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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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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 (56-종장) 댓글:  조회:1551  추천:5  2020-08-29
                           86. 울고 웃는 진달래         훈훈한 봄날,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봄바람이 불어오고 고향 천지꽃산에는 연분홍 진달래꽃이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며 활짝 꽃폈다. 겨우내 된서리에 맞고 윙윙 휘몰아치는 칼바람에 살도 어이었건만 봄아가씨가 만져주자 진달래는 상처를 털고  무한한 생명력을 무섭게 과시하면서 어둠을 뚫고 천리만리 달려나와 웃음꽃을 활짝 꽃피운다.        성호는 한나가 일하는 강남 한국 기업의 요청 덕분에 당지 명승고적과 기업을 참관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지게 되였다. 그러나 부산대병원에 입원한 채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다섯째누나 때문에 반가운줄을 몰랐다.      철수가 보내온 기별에 의하면 누나는 갈비뼈가 여섯대, 골반, 대퇴골이 골절돼 생사를 기약하기 어렵다고 한다. 다행히 내장은 크게 손상받지 않아 잠시 목숨은 붙어 있다고 하였다.        성호는 강남행을 마치면 부산에 누나병문안을 하러 가기로 하고 먼저 치료비에 보태쓰라고 부산으로 떠나가는 철수한테  5천원을 줘 보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받은 은자 누나의 사랑에 비하면 너무나도 보잘 것 없었다. (누나 내 갈 때까지 꼭 기다려주오.) 성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나가 살아만 있으면 뭐든지 다 해주고 싶었다. 승호가 금방 몹쓸 병에 걸려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은자누나가 또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는가. 그는- 련속 들이닥치는 사고충격에 용케 견디면서 먼저 강남으로 떠났다. 한국 기업에서는 부모들을 사흘 동안 5성급호텔에 주숙시켰을뿐만아니라 숙식비와 왕복비행기표를 몽땅 대주었다. 성호 등 직원들의 부모들은 먼저 유명한 강남 수상도시(水城)를 유람하였다. 그들은 자녀들과 함께 관광뻐스를 타고 참대숲이 우거진 산 우에 우뚝 솟은 비뚠 고대탑도 돌아보았고 명조와 청조 때 축조한 고대 가산과 원림, 고대광실도 돌아보았다. 그러나 성호의 눈에는 쇠살창을 부여잡고 피빛이 된 눈으로 자기들을 바라보던 승호, 눈물을 줄줄 흘리던 앙상한 승호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또 산소호스를 코에 꽂은 채 생사를 다투고 있을 은자누나의 처량한 모습이 자꾸 떠올라 괴롭기만 하였다. 저녁에는 대형유람선을 타고 유유히 흐르는 운하를 따라 유람하면서 오색령롱한  전등불빛이 빛뿌리는 수상도시의 야경을 구경하였다. 유람선에서 빨간 비단 고대녀인복장을 입은 강남의 녀가수가 해금을 타면서  강남지방특색이 짙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들은 강남의 오색령롱한 수상도시의 야경을 구경하였다. 그 운치야말로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고 남방풍경에 푹 매료되게 하였다. 그러나 성호만은 누나와 조카 근심에 싸여 머리를 수깃하고 멍해 앉아 있었다. 한국 기업에서는 또 아주 랑만적인 활동도 조직하였다. 직원들의 부모들을 관광뻐스에 싣고 고급사진관에 가서 웨딩드레스를 입혀 결혼 2, 30여년만에 결혼사진까지 큼직하게 찍기까지 하였다. 30여년전에 결혼사진 한장도 변변히 찍지 못한 부모들은 뜻밖의 이벤트에 주름잡힌 얼굴에는 환락의 기쁨이 넘실거렸다. 그러나 성호는 안해마저 없어 홀로 찍기 싫어 그만 두었다. 강남의 한국 기업에서는 생산직장과 헬스방, 운동장과 인공호수, 독신직원들의 숙사를 참관시켰다. 사흩날 오전에 한국 기업의 총수들이 기업사무청사 앞에서 직원들의 부모들을 접견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나가 미국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 의향대로 중국에 돌아와서 다행이였다. 딸이 자칫 시꺼먼 흑인한테 혼을 완전히 빼앗겼더라면 성호의 모든 삶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버렸을 것이다. 아니, 딸을 흑인한테 유린당한 절망의 심연에 빠졌을 것이 아닌가. 성호는 아빠의 말을 들은 한나가 자못 고마웠다. 한나보다 딸을 중국에 끌어온 정훈이 더 고마웠다.       한나는  미국 대학 문예야회에서 노래경연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단연 1등을 따냈다. 그 덕분에 중국에 돌아온 후 이 기업에 아주 쉽게 초빙됐던 것이다. 한나는 일본에 류학갔다가 이 수상도시 일본은행에 취직한 정훈이라는 총각과 한창 열련하는 중이였다. 부모들이 떠나기 전 날 저녁에 기업에서는 송별연회를 열었다. 한국 총경리의 열렬한 환영사에 뒤이어 직원들이 부모들 앞에서 문예공연을 하였다. 무대에서 정훈이 부르는 명량한 조선족노래에 맞춰 한나가 너울너울 독무를 추었다. 성호는 어쩌다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딸이 춤을 추는 아름다운 모습을 구경하였다. 한복을 입은 딸이 그렇게 고울 수 있겠는가! 한나는 미국으로, 정훈은 일본으로 갈라져 류학의 길에 오른 4년 사이에 리별의 슬픔과 상봉의 기쁨을 묵묵히 감수했다. 정훈은 일본에서 류학할 때 한 음식점에서 과외로 아라바이트를 하면서 어렵게 공부를 하였다. 일본 음식점에서는 직원들을 혹독하게 부려먹었다. 정훈은 날마다 저녁 12시 전에 퇴근해본 적이 없었다. 밤중까지 일하고 새벽에야 세집에 돌아와 새우잠을 자고 아침에 부랴부랴 대학교로 달려가야 했다. 그러다나니 늘 아침은 우유 한컵에 빵 하나면 다였다. 아침도 먹지 못하고 학교로 뛰여가기가 일쑤였다. 한나는 기어이 정훈을 미국에 데려가려고 애썼다. 그녀는 지도교수 톰과 사정해 정훈의 미국 대학입학통지서까지 수속해 보냈다. 정훈은 일어만 배웠지 영어를 배운 적이 없었지만 과외로 외국어학원에 다니면서 영어공부를 해서 뜻밖에도 출국류학생  영어시험에 합격했다. 그런데 정훈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을 미국에 보내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가봐, 아들을 잃어버릴가봐 미국류학을 견결히 반대해나섰다. 하긴 보통 애들은 미국에 류학갈 때는 꼭 돌아오겠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정작 몇해 외국에 가서 공부하고나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야, 미국으로 류학가겠으면 부모자식간에 각서를 쓰자. 넌 미국에 류학갔다가 꼭 귀국해 취직하겠다는 걸 써라. 만약 부모자식간의 각서를 어기고 귀국하지 않으면 부모자식 관계를 끊자.” 정훈은 아버지를 보고 안타까워했다. “제가 미국에 류학을 갔다가 돌아오지 않을가봐 근심하지 마십시오. 전 일본류학갔다가 그만두고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정훈의 아버지는 만약 돌아오지 않으면 부자관계를 끊을뿐만아니라 안해와 리혼하고 젊은 녀자와 재혼해 둘째아들을 보겠다고 하면서 압박하였다. 그 바람에 정훈은 고민 끝에 미국류학을 포기하였고 한나를 보고 강남에 오라고 했다. 한나와 정훈은 서로 자기 쪽에 오라고 하면서 밀고 당기고 하면서 신경질적으로 톱질하였다. 나중에 정훈은 한나를 보고 “중국에 돌아오지 않겠으면 관계를 끊자.”라고 하였다. 한나는 자존심에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훈을 놓칠 수 없어 타협안을 내놓았다. “네가 나를 데리러 미국에 오라. 그럼 돌아가겠어.” 어느 하루 정훈은 한나가 보낸 미국류학통지서를 가져다가 아버지한테 주면서 “기념으로 두시오.”라고 했다. “자식, 내 이걸 가져서 뭘 해?” 그때 정훈의 아버지는 아들의 뒤다리를 너무 잡아당긴것 같아 미국류학통지서를 들고 보면서 미안해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아들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으로 하여 무등 기뻐했다. 그후 정훈은 미국으로 날아가 한나 앞에 무릎을 꿇고 포로포즈를 하였다는가. “한나야, 널 죽도록 사랑해. 나와 함께 중국에 돌아가 결혼해 살자.” 감격된 한나는 정훈과 함께 중국에 돌아왔고 나중에 한국 기업에  취직했다. 송별문예야회에서 기업에서는 부모들에게 자녀들이 손수 생산한 삼성표 핸드폰 한나씩 선물로 드렸다. 기업의 요청에 의해 성호는 무대에 올라가 전체 부모들을 대표해 인사를 드렸다. “우선 나는 전체 부모들을 대표해 한국 기업에서 우리를 환대해준데 감사를 드립니다. 요즘 사흘 동안 참관을 통해 우리 애들이 일하는 이 기업은 인성화된 관리리념과 글로벌화한 최첨단과학기술 그리고 훌륭한 인재대오가 있기에 앞으로 발전전도가 휘황찬란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몇해 전에 우리는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수천리 떨어진 강남에 보내면서 리별의 슬픔과 상봉의 희열을 감수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참관방문활동을 통해 우리 부모들은 자녀를 이 기업에 보내놓고 이젠 시름놓았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식들의 든든한 뒤심이 될 것입니다. 얘들아, 시름놓고 이 기업에서 너희들 청춘을 바쳐 인생의 가치를 실현해라!” 직원과 부모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어쩐지 한어에 서투른 발언으로 부모들의 얼굴에 먹칠이나 하지 않았는지 마음에 내려가지 않았다. 성호는 무남독녀와 사위감 정훈을 강남 수상도시에 두고 상해 포동비행장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한 시름을 놓았다. 한나랑 정훈이랑 장백산 기슭의 진달래가 만발하는 고향을 떠나 강남의 수상도시에 뿌리를 박고 청춘을 다바쳐 인생의 가치를 실현하고 조선족의 영광을 떨치고 있지 않는가. 그들은 모두 몸은 한국 기업에  뿌리를 박고 연분홍진달래꽃을 꽃피우고 있지 않는가. 청춘의 정열로 중국의 광활한 대지에 진달래꽃 향기를 풍기고 있지 않는가… 어느날, 예쁘게 생긴 20대 처녀애가 성호네 광고회사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리경리님.” 성호는 또 취직하려고 온 처녀인가고 “우리 회사에서 직원을 더 모집하지 않소.” 하고 퉁명스레 말했다. 처녀애는 쌔물쌔물 웃었다. “전 리경리한테서 광고업무를 배우러 왔어요.” “뭘?” 성호는 혹시나 또 예화 같은 사업간첩이나 아닌가고 의심하면서도 그 처녀애를 유심히 살폈다. 딱 어데서 본 것 같았는데 누구던지 아리숭했다. “앉소. 어데서 왔소?” 처녀애는 성호 옆의 쏘파에 앉아 반문하였다. “혹시 순희라고 기억하는지요?” 성호는 “순희? ” 하고 처녀애를 다시 바라보았다. “예. 전 막내딸 경화인데요. 한나와도 잘 아는 사이죠.” 참말 놀라운 일이였다. (저 옴폭 파이는 볼우물을 보라. 진짜 처녀시절의 순희를 똑 떼닮은 귀여운 처녀애가 아닌가.) 저쪽에 앉은 연화와 예화도 경화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순희한테 이렇게 예쁜 딸이 있는가. 쌍둥이라던데. 좌우간 반갑다. 어머니랑 잘 있지?” 성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화를 반갑게 맞았다. “어떻게 돼 여기로 왔니?” 경화는 예화와 연화를 곁눈질하더니 성호의 가까이에 다가와 귀속말로 여쭈었다. “어머니가 저를 리경리한테 실습하러 보냈어요. 이담 수도에 가서 언니와 함께 광고회사를 차릴가 해서 그래요. ” “그래?” 그날부터 성호는 순희네 딸 경화한테 광고회사의 이것 저것 소개해주었다. 어느날, 경화가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따르릉, 따르릉. 경화한테서 전화가 왔다. “리경리, 봄날에 날씨도 좋은데 진달래꽃구경을 가려는데요. 청가를 주세요.” “그래오.” 성호는 전화를 놓으려다가 예화와 연화를 돌아보면서 좋은 제안을 했다. “날씨도 좋은데 내 고향 천지꽃산에 함께 가지 않겠소?” 경화는 좀 궁리하다가 쾌히 응낙했다. “예, 좋아요. 제가 사진기랑 가지고 가지요.” “어데서 만날가?” “천지꽃산 기슭에서 만나죠.” “알았소.” 성호는 연화와 예화를 자가용승용차에 싣고 고향으로 신나게 씽-씽- 달려갔다. 연분홍 진달래꽃으로 물든 고향 천지꽃산이 가까워 올수록 가슴이 별스레 설레였다. 천지꽃산에는 그의 동년의 꿈이 묻혀 있고 첫사랑의 추억이 태동하고 있었다. 추억과 꿈, 사랑이 바위로 굳어졌고 진달래 등 항일렬사들의 충혼이 구름 속에 검붉은 절벽으로 치솟아 있지 않는가. 성호는 전번 일을 깡그리 잊은듯이 예전처럼 예화를 스스럼없이 대하였다. 예화는 성호의 드넓은 흉금에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저렇게 좋은 분을 해쳤더라면 어떻게 됐겠어.) 눈물이 글썽한 그녀의 눈에는 름름한 성호의 옆모습이 안겨왔다. 뒤이어 차창 밖으로 벌써 저 멀리 연분홍빛으로 뒤덮인 천지꽃산이 안겨왔다. “와~ 멋지다!” 연화는 산기슭에 활짝 핀 진달래꽃밭을 보고 환성을 질렀다. 저쪽에 경화가 두 팔을 쳐들고 환호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옆에 웬 녀성이 오도카니 서 있었다. 승용차가 점점 가까이 다가가면서 성호는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글쎄 뜻밖에도 첫사랑 순희가 아니겠는가! 순간 성호는20여년 전에 순희와 천지꽃산에 올라 첫사랑을 속삭이던 로맨스가 필림처럼 떠올랐다. 그때 진달래꽃따발을 순희 머리 우에 얹어주면서 “넌 내 첫사랑이야.”라고 열변을 토하지 않았던가. 그러자 순희는 볼우물을 옴폭 파면서 새침한 표정을 짓더니 볼부은 소리를 쳤다. “픽, 넌 도대체 첫사랑이 몇이야?” 순희와 웃고 떠들다가 산기슭에서 밭갈이를 하던 아버지한테 들킬가봐 진달래꽃밭에 숨지 않았던가… (괜히 얘들이 묵은 비밀을 알면 어쩌지?) 성호는 순희를 보고 인사하고는 진달래꽃으로 뒤덮인 오솔길로 산정에 스적스적 오르기 시작했다. 이 오솔길을 무심히 걸을 수 없었다. 오솔길의 발자욱마다 추억 속의 사랑이 고여 있지 않는가. 지난 겨울에는 은영과 함께 스키를 타고 날아내려가지 않았던가! 그날 은영은 탄력 있는 몸에 딱 들어붙은 빨간 스키복을 입고 제일 날카로운 절벽 우에 올라가 섰다. 그 모습 진짜 백설 우에 피여난 한떨기 매화꽃을 방불케 했다. 아니, 백설 위에 굴함없이 서 있는 한송이 연분홍 진달래꽃처럼 신비한 빛을 발산하고 있지 않는가! 성호는 빨간 꽃송이 같은 은영을 쳐다보며 내심의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은영을 만나자 머리에 오래동안 맴돌던 의문부터 꺼냈다. "감옥에 갔던 굉팔이 감옥에서 나온 걸 아오?"       은영은 피끗 성호를 쳐다보며 입귀를 쫑긋했다.  "그깟 놈을 왜 꺼내요?" "굉발광고회사까지 버젓이 차렸다는데. 저네 검사들 뭐 해? 그런 놈을 감옥에 처넣지 못하고?" 은영의 걀죽한 외씨얼굴이 대뜸 어두워졌다. "황금흑사심. 이 세상엔 그런 자들 있어요. 돈을 깔고 돈 딛고 변소간 똥구덩이에서 벌벌 기여나온 구데기 같은 놈들! 조만간에 똥구덩이에 델델 굴러 떨어져들어갈걸! " 성호는 은영의 그 한마디 말 잘 풀면 답이 나올 것 같아 입에 무거운 빗장을 질렀다. “저 절벽은 항일투사 진달래가 뛰여내려 장렬한 최후를 마친 절벽이요. 아, 저 절벽 바위 틈에 활짝 핀 진달래꽃을 어떻게 하는가!” 은영은 옆구리에 두 손을 찌르고 허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은영이, 뭐하려는 거요?” 성호는 황급히 뒤따라 올라가면서 물었다. “최혜영선수가 절벽에서 뛰여내리자고 그래요.” 은영은 잔등에 메였던 스키를 내려 신었다. “미쳤소? 열길도 넘는 절벽을 어떻게 뛰여내린다고 그러오? 당장 그만두오. 사고를 치겠소.” 은영은 개의치도 않고 당장 도약하려는 자세를 낮추었다. “진달래렬사가 장렬히 희생된 절벽이 아닌가요? 이 절벽에서 뛰여내려 항일렬사들을 추모하겠어요.” 성호가 붙잡기도 전에 은영은 열길도 넘는 절벽에서 훌쩍 뛰여내렸다. 풍덩! 쏴- 은영은 빨간 불새처럼 절벽 아래 눈에 살짝 날아내리더니 눈덮인 오솔길을 따라 쏜살같이 산 아래로 미끌어져 내려갔다. 성호는 머리끼 곤두섰다. 하얀 눈가루를 날리면서 빨간 불새처럼 쏴- 짓쳐내려가는 은영의 날렵한 모습을 보라. 진짜 림해설원을 헤가르던 항일투사들의 모습이 아닌가! 성호는 그녀의 불새처럼 날렵한 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몰래 한숨이 후- 나갔다. 로처녀의 하늘을 찌를듯한 용기에 저도 몰래 감탄이 나갔다. 불시에 즉흥시조 “진달래”가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눈 덮인 산마루에 진달래 피였는가 선녀가 스키 타고 불새마냥 날아가네 어화라 그윽한 향기 눈가루로 춤추네   성호는 추억 속에서 깨여났다. (이상한 일이야. 시인도 아닌 내가 은영을 보기만 해도 혈액순환이 빨라지고 시조가 마구 쏟아져나오지 않는가.) 그는 뒤따라 오는 순희를 피끗 돌아보며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세상의 모진 풍상고초를 겪으면서 쉰고개를 넘어섰지만 아직도 처녀 때의 밝은 모습을 잃지 않고 있었다. 보름달 같은 얼굴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수척한 볼에 의연히 볼우물을 옴폭 파며 생글방글 웃었다. 좀 그윽한 눈길이 성숙미를 돋보여줄뿐이였다. 진달래꽃이 활짝 꽃피는 봄날에도 성호는 첫사랑의 락엽이 우수수 지던 마가을의 살풍경을 잊을 수 없었다. 아, 20여년전 첫사랑을 속삭이던 천지꽃산, 그 천지쫓산에서 그 옛날의 락엽과 함께 나뒹구는 첫사랑의 흔적이 너무나도 쓸쓸하게 마음을 파갔다. 실련의 슬픔이  벌거숭이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발버둥질치다가 외로움이 누워 있는 절벽에 겹겹이 후둑후둑 내려앉는다. 순희, 오, 풋내기 첫사랑, 처음 사춘기 소년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 첫사랑! 은영이, 그녀가 아니면 막 죽을 것만 같았던 짝사랑, 질투와 결투로 활활 타올랐던 짝사랑, 신련의 쓴 맛을 안겨준 짝사랑. 누가 짝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했는가! 정희, 규수와 목동의 짝이 기운 순박한 참사랑! 첫사랑, 짝사랑, 참사랑 그녀들은 모두 내 사랑을 파먹은 이쁜 진달래꽃들이다. 그 진달래꽃들은 모두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추억의 돛배들이다. 오늘도 추억의 돛배를 타고 달빛이 고즈넉한 천지꽃산으로 올라가 순희와의 첫사랑을 줏게 하고 매화꽃을 떠인 소나무들이 빙 둘러선 모교 빙장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대학가 뒤동산 소나무숲 속으로 헤여가 은영과의 비극적인 사랑의 흔적을 쓸쓸히 찾아보게 하지 않는가. 추억 속 사랑의 돛배에 앉자 파도가 세찬 바다를 헤가르며 나가 심장을 더욱 옥조여야만 하였다. 성호는 추억을 더듬으며 천지꽃산 중턱에 이르렀다. 세파에 부대껴 주름이 쭉쭉 간 층암절벽,  렬사들의 충혼과 선혈이 슴밴 바위들, 그 푸른 이끼 뒤덮인 바위들    틈새로 듬성듬성 연분홍 꽃얼굴을 내민 진달래꽃이 한없이 예뻤다. 활짝 핀 새하얀 살구꽃과 배꽃을 배경으로 연분홍진달래꽃이 더욱 선명하게 아름답게 방실방실  반겼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겨우내 모진 풍설을 이겨내고 봄이 오자 변함없이 꽃펴 방실방실 반기는 벼랑 틈의 진달래꽃이 더없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성호는 여러가지 꽃을 꺾어서 꽃다발 두개를 만들었다. 하나는 경화의 머리에 얹어주고 하나는 순희 머리에 얹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애들의 따가운 눈길이 시려 순희한테 주려던 꽃다발을 경화 머리에 얹어주었다. “참 선녀처럼 예쁘구나!” 경화는 어쩜 20여년 전의 순희를 딱 떼닮지 않았겠는가. 햐얀 볼에 옴폭 파이는 볼우물은 당년에 성호를 유혹하던 첫사랑의 볼우물이 아닌가. 성호는 어쩐지 경화는 20여년 전 사춘기 때 첫사랑 순희의 화신 같아보였다. 순희는 경화를 껴안고 포즈를 취했다. 성호는 설레임으로 흐리마리해진 눈을 부비면서 그들 모녀간을 렌즈에 담고 찰칵 샷타를 눌렀다. “오세요. 우리 셋이 한장 찍자요.” 순희와 경화는 성호를 가운데 모시고 량팔을 살짝 끼였다. 연화가 샷타를 찰칵 눌렀다.  “야, 영원한 기념이야!” 경화는 세변도 모르면서 환성을 질렀다. “세월이 흐르긴 흘렀구나. 사는게 너무 힘들고 피곤해.” 순희도 한탄하면서 성호와 함께 천지꽃산에 올라와 놀던 옛추억에 빠진 것 같았다. “우리 애들은 편하게 잘 살아야겠는데.” 성호도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면서 화답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다 잘 살기를 념원했지. 대대로 그런 희망을 품고 살았지만  어느 대에 가서 현실로 될가? 애들이 불행이 없이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 생각만 해도 막연하구나.” 성호는 오랜만에 만난 순희한테 너무 상심한 말을 하는 것 같아 화제를 바꿨다. “쌍둥이 딸이 얼마나 귀엽소?” 성호와 순희는 옛추억을 떠올리면서 연신 감탄했다. 경화는 어머니가 종종 리성호 경리를 외우는 것을 들어왔다. 눈치빠른 그 처녀애는 그들의 관계를 대개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여 진달래꽃을 구경하면서 고의로 연화와 예화와 함께 앞에서 씨엉씨엉 산마루로 톺아올라갔다. 성호가 바라보니 어쩐지 진달래꽃밭으로 올라가는 경화와 예화, 연화는  방불히 떨기떨기 진달래꽃송이 같지 않겠는가! 그 싱그러운 진달래꽃 처녀와 색시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면서 성호와 순희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세월이 무섭구만요. 우리가 벌써 반백이 됐구만요.” 성호는 씨무룩이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20여년 전에 순희의 옴폭 파이는 볼우물에 홀딱 반해 “넌 영원한 첫사랑이야!” 하고 열변을 토하던 일이 서글프고 창피하기만 했다. 애들이 앞에서 멀어지자 성호는 넌짓이 물었다. “마사지방 잘 되오?” “에이, 말도 말라. 뭔들 그리 쉬워?” “미국에서 철주랑 돈을 많이 벌면 되지.” 순희는 한숨을 길게 호- 내쉬였다. “철주, 말도 말라. 영어도 모르지. 머리에 든 게 없지. 때밀이를 해서야  무슨 돈을 벌겠니?” “부지런히 때밀이만 해도 벌잖고 뭐야. 팁까지 준다던데.” 순희는 허구픈 웃음을 지으면서 성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에이구, 미국 갈 때 출국수속비 22만원이나 냈는데. 그렇게 벌어서야 언제 시아버지가 생전에 진 빚까지 다 물겠니?  생각만 해도 눈 앞이 캄캄해난다.” “얘, 철주 아버지 진 빚은 그만둬라. 한 마을에서 자란 우리 사이에 부모의 빚을 대를 이어 물게 하겠니?” “꾼 돈이야 갚아야지. 이 세상에 어디 공짜 있어?” 성호가 계속 받지 않으려고 하자 순희는 속으로 엉뚱한 의문이 생겼다. (첫사랑한테 주는 보상이냐? 어림도 없어. 옛날 도적놈은 살려줘도 정을 버린 놈은 살려주지 않는단 말이 있잖아? 흥!) 순희는 기분을 바꿔 입을 뗐다. “너네 각시는 대학졸업생이잖아. 영어도 잘하지. 미국에서 돈을 많이 벌겠구나.” “벌긴 뭘 벌어?  빈혈이 돼서 무슨 일을 하겠니?” 성호는 “우리 색시는 어려서부터 힘든 일을 해본 적이 없어서 돈을 좀 쉽게 벌가 하는 거 같아.” 하고 말하려다가 말끝을 흐렸다. 그는 귀국한 한나한테서 듣고 놀라운 일을 알게 됐다. 원래 정희는 한국의 백영 사장과 허하늘 팀장의 말을 믿고 한희선 아줌마와 함께 미국에서 때밀이를 해 애나게 번 돈을 몽땅 미국 주식시장에 처넣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맨날 때밀이만 하다나니 주식시장의 변화에 따라 주권을 제때에 사고 팔면서 관리하지 않아 몽땅 날리고 말았다. 성호는 순희 앞에서 정희가 팔리는 것 같아 화제를 바꾸었다. “이젠 우리 시대는 지나가고 경화랑 한나랑 시대야. 저 애들은 고생하지 말고 잘 살아야겠는데. ” 순희는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대대로 아래 대에는 잘 살겠지 하고 기대하지요. 건 꿈에 지나지 않지요. 그러나 어째 자꾸 꿈을 꾸게 돼요. 이제 경화랑 영화랑 수도에 뿌리를 박고 진달래꽃처럼 활짝 피여날 거야.” 순희는 환상과 희망에 들떠 있었다. 성호는 순희의 랑만에 찬 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도 랭혹하지 않는가. “우리 장백산 기슭의 진달래는 만리장성 기슭과 황포강변, 항주 서호가에서도 뿌리 박고 활짝 꽃피고 있잖고 뭐야? 우리 아래 세대는 우리처럼 돈고생이랑 별의별 고생을 다 하지 말고 잘 살 거야. 에이, 대대로 그런 희망을 품고 살아왔지만 어디 편안한 날이 있었느냐?” 순희가 문뜩 뜻밖의 말을 한마디 했다. “어쩜 우린 다 딸만 낳았어? 네가 아들 낳았으면 사돈이라도 맺었으면 한이  없겠는데.” 성호는 “모든 건 인연이 있는 법이야.” 하고 한마디 하려다가 꿀꺽 삼켜버렸다. 괜히 자기와 사랑을 이루지 못해 속상해하는 순희한테 상처를 더 줄가봐서였다. 산마루에서 연화와 예화가 성호한테 “빨리 올라오세요!” 하고 손짓했다. 어느 새 그녀들은 연분홍 한복을 입고 너울너울 춤추며 손짓하고 있지 않겠는가. 그녀들을 쳐다보는 순간 성호는 그녀들이 불쌍해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녀들은 삼십대 파란 나이에 모진 풍상고초를 겪을대로 다 겪고 멸시를 받을대로 다 받으면서 짓밟혀왔다. 어쩜 곡절도 많은 저 색시들은 우둔한 소 발통에 짓밟혀 꺾어져도 이듬해에 다시 살아나 꽃피는 진달래와도 같아보이지 않겠는가. 그렇다, 그녀들은 저 절벽 바위 틈에 뿌리를 박고 악착스레 살아가는 진달래처럼 굴하지 않는 굳은 의지와 강한 생존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생활이 그녀들을 괴롭혀도 숙명처럼 묵묵히 받아들이며 지혜롭게 풀어나가며 쾌활하게 살아나가고 있지 않는가. “야-호-” 그녀들은 산마루에서 입에 손나팔을 해대고 목청껏 외쳤다. 그 울부짖음소리는 오래도록 산곡 사이에서 메아리쳤다. 연화는 서일철 경리와의 추문이 퍼져 머리를 들고 학교로 갈 수 없어 성호네 광고회사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때 초창기여서 직원이 그리 많이 필요없었다. 하지만 성호는 자기를 찾아온 인정을 버릴 수 없어 연화와 예화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두툼한 로임을 주지 못해 항상 마음에 걸렸다.  (저 불쌍한 녀자들한테 다시는 상처를 입히지 말아야겠는데… 무슨 불길한 일이 생기지 말아야 되겠는데!) 성호는 렌즈에 진달래꽃이 듬성듬성 피여난 층암절벽을 배경으로 그녀들을 렌즈에 담아 찰칵찰칵 샷타를 눌렀다… 어느덧 황혼이 깃들면서 서쪽하늘에 저녁노을이 불그스럼하게 타올랐다. 연분홍진달래도 불그스름하게 물들더니 봄바람에 하느작이면서 산을 내리는 그들을 바래였다. 그들은 돌아오는 길에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진달래기념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순희는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이 비낀 진달래기념탑, 창공을 찌르며 숭엄하게 우뚝 솟은 진달래기념탑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이 진달래기념탑은 우리가 다 죽어 북망산으로 가도 없어지지 않겠지요?” 성호도 가슴을 쑥 내밀고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이 진달래기념탑은 민족심이 아주 강한 전임 부주장 전평선 등 유지인사들이 국내외에서 몇백만원을 모아 세웠다오. 전국조선족로인협회 전평선 회장과 윤진주 부회장의 말씀에 의하면, 진달래기념탑은 불수강으로 만들었기에 몇백년이 지나도 녹쓸지 않고 우뚝 서 있을 것이라고 했소.” 순희는 경화와 함께 진달래기념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우리 조선족이 사는 이 땅에서 진달래기념탑은 민족의 상징기념물로 영생할 거요.” 순간, 락조가 비낀 숭엄한 진달래기념탑이 한없이 우러러 보였다. 그렇다. 진달래는 천년이고 만년이고 엄동설한에 모진 눈풍설이 기승스레 휘몰아쳐도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소리치며 웃으면서 끄떡없이 살아나가고 있다. 우둔한 황소들이 마구 짓밟아 가지가 끊어지면 이듬해 봄에 굴함없이 곁가지를 치면서 자라난다. 진달래는 모진 풍설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꿋꿋이 살아나가고 있다. 겨우내 눈풍설과 찬서리를 온몸으로 이겨나가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이 돌아오면 다시 선렬들의 피를 머금고 연분홍진달래꽃을 활짝 꽃피우고 있다. 장백산기슭의 진달래는 중국의 광활한 대지는 물론, 한국, 조선, 일본, 미국, 로씨야, 아니, 온 누리에서 활짝 꽃피고 있지 않는가. 성호는 온누리에 널려 사는 형제, 조카들한테, 아니, 모든 조선족들한테 제일 귀중한 선물로 고향 천지꽃산의 진달래꽃을 파서 드리고 싶었다. 그들이 어데 가서 살더라도 그 곳에 진달래꽃을 심고 진달래와 함께 억세게 살고 꽃피라고 신신당부하고 싶었다. 온 누리에서 굳세게 살고 있는 우리 중국의 조선족들이야  말로 장백산 선렬들의 선혈을 머금고 피여난 진달래꽃이 아니겠는가. 성호는 온 누리에 피여나는 진달래를 방불히 보는 듯해 하염없이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훔쳤다. 비록 키는 크지 않지만 불요불굴의 완강한 생명력과 강인한 성격을 가진 진달래, 괴로우나 즐거우나 아리랑을 목청껏 부르면서 대를 이어 꽃피는 진달래, 기승스레 휘몰아치는 눈보라에도, 우둔한 소들이 짓밟아도 층암절벽에 뿌리를 내리고 악착스레 굳세게 살아나가는 질달래, 진달래는 굴함없이 살아가며 독특한 매력을 피우는 우리 조선족의 상징이 아니고 무엇인가! 순간 성호의 눈 앞에 진달래꽃이 만발한 고향의 천지꽃산이 하나의 커다란 진달래꽃송이로 둔갑하였다. 아니, 저게 뭔가? 진달래기념탑과 천지꽃산은 신기루처럼 하늘 높이 우뚝 솟아오르지 않겠는가. 그 연분홍 진달래꽃 신기루는 갑자기 검푸르러가는 밤하늘로 로케트처럼 솟아올라 북두칠성, 삼태성 뭇별들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천지꽃산에 묻힌 진달래 등 혁명렬사들의 충혼이 하늘로 날아올라 연분홍 장군별들로 반짝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갑자기 그 연분홍 뭇별들이 지구촌 방방곡곡에 별찌처럼 날아내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별찌들은 축포처럼 온 누리에 흩어져 날아내려 연분홍 진달래로 둔갑해 방실방실 연분홍 웃음꽃을 활짝 꽃피우고 있었다. 뭇별처럼 반짝이는 진달래꽃송이들은 바야흐로 오로라처럼 온 누리에 오색찬란하게 빛발치리라.                                                                               (끝)
226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55) 댓글:  조회:1049  추천:0  2020-08-22
                                   85. 버림받은 모성애        어느 하루, 밤중에 은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얘, 성호야, 집을 팔아야겠어.”         성호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무슨 소릴 하오? 집을 팔고 한지에 허망 나앉겠소?”        “겨울인데 난방이 잘 안되지. 손질하자면 아마 몇백만원 들어가야 해. 집 팔아가지고 아들집에 가서 천륜지락을 누리며 살아야지.”       “참 답답하오. 지금 어느 자식이 부모와 함께 살자고 한다고 그러오. 아직 젊었을 때 그 집에서 살면서 양로비나 좀 버오. 절대 그 집을 팔지 마오.” “그럼 언제 아들과 함께 사니?” “칠순 중반 됐을 때 가도 실컷 사오.” 그러나 은자는 성호의 말을 듣지 않고 끝내 부산의 2층 집을 헐값으로 7천 5백만원을 받고 부랴부랴 팔았다. 성호는 더 말이 나가지 않았다. 며느리가 달큼한 말로 신랑한테 베개머리 송사를 해서 그 집을 팔게 충동질을 했다고 한다. 어느날 밤에 잠자리에 들자 송미려는 철수의 옆구리를 파고 들더니 걀죽한 얼굴을 품에 파묻으며 종알거렸다. “시어머니를 모셔다 함께 살자요.” “진짜?” 잘칵! 철수는 침대머리 전등불마저 켰다. 그는 환한 전등불빛을 빌어 미려의 걀죽한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언제는 엄마 잔소리 많아서 함께 살지 못하겠다더니. 밤중에 해 서산에서 뜨지 않는가?” “무슨 소린가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젠 시어머니도 년세가 있는데 자식 곁에서 천륜지락을 누리며 살아야죠.” “그럼 오죽 좋겠소? 그런데 가시집 부모는 어쩌고? 한 집에서 복잡해 어떻게 살겠소?” 미려는 철수의 뚱뚱한 볼을 살살 매만지면서 달콤한 말만 주어댔다. “학교 부근에 자그마한 집 하나 더 사면 어때요? 이담 시어머니 그 집에서 살면서 하군을 공부시키면서 천륜지락도 누리고 일거량득이잖아요?” 철수는 미려를 안고 야들야들한 팔을 매만지면서 궁리했다. “좋긴 좋은데. 돈이 어디 있소? 이 집 대부금도 아직 채 물지 못했는데.” 미려는 큰 마음을 먹고 무거운 입을 뗐다. “시어머니 부산 집을 팔면 되잖아요.” 철수는 미려를 한쪽으로 밀어놓으면서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안될 소릴. 건 엄마 목숨 같은 재산인데. 다치지 못하오.” 미려는 철수를 발로 차놓으면서 치켜보았다. 버들잎 같은 눈섭이 거머리처럼 이마에 올라가 철써덕 붙을 지경이였다. “좌우간 시어머니한텐 당신 밖에 없는데 뭘 그렇게 따진대요. 이담 시어머니 세상뜨면 다 당신 건데.” 철수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 집을 내놓으면 엄만 허망 같겠는데. 천하 못할 짓이요.” 미려는 철수의 뚱뚱한 가슴에 얼굴을 들이대며 지청구를 들이댔다. “그럼 작은 집을 시어머니 이름으로 사도 안돼요?” “글쎄, 건 괜찮은 거 같소.” 그날 밤중으로 철수는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지금 상해 집값이 올라가오. 더 올라가기 전에 어머니 살 집을 사놓으면 좋을 거 같습니다. 손자도 학교 다니기 편리하고 엄마도 천륜지락을 누리고 얼마나 좋습니까? 부산 집을 팔면 어떻습니까?” 아들의 깨고소한 말에 은자는 두 말 없이 집을 팔았다. 성호는 은자가 근심돼 부산에 전화를 걸었다. “누나, 내 말을 듣소. 집을 판 돈을 절대 다치지 마오. 누난 내처럼 퇴직금도 없잖고 뭐요? 집을 판 돈만 날아나면 뭘로 양로하겠소? 막내누나를 보오. 애나게 번 돈을 다 떼우고 뭐요? 두 아들한테 다 집을 사주고 차까지 사줬지만 지금 어떻게 됐소? 어느 며느리도 함께 있자고 하지 않잖고 뭐요? 누난 절대 막내누나처럼 되지 마오. 이젠 칠순고개를 바라보는데 일하기도 점점 불편하잖고 뭐요?” 그러나 은자는 개의치 않았다. “얘, 아들도 믿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누굴 믿고 살겠느냐? 내 어떻게 기른  아들이냐?” 사실 은자는 만삭이 된 몸으로 시어머니와 남편한테 쫓겨나 홀로 나서 갖은 풍상고초를 다 겪었다. 애비 없는 철수를 아홉살 때까지 본가집에 얹혀 살면서  키웠다. 후에 시내에 들어와 남의 집 보모로 들어가 대소변을 받아낸다, 음식점 주방에서 찬물에 손마디 시리게 그릇을 가신다 하면서 돈을 벌어 철수를 공부시키지 않았던가. 철수가 대학입학통지서를 받았건만 입학등록금과 학잡비를 낼 돈마저 없어 성호가 선대해줘 대학에 보내지 않았던가. 은자에게 있어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인생의 전부였고 마음의 기둥이였으며 살아가는 생명이나 다름없었다. 성호는 은자의 바다보다 깊은 모성애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철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아닌가. “글쎄 아들이야 믿어야지. 그렇지만 며느리는 다르잖고 뭐요? 혹시 걔들 무슨 이변이라도 생기면 누난 허망 나앉고 말잖겠소?” “얘, 그런 불길한 말을 작작 해라. 내 이름으로 집을 사놓는다는데 무슨 일이 있니? 황차 이담 내 죽으면 다 걔들 건데.” 성호는 답답했지만 뭐라고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충고해주었다. “절대 집 판 돈을 다 주지 마오.” “알았다. 알았어. 누나 뭐 네보다 예산이 적은 거 같니? 네나 안해도 없는데 혼자 하루 세끼 잘 끓여먹어라. 절대 삶은 고기랑 사서 먹지 말라. 한족들이 양념 버무려 파는덴 방부제랑 있어서 몸에 해롭다. 식당채랑 먹지 말라. 탄 기름 부어넣고 채를 볶아 술상에 올린다. 그런 거 먹고 모두 암에 걸리잖고 뭐니? 냄비를 부쳐보낼테니 힘든대로 자기절로 남새채를 끓여 먹어라.” “누나, 애나게 번 돈을 자꾸 없애지 마오. 정희 쓰던 냄비 가득하오.” “냄비도 너무 오래 쓰면 기름이 타 들어붙은 때 껴서 못 쓴다. 음식이 말째야. 몸 조심하면서 잘 있어라.” 은자는 전화를 덜컥 놓았다. 옆에서 춘애도 말렸다. “성호 말을 들어라. 날 봐라. 칠순 넘도록 새끼들한테 다 뜯기우고나니 엉덩이 들여놓을만한 집도 없이 허망 나앉잖았니? 우리 세대는 부모를 모신 마지막세대이자 자체로 양로해야 하는 첫세대야. 로년을 자식들한테 의지하지 못해.” 성숙도 말렸다. “언니, 비오. 절대 집 판 돈을 가져가지 마오. 날 보오. 두 아새끼들한테 입 안 고기도 먹지 않고 다 줘도 함께 살자 하오? 언닌 절대 내처럼 바보 짓 하지 마오.” 허나 은자는 형제자매들의 충고를 귀등으로 흘려보냈다. “내 아들은 언니나 성숙네 애들하고는 다르오. 고생스레 키운 애니깐. 꼭 효성  다할 거요.” 한동안 은자한테서 아무런 전화도 없었다. 무소식이 호소식이라고 성호는 시름을 좀 놓았다. 몇달 후 한밤중에 은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성호야, 난 못 살게 됐다.” “아니, 무슨 일이요?” 은자는 전화에 대고 엉엉 울었다. “집 판 돈 다 가져다 줬는데 며느리 나하구 함께 살지 못하겠단다.” 성호는 보던 책을 놓고 벌떡 일어났다. “아니, 내 뭐랍데? 집 판 돈을 절대 다 주지 말라했는데. 누난 왜 남의 충고를 그렇게 귀등으로 듣소?” “글쎄 말이야. 아들며느리 어찌나 구수하게 말하는지 깜쪽같이 얼리웠구나.” “어떤 정황이오? 그래 누나 살 집을 사지 않았소?” “샀지. 몇달 새에 집값이 인민페로 30만원이나 올라갔다. 며느린 집값이 올라갔기에 내 이름으로 올리지 못한다고 한다. 뀌워준 본전만 이후에 주겠단다.” (인정머리 없는 년, 무서운 핵산골이구나.) “그래 얼마 뀌워줬소?” “7500만원 몽땅 줬다.” “뭐라오? 아니, 왜 다 줬소?” 성호는 목이 꺽 메여 말이 나가지 않았다. “리자까지 주겠다고 해서 줬다. 한국에 한화를 세워놓았자 리자 몇푼 안되지. 며느리 강남에 사 놓은 집 대부금 리자 높기에 돈을 선대해달라고 하더라. 대부금 리자만큼 나한테 주겠다고 하잖겠니? 아들도 돕고 리자도 가지고 일거량득인 거 같아 그랬다.” 듣고 보니 어느 외자기업에서 부기원을 한다는 며느리 송미려는 진짜 주산알을 잘 튕기는 핵산골임에 틀림없었다. (높은 리자로 누나를 유혹했구나.) “저 뚱뚱한 철수 죽는 날엔 난 목숨 같은 돈을 몽땅 떼우고 허망 나앉게 돼. 어쩜 좋니?” “야, 돈을 몽땅 주지 말라는데. 이 일을 어쩌오?” 은자는 전화에 대고 섧게 울었다. “글쎄 말이야. 며느리 그런 안속을 차릴줄 알았더라면 왜 줬겠니? 춘애 언니랑 성숙이랑 말리는 거 말을 듣지 않은게 후회된다.” 성호는 너무 답답해 가슴을 꽝꽝 쳤다. “아니, 며느리 말이면 법이요? 철수 말이 관건이지? 좋은 아들 뒀다가 뭘 하오?” “도리깨아들 해 어디에 쓰겠느냐? 한족녀편네 떠들어대는데 아들이 어쩌겠니? 가타부타 말도 하지 않고 구경만 하잖겠느냐? 내라면 녀편네를 귀쌈이라도 한대 갈겨 줬겠는데. 에이구, 뭐라는지 아니? ‘엄마 돈 꾼 거 본전에 리자까지 주면 되지. 왜 가정분란이 생기게 이럽니까? 설상가상 강남에 사회보험 3년 하지 않았기에 내 이름으로 올리지 못합니다.’ 이러잖겠니? 그럼 사전에 그런 정황 말해야지.  멍청이를 믿은게 잘 못이지. ” 춘자는 위쳇에 은자를 이렇게 충고해주었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라. 아들은 장가를 가면 며느리한테 빼앗기기 마련이다. 내 뭐라더니? 아들며느리와 한 집에서 산다는 건 다 옛날 소리야. 내 어지간하면 아들 둘이나 있는 강남에 가서 살지 않겠느냐? 큰아들과 며느리 별장 같은 아빠트 사놓고 한 시내 한 집에서 살자는 것도 가지 않는다. 물론 멀리 떨어져 사니깐 애들이 얼마나 보고 싶겠느냐? 그러나 난 아들 둘을 시집살이를 시키지 않으려고 가지 않는다. 더욱이 로년을 마음 편하게 살려고 아들 집으로 이젠 10년째 가지 않았다는 걸 너도 알고 있잖느냐. 성호한테서 들을라니 넌 철수와 며느리한테 잔소리 많이 하는 모양이더구나. 이젠 걔들도 마흔고개를 바라보는데 그만 잔소리해라. 걔들이 살고 싶은대로 놔둬라. 뭐나 애들 일에 삐치지 말고 잔소리 하지 않는게 생각하는 거야. 그럼 걔들이 얼마나 편하게 살겠느냐? 우리도 자식과 일정한 공간을 두고 살면 편안하다. 입 안에 혀도 씹을 때 있다고 자식들과 비좁은 한 집에서 살면 꼭 말썽이 생긴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깐. 서로 그리운 정만 남고 나쁜 일은 하나도 생기지 않아 좋다. 따로 사니 불편한 점이 하나도 없이 서로 자유로워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은자는 위쳇으로 단통 언니 말을 반박했다.   언니, 그렇다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하고 함께 살지 못하고 춘애언니 말처럼 자매간이 함께 살겠소? 말도 안되오.   춘자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너도 춘애 언니와 성숙이 겪은 아픔을 겪어봐야 알겠는 모양이구나. 어쩜 모성애는 저리도 처참하게 될가?)   형제들이 말려도 은자는 기어이 철수와 함께 살고 싶었다. (며느리는 글쎄 들어온 식구니깐. 시어미 싫겠지. 그러나 아들과 손자는 내 피줄이 아닌가. 아들과 손자 얼굴만 쳐다보면서 살면 되지. 숱한 돈을 줬으니깐 아들이야 받아주겠지. 내 어떻게 키운 외동아들인가.) 그녀는 막연한 미련을 품고 숱한 걸 사서 이고 지고 길을 떠났다. “언니, 무거운데 오이랑 부추랑 두고 가오.” “얘, 중국 남새는 오염이 많아서 안돼. 한국 유기농 남새를 가져다 내 손으로 끓여 아들 먹이련다. 철수 체중 내리지 않으면 죽어.” 그녀는 이고 지고 들고 부산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상해로 날아갔다. 공항으로 마중나온 외동아들을 보는 순간 목이 꺽 막혔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다. 그러나 반가운 기분도 한 순간뿐 뚱뚱한 아들을 보며 걱정이 앞섰다. “얘, 진짜 북국곰으로 됐구나. 체중을 내리워야겠구나. 지금 체중이 얼마냐?”  “그래도 많이 내렸습니다. 112킬로 밖에 안됩니다. 괜찮습니다.” 철수는 대수롭잖게 대답하고는 짐을 챙기러 어정어정 걸어갔다. 은자는 펑퍼짐한 아들의 뒤모습을 보고 뒤따라가며 당부했다. “얘, 철수야, 아직도 백킬로 넘는데 괜찮아? 야, 정신 차려라. 이제 살 내리우잖으면 죽는다, 죽어. 아이구, 널 어쩌겠냐? 아침이면 일어나 꼭 달리기랑 좀 해라. 밥 먹고는 힌들 들어누워 잠만 자지 말라. 아이구, 너 어쩌겠니?” (또 시작하는구나. 아이구, 잔소리 싫어 어떻게 삐칠가?) 철수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면서 짐을 챙겨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는 자가용에 어머니를 싣고 달리면서도 어떻게 어머니와 색시 사이에서 시집살이를 하겠는가고 근심이 태산 같았다. 어둑어둑해 아들 집에 이르자 손자 하군이 두 팔을 벌리고 뛰여왔다. “할머니!” 은자는 하군을 와락 끌어안았다. “이 자식, 언제 조선말로 할머니를 부르는 걸 듣겠니?” 은자는 짐을 받으러 나오는 며느리한테 눈인사를 하고는 손자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하군아, 넌 무슨 민족이냐?” “난 조선족.” 그 말에 며느리는 입귀를 비쭉했다. 은자는 철수를 돌아보며 당부했다. “얘한테 좀 조선말을 배워줘라. 명색이 조선족이라는 애가 조선말도 모르고서야 어찌 조선족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한족며느리는 보짐을 들어들여가면서 중얼거렸다. “조선말을 배워도 이 곳에선 써먹지도 못해요.” 은자는 조선말로 중얼거렸다. “저걸 봐라. 시어미 말하는데 첫마디부터 대구질이야.” 툭 싸줄가 하다가 며느리 본가집 부모를 보고 억지로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저녁에 며느리는 시어머니 왔다고 부엌에 나가 앞치마를 두르고 나서서 채를 볶느라고 채바퀴 돌듯 바삐 맴돌았다. “가만, 가만!” 은자는 황급히 부엌에 들어가며 손사래를 쳤다. “기름을 좀 작작 넣으란 말이요. 전탕 기름에 고기를 볶아 먹여서 우리 아들 저렇게 살지게 만들었지. 오늘부터 내 밥 지을테니 며느린 좀 쉬오.” 그녀는 한국 부산에서 챙겨온 신선한 오이랑 파랑 부추랑 꺼내 수도물에 씼었다. “이런 파란 남새를 먹어야 살도 안지고 고혈압과 심장병에 좋은 거야.” 은자가 손수 팔을 걷고 정성 들여 몇가지 남새채를 무쳐서 저녁 밥상에 올렸다. 며느리는 저가락을 들고 상을 찡그리는 본가집 부모를 보고 난색을 지었다. 한족들은 여러가지 양념을 넣고 기름에 볶은 고기채를 먹기 좋아했다. 더욱이 남방 한족들은 사탕가루와 식초를 푹푹 떠넣고 끓인 시쿠므레하고 달달한 돼지고기채를 좋아했다. 그런데 은자가 가마목을 맡은 후 며느리 본가집 식구들은 그만 밥맛이 떨어져 죽을 것만 같았다. 며느리는 보다 못해 시어머니와 통사정을 들이댔다. “시어머니, 본가집 부모 잡술 채는 제가 하죠.” 은자는 단마디에 거절했다. “안돼! 네 남편을 잡아먹자고 그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이 집에서 다신 기름채를 먹으려니 하지 마오.” 며느리 부모는 기절초풍할 지경이였다. “아니, 고기채를 먹잖고 어떻게 사오? 고기도 적당히 먹어야 빈혈이랑 걸리지 않지.” 은자는 며느리 기름에 볶으려고 가져온 돼지고기를 랭장고에 되넣었다. “당신들 때문에 내 아들 죽게 생겼소. 렴치 있소? 자기 맛있게 먹겠다고 기름에 볶은 달달한 고기를 잔뜩 먹이면 되오? 내 아들 저게 뭔가요? 뚱뚱한게 오래잖아 죽게 생겼소. 내 아들 죽으면 내 돈으로 산 이 집에서 당신들 새 사위 데려다 잘 살자고? 어림도 없어.” 바깥사돈은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안사돈은 은자한테 다가와 부드럽게 말했다. “사돈, 어쩌겠소? 두 민족 음식습관이 달라 이런 걸. 서로 량해하면서 삽시다.” 그런데 이번엔 며느리 야단쳤다. “하루도 이런 집에서 못 살겠다. 어머니, 갑시다.” 며느리는 어머니 손을 잡고 문을 쾅 차고 나가버렸다. “어머니! 나도 가겠습니다. 엉, 엉- 날 데리고 가십시오- 엉, 엉-” 며느리는 따라오는 하군을 콱 밀쳐놓았다. “가라! 할머니랑 살어!” 하군은 발버둥질치며 울었다. 그때에야 정신을 차린 철수는 따라나가 하군을 안아 일으키며 색시한테 버럭 고함쳤다. “애를 버리고 어디로 가?! 돌아오지 못해?” 미려는 홱 돌아서더니 손삿대질하며 야단쳤다. “철수, 이 집에 어머니 있는 한 내 돌아오려니 생각지도 말라.” “뭐라고? 돌아오지 못해?” 철수가 달려나갔다. 그러나 때마침 달려오는 택시를 잡아타고 도망치듯 하는 미려와 가시어머니를 놓치고 말았다. “가겠으면 싹 가라!” 철수는 하군을 데리고 집에 들어왔다. 하군은 엉엉 울면서 떼를 썼다. “난 엄마한테 가겠다. 엉, 엉- 외할머니랑 보고 싶어. 엉- 엉- 엉-” 은자는 오이랭채를 버무리다가 행주치마에 손을 닦고 손자를 안으며 얼렸다. “친할머니 있잖니? 우리 귀여운 하군아, 울지 말아. 저녁에 내 맛있는 한국  오이랭채 해줄게.” 그러나 하군은 “싫어, 싫어. 외할머니하구 엄마 볶은 기름채 좋아. 아빠, 엄마 데려와!” 하고 발버둥질치면서 울었다. “할머니 한국에 가! 할머니 없을 땐 엄마, 아빠 싸우지 않았어. 할머니 한국에 가! 밉다, 미워! 빨리 가!” 은자는 개의치 않고 철수를 보고 희죽이 웃기까지 했다. “가겠으면 가라지. 아들을 살리자니 별 수 없구나. 우리 조손 3대가 살면 되지.” 철수는 살진 자라목을 빼들고 천정을 쳐다보며 한탄했다. “하, 이 집을 어쩌오?” 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엄마, 가시부모를 작작 노엽히오. 가시엄마 위암 말기요.” “뭐라고?” 은자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위암 말기라구? 걸 봐라. 그렇게 사탕가루를 푹푹 퍼놓고 기름에 볶아 달달한 걸 먹기 좋아하니깐 뛸 데 있니? 아이구, 널 가시집 식구들한테 맡겨놓으면 영낙없이 고혈압에 심장병, 당뇨병에 걸리겠는데. 네가 암에 걸리면 난 누굴 믿고 살겠느냐?” 은자는 오이랭채랑 부추채랑 밥상에 올리면서 중얼거렸다. “널 살리기 위해서라도 저것들을 몽땅 몰아내고 내 이 집 부엌을 차지해야겠다.” 철수는 묵묵히 서서 한숨만 풀풀 내쉬였다. 며칠이 지나도 미려와 가시부모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철수는 저녁에 퇴근해 밥상에 마주 앉자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엄마,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 사는 건 장구지책이 아닌 것 같습니다. 미려는 죽어도 엄마하고는 한 집에서 살지 못하겠답니다. 리혼하면 했지 하루도 못 살겠답니다. 불쌍한 아들과 손자를 봐서라도 엄마 좀 양보하겠습니까? 저쪽에 작은 집이 있는데 따로 있으면 어떻습니까? 그게 실제적인 거 같습니다. 서로 편하고 좋을 거 같아 말씀 드립니다.” 한국 기업에서 과장까지 하는 철수는 이젠 짜개바지 입고 달아다니던 삼척동자가 아니였다. 은자는 펄쩍 뛰였다. “뭐라고? 어미를 내쫗겠느냐? 이 도리깨아들아, 내 널 어떻게 길렀는데. 제 어미를 내쫓아? 야, 이 못난 놈아. 아들 하나 보고 여기 왔지. 내가 왜 이 먼 한족곳으로 왔겠느냐? 엉? 녀편네 하나 이기지 못해 늙은 엄마를 내쫓아?” 은자는 행주치마를 활활 벗어 아들의 얼굴에 줴뿌리며 한국으로 당장 돌아가겠다고 야단쳤다… 그러나 은자는 철수 가시어머니가 암에 걸려 오늘일가 래일일가 하는 판에 문안도 하지 않고 활 뿌리치고 떠날 수는 없었다. 이튿날 아들과 손자가 공장과 학교로 떠나간 후 은자는 뻐스를 타고 며느리 본가집으로 달려가 문안했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뻐스에 앉아 깊은 고민에 빠졌다. 뚱뚱한 아들이 언제 뇌출혈이거나 심장병에 걸릴지도 모를 일이였다. 아들은 시한폭탄을 안고 살고 있었다. 아들의 목숨은 시한부 목숨이였다. 그녀는 근심이 태산 같고 속이 타다못해 재가루로 될 지경이였다. (아들을 살리려면 내가 옆에서 건강식을 챙겨줘야 하겠는데.) 그러나 철수는 그녀의 권고와 충고를 모두 주책없는 로모의 쓸데없는 잔소리로만 알고 귀등으로 흘려보냈다. 그도 자기 색시, 아들의 어머니 미려를 두고 용빼는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색시를 두들겨패면서 억지로 어머니와 한 구들에 몰아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그도 어머니와 색시 사이에서 눈치를 보면서 무서운 시집살이를 하고 있었다.  (며느리는 리혼하면 했지 나와 함께 살지 못하겠다고 한다. 아들마저 함께 사는 건 장구지책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믿던 아들과 한 집에서 살지 못할 바에야 굳이 이런 한족 곳에 올게 있는가?) 그녀는 독한 마음을 먹고 집이 빈 틈을 타서 조용히 아들 집을 떠났다. 올 때는 이고 지고 들고 힘들게 왔지만 부산에 돌아갈 때는 빈 트렁크 밖에 없었다. 랭혹한 현실은 그녀로 하여금 리별의 뜨거운 눈물을 줄 끊어진 구슬처럼 줄줄 흘리며 쓸쓸히 아들 집을 떠나야만 했다. 상해가 아무리 호화로운 시내라고 해도 그녀에게는 미세먼지 자오록한 무정한 시내로만 보일뿐이였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과 손자를 믿고 함께 살려던 한줄기 희망마저 절망으로 번졌다. 순간 그녀의 고통은 극도에 달했다. 외면당한 모성애로 하여 가슴이 미여지는 것만 같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돈도 며느리한테 다 떼우고 아들한테 모성애도 사기당했다. 그녀는 동지섣달에 한지에 허망 나앉은 것만 같았다.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듯한 감을 느겼다. 순간 그녀는 눈앞이 캄캄해났다. 그녀는 무슨 정신에 김해공항 출구로 황망히 나왔는지 몰랐다.  승용차들이 씽-씽- 눈뿌리 아찔하게 스쳐지나갔다. (이제 무슨 면목으로 춘애 언니랑 성숙이랑 본단 말인가? 형제자매들이 돈을 아들한테 다 가져가지 말라고 말렸는데, 후회막급이 아닌가? 집도 다 팔아먹고 허망 나앉았는데 이젠 어데서 산단 말인가?) 배신감이 희끄므레한 가로등불빛에 매달려 그녀를 조롱한다. 슬픔이 어둠 속에 쫙 펴져 파도치며 노호한다. 천만가지 절망이 눈가루로 둔갑해 요술을 부리며 구슬프게 흩날린다. (이 세상에서 누굴 믿고 산단 말인가?!) 절망에 빠진 그녀는 황망히 큰길을 건너갔다. 갑자기 달려오던 차가 그녀를 덮쳤다. 버림받은 모성애는 무정한 차바퀴 밑에 처참하게 깔려 사정없이 쭉 미끌어져 나갔다…  
225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54) 댓글:  조회:1124  추천:1  2020-08-06
          84. 효성의 빈 구석        밤중에 성호가 금방 잠자리에 들었을 때였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소리가 급촉하게 울리며 고즈넉하던 집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전화를 들자 다섯째누나 은자가 욕하는 소리가 고막이 아프게 들렸다.        “야, 이 도리깨아들아, 내 엄마를 살려내라.”        “무슨 소리요?”         성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순간, 목이 꺽 막혀 말도 잘 나가지 않았다.         “며칠 전만 해도 펀펀하던 엄마가 어떻게 불시에 세상뜰 수 있느냐? 다 네가 엄마한테 등한한 탓이야!”         은자의 목소리는 저으기 격앙됐다.        성호도 너무나도 억울해 언성을 높였다.        “야-, 누나, 정말 억울하오. 며칠 전에 엄마를 업고 달아다니면서 병원에 가서 전면검사를 했소. 대뇌 CT까지 촬영해 봐도 아무런 병도 없었소. 대뇌도 위축되지 않았소. 오장륙부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소. 그런데 불시에 사망했는데 어찌 내 탓이라고 그러오?” 은자는 곧이듣지 않고 욕설을 퍼부었다. “얼마나 잘 돌봤으면 불시에 사망했겠니? 다 네 탓이야. 아들이 드세면 며느리 꼼짝이나 하겠느냐? 90이 넘은 시어머니를 모시기 싫어 그게 뭐냐? 홀로  내버려두고 미국으로 달아나다니? 엉? 전세계에 그런 쥐며느리 어디 있느냐?” 성호는 정희의 불효가 아니꼬왔지만 누나들 앞에서 허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소리요? 그래도 정희하구 내20여년 동안이나 부모를 모셨고 림종까지 돌보지 않았소? 누나는 일년이라도 돌봤소? 누난 돈에 눈이 어두워 엄마 생전에 몇번 찾아와 보기나 했소? 한국에 간지 10년만에 딱 한번 찾아보구 무슨 할 말이 있소? 엄마 사망해도 장례식에도 오지 않고 그게 뭐요? 누나야 말로 불효자식이요. 그 주제에 누굴 억울하게 욕하오?” 전화기에서 분명 은자의 흐느낌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성호는 계속 열변을 토했다. “엄마는 림종 전까지도 누나들이 보고 싶어 어쨌는지 아오? 거의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야, 은자는 한국에서 오지 않는다니?’ 하고 외우군 했소. 그러나 누나는 10여년 동안에 거의 해마다 상해에 있는 제 아들집에는 한보따리를 이고 지고 가면서도 엄마한텐 딱 한번 밖에 오지 않았단 말이요.” 은자는 흑흑 흐느껴 울면서 자책감을 느꼈다. “일이 바빠서 돌아오다나니 그랬다. 정말 불효를 저질렀구나. 엄마 림종을 지키지도 못하고. 아이구, 무슨 멋에 사는지 나도 모르겠다. 흐흐흑, 흑흑흑.” 성호는 열이 후끈 올라 참고 참았던 울분을 왈칵 쏟아 퍼부었다. “누난 병원에 가서 간병하면서 돈 버는 짭짤한 맛에 엄마 보러도 오지 않고 뭐요?  여기 있을 땐 엄마 생일에 몇번 왔소? 그래도 곁에서 내가 엄마한테 밥을 지어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사다드렸지. 누난 내만큼이나 하고 지금 나를 욕하오?” 갑자기 은자도 격한 목소리로 반격했다. “내 돈을 벌어 엄마한테 적게 보냈니? 엄마 숱한 옷에 전자레인지, 안마기, 지어 요강까지 보내지 않았니?” 성호는 무례한 것 같아 언성을 좀 낮췄다. “감사하오만. 부모는 년세가 들수록 돈보다도 자식들을 보고 싶어하지 않고 뭐요? 엄마 항상 어쨌는지 아오? ‘은자랑 성숙이랑 안 온다니? 춘자는 멀어서 못 온다더냐? 그 애들은 전화로 잔소리만 하는 딸들이야. 전화 속의 딸이지 어디 제 구실을 하니? 내 얼마나 보고 싶어 해도 어디 오기나 오니? 쩍하면 전화를 해서 양로원에 가라고  한다.  이젠 걔들 전화 듣기도 싫어 받지도 않는다.’” 성호는 좀 더 부드럽게 말하려고 애썼다. “엄마는 93세에 돌아갔으면 명이 다해서 사망하셨다고 보오. 절대 무슨 병에 걸려 돌아간 건 아니요. 그런데 지금 와서 네 탈, 내 탈 해서 무슨 쓸데 있소?” 부산에서 철수가 옆에 앉아 듣다 못해 어머니 손에서 전화를 와락 빼앗으며  말렸다. “엄마, 그만 하십시오. 외삼촌이 마지막까지 외할머니한테 얼마나 효성을 잘했다고  이럽니까.” 은자는 철수 손에서 전화를 와락 되빼앗아갔다. “엄마 사망하니 속이 비길데 없다. 우린 모두 엄마한테 불효를 저질렀어. 다 잘한 것처럼 떠들지 말고 모두 반성해야 돼. 정희가 어쨌는지 아니? 네가 출근한 다음에는 엄마를 보고 별 거정을 다했어.” “뭐라오? 건 금시초문인데.” “이제까지 누나들은 네가 혹시 정희하구 밸을 쓰면 엄마한테 욕이 돌아갈가봐 말하지 않았다.” “그래 정희 뭐라 했다오?” “결혼 삼일에 갈 때 엄마가 본가집 엄마한테 젖값을 더 보내자는 걸 주지 않았다고 야단치더란다. 뭐, 숱한 형님, 누나 두고 늘그막에 막내아들 집에 얹혀 사는가는지? 맨 발로 복도에 나갔다가 들어온다고 발을 싹싹 씻으라는지 별 소릴 다 하더란다. 냄새 난다는지 별 소릴 다했단다. 넌 여직껏 몰랐지? 아이구, 우리 엄마 쥐며느리를 만나 얼마나 마음고생 했느냐?” 은자는 대성통곡치더니 전화를 덜컥 놓았다. 성호는 마음이 아파 쓸쓸한 달빛이 깔린 객실에서 서성거렸다. 누나의 심정은 리해됐다. 글쎄 펀펀하던 어머니가 뜻밖에 세상을 떴기에 얼마나 비통하겠는가. (누나는 너무 비통해 리지를 잃은 거 같아. 정희가 정말 그런 허물질을 했을가?) 어머니는 확실히 농촌에 있을 때에도 다 튼 맨발로 바깥에 나가 돌아다니는 습관이 있었다. 그 튼 발자욱이 고향의 어느 산과 들 밭고랑에 찍히지 않은 곳이 있겠는가. (한뉘 신짝도 온전히 사 신지 못한 엄마를 욕보이다니? 항상 엄마한테서 냄새 난다고 징징거리긴 했지. 정말 미쳤어. 어쩜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성호는 너무 안타까워 가슴을 마구 쥐여 두드렸다. 그는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뜬 일이 지금도 이상했다. 년초에 춘자와 은자한테서 진작 이상한 편지를 받았었다. “얘, 토정비결을 보니 어머니가 올해 4월 초에 세상뜬다고 나왔더라. 어머니를 각별히 잘 모셔라.” 성호는 원래 미신을 믿지 않는 터라 누나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엄마 지금 펀펀한데 불시에 세상뜬다는 말을 하지도 마오. 병원에 가서 검사해도 아무런 문제 없습데. 세상뜨다니? 믿기도 싫소. 엄마는 지금 자체로 밥을 지어 잡숫소. 근심하지 마오.” 그러나 성호는 혹시나 해서 어머니께 효성을 다했다. 밥맛이 없어하면 음식점에 가서 부추채랑 물고기채랑 해서 날라다 대접하였고 바나나랑 사과랑 때때로 사왔다.  심지어 은숙을 집에 두고서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단위에 나갔다가도 쉼이면 집에 때때로 돌아와 어머니께 무슨 일이 없는가 살폈다. 성호는 후회나지 않게 효도를 하려고 서투른 솜씨로 손수 부추채와 닭알볶음이랑 볶아서 어머니 밥상에 올렸다. 춘자와 홍수는 어머니가 근심돼 머나먼 JH시에서 기차를 타고 달려와 어머니 곁에서 쉬면서 살뜰히 보살폈다. 그녀는 집에서 손수 볶은 소고기볶음채랑 붕어지짐이랑 어머니 밥상에 올렸다. 그리고 집 안을 돌아가면서 말끔히 청소해주고 어머니 옷을 몽땅 빨아드리고 어머니 상시옷마저 지어놓았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어머니 몰래 한없이 통곡쳤다. 세상뜨기 며칠 전만 해도 성호의 어머니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아빠트구역에 있는 상점에 가서 사과랑 바나나랑 사다가 잡수었다. 한낮이면 방석을 들고 내려가 아빠트구역의 로친들과 한담하면서 해볕쪼임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세상뜰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세상 뜨는 날 새벽 5시 반 쯤에 성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다른 때 같으면 어머니는 진작 일어나 아들 방으로 들어와 섬섬거리면서 먼저 말씀을 걸었을 것이다. 그런데  웬 일인지 아무런 자취도 없었다. 성호는 황급히 어머니 방으로 건너갔다. 어머니는 그때까지도 이불을 덥고 반듯이 누워 쉬고 있었다. “어머니, 어째 밤새 잘 주무셨습니까?”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친 숨소리만 높았다. “어머니, 깨납소.” 그래도 깨나지 못했다. 성호는 어머니를 조용히 흔들면서 불러보았다. “어머니, 어데 불편합니까?”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는 더는 아들의 말소리 한마디도 듣지 못하였다. “아이고, 어머니, 일어납소.” 은숙도 옆에서 어머니를 흔들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거친 숨소리가 높아만 갔다. “엄마를 병원에 모셔가야지.” 성호의 말에 은숙이 말렸다. “어머니는 명이 다해서 운명하고 계신다. 조용히 떠나가게 움직이지 말라. 93세까지 앉았으면 잘 앉았다.” “그게 무슨 소리요?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야지.” 그러나 은숙이 극구 말렸다. 성호는 황급히 사처에 형님과 누나들한테 비보를 알렸다. 춘자가 제일 먼저 기차를 타고 달려와 대성통곡쳤다. 뒤이어 경만도 달려왔다. 그러나 한국에 간 춘애, 은자와 성숙은 미처 오지 못하고 대신 아들을 보냈다. 철수와 경남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고 군춘도 차를 몰고 달려왔다. 어머니는 자손들의 뜨거운 눈물바다 속에 잠겨 천천히 숨을 거두었다. 성호가 어머니 손목을 잡고 맥을 짚어보니 맥이 하나도 뛰지 않았다. 어머니의 93년이 뛰던 힘찬 심장도 맥없이 고동을 멈추었다. 영옥은 30여명 자손들을 이 세상에 남겨두고 아쉬운 마음을 불태우면서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났다. 자손들은 모두 피눈물과 함께 상시옷을 입혔다. 경남과 철수는 외삼촌과 함께 자기를 이 세상에 손수 받아낸 외할머니를 담가에 들어 운구차에 모셔갔다… 남들은 90세 넘도록 어머니를 모셨으면 잘 모셨다고 했다. 하지만 성호는 지금도  어머니를 저세상에 갑자기 보낸 것이 얼마나 비통한지 몰랐다… 밤중에 또 전화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성호는 은자가 그렇게 욕하는 것이 리해되지 않아 전화를 받을가 말가 하다가 마지못해 전화기를 들었다. 뜻밖에 큰누나 춘애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들렸다. “막내오라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오. 엄마 세상떠서 너무 비통해서 그러오. 은자 말을 너무 과격하게 했는데 널리 량해하오.” 성호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큰누나 언제 다섯째누나네 집에 갔댔소?” “며칠 전에 왔소.” 성호는 항상 큰누나와 둘째누나를 엄마같이 여기는 터여서 속시원히 털어놓았다. “나도 효성하느라고 애를 썼는데 너무 억울해 화를 냈소. 다섯째누나 보고 량해하라고 전해주오.” 춘애는 성호를 차근차근 타일렀다. “돌아간 어머니도 자식들이 싸우면 섧어할게요. 어머니는 돌아갔지만 우리 형제들간에 싸워서야 되오? 화목하게 살기요. 그게 부모한테 다하지 못한 효성을 하는게요. 이젠 우리 차례가 된 것 같소. 우리 어떻게 형제들과 자식들간에 화목하게 살겠는가하는게 문제요. 요즘 은자네 집에 있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소. 은자 말처럼 나와 은자가 한 집에서 살면 아무런 모순도 없을 것 같소. 가정이 화목하지 못한 건 남의 집 식구가 우리 부모형제와 자식간에 끼여든 때문이라고 생각하오. 며느리나 사위야 어디 자식이요?” 성호는 이젠 누나네 전화를 받기 두려웠다. “아니, 사위는 반자식이라는데 무슨 말이오? 누난 사위 집에서 화목하게 보내지 않소? 어째 한국에 또 나갔소?” 큰누나의 말을 들어보니 답답하기만 했다. “양, 이때까지 자식들이 팔리는 것 같아 말하지 않았소. 근춘이 본처와 리혼하고 중학교 때 동창생을 후처로 삼았잖고 뭐요? 후처는 이불공장도 꾸려서 부자지만 근춘이야 제 호주머니에 어디 돈이 있소? 게다가 이런 부담거리 엄마까지 달려서 허리를 펴고 사오? 후며느리는 원래 며느리보다 날 살뜰이 대해주었지. 그래도 난 후며느리 눈치 보기 싫고 아들을 시집살이를 시키고 싶지 않소. 그래서 집을 따로 잡고 살지 않았고 뭐요? 그때 경미가 날 모셔가서 딸집에서 몇해 살았소. 그래서 근춘한테 아들며느리를 판다고 얼마나 말을 들었는지 아오? 그런데 경미가 한국에 나가고 사위 혼자 사는데 눌러 앉아 있는다는 것도 말이 아닙데. 내 외손녀하구 친손녀를 업어 키울 땐 괜찮았소. 그런데 이젠 손녀들도 다 컸으니깐 눈치 다릅데. 사위 뭐라는지 아오? ‘딸도 없는데 사위 집에서 어떻게 계속 삽둥?’, ‘남들은 딸이 시집갈 때 집이나 차를 사준다더구만. 가시엄마는 집을 사줬습둥? 차를 사줬습둥?’, ‘늘그막에 좋은 아들을 두고 사위 집에 자꾸 기여들면 어쩝둥?’, ‘출가집 외인이라고 딸과 사위 어떻게 가시엄마를 모십둥?’ 야, 이런 말 듣고 뼈마디까지 오싹오싹 해나서 하루라도 사위 집에서 더 살지 못하겠습데. 그래서 한국에 나왔소. 지금 102살짜리 할머니를 모시고 보모질을 하는데 한달에 180만원을 받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소. 아들과 딸을 나그네도 없이 홀로 아글타글 남새단이나 넘겨서 10전, 20전씩 벌어서 걔들을 사먹이면서 다 키워서 차례진게 뭐요? 아들딸을 다 시집장가 보내고 두 손녀를 업어서 키워주었건만 내게 돌아온 건 뭐요? 욕뿐이요. 욕! 사위와 며느리 불효 밖에 더 차례진게 있소? 은자는 내 불쌍해서 자기네 널직한 3층짜리 집에서 함께 살자오.” 성호는 들을수록 늘그막에 로임도 양로비도 없는 큰누나가 불쌍했다. (누나네 말대로 부모자식간보다 친형제가 더 가까운가? 형제간에 허물없이 보낼 수 있을가?) 춘애는 또 생각지도 않은 은자의 답답한 처지도 말했다. “은자도 한족며느리 미워서 이젠 보러 가지도 않겠다오. 전번에 은자가 한짐 이고 지고 아들집에 갔다가 섭섭했는 모양이오. 아들며느리는 잔소리를 너무 한다고 야단치더라오. 아마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너무 뚱뚱해서 기름진 걸 작작 먹이라고 했는 모양이오. 은자는 부엌을 차지한 후 팔소매를 불씬 거두고 손수 기름도 넣지 않고 슴슴하게 조선족음식을 해 먹였다오. 상해 한족며느리하구 사돈령감로친까지 그런 음식을 먹고 하루도 못살겠다고 떠들더라오. 심지어 그렇게 귀해하는 손자까지 자기 엄마가 울면서 노발대발하자 엄마 역성을 들어 할미한테 손가락질하면서  한족말로 ‘가라!’고 꽥꽥 고함치더라오. 그래서 이젠 자식들과 한 집에서 살지 않는다오. 나보고 자매간에 한 집에서 살면 세상 편안할 것 같다오.” “아무튼 누나네 모두 몸조심하면서 편안히 살기를 바라오.” 성호는 전화기를 살며시 내려놓으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그는 자식들한테 소외된 외로운 누나들의 만년이 서글프고 가긍해 저도 몰래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밤이 깊어가는데 성호는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누나들한테 불효를 저지르는 조카며느리들과 조카사위들을 욕하다가 저도 몰래 자기도 부모에게 불효를 저지른 구석이 없는가 돌이켜보았다. 후회되는 일이 끝없이 떠올라 서재에 들어가서 필을 들어 써내려갔다… 동녘이 희붐히 밝아왔다. 고기비늘구름이 빨갛게 타오르다가 나중에 은빛으로 물들었다. 동산에 커다란 은쟁반이 두둥실 걸리더니 은빛해살을 온 누리에 비추었다. 뭇산들은 그 은쟁반을 빼앗기라도 할듯이 두 손을 쳐들고 쫓아갔다. 성호는 자기 생일날에 준식을 불러 택시를 잡아타고 고향 천지꽃산 기슭으로 달려갔다. 그는 산기슭에 외롭게 쓸쓸히 누워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산소에 이르자 산소를 붙안고 섧게 대성통곡쳤다. “아버지!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죽여주옵소서- 엉엉, 오늘은 내 생일입니다. 어머니 배아프게 나를 낳은 날입니다.” 그는 눈물을 닦으면서 어머니와 아버지 산소에 큰절을 아홉번씩 올렸다. 옆에 서 있던 준식도 사돈할머니한테 절을 올렸다. 산소 주위에는 쓸쓸하고 울먹거리는 성호의 마음을 달래려는듯이 대자연이 함박꽃과  할미꽃을 활짝 꽃피워 놓지 않았겠는가. 천사와도 같은 선량한 부모를 그리는 효자를 대신해 하늘이 꽃을 선사했으리라. 성호는 부모의 산소 앞에 두 손을 맞잡고 눈을 딱 감고 부모에 대한 끝없는 묵념에 잠겼다. 반세기 전의 오늘, 어머님께서는 집에 먹을 쌀이 없어 나를 품 속에 넣은 채 천수해 시장에 한발자욱, 한발자욱 힘겹게 걸어가셨다. 어머님께서는 옥수수쌀을 한주머니 사 이고 만삭이 된 배를 붙안고 띠끔띠끔 아파나는 배를 억누르면서 간신히 한걸음, 한걸음 옮겨 딛이며 집에 돌아오셨다. 어머님께서는 전등불도 없는 어둠침침한 고방에서 혼자 아픈 배를 붙안고 나를 낳으셨다. “아, 어머님ㅡ, 아버님, 효성을 다하지 못해 항상 죄송한 마음을 어떻게 다 표현하겠습니까. 이 아들은 목 메여 웁니다.” 성호는 땅을 치면서 산골짜기 쩌렁쩌렁 울리게 울었다. 그는 산소에 달려올 때 어머니가 옥수수쌀을 이고 간 그 천수해 시장으로부터 고향으로 가는 길을 조심조심 살펴보았다. 간혹 택시에서 내려 산골로 뻗은 길바닥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천수해에서 태평촌으로 올라가는 시골길의 일초일목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었다. 해동 굽인돌이를 돌 때 길가의 허리 굽은 비술나무가 눈에 띄였다. 딱 마치 만삭이 된 어머니가 기대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그는 택시에서 내려 비술나무에 다가가 두 손으로 매만졌다.  허리 굽은 비술나무 옆 밭에서 이삭을 한두개씩 업은 옥수수도 마치 애기를 업은 어머니로 보이지 않겠는가. (혹시 어머니가 옥수쌀주머니를 이고 가다가 이 허리 굽은 비술나무에 기대서서 아픈 배를 매만지지 않았을가?) 성호의 마음을 읽을 수 없은 준식은 매형이 제정신 같지 않아보였다. 그러나 성호는 점점 이상하게 서둘렀다. 계수동 산골짜기에서 벽계수가 조잘조잘 흘러나와 길바닥을 부비며 흘러지나가고 있었다. 성호는 벽계수를 보자 또 차에서 내려 유심히 살펴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만삭이 된 어머니가 옥수수쌀을 이고 어떻게 이 개울물을 건넜을가? 배 띠끔띠끔 아파날 때 어머님께서는 세상에 나오자고 발버둥질치는 철없는 나를 어루만지며 고통스러움을 참으며 행복한 웃음을 지으셨을 거야.) 별의별 아픈 련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의 뇌리를 습격해왔다. “아, 어머님, 아버님, 효성을 다 하지 못한 이 도리깨아들 죄송합니다. 어머님, 아버님ㅡ 아들이 왔습니다. 이젠 깨여나 이 아들을 안아주십시오.” 그러나 쓸쓸한 무덤에 영영 누우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성호는 속이 터지는 것 같아 땅을 치며 대성통곡쳤다. 엉엉ㅡ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는 하늘나라에서 아들며느리, 손자, 손비, 증손들, 증손녀들 잘 사는 걸 보고 기뻐하고 보우해주시리라.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는 41명 자손들이 잘 사는 걸 보고 구천에서도 웃음 지으실 거야.) 성호의 부모님께서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부러울 것 없는 분이시였다.  어머님께서는 늘쌍 “내가 아들한테 대문 밖에 쫓겨나도 딸들은 아들과 못 비긴다.”고 말씀하셨다. 아들이 사준 시내에서 제일 높은 층집에서 고향 산천까지 한눈에 바라보면서 산다고 항상 딸들한테 자랑하셨다. 얼마나 못난 아들인데. 그다지도 어머님께서는 아들의 짧은 바지를 항상 춰주시지 않았던가. 성호는 오늘 부모의 산소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생일을 쇠였다. 그는 하나도 외롭지 않았다. (엄마 아빠 기뻐 웃고 계신다.) 이때 하늘에서 번개와 우박이 내리치고 소나기가 쓸쓸한 눈물처럼 왈칵 쏟아져 내렸다. (무슨 대수냐?) 성호는 준식과 함께 택시 안에 숨었다. 한참 후 하늘이 언제 흐렸나 싶게 개였다. 순간 성호는 부모 모시고 살던 옛추억의 파도소리가 귀전을 아프게 때리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성호는 한참 어깨를 들먹이다가 묵념에서 깨여난 후 호주머니에서 원고지 몇장을 꺼내들고 침통한 목소리로 읽어내려갔다. 어제 밤을 패면서 쓴 참회의 글이였다.   며칠 전에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어머님께서 뜻밖에도 우리 41명 자손들을 남겨두고 홀로 세상을 총망히 떠나가셨습니다. 이젠 이 불효자식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부모님께서 한분도 계시지 않습니다. 불효자식은 오늘도 생전에 부모님께 효성을 다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홀로 외롭게 울고 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항상 저를 보고 너네 아버진 벌벌 기는 너를 보고 “어이구, 저게 언제 커서 신세를 보겠소?” 하셨다죠? 나중에 아버지와 형제들은 항상 저를 “효자”라고 외우군 하셨다죠? 그런데 저는 부모님들께 효성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해 항상 죄송하기만 합니다. 돌아가시기 전 한달 전만 하여도 어머님께서는 10층 엘레베트아빠트에서 몸소 내려가 슈퍼마켓에 가서 과일이며 가지며 사들고 올라오시지 않았습니까?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아빠트 동쪽 양지바른 층계에 내려가 앉아 한담하던 어머님께서 갑자기 이 아들을 홀로 남겨두고 돌아가시다니요? 백세 넘어 효성을 하려고 마음먹었댔는데 어쩌면 이 불효자식을 보고 대소변도 한번 받아내게 하시지 않고 돌아가셨습니까? 이게 웬 일이십니까? 어머님을 모시고 생일을 쇠겠다고 한 이 도리깨아들을 홀로 남겨두고 그렇게 총망히 떠나가셨습니까? 남들은 아버지를 77세까지, 어머님을 93세까지 모셨으면 효성을 다하였다고 위안했지만 나는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일만큼 안타깝고 슬픈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어쩌면 아버님께 그렇다할만한 관에도 모시지 못하고 산소에 모셨는지 정말  안타깝습니다. 지금도 부모님을 모셨던 고향의 그 헌 집을 지나가면서 볼 때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 마을에 파는 집이 없으면 웃마을에라도 가서 알아보고 큰 집을 사서 부모님을 모셨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안해는 아버님을 좋은 집에서 모시지 못한 대신 어머님을 시내에서도 제일 좋은 26층짜리 엘레베트고급아빠트에 모시고 퇴직휴양간부들보다도 더 고급생활을 시켰으면 효성을 다했다면서 너무 안타까와하지 말라고 위안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모님께 구석구석 효성을 다하지 못한 후회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어머님께서 백세는 넘어 사시리라고 오해하고 이 불효자식은 아직도 기회가 많으리라고 여겼댔습니다. 어쩌면 네살 때 어머님을 여의시고 눈치밥을 자시면서 자라시고 시집와서 자식 아홉이나 낳아 기르시면서 아글타글 살아오신 어머님과 아버님을 일흔이 되도록 농사를 짓고 소사양을 하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불효자식은 아직도 부모들이 남새를 심던 밭과 소사양장을 지날 때면 너무나도 마음이 아픕니다. 시내에 계시면 사망한 후 화장한다면서 우리를 떠나 고향으로 떠나가시는 부모를 말리지 못한 도리깨아들을 용서하옵소서. 부모님께서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남들처럼 집 한칸도 없이 물독이 떵떵 어는 남의 석탄창고자리 세집에서 산다고 마음 아파 우리를 떠나가신줄도 그때는 몰랐습니다. 다만 부모님들께서 아들며느리와 토론도 없이 셋째딸과 사위를 믿고 시골 고향으로 돌아가신 일이 섭섭했습니다. 사위가 모는 소수레에 가마를 빼 싣고 앉아 고향으로 돌아가시는 백발의 부모님들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고 우리 불효가 마음에 걸리였을뿐입니다. 부모님께서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며느리가 귀여운 손녀를 데리고 세집에서 남들처럼 잘 살지 못한다고 고향에서 담배를 팔고 돼지를 길러 팔아 돈을 주면 넙적넙적 받아 챙겨넣기만 했습니다. 그때 어째 그렇게 철부지 도리깨아들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부모님께서는 이 아들며느리에게 주신 사랑이 너무나도 많지만 효성은 제대로 받지 못하셨습니다. 부모님들께서 자식을 열번 생각하실 때 자식들이 부모님을 한번이라도 생각하였겠습니까? 일이 바쁘다고 부모님을 자주 찾아뵈옵지 못한 이 불효자식을 어쩌면 좋겠습니까? 간혹 부모님을 찾아가면 반가와 하시던 부모님과 어째 이것 저것 묻기도 하고 소곤소곤 여쭙기도 하고 살아온 얘기도 많이 들어주지 못하였을가요? 낮잠을 푸푸 자면서 뭔가 아들과 말하고 싶고 묻기 싶어하시는 부모님과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효성을 다하지 못하였을가요? 어쩌면 부모님 생전에 그렇게 그리는 고향의 명산 천지꽃산으로 자주 모시고 가보지 못하였을가요? 어쩌면 눈앞에 있는 장백산에도 한번 모시고 구경시키지 못하였을가요? 효성의 빈 구석을 돌이켜보노라면  후회되는 일도 많고 많습니다. 90이 넘으신 어머님께서 돈이 아까와 자기 딸마저 가정보모로 쓰지 못하게 하고 손수 밥을 지어 잡수실 때 어째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고 선의적인 거짓말을 하고 가정보모를 붙들어두지 않았을가요? 지금도 가슴을 치면서  후회합니다. 어머님께서 가정보모가 하루 세끼 한근 반 밥과 장국에 채 둬가지를 하면서 하는 일 없이 한달에 2500원씩이나 가져간다고 가라고 쫓으실 때 내가 왜 말리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의학서적을 보고 로인들이 자체로 뭐나 손을 많이 놀리고 머리를 많이 쓰면 치매에 걸리지 않아 좋다고 아마츄어아들은 믿었을뿐입니다. 어쩌면 어머님 생전에 저의 생일상에 높이 모시지 못했을가요? 나에게 생명을 준 어머님을 저의 생일상에 모시지 못한 불효가 후회막급입니다. 제 잘난 것처럼 생일에 여섯상이나 버젓이 차려놓고 숱한 친구들과 친척들을 청해 대접하면서도 자기를 배 아프게 낳아주신 존경하는 어머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 내내 마음이 아픕니다. 어머님, 정말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왜 이 불효자식을 욕 한마디 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귀썀이라도 한대 때리시지 않으셨습니까? 아, 어쩜 어머님께 맛있는 음식을 따로 사다가 가져다 드리고 인사말을 드리는 것으로 내 생일 인사를 끝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제정신이 아니였습니다. 어머님께서는어두운 집에 고독하게 홀로 계셨건만 이 도리깨아들은 수십명이나 되는 생일손님들을 대접하느라고 밤중까지 술을 퍼마시고 3차, 4차 하고도 모자라 7차까지 하고 이튿날 새벽 3시에야 집에 들어서서 왝왝 열물과 피까지 토하는 추태를  보였습니다. 그래도 어머님께서는 아무런 원망 한마디 하시지 않고 그저 신체를 돌봐 술을 적당히 마시라면서 혀를 끌끌 차기만 하셨습니다. 아,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술을 좀 적게 마시라고 타이르실뿐이였습니다. 불효를 저지른 이 도리깨아들은 딱 어머님만 모시고 생일을 쇠자던 낙언을 실현하지 못했기에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이젠 다시는 친구들을 청해다 생일을 버젓이 쇠지 않겠습니다. 생일상을 보면 어머님 생각이 나서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만 같습니다. 몇천원 먹여 한메터 반도 넘는 룡과 봉황 쌍기둥을 세운 육중한 기념비를 합장한 부모님의 산소에 세워드리면서 부모님 생전에 다하지 못한 효성의 빈 구석을 채워보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픈 마음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이제 불효자식이 부모님 계신 구천에 가게 되면 다시는 불효를 저지르지 않고 영원히 부모님을 지키면서 조석으로 효성을 다해드리렵니다. 아, 정말로 불효를 저지른 빈 구석이 너무나도 많아 그 효성의 빈 구석을 다 채울 기회도 이젠 없습니다. 정말 후회됩니다, 부모님 생전에 부모님께서 불편해하실줄 진작 알았더라면 안해와 잠시 갈라 살더라도 부모님들의 전통관념대로 내 집에 모시고 조석으로 효성을 다해드렸겠는 것을. 안해는 다시 찾으면 되겠지만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니 이젠 더는 효성할 길이 없게 되였습니다. 이 불효자식은 그저 효성을 다하지 못한 빈 구석을 돌아보면서 가슴을 치며 후회에 후회를 거듭하면서 안타깝고 쓸쓸하기만 합니다. 세상에 후회약이라도 있다면 후회로 만리장성이라도 쌓으련만.   성호는 깨알 같은 글이 꽉 박힌 편지 몇장을 두 손으로 부모님의 산소 앞에 올렸다. “매형, 이젠 내려가기요. 숱한 손님들이 음식점에서 매형을 기다리오.” “오늘 부모와 함께 생일을 쇨테야.” 준식의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성호는 파란 잔디 뒤덮인 부모님의 산소에 두팔을 벌리고 엎드려 서럽게 엉엉 울었다. 외로운 산새 한마리가 성호의 슬픈 마음 동정하는듯이 천지꽃산 상공에서 쓸쓸히 지저귀며 산소 쪽으로 포로롱포로롱 날아와 맴돌았다. 이때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 슬프게 울던 성호를 깨웠다. “여보세요. 생일날에 웬 산소에 갔어요?” 정희의 목소리가 챙챙하게 들려왔다. 성호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타산을 고백했다. “여보, 아무리 생각해봐도 부모님들께 효성을 제대로 하지 못한게 한이요. 그래서 명년 청명엔 부모님 산소에 비석을 세워드려야겠소.” “당신, 미쳤소? 우리 죽어도 화장해서 훌 날려보낼텐데. 누가 그 산소로 간다고 아까운 돈을 팔아 비석까지 세운다고 그래요? 그 돈으로 고기와 남새를 사다가 자기 건강이나 챙기세요. 진짜, 아직도 죽은 귀신까지 애를 먹인다니까.” 성호는 정희가 이때만큼 미울 때가 없었다. 이전에 집을 살 때 얼마나 어물넙적하게 말했던가. “부모를 모시게 침실 3개 달린 집 삽시다.” 그 말에 얼리워 원래 살던 작은 집마저 팔지 않았던가. 그런데 부모를 모시고 반년도 살지 못하고 모시지 못하겠다고 나눕지 않았는가. 당초에 한 집에 부모를 모시고 살지 못하겠으면 제대로 말이나 할게지. 그랬으면 작은 집을 팔지 않고 부모를 따로 모시지나 않았겠는가. 어머니가 며느리를 돕느라고 설거지를 해도 음식그릇을 다친다고 낯이 새파랗게 질렸다. 쓰레기를 내가면서 풀어서 일일이 뒤져보았다고 “뭘 치워두고 먹는가 일일이 들춰보는가?”고 야단치지 않았던가. 하수도 구멍에서 풍기는 냄새도 어머니 몸에서  나는 냄새라고 함께 못 살겠다고 나눕지 않았던가. 내가 부모와 갈라서 못 살겠다고  하자 혁띠로 나를 치면서 리혼하자고 야단치지 않았던가. (정말 고약한 아낙네야.) 성호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툭 쏘아주었다.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비석이라도 세워서 부모 생전에 다하지 못한 효성을 반성하려고 하오. 그래야 마음에 내려갈 거 갔소.” “아니, 비석을 세운지 몇해라고 또 세워요? 죽은 부모 때문에 쓸데 없는 돈을  팔지 말고 가시부모 생전에 효성이나 잘 하세요.” 성호는 자못 정색해 말했다. “알았소. 조상들 산소를 잘 모셔야 한나한테도 좋은 법이오. 자손들한테 뭘  물려주겠소? 효성을 물려줘야지.” 성호는 정희가 뭐라고 말하는 것을 듣지도 않고 뒤말을 이었다. “머나먼 미국에 그만 있고  집에 돌아오오. 돈이 중하오? 목숨이 중하지.” “생일을 축하해요! 미국에 오면서 22만원이나 빚을 졌어요. 빚을 다 갚기 전엔 못 돌아가요.” 성호는 간염에 걸린 정희가 무척 근심되여 도리머리를 흔들며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였다. 성호는 그날 진짜 부모님 산소에서 가지고 온 제물로 준식과 함께 생일을 쇴다. 한나와 정훈의 축하전화에 안주해 제주를 붓고 추모의 술도 마셨다. 술을 마시다가도 산소에 절을 하고 절을 하고는 또 마시다나니 폭 취했다. 생일날 밤에 성호는 괴상한 꿈을 꾸었다. 그가 고향마을에 다시 갔을 때였다. 옛날 살던 고향 집에서 어머님께서 부르시는  목소리가 들렸다. 성호는 황급히 소리나는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어머님께서 자지색 하얀 머리수건을 치고 게내복에 꽃이 박힌 몸베를 입고  춘애의 부축을 받으며 서 계시지 않겠는가. 어머님의 형상은 생전 자애로운 모습 그대로였다. “어머님, 어떻게 돼 여기 와 계십니까?” 성호는 환성을 지르면서 어머님한테로 달려갔다. 어머님께서는 원래 몸집이 실팍하고 탄탄한 축이였는데 빼빼 여윈 앙상한 모습이였다. 성호는 춘애의 부축을 받으며 맨발로 절뚝거리면서 간신히 걷는 어머님을 보자 애절하게 통탄했다. “어머님, 어째 신도 신지 않고 왔습니까?” 성호가 어머님를 안고 우는데 어머님께서는 “빨리 너네 집으로 가서 살자.” 라고 하셨다. “어머님, 업고 가깁소. 어떻게 걷겠습니까?” 어머님께서는 “걸을수 있다. 걱정말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절뚝거리면서도 기어이 걸어 가겠다고 하셨다. 한참 후 성호네 집이라고 도착하였다. 그 옛날 집에는 막내누나 성숙과 이미 죽은지 몇해되는 넷째누나 봉금도 와 있었다. 구들복판에는 이상하게 시뻘건 관짝이 놓여 있지 않겠는가. 어머님께서는 그게 아버지 관이라고 하면서 도끼로 마구 팍팍 찍더니 관 안에 들어가시였다. “어머님, 어째 아버님의 관을 도끼로 찍으셨습니까?” “여기에 뭘 두고 나왔다.” 관을 들여다보니 아버님의 유골은 계시지 않고 헌 옷가지들과 얼럭덜럭한 기름종이 몇장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관 안에서 기름종이 몇장을 주어 성호와 춘애한테 나눠주셨다. “이걸 해 어데 쓰겠습니까?” 성호는 황급히 기름종이를 던져버렸다. 그는 춘애와 성호를 보고 “누나들도 던지오.”라고 하면서 빨리 이 곳을 떠나자고 했다. 춘애는 성호가 과단성이 있다면서 집에서 급급히 달아나왔다. 성숙도 부랴부랴 빠져나왔다. “얘, 너네 다 달아나면 난 누굴 믿고 살아? 추워 죽겠는데.” 어머님의 말에 봉금이 달랬다. “엄마, 땔나무 해올테니 근심하지 맙소. 나도 원래 살던 집에서 추워서 못살겠습구마. 근봉이 날 데려간다고 했소만, 내 몸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습구마.” “오- 그래, 그럼 우리 둘이 여기서 함께 살자.” 깨고 보니 괴상한 꿈이 아니겠는가. 성호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겨울이 다가오게 되니 아버님 산소를 짜개고 모신 어머님께서 추워서 아버님 관 안으로 들어가려고 서두신 것 같았다. 어머님을 아버지 산소를 얕게 파고  춥게 모신 것이 슬그머니 걱정됐고 죄송스러웠다. (새 해에는 어머님과 아버님 산소에 기념비도 세우고 가토를 많이 해야지.) 이듬해 청명에 성호는 화강암비석을 트럭에 싣고 천지꽃산으로 떠났다. 그런데 화강암비석이 어찌나 큰지 트럭도 끌기 힘들어 부릉부릉 소리만 지를뿐 산중턱에 있는 산소까지 올라가지 못했다. 백호가 보다못해 산아래 고향 마을에 가서 황소 수레를 몰고 왔다. 경만이랑 정국이랑 형제와 조카들은 트럭의 벽돌을 부리워 수레에 싣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제야 트럭은 산 중턱에 있는 산소까지 겨우 올라갔다. 성호와 백호 등 자녀들은 부모의 산소에 키 넘는 화강암비석을 새로 세워놓았다. 고향에 남아 있는 일가 자손 20여명은 백호의 주례하에 산소에 제주를 부어올리고 큰절을 아홉번씩 올렸다. 성호는 정성을 다해 비석을 세워놓고서도 무릎을 꿇고 조상들께 효성을 다하지 못한 불효를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제일 큰조카 승호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마음이 비길데 없이 비통했다. 성호는 조상들의 산소에 와락 안겨 서럽게 엉엉 대성통곡쳤다…                         
