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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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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6) 댓글:  조회:1409  추천:0  2017-04-24
                            4. 토성 개구멍의 비밀        늦가을이 돌아오더니 며칠 새 이른 아침이면 하얀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매서운 겨울이 이제 곧 다가올 것을 미리 알리는 상 싶었다.        병완은 마을 사람들이 타작까지 다 하자 사위 범호를 시켜 정미소에서 쌀을 찧게 했다. 벼를 마대채로 정미기 아궁이에 왈왈 쏟아 넣기만 하면 이으고 새하얀 입쌀이 쏟아져 나왔다. 마을 아낙네들은 팔이 아프게 절구꽁이 질 하던 고역에서 풀려나 만면에 춘풍이 감돌았다. 상순이 토성 안 촌공소로 들어가 보니 할아버지가 벌써 와서 곰방대를 뿍뿍 빨며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 식사를 하셨습둥?” “응.” 병완은 구들에 올라와 앉는 막내손자를 대견스레 바라보면서 분부했다. “이계삼 서기는 이젠 마을의 일을 나한테 맡기고 완전히 진수해구위로 올라갔다. 넌 참군하기 전에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집과 집, 촌공소와 주변의 집들과 통하는 갱도를 파라. 일단 토비들이 쳐들어오면 갱도를 이용해 마을을 지켜야 한다. 네가 참군해도 마을 보위에 빈 구석이 없게 하고 민병도 잘 훈련시켜라.” 병완은 그러고도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장학산을 잘 살피니?” “예, 민병들을 시켜 밤낮 윤번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병완은 상순에게 당부했다. “장학산을 놓치는 날엔 그 놈이 우리 마을 정황을 토비들에게 알릴게다. 충국도 우리 마을 주변에 기여 들어 정찰할 수도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라.” “예. 알았습니다. 인삼 아즈바이 낯을 봐서 전번에 장학산을 놔뒀습니다. 이제 다시 국민당을 돕는 날엔 당장 총살해 버리겠습니다.” 상순은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러 떠나가려고 했다. “잠간!” 병완의 부름소리에 상순은 주춤 멈춰 섰다. 병완은 상순의 어깨를 다독이었다. “얘야, 장학산은 항일전쟁 때 우리 유격대에 양식을 대줬기에 밭만 청산하고 살려 준 게야. 장학산은 항일에 공훈이 있는 애국적인 지주이기에 현재 표현을 봐서 다른 지주와 달리 대해야 한다. 만약 그가 공산당을 옹호하고 우리 토지개혁을 파괴하지 않으면 놔둬야 한다. 만약 이제부터 우리 공산당과 적대시하면서 국민당을 등에 업고 토비를 돕는 날엔 처단해 버려야 한다.” 상순은 허리를 굽히면서 “할아버지 말씀을 명기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나서 밖으로 나갔다.       그날부터 땅이 얼기 전에 상순은 할아버지 지시대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갱도를 파고 마을 주변에 아름드리 버드나무와 비술나무를 베다가 두 장 높이로 든든한 방어바자를 세웠다. 마을 네귀에는 높은 망루를 세워 놓고 민병들에게 보초를 서게 하였고 토성 안 촌공소 마당에도 높은 망루를 세워 전투지휘소를 차려 놓았다. 병완은 높다란 방어바자와 망루 그리고 갱도를 일일이 돌아보고 만족해했다. “내 용정에 한번 가봐야겠다. 정규상과 원삼이네 형제들과 자식들도 두루 찾아봐야겠다.  마을을 잘 지켜라.” 할아버지 말씀에 상순은 “예. 근심하지 마시고 무사히 갔다가 오십시요.”라고 하며 바래주었다. 상순이 촌공소 마당에 세워놓은 지휘소 우에 올라가는데 성수가 촌공소 마당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김 련장, 큰 일 났소.” “무슨 일이요?” 성수는 헐레벌떡 지휘소우에 뛰어 올라왔다. “장학산이 달아났소.” “아니, 내 이패장 보고 잘 지키라고 하지 않았소?” 성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우린 토성대문을 윤번으로 밤낮 지켰소. 헌데 장학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더구먼.” "제미랄! 무슨 보초를 그렇게 섰소?” 상순은 성수를 책망하더니 지휘소에서 내려갔다. “가 보기오!” 상순은 성수, 학수, 창걸, 흥수 등 민병들을 데리고 쏜살 같이 소서구 어귀 토성 안으로 달려 가보았다. 그들은 다짜고짜로 장학산의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안 남쪽구들에는 장학산의 딸 미련 밖에 없었다. 상순을 보자 미련은 이불을 들쓰고 사시나무 떨듯 했다. “애비는 어디 있어?” 상순은 권총을 뽑아 들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미련은 겁이 나 낯이 새파랗게 질린 채 도리머리 질 했다. “모르겠소. 내 자구 일어나니 아버지와 엄마가 보이지 않았소.” 상순은 동쪽 방을 발칵 뒤져보았다. 하지만 장학산과 여편네 충씨는 그림자도 보이지도 않았다. 상순이 민병들을 데리고 서쪽 방에도 올라가 여기저기 들춰보았다.  집안에 어디에로 기여 들어간 흔적도 하나도 찾아낼 수 없었다. “어허, 참,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인데.) 상순은 민병들을 보고 미련을 지키게 하고 혼자 바깥으로 나와 토성 안을 구석구석 돌아보았다. “이게 뭐냐?” 집 뒤 토성 구석에 자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 놈들이 분명 이 개구멍으로 도망쳤구나.” 상순은 권총을 허리에 차고 쪼그리고 앉아 구멍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뒤에는 장학산 부부가 일하기 싫어 채 베지 않은 마른 강냉이대가 꽉 들어선 강냉이 밭이 내다보였다. 장학산 년 놈들이 이 구멍으로 소리치며 나가 강냉이 밭으로 하여 도망친 것이 분명했다. (대문만 지키니까 여기로 도망치는 거 몰랐지. 에이 참,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상순은 상서롭지 못함을 느꼈다. 장학산네 집 안으로 돌아오는 상순의 뇌리에서는 숱한 궁리가 번개처럼 번쩍이었다. (옳다. 이렇게 된바하고는 적들에게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꾸미고 미련을 볼모로 잡아두고 큰 그물을 늘이어 고기를 잡아야지.) 상순은 미련을 보자 따지고 들었다. “네 애비 어미가 집 뒤 토성 구멍으로 도망친 걸 다 안다! 그래도 어디로 간 걸 말하지 않겠느냐?” 그러자 미련은 구들에 머리를 마구 쪼아대면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빌었다. “오빠, 난 정말 아무 것도 모르오.” “오빠라구 부르지 말라!” 미련은 머리를 끄덕이고 뒤 말을 이었다. “평소에 아버지가 지학사 삼촌처럼 총살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했소. 이젠 인삼 오빠마저 떠나갔으니 이 집이랑 다 빼앗길 게 빤하다고 했소. 허나 나를 두고 사라질 줄은 정말 몰랐소. 이전에 한 집안처럼 살던 정을 봐서라도 제발 용서해주오.” 장미련은 새파랗게 질린 두 볼에 눈물을 줄줄 흘리었다. 상순은 구들에 털썩 걸터앉아 한참 궁리했다. 이윽고 그는 바깥에 나가 성수를 보고 몇몇 민병들을 데리고 집 안팎에서 미련을 지키라고 하고는 함흥 촌 쪽으로 씨엉씨엉 내려갔다. 이튿날 상순이 답답해 뒤통수를 툭툭 치면서 토성 안 촌공소에 곧추 들어갔다. 촌공소에는 허영주와 할아버지가 마주 앉아 한창 뭘 토론하고 있었다. 상순은 집안으로 들어가면서 “할아버지, 언제 돌아왔습둥?” 하고 인사부터 한 후 물었다. “죤슨과 정성문 삼촌 찾아봤습둥?” 병완은 호랑이 같은 막내손자를 대견하게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죤슨 신부는 확실히 영국으로 돌아갔더구나. 정성문과 알아보니 그는 원래 영국에서 동양에 파견해 간도 일본 놈들을 살피러 온 정탐군이였더라. 정성문은 내가 만난 날에 면바로 고향 조선 원산 쪽으로 떠나느라고 야단이더라.” 상순은 구들에 올라가 앉으면서 다급히 물었다. “정규상도 조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까?” 병완은 상순을 마주 보면서 대답했다. “정규상은 장춘(신경)에서 국비생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용정 일본병원에 와서 일하다가 지금 위생학교를 차려놓고 의사와 간호사들을 양성하더라. 그는 아버지를 따라 고향에 가지 않고 위생일군들을 많이 양성해 민주연군에 보낼 예산이더라. 앞으로 공산당 민주연군이 국민당 군과 싸우려면 의사와 간호사가 많이 필요하다면서 고향마저 돌아가지 않았더구나.” 병완은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이번에 원삼이네 둘째아들 장은과 넷째아들 종호가 사는 평란촌에 가 보았다. 그 마을에서도 한창 토지개혁을 해서 지주 박주호와 김경화를 청산해 종호와 장은이네도 밭을 분배받았더구나. 이젠 살 때를 만났다고 좋아 야단이더라. 종호는 그 마을 정득현 영감의 딸 정옥분이란 처녀와 결혼까지 했구. 초가삼간을 짓고 살림살이를 하더라. 종호네 가시아버지는 종호가 힘꼴을 쓰는 걸 보고 마음에 들어 사위로 삼았다더구나. 장은과 종호는 널 놀러 오라고 하더라.” “에이구, 언제 놀러 갈 새 있습둥?” 상순은 할아버지와 영주한테 다가앉으면서 나직이 말했다. “일이 생겼습구마.” “무슨 일?” 상순은 장학산이 달아난 일을 말했다. 병완은 주먹으로 구들을 쿵 치며 말했다. “큰 일 났구나. 그 놈이 삼도만으로 달아나는 날엔 위험해. 토비 놈들이 유격대가 떠나간 걸 알고 우리 마을을 습격하러 올게 아니야?” 상순은 머리를 숙이었다. “할아버지, 다 내 잘못입니다. 민병들은 밤낮으로 토성 대문을 지키면 되리라 생각했습디다." 병완은 상순을 정색해 보면서 타일렀다. “이후에 무슨 일을 하든지 좀 빈틈없이 해라.” 상순은 머리를 조아렸다. “예.” 까까머리를 한 허영주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조용히 말했다. “이미 놓친 거 어쩌겠소? 이젠 토비들의 습격을 대처할 준비를 합시다.” 병완은 상순을 뚫어지게 보면서 말했다. “넌 잠시 참군을 미루구 토비들의 콧대를 꺾어놔라.” “예, 아버지두 자꾸 말리는 바람에 어쩔까 궁리하던 참입니다.” 함흥 촌 당지부 서기이자 촌장인 병완은 허영주와  토비습격을 막을 대책을 한참이나 토론했다. 뒤이어 그들은 촌공소에서 나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갱도와 목책을 돌아보았다. 나중에 망루에 올라가 마을 주변을 둘러보면서 구체적으로 대책을 토론했다. 하늘에서는 거위 털 같은 눈송이가 푸실푸실 흩날려 내렸다. 초겨울이 성큼 다가오자 을씨년스러운 날씨는 점점 추워졌다. 허나 광복을 맞은 함흥 촌은 풍족한 생활로 하여 온 마을에 기쁨과 행복으로 들끓었다. 마을 이 집 저 집에서 떡을 치는 소리가 났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애들이 엿을 먹으면서 소리쳤다. “얭, 얭 맛있다. 오래 오래 맛있다.” 상순은 할아버지와 영주와 토론한 대로 마을 호위에 빈틈이 없는가고 민병들을 데리고 순찰했다. 그는 함흥촌에만 민병들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할아버지와 토론하고 패용천 촌의 지학사의 토성 안 집 자리와 소서구의 토성 안 장학산네 집 자리, 조개덕의 토성 안 조덕림의 집 자리에도 민병들을 주둔시켜 지키게 했다. 그리고 집집마다 울바자 대신 목책을 세우고 목책 문을 꽁꽁 닫아걸어 토비들이 난입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병완은 마을의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도끼나 식칼, 낫을 갖춰 놓고 토비들이 들어오면 싸울 수 있게 만단의 전투준비를 시켰다. 상순이 한창 망루에 올라 권총을 두자루나 찬 허리에 두 손을 지르고 서서 마을 주변을 둘러보는데 성수 패장이 헐레벌떡 달려 왔다. 성수 패장은 헐떡거리면서 보고했다. “보고, 김련장, 장학산과 여편네가 돌아왔소.” “엉?” 성수는 망루 우에 올라와 소서구 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장 지주와 여편네가 글쎄 땔나무를 해 지고 돌아오지 않았겠소? 그 것도 토성 밑구멍으로 아니라 토성 대문 쪽으로 해 들어오지 않겠소.” 상순은 이상해 물었다. “어디로 갔는가 물어 보았소?” “땔나무가 다 떨어져서 땔나무 하러 갔다고 합데.” 상순은 한참 궁리하더니 손을 홱 휘둘렀다. “가 보기오!” 상순을 따라 성수와 몇몇 민병들이 소서구 쪽으로 달려갔다. 학수 등이 장총을 메고 토성 대문을 지키고 있었다. 학수도 상순을 따라 장학산네 집 안에 들어갔다. 장학산은 상순을 보자 뜻밖에도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 높은 구들 턱에서 뛰어 내리며 마중했다. “김 련장 왔소?” 상순은 인사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따지고 들었다. “어디로 갔댔소?” “땔나무 하러 갔댔소. 겨울이 닥쳐오는데 땔나무가 없어 어쩌오? 어우, 추워라. 얼어 죽겠다.” 장학산은 미리 대답할 말을 준비나 해놓은 듯이 상순이 묻자마자 술술 주어 댔다. 상순은 허리에 찬 권총을 매만지면서 집안을 둘러보다가 또 한마디 물었다. “왜 대문으로 나가지 않고 토성 밑에 개구멍을 내고 가만히 나갔는가?” 그 물음에도 장학산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나를 이 토성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지키는데 어쩌겠소?” 상순이 마당에 나가 보니 장작을 패서 가려 놓은 것도 가득했다. (개놈새끼, 땔나무가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분명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구나.) 상순은 집 안으로 되들어갔다. “장 지주, 왜 미련은 데리구 가지 않았는가?” 장학산은 여편네와 힐끔 눈을 맞추더니 입을 뗐다. “달아나지 않겠는데 딸애까지 데리고 가서 뭘 하겠소.” 상순은 장학산이 치밀하게 궁리한 후 토성 밑에 구멍을 내고 나갔다는 것을 봐냈다. 허나 그는 짐짓 모르는 척 했다. “이후에는 나무 하러 가겠으면 민병들과 말하고 가오. 알았소?” 장학산은 “예, 예. 알았소.”라고 하며 여편네와 미련을 흘끔 건너다보는 것이었다. (네 딴에는 아주 쉽게 속여 넘겼다고 여기겠지? 흥!) 상순은 그쯤 해놓고 성수랑 데리고 집안에서 나왔다. 그는 토성 밖으로 나오자마자 토성 안쪽을 흘끔 들여다보면서 성수에게 말했다. “뭔가 있어. 숱한 땔나무를 두고 밤중에 불시에 땔나무를 해?” “미련을 두고 간 걸 봐서 도망치자는 건 아닌 거 같소.” 성수의 말에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옳소. 그 놈은 땔나무를 하러 나간 척 하면서 우리 마을의 정보를 삼도만 쪽에 보낸 거 같소.” 그러자 성수는 눈이 동그래 도리머리 질 했다. “그 놈이 전날 저녁에도 집에 있었는데 날개라도 있어 삼도만까지 날아갔다가 이튿날 점심 전에 돌아온단 말이오?” 상순은 성수의 어깨를 다독였다. “성수, 생각해보오. 딱 지학사가 삼도만으로 가야만 전할 수 있겠소?” “그럼 웬 놈이 마중하러 왔단 말이오?”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토비들이 왔다 갔을 수 있소. 대문으로부터 눈 우에 찍힌 장학산의 발자국을 따라 가만히 가 보기요.” “그게 옳소.” 상순은 민병들을 돌아보았다. “장학산의 집 서쪽 방에 들어가 있으면서 잘 지키오.” 창걸은 “알았소. 건데 토성 바깥에 토비들이 오는 가 살피지 않고?” 하고 의아해 했다. “토성 대문 안에서 지키오. 장학산네 집을 지키지 않는 척 하자는 거요.” 상순의 말에 창걸이랑 토성 안에서 대문과 여기저기 보초를 서고 장학산네 집에 들어가 지키었다. 상순은 성수와 함께 장학산과 여편네가 돌아온 발자국을 따라 가보았다. 처음에 발자국은 천지꽃산 쪽으로 났다가 소서구 막바지 쪽으로 굽으러들더니 북쪽으로 향했다. 북으로 한참 걸어가니 일성 촌 부근 산마루 수림에까지 가서 발자국이 어지럽게 많아진 것이 보였다. 허나 눈이 내려 발자국이 몇 사람의 발자국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됐다. 상순은 숱한 발자국을 일일이 여겨보더니 성수에게 말했다. “보오. 여기서 웬 놈과 만나 우리 마을 정황을 알렸을 거요. 적들은 우리 마을에 유격대가 떠나가고 민병들 밖에 없는 걸 안다면 꼭 요즘 쳐들어 올 것 같소. 정황은 아주 위급하오. 즉시 전투준비를 해야 하겠소.” 성수는 상순의 분석에 머리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상순은 일성 촌 부근을 둘러보며 속궁리를 했다. “토비들이 여기서 장학산과 만난 걸 보면 이번엔 저 동쪽의 계수동으로 멀리 돌아 오지 않을 것 같은데…” 성수는 상순의 총명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상순은 성수에게 전투준비를 이리 이리 하라고 시켰다. 성수는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오- 참 좋소. 그럼 토비 놈들을 혼쭐 낼 수 있을 거요.” 사실 상순의 짐작은 비슷하게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장학산은 땔나무를 하는 척 하면서 여편네를 데리고 밤도와 가만히 괭이로 토성 밑에 구멍을 내고 나갔던 것이다. 그들은 자는 미련을 깨워 데리고 달아나려다가 괜히 민병들에게 붙잡히면 미련까지 죽일 가봐 겁나 놔두고 자기들만 삼도만을 바라고 떠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일성 촌 부근에서 뜻밖에도 토비무리를 만났는데 그 속에는 충국도 있었다. 원래 충국은 전보흥 소교의 파견을 받고 토비 대여섯을 데리고 함흥 촌과 진수해와 팔도, 태양 등 지의 민주연군 정황을 정찰하려고 나왔던 것이다. 충국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자 무릎을 꿇고 엎디어 왕왕 울었다. “아버지, 어머니, 살아 계셨구먼.” 장학산은 충국의 머리를 끌어안고 대성통곡쳤다. “이게 꿈이냐? 흑흑, 생시냐? 난 다신 너를 보지 못 하는가 했다. 이 놈아, 우릴 버리고 혼자 어디에로 갔니? 흑흑, 흑.” 장학산의 여편네 충씨는 충국을 끌어안고 욕했다. “내 뭐라더니? 국민당군이구 빨갱이군이구 까딱 삐치지 말라는데도. 유격대를 그렇게 도와주었건만 빨갱이들은 우리 일가 밭을 다 빼앗아 갔다. 이 못난 놈아! 이젠 집으로 돌아가자.” 허나 충국은 일어나면서 도리머리 질 했다. “안 되오. 이젠 빨갱이들은 우릴 용서하지 않소.” 장학산이 오히려 충국을 말리었다. “빨갱이들이나 유격대나 모두 애증이 분명하게 처리했다. 그들은 이전에 우리 유격대에 쌀을 지원해 준 일과 네가 유격대와 함께 일본 놈들을 족친 공훈을 봐서 우릴 총살도 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이 어시들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자.” 충국은 옆의 토비들의 눈치 보여 부모를 끌고 한쪽으로 가서 나직이 말했다. “늦었수. 그때는 인삼의 낯을 봐준 거오. 인삼이 갔기에 누구도 우릴 봐주지 않을 거요. 게다가 전번에 내가 함흥 촌 정황을 조덕산에게 알려주고 앞장서 들이쳤기에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걸. 그 놈들이 용서한다고 쳐도 우리 밭과 집을 다 빼앗기고 어떻게 살겠소? 이젠 그 놈들을 몽땅 쓸어버려야만 우리 집과 밭을 찾아낼 수 있소. 우리 조상들이 세세대대로 몇 천 년 살아온 우리 땅을 무슨 이유로 조선에서 굴러 온 거지 놈들이 빼앗아 가야 한단 말이오? 그 놈들이야 말로 날강도가 아니고 뭣이오?” 장학산은 집과 밭 말이 나오자 이를 쁙쁙 갈았다. “빨갱이 놈들이 괘씸하긴 괘씸하다. 그런데 꼬리빵즈들이 몽땅 빨갱이 편이다. 그 놈들을 이길 수 있겠느냐?” 장충국은 목청을 돋궈 호언장담했다. “근심하지 맙소. 여기 몇 개 마을에 꼬리빵즈빨갱이들이 많지만 삼도만과 묘령, 천교령 일대에는 우리 국민당 군이 우글거리오. 황차 관내에서 이미 우리 국민당 대부대가 장춘과 길림을 점령하고 이제 오래잖아 교하를 치고 신개령과 할바령을 넘어 동만에도 쳐나올 게오. 그때면 저 산 아래 빨갱이 놈들을 몽땅 없애치우고 우리 집과 밭을 찾아 내얍죠.” 충국은 부모를 데리고 보초를 서는 토비들 쪽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밤이 깊었으니 일성촌에 들어가 쉬고 가깁소.” 장학산은 도리머리질 했다. “안 돼. 집에 미련을 두고 왔다. 우리 혼자 살겠다고 걔를 두고 달아나겠니? 집에 가 가만히 있으면 적어도 상순이랑 우리를 죽이진 않는다. 상순은 적어도 너의 의형제 아니야?” "픽!" 충국은 코 방귀를 뀌었다. “아버지, 아직도 병완 일가에 미련을 두오? 절대 믿지 마오. 그 놈들은 빨갱이들을 믿구 우리 밭을 청산한 놈들이오. 얼마나 좋소. 소작료도 내지 않고. 흥!” 그는 주먹으로 소나무를 꽝 쳤다. 그 바람에 눈가루가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지금은 그 놈들이 자기 세상이라고 우쭐거려도 며칠 후에 그 놈들을 싹 쓸어버리지 않는가!” 충국은 큰소리를 땅땅 치더니 마을의 정황을 일일이 물었다. 마을의 정황을 알아낸 후 충국은 허연 눈이 뒤덮인 수림을 둘러보더니 어둠속에서 부모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병완을 믿지 말고 이 길로 삼도만으로 들어 가깁소. 리국과 미련이야 집에 놔두면 죽이진 않겠지.” 장학산은 도리머리 질 했다. “죽으면 죽었지. 조상들이 물려준 집과 밭을 두고 소서구를 떠날 수 없어. 죽어도 제 집에서 죽고 고향 땅에 묻히겠다. 너를 봤으면 됐다. 네나 무사히 살아 집으로 돌아오너라.” 장학산이 돌아가려고 발길을 돌려 몇 발자국 뗐을 때였다. “잠간만!” 충국이 불러 세웠다. “아버지, 밤도 깊었으니 우리와 함께 일성 촌에서 쉬고 내일 아침에 일찍이 떠나오.” 그리하여 장학산과 여편네는 충국을 따라 갔다. 충국은 토비들을 끌고 일성촌의 토성안의 지주네 집 자리에 쳐들어갔다.      가난한 집 식구들은 밤중에 들이닥친 토비들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른들이 이 집에서 하루 밤 자고 가야 하겠다. 우린 삼도만 토비들이다. 짹 소리 치면 몽땅 죽여치우겠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오.‘ 집 주인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빌었다. 장학산은 비수를 쳐든 아들의 손을 잡아 내리웠다. “얘야, 살생은 하지 말라. 하루 밤 자고 가면 된다.” 허나 장충국은 팔을 홱 뿌리쳤다. “아버지, 이 놈들을 살려주면 내일 우릴 상순에게 고발할 거오.” “고발하겠으면 하라지. 우리 떠나가면 다야.” 그래도 충국은 고집을 썼다. “이 놈을 살려 주면 아버지가 내일 마을로 돌아 갈수 있소? 우리 만난 것도 다 들통 날 턴데. 흥!” 장학산이 더 말릴 새 없이 어둠속에서 충국과 토비들이 비수로 온 집식구들을 몽땅 푹푹 찔러 살해했다. 뒤이어 그 놈들은 시체를 바닥에 끌어 내려 가고 옷을 입은 채 구들에 들어 누워 한잠 잤다. 장학산과 충씨는 무서워 치를 덜덜 떨었다. 동녘하늘에 초겨울 해가 떠서 싸늘한 빛을 뿌렸다.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충국은 졸개들을 시켜 밥까지 지어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자그마한 땔나무 단을 꿍꿍 묶어 아버지에게 메워 주었다. “땔나무를 하러 갔다고 민병들을 속이오. 수상하게 토성 밑의 구멍으로 들어가지 말고 대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가오. 미련을 두고 왔으니 도망쳤다고는 보지 않을 거요.” 부모를 보낸 후 충국은 졸개들을 데리고 곧추 삼도만을 바라고 떠나갔다. 일성촌의 토성안집 지주 집을 분배받아 살던 가난한 농민 일가가 몽땅 살해된 사건은 오후에야 일성촌 민병 패장 태수가 발견하고 달려와 상순 련장에게 보고했다. 상순은 장학산이 전날 잃어진 것과 눈 우에 찍힌 장학산의 발자국이 일성촌 부근에까지 뻗어있었다는 성수의 보고를 연계시켜 본 후 분명 토비들이 왔다 갔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상순은 일성촌 태수의 귀 쌈을 챨싹 갈기었다. “보초를 어떻게 섰으면 자기 마을에서 한 집 식구들을 몽땅 살해하는 것도 몰랐는가? 이제 다시 보초를 허술하게 서는 날엔 용서 안 해!” “옛! 김 연장!” 상순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퉁방울눈을 부라리면서 황소숨을 씩씩 몰아쉬었다.                        5. 허장성세        을씨년스러운 눈보라가 산골짜기를 메울 듯이 윙- 윙- 휘몰아쳤다. 눈보라 속에 산골짜기에 촘촘히 꽉 박아세운 통나무 목책이 한 눈에 안겨 왔다.        충국이 토비들과 함께 이튿날 해 질녘에야 기진맥진해 삼도만 평강촌 토비소굴에 들어섰다. 때마침 삼도만의 전 소교가 마을 복판에 있는 토비 지휘소에 일본 여편네 요시꼬까지 데리고 와 있었다. 전 소교의 여편네 요시꼬는 원래 일본군을 따라 조선 명천에 들어온 일본군 위안부였든데 꽤나 아직도 예쁘고 젊었다. 삼도만 삼림경찰소 소장은 진수해 위안소에 내려와 요시꼬와 하루 밤 데리고 놀았는데 두고 가기 아쉬웠다. 소장 놈은 묵직한 돈뭉치를 내놓고 요시꼬를 사서 삼도만에 데리고 들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 놈들이 소련 홍군에게 쫓길 때 전 소교가 도망치던 일본 삼림파출소 소장 놈을 도끼로 찍어 죽이고 그 놈의 마누라 요시꼬를 빼앗아 강제로 데리고 살았던 것이다.        요시꼬는 지금도 전보흥한테 남편 고모리가 도끼산장을 당하던 일을 생각하면 끔찍해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날 고모리는 황급히 집에 들어와 요시꼬를 보고 도망치자고 했다. "여보, 우리 고향 나가사끼가 원자탄에 맞아 없어졌소. 우리 대일본제국은 전쟁에서 졌소. 어서 도망치기오." "고향이 없어졌는데 어디로 도망쳐요?" "여기 있으면 중국사람들한테 맞아죽어." "그럼 패용천촌에 보낸 야마꼬도 데리고 도망치자요." "안돼. 지학사 촌장한테 야마꼬를 주면 보호를 받겠는가 했는데. 안돼. 지촌장도 우릴 보호하기는커녕 자기 목숨도 부지하기 힘들어." 고모리는 당장  요시꼬 손을 잡고 다짜고짜로 집문을 나서자 울창한 수림에 들어섰다.        "서랏!"        갑자기 고함소리와 함께 꺽다리 괴한이 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그 뒤에는 총을 든 토비들이 나타났다.        고모리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았다.       땅!      수림 속에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토비가 쏜 총에 고모리는 총을 툭 떨어뜨리고 오른팔을 붙잡았다.        "썩어져라!"       꺽다리괴한은 도끼를 휘둘렀다. 고모리의 어깨가 찍혀나갔다. "악!" 비명소리와 함께 고모리의 머리가 두 쪼각 났다. "앗!" 야마꼬가 기절해 쓰러졌다... 그녀가 깨났을 때는 실 한오리도 걸치지 않은채 꺽다리괴한의 옆에 누워 있었다. 턱주가리에 칼자욱이 난 흉측한 그 꺽다리괴한이 바로 토비두목 전보흥이였다.     요시꼬는 원쑤 놈을 보는 순간 눈에 불이 일었다. 그녀는 구들에서 부시시 일어나 앉았다. 그녀의 눈에 턱주가리에 칼 흉터가 들어왔다. 목에 칼을 깊숙이 박고 싶었다. 남편의 원쑤를 갚고 싶었다.  위안부로 짐승처럼 짓밟히며 죽지 못해 살다가 고모리를 만나 사람처럼 살게 됐다. 그 남편을 믿고 기대며 이 산골에서 살았다. 그런데 일본 고향에 돌아가려는 그 남편을 이 놈이 죽였다. 그것도 도기로 찍어 처참하게 죽였다. 그녀의 희망은 완전히 파멸되였다.       그녀는 속에서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그러나  손에 쇠붙이 하나 없는 연약학 아녀자 몸으로 어쩌는 수 없었다선.     "허허허. 깨났어."     전보흥은 말이발을 드러내며 징글스레 웃으며 다가왔다. 뒤이어 다짜고짜로 요시꼬를 구들에 깔아 눕혔다. 또 짐승처럼 깔고 들어앉아 그 짓을 하려고 들었다. 요시꼬가 아무리 발버둥질치며 반항해도 도깨비처럼 둔중한 그 놈을 어쩌는 수 없었다. 요시꼬는 강간당하면서 들쑤시는 아픔을 참으며 외씨처럼 걀죽하고 창백한 얼굴에 증오에 찬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날부터 그녀는 원쑤에게 깔려 처참하게 짓밟혀야만 했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이를 옥물고 복수의 기회만 기다려야 했다....       한편 야마꼬는 통신병과 함께 삼도만에 들어온 후 형부한테 말해서 통신병을 혼내주라고  하자고 했다. 그런데 요시꼬가 뜻밖에도 일본 삼림경찰소 소장이 아닌 전 소교와 사는 것을 보고 저으기 놀랐다. 더우기 야마꼬는 몸이 남산만한 자기를 오자마자 그날 밤부터 깔고 들어 앉아 그 짓을 하는데 역겹고 혐오스러웠다. 전보흥 놈이 강간하는 바람에 하신에서 숱한 피를 흘리고 조산까지 했던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전보흥이 자기가 낳은 아들애를 지학사의 씨라고 내다버리라고 하였다. 그때 지학구 패장이 나서서 말렸다. 사실 지학사의 아들이자 자기 조카였기 때문이였다.        알고 보니 전소교는 야마꼬도 데리고 살려고 요시꼬부고 삼도만에 들어오라는 쪽지를 쓰게 강요했던 것이다.  요시꼬한테서 형부가 전보흥 소교한테 살해된 전후 사연까지 다 들어 알게 됐다.         야마꼬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그녀는 그날 밤부터 언니와 함께 겉으로는 아양을 떨며 전소교한테 몸을 맡기는 척 하고 속으로는 기회를 봐서 전소교를 죽여치우려고 이를 쁙쁙 갈았다. 그러나  연약한 아녀자들인 자매는 시종 손을 쓰지 못했다. 그리하여 요시꼬와 야마꼬 자매는 전소교가 자리를 비운 틈이면 암암리에 통신병 마씨와 전소교의 문서 조씨한테 추파를 보냈다. 그녀들은 마씨와 조씨를 미인계로 나꾸어 그들의 손을 빌어 전소교를 죽이려고 들었다.      그런줄도 모르는 전소교는 량팔에 요시꼬와 야마꼬를 껴안고 희희닥거리었다. 장충국이 들어서자 전소교는 길쭉한 낯을 기우뚱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하면서 충국을 맞이했다. “장 반장 돌아왔는가? 그래 길에서 고생하지 않았어?” 충국은 비틀거리다가 지휘소 구들에 풀썩 물앉았다. “모든 걸 정찰했습니다. 전 소교, 먹을 걸 주십시오.” “얘들아, 밥 한 대야 가져오라.” “옛!” 전 소교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토비들이 수수밥 한 대야에 멧돼지 고기를 섞어 볶은 배추 채를 한 대야 들여왔다. 충국과 몇몇 토비들은 이리떼처럼 욱 모여들어 밥 한 대야나 게 눈 감추듯 했다. 허나 밥에 체해 그들은 몽땅 스르르 쓰러졌다. 전 소교는 충국한테서 정황을 알아보려고 마구 쥐여 흔들었다. 허나 충국 등 몇몇 토비 놈들은 술에 취한 놈들처럼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고 뻐드러진 채 쿨쿨 잤다. 이튿날 아침에야 충국 등은 지휘소 구들에서 부스스 일어나 두 손으로 눈통을 비비었다. 전소교는 충국에게서 유격대가 확실히 마을을 떠났고 마을에는 민병들뿐이라는 것을 알고 즉시 지학구를 불렀다. 지학구는 지학사의 사촌동생인데 해동파출소 소장을 하던 자였다. “지 패장,   함흥 촌 일대 지형을 잘 알지 않는가. 즉시 20여명 형제들을 데리고 내려가 함흥 촌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려라.” 지학구는 개 턱 같은 뾰족한 턱을 쳐들고 도리머리 질 했다. “20여명으로 어떻게 함흥 촌 일대 놈들을 칩니까? 자칫했다가 전번 개꼴이 되겠습니다. 함흥 촌 일대 민병들은 오합지졸이지만 진수해 민주연군한테 걸려들면 목이 댕강 잘립니다. 빨갱이들은 원체 매복습격전과 유격전에 능한 놈들이라서…” 그러자 전 소교는 독살이 오를 대로 오른 눈깔로 지학구 패장을 쏘아보았다. “나무 잎이 다 떨어졌는데 그 놈들이 어데 매복한단 말이냐? 치는 척 해서 그 놈들의 반응을 보란 말이야.” “오, 전 소교님의 의도를 이제야 알 거 같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원수를 갚을 때 됐어. 내 그 놈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일 테다!” 충국은 호통치더니 지학구를 따라 나갔다. 전 소교는 평강촌 토비지휘소를 떠나는 토비들을 보고 제법 장교답게 한마디 호통쳤다. “나의 병사들이여, 우리 국민당 군의 본때를 보여주라!” 지학구 등 토비들은 총을 쳐들며 고함쳤다. "옛!" 전 소교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출발하라고 손을 홱 저었다. 지학구 패장은 충국 반장과 함께 20여명 토비들을 데리고 그 길로 산을 넘고 령을 지나 온 하루 함흥 촌을 바라고 강행군을 했다. 그들은 밤중에야 일성 촌 부근에 이르렀다. 충국은 산등성이 길에 주춤 멈춰서면서 지학구를 보고 제의했다. “지 패장, 일성 촌에 내려가서 하루 밤 쉬고 내일 밤에 칩시다!” 그러자 지학구는 계속 걸으면서 반대했다. “안돼, 내일까지 멀쩡하게 기다리다가 빨갱이들에게 잡히자고. 군사행동은 신속해야 하네.” 충국은 지학구를 따라가면서 지꿎게 들이댔다. “병사들이 다 지쳐서 어떻게 싸웁니까?” 그 말에 지학구는 어둠속의 일성 촌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어쩐지 일성 촌이 범의 아가리처럼 무시무시하고 으쓸한 느낌이 들었다. “장 반장, 전날에 일성 촌 토성 안 집 사람들을 도륙 냈다면서? 빨갱이들은 꼭 이 마을의 보초를 강화하였을 거야.” 그제야 충국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어데서 쉬겠습니까?” 지학구는 충국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물었다. “자네 집에서 자면 어떨 가?” “정신 있습니까? 안됩니다." "왜?" "외삼촌, 놈들이 지금쯤 우리 집을 철통같이 지킬 거요.” “어떤 땐 등잔불 밑이 어두운 법인데.” “아닙니다. 외삼촌, 요즘 그 놈들은 버쩍 신경을 곤두세울 겁니다. 아예 우린 산등성이에서 나무이파리를 덥고 잡시다.” 허나 지학구는 결단을 내렸다. “조카, 이 추운데 어데서 잔다고 그러는가? 아예 좀 곤한 대로 병사들을 내몰아 함흥 촌을 치는 척 하자.”        “어떻게 그렇게야. 온바 하고는 빨갱이 놈들을 몇 놈이라도 죽이고 갑시다." “그럼 이렇게 결정하자.” 교활한 지학구는 전날 충국이 밟은 함흥 촌 서쪽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지 않고 길을 바꿔 함흥 촌 동쪽 계수동으로 하여 함흥 촌에 접근했다. 지학구는 어쩐지 전날 충국이 일성 촌에서 사람까지 죽이면서 왔다간 서쪽 령길이 상서롭지 못한 감을 느끼었던 것이다. 그들은 동산 계수동 폐허에 조심스레 기어들어 벌벌 기여 산마루에 올라 함흥 촌을 내려다보았다. 계수동 쪽에는 어쩐지 보초를 서는 민병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지학구는 충국의 옆에 엉금엉금 기여와 나직이 말했다. “조카는 저 골짜기를 따라 마을에 접근해 마을 서쪽에 서 있는 망루를 까부시게. 놈들이 서쪽으로 몰려 갈 때 내가 동쪽에서 목책을 폭파해버리고 촌공소를 습격하겠네. 일이 끝나면 소서구 골짜기를 따라 철거하게. 내일 삼도만에서 승리의 축배를 들자.” “알았습니다.” 충국은 필경 유격대에서 싸워본 적이 있어 담대했다. 그는 토비 대여섯을 데리고 골짜기를 따라 벌판에 내려간 후 무덤을 지나 함흥 촌 서쪽에 접근했다. 민병들이 순라를 하면서 지나가기 바쁘게 충국은 졸개들을 시켜 수류탄을 준비하게 했다. 그때 뜻밖에 개들이 왕왕 짖어대면서 이쪽으로 덮쳐왔다. 이윽고 마을 토성안집 쪽에서 종을 댕, 댕, 댕 치는 소리가 들리었다. 망루 우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푱! 푱! 푱! 토비 두 놈이 쓰러졌다. “수류탄을 뿌려!” 충국의 고함소리에 토비들은 마을 서쪽 망루에 수류탄을 뿌렸다. 그런데 수류탄이 망루를 맞히지 못하고 빗날아갔다. 이때 마을 밖에서 함성소리가 요란히 들렸다. 버드나무숲 속에서 숱한 민병들이 덮쳐오면서 맹사격을 가했다. 황급해난 충국은 제일 앞 서쪽에 있는 상진이네 집과 학수네 집에 수류탄을 마구 뿌리었다. 대뜸 집에 불이 달렸다. 한편 지학구는 전번에 조덕산을 따라와 함흥 촌을 진공하다가 혼난 적이 있었기에 근본 마을을 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는 충국을 이용해 마을을 치는척하다가 도망칠 예산 밖에 없었다. 이때 상순의 포치를 받은 조개덕에 매복해 있던 병수랑 총소리를 듣자 민병들을 이끌고 함흥 촌 토비들 쪽으로 맹사격하며 돌격해 왔다. 토비 놈들은 어둠속에서 허연 눈 우에 숱한 민병들이 덮쳐 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또 매복습격전에 걸렸구나!) 지학구는 황급히 10여명 토비들을 끌고 소서구 쪽으로 도망쳤다. 그 때였다. “토비 놈들아, 상순 연장이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래다! 어디로 도망쳐?!” 뚜르륵 뚜르륵 눈덮인 겨울인지라 소서구 토성 안 장충국이네 집에 매복해 있던 상순은 태평강을 건너 도망쳐 오는 토비들을 향해 기관총소사를 해댔다. 바빠 맞은 지학구는 몇몇 주검을 남기고 살얼음이 간 태평강 바닥을 따라 북으로 일성 촌을 바라고 도망쳤다. (상순 연장? 분명 지학사형님을 송사를 건 못된 놈이야!) 순간 지학구는 독살스러운 세 귀 눈을 가진 청년이 눈앞에 떠오르며 온 몸이 오싹 해났다. 지학구가 나머지 십여 명 패잔병들을 데리고 일성 촌에 거의 달아났을 때였다. 총소리를 들은 일성촌의 민병들은 사전 상순의 포치에 따라 마을을 순라하다가 몽땅 마을 어귀에 엎디어 남쪽을 주시했다. 이윽고 마을 남쪽으로 검은 그림자들이 뿔뿔이 도망쳐 오는 것이 보였다. “사격!” 태수 패장이 명령하자 일성 촌 민병들은 토비들에게 명중탄을 안겼다. 토비들은 또 몇몇 주검을 남기고 동쪽으로 도망쳤다. “토비 놈들아! 어디로 도망쳐?!” 민병들은 토비 놈들이 멀리 도망쳐 흑점으로 보일 때까지 사격했다. 지학구와 충국은 일여덟 주검을 남겨둔 채 겨우 목숨을 건져가지고 삼도만으로 도망쳤다. 지학구는 도망치는 길에서 충국과 전 소교에게 거짓보고를 하기로 하고 졸개들에게 입단속을 단단히 했다. 그들은 이튿날 해질 녘에야 삼도만에 들어섰다. 전 소교는 돼지를 잡아 놓고 기다리다가 보초를 서던 졸개들에게서 그들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평강촌 마을 밖에까지 나가 마중했다. “장하네.” 전 소교는 지학구의 어깨를 툭툭 치며 지휘소로 데리고 들어오며 물었다. “그래 습격하러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는가?” 지학구는 충국을 흘끔 보더니 전 소교 앞에서 거짓말을 퍼부었다. “장관, 우린 적은 병력으로 마을을 기습해 쑥대밭을 만들어놨습니다. 수류탄으로 망루를 까부시고 빨갱이들의 집에 몽땅 불을 질러 놓았습니다. 그 놈들은 올 겨울에 얼어 죽지 않는가 보십시오.” 전 소교는 지학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말하게나.” 충국이 대답했다. “우린 두 개 소조로 나뉘어 수류탄으로 두 개 망루에 집 십여 채를 불태워 버리고 꼬빨갱이들을 아마 2, 30명 죽여 버렸습니다.” 전 소교는 충국과 지학구를 번갈아 보았다. “지패장, 사실인가?” 지학구는 속이 뜨끔해났지만 짐짓 웃음까지 지어보였다. “옛, 틀림없습니다. 우린 장관님의 포치대로 우리 국민당군의 사기를 올리고 빨갱이들에게 본때를 보여줬습니다.” “지 패장, 장 반장, 수고했네.” 그는 푹 삶은 돼지고기로 연회를 베풀고 토비들을 몽땅 불러다 이른바 승리를 경축했다. 함흥 촌 습격 전에 출전했던 토비들은 웃고 떠들면서 술을 실컷 마셨다. 술이 거나하게 되자 전 소교는 술잔을 들고 호언장담했다. “형제들, 우리 국민당군은 800만 대군에 미국의 대포, 탱크, 비행기까지 있네. 빨갱이들은 비행기 한 대도 없네. 여기 동만의 민주연군 빨갱이들은 대포 하나도 없네. 이번에 우리 지 패장은 20명을 거느리고 가서 몇 백 명 민병들과 용감히 싸워 8명이란 적은 대가로 30명이나 죽여 버렸네. 지 패장과 장 반장은 우리 군의 사기를 대단히 높였네.” 전 소교는 흥미진진해 듣는 토비들을 향해 술잔을 들었다. “자, 함흥 촌 기습작전 승리를 축하해 실컷 마시자!” “마시자!” 토비들은 게걸스레 돼지고기를 뜯어먹으면서 술잔을 들었다. 전 소교는 또 술잔을 들고 고함쳤다. “우린 목숨을 걸고 빨갱이들과 싸워 우리 마을을 지켜야 하네! 함흥 촌과 조개덕을 보지 못했는가? 장반장네 아버지처럼 빨갱이들에게 집과 땅을 빼앗긴다! 자칫하면 처까지 몽땅 빼앗기게 된다! 알만한가?!” “빨갱이들에게 천하를 빼앗기면 안 된다.” “그 놈들을 소멸하자!” 토비들은 여기저기서 고함쳤다. 산골짜기 토비들은 참말로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산골 안에서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취 김에 호언장담하며 떠들어댔다. 한쪽 구석에서 통신병 마씨는 어떻게 하면 예쁜 야마꼬를 계속 데리고 놀가 궁리하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문서 조씨도 마씨와 똑 같은 궁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저놈 전씨를 죽여치우고 요시꼬를 손에 넣을가? 흐흐흐.) 야마꼬와 요시꼬는 마씨와 조씨의 속내를 환히 들여다보고 날따라 살내를 풍기였다. 어느 하루, 요시꼬가 아들 지시룡의 기저귀를 갈아채우는데  지학구가 찾아왔다. "전소교 있소?" 지학구는 집에 들어오며 두리번거렸다. "없어요. 삼도만에 간다고 했어요." 지학구가 모를리 있겠소만 짐짓 모르는 척했다. 그는 지시룡을 안아 뽀뽀해주며 덕담을 했다. "에이, 우리 조카 잘 생겼네. 요놈, 우리 지씨 뿌리를 이어야지." 순간 야마꼬는 피뜩 번개치는 생각이 있었다. (지패장을 등에 업으면 이 마귀 소굴을 벗어날 수 없을가?) 야마꼬는 지학구한테 추파를 보내며 아양을 떨었다. "지패장, 시룡일 보호해줘 고마워요. 제가 지패장께 뭘 해드리면 좋을가요? 분부만  하면 뭐든 다 해드릴게요." 지학구는 피끗 야마꼬를 돌아보며 달걀침을 꼴깍 삼키었다. 야마꼬는 이때라고 몸을 바싹 지학구한테 기대였다. "이 마귀소굴에서 지패장 밖에 믿을 사람이 없어요. 우리 모자간을 이 놈 마귀소굴에서 구해주세요. 이 몸은 지패장 거예요." 그러나 지학구는 품에 안겨드는 야마꼬를 밀어내며 시룡을 되안겨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찌 형님의 여자를 차지하겠소. 다른 궁리 말고 전소교를 잘 모시라구, 그 길만이 너네 모자와 언니를 구하는 길이야." 지학구는 말을 마치자 휭 하니 바깥으로 나가 버렸다. "흥! 여자에 굶은 주제에 배부른 타령은!" "포기하지 말라." 옆방에서 요시꼬가 부풀어오른 배를 뚱기적거리며 들어왔다. "사내들을 몰라 그래? 지패장은 분명 네가 욕심나지만 전소교가 무서워 그래."    야마꼬는 걀죽한 얼굴을 찌푸리며 성나 코방귀를 연신 뀌었다. "언니, 요즘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마귀소굴을 벗어만 나면 우리 아무 문제 없이 살 같아." 요시꼬는 버들 눈섭 아래 외까풀눈을 치떴다.  "건 무슨 소리야." "패용천촌에 가서 살아도 이 마귀 소굴보다 나아." "공산군이 지촌장마저 죽이잖았나?" 야마꼬는 시룡을 안고 흔들거리며 말했다. "지촌장은 친일주구라고 죽였지만 우리 모자간은 놔두지 않았어? 그들은 처자들은 반동을 하지 않으면 갈라서 대하는 거야." "뭔 소리?' 요시꼬는 눈을 흘겼다. "우린 이 소굴을 벗어나 어떻게 하나 일본으로 돌아 가야 해. 그게 유일한 출로야." 야마꼬도 한숨을 호-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전소교 있소?" 이때 문서 조씨가 들어왔다. "아니, 전소교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호호호." 요시꼬는 아양을 떨며 조씨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조씨를 데리고 자기 방에 들어가며 야마꼬를 되돌아보며 외까풀눈을 찔끔 끔쩍이었다. "바깥에 개 오지 않는가 좀 지켜라." 야마꼬는 실웃음을 흘리며 문께로 돌아섰다. 이윽고 요시꼬 방에서는 여인의 아양 떠는 소리에 뒤이어 신음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아이유, 좀 살살, 애 눌리워 울겠어요." "그래. 알았어.' "전소교 있소?" 이때 바깥에서 개 짓는 소리가 또 들리고 마씨가 울안에 들어섰다. 야마꼬는 애를 안고 짐짓 눈을 곱게 흘기며 아양을 떨었다. "아이유, 전소교 없으니 동네 개들이 다 모여드는구나." "동네 개라니? 보호은인도 모르고. 흥!" 통신병 마씨는 눈깔을 희뻔뜩거리며 야마꼬를 집안으로 떠밀었다. "잔말 말고 전소교 오기전에 빨리, 빨리." "거 누구냐?!" 집안에서 울리는 소리에 마씨는 허리춤에서 권총까지 빼들고 바깥으로 달려나가려고 했다. "호호호. 겁쟁이라구." "엉? 전소교 아닌가?" 마씨가 되돌아섰다. "겁내지 말아요. 언니 친군데요." 야마꼬는 마씨를 데리고 자기 방에 들어갔다. 이어 우는 어린애를 달래는 소리에 뒤이어 여인의 신음소리, 아양떠는 소리 들렸다. "우리 모자를 지켜주지?" "내 있는 한 근심 말라구." "우리 자맬 이 마귀 소굴에서 구해주죠?" "그래, 이 어른만 잘 모시면 목숨이라도 바쳐 구해주지." "당신 정말 담짝도 커요. 진짜 사내대장부야. 호호호." 이때 갑자기 문을 쾅 차고 누군다 뛰여들었다. "어마나!" 두 여인이 비명을 지른다. "이 놈들, 잘한다!" 뜻밖에 뛰여든 자는 전소교가 아니라 지학구였다. "죽을 죄를 졌소." "제발 살려주오." 마씨와 조씨는 괴춤을 재대로 춰슬리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꿀러내려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했다. "이 놈들아, 전소교가 말을 타고 반시간이면 삼도만에서 여기까지 온다. 담짝도 크구나." 마씨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빌었다. "이 일 덮어주면 뭐든 지패장 하라는대로 할 거요." "제발 살려주오." "네놈들 목숨은 내 손에 쥐웠다는 걸 알아!" "아이고!" "지패장, 제발 살려주오." 이때 요시꼬마저 사정했다. "지패장, 조문서를 살려줘요. 이 마귀소굴의 2인자나 다름 없는 조문서 없으면 시룡과 우리 자매를 누가 보호해주겠어요." 그러나 지학구는 짐짓 아닌 보살을 떨었다. "상전의 안해를 다쳤는데 살려 줄 순 없어. 량심없는 놈들" 그러자 야마꼬는 우는 지시룡을 안고 서쪽방아에 건너왔다. "그럼 나와 애를 죽이고 마룡을 죽이세요!" 야마꼬도 통사정을 들이댔다. "마룡도 살려 주세요. 지씨네 피줄을 지켜줄 사람은 마씨뿐인데요." "허허허." 그제야  지학구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본색을 드러냈다. "네 놈들 꼭 이들 자매와 시룡일 보호할 수 있겠냐?" "네. 살려만 주면 꼭 목숨 걸고 이 녀자들 보호할게." 조소호와 마룡은 대가리를 땅바닥에 쫗았다. "은혜 백골난망이오." "지패장, 구명은인입니다.' 그쯤 하면 됐다고 생각한 지학구는 뒤짐을 짓고 문을 박차고 바깥으로 나갔다. " 전소교 오겠어." "예. 감사하오." 마룡과 조소호는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그들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문밖에 가만히 나가 보았다. 그런데 지학구는  망을 봐주는지 삼도만쪽으로 통한 길 어귀에서 서성거리며 기웃거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씨와 조씨는 서로 눈길을 마주치더니 집안에 씽 달려들어와 문까지 걸어놓은 후 시름놓고 일본 여인들을 데리고 놀았다...
86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5) 댓글:  조회:1610  추천:0  2017-03-23
                              3. 정 들면 고향      서늘한 가을 날씨가 서서히 다가왔지만 함흥 촌은 기쁨의 열기로 들끓었다. 지주를 청산해 집과 밭을 가졌으니 농사꾼들이 어찌 기쁘지 않으랴. 올해 가을부터는 낟알들 털어 지주에게 소작료를 한알도 바치지 않아도 됐다. 농사꾼들은 밭에서 낟알을 걷어 들여 도리깨로 털어 절구에 찧느라고 땀을 뻘뻘 흘렸다.       창준과 범호는 토성 서쪽에 정미소를 짓느라고 마치로 못을 땅땅 박는다, 대패질을 한다 하며 뺑뺑 맴돌았다. 용천은 함흥 촌에 오자마자 손호표를 총살하고 지주의 집과 밭을 청산해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보고 속이 꿈틀했다.     (만약 여기가 경주라면 이 사람들은 우리 집도 청산해 아버지를 죽이고 집과 밭을 나눠 가질 거 아닌 기여? 빨갱이무리에 들지 않길 잘한 기여.)      그는 진달래와 경주를 기다릴 일이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남으로 떠나가고 싶었다. 허나 당분간은 함흥 촌에 눌러 있어야 했다. 그에게는 하루를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기로 삼추와 같았다. (경호와 진달래가 한 열흘이면 장백산으로 갔다가 오겠지. 열흘만 꾹 참고 기다리자.) 어느 하루 용천이 작은아버지 집에서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상순이 밥그릇을 담은 보자기를 들고 들어왔다. “얘, 뭘 또 가지고 왔어?” 상순은 희죽이 웃었다. “내 아내 달걀비빔밥을 지었습니다.” “잘 먹겠네. 자네도 여기서 아침을 먹고 가게나.” “아침 대충 먹고 왔습니다. 인차 촌공소에 가봐야 하겠습니다. ” 상순은 인차 자리를 떴다. 용천은 아침 숟가락을 놓자마자 촌공소로 들어갔다. 이계삼은 금방 촌공소에 들어선 용천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김 대장, 삼도만 토비들이 대체 모두 몇 명이나 되오? 그 놈들의 정항을 좀 알려주오.” 용천 대장은 두 말 없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삼도만 토비들은 기실 당지 한족지주들과 한족농민 60여명으로 조직된 오합지졸이랑께. 그자들은 순전히 국민당 소교 전보흥이란 자의 민족이간질에 미혹돼 국민당 토비로 된 놈들인 기여. 전보흥 소교는 원래 국민당 정예군의 소교데이."     상순은 궁금한 걸 물었다.     "전보흥 소교 생김새 어떤 특징이 없습니까?"      용천은 좀 생각하더니 인차 대답했다. "오, 그래. 그 놈 생김새를 알아야 생포하든지 생사를 확인하지. 전소교 턱주가리에 칼자국 같은 흉터가 있더구만." "키는 큽디까?" "응. 꽤나 훤칠한 키였어. 항상 일본 놈처럼 일본 군도를 차고 다니면서 행패를 부렸어." 병완과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용천이 뒷말을 이었다. " 그 자는 국민당군 조덕산 영장의 파견을 받고 삼도만 평강 촌에 기어들었다데이. 그 놈은  한족농민들에게 별의별 선동을 다 하데이. ‘공산당 민주연군의 꼬리빵즈(高丽帮子:조선인) 빨갱이들이 지금 우리 한족들을 죽이고 집과 밭을 청산해 빼앗자고 한다.’. 하, 그 놈 선동 진상 잘 모르는 당지 한족들한테 먹혔지 뭐야. 그 놈은 함흥촌에서 조덕산과 조덕림을 총살하고 가옥과 밭을 가난한 농민들한테 나눠준 사실을 들어가면서 대대적으로 선전했다이." 이계삼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에끼, 이 사람아, 거짓말을 해도 유분수지. 자네 이 마을에 돌아온 후에 조씨랑 총살했는데 전보흥이 아는지 모르는지 자네 어떻게 알아?" 용천은 살을 붙여 엄중하게 말하다가 꼬리를 밟혔다. 그러나 그래도 대부분은 진실한 정황이었다. "글세 그 놈이 글케 선동했다니께. 지어 그 놈은 이렇게 군중들을 미혹시켰데이. ‘빨갱이들이 공산공처(共产共妻)를 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한족들 처자들까지 빼앗자고 삼도만을 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지, ‘우리 한족들은 무기를 들고 조선 빨갱이들을 맞받아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는지, 그 놈 주둥이 다 삐뚫어지게 돌아다니며 선동했데이. 그러니까 당지 한족들은 전 소교의 민족이간 질에 놀아나서 집과 땅, 처자까지 빼앗기지 않을락꼬 모두 토비로 돼 무기를 들고 민주연군을 막으려고 나섰어. 그 속에는 진수해 부근에서 달아난 지주들이나 위만 경찰들이나 친일주구들도 많데이. 이 마을에서 달아난 장충국이나 해동분주소 소장 지학구도 있데이. 더구나 이 마을에서 도망친 장축국이란 자의 선동역이 대단했어. 그 놈은 전 소교의 문서와 함께 한족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함흥 촌에서 토지개혁 때 지학사와 조덕림, 제지주랑 숱한 한족지주들을 총살하고 집과 밭을 빼앗아 조선 빨갱이들한테 몽땅 나눠줬다고 떠벌였지. 게다가 지학구 소장 놈도 풍을 치는 바람에 산골 안에서 세상을 보지도 못한 한족 농사꾼들은 진상을 잘 모르고 미혹돼 분분히 국민당 토비무리에 쓸어 들어갔지.” 이계삼과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며 한숨을 후 내쉬었다. 상순은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그 놈들의 주요 무기는 어데서 얻은 거요?” 이때 허영주도 촌공소로 들어와 용천과 인사를 나누고 구들에 올라와 앉았다. 용천은 아주 흥미진진해 뒤 말을 이었다. “그 놈들은 전 소교가 국민당 군에서 가지고 온 기관총 서너 정에 장총이 위주이지. 그 외에도 지학구 소장과 같은 위만 경찰 놈들이 파출소나 분주소에서 가지고 간 권총도 몇자루 있지. 그 놈들은 삼도만 일본 삼림경찰 놈들이 도망칠 때 수림 속에서 도끼나 세 가닥 창으로 찍어 죽이고 보총을 빼앗은 것도 있지.”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국민당 정예군 놈들도 토비들과 함께 우리 마을에 쳐들어 왔다가 무리죽음을 당했습니다. 고까짓 산골 오합지졸 놈들이 무슨 대단해서.” 그러나 용천은 도리머리 질 했다. “상순아, 절대 그 놈들을 얕잡아 봐선 안 돼. 그 놈들은 대부대작전을 지휘하던 전보흥 소교 놈의 지휘아래 살아 남을락꼬 악을 딱 쓰고 군사훈련을 했어. 그 놈들은 아마 여기 민병들 못잖게 전투력이 있어. 게다가 그 놈들은 마을 주변에 한 장 길이나 되는 원목으로 장재를 몇 겹으로 두르고 그 바깥에 둬 자씩 되는 뾰족한 나무가시를 촘촘히 박아놓았어. 그리고 목책 안에 또치까를 쌓고 전호를 파서 그런 또치까 사이를 연결해 놓았데이. 집집마다 토성에 총구멍을 냈고 마을 복판에는 사처를 둘러보면서 전투를 지휘할 망루도 통나무로 높게 세웠어. 그 놈들의 말처럼 평강 촌에 들어가는 안도 쪽의 령길과 팔도와 삼도만 소재지로 올라가는 골짜기 길만 막으면 몇 백 명도 평강 촌을 공략하기 힘들어. 토비 놈들은 깎아지른 절벽의 천험을 끼고 있는데다가 평강 촌과 삼십 여리 떨어진 삼도만 소재지의 놈들이 수시로 전화로 연계하면서 서로 접응할 수 있어. 토비들을 소멸하기 그리 쉬울 거 같잖아.” 이계삼과 허영주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상순은 자신만만해 호언장담했다. “우리 국자가와 명월구에 민주연군이 몇 천 명이나 있는데 그까짓 놈들을 소멸하지 못하겠소?” 용천은 상순의 호언장담에 냉수를 퍼부었다. “담력과 용기만으로는 승리할 순 없어. 전술상에선 놈들을 중시해야 해.” 상순은 용천의 그 말을 가슴 속 깊이 명기했다. 그는 민병 연장인 자기 어깨가 무거워지는 감을 느꼈다. 이계삼은 허영주와 상순을 불러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상순의 손을 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각기 자기 마을씩 보위해선 절대 보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토비를 소멸할 수 없네. 상순인 태수랑, 성수랑 마을의 꼴꼴한 청년들을 데리고 민주연군에 입대하오. 민주연군 대부대에서 오래잖아 삼도만 토비들을 비롯한 동만의 토비들을 소멸하게 되오. 참군해서 토비들을 몽땅 숙청해 버려라. 그 담 마을에 돌아와 지방건설을 하면 어떠오?” 상순은 아무런 고려도 없이 대답했다. “당 조직에서 수요하면 난 입당할 때 맹세한대로 참군해 목숨을 내걸고 토비들과 싸우겠습니다. 내 이제 마을 청년들을 동원하겠습니다.” 이계삼은 상순의 손을 굳게 잡아 흔들었다. “당 조직에서는 김 연장을 믿소. 꼭 참군해 토비들을 깡그리 소멸하오!” 상순은 차렷 자세로 군례까지 올렸다. “옛! 이 서기, 근심하지 마십시오.” 이계삼과 허영주는 신임과 기대에 찬 눈길로 상순을 바라보며 두 손을 꽉 잡고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이계삼은 상순에게 조용히 말했다. “가기 전에 장학산을 잘 살피오. 혹시 장충국이란 놈이 우리 유격대가 떠났는가 정탐하러 올 수도 있소. 지금 삼도만 토비들은 우리 마을에 보복하려고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을 수도 있소.” “예. 내가 가더라도 마을의 나머지 민병들에게 잘 포치하겠습니다. 그 놈이 이제 까딱하기만 하면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상순의 말에 이계삼과 허영주는 머리를 끄덕였다. 상순은 토성 동남쪽에 있는 자기 초가삼간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조선에 가고 집에는 아내 명옥이 앓는 맏딸 숙자를 안고 있었다. “난 참군해야겠소. 토비 놈들을 소멸해버리지 않고서야 어찌 마을 사람들이 시름 놓고 살겠소?” 허나 명옥은 한숨을 지으면서 말리었다. “여보, 애를 셋이나 죽인 이 집에 일꾼은 당신 밖에 없소. 당신 전쟁터에 가면 생사를 기약할 수 없잖소?” 허나 상순은 고집을 썼다. “건 여자들이나 할 말이야. 토비들이 당장 우리 마을을 들이치자고 노려보는데 사내대장부가 죽음을 겁내 집구석에 들어박혀서 여편네 궁둥이만 쳐다봐서야 될 말인가? 토비들을 소멸하고 숱한 군중들을 지킬 수만 있다면 난 죽어도 후회 없소.” 상순은 마을 청년들을 동원하려고 집에서 나갔다. 그때 웬 사내가 홀로 마을에 들어서서 움푹한 눈을 판들거리면서 돌아다녔다. 상순은 경각성을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여보게!" "왜?" 그 사내는 흠칫 놀라 주춤 멈춰서더니 상순을 되돌아보았다. "왜 동넬 돌아다니면서 기웃거려?" 그 사내는 억지로 웃어보이면서 상순한테 다가와 통사정하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서 살 수 있겠나 해서 그래요." "당신 누구요?" "나 이흥수제이. 내 고향은 전라도라우. 일전에 두만강 건널 때 최구장 어른이 함흥촌에 찾아오라고 해서 왔는디." "이흥수? 오, 그때 두만강 버들강변에서 본..." "네 맞아요. 바로 접니다. 면목 좀 있는디." 상순은 제꺽 흥수의 두 손을 맞잡았다. "헌데 어떻게 돼 이제야 왔소?" 흥수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사실 난 두만강을 건너다가 일본놈들한테 붙잡혀 강제로 징병돼 할빈까지 끌려갔어. 일본 놈들이 망해 도망치자 이제야 나온기여. 여기도 우리 조선 사람들이 많이 사는구먼. 함께 살면 안되는기우?" 상순은 일본군에 있었다는 말을 듣고 삼도만토비숙청에 써먹을가고 궁리하면서도 소홀히 받아주지 않았다. "헌데 당신 왜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여기 남으려고 하오?" 흥수는 어깨에 멨던 보짐을 내리우면서 중얼거렸다. "고향에 돌아가도 일점혈육이 없시우. 부모는 일본놈들한테 끌려가 바다로 고기잡이 나갔다가 사망했지라우. 하루 사이에 아버지를 잃은 엄마는 파도 사나운 바다에 치마 뒤집어쓰고 자결했지 않았겠시우. 형제들은 염병에 걸려 사망하잖으면 뿔뿔히 흩어져 살길을 헤매고 있시우." 상순은 들을수록 흥수가 불쌍해 흥수의 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그럼 우리 마을에서 함께 살기오. 이제 형제들 찾으면 우리 마을에 데려오오." "고마우이. 이후에 뭐든 시키면 다 할라우." 상순은 피뜩 뭔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먼저 흥수를 자기 집에 데리고 갔다. 며칠 후 녀동생 금옥을 시켜 뒷집 로처녀 춘실한테 흥수를 중매를 서주었다. 춘실은 상순과 비할바도 안되는 흥수가 눈에 차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를 류랑객 같은 흥수한테 붙여놓는 상순이 얄미웠다. 하지만 애까지 낳은 몸인지라 마음을 독하게 먹고 억지로 흥수와 살게 되었다. 명옥은 숙자의 따끈따끈한 머리를 짚어 보더니 업고 정신없이 바깥으로 나갔다. “안되겠다. 의사를 보여야지.” 명옥은 이번에는 상순의 허가도 없이 떠났다가 또 이전에 영자를 업고 진수해 의사네 집으로 갈 때처럼 봉변을 당할 까봐 이번에는 방향을 바꿔 동불사 쪽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그 나그네 말대로 병원에 가지 않으면 숙자두 죽이고 말겠다. 숙자는 절대 그렇게 가마 목에서 죽여 내갈 순 없다.) 그녀가 애를 업고 차가운 부르하통하 강물을 허둥지둥 건널 때다. 숱한 사람들은 영문 모르고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저 여자 정신 나갔지 않았니?” 그러건 말건 명옥은 숨이 턱에 닿도록 동불사 의사네 집으로 달리어 갔다. 동불사의 개인 의사를 보이고 한약을 몇 첩 져 가지고 바삐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풍로를 피우고 약을 달일 때 상순이가 성수랑 태수랑과 함께 돌아왔다. 상순은 풍로 불을 보고 이상해 했다. “당신 뭐 하오?” “숙자를 먹이자고 약을 달이오.” “약을? 애가 무슨 병에 걸렸소?” “감긴지 전염병인지 걸렸다고 하오. 이번엔 내 말대로 약을 쓰기요.” 명옥은 또 상순이가 애를 의사한테 보여 헛돈을 팔았다고 화를 내면서 약 담배를 풀어 먹일 가봐 더럭 겁이 났다. 허나 상순의 말은 판판 달랐다. “잘했소. 내 부대에 간 다음 앓으면 어쩌겠소?” 흥수는 한마디 했다. “아줌마, 우리 토비 치는 새에 아내들끼리 서로 들다보면서 살라니께요.” 명옥은 한숨을 호- 내쉬었다. “남편들이 다 부대에 가면 새해 농사는 누가 짓소?” 태수는 일성 촌에서 이사해 왔는데 동생 둘이나 있었다. 그는 웃으면서 “우린 정호하구 정수까지 셋이나 몽땅 부대로 가기로 하였소. 그래도 우리 엄마는 잘했다고 하오.”라고 대수롭잖게 말했다. 성수는 가슴을 치며 나섰다.  “우리도 학수 형님까지 참군하기로 하였소. 아주머니 근심하지 마오. 우리 삼도만 토비를 새 해 농사짓기 전에 깡그리 소멸해야겠소.” 명옥은 나그네들을 보고 “이제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네 조선 고향에서 돌아오면 고향에 돌아가 버리면 다지. 여기서 딱 토비들과 싸울 필요 있소?” 하고 말하며 못 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이때 병완과 기준이 송국과 함께 헐금씨금 돌아왔다. “할아버지, 아버지!” 상순은 마주 달려 나갔다. “그래 조선 고향 형편은 어떻습둥?” 허나 병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병완은 집안에 태수와 성수가 있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먼저 창준이네 집으로 들어갔다. 태수와 성수는 상순과 함께 기준을 따라 웃방에 들어갔다. 상순은 아버지가 자리를 정하고 앉자마자 물었다. “아버지, 고향 형편은 어떻습디까?” 기준은 명옥이 들여온 냉수그릇을 받아 꿀꺽꿀꺽 마시더니 무거운 입을 뗐다. “고향은 말이 아니더라. 옛날 일본 놈들이 산이고 들이고 지어 터 밭에까지 나무를 심으라고 하잖았니? 20여년 지나서 지금 온통 무인지경 수림이 돼버렸더라. 영월동이고 운주동이고 마을자리를 찾아 볼 수 없을 지경이더라. 원시림 같은 게 범이 새끼를 칠 지경으로 무시무시하더라.” “마을이 없어졌단 말니까?” 성수의 물음에 기준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어데 밭을 일굴 데도 없더라.” 그 말에 모두들 마음이 무거워져 한숨만 푸푸 내쉬었다. “우리 고향 가마골이랑 저 한봉이네 고향 신흥동이랑 나무 밭이 됐습디까?” 태수의 물음에 기준은 머리를 끄덕였다. “농사를 짓고 살만한 땅이 없더라.” 그 말에 상순은 “그럼 여기 와서 황무지를 개간해 밭을 일군 것처럼 나무를 찍어내고 밭을 일구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기준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너도 알잖니? 우리 고향이라야 어디 밭이라는 게 밭 같으냐? 이전에 우리 집에서는 소잔등 같은 너럭바위가 더덕더덕 누워 있는 산비탈에 바위 돌 틈 사이에 재를 오줌에 적시어 쑤셔 넣고 나무꼬챙이로 구멍을 뚫고 메밀 알을 쑤셔 넣고 심어 겨우 먹고 살잖았니? 글쎄 지금은 조선에서 일본 놈들을 몽땅 몰아냈고 친일 주구들과 지주들은 몽땅 남쪽으로 달아났더라. 그리고 북에는 소련 홍군이 차지하구 이남에는 미군이 들어와서 차지했더라. 뭐 남조선과 북조선 사이에 3.8선이라는 게 생겨서 언제든지 서로 마음대로 건너다니지 못할 것 같다더라." 그 말에 용천과 흥수는 놀라 입을 딱 벌렸다. "한 개 나라에 두 개 나라가 섰으니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아무리 봐도 여기보다 못한 거 같더라. 우리 여기 와서 20여년이나 황무지를 어떻게 일군 밭들이냐? 저 밭들을 아까워 어떻게 가겠니?” 상순은 듣다가 “아버지, 할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하고 물었다. “응.” 아버지 말에 상순은 고개를 기우뚱하면서 궁리하다가 머리를 들었다. “아버지, 딱 고향이 아니라도 조선 아무 데나 가서 살면 안 되겠습니까?” 기준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말이 쉽지. 세상 인심이 어디 그렇니? 누가 자기 밭을 나눠주면서 한 마을에서 함께 살자고 우릴 넙적 받아주자니? 그러잖아도 우린 경성하구 무삼이네 마을에 가서 어떨가고 이사해 오면 받겠는가고 두루 물어 보았다. 허나 무삼부터 자기 집 밭을 나눠 붙이자고 할가봐 선뜻이 대답하지 않더라. 온 마을 사람들은 ‘별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뺄' 궁리를 한다는 지. 별 소리를 다 하더라.” 그 말에 성수랑 태수랑 어이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 수 없구먼. 삼도만 토비나 숙청해버리고 간도에 눌러 앉아 사는 수밖에.” 상순도 일어나면서 동을 달았다. “당분간 그 길 밖에 없소. 아버지, 난 토비를 숙청하자고 참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자 기준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얘, 네가 가면 우리 집 농사는 어쩌느냐? 마을은 또 누가 지키겠느냐? 좀 자기 집 살림살이도 돌보면서 일해라.” 성수는 태수와 함께 촌공소로 떠나갔다. 병완은 기준한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을은 우리가 민병들을 데리고 지키면 된다. 마을을 장구하게 지키자면 상순이랑 민주연군에 참군해 토비들의 소굴을 몽땅 짓부셔 버려야 한다. 마을에 앉아서 방비만 해서야 되니? 마을 사람들은 항상 토비들의 습격을 받을 위험이 있어. 어떻게 마음 놓고 사니?” 아버지 말을 듣고서도 기준은 납득되지 않았다. 정지에서 명옥은 약을 짜서 숙자에게 먹이면서 도리머리 질 했다. 이때 금옥이 돌도 안 된 맏아들 칠군을 업고 찾아왔다. 그녀는 상순을 보고 충고했다.“오빠, 참군하지 마오. 오빠 없이 이 집 살림은 어쩌오? 잘 생각해 보오.” 병완은 금옥을 흘겨보면서 마구 우격다짐했다. “계집애 뭘 안다고 끼어들어? 삼도만 토비를 놔두고 마음 놓고 살 수 있니? 이젠 조선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하게 됐다. 이부어미 자식처럼 소외당하면서 어떻게 서러워 사니? 우린 오직 여기서 토비를 숙청하고 국민당반동파들이 동만에 쳐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편안히 살 수 있어!” 명옥은 숙자를 차가운 구들에 눕혀놓으면 감기에 더 걸릴 가봐 꼭 끌어안고 배우에 올려놓았다 무릎에 올려놓았다 하다가 나중에 안고 부엌에 내려가 저녁밥을 지었다. 병완은 상순을 데리고 촌공소로 갔다. 촌공소에서 이계삼과 허영주가 용천 대장과 함께 앉아서 삼도만 토비 말을 하다가 일어나 병완이네를 마중했다. 병완은 용천을 보고 놀라하며 두 손을 덥썩 잡았다. “자네 살아 있구만. 우린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오.” 그는 용천에게서 여기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듣고 나서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시름 놓았소. 진달래 사돈이랑 성칠이랑 얼마나 근심했다고 그러오?” 이계삼은 병완의 손을 잡으면서 “조선 고향 형편은 어떻습디까?” 라고 물었다. 병완은 자리를 정하고 앉자 조선 고향에 갔다가 황무지 수림으로 변해버린 고향과 각박해진 인심 그리고 소외감으로 하여 몹시 섭섭하더란 말을 했다. 허나 그의 말 속에는 소외감을 동력으로 함흥 촌을 두 번째 고향으로 건설하려는 무궁무진한 힘이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 용천은 병완에게 “성칠 대장과 유격대는 모두 어데로 갔어요?”하고 물었다. 병완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습관처럼 곰방대를 꺼내 담배를 재워 넣고 성냥을 켜 대더니 뿍뿍 빨고 나서 대답했다. “성칠이 네는 곧추 명천 쪽으로 나갔소. 그 애는 수림으로 돼버린 고향 형편을 돌아보더니 우리를 보고 함흥 촌에 돌아가서 살라고 했소. 지금 쯤엔 아마 김 장군의 명령에 따라 함흥을 거쳐 평양 쪽으로 나갔을 게요. 군사비밀이라면서 더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후에 김 장군의 명령에 따라 다시 함흥이나 청진 쪽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고 했소. 성칠은 부대를 따라 어디에로 갈지 모른다고 하면서 그때 다시 조선으로 나가는 일을 보자고 했소. 이젠 내 맏아들이 큰 벼슬을 하면 그 덕분에 조선에 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소. 어느 마을에선들 자기 밭을 나눠 주자면 이사 호를 받자고 하겠소?” “진달래는 못 봤어요?” 그것이 용천의 최대관심사였다. “보지 못했소.” “고향 부근에서 한철주 놈 일가는 보지 못했어요?” 병완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한길수네 여편네 월선이고 한철주고 그림자도 보지 못했소. 그 역은 놈이 고향에 눌러 있겠소? 남으로 도망쳤을 수도 있지. 영월동은 사람이 살았던 마을 같지 않았소. 집들이 흔적도 보이지 않고 나무가 범이 새끼를 칠 지경으로 꽉 들어섰더군. 다만 우리 집 자리와 토성 안의 한길수네 집 자리가 조금 알리던데 몽땅 불에 타 잿더미로 됐더구먼. 토성도 다 무너져 물앉고. 아마 일본 놈들과 한철주네 도망치면서 불을 지른 거 같소. 물레방아랑 쇠로 만든 축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소. 그것도 녹이 다 쓸어서 싹아 떨어질 지경이었소.” 덕성은 용천을 보고 무릎을 치면서까지 한탄했다. “우리 집 자리는 가둑나무가 꽉 들어서서 살풍경이지 않노. 이젠 여기 정이 들어 그런지 여기 보다 못한 거 같아. 경주는 어떤지 몰라. 경주를 가든지 어디 가든지 차차 볼지라. 그 놈의 3.8선이 큰 코 다칠라. 이제 하마 고향 경주에도 마음대로 다니지 못 할라.” 병완은 이마에 퍼런 핏줄을 일구며 격분해 했다. “그 놈의 3.8선은 미군과 소련군이 만든 게라오. 그 사람들은 일본 놈들을 몰아 낸 공으로 염치도 없이 우리 조선을 점령지로 나눠 가졌다오.” 모두들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병완은 한숨을 돌리고 나서 말했다. “성칠의 말에 의하면, 북조선의 지주들과 부자들은 몽땅 남으로 달아났다고 했소. 한철주나 월선도 일본 놈들을 따라 남으로 달아난 거 같소. 월선의 친아들 한선주라는 애가 형 한철주하구 함께 일본에 유학 갔다가 서울에 돌아와 뭐 한다더니 그리로 갔을 수도 있다오. 영월동 토성안집과 우리 집 자리도 몽땅 불타 버렸더군.” 용천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한철주도 가능하게 서울에 달아났을 수도 있어요.” 뒤이어 그는 병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물었다. “은녀는 어디로 갔어요? 고향에 남았어요?”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우리도 발을 붙이지 못했는데 은녀라고 살 데 있겠소? 은녀는 경수를 업고 부모 산소에 제를 올리고는 성칠을 따라 부대를 따라 갔소. 부대에서는 어느 지방 여성간부로 임명하겠는지 아오?” 병완은 한숨을 내쉬면서 용천을 건너다보더니 어두운 그림자가 스치어 지나갔다. “아니, 진달래하구 경호 사돈이 장백산 아버지 산소에 간다더니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소?” 용천은 도리머리 질 하더니 벌떡 일어났다. “장백산으로 간지 보름이나 되는데 왜 돌아오지 않아요? 무슨 일이 꼭 일어난 거 같아요.” 그는 옆구리의 권총집을 바로 잡더니 “안 되겠어요. 장백산에 가 봐야겠어요. 애를 업고 고생하면 우쩔라고? ”라고 말하더니 촌공소에서 나갔다. 병완과 상순을 비롯한 촌공소 안의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여보게 밥이나 먹고 떠나게나.” 병완의 말에 용천은 손사래를 쳤다. “미안해요. 토비숙청을 돕고 가려고 했는데 먼저 가야겠어요. 모두 토비를 숙청하고 여기서 두 번째 고향을 잘 꾸려 행복하게 사세요. 이제 진달래를 찾으면 후에 찾아와 뵙겠어요.” 병완은 바깥에 나와 용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제야 피뜩 생각나는데 진수해에 있는 진달래네 큰아버지 최구장네 자손들이 살고 있네. 혹시 진달래 오누이가 그 집에 들지 않았는가 들러 보오.” “예. 알았어요. 최구장 집에 들려 보지요.” 용천은 마을을 떠나기 전에 작은아버지 덕성의 집에 들었다. 칠백의 아버지는 온 얼굴의 주름살이 다 퍼지게 반겨 맞았다. “큰조카 왔구나. 어서 올라 와.” 용천은 우방에 올라가 앉자마자 울먹이며 말했다.       “작은아버지, 조선 고향에 나가 봐야 하겠어요. 고향도 광복을 맞은 지 몇 달이나 되는데 집도 돌아 봐야 하겠어요. 그간 20여년이나 일본 놈들이 우리 집을 차지해 분주소를 세우고 들어 있었잖아요. 일본 놈들이 도망쳤으니까 자칫하면 임자 없는 집으로 처리될 거 아닌가요?” “응, 그래.” 덕성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뒤이어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칠백이 보고 고향 경주로 가자고 하니 부대에서 마음대로 떨어지지 못한다고 하데이. 명천 영월동이랑 어떤 형편인가 보고 기별하겠다고 했어. 병완 영감이 고향에 나가 봤다잖아. 헌데 거기서 살 형편도 아니랑께.” 용천은 작은아버지 손을 잡고 간곡히 말했다. “작은아버지, 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 가자요. 여긴 살기 틀렸어요. 토비들이 항상 습격할 위험이 있어요. 장차 토비들을 소멸한다고 해도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겠는지 누가 알아요? 명천에서도 살기 힘든데요. 아예 고향 경주로 돌아 가자요. 고향이 좀 좋아 그래요? 이제 남북이 갈라졌으니 길이 완전히 막히면 고향에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가지 못할 거예요. 여기 쌀을 다 팔아 동전 몇 잎을 달랑 가지고라도 고향으로 훌 돌아 가자요.” 덕성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글쎄 돌아가면 좋겠는데 말이야. 칠백이 가면서 천천히 보자고 했어. 그 애를 데리고 가야지. 내 훌 가버리면 그 애 어디에 가서 나를 찾겠나?” 용천은 덕성의 두 팔을 붙잡고 간청했다. “작은아버지, 아예 내캉 가서 칠백을 찾아 데리고 고향으로 가자요.” 그러나 덕성은 도리머리 질 했다. “그 넓은 조선에 가서 그 애를 어떻게 찾는다고 그래?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그 애가 찾아오기 쉽제이.” 용천은 자신만만해 했다. “부대 사람은 찾기는 쉬워요. 부대마다 찾아가면 인차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덕성은 한사코 도리머리 질 했다. “안 돼. 글케 서로 찾다나면 아무도 못 찾아.” 용천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작은아버지 손을 꼭 잡고 신신당부했다. “작은아버지, 조카 먼저 고향으로 돌아가겠어요. 고향에 작은 아버지 일가 살 자리를 마련해 놓겠어요. 이제 칠백을 만나면 꼭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세요.” 용천은 일어나 덕성에게 작별의 큰절을 올리었다. “작은아버지, 다시 만나는 날까지 무사히, 편안히 계셔요. 꼭 국민당 토비 놈들의 습격을 주의하세요.” 덕성은 엉거주춤 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바래였다. 그는 용천의 손을 잡고 “이렇게 갈라지면 언제 또 만나겠느냐?”라고 하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용천도 눈물을 흘리며 작은아버지를 끌어안고 흑흑 흐느끼며 어깨를 들먹이었다. “어서 가 보아라. 난도 칠백이 오면 데리고 고향에 가련다. 너 작은어머니도 없지. 뭘 보고 여기 있어.” 용천은 바깥에서 자기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병완을 보자 또 석별의 정을 참지 못해 눈물을 줄줄 흘리었다. “성칠의 아버지, 작은아버지, 무사히 계셔요.” 작별인사를 마치자 그는 급급히 진수해 쪽으로 줄달음쳐 갔다. 병완과 덕성은 용천이 버드나무숲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동구 밖에 우두커니 서서 바래였다. 덕성은 버드나무숲속으로 사라지는 용천 대장의 뒤 잔등을 바라보면서 불쌍해 도리머리 질 했다. 이튿날 오전, 병완은 이계삼과 허영주와 토론하고 군중대회를 열었다. 그는 대회에서 조선 고향에 갔다 온 형편을 말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우렁차게 말했다. “우리는 유서 깊은 이 땅에서 중국 공산당의 영도아래 두 번째 고향을 건설하고 새 중국의 혜택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삽시다.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 아들딸들을 민주연군에 참군시켜야 합니다.  장개석 국민당 토비 놈들을 숙청하고 인민민주정권을 보위해야 합니다. 우리 집과 토지, 행복을 보위합시다. 오직 이 길만이 우리가 새 중국에서 행복하게 살아 나갈 수 있는 길입니다…” 옛날 같으면 병완의 말이라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들었다. 하건만 이번 대회에서만은 모두 김빠진 공처럼 한숨을 푸푸 내쉴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고향의 기쁜 소식을 기다렸건만 기대와는 달리 전운이 감도는 중국에 남아 살 생각을 하니 속이 탔고 뒤 근심이 컸던 것이다.        그들은 머리를 숙이고 어깨가 축 처진 채 침울한 표정으로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85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4) 댓글:  조회:1840  추천:0  2017-03-09
