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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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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0) 김장혁 댓글:  조회:1275  추천:0  2023-04-12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0.황금몽 황금이 흑사심이라고 예로부터 그 놈의 개도 안 먹는 돈 때문에 친구지간에 이나고 부모형제가 반목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하지 않았던가. 황금몽은 춘희로 하여금 다이로교수와 허위로 포장된 부부관계를 맺게 하지 않았던가. 물론 처음 시작에는 다이로교수와는 아주 애틋한 사제간이였다. 춘희는 어려운 때에  따뜻한 손을 다이로교수의 은정에 감지덕지했었다. 그러나 변태 같은 다이로교수의 성억압과 성착취가 심해감에 따라 다이로교수에 대한 그녀의 염오감만 벅차오르게 하였다. 나중에 그녀는 다이로교수의 유산에 눈이 어두워 그 변태적인 "강간"에 혼합된 성억압에 굴종하는 "성노예"로 전락돼갔다. 그 더러운 황금몽으로 하여 춘희는 문걸과 맺은 순박한 사랑도 애매한 관계로 돼버렸다. 아니, 그 참사랑에 황금먹칠을 해버리고 말았다. 문걸도 나중에는 춘희의 그런 더러운 심보를 점차 간파하기 시작했지만 가슴에 얼기설기 내린 사랑의 뿌리를 뽑기에는 너무나도 무기력했다.  춘희는 원래는 문걸의 구명은인이였지만 황금몽으로 하여 문걸에게는 사랑의 빚을 진 "죄인"으로 돼버렸다.   문걸은 실련의 크나큰 충격으로 하여 또다시 신경병이 발작했다. 그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호수가에 달려가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쫙 벌리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 세상에 그래 참사랑이 없단 말인가! 하느님이여, 태호님이여, 말씀이나 해다오. 춘희는 무슨 미친 고기를 먹어 돈 밖에 모르는가!" 문걸은 도리머리를 홰홰 젓다가도 가슴을 탕탕 쳤다. 미친듯이 고함지르며 호수가를 돌아다녔다.  유람객들과 행인들은 모두 정신병자라고 슬슬 피해 달아났다. 문걸은 낯선 녀성한테 달려가 마구 포옹하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춘희, 그대는 내 참사랑이오. 오, 그대 없이 난 못 살아. 그대는 내 구명은인이야. 내 몸에는 그대의 피가 흐르고 있단 말이오.내 가슴에는 그대의 뜨거운 사랑이 흐르고 있단 말이오." "미친 놈!" 한족녀성은 가래짝 같은 손을 들어 문걸의 뺨을 찰싹 갈겼다.  남편인지 뛰여와 문걸을 주먹으로 치고 발길로 걷어찼다.  한족사내들은 우르르 모여들어 문걸을 치고 박으며 물매를 안겼다. 지독한 한 사내는 발길로 문걸의 사타구니를 마구 걷어찼다. 가은(마끼)과 복화(나나)가 호수가를 산보하다가 문걸이 물매를 맞는 것을 발견했다. "손을 떼라!" 가은과 복화가 뛰여와 무리승냥이 같은 년놈들을 뜯어말렸다.그제야 승풀이를 다 한 년놈들은 침을 퉤, 퉤 뱉으며 스리슬쩍 꼬리를 감춰버렸다. 문걸은 얻어맞아 얼굴이 피투성이 돼가지고도 의연희 델델 구을며 고함쳤다. "춘희, 보았지? 나를 죽게 놔두오. 그대와 살지 못할 바에야 살아 뭘 해?" 춘희도 산보하러 나왔다가 그 처참한 정경을 보았다. "리선생님,이게 웬 일입니까? 어서 집에 돌아갑시다." 문걸은 머리를 들어 춘희를 보고서도 알아보지 못하고 손으로 코피를 쓱 씃으며 중얼거렸다. "넌 누구냐? 뭐? 집? 내게 집이 다 있소?" 춘희와 가은이는 문걸을 부축해 일으켜 호수가에 데리고 가서 코피 줄줄 흐르는 얼굴을 호수 물에 씼고 닦아주었다. 저쪽에서 군철과 리화가 휴일이여서 어쩌다가 애들을 데리고 산보를 나왔다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아버지! 이게 웬 일입니까? 아이구, 아버지!" "아버님, 집으로 돌아갑시다." 문걸은 군철을 흘끔 쳐다보며 허탈하게 허구푼 너털웃음을 웃었다. "허허허. 내게 집이 어데 있어? 사랑도 없는데 무슨 집이 다 있어?" 그는 군철의 목덜미를 틀어쥐고 마구 뒤흔들며 고함쳤다. "네놈들이 우리 조선족들을 업신여기지? 엉?내 홀애비라구 업신여기지? 날 사랑하는 사람 없다고 때렸지?" 문걸은 군철의 머리를 골받이로 떵 들이받았다. 군철은 뒤로 벌렁 엉덩방아를 찧었다. 군철은 제꺽 되일어나 아버지 팔을 붙잡아 부축했다. "아버지, 집에 돌아갑시다." "할아버지!아빠 때리지 말라." "할아버지!울지 말라." 애들도 울면서 문걸의 품에 안기려고 고사리 손을 쳐들며 소리쳤다. 그러나 문걸은 귀여운 손자들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춘희는 그 처참한 정경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문걸을 군철과 리화한테 맡겨놓고 그 자리를 한시바삐 떠나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문걸 때문에 결코 황금몽을 벌릴 수 없었다. 다이로교수에게 당한 성억압과 성착취 대가를 받아내고 싶었다.진짜 이젠 돈에 집착이 갔다. 가은한테 상해에서 아파트를 사 주자면 다이로교수를 더 줴짜내야 했다.  끈질기기도 한 녀자,  박사는 무슨 놈의 박사, 개똥박사야.  황금몽을 꾸는 이 순간만은 춘희는 박사, 의사인 것이 아니라 돈에 미친 수전노 같았다. 춘희는 집착스런 사랑에 미쳐버린 문걸을 상해에 두고 고향으로 훌 날아와 버렸다. 얼마나 홀가분한지 몰랐다. (난 문걸한테 빚진게 없다. 누가 문걸을 보고 나를 사랑하라고 했는가. 모두다 짝사랑이란 걸, 진작 알았어야지. 뭔가? 열댓살이나 어린 나를 넘봐? 일본 류학 박사를 넘 봐?기름개구리 학의 고기를 먹으려는거지. 어림도 없어.) 그녀는 입을 악물었다. 얄팍한 외까풀눈을 무섭게 이상한 빛을 뿜고 있었다. (나도 몰라. 내가 왜 이렇게 돈에 미친 년으로 됐지? 나는 인정도 없는 인간으로 돼버렸는가? 아니야, 난 가은의 어머니야. 가은을 위해선 살인 내놓고는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내 팔자는 개팔자지만 가은이만은 나처럼 사랑도 없고 돈도 없는 빈털털이로 살게 할 순 없어.안돼. 내가 혀를 가로 물지언정 가은이만은 없는게 없이 살게 해야지.) 그러나 모든 일이 탐욕스런 춘희 생각대로 그리 쉽게 되겠는가? 그녀가 고향 병원에 돌아오자 병원 류원장이 개별담화를 하자고 원장실에 불러갔다. 류원장은 몇천명 의료일군을 쥐락펴락하는 관료인지라 사무실도 백여평방메터에 크고 작은 3개 방을 혼자 차지하고 있었다. 중간에는 자그마한 회의실이 있고 안방은 원장어른이 은밀히 담화를 하는 원장 사무실이다. 날마다 무슨 은밀히 비밀담화를 하는지 대낮에도 항상 사무실 창문의 카텐을 꽁꽁 쳐놓고 어둑시그레한 사무실에서 일을 보았다.사무실 젤 안방에는 금빛이 번쩍이는 구리침대가 놓여 있었다. 말로는 원장어른이 피곤하게 일 보고 낮잠을 자는 침대라는가. (두터운 카텐을 친 어둑시그레한  거기서 무슨 짓을 하는지 누가 알아?)  춘희는 말수 적은 류원장이 다이로교수보다 퍽 두려웠다. (무슨 일로 날 찾을가? 혹시 황선희를 제명하고 그 자리에 날 앉히려는 건가? 황선희는 부패분자 정호를 도와 출국수속을 해주고 도망치게 하더니 꼴 좋게 됐다. 병원에서 제명 받지 않았어?흥, 일본 류학 박사가 뭔가? 군철이네 회사 자그마한 위생소에 가서 원장이면 뭘 해? 지금은 코로나 예방하는 백신이 시급히 수요되긴 하지만,  군철이네 회사는 반도체회사인데 백신을 생산할 수 있겠는가? 백신을 제조하긴 의학기술력량이 판 부족이고.뭐? 미국 상업경제간첩 애리싸가 제공한 의료정보에 의해 자체로 백신을 생산해?될가?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황선희 호박 쓰고 돼지 굴에 들어갔지.의학박사가 개똥박사 된 꼴이지.흥.) 춘희는 자기가 군철의 초빙에 응하지 않은 것을 잘했다고 스스로 자부했다. 그녀는 류원장이 불시에 부르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원장실 문을 조용히 두드렸다. "들어오게나." 안에서 류원장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춘희가 문을 스르르 열고 들어가니 회의실 건너 원장사무실 어간 문이 열려 있고 메주덩이 같은, 박바가지머리가 창문에 비낀 해빛에 드러났다. 류원장은 춘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직이, 그러나 위엄있게 자리를 권했다. "앉게나." 류원장은 조선말도 꽤나 잘했다. 그는 뭔가 들고 보다가 놓으며 한참이나 맞은켠 의자에 옹송그리고 앉은 춘희를 노려보았다. 공포에 찬 기류가 이새끼마냥 엄습해왔다. 춘희는 바늘방석에 앉은듯 안절부절, 조마조마한 기분이였다. 그때 반공중에 독사가 서린 말꼬리가 그녀의 목을 휘감아 디룽디룽 달아맸다. "너도 사람이냐?!배은망덕한 년!" 깜짝 놀랄 지경. (아니, 갑자기 무슨 욕지거릴?) 춘희는 흠칠 놀라며 다소곳이 숙였던 머리를 천천히 들어 류원장이란 자를 쳐다보았다. "류원장님, 무슨 일이 있었는가요?" "몰라 물어?!" 류원장은 검은 테안경을 벗어 박대가리 위에 쳐들고 가슴츠레한 눈길로 춘희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춘희는 그런 것 쯤에 기 죽을 녀자가 아니였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서 툭 까놓고 말하십시오." 류원장은 잔등을 의자에 붙이더니 춘희를 쏘아보기만 했다. 춘희도 류원장의 유들유들한 볼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마주 쏘아보았다. (네놈이 날 일본에 류학보내놓고 얻어먹지 못해 이 지랄 해? 황선희 처녀를 잡아먹은게 네 애비 아닌가? 너도 날 박사로 만들어놓고… 어림도 없어. 개꿈을 꾸지도 말어. 흥!) 박대가리는 그저 닥쳐선 안되겠든지 언성을 좀 낮췄다. "김춘희, 뭐요? 병원에서 동무를 일본에까지 류학 보내서 박사까지 만들어줬으면 병원 일을 잘해야지. 뭐요? 간다 온단 말도 안하고 일본에 남자친구까지 데리고 가서 반년씩이나 엎어져 있는가? 병원에 미안하지 않는가?"    그제야 춘희도 머리를 숙이며 반성했다. "미안합니다. 딸을 오랜만에 만나서 제때에 오지 못해 죄송합니다. 일본 가 있은 반년 로임을 일전한푼 받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따위 반성하는 몇마디 말에 훌 고삐를 놓아줄 류원장어른이 아니였다. "흥! 반년 로임을 받지 않는 걸로 끝날 거 같은가?" 춘희는 머리를 들고 류원장의 퉁사발눈을 쳐다보았다. 그 격노한 퉁사발눈에 들어가 사연을 주어들고 나올 것처럼 오래도록 퉁사발눈을 들여다보았다. "네? 또 무슨 일 있습니까?" 류원장은 천천히 일어나 뒷짐을 짓고 뚜벅뚜벅 거닐었다. "알면서 물어? 춘희 일본에 가 일 치는 바람에 우리 병원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쳤는지 아는가?" "무슨 일입니까? 툭 까놓고 씨원히 말하시오." 류원장은 걸음을 뚝 멈추고 의자에 돌아와 앉았다. "안되겠소. 춘희를 우리 병원에 뒀다간 무슨 국제영향을 끼치겠는지 모르겠소. 병원 당위에서는 무조직, 무기률인 김춘희를 우리 병원에서 제명하기로 했어.황선희와 김춘희 없으면 우리 병원 돌아가지 못할 거 같아? 숱한 박사들이 주임을 하자고 줄을 섰어.흥!" "네?" 춘희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콧방귀를 뀌는 류원장의 두툼한 입술을 쏘아보았다. "병원 신용과 위신을 팔아먹은 자는 가차없이 잘라버릴 거야.량심없는 자에겐 사정없는 법." 류원장은 춘희를 똑똑히 들어두라고 한마디 덧붙여 내뱉었다. 시꺼먼 구멍에서 구렁이가 튕겨나왔다. 구렁이는  춘희 목을 꽉 얽동여매 말도 나가지 못하게 억눌러버렸다. 공포가 꼬리치며 침침하게 춘희 량미간을 조여버렸다. 춘희는 김빠진 공처럼 쏘파에 무너져버렸다. 황금몽에 사랑탑이 무너졌다.  박사 토성 밑도 꺼져버린다. 발 밑이 쿵 꺼져버린다. 눈 앞이 아찔해나며 먹칠한듯한 심연으로 무너져 내려간다…
306    대하소설 졸혼 제5권 (69) 김장혁 댓글:  조회:1223  추천:0  2023-03-21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79. 무인도의 해적들 한참 쾌속정을 몰고 바다를 달리다가 저 멀리 섬 같은 것이 희미하게 시야에 안겨왔다. “일단 섬에 오르고 봅세.” 철석은 정호를 돌아보더니 쾌속정을 그 섬으로 몰았다.  섬에 점점 다가가면서 보니 그 섬은 녀인섬보다 그리 크지 않았으나 열대우림은 더 무성했다. 기괴하게 사람의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정호랑은 오히려 그것이 더 좋았다. 허허바다에서 원래는 사람을 만나면 기뻐해야 할 대신 사람이 더 무섭고 싫었던 것이다. 어떤 때에는 야수들보다 탐욕스럽고 색마 같은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였다. 피뜩 보니 코끼리 코 모양 벼랑이 서 있는 그 섬은 확실히 무인도 같았다.  철석은 최고운전기술을 다 발휘해 용케도 부두도 없는 해변가 들쑥날쑥한 바위 틈새에 쾌속정 머리를 들이댔다. “어서 내리우.” 정호는 허수아비처럼 돼버린 혜영을 부축해 바위에 올랐다. 혜영은 정호를 하루속히 잡아가지 못하는 것이 원쑤 돼 속으로 칼을 가는데 정호는 혜영을 인간적으로 착한 마음으로 거들었다. (속담에도 웃는 낯에 침을 뱉지 않는다고, 아무리 한뉘평생 사람을 잡아가두는 저승사자질 했다고 해도 사경에 처했을 때 잘 대해주면 봐주겠지.) 그것이 정호의 기대이자 막연한 바람이고 미련이였다. 철석은 쾌속정의 동아줄을 룡두처럼 생긴 바위에 단단히 매놓았다. 쾌속정만 파도에 밀려가면 망망한 바다 가운데서 오도 가도 못하고 갇히게 되고 말 것이 아닌가.  젤 앞에서 정호는 시퍼런 칼을 들고 수풀을 헤치면서 동정을 살피며 앞으로 나가고 뒤에서 철석이 량손에 칼과 미희 손을 잡고 뒤따랐다.  철석은 고의로 뒤에서 느릿느릿 걷더니 미희 손을 꽉 잡으며 뭔가 암시했다. “왜?” 미희가 주춤 멈춰서 오빠를 쳐다보았다. 철석은 식지를 입에 가져다대였다. “쉿-” 정호와 혜영은 저 앞에서 걸어나가고 있었다. 미희는 의아해 오빠를 곱게 흘겨보았다.  철석은 미희의 귀가에 입을 가져다대고 나직이 말했다. “우리 저 놈들을 따라가 개고생할게 있느냐? 어선을 빼앗으면 한국으로 돌아가자.” “안돼. 난 저 사내 여자야.” “저 놈 뭘 보고 따라다녀? 이젠 알거지 됐어. 초상집 개야.” 미희는 눈을 흘겼다. “오빠, 량심 있어? 숱한 금은장시구 얻어가질 땐 어쩌고?” 철석은 미희 손을 훌 놓고 손을 들어 수염을 가로 쓱 닦았다. “그때는 그때고." 철석은 나직이 말했다. "지금 그 금은붙이도 다 어선에 두고 왔잖아? 녀인도 년들이 다 가져갔을 거야. 저놈한테선 이젠 얻어가질게 쥐 뿔도 없어. 괜히 도주범과 공범이 될게 있어?” 철석은 미희 손을 잡고 마지못해 정호네 그쪽으로 걸어갔다.  집채 같은 파도가 해변가 바위돌을 처절썩 갈기며 하얀 물보라를 일구며 공포를 더해주었다. 무시무시한 무인도는 그야말로 염라전처럼 뒤숭숭하게 굴었다. 정호는 철석이 오누이가 다른 궁리하는 것도 모르고 앞으로 걸어나가다가 주춤 멈춰섰다. (저게 뭔가?) 한무리 사람들이 녀성 대여섯을 끌고 섬에 오르고 있지 않겠는가? 정호가 철석을 돌아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해적무리 아닌가?” 철석과 미히도 어둠이 사지를 펴는 해변가 들쑹날쑹한 바위돌 틈으로 얼핏얼핏 보이는 총까지 멘 사내들을 보고 공포에 떨었다. 녀성들은 흐느끼며 해적들에게 끌려 섬에 올라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 철석은 혜영과 미희를 걱정스레 뒤돌아보았다. 정호가 무릎을 탁 쳤다. “위기가 기회일 수도 있어.” “뭔데?” “저 놈들 배를 타고 어선 쪽으로 가자.” 그러자 철석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 맞아. 배를 빼앗자.” 미희가 손사래를 쳤다. “오빠네 둘이 어더렇게 저 숱한 해적들을 대적해?” “저 놈들 몰래 가만히 해적들 배에 오르기만 하면 돼.” 정호는 철석을 보고 혜영과 미희를 지키라고 하고  해적들이 사라진 수림 속으로 슬금슬금 뒤따라갔다. 혜영은 흰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더니 정호를 말렸다. "어쩌자고 그러오? 괜히 해적들한테 당하지 못해." 정호는 주춤 멈춰서 되돌아보며 말했다. "저놈들이 소굴이 어데 있는지 알아둬야지. 해지면 파악있게 무인도를 벗어날 수 있어." 철석은 두 손 들어 동감했다. "맞아, 가 보라구." 해변가에서 해적들은 뭐라고 쑤근거리더니 협곡 속으로 스며 들었다. 두 놈이 총까지 메고 협곡을 지켰다. 정호는 나무가지와 칡넝쿨을 잡고 벼랑 위로 한걸음 한걸음 나가면서 토비들의 눈을 피해 미행하였다. 한참 뒤따라가니 협곡 막바지 수풀 속에 자연 석굴이 드러났다. 해적들은 석굴에 독사들처럼 동굴에 흘러들어갔다. 정호는 수풀을 헤치며 도적고양이처럼 슬금슬금 동굴 어귀까지 접근했다.해적들은 어둠침침한 석굴에 들어가 숱한 보짐을 벗어 동굴 창고에 무져놓았다. 정호는 석굴이 너무 어두워 해적놈들이 뭘 하는지 똑똑히 볼 수는 없었다. 다만 공포의 석굴 어둠 속에서 녀인들의 아우성소리, 비명소리가 들릴뿐이였다.보나마나 해적들은 자기들의 전리품인 녀인들을 석굴 안에서 강간하고 있을 것이였다. 잠시후 녀인들의 비명소리에 점차 흐느낌소리로, 신음소리로 변해 들려왔다. (해적들은 강간하는데 정신이 팔렸을 거야.이 기회에 석굴에 들어가봐야지.) 정호는 석굴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펴보았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고 수풀이 바다바람에 쏴쏴- 소리치며 몸부림칠 뿐이였다. 정호는 시퍼런 칼을 쳐들도 슬그머니 석굴 어귀 들쑹날쑹한 바위 틈에 숨어들어 석굴 안을 들여다보았다. 녀인들의 흐느낌 소리를 들어봐선 석굴은 그리 깊지 않은 것 같았다. 정호는 슬금슬금 석굴에 들어갔다. 한 굽이 돌아들어가자 석유등불을 밝힌 좀 넓은 석굴 안에서 해적들은 한창 집단강간하고 있었다. 녀성들은 널판구들바닥에 쭉 들어누워 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녀인들은 사지가 꽁꽁 묶여 옴짝짝달싹 못하고 울며불며 당하고 있었다.  "아!" 갑자기 석굴 어귀에서 보초를 서던 해적이 정호를 발견하고 놀라 꽥 비명소리를 질렀다. 정호는 황급히 시퍼런 칼을 쳐들어 위협하였다.     보초병은 비명소리치며 석굴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도적이야!" 한창 재미를 보던 해적들은 황급히 바지가랭이를 춰입고 이쪽으로 달려나왔다. 해적우두머리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슨 일이야?" 보초놈은 손가락으로 석굴 바깥을 가리켰다. "두령님,웬 놈이 석굴 어귀에 나타냈댔습니다." "그래?" 우두머리는 권총을 들고 굴 어귀에 슬금슬금 다가갔다. 보초병도 총을 들고 뒤따랐다.   정호는 바람결처럼 아름드리고목 뒤에 숨어버렸다. 우두머리는 벽에 붙어 굴어귀에까지 가서 바깥 동정을 살폈다. 그러나 파도소리와 해풍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다만 해풍에 바위에 맞절을 하는 야자나무 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두머리는 보초놈한테서 자초지종을 들은 후 너털웃음을 웃더니 보초병의 어깨를 다독였다. "이보게.당장 붙잡아오지 못해?” “옛!” “ 괜히 내 흥을 깨뜨리면서.흥!" 그는 가래짝 같은 손바닥으로 보초병의 어깨를 툭 쳤다. "아직도 가잖고 꾸물거려?!" "옛!" 정호는 그 놈들이 뭐라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저놈들이 강간하는 틈을 타 무인도를 벗어나야 해.) 그때 갑자기 엔징소리 들리더니 뒤이어 저쪽에서 쾌속정이 씽 달려 바다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야? 쾌속정 아닌가?" 꽈르릉! 꽝! 꽝! 먹장구름 속에서 번개가 뻘건 혀를 뻗쳐 무인도를 강타하며 핥아갔다. 뒤이어 대살 같은 폭우가 쏟아졌다. 정호는 황급히 칼을 들고 부랴부랴 폭우가 쏟아지는 어둠침침한 수림을 헤가르며 혜영이랑 두고 온 수림으로 되돌아갔다. "이게 뭐야?" 수림에는 대살처럼 창창 쏟아지는 폭우 속에 철석과 미희는 꼬리도 보이지 않고 혜영이 상반신이 벌거숭이 된 채 나무에 꽁꽁 묶여 있지 않겠는가! 사실, 철석은 정호가 해적무리를 뒤쫓아간 후 칼로 혜영이 다 해진 적삼을 벗겨내 오리오리 베내서 바줄을 깠다. 그 바줄로 미희와 합세해 혜영을 꽁꽁 결박지워 나무에 묶어놓고 도망쳤던  것이다.  혜영은 정호를 보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뭐라고 코소리를 쳤다. 그녀는 입이 천에 틀어막혀서 말하지 못하고 코방귀만 꼈다. 정호는 황급히 칼로 혜영의 결박을 잘라 풀어주고 나서 자기 적삼을 벗어 혜영에게 입으라고 건넸다. "철석이랑 어데 갔소?" "그 년놈들이 날 묶어놓고 쾌속정을 타고 혼자 도망쳤소.주고 받는 말을 들어보니 아마 녀인섬에 가는 것 같았소. 뭐, 어선을 몰고 한국에 돌아갈 모양입데. 미희 그 개쌍년, 변강쇠 아까운지 발버둥질치며 울며 불며 기다리자 합데. 건데 철석이 미희를 마구 끌고 갔소." "그랬구나. 개새끼,량심없는 개놈새끼!제명에 썩어지지 못할 거야!" 정호는 눈앞이 캄캄해났다. 그는 해변가를 두루 살피다가 질겁해 바들바들 떠는 혜영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겁나 마오. 내가 살아있는 한 혜영을 꼭 지켜낼 거요.” “고맙소. 그 은공 잊지 않을게.” 혜영은 살고팠다. “빨리 이 무인도를 떠나야 하오." "무슨 수로?" 혜영은 반신반의했다. "해적놈들의 배를 몰고 달아나야지." 땅! 땅! 갑자기 폭우 쏟아지는 열대우림을 찢으며 총소리 울렸다. 뒤이어 여기저기서 검은 그림자들이 수풀 속에서 뛰쳐나오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크! 빨리 뛰자!” 정호는 혜영의 손을 잡고 선불 맞은 노루처럼 수풀 속으로 뛰여들어갔다.   그런데 수풀 속에서 시꺼먼 총구가 그의 가슴을 찔렀다. 땅! “앗!” 뒤에서 혜영이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부둥켜안고 쓰러졌다. 뒤에서 해적이 혜영을 쏴눕혔다. 정호는 허리를 굽히며 앞에선 검은 그림자한테 덮쳐들어 총구를 하늘공중에 쳐들었다. 땅! 땅! 땅! 야무진 련발총소리와 함께 총구에서 하늘로 불찌가 날아올라갔다.  정호는 검은 그림자를 어깨에 떠메 해변가 절벽 아래에 내리메쳤다. “악!” 비명소리와 함께 해적놈은 파도 속으로 내리꽂혀 버렸다.  정호는 몸을 홱 돌려 자세를 낮추며 아름드리나무를 껴안고 돌면서 연신 검은 그림자를 차 눕혔다. 그는 칼을 휘두르며 갈범처럼 싸우면서도 혜영을 찾느라고 눈길을 날렸다.  저쪽에서 혜영의 아우성소리 애처롭게 들렸다. “정호! 제발 날 버리지 말고 살려주오!” 정호가 대살처럼 창창 쏟아지는 폭우를 무릅쓰고 어둠컴컴한 수림을 살폈다. 꽈르릉, 꽝! 꽝! 번개불을 빌어 몇몇 해적들한테 결박돼 끌려가는 혜영을 볼 수 있었다. “혜영이!” 정호는  땅바닥에 떨어진 총을 주어들고 생사를 가릴 새 없이 쏘아대며 해적들에게 덮쳐갔다. 몇몇 해적들은 맹호처럼 덮쳐드는 정호 기세에 눌려 헛총질을 해대며 혜영을 둘러메고 수림 속으로 꼬리빳빳해 도망쳤다. 그러나 몇몇 해적들은 수림에서 총질하면서 대들었다. 정호는 혜영을 구하려고 필마단기로 결사적으로 해적들에게 뎦쳐들었다. 그러나 수림 여기저기서 총소리를 듣고 점점 더 많은 어두운 그림자들이 꽥꽥 고함치며 덮쳐왔다. 설상가상으로 아무리 격발기를 당겨봐도 절컥거릴뿐 탄알마저 다 떨어졌다.  “살려달라! 구해달라!” 저쪽에서 혜영이 단말마적으로 고함쳤다. 정호는 하는 수 없이 혜영을 구하지 못한 채 해변가 절벽에서 바다에 풍덩 뛰여들었다…   
305    대하소설 졸혼 제5권 (68) 김장혁 댓글:  조회:1241  추천:0  2023-03-20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78. 탈출 검푸른 파도가 무섭게 휘파람을 불며 들쓱날쑥한 바위를 들부셔놓고는 병 주고 약 주듯이 넘실거리면서 애무한다. 갈매기들이 집채 같은 파도 위를 날아예며 날개로 자유로운 서정시를 쓴다. 정호와 철석은 쇠사슬에 묶여 두 팔을 뒤짐진 채 경호녀들한테 끌리워 다녔다. 철석은 미희가 식인종 녀악마들한테 살해된 후 우울해졌다. 그는 어떻게 하면 식인녀악마들한테 복수의 칼을 박아주겠는가고 이를 쁙쁙 갈았다. 녀우두머리는 철석의 불찌 티는 눈길을 보고 속심을 진작 다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건장하고 날랜 경호녀를 뽑아 특별히 정호와 철석을 쇠사슬로 두 팔을 뒤짐 지워 묶은 채 끌고 다니게 했다. 녀우두머리는 정호와 철석을 륜번으로 데리고 놀았다. 워낙 성욕이 강한 녀우두머리는 어떤 때는 정호와 철석을 동시에 짐승처럼 유린했다.  성자유를 그렇게 주장하던 변강쇠 정호도 이젠 성노예노릇을 하기든 진절머리났다. 색마 정호는 처음에는 워낙 변강쇠여서 녀우두머리의 저돌적인 섹스를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서로의 만족을 느끼면서 음양조화가 생기면서 어쩐지 서로 호감이 갔다. 녀우두머리는 심지어 어떤 때는 정호 두 팔의 쇠사슬을 풀고 즐기기도 했다. 물론 경호녀들이 대창과 시퍼런 칼을 들고 한시도 녀우두머리 옆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 녀우두머리는 이날도 정호의 쇠사슬을 풀어주고 침대에 들어누워 살진 눈시울을 살풋이 내리깔더니 살뜰한 애무를 기다렸다.  “좋은 기회야. 개쌍년들을 쳐눕히고 도망치자.” 철석은 정호한테 중얼거렸다. “안돼.” 정호는 손으로 녀우두머리 축 늘어진 젖가슴을 슬슬 매만져주면서 도리머리를 저었다. “산굴을 벗어나기 전에 란도질 당할 거야.” “요 몇이야 내 혼자라도 해치울 수 있어.” 정호는 녀우두머리 검누런 젖가슴을 혀로 핥아주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산굴 밖의 야만인들은 소라나팔 소리만 들으면 순식간에 우릴 포위하고 란도질 할 거야.” 녀우두머리는 우멍한 눈을 번쩍 떴다. “이 놈들이 뭐라고 지껄여?” 경호녀들이 시퍼런 칼을 정호 목에 들이댔다. “아니, 도정신해 애무하지 못할가?!” 정호는 뭐라는지 야만녀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분명 그들이 대화한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라는 걸 눈치챘다. 녀우두머리는 황급히 신음소리하면서 하신을 요리곰실 조리곰실 탈았다. 정호는 바삐 녀우두머리의 바빠하는 데부터 막아버렸다. 녀우두머리는 신음소리를 련발하더니 거머리 매달린 것 같은 검푸르고 두툼한 입술을 푸들푸들 떨더니 입을 쫙 벌렸다. 턱마저 점점 쳐들었다. 한참 란장판을 이룬 후 녀우두머리의 신음소리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녀우두머리는 만족됐는 모양이다. 저 꼴을 보소. 정호의 목을 꼭 끌어안고 헤쭉 웃으며 이마에 키스까지 뽁 해주었다.  정호는 메스꺼워 볼에 묻은 걸죽한 침을 손등으로 쓱 씃었다.  녀우두머리가 뒤를 둘러보며 뭐라고 호령했다. 경호녀들은 와락 달려들어 정호 두 손을 뒤로 탈고 쇠사슬로 묶어버리고 열쇠를 절컥 채웠다. 녀우두머리는 정호와 철석을 끌고 헤벌쭉거리면서 산굴에서 나갔다. 경호녀들은 시퍼런 칼과 예리한 대창을 들고 성노예 둘을 끌고 해변가로 나갔다. 검푸른 파도가 그들을 집어 삼킬 상 하면서 덮쳐들었다. 어선과 갑판에 묶어놓았던 쾌속정이 파도에 몸부림쳤다. 언제 야만녀들이 어선 위의 쾌속정을 바다에 부리워놓고 동아줄로 어선에 달아매 놓았다. 어선에는 대창과 시퍼런 칼을 들고 왔다 갔다하면서 보초를 서는 몇몇 야만녀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노호하며 덮쳐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녀우두머리는 오히려 두 팔을 쫙 벌리고 뭐라고 고함을 빽 쳤다. 경호녀들도 발로 꺼먼 바위돌을 탕탕 구르며 녀우두머리를 따라 고함쳤다. 그 틈에 정호는 철석을 넌지시 건너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도망치자.” 철석은 머리를 끄덕이며 쇠사슬을 거머쥐며 옆의 경호녀를 노려보았다. 철석의 근육이 울뚝불뚝한 두 팔에서 룡이 꿈틀거렸다. 정호가 녀우두머리를 흘끔흘끔 곁눈질하며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였다. 그는 한 발길에 녀우두머리를 바다에 차넣을 챤스를 노렸다.  그때 녀우두머리가 쾌속정을 가리키면서 뭐라고 지껄였다. 경호녀들이 정호의 쇠사슬을 풀어주더니 쾌속정으로 떠밀었다.   녀우두머리와 경호녀들도 쾌속정에 올라탔다. 녀우두머리는 정호를 보고 앞을 가리키며 쾌속정을 모는 손시늉을 했다. 쾌속정을 타고 놀 예산인 것 같았다. 정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잘 됐어. 하느님이 우릴 살려주려는구나.” 그러나 그는 쾌속정을 몰줄은 몰랐다. 그는 녀우두머리를 돌아보고 철석을 가리키면서 몰게 하라고 손시늉했다.  녀우두머리는 정호를 배에서 밀어내고 철석을 쾌속정에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아마 둘다 쾌속정에 태우면 신변안전이 위험하다고 여긴 것 같았다. 정호는 고의로 늦장을 부리면서 철석이 쾌속정에 올라왔는데도 내리지 않고 서성거리며 기회를 노렸다.  철석은 쇠사슬을 풀자 발동을 걸고 쾌속정을 씽- 바다로 몰았다.  녀우두머리가 뭐라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철석은 쾌속정 키를 홱 탈았다.  “앗!” 경호녀들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대창으로 하늘을 그으며 비틀거렸다. 정호는 맹호처럼 덮쳐나가며 경호녀들을 콱 떠밀었다. 그는 연신 뛰여오르며 원앙새발길을 날렸다. 몇몇 경호녀들이 바다물에 풍덩풍덩 떨어졌다. 그러나 몇몇 경호녀들은 대창과 시퍼런 칼을 휘두르며 우르르 정호한테 달려들었다. 정호는 살생하고 싶지 않아 경호녀를 차넘겨 바다에 처넣었다. 그러나 경호녀들은 칼을 입에 물고 헤염쳐 쾌속정 배전을 부여잡고 아득바득 쾌속정에 기여오르려고 했다. 정호는 한 경호녀 입에서 시퍼런 칼을 빼앗아내 무섭게 휘둘렸다. 그러나 항상 칼등으로 팔을 쳐 위협만 했다. 녀우두머리는 황급히 시퍼런 칼을 철석의 목에 댔다. 철석은 몸을 옆으로 탈며 홱 피했다. 그는 녀악마 칼을 빼앗아 되 그년의 목에 댔다. 정호도 무서운 호랑이처럼 고함치며 나머지 경호녀들을 발길질 주먹질해 바다에 마구 처넣었다. 정호가 마지막 경호녀가 휘두르는 대창을 긴 칼로 쳐올리고 칼등으로 대창을 쥔 팔을 탁 쳤다. 경호녀도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대창으로 칼을 걷어올리고 몸을 홱 피했다. 뒤이어 허망 공중에 날아올랐다가 내려오며 날창으로 찔렀다. 정호는 대창에 어깨쭉지 찔려 칼을 떨어뜨렸다. 그때 철석이 꽥 고함치며 녀우두머리 대갈통 위에 시퍼런 칼을 쳐들었다. 그 찰나, 녀우두머리가 뭐라고 꽥 고함쳤다.  그 호령소리에 경호녀는 대창으로 정호 가슴팍을 찌르려다가 주춤 멈춰섰다. 그 순간, 정호는 쓰러진 채 발길을 날려 녀경호의 종아리를 걷어차 딴죽을 걸었다. 경호녀는 맥없이 대창으로 배전을 찌르며 쿵 쓰러졌다. 정호는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날아내리며 발길로 경호녀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앗!” 경호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경호녀는 그저 야만녀 아니였다. 건장한 경호녀는 숨만은 붙어 있어 가슴을 할딱거렸다. 그러나 숨이 져가는지 펀히 뜬 깜장눈은 시퍼런 파도위에 날아예는 감매기들을 바라보는가. 깜장눈은 깜빡하지도 못하고 하늘 한 곳만 쳐다본다. “이년 뒈져라!' 정호가 무쇠주먹으로 한대 더 안기자고 할 때였다. “그만 둬!” 철석이 손사래쳤다. “우린 살인죄를 질 필요까진 없잖아? 녀인도를 벗어났는데 죽이까지 할 필요없어.” 정호는 머리를 끄덕이며 손바닥을 탁탁 털었다. 그때 화살이 쓩- 쓩- 날아왔다. 녀인도 해변가에 순식간에 소라나팔 소리가 진동쳤다. 숱한 야만녀들이 먹장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년들은 쾌속정에서 우두머리와 경호녀가 당하는 걸 보면서도 쾌속정에 접근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며 고함쳤다.  어떤 년들은 시퍼런 칼을 물고 바다물에 뛰어들어 헤염쳐 덮쳐왔다. 어떤 년들은 꽥꽥 고함치며 황급히 어깨에서 활을 벗겨들고 쾌속정에 화살을 날렸다.  “아니, 저게 미희 아닌가!” 철석은 황급히 쾌속정을 몰고 도망치려다가 그만두고 해변가를 가리켰다.  정호가 해변가를 살펴보니 두 팔을 결박당한 미희와 최혜영(은영)이 야만녀무리 속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지 않겠는가. 들쑥날쑥한 바위돌 위에 야만녀들이 미희와 머리 싯허연 혜영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쟤들은 전번에 칼탕맞고 잘못되지 않았던가?” 정호는 의아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뭔 소리야?” 정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환각인가? 아니, 악몽인가.” 철석은 쾌속정 핸들을 놓고 벌떡 일어났다. 그는 목이 터지게 고함쳤다. “미희야!” 미희도 고함쳤다. “오빠! 살려줘!” 정호는 철석을 보고 말했다. “빨리 쾌속정을 몰아! 어두운 밤을 타서 쟤들을 구하자.” “안돼. 당장 구해야 돼.”  철석은 녀우두머리를 정호한테 넘겨주고 쾌속정을 씽 몰고 해안가로 달려갔다.  “지금 어떻게 구한다고 그래?” “이 우두머리년하구 미희를 바꾸자.” 정호도 우두머리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망설였다. “미희만 구하자.” “왜? 너거 진짜 의리심이 없구나. 제 고향 여자도 구하지 않을래?” “저년은 검사국장이야. 저 년을 구했다가 또 날 체포당하자고? 저년 살아나면 또 날 체호해가자고 악을 딱딱 쓸 거야.” 그러나 철석은 동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렇긴 해도 어찌 쟤들을 식인악마들한테 두고 가겠는가?” 쾌속정은 하얀 물결꼬리를 달고 파도 세찬 바다로 나는듯이 달려갔다. 녀우두머리는 우쭐렁거리던 평소와는 달리 질겁한 우멍한 눈으로 정호를 쳐다보며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다.  정호는 시퍼런 칼을 쳐들고 희죽이 웃었다. “네년도 오늘 같은 날이 있구나. 허나 네년은 아직 쓸모 있어. 변강쇠는 무인도에서 너 같은 못난 옥녀가 필요해.” 철석은 칼을 내리우며 손으로 녀우두머리 흙빛이 된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죽이진 않을게.” 정호도 마지못해 혜영을 구하기로 생각을 고쳤다. (저년을 사경에서 구해주면 혹시 날 놔주겠는지도 몰라.) 그는 녀우두머리를 보고 해안가에 결박된 채 서 있는 미희와 혜영을 가리키면서 바꾸자는 손시늉을 했다. 녀우두머리 우멍한 눈에서 한가닥 삶의 의욕과 희망의 빛줄기가 어른거렸다. 그녀는 머리를 끄덕였다.  해변가에 이르자 정호는 녀우두머리 보고 식지와 중지를 펴보이더니 미희와 혜영을 가리키며  바꾸는 손시늉을 했다. 녀우두머리가 쾌속정에서 일어나 뭐라고 고함쳤다.  그때 쾌속정에 누워 있던 경호녀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일어나 앉았다.  해변가 야만녀들은 자기네 우두머리와 경호녀 우두머리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혜영과 미희의 결박을 풀어주고 바다물에 떠밀며 쾌속정쪽으로 가라고 손시늉했다. “미희야! 빨리 헤염쳐 오라!” “최검사, 빨리 오오!” 혜영과 미희는 바다물에 풍덩 뛰여들어 이쪽으로 죽기내기로 혜염쳤다. 혜영은 평소에 시간만 나지면 대학 수영장에 가서 헤염치는 걸 배웠었다. 하여 집채 같은 파도가 아무리 사나워도 물고기처럼 헤염쳤다. 풍덩! 철석은 바다물에 뛰여들어 미희한테로 혜염쳐갔다. 어찌나 혜염을 잘 치는지 바다물을 꿰지르며 헤여가는 한마리 상어 같았다. 혜영은 배전에 떡 서 있는 정호를 떠 볼 양으로 소리쳤다. “정호, 최국장 오빠, 어서 날 구해주오. 난 헤염칠줄 잘 몰라.” “저승사자 같은게. 누굴 속여? 수영선수 돼가지고.” “아냐, 난 맥이 다 바졌어.” “어떤 때는 죽이지 못해 그러더니. 이런 땐 최국장이야!” 정호는 생각 같아선 혜영을 바다물에 빠져죽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멀리 이국 타향 바다에서 차마 한 고향 혜영을 죽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음험하기로 이를 데 없는 정호도 이때만은 웬 일인지 착한 인간성과 동정심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기다려.”  정호는 녀우두머리의 결박을 풀어주고 바다물에 뛰여들라고 손시늉했다. 녀우두머리는 그간 변강쇠의 저돌적인 성애에 정이 들었는지 가래짝 같은 흑황색손바닥을 쳐들어 정호 볼을 살살 매만지다가 바다물에 풍덩 뛰여들었다. 녀경호 우두머리도 기적적으로 기여 일어나 바다 물에 뛰여들었다. 정호는 한 손으로 녀우두머리 배를 받들어주며 해얀가로 헤염쳐갔다. 해변가에 거의 이르러 그는 녀우두머리를 힘껏 들쑥날쑥한 바위 쪽으로 떠밀어주었다. 맞은 켠에서 몇몇 경호녀들이 헤여와 녀우두머리를 마중해 해변가로 혜여갔다. 정호와 철석은 각기 혜영과 미희를 물 속에서 받들고 자맥질하며 쾌속정 쪽으로 혜염쳐갔다.  정호는 물 속에서 물결에 날리는 혜영의 싯허연 머리카락과 다 해진 적삼 밑으로 치마 밑으로 드러난 매마른 젖가슴과 불룩한 똥배를 훔쳐보면서 저도 몰래 도리머리질하며 한탄했다. (은영이 꼴이 뭐야? 이게 성호랑 승호랑 숱한 대학생남자들이 그렇게 따르던  대학가 꽃이란 말인가? 세월은 어쩔 수 없어.) 집채 같은 파도가 그들을 삼켰다가도 왈칵 토해냈다. 그들 넷은 안간힘을 다해 간신히 쾌속정에 올라탔다. “오빠!” “미희야!” 철석과 미희 오누이는 부둥켜안고 왕왕 울었다. “됐다. 야만인들의 손아귀를 벗어났잖아. 이젠 괜찮아.” 미희의 복숭아얼굴이 눈물바다로 돼버렸다. 가지색머리카락이 눈물 젖은 볼에 찰싹 달라붙어버렸다. 혜영은 그저 정호와 철석을 바라볼 뿐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객이 돼서 이런가? 아니, 저승사자 돼 이렇게 지독한 랭혈동물인가? 괜히 구해줬잖아.) 정호는 때를 만났다고 횡설수설하면서 혜영을 골려주었다. “저승사자도 내 도움받아 살아남는 이런 날도 있구만. ㅋㅋ. 오늘 우리 아님 최국장은 야만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야.” 혜영은 입귀로 쓴웃음을 흘려보냈다. “이래도 날 붙잡아가겠어? 구명은인도 모르고. 흥!” 그러나 혜영은 대답 대신 콧방귀를 뀌면서 속으로 윽윽 별렀다. (이제 륙지에 오르기만 해 봐라. 당지 령사관이나 인터폴에 련계해 네놈을 납짝 붙잡아가지 않는가!) 그때 해변가에서 야만녀들의 고함소리가 울렸다. 또다시 화살이 빗발치며 날아와 바다물에 꽂혔다.  정호가 바라보니 녀우두머리가 뭐라고 고함치자 화살이 더 날아오지 않았다. 야만녀들은 대창과 시퍼런 칼을 휘두르며 뭐라고 이쪽에 대고 고함쳤다. 부르릉  철석은 쾌속정 핸들을 잡고 시동을 걸었다. 쾌속정은 시퍼런 파도를 헤가르며 쏜살같이 내달렸다. 정호는 점점 멀어져가는 한 많은 녀인도를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후- 내쉬였다. 그때 철석이 유표를 내려다보고 당황해했다. “휘발유 얼마 남지 않았어. 우리 어디로 가야지? ” “뭐라고?” “어선에도 휘발유 얼마 남지 않았을 거야.” “가만 세우라고.” “왜?” 철석은 정호를 되돌아보며 물었다. “우리 어델 갈가를 잘 타산한 후 몰라고. 괜히 휘발유를 랑비하지 말고.” “알았어. 먹을 것도 하나도 없잖아. 어쩌지?” 쾌속정 엔진이 바다 한가운데서 꺼졌다.  쾌속정은 파도에 몸을 싣고 파도에 떠밀려 망망한 바다에서 표류했다. “저 어선이 아깝다. 아까워. 어선에는 고기그물하구 낚시도 있네. 먹다 남은 물고기랑 랭동고에 있는데…” 철석은 해변가에서 파도에 넘실거리는 어선을 멍해 바라보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기회를 보아 어선을 빼앗아냅세.” “오늘 당장 가서 빼앗아내자구. 야만녀들이 대단하지도 않테이.” 철석의 말에 정호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지금 돌아가선 못 빼앗아. 괜히 놀래우지 말자고. 날이 어두워지면 가만히 쾌속정을 몰고 가서 빼앗아냅세.” 그 말에 철석도 머리를 끄덕였다. “국장질 해먹은 사람 궁냥이 낫긴 나은기여. 이러다가 우리 해적무리 되잖겠나? ㅋㅋㅋ.” 정호는 혜영을 돌아보며 희죽이 웃었다. “살기 위해선 별 수 없지. 최국장님, 안 그래유?” 혜영은 허연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아무 대구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두달 남짓 녀인도에 갇혀 있다나니 머리를 염색하지 못해 파뿌리 같은 흰 머리카락이 염색한 까만 머리카락을 떠이고 돋아나고 있었다. “선녀처럼 아름답던 최국장, 이게 뭐요?” 정호는 혜영을 지껄이며 조소하였다. “저승사자 그렇게 하고 싶어? 왜 한사코 나를 물고 놓지 않소? 날 잡으려고 여기까지 쫓아오더니 이게 무슨 꼴이오? 쳇, 하얀 밥 처먹고 할 일도 없긴 없소.” “닥치지 못할가? 숨이 붙어 있는 한 부패분자 네놈을 놓아줄 거 같아? 염라국에 가도 귀신이 돼 네놈을 붙잡아 심판대에 올리고 말 거야.” “진짜 견강한 검사구만. ㅋㅋ. 진짜 악귀 저승사자라고나 해라.” 정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부지중 혜영을 구한 것이 얼마나 후회되는지 몰라했다.  그는 집채 같은 파도가 사납게 파도치는 망망한 바다를 멍해 바라보면서 못된 궁리를 했다.  (이제라도 바다물에 콱 처넣을가? 끝장내고 싶은데. 어쩐다?” 그러나 그는 인차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무슨 죽을 죄를 졌니? 살인죄는 질 거까진 없어.”   쾌속정은 각기 제 좋은 생각을 하는 네 사람을 싣고 망망한 먼 바다로 정처없이 달려나갔다.
