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황혼 제4권
김장혁
74. 녀자감옥의 나영이
종호는 가옥까지 처분해 숨을 좀 돌릴 수 있게 되자 그 날 오후에 김호 대대장의 부탁대로 녀자감옥에 특수취재를 하러 갔다.
종호가 녀자감옥 울안에 들어가 보니 철조망을 두른 높은 담장 속에서 해볕이 쨍쨍 내리쪼이는 무더위를 무릅쓰고 전번처럼 여경들의 감시하에 숱한 아가씨들이 청바지 바람에 팔을 량쪽으로 쭉 펴고 몸을 휘휘 돌리면서 중간체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핏 봐도 새파란 녀죄수들이 전번보다 눈에 뜨이게 더 많아진 것 같았다.
(아니, 저게 나영과 류려평이 아닌가?)
종호는 녀죄수들 속에서 피끗 나영과 류려평을 발견했다. 그녀들은 체조를 하느라고 여념없었다. 그런데 머리를 풀어헤친 나영이 그를 발견했다. 그녀는 두 팔을 쳐든채 주춤 멈춰 서서 종호를 멍해 쳐다보았다.
“뭘 쳐다 봐?!”
여경장 류기가 고함치며 나영한테 다가갔다.
나영은 체조를 하면서도 간절한 눈빛은 종호한테서 떼지 않고 따라갔다.
(리사장님, 이 생지옥에서 절 구해줘요.)
류려평도 종호를 발견하고 코웃음쳤다.
(리혼해 주고 집까지 다 팔아 줬는데 어째 또 찾아 왔어?)
종호가 류려평을 피뜩 여겨보니 손목과 팔목에 쇠고랑이와 족쇄가 없었다. 아마 체조를 하는데 불편할가 봐, 감옥 안인지라 인도주의를 베풀어 쇠고랑이와 쇠사슬을 잠시 풀어준 것 같았다.
김호 대대장은 벌써 대문 어귀에 기립해서서 반갑게 마중했다. 김호는 당년에 종호가 실습하러 왔을 때 일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체육시간에 종호는 학생들 앞에서 고도를 한메터 반이나 개구리 물에 뛰어드는 멋진 동작으로 날렵하게 날아넘지 않았겠는가. 그는 아직도 방불히 날렵한 종호를 보는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김호는 허리까지 굽이면서 반갑게 인사하고나서 종호를 모시고 자기 사무실에 갔다.
여경이 커피를 타서 커피잔을 종호 앞 탁자 위에 가져다 드렸다. 다른 여경은 종호가 커피를 마시지 않고 뜨거운 물을 마시겠는가 해서 뜨거운 물을 부은 컵을 가져다 커피잔 옆에 달랑 놓아드렸다.
김호 대대장은 종호와 나란히 앉더니 먼저 종호와 여경을 서로 인사시켰다.
“김소장, 신문사 리종호 부사장님이오.”
김호 대대장은 종호한테 40대 초반 김소장을 소개해 주었다.
“녀자감옥 김천선 소장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녀자 감옥 김천선이라고 부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천선 소장은 깎듯이 인사드렸다.
김호 대대장은 스승 앞인지라 스스럼없이 말했다.
“선생님, 녀죄수들을 만나기 전에 한가지 부탁합시다.”
종호는 미더운 눈길로 김호 대대장을 마주 보며 물었다.
“말하오. 무슨 일이오?”
김호 대대장은 이런 일을 부탁드리는 것이었다.
“선생님, 선생님도 금방 들어오시면서 보셨겠지만요. 녀죄수들이 많아졌습니다. 그중 매음녀들만 봐도 숫자가 기하학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요즘 공안국에서 밤중에 불시에 마사지방, 노래방 등등 유흥업소를 수사했는데 숱한 표창자들과 매음녀들을 나포했습니다. 이젠 구류소가 넘쳐날 지경입니다. 더 치안구류 할 감방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비록 조선족매음녀는 한국 문이 열리면서 훨씬 줄어들었지만 매음녀 총수는 훨씬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선생님께서 시간 좀 내서 매음녀들의 정황을 많이 조사해 신문이나 잡지에 냈으면 합니다. 교훈적인 선전을 폭넓게 하면 매음과 표창을 두절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매음녀들과 표창자들에게 사회여론을 통한 교육과 경고도 될 것 같습니다.”