224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53) 댓글:  조회:1148  추천:1  2020-07-30
                                      83. 경쟁        선들선들 불어오는 마가을바람에 락엽이 우수수 져서 길바닥에서 쓸쓸히 나뒹군다. 나무잎들도 푸르른 청춘을 마감하고 맥없이 떨어져 뿌리를 뒤덮어준다. 주린 까마귀들이 북으로 날아가면서 까욱까욱 울어대 을씨년스러운 기분을 한결 더해준다.         종수는 아예 광고에 신경을 쓰지도 않고 승호한테 다 떠맡겨놓고 김택수 부총편과 함께 이민사를 정리하는데 달아다녔다. 그 기회를 타서 승호는 광고부 실권을 틀어쥐고 감췄던 발톱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가 갖은 비렬한 수단을 다 써도 김범수 부사장마저 깜쪽같이 속히웠다.     승호는 상전을 모시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 투자야 말로 리윤이 제일 많이 나는 투자이지.) 그는 김범수 부사장을 모시고 여러번 술상에 앉으면서 자기 상전의 흥취와  애호를 손금 보듯이 장악하였다. 김범수는 특별히 명태와 보쌈에 맥주를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아가씨들을 끌어안고 돌아가기를  좋아하였다. “영웅은 미녀관을 넘기 어렵다더니, 헛 참, 김사장이나 오청룡이나 매한가지군. 흥!” 어느 날, 그는 부사장 사무실로 찾아갔다. “김사장, 점심에 시간 좀 낼 수 있습니까?” 범수는 쌍까풀눈으로 벽시계를 흘끔 쳐다보더니 희죽이 웃었다. “무슨 일이 있소?” 승호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예, 조용히 할 말이 있어서…” 범수는 깍지손을 해 사무상에 올려놓으며 정색해 물었다. “무슨 일인지 여기서 말하오.” “아니, 날씨도 을씨년스러운데 명태에 맥주라도 마시면서 얘기하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래?” 명태와 맥주 소리에 범수는 군침을 꼴깍 삼키면서 우쭐 일어났다. “먼저 가서 자리를 정하오. 이후엔 이런 일은 사무실에 찾아오지 말고 전화로 련계하오.” 범수는 분명 남들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예, 알았습니다.” 승호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면서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는 신문사에서 썩 멀리 떨어진 조용한 교외 별장식 음식점에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이윽고 범수도 공가차를 타고 달려왔다. 그는 문 앞까지 마중나온 승호를 따라 엘레베이트를 타고 3층에 올라갔다. 엘레베이트 문이 스르륵 열렸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예쁜 아가씨 두 손을 맞잡아 아래배에 댄 채 곱게 머리 숙이며 인사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아가씨들의 하얀 허벅다리가 눈뿌리를 빼갈 지경. “아가씨들 써비스 죽여주는구만.” 범수는 으깨를 으쓱했다. 승호는 뒤따라 가면서 씨무룩이 웃었다. 오늘 김사장의 주흥을 붇돋으려고 옥설과 예화를 불러 왔다. 옥설은 백화상점의 무용수였는데 허벅다리의 우유빛살결이 사내들의 애간장을 다 녹일듯이 매력적이였다. 범수의 눈길이 아가씨들의 백지장처럼 새하얗고 두부처럼 야들야들한 허벅지에 화살처럼 꽂혔다. 제꺽 눈치챈 승호는 흡족한 웃음을 입귀로 흘렸다. (김사장, 조 야들야들한 허벅다리에 뽀뽀를 빡 하고 싶지? 오늘 마음껏 놀아보라이.) 아가씨들의 안내하에 범수와 승호는 조용한 방 안에 들어가 앉았다. 승호는 메뉴를 가져다가 쭉 훑었다. 물론 김사장이 좋아하는 명태와 보쌈을 빼놓을 수  없었다. “뭘 시켰소?” 승호가 메뉴를 쭉 내리부르자 뜻밖에 범수가 고개를 저었다. 범수는 메뉴를 가져다 한참 들여다보더니 무겁게 입을 뗐다. "아가씨들이 뭘 좋아하는지? 좀 아가씨들을 배려해야지." 범수는 아가씨들의 눈치를 흘끔 곁눈질했다. "이 집에는 개고기 없소?” “있어요.” 예화는 앞질러 대답하고나서 승호를 건너다보며 혀를 홀랑 내밀었다. “저도 개고기를 좋아해요.” 상전의 메뉴를 손금 보듯 했다고 여겼던 승호도 어색하게 웃으며 혀를 날름거렸다. “이 집 개고기하구 보쌈 죽여줍니다. 몽땅 자연산입니다. 돼지고기는 산에서 기른 멧돼지 고기요, 배추도 농약과 화학비료 하나도 치지 않고 유기비료로 기른 겁니다.” 범수는 그제야 만족한듯 메뉴를 내려놓았다. 승호도 무거운 짐이나 벗어놓은듯이 굳어졌던 어깨를 풀어버렸다. “아가씨를 부를까요?” “아니, 지금 무슨 세월이라고 아가씨를 부르겠소?” “술상에는 사촌누이라도 마주 앉아야 술맛이 나죠.” (배 부른 흥정하지 말라.) 승호가 헤헤 웃으며 박수를 쨕쨕 쳤다. 미닫이문이 스르르 열렸다. 범수가 머리를 들어 보니 아까 엘레베이트 옆에서 마중하던 삼십대 후반의 아가씨들이 들어섰다. 그녀들은 모두 범수 량 옆에 가서 딱 들어붙어 앉았다. 범수는 아가씨들의 우유빛허벅지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에헴, 우리 신문사 김사장이야. 잘 모셔라.” “아, 예- 처음 뵙겠어요." "아니, 이럴 필요없소." 범수는 승호를 불러 슬쩍 구석 쪽으로 갔다. "아가씨들을 내보내오. 지금 무슨 세월이오? 괜히 쓸데없는 말을 듣겠소."  "예, 알았습니다." 승호는 아가씨들을 손짓해 뭐라고 쑤근거렸다. 아가씨들은 볼부은 소리를 도도거리며 나가버렸다. 범수는 그러고도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남은 두 색씨들을 눈짓했다. "괜찮아요. 다 잘 아는 정직한 애들입니다." 그러자 범수는 마지못해 제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 인사늦었어요.처음 뵙겠어요. 예화라고 불러요.” 예화가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해쭉 웃어보였다. “예화? 퍽 보던 아가씬데.’ 범수는 눈이 화등잔이 돼 예화의 아래우를 훑었다. “음식점에서 일하긴 아까운 아가씨군.” 예화가 뭐라고 입을 빠끔 열려는데 승호가 눈짓했다. “예화는  한 광고회사에서 일합니다.” “오- 그런 걸 난 또…헤헤헤.” 범수는 승호가 미리 아가씨들까지 주밀하게 배치해놓은데 놀랐다. “이쪽은 음식점 아가씨요?” “아니예요. 전 백화상점의 옥설이예요. 많이 부탁 드립니다.” 승호가 한마디 했다. “걘 우리 백화상점 인기무용수입니다.” “에이- 백화상점에 다리 아프게 세워놓긴 아까운 미녀구만.” 범수가 혀를 끌끌 찰 때였다. 옥설이 범수의 팔을 끌어안고 몸을 기대며 애교를 부렸다. “김사장님, 절 도와주세요. 신문사에 가서 사장님 사무실 청소를 해도 좋아요. 시키는 일을 다 하겠어요.” 범수는 옥설의 탄력있는 몸을 밀어내며 승호를 흘끔 도적질해 보며 중얼거렸다. “에이, 청소공이야 백화상점에서 신짝을 팔기보다 못하지.” 미닫이가 열리더니 음식점 아가씨들이 채를 들여왔다. 범수는 퉁사발 같은 쌍까풀눈으로 상다리 뚝 부러지게 차린 음식상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광고과에 무슨 돈이 있다고 이렇게 랑비하오. 채를 더러 내가오. 언제 다 먹는다고 이러오?” 아가씨들은 마땅찮은 눈길을 보냈다. “어찌 사장님을 공을기처럼 대접하겠습니까?” “그래요. 어서 드세요.” 좌우에서 옥설과 예화가 맥주를 따른다, 보쌈을 싸 입가에 들이댄다 하면서 아양을 떨었다. 범수의 눈길이 자꾸 옥설과 예화의 짧은 치마 밑의 하얀 허벅지로 갔다. 눈치챈 예화는 짧은 치마를 살짝 들고 백설 같은 허벅지를 범수 허벅지 가까이에 들이댔다. 범수는 승호와 옥설의 눈치를 보면서 밥상 밑에서 예화의 야들야들한 허벅지를 슬슬 매만지였다. "어허, 맥주 맛이 좋다." 옥설은 허벅지를 들이대고 해벌쭉거리며 아양을 떨었다. "김사장님, 절 신문사 광고과에 받아주는 거죠? 김사장님 가까이에서 잘 모셔드리죠. 제가 은혜는 꼭 보답해드릴게요." 승호는 잔을 들고 희죽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헤헤헤. 김사장 비서로 받으면 좀 좋습니까? 예화, 김사장님 모시고 기분좋게 한잔 들기오.” “허허허. 감사하오. 리과장이구야 날 알아봐준다니까.” 범수는 일일이 잔을 마주치더니 단모금에 맥주를 쭉 들이켰다. 그는 예화가 쑤셔넣은 보쌈을 받아물고 볼이 메지게 우물거렸다. 입귀에서 돼지기름이 게죄죄하게 흘러내렸다. 옆에서 옥설이 큼직한 개고기를 집어 입에 넣어주었다. 승호는 속으로 웃었다. (영웅은 모두 미인관을 넘기 힘들지. 네놈이라고 미인계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느냐?) 몇순배 돌아가자 승호가 입을 열었다. “김사장, 종수는 광고를 하나도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광고과 과장을 합니까?” 김범수는 승호를 흘끔 흘겨보았다. (자식, 종수를 헐뜯자고 불렀어?) 범수는 승호를 면박주었다. “리과장, 자기 광고나 잘 하오. 술상에서 사업얘기를 하지 말기오.” 첫마디에 코를 떼운 승호는 끙끙거리다가 화제를 돌렸다. “김사장, 조용히 부탁드립시다.” “뭔데?” 범수는 종이를 들어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입을 쓱 닦았다. 승호는 정색했다. “제 생각에는 우리 신문사에서 인터넷광고를 개척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범수는 승호를 힐끔 건너다보더니 좀 색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신문에 낼 광고도 채우기 힘든데 인터넷광고까지 언제? 또 인터넷광고는 성호 개척한 광고 아니오? 어째 남의 뒤만 따라가자고 하오? 창신이란게 하나도 없이야 어떻게 광고수입을 창조할 수 있소?” “성호면 성호고 우린 우립니다. 우리도 인터넷광고를 해야 광고임무를 완수할 수 있습니다. 신문은 발행량이 적어서 광고 효과가 좋지 않습니다. 이번 주에도 숱한 광고 떨어져나갔습니다.” 범수는 저가락을 내려놓고 정색했다. “성호와 어떻게 경쟁하겠소? 성호는 리과장 대학 동기 아니오?” “지금 어디 그런 거 따질 새 있습니까?” 범수는 한술 더 떴다. “성호는 친삼촌 아니오?”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승호는 깜짝 놀랐다. 세귀눈을 치뜨며 옥설과 예화의 눈치를 흘끔 살폈다. 예화는 예지로 빛나는 쌍까풀눈으로 승호를 빤히 쳐다보다가 살풋이 내리깔며 차잔을 들어 호호- 불었다. (아니, 친삼촌이라니?) 범수는 허리를 펴고 잔등을 의자등받이에 붙였다. “이 부사장을 어떻게 보고 하는 말이오?” 그러나 승호는 뜻밖에도 발가벗고 나섰다. “신문사 광고사업을 위해선 친삼촌이 아니라 아버지라도 경쟁해야 할 판입니다.” (독종! 어쩜 친삼촌 발등까지 짓밟아? 네놈은 자기 리익을 위해선 장차 내 등뒤에도 칼을 박을 놈이야!) 범수는 섬찍했다. 그러나 인차 굳어진 얼굴의 근육을 느슨히 풀며 이 구실 저 구실 대며 딴전을 부렸다. “지금 일손이 딸리는데 어떻게 인터넷광고까지 하겠소? 불시에 어데 가서 사람을 모집해 오겠소? 괜히 해보지도 못한 인터넷광고에 덤벼들었다가 망신하겠소.” “금심하지 마십시오.” 승호는 끈질기게 달려들었다. “이 예화와 옥설을 우리 광고과에 전근시킵시다. 인터넷광고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왜?” 승호는 때가 됐다고 속심을 털어놓았다. “예화는 성호네 인터넷광고 경영비밀을 다 알아냈습니다.” 기실 예화는 승호가 성호네 회사에 미리 박아놓은 상업간첩이였다. (상업간첩?) 범수는 또 한번 섬찍해 승호와 예화를 번갈아 여겨보았다. 승호가 원래 좀 음험하다는 것을 모른바는 아니였다. 그러나 예쁜 예화가 그런 짓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성호네 담벽을 허물어서야 되오?” “상업이란 원래 형제간에도 치렬한 경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상업간첩까지 파견하면서 경쟁할게 있소?” 승호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해 입을 헤 벌리고 목석처럼 앉아 범수를 바라보았다. 그때 예화가 호들갑을 떨면서 어색한 기분을 풀어주었다. “자, 좋은 인연인데요. 김사장을 이렇게 만나 무한한 영광을 느낍니다. 맥주나 시원히 마시자요.” 승호는 예화한테 화풀이를 했다. “뭘 안다고 끼여들어?” “어마나, 그래도 그렇죠. 왜 저를 음험하게 만들어요. 상업간첩이라니요?” 그녀는 범수한테 맥주잔을 드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김사장님, 리과장 말이 맞아요. 전 성호 총경리네 인터넷광고를 손금 보듯 해요. 김사장님, 근심하지 마세요. 절 신문사에 전근시켜 인터넷광고를 맡기세요. 꼭 성호 경리네보다 더 벌 수 있어요.” 예화는 범수의 눈길이 의연히 곱지 않은 것을 보고 승호한테 눈을 흘겼다. 그녀는 애교를 부린다, 수다를 떤다 하면서 보쌈을 싸 범수의 입에 부지런히 밀어넣었다. “아니, 그만. 오후에 회의 있소.” 범수는 술맛이 없었든지 엉거주춤 일어났다. “아니, 금방 네병 밖에 마시지 않았는데요.” “폭 마시고 가시죠.” 예화와 옥설이 량팔을 붙잡고 만류했지만 쓸데 없었다. 범수는 신을 꿰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쥉쥉 엘레베트 쪽으로 가버렸다. 승호는 황급히 뛰여나갔다. “김사장, 제 부탁 잊지 마십시오. 꼭 성공할 수 있습니다.” “천천히 잘 검토해보기오.” 범수는 한마디 남기고 엘레베이트에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범수는 승호와 예화가 머리를 조아리며 구십도 경례를 하는 것도 거들떠보지 않고 엘레베트 문을 쿵 닫아버렸다. 범수를 보내고 승호와 예화네는 술상에 되돌아와 둘러앉았다. 예화가 승호 옆에 다가와 앉으며 마른 명태를 쪽 찢어 승호의 입에 가져갔다. “일이 될까요?” 승호는 마른 명태를 질근질근 씹으며 한마디 내뱉었다. “먹은 쇠 똥을 눈다오.” “호호호. 그 말 듣기 참 좋다.” 옥설도 부끄러움을 홀랑 벗어버리고 승호 옆에 딱 붙어앉아 아양을 떨었다. “오빠, 우리끼리 맛있게 마시자요.” “그래, 마시자!” 승호는 예화와 옥설을 량무릎에 앉히고 두부처럼 야들야들한 허벅다리를 어루만지면서 질탕하게 마셨다. “오빠, 아- 하세요.” 승호가 입을 벌리자 옥설이 맥주잔을 들어 쩍 벌린 승호의 입에 부어넣었다. “오빠, 아가리를 쫙 벌리세요.” “네나 쩍 벌려대라. 찔러넣게. 허허허.” 승호가 입을 벌리자 예화가 오징어를 집어넣으며 나블거렸다. “쫙 벌린 중둥이를 봐라. 딱 뭐 같니?” “언니, 진짜 야하구나!” “호호호.” 승호는 꽃밭 속에서 딩굴면서도 성호의 담벽을 허물어 허경옥과의 경쟁에서 이겨야겠다는 심보만은 허트러지지 않았다. 그는 술병을 들어 예화와 옥설의 잔에 찰찰 넘치게 붓고나서 자못 엄숙하게 말했다. “예화, 성호 하나도 눈치채지 못하게 인터넷광고자료를 싹 빼오오.” “예, 알았습니다. 쌀쓸이를 해버리죠.” 예화는 쌍까풀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성호 경리 두렵지 않습니까?” 승호는 술잔을 들면서 나직이 당부했다. “저네만 아오. 승호는 내 친삼촌이오.” “예? 진짜?” 예화는 눈이 화등잔이 되여 승호를 쳐다보았다. 옥설은 미심했다. “믿어지지 않어. 세상에 그렇게 젊은 삼촌이 있을 수 있나요? 그것도 친삼촌이.” “그래, 우린 동갑이자 대학동창생 친구야. 허물 없는 사이니깐. 고만한 거 훔쳐와도 괜찮을 거야. 성호는 도량이 넓으니까. 허허허.” 예화는 승호를 다시 쳐다보며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흉금이 넓은 자기 친삼촌을 바보로 보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 그들은 범수가 가기를 기다리기나 했다는듯이 떠들어대며 해질 때까지 질탕하게 마셔댔다. 기실 승호는 예화를 건너다본지 오랬다. 그는 취해 허트러진 예화의 모습을 보고 다른 궁리를 했다. (저 년을 가질 절호의 기회야.) 그는 백화상점 때 수하 옥설을 재끼는 것은 좀 굴어귀 풀을 다치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아쉬운대로 먼저 택시에 태워 보냈다. 예화도 택시를 타고 떠나려고 했다. “예화, 조용히 할 말이 있소.” “그래요?” 예화는 택시에 올라타는 승호를 치켜보았다. 어쩐지 정신을 좀 가다듬어야 했다. 그러나 자꾸 눈이 내려왔다. 승호는 예화를 택시에 태워가지고 시내에서도 근사한 다방으로 달려갔다. 저쪽 골목 구석에서 옥설이 질투의 눈길로 택시 타고 달려가는 그들을 쏘아보았다. 그녀는 떠나간 척하다가 택시에서 내려 승호와 예화가 어데로 가는가고 살폈던 것이다. 희미한 전등불빛 아래 은은한 음악이 흐르는 다방이 기분을 돋구었다. 승호는 구석진 방에 들어가 맥주와 마른 명태, 포도, 닦은 호박씨로 한상 차렸다. “아니, 커피를 마시잖고 또 맥준가요?” “그래?” 승호는 다방 아가씨한테 원두커피를 갈아오라고 주문했다. 예화는 더운지 웃옷을 훌훌 벗어 옷걸이에 걸어놓았다. 그녀의 출렁이는 풍만한 젖가슴으로 정욕에 불타오른 승호의 눈길이 애타게 오르내렸다. 승호는 마주 앉은 예화의 얼굴을 찬찬히 훑었다. 맥주를 마셔서 좀 발가우리한 걀죽한 외씨얼굴, 흐리마리해진 풀린 쌍까풀눈, 오똑한 코, 키스를 빡빡 안겨주고 싶은 초들초들한 앵두입… (팁 주고 놀기보다. 요런 미녀를 점유하는 게 낫구나. 아, 오늘 넌 죽었어. 베개로 머리를 쳐놓고서라도 데리고 놀아야지.) “예화, 여기 오오.” “왜 그래요?” 예화는 승호의 따가운 눈길이 어색했는가? 그녀는 아까 술상과는 달리 정작 둘이 남은 다방에서 꽤나 엄숙해졌다. 그녀는 오쫄 일어나 소변 보러 가겠다고 구실을 대고 나가버리였다. 승호는 룡암처럼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정욕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러나 예화가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아 괘씸해났다. (이년이 권하는 술은 안 마시고 벌주를 마시겠느냐?) 이윽해 예화가 소변을 보고 다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그 때였다. 승호가 자기 커피잔을 제자리에 되놓았다. 그녀가 이상해 자리에 돌아가 앉아 커피잔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이상하게 커피색이 새하얗지 않겠는가. (프림을 쏟아넣었는가?) 그런데 프림은 그대로 접시에 놓여 있지 않겠는가. (뭘 탔을가?) 예화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승호는 예화의 예리한 눈길을 피하며 씨무룩이 웃었다. 기실 그는 예화를 맑은 정신에 재끼기는 아직 채익지 않은 참외를 따 먹는 격이라 그만뒀다. 그리하여 예화의 커피잔에 수면제가루를 털어넣었던 것이다. 그는 항상 팁도 주지 않고 아가씨를 재끼려고 수면제가루와 콘돔을 돈가방에 감춰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면제를 너무 많이 타놓아서 그만 예화한테 들키고 말았다. 예화는 불길한 예감이 덜컥 들었다. 순간 그녀는 불시에 손으로 이마를 톡톡 치며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머리 왜 아프지?” 그녀는 승호의 속내를 떠보려고 들었다. 그녀는 커피잔을 들어 호호 불다가 둬 모금 입에 물었다. 그리고 손으로 목을 붙잡고 위생실에 가서 토해버렸다. 뒤이어 자리에 돌아와 눈이 자꾸 내려오는 상 하다가 쏘파에 스르르 쓸어졌다. 예화가 눈을 살며시 뜨고 살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승호는 무슨 빛이 번쩍이는 눈길로 예화의 짧은 치마 밑에 드러난 하얀 허벅지를 참빛질하면 달걀침을 꼴깍 넘기는 것이였다. 뒤이어 스르를 일어나더니 예화를 흔들었다. "예화, 예화." 그러나 예화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자 승호는 야수의 본성을 들어냈다. 손으로 예화의 허벅지를 슬슬 만지더니 손이 뱀처럼 배로부터 점점 우로 슬슬 기여올라왔다. 그때 예화가 화닥닥 일어나더니 웃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었다. “안되겠어요. 오늘 술을 너무 많이 마셨는가 봐요. 머리 아파서 집에 일찌기 돌아가야겠어요.” “아니, 정신 차렸어? 어험, 험, 이걸 하나도 먹잖고 돌아가면…” “미안해요. 먼저 실례하겠어요.” 예화는 입을 쩝쩝 다시며 실망해하는 승호를 다방에 홀로 남겨두고 기어이 떠나가버렸다. (음흉하구나. 날 해치려고? 흥! 어림도 없어.) 몇해 전에 승호는 범송과 밀모해 미인계를 써서 예화를 성호네 광고회사에 박아넣었던 것이다. 예화는 미녀사처럼 성호의 착한 마음 속을 비집고 들어가 태연자약하게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 인터넷광고 정보를 몽땅 손에 넣었던 것이다. 이튿날 승호는 웃음주머니 흔들흔들해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가 자꾸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벽시계는10시를 가리켰다. 그런데 기다리고 기다리는 예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11시가 넘었다. 그래도 예화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승호는 기다리다못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예화, 어떻게 된 판이오?” “미안해요. 제가 오늘 머리 아파서 갈 것 같지 못해요.” “뭐라고?” 승호는 불길한 예감이 부쩍 들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언성을 높였다. “아무리 아파도 그렇지. 멀어서 오지 못하오? 정 오지 못하겠으면 큐큐로 정보파일을 보내란 말이오.” “…” 점심이 다 돼도 기다리는 예화는 오지 않았다. 큐큐를 자주 열어봐도 아무 파일도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뜻밖에도 성호가 들이닥쳤다. (진짜 불청객!) “어떻게 돼 왔니? 앉아라.” 승호는 당황망조해 자리에서 움쭐 일어나 쩔쩔 맸다. 성호는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아무리 경쟁해도 그렇지. 어쩜 이럴 수 있니?” “뭘?” 승호는 길죽한 박씨얼굴에 억지로 웃음을 게바르면서 시치미를 땄다. “예화를 시켜서 무슨 짓을 했니?” 승호는 자리에 풀썩 물앉았다… 원래 예화한테서 이변이 생겼다. 미운 놈을 떡 하나 더 준다고 예화는 생존과 부귀영화를 위해서 승호의 포치대로 행동했다. 그녀는 성호가 어디로 나간 틈에 경리실에 들어가 승호의 떨리는 손으로 성호의 컴퓨터를 열고 모든 자료를 복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녀는 보이지 않는 눈길이 자기 일거일동을 따라다닌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옆 사무실의 연화와 동료들의 눈길도 두려웠다. 그러나 그녀는 용케도 용기를 내서 자료를 손에 넣었다. 그녀는 도적고양이처럼 발볌발볌 경리실에서 나와 한숨을 호- 내쉬였다. 뒤이어 유판을 핸드빽에 넣어가지고 연화와 동료들의 눈치를 흘끔 보면서 사무실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쩐지 가슴에 뭔가 걸리는 강한 충격을 받았다. (내 잘 살자고 이렇게 하는게 옳은가?) 그녀는 맥없이 자리에 물앉아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리성호 경리는 나를 얼마나 믿고 아꼈는가? 결손을 보는 처지에서도 우리를 회사에 받아주지 않았던가. 이 유판을 승호한테 가져가면 리경리는 망하지 않을가? 리과장은 어쩜 자기 삼촌의 뒤통수를 칠 수 있단 말인가? 다방에서 날 짓밟으려고까지 하잖았는가. 량심이 없는 자야.) 그녀는 점차 욕심 대신 량심이 마음 속으로 돌아오는 것을 어쩌는 수 없었다. 핸드폰 진동소리 요란히 울렸다. 그러나 그녀는 받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참 후 성호가 사무실에 되돌아왔다. 예화는 우쭐 일어나 경리실에 들어가려고 하다가 주춤 멈춰 섰다. (승호의 진상을 몽땅 까밝혀놓으면 혹시 숙질간에 이 벌어지지 않을가? 그럼 난 리간질 한 못된 년으로 되는데.) 예화는 한참 망설이다가 용케도 량심적으로 마음을 정했다. (량심을 어기지 말아야지. 진실은 꼭 밝혀야 해.) 그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경리 사무실 문을 살며시 밀고 들어갔다. “이걸 받아요.” 성호는 예화가 내미는 유판을 보면서 놀랄 대신 태연자약한 표정을 지었다. 예화는 성호의 태연자약한 거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어제 승호가 밀모한 사실을 터놓았다. “진작 다 알고 있었소.” 성호는 어제 벌써 김사장한테서 승호의 꿍꿍이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는  밤도와 자기 인터넷광고자료를 복제해 감춰놓은 후 경리실에 몰카를 가설해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고의로 경리실을 비운 후 수시로 핸드폰을 통해 경리실의 동태를 낱낱이 지켜보았다. “리경리, 아무리 생각해 봐도 승호 과장이 이렇게 하는 건 옳지 않죠…” 성호는 자기를 믿고 따라주는 예화를 넓은 흉금으로 너그럽게 포옹했다.  “고맙소. 이 일로 더 고민하지 마오.”  순간 예화는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녀는 눈물이 글썽해났다. “리경리, 정말 죄송해요. 량심없는 절 용서하지 마세요…” 성호는 더욱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별말을, 경쟁이 백열화던 이 세상에서 예화처럼 성실한 직원은 찾기 힘드오.” 성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화의 어깨를 다독여주고 사무실 안에서 왔다갔다 거닐다가 나갔다. 예화는 감격과 자책감에 반죽된 뜨거운 눈물을 훔치며 뒤따라 나갔다… 한편 신문사 광고과 사무실에서 승호는 땅바닥에 무릎을 털썩 꿇고 앉아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작은삼촌, 용서해주오.” “작은삼촌?” 성호는 넉가래 같은 손을 휘둘러 승호의 뺨을 챨싹 갈겼다. “날 작은삼촌으로나 보기나 하느냐? 왜 그랬어?” 승호는 얼얼한 뺨을 매만지다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래, 쳐라, 쳐! 차라리 얻어맞으면 속이 씨원하겠다.” 그러나 성호는 비웃음이 넘치는 눈길로 승호를 훑어보았다. “비렬한 자식! 량심은 개를 떼줬어?! 엉?!” 승호는 성호의 두 손을 꽉 잡았다. “작은삼촌, 이번만 용서해달라. 경옥과 경쟁하려다가 그만 미쳤어. 지금 굉팔까지 감옥에서 나와 굉팔광고회사를 차려 경쟁이 얼마나 치렬하냐?' "건 무슨 소리야. 탐오죄로 감옥에 갔는데 굉팔이 나오다니?" "아직도 초저녁이구나. 굉팔이 감옥에서 나왔어. 시내 중심가에 광고회사를 차렸어." "엉?" 성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그런 부패분자도 감옥에서 나와? 그런 법도 있다니?" 성호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리였다. "그래, 오청룡도 나왔다니?" "아니, 그 놈은 감옥에 있다더라. 듣는 말에 의하면  굉팔은 먹은 돈을 다 괴우구 간암에 걸려 치료를 구실로 보석돼 나왔다더라." "세상이 한심하구나. 그 놈 그래서 항상 세상에서 정의만 가지고 못 산다고 지껄이며 다녔구나. 진짜 나는 놈이구나." 성호가 굉팔한테네 정신이 간 틈에 승호는 중얼거렸다. "광고자료를 가져다가 사업실적을 쌓고 싶었다. 그래서라도 경옥을 이기고 세상에 성공한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성호는 승호의 손을 꽉 잡아 일으키면서 억지로 부드럽게 말하려고 애썼다. “자식, 남의 담벽을 허물아다가 자기 토성을 쌓아 뭘 하느냐? 광고를 해도 법과 량심을 지켜야지. 그게 뭐냐? 미인계를 쓰고 간첩까지 파견하고… 부패분자 오청룡이나 리굉팔과 다른게 뭐냐? 음험하기로 짝이 없구나. 이후엔 특무정치를 작작 해라.” “잘못했어. 제발 용서해달라.” 성호는 타이르기 시작했다. “이런 자리에서 처음 삼촌이라고 부르는게 참 가슴 아프다.” 승호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우리 둘 사이에 뭔들 말하지 못하겠느냐? 어쩜 방조해달라고 말하지 않고 이런 못된 궁리를 했니?” 승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밸을 빼서 날 도와주겠어?” “야, 우리 둘한테 돈이 더 중요해? 쳇, 자식, 왜 그렇게 사람을 믿지 못해?” 성호는 말을 마치자 자그마한 유판을 꺼내 내밀었다. “옛다. 인터넷광고 자료야. 부동산광고랑 의료광고랑 다 있다.” 승호는 미심한 눈길로 성호를 쳐다보았다. “진짜 주는 거야.” 광고주와 인터넷광고 정보이자 거금이 아닌가. 성호는 분명히 말했다. “그래, 난 네가 어떻게 하나 광고업계에서 일어나는 걸 보고 싶다. 광고를 많이 해서 집도 사라.  세집살이를 하는 걸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하겠다.” 성호의 진심에 승호는 또 머리 숙여졌다. “작은삼촌! 날 죽여주오-” 성호는 승호 사무상에 유판을 놓았다. 그는 승호를 와락 끌어안고 잔등을 다독였다. “쓸데없는 소리! 우린 숙질간이 아니냐!” 그는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리는 승호를 품에서 떼내 똑바로 마주 바라보면서 무겁게 입을 뗐다. “시장경쟁시대는 눈물이 필요없어. 그러나 경쟁도 정당한 수단으로 해야 해. 힘내라!” 승호는 코마루가 시큼해나 머리를 끄덕였다… 이튿날 승호는 성호를 자기 집에 초청했다. 성호가 집에 들어서자 영희는 이전과는 달리 성호를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어서 올라오세요.” 마실을 왔던 선금도 눈인사를 했다. 승호는 안방에서 한창 공부하는 광훈을 보고 “얘, 인사해라. 작은할아버지다.”라고 했다. 그러자 광훈은 미닫이를 열고 눈이 휘둥그래 성호를 내다보았다. 영희가 또 혀바닥을 날름거렸다. “그럼 당신의 아버지란 말입니까? 삶은 소대가리 웃다가 꾸레미 터질 일이구만요.” “무슨 말버릇이오?” 승호는 황급히 인사시켰다. “작은삼촌이야.” 영희는 입귀를 비쭉하면서도 머리를 숙였다. “미안해요. 시삼촌.” 승호는 광훈을 돌아보았다. “작은할아버지한테 인사를 드려라.” 광훈은 진짜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예? 난 할아버지 본적도 없는데. 불시에 무슨 작은할아버진가요?” “이 자식!” 성호는 광훈을 때리려는 승호의 손목을 잡고 말렸다. “걔를 탓해 뭘 하느냐? 무정한 세월이 이런 비극을 만들었지. 너네 집에 아무 것도 해준 것도 없구나. 작은할아버지 말 듣긴 구차하구나.” 선금도 어색하게 웃으면서 승호와 영희를 번갈아보았다. “승호 오빠한테 삼촌이면 난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요?” 승호는 정색했다. “삼촌이지.” 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삼촌은 무슨 삼촌, 서로 편하게 보내면 되오.” 뒤이어 그는 호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광훈한테 주었다. “얘야, 너한테 해준게 아무 것도 없구나. 이제부터라도 우린 조손처럼 다정하게 살자구나.” 광훈은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면서 아버지와 어머니 눈치를 흘끔흘끔 보면서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받아라.” 성호는 광훈의 오른손을 잡고 돈봉투를 쥐워주었다.  “이건 네가 기말시험준비를 잘하라고 주는 거야.” 광훈은 아버지 눈치를 흘끔 보았다. 승호는 “작은할아버지 주는 거 받아라.”라고 했다. 그제야 광훈은 돈봉투를 두 손으로 꼭 잡고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꿉썩 인사했다. 그러나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할아버지.”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영희도 해시시 웃으며 인사했다. “에이구, 애들이 인사할줄 몰라서 어떻게 해요? 아무튼 광훈 애비를 많이 교육해주세요.” 그 말에 승호가 세귀눈을 치켜떴다. 영희가 뭐라고 말하려고 하자 승호가 마구 밀막아버렸다. “됐소, 됐소. 어쩌다가 온 작은삼촌한테 무슨 말버릇이오?” 그러나 영희는 누그러들지 않았다. “뭐라고요? 당신, 잘못이 없어요?” 승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성호의 팔소매를 끌고 바깥으로 나갔다. “원래 집에 청해 술이나 한잔 나눌가 했는데. 녀편네 때문에 창피해서. 원, 가자 선녀음식점에 가자.” 그때 영희가 따라나섰다. “괜히 날 욕보이지 마세요. 제가 음식점에 가서 한턱 내죠.” “됐소, 됐어.” 승호는 시끄러워 영희를 마구 떠밀어 집 안에 들어가게 했다. 선녀음식점에 가자 선화가 반겨맞으면서 수다를 떨었다. “아이구, 두분 함께 오긴 처음인 것 같은데요. 얘들아, 안방에 모셔라.” “예-” 아가씨들이 안방으로 안내했다. 자리를 잡고 앉자 성호가 물었다. “혹시 집에 무슨 일이 있니?” 승호는 머리를 들지 않고 메뉴에 눈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에이구, 어느 집에 말썽이 없겠니? 항상 도도거리는 건 아낙네 본병이지.” “뭐라고?!” 영희가 불길이 이글거리는 눈길로 쏘아보면서 들어올줄이야! “그래 도도거리게 되지 않았는가?! 오늘 결판내자.” 승호는 성호 눈치를 흘끔 보면서 영희를 쏘아보았다. “아니, 이 미친 년, 어디까지 쫓아와 생야단이냐?” 영희는 성호 앞에서 승호 멱살을 틀어쥐고 야단쳤다. “이 미친 놈아, 누가 미쳤어? 아가씨들과 개지랄하지 않았으면 어데서 더러운 성병까지 묻혀들이겠느냐? 뭐? 뻔뻔스레 날 미쳤다구 해?” 성호는 승호를 쏘아보았다. “이 자식, 또 본병이 발작했구나.” “아니, 무함이야.” “무함? 어째 숱한 사람들 앞에서 쫄딱 발가놔달래?” 승호는 머리도 들지 못한채 그저 욕지거리만 했다. “별, 미친 년 다 보겠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해?” 영희는 성호를 보고 넉두리를 했다. “삼촌이라면서? 이런 놈부터 잘 교육하세요.” 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더니 영희를 보고 “먼저 집으로 돌아가오.”라고 했다. 영희는 승호를 쏘아보면서 “저런 놈을 믿고 내 어떻게 살아요? 내 팔자 기구하기도 하지.” 하고 마지못해 나가버렸다. 성호는 승호를 쏘아보면서 물었다. “이실직고해라. 예화랑 데리고 놀아서 성병에 걸렸지?” 승호는 우물우물 얼버무렸다. “오해했어. 예화는 그런 애 아니야. 걔는 못된 애 돼서 한번도 그런 일 없다. 아마 목욕탕에 가서 때밀이를 해서 그랬는지 매독에 걸린 거 같애. 혹시 안마방 안마복에서 감염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 아가씨를 데리고 놀아서 성병을 묻혀왔다고 저렇게 생지랄이야. 막 갈라지잔다. 애 둘이나 두고 어떻게 갈라진다고 저러니? 갈라지지 않으면 일본으로 건너간단다. 에이, 씨원히 일본으로 가버렸으면 씨원할 거 같애. 복화도 일본에 혼자 두고 근심스러운데. 날마다 도도거리니 어떻게 살겠니?” 성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참말 답답하구나. 보나마나 네가 또 본병이 뛰쳐나왔지?”     승호는 평행선을 달리려고 애썼다. “아니야, 정말 억울하다. 이건 버선목이라고 뒤집어보이겠느냐? 쩍 하면 의심한다. 전번에 머리물감을 찾지 못하니 어쨌는지 아니? 웬 녀자를 가져다줬다고 야단친다. 또 저녁에 조금만 늦어 들어가도 웬 녀자와 술을 마셨는가 의심한다. 자기 곁으로 일주일만 가지 않아도 바깥에 나가 해결했는가고 묻는다. 부부간에 이렇게 의심하고서야 어떻게 사니?” 성호는 속으로 의심 많은 승호를 나무라면서도 한발 물러섰다. “글쎄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까. 이렇다 저렇다 할 순 없지. 허나 우리 집 안 전통을 깨는 일을 하자 말라. 그러는 날엔 절대 용서하지 않을테다.” 승호는 무겁게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다. 나는 새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하지만 묵은 때를 벗을 방법이 없는게 정말  안타갑다.” 그는 그래도 피는 속이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가정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래도 기댈 수 있는 든든한 기둥이 있어 다행이였다. 한참 후 승호는 참고 참았던 울분을 토했다. “넌 훈계할 자격이 있니? 숱한 고무들과 삼촌들이 조카란 걸 뻔히 알면서도 어쩜 그렇게 할 수 있니? 언제 한번 날 찾아와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준 적이 있니? 그러니 녀편네도 날 개처럼 취급하지.” 성호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죄송하구나. 혹시 너와 양아버지 사이가 벌어질가봐 찾아보지 못했다. 인사성이 밝지 못한 건 정말 우리 형제들 차실이야. 널리 량해해라. 이제부터 우린 숙질 간으로 새롭게 시작해보자.” 승호와 성호는 술맛이 다 떨어져 묵묵히 애꿎은 담배만 풀썩풀썩 피우다가 엉뚱한 말 한마디 했다. “에이유, 차라리 영희와 훌 갈라졌으면 좋겠다. 녀자 없으면 못 산다더냐? 차라리 로봇녀자와 살았으면 더 좋겠다. 내 하자는대로 하고 잔소리 없어 살 것 같겠는데 말이야.” 승호는 참말 답답했다. 허경옥과 경쟁해야 하는 마당에 집 안에 불이 달렸다. 영희가 련며칠 승호와 아웅다웅 싸우더니 어디론가 훌 사라져버렸다. 영희는 뒤늦게나마 병원에 갔다가 자기도 승호한테서 무서운 성병-매독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교수의사는 엄중하다면서 장기적으로 검진하면서 관찰해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이제껏 애들을 보고 가정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젠 더는 승호한테 아무런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승호가 잘 때 그저 도끼로 단매에 찍어죽이고 싶었다. 그녀는 세상에 머리를 들고 살 용기마저 나지 않았다. 고민 끝에 그녀는 온다간다는 말도 없이 아들을 데리고 어데론가 사라졌다. (어디로 갔을가? 일본으로 건너가 복화와 함께 살가? 한국으로 건너가 숨어서 살가?) 그제야 승호는 가정이 화목해야 만사가 흥성한다는 말이 가슴아프게 맞혀왔다. 승호는 성호의 지원을 받아 인터넷광고까지 했지만 아가씨들과 놀아대다나니 광고사업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결과 경옥과의 경쟁에서 지고 말았다. 안수련 리사장과 허철군 부서기 지지를 기반으로 한 경옥은 시내 모든 백화상점, 공장, 제3산업 분야의 광고를 싹쓸이를 하다싶이 하였다. 년말에 김범수 부사장은 광고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승호의 부과장 직무를 해임해버렸다. 대신 범송을 부과장으로 임명했다. 설상가상으로 승호는 성병이 날따라 악화돼갔다. 생식기가 뻘겋게 부어오르고 군데군데 가렵더니 요즘에는 집게로 물어뜯는 것처럼 띠끔띠끔 아파났다. 황급히 화장실에 가서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귀두에서 고름이 질질 흐르고 썩어 떨어지는 것 같지 않겠는가. 그는 황급히 병원 피부과에 달려갔다. 성병과가 따로 있었지만 녀의사가 검진하는데다가 어쩐지 성병과에 들어서기는 창피했다. 피부과의 남성교수의사는 승호의 생식기를 보고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어서 가서 화험해보오.” 오후에 화험결과가 나왔다. 교수는 깜짝 놀랐다. 큰 전염병환자나 만난 것처럼 마스크를 끼고 장갑까지 끼더니 기록부에 승호의 성명과 주소, 전화번호를 일일이 적어넣었다. 물론 승호는 창피해서 거짓말을 주어댔다. “입원해 치료해야 하오. 생명이 위험하오.” “예? 무슨 병인가요?” 의사는 상을 찡그리며 승호를 가까이 하기도 싫어했다. “잘 치료하면 몇해 살겠는지.” “예?” 승호는 더욱 놀랐다. 의사는 그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말했다. “당신은 에이즈에 걸렸소. 처자들도 검진하러 오라고 하오. 처자들한테도 전염됐을 가능성이 있소.” 순간 승호는 정신기둥이 와그르르 무너졌다. 허망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물앉고 말았다. 눈앞이 캄캄하고 머리가 뗑해났다. 의사가 황급히 전화로 120구급차를 불렀다. 이윽고 승호는 구급차에 실려 지역의 큰 병원에 들어갔다. 한참 후 승호는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그가 눈을 떠 둘러보니 쇠살창을 댄 새하얀 병실이 아니겠는가. 순식간에 화장터 문어귀에 실려온 듯한 기분이였다. 진짜 절망의 구렁텅이에 훌렁 빠져들어가는 강한 충격에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아득바득 기여오르자던 과장자리도 잃어버렸고 따뜻한 가정도 사랑도 풍비박산나고 말았다. 목숨마저 마가을 앙상한 나무초리에 매달려 간들거리는 누런 이파리로 되고 말았다. 그는 절망에 빠져 침대에 맥없이 쓰러져 신음했다. 썩어떨어나가는 육체의 고통과 악몽이 끝없이 기신기신 기여와 절망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 혼을 집게로 짚어놓으며 괴롭혔다. 벽화와 성호가 황급히 병실에 달려왔다. 병원 의사들은 감염될가봐 그들이 승호의 병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의 먼 발치에서 문안하게 했다. 벽화는 쇠살창 너머 “사형선고”를 받은 승호를 보는 순간 까무러쳤다. 성호가 황급히 부축했다. “아주머니, 정신 차리오.” 승호는 쇠살창을 부여잡고 부르짖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불효를 저질러서…흑흑흑.” 이윽고 승호는 성호의 날카로운 눈길을 피하면서 침대머리에 돌아가 서랍에서 종이쪼박과 원주필을 꺼내더니 뭐라고 써서 의사한테 주었다. 성호가 받아보니 이런 글이 쓰러진 쑥대처럼 누워 있었다.   내 병에 걸린 걸 양아버지와 범송한테 알리지 말라. 괜히 어머니와 선금이 치란받겠다. 난 죽어도 조상들 산소 옆에 갈 면목이 없게 됐다. 죽으면 화장해서 하늘에  날려보내라. 작은삼촌 말처럼 열 집 사위로 살기보다 한 녀자의 참된 남편으로 사는게 옳은 걸 그랬어. 인생은 일장춘몽이라. 아득바득 해도 모든 게  허사로구나.   그 피눈물나는 글발을 본 순간 성호는 눈물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안타까움에 젖은 눈길로 피골이 상접한 승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인간측면으로 승호를 염오하고 심지어 증오했다. 그러나 한피줄로서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처한 친조카가  한없이 가엾었다. “야, 이 못난 놈아, 어쩜 그런 짓을 해 몹쓸 병에 걸렸냐? 엉? 흑흑흑.” 승호는 쇠살창을 부여잡고 까무러친 어머니와 옆에서 부축하는 작은삼촌을 내다보면서 참회의 눈물을 찔끔찔끔 쏟아냈다. 후회가 세찬 파도처럼 충격하였다. 죄책감에 찬 눈물이 누르무레한 코물과 함께 초췌한 두 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223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 (52) 댓글:  조회:1270  추천:0  2020-07-07
                                          82. 효자와 쥐며느리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봄바람에 실려 연분홍빛 봄아가씨가 치마자락을 날리며 온 천지꽃산에 사뿐사뿐 날아내려와 방실방실 웃음지으며 노래하고 있었다.         연분홍 진달래가 만발하는 화창한 봄날에 종수는 “조선족렬사영웅 이야기집” 도서출간식을 열게 되였다. 종수는 양복까지 차려입고 도서출간식장 문어귀에서 하객들과 인사하며 반갑게 마중하고 있었다. 승호와 성호는 나란히 도서출간식장에 들어섰다. “축하한다, 종수.” 그들은 문어귀에서 종수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부조봉투를 건넸다. “오기만 해도 감사한데 뭘 가지고 왔니? 감사하다. ” 성호는 종수의 인사말을 받으면서 진심에 찬 인사말을 했다. “네가 민족의 력사기념비를 세우는데 우리도 한몫 해야지.” 대회장 저쪽에 은영과 최웅봉 전임부시장, 허경옥과 허철군 전임부서기, 안수련  리사장이 눈에 띄였다. 출간식에서 신문사 김범수 부사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축사를 드렸다. 그는 축사에서 광고부 주임 종수가 펼쳐낸 도서 “혁명렬사영웅이야기” 내용을 개괄적으로 소개하고 이 도서의 중대한 의의를 아주 높이 평가했다. 회의참가자들은 종수가 토비숙청을 간고하게 취재하던 이야기를 듣고 못내  찬탄을 금치 못했다. 종수는 출간식에서 열정에 넘쳐 연설했다. “…저는 우리 민족의 력사적전통을 세우기 위해 계속 붓을 날리겠습니다.” 성호는 종수야 말로 민족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느겼다. 그러나 자기는 여직껏 가정의 울타리에 얽매여 사회에 해놓은 일이 없다는 것을 재삼 느꼈다. 종수와 류려평은 연회석의 손님들한테 일일이 술을 권하면서 인사하였다. 이윽고 그들은 성호와 승호, 범송이 앉은 자리에 다가왔다. 종수는 동창생들을 둘러보면서 정색해 말했다. “지금 전국각지에 우후죽순마냥 일떠선 조선족로인협회는 우리 민족의 전통을 지키고 민족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데 중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 나는 이제 전국각지로 돌아다니면서 조선족로인협회를 취재해 신문에 내고  도서도 출간할 예산이다. 이 사업은 우리 조선족의 전통과 정신기둥을 세우는데 중대한 력사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술잔을 들며 뒤말을 이었다. “한가지 부탁하자. 너희들도 자기 조상들이 두만강을 건너와서 살아온 이야기를 정리해라. 이담 ‘조선족이민사’에 내자.” 성호와 승호는 서로 마주보면서 희죽이 웃었다. 승호는 성호를 보고 “난 집안 력사를 잘 몰라. 네나 써라. 이담 책을 낼 때 내 인쇄비나 대주지.” 하고 씨무룩이 웃었다. 성호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우리 집안 력사는 그래도 우리 둘이 함께  쓰는 게 옳은 것 같애.” 그때 김범수 부사장이 잔을 들고 다가왔다. “자, 이번에 리경리 덕분에 우리 리과장이 놀라운 광고실적을 쌓았소. 감사하오.” 성호는 잔을 들더니 승호한테 권했다. “다 리과장이 자기 능력으로 올린 성과입니다. 축하한다. 리과장!” “그래, 일이 잘 되면 아즈바이 좋고 조카 좋고 다 좋지. 허허허. 한잔 듭세나!” 승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맞잔을 들었다. 옛날부터 불효한 아들과 며느리는 “도리깨아들”, “쥐며느리”라고 욕했다. 종수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효자로 불리웠지만 류려평은 불효를 저질러 쥐며느리로 소문났다. 어느 날 밤, 려평은 잠자리에 들어서 또 푸념질했다. “어째, 동무네 엄마한테서 무슨 냄새 자꾸 납니다. 원, 더러워서 함께 밥을 먹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냄새 난다고 그러오? 그저 냄새, 냄새 하면서 못된 소릴” 종수는 듣기 싫어 훌 돌아누워버렸다. 이튿날 아침 종수는 혹시나 해 밥상에 마주 앉아 어머니한테서 정말 냄새나는가 슬그머니 맡아보았다. (진짜 무슨 냄새 있구나.) 아들은 며느리와는 판판 달랐다. 종수는 어머니 냄새를 꺼린 것이 아니라 옷을 제때에 빨아 입히지 않았는가고 살펴보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자주 빨아 입어 옷에서 나는 냄새 같지 않았다. 나중에 그는 어머니한테 비염이거나 위염 같은 병이 있지나 않는가고 근심했다. 그는 그날로 어머니를 모시고 큰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보였다. 의사는 확대경을 끼고 코부터 검사하더니 도리머리를 저었다. “비염이 엄중하구만. 아니, 이렇게 엄중할 때까지 치료하지 않고 뭘 했소?” 의사는 종수를 나무라는 눈치였다. 뒤이어 의사는 종수 어머니를 보고 CT촬영을 해보라고 했다. 종수는 어머니를 모시고 CT촬영실에 갔다. 한참 후 촬영결과를 보고 의사들이 모여서 쑤근거렸다. “아니, 이렇게 엄중할 때까지 어떻게 견뎠을가?” “글쎄 말이요. 모질 아팠겠는데.” 의사는 어머니와 종수를 번갈아보며 설명했다. “비염에 걸린지 꽤나 오랜 거 같은데 아주 엄중합구마. 이걸 보십시오. 비염이 심해서 고름이 비강으로부터 대뇌쪽으로 들어가 꽉 찼습니다. 좀 놔두면 대뇌가 손상받으면 큰 일 납니다. 인차 수술해야 됩니다.” 그때 언제 왔던지 려평이 끼여들었다. “아이구, 숱한 치료비 들겠구만. 비염을 키워서 수술비를 내게 됐잖고 뭡니까? 진짜 부스럼을 긁어서 혹을 만들었구만요.” 의사는 억이 막혀 입을 딱 벌리며 려평을 쏘아보았다. 종수는 난처해 려평을 한쪽으로 끌고 가서 나직이 말했다. “여보, 지금 수술비 문제요. 엄마 비염이 중하다는데.” 려평은 코웃음쳤다. “진짜 혹 떼러 왔다가 혹을 더 붙였네. 고까짓 비염이 뭐 그리 대단해 이럽니까? 약 몇알이면 될 걸 가지고.” 종수는 억이 막혀 더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는 의사한테 돌아와 토론조로 말했다. “어떻게 수술하지 않고 중약으로 치료하면 안됩니까?” 의사는 수술비 아까와 그러는가 여기고 “중약을 쓰면 수술비보다 더 듭니다. 씨원히 수술해 대뇌 쪽으로 들어간 고름을 말끔히 긁어내면 낫습니다.” 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종수는 의학서적을 두루 읽어보았기에 자기 의견을 고집했다. “비염도 염증인데 왜 중약으로 치료하지 못하겠습니까? 될 수 있으면 중약으로 치료해 주십시오.” 의사는 종수를 다른 눈길로 여겨보았다. 그때 려평이 또 끼여들었다. “개뿔도 모르면서 작작 헛소리치세요. 교수들이 하자는대로 수술할게지. 왜 비싼 중약을 쓰려고 덤벼? 흥! 돈이 썩어났다. 어우, 정말 늙은이들 때문에 못살겠다.” 종수는 듣기 거북해 퉁사발눈을 부라리며 버럭 고함쳤다. “그만 하지 못하겠소?” 의사도 손사래쳤다. “그만하십시오. 환자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수술하지 못하지. 먼저 중약으로 치료해봅시다.” 그 말에 바위처럼 떵떵 굳었던 종수의 얼굴근육이 좀 풀렸다. 려평은 두덜거리며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종수는 밸 같아서는 뒤통수를 한대 갈겨주고 싶었다. 몇달간 의사가 준 중약 10여곽을 복용하고 종수 어머니의 비염은 기적적으로 치료됐다. CT검사결과 놀랍게도 고름은 말끔히 사라지지 않았겠는가. 어느날 밤중에 종수가 답답해 성호한테 전화를 걸었다. “야,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니? 려평이 리혼하겠단다.” “뭐라고? 출간식 때만 해도 화기애애한 것 같더니. 웬 리혼 소리냐?” “출간식 때도 돈이 많이 들어갔다고 그날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야단쳤다. 에이구, 이게 어디 하루이틀에 생긴 일이냐?” “도대체 무슨 일이냐?” “우리 만나서 얘기하자.” 성호는 집 부근 조용한 다방에 가서 종수를 만났다. 종수는 커피를 후후 불면서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이 무겁고 신의를 지키는 성호를 믿고 집안의 불화를 쭉 이야기했다. 출간식을 한 날 류려평은 음식점에서 먹고 남은 돼지고기채며 소고기채며 물고기채며 한보따리 싸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종수는 식당에서 가져온 채로 한 상 차려 어머니를 대접했다. 종수의 어머니는 젊어서 청상과부로 나 혼자 아들딸  셋을 키우느라고 아글타글 고생했다. 그리하여 답답하기만 하면 소주를 마셨다. 종수는 식탁에서 소주까지 가져다 어머니 술잔에 부어올렸다. 류려평은 대뜸 얼굴이 청얼음장처럼 퍼르뎅뎅해났다. “에이유, 시아버지도 아니고 시어머니가 맨날 술만 마셔? 이 집안이 망하지 않게 생겼어?” 종수는 언짢아 한마디 했다. “그게 무슨 말이요? 우린 식당에서 잘 먹었지만 엄만 하나도 잡숫지 못하였소.  엄마 술 한잔 마셔서 우리 못살게 되오?” 류려평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당신도 문제죠. 맨날 글을 써서 해놓은게 뭔가요? 돈이 썩어났어. 책 한권  냈으면 됐지. 숱한 사람들을 불러다 퍼먹여서 뭘 해요?” 만수와 숙희는 보기 구차해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종수의 어머니는 아들을 말렸다. “얘, 사내란 숱한 사람들 앞에서 녀편네를 꾸짖어선 못 써.” 그러고나서 려평한테 머리를 돌렸다. “며느리, 아들이 책을 냈다니 기뻐서 한잔 마셨소. 이젠 다신 술을 마시지 않겠소. 며느리도 이젠 시집온지 20년이나 넘는데 조선족 례절과 풍속을 좀 알아야지. 남편이 바깥에서 무슨 일을 하면 돈이야 얼마 들든지 지지해야 하네. 남편 하는 일에 이러쿵저러쿵 해서야 되오?” 류려평은 단통 시어머니한테 손삿대질했다. “뭐라구? 오늘 시집식구들이 한 구들 들어앉아 날 포위공격하겠습니까? 아이유, 섧어서 못살겠다.” 그녀는 구들에 퍼더버리고 앉아 어린애처럼 대성통곡쳤다. 그때 류려평의 어머니가 집에 들어서다가 딸이 통곡치는 것을 보고 노발대발했다. “어째, 누구 신세에 시내에 들어와 이 집에서 살면서 남의 딸을 못살게 굴어? 왜  한구들 들어앉아 불쌍한 우리 딸을 울려?” 류려평은 어머니가 역성을 들자 더 서럽게 울면서 별소릴 다했다. “시집온지 20년이 돼도 시집에서 날 해준게 뭔가요? 금손목걸이를 물려줬습니까? 뭘 줬습니까? 우리 본가집 신세에 이 집에서 살면서 무슨 잔소리 그리 많은가요? 내 시집살이를 하면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누이와 시동생을 시집장가를 보냈으면 됐지. 뭐 모자라 이래요? 엉- 엉- 원, 원통해 죽겠다.” 류려평은 보기에는 눈이 어글어글하고 훤칠해 통쾌한 녀성 같았다. 그러나 훤칠한 체격과는 달리 치사하게 옹졸하고 꽁한 녀성이였다.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몇년이고 속에 꽁꽁 넣고 두고 두고 행악질하거나 승풀이를 했다. 류려평의 말에 의하면 결혼 때 보통 한족들은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몇만원씩 하는 금팔찌를 한쌍씩 물려준다고 했다. 종수네는 당시 한족들한테 그런 법이 있는 것도 몰랐다. 더구나 종수 어머니가 무슨 돈이 있어 금팔지를 사준단 말인가? 그런데도 류려평은 20여년이나 지난 이제야 그런 한족들의 풍속을 꺼내들고 시어머니가 사주지 못했다고 두덜거렸다. 종수 어머니는 이때까지 꾹 참다가 한미디 했다. “며느리, 대학문도 나오지 못한 주제에 기자신랑을 얻었으면 대단하지. 뭐가 모자라 이래오? 결혼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꿰들고 야단치면 어쩌오?” 려평의 어머니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사돈, 우리 딸이 대학을 못나왔다고 작작 업신여기오. 그 집 아들이 대학을 나왔다뿐이지. 우리 딸보다 로임을 더 타오? 이 집에 해놓은게 뭐 있는가?” 종수는 언짢았지만 가정불화가 생길가봐 어머니를 말렸다. “엄마, 이러지 맙소. 가시집 신세 많은데 참읍소.” 류려평은 이젠 조선족말을 꽤나 알아들었다. “누가 할 소릴 누가 하오? 내야 딸을 보고 이 집에 눌러 있는줄 알아라.” “뭐라오? 계속 악다구니질 하겠소?” “우리 본가집이 아니면 제따위 신문사에 들어가기나 하겠구나. 원, 배은망덕한 놈이라구야.” “그만두지 못해?!” 종수는 참다 못해 려평의 귀쌈을 찰싹 갈겼다. “왜 때려?!” 가시어머니는 종수한테 달려들어 머리를 마구 끄당기면서 행악질했다. 종수도 자존심이 상해 가시어머니를 활 밀쳐놓았다. “네놈이 감히 우리 엄마를 때려? 오늘 죽고 살고 해보자!” 려평은 어머니와 함께 달려들어 종수를 물고 허비고 때렸다. 종수는 이리저리 피했다. 보다못해 만수와 숙희가 싸움을 뜯어 말렸다. “옳지. 개종자들이 몽땅 달려들어? 아이고, 원통해라!” 류려평은 대성통곡치며 미친듯이 종수 일가에 덮쳐들어 허비고 뜯고 물어놓으면서 발악했다. 이 집은 진짜 초상난 집 같이 곡성이 울리고 쿵당쿵당 싸우는 소리 요란하게 들렸다. 종수는 동네 창피해 신을 꿰고 동네 구경군들 속을 빠져나갔다. 숙희와 만수도 엄마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종수의 어머니가 집에서 나가는데 종수는 저쪽 베란다 벽에 기대서서 어깨를 들먹이면서 울고 있지 않겠는가. 종수 어머니는 중간에서 시집살이를 하는 아들이 불쌍해 다신 오지 않기로 마음 먹고 딸 숙희네 집으로 가버렸다. “이게 무슨 꼴이야?” 종수는 이튿날에 단위에 나갈 면목이 없었다. 려평은 리혼하겠다고 신문사에까지 찾아가 리혼소개신을 떼달라고 한바탕 행패를 부렸다. 성호는 종수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보니 한심했다. 벙어리가 말 못하는 벙어리 고통을 안다고 그는 종수가 너무나도 불쌍했다. “한 시내에 맏이를 두고 둘째네 집으로 간다는 건 말도 안되지. 둘째며느리는 일본각시여서 한족며느리보다도 더 묘하게 놀아. 앞에서는 해쭉해쭉 웃으면서 두 손을 맞잡고 ‘아링아도(감사해요)~’, ‘곤니찌와(안녕하세요)?’ 해도 속으론 딴 궁리를 해.” “아니, 너네 만수는 왜 세살이나 이상인 일본녀자한테 장가갔니?” “만수 말만 해도 속이 타 재가루 될 지경이야. 그 놈 일본녀자는 기실 남한테 시집갔던 여자야.” “뭐라고?” “설상가상으로 우리 청화보다도 세살이나 이상인 딸애까지 달렸어.” “?!” 성호는 너무나도 한심해 입을 짝 벌렸다.  “그럼 진작 말려야지.” “언제 타이를 새나 있나? 저네끼리 정이 다 든 다음에야 어떻게 뜯어놓니? 너도 알지만 결혼날자도 다 잡아놓고 오라고 해서 가보니 일본녀자가 아니겠니? 그런데 과부년이고 계집애까지 달려있을줄은 몰랐지.” “그래, 만수도 그런 녀자인줄을 몰랐댔니?” “응. 실컷 정이 들고 결혼하자고 하니까. 그제야  실토정하더란다.” “에이구, 세상에 별난 일도 다 있구나.” “요시꼬는 우리 엄마한텐 잘해준다. 아마 과부로 남의 총각한테 들어섰으니까 그러겠지.” “그럼 너네 엄마 둘째네 집에 가 있을게지.” “안돼. 맏이를 두고 둘째네 집에 가면 뭐냐? 내 허물만 날 게 아니냐? 안돼. 만수네 집에 못가. 며느리네 본가집 부모가 와서 한데 살다싶이 해. 집두 아래웃층이여서 한집이나 다름없어. 우리 엄만 고향에 돌아겠다고 한다. 몇십년 살던 고향에 돌아가면 마을 사람들과도 자주 만나고 답답한 일이 있으면 속시원히 말할 데도 있어 좋단다.” 종수의 말소리는 점점 떨리고 있었다. 아마 아들 구실을 못한 죄책감이 마음 속에서 요동치고 있는 것 같았다. “너도 알지만 두만강변에 자리잡은 우리 고향 마을에 조선족들이 몇이 남아 있니? 쓰러지는 초가집에 엄마를 홀로 보냈다는 건 말도 안돼. 그런 쥐며느리와  리혼하면 리혼했지. 엄마를 절대 못 보내겠어. 난 절대 도리깨아들로 될 수 없어.” “야, 가정이 화목해야 만사대길이야. 우리 나이에 무슨 리혼이냐? 그러고서야 어찌 사회에서 머리를 들고 일하겠니?” 성호는 진정으로 충고했다. “어쩌겠니? 류려평을 슬슬 얼려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라.” 종수는 답답해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가시집 신세에 신문사에도 들어가고 새 집에서 살게 돼 기뻤어. 그런데 가시집 신세를 진게 큰 빚이야. 두고두고 신세진 일을 꿰들면서 나와 부모형제를 괴롭힌단 말이야. 네가 부러워. 어렵게 살더라도 자기 능력으로 사는게 제일이야.” 성호는 어떻게 하면 종수를 도울 수 있을가고 한참 궁리했다. 종수는 자포자기하는지 심드렁해했다. “가시어머니 사흘 건너 우리 집에 와서 잔소리 하는 건 괜찮아. 안해 인정머리 없는 건 절대 용서하지 못해.” 종수의 어머니는 간암말기여서 오래 앉을 것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한번은 불시에 어머니가 간혼미 왔는지 점적주사를 맞혀야 하였다. 그런데 류려평은 펄쩍 뛰였다. “그만둬요! 오래잖으면 사망하겠는데 쓸데 없이 자꾸 주사를 놔서 뭘 해?” “아니, 마지막으로 점적주사마저 놓지 않겠소? 여보, 우리 어머니 아프지 않게 진정제라도 좀 놔주오.” 그러나 류려평은 쌀쌀하게 거절했다. “난 몰라. 칠순 넘어 모셨으면 됐지. 병원에 가도 약을 주지 않아요. 늘그막에 무슨 약이 있는가? 간암에 걸려가지고도 술을 자꾸 마셨는데. 빨리 사망해야 곁사람도 시름놓지. 원, 새끼들을 다 잡아먹고야 북망산에 갈 작정인 모양이야. 흥!” 종수가 아무리 비난사정해도 류려평은 점적주사를 놔주려고 하지 않았다. “재간 있으면 병원에 가서 간호사를 데려다 놓으라고.” 류려평은 원래 위생학교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은행에 전근해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점적주사를 식은 죽 먹기로 놓을 수 있었다. (어쩌면 시어머니한테 주사마저 놓아주지 않는단 말인가?) 종수는 생각할수록 야속했다. (이럴줄 알았더라면 정치학부에 가지 말고 의학원에 갔을 걸. 그럼 마음껏 어머니한테 주사라도 놔드리겠는데.) 그는 이런 막연한 생각까지 하면서 여러 진료소를 돌아다니면서 주사를 놔달라고 비난사정을 했다. 그러나 하루에 고까짓 15원을 벌려고 눈보라를 무릅쓰고 오려는 간호사도  없었다. “고까짓걸 보고 누가 주사 놔줄러 가요? 왕복 택시비도 모자라요.” 그는 한 약방에 들러 어머니 약을 사면서 너무 답답해 혼자소리로 한탄했다. “어쩜 이 세상에 엄마한테 주사를 놔줄 간호사도 없단 말인가?” 약방의 쉰살 푼한 녀직원이 그의 효성에 감동돼 저으기 동정했다. “손님, 전화번호를 적어놓으세요. 제가 간호사를 련계해보지요.” 드디여 그녀가 어덴가 전화를 걸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며칠 후 한 간호사한테서 주사를 놔주겠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점적주사를 놓으려고 문을 뚝 떼고 들어서던 간호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류려평네 남편이 아닌가요?” “맞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위생학교 때 동창생인데요. 졸업한 후 한 병원에서 일했어요.” 그녀는 신을 벗고 구들에 올라서면서 이상해했다. “어째 려평을 보고 놔달라고 하지 않는가요?” 종수는 창피해 더 할 말을 잃었다. 위생학교를 졸업한 좋은 자기 녀편네를 두고 동창생을 불러다 어머니께 주사를 놔줘야 했으니 말이다. 진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닌가. 그는 허구픈 웃음을 웃으면서 속으로 중얼걸렸다. “여보세요. 그대의 동창생은 자기 생명을 희생해 시어머니를 구할 필요 없다고 주사를 놔주지 않소. 시어머니 오래 살면 새파란 자기부터 일찌기 죽는다오. 그대의 동창생은 이런 쥐며느리랍니다.” 한참 후 그는 녀편네가 팔릴가봐 슬쩍 에둘러댔다. “려평인 장춘에 출장가고 없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미안합니다.” 간호사는 혀를 홀랑 내둘렀다. “참말 효자군요. 약방에서 일하는 언니가 그러던데요. 면목모를 나그네 어찌나 효자인지 불쌍하다면서 주사를 놔주라고 하더구만요.” 종수는 려평의 동창생이 고마웠다. 쥐며느리 같은 안해가 미웠다. 창피해 머리를 들지도 못했다. 려평의 동창생은 련 보름동안이나 왕진을 다니면서 종수 어머니에게 정성껏 점적주사를 놔주었다. 나중에 수고비를 주니 그 중에서 백원짜리 한장을 빼서 되돌려주었다. “보태서 어머니한테 맛있는 음식이라도 대접해요.” “어쩜 동네 집 색시도 다 와서 주사를 놔주었는데 류려평이 시어머니한테마저 주사를 놔주지 않을 수 있느냐? 위생학교에서 의료기술과 인도주의를 배웠겠는데 어쩜 이럴 수 있어? 최저한도 인도주의도 없잖고 뭐냐? 이런 녀편네와 이날 이때까지 딸애를 보고 억지로 살았다. 도적놈은 살려줘도 인정을 버린 불효녀는 용서하지 못해. 자기를 낳아 길러준 어머니한테 림종에 주사마저 놓아주지 않는 년과 어떻게 사니? 하루라도 더 살지 못하겠다.” 종수는 눈물이 글썽해 눈시울을 붉혔다. 성호는 그제야 종수네 가정에 메꾸고 서로 뛰여넘기 힘든 깊은 골짜기가 있다는 것을 깊이 느끼면서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 종수는 성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늘 고충을 툭 털어놓으니 마음이 후련하구나.” “친구지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소통해야지.” 후에 성호가 알고 보니 종수네 집의 석자 두께나 되는 얼음은 하루이틀 사이에 언것이 아니였다. 원래 류려평과 시어머니는 가치와 소비 관념 그리고 생활습관 등이 판이하게 달라서 한 집에서 살기 힘들었다. 류려평은 비싸도 신선한 남새를 사다가 먹었다. 그러나 종수의 어머니는 돈이 아까워 한근에 20전씩 할 때에야 주글주글한 오이를 사다가 먹었다. 집 부근에 남새점이 있는데도 십여킬로메터나 떨어진 남새도매부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사오군 했다. 그러다가 한번은 눈이 내리는 날에 자전거를 타고 남새를 사러 가다가 내리막길에서 차에 치워 대퇴골골절이 와서 숱한 고생을 했다. 남새돈 몇푼 남으려다가 숱한 치료비를 팔고서도 운신하지 못해 입원치료를 받으면서 통증에 몇달 동안 시달린 적도 있었다. 류려평은 어쩌다가 가정에서 외식을 한 다음 음식점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찌꺼기라고  싸들고 오지 않았다. 그런데 종수의 어머니는 먹다가 남은 음식을 몽땅 비닐봉지에 가져다가 장국에 넣어 끓여 먹었다. 심지어 식당에서 먹다가 남은 국물까지 비닐봉지에 퍼서 가져왔다. 국물이 흘러내려 고급승용차가 어지러워진 건  둘째고 숱한 사람들 앞에서 기자 남편의 얼굴이 깎인다고 류려평은 얼굴을 찡그렸다. (고까짓 국물이 몇푼 간다고 저래? 돈을 버는 게 뭘 위해선가? 소비하지 않고 벌어서 뭘 해? 술도 항상 눅거리를 사다가 마셔. 그래서 심장 다 잘못 됐어. 정말 리해 안돼.) 류려평은 항상 속으로 불평을 토로하군 하였다. 더구나 한심한 것은 시어머니가 위생실에서 쓰는 위새종이마저 아까워서 헌 옷을 가위로 오리오리 베서 썼다. (얼마나 한심한가. 위생종이 몇푼 한다고 저러는가? 대변을 헌 천쪼각으로 닦으면 하신에 병균이 들어가면 어쩌는가? 치료비는 둘째고 사람이 얼마나 고생하겠는가.) 성호는 종수네 집 고부 사이 일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제주도에 갔을 때 가정집을 둘러본 일이 피뜩 떠올랐다. 제주도에서는 옛날부터 부모와 자식이 한 룡마루 아래에서 사는 풍속이 있었다. 가마는 따로 걸고 살림살이를 하기에 고부 사이에 말썽도 없어 좋았다. 부모는 자손들을 날마다 볼 수 있어 천륜지락을 누릴 수 있었고 자식들은 조석으로 부모를 보살펴드리면서 효성을 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얼마나 실제적이고 효성스러운 풍속인가. 그러나 그것은 먼날 이야기, 지금은 제주도에서도 그 미풍량속이 깨져서 부모자식들이 한 집에서 살지 않기 시작한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여기도 부모자식이 제주도처럼 한 집이 아니라도 한 시내에서 가까이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것은 너무나도 막연한 리상 같아 보였다. 성호는 밤중에 집에 돌아와서도 종수네 집 일이 근심되였다. 그의 귀에는 아직도 울분을 토하던 종수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했다. “그 랭혈동물은 항상 ‘누구 신세에 기자 됐는가?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욕하지 않겠니? 어쩌다가 저런 쥐며느리를 만나 개고생하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종수는 이런 한심한 말을 하였다. “성호야, 세상에 졸혼이란게 있다더라. 새파란 딸애를 두고 리혼하긴 그렇고. 졸혼을 해서 분가해 살 예산이야. 가정도 마스지 않고 딸한테도 체면이 서고. 핍박에 의해 량산에 오를 판이야. 별 수 있느냐?” “졸혼? 금시초문인데.” 성호는 상을 찌프렸다. “그래, 졸혼이야. 청화도 일본 류학을 갔지. 근심이 있느냐? 이젠 결혼생활은 졸업하고 내 밸대로 살고 싶다. 세집살이를 해도 제일간 아낙네 잔소리 듣지 않아 좋을 거 같다.” 성호는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야, 말도 안돼. 밥이랑 어떻게 해먹겠느냐? 빨래는 어쩌고.” 그러나 종수의 말은 아주 명랑했다. “밥 짓고 빨래 하느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겠지. 지금 전기밥가마랑 세탁기랑 전자동이기에 크게 근심할게 없어. 내 로임을 내 마음대로 쓰면서 이민사를 취재하러 다녀도 막는 사람이 없어 세상 좋을 것 같아. 허허허.” 종수의 소탈한 웃음소리를 들으면서도 성호는 종수 앞일이 답답해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어쩜 우리 친구들 일이 이다지도 잘 풀리지 않을가?)                               