304    대하소설 졸혼 제5권 (67) 김장혁 댓글:  조회:1305  추천:0  2023-03-17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77. 자살   몇달 후 나영은 지갑에 현찰 천만원을 넣어가지고 모 대학병원 부산과로 찾아갔다.  락태를 할가고 간호원한테 돈을 찔러주고 시술에 용하다는 의사를 찾았다. 교수급의사는 외까풀눈을 가슴츠레 뜨고 나영을 여겨보더니 물었다. "중국 동포인가요?" "네." "려권 봅시다." "아니, 려권 잃어버렸어요." "려권도 없어? 그럼 어떻게 병을 봐요? 정상의료 아닌군요," 나영은 옆에 한사람도 없는지라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네, 좀 돈을 팔고 락태하려고 그러는데요." “락태?” 륙십대의사는 안경을 춰올리며 경악했다. “어째? 내 밥통 떼우라고 그래요? 누가 마음대로 락태시켜준대요?” 나영은 지갑에서 500만원 지페 한묶음 꺼내 슬그머니 호주머니에 찔러주었다.   의사는 호주머니에서 돈묶음을 꺼내 보더니 도리머리를 저었다. “안돼요. 요따위로 락태? 어림도 없어.” 나영은 한묶음 더 꺼내 내밀었다. 황금이 흑사심이라고 의사는 돈묶음을 만지작거리더니 머리를 들었다. 그는 훌 일어나 문께로 가서 걸개를 절컥 걸었다. “이렇게 하면 어떨가요? 병원에선 락태 불가능하니깐요. 사사로이 락태시켜줄게요.” “돼요. 락태만 시켜주면 어데서든 돼요.” 나영은 흔쾌히 대답했다. 병원에 입원하면 자기 신분이 탈로날가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녀는 중국에서 파견돼 온 비밀경찰, 인터폴이 두려웠던 것이다.  의사는 천만원이나 되는 돈묶음, 나영의 몇달 로임묶음을 들가방에 스리슬쩍 챙겨넣고 명함을 건네주며 목소리를 낮춰 귀속말을 했다. “모텔을 잡으세요. 제가 간호원과 함께 수술장비를 가지고 모텔에 가서 락태시켜 주지요.” “네. 알았어요. 모텔 잡으면 전화 하겠어요.”   화는 눈섭 끝에서 떨어진다고 사달이 생길줄이야. 원래 음식점 한쪽 구들에서 자던 나영이 짐을 챙겨 모텔로 나가려고 하자 허보스는 퉁사발눈을 뚝 부릅떴다. “주방장을 내보냈는데 최아가씨 나가면 음식점은 어떻게 해?” 나영은 보름달 같은 얼굴에 보조개를 옴폭 파면서 살갑게 말했다. “허보스님, 제가 음식점에서 나가려는게 아닌데요.” “로임 낮다고 그러느는 건 아닌기여? 로임 올려주지. 500만원 줄테니께. 최아가씨, 제발 우리 음식점에 있으라고.”  나영은 자기를 최아가씨로 아는 허보수를 보고 볼우물을 파며 웃더니 불룩한 배를 내려다보면서 사정했다. “이보세요. 몸이 말째여서 한달만 쉬려고 그래요?” 그제야 허보스는 나영의 모져가는 배를 보고 놀랐다. “아니, 이때까지 몸이 그래 가지고 일했어. 미안해. 로임에 뽀나스까지 당장 300만원 줄게요.” “아니, 로임 때문이 아닌데요.” 나영은 일도 하지 못하겠으면서 허보수의 그 돈 받을 수 없어 되밀어주었다. 그녀는 그 길로 옷견지를 넣은 트렁크를 끌고 음식점에서 나와버렸다. “한달 후엔 꼭 음식점에 돌아오라구. 아, 이걸 어쩌지?” 허보스는 떠나가는 나영의 뒷모습을 멍해 바라보면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똑, 똑,똑. “누구?” “저예요. 최순영이.” 허보스는 밤중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와들짝 놀랐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아니, 최아가씨 아닌기여?” 허보스는 놀랍고도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문걸개를 절컥 벗기고 문을 활 열었다. “아니, 최아가씨 웬 일인기여? 어서 들어오라고.” 허보스는 너무 기뻐 입이 함박만해 나영의 손에서 트렁크를 받아쥐여 주르르 끌고 음식점 안방으로 들여갔다. “주말이 돼서 그런지요. 모텔방마다 꽉꽉 손님이 차서 되돌아왔어요.” “그래? 내 뭐랬어? 밤에 어델 간다고 그래? 우리 음식점에서 자면서 쉬면 안돼? 숙박료 낼 필요도 없고. 일 안해도 돼.” 허보스는 나영의 불룩한 배를 쓸어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ㅉㅉㅉ, 그 몸을 해가지고 밤중에 어디로 헤매? 우리 음식점에 눌러 있으면서 몸을 춰슬리라고. 일 안해도 돼. 그저 연길랭면하고 탕수육 어떻게 하는가 내한테 가르쳐주면 돼. 로임은 로임대로 줄 거야.” 허보스는 나영이 락태하려고 모텔에 나가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영은 허보스가 모르고 하는 말이라도 고마워 코마루가 시큼해날 지경이였다.  “그러죠. 밤 늦었는데요. 어서 집에 돌아가 쉬세요.” 그런데 그날 따라 허보스는 집에 돌아갈 궁리를 하지 않았다. “최아가씨, 미안합네다만. 고달픈대로 먼저 연길랭면 육수물 뭘로 만드는지 가르쳐 안줄래?” 허보스의 퉁사발눈에 간절함이 번뜩였다.  (령감태기, 고양이도 나무에 바라오르는 재간만은 사촌형 호랑이한테도 배워주지 않았어. 연길랭면 배우고나서 날 잘라버리면 어쩌지?) 나영은 희죽이 웃어보였다. “밤중인데요. 어서 집에 돌아가 쉬세요. 래일도 있잖아요?” 허보스는 한걸음 다가섰다. (이년이 육수물 비법을 알려주지 않고 랠 훌 가버리면 어쩌지?" 허보스는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안돼. 오늘 밤에 꼭 배워달라고.” 나영은 뒤걸음질치며 불길이 활활 타번지는 허보스 퉁사발눈을 쳐다보며 애원했다. “오늘 몸이 말째여서 좀 쉬여야겠어요. 래일 봅시다.” “안돼. 꼭 오늘 배워줘야 해.” 허보스는 와닥닥 달려들어 나영을 끌어안았다. “왜 이래요?” “육수물 안 배워줄텐가?” 허보스는 완전히 힘으로 협박해왔다. 나영은 힘으로는 허보수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허보스는 육수물전수를 떠나 나영의 탄력있는 몸까지 탐내는 것이 불 보듯이 빤했다.  (령감태기 이게 뭐야?) 나영은 자기를 끌어안은 령감태기 아래에서 자기 아랫배를 꾹꾹 찌르는 단단한 걸 발견했다. 아래를 피뜩 내려다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글쎄 칠순도 넘은 령감태기 바지 가랭이 두새에서 자그마한 우산 같은 것이 불끈 솟아오르지 않겠는가! “이걸 놔요. 육수물 비법 가르쳐주죠.” 허보스는 마지못해 나영의 두팔을 맥없이 스르르 풀어주었다. 나영은 주름이 쭉쭉 간 허보스 낯빤대기를 쏘아보며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늙은게 꽤나 정력이 왕성하구나. 색마구나.) 순간 그녀의 머리를 탁 치는 생각.  나영은 허보수를 보고 물었다. “허보수, 왜 이래요? 계속 연길랭면으로 돈 벌겠어요? 아님, 어쩌려는 건 가요? 허보스를 아빠처럼 믿었는데요. 진짜 이럴줄 몰랐어요.” 그제야 허보스는  머리를 숙이며 헤죽이 웃어보였다. (내 너무 했군 그려. 미안해.) 그러나 늦었다. 나영은 이 음식점에서 더는 못해 먹겠다는 걸 느끼고 결연히 트렁크를 잡고 문께로 나갔다. “순영이, 왜 이래?” “래일 보자요.” “엄동설한 밤중에 어델 간다고 그래? 여기서 잘 거지. 에이 참, ㅉㅉㅉ.” 그러나 나영은 트렁크를 끌고 기어이 눈보라 치는 바깥에 나갔다. “가더라도 어데 모텔에 드는지 알려주고 가라고.” “동대문 부근 모텔에 들어요. 한달 후에 꼭 돌아올테니깐요. 근심 말아요.” 나영은 돌아보며 한마디 던져주고는 눈덮인 골목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발길이 가는대로 정처없이 눈보라를 무릅쓰고 헤맸다. 그녀는 그래도 원래 들었던 모텔에 돌아가 김보스한테 사정해 카운터에서라도 자려고 했다. 2호선을 타려고 지하철역으로 맥없이 트렁크를 끌고 층계를 한발자욱한발자욱 내려갔다. 부지중 그녀의 눈에 지하철에 놓인 장의자가 띄였다. 아직 지하철이 들어올 때가 멀었다. 그녀는 맥없이 장의자에 걸터앉아 2호선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오가는 행인들은 이상한 눈길, 조소하는 눈길을 보냈다. 장의자에 걸터앉은 그녀의 눈앞에 피뜩 교보문고로 통한 종각역의 널다란 공간과 자의자가 떠올랐다. (옳다. 거기 가서 눈이나 좀 붙이고 래일 새벽에 모텔로 가자.) 그녀는 락태하자고 교수의사한테 몇달 뼈빠지게 빡빡 끌어모아 천만원이나 주고나니 호주머니사정이 위태로웠다. (2만원이 어디야. 한푼이라도 남아야지.) 그녀는 1호선을 갈아타고 종각역으로 달려가서 내렸다. 지하통로로 교보문고로 쪽으로 트렁크를 끌고 가니 장의자에는 벌써 숱한 로숙자들이 이리저리 삼대처럼 이리저리 쓰러져 있었다. 나영이 다가가자 텁석부리로숙자가 장의자에서 일어나 헤쭉거리면서 지껄여댔다. "아이구메. 새파란 색시 뭐야? 길바닥에 나앉았어?" 그 소리에 잠들었던 로숙자들이 하나 둘 일어났다. 때 덕지덕지한 로숙자들이 눈알이 희번득거렸다. 어떤 로숙자사내의 눈에서는 이상한 빛이 번뜩였다. 텁석부리는 손으로 장의자를 가리키면서 나영한테 손짓했다. "여기 오라구.난 여기 왕초야. 내 곁에서 자라구.누구도 감히 아가씰 건드리지 못해." 텁석부리는 자기 지위를 증명하려는듯이 주먹을 휘두르며 로숙자들을 한고패 빙 둘러보았다. 그러자 진짜 로숙자들은 질겁해 제자리에 들어누웠다. 그자들은 누워서 자는 척 하면서도 얼굴에 손을 얹고 손가락 사이로 말똥말똥 내다보면서 나영한테서 눈을 떼지 앉았다. 나영은 텁석부리 옆에 가지 않고 나무층계에 트렁크를 놓고 물앉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붙안고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내 처지가 왜 이렇게 됐지? 당당한 부관장이 한국에 와서 로숙자로 타락하다니? 진짜 죽기보다 못해.) "왜 내 곁에 안 와? 저기 왕초 장의자에 누워 자라고." 텁석부리가 어슬렁어슬렁 나영의 옆에 와 앉으면서 옆구리를 툭툭 건드렸다. 나영은 그자의 손을 탁 쳐버리면서 버럭 고함쳤다.     "피하지 못해?!" "우메- 성질 왜 써? 생각해 줘도 은정도 몰라?" "시끄러워! 저리 가!" 나영은 트렁크를 끌고 자리를 피했다. 뒤에서 텁석부리 왕초 욕설이 뒤잔등을 때렸다. "여기서 왕초 모르고 하루 밤이라도 잘 거 같아? 흥! 세상 물정도 모르는 년! 길바닥에 나가 얼어 뒤져라!" 나영은 가냘픈 어깨를 들먹이며 트렁크를 끌고 지하철역으로 되돌아갔다.그러나 자정이 넘어서 마지막지하철도 다 놓치고 말았다.  (이젠 모텔에도 가지 못하지. 어쩌지?) 그녀는 마지막지하철이 떠나간 어둠침침한 지하철텐넬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먹칠한듯한 지하철텐넬은 저승사자처럼 아구리를 쩍 벌리고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죽음의 블랙홀이 꼬리치며 그녀를 유린하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나영은 장의자에 맥없이 걸터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였다.갸냘픈 어깨를 들먹였다. 로숙자나 강도가 덮쳐들가봐 그녀는 온 밤 눈도 붙히지 못하고 장의자에 앉아 끄덕끄덕 자불면서 온 밤 팼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새벽 네시 됐다. (이제 두시간 푼히 기다리면 첫차가 올 거야.모텔에 가서 김보스한테 사정해보자.) 그 두시간이 두날, 아니, 두달이 되는 것 같았다. 지루한 시간이 천천히도 흘렀다… 나영은 첫차를 타고 김보스네 모텔로 달려갔다. 김보스는 호박골을 도리머리질하면서 어처구니없어 했다. "너거 중국인들 통 주책머리 없어. 모텔은 주말에 아침부터 방 치우라면 어째?한 열시 후에 오라구." 한국 모텔에선 주말에는 주숙객을 넣기보다 바람둥이들을 받아들여야 돈을 더 벌 수 있었다. 손님을 하나 넣어서야 극상해 2만 내지 3만원 벌었다. 하지만 바람둥이들은 극상해야 모텔방에서 한시간 벅닥거리다가 훌 나가버린다. 하루에 10여쌍 바람둥이를 받아넣으면 한방에서 십여만원을 벌 수 있지 않는가. 나영은 비난사정을 했다. "그럼 트렁크만이라도 먼저 두자요." "그래. 단골이니깐. 봐주는 거야." 김보수는 우멍한 눈으로 나영의 몸을 내리훑어보며 인심을 내는 척했다.그는 나영의 트렁크를 받아 위층 다락방에 올려다 놓았다. 나영이 한숨을 폴 내쉬면서 모텔에서 나가려고 돌아섰을 때였다. "잠간! 카운터를 잠간 서줄래? 나 집에 좀 일 있어 그래. 청소도 좀 하구.숙박비를 할인해줄게." "그러지요."   나영은 쾌히 대답했다. 보스는 새파란 나영이 카운터에 서 있으면 손님을 더 끌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나영은 어쨌든 김보수가 고마웠다. 보수가 간 후 나영은 카운터에 서서 손님들을 받고 나서 모텔 복도로부터 호텔방을 돌아가면서 청소를 말끔히 해놓았다. 바람둥이들이 어지럽혀놓고 간 침대보랑 벗겨 내다가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김보스는 부지런한 나영을 보고 저도 몰래 딱 짜개지는 전복처럼 입이 떡 벌어졌다. "최아가씨, 아예 우리 모텔에서 일하게나. 로임 후하게 줄게. 하루에 6만원씩 줄게." 나영은 코웃음이 나왔다. (허보수는 한달에 300만원이나 줬어.) 그러나 나영은 그절하지 않았다. 모텔에서 밥벌이라도 하면서 의사가 오길 기다리는 것이 나았던 것이다. 나영은 손님이 뜸하자 바깥에 나가 구석진 골목길에 가서 교수의사한테 핸드폰을 쳤다. 그런데 락태해주겠다던 교수의사가 해뜩 나누울줄이야. "비법적인 락태 못해유, 누굴 감옥살이 시키자고 그래?" "아니, 천만원이 드렸는데요. 이제 와서 그럼 어떡해요? 제가 모텔방을 잡았으니깐요. 모텔에 와서 락태시술해주세요. 아무도 모르는데 뭔 감옥 가요?" "안돼.절대 안돼." "그럼 천만원 돌려주세요." "어? 내 언제 천만원 받았어? 생사람 잡지 말라구." "뭐라구요?" 뚜뚜뚜 전화 끊겼다. 이무리 쳐도 받지 않았다.  나영은 그 길로 병원에 찾아갔다. 교수의사 허울을 쓴 그자는 말이빨을 드러내며 사기군의 원형을 드러냈다.  "비법으로 락태시술하면 잡아 가게 할테야. 넌 려권도 없어. 불법체류자야. 안 그럼 중국에서 굴러온 범죄자야. 처음부터 의심했어. 안 그럼 왜 려권을 들이대고 정상적으로 병을 보이지 않어?" 나영은 그 위협에 화들짝 놀랐다. 당장 인터폴들한테 잡혀갈 것만 같았다.그러나 마지막으로 량심에 호소했다. "시술 못해주겠으면 천만원 돌려줘요." "뭐? 당장 경찰에 신고하라는가?" 그제야 나영은 자기가 사기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을 번쩍 차렸다. "네놈은 제 명에 죽지 못해!' 나영은 물컵을 그놈한테 쥐여뿌리고 훌 일어나 도망치다 싶이 나와 달아나버렸다. "이년!이게" "보안! 보안!저년을 잡아요!" 나영이 병원에서 총총걸음쳐 나오는데 뒤에서 사기군의사놈의 고함소리 들렸다. 뒤이어 호르래기 소리 요란하고 발자욱소리 어지러이 다가왔다. 나영은 병원 문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도망쳤다……   똑,똑,똑. "누구세요?" “모텔 보슨데요. 숙박비 땜인데유.” 나영은 침대에서 부시시 일어나 문께로 다가갔다. 그녀는 문꼬리를 잡고 나직이 물었다. “아니, 어제 오늘 숙박료까지 내잖았는가요?” “참, 주말엔 5천원씩 더 내야는데요. 깜빡 잊었나.” “네- 좀 기다려요.” 나영은 호주머니에 단돈 5만원도 없었다. 전날에 청소공 아줌마가 급한 일이 있어 출근하지 못한다고 급보가 왔다. 그때 나영이 샘물 가지러 카운터 쪽으로 나왔다. 보수는 나영을 보고 청소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나영은 모텔 방을 두루 청소해 주고 카운터도 서주고 6만원을 손에 쥐였다. 그 단돈 6만원을 받은 자리에서 보수한테 사흘 숙박로 되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돈이 없어 저녁도 굶고 있었다. 그러나 보스 앞에서 빈 호주머니 사정을 번져보이기 싫었다. 나영은 지갑을 들춰 500원 짜리, 100원 짜리 동전을 주어 겨우 5천원을 모아쥐였다. 그녀는 문을 열고 머리를 수깃한 채 옆전을 보스한테 내밀었다. 보스는 한심해 입을 딱 벌리면서 나영의 초췌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미안해요,” 나영은 한마디 입귀로 쓸쓸히 흘러내며 문을 닫으려고 했다. “잠간!” 보스는 순간 동정심에서인가, 아니면 웬지 스르르 맥없이 닫겨지는 문을 손으로 턱 막았다, “이걸 써요.” 보스는 크게나 인심 쓰는 척하면서 옆전을 되내밀었다. 쿵! 나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을 닫아버렸다. 어둠의 주둥이에서 공포가 튕겨나와 모텔방 구석구석에 돌멩이질을 한다. 굶주림의 여백에 검푸른 절망의 파도가 스물스물 기습해온다. 하영은 침대에 쿵 맥없이 쓰러졌다. 눈 앞에서 불찌가 탁탁 튕겼다. 눈앞이 먹칠한듯이 캄캄했다. 순간, 까막나라로 된 언덕에 희죽거리는 우멍눈이 떠올랐다. 반달 같은 번대머리에 머리카락이 꿋꿋이 살궈 곤두세우며 우멍눈을 부라린다. “더러운 년, 날 배신하고 도망가다니. 퉤, 거지 같은 꼬락서니 보기 좋구나.” “저리 가! 음흉한 놈, 네놈은 제명에 죽지 못해.” “뭐라고? 배은망덕한 년, 내하구 함께 있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이제야 알만 하지? 히히히. 먹을 근심, 주숙근심 할 필요없었지. 허나 넌 지금 저녁도 굶었잖아?” 나영은 몸 위에 달려드는 번대머리를 발길로 차버리면서 반항했다. “음험한 놈, 날 심계국에 고발하지 않았더라면 내 초상집 개 처지 됐겠어? 네놈이 날마다 한동이씩 싸넣지 않았더라면 배때기에 더러운 씨가 꿈틀거리겠어?” “뭐? 뭐? 임신했어? 내 애를 뱃어? 애를 잘 키워라. 건 우리 참사랑의 열매야.” “퉤!” 나영은 건가래를 번대머리에 뱉었다. “구역질나는 소릴 작작 쳐라! 바람둥이를 이 세상에 하나 더 만들라고? 날 사랑했다고? 노리개로  질탕하게 데리고 놀았지? 한많은 죄악의 씨를 가차없이 썩뚝 잘라 버릴테다!” “그러지 마! 어떻게 만든 애냐? 미국 로스안젤레스에서 흑인강도한테서 널 구한 구명은혜를 생각해서라도 그러지 마! 애는 내가 감옥에서 나가면 키울테니!” 그때 웬 애 울음소리 귀전에 들렸다. 나영은 안간힘을 써서 눈을 떴다.  (환각인가?) 더 살고픈 생각이 꼬물만치도 없어진다.  (훌 죽어버리면 모든게 끊날게 아닌가? 날마다 나포될 가봐 살피면서 살 필요없다. 교수의사한테 돈을 찔러주면서 락태할 필요도 없어. 배고픈 배를 채우려고 음식점에 가서 색마보스 눈치를 본면서 릉욕당할 일도 없잖은가! 한국은 우리 조선족이 살 곳이 아니야. 이 세상에 믿을게 하나도 없어. ) 그때 전화벨소리 울렸다. 남편 철석한테서 온 전화였다. 순간 성림이 보고 싶어진다. 마지막으로 성림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초라한 모습으로 남편과 성림을 볼 면목이 없었다. “나는 성림의 엄마로 살 면목이 없어. 성림아, 나는 나쁜 엄마야. 널 버리고 색마한테 미쳐서 가정도 자식도 다 버렸어. 색마한테 사기당해 미국, 일본, 한국까지 따라 다녔어. 여보, 난 나쁜 년이야. 성욕에 눈이 어두워 당신을 배신하고 색마의 씨까지 배에 심었어. 천벌맞아 싼 년이야. 색마는 날 해친 원쑤야. 원쑤놈의 새끼까지 가진 이 년을 절대 용서하지 말라구.” 나영은 침대머리에 놓인 물컵을 들어 쭉 마시고 땅바닥에 메쳤다. 탕! 유리파편이 사처로 튕겼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친구 박지영한테서 온 전화였다. “지영아, 성림아, 모든게 끝났어. 미안해. 래생에 다시 모자간으로, 친구로 보내자.” 나영은 천천히 일어나 핸드폰을 꺼버리고 날카로운 유리쪼각을 주어들었다. 맥없이 희미한 포도눈으로 유리쪼각의 선뜩선뜩한 날을 쳐다보았다.그녀는 주저없이 유리쪼각 날로 손목의 혈관을 썩썩 벴다. 씨뻘건 피가 주르르 흘려내렸다. 그녀는 침대에 스르르 쓸어졌다. 눈앞이 점점 어두워졌다. 포도눈동자는 맥없이 희미해지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눈 앞에는 보기도 싫은 음식점 허보스의 퀭한 퉁사발눈, 사기군의사의 안경낀 외까풀눈이 떠올랐다. 그녀는 보기도 싫어 희미해지는 포도눈을 스르르 감아버렸다. 순간 편안하고 아늑한 염라전으로 훨훨 나래쳐가는 감을 느꼈다. 그때 배에서 발길질을 하는 감이 느껴졌다. (다 네놈 때문이야. 네놈새끼는 죄악의 쓴 열매야. 죽어야 돼.) 나영은 눈을 번쩍 뜨고 유리쪼각을 찾아들었다. 속옷을 스르르 내리우고 유리쪼각으로 불룩한 아랫배를 마구 찌르고 쭉쭉 내리그었다. "앗!" 모텔방에선 비명소리 아츠럽게 울렸다. 신음소리 간간히 들렸다. 나영의 손목과 아랫배에서 시뻘건 피가 줄줄 흘러 침대보를 적시며 비린내를 물씬 풍겼다.  김보스는 이상한 눈길을 나영의 방 쪽으로 보냈다. 그러나 인차 도리머리를 저었다. (사람 일은 몰라.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서 엉덩이로 호박씨를 깐다고 하잖아? 혹시 모텔 방에 군서방을 치워두고 즐기고 있는지 누가 알아?) ...   
303    대하소설 졸혼 제5권 (66)김장혁 댓글:  조회:1241  추천:1  2023-03-16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76. 흐느끼는 포도눈동자 거머칙칙한 호텔방에서 녀인의 애교에찬 간드러진 목소리가 음란하게 추파의 꼬리를 친다. “잠간, 좀 천천히요.“ ”참지 못하겠는 걸, ㅎㅎ. 어떠렇게 해?” 아가씨의 교태를 부리는 소리 메스꺼울 정도였다. “왜 그리 급한가요? 좀 천천히 살뜰하게 굴어요?제가 그렇게 매력 있는가요?” “그래. 이뻐서 죽겠어.” “어데 이쁜가요?" "어데나 다 그냥 이뻐." "호호호.저는 굶은 암탉인데요. 어서 죽여줘요.” “그래. 어디 죽어봐.” 사내의 거친 숨소리가 모텔방의 구석구석을 누빈다. “천천히, 그치. 좀 살뜰하게 잘해 봐요.” “알았다니께. 좀 가만 있으라고. 자꾸 움직이지 말고.” 젊은 녀인의 애교섞인 신음소리, 흐느낌소리 모텔 방 구석구석에 도사린 당나귀 귀청을 때렸다. 나영은 바람둥이 년놈들이 수작을 부리는 소리 듣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에이구, 개쌍년들.) 나영은 시끄러워서 텔레비죤 보름을 높이 틀어놓았다. 좀 덜 듣기는 것 같았지만 의연희 개 죽을 먹는 쩝쩝 소리에 개짖는 소리로, 당나귀 우는 소리로 다 들렸다.   주말인지라 초저녁부터 외박하는 바람둥이들이 모텔에 문턱이 다슬게 쓸어들어왔다. 년놈들은 모텔방을 한칸씩 차지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다른 방의 사람들이 다 듣게 떠들며 난장판을 벌였다. 나영은 시끄러워 이불을 들쓰고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침대 하나 겨우 놓을 비좁은 모텔방에는 공기가 희박했다. 량미간을 꽉 조일만큼 공간의 압박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나영은 돈을 한푼이라도 남으려고 학원이 다닥다닥 들어앉은 골목에서 학원생들이 드는 간이방에 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간고한대로 견디면서 이 쪽방촌 집 같은 찌그러진 방에 두렁허리처럼 몸을 기탁해야만 했다. 그런데 오늘 따라 바람둥이들이 쓸어들어 시끄러워 못견딜 지경이였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처경에 다 이르게 됐지? 전람관에서 법을 지키면서 일반해설원으로 살았더라면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었겠는가? 다 그놈 허영심 때문이야. 다 그 놈의 탐욕 때문이야. 단위 돈을 탐오해서 일전한푼 쓰지도 못하고 단단히 곤혹을 치르고 있짢아? 이럴줄 알았더라면 왜 단위 돈에 손을 댔겠어? 다 그놈 최정호, 그놈 색마 때문이야. 그놈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잖아. 그 놈은 나를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고 구해주는 척 하면서 날 물어먹었잖아? 그놈은 사처로 끌고 다니면서 내 몸만 유린했잖아? 어쩜 능구렁이 같은 그 놈의 까만 속내를 보지 못하고 속혔지? 진짜 사기당했잖아. 오-우- 바보야, 멍청이야.) 나영은 생각하면 할수록 어처구니 없었다. 그녀는 부러오르는 배를 매만지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 죄악의 열매야. 그놈 새끼, 날마다 한동이씩 싸넣던게 이게 뭔가? 그 개놈의 새끼가 내 뱃속에서 꿈틀거려?” 이젠 뱃속의 애가 드문드문 꿈틀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뱃속의 죄악에 찬 발버둥질 치는 애를 감지하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애를 지워버리자고 해도 돈이 있어야 지우지. 또 한국에선 마음대로 락태하지 못하잖는가?) 나영은 기실 애를 지울 돈을 벌려고 음식으로 가서 일한 적이 있었다. 음식점 허보스는 뭐나 큼직큼직하고 우둔하게 생긴 70대 령감이였다. 특별히 소머리처럼 머리통이 크고 뜨물에 빠진 돼지눈깔처럼 쌍까풀눈이 퉁사발 같이 컸다.  허보수는 30대 초반의 나영이 음식점에 찾아간 첫날 만면에 춘풍이 돼 즉석에서 받아들였다. 코로나도 심하게 돌아 음식점이 잘 되지 않아 일군 하나 받자 해도 얻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런 코로나 비상시기에 꽃처럼 이쁘고 젊은 녀성이 제발로 음식점에 찾아 오지 않았겠는가. (이게 웬 떡이냐? 호박이 넝쿨채로 떨어지지 않았어?) 허보수는 달걀침을 꼴깍 넘기면서 퉁사발눈으로 퀭해 나영의 탄력있는 풍만한 몸매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나영은 허보수의 게슴츠레한 눈길이 곱진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생존을 위해선 그런 걸 가릴 새 없었다. (늙은 령감이 어쩔라고?) 나영은 늙은 령감이라고 그리 경계를 하지 않았다.  음식점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단골손님들은 코로나 심한 때인데도 손님들이 드문드문 들어왔다.  나영은 웃는 얼굴로 손님을 반갑게 맞았다. “어서 들어오세요. 반갑습니다.” 손님들은 그녀의 말투를 보고 도리머리질했다. “중국인 아닌기여?" "아니, 조선족이예요.” “그래?” 손님들은 허보스한테 엄지를 내두르며 지껄여댔다. “대박, 허보수 어디서 저렇게 이쁘고 새파란 색시 얻어왔어? 밥맛이 참 좋을 거 같애.” 허보스는 어깨 으쓱해 맞장구를 쳤다. “허허허. 그래, 그럼 자주 와서 소주나 들라고.” 손님들은 이쁜 나영한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허보스는 손님들의 눈치를 제꺽 채고 나영을 한쪽으로 불러갔다. “순영이, 손님들한테 소주 한잔씩만 돌리라고. 단골손님들이야. 좀 도와달라고.” 나영은 손님도 별로 없지 해 그만한 건 해야겠다고 여겼다. “네. 알았어요.” 그녀는 보수가 따주는 소주 술병을 들고 손님 상에 다가갔다. “아이구메. 선녀가 왔시우.” 손님들은 나영을 쳐다보며 야단쳤다. “반갑습니다. 우리 음식점에 찾아오셔서 고마워요. 제가 소주 한잔 부어올리죠.” “그래, 그래.” 손님들은 술잔을 쳐들며 머리를 끄덕였다. 나영은 머리를 숙이며 깎듯이 인사하고 소주잔마다 돌아가면서 술을 찰찰 넘치게 부어드렸다. “맛있게 드세요.” 손님들은 나영을 쳐다보며 혀끝을 끌끌 찼다. “서울말씨 좀 서투르긴 해도 말소리 얼마나 부드럽고 이뻐.”  “참 이뻐.” “어, 술맛 좋다.” 손님들은 나영한테도 한잔 부어주고 맛나게 술을 들었다. 이 음식점에 미녀 나졌다는 소문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날따라 늘어났다.  같은 값에 분홍치마라고 이쁜 색시 구경도 하고 선녀 올리는 술맛이 좋았던 것이다. 그러자 허보수는 두툼한 입술이 함박만큼 떡 벌어졌다. 허보스는 나영의 로임을 50만원 올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나영은 내내 술집 아가씨처럼 사내들한테 술이나 따르고 웃음 팔고 미모 팔기 싫었다. 고민 끝에 그녀는 허보수를 찾았다. “보스님, 중국의 溜肉段 하고 연길랭면 해서 손님 상에 올려 볼가요?” 허보스는 커다란 머리통에 온통 의아한 표정이 번져갔다. “뭔데?” “여기서 말하는 탕수육 말인데요. 중국 특색이 나는 료리와 랭면 하면 손님을 끌 거 같은데요?” “그래? 중국 탕수육 할줄 알아?” “네. 제가 锅包肉 좋아해서 집에서도 자주 해 먹었어요. 랭면도 서울 랭면보다 더 맛있게 할 자신이 있어요.” 나영은 주방에 들어가 몸을 감출 예산이였다. 필경 손님들을 맞아야 하는 것이 싫었다. 혹시 중국에서 파견된 비밀경찰 성호나 불쑥 나타날 것 같은 불길한 감이 들었던 것이다. 비록 주방도 손님상에서 환히 들여다보였지만 필경 다른 같이기에  손님들과 등지고 일하기에 상대적으로 얼굴이 덜 들어날 거 같았다.   그런 속내를 모르고 허보수는 나영을 붙잡아두려고 그녀의 의향에 머리를 끄덕였다. “헛일 삼아 해보지.” 나영은 주방에 들어가 팔소매를 걷어부치고 나섰다. 한국 주방장아줌마는 코웃음쳤다. (지가 뭘 먹게 할라고?) 주방장아줌마는 새파란 색시의 기름때도 묻혀보지 않은 것 같은 이쁜 손을 보면서 두고 보자고 흥흥거렸다. “중국 걸배가 이젠 주방까지 차지하려고 들어?” 그러나 나영은 말대구를 하지 않고 주방에서 이것 저것 들춰내 육수물을 맞추고 랭면도 꾹꾹 눌렀다.뒤이어 기름을 가마에 붙고 탕수육도 구워냈다. "아이구메. 저 숱한 기름 아까워 죽겠다." 주방아줌마는 탕수육을 구워내면서 가마에 부어넣은 기름을 보고 소리쳤다. 그러나 나영은 탕수육을 구워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참 후 나영이 탕수육접시와 연길랭면국수 그릇을 들고 나와 밥상에 올렸다. “허보스님, 잡숴보세요.” “그래.” 허보스는 저가락을 들고 탕수육을 한점 집어 너컬뜨린 입에 넣고 씹어보았다. 바삭바삭하고 쫄깃쫄깃해 맛있었다. “아, 맛있어.” 국수를 한저가락 집에 입에 넣고 씹어보니 별 맛이였다. 육수물도 후루룩 마셔보니 시원했다. “손님을 끌 거 같아.” 아니나 다를가.  그날 점심에 첫손님이 들어와 자리에 앉자마자 벽에 새로 건 메뉴판을 쳐다보았다. “이 음식점에서 연길랭면과 탕수육을 하는가요?” “네.” 나영은 주방에서 기대에 찬 눈길로 그 손님을 내다보았다. 피뜩 보니 조선족이 돼 보였다.  (아니, 어데서 딱 보던 같은데. 누구던가?) “연길랭면에 탕수육을 주세요. 오랜만에 고향 랭면을 먹게 됐군.” “네.” 허보수는 기뻐 어쩔줄 몰라 허리까지 꿉썩거렸다. 나영은 먼저 연길랭면을 한그릇 해서 손수 들고 나와 손님상에 올렸다. “맛있게 드세요.” “네. 맛있게 먹겠습니다.” 손님은 나영을 쳐다보다가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입을 딱 벌렸다. “조선족 같구만.”  “네. 그래요.”  “그러게 연길랭면을 다 눌러 내오지. 대림에만 연길랭면이 있는가 했더니 여기서도 하는구만.” 그 손님은 연길랭면을 후룩후룩 맛있게 들었다. 뒤이어 나온 탕수욕접시도 훌딱 비워버렸다. “아,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손님은 허보스와 나영을 보고 연신 치하했다. “오랜만에 고향 음식을 먹으니 얼마나 맛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후에 그 손님은 다른 손님들도 몇몇 데리고 자주 왔다. 나영은 보수와 토론하고 그 단골손님한테 소주 한병을 장려로 올리기로 했다. 나영은 용기를 내 손수 소주병을 들고 나가 그 손님과 데리고 온 손님들한테 한잔씩 돌렸다. “고향 분들을 여기서 보니 기뻐요. 우리 음식점 단골인데요. 소주를 장려로 올립니다. 맛있게 드세요.” “아가씨도 한잔 드세요.” 단골손님은 소주병을 들고 우쭐 일어났다. 나영은 마다하지 않고 소주잔을 내밀었다. “아가씨, 이 음식점에 오면 고향 음식점에 온 거 같아 기분 좋소.” “연길랭면과 탕수육 정말 맛있소.” 나영은 치하에 기분 나서 술잔을 내밀었다. “자, 한잔 드세요. 자주 찾아오세요.” “그래, 찾아오지. 찾아오구 말구. 허허허.” “음식 맛 좋고 기분 좋아.” 손님들은 진짜 단골이 됐다. 후에 알고 보니 단골손님은 모 신문사 기자 종호라고 했다. 그는 조선족항일렬사이야기 책을 낼 출판비용을 벌려고 건설현장에 가서 고된 일을 한다고 하지 않겠는가. 사실, 종호는 어머니 림종 전에 주사 한대마저 놓아주지 않은 불효악처 류려평과 헤어지고 퇴직하자마자 한국에 훌 나와버렸던 것이다. 그는 민족의 얼을 살리려고 항일렬사들의 이야기와 항일영웅들을 두루 취재해 이번엔 두번째 실화집을 내려고 했다. 그는 출판비용을 마련하려고 건설현지에도 가보고 병원에 가서 간병원도 하면서 별의별 고생을 다 하고 있었다.    종호는 나영한테 명함을 주기까지 했다. "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 주오." "네. 고마워요."  날이 갈수록 한국이란 살벌한 세상에서 나영은 오랜 벗을 만난 것처럼 종호한테 친근감을 느끼게 되였다. 한국 손님들도 맛이 독특한 연길랭면과 탕수육을 먹으려고 줄줄이 찾아왔다.  “연길랭면 평양랭면보다 맛이 더 있어.” “그래, 소고기도 얼마나 많이 나와.” 손님들 치하가 대단했다. 나중에 손님들이 어찌나 많이 찾아오는지 손님상이 모자라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판이 됐다. 코로나 세월에 다른 음식점은 손님이 없어 문을 닫을 지경인데 이 음식점은 나영의 연길랭면과 탕수육 때문에 날따라 영업이 흥성해졌다.   허보스는 영업이 안되는 옆집 음식점도 임대맡아 손님을 모실 지경이였다. 허보스는 입이 함박만해 나영의 손을 덥썩 잡았다. “최아가씨, 우리 음식점을 살렸어. 한달에 350만씩 줄테니 우리 음식점 주방장 맡게나.” 나영은 한국 주방장아줌마 눈치를 흘끔 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네. 그러지요.” 한국 주방장 아줌마는 살진 눈둔덕에 질투의 불빛이 번쩍였다.   탕!  쟁그랑!  “나 안해! 굶어죽어도 중국 걸배 밑어서 길 거 같애?!” 한국 주방장 아줌마가 국자를 가마에 둘러메치며 행악질했다. “안하겠으면 말앗!” 허보수도 퉁사발눈을 무섭게 희번뜩이며 으르렁거렸다, “갈라면 가라구!” 한국 주방아줌마는 제쪽에서 더 흥흥거렸다. “중국 년 썼다가 후회하지 말락꼬. 흥!” 나영이 주방에 들어앉자 손님은 점점 늘어만 갔다. 허보스는 일손이 딸려서 50대 중반 한국 아줌마를 하나 더 썼다. 나영은 연길냉면에 탕수육, 두루무침 등 중국 료리와 조선족 특색채를 두루 무쳐냈다. 두루무침은 돼지고기나 소고기에 오이, 당근 등을 썰어 두루 무쳤다고 해 채 이름도 두르무침이라고 불렀다. 손님들은 탕수육에 두루무침 냉채를 먹으니 느끼한 감도 없고 담백해 맛있다고 혀끝이 다슬 지경으로 치하했다. 허보스는 영업액이 하루에도 천만원도 넘어 오르자 밭고랑 같던 주름살이 쫙 펴지고 입이 함박만해졌다. 다 싹아 싯누런 이빨이 다 들어나게 헐헐거리며 나영을 혀끝이 다슬 지경으로 치하했다. 진짜 나영을 비단보에 싸서 업고 다닐 지경이라고나 할가? 그는 나영한테 뽀나스로 100만원이나 더 쥐워주었다. “이제 몇달만 일하면 락태할 돈이야 벌겠지.” 나영은 줄줄이 들어서는 숱한 손님들의 음식을 짓느라고 온몸이 해나른해 질 지경으로 혼자 주방에서 뺑뺑 맴돌아쳤다. 손목이 다 아플 지경이였다. 그런데 허보수 저 너절한 모양 보라. 그는 뒤에서 이상한 빛이 번뜩이는 음충한 눈길로 나영의 펑퍼지만 엉덩이를 쳐다보며 달걀침을 꼴깍 삼켰다. ㅋㅋㅋ
302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 김만석 댓글:  조회:1348  추천:0  2023-02-27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                                김만석                                1         삼꽃거리 정선식당 주인 정선이가 심장병이 도져 또다시 드러누웠다. 벌써 1주일 째다.       식당 복무원 아가씨가 문을 살며시 열고 정선이가 누워있는 복무원 휴식실을 들여다 본다. 정선이는 녀성 치고 키도 크고 몸집도 풍만한 축이였다. 얼굴도 두리 넙죽하고 눈도 커서 얼핏보다도 어리무던한 40대 녀성으로 안겨왔다.   《아줌마》 《엉?》 《정말 별란 사람 다 보겠어요. 》 《어떤 사람? 》 《글쎄 아줌마를 찾아왔다던 사람이 아줌마 앓는다고 하니 도루 가지 않겠습니까. 》 《남자? 여자? 》 《녀잔데 어떤 젊은 총각을 데리구…》 《나이는 얼마나 돼 보이구? 》 《쉰살 될가? 》 《누굴가? 》 정선이는 복무원 아가씨를 내보내고 아예 도리머리를 하면서 더는 다시 생각하지 않기로 작심했다. 외톨이로 살아오는 정선이에게는 그 누가 애잡짤하게 생각하며 찾아줄 사람은 따로 없었던 것이다. 정선이는 커다란 눈을 멍하니 뜨고 천정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애꿎은 눈물만 흘리고 있다. 매번 심장병이 도질 때면 이젠 습관이나 된 듯 저승으로 가신 아버지도 그리웁고 정선이네 오누이를 버리고 떠나간 어머니도 그리웁고 배 다르지만 시집간 혁화언니도 그리웁기만 했다. 아버지는 1952년도에 고향마을의 부농의 딸과 결혼하여 영옥이라는 딸까지 보았다. 그러던 아버니가 연길에 전근하여 입당하게 되면서 당조직의 제의와 동의를 거쳐 부농의 딸인 그 녀성과 합법적인 리혼을 하였던 것이다. 그후 아버지는 가무단 무용 배우와 결혼했는데 그래서 태어난 것이 정선이와 정철이였다. 정선이가 2살 나던 해에 농촌에서 살던 8살에 나는 영옥이가 아버지를 찾아오게 되었다. 정선이 한테는 난데없던 언니가 생기게 된셈이였다. 날마다 공연을 다니는 어머니다 보니 집에 붙어 있는 날이 한달 치고 거퍼 2~3일도 되지 않았다. 이런 형편에서 언니가 나타났으니 경선이는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언니 뒤를 졸졸 따라 다니던 일들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얼마나 즐거운 동년이였던가… 그런데 그런 재미나는 일들을 쓸어내치고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문화대혁명 때 일들이 꿈틀거리며  눈앞에 느닷없이 펼쳐지였다. 대비판 투쟁대회,  11살에 난 정선이는 동생 정철이와 함께 아버지네 직장으로 갔다. 정선이는 자기의 두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앞가슴에 주자파 라는 패쪽을 건 저 사람이, 저 사람이 누구냐 그것은 아버지, 아버지였다. 살벌한 기운이 차고 넘치는 장소, 아츠러운 투쟁구호소리가 소름이 끼치는 장소! 그런데 난데없던 키 자그마한 농촌 녀성이 씽 달려 나가더니 코신짝을 벗어들고 아버지의 뺨을 후려치는것이였다. 《이놈이, 이놈이 이란구 대류망이꾸마! 새끼까지 있어가지구 나를 차버린 놈이꾸마. 이 개같은 자식! 퉤, 더럽다, 더러워! 이런 날이 올 줄을 몰랐지? 》 그녀는 미쳐 날뛰였다. 정선이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 못하고 그저 오돌오돌 떨기만 하였다. 아버지는 바위처럼 끄떡 잖고 우뚝 서서 그 부리부리한 눈에 불길을 펄펄 날리며 그 녀성을 뚫어져라 쏴보기만 하였다. 세상 모르는 정철이는 이를 부드득 갈며 씩씩거렸다. 정선이는 정철이를 꽈악 그러안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 어디선가 새된구호 선창소리가 들렸다. 《주자파 정경호를 타도하자! 》 《대류망 정경호를 타도하자! 》   군중들의 제창소리는 하늘 땅을 진감했다. 그런데 저 구호를 부르는 사람은 또 누군가? 정선이는 된 방망이에 한매 호되게 얻어 맞은 듯 정신이 아찔했다. 도무지 알고도 모를 일이였다. 그것은 17살에 나는 영옥언니였다. 아니 영옥이가 저럴 수가 있을가? 아무리 두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영옥언니가 틀림없었다. 영옥이…영옥이… 오늘 따라 어쩐일인지 그런 언니라도 보고싶은 정선이였다. 너무나 외롭고 너무나 고독하고 너무나 쓸쓸한 정선이였으니깐… 정선이가 40살에 나니 언니두 인제 46살 되였을 것이다. 지금은 그냥 훈춘에서 어떻게 살고있는지?                           2 《따르릉… 》 전화벨 소리가 울리였다. 한번 두 번 세 번… 정선이는 까딱 움직이지 않고 그냥 누운 그대로이다. 정선이는 전화벨 소리를 들었는지 말았는지… 하도 지꿎게 울리는 전화여서 정선이는 마지 못해 송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 《말씀하세요. 》 《저…아재… 》 《아재라니? 》 《저… 조카입니다.》 《조카라니? 》 《훈춘 혁화의 아들, 아니 영옥의 아들…》 《어머나! 》 정선이는 한쪽으로 기우듬히 쓰러졌다. 이게 도대체 웬 일인가? 보지도 못한 조카가 어찌하여 나한테 전화까지 한단 말인가? 뭐 혁화의 아들? 조카? 장장 24년간 꼬물도 소식이 없던 언니가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서 아들까지 내세워 이렇게 전화를 거는걸가? 더는 듣고 싶지가 않은 전화였다. 정선이는 송수화기를 전화기 우에 덜컥 올려 놓았다. 또다시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정선의 눈앞에는 수만개의 의문부호들이 둥둥 떠올랐다. 지꿎게 들려오는 전화벨소리, 정선이는 짜증나서 이마를 찡그리고 송수화기를 다시 들었다. 《아잽니까? 저 영철입니다. 아마 아재는 이 조카를 보지도 못했으니 잘 모르실겁니다…》 《….》 《전화 듣고 계십니까? 아재 제발 빕니다. 》 《그래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아재 옳구만! 아재, 엄마와 난 1주일 전에두 연길에 왔댔슴다. 그 때 아재네 식당을 겨우 찾았댔슴다.》 《우리 식당은 어떻게 알구? 》 《예, 그건 지난번 연변일보에 아재 사적이 났습니다. 자치주 치부모범이라구! 그날 나는 엄마를 모시구 아재네 식당 앞까지 찾아 갔댔슴다. 그런데 아제가 앓는다니… 엄만 빈손으루 어떻게 들어 가냐면서… 그래서 들어 가지 못했슴다. 그 때 아제네 식당 간판에 있는 전화번호를 베껴 가지구 왔슴다. 아재, 지금 듣고 있슴까?》 《…》 《아재, 울엄마 급성당뇨병에 걸려 이젠  막 위급함다. 지금 연변병원 관찰실에 있는데 아재, 정말 미안함다. 엄마가 아재한테 알려선 안된다는 것두… 아재, 난 렴치를 불구하구 이렇게 엄마 몰래 가만히 전화 겁니다. 지번에 올 땐 소를 팔구 이번엔 집까지 팔아가지구 왔는데 그런데두 돈은 판판 부족이니… 흐윽…  아재 제발 울 엄마를  살려줍소…》 정선이는 송수화기를 땅에 탕! 떨어뜨린 채 맥을 버리고 습관대로 두눈을 지긋이 감았다. 어쩌면 이다지도 모진 인간일가? 어떤 때는 형제관계를 칼로 썩뚝 베이버리고 아닌 보살하던 사람이 오늘은 제 아들까지 내세워 아재요 뭐요 하는 영옥이야말로 세상에 더없는 밉살스러운 인간으로 안겨왔다. 정말이였다. 영옥이처럼 매정하고 악착하고 몰염치한 인간은 이 세상에 더는 없을 것이다. 1970년 이른 봄 ‘검은굴’에 갇혀 너무 고생하던 끝에 아버지는 간염으로 중하여 집에 나와 치료하게 되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계급계선을 나눈다면서 언녕 달아난지도 오래였다. 그래서 15살에 나는 정선이가 아버지의 병시중을 도맡아 하는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영옥언니가 웬 낯모를 청년을 데리고 와서 병마에 시달려 몸져누운 아버지 앞에서 행패를 부리는것이였다. 《그래두 이게 아버지인가요? 주자파, 반혁명, 대류망! 이름도 듣기 싫어요. 난 아버지를 반란해요. 난 이 가정을 반란해요.난 내 이름 석자도 반란해요. 난 이제부터 혁화(革花),혁명의 꽃 혁화임다.》 그리고선 아버지한테 더 바싹 다가들며 악청 높이 웨쳐댔다. 《우린 결혼 할텝니다. 이 잘난 반혁명 집에선 전 못 살겠어요. 첫날 옷과 이부자리를 당장 해내요! 》 《이 쌍년아, 네 눈에는 이 죽어가는 애비가 안 보여?》 누워있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벽력같이 소리쳤다. 《흥, 그러면 겁나 할줄 알아요? 우리는 혁명반란파  맹장이에요. 그래, 말해봐요. 해주겠는가, 못해주겠는가? 》 그때 밖에 나갔다가 들어온 정철이는 13살이지만 오가는 말에서 그 기미를 인차 알아채고 대뜸 성난 사자가 되였다. 《나갓! 당장 못 나가겠어?》 정철이는 씽 달려가 식칼을 집어들었다. 정선이는 몸부림치는 동생을 끌어안고 모지름을 썼다. 《반혁명 새끼 따긴 따구나. 야, 그래 누날 죽일테니? 죽이겠음 어디 죽여 봐. 어디서 새끼 반혁명 같은게…》 그러면서도 겁을 집어먹은 영옥이네는 슬슬 뒤걸음을 치다가 문을 차고 꽁무니를 내뺐다. 정철이는 자기를 끌어안은 정선이를 뿌리치고 영옥이네를 따라 나섰다. 그는 돌멩이를 뿌리며 쫓아갔다. 《쌍간나새끼, 죽인다 죽여! 》 아, 너무도 끔찍한 사실, 너무나도 진실한 이야기다! 그러던 혁화가 자기는 차마 말을 못하고 자기의 아들을 내세워 전화에 대고 지금도 뭐라고 씨부렁대고 있다. ‘뭐 나한테 빈다구? 급성당뇨병? 마지막으로 살려달라고?’정선이의 귀에는 영철이가 말하던 중점단어들이 옹골차게 들려왔다. 어쩌면 그런 말들이 아무런 거침없이 목구멍으로 술술 튀여 나올가? 지나간 일들을 잊지 않았다면, 아니 최저 한도로 인간이라면 그 에미에 그 아들이라도 도저히 그럴 수는 없겠는데… 그래도 아재란다. 아니 언니란다. 언니? 그래 언니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같은 피줄을 함께 타고난 자매들끼리 하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혁화는 아버지의 딸이 옳은가? 아버지와 결혼한 그 농촌 녀성이 낳았으니까 아버지의 딸이 옳기는 옳겠지. 그러면 영옥의 몸에도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말이 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더니… 기딱찬 현실이다. 그러니 영옥이는 어쨌든 나의 언니, 정철의 누나다… 정선이는 악몽에서 깨여난 듯 화뜰 놀라기까지 했다. 모질고 모진 인연이 정선이를 끄당긴다. 아버지는 이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달아나고 이제 남은것이란 아버지의 피줄을 이어받은 정철이와 나, 그리고 영옥언니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니 정선의 꽁꽁 얼었던 가슴은 금시 물에 젖은 솜이 되여 버렸다. 어릴 때 자기의 손을 잡고 다니던 언니의 그 부드러운 손이 따뜻이 느끼여 왔다. 정선이는 저도 모르는 사이 윤기간의 정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정선이는 누운대로 팔을 뻗쳐 송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정철의 호출기 번호를 하나씩 꼭 꼭 눌렀다.                 3        정선이는 정철이가 어서 빨리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호출한지 2시간은 좋이 지났건만 정철이는 눈앞에  나타나지를 않았다. 벌써 날은  저물어 창밖은 어둑스레  하다. 정선이는 어딘가 불안하고 허전하고 아니, 외롭기 그지없는 종잡을수 없는 기분에 휩쌓여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시간은 너무나 지루하였다. 이때 층계를 오르는 쿵당쿵당 하는 무거운 구두발소리가 울렸다. 보나마나 그것은 동생의 발자국 소리였다. 《누나!》 설흔살 넘어 이미 애 아버지가 다 된 정철이는 방에 들어서기 바쁘게 철부지 아이처럼 누나부터 찾았다. 《누나 또 아프오?》 《괜찮어. 》 《그런데 호출은? 》 정선이는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사랑도 모르고 자라난 동생을 대견스럽게 바라보았다. 아버지를 닮아 키가 구척 같고 얼굴이 너부죽하고 어글어글한 눈길… 실로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인 동생이였다. 《헤헤헤… 그런걸 난 또 누나 더 앓는가구 했지뭐. 누나 앓음 안되오… 옛소, 이 달두 괜찮게 벌었소.》 정철이는 호주머니에서 백원짜리 한묶음 꺼내 정선의 앞에 밀어 놓았다. 《누나, 이 돈으로 병을 치료하오.》 《아니다. 이 누나 어디 돈 없는 사람이니? 》 사실 정철이는 세월을 잘 만나고 또 누나를 잘 만나 누나가 사준 택시를 몰고 다니는 새시대의 젊은이였다. 이런 정철이는 이 세상 하나 밖에 없는 정선이를 엄마처럼 고이 믿고 살았다. 《정철아》 《양?》 《정철이는 누나 말을 잘 듣지?》 《그래, 누나 말을 안 듣구 누구 말 듣겠소. 헤헤헤… 》 정철이는 어릴 때처럼 정선의 손을 꼬옥 잡고 제딴에 좋아 어쩔줄 몰라 했다. 《정철아…》 《야— 누나두 할 말 있음 얼른 할게지…》 《그래 저… 저 훈춘에 큰누나가…》 《뭐?!》 《큰누나…  혁화언니…》 정철이는 금시 전기줄에 닿은 듯 화뜰 놀라면서 누나의 손을 팽개쳤다. 《누나, 또 그 소리요?》 정철이는 대번에 가파른 언덕을 톺아오르는 황소처럼 씨근 벌떡거렸다. 주먹으로 자기의 손바닥을 땅! 쳤다. 안절부절 못하는 정철이였다.     《정철아, 너 누나 말을 듣는다구서두?》 《다른 말은 다 들어두 그 쌍년 말은 안 듣겠소!》 《얘, 정철아!》 《안 듣는다는데! 》 칼날같은 정철이였다. 정철이는 자리를 차고 발딱 일어났다. 《정철아, 게 앉어! 》 정선이는 간신히 일어나 앉으며 정철이한테 명령했다. 그 소리에 발목이 잡힌 정철이는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정철아, 혁화언니 급성당뇨병이란다…》 《당뇨병이 아니라 암이면 뭐라오?》 《지금 연변병원 관찰실에 와 있다는구나.》 《그런걸 누난 상관할게 없소!》 《정철아, 혁화언니두 사람인게 인제는 자기의 죄를 느끼구 있겠지…》 《죄!? 으하하하…》 정철이는 미친 사람처럼 앙천대소하였다. 정선이로서도 정철의 마음을 돌려 세울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앓는 몸으로 오직 바랄수 있는 사람이란 정철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철이가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나오니 무슨 뽀족한 수가 있겠는가? 정선이는 두눈을 꼬옥 감고 맥없이 자리에 드러 누웠다. 그렇게 모진 정철이도 눈앞에 쓰러지는 누나를 보고 주춤 제 자리에  물앉았다.  《누나, 누나 병부터 먼저 고쳐야 하는거야!》 《야—세상에… 어디 이런 변이 있느냐? 우리 3형제는 어찌되여 이렇게 원쑤처럼 지내야만 하니?》 《그게 어디 누나나 내 탓이오? 우린 3형제가 아니오! 우린 누나하고 나, 이렇게 오누이 둘밖에 없소. 그래 그따위 쌍년도 인간이란 말이오? 누나, 그래 잊었소? 》 《정철아, 그만해!》 《난 못 잊소! 난 죽어두 못 잊겠단 말이오. 누나 정말 머리가 돌지 않았어?》 《아니다. 누나는 머리가 돌지 않았어! 그 때 언니두 오죽했으면 그랬겠니?》 《이것 보지. 그러기에 누나 멍청이야! 누난 세상 둘도 없는 멍청이야, 멍청이야! 》 정철이는 제 가슴을 잡아 뜯으며 좁은 방이 쩌렁쩌렁 울리게 고래고래 소리 찔렀다. 웬일인지 두 사람의 대화는 여기서 동강나고 말았다. 무서울 정도로 괴괴한 침묵이 흘렀다. 둘은 눈물범먹이 된 눈으로 물끄럼 말끄럼 서로 쳐다 보고 있다. 정선이는 떨리는 손을 내밀어 정철의 손을 끄잡아 당겼다. 살뜰한 정이 흘러가고 뜨거운 정이 흘러오고 있었다. 혁화 때문에 성들을 냈지만 오누이의 정은 변함없이 고스란히 흐르고 있었다.                4        정선이는 쿵당쿵당 충계를 내려가는 정철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엉거주춤 일어섰다. 방금 정철이는 《누나, 다시 혁화이야기를 꺼내면 누난 내 누나 아니요!》하고 최후통첩을 내리고 떠나갔다. 정선이는 더는 누워있고 싶지가 않아서 밖으로 나왔다. 밖은 벌써 어두운 밤이였다. 가로등이 환히 켜졌고 전조등을 켠 택시들이 밤거리를 뻔질나게 달리고들 있었다. 