                                                                             제20장 토비 숙청                                        1. 갈림길 함흥 촌 동산에서 붉은 태양이 불끈 솟아올랐다. 이른 아침의 태양은 핏빛으로 빛나며 광복을 갓 맞은 산과 들을 비추었다. 지주를 청산하고 토지를 분배 받은 중조 인민들의 산과 들에는 황금물결이 출렁인다. 유서 깊은 이 땅에서 일본 놈들을 몰아낸 천백만 중국 인민들과 조선의 인민들은 새 삶을 찾은 기쁨에 흥겨워 가을걷이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병완은 토성 안 촌공소에서 한창 성칠과 앞으로 일을 의논했다. “이젠 조선도 해방됐는데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어떠냐? 우리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더냐?” 성칠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도 짓고 사냥도 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허나 고향이라고 소홀히 갈 게 아닙니다. 내 먼저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조선에 나가 정황을 살펴보겠습니다. 기회가 있으면 고향에 가 본 후 고향으로 가는 일을 결정하는 게 어떻습니까?”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하긴 여기 밭도 어디 쉽게 얻었느냐? 조선에서 들어와 어떻게 일군 황무지 밭이냐? 허나 조부모와 부모 산소가 계시는 고향을 돌아가지 않고 여기서 배불리 먹고 산들 속에 걸릴 게 아니야?” 아버지 말씀에 성칠은 한참 궁리하더니 천천히 입을 떼였다. “우리는 김일성 장군의 명령에 따라 즉시 조선에 나가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허나 토비가 욱실거리는 이 곳에 아버지와 동생들, 유격대 가속들을 두고 간다는 것도 말은 아닙니다. 삼도만이나 왕청 일대 토비를 몽땅 숙청해 버리고 나갔으면 좋겠지만 조선의 형세는 우리가 시급히 나갈 것을 수요합니다.” 성질이 급한 병완은 곰방대 담뱃재를 재떨이에 툭툭 털면서 바투 들이댔다. “네가 나가면 언제 돌아 올 새 있겠니?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겠느냐?” 일단 마음을 정하면 벽이라도 차고 나가는 아버지 성격을 아는지라 성칠도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럼 아버지하구 기준 동생만 먼저 고향에 가서 정황을 알아보면 어떻습니까? 창준이랑 상순이랑 여기 있으면서 가을을 하게 합시다. 더구나 마을에서 기둥같이 여기는 아버지께서 가시는데다가 상순까지 가면 토비들을 누가 막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이 왁 쓸어 조선에 나가면 이 함흥 촌은 잃어버릴 거 같습니다. 이 마을을 아버지와 유격대 가속들이 어떻게 일떠세운 마을입니까?” 병완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자구나. 까딱 소문을 내지 않고 고향을 돌아보고 올게.” 이때 김칠백 중대장과 그의 아버지 덕성 그리고 철규 분대장과 그의 아버지 덕팔, 은녀, 룡철과 룡구와 그들의 아버지 송국, 막동이와 갓난이의 아버지 백룡이랑 줄줄이 촌공소에 찾아왔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토비들이 욱실거리는 간도에서 어떻게 살겠는가?” “아예 고향으로 돌아가자.” 병완은 조용히 떠나가려고 하다가 속 시원히 말했다. “고향이라고 소홀히 갈 게 아니요. 우리 몇이 조선에 나가 고향 형편을 돌아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을 결정하기요. 우리 어떻게 일떠세운 함흥 촌이오? 어떻게 일군 밭이오? 피땀으로 바꿔온 이 마을과 밭을 훌 내주고 갈수 있소?” 그 말에 여럿은 머리를 끄덕였다. 병완은 여러분들을 둘러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여러분들은 소식을 기다리면서 가을이나 잘 하오. 상순이가 민병들을 데리고 마을을 지킬 테니까 토비를 너무 근심들 하지 마오.” 그러나 덕팔이 도리머리 질 했다. “저 칠백이랑 성칠이랑 유격대를 데리고 가면 그 무리토비들을 어떻게 상순이랑 민병 서른이 당하겠소? 아예 일본 놈들이 망했는데 조선 고향에 돌아가는 게 나을 거 같소. 여기 중국은 가만 보면 싸움이 끝이 날 거 같지 않소.” 그때 칠백 중대장이 말했다. “아버지, 지금 동만에는 길동 군구 민주연군 18퇀과 19퇀에 근 2천여명이나 되는 병력이 있습구마. 무기도 기관총에 탱크까지 있습니다. 그까짓 산골짜기 국민당 토비 몇 백 명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놈들이 감히 이 마을로 내려 올 새 있습니까? 근심하지 마시요.” 송국이랑 백룡이랑 머리를 끄덕였다. 병완은 칼로 썩뚝 자르듯이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기오. 내 기준과 송국을 데리고 먼저 고향에 돌아가 돌아보구 올게. 형편이 좋으면 모두 고향에 돌아가기요.” 송국은 동의해나섰다. “그게 좋겠소. 덧 대구 나갔다가 거기서 살지도 못하고 여기서도 못 살게 되면 어쩌오?” 덕팔은 칠백과 성칠을 번갈아 보았다. “용천이 살아 있었으면 고향 경주로 가겠는데 종무소식이니 귀향길이 멀어졌어.” 은녀는 경수를 안고 젖을 먹이면서 성칠을 보고 물었다. “오빠, 나와 진달래 언니는 애를 업고 유격대를 따라 가는 게 옳잖소?” 성칠은 은녀를 보고 머리를 끄덕였다. “애를 업고 싸우기 불편하겠지만 너희들은 부대를 따라 조선으로 가자.” 이때 진달래도 경주를 안고 경호 오빠와 함께 촌공소에 들어섰다. “나도 부대를 따라 조선에 나간다. 은녀도 나와 함께 가자.” 은녀는 질달래 중대장을 보면서 인사했다. “언니,고맙소.” 그때 경호는 진달래를 보고 물었다. “네가 언제 부대를 따라 가겠나? 내캉 아버지 산소를 가봐야지 않나?”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요. 오빠와 함께 조선에 나가기 전에 아버님 산소를 찾아가 인사하고 가야죠.” 모두들 병완의 말대로 먼저 가을걷이를 하면서 기다리기로 하고 돌아갔다. 성칠은 조선으로 나가기 전에 아버지와 동생들과 함께 천지꽃산 동쪽 산비탈에 묻힌 어머니 산소를 찾아 올라갔다. 성칠은 마른 풀이 뒤덮인 어머니 산소 앞으로 가자 손수 기준의 손에서 낫을 받아 쥐여 벌초했다. 그 사이 제수들은 제사상을 차려 놓았다. 병완과 후노친은 성희의 산소에 제주를 붓고 큰절을 올리었다. 병완은 두 손을 맞잡고 정색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여보, 광복이 나면 당신을 데리고 조선 고향으로 가려고 하였는데 당신은 여기 누워 있고 나 홀로 먼저 고향에 돌아가게 됐소. 그간 잘 기다리오. 이제 고향에 돌아가게 되면 우리 당신을 꼭 고향에 데리고 가겠소.” 아버지에 뒤이어 성칠은 어머니 산소에 제주를 붓고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리며 서럽게 울었다. “어머님, 조선과 중국이 광복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기다리던 광복입니까? 일본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면 아버님과 어머님을 고향에 모셔가려고 이날 이때까지 유격대를 영솔해 싸우다나니. 흑흑흑,  그간 어머님께 얼마나 불효를 저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 부자간이 조선 고향에 나가 형편을 살펴보고 돌아와 어머님을 조선 고향에 모시겠습니다. 어머님께서 그렇게 돌아가 고 싶어하던  충남 서현에 모시겠습니다.” 창준과 기준, 곱순 부부도 차례로 제주를 올리고 큰 절을 올리었다. 상순을 비롯한 손자들은 모두 병완의 분부대로 가을하러 나가고 오지 못하였었다. 병완은 노친 산 앞에서 술을 마시면서 성칠에게 말했다. “얘야, 이젠 그만큼 불효를 저지르고 후처를 해서 이 애비한테 손자를 안겨주면 안되니?” 성칠은 머리를 숙였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맏아들로서 제 구실을 못해 참말 미안합니다. 하옥이 3년제도 지내지 못했는데 내 어찌?” “야, 결혼은 후에 하더라도 혼처만은 미리 구해 놓아라.” 병완은 뒤 말을 이었다. “이전에 네가 은녀를 좋아하지 않았니? 지금 은녀 남편이 희생됐으니 불쌍한 은녀를 맏며느리로 삼으면 어떠냐?” 성칠은 천천히 대답했다. “후처 문제는 제가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황차 그때 폭파된 갱도어귀에서 용천 대장의 시체를 찾아보지도 못했습니다. 살아 있으면 진작 찾아왔겠는데 말입니다.” 그 말에 모두들 성칠은 은녀 보다 진달래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모두들 제사상을 거두고 내려 갈 때었다. 진달래가 경주를 업고 경호와 함께 산으로 올라왔다. 그녀는 병완과 여러 사돈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곧추 성칠 앞으로 다가갔다. “오빠, 조용히 보자요.” 성칠은 주춤 멈춰 섰다. 모두들 자리를 피해주었다. 경호는 주위를 경계하면서 천지꽃산 마루 쪽으로 스적스적 올라갔다. 진달래 중대장은 경주를 안고 성칠을 보면서 말했다. “오빠, 난 경호오빠와 함께 장백산 밀림에 가서 아버지를 찾아보고 조선으로 나가겠어요. 헌데 오빠랑 부대가 어디로 가겠는지 찾지 못 할 가 봐 근심돼요.” 성칠은 진달래가 안은 경주의 볼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이 놈, 귀하긴 귀해.” “오빠도 아직 이런 떡돌 같은 아들애를 볼 수 있는 기회 있어요. 허나 오빠는 번마다 조강지처와 형제의 의리를 앞세우면서 기회를 포기하군 했어요. 오빠나 저나 다 마음에 없는 일을 너무 많이 했어요. 오히려 그게 양심에 걸려요. 이젠 오빠와 전 서로 마음을 속이지 말고 진실하게 살 때가 된 거 같아요. 이젠 우리도 불혹의 나이를 넘어 좋은 세상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어요. 이제 더 거짓으로 살다간 땅속에 묻혀서도 눈을 감지 못하게 후회막급일 거예요.” 진달래는 정색해 성칠을 빤히 바라보았다. 허나 성칠은 못 들은 척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백두산에 가면 언제 오겠니? 부대는 오늘로 떠나갈 예산이다.” “어디로 가나요?” “아마 청진 아니면 함흥에 나갈 거 같다. 평양 쪽에는 소련에서 건너간 빨찌산 부대가 김일성 장군을 따라 곧추 들어갈 거 같다.” 진달래는 머리를 들어 먼 남쪽을 바라보았다. “애를 업고 이젠 전쟁터에 나가기 힘들 거 같아요.” 성칠은 머리를 끄덕였다. 진달래는 열기가 넘치는 열변을 계속 토했다. “허나 난 오빠가 어디로 가든지 세상 끝까지 꼭 찾아 갈 거예요. 오빠 어디로 가든지 오빠 옆에는 제가 있을 거예요.” “경호는 어디로 갈 생각이더냐?” 진달래는 구김 없이 대답했다. “고향 개성으로 나가겠다고 하더군요.” 성칠은 진달래에게 말했다. “그럼 너도 개성으로 가라. 거기서 용천대장이 돌아가기를 기다려라.” “그런 말 말아요.” 진달래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니 외면하면서 진정을 토로했다. “경주 아빠는 분명 희생됐어요. 살았으면 진작 왔을 거예요. 경주를 보고 싶어서라도.” 진달래는 묵묵히 서있는 성칠에게 경주를 안겨주었다. “이번에 오빠와 함께 장백산에 가면 밀림 밀영자리에 가서 경주 아빠가 포위를 돌파하려던 갱도어귀를 파 보면서라도 경주 아빠의 시체를 찾아야 하겠어요. 모든 것이 확인되면 오빠도 더는 다른 생각을 하지 말아요.” 성칠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무튼 잘 갔다가 은녀를 데리고 조선으로 나오너라.” “은녀?” 진달래는 이름 못할 눈빛이 반짝이였다. “그래. 함흥 촌에 남게 되는 은녀를 데리고 나오너라. 그 애는 얼마나 불쌍한 애냐. 난 그 애를 친녀동생으로 생각한다.” “알았어요. 허나 오빠가 갈 때 데리고 가요. 우린 모두 장백산에 가면 언제 갈지 모르잖아요?” “그럼, 그렇게 하자. 네가 오해하지 않으면 된다. 잘 갔다 오너라.” 성칠은 경주를 진달래에게 안겨주며 진달래를 꼭 껴안아 주었다. “오빠에게 오늘에야 말하지만 용천 대장은 우리와 한길로 갈 분이 아니죠.” “건 무슨 말이냐?” 성칠은 진달래를 품속에서 놔주었다. 진달래는 마른 옥수수 이파리가 파르르 가을바람에 떠는 옥수수 밭을 쓸어보더니 말했다. “오빠, 날 욕하지 말아요. 또 달리 생각 말아요.” 성칠은 진달래를 정색해 바라보았다. “용천 대장은 공산당에 들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진달래는 성칠에게 머리를 돌리더니 말했다. “그는 우리가 지주를 청산하고 지주를 총살하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북만으로 간 거예요. 말로는 지역감정이 있어서 남대치인 자기를 함경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백산 항일유격대 보다 경상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북만으로 간다고 했지만요. 기실 유격대의 공산당조직이 싫어 떠났던 거예요. 결혼한 후에야 저한테 진속을 털어놨던 거예요. 이전에 늘 나한테 광복이 돼도 나와 애를 데리고 고향 경주에 갈 말을 했어요.” 성칠은 진달래를 욕했다. “네가 무슨 험한 말을 하는 거야? 용천 대장은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는 나의 훌륭한 스승이자 전우이고 훌륭한 유격대 대장이다!” 성칠은 꿇어 앉아 주먹으로 땅바닥을 꽝꽝 쳤다. “용천 대장은 절대 그런 사람일 수 없다!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진달래는 성칠을 따라 땅바닥에 물앉았다. “그의 부친은 경주의 대지주예요. 지주의 아들이면 그런 사상과 입장을 가질 수 있잖아요? 제 말을 믿으세요.” “듣기도 싫다!” 성칠의 고함소리에 어머니와 싸우는가 하여 경주가 “엉엉” 울었다. 진달래도 성칠도 모두 입을 다물었다. 선들선들한 가을바람에 애기를 업은 옥수수들이 몸부림치며 설레고 낙엽이 우수수 지었다. 2. 닭을 잡아 원숭이를 훈계      쪽빛가을 하늘이 까맣게 물들어 가더니 캄캄한 어둠 밤이 대지에 성큼 다가왔다. 함흥 촌 동산에 가는 눈썹달이 떠서 가을바람에 스쳐 바르르 떨고 있었다.       유격대는 밤중에 대여섯 패로 나뉘어 함흥 촌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떠나가기 시작했다. 병완은 기준과 송국을 데리고 유격대 대오 속에 숨어 조선으로 떠나려고 어둠을 밟으면서 조용히 토성 안 마당에 나섰다. 성칠은 토성 안에서 떠나가기 전에 이계삼과 허영주 그리고 창준과 상순을 보고 부탁했다. “토비들이 욱실거리는데 마을 사람들을 잘 보호하오.” “예, 근심하지 마십시오. 우리 든든한 민주연군이 이미 진수해에 들어와 진주해 있으니까.” 이계삼은 상순을 가리키면서 뒷말을 이었다. “저 패기 있고 용감한 김상순 련장이 있으니까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구위 서기로 올라가니까 병완 동지를 당 지부 서기로 선거했습니다. 병완 서기가 조선에 갔다가 돌아오면 방어공사도 구축하고 민병들을 조직해 군사훈련도 해야겠습니다.” 병완은 그저 머리만 끄덕이었다. 상순은 성칠 대장을 보고 대담히 손을 내밀었다.  “큰아버지, 미제 무기로 무장한 토비들을 막아 싸우자면 기관총 몇 정은 있어야 됩니다. 기관총 세정과 탄알을 푼푼히 남겨두고 가십시오.” 성칠 대장은 흔쾌히 대답하고 동욱 중대장을 불러 기관총과 탄알을 넘겨주게 했다. 상순은 성칠 큰아버지와 이계삼 서기 앞에서 가슴을 쭉 뻗치고 우렁차게 말했다. “김 대장과 이 서기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우리 민병들이 살아 있는 한 토비 놈들이 우리 마을을 끄떡 건드리지 못하게 지킬 것입니다.” "허허허." 이계삼 서기는 상순을 바라보며 통쾌하게 웃었다. 성칠 대장은 창준과 상순의 손을 굳게 잡고 “이서기의 영도아래 마을을 잘 지켜라. 자기 마을만 지키지 말고 이 땅덩어리에서 국민당 반동파와 토비들을 몽땅 소멸해야 마을을 철저히 지킬 수 있다. 민주연군에 참군하여라."라고 부탁했다. 상순은 인차 대답하지 못하고 “내 잘 생각해 보고 참군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성칠은 이계삼 서기와 허영주 구장 등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조선을 바라고 떠났다. 덕성은 칠백의 팔을 붙잡고 “가을걷이를 하고는 조선에 나갈 터이니 영월동에서 우리를 찾아라. 혹시 찾지 못하면 경주거나 함흥 촌에서 찾아라.”라고 했다. “아버지, 토비들이 싸다니는데 몸 조심하면서 편안히 계십소.” 덕성은 송국과 철규를 바라보면서 “저렇게 부자간이 다 가니 얼마나 좋겠느냐?”라고 하며 부러워했다. 북만에서 온 유격대원들 가운데는 경상도나 강원도나 전라도 아니면 충청도가 고향인 대원들이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부대를 따라 조선에 나가 일본 놈들을 몰아낸 후에 정황을 보아 북만에 있는 부모형제들을 데리고 고향에 돌아가려고 했다. 은녀는 원래 속으로 진달래가 성칠을 따라 조선에 나가면 나가지 않고 고향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함흥 촌에 잠시 남아 있다가 다시 마을 사람들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는 진달래가 경호오빠와 함께 진수해의 최구장네 집에 들었다가 장백산 아버지 산소를 돌아본 후 조선에 직접 나가든지 함흥 촌에 남아 용천 대장을 기다릴 소리도 한다는 말을 듣고 조선으로 가기로 했던 것이다. 고향에는 부모와 상호, 은희의 산소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은녀는 종군위안부 옥설과 만금을 데리고 동욱 중대장이 영솔한 중대 대원들 속에 끼어 떠나갔다. 덕팔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은녀를 보고 부탁했다. “조선에 갔다가 형편이 좋지 않으면 경수를 업고 다시 돌아오라.” 은녀는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인삼 중대장은 토성 안을 둘러보더니 마을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후 성칠 중대장과 함께 길을 떠났다. 은녀는 함흥 촌을 떠나 한참 걷다가 옥설과 만금이가 인 불룩한 보따리를 보고 물었다. “건 뭐요?” 옥설은 주위를 흘끔거리더니 은녀에게 나직이 귀속 말을 했다. “부끄럽지만요. 이건 우리가 간도에 와서 피땀을 흘리면서 번 돈이죠.” 옆에서 만금은 더 말하지 말라고 옥설의 옆구리를 톡톡 쳤다. 은녀는 주춤 멈춰서더니 양손으로 옥설과 만금의 손목을 잡고 대오 속에서 나와 뒤떨어지었다. 그녀는 유격대 대오 맨 뒤에 떨어져 나직이 말했다. “원세개 대가리 돈이지?” “그래요.” “그 돈은 몽땅 폐지로 됐소. 어디다 쓴다고 그 폐지를 가지고 조선에 나가오?” “예? 그럼 우리를 근 20여년이나 릉욕할대로 한 일본 놈들이 준 돈이 몽땅 폐지로 됐단 말인가요?” “그렇소. 조선에 가져가면 어디다 쓴다고 그러오?” 만금은 맥이 풀려 풍덩 물앉아버렸다. 허나 옥설은 한 가닥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난 고향 김해에 나가겠는데. 혹시 그 돈 쓰겠는지 알아?” 드디여 그녀는  만금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어떻게 피눈물로 바꾼 돈인데 여기다 버릴 순 없소. 명천에 가지고 가 봐야지.”       만금은 겨우 일어나 은녀와 옥설을 따라 비실비실 걸었다… 마을 사람들은 유격대가 떠나가자 숨을 죽이고 살았다.        상순은 이계삼 서기를 찾아 갔다. 이계삼은 진수해 구위 서기를 맡았지만 병완이가 조선에 나간 형편에서 아직 함흥 촌촌공소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상순을 자리에 권하면서 물었다. “김 련장, 무슨 일이요?” 상순은 자리에 앉자마자 단독직입으로 말했다. “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마을 사람들의 투지를 불러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이러다간 인심이 황황해지고 말 것 같습니다.” 이계삼은 상순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소. 그래 김 련장은 어떻게 할 예산이오?” 상순은 “손호표를 청산하고 처단합시다.”라고 제안했다. “손 지주는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붙잡혔던가?” “예. 지금 우리 집 김치 움에 가둬 뒀습니다.” “허허허, 그 놈이 배고프면 김 련장네 김치를 다 훔쳐 먹지 않겠소? 그 놈을 누가 지키오?” 상순은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내 매부 최학섭이 지킵니다. 사실 아직 김치를 넣지 않아 괜찮습니다. 그 놈을 처단해 지주들의 처자들이 다시는 토비들과 휩쓸리지 못하게 훈계해야 하겠습니다.” “좋소. 닭을 잡아 원숭이들을 훈계해야지.” 그 날로 태평강 가에서 공개재판대회가 열렸다. 상순은 민병련 1패 패장 이태수와 2패 패장 최병수를 시켜 민병들을 데리고 가서 조덕림, 지학사, 손호표, 제지주 등 지주들의 처자들을 몽땅 공개심판장에 끌고 왔다. 장학산과 그의 처자들만은 공개재판장에 와서 회의에 참가하라고 일렀다. 장학산과 여편네 충씨 그리고 딸 장미련은 굿이나 보려고 공개심판장에 내려 왔다. 상순은 3패 패장 성수를 시켜 자기 집 김치 움에 가둬 둔 손호표 지주를 끌어 오게 했다. 마을 사람들은 가을도 끝이 났는지라 모두 공개재판대회장에 나왔기에 마을 사람들이 까맣게 모였다. 이때 손호표 지주가 성수와 최학섭에게 끌리어 공개재판대회장에 들어섰다. 손호표 지주가 결박당한 채 쩔룩거리며 공개재판대회장에 끌리어 왔다. "여보!" "아버지!" 손호표 처자들은 야단쳤다. 민병들은 총을 겨누며 처자들을 울지 못하게 했다. 이번 공개재판대회는 상순이가 집행했다. 그는 아름드리버드나무가 꽉 들어선 태평강 가 둔덕 우에 서서 먼저 한어로 말하고 뒤에 조선말로 말하면서 회의를 집행했다. “아래에 진수해구위 이계삼 서기로부터 손호표 지주를 청산하고 처단할데 대한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박수를 쳤다. 이계삼은 둔덕 우에 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연설했다. 옆에서 상순이 즉석에서 이계삼이 몇 마디 하면 따라 조선말로 통역해주었다. “손호표 지주는 평소에도 김기준 일가와 패용천촌의 가난한 백성들을 가혹하게 착취했다. 특히 김기준네 저 놈의 소를 쓸 때다. 친일지주 지학사 놈과 짜고 들어 소구유에 재물을 풀어 넣어 소를 죽였다. 또 소를 죽인 죄를 기준 일가에 덮어 씌웠다. 사건 진상은 후에 지학사를 심문하는 가운데서 밝혀졌다. 그 후 손호표 지주는 김기준 일가에게서 소 값을 이자의 이자까지 물게 핍박하였고 소작료로 그해 벼농사를 지은 것을 몽땅 빼앗아갔다. 세상에 소작료로 10할이나 가져간 지주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때 사람들 속에서 야단났다. 상순이가 웬 일인가고 내려다보고 자기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글쎄 용천 대장이 공개재판대회장에 나타나지 않았겠는가! 마을 사람들은 용천 대장을 알아보고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상순은 내려가지도 않고 고함쳤다. “회의질서를 유지합시다!” 이계삼은 계속 연설했다. “특히 손호표 지주는 우리 중국 공산당의 영도하에 있는 함흥 촌 인민정권에 이를 갈면서 국민당 토비두목 조덕산 영장을 괴수로 하는 국민당 토비무리에 들어 혈안이 되어 지난번 함흥 촌을 미친 듯이 습격했다. 그 죄는 천만번 죽어도 마땅하다.” “손호표 지주를 타도하자!” 머리를 빡빡 깎은 허영주가 군중들 속에서 구호를 부르자 격분한 군중들은 따라 구호를 불렀다. “국민당 토비 놈들을 타도하자!" "우리 마을을 우리 손으로 보위하자!‘ “보위하자!” 그때 함흥촌을 찾아 허둥지둥 오던 용천은 그 장면을 보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계삼은 계속해 선포했다. “국민당 토비 악질지주 손호표는 인민들에게 하늘에 사무치는 죽을죄를 졌으므로 사형에 처한다! 또 그의 집과 밭을 몰수해 몽땅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준다!” “손호표를 청산하자!” “저 놈의 집과 밭을 나눠 가지자!” 이번에는 한족군중들이 구호를 불렀다. 군중들은 기뻐 박수를 치고 웃고 떠들었다. 손호표 처자들은 사시나무 떨듯하며 어깨를 들먹이면서도 감히 큰 소리를 내 울지 못하고 눈치를 흘끔흘끔 보았다. 이계삼은 손을 들어 흔들더니 마지막으로 지주들에게 경고했다. “지금 삼도만 국민당 반동파들과 지주, 토비들은 우리 공산당의 영도하에 있는 함흥 촌을 호시탐탐 노리면서 다른 마을의 촌간부들을 약탈하고 살인하고 방화를 일삼고 있다. 허나 조만간에 우리 민주연군은 강대한 인민무력으로 그 놈들을 깡그리 소멸할 것이다. 일체 국민당 토비들을 돕거나 미쳐 날뛰는 자들은 오늘 손호표와 똑 같은 더러운 끝장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토비숙청에 공을 세우면 우리는 그런 지주들은 공을 따져 용서해줄 것이다.” 이계삼이 연설을 마치자 상순은 둔덕 우에서 명령했다. “국민당 토비 악질지주 손호표를 즉시 처단하라! 공개심판이 끝난 후 저 놈의 집과 재산을 몰수해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 준다! 올해 농민들은 자기 밭에서 난 곡식을 어느 지주한테도 바칠 필요 없이 몽땅 자기 집에서 먹어도 된다. 다만 이담 민주연군이 먹을 양식만 자원으로 얼마간만 내면 된다.” 그러자 군중들은 좋아 야단쳤다. “공산당이 좋기는 좋소. 소작료도 없이 농사지은 거 몽땅 가지라오.” “우리 행복을 보위하는 우리 민주연군에 쌀을 지원해야 하지.” “그럼요. 우리 군대한테 쌀을 대줘야 하오.” 흥수와 학수 형제가 손호표를 사전에 파 놓은 구덩이 앞에 끌고 나가 꿇어 앉혔다. 손호표는 처자들을 둘러보더니 대가리를 푹 수그렸다. 허나 인차 대가리를 쳐들더니 마지막으로 단말마적으로 몸부림치며 발악했다. “이제 삼도만 전보흥 소교가 우리 지주 형제들을 데리고 와서 내 원수를 갚아 줄 거야! 자손들은 오늘 이 원수를 똑똑히 기억…” 땅! 땅! 성수와 병수가 총을 쏘았다. 손호표 지주 놈은 악다구니질을 채 못하고 대갈통이 박산나 뇌장이 자갈밭에 튕기었다. 더러운 시체는 구덩이에 뒹굴어 처박히었다. 숱한 군중들이 조약돌을 쥐여 구덩이 안에 마구 뿌렸다. 한참 후 손호표 악질지주는 조약돌에 깔리어 더러운 시체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용천은 또 도리머리 질 했다. 공개심판대회가 끝나서야 상순은 달려가 용천 대장과 악수했다. “어떻게 돼 이제야 왔습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힘들어.” 용천은 상순을 보고 그간 있은 이왕지사를 간단히 말했다. “그때 내 갱도에서 포위를 돌파해 나가자마자 적들이 뿌린 수류탄묶음이 폭파했네. 그러나 나는 수류탄 연기 속에서 용케도 적들을 빼돌리고 수림 속에 숨어 들어갔던기여. 처음에는 남만으로 갔다가 그 곳에서 당지 유격대와 함께 일본 패잔병들과 싸웠당께. 북만으로 부대를 찾아 갔을 땐 부대가 벌써 떠난 지도 오랬던기야. 마을 사람들캉 물어 보니 진달래가 경주를 데리고 기다리다가 함흥 촌으로 나갔다고 하더랑께. 헌데 있자노. 함흥 촌으로 오다가 그만 삼도만 부근에서 국민당 토비들에게 붙잡히고 말았잖아. 하, 세상에 없는 고생을 다 했당께.” 상순은 이계삼 서기와 허영주에게 용천 대장을 인사시켰다. 이계삼은 경각성을 높이며 용천 대장에게 물었다. “그래 어떻게 토비 소굴에서 빠져 나왔소?” 용천 대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말하자면 긴데 간단히 말하죠. 그 놈들은 내 몸에 권총이 있는 걸 보고 빨갱이라고 총살할락꼬 했데이. 헌데 있자노, 난 살자고 그 놈들한테 말했당께. 나두 조선 지주의 아들이락꼬. 유격대에서 대장노릇 했는데 고향에도 가지 못하고 죽는 거 참 애닲다고 했는 기여. 그랬더니 전보흥이라던가. 그 자  놔주는 기여. 그 놈들은 날 보고 자기들 토비무리에 들어라 하잖겠나. 함께 빨갱이들과 싸우자는기여. 내가 조선 고향에 가겠다니까. 있자노. 같은 지주 출신을 봐서 놔주겠으니까. 기어이 삼도만에 남아 장교하라는기여. 난 거짓 항복했던기여. 도망칠 기회를 보다가 졸개들을 데리고 쌀 얻으러 나왔다가 도망쳐 버린기여. 허허허.” 그제야 이계삼과 허영주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혹시 삼도만서 일본 녀성들 보았소?" 허영주의 물음에 용천은 머리를 끄덕였다. "있었제이. 자매간이라던데 둘 다 전 소교 데리고 사는 같데이. 애도 있더구먼." 허영주와 이계삼은 눈길을 마주쳤다. 용천은 함흥 촌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아버지 김덕성을 찾아갔다. 덕성은 용천을 보자 와락 끌어안았다. “야, 큰조카 살아 있었어? 얼마나 기다렸다고 그래?” 그는 그간 용천이 여기까지 찾아온 경과를 듣고 눈물까지 흘리었다. 오후에 상순이 민병들을 영솔해 손호표네 집과 밭을 청산하자고 농민들을 데리고 자와 말뚝을 가지고 촌공소를 나가자 용천은 구경하러 따라 나섰다. 그는 상순에게서 그간 유격대에서 토비들의 습격을 물리친 일로, 진달래와 경호가 함흥 촌에서 자기를 기다리다 못해 조선에 나가기 전에 장백산에 아버지 산소로 간 일로 다 알게 되였다. 하여 그는 잠시 함흥 촌에 남아 진달래와 경호를 기다리기로 했다.  
84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3) 댓글:  조회:1819  추천:0  2017-02-22
                                                                           7. 매복습격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산과 들에 내리 드리웠다. 무시무시한 정적이 함흥촌을 감싸고 돌았다. 무엇인가 폭발하기 전 공포적인 정적이였다.        성칠 대장은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해동분주소를 덮쳐갔다. 그런데 어둠 속에 잠긴 분주소 안에 지학사의 사촌동생 지소장 놈과 일본 순사놈들의 꼬리도 보이지 않고 텅텅 비었다.        “개놈새끼들, 몽땅 달아났구나."        인삼 중대장의 말에 성칠 대장은 명령했다.        "진수해로 쳐나자.”        유격대원들은 곧추 해동다리를 건너 토성 안 진수해파출소로 쳐들어갔다. 적들은 불시에 기습당해 혼비백산했다.       조선 강제병사들은 토성 안에 갇힌 일본 경찰들과 개다리들에게 일어로 고함쳤다.       “투항해라! 투항하면 살려준다.”       “총을 놓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그러나 일본 놈들은 견고한 토성을 믿고 총을 쏘며 완고하게 반격했다.      “네놈들은 포위됐다! 5분후에 투항하지 않으면 몽땅 소멸해 버릴 테다!”       그래도 놈들은 대문 쪽에 대고 기관총을 갈기며 반항했다.       성칠 대장은 손을 홱 휘두르며 명령했다.      “1소대는 토성 안에 수류탄을 뿌려! 2소대는 기관총 사격! 3소대는 토성을 폭파하라!”      1소대가 수류탄을 연신 토성 안 파출소에 뿌렸다.     꽝! 꽝! 꽈르릉! 꽝꽝!     토성 안에서 수류탄 폭파소리에 아우성 소리가 요란했다.     2소대가 기관총을 뚜루룩 뚜루룩 쏘아댔다. 일본 놈들은 토성 밖으로 한 놈도 달아나오지 못했다.     이때 파출소 안에서 고함소리가 들리었다.     “계속 공격하면 우린 조선 위안부들을 살해할 테다!”     꽈르릉! 꽝꽝!     우뢰와 같은 폭음과 함께 토성이 네 곳이나 뭉청 무너져버렸다. 임호 소대장이 폭파소조를 거느리고 또 해냈던 것이다.    “돌격!”    오병선이 돌격나팔을 불었다. 돌격나팔소리가 우렁차게 울리자 유격대원들은 "돌격!' 고함소리 우렁차게 돌격개나갔다.    “싸(杀)!”    “죽여라!” 유격대원들은 고함치며 사면으로 덮쳐 나가며 수류탄을 파출소 안에 뿌렸다. 일본 놈들은 파출소 안에서 무리로 쓰러졌다. 뚜루룩 뚜루룩. 갑자기 기관총 소사에 돌격하던 유격대원들이 삼대처럼 쓰러졌다. 이때 갑자기 화염 속에서 요란한 엔진소리와 함께 토성안에서 괴물이 덮쳐나왔다. "탱크!" "엎드렷!" 성칠이 고함쳤다. 유격대원들은 땅바닥에 납짝납짝 엎드렸다. 그들은 탱크를 처음 보았다. 일부 유격대원들은 겁나 부들부들 떨었다. 성칠은  무너진 토성에 엎드려 탱크(땅크)를 쏘아보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임소대장!" "옛!" "폭파소조를 내보냇!" "예!" 탱크가 덮쳐나오며 불을 토했다. 임호 소대장이 손을 홱 젓자 폭파소조가 무너진 토성 밑에서 폭파약을 끌어안고 기여나갔다. "기관총 엄호!" "사격!" 기관총들이 불을 토했다. 폭파소조가 탱크에 거의 접근해갔다. 뒤따라 나오던 일본 놈들이 몰사격을 가했다. 유격대원들이 폭파약을 끌어안고 벌떡벌떡 일어나 탱크를 향해 돌격해나갔다. 그러나 하나, 둘 흉탄을 맞고 쓰러졌다. "개놈새끼들! 죽어봐라!" 임호 소대장이 주먹으로 벽돌을 탕 쳤다. 벽돌이 박살났다. 임호는 벌떡 일어나 달려나갔다. 그는 탱크 앞에 쓰러진 폭파대원의 손에서 폭파약을 주어 끌어안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푱푱푱! 총알이 그의 발부리에 날아와 박히며 흙똥이 사처로 튕겨 올랐다. 임호는  곤부박질쳤다. "아차!" 성칠은 주먹으로 토성 벽을 쳤다. 그때 임호가 옆으로 몇바퀴 굴렀다. 탱크가 그의 앞에 다가왔다. 임호는 도화선을 입으로 물어당기고 폭파약꾸러미를 탱크  바귀 밑에 밀어넣었다.     꽈르릉!     요란한 굉음과 함께 탱크 무한궤도가 쭈르륵 벗겨졌다. 탱크는 페철무지로 되였다.     "돌격!" 성칠 대장이 명령했다. 오병선이 돌격나팔을 불었다. 띠띠띠- 따따-따다- 돌격나팔소리가 재차 울리자 유격대원들은 "돌격!" 고함소리도 높이 돌격해나갔다. 탱크 웃덮개가 열리더니 자그마한 흰 천쪼각이  천천히 나왔다. 분명 투항신호였다. "손들엇!" 희생됐는가 한 임호 소대장이 무쇠기둥처럼 벌떡 일어나 탱크 위에 뛰여올라가 돌격총을 탱크 웃구멍에 들이댔다.  탱크 안에서 일본 놈 탱크운전사가 손을 들고 나왔다. 뒤이어 몇놈이 손을 들고 나왔다. 임호 소대장은 그 놈들을 압송해 탱크에서 내렸다. 성칠 대장은 그 놈들을 뒤에 따라온 유격대원들한테 넘겨주게 하였다.         나머지 놈들은 조선 위안부들을 앞에 내세우며 고함쳤다.    “우린 투항하겠다. 군대를 뒤로 물려라!”     성칠은 손을 들어 돌격을 멈추게 했다. “잠간! 우리 조선 여성들을 상하게 해선 안 돼.” 조선 강제병사 출신 유격대원들이 일본 놈들에게 성칠의 말대로 고함쳤다. “네 놈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한 놈 한 놈씩 나오라. 우린 포로를 죽이지 않는다!” 살아남은 일본 경찰 놈들 셋이 두 위안부여성의 뒤로 어정어정 따라 나오더니 총을 땅바닥에 놓았다. “손 들고 나와!” 일본 경찰 놈들은 손을 들고 허둥지둥 걸어 나왔다. 유격대원들은 뭉청 무너진 파출소와 위안소 안으로 덮쳐들어갔다. 안에는 부상당한 일본 경찰과 헌병 몇 놈이 쓰러진 채 신음소리를 냈다. 유격대원은 그 놈의 손에서 총을 빼앗아내고 끌어냈다. 가슴팍에 총탄을 맞은 그 놈은 숨이 거의 넘어가고 있었다. 한 놈은 기관총 옆에 대갈통이 박살난 채 쓰러져 있고 그 옆에는 무너진 벽에 깔려 죽은 놈의 다리가 드러나 있었다. 여기 저기 썩어진 일본 경찰 놈들의 시체가 피 못 속에 나뒹굴었다. 유격대원들은 전장을 수습하면서 무기를 거둬 메고 나왔다. “조선 독립 만세!” “동북 해방 만세!” 유격대원들은 환성을 높이 질렀다. 성칠은 위안부 여성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고향이 어디오?” 얼굴이 복숭아처럼 둥근 40대 초반 여성이 머리를 숙이며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옥설이라고 부르는데요." "고향은 어디오?" "김해예요.” 그녀는 옆의 걀죽하게 생긴 중년 여성을 가리켰다. “얜 만금이라고 하는데요. 고향이 명천이예요.” 성칠은 그들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오. 우린 조선 항일유격댄데 나도 고향이 명천이오. 우리를 따라 함께 조선에 나가기요.” "네. 고맙습구마.우린 한철주 놈한테 붙잡혀 여길 되나왔습구마. 억울한 녀자들입구마."      성칠은  한철주 말이 나오자 다가서며 물었다. "여기 한철주 왔댔소?" "네. 며칠 전에 우릴 끌고 여기 왔다가 똘만놈하구 도망쳤어요.“ "음- 또 놓쳤군."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이상한 감이 들었다. (용정을 칠 때도 탱크가 없었다. 그런데 요 쪼꼬만 진수해 파출소에 탱크가 있는데다가 한철주 놈도 왔다갔지 않았는가?) 그는 먼저 만금, 옥설 등을 위안했다. 만금은 성칠 대장에게 말했다. “장교님, 우린 원래 넷입구마. 뽕녀란 애는 고향이 부산입구마." 성칠은 상순과 지군선의 딸 지춘실한테서 두루 들은 생각이 나서 물었다. "여기에 은실이라고 부르는 처녀애도 있었다던데. 행방을 모르오?" 옥설이 눈물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은실하구 뽕녀는 길림에서 봉천으루 간후 행방불명이 됐어요. 그 애도 여기 진수해에 왔더라면 구원됐겠는데요." 만금도 동을 달았다. "위안부라는 건 정말 개나 돼지보다 못한 짐승 같습구마.” 옥설과 만금은 어깨를 들먹이며 흑흑 흐느껴 울었다. 그녀들은 눈물을 훔치고 일본 경찰 놈들을 보자 악이 나 고무신을 벗어 쥐고 다가가더니 낯빤대기를 쨩쨩 후려갈기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놈, 이 놈들아, 또 우리를 짐승 개처럼 굴어봐라. 이놈, 이놈!” “이 놈들아, 네 놈들도 맞아 봐라!” 일본 경찰 놈들은 어둠 속에서 두 손으로 낯빤대기를 감싸 안고 옥설과 만금을 쏘아보았다. “아직두 대가리를 쳐들겐?!” 옥설은 고무신으로 일본 경찰 놈의 낯빤대기를 사정없이 후려 갈겼다. 경찰 놈이 손으로 날아드는 고무신을 막자 발길로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일본 경찰 놈은 사타구니를 싸안고 나뒹굴었다. “앗! 이다이 시누(아파 죽겠다)!” 조선 강제병사 출신 유격대원들은 분개해 일본 경찰들을 마구 걷어차고 총 박죽으로 때렸다. 성칠은 손을 들어 말렸다. “포로를 학대하지 마오. 무기를 내려놨았기에 용서해줘야 하오.” 그제야 모두들 손을 멈추었다. 성칠은 만금을 데리고 탱크 안에서 나온 놈들한테로 갔다. "혹시 여기 높은 장교 놈이 있는지 알만 하오?" "요놈이 장교 놈입니다." 장교 놈은 질겁해 목을 움츠렸다. 그때 최동욱이 다가와 그 놈을 여겨보았다. "아니! 네 놈이 여기 있었구나." "누군데?" 최동욱은 그 장교 놈의 멱살을 틀어쥐고 흔들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가메다! 네놈도 오늘이 있구나." 최동욱은 자기 안해를 릉욕한 원쑤를 만나자 주먹으로 치며 대성통곡쳤다. 원쑤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가메다?!' 성칠도 고함치며 손이 허리춤에 갔다.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가메다 놈이  다리를 맞고 무릎을 털썩 꿇었다.  대가리를 뚝 떨어뜨렸다. 성칠이 쏜 총에 맞았던 것이다. 가메다 놈은 고향 히로시마가 미군이 뿌린 원자탄을 맞고 훼멸됐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 남아 최후발악을 하다가 포로됐던 것이다. "이 놈을 쉽게 죽일순 없소." 최동욱은 허리춤에서 시퍼런 비수를 빼들고 가메다 놈한테 한발자욱 한발자욱 다가갔다. "공산군은 포로를 죽이지 않는다던데. 제발 살려주오." 성칠 대장이 고함쳤다. "이 놈, 네놈의 손엔 우리 중조인민과 유격대원들의 피가 즐벅하다. 희생된 유격대원들을 대표해 네놈을 총살한다." 최동욱은 비수를 날려 가메다 놈의 두 팔을 찍어냈다. 비수로 가슴을 짜개고 심장을 도려냈다.  나중에 목을 쳤다. 최동욱은 가메다를 비수로 연신 찍어대며 대성통곡쳤다. "여보! 오늘 당신 원쑤를 갚았소. 여보- 구천에서 눈을 감소. 흐흐흑, 흑흑! 이놈, 썩어져라! 어떻게 하면 원쑤를 다 갚겠니."  나머지 일본 놈들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우린 강제로 끌려온 강제병들입니다." " 제발 살려주십시오." 탱크운전.사는 무릎걸음을 걸으며 나오더니 탱크를 가리키며 서툰 한어로 싹싹 빌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날 살려주면 이 탱크를 수리해 당신들 도와 싸우겠소. 나도 일본에서 가난한 백성이오. 내 녀동생 둘도 이 놈들한테 붙잡혀 강제로 위안소에 왔는데요. 삼도만림업분조소 소장놈한테 붙잡혀간 후 행방불명입니다." 성칠은 금방 탱크 안의 놈들한테 희생된 폭파소조 대원들을 생각하면 기관총으로 몽땅 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포로정책이 있어 탱크 운전사 등을 살려주었다.    탱크 운전사 야마가와는 성칠한테 다가와 물었다. "나도 나가사끼에서 강제병으로 왔는데. 여기 진수해 위안소에 온 요시꼬라는 녀동생을 찾아 여기까지 왔댔습니다. 녀동생을 찾아가지고 고향에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가사끼도 미군 원자탄을 맞고 없어졌다고 합디다. 녀동생들도 찾지 못하고 일본에 돌아간들 뭐 해요? 저의 녀동생들을 찾아주세요. 요시꼬와 야마꼬를 일본 장교가 데려 갔다던데 꼭 이 부근에 있을 겁니다. 좀 찾아주십시오. 장관님." 그는 뒤에 따라오는 옥설과 만금 등 조선인위안부들을 돌아보며 뒷말을 이었다. "저 위안부들도 명천에서 왔기에 요시꼬 어디 간 거 알 거 같은데. 내 일본군이라고 알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장관님, 어떻게 내 녀동생을 알아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성칠은 유격대원들을 둘러보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명령했다. “우린 즉시 함흥 촌으로 되돌아간다.” “옛!” 유격대원들은 포로들을 압송해가지고 다급히 해동다리를 건너 곧추 함흥 촌 쪽으로 출발했다. 성칠은 야마가와의 녀동생도 위안부였다는 말에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뒤에서 따라오는 만금을 불렀다. "여기 위안소에 요시꼬라는 일본 녀성을 모르오?" "네- 알아요." "지금 어데 갔는지 모르오?" 만금은 이상해 했다. " 일본 간나새끼를 찾아 뭘 합둥?" 성칠은 옆에 선 야마가와를 가리켰다.  "이 사람은 요시꼬 오빠오." 만금은 힐끔 가로보았다. " 탱크를 수리해가지고 우리를 도와 싸우겠다오." 성칠은 만금과 내심하게 말했다. "요시꼬도 저네처럼 다 일본 침략군 놈들의 피해자요. 어데 갔는지 알려주오." 만금은 마지못해 대충 대답했다. "요시꼬도 무한으로 간다더니 여기 도망쳐 왔댔는데 뭐 어디라던가." "삼도만!" 옥설의 말에 만금이 손벽까지 쳤다. "맞아! 삼도만림업분주소, 거기 소장놈이 숱한 돈 내고 요시꼬 자매를 데려내갔습구마." "삼도만에 갔다고?" 야마가와는 성칠한테서 만금의 말을 한어로 번역해듣고 대성통곡쳤다. "요시꼬야- 엉엉, 내 꼭 널 구해낼게." 후에 있은 일이지만, 야마가와는 함흥촌에 온 뒤 병완한테서 작은 녀동생 야마꼬도 지학사 지주의 첩으로 있다가 삼도만으로 들어갔는데 요시꼬와 함께 토비 두목의 첩이 됐다는 말을 들었다. 야마가와는 또 민주련군이 삼도만토비를 치러 갈 준비를 하는 것도 보았다. 야마가와는 오직 삼도만토비를 쳐 없애야 토비두목에게서 두 녀동생을 구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야마가와는 두 녀동생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그날부터 상순과 오병선의 압송하에 진수해 토성안 파출소에 가서 탱크의 무한궤도를 수리하였다.       한편 유격대 대부대가 진수해파출소를 공격하는 폭음이 들리자 조덕산은 소서구 기준이네 집 자리에서 서서 어깨를 으쓱했다. “유격대는 확실히 진수해파출소를 치러 가고 없다. 지금 함흥 촌에는 유격대 부상병과 민병 밖에 없다.” 왕부관은 담뱃불을 붙여 조덕산에게 주면서 간언했다. “조 단장, 그래도 섣불리 들이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장백산 항일유격대는 일본 놈들과 싸울 때도 아주 교활하게 유격전과 매복습격 전을 잘 했습니다. 그놈들이 뭣 때문에 우리가 이 일대에서 활동하며 철거하지 않은 걸 뻔히 알면서도 진수해로 간단 말입니까? 여기에 문제 있는 게 아닙니까?” 그러나 조덕산은 큰소리를 땅땅 쳤다. “장학산이 말하지 않던가? 대부대가 확실히 떠나갔다고.” 이때 장충국이 헐레벌떡거리며 달려 왔다. “조 단장, 해지기 전에 인삼이가 우리 집에 왔댔습니다. 유격대는 모두 조선으로 간다고 말합디다. 금방 함흥 촌에 가 보았는데 확실히 유격대는 보이지 않고 상순이 민병들을 데리고 순라할 뿐입디다.” 조덕산은 어깨가 으쓱해 당지 지주무장대오와 국군대오를 둘러보며 을러멨다. “여러분, 이젠 가난뱅이들에게 빼앗기었던 집과 밭을 찾을 때가 돌아 왔다. 여러분은 목숨 걸고 촌공소를 습격하고 공산군을 따르던 조선 가난뱅이들을 몽땅 살해해버리라. 자신 있는가?” 손호표랑 제지주랑 이구동성으로 고함쳤다. “있습니다!” 조덕산은 “부관!” 하고 불렀다. “옛!” 왕부관은 차렷 자세로 발뒤꿈치를 척 붙였다. 조덕산은 권총을 꺼내 들고 추상같이 호령했다. “왕부관은 지주무장 대오를 데리고 즉시 촌공소를 점령하라!” “옛!” “난 가능하게 있을 유격대의 매복습격을 대비해 국군을 데리고 뒤에서 엄호하고 접응하겠다. 부관은 뒷근심을 하지 말고 촌공소를 점령하라! 만약 촌공소를 점령하지 못하면 네놈의 대가리를 박살내겠다!” “옛! 꼭 촌공소를 점령하겠습니다!” 부관이 지주 무장 대오를 향해 손을 홱 저었다. “출발!” 장충국과 장리국, 손호표, 제지주와 일부 국민당에게 미혹된 지주무장 50여명이 부관의 뒤를 따라 함흥 촌을 향해 달려 내려갔다. 조덕산은 뒤에서 충국을 불렀다. 충국이 뛰어 오자 교활한 조덕산은 재차 물어보았다. “이전에 유격대 놈들이 토성 밑에 갱도를 팠다던데 진공하다가 일이 없을까?” 그러자 충국은 선선히 대답했다. “이전에 판 갱도는 일본 놈들의 포위토벌 때 작탄에 맞아 다 무너졌습니다. 요새 갱도를 파는 거 보지 못했는데. 그저 토성 밖에 전호를 파는 걸 보았습니다.” 조덕산은 충국을 인질로 붙잡아 둘 궁리를 했다. “자넨 나를 인도해 함흥 촌으로 들어 갑세.” “옛!” 충국은 조덕산의 옆에 섰다. 조덕산은 국군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출발!” 부관은 지주 무장 대오를 끌고 태평강을 넘어 아름드리 버드나무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 유격대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너무 조용한 적막이 오히려 조덕산과 부관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교활한 조덕산은 국민당 군을 끌고 버드나무숲을 흘끔흘끔 살피면서 어슬렁어슬렁 토성 안 촌공소로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전투경험이 없는 당지 지주들은 우쭐해서 소리까지 치면서 곧추 토성안집을 향해 뛰어 갔다. “가난뱅이 놈들아, 네 놈들의 제삿날이 왔다!” “죽어 봐라!” “이 놈들아! 우리 집과 밭을 내놔라!” 부관은 권총을 휘두르며 “토성 안으로 돌격!” 하고 명령했다. 지주들은 악을 쓰며 토성 안에 서 있는 유격대원들한테 총을 쏘며 덮쳐들어갔다. 부관은 총에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옥수수단을 보고 주춤 멈춰 섰다. “아차! 속았구나!” 촌공소안에는 옷을 입혀놓은 옥수수단만 서 있을 뿐 텅텅 비어있었다. 부관은 돌아서 되 달아 나가려고 했다. 그때는 늦었다. “사격!” “몽땅 죽여라!” 칠백 중대장과 동욱 중대장의 명령과 함께 토성 밑의 갱도 화구에서 섬광이 번쩍이며 총알이 빗발치듯 날아 나왔다. 지주들은 총을 쥔 채 무리로 쓰러졌다. 이때 대문마저 삐꺼덕 닫혀버렸다. 손호표는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개목을 다는 소리를 쳤다. 손호표의 머슴이 손호표를 훌쩍 업고 부랴부랴 도망쳤다. 부관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엉금엉금 기여 대문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벌떡 일어나 대문을 어깨로 떠밀어 열어 재끼었다. “빨리 후퇴!” 나머지 제지주랑 토성 밑에 총을 난발하면서 대문 밖으로 도망쳤다. 뚜르륵 뚜르륵 상순의 기관총 소사에 부관 놈이 즉살했다. 또 민병들의 사격에 대문 밖으로 도망치던 지주들은 무리로 쓰러졌다. 제지주도 상순이 쏜 기관총에 흉부를 맞고 쓰러졌다. 그때 조덕산이 끌고 온 국민당 정예군이 대문 밖으로 뛰어 나온 지주들을 엄호하며 접응하려고 다가들었다. 장충국은 “리국아! 빨리 뛰어 나오너라!” 하고 고함쳤다. 리국은 겨우 기어 토성 밖으로 나와 형과 함께 수림 속으로 도망쳐 목숨을 구했다. 그때였다. 난데없이 아름드리나무들 우에서 우박이 쏟아져 내리듯이 총알이 날아왔다. 원래 진달래 중대장이랑 이끈 유격대원들이 농사군 옷을 갈아입고 아름드리 비술나무숲 속 에 스며들어 나무 우에 올라가 매복해 있었던 것이다. 진달래와 훈련받은 유격대원들은 나뭇가지를 구르면서 이 나무 저 나무 가지를 구르면서 평지를 달리듯이 날아다니면서 국민당 정예군에게 맹사격을 가했다. 지상의 민병들과 나무 우의 유격대원들의 교차사격에 국민당군은 머리도 들지 못하고 무리로 쓰러졌다. 바빠 맞은 조덕산은 뒤에서 “철퇴!”하고 고함쳤다. 적들은 매복에 걸린 것을 알고 함흥 촌 동산 쪽으로 철퇴하기 시작했다. 두 개 소대나 되는 유격대원들은 칠백과 동욱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 갱도에서 전호로 뛰쳐나와 당지 지주와 토비들을 소멸하고 조덕산 국민당 군을 추격했다. 교활한 조덕산은 함흥 촌 동쪽의 산골짜기를 따라 령을 넘어 계수동 골안에 들어섰다. 그때다! “죽여라!” 난 데 없이 복병이 뛰쳐나오면서 포위 습격했다. 원래 성칠 대장은 1중대 2소대와 3소대를 진수해로 가지 말고 벌판의 버드나무숲 속에 매복해 있게 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계수동 동쪽 산등성이에 매복해 있었다. 조덕산은 옆에 따라온 충국을 보고 고함쳤다. “이놈, 유격대 몽땅 진수해로 갔다더니 이게 웬 일인가?!” 장충국은 당황해났다. “조단장!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확실히 함흥 촌에 유격대가 없었습니다. 이게 웬 일이지?  아마 진수해로 갔던 대부대가 되돌아 온 거 같습니다.” “개나발을 작작 불어! 그 놈들이 나는 재간이 있다고 진수해파출소를 치고 번개처럼 여기까지 온단 말인가?” 조덕산은 권총을 들어 충국을 겨누며 을러멨다. “이 놈, 빨리 앞장서 포위를 돌파해! 포위를 돌파하지 못하는 날엔 네 놈부터 총살할 테다!” “옛!” 장축국은 옆에 선 국민당 놈에게서 기관총을 빼앗아 들더니 제일 앞에서 달려 나가면서 유격대를 향해 뚜르륵 뚜르륵 몰 사격을 가했다. 뒤따라 국민당군은 포위를 뚫고 나가려고 서둘렀다. 그때 성칠 대장의 우렁우렁한 한어 고함소리가 어둠이 뒤덮인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렸다. “조덕산! 네 놈들은 몽땅 포위됐다. 장충국은 국민당 토비들을 위해 목숨을 팔지 말고 투항해라!” 그러나 장충국은 엎드려 고함쳤다. “네 놈들을 따라 일본 놈들을 쳤건만 네 놈들은 우리 밭을 빼앗아 네 애비와 형제들에게 나눠주지 않았느냐? 죽어도 네놈들과 한 하늘 아래에서 살지 못한다! 네 놈이나 총을 놓고 투항해라!” 고함질을 마치자 장충국은 기관총을 뚜르륵 뚜르륵 갈겨댔다. 그제야 조덕산은 충국을 재차 신임하고 기여가 나직이 말했다. “충국아, 나를 따라 삼도만으로 가자!” “옛!” 조덕산은 충국이 대신 다른 놈에게 기관총을 주면서 엄호사격하라고 했다. 뚜르륵 뚜르륵 국민당 패잔병들이 몰사격하는 틈을 타 조덕산과 충국은 몇몇 놈들을 데리고 어둠속에 계수동 골짜기 아래로 사라졌다. 그 놈들이 계수동 막치기에 있는 도가 집 부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 놈들아! 인삼 중대장이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래다!” 땅! 땅! 땅! 총소리와 함께 몇 놈이 쓰러졌다. 이때 한 개 분대는 될 유격대원들이 조덕산과 충국을 향해 덮쳐왔다. “인삼아, 오늘 내 죽든지 네 죽든지 싸워 보자!” 충국은 인삼의 소리가 난 쪽에 권총을 쏘았다. 땅! 인삼은 권총을 내리우고 소리쳤다. “충국아, 조덕산 놈을 붙잡아 바쳐라. 그 길만이 네가 살아남는 유일한 선택이다. 양아버지를 생각해 하는 마지막충고야.” “양아버지란 말을 하지도 말라! 우리 부자간이 창고 쌀을 대주고 네놈들과 어깨 겯고 싸웠건만 우리 밭을 몽땅 빼앗겼다. 네 놈들과 절대 한 하늘을 쓰고 살지 못한다. 잔말 말구 죽기내기로 싸워 보자!” 충국은 권총을 이쪽에 대고 쏘았다. 땅! 총소리와 함께 인삼은 왼쪽어깨에 총탄을 맞고 푹 꺼꾸러졌다. 땅! 조덕산이 권총을 쏘면서 고함쳤다. “충국아, 빨리 달아나자!” 또 다른 유격대원이 놈들에게 덮쳐 나가다가 총에 맞아 장렬히 희생됐다. 인삼은 아픔을 참으면서 권총을 뽑아 들었다. “사격!” 유격대원들은 도가 집 쪽으로 도망치는 조덕산과 충국을 향해 몰사격하며 추격했다. 땅! 땅! 산등성이 쪽으로 도망치던 조덕산이 허벅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푹 꼬꾸라졌다. “조 단장, 빨리 업히시오!” 조덕산은 쓰러진 채 충국을 밀어 버렸다. “난 틀렸네. 어서 삼도만으로 도망쳐 가서 전보흥 소교한테 이 곳 정황을 알리게!” 충국은 조덕산에게 등을 돌리며 고함쳤다. “빨리 업히시오! 죽어도 함께 죽어야지!” “빨리 달아나라니까! 이건 명령이야. 듣지 않으면 내 총에 죽는다.” 충국은 그래도 조덕산을 껴안아 일으켰다. 조덕산은 권총을 충국에게 들이댔다. “빨리 가라! 이 정황을 알리지 않으면 삼도만 숱한 형제들도 준비 없어 죽게 돼! 빨리 가!” 충국은 몸을 돌려 도망치다가 되돌아보며 고함쳤다. “조 단장!” 조덕산은 쓰러져서도 권총으로 유격대에게 총질하며 충국을 도망치게 엄호했다. 땅! 땅! 절컥! 절컥! 인삼은 고함쳤다. “조덕산 놈이 탄알이 떨어졌다! 생포해라!” 조덕산은 자살하려고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절컥! 조덕산은 탄알이 떨어지자 권총박죽으로 자기 대가리를 마구 땅, 땅 조겨댔다. 그때 인삼과 유격대원들이 덮쳐나가 일거에 조덕산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아냈다. “꼼짝 말앗!” 조덕산은 권총으로 자기 대가리를 조겨대다가 붙잡혔다. 유격대원들은 각반을 풀어 대가리가 피투성이 된 조덕산을 꽁꽁 결박해 가지고 함흥 촌 촌공소로 내려왔다. 몇몇 유격대원들이 남아 국민당 비적들의 시체에서 총을 거둬 가지고 뒤따라 내려왔다.                                                          8. 지주무장 두목을 총살 조덕산은 유격대원들에게 압송돼 토성 대문 안에 들어서면서도 고래고래 고함쳤다. “나는 군인이다. 목숨 걸고 용감히 싸우다가 탄알이 다 떨어져 포로로 됐을 뿐이다. 나를 능욕하지 말고 한방에 죽여라!” 인삼은 조덕산을 촌공소 앞의 늙은 비술나무에 결박해 놓으라고 지시했다. 상순은 성수랑 함께 마른 장작을 마당에 안아다 쌓아 놓고 불을 피웠다. 장작불이 활활 타올라 토성 안 마당을 대낮같이 환히 비추었다. 이때 성칠 대장과 진달래 중대장도 유격대원을 데리고 회합하여 대문 안에 들어섰다. 칠백 중대장도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갱도와 전호 속에서 나와 회합했다. 병완과 상순은 마을의 민병들을 데리고 마당에 들어왔다.  “만세!” “만세!” 모두들 승리를 환호하여 하늘땅을 진동하게를 높이 웨쳤다. 상순이 거느린 민병들은 유격대원들을 따라 혁명노래를 불렀다.            나가자 나가자 싸우러 나가자            용감한 기세로 어서 빨리 나가자            땅 없는 농민은 식칼 들고 나오고            집 없는 로동자  망치 들고 나오라             나가자 나가자 싸우러 나가자            용감한 기세로 어서 빨리 나가자 성칠 대장은 손을 들어 노래를 그만 부르게 하고 마루 위에 뛰어 올라가 우렁찬 목소리로 연설했다. “여러분, 우린 일본 놈들을 이 강산에서 몰아내고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또 오늘 우리 행복한 새 생활을 파괴하고 약탈하려는 국민당 군 토비들을 일망타진했습니다.” 토성 안에서는 또 구호소리가 우레 소리같이 울려 퍼졌다. 성칠 대장은 손을 흔들더니 계속 연설했다. “우리 함흥 촌 인민들은 공산당의 영도아래 무기를 들고 우리 마을을 지키고 우리 피로 바꿔온 이 역사의 비밀이 숨어 있는 땅을 지켜 싸워야 합니다. 아직도 삼도만과 돈화 등지에는 국민당 토비들이 욱실거리고 있습니다. 국자가와 천수해, 영월구에도 국민당 지하조직이 창궐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왕청현 춘양과 녕안 동경성 일대에는 마희산 토비가 출몰하고 목단강과 해림 일대에는 아직도 독수리와 허몽둥이 토비들이 욱실거리고 있습니다. 국민당 토비들은 호시탐탐 공산당 영도아래에 있는 마을들에 쳐들어와 강탈하고 살인할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우린 공산당을 따라 민주연군에 들어 이런 토비들을 몽땅 소멸하고 우리 행복한 지상낙원을 꾸려야 합니다. 여러분 신심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이계삼과 허영주가 군중들 속에서 구호를 불렀다. “공산당 만세!” “국민당 토비들을 소멸하자!” 토성 안 마당은 구호소리가 하늘을 진감했다. 성칠 대장은 당 지부에서도 지하활동을 할 필요 없이 공개적으로 일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이계삼과 허영주 그리고 아버지와 조카 상순을 마루 우에 오르게 했다. “이제부터 여러분께 우리 함흥 촌 당 지부 성원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는 이계삼과 허영주를 소개했다. “이분은 조선의용군 제3지대에서 파견해 온 우리 함흥 촌 당 지부 서기 이계삼동지입니다. 허영주 동지도 역시 3지대에서 파견한 우리 함흥 촌 당 지부 조직위원입니다.” 뒤이어 그는 아버지와 상순을 돌아보며 소개했다. “여러 분들도 다 알겠지만 저의 부친은 지하당원이며 함흥촌 촌장입니다. 조카 상순은 당지부 선전위원 겸 민병 련 련장으로 이번에 임명됐습니다. 이후에 여러분들은 이 네 분의 주위에 굳게 뭉쳐 우리 마을을 든든히 지켜야 합니다. 신심이 있습니까?” "있습구마!" 군중들은 이구동성으로 화답하며 박수를 쳤다. 상순이 성칠 대장의 연설을 즉석에서 한어로 통역해 주자 지어 가난한 한족 농민 장풍이랑 장발래랑 제해풍이랑 장용객이랑 모두 좋다고 웃고 떠들었다. 조덕산은 피투성이 된 대갈을 툭 떨구며 중얼거리었다. (저 지하당원 놈들부터 참살해야 했었는데 그랬어.) 상순은 품속에 이제껏 숨겨 뒀던 권총을 꺼내 큰아버지에게 바쳤다. “이 권총은 큰어머님이 생전에 쓰던 권총입니다.” 성칠 대장은 권총을 받아 매만지더니 상순에게 내밀었다. “민병련 련장 상순은 민병련을 령솔해 이 권총으로 이 마을을 보위하고 토비 놈들을 족쳐라!” 상순은 권총을 받아 옆구리에 차고 차렷 하고 군례를 올렸다. “옛! 꼭 우리 인민민주정권과 마을을 보위하고 토비들을 숙청해버리겠습니다!” 민병들은 모두 부러운 눈길로 상순을 바라보며 우렁차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때부터 상순은 허리춤에 권총 두 자루나 찬 민병 대장으로 소문 높게 되였다. 성칠 대장은 비술나무에 묶인 조덕산의 앞으로 걸어가 우렁차게 을러멨다. “미국 신식무기로 무장했다고 떠들던 네 놈들도 그저 그렇구나. 큰소리나 쳤지 어찌 일본제국주의도 무찌른 우리 일당백의 유격대를 당하겠는가?” “흥!” 조덕산은 불복했다. “너희들은 오늘 보니 한 개 영의 병력은 실히 되는구나. 잔꾀를 부려 진수해를 치는 척 하면서 말머리를 돌려 창으로 찌를 줄은 몰랐어.” 성칠은 조덕산의 코에 대고 삿대질하면서 비난했다. “단장이라는 놈이, 퉤!" 성칠은 침을 내뱉았다. " 아름드리나무숲과 갱도에 우리 복병이 매복 습격 전을 벌리리라는 것쯤은 짐작해야 할 게 아니냐? 너희 국민당 비적들은 신사복차림에 무기 자랑이나 하면서 거들먹거리기나 했지. 전술 같은 건 근본 모르는구나. 이런 밥통 같은 놈도 상좌 단장이라니 삶은 소대가리 웃다가 꾸러미 터지겠다.” “하하하” “허허허!” 유격대원들과 마을 사람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조덕산은 피투성이 된 대갈을 쳐들고 하늘을 쳐다보더니 중얼거렸다. “모욕하지 말고 어서 한방에 죽여라! 나는 군인답게 죽겠다!” 성칠 대장은 엄숙하게 말했다. “네 놈은 내일 공개재판대회를 열고 진수해 부근의 숱한 군중들 앞에서 총살할 테다!” “좋다! 빨리 죽여 달라! 허나 한마디만 묻겠다. 난 너희들과 싸우다가 붙잡힌 포로다. 포로를 우대한다던데 포로를 총살하는가?” 성칠은 조덕산의 가련하고 비굴한 꼬락서니에 코웃음이 나왔다. “허, 그 놈 비굴하게 목숨 따위를 구걸할 셈이냐? 네 놈은 포로가 아니라 당지 지주무장을 조직해 우리 항일유격대를 여러 명 살해한 악질 토비 놈이다. 마땅히 총살해야 한다.” 조덕산은 마지막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네 놈의 간계에 넘어가 죽는 게 한이다!” 성칠은 조덕산의 코에 대고 삿대질하며 우렁차게 고함쳤다. “인민과 적대시하면서 인민을 못 살게 구는 네 놈들은 백번 죽여도 마땅하다!” 성칠은 말을 마치자 소대장 임호를 불러 한쪽구석으로 가서 조용히 명령했다. “소대를 이끌고 밤도와 선바위 부근의 물레박골로 가서 악질지주 이영룡을 사로잡아 오오.” “옛!” 그때 병완이 듣고 성칠에게 다가왔다. “얘야, 내 임호 소대장을 데리구 물레박골 갈게.” 성칠 대장은 그 자리에서 말리였다. “연세가 계시는 아버님을 어떻게 보냅니까?" 그는 상순한테 눈길을 돌렸다. "상순도 물레박골을 알지?” 그때 옆에 서있던 상순이 제꺽 가슴을 뻗치며 나섰다. “예, 큰아버지, 내 임호 소대장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응, 그 놈을 해뜨기 전에 여기까지 끌고 오라.” 성칠은 또 인삼을 불러 명령했다. “즉시 소서구로 가서 악질지주 장학산을 잡아오라!” 그러자 인삼은 성칠을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조용히 말했다. “장학산은 이전에 항일유격대에 쌀이랑 대주었고 충국도 필경은 우리 유격대와 어깨 겯고 일본 놈들과 싸우지 않았소? 그들 부자간은 달리 처리하면 어떻소?” 그러나 성칠은 엄숙하게 말했다. “인삼 중대장은 철저하게 혁명을 하게나. 양아버지라고 인정에 얽매우지 마오.” 그는 붕대를 감은 인삼의 어깨 상처를 가리키면서 정색했다. “이 상처가 모든 걸 말해주지 않소? 그들 부자가 확실히 지난날 우리 유격대를 도왔고 일본 놈들과 싸운 건 사실이오. 허나 오늘 국민당 반동파에게 넘어가 우리에게 총부리를 돌려댄 이상 그 놈들을 놔둬선 안 되오. 즉시 가서 장학산을 붙잡아 오오.” 성칠 대장은 칠백 중대장을 불렀다. “칠백 중대장이 가서 장학산 놈을 붙잡아 오오. 그 놈들 부자는 우리 마을 정황을 정탐해 국민당 토비들에게 보냈소. 그 놈들을 총살해 후환을 없애 버려야겠소.” “옛!” 인삼 중대장은 하늘을 우러러 보더니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윽고 칠백 중대장이 유격대원들과 함께 장학산과 여편네, 딸 장미련까지 결박해 왔다. 장학산은 마당에 우두커니 서있는 인삼을 보자 욕했다. “얘, 인삼아, 네한테 미안하게 대한 게 뭐냐? 이 토성 안 집도 내 친아들에게도 주지 않고 널 주었지. 쌀을 빡빡 긁어 너 유격대에 대주었지. 이번에도 조덕산 저 놈이 준 권총을 주면서 오늘 밤에 이 마을을 친다는 정보까지 제공해 주었는데 이게 웬 일이냐?” 조덕산은 장학산 쪽에 대고 피가래를 뱉었다. “더러운 자식, 죽어도 꿋꿋하게 죽어라! 공산군의 개가 되더니 싼 통 했다.” 이때 조덕림과 물레박골 리영룡도 결박당한 채 임호가 이끈 유격대원들과 상순에게 끌려 왔다. 조덕림은 토성 안에 들어서자마자 비술나무에 묶인 동생을 보자 아우성쳤다. “아우야! 이게 웬 일이냐? 아이고, 쫄딱 망했구나. 큰소리를 땅땅 치는 네 말을 믿고 날치지 않았더라면 난 목숨은 건졌겠는데 이게 웬 일이냐? 우리 조개 집안이 쫄딱 망했구나.” 조덕산은 다른 비술나무에 묶인 조덕림을 보고 목청껏 소리쳤다. “형님! 우린 죽어도 떳떳하게 죽기요. 절대 꼬리빵즈 가난뱅이들 앞에서 비굴하게 목숨 따위를 구걸하지 말기오.” 조덕림은 끝없이 아우성 쳤다. “에이고, 죽고 보면 모든 게 끝인데 비굴하면 어떻고, 떳떳하면 어떻냐? 누가 영웅비석이라도 세워 준다더니? 에이고, 국민당군두 그저 그래? 저런 토박이 팔로 빨갱이들도 당하지 못하다니? 에이고, 저런 멍청이들을 믿고 밭을 찾자고 너덜거린 게 머저리지. 죽어 싸지.” 이영룡은 비술나무에 묶여 꽥꽥 고함쳤다. “너희들, 장관을 불러 오라! 내 무슨 국민당과 한통속인가? 일본 놈들과 한 물건 짝인가? 어쨌다고 여기까지 붙잡아 왔는가? 난 조선 고향으로 가겠단 말이야!” 그때 병완과 성칠 대장과 기준이 촌공소에서 나왔다. 병완과 기준을 보자 이영룡은 섬찍해 부들부들 떨었다. 병완은 이영룡의 귀 쌈을 쨩 갈겼다. “이 악질 지주 놈아! 오늘까지도 자기 죄를 모르는가? 네 놈은 일본 놈들과 결탁해 우리 원삼 조카를 가혹하게 착취하였다. 그를 죽인 장본인이다. 네 놈은 일본 놈들에게 쌀을 대주었고 밀정질을 하여 우리 무고한 백성들을 수많이 밀고해 용정 통감부 간도파출소에 붙잡혀 가 죽게 만들었다. 네 놈은 총살해 마땅하다!” 리영룡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대가리를 툭 떨어뜨리고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었다. 토성안 마당에 있던 군중들은 돌멩이를 비술나무에 결박해 매 놓은 조덕산과 조덕림, 이영룡에게 뿌렸다. 그러나 모두 장학산만은 때리지 않고 불쌍하다고 했다. 성칠은 그 세세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여겨보다가 군중들을 제지시켰다. “여러분, 그만 돌을 뿌리십시오. 내일 저 놈들을 숱한 군중 앞에서 공개재판한 후 처단합시다!” 그 말에 군중들은 돌멩이질을 멈추었다. 가을바람에 아름드리 비술나무와 버드나무가 무섭게 쏴 쏴 소리를 내며 설레였다. 이튿날 태평강 가에 진수해 부근의 숱한 군중들이 모여 왔다. 김병완 촌장과 이계삼 서기, 성칠 대장과 유격대 중대장들이 임시로 만든 주석 대 위 걸상에 앉았다. 사형장 부근에는 유격대원들과 민병들이 둘러서서 삼엄하게 보초를 섰다. 이계삼이 공개재판대회를 사회했다. “지금으로부터 공개재판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국민당군 영장이며 토비 단장 조덕산을 비롯한 국민당 토비두목들을 끌어내라!” 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민병 련장 상순이 유격대원들을 영솔해 고깔모자를 씌운 조덕산, 조덕림, 장학산, 이영룡을 끌어다 구덩이 앞에 꿇어 앉혔다. 조덕산은 죽어라고 꿇어앉으려고 하지 않으며 반항했다. “난 국민당 장관이야. 난 너희들의 포로야.” 상순이 장총박죽으로 종아리를 콱 내리치면서 발로 종아리를 꽉 밟아서야 겨우 억지로 꿇어 앉혔다. 이계삼은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아래 함흥 촌 촌장 김병완 동지로부터 조덕산 등 국민당 군관과 악질지주들의 주요 죄장을 공소하겠습니다.” 김병완은 주석 대에서 일어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공소했다. “국민당 군 영장 조덕산은 고향에 기여 들어 조덕림 등 지주들을 긁어 모아 70여명이나 되는 국민당반동파와 지주 무장 대오, 토비무리를 건립했다. 한족과 조선족 간의 민족 이간을 도발했다. 뭐? '조선족가난뱅이들이 한족들을 죽이고 밭을 빼앗자고 한다'구?  한족군중들을 미혹하여 국민당반동파 지주무장대오에 끌어들였다. 이 놈은 지주무장대오로 토비를 조직해 갓 광복을 맞은 우리 함흥 촌 공산당조직과 북만에서 온 조선의용군과 유격대 그리고 민주연군 전사들을 소멸하고 중국 공산당의 토지개혁을 파괴하려고 망상했다. 이 놈은 지주무장과 토비들 그리고 국민당 정예군 한 개패를 끌고 우리 마을을 습격해 수많은 민주연군과 유격대 전사들을 살해했다. 조덕산, 이 토비두목 놈의 하늘에 사무치는 죄는 백번 죽여도 마땅하다.” 상순이 주석대에 서서 즉석에서 한어로 통역했다. 숱한 한족군중들도 조덕산을 “죽여라!”라고 고함쳤다. 병완은 계속해 조덕림의 죄상을 공소했다. “악질지주 조덕림은 우리 함흥 촌 민병들이 자기 토지와 집을 청상하여 마을 가난한 한족백성들에게 나눠 주자 조덕산이 준 권총으로 상순을 사격했다. 또 동생인 조덕산 토비두목을 협조하여 우리 진수해 부근에서 지주 무장 대오를 세운 죄가 있다. 마땅히 총살해 후환을 없애야 하며 가난한 백성들의 원한을 갚아야 한다. 재산을 몽땅 가난한 한족과 조선 농민들에게 나눠줘야 한다!” 한족군중들은 기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조덕림을 청산하자!” “조덕림을 총살해라!” “조덕림의 밭을 나눠가지자!” 병완은 계속해 이영룡의 죄상을 밝혔다. “친일주구 악질지주 이영룡 놈은 일본 놈들과 결탁해 우리 고향의 이원삼 조카를 가혹하게 착취하였으며 그를 화나서 죽게 만든 장본인이다. 게다가 이 놈은 일본 놈들에게 쌀을 대주었고 일본 놈들의 밀정으로 돼 우리 무고한 백성들을 수많이 밀고해 용정 통감부 간도파출소에 붙잡혀 가 살해당하게 했다. 이 놈은 총살해 마땅하다! 지주 이영룡의 집과 밭을 몰수해 이원삼의 다섯 자식을 비롯한 물레박골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준다!” 이제 장학산이 혼자 남았다. 병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주 장학산은 우리 일가를 가혹하게 착취했다. 이번에도 장학산은 조덕산의 꼬임에 들었고 권총으로 유격대 간부를 위협했다. 또 그의 맏아들 장충국과 둘째아들 장리국은 무기를 들고 국민당 토비들과 함께 우리 유격대와 민병들을 습격했다. 특히 장충국은 우리 마을 군사정보를 조덕산에게 제공하였고 우리 인삼 중대장을 어깨에 중상을 입히고 삼도만 토비 굴로 도망쳐갔다. 그러나 장학산은 조선에서 의지 가지 없이 살길을 찾아온 우리 일가와 주현경에게 황무지를 개간하게 주었고 쌀이 없으면 쌀을 대주었다. 간고한 항일전쟁시기에 유격대에 쌀을 대주었고 아들 충국을 시켜 항일유격대와 함께 일본 놈들과 싸우게 했다. 그리고 이번 지주들의 무장대오가 어제 밤에 치러 온다는 중요한 정보를 양아들 인삼 중대장에게 알려 주었다. 장학산은 죄도 있고 공로도 있다." 병완은 군중들을 둘러보며 계속 말했다.       "우리 중국 공산당은 애증이 분명하고 법이 밝다. 장학산은 항일과 반토비전투에서 세운 공훈이 크기에 즉시 석방하며 집에서 노동개조를 하게 하면서 후일을 경계한다. 만약 다시 국민당 반동파들과 단짝이 된다면 호되게 처벌한다. 그러나 항일에 공로가 있는 맏아들 장충국을 이제라도 설복해 토비들과 한 무리로 되지 않고 고향에 돌아오게 한다면 과거의 죄를 묻지 않고 금후 태도를 위주로 보아 관대하게 처리하려고 한다.” 민병들은 즉시 장학산과 일가족의 결박을 몽땅 풀고 석방했다. 장학산은 주석대 앞으로 와 무릎을 꿇더니 두 손을 맞잡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감사하오. 공산군 장관 여러분. 꼭 충국더러 총을 놓고 돌아오게 하리다.” 인삼은 주석대에서 내려와 직접 양아버지를 부축해 일으켰다. “양아버지, 어서 집으로 돌아가십시요. 많이 놀랐겠습니다.” 조덕산은 핏발이 선 눈깔로 장학산을 쏘아보며 욕했다. “더러운 놈, 빨갱이 놈들한테 우리를 팔아먹고 제만 살아 남겠다구. 흥! 내 귀신이 돼서라두 네 놈부터 목줄을 물어 끊어놓지 않는가 봐라! 더러운 반역자 놈!” 성칠 대장은 장학산을 교육하고 장충국을 설복하게 하려고 고육지책을 썼던 것이다. 이때 이계삼이 목청을 가다듬어 고함쳤다. “아래 김성칠 대장으로부터 사형명령을 내리겠습니다.” 그러자 상순은 또 이계삼의 말을 즉석에서 조선말로 소리 높이 통역했다. 성칠 대장은 주석 대에서 일어나 우레 소리와 같은 목소리로 사형명령을 선포했다. “국민당 영장, 토비두목 조덕산과 토비두목 악질지주 조덕림, 친일주구 악질지주 이영룡을 사형에 처한다. 즉시 처단하라!” 한족과 조선족 군중들은 모두 박수를 치며 웅성거렸다. 상순은 장총으로 조덕산을 꿇어앉게 했다. 조덕산은 피투성이 된 대가리를 들고 주석 대 위에 있는 성칠을 쳐다보더니 고함쳤다. “난 국민당 영장이지 토비두목이 아니다. 군인답게 죽게 해 달라.” 성칠이 주석대에서 내려갔다. “말해봐라!” “난 걸상에 앉아 죽겠다. 마지막으로 담배를 한 대 줄 수 없는가?” 성칠은 통쾌하게 대답했다. “걸상을 가져 주라!” 조덕산은 걸상에 앉더니 고래고래 고함쳤다. “오늘은 내가 죽지만 이제 오래지 않아 삼도만 우리 형제들이 와서 네 놈들을 몽땅 천당에 보낼 게다!” 상순은 자갈을 쥐여 조덕산의 주둥이에 처넣었다. 성칠이 말리면서 손수 담배를 말아 조덕산의 입에 밀어 넣어 주었다. 그리고 조덕림의 죄꼬만 아들애를 시켜 조덕산의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여주게 했다. 악질 국민당군 영장, 토비단장 조덕산은 걸상 앞의 구덩이를 내려다보다가 머리를 들어 맑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더니 담배를 풀썩풀썩 빨아 연기를 토해냈다. 이윽고 담뱃대를 퉥 뱉더니 중얼거렸다. “됐다! 나를 마주 보면서 총을 쏴라! 난 군인이다. 절대 죽음을 두려워하는 비겁한 놈이 아니다! 형님, 내 먼저 가오. 우린 황천에 가서도 훌륭한 형제요!” 인삼 중대장이 옆에서 총을 든 유격대원들에게 “사격!” 하고 명령했다. 땅! 땅! 땅! 유격대원들은 조덕산의 뒤통수에 대고 총을 놓았다. 연신 세발을 맞은 국민당 군 토비 두목 조덕산은 대갈통이 박살났다. 시체만 멀건 물이 고인 구덩이에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조덕림은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면서도 고함쳤다. “아우야! 나도 따라간다!” 땅! 조덕림은 뭐라고 욕지거리를 하려다가 대갈통이 박살나 구덩이에 굴러 들어갔다. 조덕림의 처자들은 울고불고 했다. 성칠 대장은 지시했다. “조덕림의 처자들은 조덕림과 계선을 나누어 처리하는바 즉시 석방하라!” 그는 조덕림의 처자들을 보고 호통쳤다. “네 놈들도 조덕림과 조덕산처럼 인민정부와 적대시하면서 토비들을 돕는다면 그땐 저런 끝장을 보게 될 것이다!” 애들은 질겁해 달아나는데 조덕림의 여편네는 시체를 치우자고 재판대회장에 서 있었다. 병완과 상순이 총을 들고 주석대에서 내려왔다. “네놈에게 물리어 죽은 원삼을 비롯한 물레박골 수많은 무고한 백성들의 원수를 갚는다.” 말을 마치자 병완과 상순은 이영룡의 앞에서 대갈통을 조준해 사격했다. 땅! 땅! 악패지주 이영룡도 대갈통이 박살나고 허파에 구멍이 뚫렸다. 병완은 발길을 날려 악질지주 이영룡의 시체를 툭 걷어차 구덩이에 처넣었다. 상순은 구덩이에 대고 침을 뱉었다. 병완이 지주들의 빚 문서를 한 아름 안아다가 쌓아놓고 명령했다. “지주들의 빚 문서를 몽땅 불태우라!” 성수랑 상순이랑 숱한 지주들의 누런 빚 문서 무지에 기름을 치고 불을 질렀다. 순간 시뻘건 불이 확 달려 삼단 같은 시꺼먼 연기가 하늘을 찌르며 뭉게뭉게 솟구쳐 올랐다. 병완은 주먹을 불끈 쥐고 고함쳤다. “여러분, 이제부터 우리 가난한 백성들은 지주들에게 진 빚이 한 푼도 없습니다. 우리는 진정 이 나라 땅의 주인이 됐습니다!”  가난한 농민들은 기뻐 야단쳤다. 그들은 허영주를 따라 구호를 불렀다. “인민정권 만세!” 이계삼이 마지막으로 연설했다. “여러분, 우리 중국 공산당은 지주를 청산하여 민족을 가리지 않고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 줍니다. 때문에 국민당의 민족리간 음모에 미혹되지 말고 모두 공산당을 따라 우리 마을과 인민민주정권을 지키고 토지개혁을 끝까지 해나가야 합니다.” 백성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들은 병완을 따라 한어와 조선어로 구호를 높이 불렀다. “중국 공산당 만세!” “영원히 중국 공산당을 따라 혁명하자!” 저쪽 버들강변에서는 까마귀 몇 마리가 날아와 앉아 깍깍 하고 울어댔다.        