222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51) 댓글:  조회:1259  추천:2  2020-06-19
                          81. 하늘과 땅의 겨룸       영옥은 만년에 아주 복을 받았다. 춘자를 비롯한 딸들은 모두 얼마만큼씩 부모의  생활비를 대면서 제마끔 효성을 다했다. 성숙은 한국에서 애나게 번 돈으로 농촌에서 할 일 없어 노는 셋째언니 은숙을 어머니의 보모로 “고용”했다. 그때부터 은숙은 어머니 집에 와서 주숙하면서 옷도 씻고 밥도 지어드리며 보살피게 되였다. 은자는 어머니가 쓰라고 안마기, 휄체어, 전자레인찌에 의자식요강까지 한국 량질제품으로 사서 종종 보냈다. 90고개를 넘은 영옥은 막내아들과 셋째딸의 보살핌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하여 기분이 좋아 항상 얼굴의 주름살이 다 펴지게 함박꽃웃음을 짓군 하였다. 정희 말처럼 “자녀들의 효성에 받들려 퇴직간부 할머니들보다도 더 호강스러운 생활을 하였다.” 어느 날 밤중에 정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편안히 계시죠?” “그래, 근심하지 마오. 지금 무슨 일을 하오?” “웃지 마세요. 때밀이를 해요.” “뭐? 정신 있소? 중학교 교원이 미국에 가서 때밀이를 한단 말이오?” “별 수 없죠. 미국에서 일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들어요. 제일 찾기 쉬운게 목욕탕에 가서 때밀이를 하는 건데요. 우리 고향의 유명한 개그맨들과 개그우먼들도 미국에 와서 저와 함께 때밀이를 하는데요. 좀 어지럽긴 하지만요. 딸라를 톡톡히  벌어요. 한달에 최저로 인민페로 2만원씩 벌어요. 팁까지 하면 3만원은 문제 없어요.” “뭐? 팁?” “때를 잘 밀어주면 팁을 주죠.” “당신 혹시 이성 때밀이나 마사지 하지 않소?” “아니. 여기 미국에선 손님들이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은 후에도 복무원한테 꼭꼭 팁 주고 가는데요.” “그럼 때밀이를 할게 있소? 팁 받지 못하더라도 음식점에 가서 일하오.” “음식점 일자리 찾기 쉽잖아요. 밤잠을 제대로 못 자고 힘들더라도 빨리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가고 파요.” “몸 조심하면서 일하오. 한나는 잘 보내오?” “예,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고 있어요. 전화 바꿀게요.” “아빠, 안녕? 저 근심 말아요.” “응, 그래. 퍽 보고 싶구나.” 성호는 저도 몰래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이제 대학 나오면 돈 많이 벌어 엄마, 아빠 잘 모실게요.” “에이구, 요 귀여운 것아. 외국에서 친구도 잘 친하고 몸 조심해라. 너 혹시 남자친구 있니?” “없어요. 호호호.” “얘, 친구고 뭐고 공부나 잘해라.” “엄마와 함께 있으니깐요. 근심하지 말아요. 빠이-빠이-” “빠이, 빠이.” 전화를 놓고 성호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며칠 후 밤중에 또 정희한테서 또 전화가 왔다. “여보, 큰 일 났어요.” “무슨 일이요?” “한나 글쎄 흑인 친하고 있어요.” 성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하필이면 왜 흑인이야? 한나 바꿔!” “예, 한나예요. 아빠 흑인이라고 인종차별하지 말아요. 흑인 얼마나 좋다고 그래요? 마음씨 착하고 돈도 많고 고급아빠트에 고급자가용도 있어요. 절 얼마나 예뻐한다고?”  “입 다물지 못해? 이전에 친하던 정훈은 어쩌고 흑인이야?” “걔와 헤여질가 해요.” “뭐라고? 좋은 조선족신랑감도 숱한데. 왜 하필 흑인이야? 당장 그만둬!” “톰은 박산데요. 저의 지도교수예요. 정말 좋은…” “개소릴 작작 쳐! 흑인놈한테 속지 말라. 이담 애를 낳아도 씨꺼먼 걸 낳으면 어쩌니? 생각만 해도 메스껍다! 당장 관계를 단절해라!”  “아버진 독재자. 딸의 말 듣지도 않고.” “닥쳐! 톰인지 톱인지 관계를 끊지 않아봐라! 부모와 딸 인연 끊을줄 알아라!” “아버지!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성호는 듣기도 싫어 핸드폰을 꺼버렸다. 그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진짜 절망에 빠졌다. 금방 어머니 모시는 일이 풀릴가 하니 딸이 일을 치지 않는가. 무남독녀 외동딸을 쥐면 부서질가봐 근심하고 놓으면 날아날가봐 근심하면서 금이야 옥이야 하고 키웠는데, 그 하나 밖에 없는 딸이 망태기를 캐지 않는가. (아, 진짜 종수 말처럼 가정이란 행복한 울타리면서도 옛날부터 황제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문제둥지야.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한나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소문나게 잘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감옥에 들어가는 바람에 정서가 저락되면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정희는 감옥에서 나오자 한나를 데리고 한국에 나갔다. 한나가 한국으로 날아건너 갈 때였다. 한나의 남자친구 정훈은 남방에 멀리 있어서 오지 못하고 대신 부모를 공항에까지 보내 바래게 했다. 좀 어색하긴 해도 고마웠다. 성호는 한나를 보고 정훈의 부모와 함께 기념으로 사진이나 찍으라고 했다. 한나는 주춤주춤 하다가 아버지 말대로 사진 한장 찍었다. (허, 그쪽 부모가 공항까지 나와 바래면서까지 성의를 보내는데 무슨 궁리해?) 온밤을 패면서 고민하던 성호는 한나가 학교로 갔을 때쯤 해서 미국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 당신 왜 딸을 잘 관리하지 못했소? 그게 뭐요? 흑인과 친하게 하다니?” “길게 말할 새 없는데요. 지금 한나는 그저 지도교사라고 호감이 있어 묻어다니는 정도지 죽자살자고 경계선을 넘은 건 아니예요. 말로는 아빠 어찌는가 떠보느라고 그랬다고 해요. 어쨌든 짐승 같은 깜둥이한테서 뜯어놓겠어요. 명문대만 졸업하면 중국에 보내든지 제가 알아서 할테니까. 너무 근심하지 마세요.” 성호가 뭐라고 욕하려고 하는데 전화가 뚝 끊켰다. 그는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중얼거렸다. “에이, 한나를 당장 돌아오라고 해야지. 미국에서 애를 베리겠다.” 그때 웃방에 있던 어머니와 은숙이 내려와 초조한 기색으로 성호를 마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니?” “아니, 아무 일도 없습니다.” 성호는 현관에 나가 신을 꿰자 바깥으로 바람결처럼 사라졌다. 요즘 신문사에 중대한 인사변동이 생겼다. 김범수 과장이 신문사 광고를 주관하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아래 부서의 인사변동은 밤을 자고나면 생길 수도 있었다. 성호는 신문사에서 자기를 또 장기쪽처럼 어디로 보낼가봐 궁금해났다. 따르릉, 따르릉. 성호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부사장 김범수였다. “사무실에 올라오오.” “예.” 성호는 전화기를 놓으면서 불안해났다. 그가 사장실에 들어서자 김범수 부사장은 자리를 권하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리 신문사는 작은 신문사이기에 광고수입을 보태야 운영할 수 있소. 때문에 광고사업은 우리 신문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오. 성호, 광고과 과장을 맡겠소?” “예? 믿어줘서 감사합니다.” 김범수 부사장은 차물을 권하면서 솔직히 말했다. “승호가 젤 먼저 어떨가 해서 찾아왔더군.” 성호는 대뜸 뜻밖의 말을 했다. “승호를 시키십시오. 승호는 정치도 잘해 사람을 잘 다스리는데다 광고도 잘합니다. 내보다 몇배 낫습니다.” “성호, 좀 책임지는 말을 하오.” 김범수 부사장은 아주 엄숙하게 성호를 바라보았다. “승호는 물론 능력이 있소. 그러나 허위적이고 탐욕스럽고 야심이 있소.” 김범수는 금방 승호가 성호를 헐뜯던 말을 할가하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성호는 마음씨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오. 하나면 하나. 거짓을 피울 사람이 아니지. 난 그걸 본게요. 광고사업은 경제사업이지만 믿음과 진실이 제일 중요하오. 다른 말을 하지 말고 광고과장을 맡소.” 성호가 또 입을 열려고 하자 김범수 부사장은 우쭐 일어나더니 성호의 손을 꽉 잡았다. “성호를 믿소. 광고사업을 협조해주오.” 성호는 사장실에서 나와 광고과로 들어가려다가 주춤 멈춰섰다. 그는 현관에서 서성거리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윽고 그는 택시를 불러타고 곧추 승호를 찾아 달려갔다. (자식, 마흔고개를 넘었는데도 온전한 직업도 없이 살아?) 그는 너무나도 허탈감에 빠졌다. 사실 성호는 전번에 순희네 안마원에서 아가씨를 시켜 뽑은 성호의 머리카락과 자기 머리카락을 뽑아 가지고 의과대학에 찾아가서 DNA검사를 의뢰했던 것이다. 비록 은영륜간사건을 수사할 때 채취한 승호의 DNA 서류는 공안국에 있었지만  공안국에 DNA 검사를마저 의뢰하고 싶지 않았다. 며칠 후 검사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DNA가 상당한 비률로 일치하지 않겠는가. 성호는 자기 눈을 믿기 어려워 검사결과서를 보고 또 보았다. (자식, 진짜 친조카란 말인가? 세상에 이런 일도 있어?) 성호는 원래 남의 발등을 밟고 사리를 도모하는 사람이 아니였다. 그는 신문사에 광고과장자리가 나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승호 직업을 해결해주려고 마음먹었다. 성호가 낮다란 단층세집에 찾아갔을 때 승호는 부엌에서 불을 때고 있었다. 승호는 흘끔 쳐다보더니 우쭐 일어났다. “어떻게 돼 이렇게 루추한 집에 다 찾아왔냐?” (신문사에 찾아갔다고 온 걸가?) 가난한 집에서는 손님이 싫다고 영희는 쌀독을 바가지로 빡빡 긁어댔다. “이런 세집에도 찾아오는 손님이 있군요.” 성호는 호주머니에서 200원을 꺼내 영희한테 주었다. “어쩌다 왔는데 빈 손으로 왔소.” 그제야 영희는 너무 한것 같아 혀를 홀랑 내밀었다. “나와 승호는 대학교 때부터 젤 친한 친구요.” 성호는 구들에 올라가 승호의 아들 광훈을 보고 “얘, 정말 멋지게 생겼구나.” 하고 볼을 매만지더니 호주머니에서 백원짜리 두장을 꺼내 광훈한테 주었다. 초중생인 광훈은 머리를 숙이며 받지 않았다. 성호가 재삼 “얘, 받아라. 학교에서 배고플 때 맛있는 걸 사먹어라.”라고 하며 돈을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승호는 성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 왔을가?) 성호는 승호 부처간을 둘러보면서 “딸애 이름은 뭐라던가?” 하고 물었다. “복화예요.” 영희가 나직이 대답했다. “오, 복화. 지금 어데 갔소?” “일본 고베대학에 갔어요.” 성호는 구들에 올라오는 승호를 건너다보면서 진심에찬 말을 했다. “내 너무 등한했구나. 복화가 일본에 건너간 것도 모르고. 후에 보자. 복화가 우리 한나와 나이 비슷하겠구나.” “우리 복화가 한 반년 지하인 거 같애.” 승호는 성호가 이전과는 완전히 달리 나오는 것을 눈치챘다. 이윽고 성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승호를 돌아보았다. “우리 잠간 나가 말할가?” “그러자.” 그들은 문 밖에 나서자 눈보라치는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벗어나갔다. 모래알 같은 눈보라가 어찌나 휘몰아치는지 하늘과 땅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이 자식, 과장자리 때문에 결투라도 벌이자는 건가? 삼촌이라 해도 라이벌은 라이벌이야. 권력과 금전 앞에선 양보 없어. 꼭  널 재끼고 말 거야. ) 승호는 허리를 굽히고 신끈부터 꽁꽁 동여맸다. 도적놈이 발등이 저리다고 순간 눈보라 휘몰아치는 엄동설한에 학교 뒤 소나무숲 속에서 결투하던 일이 번개처럼 번쩍 떠올랐다. 뜻밖에 성호는 그를 데리고 큰길 옆에 있는 한 다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승호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조용한 다방에서 차 한잔씩 달랑 놓고 마주 앉은 그들은 다른 때와는 달리 둘다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성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승호야, 너도 알잖니. 우리 신문사 광고과 과장자리가 비였어. 이 좋은 기회에 네가 광고과장이 돼야지. 김범수 부사장한테 금방 널 추천했어. 너도 계속 뛰여다니면서 공작해라.” 승호는 성호의 말을 반신반의했다. “네나 할 거지.” “금방 김사장도 날 하라고 말하더구나. 난 네가 적합하다고 했어.” 승호는 버럭 화를 냈다. “야, 그만둬라! 세살짜리 앤가 하니? 네가 진짜 나한테 과장자리를 양보해?!” “그래, 난 진심으로 양보하겠다.” “쳇, 해가 서산에서 뜨잖겠니?” 성호가 너무나도 진지한 태도여서 승호는 넌지시 물어보았다. “넌 내 밑에서 일할만 하니? 내 싫어서 항상 슬슬 피하더니.” “그래, 네 령도를 받을게. 이젠 널 싫어할 리유가 없어. 다 내 불찰이야. 네가 마흔고개를 넘도록 낮다란 세집에서 사는 걸 볼 때마다 가슴이 터질 듯해.” “지금 동정하니? 불쌍하지?” “그래. 진정으로 돕고 싶구나.” “호의는 받겠다. 그러나 자존심 꺾기우는 것이 싫구나. 동정과 양보를 받아서 과장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가련하냐?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야, 이 자식아, 지금 자존심을 세울 때냐?” 성호는 승호의 두 손을 잡고 진심을 터놓았다. “얘, 여직껏 너한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구나. 절대 네가 과장으로 승진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겠어. 광고회사에서 사직하고 나가겠어.” “승호야, 넌 내 조카야.” 성호는 몇백번이나 승호를 붙안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승호한테 부담이 될 것 같아 그만두었다. 또 억지로 승호에게서 “삼촌”이란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용케도 혀끝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꿀꺽 삼키군 했다. 승호도 저으기 감격해마지 않았다. “얘, 그게 무슨 말이냐? 정희와 한나가 미국에서 피나는 돈을 벌고 있는데.  직업을 버리고 어쩔 셈이냐? 고까짓 택시 두대를 가지고 어떻게 로모를 모시고 살려고 그래? 너도 온전한 집도 없잖니?”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좀 힘들 수 있겠지. 난 오래 전부터 홀로 사영광고회사를 차릴 예산이였어. 지금 개혁개방세월이 얼마나 좋니? 우린 마음껏 아이디어와 능력을 펼 수 있잖고 뭐냐?  이번 기회에 과장자리나 차지해라.” 그제야 승호는 성호의 진심을 믿게 되였다. 성호는 자리를 뜨면서 한가지 귀띔했다. " 해연을 너무 믿지 말라. 가정이 깨진 건 불쌍하지만 남을 잘 리용해먹고 물어먹는 녀자야.” 승호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성호의 두 손을 꽉 잡았다. 기실 승호도 안수련 총경리와 어머니 말을 듣고 진작 성호가 배다른 친삼촌이라는 것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오늘도 성호의 언행에서 친혈육의 정을 온몸으로 느낄수 있었다. 그는 어머니를 찾아가 울고불고 야단쳤다. “도대체 아버진 누굽니까? 성호 큰형님입니까? 아닙니까?” “얘, 무슨 정신나간 소리냐? 네 아버진 공안국에 있잖니?” 승호는 어머니 두 손을 붙잡고 똑바로 마주보았다. “엄마, 이젠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친아버진 어데 있습니까?” 벽화는 더는 속일 수 없어 사실대로 쭉 말해주었다. “어머니, 날 데리고 성호 아버지 병문안을 두번이나 갈 때부터 이상한 눈치를 챘습니다. 아버지 어데 있습니까. 오늘 가봅시다.” 벽화는 할 수 없이 승호와 함께 택시를 타고 태평거촌 서쪽에 있는 천지꽃산 기슭으로 달려갔다. 산중턱에는 눈덮인 낮다란 산소 몇개가 누워 있고 산소 주위에는 눈보라 속에 앙상한 진달래나무가 몸부림치고 있었다. 모진 추위에도, 눈풍설에도 진달래는 눈무덤을 찌르고 몸부림치면서 꼿꼿이 서 있었다. 벽화는 눈보라에 뒤덮인 산소를 가리켰다. “아래쪽 산소가 네 아버지 산소야.” 이전에 성호한테 놀라왔다가 마구 밟고 올라섰던 그 산소가 아닌가! “아, 아버지!” 승호는 미친듯이 고함치면서 무릎까지 펑펑 빠지는 눈에 마구 넘어지며 아버지 산소로 달려갔다. 그는 눈덮인 산소를 마구 끌어안고 엎드려 대성통곡쳤다. “아! 아버지! 우리 아버지, 어쩜 내 세상에 나오는 것도 보지 못하고 그렇게도 총망히 세상을 떠났습니까? 아버지, 흐흐흑, 흑흑, 이 불효자식을 죽여주옵소. 쉰고개를 넘어서야 이제야 아버지 산소를 찾아왔습니다. 그간 얼마나 외롭게 누워 있었습니까? 흑흑흑, 아버지!” 벽화와 승호는 눈풍설이 이는 산소에 제물을 차려놓고 큰절을 아홉번 올렸다. 벽화는 산소를 끌어안고 우는 승호의 잔등을 다독였다. “얘야, 웃쪽 산소는 친할아버지 산소야.” 승호는 천천히 일어나 흐느끼면서 할아버지 산소에 제물을 차리고 큰절을 꾸벅꾸벅 올렸다. “할아버지, 이제야 인사를 드려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어쩜 그렇게 무정합니까? 생전에 큰손자를 알아봤으면 ‘손자’라고 한마디라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성호가 친삼촌인지도 모르고 이제까지 질투하고 싸웠습니다. 절 용서하겠습니까? 이제부터라도 서로 도우면서 화목하게 살겠습니다. 시름 푹 놓고 우리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지켜봐주십시오.” 승호는 추위도 잊고 싸리나무가지를 꺾어들고 증조부와 할아버지, 아버지 산소의 눈을 싹 쓸어냈다. 그는 삭정이를 주어다가 해가 져가는 산소 옆에 우등불까지 피워놓고 오래도록 지켰다… 이튿날 승호는 성호와 함께 다방에서 취토록 술을 마시고 헤여졌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성호한테 죄송한 감이 들어 머리를 숙였다. 그는 광고과장을 하려고 며칠 전에 김범수 부사장을 찾아가 성호를 형편없이 헐뜯었던 것이다. “성호는 능력이 없고 자사자리한 리기주의자입니다. 집단주의 정신이 없습니다. 제 집 택시를 경영하면서 단위 광고수입을 하나도 올리지 못했습니다. 무법천지입니다. 국가 광고법을 어기고 술광고를 했습니다 …” 그는 며칠 전에 하늘과 땅의 겨룸이나 하려고 성호가 집으로 찾아왔는가 했다. 그런데 성호는 과장자리를 양보하고 파도가 세찬 시장경제의 바다에 뛰여들려고 하지 않았던가. (분명 친조카라는 걸 눈치챘구나. 이번에도 내가 졌어. 성호는 차원이 달라. 진짜 친삼촌다웠어. 옛말이 틀리잖아. 피는 물보다 짙은 법이지.) 승호는 주먹으로 가슴을 꽝꽝 쳤다. (이때까지 친삼촌한테 무슨 짓을 했어? 나도 사람이냐? 아, 이 죽일 놈!) 그는 량심의 가책을 느끼며 머리를 숙였다. 승호는 극도로 모순된 심리상태에 빠졌다. 친삼촌을 상대로 권력과 금전싸움을 하기는 그런데 권력과 금전을 가질 기회는 그리 많지 않잖은가. 바라오를  챤스를 놓치면 또 언제 그런 챤스 올지 모를 판이였다. 그러나 삼촌은 삼촌이 아닌가. 그는 나직이 불러보았다. “성호, 삼촌!” 그는 주먹으로 큰 길 옆의 가로수를 꽝꽝 쳤다. 눈가루가 우스스 쏟아져 승호를 눈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며칠 후 성호는 진짜 신문사에 사직서를 냈다. 김범수 부사장은 실망해 성호를 불러놓고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어쩜 그렇게 낮은 돌을 밟소? 과외로 택시나 하면 됐지. 왜 파도 사나운 바다에 뛰여들려 하오? 시장경제의 망망한 바다는 후회의 눈물을 보살피지 않소. 다시 잘 고려해보오.” 그러나 성호의 대답은 단호했다. “반복적으로 고민해보았습니다. 그간 김사장의 지도와 관심 감사합니다. 승호를 잘 도와주십시오.” 김범수 부사장은 몇번이고 성호한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전번에 날 찾아와 저를 뭐라고 헐뜯었는지 아오? 인정을 버린 승호를 생각해 뭘 하오? 재삼 충고하오. 승호한테 양보하지 마오.” 그러나 동창간에 리간을 놀아 싸움이라도 시킬가봐 그만두었다. “성호,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피보다 진한 건 인정이란 걸 아오? 재삼 충고하오. 기회를 놓치지 마오.” 그러나 성호의 마음은 이미 철석처럼 굳어져 용빼는 수가 없었다. 범수는 과장후보가 없어 며칠이고 고민하다가 신문사 사회부 주임으로 일하는 종수를 떠올렸다. 그런데 종수는 광고과 과장을 하면 어떤가는 김범수 부사장의 말을 듣고 단마디로 거절했다. “저는 사회문제를 다루는 글을 쓰겠습니다. 돈을 버는 일엔 흥취없습니다.” “시장경제시대에 광고사업은 우리 신문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업이오. 남들은 하지 못해 달아다니는데 왜 이 좋은 기회를 놓치려 하오? 우리 신문사에서 광고부 중임을 맡을 인선은 제 밖에 없소.” “왜 성호를 시키지 않습니까?” “신문사에서 나가겠다오.” 종수는 깜짝 놀랐다. “예? 무슨 헛된 궁릴!” 김범수 부사장은 끈질기게 권고했다. “과외로 신문기사를 쓰면 안되오? 신문사 광고사업의 수요에 복종하오.” 종수는 도리머리를 홰해 저었다. “죽어도 못하겠습니다.” 며칠 후 신문사에서는 광고과 과장으로 종수를 임명하고 부과장에 승호를 임명했다. 해연은 승호 밑에서 일하기 싫어 자리를 뜨려고 방황했다. 승호도 해연을 싫어했다. 굉팔을 수사할 때 해연은 성호를 물어먹은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한번 배신한 해연은 열번도 배신할 것이라고 여겼다. 해연은 승호를 찾아와 아양을 떨었다. “아이유, 리과장, 과장으로 승진한 걸 축하해요. 우린 필경 오래동안 한 단위에서 일한 전우가 아니고 뭔가요? 제가 출납을 하면 손이 척척 맞을 거예요. 잘 부탁드려요.” 그러나 승호는 쓴 외 보듯 했다. 해연은 자기 무안에 빠져 머리를 숙이고 나가버렸다. 승호는 매부 범송을 데려다 부과장으로 추천하고 감옥에서 나온 후 바깥에서 마구 딩굴던 춘란을 출납으로 추천했다. 그외에 설계실에 색마 영호까지 추천했다. (영호는 인물화를 그리는 척하면서 연화를 처참히 짓밟기까지 한 색마가 아닌가.) 그러나 승호는 생활문제는 외면한 채 실무수준에만 눈길을 돌렸다. 김범수 부사장은 어리무던한 분이여서 승호가 추천한 인사사항을 일일이 지도부에 제기해 통과시켰다. 광고과에 승호의 사람들로 꽉 찼기에 종수는 기실 허수아비로 되였고 승호가 실세로 돼버렸다. 종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좋다고 광고업무는 승호한테 맡기고 시간을 짜내 조선족영웅들을 취재하러 돌아다녔다. 성호는 신문사 광고과 과장 사무실에 가서 승호를 조용히 만났다. “영호는 숱한 처녀들의 정조를 짓밟은 전과가 있어. 영호만은 초빙하지 말라.” 그러나 승호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얘, 지금 무슨 땐데 아직도 정조, 정조야? 이젠 그만 말해라. 귀에 못이 박히겠다.” 성호는 진심으로 충고했다. “처녀들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긴 정조를 마구 짓밟은 량심 없는 자가 무슨 짓인들 못하겠니? 재간만 보지 말고 사람의 속도 잘 보고 초빙해라.” 승호는 자기도 찔리는데 있어 화를 벌컥 냈다. “됐다, 됐어. 내 일에 작작 참견하고 네 광고회사나 잘 차려라.” 입을 딱 벌리고 서 있는 성호를 보고 승호는 삼촌한테 너무한 것 같아 어조를 부드럽게 고쳤다. “광고회사 잘 되고 있니?” 성호는 더 말했자 잔소리 같아 자리를 뜨고 말았다. 며칠 후 백화상점 동쪽 큰 길 옆에 “백두산인터넷광고회사”라는 간판이 척 내걸렸다. 광고회사 경리는 성호였다. 사영광고회사였지만 부동산중개까지 겸해하다나니 경영규모가 꽤나 커졌다. 연화를 비롯한 끌끌한 청년직원 10여명이 들어왔다. 며칠 후 범송의 소개로 예화도 모델로 들어오려고 찾아왔다. “리경리, 최범송선생이 보내서 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예화는 두 손을 맞잡고 허리를 굽히며 곱도록 인사했다. 기실 경영규모도 그리 크지 않기에 예화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별로 범송이 상업간첩이라도 보내지 않았는가해서 주저됐다. “어째 범송이네 국영광고회사에 가서 일하지 못하오? 저네 선생도 있고 얼마나 좋소?” “대학문도 나오지 못한 제가 어찌 국영회사에 들어가겠어요?” 성호 얼굴이 대뜸 어두워졌다. 그제야 실수한 것을 눈치챈 예화는 혀를 홀랑 내밀었다. “최선생님과 리과장은 리경리네 광고회사에서 배울게 많다더군요. 여기서 리경리님을 모시고 열심히 배우고 싶어요.” “좋소. 우리 손잡고 잘해보기오.” 성호는 동창생 범송의 낯을 봐서 일단 받아주었다. 후에 보니 예화는 아침 일찍이 출근해서 팔을 걷고 땀을 뚝뚝 떨구면서 사무실 청소부터 척 해놓고서는 컴퓨터에 마주 앉아 아주 부지런히 일했다. 시내 아빠트구역을 참빗질하면서 팔집딱지를 붙인 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부동산매매광고계약을 맺었다. 며칠 지나서 해연까지도 이 광고회사에 들어오려고 찾아왔다. “리경리, 제가 출납원을 하면 안되겠어요?” 성호는 퉁명스레 “우리 사영기업에 어찌 국영기업 직원을 다 쓰겠소? 황차 저는 리승호 과장네 직원이 아니고 뭐요?”라고 했다. 그녀는 김범수와 승호를 헐뜯으면 받아주겠는가 했던 모양이였다. “승호 과장 말은 하지도 마오. 어디 그 량심없는 놈 밑에서 벌벌 기겠소? 어쩜 신문사에 그렇게도 사람이 없소. 세상에 둘도 없는 량심없고 허위적인 색마를 다 과장을 다 시킨다오? 구을러온 돌이 배긴 돌을 뺀다더니 부과장을 하자마자 김범수라는 나그네와 쑥덕거려 내 출납원자리를 빼앗아내지 않겠소…” 성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하오.” 뒤이어 사무상의 서류를 훌훌 거뒀다. 무언의 축객령이다. 해연은 성호의 랭랭한 태도에 무안해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녀는 허경옥 총경리의 간판광고회사에 갈가고도 궁리하다가 그만두었다. 승호와 성호 그리고 허경옥의 광고회사가 이제부터 곧 하늘과 땅의 겨룸을 하게 됐다. 성호는 선의적인 경쟁을 벌리면서도 종수와 승호가 광고과를 이끌어 뛰여난 성과를 거둘 것을 바랐다. 그는 승호를 선녀음식점에 청했다. “혹시 몰카로 우릴 찍지 않을가?” 승호는 다른 음식점으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성호는 기어이 선녀음식점으로 끌고 들어갔다. “자식, 무슨 죄나 졌니?” 승호는 별 수 없이 끌려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참 오래간만에 왔구만요.” 성호는 반갑게 맞는 선화한테 인사했다. “전번에 굉팔의 일 고맙소.” 선화는 힐끔 승호를 째려보더니 성호의 팔을 잡고 한쪽으로 끌고 갔다. “다신 그 일을 외우지 마오. 손님들이 알면 여길 오겠소?” “알았소. 쟤는 괜찮소.” “그래도 그렇지.” 성호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승호를 데리고 제일 안방으로 들어가 마주 앉았다. “또 과장이느라고 다른 처녀들을 해쳐봐라. 용서하지 않을테야.” 성호가 조용한 자리에 앉자마자 엄포부터 놓았다. 승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쳇, 검정개 돼지 흉을 한다고 해라. 넌 한번도 련애를 하지 않았느냐?) 이전 같았으면 승호는 이러루하게 반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동갑삼촌은 련애를 해도 결혼을 념두에 두고 손 한번 쥐여보지 못한 “멍청이”라는 것을 아는 터라 그만두었다. 성호는 승호를 똑바로 마주 보면서 입을 열었다. “한가지 궁금한게 있다.” “뭔데?” “네 그걸 누가 잘라버렸어?” 승호는 창피해 시끄러워했다. “전번에 송파네 깡패무리를 심문해도 걔들은 죽어도 자기네 한 짓이 아니라고 하더라.” 승호는 그 일을 돌이키기도 싫었다. 그러나 친삼촌 앞인지라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목소리로 진실을 털어놓았다. “너만 알고 있어라. 은영이 한 짓이야.” “엉?!” 성호는 화들짝 놀랐다. 그는 자기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그는 허리를 쭉 펴고 승호를 똑바로 쏘아보다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은영이 널 죽자 살자 사랑했는데 그럴 수 있냐?” 승호는 머리를 숙이면서 목구멍으로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떠듬떠듬 말했다. “깡패들한테 당하는 날 밤이였지..."       그날 밤에 승호는 금방 홍희도 자기 때문에 자살했지 두루 해 은영과 성생활을 할 기분이 없었다. 그런데 그 날 밤엔 은영이 주동적으로 그를 불러 대학교 뒤산 소나무 숲 속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윽고 그들은 항상 은밀히 청춘의 육체를 불태우던 소나무 숲 속의 웅덩이 앞에 이르렀다. 어둠 속에선 공포의 눈길이 면밀히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착잡한 가운데 저도 몰래 둘다 웅덩이에 예전처럼 기계적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승호는 은영의 몸에 손도 대지 않았다.    "뭘 해? 제꺽 일을 끝내고 가자."   은영은 이전과는 달리 자기 손으로 저고리를 벗고 치마를 걷어올리고 팬티까지 쭉 벗어내쳤다. "오늘 왜 이래? 우두커니 앉아 꾸물거리긴? 어서." 은영은 승호 입에 키스를 안기더니 손을 쥐여 자기 가슴에 가져갔다. 그제야 승호는 본능적으로 성욕이 부글부글 괴여올라 은영의 몸을 와락 덮쳤다. 은영은 이를 옥물고 눈을 딱 감고 자기 가슴 우로 구렝이처럼 기여다니며 오르내리는 승호의 손을 참아냈다. 그녀는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아 신음소리를 토해내며옹송그렸다. 승호는 그녀의 신음소리가 명령이기라도 한듯이 갈범처럼 으르렁거리며 열김을 토해냈다....      한참 후 승호는 신음소리를 내며 은영의 몸 위에서 맥없이 굴러내려 너부러지더니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내 닦아줄게." "응, 고마워." 승호는 눈을 지그시 감고 향수에 푹 젖어 있었다.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마 위생지를 꺼내는 것 같았다. "앗!" 승호는 아츠러운 비명소리를 냈다. 그것이 때끔 아파나 참을 수 없었다. "네 무슨 짓을 했니? 아갸- 아갸!" 어둠 속에서 은영이 부르짖었다. "네놈한테 정조를 잃은 홍희와 경옥을 대신해 복수했다! 네놈 평생 병신으로 살아야 해!" 승호는 아파 은영을 어쩌지도 못하고 그걸 붙안고 웅덩이에서 맴돌아쳤다.    "년놈들 잘 놀아대는구나!"    그때 어둠 속에서 강도들이 우르르 야수처럼 덥쳐들었다. 코수염쟁이가 웅덩이에서 뛰쳐나온 승호를 차넘겼다. 승호는 발길로 코수염쟁이를 차넘기며 벌떡 일어섰다. 승호는 맨주먹으로 강도들과 싸우며 은영한테 다급하게 소리쳤다. "빨리 달아나라!" 은영은 웅덩이에서 기여나와 날래게 소나무 숲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하이칼라한테 걷어채워 넘어갔다. 하이칼라는 은영의 머리를 주먹으로 떡메질하듯 떵떵 팼다. 은영은 정신잃고 푹 꼬꾸라졌다. 강도는 은영을  줄줄 끌고 와 웅덩이에 처넣었다. 그때 승호는 코수염쟁이와 다른 강도놈한테 제압돼 소나무에  결박돼 있었다. 강도 놈들은 웅덩이에 뛰여들어 결박된 승호 코앞에서 정신잃은 은영을 짐승처럼 륜간하기 시작하였다... "은영을 지켜주지 못해 죄송해. 헤이, 은영이 닦아주겠다고 해놓고 면도칼날로 그걸 잘라버릴줄을 누가 알았겠니? 무덤까지 가지고 갈 일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걔는 나한테 복수했어. 홍희가 자살하고 자기까지 배신당한 걸 복수한 거야.” “어째 공안국에 신고하지 않았어? 그땐 네 아버지가 수사과 과장인데.” 승호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은영을 어떻게 고발하니? 걔는 법적으로 처분받게 되고 나도 병신이 됐다고 소문이 자자하겠는데. 그럼 내나 은영이나 어떻게 사회에서 머리를 들고 사니?” 그는 침울한 기색으로 뒤말을 이었다. “나도 은영과 경옥이 로처녀로 늙는 걸 보면 죄책감에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그후부터 난 진짜 영희 내놓고 다른 녀자를 좋아한 적이 없다. 옛날 백화상점 구입과 과장 할 때야. 한번은 조과장을 따라 술 마시러 갔다가 선희가 내 무릎에 올라앉지 않겠니? 그래도 난 선희를 다치지 않았어. 나도 인간이야. 칠정륙욕이 있다. 입 안에 들어온 야들야들한 비게덩이를 먹지 않는다는게 쉬운 일이냐? 난 사람이 되려고 20여년 동안 아득바득 애써왔다. 제발 이젠 옛날 승호로 보지 말아달라. 나도 새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에서 인간대접을 받으면서 살고 싶다.” 승호는 눈물까지 줄줄 흘리며 진정을 토로했다. 성호는 승호를 꽉 껴안더니 잔등을 다독여주었다. “승호야, 고맙다. 이제야 사람이 돼가는구나.” 그들은 오래도록 서로 꽉 포옹하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어느 일요일 오전에 전화가 걸려왔다. “리경리, 안녕하세요?” “아니, 귀에 익은 목소린데. 연화요?” “연화? 호호호. 맞춰봐요. 누군가?” “아니, 은영이, 최혜영 과장 아니오?” 성호는 섬찍해났다. 승호의 그것마저 베버린 악착스런 미녀사 아닌가. “예- 시간 좀 낼 수 있어요?” 성호는 심드렁해졌다. “되오. 무슨 일이 있소?” “만나 얘기하지요.” 성호는 거절할 수 없어 어쩌는가 보자고 막무가내로 대답했다. “최과장이 부르면야 가야지.” 이윽고 성호는 모교 대문 어귀에서 은영을 만났다. 은영은 제복 바람이 아니라 시체녀성동복으로 갈아입고 손에는 스케트 두개  들고 있었다. (아니, 저게 내가 그렇게도 사랑하던 은영이란 말인가?) 성호는 자기 눈을 믿기 어려웠다. 은영은 학창시절과는 달리 수척하고 눈귀에 주름살이 가기  시작하였고 눈에는 수심의 어두운 그림자가 얼른거리고 있지 않겠는가. 은영이 먼저 가냘프게 작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정희 언니랑 미국에 갔다더니 잘 보내세요?” “잘 보내오. 돈 버느라고 좀 고생하는 모양입데.” 성호는 은영의 손을 잡아주고나서 스케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니, 이건 어째 가지고 왔소?” “20여년만에 리선생과 스케트를 타고 싶어서 가지고 왔어요. 발에 맞겠는지 모르겠어요.” “오늘 신나게 타보기요.” 성호는 스케트를 받아들고 대학교 빙장으로 올라갔다. 매화꽃이 핀 소나무들이 빙 둘러선 빙장에서는 대학생들이 날듯이 활개치면서 스케트를 타며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이 빙장은 무심하게 스쳐지나갈 빙장이 아니였다. 이 빙장에서 성호는 우연히 은영을 만나 짝사랑을 하게 되지 않았던가. 이 빙장은 얼마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빙장인가. 그 얼마나 성호의 마음을 울렁이게 만들었던 빙장인가.   이 빙장은 그 얼마나 성호와 은영의 대학시절을 황홀하게 장식했던 활무대였던가. 성호는 옛날의 추억에 푹 잠기자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는 울렁이는 가슴을 가까스로 지지누르며 은영을 따라 스케트를 신었다. 놀랍게도 발에 딱 맞았다. (어쩜 딱 맞을 스케트를 사왔을가?) 그들은 말없이 묵묵히 스케트를 타고 빙장에 스적스적 들어섰다. 20여년이 지나 쉰고개를 당장 오르게 됐지만 그들은 옛날 학창시절처럼 쌍쌍이 은제비마냥 빙장을 나래쳤다. 은영은 옛날처럼 빨간 스케트복을 입지 않고 어두운 까지색스케트복을 입었다. 하지만 진짜 20여년 전 때보다 못잖게 독수리처럼 훨훨 나래쳤다. 아직도 당년의 청춘시절처럼 탄력있는 몸매가 생기발랄하고 날렵했다. 성호는 은영을 따라 쌍쌍이 빙장을 나래치면서 옛날 이 빙장에서 처음 그녀를 만나 스케트를 타던 옛추억에 빠졌다. 또 자연히 그녀를 짝사랑하던 순간, 순간을 떠올리자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얼마나 예뻤던 녀자인가.) 한참 후 은영은 성호 앞에 날아와 멈춰섰다. 그녀는 풍만한 가슴을 할딱거리면서 “그만 타지요.” 하고 스케트를 벗으러 스적스적 테 밖으로 미끌어져갔다. “점심을 사줄게.” 성호의 말에 은영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요. 오늘 스케트를 타고나니 기분 좋아요. 옛날 스케트 타던 일도 떠올라 즐거웠어요. 원래 오빠 보고 밥 사달라고 할 생각이였는데요…” (오빠?) 성호가 놀랍고도 기뻐서 싱글벙글했다. 은영은 스케트를 벗어 둘러메고 생글방글 웃어보였다. “리경리를 계속 오빠라고 불러도 될가요?” 성호는 마음이 아팠다. (오빠 한마디로 내가 그렇게 열령히 짝사랑한 것에 보답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어림도 없어.) “되구말구. 나도 최과장을 은영이라고 불러도 되오?” 은영은 대뜸 낯색이 변했다. “안돼요. 옛날 은영은 이미 죽은지 오래요. 그저 혜영이라고 불러요.” 은영은 애써 최과장으로 되려고 엄숙한 표정을 지으려고 모지름을 썼다. 성호는 진정을 내비쳤다. “어쩐지 은영이라고 부르면 더 허물이 없고 친절할 것 같소.” 은영은 눈이 하얗게 덮인 먼 동산을 배경으로 성호를 쳐다보면서 정색하였다. “옛날 은영은 참된 사랑인지 허위적인 릉욕인지 분간하지도 못하고 헤덤볐죠.   그런 철부지 은영이 지금 혜영보다 나은가요?” 그녀는 성호한테 손을 내밀었다. “세월이 흘러가도 오빤 좋은 사람이예요. 우리 오누이로 지내면 안되겠어요?” 성호는 감전이나 한듯이 깜짝 놀랐다. “남녀간에는 사랑을 내놓고 순수한 오누이 우정은 없는가요?” 성호는 어정쩡해 있다가 그제야 혜영의 손을 굳게 잡았다. “그래, 있구 말구. 우린 영원한 오누이요, 친구이지. 허허허.” “오빠, 우리 모교에 다시 오지 말자요. 다음엔 오빠네 고향 천지꽃산에 가서 스키 타면 어때요?” 성호는 은영의 놀라운 제안에 눈마저 치켜떴다. “거긴 스키장도 없는데.” 은영은 개의치 않는 어조로 말했다. “괜찮아요. 어데나 스키장이 원래부터 있었는가요? 스키를 타러 다니노라면 새 스키장이 만들어질 거 아닌가요?” 그 의미심장한 말에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은영과 갈라진 후 성호는 눈 덮인 학교 뒤산의 소나무숲을 쳐다보았다. 아마 은영은 모교에 와 스케트를 타다가 소나무밭에서 있은 비극을 떠올리게 돼 불쾌해진 것 같았다.  그러지 않으면 부랴부랴 스케트를 벗어 메고 가버릴 수 있겠는가. 성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은영은 청춘시절 오매에도 그리던 련인이 아니였던가. 비록 가슴 아픈 추억 속의 짝사랑이였지만 그 옛날 실련의 상처는 성호의 마음을 아프게 긁고 있었다. 성호는 저도 몰래 막연한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정희 아니고 은영이였다면 우리 엄마 잘 모시고 살 수 있었을가? 아니야, 농민의 아들과 시장네 규수, 아, 얼마나 문벌의 차이 큰가? 짝이 너무 기울어. 누가 농촌 시부모를 모시면서 개고생하자고 하겠는가.) 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희를 보라. 약혼할 때는 시부모를 잘 모시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시부모를 모신지 반년도 못돼 나눕지 않았는가. 정희는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머리를 들고 살기 힘들었다. 그러나 기실 시어머니를 모시기 싫어 미국으로 도망친  것이 아니고 뭔가? 시장네 귀공주가 어찌 정희보다 낫겠는가. 이 세상에 시부모를 좋아할 녀인이 구경 몇이나 되겠는가?) 그는 그녀들을 나무라고 싶지 않았다. 그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에이, 무슨 렴치없는 생각을 해? 이래서 사랑은 음험한 욕심쟁이, 교활하고 간사한 요술쟁이라고 하는가?” 순간 그는 순희, 은영, 정희, 연화를 한데 떠올리며 하늘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남녀간에 참된 우정이 있을 수도 있지. 다만 남녀간의 우정은 애정으로 번지지 말아야 색바래지지 않을 수 있어.”  