정선이는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며 거리길에 섰다. 웬 택시가 정선이의 옆에 와서 스르르 멈춰섰다. 정선이는 마치 택시를 기다린것처럼 택시에 올라 앉았다. 《어디 가시려는지요?》 《예?》 《저 어디까지? 》 《가는데 까지 가자요.》 택시운전수는 정선이를 뒤돌아보고 알겠다는 듯이 부르릉 발동을 걸면서 밤거리를 내달렸다. 가로등도 뒤로 물러서고 택시들도 다가 와선 뒤로 뒤로 뻔질나게 사라지고 《어디가실까요?》 《그냥 가세요.》 정선이는 등받이에 기대여 두눈을 지긋이 감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했다 그러나 정철이가 고래고래 소리치던 그 웅글은목소리가 지금도 귀청을 아프게 때리였다. 그리고 혁화의 그 무서운 얼굴이 눈앞에 서서히 나타났다.  1976년 아버지의 병은 오랜 간염…L에 간암으로 번졌다 그래서 21살에 나는 정선이는 큰 마음을 먹고 훈춘에 시집간 영옥언니를 찾아갔다. 돈은 걱정 말고 정선이와 함께 아버지를 모시고 북경병원에 가자고 말이다. 그런데 언니는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했다.  《그래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어디 했니? 이 계급투쟁 년대에 현행반혁명으로 자식들에게 루를 끼쳤으면 됐지 그것두 모자라서 또…여태 모르는척 하다가 제가 죽게 되니 이 딸을 찾는다니?》 《건 아버지 요구가 아니예요! 건…제 생각에서…》 《그래두 난 못 가!》 혁화는 바로 이런 인간이 아니였던가! 그때 더는 방법이 없어서 정선이가 아버지를 모시고 북경병원에 갔다. 아버지는 병원침대에 누워서 다시는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이 불쌍한것아. 이 아버지에겐 자식이 너 하나밖에 없구나》 《아니, 아니예요. 정철이두…》 《그래 정철이두 있지…》 《아버지 그리구 혁화언니두…》 《그 그만둬! 그 쌍년 이름은 듣기두 싫어, 싫단 말이여!》 아버지도 혁화언니를 자기의 딸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러니 혁화는 나의 언니도 정철의 누나도 아니지 않는가? 그후 아버지는 끝내 북경병원에서 잘못되였다.  《아버지-》 정선이는 아버지를 목놓아 부르며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심장이 툭 멎는것만 같았다. 정선이는 끝내 정신을 잃고 사망된 아버지 옆에 쓰러졌다. 이렇게 아버지의 병시중을 왔다가 정선이는 심장병으로 몸져눕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 북경에서 언니한테 전보를 쳤는데 언니는 감감무소식이였다. 아버지의 골회함을 안고 연길에 왔을 때도 언니는 반쪽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이래도 그래 혁화는 나의 언니란 말인가? 아니다! 과연 정철의 말은 추호도 틀린데가 없다. 혁화는 그때 벌써 우리를 배반한 인간이다! 그래도 혁화는 제 아들을 시켜 나를 이렇게 찾고있다. 마지막으로 살려 달란다. 나 한테 애걸복걸한다 왜서? 혁화가 사람이라면 어디 말해 봐, 말해 보란말이야! 정선이는 속으로 이렇게 목놓아 부르짖었다. 그래 혁화는 무엇 때문에 장장 24년간 소식이 없다가 이렇게 나타났을가? 뭐 《연변일보》에서 내 소식을 알고?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돈, 그래 그 돈을 어떻게 벌었던가? 아버지가 돌아간 후 정선이는 제대군인과 약혼하고 벼락결혼까지 하였다. 정선이는 아버지께서 남겨준 집을 팔고 그 돈으로 식당을 꾸리였다. 그리고 세방살이를 하면서 아글타글 돈을 벌어 지금 이 정도로 되었다. 지금은 큰 식당을 앉히고 몇십만원 저금하고 살게 된것이다.  그런데 오늘 혁화가 손을 내민다. 그 돈으로 입원시켜 달란다. 그래 돈이 없으니 나를 찾은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바로 이것이 답안이다! 그렇게 많은 의문부호들이 금시 사라지고 드디어 종지부호가 크다맣게 찍어졌다. 그러니 정선의 무겁던 가슴은 가든해지고 정선의 몽롱하던 눈앞은 안개가 걷히듯이 점차 맑아졌다. 《기사님, 여기 어디죠?》 《예, 여긴 조양천입니다.》 《조양천?》 《그래요.》 《택시를 돌려주세요.곧장 연변병원으로 몰아요!》                5        연변병원 관찰실 문앞에 이른 정선이는 무춤 서버렸다. 여기까지 찾아오고서도 그래 들어가야 하는가? 아니면 아예 돌아가야 하는가? 정선이는 망설이게 되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발걸음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관찰실 문앞으로 다가갔다. 유리창 너머로 서너명 되는 환자들이 보였다. 정선이는 대뜸 혁화를 알아보았다. 그렇게 고웁던 얼굴이 24년 지난 오늘은 살이 빠지고 쪼골쪼골 주름이 잡혀서 볼모양이 아니였다. 그렇게 생기돌던 두눈도 푹 꺼져 들어가 감겨져 있었다. 앙상한 장작깨비 같은 손등에 꽂은 주사바늘을 통하여 점적주사약이 한방울 두방울 가녀린 몸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어쩐지 측은한 생각이 든 정선이는 관찰실 문을 살며시 열고 환자들에게 눈인사를 하면서 혁화 한테로 다가갔다.  《아재 아니오?》 《누군데?》 스무나문살 되어보이는 청년이 손부터 내밀며 물었다. 그러나 정선이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는것을 보면 혁화의 영철이라는 그 아들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저으기 노(怒)자가 든 정선이는 영철이를 알은체도 하지 않았다. 정선이는 침대곁에 다가가 혁화의 손을 잡았다. 소학교 다닐 때의 그 보드라운 손이 아니였다. 그때 혁화가 움퍽눈을 가슴츠레 뜨고 정선이를 알아보았다.  《네가 왔구나!》 혁화는 이렇게 말하고는 두눈을 다시 감는것이였다. 정선이는 대답 대신 그저 손을 지긋이 잡았다.  《네가 왔구나. 네가! 고맙구나…》 《아…ㄴ…니…》 《이 죄많은 나를 …그래두…언니라구…그예…찾아 왔구나…》 혁화는 가냘픈 목소리로 그러나 울음 섞인 목소리로 띄엄띄엄 말하는것이였다.  《용서해다구 정선아…》 《….》 정선이는 대답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고개 한번 끄덕잖고 혁화의 입만 뚫어지게 지켜볼뿐이였다. 혁화는 눈물 코물 흘리며 뭐라고 주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선의 귀에는 그것이 통 들리지를 않았다. 혁화가 어찌나 흐느끼며 오래동안 지껄이는지 나중에 정선이는 마지 못해 귀를 기울이였다.   《…내라구 왜 아버지 딸이 아니겠니? 그때 현행반혁명으로 몰리운 아버지 때문에 …나는 남 다 드는 홍위병에두 못들어댔어…군중조직에서는 아버지와 계급계선을 나누어야 …홍위병에 들수 있댔어 홍위병에 들어야 …북경 천안문광장에 가서..모주석의 검열을 받을수 있었던거야…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투쟁했던거야. 아버지를 타도하는 구호를 부르고…그 결과 나는 홍위병에 들고…북경에 가서 모주석의 접견도 받구…반란파표병(본보기)까지 되었지만 …아버지는 타도되고 아버지는 앓아눕구…아버지는 돌아가시구…》 그래도 정선이는 가타부타 말이 없이 귀만 열어놓고 혁화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가고 밭아 듣고만 있었다.  《정선아, 그때 나는 반란파 대장과 련애를 했댔어…그런데 아버지와 계급계선을 나누지 Ÿ鳧만 결혼을 안 한다는거야…그땐 검은 5류분자 자녀는 시집두 못 가는 세상이였어…그래서 나는 결혼하기 위하여 아버지를 반란하고 우리집두 반란하구 이름두 반란하구…형제두 반란하구…아이구 기가 찬 세월이였어…》 그래도 정선이는 아무런 응대도 없었다. 《정선아, 아버지가 앓아 북경간다구 할 때두…아버지가 암으로 세상 떴다 할 때두…난 그때 화선입당을 하느라구 납뜰 때였어. 당에 들자면 립장이 견정해야 한다는거야…그래서 난 얼굴 한번 내밀지 않았던거야…이런 나를 그래 아버지의 딸이라구 할수 있겠니? 내가 죄를 졌지 죄를 졌지 무어야..》 여기까지 듣던 정선이가 갑자기 소리 찔렀다. 《듣기 싫어요!》 《정선아》 《그만 해요!》 계급투쟁 년대에 제 한목숨 살자고 살판치던 한 인간의 때늦은 후회를 더는 듣고싶지가 않았다. 정선이는 입술을 짓깨물었다. 어쩐지 오열이 화끈 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입당? 아버지를 잡아먹은 인간이 그래 만백성을 위해 전심전의로 일할수 있어? 당에서 그래 혁화같은 인간망종을 받아들여? 최저한도의 인간성마저 깡그리 게세 당한 인간! 그래 가지고 혁명은 무슨 뚱딴지 같은 혁명이야! 정선이는 입을 하 벌리고 자기를 멍하니 쳐다보는 혁화를 갈기 갈기 찢어놓고만 싶었다. 이같이 악착한 혁화라는 인간과 인연이 맺어진 것이 한없이 저주로 왔고 또 그런 인간을 언니라고 부르게 된것이 한없이 원통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호사가 들어와서 정선의 어깨를 툭툭 쳤다.  《밖에서 손님이 찾아요.》 《손님?》 정선이는 엉거주춤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는 키가 구척같은 청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 이게 무슨 짓이야! 정말 그냥 이럴 테야?》 그 사람은 정철이였다. 정철이는 다짜고짜 정선의 손을 덥썩 잡고 밖으로 내끌었다. 허둥지둥 끌려 나온 정선이는 정철이 한테 떠밀려 차에 올랐다. 차는 부르릉 앞으로 내달리였다.                   6         그날밤 정선이는 한잠도 자지를 못하였다. 혁화는 얼마나 모질고 영악한 인간인가! 문화대혁명 기간에 죄 지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제 잘못을 느끼고 새사람이 된지도 오랜데 어찌하여 이제 와서야 눈물코물 흘리며 잘못을 느낀다고 할가? 정선이는 두 눈을 껌뻑껌뻑 하면서 혁화 모습을 눈앞에 떠올렸다. 살이 싹 빠져 피골이 상접해 볼모양이 없이 된 혁화, 그래도 없는 눈물을 짜가면서 말하던 혁화…말하는것을 보면 어느 정도 제 잘못을 느끼는것 같기는 하였다. 그렇다면 죄를 느끼는 혁화를 내가 리해하지 못하는 것이란 말인가? 정선이는 머리를 마구 가로 저었다. 도무지 저로서도 가늠이 가지 않았다. 혁화와 나, 나와 혁화, 그 누가 그 누구를 리해하여야 한단 말인가? 아버지가 간암에 걸려 북경으로 함께 가자고 했을 때 혁화는 뭐라고 떠버렸던가?《제가 죽게 되었으니 이 딸을 찾는다》고 악다구니질을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번에 제가 죽게 되었으니 동생이라고 오늘 나를 찾아온것이 아닌가? 가증맞은 인간! 죄를 입어 급살맞을 인간! 죽어 천만번 마땅할 쌍년! 이렇게 욕하여도 혁화는 할 말이 없을것이다. 그래, 없고 말고! 정선이는 미친 사람처럼 악- 소리쳤다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런데 지난날 혁화가 그렇게 미웠는데 오늘 혁화를 미워하는 나는 그래 어떤가?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오늘 내가 죽어가는 혁화를 옆에 두고 손벽치며 잘코사니를 부르면 어떻게 될가? 오십보 백보라구…그래 혁화와 내가 무슨 구별이 있단 말인가? 시대가 변하여 오늘은 경제시대에 진입했다. 혁화는 지난 혁명시대의 력사적인 죄인이다. 그렇다면 오늘 경제시대에 나는 현실적인 죄인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아니다. 절대 나는 혁화와 같은 그런 시대적인 죄인으로는 될 수가 없다.  정선이는 머리를 털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까칠한 손으로 제 가슴을 치면서 울던 혁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혁화는 그래도 뒤늦게나마 자기의 과오를 느끼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혁화가 자기가 저지른 죄를 인정하고 또 그 죄를 내가 용서한다면 남은 것은 하나밖에 없는 언니 혁화뿐이다. 함께 아버지의 피줄을 이어받은 언니다. 언니,어릴 때 나의 손을 잡고 다니던 언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서로 나눈 피! 그 언니를 용서해주자. 하나밖에 없는 우리 언니를 용서, 용서, 용서해주자! 여기까지 힘겨웁게 생각을 굴려오는데 《누나 멍청이야!》하는 정철의 목소리가 대포소리처럼 들려왔다. 두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정철이는 없었다. 환각이였다. 정선이는 흠칫 놀라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정선이는 그런 멍청이가 되고싶은 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7   이튿날 정선이는 남편과 상론하고 《남편이 돈은 내더라도 언니를 만나서는 절대 안된다》는 전제조건을 내건 다음 선불금 4000원을 내고 언니를 연변병원에 입원시켰다.  정선이는 그날부터 매일 정심밥을 차려가지고 언니한테 다녔다. 그 옛날 아버지가 《검은굴》에 갇혔을 때 정철이의 손을 잡고 아버지 한테 밥을 날랐건만 지금은 정선이 홀로 언니한테 밥을 나른다. 어쩐지 정철이와 함께 밥을 나르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정선이였다. 오늘도 정선이는 정심밥을 들고 식당문을 나섰다. 하늘에 먹구름이 낮게 드리웠다. 숨막히는 날씨다 금시 소나기가 퍼부을 잡도리였다. 언니가 시원한걸 먹고싶다고 하기에 오늘은 랭면을 말아서 보자기에 싸가지고 나섰다. 이제 막 택시를 불러 타자고 하는데 지나가던 택시가 휘우듬이 꺾어들더니 정선의 앞길을 막으며 칙 하고 멈춰섰다. 정선이는 하마트면 넘어질번 하였다.  《눈이 없나요?》 부아김에 정선이는 입에서 뱀이 나가는지 구렝이 나가는지 모르고 욕을 퍼부었다. 그때 차창문이 열리더니 어떤 사내의 머리가 불쑥 나왔다. 검으락푸르락 하는 정철의 얼굴이였다.  《누나, 또 어디 가는거야?》 《…》 《또 병원 가지?》 《…》 《걸 보기오, 뭔가?》 정철이는 팔을 쑥 내밀어 정선기가 든 보자기를 나꾸어 챘다. 그 바람에 그릇이 기우뚱거려 간장물이 주르르 흘렀다. 정철이는 그 보자기를 잡아채더니 저쪽 아스팔트길에 팽개쳤다. 금시 꽝! 하는 폭발소리가 터졌다. 육수물을 넣은 보온병이 깨지는 굉장한 폭음이였다. 정철이는 누나의 팔을 끄잡아 당겨 무작정 차에 올려앉혔다.  《누나, 그 잘난 언닌지 뭔지 죽겠으면 죽게 내버려 둘게지. 누나 무슨 배가 아파 이 지랄이야!》 《정철아, 너 너무 그럼 못쓴다. 정철아 너두 지난날의 영옥누나를 얼마나 미워하구 있니? 그런데 지금 너두 지난날의 영옥누나처럼 사람같잖은 그런 행동을 해서 되겠니?》 《뭐라구?》 《혁화는 정치로 아버지를 못살게 굴었는데 너는 지금 죽어가는 혁화를 돈으로 못살게 굴면 되겠니?》 《말이면 다 하는줄 알어? 내가 언제…》 《정철아,난 네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걸 잘 알고 있어. 너두 빈곤호를 돕느라고 2000원 의연금을 냈다구 어제 신문에 났더구나.》 《그렇소. 혁화가 인간이라면 2000원이 아니라 20000원이라두 내겠소. 지금 난 누나땜에 막 미치겠단 말이오!》 《그래두 아버지의 피줄을 이어받은 누님이 아니니?》 《피줄이구 나발이구 이젠 그런 말 집어쳐!》 정철이는 신경질적으로 꽥 소리 찔렀다. 그리고선 부르릉 차를 냅다 몰았다. 번개가 번쩍, 우뢰가 꽈르릉! 대번에 대줄같은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콩알같은 비방울이 사정없이 차창문을 들입다 뚜다린다. 혁화언니가 얼마나 큰 대못을 정철의 가슴에 박아놓았으면 정철이가 이 정도로 미쳐 날뛸가? 정선으로서는 리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정선이는 곧은 직장인 정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정철이는 《이거 물럿!》하면서 정선의 손을 탁 뿌리쳤다.  택시는 억수로 퍼붓는 비속을 뚫고 빵빵 고속도로 달렸다.                  8        언니의 병은 놀랍게도 빨리 호전되였다. 그러나 정선의 병은 되려 악화되여 갔다. 정선이는 연변병원에 입원하라는 의사의 권고도 마다하고 한사코 연길시병원에 입원하였다. 언니의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가 않은 정선이였다.  병이 거의 나아진 영옥언니가 과일구럭을 사들고 오늘 연길시병원을 찾아와서 의지가지 없이 고생스레 혼자 아글타글 살아온 정선이를 문안하고 있다.  《정선아, 언닌 래일 퇴원하는구나. 너의 병이 낫기 전에 내가 먼저 나가게 되어 이 언니 가슴이 정말 아프구나. 고맙다, 정선아… 너 남편두 어제 너 몰래 나를 찾아왔더구나…》 《뭐라구요?》 남편이 전제조건을 어기고 정선이 몰래 혁화언니 방문을 하였단다. 정선이는 남편의 처사가 눈물겹도록 고맙기만 하였다.  《그리구 나 정철이를 보구 싶다만 죄 지은 년이 보자구 할수두 없구…》 《언니…정철이를 리해…》 《알았어 알았다구… 어떻게 하나 너네 오누이 재미있게 잘 지내다구…사람구실을 못한 언니 정말 부끄럽구나…》 언니는 이런 말을 남기고 점적주사를 맞고있는 정선이를 두고 떠나갔다. 정선이는 언니가 나간 출입문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그렇게 밉던 언니를 이렇게 용서해주자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던가! 정치시대에 혁화가 진 빚을 오늘 경제시대에 와서 청산하자니 그렇게 힘들고 그렇게 어려웠던것이다. 지나간 모든 일들이 몽롱한 안개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다. 어지럽던 지난날의 세상사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였다  《탕탕탕…》 누군가가 출입문을 다급히 두드렸다. 문이 벌칵 열리더니만 땀투성이가 된 정철이가 나타났다. 며칠전에 목단강으로 장거리를 뛰고 어제 저녁에 돌아온 정철이는 오늘에야 누나가 연길시병원에 입원한것을 알고 이렇게 드달려온것이였다.  《누나, 왜 이러는거야?》 《내 어쨌니?》 《에씨 또 그 쌍년 때문이야?》 《정철아…》 《그 쌍년이 옛날엔 아버지를 죽이더니 오늘은 누나를 죽이자는게 아니구 뭐야!》 《그렇게 말하는게 아니야》 《듣기 싫소. 급살맞아 뒈지지 않나 두고 보란 말이야!》 《정철아 영옥언닌 그래두 너를 보고싶어하더라.》 《걷어치우오. 옛말이면 듣기나 좋지. 더럽소, 더러워!》 《정철아 영옥언닌 래일 퇴원할거야…》 《퇴원?》 《병이 다 나았다누나》 《뭐? 누날 죽게 하구 자긴 나가구?》 정철이는 침대 옆에 놓인 탁상을 꽝 들입다 쳤다. 탁상 우에 놓였던 혁화가 사온 과일들이 떽데구르르 굴러 떨어졌다.  《퇴원 못해! 죽여 치울거야!》 정신 나간듯 정철이는 고래 고래 소리치며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 나갔다. 와당탕 분노한 발걸음소리가 병원복도를 쩌렁쩌렁 울리였다.                         9         그 이튿날 영옥이가 퇴원하는 날이였다. 퇴원수속을 다 마치고 아들과 함께 병원문을 나서는데 색안경을 건 어떤 사람이 다가왔다.      《요부요 쭤처?(차를 타지 않겠어?)》 《장거리를 뛸수 있습니까?》 《썬마?(뭐라구?)》 아들은 색안경을 건 키 큰 청년을 올리 내리 훑어보았다.  《어머니 한족 사람입니다.》 《한족사람이면 뭐라니, 마침 잘됐다 짐두 많은데…》 이쯤되자 아들은 택시 운전수와 흥정을 걸었다.  《넝부넝취 훈춘?(훈춘으로 갈 수 있나요?)》 《싱(그러지)》 《둬소챈?(값은 얼마인가요?)》 《관타마디 쟈챈 취바(값같은 소리하네 가자구)》 택시운전수는 영옥이네를 택시에 앉히고 도문쪽으로 향하여 차를 냅다 몰았다. 택시가 어찌나 쏜살같이 달리는지 거리 집들이며 차들이며 언뜰언뜰 뒤로 뒤로 물러갔다. 차가 쉴새없이 들추는 바람에 머리가 연신 천정에 맞부딛쳤다.  《쓰지, 쏘우 만이댈마(기사님 좀 천천히 몰아요)》 《메이 쓰잰(시간이 없어)》 택시 기사는 웬일인지 택시를 한결 더 빨리 몰았다. 후미진 내리막길을 뻔질나게 미끌어 내려갔다가 이번엔 빵빵 하늘로 치달아 날아 올랐다. 껑충 언덕에 뛰여 오른 택시는 귀부리 쌩쌩 소리날 정도로 미친듯이 달렸다. 길 량쪽 백양나무들도 쓰러질듯 달려왔다가는 뒤로 뒤로 잦빠지며 물러갔다. 《어머니 기사가 술 마셨잖습니까?》  《모르는 소리. 술 마시구 차를 어떻게 몬다구 그러니..》 그때 차는 급작스레 삐익! 하면서 급정거하였다. 관성 때문에 영옥이네는 앞의자 등받이에 냅다 골받이를 했다.  《쓰지(기사님)》 《뚜이부치(미안해)》 택시기사는 담배 한가치 꺼내 물더니 팍 하고 라이타를 켜댔다. 담배연기를 길게 빨아서는 푸 하고 내뿜었는데 그 연기는 마치 모진 굴뚝에서 나가는 타래치는 연기 같았다.  이윽고 택시기사는 부르릉 하고 차를 다시 몰았다  《애야, 너 정선의 은덕을 잊지 말거라》 《예, 어머니》 그때 택시기사는 급작스레 또 제동기를 꽉 밟았다. 그 바람에 차는 앞으로 꼰졌다. 기사는 웬 일인지 입에 물었던 담배를 퉤!하고 내뱉었다. 영옥이네는 하도 의아쩍어서 서로 쳐다 보았다. 알고도 모를 일이였다. 차는 또다시 달렸다. 침묵이 흘렀다. 한참 후에 영옥이가 침묵을 깨뜨리였다.  《우리 같은 농촌사람들이 어디 돈이 있어 이런 택시를 탈수 있겠니? 어제두 정선아재가 돈 200원을 따로 주면서 집으로 갈 때 꼭 택시를 타라구…택시를 타지 않으면 언니가 아니라구…흐윽..그래서..》 《어머니 또 우시네…》 《그래 인제 안 울게…좋은 아재두 찾았는데 울어선 안되지 …아! 그런데 이 에미 어찌 지독하였으면 정철이 그 애가 글쎄 마흔닷새 되는 동안 한번두 찾아 안 왔겠느냐? 다 내탓이지…》 《그 외삼촌 말입니까?》 《그래, 세상이 뒤죽박죽이 된 그 세월에 사람두 사람나름이였지. 그 험악한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모두다 사람답게 살았는데 이 에민 그러지를 못했구나. 말로는 혁명을 한답시구 했지만 그게 어디 혁명이였니? 제 살 궁리만 하다나니 결국은 아버지두 잡아먹구 동생들두 잃어버리구…너는 절대 이 에미처럼 살아서는 아니된다 안되지!>. 《어머니 알만함다. 인제 그만 말씀하세요>. 그때 차는 또다시 부르릉하고 속도를 내였다. 먼지를 뽀얗게 날리며 앞으로 앞으로 내달리는 택시, 도문을 지나 두만강기슭을 따라 털렁털렁 들추며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였다. 《쓰지 또우라(기사님 다 왔어요)》 《쓰마(그래)》 《둬소챈?(얼마죠?)》 《둬소챈?(얼마죠?)》 기사는 웬일인지 힝 코방구를 뀌며 영옥의 아들의 말을 복창하였다. 그리고서는 빨리 택시에서 내리라고 호통하다싶이 영옥이네를 재촉하였다. 영옥이네가 택시에서 내리자 기사는 택시문을 쾅! 걷어 닫았다. 뒤미처 기사는 가던 방향을 향해 부르릉 차를 몰고 내뺐다 《쓰지- 저 챈…(기사님 이 돈을…》 《군타마디(꺼지라구)》 기사는 웅글은 목소리를 뽀얀 먼지 속에 휘말아 버리면서 머얼리 내달렸다. 그러던 기사는 갑자기 운전대를 주먹으로 빵 치며 소리쳤다.  《혁화, 혁화는 죽었어!》 갑자기 기사는 제동기를 밟으며 차를 급정거 시켰다. 그리고 차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뒤를 돌아다 본다.  《그렇다면 영옥이는…?》 그러나 영옥이는 이 모든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영옥이는 저 택시 기사가 정철이라는것을 끝까지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택시가 보이지 않을 때가지 고마운 저 택시 기사한테 영옥이는 오래 오래 손을 젓고 있었다.    
301    대하소설 졸혼 제5권 (65) 김장혁 댓글:  조회:2439  추천:0  2022-12-14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5. 메아리          문걸이 주방에서 처자들의 손때가 묻은 밥상과 걸상을 매만지면서 추억의 돛배에 올라탔을 때다.        지예가 활짝 웃으면서 유림을 데리고 들어섰다.        “외할아버지!”        “오- 유림아! 요 귀염둥이야. 아바이 안아보자.”       문걸은 외손자를 꼭 껴안고 보슴털이 보시시 난 보동보동한 얼굴에 뽀뽀를 쪽 해주었다.       지예는 옆에서 생글방글 웃었다. “아빠, 이젠 아래윗집에서 살게 돼서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 뭐니뭐니 해도 늘그막에 천륜지락을 누리는게 젤 행복하지. 허허허.” 문걸은 딸이 있어 다행이였다. 그는 유림을 안고 쏘파에 앉아 놀면서 지예를 건너다 보았다. “얘야. 너도 이젠 애를 봐서 복혼하든지 재혼하든지 하면 어떠냐? 새파란 나이에 언제까지 혼자 살겠느냐?” 지예는 외까풀눈을 곱게 흘겼다. “아빠, 결혼하지 않아도 돼요. 지금은 개방세월이기에  결혼하지도 않고 얼마든지 서로 친구로 지낼 수 있어요. 한동안 동거하다가도 맞갖잖으면 서로 아무런 부담도 없이 헤여지고. 얼마나 자유로운가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아빠 앞인지라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그녀는 한참 후 좀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아빠, 이젠 복혼 말을 하지도 마세요. 졸혼하고 혼자 사니 얼마나 좋아요? 시집 눈치도 보지 않고 애를 봐주지 않는다고 시집과 신경질 쓸 일도 없어 얼마나 자유로운지 모르겠어요. 보모한테 애를 척 맡겨두고 아무런 뒷근심도 없이 출근만 하면 돼요. 아무리 애 때문이라고 해도 복혼할 생각은 절대 없어요. 생각해보세요. 이전에도 엄마한테 애를 맡겨놓고 시집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 했습니까? 아파트도 아빠 그림을 그려 사준게지 시집에서 해준게 뭡니까?” 문걸은 외까풀눈을 흘기며 딸한테 핀잔을 주었다. “얘야, 시집문제는 시집문제고. 애 아빠야 잘 못이 없잖느냐? 사위 남녀관계문제만 없으면 복혼해라.” 지예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또, 또. 아들이라면 부모와 안해 중간에서 잘 처신해야죠. 뭐나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뉴대작용을 잘 해야죠. 시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리 세대는 혼인과 가정, 인생에 대한 가치관념이 아버지 세대와는 판판 달라요. 지금 결혼하지 않는 독신이 얼마나 많은가요? 결혼을 후회하고 졸혼을 얼마나 선호하는지 아는가요? 졸혼하고 아무런 가정 부담도 없이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자기만의 삶을 사는 것이 저의 꿈인데요.” 문걸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졸혼은 선호할게 아니야. 너네 엄마를 봐라. 생전에 무슨 졸혼하고 자기만의 인생을 자유롭게 살겠다고 하더니 어떻게 됐니? 몇십년이나 날 속이고 살고서도  가정을 다 깨고…넌 절대 엄마처럼 살지 말라.” “엄마 말을 그만 하세요. 졸혼하고 고만이라도 자유롭게 자기 삶을 살았죠.” 지예는 엄마 생각에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러나 문걸은 딸에게 계속 피의 교훈을 토설했다.      “졸혼은 가정을 깨는 이이들 불장난이야. 가정을 가지고 애들 불장난쳐서야 되니? 사랑하지 않으면 갈라져야지. 그 점에서 네가 사위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끊고 맺듯이 리혼한게 맞는다. 왜 졸혼하고 바람을 피운단 말이냐? 법적으로도 졸혼은 합법적인 간통이나 중혼을 유발할 수 있다. 졸혼은 완전히 범죄행위야. 졸혼은 비도덕적이고 비량심적인 혼인관이야."       지예는 묵묵히 아버지 말을 듣기만 했다. "졸혼이란 그저 가정을 파괴하고 애들한테 죄를 짓는 도깨비 장난이야. 넌 절대 졸혼이란 말을 다시 하지도 말라. 이젠 가정을 깨는 도깨비 장난을 작작 해라. 군철이네도 봐라. 별 일도 없어가지고 서로 졸혼하더니 가정을 깨고 애들한테 금발후에미를 다 데려다주고. 그게 뭐냐? 애리싸는 유부남이고 경제간첩이라던가. 너네 오누이 애리싸한테 경각성을 높이고 살아야 해. 졸혼이 잘 한게 뭐냐? 우리 세 가정을 몽땅 파탄에 몰아넣지 않았느냐?” 지예는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오빠 근심은 하지도 마세요. 년금이 2백만원이나 되는 전무로 됐는데요. 숱한 숫처녀들이 침을 질질 흘리면서 줄을 서서 따라다닙니다. ㅎㅎㅎ.” “무슨 소리냐? 애 둘이나 있는 군철을 따르는 바보도 다 있다더냐?” 지예는 외씨처럼 하얗고 걀죽한 얼굴에 정색했다. “하나랑 경희랑 은희랑 왜 30대 중반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고 있는지 아세요? 다 오빠 리혼하자마자   어떨꿍해 이제껏 기회를 노려보고 있는데요. ㅋㅋ.” 문걸은 억이 막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애비에 그 아들이구나. 싸리 긁에서 싸리 자라지. 참대 자라나겠느냐?) 지예는 필경 엄마 피라도 나눈 오빠라고 은근히 될수록 군철의 험담을 하지 않고 아버지와 화해시키려고 애썼다.      "아빠, 오빠 섭섭하게 굴었다고 노녀워하지 마세요. 보쇼. 그래도 이 비싼 상해 아파트까지 아빠한테 주지 않았는가요? 오빠는 그래도 량심이 있습니다." 군철도 동감을 표시했다.      "그래. 군철은 그래도 인간성 있는 효자야. 길러준 정을 잊지 았았구나.  친애비하고는 판판 달라. 얼마나 청렴한 당간부냐? 자기 리속에만 눈이 어두운게 아니라 항상 국가와 회사, 직원들의 리익을 첫자리에 품고 일하잖느냐? 지금 경제시대에 군철 같은 청렴한 당간부는 참 대단해."     지예도 동을 달았다. "오빠는 이제 전국 당대표대회에 다 참가한다잖아요?"    지예는 자기 신상의 말을 또 꺼낼가 봐 화제를 제꺽 아버지한테 돌렸다. “아버지는 춘희박사와 어쩔 예산입니까? 이젠 그만 지내봤으면 빨리 매듭 지으면 어때요?”     문걸은 머리를 끄덕이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이튿날 문걸은 춘희를 만났다.     강남 하늘에 어쩌다 구름 한점 없이 해빛이 찬란해 기분이 좋았다. 그들은 소주에서 제일 으리으리한 고층건물- 동방의 문에 자리잡은 고층커피숍에서 만났다.      커피숍 창가에 마주 앉으니 푸르른 파도가 출렁이는 가없는 호수가 안겨왔다.      호수에는 하얀 돛배가 하얀 물갈퀴를 일구며 쏜살같이 미끄러져 나간다. 구름 한점 없는 맑고 푸른 하늘에는 커다란 한쌍의 원앙새연이 봄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나래치고 있었다.      강남은 언제 겨울이 왔는가 싶이 이젠 봄기운이 완연하였다. 거피숍의 방마다 푸르른 참대 숲으로 둘러 있어서 록색대자연에 들어선듯한 감이 들었다. 좌석에 앉으니 춘희와 넓다란 파초 잎과 월계화 꽃송이가 반겨 맞아 기분이 한결 상쾌했다.      그들은 은은한 음악이 흐르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돋구는 커피숍에서 마주 앉아 진한 커피를 호호 불며 마시였다. 인생살이 진한 맛을 음미하는 행복한 순간이였다.      한참 후 문걸은 춘희 수척해진 얼굴을 마주 바라보며 무거운 입을 뗐다.      “또 한해 지나갔구만. 요즘 리혼과 졸혼, 재혼에 대해 퍽 고민해 보았소.”      춘희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요. 저도 저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련며칠 졸혼을 생각해보았어요.” 문걸은 자못 정색했다. “그럼 오늘 서로 솔직히 말해보기오.” 춘희 외까풀눈에 뭔가 굳은 빛이 어려 있었다. 그녀도 단단히 잡도리를 하고 온 것 같았다. “아드님이 아파트까지 줬다던데요. 이젠 만년에 상해에서 살 예산인가요?” 문걸은 상해 거주문제를 두고 내심 갈등을 한창 겪고 있었다. “상해에서 살면 애들과 천륜지락을 누리는 건 좋은데. 이전에 습기 차서 온몸 관절통에 혼났소. 꽤나 겁나오.” 그는 언제나 여지를 두고 말하였다. “춘희는 상해에서 딸과 함께 살 예산이오?” 춘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 당장은 딸과 함께 자그마한 위생소에서 일할 생각이 없어요. 위생소에는 지금 코로나 PCR검사 밖에 할 일이 없는데요. 황박사가 가은이랑 복화랑 데리고 하면  돼요.  저는 먼저 고향 병원에 돌아가야겠어요.이제  최군철 전무가 정식으로 제약공장을 차릴 때 다시 고려해 보지요.” 문걸은 인차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는 졸혼이란 건 가정을 깨는 도깨비 장난이라고 보오. 졸혼은 철부지 애들의 불장난이오. 그 놈의 졸혼 때문에 나와 영희 가정이 깨지고 아들 딸도 가정이 다 깨지고 말았소. 손군들이 애비와 에미를 찾으면서 대성통곡칠 때면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소.” 춘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는 졸혼을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아요. 졸혼은  허위로 꽉 찬 억지가정을 깨버리고 참사랑에 토대한 새 가정을 이루게 하는 징검다리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정색해 똑바로 문걸을 마주 바라보았다. “저를 보세요. 졸혼 때문에 다이로교수 성학대를 피신해 고향에서 숨을 돌릴 수 있었죠. 졸혼은 저의 피난처였고 안식처였습니다. 졸혼은 결코 나쁜 신생혼인풍속도 아닙니다. 시대 조류에 순응하는 혁신적인 혼인풍속도라고 봐요.” 그러나 문걸은 외까풀눈에 실망의 빛을 띠우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혼인사가 다른 사람들은 졸혼에 대한 견해도 각기 다를 수 있소. 난 졸혼은 늙거나 앓는 남편 부담을 덜려는 아낙네들의 방편이라고 생각하오. 지금 아낙네들은 남편을 쓸모 없는 부담거리로 보기 일쑤요. 졸혼은 또 바람 피우기 위한 비도덕적인 구실이라고 보오. 사랑하지 않으면 갈라져야지. 리혼도 하지 않고 자기만의 삶을 산다? 서로 상대방의 생활을 간섭하지 않는다는가? 다 거짓이오.” 그는 커피잔을 들어 한모금 마시고 뒷말을 이었다.  “이런 실례도 다 있소. 한 부부가  서로 상대방의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기로 졸혼각서까지 쓰고 따로 집을 잡고 살았다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안해는 남편이  다른 녀성과 바람 피우는 걸 발견하고  남편을 중혼죄로 법정에 소송했다오. 보오. 졸혼하고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삶을 살 수 있소? 절대 안되오. 건 허위에 찬 결혼생활의 시작이오.” 문걸은 영희와 결혼해 속히워 산 일 때문에 재처럼 타는 속을 다 털어놓았다. “이 세상에 어디 참사랑이라는 것이 있소? 허위와 배신 밖에 뭐가 더 있소?” 춘희는 외까풀눈으로 눈물이 글썽한 문걸의 맑은 눈을 바라보았다. “참사랑은 있지요. 저는 본댁에 대한 리선생님의 사랑이야 말로 세상을 놀래우는 참사랑이였다고 보는데요.” 문걸은 언성을 높이며 손사래를 쳤다. “영희 말은 하지도 마오.” “아니죠.” 춘희는 뒷말을 이었다. “리선생님은 생사선에서 헤매는 본댁을 살리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가요? 화실까지 팔고 수상상금까지 다 내놓고도 모자라 한국 건축현장에서 막일을 해 치료비용을 대주었지요. 그게 안해한테 주는 참사랑이 아니고 뭡니까?” 문걸은 머리를 홰홰 저었다. “다 사기당한 짝사랑인데. 자꾸 말해 뭘 하오?” 그러나 춘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때 저는 안해 영희 무용수에 대한 리선생님의 참사랑에 감동됐는데요.” “무슨 쓸데 있소?” 문걸도 도리머리를 저었다. “남자나 녀자나 첫 대상을 잘 만나야 하오. 거짓말을 할줄 모르는 참된 사람 말이오. 영희 같은 그런 참사랑 사기군녀자를 만나면 한뉘 개고생하게 되지.” 춘희도 동을 달았다. “녀자도 첫신랑을 잘 만나야죠. 그런데 전 주정뱅이를 만나지 않으면 성변태를 만나 개고생을 다 했죠. 아마 그것도 제가 타고 난 팔자이고 운명이겠죠.” 그녀는 생각 밖으로 이런 말을 했다. “지금 현시대 청년들의 실험결혼도 좀 도리 있다고 봐요. 무턱대고 결혼해 애까지 낳은 다음에 리혼하면 애는 어쩌는가요? 그렇다고 잘못 만난 남자와 억지로 산다는 것도 말은 아니죠. 세상에 어디 마음에 딱 드는 참사랑을 찾기 그리 쉽겠어요?” 문걸은 동을 달았다. “춘희박사의 사랑이야 말로 나에 대한 참사랑이라고 보오. 날 살리려고 자기 뜨거운 피까지 수혈하지 않았소?  내 몸에는 지금도 춘희박사의 인간애가 넘치는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소.” “건 환자에 대한 의사의 인도주의 정신일뿐입니다.” 문걸은 춘희 두 손을 덥썩 잡았다. “아니오. 자꾸 덮어감추려고 하지 마오. 사랑이란 두 심장이 연주하는 티없이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오. 나는 춘희를 여직껏 사랑해왔소? 우리 이젠 모든 욕심과 고민을 다 버리고 참다운 사랑을 엮어나가면서 살면 어떻소?” 춘희는 손을 빼가면서 말했다. “저는 결코 좋은 녀자 아닙니다. 탐욕스런 녀자입니다. 보세요. 다이로교수의 유산을 탐내 무슨 짓을 했는가요? 황차 저는 아직 마음의 상처가 채 가셔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저도 몰라요.” “또 그 소리오? 춘희박사는 다이로교수 유산을 버리고 결단코 내 신변으로 돌아오지 않았소?” 문걸은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두고 완곡하게 에둘렀다. “춘희박사는 다이로교수를 떼나 귀국하지 않았소?” 순간, 막연한 희망의 한줄기 빛이 방불히 망망한 검푸른 대해에서 등대마냥 손짓해 부르는 것이 보이는듯 하였다. 문걸은 용기를 내 물었다. “춘희박사는 도대체 나를 사랑하오? 사랑하지 않소?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도 더 할 말이 없소.” 춘희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선생님은 진짜 행복지수가 높은 화가입니다. 선생님은 참말로  사랑할만한 분입니다.) 그러나 춘희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리선생님, 널리 량해해주세요. 저의 대답이 선생님한테 실망을 줄지도 모르겠지만은요. 오늘은 솔직히  말씀드려야겠어요.” 춘희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리선생님은 왜 재혼에 그다지도 집착하는가요?  저는 아직 졸혼 상태에서 조용히 혼자 살고 싶어요. 한동안 편안히 쉬고 싶어요. 다이로교수한테서 몸은 빠져나왔지만 아직 리혼수속도 하지 못했어요. 생각만 해도 피곤해요." 문걸은 흠칫 놀랐다. (그럼 아직도 다이로 유산에 미련을 두고 있어? 참, 알고도 모를 이상한 녀자야.) 춘희는 확실히 후지산에서 다이로교수가 남긴 유서를  아직도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 유서는 다이로교수 유산상속에 관한 친필유서 아닌가! 문걸은 아직도 춘희 속내를 잘  모르고 있었다. 춘희는 스스럼없이 뒷말을 이었다. "참.솔직히 말해, 저는 두번이나 혼인에  실패했습니다. 다이로한테서 갖은 성학대를 다 받았습니다. 때문에 재혼과 부부 생활에 염오감을 느낍니다. 겁납니다. 그저 선생님과 깨끗한 친구로 보내고 싶습니다. 일정한 시간과 공간의 여지를 두고 친구로 지내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재혼해 뭘 합니까? 각기 자기 애들도 있고 두 가정이 물리적으로 합하면 꼭 삼검불처럼 복잡하게 얽힐 거예요. 지금 숱한 가정의 화목하던 부부들도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각방을 쓰고 삽니다. 나이들수록 부부간에도 자기만의 공간이 더 필요해요. 재혼해 뭘 해요? 남남끼리 늘그막에 한 가정 좁은 공간에 갇혀 비비닥거리면 꼭 삐꺽거릴 겁니다.” 문걸은 그녀의 말에 하도 기막혀 장탄식만 하였다. (그래 날 보고 이전처럼 그대와 친구로 돼 사교무나 추면서 세월을 허송하란 말인가?) 갑자기 바깥 하늘에 먹장구름이 뭉게뭉게 몰려온다.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천지를 진동친다. 커피숍도 불시에 어둠침침해져갔다. 문걸은 인내성있게 참으며 억지로 부드럽게 뒷말을 이었다. “내 친구 성호 부부를 보오. 그 놈의 돈 때문에 20여년이나 엄정희하구 견우, 직녀처럼 갈라져 살았소. 명색이 부부지 어디 부부처럼 살았소? 다 돈욕심이 그렇게 만들었소. 사람이 과욕만 버리고 차례진 떡만 먹으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소.” 춘희는 문걸이 뭘 말한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녀도 다이로교수의 유산에 눈이 어두워 10여년이나 청춘을 허비하지 않았던가. 마끼도 그 놈의 유산을 독차지 하려고 친구 복화를 팔아먹지 않았던가. 그러나 춘희는 그런 내심은 드러내지 않고 하던 말을 계속 했다. “우리 둘이 딱 재혼해야 합니까? 우린 다 각기 딸애를 가지고 있어요. 이제 두 가정이 물리적으로 합한다고 해도  화목하게 지낼 수는 없어요. 재혼하는 남녀가 화학적으로 융합돼 새로운 참된 사랑을 잉태해야 행복할 수 있죠.  재혼하지 않고서도 재미나게 보내는 친구로, 지기로 보낼 순 없는가요? 우리 너무 조급하게 서둘지 맙시다. 졸혼이란 새 혼인풍속도를 더 탐구해보면 어떨가요? 졸혼은 자기만의 삶의 부두이고 안식처인데요. ” 문걸은 막연한 생각이 들어 커피잔만 애꿎게 기울였다. “우리 언제까지 숨박곡질하면서 평행선을 달려야 하겠소?” 그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만 두고 이렇게  말했다. "졸혼은 가정을 깨는 시한폭탄이오. 졸혼은 바람 피우는 사람들의 방패에 불과하오. 정호랑 보오. 졸혼하고 뭘 했소? 졸혼이란 방패를 내들고 뭇사람들의 눈을 피해 숱한 녀자들과 바람을 피우지 않았소?" 문걸은 춘희가 아직도 졸혼에 미련을 두는 것을 리해할 수 없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아, 이게 내가 몇해동안 추구해온 사랑의 비극적인 결말이란 말인가? 춘희가 어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 세상에 도대체 참사랑이란 것이 있는가? 춘희는 귀향해 졸혼을 만끽하면서 애완견 다빈치하고 짝꿍해 살 예산인가?)      춘희는 문걸과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이며 바람결처럼 커피숍에서 사라졌다.      (참사랑을 찾는 고행이 그리 쉬운가 해요? 10년 걸릴지, 20년 걸릴지 누가 알아요? 그렇게 오래 기다려도  참사랑을 맺을 수만 있다면야 다 괜찮지요.)      문걸은 춘희 그런 속심을 꿰뚫어보았는가.      그의 눈 앞에는 피뜩 아사꼬가 떠올랐다. (아사꼬는 이 시각에도 가짜 춘희로 돼 다이로교수를 달래고 있을가? 아사꼬가 퍽 그립구나.)      그러나 인차 도리머리를 저었다.      (안돼. 난 더는 아사꼬하고 살 수 없어. 수영장에 가서 뉘 려염집 색시들이나 구경하면서 살 순 없어. 정호는 날 금욕주의자라고 비웃었지. 허나 나도 칠정육욕이 있어. 나는 짐승 같은 정호처럼 저렬하게 정욕을 채우려고 미쳐날뛰지 않는다. 나는 티없이 깨끗한 두 심장으로 연주하는 아름다운 참사랑 멜롤디를 찾아 헤맬뿐이다. 10년이고 20년이고 고독해도 좋다. 기어이 참사랑을 찾고야 말 거야.)      문걸은 비장한 마음을 다시한번 다지였다.      (고향으로 돌아가 화가의 고독한 예술창작의 길을 걸으면서 살가? 군철이 준 상해 집을 팔면 한 600여만원 받을 거야. 집 팔아 고향에 화실도 그럴듯한 걸 사놓고 서화학원도 차릴가? …)     춘희 랭랭한 얼굴이 떠나가버린 자리에는 랭랭한 커피잔만이 차탁 위에 달랑 고독하게 놓여 있었다.       커피숍에 스물스물 몰려드는 고민과 적막강산, 푸른 참대마저 고독을 입에 물고 문걸을 묵묵히 키켜보며 조롱하는 상 싶었다. 영희 허위적인 사랑에 사기당한 자기를 비웃는 상 싶었다. 물욕에 눈이 어두운 춘희한테 끌려다닌 자기를 꾸짖는 상 싶기도 했다.        (아,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참된 녀성을 만나 단 한순간이라도 참사랑을 향수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참사랑을 이렇게도 갈망하면서 추구하던 내가 아닌가. 그런데 춘희가 어찌 이다지도 혹독하게 나를 대한단 말인가! )       순간, 문걸은 춘희가 이중생활을 하던 이상한 외까풀눈과 쌍겹눈이 눈 앞에 겹쳐 떠올랐다. 병원에서 박사의사로 병을 볼 때는 외까풀눈, 등산할 때는 쌍겹눈...      (아, 춘희는 무서운 인간박사야. 간첩처럼 갼특한 탐욕주의자?)     번개치는 추리가 여기까지 이르자 문걸은 허무맹랑하기 그지 없었다.    "아, 이게 내가 그다지도 추구한 참사랑의 쓴 열매인가!"     그는 춘희가 바람결처럼 가뭇없이 사라진 문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독한 이 순간, 그는 고향 뒤동산의 연분홍진달래꽃이 무척 보고 싶어졌다. 만금이 지은 고들고들한 이밥이 그리워졌다. 고향 집을 나간 비둘기가  퍽 그리워났다.  그러나 비둘기 대신 강남의 갈매기가 훨훨 날아와 커피숍 창턱에 내려앉아 구구거리며 몰려오는 먹장구름을 쳐다보며 하품한다.       먹장구름에서 탁구공만한 우박이 쏟아지며 돌멩이질한다. 참사랑이 박살나 호수물에 마구 곤두박힌다.     저 멀리에서 푸르른 파도가 기세 사납게 덮쳐왔다가 처절썩 호수가 방파벽을 부신다. 하얀 물보라가 신음하며 흩날린다. 푸르른 하늘에서 봄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예던 연이 줄이 툭  끊어져 호수 물에 곤두박힌다. 희망의 돛배도 호수물에 넘어져 허우적거린다.       한번 가면 다시 안 오는 인생, 참사랑을 찾는 고행 왜 이다지도 복잡할가?       진정 황혼에 졸혼이 젤 행복한가?       졸혼이란 새로운 혼인풍속도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어디에 정답이 있는가?        하늘 땅도 대답이 없다. 다만 먹장구름 속에서 불뱀이 커피숍에 혀를 홀락거리며 번쩍일 뿐이다. 우뢰가 하늘땅을 진감한다.       커피숍의 은은한 멜로디를 짓누르며 졸혼의 쓰라린 메아리가 쓸쓸하게 가슴을 울리며 아프게 허빈다.      문걸은 불시에 눈 앞이 아찔해나며 불찌가 튕겼다. 귀전에는 영희 아츠런 잔소리 쟁쟁하게 울린다. 어둠을 손더듬하며 도적고양이처럼 발뼙발뼘 화장실로 가던 오시러움이 머리 속에서 곤두박질친다. 색마가 그물을 쳐서 영희를 도적질해 끌어간다. 영희 비명소리 처량하게 들린다.      순간, 춘희와 등산하러 갔을 때 생사를 다투게 한 눈구덩이 피뜩피뜩 떠오른다. 협곡에서 춘희와 서로 꽉 껴안고 고백하던 참사랑의 메아리가 염라전을 방불케 하던 어둠침침한 협곡에 울려퍼진다. 허위로 색바래진 참사랑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쁠랙홀에 빨려들어간다. 영희와 춘희가 한데 뒤엉켜  비명을 지르며 눈구덩이에 훌러덩 빠져들어간다. 아니, 허위에 찬 사랑의 쁠랙홀에 훌러덩 빨려들어간다...       순간,  참사랑을 그렇게도 열렬히 추구하던 피 끓던 심장이 툭 튀여나왔다. 펄떡펄떡 높뛰는 심장이 커피숍 창문을 박차고 안개 자오록한 호수에 씽- 날아가 출러덩 처박힌다. 지친 심장이 참사랑 오솔길을 따라 골고다언덕을 기여올라가다가 무정한 우박의 돌총질에 얻어맞아 검푸른 졸혼의 호수 밑바닥에 처참하게 천천히 가라앉아버린다.      참사랑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번져 호수에 김이 무럭무럭 피여오르고 무수한 기포가 호수면에 솟구쳐 오른다. 수십겹 파문이 돌풍을 일으키며 쓰나미로 호수면을 덮치고 지나간다. 몇백길 분수가 먹칠한듯한 하늘로 치솟아오른다.       태호의 숱한  왕게들이 허겁지겁 기여가  집게팔로 그 허무맹랑한 심장을 건져 잔등에 업고 호수 수면에 서서히 떠오른다.       우둔한 꽃게들마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중얼거렸다.       "이 더러운 세상에 무슨 참사랑이란게 있다고 이래? 흥!"       "춘향과 리몽룡의 일편단심 참사랑이 사라진지도 언제라고. 이다지도 심장까지 애태울게 있는가?"      "괜히 심장까지 더럽힐게 있어?"       "그래요. 인간세상에 무슨 참사랑이 있다고 그래요?"       미녀로봇마저 호수에 날아와 종알거리며 충고했다.      "당신은 미녀로봇의 참사랑을 향수하며 살 팔자예요. 나하고 살자요. 내 사랑이야 말로 일편단심 참사랑이죠. 호호호."      그러나 참사랑에 전 심장은 참사랑을 이루지 못한 모든 죄를 혼자 떠메고 고행의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간다. 그 참사랑의 뻘건 심장은 재생의 꼬리로 졸혼의 로맨틱한 서정서사시를 다시 고쳐 쓰려고 몸부림친다. 우박이 창창 떨어져 불쌍한 심장을 마구 들부셔도 그대의 앞길을 막지는 못한다.       저게 뭔가?       펄떡펄떡 뛰는 심장은 골고다 언덕에서 두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먹장구름 속으로 씽 날아올라가더니 참사랑신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참사랑신의 심장은 갑자기 반짝이는 별로 돼 한줄기 눈부신 참사랑의 빛을 발산한다. 그 한줄기 밝은 빛은  먹장구름을 산산히 부신다. 어둠침침한 하늘에서 밝은 빛을 맞아 우박이 쏟아져내린다. 번대머리 가발이 흩날려 떨어진다. 섬나라 오랑캐변태의 콧수염이 흩날려 내린다.  실험관 애기, 복제애기 발버둥질치며 호수에 퉁퉁 떨어진다. 허위적인 사랑파편들, 저렬한 성애쪼박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호수에 처박힌다.                참사랑신의 밝은 빛이 지나간 하늘에는 어둠이 산산히 부서지며 맑고 푸른 하늘선이 눈시리게 아물거린다. 동녘하늘에 칠색무지개가 서서히 다리를 놓고 그대들을 손짓해 맑은 하늘로 부른다.       먹장구름을 부시며 사투를 벌이는 참사랑신의 심장, 참사랑신의 심장불덩어리가 가엽다.  빨간 빛에 흩어졌던 먹장구름은 다시 몰려들어 빨간 불덩어리를 두터운 어둠으로 덮어 가려놓는다. 참사랑신의 한줄기 빛으로 먹장구름이 뒤덮인 어둠침침한 하늘을 몽땅 빨갛게 물들이고 파란 하늘로 밝히기는 너무나도 환상적이다. 매지구름장은 파란 하늘을 간음하고 이빨 새에 끼인 어둠을 뱉어낸다.       피끓는 심장으로 연주하는 참사랑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파르르 떠는 별을 감돌며 어둠컴컴한 우주에서 가냘프게 울러퍼진다. 애처러운 졸혼의 메아리가 참사랑신의 혼을 부르며 흐리멍텅한 하늘에서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며 훨훨 나붓긴다. 기나긴 여운의 날개가  휘파람을 불며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안개 자욱한 호수에서 유유히 나래친다... 