83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2) 댓글:  조회:1919  추천:0  2017-02-16
                                  5. 지주를 청산       동산에 구리바라 같은 아침 해가 두둥실 떴다. 찬연한 가을 햇빛이 아름드리 버드나무와 비술나무가 들어선 들에 숱한 금침, 은침을  내리뿌렸다.        병완은 촌공소에서 일어나 마당에 나왔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불어왔다. 병완은 두 팔을 양쪽으로 벌리면서 시원한 가을 아침 공기를 한 가슴 뿌듯이 마음껏 들이 마시었다. 촌공소 위 칸에 사는 학수와 상우가 마당에 나오다가 반겨 맞았다. “할아버지,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오, 그래. 광복 맞아서 그런가. 온 몸에 힘이 나는구나.” 학수도 인사했다. “김 촌장 덕분에 우리 집에서 생각 밖으로 이리 좋은 집에서 살게 됐습니다.” 병완은 인사를 받았다.      “이게 다 항일유격대 덕분이오." 병완은 인삼이 바깥에 나오자 다가가 나직이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제 밤 지주 놈들 움직임이 심상찮네. 먼저 손을 쓰는 게 좋을 거 같네.” 인삼은 마당을 둘러보다가 병완에게 말했다. “안에 들어가 토론합시다.” 집 안에 있던 성칠 대장과 상순이 우쭐 일어나 할아버지한테 자리를 내주었다. 병완은 자리에 앉자마자 성칠한테 말했다. “어제 밤 상순이 정찰한 정황은 아주 중요해. 위험한 징조야. 선손 써서 그 놈들을 몽땅 없애 버리는 게 상책이다. 이제 유격대가 조선에 나가면 상순이네 민병패로써는 그 놈들을 당하기 어려울 게 아니냐?” 성칠은 과단성 있게 말했다. “옳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가기 전에 후환을 없애 버리어야겠습니다. 그 놈들은 지금 지주 무장을 조직해 가지고 우리가 간 다음 손을 쓸 수 있습니다.” 그는 인삼을 돌아보았다. “그 놈들을 일망타진해야겠소. 먼저 조덕산이란 놈을 나포하기오. 그 놈들은 밤에 활동하지 않소? 또 활동장소도 자꾸 움직이고 있소. 조덕림이네 집에 모이지 않고 도가 집에 모이는 걸 보오. 그 놈들이 도망칠 가능성두 있소. 우린 오늘 저녁부터 그 놈들을 기습해 버리기요.” 인삼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내 먼저 장학산을 찾아가 눈치를 살펴야겠소.” "그렇게 하오." 인삼은 성칠의 지시대로 유격대원 일여덟 데리고 소서구 어귀 장학산의 집으로 떠나갔다. 성칠은 막내조카 상순에게 머리를 돌렸다. “상순은 민병들을 데리고 조덕림의 집에 가서 집을 청산하구 밭을 가난한 한족 백성들에게 나눠 줘라. 조덕림이네 집 눈치를 살펴 봐라. 다른 동향이 없는가.” “나도 가겠다.” 병완도 나섰다. 그러나 성칠은 말렸다. "아버진 년세 계신데. 토성 안 집에서 상순의 승리소식을 기다립소." 성칠은 칠백과 동욱을 불렀다. “조덕산 놈은 우리가 떠나야 손을 쓸 수 있소. 우린 부대를 데리고 함흥 촌을 떠나는 척 하기요. 그럼 그 놈이 지주무장들을 몽땅 데리고 뛰쳐나올 게 아니오?” 그들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호랑이를 굴에서 끌어 내와야지.” 뒤이어 그들은 성칠 대장이 나직이 하는 말을 듣고 머리를 끄덕이더니 희죽이 웃었다. 성칠의 포치대로 유격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격대원들은 토성 안 갱도에 두 개 소대나 들어가 숨고 나머지 유격대원들은 일본 포로들마저 압송해가지고 몽땅 줄을 서서 대문 밖으로 씩씩하게 행군해 나갔다. 성칠 대장이 거느린 유격대 행렬은 함흥 촌을 벗어나고 조개덕을 지나 해동과 진수해쪽으로 행군해갔다. 조덕림은 금방 대문을 빠져나오다가 떠나가는 유격대 속에 늠름한 성칠이랑 있는 것을 보고 동생이 말한 대로 함흥 촌을 들이 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조덕림이 대문에서 몇 발작 떼지 못하였을 때 병완과 상순이네와 딱 마주 띄웠다. 병완은 시름이 놓이지 않아 성칠이 몰래 친히 손쓰러 왔던 것이다. 병완은 조덕림이 자그마한 상자를 든 것을 보고 꽥 고함치었다. “어데로 가?!” “아, 김 촌장, 무슨 일로?” 조덕림은 상자를 잔등에 숨기면서 꺽꺽거리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병완은 조덕림의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지주를 청산하러 왔다.” 조덕림은 상자를 안고 냅다 뛰었다. 상순은 민병들에게 손을 홱 저었다. “사로잡아라!” 조덕림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들어 돌아서며 쏘았다. 땅! 총알이 상순의 귀전을 스치고 앵-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날아갔다. 상순은 총창을 비껴들고 덮쳐가며 총을 쥔 조덕림의 오른 손을 탁 쳤다. 조덕림의 손에서 권총이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땅바닥에 뚝 떨어졌다. 조덕림이 권총을 주어드는 순간, 민병들이 왁 덮쳐들어 조덕림의 총을 빼앗았다. 땅! 땅! 조덕림은 권총을 빼앗기면서도 연속 방아쇠를 당기었다. 허나 총알은 공중으로 날아올라갔다. 민병들은 그 놈의 권총을 빼앗고 바로 꽁꽁 결박했다. 조덕림은 결박당해서도 고래고래 고함쳤다. “나를 청산해? 이제 내 동생이 빨갱이 놈들을 몽땅 없애버릴게다. 빨갱이 놈들아! 썩어질 날이 오래잖다.” 그 놈은 나무상자를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상순이 자그마한 나무상자를 빼앗아 훌 열었다.  금목걸이로, 보석걸이로, 귀걸이로, 팔찌로 상자에 꽉 차 있었다. 상순은 조덕림을 집 마당에 있는 늙은 비술나무에 묶어놓고 병선을 보고 지키게 하고는 민병들을 이끌고 할아버지와 함께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안에는 혼비백산한 조덕림네 처자들이 이불을 들쓰고 엎디어 있었다. 그는 총칼로 이불을 활활 걷어 올리었다. 조덕림의 여편네가 바들바들 떨면서 두 손을 싹싹 비비였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오.” 상순은 총칼을 들이대고 물었다. “조덕산이 어데 숨었느냐?” 조덕림의 여편네는 사시나무 떨듯하면서 중얼거리었다. “요즘엔 온 적두 없소. 빨갱이들이, 저, 아니, 공산군이 온 후부터 우리 집에 얼씬도 하지 않았소.” 상순이 손을 홱 휘두르며 “수색해라!” 하고 소리쳤다. 민병들은 그 큰 집 서쪽 방과 동쪽 방을 구석구석 들춰 보았지만 조덕산의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상순은 조덕림의 집식구들을 몽땅 끌고 나와 마당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 흥수와 학수를 시켜 대문 밖을 경계하게 하고 병선과 태수를 시켜 조덕림을 지키게 했다. 병완은 민병들을 시켜 조개덕의 가난한 한족과 조선족 군중들을 불러 왔다. 마당에는 숱한 한족과 조선족 빈고농민들이 몰려 왔다. 그들은 평소에 자기 동생을 믿고 우쭐거리던 조덕림이 나무에 결박당한 것을 보고 깨고소해 했다. 병완은 먼저 한어로 말했다. “오늘 지주 조덕림을 청산하겠소. 조덕림의 서쪽 방을 집도 없이 사는 장발래에게 주겠소.” 장발래는 좋아서 입이 함박만 해졌다. “김 촌장, 감사하오. 집도 없이 살던 내가 이런 토성 안의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게 됐구먼. 허허허.” 장발래는 조덕림의 눈치를 힐끔 곁눈질해보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조덕림은 눈깔을 희번뜩거리면서 장발래 잔등을 쏘아보았다. 그때 제해봉이 소리쳤다. “동쪽방은 나를 주오.” 조덕림은 아연실색했다. “아니, 네 놈이 감히 내 집을 가져?” 조덕림은 계속 꽥꽥 고함쳤다. “네놈이 뭐가 돼서 내 집을 가난뱅이들에게 나눠주니? 제해봉, 네 놈 새끼 두고 보자. 내 집을 빼앗아 어디 잘 사는가?” 병완은 꽥 소리쳤다. “조덕림, 이놈, 주둥이를 다물지 못할까? 이게 어디 네 집이냐? 네 놈이 국민당을 믿고 우쭐거렸다간 동쪽 방도 몽땅 청산해 버리겠다.” 병완 촌장은 상순을 보고 “그 놈을 끌고 조개네 밭으로 가자.”라고 했다. 상순은 조덕림을 끌고 조덕림의 집 뒤로 갔다. 병완은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식구 여섯이나 되는 제해봉한테 조덕림네 밭을 여섯 짐 청산해준다.”라고 선포했다. 그러고 나서 나무자로 여섯 짐을 재여 말뚝을 박아 주었다. 제해봉은 밭에 꿇어 앉아 두손으로 검은 흙을 움켜쥐어 냄새를 맡았다. 드디어 그는 머리를 들고 병완과 민병들을 올려다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게 내 땅이요?" 그때 조덕림이 소리쳤다. “어디 네 땅이냐? 내 땅이야! 감히 내 땅을 다치겠니?” 병완 촌장은 조덕림을 손가락질하며 고함쳤다. “이건 우리 함흥 촌에서 당의 토지개혁정책에 따라 제해봉에게 준 밭이다. 이제부터 조덕림, 이 밭은 네놈의 밭이 아니라 제해봉의 밭이다.” 제해봉은 좋아서 야단쳤다. “김 촌장, 만세!” 그러자 병완은 제해봉을 말렸다. “내 만세를 부르다니? 유격대와 공산당에 감사를 드리게나.” “공산당 만세!” 제해봉은 구호를 불렀다. “저 조덕림이 공산당과 유격대가 공산공처를 한다면서 나쁘다더니 공산당이 너무 좋구나. 난 공산당과 유격대 덕분에 밭을 여섯 짐이나 가졌소. 이제부턴 공산당과 김 촌장의 말을 듣겠소. 뭘 시켜도 다 할 테요.” 병완은 장용객에게도 조덕림의 밭을 청산해 다섯 무나 주었다. 그리고 조덕림의 밭을 소작맡았던 최경숙에게는 소작을 맡았던 밭을 주고도 세 무를 더 나눠주었고 경민과 경석에게도 네 무씩 분배해주었다. 경숙은 동생들과 함께 밭을 분배받은 기쁨을 나누면서 아쉬워했다. “아버지하구 경인이네두 함흥 촌에서 진수해로 내려가지 않았더라면 밭을 나눠가졌겠는데 그랬다.” 병완은 그 외에도 조덕림에게서 빼앗은 상자안의 금은보화를 꺼내 유격대 군비로 쓸 만큼 남기고 조선족과 한족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주었다. 집과 밭 지어 금은붙이까지 나눠가진 가난한 조선족과 한족 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구호를 불렀다. “공산당 만세!” “항일유격대 만세!” 병완은 성칠의 포치대로 조덕림을 보고 을러멨다. “네 놈이 이제 다시 가난한 농민들에게서 집과 밭을 되빼앗아내는 날엔 나머지 동쪽 방과 나머지 밭을 몽땅 청산해 버릴 테다!” 상순은 조덕림을 풀어주고 함흥 촌으로 돌아오면서 조용히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조덕림이 국민당 조덕산 영장과 한통속인 게 뻔한데 왜 놔줍니까? 그놈이 우리에게 총까지 쏘았는데요.” 병완은 상순을 데리고 촌공소로 들어가 나직이 말했다. “그물을 널리 쳐서 큰 고기를 잡으려는 거야.” 그제야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병완은 상순을 보고 나직이 귀속 말로 분부했다. “오늘 저녁에 성칠의 말대로 가능하게 조덕산이랑 토비들을 끌고 우리 함흔촌을 칠 수도 있다. 난 마을사람들을 동원해 마을 외곽의 목책과 토성 그리구 갱도도 잘 손질해놓을게. 마을 사람들을 여러 마을의 토성 안에 피신시키자.  넌 민병들을 데리고 마을 주변 산봉우리에 올라가 잘 순라해라. 일단 토비들 동정이 있으면 칼산과 계수동 서산에 봉화를 피워 신호를 보내라.   다른 마을의 민병들이 인차 봉화가 피어 오른 마을을 포위해 토비들을 협공하기로 하자.” “예. 할아버지.” 상순이 떠나가려고 할 때다. “잠간!” “예!” 병완은 상순을 보고 나직이 분부했다. “토비들을 포위 습격할 때 우리 민병들끼리 서로 사격하지 말도록 왼팔에 허연 수건을 동여매게 하자.” “예! 알았습니다.” 상순은 할아버지의 명에 따라 마당에 나가 민병들을 두 개 소조로 나눠 행동을 시작했다. 한 개 소조는 여러 마을 사람들을 재빨리 토성 안에 피신시키고 다른 한개 소조는 소서구와 계수동 쪽으로 나뉘어 순라를 하러 떠나갔다.                          6. 충고        한편 소서구로 간 인삼은 장충국의 토성 안 집으로 곧추 들어갔다. 장충국은 바깥에서 땔나무를 패는척 하면서 망을 보았다. 인삼이 유격대원 일여덟을 데리고 들어서자 장충국은 도끼를 쥔 채 그들을 쏘아보았다. “동생!” 충국은 유격대원들을 아니꼽게 바라보다가 굳어진 얼굴을 좀 느슨히 풀었다. “형님, 왔소?” 인삼은 충국의 잔등을 툭툭 다독이였다. “양아버지 있느냐?” 충국은 집안에서 들으라고 언성을 높였다.  “형님, 좀 양심 있게 노오. 우리 집에서 형님을 미안하게 대한 게 뭐요?” 인삼은 집안에 꼭 장학산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자식!) 인삼은 유격대원들을 바깥에서 보초를 서게 하고 혼자 집안으로 들어갔다. 충국이 마당 안팎에 흩어지는 유격대원들을 둘러보고 인삼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인삼이 집안으로 들어가자 장학산은 권총을 허리춤에서 꺼내 들었다. 장리국은 식칼을 들고 인삼을 쏘아 보았다. 다만 장학산의 처 충씨와 딸 미련만은 궤 안에서 뭘 꺼내 챙기다가 손을 떼며 인삼을 바라보더니 바들바들 떨었다. 인삼이 혼자 들어선 것을 보고서도 장학산은 권총을 거두지 않고 물었다. “그래, 양애비를 청산할테냐?” 인삼은 구들 턱에 걸터앉았다. “양아버지, 나를 어째 믿지 못합니까?” 그제야 장학산은 총을 허리춤에 질러 넣으면서 두덜거렸다. “우리 집은 대대로 이 땅에서 양심적으로 살아왔다. 일본 놈들이 쳐들어오자 난 목숨 걸고 너네 유격대에 쌀을 가만히 실어다 주었다. 허나 일본 놈을 몰아내자 너희 공산당이 한 노릇이 뭐냐? 나를 믿게 하느냐? 우리 밭을 조선에서 온 가난뱅이들한테 나눠주고 이제 또 우리 집도 청산하러 온 게 아니냐?” 인삼이 장학산의 두 손을 잡았다. “양아버지,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전번에도 말했지만 그런게 …" 장학산은 인삼의 손을 홱 뿌리쳤다. “놔라, 놔. 너를 도와준 결과가 이런 거냐?” 그러나 인삼은 나직이 말했다. “양아버지,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양아버지를 다른 중국 지주들만은 다르게 대합니다. 아버지는 항일애국자기 때문에 집과 밭을 보류하게 하지 않았고 뭣입니까?” “보류? 지금 병완은 네 눈치를 봐서 잠시 놔둔 거야. 이제 네 떠나가면 이 집도 조만간에 빼앗고 말게다.” 인삼은 고의적으로 말을 흘렸다. “글쎄 나도 이제 대부대를 따라 떠날 예산이오. 그래서 가기 전에 양아버지를 찾아와 충고합니다. 절대 국민당군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괜히 그 놈들의 얼림수에 걸려 이 집도 목숨도 건지지 못하겠습니다.” 장학산은 인삼에게 다가 앉으면서 나직이 물었다. “그래, 너 오늘 정말 떠나가니?” “예. 건 왜 물어요?” “어, 아, 아니야. 네가 가면 우린 어떻게 살겠니? 저 가난뱅이들이 내 집을 빼앗고 죽일게 아니야?” 장학산은 무슨 궁리를 하더니 인차 볼 부은 소리를 했다. “우리를 데리고 가렴? 대체 어디로 가자고 그러니?” 인삼은 별로 고려도 하지 않은 듯이 말했다. “난 저기 온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오늘 떠난 대부대를 따라 진수해를 거쳐서 조선으로 나가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런데 양아버지를 만나보고 떠나려고 왔습니다. 이제 이렇게 가면 언제 또 만나겠습니까?” 장학산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정말 큰일이다. 네까지 가고 고만한 밭으로 어떻게 사니? 우린 충국도 농사 지을줄 모른다. 소작료나 받아먹고 살던 우리를 농사를 지으라고? 흥!” 충국도 끼어들었다. “형님, 나도 형님네 유격대와 함께 일본 놈들과 싸운 걸 알잖고 뭐요? 일본 놈들을 몰아낸 후 이게 어디 우리 세상이 됐소? 조선가난뱅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지. 꼬리빵즈들은 참 양심이 없어. 조선에서 밥을 얻어먹으러 온 주제에 남의 땅에서 주인행세를 한단 말이오.” 인삼은 억이 막혔다. “보아하니 양아버지나 동생들이나 국민당군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거 같구먼.” 그는 장학산의 허리춤을 보며 엄숙하게 물었다. “양아버지, 그 권총을 내놓소. 어데서 난 권총이오?” 장학산은 권총을 두손으로 붙잡으면서 벌떡 일어났다. “안 돼! 네까지 가는데 누가 보호해 준다더니?” 인삼은 짐짓 바깥을 내다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양아버지,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권총 한자루로 어떻게 목숨을 지킨다고 그럽니까? 날 줍소.” “안 돼! 네가 정말 이 양애비 은정을 잊지 않는다면 내게 권총이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충국도 끼어들었다. “형님, 한번만 봐주오.” 인삼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양아버지, 참 답답합니다. 내 부자지간의 정의를 생각해서 권총을 못 본 걸로 하겠소. 난 조선에 나가면 다입니다. 양아버지 은정을 잊지 못해 충고합니다. 총을 버리고 공산당과 유격대 편에 서시오. 이래야 아버지 일가 목숨을 구할수 있습니다. 지금 동만은 공상당 수중에 장악됐습니다. 절대 조덕산 같은 국민당군의 선동을 듣지 마시오. 국민당군이 여기 오기전에 민주연군에 몽땅 뒈지지 않는가 두고 보십시오.” 인삼의 말에 장학산은 궁리하더니 권총을 인삼에게 주었다. “네 말을 따를게.” 인삼은 권총을 받으면서 “잘 생각했습니다.”라고 했다. 충국은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삼은 장학산의 마음이 변한 것을 틀어쥐고 물었다. “양아버지, 내한테 할 말은 없습니까?” 장학산은 인삼과 충국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무거운 입을 뗐다. “난 세상일에 삐치지 않으련다.” 인삼은 장학산의 손을 잡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충고하지만 절대 남의 충동에 놀지 마십소. 일이 있으면 말하십시오.” 그러나 장학산은 손을 빼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없다, 없다니깐. 잘 가라. 나도 너한테 충고하마. 조선에 가면 다신 절대 이 마을에 돌아오지 말라. 그게 너를 구하는 길이다.” 인삼은 장학산의 그 말을 듣고 그 말의 무게와 함의를 대개 짐작했다. 장학산은 인삼에게 한참 뭐라고 말했다. 인삼도 뭐라고 양아버지에게 충고를 하고 갈라졌다. “양아버지, 이 못난 양아들을 마지막까지 염려해 주어 고맙습니다.” 인삼은 문을 나서며 장학산을 돌아보면서 눈물까지 주르르 흘렸다. 장학산도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충국은 인삼을 따라 나오면서 팔소매를 잡아당기였다. “형님, 조선에 가기 전에 병완 촌장과 말하오.저 아래 토성 안 집을 내게 돌려주라고 말이오. 나도 이젠 나이 있는데 장가를 가서 그 집에서 살아야겠소.” 인삼은 충국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이 답답한 놈아, 넌 그 착취계급의 사상을 싹 씻어버려라. 혼자 욕심스레 그 큰 집을 쓰고 살아서야 되니? 가난한 사람과 고루고루 나눠 다 같이 살아야 한다. 집을 가지려니 하지도 말아라.” “알았소, 알아. 그게 공산당의 토지개혁정책이 아니오? 흥!” 충국은 인삼을 대문 밖에까지 바래주었다. “형님, 잘 가오. 이 난세에 강냉이 밭에서 이파리가 흔드는 소리가 나도 주의하오. 조선에 갔다가 생각대로 안 되면 다시 오오.” “응.” 인삼은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태평강으로 내려갔다. 인삼은 아름드리버드나무숲에 들어서자 몸을 돌리더니 소서구 어귀를 돌아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아름드리버드나무숲이 가을바람에 쏴쏴 무섭게 설레였다. 먹구름이 천지꽃산으로부터 뭉게뭉게 몰려왔다. 때 아닌 가을에 웬 소낙비가 오려는가? 먹장구름 속에서 번개가 대지를 번쩍 찌르더니 우뢰가 꽈르릉 천지를 진동했다. 인삼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버드나무숲속에 바람결처럼 사라졌다. 아름드리 버드나무숲속에서 난 데 없는 뻐꾹뻐꾹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었다. 이윽고 상순이 몇몇 민병들을 데리고 순라하면서 버드나무숲 속으로 들어갔다. 한편 병완이 촌공소 마루에 나가 짚신을 신을 때었다. 애를 업은 진달래 중대장이 경위원과 여성유격대원을 데리고 토성 안에 들어섰다. “사돈어른, 그간 무사했어요?” 병완이 마주 나가 인사했다. “아니, 사돈색시 왔구만. 우리 맏이두 기다리다가 오늘 진수해로 떠났소.” “예?” 진달래 중대장은 저으기 놀랐다. “여기에 용천 대장은 오지 않았어요?” 병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지 않았소. 북만에 가지 않았던가?” 그 말에 진달래중대장은 어깨를 툭 떨어뜨리더니 눈물을 줄줄 흘렸다. “예. 아무리 기다려도 경주 아버진 오지 않았어요.”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진달래네 일행 셋을 촌공소안으로 안내해 들어갔다. “애까지 업구 길에서 얼마나 고생했겠소.” 병완은 진달래중대장을 촌공소 사무실 안방에 데리고 들어갔다. 진달래는 이슬이 맺힌 눈을 목수건으로 닦고 나서 함흥 촌에서 있은 일을 병완에게서 들었다. 진달래 중대장은 경주를 여성유격대원에게 맡기고 일어섰다. “은녀를 여기에 데려와야지. 상순사돈네 집에 둬선 위험할 거 같아요.” 그러자 병완이 말렸다. “지금 움직이지 마오. 괜히 적들이 눈치를 채겠소. 놈들이 어데서 우리 촌공소를 감시하고 있을 줄도 모르오.” 그러자 진달래는 구들에 들어앉았다. “그럼 이제 날이 어두워지면 데려 오지오. 먼저 누굴 보내 기별하는 거 좋을 거 같아요.” “옳소.” 병완은 말을 마치자 바깥으로 나가 학수를 불러 당부했다. 병완은 집안에 들어오자 진달래를 보고 말했다. “아차, 깜빡 잊었군. 진달래 중대장, 큰오빠가 여기 갱도에 있소.” “예? 큰오빠가 살아 있어요?” “내  불러올게.” 그때 때마침 상순이 마을을 순찰하다가 촌공소에 들어섰다. “최 중대장이 왔구먼. 용천대장은?” 병완은 상순을 보고 말했다.  “빨리 갱도 안에 내려가 경호 사돈을 불러 오라.” 진달래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 갱도에서 한 사람이라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아요. 제가 내려 가 오빠를 보겠어요.” 그때 경주가 “엄마, 맘마.” 하면서 앵앵 울었다. “옳다. 너도 큰아버지 보러 가자.” 진달래는 경주를 안고 상순이 쌀독을 치우자 갱도 안으로 내려갔다. 시꺼먼 갱도 안에서 유격대원들은 등잔불 밑에서 저녁밥을 든든히 먹으면서 전투준비를 한창 하고 있었다. 진달래는 갱도바닥에 내려서기 바쁘게 고함쳤다. “오빠, 멧돼지 왔어요. 오빠!” “멧돼지야!” 유격대 속에서 경호가 마구 엎어질듯이 달려 나왔다. 그들 오누이는 갱도 안에서 경주를 사이에 두고 붙안고 대성통곡 쳤다. 그 바람에 경주도 “엄마! 맘마!” 하고 울었다. “경주야, 울지 마라. 큰아버지야!” 경호는 조카를 받아 안고 “경주라고? 아버지도 살아계시면 외손자를 보고 얼마나 반가와 하겠나?” “글쎄 말이예요." 이때 칠백도 진달래를 보고 다가왔다  “아주머니, 무사히 왔구먼. 형님은 오지 않았제이?”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또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어깨를 들먹였다. “아주머니, 근심하지 말라니께. 우리 형님은 꼭 살아 있을 거라우. 난도 이제 일본 놈들을 잡아 치우면서 고향으로 나가겠다이.  (희야)형님이랑 경주에 가면 만날 수도 있제이.” 그때 동욱이가 다가와 말했다. “다 산산이 흩어져 자기 고향으로 돌아 가버리면 유격대는 어찌겠소?” 칠백은 대수로워 하지도 않았다. “일본 놈들이 다 망하면 유격대를 해서 뭘 하겠소?” 동욱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난 아직 내 안해 원쑤를 갚지 못했소. 고향에 돌아가 꼭 원쑤를 갚고 안해 산소에 가서 알려야겠소." "에이구, 그 놈들이 달아난지도 오래겠소. 보오. 룡정의 스쯔이로랑 몽땅 섬나라로 도망치지 않았소?" “됐어요. 고향 말은 후에 하세요. 여기 국민당 토비들이 당장 이 마을로 쳐들어올 판인데요. 우리 전투준비를 하자요.” 그리하여 진달래중대장과 칠백중대장, 동욱중대장은 셋이 두 개 소대 병력을 세개로 나눴다. 칠백 중대장과 동욱 중대장은 유격대원들을 령솔해 가만히 갱도를 통해 토성 밑 갱도로 나가 총구멍을 열어놓고 토성 밖을 내다보며 적정을 살피었다. 진달래중대장은 한 개 분대 병력을 데리고 촌공소 안으로 되나와 병완과 함께 적들 야습에 대처할 작전을 꾸미였다. 이윽고 상순이 나가더니 민병들을 데리고 가서 농사군들의 옷을 여나문벌 가지고 왔다. 진달래 중대장은 경주를 여성 유격대원에게 업혀 놓고 농촌 아낙네 차림을 하였다. 유격대원들도 몽땅 유격대 옷을 벗어 놓고 농사군들의 옷으로 바꿔 입었다. 그들은 강냉이단을 가득 가져다가 그우에 유격대 옷을 입혀 마당에 파놓은 전호와  집 안에도 구석구석 세워 놓았다. 뒤이어 진달래중대장과 병완은 유격대원들을 령솔해 상순이가 이끌고 들어온 민병들 속에 섞여 토성 안에서 나갔다. 진달래는 상순이네 집에 가서 은녀까지 데리고 유격대원들이 숨은 버드나무 숲속에 숨었다.        상순은 진달래를 비롯한 유격대원들을 버드나무숲 속에 남겨두고 마을을 돌며 순라했다. 인삼은 토성안 촌공소에 돌아와서도 양아버지 장학산이 근심스러워 한숨을 내쉬었다.  
82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1) 댓글:  조회:2064  추천:0  2017-01-25
                                         3. 토지개혁        이튿날 이른 아침에 쏘련홍군과 항일유격대 대부대가 도착하였다. 성칠은 항일유격대를 령솔해 쏘련홍군과 함께 일제 동만통지중심인 룡정으로 쳐나갔다. 그들은 순식간에 용정 영사관을 점령하고 쏘련홍군과 항일유격대 진붉은 기발을 영사관 꼭대기에 꽂아놓았다. 뒤이어 지하감방 대문을 까부시고 항일투사들을 구해냈으며 일제가 도망치면서 버린 무기창고에서 탄약과 폭파약, 총기들을 거둬내고 일일이 등록하였다. 이로써 일제가 동만에 대한 반세기 넘은 통지는 종말을 고했다.       용정은 해방했다. 하지만 성칠 대장은 친일주구 한철주와 똘만이 놈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최동욱 중대장은 안해를 릉욕한 가메다 놈을 간도에서 줄곧 찾았지만 끝내  놓치고 만 것이 줄곧 가슴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혹시나 해 성칠 대장과 최동욱 중대장은  유격대를 거느리고 용정통감부 간도파출소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스쯔이로 소장놈을 괴수로 한 일제 경찰들은 꼬리빳빳해 도망친지도 오랬다. 평소에 중조 인민들 앞에서 군도를 차고 거들먹거리던 일본 순사놈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혹시 용정이 목표가 커 위험하다고 이 놈들이 진수해로 도망쳐 숨지 않았을가? 진수해에 숨으면 살 거 같은가?)     성칠은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기준은 몇몇 유격대원들과 함께 문화거리에 있는 교회당으로 가 보았다. 그러나 이전에 기준을 여러 모로 도왔던 죤슨 신부는 귀국한지 오래였다. 교회당은 일본 놈들의 봉쇄로 하여 문설주에 거미줄이 얼기설기 늘여져 있었다.        중조인민들은 룡정거리에 뛰쳐나가 환호했다. 그 속에는 중년애국자 림민호 외에도 정규성, 박규찬, 정일권, 최윤갑  등 대성중학교와 은진중학교, 명신녀자중학교, 도흥중학교 남녀학생들도 끼여 있었다. 그들은 목이 터지게 구호흘 불렀다.       "민족해방 만세!"       "동북해방 만세!"       "중국 공산당 만세!"       "민족독립 만세!"        거리는 횐희로 세차게 파도쳤다.       얼마나  기다리던 민족의 광복인가! 얼마나 많은 각 민족 선렬들의 선혈로 바꿔온 해방인가!         성칠은 쏘련홍군과 항일유격대가 룡정에서 해방기념대회와 악패 한간과 지주를 처단하고 대오를 휴식정돈하는 틈을 타서 소분대를 거느리고 다시 함흥촌에 되돌아왔다.      그는 창준과 기준 두 동생과 누이동생 곰순 그리고 조카들과 함께 천지꽃산 동쪽 양지바른 산중턱에 모신 두 어머니 산소를 찾아갔다. 그는 어머니 산소 앞에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더니 대성통곡쳤다. “어머니-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옵소서. 어머니 돌아가실 때에도 찾아오지 못했습니다. 어억억, 헉헉헉." 창준과 기준 그리고 곰순 등 식솔들도 모두 꿇어 엎드려 대성통곡을 쳤다. 성칠 대장은 울면서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생전에 어머니는 그렇게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건만 이 불효자식은 어머니 생전에 모셔 가지 못했습니다. 하루 속히 일본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어머니를 고향에 모셔 가려고 했건만 이제야 어머니를 찾아 왔습니다. 아직도 우리 원수 일본 놈들과 한철주 같은 친일주구들을 다 처단하지 못했습니다. 일본 놈들은 수많은 우리 조선의 아들딸들의 목숨을 빼앗아 갔습니다. 당신네 맏며느리도 일본 놈들과 영용하게 싸우다가 장백산 밀림에서 장렬히 희생됐습니다. 이제 이 맏아들은 조선 고향에까지 쫓아가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한 하늘을 쓰고 살 수 없는 원수 친일주구들을 싹 쓸어버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고향 땅에 모셔 가겠습니다." 그 말에 창준과 기준은 서로 마주 쳐다보았다. 사련과 수월은 며느리들을 데리고 제사상을 차렸다. 모두들 성칠의 뒤를 이어 제주를 붓고 큰 절을 올리었다. 저쪽 천지꽃산과 소서구 북쪽 산에서 장 꼬마와 유격대원들이 총칼을 쥐고 보초를 서고 있었다. 이때 병완이 상순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 왔다. 그는 성칠을 불러 한쪽으로 가서 조용히 말했다. “어제 저녁에 말할 새 없어 토론하지 못했다. 우리 모두 유격대를 따라 조선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자.”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아버지에게 정중하게 권고했다. “아버지, 고향이라고 무턱 대구 갈게 아닙구마. 먼저 제가 고향에 가 정황을 잘 알아 본 후 집 식구들을 데리고 나옵소.” 병완은 성칠에게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여기 있으면 아직도 장학산이나 조덕림 같은 중국 지주들과 죽기내기로 싸워야 할 거 같아. 그 놈들이 땅과 집을 순순히 내놓자 하겠니? 고향에 돌아가 자기 땅이나 찾아 농사를 짓고 조상들의 산소를 잘 모시면서 살자.” 성칠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함흥 촌에서 총을 들고 국민당 군과 중국 지주놈들과 싸워야 합니다. 이계삼과 허영주는 지방에 남아서 함흥 촌과 부근 마을에 인민민주정권을 세우고 군중들로 인민무장 대오를 건립해 국민당군과 맞서 싸우면서 군중들을 보호하게 됩니다. 절대 지주 무장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병완은 시름을 놓지 못했다. “그럼 네 먼저 나가 봐라. 난 여기 가을이나 다 해놓고 나가 보겠다.” 성칠은 아버지 두 손을 꽉 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예. 그렇게 합시다.” 뒤이어 성칠은 총을 들고 사위를 살피던 상순을 불렀다. 그는 상순과 아버지를 바라보며 정중히 말했다. “아버지와 상순은 먼저 중국 공산당조직에 들어서 이계삼과 허영주를 협조해 여기 토지개혁부터 잘 하십시오. 지주들을 청산해 집과 땅,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 주십시오. 아버지와 상순은 인차 입당해야 합니다.” 상순은 인차 “예, 중국 공산당에 들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병완은 좀 주저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공산당에 들겠느냐? 아무 일도 해 놓은 게 없는데.” 성칠은 아버지와 상순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확신에 차 말했다. “아버지와 상순 조카는 이미 항일전쟁 때부터 중국 공산당과 유격대를 위해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입당조건이 진작 구비됐습니다.” 이때 이계삼과 허영주가 올라 왔다. “동무들이 마침 잘 왔소. 마을로 내려가기요.” 성칠 대장은 다시 어머님들의 산소에 제주를 붓고 큰절을 올리고 나서 묵묵히 산소에 머리를 숙이었다.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이계삼과 허영주와 먼저 산으로 내려가면서 아버지와 상순의 입당문제를 제기했다. 이계삼과 허영주는 마을에 내려와 병완과 상순을 촌공소에 불러갔다. 그는 병완과 상순을 번갈아 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혁명의 수요에 의해 김병완 동지와 김상순 동지를 중국 공산당조직에 가입시키려고 합니다. 두 분은 중국 공산당조직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려고 합니까?" 병완은 “중국 공산당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소. 그러나 난 중국 공산당을 위해 해 놓은 일이 없소. 오히려 막내손자 상순이 더 많은 일을 했소.” 인삼 중대장은 정중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두 분은 벌써 몇 해 전부터 당을 위해 많은 일을 했습니다. 우리 유격대에 통나무집을 지어 주었고 적후에서 농사를 짓구 장사를 해 유격대에 쌀을 지원했습니다. 이번 지학사를 나포할 때에도 두 분은 목숨을 내걸고 용감히 싸웠습니다. 당에서는 함흥 촌의 민심의 중심에 선 김병완 동지와 김상순 동지가 수요됩니다. 당을 따라 한평생 혁명하려는 하나의 진 붉은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상순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공산당은 우리 가난한 백성들에게 땅을 주고 집을 주었는데 우리 어찌 당을 따라 혁명하지 않겠습니까? 난 당을 따라 한평생 목숨을 걸고 싸우겠습니다.” “좋소. 김병완동지도 말합소.” 병완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당을 따라 한평생 싸우고 싶소. 허나 솔직히 말해 난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소. 조선에 가면 자네들 중국 공산당을 위해 일할 거 같지 못하오. 입당한 후 자네들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면 양심상 미안할 거 같소.” 이계삼은 반색하며 병완의 두 손을 잡았다. “근심하지 맙소. 일제를 몰아내구 국민당을 쳐 엎고 중국을 해방하는 사업을 하다가 가히 조선에 나가 조선 혁명을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됐네.” 병완은 이계삼과 허영주의 두 손을 굳게 잡고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난 조선에서 일본 놈들의 경찰국을 무너지게 만들고 피신해 쪽박을 차구 중국에 왔네. 이국 타향에서 손바닥만 한 땅도 없이 우리 일가는 진짜 중국 지주들의 눈치를 보면서 굶어 죽을 번 하면서 살아 왔네. 허나 이젠 공산당에서 집도 주구 밭도 주는데 내가 왜 공산당을 위해 일하지 않겠는가? 난 목숨을 걸고 당신들을 따라 혁명하겠네.” 이계삼과 허영주는 병완과 상순의 손을 굳게 잡았다. “우린 두 분을 믿고 당 조직에 받아들이겠습니다.” 이계삼과 허영주는 병완과 상순에게 중국 공산당 조직의 규약을 구두로 말해주고 그들의 문화수준을 고려해 구두로 신청을 받은 후 입당수록을 한 후 서류를 작성해 두었다. 뒤이어 병완과 상순은 진붉은 당기 앞에서 이계삼 서기와 허영주 조직위원과 인삼 중대장을 따라 입당선서를 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종신토록 분투하겠습니다.” 선서가 끝나자 이계삼은 자리에 앉으면서 자못 엄숙하게 말했다. “우린 오늘 아주 출중하게 능력 있고 훌륭한 두 분으로 당조직에 신선한 혈액을 보충했습니다. 이젠 함흥 촌에 당원이 넷으로 발전했기에 한개 당 지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당 지부 서기를 맡고 허영주동지가 조직위원을 맡고 김상순 동지가 선전위원을 맡기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상순은 이계삼에게 “할아버지에게 선전위원을 맡깁소.”라고 한마디 했다. 이계삼은 “이건 조직의 결정이오. 김병완 동지에게는 더욱 무거운 짐을 메게 할까 하는데 함흥 촌의 촌장을 맡아 줍소.”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김병완은 저으기 놀란 듯이 움찔하더니 바로 앉으면서 손사래를 저었다. “아니오. 난 촌장을 할 재목이 아니오.” 허영주가 옆에서 해석했다. “우리 당 지부는 한동안 지하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비밀을 누설해선 안 됩니다. 때문에 이서기와 나 그리고 김병완 촌장과 민병소대장 상순동지가 중공 당원이라는 걸 그 누구에게도 누설되지 않도록 명심하십시오. 우린 특별하게 긴급정황이 없이는 한 동안 공개장소에서 만나지 말고 밤에 태평강가에서 조용히 만납시다.” 이계삼이 계속 말했다. “이 마을 인심은 김 촌장에게 달렸습니다. 함흥 촌에서 제일 영향력이 있고 말이 섭니다. 우리 당 지부에서는 김병완 동지가 함흥 촌의 촌장을 충분히 잘 할 수 있습니다.” 이계삼은 상순의 손을 잡고 뒷말을 이었다. “상순 동지는 민병 패장을 맡고 청년들뿐만 아니라 마을의 장년들까지 조직해 인민무장 대오를 건립하고 군사훈련을 시작해야 하겠소. 장차 함흥 촌의 민병패가 아니라 함흥 촌을 중심으로 패용천촌과 조개덕, 일성촌의 조선족과 한족 청장년들로 백여 명 되는 민병련 쯤은 조직하고 련장을 맡을 준비를 하오. 우린 지금부터 중국의 새로운 정치형세 변화를 면밀히 주시하면서 당지 국민당 반동파들과 중국 지주들의 창궐한 활동에 근거해 무장투쟁을 할 준비를 하고 마을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겠소. 중국과 조선 지주들은 순순히 집과 땅을 내놓지 않을 것이고 꼭 우리에게 보복하려고 할 것입니다. 우린 강대한 무장력으로 국민당 반동파와 지주들의 무장을 막아 싸워야 하겠소.”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과단성 있게 말했다. “그럼 촌장을 해 보겠소.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르오.” “예. 곤난한 점이 있으면 얘기하십시오. 있는 힘껏 지지하겠습니다.” 이계삼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뒷말을 이었다. “요즘에는 장학산과 조덕림의 일거일동을 감시하면서 토지개혁을 철저히 합시다. 지주들을 청산해 집과 땅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 줍시다.” 병완은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면서 말했다. “장학산의 밭은 어떻게 처리하겠소?” 허영주가 말했다. “원칙은 황무지를 누가 개간했으면 누구에게 줘야 합니다. 올해 가을걷이도 눈앞에 닥쳐왔는데 다른 사람에게 주면 불만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타당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장학산의 황무지 가운데서 김 촌장이 개간한 밭은 김 촌장 집에 나눠주고 기준이네 개간한건 기준이네를 나눠 주란 말입니다. 상우지 같은 걸 상우가 개간한 거 다른 농민에게 주면 꼭 상우가 좋아하지 않을 거 아니오? 이런 방법으로 다른 지주의 밭을 나누란 말입니다. 혹시 면적이 너무 많은 건 인구비례에 따라 알맞게 평균 조절하면 됩니다. 우리 당원들은 이익 앞에서 군중들에게 양보할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군중들이 당원들을 따를 게 아닙니까?”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알았소. 그렇게 하면 합리할 거 같소. 그런데 우리 밭이 너무 많은 거 같소. 아무래도 우리가 새 지주로 되지 않겠소?” 병완이 근심하자 이계삼이 말했다. “우린 나눠준 밭을 자체로 경작하고 머슴을 쓰지 않으면 정책상 지주라고 하지 않소.” 그래도 병완은 시름을 놓지 못했다. “난 그 많은 밭을 혼자 가지지 않겠소. 주현경이네 노동력이 없어 황무지를 많이 개간하지 못해 밭이 적은데 좀 나눠 줘야 하겠소.” 허영주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김촌장이 잘 생각했습니다. 우리 공산당원들은 대공무사 해야 합니다.” 상순도 “우리두 밭을 더러 가난한 학수 네를 주겠습니다.” 하고 태도표시를 했다. 김병완은 또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조선에서 왔을 때 장학산지주의 신세를 지어서 소서구에서 발을 붙이고 근근득식 하면서 살았소. 그런데 장학산의 밭을 나눠 가지자니 인정상 의리상 어쩐지 속에 걸리는구먼. 장학산에게도 먹고 살만큼 밭을 줘야 하지 않겠소? 그는 그래도 항일유격대에 쌀이랑 대주던 지주라 다른 지주들과 다르니까. 좀 다르게 처리해야 할 거 같소.” 상순도 머리를 끄덕이었다. “내 생각엔 장학산의 밭은 다른 지주보다 다르게 처리하는 게 옳은 거 같습니다.” 이계삼이 말했다. “그럼 좋소. 장학산의 밭은 우리가 책임지고 당의 정책을 설명하고 분배하기로 하기요. 토지를 분배할 때 토지개혁의 평균분배정책을 제대로 집행해야 하오. 인구와 토지 질에 따라 평균분배를 해야 하겠습니다. 인정이거나 의리를 따져서는 절대 안 됩니다.” 상순은 이구동성으로 “알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계삼은 한마디 덧붙이었다. “지금 국민당반동파들이 민족 이간을 놓는 정황에서 우린 민족 단결에 주의를 돌려야 하오. 특히 가난한 한족농민들에게도 똑같이 밭을 나눠줘야 하오. 그러지 않으면 진짜 국민당 반동파들의 말처럼 조선의 가난한 농민들이 중국 한족지주들의 땅을 빼앗아가진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소. 이런 걸 주의하오.” 병완은 “꼭 토지개혁 정책대로 지주들의 토지와 재산을 청산해 민족을 가리지 않고 가난한 군중들에게 분배해 주겠소. 조덕림의 밭은 장발래와 제해풍, 장룡객 그리구 최경숙에게 나눠 주기요.”라고 대답하고 나서 뒤 말을 이었다. “함흥 촌의 백성들이 내가 촌장을 하는 걸 동의하는지 의견을 들어 보았으면 좋겠소.” 이계삼은 흔연히 동의했다. “좋습니다. 인삼 중대장한테 위탁해 군중대회에서 의견을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재삼 강조할 것은 아직 전국이 해방되지 않은 정황에서 우리가 당원이라는 걸 절대 루설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었다. 이튿날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왔다. 가을 하늘에는 먹장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상순이 호미를 마주 두드리며 돌아다니면서 회의통지를 했다. "토성안집 촌공소 마당에서 함흥 촌 군중대회를 여오. 어서 토성안집 마당에 모이오-" 이윽고 촌민들이 삼삼오오 토성안집 촌공소 마당에 모여들었다. 인삼 중대장이 마루에 올라가 선포했다. “마을 여러분, 지금부터 함흥 촌 인민정권 성립대회를 열겠습니다. 함흥 촌 촌장에 김병완을 시키는 게 어떻습니까? 동의하는 분들은 손을 드십시오.” 상순은 마루바닥에 올라가 인삼의 말을 한족군중들에게 한어로 즉석통역을 해 주었다. 여기저기에서 “김 촌장이 좋습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환호하며 손을 들었다. 숱한 손들이 시루 속의 콩나물대가리처럼 쳐들었다. “반대하는 분은 손을 드십시오.” 그러나 반대해 손을 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들 서로 둘러보고 “그럼 그렇겠지.” 하고 머리를 끄덕이었다. 인삼은 목청을 돋우어 선포했다. “반대하는 분이 한분도 없습니다. 그럼 김병완 어른을 함흥 촌 촌장으로 만장일치로 통과합니다. 오늘부터 함흥 촌 여러분들은 촌장 김병완 어른과 민병 패장 김상순의 영도아래 지주를 청산하고 집과 토지, 재산을 나눠 가지고 나라의 떳떳한 주인으로 살아갈 것을 축원합니다.” 김병완 촌장은 열렬한 박수소리 속에 마루 바닥에 올라가 목청껏 말했다. “우리는 광복을 맞았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이 나라 이 땅의 주인이 됐습니다. 이제부터 지주 눈치 밥을 더는 먹지 않고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잘 살게 됐습니다.” 군중들 속에서 누군가 먼저 구호를 부르자 “인민정권 만세!” 하고 구호소리가 하늘땅을 진감하며 울렸다. 병완은 계속 말했다. “우리에게 집과 땅을 청산 받은 지주들은 꼭 우리에게 보복하려고 들겝구마. 우리는 우리 두 손으로 우리 행복한 가정과 밭을 보호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함께 우리 땅을 또다시 지주들에게 빼앗기지 않을 신심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병완은 주먹을 들고 말했다. “우리 뒤에는 항일유격대가 있구 소련 홍군이 있습니다. 절대 지주무장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이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촌공소에 와서 나를 찾소.” 모두들 머리를 끄덕였다. 상순은 그때까지 통역한 후 마루 복판에 나섰다. “여러분은 무기를 두 손에 들고 우리 땅을 빼앗아 가려는 지주 무장과 싸울 신심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좋습니다. 내일부터 전 촌 청장년들은 식전마다 이 촌공소 마당에서 군사훈련을 한 시간씩 하겠습니다. 종을 두드리면 모두 이 마당에 오십시오.” “민병 패장이 부르면 오겠습니다.” “그럼 오늘 먼저 청년민병들의 군사훈련 시범을 하겠습니다.” 상순이 구령을 불렀다. “민병들은 앞으로!” 진짜 총칼을 든 30여명 민병들이 군중들 앞으로 달려 나와 평소에 상순의 지휘아래 훈련한대로 횡대로 네 줄 벌려 섰다. “차렷!” “쉬엇!” “차렷!” “군사훈연대열로 전개!” 상순의 구령에 따라 민병들은 훈연대열로 넓게 벌려 섰다. “총 들어!” 민병들은 총을 들었다. “앞으로 찔러!” 민병들은 “싸(죽엿!)”하고 고함치며 총칼로 찌르는 동작을 했다. “옆으로 찔러!” 민병들은 제법 상순의 구령에 따라 총칼로 옆으로 척 막고 찌르는 동작을 했다. 뒤이어 총칼로 아래로 찌르는 동작으로, 총박죽으로 대가리를 올리 치는 동작으로 척척 했다. 나중에 둘씩 마주 서서 빈손으로 총칼을 쥔 적과 싸우는 육박전 동작도 시범했다. 병완과 성칠은 주석대에 앉아 민병들을 지휘하는 상순을 대견스레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이계삼과 허영주는 군중들 속에 앉아 흐뭇한 표정을 지었고 기준과 사련은 막내아들을 놀랍게 바라보았다. 상우는 부모들의 옆에 서서 엄지를 내둘렀다. 공학과 을혁은 명옥의 잔등에 업힌 숙자를 건드리다가 민병들의 유도동작을 본따 했다. 지새금은 순애를 업고 시동생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토성안 마당에는 “싸! 싸!” 고함치는 소리가 드높았다.        숱한 사람들 속에 오병선도 끼여 박수를 치며 고함쳤다.       "잘한다! 잘해!"       올해 17세 밖에 안되는 오병선은 상순의 앞집 애였다. 그는 진수해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주말이 돼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는 민병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고 못내 흡모하였다.       민병들의 표연성 군사훈련이 끝나자 오병선은 상순한테로 달려나갔다. "뒷집 형님, 나도 민병에 들겠소. 받아주오." 상순은 오병선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그러나 오병선이 키도 작달막한데다 허약해보여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안돼." "왜?" 오병선은 몸까지 흔들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날 받아주오. 형님!"  그러나 상순은 계속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넌 외동아들아 아니냐? 공부나 잘해라!" 오병선은 꽤나 끈질겼다. "형님, 외동아들은 민병하지 못한단 도리 어디 있소. 황차 집엔 녀동생이 있잖소?" "넌 몸도 약해 안돼. 육박전 붙으면 괜히 목숨 잃을 수도 있어." "형님, 난 몸은 약해도 학교 악대에 들었기에 나팔을 잘 부오." "민병대엔 총칼을 잘 쓰고 힘도 센 민병이 필요해. 나팔을 불어 뭘 해?" 상순은 그쯤 하고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오병선은 상순의 손을 잡고 물러서지 않았다. "형님, 민병에도 나팔수가 필요하오. 돌격할 때 형님이 '돌격!' 하고 명령하면 내 나팔을 불면 얼마나 기세 사납겠소." "그래?" 상순은  주춤 멈춰 섰다. 그러나 인차 또 발걸음을 뗐다. "네 부모 절대 동의할 수 없어." "내 설복시킬게." "외동아들을 전쟁터에 보낼 거 같으냐?" "걱정마오. 우리 부모 꼭 동의할 거요." 상순은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자리를 떴다. 후에 있은 일이지만 오병선은 끝내 억지로부모의 동의를  받아내고 민병대오에 가입했다.       토성 대문으로 임호 소대장이 말을 타고 달려 들어왔다. 그는 대문어귀에서 말에서 내려 성칠 대장 앞으로 달려가 보고했다. “칠백중대장과 최동욱 중대장이 이끈 유격대 대부대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좋소.” 성칠 대장은 조용히 주석대에서 내려 대문 밖으로 나갔다. 이윽고 유격대 후속부대가 경기관총에 박격포까지 메고 일본 놈 포로들까지 압송해 가지고 씩씩하게 마을에 들어섰다. 성칠 대장과 칠백 중대장, 최동욱 중대장이 대문 안에 들어섰다. 그때 때마침 상순의 지휘하에 민병들의 군사훈련 시범도 끝났다. 인삼 중대장은 성칠 대장의 명령대로 “함흥 촌 인민정권 성립대회를 이것으로 끝마칩니다!”라고 선포했다. 군중들은 씩씩한 유격대들을 보자 환호했다. “항일유격대 만세!” “항일유격대를 환영한다!” 군중들은 허영주를 따라 구호를 불렀다. 성칠 대장은 아버지와 인삼 중대장과 토론한 후 먼 곳에서 온 유격대원들을 한 집에 5명씩 배치해 휴식하게 했다. 성칠 대장과 인삼 중대장, 칠백 중대장과 동욱 중대장은 토성안 촌공소에서 당지 정황을 분석했다. 동녘 하늘에 구리바라 같은 보름달이 두둥실 뜨자 이계삼과 허영주가 달빛을 밟으면서 토성안에 가만히 들어와 회의에 참가했다.                                           4. 도가집에서의 음모       함흥 촌에 유격대가 들어 온 날 밤이었다.   삼도만 토비 괴수 전소흥 소교는 조덕산 퇀장에게 토비통신병을 보내 쪽지를 건네게 했다.       조덕산이 쪽지를 펴보니 총살당한 지학사의 일본 첩을 삼도만에 빼돌려보내달라는 내용이였다. 특히 자기 처제이기에 안전하게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자식, 당국의 리익을 위해 어떻게 공산군을 대처하겠는가를 궁리하는게 아니라, 헤이, 참, 원. 일본 처제부터 걱정해?"       그러나 조덕산은 자기가 파견한 수하 소교 전소흥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수하 경위병을 시켜 밤중에 토비통신병을 데리고 패용천촌에 가서 지학사의 일본 첩년을 빼돌리게 하였다.      경위병과 토비통신병이 도적고양이처럼 지학사네 토성안 집 안에 들어서자 삽시에 수라장판이 되였다.     지학사의 처자들과 일본 첩년은 유격대가 붙잡으러 또 왔는가 해 이불을 들쓰고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었다.     그때 토비통신병이 나직이 말했다. "등불을 켜지 마오. 난 삼도만 전소교가 보낸 통신원이오. 지촌장네 일본 첩이 어느 분이오?" 그제야 일본 첩년이 이불 속에서 외쪽지 같은 머리를 살며시 내밀었다. 그녀는 이젠 중국 말을 꽤나 알아들었다. 하여 놀라 휘둥그래진 눈으로 토비와 국민당군 경위원을 번갈아 두리번거렸다.     토비통신병은 호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일본 첩년한테 건넸다. 일어로 쓴   쪽지였다.     쪽지를 펴본  일본 첩년은 통곡쳤다. 쪽지는 그녀의 언니가 쓴 것이였는데 통신원과 함께 삼도만에 들어오라고 하였다. "아네(언니)-" "울음 그치오. 빨리 떠나기오. 유격대 오면 어쩌오?" 일본 첩년은 그제야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일어나 주섬주섬 손짐을 챙겼다. "장관님, 우리도 데려가 주오." 이때 지학사의 녀편네가 무릎을 땅바닥에 꿇고 애원했다. "안되오. 전소교는 일본 처제만 데리고 오라고 했소." "우린 여기 있으면 다 죽소. 데려가주오." "안돼. 사람 많으면 들킬 수 있어." 토비통신병은 일본 첩년의 팔을 잡아 끌고 바깥으로 나갔다. 일본 첩년은 측은한 눈길로 지학사의 처자들을 돌아보았다. 그간 질투도 많이 받았지만 어쨌든 한 가마밥을 먹으면서 한 구들에서 지학사의 까래질을 하지 않았던가.       지학사의 녀편네가 막 따라 나가려고 하자 조덕산의 경위병이 팔을 잡아당기며 나직하지만 위엄있게 말했다. "멈추지 못할가! 누가 친일주구 가족까지 구한다더냐?" "아니, 그럼 왜 일본 첩년은 구해요? 우린 중국 사람인데두 구하지 않고." "잔말 말고 처박혀 있지 못하겠는가?!" 조덕산의 경위병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들기까지 했다. "명령 어기면 총살할테야!" 그제야 지학사의 처는 말뚝처럼 오똑  멈춰섰다. 경위병 놈은 너무 한 것 같았는지 되돌아섰다. "우리가 있는 한 겁나 말라. 언제든지 우리 국민당군은 우리 군민인 너희들도 구해낼 거야." 그제야 지학사 처자들은 한숨을 내쉬며 구들에 물앉아 멍해 떠나가는 일본 첩년과 토비를 쳐다보았다. "게다짝을 벗어!" 일본 첩년이 의아한 눈길로 토비를 쳐다보았다. "나무게다짝을 신고 어떻게 산길로 달아나겠어?" 그제야 일본 첩년은 게다짝을 훌 벗어버리고 중국 헝겁신을 꿰고 따라 나섰다. "그 일본 놈의 옷도 벗어! 우리 중국 옷을 입어. 일본 년인 걸 들키면 중국 사람들한테 맞아죽어." 일본 첩년이 어안이 벙벙해 서 있었다. 경위병이 손사래를 쳤다. "밤중이 돼서 괜찮다구. 어서 떠나라구. 유격대 오겠다." 그제야 토비는 일본 첩년의 손을 잡아 바깥으로 끌었다. 조덕산의 경위병이 먼저 문 밖에 나가 대문 밖 동정을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그는 토성 바깥에 나가 두루 살피다가 손벽을 딱딱 쳤다. 그러자 토비통신원은 일본 첩년을 데리고 기신기신 집문을 나서 두리번거리다가 대문 밖으로 나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토비통신병은 일본 첩년을 데리고 패용천촌 마을을 벗어나 민병들의 보초도 인적도 없는 칼산과 천지꽃 사이 골짜기로 해 소서구 쪽으로 치달아올라갔다. 위험구를 벗어나자 토비통신병은 긴장이 탁 풀렸다. 그는 일본 첩년의 손을 놓고 외쪽지처럼 걀죽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꽤나 이뻤다. 부지중 아래배로부터 찡 하고 줄이 뻗어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는 전기에 덴듯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흠-" 토비는 신음소리를 냈다. 이윽고 야욕이 꿈틀거려 일본 첩년을 와락 껴안았다. 일본 첩년은 반사적으로 토비 두 팔을 떠밀었다. "어째? 목숨 걸고 널 구해냈는데. 은공 갚아야지. 흥!" 일본 첩년은 머리를 수깃하며 종알거렸다. "형부 알면 큰일날줄 아세요. 겁도 안나요?" "지촌장 죽었잖아. 넌 임자 없는 첩년이야. 흐흐흐." 토비는 손더듬질을 멈추지 않았다. 첩년을 와락 끌어안고 볼부터 개처럼 핥아댔다. "이러지 마세요. 이 배를 보세요. 애를 어쩌자고 이래요?" 그러나 토비는 배 남산만한 첩년을 아랑곳하지 않고 부풀어오른 풍만한 젖가슴을 마구 주물렁거렸다. "하늘과 땅, 너와 내 알뿐이야. 네년이 입 꽉 다물면 다야!" "아니야, 아니! 이러지 마세요." 일본 첩년은 토비를 마구 밀어내려 했지만 어디 당할 수 있겠는가.  토비는 일본 첩년을 꽉 끌어아 눌러 힌들 땅바닥에 눕히고 눌렀다. 일본 첩년이 발버둗질치며 발악해도 토비는 어느새 일본 첩년의 화복 치마를 걷어올리고 속옷까지 와락 벗겨 훌 버렸다. 토비놈이 황소처럼 씩씩거리며 일본 첩년을 깔고 들어앉았다. "배 속 애를 죽이겠다. 배를 누르지 말고 좀 살살..." "알았다, 알았어!" "아야, 아이고, 배 아파!" " 좀 참아, 소리치지 마! 억, 억. 억, 유격대 오면 어쩌니? 억, 억, 억, 어, 씨원하다. 허허허." 일본 첩년은 밑에서 허리를 요리곰실 저리곰실 탈면서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쳤다. "아, 아, 알, 알았어요. 빨, 빨리 끝, 아, 아, 악, 빨리 끝, 끝내세요, 아, 아이유, 죽여준다. 아, 아,  앗!" ...         한편 조덕산 단장은 국자가에 잠복한 국민당군 왕영 특파원의 무전지시를 받았다.                " 즉시 반공무장대오를 조직하고 수시로 정황을 회보하라."               유격대가 함흥촌에 진주한 형편에서 조덕산은 지주무장대오를 건립하고 대응책을 토론하려고 계수동 뒤산 도가 집 부근에로 장학산과 손호표지주, 제지주 등을 긴급하게 불러 갔다. 상순이 영솔한 민병들의 눈에 띌까봐 이번엔 장소를 옮겨 조덕림의 집이 아니라 도가 집으로 옮겨 꿍꿍이를 꾸미기로 한 것이었다. 조덕산은 제지주를 시켜 가병 서넛을 데리고 바깥에서 동서남북에 보초를 서게 하고 다른 지주들을 데리고 도가 집으로 들어갔다. 조덕산은 석유등잔불을 켜놓고 희미한 등잔불빛을 빌어 지주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보오. 이전에 내 말한 대로 되지 않았는가? 지학사 촌장이 총살당했고 집과 땅 모든 재산을 다 저 조선 가난뱅이들이 공산당을 등에 업고 빼앗아 갔단 말이오. 그저 이렇게 꼬리빵즈(高丽棒子)들한테 맞아죽기를 기다리겠는가?” 조덕림이 악이 나 고래고래 소리쳤다. “꼬리빵즈 새끼들과 결사적으로 싸우자!” “옳소!” 지주들은 이구동성으로 호응했다. 조덕림은 흐뭇해하면서 말했다. “조급해 하지 마오. 지금 함흥 촌에 유격대 대부대가 주둔해 있소. 그 놈들은 조만간에 두만강을 건너 조선으로 나갈 거요. 그때를 기다려 손 쓰기요.” 지주들은 여기저기서 두덜거렸다. “그전에 죽지 않으면 다행이오. 오늘 밤에 토성 안으로 쳐들어가 김병완 촌장 놈이랑 죽여 버리고 달아나기요.” “옳소. 우린 지학사처럼 죽을 순 없소.” “우리 땅을 조선 놈새끼들에게 빼앗길 수 없소. 싸우기요!” 조덕산은 손사래를 쳤다. “높이 떠들지 마오. 우리 주위에 유격대가 있을 수도 있소.” 그는 두팔을 벌려 흔들며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뒤이어 그는 격동돼 하는 지주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지금 우리 국민당 군이 이미 동북으로 진군해 대도시를 점령하고 있소. 이미 우리 800만 대군이 전국에서 빨갱이들을 대거진공하고 있소. 이제 우리 국민당군은 장춘과 길림으로부터 할바령을 넘어 동만으로 쳐나올 것이오. 지금 국자가, 천수해, 삼도만과 묘령, 천교령, 라자구 로흑산 일대에 우리 국군 무장대오가 활동하고 있소. 그들은 일본 놈들이 패망해 달아날 때 버리고 간 무기거나 도망치는 일본 놈들의 손에서 총과 탄약을 빼앗아 대오를 무장했소. 그들은 지금 사처에서 꼬리빵즈 간부와 공산군을 습격하고 있소. 우린 국군 대부대가 오기 전에 이 곳의 지주 무장 대오를 조직해 빨갱이들과 유격전을 벌려야 하오. 그러다가 우리 국군 대부대를 영접해 빨갱이들을 일거에 소멸해야 하오. 유격대가 가고 나면 그까짓 상순이란 놈이 훈련시킨 민병 한개 패쯤은 아무 것도 아니요. 난 이번에 우리 부관을 보고 국군 정규군 한개 패나 데리고 나왔소. 모두들 싸워 이길 신심이 있소?” “조영장, 아니, 조단장이 정규군까지 데리고 왔다면야 그까짓 빨갱이들이 무서울 게 없지.” 조덕산은 도가 집 바깥에 나가더니 박수를 짝짝 쳤다. 국민당 군 장교와 두 졸개가 나무상자를 맞들고 들어왔다. 조덕산은 그 장교를 가리키며 너스레를 떨었다. “여러분께 소개하지. 내 부관 왕호요. 이번에 이 지방 공산군과 싸우려고 왔소.” 뒤이어 조덕산은 “상자를 열게.”라고 했다. 졸개가 상자를 열자 번쩍번쩍하는 권총과 반자동보총이 그득 들어있었다. 조덕산은 반자동보총을 꺼내 들고 너덜거렸다. “이건 국민당 군 상부에서 보낸 미제무기요. 미군의 무기는 지금 세계에서 제일 신식무기네. 이제부터 당신들은 사냥총 대신 미군 무기로 가병들을 무장시켜 공산당군과 싸우게 됐소.”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며 웅성거렸다. 조덕산은 손수 권총과 반자동보총을 나눠 주었다. 도가집 안의 지주들에게 나눠주고 나니 상자 안이 텅텅 비었다. “요걸로 어떻게 유격대하구 싸워 이기겠니? 전번에 보니 유격대는 대단히 육중한 대포랑 총이 있더라.” 조덕림이 두덜거렸다. 조덕산은 대수롭잖게 말했다. “형님, 근심하지 마오. 내 상부에 말해 숱한 무기를 가져왔소. 허나 장춘과 길림이 거리가 멀어서 숱한 우리 무장대오에 다 돌아 갈 거 같지 못하오. 우린 도망치는 일본 놈들을 죽이고 총과 수류탄, 작탄을 빼앗아 우리를 무장해야 하오. 내 이미 지학구를 시켜 파출소의 경찰들을 우리 쪽으로 끌어왔소. 공산군들은 위만 경찰들을 다 죽일 거요. 그래서 그들도 몽땅 우리와 함께 공산군들과 싸우기로 하였소. 유격대들이 가져 온 게 아마 경기관총일 거요. 이제 우리 국민당 군 대부대가 쳐들어올 때 보오. 우리 국민당 군은 비행기와 탱크에 별의별 대포가 다 있소. 포탄 직경 12센치미터, 길이 90 센치미터 짜리도 있소. 한방이면 토성안집 촌공소는 박산난단 말이오.” 조덕산은 가재수염을 슬슬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유격대 코밑에서 오래 말할 시간이 없소. 이렇게 하기오. 이제 여기 계속 있다간 지학사처럼 죽고 마오. 잠시 삼도만 쪽으로 피신하기오.” 그 말에 지주들은 아우성을 질렀다. “그럼 우리 집과 땅은 어쩌오?” “처자들은 어쩌오?” “빨갱이들이 다 죽이지 않겠소?” “빨갱이 놈들이 지주들을 돌아가며 청산한다면서 집을 빼앗고 재산을 털어 가난뱅이들에게 나눠 주는데. 쫄딱 망했구나.” 조덕림은 아예 풀썩 물앉았다. “아이고, 그 숱한 밭은 어찌 하고. 몇 년 지은 토성 안 팔간대청이 아까워 죽겠다.” 그러자 조덕산이 말했다. “청산을 남겨 두고 땔나무 걱정을 하랴. 너무 아까와 하지 마오. 우리가 살아 있으면 아무 때건 빨갱이들 손에서 집과 땅을 빼앗아낼 수 있소.” 그래도 지주들이 가기 싫어하자 조덕산은 궁리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기요. 행동계획을 좀 고치기요. 오늘 집을 떠나지 말고 먼저 돌아가 금음보화를 몽땅 챙기오. 내일 이때 여기서 만나서 삼도만 쪽으로 떠나기요. 거기서 전흥 소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소. 그들은 벌써 거기서 한족 지주와 가난뱅이들까지 무장시켜 가지고 삼도만과 평강촌에 목책을 짓고 토성을 쌓아놓고 빨갱이들을 막을 예산이요. 그들은 이젠 삼도만으로 통한 천혜의 지형을 이용해 공산군을 막을 준비가 다 됐소.” 장학산이 끼어들었다. "삼도만 전소교와 우리 인맥이 있네." "건?" 등잔불 밑에 어린 조덕산의 낯에 의아한 빛이 비꼈다. " 전소교네 처와 지학사 일본 첩은 자매간이라오." "오- 그래?" 장학산이 머리를 끄덕였다. "일본 첩년들인데. 전소교가 삼도만 림업분주소 일본 소장놈을 도끼로 대갈통을 찍어 죽이고 일본 처를 빼앗아 첩으로 삼았다오. 전번에 지학사가 총살당한 기별을 받고 전소교는 인편에 지학사 일본 첩년한테 삼도만에 들어오라고 했답데." 조덕산은 조덕림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형님은 아주머니와 조카들을 집에 두오. 여러분들도 처자들은 두고 가기요.” 지주들은 웅성거리었다. “아니, 빨갱이들에게 처자를 두고 가다니? 그 놈들이 어떤 놈들이라고?” “그 놈들은 공산공처(共产共妻)한다는데 처를 빨갱이들에게 빼앗기면 어쩌오?” 조덕산이 손사래를 치면서 안심시켰다. “건 공산군의 토지개혁정책을 몰라 그러는 거요. 빨갱이들은 지금 우리 중국 지주들의 땅과 재산을 가난뱅이들한테 주고 인심을 얻자는 게요. 마치 자기들이 인민의 이익을 대표한 인민군인척 하면서 가난뱅이들을 얼려 군대를 확충하고 있소. 허나 빨갱이 놈들은 지주만 죽이지 처자들은 다치지 않소. 지학사네를 보오. 지학사를 죽였지 처자들을 다치던가? 근심 말고 처자들을 두고 가기요. 처자들을 달고 다니면서 어떻게 싸운단 말이오?” 조덕림은 머리를 끄덕이었지만 손호표는 의연히 중얼거리었다. “지학사를 죽이는 걸 보니 빨갱이들은 사람을 죽이고서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던데. 어떻게 빨갱이들에게 처자를 두고 간단 말이오?” “그들을 가만히 빼 삼도만에 데려가면 되오.” 조덕산은 눈알을 부라리었다. “이건 명령이야! 모두 처자들을 두고 금은보화를 챙겨가지고 내일 밤 여기에 집합하게나. 명령을 듣지 않는 자는 군법에 따라 총살할거야!” 모두들 두덜거리면서도 겁을 집어먹고 머리를 수긴 채 도가집을 떠나갔다. 조덕산은 도가 집을 나가려는 장학산의 팔소매를 잡아당겼다. “노형, 조용히 할 말이 있소.” 조덕산은 도가집 안의 등잔불을 훅 불어 꺼버리고 장학산을 데리고 계수동 골 안 쪽으로 걸었다. “장형, 장형은 유격대를 도와 항일에 전공을 세운데다가 양아들이 있지 않는가? 빨갱이들은 인삼 중대장의 낯을 봐서라도 장형을 죽이지 않을 거요.” 장학산은 픽 쓴웃음을 지었다. “옛말이면 듣기나 좋지. 어제 소서구 내 땅을 병완이네 아들딸들에 주현경이네루 학수한테 나눠 주었네. 내라고 놔둘 거 같은가?” 조덕산은 깨고소해 하면서도 은근히 동정하는 척 했다. “거 안됐군. 그래도 집은 빼앗지 않았잖소?” “건 병완 촌장이 내가 항일유격대에 쌀이랑 대준걸 본데다가 아마 인삼의 낯을 좀 봐준 거 같소. 그는 우리에게도 심어 먹을 밭을 줘야 한다면서 자기에게 차례진 밭을 나에게 가만히 돌려주는 게 아니겠소.” 조덕산은 뒤에서 따라 오는 졸개들을 보고 주위를 경계하게 하고 장학산에게 나직이 말했다. “그래 하는 말이오. 병완은 그저 가난뱅이 토박이 촌장이라구 볼 놈이 아니구먼. 얼마나 교묘하게 미움개두 사지 않으면서 슬슬 장형의 땅을 빼앗아가고 있소? 장형은 죽을 염려도 없소.” “글쎄, 말이오. 그 놈들이 조선에서 왔을 때 거지 같은 놈들을 우리 집에 받아서 걷어 줬는데 내 발뒤축을 물어서야 되오? 그래서야 양심이 없는 게지. 인삼이 계속 여기 함흥 촌에 있으면 괜찮겠는데 말이오.” “인삼 네가 언제 조선으로 간답데?” “말하진 않았으나 일본 놈들을 추격해 조선까지 나간다더구먼.” 조덕산은 우뚝 멈춰 섰다. “장형,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장형은 삼도만으로 오지 말구 함흥 촌에 남아 있는 게 어떻소? 이제 조선 유격대 대부대가 조선으로 가버리면 우린 다시 여기로 돌아 올 거요.” 장학산도 멈춰 서더니 물었다. “그런데 내 여기 혼자 남아 뭘 하겠는가? 그 놈 꼬리빵즈 가난뱅이들이 노는 꼬락서니를 보기만 해두 눈에 불이 이는데.” 조덕산이 장학산의 귀에 대고 쑤근거리었다. “여기 있으면서 병완과 상순과의 특수관계를 이용해 그 놈들의 내부 정황을 속속들이 우리한테 알려 달란 말이오.” “음, 알았소. 내 밭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겠소.” 조덕산은 장학산의 어깨를 도닥이면서 뭐라고 귀속말로 지껄이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장학산은 주춤 멈춰 섰다. “그랬다가 그 놈들이 충국이를 해치지 않을까?” 조덕산도 멈춰 서더니 지껄여댔다. “절대 근심하지 마오. 충국인 성칠 대장의 양동생이자 상순의 양형이 아니오? 전번에두 상순이랑 함께 장백산에 가서 항일열사들의 시체를 묻어 주었다더구만.” 그래도 장학산은 근심했다. “거야 그렇지만. 지학사를 죽이는 거 보니 사정없소.  빨갱이들이 진짜 무섭소.” 조덕산은 옆구리의 권총을 툭툭 치면서 호언장담했다. “당신 털끝 하나 다치는 날엔 이 조영장이 놔두지 않겠소.” “그럼 조영장을 믿구 남아 있겠소.” 장학산은 한숨을 후 길게 내쉬고는 소서구 쪽 산비탈로 발길을 돌리었다. 조덕산은 달빛을 밟으면서 저벅저벅 멀어져 가는 장학산의 뒤모습을 바라보면서 어깨를 들썩이었다. (병완 놈아, 어디 두고 보자. 네 이기는가? 내 이기는가? 잠시는 유격대 등을 믿고 너덜거린다만 며칠 가겠느냐? 성칠이랑 인삼이랑 다 가고나면 네 따위가 막내손자를 믿구 며칠 견뎌? 흥!)  
