한국으로 날아갔다. 마취약은 괜히 공항에서 마약을 휴대했다고 잡힐가봐 휴대하지 못했다.

황선희와 지영은 나영의 전도를 생각해 큰 마음먹고 모텔방에서 모험적인 락태시슬을 했다. 물론 마취약을 비롯한 시슬에 필요한 약물과 의료기는 몽땅 지영이 병원에서 과주임인 허의사 눈을 피해 가만가만 장만해뒀다가 모텔에 가져 왔던 것이다.

락태 시슬은 아주 성공적으로 됐다. 황선희박사의 능란한 시슬 솜씨로 해 반 시간 남짓해 나영의 뿔룩한 배 속에서 끝내 그 놈의 죄악과 피눈물로 얼룩진 혹덩이를 떼버렸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나영은 혹을 떼버렸다는 말에 어두운 그림자가 흘러가는 수척해진 얼굴에 가냘픈 미소를 지었다. 
       졸혼의 더러운 죄악의 혹떵이를 떼버리고 고민의 쁠랙홀에서 해탈되는 순간의 말 못할 기쁨,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승리의 쾌감이 아니겠는가.
       참사랑으로 부글부글 끓는 호수에서 게는 코웃음쳤다.
       바람쟁이들이 고통의 놀부 박을 떼버렸다고나 해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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