300    대하소설 졸혼 (64) 김장혁 댓글:  조회:1811  추천:0  2022-12-14
                            74. 악몽        며칠 후 녀인도에 태풍이 기승스레 불어쳤다. 대나무들이 마구 허리 부러지게 절벽에 맞절을 하며 아우성쳤다.      비행기 아츠런 엔징소리가 동굴 밖 상공에서  배회하였다.      꽝!      갑자기 무서운 굉음이 울렸다.      비행기가 바다에 처박혔는지 대나무밭에 날아내렸는지 알길이 없다.     야만인들이 대창과 시퍼런 칼을 들고 동굴에서 고함치며 뛰여나갔다.     몇몇 야만인들이 뛰여들어와 우두머리한테 뭐라고 지지벌거렸다.     우두머리는 대나무의자에서 엉덩이를 들더니 번대머리와 미희 오빠를 데리고 동굴 밖으로 나갔다.      남자가 황금보다 귀한 녀인도에서 우두머리는 번대머리와 미희 오빠를 보배처럼 여겼다. 그녀는  평소에 그들을 녀인도 여기저기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산보하군 했다. 물론 숱한 건장한 경호졸개들이 그들 둘을 꼼짝달싹 못하게 결박해가지고 뒤따랐다.     연기 나는 곳에 가보니 비행기가 대나무 밭에 처박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야만인들은 불 속에 뛰여들어 먹거리를 들춰 내왔다. 살아남은 사람도 들어내왔다. 비행기에 탔던 남자들은 거의 다 죽었다. 목숨이 붙어 있지만 남자 구실도 못할 것 같으면 당장에서 시퍼런 가차없이 칼로 목을 쳤다. 먹거리나 축내기 때문이리라. 또 야만녀인들에게는 건장한 남자들을 너무 많이 녀인도에 남겼다간 위험으로 될 수도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채 타지 않은 녀인들은 좋은 먹이감이여서 메다가 동굴 옆의 창고에 두었다. 번대머리가 살펴보니 그 속에는 경찰도 있지 않겠는가! 더욱 놀라운 것은 산 녀자들 가운데 숯검댕이칠을 한 낯익은 얼굴이 보이지 않겠는가! “아니, 저게 뭐야? 저승사자 아닌가!” 정호는 깜짝 놀라 고함쳤다. 그런데 최혜영 국장은 머리 파뿌리처럼 새하얀 로파 아니겠는가! 우두머리는 이상해 정호 번대머리와 최헤영 국장을 번갈아 보았다. 우두머리야만인은 경호졸개들 보고 뭐라고 지지벌거렸다. 경호졸개들은 최혜영 국장을 끌고 우두머리 앞에 왔다. “아니, 최국장 어떻게 돼 여기까지 왔소?” 혜영도 깜짝 놀랐다. “네놈, 여기 있었구나! 네놈을 붙잡으러 여기 와야 했는데. 참, 동남아로 가다가 태풍 만날줄은 몰랐구나!” “다 죽게 돼 가지고도 날 붙잡을 궁리 계속하오?!” “저승사자 직책이니깐. 음흉한 부패분자를 붙잡아가지 못한게 한이다.” 정호는 랭소했다. “이 야만인도 법은 부패분자고 뭐고 관계없소. 남자 무기만 좋으면 왕대접받는단 말이오. 흥! 아무리 깨끗한  녀자라도 다 각을 뜯어 잡아먹소. 무슨 세상인지 알기나 하고 떠드오?” 우두머리는 우멍눈을 팬들거리며 최혜영 국장과 번대머리를 번갈아 보더니 뭐라고 꽥 고함쳤다. 야망인들이 우르르 덮쳐들어 최혜영 국장을 꿇어엎디게 하고 시퍼런 칼을 쳐들었다. “정호! 날 살려주오! 오빠 제발 살려주세요.” “잠간! 금방 오빠라 했어? 살기 위해선 너도 부패분자와 타협할 날이 있구나. ㅋㅋㅋ.” 번대머리가 선뜻이 나서서 손사래치며 말렸다. 우두머리는 눈치 빨랐다. 그녀는 번대머리를 손으로 살살 만지면서 어쩌다 우멍눈에 미소를 지었다. 드디여 손을 쳐들며 뭐라고 수하 야만인들을 제지시키고 다른 녀인을 손가락질했다. 야만인들은 다른 녀인을 칼로 목을 탁 쳤다.     최혜영 국장은 야만인들이 피 뚝뚝 떨어지는 녀자 머리를 대창에 꿰들고 춤을 추는 것을 보고 화등잔 같은 눈을 딱 감아버렸다. 야만인들은 최혜영 국장과 몇몇 살아남은 녀인들을 끌고 몸채 동굴 옆의 작은 동굴에 처넣고 동굴 쇠살창문에 자물쇠를 철컥 잠갔다. 정호는 우두머리와 함께 작은 어둠침침한 동굴 쇠살창 속을 들여다보았다. 작은 동굴은 허리도 펴기 힘들 지경이였다. “최국장, 죽게 된 사람은 다 마음이 착해진다던데. 구해준 은공을 잊지 마오. 여기서 나가면 날 좀 놔주오.” 최혜영 국장은 북데기에 앉아서 버들잎눈섭을 치켜세우면서  세귀눈으로 번대머리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여기서 살아나가면 네놈부터 백길 생지옥에 처넣겠다.” 번대머리는 억울한듯이 씨벌였다. “내 무슨 죄를 졌다고 그렇게 원쑤 치부를 하오?” 최혜영 국장의 세귀눈에서 불찌가 툭툭 튕기고 있었다. “흥! 아직도 네놈 죄를 몰라. 숱한 공금을 탐오하고 권력을 빌어 비법적으로 몇백만원 어치 재물을 긁어모으지 않았어? 전도 창창한 숱한 간부들을 부패분자로 만들었잖아? 숱한 녀자들의 정조를 유린하고 간음하지 않았는가?!” 번대머리는 능청을 떨었다. “하늘에 사무치는 죄악을 졌구만! 그러나 우린 여기 녀인도에서 죽고 말 거요. 이젠 모든 죄가 사면이오. 모든 죄를 녀인도 무덤에 파묻어버리게 됐소. 최국장 목숨도 내 손에 달려 있다는 거 아오. 죽기 전에 말이라도 좀 곱게 하라구.” 번대머리는 꽁꽁 결박돼도 입만은 살아 있어 자꾸 지껄였다. “우리 둘다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데 마지막으로 몇마디 물어보기오. 졸혼을 어떻게 생각하오?” 어둠침침한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코웃음소리. “픽! 결혼도 하지 않은 사람한테 무슨 졸혼이야? 결혼도 염오하는 독신녀가 바람둥이들의 졸혼을 좋아하겠는가? 네 따위 놈이야 졸혼하고 좋았겠지. 고삐를 끊은 들말처럼 달아다니면서 숱한 아가씨들을 차고 질탕하게 놀았잖아?” 번대머리는 최혜영 국장 과거 마음 속 상처에 일침을 가해 반격했다. “그래, 머리 하얀 파파로파, 아니, 로처녀한테 미안하오. 최국장은 녀대생 시절에 강도들한테 륜간당해 시집 안가고 로처녀로 늙은 거 아닌가유? 그때부터 최국장은 변태, 괴태로 된 거야. 성질도 괴상하게 번져서 사람잡이에 눈이 새빨개서 미쳐 날뛰였단 말이야.” “흥! 너 같은 부패분자와 무슨 말을 더 할 것도 없어! 시끄러워. 죽이겠으면 어서 죽여라.” 정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뼈속까지 새빨간 철두철미한 검사구만! 어째 너네 애비 숱해 얻어먹은 건 더 파지 않고 남과 잔혹하게 굴어? 저런 지독한 간부를 이런 녀인도에서 야만인들한테 죽게 하긴 너무나도 아쉽구나! 시집도 못 가본 최혜영 국장이 아쉽구나. 아니, 스케트를 타고 빙장에서 은제비처럼 훨훨 날아다니던 생기발랄한 은영 녀대생이 아깝구나.” 그런데 최혜영국장이 한다는 소리 더욱 한심했다. “네놈을 잡으러 오다가 내 첫사랑 성호 오빠를 죽게 만든게 한이다.” “뭐? 성호, 그 개새끼 또 날 잡으러 여기까지 왔어?” 번대머리는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참 무서운 독종들이구나. 비행기 꽝 떨어져 죽길  싼통이야. 쌍통맹통, 꼬부랑통! 성호새끼, 배신자! 어쩜 친구를 잡아 감옥에 처넣자고 천애지각까지 다 쫓아왔어?” 우두머리야만녀인의 명에 따라 졸개들이 타다남은 웬 남자 다리를 베다 우등불에 굽고 있지 않겠는가! 번대머리가 대창에 꿴 시꺼멓게 탄 머리를 찬찬히 살펴보니 성호 머리 같아 보였다. “그 놈새끼 맞구나. 껍질을 벗겨놔도 네놈새낄 알아볼 수 있어. 썩어져도 싸다, 싸.” 번대머리는 깨고소해 가래를 퉥 뱉았다. “썩어져도 렬사증이라도 탈 예산이군.” “헛소리 치지 말라.” 번대머리는 우멍눈으로 어둑시그레한 죄꼬만 동굴 안을 들여다보며 최혜영국장을 들으라고 지껄였다. “보아하니, 너네 둘이 신혼려행을 하러 동남아로 가다가 여기 처박혔지? 나를 나포하러 가다가 공무로 순직했다고 해야 렬사증이라도 타지. 봐라. 검사도 아닌 성호가 왜 너와 함께 동남아로 날아왔어? 넌 국장인데 살인죄도 지지 않은 날 잡으러 직접 출국할 필요있는가? 숱한 검사를 두고 국장이 죄인 인도하러 직접 동남아로 왔다고? 세살짜리 애도 믿지 않아. 그러나 저러나 시집도 못간 년이 렬사로 순직하면 새끼도 없지 썩어지면 누가 무휼금을 타겠니? 흥!” 우두머리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답답했다. 그녀는 무슨 음모라도 꾸밀가봐 겁났는지 정호와 미희 오빠를 끌고 동굴로 들어갔다. 저쪽에 우등불에 사람 고기 타는 노린 냄새가 코를 찔러 견디기 힘들었다. 이윽고 태풍이 잦아들어 무인도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우두머리 명에 따라 정호와 미희 오빠, 그리고 최혜영 국장을 비롯한 비행기 사고 생존녀들이 우등불 앞에 끌려왔다. 우두머리 야만녀인이 우멍눈으로 무섭게 최혜영 국장을 쏘아보더니 앞에 꿇어앉혀라고 명했다. 그러나 최혜영 국장은 꿇어앉지 않으려고 버둥거렸다.     번대머리가 황급히 소리쳤다.     “최국장, 몇분이라도 더 살겠으면 어서 고분고분 무릎을 꿇소! 오빠 말을 좀 듣소.”      “고양이 쥐 생각한다고 해라! 본 국장이 누구냐? 죽어도  저런 야만인 앞에 무릎 꿀지 않아! 네놈이나 녀인도에서 야만녀인들과 성자유 웨치면서 수캐질을 실컷 해라!” 그럴 수도 있었다. 두 팔을 결박하지만 않으면 녀인도 성문화는 그가 오매에도 꿈꾸던 성해방과 맞아떨어질 수도 있다. 때문에 녀인도는 그가 꿈꾸던 자유세상일 수도 있었다.    야만녀인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대창으로 그녀의 종아리고 무릎이고 마구 찔러 꿇어앉혔다. 우두머리 야만녀인이 뭐라고 고함쳤다. 야만녀인들이 우등불에서 뿌지직뿌지직 타는 성호 다리 고기를 베여다가 최혜영국장의 입에 마구 쑤셔넣었다. 비명소리 처량하게 들린다. 그때 정호가 나서서 말렸다. “잠간, 그러지 마세요.” 그러나 우두머리는 알아듣지 못했다. “말이 통해야 어쩌지?” 번대머리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이윽고 그는 손마선질하면서 말렸다. “꽥-!” 우두머리가 벌떡 일어나며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졸개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번대머리를 끌어내 바지를 훌렁 벗겼다. 어둑시그레한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 들렸다. 졸개들은 최혜영 국장의 치마도 벗겼다. 우두머리가 뭐라고 꽥 고함쳤다. 졸개들이 억지로 번대머리를 끌어다 최혜영 국장과 마주 세웠다. 손시늉을 봐서 강간하라고 호통치는 것 같았다. “아니, 이럴 수 없어.” 정호는 뒤걸음질치면서 소리쳤다. “최국장은 충주 최씨, 내 녀동생이야. 죽게 될 불쌍한 녀동생을 그럴 수 없어.” 우두머리는 졸개들을 시켜 대창으로 마구 찌르며 강간하라고 윽박질렀다. 그러나 번대머리는 무릎을 털썩 꿇고 두손을 싹싹 비볐다. 그때 최혜영 국장이 무슨 소리 했는지 아는가? “최국장도 녀자예요. 다 죽게 됐는데요. 죽기 전에 날 두번째 녀자로 만들어주세요.” “뭐라고?” 번대머리는 자귀 귀를 의심했다. 최혜영 국장은 눈물이 글썽한 퉁사바눈으로 우멍눈을 쳐다보면서 나직이 말했다. “뭘 해요? 오빠, 죽으면 세상이 다 끝나는데요? 어서, 죽기 전에 빨리. 30여년만에 나도 죽기전에 다시 녀자로 돼 봅시다. 오빠, 어서!” 번대머리는 최국장의 말을 똑똑히 들었다. “당장 죽게 되니   로처녀도 남자를 원하는구나. 그렇게 시집가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던 년, 그래, 이제야 허위를 벗어버리고 진실한 녀인으로 됐구나. 로처녀 시집 안 가겠다는 건 다 거짓말이지. 이 변강쇠 널 몇십년만에 진정한 녀자로 만들어주마.” 그때 우두머리가 뭐라고 꽥 고함쳤다. 졸개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시퍼런 칼로 최혜영 국장의 머리를 내리 찍었다. 변강쇠가 어쩔새 없이 최혜영 국장의 걀죽한 머리가 수박처럼 털렁 굴러 떨어진다. “그만! 그만! 죽이지 말라는데도! 너무 처참해. 내 녀동생을 어찌?!” “이놈 꿈을 꿔?” “아니, 제발 살려 달라!” “죽을 죄를 졌으면 죽어야지.” “빈다고 죽이지 않을 거 같아?” “깨나!” (이게 무슨 소린가?) 번대머리가 우멍눈을 번쩍 떴다. 숱한 죄수복을 입은 죄수들이 둘러앉아 자기를 쌀쌀이 쏘아보고 있지 않겠는가! “여긴 어디오?” “감방입니다. 최국장.” 귀에 익는 목소리. 피뜩 보니 인사과장이 아니겠는가. “좋은 꿈 꿨어? 누굴 살려달라고 그래?” 그제야 제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 (그래, 난 성호한테 붙잡혀 인터폴한테 끌려가 중국으로 인도됐지.) 정호는 그제야 번대머리를 쳐들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차디찬 쇠살창 속이 아니겠는가.  (아, 그럼 생지옥 같은 녀인도에서 야만인들한테 죽을 번한 것도 몽땅 악몽이란 말인가? 그 악마 같은 야만녀인 우무머리 생각만 해도 소름이 쪽 끼친다. 몽땅 악몽이라면 저승사자도 멀쩡히 살아 있겠구나. 악몽, 무서운 악몽이였구나.)       번대머리는 둘러앉은 사람들 속에서 자기가 올려놓은 문화국 후임 국장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오청룡의 유들유들한 네모얼굴과 리굉팔의  말상도 보였다.       “어떻게 돼 다 여기 들어왔어?” “몰라서 묻습니까? 재무과장이랑 전람관 관장이랑 몽땅 들어왔습니다.” 번대머리는 자기가 검찰원 반탐오회뢰국 최혜영 국장한테 그들을 다 고발해놓고서도 능청스레 아닌 보살을 떨었다. 역은 새 방아간을 지나간다고 그는 너무 역게 놀면서 재무과장이랑 인사과장이랑 전람관 관장이랑 한국에 송금하라고 협박하다가 역으로 그들의 고발을 당했던 것이다. 결국 자기 감형받자고 서로 물고 뜯고 하다가 몽땅 철창 속에 갇히고 말았다. 다리 부러진 노루 한데 모인다더니 탐관들은 모두 감방에서 만날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번대머리는 인사과장을 보고 한마디 했다. “이젠 초상집 개처럼 쫓겨다닐 일이 싹 다 없구만. 모텔과 먹거리를 근심할 필요도 없게 됐소. 좋은 벽돌집에서 해준 밥이나 먹고 좀 좋아서. 감방은 해외에서 초상집 개처럼 쫓겨다니기보다 퍽 좋을씨구.” 번대머리는 몇대 남지 않은 하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며 하품을 길게 했다. “하- 퍽 곤하구만. 푹 잡세. 허허허.” 그때 철창 밖에서 저승사자 최혜영 국장과 공안국 박국장이 주고 받는 목소리 들리는 상 싶었다. 번대머리는 자포자기하고 코를 드르렁드르렁 굴며 또다시 꿈나라로 들어갔다. 그의 눈앞에는 망아산 수림 속의 방공굴이 피뜩피뜩 나타났다. 그 수풀 속의 방공굴은 그가 숱한 아가씨들을 데리고 가서 놀던 블랙홀, 성해방과 성자유 블랙홀이 아닌가. 구풍이 불어치는가? 태풍이 불어치는가? 번대머리가 소용톨이치는 블랙홀에 마구 빨려들어가며 비명을 지른다. 소용돌이에 숱한 아가씨들이 휘말려들어간다. 그녀들은 블랙홀에서 헤여나오려고 아우성치며 허우적거린다. 아우성치는 영희 조개턱과 늘씬한 학의 다리도 보인다. 볼우물을 옴폭 파던 나영의 보름달얼굴도 보인다. 공포에 질린 나영의 새까만 포도쌍까풀눈도 보인다. 정희 반토막 난 머리도 데굴데굴 소용돌이치며 날려다닌다. 하영의 구슬픈 노래소리 귀전에 들린다. 순정의 짜증나는 잔소리 귀전에 들린다. “사람 살려요!” “영희!” 정호는 살려달라고 내민 숱한 손 속에서 영희 길다란 손을 골라 잡았다. “최선생님!” 대머리는 영희 손을 잡아 블랙홀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이게 생시요? 저승이요?” “몰라요! 저승 같은데요. 전 이미 한줄기 연기로 돼 염라전에 왔는데요. 선생님은 어떻게 돼 여기 들어왔어요? 어서 나가세요!” 영희는 대머리 손을 풀며 아우성쳤다. “년놈들, 저승에 와서도 놀고 있어?! 이승에서도 통간하더니 개 똥을 먹는 버릇 고치겠니?” (문걸의 목소리 아닌가!) 대머리는 영희 손을 활 놓았다. “최선생님! 살려주세요!” 영희가 망아산 수림 속 방공굴 참사랑 블랙홀에 휘말려 들어가며 비명을 대머리를 향해 손을 휘젓는다! “살려주세요!” 아니, 저게 뭔가! 순정, 정희, 하영, 나영이 손 저으며 아우성치지 않겠는가! 심지어 한국의 기생 미희와 일본 기생 사쿠라도 고함치지 않겠는가!     겨울도 아닌데 저게 뭔가?     먹장구름이 뒤덮인 하늘에서 눈송이들이 날아내리는가? 아니, 숱한 연분홍치마자락이 흩날려내린다. 웬일인가? 소용돌이치는 블랙홀에 숱한 미녀들이 치마자락을 흩날리며 눈송이처럼 쏟아져내리고 있지 않겠는가. 얼마나 자유로운 하늘인가?       황선희 박사가 복제기술로 숱한 아가씨들을 복제해 내려보내고 있었다.      "이게 웬 떡이냐! 아가씨들아, 변강쇠 간다!"       번대머리는 두 팔을 벌리고 미친듯이 고함치며 달려갔다.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아가씨들을 받아안으려고  마주 덮쳐나갔다.      황박사가 빈정거리는 소리 호랑이 고함소리처럼 블랙홀에 쩌렁쩌렁 울린다.      "번대머리 색마야! 숫처녀 아니라고 날 나무리더니. 복제 숫처녀들한테도 미쳤구만. 참사랑 추구하지도 않으면서 무슨 정조관념이 그래?!"      한 아가씨가 빈정거리는 소리.     “어쩜 그렇게 무맥해요? 사랑을 맺자마자 경찰에 붙잡혀요?”       색마는 우멍한 눈으로 미녀들을 쳐다보며 번대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절대 그럴 수 없어! 아무리 쇠사슬로 결박해 철창 속에 처박아둬도 자유를 절대 구속할 수 없어!”    색마는 발돋음하며 쇠고랑이를 찬 두 손으로 하늘에서 날아내리는 아가씨들의 허벅다리를 붙잡으려고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아가씨들의 꼬리도 하나 만질 수 없었다.      흐리멍텅한 하늘에서 누군가 쩌렁쩌렁 질책하는가?       "그 놈 계집들 때문에 쫄딱 망해가지고 아직도 아가씨들 허벅다리 만지려고 해?!"       번대머리는 몇오리 안되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하늘을 쳐다보면서 맞대구를 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난 아가씨들을 다룰테야! 심장이 뛰는 한 성자유를 위해 싸울 거야. 녀성들 성해방을 시키려고 박투할 테야!"         군철이 면회하자고 쇠살창 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지 않는가.     "아버지, 이젠 세상 도리도 없는 잡소리 작작 치고 푹 쉽소."      번대머리는 창살을 부여잡고 아들한테 간곡히 부탁했다.      “군철아, 넌 애비처럼 살지 말라. 법을 지키고 차례지는 것만큼 가지고 살아라. 절대 애비처럼 주색에 빠지지 말라. 넌 당대표, 당위 서기 아니냐? 큰 일을 하려면 주색에 빠지면 안돼. 딱 참한 녀자를 후처로 삼고 애들을 잘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아라. 알만하느냐?”      군철은 번대머리 두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다짐했다.       “아버지, 아버진 커다란 반면거울입니다.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겁니다.” 번대머리는 아들이 사라지자 인차 색마로 되돌아갔다. 그의 뇌리에는 미녀군단을 이끌고 미국 로스안젤레스 해변가에서 맥주점에서 영희, 나영이, 정희, 하영과 맥주잔을 부딪치며 희희락락 즐기던 일이 떠올랐다. 모텔에서 그녀들과 즐기던 일들도 어슴프레 떠올랐다.      문걸의 외까풀눈이 쇠살창 안을 기웃거린다.      "사람은 티없이 맑고 깨끗한 참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고상해. 두 심장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심장의 선률, 얼마나 아름답느냐?"     번대머리는 우멍눈을 찡그리며 도리머리를 저었다.     "또, 또. 참사랑 타령이냐? 넌 한뉘 평생 그저 참사랑타령만 하다나면 늙어 죽을 거야. 금욕주의자야, 너하곤 한 길로 갈 수 없어."      “최국장, 날 살려주십시오.”      나영의 비명소리 귀전에 들렸다.      발길을 날려 흑인강도를 차넘기고 나영을 구원해 꼭 끌어안았다. 공포에 떠는 가녀린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위안해주었다. “나영이, 울지 마. 네가 울면 가슴 속에 피 떨어진다. 우리 비록 철창 속에 자유를 구속당했지만 성해방과 성자유를 위한 혼이야 구속할 수 있겠느냐? 넌 아직 젊었어. 고까짓 5만원 탐오한게 무슨 죽을 죄냐? 탐오한 돈 5만원을 다 바친데다가 한국에서 날 물어먹었으니깐. 아마 감형돼 한 2년 감옥살이 하면 나갈 수 있을 거야. 하루 밤 부부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한가지 부탁하자.”      “뭔데요?” 나영은 눈물이 글썽한 까만 포도쌍까풀눈이 데꾼해졌다.      “이제 감옥에서 나가면 성자유와 성해방을 위해 한평생 싸워온 내 묘지에 꽃다발 하나만 올려달라. 내 얼마나 녀성들의 성 자유와 해방을 위해 변강쇠 무기를 들고 투사로 돼 몸 바쳐 싸웠느냐? 숱한 아가씨들의 이름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내 령전에 올려달라. 황금희, 황선희 박사, 순정, 영희, 정희, 나영, 하영, 미희, 사쿠라… 그들이 하나, 하나 다 떠나갔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그 아가씨들이 살아 숨쉬고 있어. 제발 부탁이다. 내하구 살을 섞은 그 숱한 아가씨들의 이름을 꽃다발에 새겨 올려달라. 아, 아까운 아가씨들을 두고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나겠느냐?”      나영이 물었다.     “그래, 총살당하는가요?”      “총살은 몰라도 늙어 죽을 때까지 감옥살이를 면할 거 같잖아. 아, 아까운 아가씨들이여. 내 죽어도 혼이야 유령처럼 아가씨들 속으로 훨훨 날아다닐 거야. 바람결처럼 언제나 아가씨들 어데 가도 따라다닐 거야.” 나영은 피씩 웃었다.      “음험한 음모가! 배신자! 위군자! 당신은 천번만번 죽어도 싸! 얼마나 많은 녀성들을 해치고 얼마나 많은 가정을 파괴했는가! 영원히 생지옥에서 썩어져라!” 나영이 아가씨들을 대표해 저주해서 그런가! 저게 뭔가?       하늘에서 숱한 올가미가 구렝이처럼 디룽디룽 내려와 감방 천정에 걸린다. 올가미가 목을 매 꽉 조인다. 저승사자 죽음을 재촉하는 북소리 둥둥 울린다. 철창 속에서 몸부림치며 버둑거릴수록 올가미가 목을 으스러지게 조인다.      눈 앞에서 순정이, 영희, 나영이, 하영이 아우성친다. 그녀들의 비명소리 귀전을 우뢰처럼 때린다. 반토막이 된 정희 머리마저 데굴데굴 구을며 끊임없이 저주한다. 허병칠 부장도 번대머리 색마가 골고다 언덕을 넘어 교수형을 당하니 씨원해 저주하며 박수갈채를 보낸다.      염라전에는 싸늘한 귀신노래소리가 음산한 바람을 타고 울려퍼지며 메아리친다. 백골더미 속에서 쥐새끼들이 구멍이 펑 뚤린 눈구멍으로 기여들어가 가댁질하며 대골을 파먹는다. 쫙 벌린 백골 입에서 독사가 스르르 기여나와 혀를 날름거린다.       하얀 비둘기 염라전에 날아와 쓰러진 자유 녀신의 제사를 지내며 꺼이꺼이 운다. 백골더미에서 음산한 귀신이 죽음의 노래를 무섭게 부른다. 때 묻은 자유의 헌 깃발이 공포에 떠는 백골더미 위에서 유령처럼 날아다니면서 가냘프게 휘날린다. 아가씨들의 브래지어 화장터에서 펄럭인다. 미친개들이 시체를 물어뜯고 먹장구름이 뒤덮인 하늘에서 굶주린 까마귀들이 까욱까욱  울며 배회한다.    락조로 뻘겋게 물든 바다는 사랑의 신, 자유의 신을 꿀꺽 삼키더니 게트름을 하며 낮잠을 청한다.    자유녀신 헤라가  희말라야 가파로운 둔덕에 황홀한 오로라 빛 뿌리며  사랑의 오아시스에 오라고 손짓한다.                 
299    대하소설 졸혼 제5권 (63) 김장혁 댓글:  조회:1886  추천:0  2022-12-14
                               73.녀인도의 한         번대머리가 경찰들한테 련행돼 가는데 큰 길에서 나영과 마주칠 줄이야.       나영은 보름달 얼굴이 청얼음처럼 굳어진채 경찰에 나포돼 가는 번대머리를 보고 쌀쌀하게 내뱉지 않겠는가!      “잘코사니야! 배신자, 음모가! 맨날 날 사랑한다고 달콤한 말로 얼려 내 사랑과 육체를 다 빼먹은 사랑 도둑놈! 날 심계국에 고발한 음험한 놈! 내 뒷잔등에 시퍼런 칼을 박은 배신자! 위선자! 천벌받아 마땅해!” 번대머리는 경찰한테 나포돼 가다가 홍대입구 부근 모텔 앞에서 빈정거리며 박수 치는 나영을 분명히 보았다.       “분명 저 년이 저승사자한테 고발한 거야!”       번대머리는 나영을 보고 아우성쳤다.      "나영아,  내 널 얼마나 내 심장보다도  더 사랑했는데.  목숨걸고 흑인강도를 차넘기고 널 구한 일을 다 잊었느냐? 어찌 배신할 수 있느냐?"      그러나 나영은 들었는둥 말았는둥 무표정이다.      "나영아, 날 구해달라!"    나영은 건가래를 뱉었다.      "퉤! 음한 놈, 천벌 맞아 싸!"     번대머리는 애절하게 통탄했다.      (아, 배은망덕한 년, 어찌 내 잔등에 비수를 박을 수 있어?! 가슴이  아프다. 심장이 터진다!)     번대머리는 사랑하던 녀자한테 배신당해 더 가슴이 아팠다.      번대머리는 육중한 충격에 그만 뻘건 피를 왈칵 토했다.     그는  이를 쁙쁙 갈았다.      (네년을 절대 놔둘 수 없어! 내 얼마나 사랑했다고,  날 어떻게 배신해! 내 널 심계국에 고발한 건 널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야. 널 버리기 참 아쉬웠다. 널 데리고 도망치려고 그랬어. 용서해라.) 저쪽에 미희 오빠가 놀라운 눈길로 보고 있지 않겠는가. (도망칠 수 없을가?) 번대머리는 미희 오빠가 이쪽을 기웃거리는 것을 보고 피뜩 령감이 떠올라 기회를 엿보았다. (안돼, 난 절대 지옥으로 갈 수 없어. 숱한 아가씨들을 두고 어찌 새파란 나이에 생지옥에 간단 말인가! 아가씨들이 하나, 하나 다 날 배신했어. 그러나 미희하구 한국에서 실컷 살아야겠는데. 청량리 숱한 아가씨들이 아까워 어떻게 철창 속에 구속당해?!) 번대머리는 경찰을 떼버리고 도망칠 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렸다. 순간 그의 뇌리에서는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천지를 부시며 지동쳤다. 그는 불시에 고함쳤다. “아, 오줌 마렵소! 아이구, 오줌깨 다 터진다.” “뭐라고?” 두리모자는 경찰차를 급정거했다. 경찰들은 정호를 데리고 부근의 모텔로 들어갔다. 경찰은 카운터에 가서 모텔 주인 보고 뭐라고 말하더니 이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 3층방 화장실 있어. 인차 나와야 돼.” 번대머리는 3층으로 따라올라오는 한 경찰과 말했다. “네. 쇠고랑이를 풀어주세요. 두 손을 뒤로 결박해서 어떻게 소변 보겠는가요?”       경찰이 쇠고랑이를 풀어주었다.      번대머리는 두 손을 매만지며 모텔 출입구를 지키는 다른 경찰을 피뜩  곁눈질했다. 그는  3층 방 화장실로 유유히 들어갔다.      화장실에 되창문이 있지 않겠는가.      (살았다, 살았어.) 화장실 문걸개를 절컥 잠궜다. “문은 왜 잠궈? 어서 열어!” 번대머리는 화장실 되창문을 훌 열어제끼자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창 밖으로 뛰여내려갔다. 뒤에서 고함소리 들렸다. “문 열어! ” “어서 열어!” 번대머리는 땅바닥에 고양이처럼 살짝 뛰여내리자 다리야 날 살려라고 굽이진 골목으로 도망쳤다. “서라!” 뒤에서 호각소리, 고함소리 요란했다. 그러나 번대머리는 어둠 속으로 바람결처럼 사라졌다. 번대머리가 한창 어두운 큰길로 도망칠 때였다.   큰길에서 승용차 달려오면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성님! 내 차에 타!” 미희 오빠 아니겠가! 번대머리는 차에 뛰여들어갔다. 승용차는 쏜살같이 달렸다. 뒤에서 경찰들이 달려나오는 것이 반사경에 띠였다… 번대머리는 또다시 미희와 함께 미희 오빠가 모는 어선에 앉아 망망한 바다에 나갔다. “어디로 갈가요? 일본에 되돌아가겠어요?” “아니야. 동남아 어느 나라라도 좋아요. 거기 가면 경찰들이 무슨 재간에 날 따라온다고? 흥!” “알았어요. 미희야, 넌 가지 말라. 위험해.” “아니요. 한국에고 일본에고 다 돌아다녀도 최선생님처럼 호방하고 착한 남자는 없어요. 전 죽어도 이분의 녀자로 살 거예요.” 미희 오빠는 어선을 몰 예산을 하지 않고 미희를 말렸다. “미희야, 새파란 나이에 예순 고개에 오른 늙은이한테 뭐야? 넌 꼭 후회할 거야.” “아니, 오빠, 자꾸 막으면 바다에 풀렁 뛰여들어 죽어버릴 거야.” 미희 오빠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미쳤구나. 미쳐!’ 오빠도 녀동생을 어쩌는 수 없어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드디여 그는 머리를 번대머리한테 돌렸다. “삯전만은 꼭 챙겨야 해요.” 번대머리는 거짓말로 얼려 넘겼다. “그러지. 동남아에 가면 거기 있는 동생한테서 딸라를 달라고 해 푼푼히 줄게요.” 번대머리는 억이 막혀 미희를 흘끔 돌아보았다. “오빠, 너무 해요. 경찰한테 쫓겨 알몸 된 사람 보고 뭔가요? 황차 최국장님은 죽자살자하는 저의 애인인데요.” 미희는 외까풀눈을 흘겼다. “알았다. 알았어.” 그러나 번대머리는 사람좋게 대답했다. “삯전 근심 말라니깐요.” 그리하여 어선은 어둠을 타고 사나운 파도를 헤가르면서 서남쪽으로 바라고 미끌어져 나갔다. 사흩날 어두운 밤에 먹장구름이 몰려오더니 사납게 태풍이 불어쳤다. 검푸른 산더미 같은 파도가 가랑잎 같은 자그마한 어선을 먹장구름 속으로 건뜩 들어올렸다가도 쁠랙홀 같은 바다 밑으로 처박았다. “아이구메. 죽었다, 죽었어!’ 미희가 아우성쳤다. “재수 없이 떠들지 마! 오지 말라니까. 따라 나설 거 뭐야?” 미희 오빠는 욕설을 퍼부었다. “저기 저 검은게 섬인 거 같애.” 미희 오빠는 중얼거리며 어선을 몰고 파도를 이리저리 헤가르며 부근에 있는 이름도 모를 거머칙칙한 섬으로 가까스로 다가갔다. 미희 오빠가 다행히 어선을 안전하게 섬에 가져다댔다. 그들이 어선에서 내려 들쑥날쑥한 뭍에 뛰여올라갈 때였다. 짐승소린가! 고함소리 들리며 숱한 홰불이 엄습해왔다. 홰불을 빌어 보니 옷도 변변히 입지 못한 숱한 야만인들이 아니겠는가! 번대머리가 우멍눈으로 홰불을 든 자들을 살펴보았다. 파초잎으로 앞을 가리고 대나무창을 쥔 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몽땅 가슴을 드러낸 야만녀인들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야만인들한테 결박당해 어둠침침한 동굴로 끌려갔다. 야만인들은 어선에 있던  과자상자와 음료수상자를 몽땅 빼앗아 동굴로 날라갔다. 번대머리는 우멍눈으로 동굴 안을 둘러보면서 속으로 애절하게 한탄했다. (어쩜 범의 굴에서 빠져나와 승냥이 굴에 뛰여들었어?) 홰불을 켠 어둑시그레한 동굴 정면에 높으직한 석판 위 대나무의자에 한 야만녀인이 도고히 앉아 있었다. 생화다발을 머리에 얹은 야만녀인은 진흙을 마구 쥐여뿌려 만든 흙보살 같았다. 그녀는 음흉한 우멍눈으로 독살스레 그들을 쏘아보았다.       아마 녀인도의 우두머린 것 같았다. 그의 우멍한 눈에서 무서운 파란 빛이 번쩍이며 공포를 안겨줬다.       녀인도는 완전히 모계씨족 사회였다. 남자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후에 알고 보니 쓸만한 남자 몇몇만 녀인도 가운데 벼랑 밑에 있는 동굴에 가둬두었던 것이다. 딱 남자를 쓸 때만 끌어내다 대창끝 밑에서 성노예처럼 애완견처럼 가지고 즐겼다.  그 강렬한 눈빛은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직전 발산하는 무서운 파란 눈빛일줄이야. 우두머리가 뭐라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야만인들이 우르르 덮쳐와 미희를 끌어내갔다. “오빠, 날 살려주오!”     “미희야!”     미희 오빠는 번대머리를 돌아보며 욕했다. "다 네놈 탓이야. 미희 네놈 따라왔다가 다치잖아?" "저놈들을 놔둘 수 없어!"      번대머리는 고함치며 덮쳐나갔다.      오빠도 미친듯이 고함치며 덮쳐나갔다. 그러나 두 팔을 뒤로 결박된 그들도 용빼는 수 없었다. 당장 야만인들이 휘두르는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고 푹푹 꺼꾸러졌다.      야만인들은 미희를 동굴 밖에 끌어내다가 칼로 목을 툭 쳤다. 야만인들은 피 뚝뚝 떨어지는 미희 머리를 대창에 꿰들고 빙빙 돌아가면서 아우성치며 노래를 불렀다. 드디여 시퍼런 작두 같은 대도로 미희 사지를 잘라내고 엉덩이고기를 저며내 대바구니에 담아 동굴에 들여왔다. 야만인들은 웃고 떠들며 미희 고기를 우등불에 구웠다. 사람 고기가 뿌지직뿌지직 타며 노린내가 동굴 안을 채우며 공포를 몰아왔다. 야만인들은 굶은 이리들처럼 우등불에 모여 앉아 구운 사람 고기를 저며내  맛나게 먹어댔다. "아차, 식인 야만인들이구나!" “미희!” 한참 후에야 정신차린 번대머리와 오빠는 대창 끝에 꽂힌 미희 머리를 보고 아우성치며 발버둥질쳤다. 그들 둘은 우두머리를 쏘아보며 끝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생지옥이구나! 아무리 이승에서 죄를 졌다고 어쩜 이다지도 험하게 구는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하느님도 나 같은 죄인은 용서하지 않는구나!) 미희 고기를 배불리 먹은 식인 야만인들은 번대머리와 오빠한테 다가왔다. 그들은 웃고 떠들면서 번대머리와 오빠의 바지를 훌렁 벗겼다. 야만녀인들은 번대머리 하신을 보고 깜짝 놀라 아우성쳤다. 그녀들은 번대머리 앞에 엄지를 내두르며 음탕하게 짐승처럼 웃어대며 지껄였다. 그녀들은 남자 하나 없는 녀인도에서 오랜만에 남자를 보고 야단쳤다.      졸개들은 정호 사지를 건뜩 들어 둘러메고 단상에 올라가 우두머리한테 바쳤다.      우두머리는 대의자에서 일어나 생화 꽂은 대가리를 숙여 정호 물건을 내려다보았다. 우멍눈에 이상한 파란 빛을 뿌렸다.      뒤이어 우두머리 야만녀인은 결박한 정호를 가지고 실컷 즐겼다.      정호는 밑에서 당하면서 게두덜거렸다.      "어이구, 못 생긴게. 성욕은 강하구나. 어우, 남을 묶어놓고 이게 무슨 개지랄이야. 진짜 성파쑈구나. 그 주제에 성독재를 해?!" 미희 오빠는 굶은 야만인들한테 륜간당하면서도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녀인도에는 남자가 황금보다 더 귀한 모양이구나. 죽을 거 같잖구나.)      한편 번대머리와 미희 오빠는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그들은 일단 목숨을 구했기에 무인도에서 도망갈 기회를 기다려야 했다. 정호는 우두머리와 함께 무인도 해변가를 산보할 때 그들이 타고온  어선이 있는가 살펴보았다. 아니, 저게 뭐야? 들쑹날쑹한 바위 사이에 어선이 그대로 멈춰 서 파도에 흔들거리고 있지 않겠는가. 야만인들은 정호랑 타고 온 어선을 지킬 뿐 파괴하지는 않았다. (다행이야.) 정호는 미희 오빠를 보고 어선을 눈짓했다. “결박을 풀기만 하면 저 어선을 타고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수.” “칼탕을 맞아 죽지 않으면 다행이야.” “기회를 봅시다.” “깩-“ 우두머리가 괴상하게 뭐라고 고함쳤다. 그러자 경호졸개들이 우르르 모여들어 대창으로 정호와 미희 오빠 입을 찌를 상 하며 위협했다. 말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았다. 아마 우두머리는 그들이 도망칠 음모를 꾸밀가봐 경계하는 눈치인 것 같았다.    번대머리는 우멍눈으로 미희 오빠한테 찔끔 눈짓했다.    그런데 저게 뭐야?     우두머리 우멍눈에서 이상한 파란 빛이 어선을 비췄다. 파란빛을 맞은 어선에서는 불시에 씨뻘건 불이 활활 타올랐다.    "망앴구나! 망했어!"    미희 오빠는 절망에 빠져 발을 동동 구르며고함쳤다.    번대머리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자유세상으로 달려나갈 유일한 희망이 산산히 부서졌다.     꽃밭에 힌들 들어누울 꿈이 한줌의 연기로 타래쳐 흐리멍텅한 하늘로 날아나며 쓸쓸한 죽음의 노래를 부른다.     자유를 갈망하는 가슴에 맺힌 한이 연기로 소용돌이치며 꾸역꾸역 터져나온다.    성파쇼의 잠꼬대 같은 고함소리는 식인악마들이 욱실거리는 녀인도에서 타리태를 치고 앉아 하품을 한다.     망망한 대해도 식인야만인들한테 질겁해 거세찬 파도를 타고 두터운 어둠 속으로 도망간다. 
298    대하소설 졸혼 제4권 (62) 김장혁 댓글:  조회:1419  추천:0  2022-11-26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권          72. 고민의 블랙홀        고풍스런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골목마다 거울처럼 맑은  물이 자그마한 쪽배를 업고 흐른다.       녀배사공은 강남의 민요를 부르며 힘차게 노를 젓는다.       유람객들은 쪽배에 앉아 강남 수향의 독특한 경치를 구경하면서 흥에 겨워 웃음꽃을 꽃피운다.       춘희는 호텔 창가에 서서 강남 수향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면서 착잡한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가은(마끼)의 선택에 머리를 끄덕였다.        (가은은 나를 다이로한테서 빼내려고 애까지  낳아주겠다고 대답했지. 어떻게 그런 엉뚱한 궁리를다 해? 다이로한테서  숱한 돈을 다 얻어내고. 돈으로 일본 기생 사쿠라를 매수해 실험관 수정란을 심어놓았지. 사쿠라 배를 빌어 애를 낳게 할 꿍꿍이야. 쯧쯧쯧.” 그녀는 못내 감탄했다. “이젠 내 품 안에서 서적 쓰던 어린애 아니지. 지금 애들 머리를 따르지 못해.” 춘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연신 탄복했다. “어쩜 티격태격하던 애들이 언제 싸웠는가 싶이 화해할 수 있어? 복화 소개해서 가은이 복화네 회사 위생소에 들어가게 됐다는가. 허, 건데 한 위생소에 들어가 또 싸우진 않을가? 마끼가 복화 학교에서 놀림받게 했잖은가. 복화가 넓은 마음으로 량해했다잖는가. 하긴 걔들이 어려서부터 친한 죽마고우였지. 좌우간 복화는 우리 집 신세야 있지. 복화 어려울 때 그래도 마끼가 나서서 아빠한테 소개해줘서 모델이랑 해서 이런저런 돈을 벌게 한게 아닌가.) 춘희는 호텔에서 나와 혼자 소주 졸정원의 참대숲이랑 돌아보면서 계속 허구픈 생각에 잠겼다. (군철은 저 참대처럼 대바른 놈이야. 회사 전무로 돼 연설하는 거 봐라. 얼마나 당당하고 름름한가. 문걸의 말에 의하면, 시당위에서 군철을 시당위 조직부 처장급 간부로 전근시키려고 개별조직담화까지 했다잖는가. 전국 당대회 대표로 다 됐다잖는가. 그런데 ‘경제파쑈 미국의 통제로 회사가 위기에 처한 관건적인 시각에 회사와   3천여명 직원들을 버리고 시당위 간부로 제발돼 갈 수 없다.’고 사양했다는가. 회사에서 유치원, 위생소, 헬스방까지 차렸지. 직원들의 아파트도 지어준다지. 직원들을 위해 큰 해결하는 거지. 지금 상해 아파트 한채 얼마나 비싼가. 군철은 애비와는 판판 달라. 자기 안속만 차리지 않아. 그는 국가와 회사, 직원들의 리익을 항상 첫자리에 놓았지. 그러니까 날따라 큰 인물로 떠오르는 거겠지. 가은이랑 이 회사에 입사하기를 잘했어. 어디서나 상전을 잘 만나야 해.) 그녀는 피씩 웃었다. “군철은 무슨 생각하고 황선희 언니와 내까지 회사 위생소에 들어오라고 할가? 황선희 언니는 인차 위생소 소장으로 부임한다고 하잖는가. 허. 재수 좋은 놈은 뒤로 엎어져도 떡함지에 물앉는다고 하잖는가.” 졸정원은 정원 이름 그대로 정치를 잘 하지 못해 정계에서 밀려난 과거 관리가 수향에 락향해 지었다고 한다. 춘희는 졸정원의 정원과 루각, 호수, 화원을 돌아보며 별 생각을 다 했다. “군철은 정치를 아주 잘하는 거 같아. 그는 제 애비로 인해 피해를 입은 황선희랑 임하영이랑 다 끌어들여 취직시키지 않는가. 뭐? 하영은 정호 국장한테 미인계를  써서 가무단 부단장으로 됐다잖는가? 정호가 한국에 돈을 부치라고 하영을 위협공갈했지만 부치지 않았단다. 음험한 정호 국장이 하영의 추행을 온 세상에 폭로하는 바람에 하영은 가무단에 머리를 들고 다닐 수 없게 되였다고 하잖는가. 하영은 순정의 입김으로 군철 전무로부터 회사 공회 문예부장으로 초빙되였다고 한다. 해외와 고향에서 버림받은 이런 저런 사람들이 거의 다 이  회사에 모여든 판이구나. 회사는  량산박처럼 불운한 천하 인재들을 모으는 대가정이라는가. 참 대단한 량산박 대두령이야.” 그녀는 천하 “호한”들이 모인 이 복잡한 회사에 들어와 재밌게 보낼 수 있을가고 한참 동안 궁리했다. “딸과 어떻게 한 위생소에서 일하겠는가?” 춘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군철이 하던 말이 귀에 쟁쟁했다. “우리 조선족들은 한평생 외자기업에 의거해 살수만은 없습니다. 외자기업은 중국에서 파산되면 동남아로 이사가거나 귀국하면 다입니다. 그럼 우리 3천여명 직원들은 하루 아침에 허망 나앉게 될게 아닙니까? 때문에 지금은 위생소를 차리지만 장원하게 타산해 봅시다. 아직 성숙된 결론은 아니지만 우린 장차 자체로 살 길을 모색해둬야 합니다.” 군철은 기실 만약 회사가 망하면 황박사 등 의학인재들에 의거해 국영 제약공장이거나 다른 제조공장이거나 부동산개발회사라도 차릴 예산이였다. 군철은 우멍눈으로 춘희를 정색해 바라보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춘희는 대머리와 우멍눈을 여겨보면서 딱 군철의 아버지를 보는상 싶었다. “제약공장에서는 백신이나 기타 약을 생산하면 어떻겠는지 김박사와 황박사가 가은과 복화를 이끌고  좀 연구해주십시오.” 그러나 춘희는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차 딸을 옆에서 도우려면 남방에 오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고향의 병원에서는 계속 출근했으면 하고 있지 않는가. 그녀는 또 문걸과의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춘희는 호수 옆에 수백년이나 나란히 서 있는 한쌍의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졸혼에 대한 막연한 고민에 잠겼다. “이젠 둘 다 졸혼하고 지내볼만큼 지내봤으니깐. 계속 평행선을 달릴 수야 없지. 우리 저 한쌍의 은행나무처럼 수백년을 오래오래 재미나게 살 수 있겠는가?” 한쌍의 은행나무와 설레는 참대숲이 호수에 비꼈다. 원앙새들이 가늠하기 어려운 풍운을 한 품에 안은 잔잔한 호수에서 쌍쌍이 헤염치며 노닐고 있었다. 춘희는 은행나무 아래 쌍쌍이 헤염치는 원앙새들을 바라 보며 막연한 생각에 저도 몰래 장탄식이 나갔다. “인간세상에 원앙새 참사랑이 있기나 한가?”      한편, 문걸도 집에서 쏘파에 앉아 오랜만에 권연을 붙여물고 고민의 블랙홀에 빠져 들어갔다.       “이 세상에 참사랑이란 있는가?”      그는 영희와 참사랑을 한데 엮어 생각하기도 싫어  애들한테 고민의 키를 돌렸다.      “군철은 효자야.”      문걸은 군철의 효성에 못내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 놈이 그래도 길러준 정을 잊진 않았어. 날 양아버지로 효성을 다해 잘 모시겠다잖는가. 내 집도 없이 산다고 이 집도 주었다. 뭐, ‘이 집은 아버지 애나게 그림 그려 산 집이라고 돌려준다.’는가. ‘이젠 황혼에 아들 곁에 와서 복을 누리면서 살라.’고 하잖는가.) 그는 영희와 자손들의 체취가 풍기는 집 구석구석을 둘러보면서 장탄식했다. 저도 몰래 이전에 애를 보면서 고생하던 생각이 떠올라 마음이 괴로웠다. (아, 난 영희 그렇게 잔소리를 많이 해도 얼마나 사랑했던가? 영희 정호한테 수십년이나 간음당한 것도 모르고 얼마나 열렬히 사랑했는가? 허위로 감싸진 영희와의 참사랑을 지키려고 얼마나 발버둥질쳤는가. 영희 졸혼하고 홀로 자기만의 삶을 살려고 리혼하자고 할 때  나는 참사랑은 대방한테 베푸는 것이라고 여겨 차마 못할 리혼까지 해주었지. 영희 암에 걸리니 나는 유일한 재산 화실마저 팔고 국제인체화전람회에서 탄 상금마저  치료비로 다 주었지. 지어 한국에 나가 건축현지에 가서 일해 치료비로 보태게 했지. 하느님도 무심하지. 저승사자는 영희를 그렇게도 무정하게 빼앗아갔지. 영희, 세상에 참사랑이란게 있소? 어쩜 수십년이나 정호한테 짓밟히고도 속여왔소?) 문걸은 차탁을 탁탁 치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잊어야지. 마음이 괴로울 때면 몽땅 잊는게 좋아.) 그는 한참 후 춘희한테 생각이 닿았다. “이젠 둘 다 졸혼하고 지낼만큼 지내보지 않았는가. 이젠 미녀로봇이나 베개를 끌어안고 살 순 없지.” 그는 저도 몰래  저으기 괴로워났다. “이젠 졸혼하고 춘희를 알만큼 알게 됐지 않았는가?  나는 도대체 마음속으로 춘희를 사랑하고 있는가? 오래 지내보면 서로 흠집도 점점 드러나는게 아닌가.” 그는 일본에 가서 춘희와 다이로교수 생활형편을 안 후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되였다. 특히 다이로교수 유산을 노려보는 춘희 탐욕스런 집착에 저도 몰래 경악하였다. 문걸은 외까풀눈을 가슴츠레 뜨며 궁리하다가 내심의 갈등으로 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춘희는 탐욕스런 일면도 있지만 필경 구명은인이야. 내가 혈변을 보고 쓰러졌을 때, 휄체어로 병원 구급실에 밀고 달려가 구급해냈지. 내 삶의 용기를 잃고 자살하려고 혈관을 끊어 피 줄줄 흘러내릴 때도 그녀는 팔을 걷고 자기 피를 수혈해 구급해냈지. 내 몸에는 아직도  춘희 사랑에 넘치는 피가 흐르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등산하러 가서 눈구덩이로 빠져 협곡에서 기여나오지도 못하는 곤경에 처해서도 뜨거운 사랑을 고백했지.” 문걸은 여기까지 생각하자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뒤이어 그는 저도 몰래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건 사랑이 아니고 다 구명은인에 대한 보은감정인가? 춘희 말처럼 죽어가는 생명에 대한 의사의 최저한도 인도주의인가? 그럼 우린 그저 의사와 환자 관계인가? 그럴 수도 있지. 그땐 춘희 말대로 다이로교수와의 마음의 정리가 채 안된 처지였으니깐. 춘희는 일본에서 자기 모녀에 대한 다이로교수 은혜에 대한 보은이였지. 결코 사랑은 아니였지. 그녀는 다이로교수 성학대를 견디기 어려워 자꾸 고향에 피해 산 형편이 아닌가.) 문걸은 쏘파에서 우쭐 일어나 널직한 객실과 침실을  거닐었다. 그는 고민의 심연에서 벗어나려고 허우적거렸다. (군철은 길러준 정과 은혜에 효성을 다하느라고 이리 좋은 집을 주겠단다. 지예와 아래윗집이 돼서 늘그막에 무슨 일이 있어도 부녀간이 서로 의지하면서 살기도 좋지. 침실도 두칸인데 하나는 화실을 하면 좋겠다. 그런데 보모 만금과 애들은 어쩔가? 만약 춘희하구 살게 되면 필요없긴 한데.  늘그막에 심심하면 취미생활로 그림이나 그릴가? 외손자한테 그림그리기도 배워주고.) 그는 외손자 유림을 생각하자 천륜지락을 누리고 싶은 생각에 울컥했다. (오늘 그 놈을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꼭 끌어안고 놀아야지.) 그는 그림을 그리자고 붓과 종이도 얻어보다가 그만 두었다. (에이구, 내 이제 그림을 그려 뭘 해? 늘그막에 그림책이라도 내자고 이러는가? 괜히 또 고생문이 터지지 않는가? 종수를 봐라. 늘그막에 무슨 책을 낼 출판비용을 벌려고 한국에 가서 건축현장에 가서 막일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순간 종수가 얘기하던 고행이 떠올랐다. 종수는 조선족 백년이민사를 쓴 책을 내긴 냈다고 했다. 그런데 책배낭을 메고 책트렁크를 들고 신도림지하철역 층계를 올라가다가 그만 혁띠가 툭 끊어졌다고 한다. 그때 바지멀춤이 훌 내려가 숱한 사람들 앞에서 개꼴망신했다고 한다. 지하철역 매대에 혁띠가 있어 다행이였다고 한다. “그렇게 애나게 출판해 가져온 책을 드렸는데 읽어보지도 않는 사람들을 보면 참 마음이 비길데 없어.” 종수가 하던 섭섭한 말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했다. “그림도 소설책이나 매한가지 운명이야. 화가들은 고상한 예술작품이라고 자화자찬하지. 그러나 누가 민족예술이라고 사 벽에라도 거는가? 민족의 전통 문화와 예술을 위해 고군작전해 예술작품을 창작해도 누가 왼눈으로나 보는가? 이것이 바로 그림과 책의 현주소야.  비극이 아닌가?” 문걸은 붓을 훌 차탁에 팽개쳤다.        순간 눈 앞에 고향 망아산 수림 속  방공호 동굴이 나타났다. 정호가 숱한 아가씨들을 데려다가 간음하던 블랙홀이 아닌가! 권세, 금전과 색을 교역하던 더러운 장마당 블랙홀이 아닌가! 첫사랑도 무참히 집어삼키고 음탕한 트림을 하던 첫사랑의 블랙홀이 아닌가! 처참한 참사랑도 훌러덩 함정에 빠뜨린 허위에 찬 블랙홀이 아닌가!        눈덮인 원시림에 눈구덩이와 절망에 찬 협곡이 나타났다. 미츨한 미인송과 협곡 위에서 란무를 추는 소나무가 부둥켜 안고 흐느낀다. 지하에서 맺은 참사랑의 흔적이 아닌가!         망아산 방공호 동굴, 원시림의 눈구덩이, 협곡이 마구 소용돌이치며 고민과 함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버린다. 그 고민의 블랙홀은 티없이 깨끗한 참사랑을 한입에 꿀꺽 삼켜  무섭게 소용돌이치고 있지 않는가!  참사랑은 고민의 블랙홀에 소용돌이쳐 빠져들어가고 허위와 음흉한 음모를 더러운 가래와 함께 뱉어낸다. 졸혼이란 방패로 눈을 가리고 통간의 신음소리 참사랑의 무덤에 타리대를 치고 앉아 하품을 한다.          한쌍의 황혼 락조는 끝없는 고민의 블랙홀에 빠져 저녁노을에 부채질해 더욱 뻘겋게 불태우고 있다.        희망의 돛배는 저승사자한테 붙잡혀 몇번이나 염라전에 갔다 왔다 하며 서서히 서산 넘어 지평선에서 사라져간다.        원앙새 참사랑은 절망의 블랙홀에 빠져들어가며 절망의 미련의 꼬리를 휘둘러친다. 블랙홀에서 휘몰아치는 소용돌이태풍에 색마가 가발을 벗어쥐고 번대머리를 번뜩이며 음충한 미소를 짓는다.      색마는 우멍한 눈을 부릅뜨고 대성질호한다.      "우둔한 금욕주의자야, 세상에 어디 참사랑이란게 있다고 그래?"      "늙어 썩어빠지기 전에 그때 그때 미녀들을 데리고 즐겨야지. 바보야, 그게 최고 락인 거야. 허허허."      "한평생 문걸을 속인 "조강지처"의 간사한 웃음소리도 간간히 들려온다.      참사랑을 추구하는 사랑의 신이 펄떡펄떡 뛰는 심장을 빼들고 고민의 블랙홀에서 빠져나오려고 허우적거리다가 훌러덩 엉덩방아를 찧으며 비명을 지른다…
297    대하소설 졸혼 제4권 (61) 김장혁 댓글:  조회:1339  추천:0  2022-11-24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권            71.  비밀설계도        한줄기 밝은 빛이 밤하늘 어둠을 꿰뚫고 험준한 협곡을 비춘다. 밝은 빛은 요술을 부리듯이 어둠침침한 동굴에 훌렁 뛰여들어 여린 몸으로 어둠을 하나, 하나 지워나간다.       꿈 같은 설계도가 협곡 위에 펼쳐지자 파도가 사나운 호수 물 위에 고층아파트가 신기루처럼 우뚝 솟아오르며 과학환상소설을 쓴다.       해내외에서 고급전문인재들이 두툼한 딸라봉투를 바라보고 구름처럼 회사에 모여들었다.        따르릉, 따르릉. 부총경리실 전화벨소리 급촉하게 울린다. “누구? 데리고 오오.” 군철은 전화를 놓으면서 뜻밖에 인사과장 리나한테서 온 기별에 기뻤다.  이윽고 리나가 퍽 성숙돼 보이는 처녀를 데리고  사무실에 들어왔다. 동안의 처녀는 머리를 숙여 곱게 인사했다. “리복화라고 부르는데요. 잘 부탁드립니다.” “반갑소.” 군철이 피뜩 보니 처녀의 세귀눈이 퍽 무섭게 인상 깊었다. 리나가 복화의 서류를 보스사무상에 가져다 놓았다. 복화도 수척한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다가오더니  졸업장을 사무상에 놓았다. “일본 의대 류학석사생이구만.” 군철은 머리를 끄덕이며 복화를 여겨보았다. 복화의 수척한 얼굴이 퍽 어두워 보였다. 그가 어찌 복화가 일본에서 격은 고생살이를 다 알겠는가. 군철은 졸업장을 들고 보더니 의아해했다. “금방 복화라던데 어째 졸업장엔 야마구찌 나나로 돼 있소?” 복화는 머리를 들고 자세히 설명했다. “나나는 제가 일본 양아버지가 지어준 일본 이름입니다.  이젠 중국에서 부모가 지어준 원명 리복화로 떳떳하게 살고 싶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섬나라 오랑캐들한테 갖은 민족기시를 다 받으면서 괴롭게 공부했습니다. 별의별 수모를 다 참으면서 알바를  해 겨우 오누이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섬나라를 떠나 귀국해 오성붉은기를 보는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조국의 품에 안기는 순간 어머니 품에 안긴듯한 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제가 배운 의학지식으로 마음껏 조국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조국애가 아주 보귀하오. 해외에서 애나게 공부한 류학생들은 애국주의 감정이 더 강해지오. " 뒤이어 군철은  복화 서류를 두루 번져 보면서 이것저것 료해하였다. “의대에서 무슨 학과를 전공했소?” 복화는 가는 미소를 으며 대답했다. “저는 생물화학을 위주로 전공했습니다.” “림상은?” “림상도 배웠습니다.” 기실 군철은 이미 박문 총경리와 위생소를 세울 것을 토론해 결정했고 의료일군 편제도 편성했다. 군철은 지금 한창 대가정의 웅위로운 설계도를 설계하고 있었는데 위생소, 나아가 장차 제약공장에는 의학전문인재가 많이 수요됐다. “복화는 잠시 자리를 내주고 기다리오.” 리나는 복화를 데리고 비서실에 들어가 경희한테 맡겨 놓고 부총경리실에 되돌아왔다. 군철은 우멍눈을 꼭 감고 한참 궁리하였다. 어떤 결론이 내릴지 모를 긴장하고 관건적인 시각이였다. (복화 작은할아버지는 성호란다. 성호는 아버지를 나포해 경찰에 바친 배신자야. 원쑤 손녀를 곁에 받아들이는게 옳은가?) 한참 후에야 군철은 우멍눈을 번쩍 떴다.  “리과장, 복화 입사수속을 하오.” 리나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복화 누군지 알지요? 하나 오촌조카인데요.” 우멍눈이 흘끔 치켜뜨며 리나를 쏘아본다. 군철이 뜻밖에도 대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렇게 말할줄이야. “속담에 ‘아버지를 죽인 원쑤와는 한 하늘을 쓰고 살지 못한다.’고 했지. 복화 작은할어버지는 아버지를 나포해 경찰에 바친 배신자라는 걸 나도 아오. 그러나 회사라는 대가정 지도자로서 어찌  윗어른들이 맺은 원쑤 때문에 우리 세대에서도 대대로 이어 원쑤로 돼 싸워야 한단 말이오?” 리나는 코웃음치며 비양거렸다. “참 대단하구만. 누가 당신을 흉금이 넓은 지도자라고 보에 싸서 업고 다닐 거 같습니까? 흥!” 군철은 리나가 하나를 못내 슬그머니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우린 개인 알륵으로 해 회사 대가정에 인재들이 들어오는 대문을 닫아걸어선 안되오.“ 군철의 태도는 바위돌처럼 확고부동했다. “복화랑 얻기 힘든 의학인재요. 위생소에는 아직도 의료일군이 더 필요하오.” 문걸은 전에 없이 리나 옆에 가서 나란히 앉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리문걸, 그 양아버지 일본 의대 류학석사 허가은을 추천합데. 이전에 양아버지를 구급해낸  춘희라는 의학박사네 딸이라오. 양아버지 불러서 가은을 만나봤소.  입사수속을 하오. 좋기는 춘희박사도 우리 위생소에 왔으면 좋겠는데. 춘희박사는 림상경험도 풍부하고 생물학 전무가 박사란 말이오. 우리 회사에서 황선희박사를 위생소 원장으로 초빙했는데황박사와 춘희박사 둘 다 일본 의대 류학생박사라오. 그들은 문걸 아버지를 구해준 은인들이오. 그런데 황박사는 아버지 출국도주를 도와준 죄로 공직을 떼우고 감옥에 갇혔소. 이제 만기석방되면 우리 회사에 오겠다니 참 다행이오.” 리나는 끊임없이 반간을 놓았다. “만약 황박사 원장으로 오면 코로나 핵산검사는 가은만 받아도 넉근해요. 복화(나나)와 가은(마끼)은 어려서부터 동창친구지만 몇달전만 해도 라이벌이 돼 죽기내기로 싸웠대요.” 리나는 복화와 가은이 라이벌이 돼 싸운 얘기를 들은 소문대로 쭉 이야기하고 나서 뒷말을 이었다. “왜 품성이 좋찮은 애들을 한사코 받자고 하는지요?”  “걔들의 갈등을 피뜩 듣긴 들었소. 그러나 그러루한 개인 알륵으로 해 일본 류학생인재를 다 배척해선 안되오. 다 끌어안고 일치 단합해 이 대가정을 잘 꾸려나가야 하오. 큰집이  살아야 우리도 살아나갈 수 있소. 이게 당지부 서기, 부총경리인 내 무거운 책임이고 의무요.” 리나는 비양거렸다. “아버지 여럿이 돼 인맥이 참 좋구만요. 흥!” 군철은 벌떡 일어나면서 화를 냈다. “우리 둘이 함께 살지 않겠으면 그만이지. 왜 아버지를 욕보이오?” 리나는 울며 불며 야단쳤다. “난 애들 생각하면 밤잠도 잘 안 옵니다. 애들이 내 목을 끌어안고 함께 자자고 가지 말라고 울 때 내 마음 칼로 에이는 것 같았어요. 혼자 애들을 보고 싶어 울면서 지낸 밤이 얼만지 아는가요?  남과는 아버지를 잡은 원쑤도 관용하면서 왜 나한텐 그렇게 혹독한가요? 대가정만 생각하지 말고 자기 가정부터 잘 꾸리고 애들이나 잘 기를 궁리나 좀 하세요. 시아버지한테 설거지를 시킨게 아직도 속에 내려가지 않는가요? 황차 리문걸선생은 친아버지도 아닌데.” 군철도 쏘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언성을 높였다. “양아버지도 아버지야. 아직도 양아버지를 업신여기는가? 그런데서 사람의 인품이 보이는 거야. 속담에 이상 어른을 존중할줄 모르면 앉은 개 뭣이 불러진다고 하잖았어. 애들을 생각해서 나도 리나를 용서하려고 애썼소. 회사 정황을 알면서 날  량해해주지 않소?” 그 진솔한 말에 리나는 군철한테 한걸음 다가서더니  보름달 같은 얼굴에 화기를 띠우며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 애들을 생각해서라도 서로 한걸음씩 물러나면 어떻습니까? 물론 나도 잘못이 있어요. 시부모님한테 애들과 가무를 몽땅 맡겨놓고 당신이 사업수요로 밤에 늦어들어온 걸 미처 리해하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널리 량해해 주세요.” 군철도 머리를 좀 숙였다. “이제라도 그렇게 리해하면 우리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할 수도 있다고 보오. 나도 거의 날마다 저녁에 총경리  모시고 술을 마신게 무지했댔소. 부모와 리나한테도 미안하오. 무슨 타당한 수를 써서 몸을 빼야 했는데 말이오. 지금 박총경리는 안해 온 다음 자꾸 술을 마시자던 버릇을 뗐소. 애들을 생각해 이젠 졸혼을 그만두고 다시 우리 둘의 일을 고민해볼 때 된 거 같소.” 리나는 쓰라린 회한의 눈물을 복숭아 같은 볼에 줄줄 흘렸다. “그래요. 기실 졸혼이란 건 가정을 깨는 또개비장난이죠. 부부 사이를 점점 갈라놓는 쐐기라고 봐요.” 군철도 대머리를 들고 우멍눈으로 리나를 바라보며 정색했다. “이제라도 우리 둘이 이전처럼 화학적으로 융합돼 서로 쨍하게 사랑할 수 있을가?” 리나도 솔직히 열렬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글쎄 힘들겠지요. 그러나 필경 우리는 뜨거운 사랑을 불태워 사랑의 결실인 애들 둘까지 낳은 기적을 창조하지 않았는가요? 아직 우린 새파란 청춘의 사랑의 불길이 남아 있어요. 다시 그 사랑의 불길을 지피도록 우리 함께 다시  손잡고 노력해 봅시다. 모든 걸 다시 시작해봅시다.” 군철은 사무상에 돌아가 앉았다. 리나는 거침없이 짓쳐나가며 련주포를 놓았다. “졸혼을 한답시고 내 애들까지 훌 버리고 나가는 바람에 애리싸가 쐐기처럼 꽂혔잖았는가요? 애리싸부터 잘 정리하세요.” 군철은 머리를 천천히 끄덕였다. 리나는 눈물을 닦더니 군철을 날카롭게 쏘아보면서 말했다. “경고할게. 당신 계속 애리싸를 곁에 뒀다간 언제든지 회사를 말아먹지 않는가 보세요.” 군철은 짙은 눈섭을 한데 모으며 날카로운 빛이 선뜩선뜩하는 우멍눈으로 리나를 쏘아보았다. “위협하는 거요? 애리싸 어쨌다고 질투해?” “질투? 이걸 보세요.” 리나는 핸드빽에서 유판을 꺼내 사무상에 다가와 내밀었다. “보세요. 애리싸 어쨌는가?” 군철은 유판을 컴퓨터에 꽂고 열어보았다. 컴퓨터에 이런 장면이 나타났다.        침실에 애리싸가 나타나 흘끔거린다.      컴퓨터를 열고 유판을 꽂는다.      뭔가 복제하지 않겠는가.   “애리싸 행각 진작 다 알고 있었소.” 