221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50) 댓글:  조회:1787  추천:1  2020-05-13
                                          80. 거미어미       한국은 고향보다 퍽 남쪽이여서 겨울이여도 그리 춥지 않다고 들은 것과는 달리 을씨년스레 아침부터 모래알 같은 눈가루가 흩날려 뺨을 아프게 때렸다.         성호는 한국 성남시 수진지하철역 출구에서 나왔다. 눈가루가 얼굴을 때리며 목에 슬금슬금 기여들었다. 그가 눈가루를 툭툭 털 때였다. “성호!” 막내누나 성숙이 유령처럼 나타나 감격적으로 상봉하였다. “누나, 이게 몇해만이오? 앓지 않고 잘 있었소?” “응, 그래. 아이유, 우리 막내오라비 진짜 장군처럼 름름하네.” 성숙은 성호를 억지로 끌고 지하철옷상점에 들어갔다. 그녀는 옷상점에 들어가서 두루 살피더니 가죽옷과 양복을 벗겨들고 성호 몸에 이리저리 대보았다. “맞겠는지 모르겠다.” “아니, 이러지 마오. 누난 한국에 나와 옷 한벌 사입지 않아가지고 무슨 옷을 사준다고 이러오?” 성숙은 트렁크를 끌고 쥉쥉 달아나려는 성호를 불러세웠다. “얘, 네가 엄마를 모시고 고생했다고 은자하구 토론하고 사주기로 했다. 누나네 성의를 받아야지.” 성호는 주춤 멈춰서서 망설였다. “얘, 오라. 훌 가버리면 실례야. 우리 누나네 막내한테 엄마를 맡겨놓고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해 속에 내려가지 않는다.” 성숙은 성호의 손을 마구 잡아 끌고 옷상점으로 들어갔다. 어릴 때부터 성호는 작달막한 막내누나를 항상 깍쨍이라고 놀려주었다. 그러나 성호는 집에 무슨 일이 있으면 춘자나 성숙과 많이 토론했다. 춘자한테서는 가르침받고 성숙한테서는 경제도움을 많이 받아왔다. 성숙은 깍쟁이라는 별명과는 판판 달리 놀았다. 통이 크게 남동생한테 가죽옷과 양복을  사주고도 구슬이 다닥다닥 박힌 가죽허리띠까지 사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24K짜리, 30그람 되는 금반지를 사서 무명지에 끼워주었다. (얼마나 고생하면서 번 돈이라고 푹푹 줴내서 숱한 거 사주는가.) 성호는 받기 미안해 사양했다. “얘, 받아라. 이건 네가 부모를 모시면서 고생한다고 우리 부부는 기념으로 사주는 거야!” 성숙 부부는 한국에 나온 후 종래로 새 옷을 사 입은 적이 없었다. 그들은 아빠트단지에 남들이 버린 옷을 밤에 나가 주어 입었고 심지어 남들이 덥다가 버린 이불을 주어다 덮었다. 남들이 버린 이불과 옷은 간병환자 것인지 암병환자 것인지, 아니면 죽은 사람 것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나중에 성숙은 병원에 가서 보였는데 간병에 걸렸다고 했다. 성호는 막내누나가 불쌍해 사 준 옷을 입어보기도 미안했다. 성숙은 “제일 어린 너네 부부 부모 때문에 얼마나 수고했니?” 하고 정희 옷도 사주려고 이것저것 들고 봤다. “누나, 정희 건 사지 마오. 한나하구 둘이 미국에 갔소.” “뭐라니? 미국까지 갔어? 전번에 동대문시장 부근에서 보았는데.” 성숙은 성호를 데리고 지하철입구 근처의 한 2층 음식점 문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짐을 들고 어디로 들어가겠소? 누나네 집에 가서 있는대로 먹고 말기오.” “얘, 은자는 네 오면 잘 대접하라고 돈까지 보냈다. 그 누나 돈은 돌려주자. 은자 한국에 갓나와서 얼마나 애나게 번 돈이냐? 오늘은 깍쟁이누나 어쩌다 한번 오라비를 대접하자.” 마지못해 식당에 들어간 성호는 누나네 성의를 받지 않을 수 없어 미안한대로 사준 옷을 넙쩍넙쩍 받아넣었다. 성숙은 한화로 1만 2천원짜리 삼계탕을 주문했다. (누나한텐 1만 2천원은 천문수자겠는데.) 성호는 먹기도 미안했다. 성숙네 부부는 한국에 나온지 5,  6년 돼도 이제껏 음식점에 가서 먹은 적이 없다고 했다. 전번에 아들과 며느리 결혼하기 전에 한국에 놀러 왔을 때에는 어쩌겠는가. 그들은 서울 남산탑으로 놀러 갔다. 성숙은 돈이 아까와 아들과 며느리만 탑에 올라가보라 하고 탑 아래에서 홀로 앉아 몇시간이나 기다렸다고 한다. 성호는 목이 꺽 멨지만 성의를 받느라고 억지로 삼계탕을 혈육의 정과 함께 삼켰다. 훈훈한 음식점에서 나오자 서북풍이 사납게 불어쳐 눈보라가 어찌나 기승을 부리는지 눈 앞을 가리기 힘들었다. 설상가상 성남시내 서산 기슭에 자리잡은 누나네 집으로 올라가는 올리막길은 눈덮이고 얼음이 얼어붙은데다가 어찌나 가파로운지 발붙히기도 힘들었다. 그들 오누이는 길옆 아빠트벽을 붙잡으면서 간신히 한발작한발작 악착스레 올라갔다. 커다란 짐을 한개씩 끌고 반질반질한 올리막길을 올라가면서 자꾸 미끌어졌다. “아직도 머오?” “그리 멀지 않아. 저기 산중턱까지 올라가면 돼.” 성숙은 짐을 끌고 올라가면서 아츠런 올리막 중턱을 가리켰다. 그때 성숙이 그만 얼음강판 같은 올리막길에서 핸들 넘어져 미끄러져 내려왔다. “상하지 않았소?” “아니, 이젠 습관돼서 괜찮아. 이전엔 넘어져서 엉덩이 상해 고생했다. 돈이 아까와 병원에 가잖고 조상이 물려준 오줌약을 바르고 나았어. 억지로 몇달간 견디면서 식당일까지 했댔다.” 성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식당에서 계속 일했더라면 얼마나 좋겠니? 주방에서 일할 때 한국 아줌마가 주방장을 했지. 한국 아줌마 어떻게 잔소리 많은지 스트레스를 죽게 받았지. 쩍하면 내 해놓은 채를 나무랐지. 그런데 오이랑 파랑 산나물이랑 두루버무려 만든 내 랭채를 손님들이 더 맛있다고 단골이 자주 찾아왔다. 나중에 그 두루무침랭채를 찾은 손님이 점점 많아져 식당은 흥성하게 됐다. 식당 주인은 아예 나보고 주방장을 하라 했어. 한국  아줌마는 자꾸 싸움만 한다고 잘라버렸지. 그런데 그 한국아줌마가 내가  불법체류를 했다고 신고해 경찰이 찾아오지 않았겠어. 다행히 식당 주인이 뒤문으로  피신시켜 강제출국당하지 않았어.” 성숙의 말을 들어보니 조선족들은 진짜 한국에서 눈치를 보면서 쉽잖게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누나, 몇해 전에 왔을 때 단대오거리역 서쪽에 있는 집은 그래도 괜찮은 거 같았는데. 올리막길도 이렇게 가파롭지 않고 지하철입구와도 가까왔잖고 뭐요. 어째 이런데 이사했소?” 성숙은 벽을 짚고 올리막을 한발작, 한발작 옮겨 딛이며 조심조심 올라가면서 대답했다. “그때는 그 반토굴 같은 세집도 월세15만원 줘야 했어. 지금 집은 10만원 밖에 하지 않아. 한달에 5만원을 남는다는게 어디야. 한해 되면 60만원이나 되잖니? 중국 돈으로 3천원이나 돼.” 성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나, 5만원 남자고 이런데 세집 잡소? 올리막을 올라가다가 넘어져 골절이나 당하면 사람이 아픈 고생하는 건 둘째구. 치료비 얼마 들지 생각해봤소?” 성숙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단대오거리역에서 두 정거장이나 더 와야 하니까. 지하철 비용도 더 들게 아니요?” “급한 일이 없인 우린 종래로 수진역까지 앉지 않아. 항상 둬 역  앞당겨 내려서 걸어서 집에 오지. 그게 차비를 절약하는 묘수야.” 성숙은 올리막길가에서 깡통 두개를 주어들고 보면서 기뻐서 어쩔줄 몰라했다. “하하, 오늘 막내오라비 오더니 수 붙었구나.” “뭘?” “깡통 두개 주었잖니? 하나에 10원씩 해.” “양?” “세상에 어디 공짜 있어? 난 쌍둥이를 보고 쉬는 날이면 밤중까지 아빠트단지 돌아다니면서 쓰레기무지를 뒤져 깡통이랑 헌 옷이랑 그릇이랑 주어오지. 깡통 백개를 주어봐라. 돈 천원이 생긴다. 천원을 누가 그저 줘?” 성호는 누나한테 미안했다. (저렇게 아글타글 벌어 아껴 먹고 쓰면서 남은 돈을 오늘 나 때문에 수태 쓰지 않았는가? 몇해 전에 왔을 땐 부모를 모시고 고생한다고 매형과 누나는 38만원이나 주고 금반지까지 사주지 않았던가.) 성호는 생각할수록 성숙의 후더운 인정에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한 반시간 눈덮인 올리막길과 싱갱이질해 간신히 세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른바 세집은 3층아빠트 옥상 성냥곽 같이 생긴 세집이 아니겠는가. 그들 오누이는 짐을 두개나 나눠 들고 비좁은 아빠트 밖의 눈덮인 층계를 한층계 한층계 간신히 톺아올라가 끝내 3층 옥상 세집에까지 올라갔다. 성호가 둘러보니 말이 집이지 그저 두꺼운 합판을 대충 귀를 맞춰놓고 만든 간이집이였다. 세집 안에 들어가보니 통근 12평방메터나 되나마나한 단칸방이였다. 며칠 사람이 붙어 있지 않았는지 집 안이 춥다못해 개를 달 지경이였다. 성숙은 동생이 왔다고 가스 난방스위치를 눌러놓고 이불을 활활 내리워놓았다. “야, 추운데 이불 둬개씩 덮고 앉아 얘기하자.” 성호는 솜외투를 벗지도 않고 트렁크에서 명태며 검정귀버섯이며 약이며 꺼냈다. “숱한 짐을 들고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고 얼마나 수고했니? 가져와서 좌우간 잘 먹겠다.” 성숙은 명태를 들고 보더니 “은자한테 가지고 갈 걸 따로 두자.”라고 했다. 그제야 성호는 솜외투를 벗고 이불을 두개나 들고 들어가 앉았다. “매형은 내 온 걸 아오?” “이제 좀 있으면 집에 들어설 거야.” 성숙은 쌀궤에서 쌀을 퍼냈다. “막내동생 몇해만에 왔는데 좋은 쌀을 먹어야지. 저 나그네 지하철을 곧추 타고 오면 진작 왔을 거야. 아마 또 둬 역전 미리 내려서 걸어오는 모양이야.” 몇해 전 여름에 왔을 때 성호는 성숙이 좀이 났다고 남들이 버린 쌀을 주머니채로 주어다 벌레를 주어내고 씻어먹는 것을 보았다. 집이 빈 다음에 쌀궤를 들춰보니 누렇게 변색한 쌀에 벌레가 득실거렸다. 보기만 해도 메쓰꺼웠다. 그런 쌀을 해볕에 대충 쪼여서 먹는 판이였다. 변질한 쌀을 먹으면 건강에 해롭다는데도 지금도 뜬 쌀이나 변색한 쌀을 먹었다. 그래서 그들 부부간은 항상 토하고 설사했다. 중하면 위암이나 장암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같지 않았다. 오늘만은 남동생이 왔다고 어쩌다가 하얀 입쌀을 쌀을 퍼내 쌀함박에 씻었다. “아니, 식당에서 비싼 삼계탕을 먹었는데 무슨 쌀을 또 씻소?” “내일 아침에 먹을 쌀을 미리 씻어놔야지. 저 나그네 새벽 다섯시면 건축현장에 가야 해. 나그네도 굳지만 막내처남이라면 아끼지 않는다. 전번에 준 금반지도 저 나그네 돈을 꺼내 산 거야.” “오~” 성호는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는 이번에 꾼 돈을 물려고 한국에까지 찾아왔다. “누나 얻소. 꾼 돈이요.” 성호는 돈묶음 몇개를 내놓았다. “에이유, 엄마를 모시면서 어떻게 그래도 돈을 벌었니?” 성숙은 돈을 받아쥐고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택시 잘 되는 모양이지?” “양, 누나네 덕분에 택시 두대에서 한해에 10만여원은 들어오오. 사고만 나지 않으면 괜찮소.” 성숙은 철색얼굴에 환한 웃음꽃을 피웠다. “그럼 얼마나 좋겠니? 네 고생이다. 엄마를 모실라니 택시를 할라니 처자를 얼리면서 살라니. 그래 단위 일도 잘 되니?” “양. 우린 정부 해당 부문에 총경리 굉팔을 고발했댔소. 그래서 그 놈이 우릴 단위에서 해고한 건 사업단위 관리규정에 어긋난다고 결론이 났댔소. 후에 이전에 우리 단위에 있던 김범수 총경리가 광고회사에서 쫓겨난 우릴 신문사에 데려갔소. 그분 덕분에에 공직은 떼우지 않았소.” 성호는 한화 50만원을 더 내놓았다. “이건 뭐냐?” “감사비요.” “야, 그만둬. 형제간에 무슨 리자를 받겠니?” “아니, 누나 이런 세집에 들어 있으면서 애나게 번 돈인데 받소. 감사하오. 남이라도 국가 리자만큼은 줘야 하지 않소? 좋은 제 누나를 주는데 받소.” 성호가 기어이 받으라고 하니 성숙은 돈을 쥐고 궁리하더니 되내밀었다. “그럼 좋다. 네 성의를 받은 걸로 하고 이렇게 하자. 이걸 엄마 생활비로 보태 써라.” “아니, 이걸 받지 않으면 이후엔 누나네 돈을 꿔 쓰지 못하겠소.” 성숙은 50만원을 더 꺼내 얹어주면서 당부했다. “이걸 가지고 가서 엄마한테 맛있는 걸 대접해라.” “야, 막내누나 돈을 부쳐줘서 셋째누나한테 로임까지 주면서 엄마 보모로 쓰잖소.  일만 해도 감사한데 번마다 이래서 되겠소? 애나게 번 피돈인데.” “막내동생한테 엄마를 맡겨놓고 못보는 척해서야 되니? 다른 말 말고 어서 받아라.” “감사하오. 누나. 꼭 이 돈으로 엄마한테 맛있는 걸 대접하겠소.” 성호는 추워서 견디기 힘들면서도 난방가스 스위치를 더 올리라는 말을 못하고 이불을 목까지 올려 쓰고 억지로 참았다. 그래도 누나의 후더운 인심에 마음 속으로 훈훈함을 느꼈다. 성숙은 나그네 허물을 꺼냈다. “매형은 이전에 애인 해가지고 개지랄 했잖니? 이젠 인연을 끊었다더라. 에이구, 며느리 둘이나 삼았는데 웬 애인이냐? 남자들 이상해. 딱 남과 살아보면 별낳다니?” 성호는 괜히 누나네 부부 사이에 쐐기를 박을가 봐 그저 듣기만 하고 가타부타 말참견하지 않았다. 성숙은 뒤말을 이었다. “애들 결혼에 우리 얼마나 가보고 싶었겠니? 우리 둘 다 불법체류돼서 가지 못해 네가 대신 그 먼데로 가느라고 수고했다.” “양. 외삼촌이 멀어서 가지 않겠소?” 성호는 추워 덜덜 떨었다. “경춘이 결혼 때 안산에 도착하니 새벽 3시 아니겠소? 경춘한테 전화할가 하다가 그만뒀소. 결혼 첫날새벽에 날 마중하러 오라 하기 미안해서 깨우지 않았소.” “그래 어디 있었댔니?” “역 대합실에서 벽에 기대서서 세시간 기다려서 전화했댔소.” “그래? 진짜 외삼촌도 제 새끼 배려하듯 했구나.” “경춘이 각시 한족이 돼 그렇지. 진짜 곱습데.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이 어찌나 고운지. 쯧쯧쯧.” “외조카며느린것도 그렇게 곱데?” “그러잖고. 생글방글 웃으면서 ‘외삼촌, 외삼촌’ 하면서 어찌나 친절한지 단번에 정이 푹 듭데.” “호호호. 피는 물보다 더 짙한 법이지.” 성숙은 쌀을 씻어 전기밥가마에 얹고 새파랗게 얼어든 손을 닦더니 이불을 들고  앉았다.  “경남이 결혼 땐 영남이 글쎄 불시에 대성통곡쳐서 쓸쓸합데. 아마 부모 생각난 것 같습데.” 성호는 트렁크에서 비디오촬영기를 꺼내 경남과 경춘이 혼례식비디오테프를 돌렸다. 성숙은 애들 혼례식을 구경하면서 눈시울에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렸다. 두 아들 혼례식에도 참가하지 못한 어머니 마음인들 오죽했으랴.” 뒤이어 성호는 비디오촬영기로 성숙과 세집을 돌아가면서 촬영했다. “야, 야, 어쩌자고 이리 루추한 꼴을 찍니?” “경남하구 경춘한테 보이겠소. 엄마, 아버지 얼마나 헐망한 세집에서 살면서 애나게 돈을 보냈는가 알게.” “그만해라. 원래 어미야 거미어민 법이지.” 성숙은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그녀는 오라비를 만나자 구애없이 아들며느리 허물을 했다. “자식은 품안의 자식이지. 그저 키우는 재미지. 신세를 지려니 하지도 말라. 지난 여름에 경남이 색시를 데리고 결혼 전 려행 삼아 여기 왔댔다. 우린 샘물도 사먹지 않고 빈 샘물병에 수도물을 담아 길로 다니면서 먹었지. 그러자 맏며느리 내 손에서 샘물병을 빼앗아 길바닥에 활 뿌리쳤다. ‘어째 남이 마시는 샘물을 던지는가?’고 물으니 뭐라는지 아니? ‘샘물 한병이 얼마나 한다고 거지처럼 수도물 마시는가요?’ 이래잖겠니? 며느린 제일 비싼 천원짜리 샘물을 몇병 사다가 나눠주더니 단번에 글쎄 천원짜리 샘물을 한병이나 꿀떡꿀떡 다 마셔버리잖겠니?” 성숙은 어이없다는듯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 큰며느리를 이길 거 같잖아. 둘째며느리는 무남독녀로 곱게 자랐어. 여기 왔을 때 항상 생글방글 웃으면서 ‘엄마, 엄마’ 하면서 내 하자는대로 했다. 그 앤  마구잡이를 하지 않더라. 그런데 둘 다 욕심쟁이야.” 그때 문소리 덜컥 나더니 매형이 들어왔다. “처남 왔소?” “양. 오랜만이요.” 성호는 명선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온 처남하구 무슨 며느리 허물부터 하오?” “허물은 무슨 허물.” 성숙은 전기밥가마에서 김이 몰몰 나는 밥을 퍼서 밥상에 올렸다. 성호가 가져온 마른 명태도 꺼내놓았다. “얘 글쎄 그 먼데서 이리 희귀한 걸 가져왔소. 오늘 저녁엔 이걸로 에따지우오.” “처남하구 술이나 한잔 마셔야지.” 성호도 추워서 술생각이 나 이불을 쓴 채 밥상에 마주 앉았다. 그들은 술잔을 마주치고 굽을 낸 후 명태를 찢어먹었다. 성숙도 명태를 찢어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며느리 둘 다 욕심이 대단해. 글쎄 시부모 돈을 빼가는 경쟁을 벌인다.” 명선은 술잔을 들었다가 놓았다. “야, 애들 허물질을 그만하오.” “남동생인데 뭐라오?” 성숙은 꺼냈던 말을 하지 않겠는가 해서 뒤말을 이었다. “며느리들은 직접 시부모한테 손을 내밀지 않고 교묘하게 신랑 귀에 대고 베개머리송사를 올려 돈을 빼가지. 벌써 우리 둘이 한 일년 일해 돈이 얼마 있겠다고 추측하고선 이 구실 저 구실 대면서 시부모 돈 빼간다. 집을 사주었지 차를 사주었지. 집 장식비용까지 부쳤는데도 끝이 없다. 또 회사 그닥잖다면서 상점을 차리겠다고 돈을 보내란다. 우리 피땀이 슴밴 돈을 걔들은 샘 솟 듯하는가 하는 모양이야. 경춘인 어쩌겠니? 맏이만 주는가 해서 우리한테 으름장까지 놓는다. ‘어디 엄마 아버지 늙은 다음에 두고 봅시다. 엄마, 아버진 그저 형님만 형님이라면서. 흥, 둘째아들은 아들이 아닙둥? 그래서 둘째두 맏이 못잖게 집도 사주었지. 그러다나니 우리 둘이 일해 번 돈은 몽땅 애들 둘이 좋은 노릇을 했다. 우린 새끼한테 피를 다 빨린 빈털털이 됐어. 진짜 거미어미야.”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누나하구 매형 고생한 보람은 나보다 더 있소. 우로는 부모한테 효성했지. 두 아들도 해결했잖소. 난 미국에 간 한나 근심에 잠이 오지 않소. 저러다가 미국에서 양키놈이나 친하면 어쩌오?” “못된 올케 있는데 설마.” 그들은 밤중까지 부모형제 말에 자식들 말을 하다가 이불을 둬채씩 덮고 다리를 꼬부린 채 새우잠을 잤다. 새벽이 되자 성호는 술기운이 쭉 빠지면서 추워서 견디기 힘들었다. 누나와 매형은 그래도 용하게 코를 드렁드렁 구르면서 잘도 잤다… 공항철도 기차를 타고 인천공항에 나가는데 편리하려고 성호는 홍대입구역 부근 모텔에 짐을 가지고 갔다. 성숙한테서 전화가 왔다. “얘, 엄마한테 보낼 짐이 있다. 쌍둥이를 보다나니 가져갈새 없구나. 와서 가져가라. 내 전화도 두고 가고.” 좀 있다가 또 전화가 왔다. “우리 잠실에서 만나자. 네나 내나 잠실역에서 나가지 않고 만나서 들어왔던 역으로 되돌아가 나가면 차비도 들지 않아.” 성호는 성숙한테는 수진에서 잠실까지 왕복차비 2천원은 깡통 200개나 주어야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천원도 쪼개 쓰는 막내누나가 글쎄 엄마 생활비로 해마다 백만원을 보내지 않았는가. 막내남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수고한다고 매형과 토론하고 백만원 더 주고 24K금반지를 사주지 않았겠는가. “숱한 걸 줬는데 오늘 또 뭘 보내겠다고 이러오?” 성호는 성숙의 효성에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성숙은 쌍둥이 애를 보면서 음식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데다가 그 집 할머니한테서 C형간염이 전염되였다.  C형간염을 치료하려면 쌍둥이를 량 무릎에 올려놓고 본 피나는 돈을 몽땅 쓸어넣어도 치료되겠는가도 미심한 형편이였다. 그녀는 치료를 포기하고 말았다. 명선도 대뇌 혈관 세개나 부어올라 언제 하늘에서 벼락이 쏟아질지 모르는 형편이였다. 그들 부부는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고 남동생을 극진히 접대했다. 성호는 누나들의 뜨거운 사랑에 또 한번 감격했다. 은자도 해마다 엄마의 생활비로 백만원씩 보냈고 계절에 따라 엄마 옷을 사서 보냈고 휄체어, 전자레인찌 등을 자주 보냈다. 이번에 성호가 오자 부산에 불러 극진히 대접했다. 그녀는 병원에서 환자간호를 하면 하루에 9만원을 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청가를 맡고 남동생 성호를 데리고 백화상점에 가서 아래웃옷과 속옷에 구두까지 백만원 거의 팔아 사주고도 모자라서 자갈치시장에 가서 펄떡펄떡 뛰는 멜치와 꼼치, 갈치 등을 한꾸러미나 사다 생회를 떠 먹인다, 생선국을 보글보글 끓여 먹인다하면서 정성을 다했다. 갈라질 때도 서울에 올라가 먹을 채도 정성들여 지어서 한꾸레미 보내고 부산역에 나와서 서울행 기차표까지 끊어줘 보냈다. 정말 성호는 누나네 지극한 효성과 형제사랑에 목멜 지경으로 감동을 먹었다. 성호는 식품상점에 가서 과일을 사고 지하철옷상점에서 목수건을 사들고 지하철에 올라 잠실로 달려갔다. 그들 오누이는 잠실역 지하에서 갈아타는 출입구를 사이에 두고 마주섰다. 성숙은 이불짐을 건네주면서 눈물이 글썽해졌다. “내가 불법체류돼서 엄마 보러 가지 못해 죄송하다. 이불을 가져다 추위라도 막게 엄마한테 덮어줘라.” “아니, 숱한 돈을 보냈으면 됐지. 집이 따뜻해 이불이 필요없소.” 성숙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춥든 덥든 엄마한테 덮어줘라. 이 이불을 보면 막내딸을 보는 거 같잖겠니? 짐이 돼서 네가 좀 수고해라.” 막내누나는 어머니에 대한 정을 이불로 전하고 싶어하지 않는가. “알았소.” 성호는 과일꾸럭과 목수건을 누나한테 주었다. “누나, 수태 가지기만 하고 미안하오.” 성숙은 막내남동생이 준 목수건을 목에 돌리면서 갖은 풍상고초에 그늘이 진 얼굴에 잠시나나 웃음을 지었다. “얘, 고맙다. 난 한국에 나온지 5, 6년 되도록 옷 한견지 사 입어 못 봤다. 남동생 덕분에 새 목수건도 다 쳐보게 됐구나.” 성호는 성숙이 즐겨 먹는 과일 두봉지도 건네주고나서 누나의 손을 잡았다. 누나의 손은 고된 로동에 50대 초반 녀성의 손답지 못하게 꺼슬꺼슬했다. “누나, 이젠 반백이 넘었는데 돈을 너무 아끼지 말고 생신한 과일이랑 드문드문 사서 잡숫소. 변질한 쌀이랑 먹지 마오. 영양부족으로 병나면 어쩌오? 애나게 번 돈을 자식들한테 몽땅 주지 말고 이젠 양로준비나 하오. 누나는 나와는 달리 퇴직금도 없잖고 뭐요? 농민들은 늙으면 양로가 큰 골치거리오.” 성숙은 눈물이 글썽해 말했다.  “얘, 부모는 애들한테 돈을 주는 게 아깝지 않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쪽 같은 아들이 아니야? 경남이랑 내 어떻게 난 애냐? 지금도 눈풍설이 이는 날에 만삭이 다된 배를 끌어안고 시내로부터 15리 떨어진 고향에 걸어가 걔를 낳던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 엄만 배아프게 낳은 아들한테 뭐나 다 주고 싶다. 너도 이제 그렇지 않은가 지내봐라. 한나한테 밸이라도 다 빼주고 싶지 않은가? 부모들은 자식들한테서 보답을 바라고 주는 건 아니야. 그저 귀여워서 즐겁게 준다.” (자식한테 주는 부모의 사랑은 진짜 대공무사한 모성애지.) 성호와 성숙은 잠실역에서 눈물을 휘뿌려 석별의 정을 나누고나서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리별했다. “이제 막내오라비와 갈라지면 언제 만날가?” “누나, 아무쪼록 몸조심하면서 잘 있소.” 이듬해 봄에 성숙은 부랴부랴 심양으로 돌아왔다. 맏며느리가 아들을 낳고 둘때며느리가 딸을 낳아 애들을 보러 황급히 날아왔다. 두 며느리는 불법체류 돼서 두 아들의 결혼식에도 오지 못했던 시어머니가 온것을 보자 서로 자기 집에 오라고 경쟁이라도 하듯 재촉이 성화 같았다. 뭐나 우로부터 내리 씃는다고 성숙은 먼저 맏며느리네 집으로 갔다. 맏며느리는 시부모를 모시겠다고 한데다가 본가집 어머니가 불법체류여서 한번 귀국하면 다시 한국에 나가지 못할가봐 돌아오지 못해 애를 볼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영구에 있는 둘째며느리는  본가집 엄마가 애를 봐주기에 괜찮았다. 뒤이어 시아버지 명선도 손자손녀를 보러 20년만에 귀국했다. 애가 젖을 먹을 때까지 맏며느리는 항상 어글엉글한 쌍까풀눈에 화기를 띠우면서 시부모를 환대했다. 그런데 애 돌생일까지 쇠고나자 맏며느리 태도는 확 바뀌였다. 먼저 아무 쓸데없이 밥축이나 내고 “고급접대”만 받는 시아버지한테 “축출작전”을 개시했다. 어느날 며느리는 위생실을 청소하면서 새된 소리를 질렀다. “아이구, 이 때를 봐라! 원, 더러워 못 살겠다.” 성숙이 손자를 안고 무슨 일인가 가서 여겨보았다. 맏며느리 순선은 걸레로 위생실 바닥에 널린 국수오리 같은 때를 닦으면서 두덜거렸다. “이걸 봐요. 목욕하고 때를 제때에 청소해야지. 어쩜 이렇게 더럽게 살아요? 진짜 미치겠어!” 그 소리를 들은 명선은 귀에 거슬렸지만 억지로 꾹 참았다. 그뿐이 아니였다. 명선은 담배를 피우는 고질병이 있었다. 그런데 손자가 담배연기를 먹을가봐 복도에 나가 창문을 열고 창문가에 서서 담배를 풀썩풀썩 피웠다. 그런데 순선은 문을 꽝 닫아버리면서 또 바가지를 긁었다. “에이구, 담배를 저렇게 지독하게 피워 온 아빠트에 담배연기야. 우리 아가 담배 연기 맡고 지레 페암에 걸려 죽겠어.” 성숙은 듣기 거북해 한마디 했다. “며느리, 어쩌겠소? 담배 피우는 고질병이 도져 그러는데. 시아버지 있을 때만은 참소.” 순선은 단통 세귀쌍까풀눈을 흘기면서 달려들었다. “시어머니, 그것도 말이라고 해요? 참는 것도 한정 있죠. 그래 온 겨울 우리 집에만 붙박혀서 담배만 풀석풀썩 피우면 누가 곱다고 해요? 애 페암에 걸려도 말도 못해요? 정말 진저리난다. 이렇겐 못 살겠어요.” 성질이 팩한 성숙도 참을 수 없어 한마디 툭 쏴주었다. “아니, 그게 며느리 할 말이오? 지금 애를 다 키우니 시부모를 쫓아내려는 게요? 쩍하면 걸고 들긴?” 끝내 터지고 말았다. 순선은 우는 애를 안고 눈물을 텀벙텀벙 쏟아내며 야단쳤다. “그래요. 난 시부모하고 한 집에서 하루도 더 못 살겠어요.” “뭐라오?” 성숙은 성이 꼭두까지 치밀었다. 진짜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기분이였다. 그녀는 억이 막혀 입을 하 벌리고 흐리마리한 눈길로 며느리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한식경이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성숙은 맏며느리한테 짯짯하게 말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간신히 입을 열었다. “맏며느리, 이젠 시부모한테서 빨아낼 걸 다 빨아냈으니 쫓아내려는 게요? 이 집 살 때 제 뭐라고 했소? 한 80평방짜리 사자고 하니 저네 우릴 모시겠다고 해서 이리 큰 걸 사지 않았소? 침실 셋에 객실 한칸짜리 사서 한칸은 부모칸으로 한다고 하지 않았소?” 순선은 벌거벗고 나왔다. “그땐 부모와 함께 살자고 생각했는데요. 함께 살아보니깐 서로 불편해서 하루도 더 못 살겠어요. 또 이 집이 크다뿐이지. 우린 둘째네보다 부모네 돈을 더 적게 썼어요.” 성숙은 입을 연바하고는 더 말해야 속이 씨원할 것 같았다. “그땐 집값이 눅어서 그렇게 됐지. 우리 맏며느리넬 섭섭하게 해준 게 뭐요? 우릴 모실 맏며느리라고 차를 사줬지, 상점 차리라고 돈을 줬지. 왜 지금 와서 이러오?” 순선도 지려고 하지 않고 말대구를 했다. “그만큼 해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어요? 지금 세월에 시부모하구 함께 사는 자식이 있어요?” 그때 명선이 집에 들어서다가 너무나도 억울해 한마디 했다. “며느리, 그럼 왜 당초에 모시지 못하겠다고 할 게지. 우리 돈을 다 빼가고 이제야 나눕소? 시부모를 사기치는 게 아니고 뭐요?” “우리 결혼할 때 오지도 않고서도 무슨 할 말이 있는가요? 우리와 함께 살자고? 렴치 있어요?” 그때 경남이 퇴근해 집에 들어섰다. “어쨌든 시부모와 함께 하루도 더 못 살겠어요.” 경남이 듣다못해 색시한테 호통쳤다. “아니, 부모와 무슨 말버릇이오?” “뭐라고? 경남아, 지금 부모편을 들어? 리혼하면 했지. 이렇게 하루도 살지 못해.” 순선은 애를 업고 울며 불며 바깥으로 훌 나가버렸다. 색시가 부모와 행악질해도 저 도리깨아들은 멍해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긴 내내 데리고 사는 안해를, 아들의 어머니를 어떻게 경솔히 대한단 말인가? “야, 이 도리깨 아들놈아, 너도 내 배아프게 낳은 아들이냐? 녀편네 엄마하구 행악질할 때 어째 콱 패놓지 못하느냐?” 그러자 경남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그래 붙눈 불에 키질하랍니까?” 경남은 어머니를 쏘아보면서 불을 토했다. “엄마는 할아버지를 잘 모셨습니까? 순선이 보고 엄마를 모시라고 할 자격이 있습니까? 엄마는 외할머니 우리 집에 왔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외할머니와 한달도  있지 못해 모셔가지 않았습니까? 어째 자기 허물은 모르고 며느리 허물만 합니까?” “뭐라니? 아이고, 억울해서 어디 살겠냐. 어떻게 낳은 아들인데? 녀편네 편을 들어? 아이고, 원통하다, 원통해.” 성숙은 원통해 대성통곡쳤다. 진짜 아들은 품 안의 아들이다. 대학교로 보내면 20프로 남이 되고 장가가면 절반 며느리한테 빼앗긴다더니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성숙은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했다. 경남은 성숙이 눈풍설이 이는 해산 전날에 만삭이 된 배를 부둥켜안고 15리나 걸어서 본가집에 가서 낳은 아들이였다. 첫애를 해산대 떨어뜨려 잃은 후 어떻게 배아프게 낳은 아들인가? 얼마나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귀하게 키운 아들인가? 그러나 그 아들은 색시를 말리지도 않았다. 아마 자기 색시이고 아들의 어미여서 소홀히 욕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말리는 말이라도 한마디 하지 못하겠는가?  성숙은 아들이 야속했다. 경남이 쫓아나가면서 말렸지만 순선은 경남의 손을 홱 뿌리치고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성숙은 눈에서 불이 이글거리는 남편을 보고 구들바닥에 물앉아버렸다. “여보, 우리 나가기오. 둘째네 집에 가든지. 괜히 우리 때문에 애들이 리혼하는 꼴을 보겠소?” 성질이 괴벽하고 팩한 명선은 발질로 탁상을 걷어차 넘겼다. “이게 무슨 꼴이오? 둘째네라고 함께 있자 하겠소? 한족며느린데.” “그래도 둘째며느리는 인정스럽잖고 뭐요?” “애도 하루도 봐주지 않았는데 곱다고 하겠소?” 그들 부부는 눈 앞이 캄캄했다. 진짜 절망에 푹 빠졌다. 속이 타다못해 입에서 연기가 꾸역꾸역 쏟아져나왔다. 비참한 한숨소리가 적막한 객실을 마음 아프게 쓸쓸하게 톱질했다. 한밤중에야 경남이 혼자 집에 들어서더니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침실로 들어가 쿵 쓰러졌다. 성숙은 근심돼 따라들어가 물었다. “얘, 며느린 어쨌니?” 경남은 천천히 일어나 앉더니 한참 후에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엄마, 아버지, 아들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해 죄송스럽습니다. 순선은 애를 업고 호텔에 들어갔습니다. 이 집에 다신 들어오지 않는대요. 본가집 부모 있는 한국에 나갈 소릴 합디다. 흑흑흑, 흑흑흑.” 성숙은 경남의 손을 잡고 나직이 말했다. “우리 때문에 너넬 리혼시킬 수야 없지.” “엄마, 다른 생각하지 마십시오. 밸이 내려가면 집으로 들어오겠지요.” 명선은 침실 문께에서 그 소리를 듣고 정신기둥이 와그르르 무너졌다. 며칠 후 명선과 성숙은 보짐을 싸들고 구부정한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목단강행 렬차에 올랐다. 모진 마음을 먹고 30여년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그들은 차창으로 맏아들을 둔 심양을 내다보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한국에서 번 돈을 두 며느리한테 다 넘겨주고 불법체류한 적이 있어서 이젠 다시 한국에 가기도 힘들게 됐다. 늘그막에 한국에 간들 어떻게 무거운 일을 한단 말인가?  고향에 돌아가도 농사를 짓기 힘든데 이젠 어떻게 양로한단 말인가? 그들의 앞길이 막막하기만 했다. 그럼 둘째아들 집에 갔더라면 어떻게 됐을가? 그들 부부간은 둘째집으로 가도 역시 며느리가 좋아할 리 없다고 생각하고 아예 떠나버렸던 것이다. 괜히 둘째네 집에까지 가정불화의 불씨를 심을 것이 없었고 아들을 한시라도 중간에서 시집살이를 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피눈물 나는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지극한 사랑이였다. 그러나 자식들은 부모의 자식사랑을  리용해먹고 나중에 다 파먹은 김치독처럼 내버리는 페단이 있다. 아, 세상에, 하얀 서리내린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허리를 구부정하고 흑룡강의 눈덮인 설야를 헤매며 돌아가는 늙은 량주가 눈물겹도록 한없이 가엽구나. 성호는 전화로 그간 비극적인 이야기를 듣고 막내누나가 불쌍해 밤중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텔레비죤에서 동물세계프로를 보다가 스르르 눈 앞이 흐릿해지고 아물거리는 감을 느꼈다. 꿈인가, 생시인가. 그가 글쎄 원숭이로 둔갑해 어떤 수림이 우거진 호수가 시내물 가에 이르지 않았겠는가. 그는 버드나무에 바라올라가 나무가지를 가로 타고 앉아 괴상한 장면을 보았다. 출렁출렁 흐르는 시내물가 버드나무 가지에 어미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어미거미의 목에는 새끼거미 두마리가 딱 매달려 거미발로 꼭 끌어안고 독침을 꽂고 어미거미 피를 빨아먹고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미거미는 피가 랑자한 목에 뻘건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죽기 전에 숨이 붙어있을 때 새끼거미한테 모기 한마리라도 더 잡아먹이려고 모든 아픔을 참고 광풍이 휘몰아쳐 휘청거리는 버드나무에 아득바득 매달려 거미줄을 치느라고 애썼다.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지면 새끼거미 상했는가 여겨보고는 또 나무가지에 매달려 바둥거리면서 거미줄을 쳤다. 나중에 거미어미는 목에 매달린 거미새끼들한테 피를 다 빨리워 맥없이 스르르 죽어갔다. 거미새끼들은 다 죽은 어미거미 목을 깨물고 늘어져 시체에 남은 피까지 몽땅 빨아먹고서야 천천히 떠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거미어미가 죽어가는 수림 속으로 잔잔히 흐르는 시내물에는 숱한 어미련어들이 알을 쓸고 있지 않겠는가. 어미련어들은 숱한 알을 품은 모질게 뚱뚱한 배를 해가지고 바다로부터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시내물을 수백리 거슬러 올라와 알을 쓸기 맞춤한 여기 산골 수림 속 호수가의 잔잔히 흐르는 시내물까지 올라왔던 것이다. 잔 폭포를 만나면 쏟아지는 거센 물결을 몸을 솟구쳐 뛰고 날아 올라왔다. 폭포 우로 날아오르지 못한 어미련어들은 수십번이고 몸을 날리고 또 날렸다. 어떤 어미련어는 폭포 곁에 서서 기다리던 곰의 입에 물려 비참하게 죽었다. 앞 어미련어가 곰에게 먹히면 뒤 어미련어들이 뒤를 이어 계속 폭포 우로 몸을 날려 올라간다. 어미련어들은 끝내 알을 낳을 수림 속 물결이 잔잔한 시내물까지 헤염쳐올라왔다. 이 수림 속 시내물은 그들이 태여난  고향이기도 하였다. 어미련어들은 지친 몸을 가눌 새도 없이 마지막힘을 알을 줄줄 내쓸었다. 어미련어들은 후대번식의 신성한 의무를 다한 후 지친 몸을 바르르 떨며 시내물 속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였다. 알에서 깨여난 련어새끼들은 자기를 낳고 죽어간 어미련어 몸뚱이를 갈기갈기 뜯어먹고 자랐다. 어디 그뿐인가? 저 호수가 수림 속에서 오누이 호랑이새끼를 데리고 사는 어미호랑이를 보아라. 어미호랑이는 사냥을 해야 하겠는데 잔 폭포가에 있는 곰이 새끼를 물어갈가봐 근심되였다. 어미호랑이는 곰이 폭포 우에 뛰여오르는 련어를 나꿔채 잡아먹는 틈을 타서 아들새끼를 풀숲에 물어다 치워놓았다. 먼저 귀여운 딸새끼를 입에 물고 시내물을 저벅저벅 건너 호수에 뛰여들었다. 그는 호수 복판에 있는 자그마한 섬으로 새끼를 물고 가면서도 풀숲에 치워둔 아들새끼를 곰이 물어갈가봐 자꾸 그쪽으로 돌아보군 하였다. 어미호랑이는 딸새끼를 상대적으로 안전한 호수 복판의 자그마한 섬에 물어다놓자 아들새끼가 근심돼 정신을 잃고 호수물에 뛰여들어 호수가로 헤염쳐갔다. 어미호랑이는 아들새끼도 풀숲에서 찾아내자 기뻐 어쩔줄 모르면서 주둥이에 슬쩍 물고 호수물에 뛰여들었다. 어미호랑이는 호수 복판에 물어다놓은 아들딸새끼가 뛰노는 것을 보고서야 한숨을 후 내쉬였다. 저쪽에서 우둔한 곰이 폭포수를 거슬러 뛰여오르는 련어를 잡아먹느라고 여념없었다. 어미호랑이는 우둔한 곰을 흘끔흘끔 훔쳐보면서 꽃사슴을 사냥하려고 호수 복판에 자그마한 섬에 헤염쳐갔다. 어미호랑이는 꽃사슴한테 접근하면서도 새끼들이 근심돼 곰의 동향을 흘끔흘끔 훔쳐보았다. 어미호랑이는 갈대숲 속으로 어슬렁어슬렁 헤염쳐가서 물을 먹던 꽃사슴 한마리를 덥썩 덮쳐 목을 물었다. 어미호랑이는 꽃사슴을 물고 호수복판 섬으로 헤염쳐갔다. 곰은 어머호랑이 입에 물린 꽃사슴을 발견하자 호수에 뛰여들어 이쪽으로 헤염쳐왔다. 어미호랑이는 황급히 섬에 뛰여올라 꽃사슴을 팽개치고 새끼들을 섬 가운데 물어다놓았다. 어미호랑이는 뭍에 올라오는 곰을 마주나가 생사결판으로 싸웠다. 곰은 힘을 믿고 꽃사슴을 물고 달아나려고 했다. 그때 어미호랑이는 어데서 그런 힘과 용기가 났는지 허망 날아 덮쳐가면서 곰의 입에 물린 사슴의 다리를 앞발로 탁 챘다. 어미호랑이와 곰이 꽃사슴을 물고 서로 당기고 밀고 하다나니 꽃사슴이 절반으로 쭉 째졌다. 그제야 곰은 꽃사슴 반체를 물고 호수에 뛰여들어 도망쳤다. 재수는 없었지만 어미호랑이는 그래도 새끼들한테 꽃사슴고기를 먹일 수 있게 됐다. 애지중지하면서 키운 딸이란 호랑이새끼가 다 크자 불효를 피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어미호랑이를 꽃사슴이 많은 호수가에서 몰아내려고 으르릉거리며 대판 싸움을 걸었다. 늙은 어미호랑이는 송곳이가 다 싹아떨어져서 더는 새끼를 이길 수 없었다.  어미호랑이는 이젠 사냥도 온전히 하지 못해 배가 홀쪽하게 굶어서 걸을 힘마저 없게 됐다.  (딸새끼와 싸워 뭘 해?) 그는 한마디 으르렁거리지도 않고 머리를 수깃하고 꼬리를 내리더니 딸새끼한테  제일 좋은 사냥터인 호수를 달갑게 물려주고 비틀거리면서 떠나갔다. 그날부터 오누이호랑이는 꽃사슴이랑 줄말이랑 숱한 호수가에 턱 드러누워 으르릉거리면서 욕심을 차렸다. 비틀거리면서 호수가를 떠난 어미호랑이는 굶어서 맥없이 저멀리 털썩 쓰러졌다. 그러나 호랑이새끼들은 찾아가 보지도 않고 꽃사슴고기를 뜯어먹으면서 즐겁게 뛰놀았다. 어머호랑이는 죽어가면서도 퉁방울눈을 맥없이 뜨고 딸새끼가 꽃사슴을 사냥해 배불리 먹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내 새끼들이 얼마나 장한 사냥군이냐. 너희들 잘 사는 걸 보니 이 어미는 이젠 죽어도 원이 없구나.) 어미호랑이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천천히 퉁방울눈을 맥없이 감아버렸다. 그의 시체는 불효한 아들딸새끼들이 구덩이를 파고 묻어주지도 않아 곰과 사자의 이빨에 사정없이 뜯기웠다. 곰과 사자가 어미호랑이 고기를 배불리 먹고 떠나가자 숱한 독수리들이 날아와 밸을 빼먹고 눈깔을 빼먹었다. 어미호랑이 시체는 앙상한 뼈만 남았다. 불효한 호랑이새끼들은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는 참경을 눈깔을 펀히 뜨고 구경하면서도 곰과 독수리들을 쫓지도 않았다. 성호는 그 눈물겨운 처참한 장면을 보면서 가슴을 치면서 통탄했다. (아, 어쩜 애지중지 기른 새끼들이 저럴 수 있는가?! 동물세계나 인간세상이나 다 불쌍한 거미어미가 있고 도리깨아들이 있구나!) 사실 우리 세대는 효성을 다해 부모를 모신 마지막 세대이자 스스로 양로해야 하는 최초세대가 아닌가. (어떻게 부모께 효도하고 자식들한테 의지하지 않고 양로해야 하는가?)       성호는 그렇다할만한 대책이 없어 생각만 해도 머리 아팠다.       강산은 대답이 없다.  
220    동화 곤두뿔황소 김장혁 댓글:  조회:1245  추천:0  2020-05-02
                                 동화                                             곤두뿔황소                                                                김장혁                                                1        울창한 수림 속에 우뚝 솟은 범바위골에 석양이 비꼈어요. 나는 곤두뿔황소를  타고 버들필리를 구성지게 불었어요. 산새들도 즐겁다고 피리소리에 맞춰 절벽가를 훨훨 날면서 춤을 추었어요.        곤두뿔은 내가 잔등에 올라타면 심술을 부렸어요.       “쳇, 죄꼬만 새끼, 날마다 올라타?”       성이 꼭두까지 치민 곤두뿔은 대가리를 수깃하고 씩씩거리면서 앞발로 흙을 긁어 잔등에 마구 올리뿌리는가 하면 꼬리로 나를 후려갈겼어요. 그뿐이 아니죠. 이번에는 껑충껑충 높뛰다가 비술나무 우거진 강뚝으로 네굽을 안고 쏜살같이 달렸어요. 나는 소잔등에서 한자 높이로 달싹달싹 높뛰다가 그만 허공중에 떨어져 비술나무 그루터기에 머리를 들이박았지요. 머리는 단통 피범벅이 되고 말았어요. 나는 머리를 붙잡고 일어나 곤두뿔을 발로 차고 회초리로 대가리를 사정없이 후려쳤어요. 일밭에서 돌아오던 아빠가 나를 말렸어요. “얘야, 소는 말은 못해도 자기를 아끼면 말을 수걱수걱 듣는다. 자기를 못살게 굴면 심술을 써. 곤두뿔을 때리지 말고 많이 아껴줘라.” 한번은 곤두뿔이 어미소한테 가만히 묻는 것이였어요. “엄마, 엄마는 어째 성호 아빠보다 힘이 더 센데 겁내는가요? 씨, 창호 아빠는 왜 소수레를 끌지 않아? 울 엄마 보고 일년 내내 목에 피 터지게 끌라고 해? 산꼭대기에 둼을 내라, 밭갈이 해라, 싣걱질을 해라고 해? 괘씸해서, 원, 우린 어째 세세대대로 노예멍에를 메고 살아야 해?” 어미소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직이 타일렀어요. “쉿- 나도 나자마자 아빠 엄마들이 일하는 걸 보고 일을 잘해야 벼짚이나 얻어먹고 살수 있다고 생각했단다. 창호 아빠 말을 듣지 않는 날엔 우릴 잡아먹어.” 곤두뿔은 투덜거렸어요. “뿔로 콱 박아놓고 범바위골로 달아날게지. 범바위골에 가면 풀을 마음대로 먹구 자유스럽게 살 걸. 맨날 코를 꿰워 살게 있는가요? 흥!” 어미소는 우리 부자간의 눈치를 힐끔 보더니 황급히 대가리를 흔들면서 타일렀어요. “얘, 그런 말 말라. 자칫 잡혀 죽겠다. 우린 힘이 세지만 머리가 둔해 만물의 령장과 적수 안돼.” 곤두뿔은 억이 막혀 하늘로 곤두선 뾰족한 곤두뿔로 소구유를 마구 들이박았어요. 그후부터 곤두뿔은 입을 꾹 다물고 우리 눈치만 살피면서 일하며 살았어요. 나는 곤두뿔이 불쌍해 삶은 콩이랑 소금이랑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먹였지요. 그때마다 곤두뿔은 친절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면서 껄껄한 혀바닥으로 소금을 핥아 우물우물 먹으면서 좋다고 꼬리를 휘휘 저었지요.                                                                           2 갑자기 먹장구름이 몰려오더니 구불구불한 불뱀이 범바위산 허리를 번쩍 내리쳤어요. 우르릉 꽝꽝! 하늘땅을 뒤흔드는 우뢰소리에 뒤이어 후둑후둑 비방울이 떨어졌어요. 밤알만큼한 우박이 마구 수림과 풀밭을 내리조겨댔어요. 나는 방목장 장막 안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창 밖을 내다보면서 범바위골 태평강변에 장바로 매놓은 곤두뿔이랑 근심됐어요. 한시간이 지나자 언제 폭우가 기승을 부렸는가싶게 폭우가 뚝 끊었어요. 동녘하늘에는 고운 칠색무지개까지 걸렸어요. 나는 소를 풀려고 태평강가로 깡충깡충 뛰여갔어요. 내가 버드나무 밑에 하얗게 돋아난 버섯을 뜯는다, 파란 풀 속에 비물을 머금고 생글생글 웃는 하얀 꽃을 꺾는다 할 때였어요. 저게 뭔가요? 글쎄 태평강 웃쪽에서 글쎄 쏴- 쏴- 하늘 땅을 뒤흔드는 듯한 물소리와 함께 싯누런 골물이 성난 사자처럼 덮쳐왔어요. 깜짝 놀란 나는 버섯이고 꽃이고 다 던지고 뛰여가 곤두뿔이랑 매놓은 장바를 풀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서둘렀어요. 그런데 황소들은 풀을 뜯어먹기에 여념이 없었어요. 나는 너무 애나서 두 발을 동동 구르면서 대성통곡쳤어요. 이 위기일발의 시각에 황소들의 왕노릇을 하는 곤두뿔이 나섰어요. 그는 사처로 뛰여다니면서 눈깔을 부릅뜨고 소들을 뿔로 박아 마구 강뚝 쪽으로 가게 몰아넣었어요. 뒤이어 곤두뿔은 나한테 뛰여와 꿇어앉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빨리 타! 큰물이 들이닥쳐!” 나는 제꺽 곤두뿔의 잔등에 올라탔어요. 저 웃쪽을 바라보니 싯누런 물살이 야수처럼 덮쳐왔어요. 곤두뿔은 나를 태운 채 쏴- 쏴- 덮쳐오는 골물을 헤가르면서 강뚝 쪽으로 한걸음한걸음 걸어나갔어요. 골물은 곤두뿔의 잔등을 넘어 내 배까지 마구 충격했어요. 그러나 나는 곤두뿔의 뒤목덜미 털을 두 손으로 꽉 붙잡았기에 밀려가지 않았어요. 물 우에 대가리 밖에 내놓지 못한 곤두뿔은 나를 업고 골물에 둥둥 떠서 헤염쳐나갔어요. 한참 후 간신히 강뚝에 오르자 나는 사품치며 흐르는 골물을 보고 이젠 살았구나고 한숨을 호- 내쉬였어요. 나는 곤두뿔의 잔등에서 내려 물이 뚝뚝 떨어지는 곤두뿔의 목을 끌어안고 젖은 볼을 살살 어루만져주었지요.                                                                                                       3       여름방학에 나는 아빠를 따라 범바위골의 방목장에 갔어요. 범바위골의 울창한 수림 속에는 호랑이랑 곰이랑 승냥이랑 많다고 해요. 어느날 밤이였어요. 갑자기 방목장 장막 밖에서 호랑이들의 울음소리에 뒤이어 송아지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아빠는 황급히 사냥총을 벗겨 들고 와닥닥 뛰쳐나갔어요. 나는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면서 문에 걸친 방목장 장막의 거적을 들고 가만히 내다보았어요. 곤두뿔을 비롯한 아빠소 어미소들은 장막을 중심으로 서너머리 송아지들을 복판에 두고 둘러싼채 밖을 향해 대가리를 수그리고 앞발로 땅바닥을 허비면서 범들과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어요. 아빠는 수림 속에서 왔다갔다 움직이는 누런 쌍불을 겨눠 사냥총을 갈겼어요. 땅! 따웅! 순간 수림 속에서 누런 쌍불들이 사처로 흩어져버렸어요. 아빠는 방목장 울 안에 우등불을 활활 지폈어요. 곤두뿔과 비녀뿔을 비롯한 십여마리 아빠소 엄마소들은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을 중심으로 우리 부자간과 송아지들을 복판에 두고 똬리처럼 틀고 빙 둘러싼 채 웅크리고 앉아 온밤 전투태세를 갖추고 귀 뻘쭉해 퉁사발눈을 부릅뜨고 수림 속을 살폈어요. 범이랑 곰이랑 철옹성 같은 소무리에 다시는 감히 덤벼들지 못했어요. 나는 곤두뿔이랑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몰랐어요.                                                                 4        가을이 되자 곤두뿔이랑 싣걱질을 하느라고 목덜미에 피고름이 돋았어요. 나는 곤두뿔의 피 나는 목덜미를 보고 불쌍해 목을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나는 밤에 소금과 삶은 콩을 가만히 가져다 곤두뿔을 먹였어요. 어느날, 글쎄 곤두뿔이 구유에 매놓은 고삐를 끊어버리고 자취를 감춘 것이 아니겠어요. 아빠와 엄마가 마을 근처를 련며칠 찾아봤지만 헛수고였어요. 아빠는 곰방대를 붙여물고 궁리하던 끝에 “아마 그 놈 곤두뿔이 마른 짚을 먹기 싫어 범바위골 방목장으로 달아난 것 같다.”라고 했어요. 아빠는 비녀뿔에게 소수레를 메워가지고 범바위골로 떠났어요. 나는 따라가고 싶었지만 개학하여 따라갈 수 없었어요. (곤두뿔이 언제면 돌아올가?) 범바위골 막바지에는 파란 하늘도 보이지 않게 단풍이 든 나무숲이 우거지고 집채 같은 범바위가 우똑 솟아 있었어요.후에 안 일이지만요. 범바위 뒤에는 범의 굴이 있었어요. 갑자기 어데선가 별스런 노린내가 났어요. 아빠가 살펴보니 나무가지에 범의 털과 소털이 묻어 선들바람에 살살 나붓기고 있었어요. 아빠는 바로 그 무시무시한 범바위골 막바지에서 곤두뿔을 만났어요. 글쎄 곤두뿔은 수림 속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다가 우뚝 멈춰섰어요. 그는 귀를 뻘쭉  세우고 이쪽을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음메-헝”하고 수림이 떠나갈듯이 영각하며 꼬리를 휘휘 저었어요. 주인을 알아보고 반기는 것이였죠. 아빠는 마주 나가면서 호주머니에서 소금을 한줌이나 꺼내 내밀었어요. “염, 염, 곤두뿔아,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그러나 뜻밖에도 곤두뿔은 입을 열었어요. “쳇, 누가 당신들 밑에서 입이 있어도 감히 한마디 말도 대구하지 못하면서 한뉘 노예멍예를 메고 살아? 이렇게 산 속에서 초패왕질하면서 마음껏 뛰놀며 기름진 풀이랑 먹고 자유롭게 살겠어. 안녕!” 말을 마치자 곤두뿔은 살진 엉덩이를 홱 돌리더니 네굽을 안고 오던 방향으로 달아났어요. 가을바람에 락엽이 우수수  졌어요. 갑자기 수림 속에서 이마빼기에 꺼먼 왕(王)자를 새긴 얼룩범이 범바위 뒤에서 뛰쳐나왔어요. “따웅!” 범은 아빠가 사냥총을 겨눌 새도 없이 다짜고짜 덮쳐들었어요. 그 놈은 긴 돛바늘 같은 흰수염을 곤두세우고 으르릉거리며 앞발로 아빠 어깨를 탁 치고 날아지나갔어요. 아빠는 어깨쭉지 살이 뭉청 떨어져나가며 피를 줄줄 흘렸어요.뒤이어 몽둥이 같은 꼬리고 휘파람소리를 내며 휙 휘둘러갈겼어요. 다행히 아빠가 옆으로 구으는 바람에 꼬리에 맞지 않았어요. 대신 팔뚝 같은 나무가지가 부러지면서 락엽이 우수수 떨어졌어요.    위기일발의 시각에 곤두뿔이 나무숲 속에서 뛰쳐나왔어요. “이 놈아, 언감 내 주인어른께 덤벼?!” 곤두뿔은 무섭게 고함치며 범의 배때기를 노리고 곤두뿔로 탁 들이받았어요. 배때기를 찔린 범은 허공중에 떴다가 땅바닥에 쓰러졌어요. 그러나 그 놈은 어데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벌떡 일어나면서 꼬리로 곤두뿔을 후려갈겼어요. 곤두뿔은 비칠거렸어요. 그때 범은 뒤로 덮쳐들어 곤두뿔의 불통을 물어뜯으려고 뒤다리새를 물어뜯었어요. 곤두뿔이 뒤발질로 반격했지만 두 다리새 가죽이 찢겨나가면서 뻘건 피가 흘러냈렸어요. 아빠는 곤두뿔이 상할갑과 사냥총을 쏘지 못했어요.그때 곤두뿔은 몸을 홱 돌려 앉아 불통을 보호하면서 날아드는 범의 배때기를 또 탁탁 허공중에 떴어요. 범은 배때기에 구멍이 뚫려 밸이 왈칵 흘러나왔어요. 나중에 범은 시뻘건 혀로 피 랑자한 흰수염을 감빨며 맥없이 곤두뿔 앞에 푹 꼬끄라졌어요.                                                                           5 나는 곤두뿔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는지 몰라요. 진짜 아빠의 구명은인이고 우리 집의 영웅이죠. 일주일이 지난 후 곤두뿔도 범에게 물린 목의 상처가 점잠 나아졌어요. 나는 무등 기뻐 곤두뿔의 목을 끌어안고 나직이 속삭였어요. “얘, 이제 난 푸르른 풀밭에서 널 타고 버들피리를 실컷 불테야.” 곤두뿔은 알아들은듯이 대가리를 끄덕거렸어요. 그러나 나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고 물거품으로 되고 말았어요. 글쎄 어머니는 향병원에 입원한 아버지 병치료비가 모자란다고 곤두뿔을 잡아 팔겠다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 일을 어떻게 해요? 나는 어머니가 얼마나 미웠는지 몰랐어요.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어머니 목을 끌어안고 목멘소리로 애원했어요. “어머니, 아까운 곤두뿔을 잡지 맙시다. 곤두뿔은 아버지와 나를 구한 은인인데요. 잡아선 안돼요.” “아버지 병치료 중하냐? 곤두뿔이 중하냐?”  “전번에 잡아온 범의 가죽이랑 팔면 치료비가 되잖아요? 왜 하필 우리 집 식구 같은 곤두뿔을 잡아야 해요?” 어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타일렀어요. “얘야, 아버지는 국가일급보호동물인 범을 잡았다고 공안기관의 심사를 받고 있다. 범의 고기고 가죽이고 몽땅 몰수해 간 걸 모르느냐?” “범이 아빠를 잡아먹자는데 죽인게 무슨 잘못인가요?”  어머니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넌 아직 어려서 나라 법을 몰라. 아무리 그래도 법을 어기고 범을 죽인 건 잘못이야.” “뭐 아버지 죽였습니까? 곤두뿔이 뿔로 떠서 죽였지.” “그러게 곤두뿔은 죽어 마땅하다. 곤두뿔이 범을 죽이잖았더라면 아버지가 징역살이를 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이야.” 나는 구들에 발랑 나누워 발버등질치면서 통곡쳤어요. “안돼, 안돼! 곤두뿔을 못 잡아. 왜 하필 우리 목숨을 몇번이나 구해준 곤두뿔을 잡아야 하는가요? 엉엉, 엉엉-” 허나 어머니는 옹고집을 부렸어요. “얘야, 곤두뿔은 이젠 늙어서 몇해 부려먹지 못한다. 곤두뿔은 성질도 괴벽해.쩍하면 일하기 싫어 범바위골로 달아나는 습관이 있어.” 나는 어머니가 이때처럼 미워보일 때가 없었어요. “안돼요. 뭐래도 곤두뿔은 잡지 못해요.” 내가 생떼질을 쓰자 어머니는 몽당비자루로 엉덩이를 때리면서 을러멨어요. “이 못난 놈아, 다시 곤두뿔 말을 해봐. 가만 놔두지 않겠다. 알았어?!” 나는 엉덩이 너무 아파 화닥닥 달아나가 우사칸으로 뛰여갔어요. 곤두뿔은 귀 뻘쭉해 의아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어요. 나는 곤두뿔의 대가리를 두 팔로 껴안고 하늘로 곤두선 반들반들한 뿌리며 퉁사발눈통이며 너부죽한 이마며를 매만지면서 엉엉 울었어요. 곤두뿔이 너무나도 불쌍해 입에 뽀뽀까지 했어요. 곤두뿔은 “음메-”하고 비통하게 영각하지 않겠어요. 나는 피뜩 묘수가 떠올라 구유 말뚝에서 고삐를 풀어 두 곤두뿔에 칭칭 감은 후 곤두뿔을 우사칸 밖으로 내몰았어요. “이라! 이라!” 곤두뿔은 의아해 어정쩡해 멈춰 섰어요.  “빨리, 빨리! 달아나라! 넌 범바위골에 달아나야 산다!” “왜? 달아났다가 또 너네 아빠한테 잡혀오겠는데. 괜히 달아났다가 잡혀 죽지 않을가?”  “지금 널 잡아 팔아 아빠 치료비를 만들겠단다. 어서 달아나!” 곤두뿔은 대수롭잖아했어요. “아무리 지독해도 자기 구명은인을 잡겠니? 믿어지지 않아.” “잔말 말고 어서 가자!” 나는 곤두뿔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치며 억지로 몰고 우사칸 뒤 강냉이밭 속에 난 오솔길까지 갔어요. 그런데 내 말을 미더워하지 않은 곤두뿔은 길옆의 풀을 뜯어먹으면서 느릿느릿 걸었어요. 이때 우사칸 쪽에서 어머니 앙칼진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어요. “창호야, 요 놈새끼, 당장 곤두뿔을 붙잡아오라. 소장사군들이 왔는데.” 나는 깜짝 놀라 곤두뿔의 잔등을 손바닥으로 탁탁 쳤어요. “빨리,빨리, 달아나라!” 그러나 곤두뿔은 뿌리를 흔들면서 투덜거렸어요. “아무렴 어찌 한뉘 날 부려먹고 잡아먹으라고 팔아먹기까지야 하겠느냐? 흥!   곤두뿔의 믿음은 한지에 방아를 걸 지경으로 빗나갔어요. 어느결에 어머니가 달려와 곤두뿔의 고삐를 뿔에서 풀어 단단히 틀어쥐였어요. 뒤이어 소장사군들이 들이 닥쳤어요. 그제야 곤두뿔은 상서롭지 못함을 눈치챘어요. 그는 퉁사발눈깔을 부릅뜨고 소장사군을 쏘아보더니 곤두뿔을 곤두세우고 발바닥으로 땅바닥을 허벼대면서 당장 뜰 상하며 씩씩거렸어요. “이 놈 소새끼, 뜨개소구만. 여기서 잡아야지. 끌고 가서 잡자다간 큰 경을 치겠구나.” 소장사군은 어머니 보고 망치와 칼, 숫돌을 가져오라고 했어요. 곤두뿔은 퉁사발눈으로 나를 돌아보며 “어쩌라는가?”하고 물었어요. “늦었어. 달아나라는데 달아나지 않더니. 아이고, 이걸 어쩌냐?” 그제야 곤두뿔은 하늘로 목을 길게 빼들고 대가리를 쳐들더니 “음메-”하고 구슬프게 영각했어요. 나는 곤두뿔을 보고 손사래를 치면서 속으로 부르짖었어요. (에엣, 곤두뿔아, 그 놈 소장사군을 콱 떠받아놔라! 어서 범바위골로 달아나라!) 그러나 곤두뿔은 어쩌지 못하고 소장사군의 손에 고삐를 잡히고 말았어요.어머니가 종이장 서른장 받고 고삐를 넘겨줬던 것이죠. “안돼!”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고함치며 소장사군의 손에서 고삐를 빼앗으려고 단말마적으로 달려들었어요. “왜 이래? 이젠 우리 소야. 놔라, 놔!” 소장사군은 사정없이 내 손을 뿌리치고 곤두뿔을 몰고 우사칸 쪽으로 갔어요.곤두뿔은 도살장으로 가는 줄도 모르고 자기를 구해 데려가는가고 여기고 두말없이 우사칸 쪽으로 꼬리를 휘휘 휘두르면서 성큼성큼 걸어갔어요. 나는 어머니 두 손에 붙잡혀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통공치며 곤두뿔을 살해하는 것을 뻔히 볼뿐 속수무책이였어요. 소장사군은 고삐를 물뚝에 매놓고 무쇠망치를 휘둘러 곤두뿔 사이를 꽝 내리쳤어요. “음메- 착한 주인엄마,어째 배은망덕하고 날 해치는가요? 음메-” 그렇게 용맹하던 곤두뿔은 망치를 련속 맞으면서도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비명소리를 지르면서 쿵 쓰러졌어요. 아, 얼마나 불쌍한 곤두뿔이냐? 해마다 일년 내내 우리 집을 위해 목덜미 다 터서 피고름이 흐르도록 밭갈이를 하고 싣걱질을 하던 곤두뿔, 생사를 무릅쓰고 범무리와 싸워 아버지를 범의 아가리에서 구한 곤두뿔, 골물에서 나를 업어 구한 구명은인,그  곤두뿔은 배은망덕한 주인의 손에 비참하게 죽고 말았어요. 산중 대왕이라는 범과의 생사박투에서 이기고 살아남은 곤두뿔은 사람들과의 생존박투에서는 죽고 말았어요. 보세요. 소장사군은 곤두뿔의 목을 베고 뻘건 피를 대야들이로 받아내 어머니 보고 가마에 끓이라고 했어요. 뒤이어 소장사군은 삶은 피덩이를 입귀가 째지도록 쑤셔넣고 게걸스레 씹어댔어요.그는 서슬푸른 뾰족한 칼로 소가죽을 벗기고 대가리를 떼내고 네다리를 끊어 손잡이뜨락또르에 실었어요. 듣는 말에 의하면, 사람들은 소가죽으로 구두와 혁띠, 가죽가방을 만들고 뼈와 고기는 부글부글 끓는 물에 푹 삶아 먹는다고 해요. 하얀 뼈는 가루를 내 닭사료를 한대요.진짜 뼈가루도 남기지 않는대요.  곤두뿔황소는 그래도 곤두뿐 한쌍만은 남겼어요. 그런데 그 곤두뿔을 볼 때마다 나는 곤두뿔이 불쌍하고 그리워 얼마나 우는지 몰라요.         나는 구두를 신지 않아요. 혹시 그 가죽이 곤두뿔의 가죽인지 어떻게 알아요? 나는 련며칠 밥도 잘 먹지 않고 울고 또 울었어요. 밤이면 자꾸 곤두뿔황소가 꼬리를 휘휘 흔들면서 나한테 찾아왔어요. “곤두뿔아! 음메-” 두 손을 하늘높이 벌리고 곤두뿔한테 달려가던 내가 글쎄 곤두뿔황소가 되지 않았겠어요.                                                        
219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49) 댓글:  조회:1382  추천:1  2020-04-14
                                                                                                                                                                                         79. 밤중에 울리는 전화벨소리 성호는 광고가 잘 되지 않아 밤중까지 침대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였다. 창문에 매달려 집 안을 들여보는 달빛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저 처량한 달빛은 조상님들과 아버지를 모신 칼산 기슭을 쓸쓸히 비추고 정희 침대머리도 어루만지리라 생각하니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소리가 처량한 달빛 어린 집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전화를 드니 둘째누나 춘자의 목소리가 느릿느릿 들렸다. “성호야, 올케 집에 있니?” “없소. 본가집에 갔소.” “응, 집 안이 복잡한 거 안다.” 춘자는 집이 빈 틈에 엄마와 전화해서 대개 정황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얘, 엄마를 경로원에 보내라. 지금 어느 자식도 모시기 힘들다. 옛날처럼 부모를 한 집에서 모신다는게 그리 쉽느냐? 지금 가정 현실에 맞지 않는다. 자식들은 대부분 자기를 낳은 부모를 모시려고 한다. 그러나 며느리와 사위는 달라. 건 반자식도 아니야. 남이야, 남!” 성호는 여지껏 춘자의 말은 명심해 들었다. 형제 가운데서 유일한 대학졸업생이기에 뭐나 선지선각이고 생활경험 또한 누구보다 풍부하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우리도 어진간하면 아들 둘이나 있는 상해에서 살지 않고 살던 곳으로 돌아왔겠느냐?” 성호는 누나가 불쌍했다.  춘자는 잔밥을 데리고 숱한 빚을 지고 사는 늙은 부모가 또 빚더미에 깔릴가봐 결혼식마저도 올리지 않았다. 사람은 평생에 첫돌생일상, 결혼잔치큰상, 환갑상까지 모두 세번 큰상을 받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춘자와 홍수는 부모의 부담을 덜어드리려고 결혼큰상도 받지 않았다. 춘자는 시집가서 아들 둘이나 낳아 기르면서 형제들의 모범이 되여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였고 동생들을 아끼고 구석구석 보살펴주었다. 그녀는 성호에게는 항상 앞길을 비춰주는 등대, 항상 시름놓고 기댈 수 있는 부두나 다름없었다. 춘자는 애들한테 자기 겪은 비극을 재차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근사한 혼례청에서 정춘의 결혼식을 성대히 올려주었다. 정춘의 색시 류초향은 항주 미녀였다. 옛말에   중국의 미녀는 소주와 항주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강남에서 날아온 첫날색시 류초향은 성호네 부부가 사보낸 첫날한복을 입혀놓으니 조선족색시처럼 얼마나 예뻤는지 몰랐다. 걀죽한 얼굴에 예지로 빛나는 령리한 눈, 오똑한 코, 진짜 고대미녀 림대옥처럼 예쁘지 않겠는가. 하객들은 미녀색시를 데려왔다고 혀를 끌끌 찼다. 류초향은 아주 총명하고 구지욕이 강해 자습해서 법률 석사까지 나왔다. 그녀는 마음씨도 착하고 인사례절도 밝았다. 홍수는 지금도 외우고 있다. 큰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새 옷을 사다 입혀주고나서 앞뒤를 돌아보면서 서툰 조선말로 귀여움을 대방출했다. “아버지, 딱 맞아요.” 홍수는 그 귀엽던 며느리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삼삼거렸다. “둘째며느리도 남방 색시였는데 한족며느리로서는 마음이 아주 무던했다.” “누나네 그 좋은 아들과 며느리 있는데 있을게지. 얼마나 외롭겠소?” “아들과 며느리들이 잘하지 못한다고 돌아온 건 아니야. 이제까지 10년 동안에 스무번도 넘게 상해에 갔댔다. 그런데 여러가지로 우리한테 맞지 않더라. 남방의 기후는 어찌나 더운지 우리 동북사람들이 살긴 힘들어. 여름이면 40도도 넘는 찜통더위에 견디기 힘들어. 에어콘을 맨날 24시간 켜놓고 살아도 안돼. 남방은 공기까지 습윤해서 집안도 더운 수중기가 돌아 진짜 찜질방 같아. 너네 매형은 원래 심장도 좋지 못한데 건조실 같은 집 안에서 못견뎌. 금방 샤와를 하고 나와도 인차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숨이 차 헐떡거린다. 5.1절부터 8월까진 우리 동북 사람들이 못 살 곳이야. 두번째는 남방음식이 입에 맞지 않더라. 우린 장국을 먹지만 거기 한족들은 기름범벅에 튀겨 먹고 짜거나 단 걸 먹기 좋아해. 난 혈당이 높은데 그런 걸 먹고 죽자고 거기 있겠니?” 성호가 춘자의 말을 들어보니 그럴 법도 했다. 남방과 동북은 모든 습관이 너무나도 달랐다. 설상가상으로 한족과 조선족은 더욱 달랐다. 게다가 자식들과는 세대차이까지 있었다. “살던 고장에 돌아오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한평생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도 자주 만나고 친구들과 함께 유람도 다닐 수 있어 좋아. 답답한 일이 있으면 속시원히 말할 사람들도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몰라. 다만 아들과 손녀들이 보고 싶을뿐이야. 큰 손녀 청우는 우리 손으로 10년이나 키운 애 아니고 뭐냐? 둘째손녀 정분도 얼마나 귀엽다고. 걔들이 보고 싶어 내내 눈물 흘린다.” 누나 말소리는 점점 떨리는 것 같았다. 아마 아들과 며느리, 손녀들이 보고 싶어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것 같았다. “맏아들과 맏며느리 고급아빠트를 사놓고 한 시내에서 살자는 걸 우린 돌아왔다.   자손들이 보고 싶으면 한해에 한, 두번 가보면 되지. 우리 늙은 량주 무슨 근심이 있니?” 성호는 누나의 말을 듣고 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 모든 늙은 량주들이 둘의 로임을 가지고 실컷 쓰면서 살 수 있다. 먹고 싶은 걸 사다 실컷 먹을 수 있다. 밤중에 시장하면 식장을 열고 먹어도 된다. 텔레비죤도 보고 싶은 걸 마음껏 볼 수 있다. 밤낮 팬티 바람에 마음대로 화장실에 가도 되지. 아무 때나 자고 일어나도 되니 얼마나 자유롭니? 제일간 부모자식간에 눈치를 보지 않아 좋다. 아들을 시집살이를 시키지 않아 더욱 좋다. 서로 갈라져 있으니 좋은 일이 한두가지 아니다. 부모자식간에도 자유로운 공간이 있어야 한다. 입안의 혀도 씹을 때 있다고 한 집이란 좁은 공간에서 아무리 부모자식 간이라도 사느라면 자칫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서로 떨어져 있으면 다툴 일도 없고 시간이 가노라면 서로 그리워질 것이 아닌가. “우리 친구들과 동료들이 모두 자식들과 갈라서 사는게 더 좋다고 말한다. 너도 참고해라.” 성호는 이제껏 춘자의 말이라면 토 하나도 달지 않고 그대로 다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젠 드문드문 자기 관점을 내놓기도 했다. “누나, 자식들하구 한 집에서 살지 않는 건 옳다고 생각하오. 그러나 늘그막엔 그래도 자식 곁에 있어야 하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얼마나 고독하고 안전하지 못하오. 자식들도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가 얼마나 근심스럽겠소? 자식들과 한 시내에서 따로 집을 잡고 살면 상책인 것 같은데…” 한참 후 춘자는 계속 뒤말을 이었다. “지금 세월에 자손 3대가 한 구들에서 산다는 건 힘든 일이야. 우리 부모들이  자식들한테서 뭘 바라겠느냐? 그저 자식들이 말썽 없이 행복하게 살면 돼. 자식들이 잘되면 부모들은 행복하고 기쁜 거야.” 춘자는 진심으로 막내남동생을 충고해주고 싶었다. “너도 옛날 우리 부모들의 전통방식으로 엄마를 모시려고 하지 말라. 좋기는 엄마를 경로원에 보내라. 이전에 어떤 누나들은 엄마를 돌아가면서 모시면 어떤가 했지만 안돼. 우리 형제 열이지만 어느 집도 들어온 식구들은 부모를 모실 사람들이 아니야. 엄마를 경로원에 보내면 늘그막에 밥을 지을 필요도 없고 마음고생도 하지 않지. 너도 중간에서 시집살이 하지 않고 올케도 속을 태우지 않아 좀 좋아?” 성호는 춘자의 말을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 “고민해보겠소. 아무쪼록 몸건강에 주의하오.” “그래, 고맙다. 딱 한 집에서 모시는게 효성하는게 아니야. 부모자식들이 모두 편안하게 사는게 상책이야.” “알았소. 참고하지.” 전화를 덜컥 놓은 성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는 경로원과 독집을 놓고 어디에 엄마를 모시면 좋을가고 밤늦도록 고민했다. 이튿날 밤중에 또 전화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한국에 있는 다섯째누나 은자한테서 온 전화였다. “성호야, 엄마 잘 있니?” 성호는 전화기를 고쳐쥐며 인사를 주고 받았다. “양, 누나 덕분에 새 집도 사고 택시도 하면서 엄마를 잘 모시고 있소. 근심하지 마오. 다섯째누나랑 잘 있소?” 언제 들어도 부드럽고 자애로운 누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그래. 성숙도 쌍둥이를 보면서 보모질해 한달에 180만원이나 번다. 나도 2층짜리 세집을 주고 병원에 나가 병간호를 해서 한달에 250만원은 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엄마를 경로원에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도 며느리를 삼아봤는데. 함께 있으니 서로 얼마나 불편한지 몰라. 한족며느리 돼서 조선족며느리보다 다사하지 않고 로실한데도 서로 불편하더라.” 은자는 불평을 토로하기 시작하였다. 성호는 누나의 넉두리를 그저 들어주었다. “철수가 몸이 실해 좀 살을 내리려고 고기랑 물에 삶아 간장에 찍어 먹게 하려면 안돼. 며느리는 남방 한족이 돼서 그저 본가집 엄마 기름을 푹 넣고 돼지고기를 볶아줘야 먹기 좋아한다. 우리 조선족들은 고추를 내놓고 어디 양념을 그렇게 푹푹 떠넣니? 장물에 끓인 돼지고기거나 삶은 돼지고기를 간장에 찍어 담백한 걸 먹기 좋아하지 않고 뭐니? 그런데 우리 며느리는 아니야. 숱한 양념을 푹푹 걷어넣고 기름에 볶고 지져 먹는다. 남방한족들은 짜고 시쿨고 단 걸 먹기 좋아하니깐.  우리 철수 이젠 돼지처럼 120킬로그람이나 된다. 걔 오래잖아 죽을 지경이야. 철수도 문제야. 피우지 말라는 담배를 바로 밥 먹듯 피운다. 한국 기업에서 주정뱅이 상전을 만나서 맨날 술에 취해 흙이 돼 집으로 돌아오지. 지금 바깥에서 식당음식을 자꾸 먹는 게 좋은 거 같애? 식당에서 돈을 남으려고 몇백번씩 튀개를 튀워낸 그은  페유를 걷어넣고 채를 볶아 올린다. 그런 채에는 발암물질이 가득해. 너도 식당 좀 작작 다녀라. ‘술을 작작 마셔라, 담배를 좀 피우지 말라.’ 철수한테 천만번 부탁해도 어디 듣니? 며느리 보고 좀 철수를 통제하라고 하면 뭐라는지 아니? ‘시어머니, 우리 제마음대로 살게 잔소릴 좀 작작 하세요.’ 이런다. 아이구, 원, 답답해 죽겠다.” 은자는 섭섭한지 한참 말을 잇지 못하다가 한참 후에야 말했다. “지금 녀자애들이 누가 시부모하구 함께 살자겠니? 엄마하구 올케를 마음고생을 시키지 말고 엄마를 경로원에 보내라. 우리 형제 사망한 넷째를 빼고 아홉이면 엄마 경로원 비용을 대지 못하겠니?” 그 말에 성호는 수긍할 수 없었다. “글쎄 자식들은 편할 것 같은데. 엄마는 마음 한쪽 구석에 쓰려 할 것 같소. 옛날 어른들은 아들 며느리하구 함께 사는 전통양로방식이 머리에 꽉 박혔단 말이요. 이전에 자녀가 하나도 없는 ‘오보호’ 늙은이를 양로원에 보내지 않았고 뭐요? 자칫하면 엄마는 숱한 자녀들을 두고 경로원에 가게 돼서 섭섭하고 마음이 아파할 게요. 원래 노여움이 많은 엄마가 맨 도리깨아들과 쥐며느리를 뒀다고 욕하면서 섭섭해하지 않겠소?” “야, 좀 말 들어라. 한 집에서 모신다고 해서 효자 아니야. 엄마를 마음이 편하게 모시는 게 효자야.” “알았소. 잘 생각해보겠소.” “얘, 오래 생각할 건 없어. 요즘 단위 일이 바쁘더라도 돌아다니면서 경로원을 알아봐라. 비싸더라도 환경이 좋은 경로원에 엄마를 모시자. 우리 아홉 형제가 돈을 모아서 비용을 대면 되겠지.” “알았소.” “그저 대답만 하지 말고 꼭 알아봐라. 부탁이야.” “양, 부탁대로 알아보지.” 누나네는 그간 엄마와 전화로 정황을 속속들이 알아내고 토론이 있은 것 같았다. 진짜 가정정치협상회의를 연 것 같았다. 어쨌든 여러 모로 엄마를 잘 모실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진짜 엄마를 경로원으로 보내는게 옳은가?) 그날부터 성호는 시내 주변에 있는 경로원을 돌아다니면서 두루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요일에 그는 시내에서 한 5~6리 떨어진 한 경로원으로 가보았다. 그 경로원은 원래 생산대 우사에 간벽을 촘촘히 막고 대충 구들을 놓은 것이였다. 침대를 놓고 나면 돌아설 자리도 없는 비좁은 방을 한달에 집세만 해도 300원씩 내야 했고 식사비용과 관리비를 합쳐 별도로 500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그때 성호는 신문사 광고회사에서 한달에 겨우 1200원을 받았다. 비용이 비싼 건 둘째고 양로시설이 말이 아니였다. 그런 초라한 경로원에 어머니를 모신다는 것은 말도 아니였다. 또 시내에서 서북 쪽으로 한 7~8리 되는 산기슭에 자리잡은 한 경로원에 가보았다. 사위가 사철 푸른 소나무에 둘러싸여 있는 2층짜리 경로원은 꽤나 아담했고  공기도 좋았다. 방도 좀 널직하고 실내에 위생실도 있었으며 텔레비죤과 옷장도 놓여 있었다. 2층에 있는 널직한 활동실에서는 로인들이 한창 “장훈이야!”, “멍훈이야!” 하면서 장기를 두고 있었다. 어떤 안로인들은 화토를 놀고 있었고 어떤 로인들은 운동기구에서 간단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식사시간이 돼서 양로원 식당에서 로인들이 식사하는 것을 여겨보니 시래기국에 김치 한접시에 밥 한사발 밖에 없었다. 한달에 식사비용 300원을 받는다고 했다. 돈을 좀 더 받더라도 밥반찬이나 더 올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에도 성호는 짬만 있으면 여러 경로원을 돌아보았지만 모두 맞갖지 않았다. 설상가상 어머니 세대는 경로원에는 자녀가 없는 로인들이 가는 곳으로 여기는   전통관념이 꽉 박혀 있었다. 어머니를 형편없는 경로원에 보낸다는 것은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편안하자고 엄마를 경로원에 못 보내지.) 그때 은숙이 찾아오지 않았겠는가. “얘, 성호야, 엄마를 내 모셔갈게.” 성호는 난처해했다. “아니, 무슨 소리요. 누나네 돕자는 건 고마운데. 자꾸 엄마를 여기 저기 옮기게 하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좋지 않소. 또 엄마를 누나네 집에 모셔가면 마을 사람들이 뭐라겠소? 지금 경로원을 알아보는 중이요. 누나네 너무 경로원 소리를 하니 말이요. 이게 이 소릴 하고 저게 저 소릴 하니까. 나도 어쨌으면 좋을지 모르겠소.” 성호는 속으로 성질이 팩한 은숙한테 엄마를 보내기 싫었다. 게다가 매형은 이전에 부모네 밭을 부치고서도 쌀마저 주지 않은 적이 있지 않는가. 부모를 보낸다고 해도 림시구급이지 장구지책이 아니였다. 은숙은 말을 바꿨다. “엄마가 우리 집에 가서 놀면 안되니?” 성호는 정색하는 은숙을 보고 “사돈할머니도 누나네 집에 있잖소? 누나한테 너무 부담시키지 않고 뭐요?” 하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괜찮아. 우리도 자식들한테 모범을 보여야지.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어째 부모한테 각박하게 굴었던가 싶다. 덕분에 덩실한 벽돌집에서 살면서 엄마 생전에 효성을 해야 이담 후회되지 않을 거 같아. 성호는 머리 숙어졌다. 그때 영옥도 방에서 객실에 나와 말했다. “나도 시내에 와서 아무리 좋은 층집이라도 떡 갇혀 있으니 몸이 말째구나. 좀 살던 고장에 가서 바람도 쏘이면 좋을 거 같다.” 성호는 자기 집 택시를 불러 은숙과 함께 엄마를 고향 마을로 모셔갔다. 은숙네 집에 가보니 누나와 매형은 어머니를 모시려고 그 추운 엄동설한에 글쎄 건너방에 구들까지 놓지 않았겠는가. 성호는 고향 마을의 누나와 매형이 속으로 고마웠다. 그렇다. 누나와 매형이 없으면 누굴 믿고 어머니를 고향 마을에 보낸단 말인가. 그는 누나와 매형을 더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눈풍설이 이는 날에 시내에 내려와 석탄을 사서 차를 세내 실어가지 않으면 안됐다. 그래도 셋째매형 경만과 누나 은숙이 고마웠다. (옛날부터 충신은 효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난 사업도 잘하고 어머니한테 효성을 다할테야.) 그런데 진짜 어머니를 잘 모시자고 하니 일이 자꾸 꼬였다. 한나한테서 시어머니 고향의 셋째딸 집으로 갔다는 말을 들었던지 정희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겠는가. “이거 해 서산에서 돋지 않는가?” 성호는 오랜만에 안해를 보고 기쁘다는게 불쑥 이런 말이 튀여나갔다. 정희는 단통 새침해 외까풀눈으로 남편을 쏘아보았다. “어째 오지 못할 데를 왔소? 난 성호란 효자의 당당한 안해란 말이요.” 성호는 정희를 끌어안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래, 정희는 영원히 내 색시야. 절대 엄마 때문에 우리 이 벌어지지 말아야지. 안 그래?” 정희는 성호의 품에서 빠져나오면서 이 구석 저 구석 살폈다.  “요즘 단위 일이 바쁜가요?”  “괜찮소. 요즘 시내 주변에 있는 여러 경로원을 돌아보았는데 다 맞갖지 않습데.” “어째 경로원인가요?” “누나네 어찌나 경로원에 보내라고 하는지.” 정희는 피씩 코웃음쳤다. “동문 정말 귀 널러 대사죠. 팔순이 넘은 어머니를 자기 집에서 모시지 않고 경로원에 보낸다고? 어머니나 동네 사람들이 동무네 형제들을 뭐라겠어요?” “무슨 뾰족한 수 있소?” “누나들은 정말 큰 일 났어요. 자기네 모시지도 못하면서 쩍 하면 동무를 줴 흔들자고 든단 말이오.” “그래도 형제들이 엄마 생활비도 보내왔단 말이요.” “그 돈이 뭐 큰가요?” 정희는 또 푸념질을 하기 시작했다. “동무네 누나넨 시부모를 모셔보지 못해서 며느리 실정을 잘 몰라요?” “며느리를 삼아봐서 부모의 심정은 잘 알던데.” 정희는 침대에 앉으면서 계속 푸념질을 했다. “하나하나 보세요. 어느 누나 시부모를 모셨는가?” “지금 셋째누나 시엄머와 친정엄마를 한구들에 모시고 있잖소.” “시엄마를 모셔보니까. 본가집 엄마 생각이 나서 모셔갔겠지. 그게 며칠이겠어요?” 정희는 침대에서 일어나 종주먹으로 성호의 가슴을 툭 쳐놓았다. “당신은 그래 사위 돼가지고 예순이 넘은 가시부모를 모실 생각은 한번이라도 해봤어요? 자기 엄마만 엄마라면서.” 말을 듣고보니 성호는 정희한테 미안했다. “죄송하오. 정희, 가시부모는 젊다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소. 우리 이제부터 량쪽 부모를 다 잘 모시기오.” 정희는 해쭉 웃었다. “그럼 그렇죠.” 그녀는 전번에 울며 불며 떼를 쓰던 일이 언제 있었느냐는듯이 말도 잘하고 기분도 좋아보였다. “이렇게 하면 어떨가요?” “?” 성호는 자기 손까지 잡는 정희의 파란 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내 한나를 데리고 본가집에 가 있든지. 아니면 세집을 잡고 나가 있든지?  어떤가요?” 정희의 말에 성호는 도리머리를 홰홰 내저었다. “되지도 않을 소릴! 그래 부부간에 생리별이라도 할 작정이오?” 정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정색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죠. 그래도 제 방안이 실제적인 거 같애요. 저와 딸이 보고  싶으면 일주일에 둬번 우리 사는 집에 오세요. 한나도 당장 대학시험을 쳐야죠. 시어머니 때문에 옥신각신하면 애가 어떻게 공부해요? 진짜 시엄마를 모시지 못하겠어요. 당신이 자꾸 핍박하면 리혼하는 길 밖에 없어요.” 정희는 작정하고 온 것 같았다. 성호는 성이 꼭두까지 치밀었다. “쩍하면 리혼소리요? 난 생명과 모든 걸 준 엄마와 갈라질 순 없소. 누가 리혼하자면 두려워 할 거 같소? 너무 핍박하지 마오.” 그는 자존심에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정을 유지하려고 최대인내력으로 꾹 참아버렸다. 정희는 옷을 주어입더니 “잘 고려해보고 전화 주세요.” 하고 훌 나가버렸다. 창 밖에서 쓸쓸한 달빛이 적막한 집안을 훔쳐보면서 들어올가말가 망설이고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한나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성호는 한나의 손을 잡고 빌다 싶이 애원했다. “얘, 외가집에 가서 엄마를 데려오라. 엄마는 아빠를 버리고 달아나려고 해. 이 가정이 깨지면 넌 날개 부러진 외로운 새로 돼.” “아빠!” 뜻밖에 한나는 찬바람이 홱 불어치는 눈길로 흘겨보았다. “어쩜 엄마도 잘 보살피지 않아 리혼까지 해요?” “어쩌겠니? 다 아빠 잘못이구나. 부탁이다. 응? 네가 엄마를 이 집에 데려오라.” 한나는 량볼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니 마지못해 머리를 끄덕이며 외가집으로 떠나갔다. 이튿날 저녁에 문소리가 덜컥 나더니 한나가 정희를 데리고 오지 않았겠는가. “여보!’ 성호는 정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이걸 놓으세요. 온 몸에 푹 밴 어머니 냄새 코를 찔러.” (항상 ‘냄새’, ‘냄새’ 하면서 정말 더럽게 노니?) 정희는 성호를 활 밀어놓고 신도 벗지 않은 채 현관에 서서 물었다. “어머닌 어데 갔어요?” “양, 셋째누나네 집에 놀러 갔소.” “어머니를 어떻게 모실 예산인가요?” “올라오오. 천천히 토론하기요.” 정희는 마지못해 구들에 올라왔다. “누나넨 형제들이 돈을 모아서 엄마를 경로원에 보내자고 합데.” 정희는 픽 코웃음쳤다. “여섯이나 되는 누나넨 누가 모시겠다고 하는가요? 무리를 지어 막후조종만 한다니까. 여보, 당신은 왜 자기 주대도 없이 누나네 말을 그렇게 귀 넓적해 듣기만 해요? 시간 없어요. 툭 찍어 말하세요.” 성호도 말할 때 됐다고 여겼다. “이 집에 엄마를 모시고 우리 세집을 잡고 나가는 게 상책인 거 같소. 형제들한테서 쓸데없는 뒤소리를 듣지 않고 서로 편리할 게 아니오?” “이제야 머리 좀 도는 것 같군요.” 정희는 반색했다. “동무나 앞뒤로 다니면서 다 돌보면서 살아요.” 정희는 해시시 웃으며 성호의 두 팔을 잡고 마주 바라보았다. (에이, 요 미꾸라지를. 내한테 싹 밀어놓고 스리슬쩍 빠져나가는 거 봐라.) 한나는 멋도 모르고 부모가 싸우지 않자 마음이 놓이는지 안방으로 들어갔다. 성호는 근사한 세집을 얻어놓은 후 이사회사 사람들을 불러다 이사짐을 실어갔다. 그리고 어머니도 고향에서 시내 집으로 모셔왔다. 어머니도 좋아했다. 며느리 눈치밥을 먹지 않기에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았기 때문이였다. 영옥은 성호가 점심에 쉬러 들어오면 안방에 들어와 서성거리면서 혼자말로 중얼거리군 했다. “옛날부터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는 법이지.” 성호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어느 하루 성호가 아빠트단지 슈퍼마켓에서 어머니가 잡숫기 좋아하는  돼지고기와 상추를 듬뿍 사들고 집에 와보니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황급히 층집에서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 아빠트 동쪽의 층계에서 해볕쪼임을 하는 이웃할머니들과 물어봐도 누구도 못 봤다고 했다. (어디로 갔을가?) 성호는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막내처남 준식한테 택시를 몰면서 시내 어디에서 어머니가 보이는가 봐라고 부탁했다. 고향마을에 돌아갔는가고 셋째누나네 집에 전화를 해봐도 온 적이 없다고 했다. 성호는 잔등에 소름이 끼쳤다. 어머니는 아직 치매가 오지 않았다. (그럼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는 혹시나 해서 파출소에도 달려가 신고를 해놓았다. 성호가 정신을 잃고 밤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성호 선생인가요?” “예. 누구십니까?” “파출소입니다. 어머니를 모셔가십시오.” “예? 예. 곧 가지요.” 성호는 준식한테 핸드폰을 쳐서 택시를 몰고 오라고 해 택시를 잡아타고 파출소로 달려갔다. 파출소 당직실에 어머니가 청년경찰 옆에 초조히 앉아 있지 않겠는가! “엄마!” “아들이!” 그들 모자는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뜨거운 상봉의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알고보니 어머니는 혼자 남새를 사려고 아빠트에서 1킬로메터도 넘게 떨어진  시장에 갔다가 길을 잃어 온 하루 행인들과 물으면서 헤맸다. 해가 져서 큰길 가로등  밑에서 서성거리는 어머니를 마음씨 착한 경찰이 파출소에 모셔가지 않았겠는가. “감사합니다. 경장님!” 성호는 연신 감사를 드리고나서 어머니를 택시에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그는 어머니 손을 잡고 이후에는 혼자 시내에 나가지 말고 잡숫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자기와 말하거나 아빠트단지 상점에 가서 사 자시라고 신신당부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고생시키는 것 같아 머리를 끄덕였다. 영옥은 자기를 찾아와 큰절을 올리는 한나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얘, 불시에 절은 무슨 절이냐?” 한나는 할머니 주름살이 주글주글한 두 손을 꼭 잡고 눈물을 머금고 말씀드렸다. “할머니, 이제 보면 할머니를 언제 볼지 몰라요.” “어째 어데 가니?” “예, 할머니, 미국에 류학가게 돼요.” “혼자?” “아니, 엄마 함께 가요.” “엄마는 한국에 유람가고. 제가 남아서 공부한다고 해요.” “오~ 우리 막내손녀 한국에 류학 가? 참 좋구나. 네가 잘되면 할머니도 좋아. 방학이면 자주 놀러 와.” “예~” 점심에 아들이 돌아오자 영옥은 또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릇과 녀자는 내돌리면 못써. 꼭 축나지 않으면 망가져!” 어머니는 분명 며느리와 한나가 나도는 것이 납득되지 않아했다. 성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였다. 성호의 생일날이였다. 밤중에 승호는 생일을 축하해주겠다고 하면서 안마방으로 청했다. 성호는 저으기 고마웠다. (자식, 이젠 삼촌취급 하는 건가?) 그는 피뜩 무슨 궁리를 하다가 승호를 데리고 순희네 안마방으로 갔다. 금방 안마방에 들어섰는데 전화 벨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정희의 전화였다. “여보, 생일 축하해.” 성호는 순희의 방에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어, 감사하다. 지금 어디지?” “미국.” “뭐라고? 언제 미국까지 갔어?” 성호는 정희의 전화를 한참 듣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희는 깔깔깔 웃었다. “다단계판매할 때 한국 백영 사장 기억나죠? 백사장 연줄로 옆집 엄희선 아줌마랑 미국에 왔거든요.” “아니, 한국에 갔는가 했너니 미국에 갔어?” “한국에 나왔다가 미국에 건너왔지.” “그래? 한나도 미국에 있니?” “놀라지 말라고.” 좀 끊었다가 정희 목소리가 챙챙하게 들려왔다. “어떻게 돼 거기까지 갔어?” “알 필요없어. 의심 많은 당신, 머리 복잡해질 거야. 잠간, 놀라운 소식 하나  알려줄게. 내 한국에 있을 때 일인데요. 2호선 지하철에서 당신네 그 송준이 선희라는 년하구 다니는 걸 봤어.” “뭐라고? 혹시 사람 잘못 보지나 않았어? 송준은 일본에 갔다는데.” “아니요. 확실히 송준이였어요. 혹시 잘못 봤나 해서 뒤쫓아가서 똑똑히 보았는데요. 선희와 손잡고 희희닥거리면서 가던데요. 제가 선희를 몰라요? 시내에 소문난 명모델인데요. 잘못 볼 수 없어요.” “그 놈 일본에 간다고 우릴 얼려놓고 갈보년 찾아 한국에 갔어? 더러운 놈, 제 명에 죽는가 봐라.” “여보세요. 지금 어데 있지?” “오, 순희네 집이야.” “밤중에 거긴 왜 갔나? 혹시 안마방 아니야?” “승호 생일을 축하해준다고 왔어.” “오늘 어머니도 생일연회에 모셨어요?” “아니, 숱한 손님들을 청해놓고 모시고 다니기 불편해서 그만뒀소. 어머니 반가와하는 음식 주문해 미리 가져다 드렸어.” “당신도 효자인가요? 생일은 기실 어머니 고생한 날이 아니고 뭐야? 어머니 얼마나 고독했겠어?” 성호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안마방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그는 한시급히 어머니 보러 가고 싶었다. 그러나 승호의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한시간 푼히 안마를 받고 가도 늦지 않겠지.) “술 작작 마시고 저녁에 일찍이 어머니한테 가라. 부탁이야.” “알았어. 아무쪼록 안전에 주의하면서 잘 있어라.” “오, 그래. 너무너무 사랑해. 빠이빠이.” 성호는 핸드폰을 끄면서 흘겨보는 순희 표정을 읽었다. 그는 자기를 부르는 승호의 목소리를 듣자 순희의 귀에 대고 뭐라고 쑤근거렸다. “뭘해?” “쓸데 있어서.” “알았어.” 성호는 단간방으로 들어가면서 눈을 찔끔해 보였다. 순희는 승호한테 들어간 아가씨를 불러내 뭐라고 쑤근거리더니 들여보냈다. 아가씨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승호의 방에 들어갔다. “아가!” 승호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가씨가 머리를 마사지하다가 머리카락을 어찌나 아프게 줴당겼는지 때끔해날 지경이였다. “미안해요.” 아가씨는 머리카락 몇대를 종이에 싸 옆구리에 스리슬쩍 감췄다. 이윽고 그녀는 화장실에 가겠다고 나갔다가 순희네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였다. 성호는 누워 있는 척하다가 가만히 뒤따라가 문틈으로 승호의 방을 살펴보았다. 아가씨는 순희네 칸으로 들어가지 않겠는가. (OK!) 성호는 엄지와 식지를 딱 소리나게 튕겼다. 그는 위생실로 가는 척하면서 순희네 방으로 들어갔다. 순희는 원주필로 종이에 뭔가 쓰다가 그만두며 보름달 같은 얼굴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걸 해 뭘 하오?” “쉿- ” 성호는 식지를 입술에 대고 승호 방을 되돌아보았다. 순희는 승호의 머리카락을 싼 비닐봉지를 성호한테 내밀었다. 성호는 비닐봉지를 안마복 주머니에 넣은 후 안마방으로 들어갔다.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 그는 속으로 욕지거리하면서 침대에 들어누웠다. 아가씨가 시원하게 마사지를 해주자 잠이 스르르 몰려왔다. (자식, 이제 몽땅 밝혀질 거야.) 성호는 침대에 누워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가씨의 마사지를 받으면서 허탈감에 빠졌다. 한참 후 안마가 끝나자 성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집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가 기다리는 것 같았다. 승호의 머리카락을 싼 비닐봉지를 잘 건사하고 혼자 집으로 쥉쥉 돌아와버렸다. 승호는 바깥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그때까지도 안마를 받느라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영옥은 밤중까지 쉬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이 돌아오자 조용히 안방에서 객실에 나왔다. “어머니, 참, 미안합구마. 저녁은 제대로 잡쉈습니까?” “그래, 며느리 가져온 생일 음식 잘 먹었다. 무슨 술을 그렇게 온밤 마셨니? 몸 조심하구 술 좀 작작 마셔라.” “예, 엄마, 미안합니다. 편안히 쉽소.” 어머니가 마지못해 자기 방에 어정어정 돌아가자 성호는 침대에 푹 쓰러졌다. 그는 어머니한테 죄송스러웠다. 어머니는 40여년 전에 자기를 낳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때는 대약진시기여서 쌀 고생이 아주 심했다. 그를 낳기 전날에 먹을 쌀이 없어 어머니는 만삭이 된 배를 부둥켜안고 고향마을에서 15리나 떨어진 천수해 시장에 가서 강냉이쌀 30근 사서 이고 돈이 없어 점심도 잡숫지 못하고 집으로 한발자욱한발자욱 힘겹게 돌아왔다고 한다. 뜨끔뜨끔 아파나는 배를 안고, 세상에 나오려고 발버둥질하는 발개돌을 배 속에 넣고 매만지면서 이를 악물고 집으로 돌아와 쓰러졌다고 한다. (어머니는 힘들고 배 아프게 날 낳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고생한 날 네놈은 어머니를 빈 집에 홀로 두고 친구들과 함께 술을 처먹고 안마방에 갔다가 밤중에야 돌아왔다. 아이고, 어머니, 이 불효한 도리깨아들을 귀쌈이라도 칩소. 어머니~) 그는 눈물을 훔치며 일어나 앉았다. 이제라도 어머니한테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만두었다. 괜히 엄마 쓸쓸한 마음을 다시 건드려 비감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다신 생일을 쇠지 않을테야. 생일에 아버지 산소에 찾아가 큰절을 올리고 엄마를 모시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테야. 어머니한테서 살아온 얘기나 들어야지. 엄마 무릎을 베고 다정하게 손을 잡고 나를 낳아 키우던 얘기도 듣자. 그럼 엄만 반가와서 끝없이 얘기를 들려줄 거야.) 스물스물 몰려드는 불효감, 더불어 고독감과 함께 흘러간 반평생이 너무나도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정희 말처럼 진짜 해놓은 게 뭔가? 마흔고개를 넘었는데도 부모께 효성을 잘 해드리지도 못했고 대를 이을 아들 하나 낳지 못했지. 처자한텐 해준 게 뭔가? 이젠 빚더미에 지지 눌려 숨막힐 지경이야. 사회에 나가선 아직도 광고회사 일반직원이야.  로상전 김범수 총경리가 봐주어서 신문사에도 겨우 들어간 게 아닌가.) 그는 너무나도 한심해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문들어질 것 같은 그의 가슴은 가물에 말라터진 논바닥 같았다. 실망에 찬 마음은 눈풍설이 휘몰아치는 산야에 홀로 서 있는 소나무 신세 같았다. 그때 어디에서인가 한 녀인의 목소리가 귀전을 때리는 상 싶었다. 귀에 퍽 익은 목소리였다. (정희 목소리인가? 아니야. 누구야?)   오빠, 맥을 버리지 마세요. 이럴 땔수록 만족할줄 알아야 해요. 오빤 누구보다 마음씨 착해 잘 된 일이 많았어요. 어려운 생활형편에서도 부모께 효성을 다했기에 누님들이 돈을 뀌워주고 힘을 합쳐 어머니한테 효도를 하기로 했지요. 정의감과 의리심이 강한 정의용사이기에 머나먼 내몽골 쑤싼나 일가가 소장사를 도와주지 않았는가요? 오빠, 힘내세요. 절대 곡절 앞에서 머리를 숙이지 말고 용감하게 생활난을 이겨나가세요.   (환청인가? 딱 전화에서 들리던 녀성의 살뜰한 말소리 같은데. 정희인지, 연화인지? 쑤싼나? 순희인가?) 놀랍게도 또 녀성의 목소리가 귀전을 아프게 때렸다.   민심이 천심이죠. 오빤 잃은 게 많지만요. 대신 수많은 인심을 얻었어요. 오빠와 사랑은 이루지 못했지만요. 오빠의 진정과 사랑 그리고 착한 마음에 보답하고 있잖아요? 오빠를 헐뜯고 못 살게 군 오청룡과 리굉팔의 추악상과 죄상을 검거했지요. 오빠는 돈과 지위는 얻지 못했지만요. 사람부자, 마음부자, 사랑부자예요. 오빠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믿고 용감히 운명에 도전하세요. 오빠가 이제껏 도와준 모든 분들이 오빠를 도와줄 거예요.   성호는 벌떡 일어났다. (아, 은영인가?!) 방안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었다. 진짜 괴상한 일이였다. (무슨 유령이라도 하늘에서 내려와 귀띔하는 목소린가?) 성호는 빈 집 안에서 신비한 달빛을 밟으며 왔다갔다 거닐면서 속으로 되뇌였다. (이제껏 곡절도 많이 겪고 실패의 쓴 맛도 많이 봤지. 패배의 교훈을 섭취해 열심히 살아보자.)
