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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5권 (73) 김장혁
2023년 04월 20일 11시 41분  조회:1106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3. 콧수염쟁이와 마끼

먹장구름이 초원에서 달리는 말무리처럼 한데 엉켰다가도 흩어지면서 쏜살같이 질주한다.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 소리 천지를 뒤흔들어놓았다. 

소낙비가 하늘에서 냄비로 퍼 붓듯이 억수로 쏟아졌다. 우박이 돌총질해 나무잎들이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떨어져 구을며 아우성친다.

강남의 날씨는 변덕스럽기로 그지없었다.

먹장구름이 걷히고 해가 반짝 나기 시작했다. 

까치가 나무가지에 앉아 까만 꽁지를 달싹이며 기분좋게 깍깍 울어댔다. 

전날과는 달리 이튿날엔 아침부터 어둠침침한 안개가 호수면까지 지지누르며 숨막히게 뒤덮인다. 

변덕스런 날씨처럼 세상의 풍운조화도 진짜 한치 눈 앞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마끼(가은)는 군철이 그렇게 나올줄은 실로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어쩜 우리 엄마한테 그럴 수 있어. 그만하면 그대를 잘 해줬건만, 어쩜 그럴 수 있어. 우리 엄마 다이로와 류원장한테 당해서 의지가지 없는데. 뭐야? 우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긴 고사하고.흥, 우물에 돌을 던져? 당대표라는게 뭔가? 회사에서 백신공장을 차리려면 어머니 같은 의학박사 수요되는데. 엄마를 쫓아내?)

마끼는 침대에 쓰러져 이불을 머리 위에 들쓰고 누워 있는 어머니가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마끼(가은)는 군철을 잘해주느라고 모진 애를 썼다. 

군철 전무는 가은이 복화를 질투하고 싸우면서 물어먹기까지 한 내막을 알면서도 회사 위생소에 받아주었다.

(복화가 꼭 최전무한테 날 고발했을 거야? 건데 날 받아줘?)

가은은 회사 위생소에 초빙되리라고는 크게 희망을 걸지 않았었다. 그런데 최전무가 받아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랐다. 

그녀는 인재를 중시하는 최전무가 마음 속으로부터 고마웠다. 

가은은 입회한 후 군철의 사무실에 찾아가서 일본 돈 50만엔을 드렸다. 

그러자 군철은 단통 우멍눈이 데꾼해졌다.

“이건 뭐요?”

가은은 쌍까풀 포도눈을 말끔거리며 환하게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드디여 빨간 립스틱을 살짝 바른 앵두입을 곱게 열었다.

“저를 위생소에 받아주어 고맙습니다. 적은 성의지만요. 일본 놀러 가는데 보태세요. 이후에도 전무님을 잘해드릴게요. 뭐든 부탁하세요.”

군철은 엔뭉치를 되밀어주었다.

“내 당대표라는 거 모르오? 난 절대 이런 돈을 일전한푼 받지 않소. 아무리 경제시대라고 해도 그렇지. 이런 돈 받지 않아도 난 로임으로 얼마든지 일본에 유람갈 수 있소.”

가은은 외까풀눈으로 군철을 할끔 쳐다보면서 속으로 웃었다.

(별, 청렴한 척하면서. 당대표는 뭐 돈을 쓰지 않는가?)

"이미 내민 돈을 어찌 되받아요?"

가은의 말에 군철은 엔뭉치를 쥐여 가은의 손에 되쥐어주었다.

"용건이 더 없으면 그만..."

가은은 어이없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군철의 훌렁 벗어진 번대머리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멍한 눈보다 까까머리가 전무의 체모에 맞지 않는 감이 들었다. 

그녀는 눈짐작으로 군철의 머리크기를 재여가지고 그 길로 가발상점으로 갔다. 

그녀는 며칠 후에 가발상점에 가서 미리 예약한 가발을 찾아가지고 군철을 다시 찾아갔다.

군철은 가발을 받아 이리저리 보았다.