81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0) 댓글:  조회:2033  추천:0  2017-01-12
            제19장 광복의 나날에              1. 일제 거점을 점령 하늘에는 아직도 햇솜뭉치구름 사이에 드문드문 먹장구름이 섞여 떠있고 산과 들은 신록이 짙었다. 북만 중쏘 변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수림 속 령 길을 따라 소련 홍군과 함께 성칠 대장이 거느린 동만 장백산 유격대와 용천이 거느렸던 북만 유격대는 대담하게 대낮에 동만으로 강행군 했다. 원래 성칠은 장백산 밀림 갱도에서 용천과 귀속말로 약속했다. "일본 놈들의 포위를 돌파한 후 북만 항일유격대 근거지에서 만나자." 그러나 갱도에서 포위를 돌파한후 성칠과 진달래 등이 아무리 기다려도 용천은 오지 않았다.      그때 정찰병들의 보고가 들어왔다. 한철주를 괴수로 하는 한패의 일본 패잔병놈들이 동만으로 통하는 중쏘변경 군사요충지 지하거점에 숨어 있다고 하였다. 일본 놈들의 그 거점에는 일제 놈들의 강제징병에 끌려간 조선인강제징병들도 끼여 있다는 것이였다. 불쌍한 조선인강제징병들도 구하고 친일주구 한철주 놈을 처단하려고 유격대원들은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고 윽윽 별렀다.         성칠은 즉시  유격대를 거느리고 소련 홍군과 함께 먼저 동만으로 진군하고 진달래는 갓 낳은 경주를 데리고 북만 항일유격대 근거지에 남아 용천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들이 한 산마루에 이르러 맞은 켠 산마루에 망루가 나타났다. 산비탈 중턱에 또치까와 갱도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모두들 수림 속에 엎드려 성칠 대장한테서 전투명령이 떨어지길 초조히 기다렸다.       갑자기 하늘에서 쏘련 공군 비행기가 우르릉 우르릉 날아오더니 일본 거점을 맹렬히 폭격했다.       쿵! 꽝! 꽝꽝!      폭탄이 작렬하는 맹렬한 굉음과 함께 일본 놈들의 망루가 박산 났다. 망루 위에서 보초를 서던 일본 놈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산골짜기 아래로 떨어졌다. 또치까의 흙 마대도 폭탄에 작렬해 사처로 흙과 돌멩이가 날아났다. 용감한 소련 홍군은 “우라(만세)!” 함성도 높이 산비탈을 덮으며 일본 놈들의 거점으로 돌격했다. 성칠이 권총을 휘두르자 유격대는 소련 홍군을 배합해 맞은 켠 산비탈로 돌격해 올라갔다. 또치까와 갱도 어귀에서 일본 놈들은 경기관총까지 걸어 놓고 뚜루룩 뚜루룩 사격하며 최후발악을 했다. “샤게끼(사격)!” 자지러진 총소리와 폭음 속에 일본 놈의 장교가 군도를 휘두르며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소련 홍군과 유격대는 적들의 몰사격에 산비탈에 하나, 둘 쓰러졌다. 허나 거점은 점령하지 못했다. 성칠 대장은 즉시 “엎드려!” 하고 명령했다. 유격대원들은 몽땅 산비탈에 납작 엎드리었다. 그들은 바위 뒤거나 나무 뒤에 붙어 엎드리었다. 그들의 머리우로, 귀전으로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탄알이 비발 치듯이 날아 지나갔다. 소련 홍군은 비발 치는 탄우를 무릅쓰고 계속 돌격해 숱한 희생을 냈다. 그러나 보루와의 거리는 줄이지 못했다. 성칠 대장은 엎드린 채 인삼 중대장과 칠백중대장, 최동욱 중대장을 불렀다. 그들은 바위돌 뒤에 엎드린 채 적정을 분석한 후 작전계획을 토론했다. “적들의 또치까를 없애버리지 않고선 소련 홍군과 우린 희생을 많이 내게 되오. 또치까를 없앨 묘책이 없소?” 성칠 대장이 중대장들을 둘러 보며 묻자 인삼 중대장이 말했다. “결사대를 무어 적들의 또치까를 까 부시기오.” 성칠 대장은 유격대원들을 둘러 보며 “결사대에 들 대원들은 손을 들라!” 하고 고함쳤다. 대원들은 서로 앞 다퉈 결사대에 들겠다고 손을 들며 고함쳤다. 성칠 대장은 과단성 있게 선포했다. “임호 소대장!” “옛!” “결사대 대장을 맡고 반시간 안에 적들의 또치까를 폭파하라!” “옛!” “결사대 제1폭파소조에 리억복, 철규, 룡구로 구성한다. 조장에 억복 부소대장. 제2폭파소조에 용기, 석수로 구성한다. 조장에 바위돌 분대장. 엄호소조에 기관총사수에 정형만, 철석, 상순으로 구성한다. 조장에 정형만 분대장. 나머지 전체 대원들은 여기서 적들에게 사격하면서 또치까가 폭발되기를 기다려 돌격한다.” 성칠 대장은 결사대 임호 대장과 악수를 나누었다. “임 대장, 시간은 생명이오. 지금 숱한 소련 홍군이 쓰러지고 있소. 제 시간 내에 폭파해 버리오. 우린 승리의 희소식을 기다리겠소.” “옛! 꼭 제 시간 내에 폭파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좋소.” 성칠 대장은 손으로 임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우린 임대장을 믿소." 임호는 고향에서 굴로 들어가는 범의 꼬리를 잡고 껍질이 벗겨질 지경으로 줴당기면서  뻗치기를 하였다. 어찌나 힘을 썼는지 그의 두 발이  땅바닥을 마구 파고 들어갔다. 임호는 범의 꼬리 끊어지게 굴에서 끌어내 무쇠주먹으로 때려죽였다. 성칠은 범도 맨 주먹으로 때려 죽인 임호를 믿었다. 그에게 정찰이나 육박전이나 모든 전투임무를 맡기면 시름놓을 수 있었다.       성칠은 임호와 악수하고 손을 놓은 뒤 폭파소조 전체 대원들과도 굳게 악수했다.       그는 제일 마지막에 상순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부탁했다.       “또치까 적들을 조준 사격해라.  폭파소조를 잘 엄호해라!” “옛!” 상순은 한손에 경기관총을 쥐고 군례를 올리었다. 상순은 이젠 한다하는 명기관총사수로 되였다. 명중률도 유격대에서 첫손 꼽히였다. 임호가 손을 홱 휘둘렀다. “출발!” 결사대는 폭파약과 수류탄묶음을 안고 허리를 구부정하고 출발했다. 그들은 미친듯이 불을 토하고 있는 적들의 또치까 정면 산마루를 피해 옆으로 에돌아 나무 숲속으로 해 적들의 또치까 뒤로 살금살금 접근해 갔다. 상순과 철석은 정형만의 포치대로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바위돌 뒤에 숨어 경기관총을 걸어 놓고 또치까를 향해 조준사격을 가했다. 상순의 사격에 적의 또치까 기관총수가 푹 꺼꾸러졌다. 적들의 화력은 인차 그들 셋에게 집중됐다. 그 기회를 타 폭파소조에서는 또치까 뒤에 접근해 갔다. 전체 대원들도 적들에게 맹렬히 사격하면서 결사대 폭파소조의 접근을 엄호했다. 그 기회를 타 정형만 조장의 명령대로 상순과 철석은 십여발식 쏘고는 자주 엄페물을 옮겨가며 적의 또치까에 명중탄을 맹사격했다. 폭파소조는 거의 적들의 또치까 뒤와 옆에 접근해 갔다. 성칠 대장은 망원경으로 결사대 폭파소조가 또치까에서 30메터 가까이 접근해 가는 것을 보며 손에 비지땀을 그러쥐었다. 소련 홍군은 또 진공을 개시했다. 이때 소련 홍군 장교가 권총을 뽑아 들고 성칠 대장에게 달려와 성난 눈길로 쏘아 보며 뭐라고 떽떽거리었다. 소련 홍군 통역이 한어로 통역했다. “우리 소련 홍군은 숱한 희생을 내면서 돌격하는데 왜 진공하지 않는가?” 성칠은 손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먼저 또치까를 까부시지 않고 마구 ‘우라!’ 하고 진공하면  숱한 희생자를 냅니다.” 그는 망원경을 장교에게 넘겨주며 또치까를 가리키었다. “결사대 오래잖아 또치까를 폭파할 겁니다. 그때 ‘우라!’ 하고 진공합시다.”         또치까는 네가나 되였다. 적들은 그때까지 결사대가 또치까에 접근한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격하는 소련 홍군과 기관총으로 사격을 하는 상순이네 쪽에 사격하고 있었다. 또치까에서 20여메터 근처에까지 접근한 후 임호가 손을 홱 저었다. 그러자 유격대원들이 수류탄을 일제히 또치까에 뿌렸다. 꽝! 꽝! 꽝꽝!! 수류탄 폭파 소리와 함께 또치까 주위는 삼단 같은 화염에 잠기었고 기관총 사격 소리가 멎었다. 그때 임호가 손을 홱 휘젓더니 제일 먼저 연기 속을 꿰뚫고 또치까에 덮쳐 들어갔다. 그는 수류탄 심지를 뽑고 수류탄묶음을 또치까 화구에 던지어 넣었다. 사격하던 적들은 꽥꽥 고함치며 수류탄묶음을 다시 화구 밖에 내 던지었다. 그 위기일발의 시각에 임호는 날아 나오는 수류탄묶음을 받아 쥐어 화구에 되 던져 넣었다. 꽈르릉! 요란한 폭발굉음과 함께 또치까가 하늘로 날아났다. 총소리가 잠잠해졌다. 그제야 다른 또치까의 적들이 뒤에서 접근한 유격대 결사대를 발견하고 꽥꽥 뒈지는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억복이가 슈류탄묶음 심지를 빼고 육탄이 되어 그 옆의 또치까에 덮쳐 들어가 화구에 던졌다. 꽝!! 폭파 굉음과 함께 연속 두개 또치까나 날아났다. 나머지 두개 또치까의 적들은 또치까에서 결사대를 교차로 사격하며 전진을 막았다. 그때 바위돌은 왼쪽어깨에 부상당하며 푹 꺼꾸러졌다. 상순은 경기관총으로 또치까 화구를 향해 조준해 몰 사격을 가했다. 뚜르륵 뚜르륵 적 기관총수가 대갈통이 박산 났다. 그때 바위돌은 폭탄을 안고 벌떡 일어나 또치까 화구에 덮쳐 들어가 던져 넣고 산비탈 아래로 뒹굴었다. 꽈르릉! 폭탄이 폭발하는 굉음과 함께 또치까가 하늘로 날아나고 재무더기로 돼버리었다. 사처에 적들의 더러운 시체가 나딩굴었다. 바빠 맞은 나머지 일본 놈들은 또치까를 버리고 갱도 어귀에 뿔뿔이 도망쳤다. 그 놈들은 갱도 어귀에 걸어 놓은 기관총 두정으로 최후발악을 했다. “우라!” 소련 홍군 장교가 권총을 빼들고 고함치었다. “돌격!” 성칠도 벌떡 일어나며 권총을 휘둘렀다. 총돌격 나팔소리가 산골짜기에 료량하게 울려 퍼지었다. “죽여라!” 소련 홍군과 유격대원들은 적들의 갱도를 향해 돌격해 올라갔다. 정형만과 상순, 철석은 경기관총으로 맹 사격해 갱도어귀를 봉쇄해버리었다. 적들은 독안에 든 쥐 신세로 돼 버리었다. 푱! 푱! 난데 없는 죄악의 총소리와 함께 정형만이 경기관총을 꼭 부여잡은 채 피투성이 된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뚜루룩 뚜루룩 분명 나머지 또치까에서 몇 놈이 사격하고 있었다. 성칠 대장은 황급히 달려와 정형만의 손에서 기관총을 받아 들고 고함치며 사격했다. “형만의 원수를 갚자!” 그때 용기와 석수가 덮쳐들어 수류탄을 또치까 화구에 던져 넣었다. 꽝! 꽝! 요란한 굉음과 함께 또치까 안의 적들이 뒈지는 비명소리 요란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화구에서 총소리가 울리었다. 그때 쓰러졌던 임호 소대장이 벌떡 일어나 찌그러든 또치까 뒷문을 벌칵 열고 뛰어들었다. 또치까 안에 살아남았던 두 놈은 시꺼멓게 화염에 그은 저승사자 같은 임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래도 그 놈들은 총창을 비껴들고 임호에게 달려들었다. 임호는 그 놈들이 찌르는 총창을 옆으로 슬쩍 피하더니 한손에 하나씩 틀어잡아 휘두르며 발길을 날려 한 놈의 아랫배를 차 눕혔다. 이때 철석이 뛰어들어 수류탄으로 나머지 놈의 대갈통을 까부시었다. 임호는 무쇠주먹으로 쓰러진 놈의 대갈통을 연속 강타했다. 그 놈의 철갑모고 대갈통이고 서리를 맞은 호박처럼 오그라들고 말았다. 성칠 대장과 상순, 철석도 마지막 또치까에 들어왔다. 성칠 대장은 임호의 손을 덮썩 잡으면서 “임 소대장, 폭파임무를 훌륭히 완수했네.”라고 치하했다. 그는 수류탄 파편에 찢긴 임호 소대장의 얼굴과 어깨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것을 보고 손수 붕대를 꺼내 싸매 주었다. “또치까를 청리하고 경기관총으로 갱도 어귀를 봉쇄하라!” 상순과 철석 그리고 바위돌이 경기관총 세대를 걸어 놓고 사격할 때다. 임호가 벌떡 일어나 고함쳤다.  “갱도도 폭파해 저 놈들을 생매장해버립시다!” 그러나 성칠 대장은 손사래쳤다. “안 되오. 갱도 깊어서 저 놈들은 언제까지도 최후발악할 거요. 저 놈들을 가둬 놓고 투항하라고 정치공세를 들이 대기요. 만약 투항하지 않으면 그때 갱도를 폭파해 버리기요.” 뚜르륵 뚜르륵 또치까에서 사격한 총탄이 갱도어귀에 우박처럼 날아가 픽픽 박혔다. 적들은 갱도 어귀에서도 배겨 내지 못하고 갱도 안으로 달아나 버리었다. 성칠 대장은 경위원 장꼬마를 데리고 인삼 중대장과 함께 소련 홍군 장교와 통역을 찾아갔다. “쓰빠시바(감사하오).” 소련 홍군 장교는 임호의 피가 랑자한 어깨를 두루 살펴보더니 새까만 얼굴 앞에 엄지를 내둘렀다. 임호 소대장은 쌔까맣게 그은 깜장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소련 홍군들에게 엄지를 내둘렀다. 성칠 대장은 소련 홍군 장교에게 말했다. “갱도 안에 대고 투항하라고 외치는 게 어떻습니까?” 소련 홍군 장교는 통역을 받자 어깨를 으쓱하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그러라고 명령했다. 소련 홍군 통역이 일어로 갱도에 대고 고함치었다. “일본 장병들은 들어라! 네놈들은 몽땅 포위됐다! 투항하라! 10분후에 투항하지 않으면 갱도를 폭파해 몽땅 소멸해 버리겠다. 투항하면 살려 준다! 투항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갱도 안에서 저항사격이 멎고 잠잠해졌다. 통역은 계속 고함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우리 소련과 프랑스, 영국, 중국의 승리로 이미 끝났다. 네 놈들의 일본은 전패했다. 전쟁은 이미 끝났다. 투항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이제 5분 밖에 남지 않았다.” 소련 홍군 장교는 손을 홱 젓더니 “폭파 준비!” 하고 명령했다. 소련 홍군들이 갱도 어귀에 작탄 대여섯 상자를 메어다 매설해 놓았다. 땅! 땅! 땅! 갱도 안에서 총을 내쏘았다. 뒤이어 갱도 안에서 일어로 지르는 고함소리가 울리었다. “우린 죽어도 투항하지 않는다!” 땅! 땅! 땅! 갱도 안에서 조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리었다. “우린 강제로 끌려 온 조선 강제징병 병졸들이요." 성칠이 갱도에 대고 고함쳤다. "한철주 놈도 있는가?" "도망친지 오랩니다." "우리 갱도 안에서 일본 놈들을 족치겠으니 쳐들어오세요.” 뒤이어 갱도 안에서 자지러진 총소리가 들리었다. 성칠은 즉시 명령했다. “갱도에 돌격!” 유격대 대원들은 칠백 중대장과 임호 소대장을 따라 용감하게 쳐 들어가며 수류탄을 갱도 안에 뿌리었다. 앞뒤로 협공을 받게 된 적들은 독안에 든 쥐처럼 오도 가도 못하고 한 놈, 한 놈 쓰러졌다. 소련 홍군들은 유격대 용사들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갱도를 작탄으로 폭파하면서 들어갔다. “우린 투항하겠다! 군대를 갱도 어귀에서 한 50미터 뒤로 물려라!” 갱도 안의 총소리가 멎었다. 통역을 듣자 소련 홍군 장교가 코웃음 치었다. “돼지 같은 놈들, 잔꾀를 부리지 말라! 투항하지 않으면 폭파해 버려!” 통역이 일어로 갱도 안에 그대로 소리치었다. 성칠 대장은 소련 홍군 장교에게 손사래쳤다. “잠간만! 갱도 안에는 강제로 징병돼 간 우리 조선 병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안에서 지금 일본 놈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뒤이어 그는 갱도 안에 대고 조선 말로 고함치었다. “조선 병졸들은 들으라. 난 항일 유격대 김성칠 대장이오. 갱도 안에 일본 놈들이 지금 얼마나 있소?” 그러자 갱도 안에서 고함소리가 들리었다. “한개 소대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조선 강제병은 얼마나 되오?” “20여명이 됩니다. 놈들은 지금 우리에게 포위됐습니다.” “그 놈들에게 이제라도 투항하면 살려 준다고 하라.” 안에서 일어로 주고받는 말이 들리더니 고함소리가 또 들리었다. “이 놈들이 투항하겠답니다.” “놈들이 모두 몇 명인가 확정하게 알아 볼 수 없소?” “세여 보죠.” 한참 후 대답이 나왔다. “모두 34명입니다.” “무기를 머리 우에 들고 나오라. 한 놈만 반항하면 몰살시키겠다.” “조선 강제병은 일본 놈들을 압송해 나오십시오.” “옛. 기다리십시오.” 성칠과 소련 장관의 명령에 따라 유격대와 소련 홍군들은 만일을 대비해 기관총으로 갱도 어귀에 걸어 놓고 사격 준비를 했다. 일본 놈들은 두 손으로 흰 적삼을 머리 우에 쳐들고 갱도 어귀로 나왔다. 어떤 놈들은 벌거숭이로 된 채 두 손을 쳐들고 사시나무 떨듯하며 나왔다. 조선 강제병졸들이 일본 놈들을 압송해 갱도 어귀로 나왔다. 그들은 갱도 어귀에 나와서 어깨에 멨던 총을 내리어 놓았다. 성칠 대장은 강제병졸들에게 물었다. “조선인장교는 없는가?” 그러자 강제병졸들이 권총을 찬 철색얼굴의 사나이를 가리켰다. “저게 최 소대장입니다. 장교님.” 그러자 성칠 대장은 다가가 최 소대장의 두 손을 굳게 잡았다. “고생이 많았겠소. 이번 전투에서 당신들은 마멸할 수 없는 공헌을 했소.” 옆에서 인삼 중대장이 소개했다. “이분은 우리 항일유격대 김성칠 대장이오.” 그러자 최 소대장도 자기소개를 했다. “전 최경호라고 불러요.” “최경호?” 성칠 대장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고향은 어데오?” “개성이예요.” “혹시 최진달래를 아오?” “진달래라니? 나에겐 그런 누이동생 없어요.” 성칠 대장은 눈위 휘둥그래진 경호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아, 잊었소. 진달래는 내 지어준 이름이오. 진달래 원 이름은 최 멧돼지요?” “예. 멧돼지는 내 누이동생인데요. 그 애가 지금 살아 있어요? 아버지와 그 애는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경호는 성칠 대장의 손을 잡고 다급히 물었다. 하여 성칠은 그간 있은 일을 경호에게 이야기했다. 경호는 땅을 치면서 대성통곡쳤다. “아버지! 아버지!” 성칠 대장과 인삼 중대장을 비롯한 유격대원들은 머리를 수그리었다. 성칠 대장은 경호의 손을 잡고 “진달래가 오빠를 만나면 얼마나 좋아할까?”라고 했다. 경호는 눈물을 손으로 쓱쓱 닦더니 “멧돼지는 지금 어데 있어요?” 하고 물었다. 성칠은 경호의 어깨를 다독였다. “용천 대장을 기다리느라고 북만 항일유격대 근거지에 있는데 조만간에 함흥 촌으로 올 거요. 거기에는 진달래네 오촌큰아버지 최구장도 있소.” “큰아버지도 간도에 들어왔군요. 안 되겠어요. 난 진달래를 찾아가야 하겠어요.” 그때 성칠 대장은 말리었다. “진달래는 용천 대장을 데리고 함흥 촌에 오기로 했소. 자넨 여기서 우리와 함께 할 일이 있소. 강제병졸들을 지휘해 일본 포로들을 압송해 가지고 진수해 쪽으로 나가야겠소.” 그제야 경호는 성칠 대장의 위엄스런 말에 머리를 끄덕이였다. 성칠은 경호한테 나직이 물었다. "한철주 놈이 언제 도망쳤소?" 경호는 이맛살을 찌프리며 말했다. "한철주는밀림에서 패배하자 나머지 일본 놈들을 끌고 한 일주일 전에 우리 갱도에 도망쳐 왔댔습니다. 그런데 갱도 안에 먹을게 모자라는데다가 쏘련홍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을 듣고 어제 저녁에 수하 몇을 데리고 어데론가 도망쳤습니다." "오- 똘만이란 놈은 없었소?" "똘만이? 아, 그 놈 한철주 따라 도망갔어유. 그 놈, 평소에두 한대대장을 등에 업고 우리캉 우쭐랑거렸는데요." 성칠은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쳤다. "에이참,  또 그 놈들을 놓쳤군." 경호는 강제병졸들한테로 다가갔다. 이때 소련 홍군들이 경호와 함께 일본 놈들을 세여 보았다. 딱 두 놈이 나오지 않았다. “두 놈은 어째 나오지 않았소?” 성칠 대장이 묻자 경호가 대답했다. “아끼다 중대장과 이또 부중대장은 금방 할복해 자살했어요.” 소련 홍군과 유격대원들은 갱도 안에 들어가 일일이 확인한 후 숱한 탄약과 무기를 운반해 내왔다. 중소 변경 산골짜기에서의 공격전은 승리로 끝났다. 소련 홍군과 유격대 장병들은 갱도 어귀에서 얼싸 안고 목청껏 외치었다. "우라!" "만세!" “조선 독립 만세!” “중국 해방 만세!” “조선 광복 만세!” 성칠은 손수 정형만열사의 시체를 수습해 하얀 봇 나무껍질로 쌌다. 유격대원들은 눈물과 함께 전우를 간도 황야에 묻었다. 최경호는 서로 기대며 의지하던 사촌매형 정형만의 무덤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성칠은 눈물을 머금고 간단히 추도사를  했다. “정형만 분대장은 일본 놈들의 핍박에 물막이를 나간 후 처자를 잃고 비분에 잠겨 일본 야마다 면장 놈을 죽이고 우리 유격대를 찾아 몇 천리도 멀다하지 않고 임호 소대장과 용기, 석수 동지와 함께 간도로 들어왔다. 그는 생명의 최후순간까지도 기관총소조를 거느리고 일제의 또치까와 갱도에 맹렬히 사격하며 영용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희생됐다. 조선과 중국의 광복을 당장 맞게 된 마당에 희생된 정형만 분대장의 희생이 우리는 눈물겹도록 아쉽다. 정형만 분대장이여, 당신이 지켜 싸워 온 간도에 고이 잠드시라.” 임호와 용기, 석수는 성칠 대장과 함께 제일 마지막으로 정형만열사의 묘지에 군례를 드리며 어깨를 들먹이었다. 유격대원들은 성칠 대장의 명령에 따라 포로들을 압송해 가지고 출발했다. 그들은 도망치는 일본 놈들을 추격하며 동만으로 진군했다.                                       2. 친일촌장을 처단       성칠 대장은 막내조카 상순에게서 친일주구 지학사 촌장 등 지주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들었다. 게다가 철천지 원수, 친일주구 한철주 놈이 동만쪽으로 도망친 정황이 포착되였다.       (혹시 철주 놈이 용정으로 도망쳤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성칠 대장은 인삼 중대장과 토론한 후 함께 백마기병 소대를 이끌고 소련 홍군과 유격대를 앞질러 밤도와 함흥 촌에 진주했다.       그는 밤중에 먼저 함흥 촌에 물 샐 틈 없이 포위망을 구축하고 소분대를 직접 이끌고 토성 안 집 촌공소로 접근해 토성 밖을 포위했다. 상순은 큰아버지에게 “토성 안에 동굴이 있습니다.” 하고 알려주었다. 성칠 대장은 높다란 토성을 둘러보면서 인삼에게 머리를 돌리었다. “어쩌면 좋겠는가?” 인삼 중대장이 과단성 있게 말했다. “토성 안 정황을 잘 정찰한 후 들이 치는 게 좋을 거 같소. 이 전에도 우물 안에 출구가 있어 드레박 줄을 타고 업복이랑 달아난적이 있소. 허나 저 놈들이 다른 출구를 파 놓았는지도 모르오.” 성칠 대장은 “먼저 지학사가 촌공소 안에 있는가를 잘 정찰해 보고 놀라게 하지 말고 들어가야 하겠소.”라고 했다. 그가 권총을 찬 허리에 손을 지르고 왔다 갔다 하며 궁리할 때다. 한참 후에 인삼이 나섰다. “내 소서구에 가서 양아버지를 데리고 올게.” “지학사하구 한 통속인데 말을 듣겠소?” 인삼 중대장은 성칠 대장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성칠 대장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그럼 가 보오.”라고 했다. 인삼 중대장과 억복 부소대장이 유격대원 둘을 데리고 말을 타고 소서구 어구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성칠 대장은 토성을 포위한 유격대원들에게 뒤로 좀 물러서서 비밀리에 토성 안의 동정을 살피라고 포치한 후 은녀를 불렀다. 은녀는 갓난애를 업고 성칠 대장한테로 다가왔다. 성칠 대장은 은녀 잔등의 애를 들여다보았다. 병수가 희생된 후 성칠은 은녀 모자를 보살펴야 했다. “쌔근쌔근 잘 자는구나. 넌 상순이네 집에 가 우리 막내조카댁과 함께 있어라. 내 작은조카댁은 마음씨가 참 착한 분이다.” “오빠, 고맙소.” “상순이네 집은 헐지만 이 토성 안 집과 가까워서 내가 들여다보기 쉬울 것 같다.” 은녀는 오빠의 지극한 관심에 머리를 숙이며 어깨를 들먹이었다. 상순이 은녀를 데리고 간 후 성칠 대장은 장 꼬마와 함께 먼저 창준이네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와 집 식솔들을 만났다. 서로 인사를 마치자 성칠은 마을 형편부터 물어 보았다. 병완은 맏아들을 보자 아주 반가와 손을 덥썩 잡고 말했다. “요즘 지학사랑 장학산이랑 일본 놈들이 망하게 됐다면서 쩍하면 밤에 싸다니더라.”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우리 집에는 찾아 온 적이 없습니까?” “왔더라.” 병완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그 놈들은 장학산을 앞세워 인삼이랑 함께 국민당 군에 들어오라고 하더라. 어떻게 지학사 지주와 한 무리에 들겠느냐. 저기 이계삼과 허영주는 나를 찾아 와서 겉으론 국민당을 따르는 척 하면서 국민당군의 활동을 감시하라고 하지 않겠느냐?” 성칠은 솔직하게 말해줬다. “이계삼과 허영주는 우리 공산당 지하당원입니다. 그들의 지시대로 해서 낭패 없습니다.” 병완도 아들 앞인지라 오래동안 궁리한대로 말했다.  “그렇잖고. 중국 공산당이야 말로 우리 가난한 백성들을 생각하는 당이지. 저 국민당 군은 온통 중국 지주 무장으로 된 군대더구나.” 이때 상순이 이계삼과 허영주를 데리고 들어섰다. “김 대장, 끝내 왔구먼.” 그들은 성칠과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이계삼은 그간 마을 형편을 성칠 대장에게 일일이 회보하고 나서 뒷말을 이었다. “우리는 줄곧 촌공소 지학사 촌장 놈의 일거일동을 감시해 왔습니다. 그 놈들은 늘 밤이면 조덕림네 집에 모여 대가리를 맞대고 쑤군덕거렸습니다.” “그래 오늘 밤엔 토성 안에 있소?” 성칠의 물음에 허영주가 대답했다.  “나온 적이 없습니다.” “좋소. 우린 오늘 밤에 지학사를 체포하기오.” 그때 병완이 성칠 대장을 불러 손을 잡아끌고 고방에 들어가 물었다. “얘, 조선에서도 일본 놈들이 망했겠지?” “이제 김일성 장군의 지시에 따라 우리 유격대는 소련 홍군과 함께 진수해와 용정을 해방하고 조선 반도까지 쳐 나가 일본 놈들을 모조리 몰아내야 합니다. 한철주 놈이 혹시 여기로 도망칠지도 모릅니다. 상순이랑 민병들을 시켜 잘 감시해줍소. ” 그러자 병완은 전등불 아래에서 성칠을 정색해 보면서 말했다. “그럼 우린 조선 고향으로 돌아가야겠구나. 그런데 하필 지학사랑 건드려 뭘 하니? 내 버리어 두고 조선 고향으로 가면 다지.” 성칠 대장은 아버지에게 내심하게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아버지,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나라 계선이 없이 가난한 인민들을 대표해 일본 놈들과 친일주구들과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여기 친일주구 지학사를 절대 놔둬선 안 됩니다. 우리 중국에서나 조선에서나 세상 그 어디서나 일제 놈들과 친일주구들을 몽땅 소멸해야 우리 조선과 중국의 가난한 백성들은 시름 놓고 허리를 펴고 살 수 있습니다.” 그제야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나도 오늘 지학사 놈을 체포하는데 가겠다.” “아버진, 집에서 쉽소. 그러나 병완은 기어이 창준과 상훈이, 상길을 데리고 도끼와 자귀, 식칼을 들고 따라 나섰다. 상순이 일러 기준과 상우도 삽과 괭이를 들고 나섰다. 상순은 기관총을 장꼬마한테 맡기고 허리에 권총을 찬 채  집으로 갔다. 그는 중천정에서 기름종이에 싼 권총을 내리워 허리에 차고 나왔다.       그는 할아버지한테 다가와 권총을 내밀었다. "할아버지, 이걸로 놈들을 족치세요." 그러나 병완은 빙그레 웃었다. "그깟 지학사놈을 잡는데 총까지 필요없다." 병완은 소발쪽 같은 주먹을 쳐들어 보였다. "이게 한대면 끝장나!" "예-" 상순은 힘장사 할아버지를 아는지라 권총을 도로 거두었다. 그들이 성칠 대장 쪽으로 다가와 유격대원들과 서로 인사할 때다. 인삼이가 백마에 장학산을 태워 가지고 어둠속에 토성 대문 앞에 나타났다. 상순이 “저게 장학산입니다.”라고 하며 마중 나가려고 하자 성칠 대장은 상순의 팔을 잡아당기었다. “상순아, 놔둬라. 인삼 중대장이 장학산을 데리고 먼저 들어가면 우린 일거에 토성 안으로 쳐들어가야 한다.” 이때 인삼과 억복이, 바위돌이 장학산과 함께 말에서 내리었다. 장학산이 다가와 토성 안 집 대문을 두드리었다. 토성 안에서 “이 밤중에 누구요?” 하는 소리가 들리었다. “난 장학산이다. 문을 열어라.” “무슨 급한 일이 있어 밤중에 왔소? 문을 열어 줘라.” 안에서 지학사가 하품을 하는 소리가 들리었다. 대문 안에서 신짝을 짝짝 끄는 소리가 들리어 오더니 대문이 삐꺽 하고 무서운 소리를 내며 열리었다. 인삼과 억복은 장학산을 양쪽에서 끼고 대문 안에 들어섰다. 이때 뜻밖의 일이 벌어지었다. 장학산이 자기를 붙잡은 인삼의 팔을 뿌리치고 촌공소 안으로 달아 들어갔다. “유격대 왔다. 빨리 도망쳐라!” 억복은 총을 들어 장학산에게 한방 갈기었다. 장학산은 “어이쿠!” 비명소리와 함께 종아리를 부둥켜안고 꺼꾸러졌다. 마중 나오던 지학사는 대문 안에 숱한 총칼이 번뜩이며 달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악!" 지학사는 비명소리를 지르며 집 안으로 도망치었다. 성칠 대장이 손을 홱 휘젓자 토성을 포위했던 유격대원들과 병완 등이 쏜살같이 대문 안에 뛰어 들어갔다. “서라!” 그때 기준이 도끼를 휘두르려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지학사는 베개 밑에서 권총을 꺼내 쏘았다. 땅! 총소리와 함께 기준이 도끼를 툭 떨어뜨렸다. 성칠 대장은 앞질러 나가며 권총을 쳐든 지학사에게 한방 안기었다.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지학사가 총을 툭 떨어뜨리며 손목을 그러쥐었다. “아야 마야(아이구머니)! 목숨 살려줍사!” 지학사 안해가 아우성쳤다. 그년은 무릎을 꿇고 애걸하는 첩년을 가리키며 한어로 소리쳤다. "죽이겠으면 이 첩년을 죽이오. 이 년은 일본 년..." "닥쳣!" 지학사가 결박된 채 우멍눈을 부라렸다. "그런다고 살려줄 거 같애?" 일본첩년은 배 남산만해 무릎을 꿇고 앉아 벙어리 허울을 홀랑 벗고 일어로  애걸했다. "살려주세요." 그녀는 두리번거리다가 위엄있게 권총을 들고 허리에 손을 지르고  서 있는 성칠을 보고 장교라고 생각됐는지 그의 바지가랭이에 매달리며 애걸복걸했다. " 다스께데 꾸다싸이(도와주십시오.)" 지학사가 첩년을 발길로 걷어찼다. "닥쳣! 비굴하게 빌지 말라!" "아이야!" 첩년이 둥기배를 붙안고 땔땔 구을었다. 그때 병완이 씽 덮쳐나가 무쇠주먹으로 지학사의 대가리를 내리쳤다. 지학사는 대가리를 붙들고 푹 꺼꾸러지었다. 병완이 또 주먹을 쳐들었을 때었다. “아버지, 생포합시다. 이 놈에게서 알아낼 게 많습니다.” 성칠 대장 고함소리에 병완은 주먹을 쳐 들었다가 아쉬운대로 천천히 내리웠다. 억복과 기준이 덮쳐들어 바줄로 지학사를 꽁꽁 결박해 놓았다. 지학사의 가병들은 사랑방에서 자다가 총소리에 놀라 깨났다. 그 놈들은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벽에 걸어 둔 총을 벗겨 들고 기신거리면서 하나둘 나왔다. 그때 상순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두개나 빼들고 한방에 한 놈씩 쓰러눕혔다. 그때 놈들이 우르르 뛰여나와 총을 쏘며 저항했다. 성칠과 억복, 인삼 중대장이 이쪽으로 덮쳐오며 상순과 합세해 사격했다.  "이 놈들아, 죽어 봐라!" 상순은  권총을 허리춤에 차더니 기관총을 들었다. 뚜르륵 뚜르륵 한 배짐 갈기자 숱한 놈들이 사랑방 앞에 쓰러졌다. 숱한 친일주구들은 꿈도 깨지 못하고 더러운 끝장을 보고 말았다. 유격대원들이 뛰어 들어가 살아남은 놈들의 벌거숭이 몸뚱이에 총창을 들이댔다. 이때 창고 지붕과 망루에 숨어서 보초를 서던 놈이 상순에게 총을 쏘았다. 땅! 상순은 왼팔에 부상을 입고 기관총을 떨어뜨렸다. 그가 경기관총을 재차 들어 반격하려고 했지만 왼팔이 말을 듣지 않아 총을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상순은 황급히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 땅! "앗!" 그 놈은  비명소리와 함께 보기 좋게 총을 뚝 떨어뜨리더니 지붕 우에서 거꾸로 떨어지었다. 땅! 성칠 대장이 권총을 휘두르자 망루의 놈도 장총을 떨어뜨리며 푹 꼬그러졌다.  " 토성 울안과 집안을 수색하라!" 성칠은 유격대원들게 명령하고 나서 붕대를 꺼내 막내동생과 막내조카 팔의 상처를 싸매 주었다. 인삼은 물독을 들고 지하갱도를 손전지로 비추었다. 억복과 바우돌 등 유격대원들이 안으로 총을 들고 들어갔다. 뒤이어 숱한 총과 탄약이 나왔다.       10분도 안 돼 촌공소 안의 일본 주구들을 숙청하는 전투는 끝났다. 유격대원들은 토성 안을 말끔히 정돈하고 가능하게 일본 놈들과 국민당군의 지휘 아래에 있는 당지 중국 지주무장대오가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토성 안팎에 전호를 파고 토성 밑으로 갱도를 파 토성 밖의 전호와 연결시켜 놓았다. 그들은 전호에 흙 마대를 쌓아 방어시설을 구축해 놓고 삼엄한 경계를 하기 시작했다. 인삼이 장학산한테 다가가자 장학산은 욕설부터 퍼부었다. “배은망덕한 놈 새끼, 길러 준 개 발뒤축을 문다고 이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인삼은 장학산의 종아리 상처를 붕대로 싸매주며 내심하게 말했다. “양아버지, 양해하쇼. 절대 양아버지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양아버지를 해치자는 게 아닙니다.” “흥! 내게 총을 쐈는데도? 옛말이면 듣기나 좋겠다. 금방 우리 집에서 국민당 군에 들겠다고 나를 얼려 놓고. 대문을 열자는 건데 속았지, 속았어!” 인삼은 피 묻은 장학산의 바지를 손수 닦아 주면서 말했다. “양아버지, 우리 유격대에서는 양아버지가 유격대에 쌀을 대준 공훈도 잊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양아버지는 조덕림이나 조덕산의 꾀임에 들어 국민당 군에 들어가자고 하다니. 어리석은 짓입니다. 장차 중국의 주인은 중국 공산당과 가난한 인민입니다. 공산당과 인민의 적이 된다면 그땐 이 양아들도 어쩌는 수 없습니다.” 장학산은 인삼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이 토성안집은 인민정부의 촌 사무실로 쓰겠습니다.” “안 돼. 이건 내 너한테 지어 준 집이야.” 인삼은 장학산을 업어다 말에 태우면서 말했다. “우리 공산당은 지주들의 재산을 몰수해 인민정부에 돌리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 줄 겁니다.”     장학산은 옆에 숱한 유격대원들이 있는 것을 보고서도 가슴을 탕탕 치기만 하고 아무 말도 못했다. 그들이 금방 토성 밖으로 나갔을 때었다. 장충국과 장리국이 달려 왔다. “아버지!” 장충국은 양형님을 아니꼬운 눈길로 쏘아보았다. “동생, 아버지를 모셔가라.” 충국은 인삼을 올려다보며 두덜거리었다. “아니, 아버지를 밤중에 불러내다 이게 뭐요?” 장리국도 뿌루퉁해 했다. “형님도 정말 너무 하오. 우리 집에서 형님을 섭섭하게 대한 게 뭐요?” 인삼은 대답 대신 충국과 리국의 어깨를 다독여 주면서 “전쟁을 하다 보면 총알에 빗맞는 때도 있다. 집에 돌아가면 아버지 다리를 오줌 물에 불구라.”라고 했다. 장충국은 인삼의 손에서 말고삐를 받아 쥐면서 두덜거리었다. “유격대에 숱한 약을 두구 양아버지께 오줌이나 처바르라고? 그 것도 말이냐?” 인삼은 더 말하지 않았다.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 왔다. 함흥 촌을 지지리 짓누르던 어둠이 개이기 시작했다. 찬연한 햇빛이 온 마을을 내리 비추었다. 병완은 집에 갔다가 성칠을 보고 할 말이 있어 토성 안으로 찾아 왔다. 촌공소 구들에서 성칠은 한창 이계삼과 허영주, 김인삼 등과 함께 뭔가 토론하고 있었다. 성칠은 아버지가 들어오자 “아버지, 무슨 일입니까?” 하고 물으면서 일어났다. 병완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아예 장학산이랑 조덕림이랑 몽땅 한꺼번에 후환을 없애 버리자. 그 놈들을 놔뒀다간 후환이 클 게다.” 성칠 대장은 일어나 아버지께 자리를 권하면서 내심하게 말했다. “국민당과 합작해 금방 항일 전쟁이 승리하자마자 그 자들을 처단하면 국공합작과 평화를 파괴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중국의 새로운 형세가 돌아가는 걸 보고 손을 써도 늦지 않습니다.” 이때 상순이가 숱한 민병들을 이끌고 토성 안으로 들어 왔다. 상순은 윗방에 들어오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큰아버지, 우리 함흥 촌 민병들에게 총을 줍소. 그래야 이 마을을 지키죠.” 성칠 대장은 이번 전투를 거쳐 성숙된 상순을 대견스레 바라보며 말했다. “좋다. 아무튼 우리 항일유격대가 조선으로 나가면 함흥 촌은 네가 이 마을 민병들을 영솔해 지켜야 한다.” “알았습니다. 큰아버지.” 성칠 대장은 그 자리에서 촌공소 갱도에서 들춰 낸 장총 30여 자루와 탄약을 상순과 민병들에게 발급했다. 민병들은 제법 상순의 구령에 따라 토성 안 마당에 줄을 지어 서서 장총과 탄알을 발급받고 기뻐 입이 함박만 해졌다. 그런데 흥수만은 남북골을 기우뚱하고 숙이면서 우먹눈을 부라렸다. "상순 형, 권총 하나 줘. 혼자 두개씩이나 허리에 차고, 씹할!" "뭐라고? 욕하긴?' 상순은 훙수의 어깨를 다독였다. "장총이라도 잘 쏘기만 하면 얼마든지 적을 잡을 수 있어." "아니야! 고까짓 민병 대장 뭐락꼬, 권총 혼자 두개씩이나 가져?!" "이건 내가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일제 놈들과 싸워 로획한 거야. 너도 이담 놈들과 싸워 자체로 권총 로획해라." 그제야 흥수는 두덜거리면서도 권총 달라는 말을 더 하지 못하였다. 날이 훤히 밝아 왔다. 마을 사람들은 밤중에 총소리 몇 방 울린 건 알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몰랐다. 그저 이전처럼 지학사의 가병들이 사격연습을 하는가 하였을 뿐이었다. 병완이 토성 동쪽 늙은 비술나무에 매단 종을 호미로 댕 댕 댕 두드리며 목청껏 소리치었다. “친일주구 지학사를 청산하는 대회를 엽니다! 촌공소 마당에 모이시오-” 상순은 온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소리치었다. “뭐 지학사 촌장 놈을 청산한다고?” “글쎄 말이오. 어제까지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더니 꼬락서니 보기 좋게 됐구먼.”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의논하면서 토성 안으로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성칠 대장의 포치대로 마을의 경계가 삼엄해지었다. 동산마루와 서산 천지꽃산 마루에 유격대원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고 패용천촌 지학사의 집으로 통한 길과 일성촌으로 통한 북쪽 산골짜기에도 유격대원들이 겹겹이 보초를 섰다. 그리고 마을 안에서는 민병 패장 상순이 민병 30여명을 이끌고 유동보초를 서고 있었다. 토성 안 마당에는 유격대원들이 결박당한 지학사를 사랑방에서 압송하여 몸채 마루 바닥 앞에 꿇려 앉히었다. 드디어 성칠 대장이 마루바닥에 나섰다. 인삼 중대장이 성칠 대장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분은 우리 장백산 항일 유격대 김성칠 대장입니다. 김 대장으로부터 연설하겠습니다.” 모두들 그제야 인삼이 유격대 중대장인 것을 알고 적이 놀랐다. “저 양반이 그저 장지주네 양아들인가 했더니 유격대 군관이구먼.” 사람들은 성칠 대장의 늠름한 풍채를 바라보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지학사에게 침을 뱉었다. 성칠은 허리의 권총을 바로 잡아 놓더니 앞으로 나섰다. “여러분,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항일전쟁은 승리했습니다. 반백년을 우리 중국 인민과 조선인민을 압박하고 착취하던 일본 놈들은 철저히 망해 도망치고 있습니다. 우리 중국 인민과 조선 인민은 이제부터 허리를 펴고 나라의 주인으로 떳떳하게 살게 됐습니다. 우리 두 손으로 황무지를 일궈 개척해 놓은 이 땅에서 나라의 주인으로, 땅의 주인으로 살게 됐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지학사와 같은 친일주구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처단하고 인민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중국 공산당의 영도아래 이 땅에 인민정권을 세우고 인민무장 대오를 건립해 무기를 들고 인민정권을 지켜야 합니다.” 인삼 중대장이 옆에서 구호를 불렀다. “위대한 항일유격대 만세!” 사람들은 이계삼과 허영주처럼 주먹을 쳐들고 휘두르며 인삼이가 부르는 구호대로 따라 외쳤다. “인민민주정권 만세!” “친일지주들을 타도하자!” 성칠 대장은 뒤이어 연설을 계속 했다. “우리는 함흥 촌에 가난한 사람들이 주인으로 된 인민 촌 정부를 성립하고 토지개혁을 철저히 진행함으로써 지주를 청산해 집과 재산, 밭을 몰수하어 가난한 빈고농민들에게 나눠 줄 것입니다. 우리는 중국 공산당의 영도아래 이제부터 진정 가난한 사람들이 나라와 땅의 주인이 된 새 사회 인민정권을 건립할 것입니다.” 토성 안 마당에서는 천지를 진감하는 구호소리가 울려 퍼졌다. “인민민주정권을 옹호한다!” “항일유격대 만세!” “중국 공산당 만세!” 김성칠 대장은 계속 말했다. “이제부터 친일주구 지학사를 공개 심판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지학사 놈의 죄악을 공소하십시오.”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병완이가 나섰다. 그는 앞으로 씨엉씨엉 걸어 나가더니 가래짝 같은 손으로 지학사의 귀 쌈을 쨩 갈기었다. “네 이놈, 내 참고 참았다가 오늘에야 한매 친다.” 지학사는 눈깔을 힐끔거리며 병완을 흘겨보았다. “네놈이 오늘도 감히 나를 흘겨보는 거냐? 이젠 세상이 뒤바뀌었다. 네 놈이 우쭐거리던 세상은 뒤엎어졌다. 이젠 우리가 나라와 땅의 주인이 된 새 세상이 왔다. 네놈은 우리가 조선에서 쪽박을 차고 살 길을 찾아 여기 왔다고 거지취급을 하면서 우리 집 식구들을 처처에서 못 살게 굴었다. 네 놈은 자기가 배추밭에 논물을 대 놓고서도 내 셋째아들 기준이가 물을 댔다고 덮어씌우면서 괭이로 옆구리를 찍어 갈비뼈 세대나 분질러 놓았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 집에 껍질이 없는 전선줄을 늘여 놓아 우리 막내손비 명옥이가 빨래를 널다가 붙어 죽을 번 했다. 내 지금도 네놈을 의심한다. 우리 소구유에 네놈이 독약을 풀었지?” 병완은 지학사의 코앞에 손가락질하며 따지고 들었다. 바위돌이 총칼을 지학사놈에게 들이대며 물었다. “노실히 탄백해라. 그랬는가?” 이때 조덕림과 장학산이 어슬렁어슬렁 토성 밖에서 맴돌았다. 억복이랑 그자들의 몸을 수색하고 대회장 안에 들여보냈다. “난 그런 적이 없다.” “우린 네놈이 다른 지주들과 소구유에 양재물을 풀어 넣었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러자 손호표 지주는 자기네 소를 죽였다는 말을 듣고 눈깔을 부라리며 지학사를 쏘아보았다. “네 이 놈, 지학사야, 오늘까지도 우리 집 소를 죽인 일을 로실히 탄백하지 않겠는가? 이제 생각해 보니 저 지학사 놈이 조덕림하구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소.” 손호표가 이렇게 나오자 조덕림이 바빠 났다. 이때 상순이가 팔을 걷고 나섰다. 그는 지학사를 손가락질하면서 선뜩선뜩한 말로 따지고 들었다.  “지학사, 이 놈, 네놈이 오늘 같은 날이 올 줄을 몰랐지? 일본 놈들을 등에 업구 똥개 질을 하더니 네놈이 썩어질 날이 끝내 왔구나. 네놈이 손호표 소를 양재물을 타 먹여 죽게 만들고 우리 집과 싸우게 한 게 아니고 뭐냐?”        상순은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며 지학사에게 주먹으로 삿대질하며 그 놈의 하늘에 사무치는 죄악을 공소했다. “여러분, 이 지학사 놈은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진 친일주구입니다. 백번 죽여도 원수를 하지 못할 놈입니다. 이 놈은 위만주국 친일 촌장 질을 하면서 우리 항일유격대를 잡아 치우지 못해 혈안이 돼 미쳐날뛰였고 우리 마을 사람들을 감시해 왔습니다. 이 놈은 일본 놈을 등에 업고 외사촌형인 장학산의 양아들 이 토성 안 집을 빼앗아 일제의 총공소로 만들었고 자기가 들어 주인 행세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위만주국 친일 촌장을 하면서 인삼 중대장이 손수 판 우물마저 자물쇠를 채워 놓고 마을 사람들이 길어다 먹지 못하게 하어 우리 마을 사람들이 부득불 토성 서쪽에 우물을 파지 않으면 안됐습니다. 또 우리에게서 소작료를 8할씩이나 걷어 간 친일 악패 지주입니다. 이 놈은 우리 지역 중국과 조선 인민들이 다 망하라고 갈산 꼭대기에 일본 놈들을 끌고가 쇠말뚝을 박은 놈입니다." 그러자 한족 군중들과 심지어 한족 지주들까지 지학사를 망종이라고 욕했다. 이때 군중들 속에서 지군선이 주먹을 쥐고 나와 지학사를 한대 갈겼다. "이 놈아, 우리 은실을 내놔라! 네 놈이 우리 은실을 일본놈들한테 팔아먹지 않았느냐?" 해금도 뛰쳐나오며 "은실을 어쨌느냐? 일본놈들이 우리 은실을 어데로 끌고 갔느냐? 엉?"  "말햇!" 병완이 무쇠주먹을 들이대고 을러메자 지학사는 질겁해 대가리를 툭 떨어드리더니 쥐구멍으로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그 놈들이 은실을 일본군위안소에 끌고 갔을게요." "어느 위안소로 끌고 갔어?", "진수해위안소로 끌고 갔다가 길림으로 해서 신경, 봉천으로 해 아마 관내로 들어간 거 같소." 해금은 "은실아!" 하고 고함치다가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까무러쳤다.  "어머니!" 춘실이 애를 안고 달려나와 어머니를 부축하며 대성통곡쳤다. 지군선은 군중들을 향애 목청껏 고함쳤다. "우리 집안에 사람빚을 진 이 놈을 처단해야 합니다! 우리 은실을 찾아줍소! 아하이고, 내 귀여운 딸  은실아-" 병완이 고함쳐쳤다. "일본 놈들의 앞잡이촌장 지학사 놈을 처단해 인민들의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지학사 놈을 처단하자!” 그러자 이계삼과 허영주가 군중들 속에서 연이어 구호를 불렀다. “친일지주 지학사놈을 처단하자!” “칠일 촌장 지학사 놈을 청산하자!” “지학사 놈의 땅과 재산을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 주자!” 마을 사람들은 땅과 재산을 나눠 준다는 말에 구호를 목청껏 불렀다. “저 놈을 처단하라!” 이계삼과 허영주는 앞으로 지하당조직의 사업의 수요에 의하여 토지개혁의 정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군중들을 조직하여 구호를 불렀다. 농민들은 돌멩이를 쥐어 지학사 놈에게 뿌리었다. 지학사는 돌멩이에 대가리를 맞아 피투성이로 됐다. 장학산이랑 측은한 눈길로 지학사를 바라보았다. (봐라! 내 말대로 양아들 집을 빼앗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있겠는가? 사람이 욕심을 써도 한정 있지.) 인삼중 대장은 성칠과 김병완과 뭐라고 토론하더니 다음과 같이 공포했다. “친일주구이며 악패 지주 지학사 놈을 즉시 처단하라! 집과 땅, 재산을 몽땅 빈고농민들에게 나눠 준다!” 억복이랑 바위돌이랑 유격대원들은 지학사를 끌고 태평강 가에 갔다. 지학사는 죽기 전에 사람들 속에서 장학산과 조덕림, 처첩들을 눈빗질을 해 찾아보고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이제 오래지 않아 국민당 군이 나를 위해 복수할 게다. 네놈 가난뱅이 놈들, 빨갱이 놈들이 무리죽음을 날이 오래지 않다. 원쑤를 갚아달라…” 바위돌 분대장은 지학사 놈의 주둥이에 자갈을 마구 처넣고 바로 마구 밀막아 묶어 놓았다. 그러자 지학사는 꿱꿱거릴 뿐 아무 개소리도 온전히 치지 못했다. 억복 부소대장은 권총을 꺼내 들고 우렁차게 말했다. “나는 인민을 대표해 친일주구 네놈을 처단한다!” 땅! 수십 년 동안 함흥 촌 빈고농민들을 못 살게 굴던 친일주구, 악패지주 놈은 처단됐다. 빈고농민들은 지학사의 시체에 대고 돌팔매를 했다. 숱한 돌멩이가 날아가 대갈통이 박살난 지학사 시체를 까부시며 뒤덮었다. 병완은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이고 어데서 북을 얻어왔는지 둥둥 치며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광복이 왔다! 마음껏 춤을 추자! 이젠 우리 가난한 사람들의 세상이다!” 그러자 토성 안 마당에는 광복을 맞은 중조 가난한 백성들의 춤판이 벌어졌다. 덕팔이도 넓은 잔등이 땀에 흠뻑 젖도록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덕성과 송죽도 상우도 사람들 속에서 마음껏 댄스를 추었고 아낙네들도 도라지를 너울너울 추며 돌아갔다. 가난한 한족백성들은 흥겹게 양걸춤을 추며 돌아갔다. 그들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들은 광복의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마음껏 춤을 추고 노래하자! 그날로 이계삼과 허영주는 김병완과 상순, 성수, 학수 등과 함께 나무자를 만들어가지고 지학사의 밭을 몽땅 가난한 한족과 조선족 빈고농민들에게 나눠 주었다. 유격대에서는 촌공소 자리 집을 빼앗아 인삼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나 인삼은 자기 집을 촌인민정부로 쓰라고 내놓았고 사랑을 집이 없어 고생하는 학수와 기준이네를 주었다. 그러나 상순은 자기는 집을 지어 살면 된다면서 소서구에서 타다 남은 집에서 사는 형님 상우에게 넘겨주었다. 이계삼과 허영주는 상순의 아량 있는 처사에 찬탄하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80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9) 댓글:  조회:2067  추천:0  2016-12-23
                                                 9.조우전        상순은 로투구역에서 기차를 타고 곧추 영월구에서 내려 령길을 타고 풍찬노숙하면서 장백산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수림 속 령길에서 웬 일인지 일본 놈 새끼들을 한 놈도 만나지 못하였다. 그것이 더 불안하였다.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나무숲이 우거지고 미인송들이 하늘을 찌르고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미인 송들은 마치 항일열사들의 혼이라도 살아서 재생한 듯이 거룩하고 늠름하였다.        상순은 옛날 장백산 밀림 속의 밀영 부근에 이르게 되자 위장하려고 괭이로 도라지와 더덕뿌리를 캐 주머니에 넣어 메고 걸었다. 그는 낫으로 고비랑 산나물을 캐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협곡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먼저 큰어머니가 묻힌 산소가 있는 산등성이로 찾아올라갔다.         양지 바른 언덕아래 모신 큰어머니 산소에 이르자 그는 밀짚모자를 벗어 놓고 큰절부터 올렸다.         “큰어머니, 그간 편안히 계셨습니까? 일본 놈들과 싸우다가 장렬히 희생된 큰어머니, 정말 안됐습니다.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광복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광복을 보지도 못하고 한평생 고생하다가 돌아간 큰어머니 정말 안 됐습니다.” 상순은 눈물을 왈칵 쏟았다. 이윽고 그는 산소를 여겨 보았다. 아무리 살피어 보아도 누가 손을 댄 흔적이 없이 봄에 가토를 해놓은 그대로였다. 그는 낫으로 산소를 썩썩 벌초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낫질을 하는데 나무숲 속에서 새들이 푸르릉 포르릉 날아나고 버스럭버스럭 하는 소리가 들리었다. 그는 낫질을 주춤 멈추었다가 혹시 산짐승이 아니겠는가고 짐작하면서도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낫질을 하였다. 아무리 살펴 보아도 수상한 사람도 야수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큰어머니 산소 옆에 있는 검둥이 묘지의 풀도 베어주면서 중얼거리었다. “검둥이야, 넌 오래동안 그림자처럼 우릴 따라  다니었지. 전번에는 큰어머니한테 총을 겨눈 일본 놈에게 덮쳐가 물어뜯다가 총에 맞아 잘 못 됐지. 정말 우리 가족과 같았는데. 너의 최후가 너무나도 슬프구나.” 한참 후 그는 경각성을 바싹 높이어 사위를 살피면서 최구철 사돈어른의 산소가 있는 협곡으로 슬금슬금 내려갔다. 그때 노루가 큰어머니 산소 뒤로 하여 깡충깡충 뛰어 가는 것을 발견했다. (아까 버스럭거린 게 저 놈 노루겠다.) 상순은 숲 속으로 달아나는 노루를 바라보며 한숨을 후-  내쉬고 나서 협곡으로 내려갔다. 그는 최구철 사돈어른의 산소 옆에 자그마한 구덩이를 파놓은 것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구덩이 주위를 맴돌면서 양미간을 찌푸렸다. “무덤 옆에 구덩이를 파 뭘 할까? 용천대장과 진달래사돈이 왔다 갔는가? 봄에 가토를 할 때 이렇게 구덩이를 파 흙을 쓴 적이 없었는데. 그럼 이 구덩이는? 아, 아니다. 그럼 유격대 외에 누가 여기 왔다 갔단 말인가?” 상순은 순간 머리 속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하늘땅을 진동했다. 그는 낫을 쥐고 벌초를 대충 해놓고 바삐 큰절을 올린 후 황급히 협곡을 벗어났다. 그가 사위를 둘러보면서 득호와 병수 열사의 산소가 있는 옛 밀림 속 밀영자리 부근으로 내려갔다. 산골짜기를 내려다보니 일본 놈들의 시체가 다 썩어 유골들이 어지럽게 나뒹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지러운 유골 속에 드문드문 무덤이 새로 생긴 것이 눈에 뜨이였다. (일본 놈들이 왔다 갔구나.) 상순은 신록이 짙은 밀림 속에 숨어 여기저기 한참씩 살피다가 병수와 득호 열사의 산소로 가만가만 접근하였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자 그는 두 열사의 산소로 다가가 벌초를 해 주고 절을 올렸다. 일을 마치자 그는 인차 자리를 떠 수림 속에 숨어 버리었다. 그는 나무숲 속에서 도라지뿌리와 더덕 뿌리로 대충 요기를 하고 큰어머니 산소와 최구철 사돈어른의 산소 사이에 있는 협곡 부근으로 다가가 숨어 있었다. 그는 다래넝쿨 속에 들어 누운 채 다래를 뜯어 먹으면서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큰아버지는 한가위날에 맞춰 올 것 같지 않았다. (일본 놈들이 야마모도 같은 일본 장교 놈들의 시체만 골라 몇을 파묻은 거 같다. 일본 놈들이 만약 유격대원들의 산소를 여기에 쓴 걸 보고 조선족들이 청명과 한가위 날에 산소로 오는 풍속을 알고 여기에 매복 진을 치고 있으면 어쩌는가? 성칠 큰아버지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 없겠는데. 한가위 날보다도 아무 때나 산소로 오는 게 더 안전하지. 그렇지 않으면 북만에 갔다는데 이렇게 먼 산소에 올까?) 상순은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낫을 쥔 채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그는 낫을 쥐고 일어나 소변을 보려는데 캄캄칠야 원시림 속에서 버스럭버스럭 소리가 나더니 웬 놈이 군도를 빼들고 어슬렁어슬렁 다가오지 않겠는가! “아니, 저 놈이 어떻게 돼 왔지?” 여겨 보니 한철주 놈이 아니겠는가! 상순은 바삐 괴춤을 춰 입고 다래넝쿨 속에서 뛰쳐나가면서 낫을 휘둘러 그 놈과 맞붙어 싸웠다. 그때 숱한 일본 놈들이 고함치며 총창을 번뜩이며 덮쳐왔다. 철주 놈이 시퍼런 군도를 휘둘러 내리 치었다. 상순이 낫을 들어 막았지만 낫자루가 썩 뚝 잘려나갔다. 철주 놈이 재차 군도를 휘둘러 상순을 내리 찍었다. “앗!” 상순이 버럭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 보니 다래넝쿨 속에서 꿈을 꾸었던 것이다. (아무리 꿈이라도 이상한 악몽이야.) 그는 낫을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었다. 이때 또 수림에서 밤새들이 놀라 날아나는 소리가 들리었다. (무슨 동정이 있구나.) 상순은 다래넝쿨 속에서 가만히 나와 협곡 쪽으로 가만히 전이했다. 그가 누웠던 다래넝쿨 쪽에서 무슨 말소리가 나직이 들리는 것 같았다.상순은 자기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내가 정말 혹시 너무 의심하면서 도정신해 이런 착각했는가? 큰아버지가 왔을까? 아니면 정말 내 추측처럼 꿈에 본 한철주 놈이 일본 놈들을 데리고 와서 매복 진을 치고 유격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걸까?) 아직 일본 놈들을 완전히 전승하지 못한 형편에서 상순은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상순은 어둠이 깔린 밀림 속을 더듬으면서 살금살금 산골짜기로 내려갔다. 그는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냈다. 그는 나뒹구는 일본 놈들의 유골 속으로 슬금슬금 가서 슬쩍 엎드려 주위 동정을 살폈다. 여기저기에서 굶주린 승냥이들의 울음소리가 밀림 속의 공포감을 더욱 자아냈다. 그는 괭이로 부식토 밑바닥에 구덩이를 슬슬 파 놓고 그 안에 들어가 머리만 내 놓고 엎드리어 있었다… 산속에 들어온 첫 날 밤은 공포 속에 흘러 지나갔다. 이튿날도 사흘 날도 생각 밖으로 무사히 지나갔다. 상순의 큰아버지 등은 수림 속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수림 속에서 일본 놈들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나흘 되는 날 대낮에 뜻밖에 수림 속 산골짜기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상순이가 일본 놈들의 무덤 옆의 수림 속에 숨어서 살피어 보니 괭이를 둘러멘 조선 사람 대여섯이 약재를 캐고 있었다. 진짜 원시림 속에서 야수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무서웠다. 그 사람들은 도라지랑 캐면서 협곡 쪽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며칠 전날 밤에 다래넝쿨 쪽으로 다가온 게 저 사람들일까?) 상순은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더 기다리기 힘들었던 것이다. 먹을 게 떨어진데다가 야수와 낯선 사람들로 하여 공포감이 생기는 것이었다. (큰아버지가 조선 고향에 나가게 되면 함흥촌에 찾아오겠지. 형만 사돈도 이계삼과 허영주를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큰아버지 보낸 편지도 확실하고. 에라, 집에 가서 민병이나 잘 조직해 싸울 준비나 하자.) 그는 가을 해가 지기를 애타게 기다리었다. 이때 수림 속을 헤집는 소리가 들리더니 인기척이 또 났다. 