종호도 통쾌하게 대답했다.
“그러기오. 전번에 취재한 영화 사실은 이제 이달 안으로 잡지에 날 거요. 월간잡지는 보통 한두달 쯤은 기다려야 책이 나오게 되오. 영화 인터뷰는 주필과 잘 부탁했기에 빨리 나오는 편이오.”
김호 대대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네- 그렇구만요.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종호는 통쾌하게 말했다.
“이제 책이 나오면 몇부 가져다줄게. 오늘 먼저 매음녀들의 자료라도 제공해주오. 자료를 본 후에 시간 내 매음녀들을 일일이 취재해 낼게.”
“네. 고맙습니다. 오늘은 먼저 선생님 일 있으면 보십시오.”
“그럼 매음녀를 취재하기 전에 탐오범 박나영을 취재해도 되겠소?”
“그렇게 하십시오.”
김호 대대장은 김천선 소장한테 얼굴을 돌렸다.
“김소장, 먼저 박나영을 소회의실에 데려오오. 그리고 매음녀들의 심문자료도 인차 준비하오.”
“네, 이미 준비해 놓았습니다.”
김천선 소장은 여경들을 돌아보더니 명했다.
“류기(刘琪),박나영을 소회의실에 데려오오.”
“예. 곧 데려오겠습니다."
류기라는 여경은 꽤나 이뻤다. 어글어글한 눈이라든가 오똑 솟은 코...
종호는 딱 어디서 본 거 같지 않겠는가. 그런데 별로 본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어쩜 류려평과 생김새가 비슷해보이었다.
(같은 류씬게. 멀어서 닮지 않았겠는가?)
김소장은 류기와 다른 여경한테 나지막하게 분부했다.
“박나영은 경범죄이기에 쇠고랑이를 풀어도 되오.”
“옛, 알겠습니다.”
이윽고 여경 둘은 회의실에서 나갔다.
김천선 소장은 미리 준비한 매음녀들의 자료를 종호한테 드렸다.
“리사장님, 수고하겠습니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인차 륙속 신문과 잡지에 내도록 하겠습니다.”
종호는 김호 대대장과악수하고 나서 대대장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는 김천선 소장과 함께 소회의실에 갔다.
이윽고 나영이 여경들과 함께 소회의실에 들어섰다. 전번 만났던 류려평과는 달리 나영의 손목과 발목에는 쇠고랑이가 채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종호를 보자 검은 그림자가 흐르는 수척한 얼굴에 잔미소가 서서히 피어났다.
김소장은 종호를 보고 “잘 취재해 보세요.”라고 인사하고나서 여경들한테 귀속말로 뭐라고 분부했다. 아마 박나영을 잘 지켜라고 분부하는 것 같았다.
여경들은 나영을 피끗 돌아보더니 복도로 나가려고 했다. 김소장과 여경들은 아마 김호 대대장의 부탁대로 종호한테 취재하는데 편리하게 특수배려를 베푸는 것 같았다.
나영을 지키는 여경은 아마 한족인 것 같았다.
종호는 여경들을 보고 말했다.
“취재 편리를 위해 조선어로 취재해도 되겠습니까?”
여경들은 서로 마주보더니 피씩 웃었다.
“괜찮아요.”
말을 마치자 여경들은 복도에 나가 소회의실을 지켰다.
기실 여경들은 조선어를 잘 알아 들었다. 소회의실에도 몰카가 장착됐기에 복도에서도 나영을 얼마든지 지킬 수 있었다. 종호는 그걸 조금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종호는 나영을 보고 가까이 와 앉으라고 손짓했다. 나영은 종호의 맞은 쪽 쏘파에 와서 앉았다.