“써보세요.”

가은은 촬영모드를 켠 핸드폰을 군철의 얼굴 앞에 가져다댔다.

“퍽 젊어보여요. 요 콧수염만 깎아버리면 미남인데요. 호호호.”

그때 리화가 서류철을 들고 들어오다가 그 장면을 발견했다.

(아니, 가은이?)

리화는 놀란 눈길로 군철과 가은을 번갈아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년놈들이 놀긴 논다. 언감 내 앞에서? 흥!)

리화는  경멸과 질투에 찬 눈길로 가은(마끼)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더러운 년, 여기까지 와서 뉘 남편을 사기치려고 꼬리를 쳐? 가차없이 잘라버려야 해!)

가은은 리화를 보자 덴겁해 뒤로 비실비실 물러나 사무실에서 나갔다.

리화는 가은의 뒤꽁무니를 쏘아보며 속으로 별렀다.

(마귀 같은 년, 네년까지 남의 부부 사이에 끼여들어? 좋은 끝장 있는가 봐라.)

마끼, 회사에서는 가은을 뒤에서 마귀라고 별명을 지어 부르고 있었다. 

리화는 어쩐지 깨고소해났다. 속으로 자기를 웃기도 했다.

“내가 왜 마끼를 질투하지? 마끼는 상대도 아닌데. 난 군철의 아들 둘이나 낳아준 자본이 있지 않는가? 새파란 20대 말의 처녀가 40대 초반의 군철과 좋아한다? 생각만 해도 어림도 없지. 그러나 세상의 풍운조화는 짐작하기 어렵지...”

가뜩이나 회사에서 군철의 주위를 맴돌며 꼬리치는 미녀들이 많은데다가 가은이까지 끼여드는 것 같았다. 

순간 리화는 속이 괴지게 불편해났다.

가은은 리화의 그런 질투하고 경계하는 눈치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춘희는 전날에 군철 전무한테 쫓기우다싶이 회사에서 나온 후 마끼의 세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푹 쓰러졌다. 

그녀는 이튿날 아침까지 밥숟가락을 들지도 않고 누워 천정만 쳐다보았다.

가은은 그런 어머니를 보기 마음이 알알이 쓰려났다...

똑, 똑, 똑.

노크소리와 함께 경희와 리화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리화는 서류철을 펼치더니 종이 한장을 꺼내 사무상에 올려놓았다.

“이걸 보세요.”

“뭐요?”

군철은 가발을 뒤로 쓰다듬으며 문건을 들어 피뜩 보았다.

“뭐? 국제 사기군? 야마구찌 마끼를 찾는다고?…”

군철은 의자 등받이에서 잔등을 떼며 우멍눈을 번쩍 뜨고 찬찬히 뜯어보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마끼는 사기군이라고?”

군철은 그 종이장을 사무상에 내려놓고 가발마저 훌 벗어 사무상에 내동댕이쳤다.

리화는 그 장면을 보고 깨고소했다. 리화의 가발을 쓰레기통에 처넣는 걸 보면 더 씨원할 거 같았다.

그녀는 속으로 잘코사니를 불렀다. 

경희가 커피잔을 사무상 옆의 차탁에 올려놓고 두 손을 맞잡고 상전을 쳐다보았다.

군철은 경희를 보고 나가라고 하고나서 리화한테 나직이 물었다.

“이 편지는 어데서 온 거요?”

리화는 군철의 옆에 다가오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전번에 우리 회사에 찾아온 일본 교수 생각나죠? 우리와 합작해 백신제조공장을 세우자고 찾아왔던 다이로교수 말입니다.”

“오, 그래. 그 콧수염쟁이가 이런 편지를 보내왔어?”

“예,”

군철은 다이로교수의 편지를 몇번이고 뜯어보았다.

그는 읽으면 읽을수록 마끼 모녀가 가증스러웠다.