상순은 낫을 쥐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골짜기로부터 확실히 서너 사람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피뜩 보니 큰아버지 같았다. 상순은 유격대에서 쓰던 암호를 보냈다. 뻐꾹 뻐꾹 뻑뻑 꾹 저쪽에서 오던 사람들이 주춤 멈춰 서는 것이 나무 사이로 보였다. 저쪽에서도 인차 화답하였다. 뻐꾹 뻐꾹 뻑뻑 꾹 상순은 머리를 좀 들고 나직이 말하였다. “군호!” “진달래!” “누구야? 혹시 상순이 아니야?” 상순은 큰아버지의 귀에 익은 목소리를 확인하였다. “큰아버지!” 상순과 성칠은 골짜기 나무숲 속에서 감격적인 상봉을 하였다. 뒤에는 용천 대장과 은녀 그리고 경위원 조 꼬마가 뒤따랐다. 그들은 모두 유격대의 옷차림새가 아니라 산골 농사꾼으로 위장하고 왔던 것이다. 이때 수림 속에서 새들이 놀라 하늘로 풍기어 올랐다. 그들은 먼저 최구철 열사를 찾아가 보려고 산골짜기를 따라 협곡으로 들어갔다. 상순은 만나자마자 궁금한 것부터 큰아버지에게 물었다. “큰아버지, 이계삼과 허영주는 믿을만한 사람입니까?” “옳다. 전번에 보낸 편지를 못 봤니?” “예. 그래도 이 동란시기에 경솔히 믿을 수 있습니까?” 성칠은 상순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그분들을 믿어라. 그는 당 조직에서 파견한 지하당원들이야. 그 두 분의 영도아래 항일투쟁을 하고 장차 토지개혁도 해야 한다. 지주를 청산해 재산과 땅을 가난한 농민에게 나눠 주는 투쟁을 해야 한다.”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또 물었다. “일본 놈들이 망하면 우린 조선 고향에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성칠은 조 꼬마에게 보초를 잘 서라고 하고는 용천 대장을 돌아보았다. “얘가 별 거 다 묻소. 우리는 아직도 이 땅에서 중국 한족형제들과 함께 일본 놈들과 싸워야 한다. 유격대가 장차 어디로 가는가는 김일성 장군의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 이건 군사비밀이야." 용천은 희죽이 웃었다. “상순아, 그 문제로 난 네 큰아버지가 다투기까지 했어. 난 조선에 돌아가야 한다 하고 네 큰아버지는 여기 남아야 한다구 했어.” 상순은 궁금증이 풀리지 않아 자꾸 큰아버지한테로 물어 보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다. 큰아버지나 아버지네 형제들의 고집을 알고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협곡에 들어서서 최구철 열사의 산소 앞에 거의 이르렀다. 상순은 용천 대장을 돌아보면서“어째 진달래중대장은 오지 않았습니까?”하고 물었다. 용천대장은 “아들애 경주를 금방 낳아서 불편해 오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상순은 “경하 드립니다.” 하고 나서        “며칠 전에 내 산소에 와 보았는데 누가 사돈 산소 옆에 구덩이를 파 놓았습디다.”라고 하였다.         용천 대장이나 성칠은 이구동성으로 “구덩이를?” 하고 말하며 상순이가 가리킨 산소 옆의 구덩이를 보며 신경을 도사렸다. “우리를 내 놓고 또 누가 왔을까?" "저 구덩이는 어쩌자고 파 놓았을까? 가토를 하는데 쓴 것도 아니고.” 용천 대장의 말이 채끝나지도 않았는데 너털웃음에 뒤이어 고함소리가 협곡을 쩌렁쩌렁 울리었다. “이 놈들아, 그 구덩이는 네놈들을 칼탕 쳐 파묻을 무덤이다! 이 한철주가 아버지와 야마모도 대장의 원수를 갚으려고 여기서 네놈들을 기다린 지 오래다! 어디 죽어 봐라!” 땅! 땅! 꽝! 총알이 빗발치듯 사처에서 날아 왔다. 수류탄도 마구 날아와 근처에서 폭발하였다. 성칠은 구덩이에 뛰어들며 소리쳤다. “용천 대장은 은녀와 상순을 데리고 갱도로 전이하오! 나와 조 꼬마가 엄호할 테니.” 용천은 구덩이로 굴러오면서 소리쳤다. “안 돼! 죽어도 함께 죽어. 빨리 갱도로 철퇴하자이!” 푱! 푱! 총알이 협곡 암벽에 날아와 박히며 무서운 소리를 냈다. 한개 소대나 될 적들은 협곡을 포위하고 기관총으로 사격해댔다. 원래 한철주는 지난 겨울 전투에서 유격대에 한개 중대나 되는 병력을 잃고 처분받아 부대대장으로 강직됐던 것이다. 우시장 경찰국 스즈끼 국장도 야마모도와 별동대가 전멸당한 죄가 발각나 할복처단 당했던 것이다. 한 달 전에 한철주는 원래 자기 수하였던 재1대대 대대장의 명령을 받고 야마모도 등 장교들의 시체를 묻어 주려고 왔다가 협곡과 산 둔덕, 밀영 부근 통나무집 앞의 유격대 무덤에 가토를 한 걸 보고 유격대 대원들이 왔다 간 자취를 알게 됐다. 그는 한 마을에 살던 성칠의 아내 하옥이가 기관총에 맞아 죽는 것을 자기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하옥의 무덤이 이 묘지 가운데 있을 것인바 성칠이 청명이거나 한가위 날이면 조강지처 무덤을 찾아 올 것이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음흉한 그는 한 달 전부터 밀림 속 무덤 주위에 매복 진을 치고 언제까지라도 유격대원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약재를 캐는 척 하면서 산소 주위를 감시하던 조선 밀정들은 하옥의 무덤에서 벌초를 하는 상순을 발견하고 한철주에게 보고했다. 그때 상순은 노루가 달아나면서 산새들이 날아났는가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철주는 풀을 건드려 구렁이를 놀래지 않는 전제하에서 상순의 움직임을 밤낮 면밀히 감시하다가 나포하며 더 큰 고기가 그물에 뛰어 들기를 기다리라고 명령하였다. 적들은 산소 주위를 샅샅이 훑다가 다래넝쿨 속에서 자는 상순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상순이가 예민한 감각으로 어디론가 사라지면서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놈들은 상순이 골짜기 일본 놈들의 유골 속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 가지를 덮고 숨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성칠 등이 협곡에 들어서자 한철주는 때가 왔다고 사격명령을 내리었던 것이다. 성칠은 용천 대장을 돌아보면서 외쳤다. “철퇴! 이건 명령이오. 동만에서 당신은 내 명령에 복종해야 하네.” 용천은 별 수 없이 은녀와 상순을 데리고 협곡 속으로 들어가 밀영 갱도 안으로 철퇴했다. 성칠은 조 꼬마와 함께 사격하면서 적들을 유인하려고 협곡이 쩌렁쩌렁 울리게 고함치었다. “1중대는 북쪽으로 협곡을 포위하라! 2중대는 동쪽으로 포위하라! 3중대는 여기서 적들을 저격하라!” “한철주 이 놈아! 전번에 여기서 썩어지지 않은 게 원수냐? 달려들어 봐라!” 성칠은 끊임없이 고함 쳤다. 적들은 또 유격대 덧걸이 포위에 든 것인가 뒤돌아 살피다나니 사격이 뜸 해졌다. 용천 대장이 상순과 은녀를 데리고 안전하게 좁은 협곡으로 하여 갱도에 들어갔다. 성칠은 조 꼬마에게 먼저 철퇴하게 하고 적들에게 명중탄을 안기며 엄호하였다. 조 꼬마도 협곡으로 덮쳐 오는 적들에게 명중탄을 안겨 몇 놈 쓸어 눕히면서 협곡 안으로 철퇴하였다. “김 대장! 빨리 철퇴하… 억!” 성칠이 뒤돌아보니 조 꼬마가 가슴을 붙안고 쿵 쓰러졌다. “조 꼬마!” 한철주의 너털웃음소리가 또 들렸다. “성칠아, 이번엔 네놈 차례다.” 성칠은 조 꼬마한테로 기어가 부르며 흔들어 보았다. 조 꼬마의 가슴에서 피가 쿨쿨 솟구쳐 진달래나무가 듬성듬성 자란 바위 돌을 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성칠은 벌떡 일어나 암벽에 붙어 협곡 속으로 달려가면서 제일 먼저 달려드는 놈부터 사격했다. 그가 거의 갱도어귀에 달려갔을 때다. 갱도 어귀에서 용천 대장과 은녀가 적들에게 몰 사격을 가하면서 엄호하였다. 놀랍게도 상순이도 제법 모젤권총을 들고 엄호사격을 했다. 그 틈을 타서 성칠은 갱도 안에 뛰어 들어갔다.             10. 밀림의 최후매복습격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철주 놈은 갱도 어귀까지 쫓아와 수하 놈들에게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질러댔다. “갱도 안에 수류탄을 뿌려!” 꽝! 꽝! “하하하, 이 독안에 든 쥐 같은 놈들아! 어디로 달아나겠느냐? 어서 나와 칼을 받아라!” 성칠도 맞고함을 질렀다. “한철주 놈아, 기다려라! 네놈은 우리 유격대 포위 속에 빠지었다. 명년 이때는 네 놈의 제사 날이다!” “허허허. 네 놈의 허장성세를 내 모르는 거 같으냐? 무슨 3중대까지 있냐? 다섯 놈 밖에 오지 않은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갱도도 한 달 전부터 몽땅 수색해 출구를 다 알고 있다. 어디로 도망치겠느냐?” 뒤이어 갱도 밖에서 한철주가 일어로 지껄여대는 고함소리가 들리었다. “갱도 어귀마다 한개 분대씩 나뉘어 쥐새끼도 드나들지 못하게 지키라.” “하이!” 용천은 시꺼먼 갱도 안에서 성칠의 손을 더듬어 잡고 귀속 말을 했다. “이대로 있으면 독안에 든 쥐로 되고 말거네. 내 뭐라고 하던가? 열사들을 묻어 주었으면 됐지. 이번에 와서 벌초까지 할 게 뭔가? 적들은 꼭 산소를 쓴 거 발견하면 매복해 우리를 기다릴 수 있다니께.” 성칠은 용천의 귀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나도 짐작했네. 우린 두개 소조로 나뉘어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포위를 뚫고 나가기요. 내 상순을 데리고 먼저 갱도어귀를 나가면서 적들을 유인할 테니 김 대장은 은녀를 데리고 남만 쪽으로 철퇴하오. 우리 살기만 하면 북만 유격대 근거지에서 다시 만나기오.” 성칠은 용천의 귀에 대고 뭐라고 쑤군거렸다. “오, 알았네. 이번엔 우리가 엄호할 테니 성칠 대장이 무송을 거쳐 남만으로 철퇴하랑께.” 성칠은 용천 대장의 손을 잡고 나직이 말하였다. “이럴 새 없어. 우린 탄알도 거의 떨어지네. 명령에 복종하게. 어서 철퇴하라!” 갱도 안에서는 한숨소리가 길게 들렸다. 은녀는 성칠의 손을 더듬어 쥐고 “오빠, 꼭 북만에서 만나요.”라고 하였다. 성칠은 머리를 끄덕였다. “응, 그래. 우린 다 살아야 한다. 살아서 광복을 봐야 하구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우린 그 날을 위해 싸워 오지 않았더냐?” 그들은 즉시 두개 소조로 나뉘어 밤이 오기를 기다리었다. 캄캄한 갱도안에서는 낮인지 밤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성칠은 권총을 쥐고 굽이진 갱도바닥에 엎드려 갱도어귀를 지키었다. 그는 상순에게 “너 권총은 어데서 난 거냐?”라고 물었다. 상순은 더는 속일 수 없어 뒷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아주머니가 희생될 때 아주머니 권총을 주어 봇나무에 싸서 파묻어 두었댔습니다.”        욕을 먹으려니 했다.         그런데 성칠은 “잘 했다. 그랬기에 이럴 때 잘 써 먹지.”라고 하면서 뒷말을 이었다. “이후에도 전쟁터에서 적들의 손에서 무기와 탄약을 노획해 쓸 줄을 알아야 한다.” “예, 알았습니다.” “그래 마을의 민병대오 조직은 잘 됐느냐?” “예. 괜찮습니다. 전번에 민병들을 조직해 가지고 악질지주의 쌀 창고를 털어다 함흥촌 군중들에게 나눠 줬습니다. 그런데 이계삼은 그런 일을 하면 이후에는 회보하라고 합디다. 어떻게 무슨 일이나 다 회보하겠습니까?” “회보해야 한다. 그가 시키는 대로 해라. 너도 이계삼과 허영주를 잘 받들어 적후공작을 하면서 중국 공산당에 입당해야 한다.” “큰아버지도 중국 공산당원입니까?” “응, 난 원래 조선 독립군이었다. 후에 김일성 장군을 따라 조선 유격대에 들었댔지. 지금은 중국 공산당에도 가입했다. 꼭 빠른 시일 내에 입당해야 발전도 빠르다.” “예. 용천 대장도 공산당원입니까?” “아니다. 그는 조선 지주의 아들이라서 중국 공산당이나 조선 공산당이나 꺼린다. 공산당에 들어 자기 아버지를 타도하겠나 하면서 공산당에 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광복을 맞으면 고향 경주로 돌아 갈거 같다. 이런 말을 아무에게나 하지 말아야 한다.” 이때 갱도 어귀쪽이 어두워지더니 우레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좋아, 포위를 돌파하라고 하늘이 우리를 돕는구나. 소낙비 소리에 탈출해도 적들은 쉽게 발견하지 못할 거야.” 성칠은 상순의 손을 굳게 잡았다. 이때라고 생각한 성칠은 포위를 돌파하자고 용천대장에게 기별하라고 상순을 보내었다. 그런데 얼마 안 돼 은녀가 이쪽으로 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 “용천 대장은 나를 보내 포위를 돌파하자고 기별하라 했소.” “그럼 돌아가라. 이젠 포위를 돌파하자. 우리 이쪽에서 총소리 울리면 놈들이 이쪽으로 올 거야. 그때 너네 그 쪽에서 포위를 뚫고 남 만 쪽으로 가는 수림 속으로 달아나라.” 이때 은녀가 온 쪽 갱도 안에서 야무진 총소리가 들렸다. “아차, 용천 대장이 먼저 손을 썼구나. 적들을 자기 쪽에 유인해 가는구나.” “나는 어쩔까?” “돌아 갈 새 없다. 우리와 함께 포위를 뚫고 나가자.” 저쪽에서 일본 놈들의 고함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수류탄이 폭발하는 굉음이 들리었다. 성칠은 은녀와 상순을 데리고 갱도어귀로 살금살금 뛰어 갔다. 바깥을 살며시 내다보니 적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상순과 은녀를 데리고 갱도 어귀로 뛰어 나갔다. 땅! 땅! 적들은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사격하였다. “유격대 놈들이 갱도에서 나왔다.” 성칠도 사격하며 수림 속으로 뛰쳐나갔다. 푱! 푱!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은녀가 총에 종아리를 맞고 푹 꼬꾸라졌다. 적들이 무리 승냥이들처럼 그들에게 덮쳐 왔다. 성칠은 은녀를 둘쳐 업고 아름드리나무를 은폐물로 삼아 이리저리 빠지면서 철퇴하였다. 뒤에서 상순은 적들에게 명중탄을 안기며 철퇴하였다. 탄알이 다 떨어지었다. 상순은 큰아버지에게서 은녀를 받아 둘러메고 앞에서 닫고 성칠이 뒤에서 엄호하며 사격하였다. 그들이 어두운 밤을 이용하여 한참 적들과 숨바꼭질을 하며 철퇴할 때다. 땅! 땅! 땅! 난데없는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갱도어귀를 지키던 놈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웬 일일까? “1소대는 김 대장을 엄호하고 2소대는 산등성이를 점령하고 3소대는 적들을 포위 섬멸하라!” 귀에 익은 인삼 중대장의 목소리였다. 적들은 번쩍이는 섬광을 보고 대뜸 수십 명의 유격대가 온 것을 알고 철퇴하기 시작하였다. 한철주는 또 절망에 빠졌다. “또 성칠 놈의 유인 술에 걸렸구나. 한달동안 까딱 하지 않던 유격대가 하늘에서 날아 내렸나? 땅속에서 솟아났나? 아이고, 하늘이 날 죽이는구나!” 그는 소낙비 속에서 군도를 하늘에 쳐들고 휘두르며 비명소리를 질렀다. “철퇴!”  그는 군도를 맥없이 내리 드리더니 뒤로 슬금슬금 뒷걸음쳤다. "한철주 놈아, 어디로 도망쳐?!” 성칠은  유격대를 지휘해 적들을 포위하면서 소멸하였다. 적들은 숱한 주검을 남기고 몇 놈이 살아남지 못하고 협곡으로 해 도망치었다. 어두운지라 성칠은 적들을 그만 쫓고 뻐꾹새 울음소리를 냈다. 여기저기에서 뻐꾹새 울음소리 들렸다. 어둠 속에서 성칠과 인삼은 감격의 상봉을 하였다. “김 대장, 다친데 없습니까? 늦어 와서 죄를 지었습니다. 처벌하십시오.” “괜찮네. 이번 포위소멸전도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네.” “어째 김용천 대장이 보이지 않습니까?” “포위를 돌파하구 남만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헤이,  아마 잘 못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네. 아까 총소리에 뒤이어 수류탄 폭발 소리가 들렸네. 일본 놈들이 꽥꽥 거리더군. 찾아 보기요.” 그들은 인차 용천 대장이 포위를 돌파한 갱도어귀에 가 보았다. 그러나 갱도어귀가 다 폭파되고 용천 대장은 시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아무리 손으로 파보아도 일본 놈의 시체만 나오고 용천 대장의 머리카락 한 오리마저 찾을 수 없었다. “십중팔구는 마지막 수류탄을 안고 적들과 함께 희생된 듯하오. 만약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으면 남만으로 에돌아 북만 유격대 근거지로 올 거요.” 그들은 최구철의 무덤 옆에 무덤을 하나 더 팠다. 성칠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조꼬마 시체를 거두어 손수 협곡의 맑은 물에 염습한 후 봇나무에 싸서 통나무를 가로 세로 쌓아 만든 “관”에 안아다 놓았다. 전우들은 피눈물과 함께 조 꼬마를 잘 묻어 주고 묵도를 드렸다. 추모의 총소리가 장백의 협곡과 밀림에서 오래도록 메아리치었다. 원래 성칠은 북만과 장백산 밀림이 거리가 너무 멀어 용천과 은녀만 데리고 산소에 가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용천 대장이 자꾸 적들의 매복습격에 걸릴까 봐 근심하는 바람에 인삼 중대장과 미리 토론하고 임기응변하여 적들을 이 협곡에 유인해 재차 매복습격 전을 벌리기로 했던 것이다. 인삼 중대장은 너무 늦을 것 같아 영월구를 지나자 마을에 들어서 백마들을 타고 길을 떠났다. 원래 백두산 밀영에서 기르던 백마들은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전투에 쓸 수 없는데다가 말먹이 풀이 없어 장백산 아래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줘 사양하였던 것이다. 유격대는 백마를 타고 재빨리 성칠 등을 쫓아 와 성칠 등을 구하고 매복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사후에 성칠은 너무나도 모험적인 유인전술을 썼다고 김장군으로부터 표창과 함께 비평도 받았다. 동녘 하늘이 희붐히 밝아 왔다. 아아한 장백산 원시림은 다시 아름다운 삼라만상을 천천히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유격대원들은 아침 해살을 맞으면서 전장을 돌아다니면서 적들의 총과 탄알을 거두어 둘러멨다. 칠백은 적들의 손에서 경기관총 한 자루를 주어 둘러멨다. 바위돌과 억복은 권총을 한 자루씩 주어 허리춤에 찼다. 상순은 일본 장교놈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끌러내고 권총 탄알띠도 풀어 허리춤에 찼다. "흐흐, 이젠 나한텐 권총 세자루나 있어." 성칠은 조카가 좋아하는 걸 보고 권총을 유격대에 바치라는 말을 하지 않고 빙그레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상순이 민병들을 조직해 지주무장과 싸우려면 권총 몇자루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임호 분대장은 협곡 갱도 어귀에서 박산난 안경알을 주었다. “이건 분명 한철주 놈의 안경이겠는데.” 성칠도 머리를 끄덕이었다. 임호는 원래 가마골 구장이었는데 후에 일본 놈들의 갖은 유린에 견디기 어려워 성칠의 유격대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들이 수림 속을 샅샅이 뒤지었지만 한철주의 시체는 끝내 찾아 내지 못하였다. 그들은 적들의 역습을 당할까봐 장백산 밀림 속에서 인차 먼저 무송 쪽으로 철거하였다. 그들은 연 며칠 수림 속 령 길로 강행군해 무송현을 지나 돈화 벌판을 거치어 경박호에 무난히 이르렀다. 그때 푸르른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 왔다. 모두들 일본 놈들의 비행긴가 하여 수림 속에 납작 엎드리었다. 그런데 그 비행기는 하늘에서 선회할 뿐 그들에게 폭격하지 않는 것이었다. 비행기는 다시 그들의 우로 선회하면서 날아 지나갔다. 성칠이 뒤에 또 날아오는 비행기를 찬찬히 여겨 보니 일본 놈들의 고약딱지 기발표식이 아니었다. 오각별이 박혀 있지 않겠는가! 그들은 북만 유격대 근거지에 도착한 후 그 비행기는 쏘련 홍군의 비행기라는 것을 알게 됐다. 소련 홍군이 동북으로 쳐들어와 일제 침략자들을 소멸하며 추격해 왔다는 것이었다. 성칠 대장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유격대원들에게 새로운 지시를 전달하였다. “오래지 않아 조선인민과 형제적인 중국 인민은 광복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우리 항일유격대는 김장군의 명령에 따라 소련 홍군을 협조해 동만을 경과해 조선으로 도망치는 일제 침략자들을 추격하여 모조리 소멸하여야 합니다. 그 놈들을 중국의 광활한 대지와 사랑스러운 조선 반도에서 깡그리 몰아내고 항일전쟁의 철저한 승리를 거둬야 합니다 …” 여명의 전야는 아직도 칠칠흑야처럼 어둡기도 하였다. 반백년을 이 땅과 하늘을 뒤덮었던 먹장구름이 가시어지고 푸르른 가을 하늘에 찬란한 태양이 서서히 동녘 하늘에서 솟아올랐다. 성칠의 출발명령에 따라 항일유격대는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새로운 전투에 뛰어 들었다. 그들은 찬란한 아침 햇살을 맞으며 령길을 타고 씩씩하게 동만 쪽으로 진군해 일제 놈들을 추격하였다…  
79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8) 댓글:  조회:1808  추천:0  2016-12-13
               7. 급변하는 세상 어느 날 기준과 창준은 웃새집 사랑 앞에서 전염병이 돌게 된 일을 두고 두런두런 말을 주고받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사랑간 앞에 땔나무무지와 짚무지를 꽉 쌓아 놓은 게 문젠 거 같다. 해볕이 잘 들지 않아 습해서 전염병이 돈 거 같아. 원래 우사간 자리지. 땅굴 같은 사랑간에 썩은 냄새 심해 사람이 붙어살긴 틀렸다.” 창준의 말에 기준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런 거 같소. 올해 또 토성 안 집 동쪽으루 해서 집을 하나 지어야겠소.”  기실 전염병은 일제 731부대 놈들이 만주에 생물화학전염병균이 묻은 쥐랑 널어놓은 때문이였다. 그러나 기준 형제는 당시 사실 진상을 알 길이 없었다.   창준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춘실의 집과 앞뒤 집에서 살기 신물이 나지 않니?” 그러나 기준은 고집을 썼다. “한집 건너 사는데 괜찮소. 춘실도 전주에서 이사해 온 흥수한테 시집간다오.” “헌 신짝도 짝이 있다고 애까지 가만히 낳은 춘실을 데려 가는 사람도 있구먼. 한 마을에서 빤히 알면서도 말이야. 허허허" 기준은 목소리를 낮췄다. “흥수는 조선 전주에서 갓 이사 와서 잘 알지 못할 수도 있소. 상순이 중매를 서주었답데. 가만히 보면 춘실은 새금보다는 훨씬 사리에 밝은 앤 거 같소. 상순의 애까지 낳을 줄 알았더라면 … 에이, 이제 이런 말 해 뭘 하겠소?” 집 안에서 그들이 주고 받는 말을 들은 상순과 명옥은 각기 다른 생각을 하였다. 상순은 뒤늦게 후회하는 아버지가 한스러웠고 명옥은 춘실을 며느리로 삼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에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명옥은 스스로 마음을 눅잦히었다. 몇 달 후 고양이 쥐를 생각한다고 할가. 지학사는 제일 먼저 상순이네 집에 전기 줄을 늘여주자고 전공을 데리고 왔다. 한참 후, 지학사는 개화장을 짚고 스위치를 잘깍잘깍 켰다 껐다 하면서 잔뜩 늘여놓았다. “이걸 보오. 오늘부터 환한 전등불 밑에서 살게 됐구먼. 내 말만 잘 듣소. 복이 넝쿨 채로 떨어질 게요.” 상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낮게 늘인 전기 줄을 두루 살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기네 집을 생각해 전기를 놓을 지학사가 아니라고 생각됐다. 하여 미심찍어 여기저기 살피어 보지 않으면 안됐다. 한때 지학사는 전기를 놔 주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의 인심을 얻었다. 사람들은 코 구멍이 새까맣게 기름등잔불을 켜지 않고 환한 전등불을 볼 수 있어 좋다고들 하였다. 그 기회를 타서 지학사는 개화장을 휘두르며 돌아다니면서 선동하였다. “보오. 대일본제국은 조선에서 온 당신들을 2등 공민들로 대우해 주고 이 땅에서 보호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고 있소. 난  3등공민이란 말이오. 내 촌장을 하면서 집집이 돌아다니면서 협화회에 들게 했기에 당신들은 다신 토벌 받지 않고 편안히 살게 되지 않았소?” 상순은 지학사가 일본 놈이 놓아 준 전기를 이용해 백성들을 농락하는 것이 눈꼴 사나왔다. 어느 하루, 명옥은 재물에 삼은 빨래를 한 함지나 이고 강변에 가서 씻어 이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는 한 함지나 되는 빨래를 어디에 널까 두리번거리다가 울바자에 널었다. 나머지 옷을 물을 툭툭 털어 전기 줄에 훌 걸었다. “앗!” 순간 명옥은 전기 줄에 붙어 온 몸이 마구 오그라들며 목을 조이는 것 같아 짹 소리도 치지 못하였다. 때마침 상순이 집에서 나오다가 문 옆에 있던 괭이를 쥐고 달려가 전기 줄을 탁 내리쳤다. 전기 줄이 툭 끊어지면서 명옥이 전기 줄을 쥔 채 땅바닥에 퉁 떨어지었다. 땅바닥에서도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의연히 풀떡풀떡 뛰는 것이었다. 이때 숱한 사람들이 달리어 와서 구경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당황해 난 상순은 괭이로 전기 줄을 탁, 탁 찍어 끊어 버리고 명옥을 전기 줄에서 떼 냈다. 명옥은 그때까지도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숨을 할딱거리었다. 상순은 명옥을 업어 집안에 들어가 구들에 눕히고 손을 주물러 주었다. 한참 후에야 명옥은 눈을 스르르 뜨고 상순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여보, 살았구만. 우리 다신 저 놈의 전기를 쓰지 말기요.” 명옥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다시 눈을 스르르 감는 것이었다. 기준은 며느리를 들여다보다가 상순을 보고 소리쳤다. “그 놈 전기 줄을 다 끊어 버리어라. 이제껏 전기라는 걸 모르고서도 살았어.” 상순이 나가자 기준이도 도끼를 들고 나가  전기 줄을 마구 찍어 끊어 버렸다. 그는 끊어난 전기 줄을 들고 보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고함쳤다. “이 걸 보오. 이렇게 껍질도 없는 전기 줄을 늘여 놓으니 전기에 붙지 않을 수 있소?” 모두들 껍질이 없는 전기 줄을 보면서 공포에 떨었다. “우리두 전기 줄을 다 끊어 버려야겠소.” 지군선의 말에 영범도 말하였다. “그 놈 전기를 쓰다가 사람을 잡아먹겠소.” 마을 사람들은 왁작 떠들더니 돌아가 전기 줄을 마구 끊어 버렸다. 지학사는 전기로 마을 인심을 얻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욕을 더 먹고 미움 깨를 사게 되었다. 지학사는 기준을 찾아 와서 명옥을 문안하는 척 하였다. “전기를 쓸 줄 모르면 사고가 난다오.” 기준은 지학사를 흘겨 보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대체 무슨 심보요? 자넨 토성 안 집으로 들어가는 전기 줄은 몽땅 고무껍질이 있는 전기 줄을 늘였더구먼. 그런데 왜 우리 집과 몇 집에는 껍질이 없는 전기 줄을 늘였는가? 전기에 붙어 죽으라는 게 아니고 뭔가?” 지학사는 능청을 떨었다. “환한데서 살라고 도와 줬는데 욕 하냐? 이거 정말 억울해 못 살겠다.” 기준은 주먹으로 구들을 퉁 치며 고함치었다. “지 촌장, 가랑잎으로 제 눈을 가리우구 야옹 하지 말게! 내 용정에 가 정미소랑 두루 돌아보아 아오. 저렇게 껍질이 없는 전기 줄을 늘인 거 보지도 못했네. 자네 정말 껍질이 없으면 위험하다는 걸 몰랐는가?” "어, 어, 어," 이때 바깥에서 요염하게 치장한 일본 첩이 들어와 손마선질을 했다. 소문에는 지학사 첩이 벙어리라고 했다. 그러나 기실 지학사가 첩이 일본 녀성이라는 걸 속이려고 벙어리 시늉을 하게 했던 것이다. 때마침 첩이 와서 지학사는 떠들겠으면 떠들라고 개화장을 짚고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횡 하니 집에서 나가 버리었다. 해질 녘에야 명옥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기준은 눈을 뜨더니 겨우 일어나 앉는 며느리를 보고 한숨을 후 내쉬었다. (얼마나 효성이 지극한 막내며느린데. 하마터면 잃을 번 했구나.) 기준은 막내며느리를 막내아들에게 맡기어 놓고 바깥으로 나갔다. 전날에 그는 아버지 말씀에 따라 창준형님이랑 김범호 매부랑 전기정미소를 짓자고 토론했는데 다시 토론하러 갔다. 병완은 창준과 범호를 데리고 토성 서쪽에서 한창 석마간 터를 돌아보고 있었다. 병완은 기준까지 다 온 것을 보자 오래동안 해온 속궁리를 말했다. “정미소를 토성 서쪽 여기에 짓는 게 좋겠다." 기준은 널찍한 공터를 둘러보면서 뒷근심을 말했다. “정미소는 좀 있다가 짓는게 어떻습둥? 쥐새끼 같은 지 촌장이 또 무슨 심술을 부릴지 모르겠습구마." "어째?" 병완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기준은 금방 있은 일을 쭉 이야기 했다. "하마트면 막내며느리를 죽일번 했습구마.” 범호는 개의치 않았다. “쉬파리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하겠소? 정미소 옆에 보초를 설 방두 하나 붙여 짓기오. 우리 세 집에서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기요.” 병완은 찬동했다. “옳다. 보초를 서면 그 놈인들 어쩌겠니? 그리고 정미소 전기 줄은 좀 실하고 껍질이 있는 걸로 늘이자. 그럼 합선되거나 불이 나거나 사람이 붙는 일은 생기지 않겠지 뭐. 용정에 가서 정미소를 보지 않았느냐? 어떻게 지으면 되겠는지.” 이렇게 되여 그들 삼부자는 함흥촌 복판에 전기로 매돌을 돌리는 정미소를 짓기로 의견을 모았다. 몇 달 후 정미소를 짓자 지 촌장의 관할하에 있는 전기를 써야 되었다. 기준은 지학사에게 허리를 굽히기 싫어 석마간을 짓는 일을 좀 미루자고 했다. 그러나 병완은 잠시 낮은 문턱에 머리를 숙이고 정미소를 지으면 마을 사람들이 절구 공이를 버리고 전기석마에 쌀을 찧어 먹으면 편리할 것이며 마을 사람들의 인심을 지학사에게서 이쪽으로 끌어 올 수 있다고 극구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기준과 창준은 자기 고집을 죽이고 정미소를 짓는데 발 벗고 나섰던 것이다. 상순은 며칠째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장학산과 조덕림 같은 중국 지주들이 한통속이 되어 국민당 군을 도와 나서는데 이상하고 궁금하였다. (대체 국민당은 무슨 일을 하는 당이기에 지주들이 몽땅 그쪽 편일까? 성칠 큰아버지한테 물어보면 좋겠는데 북만으로 간 다음에는 어데 갔는지 찾아 갈 수두 없지 않은가?) 어느 하루 동산에 눈썹달이 떠서 바르르 떨고 있었다. 상순은 장학산과 조덕림이네 집에 가만히 가서 뭔가 알아내고 싶었다. (옳다, 이 놈들이 뭘 하는지 염탐해 봐야지. 보아하니 장학산은 조덕림이네 동생 조덕산 단장 수하에 노는 거 같아. 조덕림네 집에 가 며칠 엿듣노라면 뭔가 알아 낼 수 있겠지.) 그가 어둠 속을 헤집고 아름드리 버드나무와 비술나무가 꽉 들어선 나무숲을 지나 조개덕으로 갈 때다. 느닷없이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었다. 깜짝 놀란 상순은 아름드리나무 뒤에 숨었다. 어둠 속에서 총을 멘 숱한 사람들이 말을 타고 조덕림의 토성 안 집 쪽으로 달리어 가는 것이 어슴푸레 보였다. 그가 토성 밖으로 에돌아 대문 가까이에 살금살금 다가가 보니 웬 놈들이 총을 쥐고 왔다 갔다 하면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토성 대문 안에 들어간다는 건 말두 안 돼.) 그는 토성을 쳐다보다가 토성 우에까지 뻗친 비술나무를 보고 꾀가 생겼다. 그는 토성 안 집안이 들여다 보일만한 아름드리비술나무에 원숭이처럼 바라 올라갔다. 그는 나무 가지에 다리를 걸고 앉아 전등불이 환한 토성 안을 들여다 보았다. 토성 안에는 놀라운 정경이 펼쳐지었다. 숱한 총을 멘 무장괴한들이 문마다 삼엄하게 지키고 있고 몇몇 머슴들이 한창 말을 풀어 마구간에 들이 매고 말먹이를 주고 있었다. 대낮같이 환하게 전등불을 켠 집안을 들여다보니 활짝 열어 재낀 창문 옆에 차린 술상 상좌에 낯모를 괴한이 앉아 있고 조덕림과 장학산 외에 놀랍게도 지학사도 앉아 술을 마시면서 떠들썩하고 있었다. 상좌에 앉은 나비 코수염쟁이가 한창 연설을 하고 있었다. “일본 놈들은 오래지 않아 망하게 됐소. 일본 놈들은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 패배를 당했는데 소련도 독일을 전승한 후 총부리를 동쪽에 돌려대고 이미 일본과 전쟁선언을 했소. 관내에서도 국민당과 공산당이 합작해 일본 놈들을 호되게 족쳐 오래지 않아 항일전쟁은 승리하게 됐소. 우리 중국 사람들을 짓밟던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우리 중국 사람들은 당장 나라의 주인으로 될 것이오.” 장학산은 술잔을 들고 환호하였다. “항전승리를 미리 축하해 한잔 마시기오.” 조덕림과 지학사도 술잔을 굽 냈다. (동생? 그럼 저 자는 신경 부근에 있다던 조덕산이 아닌가?) 상순은 귀를 도사리고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계속 엿들었다. 허나 조덕산만은 술잔을 들지 않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항일전쟁이 이제 곧 승리한다고 해서 시름놓을 게 아니요. 지금 공산당군은 토지를 우리 지주들에게서 빼앗아 가난뱅이들에게 나눠 주면서 인심을 얻고 있소. 그들은 가난뱅이들을 영도해 우리 지주들을 청산하고 총살하고 있소. 일본 놈들을 몰아낸 후 그들은 가난뱅이들로 이른바 인민무장역량을 키워 우리 국민당 군과 천하를 다투려고 하오. 천하가 빨갱이들의 손에 들어가면 우리 지주들은 몽땅 총살당하고 조상들의 산소마저 건사하지 못하게 될 거요. 밭이랑 집이랑 몽땅 가난뱅이들에게 빼앗기게 돼 죽어도 묻힐 곳이 없게 될 거요.” “그렇게 돼선 절대 안 되지.” “빨갱이들을 용서할 수 없어!” 지학사와 장학산이 팔을 걷으며 고함치었다. 조덕산은 주먹을 불끈 쥐더니 술상을 탕 치면서 떠들었다. “동만에서는 빨갱이들의 영도 밑에 있는 저 조선 가난뱅이들 유격대가 큰 후환이오. 이제 일본 놈들을 몰아내면 그 놈들은 가난뱅이들을 영도해 인민 정권과 무장 대오를 건립해 우리 한족지주들의 땅을 빼앗아 조선 가난뱅이들에게 나눠 주고 우리 한족 지주들을 청산하고 총살할 거오.” “안될 소릴!” “조선 빨갱이를 절대 놔 둘 수 없소.” 지학사는 권총까지 내들면서 떠들었다. “아예 오늘 밤으로 함흥촌 기준이랑 상순이랑 그 놈들부터 없애 치우기요. 이 마을에서 그 놈들을 꺾자고 내 얼마나 애를 썼소? 소구유에 양 재물을 치기도 하고 껍질이 없는 전기 줄을 그 놈들의 집에 늘였소. 그런데 죽으라는 상순이나 기준 놈은 전기에 붙지 않고 아낙네가 떡 붙어 죽을 번 했소. 그런데 웬 일인지 번마다 그 놈들 부자가 썩어지지 않고 화를 피한단 말이오.” 상순은 그 소리를 듣고 모든 사건 진상을 알게 되었다. (원래 모두 네놈이 한 짓이구나.) 이때 조덕산이 손사래를 치었다. “로형, 건 모르는 소리요. 아직 항일 전쟁이 승리하지 못한 형편에서 일본 놈들과 싸우지 않고 먼저 공산당 유격대부터 죽이면 안 되오. 섣불리 풀을 건드려 뱀을 놀래지 마오. 모든 건 항전이 승리한 후 손을 써야 하오. 지금은 누가 빨갱인가를 잘 정찰해 둬야 하오. 우선 우리는 몰래 우리 무장대오를 건립해 둬야 한단 말이오.” 조덕산은 주위를 둘러보며 의아해 물었다. “상순이랑 공산당원인가?” 장학산이 대답했다.  “아직 공산당에 든 거 같잖소. 내 어떻게 하나 우리 쪽에 끌어당겨오겠소.” 조덕산은 가재수염을 슬슬 어루만지면서 무슨 궁리를 하더니 입을 열었다. “옳소. 상순과 같은 청년우두머리는 죽이기보다 우리 손아귀에 넣는 게 좋소. 좋기는 장형이 양아들 인삼을 우리 쪽에 끌어오면 좋겠는데. 동만에서 우리 국민당 군을 널리 확충하려면 우리 한족 지주들과 위만 경찰들만 의거해서는 안 되오. 한족 가난뱅이들과 조선 지주 그리고 조선 가난뱅이들도 될수록 우리 쪽에 끌어 들이어야 하오. 만약 이 마을의 상순이랑 계속 우리 대오에 들어오지 않고 공산당 빨갱이들을 따라 가려고만 하면 그때에는 가차 없이 목을 쳐버려야 하오. 허나 손을 쓸 시간은 명확하오. 항일 전쟁의 총소리가 멎자마자 일거에 손을 쓴단 말이요.”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었다. 조덕산은 술잔을 들었다. “자, 한잔 들고 말하기요.” 넷은 술을 쭉 들었다. 조덕산은 안주를 저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고 쩍쩍 씹다가 가재수염을 손수건으로 쓱 닦더니 계속 말하였다. “당면에는 중국 지주들로부터 중국 가난뱅이들까지 우리 주위에 뭉치게 하오. 이 부근 패랑천촌, 조개덕, 소서구 일대 손호표, 제지주, 왕지주를 몽땅 국민당 군에 들게 하오. 그자들이 빨갱이들과 조선 가난뱅이들에게 우리 재산을 빼앗기지 말도록 보호해야 하오. 생각해 보오. 조선 가난뱅이들이 조선에서 들어와 우리 조상들이 물려 준 땅을 빼앗아 가면 되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고함쳤다. “절대 용서할 수 없소.” 지학사는 뒷근심을 털어놓았다. “아예 난 촌장을 그만 둘가 하오. 괜히 일본 개다리라고 중국 사람들한테나 조선 가난뱅이들한테 맞아 죽지 않을까?” 그러자 조덕산은 손사래를 치었다. “아니오. 노형, 잠시 일본 놈들의 일을 하는 게 필요하오. 일본 놈들이 도망칠 때 기회를 봐서 우린 일본 놈들의 무장을 빼앗아 우리 대오를 무장시켜야 하오. 지 촌장과 장형은 해동분주소의 지학구 소장을 설복해 해동분주소와 진수해파출소 안에서도 우리 사람을 발전시켜야 하오. 진수해 일대 중국 지주들과 가난뱅이들을 우리 대오에 보내게 하오. 누가 자기 아래에 어느 만큼 사람을 확충하는가를 보고 난 그에게 군직을 줄 예산이오.” 모두들 권세욕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지학사가 대뜸 앞질러 나섰다.  “난 가병을 몽땅 조 단장에게 내놓겠소. 손호표 지주와 제 지주를 설복해 가병을 데리고 우리 국민당 군에 들어오게 하겠소.” “좋소. 노형은 패장쯤은 될 수 있소.” 조덕림은 조덕산을 보고 바투 들이댔다. “동생, 난 여기 온 지형이나 장형을 데려 왔으니 무슨 직을 주겠나?” 조덕산은 저가락으로 밥상을  탕 쳤다. “야따, 형님!  급을 따지지 마오! 여러분, 우리 국민당 군을 확충하는데 전력하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위엄있게 늘여놓았다.  "동만에서 삼도만 전흥 소교, 천교령, 묘령, 천교령, 라자구, 녕안 일대 마희산 무리들 속에서 우리 군은 대오확충과 무기 장만에 손쓰고 있소. 목단강과 할빈 일대에서도 우리 국민당군은 대오를 확충하고 공산당 빨갱이들과 싸울 준비를 다그치고 있소. 장개석 위원장님의 명령에 따라 이제 몇 백만 국민당 정규군이 동북에 들어 올 것이오. 이 광활한 동북 땅을 공산당에 두 손을 들어 내 줄 순 없지 않소. 우린 천만대군을 가진 국민당군의 영도아래 동만 각지의 무장대오와 손을 잡고 일본 놈들과 공산당군을 이 땅에서 몰아내면 우리 세상에서 부유하게 살게 될 게요. 그 날이 오면 이 땅도 나라도 몽땅 우리 거요! 그때면 모든 게 노형들 게 아니겠소?" 모두들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술잔을 들었다. 상순은 그 자들이 술상을 파하고 집으로 돌아 갈 때까지 나무 우에서 듣다가 살금살금 내려 왔다. 그런데 나무 가지 우에 너무 오래 다리를 끼고 도정신해 놈들의 말을 듣다나니 다리가 저리어 겨우 나무 우에서 내려왔다. (이 긴급정황을 유격대에 알려야 하는데.) 그는 사위를 둘러보며 아름드리나무숲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8.친일 부자 집을 습격 상순은 큰아버지가 북만으로 갔다는 것을 알뿐 구체 지점을 몰라 속을 끙끙 앓고 있었다. 어느 하루 마을에 갓 이사해 온 이계삼이란 한족중년사나이가 그를 찾았다. 상순은 훤칠하게 생긴 이계삼을 따라 태평강가 버드나무숲 속으로 갔다. 이계삼은 희죽이 웃으면서 말했다.  “상순이, 내 이 마을에 이사해 와 보니 자넨 정말 능력도 있고 전도가 유망한 청년이오.” 상순은 뒷덜미를 긁적거리다가 경각성을 높여 이계삼의 뒷말을 기다렸다. “상순이, 믿고 하는 말이오. 자네 큰아버지한테서 자네 말을 많이 들었소. 성칠 대장은 우리가 함흥촌에 가게 되면 자네를 많이 도와주라고 하더구먼.” “예- 그럼…” 이때 함흥촌 동북쪽 골 안에 있는 동구마을의 조선 중년사나이 허영주가 스적스적 다가오기에 상순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괜찮네. 우린 조선의용군 3지대에서 온 전우들인데 모두 자네 큰아버지와 전우요.” 이계삼은 품속에서 편지 한통을 꺼내 상순에게 건네주었다. “김성칠 대장의 편지오.” 상순은 천자문과 조선 글을 최구장의 서당 방에세 배운 후 상길 형에게서도 짬짬이 배웠기에 한자와 조선어를 섞어 쓴 편지를 읽을 수 있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상순아, 일가 모두 잘 있느냐? 후어머니가 세상을 떴다는데도 가 보지 못해 미안하구나. 네가 대신 한가위 날에 벌초도 해 드려라. 이번엔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지 말라. 할아버진 이젠 연세가 계시는데다가 할아버지와 같은 웃어른을 지하들의 묘소에 벌초나 가토를 다니게 하는 건 우리 조선 사람의 여절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난 아마 장백산 기슭에 가서 열사들의 묘지를 찾아 봐야 할 거 같다. 이계삼과 허영주 두 동지는 북만에서 만난 조선의용군 제3지대 혁명 전우들이다. 우린 북만에서 일제 놈들과 피어린 각축전을 벌리고 있다. 그때부터 잘 아는 혁명적 동지이고 중국 공산당 지하당원들이다. 그들의 영도아래 마을 사람들과 청년들을 묶어 세워 일제와 그 주구, 악질지주들과 투쟁해라. 우리는 오래지 않아 일제를 몰아내고 광복을 맞게 됐다. 이 땅의 주인으로 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러나 항일 전쟁이 승리해도 혁명이 끝난 것이 아니다. 악질지주들은 국민당을 등에 업고 우리 가난한 사람들이 땅의 주인이 되는 것을 막고 계속 인민들을 압박착취하려고 한다. 우리가 진정 땅의 주인이 되려면 국민당 반동파와 악질지주들까지 타도하고 인민정권을 세우고 그 놈들을 청산해 집과 땅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 주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 이 나라의 주인으로 되는 것이다. 이계삼 동지와 허영주 동지를 잘 받들어 일해라. 할아버지께는 따로 편지를 써 이계삼 동지를 보고 전해 드리게 하겠다.            큰아버지 김성칠                                        1945년 5월 15일 북만에서 상순은 단숨에 편지를 두 번이나 읽어보고 품속에 깊이 간직한 후 머리를 들어 이계삼과 허영주를 번갈아 보았다. 이계삼은 상순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상순동무, 우리 당 조직에서는 동무를 믿소.” “고맙습니다. 믿어 줘서. 무슨 일이든지 시키십시오. 목숨을 내 걸구 일본 놈들과 개다리놈들과 싸우겠습니다.” 허영주도 상순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민병들을 묶어 세워 일본 놈들과 개다리지주들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해야 하오.” “예. 알았습니다. 이미 20여명을 조직해 놓았습구마. 군사훈련도 시키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포치하십시오. 민병들을 데리고 적들을 족치겠습구마.” 상순이 가슴을 쭉 뻗치고 다짐했다. 그러고 나서 자기가 조덕림의 토성 밖 나무 위에서 엿들은 긴급정황을 알리었다. 이계삼은 상순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부탁하였다. “좋소. 아주 중요한 정황이요. 한 가지 주의할 게 있소. 이해득실에 의해 급변하는 정치형세에 장충국과 장학산 부자와 우리 오늘 셋이 만난 거 같은 일을 절대 말하지 마오. 꼭 비밀을 엄수해야 하오. 마을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데서 우리하구 절대 다른 말을 하지 마오. 그저 한마을에 사는 일반관계인척 하면 제일 좋소. 그러나 금방과 같은 긴급정황은 꼭 인차 알리도록 하오.” “예, 알았습구마.” 그들은 남의 이목을 끌까봐 인차 흩어지어 버드나무숲 속에서 빠져나갔다. 상순은 먼저 웃새집에 가서 할아버지한테 금방 있은 일을 말하고 나서 큰아버지 편지를 보이었다. 병완은 한참 읽어보더니 상순에게 말하였다. “내 생각에도 우린 이계삼과 허영주를 도와 마을 사람들을 묶어세우고 당지 친일주구들과 싸울 준비를 해야겠다. 산에는 네가 들어가 봐라. 난 마을에서 이계삼과 영주를 도와 일을 해야 되겠다.” “예, 알았습니다.” 상순은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윽고 상우형님이 놀러 왔다. 그런데 쌀 고생이 어찌나 막심했던지 상순이네도 가마에 쌀을 얹은 지 며칠 잘 됐다. 그래도 명옥이가 돼지 굴 부근에 불을 때자고 쌓아 놓았던 콩꼬투리를 매돌에 갈아서 끓였다. 한참 후 명옥이가 시형과 남편에게 그 콩꼬투리가루로 끓인 죽을 퍼서 밥상에 올리었다. 그러자 상우는 그 콩꼬투리가루로 끓인 죽을 후후 불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에이, 이 세월에 콩꼬투리가루 죽이라도 한 사발이면 온 하루 견딜 수 있지.” 그 말에 상순은 억이 막혀 입을 하 벌리고 있다가 죽사발을 밥상에 달랑 내려놓았다. “형님, 그래 죽 한 사발을 잡숫고 어떻게 온 하루 삐친단 말이오? 형수는 형님을 죽 한 사발도 안 준단 말이오?” 상우는 제수 앞인지라 아내의 허물을 하기 싫어 에둘러댔다. “이 세월에 쌀이 없는데 네 아주머닌들 무슨 재간에 죽을 끓이느냐? 아내와 동선이랑 순애랑 먹고 나면 죽물 한 숟가락도 남는 게 없다.” 그러자 상순은 한숨을 천정이 날아나게 내쉬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어질고도 어진 상우 형이 불쌍해 한마디 해 주고 싶었다. “형님, 형수와 말해서 때마다 죽물이라도 얼마간씩 나눠 잡숫소. 처자만 처자라고 하다가 형님이 굶어서 세상을 뜨기라도 할까봐 정말 근심스럽소.” 동생의 충고에 상우는 그저 묵묵히 앉아 대답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상우는 “에이, 오늘은 제수 덕분에 콩꼬투리가루 죽을 잘 먹고 견디겠는데 내일은 또 어찌 하겠느냐?”라고 하더니 비틀거리며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떠나가는 형님의 뒤 잔등을 멀거니 바라보면서 상순은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는 언제 공산당의 말대로 가난한 백성들에게 땅이 차례지어 배불리 먹고 살겠는가고 가슴을 치면서 한탄하였다. (이대로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순 없다. 마을 사람들이 다 굶어 죽겠다.) 저녁에 그는 마을 청년들을 불렀다. 버들강변에 상길과 흥수, 학수, 성수와 상진, 보준, 태수, 정수, 경학, 학준 등 20여명 청년들을 불러 모았다. 상순은 7촌 조카 경학을 잘 부르지 않았는데 유서집 상진이 불러서 왔던 것이다. 경학은 늘 부실한 엄마 때문에 남보다 잘 살기 어렵다고 외웠다. 그런데 조선에서 간도로 들어 올 때 두만강을 건너 와 도문 시장에서 어머니를 잃어버린 후 찾다 못해 찾지 못하자 혼자 함흥촌에 왔던 것이다. 동생 광학은 “아무리 살기 바쁘다고 엄마마저 찾아오지 않는 형님을 믿고 어떻게 한 마을에서 살겠는가?”라고 하면서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리었던 것이다. 경학의 처는 남편을 보고 “시어머니를 찾아오오. 내 잘 모셔 드리겠습소.”라고 하였다. 후에 경학은 진수해에서 어머니를 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어머니 박만식은 “경학아, 광학아.” 하고 울면서 돌아다니었다. 경학은 어머니를 보고서도 정신병자라고 낯이 깎인다고 못 본 척 했다. 경학은 마을로 돌아와 “정신병자 같은 어미를 겨우 피해 돌아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들 했다. 가능하게 어떤 사람들이 경학을 헐뜯어 한 말인지는 몰라도 그 일로 하여 관준은 두고 두고 경학을 욕했다. 상순은 경학이 아무리 그러면 그렇게 불효를 저질렀겠는가고 믿지 않았지만 민병조직행사에는 잘 부르지 않았다. 후에 상순은 경학을 보고 엄마를 찾아오라고 타이르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상진 형이 알려 경학이 온바 하고는 놔두었다. 그는 십여 명 청년들을 둘러보면서 나직이 말하였다. “지금 마을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됐다. 허나 친일 지주들의 쌀 창고에는 쌀이 썩어 날 지경이다. 우리는 가난한 농민들이 고혈로 지은 양식을 찾아다 굶어 죽어가는 마을 사람들을 구해야 되겠다.” “옳다. 지주 놈들의 쌀을 빼앗아 먹고서라도 살아야 한다.” 청년들은 상순의 말에 모두들 팔을 걷고 나섰다. 그들은 몽둥이와 칼을 들고 이번에는 일성 골 안이 아니라 동산을 넘어 성산 촌에 가서 악질지주네 집을 들이치러 떠났다. 상순은 아주 능청스레 거지행사를 하면서 토성 안 집 대문을 두드리었다. “누구요?” 상순은 밀짚모자를 꾹 눌러 쓰고 대야를 들고 “묵은 밥이라도 좀 빌어먹기요.”라고 하였다. 그러자 안에서 지주가 대문의 조그마한 문을 열더니 “또 거지가 왔구나. 밥이 없다. 가라, 가!” 하고 두덜거리며 상순을 콱 밀치었다. 상순은 지주 놈의 손목을 잡아 홱 태를 치었다. 뚱뚱한 지주는 땅바닥에 거꾸로 처박히었다. 상순이 손을 홱 젓자 숱한 청년들이 몽동이와 칼을 휘두르며 지주를 묶어 토성 안에 끌어다 마루 기둥에 결박해 놓고 창고를 부시고 쌀 주머니 채로 두 수레나 실어 내갔다. 상순은 떠나가면서 뚱뚱한 지주의 배를 툭툭 건드리며 을러메었다. “우리 가난한 백성들은 먹을 게 없어 죽어 가는데 네 놈은 창고에 쌀이 썩어날 지경이구나. 저 쌀로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구제하겠다. 파출소에 알리는 날엔 다음번엔 네놈의 목을 칠 줄을 알아라.” “호한, 제발 목숨만 살려 주오.파출소에 절대 알리지 않겠소.” “알려도 우린 겁나지 않다. 그까짓 경찰 놈들까지 몽땅 죽여 치울 날이 오래지 않다.” “예, 예. 알았습네다.” 상순은 혼자 비수를 쥐고 지주를 지키고 있다가 성수랑 먼 곳까지 수레를 몰고 갔으리라고 생각되자 한 둬 식경 후에야 지주를 묶어 둔 채 토성 대문을 빠져 나갔다. 그들은 마을에 돌아오자마자 쌀을 몽땅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후에 이 일을 알게 된 이계삼은 상순을 불러 말하였다. “지주에게서 쌀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한 것은 잘 한 일이오. 후에는 이런 중대한 일을 할 땐 내한테 말하구 하오. 자칫하면 적들에게 꼬리를 밟힐 수 있소.” “예, 알았습니다.” 상순은 뒷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어느 날, 최구장의 집에 막내사위 정형만이 찾아 왔다. 그는 처자를 잃은 후 일본 놈들을 피해 가마골의 구장 임호와 마을 친구 석수와 용기와 함께 간도로 도망쳐 와서 항일 유격대에 들어갔었다. 그는 유격대를 따라 중소 변경에 자리 잡은 북만에 전이해 일본 놈들과 싸웠다. 그는 성칠 대장의 파견을 받고 함흥촌 부근에 왔다가 가시집에 들린 것이다. 그는 토성 안 집 서쪽에 자리 잡은 가시부모를 보자 엎드려 큰 절을 하면서 대성통곡 쳤다.그는 몇해 전에 큰물에 목숨을 잃은 계순과 어린 아들딸이 그리워 울고 또 울었다. “내 어데 가서 계순이 같은 각시를 얻겠습니까? 얼마나 현처양모인데. 으흐흑, 흑흑.” 최구장 등 식솔들은 모두 울었다. 형만이 왔다는 말을 듣고 죽순과 석은 부부도 달려 왔다. “이게 몇 해만이오?” 그들과 형만은 또 서로 붙안고 울었다. 형만은 비단옷감을 가시부모에게 드리었다. “가시부모 옷이나 지어 입으시오.” 성단은 비단옷감을 되밀어 주었다. “눈 가슴에 달아 다니면서 옷감까지 가지고 오다니? 가져다 노자로 쓰오.” 형만은 비단옷감을 되드리었다. “계순이 알면 울 겁니다. 계순이가 세상을 떠났다고 사위 아니겠습니까? 이 막내사위 주는 선물로 옷을 지어 입으십시오. 로비는 성칠 사돈어른이 주어서 입습니다.” 그는 가시집 식구들을 둘러보다가 이마 살을 찌푸리었다. “어째 셋째처남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자 성단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경민은 일본 놈들에게 손을 잘리어 농사도 짓기 힘들지 어떻게 살겠소? 그래 약 담배장사를 하다가 조선에 가서 그만 일본 놈들에게 붙잡혀 감옥에서 맞아 죽었소.” 형만은 그 소리에 놀라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지었다. “셋째형님이 정말 안 됐구먼. 그래 그 애들은 어떻게 삽니까?” "셋째며느리 애들을 데리고 경민이 생전에 약 담배장사를 해 벌어 조개덕에 사 놓은 밭을 다루면서 그럭저럭 사오.” “둘째처남 네는 어디서 삽니까?” “진수해에서 사오.” 형만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이제 일본 놈들이 망하면 우린 조선 고향에 돌아가 삽시다. 그때면 우리도 고향 땅의 주인이 되겠지요. 이제 잘 살 날이 멀지 않습구마.” 최구장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사위, 내 몫까지 유격대에서 일본 놈들을 호되게 족치어 두 아들의 원수를 갚아 주게나. 난 아들 둘이나 일본 놈들에게 잃었네. 중용지도를 숭배해온 나도 이젠 일본 놈들을 보면 악이 나네. 내 젊기만 해도 자네들과 함께 총을 들고 일본 놈들과 싸우겠소만.” 이때 소문을 듣고 기준과 창준이네 형제 일가족들도 형만을 찾아 왔다. 그들은 한참 성칠 형의 근간 형편을 두루 물어보다가 돌아갔다. 형만은 유격대의 일은 될수록 이런 저런 구실로 대답을 회피하거나 따로 활동하다나니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리었다. 그는 상순이 돌아가려고 할 때 뒤따라 나왔다. “사돈 총각, 좀 보기오.” 상순은 형만과 함께 버드나무가지들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늘어 서 있는 태평강 가로 갔다. 상순이 먼저 “우리 큰아버지랑 잘 있습니까?”하고 물어 보았다. “그래, 성칠 대장이 전번에 보낸 편지를 읽어 보았소?” “예, 읽어 보았습니다. 정말 이계삼이라고 압니까? 성칠 큰아버지 편지에 믿을만한 중국 공산당 지하당원이라고 했던데.” “옳소. 믿을만하네. 그는 성칠 대장과 조선의용군 3지대에서 동만에 먼저 파견한 수많은 지하당원 가운데 한사람이네.” 상순은 “오~”라고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는 형만을 믿고 단도직입적으로 그간 고민거리를 물어 보았다. “이전에 큰아버지랑 우리 할아버지하구 아버지한테 일본 놈들을 조선에서 몰아내는 날이면 우리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이제 일본 놈들이 망하면 우리 조선 고향에 돌아가겠는데 또 중국의 국민당과 싸울 필요 있습니까?” “글쎄 말이야. 난 조선이 광복되면 조선 고향으로 돌아가 사는 게 옳은 거 같아. 성칠 대장도 이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똑똑히 말했소. 정작 오래잖아 조선이 광복을 맞게 되니 조선에 돌아가려는지 중국에 남으려는지 까딱 말하지 않는다. 후에 그를 만나면 잘 물어 봐라.” 그날, 형만은 성칠 대장이 이번 걸음에 함흥촌에 들리면 상순에게 민병을 잘 조직하라고 재삼 부탁하더라는 말을 남기고는 총망히 함흥촌을 떠나 진수해 쪽으로 갔다. 상순이 보건대 별로 진수해 일대 일본 놈들의 적정을 정찰하러 나온 것 같았다. 형만과 갈라진 후 상순은 한가위 날이 다가 올수록 큰아버지를 만날 날을 애타게 기다리었다. 그것은 큰아버지 편지에 한가위 날 쯤에 장백산 줄기줄기 산마다 누워 있는 열사들의 묘지를 찾아 보겠다고 한 말 때문이었다. (안 되겠다. 아직 항일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큰아버지가 딱 한가위 날에 장백산에 간다고 할 수 있겠는가? 미리 장백산 밀림 속에 가서 약재도 캐고 사냥도 하면서 큰아버지를 기다려야 하지.) 상순은 원래 이계삼과 물어 보고 북만으로 가서 큰아버지를 만나려고 했지만 그만 두었다. 그것은 이번 걸음에 이계삼을 확실히 믿을만한 공산당 지하 간부인지 허실을 알아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 복잡한 동란 시기에 아무나 무턱대고 믿고 따를 순 없지.) 상순은 아버지와 원시림으로 간다는 말을 한 후 괭이를 들고 일하러 가는 척 하면서 문 밖을 나섰다. 지학사 촌장도 일본 놈들이 오래잖으면 망한다고 그러는지 상순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그리하여 상순은 지학사 눈을 피해 쉽게 마을을 벗어날 자신이 있었다. 그때 집안에서 큰딸 숙자의 울음소리가 터지었다. 상순은 집안에 되들어가 명옥의 품속에 안긴 돐이 거의 된 숙자의 볼을 만지었다. “귀여운 내 딸아, 내 사냥해서 사슴고기랑 가져 올게. 아빠 인차 온다.” 숙자는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아빠를 보자 애고사리손을 내 밀면서 울음을 그치었다. 상순은 숙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밀짚모자를 꾹 눌러 쓰더니 아쉬운 발걸음을 떼어 문밖을 나섰다. 숙자는 전해에 이 가난한 상순이네 집에서 태어났던 것이다. 그는 천지꽃산 비탈에 가서 할아버지 산소 옆에 파묻어둔 오지독을 파내고 그 안에서 기름종이에 싼 권총을 꺼내 품속에 깊숙이 간수하였다. 상순은 새 집에 이사할 때 웃새집 천정에 감춰뒀던 권총을 꺼내 산소 옆에 구덩이를 파고 기름종이에 꽁꽁 싸서 오지독에 넣어 파묻어두었던 것이다.  상순은 인차 생각을 바꾸었다. (아니야, 총을 가지고 가면 혹시 길에서 일본 놈들이라도 만나면 시끄럽지 않을까? 교하에서 빼앗은 권총을 괜히 충국에게 줬다. 권총 두 개 있으면 헛일 삼아 이번에 하나 가지고 가는건데.) 그는 권총을 오지독에 넣고 원래 자리에 잘 파묻어 놓은 후 마을에 되 내려가 낫을 찾아 들고 괭이를 메고 먼 길을 떠났다.  