종호는 자기한테 여경들이 가져다준 커피를 나영한테 권했다.
그는 여경들이 들으라고 고의로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영이, 감옥에서 나가 새 삶을 찾는 길은 자기 죄를 스스로 탄백하고 다른 죄범들의 죄악을 폭로하는 길 밖에 없소.”
나영은 걀쭉한 얼굴을 쳐들더니 이상한 눈길로 종호를 흘끔 쳐다 보았다.
(별론데. 리사장은 어쩜 경찰을 대신해 나를 심문하는 어투 아닌가? 아니야? 혹시 주위가 불편해 공식적인 말을 하는 거겠지?)
그녀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종호는 나영을 마주보며 정색해 나직이 말했다.
“나영이, 며칠 전에 나영이 남편을 찾아보았소. 그런데 철석은 나영의 탐오금을 심계국에 일전도 바치지 않았습데.”
나영은 커피잔을 들어마시다가 내려놓았다. 그녀의 쌍까풀눈이 화등잔처러 데꾼해졌다.
“뭐라구? 그 놈, 진짜, 날 잡아먹으려고 들었는군요. 그런 놈 믿고 어떻게 사는가요? 인차 리혼해야겠어요. 그래 내 리혼하겠다더라고 얘기했는가요?”
종호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얘기했소. 그런데 철석은 표창죄로 지금 구류소에 갇혀 있습데.”
“네?!”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영이 탐오금을 바치라는 돈을 아마 다 주색에 처넣은 거 같습데.”
“개 같은 놈새끼, 량심없는 몰렴치한 놈…”
종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고나서 뒷말을 이었다.
“구류소에 찾아가 나영이 리혼청구서를 전했소. 철석은 화를 벌컥 내면서 자기 집 일에 작작 삐치라고 욕합데. 날 보고 누군가고 따져 묻더구만. 리혼은 부부간에 해결할 일인데. 나영과 무슨 관계이기에 삐치는가고 합데. 나영이 한국에서 오면 리혼해주겠다고 합데.”
나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괜히 리사장님을 욕 보게 했군요. 미안해요. 헌데 제가 나가야 당장 리혼하겠는데. 리사장님은 리혼수속 다 했는가요?”
종호는 측은한 눈길로 나영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미 리혼했소.”
소회의실 안에서 종호와 나영이 주고 받는 말소리는 특별히 낮아 복도의 류기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조차 힘들었다.
그는 인차 화제를 돌렸다.
“탐오금인지 뭔지, 그 5만원은 근심하지 마오. 나영인 이제 문화국 청사를 지을 때 최정호 국장이랑 류덕재 은행장이랑 류려평이랑 죄를 낱낱이 교대하면 되오.”
나영은 의아해 했다.
“아니, 그럼 혹시 리사장님이 그 탐오금을 바친게 아닌가요?”
종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검찰원에 바쳤소. 수사받을 때 나를 시켜 탐오금을 바치게 했다고 하오. 그래야 나영이 죄 경감될게오. 나도 최혜영 국장과 나영이 시켜서 탐오금을 바친다고 말했소. 나영이 억울함도 밝혔댔소. 그 5만원은 최정호 국장이 하라는대로 단위 돈을 꺼내 최국장한테 준게 아니고 뭐요? 때문에 나영은 탐오죄가 없소. 근근히 공금람용죄를 졌을뿐이오. 그것도 나영은 사적으로 쓴게 아니고 전람관건축대부금을 위해 최국장한테 준게 아니고 뭐요? 죄가 훨씬 경감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오. 이제 변호사를 찾아 잘 자문해보겠소.”
나영은 몸둘바를 몰라했다.
“그게야 사실이지요. 그런데, 아니, 리사장님이 무슨 돈이 있어서 저의 탐오금을 바쳤는가요?”
“탐오금이란 말을 하지 마오. 이젠 람용금이라고 하오.”