“어쩌면 이런 짓을 다 해? 마끼가 이런 사기군일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다이로교수 애를 낳아주겠다고 해놓고 애도 낳아주지 않고 예약금을 몇천만엔이나 떼먹고 도망쳤어. 숱한 황금도 떼먹고... 참 한심하구만.”

리화도 때를 만났다고 맞장구를 쳤다.

“에미는 아버님 참사랑을 사기치고 딸은 양애비 돈을 사기치고. 참 심통한 마귀 같은 사기군 모녀군요.”

군철은 의자 등받이에 잔등을 대고 반쯤 의자를 돌려 창 밖을 향해 돌아앉았다. 그는 우멍눈을 딱 감고 대머리를 슬슬 어루만지면서 속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렸다.

리화는 챤스를 잡은 것 같아 옆에서 날카로운 입김을 불어넣었다.

“전번에 춘희를 받지 않길 잘했어요. 사회에서 알면 뭐라겠어요? 우리 회사를 사기군 소굴이라고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군철은 아무 말도 없었다. 우멍눈을 꾹 감고 죽은듯이 앉아 있었다. 

리화는 계속 서리낀 입김을 불어넣었다.

“이번에 아예 사기군 마끼를 회사에서 잘라버립시다. 사기군 마끼 모녀를 다이로교수한테 바쳐버립시다. 사기군 모녀가 없어도 다이로교수와 합작하면 미국과 일본 선진 의약기술로 얼마든지 백신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때 군철이 우멍눈을 천천히 떴다. 우멍한 외까풀눈을 가슴츠레 뜨고 창 밖을 하염없이 내다보았다.

“개인감정으로 처사하지 마오.”

천만뜻밖이였다. 군철의 그 한마디 말에 리화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낮은 돌을 밟지 마세요. 돌다리도 두드려보면서 건너라고 하지 않았는가요?”

군철은 생각을 정했는지 의자를 삥 돌려 사무상에 마주 앉으면서 한마디 내뱉었다.

“알았소.”

리화는 퍽 근심돼 안절부절 못했다.

“야마구찌 다이로교수가 찾아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군철은 정색해 리화를 마주 바라보았다.

“이 일을 누구랑 아오?”

“아직 경희를 내놓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군철은 무서운 빛이 번쩍이는 우멍눈으로 리화를 쏘아보았다.

“이 일을 아직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오. 알았소?”

리화는 마지막으로 마끼를 한입 더 꽉 물어뜯었다.

“네.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기군을 비호해서 뭘 해요? 마끼 엄마한테  수모를 덜 받아서 아직도 그럽니까?”

군철은 두손을 맞잡아 사무상에 올려놓고 엄숙하게 말했다.

“이 일을 내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까딱 말하지 마오. 다이로교수 오면 회사에 들여놓지 마오.”

“아니, 그럼 백신합작생산을 어떻게 해요?”

“회사 밖 다방 같은데서 토론하면 되오. 사실 진상이 밝혀지기 전엔 뭐나 소홀히 결정하지 말아야 하오.아무리 그래도 우린 조선족류학생 마끼를 섬나라 오랑캐한테 바칠 순 없잖소?”

리화는 입을 꼭 닫아맸다. 그녀는 군철이 일단 생각을 정하면 벽이라도 박차고 나가는 성질이라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튿날 점심 때 거의 돼서 진짜 불청객이 리화와 함께 군철의 사무실에 찾아왔다.

마스크를 벗자 길게 기른 콧수염과 더부룩한 구렛나룻이 드러났다.

“오하이요고자이마스(안녕하십니까)?”

군철은 대뜸 야마구찌 다이로교수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일어를 잘 모르기에 영어로 인사했다.

“G00dmorning(안녕하십니까)?”

그는 못마땅한 눈길로 리화를 쏘아보았다. 

리화는 몸둘바를 몰라하면서 해석했다.

“보안이 그만 소홀해서 들어왔군요.”

“참. 복화를 불러오오.”

군철은 한마디 흘리고는 인차 화기애애한 부드러움이 비낀 우멍눈으로 환하게 웃으면서 다이로교수를 마중했다.