78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7) 댓글:  조회:1924  추천:0  2016-11-30
                  5. 밀림의 열사들을 기리어 여우도 눈물을 흘리게 하던 맵짠 겨울을 몰아내고 봄은 끈질기게도 산과 들에 찾아 왔다. 일제 놈들한테 빼앗긴 천지꽃산에는 진달래꽃이 만발하였고 들에는 푸르른 잔디가 누런 황야에 깔리기 시작하였다.        친일촌장 지학사는 일본 놈들의 앞잡이 돼 돌아다니더니 일본 년의 첩까지 들여앉혔다. 외씨처럼 걀죽한 백지장 얼굴에 꼭 다문 앵두입은 이 골안에서 꽤 인기를 끌었다. 듣는 말에 의하면 지학사 촌장이 삼도만 삼림분주소 일본 소장놈을 통해 소장놈의 처제를 첩으로 얻었다고 하였다. 일본 놈들도 오래지 않아 저들의 식민통치가 망할 것을 알고 악명 높은 당지 부자놈들한테 처제 아니라 심지어 딸까지 미리 줘 피신시키는 일이 기수부지였다.      어느날, 친일주구 지학사는 일본 놈 둘을 데리고 칼산 꼭대기로 갔다.       떵! 떵!      놈들이 메질하는 소리가 쇠붙이에 부딪히며 쩌렁쩌렁 울렸다.      병완이 밭갈이를 하다가 가대기를 멈추고 찬찬히 여겨보았다. 일본 놈들을 인도해 칼산에 큰 쇠말뚝을 박는 것이었다. 칼산 기슭에서 밭갈이를 하던 병완은 놈들의 하는 짓에 마음에 내켜하지 않았다. 그는 밭갈이를 멈추고 칼산으로 향하였다.         분명 일본 놈들은 못되게도 칼산의 기를 누르려고, 아니, 이 지역 중조 인민들의 기를 꺽으려고 쇠말뚝을 박는 것이었다. 아니, 자기 숫구멍에, 이 지역 중조 인민들의 숫구멍에 대못을 박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병완은 칼산 허리에 내려가는 일본 놈들을 손가락질하면서 을러멨다.        "이게 무슨 짓인가? 우릴 벼락 맞아 죽으라고 저주하는 건가?"       그러나 지촌장한테서 대개 뭐라는가를 통역받고 일본 놈들은 욕지거리를 했다.      "조선 노예놈새끼, 조선 놈들 기를 꺽어놔야 우리 대일본제국이 기를 펴고 살아날 수 있어."      일본 놈들은 망치와 커다란 쇠말뚝을 둘러메고 칼산 중턱으로 갔다. 그 놈들은 칼산 허리에 또 쇠말뚝을 쾅쾅 박았다.분명 일본 놈들은 산맥을 끊어 중조 인민들의 맥을 끊어농으려는 개수작을 피우고 있었다.     당시 일본 놈들은 조선과 중국 인민들의 기를 꺾으려고 못되게도 조선반도 태백산맥과 중국의 장백산 줄기를 따라 돌아다니면서 숱한 산꼭대기와 산허리에쇠말뚝을 박아놓았던 것이다.       병완은 자기 허리에 쇠못을 박는 것만 같았다. 놈들은 일본 놈들 두 놈에 지촌장까지 셋 밖에 없었다. 병완의 완력에 그 놈들 셋 쯤은 아직도 개 패듯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도 섣불리 건드리기 힘든 때였다.        병완은 놈들을 그 쯤 해 놔두고 칼산에서 스적스적 내려왔다.       그날 밤 그는 기준과 상순을 데리고 밤도와 칼산에 가서 괭이와 메로 그 놈의 쇠말둑을 빼 부르하통하에 처박아넣었다. 그제야 그들 삼형제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상순은 웃새집과 집 식구들을 따라 할머니 산소에 가서 가토를 하고 제사를 지냈다. 그는 할머니 산에서 내려오면서 장백산 밀림 속에 나무 가지와 눈으로 대충 덮어 놓은 큰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때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얘, 눈이 녹아 밀림 속에서 산짐승들이 큰며느리를 다치면 어쩌겠니? 큰어머니를 잘 모셔 드려라.” 할아버지 말씀에 상순이 나섰다. “거 잘 생각했어. 나도 갔으면 좋겠지만 함께 가면 자칫 일본 놈들과 저 지촌장의 눈에 날 수도 있다.” 기준의 말에 병완은 머리를 끄덕였다. “넌 집에서 농사를 돌봐라. 내 가서야 지 촌장놈이 의심하지 않을 거야.” 상순은 두덜거렸다. “지 촌장 눈치를 볼게 있습둥? 아예 어느 날 밤에 토성 안 집에 뛰어 들어가 지 촌장 놈을 죽여 버리깁소.” 그러나 병완은 말리었다. “그래선 안 된다. 지학사 한 놈을 죽여치우긴 쉽다. 그러나 만약 지촌장이 살해돼 봐라. 이전처럼 숱한 일본 놈들이 함흥촌을 토벌하러 올게야. 이 마을은 잿더미로 될게 아니야? 숱한 유격대 가속을 안전하게 보존하려면 굴 어귀 풀을 다치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는 유격대가 온 중국 땅에서 일본 놈들을 몰아 내는 날을 기다려서 지학사 놈을 처단하자.” 상순은 할아버지 말씀에 머리를 끄덕이었다. 상순도 이젠 울뚝 밸을 용케 참아낼 줄 알았다. “할아버지, 어떻게 가겠습둥? 우리 형제들이 가겠습구마. 집에서 쉽소.” 상순이 소서구에 가서 상우 형과 말해 보았다. 새금은 정지에서 엿듣고 야단쳤다. “농사철에 어디로 간단 말이오? 가겠으면 혼자 가오.” “우린 저 생원이 대사라는데. 쩍 하면 괴상한 일만 하자고 든다니까.” 상순은 함흥촌에 내려와 웃새집 상길 형과 말해 보았다. 그러자 상길은 인차 따라 나섰다. 병완은 손사래를 저었다. “상길은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지어라. 아무래도 내 마지막으로 맏며느리를 잘 묻어 주구 와야 하겠다.” 그리하여 상순은 할아버지와 함께 장백산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이때 충국이 쌀 주머니를 메고 들어 왔다. “형님, 우리 집 앞을 지나면서도 어째 들리지도 않소?” 그는 쌀 주머니를 상순의 사랑방에 내려놓으면서 “형님, 쌀 고생하는데 이걸로 보리 고개나 넘기오.”라고 하였다. “야, 임마, 너네 빚을 갚지도 못했는데 또 쌀을 가져 오니? 너 아버지한테 혼 나겠다.” 충국은 사람 좋게 웃었다. “형님, 우린 양형제 간이 아니오? 내 아버지한테 말했소. 근심하지 마오. 이건 거저 주는 게지. 형한테 빚을 지우는 게 아니오.” 그는 배낭과 목수도구상자에 삽과 괭이를 둘러 멘 상순과 병완을 보고 “어데 가오?”하고 물었다. 상순은 충국의 귀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산에 가서 큰어머니랑 유격대원들의 유체를 잘 묻어 주자고 그래.” “나도 갈 게. 숱한 유격대를 묻자면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충국의 말에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들은 충국네 집에 들려 먹을 걸 더 푼푼히 마련해 가지고 진수해 쪽으로 떠났다. 장학산은 떠나가는 그들을 두고 한쪽 눈은 뜨고 한쪽 눈은 감아버렸다. 병완과 상순은 먼저 진수해의 큰 손녀 어금의 집에 들렀다. 경인은 부모를 모시고 있었다. 최구장은 병완 등을 보자 반가와 마주 나오며 인사하였다. “사돈어른, 정말 오랜 만이오. 반갑소.” 병완은 최구장과 악수를 나무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상순은 큰 매형과 장백산으로 가게 된 연유를 알려 주었다. 하여 어금이 갖춰 준 종이에 싼 밥을 가득 배낭에 챙기어 넣었다. 이때 해옥이 학교에서 돌아와 뾰로통해 어머니와 떼질 썼다. “엄마, 난 해옥이란 이름이 싫습니다.” 어금은 이상해 해옥의 손을 잡고 물었다. “그 이름이 얼마나 좋다고 그러냐?” 그러나 해옥은 입이 뾰로통해서 몸까지 흔들면서 종알거리었다. “다른 애들 이름은 일본 말로 요시꼬, 하나꼬라고 부르는데요. 가이교꾸라는 게 얼마나 듣기 싫습둥? 일본 성까지 다니 무슨 요시시로(吉城) 가이교꾸(海玉)라구 하지 않겠습둥?” “호호호, 애두 참. 네 이름은 해옥이니깐. 얼마나 좋다고 그러니? 해옥이란 이름은 바다에서 건진 옥이라는 뜻이다. 이제 일본 사람들이 돌아가면 최씨성을 제대로 달면 최해옥, 얼마나 좋냐?”        해옥은 덥썩 어머니 품에 안기면서 방실방실 웃었다.         해옥은 또 종알거리었다.         “우리 윗 학년의 차대균이란 오빠 이름은 더 우습게 됐습니다. 창씨개명이란 걸 하니까. 오오야마(大山) 다이낀(大均)이랍니다. 다이낀이라는 게 얼마 듣기 싫습니까?" 경인은 격분해하였다. “일본 놈들이 얼마나 나쁜 놈들이야. 차대균이나 최해옥이나 얼마나 좋은 조선 이름이 있다고. 천벌 맞을 놈들이 우리 조상들이 물려 준 성마저 일본 성으로 창씨 개명해 바꾼단 말이냐?” 어금은 “누가 듣겠습구마.”하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상순은 해옥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바깥에 나왔다. “외삼촌, 놀러 오시오. 예?” “응. 그래.” “외노할아버지, 놀러 오시오. 예?” 병완은 가래 같은 손으로 해옥의 복숭아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최구장 등과 작별인사를 나눈 후 길을 떠났다. 그들은 기차를 타고 무난히 영월구에 이르렀다. 그들은 일본 놈들에게 발목을 잡힐까봐 토벌맞은 마을을 에돌아 곧추 장백산 기슭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어찌나 신출귀몰하면서 령길을 슬슬 에돌아 걸었던지 물 샐 틈 없이 봉쇄한다고 떠들어댄 일본 놈들도 그들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상순은 할아버지를 부축하어 유격대가 일본 놈들을 눈 함정에 빠뜨려 소멸한 깊고 질척질척한 산골짜기를 겨우 건넜다. 일본 놈들은 유격대의 매복습격을 받아 뒈진 숱한 시체를 거둬 갈 새도 없어 눈 덮인 골짜기에 마구 끌어다 던지고 가버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야마모도 놈을 비롯한 숱한 일본 놈들의 더러운 시체가 골짜기에서 썩어 나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상순은 기억을 더듬어 진달래가 만발한 가산 앞에서 잿더미로 된 큰아버지네 통나무집 자리를 찾아냈다. 거기에도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일본 놈들의 시체가 여기저기에서 썩고 있었다. 병완과 상순은 여기 저기 살피다가 머리가 잘린 시체를 발견하였다. 시체는 썩었지만 산짐승들이 물어 뜯어 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박병수 열사의 시체입구마.” 그들은 또 박병수의 시체 옆에서 완정하게 남아있는 득호의 시체를 찾아냈다. 열사들의 피 묻은 하얀 옷이랑 그대로 후줄근히 젖어 있었는데 주위에는 진달래가 열사들의 피를 머금고 무럭무럭 자라 활짝 꽃피고 있었다. 그들은 통나무집 널로 짠 관에 두 열사를 모신 후 연분홍진달래가 활짝 핀 양지바른 언덕에 잘 안장해 주었다. 두 열사의 묘지 주위에 진달래꽃을 옮기여 심어 놓고 큰절까지 올리었다. “열사들이여, 고이고이 잠드십시오.” 상순은 고별인사를 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그들은 협곡 쪽으로 들어가면서 최구장의 시체를 찾았다. 그때 협곡 안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리었다. “쉿-” 상순은 식지를 입술에 대며 협곡 절벽에 붙어 서더니 앞을 면밀히 주시하였다. 아니, 저게 뭔가? 성칠 큰아버지와 용천 대장, 만삭이 다 된 진달래 그리고 은녀, 경위원 조 꼬마가 협곡 밑바닥에 놓은 관에 대고 큰절을 올리고 있었다. “큰아버지!” 상순은 괭이를 든 손을 쳐들고 달리어 나갔다. “상순아!” 성칠도 인기척을 느끼고 권총을 빼 들다가 환성을 질렀다. “아버지도 오셨구먼요.” 성칠을 따라 은녀, 진달래, 용천 대장은 병완에게 큰절을 올렸다. 병완은 성칠의 손을 덥썩 잡았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구나.” “충국아, 감사해!” 용천과 진달래도 일일이 악수하였다. 병완은 상순을 보고 “우리도 사돈어른께 절을 올리자.”라고 하였다. 그들 조손은 충국과 함께 최구철의 유체에 큰절을 올리었다. “괭이와 삽을 가져 와서 가시아버지를 잘 모시겠습니다.” 용천 대장은 상순 등과 일일이 인사하였다. 만삭이 된 진달래는 뚱뚱한 몸을 웅크리고 앉은 채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아버지를 모시는 것을 바라보았다. 병완과 성칠 등은 눈물과 함께 최구철 열사를 협곡 안에 모시었다. “아버지!” “가시아버지!” “사돈어른 고이 계십소.” 그들은 눈물을 머금고 최구철 열사와 고별인사를 하였다. 진달래는 무거운 배를 안고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흑흑 흐느끼며 자꾸 아버지 산소를 되돌아보았다. “아버지, 이제 외손주를 낳으면 데리고 꼭 오겠어요.” 용천은 진달래 팔을 부축해 협곡을 올라갔다. 산에서 20여년 살아온 덕에 진달래는 무거운 몸을 이기며 용케도 협곡 우로 올라갔다. 성칠은 여럿을 돌아보며 “먼저 박병수 열사를 찾아가 보기요.”라고 하였다. 은녀가 바삐 “오빠, 먼저 언니를 찾아가 보기요.”라고 하는데 상순이 말리었다. “박병수 열사와 득호 열사는 우리 제일 먼저 묻어주고 오는 길입구마.” 그들은 이제야 하옥을 찾아가 보게 됐다. 은녀는 밀영자리를 돌아다보며 어깨를 들먹이었다. 그들은 연분홍 진달래꽃이 만발한 펑퍼짐한 산등성이에서 나무에 가려진 하옥의 시체를 발견하였다. 그런데 나무 가지가 어지럽게 널리어 있었다. “여보! 우리 왔소!” 성칠은 나무 가지를 와락와락 헤치며 아우성치었다. “큰어머니!” “언니!” “아주머니!” 그들이 애타게 부르며 다가갔건만 다 썩어 가는 하옥은 대답이 없었다. 병완은 총알에 꿰뚫어진 하옥의 두개골을 붙안고 흑흑 흐느껴 울었다. “맏며느리, 내 며느리를 죽였소. 그저 함흥촌에 붙들어 두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겠는 걸.” 성칠은 하옥의 뼈를 하나하나 건지면서 말렸다. “아버지, 며느리는 항일투쟁을 위해 장렬하게 희생됐습니다. 그는 절대 자기 희생을 후회하지 않을겁니다.” 하옥의 유골을 처참하기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하옥의 유골 옆에는 그녀의 피를 머금고 자란 듯이 연분홍 진달래가 듬성듬성 활짝 피어 하느작거리고 있었다. 상순과 충국은 눈물을 머금고 미인 송을 톱으로 베 관을 짰다. 병완과 용천은 무덤을 재빨리 팠다. 성칠과 진달래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하얀 봇 나무껍질을 벗겨다 하옥의 시체를 감싼 후 관안에 조심스레 넣었다. “여보, 외로운 대로 고이 잠드오. 내 일본 놈들을 몽땅 소멸하고 광복의 날을 맞을 때 다시 찾아 올 게.” 드디어 커다란 봉분이 생기었다. 성칠은 상순을 한쪽으로 불러 가 조용히 말하였다. “만약 어느 날 내가 일본 놈들캉(놈들하고) 싸우다가 죽으면 여게 묻어 달라.” 상순이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러나 병완은 세 귀 눈을 뚝 부릅떴다. “맏며느리랑 사돈어른이랑 희생됐는데도 모자라 그런 불효를 저지를 소릴 하니?!” 그러자 충국도 “김 대장은 꼭 살아 일본 놈들에게 복수의 불벼락을 안겨야 하오.”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하옥에게 큰절을 올리었다. 상순은 하얀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큰아버지가 눈물을 줄줄 흘리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상순과 진달래는 여기 저기서 진달래를 파다가 하옥의 묘지 주위에 돌아가면서 심어놓았다. 그들은 협곡 막바지를 지나 다시 통나무집 자리에 갔다. 열사들의 붉은 피를 먹고 연분홍 진달래가 곱게 피어 봄바람에 하느작거렸다. 박병수와 득호 두 열사의 무덤에 큰 절을 올리었다. 은녀는 병수의 무덤 앞에 쓰러지어 대성통곡 쳤다. “여보세요. 우린 한뉘 머슴살이를 하다가 유격대에 들어 살만하니 이렇게 가다니오? 내 배속의 애는 어떻게 하라오? 아버지 없는 애 불쌍해 내 어떻게 혼자 살라오?” 성칠 등은 모두 은녀를 여겨 보고 몸이 그런 것을 발견하였다. 은녀는 만삭이 다 된 진달래 보다 서너 달 늦었던 것이다. 진달래나 성칠이나 지어 용천이까지 은녀에게 등한한 것이 미안하였다. 성칠은 은녀를 부축해 일으키었다. “미안하다. 은녀야. 네가 몸이 이런 걸 모르고 계속 찬 물에 밥을 짓게 했구나.” 은녀는 일어나 병수의 무덤을 바라보며 흑흑 흐느끼며 어깨를 들먹이었다. 병완을 비롯한 성칠과 용천, 진달래, 상순, 충국은 모두 장백산 기슭의 밀림 속에서 열사들의 희생에 눈물을 흘리었다. 그들은 열사들의 피로 물든 장백의 밀림을 바라보았다. 미인송이 꽉 들어선 밀림 속의 산과 산골짜기마다 이름 없는 유격대 열사들의 시체가 묻혀 있었다. 어느 바위돌 밑에, 고목밑에 이름 없는 항일 열사가 묻혀 있는지 누가 알랴. 아, 장백의 밀림아, 너는 잊지 말라. 산에 산마다 연분홍진달래가 활짝 핀 동만의 산줄기마다, 산마루마다, 내와 들에 소리 없이 누워 있는 항일열사들의 이름을. 산과 산골짜기마다 열사들의 선혈을 머금고 활짝 핀 장백산 기슭의 진달래꽃은 열사들을 기리어 머리 숙이고 하느작거리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렇다, 장백산의 줄기줄기 뻗어간 산마다 뒤덮으며 봄이면 피어나는 진달래는 살아 숨 쉬는 항일유격대 선열들의 상징이 아닌가!                            6. 갈림길 열사들의 유골을 묻어 준 후 성칠과 용천은 은녀와 진달래를 데리고 북만으로 떠나게 됐다. 성칠은 아버지 앞에 큰절을 올리면서 말하였다. “아버지, 오래지 않으면 항일전쟁은 우리 승리로 끝날 거 같습니구마. 이제 우리 유격대가 북만에서 조선의용군 3지대를 따라 동만으로 나갈 때도 멀지 않습구마. 한철주 놈을 아직도 척살하지 못했습니다. 그 놈이 도망친 곳을 정찰해내 척살해야겠습니다. 그때까지 마을 사람들과 항일유격대 가속들을 잘 묶어 세우고 그들을 잘 보호하면서 편안히 계십소.” 병완은 성칠의 손을 잡았다. “얘야, 이젠 상순이랑 다 컸으니 마을을 근심하지 말라.” “이제 마을에 우리 유격대 사람을 보내 아버지와 상순을 돕게 하겠습구마.” 상순은 큰아버지와 갈라질 때 조용히 강청을 드렸다. “나도 유격대에 들어가면 어떻습니까?" "호미자루를 쥐고 농사를 지어 유격대에 쌀을 지원하는 것도 항일투쟁을 하는 거야." "청년 기분에 맞지 않습니다. 유격대에 들어가 총을 쥐고 통쾌하게 일본 놈들을 족치고 싶습니다.” 그러나 성칠은 상순을 보고 정색해 말하였다. “항일전쟁은 오래잖아 승리할 거야. 이제 지방에는 너 같은 골간이 필요하다. 함흥촌 일대 집단부락촌 촌장 지학사 악질지주와 싸우고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면서 쌀을 유격대에 지원해라. 이것도 항일구국투쟁을 지원하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말라.” 상순은 큰아버지 고집불통 성질을 알기에 더 말하지 못하고 작별인사를 하고는 충국과 함께 함흥촌으로 돌아왔다. 어느날, 충국의 아버지 장학산이 충국을 보내 상순을 불렀다. 상순은 또 빚 재촉을 할까봐 바늘방석에 앉은 듯이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눈치를 흘금거리며 토성안 덩실한 집으로 들어갔다. 장학산은 아주 상냥한 표정을 지으면서 상순을 맞았다. 그는 상순이가 높다란 중국 구들 턱에 걸터앉자마자 빚재촉은 번지지도 않고 이런 말을 꺼냈다.      “난 자네를 충국이랑 리국이랑 형제처럼 생각하네. 물론 소작료랑 각박하게 받아 냈지만 건 다 양아들 인삼이 영도하는 항일유격대에 쌀을 한 알이라도 더 보내기 위한 거였네. 널리 양해하게나.” 상순도 류창한 한어로 한마디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구마. 우리 조선에서 살 길이 없어 소서구로 찾아 왔을 때 충국의 아버지가 황무지를 개간해 밭을 일구게 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살았겠습둥?” 장학산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뒷말을 이었다. “이젠 일본 놈들은 오래지 않아 망하게 됐네. 우리 중국 사람들과 조선 사람들은 허리를 펴고 진정 이 땅의 주인이 되게 됐어.” 상순은 장학산을 놀랍게 다른 눈길로 보게 됐다. 그는 장학산을 그저 탐욕스러운 지주로만 보았는데 정치에 꽤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장학산은 계속 정색해 말하였다. “저 지학사랑 일본 놈의 촌장이 돼서 잠시 너덜거리지만 오래 가지 못해. 이 마을에서 네 할아버지와 아버지 말이 서지. 넌 또 청년들의 우두머리야. 이 마을 대부분 사람들은 모두 너희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조선 함흥에서 온 친척이거나 고향친구들 아니고 뭐야?” 하긴 온 마을 사람들을 쭉 둘러보아도 그랬다. 아래사랑집 형제와 김관준, 유서집 김상진, 아간집 김상근, 김태철이네 사형제, 사돈 집들인 김영진과 김영범, 김응범네 삼형제, 춘실의 큰집과 작은 집, 최구장네 자손 다섯집,한 고향 사람들인 덕성과 장산, 송국, 백룡이네 일가 그리고 유격대에 들어간 운주동의 김칠백, 허철석, 가마골의 임호, 용기, 석수, 정형만 등 부모들도 모두 성칠의 부탁대로 창준과 기준 형제를 따라 함흥촌에 왔던 것이다. 그들의 중심에는 김병완과 창준, 기준이 있었고 그 뒤에는 유격대 대장을 하는 성칠이 있었다. 장학산은 그런 점을 모두 감안하고 있었다. “넌 아주 사내답구 전도 있는 청년이야. 아버지를 닮아 힘도 센데다가 주먹도 세고. 허나 이 동란의 시대에 길을 잘 들어서야 전도를 개척할 수 있는 거야. 무턱대고 아무나 따라 가면 전도를 망칠 수도 있어. 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넌 충국과 의형제이기에 내 가만히 충고해 주는 게야.” 장학산은 유들유들한 낯에 다른 때에는 볼 수 없었던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상순은 장학산이 그저 소작료나 떼먹는 일반 지주가 아니라는 것을 점차 느끼었다. “일본 놈들이 망하면 이 세상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세상이야. 지금 추세를 보아서 어느 당 세상이 되겠는 지는 아직 딱히 몰라. 이럴 때 잘 못 길을 들어서면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단 말이야.” 이런 말은 유격대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상순은 호기심이 들어 한마디 물어 보았다. “그럼 충국 아버지는 어느 길에 들어섰습둥? 당연히 우리 큰아버지가 이끄는 유격대를 따라 가기로 했겠습지?” 장학산은 나란히 앉은 충국과 상순을 번갈아 보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이런 말은 너네만 듣고 바깥에 나가 아무와도 말하지 말라. 국민당 군은 800만 대군이야. 거게다 지방 보안대와 자위대, 경찰들까지 합하면 천만명두 더 된대. 공산당군이야 고작 백만도 되나마나 하지. 비록 여기 동만에는 조선 항일유격대가 많아 보이고 국민당군은 하나두 보이지 않는거 같지만 말이야. 전 중국을 내다 봐야 하느니라. 난 상순은 우리 충국과 의형제를 맺었고 내 양아들의 조카니까 생각해 말하는 거야. 아무리 봐도 너와 충국은 국민당을 따라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국민당의 삼민주의를 봐라. 국민당군은 전적으로 백성들이 잘 살게 하는 당이라는 걸 보여주지.” “예?” 상순은 국민당 말을 처음 듣는지라 깊이 더 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우리 큰아버지도 국민당입둥?” 그러자 장학산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아니야. 그 일 때문에 정말 속이 탄다. 성칠이네 유격대는 중국 공산당이 령도하는 조선족항일유격대지.” “그럼 큰아버지는 공산당입둥?” 장학산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이전에두 난 공산당이 국민당 보다 약하다고 양아들을 보고 유격대를 데리고 국민당에 들어가라고 하니 통 말을 들어야 어쩌지. 그 애 전도가 참 막막하구나. 어쩜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도 모르고 한사코 공산당을 따라 간단 말이야? 사람이 사느라면 길에 잘 못 들어설 때도 있지. 허나 그걸 알았을 땐 인차 바른 길로 바꿔 걸을 줄도 알아야 해. 헌데 그 놈의 고집이 정말 사달이야.” 장학산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더니 뒷말을 이었다. “상순아, 네라도 내 말 듣고 자초부터 바른 길에 들어서라. 넌 마을의 청년들을 묶어세워서 국민당 군을 따라 가야 한다.” “예? 그럼 큰아버지네와 다른 길을 가란 말입둥?” 장학산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장차 인삼과 성칠도 내 말 들을거야.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해야 돼.” 장학산은 상순을 흘끔 쳐다보더니 시탐조로 물었다. “너 혹시 성칠의 공산당에라도 들지 않았니?” “아니, 큰아버지가 공산당 말을 외운 적은 있지만 아직 공산당에 들지 않았습구마.” “음.” 장학산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럼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라.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만약 마을 청년들을 데리고 국민당 군에 들어가려면 내 연줄을 달아 줄 게. 넌 마을 청년들을 데리고 국민당 군에 들어가자마자 아마 패장쯤은 시킬 거야.” 장학산은 달콤한 말로 상순과 충국을 유혹하였다. 그러나 상순은 국민당 군이 어떤 군대인지 모르고 대답할 수 없었다. 게다가 성칠 큰아버지가 영솔하는 유격대와 다른 군대라고 하니 소대장을 시킨다구 해도 대뜸 들어가겠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장충국은 담배물주리를 뻑뻑 빨며 연기 사이로 가슴츠레 한 눈으로 상순의 입이 열리기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그 눈길은 어쩜 그렇게도  절절한 빛이 넘쳐나겠는가. 상순은 무슨 궁리를 하면서 곁눈질하는 장학산이 흉측해 구들 턱에서 엉덩이를 뗐다. “내 좀 잘 생각해 보겠습구마. 숱한 마을 청년들과 관계되는 일인데 경솔하게 대답할 수 없지 않습둥?” 옆에 있던 충국이 상순을 따라 토성 대문 밖에까지 나오면서 나직이 말하였다. “상순아, 우리 의형제가 함께 국민당 군에 들어가 한자리씩 하자. 천만대군과 백만 대군이 싸우면 어느 군이 이기겠니? 국민당 군이 이길 게 빤하지 않니? 장차 국민당 세상이 될 텐데 중공군에 들어가 뭘 하겠니? 자칫 감옥살이 아니면 총살당하겠는데.” 상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벼슬 욕에 흥분돼 지지벌개진 충국의 낯을 보며 속으로 놀라운 감을 느꼈다. “잘 생각해 보고 우리 아버지한테 말해라. 우리 아버진 진심으로 너와 날 생각해 말한거야.” 상순은 “호의는 감사하다.”라고 말하고는 인차 자리를 떴다. 그가 함흥촌에 들어서니 지학사가 한창 마을에 전기 줄을 가설하는 일본 놈들과 뭐라고 개화장을 휘두르며 야단치고 있었다. 지학사는 상순을 보자 웃음 속에 칼을 품고 입을 널어놓았다. “에이고, 우리 마을 청년들 우두머리가 왔구나. 봐라. 대일본제국에서는 우리 집단부락에 모범집단부락 편액을 달아 주고 전기까지 놔준다. 우리 모범집단부락 사람들이 이젠 암흑에서 벗어나 환한 전등불 밑에서 살게 됐지 않았어?” 상순도 이젠 곧은 울뚝밸만 쓰는 것이 아니라 능청스럽게 놀기 시작하였다. “오, 촌장어른 수고 많구먼. 촌장 덕분에 우리 마을이 변신합구마. 수고 많소.” 지학사도 상순의 그런 말에 속으로 놀라움을 느끼었다. (그 놈이 점점 여물어 가는구나.) 사실 지학사는 이 마을에서 기준이네 일가가 제일 눈에 든 가시 같았다. 또 기준과 상순이 제일 두려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상순을 일제 강제징역에 보내 버리려고 획책했지만 치질이 와서 성사하지 못했고 전번에는 졸개를 시켜 상순이네 집 소 구유에 양 재물을 타 놓게 하여 둥글 소를 죽였던 것이다. 그는 손호표 지주가 기준이네 집에 와서 떠들어대자 토성 망루 우에서 구경하면서 잘코사니를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기준과 상순 부자는 디뎌 놓을수록 더 강인하게 살아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상순은 속으로 지학사를 피씩 웃었다. (모범집단부락? 알기나 해? 네 모범집단부락 안에서 숱한 유격대 가족들이 안전하게 보호를 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걸. 흥! 아무리 전기를 놓아도 일본 놈들을 좋아할 거 같으냐? 일본 개다리촌장 놈아, 네 놈부터 죽여치우자고 칼을 썩썩 갈고 있어.) 그는 큰집으로 들어가 금방 일 밭에서 돌아온 할아버지에게 위방에서 조용히 산으로 갔던 일과 장학산이 하던 말을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병완은 나직이 말하였다. “절대 장학산 말 듣지 말라. 우린 모든 걸 성칠과 물어 본 후 한 걸음, 한 걸음 온당하게 나가야 해. 어느 쪽이 힘이 세다고 그 쪽에 붙을 게 아니야. 우리는 이제껏 일본 놈들이 아무리 백만 관동군을 가지고 있어도 허리를 굽히지 않고 그 놈들과 맞서 싸우면서 꿋꿋하고 떳떳하게 살아 왔다. 우린 양심적으로 우리 백성들을 위해 싸우는 군대를 도와야 한다. 잠시 공산당군이 힘이 약하고 수가 적더라도 성칠이 영솔하는 유격대가 가는 길을 따라 가는 게 옳다.”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글쎄 말입니다. 나도 그래서 장학산한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구마. 큰아버지가 영솔하는 유격대야 말로 우리 가난한 백성들을 잘 살게 하려고 싸우는 우리 빈고농민들의 군대인 거 같습구마.” 병완은 담배를 풀썩풀썩 피우다가 무겁게 말하였다. “이후에는 충국이 형제한테 유격대 말을 하지도 말라. 갈 길이 다르니까.” 그들 조손 3대가 한창 이야기하는데 아래 마을 조개덕의 조덕림 지주가 찾아 왔다. “김영감, 있소?” 그는 병완에게서 눈을 떼여 상순을 보더니 “에이, 때마침 상순이 있구나.”하고 반색하며 집안에 들어왔다. 기준은 조 지주를 인사하고 자리를 권하였다. 조덕림은 인품이 꽤나 좋아 최구장네 경숙이, 경인이, 죽순이, 경민, 경석이네까지 모두 밭을 주어 붙이게 하였다. 하여 병완이나 상순은 꽤나 호감이 있었다. “무슨 일루 해두 다 지는데 왔소?” 기준의 물음에 조덕림은 “짧은 해에 길게 말할 게 없소." 라고 하더니 뒷말을 이었다.  "내 이 집 전도를 생각해서 말하는데 누구하구두 말하지 마오.” “이젠 일본 놈들은 오래지 않아 망해서 섬나라로 쫓기어 갈 게요. 내 동생은 신경에서 국민당군 퇀장을 하오. 이 집 상순인 중국 말도 잘하고 이 마을 청년들의 우두머리 아니고 뭐요?  마을 청년들을 데리고 국민당 군에 들어가면 내 동생 조덕산과 말해서 한자리 시키겠소.어떻소?” 상순은 호기심이 난 척 하면서 속을 빼보려고 물었다. “그 먼 신경 부근으로 어떻게 가겠소? 여기 부모처자를 두구 간다는 것도 말이 아니오.” 조덕림은 바깥을 두리번거리더니 말하였다. “신경 부근까지 갈 필요 없소. 요즘 우리 동생이 동만으로 나옵네. 여기에서 군대를 모집해 일본 놈들과 싸울 예산이요.” 기준과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한참후 조덕림이 뭐라구 또 말하자고 할 때 상순이 입을 열었다. “난 농사나 지으면서 부모에게 효성을 다할 생각이지 총을 쥐고 싸울 생각이 없소.” “그래도 장학산은 자기가 말해서 자네 국민당 군에 들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하던데.” 기준과 상순은 대뜸 조덕림과 장학산이 한통속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순간 조덕림과 장학산을 경계하게 됐다. “잘 생각해 보기요.장학산과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 국민당 군에 들겠다고 한 적은 없소.” 상순은 이렇게 말했지만 기준은 아예 거절해 버리었다. “그만 둬라. 농사를 짓지 않고 괜히 싸움에 삐치다가 목숨을 잃겠느냐?” 조덕림은 다가앉으면서 지껄이었다. “상순이 마을 청년들을 데리고 국민당군에 들어가면 내나 장학산은 소작료를 절반만 받겠소. 아니, 2할만 받겠소. 그럼 어떻소?” 그래도 기준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싫소. 우리 농사군들은 제게 차례진만큼 먹으면 되오. 우린 공 걸 먹기 싫소.” 조덕림은 더 말했자 쓸데없는 줄 알고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한마디 내뱉었다. “우리 중국에는 이런 말이 있어. 권하는 술은 마시지 않고 벌주를 마시겠는가. 잘 생각해 보게나.” 그 선뜩선뜩한 날이 선 말에 기준과 상순은 선뜩해 남을 느꼈다. 그러나 량심은 버릴 수 없고 기개는 접을 수 없었다.  
77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6) 댓글:  조회:2086  추천:1  2016-11-23
                         2. 약 담배론 번신할 수 없어        상순은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 갈 면목이 없었다.        (큰 매형과 둘째 매형에게서 숱한 돈을 꿨기에 빚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으니 이 일을 어찌 한단 말인가?)        충국은 자기 말을 듣지 않아 망했다고 하면서 다시는 상순을 따라 약 담배장사를 하지 않겠다고 집으로 돌아가 버리었다. 상순은 진수해 큰매형네 집에서 며칠 묵으면서도 돈을 더 꿔달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였다.        상순은 가슴이 갑갑해났다. 약담배장사가 잘 되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전번에 교하 려관 주인한테 약담배짐을 맡겨놓고 은실을 구하려고 길림에 갔다가 은실을 만나지도 못한 것이 속에 내려가지 않았다.      위안소가 있던 부근 가게 사람들과 물어보니, 어떤 사람들은 일본놈들이 그녀들을 끌고 신경에 갔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일본군을 따라 관내에 들어갔을 것이라고도 했다.      (다 지학사 놈 탓이야. 그 놈은 내 춘실을 사랑하는 걸 알고 보복하려고 밤중에 일본 놈들을 끌고 가서 춘실과 은실을 위안소에 팔아넘긴 거야. 지학사 놈을 어떻게 하면 원쑤를 다 갚을가.)         상순은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고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상순은 진수해를 돌면서 궁리하고 궁리하던 끝에 일본인들이 꾸리는 흥농합작사에 들어가 이자 돈 150원이나 꿨다. 그는 그 이자 돈을 밑천으로 몇 달 동안 조선으로 몇 번 왔다 갔다 하면서 끈질기게 약 담배장사를 하였다. 웬 영문인지 하느님이 상순을 빚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 살아라고 도왔던지 약 담배장사가 잘 돼 3,300원이나 벌었다. 어느 날 상순이가 옷장 선대에 끌로 구멍을 파고 약 담배를 밀어 넣은 후 나무쐐기를 살짝 박아 막아놓을 때었다. 기준은 상순을 보고 말려싿.  “이젠 그만하면 됐다! 그 돈이면 저 소서구라도 사겠다. 꼬리 길면 밟힌다.” 병완도 상순을 말렸다. “얘, 약 담배장사를 해서야 집안을 구하고 우리 조선 사람들을 다 구할 수 있느냐? 유격대를 도와 일본 놈들을 몰아내야 해.” 상순은 개의치 않았다. “알만 합구마. 할아버지, 장사라는 건 될 때 바짝 해야 됩구마. 이제 좀 더 벌어서 진수해에 기와집을 사 놓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모시고 잘 살면서 공부를 좀 해야 되겠습구마. 약 담배장사를 한다고 유격대를 돕지 않겠다는 것도 아닙구마.” 기준과 병완은 상순의 고집을 아는지라 더 말리지 않았다. 상순이 옷장을 수레에 실을 때었다. 동남쪽에서 황둥개가 뛰어 오면서 꼬리를 저었다. “워리- 워리-” 상순은 춘실의 황둥개 뒤대가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중얼거리었다. “네 여주인은 날 욕해도 넌 아직도 날 반기는구나.” 명옥은 사랑에서 저녁 죽을 끓이다가 뾰로통해했다. “아들딸이 서넛 됐는데도 춘실이야?” 상순은 황둥개 뒤대가리를 만지다가 이전에 개귀에 쪽지를 써넣던 생각을 하면서 어망 간에 개 귀에 손이 갔다. 웬걸, 뭔가 쥐이는 것이 있었다. “이게 뭐야?” 상순이 손더듬질해 꺼내 보니 쪽지가 아니겠는가. 쪽지에는 이렇게 또박또박 씌여 있었다.   개 같은 상순아, 네 아들 을준이를 백 과부네 양아들로 보냈다.   (뭐라고? 을준이? 이름을 더럽게도 지었군. 남의 아버지 준 자 돌림으로 짓다니? 좋은 아들을 제 손으로 키울게지. 백과부네 집에 양아들로 보내? 미쳤어, 미쳐.) 상순은 황둥개를 보고 “너 여기서 기다려라.” 하고는 마당에서 까만 숯 쪼박을 주어 가지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식칼로 숯 조박을 뾰족하게 깎아 가지고 쪽지 뒤에 이렇게 썼다.   춘실아, 왜 내 말을 듣잖니? 이제 돈을 벌어 진수해나 국자가에 벽돌집을 사놓고 너 모자간을 데려다 갈게. 애를 남에게 주지 말라. 상순   쪽지를 다 써서 말아가지고 바깥에 나오니 황둥개가 어데 갔는지 없었다. “이 놈 개새끼, 개똥도 약에 쓰자면 없다더니 원, 참.” 도리머리를 흔들며 집안을 기웃거리다가 부엌에서 갓 세살 밖에 안 되는 영자를 업고 맴도는 명옥이 띄었다. “여보, 나오오.” “저녁이 늦은데?” 명옥은 행주에 손을 닦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는 상순의 말이라면 죽으라는 말 외에는 일언반구 듣지 않을 때가 거의 없었다. 상순은 명옥을 바자굽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쪽지를 꺼내 주면서 말하였다. “이 쪽지를 춘실한테 갖다 주오.” “무슨 쪽지요?” “글쎄 가져다주라는데.” “계속 춘실과 좋아할 작정이오?” “애를 남에게 주지 말라는 쪽지요.” “남이야 애를 주든 말든 무슨 상관이오.” “떠들지 말고 가져다줘. 이제 돈을 많이 벌면 당신 치마 감을 사다 줄게.” “피- 누가 얼리울 거 같아?” 코 웃음 치면서도 명옥은 속히는 셈치고 쪽지를 가지고 춘실을 찾아가 가만히 주었다. 춘실은 명옥을 보내 놓고 다시 쪽지를 펼치어 보더니 코웃음 쳤다. “픽, 애 아까우면 당초에 그만 둘 거지.” 한편 상순은 옷장을 수레에 싣고 진수해역으로 올라갔다. 역무일군의 옆구리에 스리슬쩍 돈을 찔러 주고 길림에 붙이는 꼬리표를 옷장에 붙여 놓고 집으로 돌아 왔다. 이튿날 아침에 상순이 치분 통에 넣은 물약담배를 배낭에 지고 떠나려고 할 때다. 선준이 글쎄 약 담배를 팔러 용정에 갔다가 붙잡혀 결박당한 채 일본 놈들에게 끌려 마을에 들어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차, 이게 무슨 일이야?) 겁을 집어 먹은 상순은 동불사역에 실어간 옷장을 찾으러 부랴부랴 달리어 갔다. 그런데 직접 가자다가 역에서 덜미를 잡힐 것 같았다. 동불사역 부근에서 서성거리다가 그는 진수해소학교 교장의 집을 찾아 갔다. 집안에는 교장부부에 구들에서 앙기장, 앙기장 걸음마를 타는 애 밖에 없었다. 그는 돈 50원을 꺼내 교장에게 주면서 지청구를 들이댔다.  “교장 선생님, 난 함흥촌의 상순이라고 부르오. 수고스러운 대로 내 길림에 부친 옷장이 있는가 봐 주겠소?” 교장은 돈을 보고 마른 침을 꼴깍 삼키더니 물었다. “옷장에 뭐 있소? 자기절로 알아봐도 되겠는데도 뭘 이러오?” 교장은 돈을 되밀어 주었다. 상순은 돈을 교장의 손에 쥐여주었다. “여보게, 일본 사람과 다툰 적이 있어 가기 불편해 그러오.” 그래도 교장은 이상하해 하였다. 하긴 옷장을 팔아도 50원을 하지 않겠는데 옷장을 찾아오라는 것도 아니고 있는가만 봐 달라면서 많은 돈을 내 놓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돈이 흑사심이요, 견물생심이라고 돈 앞에서 교장도 용빼는 수가 없었다. 그는 아내의 눈치를 흘끔 보더니 돈을 받아 넣었다. “내 알아 보지. 집에서 기다리오.” 교장 선생은 그 자리로 역에 나가 알아보고 돌아 왔다. 그는 아주 긴장한 낯빛으로 상순을 보면서 말했다. “옷장이 아직 있습데. 이제 역 전등불이 꺼지면 옷장을 훔쳐내 가지고 달아나오." 상순은 그날 저녁까지 교장의 집에서 먹고 나가 역 부근에 숨어 있으면서 전등불이 꺼지기를 기다렸다. 일각이 삼추같이 지루하게 느껴지었다. 한밤중이 돼서야 전등불이 끝내 꺼지었다. 상순은 교장이 준 집게로 철조망을 끊고 기어들어가 옷장을 찾아 미리 준비한 각반으로 묶어서 지고 살금살금 역 화물 처에서 빠져 나왔다. 무슨 힘이 그로 하여금 옷장을 지고 단숨에 걸음아 나를 살리라고 함흥촌에까지 돌아오게 했는지 모른다. 그는 집에 오자마자 웃새집에 가서 집게와 못 빼기를 가져다가 빠드등 빠드등 옷장 네 각을 뽑아냈다. 그는 옷장 선대에 박은 쐐기를 집게로 빼내고 구멍에 넣은 약 담배를 털어 대야에 담았다. 그때 갑자기 일본 순사 놈들이 마을을 덮쳤다. “주인 있소?” 누군가 울안으로 들어왔다. 피뜩 바라보니 진수해소학교 교장 같아 보였다. (아니, 교장이 순사 놈들을 데리고 온 게 아니야?) 깜짝 놀란 상순은 못 빼기를 쥔 채 와닥닥 외양간 쪽으로 뛰어 나갔다. 그런데 울안의 소구유 말뚝에 이마를 딱 쫗았다. “앗!” 비명소리와 함께 풀썩 꼬꾸라지었다. (물앉아 있으면 잡혀!) 상순은 간신히 일어나 외양간으로 달려 들어가 뒤 문으로 빠져 나갔다. 그런데 발이 소똥물구덩이에 푹 빠지었다. 그러나 상순은 발을 탁 털고는 못 빼기를 쥔 채 영범이네 집에 달려갔다. 눈치를 차린 영범이네는 마당에 가마니를 펴 놓고 절을 하면서 제를 지내는 척하였다. 그 틈에 상순은 술을 한사발이나 쭉 들이 켜고 고방에 들어가 들어 누워 자는 척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교장 새끼 순사 놈들에게 고발한 거 같아.) 상순은 세상에 정말 믿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상순이 달아난 후 창준과 상길은 일본 순사를 외양간 쪽으로 들어 가지 못하게 막아서서 인사하는 척 하였다. 아래사랑집 석철과 석은은 창준이네 집으로 놀러 왔다가 일본 순사를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술상을 차리어 대접하였다. 그 틈에 기준과 상우는 옷장을 마사 선대를 김치 움에 처넣었다. 그들은 창준과 상길이 바깥에서 지키게 하고 김치 움에 들어 가 옷장 선대 구멍에 밀어 넣은 약 담배를 하나하나 꺼내 대야에 담았다. 일본 순사 놈은 술에 취해 겨우 운신해 진수해로 돌아갔다.        "안돼!"       상순은 술을 마시고 자는척 하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곧추 웃새집에 달아가 사랑방 중천정에 숨겨둔 권총을 꺼내 옆구리에 차고 순사놈의 동향을 살폈다. 만약 순사 놈이 자기를 나포하려고 한다면 권총으로 순사 놈과 개다리 교장을 쏴 죽이고 유격대를 찾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순사와 교장이 가버린 것을 확인한 후 상순은 웃새집 사랑방 중천정에 권총을 되 감춰놓고 집에 돌아 와 시름 놓고 기준과 함께 김치 움의 약 담배를 꺼내보았다. "아니, 이게 뭐야?" 옷장 선대 구멍에서 얼었다 녹았다 해 약 담배가 변질해 팔 수 없게 돼버리지 않았겠는가! 병완은 상순을 교양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였다. “내 뭐라더냐? 그만하면 됐다는데도. 30원이면 소를 살 수 있는데 3, 300원이면 땅 몇십헥타르도 살 수 있지 않느냐? " "이젠 손을 싹 씻고 그만둬라. 이젠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구 유격대를 도와 일본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구 나라를 찾아 잘 살 궁리나 해라. 오직 유격대를 따라 혁명해야만 나라를 잃은 우리 조선 사람들은 살 길이 있느니라.” 상순은 기가 꺾이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말씀에 도리가 있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그는 웃새집 중 천정에 다시 감춰둔 권총을 생각하자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래, 먹을 게 없으면 유격대를 따라 일본 놈들을 쳐 몰아내구 지주, 한간 놈들을 청산해 살아야지.) 상순은 속으로 윽벼르면서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었다.                                       3.효자 상우는 소서구에 되돌아가 토벌 때 불을 맞은 집을 손질하고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상순은 집도 없이 계속 웃새집 손바닥만 한 사랑방에 들어서 갑갑하게 살았다. 명옥은 빚에 깔리어 막막한데 먹을 쌀마저 떨어져 큰집, 작은집을 돌아 다니면서 쌀을 찧어 주거나 떡을 쳐주거나 두부콩을 갈아주고 콩물이나 죽물이나 얻어먹으면서 간신히 목숨을 이어갔다. 명옥이 영수를 업고 속에 애를 밴 몸으로 큰 매돌 돌리노라고 얼마나 고달팠겠는가! 원래 당나귀나 끌고 돌아가면서 굴릴 큰 매돌 밀어 굴리노라고 굶은 그녀가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명옥은 매돌 자루를 놓으면 넘어질까 봐 꼭 붙잡고 간신히 돌고 또 돌았다. 배고프다 못해 배가 쓰려나고 아프고 나중에는 메스껍고 눈앞이 아물거리더니 아찔해났다. 그래도 그녀는 입을 꼭 옥 물고 끝까지 콩을 다 갈았다. 지새금은 명옥을 보고 “젊은 각시 콩을 이오.”라고 하였다. 명옥은 할 수 없이 허리띠를 꽉 졸라매고 간 콩을 담은 함지를 새금이 이워주자 이고 한 걸음 한 걸음 간신히 걸어 나갔다. 설상가상으로 웃새집으로부터 시준네 작은집으로 가자면 얼음 강판을 건너야 하였다. (남의 콩물함지를 떨어뜨려 마스면 어쩌겠는가?) 애를 업고 속에 애를 밴 명옥은 콩물 함지를 이고 이를 옥 물고 얼음 강판을 내려다보면서 한 발 한 발 종발걸음을 치며 조심조심 걸어 나갔다… 명옥은 너무 도정신해 콩 함지를 이고 시준네 작은집에 다 가서 콩물함지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눈앞이 아찔해나 물앉고 말았다. 그래도 그 집에서 끓인 콩물이나마 둬 그릇 얻어먹고 나니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어느 하루, 지새금은 금재를 보내 명옥을 불러 오게 했다. 국자가에 내려 간 큰집 상철아주버니와 조카 형내 그리고 손자 영기까지 놀러 왔는데 명옥더러 소서구에 와서 밥을 지어라는 것이었다. 명옥은 큰집 일이자 자기 일로 생각하고 애를 업고 눈보라를 무릅쓰고 소서구에 있는 큰집으로 갔다. 명옥은 형님 지새금과 손을 맞춰 기장밥에 두부까지 앗아 큰집 상철이네 조손 3대를 잘 대접하였다. 그런데 지새금은 밥이 모자란다면서 명옥에게 밥을 먹고 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기준은 위방에서 듣다못해 “맏며느리, 작은며느리를 밥을 주오.” 라고 하였다. “저녁밥이 모자라는데도 그럽둥? 시아버지는 좀 조왕간 일을 작작 삐칩소. 그저 약방 감초처럼 뭐나 다 삐칩둥?” 기준은 상우를 쏘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어진 상우는 그저 자기 밥이나 먹으면서 안해한테 일언반구도 하지 못했다. 기준은 “음~” 하더니 “내 밥사발을 내려다 주오.”라고 하였다. 명옥은 시아버지와 형님이 싸울 것 같아 밥도 먹지 않고 애를 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아버님, 감사합구마. 집에 가 밥을 먹겠습구마.” 기준은 “집에 가 먹을 밥이 어디 있다고 그러오?” 라고 하며 반 남은 밥그릇을 기어이 들고 나왔다. 지새금은 시아버지한테 눈을 샐쭉 흘기면서 두덜거리었다. “에이고, 그저 작은며느리, 작은며느리 하면서. 데리고 들어 온 며느린가?” 상철은 제수가 너무하는 것 같아 눈살을 찌푸리며 밥맛을 다 잃었다. 기준은 듣지 못한 척 하면서 명옥을 가지 말라고 자꾸 말렸다. 그러나 명옥은 애를 업고 밥술도 들지 않고 기어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어섰다. 풍설이 하도 윙- 윙- 기승스레 일어 굶은 명옥은 주린 배를 끌어안고 장개골 묘지가 가득한 곳까지 터벅터벅 걸어 와서 눈앞이 가물거려 쓰러지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 갔을까? 맵짠 추위에 얼어들어 견디기 힘들어 우는 어린 애의 자지러진 울음소리에 명옥은 깨났다. 그녀는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쓰러져 있으면 애까지 다 얼어 죽을 것 같아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그녀는 비틀거리면서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간신히 걸어 집으로 한발자국한발자국 나아갔다. 걸음마다 배고프고 가난한 고달픈 인생의 힘든 걸음발이었다. 앙상한 버드나무와 비술나무를 구분하기 힘들고 빙글빙글 돌고 하늘과 땅이 맞붙는 상 싶었다. 그래도 명옥은 애를 살리기 위해 살아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의악스레 걷고 걸어 끝내 웃새집 사랑 간으로 집이라고 돌아 왔다. “작은 며느리, 저녁을 먹었소?” “예-” 명옥은 맥없이 대답하고는 애를 내리워 놓기 바쁘게 폭 꼬꾸라지었다…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고 할까? 일본 놈들의 철 발굽 밑에서 중국 지주들의 가혹한 착취를 받을 대로 받아 쌀 고생을 할 때여서 그럴까? 아무튼 새금은 동서를 부려 먹고 밥도 주지 않고 죽을 끓여 놓고 혼자 조왕 간에 돌아 앉아 후룩후룩 잘 먹어댔다. 일하러 나갔다가 돌아 온 남편과 시아버지는 반사발 하나면 족하였다. 어느 날 밤, 상순이 함흥촌 남쪽의 묘지를 지나는데 누군가 쿨쩍쿨쩍 우는 소리가 쓸쓸히 들리었다. “이 밤중에 누가 이런 묘지에서 울까?” 상순은 누군가 다가가 보고 깜짝 놀랐다. 글쎄 아버지가 묘지 옆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지 않겠는가! “아버지! 웬 일입둥? 또 아주머니한테 괄시당했습둥?” 기준은 막내아들을 보더니 울음을 그치고 일어났다. “얘야, 옛날부터 황제도 집안과 여편네를 잘 다스리지 못했단다.” “대체 무슨 일입둥?” “얘, 이제껏 말하지 않았는데. 난 맏며느리 손에서 배고파 못 살겠다. 그래 여기 와서 죽어 버리자고 했다.” “예?” 영웅호걸이던 아버지가 아주머니에게 당하고 살 용기마저 잃어버리다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상순은 그 자리에서 결단을 내렸다. “아버지, 우리 집에 가 삽시다. 우리 부모를 모시겠습구마.” 기준은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나를 죽게 놔둬라. 너넨 둘짼데다가 숱한 빚을 졌는데 맏이보다도 더 가난한 너넬 어떻게 고생시키겠니?” 상순은 황급히 “아버지, 내 아무리 가난해도 부모를 못 모시겠습둥? 갑시다.”라고 하며 아버지 팔을 부축하며 집 쪽으로 끌었다. “집도 없어 큰집 사랑 간에 들어 사는데 어떻게 들어가겠니?” 기준은 뒤로 뻗치며 가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상순은 아예 잔등을 들이대더니 아버지를 업고 집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얘, 날 내려 놔라. 작은며느리와 토론도 하지 않구 어떻게 가니?” 상순은 아버지를 내려놓으면서 “근심하지 맙소. 명옥은 마음이 비단이어서 절대 반대하지 않을겝구마.”라고 하였다. 기준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럼 가자. 그런데 맏아들하구 며느리 너희 집에 간다는 말을 하지 않고 가서 되겠니? 말썽이라도 생기면 어쩌니?” “토론은 무슨 토론입둥? 잘 모시지도 못하는데 우리 모시면 오히려 부담을 덜어준다고 좋아할 겁구마.” 기준은 한숨을 연신 토해냈다. “난 이젠 맏며느리를 보기만 해도 진저리난다.” 상순은 아버지를 모시고 웃새 집 사랑 간으로 들어갔다. “명옥이, 우리 부모를 모시자고 아버지를 모셔왔소.” 명옥은 죽을 끓이다가 부엌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았다. “시아버님, 왔습둥? 어서 구들에 올라 갑소.” 이윽고 명옥은 다 끓은 죽을 사발에 듬뿍 담아 상에 올리었다. “시장하겠는데 듭소.” “둘째며느리를 어떻게 고생시키겠소?” 기준은 숟가락을 들면서 근심하였다. 명옥은 반겨 맞으면서 “둘째아들며느리는 자식이 아닙둥? 근심하지 맙소. 우리 잘 모시겠습구마.”라고 말하였다. 상순은 명옥의 처사에 고마웠다. “여보, 아무래도 엄마도 모셔와야겠소.” 남편의 말에 명옥은 “시누이도 모셔오오.”라고 하였다. “금옥이까지?” 기준은 죽을 맛있게 먹으면서 막내아들에게 부탁하였다. “얘, 금옥인 놔둬라. 네 아주머니 좋아하지 않겠다.” 그러나 상순은 그 자리로 나가 큰집 소 수레에 소를 메우더니 소서구로 떠났다. 그는 소서구에 가서 큰집에 들어서자마자 형님 부부에게 이실직고하였다. “그간 형님과 아주머니 쌀 고생을 하면서 부모를 모시느라고 수고했소. 둘째아들은 자식이 아니오. 이젠 우리가 부모를 모시겠소. 달리 생각하지 마오.” 그 말에 지새금은 세 귀 눈을 흘기면서 야단쳤다. “시동생,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맏이가 부모를 모시는 게 도리지. 우리보다 어느만큼 더 잘 모시자고 그러오? 동네를 웃기지 않겠소?” “좌우간 다른 말 할 게 없소. 부모하구 금옥은 우리 집에 데려 가겠소. 엄마, 가기요. 금옥아, 너도 가자.” 최사련은 구들에서 일어나면서 “아버지하구 작은며느리하구 토론했니?”라고 물었다. “양, 아버진 벌써 우리 집에 가 있소.” “야, 좋아라.” 금옥은 좋아라고 둘째오빠와 함께 가려고 서둘렀다. 그 말에 새금은 욕설을 퍼부었다. “더러운 영감쟁이, 저렇게 새끼들을 리간 놓고 살면 얼마나 잘 살겠는가?” 뒤이어 어머니와 여동생을 모시고 바깥에 나가는 상순의 뒤 잔등에 대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거지 같은게 부모를 더 잘 모실 상 하긴? 저 것들이 한 날 한 시에 싹 썩어 지었으면.” 상순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었지만 이상 아주머니라고 억지로 꾹 참았다. 그는 어머니를 부축해 수레에 모시고 여동생 금옥도 싣고 소서구를 떠났다. 상우는 멀리 떠나가는 어머니와 금옥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죽물도 마시기 어려운 세월에 형제간에 서로 부모를 모시자고 앞다투다니? 얼마나 효성스럽고 고상한 효자 형제들인고?                                          4. 가난과 무지가 낳은 악과 상순이네 식구는 불었는데 빚은 이자에 이자까지 자꾸 늘어만 갔다. 장학산 지주네 빚은 이자에 이자까지 하면 농사를 지어서는 한평생 다 갚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누나네 돈을 꾼 건 그래도 이자가 없어 다행이었다. 최사련은 궁리 끝에 술을 거르기로 하였다. 그는 막내며느리를 데리고 여 싹을 키우고 누룩을 만들어 가지고 술을 거루었다. 기준은 눈 가슴에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해왔다. 상순은 살림살이에는 관심이 없고 할아버지와 성칠 큰아버지의 포치대로 마을의 흥수, 학수, 성수 삼형제와 충국이네 형제, 고모사촌인 동길, 명길 등 10여명 청년들에게 권투를 배워준다, 날창찌르기를 배워준다 하면서 데리고 다녔다.       그 중에서도 전라도 남대 쪽에서 류리걸식하면서 여기까지 들어온 흥수는 상순의 꼬리를 물고 졸졸 따라다녔다. 상순이 가시할아버지 최구장 일행을 모시고 두만강을 건널 때 피뜩 흥수와 우연히 만난 적이 있어 서로 풋면목이나마 있었다. 흥수가 알아듣기 힘든 남대말을 하는데다가 생김새도 우습게 남북골에 우먹한 빈대눈이여서 마음에는 안 들었다. 하지만 어데 안착하지도 못하고 떠돌이하는 그가 불쌍해 상순은 아버지와 할아버지한테 비난사정을 해 마을에 받아주게 하였고 자기들이 붙이는 장학산의 밭도 몇마지기 떼서 흥수한테 농사지으며 살아라고 주었다. 그리하여 흥수 일가 삼형제는 상순 일가를 구명은인처럼 여기고 따랐다.       어느 하루, 상순의 어머니와 아내가 술을 거르다가 불을 너무 많이 때 웃새집 사랑채 나무구새에 불이 달리었다. “불이야!” “불이야!” 웃새집 식구들과 기준은 대야와 함지에 물을 담아 들고 나가 퍼 치었다. 다행히 불은 구새만 태우고 꺼지었다. 사련과 명옥 고부는 첫 가마에 35원을 번 후 웃새집 사랑채를 태울까봐 다시는 술도 거르지 못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섬나라 오랑캐 촌장 지학사는 상순을 없애 버릴 음흉한 계책을 꾸미며 이를 쁙쁙 갈아댔다. 악질지주 지학사는 마을에서 상순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눈에 든 가시처럼 미워하고 해치려고 들었다. 관동군은 간도 조선족청년 가운데서 강제로 특설부대 강박군인을 뽑았다. 지학사는 이번 기회에 상순을 제거하려고 악독한 마음을 먹었다. 그는 함흥촌 청년들 가운데서 상순을 보고 강제로 특설부대로 가라고 을러멨다. 상순은 일본 놈들의 특설부대에 가기 싫어 구실을 만들려고 궁리를 하였다. 무릎을 탁 치고 난 상순은 맵짠 겨울 추위에 집 문창에 구멍을 내고 엉덩이를 들이대 얼군 후 면도 칼날로 항문 왼쪽 편의 가려운 데를 자꾸 긁어 치질을 앓는 것처럼 부어나게 만들었다. 상순은 지학사를 찾아갔다. “지 촌장, 난 치질로 아파서 특설부대에 가지 못하겠소.” 지학사는 엉거주춤 서 있는 상순을 믿지 않는 눈길로 흘끔 쳐다보면서 “어데 보자. 정말 치질을 하는가?” 라고 하며 다가왔다. 상순은 “봅소.”라고 하면서 바지를 훌 내리우고 팅팅 부어 오른 엉덩이를 내밀었다. 팅팅 붓긴 항문을 보더니 지학사는 “에이, 안 되겠구나. 엉덩이가 팅팅 부은 걸 보냈다가 내 목이 날아 나라고.”라고 하였다. 상순은 살았다고 좋아하며 바지를 춰 입고 달아났다. 마을 청년들은 서로 가기 싫어 제비를 만들어 뽑았다. 하여 마을에서 상순을 따라 다니지 않던 김금산이란 청년이 뽑혀 특설부대에 나갔다. 며칠 후 상순은 믿을만한 흥수와 동길 등 몇몇 청년들을 데리고 밤중에 머나먼 성산 골 안에 가서 지주 집을 털어 양식을 탈취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나머지를 자기 집에도 얼마간 가져 왔다. 어느 날, 영자가 볼을 긁으면서 울었다. “엄마, 볼이 가렵소.” “응? 어디 보자.” 명옥은 갓난애를 업고 죽물을 끓이다가 그만 두고 영자를 안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이게 뭐냐?” 영자가 애고사리손으로 가렵다고 긁어대는 볼에 벌건 부스럼이 생기지 않았겠는가. 부스럼 끝을 누르니 고름이 질질 흘러 나왔다. “이걸 어쩌니? 애들이 셋이나 되니 등한했구나.” 사련도 다가와 보고 야단쳤다. “이게 홍진이라는 게 아니야? 잘 치료하지 않으면 큰 일 난다.” 기준은 사랑채 위방에서 “막내며느리, 무슨 일이냐?” 라고 물었다. “영자 볼에 벌건 큰 부스럼이 생기었습구마.” 며느리 말에 기준은 엉거주춤 내려와 영자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들고 보더니 “응, 일없다. 단침을 발라줘 봐라. 따뜻한 오줌을 발라줘 봐라.”라고 하였다. 명옥은 인차 손가락을 입에 넣어 단침을 묻혀 영자의 볼에 발라 놓았다. 바깥에서 상순이 들어오자 명옥은 영자를 안고 가서 볼을 보이었다. “얘를 진수해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지 않겠소?” 그러나 상순은 “고까짓 부스럼 때문에 무슨 놈의 병원! 병원의 의사란 일본 놈들은 몽땅 돈을 떼먹는 나쁜 놈들이오. 좋은 조상이 물려 준 오줌 약이 있잖소. 오줌이나 발라 주오." 하고 대수로워 하지도 않았다. 명옥은 영돌과 갓난애 선돌을 제쳐 놓고 대야를 들고 변소에 가서 따뜻한 오줌을 받아다 영자의 볼에 발라 주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영자의 볼에 난 부스럼은 낫지 않았다. 볼에 난 부스럼은 벌겋던데로부터 검붉어지면서 고름이 점점 더 많이 질질 흘러 내렸다. “안되겠다. 병원에 가 봐야지.” 명옥은 상순이 어디로 나간 틈을 타서 영자를 업고 진수해 쪽으로 허둥지둥 달리어 갔다. “서라!” 뒤에서 상순이 헐금씨금 쫓아 왔다. “어디로 가니?” 이제껏 한마디도 대들지도 않던 명옥은 물러서지 않았다. “애 볼에 고름이 나다 못해 썩어 떨어질 지경인데도 병원에 가지 말라오?” 상순도 고집을 부리었다. “집에 먹을 쌀이 없는데 일본 놈 의사들이 좋은 노릇을 하자고 병원에 가니?” 그래도 명옥이 집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래 죽는 애를 보고 있겠는가?” “이년이 집으로 못 가겠니?!” 상순은 세 귀 눈을 부라리면서 길옆의 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영자를 업은 명옥을 마구 후려쳤다. 영자는 잔등에서 울면서 “아버지, 왜 엄마를 때리오?” 하고 소리치었다. 상순은 들었는지 마는지 마구 후려치면서 명옥 모녀를 양을 몰듯이 집으로 몰았다. 명옥은 남편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면서 집으로 발길을 돌리었다. 그제야 상순은 나무 가지를 놓고 어디론가 일을 보러 떠나갔다. “다시 병원 소리만 해 봐라. 종아리를 분질러 놓겠다.” 상순이 떠나간 후 영자는 까만 포도알눈으로 명옥을 쳐다보면서 “엄마, 아버지 어째 엄마를 때리오?”라고 물었다. 명옥은 영자의 고름이 질질 흐르는 볼을 들여다보다가 수건을 가져다 닦아 주면서 “병원으로 간다고 그랜다.” 하고 대답하며 눈물을 줄줄 흘리었다. 어린 영자는 “그럼 병원으로 가지 말기요.”라고 말하였다. 명옥은 속으로 요렇게 귀한 애를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하게 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그녀는 용빼는 수가 없었다. 상순인들 자기 맏딸이 귀엽지 않았겠는가? 아니다. 그는 맏딸을 매우 귀해 했다. 다만 그의 머리에 의학지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의학지식이 없기에 미신을 믿으면서 무당에 의지해 영자를 구해보자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무지가 낳은 죄악이었다. 그는 함흥촌 동쪽에 있는 절당에 가서 무당을 데려 왔다. 무당의 말대로 마을에 나가 닭을 사다가 잡아 삶은 후 삶은 닭고기를 무당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무당은 명옥을 보고 영자를 업고 벽을 마주 해 구들바닥에 꿇어앉으라고 해 놓고 북채로 소고를 두드려대면서 굿을 하기 시작하였다. 무당은 영자를 업은 명옥의 잔등을 회초리로 쨕쨕 치면서 굿을 하였다. “여자귀신이면 다발을 틀어 이고 가고 남자귀신이면 짐바를 갖춰가지고 지고 가라.” 뒤이어 삶은 닭고기를 뜯어 사처에 뿌리면서 또 같은 굿을 해댔다. 그러나 굿은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였다. 영자의 볼에 난 부스럼은 곪아서 고름이 나다 못해 구멍이 나서 볼이 썩어 들어가면서 넌들넌들하게 되었다. 영자는 밤잠도 자지 못하고 볼이 아프다고 울었다. 부모로 생겨서 애 볼이 썩어나가는 것을 어떻게 차마 눈뜨고 본단 말인가? 명옥은 몇 번이고 병원으로 가보고 싶었건만 독고래 같은 상순이 무서워 가지 못하였다. (굿을 할 게면 그 돈으로 병원에 갔더라면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겠니?) 그녀는 원망하면서 가위를 얻어다가 영자 볼의 썩어 넌덜거리는 살가죽을 싹싹 베 버리었다. 순간 베 버린 구멍으로 빨간 혀와 이가 다 들여다보였다. 명옥이 죽물을 떠 넣으니 입으로 아니라 볼 구멍에서 죽물이 괴어 나왔다. 차마 눈 뜨고 애의 볼을 더 볼 수 없어 명옥은 어깨를 들먹이면서 눈물을 탐방탐방 쏟아냈다. 그녀의 가슴이 마구 뭉개지고 썩어 떨어지는 것 같이 아팠다. 영자는 병원 문 앞에도 가보지 못 하고 아파 발버둥질 치다가 숨지었다. 아, 가난이 죄악이고 무지가 죄악이었다. 병원에 갈 돈만 푼푼히 있었더라도, 조금만 의학지식이 있었더라도 병원에 갔더라면 다섯 살 밖에 안 되는 귀여운 영자를 이렇게 볼이 다 썩어 나가다 못해 온 몸이 다 썩어 처참하게 이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 야속하다. 야속해. 명옥과 상순은 영자를 붙안고 얼마나 대성통곡 쳤는지 모른다. 그들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영자를 동산마루에 가져다 파묻었다. 자그마한 봉분 앞에 쭈그리고 앉은 상순과 명옥은 오래도록 떠나가지 못하고 땅을 치면서 꺼이꺼이 울었다.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영자의 부스럼이 영돌한테 전염되었는지 영돌도 볼에 부스럼이 나면서 앓기 시작하였다. 그때도 명옥은 상순을 보고 “얘는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하기요. 양? 이래 뒀다간 또 죽이어 내 가겠소."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상순은 세 귀 눈을 부릅뜨고 떽 소리쳤다. “너 또 그 말이냐? 병원엔 무슨 병원? 돈 떼먹는 일본 놈 의사 좋은 노릇 하자고?” 설상가상으로 기준까지 말렸다. “병원에 가지 마오. 약 담배를 풀어서 먹이면 부스럼에 일 없다오.” “약 담배를?” 명옥은 눈이 떼꾼해졌다. “어린 애한테 어떻게 약 담배를 먹입둥? 형내라도 옆에 있었으면 물어보겠는데.” 명옥은 영돌을 둘쳐 업으면서 “내 영돌이를 데리고 국자가 형내한테 찾아가 보이겠소. 형내는 숱한 병으로 앓는 환자들도 치료했는데 제 팔촌동생을 치료하지 못하겠둥? 형내야 우리 돈을 떼먹을 사람이 아니지.” 하고 말하였다. 그 말에 상순은 마음이 좀 돌아 섰던지 주춤 멈춰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기준은 상순을 보고 “얘, 먼저 약 담배를 써보고 낫지 않으면 형내한테 가 봐라.”라고 말하였다. “예.” 상순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약 담배 가루를 가져다가 따가운 물 사발에 풀어 놓았다. 기준은 “애기네 애를 가져 오오.”라고 하였다. 명옥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시아버지 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어 띠를 풀고 잔등에서 영돌을 내리워 상순에게 넘기어 주었다. 영돌은 애고사리 손을 뻗쳐 어머니 쪽에 대고 흔들면서 “엄마, 난 약 담배를 먹지 않겠다. 아버지. 싫소.”라고 버둥댔다. 기준이 영돌의 가슴에 다리를 놓고 누르면서 안 먹겠다고 도리머리 질 하는 머리를 붙잡았다. 상순은 약 담배 물을 도리머리 질 하는 영돌의 입에 부어 넣었다. 명옥은 긴장한 얼굴로 애를 지켜보았다. “아, 그, 그, 큭…” 영돌은 두 다리를 가둥대더니 거시기가 꼿꼿이 일어났다. 영돌의 두 다리가 바둑거리다가 맥없이 쪽 펴지면서 바둑대기를 그만 두었다. 거시기도 옆으로 스르르 쓰러지는 것이었다. 기준은 손을 놓고 다리를 치우면서 “이젠 약 담배를 먹였으니 낫겠지.”라고 하면서 엉거주춤 일어나 위방으로 올라갔다. 명옥과 상순이 애를 끌어 당겨다 보니 숨이 없었다. 영돌은 상을 일그러 뜨린 채 조용히 그리고 영원히 잠들어 버렸던 것이다. 명옥은 영돌을 안고 “영돌아, 영돌아, 애고, 귀여운 영돌을 이게 무슨 일입둥? 병원에 보내자는데 이게 뭡둥?” 하고 대성통곡 쳤다. 그제야 상순은 머리를 푹 숙이었다. 그의 눈에서 뜨거운 후회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려 두 볼을 적시었다… 그 후 반달도 되지 않아 갓난애 선돌도 나오지 않는 명옥의 젖을 빨고 빨다가 굶어 죽고 말았다. 사실 명옥은 애를 연속 둘이나 죽여 내가다나니 속을 태울 대로 태워 젖가슴이 메말라 젖 한모금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남은 연속 애들을 셋이나 죽여 야단인데 소서구에 있는 새금은 문안은커녕 빗자루로 구들을 쳐대면서 쾌자를 불렀다. “봐라! 봐! 네 년 놈들이 시부모를 더 잘 모실 상 하더니 하늘이 생벼락을 쳐서 한 구들에서 셋이나 썪어졌지. 이제 네 년 놈들도 주둥이에 곰팡이 낄 게야. 어디 두고 보자…” 그러자 상우는 여편네를 가로 보며 욕하였다. “그만 두지 못하겠소? 형제간에 돕지 못할망정 그게 무슨 욕지거리요?” 새금은 남편을 흘기어 보면서 앵돌아져 줄 욕을 퍼부었다. “항상 동생, 동생 해도. 그 잘난 시동생은 우릴 형으로 보오? 우릴 쫄딱 망신시키지 않았습둥? 어떻게 우리하구 토론도 하지 않고 시부모를 마구 빼앗아가오? 남들은 우릴 시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않았다고 볼 게 아니오?” 상우는 “그만 두지 못 하겠소? 동네 영상하게.”라고 하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그래도 새금은 계속 도도도거렸다. “아침을 먹으면 저녁쌀이 없는데 내라고 시부모를 굶기고 싶어 그랬겠소. 쌀독이 텅텅 빈 살림살이를 어떻게 하라오? 내 원, 원통해 원, 못 살겠다.” 새금을 탓해 뭘 하랴? 당시 일본 놈들은 할빈 교외에 자리잡은 731공정에서 만든 전염병균을 비행기로 여러차례 동북각지에 살포해 실험했다. 그리하여 동만지구에도  몇해동안 전염병이 확산돼 수많은 무고한 백성들이 무리로 죽어나갔다. 이것이 바로 극악무도한 일본 놈들의 죄악이 아니고 무엇인가! 한편 지학사는 상순이네 연속 애 셋이나 죽어 나가자 속으로 상순의 기를 꺾어 놓은 것 같아 속이 시원해 하였다. 전번에 특설부대에 보내자 하다가 못 보냈는데 망하는 꼴을 보고 깨 고소해 하면서도 그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졸개들을 데리고 가서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으면서 개화장을 휘둘러대며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이 놈 집은 전염병 굴이야! 어서 새끼를 두르고 누구도 나오지 못하게 막아라!” “옛!” 졸개들이 달려들어 상순이네 사랑채를 돌아가면서 나무말뚝을 박더니 새끼줄을 몇 겹으로 줄줄 띄워 놓았다. 상순이 바깥에서 집으로 돌아와 세 길 네 길 날뛰었다. “어느 놈이 감히 우리 집 앞길을 가로 막아?!” 상순이 지학사에게 단말마적으로 달려들자 지학사의 졸개들이 앞을 막아 나섰다. 지학사는 뒤로 물러나며 개화장으로 상순을 푹푹 찌를 상을 하며 휘둘러댔다. “이 무지막지한 놈아, 네 여편네까지 전염병에 걸렸는데. 온 마을에 전염되면 어쩌니? 온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일 예산이냐?” 상순은 물러서지 않고 시비를 걸었다. “그래 우리 집 식구들이 드나들지도 못하게 하면 굶어 죽어란 말인가?” 지학사는 “그럼 전염병에 걸린 네 여편네만 집에서 나오지 못하고 넌 나 다녀도 된다.”라고 타협하였다. 지학사는 그 쯤 해 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상순도 온 동네에 전염병을 전염시킬까봐 아내를 나가지 말게 하고 달아 다니면서 먹을 걸 얻어다 먹이었다. 어느 날, 기준은 진수해에 내려가 목수 일을 해 번 돈 10원을 명옥의 손에 쥐어 주었다. “며느리, 이 돈으로 약을 져다 먹고 몸을 춰 세우오. 애들을 셋이나 죽이었는데 애기 네까지 약 한 첩 써 주지 못하고 죽일 순 없네.” “고맙습구마. 시아버님.” 명옥은 돈을 받아 쥐고 감격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었다. 그는 정지에 내려오자 남편한테 돈을 주면서 부탁하였다. “시어머니 앓아 누웠는데 약을 써 드리오. 시아버님이 팔소매 다 떨어진 웃옷을 입고 추워서 두 팔을 맞붙잡고 우둘우둘 떨면서 다니는데 차마 두고 보지 못하겠소. 옷감을 떼 오오. 내 웃옷을 지어 아버님께 드리고 싶소.” 그런데 새금이 시아버지 진수해에 가서 목돈을 벌었다는 소문을 어데서 들었는지 소서구로부터 달리어 내려 왔다. 그는 집 문을 떼고 들어서자마자 야단치었다. “시아버지, 돈을 벌어서 작은 며느리만 주구 어째 맏며느리는 주지 않습둥? 그래 맏며느리는 며느리 아닙둥?” 기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맏며느리를 내리쏘아볼 뿐이었다. 명옥은 남편을 보며 주라고 눈짓을 하였다. 순간 상순은 조선에서 자기를 업고 간도에 들어 와서 부모처럼 자기를 아끼던 형님과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그는 품에 넣었던 돈에서 절반 꺼내 아주머니한테 주었다. “엄마한테 약을 사다 주자고 했는데 가져가오. 아주머니를 미처 생각하지 못해 미안하오.” 펄펄 날뛰는 호랑이 같은 상순도 부모와 형님네 앞에서는 양처럼 순하였다. 위방에서 기준은 못 마땅한지 건 가래를 떼었다. 새금은 돈을 받아 쥐고 위방에 대고 입귀를 비쭉하더니 떠나 가 버렸다. 상순은 명옥과 토론하고 나머지 돈을 가지고 진수해에 가서 아버지 옷감을 사고 너머지 돈으로 어머니 약을 지어 가지고 왔다. 명옥은 손수 바늘로 한 뜸 한 뜸 기워 웃옷을 지어 시아버지한테 입혀 드리었다. 기준이 동네로 나가 막내며느리 자랑을 어찌나 하였던지 동네방네 노인들이 엄지손가락을 내두르면서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 집 막내며느리는 엄지 며느리오.” 명이 길어서일까 효녀여서 그럴까. 명옥은 약 한 첩도 사 먹지 못 하고서도 구사일생으로 전염병을 이기고 살아났다. 그러나 사련은 약을 달여 대접했지만 가석하게도 시시콜콜 계속 앓아 일어나지도 못하였다. 명옥은 병석에서 일어나자마자 누룩을 잡아서 술을 걸었다. 상순이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해오면 기준은 부엌에서 그 땔나무를 무릎에 대고 뚝뚝 끊어 아궁이에 넣고 불을 때었다. 명옥은 동네방네 노인들을 청해다 술을 대접하였다. 노인들은 술맛도 좋지만 인품 좋고 효성이 지극한 명옥의 마음이 고마워 모두들 술을 사가서 장사가 잘 되었다. 명옥은 술을 팔아 번 푼돈을 모아 가지고 시어머니에게 보약을 손수 지어다 달여 대접하였다. 사련은 누운 자리에서 명옥의 손을 꼭 잡고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막내며느리, 자네 효성에 난 죽어도 원이 더 없네.”        정성이 지극하면 고목에도 꽃이 핀다고 사련은 막내며느리 효성에 받들리어 다시 일어나 앉았다. 그녀는 허약한 몸으로 일어나자마자 머리를 쓰다듬더니 팔을 걷고 막내며느리가 말리는 것도 마다하고 술을 거르는 것을 거들었다.        상순이네는 집도 없이 큰집인 웃새집 사랑방에 들어 부모를 모시면서 살았지만 구차한 살림에 부모자식 간에 서로 끔찍이 사랑하고 고부 사이에 화목해 동네에 효자들이라고 소문이 높았다.  