218    동화 욕심 많은 잰내비왕 김장혁 댓글:  조회:1168  추천:0  2020-03-23
     동화               욕심 많은 잰내비왕                                  김장혁        안개인가 구름송이인가 기암괴석과 절벽 사이를 파도치다가 사라지자 백길 절벽 우에서 하얀 눈사태가 무너져 내리는듯이 쏟아져 내리는 백운폭포가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어요. 폭포수가 하얀 물발처럼 가리고 있어 먼 곳에서는 폭포 뒤에 숭숭 뚫린 수렴동의 원숭이 굴들이 보이지 않았어요. 허허, 이 심산에 이렇게 멋있는 잰내비왕국이 있지 않는가! 수렴동 웃쪽 절벽 우에는 숱한 원숭이들이 해볕쪼임을 하면서 뛰놀고 있었어요. 어떤 원숭이들은 나무에 매달려 그네를 뛰면서 재롱을 피우고 있었어요. 독수리가 날아내리다가 굳어진 것 같은 기암괴석 아래 너럭바위에 커다란 원숭이 한 마리가 틀스레 앉아 있었어요. 숱한 원숭이들이 그 원숭이에게 바나나와 복숭아를 뜯어다가 바쳤어요. 갑자기 그 원숭이가 살기 넘치는 갈색 우묵 눈을 부릅뜨더니 아가리를 짝 벌리며 고래고래 고함치었어요. 그러자 숱한 원숭이들은 짹짹 새된 소리를 지르며 바위돌 틈과 나뭇가지 사이에 몸을 옹송그리고 바들바들 떨었어요. 그 원숭이가 바로 수렴동의 “손욕”이라는 잰내비왕이 틀림없었지요. 째진 귀와 검정 코를 보면 그가 왕위에 오를 때 얼마나 치열한 결투를 벌이었는지 짐작이 갔어요. 원숭이왕은 혹달개라는 원숭이가 가져온 바나나가 썩었다고 대노해 용상이나 다름없는 너럭바위 우의 수박을 쥐어뿌리었어요. 수박이 혹달개의 머리에 맞아 박살나 절벽아래까지 날아가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어요. 혹달개 머리에는 대뜸 오그래알만한 혹이 생겼어요. 매 발톱이란 원숭이가 나서서 말렸어요. “대왕님, 왜 쩍 하면 우릴 때려요?” “뭐, 어찌구 어째? 그래 너희들이 감히 내 왕권에 도전할 테냐?” “아니, 건 무슨 소립니까?” 원숭이왕은 숱한 원숭이들이 자기를 쏘아보자 민심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어요. “미안하네. 금방 자네를 시험해 본 거야. 난 의심스러운 사람을 쓰지 않고 쓰는 사람은 의심하지 않네.” 알고 보니 잰내비왕 손욕은 스스로 자기는 3천여 년 전 화과산 수렴동의 잰내비왕 손오공의 98대 후손이라고 자처했어요. 아하, 당나라 때 당승을 따라 저팔계와 사승과 함께 서경으로 불경을 얻으러 간 그 절세의 영웅 손오공을 말하는 거지요. 잰내비왕 손욕은 힘도 세고 머리도 좋지만요. 너무나도 욕심이 과해서 원숭이들은 뒤에서 “손요귀”라고 욕하고 있었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손욕 잰내비왕은 오늘도 폭포수가 쏴-쏴- 쏟아지는 수렴동 그늘에서 늘어져 푹 자고 일어나자마자 원숭이들에게 호령했어요. “허허허, 오늘 날씨가 참 좋구나. 백운봉 꼭대기에 올라가 놀자꾸나.” 그는 숱한 원숭이 아가씨들의 옹위를 받으면서 층암절벽을 톱아 올라 백운봉에서 제일 높은 자리 독수리 바위에 올라가 척 드러누웠어요. 하품을 짝짝 하던 손욕 원숭이왕은 “하- 낮잠을 잤더니 잔등이 근질거리는구나. 아가씨들아, 내 잔등을 긁고 이나 잡아라.” 하고 명령했어요. 누구의 명이라고 언감 어기겠어요. 원숭이 아가씨들은 독수리바위 앞의 너럭바위에 비스듬히 잰내비왕을 둘러 앉아 손으로 잔등을 긁어준다, 어깨를 주물러준다 하며 옆구리며 엉덩이 털을 살살 번지면서 이를 잡았어요. “어, 시원해라. 오늘 수렴동 백운봉의 경치가 참말 좋구나. 어서 춤을 춰라!” 원숭이 아가씨들은 잰내비왕 앞에서 찍찍거리며 엉덩이춤을 추었어요. “얼씨구나 좋다, 지화자 좋을시고!” 손욕 잰내비왕은 흥이나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춤판에 끼어들어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어요. 그러다 산 아래에서 숱한 원숭이들을 데리고 부지런히 복숭아를 뜯는 혹달개에게 눈길이 멎었어요. (이 수렴동에서 내 왕위를 도전할 놈은 저 혹달개 뿐이야.) 그는 저쪽에서 망을 보며 수렴동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백산을 보고 손짓했어요. 손욕은 잰내비왕 품위도 없이 혹달개를 헐뜯기 시작했어요. 그는 복숭아를 광주리에 담아 메고 절벽으로 올라오는 혹달개를 손가락질하며 빈정거렸어요. “아가씨들, 저 혹달개를 봐. 어쩌면 저렇게 못 났어. 털을 봐. 불에 태워 죽일 놈이 돼 그런지 불같이 새빨갛지. 이마빼긴지 숫구멍엔 혹이 들어박혔지. 송곳이를 봐. 멧돼지 송곳이처럼 뾰족한 게. 저 혹달개는 자기 이를 잡아 씹어 먹는 멍청이야. 돼지만도 못해.” “호호호” 원숭이아가씨들이 웃어대자 손욕은 흥이 점점 도도해졌어요. “오랑캐 종자 같은 게, 저 엉덩이를 보오. 빨갛다 못해 홍무우 같다니까. 저 놈 때문에 우리 원숭이 엉덩이를 애들이 뭐라는지 알아? ‘젠나비 밑구멍이 빨갛다’ 하지 않아?” 원숭이아가씨들은 코를 싸쥐고 요절할듯이 깔깔깔 웃으며 지껄여댔어요. “잔나비 밑구멍이 빨갛다. 빨간 건 사과.” “사과는 맛있어!” “호호호” 손욕은 계속 지껄이었어요. “맞아, 아가씨들의 말이 맞아. 빨간 사과면 먹기나 좋지? 저 혹달개 놈 땜에 우리 원숭이 엉덩이가 다 팔린단 말이야.” 이때 불여우처럼 생긴 불여우원숭이아가씨가 실버들허리를 배배 꼬면서 응석을 부렸어요. “오늘 기분도 좋은데요. 우리도 화과산 기슭에 사는 마을 사람들처럼 돼지고기 안주에 모태주를 마실까요?” “오ㅡ 그래.” 잰내비왕 손욕은 너럭바위에서 일어나 불여우의 잔등을 다독이어 주더니 백산원숭이에게 손짓했어요. “어이, 백산 원숭이! 옳아. 이젠 자넬 백산이라고 부르겠네.” 손욕은 잰내비왕의 틀을 차리면서 분부했어요. “백산, 자넨 우리 화과산 수렴동에 숱한 과일과 고기를 가져오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치지 않았는가? 얼른 저 아래 산기슭 마을에 가서 모태 주와 푹 삶은 돼지고기를 가져오게나.” 갓 온 백산을 고험하려는 것이었어요. “예, 알았습니다.” 드디어  백산은 산기슭으로 내려가 모태 주 몇 병과 과일, 푹 삶은 멧돼지고기를 얻어왔어요. 그러자 잰내비왕 손욕은 입귀가 귀밑에까지 째질 지경이었어요. “확실히 백산은 희한한 놈이야, 어쩜 머나먼 북녘에서 왔건만 뭘 잘 얻어오는 재간이 있단 말이야! 허허허!” 아가씨들도 백산을 신기한 눈길로 바라보았어요. 손욕은 양팔에 원숭이 아가씨들을 하나씩 껴안더니 지분거렸어요. “오늘 실컷 먹고 질탕하게 놀아보자!” 속욕과 원숭이 아가씨들은 푹 삶은 돼지다리를 한 짝씩 쥐고 곤드레만드레 취토록 모태주를 마셨어요. 다른 원숭이들은 먹고 싶어 바위틈에서 이쪽을 훔쳐보면서도 군침만 질질 흘릴뿐이였어요. 허나 욕심 많은 잰내비왕은 근본 줄 염도 없었어요. 이때 백산은 원숭이 몰래 가만히 과일과 돼지고기를 뭇 원숭이들에게 나눠 주었어요. “백산! 네 이놈! 내 돼지고기를 가지고 인심을 내?!” 어느 결에 눈치 챈 손욕은 백산을 독기어린 눈길로 쏘아보는 것이었어요. “아니, 내가 가져온 건데요. 어찌 대왕님 혼자 거라고 그래요?” “뭐, 뭐?! 이놈이 언감 나한테 도전해?!” 손욕은 성이 나 펄펄 뛰더니 원숭이 아가씨들을 활 놔버리고 씽- 백산에게 덮쳐들었어요.     백산은 반항도 하지 않고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허망 숫구멍을 물리었어요. 혹달개랑 매발톱이랑 숱한 원숭이들이 찍찍 비명을 지르면서 돌 틈과 나무 뒤에 숨어     백산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냈어요. “아가!” 그런데 이변이 생겼어요. 글쎄 잰내비왕이 입을 싸쥐고 굴렀어요. 웬 일일까요? 원래 백산의 숫구멍은 쇠로 만든 것이죠. 잰내비왕은 쇠숫구멍을 딱 깨물었다가 송곳이가 부러졌던 것이죠. “허허허. 아무 거나 물어 되나?”     백산은  너털웃음까지 웃었어요. 뭇 원숭이들은 의아해 잰내비왕과 백산을 번갈아 보았어요. 잰내비왕은 피가 줄줄 흐르는 입을 싸쥐고 공포에 질린 눈길로 백산을 쏘아 보았어요. 그렇게 그저 쉽게 지고 말 잰내비왕이 아니였죠. 그는 독수리바위 밑으로 씽 뛰어가더니 두 길이나 되는 쇠몽둥이를 빼들고 휘두르며 덮쳐 왔어요. “그만 싸우십시오!” 혹달개가 나서서 말리었어요. “백산은 우리 수렴동에 숱한 과일과 돼지고기를 가져 왔습니다. 때리지 마십시오.” “잰내비왕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금고봉으로 단매에 쳐 죽일 테야!” 손욕이 금고봉으로 백산의 머리를 땅 내리쳤어요. 허나 백산은 날아드는 금고봉을 피하지도 않았어요. 쟁강! 쇠와 쇠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불티가 튕겼어요. 허나 백산의 머리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잰내비왕 손욕은 너무 이상해 재차 금고봉으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련이어 내리쳤어요. 땅! 쟁강! 땅! 쟁강! 쇠 부딪치는 소리가 날뿐이였어요.      백산은 몸을 좀 휘청할 뿐 태산처럼 끄떡하지도 않았어요. 잰내비왕은 더럭 겁이 났어요. (이놈, 무슨 놈이야?) “따웅~” 이때 때마침 얼룩호랑이 한 마리가 절벽 위에 나타났어요. 호랑이는 격노해 부르짖었어요. 그런데 호랑이가 고래고래 고함치는 것이 아니겠어요. “네 놈들이 감히 내 부모의 가죽을 벗겨 룡상에 펴놓고 앉아 있어! 오늘 부모 원쑤 갚으러 왔다. 잰내비왕 놈아, 명년 오늘은 네 제사 날이다!” 원숭이들은 겁이 나 칡넝쿨을 잡고 굴러 폭포 뒤의 수렴동 안으로 들어가 피신했어요. “후에 보자!” 손욕은 백산을 놓아주더니 금고봉을 거두고 칡넝쿨을 잡고 수렴동 안으로 날아 들어가려고 했어요. 따웅~ 호랑이가 덮쳐들어 칡넝쿨을 물어뜯었어요. 잰내비왕은 그만 폭포아래 못에 풍덩 떨어져 허연 물 바래를 일구었어요. 호랑이는 놓칠세라 절벽 아래로 어슬렁어슬렁 기여내려갔어요. “날 살려달라!” 잰내비왕 손욕은 금고봉을 쥐고 뭍에 기어올라 뭇 원숭이들에게 소리쳤어요. 누구도 나서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혹달개와 매발톱이 뛰여내려가 자기들의 왕에게 덮쳐드는 얼룩호랑이의 앞을 막아 나섰어요. “이 놈, 우리 왕을 놔둬라!” 그들은 호랑이를 슬슬 유인해 절벽위로 올라갔어요. 그 틈을 타서 잰내비왕 손욕은 나무위로 바라 올라가 몸을 피했어요. 호랑이는 절벽 위에 따라 올라가 혹달개와 매발톱을 한입에 물려고 씽 덮쳐들었어요. 그때 백산이 씽 날아가더니 호랑이 잔등에 올라탔어요. “위험해! 어서 내려!” 허나 백산은 호주머니에서 레이저비수를 꺼내 호랑이 목에 휙 휘둘렀어요. 그러자 호랑이는 찍 소리도 못하고 목이 썩 잘리어 나갔어요. “와-!” 혹달개와 매발톱을 비롯한 원숭이들은 환성을 질렀어요. 모든 것을 본 잰내비왕 손욕은 자기 목을 어루만지면서 백산과 더 싸울 용기마저 잃고 쳐들었던 꼬리를 내리웠어요. “백산 왕! 백산 왕!” 허나 뭇 원숭이들이 백산을 둘러싸고 왕이라며 하늘땅이 진감할 듯이 만세를 부르자 용서할 수 없었어요. 그는 불시에 금고봉을 쳐들고 씽 덮쳐 왔어요. “네 놈들의 왕이 눈을 빤히 뜨고 살아 있는데 감히 백산을 왕으로 옹립할 작정인가?!”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기를 찬다고나 할까요? 손욕은 백산과는 어쩌지 못하고 혹달개와 매발톱과 생사결단하고 화를 냈어요. 그는 진짜 손오공처럼 금고봉을 휘두르며 혹달개와 매발톱을 절벽으로부터 수렴동 안에까지 쫓아 들어갔어요. 혹달개와 매발톱이 살짝살짝 피할 때마다 빗맞은 금고봉이 들쑥날쑥한 바위에 맞아 불꽃을 튕겼어요. 혹달개는 머리에 날아드는 금고봉을 피해 두 바위날 사이에 몸을 숨겼어요. 손욕이 금고봉이 바위에 맞아 쟁그랑 불꽃을 튕길 때었어요. 혹달개는 두 손으로 금고봉을 꽉 틀어쥐고 몸을 솟구쳐 뒤발로 손욕의 두 눈통을 콱 찔렀어요. “아이쿠!” 손욕은 금고봉을 떨어뜨리고 눈 통을 싸쥔 채 도망쳤어요. “죽여라!” “손요귀를 죽여라!” 숱한 원숭이들이 돌멩이를 뿌렸어요. 이때 매발톱이 씽 덮쳐나가 손욕의 목을 꽉 깨물어 폭포 아래로 내리떨어뜨렸어요. 풍덩! 한동안 손오공의 98대 후손 원숭이대왕이노라고 우쭐거리면서 갖은 행패를 다 부리던 손욕은 처참히 폭포수에 빠져 들어갔어요. 순간 탐욕으로 물든 더러운 뻘건 피가 폭포수 위로 피어올랐어요. 한참 후 손욕은 뭍에 기어 올라왔지만 결국 원숭이들의 돌총질에 맞아죽고 말았어요. 허나 어느 원숭이도 전날 잰내비왕 손욕의 죽음을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기뻐서 모두들 백산 앞에서 깡충깡충 뛰며 콧노래를 부르고 어깨춤을 당실당실 추었어요. 다만 그제 날 손욕 잰내비왕을 따라 부귀영화와 향락을 누리던 애첩 불여우 원숭이아가씨가 폭포아래에 내려가 손욕을 내려다보며 가냘프게 흐느낄 뿐이었어요. 그 처참한 정경을 컴퓨터 형광판에서 들여다보고 조왕돌은 도리머리를 저었어요. 혹달개와 매발톱은 절벽 위에 거연히 서 있는 백산한테 다가오더니 량손을 쥐여 높이 쳐들었어요. “이제부터 백산을 우리 화과산 잰내비왕국의 새 잰내비왕으로 높이 모신다!” 원숭이들은 수렴동과 화과산이 떠나갈 듯 고함쳤어요. “백산 왕!” “백산 왕!” 허나  백산은 겸손하게 왕위를 사양하고나서 혹달개와 매발톱의 손을 쥐고 높이 외쳤어요. “원숭이 대왕으로 혹달개를 모시고 매발톱을 총리로 모시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혹달개와 매발톱은 기어이 백산을 잰내비왕으로 모시자고 고집했어요. 그리하여 지혜롭고 용맹한 백산원숭이는 욕심 많은 손욕을 물리치고 잰내비왕으로 되였어요.
217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48) 댓글:  조회:1405  추천:1  2020-03-18
                                             78. 아, 어머니        먹장구름을 꿰뚫고 황혼이 붉게 타오르며 고향마을을 벌겋게 물들였다. 황혼의 꽃노을은 아직도 아름답건만 그 놈의 해가 꼴깍 넘어가는데야 무슨 수가 있는가? 꽃노을은 그리움과 아쉬움을 불태우며 어둠 속에 서서히 고향 마을을 떠나 사라지고 있었다. 일찍 아버지가 사망한 후 홀로 난 어머니를 모시는 일을 두고 자녀들은 진지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백호와 명희는 맏아들이 부모를 모시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면서 당장 자기 집에 모셔가겠다고 했다. 성호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딱 맏아들이 모셔야 한다는 도리는 없소. 나한테 효성할 기회를 주오.” 명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원이, 동서도 집에 없는데 세집에서 살면서 어떻게 모신다고 그러오?” 백호도 동감을 표시했다. “괜히 엄마를 마음고생시키겠다. 한뉘 농촌에서 살아온 엄마를 농촌에서 편안히 살게 해라.” 밭고랑 같은 주름살이 패인 영옥의 얼굴에는 수심에 찬 어두운 그림자가 흘렀다. “맏이네 말이 옳다. 난 시내로 가지 않겠다. 한뉘 흙을 가지고 역사질하면서 살다가 어떻게 시내 집에 갇혀 살겠느냐? 이제 몇해 살겠느냐? 하루라도 땅을 밟으면서 살게 놔둬라.” 성호는 억이 막혔다. 영옥은 뒤말을 이었다. “맏이네 집에도 가지 않겠다. 큰집 앞을 서서 이때까지 고생했는데 또 내까지 애를 먹이겠니? 맏이네두 이젠 예순이 넘어 며느리 덕에 사는데 손비한테 시할머니까지 모시게 하겠니? 난 농촌이 좋다. 누구네 집에두 가지 않겠다. 나절로 먹고 싶은 걸 해먹고 무슨 근심이 있니?” 성호는 어머니 손을 잡고 실토정했다. “우리 집은 잠시 곤난할뿐입구마. 이제 내 광고회사 경리로 돼 돈을 많이 벌면 집도 널직한 걸 사놓고 엄마를 모시겠습구마. 한나 에미도 오래잖으면 나옵구마.” “언제 나오니?” 모두들 성호를 쳐다보았다. “공안기관에서 다단계판매 총책인 한국 사장과 마케팀장 그리고 우리 옆집 엄씨를 나포해 비법수입을 압수했다오. 우리도 집과 택시까지 팔아서 공안기관에 바쳤소. 이제 공안국에서 다단계판매 피해자들한테 돈을 되돌려주면 정희는 몇해  감형될게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영옥은 잠시나마 조글조글한 주름살이 좀 펴지는 상 싶었다. “어머니께 효성을 하는데 무슨 맏이고 막내고 있습니까? 부모님들도 해방 전엔 아침을 잡숫고나면 저녁쌀을 근심하면서도 효성을 다하잖았습니까?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우리 집에 가깁소.” 그러나 영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우리 집에 놀러 가면 안됩둥?” 그 말에 춘애와 은숙마저 이구동성으로 “엄마, 아버지 돌아가서 외로운데 성호네 집에 놀러 갑소.”라고 했다. 춘자는 정색했다. “부모를 모시는덴 우리 딸들도 책임이 있습구마. 국가에서 반포한 로인권익보장법에는 모든 자녀들은 보모를 봉양할 책임이 있다고 법률적으로 규정했소. 우리 누나들이 어찌 어린 남동생한테 엄마를 맡겨놓고 아무 책임도 하지 않겠소?” 그녀는 자매들을 돌아보면서 뒤말을 이었다. “이후에 어떤 방법으로 엄마를 모시는가하는 건 천천히 잘 토론하면서 모시자. 우리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모시든지. 누가 부모를 모시든지 형제들이 효성을 다해 도와줘야지.” 대학문을 나온 춘자는 항상 집 안에서 중점발언을 하면서 동생들을 이끌어나가군 했다. 그녀는 아들 둘의 뒤시중을 하면서도 종종 부모에게 용돈을 부쳐보냈고   성호가 대학공부를 할 때에도 방학에 가면 꼭꼭 용돈을 쥐워주군 했다. 오늘도 그녀는 녀동생들을 돌아보면서 중점발언을 했다. “우리도 이젠 며느리와 사위 눈치를 보면서 살잖니? 효성은커녕 버릇 없이 놀 때 얼마나 섭섭하느냐? 우린 엄마한테 미안한 일을 하지 말자. 이전에 막내동생이 우릴 보고 자식들한테 모범을 보여주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지당한 말이야. 우리 이제부터라도 후회없이 엄마께 효성을 다하면서 자식들한테 모범을 보여주자.” 은숙도 동감했다. “맞소. 나도 사위 둘이나 삼아서 이젠 생각이 다르오. 사위는 진짜 곱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데. 혜옥이 우릴 모시겠다면서 우리 집에 들어와 함께 살게 됐잖소. 그런데 한데 있으니까. 서로 불편해 틀렸습데. 가시어머니는 사위가 오면 개물함지에 빠진다고 하던데. 어째 사위가 어렵고 눈치 보입데. 우리 둘이 있을 땐 그저 있는대로 먹으면 됐는데 그 놈 사위 온 다음부턴 어쩐지 밥상을 여겨보는 거 같아 눈치 보이잖겠소. 날마다 무슨 채를 해야 될지 때근심을 하게 됩데. 되나가란 말도 못하고 마당에 있는 사양실에 가매를 걸고 나가 살아라고 했지. 우리도 아직 예순도 안되는데 걔들이 모실 필요까지야 없지비. 사위는 사양실에 있긴 자존심에 허락되지 않는지 오락가락 하는게 모르겠소. 사위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는지.” 은숙은 화제를 바꿨다. “이제 팔순이 넘은 엄마가 앉으면 얼마나 앉겠소? 우리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모시는게 좋을 같소. 우리 시집에서도 다섯형제가 돌아가면서 시엄마를 모시기로 했소. 시엄마 우리 집에 온데다가 혜옥이네두 우리 집에 들어와서 복잡해 죽겠소.  시엄마하구 혜옥이네 아니면 엄마 우리 집에 오면 좋겠는데. 살던 고향마을이지. 함께 살던 사람들이 많지 얼마나 좋겠소.” 맏딸 춘애만이 내밀게 없어 그러는지 묵묵히 앉아 있었다. 춘애는 아들 군춘의 딸 설매와 경미네 딸애 애화를 봐주고 용돈이나 얻어 근근득식하며 사는 어려운 형편이였다. 누나들의 말에 성호는 해가 서산에서 돋지 않는가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에 부모를 모시는데 도와달라고 했을 때 “딸은 출가집 외인”이라고  딱 잡아떼지 않았던가? 좌우간 파릇파릇 싹트기 시작하는 누나들의 효성심이 고마웠다. “엄마, 아예 우리 집에 가깁소.” 은숙의 요청에 영옥은 사양했다. “고맙다. 누구네 집에도 가지 않겠다. 아직 혼자 살아도 된다. 이담 내절로 밥을 해먹지 못할 때나 보자.” 그때 춘자가 은숙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얘, 은숙아, 엄마가 어찌 마을과 동떨어진 사양실에서 살겠니? 너네 든 벽돌집은  부모 집이 아니고 뭐니? 엄마한테 돌려줘라.” 팩한 은숙은 단통 반박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 산 집이오.” 춘자는 랭소했다. “야, 집값을 얼마나 냈느냐?” “당장 만원을 물게.” “야, 외상으로 산지 몇해나 됐니? 아예 벽돌집 엄마한테 돌려줘라.” 성호나 은숙은 뜻밖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은숙은 억이 막혀 입을 짝 벌린 채 한참이나 언니를 쳐다보았다. “언니, 아무리 부모형제지간이라도 그렇지. 이미 산 걸 물리라는게 말이 되오?” 영옥은 손사래를 쳤다. “야, 싹 그만둬라. 내 이제 살면 몇해 살겠다고 괜히 너네 싸우겠다. 너네 형제들이 싸우지 말고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다섯 손가락에서 어느 손가락이 가시에 찔려두 아프다. 어느 자식을 욕해도 마음이 아프다.” “부모자식지간에도 재산상속은 분명해야 합구마.” “그만둬라. 내 때문에 계속 싸우면 양재물을 한사발 푹 타 먹구 죽어버리겠다. 내 죽는 걸 보자구 이러겠니?” 영옥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나오자 모두들 그만두었다. 성호는 어머니를 위안했다. “엄마, 절대 그 집 때문에 시비하지 않겠습구마. 근심하지 말고 우리 집에 놀러나 가깁소.” 그제야 영옥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집안은 다시 물 뿌린듯이 조용해졌다. 이튿날 영옥은 자녀들과 눈물을 흘리면서 갈라졌다. 은숙은 동구 밖에까지 따라오더니 뭔가 신문종이에 싼 걸 영옥한테 내밀었다. “엄마, 집값이요. 먼저 1만원 주고 나머진 몇해 농사를 지어 꼭 주겠습구마.” 영옥은 “집값이라니 받을게.” 하고 보짐을 풀고 그대로 챙겨넣으려고 했다. “엄마, 부모자식간이래도 돈은 세여 받으라 했습구마.” “그래? 성호야, 세봐라.” 성호는 마지못해 돈을 세여본 후 엄마한테 되돌려주었다. “아니야. 네가 보관해라.” 은숙의 말에 성호는 별수 없이 짐가방 안에 넣었다. 이윽고 성호가 부른 택시가 달려왔다. 성호는 어머니를 모시고 승용차에 올랐다. 한국에서 날아온 은자와 성숙은 하루라도 엄마와 더 동무해주려고 승용차에 올라 함께 시내로 떠났다. 아들딸들은 승용차가 아물거리는 점으로 될 때까지 동구 밖에서 손을 저으면서 서서 지켜보았다. 성호네 외통짜리 세집에 들어선 엄마는 마음이 아팠다. 은자와 성숙은 가슴이 갑갑했다. (어쩜 마음씨 착한 막내동생이 이 지경이 됐단 말인가?) 성호는 어머니와 누나들을 대접하려고 물초롱을 들고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다. “얘, 뭘 하러 가니?” 은자의 말에 성호는 희쭉 웃어보이며 “콩물국수나 대접하자고 그러오.” 하고 나갔다. 은자는 어머니를 보고 “에이구, 저 막내동생은 정말 효자입구마. 쟤네 좀 잘 살아도 엄마를 맡기면 좋겠는데.” 하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성숙이 좋은 제안을 내놓았다. “우리 쟤를 좀 도와 다시 일어나게 하면 어떻소?” 은자도 동감을 표시했다. “좋지.” 성숙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우리 한국에서 번 돈을 뀌워줘서 재차 택시를 사게 할가?’ 은자도 무릎을 쳤다. “그래, 택시업을 계속 해서 세집살이두 끊내게 하자.” 영옥은 량손으로 은자와 성숙의 손을 잡고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택시두 하구 며느리도 나오면 얼마나 좋겠느냐?” 모두들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점심에 한나가 학교에서 돌아와 반색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이젠 처녀 다 됐구나. 이젠 몇학년이냐?” 은자가 묻자 한나는 걀죽한 얼굴에 볼우물까지 옴폭 파면서 “고중2학년인데요.” 하고 생글방글 웃었다. 이윽고 성호가 물초롱에 콩국수에 채 몆접시 들고 와서 모두들 맛있게 점심식사를 했다. 성숙이 성호를 마주 보며 먼저 말을 꺼냈다. “얘, 지금 택시를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가?” “벌순 있소. 그런데 무슨  밑천이 있어서?” “우리 뀌워줄게. 택시를 해서 새 집을 사고 네가 엄마를 모시면 어떻니?” “그럼 얼마나 좋겠소? 그런데 한국에서 애나게 번 돈을 뀌워주면 매형이  좋아하겠소?’ 성숙은 개의치 않았다. “야, 매형은 막내처남이라면 아끼지 않는다. 그럼 우리도 엄마를 네한테 시름 놓고 맡기겠다. 세집에 살면서야 어떻게 부모를 모시겠니?” 성호는 코마루가 시큼해나 “감사하오.” 하고 말하면서 눈시울까지 붉혔다. 며칠 후 기쁜 소식이 또 하나 생겼다. “정희가 출소해 집으로 돌아오게 됐소.” 성호는 기뻐 어쩔줄 몰랐다. “올케까지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느냐?” “덕을 많이 쌓았다고 막내남동생을 하느님이 돕는 모양이야.” “호호호.” 누나들과 엄마는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뜻밖에도 정희는 출소해 세집으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고 본가집으로 가겠다고 떼질을 썼다. 그녀는 다단계판매에서 꼴을 먹고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그래 한뉘 시집식구들을 보지도 않고 살겠소?” 성호의 말에 정희는 수척한 얼굴이 대뜸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외까풀눈을 치뜨며 헛소리를 쳤다. “말리지 마오. 집과 택시마저 날려버린 더러운 년인데. 내가 당신이라면 리혼해버렸겠소.” 성호는 눈물을 줄 끊어진 구슬처럼 줄줄 흘리는 정희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당찮은 소리요. 사람이 있어야 돈이 있지. 돈이야 없다가 다시 생기는 법이요. 이제 다섯째누나와 여섯째누나 한국에서 돈을 부쳐오면 재차 택시를 살 예산이요. 우리 택시를 해서 집도 사고 엄마를 모시고 잘 살아보기요.” 정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게 어디 그리 쉬운가요? 집에 갈 면목이 없소. 본가집에서 혼자 조용히 있게 해주세요.” 성호는 별수 없이 정희를 본가집에 데려다주었다. “절대 짧은 생각을 하지 마오. 마음이 진정되면 꼭 집에 돌아오오.” 정희가 다행히 머리를 끄덕였다. 성호는 가시부모께 인사를 드리고 정희를 맡겨놓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와 누나들은 홀로 집으로 돌아온 성호를 보고 의아해했다. 성호는 선의적인 거짓말을 했다. “본가집부모를 본 후 올게요.” 며칠이 또 지나도 정희는 머리도 내밀지 않았다. 누나네는 기다리다못해 올케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한국으로 떠나갔다. 성호가 핸드폰을 아무리 쳐도 정희는 받지도 않았다. 몇번 더 치자 성가신지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 성호는 최후방법으로 한나를 외가집에 보내 엄마를 데려오라고 했다. (아무리 감옥밥을 먹고 절망에 빠졌더라도 제 새끼 말이야 듣겠지.) 한나는 아버지 부탁대로 사과랑 바나나랑 사들고 외가집에 갔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다 큰 외손녀를 반겨 맞았다. 정희는 딸을 보자 와락 끌어안더니 “엉엉” 어린애처럼 대성통곡쳤다. “어머니~ 집으로 가자요. 네?” 그러나 정희는 그저 울기만 했다. 엄교수 내외는 딸과 외손녀를 와락 끌어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진짜 초상난 집같이 통곡소리 쓸쓸히 울려퍼졌다… 보름 후에 성호는 은행에 가서 누님들의 사랑이 폭 슴밴 한화 1,500만원을 찾아내 인민페로 바꾸었다. 은행을 나서는 성호는 가슴이 설레이고 어깨에 힘이 솟구치는 감을 느꼈다. 그는 심사숙고 끝에 가정을 살리려고 부득불 두번째로 모험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짧은 시간에 뭉치돈을 쥐려면 물고기장사나 소장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번쩍 뇌리를 쳤다. 그러나 고민끝에 물고기장사는 포기하기로 했다. 개혁개방을 한지 20년이 되여  교통이 편리해졌기에 천수해의 식품상점이 아니라 시골의 죄꼬만 상점에도 신선한 물고기가 흔해빠졌다. 소장사는 감히 하는 사람이 적어 그런가. 알고보니 의연히 내몽골 소값과 고향의 소값은 엄청나게 차났다. 그는 단돈 5만원만 가지고 기차를 타고 밤도와 내몽골 쪽으로 달려갔다. 이전에 갔던 자그마한 시내에 가서 기차에서 내려보니 별로 변한것이 없었다. 그는 근 20년전 기억을 더듬으면서 이전에 들었던 려관으로 찾아갔다. 가을을 맞은 려관 울 안에는 전에 없이 울긋불긋한 갖가지 꽃이 활짝 핀 화단이 화려하게 펼쳐져 그윽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려관 주인은 옛날 성호한테 소를 팔았던 목민 운두라바한의 딸 쑤싼나가 아니겠는가. 예전처럼 어글어글한 쌍까푼눈과 오똑한 코를 가진 쑤싼나(목란꽃)는 싱그러운 목란꽃처럼  예뻤다. “와~ 오빠, 오랜만인데요. 참말 반가와요. 어떻게 돼 또 여기까지 왔어요?” 중년에 들어선 쑤싼나는 려관주인 틀이 잡혀 있었다. “아버지랑 모두 잘 있소?” “그래요. 아버지와 우크라한은 항상 오빠를 외우군 했어요. 어쩜 조선족 가운데 오빠 같은 매가 있는가 했어요. 우리 몽골족은 푸르른 초원에서 나래치는 매를 영웅의 상징이라고 보는데요. 오빠는 진짜 장백산 기슭에서 나래치는 매예요. 이전에 소무리를 강탈한 날강도들을 붙잡았지요. 또 여기까지 도망쳐온 조선족살인강탈범들도 나포하는데 한몫 했지요. 총을 든 강도들을 적수공권으로 용감히 싸워 나포했지요. 오빠는 진짜 우리 내몽골 초원의 용맹한 매와 같아요.” 성호는 희죽이 웃다가 정색했다. “신셀 좀 져야겠소. 쑤싼나네 소를 사가야겠소.” 쑤싼나는 환성을 질렀다. “잘 됐어요. 그러잖아도 아버진 소를 팔려고 했는데요. 인차 전화로 련계해드리죠.” 이윽고 쑤싼나는 손수 차를 몰고 성호를 무연한 초원이 펼쳐진 본가집으로 달려갔다. 성호는 달리는 차창 밖으로 이전에 자기가 소를 몰고 오다가 강도들한테 붙잡혀 묶이워있던 나무숲이 우거진 모래언덕을 다시 살펴보았다. “잠간 세우오.” 쑤싼나는 승용차를 급정거했다. 성호는 승용차에서 내려 길가의 고목에 다가갔다. 그는 강도들한테 자기가 묶이웠던 고목을 매만지면서 마음 아픈 추억에 잠겼다. 쑤싼나는 눈물까지 글썽한 성호를 보고 물었다. “오빠, 이 나무와 무슨 인연 있어요?” “그래, 그때 우란크한과 함께 소를 몰고 여길 지나가다가 강도들을 만나 하마트면 죽을 번했지. 그때 난 입에 문 비수로 온몸을 묶었던 바줄을 끊고 간신히 강도들의 마수에서 벗어났지. 너네 아버지를 비롯한 온집 식구들이 목숨 걸고 구했기에 오늘의 내가 있지.” 쑤싼나는 성호의 아픈 추억이 깃든 나무를 매만지다가 머리를 들었다. “어서 가자요. 해가 지기 전에 려관에 돌아가야 해요.” 그들은 수림 속의 모래 둔덕에서 내려와 다시 승용차를 타고 푸르른 초원으로 달렸다. 한 반시간 후에 성호는 푸르른 초원에 자리잡은 몽고포에서 운드라바한 부자를 만날 수 있었다. 20년만에 성호를 만난 운두라바한은 머리마저 희슥희슥했다. 그러나 그는 예전처럼 말을 타고 달리고 소들을 양새끼처럼 다루었다. “진짜 내몽골 초원의 용맹하고 날랜 매입니다.” 성호는 엄지를 내둘렀다. 당년의 우란크한도 이젠 마흔고개를 쳐다보는 중년이 다 돼갔다. 그는 예쁜 색시에 열댓살 되는 딸까지 있었다. “형님!” “아우!” 그는 오랜만에 만난 친형제처럼 성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도 그럴것이다. 그들은 강도를 만났어도 생사를 함께 하면서 강도들과 목숨 걸로 싸웠고 공안국을 협조해 강도들을 나포한 내몽골족과 조선족 영웅형제 아닌가. 노란꽃을 수놓은 푸르른 초원에는 용맹하고 날랜 매 두마리가 훨훨 나래치고 있었다. 쥐새끼들이 깜짝 놀라 풀숲 속 쥐굴에 숨어버렸다. 성호는 친혈육의 정이 넘치는 운드라바한 가족의 도움을 받아 아주 손쉽게 소 60마리나 사서 기차에 부쳐 고향에 보낼 수 있었다. 성호가 떠날 때 쑤싼나는 가족을 대표해 하얀 하다를 목에 걸어주었다. “감사하오.” 성호는 불시에 뭘로 보답해줄지 몰라 난처했다. 고향이라면 천지꽃산에라도  달려올라가 진달래꽃이라도 한줌 꺾어다주지 않겠는가. 그는 피뜩 손목시계가 눈에 띄자 쑥 벗어 쑤싼나의 손목에 채워주었다. “고마워요. 조선족오빠한테서 받은 선물을 영원히 기념물로 보관하겠어요.” 쑤싼나는 성호를 눈물이 글썽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성호는 쑤싼나 일가와 아쉬운 석별의 정을 가까스로 참으며 리별하고 고향에 돌아오는 길에 돌아섰다. 고향에 돌아온 성호는 큰조카 일복과 둘째조카 정국을 데리고 천수해역에 가서 소떼를 몰아 고향 마을에 있는 사양실에 왔다. 그는 큰형님과 일복한테 로임을 주기로 하고 소를 방목하고 소사양실을 관리하게 했다. 장날이면 소를 가지고 가서 손수 한마리 한마리 처리했다. 초겨울이 다가올 때까지 소를 몽땅 처리해 단돈 2만원을 벌었다. 돈을 벌자 성호는 고향 빈곤호를 잊지 않았다. 그는 새해 농사를 짓겠는데 부림소가 없어 쩔쩔 매는 동불사령감과 세린하령감한테 소를 빌려주었다. 성호는 자기 번 돈을 은행에 선불금을 내고 대부금을 맡아 시내에 76평방메터 되는 엘레베터아빠트 한채 샀다. 뒤이어 가시부모의 가옥소유증을 은행에 차압하고 대부금을 내서 단통 택시 2대나 샀다. 한대는 사촌처남 준식과 준호가 몰게 하고 한대는 시내에서 운전수 둘을 고용해 몰게 하였다. 모든 일을 차근차근 해놓은 후 성호는 정희를 집에 데려왔다. 정희는 출소한 시간이 꽤나 돼 심리상태가 안정돼 순순히 새 아빠트로 돌아왔다. 이웃들도 그녀가 수감생활을 한 일을 모르기에 눈치가 보이지 않아 좋았다. 영옥을 보자 정희는 귀 밑까지 붉히면서 무릎을 꿇더니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며 대성통곡했다. “어머님, 미안해요. 흑흑흑, 이제야 찾아뵙는 이 불효한 며느리를 죽여주옵소서. 흑흑흑…” 영옥은 며느리를 꼭 껴안아주면서 위안했다. “아가야, 울지 말라. 다 며느리 잘못이 아니요. 사기군들한테 깜짝 속아 그랬지. 이제부터 우리 재미있게 살아보기요.” “예-” 그제야 정희는 머리를 들고 일어나 앉으면서 손으로 눈시울의 눈물을 닦았다. 그녀는 팔을 걷어붙이고 집 구석구석을 걸레로 말끔히 청소한다, 이불장과 옷장을 뒤적여 세탁기에 걷어넣고 말끔히 씻는다. 때때로 시어머니 어디 불편한데 없는가 이것저것 문의하고 약방에 가서 약을 사서 대접한다 하면서 분주히 돌아쳤다. 동네 로인들은 이 집 며느리가 할머니한테 무슨 약을 대접해 무병장수한가고  놀러와 약통을 가지고 가서 아들딸을 보고 그 약 사달라고 재촉하였다. 영옥은 하얀 머리카락을 훔치면서이 불안과 거죽에 풀을 먹여 방치돌에 놓고 방치로 둥당둥당 두드렸다. 한나는 학교에 돌아오면 사과배를 깎아 할머니와 부모한테 돌아가면서 권했다. 그 모습을 보고 성호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이제야 가정 같구나.) 정희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내 목욕탕에 가서 때밀이군을 시켜 때밀이까지 해주게 했다. 며느리 성의와는 달리 시어머니가 노여워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영옥은 며느리가 남새를 사러 장마당으로 간 틈을 타서 책을 보는 아들의 칸으로 건너와서 넌지시 말했다. “며느린 내 때 많다고 더러워하는 것 같다.” “아니, 어머니, 웬 말씀입니까?” 영옥은 터놓고 말했다. “숱한 사람들 앞에서 쫄딱 벗겨놓고 때를 빡빡 밀게 하지 않겠니? 내 몸에서  국수오리만한 때 쭉쭉 일어나는 걸 보고 얼마나 창피했는지 몰라.” 성호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엄마, 별 거 다 창피하다고 합구마. 며느린 엄마를 시원하라고 목욕탕에 모시고 간 겁니다. 왜 오해합둥?” “걷어치워라. 어쩐지 시내 며느리 어렵구나.” “오해하지 맙소. 엄마, 며느리 효성을 한겝구마.” 영옥은 자기 편을 들지 않는 성호를 보고 앵돌아졌다. (옛말에 아들을 장가보내면 며느리한테 빼앗긴다더니 실말이구나.) 며칠 후 이번에는 정희가 성호한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여보세요. 어째 시어머니 몸에서 무슨 냄새 나는 거 같애요.” “고양이 코 해가지고 무슨 냄새 난다고 자꾸 그러오?” 정희는 대뜸 걀죽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언제 자꾸 말한다고 그래요?” 성호는 코를 벌죽거리면서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 “어째 냄새 나는 걸 모르겠는데? 괜히 신경 쓰지 마오.” 정희는 정색했다. “어머니를 목욕시켰는데도 어머니 방에서 매캐한 냄새 나요.” 성호는 듣다못해 우쭐 일어나 어머니 방 쪽으로 가서 코를 실름거리면서 냄새를 맡아보았다. 아무리 맡아보아도 어째 무슨 냄새 나는 것을 맡아낼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 방 맞은 편에 있는 화장실을 보고 혹시 화장실에서 난 구린내를 가지고 그러지 않는가고 들여다보았다. “옳지. 그럼 그렇지.” 그는 세면대 밑으로 뻗어나간 비닐하수도관이 련결된 도관구멍이 헐렁한 것을 발견했다. (그래, 가능하게 저 하수도 구멍에서 역한 냄새 올라왔겠다.) 성호는 상점에 가서 반창고를 사다가 하수도 련결부위의 틈을 꽁꽁 막아놓았다. 정희는 계속 노린내 난다고 했다. 성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거 정말 냄새, 냄새 하면서 더럽게 논다. 무슨 냄새 난다고 자꾸 그러오?” 그는 옆에 멍해 서 있는 한나를 보고 나직이 물었다. “무슨 냄새 나니?” 한나는 쌔물쌔물 웃기만 했다. “냄새 나니? 안나니?” 그래도 한나는 쌔무룩이 웃기만 했다. 성호는 성이 꼭뒤까지 치밀었다. “더러운 모녀, 이제 냄새 난다는 말만 해봐라. 가만 놔두지 않겠다.” 그는 그 놈의 냄새 때문에 고부 사이가 벌어지고 남편과 안해, 어머니와 아들간에 서로 오해하고 복잡해지기 시작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성호는 어머니와 안해 사이에서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서로 오해하지 않게 잘 설명하였다. 그는 될수록 안해를 설복하는 쪽으로 노력했다. 한나를 시켜 할머니한테 배도 깎아드리게 하고 뜨거운 물도 떠가게 했다. 퇴근만 하면 어머니칸에 들어가 얘기도 나누고 어머니한테서 살아온 얘기도 들었다. 또 어머니가 심심해하는 것 같아 모시고 객실에 나와 텔레비죤도 함께 보았다. 그러나 한나가 대학시험준비를 하는데 영향이 갈가봐 나중에는 어머니 방에 텔레비죤을 들여다놓고 구경하게 하였다. 쉬는 날에는 어머니 손을 잡고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 집 동쪽의 양지바른 층계에 앉아 볕쪼임도 시켰다. 성호가 출근한 날이면 영옥은 뻐스정류소 걸상에 앉아 새하얀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언제면 아들이 오겠는가고 하염없이 기다리군 했다. 아들이 오는 것을  보지 않고는 언제까지고 엉덩이를 떼지 않고 덤덤히 앉아 눈이 시리게 기다리군 했다. 그 애타는 기다림 속에 늙은 어머니의 모성애가 더욱 짙게 무르익어갔다. 아들만 퇴근해 저쪽에서 오는 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반가와서 주름살이 밭고랑처럼 파인 얼굴에 함박꽃웃음을 짓군 하였다. 성호는 “엄마, 오래 기다렸잖습둥? 이젠 올가가깁소.” 하고 어머니 손을 정답게 잡고 집으로 올라갔다. 동네 할머니들은 “야, 어디 저런 효자가 다 있겠소?” 하고 혀를 끌끌 차군 했다. 성호는 동네 할머니들한테도 허리 굽혀 인사하고 식품상점에 들려 어머니가 잡숫기 싶어하는 과일이며 돼지고기며 붉이며(배추)를 사올려갔다. 정희는 남편이 사온 남새와 돼지고기를 한데 볶아 맛있는 채를 지어 시어머니 밥상에 올렸다. 그런데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정희와 한나는 영옥과 성호가 식사를 다하기를 기다려 숟가락을 드는 것이였다. 이전에는 네식구가 한 밥상에 앉아 다정하게 식사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정희가 “냄새”, “냄새” 한 후부터 생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비극적인 현상이였다. 성호는 화나서 밥상이라도 활 번져놓고 싶었다. 그러나 말썽이 생기면 어머니가 더 눈치를 보게 되고 마음이 안정될 것 같지 않아 억지로 꾹 참았다. 밤에 잠자리에 들어 성호는 넌지시 말을 꺼냈다. “어째 엄마와 함께 한 밥상에서 먹지 않소?” 정희는 반대 쪽으로 모로 돌아누우면서 나직이 대답했다. “어쩐지 시어머니한테서 역한 냄새 나요. 아니, 아주 지독한 냄새 나는 거 같아 마주 앉아 먹지 못하겠어요.” “그래도 그렇지. 어쩜 그렇게 눈치 없소. 엄마가 며느리를 뭐라겠소?” 성호는 정희를 끌어안아 돌려눕혀놓고 똑바로 마주 보면서 애원했다. “어쩌겠소? 그런대로 함께 식사하기오. 멀찍이 앉아서 제꺽 잡숫고 일어나오.” 그러나 정희는 앵돌아졌다. “못하겠다는데 강요하겠어요?” “제 그렇게 노니까 한나마저 따라 먹지 않지. 계속 이렇게 해나가면 뭐요?  만약 남들이 보면 뭐라겠소?” 정희는 이불을 훌 차버리며 발딱 일어났다. “정 이러면 난 이 집에서 살지 못하겠어요. 내 어딜 훌 가버리든지 해야지. 원,  어디 혼자 효도 하란 말인가요.” “지금 뭐라오?” 정희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에 노기가 꽉 찼다. “리혼하자면 누가 겁내는가 해요?” 성호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이제 어머니를 모신지 몇달이 돼서 ‘리혼’ 소리까지 한단 말인가?) “금방 뭐라오?” “아이유, 내 정말 이 놈의 집에서 답답해 못 살겠다. 활 리혼해버리고 말았으면!” 성호는 “내라고 리혼하자면 못할 거 같애? 나도 진짜 피곤하다, 피곤해.” 하고 말하려다가 용하게 꾹 참았다. 정희가 일시 밸김에 한 말을 가지고 탄할게 없었다. 더욱이 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하고 받아들이고 참으면서 인생의 행로에서 한발작한발작 조심성있게 걸어나가야 했다. 정희는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으면서 두덜거렸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오더니 완전히 안해는 왼눈으로도 보지 않네. 이런 나그넬 믿고 어떻게 살아?” 성호는 어머니가 저쪽 방에서 듣는 것 같아 꼭뒤까지 치미는 밸을 꾹 참고 또 참았다. 그는 언성을 낮춰 조용히 타일렀다. “정희, 우린 필경 대학문까지 나온 인테리 아니오? 이제 엄마 앉으면 몇해 앉겠다고 이러오. 우린 효성을 다해 어머니를 모시기요.” 정희는 픽 코웃음쳤다. “이보세요. 동문, 결혼해서 20년이 되도록 날 해준 게 뭔가요? 옷 한벌 사줬소? 어딜 데리고 유람 갔소? 맛있는 음식을 한때 사준 적이 있소? 엄마 온 담엔 그저 ‘엄마’, ‘엄마’ 하면서. 언제 안해를 살뜰히 생각해준 적이 있는가요? 날 대를 잇는 도구로 써먹지 못하니 이젠 다 파먹은 헌 김치독처럼 내동댕이를 치려는게  아닌가요?” 성호는 정희 말을 들으면서 참담한 심정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바깥으로 나가려는 정희를 용기내서 쫓아가 끌어안았다. “미안하오. 정희, 너무 등한했소. 이제부터라도 잘 생각해줄테니 널리 량해하오.” 정희는 어린애처럼 왕왕 대성통곡쳤다. “잔치첫날부터 시엄만 우리 엄마 젖값에서 옷감 한벌 줴내더구만요. 나는 무남독녀로 자라서 형제가 많은 동무넬 은근히 부러워했어요. 그러나 동무네 형제 열이지만 날 도와준 게 뭔데요? 남들 같으면 막내올케 시어머니를 모신다고 비단보에 싸서 이고 다닐 거야. 손가락 하나 싸맬 천이라도 사줬는가?” 성호는 어머니 방 쪽을 내다보더니 황급히 문을 닫았다. “어째 겁나는가? 사실이 아닌가? 말해보라고.” 정희는 단말마적으로 대들며 성호를 마구 밀쳤다. “정희, 건 내 알아봐줄테니 섭섭한게 있으면 나하구 말하오. 다 내 잘못이오. 그래도 이번에 다섯째누나와 여섯째누나네 돈을 보내와서 이 집과 택시 두대나 사지 않았소?” “누가 코구멍만한 집 크게 보는 거 같애?” “이제 택시를 해서 돈을 벌면 한국 유람도 데리고 가고 옷도 근사한 걸로 사줄게.” “말만 들었으면 방귀를 타고 서울로 가겠다. 이날 이때까지 생각해주지 못한게 언제 생각해주겠소? 인생이 얼마라고 이렇게 항상 아글타글 하면서 살아야 하오?” 성호는 정희 가출을 어떻게 한나 말리려고 슬슬 얼렸다. “쥐구멍에도 해볕이 들 때 있다고 내 이제 돈을 벌면 정희도 호강할 날이 있을 게오.” “픽!” 정희는 코웃음쳤다. “마흔고개 넘도록 하루라도 돈을 흔자만자 써본 적이 없어요. 당신 믿다간 한지에 방아 걸겠소. 당신은 마음만 고왔지. 제노릇을 할 사람이 아니오. 원래 동무 아버지부터 그래요. 공안국장을 하다가 농촌에 락향할 게 뭔가요? 한뉘 사회사업을 했다는 분이 자녀들한테 물려준 게 뭔가요? 동무도 아버질 닮았소. 소장사구 물고기장사구 해서 남은 게 뭔가요?” “부모까지 욕보이지 마오.” 그러나 소용없었다. 정희는 계속 떠들어댔다. “택시는 해서 돈을 얼마나 벌었어요? 사처에 벌려는 잘 놓아두 뭘 벌었소? 제노릇은 못하고 남한테 머절싸한 인심만은 후하게 잘 베푼단 말이오. 셋째누나한텐 밭을 주고서도 쌀도 받지 못했지. 그 좋은 벽돌집을 지어서 2년도 못 살고 셋째네를 눅거리로 줬지. 그것두 외상으로 줘버렸지. 순흰지 뭔지 하는 계집의 집엔 돈을 뀌워주고도 일전한푼 받지 않았지. 어째 아직도 첫사랑을 잊지 못해 그 쌍년한텐 선심을 베푸는가요? 사처에 정을 줄줄 늘여놓으면서. 내 학생 연화마저 빼앗아다 정을 베풀었지. 당신 정말 미안하지 않아요? 나한텐 보따리, 근심거리 밖에 주지 않았잖아요?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흥.” 그때 한나가 문을 뚝 떼고 들어와 야단쳤다. “야~ 아빠, 엄마, 좀 싸우지 마십시오. 어찌나 떠드는지 공부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성호는 한나한테도 미안했다. “오, 그래. 우리 싸우지 않을게.” 한나는 새침해 돌아섰다. 정희는 성호를 훌 밀어놓고 기어이 바깥으로 나갔다. “여보, 어디로 가오.” “걱정말라고. 내야 어디로 가든.” 정희는 문을 쾅 닫고 휑 하니 가버렸다. 한나는 황급히 뛰여나와 멍해 서있는 성호를 보고 “아버지, 빨리 따라가보세요. 혹시 자살이라도 하면 어쩝니까?” 하고 소리쳤다. “오, 그래. 나가보지.” 그때 어머니가 방에서 나와 울상을 지었다. “얘, 어서 나가봐라. 내 때문에 싸운게 아니냐?” “아닙구마. 엄마. 들어가 텔레비죤이나 봅소.”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면서도 장탄식했다. “에이구, 내 빨리 죽어야 하는데. 팔순이 넘도록 오래 살아서 애들을 별 고생 다 시킨다. 에이구, 하느님도 눈이 멀었지. 어쩜 날 데려가지 않소? 이 놈 늙은 건 어째  죽어지지 않을가? 쥐약이라도 있었으면 걸직이 타 먹고 죽어버려야 하는 건데.” 성호는 황급히 옷을 껴입고 바깥으로 따라나갔다. 한나는 할머니를 부축해 방에 들어갔다. 성호는 눈보라 휘몰아치는 달빛어린 큰 길에서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서쪽으로 가는 정희를 발견했다. 아마 서쪽에 있는 대학교 아빠트단지에 있는 본가집으로 가는 것 같았다. 성호는 정희를 억지로 붙잡아 둘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뒤쫓아가지도 않았다.  그는 화를 내고 달아나는 정희를 보고 오히려 어머니가 불쌍했다. (아, 어머니, 한평생 고생하면서 우리 아홉 자식을 낳아 키운 우리 어머니, 어쩜 숱한 자식들을 두고 늘그막에 이런 마음고생을 해야 합니까? 이 도리깨아들을 죽여주옵소서.) 이튿날 한나가 학교로 간 후 영옥은 막내아들을 보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옛말에 굽은 나무 집을 지킨다고 했느니라. 뭐나 차한 자식이 부모를 지키지. 늙은 거 때문에 너넬 더 마음고생시키지 못하겠다.” 성호는 그 말의 참뜻을 다 리해하지 못했다. 다만 자기들이 싸워서 어머니가 얼마나 눈치 보고 오시럽겠는가고 생각됐다. “엄마, 미안합구마. 우리 때문에 어제 밤에 제대로 쉬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근심하지 맙소. 절대 엄마 때문이 아닙구마. 오해하지 맙소. 정희 감옥에서 금방 나와서 직업두 떼웠지. 신경이 좋지 않습구마. 몇달 지나면 낫겠지요.” 어머니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한숨만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사흩날만에 해가 서산에서 뜨지 않았는가? 정희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 본가집 부모가 잘 설득해서 보낸것 같았다. 손에 팔모밥상을 달랑 들고 왔다. 그녀는 성호를 보고 나직이 종알거렸다. “여보세요. 이 팔모밥상에 어머니를 따로 모시면 어떨가요?” 그 기발한 생각에 성호는 쾌자를 불렀다. “그게 실제적인 거 같소.” 그날부터 정희는 맛있는 채와 밥 그릇을 팔모밥상에 담아 어머니 안방에 들여갔다. 영옥도 별로 다른 말이 없었다. 성호는 어머니가 고독해할가봐 안방에 들어가 동무해 식사하기도 했다. 정희와 한나가 집에서 나가자 영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팔모밥상을 잘 사왔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런 팔모밥상에 시부모를  대접했지.” 그 말에 성호는 한시름을 놓았다. 영옥은 며느리를 돕느라고 집이 빈 다음에 객방이고 침실이고 돌아가면서 걸레로 말끔히 닦아놓았다. 또 손을 걷고 설걷이를 해놓기도 했다. 그런데 말썽은 끊이지 않았다. 정희는 집에 돌아왔다가 음식그릇을 다친 것을 보자 대뜸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다못해 퍼러뎅뎅해났다. “에이유, 누가 그릇에 손을 대랍니까? 더러워 못 살겠다. 원!” “뭐라오?” 성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엄마 손이 더럽다니? 엄마 그 손의 때를 씻어먹으면서 우리 열 자식들이 자랐소. 팔순 되는 엄마는 돕느라고 그랬는데. 그것두 말이라고 하오?” 정희도 너무한감이 들었던지 엄마 방을 힐끔 곁눈질하더니 언성을 낮췄다. “까딱 다치지 않는 게 돕는 게요.” 성호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정희가 밸을 쓰고 나간 후 영옥이 방에서 나왔다. “얘야, 날 집에 돌려보내달라. 난 며느리 눈치 보여서 한날 한시두 살지 못하겠다.” 그러나 성호는 어머니를 눅잦혔다. “엄마, 좀 힘들겠지만 꾹 참고 눌러있습소. 이제 어디로 간다고 그럽둥?” 영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 며느리 눈치밥을 먹지 않았으면 더 편안할 거 같다. 빨리 날 집에 돌려보내달라.” 성호는 딱 잡아뗐다. “엄마, 엄마를 마을과도 떨어진 외딴 소사양실에 보내고 시름놓지 못합구마.” “보내주지 않으면 내 혼자라도 얼마든지 갈 수 있어. 너네 몽땅 나간 후 내 아무때나 문을 꾹 닫아놓고 뻐스를 타고 가면 되지.” “엄마, 절대 그러지 맙소. 팔순 넘어 어떻게 혼자 산다고 그럽둥?” “어째, 엄마 쥐약을 사다 풀어먹구 죽는 걸 보자구 이러니?” 성호는 마구 막아서는 안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엄마, 이제 내 쉬는 날에 다시 보깁소.” 그제야 영옥은 허리를 구부정하고 어정어정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성호는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효성을 다해 잘 모시겠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풍이 기승스레 불어쳐 모래알 같은 눈풍설이 창문을 쓸쓸히 두드리였다. 쓸쓸한 겨울 달빛이 차창가에 매달려 구슬프게 그네를 뛰고 있었다.  
216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47) 댓글:  조회:1436  추천:3  2020-02-26
                    77. 색마의 말로 어둠컴컴한 밤중에 굉팔은 오청룡를 모시고 예전의 스케줄대로 노래방에서 나오자 택시를 잡아타고 순희네 달빛안마방으로 달려갔다. 아가씨들은 굉팔과 오청룡의 량팔을 붙안고 층계를 올라가면서 아양을 떨었다. 굉팔과 오청룡은 사흘이 멀다하게 달빛안마방에 드다드는 단골손님이였다. 그들은 순희와 아가씨들 앞에서 항상 틀을 차리면서 어깨 으쓱해 거들먹거렸다. 아가씨들은 그들의 신까지 벗겨주고 단칸방으로 안내해들어갔다. 곤드레만드레 만취한 두 색마는 침대에 힌들 들어누웠다. 드디여 아가씨들의 아양을 떠는 호들갑소리가 부드럽게 귀청을 매만졌다. “어디가 불편해요? 여기, 여기?” “어, 씨원하다, 씨원해.” 순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녀석들이 무슨 돈이 있어 하루 건너 찾아와? 썩긴 푹 썩었구나.” 양고기뀀집을 해서 숯값도 벌기 어렵게 되자 순희는 마음씨 착한 성호한테서 돈을 꿔다가 안마방을 차렸다. 돈을 꾸러 갔을 때다. 순희는 시아버지 정미소를 차릴 때 성호한테서 꾼 돈도 갚지 못해 미안해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순희야, 우린 어려서부터 한 고향에서 자란 죽마고우야. 내 아무리 빚군이라도 그렇지. 어찌 살해된 시아버지 꾼 돈까지 받겠니?” 성호의 말에 순희는 입을 막고 웃으면서 “감사하다. 하긴 우린 고향 짜개바지친구지…” 하고 말끝을 흐리웠다. 그녀는 성호한테 빚을 지고 사는 것도 부담스럽고 자존심에 허락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별수 없었다. 양고기뀀점이 잘 되지 않자 철주는 성호한테서 8천원을 꿔서 한국 보스 박기철한테 출국수속비로 주고 한국에 밀입국하려고 했다. 철주는 대련에서 어선을 타고 한국 해역에까지 들어가 어떤 섬에 오르게 됐다. 그런데 재수없이 섬에서 한국인들한테 나포돼 심문받게 되였다. 철주는 석달 동안 섬에 갇혀 있다가 강제출국당해 빈털털이로 집으로 돌아왔다. 고집이 센 철주는 자존심과 체면을 잃고 또 성호를 찾아갔다. “내 미국에 가서 돈을 벌어 네 빚을 꼭 물게. 돈 만원만 더 뀌워달라.” 성호는 말렸다. “철주야, 그만둬라.” “야, 밑지구 나앉겠니?” “뭐나 봉창손에 망한다는 말이 있잖니? 미국에 가면 어디 식은 죽 먹기로 번다더니? 덕대 우에 돈을 내릴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 “야, 날 좀 살려달라. 안마방을 믿고 어떻게 쌍둥이딸애들 대학공부 뒤시중하겠니? 또 언제 네 빚을 갚겠니? 금심 말고 만원만 더 뀌워달라.” 성호는 철주와 순희를 다단계판매에 끌어들여 피해를 보게 한 일이 항상 마음에 걸려 사촌처남한테서 만원을 꿔서 주었다. 순희 말에 의하면, 철주는 향항에 가서 상선을 타고 브라질에 간 후 멕시코에  잠입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까지 갔다고 한다. 변경의 자그마한 진에는 미국에 밀입국하려는 지구촌의 황인종, 흑인종들이 바글거렸다. 그런데 무인지경인데도 미국 경찰들이 자주 출몰해 도보로 변경선을 넘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더 힘들었다. (아이구, 이렇게 힘들줄 알았더라면 오지도 않았을 걸.) 철주는 눈 앞이 캄캄했다. 양키들과 말도 통하지 않는데다가 딸라도 거덜이 났다.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때 멕시코 부로크는 대담하게 37명 이민자를 봉고차에 실어 미국 해관을 순조롭게 통과시켰다. 사실, 검은 돈을 받은 미국 해관일군들이 짐차로 취급해 무사통과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봉변이 생겼다. 땡볕이 쨍쨍 내리쪼이는 무더위에 봉고차에 갇혀 미국 경내로 질주하던 이민자들이 질식해 쓰러졌다. 봉고차 안의 온도는 섭씨 39도나 되였다. 그러나 미국 변경 순경들한테 발각될가봐 차를 세우고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결국 봉고차는 미국 순경들한테 발각됐다. 운전수는 봉고차를 버리고 허허벌판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봉고차 안의 12명 이민자는 질식해 사망했다. 나머지 질식해 까무러친  이민자들은 병원에 호송돼 구급받는 신세로 됐다. 실패한 멕시코 부로크는 노발대발하면서 운전수를 붙잡기만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야단쳤다. 멕시코 부로크는 밀입국 돈을 벌려고 또 우둔한 수를 썼다. 그는 졸개들을 시켜 괭이와 삽을 한 아름 얻어다 이민자들한테 나눠주게 했다. 졸개들이 뭐라고 손삿대질했지만 철주랑 아세아계 이민자들은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철주네 무리 속에 영어를 좀 알아듣는 안경쟁이가 있었다. “변경선 밑으로 동굴을 파라고 하네.” 모두들 입을 딱 벌렸다. 그 자그마한 시내로부터 변경선까지는 300메터도 더 되지 않는가. “언제 동굴을 파고 건너간단 말인가?”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굴자 부로커는 퉁방울 깜장눈을 부라렸다. “안 가겠으면 말라구.” 울며 겨자먹기로 철주를 비롯한 밀입군자들은 그날부터 한 아빠트 울안으로부터 동굴을 파기 시작했다. 수십명이 석달 남짓이 밤낮 륜번으로 동굴을 파서  끝내 미국 땅 밑에까지 뚫고 들어갔다. 철주 등 이민자들은 끝내 그 기나긴 동굴로 기여나가 미국밀입국에 성공했다. (돈을 벌면 꼭 성호의 빚을 갚아줘야지.) 그러나 얼마 지나가지 않아 철주는 이상하게도 인차 마음이 변했다. 아니, 그는 슬그머니 성호가 가증스러웠다. (개자식, 순희가 첫사랑이라고? 흥, 농민이라고 헌신짝 버리 듯했잖아. 전번엔 우릴 다단계판매에 끌어들여 쫄딱 망하게 했지. 누가 빚을 물어? 개똥이나 먹으라고 해라.) 한편 순희네 안마방에서는 희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가씨가 나와 순희의 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아가씨는 두 손을 맞잡고 머리를 숙이더니 목구멍으로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손님을 받지 못하겠어요.” “왜?’ 순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들어온 손님을 내쫗겠소?” 아가씨는 뾰로통해서 앵돌아졌다. “아무리 손님은 왕이라도 그렇지.” “뭘 어쨌다고?” “주인님을 바꾸라고 해요.” “뭐라고?” 순희는 저으기 기분 상했다. “허, 별 싱거운 놈들 다 보겠어. 주인을 바꿔?” 아가씨는 주인의 눈치를 흘끔 쳐다보면서 내친 김에 말해버렸다. “안마방에서 사내들 돈을 벌겠으면 주인도 싹싹한 녀성이 하면 좋다고 하던데요. 무뚝뚝한 주인을 볼 때마다 정이 뚝뚝 떨어진다고 해요.” “알았어, 알아. 안마방을 부드러운 꽃으로 푹신푹신하게 만들라는 거겠지? 진짜 색마들이구나.” “또 있어요. 현관에 건 몰카를 뗐으면 좋겠대요. 거부감이 난대요. 혹시 공안국에서 와도 그렇고. 자취를 남기는 게 싫다고 해요.” 순희는 허구프게 웃었다. 기실 순희는 단골손님인 굉팔과 오청룡한테 처음부터 거부감이 있거나 경계한 것은 아니였다. 그들이 곤드레만드레 취해 안마방에 온 후 드문드문 성호 허물질하는  것을 들은 다음부터 반감이 생겼던 것이다. (성호는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인데 이 나그네들 뭐야?) 그녀는 오청룡과 리굉팔이 쩍하면 아가씨들을 보고 “특수복무” 즉 색갈을 하자고 강요하는 것을 미뤄보아 좋지 않은 자들이라고 인정하게 됐다. 그때부터 몰카를 가설해 그자들의 행실을 번마다 찍어두었다. 현관의 몰카는 공개된 것이지만 안마방 안의 몰카는 아가씨들도 몰래 샨데리아에 은밀히 가설해두었던 것이다. 순희는 아가씨를 보고 “오, 래일 떼버릴테니 자주 오라고 달래라.” 하고 들여보냈다. 아가씨는 새침해서 엉덩이를 비뚤거리며 단칸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이윽고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순희는 쏘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얘들아, 어서 나가봐라. 손님이 온 것 같애.” “예~” 아가씨들이 우르르 현관으로 달려나가 문을 열어주었다. 뜻밖에도 두리모자를 쓴 경찰들이 넷이나 들이닥치지 않았겠는가. “몽땅 벽에 붙어섯!” 아가씨들은 질겁해 비명을 지르며 벽에 붙어섰다. 경찰들은 방마다 샅샅이 수색했다. 담요를 두른 굉팔이 머리를 풀어헤친 속옷바람의 아가씨와 함께 잡혀나왔다. 저쪽 안방에서 실 한오리 걸치지 못한 오청룡이 황급히 팬티를 주어 입었다. 아가씨는 베개로 가슴을 가리고 치마를 주어 입었다. 그는 현관에 나오자 헛소리를 쳐댔다. “이보, 경찰아저씨, 좀 거래하기오. 놔주오. 만원 주면 안되오.” 경찰은 그를 콱 떠밀었다. “닥쳣!” “이 놈이 법을 우습게 아는구나. 이게 어디 서시장인가 해? 누구와 흥정하는 거냐?!” 그러나 오청룡은 굉팔을 보고 황급히 고함쳤다. “리경리, 뭘 하오? 돈을 주오.” “예, 예.” 정신이 펄쩍 든 굉팔은 경찰을 현관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두툼한 지페 한묶음을 옆구리에 찔러주었다. “닥쳣!” 경찰은 돈을 탁 쳐버렸다. 돈이 온 안마방에 흩날려떨어졌다. “더러운 색마놈새끼! 우리 경찰을 뭘로 보는 거야?!” 경찰은 오청룡과 리굉팔을 붙잡아 주인방으로 들어갔다. 굉팔은 순희를 보고 애원했다. “주인, 좀 구해주오. 방패질 제대로 못하면 누가 다시 오겠소?” 순희는 천정을 쳐다보며 배를 붙안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아니, 손님, 우리 안마방은 마사지만 하는데요. 무슨 죄라도 지었는가요?” 굉팔은 우멍눈을 희번뜩거리며 순희를 쏘아보았다.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는구만. 저 오시장을 모르고 어디 사는가 보자.” “허튼 소리 작작 쳣! 이 색마놈들.” 경찰은 순희와 아가씨들을 내보낸 후 굉팔과 오청룡의 신분을 확인했다. 그러나 굉팔과 오청룡은 표창한 일이 드러나면 큰 일 날 것을 알고 신분을 속였다. “가자, 파출소에 가야 제대로 말하겠어?” “아, 아니, 제대로 말하겠습니다. 제발 벌금이나 시키고 우릴 놔주십시오. 헤헤헤.” “주둥이를 다물엇! 우릴 어떻게 보고 허튼소릴 쳐?” “너희들, 리굉팔과 오청룡 맞지?” “예, 맞습니다.” 오청룡은 살았다고 대답해버렸다. “시장은 무슨 시장이야, 사기군 같은 놈들.” 굉팔은 머리를 조아리며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시장이라면 놔주겠는가 했더니… 저, 술에 취해 한번 실수했는데. 예?” 그는 또 지페 한묶음을 꺼내 흔들어보였다. “허튼 수작 작작 피워! 걸엇!” 경찰들은 쇠고랑이를 두 놈한테 채우고 순희화 아가씨들과 함께 끌고 파출소로 갔다. 경찰차의 경적이 새벽하늘을 무섭게 울리면서 멀어져갔다. 순희는 심문받고 벌금을 내고 놓여나왔다. 그러나 아가씨 둘은 장기적인 매음죄로 녀자수용소에 치안구류되였다. 이튿날 오청룡부터 심문실에 나갔다. 오청룡이 머리를 들어 맞은편에 앉은 녀수사과장을 쳐다보고 깜짝 놀랐다. 최혜영이 아니겠는가. 그녀의 옆에는 건장한 두 수사대원이 컴퓨터를 켜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최혜영 과장은 카리스마 넘치는 눈길로 오청룡을 한참 쏘아보았다. 그 칼날처럼 예리한 눈길에 오청룡은 저으기 불안해 머리를 툭 떨어뜨리며 쪽걸상에 털썩 물앉았다. “오청룡, 무슨 죄를 졌는지 아는가?” 최혜영 과장이 질문하는 챙챙한 목소리가 심문실에서 울렸다. 오청룡은 초췌한 낯을 들지도 못하고 우물거렸다. “창피합니다. 간밤에 오입, 아니, 거 표창했습니다. 제발 오래동안 공적을 봐서  경하게 처리해줍시오.’ 꽝! “허튼 소리 치지 말엇!” 혜영 과장은 사무상을 치며 고함쳤다. “오청룡! 권력을 람용해 재물을 얼마나 챙겼는가! 해마다 웅진광고회사에서 7만원씩이나 받아먹었고 한 제약공장에서 아빠트까지 한채 가졌다. 또 해마다  리굉팔과 단짝이 돼 공금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방과 안마방에 돌아다니면서 기생놀이를 했다. 이 죄상만 해도 15년 이상 징역형, 혹은 무기징역을 받기엔 충분해!” 오청룡은 능청스레 궤변을 부렸다. “아니, 이건 무함입니다. 웅진광고회사에서 한해 광고수입을 통털어도 그만큼  안되는데 뭘 그렇게 많이 떼먹었단 말입니까? 굉팔과 경옥이 짜고들어 탐오해먹고 내한테 덮어씌우는 겁니다. 전번에도 장식비를 꿔 쓴 걸…”  “닥쳣!” 혜영 과장은 코웃음쳤다. “증거를 내놔야 탄백하겠는가?” “생사람을 잡지 마십시오.” “굉팔을 지시해 인터넷광고회사를 사사로이 차리지 않았는가?” “인터넷광고회사?” 오청룡은 네모난 낯에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극구 자기 성적을 꺼내들며 궤변을 부리려고 들었다. “창발성적인 창업도 죕니까?” 최혜영 과장은 책상을 꽝 쳤다. “인터넷광고회사를 차려서 번 돈을 어쨌는가?!” 오청룡은 억울한듯이 울상을 지었다. “난 광고회사를 령도해 경제수입을 창조한 공신입니다. 너무 합니다. 난 아무런 죄도 없습니다. 없어~ 어허허헉, 헉헉.” 최과장이 눈짓하자 수사일군이 미형록음기를 틀어놓았다. 심문실에는 오청룡과 리굉팔의 다음과 같은 대화가 흘러나왔다.   오청룡: 리경리, 들어보라구. 이전에도 집을 장식하려고 5만원 가졌다가 쓰지도 못하고 나만 7만원이나 얻어먹었다고 처분받게 만들지 않았는가? 7만원에서 자네가 2만원을 슬쩍 떼먹고 나한테 다 들씌워놓잖았어?! 리굉팔: 아니, 후에 7만원을 되주지 않았습니까? 오청룡: 고까짓 걸. 야, 범수를 총경리를 시켜도 당신보다 더 줄 거야. 리굉팔: 오청룡, 해마다 7만원씩 가져다줬는데도 모자랍니까? 오국장을  접대하는데 한해에 5, 6만원씩 들어갔습니다. 번마다 해연이나 경옥의 손에서 돈을 내올 때면 얼마나 눈치보이는지 압네까? 오청룡: 자넨 향수하지 않았어? 내 혼자 6만원을 썼는가? 괜히 또 날 잡겠소. 굉팔이, 광고임무를 얼마나 낮춰줬는가? 한해에 30만원이나 낮춰줬으면 고만한 대가도 아까운가? 범수로부터 승호, 성호, 해연까지 몽땅 한몽둥이에 쫓아냈는데. 진짜 배은망덕하는 놈이군. 리굉팔: … 오청룡: 경옥마저 한편으로 만들지 못하다니? 다 자네 탓이야. 혼자 배때 터지게 챙겨넣지 말고 출납원한테도 먹다 나머지 뼈다귀라도 뿌려주란 말이요. 개도 아가리에 뼈다귀라도 물려줘야 물지 않네. 전번엔 한국으로 도망간 선희한테 다 밀었지만 시름놓지 말게나. 언젠가 선희가 나포돼 압송돼오면 자네가 해먹은 게 백일하에 드러날 게 아닌가? 또 여기저기 광고비를 받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자기 염낭에 챙겨넣은 걸 수사하면 다 드러나. 날 좀 주네하곤 욕심을 적게 챙겼는가? 그래 우에 눈먼 송장이 앉아 있는가하는가? 자네 정 재미없이 놀면 승호를 데려다 총경리를 시킬 수도 있어. 리굉팔: 그래라지. 내 입이 터지면 당신도 편안하진 못할 걸! 흥!   그것은 선녀개장국집에서 한 오청룡과 굉팔과의 대화록음이였다. “야~ 진짜 특무정치구만. 록음까지 다 했구만.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구나.” 오청룡은 더 변명할 말이 없어 그저 천정을 쳐다보면서 앙천대소했다. 그의  정신방어선은 단통 와그르르 무너졌다. 혜영은 책상을 꽝 쳤다. “로실히 탄백하면 관대히 처리한다. 인터넷광고회사를 차려서 번 돈을 어쨌는가?” 머리를 툭 떨구고 한참 궁리하던 오청룡은 천천히 탄백했다. “굉팔을 보고 해당 부문을 기만하고 인터넷광고회사를 차린 걸 세상에 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광고수입은 받지 못해 1전도 없다고 딱 잡아떼라고 지시했습니다. 약방의 광고수입을 받지 않고 대신 아빠트를 한채씩 가졌습니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최과장은 좌우의 수사일군들과 눈길을 맞추었다. “아직도 범죄사실이 더 있어. 곰곰히 생각해보고 탄백하도록 하라.” “예, 알았습니다. 이제 속여 뭘 하겠습니까?” 오청룡은 뜨물에 빠진 돼지 눈깔을 떼룩 희번뜩거리면서 무슨 궁리를 하였다. 뒤이어 그는 머리를 툭 떨어뜨리더니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 끌려나갔다. “잠간, 할 말이 있습니다.” 오청룡이 최혜영 과장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말하라!” 오청룡은 최혜영 과장을 쳐다보며 울상을 지었다. “제가 범한 죄는 몽땅 리굉팔 때문입니다. 내 언제 돈을 가져오라고 했습니까? 그 놈이 내 입을 틀어막고 광고임무를 줄여달라고 자꾸 가져왔습니다.” “닥쳣!’ 최과장은 오청룡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집장식비용을 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임무를 몇십만씩 줄여줬는데 요까짓 걸 가져왔는가고 하지 않았는가?” 오청룡은 계속 억울함을 지껄여댔다. “재혼할 혼처를 구해달라고 했지. 언제 아가씨를 안배하라고 했습니까? 다 굉팔이 나를 꾀려고 한 짓입니다.” 최과장을 비롯한 수사대원들은 억이 막혀 입을 딱 벌리는가하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중에 오청룡은 굉팔을 업고 똥구덩이에 풍덩 뛰여들었다. “지금 세월에 누가 그 쓰거운 술을 맛있어 마시겠습니까?” 최과장은 책상을 탕 치며 비렬하기 짝이 없는 오청룡을 쏘아보며 심문했다. “리굉팔의 죄악을 적발할 것이 없는가?!” 오청룡은 최과장의 매서운 눈길을 피하면서 머리를 떨어뜨리더니 자기가 살려고 굉팔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광고임무를 줄여달라고 해서 나머지 돈 20만원을 몽땅 허경옥과 짜고들어 다 나눠 먹었습니다. 약방광고비랑 받아가지고서도 받지 못했다고 거짓말로 명세를 꾸몄습니다. 기실 그 년놈들은 장부외 장부를 만들어놓고 날 좀 주네하고 실컷 해먹었습니다. 광고주마다 돌아다니면서 일일이 조사하면 꼭 밝혀낼 수 있습니다.” 오청룡은 억지로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최과장은 오청룡을 쏘아보면서 호령했다. “여기 기록된 죄행이 사실이면 싸인하라.” 오청룡은 쪽걸상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사무상에 다가와 부들부들 떨리는 살진 손으로 더러운 이름 세글자를 비뚤비뚤 써넣었다. 오청룡은 경찰들한테 끌려나가면서도 웃기는 궁리를 했다. (아이구, 그 맛있는 술도 마시지 못하고 이게 무슨 꼴이냐? 아하이구, 그 숱한 아가씨들을 데리고 놀지도 못하고 어떻게 감옥살이를 하겠는가? 참 기막히구나.) 최과장은 저런 엉터리없는 놈이 어떻게 국장을 했을가고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코웃음쳤다. 뒤이어 굉팔이 경찰들한테 끌려들어왔다. 최과장은 한참이나 굉팔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굉팔은 카리스마 넘치는 그 눈길을 피해 천정을 쳐다보았다. “리굉팔, 공금을 탐오하고 람용한 죄악을 로실히 탄백하라.” 굉팔은 우멍눈까지 희번뜩거리면서 시치미를 땄다. “뭘 그래요?” 최과장은 책상을 꽝 쳤다. “법이 무섭지 않은가?! 로실히 탄백하지 못할가?” 그녀는 뒤이어 바투 들이댔다. “어째 무기징역이라도 받아야 알겠는가? 오청룡이 모든 걸 검거했어.” 굉팔은 흠칫 놀라 우멍눈을 화등잔처럼 떴다. 그러나 썰매떼기인 것 같아 요행을 바라보고  탄백하지 않았다. “어째 증거를 딱딱 들이대야 탄백하겠는가?” 최과장은 오청룡을 심문할 때처럼 선녀음식점에서 오청룡과 리굉팔의 대화록음부터 틀어놓았다. 굉팔은 너무나도 경악해 걸상에서 허망 뒤로 번져지기까지 했다. 경찰들이 일으켜 다시 쪽걸상에 눌러앉혀놓았다. 굉팔은 정신방어선이 와그르르 무너진채 미친듯이 고함쳤다. “야~ 오청룡! 배신자! 개새끼야! 좋은 끝장 있는가 어디 두고 보자!” 그는 오청룡이 음험하게 록음해뒀다가 제공했는가고 오해했다. 한참 후 그는 자기 죄악을 탄백했다. 기본상 수사기관에서 장악한 죄상과 일치했다. 최과장은 굉팔을 쏘아보며 계속 심문했다. “광고비를 받아챙기고서도 받지 않았다고 광고명세장에 올린게 없는가?” “생사람을 잡지 맙소. 오청룡의 말을 듣다간 한지에 방아를 걸겠습구마.” “쓸데없는 소리 작작 줴치고 자기 죄를 낱낱이 탄백햇!” 굉팔은 한참 궁리하더니 “예, 약방광고를 내고 장부에 올리지 않은게 있는데요.” “아직도 더 있어!” 굉팔은 모르쇠를 댔다. “이제 일일이 광고주를 조사하면 몽땅 드러날 것이다.  탄백하지 않겠는가?” 굉팔은 더는 숨길 수 없어 광고비를 탐오한 죄를 탄백했다. 최과장은 날카롭게 굉팔을 쏘아보았다. “장부외에 내부장부를 세우고 도망간 선희한테 죄를 덮어씌운 범죄사실, 광고비를 탐오한 죄를 승인하는가?” 굉팔은 또 모르쇠를 댔다. “모릅니다. 장부는 허경옥이 만들었으니깐요. 미처 받지 못한 광고비를 받아서 몽땅 오청룡한테 주지 않았으면 술접대나 아가씨접대를 하는데 다 쓰고 없습니다.” “허튼 소리! 우린 다 장악했어. 오청룡은 네 죄행을 다 적발했어. 오청룡을 접대했다고 장부에 올리고 제 염낭에 쑤셔넣지 않았는가? 아빠트도 한채씩 가졌지? ” 굉팔은 정신상태가 완전히 붕괴됐다. “아~ 세상에 믿을게 하나도 없구나. 오씨를 얼마나 애비 모시듯 충성을 다해 모셨는가? 날 배신하다니? 네놈, 제 목숨에 죽지 못해!” 최과장은 점점 비수를 바투 들이댔다. “리굉팔, 이미 지은 죄만 해도 15년 이상 징역이거나 무기징역을 면하지 못해! 자기 죄행을 낱낱이 탄백햇!” 굉팔은 땅바닥에 무릎을 풀썩 꿇었다. “예, 예. 로실히 탄백하겠는데요. 제발 관대히 처벌해주쇼.” 최과장은 굉팔의 피를 볼 예산으로 계속 심문했다. “오청룡은 재혼할 혼처를 소개해달라고 했는데 아가씨를 안배했다고 했소. 더 할 말이 있는가?” 굉팔은 우멍눈을 희번뜩거리면서 쇠고랑을 찬 손으로 손삿대질했다. “개새끼, 하루 건너 아가씨를 안배해달라더니. 내한테 죄를 뜰씌워?” “희한한 사진 보여줄게요. 내 핸드폰을 주쇼.” 경찰이 그의 핸드폰을 가져다주었다. 그가 핸드폰을 켜고 꾹꾹 누르더니 “보세요.” 하고 내밀었다. 최과장이 먼저 보고 수사대원들한테도 보였다. 진짜 희한한 비디오촬영이였다. 오청룡이 글쎄 낯빤대기에 부래지어를 들쓴 채 쩝쩝 빠는 장면, 아가씨 둘이나 끌어안고 명태를 입에 물고 쿨쿨 코를 곯는 장면이였다. 굉팔은 오청룡을 헐뜯어 만신창이 되게 만들지 못하는 것이 한이였다. “더 희한한 것도 있어요.” 그는 오청룡이 닭곰집에서 선희와 그걸 하던 장면을 촬영한 것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최과장은 굉팔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곰곰히 생각해보고 다음에 낱낱이 탄백하라.” 굉팔은 “예, 예.” 하고 허리를 굽실거리면서 끌녀나갔다. 최과장이 살펴보니 굉팔이 밟고 지나간 땅바닥에 시꺼먼 때묻은 발자국자리가 찍혀 있지 않겠는가. 너무 경악한 굉팔이 바지에 오줌을 다 쌌던 것이다. 성호, 승호, 경옥과 선화는 오청룡과 리굉팔을 나포하는데 한몫을 톡톡이 했다. 시당위 정법위원회 허철군 서기는 웅진광고회사 총경리 리굉팔과 해당 부문의 책임자 오청룡에게 중대한 경제문제혐의가 있다는 반영을 듣고 최혜영 과장한테 수사하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최혜영 과장은 허경옥을 웅진광고회사에 부총경리로 임명해 잠입시키는 수사방안을 내놓았다. 안수련 총경리는 굉팔을 만나 백화상점의 광고를 더는 성호한테 주지 않고 허경옥한테 맡기겠다고 속여 허경옥의 잠입을 은페했다. 경옥은 최과장과 안총경리의 구체적인 지도아래 증거수집을 구체적으로 해나갔다. 그는 리굉팔과 오청룡이 광고비를 탐오하고 유흥업소로 다니면서 공금을 람용한 죄상을 낱낱이 기록한 장부외 내부장부를 복사해두었다가 수사기관에 제때에 제공했다. 굉팔이 그녀의 입을 막으려고 준 이른바 “상금”은 몽땅 수사기관에 보내 보관시켰던 것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굉팔과 오청룡은 허경옥의 입을 막아놓았다고 착각하고 마음대로 범행했다. 특히 최혜영 과장은 성호의 가시아버지가 제공한 최첨단 도청록음기로 오청룡과 리굉팔의 범죄단서를 아주 손쉽게 장악하였다. 최과장은 대면하기 어색한 승호와 성호도 직접 만나 오청룡과 리굉팔의 죄행을 조사했다. 그녀가 처음 광고회사 사무실에서 승호와 성호를 만났을 때였다. 승호는 뭐라고 인사하려고 손을 내밀었다가 주춤 움츠렸다. 최과장은 수사협조를 위해 주동적으로 승호와 성호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수사를 협조해줘 고마워요.” 승호는 그녀를 보고 “은영이, 그간 잘 있었소?” 하고 마주 인사했다. 그녀는 쌀쌀하게 “은영이라니요? 전 최혜영 과장인데요.” 하고 성호한테 얼굴을 돌렸다. 성호는 희죽이 웃으면서 “은영이면 은영이지. 뭐, 나쁜 이름인가?” 하고 롱담을 걸었다. “옛날 최은영은 죽은지 오랜데요.” 20여년만에 처음 만나 한 대화였다. 삼각련애를 해온 그들 셋의 마음과 감정이 얼마나 복잡했겠는가? 서로 할 말인들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나 최과장은 대범하게 인사를 마치자 승호와 성호한테서 본격적으로 증거를 수집했다. 후에 최과장은 성호한테서 비디오테프도 손에 쥐게 되였다. 그 테프는 순희가 안마방에 가설한 몰카로 오청룡과 리굉팔의 추악한 행실을 몰래 촬영한 것이였다. “감사해요.” 갈라지기 전에 성호는 조용히 물었다. “은영이, 신랑은 무슨 일을 하오?” 최과장은 대뜸 얼굴을 붉혔다. “전 최혜영인데요.” 성호는 진정이 넘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새 출발을 했겠지?” 그녀는 한참 후에야 간신이 입을 열었다. “전 한평생 시집가지 않아요. 세상에 믿을만한 남자 몇이나 있는가요? 전 오청룡이나 굉팔 같은 부패분자들 처단하는 것으로 인생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어요. 그게 바로 인생의 유일한 락인데요.” 성호는 떠나가는 최혜영, 아니, 옛날의 사랑 은영이를 목송하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동안 광고비를 탐오해 흥청망청 쓰면서 유흥업소를 드나들며 아가씨들을 끌어안고 질탕하게 놀아대던 색마들은 인민법률의 호된 징벌을 면치 못하게 됐다. 오청룡은 56만원과 고급아빠트 한채(판매가격 55만원)를 받아먹었다. 리굉팔은 광고비 52만원을 탐오했고 고급아빠트 한채(판매가격 64만원)를 받아먹었으며 오청룡 등 상급간부들 접대비용이라는 명목하에 20만 4천원을 챙겼다. 그외에도 이 두 부패분자는 공금 42만원을 유흥업소에 드나드는데 람용했다. 종수는 최혜영 과장을 찾아가 부패분자 오청룡과 리굉팔이 공금을 탐오하고 람용한 죄악을 취재해 보도기사를 써서 신문에 발표했다. 사회 각계 인사들과 백성들은 신문을 보고 앓는 이를 뺀 것처럼 속이 씨원해했다.    