“네. 알겠습니다. 리사장님한테 너무 신세 져서 어쩌지? 제가 감옥에서 나가면 꼭 5만원을 꼭 갚겠습니다.”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필요없소. 전번에 내 앓을 때 나영이 책을 내라고 500만원이나 주지 않았소? 내 죽으려고 할 때 나영이 거의 날마다 찾아와서 정신적으로 위문해주지 않았더라면 난 진작 죽고 말았을 거요. 그 은공을 어찌 돈으로 다 계산하겠소? 우린 서로 도우면서 사는 환난지우 아니고 뭐요?”
나영은 “환난지우”라는 말에 가슴마저 찡해났다.
종호는 주위를 살피더니 나영을 가까이 와 앉으라고 손짓하였다. 나영은 엉덩이걸음으로 스리슬쩍 종호 옆에 다가가 앉았다.
종호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더니 호주머니에서 엄지손가락만한 걸 꺼내 나영의 손에 쥐워주었다.
종호는 복도에 있는 류기와 여경이 들을가 봐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걸 최혜영 국장한테 주오.”
나영은 의아한 눈길로 종호를 쳐다보며 물었다.
“류덕재와 류려평의 죄행을 녹음한 유판이오. 류덕재와 류려평은 건축상들한테 대부금을 내주고 집 몇채를 가졌는지도 모르오. 공짜로 가진 려향의 이름으로 가옥소유증을 올렸다오. 려향의 돌생일에도 류덕재는 백만원이나 축의금을 줬소. 그걸 적발하란 말이오.”
나영은 유판을 제꺽 부래지어 안에 걷어넣었다. 녀자들한테는 젤 은밀한 호주머니었다.
“아니, 려향의 집까지 폭로하랍니까?”
“남김없이 사정없이 폭로하오. 려향은 내 친딸이 아니오.”
나영은 쌍까풀눈이 데꾼해졌다.
“네? 무슨 말씀입니까?”
종호는 나직이 일러줬다.
“려향은 류덕재와 악처 류려평의 사생아요.”
“네? 세상에?!”
나영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개탄했다.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종호는 기른 정이 있는 려향의 전도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친딸은 아니지만 길러준 정은 있소. 려향은 에미 부정축재를 가지지 않는 것이 좋을 거요. 괜히 부패분자 에미와 함께 공범이 될게 있소? 려향은 한국 회사 회장의 비서 로임 3백만원도 넘게 타는데. 그게면 실컷 살 수 있소. 려향은 부패분자 에미와는 달리 자기 능력과 신근한 로동으로 전도를 개척해야 하오."
종호는 결코 반금련 같은 악처와 서문경 같은 류덕재를 보복하려는 것만이 아니었다. 하루 빨리 성림한테 엄마의 모성애를 안겨주려는 것이 우선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길러준 정이 있는 려향이라도 마음이 아픈대로 대의멸친하지 않으면 안됐다. 어쨌든 허위를 까부시고 진실을 온 세상에 쫄딱 까밝아 놔야 했다. 그것은 그의 인생좌우명이니까. 아니, 어떻게 보면 종호의 인생 자체 전부일 수도 있었다.
종호는 개의치 않고 뒷말을 이었다.
“;부패분자 류덕재 행장과 류려평, 그 년놈들 죄악이 담긴 유판을 수사기관에 바치면 나영은 꼭 관대처분 받을게오. 감옥에서 하루라도 빨리 출옥해야 성림을 구하지.”
나영은 유판을 손에 꼭 쥐며 의아해 물었다.
“어째 리사장님이 직접 최혜영 국장한테 주지 않았는가요?”
“나영이 줘야 나영이 적발한 공으로 되잖고 뭐요?”
나영은 쌍까풀눈을 내리뜨고 궁리하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종호는 나영을 보고 거리를 띄워 앉게 한 다음 화제를 바꾸었다.
“성림이 좀 불행한 소식인데.”
나영은 깜짝 놀라 쌍까풀눈이 데꾼해졌다.
“성림이 무슨 일이 있습니까?”