76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5) 댓글:  조회:1904  추천:0  2016-11-10
                         12. 아, 장백산 기슭의 진달래        성칠은 최구철을 업고 유격대원들을 거느리고 협곡에까지 전략적으로 전이하였다. 상순은 큰어머니를 업고 협곡에 가서 한쪽구석 밑바닥에 내려놓고 자기 웃옷을 벗어 펴 놓고 그 위에 눕혔다.        진달래는 성칠의 잔등에서 아버지를 내리워 안고 피가 낭자한 얼굴에 볼을 비비며 흑흑 흐느껴 울었다. 성칠과 전우들은 모두 영용하게 희생된 최구철을 둘러싸고 머리를 숙이었다. 진달래는 자기 하얀 웃옷을 벗어 아버지 얼굴을 가리더니 꼭 끌어안고 흑흑 흐느껴 울었다. 진달래는 발딱 일어나 성칠과 함께 나무 가지를 끊어다 아버지 시체를 가리어 주었다. 유격대원들은 하얀 겉옷을 벗어 눈을 담아다 최구철의 시체를 하얗게 덮어놓았다. 유격대원들은 저마다 복수심으로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었다. 성칠과 진달래가 협곡 밑바닥에서 위쪽을 쳐다보니 좁은 물도랑만 한 틈으로 눈보라치는 하늘이 바라 보일뿐이었다. “놈들은 꼭 이곳을 지나 갈 거야. 이제 칠백 중대장과 동욱 중대장이 적들의 배후를 매복습격 할 때 우린 이 협곡에서 놈들을 저격하자!” 성칠의 말에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였다. 진달래는 희생된 아버지 때문에 너무 울어 팅팅 부운 눈에 피까지 지었다. 전투를 앞두고 피진 그녀의 깜장 눈에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리었다. “적들이 협곡 위에서 수류탄 같은 걸 내리 뿌리면 우리에게 불리하겠는데요.” 진달래의 근심에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과단성있게 말했다. “적들에게 들킨 눈 갱도를 계속 쓸 순 없어. 꼭 전술을 바꿔야 해. 한철주 놈은 여기 지리에 깜깜부지야. 그 놈이 어찌 우리가 이런 협곡에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느냐?” 한편 한철주는 텅 빈 밀림속의 밀영을 폭파하고 불살라 버린 후 갱도를 발견하자 속으로 못내 놀랐다. (이런 동굴로 쥐새끼처럼 신출귀몰하면서 이동작전했구나.) 그는 눈 함정에 빠진 놈들이 눈 동굴에서 뛰쳐나온 유격대에게 소멸당한 내막은 아직도 깜깜부지였다. (이상한 일이야. 놈들이 정말 응세나 가메다가 말한 것보다 엄청 많았단 말인가?) 오리무중에 빠진 철주는 일본 놈들을 끌고 다시 산골짜기 쪽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적들이 한창 자그마한 골짜기를 넘어 가다가 굳은 눈이 쿵 꺼지었다. 적들은 또 눈 함정에 빠졌는가 하여 비명을 지르며 아우성쳤다. 그런데 저게 뭔가? 꺼진 곳에 모여 가 보니 눈 동굴이 드러났다. 한철주는 군도자루를 잡았던 오른손으로 무릎을 탁 쳤다. “이때까지 속았구나!” 그제야 산등성이와 산골짜기에서 자기들에게 사격하던 유격대가 감쪽같이 사라진 비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눈 함정에 빠지었을 때 이 산등성이와 산골짜기 눈 동굴에서 사격하고는 눈 동굴로 신출귀몰하였구나.” 졸개들은 눈 동굴을 따라 유격대를 추격하자고 떠들었다. 그러나 철주는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실력을 보존하고 안전하게 밀림을 벗어나야 해.” 그는 장백산 기슭 밀림 속의 밀영을 폭파하고 불사른 사진과 애기 엄마의 수급이 있었기 때문에 더는 유격대와 싸우기 싫었던 것이다. 장백산 기슭의 산골짜기마다 호랑이 아구리 같았고 저승 같았고 무덤 같아 질겁했다. “눈 동굴을 폭파해버리고 산골짜기 막바지 쪽으로 에돌아 철퇴하라! 우린 해 지기 전에 큰 함정 같은 밀림을 빠져 나가야 해.” 그는 하얀 장갑을 휘두르며 명령하였다. 꽝! 꽝! 꽝! 적들은 작은 산골짜기 눈 동굴을 폭파해 버리었다. 땅! 땅! 땅! 이때 뜻밖에도 밀림 서남쪽과 동남쪽에서 유격대가 나타나 적들의 배후를 습격 해왔다.       "사격!"       한철주는 절망에 찬 고함을 질렀다.       그는 눈 위에 납작 엎드려 중얼거리었다.        “이건 또 뭐야? 금방 동굴로 달아난 놈들을 족쳐 버리었는데 남쪽에서 또 웬 놈들이야?”        칠백과 동욱이 영솔한 유격대 두개 중대는 밀림에서 아름드리나무들을 은페물로 삼으면서 맹렬히 사격하며 맹호마냥 적들에게 덮쳐 들었다.        “전우들 원수를 갚자!”        땅! 땅!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자!”        땅! 땅! 땅!        “일본 주구 한철주 놈을 생포하자!”       구호소리, 총소리,  비명소리, 아우성소리 뒤범벅이 돼 밀림에 울려퍼졌다.       (저 귀신 같은 놈들이 어떻게 내 이름까지 알아?)       한철주는 새하얀 옷을 입은 유격대원들이 백호처럼 덮치어 오는 것을 보고 장백산 밀림에서 유격대의 손에 죽고 싶지 않았다. “3중대, 엄호해! 1중대와 2중대는 날 따라 산골짜기로 철퇴!” 한철주가 일어나 철퇴하려 하였다. “보고!” 철주가 돌아보니 1대대장이었다. “웬 일인가?” 1대대장은 난처해하였다. “보고, 1중대는 거의 다 죽고 둬 개 분대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 많은 유격대 놈들을 어떻게?” 철주는 이를 악물고 대대장의 귀쌈을 찰싹 갈겼다. “빨리 유격대를 막지 못할까?! 네 놈이 그러고서도 일본 섬나라 오랑캐냐?” 대대장은 담대하게도 철주의 귀쌈을 찰싹 갈기면서 눈깔을 부라리었다. “네놈 조선 노예 놈 따위가 감히 우리 황군을 모독해?!” 철주는 군도를 빼들며 을러멨다.  “감히 상관 명을 거역해?! 총살할 테야!” “총살해! 조선 노예 새끼야!” 대대장이 대들었지만 철주는 용하게 참아냈다. “이제 산에서 내려가면 네놈부터 군법에 의해 처단할 테다!” 철주는 군도를 칼집에 되 넣으며 1중대장을 불러 고래고래 고함쳤다. “빨리 엄호해!” “하이!” 적들은 1중대 엄호하에 간신히 산골짜기 막바지까지 도망치었다. 그 놈들이 하얀 물이 파먹은 물곬 우로 뛰어 넘을 때었다. 꽈르릉! 꽝! 꽝! 폭발 굉음과 함께 물곬 양편 협곡이 우르르 무너졌다. 숱한 적들이 협곡 아래로 거꾸로 처박혔다. “아,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구나!” 한철주는 절망에 빠지었다. 그 놈은 군도를 빼들고 하늘에 휘두르며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철퇴!” 적들은 협곡을 건너지 못하고 또 밀림 속으로 달아났다. 그런데 몽땅 하얀 옷을 떨치어 입은 유격대원들은 칠백 중대장과 동욱 중대장, 인삼 중대장의 영솔 하에 서남쪽과 동남쪽, 서쪽에서 포위권을 좁히며 백호처럼 덮쳐들었다. 사기가 땅바닥에 떨어진 적들은 밀림 속 산지사방에 흩어지면서 달아났다. 이때 협곡을 폭파해 버리고 빠지어 나간 성칠 대장은 진달래 중대장과 함께 북쪽과 동쪽으로부터 적들을 습격하였다. 혼비백산은 철주 놈은 군도를 빼 들고 패잔병들을 데리고 혈로를 뚫고 북을 바라고 도망쳤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철주 놈이랑 사경에서 벗어났는가 하였더니 북쪽 밀림에서 한 50미터 거리를 두고 유격대를 거느린 성칠 대장과 딱 마주쳤다. 성칠은 권총을 겨누면서 고함쳤다. “한철주 놈아, 날 알아보겠느냐? 투항하면 살려준다!” “퉤! 내 손에 죽어 봐!” 한철주 놈은 옆에 선 놈의 손에서 수류탄을 빼앗아 뿌리었다. “꽝!” 요란한 굉음과 함께 아름드리나무 가지들에서 눈가루가 쏴르르 쏟아지었다. 뚜루룩, 뚜루룩! 일본 놈의 기관총수가 눈 둔덕에 엎드려 성칠 대장 쪽에 몰 사격을 가하였다. 성칠은 눈 둔덕에 엎드려 상순의 손에서 사냥총을 받아쥐어 기관총수 놈의 대가리를 겨눠 방아쇠를 당겼다. 땅! 명사수의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기관총수 대가리가 박살났다. 뇌 장과 뻘건 피가 튕기며 허연 눈을 더럽혔다. “야, 성칠 놈아! 담이 있으면 1대 1로 결투를 벌려보자! 엎뎌 있지 말구 어서 나오지 못해?!” 철주 놈은 미친 듯이 고함치며 기관총을 쏴대며 성칠한테로 덮쳐 왔다. 상순은 큰어머니를 업고 뒤로 철퇴하였다. 그때 옆에 섰던 3중대장 놈이 기관총을 빼앗아 쏘며 “한 련대장! 빨리 도망치쇼!” 하고 고함쳤다. 3중대장 놈의 맹렬한 기관총소사에 하옥을 업은 상순의 발부리에서 눈꽃이 튕겨 오르면서 푱! 푱! 푱! 비명 소리를 냈다. 상순은 업고 달리던 하옥을 내리워 눕히고 그 우에 덮으며 엎드리었다. 푱! 하옥은 머리에 흉탄을 빗맞았다. 하옥의 손에 쥐었던 권총이 눈 위에 뚝 떨어지었다. 상순이가 웬 일인가고 머리를 돌리어 큰어머니를 쳐다보았다. 하옥의 머리에서 피가 쿨쿨 솟구쳤다. 상순은 권총을 주어 품에 간직하며 대성통곡 쳤다. “큰어머니! 큰어머니!” 그러나 하옥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검둥이는 자기 주인에게 기관총을 쏜 3중대장 놈에게 맹호처럼 덮쳐갔다. 검둥이는 적 3중대장 놈의 뒤로 덮쳐 잔등을 타고 올라가 목을 꽉 깨물었다. 3중대장 놈은 목이 분질러 져 뒈졌다. 허나 검둥이는 3중대장 놈의 목을 꽉 깨문 채 놓지 않았다. 이때 뒤에서 덮쳐나온 7소대장 놈이 검둥이에게 죄악의 총을 쏘았다. 땅! 검둥이는 “깨갱” 비명을 지르며 푹 쓰러지었다. 그러나 검둥이는 죽어 가면서도 3중대장 놈의 목을 꽉 문채 놓지 않았다. 성칠도 달려와 하옥을 붙안고 눈물 흘리며 애타게 불렀다. “여보! 여보! 정신 차리오.” 그러나 피가 낭자한 하옥의 얼굴은 굳어지었고 영영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였다. “야, 이게 웬 일이오?” 성칠은 하옥을 내리어 놓고 권총을 들고 “검둥아! 내 검둥아!” 하고 고함치더니 노기충천한 눈길로 적들을 쏘아보았다. “사격!” 유격대원들은 적들에게 복수의 불길을 안기었다. 상순은 나무 가지로 큰어머니 시체를 가리워놓고 눈물에 젖은 눈으로 마구 덮어 놓았다. 적들의 2중대 중대장과 몇몇 소대장 놈들이 사격하며 엄호했다. 그 틈을 타 몇몇 놈들이 한철주 놈을 보호하며 밀림 쪽으로 도망쳐 버렸다. 진달래는 나무 가지를 구르며 나무와 나무사이를 날듯이 뛰어 나가 기관총을 쏘는 적 7소대 소대장 놈에게 돌팔매를 안겼다. 딱! 7소대 소대장 놈은 대갈통이 빠개져 푹 꼬꾸라졌다. 그때 상순이 사냥총을 버리고 총알이 빗발치는 밀림 속으로 뛰어 나가 기관총을 노획해 적들에게 돌려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뚜루룩, 뚜루룩! 총알은 도망치는 적들 무리로 쓸어 눕히었다. 그러나 기관총을 쏴본 적 없는 상순이기에 방아쇠를 계속 당기는 바람에 후충격파에 견디지 못해 기관총구는 점점 하늘로 쳐들어지었다. “상순아, 기관총대 낮춰!” 한철주는 도망치면서도 기관총소사를 하는 상순을 피뜩 돌아보며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뭐, 상순, 김호라더니. 네놈 아무 때든 내 손에 죽어!” 성칠은 권총을 휘두르며 고함쳤다. “한철주 놈을 생포해라!” “돌격!” 성칠 대장은 유격대원들을 이끌고 한철주 등 일제 침략군 놈들을 추격하였다. 한철주 놈은 해질 녘에야 패잔병 한개 중대의 병력을 데리고 겨우 포위권에서 벗어나 영월구와 몇 십리 떨어진 들판에 이르렀다. 그는 상가집 개처럼 헐레벌떡거리더니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머리에 댔다. 옆에서 2중대장이 권총을 빼앗았다. “왜 이래?” 한철주 놈은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두개 중대 병력에 별동대 야마모도 소장까지 잃었는데 무슨 면목으로 사령부에 돌아간단 말인가?” 그러자 수길이 말리었다. “장병들이 많이 살상당했지만 우린 유격대 밀영과 갱도를 폭파해 버렸고 진달래 년의 대가리도 떼 오지 않았습니까? 이게 혁혁한 전공 아니고 뭡니까? 스쯔끼 국장 말대로 우린 백 사람을 잘못 죽이더라도 유격대를 한 놈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한철주 놈은 머리를 맥없이 끄덕이었다. 그는 무슨 생각이 피뜩 떠올랐던지 무릎을 탁 쳤다. “아차, 잊었네. 밀림에서 총알에 대가리를 맞아 죽은 게 분명 성칠 놈의 여편네었네. 그년의 머리를 떼 와야 했는데, 쯧쯧쯧.” 수길도 머리를 끄덕이었다. “나두 봤습꾸마. 그때 우리 대가리도 지키기 바쁜데 언제 그년 대가리를 떼올 새 있었습둥? 저기 계집유격대 대장 대가리 둘이나 있으면 됐습꾸마. 대신 가져다 바치면, 헤헤.” 그 말에 긴장이 풀렸는지 철주 놈은 눈 위에 털썩 들어앉았다. 적들이 금방 좀 쉬려고 할 때다. 어둠이 깃드는 산기슭 쪽에서 또 소란스러워졌다. “또 뭐야??” 한철주 놈이 소스라쳐 일어났다. 그때 수길이 몇 몇 졸개들과 함께 웬 놈을 끌고 왔다. “누구냐?” “영월구분주소 소장입니다.” 한철주는 깜짝 놀랐다. “자넨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 왔어?” 소장은 풀썩 무릎을 꿇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어제 밤에 유격대 놈들에게 분주소가 날아 났습니다. 그래 유격대를 피해 한 련대장네 관동군을 찾아 왔습니다. 나를 관동군에 받아 줍소. 분주소 소장 질을 못하겠습니다. 언제 또 신출귀몰하는 유격대 습격을 받을지 누가 압니까?” 한철주 놈은 소장 놈의 귀쌈을 찰싹찰싹 갈겼다. “제길 할, 밥통 같은 놈! 유격대 놈들한테 얼이 다 빠졌군.”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리인지. 사실 성칠 대장이 밀림에서 일본 놈들의 별동대와 관동군을 매복 습격하는 기회를 타 용천 대장은 북만 소대를 거느리고 영월구분주소를 기습하여 분주소를 폭파해 버리고 경찰 일여덟 놈을 살상했던 것이다. 하하하. 꼴 보기 좋다, 밀림과 영월구에서 매복습격과 기습당한 일본 놈들의 꼬락서니를 봐라. 한편, 성칠은 뉘엿뉘엿 지는 해를 올리다 보고 그만 두었다. 그는 전우들과 하옥의 시체를 하얀 눈으로 덮고 그 위에 나뭇가지를 얹어 시체 자리를 표시해 놓았다. 이 땅의 초부들이여, 이 땅을 무심히 밟지 말라. 이름 모를 항일선렬의 넋이 소리없이 그 곳에 누워 있을지 누가 알랴. 어느 산골짜기 바위돌을 무심히 차지 말고 아무 나무나 마구 찍지 말라. 그 돌 밑에나 나무 밑에 우리 항일렬사가 묻혀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하얀 눈에 뒤덮인 무덤에서 빨간 피가 괴여 흘러나왔다. 진짜 눈에 매화가 핀듯하고 밀림에 연분홍 진달래가 피어오르는 상 싶었다.         아, 장백산의 진달래, 그대는 정녕 우리 민족 항일열사들의 선혈로 물들어 피어난 생명의 꽃이어라. 진달래는 항일 투사들의 혼을 상징하는 불멸의 꽃이며 눈보라 치는 밀림에 남긴 항일투사들의 발자국마다에 피어난 항일투쟁 역사의 발자취이다.         이제 매서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새 봄날이 오면 밀림에는 수많은 진달래가 피어 온 원시림을 연분홍빛으로 곱게 물들이리라.                                         제18장 여명의 전야                                                         1. 교하 여관        함흥촌 상공에는 먹장구름이 침침하게 내리 드리워 있었다.        항일유격대의 매복습격전과 기습을 받은 일본 관동군 놈들과 경찰 놈들은 이를 갈며 미친 듯이 항일유격대 근거지를 토벌하고 살인과 약탈, 방화를 거리낌 없이 하였다.       함흥촌도 예외 없이 일제의 쇠 발굽 밑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지난 겨울에 상순은 할아버지의 포치에 따라 형내와 충국을 데리고 원시림에 들어가 항일유격대를 도와 싸우고 부상병들을 치료해 준 후 마을로 가만히 돌아왔다. 그는 전장에서 하옥의 권총을 건사했는데 유격대에 바치지 않고 가만히 품속에 넣어 가지고 돌아 왔던 것이다. 그는 집 식구들과 형내, 충국에게도 말하지 않고 궁리하던 끝에 어둠의 장막을 빌어 권총을 기름종이에 싸서 자그마한 오지그릇에 넣어 가만히 웃새집 사랑채 천정구멍 덮개를 열고 중 천정 우에 감춰 두었다. 병완과 기준은 조용히 상순을 불러 그간 산에 갔던 얘기를 들었다. “참, 잘했어. 일본 놈들 콧대를 여지없이 꺾어 놔야 해!” 상순에게서 하옥의 비보를 듣고 병완은 슬퍼 눈물까지 찔끔 흘리었다. 기준은 팔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아주머닌 우릴 얼마나 보살폈다고. 참, 비통하구나.” 그들의 말을 엿듣던 온 집 식구들은 모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지새금은 뒤에서 근심했다. “저 생원 때문에 이 집안 큰 일 나겠다. 큰시아버지 유격대에 갔으면 됐지 생원까지 삐칠 게 뭐요? ” 명옥은 그 말에 속이 걸리는 데 있었지만 큰집과 화목하게 살려고 그만 두었다. 영자는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 목을 끌어안고 칭얼거리었다. “아버지, 어데 갔댔어?” “응? 장사하러 갔지.” 상순은 영자를 안고 뽀뽀해 주었다. 이튿날 상순은 또 약 담배 장사하러 떠났다. 하긴 그가 약 담배장사를 하지 않으면 집식구들은 입에 거미줄을 칠 지경이었다. 유격대에 쌀과 약, 소금을 사가느라고 약 담배장사를 해 번 돈을 다 쓰고 장학산의 빚을 물지도 못하였다. 게다가 패용천산 앞의 논밭이 물에 쫄딱 밀리어 벼를 얼마 거두지도 못했는데 손호표 지주는 소를 죽인 앙갚음으로 소작료로 6할이나 가져가 버렸던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 명옥은 본가 집에 가서 좁쌀 세말을 가져다 온 집식구들이 죽을 쒀먹으면서 연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순은 충국을 데리고 먼저 공석촌으로 갔다. 월금 누나네 집으로 가면서 둘째매형을 보고 돈을 꿔 달라고 통사정을 들이대었다. 둘째매형 박범석은 결혼 때 인사도 받지 않은 가시아버지는 미워했지만 사내대장부 같은 막내처남만은 좋아 하였다. 그는 농궤 자물쇠를 열고 돈을 꺼내 주면서 “옛소. 200원이오. 가져다 돈을 많이 버오.”라고 하였다. 월금은 장사하러 떠나는 막내오라비를 보고 얼마나 대견하였는지 몰랐다. (조선에서 넘어와 오랑캐 령을 넘을 때만 해두 바지에 오줌을 싸더니. 쯧쯧, 저게 언제 저렇게 커서 장사하러 다 다니니?) 그녀는 동구 밖에까지 따라 나와 허리춤에서 돈을 몇 입 꺼내 막내오라비에게 슬쩍 건네주었다. “이걸 가지고 가서 길에서 배고플 때 뭘 좀 사먹어라.” “고맙소. 누나.” 상순은 둘째누나가 준 돈까지 염낭에 깊숙이 간직하고 나서 진수해 큰매형네 집으로 갔다. 상순의 큰 매형 최경인은 조선에서 들어와 부모를 모시고 진수해에서 서당을 차리고 애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상순은 큰 매형의 집에 들어 가 먼저 최구장 사돈어른 양주에게 인사를 드리고 큰 매형에게 찾아 간 사연을 말하였다. 경인은 아내와 상의하고 600원이나 척 내 놓았다. "막내처남 어쩌다 돈 꾸러 왔는데 도와 줘야지. 이건 우리 일가의 명줄과 같은 돈이네. 아무튼 가지고 가서 주의하면서 돈을 많이 버오." 어금은 자기 막내오라비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남편이 고마웠다. “감사하오.” 상순은 큰 매형이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고마웠다. 그는 최구장 사돈어른으로부터 돌아가면서 인사하고 떠나가려고 하였다. 그때다. “외삼촌!” 학교에서 돌아온 근덕은 상순을 보고 반겼다. 근원과 해옥 등 조카들이 우르르 모여와 반겼다. 그들은 모두 멀쑥하게 생긴 작은 외삼촌을 좋아했다. 상순은 외조카들을 일일이 안아 주면서 “내 이제 돈을 많이 벌면 엿 사탕을 사다 줄 게.”라고 말하고는 집을 나섰다. 경인은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따라 나와 충국을 곁눈질하면서 “처남, 장사할 때 누구나 너무 믿지 마오.”라고 신신당부하였다. “양, 근심하지 마오. 얘는 내 친구요.” 상순은 인사를 마치자 진수해역으로 나갔다. 상순은 충국을 데리고 진수해역에 나갔다. 그들은 기차를 타고 아주 순조롭게 명천과 우시장에 달려 나갔다. 그들은 약 담배 장사꾼들에게서 약 담배를 사자마자 숨도 돌릴 새 없이 기차를 타고 곧추 귀로에 올랐다. 그들은 기차를 타고 교하에 가서 내렸다. 상순은 충국을 데리고 교하 시내를 돌다가 역 부근의 한 여관에 들어갔다. 여관의 뚱뚱한 주인은 그들과 짐을 흘끔거리었다. “무슨 장사를 하오?” 상순은 “약장사를 하오.”라고 하였다. 충국은 손으로 상순을 툭툭 치면서 사실대로 말하지 말라고 눈짓하였다. 여관 주인은 불신에 찬 충국의 거동을 보더니 저쪽으로 가 버리었다. 충국은 상순을 보고 나직이 꾸지람 하였다. “왜 약장사 말을 하오? 저 사람이 일본 놈들이라도 데리고 오면 어째?” 그러나 상순은 “감히? 가만 놔두지 않을 테야.”라고 큰소리를 탕탕 쳐댔다. 충국이 근심하는데도 상순은 “교하의 약 담배장사꾼을 하나도 모르는데 여관 주인 보고 도와달라면 어떨까?” 하고 물었다. 충국은 “형, 어쩌자고 그래?”하고 놀라했다. 상순은 “여관 주인이 여관까지 메고 달아나겠니? 일이 뒤틀려지면 여관이라도 팔아서 내라고 할 판이지.”라고 하였다. 그 말에 충국도 “글쎄 말이오.” 라고 하며 상순의 말을 따랐다. 상순은 충국을 데리고 짐을 들고 여관 주인이 든 방으로 찾아 갔다. “무슨 일이오?” 여관 주인은 흘끔거리며 상순이 손에 든 짐을 쳐다보았다. 상순은 여관 주인의 방에 들어가 걸상에 앉았다. 그는 집안에 주인만 있는 것을 보고 조용히 “주인, 큰 장사를 해보지 않겠소?” 하고 속뽑이를 해보았다. “무슨 장사를?” “글쎄 우리와 손을 잡고 장사할 생각이 없소? 여관방만 차려서야 어떻게 갑부로 되겠소?” 상순이 바투 들이대자 주인은 “무슨 장사인지 돈만 벌면 해보지.” 라고 하였다. 상순은 짐을 내밀면서 “약 담배를 팔아 주오. 그럼 한몫 톡톡히 주지.”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였다. 주인은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약 담배?! 일본 순사 놈들한테 들키면 목이 날아나!” 상순은 황급히 손으로 주인의 입을 막고 바깥을 살피었다. 이윽고 머리를 돌리고 물었다. “하겠소? 안 하겠소?”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리를 숙이고 궁리하였다. 한참 후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헛일 삼아 해보기오.” “당신은 여기 면목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약 담배를 파오.” “알았소. 내 팔아보지.” 주인이 대답하자 상순은 약 담배 짐을 내보이고 맡기었다. 그는 안전을 고려해 다른 여관에 자리를 옮기었다. 며칠 후 상순과 충국은 그 여관에 되돌아가 주인을 찾았다. “주인, 약 담배 값을 주오.” 주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잖아도 자네들을 찾자고 했네. 전날에 약 담배를 팔러 다니다가 순사 놈한테 들키어 약 담배 짐을 던지고 달아났네.” “뭐라고? 약 담배 값을 내 놔. 이 놈!” “말을 듣고서도 떠들어? 떠들면 순사들이 다 잡아 가! 미친 놈들, 잡혀 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인줄 알아라. 흥!” 상순은 열통이 터지었지만 용빼는 수가 없었다. 충국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어쩔 줄 몰라 했다. “내 뭐라던. 이런 놈을 믿고 어떻게 장사하니?” 상순은 주먹을 연신 날려 주인의 면상을 장마당이 되게 만들어 놓았다. “네깐 놈이 감히 우리 돈을 떼먹어? 어째 여관에 불을 콱 지르래?” 그 말에 주인은 혼비백산하였다. “불을 질러? 순사 불러야겠어.” 그 놈은 피 터진 코를 손으로 문대며 옆방에 대고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얘들아! 빨리 순사 불러! 이 놈들 여관에 불을 지르겠대!” 옆방에서 여편네가 소리쳤다. “살인이야! 사람 살려요!” 상순이 피뜩 바깥을 내다보니 중절모를 쓴 웬 사내가 들이 닥쳤다. “봐라! 순사 왔어. 이 놈들, 어디로 달아나?” 여관 주인이 우쭐거리었다. 바빠 맞은 상순은 충국을 돌아보면서 “뛰어라!” 라고 고함치며 문 밖을 뛰어 나갔다. 그는 몸을 날려 울안에서 덮쳐드는 순사 놈을 발길을 날려 걷어찼다. 순사 놈도 만만찮은 놈이어서 옆으로 슬쩍 피하면서 권총을 빼들었다. 상순은 옆으로 몸을 살짝 낮추면서 재차 발길을 날려 그 놈의 권총을 차 떨어뜨리었다. 충국이 뒤따라 나오며 권총을 주어 들었다. 그런데 땅 밑에서 솟아나온 듯이 순사 놈들이 대여섯이 호각을 불며 뒤쫓아 왔다. 상순은 충국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아 제일 앞에서 쫓아오는 순사 놈을 겨눠 한방 갈겼다. 땅! 총소리와 함께 그 순사 놈이 가슴을 붙잡고 꺼꾸러졌다. 다른 순사 놈들은 대갈통을 싸쥐고 부랴부랴 도망쳤다. 상순과 충국은 한참 이 골목 저 골목 빠져 달아나다가 뒤따르는 놈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헐떡거리며 멈춰 섰다. 상순이 권총을 품속에 걷어 넣는데 충국이 두덜거렸다. “에이 참, 약 담배 값도 찾지 못하고 이게 뭐야?” 상순은 대수롭지 않아 하며 너털웃음까지 웃었다. “허허허, 야, 이 놈아, 목숨까지 잃을 수야 없지 않느냐? 이후에 여관 주인 놈을 찾아가 약값을 받아내자.” “초상집 개 신세 됐구먼두, 너털웃음이 나와? 흥!” “목숨만 있으면 돈이야 아무 때건 벌겠지.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약 담배 값 대신 권총 한 자루 벌었으면 본전은 됐어.” 충국이 손을 내밀었다. “권총은 내 주은 거야.” 허나 상순은 희죽이 웃으며 충국의 손을 탁 쳐버렸다. “내 순사 놈을 발길로 차지 않았더라면 권총은커녕 둘 다 황천객이 된지 오랠 거 아냐?!” 그들은 마주 보더니 너털웃음을 웃으며 그 길로 교하 아래 산 기슭까지 달아났다. 거기서 밤중에 목재를 실은 짐차를 타고 한 많은 교하를 떠났다.  
75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4) 댓글:  조회:1963  추천:0  2016-10-27
        10. 밀림속의 눈함정       일본 관동군 놈들은  사흘 후 밤중에야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원시림 속에 철 발굽을 들여 놓게 됐다. 다행히 두꺼운 눈이 떵떵 굳은 덕에 순조롭게 밀림 속의 밀영 부근에 접근하게 된 것이었다.       어둠 속에 눈을 하얗게 들쓴 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르는 밀림, 가없이 펼쳐진 눈 덮인 밀림에서는 눈보라가 윙윙 사납게 울부짖고 있었다.      웬 일인지 유격대는 사흘 전에 두번 기습하고는 줄곧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철주는 그것에 더 불안했다. 그는 눈에 반쯤 메워진 깊은 산골짜기를 바라보았다. 산골짜기 막치기는 눈보라 치는 수림 속에 가리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가 골짜기 굳은 눈 우에 올라가 발로 탕탕 굴러 보아도 눈이 어름처럼 떵떵 굳어 빠지지 않았다. 피뜩 보니 무슨 눈 우에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히어 있었다. (유격대가 활동하던 곳인가? 사냥꾼들이 다닌 발자국일까?) 착잡한 생각을 하던 그는 대오를 멈춰 세우고 앞에서 길안내를 하는 응세를 불렀다. 응세는 뒤로 달려와 허리를 굽실거렸다. 철주는 군도자루를 잡고 물었다. “아직도 유격대 밀영이 먼가?” “이 골짜기를 곧추 건너가면 한 3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쪽 골짜기 막바지로 에돌아가려면 얼마나 먼가?” 응세는 “한 10여 리는 에돌아야 할 겁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철주는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래 이 산골짜기를 이전에도 건넜는가?”        응세는 두루 살펴보더니 눈 우를 손가락질 하였다. “예. 이전에도 우린 사냥꾼으로 위장해 가지고 여길 건너가서 밀림속의 밀영을 정찰하다가 발각됐지요. 난 이 골짜기에 굴러 떨어졌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 때도 밤중에 여기 굳은 눈을 밟고 산골짜기를 건넜습니다. 그런데 재수 없이…” 응세는 하마터면 자기가 유격대에 나포된 말을 해버릴 번 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용케 삼켜 버렸다. 그는 한철주의 눈치를 흘끔 훔치어 보면서 중얼거렸다. “백 소조장도 여기 눈을 건너 정찰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런 불길한 소리 하지 말라. 건너 봐.” “예.” 응세는 말을 마치자 골짜기에 덮인 눈 우에 올라가 발로 눈을 탕탕 굴러 보았다. “보세요. 말을 타고 건너가도 꺼지지 않을 겁니다. 건너 오십시오.” 한철주는 무슨 일이 떠올랐던지 응세를 손짓해 불렀다. “이리 오게.” 응세가 헐금씨금 올라오자 나직이 물었다. “김호랑 이상한 거동이 없던가?” “없습구마.” “음.” 한철주는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 저었다. “경각성을 늦춰선 안 돼. 돌다리도 두드려 보면서 건너라고 했네. 김호랑 불러다 앞세우게나.” “예.”        한철주는 산등성이를 따라 걷던 놈들에게 명령했다.  "김호(김상순)랑 응세랑 앞세우고 눈 위로 산골짜기를 건너라!" 상순은 사위를 둘러보았다. 큰아버지와 용천 대장의 결정에 따라 유격대는 여기 협곡 밀림에서 매복습격 전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놈들은 순순히 밀림 속의 밀영에까지 발을 들여 놓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산골짜기를 두루 여겨 보고나서 응세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형내와 충국의 허벅다리를 툭툭 쳐놓고 주먹을 쥐어 보였다. 싸울 준비를 하라는 신호였다.       상순은 젤 앞에서 고의로 발을 쾅쾅 구르며 걸어나갔다. "봅소. 눈이 떵떵 굳어서 여기로 건너도 됩니다. 언제 10리나 에돌아가개." 형내와 응세가 깊은 산골짜기를 내려가 굳은 눈을 밟으며 한 열 미터 들어가도 아무 일도 없었다. 일제 관동군은 산골짜기를 곧추 건너지 않으면 멀리 에돌아야 하였다. 한철주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군도를 빼들어 앞으로 홱 휘두르며 나직이 나직이 명령하였다. “천천히 전진.” 숱한 적들은 산골짜기를 우르르 쓸어 내려가 총칼을 빼들고 굳은 눈을 밟고 달려 나갔다. 쿵! 쿵!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굳은 눈이 푹푹 꺼져 버렸다. 상순이랑 응세랑과 함께 눈 함정에 빠져 몇 길 되는 눈 속에 사라지고 말았다. 뒤따르던 놈들이 “함정!” 하고 되돌아서려 했다.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쿵! 하늘땅이 뒤번지어 지는 소리가 나더니 어지간한 집 울안만큼 눈이 단꺼번에 풀썩 꺼졌다. 또 십여 명의 놈들이 눈 함정에 빠져 없어졌다. “멈췃!” “빨리 산골짜기를 벗어나라!” 한철주가 고함칠 때었다. “사격!” 고함소리와 함께 산골짜기 맞은편 눈속 여기저기에서 자지러진 총소리와 함께 섬광이 번쩍이었다. 적들은 헛총질을 하면서 맞불질 하였다. 그러나 눈 동굴에 은폐해 쏘아대는 유격대원들의 몰 사격에 적들은 삼대 쓰러지듯 하였다. 원래 성칠과 진달래는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협곡막치기로부터 산골짜기를 따라 눈 동굴을 파고 내려와 여기에 눈 바닥 밑으로부터 올리 큰 함정을 군데, 군데 파놓았던 것이다. 눈 위에 어지러운 발자국이랑 그대로 굳어 있어 근본 눈 함정을 알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스무 길이나 되는 새까만 눈 함정에 빠진 상순이랑 미처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을 때었다. 새까만 눈 함정 밑바닥에 가로 난 눈 동굴에서 유격대원들이 총을 쏘면서 뛰어 나왔다. “총을 쏘지 마십시오. 우리 셋은 조선 백성들이오.” “조선 백성?!” “어느 게 백성이고 적인지 어떻게 알아?!” “조선백성은 소리 쳐라!” 유격대는 총을 쏠 대신 총창으로 마구 찔렀다. “내 조선 백성이오” “나도!” 상순은 충국에게 한어로 소리치라고 고함치었다. 그리하여 충국까지 다른 동굴에 끌리어 들어갔다. 나머지 응세랑 가메다는 유격대원들이 휘두르는 란도와 날창에 개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다른 큰 눈 함정에 빠진 일본 놈들도 함정 밑바닥에 쓰러지었다가 일어나자마자 총창에 찔리어 개죽음을 당하였다. 함정 밑바닥 여기저기 난 동굴에서 일본 놈들을 총으로 쏘고 총창으로 찌르는 고함소리와 적들의 애처로운 비명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순식간에 수십 명을 잃은 한철주는 눈 함정 밑에 숱한 유격대가 있는 줄도 모르고 맞은쪽 산등성이 눈 속에서 사격하는 유격대를 쏘아 보며 악이 받쳐 발을 탕탕 굴렀다. “철퇴!” 나머지 적들은 산골짜기에서 기어 올라와 다리야 날 살리라고 철퇴하였다. 맞은편의 유격대원들은 맞은쪽 적들에게 명중탄을 안기다가 눈 동굴에 들어갔다. 그들은 눈 함정 밑의 일본 놈들의 시체에서 군복과 군화를 벗기어 내고 무기를 걷어 가지고 눈 동굴 어귀를 막아버린 후 눈 동굴을 따라 산골짜기 막치기에 있는 협곡에 들어가 숨어 버렸다. 협곡은 밀림에서 보면 자그마한 틈 밖에 없었지만 협곡 밑에는 수십 길 깊은데다가 널다란 동굴이 생겨 있어 천연적인 은신처였다. 성칠과 용천은 작전계획을 세울 때 적들이 산골짜기 눈 함정에 빠져 혼난 후 꼭 산골짜기를 에돌아 협곡 위쪽으로 건너가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북만 유격부대와 함께 미리 여기 매복해 기다리기로 했던 것이다. 성칠은 병수와 득호를 돌아보고 “위생원과 함께 상순이랑 데리고 밀림 속의 밀영으로 돌아가오.”라고 하였다. 상순은 총 한 자루를 들고 형내와 충국을 데리고 병수와 득호를 따라 밀림 속의 밀영으로 밤도와 달리어 갔다. 그들이 밀림 속의 밀영부근에 이르렀을 때었다. “군호!” 둘러보니 보초병이 나무 위 어디에선가 군호를 묻는 것이었다. “진달래!” 병수가 대답하자 보초병이 눈 덮인 미인 송 나무 가지 위에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장백산 밀림속의 밀영에 들어선 후 상순은 자주 다녔기에 곧추 성칠네 통나무집에 찾아 갔다. 바깥에서는 경위원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군호!” “진달래!” 경위원은 병수와 상순을 알아보고 집안으로 안내하였다. 형내는 성칠의 통나무집 구들에 신음소리 내며 누워 있는 작은할머니를 알아보고 문안인사를 하였다. 진달래는 은녀와 함께 하옥의 옆에서 간호하다가 병수에게 물었다. “전선정황은 어떤가요?” 병수는 진달래와 은녀를 돌아보면서 대첩을 보고하였다. “대승을 거뒀소. 숱한 놈들이 눈 함정에 빠져 무리죽음을 당했소.” 등이 굽은 득호도 기뻐 어쩔 줄 몰라 하였다. “그 놈들이 이제 협곡에서 또 몰살당할 게요. 허허허.” 진달래는 하옥의 상처를 처치해 주는 형내를 보다가 구들에서 일어났다. “내 바깥에 나가 보초병들을 돌아보고 오겠어요. 수고들 하세요.” 말을 마치자 진달래는 득호와 병수를 데리고 나갔다. 하옥의 상처는 많이 호전됐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뜨더니 상순의 팔을 붙잡고 떠듬떠듬 말했다. “조카, 날 두고 빨리 도망쳐.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어째 상서롭지 못해. 여긴 적들이 빤히 아는 곳, 곳이오. 여기를 가만 놔두겠나?”           상순은 “큰어머니, 함께 도망치깁소.” 하고 총을 쥐고 바깥에 나갔다. 그는 집 뒤 눈 덮인 가산에 가서 밤 장막에 묻히어 버린 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밀림의 동정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폈다. 한편 한철주는 그런 줄도 모르고 졸개들을 끌고 멀리 밀림 속으로 철퇴하였다. 적들은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고 굶은 이리떼들이 여기저기서 우는 무시무시한 눈 덮인 밀림 속에서 군데군데 우등 불을 피워 놓고 모여 서서 밀림의 동녘 하늘이 밝아 오기를 기다리었다. 땅땅! 갑자기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렀다. 우둥불에 둘러 앉아 불을 쪼던 몇놈이 푹푹 꼬꾸라졌다. "반격!" 한철주가 군도를 빼들고 고함쳤다. 질겁한 놈들은 눈바닥에 엎디거나 아름두리 나무에 기대 밀림에 대고 헛총질을 한바탕했다. 그러나 맞은 켠 밀림은 총소리마저 없었다. 유격대원들은  몇놈을 쓰러눕히고는 밀림 속에 자취를 감췄다. 놈들이 총을 거두고 불을 쬐려고 할 때였다. 땅! 땅! 땅! 또 다른 쪽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몇놈이 또 풀썩풀썩 눈 위에 더러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유격대원들은 놈들이 시름 놓고 좀 자려고 하면 야밤을 타 기습하군 하였다. 유격대의 교란 작전에 놈들은 온 밤 공포 속에서 한잠도 자지 못했다.   지루한 밀림의 밤이 흘러가고 드디어 동녘 하늘이 희붐히 밝아 왔다. 한철주는 응세와 가메다가 정찰하지 못한 새 정황에 부딪치어 골탕을 먹은 것이 안타까워 속이 바질바질 탔다. “내 기어이 장백산 밀영을 토벌해 네 놈들의 소굴을 깡그리 불태워 버릴 거야! 네놈들을 칼 탕 쳐 놓을 테다!” 그는 먼저 특무들을 시켜 앞에 나가 밀림에 매복 군이라도 있나 령탐하게 하였다. 특무들은 날이 훤히 밝아서야 돌아 왔는데 사방 몇 리 안에 유격대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자 한철주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밀림을 쏘아보더니 이를 악물며 군도를 빼 들었다. “전군은 협곡을 넘어 장백산 밀영에 진군하라!” 적들이 협곡을 넘어 밀림에 들어섰을 때었다. 땅! 땅! 난데없는 총소리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밀림의 고요를 깨뜨리었다. 몇몇 일본 놈들이 보기 좋게 꺼꾸러졌다. “유격대!” “아이고, 유격대!” 일본 관동군이 거의 절반이 협곡 뒤로 돌아 갔을 때 유격대가 또 나타나 맹렬한 사격을 가하였다. 적들은 비명소리 아우성소리 쳐 댔다. 삽시에 적들의 진영은 수라장이 돼 버리었다. 정말 장백산 기슭 밀림의 항일유격대는 말 그대로 신출귀몰하는 천병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몇 리 안에 없다던 유격대가 하늘에서 떨어진 건가? 땅 밑에서 솟아났단 말인가?” 한철주도 신출귀몰하는 유격대를 두고 어찌는 수 없어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모든 전투는 유격대의 작전계획대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철주는 제 놈들 무기와 수적 우세를 믿고 군도를 빼 들고 밀림이 떠나가게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도쯔께끼(돌격)!” 하고 . 일본 놈들은 더는 살 길이 없는 것을 알았든지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총을 쏴대며 눈무지 뒤에서 사격하는 유격대원들에게 덮쳐들었다. 성칠은 최후발악하며 개미떼처럼 덮쳐드는 적 무리를 보고 대낮인데다가 전세가 불리한 것을 보고 철퇴명령을 내리었다. 그러자 유격대원들은 협곡으로 통한 눈 동굴로 들어갔다. 그들은 눈으로 동굴어귀를 막아버리고 다시 협곡을 따라 깊숙이 숨어 버리었다. 한철주가 유격대가 사격하던 눈 무지들을 점령했을 때에는 유격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유격대원들이 엎드려 총을 쏘던 자리와 어지러운 발자국 자리 밖에 보이지 않았다. “유격대가 하늘로 날아 났는가? 땅속으로 스미어 들었단 말인가?” 그는 군도를 쥔 오른손을 허공에 대고 고함쳤다. 뒤이어 한철주의 안경알 밑의 우멍한 눈에 음흉한 빛이 번쩍이었다. “네놈들 유격전술에 넘어 가 눈 함정에 빠질 거 같은가? 성칠아, 네 놈이 아무리 잔꾀를 부려도 유격대 밀영을 메고 달아나겠는가?” 그는 이빨을 악물더니 군도로 밀영 쪽을 가리키었다. “곧추 밀영으로 진군!” 적들은 추운 밀림의 해 빛에 총창을 번뜩이며 억지로 사기를 높이어 가지고 밀영 쪽으로 진군하였다. 땅땅! 땅땅! 잠잠하던 밀림 속에 또 자지러진 총소리가 울리었다. 사라졌던 유격대가 또 눈 동굴에서 나타나 적들의 후미에 대고 맹사격을 가하였다. 적들의 더러운 시체가 허연 눈 우에 나뒹굴었다. 한철주는 오도 가도 못하다가 더는 유격대의 유격 술에 코를 꾀여 끌리어 다니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다.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1중대는 산골짜기 유격대 놈들을 견제하라. 나머지 2중대와 3중대는 밀영을 진공!” 1중대의 한개 소대 밖에 안 되는 적들이 협곡 쪽으로 총부리를 돌려대자 유격대는 성칠의 명령에 따라 눈 동굴 속으로 되들어 가 버리었다. 그들은 동굴어귀 천정의 눈을 무너뜨려 자취를 감춘 후 협곡의 눈 동굴을 통해 전날 밤중에 싸우던 산골짜기 눈 함정 쪽으로 전이하였다. 성칠은 적들이 장백산 밀영을 공격하려는 것을 알고 장백산 밀영 쪽으로 포위권을 좁혀왔던 것이다.                                                               11. 결사전        한철주가 끌고 온 관동군 일본 놈들은 원래 야밤에 밀림의 밀영을 기습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젠 발각된 바 하고는 대낮에 내놓고 밀영을 진공하였다. 밀영 쪽에서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들리었다.        원래 야마모도는 진작 가메다를 앞세워 별동대를 끌고 가파른 산골짜기를 넘기 싫어 남쪽으로 멀리 에돌아 전날에 벌써 장백산 밀영에 박근했던 것이다. 그러나 교활한 야마모도는 실력을 남기려고 눈 덮인 밀림에 잠복해 있으면서 섣불리 진공하지 않았다.       이튿날 한철주가 골짜기와 협곡에서 한창 얻어맞는 틈을 타 야마마도는 별동대를 끌고 생각지도 못한 남쪽으로부터 장백산 유격대 밀영을 습격하기 시작하였다.    야마모도는 수길을 보고 쑤근거렸다.    “그저 강공만 해선 안되겠어." 그는 허꺽쇠를 불렀다. "허꺽쇠 분대장은 10여명을 유격대원들로 가장시켜 저 놈들의 밀영을 기습하게 해라.” “옛!” 야마모도는 유격전술에 능한 유격대가 빤히 드러난 장백산 밀림속의 밀영에 남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헛물을 켜면서 자기들의 정체를 드러낼까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허연 겨울 한복차림에 털조끼를 껴입고 개털 모자를 쓰고 수길과 허꺽쇠 등은 밀림의 밀영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갔다. 그때 병수가 멀찍이 나무 뒤에 숨어 이상한 사냥군 복색의 한무리 낯선 사람들을 발견하였다. “군호!” “장백산!” 허꺽쇠는 제법 군호까지 주어 댔다. 그러나 병수는 제일 앞의 허꺽쇠가 별로 눈에 익은 것을 발견하였다. “누군가? 군호!” “장백산!” 이전에 쓰던 군호였다. 유격대는 특무사건 후 군호를 “진달래”로 바꿨던 것이다. 그러나 놈들은 가메다와 응세에게서 들은 묵은 군호를 썼던 것이다. “우린 사냥꾼들이오. 항일유격대하구 일본 놈들이 싸우는지라 지나가다가 유격대를 도우려고 찾아 왔소.” “꼼짝 말엇!” 병수는 당년에 한길수의 마차를 몰고 우시장에 갔을 때 허꺾쇠가 경찰이었다는 것을 대뜸 알아보았다. 나뭇가지 우에 있던 득호도 그 놈을 알아보고 총을 겨누었다. “꼼짝 말라!” “까딱하면 쏜다!” 땅! 나뭇가지 위에서 득호가 먼저 총을 쏘았다. “에쿠!” 허꺾쇠가 왼팔에 총을 맞고 장총을 눈 우에 떨어뜨렸다. 그러나 그 놈은 인차 오른 손으로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득호를 쏘았다. 땅! 죄악의 총소리와 함께 득호가 흉탄에 맞아 총을 뚝 떨어뜨리더니 가슴을 부둥켜안고 눈 우에 털썩 쓰러지었다. 땅! 병수도 총알을 맞아 나무 우에서 거꾸로 퉁 떨어졌다. “여보!” 은녀는 통나무집에서 그 광경을 보고 목숨 걸고 뛰어갔다. "가지 말라!’ 성칠은 소리치며 허꺽쇠를 겨누고 총을 쏘았다. 땅! 허꺽쇠는 다리에 총상을 입고 푹 꼬꾸라졌다. 뜻밖에 통나무집과 나무 가지 우에서 울린 총소리에 깜짝 놀란 적들은 눈 우에 납작 엎드리었다. 그 놈들은 나무 가지에서 총을 쏘는 성칠 등을 향해 몰 사격을 가했다. 은녀는 눈 덮인 땅바닥에 엎드리어 품에서 권총을 빼들어 적들에게 사격하면서 한 뼘 한 뼘 남편 병수한테로 기어갔다. “진달래야! 저 대장 년의 대가리를 떼 오면 황군이 큰 상을 준다! 돌격!” 적들은 병수에게 기어가는 은녀를 진달래로 알고 맹사격을 가하였다. 은녀는 다리에 총을 맞고 뻘건 피를 흘리었다. 그러나 총상을 입은 다리를 질질 끌며 눈 우에 뻘건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병수 옆으로 계속 기어갔다. 그가 한 뼘 한 뼘 기어간 뒤에는 뻘건 피로 하얀 눈에 핏줄을 그리었다. 그러나 득호는 이미 숨져 있었다. “은녀! 가지 마라!” 성칠이 고함치며 뛰어갔다. 땅! 총소리와 함께 성칠이 푹 쓰러지며 은녀를 뒤덮었다. 총알이 날아와 그들의 주위에서 눈 꼬치를 튕기었다. 성칠은 은녀를 안고 데굴데굴 옆으로 굴러 통나무집 문 앞으로 굴러 돌아왔다. 진달래랑 상순이랑 통나무집 문에서 엄호 사격했다. “오빠, 병수를 살려야 하오.” “병수는 이미 희생됐다. 빨리 동굴 안에 들어가라!” 은녀는 부상당한 왼쪽다리를 질질 끌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서 대성통곡쳤다. 형내는 동굴어귀에서 은녀의 부상당한 왼쪽다리를 약솜으로 처치해주고 붕대로 꽉 동여 매 주었다. 동굴 밖에서는 눈보라 휘몰아치고 총소리 콩 볶듯 했다. 병수의 선혈은 밀림의 하얀 눈 덮인 산비탈을 빨갛게 물들이며 연분홍 진달래꽃을 피우는 상 싶었다. 장백의 밀림도 비통한 나머지 세찬 눈보라에 몸부림쳤다. 아름드리 미인 송 나무 가지들에서 눈 더미들이 눈물을 쏟으며 와르르 무너지어 내리며 눈가루를 흩날리었다. 쒹- 딱! 허꺽쇠가 날아 오는 돌멩이에 대갈통을 얻어맞고 즉살하였다. 쒹 딱! 또 한 놈이 꺼꾸러지었다. 수길은 대갈통을 싸쥐고 어데서 날아오는 돌멩이냐고 두리번거리었다. 이때 나무 가지를 구르며 이 나무 저 나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하얀 옷을 입은 날랜 여인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나무 사이를 평지 달아 다니듯 날아다니면서 염낭에서 돌멩이를 꺼내 연신 돌팔매질 하였다. 또 몇 놈이 돌멩이에 대갈통을 맞고 쓰러지었다. 수길은 권총을 휘두르며 “저 나무 우의 귀신을 쏴!” 하고 고함치며 총을 쏘았다. 그러나 진달래는 몸을 날리어 피하며 조약돌로 적들을 까부시며 통나무집 쪽으로 날아 갔다. 야마모도는 접전해 보고 유격대 주력은 북쪽에서 한철주 부련대장의 관동군과 싸우고 있고 장백산 밀림속의 밀영에는 소분대만 남았다고 추측하였다. 그는 군도를 뽑아 들고 부하들을 돌아보더니 “도쯔께끼!” 하고 고함치었다. 약 두개 소대나 되는 적들이 남쪽에서 불의에 장백산 밀림속의 밀영에 덮치어 들었다. 적정을 알리는 총소리가 울리자 눈보라 속의 밀영에서는 큰 전투가 시작되었다. 성칠은 함정을 팠던 골짜기 눈 동굴에서 소 분대 유격대원들을 거느리고 관동군을 앞 찔러 가산의 갱도에 뛰어 들어 갔다. 그들은 재빨리 갱도로 하여 밀영의 가산과 통나무집들로 통한 갱도에 들어갔다. 별동대 놈들은 나무우로 날아다니며 돌팔매질하는 진달래를 겨누고 몰 사격을 가하였다. 진달래는 아버지가 엄호 사격하는 틈을 타 발로 나무 가지를 힘껏 구르며 날아 내리어 자기 통나무집 안으로 철퇴하였다. 상순은 통나무집 뒤 가산의 갱도 총구멍에 총을 걸어 놓고 덮쳐드는 적들을 향해 사격하였다. 그러나 명중률이 높지 못하였다. 충국도 통나무집 안에서 사격하였다. 저쪽 통나무집에서 사냥꾼 출신 최구철이 쏜 총소리가 날 때마다 한 놈씩 꼬꾸라지었다. 진달래는 통나무집안 부엌의 갱도로 뛰어 들어가 어둠을 더듬으며 성칠의 통나무집으로 황급히 뛰어갔다. (하옥 언니를 갱도로 업어 들여와야 해!) 진달래가 갱도에서 성칠의 통나무집 안에 들어갔을 때였다. 상순과 충국은 총을 쥐고 문을 지키고 형내는 하옥을 업고 안 칸의 동굴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때 갱도 안에서 성칠이 뛰어나왔다. 하옥은 형내의 잔등에 업힌 채 성칠을 보고 손사래를 치었다. “여보, 날 놔두고 빠, 빠지어 나가세요. 몽땅 잘, 잘못 돼요.” 허나 성칠은 하옥을 바꿔 업으면서 결연히 말하였다. “여보, 절대 그런 말 하지 마오. 이제 오래잖아 광복을 맞게 될 거요. 우린 조국이 광복되는 날 고향에 돌아가 살아야 하오.” 성칠은 하옥을 업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진달래는 문고리에 수류탄을 처매놓고 문선의 고리에 수류탄 심지를 뽑아 달아 매 놓았다. 그녀는 권총을 뽑아 들고 상순이네를 이끌고 집안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서 통나무동굴 문을 꼭 닫아걸어 버리었다. 이윽고 야마모도가 별동대를 끌고 장백산 밀림의 밀영에 쳐들어 왔다. 한 놈이 총을 쏘며 밀림의 밀영 문어귀에 이르렀다. 그 놈은 수류탄을 통나무집 안에 들이 뿌리려고 문을 활 열어 재끼었다. 꽝! 꽝! 순간 진달래가 문고리에 달아맸던 수류탄과 놈이 쥐였던 수류탄이 연발로 폭발하였다. 수류탄 폭발폭음과 함께 그 놈은 형체도 없이 산산이 날아나 버리었다. “샤께끼(사격)!” 뒤따라 덮치어 온 야마모도는 성칠의 통나무집을 향해 군도를 휘두르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적들은 기관총까지 사격해댔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아무런 반격도 없이 잠잠했다. 의아해 하던 야마모도는 “도쯔께끼!” 하고 군도를 휘두르며 제일 먼저 무너진 통나무집 앞으로 뛰어갔다. 그때 가산에 난 총구멍에서 총소리가 울리었다.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야마모도 옆에서 돌격하던 일본 졸개 놈이 푹 꺼꾸러지었다. 야마모도는 무너진 통나무집자리 통나무 틈새에 납작 엎드려 총알이 날아 온 나무가 드문드문 들어선 가산 쪽을 두리번거렸다. “여기 갱도 있다!” “갱도 어귀를 찾아 내!” 적들은 헛총질을 해대며 허장성세해댔다. 통나무가 폭파되면서 마구 흩날렸다. 쌓인 통나무들 속에서 동굴 문을 발견하였다. “동굴을 찾았어!” 갱도 통나무 문을 열어 재끼자 야마모도는 졸개들에게 고래고래 고함치며 군도를 휘둘렀다. “갱도로 들어가 유격대를 잡앗!” 땅! 진달래가 총을 쏘았다. “앗!” 야마모도 놈이 군도를 툭 떨어뜨리더니 가슴을 붙안고 쓰러지었다. “대장님!” 그러나 야마모도 놈은 다시는 그 흉악한 눈을 뜨지 못하고 네 각을 쭉 뻗고 뒈지고 말았다. 땅! 가산 동굴에서 상순이 총을 쏘았다. 수길의 옆에서 총을 쥐고 가산 쪽을 기웃거리던 놈이 푹 꼬꾸라지었다. 적들은 기관총으로 가산 쪽을 맹렬히 사격하였다. 기관총질의 엄호하에 몇 몇 놈들이 갱도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땅! 땅! 땅! 갱도 안에서 진달래가 유격대원을 지휘해 사격하였다. 최구철까지 자기 집 뒤 가산에 판 동굴 어귀에서 합세하며 교차로 사격하였다. 복수의 탄알이 빗발치며 날아갔다. 갱도 안에 뛰어 든 적들은 컴컴한 갱도 벽을 더듬으며 들어 가다가 몽땅 격살 당했다. 적들은 최구철과 성칠의 집 뒤 가산에 판 갱도 어귀에 수류탄을 뿌리었다. 꽝! 꽝! 수류탄이 폭발하는 굉음과 함께 최구철이 사격하다가 쓰러졌다. 뒤이어 갱도 안은 조용해지었다. 진달래와 성칠은 동굴어귀가 폭파되자 진달래네 통나무집 동굴로 전이하였다. 진달래는 동굴에서 사냥총을 쥐고 쓰러진 아버지를 발견하고 꿇어 앉아 붙안고 목 놓아 불렀다. “아버지!”       최구철이 가산 갱도 어귀에서 사격하다가 그만 불행하게도 수류탄에 폭사했던 것이다. 진달래가 아무리 아버지를 흔들며 애타게 불러도 아버지는 머리가 터진채 대답이 없었다. 성칠도 달리어 왔다. “사돈어른! 사돈어른!” 성칠은 애타게 부르며 진달래 품 속에 안긴 최구철을 흔들었다. 그러나 얼굴이 피투성이 된 최구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성칠은 이미 숨진 최구철을 업었다. “철퇴!” 성칠은 고함치더니 최구철을 업고 갱도 안쪽으로 달리어 들어갔다. 진달래는 뒤에서 따라 가며 “아버지!” 하고 통곡쳤다. 상순은 하옥을 업고 성칠을 따라 새까만 갱도를 더듬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수길은 놈들을 갱도 안에 몰아넣으면서 지껄였다. “들었지? 계집 유격대가 썩어진 애비를 부르는 소릴. 숱한 유격대들이 갱도 안에서 썩어졌어. 빨리 들어 갓! 나머지 유격대들을 몽땅 잡아 내!” 몇몇 조선인 별동대원들이 갱도 안에 들어갔다. “꽝!”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갱도 안에 들어간 적들이 몰살하였다. 수길이 또 졸개들을 들여보내려 할 때다. “닥쳐!” 한철주가 적군 대부대를 끌고 덮치어 왔다. 한철주는 가산에 난 총구멍 쪽에 대고 사격을 들이댔다. 수류탄묶음도 날아갔다. 총구멍이 폭발하면서 깜깜한 꺼먼 동굴이 드러났다. 숱한 일본 놈들이 동굴 안에 맹사격을 가하면서 덮쳐들어갔다. 하지만 갱도 안에는 유격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수길은 “갱도로 진공!” 하고 고함치었다. “닥쳐!” 철주는 수길을 욕지거리를 해댔다. “갱도에 들어가면 몽땅 죽어! 네놈도 별동대 부대장이란 말이냐?” 수길은 욕을 먹고 뒤 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우리 별동대는 먼저 밀림의 밀영을 선제공격해 성칠 놈을 죽였습니다.” “뭐? 성칠을?!” 수길은 강보에 싼 수급을 내밀었다. 강보에 싸인 피 묻은 수급을 들여다보던 한철주는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며 수길을 한쪽으로 끌고 가 나직이 말하였다. “이 놈아, 이건 우리 집 머슴 병수의 수급이야. 이걸 성칠의 수급이라면 누가 곧이듣겠는가?” “예?” 수길은 다시 강보 안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한철주의 안경 건 우멍한 눈이 교활하게 판들거리었다. “스즈끼 국장 성칠을 모르잖아. 가지고 가 성칠 놈의 대가리라고 하자.” “예- 도련님 고명합니다. 참 고명해.” 수길은 머리를 끄덕이며 뒷말을 이었다. “야마모도 대장도 마을에서 애기 엄마 머리를 떼 두고 진달래를 잡지 못하면 대용대가리로 쓰자고 하더니. 허허허. 참 고명합니다.” “떠들지 마! 일본 놈들이 듣겠다!” 한철주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일본 놈들을 돌아보았다. 수길도 징글맞게 웃으며 졸개들 보고 잘 건사하라고 강보에 싼 수급을 넘기어 주었다. 한철주는 졸개들을 지휘해 저쪽에서 저항하는 진달래네 통나무집으로 돌격해 갔다. 놈들은 한철주와 수길의 지휘하에 텅빈 밀영의 통나무집들과 갱도어귀를 돌아가면서 수류탄으로 폭발해버리고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치고 불을 질렀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갱도 안에 한바탕 수류탄을 뿌리고 사격하였다. “유격대 놈들 꾀임수에 들지 말라. 갱도에 들어가면 몰살당해!” 철주와 수길은 일본 놈들을 지휘해 텅 빈 유격대 밀영을 불살라 버리었다. 뒤이어 폭발하고 불타는 갱도와 통나무집 앞에서 병수의 수급을 쳐들어 보이면서 기념사진까지 찰칵찰칵 찍었다. 그건 상부에 보고할 때 쓸 좋은 전리품이었으니까.  
74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3) 댓글:  조회:1743  추천:0  2016-10-19
                        8. 대학살      별동대 야마모도 대장은 윙-윙- 눈보라 기승을 부리는 어둠 속 들판을 쓸어보다가 수길한테 대가리를 홱 돌렸다. "대오를 집합시켯!" "옛!" 야마모도는 유격대 재차 습격이 두려웠다.  즉시 논밭에 흩어진 별동대 놈들이 우르르 모여왔다. 야마모도는 뻘건 피로 물든 논밭 두렁들을 돌아보고 나서 두덜거리었다. “또 일여덟 잃었구나.” 먼동이 튼 후에야 야마모도는 별동대를 끌고 마을에 들어갔다. 마을 어귀에서 한철주가 안경알을 춰올리면서 마중하였다. 야마모도는 숱한 졸개들 앞에서 한철주를 쏘아 보면서 훈계하였다. “눈깔 네개 가지고도 우리한테 사격해?!” 철주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죄송합니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그 쪽에서 총알이 날아오니까 유격대인가 하고 사격했습니다. 확실히 우리한테 유격대가 사격한 거 같습니다.” 야마모도는 눈알을 희번뜩거리면서 두덜거렸다. “흥! 그 놈들은 도망친지도 오래!” 철주는 야마모도와 함께 촌공소 쪽으로 들어가면서 자랑스레 지껄였다. “그 놈들 어디로 달아난단 말입니까? 눈 위에 찍힌 발자국도 메우고 달아나지 못하죠. 이미 한 소대를 파견해 뒷산 골짜기를 따라 추격하게 했습니다.” 야마모도는 코 방귀를 뀌어댔다. “아직까지 총소리가 나지 않는 걸 보면 공 추격한 게 분명해!” 야마모도는 마을 뒤 두 갈래 산골짜기를 보고 물었다.  “저 북으로 난 산골짜기 쪽을 추격했소이까? 아니면 동북쪽 산골짜기를 추격했소이까?” 한철주는 수하들을 다 나가게 하였다. “두 산골짜기에 다 발자국이 어지럽게 났습디다. 동북쪽 산골짜기보다도 장백산 쪽으로 달아났겠다고 서남쪽으로 추격하게 했습니다.” 한참 궁리하던 야마모도는 수길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생각 했쏘가?” 수길은 머리를 조아리면서 한철주를 개여 올리었다. “한 련대장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 놈들은 꼭 우리를 몇 매 쳐 놓고는 우리 대부대를 보고 겁나 자기 소굴로 되돌아갔을 겁니다.” 야마모도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동북쪽 산골짜기에 난 발자국은 우리 발자국과 유격대발자국이 마구 찍혀 있네. 그러나 확정하게 알 순 없지만 유격대 놈들의 유격전술을 보면 동을 치는 척 하면서 서쪽을 치군 했네. 놈들은 우리를 밀림속의 밀영에 쳐들어가지 못하게 교란하면서 우리를 동만 쪽으로 유인하려고 한 거 같아.” 여기까지 생각하자 야마모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즉시 한 개 소대를 파견해 동북쪽 산골짜기 쪽도 추격하게 하게나.” 한철주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또 한개 소대를 보내고 밀림속의 유격대 밀영은 무슨 병력으로 친단 말입니까? 병력을 자꾸 나누지 말고 곧추 장백산 밀림속의 밀영으로 쳐들어갑시다. 그러지 않으면 유격대 놈들한테 코를 꿰어 여기서 헤매다가 말겠습니다.” “밀영의 놈들만 유격대고 여기 유격대는 유격대가 아닌가? 대일본제국의 큰 국면부터 생각하게나.” 야마모도의 말에 한철주는 내키지 않은 대로 수하 중대장한테 포치했다. “한개 소대를 동북쪽 산골짜기 발자국을 따라 추격하게.” 일본 놈 중대장은 두덜거렸다.  “우리 중대는 이미 한개 소대나 별동대에 떨어져 나갔는데도 또 파견해야 합니까?” (조까짓 조선 민병 같은 별동대 대장 다 뭐라고 우리 관동군과 이래라저래라 한단 말인가?) 다른 중대장들도 달갑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기실 한철주는 수백명 명천 조선청년들을 사기쳐 관동군에 강제 입대시킨데다가 친일조선인토벌대를 끌고 만주벌에서 유격대를 토벌한 덕에 부련대장까지 승진했던 것이다. 그가 부련대장이지만 일본 수하들이나 야마모도나 모두 그를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그러나 개도 주인을 보고 차라고 한철주 수하 일본 장교들은 아무리 허수아비라도 자기 상전 한철주를 마구 휘두려는 야마모도가 눈에 거슬렸다.  (한 련대장 애비를 이래라저래라 하던 개 버릇을 어데 와서 해?) 그런 줄도 모르고 야마모도는 살기등등해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이 놈 안보촌에 유격대 있는 게 분명해. 유격대 놈들은 마을 사람들과 결탁해 이 마을에 미리 잠복했다가 우리를 매복 습격한 거야. 이 마을 백성을 백 명을 잘못 죽이더라도 유격대 한 놈을  살려 둬선 절대 안돼.” 한철주도 이를 뿌드득 갈며 일어섰다. “마을 사람들을 몽땅 끌어 오라!” 한 중대장이 보고하였다. “다 달아나고 열대엿 밖에 없습니다.” “제길 할, 됐어. 이전에 이 마을에서 우리 지게꾼과 십가장이 유격대한테 죽었어. 마을에 숱한 자위대가 지켰다는 게 모두 눈깔을 펀이 뜨고 뭘 했어? 허수아비 같은 놈들.” 이윽고 미처 달아나지 못한 남녀노소 열대여섯이 끌리어 왔다. 한철주와 야마모도는 유격대에게 얻어맞은 앙갚음을 무고한 마을 백성들에게 하려고 피비린 학살을 감행하기 시작하였다. 한철주는 군도를 빼들고 머리를 숙인 백성들을 두루 돌아보다가 어린애를 업은 한 여성에게 눈길이 뚝 멎었다. “나와!” 한 바깥노인이 여성 앞을 막아 나섰다. “우리 며느린 안 되오.” 한철주는 그 노인의 팔을 홱 채더니 발길로 아래 배를 걷어찼다. “죽고 싶어?!” “날 죽여라! 내 며느린 다치지 못해.” 노인은 일어나면서 라고 고함치며 며느리 앞을 또 막아 나섰다. 한철주는 군도를 빼들어 노인의 쳐든 오른팔을 탁 내리 찍었다. “앗!” 노인의 팔이 썩 뚝 잘려 땅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진 팔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리었다. “아버지!” 며느리는 꿇어앉으면서 시아버지를 부축하였다. 로인은 상을 찡그리더니 왼팔을 들어 한철주를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개다리 놈아, 넌 조선 사람이 아니냐? 개 같은 네 놈들이 썩어지고 광복의 날도 멀지 않을 거다.” 한철주는 악이 치받치어 군도로 노인의 왼팔을 탁 내리 찍었다. 양팔을 다 잃은 노인은 계속 욕설을 퍼부었다. “유격대들이 네 놈의 목을 치어 꼭 내 원수를 갚을 거다!” “이 영감태기 유격대군. 죽어 봐라!” 한철주는 피 뚝뚝 떨어지는 군도로 노인의 목을 툭 치었다. 로인은 일본 주구 놈의 군도에 비참하게 살해됐다. “아버지!” 며느리는 머리가 없는 시아버지를 안고 대성통곡 쳤다. 잔등에 업힌 어린애도 어머니와 함께 애고사리 손을 입에 물고 자지러지게 울었다. 백성들은 그 참경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한철주는 졸개들을 시켜 시아버지 몸을 안고 우는 며느리마저 끌어내게 했다. “이년, 누가 유격댄가? 대라!” 며느리는 한철주를 쏘아 보며 챙챙한 목소리로 “모른다!” 하고 고함치었다. “안 되겠어! 이 년이 정말 죽어 봐야 알겠니?” 한철주가 그 애 어머니의 목을 겨누어 군도를 쳐들 때다. “잠간!” 야마모도가 하얀 장갑을 낀 손을 쳐들었다. “그 년의 대가리를 우리 가져 가겠네.” 야마모도는 가메다와 수길을 불러 수군거리었다. “우린 여자 대가리를 몇 개 가져가야 하네. 유격대 진달래 대장 년의 대가리로 말이야. 스즈끼 국장이 알 턱이 있나?” 류강철이 옆에서 통역하자 입이 빠른 수길이 떠들어댔다. “오, 참 고명합니다. 고명해! 우리 스즈끼 국장도 진달래를 본적이 없으니까.” 야마모도는 황급히 손으로 수길의 입을 틀어막았다. “얘, 임마, 떠들지 말라.” 그제야 수길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한철주는 피씩 웃었다.      관동군이나 조선에서 온 별동대나 다 그저 거짓말쟁이들이었으니 말이다. 이전에 국자가와 용정의 관동군과 경찰들도 계수동과 함흥촌을 기습해 숱한 무고한 백성들을 살해한 후 그들의 귀를 잘라다가 바치고 전공메달을 타지 않았던가. 그런데 웃기는 일도 있었다. 어린애들 귀까지 잘라다 바치면서 유격대 수자를 부풀린 바람에 거짓보고 진상이 드러났던 것이다. 이번에도 별동대에서 딱 관동군이 했던 것처럼 거짓을 꾸미고 있어 한철주로선 코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야마모도는 수길과 류강철, 가메다, 응세까지 끌고 애를 업은 애 어머니한테로 어슬렁, 어슬렁 다가갔다. 여성은 시아버지 몸을 놓고 뒤로 물러앉았다. 야마모도는 애 어머니에게 달려들어 잔등에 업은 애를 쑥 뽑아냈다. 어린애가 엄마를 부르며 애고사리 손을 쳐들고 처절하게 울었다. “말해! 이 마을에 누가 유격대구 누가 공산당이냐?” 야마모도가 호통 치는데 옆에서 수길도 개처럼 짖어댔다. “네년이 말하지 않으면 애를 불에 태워 죽여 버릴 테야!” 그러나 애 어머니는 단말마적으로 애를 안아 가려고 달려들었다. “이 년이! 말하지 않겠는가!” 야마모도는 흉악하게 이발을 뿌드득 갈았다. “북데기를 가져다 불을 질러라!” 졸개들이 울안에 나가 벼 짚과 북데기를 가져다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야마모도는 애를 들어 활활 타오르는 삼단 같은 불길 우에 대면서 호통 쳤다. “말해! 공산당과 유격대가 누구냐? 유격대 어데 갔어?” “죽어도 모른다!” “대지 않으면 애를 불에 처넣는다!” “형철아!” 애 어머니는 애한테로 달리어 나갔다. “말해!” “이 개놈 새끼들아, 오늘 내 죽고 네 죽고 해 보자! 내가 바로 공산당 유격대다!” 여자는 육탄이 돼 야마모도에게 달려 들어 애를 쳐든 손을 깨물었다. “이야! 이다이!(아갓! 아파라!)” 순간 야마모도는 애를 툭 떨어뜨리며 물린 왼손을 붙잡았다. 애 어머니는 애를 안고 달아나려고 하였다. 그때 수길이 발길로 애 어머니를 걷어찼다. “앗!” 애 어머니는 애를 안은 채 수길의 발앞에 폭 꼬꾸라졌다. 독이 오른 야마모도는 살기등등해 덮쳐들어 엉엉 우는 애를 빼앗아 활활 타오르는 불에 처넣었다. 불길 속에서 애의 비명소리가 나며 뿌지직 타버렸다. “말해!” 류강철이 을러멨다. 애 어머니는 천천히 일어나 비칠거리었다. 그녀는 불시에 수길을 떠밀면서 함께 불구덩이에 뛰어 들었다. 수길은 깜짝 놀라 불에 엎어졌다가 그 여자를 뿌리치며 불길 속에서 요행 빠지어 나왔다. “저 년 대가리를! 빨리!” “옛!” 수길은 불에 데 가지고서도 여자를 끄집어냈다. 그 여자는 온 몸이 불에 데여 보기 흉하게 됐다. 놈들도 그 참상에 눈이 동그래졌다. “목을 쳐!” 야마모도가 호통 치자 가메다가 비수로 목을 툭 쳐 잘라 냈다. 야마모도는 피 쿨쿨 쏟아지는 여자의 머리를 군도로 꿰들고 쳐다보면서 중얼거리었다. “그 대가리 항일유격대 진달래 대장 대가리 같구먼. 흐흐흐.”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흉물스러운 악귀를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머리를 숙이고 외면하였다. 한철주는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해 거들먹거리었다. “모두 봤지? 공산당과 유격대를 대지 않으면 모두 저런 끝장이야!” 마을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 뒤로 물러서려고 하였다. 그러나 뒤에는 일본 놈들의 서슬 푸른 날창 뿐이었다. 안경을 낀 한철주의 흉측한 우멍눈이 한 열서너 살 되는 소녀 애한테 멎었다. 소녀 애는 질겁해 사시나무 떨듯하며 뒤로 물러서며 어른들 속에 숨으려고 하였다. “저년을 끌어내!” 여기저기에서 비명소리가 들리었다. 소녀 애는 공포 어린 눈길로 한철주를 흘끔흘끔 훔치어 보았다. “이년 말해 봐. 이 마을에 누가 유격대냐? 말하면 네 일가 몽땅 살려 준다. 허나 말하지 않으면 네년을 우리 황군들이 윤간하게 할 테야!” 그 말에 일본 놈들은 “헤헤헤.” 하고 징글맞게 웃어댔다. “어서 말해!” “모르오.” “모른다구?” 소녀는 겁을 먹고 말하리라고 꿈꾸었던 한철주는 군도를 쳐들었다. “정말 죽고 싶니?” 한철주는 쳐들었던 군도를 내리우더니 일본 놈들을 뒤돌아보며 고함쳤다. “이 년을 윤간해!” “하이!” 일본 놈들이 승냥이가 양을 덮치듯이 소녀한테 덮치어 들었다. 일본 색마들은 소녀를 밀고 닥치고 하며 눈 덮인 언 땅에 깔고 넘어갔다. 소녀의 허연 몸이 홀랑 드러났다. "히히히." "허허허." 색미치광이들은 애어린 소녀의 두 팔을 내리누르고 바둥거리는 두 다리마저 깔고 들어앉았다. 놈들은 가냘프게 몸부림치는 소녀를 앞다퉈 강간하기 시작하였다.       “닥쳣!”      이때 하늘땅을 뒤흔드는 고함소리와 함께 웬 중년사나이가 천정 구멍으로부터 뛰어 내려 마당에 나섰다. “내가 바로 네 놈들이 찾는 공산당 간부다! 그 소녀하군 아무런 관계없다! 무고한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지 말라!” 당당한 목소리와는 달리 졸개들이 몸을 수색했지만 몸에 무기가 없었다. 다만 호주머니에 꽁다리연필과 종이조박이 둬 장 나왔다. 류강철이 통역하자 야마모도와 철주는 전리품이나 얻은 듯이 헤벌쭉해 하였다. “결박해!” 야마모도는 물리어서 아픈 왼손을 주무르며 호통 쳤다. 공산당 간부는 집 대들보에 거꾸로 높이 매달리었다. 야마모도는 또 고문을 들이댔다. “네 놈 공산당 간부? 유격대 대장?! 이름이 뭔가?” “난 종래로 이름을 속이지 않는다! 리성화다!” 한철주는 피씩 웃었다. “간만은 큰 놈이구나! 말해! 유격대에서 무슨 간부냐?” 리성화는 거꾸로 매달려서도 턱짓으로 마을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저 마을 사람들을 다 풀어 줘라. 그래야 말하겠다.” 리성화는 마을 서당 훈장으로 위장한 지하당 공작일군이었다. 한철주는 코 방귀를 “흥!” 하고 뀌었다. “네놈의 잔꾀에 넘어갈 관동군인가 하는가? 이 놈 말해! 네 놈을 내놓고 마을에 또 누가 항일유격댄가?” “없다! 내 혼자다! 무고한 백성들을 풀어 놔라!” “네 놈이 말하지 않으면 풀어 줄줄 아는가. 말해!” 리성화는 혀를 물어 끊어 야마모도 놈의 낯에 내뱉었다. 야마모도는 “에크!” 하고 피 튕긴 낯을 닦으며 땅바닥에 떨어진 피 묻은 혀를 보았다. “이 놈이 악질이구나!” 야마모도는 강철이를 시켜 리성화에게 금방 들춰낸 종이조박과 꽁다리연필을 주었다. “이 놈, 말하지 못하면 연필로 유격대 이름을 써라!” 그러자 리성화는 손가락을 입에 넣더니 마구 물어뜯어 내뱉었다. “이 놈을 불태워 죽여!” 야마모도가 고함치자 졸개들은 리성화의 밑에 짚을 쌓고 불을 질렀다. 활활 타 번지는 불길이 삽시에 리성화를 삼켜 버렸다. 리성화는 불에 타면서도 계속 일본 놈들과 그 주구들을 욕하며 구호를 불렀다. “일본 침략자들을 타도하자!” “일본 놈들이 망할 날이 오래잖다!” “중국 공산당 만세!” “조선 공산당 만세!” “항일유격대 만세!” … 커다란 촌가에 불이 달리었다. 그러자 놈들은 바깥에 뛰어 나왔다. 그 놈들은 총창으로 마을 사람들을 불타는 집안에 마구 밀어 넣었다. 야마모도가 소녀만은 끄집어 낸 후 문을 꽉 닫았다. 일본 놈들이 문마다 돌아가면서 널을 가로 세로 대고 대못을 꽝꽝 박아버렸다. “아니, 그년도 태워 죽입시다.” 한철주의 말에 야마모도는 “종군위안부로 써야지. 흐흐흐.”라고 하며 징글맞게 웃었다. 땅! 땅! 땅! 이때 뒷산 쪽에서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리었다. “유격대다! 유격대!” 혼비백산한 놈들은 총칼을 빼들고 촌공소를 빠지어 나갔다. 불타는 집안에서는 한참 아우성소리 높이 들리었다. 그러나 천정이 불타버리면서 안으로 쿵 무너지어 버리자 모든 것이 잠잠해지었다. 다만 세찬 불길에 나무가 타면서 탁탁 튀는 소리가 세차게 들릴 뿐이었다. 불타는 촌가의 외양간 벽 밑으로 하여 소똥을 치던 자그마한 구멍이 있었다. 몇몇 노인들은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도 그 자그마한 구멍을 막은 돌을 치웠다. 그들은 소똥구멍으로 어린애들을 데리고 빠지어 나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처 빠져 나가지도 못한 나머지 마을 사람들은 몽땅 불에 타 장렬히 희생됐다.                     9. 밀림으로 진군       일본 놈들은 유격대에 기습당하기까지 해 분이 풀리지 않았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불을 지르고 약탈하면서 만행을 저질렀다.      어떤 놈들은 닭 우리의 닭을 붙들어 집에 불을 지른 후 그 불에 구워 먹었다. 놀란 닭들이 푸 닥닥 풍기어 사처로 날아났다. 어떤 놈들은 돼지우리에 들어가 총창으로 돼지를 찔러 죽이고 엉덩이 살을 도려내 돼지우리에 붙은 불에 구워 먹었다. 삽시에 온 마을에는 삼단 같은 불길이 치솟아 올랐고 여기저기에서 돼지와 소 같은 집 짐승들의 비명소리가 요란하였다. 온 하루 불에 탄 마을은 잿더미로 돼버리었다.       한철주는 “별동대라는 놈들이 마을 사람들과나 우쭐거렸지. 흥!” 하고 야마모도 대장을 못내 비웃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야마모도는 간음하고 놀 소녀 애를 끌고 가면서 흐뭇해 헤벌쭉거렸다. 그가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후에 진짜 진달래를 잡지 못한다고 해도 진달래 머리로 대용할 여자 머리도 잘라 내 뒀으니까. 또 스즈끼 국장에게 처단당할 근심도 없게 됐으니까. 이제 그는 유격대를 잡든 잡지 못하든 간도에서 살아남아 명천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땅! 땅! 땅!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총소리 울렸다. 몇놈이 썩박나무 쓰러지듯 쿵쿵 눈바닥에 처박혔다. "이게 뭐야?!" 야마모도는 깜짝 놀라 군도를 빼들고 수레바퀴 밑에 한쪽 무릎 꿇고 살폈다.  일본 놈들이 기습유격대 꼬리를 물고 인차 추격하지 않고 마을에서 대학살을 감행하자 인삼 중대장이  유격대를 이끌고 되돌아와 재차 기습하고 있었다. 그들은 백성들을 더 학살당하게 수수방관할 수 없었다. 야마모도는 죽을 위험이 많은 원시림 항일유격대 대부대와의 싸움을 피하려고 꾀를 썼다. “한 련대장! 저  놈들부터 족치게!” 꼬리를 빼려는 야마모도의 속내를 빤히 꿰뚫어 본 한철주는 이젠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듣지 않았다. “우리를 기습하면서 교란 작전하는 유격대 놈들에게 언제까지 코를 꿰여 끌려다닐 예산입니까? 우리 관동군은 곧추 원시림속의 밀영을 치겠습니다. 별동대나 여기 소 분대 유격대 놈들과 싸우십시오. 흥!”       야마모도는 혹시 스즈끼 대대장에게 고발이라도 올라 갈까봐 억지로 마지못해 장백산 밀림에 가기로 하였다. 하지만 한철주를 떨어져 단독으로 별동대를 데리고 유격대를 기습한 척 하면서 몸을 숨길 속궁리를 따로 해두었다. 그런데 유격대는 백성들이 다 살해되고 마을이 이미 잿더미 된 것을 보고 기습작전을 펼치다가 수림 속으로 신출귀목해버렸다.  야마모도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듯이 한철주 눈을 피해 별동대 두개 소대 병력을 끌고 서남쪽을 향해 부랴부랴 떠나가 버렸다. 한철주가 관동군을 끌고 눈 덮인 황야를 허우적거리며 곧추 원시림을 향해 들어갈 때다. 갑자기 앞에서 통신병이 뛰어왔다. “보고! 한 련대장!” “무슨 일인가? 또 유격대 기습부댄가?” “아닙니다. 의사라고 하는 놈과 농사군 같지 않은 놈 두 놈을 붙잡았습니다.” “그래? 무기는 없던가?” “소금과 약 밖에 없었습니다.” 한철주는 수하들과 눈길을 맞췄다. “흥, 이 밀림 속에 약과 소금을 가지고 왔다? 필시 유격대와 관계있는 놈들이야! 끌어 왓!” “하이!” 이윽고 통신병과 졸개들이 앞에서 배낭을 멘 세 사나이를 끌고 왔다. 한철주는 세 귀 눈을 치뜨는 청년이 어쩐지 눈에 퍽 익어 보였다. “너 이놈, 이름이 뭔가?” 상대방도 일본 장교복을 입은 한철주가 안경알 밑의 우멍한 눈을 판들거리며 조선 말을 하는 것에 퍽 놀라는 눈치었다. “김호입니다.” “김호?” “고향은 어딘가?” 한철주는 한걸음 다가서며 물었다. 그러나 상순은 아주 태연자약하게 대답하였다. “조선 함흥 산골입구마.” “지금 어데서 사는가?” “일성촌에서.” “그래? 딱 어데서 본, 아, 아니야. 딱 기준 놈 같은데. 나이가 너무 차 나.” 한철주는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너 혹시 조선 명천군 상우남면 운주동에서 온 김병완이나 김기준을 아느냐?” “모릅구마. 건 왜 묻습둥?” “아니야, 우린 한 고향 친구야.” 그 말에 상순과 규혁도 이 놈이 바로 철천지원수 한철주 놈이겠다고 대개 짐작했다. 그 놈 안경을 끼었지만 생김새가 우멍한 눈이나 날선 코는 한길수 놈을 똑 빼닮았기 때문이었다. 철주는 물음이 끝이 없었다. “뭘 하러 이런 밀림에 온 거야? 약과 소금은 누굴 주려고?” 상순은 호주머니에서 종이 장 한 장을 꺼내 건네었다. “이건 용드레분주소 소장이 써준 소개신입구마.” 졸개의 손에서 소개 신을 받아 보니 이렇게 씌어 있었다.          대일본제국 장병 여러분:       저의 관할구역 일성촌의 장충국과 김호, 김형내는 전선에서 유격대와 싸우는 대일본제국 장병들의 로고와 부상병들을 헤아려 특히 약과 소금을 가지고 위문하러 갑니다.      대일본제국의 충신들을 여러모로 도와 줄 것을 희망하나이다.                                             용드레분주소 소장 스즈끼희로시마                                                                                                                                                               소화 18년 12월 24일          아무리 아래 위를 살펴보아도 일어로 쓴 소개신은 흡잡을 데 없었다. 황차 용드레분주소 도장과 소장의 도장까지 박혀 있지 않겠는가! “좋아, 대일본제국의 충신들이구만.” 그러면서도 한철주는 우멍한 눈에 교활한 눈빛을 감추지 못하였다. “보자, 무슨 약을 가져 왔는가?” 상순이랑 배낭을 내리워 헤쳐 놓았다. 철주는 배낭안의 소금이랑 약재랑 두루 번지어 보는 것 이었다. 그는 상순이랑 끌고 온 졸개들에게 일어로 물었다. “몸에는 총이랑 없던가?” “하나도 없습니다.” “비수도?” “예.” 철주는 규혁의 길쭉한 얼굴을 우멍한 눈으로 보면서 머리를 끄덕이었다. 규혁은 진작 일어를 알기에 다 알아들었지만 그런 속내는 내비치지 않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철주는 한족 장충국까지 그들 속에 끼어 있는 것에 못내 감탄하였다. “한족청년까지 자진해 우리 대일본제국 장병들을 돕는다? 참 보기 드문 일이구먼.” 마지막 말만은 조선 말로 중얼거리었기에 상순도 알아들었다. 상순은 장충국을 내세우면서 “얘 삼촌은 분주소 소장입구마.” 하고 말하려고 하다가 함흥촌에서 산다는 것이 드러 날까봐 그만 두었다. 그는 담대하게도 한철주에게 “오늘 장관님을 만나 기쁩니다. 어쩜 우리 대일본제국에 조선 장관님도 있습니까? 우린 대일본제국 장병들을 위해 뭐든 하겠으니까. 여기 소개 신에 장교님께서 서명해 주시오.” 하고 당돌한 요구를 들이댔다. “그래? 허허허. 좋아. 그러나 자네들이 우릴 위해 일을 한 후에 내 서명해주지. 어때?” 형내는 인차 “좋습니다. 그래도 늦지 않습니다.” 하고 소개신을 받아 품에 깊숙이 넣었다. 사실 그 소개신은 일어를 배운 형내가 가짜로 만든 것이었다. 그들은 일본 관동군과 별동대가 장백산 밀영을 토벌하러 가는 긴급군사정보를 유격대에 알리라는 병완의 말을 듣고 눈보라를 무릅쓰고 장백산지역 밀림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적들을 원시림 밀영이 있는 협곡과 산꼴짜기에 유인해들이라는 성칠 대장의 지시를 받고 장백산지역 밀림에서 내려와 인삼 중대장 부대를 찾아왔다.        한편 새날이 밝아왔는데도 적들이 추격해오지 않고 꾸물거리는 것을 보고 인삼 중대장은 상순과 형내에게 구체적으로 적들을 유인할 전술을 포치했다. 그리하여 상순과 형내는 위험을 무릎쓰고 담대하게도 일본 관동군 부대를 곧추 찾아 왔던 것이다. 그들은 기어이 적들의 코를 꿰어 장백산 밀림 속 밀영 부근의 눈 덮인 협곡과 골짜기에 끌어 들여가야 했다. 더는 이것 저것 따질 것이 없었다.       사전에 병완은 미리 장충국을 시켜 해동분주소 소장 지학구를 통해 용드레분주소 소장의 이름이 스즈끼히로시마라는 것을 알아 내 소개신에 써 넣었다. 그리고 용정 도장방에 가서 엄청난 돈을 주고 분주소 도장과 소장의 도장을 새긴 후 소개신에 그럴듯하게 찍어 놓았던 것이다. 김진과 김형내는 각기 상순과 규혁의 지금 쓰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상순은 혹시나 해서 김진이라고 밝히지 않고 김호라고 가짜이름을 써넣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옥이 부상당했다는 말을 듣고 전번에 최구철에게 임시구급약을 보낸 후 용정약방에 가서 첩약을 지었고 용정에 있는 일본 놈들의 병원에 가서 처치할 소독제랑 지혈제랑 여러 가지 약을 가지고 일본 놈들까지 코를 꾀 가지고 장백산 밀림속의 유격대 밀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다행히 병완과 형내가 꾸며 낸 소개신 덕분에 위험에서 간신히 벗어났다. 철주는 속으로 말투를 보아도 함경도 말투 맞지만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그는 졸개를 보고 일어로 “박응세를 데려 오게.”라고 명령하였다. 이윽고 박응세가 헐레벌떡거리며 뛰어 왔다. 철주는 교활하게 우멍한 눈으로 상순이랑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응세를 한쪽으로 끌고 가서 귀속 말을 하였다. “이자들을 장백산 유격대 밀영에서 본 적이 있는가?” 박응세는 벼룩 눈을 띠룩거리며 한참이나 상순과 형내를 훑어보았다. 그는 상순을 자꾸 보더니 도리머리 질 하였다.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 귀 눈을 가진 놈이 딱 유격대 김성칠 대장이란 놈의 세 귀 눈과 비슷합니다." “음~” 철주는 속으로 자기 생각과 같구나 하면서도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는 가메다와 응세를 한쪽으로 끌고 가서 쑤군거렸다. “좋아, 저 놈들을 인질방패로 삼아 앞에 세워서 길을 인도하게나. 저 놈들을 잘 감시하게나.” 가메다와 응세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상순이랑 형내랑 독기어린 눈길로 건너다보았다. 교활한 한철주는 가메다와 응세를 시켜 상순이랑을 대오 제일 앞에 세운 후 관동군에게 계속 밀림으로 진군하라고 명령하였다.  