리나는 쌍까풀눈이 데꾼해졌다. 군철은 의자에 잔등을 대고 머리를 들더니 우멍눈으로 창 밖을 내다보면서 아주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나는 침대머리에 진주알 몰카를 하나 박아놓았지. 내 컴퓨터에는 칩과 메모리 새 생산장비 설계도와 윤선의 생산장비 자동화기술개조 설계도 초고가 있었을 뿐이오. 오히려 나는 애리싸 꼬리를 밟고 박넌출을 따라가 커다란 호박을 찾아냈단 말이오. 애리싸 오빠를 위주로 한 우리 시 주재 미국 경제간첩망을 시 안전국에 대거 적발해 일망타진했소. 애리싸와 그의 오빠는 이제 안전부문의 재조사를 받고 감옥에 들어가거나 강제출국당할 거요. 애리싸 오누이 때문에 근심하지 마오.” 리나는 깜짝 놀랐다. “애리싸는 미국 경제간첩이구만요.” 군철은 의자에 등을 붙이며 우멍눈으로 리나를 치켜보며 가는 미소를 슬쩍 지었다. “지금 나는 우리 대가정에 아주 웅대한 비밀설계도를 그리고 있소. 지금 미국 양키들의 경제파쑈적인 반도체 롱단과 통제를 받아 칩과 메모리 생산과 시장이 부진상태요. 이제 박총경리와 세심히 토론해 우리 대가정에서 새 규격의 칩과 메모리를 대량 개발생산할 예산이오. 우리는 외자회사에만 의거해 살 수 없소. 외자회사는 인건비와 원자재 값이 올라가면 회사가 망한다고 무시로 베트남으로 훌 가버릴 가능성도 있소. 우리 언제까지 외자기업에만 목을 매워 외국인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한단 말이오. 때문에 우린 장원한 타산을 해야 하오. 우리 지혜와 지식으로 우리 자체 공장을 차리고 살아나갈 뒷길도 개척해 놓아야 되오.” 리나는 눈 한번 깜짝이지 않고 귀담아 들으며 못내 탄복했다. “회사에서 고층아파트를 지어 매 직원당 아파트 한채씩 주면 얼마나 좋소. 그 아파트만 팔아도 어데 가서라도 살 수야 있겠지. 그러나 우린 그에 만족하지 말아야 하오. 지예는 미국 제약회사에서 일하지 않고 뭐요? 이제 지예랑 복화랑 가은이랑 데려다 백신제조공장도 세우고 윤선이랑 하나랑 데리고 부동산주식유한회사도 세울 예산이오. 그래야 3천여명 직원들이 지금 우리 회사에서 허망 나앉게 돼도 밥통문제를 근심할 필요없지.” 리나는 참다 못해 한마디 했다. “저한테 왜 비밀방안까지 다 얘기하는가요?” “저는 우리 두 아들의 어머닌데. 내 저를 믿지 못하면 우리 회사에서 누굴 믿겠소?” “믿어줘서 고맙습니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쉬운 일이겠습니까?” 군철은 평소에 말수가 적었지만 오늘 리나와 못하는 말이 없었다. “내 이미 백신공장과 아파트 건축부지를 봐두었소.” “어디에?” “우리 회사 울안 저 무연한 호수를 메우고 제약공장과 아파트를 짓는단 말이오. 아직 성숙된 구상은 아니지만  공업주관 부시장과 초보적으로 얘기 해놓았소.” 리나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직원들의 주택난을 해결해주면야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총경리들을 비단보에 싸 업고 다니겠어요.” 뒤이어 그녀는 화제를 또 돌렸다. “대가정 얘기는 그만하구 발등에 떨어진 애리싸 관계나 잘 정리하세요. 제가 알아본데 의하면, 애리싸와 오빠라는 남성은 근본 오누이 아닙디다.” “뭐라고?” “그들은 부부간입니다.” 군철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는 지예를 보고 애리싸를 면밀히 감시하라고 했는데 부부 사인 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 오빠 애라는 것도 그들의 애겠구만.” “그래요.” 군철은  악연실색했다. 그는 의자에 되물앉았다. 우멍눈을 딱 감고 왼손으로 대머리를 짚고 절망에 빠졌다. 리나는 조용히 인사서류철을 걷어 들고 부총경리실을 나오면서 속으로 달콤한 웃음을 지었다. 음력설을 며칠 앞두고 회사에서는 회사 울안 널다란 호수를 배경으로 푸르른 잔디밭광장에 화려한 무대를 설치하고  3천여명 직원들이 몽땅 참가한 성대한 년말사업총화대회와 음력설맞이문예공연을 열게 되였다.     오늘 따라 활짝 개인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이 푸르렀고 광장 잔디밭에는 찰란한 봄빛이 완연했다. 대회 주석단에는 박문 총경리와 최군철 부총경리 등 회사 주요책임자이 앉았다.  오늘 따라 시당위 조직부 부부장과 공업구당위 서기가 주석대 중앙에 앉아 직원들의 눈길을 끌었다.      대회장 관중석 젤 앞줄에는 회사 중층관리들이 죽 늘어앉았다. 그 뒷줄에는 박총경리 안해와 아들딸까지 와서 앉아 있었다. 군철의 양아버지 문걸과 춘희박사, 천지조선족예술단 단장  순정과 부단장 임하영 등도 앉아 있었다. 그 외에도성호와 엄정희도 딸 하나와 한 시내에서 살자고 한국에서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군철의 초청에 의해 대회장에 와서   3천여명 직원들과 자리를 함께 하였다. 총화대회는 공회 부주석 윤선과 선전위원 하나가   사회하였다.     먼저 박총경리가 무대에 올라가 길죽한 얼굴까지 흔들어대며 사업총화를 하였다. 중국통인 그는 번역이 따로 필요없이 한어로 격정적으로 연설했다. “… 올해 우리는 미국 경제파쑈의 압제와 통제를 받아 국내외 반도체시장이 부진한 어려운 형편에서도 회사 전체 직원들의 노력으로 해 생산과 판매공급, 국가 세금도 넘쳐  완수했습니다. 특히 최군철 부총경리는 김윤선 등 10여명 연구일군을 조직해 칩과 메모리 자동화 생산장비와 생산흐름선 기술개조에 성공하였습니다. 또 다양한 새 규격 메모리 생산장비를 자체로  연구개발해냈습니다.  회사에서는 이젠 미국 파쑈적인 반도체롱단과 메모리장비 통제를 벗어나 다양한 새 규격의 칩과 메모리를 제때에 생산해 시장에 공급할 수 있게 되였습니다. 이 두가지 항목의 연구개발에 성공했기에 회사의 자금 9억 딸라나 절약하고서도 생산 질과 속도 및 생산량을 훨씬 높이는 장거를 이뤄냈습니다. 리회장님은 우리 회사 연구성과로 본사 생산장비도 기술개조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젠 미국의 생산장비가 없이도 우리 자체로 여러가지 새 규격의 칩과 메모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경제파쑈 미국이 아무리 날강도처럼 압제하고 차단해도 우리 회사는 직원들의  첨단반도체지식재산과 연구능력으로 얼마든지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철 같은 사실로 증명했습니다.” 전체 직원들은 몽땅 기립하여 오래동안 우뢰와 같은 반수갈채를 보냈다. 박총경리는 숨도 돌리지 않고 계속해 포상 결정을 선포하였다.     “본사 포상결정에 따라 기술개조연구팀에 상장증서와 함께 상금1억원(인민페)을 내립니다. 자동화생산장 비 기술개조에 특별히 공헌히 큰 연구총팀장 최군철씨를 본사 기술혁신팀 겸직 부팀장으로 임명하며, 우리 회사 전무로 승급시키고 년금 200만여원으로 결정했습니다. 또  뽀마찌프 한대에 상금 2백만원을 드립니다.” 순정과 문걸, 춘희는, 무대에 올라가 수상하는 군철을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박문 총경리는 계속 우렁찬 목소리로 선포했다. “새메모리 생산설비를 연구개발해낸 연구2팀 팀장 김윤선에게 정식으로 우리 회사 기술팀 팀장으로 임명하며 년금 70만원 주기로 결정하며, 연구성과 상금 100만원에 오디찌프 한대를 장려합니다. 연구팀 기타 연구일군들에게도 몽땅 20만원씩 상금을 내립니다.” 장내에서는 우뢰 같은 박수가 터졌다. 하나는 너무 기뻐 눈물이 글썽해 수상하는 윤선을 쳐다보며 손바닥이 터질 지경으로 박수를 쳤다. 박총경리는 계속해 격정 높이 연설했다. “최군철 전무한테서 료해한데 의하면 기술개조연구팀 연구일군들은 모두 우리 회사의 업무골간이며 더욱히는 중국 공산당 당원이라는데 저으기 놀랍습니다. 나는 이런 당원들은 환영하며 이런 당조직은 드팀없이 지지합니다. 이젠 당조직에서는 더는 공회라는 이름으로 지하활동 할 필요없습니다. 이젠 우리 회사에서 당조직 활동을  합법화하고 공개적으로 해도 됩니다.” 장내에서는 우뢰와 같은 박수가 재차 터졌다. 박총경리는 더욱 웅글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회사 최군철 서기 요구에 따라  당조직과 노조에 회사 회의실을 활동실로 내주겠습니다. 이제 노조와 당조직 활동구락부를 따로 지어줄 예산입니다. 해마다 활동경비도 500만원씩 대주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쁜 소식은 련이어 터졌다. “회사에서는 최군철 전무의 웅대한 설계도에 따라 백신공장도 차릴 것입니다. 이제 공장건물 앞의 호수를 메우고 전체 직원들의 고층문화아파트도 지을 것입니다.”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 장내를 휩쓸었다. 박문 총경리는 눈물이 글썽해 목놓아 소리쳤다. “직원 여러분, 저는 대가정의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저의 가족은 중국을 너무 너무 사랑합니다. 우리 부부는 애들을 데리고 아름다운 이 도시에서 여생까지 보내려고 합니다. 여러분, 음력설을 잘 쇠고 복 많이 받을 것을 미리 축원합니다.” 박총경리 부인 김미라씨와 아들딸은 몽땅 일어나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환영합니다!” 전체 직원들은 몽땅 일어나 허리굽혀 답례하며  환호했다. 박총경리는 직원들에게 손을 휘저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뒤이어 하나가 격앙된 목소리로 사회하였다. “다음으로 시당위 조직부 부부장께서 중요한 소식을 공포하겠습니다."    시당위 조직부 부부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우렁차게 공포했다.    "시당위와 구당위 연구와 비준을 거쳐 S시 반도체전자유한회사당위가 오늘 정식으로 성립되였습니다. 나는 시당위와 구당위를 대표해 우리 시 첫 외자회사 당위 성립을 열렬한 축하를 드립니다."    주석대 상하 몽땅 기립해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쳤다.     " 우리 회사 당조직에서 외자회사에 당조직을 건설한 것은 외자회사가 수천개나 되는 우리 시 당조직건설에 새로운 페지를 펼쳐놓는데 중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반도체전자유한회사당위에서는 새로운 시대에 습근평주석의 지시대로 사명감과 초심을 잊지 말고 참답게 새 시대 당사업을 개척하고 전개해나갈 것을 희망합니다. 마지막으로 또 한가지 기쁜 소식을 공포하겠습니다."     순간 장내는  삽시에 물 뿌린듯이 조용해졌다.  직원들은 무슨 기쁜 소식이 터지겠는가고 두 손을 맞잡고 조직부부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조직부부장은 번대머리를 쳐들고 우렁차게 선포했다.     "최군철 서기는  당대표로 당선되여 영광스럽게 전국당대표대회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당대표 최군철 서기를 열렬히 축하합니다!"     장내에서는 또 열렬한 박수가 터졌다.      운선은 대회를 멋지게 사회해나갔다.     "최군철 서기가 전국당대표대회 당대표로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다음으로 전국당대표대회 당대표이며 우리 회사 초대당위 서기 최군철동지로부터 연설하겠습니다. 열렬한 박수로 환영합시다.”      군철은  연설석에 나가 마이크를 잡고 격앙된 목소리로 연설했다.     “시당위와 구당위 지지하에 우리 회사  당위는 오늘 정식으로 창립됐습니다. 시당위와 구당위 지지와 관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대회장에서는 우뢰 같은 박수갈채가 터졌다.      “시당위와 구당위 그리고 우리 회사 박문 총경리 지지하기에 우리 회사 당위 200여명 당원들은 이젠 더는 지하활동을 할 필요가 없게 되였습니다. 우리 전체 당원들은 시당위와 구당위 요구대로 습근평 총서기의 지시대로 사명감과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하며 항상 한마음, 한뜻으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당의 취지를 잊지 말고 언제 어디서나 국가와 직원들의 리익을 첫자리에 놓고 우리 회사를 잘 운영해나가는 길에서 청춘과 모든 것을 다 바쳐 인생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 회사는 미국의 파쑈적인 반도체통제에 의해 전에 없는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회사가 살아야 우리도  생존할 수 있으며 자기 꿈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 200여명 당원들은 3천여명 직원들을 조직하고 이끌어 회사 생존을 위해 모든 지혜와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야 합니다.       우리 3천여명 직원들은 박문 총경리를 비롯한  회사 지도부와 회사 당위 두리에 똘똘 뭉쳐 미국의  경제파쑈적 롱단과 통제를 물리치고  전례없는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회사 원대한 설계도를 그려나가면서 놀라운 경제효과를 이뤄야 합니다. 회사 지도부와 당위 그리고  당원들의 조직적인 힘에 의해 우리 회사는 더욱 아름다운 미래를 맞으리라고 믿습니다. 노조에서는 이제부터 해마다 직원들의  축구경기와 농구경기, 문예공연을 조직해   직원들의 문화생활을 풍부히 할 것입니다.        회사에서는 이제 직원들의 아파트도 짓고 회사와 아파트 정원에 연분홍 진달래도 심을 것입니다. 우리는 초심과 뿌리를 잊지 말고 강남 이땅에 뿌리를 밖고 하나로 굳게 뭉쳐 우리 지혜와 힘으로 이 땅에 더욱 아름다운 제2 고향, 제3 고향을 건설해나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 피땀으로 강남의 이 락토에서  아름다운 연분홍 진달래꽃을 활짝 꽃피워야 합니다…”      직원들은 장내가 떠나갈듯이 우렁차게 박수를 쳤다.      윤선이랑 하나랑 연분홍진달래꽃이 만발한 강남 제2고향의 황홀한 앞날을 방불히 보는 상 싶었다.       윤선이 격정적으로 선포했다.       “이제부터 음력설맞이문예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천지예술단 부단장 임하영 유명가수가 아름다운 노래를 선물하겠습니다.”       임하영은 열렬한 박수갈채 속에서 무대에 올라 청아한 목소리로 아리랑을 흥겹게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아리랑 노래에 맞춰 천지예술단 순정 단장과 무용수들 그리고 경희, 하나, 은희, 복화, 가은 등 조선족직원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격정에 넘쳐 연분홍치마자락을 날리며 학처럼 너울너울 춤추었다.      한족직원들은 비록 가사 내용은 알아듣지 못해도 민족특색이 짙은 공연에 흥이 나서 연신 박수갈채를 보냈다.     군철은 임하영가수가 아버지 애인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그는 하영의 노래를 들으면서 이런 기쁜 날에 한자리에 아버지를 모시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다. 그는 철창 속에서 만년을 보낼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두 볼에 주르르 흘렸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지. 한평생 청렴한 당원간부로 살 거야.)     한족직원가수가 부르는 경쾌한 현대노래에 맞춰 각 민족 청년직원들이 무대에 올라 경쾌한 현대무를 추었다.     푸르른 호수 상공에서는 갈매기와 비둘기들도 흥에 겨워 훨훨 나래치며 평화롭게 날아다녔다.       
296    대하소설 졸혼 제4권 (60) 김장혁 댓글:  조회:1414  추천:0  2022-11-22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권              70. 지하활동        랭혹한 이데올로기 협곡이 너무나도 깊고 눈총질이 심해 최초에는 갱도를 파고 건너지 않으면 안되였다.       날마다 그 협곡을 한자, 한자 메워 38선을 넘어 랭랭했던 두 손을 맞잡게 되였다.       협곡에 놓인 징검다리는 결코 7월 7석 견우와 직녀 만나던 은하수는 아니였다.       징검다리로 협곡에 판 동굴은 그렇게도 어둡고 지루하게도 깊을줄은 누구도 몰랐다.       군철은 그 어둠침침한 동굴에 진정으로 층계를 놓으며 이를 악물고 한발작, 한발작 기여나와야만 했다. 회사 울안에 유치원을 차리자 직원들은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회사에서 우리 뒷근심을 알아봐준다니깐.” “다 박총경리와 최부총경리 덕분이야.” “공회는 진짜 우리 큰집이야.” 뒤따라 직원들의  생산열성도 전례없이 높아갔다. 어느날 박총경리는 군철을 사무실에 불렀다. 군철이 사무실에 들어서자 녀비서 은희가 커피잔을 가져다 차탁에 놓았다. 박문 총경리는 커피잔을 들고 후후 불면서 군철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최초에는 젊은이 이마부터 벗어졌다고 재수없다고 속으로 웃었다. 그러나 이젠 그놈 번대머리 간단하지 않다고 감탄했다. “아우 덕분에 안해를 붙들어두게 됐네. 아들딸도 다 소주에 데려왔네. 걔들을 소주대학 켐프리치대학과 리오대학 분원에 입학시키고나니 싹 시름놨네. 가정이 화목하니 이제야 살맛이 나. 밤이 무섭던 공포도 싹 다 사라졌네.” 군철은 우멍눈을 슴벅이며 희죽이 웃었다. “다 사모님 명지한 선택 덕분이죠.”      꽈르릉 꽝! 꽝!     갑자기 바깥에서 겨울 소나기가 천지를 진동치고 번개까지 번쩍이였다. 뒤이어 때아닌 을씨년스러운 소낙비가 와르르 쏟아졌다. 남방에는 겨울에 보슬비가 쏟아지는 일은 일상사였다. 그러나  매우기도 아닌 겨울에 겨울 소낙비가 쏟아지기는 진짜 뜻밖이였다.      사무실 창 밖에서 실폭포가 줄줄이 쏟아졌다.      박총경리는 길죽한 얼굴을 찡그리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맨날 술이 처마시고 녀비서들과 지분거리던 주정뱅이 같잖았다. 군철의 눈에는 이제야 좀 점잖은 총경리 같아 보였다.  박문 총경리는 금방까지 활짝 폈던 웃음꽃을 얼굴에서 거두고 대뜸 박바가지상을 기우뚱 기울였다. “요즘 생산과 판매 난제와 회사 전도를 생각하니 잠도 잘 오지 않네.” 군철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귀담아 들었다. 박총경리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지금 우리 회사 반도체 생산과 시장진출은 미국의 강압적인 롱단경제 통제를 받아 참 어렵게 됐네. 미국은 반도체 칩4동맹을 강조하면서 지금 한국 반도체생산까지  통제가 심해졌네.” 군철도 격분해 한마디 했다. “미국은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부르짖지만 기실  경제민주를 파괴하고 날강도식 경제롱단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경제파쇼입니다!”  박문 총경리는 머리를 끄덕였다. “미국은 첨단반도체기술이 중국에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새 규격의 칩과 메모리 생산장비마저 우리 회사에 반입하는 것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네. 심지어 본사에 수출했던 미국 메모리 생산장비마저 일부 거둬가기까지 했네.” 군철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였다. 박총경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중국 반도체시장도 포화상태네. 우리 회사는 3분기에  3분의 1이나 되는 메모리생산기계를 멈추게 되지 않았는가. 정말 답답해. 큰 위기야, 위기. 나야 글쎄 한 2년 그럭저럭 삐치다가 귀국하면 다지. 허나 3천여명  직원들은 어쩌겠는가?” 그는 우쭐 일어나 회사 앞의 페허로 돼버린 한국의 한 가전회사 공장 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가전회사를 보라구. 한때 에어콘이랑 잘 팔려 잘 나갔잖아. 헌데 가전제품시장이 포화상태에 처하자 회사가 망했잖아. 회사는 베트남에 훌 가버리고 직원들은 허망 나앉게 됐잖아? 우리 회사도 이대로 나가면 오래잖아 가전회사처럼 될 거네.” 군철은 회사 위기의 심각성을 느끼고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박문 총경리는 기대에 찬 눈길로 군철을 마주보았다. “지금 다행히 광주 핸드폰과 컴퓨터를 생산하는 공장들에서  급히 메모리를 수요하네. 그런데 메모리 필수 원자재 금이 다 떨어졌다네. 불시에 어데 가 그 많은 금을 얻어오겠는가?” 군철은 한참 궁리하다가 입을 무겁게 열었다. “우선 원 금구입경로에 련계를 달고 행정적으로 직장마다 동원하고 노조를 통해 모금해보겠습니다.” “노조 해낼만 할가?” “일단 우리 공회를 믿어주세요.” 박총경리는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화제를 돌렸다. “생산설비 기술개조 연구는 진척이 있는가요?” “기술혁신연구본팀과 연구1팀은 제가 직접 맡고 새 규격 칩과 메모리 생산장비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연구2팀은 김윤선이 팀장을 맡고 생산장비 자동화기술개조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오래잖아 결과가 나올 겁니다. ” 박총경리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치면서 일어나 사무실에서 왔다갔다 거닐었다. “연구비용도 더 대줄테니께. 꼭 해내라고.” 한참 후 군철은 총경리실을 나와 이전처럼 회사 독신숙사 헬스방에서 “지하당지부” 확대회의를 열었다. 본사에서 파견돼온 력임 한국인 총경리들과 부장,   팀장들은 이른바 “빨갱이”들이 회사에서 얼씬거리는 것마저 꺼려했다. 이런 형편에서 군철은 10여년 전에 한국인 관리들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회사 당지부를 세운 후 서기를 직접 맡고 200여명 당원들을 조직해 지금까지  줄곧 “지하활동”을 견지해왔다. 군철은 당지부 위원들과 10여명 골간당원들을 둘러보면서 국내외 반도체시장 형세와 회사 위기를  렬거하고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회사는 우리 생명선입니다. 우리 회사 파산되는 날엔 국가 천억에 달하는 세금수입이 날아날 것입니다. 우리 3천여명 직원들은 하루 아침에 허망 나앉게 될 것입니다.” 당원들은 모두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군철은 기대에 찬 눈길로 당지부 조직위원 경희, 선전위원 은희 등을 쭉 둘러보면서 말했다. “회사는 우리 큰집입니다. 회사 존망의 관건시각에 우리 당지부 위원들과 당원들은 앞장서 회사를 살려내야 합니다.” 모든 당원들은 머리를 끄덕였다. 군철은 윤선 팀장한테서 새 메모리생산장비 기술개조 진척을 알아보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한 핸드폰공장에서 칩과 메모리 주문이 들어왔는데 주요생산원자재 금이 모자랍니다. 회사에서는 시장가격으로 직원들의 금장신구를 구매하려고 합니다. 당지부에서는 공회조직을 통해 직원들을 동원해  금모으기활동을 벌리기로 했습니다.” 군철은 당원골간들을 둘러보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당의 취지는 인민을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복무하는 것입니다. 우리 당원들은 금모으기활동에 솔선궐기해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회의가 끝나자 당지부 위원들과 골간당원들은 모두  소속 분공회로 돌아가 층층히 동원하였다. 박문 총경리와 군철 부총경리는 부장, 팀장 이상 간부들이 참가한 행정회의를 열고 직원들을 동원해  금구입과 금모으기활동을 벌릴 것을 일일이 포치하였다. 군철은 사무실에 돌아가 이모 순정한테 전화를 걸었다. “이모, 그간 잘 있었는가요? 문예공연팀을 데리고 인차 오십시오. 네. 일찌기 와서 상해랑 구경하면서 노십시오. 네, 이모는 자식 하나 없잖습니까? 제가 이모 아들로 돼 효성을 다해 잘 모시겠습니다.” 그는 주춤 멈췄다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이모, 한가지 무거운 부탁을 해도 되겠습니까? 네. 우리 회사 지금 급히 금이 수요되는데요. 양아들을 돕는 셈 치고 이모 금장신구를 회사에 팔지 않겠습니까?” 순정은 핸드폰을 들고 한참 궁리하였다. (군철은 애비와는 달리 효성이 있는 애야. 뭐나 진심이지. 달마다 고아원에 쓰라고 3만원씩이나 부쳤잖았는가. 말썽도 많은 금장신구를 보험궤에 무져놓으면 뭐래? 훌 팔아 군철도 돕고 경로원에 쓰면 일거량득이 아닌가?) “군철아, 그렇게 하자.  전번에 부탁한 새로 모집한 유치원 선생님들과 천지예술단도 인차 데리고  갈게.” “감사합니다. 양어머니, 그럼 래일 비행기로 예약하겠습니다.” 군철은 핸드폰을 끄고 엄지와 식지를 딱 튕겼다. 군철은 이모 덕분에 금장신구 10킬로그람이나 회사에 판매했다. 리나는 세집에서 군철이 끼여준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리면서 궁리하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송림이 아빠, 전화 받기 괜찮지요? 네. 한가지 물어봅시다. 송림이 아빠 끼워준 결혼반지 회사에 판매해도 괜찮겠는지요?” 군철은 피씩 웃었다. “제 생각엔 어떠오? 이전에 졸혼했다면서 애들까지 훌 버리고 나가더니? 그까짓 결혼반지를 다 건사할 필요있다고 보오?” “차마 팔기 너무 그래서요. 애들 둘이나 둔 어머니여서 아빠하구 무겁게 묻는 건데요.” “반지 그리 중요해? 우리 마음이 더 중요하지. 실패한 혼인 반지야 건사해둬 뭘 해? 소홀하게 졸혼하고 애들을 버리고 훌 나가버린 잘못을 뉘우치고 내 과거를 량해한다면야. 반지야 다시 사면 되는게지. 내 사업의 수요로 자주 술 마셨고 집에 늦어 들어갔지. 안 그래?” 리나도 그리 호락호락한 녀자는 아니였다. 그녀는 이를 옥물고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네놈의 과거를 량해해? 픽, 당신은 잘못이 없는가? 한국 김총경리하구 공안국에 잡혀 갔을 때 잘 해 잡혀갔겠구만요. 당신이나 과거 잘못을 제대로 뉘우치세요. 아무리 애들이 불쌍하다고 해도 그저 눈감고 넘어갈 거 같아요? 당신의 진심을 바랄 뿐이예요. 그전엔 의연히 졸혼이라는 걸 아세요.” 리나는 “애비를 닮은데 없겠니?” 하고 욕하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자기 두 아들애도 장차 애비나 색마 같은 할애비 닮을가 봐 방정을 떨기 무서웠다. 대신 끊임없이 빈정거렸다. “졸혼하니 얼마나 좋아요? 당신은 금발애인도 해보고. 추파를 보내는 숱한 녀비서로, 미인들로 얼마나 가슴 설레겠는가요? 아가씨들을 데리고 밤마다 마음껏 술놀이를 하고 노래방에 가서 안고 돌아가고. 흥!” 군철도 거칠게 나왔다. “됐다, 됐어. 결혼반지도 다 팔아버려! 이전에 머리 싯허연 아버지 설거지까지 하면서 돕느라고 할 때 넌 뭐랬어? 어떻게나 잔소리를 했는지. 아빠 지금 설 쇠러 오라고 해도 오지 않겠다고 해.” 그러자 리나의 소리도 고울리 만무했다. “아빠 많아 참 좋겠다. 감옥에 간 색마령감이  자랑거리겠구만.” “계속 이따위로 놀려면 다시 결합하기 힘들어.” “합하지 못하면 말라지. 아무리 당신 부총경리라고 내 무슨 빌면서 기여들겠구나. 어림도 없어! 흥!” 이튿날 리나는 단위에 나가  결혼반지까지 해서 금장신구 500그람을 몽땅 판매했다. 그 금장신구는 화가  문걸이 피땀으로 하나하나 장만한 아들 결혼혼수감이였다. 회사 3000여명 직원들은 몽땅 동원돼 사흘내에 도합 1680킬로그람이나 되는 금장신구를 모았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의 금장신구를 구매해 제때에 생산원자재 금을 충족히 장만했다. 회사에서는 인차 칩과 메모리를 생산해 핸드폰공장과 컴퓨터공장에 제때에 공급할 수 있게 됐다. 그제야 박문 총경리는 길죽한 얼굴의 어두운 그림자를 군철을 불러놓고 입이 합박만해졌다. “우리 직원들이 회사를 구해냈네.” 그때라고 군철은 한마디 동을 달았다. “이게 다 우리 공회 조직의 힘입니다.” 박총경리는 군철 앞에 엄지를 척 내두르며 혀바닥이 다슬게 치하했다. “그래, 그래. 공회 참 잘 세웠어.” 군철은 기뻐 어쩔줄 모르는 박총경리를 보고 이렇게 말할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이번 활동은 기실 지하당지부에서 공회를 이끌어 직원들을 동원해 모금활동을 벌린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당조직 말하긴 이른 거 같아. 회사에 뭔가  좀 더 해놓고 말하자.) 그는 오래전부터 “지하당조직”을 회사의 정당한 당조직으로 만들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박총경리는 군철의 뛰여난 조직과 활동 능력에 혀를 끌끌 찼다. 군철은 퇴근한 후에도 밤늦게 객실에서 컴퓨터에 마주 앉아 윤선이 연구해낸 생산장비자동화기술개조방안을 재검토하군 했다.   “커피를 좀 마시고 하세요.” 애리싸가 커피잔을 들고 와 그의 앞에 내밀었다. “감사해.” 군철은 제꺽 컴퓨터를 꺼버리며 애리싸 눈치를 흘금 보았다. “뭘 하는데? 날마다 밤중까지 컴퓨터에 마주 앉아 있는가요? 이젠 잡시다.” 군철은 커피잔을 받아쥐여 후후 불며 중얼거렸다. “별 거 아니야. 이젠 자지.” 애리싸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금발머리를 뒤로 훌 넘기며 파란 눈으로 군철한테 정겨운 추파를 보냈다. 군철이 연분홍 네온등불빛을 빌어 바라보니 애리싸의 파란 눈에 이상한 빛이 번쩍이지 않겠는가. 순간 피뜩 박총경리 하던 경종이 귀전을 때렸다. (우리 주위에 미국 경제간첩이 욱실거릴지도 몰라.) 군철은 애리싸를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부랴부랴 컴퓨터의 “새 칩과 메모리 생산장비 설계방안”을 USP에 저장하고 몽땅 삭제해버렸다. 애리싸는 군철의 당황망조해 하는 모양을 보고 속으로 코웃음쳤다. 군철은 유판을 가방에 넣으면서 집에 와 일한 것을 못내 후회하였다. 그는 그런 눈치를 보이지 않으려고 침대에서 전례없이 애리싸한테 살갑고 열렬하게 굴었다. 며칠 후 광주 로봇공장에서 메모리 새 자동화생산장비- 로봇과 자동화기계팔이 왔다. 그날 박총경리와 군철 부총경리, 한국인 부장과 팀장들이 새하얀 방호복을 입고 생산직장에 모였다. 메모리 생산을 유인조종으로부터 로보트자동조종하고 피대식 생산흐름선으로 혁신하는 장이 성황리에 열렸다.   군철이 직접 자동화생산장비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숱한 로봇들이 사람을 대신해 생산장비를 조종해 칩과 메모리를 척척 생산해냈다. 박총경리는 메모리 완성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성공입니다!” 한국인 부장과 팀장들도 주먹을 불끈 쳐들며 환호했다. 박문 총경리는 군철과 윤선 등 기술개조연구팀 골간들을 일일이 굳게 손을 잡아주었다. 나중에 박문 총경리는 군철의 두 손을 다시 잡고 눈물이 글썽해 울먹였다. “자네들이 회사를 살려냈어. 인민페 백만원도 쓰지 않고 기술혁신에 성공했네. 우리 회사에서는 인민페 9억  9천만원을 절약하고도  생산속도를 몇갑절 높이게 됐네. 리회장님은 꼭 우리 회사 기술혁신성과를 본사에도 도입해 자동화생산흐름선을 건설하고 묵직한 상금을 내릴 거네.” 군철은 그때라고 오래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말을 꺼냈다. “박총경리님, 이게 다 우리 지하당조직 골간당원들이  열심히 연구한 결과입니다. 우리 당조직을 믿으십시오.” 박문은 흠칫 놀라며 길죽한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흘러지나갔다. “뭐라고? 지하당조직? 아니, 우리 회사에 언제부터 지하당조직이 다 활동했어?” 박문 총경리는 언제 입이 합박만해졌는가 싶었다. 랭랭한 이데올로기 몽둥이가 그의 머리를 탁 쳐놓았다. 머리가 된 방망이에 얻어맞은듯이 아찔해나며 눈앞에서 불찌가 탁탁 튀여 흩날렸다.       순간 그의 입은 겨울철 청개구리 입처럼 꾹 담긴 채 얼굴표정마저 퍼런 바위돌처럼 랭랭하게 굳어졌다.       한참 후에야 제정신을 차린 그는 미심해 윤선을 돌아보며 물었다. “윤선도 빨갱이, 아니, 공산당원인가?” 윤선은 군철의 눈치를 흘끔 살폈다. 군철은 윤선을 보고 머리를 끄덕였다. 그제야 윤선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네. 저도 신입당원입니다.” 박문 총경리는 하나랑 은희랑 뒤돌아보며 물었다. “그럼 녀비서들도 몽땅 당원들인가?”        하나랑 은희랑 경희랑 모두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래요. 당지부 골간들입니다.” 박문은 악연실색했다.           사실, 하나랑 은희랑 경희랑 리나랑 모두 군철 서기가 직접 입당 소개인으로 돼 양성해 입당시킨 당원들이였다. 군철은 10여년 동안 지하당지부 서기로 돼 한국인 총경리나 부장, 팀장들의 몰래 지하활동을 하면서 회사에서 168명이나 되는 당원을 더 발전시켰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갓 온 박총경리가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박문 총경리는 너무나도 한심해 길죽한 박바가지상을 찡그리더니 자기 주위의 숱한 "빨갱이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아니, 등잔불 밑이 어둡다고 내 주위에 진짜 숱한 공산당원들이 지하활동을 했구만. 여직껏 내 혼자 깜깜했구만. 쯔쯔.”       군철은 희죽이 웃으면서 해석했다.       “박총경리님, 널리 량해해주세요. 사업의 수요에 의해 잠시 박총경리한테 신분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했습니다. 박총경리께서 언제 우리 당지부를 마음 속으로 받아들일 때면 꼭 제대로 알리려고 했습니다. 우리 회사 업무골간과 공회 간부들은 대부분 당원들입니다. 우리 당조직은 이번에 회사를 살려내고 기술혁신을 할 때 얼마나 조직적으로 큰 역할을 했습니까? 회사에서도 우리 당조직과 공회 조직의 강력한 힘을 믿고 회사를 경영해야 된다고 봅니다.” 박총경리는  군철이네를 둘러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최부총경리, 이젠 지하활동을 할 필요없네. 회사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게나. 난 우리 회사 노조 같은 조직은 지지하네.” 그 자리에 있은 하나랑 윤선이랑 모두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때라고 군철은 한가지 요구를 들이댔다. “박총경리님, 회사에 활동실이 없어서 이제껏 공회와 당조직에서 독신숙사 활동실이거나 헬스방에서 활동했는데요. 회사에 활동실을 내줄 수 없습니까?” 박문 총경리는 량미간을 찌프렸다. 이윽고 그는 조용히 군철을 데리고 생산직장에서 나와  총경리사무실에 들어갔다. 그는 미더운 눈길로 군철을 바라보면서 정색했다.  “이번 노조 공헌을 리회장님께 회보하고 상금과 비용을 청시하겠네. 회사에서 공회 사무실도 내주고 활동비용도 더 대줄 예산이네. 그러나 공회가 있으면 됐지. 당조직까지 회사에 들여올 필요는 없네.” (고삐를 좀 늦추자. 이제 천천히 당조직을 제대로 리해하고 믿게 만들어야지.)         리성은 아직도 강남의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에도 잔설이 남아 살을 어이고 있었다.         랭랭한 리성도 공동한 리익의 잔등에 업혀 황홀한 꿈을 꾸며 날아가면서 날따라 잔설이 색바래지며 녹아내리고 권태에 차 게트림을 한다.         이데올로기 협곡은 날따라 믿음으로 점점 차오르며  메워지고  점점 공간이 졻아지고 있었다.
295    대하소설 졸혼 제4권 (59) 김장혁 댓글:  조회:1553  추천:0  2022-11-10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권           69. 말로        나영은 쪽방촌 월세집에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졸혼하고 정호를 따라나선 거 후회돼. 육체욕망을 채우려고 애를 다 버리고 이게 무슨 개 고생이냐?. 일본과  한국까지 도망쳐도 초상집 개처럼 쫗겨다니지 않았던가?)      그녀는 자기 하루살이 신세에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정호는 나는 놈이긴 나는 놈이야. 어쩜 일본에서 한국 기생년 미희를 다 친해서 배를 타고 한국으로 다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정호와 나영은 황선희가 자취를 감춘 후 일본에 더 눌러 있다간 나포될 위험이 많다고 여겼다.      정호는 번개같이 도망칠 궁리를 돌렸다.      (이젠 딸라도 다 떨어져가지. 황선희는 공항의 딸라와 금은보화를 찾아주지 못하지. 어떻게 산단 말인가? 한국에 도망치자. 그런데 공항으로 도망치기는 다 글렀어. 경찰들이 나하구 나영이 공항에 나타나길 기다릴텐데. 배를 타고 도망치자고 해도 내밀게 있어야 도망치지. 이젠 일본에 더 있지 못해. 전번에 얼마나 위험했는가? 글쎄 성호란 놈이 어떻게 오사까 기생거리에까지 쫓아왔어? 말로는 친구이기에 자수하라고 권고하러 왔다고? 그 놈새끼, 참 묘한 놈이야. 아마 내 기생놀이를 잘 하는 습관을 알고 기생거리에 잠복해 날 기다린 거 같아. 그래서 자리를 옮겨 교토 일지화거리 근처 기생거리에 갔댔는데 그 새끼 어떻게 돼 거기까지 쫓아왔어. 하도 내 주먹이 셌기에 그 개새끼한테 붙잡히지 않았지. 하마트면 손목에 쇠고랑이를 찰 번 했잖아.)       정호는 습관처럼 번대머리에 몇대 안되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며 량미간을 찌프렸다. 한참 후 그는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다.       “그래. 사쿠라와 미희를 찾아가야지.”       정호는 성호가 나타날가 봐 두리번거리면서 교토 기생거리에 가서 먼저 일본 기생 사쿠라를 찾아갔다. 전번에 싸울 때 보니 정호는 진짜 사내였다. 게다가 정호가 후에 자주 사쿠라를 찾아가 데리고 놀면서 딸라를 아끼지 않고 푹푹 쥐여주면서 정을 쌓았던 것이다.  그는 사쿠라를 보자 두툼한 딸라를 쥐어주면서 부탁했다.       "삯전을 푼푼히 줄테니 대마도 앞바다에 실어다 줄 어선을 구해달라." 사쿠라는 돈 밖에 모르는 기생이어서 두툼한 딸라를 받아쥐자 선선히 대답했다.       "저의 오빠가 소형유람선 선장인데 도와달라고 부탁할게요." .     정호는 사쿠라를 안아 한바퀴 빙 돌려주었다.       뒤이어 정호는 옆방의 한국 기생 미희를 만나 두툼한 딸라를 쥐어주고 또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미희는 정호가 이전에 자기 몸에 손 하나 대보지도 않고 200딸라나 주던 “선심”을 높으게 샀던 것이다.       그녀는 정호를 정인군자로 여기고 한국 부산 어촌에 있는 오빠한테 뭉치돈을 주기로 하고 어선을 부탁했다. 미리 정한 도주날자에 미희의 오빠는 대마도 앞 공해에 어선을 몰고 와서 대기하였다. 정호는 대마도에서 사쿠라 오빠 선장한테 뭉치딸라를 쥐여주고 나영과 미희를 데리고 어선에 올랐다. 그들은  대마도 앞 공해에 나가 핸드폰으로 련락해 아주 순조롭게 미희 오빠 어선을 갈아타고 한국 령해에 들어섰던 것이다.       (말로야, 말로! 아무리 한국에 온들 누가 공밥을 주겠는가. 정호가 아무리 황선희랑 하영이랑 위협하면서 돈을 보내달라고 해도 누가 뜨끔해하는가? 그래도 인사과장과 재무과장은 의리 좀 있어. 자기들 죄행이 드러날가 봐 정호 남동생 정철한테 뭉치돈을 부쳤지. 그것도 림시구급이지. 아무 일도 할 예산은 없고 위협공갈로 살자는 정호를 믿고 어떻게 살아? 괜히 협잡군 공범이 돼 죄나 커질게 아닌가? 아무리 정호가 손오공이라도 아무 때건 꼭 체포돼 감옥살이를 하게 될 거야. 이젠 손에 쥔 돈도 없지.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이젠 내 음식점에라도 가서 일하지 않으면 당장 입에 풀칠도 하지 못하잖겠는가.)       그녀는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 옥상에 올라갔다.       하늘에서는 절망의 시허연 눈이 푸실푸실 흩날려내렸다.       나영은 퍼렇게 얼어드는 손으로 빨래를 옥상 바줄에 널면서 두덜거렸다.       (이젠 정호 성학대에 신물이 나. 번대머리를 믿고 따라 나선게 잘못이지. 육욕에 눈이 어두워 저런 색마를 따라 나선게 잘못이지. 글쎄 탐오만 하지 않았으면 왜 애를 다 버리고 저 색마를 따라 여기까지 왔겠어. 미쳤어, 미쳐.  남들은 졸혼하니깐. 뭐 자유로워서 좋다더니만. 흥!  자기만의 삶을 살아서 좋다는지, 남편을 떼버리고 제멋대로 살기에 좋다는지 별 소릴 다 하더구만. 흥! 탐오죄를 범하고서야 뭐가 자유로울 새 있는가? 맨날 초상집 개처럼 쫓겨다니는 신세에. 처음에는 그래도 병신처럼 그게 어쩌지 못하는 반편 남편을 훌 버리고 정호를 따라와 진짜 사내 맛을 본 거 같아 좋았는데. 한 반년 지나니 그것도 이젠 싫어.)       나영은 아들 성림이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빨래를 손으로 탁탁 치며 두덜거렸다. “그렇다고 집에 돌아갈 수도 없어. 무슨 낯으로 남편을  봐? 진짜 남자 맛을 본 담엔 병신 같은 철석과는 이젠 못 살아. 아무리 탐오한 걸 다 게우고 자수해도 감옥살이는 면치 못해. 공적도 다 떼우고 뭘 먹고 산단 말인가? 범죄전과가 있으면 한국에 들어오는 비자도 내지 못한다고 하잖아? 이럴줄 알았더라면 내 왜 전람관 재건비용에 손을 댔겠는가. 사람이란 법을 지키고 자기한테 차례진 거나 먹고 부유하진 못해도 만족하면서 사는게 젤 행복해. 이담 성림이 보고 아무리 없이 살아도 절대 법을 어기지 말고 살아라고 당부해야지. 내 아들은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       그녀는 눈 내리는 옥상옥(屋上屋)에서 쪽방촌의 게딱지처럼  올망졸망하게 들어앉은 초라한 집들을 내려다보며 자기 신세를 한탄했다. “어쩜 대학졸업생이 이런 신세 됐어? 옷을 널 데도 없어 눈 내리는 날에 바깥에 널어야 하지 않는가.” 저 멀리 남산 위에 우뚝 솟은 서울 탑과 푹 깔아앉은 골짜기 쪽방촌 집들은 눈 내리는 하늘 아래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쪽방촌으로 들어오는 어귀 2층 양옥이 도고하게 앉아 쪽방촌 사람들을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양옥에는 미국에서 갓 돌아온 조선족아줌마가 세를 맡고 들어 살고 있었다.       (저만한 양옥에서라도 살면 얼마나 좋겠어? 옛날 최국장이 아니야. 미국에서 온 아줌마는 60대 초반인 것도 저런 양옥에서 사는데. 그물을 손질하는 거 보면 남편은 고기잡이하는 어부인가? 어부네 안해도 저런 양옥을 다 세맡고 사는데. 문화국 국장의 애인이라는게 이게 무슨 꼴이람. 흥! 어쩜 30대 중반 새파란 애인을  이런데다 날 처박아두려고 해? 말로는 호텔이나 양옥에 들어 살면 경찰한테 들키기 쉽다고 거지처럼 가장해 이런데서 산다는가? 그 주제에 자존심만은 시퍼렇게 살았어? 쪽방촌에서 엄동설한에 연탄을 날라다가 난로를 피우고 산다게 말이나 돼? 기막혀! 내 신세야! 내 팔자야!. 흥! 하루도 더 못 살아.)       나영은 피뜩 고향에서 남편과 함께 살던 3층 아파트 생각났다. (그때는 남보다 없이 살아도 난방설비까지 있는 아파트에서 따뜻하게 살았지. 물론 남편이 제 구실은 못해도 이 지경으로 째지게 살진 않았어.) 그녀는 피뜩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인차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그네새끼, 내 정호한테 붙어다니는 거 아는가? 뭐? 정호가 날 심계국에 고발했다고? 심계국에서 한자리 하는 자기 외사촌형님한테서 들었다고? 픽! 변강쇠는 핥을 상 하며 날 하루도 떨어지지 못하는데.  그럴 수 있어?) 그녀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분명 정호한테서 날 떼놓으려고 리간을 노는 거야.”       그러나 한편으로 미심쩍기도 했다.       (저 나그네 요즘 노는 꼬락서니를 봐라. 얼마나 음흉한가. 그렇게 죽자살자 하며 한바지를 입고 꿍꿍이를 꾸미던 문화국 재무과장하구 인사과장한테 돈을 부치라고  협박전화를 하지 않는가. 돈을 부치지 않는 날엔   경제공동체를 차려서 해먹은 탐오죄를 다 불어버리겠다는지, 보아라공을 하던 놈이 돈을 먹이구 인사과장으로 제발됐다는 걸 만천하에 다 불어버리겠다구  협박하짆는가. 하영한테는 자기한테 엉덩이를 들이대고 가무단 부단장으로 됐다고 만천하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면서 돈을 부치라고 을러메지 않았는가. 얼마나 음흉한 놈인가?” 어쩐지 번대머리 음흉한 눈길이 자기를 쏘아보며 음흉한 간계를 부린 것 같아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맞아. 내 일은 심계국으로부터 터져서 수사받았지. 때지 않은 꿀뚝에서 연기가 나올가.) 순간 그녀는 이전에 정호가 자기하테 “무슨 돈을 얼마나 해먹었는가?”고 묻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저 번대머리를 믿고 어망간에 전람관 재건비용에서 5만원을 해먹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번대머리 수작인 거 같은데. 참,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야. 너무너무 참혹한 일이야.) 무심결에 쪽방촌을 내려다보다가 번대머리가 가발을 쓴 채 스적스적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눈에 띠였다. 정호는 밤이면 사처에 위협공갈전화를 치고 낮에는 동생 정철한테 가서 돈이 들어온게 있는가 알아보는 일 밖에 하는 노릇이 없었다. 뭉치돈이 들어온 날에는 청량리역 부근에 가서 기생놀이를 질탕하게 놀고 돌아오군 했다. 정호는 오늘도 청량리역 부근 기생거리에 가 놀면서  놀랐다. 이전에는 연분홍거리에 촘촘히 들어앉은 기생집  커다란 유리창마다 미끈미끈한 반라체 기생들이 백화점 비단진렬대 비단필처럼 늘어섰댔다. 진짜 이쁜 기생들이 어찌나 많은지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어느 기생을 고를지 모를 지경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기생거리도 썰렁했다. 쪽방촌 판자집 같은 기생집도 몇집이 남지 않았다. 말로는 코로나 방역지침 때문에 손님이 없어 다 망했다고 했다. 몇집 안되는 기생집이라도 변강쇠 본능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변강쇠가 쪽방촌에 돌아올 때 나영은 옥상옥에 들어와 점심상을 갖추면서 망망한 고민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저 놈과 삼조대면해야지. 진짜 심계국에 고발했으면 가만 놔두는가 봐라. 네 놈은 내 손에 죽는다, 죽어.) 그녀는 정호가 경계심을 갖지 말게 하려고 오늘 따라 술상까지 잘 차려놓았다. 돼지고기장국도 술상에 올리고 정호가 좋아하는 조개살료리도 한접시 푸짐히 올렸다. “하,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 술상까지 차려놓았어?” 정호는 가발을 훌렁 벗어 던지고 술상에 마주 앉으면서 번대머리를 쳐들어 보았다. (이 놈아, 마지막 만찬이야.) 나영은 수저를 들고 다가오며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였다. “최국장님, 한국에 온 후 우리 어디 술 한잔이라도 마셔봤는가요?” “그래. 허허허. 나영이 점점 살갑게 구는데. 참 살맛이 난다. 자, 오늘 돈도 많이 들어왔는데 한잔 들자.” 정호는 수척한 나영의 얼굴에 옴폭 파이는 볼우물에 뽀뽀를 쪽 해주며 횡설수설했다. “요 볼오물 얼마나 매력있어? 풍덩 뛰여들어 목욕하고 싶구나.” 나영은 그저 피씩 웃었다. “하참, 재수 없어. 황선희 그년 공항 딸라를 꿀꺽 했잖았는지 모르겠어. 류학 때 도사 교수한테 부탁하면 파악 있는 소릴 하던게. 일전한푼도 찾지 못했다고 딱 잡아 떼잖겠어. 5만딸라 적어? 금은보화도 몇십만원 어치나 되는데. 오늘 한바탕 위협전화를 했는데 일전한푼도 보내지 않았어.” 정호는 나영과 맥주잔을 부딪치고 나서 조개살를 집어 우물우물 씹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돈을 부치지 않는 개새끼들을 몽땅 저승사자  최혜영 국장한테 고발해 버릴테야. 립공속죄도 하구 돈두 짜내고 일거량득하는게 좀 좋아?” 나영은 듣다 못해 화제를 돌렸다.  “졸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번대머리는 우멍눈을 가슴츠레 치켜뜨며 나영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횡설수설했다.      “졸혼하고 좀 좋아? 보라구. 난 몇십년 애도 못 낳으면서 마른 방아를 찧었지.그러나 순정과 졸혼하고 얼마나 자유롭게 살아? 새파란 미녀 나영과 함께 날마다 얼마나 깨알이 쏟아지게 사는가? 안 그래?”      픽!      나영의 입귀에 바람 새는 소리 들렸다.      “졸혼하구 숱한 애인들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어 좋았겠지요. 최국장은 성자유, 성개방, 그런  자유 세상이 꿈이 아닌가요?” 번대머리는 색마의 본심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 그게 내 평생 꿈이야. 허허허.” “저를 사랑하는가요?”      돌연적인 질문에 번대머리는 우멍눈을 슴벅이며 또 감언리설로 쇼를 놀기 시작했다. “사랑하구 말구. 널 얼마나 사랑해? 숱한 애인들을 다 떼버려도 나영만은 아까와 여기까지 데리고 오잖았어?” “흥!” 나영은 정호를 쏘아보았다. (아직도 쇼를 놀겟어? 이날 이때까지 얼리워 따라다닌게 바보지. 변강쇠와 짐승처럼 본능적인 성애를 한게 머저리지. 색마 같은 네놈을 좋아 따라다녔는가 해?) 나영은 속으로 되뇌이며 물었다. “최국장, 이때까지 저의 뭘 사랑했는가요?” 번대머리는 우멍눈을 가슴츠레 뜨고 오늘 따라 물음이 많아진 나영을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뭐니 뭐니 해도 나영이 착한 마음을 사랑했어. 내 쫓겨다니면서 젤 어려울 때 날 따라 온 나영이 참 고마웠어.” (쳇, 발라 맞추긴. 넌 짐승처럼 본능적인 욕구를 말리려고 새파란 녀체를  사랑했을뿐이야.) 나영은 까만 쌍까풀포도눈으로 아닌 보살을 떠는 번대머리를 바라보며 맥주잔을 들어 쭉 기울였다. 드디여 그녀는 용기를 내 물어보았다. “어떤 사람의 말에 의하면, 최국장이 내 탐오죄를 심계국에 고발했다던데요. 그런 일 있습니까? 없습니까?” 가슴츠레한 우멍눈이 힐끔 나영을 곁눈질해 보는 것이였다. 번대머리는 속이 꿈틀해났다. 그는 저으기 놀란 내심을 보이지 않으려고 우멍눈을 지긋이 감아버리며 외면해버렸다. (다 알아챘는가? 조국장이 그래 내 신고한 걸 루설했단 말인가? 절대 그럴 수 없어. 그럼 썰매뛰기를 하는가? 나영아, 그걸 승인할 바보 어디 있느냐? 흥!) 나영은 우멍눈에서 까만 포도눈을 떼지 않고 쏘아보았다. 한참 후에야 번대머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내 그래 그런 사람인 거 같아? 얼마나 널 사랑하는데. 차마 그런 짓 했겠어? 그때 난 널 고향에 두고 혼자 도망할 수 없었어. 널 꼭 데리고 온 세상을 다 돌아보고 싶었어. 그만큼 널 사랑해.” 그러나 속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나영아, 미안해, 난 널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 심계국에 고발하지 않았던들 네가 날 따라 이런데까지 왔겠느냐?) 나영은 그런 속내가 짚였을가? 그저 머리를 끄덕이며 잔을 들어 권했다. “자, 한잔 듭시다. 최국장님,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그래, 우리 영원한 로맨틱한 사랑 위해 들자. 우리 서로 좋은 로맨틱한 추억만 기억해두자. 사무실에서 열렬하게 사랑을 나누던 일로, 미국 로스안젤레스에서 흑인강도를 쳐눕히고 널 구해낸 일로. 이런 핫한 스토리만 기억하고 나쁜 기억은 싹 다 잊어버리자. 넌 영원한 내 사랑, 애인이야. ” 나영은 감격은커녕 모든 걸 짐작하고 다른 궁리를 했다. (번대머리한테 모든 걸 물어본들 승인하겠는가? 위선자, 정인군자, 배신자! 역적!" 나영은 잔을 들어 굽냈다. 그녀는 종이로 입을 쓱 닦으며 속으로는 계속 욕설을 퍼부었다. (개놈새끼, 네놈 때문에 네놈  사무실에서 네놈한테 강간당했다. 가정을 깨고 이날 이때까지 초상집 개처럼 쫓겨다니면서 살지 않았느냐? 어디 죽어봐라.) 나영은 번대머리를 죽여치우고 싶었다. 그러나 주먹이 센 번대머리를 이길 수 없었다. 밥에 독약을 풀어 먹여서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살인범은 되고 싶지 않았다. 번대머리는 왕청 같이 화제를 돌렸다. “이담 우리 둘이 운남에 놀러 가자. 운남 서북부에 마사족(摩梭族)이라는 소수민족이 있는데 혼인풍속이 정말 독특해.” 나영이 듣건 말건 번대머리는 혼자 옛말처럼 중얼거렸다. “마사족은 처녀총각이 서로 마음에 들면 결혼할 필요도 없어. 그저 총각이 밤에 마음에 드는 처녀네 다락집 밑에 가서 주먹으로 판자벽을 딱딱 치면서 처녀 이름을 부르지. 만약 처녀가 마음에 들면 되창문을 열어준대. 그럼 총각은 되창문으로 들어가 처녀와 동침한다오. 날이 밝기 전에 처녀 집을 떠나면 된다네.” 나영은 점점 솔깃해졌다. “그러다가 애 생기면 어쩐답니까?” 부지중 묻는 말에 정호는 말할 사기났다. “애를 낳으면 녀자가 도맡아 기른다네. 남자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네. 남자는 그 녀자 마음에 안드면 또 다른 녀자한테 찾아가 동침할 수 있다네. 녀자는 시집 가지 않고 본가집에서 살면서 날마다 밤에 다른 남자와 동침할 수도 있다네. 마사족은 모계씨족 사회라네. 마사족의 혼인풍속은 얼마나 남녀가 다 자유로운가?” 번대머리는 말로에 들어서서도 마사족의 엉뚱한 혼인풍속을 흡모하고 있었다. “최국장은 마사족마을에 가 살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밤마다  수캐처럼 온 동네 녀자들을 다 찾아가 창문을 타고 넘어가서 성자유를 누릴 수 있겠는데. 좀 좋아서.” 나영의 비꼬는 말에 번대머리는 희죽이 웃으며 잔을 들었다. "그런 자유로운 세상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허허허."      (에라, 똥이 무서워 피하느냐? 더러워서 피하지. 삼십륙계 줄행랑이 생책이라잖는가.) 나영은 오후에 번대머리가 바깥에 나간 틈을 타 옷가지 몇벌 배낭에 넣어 메고 곰팡이 내나는 옥상옥에서 나와 버렸다.      그녀는 홍대입구 부근 모텔에 깜쪽 같이 잠적해 버렸다. 번대머리한테서 빠져나왔다고 생각하자 저도 몰래 성림이 보고 싶어졌다.      (철석한테 전화할가?)      그런데  뭔가.      그녀는 자꾸 메슥메슥해나며 뭐가 가슴과 목에까지 울컥거렸다.     나영은 황급히 화장실에 달려들어가 변기에 마주 앉아 왝, 왝 토해냈다. 그러나 토할 것도 없이 마구 꽥질이 났다.     (혹시 임신됐잖아?) 나영은 절망에 찬 포도눈으로 천정을 쳐다보았다.     왝, 왝, 왝.     "임신했는가? 아이고, 개새끼, 날마다 한동이씩 싸넣던게. 이 일을 어쩌는가? 절대 색마 애를 가질 순 없어."     그러나 손에 쥔 돈도 몇푼 없어 애를 지우러 병원에 당장 갈 수도 없었다.      "아차, 돈이 있어도 한국에선 마음대로 락태할 수 없잖은가? 뭐? 락태죄라는게 있다는가. 아이고,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그녀는 발딱 일어났다. 눈 앞이 깜깜해나 발을 동동 구르며 모텔방 안을 왔다 갔다 했다.       ( 중국에 돌아가야 락태하겠는데. 귀국하는 날이자 철창 속에 갇히지 않을가? 아이고,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아이고 내 개팔자야.)        나영은 격분해 입술을 깨물었다. (남편한테 전화할가? 최혜영 국장한테 색마 위치를 알려주라고 해야지.) 나영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번호를 누르던 손가락을 주춤 멈추더니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야, 그 놈과 안 살면 그만이지. 원쑤까지 맺을 필요는 없어.” 그녀는 자비심에서 그렇게 생각했을가? 피뜩 한국 기생 미희가 떠올랐다. 미희는 정호와 나영을 데리고 일본 기생 사쿠라 오빠가 모는 쾌속정을 타고 대마도 앞 공해까지 와서 미희 오빠 배를 바꿔타고 그들과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그런데 미희는 정호한테서 떨어지지 않고 죽자살자하는 판이 아닌가. 순간 나영은 인차 생각이 바뀌였다. (미희, 그 기생년한테 반해버렸어. 변강쇠, 그 개놈은 개똥 먹는 개버릇을 고치지 못해. 이제도 얼마나 많은 나약한 녀자들을 해칠지 모른다. 그 놈은 하늘 땅도 용서치 못할 색마야. 안팎이 다른 음험한 음모가야. 독사야, 독사! 천번만번 죽어도 마땅한 악마야!)     그녀는 이를 옥물고 핸드폰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인터폴은 무서운 법망이였다. 최혜영 국장은 상부 해당 부문에 련락해 한국 인터폴에 련락했다.    허연 눈이 푸실푸실 흩날리는 그날 저녁,  정호는 가발을 꾹 눌러쓰고 눈덮인 쪽방촌 골목에서 공포의 어둠을 빠드득빠드득 밟으며 옥상옥 쪽으로 걸어갔다.     2층 양옥 밑에서 굽인돌이를 돌 때다.     갑자기 2층 양옥 베란다에서 커다란 그물이 날아내려와 정호를 덮쳤다.      “얏!”      절망에 찬 비명소리!       찰나, 2층 양옥에서 웬 검은 그림자가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날아내렸다.      검은 그림자는 두 발로 밟고 그물을 꽉 밟고 서서 호통쳤다.      “꼼짝 말엇!”       그물 안에서 가발이 벗겨지고 번대머리가 훌렁 드러났다.      번대머리 절망에 찬 우멍눈에 낯익은 세귀눈이 피뜩 띠였다.      "아니, 성호! 여기까지 쫓아 왔어?!"      최혜영 국장은 며칠 전에 나영한테서 정호 신변위치 제보를 받고 성호를 진작 한국에 파견했던 것이다. 성호는 정희 맡은 세집아파트에 잠복해 나포할 기회를 노렸던 것이다.      "잔말 말라. 자수해랄 때 왜 안 했어?"      번대머리는 후회막급.      저쪽 옥상옥 쪽에서 두리모자 둘이 눈 덮인 골목길로 뛰여오는 것이 보였다. 번대머리는 흘끔 곁눈질해보았다. 나영도 잡혔는가 여겨보았지만 옥상옥 쪽에 나영이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번대머리는 허무맹랑하게 붙잡히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영이 끝내 물어먹었는가?)      정호는 반정탐능력에 의해 국내에서도 숱한 경찰들의 수사를 묘하게 피했다. 숱한 성과 도시, 공항까지 빠져나가 일본에 도망쳤다. 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한국에까지 도망쳤다. 하지만 결국 애인 나영의 배신과 사인정탐가 성호한테 걸려 쇠고랑이를 차고 말았다.        인터폴 그물은 천애지각에까지 뻗쳐 있었다.       거의 같은 시각에 로씨야에 도망쳤던 오정룡도 로씨야 경찰들한테 나포돼 국내로 인도되였다.      아무리 교활하고 날고 뛰는 악마들이라고 해도  싯허연 대낮에 큰 길에 나선 쥐새끼들처럼 언제 어느 몽둥이에 맞아 쓰러질지도 모를 것이 아닌가!