“교수님, 어서 앉으십시오. 백신합작사안으로 오셨습니까?”

군철은 우멍눈으로 다이로의 눈치를 흘끔 보았다.

이때 복화가 다급히 들어왔다. 그녀는 마스크를 벗으면서 다이로교수한테 깎듯이 인사했다.

"교수님, 은사님, 오랜만인데요."

다이로교수는 복화를 보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나나, 여기 있었어?"

"네. 최전무네 회사 위생소에서 일해요."

다이로교수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본 석사생이 회사 위생소에 있다니? 참."

나나는(복화)는 군철과 리화의 눈치를 흘끔 보며 말했다.

"큰 병원은 아니지만요.3천여명 직원들의 코로나 등 질병 예방을 하기에 보람찬데요."

"뭐나 만족하면 행복한 법이지."

다이로교수는 군철을 보고 복화를 치하했다.

"나나는 세상 순박하고 착해요.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 노력으로 살려고 애씁니다. 참 참한 녀자애죠."

군철은 우멍눈에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다이로교수는 인사수작이 끝나자 군철을 보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전번에 귀 회사에 편지를 보낸 걸 보았습니까?"

"네, 보았습니다만."

군철은 우멍눈으로 다이로교수를 응시했다.

다이로교수는 복화 앞인데도 날카롭게 털어놓고 말했다.

"마끼는 국제사기군입니다. 마끼를 내놓으십시오! 그는 내 숱한 돈을 사기치고 중국으로 도망친 국제사기군입니다.”

그러라 군철은 잔등을 의자등받이에 붙이면서 시치미를 땄다.

“마끼라니? 누굴 그럽니까? 우리 회사엔 그런 사람 없습니다.”

복화는 군철을 놀란 외까풀눈으로 쳐다보며 군철의 말을 그대로 통역했다.

다이로는 차탁을 탁 치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내 춘희를 미행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회사에 마끼 꼭 있을 겁니다. 춘희는 딸을 찾아 왔을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정말 금시초문인데요. 허망 건너 짚지 마십시오.”

다이로교수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회사에 춘희 오지도 않았단 말입니까?”

“오긴 왔습니다. 우리 회사 위생소에 들어올가고 해서."

"그래, 춘희를 초빙했습니까?"

"건 우리 회사 인사비밀입니다만, 일단 초빙응하지 않았습니다."

"참 잘했습니다. 회사를 망쳐먹을 년입닌다."

군철은 우멍눈으로 다이로를 쓸어보며 화제를 돌렸다.

"마끼라는 사람 없습니다. 백신생산사항을 토론할가요?”

다이로교수는 대뜸 성을 벌컥 냈다.

“안되겠구만. 춘희를 법에 걸어야겠습니다. 중국에도 정의와 법이야 있겠지.”

군철은 콧수염쟁이를 마주 보며 태연자약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다이로교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뭐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조선족들끼리 비호하는구만.백신이고 뭐고 모르겠습니다.어디 두고 봅시다. 량심없는 놈들."

다이로교수는 콧방귀를 흥 뀌면서 군철을 도끼눈으로 흘겨보면서 사무실에서 나갔다.

"도대체 어쩌려는 겁니까?춘희박사를 초빙하지 않고 다이로교수마저 받아들이지 않으면 백신을 어떻게 생산합니까?"

리화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군철은 나나를 나가보라고 손짓하였다.

나나가 허리 굽혀 인사하고 나갔다.

군철은 리화를 보고 나직이 말했다.

"우리가 마끼마저 바치는게 더 큰 손실이오.다이로교수는 백신생산 때문에 찾아온 거 같소? 마끼 허실을 탐문하려고 온 거요."

그 말에 리화는 알 도리가 좀 있는지 머리를 끄덕였다.

하늘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풍운조화를 온양하고 있다.

먹장구름이 꼬리치며 공포의 서정시를 구상하고 있다.

놀란 갈매기가 호수면을 스치며 부랴부랴 둥지를 찾아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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