215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46) 댓글:  조회:1353  추천:1  2020-02-10
                        76.뿌리 무심한 검푸른 하늘 먹장구름 속에서 시뻘건 불뱀이 칼산 허리를 뭉청 끊을듯이 내리뻗었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꽈르릉 꽝꽝! 요란한 우뢰소리가 하늘땅을 진동하며 대지를 채찍질했다. 뒤이어 열콩알만한 비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더니 대살 같은 비줄기가 억수로 쏟아졌다. 성호는 코구멍만한 세집에서 실폭포가 쏟아지는 창 밖의 밤하늘을 내다보더니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으면서 대성통곡쳤다. “아이고, 우리 아버지, 어쩜 새 아빠트에 와보지도 못하고 중풍에 걸렸습니까? 흑흑.” 하나는 아빠 팔에 매달리며 위안했다. “아버지,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이제 할아버지를 모셔다 치료하면 되잖아요?” 정희는 아직도 감관대대 녀성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이런 비참한 마당에 그래도 고중에 갓 올라간 하나가 곁에 있어 성호의 비통하고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래, 우리 할아버지를 세집에 모셔다 치료하자.” 하나는 가야금을 들었다. “할아버지께 가야금을 연주해드릴가요?” 성호는 심청과도 같은 한나의 효성이 가긍해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그래, 가지고 가자.” 그는 눈물이 글썽해 한나를 데리고 소낙비가 쏟아지는 밤중에 큰 길에 달려나갔다. “택시!” 한나가 련이어 손을 들었다. 그러나 택시운전수들은 소낙비가 창창 쏟아지는 밤중에 교외 농촌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 택시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다단계판매 빚군들이 어찌나 문턱이 다슬게 찾아와 행악질하는지 택시와 집마저 팔지 않으면 안되였다. 물론 일부 교활한 사람들의 말처럼 가짜리혼을 하고 정희한테 모든 책임을 들씌워놓으면 성호는 책임을 모면하거나 경감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씨 착한 그는 량심에 가책되는 짓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집이고 택시고 다 팔아서라도 다단계판매에 참가한 사람들의 경제손실을 갚아주고 정희도  구해내오려고 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 경제손실을 다 갚아주었지만 정희는 좀 감형됐을뿐 징역살이를  면치 못했다. 성호는 생각할수록 원통하고 기막혔다. 20여년 동안 물고기장사에 소장사까지  하고 광고와 택시까지 아글타글 해 쌓은 닭알무지가 하루 사이에 와그르르 무너지는 감이 들었다. (돈을 벌어도 법을 지키면서 벌어야 해. 위법하면서 쌓은 금자탑은 아무 때건 물 먹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마련이야.) 알고 보면 얼마나 간단한 도리인가?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머리가 뜨거워지면 위법이고 뭐고 그런 도리를 생각할 새도 없이 씨뻘건 용암이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황금수렁에 훌쩍 뛰여든다! 성호는 가슴을 치면서 후회했다. 만약 후회를 만구할 수만 있다면 후회약으로 만리장성이라도 쌓을 수 있으련만. 그때 다행히 김범수 경리가 길바닥에 나앉은 그를 불쌍히 여겨 신문사 광고과에 불러주었다. 그리하여 근근득식할 수 있게 되였다. 성호는 핸드폰으로 준식을 불렀다. 준식은 남의 택시를 몰고 있었다. “얘, 택시비를 낼테니까. 우리 집 앞에 올 수 있니? 응? 아버지 편찮아 급히 고향으로 가보자구. 응, 인차 오라.” 이윽고 성호와 한나는 준식이 모는 택시에 앉아 소낙비를 무릅쓰고 고향으로 달려갔다. 성호는 편찮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옆에서 한나가 아버지 눈물을 닦아주며 위안했다. 몇달 전 봄에만 해도 아버지는 얼마나 건강했던가? 진달래꽃이 활짝 피는 봄에 아버지는 지팽이를 짚고 성호를 불러 천지꽃산으로 향했다. 멀리서 바라보니 온 산에 진달래가 활짝 피여 온 천지꽃산이 한송이 커다란 연보라빛 진달래꽃송이 같았다. 아버지는 지팽이를 짚고 쩔뚝거리면서도 성호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진달래꽃이 만발한 산기슭에 우뚝 솟은 혁명렬사기념비에 한발자욱한발자욱 다가갔다. 그는 진달래꽃으로 둘러싸인 기념비 주위를 돌아가면서 돌멩이들을 주어내고 쑥대로 비자루를 만들어 썩썩 쓸었다. 뒤이어 진달래꽃으로 단장한 울타리 안에 누워있는 숱한 무덤으로 다가가 마른 쑥대를 뽑고 가토를 하기 시작했다. 성호는 아버지 손에서 삽을 받아쥐여 가토도 하고 쑥대비자루로 무덤 주위를 깨끗이 쓸어놓기도 했다. 가토를 마치자 상진은 옷깃을 여미고 성호와 함께 기념비에 큰절을 꾸벅꾸벅 올렸다. 상진은 정색해 말했다. “우리는 뿌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무덤에는 항일전쟁시기 저 천지꽃산에서 일본놈들과 영용히 싸우다가 영용하게 희생된 항일녀유격대원 진달래를 비롯한 숱한 렬사들이 묻혀 있다.” 상진은 칼산을 가리키면서 뒤말을 이었다. “저 산에는 우리 항일의병과 항일유격대 선렬들의 피가 슴배여있다. 진달래라는 항일녀유격대원은 임신한 몸으로 항일유격대를 따라 저 절벽 우에 올라가서 일본 침략자들에게 사격하면서 용감하게 싸웠어. 나중에 항일유격대원들이 모두 희생되고 진달래만이 남았어. 그런데 안타깝게도 탄알이 다 떨어지지 않았겠니? 일본놈들은 다리에 부상을 입어 질질 끌면서 싸우는 진달래 혼자 남은 것을 발견했지. 일본 놈들은 생포하라고 고함치면서 서슬 푸른 날창을 빼들고 아득바득 절벽으로 기여올라왔다. 진달래는 탄알이 떨어지자 돌멩이로 일본놈들의 대갈통을 까부셨다. 놈들이 절벽 우에까지 바라올라오자 진달래는 저 양지바른 쪽 절벽에서 뛰여내려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상진은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머리를 숙연히 숙였다. 성호도 머리를 푹 숙이며 렬사를 추모했다. “해마다 온 천지꽃산에는 렬사들의 피를 머금고 저렇게 연분홍진달래가 곱게 피고 있어. 우리 이 고장에 피여난 진달래는 우리 조선민족의 상징이야.” 성호는 아버지를 그저 농사군으로 본 자기를 질책했다. 아버지는 국장도 마다하고 고향에 돌아온 식견이 넓은 로간부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너희들이 당의 은혜와 혁명렬사들의 피로 바꿔온 이 나라와 이 땅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게 최대 효성이고 충성이야. 나라에 충성하지 않는 놈은 자기 가정도 온전히 차리지 못해. 옛날부터 충신은 효자가 아니라고 했느니라. 너무 가정에만 얽매이지 말고 렬사들의 피로 바꿔온 이 나라를 위해 뭔가 해놓아야지 않겠느냐? 우리 민족을 위해서 기념으로 남길만한 일을 찾아해라.” 얼마나 의미심장한 말씀이였던가. “예, 아버지, 꼭 명심하겠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성호를 데리고 기념비에서 좀 웃쪽으로 올라가 산마루에 모셔진 조부모 산소로 다가갔다. 며칠 전에 가토를 한 흔적이 보였다. “누가 왔다갔구만요.” “그래, 며칠 전에 백호와 손자들을 데리고 와서 제사까지 지냈다. 사람이란 나라와 민족, 가족의 뿌리도 알아둬야 해. 제 부모한테 효성을 할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나라와 민족에 충성할 수 있겠니? 자기 조상의 산소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이 어찌 남을 잘 보살피겠느냐?” 성호는 아버지 철리깊은 말씀을 마음에 아로새겼다. 상진은 신신당부했다. “내 죽으면 여기 부모 산소 옆에 묻어달라. 난 죽어서도 조상들을 지켜보고 진다래꽃이 만발하는 고향 산천을 지켜보고 싶구나.” “예, 명심하겠습니다. 지금은 백세시댄데요. 아버지, 오래오래 앉으십시오.” 성호는 한마디 물었다. “아버지, 왜 공안국장을 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었습둥?” “걸 물어 뭘 해? 다 지나간 옛 일인데.” 상진은 조부모 옆에 있는 자그마한 산소에 가토를 하면서 간단히 말했다. “네 아버진 옛날 가정이 가난해 공부를 못했어. 그래서 부모를 잘 모시자고 고향에 돌아왔어. 그저 이러루하게 알아두면 돼.” 기실 상진은 과장으로 제발시킨 리철갑한테 무함당해 핍박에 의해 량산에 오르듯이 락향했던 것이다. 리철갑은 갓 결혼해서 뜻밖에도 벽화가 숫처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고 한바탕 싸우고나서 리혼까지 하려고 들었다. 그러나 가정문제로 인해  과장자리까지 내놓을가 봐 김빠진 공처럼 제자리에 물앉고 말았다.  그런데 승호마저 자라면서 점차 자기를 닮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찌 보면 상진 국장이나 공석을 닮은 것 같지 않겠는가. (혹시 공석이 아들이 아닐가? 상진 국장이 자기 아들과 사돈보기까지 하고 살을 섞은 벽화를 나한테 팔아먹었단 말인가? 에이, 그런 년을 받아들인 내가 머저리지.) 리철갑은 보복심에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는 자기를 제발시킨 은인이고 뭐고 처처에서 물어먹었다. 상진은 문화대혁명시기 철갑 등 반란파들한테 투쟁당하다 못해 부득불 고향에 돌아왔다. 성호는 아버지께 물었다. “이건 누구 산소입니까?” “네 큰형의 산소야.” “예? 백호 형님이 큰형님이 아닙니까?” “아니야. 백호 우에 또 공석이라고 있었어.” “예? 공석?” “그래. 공석이지.” “그럼 난 형님 셋에 누나 여섯이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공석은 네 배다른 형이야.” 그제야 성호는 이모부가 하던 말이 사실이란 것을 알게 됐다. “아버지, 공석형님과 좋아하던 아주머니는 병원에 있었습니까?” “그래. 벽화라고 아주 착하게 생긴 처녀였지. 공석과 위생학교 동창생이다. 난 걔들의 사돈보기에 가서 결혼날자까지 정해줬댔어. 에미 없이 자란 놈이 거북살이 팔자였지. 글쎄 임신까지 한 벽화와 결혼도 하지 못하고 불효를 저질렀어.” 성호는 아버지 말에 심장이 점점 쿵쿵 세차게 뛰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 벽화 아주머니 혹시 아들을 낳지 않았습니까?” “그래, 낳았다더라. 내 중매를 서서 재가 보냈어.” “예? 혹시 리철갑 과장한테 재가하지 않았습니까?” “네가 어떻게 알아?” “이모부한테서 들었습니다.” 상진은 머리를 끄덕였다. “리철갑은 아주머니 임신한 걸 몰랐습니까?” “몰랐어. 나와 벽화가 짜고들었지. 벽화가 숫처녀 아니라는 걸 알면 데려가자겠니?” “그럼 아주머니 낳은 애는 내 친조카란 말입니까?” “그래.” 성호는 믿을 수 없었다. (승호가 진짜 친조카란 말인가? 그 교활하고 나쁜 놈새끼!) 성호는 억이 막혔다. “왜 이제껏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 애비도 없는 그 놈이 양애비 사랑도 받지 못하면 어쩌느냐?” “아버지, 그 애 누군지 알았습니까?” “그래, 알았어. 전번에 내 풍을 맞았을 때 벽화가 걔를 데리고 문안하러 왔더라. 이름이 승호라던가. 참, 불쌍한 놈이 어쩜 제 애비를 딱 떼닮았더구나.” “아, 이게 무슨 일입둥? 승호, 그 쌔끼 대학동창생입구마.” “그래? 잘 됐구나.” “예! 아이구, 이걸 어쩝니까?” 성호는 어처구니 없었다. “그 새끼 여기 제 아버지 산소 있는 걸 압니까?” 상진은 손사래쳤다. “몰라. 양애비 알면 큰 일 아니냐?” 성호는 저으기 흥분됐다. “걔네 양애비 녀동생만 편애한다던데. 이제껏 제 아버지 산소도 찾아오지 않고 뭡니까?” … 덜커덕! “아이구, 이걸 어쩌오?” 차가 진흙탕에 빠져 덜컥 멈춰서는 바람에 성호는 깊은 사색에서 깨여났다. 그가 내다보니 대살 같은 소낙비가 쏟아지는 밤에 또 이전에 빠졌던 아래마을  앞길에서 택시가 진창에 빠졌다. “준식아, 여기서 차를 지켜라. 매형네 소를 가져다 끌어내자.” 성호는 비닐을 쓰고 택시에서 내려 질척질척한 호박길섶으로 고향마을로 총망히 반달음쳐갔다. 그 뒤에 비닐옷을 입은 한나가 가야금을 들고 따라나섰다. “내 가야금을 들고 가자.” “아니, 괜찮아요.” “언제 가겠니? 가져오라.” 성호가 가야금을 빼앗아 들고 앞에서 성큼성큼 걸었다. 을씨년스럽게도 소낙비가 마구 내리퍼부어 앞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한나는 시내에서 자란 소녀애여서 저 에미를 닮아서 허우대뿐이지 소낙비 쏟아지는 밤에 진창길에서 몇번이고 넘어졌다. 성호는 한나 손을 잡아일으켜 손을 잡고 걸었다. 그들이 사양실에 들어서니 백호와 은숙이 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가 인사불성이 된 채 누워서 바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버지! 막내아들이 왔습구마!” 성호는 아버지 손을 꼭 잡고 대성통곡쳤다. 그때 상진이 눈을 스르르 뜨더니 손을 들어 성호 옆에 꿇어앉은 손녀의 얼굴을 매만졌다. “한나, 왔니?” 한나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예, 할아버님, 가야금을 연주해드릴가요? 가야금병창을 듣고 구들에서 일어나야 해요.” 상진은 머리를 힘없이 끄덕였다. 한나는 비물이 묻은 가야금을 가져다 할아버님 앞에 놓고 곱게 큰절을 올렸다. 드디여 한나는 줄 끊어진 구슬처럼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억지로 웃음을 지으면서 둥기당당 가야금을 울리며 “오래오래 앉으세요.”란 노래를 구성지게 불렀다. 상진은 손녀의 노래소리에 정신을 좀 차리는 것 같았다. 그는 손을 뻗쳐 성호의 팔을 잡더니 일어나 앉으려고 했다. 성호와 백호가 아버지를 부축해 비스듬히 앉혀 붙안고 뒤에 이불을 받쳐주었다. 한나가 연이어 가야금병창 서너곡을 불렀다. 상진은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또  스르르 쓰러졌다. “아버지, 아버지!” 성호는 아버지를 끌어안고 소리쳤다. “안되겠소. 시내 병원에 모셔가야겠소.” 영옥은 눈물을 흘리면서 하소연했다. “너네 집도 없이 허망 나앉았다는 말 듣고 불시에 중풍을 맞은 거 같애.” “다 이 불효자식 때문이구나.” 성호는 가슴을 치며 울었다. 한나도 따라 울었다. “얘, 그만 울어. 아버지 자극받으면 건강에 나빠.” 백호가 말렸다. 그제야 성호는 정신을 차리고 경만을 돌아보았다. “처남이 모는 택시가 아래마을 앞에서 빠졌소. 소를 빌려주오. 가서 끌어와야겠소.” 경만은 일어나면서 “아니, 이 소낙비 오는 밤중에 택시를 타고 왔니?” 하고 성호와 함께 나섰다. 일복과 정국도 삼촌을 따라 비옷을 입고 나섰다. 한참 후 준식이 택시를 몰고 집 앞에 와서 멈춰섰다. 성호는 아버지를 업어 택시 뒤좌석에 모셨다. 갑자기 상진이 좀 정신 차렸다. “얘, 내려달라.” “아버지, 시내 병원에 가서 치료해야 합니다.” 상진은 한사코 택시에서 내리려고 했다. “날, 날 집에서, 편, 편안히 죽, 죽게 해, 해달라.” 백호가 말렸다. “성호야, 아버지를 집에 모시고 치료하자.” “뭐라오? 치료도 하지 않고 죽기를 기다리라오?” 성호는 형님의 말을 듣지도 않고 준식을 보고 택시를 몰라고 했다. “얘, 성호야, 내 말 좀 들어라.” 백호는 성호의 귀에 대고 나직이 귀띔해주었다. “아버진 시내에 가면 세상뜬 후 화장터에 보낼가봐 그런다. 아버지 소원대로 해드리자.” “시내에 가서 병치료를 하면 우리 아버진 백세를 살 수 있소. 산에 모시지 않을가봐 그러오?” “얘, 내 말을 들어라. 아버지 병은 마음에서 생긴 거야. 약이 말을 듣지 않는다. 제수만 감옥에서 나오는 것만 봐도 아버지 병이 나을 거야.” “오빠 말이 맞다. 아버지를 집에 모시고 잘 치료하면 한가지야.” 은숙의 말에 성호는 마지못해 함께 아버지를 집으로 되모셔들여갔다. 그는 앓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집도 없이 사양실에 모신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돌아서서 훌쩍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아버지, 이 불효자식을 먼저 데려갑소.” “야, 그런 말 하면 못쓴다.” 한나는 아버지 팔을 잡고 손으로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영옥은 성호를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아버진 벽화네 아들 집에 강도 들었다는 말을 듣고 중풍에 걸렸다. 그날 저녁에 자꾸 ‘얼마나 놀랐겠니?’ 하고 근심하더구나. 글쎄 아침에 소변 보자고 일어났다가 쿵 넘어지더니 다시 일어나지 못하더라.” 성호는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야~ 강도를 다 붙잡았는데도 웬 근심이요?” 영옥은 성호의 어깨를 다독였다. “아버지나 엄나나 어째 너네 집에 가서 살고 싶잖겠니? 며칠 전에도 아버진 ‘성호는 날 데려가지 않는다오?’라고 하더라. 그런데 너네 코구멍만한 세집에 어데 가서 누워 있겠니? 시내 병원에 갔다가 죽으면 화장터에 가져간다면서 죽어도 시내에 가지 않겠다더라.” 성호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 아버지-” 성호는 서럽게 울었다. 한참 후 그는 집에서 가져온 안궁환을 꺼내 물종지에 넣고 숟가락으로 꽁꽁 눌러 풀어 한숟가락, 한숟가락 아버지 입에 떠넣었다. “아버지, 근심하지 맙소. 며느린 오래잖아 나올겝구마. 우리 꼭 큰 집을 사놓고 아버지 엄마를 모셔가겠습구마. 그때까지 꼭 건강하셔야 합구마.” 상진은 머리를 맥없이 끄덕이며 눈귀로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이튿날 아침 상진은 성호가 숟가락으로 떠드리는 죽 한숟가락도 넘기지 못했다. 그는 성호를 맥없이 손짓해 옆에 앉혀놓고 띄염띄염 말했다. “대, 대대에 빚, 빚이 있을 게야. 난 생산대대 빚을 지고 이 세, 세상 떠날 수 없구나. 네가 대신 물어다오.” “예, 반평생 농사를 지었는데 빚을 졌다구요?” 막내아들의 물음에 상진은 맥없이 머리를 끄덕이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근심 맙소. 빚을 깨끗이 물어주겠습니다.” 상진은 성호의 손을 잡고 입술을 실룩였다. “뭐 말씀할 게 있습둥?” “당, 당비!” 상진은 웃호주머니에 간신이 손이 올라가다 맥없이 떨어뜨렸다. 백호가 황급히 웃호주머니에서 돈 10원을 꺼냈다. 아버지는 분명 사망하기 전까지도 집체에 빚을 지려고 하지 않았고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도 당조직에 당비를 바치려고 하였다. 백호는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의 마지막 당비를 받아쥐였다. 이튿날 백호는 비닐쪼박을 쓰고 소낙비를 무릅쓰고 대대마을에 내려가 아버지 마지막이나 다름없는 당비를 당총지에 바쳤다. 뒤이어 대대 부기원네 집으로 찾아갔다. “대대에 아버지 빚이 있는가 해서 찾아왔습구마.” 작달막하게 생긴 부기원은 장부를 들춰 꺼내보더니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 한뉘 공안국과 우리 대대 령도사업을 한 리서기 글쎄 빚이 있다니, 참 청백한 로간부지. 쯧쯧쯧.” 백호가 여겨보니 개혁개방초기 생산대 농기구를 집집마다 나눠가질 때 진 농기구빚이 500원이 남아 있지 않겠는가. “며칠 후에 아버지 빚을 물겠소.” “에이구, 놔두오. 사망할 김서기를 보고 빚을 내라 할 사람도 없소. 세상뜨면 그만이오. ” 부기원이 장부책을 서랍에 걷어넣으면서 하는 말이였다. 그러나 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한뉘 공산당을 따라 혁명을 해온 아버지 이름에 집체 빚을 지고 사망했다는 먹칠을 하고 싶지 않소.” “그래? 아버지 청백한 명예를 끝까지 지키는 아들이 효자야. 효자!” 부기원은 백호한테 엄지를 내둘렀다. 그러나 성호는 저도 몰래 머리 숙어졌다. (아버지를 잘 모시지 못한 난 불효자요, 죄인이요.) 그는 머리를 수깃하고 부기원네 집을 나섰다. 아버지가 대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성호가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가려고 했지만 백호와 은숙은 극구 말렸다. “얘, 아버지를 코구멍 같은 너네 세집에 어떻게 모시니? 화장터에 가지 않겠다는 아버지를 근심시키지 말고 마음놓고 편안히 여기 누워있게 놔둬라.” 은숙도 동감을 표시했다. “형님 말을 들어라. 시내 가면 넌 출근해야지. 누가 아버질 돌보겠니?” “청가 맡으면 되오.” “그만둬라. 여겐 그래도 형님하구 내 있잖니? 사양실이라도 널직해 너네 세집보다 훨씬 편안하다.” 은숙의 말에 백호도 동을 달았다. “그래, 네가 리뇨약과 변비약이나 가져오렴.” 성호는 형님과 누님 얘기 옳다고 생각했다. 전날 밤에 준식한테 택시비를 줘보내고나니 성호는 몇십리 진창길을 걸어가야 했다. 한나는 둥기당당 가야금병창을 비통하게 불렀다. 성호는 비닐박막을 쓰고 앞을 가리기 힘들게 억수로 쏟아지는 소낙비를 무릅쓰고 질척질척한 진창길을 밟으며 시내로 떠났다. 그는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곧추 YB병원에 뛰여갔다. 그때 뜻밖에 현관에서 승호 어머니와 딱 마주쳤다. “아니, 성호 아니요? 어째 누가 편찮소?” 성호는 “아주머니!” 하고 부르려다가 그만뒀다. “아니, 아닙니다.” “혹시 아버지 편찮소?” 벽화는 눈물이 핑그르르 돈 성호의 피진 눈을 보고 뭔가 짐작이 갔다. “아버지 리뇨제와 변비약을 가지러 왔습니다.” 성호는 혹시 승호한테 알리지 않은 인정빚을 지는 것 같아 아버지 병세를 상세히  말하지 않았다. 벽화는 두말없이 자기 돈으로 변비약과 리뇨제를 떼주었다. “혹시 도울 게 있으면 나하고 말하오.” (승호 어머닌 진작 날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래서 한사코 자기 딸과 혼사말을 막은게 아닌가? 자기와 승호와의 관계를 여직껏 숨겨온데는 리철갑 과장의 눈치가 보여서일가?) 벽화는 약과 돈을 쥐어주면서 당부했다. “아버님께 맛있는 걸 대접하오. 승호도 데리고 가던지.” 성호는 “필요없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돌아서서 쥉쥉 자리를 옮겼다. 성호는 준식의 택시를 타고 한시급히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가 한창 아버지한테 약을 대접할 때였다. “성호!”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돌려보니 승호가 어머니와 함께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달려오지 않았겠는가! “승호!” 성호는 벽화를 쳐다보았다. 벽화는 머리를 끄덕였다. “야, 임마, 친구라는게 아버지 편찮으면 알릴게지.” 승호는 성호를 나무리면서 상진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상진의 손에 쥐워주면서 “아바이, 병치료를 잘 합소.”라고 했다. 상진은 눈을 천천히 뜨더니 사위를 둘러보았다. 성호는 벽화를 돌아보더니 아버지 손을 잡고 알려주었다. “아버지, 승호 왔습니다. 아버지를 보러 왔습니다.” “승, 승호?” “예, 대학교 친구 승호입니다.” 상진은 승호의 손을 꽉 잡고 머리를 끄덕이며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밭고랑같이 깊이 패인 얼굴의 주름살을 따라 줄줄 흘러내린 쓰라린 눈물이 베개잇에  슴배였다. 승호는 기실 어머니가 성호 아버지를 문안하러 가자고 할 때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었다. 그는 아직도 자기가 상진의 친손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눈물이 글썽해 어찌나 가자고 하는지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상진은 벽화를 쳐다보았다. 벽화는 상진 옆에 꿇어앉아 왕진가방에서 혈압기를 꺼내 상진의 혈압을 잰다, 점적주사를 놓아드린다 하면서 정성을 다했다. 상진이 벽화를 뚫어지게 바라보자 벽화는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벽화예요, 벽화. 알아볼 수 있지요? 리철갑 과장네 색시 벽화예요.” 그제야 상진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승호를 돌아보았다. 승호도 금방 오가는  말을 듣고 의심이 부쩍 들었다. (성호 아버지가 바로 어머니 항상 외우던 국장인가?) 이전에는 근본 성호 아버지를 그렇게 애타게 찾던 국장, 아니, 할아버지리라고는 근본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간호장 출신인 어머니는 마음씨가 어찌나 착한지 행인이 쓰러졌을 때에도 병원에 업고 들어가 구해준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농촌의 친척들은 아프기만 하면 모두 어머니를 찾아왔고 돈이 딸려도 찾아왔다. 시내에 장 보러 왔다가도 허물없는 어머니를 찾아 집으로 오군 했다. 어머니는 집에 찾아온 친척들한테 항상 인정이 폭폭 넘치게 접대해 보냈던 것이다.  승호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성호가 여직껏 자기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곁을 주지 않는 바람에 말을 꺼내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그는 상진의 곁을 지키면서 성호와 함께 업고 뒤간에도 가 대소변을 보는 것도 거들어주었다. 상진은 중풍 때문에 말을 방정히 하지 못해 승호와 이것저것 묻지도 못했다. 벽화와 승호는 문안을 마치자 귀로에 올랐다. 백호와 은숙은 벽화를 알아보고 처음 보는 승호를 친절히 대했다. 상진은 아침까지만 해도 드문드문 의식이 회복되였다. 하지만 오후부터는 의식을 점점 잃더니 이젠 죽물은커녕 물 한모금도 넘기지 못했다. “아버지, 물을 넘깁소.” 백호가 아버지를 안고 은숙이 물사발을 가져다 숟가락으로 물을 입에 떠넣었다. 하지만 상진은 숨이 막혀 꺽꺽거리며 물 한모금도 넘기지 못하고렸다. “안되겠다. 성호야, 누나들한테 알려라.” “아버지- 일어납소. 아버지!” “야, 아버지 조용히 가시게 떠들지 말라.” 성호는 눈물을 훔치면서 황급히 바깥에 나가 사처에 전화를 쳤다. 그러나 승호한테는 알릴가말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괜히 이붓애비 리철갑한테 들키우면 어쩌는가?) 성호가 황급히 돌아들어왔을 때 상진은 긴 숨을 후- 내쉬더니 숨을 천천히 거두었다. 백호가 손목의 맥을 짚어보니 맥박이 없었다. 그때까지도 손목은 따뜻하건만 다시는 맥이 뛰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버지!” “할아버지!” 자손들은 상진의 품에 엎드려 대성통곡쳤다. “할아버님, 어서 일어나십시오. 손녀 가야금연주를 들으세요. 어서 깨나십시오. 으흐흑, 흑흑흑.” 한나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면서 흑흑 흐느껴 울었다. 그러나 상진은 이젠 아들딸들의 애탄 부름소리도 듣지 못하였다. 손녀의 가야금연주소리도 간절한 애원소리도 영영 들을 수 없었다. 은숙은 아버지가 안질을 웃쪽으로 뜨고 숨진 걸 보더니 성호를 보고 내리쓸어주라고 했다. 성호는 한손으로 아버지 얼굴을 받치고 한손으로 천천히 눈을 내리쓸어드리면서 울며 중걸거렸다. “아버지, 어쩜 자손들의 효성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이렇게 총망히 떠나가십니까? 아, 불쌍한 우리 아버지~” 한나는 옆에서 아버지 팔을 붙안고 눈물을 펑펑 쏟아부었다. 성호는 속으로 얼마나 자기를 욕했는지 몰랐다. (아버지를 시내에 모셔다 호강을 시킬 것처럼 모셔가서 쫄딱 망해 얼마나 속타게 했던가? 아버지를 이런 루추한 소사양실에서 사망하게 하다니? 아버지는 얼마나 아들의 집에서 자손들과 함께 살고 싶었을가? 사망하면서도 안질을 감지 못하지 않았는가? 아, 아, 아버지, 이 불효자식을 데려갑소. 구천에선 부모를 잘 모셔드리겠습니다.) 마을사람들도 모두 상진 로서기가 사망했다는 비보를 듣고 조상하러 와서 눈물을 흘리며 큰절을 올렸다. 철주도 만주네 집에 놀러 왔다가 달려와 조상했다. 그는 만주와 함께 생전에 고인이 손수 말리워놓은 널로 관작을 짰다. 그 널판은 곽재령감이 생전에 손수 전기톱으로 아름드리통홍송을 켜준 것이였다. 백호와 성호는 시체가 꽛꽛하게 굳기 전에 아버지한테 새하얀 상시옷을 정성들여 입혔다. 그 상시옷은 영옥이 령감한테 손수 지어놓은 것이였다. 한뉘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고 청렴하고 깨끗하게 살아오신 아버지께서는 티없이 깨끗하고 새하얀 상시옷을 입고 눈을 영영 감고 계셨다. 영옥은 칠성판에 오른 령감의 유체를 바라보면서 손으로 입을 막으며 구슬프게 대성통곡쳤다. 몇시간 후 먼 길을 기차 타고 달려온 춘자와 정춘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관을 꽝꽝 치면서 대성통곡쳤다. 평생 결백하게 살아온 로간부 상진은 새하얀 옷을 입고 아주 소박한 관에 들어갔다. 사흘 후 자손들의 정성과 쓰라린 피눈물과 함께 고향의 뒤산- 칼산에 고요히 묻혔다. 그러나 그의 청백한 령혼은 고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마을의 동불사령감이랑 세린하령감이랑 어쩐지 화장을 해야 한다고 엉터리 고집을 썼다. 하지만 백호와 성호는 아버지 마지막 유언마저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면서 기어이 아버지가 손수 봐둔 천지꽃산 중턱의 조상들의 산소 옆에 고이 모셨다. 형제들은 은자와 성숙이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아무리 불법체류라도 그렇지. 아버지 사망했는데 오지도 않다니?” “아이고, 불쌍한 우리 아버지, 어떻게 하면 이렇게 불시에 돌아갑둥?” 자녀들은 모두 비통에 빠져 아버지를 부르면서 통곡쳤다. 온 집안은 슬픔의 바다로 술렁이였다. “아이고, 하느님도 무심하지. 어쩜 법이 없어도 살 우리 아버질 이렇게 빨리 모셔갑니까? 아이고, 아이고-” 모두 대성통곡칠 때 경만이 그만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가시아버지 산소에 술을 부어올린 후 쓴소리를 했다. “이젠 쓸데 없는 일에 작작 삐치고 고이 잠듭소. 사위하구 반고랑 때문에 시비할   필요있습둥? 세상 시비는 혼자 다 하는 상하면서 예?” 백호가 나서서 제지했다. “이럼 못쓰오. 아버지 돌아갔는데 승풀이를 해서야 되오?” 경만은 백호를 훌 밀어놓으면서 야단쳤다. “령감이 날 항상 ‘애비 없는 새끼 돼서 례절이 없다.’고 욕한 건 어째 말리지 않았소?” “야, 임마, 이렇게 례절 없으니 아버지 그랬다. 장례날까지 아버질 욕하겠니?” 성호도 경만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매형, 아버지 장례날에 례절없이 뭐요?” 그제야 경만은 욕설을 그만두고 산소 앞에서 물러섰다. 춘애와 춘자, 은숙도 경만한테 눈을 흘겼다. 천지꽃산 양지바른 언덕에 쓸쓸한 무덤이 한나 더 누워 있었다. 그 무덤 속에  한뉘 청렴하게 살아온 로간부 상진이 쓸쓸히 잠들어 있었다. 그는 생전의 소원대로 혁명렬사기념비 옆에 조용히 누워 조부모와 부모의 산소를 지키면서 선렬들의 피로 얼룩진 고향 땅을 굽어보고 진달래가 피고 지는 고향의 산천을 지켜보고 있다.  락엽이 우수수 지어 진달래밭에 떨어졌다. 이제 봄이 오면 혁명렬사들과 상진의 산소에 락엽의 사랑을 먹고 연분홍진달래꽃이 활짝 꽃피리라.  
214    동화 호랑이와 궁삼이 댓글:  조회:1324  추천:1  2020-01-24
                               동화                         호랑이와 궁삼이                                                  김장혁        무더운 해볕이 재글재글 내리쪼이는 한 여름의 어느날 , 궁삼은 똘만이랑 함께 토끼풀을 캐러 도끼봉 기슭으로 갔어요. 그들이 한창 감자밭에서 코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면서 코끼풀을 캘 때였어요. “산고양이야!” 똘만이 놀란 소릴 쳤어요. 궁삼이는 똘만이 가리킨 소나무숲 아래 풀숲을 보았어요. 아니, 글쎄 누런 바탕에 까만 줄무늬가 간 딱 고양이처럼 생긴 것이 세마리나 풀밭에서 서로 덮치고 허비고 깨물며 재롱을 부리면서 깡충깡충 뛰놀고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고 놈들은 고양이들보다 더 큰데다가 굼뜨고 어리석어보였어요. 어찌나 깜찍하고 귀여운지 애들은 “와-” 환성을 지르며 그리로 뛰여갔어요. “요 산고양이들을 봐라.” 궁삼은 고 놈들이 너무 귀여워 어루만지면서 놀다가 코끼풀광주리에 담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집 구들에서 궁삼이 한창 산고양이들을 데리고 장난칠 때였어요. 사냥갔던 아버지가 돌아와 보고 깜짝 놀라 발을 탕탕 굴렀어요. “얘야, 어데서 호랑이 새끼들을 주어왔느냐? 빨리 산에 가져다가 놔라. 이제 새끼를 잃은 어미호랑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한바탕 보복하면 어쩌겠냐?” 어머니도 옆에서 타일렀어요. “옳다. 호랑이도 자기 새끼를 무척 고와한다. 그런데 날이 어두웠으니 래일 꼭 가져가라.” 그러나 궁삼은 뾰로통해 울가 말가 했어요. “안돼요. 요것들이 얼마나 귀여운데요. 저 돼지 새끼들처럼 가둬놓고 먹이랑 주면서 키울래요.” 이때 그 중 한 호랑이 새끼가 궁삼을 보고 이렇게 종알거렸어요. “배고파요.” “오, 그래? 먹이를 줄게. 좀 기다려라.” 궁삼은 구들에서 일어나 염소젖을 받아다가 먹인다, 메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먹인다 하면서 살뜰히 보살폈어요. 호랑이새끼들은 배불리 먹고 구들바닥에서 뛰놀았어요. 그러다가 구들에 편 호랑이 가죽과 곰 가죽을 보더니 초롱초롱한 눈에 대뜸 겁기를 띠였어요. “오빠, 이건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 가죽인 거 같애요. 왜 오빠네는 남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가죽을 벗겨 깔고 살아요? 정말 너무 지독해요.” 그러자 궁삼은 얼굴이 수수떡처럼 지지벌개났어요. “우리 아빠 한 짓이야. 난 이담 크면 사냥군질을 안 할 테야.” “그래요. 오빠는 참 착하니깐요. 절대 우리 호랑이 가족을 잡지 않을 거야. 그런 나쁜 사냥군이 절대 되지 말아요. 우린 말 못하는 산짐승들이지만요. 우릴 착하게 대하면 꼭 우리도 사람들을 착하게 대할 거예요.” 궁삼은 새끼호랑이들의 간곡한 부탁에 머리를 끄덕였어요. “응, 그래. 약속하마.” 궁삼은 새끼호랑이들의 터실터실한 발에 깍지걸이까지 했어요.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더니 어미호랑이가 그날 밤에 찾아올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어미호랑이는 새끼호랑이 냄새를 맡으면서 궁삼이네 집에까지 찾아와서 “따웅”  하고 고함쳤어요. 그래도 새끼를 내놓지 않자 가래짝 같은 앞발로 문을 마구 허벼댔어요. 새끼호랑이들은 어미가 온 것을 눈치채고 궁삼을 붙잡고 애원했어요. “오빠, 우릴 어머니한테 돌려보내주세요. 네?” 그러나 궁삼은 새끼호랑이들을 꽉 끌어안더니 딱 잡아뎄어요. “안돼, 너희들을 우리 집 식구들로 만들테야. 흥!” 아버지는 뙤창문 문구멍으로 사냥총부리를 내밀었어요. 땅! 총소리에 집 앞이 좀 조용해졌어요. 그런데 이번엔 돼지굴 쪽에서 돼지들의 비명소리가 꽥꽥 울렸어요. 이튿날 이른 아침에 나가보니 호랑이가 새끼돼지들을 몽땅 물어가지 않았겠어요. 돼지굴 안에서는 굴암퇘지만이 피투성이 된 채 꿀꿀거리고 있었어요. 그제야 궁삼은 별수 없이 아버지와 함께 토끼풀광주리에 호랑이새끼들을 담아들고 전날 주은 감자밭에 가져다 놓아주었어요. 그런데 호랑이새끼들은 하루 밤 사이에 어찌나 정이 들었던지 궁삼의 손에 얼굴을 비빈다, 바지가랭이를 들춘다 하면서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지 않았어요. 궁삼은 할수 없이 메돼지고기점을 꺼내 먹이면서 새끼호랑이들의 애호박쪽지 같은 주둥이며 함치르르한 얼룩잔등이며를 쓰다듬어주면서 데리고 놀았어요. 그때 아버지가 재촉했어요. “가자! 어미호랑이가 숲 속에 숨어서 이제껏 살피고 있었구나.” 진짜 어머호랑이는 화등잔 같은 누런 눈깔을 슴벅이면서 그들 부자 행동을 살피고 있었어요. “에그머니!” 궁삼은 광주리고 뭐고 다 버린 채 신짝을 벗어쥐고 냅따 뛰였다. 나중에 신짝마저 다 던지고 헐레벌떡 집까지 달아났다. 아버지도 사냥총을 허공에 갈기면서 달아났어요. 그는 궁삼의 신짝을 주어올 새도 없었어요. 이튿날 이른아침, 궁삼은 바깥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하, 글쎄 토끼풀광주리와 신짝이 문 옆에 곱다라니 놓여 있지 않겠어요. 궁삼은 너무나도 이상해 신짝과 풀광주리를 들고 어머니한테 보였어요. 어머니는 신짝을 매만지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어요. “얘야, 말 못하는 호랑이지만 그 놈들도 자기 새끼를 고와하면 사람들을 해치지 않아. 일단 자기네를 해치기만 하면 용서없단다.” 궁삼은 머리를 끄덕였어요. “오- 그래요?” 궁삼은 초롱초롱하고 천진한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엉뚱한 궁리를 터놓았어요. “어머니, 그럼 사람하구 호랑이랑 서로 잡아먹지 않고서도 살 수 없을가요? 어쩜 아빠와 엄만 호랑이 가죽을 깔고 살기 좋아해요. 바꿔놓고 호랑이들이 우리 가죽을 벗겨 깔고 자면 좋겠어요?” 아빠는 그저 피씩 쓴웃음을 지을뿐이였어요. “건 어린애들의 천진한 생각이야. 이 도끼봉골안에서 농사만 지어서야 어떻게 사느냐? 너도 이젠 컸잖았나. 사냥재간이나 배워라.” 궁삼은 계속 종알거렸어요. “사냥군을 안할래요. 선생님이 그러시던데요. 호랑이랑 잡아가면 나라에서 잡아간다던데요.” 궁삼은 아빠 손을 꼭 잡고 애원했어요. “이젠 호랑이를 잡아 가죽을 벗겨 팔지 마세요. 안나랑 자기 할아버지와 할머니 가죽을 벗겨 깔고 산다고 우릴 뭐라고 욕했는지 알아요? 이제부터 호랑이가족들은 도끼봉에서 살구 우린 이 골안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면 얼마나 좋아요?” 그 말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궁삼을 대견하게 쳐다보면서 씨무룩이 웃었어요.