294    대하소설 졸혼 제4권 (58) 김장혁 댓글:  조회:1544  추천:0  2022-11-07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권           68. 마끼 모녀   며칠 후 다이로교수는 천천히 머리를 쳐들었다. “나나, 갈테면 가라. 네년이 없으면 내 꿈을 실현하지 못할 거 같애.” 순간 그의 눈 앞에는 춘희 모녀가 나나 대신 떠올랐다. 거미줄 같은 미련이 얼굴을 스치며 감겨들었다. “모녀간이 위험해도 별수 없지. 애를 낳아만 주기만 한다면야 무슨 짓인들 못하겠어?” 다이로교수는 일루의 희망을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춘희를 보는 순간 마음이 이상하게 변해버렸다. (춘희 모녀는 돈 밖에 모르는 년들이야. 위험해. 춘희는 이젠 애도 못 낳으니깐. 필요없어.) “어째 점심 전에 돌아왔어요? 가방을 인주세요.” 춘희가 살갑게 굴수록 메스꺼웠다. “관둬!” 다이로교수는 가방을 주지도 않고 손수 옷걸이에 걸어놓았다. 그는 불시에 몸을 홱 돌리더니 춘희를 손가락질하며 꽥 소리쳤다. “내 집에서 당장 나가!” 춘희는 울상이 돼 물었다. “왜? 내쫗아요?” 다이로는 이젠 속일 필요없었다. “똑똑히 말해주마. 우리 결혼은 모두 가짜였어. 결혼동록도 가짜였어.” 춘희는 깜짝 놀랐다. “뭐라고? 왜 10여년 동안 날 기편했어? 아유, 분해라. 이제껏 속히워 살았잖아.” 춘희는 눈물, 콧물 흘리면서 따지고 들었다. 다이로는 철면피하게 속내를 다 드러냈다. “난 네 배를 빌어 애를 낳으려고 그랬어. 당장 나갓!” 그때 마끼가 들어섰다. “왜 이래요? 불쌍한 엄마를 욕보이지 마세요. 애를 낳는 일은 저하고 토론하면 안돼요?” 마끼는 다시는 어머니를 다이로한테 학대당하지 않게 구하고 싶었다. 그녀는 막무가내로 기이한 아이디어를 실행하려고 굳게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다이로는 억지로 네모낯에 미소를 지으며 친절을 보였다. “그래. 우리 둘이 토론하면 되지. 여기 쏘파에 와 앉아라.”       다이로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쏘파에 거만하게 앉아 아사꼬와 마끼를 오라고 손짓해 불렀다. 그는 미녀로봇 아사꼬가 춘희 아니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너네 모자간이 서로 앞다퉈 애를 낳아주겠다고 했잖았어? 실언한 건 아니겠지?” 마끼와 아사꼬는 서로 쳐다보면서 쌔무룩이 웃었다.      원래 춘희는 마끼가 애를 낳겠다고 하자 딸의 전도를 망칠가 봐 자기가 애를 낳아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반대로 마끼는 심청처럼 자기를 희생해 어머니를 고통의 심연에서 구해내려고  다이로한테 애를 낳아주겠다고 나섰다.  아사꼬가 먼저 능청을 떨었다. “교수님, 생각해보세요. 제가 안해니깐요. 당신 애를 낳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요? 저 새파란 양딸을 보고 애를 낳아달라는 것은 인륜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다이로교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긴 해. 그러나 10여년 동안이나 넌 이 핑게 저 핑게 애를 낳아주지 않았잖아. 이젠 나이 들어 애를 낳기도  힘들잖어?” 마끼도 고집을 부렸다. “그래요. 그러니깐요. 아예 제가 애를 낳아줄게요. 우리 오늘 결판을 냅시다.” 다이로는 기뻐 어쩔줄 몰랐다. “맞어. 당장 계약서를 쓰자. 애를 낳아주면 내 모든 재산을 몽땅 마끼한테 넘겨주겠어.” 그러나 마끼는 기뻐하기는 고사하고 이런 말을 했다. “그까짓 계약서 한장을 달랑 쥐고 누가 애를 낳아주겠어요?” 다이로는 마끼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래 어쩌겠단 말이냐? 무슨 요구 있으면 다 말해라. 애만 낳아주면 다 해줄게.” 그런데 마끼한테서 세상 한심한 요구가 튕겨나올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계약서에 이렇게 쓰면 어때요?" "뭘?" 다이로교수는 퉁방울눈으로 마끼 입을 쳐다보며 서슴없이 말했다. "요구 있으면 다 말해라. 다 들어주마." "마끼가 다이로교수의 애를 낳아주기만 하면 애가 탄생한 날로 다이로교수의 모든 재산을 몽땅 마끼한테 넘겨준다. 먼저  계약금으로 5천만엔을  마끼한테 준다.” 마끼는 다이로를 핼끔 쳐다보면서 종알거렸다. “이렇게 하면 어때요?” “그래, 몽땅 줄게. 조만간에 몽땅 네 거 될텐데. 왜 그렇게 성급하게 5천만원이나 선전으로 받으려고 하니?” 다이로는 부쩍 의심이 생겼다. (네년도 나나처럼 선전이나 받아가지고 훌 날아나면 어떡하지? 또 닭 쫓던 개 신세 되지 않을가?) 그러나 마끼도 자기 속셈이 있었다. (유산이야 몇십년 후에 차례질지 누가 알아? 저 령감태기 꿋꿋한 거 봐. 인차 죽지 않을 령감태기야. 언제까지 저 령감이 죽기를 기다려? 먼저 선전을 챙겨야지.) 마끼는 다이로교수의 의심을 사지 않고 긴장한 분위기를 걷어버리려고 해쭉해쭉 웃으며 다가들었다. “아빠, 보세요. 아빠는 어머니를 10여년이나 데리고 살고서도 지금 와서 결혼도 하지 않았고 가짜였다고 하잖아요? 엄마를 다 파 먹은 김치독처럼 훌 버리잖았는가요?” 마끼는 다이로의 팔을 끼고 흔들면서 정색해 약사발을 올렸다. “저의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해보세요. 제가 어떻게 신용도 없는 아빠 유서나 각서 한장을 달랑 쥐고 애를 낳아주겠어요? 어느 바보 숫처녀가 새파란 청춘을 다 바쳐 애까지 낳아주겠는가요?” 다이로는 통쾌하게 대답했다. “알았다, 알았어. 다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미지그레하게 뒤를 달았다. “그런데 불시에 5천만엔 현금을 어디가 얻어오겠니? 한 2천만엔 먼저 주면 어때?” 그러나 마끼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못하겠으면 그만 두세요!” “시간을 좀 달라. 돈 얻어다 줄게.” “일주일 시간 줄게요.” “그래. 알았어. 당장 계약서를 쓰자.” 다이로교수는 속으로는 욕설을 퍼부었다.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 흥!) 아사꼬는 마끼를 손가락질하며 말릴 상 했다. 마끼는 아사꼬한테 외까풀눈을 찔끔해보였다. 다이로교수는 지필을 갖추고 돋보기를 찾느라고 그런 눈치를 채지도 못했다. ㅋㅋㅋ. 다이로교수는 차탁 위에 두터운 메모지를 펴놓고 퉁퉁한 네모머리를 숙이고 살진 손을 놀려 계약서를 또박또박 써내려갔다.                                           계약서         야마구찌 마끼는 야마구찌 다이로의 애를 낳아주기로 한다. 마끼가 다이로교수 애를 낳는 날로 다이로교수의 모든 재산을 몽땅 마끼한테 넘겨준다.      먼저  일주일 내로 계약금으로 5천만엔을 마끼한테 준다.                                       야마구찌 다이로                                     야마구찌 마끼                                            2022년 1월 12일.          모녀간은 둘 다 계약서 두개에 척척 서명했다.        “먼저 일주일 내에 5천만엔 계약금 가져다 주세요.” 마끼는 계약서를 한부 챙겨 핸드빽에 걷어넣으면서 말했다. “그래. 최선을 다하마.” 다이로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네 카드를 가져오너라. 당장 3천만엔 입금해주마.” “네.” 마끼는 핸드빽에서 카드를 꺼내 주었다.       아사꼬는 마끼를 극구 말렸다. “얘, 돈이 그리 중하냐? 아빠 애를 낳고 어떻게 이 세상에서 머리를 들고 살아? 인격을 팔면서 살겠느냐?” 그러나 마끼는 얼굴 표정이 아주 밝았다. “인격, 인격! 또 그 소린가요? 고까짓 개도 먹지 않는 인격 때문에 거지처럼 살겠어요? 애를 하나 훌 낳아주고 한뉘 평생 귀부인처럼 사는게 낫지요.” 다이로는 카드를 받아 가방에 넣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그 길로 은행에 찾아가 마끼 카드에 3천만엔을 입금했다. 그는 동생  마사지방에 가서 이찌로한테서 돈을 꾸고 광문한테서 세집 값도 받아냈다. 그러나  불시에 동생도 돈이 그렇게 많지 못해 천만엔을 겨우 내놓았다.       순간, 다이로교수 뇌리에 며칠 전에 집에 찾아온 황선희가 피뜩 떠올랐다. 황선희는 입국할 때 공항에 차압된 정호의 금은보화와 딸라를 찾아달라고 부탁러 찾아와 정호와 나영의 려권까지 두고 갔던 것이다. (그래, 그 딸라를 찾아다가 마끼한테 주고 애를 낳아야지.) 다이로는  집에 가서 마끼한테 저금카드를 주었다. "5천만원인가요?" "아니, 4천만원이야. 이제 3, 4천만원 더 얻어다 줄게." 마끼는 카드를 받아 챙기면서 혀를 홀랑 내밀었더. 다이로교수는 지하주차장에 가서 운전수에게 당부했다. “공항으로 몰게.” 운전수는 의아해하면서도 핸들을 돌렸다. 다이로교수는 공항 도착하자마자 한자리 하는 외조카를 찾아가 황선희가 준 차압증명서와 려권 몇개를 건네주었다. 한 식경 후 외조카가 배낭 몇개를 찾아내 들고 왔다. 다이로는 딸라 한 묶음을 외조카한테 건네주었다. “이걸로 수고한 분들을 다독여라.” “네. 외삼촌.” 외조카는 딸라뭉치를 받아쥐고 허리 굽혀 꼽싹 인사했다. 다이로교수는 인차 차를 타고 집으로 달려왔다. 그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기뻐 야단쳤다. “마끼야, 어서 받아라!” 마끼가 마중나가자 다이로교수는 묵직한 가방을 건네 주었다. 지지벌개진 네모 얼굴에 퉁사발눈과 함박만한 입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끼한테 묵직한 가방을 내밀었다. “이건?” 마끼는 가방을 열어보며 의아해했다. “딸라! 이 금은장신구는?” “몽땅 네 거야! 이젠 넌 내 안해야!” 다이로는 아사꼬가 있건 말건 창피한줄도 모르고 마끼를 안고 침실로 들어갔다. 마끼는 발버둥질치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러지 마세요. 아직 카드를 확인하지 못했는데요.” “4천만원 입금했어. 4만 딸라에 금은보화 한가방이면 안되니?” “그래도 확인해야죠.” “맞아. 확인도 하지 않고는 절대 몸을 줄 수 없지.” 아사꼬는 다이로교수를 뜯어말렸다. 그 틈에 마끼는 금은보화와 딸라가 든 가방을 들고 미꾸라지처럼 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마끼야, 어디로 가?” “카드 확인하러 갑니다. 아빠, 기다려! 빠이, 빠이!” 다이로는 마끼를 놓지자 좀 불안했다.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 그는 마끼를 따라나가며 욕지거리했다. “가만, 저 년 돈 가지고 도망가면 어쩌지?” 가뭇없이 사라지던 나나가 피뜩 떠오르지 않겠는가. 다이로는 뒤따라 쫓아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사꼬가 앞을 가로 막아서지 않겠는가. “물러나지 못해? 저리 피껴!” 그는 아사꼬를 활 떠밀었다. “이 자식, 아녀자라고 업신여겨?” “더러운 죠센진(조선인), 물러가지 못해?!” 다이로는 평소만큼 여기고 주먹을 휘둘러 한매 쳤다. “뭐라고? 조선 인을 깔보겠어?”       저게 뭔가? 아사꼬가 손을 쳐들어 다이로 손을 막으며 틀어쥐지 않겠어? 이전 같으면 그저 무릎을 꿇고 맞아댔는데. 천만뜻밖! “앗!” 다이로는 아사꼬 손이 쇠집게 같은 감을 느꼈다. 그는 비틀린 손목이 너무 아파 비명을 질렀다. 그는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 아사꼬 팔을 뒤로 비틀었다. 그런데 아무리 몇바퀴 비틀어도 아사꼬는 아파하기는 고사하고 희쭉 웃는 것이였다. 이건 웬 일인가? 다이로는 신궤에 세워놓은 길다란 쇠구두솔로 춘희 팔을 내리 탁 쳤다. 쟁강! 쇠 부딪치는 소리! "뭐야?" 아사꼬 팔에서 쇠부치 부딪치는 소리 나지 않았는가. 저걸 봐라. 아사꼬 그 약한 팔에서 어데서 그런 힘이 생겼을가! 그녀는 다이로의 손을 홱 잡아챘다. 다이로는 앞으로 끌려가며  허망 머리로 벽을 떠받고 꼬꾸라졌다. 다이로가 버둥거리는데 저게 뭐야? 아사꼬는 두 손으로 다이로를 건뜻 들어 창문 밖으로  휙- 내던졌다. 다이로는 바깥에 나가 겨주머니처럼 쿵 처박혔다. “앗!” 다이로도 춘희 괴력에 깜짝 놀랐다. “어디 혼쌀나 봐!” 아사꼬가 창문으로 씽- 날아나갔다. (저년 저게 날개 돋아났나? 날아나와?) 다이로는 기겁했다. 아사꼬는 다이로를 왼손으로 건뜻 들어 바람개비처럼 빙빙 돌리더니 담장 밖으로 훌 내던졌다.       진짜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  사실 이 시각 진짜 춘희는 중국 고향에 있었다.  그녀는 문걸의 질책을 듣고 생각을 바꾸게 되였던 것이다. (이젠 다이로교수와 하루라도 더 함께 동거할 필요가 없어.)      귀국하기 전에 그녀는 문걸과 짜고 들어 미녀로봇 아사꼬를 자기 분신으로 분장시켜 남겨놓았던 것이다. 아사꼬를 보고 자기 대신  다이로교수를 달래는 한편 마끼를 보호하라고 했던 것이다. 아사꼬는 처음에는 납득되지 않았지만 주인 문걸의 앞날을 생각해 수긍하고 말았다. 그녀는 춘희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이젠 자기는 필경 계속 문걸의 안해 역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사꼬의 동의를 거쳐 춘희와 문걸은 일본 유명 로봇회사에 찾아가 거액을 주고 아사꼬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춘희 얼굴을 그린 얼굴 가죽을 씌워놓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이로 눈에는 아사꼬가 딱 춘희 같아 보였다.       로봇회사에서는 다이로와 춘희 모든 생활정보 세부까지 아사꼬 전자두뇌 기억장치에  주입해넣었던 것이다. 춘희는 핸드폰으로 수시로 아사꼬한테 언행지령을 내려 지휘하였다. 아사꼬가 어찌나 춘희 역을 잘 놀았던지 다이로는 이제껏 가짜 춘희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아사꼬한테 또 손을 댄 바람에 아사꼬는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 그만  원형을 드러내고 말았던 것이다. 고향 집에서 문걸과 춘희는 갑자기 벌어진 사태를 발견하고 무릎을 탕탕 치며 야단쳤다. “저걸 어쩌나?” “아사꼬 절대 그러지 마! 다이로교수한테 잘못을 빌고 그의 애를 낳아주겠다고 하라고. 그러잖으면 10여년 동안이나 머리 숙이고 성노예로 산 내 헛고생하게 돼.” 아사꼬는 무선전으로 메시지를 받고 머리를 숙이며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주인님.” 아사꼬는 대문을 열고 담장 밖에 나갔다. 그때까지 다이로는 상을 찡그리며 죽는다고 신음소리를 냈다. “교수님, 미안해요. 우리 중국 조선족을 너무 업신여기니까. 너무 지나쳤나 봐요. 널리 량해하세요.” 아사꼬는 다이로를 훌 안아 일으켰다. “어디 상한덴 없는가요? 병원에 갈가요?” 다이로는 아사꼬 손을 탁 쳐버렸다. (이상하게 춘희 손이 너무 매워! “필요없어. 내 눈 앞에서 꺼져! 더로운 죠센진(조선인)!” 아사꼬는 다이로를 훌 둘쳐업고 대문 안으로 들어오면서 두덜거렸다. “조선인을 작작 괴롭히라니깐. 어쩌래? 지붕에 훌 줴뿌리라느냐?” 다이로는 잔등에 업혀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아니야! 제발 그러지 마. 오늘 어데서 도깨비 장물을 처먹었어? 무슨 힘이 그리 센가?” 아사꼬는 제법 빈정거렸다. “흥! 이 춘희가 남편이라고 이때까지 참았지. 이젠 작작 까불어! 어느 똥무지에 날려가 처박힐지도 몰라. 알만해?” “아이고, 하루도 함께 못 살아. 내 기구한 팔자야!” “젊고 이쁜 녀편네 만난 건 모르고 작작 신세 타령을 해! 그래도 우리 모녀니깐. 아들 낳아주지. 안 그래요? ㅎㅎㅎ.” “마끼가 도망가지 않았어?” “아니야. 그 앤 꼭 교수님 애를 낳아줄 거예요. 제가 10여년 동안이나 애를 낳아주지 못한 걸 대신 낳아 줄겁니다. 우리 모녀간은 교수님 은혜를 절대 잊지 않고 대를 이어 당신 애를 낳아줄 걸요. ㅋㅋㅋ.” 다이로는 아직도 아파 상을 찡그리며 겨우 말을 뱉어냈다. “애를 낳아주겠다니께. 참는다.” 지나가던 행인들도 그들이 노는 꼬락서니를 보고 코웃음쳤다. 다이로교수는 목욕재계까지 하고 량도길일을 택해 애를 만들려고 마끼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나 며칠 기다리고 기다려도 마끼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다이로는 시기당한 것 같아 불안해났다.  일주일만에 메시지가 날아왔다.         아빠, 근심하지 말아요. 아빠의 애는 지금 잘 자라고 있어요. 속을 태우지 말아요. 우리 모녀간은 아빠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않고 애를 꼭 잘 길러 아빠한테 안겨줄래요. 뽀뽀. ㅎㅎㅎ.   다이로는 황급히 메시지를 날렸다.         마끼야, 우리 둘이 그걸 하지도 않고 애가 어데 생겨?  어서 돌아오라. 네가 돌아오잖으면 난 죽을 거 같아. 제발 내 마지막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 내 꿈이 수포로 돌아가는 날이면 죽어버릴 거야.        마끼의 메시지가 또 날아왔다.        계약서를 펼쳐보세요. 난 아빠 애를 낳아주겠다고 했지. 딱 어떻게 낳는다는 건 없잖아요? 딱 그거 해서 애를 낳아준다는 건 더욱 없어요. 인륜에도 맞지 않고. 아빠 명예도 땅바닥에 떨어지는 걸 더 볼 수 없어요.        다이로와 마끼는 메시지를 계속 주고 받았다.       건 그렇다고 쳐도 어찌 내 애라고 담보할 수 있느냐?         아빠, DNA를 검사해보면 알 수 있다는데도. 아빤 왜 생물학자 답잖게 말씀해요? 딱 딸이 아빠와 그래야 애를 가질 수 있는가요? 아빤 나나하고도 섹스해서 애를 가질 수 없으니깐. 실험관 애라도 낳아달라고 애원하지 않았던가요?       그래. 지금 실험관애를 낳아주겠단 말이냐?        그래요. 저는 배은망덕하는 나나와는 달라요. 아빠 은혜를 꼭 갚을 거예요. 아빠 정자는 새파란 숫처녀 싱싱한 란자와 이미 실험관에서  체외수정해서 수정란이 돼 잘 자라고 있어요. 혈통이 그리 중요한가요? 아빠 혈통중시론을 존중해 진짜 아빠 정자 수정란이나깐요. 아빠 애죠. 근심하지 말아요. 이담  DNA검사를 해서 아빠 애라는 것이 증명되면 아빠 절대 계약을 어기지 말아요. 저한테 유산을 꼭 몽땅 넘겨줘야 해요.  제가 이제 몇해 아빠 원격수업을 받겠습니다. 잊지 마세요. 장차 박사증도 내주고. ㅎㅎㅎ.      박사공부 하지도 않고 어떻게 박사증을 내줘?     아빠, 아빠 자꾸 애 말을 하니깐요. 한가지 생물학적건의를 드리겠는데요.  지난 세기 말부터 유럽에서 생물복제기술이 나타나지 않았는가요? 아빠는 생물복제기술로 아빠 유전자를 분해해 아빠의 애를 복제해낼 수도 있잖고 뭡니까?     생물복제기술? 쳇, 생물복제기술로 아직 인간을 복제해낸 전례는 없어. 어느 천년에 내 애를 복제해내갰느냐? 내 눈 감기 전에 될 일이겠느냐?     아빠는 여생에 다른 시시한 생물과학을 연구하지 말고 복제기술로 아빠 애를 복제해내는 연구나 하세요. 제가 도와 주지요. 우리 부녀간이 대를 이어 연구한다면 꼭 아빠 애를 복제해낼 수 있을 겁니다. 먼저 아빠 DNA를 채취해 랭동고에 잘 보관해두세요. 언제 인간복제기술에 성공하면 그때 랭동고에서 아빠 DNA를 꺼내 복제하면 복제아기가 태여날 수 있잖아요? 그럼 아빠는 첨단생물과학을 연구하기도 하고 자기 애도 만들어낼 수 있죠.  일거량득이 아니겠어요? 보세요, 제가 생물학 박사 자격이 없는가요?        그럴듯하지만. 현실적이 아니야. 너 지금 어데 있느냐? 어서 돌아오라.      제가 어디 있든간에 좌우간 제가 박사연구생 원격수업을 받을테니깐요. 저를 박사연구생에 등록해주세요. 제가 아빠 애를 낳아주든지 만든지 애만 안아다 주면요. 저한테 꼭 박사증을 내주고 유산도 몽땅 넘겨주세요. 계약서가 있으니깐요. 절대 어기지 마세요. 부녀간이 법정에 서는 일이 없게 하세요.  남들이 알면 뭐라겠는가요?       알았다. 건데 내 정자를 네가 어데서 가져갔단 말이냐?        어머니가 진작 실험관에 받아뒀지요. ㅋㅋㅋ.   다이로는 아사꼬인줄도 모르고 춘희인가 해 힐끔 곁눈질하면서 속으로 욕했다. (돈 밖에 모르는  못된 모녀간, 진작 음모를 꾸몄구나.)         그 애 지금 네 뱃속에 있느냐? 그 수정란을 가져오라. 태아 때부터 내 직접 영양관리와 태아교육을 잘 하면서 세상 둘도 없는 천재로 키워야겠다.         수정한지 보름도 안됐으니깐요.  무슨 물건이라고 가지고 다녀요? 장차 애를 낳은지 백날만 되면 꼭 아빠 품에 안겨줄게요. 근심하지 말아요. 애 엄마도 부모니깐요. 애를 잘 보살필 거예요. 절 잠시 찾지 말아요? 빠이, 빠이!        너 지금 중국에 들어갔잖았느냐?       도대체 어디 있느냐?        다이로가 아무리 메시지를 보내도 회답도 없었다. 아예 마끼의  핸드폰은 꺼져버렸다. 나중에는 마끼의 핸드폰 번호마저 지구상에서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293    대하소설 졸혼 제4권 (57) 김장혁 댓글:  조회:1288  추천:0  2022-11-06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권          67. 나나의 메시지          다이로교수는 결단을 내릴 때 되였다.       그는 운전수가 모는 보마찌프에 앉아 출근하면서도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 흥! 모녀간이 똑 떼닮았어. 새파란 마끼가 어떻게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어? 뭐? 내 애를 낳아줄 수 있다고. 나나를 질투해 한 말이겠지. 애를 낳는다고 하자. 그럼 넌 내 양딸인데. 애를 낳으면 앤 내 아들이냐? 손자냐? 흥! 우리 야마구찌 가족 촌수를 개판으로 만들 예산이야. 믿어지지도 않아. 모녀간이 어떻게 순식간에 생각을 180도로 바꿀 수 있어? 그렇게 애를 낳아달라고 해도 10여년 동안이나 낳아주지 않더니. 흥! 춘희 애를 낳아주겠다고? 딸은 또 뭐야? 제 에미를 대신해 내 애를 낳아주겠다고? 흥!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을 수 없어.) 다이로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순전히 내 유산을 바라고 나하고 살 것처럼 했잖아. 인내성도 있어. 어쩜 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10여년 동안이나 아닌 보살을 떨면서 내한테 붙어 있어. 분명 마끼  전도를 위한 거야. 글쎄 처음에야 내 신세를 많이 져서 보은하느라고 사랑한다고 했겠지. 그러나 이젠 모든게 명확해졌어. 날 사랑하진 않고 문걸인지 귀걸인지 하는 그 놈하구 사랑한게지. 돈에 눈깔이 쌔빨개서 유산을 노리고 애를 낳아주려는 거야. 봐, 유서를 지금까지 내놓지 않는 거. 춘희는 내가 하루 빨리 죽길 기다릴 거야.  그래야 내 유서를 꺼내들고 내 유산을 본댁과 내 동생한테서 빼앗아내지.) 다이로는 온 몸에 소름이 쪽 끼쳤다.       (아, 아주 무서운 일이야. 매우 위험해. 춘희한테 미련을 뒀다간 목숨이 언제 날아날지도 몰라.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 네년 모자간의 음모를 모르는 거 같아?) 한편 그는 후지산 사망림에서 자기가 자살하는 쇼를 놀았을 때 춘희 모습이 떠올랐다. 춘희는 울고 불며 자기를 구급하겠다고 마구 업고 비틀거리며 큰 길에 달려가지 않았던가.       (뭐야? 그때 내 꺼뻐적 죽어버렸더라면  춘희, 그 년이 유서를 가지고 유산을 이어받았겠는데. 날 어째 병원에 가져다가 구급했지?) 다이로교수는 내심의 격렬한 갈등에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때 량심의 가책을 받았는가? 이미 난 춘희한테 우리 집에서 나가라고 했잖아? 그런데 춘희는 우리 집에서 나가지도 않고 지금 전에 없이 살갑게 군다. 이전에는 밤에 한 침대에 오르자면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소처럼 상을 찡그리던게. 요즘엔 주동적으로 침대에 오르자고 하잖아? 뭐? 이전에 진 은혜를 보답하고 싶다고? 흥! 너네 모녀간이 내 신세를 진 거 다 갚자면 평생 우리 집에서 노예질 해도 안돼. 건데 이상해. 이전에 춘희는 밤이면 의무적으로 기계처럼 들이댔잖아? 그런데 요즘은 아니야. 완전히 다른 녀자로 변신했어. 요구하지 않아도 살갑게 애무해주고 달콤한 말로 내 애간장을 녹여주고.  이전 춘희 같잖아.  갓 재혼했을 때보다도 모든게 더 대단해. 진짜 숫처녀보다 못잖아. 진작 그렇게 잘 해주고 애까지 낳아줬더라면 밥 먹고 배때 쑤셔나서 너네 모녀간을 다 쳐내자 했겠어?)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삼검불 같은 생각을 정리할 방법이 없었다.        (이번엔 결단내야지. 춘희 모녀간은 절대 안돼. 이젠 유일한  희망을 나나한테 걸어야지. 나난 광문을 살려내기 위해서라도 애 하나 쯤은 낳아 줄 거야. 나나는 현시대를 초월하게 개방형 녀자애야. 내 나나 오누이한테 드린 정성이 춘희보다 못하지 않지. 내 애나 낳겠는가 해 관심하고 도와준게지. ㅋㅋ. 너네 더러운 죠센진을 고와서 도왔는가 해. 어느 일본 녀자애가 늙은이 애를 낳자고 해? 아무리 돈이 중해도 안되지. 어느 일본 어머니와 아빠 새파란 딸 보고 칠순 고개를 바라보는 늙은 령감의 애를 낳게 하겠는가. 나나는 부모도 없지. 자기 결단에 달린 거야.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 돈을 벌려고 이제껏 교타이모리 스시상에도 올랐지. 숱한 사람들 앞에서  똥을 싸서 날 먹이기까지  했잖아? 그것도 자기 친구 마끼 앞에서. ㅋㅋㅋ.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 생계를 유지하려고 자기 동생 앞에서 라체모델을 섰잖어? 재산을 몽땅 걸고 애를 낳아달라고 하면 말 안 듣겠어? 일약 교수 유산을 몽땅 상속받겠는데. 갑부  되겠는데. ㅎㅎㅎ.) 다이로교수는 제 좋은 생각을 굴리면서 어느덧 의대 정원에 들어갔다. 그는 스적스적 교연실에 들어가 졸업장 두개를 꺼내들고 실험실에 들어갔다. 그는 실험실 문발을 다 쳐놓고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나나, 실험실에 오게나. 응, 혼자 오라. 응. 긴히 상의할 일이 있어.” 한 시간 지나 널판바닥에 게다짝을 짝짝 끄는 소리 점점 다가왔다. 똑, 똑, 똑. “들어와.” 나나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들어섰다. 그간 애들이 너무 놀려대서 나나는 머리를 들고 학교를 다니기 힘들었다. 다이로교수는 컴퓨터인터넷원격수업을 하면서 나나의 졸업론문 작성을 지도해왔던 것이다. 나나는 천천히 허리를 굽히며 머리도 다소곳이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교수선생님, 참 오랜만인데요. 집에서 오다보니 오래 기다리게 했구먼요.” 다이로는 우쭐 일어나 마중나가면서 쏘파를 가리키며 자리를 권했다. 다이로는 사무상에 가서 졸업장을 가져다 나나한테 내밀었다. “축하해. 나나, 의대졸업장을 먼저 가져왔어. 의대 석사연구생 졸업을 축하하네.” 나나가 받아보니 석사학위증서와 졸업장이였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교수선생님의 지도와 방조 참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할아버지 같은 은혜를 무엇으로 다 갚을가요?” 그 말이 세상 고마웠다. 다이로교수는 의자를 들어다 나나 맞은 켠에 앉았다. “나나, 한가지 긴히 토론할 일이 있네.” 나나(복화)는 쏘파에 앉아 몸둘바를 몰라했다. (올 것이 끝내 오는구나.) “예? 무슨 일인지요?” 나나는 까만 쌍까풀포도눈을 치켜뜨며 다이로를 쳐다보았다. 다이로는 건가래를 떼더니 자못 정색했다. “나나는 내 젤 이뻐하고 믿는 제자네. 한가지 무거운 부탁을 하겠는데 들어주겠나?” 나나는 심장이 쿵닥쿵쿵닥쿵 뛰다가 밖으로 벌컥 튀여나올 것만 같았다. “나나, 난 칠순고개를 넘도록 실현 못한 마지막 꿈이 하나 있네. 그 꿈은 아마 나나도 알리라 믿네. 그 마지막 꿈은 내 애를 하나 낳아 기르는게오.” 나나는 자초에 밀어부치려고 무거운 입을 겨우 뗐다. “교수님은 양딸 마끼가 있지 않은가요?” “아니야, 건 내 피줄을 타고 난 애가 아니야. 양딸에 불과해. 난 내 피줄을 타고난 애를 기르고 싶어. 네가 이 간절한 내 소원을 풀어주겠느냐?” “무슨 말인가요? 저는 선생님의 제자인데요. 교수님의 안해는 춘희 박사가 아닌가요?” “아니야. 난 당장 춘희 모녀를 우리 집에서 쫓아내겠어. 네가 우리 집에 들어와서 내 애를 낳아줬으면 좋겠다. 내 꿈을 좀 이루게 도와달라.” 나나는 억이 막혀 한동안이나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물끄러미 다이로교수를 쳐다보았다. “될 수 있지. 내 애만 낳으면 내 모든 재산은 몽땅 네 거야. 내 유산을 몽땅 너와 애한테 물려주겠다. 난부모를 어려서 여의고 불쌍하게 사는 너네 오누이를 도와주고 싶다. 우리 아예 한 가족이 되자. 그럼 네 동생 광문도 너도 살 길이 활짝 열려. 박사, 교수로 될 수 있어.” 그러나 뜻밖에 나나가 도리머리를 홰홰 저을줄이야 누가 알았겟는가. “교수님, 미안해요. 저는 재산도 명예도 돈도 다 필요없어요. 저는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절대 저의 인격을 팔 수 없어요. 제가 진 신세는 후에 돈을 벌어 꼭 다 갚아드리죠.” 순간, 다이로는 된방망이에 정수리를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눈 앞이 깜깜해났다. 눈 앞에 수많은 뻘건 불찌가 튕겼다. 한참 후에야 제 정신이 든 다이로교수는 천천히 머리를 들더니 나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넌 교타이모리 스시상에도 올랐잖아? 웬 인격이고 뭐고 있느냐? 누구도 몰래 애를 하나 낳아주면 한뉘 평생 놀고도  향수하면서 살겠는데. 황차 지금 성형미용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느냐? 애를 낳은 후 내 직접 성형미용수술을 해 널 숫처녀로 되만들어주마. 안되겠니?” 그러나 복화의 대답은 왕청 같았다. “정조는 생식기만 놓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생식기는 정조의 표징이지만요. 정신과 심령의 정조가 더 중요해요. 전 완정한 정조를 지키고 싶습니다. 교수님, 저는 선생님과 결백하고 아름다운 사제관계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제 인상에 아주 훌륭한 스승님으로 남아주십시오.” 다이로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게 어느 때니 정조를 론하느냐? 사람이 살아나가는데 그까짓 정조가 그렇게 중요해? 참 곰곰히 생각해봐라. 왜 그렇게 못난 소리 하느냐? 낮은 돌을 작작 밟아라.” 그러나 복화의 포도세귀눈은 점점 똥그래지고 얼굴은 점점 굳어져갔다. “아닙니다. 저도 오래동안 곰곰히 생각했어요. 저에게도 인생좌우명이 있습니다. 아무리 돈과 재물이 중해도 저는 이제 그 이상 교수님의 요구를 더 들어줄 수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이젠 저는 중국에 돌아가 일본의 나나가 아니라 당당한 중국 조선족의 딸 복화로 살겠습니다.” 그제야 꿈에서 깨난 다이로는 미리 짜놓은 두번째 제안을 들고 나왔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떤가 생각해봐라. 네가 제 배에 임신하는게 싫으면 좋다. 실험관 아이를 하나 만들자.” 나나는 짙은 눈섭을 치켜뜨며 까만 쌍까풀포도눈이 똥그래졌다. “실험관 아이라니요?” 다이로는 내놓고 요구를 제기했다. “네 란자를 실험관에 받아달라. 체외 실험관에서 내 정자를 수정시켜 실험관수정란을 만든단 말이야. 그럼 넌 그 소중한 정조를 지키면서도 내 꿈을 이루게 할수 있단 말이야. 그래도 난 장차 태여날 우리 애와 너한테 모든 유산을 상속시키겠다. 당장 유서를 작성해도 돼.” 그러나 복화는 굳은 마음을 먹은지 오랜 것 같았다. 그러나 당장에서 거절하기는 너무 한 것 같았다. “교수선생님, 실험관 아이문제는 불시에 튕겨나와서요. 좀 고려할 시간 좀 주세요.” 다이로교수는 기뻐 복화의 두 손을 덥썩 잡고 야단쳤다. “그래. 고맙다. 난 네가 이것만은 접수하리라고 믿었다. 인차 답복해달라.” 복화는 무겁게 머리를 끄덕이고 실험실에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왔다. 이튿날, 복화한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존경하는 야마구찌다이로 도사님, 미안해요.  교수님, 저는 은사님의 꿈을 이뤄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저는 저의 인생좌우명대로 이 세상에서 결백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이전에 교타이모리 스시상에랑 오른 것은 우리 오누이 생계 핍박에 의해 어쩌는 수 없었지요. 그러나 저는 이젠 나나가 아니라 복화로 재생해 저의 좌우명대로 떳떳하게 살아야겠습니다. 지금 저는 중국 상해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절대 저한테 미련을 가지지 마십시오.        한가지 똑똑히 알아두십시오. 돈과 지위가 있으면 모든 걸 다  가지고 지배할 수 있는가 착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아무리 정조를 초개같이 여기는 세월이라고 해도 저의 신성하고 결백한 정조는 그 누구도 황금산으로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저의 정조는 장차 저를 사랑하는 신랑만이 지배할 권한이 있습니다. 은사님, 이전에 했던 것처럼 다른 일본 인들과는 달리 중국 조선족을 얕잡아보지 마십시오. 중국 조선족녀성은 자기 인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늙은이 애까지 낳아주는 미친 년, 돈 밖에 모르는 성노예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절대 조선족들의 인격을 짓밟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예전처럼 계속 민족기시를 하지 말 것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날 이때까지 민족평등을 토대로 약자를 돌보는 선생님의 착한 마음을 존경해왔습니다. 그래서 뭐나 시키면 거의 다 해왔습니다. 그간 우리 오누이 은사님한테서 할아버지와 같은 관심과 방조, 사랑을 받아왔는데요. 은공을 갚지 못해 죄송한 마음입니다. 좋은 세집을 대주어 근심걱정없이 석사연구생 공부를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세집 집세와 키는 저의 동생 광문한테 맡겨놓았습니다. 원래 광문을 데리고 중국에 가려고 했는데요. 은사님의 녀조카가  아찌나 광문을 마사지방에 딱 붙잡아두려고 하는지. 동생을 데리고 가지 못합니다. 제가 채갚지 못한 은혜는 광문과 은사님의 녀조카가 힘을 합쳐  계속  갚아들릴 겁니다.     저는 은사님과 영원히 결백하고 좋은 사제간으로 남고 싶습니다.  저는 은사님이 자기 애를 낳는 꿈을 실현하려고 저 오누이를 그렇게 잘 챙겨주고 민족기시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은사님을 영원히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도사님으로 우러러 모시고 존경하고 싶습니다. 선생님도 그런 저의 믿음과 존경을 파괴하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은사님,  지구 어디에 있어도 선생님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은사님, 부디 건강하게 안녕히 계십시오.                                          중국 조선족녀제자 리복화 올림   “아니, 날 버리고 훌 가버려?!” 다이로교수는 핸드폰을 활 팽개쳤다. “못된 년! 배은망덕한 년! 지독한 년!” 그는 쏘파에 풀러덩 물앉았다. 두 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앓는 신음소리를 냈다. 진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지 않았는가! ㅋㅋㅋ  