“자꾸 숨이 차 합데.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글쎄 코로나에 심장이 좋지 않다고 하지 않겠소. 교수의사는 당장 심장수술을 해야 한다잖겠소?”
나영은 하늘이 쿵 무너지는감이 들었다. 그녀는 천길, 만길 절망의 심연 속에 훌러덩 빠져들어가버렸다.
“아이고, 불쌍한 성림아,”
나영은 대성통곡쳤다.
문을 벌컥 열리면서 여경 둘이 불쑥 들어왔다.
류기라는 여경은 까칠한 눈길로 나영을 쏘아보았다.
“웬 일입니까?”
종호는 여경들한테 자초지종을 얘기해주었다.
류기와 다른 여경은 나영의 처지가 가긍해 머리를 끄덕이더니 “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하고 한마디 하고는 다시 복도로 나갔다.
나영은 여경들이 알아들으라고 한어로 울며 불며 야단쳤다.
“아이고, 내 불쌍한 아들아, 고 어린애를 어떻게 심장에 수술칼을 댄다고 그래요? 엄마라는게 감옥에 갇히다니? 하나 밖에 없는 아들애도 치료 못해주고. 아이고, 하느님이여, 내 아들을구해 줍소서.”
종호는 나영을 위안했다.
“근심하지 마오. 내 살아 있는 한꼭 성림을 구해낼테니. 성림을 꼭 조선어를 잘하는 조선족후대로 키워낼 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에미 모성애 없이 성림이 건강하게 크겠는가요?”
나영은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물었다.
“수술비용도 엄청 많이 들겠지요?”
“한 3천만원 든다오.”
나영은 눈이 화등잔처럼 데꾼해졌다.
“네? 아이고, 불시에 어디서 그렇게 엄청 많은 수술비용을 마련하겠습니까?”
그녀는 또 대성통곡쳤다.
“아이고ㅡ 불쌍한 성림이 죽게 생겼구나.”
“성림이 수술비를 근심하지 마오. 내 집을 팔았소. 그런데도 한 천만원 모자라오.”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됩니다. 하나 밖에 없는 집을 다 팔아버리고 선생님은 한지에 나앉겠습니까? 악처가 또 야단치겠습니다.”
종호는 정색해 나영한테 알려주었다.
“내 리혼했잖소? 이젠 반금련 같은 악처 내 일에 삐치지 못하게 됐소.”
그래도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돼요. 내 이런 처진데. 선생님이 어떻게 혼자 수술비를 어떻게 댑니까? 수술 잠시 그만둡시다. 다른 방법 없겠는가 잘 생각해봅시다.”
그녀는 한창 궁리하더니 무슨 생각이 피뜩 났는지 무릎을 탁 쳤다.
“아차, 내 대림 셋집에 둔 카드에 한 천만원 있을 겁니다. 그거면 수술비용은 되겠습니다.”
그제야 종호는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러나 나영은 또 시름놓지 못했다.
“안 돼요. 수술해도 제가 나온 뒤 합시다. 제가 옆에 없으면 고 쪼꼬만 애 얼마나 수술하기 겁나겠습니까? 한국 의사들은 돈 밖에 몰라요. 안돼요. 한국 수술비용도 너무 비싸요. 어떻게 먼저 어린애한테 수술칼을 대지 말고 약물치료는 안되겠는지 다른 방법을 생각해봅시다.”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며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길게 내쉬었다.
그는 피뜩 떠오르는 유명한 의학박사가 떠올랐다.
“나영이, 황선희박사한테 성림을 부탁하면 어떻소?”
“네-난 어째 황박사를 생각하지 못했을가요? 전번에 제 낙태수술도 황박사 한국까지 와서 해주지 않았습니까? 일본까지 류학한 황박사는 꼭 성림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순간 나영의 쌍까풀눈에는 한가닥 희망의 빛이 반짝였다.
“먼저 그렇게 하기오. 내 황박사를 찾아 잘 부탁할게.”
종호와 나영은 잠시나마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러나 그들이 어찌 알았겠는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