213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45) 댓글:  조회:1256  추천:1  2020-01-03
                              75. 파리와 개고기 굉팔은 눈에 든 가시 같던 성호와 승호, 해연까지 몽땅 한몽둥이에 쳐내고 얼마나 속이 씨원했는지 몰랐다. “‘흐흐흐. 이게 다 오청룡 덕분이지. 그 놈 색마만 잘 모시면 뭐나 술술 풀리거든. 그 놈만 등에 업으면 권세도 있고 빵도 있고 미녀도 있지.” 굉팔은 웃음주머니 흔들흔들해 쏘파에 앉아 좌우로 빙빙 돌면서 코노래를 불렀다. 따르릉 따르릉 다급히 울리는 전화벨소리. 굉팔은 황급히 벌떡 일어섰다. 들어온 전화번호를 보고 단통 말상을 찌프렸다. “오국장? 아침부터 웬 지시 계시는가요?” 오청룡의 가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경리, 어제 저녁 술을 과하게 마셨네. 해장국 먹고 싶네.” “예, 오국장이 부르면 무조건 달려가야죠.” “얼씨덩 오게. 속이 말째야.” 굉팔은 차렷자세를 취하며 연극을 놀았다. “옛! 오국장님, 곧 가겠습니다.” “잠간만…” “옛!” “잠간, 내 말 들어.” “예, 지시만 하세요.” “어제 저녁에 얼마나 고독했는지 몰라. 베개를 안고 외롭게 잔 홀애비 설음을 누가 다 알겠어?” “예- 정력이 참 왕성한데요. 온 밤 아가씨를 데리고 놀고 새벽에 집에 들어갔잖아요. 또 생각 나던가요?” “그래. 아무리 즐겁게 놀아도 적막강산 집에 들어서면 외롭단 말이야.” 굉팔은 전화를 놓고 게두덜거렸다. “쳇, 아침부터 아가씨 소리냐? 어제 밤에 아가씨 단번에 둘씩이나 깔아뭉개고서도 또야? 술에 푹 퍼져 그게 궈즈 다 됐겠는데 신새벽부터 또 머리 쳐들어? 참 신기해.” 그는 두덜거리면서 부랴부랴 재무과로 건너갔다. 경옥이 해쭉 웃으면서 눈인사를 했다. “무슨 일인가요? 리총경리.” “오, 허경리, 아침부터 진짜 예뻐.” “호호호. 오늘 기장밥이라도 지어드려야지 않겠어요?” 굉팔은 경옥을 슬쩍 춰주고 손을 내밀었다. “돈을 주오.” “얼마?” “한 2천원 주오.” “또 무슨 일인가요?” 경옥은 눈을 치뜨며 굉팔을 쳐다보았다. “오국장이 해삼을 먹고 싶다오.” 경옥은 생각 밖으로 오만상을 찡그리더너 두덜거렸다. “아니, 어제 3천원 썼는데 또 2천원입니까? 오늘 광고비도 들어온 게 없어요. 광고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고서야 어떻게 해요? 진짜 애보다 배꼽이 더 크군요.” 굉팔은 단통 우멍눈을 데굴거렸다. “그만하라구!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면서. 흥! 오국장님한테 코 밑치성을 잘해야 광고임무도 줄이지. 년말에 우리한테도 더 차례진단 말이여. 총경리 돈을 내놓으라면 내놓을게지. 무슨 잔소리 그렇게 많아? 흥!” 경옥은 발딱 일어나면서 계속 게두덜거렸다. “진짜 밑굽 빠진 항아리야.” “다 우리 둘을 생각해 하는 일이요. 오국장을 등에 업기만 하면 짜고들어 마음대로 해먹을 수 있어.” 굉팔은 급한지라 경옥한테 처세철학을 싸넣으면서 저금소에까지 묻어갔다. 두툼한 돈을 챙겨넣은 굉팔은 곧추 택시를 잡아타고 오청룡네 3층 집에 달려갔다. 오청룡은 어제 마신 술이 아직 깨지 못했는지 낯이 지지벌개 집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왜 이리 늦어?” 굉팔은 택시에서 내려 굽신거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저금소에 들려 돈을 찾아가지고 오다나니 좀 늦었어요.” 굉팔은 오청룡을 부축해 택시에 앉혀가지고 해장국집으로 달려갔다. 아침인지라 해장국집에 들어가보니 손님도 없었다. 밥상에 마주 앉은 오청룡은 해장국을 후후 불면서 둬술 떠먹네하더니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기우(있는가요)?” 오청룡은 허리를 펴고 자기를 마주 보는 굉팔을 째려보았다. “사람이, 어째 눈치 그렇게 도끼등인가? 상전이 말하지 않아도 고민거리를 척척 해결해줘야지. 에이, 참, 원.” “미안해요. 잘 보살펴드리지 못해. 도대체 무슨 고민…?” 오청룡은 수수떡처럼 뻘건 낯을 들고 굉팔을 쳐다보았다. “색시 좀 얻어달라고.” “예?” 굉팔은 우멍눈을 치떴다가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홀아비로 사는 고통 여직껏 그리도 몰랐어?” “예- 미처 알아보지 못해 미안해요.” “사람이, 머리 둔하잖은데 몇번 말해야 알겠소?” 오청룡은 심복인 굉팔한테는 터놓고 말할 수 있었다. “자네 덕분에 아가씨들을 데리고 놀긴 잘 놀았네. 허나 집에 돌아가면 고독해. 난 고독한게 무서워. 빨래도 나절로 해야지. 점심과 저녁은 여기저기서 근근득식하는데. 제일간 아침이 큰 걱정거리야. 밥은 글쎄 그런대로 전기밥가마가 좋아서 해먹을 수 있는데 채를 할줄 알아야 먹지. 이젠 두부모만 봐도 딱 질색이야.” 굉팔은 머리를 끄덕였다. 오청룡은 굉팔의 손까지 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어디 예쁘고 현숙한 색시 없소?” “제가 알아보지요.” “하루가 삼추 같네. 이젠 집에 들어가기 싫어. 그렇다고 계속 바깥으로 나돌 순 없잖는가? 집에 아름다운 꽃을 숨겨둔 다음 바깥에서 놀아야지 않겠소?” “알았어요. 여러 모로 수소문해보죠.” “옛날 선희만한 녀자면 좋겠는데. 헤헤.” 굉팔은 정욕으로 이상할만치 빛뿌리는 오청룡의 쌍까풀눈과 유들유들하고 퉁퉁한  낯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욕했다. (에이구, 난쟁이, 뚱보야, 색마야, 개구리 어찌 학의 고기를 먹을 수 있어? 그래, 네놈한테 후처를 안겨주는 게 낫겠어. 경옥의 독살스런 눈치를 보면서 돈을 얻어내다가 하루 건너 아가씨들을 공납하기도 피곤해. 갓 마흔고개를 넘은 녀석이, 저렇게 술만 퍼먹고서도 정욕이 시들지 않아? 어쩜 매일 녀자를 탐내?) 원래 오청룡한테도 현숙한 안해가 있었다. 그러나 오청룡이 주색에 빠져 거의 날마다 곤드레만드레 취해 밤중에야 집에 돌아오는데다가 어데 가서 자주 매독이나 림질 같은 성병을 묻혀오군 했다. 안해는 성병에 감염돼 가출을 자주 하다가 나중에는 오청룡을 버리고 헤여졌다. 굉팔은 오청룡한테 아첨하려고 동분서주했다. 수소문 끝에 옛날 예술단에 있을 때 동료인 사십대초반의 무용수 윤희를 소개해주었다. 그녀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해 홀로 난지 5~6년 되였다. 굉팔은 사전에 윤희한테 거짓말을 잔뜩 늘여놓으면서 오청룡을 춰올렸다. “오국장은 인물체격이 뛰여난데다가 200평방메터나 되는 고급아빠트에 고급승용차도 있어. 오국장한테 재가하면야 귀부인처럼 호강할 수 있지.” 남편을 잃고 청상과부로 지내던 그녀가 솔깃해하자 굉팔은 철면피하게 혼사말에서도 사기행각을 벌렸다. “오국장도 안해를 교통사고로 잃고 홀로 산지 10년이나 되오. 꼭 저를 잘 생각해줄게요.” 그녀는 굉팔의 말을 딱 곧이들었다. 맞선을 본 윤희는 굉팔의 말을 믿었다. 어느 하루, 오청룡과 어쩌다가 점심식사를 함께 하게 됐다. 윤희는 아주 반갑게 따라나섰다. 이게 뭐야? 해볕이 재글재글 내리쬐는 삼복염천에 오청룡이 글쎄 택시도 타지 않고 걸어가자고 하지 않겠는가. “아니, 여보세요. 고급승용차를 뒀다가 뭘 해요?” “오, 멀지도 않은데 걸어가기요.” 오청룡은 원래 “차를 세울데도 맞갖잖은데. 술 마시고 차를 운전해서야 되오?” 하고 말하려다가 말끝을 흐려버렸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다하는 정객이여서 그런지 론리사유만은 명확했다. 녀자 앞에서 첫날부터 해석이 구구할 필요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윤희는 울며 겨자먹기로 손으로 해볕을 가리면서 따라갔다. 어디로 가는가 했더니 대중랭면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청룡은 굉팔한테서 윤희가 랭면을 먹기 좋아한다는 정보를 미리 정탐해가지고 랭면집으로 데리고 갔던 것이다. 숱한 손님들이 왁짝 떠드는 랭면집에 들어가 마주 앉자 오청룡은 윤희를 보고 말했다. “무더운데 어떻게 맨 국수만 먹겠소? 맥주나 한잔 마시지.” 하고 말하더니 마른 명태 하나에 고급랭면 두그릇을 달랑 청했다. 진짜 회양콩 한접시에 소주 한잔 마시던 공을기면 어디 이런 현대판이 더 있으랴. 윤희가 몰라 그렇지. 오청룡은 공금으로 먹을 땐 해삼이나 광어회 같은 비싼 걸로  시켜 먹었다. 그러나 자기 돈으로 써야 할 때에는 마른 명태 밖에 시키지 않았다. 어진간하면 기관에서 모두들 “마른 명태”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겠는가. 윤희는 초면강산인지라 마지못해 맥주 한잔 마셨다. 그런데 랭면을 먹으려다가 저가락을 살짝 내려 놓고 새침해서 덤덤히 앉아 있었다. 눈치가 도끼등이여서 그런지 배려심이 없어 그런지. 저 오청룡를 보라. 그녀가 먹는지 어쩌는지 살피지도 않고 혼자 후룩후룩 랭면을 게걸스레 먹어댔다. 한참 먹다가 그녀가 랭면을 먹지도 않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 물었다. “어째 자시지 않소? ” 윤희가 저가락을 들어 국수그릇을 가리켰다. “파리!” “양?” 그제야 오청룡은 그녀의 국수그릇에 뛰여든 파리를 발견했다. “아, 파리구만. 그런 걸 또 무슨 큰 일이나 났는가 했지.” 그는 랭면그릇에 둥둥 떠다니며 날개를 파닥이는 파리를 저가락으로 집어 땅바닥에 훌 던졌다. “자, 이젠 먹소.” 윤희는 훌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왜 아까운 국수를 먹지도 않고 가오?” “다신 절 찾지 말아요.” “뭐라고? 남의 성의도 모르고 그게 뭐요?” “흥!” 윤희는 코방귀를 뀌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휭 하니 가버렸다. 사후에 굉팔은 황급히 윤희를 찾아가 오청룡과 다시 만나라고 구슬렸다. “어찌 국수를 한저가락도 안 먹고 혼자 두고 훌 일어난단 말이요? 오국장의 체면이 뭐요?” 윤희는 코방귀를 뀌였다.  “흥! 그런 나그네도 국장인가요? 파리 국장이라 해라. 국가1급무용수를 뭘로 보는가요? 파리 빠진 국수를 다 먹으라고 해요? 인간도 아니더군요.” 듣는게 욕을 먹는다고 굉팔은 코를 떼우고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올라 돌아왔다. 사실 오청룡은 굉팔에게서 얻어먹기만 했지. 언제 한번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남을 청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호주머니에 택시비마저 넣고 다니지 않았다.  어디로 가나 굉팔이랑 아래사람들이 쩔쩔 매면서 모셨으니깐 그럴 법도 했다. 그후 굉팔은 오청룡한테 한개 반은 잘 될 괜찮은 녀자들을 소개해줬다. 그러나 오청룡과 몇번 지내보고는 모두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헤여지군 했다. 어느 눈이 먼 녀자가 아무리 국장이라고 해도 녀자를 생각할줄도 모르는 등신을 좋아하겠는가.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기를 찬다고 숱한 녀자들한테 코를 떼운 오청룡은  노발대발했다. “뭔가? 파악도 없이 쓸데없는 아줌마들을 한드럼이나 소개해 괜히 망신시키잖았어?” 굉팔은 오청룡을 애비 모시듯 선녀음식점으로 모셔갔다. 선화는 하루 건너 찾아오는 단골손님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그녀는 복무원을 돌아보면서 “귀빈을 조용한 안방에 모셔라.” 하고 분부했다. 제일 안쪽의 방은 리굉팔과 오청룡의 안방이나 다름없었다. 하긴 굉팔은 점심에는 보통 1차로 오청룡을 선녀음식점에 데리고 와서 먼저 개장국부터 대접하였다. 2차로 철주네 노래방에 갔고 3차로 송숙이네 안마방에 갔다. 4차로 보통 순희네 양고기뀀집으로 갔다. 나중에 5차로 아가씨를 데리고 다방에 가서 놀았다. 이건 리굉팔이 오청룡을 접대하는 스케줄이나 다름없었다. 오청룡은 그 수케줄이 기실 목에 걸린 올가미인줄도 모르고 질탕하게 놀아댔다. 보통 5차나 6차 하지 않으면 오청룡은 집에 발길을 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선화는 전날에 오랜만에 자기 집으로 온 성호를 반갑게 맞았다. 물론 성호를  신랑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마음 속에 아직도 성호가 차지한 자리는 컸다. 요즘 그녀는 성호가 탐욕스런 굉팔에 의해 광고회사에서 쫓겨나 무직업자로 됐다는 말을 듣고 쓸쓸히 동정하게 됐고 굉팔을 곱게 보지 않게 됐다. (웬 돈이 그리 많을 수 있어? 아무래도 공금으로 오청룡을 데리고 와서 개고기를 아가리 메지게 채우겠지.) 그녀는 희번뜩거리는 굉팔의 우멍눈만 봐도 음흉한 놈으로 보였다. 하여  굉팔이 오기만 하면 안방에 “특별히 모시고” 미형몰래카메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굉팔이 오청룡을 모시고 안방에 들어가자 그녀는 례외없이 미리 장치해놓은 미형몰라카메라 단추를 눌러놓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굉팔은 안방에서 오청룡과 하지 못하는 말이 없었다. “미안해요. 먼저 개장국이나 들면서 분을 삭이세요.” 오청룡은 개고기를 무드기 담은 접시를 훌 밀어놓으면서 화부터 냈다. “지금 개고기 맛있겠어? 선녀 같은 미녀를 놓쳤는데.” 굉팔은 실망이 꽉 차 흐르는 퍼러뎅뎅한 오청룡의 네모 번듯한 낯빤대기를  쳐다보면서 우멍눈을 끔쩍이며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바보처럼 웃긴. 무슨 일을 그렇게 처리해?” 오청룡은 진짜 화났다. “들어보라구. 이전에도 5만원 가졌다가 일전도 쓰지 못하구 나만 7만원을 얻어먹었다고 처분받게 만들었지? 7만원에서 자네가 2만원을 슬쩍 떼먹고 나한테 몽땅 똥바가지를 들씌워놓지 않았어?!” “아니, 후에 7만원을 되주지 않았습니까?” “고까짓 걸. 야, 범수를 총경리를 시켜도 더 가져올 거야.” 굉팔은 억이 막혔다. “오국장, 해마다 7만원씩 줬는데도 모자라요? 오국장을 접대하는데 적어도 한해에 5, 6만원씩 듭니다. 번마다 경옥의 손에서 돈을 내올 때면 얼마나 눈치보이는지 압네까?” 오청룡도 양보하지 않고 따지고 들었다. “자넨 향수하지 않았어? 내 혼자 6만원을 썼는가? 괜히 생사람 잡겠어. 흥!” 그는 목소리를 낮춰 굉팔을 다독였다. “리총경리, 광고임무를 얼마나 낮춰줬어. 한해에 30만원이나 낮춰줬으면 고까짓 걸 그리 아까와? 김범수로부터 승호, 성호, 해연까지 몽땅 쫓아내줬는데 고만한 대가도 아깝는가? 진짜 하늘 같은 은혜 아닌가? 배은망덕한 놈.” 굉팔은 머리를 숙이더니 오청룡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오청룡은 계속 했다. “경옥마저 손아귀에 넣지 못한 건 다 자네 탓이야. 왜 고만한 도량도 없는가? 혼자 배 터지게 처먹지 말고 출납원한테도 뜯어먹다가 남은 뼈다귀라도 뿌려주란 말이요. 개도 아가리에 뼈다귀라도 물려줘야 물지 않는 법이네. 이런 도리도 몰라?” 그는 술잔을 들어 굉팔의 잔과 마주치고 굽을 쭉 냈다. “전번엔 한국으로 도망간 선희한테 다 밀었지만 시름놓지 말게나. 언젠가 선희가  나포되면 백일하에 드러날 게 아닌가? 여기저기 광고비를 받지 못했다고 거짓말로  둘러대고 챙겨넣은 걸 모르는 것 같은가? 광고주마다 돌아가면서 수사하면 다 드러나. 날 준 척하고 자네 욕심을 적게 챙겼는가? 그래 우에 눈먼 송장이 앉아 있는가 하는가? 정 재미없이 놀면 승호를 데려다 총경리를 시킬 수도 있어.” 굉팔도 맞받아쳤다. “그래보라지. 고기 죽으면 그물도 찢어진다는 걸 아시우(아시오). 내 입이 터지는 날엔 오국장도 편안하진 못할 걸.” 그는 오청룡이 선희와 관계버린 걸 몰카로 찍어둔 카드를 꺼내들려다가 그만뒀다. 오청룡은 제 쪽에서 억울하다고 술잔을 탕 메쳤다. “에이, 술맛 없다.” 오청룡은 굉팔이 숙으러들긴 고사하고 맞장을 뜰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엉거주춤 일어나 신을 꿰면서 꼭두까지 치미는 화를 가라앉혔다. “리경리, 윤희라던가?” “예.” “불러내 함께 노래방에나 갈가?” 굉팔은 억이 막혀 말상에 우멍눈을 끔쩍이더니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안돼요. 전번에 설궈놓아서. 어쩜 파리 빠진 랭면을 권해요?” “야, 말도 말아. 내 언제 남을 청해 먹인 적이 있는가? 랭면 한사발이라도 사먹이면 대단한줄 알라 해라.” “노래나 부를가요?” “그래? 윤희 말고 예쁜 아가씨들 부르라구.” “옛!” 가물에 실돌피 같은 허리를 굽신거리는 굉팔을 보고 오청룡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당신, 내보다 이상이잖아. 등신같이 애쓰는게 불쌍해. 당신, 광고는 잘 못해도 하나만은 잘해.” 굉팔은 유들유들한 오청룡의 낯빤대기를 쳐다보았다. “뭔가요?” “웃사람한테 아가씨 배치만은 잘한다니까. 그것도 능력이긴 능력이지. 허허허허.” 오청룡은 아가씨를 끌어안을 생각에 굉팔의 짧은 바지가랭이를 부쩍 춰올려줬다. 굉팔은 속으로 욕했다. (에이, 개자식, 애빈들 이렇게 모시겠느냐?) 선화가 만면에 춘풍이 돼서 그들을 깎듯이 바랬다. “잘 다녀가세요. 또 오세요.” “그래, 또 오지. 헤헤헤.” 굉팔과 오청룡이 떠나간 후 선화는 안방에 들어가서 몰카에서 카드를 빼냈다. 이윽고 인차 성호한테 전화를 쳤다… 한편 굉팔은 오청룡을 택시에 모시고 노래방으로 달려갔다. 노래방에 가자마자 팁 몇장을 주고 윤희보다 더 예쁜 아가씨를 청해 오청룡한테 안겨주었다. 오청룡은 둬시간 안고 돌아가더니 기분이 좋아 입이 당나발이 돼 맥주를 쭉쭉 들이켰다. 저게 뭔가? 오청룡이 글쎄 아가씨를 끌어안고 마른 명태쪼각을 입에 문채 코를 드렁드렁 곯지 않겠는가! 옆에 앉은 아가씨는 부래지어를 벗어 오청룡의 네모난 낯에 씌워주었다. 오청룡은  코를 드렁드렁 곯다가 꿈인지 생신지 부래지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 “어허, 향기롭구나.” 저 오청룡을 보라. 글쎄 혀로 부래지어를 쩝쩝 핥아댔다. “호호호.” “하하하.” 아가씨들이 그 해괴망칙한 장면을 핸드폰으로 찰칵찰칵 촬영했다. “찍지 말어!” 굉팔이 손사래쳤다. “얼마나 행복해요? 예쁜 아가씨를 안고 잠든 모습!” “영원히 기념할 명장면!” “호호호.” 굉팔도 피뜩 떠오르는 령감이 있어 그 추악상을 촬영해두었다. 밤도 깊고 아가씨들도 하품을 하면서 언제 가겠는가고 기다리는 눈치였다. 굉팔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부랴부랴 오청룡을 깨웠다. 그러나 오청룡은 깨나지 못했다. 굉팔은 혼자 아가씨들을 안고 맥주를 실컷 마시며 놀았다. 그때까지도 오청룡은  부래지어를 들쓴 채 비스듬히 들어누워 돼지처럼 코를 드렁드렁 곯았다. 한밤중에야 굉팔은 오청룡를 툭툭툭 쳤다. “여보세요. 오시장, 어서 안마원으로 갑세다. 아가씨들이 기다리는뎁쇼.” 저 오청룡를 보라. “아가씨” 말에 벌떡 일어나앉아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아가씨들은 땅바닥에 떨어진 브래지어를 황급히 주어치우면서 깔깔깔 웃었다. 웬 영문인지도 모르고 오청룡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잠꼬대 같은 소리를 줴쳤다. “뭐야? 벌써 안마원에 왔어?” “아니, 아직 노래방인데요.” 오청룡은 툴툴거리며 황급히 일어났다. “리경리, 어서 안마원에 가자.” “예, 오시장.” 굉팔은 열살이나 이상인 자기와 “야, 자” 하며 하대하는 오청룡을 버르장머리 없다고 욕했다. 그러나 아가씨들 앞에서는 오청룡을 “예, 예.” 하고 아첨하면서 “오시장, 오시장.” 하고 잔뜩 춰올렸다. 오청룡은 시장인 척하면서 어깨 으쓱해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렁거렸다. (더러운 정객! 사기군! 건달! 색마야!) 굉팔은 속으로 억천만번이나 욕하고 또 욕했다. 그는 리속을 챙기려고 오청룡한테 잠시 아첨할뿐이였다. 그는 상전한테 아첨하는 것이야 말로 리윤이 제일 높이 나는 보험이고 지름길이라고 오산하고 있었다. “팁 주세요.” “오, 그래?” 오청룡은 굉팔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굉팔이 지페 몇장을 꺼내 건네주자 오청룡은 아가씨들한테 훌 뿌려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안마원에 가서 콱 시원히 놉소-” 아가씨들이 아양을 떨며 바래자 오청룡은 얼마나 급했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큰길 쪽으로 비틀거리면서 나갔다. “왝-왝-에, 퉤!” 오청룡은 큰 길 옆에 물앉아 왈왈 토했다. 그때 어데서 뛰쳐나왔는지 애완견 몇마리가 그의 다리 두새로 토해놓은 개머거리를 빼앗아 먹으며 으르릉거렸다. 오청룡은 취해 애완견을 타고 훌 물앉아버렸다. 깨갱- 애완견이 비명지르며 간신히 다리 두새로 빠져나갔다. 굉팔은 욕설을 퍼부으면서 노래방문을 쾅 닫고 황급히 오청룡 쪽으로 뛰여갔다.  그런데 오청룡은 개들한테 떠밀렸는지 취했는지 쿵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굉팔이 황급히 다가갔을 때 오청룡은 인사불성이 돼서 코를 드렁드렁 곯았다. 굉팔은 하는 수 없이 둘쳐업고 택시를 불렀다. 저쪽 뒤에서 숱한 아가씨들이 코를 싸쥐고 키득키득 웃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다리를 지날 때 오청룡은 택시 안에 또 개머거리를 왈칵왈칵 토했다. 한참 토하고나자 오청룡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어, 세월이 좋다. 안마원에 가서 가려운데를 씨원하게 긁읍세. 예쁜 아가씨들을 데리고 양고기뀀점에 가야지. 아가씨들을 조용한 다방에도 데리고 가서 한바탕 질탕하게 깔아뭉개면서 놀아야지. 허허허.” 굉팔도 흥을 돋우려고 맞장구를 쳤다. “어, 진짜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몰라. 한심한 세월이구나.” “뭐라고? 가수출신이란 사람이. 쯧쯧, 어쩜 그렇게 예술성이 없어?” “오국장은 정치만 잘하는가 했더니 예술에도 조예가 깊구만. 노래실력이 이만저만 아니던데요.” “그래? 숱한 학비를 내면서 맨날 노래방대학에 출근했는데 그만큼도 못하면 뭐야?” “그렇긴 해요. 허허허.” 그들의 질탕한 대화가 희붐히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더럽히고 있었다…  
212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44) 댓글:  조회:1370  추천:0  2019-12-21
               74. 피어린 달밤        희읍스럼한 달빛이 어둠을 간신히 밀어내며 창문을 쓸쓸히 핥고 있었다.        승호와 영희가 텔레비죤을 보다가 금방 잠자리에 들었을 때였다.        똑똑똑, 똑똑똑.        누군가 문을 조용히 두드렸다.        “누구요?”        “옆집입니다.” 옆집 한족이웃의 목소리 같았다. “좀 기다리게.” 승호는 바지도 꿰입지 못한 채 문가의 전등을 켜고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요?” 뜻밖에도 억대우 같은 복면강도 셋이 비수를 뽑아들고 뛰여들었다. “강ㅡ도ㅡ야ㅡ!” 승호가 소리치자 한 놈이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꼼짝 말엇!” 다른 놈이 문을 닫고 안으로 잠가버렸다. “까딱하면 죽인다, 죽여!” 승호는 입을 틀어쥔 강도의 손을 꽉 깨물며 주먹으로 사타구니를 올리쳤다. “아이구!” 한 놈이 꺼꾸러졌다. 다른 놈이 비수를 휘둘러 승호를 찔렀다. 승호는 옆으로 피하면서 발길을 날렸다. 그러나 쓰러진 자가 승호의 두 종아리를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결국 승호는  강도들에게 두 팔을 비틀려 꼼짝달싹 못하고 구들바닥에 처박혔다. “헤이, 언감 어디다 대고 주먹질인가?!” 한 강도는 발길로 승호 턱을 걷어찼다. 승호는 단통 낯이 쥐마당이 돼버렸다. 영희는 침대에서 이불을 훌 뒤집어쓰고 바들바들 떨었다. 다른 방에서 공부하던 복화가 놀라 얼굴이 새까맣게 질렸다. 광훈은 다행히 깊은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복면강도들은 비수를 들고 침대에 다가와 영희를 위협했다. “돈을 내놓지 않으면 너네 딸이 무사할 거 같애?” 복화를 해칠가봐 영희는 이불을 훌 걷어치우면서 두덜거렸다. “세집살이를 하는 집에 무슨 돈이 있다고 이래요?” 한 놈이 비수를 들고 거들먹거리며 나지막하나 위엄있게 지껄여댔다. “소문을 들으니 돈이 많다더군. 당장 내놓지 못할가?!” 승호는 그래도 침착하게 한마디 했다. “직업도 다 떼웠는테 무슨 돈이 있겠소?” “닥쳣!” 강도놈이 비수자루로 승호의 정수리를 탁 쳤다. “악!” 순간 승호의 정수리에서 뻘건 선지피가 주르르 흘렀다. “앗!” 영희는 비명을 지르더니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녀는 주먹깨나 휘두른다던 승호가 저렇게 무골충일줄은 몰랐다. “거짓말 할텐가? 돈이 없으면 날마다 흥청망청 술을 퍼마시고 아가씨들 앞에서 돈자랑 하며 다녀?” 다른 놈도 을러멨다. “당장 내놧!” “돈을 내놓지 않으면 목을 베가겠어!” “딸년을 륜간하겠어!” 그 놈은 승호의 목에 비수를 바투 들이댔다. “제발 처자를 살려주오.” 승호는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게 빌었다. (에이구, 어떤 땐 주먹자랑을 하다가 무릎을 꿀어?) 영희는 부랴부랴 옷궤에 치워두었던 돈 3600원을 몽땅 꺼내놓았다. 강도는 두툼한 돈뭉치를 쥐여 흔들어보였다. “요까짓 걸로? 어림도 없어! 당장 15만원을 내놔!”  “15만원이 없는 걸 밤중에 어떻게 내놓소?” 다른 놈은 비수로 영희의 가슴을 찌를 상하면서 호통쳤다. “그럼 좋아. 일주일 사이에 15만원을 갖춰라. 다시 찾아올 때 돈을 내놓지 않으면 먼저 네년놈들 대가리를 가져갈줄 알아.” 다른 놈이 겁을 주려고 비수로 승호의 목을 쓱 오려놓으면서 을러멨다. “만약 잔꾀를 부려 공안국에 신고하는 날엔 너네 일가를 몽땅 죽여버릴테야. 만약  우리 잡히는 날엔 다른 형제들이 꼭 복수할 거야. 알았어?!” 승호는 목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오. 우리 꼭 일주일 안에 돈을 갖춰놓을게.” “헛소릴 쳤다간 죽인다!” 한 강도는 품 속에서 시퍼런 비수를 꺼내 홱 뿌렸다. 문선에 비수가 꼽혀 부르릉 떨었다. “사흘 후에 올테야! 가자!” 강도들은 기세등등해 문을 박차고 가버렸다. 영희는 승호 목의 피를 닦아주고나서 헝겊을 감아주었다. 그녀는 구들바닥에 물앉아 문선에 박아놓은 시퍼런 비수를 쳐다보면서 와들와들 떨었다. 승호는 그제야 기신기신 기여 일어나 문선에 박힌 시퍼런 비수를 뽑아들고 으르렁거렸다. “개자식들, 이제 다시 오기만 해라. 비수로 심장을 팍 찍어 바람구멍 뚫어줄 테야.” 승호의 말에 영희는 출입문 쪽을 바라보면서 귀속말을 했다. “에이구,정작 강도를 만났을 땐 꼼짝 못하다가도 뒤에서 우쭐렁거리긴? 그 놈들이 들으면 어쩌오?” 승호는 간신히 일어나 문께로 다가가서 피어린 달빛이 깔린 바깥을 내다보고나서 출입문 걸개를 꽉 닫아걸었다. “공안국에 알릴가?” 승호는 전화기 옆에 다가갔다. “그러지 마십시오. 혹시 강도들이 바깥에서 도청이나 하면 어쩌오?” 영희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승호는 “목숨이 경각에 다달았는데? 돈은 또 어디서 가져오오?” 하고 기어이 전화기를 들었다. “아버지, 큰 일 났습니다. 예, 강도 셋이 뛰여들어 일주일 내에 15만원을 가져오지 않으면 우리 일가를 몽땅 죽이겠다고 합니다. 비수로 목까지 베면서 위협하고 갔습니다.” “에이유, 죽어도 우리 죽으면 됐지. 시아버지까지 죽게 만들자고 이러세오?” 영희는 전화를 마구 빼앗자고 했다. 그러나 승호는 영희를 밀쳐버리고 계속 전화에 대고 말했다. “아버지, 공안국에 신고하지 말고 그저 15만원 주고 맙시다. 예, 예. 우리 집에 한 3만원 저금해둔 게 있습니다. 아버지네 한 12만원 먼저 줄 수 없습니까? 예, 후에 꼭 갚아주겠습니다. 예? 면목 모를 한족강도들입니다. 예, 절대 공안국에 신고하지 마십시요.” 따르릉 따르릉. 승호가 전화를 놓기 바쁘게 전화벨이 급촉하게 울렸다. 승호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자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죽고파?! 엉?! 어디다 전화해? 공안국에 신고하는 날엔 목을 칠줄 알아! 애비 형사과장이면 다냐? 네 애빈 이때까지 우릴 잡지 못했어. 다른 수작을 하면 네 애비도 죽여버리겠어. 사흘 후에 가지러 가겠으니 15만원을 준비해놔!” “아직 돈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먼저 5만원 내놔!” 덜컥! 전화가 끊겼다. 강도들이 진작 도청하고 있었다. 승호와 영희는 섬찍한 나머지 잔등에 소름이 쪽 끼쳤다. 그들은 전등불까지 꺼버리고 구들바닥에 맥없이 물앉았다. 피어린 달빛이 창 밖으로부터 집안까지 쓸쓸히 비추며 공포를 꽉 몰아왔다. 이윽고 승호는 일어나 창문에 카텐까지 쳐놓았다. “여보, 성호한테 알릴가?” 영희가 초풍에 기절할 상했다. “정신 나갔소? 시아버지도 어쩌지 못하는데 성호인들 어쩌겠어요? 원, 참. 이젠 바보로 됐구만.” 승호는 어둠 속에 벌떡 일어나면서 고집했다. “성호 혼자라도 저런 강도 서넛은 처치할 수 있을 거요.” “당신은 항상 성호를 아무 걸로도 여기지 않더니? 무슨 수로 알립니까? 저 놈들이 전화를 다 도청하는데.” “우리 알리지 않아도 아버지가 공안국과 성호한테 알릴 가능성이 있소.” “괜히 애들을 다치게 하지 말아야죠.” “픽!” “그래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겠소? 저 놈들은 돈을 다 가져간 후에도 단서를 잘라버리려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거요.” “그럼 어떻게 해요?” 영희도 벌떡 일어났다. “요즘 애들을 학교에 보내지 말기요. 우린 먼저 5만원을 주고 돈을 마련한다면서 시간을 질질 끌잔 말이요. 그러면 아버지와 성호가 우릴 구할 게요.” 영희는 어둠 속에서 머리를 끄덕였다. “당신, 이젠 술을 마시고 작작 돈자랑 하세요. 당장 세집 돈도 낼게 없는데 무슨 돈이 있다고 아가씨들 앞에서 허풍을 치고 돌아다녀요?” “아니, 어쨌다고? 자꾸 이래?” 승호는 영희와 복화   앞에서 창피해 침대에 올라가 이불을 머리까지 들써버렸다. 영희는 고양이처럼 발뼘발뼘 창문가에 다가가 카텐을 들고 희읍스름한 달빛이 깔린 바깥을 내다보았다. 어디에 숨어있을지 모를 강도들의 공포가 달빛을 타고 서리서리 피여올랐다. 그녀는 카텐을 잘 여며놓고 침대에 돌아와 이불을 들고 들어가 남편의 옆에 누웠다. 그들 부부는 생벼락을 맞은 지지리 길고도 긴 이 달밤이 싫었다. 어서 공포의 달밤이 흘러지나가고 해볕이 찬연한 평화의 새 날이 왔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리철갑 과장은 고민 끝에 안전을 고려해 먼저 공안국에 알리지 않고 밤중에 먼저 성호한테 전화를 걸었다. 성호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예, 무슨 소립니까? 단서라도 잡은 게 있습니까?” “허송파네 깡패무리가 승호한테 보복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네.” “허송호?” “응. 그 놈 우리 시내 유명한 깡패야. 어디로 사라졌더니 또 뛰쳐나왔구나.”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깡패무릴 또 만났구나.) 성호는 허송호 말이 나오자마자 이를 갈았다. (개자식들, 이전엔 은영과 홍희 눈을 빼가겠다고 녀학생숙사에까지 쳐들어오지 않았는가. 승호의 그 걸 빼가겠다고 대학교 사무청사에까지 무리를 지어 쏘다니더니. 흥! 이번엔 화근을 뽑아버려야겠는데.) 성호는 전화로 리과장과 대책을 논의했다. “공안국에 신고해 그 놈들이 승호네 집에 돈 가지러 나타났을 때 일망타진하면 어떻습니까?” “글쎄, 그 놈들이 역지 못해 그물에 들어오겠소?” “돈에 눈이 빨개 나타날 수도 있잖습니까.” “글쎄. 전화로 말하기 불편하오. 도청하면 어쩌오?” 리철갑 과장과 성호는 한참 대책을 세웠다. 성호는 먼저 가시아버지한테 도청기로 송파와 송호 형제의 전화를 감시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는 시퍼런 비수를 품고 집을 나서려고 했다. “어디로 가요? 아버지까지 다치면 우린 어떻게 살아요?” 한나가 눈물이 글썽해 아빠의 팔을 붙잡았다. “친구 강도를 만났는데 어쩌니? 경찰들과 함께 행동한다. 근심하지 말라.” 한나는 아버지를 놓아보내면서도 안전에 주의하라고 열당부를 했다. 성호는 한나를 안심시키려고 희죽이 웃어보이고나서 가슴을 쑥 내밀고 집을  나섰다. 그는 전번에 승호가 뒤통수를 친 일을 생각하면 나서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생명위험에 처한 승호를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인생좌우명에 맞지 않았다. 그는 범송과 준식, 광인까지 불러 집의 택시를 불러 타고 곧추 승호네 집으로 달려갔다. 승호네는 깡패들의 눈을 피해 시내 변두리 쪽으로 해 세집을 잡았다. 은세계를 방불케 하는 눈길이여서 준식은 택시를 천천히 몰았다. 광인은 매형을 보고 “장마당에 가서 도끼라도 사가지고 갈가?”라고 했다.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은 장마당을 돌다가 오금상점에 들어가서 스파나와 네지마스를 사서 품에 넣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간 송파와 송호 형제가 엄삼기 교수의 감시망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이번 강도사건과 좁은 길에서 딱 마주칠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상해, 송호가 어떻게 돼 다시 손을 써?” 그는 피뜩 승호네 세집을 잡은 지역에 JH현에서 이사해온 경화네 남동생 송철이  피뜩 떠올랐다. (그래, JH현에선 송철도 한다하는 깡패였지. 송철을 찾아가 방조를 구할가?) 성호는 준식을 보고 차머리를 돌려 교외에 자리잡은 송철이네 집쪽으로 몰라고 했다. 그는 식품가게에 들어가 사과와 술을 사들고 송철이네 집으로 찾아갔다. “차를 여기에 세워놓고 기다려라.” 성호는 택시를 송철의 집에서 멀찍이 떨어진 골목에 세워놓고 기다리게 하고 혼자 성큼성큼 걸어갔다. 광인은 시름이 놓이지 않아 주위를 살폈다. 성호가 송철이네 초가집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어떤 한족아낙네가 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고 내다보았다. “송철이 있는가?” “이사갔는데.” “걔네 집이 어데 있소?” “저 길 옆에” 성호는 아낙네가 가리키는대로 길 옆의 벽돌집으로 가다가 송철이네 옛날 초가집을 되돌아보았다. 옛날 그가 대학교를 다닐 때 춘자네는 송철이네 아래집에서 살았다. 지금도 그는  은빛달빛이 깔린 개울가 빨래터에서 모기에게 종아리를 물리우면서도 경화를 동무해 빨래를 하던 달밤, 가슴을 설레이게 하던 그 달밤이 떠올랐다. 또 송철을 벽돌공장 건조실에 데리고 가서 권투를 배워주던 일도 떠올랐다. 그런데 송철은 공부는 하지 않고 나중에 JH현에서 한다하는 주먹패거리 두목으로 됐다. 경화는 대학생 성호는 오르지 못할 나무라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한족한테 시집가버렸다. 경화를 마지막으로 본 날에도 역시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성호는 과자봉지나  사들고 경화를 찾아갔다. 성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경화만 쳐다보았다. 경화는 송철이 나간 틈을 타서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울먹거렸다. “오빠, 이젠 찾아오지 말아요. 전 한족한테 시집가기로 마음먹었어요.” 성호는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아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쳐댔다. “누나한테서 들었어. 왜 하필이면 한족한테 시집가?” 경화는 팔로 눈을 가리며 정지로 나갔다. “이젠 말도 말아요. 오빠도 절 책임지지 못하잖아요? 내가 한족한테 가든말든 웬 상관인가베.” 성호는 한족구들에 벌렁 드러누워 주먹으로 구들을 쾅쾅 두드렸다. 정지에서 경화가 밥을 지어먹이려고 풍무를 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성호는 벌떡 일어나 정지로 나갔다. 부엌에서 내굴이 꾸역꾸역 솟아나 꺼먼 종이천정을 찔렀다. “그만둬, 난 갈란다.” “아니, 점심을 들고 가시라요.” “밥맛이 없어.” 성호는 신을 꿰면서 진심으로 말했다. “한족한테라도 시집가서 잘 살아.” 그는 호주머니에서 5원짜리 지페를 한장 꺼내 경화의 손에 쥐워주고 몸을 돌렸다. “결혼 부존가요? 오빤 소비잔데 왜 이래?” 자오록한 연기 속에서 경화가 지페를 성호의 손에 되쥐어주려고 했다. 성호는 되밀어주었다. “오빠가 주는 걸 받아.” “오빠~” 경화는 더는 참지 못하고 통곡치며 와락 성호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성호는 경화를 꼭 껴안아주었다. 그녀의 온몸이 흐느낌 속에서 전률하고 있었다. 성호는 시큼해나는 코마루를 주먹으로 닦으면서 연기가 꼴똑 찬 그 집 안에 경화를 남겨두고 나와버렸다. 집 안에서는 경화의 통곡소리가 가슴아프게 울렸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성호는 송철네 초가집을 또다시 돌아보았다. 그러나 사랑스러운 경화는 보이지 않았다. “없습데?” 준식이 물었다. “이사했어.” 성호는 길옆의 벽돌집을 가리키더니 “여기서 기다려라.” 하고 당부했다. 성호가 둘러보니 이 마을은 20년이 지났건만 의연히 게딱지 같은 초가집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유독 길옆의 송철이네만은 벽돌집을 쓰고 살고 있었다. 그 벽돌집 벽에 하얀 타일을 붙이고 지붕에는 재빛기와를 얹어서 꽤나 으리으리해보였다. 성호는 높다란 층계를 밟고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집 안에서 웬 녀인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경화인가?) 성호는 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섰다. 집 안에는 웬 실팍한 녀인과 열댓살되는 남자애가 구들에 앉아 있었다. “누굴 찾아요?” “이게 송철이네 집이요?” “예. 누구세요?” “송철의 사돈이요. 송철이 어데 갔소?” “석탄 실으러 갔는데요.” 성호는 그 말에 사과배꾸럭을 내려놓다가 손에서 퉁 떨어뜨렸다. “아이구, 무슨 배까지 들고 왔어요?” 송철의 처는 배를 받아놓았다. “누굴 믿고 여기 이사와서 살게 됐소?” “사촌시형이 오라고 해서 왔는데요.” “사촌시형 이름이 뭐요?’ “허송호, 허송파죠. 어째 우리 시형들 몰라요? 이 시내에서 이름이 뜨르르한 량반들인데요.” 성호는 속으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시형이랑 여기 자주 놀러 오오?” “아니. 며칠 전에 전화 왔을뿐인데요.” “음- 알았소.” 성호는 내심으로 더욱 놀라지 않았다. 송호와 송파 깡패무리가 송철의 사촌형일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진짜 우연하게 범의 굴로 들어선 셈이였다. 사실 경화와 송철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가난하게 살았다. 그리하여 송호와 송파 그리고 경옥이네는 업신여겨 사촌동생취급을 하지 않았고 거래도 별로 하지 않았다. 그는 송철 처의 의심을 받지 않으려고 화제를 돌렸다. “경화는 잘 보내오?” “경화도 알아요?” “그렇소. 이전에 대학을 다닐 때부터 알았지.” “예~ 그렇군요. 에이유, 시누이 말도 말아요. 한족한테 시집가 고생살이 말이 아닌데요. 나그네가 석탄굴에 들어가 석탄을 져날라 애 둘을 데리고 사는게 고생이 막심해요.” “아들이요? 딸이요?” “둘 다 아들애죠. 장차 아들 둘이나 어떻게 장가보내고 집을 다 사주겠어요?” 성호는 머리를 끄떡였다. (사람의 팔자는 정해진 건가? 어려서 부모 잃고 남동생 데리고 외롭게 살던 경화가 한족한테 시집가더니 개고생이구나.) 성호는 벽에 걸린 시퍼런 도끼와 뻘건 술을 단 비수를  둘러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며 물었다. “송철은 언제 돌아오오?” “어제 갔으니깐요. 눈이 내려서 래일 쯤에나 들어서겠죠.” 성호는 일어나 벽에 걸린 비수를 살펴보았다. 뻘건 술을 단 비수였다. “참 좋은 비수구만. 길림에 가는 길에 들렀소. 갈 길이 바빠서 가야겠소.” “아니, 점심도 잡숫지 않고 가요?” “송철과 경화 전화번호 적어주겠소?” “예. 그래요.” 송철의 처는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경화와 송철이 보고 문안을 전해주오.” “예. 사과배를 가져와서 잘 먹겠어요.” 성호는 송철이네 집에서 나오자 택시에 앉아 마을을 떠났다. 그는 마을을 벗어나자 핸드폰을 꺼내 가시아버지한테 전화를 쳐서 금방 송철의 처가 적어준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됐소. 내 말하기 전엔 절대 서뿔리 건드리지 마오.” “알았습니다.” 그는 핸드폰을 걸어 이모부한테 사건경과와 혐의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알려주었다. 성호는 택시를 몰고 승호네 집 부근에 가서 살폈다. 때마침 승호네 집 앞에 려관이 있어 들어갔다. 그는 그 려관에 투숙하여 승호네 아빠트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살피였다. 강도들은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성호는 해지기를 기다려 쪽지를 써서 준식을 시켜 승호네 집 문틈으로 걷어넣게 했다. 준식은 쪽지를 가지고 식품상점에 가서 과자랑 사들고 승호네 3층집으로 다가갔다. 그는 층계로 승호네 웃집으로 올라가는 척하다가 주위에 인기척이 없자 문틈 사이로 쪽지를 슬쩍 걷어넣었다. 한편 문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자 승호는 침대에서 일어나 스적스적 다가가보았다. 분명 제비꼬리를 한 쪽지였다. 승호는 떨리는 손으로 주어 위생실에 들어가서 펼쳐보았다.   승호, 얼마나 놀랐니? 내 너네 집 앞 려관에 와 있으니깐. 겁내지 말라. 강도들이 와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고 돈만 창문으로 뿌려줘라. 가능하게 이번 강도사건은 송철과 련관이 있는 거 같애. 승호, 이미 공안국에도 말해놓았으니까. 강도들 얼씬하기만 하면 일망타진할 수 있어. 성호로부터   승호는 쪽지를 갈기갈기 찢어 변기에 처넣고 침대에 돌아왔다. “뭔가요?” 승호는 영희한테 귀속말로 쪽지내용을 대충 알려주었다. 승호네 집은 어지간한 강도는 창문을 까부시고 마구 뛰여들기는 힘들었다. 만약 창문을 깨고 들어온다고 해도 주위에 삼엄한 포위망을 늘이기 시작하는 경찰들과 성호네한테 당하기는 십상이다. 그들 부부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강도들이 나타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한편, 성호와 범송 등은 려관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승호네 집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가시아버지한테서 온 전화였다. “성호, 송파네 깡패무리와 사촌동생 송철이 이번 사건을 저질렀어. 그자들이 지금 돈을 가지러 승호네 집으로 가자고 전화를 주고받았어.” “예? 송철이 처는 훈춘으로 석탄을 실으러 갔다고 하던데요.” “믿지 마오. 속임수요. 송철은 시내에 있을  수 있소.” “예. 알았습니다.” 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어쩜 송철은 송파 사촌동생이야.) 그때 강운룡 국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공안국 7과에서 전화 왔다. 송파네 깡패무리들이 당지 한족깡패들을 시켜 한 짓이야. 너네 타고 간 택시를 멀리 치워라. 혹시 강도들이 영업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그 택시를 경계할 수도 있어.” 성호는 인차 준식을 시켜 택시를 다른데 몰고 가서 기다리게 했다. 한편 승호네 집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승호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잡아 들었다. “어째 죽고 싶어? 왜 공안국에 신고했어?” 승호는 강도들이 허튼소리를 치는 걸 알아챘다. “신고한 적이 없는데. 언제 돈 가지러 오겠소?” “공안국에 신고했기에 오늘 말고 래일 가겠어. 돈은 마련했는가?” “5만원 있소. 빨리 가져가오. 이제 나머지 돈은 아버지 가져오면 줄게.” “알았어. 허튼 짓 하지 말라구. 죽지 못해서. 에헴.” 시간은 재깍재깍 1초, 1초 흘러갔다. 또 1분, 1분 흘러지나갔다. 반시간 후에 또 전화벨이 울렸다. “아까 너네 집에 왔다간 사람 누구냐?” “아니, 왔다간 사람 없는데.” “문 열엇!” “왔소?” “응, 문을 열어.” “좀 기다리오.” 승호는 후둘후둘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떨고 문께로 다가갔다. “아니, 문을 열지 마세요!” 영희가 황급히 소리쳤다. 승호는 문께로 다가가 감시구멍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현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문 열겠소. 바깥에 누가 있소?” 현관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으로 조용했다. 이윽고 복면한 자가 나타났다. “문 열어!” “돈을 창문으로 내던질게. 가지고 가오.” “열지 못해?” 이번엔 조선말로 지껄였다. 옆집에서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는 짓인 것 같았다. “창문으로 던질게.” “어째 죽고 싶어?!” 그 자는 문을 꽝꽝꽝 두드렸다. 문이 열리긴 만무했다. “그럼 바깥으로 뿌려!” 뒤이어 층계를 뛰여내려가는 소리가 텅텅텅 들렸다. 승호는 창문카텐을 살며시 열고 바깥동정을 살폈다. 울 안에 복면한 자가 나타나 달빛 깔린 사위를 둘러보더니 창문을 향해 손삿대질했다. 승호는 창문 되창을 열고 5만원을 넣은 비닐봉지를 훌 내리던졌다. 그 자가 비닐봉지를 주어들고 내뛰려 했다. “서랏!” 여기저기서 몇 사람이 뛰쳐나왔다. “사람 살려요!” 복면강도는 고함치며 담장을 넘어 도망쳤다. “어디로 도망쳣?!” 경찰과 성호가 담장을 훌쩍 날아넘어가 추격했다. 담장 밖에서 몇몇 검은 그림자가 욱 모여들었다. 한 놈이 도끼를 성호한테 날렸다. 성호는 허리를 굽혀 날아오는 도끼를 피했다. 또 비수가 날아왔다. 성호가 옆으로 몸을 홱 틀어 피했다. “피햇!” “앗!” 비수는 성호 옆구리를 스치며 날아가 미처 피하지 못한 범송의 팔에 박혔다. 범송이 비수를 뽑으면서 볼라니 빨간 술이 달려 있었다. 성호는 그 비수 날린 자가  누구라는 것을 짐작했다. 승호도 뛰쳐나가려다가 강도들이 집 안에 뛰여들어 처자들을 다칠가봐 그만두었다. 강도들은 복면강도를 보호하면서 작은 골목을 굽어들었다. 준식은 택시를 몰고 헤드라이트로 강도들을 비추며 추격했다. “꼼짝 말엇!” 경찰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 권총을 겨눴다. “흩어졋!” 복면강도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도망쳤다. 땅! 땅! 땅! 총소리가 고요한 밤하늘을 깨웠다. 강도 두 놈이 종아리를 붙안고 푹푹 꼬꾸라졌다. 성호가 나머지 강도 둘을 쫓다가 고함쳤다. “송철아!” “잉?” 비수를 날린 자가 주춤 멈춰서다가 더욱 미친듯이 도망쳤다. “어디로 도망쳐?” 복면강도는 토성을 훌쩍 뛰여넘어 도망쳤다. 그러나 성난 사자 같은 성호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성호는 토성을 훌쩍 뛰여넘어 계속 추격했다. “누구냐?!” 막다른 골목에 이른 강도는 더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몸을 홱 돌리며 발길을 날렸다. “주먹 받아라!” 성호는 날아드는 발을 슬쩍 피하면서 아래배에 한매 안겼다. “어이쿠!” 그 놈은 아래배를 붙안고 땅바닥에서 대굴대굴 구을면서 애걸복걸했다. “히야(형), 살려줘!” 성호는 성난 사자처럼 발길로 그 자의 대가리를 걷어찼다. “너도 사람이냐?” 성호는 연신 대가리에 발길을 날리며 대성질호했다. “왜 강도질해?” 송철도 맞받아 욕설을 퍼부었다. “너거도(너도) 사람이가(사람인가)? 날 잡아바치면 상금 두툼히 타겠구만.” 성호는 송철의 대가리를 밟고 팔을 뒤로 비틀었다. 송철은 두손을 싹싹 비볐다. “경화누나 봐서 놔줘! 난 알아, 히얀(형은) 우리 오누이 불쌍해한다는 거. 내 죽으면 경화누나 불쌍하지 않아? 놔줘!’ “개소릴 작작 쳐. 걸엇!” 성호는 계속 지껄이는 억대우 같은 송철을 끌고 큰 길 쪽으로 나왔다. 그때 경찰들도 총탄에 종아리를 맞은 두 놈을 잡아 끌고 경찰차에 압송해갔다. 경찰차에서 심문해보니 이번 사건의 주모자는 허송철과 허송호였다. “도망친 놈은 송파지?” “아니요. 큰형 삐치지 않았어.” “네놈들 전화 다 록음해두었어. 들어봐야 탄백하겠는가?” 송호는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강운룡 부국장은 위엄있게 호통쳤다. “네놈들이 아무리 교활한 수단으로 강도질해도 인민법률의 천라지망을 벗어나지 못해!” 며칠 후 그날 저녁에 도망친 허송파와 당지 한족깡패도 YJ시내 PC방에서 체포되였다. 공안국에서는 성호의 사건제보를 받은 후 즉시 김창남 대대장을 조장으로 한 12명 나포소조를 구성해 JH시에 쏜살같이 달려왔었다. 강운룡 부국장은 제7처와  엄삼기교수가 제공한 범죄자들의 통화내용과 거처를 수시로 김창남 대대장한테 전해주었다. 그리하여 제때에 범죄자들을 일망타진했다. 그들은 달밤을 빌어 범죄자들을 밤도와 심문해 범죄자들의 죄행을 낱낱이 밝혀냈다. 원래 허송호는 승호한테 보복하려고 외지에서 온 허송철과 위청룡, 경화의 남편 로천궁을 승호네 집에 보내 돈 15만원을 내라고 위협했던 것이다. 심문을 거쳐 허송파 깡패일당의 죄행이 낱낱이 드러났다. YJ시에 숨었던 구레나룻과 하이칼라 등 10여명 깡패들이 줄줄이 나포됐다. 사건해명에는 엄삼기교수의 공훈이 컸다. 그는 최첨단도청기로 허송파 깡패일당의 일거일동을 다 도청해 공안기관에 제공했다. 또 성호의 제의대로 자기가 발명한 최첨단도청기를 공안국 7처에 넘겨주어 수시로 허송파와 허송호 형제 깡패무리를 감시하게 하였다. 심문과정에 허송파와 허송호 깡패무리의 대화록음마저 틀어놓았다. 깡패들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송파와 허송호 깡패무리는 YJ시를 거점으로 나이트클럽과 노래방, 안마원 등 업소에서 강탈행위 27건을 저질렀는데 총강탈금액은 무려76만원이나 되였다. 무리싸움과 보복상해 등 사건 67건에 상해치사 3명, 피해자 70여명이나 되였다. 허송파와 허송호, 허송철 형제는 사촌녀동생 허경옥한테서 피해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앙심을 먹고 깡패들을 시켜 보복하게 하였던 것이다. 어느 하루 깡패 셋은 대학교 뒤산 소나무숲에서 승호와 은영을 미행해 승호를 소나무에 묶어놓은 후 야수들처럼 륜간했다. 그러나 1차 심문에서 깡패 셋의 배후인 허송파와 허송호가 증거부족으로 법망에서 빠져나갔다. 이번에는 구레나룻과 하이칼라의 적발로 모든 죄행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러나 허송파와 허송호는 승호의 양물을 자르라고 깡패들을 시킨 적이 없다고 딱 잡아뗐다.         그럼 누가 한 짓이란 말인가?         은영은 당시 강패들한테 륜간당하다보니 정신을 잃어 모른다고 치자. 피해자인 승호만은 알 것이 아닌가? 그러나 승호는 계속 모르쇠를 댔다. 하여 그 사건해명은 의연히 진전도 없이 또다시 오리무중에 빠지고 말았다.
211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43) 댓글:  조회:3289  추천:5  2019-12-05
                     73. 패가망신        하늘이 무너졌는가? 땅이 꺼쪄버렸는가?       흐리멍텅한 하늘에서 구름이 무너져내리는듯이 함박눈이 무더기로 펑펑 쏟아져내린다. 하늘이 마구 내리뜨리는 눈에 천지꽃산의 앙상한 진달래 가지들이 지지눌려 맥없이 부러졌다.        흐리멍텅한 하늘에 짓눌린 시가지는 더욱 엉망진창이다. 수풀처럼 치솟은 꿀뚝에서 시꺼먼 연기를 꾸역꾸역 내뿜었다. 자오록한 연기가 온 시내를 감싸고 있어 행인들은 숨막힐 지경으로 갑갑하였다.        성호는 눈 앞이 캄캄해났다.        원래 그는 다단계판매로 일약 갑부로 돼 시가지에 큼직한 아빠트를 사놓고 부모를 모시고 효성을 다하고 아들을 낳아 기르면서 살려는 황홀한 꿈을 꾸었다. 그러나 하루 사이에 그 황홀한 황금몽이 와르르 무너졌다. 함박눈이 흩날리는 길바닥에 지진이나 났는가? 성호가 높다고 딛이면 낮고 낮다고 딛이면 높았다. 그는 천방지축 주정뱅이처럼 비틀거리며 겨우 한발자욱 한발자욱 공안국으로 걸어갔다. (도대체 정희는 어떤 징벌을 받게 될가? 만약 5년 이상 징역을 받는다면 정희가 생육년령을 넘기게 된다. 그럼 아들을 보려던 꿈마저 산산이 박산난다. 만약 정희 수하에 들어간 80여명의 경제손실을 몽땅 배상하라고 판결이 난다면 어떻게 살겠는가! 새 집과 택시까지 다 팔아넣어도 모자라.) 성호는 너무 안타까와 미친듯이 주먹으로 가로수를 꽝꽝 쳐대며 대성통곡쳤다. 눈이 마구 흩날려 그의 몸을 뒤덮어버렸다. 행인들은 주춤주춤 멈춰서더니 그를 흘끔흘끔 쳐다보다가 미친 놈이라고 침을 뱉고 지나가버렸다. 그가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패가망신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굉팔은 손쓸 좋은 기회를 잡았다. 그는 언제부터 승호와 성호, 해연을 한 몽둥이에 날려보내려고 미쳐 날뛰였다. 그 기회는 끝내 오고야 말았다. 사실 굉팔은 아래에 능력이 있는 그들을 두고 싶지 않았다. 수하에 능력은 차해도 밀가루를 반죽하는듯이 마구 주무를 수 있고 자기 말이라면 황제 말처럼 꼽싹꼽싹 듣는 무골충을 두고 싶었다. 좋기는 성품도 온순하고 부드러운 녀성을 데려 왔으면 좋을 것 같았다. 심지어 같은 값에 분홍치마라고 이쁜 색시를 데려다가 비서로 쓰고 싶었다. (춘란 같은 범죄자라도 좋아. 장선희처럼 간사하고 음험한 년이 아니면 돼.) 그는 연화나 예화 같은 예쁜 색시를 데려 왔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연화나 예화는 승호와 선화 인맥이기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리굉팔은 전체 회의를 열고 우멍눈을 희번뜩이면서 성호부터 노려보았다. “성호, 뭐야? 광고는 뒤전이고 개인 돈벌이에 미쳐? 잘 됐어. 승호와 해연까지 다단계판매에 끌어들였지? 다단계판매가 위법행위라는 걸 몰라? 엉?!” 성호와 승호는 아무 대구도 하지 못했다. 해연은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그녀는 미안한 눈길로 서경리를 흘끔 훔쳐보았다. 그녀가 서경리를 다단계판매홍보관에 끌어갔던 것이다. 서일철 부총경리는 해연과의 우스운 에피쏘드가 떠올라 피씩 웃었다. 다단계판매로 돈을 벌려는 것보다 개구리가 학의 고기를 먹으려고 엉뚱한 궁리를 했던 것이다. 화장품을 사들고 해연과 함께 택시에 앉아 집으로 돌아갈 때였다. 가로등불빛이 피뜩피뜩 스쳐지나가는 택시 안에서 서경리는 해연의 손을 슬쩍 잡았다. 해연은 반사적으로 손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서경리가 다단계판매를 그만둘가봐 놔뒀다. 서경리는 해연의 어깨를 감싸안으면서 귀속말로 치근덕거렸다. “해연이, 우리 둘이 재밌게 놀기오. 향월이 가버린 후 외롭고 적적하오.” “안해 있잖아요?” “안해보다 해연이 더 예쁘오.” 해연은 거울로 흘끔거리며 훔쳐보는 택시 운전수 눈을 피하면서 나직이 귀속말을 했다. “예쁘면 밥이 나오는가요? 서경리는 예쁜 녀자면 다 쫓아다녀요? 최선생한테 미안하지도 않은가요?” 서경리는 개의치 않았다. “별, 소릴 다 하오? 이런 일엔 다 사심이 장난치오. 최씨면 어떻고 서씨면 어떻소?” 해연의 대답은 애매했다. “서경리, 어쩐지 향월이 죽은 담에 난 생각이 달라졌어요. 여길가 저길가 하기보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줄 참사랑을 찾는게 옳은 것 같아요. 숱한 나그네를 해봐도 어쩐지 재미 없어요. 수컷들은 왜 그런가요? 정욕을 이기지 못해 암컷을 쫓아다니는 미친 개 같아요.” 해연은 자꾸 지껄이는 서경리를 보고 내심의 고충을 고백했다. “처음엔 남의 나그네와 사는 짜릿하고 감격이 충격적이던데요. 어쩐지 남편 몰래 남의 사랑을 도적질해 먹는 죄의식이 생겼어요. 남의 유부녀 발등을 딛고 저렬한 자극과 격정을 받았는데요. 즐거움보다 량심의 가책을 받을 때가 더 많았어요. 제발 이젠 복잡한 애인 함정에 유혹하지 마세요. 조용히 정파답게 살고 파요.” 서경리는 로련한 색마여서 마른 나무를 뚝 분지르듯 억지공사를 하지 않았다. 해연에게는 심리부담이 생겼다. 그녀는 굉팔이 혹독한 욕설을 퍼붓는 마당에 서경리를 놓아줄 수 있었다. 아니, 색마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어 홀가분해졌다. 그녀는 저도 몰래 한숨을 호~ 내쉬였다. (다단계판매 아니면 저런 색마를 뭘 해?) 그녀의 속을 꿰뚫어보았는지 서경리가 건가래를 떼더니 말문을 열었다. “광고사업에는 신용이 우선입니다. 숱한 사람들의 믿음을 짓밟고 사기쳐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쳐선 안됩니다. 그런 불량한 직원들은 우리 광고회사에서 몽땅 몰아내야 합니다. 그렇찮으면 우리 광고회사가 어떻게 사회에서 머리를 들고 광고사업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기군들한테 누가 믿고 광고를 맡기겠습니까? 리총경리, 상부에 반영해서 가차없이 썩은 팔은 잘라버려야 합니다. 흥!” 이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뜻밖에도 오청룡 국장이 살기등등해 들어섰다. 굉팔과 서일철은 벌떡 일어나 굽실거리며 소파에 자리를 권했다. “오국장, 어서 앉으십시오.” 굉팔은 오청룡이 자리에 앉자마자 성호를 공격했다. “에헴, 오늘 때마침 상부 오간부, 아니, 오국장께서 오셨는데요. 아래에 오국장께서 다단계판매에 참가한 동무들에 대한 처분결정을 선포하겠습니다.” 보아하니 굉팔은 진작 상부에 반영해 처분을 조률했었다. 그의 해골 같은 낯짝은 살기등등해 청바위처럼 굳어졌다. 오청룡은 날카로운 눈길로 승호와 성호, 해연을 쓸어보았다. “국제사기를 친 성호와 승호는 광고회사에서 축출한다. 해연은 성호의 감언리설에 미혹됐고 성호와 승호의 불법사기죄를 적극적으로 조직에 반영했다. 때문에 관대하게 처리해 신문사 광고과에 전근시키기로 결정한다.” “의견이 있습니다.” 그때 승호가 벌떡 일어났다. 모든 눈길이 일제히 승호한테 쏠렸다. “오국장, 처분해도 시비를 좀 가르십시오.” “의견이 있어도 쓸데 없소. 착오를 인정하고 자기절로 살길을 찾아가오.” 승호는 일루의 희망을 걸고 서일철을 업고 똥물에 풍덩 뛰여들었다. “서경리도 다단계판매에 참가했는데 왜 아무런 처분도 하지 않고 우리만 처분합니까?” 승호는 지원군을 바라보듯이 성호와 해연을 둘러보았다. 해연은 떠들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녀는 다욕한 굉팔의 밑에서 일하는 것이 퍽 피곤했던지라 오히려 이 광고회사를 떠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성호가 나섰다. “승호 말이 옳습니다. 법률 앞에선 사람마다 평등해야 합니다. 누굴 처분하고 누군 처분하지 않습니까?” 힘을 얻은 승호는 계속 반격을 가했다. “말 뭣에 얼럭이 있지 처분에 어찌 얼럭이 있습니까? 저는 불공평한 처분결정에 복종할 수 없습니다. 상부에 다시 반영하겠습니다…” 꽝! “뭐라고?!” 오청룡은 차탁까지 치더니 벌떡 일어나 손삿대질했다. “지금 상급부문의 처분에 불복하는가?! 서경리는 해연한테 미혹돼 다단계판매품을 샀을뿐이야. 한 사람도 사기치지 않았어. 지금도 무슨 죄를 범했는지 잘 모르는구나. 감옥에 처넣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인줄 알아. 숱한 사람들을 사기치고 편안할 것 같아? 녀편네들까지 이제 감옥에 가지 않는가 봐라.” 서경리는 독기어린 눈길로 승호를 쏘아보았다. 그때다. 승호가 몸을 홱 돌려 성호를 손가락질했다. “몽땅 성호한테 사기당한 탓입니다. 어떻게 똑같게 처분합니까?” 모두 깜짝 놀랐다. 성호는 세귀눈에 눈초리 꼿꼿해 승호를 쏘아보았다. (자식, 굉팔을 재끼자고 공수동맹을 맺더니. 관건적인 시각엔 남을 물고 늘어져? 흥!) 굉팔은 깨고소해했다. (개자식들, 개똥처럼 한데 뭉쳐서 굴러다니더니. 서로 물고 뜯는 꼴 참 보기 좋구나.) 승호는 입을 쩝쩝 다시더니 굳게 닫았던 입의 빗장을 열었다. “다 제 잘못이 맞습니다. 제가 승호와 해연를 홍보관에 데리고 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겁니다. 량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숱한 사람들한테 경제손실을 입혀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모든 손실을 책임지고 갚아드리겠습니다. 처분에 복종하고 죄를 뉘우치겠습니다. 다신 이런 사기활동에 휘말려들지 않도록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피면서 살겠습니다.” 오청룡은 박수까지 짝짝 쳤다. “좋소. 진작 그래야지. 당원이라면 착오를 인식하고 개조표현이 좋아야지.” 승호는 그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성호, 지금 백화상점 숱한 녀직원들이 날마다 날 찾아와 못살게 군다. 손실 몽땅 책임져라. 그까짓 감언리설로 숱한 사람들 손실책임을 회피하려니? 우리 집은 망했다, 망했어. 난 직업을 떼웠고. 엄마와 안해, 범송네 부부까지 집을 팔아 넣어도 손실을 다 미봉하지 못한다. 개새끼, 널 팔아도 30전 고리대 빚을 갚지 못해!” 경옥은 승호를 쌀쌀하게 쏘아보면서 한마디 했다. “승호는 원래 저렇게 사람을 해치는 갠데 뭐? 량심이 없는 개라니깐. 이번 기회에 쫓아내야 해요.” 승호가 경옥을 흘겨보면서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 성호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요구 있습니다.” 모두들 성호를 쳐다보았다. “이번 사기사건은 전적으로 제 잘못입니다. 어떻게 상부에서 승호와 해연의 착오를 면제해주지 못하겠습니까?” “뭐라고? 이게 무슨 처분을 흥정하는 장마당인가?” 굉팔은 서슬이 퍼래졌다. 순간 우멍한 철색눈확에서 사기알 같은 흰 자위가  데굴거렸다. 성호는 계속 사정했다. “저는 택시업을 하니까. 그런대로 근근득식하면서 살겠지만 저 동무들이야 사정이 다르잖습니까? 하루 아침에 무직업자로 만들어놓으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해연은 서일철 부총경리를 흘끔 곁눈질해보았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자고 허둥대는 판이였다. 그때 서일철은 인차 눈치채고 굉팔과 오청룡의 눈치를 슬슬 살피면서 한마디 했다. “제 보건대, 해연은 전적으로 성호의 유혹에 미혹돼서 홍보관에 갔습니다. 처분을 면제해주면 어떻습니까?” 굉팔은 서일철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어째 서경리도 처분받고 싶어? 해연을 따라 다단계판매홍보관에 간 걸 모르는 것 같애?” 서일철은 오청룡를 믿고 물러서지 않았다. “리총경리, 다단계판매회사와 광고계약이라도 맺지 못하겠는가 해서 갔댔소. 누굴 끌어들여 사기를 친 일도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 회사에서 쫓아내는 처분은 과분한 것 같습니다.” 굉팔은 벌떡 일어나며 고함쳤다.  “고양이 쥐를 생각하는구만!” 오청룡은 퉁퉁한 낯에 내밴 개기름을 썩썩 닦으면서 코웃음쳤다. “진짜 삶은 소대가리 웃다가 꾸레미 다 터지겠다. 흥, 리경리, 이때까지 이렇게  돼먹지 못한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일했소?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알만하오.” 그는 굉팔을 둘러보면서 뒤말을 이었다. “공수동맹을 맺은 전우를 죽이는 놈에, 또 그 놈을 살려달라고 비는 놈에, 얼마나 희비가 엇갈리는 살벌하고 눈물겨운 장면이오?” 그는 건가래를 떼더니 뜻밖에도 처분결정을 고쳤다. “에헴, 승호는 동창생의 사기사건을 적발하였고 마지막까지 한치 양보도 없이 투쟁하면서 대의멸친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승호를 관대하게 처분한다.” 승호는 감격에 찬 눈길로 오청룡 국장을 바라보았다. 굉팔은 썩은 오이를 씹은듯이 쓰디쓴 표정을 지었다. “안돼요. 저런 인정머리도 없는 놈을 밑에 두었다간 언제 뒤통수를 얻어맞을지 모릅니다. 이번에 아예 화근을 싹 뽑아버려야죠.” 오청룡는 인심을 쓰는 척하다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사람이 의리심을 버리면 좋은 끝장이 없다는 걸 알아야지.” 굉팔도 맞장구를 쳤다. “쯧쯧쯧. 사람이 너무 역어도 방아간 날아지나가는 참새로 되고 말어.” … 성호는 주먹으로 가로수를 꽝꽝 쳤다. (승호, 어쩜 날 물어먹고 개구멍으로 빠져나가려고 한단 말이냐?” 그는 공안국 쪽으로 눈깔린 길바닥을 스적스적 걸으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식, 대학교 때부터 교활하고 량심이 없었어. 이번엔 최저한도의 의리심마저 저버릴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젠 누굴 믿고 산단 말인가?) 그가 승호를 보호하려고 나선 것은 인간적인 동정이였을뿐이다. (자식, 굉팔을 검거할 토론을 한 것까지 불지 않았는지도 몰라.) 성호는 이 시각 얼마나 고독한지 몰랐다. 단위에서 굉팔한테 당한 건 둘째이고 정희가 공안국에 잡혀간 것이 더 큰 일이 아닌가. 그는 옆집 아줌마 한희선이 원망스러웠다. 하늘을 욕하고 땅을 치면서 원망해도 쓸데 없었다. 이젠 이모부를 통해 정희를 구해내고 봐야 했다. 성호가 비틀거리면서 공안국 청사로 들어가려고 할 때 등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성호!” 머리를 들어보니 뜻밖에도 승호 아닌가. 성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청사로 들어가려고 했다. 승호는 황급히 성호를 막아서더니 팔을 잡아 끌고 한쪽으로 갔다. “오해하지 말라. 난 광고회사에 남아서 굉팔을 감시하겠어. 그래서 체면을 불구하고 고육계를 쓴 거야.” “고육계?” 성호는 픽 코웃음쳤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숱한 사람들 앞에서 나한테 모든 책임을 들씌운단  말이냐?” “광고회사에 잠복해 굉팔의 죄장을 파려고 그랬어.” “진짜 간교해도 천하무쌍하구나. 됐다. 이젠 모든 게 끝났어. 백화상점 직원들의 손실까지 몽땅 갚을게. 이럼 됐지?” 성호는 승호를 밀치고 공안국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승호는 놓아주지 않았다. “얘, 내 말 들어.” 성호는 마지못해 멈춰섰다. “지금 우리 모두 중벌을 면하려면 우선 수백명한테서 거둔 돈을 찾아내 돌려줘야 한다.” “무슨 수로?” 승호는 과단성있게 말했다. “공안국을 협조해 한희선과 백영을 나포해 기름을 짜내자. 그년들이 우리 거둔 돈을 몽땅 가져가지 않았고 뭐냐?” 성호는 승호와 함께 공안국청사로 들어갔다. 그는 이모부를 찾아가면 별로 뒤문거래를 하는 것 같아 먼저 김성광 부국장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2층 현관에서 경호원이 우쭐 일어나 앞을 막았다. “무슨 일로 찾습니까?” 성호가 찾아온 사연을 말하자 경호원은 “그런 일로 국장을 찾지 못합니다.” 하고 퉁명스레 말했다. 그때 국장실 문이 열리더니 강운룡 부국장이 나왔다. “강국장님!” 승호가 중뿔나게 먼저 웨치며 마주 나갔다. 강운룡은 승호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지나가려다가 뒤에 선 성호를 발견하고 주춤 멈춰섰다. “무슨 일인지 사무실에 들어가 말하자.” 강국장은 사무실에 묻어들어온 승호를 보더니 의아해했다. “리과장네 아들과 동창생이라던가?” “예.” “생김새 너무 비슷해. 승호라던가?” “예.” 이윽하여 강운룡 부국장은 성호한테서 찾아온 사연을 간단히 들은후 훈계부터 했다. “그게 뭐냐? 왜 최저한도 법적개념도 모르고 헤덤볐느냐? 다단계판매는 불법사기라는 걸 하나도 몰랐니?” 그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뒤말을 이었다. “이젠 별 수 없다. 한국 사기군들을 나포해서 손실금액을 피해자들한테 돌려줘야 해.” 성호는 이번 사건 때문에 법률자문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승호를 달고 다니면서 한마디도 더 묻고 싶지 않았다. 그는 승호를 떼놓고 오후에 다시 이모부를 찾아갔다. 성호는 이모부를 보고 “정희가 어데 갇혔는지 좀 알아봐주십시오.” 라고 간청했다. 강운룡 부국장이 전화를 들었다. “천일 대대장이요? 정희가 지금 어데 있소? 양? 양. 알았소.” 그는 전화를 놓더니 “감관대대 녀자수용소에 있단다. ”라고 했다. 강운룡 부국장은 성호를 보고 귀띔해주었다. “아까 리과장네 아들부터 주의해라. 걔는 어쩐지 제 애비처럼 교활한 것 같애.  적은 항상 자기 옆에 있다는 걸 잊지 말라. 너네 아버지는 승호네 애비를 얼마나 믿었는지 아니? 그런데 그 놈한테 물려 농촌에 내려갔다.”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저도 가시아버지한테서 들었습니다. 이번 일은 승호가 공상국과 공안국에 고발한 거 같습니다.” 강운룡 부국장은 정색해 타일렀다. “절대 보복해선 안돼. 알만하지? 자기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법률책임을 질 건 져야 해. 다만 이후엔 사람을 알고 살아란 말이다.” “알았습니다.” 강운룡 부국장은 사물실에서 뚜벅뚜벅 거닐다가 주춤 멈춰섰다. “저 리과장네 아들애 생김새 어떻게 돼 애비를 닮지 않았어. 딱 네 큰형님처럼 생겼어.” 성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뭐랍니까? 저한테 형님이 또 있었습니까?” “그래. 너네 이모 항상 외웠지. 옛날 배 다른 형이 있었단다.” “예? 그런데 왜 아버지와 어머닌 우리한테 한번도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강운룡 국장은 정색했다. “아직 확정하진 않다. 절대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라.” “예.” 그제야 강운룡 국장은 뒤말을 이었다. “너네 아버진 네 엄마한테 장가들기 전에 한 마을의 다른 녀자와 결혼해  아들을 보았지. 그런데 난산으로 본 처가 사망할줄이야 누가 알았겠니? 해방전에 갓난 아들 공석를 YJ 시내 남한테 주었어. 공석은 후에 위생학교를 졸업한 후 YB병원 의사로 됐지. 리철갑 과장과 벽화, 백화상점 안수련 총경리, 너네  이모까지 모두 공석과 고중동창생들이였어. 공석과 벽화, 안수련은 삼각련애관계였지. 벽화와 안수련은 사랑의 라이벌이 돼서 공석을 두고 죽자살자 사랑싸움을 했어. 리철갑은 벽화를 짝사랑했단다. 얼마나 복잡했니? 후에 공석이 불행하게도 백혈병에 걸려 사망하다나니 삼각련애는 비극으로  끝났지. 그때 현공안국 국장인 너네 아버지가 벽화를 리철갑한테 중매를 서서 결혼시켰다. 안수련은 당시 무장부장을 한 허철군한테 시집가버렸구. 그런데 리과장네 아들이 자라는 걸 여겨봐도 어쩐지 리과장을 닮지 않고 공석를 닮은 거 같더라. 지금 봐도 또 너하구 아주 비슷하게 생겼어. 그래서 철갑은 승호를 자기 아들이 아닌가고 피를 뽑아 자기 피와 대조해보겠다고 날뛴 적도 있어.” 성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마?) “승호는 저와 외모가 비슷해도 성질은 판판 다릅니다. 교활하고 간사하고 안팎이 다르게 놉니다. 량심이 없고 음흉합니다. 어진간하면 어디를 가나 며칠 있지 못하고 돼지죽그릇의 도토리처럼 떠밀려다니겠습니까? 우리 리씨 집안에 절대 저런 간교한 색마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강국장은 신중하게 말했다. “수십년 형사수사사업을 한 나는 관상을 빗보지 않아. 리과장도 승호를 자기 아들 같지 않다고 한 적이 한두번 아니야. 우둑진 체구라든지 메부리코라든지 자기를 닮지 않았다고 했어.” “언제 아버지와 물어봐야겠습니다.” 성호는 이모부의 그 말을 미심해했다. 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화제를 바꾸었다. “이모부, 내 공안국에 와서 일하면 안됩니까?” “안된다.” “무엇때문입니까?” “마흔살 넘었는데 이제 공안국에 와선 전도 없다. 황차 경찰실무도 잘 모르지. ” 성호는 “알았습니다.”고 한마디 하고는 국장실에서 나왔다. 성호는 허탈감을 느꼈다. (승호하구 혹시 진짜 혈연관계가 있다면 어쩌지? 먼 친척도 아니고 배다른 친조카?!) 성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진짜 점쟁이 말처럼 납작코 돼서 항상 쓸데 없는 소릴 들을가? 항상 남을 돕는 걸 락으로 삼았건만 왜 승호마저 날 괴롭힐가? 하늘도 무심하지.) 그는 쓸쓸히 감관대대 녀자수용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언제 승호와 내  DNA를 대조해봐야지.) 그는 착잡한 생각에 빠진 채 철조망을 둘러친 높은 담장 안의 녀자수용소 대문으로 들어갔다. 승호의 아버지가 당직실에서 내다보고 찾아온 사연을 듣고 대대장실에 가서 면회비준을 받으라고 했다. 박철운 대대장은 정의용사인 성호가 찾아가자 인차 면회를 비준했다. 성호는 자그마한 면회실에서 쇠살창을 사이에 두고 정희와 마주 앉았다. 정희는 초췌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멍해 바라볼뿐이였다. “정희, 안심하오. 이제 백사장과 엄희선을 나포해 손실금액을  피해자들한테 돌려주면 되오. 이모부도 법적으로 도와줄테니 너무 근심하지  마오.” 정희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성호는 정희 손을 꼭 잡아주었다. “돈은 있다가도 없을 수 있고 없다가도 있을 수도 있소. 이젠 헛욕심을 부리지 말고 아들이나 하나 낳아 기르면서 조용히 오손도손 살기요. 그게 황금덩이를 얻은 것만 낫소.” 정희는 뜨거운 눈물을 닦으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직도 마음이 죽지 않았구만요. 아들비위를 작작 쓰세요. 괜히 이 세상에 태여나서 남들처럼 살지 못하게 고생시켜 뭘 해요? 저도 이젠 마흔고개를 넘은지도 몇해 되는데요. 어떻게 애를 낳아요? 우리 중학교 교장의 안해도 마흔에 애를 낳다가 해산대에서 출혈이 너무 심해 불행하게 사망했어요. 어째 날 죽이고 싶은가요?” 그 말에 성호는 할 말을 다 잃었다. 정희의 마음 아픈 말을 계속 이었다. “동무가 너무 아들비위를 하니 저도 낳지 않으려고 한게 아니죠. 이 몇해 환도 빼버리고 임신하려고 했지만요. 안되던데요. 어쩌다 임신해도 궁외임신을 했어요..” “어째 나한테 알리지도 않았소?” “알면 속상해할가봐 몰래 긁어버렸어요.” 정희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이젠 포기하세요. 독신자녀증이나 영광의 선물로 품고 살아요. 달마다 15원씩 탈 수 있잖아요? 국가 산아제한정책도 어기지 않고 얼마나 영광스러워요?” 그녀는 나직이 뒤말을 이었다. “이젠 교원이란 공직도 떼웠지. 어떻게 살아요?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한국이나 미국에 가겠어요. 숱한 교원들과 친척한테 손해를 끼쳤는데 피나는 돈을 물어줘야죠. 이젠 하나한테 아빠트 한채도 물려줄 게 없게 됐는데요. 늙어서 쓸 양로비라도 벌어야 살죠.” “그게 무슨 당찮은 소리요. 내가 있잖소? ” 정희는 도리머리를 맥없이 절레절레 저었다. “동문 효성스럽고 의리심도 강하죠. 부모한테 효성해야 하고 형제들과  조카들까지도 챙겨야죠. 언제 날 먹여살릴 겨를이 있어요? 어서 가보세요. 제 걱정은 하지도 마세요. 손해비를 물게면 감옥에서 징역살이 몇해 하다가 나가는 게 나을 거 같애요.” “그따위 소릴 다신 하지도 마오. 사람이 있고 돈이 있지. 아빠트를 팔아서라도 당신을 구해내가겠소.” 정희는 랭소했다. “어떻게 피나는 돈으로 산 건데 팔아?” 성호는 정색했다. “여보, 이젠 모든 걸 잃게 됐소. 이제 사랑하는 당신까지 잃을 순 없소.” 정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혀를 홰홰 내둘렀다.  “에이구, 로봉건통이라구야. 쯧쯧쯧.” 그녀는 코웃음쳤다. “당신 진짜 바보야.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요? 내보다 퍽 젊은 연화나 예화 또래를 얻어서 님도 따고 아들도 보고 일거량득 너무 좋아서요? 호호호.” “말이라고 해?” 성호는 성이 나서 씩씩거리면서도 정희 손을 꼭 잡고 신신당부했다. “헛된 생각을 하지 말고 내심하게 기다리오.” 정희는 줄 끊어진 구슬처럼 눈물을 주르르 흘리였다. 성호는 면회시간이 다 돼 정희 손을 꽉 잡은 채 차마 놓지 못했다. 경찰이 재촉해서야 눈물을 휘뿌리며 리별하고나서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면회실을 나왔다. (난 이젠 아들을 다 보았구나. 우리 집은 내 대에 와서 대가 끊어지게 됐구나. 이 절통한 심정을 그 누가 알겠는가?) 그는 피뜩 막연한 환상이 떠올랐다. 녀자감옥 대문 앞의 눈보라 치는 강뚝 너머 천지꽃이 활짝 핀 동산이 떠오르지 않겠는가. 분명 그것은 고향의 천지꽃산이였다. 연분홍 천지꽃이 만발한 천지꽃산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순희가 자기를 보고 생글방글거리며 구름을 나래처럼 등에 지고 날아내려오지 않겠는가. 순희를 와락 끌어안으려는 순간 새침한 표정을 지으면서 눈꽃처럼 어데론가 사라져버렸다. (어처구니 없는 환각!) 그는 막연하고 한심한 생각도 해보았다. (혹시 순희와 살았더라면 아들 쌍둥이를 보지 않았을가? 순희는 딸 쌍둥이를 낳지 않았던가? 혹시 연화와 재혼하면 아들을 볼 수도 있지 않을가? 그 애는 공장장한테 시집가서 떡 돌 같은 아들을 낳았지.) 성호는 인차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리혼과 재혼이 어디 그리 쉬운가? 그렇게 죽자살자하고 따르던 본처도  시집살이에 신물이 나서 아들을 낳아주지 않았어. 재혼한 후처가 아들을 낳고 부모를 잘 모시려고 하겠는가?) 언젠가 성호는 연화를 만나 다방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슬쩍 물어본 적이 있다. “연화, 만약 이제라도 누구와 재혼한다면 아들을 낳아줄 수 있소?” 연화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한술 더 떴다. “만약 감정이 깊은 선생님과 재혼한다면 아들뿐이겠어요? 딸도 더 낳아줄 수 있어요.” 성호가 팔순이 넘은 부모를 모시면서 살 수 있겠는가고 묻자 연화의 보름달 같은 얼굴에는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여올랐다. 한참 궁리하던 연화는 마지못해 이렇게 대답했다. “로실히 말해서 이 세상에 시부모를 좋아할 녀자들이 몇이겠어요. 시부모와 며느리는 집을 따로 잡고 사는게 제일이지요. 입 안의 혀도 씹을 때 있다고 어찌 난 부모도 아닌데 갈등이 생기지 않겠어요. 녀자들은 신랑이 좋아 시집갔지 시부모가 좋아 시집간 게 아니잖고 뭔가요?” 순간 성호는 붙었던 정이 다 떨어졌다. (만약 그때 연화가 시부모도 잘 모실수 있다고 대답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가?) 그는 인차 허구픈 미소를 짓고 말았다. “성호야, 어디로 왔다가니?” 귀에 익은 목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종수가 아니겠는가. “무슨 일로 여기 왔니?” 성호의 반문에 종수는 허구푼 웃음을 지었다. “금방 녀자감옥에서 매음녀들의 변질과정을 취재하고 나오는 길이야. 저걸 봐라. 얼마나 새파란 녀자들이냐?” 그때 녀자감옥 울 안에서 라지오체조 전주곡이 울렸다. 창호가 바라보니 젊은 녀자죄수들이 와-야- 밀려나와 줄을 서는 것이였다. 그 속에는 정희도 머리를 수깃한 태 서있는 것이 피뜩 띄였다. 성호는 종수를 보기 얼마나 조마조마하고 바늘방석에 앉은 듯했는지 몰랐다. 알락달락한 등산복을 입은 20, 30대 젊은 녀자들이 노랗고 빨간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라지오체조를 하였다. 종수는 장탄식했다. “야- 저렇게 잘 생긴 녀자들이 육체와 령혼을 팔아가면서 돈을 벌다니? 헤이, 참, 비극이야. 우리 지역은 경제가 락후해서 저 녀자애들을 다 취직시킬만한 기업소가 없는 게 문제야.” 그는 성호와 함께 감관대대 녀자감옥 대문을 나오면서 몇몇 매음녀들의 비극적인 변질과정을 쭉 이야기했다. 성호는 그런 이야기에 오래동안 귀를 귀울일 겨를도 없었다. 그는 하루속히 한국 사기군들과 한희선 총경리가 빼돌린 불법수입을 되찾아내야  했다. 큰길에 나와서야 성호는 종수한테 한마디 물어보았다. “전번에 쓴다던 조선족력사이야기 책은 거의 됐니?” 종수는 가슴을 쑥 내밀고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거의 쓴다. 이제 출판되면 출간식에 꼭 오라. 이젠 정치학부에 간 게 후회돼. 조문학부나 가서 문학을 배워 작가로 됐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니? 이제라도 필끝이나 벼려가지구 조선족이민사를 하나하나 차곡차곡 정리해야겠어.” 그는 갈라지기 전에 성호의 손을 잡고 정색해 말했다. “너 기분이 말째구나. 그까짓 가정일에 너무 신경쓰지 말라. 에이구, 아낙네들처럼 그 놈의 집구석에 빠지면 빠질 수록 머리 아파. 옛날 황제도 나라는 다스려도 가정은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고 하잖니? 이젠 우리 나이 마흔고개도 넘었는데 사회를 위해 뭔가 해놓을 때 아니고 뭐야? 돈을 대줘서 우릴 대학생으로 만든 당과 국가, 인민들한테 미안하지 않게 보답해야지. 물론 부모한테 효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린 당과 나라, 민족과 인민들께 충성하고 효성하는 게 더 크나큰 효성이고 충성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해. 돈을 따르지 않아도 효자한텐 자연히 돈이 생기는 거야. 하늘은 항상 공정하니까.” 종수는 성호의 기색이 좋지 않은 걸 눈치채고 택시에 앉아 눈가루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멀어져갔다. 어둠이 깔린 거리에 눈보라가 윙-윙- 기승스레 휘몰아쳤다.         성호는 멍하니 서서 저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택시 뒤꽁무니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한지 근 20년만에 처음 종수 앞에서 스스로 작아지는 자기를 발견하였다.         그는 헐망한 소사양실에 부모를 모신 일을 생각하자 마음이 아파나고 밑도 끝도 없는 환멸을 느꼈다.        (부모도 잘 모시지 못했고 아들도 보지 못했다. 내가 사회나 가정에 해놓은 일이 뭔가?)  