292    대하소설 졸혼 제4권 (56) 김장혁 댓글:  조회:1408  추천:0  2022-11-03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권           66. 부부 공간       박문은  링컨하이야에 앉아 출근하였다. 그러자 150평방메터나 되는 아파트는 다시 조용해지기 시작하였다. 미라씨는 한숨이 후- 나갔다. 어쩐지 남편이 사라지자 홀가분하고 자기만의 세상이 다시 찾아 온 것 같아 기분이 상쾌했다. 아줌마가 설거지를 하기에 미라씨는 별로 할 일도 없었다. 그녀는 창가에 서서 눈 앞에 펼쳐진 무연한 맑은 호수를 내다보면서 상념에 빠졌다. 애완견 보라도 심심한지 꼬리를 저으며 다가와 주둥이로 미라씨의 잠옷 자락을 들추며 끼깅거렸다. “녀주인님, 함께 놀자. 심심해.” 보라는 이렇게 서적을 부리는 것 같았다. “저리 가.” 미라씨는 손을 쳐들어 칠 상 하면서 보라를 쫓아버렸다. 보라는 끼깅거리며 눈을 흘기며 아줌마 설거지하는 부엌으로 다가가 쭈그리고 앉아 이쪽을 흘끔거렸다. “할 노릇도 없어. 별난 개새끼를 다 데려다 키워.” 그녀는 보라를 쏘아보며 불평을 토로했다. (저 나그네 어찌나 고독하다고 했으면 저게 뭐야? 녀비서 은희가 글쎄 저런 암캐를 다 친구 하라고 사다 줬겠어? ㅋㅋ.) 그녀는 다시 호수를 내다보며 묵념에 잠겼다. 호수에서는 거위와 물오리가 동동 떠 다니고 비둘기가 호수면을 스치며 날아예고 있었다. (저 나그네 눈치도 없어. 어쩜 녀비서가 자기를 놀리는 것도 몰라. 분명 자꾸 지껄이니깐. 암캐한테 붙여놓은 거지. 고와서 저 비싼 개를 사다 줬겠어? 은희, 그 년 못된 년, 어쩜 상전을 저렇게 골려줘?) 미라씨는 아예 자그마한 의자를 가져다 창가에 놓고 호수를 구경하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저 나그네 집에 있을 땐 어쨌는가? 회사에 다니면서 돈은 꽤나 벌었지. 허나 마음 속에 가정이란 개념이 있었던가? 안해가 마음 속에 있었던가? 어떻게 보면 안중에 처자가 없은 것 같았어.  날마다 술이나 처마시고 곤드레만드레 취해 밤중에야 제 굴이라고 집에 돌아오군 했지. 땀에 전 몸에서 물씬 풍기는 분내는 얼마나 괘씸하게 굴었는가? 분명 사창가에 가서 기생들을 끼고 술을 처마시고 안고 돌았지.) 순간 미라씨는 입술을 깨물며 이를 쁙쁙 갈았다. (부부간에도 공간이 필요해. 그간 졸혼하고 갈라져 있으니 홀가분한게 얼마나 좋았는가. 저 나그네도 내 꽤나 그리웠던 모양이지? 요즘 전에 없이 잘 하는 거 봐. 술도 덜 마시고 퇴근하면 곧추 집으로 돌아온단 말이야.) 그녀는 희쭉 웃어버렸다. (저 나그네 중국에 총경리로 가게 될 때 내 뭐라고 했어? ‘맨날 한데 붙어 있으니깐. 안해가 얼마나 중한지 모른다고. 이젠 졸혼하고 둘 다 각기 자기만의 삶을 살자. 당신은 당신 술을 마시고 아가씨들을 마음대로 만나 개지랄을 하라고. 난 애들을 데리고 살면서 소설도 쓰고 관광도 하겠다고 했지. ㅎㅎㅎ. 나는 진짜 좋았어. 주정뱅이나그네를 떼버리니 참 좋았어. 때시걱 근심, 빨래근심 할 필요없었지. 나그네를 보지 않으니 마음도 편안했지. 다 자란 애들도 대학에 가서 주숙하고 식사하니 난 굴레 벗은 말처럼 미국 니까라과 폭포에 프랑스 에펠 철탑 구경하고 기행수필도 쓰고 진짜 좋았어. 가을에는 설악산 단풍 구경하고 시도 쓰고 명상에 잠겨 소설도 구상하고. 얼마나 좋았어?) 그녀는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건데 중국 관광 말에 홀딱 넘어갔잖아. 중국 명승고적에 폭 빠져 조만간에 중국을 떠날 거 같잖아. 저 나그네와 공간을 두고 살자던 구상도 깨지고 말았잖아. 아마 저 나그네 바라던 바일 수도 있어. 저 나그네와 군철이랑 짜고 들어 날 중국에 얽매두려는 획책일 수도 있어. 어림도 없어. 나그네 하루라도 또다시 술처마시고 아가씨들하고 지분거리기만 해보지. 당장 보짐 싸들고 한국에 날아가 버릴 거야. 진짜 부부간에도 공간이 있어야 해. 드문드문 갈라져 있으면 서로 그립고 만나면 지금처럼 열렬히 사랑할 수 있잖아. 졸혼은 남편 보고 안해와 일정한 공간을 두고 안해와의 리별의 슬픔도 만남의 기쁨도 가슴 아프게 느끼게 할 수 있었잖아. 그런 의미에서 졸혼도 필요해. 저 나그네 중국에 온 천혜의 기회를 리용해 졸혼의 공간적 여백미를 한껏 향수해야지.) 미라씨는 상념에서 깨여나 보라를 끌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녀는 애완견 보라의 목바를 쥐고 거닐면서 중국에 와서 느낀 긍지감에 가슴이 설레였다. (여기서 진짜 귀부인 상대접을 받고 있지 않는가.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군철이 안내를 받으면서 무료로 졸정원에 사자림이랑 오원이랑 류원이랑 다 구경했잖아. 주장이랑 동리랑 숱한  수향을 돌면서 명승고적 기행수필과 숱한 시를 쓰지 않았는가. 아무 근심 걱정없이 누리는 귀부인 향수도 쏠쏠해. 마음껏 향수해보고 볼판이야.) … 퇴근시간 전에 남편이 퇴근해 집에 들어섰다. “해 서산에서 돋지 않는기오?” 미라씨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박문은 객실에 들어가면서 아줌마를 보고 말했다. “저녁 짓지 마세요. 군철 부총경리 자기 집에 청한데이.” “아이고메. 이젠 몇번 청했는데요. 우리도 언제 집에 아우네를 청해야죠.” “그래. 그게 형제간에 오가는 정이지. 소주에선 군철 아우 없인 한발작도 내딛기 힘들어.” 미라씨는 남편의 가방과 외투를 받아 옷걸이에 걸고 나서 침실에 따라 들어왔다. “여보시우. 저 개는 왜 길렀어요? 그간 자기 몸도 거두기 힘들었겠는데.” “말도 말아. 당신 없으니께. 기나긴 밤 보라를 안고 잤지 뭐야.” “호호호.암캐라도 안고 잤으니깐, 덜 고독했겠군요. 쯧쯧쯧.” 미라씨는 입을 싸쥐고 웃었다. “아니, 당신 녀편네 없으니 얼마나 좋았겠시우. 저녁에 늦어 들어와도 짜증나는 잔소리 없지. 얼마나 자유스러웠겠어. 그래서 졸혼이 필요한게야.” 박문은 침대에 털썩 들어앉으면서 두덜거렸다. “졸혼 말 다신 하지도 말아. 졸혼 뭐가 좋다고 그래? 당신 나 같은 짐 뚝 떼버리고 홀가분하게 관광이나 하고 음풍영월하기 딱 좋았겠지. 난 하나도 좋지 않더라구.” “호호호.” 미라씨는 깨고소해했다. “보라우. 당신네 경상도 사내들 녀편네들캉(녀편네들과) 떽떽거리면서 대남자주의나 부렸지. 안해를 어디 살뜰히 애무해주는 멋이 있었는가요?” 박문은 아무 대구도 하지 못하며 머리를 숙였다. 미라씨의 공격은 계속 됐다. “내 뭘했는가요? 부부간에도 공간과 여백이 필요해요. 이렇게 몇달간 졸혼하고 갈라 사니 얼마나 좋았는기오? 당신 대한민국에 계속 함께 있었더라면 안해 중한 거 색각이나 했겠어요?” 박문은 천천히 머리를 들어 녀편네가 눈을 곱게 흘기는 것을 보고 씨무룩이 웃기만 했다. (그래. 이제야 알겠어. 중국에선 당신 없인 못 살아. 중국에 홀로 오면 녀편네 없으면 술도 질탕하게 마시고 아가씨들도 실컷 놀게 됐다고 기뻐했댔지. 건데 뭐야? 중국은 한국과는 판판 달라. 아가씨들캉 오입하다 잡히면 큰 경을 치뤄. 마음놓고 아가씨를 데리고 놀 수도 없어.) 남편의 그런 속내를 꿰뚫어본듯이 미라씨는 고의로 빈정거렸다. “소주 구경도 잘했지. 당장 음력설이 되는데 한국으로 돌아가야겠어. 당신한테 한해 손아귀에서 벗어나 푹 쉴 공간도 주고 자유도 줄테니께.” 박문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안해를 꼭 끌어안았다. “제발 가지 말라고.” 미라씨는 두 손으로 남편의 가슴을 떠밀었다. “내 없으면 당신 숱한 아가씨들하구 술도 맘껏 마시고. 얼마나 자유롭겠시우?” 박문은 안해 두 팔을 꽉 잡고 애원했다. “아니라구. 부부 공간은 잠시 있어야지. 오래동안은 아니야. 부부간에 너무 오래 갈라져 있으면 부부냐? 건 사실 리혼이야. 부부간은 그래도 한데서 살아야 해.” 그러나 미라씨는 일부러 남편을 골탕먹이려고 생똥 같은 말을 했다. “당신 시대에 너무 떨어졌시우. 부부간에도 공간을 좀 둬야 해요. 지금 일본이나 우리 대한민국 중년녀성들 가운데선  졸혼바람이 불고 있어요. 이젠 애들도 다 컸으니께. 우리도 결혼 생활 졸업하고 부부간에 공간 두고 살자요.” “아니요. 아니, 난 절대 졸혼인지 뭔지 못해. 공간도 필요없어. 당신과 함께 살래. 그간 내 혼자 살면서 밤이면 얼마나 고독했는지 알아? 밤이 젤 무섭더라구. 기나긴 밤은 공포였어. 다신 그렇게 못 살겠어.” 미라씨는 피씩 코웃음쳤다. “중국 말에 사람은 황하가에 가지 않고선 말 머리를 돌리지  않는다던데. 당신 정말 이전 잘못 고칠 수 있어?“ ”꼭 고치겠어. 믿어다오." "당신 본명이 도져 바람 피우기만 해 봐.  언제든지 졸혼이야. 그림자도 못 찾게 깜쪽같이 가버릴 거야. 개습관 고치지 않으면 진짜 졸혼이야. 부부간에도 공간을 두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이게 부부 공간의 여백미야. 알만해?” 박문은 미라씨의 앞에 무릎까지 털썩 꿇고 앉아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여보, 다 내 잘못했어. 이제부터 잘못을 고칠게니께. 새 사람 될 기회를 좀 달라고.” 미라씨는 오히려 빈정거렸다. “당신 뭘 잘 못했어? 돈도 많이 벌어들이지. 안해를 데리고 쏘핑도 잘하지.” 박문은 손이 발이 되게 빌었다. “이전에 밤중까지 술 마시고 집에 가서 주정부리고 당신 때린 거 진짜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당신 제발 날 혼자 두고 가지 마. 응?” 미라씨는 다짐을 땄다. “경상도 사내가 오늘 이게 뭐야? 무릎까지 꿇고 맹세한대로 할만 하지?” “오- 그래. 다 해줄게.” 미라씨는 이쯤하면 남편을 혼쌀내줬다고 여기고 남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어서 일어나세요. 못난 사람아, 누가 보겠어.” 박문은 쇼를 그만두고 언제 무슨 일 있었더냐 싶이 희쭉 웃으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갑세다. 아우 기다리겠어.” 미라씨는 따라 나가면서도 근심했다. “최총경리 리혼했다면서요? 집에 안해도 없는데 음식을 어떻게 한다고 집에 청해요?” “가정모 있어.” 그제야 미라씨는 한숨을 호 내쉬더니 걸음을 재우쳤다. 군철이네 집은 수로를 하나 건너 호수가 3층으로 된 으리으리한 별장식 아파트에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군철과 애리싸가 마중 나왔다. “환영해요.” 애리싸가 서툰 조선말로 인사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형님, 아주머님,” 군철은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고나서 집 안으로 안내했다. “고마워요.” “집에서 하지 말고 음식점에서 간단히 먹으면 될 걸. 고생했어.” 아파트 울안에 푸르른 참대들이 설레이며 마중해 미라씨의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그들이 2층 객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애들이 쫑드르르 달려나오면서 허리굽히며 서투른 조선말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분명 군철이 미리 조선말인사를 훈련시킨 것 같았다. “호호호. 아유, 귀여워라.” 미라씨는 핸드빽에서 쵸롤리를 몇개 꺼내 애들의 애고사리 손에 쥐워주고 두툼한 빨간 봉투 두개를 꺼내 하나씩 주었다. “谢谢!” 군철은 깜짝 놀랐다. “아주머님, 아니, 뭘 애들한테 줘요? 괜히 집에 오라고 해서  부담시켰잖아요?” 그는 애들 손에서 봉투를 찾아 돌려주려고 했다. 미라씨는 되밀어주면서 말했다. “조카들 주는 걸 받아야죠. 너무 내의하면 형제간 믿음이 파괴돼요.” 그제야 군철은 하는수 없이 봉투를 받아두었다. “이후에 아주머님과 형님을 모시고 금계호가 소주중심 음식점에 가서 양증호 왕계를 대접하지요. 소주중심을  “동방의 문”이리고도 하는데요. 소주에서 젤 높은 표징건물 중  하나입니다. ” 미라씨는 애들의 머리를 매만지면서 물었다. “얘들 중국 말 하잖아? 난 알아도 못 들어.” 군철은 번대머리를 손수건을 꺼내 뚝뚝 찍으며 말했다. “큰 일 났어요. 애들이 한족 곳에서 자라니 조선말 하나도 할줄 몰라요. 여긴 조선족학교와 유치원도 없지. 한족 학교와 유치원을 다니나깐요. 자연히 한족말 밖에 몰라요. 집에서 아무리 서당방을 차려놓고 조선말을 배워줘도 고때뿐이죠.” 미라씨는 저도 몰래 한마디 했다. “장차 한족으로 동화될게 불 보듯 빤하지 않나요? 참.” “무슨 소릴?! 쯧쯧.” 박문은 못마땅해 안해한테 눈을 흘겼다. 애리싸는 그들이 주고 받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그저 눈치만 살폈다. 군철은 애들 말이 나온바 하고는, 박문 부부간이 기분이 좋을 때 소 뿔을 당긴 김에 빼려고 작심했다. (회사 직원들을 위해 뭔가 또 챙겨야지.) “아주머님, 소주 구경 인상 어때요?” 미라씨는 기분나서 화답했다. “참 좋았어요. 소주에는 어쩜 명승고적이 그렇게도 많은가요? 아저씨 덕분에 유람 잘했어요.” “이제 북경의 만리장성이랑 의화원이랑 고궁이랑 다 돌아보세요. 북경에는 구경거리 더 많아요.” “그래요? 점차 중국이 마음에 드네요.” “그럼 됐어요. 성님과 함께 행복하게 사세요.” 박문은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는 안해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진짜 녀편네 중국에 푹 박히고 말았어.) 군철은 번대머리를 손수건으로 슬슬 닦으며 기대에 찬 우멍눈으로 박문 총경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성님, 애 둘을 키우기 참 어려워요. 안해 곁에 없는데다가 가까이에 학교나 유치원이 없어 참 힘들어요.” 박문은 무슨 말인지 모르고 맞장구를 쳤다. “그럴테지. 혼자 애들 둘을 키운다는게 어디 쉬워?” 군철은 무거운 입으로 한술 더 떴다. “우리 회사에 애들을 가진 부모가 많은데요. 모두 유치원이 방정하게 없어서 힘들어 하죠.” 박문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자식, 뭐나 하나, 하나 챙기는 놈이지. 오늘이라고 례외겠나? 오늘은 유치원 문제구나. ) 군철은 말을 꺼낸바하고는 내밀었다. “직원들이 애들 근심하지 않고 출근해 사업에 몰입하게 해야겠는데요. 박총경리님, 우리 회사에 유치원과 탁아소를 차리면 어떨가요?” 박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불시에 어떻게 유치원을 차려?” “회사에서 건축부지만 내놓으면 돼요. 건축자금은 우리 직원들을 동원해 모금하면 될 거 같아요.” “유치원 부지를 봐둔게 있어?” “있어요. 우리 회사 창고 앞 마당에 지으면 될 거 같아요. 유치원과 탁아소 경영비용은 근심하지 마세요. 학부모들한테서 사회 비용보다 적게라도 수금하면 돼요.” “그래?” 박문은 잠간 궁리하더니 군철의 손을 잡았다. “회사에서도 돈을 대야지. 우리 유치원과 탁아소를 지읍세. 설계는 어떻게 하지?” 군철은 박문의 손을 굳게 잡았다. “설계는 하나가 하면 됩니다. 그는 길림대학에서 건축설계를 전공했습니다.” 군철은 박문의 손을 힘있게 잡아 흔들었다. “고맙습니다. 박총경리님, 우리 애들의 부모를 대표해 감사를 드립니다.” 박문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이 사람아, 우린 형제간이 아닌가? 허허허.” “네, 성님, 고맙습니다. 성님과 말해서 안된 일 없는데요.” 박문은 안해를 돌아보며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우는 참 무서운 빨갱이야. 자기 걸 챙기자곤 한마디 말도 안해. 번마다 회사 직원들을 먼저 챙긴단 말이야. 난 아우 같은 빨갱이는 믿고 일할만한 사람이라고 봐.” 미라씨는 옆에서 들으면서 미심쩍은 눈길로 군철을 바라보며 그저 속으로는 이렇게 되뇌일뿐이였다. (세상에 어디 공 거 있나? 오늘 공 밥 먹지 않는구먼요.) 그녀는 남편과 군철을 번갈아보면서 속으로 말했다. (여보, 지내보고 말해요. 겉으로 대공무사한 척하는 자들 더 무섭게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덤벼들지도 몰라.) 군철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시름 싹 놓았다. 일이 이렇게 빨리 풀릴줄이야.)      그는 평소에도 늘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난 절대 아버지처럼 탐관오리로 되지 않을 거야. 절대 아버지처럼 직권을 빌어 재물과 녀색을 도모하지 않을 거야. 자기 노력으로 차례진 돈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 한해에 로임총액이 백만원도 넘는데 뭐가 모자라 위법하면서 허비닥질하겠는가! 절대 아버지처럼 도처에서 자기 안속만 차리지 말아야 해. 언제나 3천여명 직원들을 마음에 품고 일하면서 살아야지. 절대 아버지처럼 범죄자로 돼 초상집 개처럼 쫓겨다니지 않을 거야. 아버지도 전번에 날 찾아왔을 때  후회하잖았는가.)      경제시대에 직원을 품고 일하는 간부를 보고  한국에서 온 박총경리 부부는 여간 탐복하지 않았다. 회사 절대 다수직원들도 청렴한 젊은 당간부를 보고 혀를 끌끌 찼다.       군철은 며칠 전에 회사 공회 성립대회를 연 후  공회소조끼리 회의를 열고 직원들의 곤난한 문제와 회사 건설과 경영에 합리적인 건의와 아이디어를 제기할 것을 공회 주석의 명의로 요구하였다. 그런데 애들 유치원문제, 의무실문제, 메모리생산과 공급위기 등 수두룩한 문제가 제기돼 군철은 골머리를 앓게 했다. 그는 먼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자고 이날 박총경리한테 유치원문제부터 제기했던 것이다. 군철은 주방에 내려가 아줌마를 보고 채를 올리라고 하였다. 주방에서는 아줌마와 함께 리나와 지예가 한창 점심 준비에 맴돌고 있었다. 이윽고 애리싸와 아줌마가 밥상을 들여다 놓았다. 미라씨는 엉거주춤 일어나 아줌마한테서 행주를 주어들고 밥상을 닦았다. “아주머님, 오늘만은 손을 대지 마세요.” “아니, 아저씨 안해도 없는데요.” “오늘 주방 일을 할 사람 있어요.” 미라씨는 밥상을 썩썩 닦으면서 애리싸가 나가자 중얼거렸다. “애리싸야 때시걱 못할 거고. 누가?” 군철은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오늘 애들도 보라고 본댁 리나하고 녀동생 지예를 오라고 했어요. 지금 한창 주방에서 일하느라고 미처 인사드리지 못해 미안해요.” “그래? 참 잘했어.” 박문 총경리는 안해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 제수를 만나면 복혼하라고 잘 권해보라고. 애들을 봐서라도 함께 살아야지. 안 그래?” 그는 군철을 보고 말했다. “뭐니뭐니 해도 그래도 조강지처가 제일이야. 애들 둘이나 낳고 무슨 놈의 리혼이야? 아우, 쓸데 없는 자존심 버리게나. 어서 복혼하라구. 애리싸는 가만히 보면 오래 함께 살 녀자 아닌 거 같애. 동서방 혼인풍속도 다르고.” 군철은 무람없이 말했다. “글쎄요. 엄마 없이 자라는 애들을 보면 마음 아파요. 그런데 리나가 애들을 버리고 나갈 때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구요.” 미라씨는 이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뭣 땜에 갈라졌는데요?” 군철은 속임없이 털어놓았다. “제가 회사 회식 때문에 자주 술을 마시고 밤중에 집에 들어갔지요. 리나는 회사 일만 일이라고 애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야단쳤지요. 게다가 저를 따라다니는 녀비서랑 많다고 질투하더니 애들을 버리고 훌 나가버렸지요. 그 일을 생각하면 괘씸해서, 원.” 박문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우, 복혼하게나. 안해들 소견머리 졻아서 그래. 회사 부총경리면 회식이 잦을 수도 있지. 리나씨는 우리 회사 인사과 과장으로 일하잖아? 사람을 다루는 사업하는 녀자라면 그런 것 쯤은 리해해야지. 그걸 허물 삼으면 어떻게 살아? 남편 총경리 하지 말게 하고 맨날 집에 붙잡아두겠나? 원, 참. 코막고 답답해.” 박문은 분명 자기 안해한테도 하는 말 같았다. “아우도 졸혼 좋아하나?”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졸혼하니 얼마나 좋아요? 금발애인도 마음대로 거느리고 회식도 자유롭게 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거 같은데요. ㅎㅎㅎ.” “졸혼 말 내 앞에서 하지도 말라구. 가정이란게 어디 애들 장난이야? 밤 자고나면 리혼하고 재혼하고 졸혼하고… 참, 이놈의 세상 리해 안돼.” 군철은 우멍눈으로 박문의 눈치를 힐끔 곁눈질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윽고 애리싸 뒤를 따라 리나와 지예가 채를 두 접시씩 들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박총경리님, 사모님 주방에서 일하다나니 미처 인사 못해 미안해요.” 박총경리는 씨무룩이 웃으면서 리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괜찮아. 리과장, 오늘 수고 많구먼.” “천만에 말씀을요.” “안녕하세요? 전 녀동생 지옌데요. 첨 뵙습니다.” 미라씨는 반색했다. “오, 아저씨한테 저렇게 이쁜 녀동생도 있군요.” 술상을 다 갖춰놓자 군철은 돌아가면서 포도술을 찰찰 넘치게 부어놓았다. 뒤이어 그는 술상을 둘러보면서 권주사를 했다. “오늘 가정 분위기에 박총경리 형님과 아주머님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하게 돼 기쁩니다. 변변히 갖춘 건 없지만요. 많이 드시고 즐거운 저녁 되시기를 바랍니다.” 군철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잔을 높이 들었다. “자, 우리 형제 우정과 앞날의 행복을 위해 잔을 듭시다.” “위하여!” 술상에는 잔을 부딛치는 소리 딩둥댕 귀맛좋게 들렸다. 애리싸는 술이 서너순배 돌자 우쭐 일어나 하직을 고했다. 아마 리나와 함께 한 자리에서 술을 마시기는 아무리 서양 녀자라고 해도 불편했던 모양이다. 군철은 더 말리지 않고 보내버렸다. 미라씨는 리나를 보고 참았던 말을 꺼냈다. “리나씨, 애들을 봐서라도 최총경리하고 다시 함께 살아요.” 리나는 그저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서 박총경리도 끼여들었다. “리과장, 최총경리 나 때문에 회식 잦았는데 널리 량해하라구. 다 내 잘못이야. 안해 곁에 없으니깐. 적적해 자꾸 아우를 불러냈지. 그런다고 애들을 버리고 나가버리면 아우는 어떡하고 애들은 어쩌게?” 그 말에 리나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쭐 일어나 자리를 떴다. 지예가 따라나갔다. 군철은 지예를 말렸다. “나둬! 가겠으면 가라지. 졸혼한다고 애들 둘까지 다 버리고 달아난 지독한 년이야.” “엄마, 가지마! 엄마, 어, 허헉, 흑흑.” 침실 쪽에서 애들의 울음소리, 애원소리가 들렸다. “엄마, 같이 자자! 엄마야, 가지 마! 흐흑, 흑흑, 엄마!” 객실의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허빈다. 박문은 참다 못해 군철을 타일렀다. “이 사람아! 뭔 소리야? 이럴 땔수록 흉금이 넓어야지. 그래, 애들을 엄마 없는 자식으로 만들 잡도린기여?! 원, 참.” 그날 저녁 술상은 아주 재미없이 돼버렸다.      가정분란이 초래한 난장판이다.      아니, 졸혼이 가져다준 혼란인가?      졸혼은 가정이란 보금자리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지게 되였다. 졸혼은 안개 속에 들어선 것처럼 갈 길을 잃고 아리숭하게 돼버리지 않았는가.
291    대하소설 졸혼 제4권 (55) 김장혁 댓글:  조회:1398  추천:0  2022-10-31
      65. 제문(齐门)과 사탑(斜塔)에 맺힌 한         때마침 일요일이여서 군철은 또 박문 총경리 부부를 모시고 소주를 유람하기로 했다.      링컨 하이야는 소주 옛 동쪽토성 중간으로 해 있는 상문(相门) 부근에 가서 멈춰섰다. 저 멀리 옛 토성에 높고 둥그런 궁형 돌대문이 푸른 물이 출렁이는 호성하를 굽어보고 있었다.      약삭빠른 윤선은 벌써 하나와 함께 상문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전날에 미라씨가 윤선의 녀친도 보고 싶다고 해  군철한테서 비준받고 하나를 데리고 왔던 것이다.     군철은 박총경리와 토론하고 미라씨 심기를 건드릴가 봐  녀비서들은 첫날 공항에서 꽃다발을 드린 후에는 일절 동행하지 말게 하고 윤선이만 동행시키자고 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고모님, 저의 녀친입니다.” “안녕하세요?” 미라씨는 곱게 인사하는 하나의 손을 잡고 아양을 떨었다. “아이고, 참 이뻐라.” 그녀는 하나의 손을 매만지면서 연신 덕담을 했다. “요 손 봐. 얼마나 따뜻하고 이쁜가? 명함 어떻게 불러요?” 하나는 허리 굽혀 인사하면서 대답했다. “리하나라고 불러요.” 하나는 박문 총경리를 흘끔 곁눈질했다. 박총경리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여보, 하나는 내 비서라우.” “그래? 하나씨는 무슨 리씬데요?” 하나가 아무런 고려없이 대답했다. “전주 리씨입니다.” 미라씨는 남편을 돌아보며 종알거렸다. “외가집 미녀를 비서로 둬서 좋겠군요.” 그러자 박총경리는 림기응변하며 유머를 했다. “전주 리씨네 녀자들 어디 쉬운가? 내 어머니 참 호랑이 같은 분이지. 난 하나한테 꼼짝도 못해. 저 눈길 보라오. 얼마나 표독스러운가? 당신 시름 싹 놨네그려. 허허허.” “그래? 전주 리씨네 녀자들도 리씨 조선 왕의 후손인데 호락호락하겠어? 우리 경주 김씨네 녀자들 못잖을기여. 호호호. 하나씨, 저의 남편 잘 부탁드려요. 조금만 주정하면 몽둥이로 호되게 다스려요. 녀자는 사무러워야 해. 호호호.” 미라씨가 받아넘기는 유머에 박총경리는 군철을 돌아보며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다 최총경리 아량있게 배치한 덕이지. 허허허.” 미라씨는 남편의 실눈을 곁눈질하더니 외씨 같은 얼굴을 반쯤 돌려 군철의 우멍눈을 돌아보며 가만히 엄지를 척 내들어보였다. 박문은 속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렸다. (아저씨, 참 잘 배치했어요. 저 나그넨 항상 실눈을 해가지고 이쁜 계집들만 퀭하니 살핀다니깐. 박경리, 어디 혼쌀나 봐. 딸 같고 조카 같은 피붙이여자한테. 저 하나라던가. 봐. 얼마나 표독스럽게 생겼어. 쟨 진짜 전주 리씨네 녀자 같이 우악스러워 보이 잖나? ㅋㅋ.” 그녀는 군철이 나이는 어려도 총명하고 주도면밀하다고 감탄했다. (쭉 벗겨진 번대머리, 우멍눈을 봐. 어디 쉽게 생겼나? ㅎㅎㅎ.) 박문은 한쪽 구석에서 하나를 보고 뒤저참했다. (저렇게 사무럽기에 최부총경리 비서로 쓰잖고 나한테  보내줬구나.) 그는 며칠 밖에 쓰지도 않았지만 벌써 속으로 어떻게 하나를 떼버릴가 궁리했다. 군철은 그들 부부를 데리고 상문(相门)으로 다가갔다. 궁형으로 된 상문은 두께가 한20여메터도 되였다. 광장에는 옛 대포와 포탄, 갑옷과 투구, 검, 창 등이 줄느런히 진렬되여 있었다. 상문 토성 리면에는 2층으로 된 소주 옛토성력사박물관(古城墙历史博物馆)도 있었다. 군철은 박문 부부를 모시고 박물관에 들어가 돌아보았다. 꽤나 넓은 토성 안의 2층 건물이였다. 바깥에서 보면 빈 토성 같았지만 토성 안에 들어와 보면 기실 널다란 군사 비밀주둔지였다. “옛날에는 토성 밑 여기에 군사 300명도 주둔시킨 커다란 비밀주둔지였다고 합니다.” 박물관에서 나와 그들은 잿빛토성에 올라갔다. 옛 토성은 만리장성처럼 높고 웅장했다. 옛 토성 바깥에는 넓이 100메터도 되는 호성하가 화려한 유람선을 업고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호성하에는 유람선 외에도 돛배경기를 연습하는 자그마한 돛배도 떠 있고 갈매기들이 날아예고 있었다.   토성 안 서쪽 거울처럼 호수에서는 숱한 유람객들이 쪽배를 타고 가족끼리 애들이랑 데리고 한가하게 배놀이를 하고 있었다. 참말로 별유천지였다.  “배놀이를 할가요?” 군철의 물음에 미려씨는 생각 밖으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소주 옛성이나 돌아보지요.” “네, 알았습니다. 이 상문 저쪽 상문지하철역 북쪽에는 소주대학이 있습니다." "소주는 대도시도 아니고 중도시겠는데도 지하철도 있는가요?" "네. 소주는 성소재지도 아니자만요 지금 인구가 천만이 넘었어요. 기실 대도시나 마찬가지죠. 지하철도 여러갈래 있는데요. 이제 8호선까지 개통한다고 해요. 공업원구와 상성구에는 무인조종공중버스와 무인조종우편운송차도 많아요." 군철의 말에 미라씨는 연신 감탄했다. "네-  중국이 참 발전했군요. 미국에서도 볼 수 없는 기적이구만요." 박문도 끼여들었다. "백문불여일견이라고 와봐야 중국이 얼마나 발전했는가 알 수 있어." "참 그래요." 군철은 뒷말을 이었다. "저기 북쪽 소주대학에는 영국 유명대 켐프리치대학과 프랑스 유명대 리오대학 분원이 있습니다. 형수님도 알겠지만요. 프랑스 리오대학은 지난세기 초 중국 총리 주은래, 주덕 원수와 진의 원수, 제2세대 지도자 등소평 등을 배출한 유명대 아닌가요?” “소주 문 앞에서 프랑스 유명대를 다닐 수 있어 얼마나 편리해?” 박문의 말에 미라씨는 제꺽 이런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우리 애들도 소주대학에 다니게 할가? 영국이나 프랑스에 가잖고도 유명대 다니는게 얼마나 좋아요?” “글쎄, 애들과 잘 토론하자고. 아예. 애들도 데려오든지. 허허허. 당신 이번에 오길 잘했어. 애들한테도 새 길이 열렸네그려. 허허허.” “그래요. 와보니 점차 다른 세상이 열리는 거 같아요.” 박문은 군철을 돌아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엄지를  쳐들었다. (이봐, 아우 덕에 처자들을 되찾게 될 거 같아. ㅎㅎㅎ.)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옛 토성에서 내리자 부두에로 그들을 안내했다. 부두에는 벌써 애리싸가 단독유람선을 대기시키고 있었다. 그들은 인차 유람선에 올라 호성하를 따라 유유히 북쪽으로 달려갔다. 유람선은 소주 옛 토성 동북쪽을 굽이 돌아갔다. 얼마 달리지 않아 푸르른 참대숲이 설레이며 그들을 맞아주었다. 참대숲이 뒤로 물러가자 고풍이 짙은 목조정자와 거대한 석조대문이 호성하를 마주해 서 있었다. 유람선은 속도를 늦추며 석조대문에 천천히 다가갔다. 군철은 배머리에 서서 박총경리와 미라씨를 돌아보더니 그 돌대문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저 돌대문 위에는 고문으로 처문(妻门)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잖습니까? 저 대문은 또 제문(齐门)이라고도 합니다. 이 곳에는 제나라 (齐国) 공주의 눈물겨운 망향의 한이 서려 있습니다. 오자서 장군은 오왕 광(光)을 보고 ‘월나라와 화해하지 말고 제자라를 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왕 광은 오자서 승상의 권고는 듣지도 않고 오히려 월나라에서 미녀 서시를 바치자 월나라와 화해하고 산동 동남부에 웅거해 있는 제나라(齐国)를 치려고 했지요. 그러자 齐(제)나라 왕은 제나라 공주를 오왕에게 바치고 화해를 청했다고 합니다. 하여 오왕은 잠시 제나라와 화해했답니다.  오나라 왕비로 온 제나라 공주는  거의 날마다 이 강뚝에 서서  북쪽의 제나라  고향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부모형제를 그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답니다.        후세에 오나라 왕으로 된 제나라 공주의 아들은 모태왕후(母太王后)가 제나라 고향을 바라보는 이 강뚝에 망제터(往齐基)라는 저  기념대문과 루각을 지어드렸지요. 또 저기 저 뭍에 어머니 왕비가 비나 해볕을 피해 쉬라고 정자와 화원도 마련해드렸다고 합니다. 후세 소주 사람들은 거의 날마다 눈물을 흘리며 제나라 고향을 바라보던 제나라 공주를 기리여 이 대문을 제문(齐门) 혹은 처문(妻门)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미라씨는 눈물이 글썽해 제문을 바라보았다.       “참, 그저 스치고 지나갈 대문이 아니군요.” 박총경리도 안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제문에 올라가 볼가요?” 미라씨는 군철의 제의를 제꺽 받아들였다. “그래요. 올라가 보지요.” 유람선은 호성하가에 젤 낮은 언제쪽에 천천히 다가가 대였다. 군철과 윤선은 박총경리를 부축하고 애리싸와 하나는 미라씨를 부축해 호성하 언제에 올라가 돌층계를 밟고 옛성 둔덕에 올라갔다. 미라씨는 “망제터”에 올라가 석조대문을 보자 다가가 손으로 돌대문 기둥을 매만지면서 나직이 감탄했다. “이 석조대문은 딱 우리 한국의 홍살문 같게 생겼네요. 어느 쪽에 제나라가 있는가요?” 군철은 서북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보세요. 대문이 서북쪽을 향하지 않았는가요? 여기서 서북쪽 지금의 산동 남쪽에 제나라가 있었지요.” 박문은 서북쪽 구름이 둥둥 떠 흐르는 푸르른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옛 토성 가에서 참대숲이 씁쓸하게 설레이고 락엽이 우수수 지여 겹겹이 쌓이면서 제나라 공주에 대한 쓰라린 옛 추억이 겹겹이 쌓인다.  미라씨는 서북쪽 하늘을 향해 두 손을 합장하고 짙은 눈섭아래 쌍까풀눈을 살풋이 내리감고 뭐라고 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제나라 고향의 부모형제들을 그리며 울던 공주가 불쌍해  하느님께 명복을 빌고 있었다. 이윽고 살며시 뜨는 그녀의 쌍까풀 두 눈귀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주르를 흘러 두 볼을 적시였다. 그녀는 핸드빽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그때 제문 앞 맑은 호성하 강면을 스치며 잿빛비둘기가 훨훨 나래쳐 지나갔다. "불쌍한 제공주여, 저 비둘기처럼 날개라도 있었더라면 훨훨 날아 제나라 본가집에 날아갔겠는 걸. 참 너무나도 원통하군."  미라씨는 박문을 보고 나직이 물었다. “우리 한국 경주는 어느 방향에 있는가요?” 고향을 그리는 제공주 옛말을 듣고 분명 미라씨도 자기 고향이 생각난 것이리라. 박문은 윤선한테 눈길을 주었다. 윤선은 동북쪽을 가리켰다. “경주는 대개 저 방향에 있을 겁니다.” “알았어. 조카도 오라고. 우리 조상왕님들이 계시는 경주를 향해 명복을 기도드립세.” “네. 그렇게 합시다.” 미라씨는 윤선과 함께 경주가 있다는 동북쪽을 향해 돌아서서   두 손을 합장하고 두 눈을 살며시 감고 묵념에 빠진 채 조상들께 명복을 빌고 또 빌었다. 미라씨는 한 많은 망제터 제문을 떠나면서도 자꾸 한탄했다.  “제나라 공주 얼마나 고향이 그리웠겠어? 여기 망제터에는 제나라 공주의 눈물로 얼룩졌겠구나. 아, 제문에 맺힌 한이여.” 유람선은 한숨을 토해내는 그들을 싣고 또 호성하를 따라 서쪽으로 달려갔다. 초겨울 날에 때  아닌 보슬비가 부슬부슬 내려 제문의 한을 다스릴 길 없어 쓸쓸하기만 했다. 유람선은 소주역 맞은켠 평문(平门)에 이르러 속도를 죽였다. 평문 루각은 소주 옛성의 8대 대문 가운데서 젤 높고 잘 보존된 대문이였다. 실실이 드리운 실버들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평문과 재빛토성은 참말로 웅장해보였다. 군철은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소주시 정부에서는 40여억원이나 투자해 소주 옛성과 호성하, 대운하 등 력사문화재를 알뜰히 재수건했습니다.” 박문과 미라씨는 머리를 끄덕이며 탄복했다. 윤선과 애리싸는 평문과 소주역을 배경으로 박문총경리 부부한테 기념사진을 촬영해주었다. 하나는 나란히 선 군철과 애리싸한테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고풍스레 지은 평문루각과 소주역을 신기한 눈길로 둘러보며 미라씨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건뜻 반공중에 높이 쳐들린 추녀, 호성하가에 실실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넘실거리는 실버들, 화려한 유람선에서 희희락락거리며 손을 젓는 선남선녀들…금방 내린 햇비를 머금고  실버들은 맑게 개인 파란 하늘에 유난히도 아름다움을 넘실거리며 뽐내고 있지 않겠는가. 미라씨는 선경 같은 경치에 퐁당 빠져 턱을 고이고 유람선 머리에 서서 한참이나 명상에 잠겼다. “소주는 진짜 고풍스러운 명승고적이야. 첫인상 만점이야. 내 숱한 즉흥시와 기행문을 쓸 거 같애.” 미라씨는 남편을 돌아보며 연신 감탄했다. “그럼, 소주에서 마음것 구경하고 당신 좋아하는 시나 기행문을 쓰구려.” “다만 애들을 데리고 오지 못한 게 한이야.” “그럼 인차 애들을 데려오라구.” 그들 부부가 주고 받는 대화를 듣고 군철은 윤선과 하나를 돌아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사모님은 완전히 소주 명승고적에 빠져버려 인차 귀국할 것 같잖구나. 그럼 박총경리 고독공포증도 뚝 떼주겠는데. ㅋㅋ.” 유람선은 천천히 서쪽으로 미끌어져갔다. 유람선은 한참 달려 고소(姑苏)대문가 호성하에 이르렀다. 이 곳 호성하는 강폭이 백메터도 더 되게 넓었다. 호화로운 유람선은 산당가수향(山塘街水乡) 어귀 호성하에 이르러 멈춰섰다. 그들은 유람선에서 내려 고풍스러운 산당가를 돌아보며 마른 찹쌀떡도 사서 맛보았다. 산당가수향은 평강수향과 함께 소주에서 2500여년 전부터 있은 젤 오랜 유서깊은 수향이였다. 산당가에는 고풍이 완연한 수향풍치가 력력했다. 석판을 깐 거리 량켠에는 찹쌀떡, 양고기꼬치, 잉어꼬치 같은 수향의 먹거리가게 외에도 강남의 독특한 비단옷가게, 금은액세서리가게 등 가지각색 가게가 줄느런히 늘어서 있었다. 상업거리에는 발 딛일 틈 없을 지경으로 유람객들이 붐비였다. 군철은 가이드처럼 또 안내말을 엮어댔다.     “이 마른 참쌀떡은 옛날 오자서 장군이 소주 군민들 보고 군량으로 저장해두게 했던 떡이죠. 소주 사람들은 오자서 장군을 기리여 아직도 이 마른 찹쌀떡을 즐겨 먹는다고 해요.” 미라씨와 애리싸는 마른 찹쌀떡을 바삭바삭 씹어 먹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월궁교에 올라 산당가 옛 건물과 거리, 수로를 내려다보며 미라씨와 박문은 산당가의 독특한 강남 풍치에 또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산당가 부두에서 군철의 비서 경희가 화려한 자그마한 유람선을 대기시키고 있었다. 그들 일행은 부두에서 자그마한 유람선을 갈아탔다. 자그마한 쪽배유람선은 그들 일행을 싣고 폭이 10메터 좌우 되는 수로를 따라 서북쪽으로 미끌어져 나갔다.       선미에서 뱃사공이 노를 힘차게 저으며 강남의 부드러운 말로 배놀이 노래를 흥얼흥얼 불렀다.       한참 후에 그들은  소주 옛성 서북쪽 산에 우뚝 솟아 있는 호구(虎丘)의 사탑(斜塔) 아래 부두에 이르렀다. 뭍에 오르자마자 군철은 사탑을 가리켰다. “저기 저 사탑을 보세요. 왼쪽으로 비뚤지 않았는가요?” “네- 정말 삐뚤었는데요.” 미라씨가 감탄하자 박문도 덧붙였다. “비뚤었는데 어쩜 무너도 안졌어?” 군철은 사탑을 가리키면서 소개했다. “저 탑은 2천 5백여년 전에 제나라 공주의 아들 성(圣)이 오왕 위에 오른 후 父王 광과 母王太后(제나라 공주)의 산소 옆에 세운 망향탑(往乡塔)인데요. 오왕 성(圣)은  母王太后(齐国公主)가 생전에 거의 날마다 소주 성북의 망향터(望乡基)에서 제나라 고향 쪽 하늘을 한없이 바라보며 부모형제를 그린 눈물겨운 일을 잊지 못해 저 탑을 이 호구(虎丘)에 세웠지요. 호구는 제나라 쪽을 바라보기 젤 좋은 산이였죠. 호구는 소주 동북쪽에서 제일 높은 산인데요. 그래서 오왕은 호구에 부모 산소를 쓰고 그 옆에 탑(塔)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후에 수토층이 깔아앉으면서 탑이 왼쪽으로 기울었다고 합니다.” “오왕 성은 참말로 효자로군요.” 미라씨는 감탄했다. 군철은 머리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그래요. 저 탑은 연통처럼 속이 텅 비였는데요. 제나라를 그렇게 그리던 모왕태후의 혼이라도 그 속으로 날아올라가 제나라로 돌아가라는 념원,  효자 ㅡ 오왕 성의 념원이 담겨 있다고 해요. 사탑은 보세요. 세워진지 2천년도 넘었지만 탑이 좀 왼쪽으로 비뚤어졌을 뿐인데요. 오왕 성의 효성에 받들려 아직도 제나라 쪽을 바라보며 소주 땅에 서 있다고 해요.”  말하는 사이 호구 산 기슭에 놓인 서너길이나 높은 엄청 큰 향로 가까이에 이르렀다. 군철의 설명은 계속됐다. “오왕 성은 인부를 동원해 소주 옛성으로부터 사탑까지 수로를 팠지요. 금방 우리 배를 타고 온 수로 말이죠. 오왕 성은 해마다 청명과 추석 전 음력 7월 15일이면 이  수로로 호화로운 유람선을 타고 부모 산소에 와서 이 향로에 향을 태우면서 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박문과 미라씨는 향로를 향해 합장배려하고 두 눈을 꼭 감고 허리를 세번이나 굽히며 하느님께 속으로 빌었다.   제나라 공주 모왕태후의 명복을 빌었을가? 오왕 성의 효성을 빌었을가? 하늘이나 알고 땅이나 알리라. 그들은 천천히 걸어 낮다란 토성 대문을 지나 천천히 호구 산둔덕으로 올라가 탑 가까이에 이르렀다. 탑 아래서 탑 꼭대기를 올려다보니 눈뿌리가 아찔할 지경으로 높았다.  이끼 낀 탑 꼭대기에 구름이 걸릴 지경이였다. 윤선과 하나는 유서 깊은 사탑을 배경으로 박총경리 부부에게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미라씨는 터덕터덕한 사탑에 다가가 재빛벽돌탑을 매만지더니 너무나 의경이 짙은 사탑을 두고 시흥이 끓어번져 즉흥시조를 읊었다.                                     사탑(斜塔)                                         2천년 세월 흘러 기념탑 비뚤어도          왕자의 충효심은 퇴색치 않았구나          장하다 효자 왕자여 천년만년 기리리     “명시조 탄생을 축하합니다!” 모두들 박수갈채를 보냈다. 미라씨는 경건한 마음으로 한참이나 사탑을 쳐다보다가 군철을 따라 호구 산둔덕을 내려갔다. 왕족들이 제사를 지내고 쉬던 옛날 차집도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지 않겠는가. 군철은 그들 일행을 데리고 차집에 들어갔다. 미라씨는 옛 차집 창가에 앉아 커피를 호호 불어 마시면서 호구 산 아래를 내려다 보노라니 감회가 깊었다. 산 아래에서는 겨울이건만 락엽이 우수수 지는 산 기슭에 푸른 참대숲이 설레이고 월계화가  꽃웃음짓고 있어 별유천지였다. 한참 후 그들은 산 중턱에 있는 벽계수에 놓인 석조 궁형다리 위에 올라갔다. 군철은 미라씨한테 알려주었다. “저 절벽 밑에 오왕 광과 왕비(제나라 공주)의 무덤이 있다고 해요. 오왕 성은 부모의 산소가  후세인들한테 들키지 않게 하려고 벽계수 물을 가두어 산소를 물로 묻어버렸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산소 입구를 찾지 못하고 있지요. 사탑이 한쪽으로 비뚠 것은 이 벽계수 수토층이 한쪽으롤 낮아졌기 때문이라고도 해요.” 미라씨는 머리를 끄덕였다. 궁형다리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백여평방메터나 넓이나 되는 빤빤하고 경사진 거대한 석판이 나타났다. “오왕은 부모의 산소와 탑을 다 건설한 후 내부시설 비밀이 루설될가 봐 목수와 석공, 민공 등 천여명이나 이 넓은  석판에 모여놓고 몽땅 칼탕쳐 죽였다고 합니다. 이걸 보세요. 이 돌판이 아직도 벌겋잖아요? 그때 살해된 인부들의 피로 물들어 아직도 돌판이 뻘겋다고 해요.” 군철의 설명을 듣고 미라씨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끔찍하기도. 아무리 효성이 중해도 어쩜 무고한 백성들을 지독하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요?” 그녀는 쓸쓸히 머리를 들어 산정에 우뚝 솟은 한 맺힌 사탑을 다시 쳐다보았다.        하늘도 구슬퍼 눈물을 흘리는가. 초겨울 하늘에서 불시에 보슬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아마 왕자가 지독한 마음을 삐뚤게 먹고 백성을 도륙냈다고 탑도 비뚤어졌겠어요.” 미라씨는 산당가에 되돌아와 유람선을 타고 호성하를 달리면서도 자꾸 사탑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즉흥시조를 더듬기 시작하였다.               한 많은 사탑아         왕자의 효성에야 머리를 숙인다만       백성들 비명소리 귀전에 쟁쟁하다        한 많은 사탑아 원귀 곡성안고 무너져라         어느덧 서산에 황혼의 락조가 유람선을 업고 달리는 호성하를 누렇게 비추었다. 뒤이어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내리드리우기 시작하였다.       유람선은 소주 옛성 서쪽 중간에 난 서문(胥门)을 지나 호성하를 스피드를 높여 달리고 있었다. 군철은 소주 명승고적 자랑을 늘여놓았다. “소주 구경은 이제 시작인데요. 아마 한달 동안 구경해도 다 구경하지 못할 걸요. 소주에는 명승고적 원림이 많아요. 졸정원(拙政园)사자림, 오원(藕园), 류원(留园)...  또 수향(水乡)도 많아요. 주장(周庄), 동리(同里) ...  수많은 수향 너무 독특한 풍치 있는데요." "소주 구경거리 너무도 많지요. 한달이나 두달에 다 볼 거 같지 못해. ” 군철이 끼여들었다.  미라씨는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그래요? 한달이면 어떻고 반년이면 어때요. 온 바 하고는 소주 구경 다 해야죠. 소주 유람 참 좋아요.” 박문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소주 구경뿐이겠나? 우리 이제 항주 서호, 해남도 천애지각, 북경 만리장성, 남경 장강대교 다 구경해야지. 안 그래?” “네." 군철은 미라씨에게 권했다. "사모님은 소설가시니깐요. 절강 소흥에 가서 중국 유명한 작가 로신의 고향도 돌아보아야죠. 오진에 가서 유명작가 모순의 고향도 돌아봐야죠." "그래요. 중국 명승고적이랑 작가 고향이랑 실컷 구형해야죠.” “OK!” 미라씨의 말에 박문은 군철을 돌아보며 엄지와 식지를 딱 튕기며 희죽이 웃었다. 미라씨는 유람선을 타고 호성하를 돌며 소주 옛성의 황홀한 야경을 구경하면서도 아직도 한 많은 사탑을 생각하며 비감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유람선은 초롱불이 환한 반문에 이르렀다.       반문의 항홀한 야경은 더욱 가관이였다. 미라씨의 눈 앞에는 반문 루각에서 마치 장검을 휘두르며 전투를 지휘하는 오자서 장군의 거룩한 모습이 방불히 보이는 상 싶었다. 달 밝은 밤에 대운하에 전고소리 둥둥 울리고 용사들의 고함소리 천지를 지동친다.        달리는 대형유람선에 불시에 림대옥이 나타났는가. 옛날 아가씨 복색을 한 이쁜 강남 처녀가 해금을 뜯으면서 청아한 목소리로 강남풍의 곡조로 제나라 귀공주의 "사향가"를 간드러지게 불렀다. 노래 가사도 쓸쓸한데 곡조가 어찌나 제나라 공주의 애절한 심정을 담아 쓸쓸히 노래하는지 달 밝은 밤에 유람선을 타고 달리는 유람객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박총경리와 미라씨는 소주 옛성 야경 정취에 흠뻑 취해 강남 아가씨가 부르는 "제공주의 사향가"를 흥에 겨워 흠상하였다.       달리는 유람선을 따라 구중천의 밝은 별들도 인간세상의 희로애락을 즐기려고 호성하에 날아내려와 자맥질하며 금싸락 은싸락을 휘뿌린다.        저기 저 오색령롱한 등불이 걸린 웅장한 반문 앞 높다란 궁형아치교 위에서는 아가씨들이  발돋음하며 련정을 못이겨 보름달과 키스한다. 