210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42) 댓글:  조회:2354  추천:0  2019-10-24
                                   72. 아들비위 봄아가씨가 대지에 사뿐사뿐 다가왔다. 만물이 소생하여 뒤지개를 켜더니 겨우내 얼었던 몸을 툭툭 털고 소생하기 시작했다. 시내물은 조잘조잘 봄노래를 부르며 흐르고 개울가의 버드나무가지에 매달린 오동통한 버들개지들이 봄바람에 그네를 뛰고 있었다. 성호는 원래 고향에 부모의 새 벽돌집을 지으려다가 그만두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부모는 하나라도 막내아들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였다. 뒤늦게야 아버지 마음을 읽은 성호는 시내에 큰 아빠트를 사고 부모도 모셔올 궁리를 했다. 어느 날, 성호는 기분좋게 말을 꺼내려고 정희와 하나를 해물관으로 데리고 갔다. 돈을 쪼개쓰던 아빠가 해물관에 데리고 간다고 하자 한나는 기뻐 아빠 팔을 붙안고 달싹달싹 걸으면서 종알거렸다. “아빠, 오늘 해가 서산에서 뜨잖습니까?” “그래? 기실 서산에 지는 해 더 아름답단다.” 정희의 걀죽한 얼굴에도 미소가 남실남실 춤추고 있었다. 그들은 해물관에 들어서자 조용한 단간방에 좌석을 정하고 앉았다. 한참 후 신선로에서 조개랑 소라랑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부글부글 끓었다. 정희와 한나는 큼직한 소라를 건져 이쑤시개로 뽁뽁 빼 맛있게 먹었다. 성호는 전희한테 맥주를 철철 넘치게 부어주고 한나한테까지 음료를 부어주었다. “자, 우리 가정의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위하여!” 그들 셋은 댕그랑 잔을 부딪치고 시원하게 마셨다. 정희와 한나가 한창 들뜬 기분에 폭 빠졌을 때 성호는 무겁게 말을 꺼냈다. “우리 새 아빠트를 사기요.” “와-싸- 좋아요!” 한나는 두 손을 들어 아빠의 손과 마주쳤다. 정희는 자기 귀를 의심하다가 반색했다. “아이유, 쥐 구멍에도 볕이 들 때 있구만요.” 그녀는 한참 궁리하더니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부모를 모셔야 되겠는데요. 침실 3개에 객실이 있는 걸 사면 어떨가요?” 성호에게는 듣던 말 중에 제일 기쁜 말. “정희, 한140여평방 되는 걸 사기요.” 정희와 한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제 아들을 보면 아들딸이 한칸씩 차지해야지.” 정희는 대뜸 새침해졌다. “집만 있으면 아들을 키울 수 있는가요? 저금도 한 10여만원이 있어야지.” 성호는 호언장담했다. “택시를 하기에 한 2년이면 10만원이야 쉽게 벌 수 있겠지.” “에이유, 큰 소린? 부모가 또 중병에라도 걸리면 그 돈이겠어요? 아들 얘긴 차차 봅시다요. 딸 하나라도 남 부럽잖게 키우면 돼요. 줄줄 낳기만 하면 돼요? 6.1절에 애가 그렇게 놀고 싶어하는 놀이기구조차 두개 밖에 놀지 못하게 했을 때 어때요? 난 마음이 비길데 없었어요.” 한나도 뽀로통해 종알거렸다. “어렸을 때 풍차 아니면 말 밖에 타지 못했죠.” 성호는 한나를 흘겨보면서 을러멨다. “정 돼지처럼 놀다간 엄마 남동생 업어오지 않으면 어쩌니?” “동생 해서 뭘 해요. 다른 애들이 말하는게 부모 유산을 절반으로 나눈다고 하던데요. 아빠는 아들, 아들 하긴? 아들만 자식이고 딸은 자식이 아닌가요? 이담 나도 시집가면 아빠트를 사달라고 하지 않는가 봐라.” “요 쪼꼬만 계집애, 벌써 시집갈 궁리까지 해?” 성호는 식지로 한나의 보슴털이 보송보송한 이마를 콕 찔러주었다. “애개개.” 정희가 좋다고 끼여들었다. “요즘 애들 속심의 말인데요. 지금 경제시대에 10만원으로 어느 코등에 바른다고 그래요? 우에 량가 부모 있지. 애들을 줄줄낳았다가 남들처럼 먹고 살자고 해도 쉽지 않을줄 아세요. 우린 이젠 마흔고개에 오른 중년인데요. 애들을 줄줄 낳아서 뭘 해요? 이담 애들 신세를 볼 거 같애요.” 정희의 말에 성호는 맥이 쑥 빠졌다. 그는 한나를 바라보면서 지원을 요청했다. “한나야, 넌 진짜 엄마 남동생을 업어오면 좋지 않니?” 한나는 별 생각도 하지 않고 단통 “필요없어요.” 하고 대답했다. “왜?” 성호는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든 듯한 기분에 물었다. “남동생 있으면 엄마 아빠 사랑 몽땅 빼앗길텐데요.” “아니야. 딸은 딸이고 아들은 아들이지. 엄마와 아빤 아들딸 다 사랑할 거야. 이담 아빠트도 똑같이 사줄 거고.” 성호는 손을 쳐들어 손가락을 펴보였다. “봐라. 이 다섯손가락은 몽땅 내 손가락이야. 어느 손가락을 다쳐도 다 아파. 아들딸이 다섯이 있으면 다 다섯손가락처럼 귀중한 거야.” “픽! 거짓말. 엄마한테 늘 대를 이을 아들, 아들 했잖아요?” 성호는 애꿎은 맥주만 쭉쭉 굽냈다. 정희는 고향에 돌아간 시부모를 잘 모시려고 무등 정성을 다했다. 시부모가 사는 집에 세탁기를 사다놓았고 일요일마다 한나를 데리고 남편을 따라 시집에 달려와서 제때에 옷을 빨아 입혔다. 또 올 때마다 돼지고기랑 소고기랑 사다  푹 끓여 대접했다. 시부모가 제일 반가와하는 명태를 사다가 명태국을 푹 끓여 시부모를 대접했다. 워낙 말수 적은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정성들여 끓인 명태국을 후후 불면서 맛있게 들었다. 그러나 뭣 때문인지 늘 묵묵히 앉아 우울하게 지냈다. (무슨 일이 좋지 않아 저러시지?) 정희는 시아버지를 여겨보다가 손톱이 긴 것을 보고 얼른 대야에 더운 물을 퍼다 놓고 손을 씻어주려고 했다. “며느리, 내 절로 씻을게.” “아니예요. 손쓰시기 불편한데요. 제가 씻어드릴게요.” 정희는 시아버지 손과 발을 대야에 불구고 말끔히 씻어드리고나서 손톱깎개를 가져다 손톱과 발톱마저 딱딱딱 깎아드렸다. 그것도 그때뿐. 상진은 예전처럼 항상 창문 너머 먼 남산을 쳐다보면서 우울해 앉아 있었다. (시부모가 좋다는대로 하다나니 고향마을에 돌아온 건데. 혹시 사양실에서 살게 돼서 기분이 상하신 것이 아닐가? 어떻게 하면 시아버님을 즐겁게 보내게 할 수 있을가?) 며칠 궁리하던 정희는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다. (오- 아버님은 현공안국 국장에 농촌 대대당총지 서기도 하신 분이 아닌가. 오래동안 지도사업을 한 아버님은 연설하기 좋아하지 않을가?) 정희는 그날 저녁에 음식상을 거두자 집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정색해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 가정회의를 열겠습니다. 여러분, 그럼 아래에 일찍 현공안국 국장과 농촌대대당지부 서기 사업을 해오신 로지도자이신 시아버님께서 가정을 대표해 중요한 연설을 하시겠습니다. 박수!” 이벤트에 모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성호마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한나는 배를 끌어안고 구들에서 뒹굴며 깔깔깔 웃어댔다. “얘, 웃긴? 일어나 앉아라.” 한나는 벌떡 일어나 똑바로 앉아 할아버지를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하회를 기다렸다. 상진은 며느리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우울하던 얼굴에 반기는 기색이 서서히 피여올랐다. “아버지, 한마디 얘기합소.” 성호까지 요청하자 상진은 애들을 둘러보면서 난감해했다. “불시에 무슨 말을 하라느냐?” 정희는 시아버지 옆에 다가가서 앉으면서 직업병처럼 시아버지를 계발해주었다. “의식주에 대해 말씀해도 좋아요. 혹시 이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요? 또 음식에 대한 요구도 좋고 자녀교양에 대한 것도 좋아요. 뭐나 생각나시는대로 얘기하세요.” 한참 궁리하던 상진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럼 한마디 하자. 이 몇달간 아들며느리 정성을 다해 치료해주고 잘 공대해준 덕에 중풍도 치료하고 다시 살아났다. 너희들 효성에 감사하다. 며느리한테 한마디 해도 되겠소?” 상진은 며느리를 기대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예, 말씀해주세요.” 정희는 한쪽 무릎까지 세우고 바로 앉으면서 시아버님의 말씀을 기다렸다. “며느리,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이 전주 리씨네 집 안에 대를 이을 손자를  안겨주오. 그게 최대효성이요. 우리 집 대가 끊어질 생각을 하니 요즘 밤잠도 잘 오지 않소.” 영옥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잖구. 손자 없으면야 집에 기둥뿌리 없는 것처럼 허망 같지. 날 보오. 애들 열을 낳지 않았소. 또 무남독녀를 만들겠소? 며느리도 동생이 없이 무남독녀 좋습데?  한나한테도 형제가 있어야지.” 상진은 며느리 눈치를 흘끔 보면서 로친의 무릎을 슬쩍 다쳤다. 정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목석처럼 묵묵히 앉아 있었다. 녀자들은 밥상을 들고 문턱을 넘는 순간에도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정희는 이 순간에도 속으로 천마디 만마디 대답하고 있었다. (아버님, 이제야 아버님의 고민을 알 것 같아요. 옛날부터 남의 집 대를 끊거나 애를 낳지 않는 녀자는 칠거지악 중의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던데요. 저도 이 가문에 들어와 어떻게 하나 떡돌 같은 아들을 낳고 싶어요. 아버님, 들어보세요. 낳기만 해서 뭘 해요? 시부모께서 자식 열을 낳았지만 어느 아들과 딸이 부모를 모시겠다고 척 나섰는가요? 딸들은 출가집 외인이라고 외면하죠. 딸이든 아들이든 자식 하나라도 효성스럽게 키우면 그게 낫다고 봐요. 글쎄요. 여건이 되면 저라고 왜 애를 더 낳지 않겠어요? 저의 부모도 하나 밖에 없는 무남독녀를 이 집에 시집보내고 얼마나 외롭고 허무해 하시는지 아세요? 저한테도 본가집 부모를 모실 남동생이라도 있었더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며느리 마음을 모르고 영옥은 바투 들이댔다. “며느리, 어째 한마디 말도 없소?” 그제야 정희는 머리를 들었다. “예? 오늘 가정회의는 부모님들의 말씀을 들으려고 연 회의입니다. 이상 오늘 가정회의를 마치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정희는 부엌으로 나가더니 사과배를 싹싹 깎아 쪼개여 접시에 담아 들여왔다. “아버님, 아버님 말씀대로 노력할게요.” 정희의 그 한마디 말에 상진과 영옥은 싱글벙글 웃으며 사과배쪼각을 집어들었다. “듣다가 제일 반가운 소리군!” 영옥은 반가와 어쩔줄 몰라했다. 성호는 엄마의 무릎을 툭 쳐놓았다. 뜻밖에 한나도 박수까지 치면서 반기지 않겠는가. “우-와- 나도 남동생 있겠다야. 와- 좋다야.” 초중생인 한나는 아직도 철부지처럼 천진하게 놀았다. 정희는 시부모를 반갑게 해드리려고 갖은 방법을 다했다. “아래에 저명한 처녀가야금수 리한나의 위문연주를 시작하겠어요. 박수!” 비좁은 집 안에서는 박수소리가 요란했다. 한나는 가야금을 들어다 구들 복판에 놓고 허리 굽혀 인사했다. “존경하는 할아버님, 할머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앉으세요. 그럼 가야금병창 ‘오래오래 앉으세요.’를 연주해드리겠습니다.” 한나는 나비처럼 치마폭을 나풀 날리면서 구들에 앉더니 둥기당당 가야금을 울리면서 금방울 은방울 울리는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성호는 옆에 앉은 정희 무릎을 툭 쳤다. “춤을 좀 추오.” 정희는 일어나더니 성호 손을 잡아 일으켰다. 성호와 정희는 한나의 구성진 노래소리에 맞춰 어깨춤을 너울너울 췄다. “좋다!” “좋아!” 상진과 영옥은 밭고랑같이 파인 주름살을 쪽 펴고 손바닥이 아프게 박수 치면서 함박꽃웃음을 지었다. 명월이 만공상한 달밤에 진짜 화목한 시골 가정의 친륜지락을 그린 한폭의  수채화오도 같은 장면이 오래도록 연출되고 있었다. 정희와 성호는 잠시나마 부모님들을 즐겁게 해드린 것으로 하여 기뻤다. 정희는 집에 돌아온 후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전주 리씨 집 안의 대를 끊을가봐 근심이 태산과도 같은 시부모의 부탁이 너무나도 무겁고 눈물겨웠다. (손자가 없다고 시부모가 저렇게 섭섭해하지 않는가. 본가집 아버지도 영월 엄씨네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 얼마나 속상했을가. 후횐들 오죽했으랴.) 그녀는 한편으로는 아들을 보겠다고 날마다 광고를 얻어들인다, 택시업을 한다하면서  눈코뜰새 없이 보내는 남편이 가긍했다. (그렇다고 아무런 경제토대도 없이 애를 줄줄 낳는다는 것도 말은 아니잖는가?” 어느 날, 그가 학교에서 퇴근해 금방 집에 들어섰을 때다. 옆집의 아줌마가 문을 두드리고 마실을 왔다. 옆집 나그네는 운수공사에서 차를 몰았는데 쩍하면 술주정을 부리면서 안해를 때리고 욕하면서 가정기물을 마구 들부셨다. 어찌나 복잡한지 한 아빠트에서 사는 이웃들이 도리머리질하며 질색이였다. 정희는 옆집 아줌마와 평소에 별로 거래도 없었다. 아줌마는 자그마한 진의 소학교 음악교원 출신이였다. 덩치는 컸지만 우악하게 눈덕에 군살이 붙은데다가 눈길에 독살이 있어 예술을 할 녀자라기보다는 꽤나 사무러운 소시민녀성으로만  보일뿐이였다. 아줌마는 어찌나 역빠른지 뗄뗄 구을어 시내 조선족문화관에까지 들어와 음악보도원을 하고 있다고 하지 않겠는가. 그녀네도 딸 하나를 키우고 있어서 정희네 집과 가정형편이나 뭐나 비슷했다. 정희는 아줌마와 이 말 저 말 하면서 알고보니 둘 다 영월 엄씨가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벌써 서로 언니, 동생 하면서 지내자고 약속까지 한 처지로 되였다. 옆집 아줌마는 이말 저말 하다가“이집이나 우리나 아들 하나는 봐야는데.” 하고 말을 꺼냈다. “살기 바쁜데 언제?” 정희의 맥빠진 말에 옆집 아줌마는 힘을 불어넣어주었다. “마음만 먹고 머리를 쓰면 돈이야 얼마든지 벌 수 있지.” 뒤이어 아줌마는 “심심한데 우리 시문화관에 가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지 않겠소?” 하고 물었다. 정희는 좀 저어했다. “언니, 그만 두기오. 어떻게 명가수들이 우글거리는 문화관에 가서 노래까지 부르겠소?” 옆집 아줌마는 정희를 놓아주지 않았다. “에이, 사람 일은 모르오. 동생처럼 예쁜 선생이 그저 교원을 하면서 썩다니? 참 아까운 인재요. 내 다리를 놓아주지. 혹시 문화관에 전근할 수 있겠는지 어떻게 아오?” 정희는 교외 중학교로 통근하기도 힘든데다가 교원생활에 권태감을 느끼던 차에 음악에 소질이 있는지라 무대에 오를 생각에 가슴이 설레이고 부풀어오름을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날 정희는 옆집 엄아줌마를 따라 활동장소로 가보았다. 그날 따라 커다란 중학교 강당에 수백명 관중들이 모여들었다. “동생, 먼저 잠간 앉아 있소.” 한참 후 무대 조명이 꺼졌다. 뒤이어 무대에 둥그런 조명이 환히 비추더니 옆집 엄아줌마가 마이크를 쥐고 나타났다. “여러분, 이렇게 만나게 돼서 정말 행운으로 생각하고 기쁩니다. 우리의 만남은 운명인가 봐요. 그럼 지금부터 시조선족문화관의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조명이 다시 꺼졌다가 무대를 환히 비췄다. 번쩍번쩍 빛발치는 레이저불빛과 자지러진 음악에 맞춰 문공단의 선녀 같은 무용수들이 너울너울 경쾌하게 춤추며 무대에 나타났다. 련이어 몇수의 노래음악에 맞춰 춤마당이 끝나자 또 무대에 엄아줌마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다른 사회자가 마이크를 쥐고 따라나왔다. “지금부터 우리 한국JMTO주식회사 중국지사 총경리 엄희선녀사님께서 간단한 말씀이 있겠습니다. 박수!”  (아니, 문화관 음악보도원이라더니. 뭐 총경리라고?!) 정희는 깜작 놀라 엄희선을 다시 여겨보게 됐다. 양복에 넥타이까지 척 맨 그녀는 진짜 한국 회사 엄엄한 총경리처럼 틀스럽고 도고해보였다. 엄희선의 연설은 첫마디부터 아주 매혹적이였다. “여러분, 부자로 되고 싶습니까?” “예-” “박수!” 장내에는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엄희선은 연설에 앞서 반문부터  앞섰다. 수업시간에 교원이 학생들을 계발하려고  던지는 계발식물음의 효과를 보려는 것이였다. “돈을 누가 우리 손에 그저 쥐워줍니까?” “아닙니다.” “그럼 우린 미국의 최첨단상업기술로 무장한 한국JMTO주식회사를 따라 풍요로운 생활을 창조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뒤이어 엄희선 총경리는 구수하게 연설인지 주입식강의인지 장황하게 늘여놓기 시작하였다. “여러분들은 미국 경제의 3분의 1이나 쥐고 흔드는 유태인들의 지혜를 알고 있는가요? 골드바흐의 추축이랑 미국의 기신져박사랑 허망 이 세상에 나온 것 같습니까? 중동을 떠난 적잖은 유태인들은 세계 각지에서 자기 지혜로 여러 분야에서 민족의 기개를 떨치고 부유를 창조했습니다.” 첫마디부터 기세가 등등했다. “제2차세계대전 때 일부 유태인들은 독일 파쑈들의 잔혹한 대학살에 쫓겨 지중해를 빠져나가고 대서양을 건너 머나먼 아메리카대륙에 상륙해 피신했습니다. 그들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미국 경제의 3분의 1이나 되는 막대한 경제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갑부들 속에는 유태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미국의 이름난 정객 속에도 유태인의 그림자를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전 국무경 기신져박사도 유태인입니다. 아메리카대륙에 상륙한지 얼마 안되는 짧은 시간 내에  그들은 무엇에 의해 발달한 미국에서 이같이 놀랍게 정치, 경제, 과학기술 분야에서 활약하는 스타들로 떠올랐겠습니까? 여러분, 아시는지요?” 정희나 기타 관중들은 엄희선 총경리 말에 모두 입을 쫙 벌리며 경악했다. 엄희선이 음악보도원이라는 자기 신분에 맞지 않게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 연설을 퍼붓고 있지 않는가.  그녀의 연설은 관중들한테 거센 파문을 일으키면서 계속됐다. “경제분야에서만 봐도 미국에 널려있는 유태인들은 한 가족처럼 똘똘 뭉쳤습니다. 마치 몸 속을 흐르는 혈관처럼 서로 경제정보를 교환하고 상품을 구매하면서 온당하게 풍요로운 생활을 창조하였습니다. 그들은 상품을 사도 자기가 잘 아는 유태인의 상품을 샀고 그 상품에 관한 정보를 자기가 제일 친한 사람한테 알려주어 사도록 했습니다. 또 서로 홍보하고 정보를 교환하였으며 서로 돕고 리윤을 나누면서 잉여가치를 창조했습니다. 그들은 바로 이런 다단계식 상품판매련계망을 구축해 놀랍게 무궁무진한 리윤을 창조했습니다. 아니, 이 세상에서 제일 큰 황금산을 쌓아올렸습니다. 여러분, 유태인들의 선진적인 다단계식 상품판매방법을 장악해 부자로 되고 싶습니까?” “예~” 관중들은 이구동성으로 고함쳤다. 그 고함 속에는 저도 몰래 정희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아래에 한국 본 회사에서 오신 마케팀 팀장 허하늘녀사로부터 다단계식 판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열렬한 박수로 환영합시다.” 하얀 와이샤쯔와 남색바지를 입은 회사정복차림의 삼십대초반 녀자가 무대에 올랐다. “여러분, 유서 깊은 중국 땅에서 여러분들을 만나게 돼서 너무너무 기뻐요. 저희는요. 공항에서 내리자 이 천년비밀이 묻힌 신비한 땅에 키스했어요. 천혜의 이 땅에서 여러 분들과의 만남은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분들은 오늘 이 자리에 오셨기에 부자로 될 행운의 끈을 거머쥐게 됐어요. 이제 당장 황금금자탑에 오를 돈줄과 황금길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여러분 알고 싶습니까?” “예-” 허하늘 팀장은 소학생을 다루듯 관중들의 마음을 웅켜쥐고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어째 대답소리 높지 않아요. 알고 싶은가요?” “예- 알고 싶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황금금자탑에 오르는 황금길을 알려드릴게요. 금방 엄희선 총경리가 이스라엘 유태인들 미국에 이주해 창조한 다단계판매에 대해 개략적으로 소개했는데요. 다단계판매야 말로 황금금자탑에 오르는 황금길이예요. 여러분 알고 싶은가요?” “예-” “빨리 알려주세요.” 간절하고 조급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그때를 기다려 허하늘 팀장이 계속 했다. “그럼 이제부터 제가 다단계판매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정통편만한 까맣고 동그란 자석을 엄지와 식지로 집어 들고 장황설을 그럴 듯하게 늘여놓기 시작했다. “요건 자석인데요. 일반자석과는 달라요. 요걸 아픈 부위 경락에 찰싹 붙이면요.  그날로 신기하게 통증이 딱 멎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이 의료용 자석을 팔려면요. 광고비가 다닥다닥 들어붙어요. 다단계판매는 관계망을 통해 상품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팔기에 광고비가 필요없어요. 또 도매상과 소매상 등 숱한 류통업체를 거치면서 드는 판매와 도매 상업비용을 더 팔지 않고 직접 소비자들한테 팔지요. 때문에 소비자는 눅은 값에 살 수 있고요. 상품을 소개한 분들은 수고비로 리윤을 층층히 나눠먹을 수 있죠. 다시말하면 광고업체나 류통업체, 상업계통에 주던 쓸데 없는 비용을 남아서 소비자에겐 상품을 할인해주고 소개자한테는 수고비를 드리죠. 소비자나 소개자나 모두 수익이 있어 얼마나 합리한 분배인가요. 이거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때는 격이 아닌가요?” 정희는 점점 귀가 솔깃해졌다. 허하늘 팀장은 엄희선보다 아주 흥미진진하게 다단계판매를 홍보했다. 그녀의 달콤한 말에 의하면, 중국에 없는 한국의 화장품과 치료의기 등을 사도록 숱한 사람을 데려오면 그만큼 얻는 수익이 높아진다고 했다. 자기 수하에 한쎄트에2천원씩 하는 상품을 산 회원을 27명만 발전시키면 골든마케팀장(금팀장)으로 임명되는데 한달 로임이 근 3천원이나 된다고 했다. “인민페 3천원, 이 3천원은 여러 분들 1년 로임에 맞먹는 어머어마한 돈이지요? 어때요? 해볼 만하지요?” “예-” “한국에 가지 않고서도 중국에서 천문수자 돈을 벌어보겠어요?” “예-” “박수!” 뒤이어 허하늘 팀장은 더욱 놀라운 소식을 공포했다. “우리 엄희선 총경리는 석달 사이에 우리 이 홍보관에 100여명을 모셔왔어요. 엄총경리는 한달 로임이 만원도 넘어요. 여러분, 박수!” 관중들은 자리에서 막 일어나 박수쳤다. 엄희선 총경리는 무대에 재차 등장해 허리를 구십도로 굽히면서 인사했다. “여러 분, 저와 함께 가정을 위해, 내 인생을 위해 부를 창조해봅시다! 어떻습니까? 신심이 있습니까?” “예~” “박수!” 정희도 가슴이 설레였다. 부모께 효성하고 아들을 보려고 밤낮 돈을 벌자고 아득바득하는 성호를 도와 뭔가 하고 싶었다. 순간 그녀는 땅에 묻힌 돈줄이나 발견한 것처럼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아래에 유명한 가수 엄정희 선생님으로부터 독창을 불러드리겠습니다. 박수!” 정희는 뜻밖의 요청에 깜짝 놀랐다. “아니, 사전에 아무 말도 없이 어찌?” 그녀는 할 수 없이 엄희선한테 끌리다싶이 해 무대에 올라갔다. 그녀는 악대와 몇마디 주고받은 뒤 부자로 될 푸르른 꿈으로 가슴이 부풀어올라 격정에 넘쳐 노래 한곡 불렀다. 관중들은 그녀의 우아하고 부드러운 저음노래실력에 혀를 끌끌 찼다. 집으로 돌아올 때 엄희선은 정희를 보고 충고했다. “돈을 벌 좋은 기회요. 별게 없소. 친구, 친척, 동료들을 다단계판매홍보관에 데려만 오오. 홍보는 전문 홍보관에서 한국 마케팀장이랑 할테니까.” 정희가 고무풍선처럼 둥둥 뜬 것을 눈치챈 엄희선은 계속 바람을 불어넣었다. “몇달만 하면 나처럼 골든팀장이 돼 한달에 만원은 탈 수 있소. 처음부터 상품을 보이면서 홍보관에 가자고 하면 오지 않소. 내 동생과 하던 것처럼 공연을 보러 가지 않겠는가고 하든지, 아니면 놀러가지 않겠는가 하든지 대상에 따라 알맞는 방법으로 홍보관에 모셔오오. 홍보관에만 오면 모두 부자로 되려고 90프로는 상품을 사오. 친척친구들도 부자로 되게 하는 좋은 일이요. 왜 부자로 되는 일을 하잖겠소.” 정희도 다단계판매에 푹 빠져 당장 부자로 될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언니, 손잡고 해보기요. 좋은 기회를 마련해줘 고맙소.” 희선은 정희의 손을 굳게 잡고 헤여져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정희는 성호와 다단계판매를 하러 다닌다는 말도 없이 이튿날부터 다단계판매홍보관에 사람을 끌어들였다. 제일 먼저 아버지와 어머니를 홍보관에 모셔가기로 했다. 정희는 본가집에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고 단도직입적으로 “문예공연을 보러 가지 않겠어요?” 하고 물었다. 적적하게 집 구석이나 지키던 어머니는 인차 “구경하러 가지.”하고 반겼다. 그러나 엄삼기 교수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에이, 늘그막에 무슨 구경이요? 텔레비죤이나 보면 됐지.” 어머니도 덩달아 저어했다. “너네 돈이 바쁘겠는데 돈을 팔면서 구경할게 뭐야?” 정희는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를 잡아끌다싶이 했다. “돈 일전한푼 팔지 않고 하는 구경인데요. 오히려 돈을 벌 수도 있어요.” “아니, 구경하는데 무슨 돈을 번다고 그래?” “글쎄 가보면 알아요.” 그제야 부모들은 정희를 따라나섰다. 부모들은 다단계판매홍보관에 가보고 다른 세상에 들어선 것 같았다. 그들도 정희처럼 돈을 벌 욕심으로 늙은 가슴이 부풀어올라 딸을 따라 다단계판매에 뛰여들었다. 정희는 뒤이어 이모사촌동생들인 준식과 광인을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홍보관에 데리고 가서 2천원어치 상품을 사게 했다. 그녀는 일주일도 안돼 일약 다단계판매 파트너장이 되였다. 그녀는 또 자기 중학교에 가서 동료교원들과 학부모까지 20여명을 동원해 다단계판매조직에 가입시켰다. 그리하여 첫달에 한희선 총경리한테서 골든 팀장 금빠찌를 달고 로임 3천원을 탔다. (이게 정말 해볼만한 장사야. 점포도 필요없고 사람만 끌어다 내 밑에 넣으면 돈이 줄줄 생기는 판이구나.) 저녁에 정희는 피로한 기색으로 집으로 돌아온 성호한테 두툼한 봉투를 꺼내보였다. “이건?” 성호는 봉투 안의 돈을 세여보고 깜짝 놀랐다. 3천원은 자기가 그렇게 애나게 택시업을 해 번 한달 수입의 절반이 아닌가. “이건 우리 같은 사업일군들의 6개월 로임이나 되잖소?” “글쎄요. 절 따라 좋은 곳에 놀러 가면 한달에 3천원 버는 새 돈줄을 볼 수 있어요.” 성호는 의아한 눈길로 안해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린 절대 위법하면서 돈을 벌어선 안되오.” “호호호.” 정희는 입을 싸쥐고 깔깔깔 웃었다. “여보, 리성호 동무, 정치와 법률상식을 가르치는 교원이 아무려면 위법하면서까지 돈을 벌겠어요? 근심하지 마세요. 맞들고 돈을 벌어 아들을 보지 않겠어요?” 성호도 귀가 솔깃해졌다. “무슨 수로 돈을 보오?” “백문불여일견이라고 오늘 저녁 당장 저와 함께 가보자요.” 성호도 호기심에 차 그날 저녁으로 정희를 따라 다단계판매홍보관에 갔다. 한국의 예쁜 홍보팀장 허하늘 아가씨의 다단계판매리론을 귀맛좋게 듣고난 성호는 당장 갑부로 될 유혹에 견디기 어려웠다. “어때요? 다단계판매를 해보겠어요?” 정희가 햇쭉 웃으며 묻자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해보기요.” 정희는 성호의 손까지 잡고 홍보관을 나서면서 말했다. “자기절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아래 사람들이 줄줄이 데려오면 몇달이 안돼 골든부장이 될거예요. 저 옆집 언니는 총경리로 돼서 한달에 2만원도 넘게 번대요. 한국에 갈게 뭐예요? 앉은 자리에서도 몇만원씩 탄다는데요.” “뭘? 얼마 탄다고?” “이제 우리 둘 아래70명만 더 늘어나면 우리도 부총경리거나 총경리로 돼 2만원은 탈 거예요. 당해에 집과 자가용 사고 아들 볼게 아닌가요?” “진짜 장난 아니구먼. 어디 한번 통이 크게 해보기요.” 성호는 이튿날 아침에 당장 저금소에 달려가서 택시업으로 번 돈 2천원을 찾아내 홍보관에 가서 한희선 총경리한테 주고 한국 화장품과 약, 의료용자석 등을 탔다. 그는 속으로 누굴 다단계판매홍보관에 데려오겠는가고 친구와 친척, 동료들을 쭉 참빗질했다. (옳지. 송숙과 주옥을 데려와야지.) 그는 이튿날 외사촌녀동생 송숙을 홍보관에 데려오려고 찾아떠났다가 주춤 멈춰섰다. 매부 보고 택시를 몰지 못하게 했던 일이 마음에 걸렸다. 승복은 로운전수여서 차는 확실히 잘 몰았다. 이전에 림산작업소에 가서 산속 눈길에서도 자동차로 목재실이도 했기에 시내 포장도로에서 택시를 모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황금이 흑사심이라고 어쩐지 승복한테는 믿음이 가지 않았다.  전번에 차를 몰고 돈화로 달아나서 흑룡강성 쪽으로 가려고 한 믿지 못할 일을 친 후에도 엄마와 송숙의 얼굴을 봐서 마지못해 택시를 몰게 했었다. 그런데 낮 당번에 200원씩 딱딱 바치지 않고 항상 20원씩, 지어 30원씩도 갖은 구실을 대서 떼내고 바치지 않았다. 의심스러운 사람을 쓰지 않는다고 승복더러 재차 택시를 몰지 못하게 했다.   “무슨 면목으로 찾아가지?” 성호는 발길을 돌렸다. (뭐나 믿음에 토대를 해서 한걸음 한걸음 온당하게 나가야 해.) 그는 대학가에 가서 하학해 숙소로 돌아오는 외조카 주옥을 면바로 만났다. “외삼촌, 어떻게 돼 여기 왔습니까?” “다른 일로 왔댔는데 널 만날줄은 몰랐다. 만난바 하곤 점심이나 함께 먹을가?” 주옥은 어려서부터 그를 무척 따랐다. “감사합니다.” 성호는 외조카를 데리고 선화음식점에 데리고 가서 푹 삶은 개고기채를 푸짐히 주문해 먹이면서도 능청스레 다단계판매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장사를 한다는 말만 들으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무리 믿는 처지라고 해도 이상하게 역반심리가 작용했다. 당신이 자꾸 “사십시오.”, “사십시오.” 할수록 남들은 사지 않는다. 때문에 외조카라고 해도 처음부터 다단계판매가 어떻게 돈을 벌고 어쩌고 하면 오히려 외삼촌을 장사를 시켜주는 것 같아 의심하고 지어 뒤로 번져지면서 따라오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었다.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배운 성호는 바로 그런 역반심리를 주의하면서 조심스레 외조카한테 접근했다. 마치 낚시군이 미끼를 넣고 고기가 물리기를 내심하게 기다리듯이 말이다. “요즘 공부 바쁘냐?” “괜찮습니다. 이젠 오래잖으면 졸업하니까요.” “집에는 언제 갔니? 엄마랑 아빠랑 모두 잘 있니?” “예.” “넌 소비자가 아니냐? 많이 먹어라.”  성호는 주옥의 접시 앞에 개고기랑 자꾸 집어놓으면서 권했다. 주옥은 외삼촌의 푸짐한 대접에 맛있게 먹었다. 갈라질 때 성호는 주옥을 보고 “우리 집에 놀라오렴.” 하고 손까지 잡아주었다. “예, 그러잖아도 언제 가봐야겠는데요.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 자주 가보지 못해 미안해요.” 주옥은 생글방글 웃다가 뭔가 생각났던지 무릎을 탁 쳤다. “아, 정말 사회조사에 관한 졸업론문을 쓰겠는데요. 외삼촌이 다니는 광고회사를 조사해 쓰면 어떨가요?” “그래? 그럼 아예 다른 일이 없으면 지금 우리 집에 갈가?” “예. 그렇게 합시다.” 서로 잘 된 셈. 그날 오후 성호는 주옥을 데리고 단위에 들려 현지답사를 시킨 후 퇴근무렵에  집으로 데리고 왔다. 정희와 성호는 정성을 다해 주옥의 졸업론문제강까지 작성해주고 저녁대접까지 잘하였다. “얘, 주옥아, 우리 재미있는 공연을 보러 갈가?” 성호는 옆집 한희선 아줌마가 정희를 꾀여 홍보관에 데리고 간 경험을 지금 주옥한테 썼다. “예? 오늘 대박이야. 대접도 잘 받고 졸업론문제강도 작성했는데요. 공연까지 구경하다니요. ” 그날 주옥도 홍보관에 가게 됐고 나중에 다단계판매에 발을 들여놓게 되였다. 주옥이 또 자기 동창 몇을 소개해 홍보관에 데려왔다. 주옥은 성호의 선량한 거짓말에 끌리워 홍보관에 갔다가 일약 다단계판매 파트너장으로 되였고 첫달로임으로 3백원을 탔다. 그 돈이면 반학기 용돈으로 쓸수 있었다. 성호도 용기를 내서 송숙과 백호 형님에 조카 정국과 일복까지 몽땅 끌어들였다. 성호는 원래 송숙이네 집에는 몇번이고 가려고 망설이다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승복과는 관계가 벌어졌지만 송숙은 그래도 한살 지하인 외사촌녀동생이 아닌가. 게다가 다단계판매를 해서 갑작스레 생각 밖의 돈을 벌 수 있는데 이 좋은 돈줄을 녀동생한테도 알려 줘 함께 잘 살면 좀 좋겠는가고 생각하고 송숙을 홍보관에 데려  갔다. 이밖에 성호는 또 한 단위 해연과 승호까지 각종 수단을 다해 홍보관에 데려갔다. 그리하여 한달새에 성호도 자기 수하에 10여명을 발전시켜 한다하는 다단계판매 3개 소조를 관리하는 주관과장으로 승진해 첫달 로임 1,025원을 타게 됐다. 두번째달에는 승호가 자기 처 선금과 백화상점의 범송까지 끌어들이고 나중에 백화상점의 직원 30여명을 홍보관에 끌어들였다. 그도 첫달에 단통 골든팀장이 되였고 첫달로임 3천여원을 타게 됐다. 승호가 숱한 사람을 끌어들인 덕분에 성호는 일약 부장으로 돼 두번째달에 로임 9천원을 타게 됐고 정희는 수하에 80여명을 두어 부총경리로 승진해 두번째달에 로임 1만 5천원을 탔다. 부부가 한달에 2만 4천원이나 탔다. 성호와 정희는 입이 함박만해졌다. 성호는 낮에는 단위 광고를 해서 돈을 벌고 집에서 택시를 하는 외에 다단계판매까지 해서 2중 3중으로 돈을 벌어 한달 가정수입이 3만원도 넘었다. 이대로 나간다면 당장이라도 갑부로 될 것만 같았다. 한달에 3백원 타는 광고회사 일이 싫어졌다. 그들 부부는 날마다 다단계판매를 해서 고급아빠트에 금빛이  번쩍번쩍이는 황금몽을 꾸었다. 성호는 정희와 상론하고 진짜 엘레베이터아빠트단지 19층의 150평방메터나 되는 살림집 한채를 사서 사람들을 불러 한달여만에 장식까지 멋드러지게 척 해놓았다. 새 집에 들자 성호는 또 정희한테 지청구를 들이댔다. “여보, 이젠 아들을 봐도 되잖소?” 그러나 정희는 왕청 같은 말을 했다. “요까지 집 한채를 보고 아들을 낳을 수 있어요?” 성호는 정색했다. “한달에 50개월 로임을 벌어도 만족되지 않소? 사람이 욕심이 어디 끝이 있소? 맞춤할 때 아들이나 보기요.” 그는 시큰둥해하는 정희의 손을 잡고 아들 비위를 바짝 냈다. “여보, 내 소원을 꺼주면 안되오?” 그러나 정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보마표 자가용 갖추고 저금도 한 50만원 있어야지.” “아니, 저금 10만원이면 아들 낳겠다더니 또 올랐소.” 성호는 아연실색하며 입을 쫙 벌렸다. “그럼요. 생각해보세요. 송숙이네처럼 애를 셋이나 줄줄 낳기만 하면 돼요?  남들처럼 먹이지도 못하고 남의 집 애들의 옷을 주어다 입히면서 기를 거면  아예 낳지 않는 게 낫죠.” 정희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하는 말에 성호도 하나하나 따져주었다. “우린 송숙이네 정도는 아니잖소? 애들도 다 장차 제 살 길이 있겠지. 애 둘이면 우린 더 분발해 돈을 벌 게 아니요?” 정희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만해요. 지금 돈을 벌 때 콱 벌고 차차 봅시다. 딱 아들을 낳는다고 할 수 없잖아요? 또 지금 임신해 배 뚱뚱해 어떻게 다단계판매를 하러 달아다니겠어요? 우린 지금 시내 친척과 친구, 동료들에 국한됐어요. 이제 이 시내를 벗어나 다단계판매망을 농촌과 다른 도시에까지 넓혀나나가야 해요. 한국의 백영 사장은 이제부터 간고하다고 말하던데요. 아마 장춘이나 심양 그 쪽으로도 발전시켜야 할 것 같아요.” “홍보관에 마켓 팀장이라던 녀자 말이요?” “예, 허하늘 팀장은 기실 중국지회사 사장인데요. 원명은 허하늘이 아니라 백영이래요.” “가명을 쓰면서 돌아다녔구만.” “쉿-“ 정희는 입에 식지를 댔다.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엄희선 총경리와 저한테만 알려준 건데요.” 정희는 정색했다. “이제 길림과 장춘, 심양에까지 가서 다단계판매망을 발전시키자고 하던데요.” “아니, 욕심도. 백만부자를 꿈꾸는 거 아니요?” “앞으로 아들딸한테 집과 차를 사주고 손자손녀를 길러주자면 백만부자가 뭘 그리 대단해요? 난 교편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이 일을 할가 해요.” 성호는 억이 막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보, 왜 그렇게 짧은 생각을 하오. 자그마한 철밥통이라도 버리진 말아야지. 난 백만부자보다도 아들딸만 낳아 기르기만 하면 더 좋소.” “날마다 애들과 씨름하다나면 언제 부자 돼요? 백만부자 됐다고 해서 아들딸을 낳지 못한다는 건 없잖아요? 이 기회에 억만부자가 되면 어때요? 호호호.” 성호는 머리가 뜨겁다 못해 뻥 뚫린 것 같은 정희를 말리지 못해 근심이 태산 같았다. 세상 일이 어디 그리 식은 죽 먹기겠는가. 송숙이랑 농촌에서 시내에 들어온 아낙네들은 2천원을 주고 한국 화장품이랑  자석이랑 쓰지도 못할 걸 한아름 타 집에 가져갔다. 그러나 아래에 사람을 끌어다넣지 못해 한번인가 몇십원 로임을 타고는 더 타보지도 못해 두덜거렸다. “에이구야, 오빠 좋은 일이나 했지. 우린 본전도 찾지 못하겠소.” 성호는 돈을 벌지 못한 송숙이랑 함께 뒤에서 쑤근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그들한테 보상을 주려고 자기 로임으로 선화음식점에 데리고 가서 밥도 사먹였다. 홍보관에 올  때거나 집으로 돌아갈 때면  자기 집 택시로 실어다주게 하였다. 그런 고생을 하는 건 그래도 꽃이였다. 성호는 항상 돈벌기 좋은 이런 날이 며칠이나 갈가고 근심했다. 어떤 때에는 어째 돈을 벌기 너무 쉬워서 자꾸 현실이 꿈만 같아 조마조마하고 불안했다. 며칠 후, 근심하던 일이 끝내 터졌다. 극장에 신설한 홍보관에서 정희가 무대에 올라 한창 마이크를 틀어쥐고 천여명 다단계판매업자들한테 신나게 다단계판매를 홍보할 때였다. 두리모자를 쓰고 정복차림을 한 몇몇 사내들이 홍보관에 뛰여들었다. “꼼짝 말엇!” 그들은 주석대에 앉은 한국 백영 사장과 한희선 총경리, 엄정희 부총경리를 나포해 경찰차에 압송해갔다. 다단계판매업자들은 “와야-” 하고 바깥으로 도망쳤다. 공안국 간부는 마이크를 빼앗아들었다. “우린 공안국과 공상국 련합수사대입니다. 여러 분, 한국 다단계판매는 불법판매활동이며 국제사기행위입니다. 여러 분들은 국제사기군들의 감언리설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성호는 밀물처럼 밀치고 닥치는 군중들 속에 숨어 요행 극장을 빠져나왔다. “아이구,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아들비위를 쓰면서 황금몽을 꾸던 황금탑이 순식간에 와그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209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41) 댓글:  조회:1481  추천:0  2019-10-20
                     71. 아들과 사위 성호는 선희가 광고수입을 몽땅 가지고 송준과 함께 한국에 도망치지 않았는가 의심했다. 근봉과 전화해 물어보니 생각 밖으로 송준은 며칠 전에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하지 않겠는가. 요즘 성호는 부모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또 속을 썩이게 되였다. 영옥은 성호의 손을 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얘야, 아버지 소원을 꺼줘라. 죽으면 화장터에 가서 불에 타 두번째죽음을 당하기 싫단다. 난 괜찮다. 이담 죽으면 화장터에 보내달다. 그 좋은 뻐스에 앉아 천당으로 가지 왜 북망산에 가서 땅 밑에서 썩겠느냐? 우린 한평생 농촌에서 살았기에 고향으로 돌아가면 나갈 데도 있어 기분 좋다. 어쩐지 시내에 있으니깐. 나갈 데도 없고 수토가 맞지 않는지 이걸 봐라.” 영옥은 뚱뚱해진 배를 가리켰다. “어째 자꾸 배 붓긴다. 지난 해 가을엔 고향에 돌아가 탈곡하니 배 쑥 내려가더라.” 상진도 간곡히 부탁했다. “얘야, 화장터에 가서 두번 죽음을 당할 생각만 해도 머리끼 곤두서고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성호는 부모 말을 듣고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고향에 집도 없지. 어떻게 허망에 간다고 그럽둥?” 그때 정희도 안방에 들어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물었다. “혹시 제가 잘 보살펴드리지 못해 섭섭하셔서 그러진 않으십니까?” 영옥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게 무슨 소리요? 며느리, 시내 각시라도 시부모를 살뜰히 모신 착한 며느린데.” 정희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젠 칠순고개도 넘었는데요. 고향에 돌아가서 농사 지을 수도 없잖아요? 집도 없이 농촌에 돌아가 어떻게 산다고 그래요?” 상진은 묵묵히 앉아 있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집이야 사위한테서 되찾으면 되지. 집값을 어디 한푼이라도 물었소? 부모한테 먹을 쌀도 주지 않는 불효자식들, 새 해엔 밭을 남한테 주면 줬지. 그런 인정머리도 없는 불효자식한테 줄 순 없소.” 정희는 황급히 말렸다. “아버님, 괜히 부모자식간에 말썽이라도 생기겠어요. 이제 우리 돈을 벌어 시내에 큰 집을 마련하면 부모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상진은 며느리를 보고 정색했다. “아들며느리 성의는 아오. 시내 정말 싫어서 고향에 가자고 그러오.” 성호나 정희나 일단 결단 내리면 벽이라도 차고 나가고 마는 아버지 성질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때 혜옥이 결혼하게 돼서 일가친척들이 은숙이네 집에 모이게 됐다. 성호는 당연히 상빈으로 가게 되다나니 일찍이 고향 마을로 올라갔다. 그는 될수록 매형과 누나와 마찰을 피하려고 매형한테 판 집을 되찾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와 영옥과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파는 집이 없는가 수소문해보았다. 옛날 생산대 창고 앞을 지나다가 영옥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얘야, 이 창고 안에 구들을 놓고 살면 어떨가?” 성호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웃겠습둥? 시내에 모시고 가서 호광을 시킨다더니 고향에 돌아와 창고에서 산다고. 자식을 망신시키자고 그럽둥? 에이구, 부모를 잘 모시자고 해도 부모들도 자식 말을 좀 들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상진은 “창고에 가마를 걸고라도 고향마을에 기어이 돌아가겠다.” 하고 고집했다. 정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어떻게 초라한 창고에 구들을 놓고 부모를 모셔갑니까?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뭐라겠습니까? 아들과 며느리를 불효자식으로 만들려고 그래요?” 그러나 상진은 기어이 창고에 들어 살겠다고 고집을 썼다. 기실 그는 사망한 후에  화장터에 가는 것도 싫었다. 그보다도 막내아들며느리를 도와주지 못하고 시내에 눌러 있는 것이 바늘방석에 앉은 것만 같았다. 성호는 부모의 그런 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한마디 또 해보았다. “아버지, 그럼 우리 집과 가까운 교외 어느 마을에 집 한채를 사놓고 살면  어떻습니까?” “얘야, 낯선 마을에 가서 어떻게 산다고 그래? 우리 근심 너무 하지 말고    손자나 안겨달라. 그게 제일 큰 효도야.” 말수 적은 상진은 시내 아들 며느리 집에 와서 병치료를 하면서도 슬그머니 손자 비위가 났다. (대를 이을 손자녀석이 없어서야 안되지.) 성호는 별수 없이 어머니와 함께 고향마을로 달려올라갔다. 그는 창고를 사서 구들을 놓으려다가 중천정도 없는 창고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그만 두었다. 영옥은 은숙이네 울 안에 있는 소사양실을 돌아보더니 경만을 보고 어려운 말을 꺼냈다. “사위, 창고에 구들을 놓자니 맞갖잖습데. 저 소사양실을 손질하고 우리 들면 안되겠소?” 경만은 철색얼굴이 단통 화가마처럼 지지벌개나더니 단마디에 투박한 목소리로 거절했다. “안됩구마. 장차 거길 손질하고 혜옥이네를 데려올 예산입구마.” 영옥은 너무나도 억이 막혀 도리머리를 홰홰 둘렀다. “아니, 사위도 반자식이라고 어째 이러오? 우리 집값을 한푼이라도 물었소? 집을 내놓아라는 것두 아닌데. 정말 너무 하오?” 경만은 볼멘 소리를 줴쳤다. “밭이랑 남을 붙이게 할 땐 어떻구. 사위두 반자식이랍둥? 어째 자꾸 딸집에 기여들면서 이럽둥? 가시집과 변소간은 원래 멀어야 된다는 법도 모릅둥?” 성호는 곁에서 듣다못해 툭 쏴주었다. “매형, 그만하오. 부모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요?” 경만은 적반하장격으로 제 쪽에서 억이 막혀했다. “야, 뼈 굵어지니 어째 매형두 눈에 차지 않니?” “동네 부끄럽잖소?” 그때 혜옥이 신랑과 함께 웃방에서 나왔다. “아버지, 그게 무슨 소립둥? 그래 사위는 반자식이 아닙니까? 사위 부끄럽잖아 가시집과 변소간은 멀어야 하는 법이라고 합니까? 아들도 없는 아버지 이담  어떻게 우리하구 함께 살겠다고 그럽니까? 외할머니한테 효도를 해서 사위한테 모범을 좀 보여줍소.” 경만은 장차 믿고 살아야 할 맏딸의 말에 찍소리도 못했다.  성호는 매형네 집에서 나와 태평강 건너 천지꽃산 기슭에 있는 소사양장을 찾아가 돌아보았다. 소사양실은 문이랑 매형이 다 뜯어간데다가 돌토성도 여기저기 허물어가서 페허 같았다. 게다가 간장물 같은 비물이 새서 볼 품도 없었다. “그래도 창고보다 퍽 나을 거 같애. 매형네 집과도 거리를 두어 신세를 졌다는 말도 덜 듣고.” 그런데 막상 겨울이 돌아오기 전에 소사양실에 구들을 놓고 부모를 모셔오자니 그리 식은 죽 먹기가 아니였다. 성호는 구들을 놓고 가마를 거는 일을 해본 적도 없었다. 핍박에 의해 량산에 오른다고 그는 먼저 마을에서 손잡이뜨락또르를 빌어 벽돌공장에 가서 벽돌을 실어오고 태평강에 가서 모래와 흙을 실어들였다. 그때 가을을 하러 가던 만주가 빈정거렸다. “아니, 형님, 어째 시내에서 부모를 모시기 힘든 모양이구만. 이리 헐망한   소사양실을 다 손질하오?” 성호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억지로 희죽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어쩌겠니? 부모가 시내 벽돌집을 두고도 화장터에 가기 싫어 고향에 돌아와 살겠다는 걸.” 동불사령감도 낫을 들고 지나가다가 소사양실에 들어와서 조개턱을 들고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동불사령감을 불러 함께 가면서 싱거운 소리를 했다. “아들을 대학에 보내 다 쓸데 없소. 애비에미를 우사에 모시는 걸 보오.” 동불사령감이 맞장구를 쳤다. “아들딸이 열이나 돼도 어느 자식이 모시자고 하오?” 그 말은 마디마다 칼로 되여 성호의 가슴을 아프게 쿡쿡 찔렀다. (내 숨만 돌리면 꼭 고향에 고래등 같은 벽돌집을 지어 부모를 모실테야.) 그래도 혜옥의 욕을 먹고 뭔가 가책됐던지 경만이 와서 성호와 함께 구들을 놓는다, 벽돌로 간벽도 쌓는다, 부뚜막을 쌓고 가마도 건다하면서 맴돌아쳤다. 간벽과 천정 사이가 너무 높았지만 벽돌로 더 쌓을 수 없어 이깔나무를 대고 에을 얽은 후 진흙으로 발라야 했다. 그런데 이깔대고 문이고 하나도 없었다. 또 경만이네 사양장의 창문이고 문이고 다 빼가서 문도 새로 달아야 했다. 하는 수 없이 영옥은 태평강을 건너 가을걷이를 가는 은숙을 보고 문 한짝과 이깔대를 몇대 달라고 통사정을 들이댔다. 은숙은 딱 잡아뗐다. “안됩구마. 건 다 집값에 들어간겝구마.” 영옥은 손바닥이 다르고 손등이 다르다고 자기 낳은 딸이면 낫겠는가고 은숙을 찾아가 통사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믿던 딸의 입에서 구렁이처럼 으쓸한 대답이 나올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 와서 다 찾아가겠다면 어떻게 합둥? 공짜로 준 건 준 게지. 어째 딸집에 기여들어 자꾸 끌어가려고 이럽둥? 흥! 정말 시끄럽게 굽구마.” “돈을 줄게. 문짝과 이깔대를 팔아라.” “어이유, 공짜로 가진 걸 엄마한테 팔면 남들이 뭐라겠습둥?” 영옥은 억이 막혀 말이 더 나가지 않아눈물을 흘리면서 돌아섰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더니. 원, 참, 어디 남의 새낀들 저럴 수 있겠니? 어쩜 내 배 아프게 낳은 딸 같지도 않을가. 개라도 나았으면 주인을 보면 꼬리라도 치지.) 그 눈물겨운 정경을 보던 정미소집 장천이 지나가다가 물었다. “무슨 일로 그러오?” 영옥은 너무나도 억울해 하소연했다. 장천은 자기 집 이깔대 몇대를 가져다 쓰라고 했다. 그때 은숙은 황급히 쫓아나오면서 어머니를 손가락질하면서 고함쳤다. “잘하긴 잘한다. 제 딸을 온 동네에 다 팔아먹겠습둥? 어이구, 언제 저 늙은 것들이 다 썩어지겠니?” 그때 웃방에 있던 은숙의 사위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혜옥이 듣다못해 웃방에서 나오면서 질책했다. “어째 외할머니와 이럽둥? 동네 부끄럽지 않습둥? 외할아버지네 집에 외상으로 들어 살면서 이깔대 몇대 그렇게 아깝습둥?” 말을 마치자 혜옥은 신랑을 불러 토성 안의 이깔대를 수레에 실었다. “야, 그걸 어째 싣니?” 은숙이 뭐라건 혜옥과 신랑 준범은 수레를 몰고 태평강 건너 소사양장으로 떠났다. “엄마, 그럼 이러기요.” 은숙은 허연 머리를 흩날리면서 떠나가는 늙은 어머니 굽은 잔등에 대고 소리쳤다. “이깔대 한대에 6원씩 가져가오.” “그래라. 우리한테서 공짜로 가진 걸 되팔아서 잘 살겠다.” “팔기만 해도 좋은줄 아오. 어데 가서 그리 좋은 이깔대를 얻어온답데.” 그때 웃마을의 백호가 집손질하러 왔다가 그 딱한 사정을 알고 자기 집 이깔대를 더 가져왔다. 그뿐이 아니다. 소사양장에 있던 숱한 농기구와 물독, 쌀독, 소먹임 물을 끓이던 커다란 대국가마 등은 기실 몽땅 집값에 넣지도 않고 몽땅 딸한테 공짜로 준 것이였다. (진짜 딸이래도 거저 주기는 쉬워도 되찾아 쓰기는 쉽잖구나.) 영옥은 부모자식간에도 인품이 날로 각박해지는 세월에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딸과 사위한테 수모를 당하고서도 자식들간에 싸움이라도 생길가봐 성호와 백호한테 한마디 섭섭한 말도 하지 않았다. 더구나 성질이 애비를 닮아서 불 같은 성호가 아는 날에는 매형과 큰 싸움이 벌어질가봐 겁났던 것이다. 그날 저녁부터 영옥은 채마르지 않은 소사양실 구들에 건치를 깔고 잘 지언정 은숙이네 집으로 가지 않았다. 하루 밤도 더 묵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며칠 후 상진은 지팽이를 짚고 고향마을에 찾아와 소사양장에 들어섰다. 그때도 영옥은 령감한테 은숙과 경만의 허물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괜히 령감이 중풍에라도 걸리면 큰 일이 아닌가.) 상진은 사양실 울 안에 키 넘는 쑥대를 보더니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아이구, 범이 새끼를 칠 지경이구나.” 그는 지팽이를 짚고 태평강을 건너 셋째딸집에 갔다. 그는 사랑칸에 들어가 두루 살피더니 자기가 쓰던 낫을 찾아 들고 나오려고 했다. 그때 경만이 나와서 호통쳤다. “아니, 건 어째 다칩둥?” “사양장 울 안에 범이 새끼를 칠 지경이오.” 상진은 사랑간에 되돌아가 호미도 주어들면서 뒤말을 이었다. “명년에 터전이라도 가꿔야 남새를 먹지. 입에 거미줄을 치겠소?” 경만이 한다는 소리 더 한심했다. “아니, 중풍을 맞아 쩔뚝거리면서 무슨 터전을 가꾼다고 그럽둥? 흥! 다 죽게 돼가지고 욕심을 작작 씁소!” “뭐라오?!” 상진은 들었던 호미와 낫을 땅바닥에 탕 메쳤다. 그때 은숙이 동네 사람들이 보기 민망했던지 달려나와서 소리쳤다. “어이유, 싹 가져갑소. 귀신딴지 같은 걸 보기두 싫습구마. 이젠 우리 집에 얼씬거리지도 맙소.” 혜옥이 또 엄마를 욕했다. “아니, 엄만 진짜 불효자식입구마. 아들도 없는 엄마, 바꿔놓고 이담 우리 그러면  엄마 좋겠습둥? 우린 딱 아버지, 엄마 외할아버지와 하던대로 하지 않는가 두고 봅소.” 그제야 은숙은 두덜거리다가 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영옥이 은숙을 보고 소사양실에 놓았던 물독과 쌀독을 가져가려고 했다. 은숙은 대뜸 화를 냈다. “물똑과 쌀똑까지 다 가져가겠다고?” 그녀는 이를 사려물고 뭐라고 욕하려다가 웃방에서 내다보는 혜옥과 사위를 보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을 억지로 꿀꺽 삼켰다. “콱 가져갑소.” 영옥은 소사양실로 나가면서 은숙을 보고 “얘, 좀 이워달라.” 라고 했다. 은숙은 마지못해 소사양실에 가서 그 무거운 물독을 칠순 넘는 어머니 하얀 머리카락 우에 들어 이워주면서 줄욕을 퍼부었다. “에이유, 늙은 것들이 아직도 죽지 않고 새끼들을 밸까지 다 빼갈 예산이요. 에이구, 산 속의 호랑이 다 뭘 하고 굶어죽는다오?” 늙은 영옥은 무거운 물독을 이고 일어나다가 그 욕설에 다리맥이 풀려 일어나지 못하고 그만 풍덩 물앉았다. 쾅! 물독이 은숙의 발치에서 박산났다. “아이구!” 은숙은 어머니 어데 상했는가 보기는커녕 자기 발이 상하지 않았는가 내리보다가 발을 쾅 구르더니 자리를 떠났다. 영옥은 눈물을 머금고 다른 물독을 혼자 이고 일어나려고 모지럼을 썼다. 그때 외손녀 혜옥과 손녀사위가 모다못해 씽 달려나왔다. “할머니, 우리 실어다드립지비.” 그들은 할머니 머리에서 물독을 빼앗다싶이 내리워 수레에 싣고 외할머니를    모시고 태평강을 건너갔다. 영옥은 인정머리도 없는 은숙이 너무나도 섭섭해 두고두고 외웠다. “어쩜 은숙은 내 배아프게 낳은 딸 같지 않다. 어쩜 어미하구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가?” 영옥은 혹시 자식들이 알면 말썽이라도 생길가봐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속으로 외우고 또 외웠다. 성호는 부모를 시내로 모셔올 때 부모가 쓰던 톱과 망치, 큰자귀, 대패 등을 일전한푼 받지 않고 몽땅 경만한테 넘겨주었댔다. 그런데 이젠 성호가 목수도구를 빌어써야 할 처지로 됐다. 은숙은 “말로는 빌어다 쓰자지만 되찾아가자고 그러지?” 하고 도도거리면서 목수도구를 내놓기 아까와했다. 사양실을 집이라고 다 손질해놓았는데 딱 출입문이 없었다. 성호는 매형네 집에 가서 돌아보다가 울안의 소사양실 뒤에 람색뼁끼칠을 한 문이 벽에 기대 세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문은 원래 사양실 출입문이였다. “저 문을 주오.” 은숙은 하늘이 낮다고 세길네길 펄쩍 뛰며 야단쳤다. “부모자식간에도 어디 공짜가 있니?” “저건 분명 우리 사양실 문인데. 어째 우리 동의도 없이 뜯어왔소?” “40원에 사가라!” “우리 사양실문을 뜯어다 지금 되팔겠소? 참, 누나도 한심하오.” 성호는 어처구니 없어 입을 딱 벌렸다. 그는 가을하러 나가는 동불사령감이랑 세린하령감이랑 보는데서 고까짓 돈 40원 때문에 다투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아버지가 노여워서 병이 도질가봐 겁났다. “40원 줄게.” 성호는 성이 꼭두까지 치밀었지만 억지로 참고 그 자리에서 40원을 꺼내 던져주고 그 문짝을 싣고 떠났다. 성호는 마음이 아팠다. (아, 저래서 어른들이 항상 애지중지 키운 자녀들의 불효에 섭섭해했겠구나. 부모 집은 영원히 자녀 집이지만 자식의 집은 잠시도 부모 집이 아니라는 말씀이 맞구나.) 성호는 매형과 셋째누나를 한바탕 쏴줄가하다가도 그만뒀다. 어쨌든  고향 마을에서 누나와 매형을 믿고 부모를 모셔야지 않겠는가. 그는 매형과 아버지 사이가 벌어진데는 부모자식간에 서로 양보와 배려심이 모자란데 원인이 있다고 여겼다. 그보다도 인간수양을 닦지 못한 불효에 주요한 원인이 있었다. 경만과 은숙이 약혼할 때 상진은 아버지 없이 자라서 수양이 없고 성질이 팩하다고 반대했었다. 경만은 제일 아픈 마음속의 상처를 건드린 것이 항상 속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결혼해 살면서도 술만 마시면 그 일이 생각나서 가시아버지와 걸고 들어 행패를 부리군 했다. 또 밭을 나눌 때 반이랑 때문에 가시아버지와 시비를 걸고 들었다. 물론 후에 상진의 것으로 판명났다. 그때 경만은 기분이 어찌나 생했던지 자를 땅바닥에 홱 팽개치면서 “에이씨, 이젠 가시아버지구 뭐구 모른다!” 하고 쩔뚝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후부터 경만은 가시집이라면 쓴 외 보 듯하였다. 그때 만약 은숙의 말대로 상진이 사위한테 좀 양보했더라면 관계가 더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상진은 절대 시비에 지고 살려는 사람이 아니였다. 그의 인생 좌우명은 “빚을 지고 살아도 시비에 지고 살 수 없다.”는 것이였으니깐. 상진은 일찍 시내 아들며느리 집에 갈 때 다리를 젖은 사위를 많이 돌봐주었다. 그는 이전에 옥맺힌 매듭도 풀어주려고 자기 밭을 사위한테 붙이라고 주었을뿐만아니라 새 벽돌집마저 외상으로 사위한테 팔았다. 영옥은 봄에는 벼모랑 떠주었고 성호도 청가를 맡고 벼모내기를 도와주었다. 늙은 량주는 여름에는 터밭을 매주었을뿐만아니라 가을에는 낫을 들고 가을을 해주었고 초겨울에는 상진과 성호까지 데리고 와서 탈곡까지 도와주었다. 기실 부모네 밭 일은 부모와 성호가 거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런데 경만은 다욕하게도 가시부모들이 먹을 쌀도 주지 않았다. 가시부모가 거저 쌀을 가져가려는 것도 아니고 밭을 양도한 값으로 먹을만큼만 달라는데도 한근도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가시부모와 사위 사이가 점점 벌어졌다. (부모와 매형네 사이가 벌어진 주요한 책임은 그래도 매형한테 있지. 우리 얼마나 양보해주었는데 배은망덕하고 불효를 저지른단 말인가.) 성호는 매형과 누나를 고깝게 생각하면서도 관계가 나빠지면 안된다고 여겼다. 비록 매형보다 열살이나 지하였지만 필경 대학을 나온 사회 사업일군이여서 도량도 넓었다. 쭉 훑어보아도 어느 누나나 매형이나 모두 장점과 허물이 없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드넓은 흉금으로 누나와 매형네를 모두 포옹하려고 무등 애를 썼다. “이제 누나들과 매형들도 부모네 년세와 가까와지면 꼭 후회할 날이 있을 거야.) 성호는  앞날이 캄캄하고 아득하기만 했다. 나먹은 누나와 매형이 셈이 들 때면 부모가 이 세상에 살아계실지 걱정됐다. 이듬해 봄이 오자 성호는 밭을 매형한테 붙이게 주자고 아버지와 상론했다. 상진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글쎄 사위한테 밭을 주면 같은 값에 동네 보기도 좋지. 그런데 또 식미를 주지 않으면 어쩌니?” 하고 근심했다. “이제 계약할 때 똑똑히 하면 됩구마. 매형도 사람인데 아무리 그러면 계약도 지키지 않겠습둥? 한번 더 믿어보깁소. 이 마을에서 누나와 매형도 믿지 못하면 누굴 믿고 살겠습둥?” “그래? 흉금이 넓구나.” 상진은 희죽이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성호는 그 길로 매형네 집으로 건너갔다. “매형, 새 해에 우리 밭을 붙히겠소?” 경만은 저으기 놀라하면서도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아버지 동의하니?” “양, 이제 금방 토론하고 왔소. 그런데 새 해엔 밭양도세로 꼭 부모 식미를 주오.” “아니, 그러잖구.” 경만은 두 말 하지 않고 동의했다. 성호는 백지장에 계약서를 줄줄 쓰더니 경만한테 원주필을 내주었다. “여기에 서명하오.” “이건 뭐냐?” 경만의 말에 은숙도 백지장에 쓰인 글을 들여다보았다. 계약서에는 가을에 장마당 시세에 따라 밭양도세만큼 쌀을 줘야 한다고 똑똑히 씌여 있었다. “밭양도계약서?” 경만은 계약서를 들여다보고 웃었다. “얘, 부모자식간에 무슨 계약서냐?” 그러나 성호는 정색했다. “구두로 맺은 군자계약은 쓸데 없소. 부모자식간에도 돈은 세여 주고 받으라 하지 않았소? 계약서를 쓰면 서로 좋소. 법적 효력을 보니까.” 은숙은 머리를 끄덕였다. “어떻게 신용없이 놀았으면 매형하구 처남 지간에 밭양도계약서를 다 써야 하오? 뭐랍데? 부모 잡술 쌀을 주자는데두.” 경만은 눈을 치켜떴다. “에이구, 이제 와선 다 내 탓이라고 한다. 쯧쯧쯧.” 그는 부르튼 소리를 치면서도 계약서에 이름 석자를 비뚤비뚤 써넣었다. 그는 자리를 뜨는 막내처남을 바래면서 중얼거렸다. “너도 가시아버지 못잖구나. 절대 시비에 지지 않을 놈이군. 그래도 넌 가시아버지보다 인정머리 있어. 가시아버지가 네 절반만큼이나 인정머리 있게 놀아도 절대 그러잖았울 거야.” 성호는 시무룩이 웃으면서 매형의 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매형, 새 해에 수고하겠소. 형제끼리 서로 도우면서 화목하게 살기요.” 은숙은 굳게 손을 잡고 희죽이 웃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복숭아 같은 얼굴에 해시시 웃음을 지었다. 경만은 부모와의 갈등이 다 해소된 것이 아니였다. 엄동설한이 눈 앞에 당장 덮쳐들게 됐다. 그런데 부모들은 땔나무가 없어 고생이 막심했다. 먼저 소사양실 울 안에 키넘게 듬성듬성 자란 마른 쑥대를 상진이 낫으로 베놓았다. 영옥은 한아름씩 안아들여다 아궁이에 쑤녀넣고 그럭저럭 늦가을 추위를 몰아냈다. 경만네 집 마당에는 돼지들이 마구 뜯어널어놓은 산더미 같은 벼짚이 눈썩임물에 다 썩어빠질 지경이다. 혜옥이 외할머니네 땔나무 없다고 실어다주려고 하자 경만은 철색낯이 시꺼매나면서 눈 흰자위를 뗄뗄 구을렸다. “한단에 2전 5리씩 사라고 해라.” 은숙은 부삽으로 아궁이에 석탄을 퍼넣다가 남편한테 마땅찮은 눈길을 보냈다. 그녀는 나그네 집에 비였을 때 가만히 혜옥과 사위와 함께 벼짚을 한수레 꽉 박아 실어다주었다. 성호는 눈 앞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했다. 그는 택시영업을 하지 않고 택시에 석탄마대를 꽉 박아 싣고 고향으로 떠났다. 정희는 택시 뒤좌석에 묻은 시꺼먼 선탄재를 보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야단쳤다. “아니, 여보세요. 택시를는 계속 뛰게 하고 화물차를 삯을 내 석탄을 실어가세요.  택시 안의 저 석탄재를 어쩝니까?” 성호는 당장 땔나무가 없는데 불시에 화물차를 어디에 가서 구한단 말인가? “실은 석탄은 실어가고 다음에 보기요.” 그제야 정희는 얼굴에 화기를 띄우더니 신신당부했다. “무사히 갔다가 오세요.” 또 이모사촌동생 광인을 보고 “해졌는데 주의해 천천히 몰고 갔다 오라.” 하고 신신당부했다. 광인과 준식은 모두 정희의 이모사촌동생들이다. 전번에 녀기사가 강간당한 후 차수리부에서 일하던 광인을 데려왔다. 성호는 광인이 모는 택시 조수석에 앉아 고향을 바라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온 여름 온 장마비에 아래마을 앞길이 깊다란 물도랑처럼 길게 패웠다. 하리표택시가 그 움푹 패인 호박길에 들어서니 택시 천정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홈이 깊었다. 초겨울이여서 장마철과는 달리 물이 고이지 않아 다행이였다. “주의해라. 구덩이에 빠지면 큰 일이야.” 성호가 금방 주의를 줄 때다. 쿵더덩! 택시가 구덩이에 빠졌다. 성호는 조수석의 서랍을 열고 손전지를 꺼내 빠진 차 밑을 비춰보고 깜짝 놀랐다. 글쎄 택시  밑바닥이 언 홈채기에 쿡 박혔던 것이다. 박힌  밑바닥면이 너무 넓어서  전진도 후진도 못하고 바퀴가 연기를 일구면서 앵앵 헛돌아가는 것이였다. “이걸 어쩐다?” 성호와 광인은 무릎을 꿇고 앉아 택시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한탄했다. 한참 후 성호는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다. “매형네 소를 가져다 끌어내자.” 성호는 광인을 보고 택시를 지키게 하고 고향마을로 종주먹을 쥐고 달려갔다. 경만은 사연을 듣고 두말 없이 황소를 몰고 아래마을로 내려왔다. 경만과 광인은 서로 인사하고 먼저 륜번으로 괭이로 택시 밑바닥을 끄고 삽으로 퍼냈다. 그런 다음 황소를 가대기 멍예에 메워 바줄로 택시를 끌었다. “이라!” 경만이 소잔등을 탁 치며 소를 몰았다. 동시에 광인이 택시를 후진시켰다. 택시는 모진 엔진소리와 함께 황소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50~ 60메터나 되는  길다란 홈채기를 다 빠녀나갔다. 그때 뒤에서 헤드라이트불빛이 다가왔다. “에이, 좀 늦었으면 화물차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할 번했구나.” 택시가 효성의 석탄을 싣고 희읍스럼한 달빛을 빌어 울퉁불퉁한 호박길을 따라 부르릉 부르릉 힘겹게 달려가고 있었다.
208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40) 김장혁 댓글:  조회:1382  추천:0  2019-10-16
                             70. 황금몽 성호는 광고나 택시업이나 모두 식은죽먹기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흐리멍텅한 하늘아래 함박눈이 푸실푸실 흩날리는 엄동설한에 그는 광고를 얻으러 한 술공장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다. 그는 얼음이 살짝 깔린 철길을 건너다가 그만 미끌어져 허망 쿵 넘어갔다. 다른 차 바퀴 밑에 들어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였다. 그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겨우 일어나 오토바이를 밀고 쩔뚝거리며 간신히 철길을 건넜다. 찬찬히 오토바이를 여겨보니 받침대와 배기관이 후러들어 탈 수 없었다. (박공장장과 약속해놓았는데 어쩌지?) 그는 아예 오토바이를 눈풍설이 윙윙 휘몰아치는 철길 옆에 세워놓고 자물쇠를 잠그어놓은 후 택시를  잡아타고 술공장에 갔다. 공장장 박광률은 성호 어깨에 묻은 눈을 털어주면서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째 이제야  왔소?” 성호는 “미안하오.” 하고 박공장장의 손을 굳게 잡았다. 사연을 듣고 박공장장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에이, 괜히 사고를 칠 번했구만.” 호리호리하게 생긴 그는 항상 간판광고 덕분에 술판매가 잘 됐다면서 성호가 광고를 하자고 하면 인차 대답해주었다. 성호가 자리에 앉기 바쁘게 박공장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요즘 우린 인삼술과 알로에술을 개발했소.” 그는 벽궤에 줄느런히 진렬해놓은 술병들을 가리켰다. “인삼은 우리 장백산기슭 특산이 아니고 뭐요? 인삼술은 사람의 원기를 회복하는데 아주 좋은 보약이요. 알로에술은 소염과 원기회복에 다 좋은 술이요.” “맞소. 우리 지방특산으로 술을 제조해야 우리 지방 외에 내지에도 널리 팔 수  있소.” “한번 광고를 내보기요.” 성호는 그 날로 박공장장과 2만원 광고계약을 맺고 광고설계에 착수했다. 그러나 인삼술광고가 뜻밖에도 총경리 굉팔의 낮은 문턱에 걸릴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성호, 너거 왜 술광고에 집착해? 국가 광고법에는 술광고를 하지 못한다고 명확히 규정된 걸 몰라? 위법술광고까지 해? 우리 광고회사 의미지가 뭘로 돼? 참, 답답해. 공상국에서 전번에 벌금시켰는데도 아직도 술광고야? 진짜 소가죽보다도 더 질기군.” 성호는 통사정을 들이댔다. “지금 세월에 광고를 얻어오기 그리 쉽습니까?” 꽝! 굉팔은 사무상까지 꽝 치며 벌떡 일어나 우멍눈을 희번뜩거렸다. “야! 정신 차려! 위법광고를 했다가 누가 책임져? 엉?!” 굉팔은 총경리라는 권력을 빌어 지금 성호한테 심술을 부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제 계속 술광고를 하는 날엔 전근시키지 않나 봐. 사람 귀에 말이 통 들어가지 않아?” 성호는 계속 통사정을 들이댔다. “아니, 한다하는 텔레비죤방송에서도 술광고를 하던데 왜 못한다고 그럽니까? 눈을 질끈 감고 한번 대담히 해봅시다. 예?” 굉팔은 뒤짐을 지고 서서 큰소리를 쳐댔다. “관둬(그만둬)! 호랑이 같은 범수도 다 쫓아냈어! 네깐 놈은 훅- 불면 어디로 날아가 처박힐지도 몰라. 흥!” 성호는 그런 심술쟁이 밑에서 한발작도 내딛기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 더 빌고 싶지도 않았다. 며칠 후 그는 한가지 령감이 피뜩 떠올라 박공장장을 또 찾아갔다. 그는 박공장장을 만나자마자 굉팔이 심술을 부린 자초지종을 쭉 이야기했다. 박공장장은 피씩 쓴웃음을 웃었다. “탐욕스러운 놈, 지금 큰 떡을 놓쳐 배 아파 그러오. 그 자가 며칠 전에 찾아와서 자기와 광고계약을 맺고 술광고를 하자고 했소. 광고비도 당신보다 더 싸게 정해주겠다고 했소.” “예?” 박공장장은 화를 냈다. “굉팔인지 나팔인지 술광고를 빼앗아가자는 거요. 당신과 이미 광고계약을 맺았기에 다른 사람과  계약을 맺지 않겠다고 툭 찍어 말했소. 그러자 어디 술광고를 내는가 보라면서 문을 쾅 차고 가버리지 않겠소. 광고를 못하면 말라지. 남의 발등을 밟는 새끼들과 누가 광고를 한다오?” 성호는 자기 령감을 말했다. “한가지 묘안이 있소.” “뭐요?” 박공장장은 성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술공장 건물 우에 간판술광고를 내건단 말이요.” 박공장장도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다. “좋소. 그렇게 하기요!” 박공장장은 한참 간판광고설계를 의논하다가 근심했다. “굉팔이 또 공상국에 고발하지 않을가?” 성호도 자리에서 일어나 공장장 사무실 안에서 버릇처럼 뒤지개를 짚고 왔다갔다 거닐며 사색에 잠겼다. 한참 후 그는 머리를 들더니 박공장장을 돌아보았다. “괜찮을 것 같소. 자기 공장건물 우에 자기 공장 술광고간판을 내걸었는데 어쨌단 말이요?” 박공장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성호의 아이디어로 해 박공장장네 인삼술과 알로에술은 당지는 물론 내지에까지 널리 팔리게 됐다. 어떤 달에는 한달에 판매액을 100만원도 넘겨 올렸다. 박광률 공장장은 아무런 보스도 없이 진심으로 도와준 성호가 고마워서 인삼술을 몇상자 주겠다고 했다. 성호는 가만히 혼자 챙기지 않고 직원들한테 한상자씩 나눠주었다. 미운 놈을 떡 하나 더 준다고 굉팔도 빼놓지 않고 한상자를 주었다. 그런데 굉팔이 그 일로 성호한테 걸고들어 행패를 부릴줄이야. 이튿날 굉팔은 이른바 회의를 열었다. 그는 우멍눈으로 여러 직원들을 둘러보면서 뱀의 혀를 날름거렸다. “올해 광고는 수많은 애로를 겪고 있는데이(있소). 국에서 준 광고임무를 완수할 것 같지 못하다니께(못하다니까).” 이번에는 성호를 쏘아보며 질책하였다. “그게 뭔가? 전번에도 말했지만 개인택시업을 하면서 단위광고를 착실히 하지 않는단 말이야. 단위와 개인, 어느 게 더 중요한가? 불법술광고를 꿍꿍 해주고. 흥! 광고주들한테서 명품술이나 한 자동차씩 받아챙겨? 완전히 무조직무기률이야. 광고계 특등부패란 말이야. 마땅히 기률처분을 받아야 해. 또 술을 가져왔으면 회사에 바치고 경리가 나눠줘야지. 네가 뭔데 면목을 내? 엉?” 성호도 참을 수 없어 맞받아쳤다. “심술을 작작 부리십시오. 이번엔 술광고를 한 적도 없습니다. 술공장에서 자기 공장건물 우에 술선전판을 내걸었는데 어째 불법이란 말입니까?” “뭐라고?!” 굉팔은 움퍽한 사팔뜨기눈을 희번득거리며 야단쳤다. 성호도 물러서지 않았다. “예, 자체선전입니다.” “좋아. 자체선전이라 치자.” 굉팔은 벌떡 일어나 성호한테 손삿대질까지 했다. “바로 네가 그렇게 부추기는 바람에 우린 그 술광고를 하지 못하게 됐어. 손실이 얼마나 큰지 알어?” 성호는 억이 막혀 말도 나가지 않았다. “이보십시오. 어떤 땐 광고계약을 맺어오니까. 비법광고라고 하지 못하게 하더니. 이젠 또 광고를 하지 못하게 됐다고 야단칩니까?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합니까? 이제라도 똑똑히 말하십시오. 그 술공장 술광고를 하랍니까? 하지 말랍니까?” 굉팔은 결국 자기 창으로 자기 방패를 찌른 격이 되고 말았다. 그때 선희가 성호를 핼끔 쳐다보더니 째죽거렸다. “리경리 말씀이 천만지당합니다. 우린 언제나 단위 리익부터 첫자리에 놓아야지.  개인 리익을 앞세워선 안되죠. 성호선생은 단위 광고보다 개인 택시업에 열중하는데요. 그게 옳은 처사인가요? 사람마다 이렇게 광고에 소극적으로 나간다면 올해 광고수입을 20만원도 올릴 것 같지 못해요.” “선희 부총경리 말이 맞소.” 굉팔은 선희를 부쩍 춰올리면서 지껄여댔다. “성호, 개인 면목을 작작 내란 말이야.” 성호도 지지 않았다. “당찮은 말을 작작 하십시오. 백화상점이나 술공장에서 우리 단위와 광고를 하지 않고 자체로 선전판을 내건 건 완전히 리총경리 탓입니다. 이제 와서 책임을 나한테 떠밀지 마십시오.” 그는 선희한테 날카로운 눈길을 돌렸다. “남이 과외로 택시업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요? 난 광고사업시간에 택시업을 한 적이 없소.” “흥, 옛말이면 듣기나 좋지.” 선희는 간사하게 웃으며 혀바닥을 날름거렸다. “전번에 택시 운전수가 로임을 타러 우리 단위로 오지 않았는가요? 건 사업시간에 로임을 준 게 아니고 뭔가요?” “잠간 나가서 로임 주고 들어왔는데 그걸 다 꿰드오? 내 입이 터지면 전 여기서 머리를 들고 앉아 있을 거 같소?” 선희는 등곬에 식은땀이 쪽 끼쳤다. 그녀는 미인계로 낚아챈 송준의사가 바로 성호의 넷째매형일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일이 단위에서 터지면 큰 일이 아닌가.) 그녀는 성호에게 눈을 흘기더니 입에 빗장을 지르고 덤덤히 앉아 있었다. 며칠 전에 선희는 오청룡 국장의 이른바 배려하에 부총경리 자리까지 차지하게 돼  욕심을 차릴 권력토대를 튼튼히 마련해놓았다. 그 더러운 욕심이 아니면 무슨 낯짝으로 굉팔과 오청룡한테 몸을 들이대면서까지 광고회사에 되기여들어 출납원을 맡았겠는가. 승호도 포문을 열었다. “리경리나 선희는 너무 하오. 남이 과외시간에 택시업을 하든 말든 떠들 건 뭐요? 광고사업이 잘 되지 않는 건 전적으로 굉팔 경리가 광고를 롱단하면서 남의 광고를 빼앗으려 하고 남이 애나게 해온 광고를 비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고서야 아래 사람들이 어떻게 광고를 한단 말입니까?” 해연도 망설이다가 나섰다. “우선 우리 광고회사 재무제도부터 완벽하게 내와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광고수입은 얼마도 되지 않는데 리경리는 사업경비라고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한해에 글쎄 7만원씩이나 령도접대에 쓰니까. 이게 진짜 밑굽이 빠진 항아리가 아니고 뭡니까? 그걸 절약해도 광고상납금을 내는데 얼마나 많이 보탬이 되겠습니까? 남의 호주머니 돈을 그만큼 얻어오기 어디 그리 쉽습니까?” 굉팔은 성호를 진압하려다가 본전도 찾지 못했다. 그는 포위공격을 받게 되자 “회의를 끝낸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문을 박차고 휑 하니 나가버렸다. (에이, 저것들을 몽땅 쫓아냈으면 속이 씨원하겠어.) 그는 두덜거리면서 씨꺼먼 속을 끙끙 앓았다. (내 사람들로 광고회사를 꽉 채워넣어야는데.) 며칠 후 어느날 아침이였다. 광고회사에는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굉팔은 철색낯이 쌔까맣게 죽은 채 승호의 사무실에 찾아와 야단쳤다.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 어쩜 회사 돈을 몽땅 가지고 한국으로 도망친단 말인가!” 승호는 깜짝 놀랐다. “누가 도망쳤단 말이요?” “누군 누구겠나? 선희, 그 갈보년이지.” 굉팔은 앙상한 주먹으로 사무상을 꽝 쳤다. “다 오청룡 탓이야. 저런 년을 출납에 부총경리까지 시키다니. 흥!” 승호는 억이 막혔다. “아니, 그래, 올해 번 돈을 몽땅 가지고 달아났소?” 굉팔은 대답도 하지 않고 비좁은 가슴을 탕탕 치면서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는 선희가 도망친 기회에 좋다고 몽땅 선희한테 죄를 덮어씌웠다. 그리고 선희를 부총경리 겸 출납원으로 임명한 책임도 몽땅 오청룡한테 떠밀어버렸다. 승호는 더럽고 음흉한 굉팔의 속알멀치를 다 꿰뚫어보면서도 시기상조라고 여겨 입을 꾹 다물고 앉아 있었다. 성호와 해연은 선희가 도망쳤다는 말을 듣고 억이 막혀 도리머리를 홰홰 흔들었다. “며칠 전까지도 집체리익이 어쩌구 저쩌구 하더니.” “뺑덕이 에미처럼 광고비를 몽땅 가지고 도망쳤어?” “흥! 량심도 없는 년!” 며칠 후 굉팔은 광고회사 전체회의를 열었다. “상부에서는 우리 광고회사 돌발상황에 근거해 중대한 인사변동을 결정했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사무실 밖에 나가더니 일남일녀를 데리고 들어섰다. “새로 부임된 서일철 부총경리와 허경옥 부총경리입니다.” 모두들 일어나 악수를 나누었다. 승호는 깜짝 놀랐다. 그와 허경옥은 악수를 나누기 어색해 머뭇거렸다. 그때 굉팔이 떠들어댔다. “서로 아는 사인가?” 백지장처럼 창백한 경옥의 얼굴을 보고 굉팔은 말을 바꿨다. “서경리와 허경리는 모두 오래 동안 상업분야에서 지도사업을 했기에 슈퍼경영 의식과 능력이 있는 분들입니다. 우리 광고회사가 꼭 번영하리라고 믿습니다.” 해연은 서경리를 보고 너무나도 놀라 막 소리를 지를 번했다. 향월의 애인, 색마 같은 서경리가 광고회사 부총경리로 오지 않았겠는가. (어쩜 저 바람둥이 여기까지 왔어?) 서일철 경리는 모든 사람들 앞인지라 해연한테 그저 눈인사를 찔끔 보냈다. 해연은 핼끗 곁눈질하며 눈인사를 받아주었다. 승호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광고부문에서 낯짝을 내민 적도 없는 사람들을 하루 사이에 장기쪽처럼 마구 쥐여놓은 인사변동이였다. 더구나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허경옥이 부총경리 겸 출납으로 오지 않았겠는가. 진짜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이였다. (어떻게 고양이와 쥐가 머리를 맞대고 일할가?) 승호는 눈 앞이 캄캄해나고 머리에서 윙- 소리났다. 허경옥은 쌀쌀한 눈길로 승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승호는 회의고 뭐고 훌 일어나 나가려고 했다. 굉팔이 불러세웠다. “승호, 아직 회의 끝나지 않았어.” 승호는 마지못해 제자리에 물앉았다. 굉팔은 자리에서 우쭐 일어나더니 우멍눈을 희번뜩거리며 승호를 내리쓸어보며 실돌피 같은 가는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세우며 선포했다. “광고사업의 수요에 의해 리승호의 부총경리직을 해임한다.” 순간, 승호는 쓴 외를 씹은 표정을 지었다. 성호는 참지 못해 질문했다. “무슨 리유로 승호를 해임합니까?” 굉팔은 개를 잡은 포수처럼 어깨까지 으쓱해 장황히 늘여놓았다. “언감 상부의 결정에 떠들어?” 성호는 승호가 말리는 것도 계속 떠들었다. “아니, 그래 아무런 리유도 없이 부총경리를 마구 해임하는 것이 옳습니까?” 굉팔은 불찌 튕기는 우멍눈으로 성호와 승호를 번갈아 쏘아보았다. “좋아. 똑똑히 말해주지. 승호는 해마다 광고임무를 완수하지 못했고 회사 직원들의 단결을 파괴하고 무리를 지어 총경리를 공격했다. 국에서는 광고사업과 단결을 위해 리승호의 부총경리직을 해임했다. 됐나?” 성호가 또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옆에서 승호가 무릎으로 성호의 다리를 툭 쳤다. “오늘 점심에 서경리와 허경리 환영파티를 열겠소. 누구나 빠지지 마오.” 승호는 코방귀를 뀌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와버렸다. 굉팔은 뒤에서 두덜거렸다. “죄꼬만 새끼들, 쫓아내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인줄 알아. 이제 떠들어대면  진짜 쫓기울줄 알어. 흥!” 승호가 몸을 홱 돌리자 성호가 팔을 잡아챘다. “가만놔둬라.” 그들 둘은 답답해 선화식당에 가서 조용히 마주 앉았다. “굉팔을 놔둬선 안되겠다. 점점 못하는 짓이 없구나.” 승호가 성호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먼저 입을 뗐다. 성호는 잔을 들어 성호의 잔과 부딪치면서 맞장구를 쳤다.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손을 쓰니? 괜히 풀을 건드려 뱀을 놀리우겠다. 꾹 참고 있자. 언젠가는 누군가 굉팔의 정수리에 화로불을 올려놓을 거야.” 승호는 독한 술로 답답한 가슴을 지져대며 불만을 토로했다. “굉팔은 오청룡와 짜고들어서 너와 날 몰아내려는 거야. 허경옥을 데려다 내 자리에 앉히고 마음대로 해먹을 궁리 아니고 뭐냐?” 성호도 맞장구를 쳤다. “백화상점 광고를 빼앗으려는 씨꺼먼 속셈이 아니고 뭐냐?” 이때 문을 똑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호가 내다보니 생각 밖으로 해연이 오지 않았겠는가. 해연이 들어오자 성호와 승호는 하던 말을 그만두었다. 성호가 어색한 분위기를 깼다. “아니, 해연이, 어째 저쪽에 가지 않았소?” 해연은 성호를 째려보며 말을 받았다. “거길 갔다가 꼬락서니 보기 싫어 나와버렸소. 어째 환영하지 않소?” 승호도 발라맞췄다. “아니, 환영하지.” 해연은 성호와 승호의 잔에 술을 따라놓고 잔을 들었다. “여긴 당신들의 로거점이란 걸 진작 알고 있었죠.” 성호는 승호와 눈을 마주치며 그저 빙그레 웃었다. 그들은 해연이 진의인지 의심했다. 해연은 잔을 높이 들었다. “자, 우리 함께 단합해 리굉팔을 몰아내기요. 그 길만이 살길이요.” 승호가 잔을 내려놓고 한마디 물었다. “전번에 굉팔을 고발했댔소?” “맞아요. 제가 그 놈을 공금람용죄, 회뢰죄로 고발했어요.” 승호는 성호와 눈을 마주치고나서 잔을 들어 해연한테 권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잔 들기요.” 그들 셋은 통쾌하게 한잔씩 굽을 냈다. 해연은 서너순배 돌자 얼근해서 승호와 성호의 얼굴에 돌아가면서 손삿대질했다. “너희들도 하늘을 떠인 사내들이냐? 그저 굉팔한테 당하기만 하고 찍소리 한마디 못쳐? 참 답답하다, 답답해.” 그녀는 종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쳐댔다. “광고회사 공금을 7만원씩이나 손님접대비로 람용하고 오국장한테 장식비로 5만원이나 가져다준 것도 그저 엄중경고란다. 말이 되오?” 성호는 해연을 말렸다. “됐소. 취했구만.” 그는 술잔마다 술을 따랐다. “이 잔으로 끝내자.” 그들 둘이 한잔씩 쭉 마시고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해연이 머리를 쳐들었다. “내 말 좀 들으면 안돼?” 성호와 승호는 해연을 내려다보았다. “서경리를 우리 사람으로 만들 수 있어.” 성호와 승호는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해연은 뒤말을 이었다. “그 자를 얼려서 굉팔의 뒤를 얼마든지 파낼 수 있을 거야.” 성호는 해연을 부축해 일궈세우고 정색했다. “서경리는 숱한 녀성을 유린한 색마야. 우린 그런 색마와 단짝이 될 필요없어.” 해연은 성호의 목을 끌어안으며 아양을 떨었다. “지금은 힘을 모을 때야. 서경리를 리용해먹잔 말이야.” 승호와 성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놈아. 난 언제까지나 네 편이야.” 그녀는 얼굴에 뽀뽀를 뽁 해주었다. 성호는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손으로 볼에 묻은 게침을 쓱 닦았다. “하하하.” 그녀의 해사한 너털웃음소리 속에서 승호는 황금몽이 물 먹은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것을 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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