290    대하소설 졸혼 제4권 (54) 김장혁 댓글:  조회:1482  추천:0  2022-10-31
          64. 오자서와 미녀 서시         링컨하이야는 박문 총경리 부부를 싣고 웃음꽃을 피우며 소주 옛성 동남쪽 귀퉁이에 자리잡은 반문(盘门)공원 광장에 이르렀다.      윤선은 벌써 표를 사쥐고 대기하고 있다가 링컨하이야 뒷문을 열어제끼며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세요?”       “그래. 우린 윤선이만 있으면 시름 싹 놓인다니까. 허허허.”       박문 총경리는 안해 손을 잡고 내렸다. 군철과 애리싸는 그들을 안내해 반문공원에 들어섰다. 명태조 주원장이 세웠다는 9층탑이 그들을 숙연히 마중했다. 군철은 평소에 애 둘을 키우는데다 일이 바빠 애리싸를 여기 데리고 구경시키지도 못했다. 애리싸도 호기심에 찬 눈길로 탑을 쳐다보고나서 미라씨한테 권유했다. “탑에 올라가 보죠.” “yes. 탑은 올라가 봐야 구경하는 멋이 있지.” 윤선은 미라씨와 애리싸를 이끌고 탑 안으로 들어가 나무층계로 해 올라갔다. “층계가 가파로운데요. 주의하세요.” “그래. 알았어. 우리 경주 김씨는 요렇게 자상하고 살뜰하다니깐. ㅎㅎㅎ.” 미라씨는 윤선을 치하했다. 한참 후 미라씨와 애리싸는 헐떡이며 탑 꼭대기층에 이르렀다. 란간을 잡고 아래를 굽어보니 푸른 수림 속에 거울처럼 맑은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겨울인데도 푸르른 참대숲이 설레여서 별유천지라는 감을 주었다. 저 멀리 재빛토성에 “오(吴)”자가 박힌 자주색 행화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추녀가 건뜻 들린 반문 루각이 우뚝 솟아 있었다. “진짜 선경 같구려. 소주에 이렇게 고색이 짙은 경치도 있어? 저기 저 참대숲을 보니 우리 고향 경주의 참대숲이 떠오르네.” 미라씨는 연신 감탄하면서 윤선한테 얼굴을 돌렸다. “윤선은 경주에 가보았어?” “네, 가보았지요.” 미라씨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잘했어. 뿌리를 잊지 말아야지. 경주 토함산에서 불국사로 내려오는 령길엔 이맘 때면 푸른 참대숲이 설레이지,” 윤선은 탑 위에서 미라씨한테 참대숲과 반문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해주었다. “조카, 우리 둘이 기념으로 한장 찍자.” 미라씨는 윤선과 나란히 섰다. 애리싸는 미라씨의 핸드폰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해주었다. 찰칵, 찰칵. 미라시는 윤선의 팔을 놓고 핸드빽에서 명함장을 꺼내들었다. “내 명함인데. 오전에 ‘대상해(大上海)’라는 즉흥시조 한수 썼는데요. 기념으로 드리죠.” “네- 감사해요.” 윤선은 명함을 받아 뒤에 쓴 시조를 보고 연신 감탄했다. “참 멋진 시조군요.” “그저 수필이랑 소설이랑 좀 긁적거릴뿐이야. 시는 좀 기분나면 음풍영월할뿐이야.” 미라씨는 해죽이 웃으며 윤선을 보고 물었다. “윤선은 시조 쓰지 않나요?” “전 리공과생이여서 못 써요.” “어느 대학을 나왔나?” “길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석사를 나왔어요.” “와- 참 대단해." 미라씨는 옆에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 애리싸 밖에 없는지라 속심의 말을 했다. "꼭 크게 쓰일 거야. 내 고모부한테 잘 부탁해놓을게.” “고맙습니다. 고모님.” 윤선은 허리 굽혀 인사하고나서 물었다. “저의 아빠 쓴 시조 볼래요?” “오. 그래 좀 보자구.” 윤선은 멜가방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 드렸다. “이건 저의 아빠가 지난해 봄에 40여년만에 상해 황포강가에 왔다가 지은 즉흥시조예요.” 미라씨는 시조를 받아 유심히 살펴보았다.                  대상해                                조왕돌   외탄에 파묻어둔 청춘이 반겨맞소          황포강  41년 전 추억을  담아주네          세월은 흘러 갔건만 청춘 꿈은 푸르오   “와- 과시 명시조로군요.” 미라씨는 연신 감탄했다. 그녀는 조왕돌의 시조를 탑우에서 거닐면서 감정을 몰입해 랑송하며 음미했다. “상상력이 참 풍부한 시라니께. 아빠 시를 많이 썼겠군요.” “아닙니다.” 윤선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빠는 몇해 전에 기자를 그만 뒀어요.” “왜? 우리 경주 김씨네 남자들 다 저렇게 나약하다니깐.” “로백성들을 위해 여론감독을 못할 바엔 회의보도나 하자고 기자를 하겠는가? 이렇게 항상 불평을 토로했지요. 나중에 기자를  그만두고 광고업을 시작했습니다.” “오- 그래. 잘 했어. 음풍영월해서야 무슨 돈 벌겠어. 광고업 참 좋아. 돈벌이야 잘 되겠지?” “네- 양로비용은 벌 것 같아요.” “그럼 됐어. 언제 오빠를 만나봤으면 좋겠어.” "만날 기회가 있겠지요." 미라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서 박총경리와 군철 부총경리가 탑을 올려다보면서 빨리 내려오라고 손짓했다. 이윽고 미라씨는 탑을 내려오면서 애리싸한테 영어로 말을 걸었다. “애리싸는 어떻게 돼 최부총경리를 알게 됐어?” “네-“ 애리싸는 속임없이 대답했다. “저와 군철씨 여동생 지예랑 이 윤선이랑 하나랑 모두 미국 하버드대 때 동기죠. 저는 지예를 따라 소주에 오게 됐어요.  지예가 소개해줘서 군철씨를 알게 됐어요.” “군철씨와 결혼할래요?” “결혼?” 애리싸는 층계를 다 내려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오마이갓, 결혼, 그렇게 중요한가요? 지금 동방에서는 졸혼 바람이 부는 시대라고 하던데요. 황차 우리 서양에서는 성해방, 성자유를 주장하는데요. 결혼 안 해도 애인으로 자유롭게 살면 안되는가요? 호호호.” 애리싸는 군철도 들으라고 일부러 높이 말하는 것 같았다. 군철도 듣고 씨무룩이 웃기만 했다. 윤선은 박문 부부를 이끌고 탑을 에돌아 거울처럼 맑은 호수가에 갔다. 호수에는 거꾸로 비낀 우중충한 나무를 타고 흰 구름송이들이 오리무리처럼 떠다니며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참말로 별유천지였다. “기념으로 사진이나 한장 찍기오.” 군철의 말에 윤선은 호수와 탑을 배경으로 두 총경리 부부들의 기념사진을 찰칵찰칵 촬영해주었다. 뒤이어 군철은 소주 옛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소주 옛성은 기원전 4- 5백년 전 춘추전국 때부터 축조하기 시작했죠. 그러니깐 이젠 소주는 2천 5백여년이란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 있죠.” “참 유서 깊은 옛성이군요.” 그들은 어느덧 반문 옆에 있는 오자서 장군 사당에 이르렀다. 군철은 박문 부부를 이끌고 사당에 들어가며 설명했다. “이 사당은 오나라 오자서장군을 기념해 지은 사당인데요. 오자서장군은 우리 소주 옛성을 축조한 력사적으로 유명한 장군입니다.” 사당 안에는 검을 잡은 거대한 오자서장군의 전신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사당 안에는 오자서 승상의 생전, 몇천년 전 가옥과  병기 외에도 후세 사람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여 그린 력사이야기 련환화도 전시돼 있었다. 군철은 박총경리 부부한테 경건한 마음으로 오자서 장군을 소개해주었다. “오자서(伍子胥)는 지금부터 2500년 좌우 전국시기 초나라(지금 안휘성, 호북성, 호남성 지역) 사람인데요. 모사입니다. 그는 선친이 초왕에게 억울하게 살해되자  오나라에 도망쳤지요.” 옆에서 윤선이 애리싸한테 영어로 나직이 번역해주었다. 박문 총경리 부부는 련환화를 보면서 군철의 설명을 귀담아 들었다. “소주 옛성은 둘레가 18킬로메터나 돼요. 2천 500여년 전 전국춘추 때부터  건설됐는데요. 몇해 전에 소주시에서는 40억원을 투자해 이 유서 깊은 소주 옛성을 재건했지요.” 미라씨와 박문은 머리를 끄덕였다. 군철은 가이드처럼 소주 옛성을 아주 체계적으로 소개해주었다. “당시엔 소주를 평강(平江),혹은 고소(姑苏)라고 불렀지요. 오자서는 오나라 수부 평강에 왔을 때 처음에는 거리를 다니면서 피리나 불며 답답한 마음을 달래며 류랑하였습니다. 당시  오나라 태자 광(光)은 넷째 삼촌 료(辽)한테 빼앗긴 왕위를 찾자고 암암리에 모사와 무사를 긁어모았지요. 어느 하루 태자 광은 거리에서 떠돌며 피리를 부는 오자서의 비범한 용모를 보고 자기 집에 데려갔지요. 그는 오자서의 귀족신분을 확인한 후 오자서를 보고 왕위를 되찾아달라고 부탁했지요. 오자서는 태자 광에게 물고기를 잡아 근근득식하며 사는 무사 전제한테 황금을 주어 은혜를 입히게 했지요. 전제는 태자 광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았지요. 오자서는 오왕의 생일날에 태자네 집에 생일연회를 차리게 하고 하인을 시켜 오왕을 청해오게 했지요. 오왕 료(합려)는 조카 광을 의심하지도 않고 제 시간에 광네 집에 와서 생일연회석에 들어갔지요. 오자서는 무사 전제를 시켜 물고기 배에 비수를 넣은 물고기채대야를 연회상에 올리게 했지요. 전제는 주방일군으로 가장하고 물고기채대야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연회상에 다가갔지요. 전제는 물고기 배에 커다란 손을 넣어 불시에 예리한 비수를 빼들어 오왕 료의 목을 찔렀지요. 전제는 오왕이 죽지 않았을가봐 목이 떨어질 때까지 칼질해 가슴에 벌집처럼 구멍을 숭숭 뚫어놓았습니다. 호위병들은 그 돌발적인 사태에 어정쩡해 구경하다가 뒤늦게야 정신 차리고 전제를 칼탕쳐 죽였지요. 오왕은 암살당하고 태자 광이 왕외에 오르게 됐지요.” “오- 정말 무시무시한 이야기군요.” 박문 총경리는 연신 한탄했다. “왕위를 되찾게 되자 오왕 광은 오자서에게 승상을 시켰지요. 오자서는 오나라 수부 평강(오늘의 소주 고성)  백성들을 령솔해 토성을 높이 쌓고 해자를 깊이 파고 찹쌀떡을 많이 저장해두게 하였습니다. 오자서는 지금의 절강, 복건, 광동 지역에 둥지를 틀고 있는 월나라와 산동 남쪽에 있는 제나라의 침략을 막을 만단의 준비를 했습니다.  오자서는 또 오왕 광을 보고 미녀 서시를 멀리하고 월나라와 화해하지 말며 제나라를 원정하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화를 당하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요. 오왕 광은 배은망덕하고 단상에서 예리한 검을 내리뿌려주면서 오자서를 보고 자결하라고 명했습니다. 그리하여 충신 오자서 장군은 그만 우매한 오왕 광의 핍박에 못 이겨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오왕 광은 오자서의 충고를 듣지 않고 월나라에서 보내온 미녀 서시를 끼고 날마다 술판을 벌리고 정사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오왕 광은 월나라  미녀 서시의 미인계에 들어 끝내 나라가 엉망이 돼갔지요. 죽기 전에야  오왕 광은 오자서의 충고를 안 듣고 오자서 장군을 잘못 죽인 것을 통탄했다고 합니다.” “에이, 참, 너무 비참해요. 력사적으로 충신은 오래 살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일이 많고도 많았지요. 충신의 죽음이 너무 아타깝네요.”        미라씨는 도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오자서 장군의 동상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머리를 숙연히 숙였다. 그녀는 눈물이 글썽해 오자서 장군 동상의 커다란 손을 매만지였다. “기념사진을 찍어주세요.” “네.” 박문과 미라씨는 오자서 장군의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뒤이어 그들은 군철의 소개를 계속 경청했다. “ 2천년래 소주 사람들은 오자서 장군을 기리여 오자서 장군의 이 생전 가옥 울 안에 사당을 짓고 해마다 오자서 장군 사당에 찾아와  향을 올리며 추모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소주 옛성 주위에 오자서 장군의 동상이 여러개 세워져 있습니다. 소주 마른 찹쌀떡(糯米饼)은 오자서 장군이 당시 백성들 보고 저장하게 한 떡인데요. 지금도 소주 사람들은 오자서 장군을 기리면서 마른 찹쌀떡을 즐겨 먹는다고 합니다.” 때마침 떡장사가 오자서 생가 앞마당에서 소주 마른 찹쌀떡을 파는 것이 보였다. 그들 일행은 미라씨의 말에 따라 오자서 장군에 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찹쌀떡을 사서 맛보았다. 미라씨는 오자서 장군 생가 대문을 유심히 되돌아보면서 연신 한탄했다. “아, 소주 옛성에는 비장한 이야기도 있군요. 소주는 유서 깊은 곳이군요.” 오자서 장군 생가 토성 옆의 참대숲도 구슬프게 설레였다. 정원의 나무에서 락엽이 우수수 지면서 쓸쓸한 마음이 겹겹이 더 쌓이게 하였다. 월계화가 곱게 피여 웃으며 오자서 장군의 억울한 혼을 위로해주는 상 싶어 더욱 쓸쓸했다. 윤선의 안내를 받으면서 미라씨 등은  반문 옛성곽 루각에 올라가 둘러보았다.       옛장수 복색을 한 장군과 무사들이 칼을 차고 름름한 자태로 루각과 성곽 요새마다에 서 있었다. 그 무사들 속에서 당년에 긴 검을 차고 오나라 군사들을 지휘해 왜적들과 싸우던 오자서 장군을 보는 상 싶어 더욱 애절해났다. 귀가에는 전고가 둥둥 울리고 전마가 호용하고 오자서 장군의 함성이 지동치는 상 싶었다. 진짜 당년의 춘추전국 시기 오나라 반문 성곽보위전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반문 옹성 밖의 돌토성에는 륙로로 통한 대문과 수로로 통한 수문이 바라보였다. 수문 쇠살창 밑으로는 맑은 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옛날에는 이 수로를 통해 선박들이 군사를 싣고 소주 옛성곽을 출입했다고 합니다. 소주 옛 시내에는 거리마다 수로가 가로세로 뻗어 있어 기본상 배로 통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지금도 소주 옛성 동남구역의 평강거리에는  수로가 가로세로 뻗어 있어 쪽배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습니다.”           윤선의  설명을 듣고 미라씨는 부쩍 호기심이 동했다. “언제 시간 나지면 평강거리에도 가보죠.” “네, 그렇게 합시다.” 군철이 시원히 대답했다. 미라씨가 반문 잿빛벽돌토성 남쪽을 바라보니 폭이 100메터도 넘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대운하에는 유람선과 화물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가고 있어 일대 강남풍경을 이루었다. 미라씨는 손으로 그 강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저 강은 무슨 강인데요?” “대운하죠. 소주 옛성 토성에는 반문 같은 문이 여덟개나 있고 옛토성(古城墙) 밖에는 저렇게 대운하와 호성하(护城河)가 흐르고 있습니다.” “네. 해자가 저렇게 넓은 강으로 돼 있군요. 참 장관인데요.” 군철은 미라씨가 대운하에 부쩍 관심을 가지자 인차 새 제의를 했다. “형수님, 그럼 대운하에서 유람선을 타고 배놀이하면서 소주 예성을 둘러볼가요?” “참 좋아요.”      박문 부부는 오자서 장군에 대한 경건한 마음을 지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반문 루각에서 내렸다. 그들 일행은 륙로 대문으로 나가 대운하 부두에 다가갔다. 부두에는 벌써 박 총경리의 녀비서 은희가 유람선을 마련해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유람선은 그들을 싣고 대운하에서 서서히 미끌어져나갔다. 유람선이 이윽고 커다란 세개 궁형으로 된 아치교 밑을 지나갔다. 유람선에서 반문 루각을 돌아보니 아주 웅장하고 고풍스러웠다. 대운하가에 우뚯 솟은 재빛토성에서는 전마가 호용하고 장수들의 고함소리가 들리는 상 싶었다. 미라씨는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박문은 안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반가웠다. (안해를 소주에 붙들어둘 일루 희망이 보이는구나. ㅎㅎ.) 윤선은 또 대운하를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이 대운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습니다. 대운하는 중국 수조 수양제 시기에 판 것으로 알려집니다. 대운하는 북에서 북경으로부터 남으로 항주에 이르는 수천리 수로입니다.”    “엄청 길군요. 이런 큰 강을 어떻게 수천리씩이나 팠을까요? 대국은 대국이야.”  미라씨가 연신 혀를 끌끌 찼다. “수양제는 대운하 량안의 수백만명 백성들을 동원해 이 대운하를 팠지요. 수양제는 강남을 순찰할 때면 화려한 대형유람선 수십척을 휘동해 대운하로 해 남하하였다고 합니다. 그때면 대운하 량안 10리 안의 백성들이 모두 돼지나 닭을 잡아가지고 와서  바쳐야 했지요. 수양제 순찰어선이  다가오면 당지 백성들과 관리들은 모두 대운하 수십리 량쪽에 꿇어엎뎌 ‘우리 황제 만세!’를 높이 불러야 했다고 합니다.” “우와- 그때 굉장했겠어.” 유람선은 어느덧 남쪽 토성과 소주 옛성 중심거리로 통하는 남대문에 이르렀다. 대운하 량안에 푸르른 참대숲이 초겨울 바람에 설레이며 강남 록색풍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룡두유람선, 목조루각유람선들은  희희락락거리는 유람객들을 싣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얀 물갈퀴를 일구며 달아다녔다. 유람선과 유람선이 대운하에서 만나면 유람객들은 서로 손을 젓거나 수건을 흔들며 반겼다. 유람선은 어느덧 소주 옛성곽 동남쪽 귀퉁이에 자리잡은 사문(蛇门)에 이르렀다. “여기서 내려 사문 루각에 올라가 구경합시다.” 군철의 말에 모두들 유람선에서 내려 사문쪽으로 이동했다. 한참 후에 그들은 참대숲을 꿰질러 옛토성에 올라 사문 루각에 이르렀다. 사문에는 반문의 루각보다 더 높고 큰 2층 루각이 우뚝 서 있었다. 넓다란 사문 보루에는 풍향계, 커다란 북, 옛 대포가 진렬돼 있었다. 군철은 사문을 가리키면서 소개했다. “오나라는 소주지역을 중심으로 장강 남쪽을  차지했는데요.  오나라 주적국은 소주 남쪽, 지금의 절강과  복건, 광동 지역을 차지한 월나라였습니다. 월나라는 속칭 뱀의 나라라고도 하였습니다. 오나라 승상 오자서는 소주 옛성 성곽 동남쪽 월나라 방향으로 이 사문(蛇门)을 건축하고 사문(蛇门) 밖에 두갈래 뱀모양의 해자를 깊이 파놓고 토성 밖에서 월나라 침략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미라씨는 옛 대포 아구리를 손으로 만지면서 군철의 설명을 귀담아 들었다.  “월나라 국사 범계는 항주 부근 미녀 서시를 오왕에게 보내 겉으로는 화친할 상 하고 암암리에 미인계를 써서 오나라를 망하게 만들려고 들었지요. 오자서는 월나라 모사 범계의 음모를 간파하고 오왕 광에게 미녀 서시를 버리고 정사를 돌보며 월나라와 화친하지 말라고 충고했지요. 그러나 오왕은 오자서의 충고를 안 듣고 오자서를 자살하게 한 후 무석 태호 부근에 별장을 짓고  날마다 미녀 서시를 끼고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미녀 서시는 망해가는 오나라 정치, 군사, 경제 정보를 월나라에 빼보내 오나라가 월나라에 엉망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미녀 서시는 남편 오왕을 죽게 한 죄책감에 나중에 태호에 뛰여들어 자살했습니다.” “남편을 잡아먹은 년 천번만번 죽어 마땅하죠.” 미라씨는 자못 격분해했다. 윤선은 머리를 끄덕였다. “고모님도 이후에 무석에 가면 태호가에 세워진 미녀 서시 기념관과 미녀 서시 동상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네, 그러죠. 중국엔 구경거리도 많고 재미나는 력사이야기도 많아 참 좋아요.” 미라씨의 말을 듣고 박문 총경리는 흐뭇해했다. (그래, 진작 그래야지. 당신이 여기에 마음을 붙여야 내 살 날이 오지. ㅎㅎㅎ.) 그는 속으로 이렇게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중국의 숱한 명승고적이 저 녀편네를 오래오래 꽉 붙들어 두옵소서.) 군철의 설명은 계속 됐다. “오자서는 죽기 전에 월나라 국사가 왕위를 찬탈하련다고 리간계밀서를 써놓았댔습니다. 오자서의 심복이 그 밀서를 월왕에게 전하였지요. 그 밀서를 보고 월왕은 자기 스승인 범계를 의심하기 시작해 죽이려고 미쳐 날뛰였습니다. 범계는 제자 월왕이  언젠가는 자기를 꼭 죽이려고 할 거라고 예감했지요. 그는 월왕에게 미녀 서시로 미인계를 써서 오나라를 망하게 하라고 간한 후 인차 절강 려수 산굴에 숨어 중이 돼 살았다고 합니다. 재작년에 제가 범계가 만년에 은거한 려수 산굴을 돌아보았는데 감회가 깊었습니다.” “에잇, 왕들은 다 배은망덕해. 인간성이란 꼬물만치도 없어.” “글쎄 말이야. 어찌 자기를 도운 은인충신이나 스승까지 다 잡아죽이려 해?” 사문 루각에서는  은인도 충신도 몰라보고 스승마저 잡아 죽이는 배은망덕한 배신자에 대한 원망소리가 연발했다.        아, 오늘도 옛성에는 수천년 전에 맺힌 한이 휘몰아쳐 사람들을 괴롭혔다.
289    대하소설 졸혼 제4권 (53) 김장혁 댓글:  조회:1396  추천:0  2022-10-25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권       63. 황포강안 마천루   황포강안에 우뚝 솟은 금무호텔 앞에 링컨하이야와 보마찌프가 귀빈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군철과 애리싸는 하이야 옆에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윽고 귀부인 미라씨가 호텔에서 남편의 팔을 끼고 만면춘풍이 돼 영화배우처럼 사뿐사뿐 걸어나왔다. 그녀는 오늘 따라 한복 위에 긴 하늘 색 외투를 껴입어 한결  시원해보이고 아름다워 보였다. 장미꽃이 박힌 하얀 중절모 대신 배모자만 쓰면 공중아가씨만 못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가 가까이에 다가올수록 짙은 눈섭아래 예지로 빛나는 쌍까풀눈은 성숙미를 한껏 돋보이게 했다. 다른 귀부인들처럼 금은장신구는 다닥다닥 걸진 않았다. 하지만 팔에 미색 핸드빽만 끼여도 얼마든지 고상한 품위를 빛뿌리기에는 충족했다. “안녕하세요? 형님, 사모님.” 군철과 애리싸가 마중나가며 허리를 꿉썩, 꼽싹 굽히며 반겨맞았다. 군철은 리나와 가정모 보고 애들을 학교에 유치원에 데려가라 하고 오전엔 애리싸를 데리고 왔던 것이다. 미라씨는 미국이라면 뭐나 엄지를 내두른다는 말을 듣고 애리싸를 내세우려는 군철의 시도였다.  미라씨도 황망히 머리를 숙이며 군철의 인사를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최총경리께서 직접 나오셨어요? 고마워요.” “Good morning?” 애리싸가 금발머리를 흩날리며 허리굽혀 인사하였다. 미라씨는 영어로 화답하며 신기한 눈길로 애리싸를 바라보았다. “Good morning? are you?” 미라씨는 애리싸와 군철을 번갈아보며 신기하게 물었다. "귀 회사에도 금발미녀가 있는가요?" "아닌데요. 미국 제약회사 기술자인데요. 저의 녀동생하구 하버드대학 동기인데요. 지금 중국에 와서 한 회사에 다녀요. 사모님을 동무해 관광하라고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군철은 애리싸를 애인이라고 덧붙였다. “네- 녀동생도 데리고 오죠.“ "후에 봅시다." 군철은 미라씨한테 의견청취를 했다. “오늘은 소주에 가서 대운하와 옛성을 돌아보는 것이 어떤가요?” 미라씨는 링컨하이야에 다가가면서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아직 상해도 제대로 구경 못했는데요. 소주 옛성은 뭘 구경할게 있는지요?” 군철은 꽤나 난처하게 됐다. “네- 미안해요. 구경은 그래도 소주인데요. 제가 주밀하게 예산하지 못했는데요. 그럼 먼저 상해 황포강에서 배놀이 할가요?” 미라씨는 군철에게서 눈을 떼고 호기심에 찬 눈길로 하늘을 찌른 마천루군을 둘러보는 것이였다. 그러자 군철은 인차 눈치챘다. 즉시 관광코스를 변경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맞아요. 상해 구경은 마천루와 황포강 량안 구경인데요. 그럼 먼저 상해 마천루부터 구경할가요?” “좋아요.” 윤선이 허리굽혀 인사하며 링컨하이야 뒤문을 열었다. "총경리님, 사모님, 어서 오르세요." "그러죠. 우머. 멋지군요." 미라씨는 윤선을 보고 첫눈에 호감이 가 알은 체했다. "이름 어떻게 부르죠?" "김윤선이라고 불러요." "김씨군요." 미라씨는 차에 오르려다가 주춤 멈춰서며 윤선한테 얼굴을 돌렸다. "무슨 김씨인가요?" 윤선은 웃는 얼굴로 마주 바라보며 화답했다. "경주 김씨입니다." 미라씨는 차에 오르면서 환성을 질렀다. "그래? 아니, 여보, 여기서 종친을 만났군요." "그래? 기쁘겠네." 미라씨는 윤선한테 자기도 경주 김씨라고 하더니  남편 보고 부탁했다. "우리 종친을 잘 보살펴주세요." "그러고 말고. 부인님 부탁인데. ㅎㅎㅎ." 미라씨는 반기며 윤선한테 손을 내밀었다. "우리 잘 보내자고. 허리를 쭉 펴고 일하게나. 우리 경주 김씨는 조선 신라 천년 통치한 왕족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하라고. 우리 차에 오르라고." "네?" 윤선은 감히 차에 오르지 못하고 군철의 눈치를 보았다. "오르라고. 오늘 사모님을 잘 모시라고." "넷." 윤선은 그제야 링컨하이야 앞좌석에 올라탔다. 미라씨는 남편을 돌아보며 물었다. "운전수도 조선족인가요?" "아니, 중국 인 왕용이요. 터놓고 말해도 괜찮아. 알아 못 들어." "오- 아주 주밀하군요." 미라씨는  앞좌석에 앉은 윤선의 머리에 얼굴이 닿을 지경으로 다가앉으며 화기애애하게 물었다. "윤선이, 집에 족보랑 있어?" "있어요." "경주 김씨 몇대 손인지 알아요?" "아버지가 저를 경순대왕의 33세손이라고 하던데요." "그래? 그럼 나하고는 조카벌이군요. 난 경순대왕의 32세 후손녀죠. 우리 고모와 조카로 보내자고. 이제부터 이 령감을 고모부라고 불러요." 윤선은 돌아앉으며 상전의 눈치를 보며 희죽이 웃었다. 박문은 사람좋게 웃으며 정색했다. "그래, 우리 회사에서 처조카를 하나 얻어 기쁘네. 이젠 고모부라고 부르라고. 그러나 회사에선 우리 관계를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안 그러면 불편해져." "네- 알겠습니다." 미라씨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야죠. 관계가 홀딱 밝혀지면 후에 고모부 조카를 생각해주자고 해도 눈치 보일 거 아니야?" "알겠습니다." 미라씨는 윤선을 치켜 올렸다. "여보, 보라고. 우리 경주 김씨네 남자들 모두 얼마나 잘 생겼어? 왕의 후손이 다르긴 다르다니깐. 호호호." "그래. 신라는 우리 밀양 박씨하고 경주 김씨네 조상왕들의 세상이였지." "당신도 신라 왕족 박씨 후손이 돼 얼마나 사내대장부처럼 잘 생겼는가요. 호호. 아무튼 조카를 잘 생각해주세요. 안 그럼 혼날줄 아세요." "그래. 당신 오자마자 중국에도 세력의 손을 뻗치는구만. 허허허." "안 그럼 옛날 우리 경주 김씨네 녀왕이 셋이나 있었겠어. 진성녀왕, 진덕녀왕, 선덕녀왕..." 미라씨는 도고한 자태로  끊임없이 조상자랑을 늘여놓았다. "윤선이 아빠, 무슨 사업하는가요?" "아빠는 기자 사업을 하다가 그만 뒀어요." "오- 문재로군요." "명함 어떻게 불러요?" "조왕돌입니다." '오- 이름 또한 독특하구먼. 후에 기회 있으면 만나보자고." "네. 음력설에 올 겁니다." "그래? 참 아쉽군요. 전 음력설까지 있을 거 같잖은데." "참, 중국 종친 오라버님도 만나고 여기서 놀라고." "애들은 어쩌고?" 박문은 그 틈을 비집고 오래 생각해둔 말을 끼워넣었다. "겨울 방학에 애들을 설 쇠러 여기 오라면 되지. 상해 구경도 시키고." "맞아. 중국 첫 인상 좋으니깐요. 고려해볼만 해요. " 한편 군철은 대화기로 링컨하이야 운전수 왕용한테 지시했다. “세계금융중심마천루 앞으로 몰게.”      링컨하이야는 박문 총경리 부부를 싣고 순식간에 맞은켠 세계금융중심마천루 앞에 스르르 미끌어져 가 멈춰섰다. 뒤이어 엘레베이트는 귀빈들을 싣고 순식간에 100층도 넘는 마천루 꼭대기에 올라갔다. 마천루 꼭대기 층집 대형유리창 밑에서 하얀 구름이 서서히 흘러가고 있었다. 미라씨는 마천루에 서서 상해 시내를 둘러보며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서울탑이 울고 가겠어.” “그래?” “이제 상해에서 젤 높은 저 마천루에 올라가면 정신이 번쩍 들 거야.” “저 젤 높은 마천루에 올라가보죠.” “그러지.” 박문은 인차 군철한테 다가가 안해의 요구를 전해주었다. “네, 그러죠. 소주는 언제 갈가요?” “상해 구경을 다 한 후 천천히 가지.” 박문 총경리는 군철을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이번 관광비용은 전번에 준 공회 비용으로 결산하게나.” 군철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렐 저었다. “아니요. 이번 관광은 아우가 아주머님을 요청한 건데요. 저의 사비로 전담하겠습니다.” 박문은 시답잖아 상을 찡그렸다. “아우한테 부담 너무 시키는데.” 군철은 머리를 들고 가슴을 쭉 내밀더니 당당하게 말했다. “아니죠. 공사분명해야죠. 회사 일도 아닌데요. 형제간 일에 절대 공회 사업비용을 다쳐선 안돼요.”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성님이 저를 부총경리로 승급시켰기에 몇달 전부터 로임을 인민페로 13만여원이나 탔는데요. 아우한테 성님(형님)의 은공을 갚을 기회를 좀 주세요.” 박문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자네 승급한 건 본 회사 리회장님께서 결정한게지. 어디 내가 한마디나 삐쳤다고 그래?” 군철은 박총경리 두 손을 굳게 잡으며 말했다. “성님(형님), 형제 사이에 요만한 것 때문에 두 말하지 맙시다.” 박문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또 한번 내심으로부터 군철한테 탄복했다. (국내에선 대륙 빨갱이들이 어떻게 썩었구 어떻게 공금을 탐오하구 어쩌구 저쩌구 하더니. 참, 아우는 판판 달라. 이런  빨갱인 첨 봐. 헛, 참, 아우는 알고도 모를 무서운 놈이야.) 군철은 박총경리 부부 기분 좋아하는 틈을 타 뭔가 또 들이밀어야 했다. 군철은 이전에도 전임 총경리를 기분 좋게 술을 사먹이거나 마사지를 시켜주고는 자기 소원을 하나하나 묘하게 챙겼던 것이다. 이전에 전임 김총경리보고 직원들의 로임을 올려주게 했고 직원들의 사회보헝료를 회사에서 지불하게 했던 것이다. 물론 인건비가 올라가 본사의 비준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김총경리는  군철에게 삶기워서 삶은 개다리 물물 빠지게 됐다. 군철은 중화인민공화국 로동법에 의해 회사에서 직원들의 사회보험료를 지급해 사회보험에 참가시키지 않으면 중국에서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고 딱 바투들이댔다. 김총경리는 울며 겨자먹기로 본사 비준을 거쳐 회사 돈으로 직원들의 사회보험을 시켜주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번에도 박총경리는 례외가 아니였다.  군철은 박총경리를 잘 해주고 하나하나 챙기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두고 예술적인 감정외교라나 할가? “성님, 공회에 과학기술혁신팀을 세워야겠어요.” “과학기술혁신팀? 뭐 하는 건데.” “저는 초보적으로 우리 회사 생산설비를 자동생산설비로 혁신할 예산인데요. 그러면 인건비도 줄이고 생산량도 올리고 생산직장 직원들의 안전도 담보할 수 있지요.” “그래? 참 좋아. 좋긴 새 메모리 생산설비를 연구해내게." 박문 총경리는 군철을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주위를 살피더니 나직이 말했다. "지금 미국에서 반도체를 롱단하려고 들어. 그놈들은 우리 한국 반도체를 이것 저것 제한하고 미국의 지배를 받아라고 하네. 대만섬 반도체도 례외가 아니네. 모든 걸 미국의 지배와 통제하에 생산해야 한다네. 그러잖으면 제재한다네. 미국은 누가 자기네를 초월하면 제재를 가하네. 중국 화워이에도 심술을 부려 제재했지. 이전에 일본이 세계 경제2위로 급부상하자 미국은 경제 제재를 가해 파탄나게 만들었어." "미국이 진짜 나쁜 놈들입니다. 군사적으로 다른 나라를 돕는 척하면서 국제경찰질을 하지요. 또 정치와 군사로 한국과 일본을 얼리고 닥치고 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쩍 하면 심술을 부리고 재패하고 롱단하려고 들죠."     박문 총경리는 길죽한 얼굴을 찌푸리더니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본사에서 새 메모리를 생산하려고 해도 미국에선 심술을 부리면서 주요부품 생산장비를 더 주지도 않네. 이미 평택기지에 준 생산장비도 중국에  빼돌릴가봐 되찾아가지 못해 미쳐날뛰네. 그뿐인가. 숱한 경제간첩들을 세계 각지 도처에 파견해 자기 말대로 누가 하지 않는가 살피고 있네." "그게 미국 식민지 한국의 난처한 점이죠. 미국 양키들의 눈치를 보면서 어떻게 회사를 경영해요?"     박총경리는 머리를 끄덕였다. "참 답답하네.그래도 우리 본사에서는 찍소리 못쳐. 중국 정부가 우리 회사 안전을 보호해주기 때문에 미국도 어쩌는 수 없어.우리 주위에도 미국 경제간첩이 있을지도 몰라. 항상 주의해야 해. 우리 회사 당장 새 메모리 생산하기 힘드네. 아우가 새 메모리 생산장비만 연구해내면 본사도나 우리 분회사 숨통이 트이겠는데. 올해 3분기 우리 본사 총수입은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3분의 1이나 줄어들었어. 우리 회사도 리윤이 몇조원이나 줄어들 거 같네." 군철도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심각하군요.우리 공회에서 직원들의 아이디어와 지식재산을 리용해 힘껏 연구해보겠습니다." 박문은 한국 본사에서도 연구제조하지 못한 생산장비를 연구해내겠는가 미심쩍었다. 그러나 일단 일루희 희망을 품고 지지해나서기로 했다. "그런데 과힉기술혁신팀이라던가, 회사원을 더 모집해야잖겠나? 본 회사에서는 인건비가 자꾸 올라가서 현재 직원도 자꾸 줄이라고 하는 판인데. 비준하겠나?” 박총경리는 미답잖다는듯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 회사에는 과학기술인재가 아주 많아요. 윤선이랑 하나랑  길림대학과 할빈공업대학 전자공학과 건축설계학을 전공하고 미국 하버드대학 박사학위까지 탔어요." "그래? 윤선인 큰 짐을 질 재목이군." "네- 이번에 윤선한테 공회 부주석 겸 과학기술혁신팀 부팀장으로 승급시킬 예산인데요. 어떤가요?" "참 좋아요. 공회 일은 최부총경리 전담해 하세요. 그저 경비 더 수요되면 나한테 말하세요." "감사합니다. 박총경리 지지하는 한 우리 공회 일 잘 될 것 같아요." 저쪽에서 윤선은 손으로 여기저기 가리키며 미라씨한테  뭔가 설명해주고 있었다. 군철은  신심에 차 말했다. "우리 회사에는 북경대학, 청화대학, 복단대학 졸업생도 있어요. 미국 하버드대학과 영국 켐푸리치대학과 프랑스 리오대학 류학생도 있어요. 인재자원을 랑비해선 안되죠. 이런  전문인재들을 조직해서 왼전히 과외시간에 설비기술혁신을 연구하려고 그래요.” “참 좋아. 그런데 또 비용이 수요되지 않겠나?” “설비개조를 완성하기 전엔 회사 경비를 일전한푼 쓰지 않겠어요. 공회 사업비용으로 먼저 대겠어요. 만약 연구에 실패하면 우리 개인들의 로임으로 연구에 헛쓴 공회비용을 몽땅 배상하겠습니다.” 군철의 말에 박총경리는 두 손 들어 찬성했다. “참 좋아. 그런 노조, 아니, 공회 과학기술혁신사업은 전적으로 지지하겠네. 그러나 경제부담은 가지지 말게나. 실패해도 회사에서 비용은 부담해야지. 한해에 몇십조원 리윤을 내는 우리 회사에서 고만한 훙금도 없어야 쓰겠는가. 만약 성공하면 상금을 톡톡히 주겠네.” 박문 총경리는 군철의 두 손을 꽉 잡아주었다. 뒤이어 박문은 또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아우, 이젠 회사 찌프 타고 출근하라구.” 군철은 희죽이 사람좋게 웃었다. “통근뻐스 너무 좋은데요.” “내 말 좀 들으라구. 이젠 명색이 부총경린데 뻐스가 뭐야? 돈이 없나? 뭐가 모자래? 이 형이 보태주마. 뽀마찌프 두고 뭐야? 부총경리 체면 좀 챙기라구.” 군철은 정색했다. “성님, 돈이 없어 그런 건 아닌데요. 몇달 허리띠 졸라매면 오디나 벤츠도 살 수 있죠. 그러나 지구온난화를 지연시키려면 저부터 공중뻐스를 타는게 옳다고 생각해요.” “쳇,” 박문은 코웃음쳤다. “너무 나갔어. 허황해. 자네 한사람이 자가용 안 탄다고 지구가 뜨거워지지 않을 거 같애? 잔소리 말고 올해 내에 자가용 갖추라고. 현시대에 좀 맞는 소비관념을 갖추라고.” 군철은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라고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 좋은줄 모르겠는가. 그는 기실 몇번이고 자가용을 사려고 좀자르다가 그만두었던 것이다. (자가용 사는게면 순정 이모 차린 고아원 고아들한테 뭔가 해주겠다.) 그후부터 군철은 “자가용마저 없는 부총경리”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체면을 구기고 달마다 로임에서 3만원씩 떼내 순정 이모한테 송금해 고향 고아원에 기부하였다.   “이모, 겨울이 다가오는데 고아들한테 옷이라도 사 입히고 학잡비에 보태십시오.”  군철은 송금한 후 이런 감동적인 메세지를 보냈다. "고맙다. 군철아, 네가 이모를 잊지 않아 고맙다." "이모,  전 어머니가 없습니다. 이젠 이모를 어머니처럼 모시겠습니다. 한가지 부탁합시다. 이모, 양력설에 문예공연단을 데리고  우리 회사에 올 수 없겠는지요?  양력설에 혼자 고독하게 보내지 말고 우리 집에 모여 쇱시다. 겸사 겸사해 꼭 오세요." 순정한테서 인차 회답이 왔다. "십여명 조직해 데리고 꼭 갈게." "감사합니다. 스타예술인들을 골라 데리고 오십시오. 비행기표랑 주숙이랑 근심하지 마십시오. 이모 기다릴게요." ...       한참 후 군철은 박문 총경리 부부를 모시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세계금융중심루에서 내려가 상해에서 젤 높은 마천루에 올라갔다. 엘레베이터도 100층 전에까지 올라가서 짧은 엘레베이터를 갈아타고 몇층 더 올라갔다. 유리루각처럼 번쩍거리는 마천루에 올라가 서니 어림증이 날 지경이였다. 마천루 유리벽과 유리밑바닥을 스치며 구름이 유유히 흘렀다. 미라씨가 유리밑바닥으로 내려다보니 높고 낮은 건축물들이 자그마한 성냥곽처럼 보였다.  “너무 높아 겁나요!” 미라씨는 박문의 손을 잡으며 경탄했다. 상해 시내를 굽어보니 가슴까지 별스레 설레였다. 뒤이어 그녀의 가슴에는 시흥이 끌어번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 마천루는 세계에서도 두번째인지 세번째로 높은 마천루래.” 남편의 말에 미라씨는 쌍까풀눈을 슴벅이며 감탄했다. “그래요? 그저 마천루 아니군요. 상해에 와보니 세상이 높고 큰게 알리누만요. ” “그래. 여기서 소원을 빌면 모두 이뤄진대.” 박문은 미라씨의 손을 꼭 잡고 마주 바라보았다. “여보, 사랑하오. 미라씨, 영원히 사랑하오. 우리 영원히 갈라지지 말고 함께 살기오.” “호호호. 또 그 말인가요? 그게 당신 최대 소원인가요? ㅎㅎㅎ” 박문은 정색해 안해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도 소원을 빌어보오.” “네. 그럴가요?” 미라씨는 박문과는 달리 동쪽을 향해 돌아서더니 두 눈을 살며시 감더니 두 손을 합장하고 서서 속으로 소원을 빌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드디여 두 눈을 뜨며 남편을 보고 해시시 웃었다. “뭐라고 빌었어?” “비밀.” 미라씨는 군철이랑 저 먼 발치에 있는 것을 보고 어린애처럼 어리광을 부렸다. 그녀는 기실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혼자 중국에 온 남편이 바람 피우지 말게 하느님께서 말려주세요."   반시간 가량 구경하고 미라씨는 군철과 윤선 등을 따라 아쉬운대로 마천루에서 내렸다.      뒤이어 링컨하이야는 부두에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들 일행은 인차 황포강 유람선에 올랐다. 미라는  박문 총경리와 함께 배머리에 나란히 서서 중절모자를 벗어쥐고 시원한 강바람에 몸을 맡겼다. “어- 시원해.” 하늘에서 무수한 은침이 황포강을 찌르며 강물에 뛰여들었다가도 은잔디로 뛰놀며 숨박곡질하더니 옥구슬로 탈바꿈한다. 화려한 유람선이 희희락락거리는 신사숙녀들을 업고 달리며 배놀이를 즐긴다. 황포강 량안의 우중충한 옛 층집은 미라씨를 반겨맞아 주었다. 저기 옛 상해시 정부청사가 마주 달려왔다. 드디여 남경로 어귀 붐비는 외탄거리가 안겨왔다. 루즈벨트호텔과 국제판점이 보인다. 드디여 소주하의 외파도교(外摆渡桥)도 보인다. 붕- 유람선은 기적을 울리며 기나긴 몸을 동북쪽으로 틀었다.     이윽고  륙가취(陆家嘴)의 마천루군이 마중온다.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구름 우에 두둥실 솟아 있는 마천루는 마치 신비한 신기루를 방불케 했다.      구름 위에서 동방명주가 신비의 기발을 들고 마주 달려온다. 금방 올라갔던 세계금융중심도 손짓하며 반겨 마중한다. 엊저녁에 류숙해 부부 원무를 추던  금무호텔도  반겨맞아준다. 금무호텔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며 하얀 구름송이를 따다가 얼굴을 살짝 가리운다. 박문 총경리는 안해와 함께 배머리에 나란히 서서 신비한 황포강 량안 풍경을 구경한다. 호기심과 희열로 차넘치는 안해의 표정을 읽고 속으로 흐뭇해났다. 안해를 꼭 잡아 두고 싶은 심정이 불붙듯했다. 그는 뜨거운 희망과 갈망에 찬 소원을 안고 안해 어깨를 감싸안았다. 옆에서 윤선은 끊임없이 황포강 량안 주요 건물을 손가락질하면서 설명해주었다. 그는 드문드문 박문 부부한테 영원한 기념이 될만한 사진도 찍어주었다. 윤선은 박총경리와 단거뻔에 확 한 가족이 된듯한 기분에 잠겼다.      윤선의 그 모습을 보고 애리싸마저 질투할 지경이였다. 애리싸와 군철은 박문 총경리 부부 화기애애한 모습을 핸드폰 렌즈에 담아 찰칵찰칵 찍어주었다. 박문 총경리는 때를 놓치지 않고 안해한테 물었다. “상해 인상 어때?” “백문불여일견이라고 대상해 참 좋아요. 한강 배놀이만 못잖아. 흥기하구 슬기 데리고 왔더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이제 겨울 방학이 되면 애들을 데려다 구경시키지.” “그러죠. 상해는 진짜 선경처럼 아름다워요.” 그녀는 저도 몰래 흥에 겨워 즉흥시조를 더듬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대상해      마천루  꽃구름을 잡아타고 춤추는데    배놀이 신나누나 황포강 신사숙녀   대상해 보잖고 어찌 지상락원 알손가?
288    대하소설 졸혼 제4권 (52) 김장혁 댓글:  조회:1427  추천:0  2022-10-24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권                       62. 총경리 소설가안해         북방에는 거위털 같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산야에 흰 이불을 덮어주었다. 산과 들은 참말로 은빛세계를 방불케 했다. 그러나 강남에는 산과 들에 아직도 록음이 짙고 갖가지 아름다운 화초들이 한창 피여나 유람하기 좋은 계절이였다.       상해 포동공항 국제선 출구.       군철은 애리싸, 리나, 경희, 하나, 은희, 윤선 등을 데리고 박총경리 안해 마중을 나왔다. 하나랑 군철 부총경리가 리나와 애리싸, 지어 윤선까지 데리고 온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기실 군철은 박총경리 안해 마중하러 올 인원선정에 무척 신경을 썼다. 그는 이번 기회에 박총경리와 가정적으로 형제 우정을 돈독히 하려고 본댁 리나와 애인 애리싸마저 다 데리고 왔던 것이다. 물론 리나와 애리싸는 어색한 관계지만 리나도 그리 꽉 막힌 녀자는  아니여서 리해해주었다. 애리싸는 더 말할 것 없이 개방된 서양녀자라는데서 리나를 데리고 와도 괜찮았다. 박총경리 평소 말에 의하면 그의 안해 김미라씨는, 한국인들이 다 그렇다싶이 서양, 특히 미국 경제와 문화를 선호했다. 그리하여 군철은 이번에 금발미녀 애리씨를 내세우기로 했다. 윤선을 데리고 온데는 다른 원인이 있었다. 김미라씨는 경주 김씨인데다가 소설가였다. 온 회사에 30여명 조선족 가운데서 시라도 좀 쓰고 문학을 즐기는 이는 윤선과 하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윤선은 경주 김씨였다. 그는 사모님과는 종친관계이기에 거리를 팍 줄이고 단통 친해질 수 있었다. 물론 이쁘고 새파란 경희나 하나, 은희를 데리고 오면 원래 의심이 많은 김미라녀사가 질투할가봐 근심됐다. 그러나 박총경리가 열렬히 마중하는 기분을 돋구려는지 기어이 자기 비서들을 데리고 가겠다는데 무슨 수가 있겠는가. 리나는 동료들을 보긴 좀 부끄러웠지만 흔쾌히 마중대오에 가담했다. 그녀는 내심으로 군철의 부름을 기쁘게 생각했다. 부지중 자기가 군철의 안해 자리를 막 되찾게 되는 기분이였다. 그러나 애리싸도 온 것을 보고 못내 속이 알알했다. 그러나 그녀는 극력 참으며 겉으로는 애리싸를 질투하지 않는 척하며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기까지 했다. 리나, 하나, 경희, 은희, 애리싸 등은 각기 색다른 생화묶음과 꽃따발, 화환을 들고 대기했다. 꺽다리 윤선은 두손으로 환영 패쪽을 들고 오리무리 속의 거위처럼 목을 빼들고 국제선 출구를 눈이 시리게 바라보았다. “저기 나오네!” 박총경리 말에 모두 일제히 출구 쪽에 눈길을 돌렸다. 꽃을 꽂은 하얀 중절모를 삐딱하게 쓴 녀성이 어깨 넘어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자그마한 트렁크를 끌고 핸드빽을 팔에 끼고 패션모델처럼 손님들 속에서 사뿐사뿐 걸어나왔다. 50대가 아니라 40대 초반 미녀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 오면서 긴 미색외투만은 상해 더운 날씨에 좀  탐탐해보이고 더워보였다. “사모님, 환영해요!” “안녕하세요? 사모님!” 윤선의 뒤로 아가씨들이 일제히 열렬히 소리치며 생화묶음과 꽃다발을 흔들면서 마주 나갔다. 그녀들은 활짝 꽃핀 얼굴로 마중하며 허리굽혀 깎듯이 인사하였다. 숱한 손님들은 무슨 귀부인이 나왔는가고 눈이 휘둥그래  호기심에 찬 눈길을 미라씨한테 모았다. 미라씨는 주춤 멈춰섰다. 그녀는 놀란 눈길로 꽃묶음을 안겨주는 아가씨들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뒤에서 스적스적 마주 걸어오는 남편을 보고서야 영문을 알고 활짝 웃음꽃을 꽃피웠다. “미라씨, 편안히 왔지? 상해 그대를 반겨요.” 박총경리는 진짜 반갑게 안해를 마중했다. 윤선은 눈치 빨라 제꺽 사모님 손에서 트렁크를 받아쥐였다. 박문 총경리는 그리운 격정을 울컥하며 안해를 와락 끌어안았다. “O-K!” 애리싸는 엄지를 척 내두르며 핸드폰을 들어 그 감격적인 장면을 촬영했다. 하나는 생화를 박총경리 손에도 쥐여주었다. 경희는 사모님 목에 화환을 걸어드렸다. “기념 사진을 찍어드리죠.” 군철은 박총경리와 사모님을 나란히 서게 했다. “뽀뽀 하세요!” 찰칵! “키스하세요. 박총경리님” “그래?” 박문 총경리는 희죽이 웃으며 입을 미라싸의 얼굴에 가져갔다. 미라씨는 숱한 사람들 앞인지라 쑥스러운지 머리를 다소곳이 숙였다. 찰칵! 박총경리는 미라씨의 볼에 살짝 키스해주며 나직이 고백했다. “사랑해요. 사랑하는 안해 미라씨.” 여기저기서 샷타를 눌렀다. 조명등이 번쩍번쩍. 박총경리 부부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였다. 진짜 결혼이나 다시 하는 듯한 신혼부부 기분에 휩싸였다. 가슴이 설레이고 하늘에 붕 뜨는 기분에 아랫배마저 찡해났다. 뒤이어 박총경리는 안해한테 군룡을 비롯해 마중 나온 일행을 일일이 소개했다. 미라씨는 입이 함박만해 일일이 손을 잡아주며 짤막하게 연신 “감사해요. 리총경리.”, “뜨겁게 마중해줘 고맙습니다.”라고 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중국에도 동포들이 이렇게 많을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네요.” 첫인상은 아주 좋았다. 사모님은 높은 점수를 줄 것 같았다. 군철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공항 지하주차장에서 벌써 도요다표찌프와 초대형링컨하이야, 보마찌프까지  세대나 기다리고 있었다. 윤선은 벌써 링컨하이야 오른쪽 뒤문을 열고 허리를 굽히며 서 있었다. 박총경리는 군철의 주도면밀한 써비스에 개탄하며 링컨하이야에 안해와 함께 올라탔다. 그러자 군철이랑 뒤에 찌프에 주르르 올라탔다. 링컨하이야가 긴 몸을 스르르 미끌어져 나가자 보마찌프와 도요다찌프가 뒤따라 나갔다. 미리씨는 남편과 문안 몇마디 하고는 차창 밖으로 상해 포동의 불야성 경치를 구경하면서 연신 감탄했다. 링컨하이야는 부부의 하늘에 붕 뜬 기분과 설레임과 더불어 웃음꽃을 싣고 씽씽 날듯이 달리고 있었다. 링컨하이야는 하늘을 찌르며 수풀처럼 우뚝우뚝 솟은 마천루 속을 누비며 금모호텔 앞에 가 멈춰섰다. “호수가에 아파트 탔다면서요? 우리 아파트에 안 가요?” 미라씨는 의아해 했다. 박문은 링컨하이야에서 내리며 으시댔다. “리부총경리가 오늘 우리를 상해 마천루에서 신혼의 밤을 보내라고 해. ㅎㅎㅎ.” “그래요? 리총경리 참 아량있게 배치했군요.” 호텔 해군정장을 한 직원이 링컨하이야를 마중 나와 허리 굽혔다. 박총경리는 미라씨 손을 쥐고 호텔로 들어갔다. 군철이네 일행은 호텔 앞에 늘어서서 허리 굽히며 연의했다. “좋은 밤 되세요.” 박문 총경리 부부는 돌아서서 손을 저으며 화답했다. “그래. 감사하이.” 호텔 직원이 트렁크를 끌고 엘레베이터에 들어가 번호 77층을 눌렀다. 엘레베이터는 박총경리 부부를 태우고 순식간에 77층에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하나도 멀미 나거나 흔들리는 감각이 없었다. “벌써 올라왔어.” “그래. 7초에 올라왔어.” “엘레베이터  참 선진이야.” 호텔 방에 들어가자 미라씨는 창문 카텐을 열고 황포강변 상해 불야성을 내다보았다.      무수한 별들이 황포강물에 뛰여내려 목욕재계한다. 금잔디 은잔디 금빛 은빛을 반짝이며 자맥질을 하면서 재롱을 피운다. 화려한 륜선들이 환희에 들뜬 유람객들을 싣고 하얀 물갈퀴를 일구며 달리고 있었다. 하늘을 찌르며 수풀처럼 우뚝우뚝 솟아있는 마천루들을 내다보며 미라씨는 혀를 끌끌 찼다. “여보, 세상이 넓은 줄을 이제야 알겠군요.” 박총경리는 안해가 좋아하는 기색을 살펴보며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그래? 그래서 내캉 진작 당신 중국에 오라고 했제이!” “저 철탑 같은 건 뭔가요?” “어느 거?” “저 둥그런 거?” “오- 동방명주야. 상해 동방티비방송국이 저게 있어. 철탑은 티비 발송탑이야. 이쪽에 건 금융중심마천루야.” “오- 그래요? 상해가 이렇게 발전했을줄은 진짜 꿈에도 생각하진 못했는데요.” “그래. 이번에 상해, 소주, 항주, 남경, 북경 쭉 구경하라구. 중국이 얼마나 발전했다고. 미국보다 나아!” “미국보다 낫다고?” 미라씨는 반신반의했다. “하마 미국보다 더 발전했겠어? 미국 그래도 경제 1위 아닌가요?” “상해는 아니야. 미국보다 더 발전했어. 뉴욕이 울고 가!” “쌘프랜시스코보다는요?” “쌘프랜시스코는 턱도 없어. 로스안젤레스도 상해에 오면 울고 갈 거야.” “그래요?” 미라씨는 남편의 코를 쥐여 살짝 비틀어놓았다. “당신 중국에 온지 고작 몇달 됐어? 벌써 빨갱이들한테 적화 됐잖아요?” “적화고 뭐고 있나? 이건 사실이야. 중국은 살기 좋은 고장이야. 당신도 이제 돌아보면 눈이 뜨일 거야.” “래일부터 돌아보지요.” “그래. 백문불여일견이라고. 잘 돌아보라고.” “고마워요.” 박문은 미라씨를 와락 끌어안고 푹신푹신한 침대에 쓰러졌다. 황포강도 별과 키스하며 련정에 겨워 은은한 노래를 부르며  동으로 유유히 흐른다. 붕- 오색령롱한 불빛을 반짝이며 달리는 화려한 륜선의 기적소리 기분 좋게 부부 절주 빠른 야반원무곡에 반주해준다… 이튿날 군철은 박총경리 기분 좋은 기회를 빌어 노조(공회) 창립을 주문하려고 들었다. 그는 출근하자 곧추 옆에 있는 총경리실 문을 똑똑똑 노크하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하나가 비서석에서 오쭐 일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녀가 총경리실에 들어가 연통하자 이윽고 들어오라는 전갈이 나왔다. 군철이 총경리실에 들어가보니 박총경리는 이전과는 달리 콧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며 맞았다. 그는 속으로 사모님이 고마웠다. 그녀가 상전의 기분을 180도로 전환시켜주어 진짜 절이라도 해드리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총경리님, 밤새 잘 보냈어요?” “오- 그래. 오랜만에 고독하지 않게 잘 보냈네. 와이프 오니깐. 이제야 참 사는 맛 나네.” 박문 총경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나오며 군철의 손을 굳게  잡았다. “리부총경리, 아니, 최부총경리, 고맙네. 안해를 관광하러 오게 하라는 제의 참 좋았어. 날 살려낼 것 같애.” 군철은 머리를 숙였다. “아니, 이제 시작에 불과해요. 사모님을 꼭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 박문은 쏘파에 손으로 가리키며 자리를 권했다. “자, 아우 앉게나. 우리 이젠 친형제처럼, 한 집 식구처럼 잘 보내자구.” 군철은 마다할 리 만무했다. “네. 성님, 그래요. 우리 형제로 잘 보냅시다.” 그는 뒤이어 서류첩을 열어제겼다. “용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서 말하게. 아우 말이라면 다 동의야.” 군철은 정색했다. “오늘 사모님 관광스케쥴을 이렇게 잡으면 어떻겠는지요? 먼저 황포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엊저녁에 내다보았을 야경을 낮에 다시 구경시키죠. 다음 소주로 갑시다. 소주 대표적인 고적지인 사자림, 호구 사탑을 구경시킵시다. 아마 이 세곳을 다 돌고나면 해가 질겁니다. 우린 금계호 호수가 동방의 문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지요. 저녁식사 후에 대운하에 가서 유람선을 타고 대운하 량안의 소주 야경을 구경하지요?” 박문은 사무상에 두 팔을 올려놓고 턱을 고이고 유심히 듣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 좋아. 한가지만은 참고하게나.” 군철은 필을 들며 박총경리 분부를 기다렸다. “하루에 너무 많이 구경시키지 말게나. 힘든 것도 있겠지만 며칠 안돼 인차 구경 다하면 녀편네 한국으로 돌아갈라면 어쩌나?” “네- 맞습니다.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요.” 군철은 행사지에 또박또박 적어넣고 궁리하더니 고쳐 말했다. “그럼 오늘 오전엔 황포강을 구경시키고 오후에 소주 옛성에 가서 대운하만 구경시키면 어때요?” “좋아, 그렇게 합세.” 박문 총경리는 흡족해했다. 국가 대통령 부인네 대접을 받고 입이 함박만해질 거야. ㅎㅎㅎ. 녀편네 관광비용은 회사 접대비로 대면 어떨가?” “그러지 맙시다. 사모님 관광비용은 저의 사비로 대겠습니다.” “그래서 되나? 아우한테 너무 부담시키는데.” “형제간에 다른 말씀 마십시오. 우린 형제가 아닌가요?” 그 말에 박문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군철의 속뽑이를 해보고 내심으로 탄복했다. (이 빨갱이는 청렴한 간부군. 이런 청렴한 간부에 의거해야 회사도 살릴 수 있지.) 군철은 뒷말을 이었다. “이제 오늘 저녁 제가 사모님의 관광 스찔을 파악한 후 래일 관광스케쥴은  다시 잡아보려고 합니다.” “그래, 그래. 아이구, 녀편네 때문에 최총경리 고생 많네.” “사모님이 어쩌다 왔는데요. 잘 모셔드려야죠. 그래야 성님의 고독한 생활도 끝나죠.” 박문은 연신 머리를 끄덕이며 미더운 눈길로 군철을 바라보았다. “요즘 성님과 사모님을 저와 저의 본댁 리나와 애인 애리싸가 전담해 모시겠습니다.” “아유, 온 집 안이 총출동하는구만. 이런 변이라구. 이 은혜 어떻게 다 갚을가?” 군철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성님, 한 집안 식구끼리 다른 말 마세요.” “그래, 우린 진짜 형제야.” 그때라고 군철은 중요한 용건을 척 박총경리 턱밑에 들이댔다. 그러나 입은 전과는 달리 아주 무거워지는 감을 느꼈다. “형님, 한가지 용건 비준해주시겠나요?” “뭔데?” 박문은 웃음을 거두고 대뜸 정색했다. 군철은 무거운 입을 겨우 뗐다.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요. 회사에 공회를 세우자요. 이건 공산당 조직도 아니고 우리 회사 직원들의 조직인데요.” “공회? 또 그 노조 말인가?” 박문은 대뜸 길죽한 얼굴을 찡그리면서 눈섭꼬리가 쳐들렸다. 그는 군철을 치켜보며 물었다. “공회 좋은 점 뭐지?” 군철도 정색하며 바로 앉았다. “공회를 차리면 직원들을 박총경리 주위에 가족처럼 똘똘 뭉치게 묶어세울 수 있지요. 또 직원들의 문화생활을 풍부히 해 생산적극성을 더 촉동할 수 있죠. 직원들을 진정 회사의 주인으로 만들어 내심으로부터 회사를 사랑하고 생산을 참답게 하게 조직할 수 있죠.” “그만, 그만!” 박문 총경리는 손을 척 들었다. “데모 같은 건 안하겠지?” 군철은 속으로 끝장이구나고 생각하면서 내심하게 설명했다. “시위를 절대 하지 않습니다. 합리한 건의가 있으면 공회를 통해 회사에 제기하지요.” 박문 총경리는 좀 생각하더니 뜻밖에 이렇게 말했다. “아우, 아니, 최부총경리, 당신 하는 일엔 전적으로 지지하네. 아우 좋다는데 이 우둔한 형이 반대할리 있나? 난 아우를 믿네. 아우가 공회 내오면 나쁜걸 좋다 하겠나? 데모 하지 않고 리윤을 더 올린다면야. 거 공회 세우는 걸 두 손 들어 대찬성이네.” “형님!” 군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문 총경리한테 다가가 두 손을 꽉 잡았다. “박총경리, 형님, 우리 회사 3천여명 직원들을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아니, 이리 심각했나?” 박총경리는 의연희 정색했다. “공회를 세우고 활동하자면 비용이 들잖는가? 얼마면 되겠나?” 군철은 박총경리를 쳐다보면서 입을 간신히 뗐다. “인민페로 한 50만원 대줄 수 있겠습니까?” 박총경리는 손바닥으로 사무상을 탕 쳤다. “고까짓걸! 해마다 인민페 백만원 내놓지.” “감사합니다.” “아우, 대담히 하라고! 공회 잘 꾸려서 리윤액을 더 올리면 백만원이겠나? 해마다 리윤을 몇십조(한화)도  올리는 우리 회사인데. 고만한 거야 못 대겠는가?” 군철은 너무나도 감격해 코마루마저 시큼해나고 눈물이 글썽해졌다. 박총경리는 안해가 왔을 때 군철이 친형수처럼 살갑게 대해주자 이데올로기와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뜨거운 손을 내밀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하루 한시에 내린 결정이 아니였다. 박문에게는 어려운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한국 완고한 보수파가정 출신인 그는  빨갱이라면 치를 떨게 된 말 못할 력사적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 차린 회사를 경영해나가자면 부득불 이데올로기 랭랭한 장벽을 허물지 않으면 안되였다. 오랜 고심 끝에 그는 랭랭했던 마음의 협곡을 너머 손을 내밀어 군철의 손을 잡아주며 공회를 세우는 것을 끝내 비준하게 되였다. “성님, 아래서 링컨하이야 대기하고 있어요.” “그래?” “먼저 사모님을 모시고 황포강구경부터 하지요.” “그러지.” 군철은 박문 총경리를 모시고 총경리실을 나오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는 직원들을 위해 어깨에서 큰 바위돌을 내려놓은 듯한 감을 느꼈다.      군철의 끈질긴 간난신고 끝에 끝내 S시 반도체전자유환회사 공회가 고고성을 올리게 되였다.      이제부터 한국 대형회사에서 중국 로동자들의 합법적인 권리와 리익이 공회를 통해 보호받을 수 있게 되였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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