73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2) 댓글:  조회:1929  추천:0  2016-10-07
                    6. 전시 번개식결혼        원시림 유격대 밀영은 적들의 시야에 완전히 들었기 때문에 제일 위험한 곳으로 됐다. 그러나 진달래는 성칠 대장이 자기와 함께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밀영에 남아 적들을 유인하는 “미끼”로 된 것이 아주 고마웠다. 진달래는 그간 성칠의 통나무집에서 하옥의 대소변을 받아낸다, 옷을 씻어 갈아입힌다 하면서 혼미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 하옥을 살뜰히 간호하느라고 바람개비처럼 돌아갔다. 은녀도 유격대의 밥을 짓고는 달려 왔다. 그녀는 대야에 성칠의 오줌을 끓이어 놓고 따뜻한 오줌에 수건을 씻어 짠 후 하옥의 상처를 닦아 주었다. 진달래는 은녀가 하옥의 발을 닦아 주는 틈을 타서 하옥의 머리를 왼손으로 받들고 사슴의 피를 넣고 끓인 사슴고기국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호호 불어 입에 한 술, 한 술 떠 넣었다. 하옥의 얼굴에 점점 핏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이젠 국물이라도 몇 숟가락 씩 넘기는 것이었다. 성칠은 더부룩한 구레나룻을 어루만지면서 하옥을 살뜰히 보살피는 진달래와 은녀를 고마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진달래는 성칠을 쳐다보면서 “오빠, 언닌 며칠 후면 정신을 차릴 거 같아요.” 하고 웃음을 지었다. “살아났으면 얼마나 좋겠니? 내게 시집 와서 평생 고생만 했어.” 진달래와 은녀를 내려다보며 성칠은 진심을 털어 놓았다. “난 해준 게 아무 것도 없어. 그저 이렇게 보낼 순 없구나.” 그 말에 진달래는 감동돼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그때 하옥의 눈귀가 실룩거리더니 뜨거운 눈물을 귀밑에 주르르 흘리는 것이었다. “여보, 깨났어?” 그러나 하옥은 눈을 뜨지 못하였다. “오빠, 언닌 살아났어요. 이젠 살았어요.” 진달래는 환성을 질렀다. 은녀도 수건으로 종아리를 닦아 주면서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오빠 정성에 형님은 살아날 거 같아요.” 성칠도 퍼더버리고 앉아 하옥의 손을 잡고 중얼거리었다. “그래, 꼭 살아 날 거야.” 뒤이어 그는 진달래를 돌아보았다. “은녀에게 맡기고 우린 바깥에 진지정황을 돌아보자.” “예. 그럼 은녀, 수고해요.” 진달래는 하옥의 머리를 베개에 살짝 내리어 놓고 숟가락을 은녀에게 넘겨주고는 일어 섰다. 바깥에서는 눈보라가 윙윙 세차게 불어치었다. 여기 저기 아름드리나무에서 눈덩이들이 날려 풍풍 떨어지었다. 성칠은 진달래를 데리고 전초진지를 둘러보았다. 경위원 조 꼬마가 뒤따라오면서 경계하였다. 통나무집들에서 멀리 떨어진 아름드리나무 우에서 나무 가지를 가로 타고 앉아 보초를 서는 병수와 득호가 보일락 말락 하였다. 성칠은 진달래를 돌아보면서 “보초를 겹겹이 강화해라. 요 며칠 새 특무들이 오거나 별동대가 습격하러 올 게야.” 라고 하였다.      “예. 병수와 득호 등 10여명 증가해 세 겹으로 보초를 서고 있어요.”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외곽보초는 청년들을 윤번으로 세워라. 나이 들면 노련하지만 반응이 늦어.” “알았어요. 즉시 청년들과 중년을 섞어 보초를 세우겠어요.”     “군호도 바꿔라.”     성칠은 진달래 귀에 대고 나직이 말하였다. “군호를 ‘진달래’로 바꿔라.” “예?” 진달래는 놀란 표정으로 성칠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머리를 끄덕이었다. 뒤에 멀찍이 서서 보초를 서는 조 꼬마를 돌아보고 나서 진달래에게 정색해 말하였다. “진달래야, 전번에도 말했지만 넌 용천 대장과 결혼해라.” 진달래는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됐어요. 됐어. 오빤 날 시집보내고 시름 놓을 예산이죠? 적들의 대토벌을 앞두고 결혼은 무슨 결혼인가요?” 성칠은 앵돌아지는 진달래의 손을 잡아당겨 돌려 세워 놓고 정중하게 말하였다. “그런 게 아니야. 우린 가정문제와 혁명의 후대문제도 잘 해결해야 한다. 날 봐. 자식 하나 없이 얼마나 비참하냐?” “픽!” 진달래는 코웃음을 치었다. “오빠도 걸 알아요? 누가 자식을 보지 말라고 붙들어 뒀어요? 낳을 수 있어도 낳을 방도를 대지 않아 그렇지요.” 성칠의 눈치를 보던 진달래는 뒷말을 다른 데로 돌려 버리었다. “명천에서 형내사돈이 금방 함흥촌에 들어왔대요. 전번에 아버지 큰아버지를 보러 함흥촌에 갔다가  규혁 사돈에게서 첩약을 지어왔댔잖아요. 그 약을 달여 언니를 대접하면 언닌 일어날 거라고 해요. 언니하구 행복하게 살아요.” “남의 걱정 말구 네 대상문제나 근심해라. 전번에 넌 하옥을 붙잡고 울면서 분명히 말하지 않았니? 용천대장과 결혼하겠다고?”      진달래는 정색하였다. “용천 대장이 동의하면 결혼할 게요. 나도 양심 있는 계집애예요. 절대 하옥 언니 발등을 밟지 않을 거예요.” 진달래는 돌아서더니 아름드리나무에 기댄 채 어깨를 들먹이며 흑흑흑 흐느끼어 울었다. 성칠은 진달래의 어깨를 다독이어 주었다. “잘 생각했다. 이제 용천 대장이 오면 전시 결혼식을 치르자.” 진달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주먹으로 성칠의 가슴을 마구 치어댔다. 성칠은 진달래를 꼭 껴안아 주었다. “넌 영원히 내 여동생이야.” 성칠은 뒤이어 “내세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때 우리 함께 살자.” 라고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억지로 꾹 삼키어 버리었다. 이때 눈보라치는 밀림 속에서 인기척이 들리었다. “군호!” “장백산!” “군호!” “장백산!” 옛 군호를 대자 보초병과 조 꼬마는 모두 총을 그 쪽으로 겨누었다. “꼼짝 말엇!” 아름드리나무 뒤에서도 총부리를 이쪽에 돌리어댔다. “왜 이래? 난 용천 대장이야! 저쪽 성칠 대장이나 진달래 중대장과 물어 보라고.” 그러자 성칠은 권총을 허리춤에 되 꽂아 넣으며 나무 뒤에서 나와 보초병에게 “그만!” 하고 손을 들었다. 나무 뒤에서 개털 모자를 쓴 용천 대장이 “허허.” 웃으면서 나와 이쪽으로 걸어 왔다. “용천 대장,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더니 정말 왔구먼. 허허허.” 성칠은 마주 나가 용천을 끌어안았다. 그러나 진달래만은 권총을 허리춤에 찔러 넣고 아름드리나무 쪽으로 돌아 서서 외면한 채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었다. 용천은 진달래가 이상했지만 먼저 성칠에게 위문부터 하였다. “아주머니 상했다더니 어때요?” 성칠은 한숨을 내쉬며 “괜찮네. 진달래 아버지 가져온 약까지 달여 먹이면 괜찮을 거 같아.” 라고 하였다. 용천은 그때까지도 돌아서 못 본 척 하는 진달래의 잔등을 보고 의아해 성칠을 보고 물었다. “저 진달래 아닌가? 왜 날 보고 인사도 안 해?” 그제야 진달래는 몸을 돌리더니 “돌아왔어요?” 하고 인사하며 다가왔다. 용천은 진달래의 손을 굳게 잡아 흔들었다. “그래, 진달래 중대장은 여중호걸이야. 우시장까지 쳐나가 자위대 대대장 한길수 놈캉 백승만 형제까지 처단하고 큰아버지까지 모셔왔다면서. 허허허.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랐데이.” 진달래는 머리를 숙이고 발끝으로 눈 바닥을 살살 허비었다. “왜 오늘 따라 진달래중대장이 이렇게 말수 적고 수집어졌제이?” 용천은 성칠을 돌아보면서 “집에 들어가 얘기합세. 바깥에서 얼게 할 예산인고?” 하고 말하였다. 성칠은 용천의 팔을 잡고 고의로 진달래네 집으로 끌고 갔다. 진달래는 뒤돌아보면서 눈을 찔끔 하는 성칠을 곱게 흘겨보면서 성칠의 집 쪽으로 발길을 돌리었다. 토끼 꼬리만한 겨울해가 벌써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 가고 있었다. 성칠이 용천을 데리고 들어가자 최구철은 사냥총을 들고 보초 서러 바깥으로 나갔다. 자리를 정하고 마주 앉자 용천은 “그래 그간 정황이 어떠오?” 하고 물었다. 성칠은 그간 적아 정황을 상세히 말하고 나서 “인삼 중대장을 영월구 쪽에 보내 선제기습작전을 벌려 적들을 교란시킬 작전계획도 세웠네. 여기 밀림 속의 통나무집들에 적들을 깊이 유인해 매복습격전두 벌릴 계획이오.” 라고 덧붙이었다. 성칠은 구들에 목데기와 담배통, 부시 돌을 죽 벌리어 놓고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작전계획을 설명하였다. “우리가 매복 습격할 때 용천 대장은 북만의 유격대를 거느리고 동북쪽에 매복해 있다가 인삼 중대와 함께 밀영에 쳐들어온 적들을 포위해 협공해 주오.” 성칠은 목데기를 쭉 북으로 밀고 부시 돌을 뒤따라 밀면서 뒷말을 이었다. “최후에 매복 습격 전을 끝낸 후 우리 밀영의 유격대는 북만으로 이렇게 전이한단 말이오. 용천 대장넨 우리 뒤를 이렇게 뒤따르는 적들을 매복 습격해 주오.” 용천 대장은 성칠의 말을 듣고 머리를 끄덕이었다. “참 좋군. 이 작전계획이 성공하면 일본 놈들의 반동기염을 여지없이 꺾어 놓겠는데.” 그는 머리를 숙이고 한참이나 궁리하더니 무겁게 뒷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작전계획은 너무나도 모험인데이. 적들이 접대(이미) 장백산 밀림속의 밀영를 발견했다는데이. 한개 중대 유격대원들의 목숨을 미끼로 삼다니? 너무 위험하제이. 우린 유격대원 한사람이라도 아껴야 하는 기여. 있자노, 우린 희생정신과 용감성에만 의거해 전투해선 절대 안 된다이.” 그러나 성칠은 자기 작전계획을 고집하였다. “희생정신이 없이 어떻게 일본 놈들을 소멸하겠는가?” 용천도 목에 지렁이 같은 피 줄을 세우며 양보하지 않았다. “우리 유격대는 이제껏 기동 령활한 유격전술로 적은 대가를 내면서 일본 놈들을 족치었제이. 다 발각된 밀영으로 진지전을 해선 안 된다니께. 김 대장은 매복습격 전을 하려지만. 적들이 꼬임에 들겠는가? 황차 난도 한개 소대 30여명 밖에 데리고 오지 못했제이. 지금 몇 백명 적들이 여길 토벌하러 떠났다고 하데이. 유격대원들의 목숨으로 모험하지 말라니께.” 성칠이 머리를 숙인 채 도리머리를 흔들며 잘 납득돼 하지 않자 용천은 주먹으로 구들장을 쿵 치며 질책하였다. “그래 이전에 성칠 대장이 고향에서 모험적으로 저목장을 습격했다가 상호캉 은희 목숨까지 잃게 한 피의 교훈을 잊었단 말인가?!” 이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최구철이 들어왔다. “살랑살랑 말하라니까. 바깥에서 다 들리네.” “예. 알았습니다.” 최구철이 나가자 용천은 나직하면서도 과단성 있게 말했다. “우리 작전계획을 조절하자니께. 매복습격 전을 다 부정하는 거 아니라니께.” 용천은 이젠 원시림유격대 대장은 성칠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조금 타협하기로 마음을 고치어 먹었던 것이다. 성칠은 그제야 다가앉았다. 그들 둘은 등잔불을 밝히어 놓고 담배통과 목데기, 부시 돌, 재떨이까지 이쪽저쪽에 옮기어 놓으면서 작전계획을 반복적으로 검토하면서 조절하였다. 성칠은 더부룩한 구레나룻을 쓰다듬으며 장기 쪽처럼 펼치어 놓은 담배통이랑 재떨이랑 내리어다 보았다. “참 좋구먼. 조절했기에 더 빈틈없이 됐네 그려. 허허허.” 용천은 허리를 펴며 성칠을 마주 보았다. “접대(이전에) 고함쳐 미안하이. 히야(형님), 허허허.” 성칠은 사람 좋게 허허 하고 마주 보며 웃었다. “허, 사람이라고. 몇 해 갈라졌더니 좀스러워졌군 그려. 경상도 남도치답잖게.” “그래? 잘 못했데이.” 바깥에서는 눈보라가 윙윙 세차게 휘몰아치어 통나무집 문을 모래알을 마구 쥐여 뿌리는 듯이 두드리었다. 성칠은 용천의 손을 굳게 잡았다. “우리 장백산 밀림과 북만 유격대가 잘 합작해 여기서 일본 놈들을 소멸합세.” 말을 마치자 일어나려다가 그는 되앉더니 “용천이, 내 자네하구 꼭 할 말이 있네.”라고 하였다. “뭔데?” 성칠은 정색해 말하였다. “아우, 아우도 이젠 마흔이 넘었는데 결혼해야지.” “전투를 앞두고 웬 결혼 말이제이? 누가 내 같은 빈 털털이한테 시집온대?” 성칠은 용천의 손을 잡아 쥐었다. “내 여동생 진달래도 이젠 마흔 고개를 올리다 보네. 진달래하구 결혼하면 좋지 않은가?” “아니, 아니, 무슨 농담하는 기오?” “농담 아니야.” 용천은 등잔불을 빌어 성칠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한숨을 후 내쉬었다. “우리 유격대는 언제나 목숨을 내 놓아야 할지 몰라. 진달래를 데리어다 무슨 고생시킬락꼬?” 성칠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한마디만 묻겠네. 내 누이 진달래 어때? 마음에 들어?” 용천도 정색해 대답하였다. “진달래는 여중호걸인 기오.” 그러나 성칠의 눈치를 흘끔 보더니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안 돼, 말도 안 돼. 전투를 앞두고 무슨 결혼인감?” 성칠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럼 됐네. 아우와 여동생 중매는 성공했네. 허허허. 오늘 저녁에 말이 나온바 하곤 맺고 끊기요. 내 진달래를 데려 올 테니 오늘 저녁에 여기 묵게나.” 라고 하였다. “이보라우, 히야, 어데 번개 불에 마른 소고기 구워 먹는 격을 할래요? 진달래 말도 받아 보지도 않고스리.” 용천도 따라 일어났다. 성칠은 용천을 마구 밀어 앉혀 놓고 신을 신으러 방바닥으로 내리어 갔다. 이때 문이 벌컥 열리었다. 최구철이 들어섰다. “사돈어른, 진달래를 용천 대장께 주겠습둥?” 최구철은 사냥총을 벽에 걸면서 “내 밖에서 다 들었네. 세상 듣다 반가운 소식이네. 용천 대장은 훌륭한 사위 감이지. 다만 진달래 어쩌겠는지?” 라고 하였다. “허허허, 근심맙소. 내 이미 전에 진달래와 말이 있었습니다. 내 가서 진달래를 데려 옵지. 전시인데 전시 번개식결혼식을 올리어 줍시다.” 성칠은 통쾌하게 웃더니 문 밖을 나섰다. 이윽고 성칠은 진달래를 데리고 집안에 들어섰다. 진달래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방바닥에 서 있었다. 구철은 “얘야, 이리 올라오너라. 넌 용천 대장께 시집가는 게 어떠냐?” 하고 물었다. 진달래는 오늘 밤 따라 수집은지 머리도 들지 못하며 외면하였다. 성칠은 앵돌아진 진달래를 보다가 “여자란 말하지 않으면 좋다는 말입니다. 이전에도 용천 대장한테 시집가겠다고 나한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라고 하며 진달래를 끌어다 구들에 올라와 용천과 나란히 앉히어 놓고 선포하였다. “용천 대장과 진달래 중대장은 오늘부터 한 쌍의 혁명적인 부부로 됐음을 천하에 공포합니다. 사위 용천 대장은 가시아버지께 예를 올리게나.” 용천은 최구철에게 큰절을 올리었다. “곱게 길러 주신 진달래와 잘 살겠어요. 감사해요.” 최구철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사위도 반자식이라고 몸조심하고 오래오래 금술 좋게 살게나.” “예.” 용천이 앉으려는데 성칠은 “부부 맞절이오.” 하고 둘을 마주 세웠다. 용천과 진달래는 맞절을 올리었다. 성칠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결혼을 축하하네. 축배라도 한잔 드려야 하는데 전시라 별 수 없군. 그럼 둘이 잘 얘기하게나.” 라고 하였다. 용천은 송구스러워 엉덩이를 들며 “형님, 세상에 이렇게 마른 나무 꺾듯 하는 결혼도 있어?” 하고 중얼거리었다. 방바닥을 내리어 가는 성칠이 비틀거리었다. 등잔불 밑에서 비틀거리는 성칠의 너부죽한 뒤 잔등을 바라보며 진달래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니 어깨를 들먹이었다. “이보게, 사돈, 내 할 말이 있네.” 최구철은 성칠을 따라 바깥으로 나오면서 자리를 비웠다. 성칠은 뒤따라 나온 최구철을 모시고 자기 통나무집으로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7. 개싸움        장백산 지역으로 통하는 교통요새에 자리 잡은 영월구에 고약딱지기발이 펄럭이고 금방 기차에서 내린 수백 명 일본 놈들이 총칼을 번뜩이며 영월구를 짓밟는 군화 소리 어지럽게 요란하였다. 오토바이 한대가 달려와 영월구파출소 앞에 멈춰 섰다. 안경을 건 한철주 부련대장이 내려 우멍한 문을 번뜩거리었다. 마중 나온 영월구파출소 소장 등 경찰 놈들이 차렷하고 군례를 척 붙이었다. 한철주가 파출소 안으로 들어가기 바쁘게 모두들 일어나 군례를 척 붙이었다. “한 련대장, 오셨소?” 한철주는 어안이 벙벙해 하였다. (명천 림업파출소 야마모도 소장이 어찌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이때 뒤에서 류강철이 나오면서 소개했다. “야마모도 대장입니다. 이번에 별동대 대장으로 왔습니다.” 그제야 한철주는 일일이 악수하였다. “모두 멀리서 왔구먼. 야마모도 대장, 수고 많습니다. 아니, 수길 형님도 오고.” 강철은 옆에서 굽실거리면서 일일이 소개하였다. “한 련대장, 수길 친구는 자위대 대대장을 하다가 이번엔 별동대 부대장으로 왔소.” 한철주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수길의 어깨를 툭툭 치었다. “이전에 내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인데 잘 하게나.” “충성을 다하겠소.” 모두들 인사를 끝마치고 자리에 앉자 영월구파출소 소장은 졸개들을 시켜 따뜻한 차물을 올리었다. 한철주는 일본 놈들의 앞잡이 본성을 잃지 않았다. “야마모도 대장님,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여기서 함께 합동 작전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야마모도 대장은 발바리 상을 하는 한철주의 굽힌 잔등을 툭툭 치며 치하하였다. “한 군은 일본에 유학까지 갔다 와서 일본 말을 스라스라(술술)하는구먼. 벼슬도 직상승하고. 허허허.” 한철주는 안경알을 춰올리며 헤벌쭉 웃어 보이었다. “다 대일본제국에서 길러 준 덕분이죠.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야마모도 대장은 슬슬 개여 올리는 한철주가 좋았다. 그는 말 속에 말이 있는 말을 하였다. “군의 가친은 유격대 계집의 돌멩이에 맞아 사망했소다. 정말 안 됐소.” 한철주는 숱한 사람들 앞에서 창피하기도 하고 악이 나 이를 뿌드득 갈았다. “이번에 부친의 원수를 갚지 못하면 원시림에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그는 사무 상을 꽝 쳤다. “난 원수를 갚자고 신경에서 스즈끼 국장님의 편지를 받고 동만에 나왔습니다. 김성칠, 최동욱, 김칠백 그리구 진달래 계집년을 잡아 죽이지 않고선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겠습니다.” 야마모도는 자기 격장법이 수가 든 것 같아 희죽이 웃으면서 지껄였다. “이번에 원시림 유격대를 장백산 원시림에서 모조리, 깡그리 소멸해 버립시다.” 야마모도는 한철주에게 뭐라고 귀속 말을 하더니 수하 사람들을 다 내 보내고 둘이 딱 남았다. 한철주가 통역도 필요 없어 강철마저 내보냈다. “한 부련대장, 조용히 작전을 연구합세.” 한철주는 차 컵을 들어 후후 불며 “먼저 대장님의 고견부터 들어 봅시다.”하고 슬쩍 피해버리었다. 야마모도 대장은 사양하지 않고 떠벌여댔다. “한 부련대장도 알겠지만 장백산 지역 항일유격대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면서 유격전에 능하네. 우린 기동 영활한 이동작전으로 그 놈들의 유격전을 제압하면서 한 놈 한 놈, 한개 소 분대 씩 소멸해야 하오.” 그 말에 한철주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유격대 꽁무니나 따라 다녀서야 언제 유격대를 전멸시키겠습니까? 청산리나 봉오동 전투에서도 바로 그래서 토벌에 실패했습니다. 우린 우세한 병력으로 원시림 유격대를 포위 섬멸해야 합니다.” 젖내 나는 놈이 장교노라고 우쭐거리는 것이 눈에 거슬렸지만 야마모도는 억지로 꾹 참으면서 지껄이어댔다. “이건 내 혼자 의견이 아니네. 스즈끼 국장께선 우리 별동대를 보내 밀림 속의 유격대를 기습해 진달래 년의 대가리를 베 오라고 했네. 우리 기습에 배합해 자네가 포위섬멸전을 하든 이동작전을 하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네. 알만한가?” 삼림이나 지키던 야마모도가 대부대작전도 모르면서 손가락질하는 것이 거슬리었지만 한철주는 큰 국면을 돌보기로 하고 침묵을 지키었다. 야마모도는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지껄였다. “사실 이번에 자네한테 스즈끼 국장의 편지를 보내게 한 사람도 나일세. 자네도 알겠지만 전임 경찰국장 끼무라나 가친께서도 진달래 년을 어쩌지 못했네. 그런 고로 끼무라 국장은 할복해 죽고 자네 가친도 참살 당했네. 자네가 짜개바지를 입고 젖내를 풍기면서 달아 다닐 때부터 우린 의병과 항일유격대와 싸워 왔네. 유학이나 했다고 선배들의 가르침도 받지 않고 우리 대일본제국의 황군을 마음대로 지휘할 작정인가? 쓸 데 없는 자존심을 버리고 우린 잘 협동작전해야 하네.” 묵묵히 앉아 있는 철주를 보고 야마모도는 자기 말에 완전히 승복한 것으로 오해하고 바위 돌처럼 굳었던 얼굴이 좀 풀리었다. “유격대를 기습하려면 정규군이 좀 필요하네. 내 데려온 별동대는 몇 달 밖에 훈련받지 못한 오합지졸들이네. 자네 관동정규군에서 한개 소대쯤 떼 주게나.” 한철주는 더는 물러 설 데 없게 되자 반발하였다. “그게 어디 아이들 장난입니까? 상부의 허락을 맡아야 합니다. 군법이 무섭지 않습니까?” 야마모도 대장은 얼리고 닥치기 시작하였다. “하하, 금방 말했는데도, 황군 앞에서 마구 헤덤비는가? 저 오합지졸들을 가지고 어떻게 백전백승하는 밀림 유격대를 소멸한단 말인가? 큰 국면을 생각하게나. 황차 세상 사람이 모르게 유격대 두목들의 머리를 베자마자 정규군에 돌려주면 그만이네.” 머리를 숙이고 궁리하는 한철주를 보고 야마모도는 가련한 표정도 지어 보이었다. “이번에 진달래 대가릴 떼 가지 못하는 날엔 자네나 내나 몽땅 자기 대가리를 쳐 가지고 가야 돼.스즈끼 국장도 목이 날아 나고. 어떤가? 떼 주지?” 그제야 한철주는 머리를 들고 속으로 이 일본 영감태기 유격대에 겁을 먹기도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비밀을 지키겠습니까?” 그러자 야마모도는 한철주에게 다가앉으면서 “암, 여부가 있겠는가?”하고 반색하였다. “그럼 한개 소대를 대장께 드리죠. 꼭 감쪽같이 기습해 진달래 년의 대가릴 떼 오십시오.” 야마모도는 한철주의 어깨를 툭툭 치며 호언장담하였다. “우린 박응세와 가메다를 통해 진달래의 통나무집이 밀림 속 어데 있는 것까지 다 손금 보듯 하네. 꼭 자네 아버지 원수를 갚아 주지.” 뒤이어 그들 둘은 오래도록 꿍꿍이를 꾸미었다… 이튿날 눈보라를 무릅쓰고 별동대 놈들은 먼저 떠나고 관동군은 휴식정돈한 후 둬 시간 후에 떠났다. 별동대가 해질 녘에 영월구에서도 한 50여리 떨어진 안보촌 뒤 산골짜기에 이르렀을 때다. 별동대 일본 군 소대는 아무 군소리 없는데 조선인 소대에서 쑤군거리는 소리가 들리었다. 야마모도는 수길에게 “저 자들이 왜 떠드는 거요?” 하고 물었다. 수길은 다가와 “저 놈들이 맥이 없다면서 산골짜기 아래 마을에 들어가 한잠 푹 자구 갔으면 좋겠답디다.” 하고 대답하였다. 류강철이 통역해주자 야마모도는 발을 탕 굴렀다. “정신 나간 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산세가 험한 걸 봐라. 여긴 분명 유격대가 출몰할 수 있는 산골짜기야. 흥!" 그때 영월구파출소 소장이 끼어들었다.  "이전에도 지게군과 십가장까지 척살당했습니다." 그 말에 야마모도는 더럭 겁나 더 고집썼다. "계속 전진해야 돼!” 통역을 듣자 수길은 뒷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정말 지쳐서 이젠 모두 가지 못하겠답니다.” 야마모도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지형을 둘러보다가 산골짜기 아래쪽을 가리키었다. “저기 시야가 넓게 트인 벌판에 가서 논두렁 밑에 누워 자자.” 그 말에 수길은 기 번지어질 지경이었다. “환히 드러난 곳에서 자다가 유격대 습격을 받자고?” 그러나 야마모도는 고집하였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들, 눈이 덮인 벌판에서 자면 적어도 유격대들이 접근하는 걸 멀리서두 발견할 수 있어. 허나 이런데서 자다간 유격대가 와서 목을 다 베가도 모를 거 아냐?” 수길은 듣고 보니 그럴 법해 수긍하고 말았다. 관동군 소대장도 쉰다는 말에 따라 나섰다. 여기저기에서 “벌판에서 자다가 유격대 총알받이 되겠다.”라고 하는지 뭔지 별 말이 다 들리었다. 야마모도는 권총을 빼들고 “내 명령에 복종해! 복종하지 않는 놈은 당장 총살할 테야!”하고 호통 쳤다. 땅! 산골짜기에서 야무진 총소리가 메아리치었다. 총소리와 함께 제일 뒤에서 걷던 놈이 눈 위에 푹 꼬꾸라졌다. 놈들은 질겁해 부들부들 떨며 야마모도의 권총을 힐끔거리며 산 아래로 뒷걸음질 쳤다. 처음에 적들은 야마모도 대장이 겁을 주느라고 뒤떨어진 자를 쐈나 여기고 계속 앞으로 빨리 걸음을 재우쳤다. 땅! 땅! 총소리와 함께 또 뒤꽁무니에서 뒤따르던 두 놈이 푹푹 쓰러지었다. 그제야 야마모도대장이 총을 뽑아 들었지만 총을 쏘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다. “유격대!” “엎드렷!” 야마모도 대장의 아우성소리를 듣고 적들은 제각기 흩어져 아우성치며 눈 우에 쓰러지듯이 엎드리어 맞불질하였다. 원래 밀림에서 미리 내려 매복 진을 치고 있던 유격대는 인삼 중대장의 지휘아래 놈들에게 선제공격을 들이댔던 것이다. 야마모도는 저지러진 총소리를 듣고 고함쳤다. “유격대 소 분대야! 겁먹지 말고 사격하라!” 관동군 놈들은 사격해댔지만 별동대 놈들은 눈 속에 대가리를 파묻고 까딱하지 않았다. 유격대 사격도 뜸해졌다. 야마모도는 코 수염을 씰룩거리며 유격대가 사격하는 산꼭대기를 쏘아보았다. 눈보라 속에 사격하는 불빛이 몇 가닥 보이지 않았다. 야마모도는 군도를 뽑아 들고 산꼭대기를 향해 휘두르면서 고함쳤다. “돌격!” 적들은 단말마적으로 산꼭대기를 향해 돌격해 올라갔다. 관동군 놈들은 날창을 번뜩이며 산중턱에까지 덮치어 갔다. 그러나 별동대 놈들은 수길의 지휘아래 겨우 산비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저런 등신들 데리고 어떻게 신출귀몰하는 유격대를 기습하겠는가?” 야마모도는 중얼거리다가 “아차, 잘 못될 번했어.”라고 중얼거리더니 “벌판으로 철퇴하라!”하고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산중턱에까지 겨우 기여 올라 온 수길은 헐레벌떡거리며 의아해 하였다. “넌 지휘관 감이 아니야.” “예?” 수길은 뒷덜미를 긁적거리며 의아해 하였다. “우리 별동대 여기서싸우는 게 아냐! 장백산유격대 두목 진달래년을 잡아야 해! 백 놈을 놓치더라도 그 년만 잡으면 돼!” 그제야 수길은 “에, 알 거 같습니다.”하고 야마모도를 뒤따라 벌판으로 내리어 갔다. 졸개들도 눈먼 총질을 하면서 벌판으로 달아났다. 땅! 땅! 땅 땅 땅 땅! 적들이 퇴각할 때었다. 또 산꼭대기에서 또 유격대원들이 맹렬히 사격하였다. 몇몇 놈들이 또 쓰러지었다. “수길 부대장, 유격대 꼬임 수에 걸리어 들지 말고 빨리 조선별동대를 데리고 벌판에 철거하라.” “예. 정말 야마모도 대장 짐작 대롭니다.” 적들은 눈 우에 뻘건 피와 함께 여러 놈의 더러운 시체를 남기고 피가 질벅한 눈을 밟으면서 벌판으로 꼬리 빳빳해 도망치어 내려갔다. 유격대는 야마모도 대장이 짐작한대로 더 추격하지 않았다. “이젠 살았구나.” 수길의 말에 야마모도는 군복웃옷 단추를 벗기고 헐떡거리며 지껄었다. “내가 뭐라던가? 벌판에 내려와야 산다는데. 저 놈들이 벌판에까지 감히 내리어오기만 해보라지!” “에- 정말 대장님 고명합니다. 고명해!” “이럴 줄 알고 한 련대장과 어제 작전을 짜 놓았네. 산에서 유격대만 만나면 우리 별동대에서 그 놈들을 유인해 벌판에 끌어 내오면 한 련대장네 관동군 대부대가 포위섬멸해 버리기로 했네.” “그런데 저 놈들이 꼬임 수에 들어야겠는데.” “두구 보게. 아무 때나 우리 함정에 빠지지 않는가?” “그런데 놈들을 유인하는 미끼로 된 우리 위험하겠는데.” “닥쳐! 재수 없는 말 말라!” “옛!” “전투대형으로 논두렁에 의지해 매복해 자고 있으라.” “여기서 잔다고? 미끼로 써도 너무 하잖습니까?” 곤해 빠진 별동대 놈들은 눈 우에 털썩털썩 쓰러지었다. 수길이 여기저기 힐끔거리며 두덜거릴 때었다. 땅! 땅! 땅 땅 땅! 마을 쪽에서 총소리가 요란히 울리었다. “일제 놈들의 대갈통을 까 부셔라!” “쐇!” 금방 눈 우에서 일어난 몇몇 놈들이 비명소리를 지르며 눈우에 푹푹 꼬꾸라지었다. “유격대다! 쏴!” 수길이 고함쳤다. 야마모도도 “사격!”하고 고함치었다. “개새끼들 덤벼라!”       별동대 조선인놈들은 조선말로 고함치며 일제히 눈보라 치는 마을 쪽에 대고 사격하였다. 숱한 불줄기가 마을로 날아갔다. 웬 일인지 마을 쪽에서 총소리가 뜸해지었다. 기실 그때 인삼 중대장의 지휘대로 유격대는 벌판의 놈들에게 사격한 후 마을에 금방 들어선 동북쪽의 적에게 돌려 대고 몰 사격을 하였다. 그들은 별동대와 관공군을 서로 맞불질하게 개싸움을 붙여놓고 서북쪽 산골짜기로 신출귀몰했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마을에 들어선 관동군은 자기들에게 사격하는 벌판의 별동대를 유격대로 오해하고 맹사격을 퍼부었다. 한철주는 웬 초가집 구새 목에 숨어 군도를 뽑아 들고 벌판을 향해 휘둘렀다. “유격대다! 사격!” 한철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관동군은 벌판의 별동대에게 몰 사격을 가하였다. 유격대는 마을에 갓 들어선 관동군과 벌판의 별동대를 개싸움을 시켜 놓고 살짝 빠져 전이하였던 것이다. 관동군과 별동대는 한식경이나 왝왝 고함치며 싸웠다. 한참 후에야 서로 일본 말로 왝왝 고함치는 소리를 듣고 사격을 멈추었다. 한철주가 둘러보니 눈보로 치는 마을의 눈 덮인 길바닥 여기저기에 숱한 더러운 시체가 나뒹구는 것이었다. “제길 할, 속았군, 속았어! 유격대 놈들에게 속았단 말이야!” 야마모도는 그때까지도 몰랐든지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올라 군도를 빼든 채 마을 쪽을 쏘아 보며 고함치었다. “사격!” 수길이 다급히 손사래 치며 말리었다. “야마모도 대장, 저쪽은 한 련대장네 부댄 거 같습니다. 사격을 멈춥시다.” 야마모도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사격!” 일본 놈들은 한 련대장의 일본군을 향해 계속 사격하였다. 저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리었다. “사격을 멈추십시오. 야마모도 대장!” “한 련대장 부댄가?” “예!” 그제야 야마모도는 군도를 논두렁에 내리꽂으며 짚고 서더니 황급히 명령했다. “사격을 멈췃!” 별동대 놈들이 여기저기서 두덜거렸다. “제길 할, 유격대 놈들에게 놀아났군." "온 밤 개싸움을 했군!” 야마모도는 군도로 눈 덮인 논바닥을 쿡쿡 찍으면서 성이나 씩씩거리었다. 맞은편에서 한철주도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허허 벌판에서는 피비린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공포가 어둠 속에서 승냥이처럼 마을로 슬금슬금 기어들고 있었다.  
72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1) 댓글:  조회:1728  추천:1  2016-09-23
                   4. 샘물터의 총소리 원시림에 눈보라가 윙윙 세차게 휘몰아쳐 협곡과 산골짜기에는 어느덧 허연 눈이 몇 길씩 뒤덮이었다. 그 두꺼운 눈은 세찬 산바람에 떵떵 굳어 사람이 딛고 건너가도 됐다. 협곡의 막바지는 원시림 밑바닥에 1 미터 남짓한 넓이로 패인 깊은 협곡으로 사시장철 새하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물이 흐르는 밑바닥은 자연 석굴처럼 널찍하고 윗부분은 좁아 천연적인 은신처나 다름없었다. 성칠은 진달래를 데리고 작전계획대로 돌아다니면서 매복습격전투준비정황을 검사하였다. 그는 협곡과 골짜기에 뒤덮인 눈을 직접 건너보면서 진달래를 돌아보았다. “정말 용천대장이 말한 대로 될 거 같구나. 이제 여기에 놈들의 커다란 무덤을 만들어 놔야지.” 진달래도 동을 달았다. “그래요. 놈들은 통나무집 안의 갱도를 생각지도 못했을 거예요. 더구나 이 협곡과 산골짜기의 눈은 생각지도 못했을 거예요.” 성칠은 진달래의 흩날리는 단발머리를 마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그 놈들은 가메다와 응세의 거짓 정보를 믿고 한바탕 너덜거릴 거야. 죽탕 먹을 줄은 모르고. 흥!” 뒤이어 성칠은 주저주저하다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진달래야, 넌 용천대장을 어떻게 생각하니?” “참 훌륭한 지휘관이죠." 진달래는 어망간에 대답했다가 이상해났다. "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건 왜?” 진달래는 의아해 깜장 눈을 치켜떴다. 성칠은 옆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너도 이젠 마흔 고개를 올려다보지 않니? 용천 대장한테 시집가면 좋잖니?” “안 가요.” 진달래는 눈을 곱게 흘기며 앵돌아졌다. “용천 대장만큼 좋은 신랑감이 어데 있다고 그러니?” “시집 안 간대도. 오빤 내 마음 몰라 그래요?” 성칠은 떠나려는 진달래 손을 잡아챘다. “너 미쳤니? 날 조강지처를 버린 나쁜 놈으로 만들자고?” “그러게 안 간다지 않아요.” 진달래는 앵돌아져 눈덮인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어깨를 세차게 들먹였다. 눈보라치는 수림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녀는 홱 돌아서며 당돌하게 물었다. “오빤 날 사랑하지 않았는가요?” “그래, 나도 널 사랑해.” 성칠은 이렇게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억지로 삼켜 버리었다. 뒤이어 그는 두 손으로 진달래의 어깨를 잡고 흩날리는 눈보라 속에 진달래의 까만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간곡히 말했다. “난 절대 조강지처를 버릴 수 없어. 더구나 본댁을 두고 절대 후처를 할 수도 없다.” 성칠은 어깨를 들먹이며 흑흑 흐느껴 우는 진달래의 어깨를 놓고 주먹으로 언 소나무를 꽝꽝 쳤다. “누가 나더러 유격대 대장이 되라고 했는가!” 진달래는 성칠의 허리를 뒤로 꼭 끌어안고 가슴이 미여지게 울었다. 이때 아름드리나무 위에서 눈가루가 우수수 흩날려 내려 두 사람의 머리 위에 꽃 너울을 씌워주었다. 그들은 꿈속에서나마 사랑하는 신랑, 각시로 돼 보았다. 땅! 이때 갑자기 샘물터 부근에서 총소리가 울리었다. “뭐야?!” 성칠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 들고 허리 굽히더니 샘물터 쪽으로 뛰어갔다. 진달래도 권총을 빼 들고 뒤따라 뛰어갔다. 땅! 땅! 땅!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리었다. 그들이 뛰어 갔을 때 눈 덮인 샘물터에 하옥이가 권총을 쥔 채 가슴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깨진 물동이마저 깨져 있었다. 성칠은 하옥을 와락 끌어안았다. “여보,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언니, 이걸 어쩌나? 가슴에 총을 맞았네요.” 경위원 조 꼬마가 저쪽에서 밀림에 대고 총을 쏘며 경계하다가 뛰어 왔다. “김 대장, 특무 놈이 불시에 나타났습니다. 나와 아주머니가 먼저 특무를 발견하고 총을 쏘았습니다. 특무 놈은 달아나면서 아주머니를 쏘았습니다. 칠백 중대장이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추격해 갔습니다.” “알았소. 계속 경계하오.” “옛!” 성칠은 하옥을 진달래에게 맡기고 총소리 난 쪽을 향해 뛰어 갔다. 총소리에 놀란 산짐승들이 여기저기 뛰어 다니었다. 피뜩 아름드리나무 사이에서 흰 옷 위에 털조끼를 끼어 입은 놈이 얼른거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어디로 도망쳐?) 성칠은 나무 뒤에 딱 붙어 섰다. 저쪽에서 총소리 또 울리었다. 그 놈이 기대선 나무에  총알이 푱 하고 박히었다. 질겁한 그 놈은 성칠이 숨은 나무쪽으로 비실비실 뒷걸음질 쳤다. “꼼짝 말엇!” “앗!” 그 놈은 권총을 쥔 손을 쳐들며 몸을 천천히 돌리었다. 땅! "앗!" 그 놈은  비명을 지르더니 몸을 날리어 눈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면서 총을 쏘았다. 성칠은 나무 뒤에 몸을 착 붙이며 날래게 피했다. “어디로 도망쳐?!” 성칠은 눈 바닥에서 나뒹구는 놈에게 호랑이가 승냥이를 덮치듯이 덮쳐들었다. 둘은 눈 위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싸웠다. 성칠이 왼팔을 상했지만 특무 놈은 근본 적수가 되지 못했다. 성칠은 상한 왼손으로 권총을 쥔 특무의 손을 내리눌렀다. 특무 놈은 깔리어서도 방아쇠를 자꾸 당기었다. 땅! 땅! 땅! 성칠이 총신을 허공에 탈아 버리어 총알은 허망공중에로 날아갔다. 권총에 이젠 탄알이 없었다. 성칠은 권총으로 최후 발악하는 특무의 대가리를 딱 내리깠다. 특무 놈은 당장에서 이마에 피를 흘리면서 까딱하지 못했다. 이때 칠백이랑 뛰어왔다. “김 대장, 괜찮소?” “빨리 이 놈을 압송하오. 아직도 특무가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주의하오.” “옛!” 몇몇 유격대원들이 특무 놈을 압송해가려고 할 때었다. 경위원 조 꼬마가 뛰어왔다. “보고! 응세 특무 놈이 혼란한 틈을 타서 도망치었습니다.” 그러자 성칠은 피씩 코웃음을 치었다. “모든 게 우리 계획대로 돼 가는구먼.” 유격대원들은 어안이 벙벙해 하면서 특무를 끌고 갔다. “잠간!” 유격대원들이 특무 놈을 눈으로 질질 끌고 가다가 주춤 멈춰서 성칠을 쳐다보았다. 성칠은 권총을 허리춤에 찌르며 말하였다. “그 놈을 야영지에까지 끌고 갈 게 없어. 산골짜기 쪽에 가서 심문하오. 전번에도 응세 놈이 우리 진영을 다 정찰해가지고 도망치지 않았고 뭐요.” 그러자 유격대원들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특무를 압송하고 나머지 유격대원들은 밀림에 흩어지어 특무가 더 있나 수색하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저쪽에서 바위돌과 억복이가 다른 특무 놈을 끌고 왔다. 그 놈도 통나무집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골짜기 어귀에 압송돼 아름드리나무에 결박되었다. 성칠이 자기 통나무집 앞에 돌아왔을 때다. 집안에서 하옥의 목소리가 들리었다. “진달래야, 김성칠은 참 좋은 남자야. 자네한테 맡, 맡기네.” “언니, 무슨 말을 해? 난 용천 대장한테 시집 갈라요. 언닌 꼭 살아야 해. 언니—” 성칠이 황급히 통나무 집 안에 들어가니 하옥은 진달래 품에 안긴 채 또 중얼거리었다. “난, 난 둘이 서로 사, 사랑하는걸 아, 알고 있어.” 진달래는 성칠이 들어 온 줄도 모르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 언닌 꼭 살아야 해. 흑흑흑.” 성칠도 무릎을 꿇고 하옥의 얼굴을 매만지면서 진정을 토로하였다. “여보, 당신은 내 조강지처요. 죽어선 안 되오. 꼭 살아서 고향의 광복을 봐야 하오.” 하옥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손으로 성칠의 손을 더듬으려는 듯이 허우적거리었다. 성칠은 제꺽 하옥의 손을 잡고 퍼더버리고 물앉았다. “여보, 미안해요. 애, 애 하나 나아 주지 못, 못해. 진달래하구 꼭 행복, 행복하게 사, 살아요.” “무슨 소리요. 진달랜 용천 대장과 결혼한다 하잖았소. 당신 죽지 않소! 아니, 죽어선 안 되오.” 성칠은 눈물을 쫙 쏟더니 하옥의 손을 잡고 애타게 흔들었다. “조 꼬마!” “옛!” “위생원을 불러 왓!” “옛! 이미 불렀습니다.” 이때 통나무집 문이 벌컥 열리더니 위생원이 뛰어 들어 왔다. 성칠은 자리를 내주면서 “내 아내를 꼭 살려 내오. 구하지 못하면 군법으로 처리할 테다!”라고 을러멨다. “옛!” 위생원은 처음으로 성칠 대장이 이다지도 이지를 잃은 것을 보았다. 그는 두말없이 약솜으로 하옥의 상처를 닦아주고 손맥을 짚어 보았다. “약이 없어 어쩌지?” 위생원은 진달래와 경위원을 돌아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놈들의 봉쇄로 산에는 쌀과 약이 다 떨어지었던 것이다. 약이 없이 위생원인들 아무리 김성칠 장의 아내라도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성칠은 우두커니 서서 눈물을 훔치면서 “어떤가?” 하고 물었다. 위생원은 성칠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알려 주었다. “탄알이 페 한쪽을 뚫어 위험합니다. 우선 수술해 탄알을 빼내야겠습니다. 그런데 마취약도 없지.아주머니가 피를 너무 많이 흘리어 혈압이 내려 갈 거 같아 손을 대기 무섭습니다. 베니실린이 있어야 총상 염증을 빼겠는데... ” 성칠은 씩씩거리며 “그렇다고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만 있겠는가?” 라고 하더니 함지를 들고 바깥으로 씽 나갔다. 이윽고 들어온 성칠은 함지를 들고 하옥의 곁으로 가서 내리어 놓았다. 그는 진달래와 은녀를 보고 “한쪽으로 앉아라."라고 하더니 하옥의 저고리를 헤쳤다. 진달래는 “왜 이래요?” 하고 물으며 까만 포도알눈을 치켜떴다. 성칠은 약솜을 가져다 함지에 잠그면서 “조상이 물려준 비방 약으로 상처를 처치해 줄 테다.”라고 하였다. 은녀는 의아한 눈길로 “오빠, 이게 뭔가요?”라고 물었다. 성칠은 붕대마저 풀어내고 약솜으로 하옥의 탄알구멍 상처에 괴여 오른 뻘건 피를 닦아내면서 대답하였다. “세상에 둘도 없는 조상들의 비방 약이야." "뭔데요?" " 내 오줌이야.” “오줌?” 진달래는 의아해하다가 성칠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이전에도 처음 만났을 때 성칠 오빠는 자기 오줌으로 동상을 치료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총상 염증도 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아직 의문스러웠다. 그때 옆에 있던 위생원이 해석해 주었다. “놔두시오. 옛 의서에 오줌으로 소독하고 소염도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칠은 오줌으로 총알구멍을 닦아 낸 후 위생원을 돌아보았다. “빨리 수술해 탄알을 빼 내오!” 그러나 위생원은 “마취약이나 지혈제가 없이 어떻게 수술하겠습니까?”라고 하며 난감해 했다. “이건 명령이오! 당장 수술해 탄알을 빼 내오!” 위생원은 대장의 아내여서 수술하기 적이 손이 떨리었다. 그래도 별수 없었다. 위생원은 수술칼로 하옥의 오른쪽가슴에 난 총알구멍을 십자로 한 칼, 한 칼 짜갰다. 하옥의 신음소리가 토굴 방을 아프게 톱질하였다. 성칠은 자기 가슴을 오리, 오리 칼로 저며 내는 것 같아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하고 바깥으로 나가 눈보라 치는 하늘을 우러러 보며 한숨만 푸, 푸 몰아쉬었다. 한참 후 진달래가 머리를 숙이고 바깥으로 나왔다. “어떠냐? 수술 다 했느냐?”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이 걸 보세요.” 진달래가 내민 손에서 피 묻은 총알을 받아 들고 보는 성칠의 눈에서는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리었다. “특무 놈을 살려 두지 않을 테다!” 이때 보초 서던 경위원 조 꼬마가 다가와 머리를 숙이었다. “김 대장, 처분하십시오. 아주머니를 경위하지 못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성칠은 “아니오. 이제부터 잘 보호하오.”라고 말하고는 통나무집으로 화닥닥 뛰어 들어 갔다. 하옥은 고요히 잠들어 버린 것처럼 두 눈을 꼭 감고 누워 신음소리마저 내지 못하고 있었다. 위생원은 성칠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조용히 말하였다. “위험에서는 벗어났습니다. 다행히 총알이 폐를 빗뚫으면서 페 동맥은 상하지 않았습디다. 오줌 약 덕분에 지혈도 됐습니다. 지금 맥박도 고릅니다.” "음." 성칠은 응어리진 어혈을 토해내듯이 신음에 가까운 소릴 냈다. “음, 그래."  하옥은 죽을 수 없어. 절대 죽지 않아!” 성칠은 바깥으로 나오면서 “은녀야, 그 오줌으로 좀 더 상처를 닦아 줘라.”라고 당부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경위원 조 꼬마가 뒤따라 나왔다. “특무 놈은 어데 있소?” “저 인삼 중대장의 통나무 앞 산골짜기에 있습니다.” “알았소. 동무는 여기서 보초를 잘 서오.” 성칠은 이렇게 분부하고 떠나가려다가 조 꼬마의 귀에 대고 뭐라고 귀속 말을 하였다. 조 꼬마는 “예- 알았습니다.” 하고 머리를 끄덕이었다. 성칠은 특무 놈을 결박해 놓은 아름드리나무 쪽으로 가면서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 쥐었다. “어떻게 하면 원수를 갚을까?” 성칠의 발길 앞에서 눈보라가 세차게 휘몰아쳐 눈 파도가 사납게 휘몰아치었다.                               5. 매복       성칠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특무 놈들한테로 다가갔다. 대가리를 얻어맞고 정신을 잃었던 특무 놈이 놀랍게도 깨여나지 않았겠는가.      그는 특무를 지키는 칠백중대장과 바위돌을 보고 말했다.       “두 놈을 멀리 떨어진 곳에 끌고 가서 따로 심문하기요. 한마디만 거짓말을 하면 당장에서 총살해 버리오.” 라고 하였다.      “양!”      칠백과 바위돌은 몇몇 유격대원들과 함께 한 특무를 끌고 고개를 넘어가서 심문하였다.      성칠은 증오의 불길이 이글거리는 세 귀 눈으로 특무를 쏘아보면서 “대가리를 들어!” 하고 을러멨다. 그러나 그 특무 놈은 아까 깔리어서도 단말마적으로 발악하던 놈 같지 않고 대가리를 점점 숙였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아래 백지장같이 허연 낯과 매부리코가 퍽 눈에 익었다. “대가리를 들어!” 옆에서 억복이 특무 놈의 머리카락을 쥐어 대가리를 쳐들었다. 순간 그 놈은 대가리를 툭 떨어뜨렸다. “백승철, 이 놈, 대가리를 쳐들고 날 봐라!” 성칠은 주먹으로 그 놈의 가슴팍을 꽝 치었다. “형님, 날 살려주오!” “형님? 누가 네 형님이냐? 개 같은 놈!” 억복과 유격대원들은 그 놈과 성칠 대장을 번갈아 보면서 의아해 하였다. “일본 개다리질 하는 네 놈을 웅진에서 죽여 버리어야 했어. 그랬더라면 네 놈의 손에 우리 여유격대원이 목숨을 잃지 않았을 거야 성칠은 비수 끝으로 그 놈의 턱을 쳐들고 심문하였다. “말해! 일본 놈들이 뭘 정찰해오라던가?” 백승철은 불티 튕기는 눈길로 성칠을 쏘아보았다. “모른다! 죽어도 모른다! 어서 죽여라!”        “네놈이 당장 죽게 돼서도 갱갱 소릴 지를 테냐?” 성칠은 억복에게 눈짓하였다. 억복은 특무의 대가리를 언 나무에 마구 쪼아 놓았다. 성칠은 승철을 쏘아보며 “저 놈을 저녁에 승냥이들이 뜯어먹게 묶어 둬라!”라고 말하고는 고개 넘어 스적스적 걸어갔다. 이윽고 고개 넘어 눈 덮인 산비탈에서 칠백이랑 아름드리나무에 특무를 결박해놓고 심문하는 것이 보이었다. 성칠은 칠백을 한쪽으로 불러 조용히 심문결과를 묻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었다. “됐소. 이 놈을 끌고 백승철한테로 가기요.” “양!” 칠백은 힘차게 대답하고 나서 “그 놈을 끌고 가자!” 하고 명령하였다. 눈보라 속에서 고개를 넘어가면서 성칠은 결박돼 끌려가는 특무 놈을 보고 말하였다. “우린 네놈들의 소조장이 백승철과 무슨 죄악적 임무를 맡고 여기 왔다는 걸 다 알아냈다. 백승철, 그 놈은 웅진이란 곳의 날강도야. 놈의 형 둘도 우리 유격대에 몽땅 총살당했어. 알았어?” “이 놈과 더 물을 필요 없소. 총살해 버리기요.” 그러자 특무는 풀썩 물앉으면서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장관님, 제발 목숨만 살려 줍소. 몽땅 다 교대하겠습니다.” 그때라고 성칠은 심문을 들이댔다. “말해. 우리한테 쓸모 있는 말인지 어디 들어보자.” 특무 놈은 꿇어앉은 채로 대가리를 쳐들어 성칠을 보고 참대 통에서 콩알을 굴리듯이 주어 댔다. “이번에 사실 별동대 야마모도 대장과 한철주 부련대장은 대군을 끌고 토벌하기 전에 유격대 군영지도를 그려오고 병력과 무기, 쌀 같은 정황을 속속들이 탐지해 오라고 했습니다. 응세가 붙잡힌 바람에 겁을 집어먹고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백 소조장은 유격대 정황을 알아내지 못하고 돌아가면 총살당한다면서 여기서 계속 정찰하자  했습니다. 오늘 샘물터에서 물을 긷는 여 유격대원을 발견했죠. 백 소조장이 총을 쏘려고 하자 난 말렸습니다. 총소리 나면 숱한 유격대 몰려온다고. 그런데 백 소조장은 김 대장네 여편네, 저, 아니, 부인이라면서 기어이 죽여 버리겠다고 총을 쏘았습니다.” “거짓말! 총은 네가 쏘고서도.” 억복이 총 박죽으로 그 놈의 잔등을 내리 치었다. “아닙니다. 정말 백 소조장이 쐈습니다. 정말입니다. 거짓말을 하면 당장 죽이십시오.” “됐어.” 성칠은 그 놈이 뭐라고 또 말하려는 것을 중도이폐했다. “토벌하러 오는 별동대와 관동군이 얼마나 된다던가?” 그 놈은 “아마 별동대 30여명에 관동군 300여명이 토벌하러 온다는 거 같습디다.”라고 말하였다. “언제 온다던가?” “양력설 전에 토벌해 음력설전엔 원시림의 항일유격대를 몽땅 소멸하겠다고 합디다.” 그 말에 성칠과 칠백은 눈을 맞추었다. “한마디라도 거짓말을 하면 죽인다!” 권칠백이 어름 장을 놓자 특무는 “누구 앞이라고 함부로 거짓말 하겠습니까?”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끌고 가자!” 유격대원들은 그 특무 놈을 끌고 눈보라 치는 고개를 넘어 백승철을 결박해 놓은 아름드리나무 앞으로 갔다. 성칠은 군화발끝으로 백승철의 턱을 춰올리며 호통쳤다. “백승철, 이 놈, 우린 응세와 다른 특무 놈들 입에서 모든 걸 알아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가?” 백승철은 이를 쁘득, 뿌득 갈며 성칠과 유격대원들을 둘러보았다. “네놈의 여편네를 죽이어 치우지 못한 게 아쉽다. 네놈하구 진달래 년을 대가리를 쳐서 두 형님의 원수를 갚지 못한 것이 한일뿐이다! 어서 죽여라! 응세가 도망쳤으니 이제 야마모도 대장과 한 련대장이 토벌하러 올 게다. 그들은 응세와 가메다를 앞세워 대부대를 데리고 와서 네 놈들을 몽땅 죽일 거다! 으하하하. 네놈들의 제사날도 멀지 않다! 어서 죽여라!” 성칠은 밀림이 떠나가게 고함쳤다. “300명이 아니라 3천명이라도 오라고 해라! 한철주 애비도 우리 여대장 손에 썩어졌어. 철주 놈도 오면 장백산 밀림의 귀신으로 만들 테야.” 칠백도 격분해 고함쳤다. “일본 놈들과 주구 놈들을 여기서 몽땅 소멸해 버릴 테다!” 백승철은 대가리를 툭 떨어뜨렸다. “어서 한방에 죽여라!” 그러나 성칠은 비수를 뽑아 들고 호통쳤다. “네놈을 그리 쉽게 썩어지게 할 거 같은가? 우리는 중조 인민들을 대표해 일본 놈들의 개다리를 처단한다!” “가만!” 이때 진달래가 저쪽에서 눈보라 속을 헤집고 뛰어 왔다. “이 놈은 언니를 총으로 쏜 놈이닌데요. 내 끝장낼 게요.” 진달래는 염낭에서 조약돌을 꺼내 돌팔매를 날리었다. 딱! "앗!" 백승철 놈의 이마빼기에서 피가 주르르 흘렀다. 딱! 딱! 유격대원들이 연신 돌팔매질을 하였다. 백승철은 대가리가 볼품없이 터져 피와 뇌 장이 마구 흘러 나왔다. 일본 놈을 등에 업고 세상에서 못된 짓이란 짓은 다 하던 일본 주구 백승철 놈은 이렇게 더러운 끝장을 보고야 말았다. 유격대원들은 눈 덮인 산골짜기에 더러운 일제 개다리의 시체를 나무 가지와 눈으로 덮어 버리었다. 나머지 특무 놈은 백승철의 끝장을 보고 풀썩 물앉더니 대가리로 눈 덮인 언 땅을 떵떵 쪼면서 목숨을 구걸하였다. “제발 살려 줍소. 낱낱이 탄백하면 살려준다 해 놓고 왜 죽이자고 자꾸 이럽니까?" 그 놈은 벼룩이 눈을 끔쩍이더니 중얼거렸다. " 아차, 잊을 번했구나. 한철주 련대장은 ‘이번에 아버지 원수를 갚겠다고 했습니다. 별동대 기습과 관동군 포위섬멸전을 결합해 토벌하겠는데 우리 보고 적정을 잘 정찰해오라.’고 했습니다.” 성칠은 발길로 특무 놈의 잔등을 밟고 섰다가 툭 차 놓았다. “이 놈, 작작 지껄여라. 우린 벌써 알고도 남음이 있다. 이 놈을 가둬 둬라! 우리 일본 놈들을 소멸하는 걸 구경시켜! 네 놈 대가리를 잠시 붙여 뒀다가 네 놈 말이 한마디만 거짓말인 날엔 그때 가서 대가리를 쳐버릴 테다!” 특무 놈은 끌려가면서도 대가리를 조아리었다. “장관님, 살려 줘 고맙습니다. 이제 더 생각나면 유격대에 이실직고하겠습니다.” 유격대원들이 그 특무 놈을 끌어갔다. 성칠은 픽 냉소하더니 눈보라치는 밀림의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때 인삼 중대장과 동욱 중대장이 다가왔다. 인삼은 성칠을 보고 조용한 곳에 가서 “응세란 놈이 도망쳤으니 우리 군영을 놈들이 손금 보듯 빤할 게요. 우린 빨리 전이해야 하지 않겠소?” 하고 물었다. 진달래도 동을 달았다. “글쎄. 통나무집이 아까운대로 당장 전이해야 할 거 같아요.” 그러나 성칠은 “아니오. 지금 전이할 때 아니오.” 라고 하더니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조용히 귀속 말을 하였다. “내 조 꼬마를 보고 응세란 놈을 고의적으로 놔 주게 했소.” “양?” 성칠은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데 집에 들어 가 말하기요.” 그들은 진달래네 집안에 들어갔다. 모두들 자리를 정하고 앉자 성칠은 나직이 말하였다. “그 놈을 고의로 놔줘서 거짓정보가 놈들한테 가게 한 거요. 놈들은 우리 밀림속의 군영에 병력이나 무기나 형편없고 쌀도 떨어진 걸로 알고 마음 놓고 쳐들어 올 거요. 예로부터 교오하는 병사는 싸움에서 진다고 했소. 우린 여기 통나무집들로 된 밀영에 적들을 깊이 유인해 들이어 섬멸전을 벌리잔 말이오.” 인삼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참 그럴듯하구먼.” 라고 찬동하였다. 그러나 진달래가 도리머리를 가로흔들었다. “안 돼요. 환히 드러난 군영에 적들을 끌어 들인다는 건 놈들의 기습을 당할 수도 있어 너무 위험해요.” 그러나 성칠은 고집을 썼다. “여자들이란 왜 그리 생각이 짧아? 그런 담도 없이 어떻게 싸워? 예로부터 담과 용기 있는 자가 싸움에서 이긴다고 했다. 희생정신이 없이 어찌 일본 놈들을 소멸하겠느냐?” 뒤이어 그는 중대장들을 몽땅 불러다 작전포치를 하였다. 유격대 각 중대는 김성칠 대장의 포치에 따라 눈보라를 무릅쓰고 급급히 움직이었다. 인삼 중대장은 자기 중대를 영솔해 군영을 떠나 영월구 쪽으로 진군하였다. 그들은 토벌하러 오는 적들을 기습하여 교란하고 피곤하게 만들 전략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동욱 중대장과 칠백 중대장은 각기 자기 중대를 거느리고 밀영에서 5리 쯤 떨어진 서쪽과 북쪽에 가서 매복하였다. 다만 진달래중대장만이 성칠 대장과 함께 제일 위험한 밀영에 남아 유격대원들을 영솔해 전투준비를 하였다…  
71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0) 댓글:  조회:1666  추천:0  2016-09-13
              2.사냥      장백산 수림 속은 하얀 눈이 뒤덮이어 은세계를 방불케 하였다. 다만 여기저기 미인 송과 소나무들이 하얀 눈을 떠이고 있어 드문드문 수림이라는 것을 알릴뿐이었다.       눈 덮인 밀림 속에서 낮에 밥을 짓지 못했다. 밀림 속에 연기가 자오록해지면 밀영이 발각될 위험이 있었다. 성칠 대장은 유격대 여러 중대에 밥을 지을 때 여러 모로 주의를 돌릴 것을 지시하였다.       진달래중대장을 비롯한 하옥과 은녀 등 여대원들은 늘 밤도와 이튿날에 먹을 죽을 끓여 놓곤 했다. 진달래는 성칠과 토론하고 만일을 대비하어 주먹밥을 가득 지어 얼군 다음 군영 토굴 방마다 돌아가면서 뒤울안 눈 속에 파묻어 놓았다.       이날 밤에도 진달래와 하옥이, 은녀 등 여대원들은 샘물터에서 달빛을 빌어 쌀을 일었다. 경위원 조 꼬마와 최구철, 병수, 득호 등이 나무 위에서 샘물터 주위를 보초 서고 있었다.       하옥은 옆에서 쌀을 이는 진달래의 단발머리와 탄력 있는 잔등을 보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못난 계집애야, 마흔이 가깝도록 남의 유부남을 사모해 시집도 안 가? 쯧쯧쯧, 네 인생 정말 불쌍해. 애도 낳지 못한 내 빨리 자리를 내놔야 하는 건데.) 하옥은 위쪽 샘물터에서 물독에 바가지로 물을 퍼 담는 은녀를 보자 진달래도 좋은 신랑을 찾아 시집갔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궁리도 해보며 한숨을 호 내쉬었다. 한참 후 하옥은 쌀 함지를 이고 진달래와 함께 돌아가면서 슬쩍 속뽑이를 해 보았다. “진달래야, 좋은 신랑감이 있으면 시집가겠어?” 진달래는 쌀 대야를 인 채 “시집 안가요. 일본 놈들을 다 몰아내기 전엔 절대 시집가지 않겠어요.”하고 막아 버리었다. “여자가 나이 들면 시집가기 마련이지. 처녀가 시집가지 않겠다는 건 다 새빨간 거짓말이야. 황차 시집간다고 항일유격전쟁을 하지 못하겠어?” “시집가 애나 덜컥 생기면 어떻게 달구 다니면서 일본 놈들과 싸우겠어요?” 말을 마치자 진달래는 빠드득빠드득 발검을 재우쳐 총총히 자기 통나무집 쪽으로 걸어갔다. 하옥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 온 말을 겨우 삼켜 버리었다. 이때 성칠이 나타나 하옥의 머리에서 쌀 함지를 받아 안고 통나무집으로 성큼성큼 걸어 갔다. 조 꼬마가 나무 위에서 내려와 열댓 미터 떨어져 뒤따라왔다. 통나무집에 들어가자 성칠은 “어데 좋은 신랑감이 있소? 중매를 서 주지.”라고 물었다. 하옥은 머리 위에 곱게 내려앉은 눈송이들을 털어 버리면서 나직이 말하였다. “인삼 시동생과 용천 대장 다 좋은 신랑감이지요. 진달래야 신랑 퇴를 낼 지경이지. 사달은 진달래 시집가지 않겠다는 거죠.” 성칠이 무슨 궁리를 하는데 하옥이 밤중에 불쑥 홍두깨 내밀듯이 물었다. “어째 시집보내기 아까와요?” “거 무슨 소리요? 이십여 년 함께 살아오고서도 날 믿지 못하오? 난 절대 조강지처를 두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소.” 성칠이 문을 쾅 닫고 나가자 찬 기운이 통나무집 안에 확 풍기어 들어왔다. 하옥은 서러워 사슴 가죽을 깐 구들에 탈싹 드러누워 서럽게 울었다. 한편 바깥에 나간 성칠은 경위원 조 꼬마를 시켜 인삼이, 최동욱, 칠백 등 중대장을 진달래 중대장의 집에 불러 오라고 하였다. 성칠과 인삼 중대장이 진달래네 통나무집 앞에 이르러 보초병과 군호를 맞추고 통나무집 앞에 들어가자 밥을 짓느라고 불을 때던 진달래가 반겨 맞았다. 최구철은 사냥총을 들고 보초를 서러 나갔다. 진달래는 무슨 긴급정황이 생기었는가 하여 구들에 올라 왔다. 성칠은 여러 중대장들을 둘러보면서 말하였다. “지금 일본 놈들이 집단부락을 꾸리어 우리와 인민군중들 간의 연계를 차단하고 산을 엄밀히 봉쇄하구 있소. 그래서 전번에 상순이랑 보낸 쌀이 오래지 않으면 밑바닥이 나오.” 모두들 서로 마주 보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성칠은 과단하게 말했다. “우린 사냥도 하고 친일주구와 친일부자들도 습격해 식량문제를 긴급히 해결해야 하겠소.” 인삼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혹시 우리 발자국을 따라 일본 놈들을 밀영에 묻혀 오면 어쩌겠소?” 칠백은 “눈 내리는 날에 행동하면 되오.”하고 계책을 내놓았다. 인삼은 “며칠이고 눈이 내리지 않으면 어쩌겠소?”하고 근심하였다. 그때 성칠이 과단성있게 말했다. “짚신을 거꾸로 신을 수 있게 삼으라 하오. 그런 신을 신고 사냥하기요. 어쨌든 우린 식량문제를 해결해야 하오. 인삼 중대장은 중대에서 꼴꼴한 대원들을 골라 기동부대를 조직해 친일 부자 집을 습격해 식량을 얻어 오오. 우리 명천 사냥꾼 출신들은 내일 밀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나가 사냥하기오.”       칠백은 동욱을 마주보며 팔소매를 걷어붙이었다.       “우리 오랜만에 사냥 솜씨를 피우게 됐구먼.” 회의가 끝나 흩어질 때 인삼이 코로 냄새를 맡으며 황급히 소리치었다. “무슨 탄 냄새야!” “에구머니, 죽이 탄 냄새구나.” 진달래가 새된 소리를 치며 일어나 가마 덮개를 열고 바가지로 물독에서 물을 퍼 마구 가마 안에 끼얹었다. 쌔-애- 앵- 가마 안에서 쌕 김이 통나무집 안이 꽉 차게 솟구치어 올랐다. 그 바람에 등잔불이 가물거리다가 꺼져 버리었다. 이윽고 진달래가 부엌에서 불붙은 나무를 꺼내 쳐들어서야 다들 겨우 짚신을 찾아 신고 바깥으로 나갔다. 성칠만은 가지 않고 구들에 앉아 있었다. “그 죽 먹을 만 하냐?” “밑이 탔지 속은 괜찮아요. 정 안 되면 물가마치처럼 먹지요. 뭐.”        진달래는 쌀이 아까워 죽 가마를 들여다보며 밥주걱으로 자꾸 긁었다. 성칠이 짚신을 신고 나오는데 통나무집 안에서는 가마 밑굽을 빡빡 긁는 소리가 아츠럽게 들려왔다. 이튿날 하늘에서 밤송이 같은 눈송이들이 펑펑 쏟아지었다. “하늘이 우리를 돕는구먼. 아무 발자국도 남기지 않게 됐잖소.” 성칠은 개털모자에 하얀 눈을 들쓴 채 칠백과 동욱을 돌아보며 희죽이 웃었다. “사냥하러 가기오.” 명천의 사냥꾼들은 모두 주먹밥을 몇 덩이씩 호주머니에 넣고 성칠을 따라 사냥하러 나섰다. 나이 먹은 검둥이도 오랜만에 주인을 따라 사냥하러 나섰다. 한참 눈 덮인 밀림 속으로 걷던 성칠이 두덜거렸다.  “눈이 적게 덮이었으면 말을 타고 사냥하러 가는 건데. 이거 원, 언제 걸어서 사냥터에 가겠는가?” 동욱은 한숨을 쉬었다. “에이, 장백산에 눈이 내리면 말은 무용지물이오. 오히려 말먹이가 없는데 저 아래 영월구 농가들에 맡긴 게 잘 했지. 이 눈에 말을 타기는 고사하고 말을 메고 다녀야겠소.”       숱한 사람들이 너털웃음을 웃었다. 성칠이 우뚝 멈춰 섰다. “아차, 사냥총을 들고 와야 하는 건데.” 칠백은 장총을 들어 보이었다. “에이, 장총이 좀 좋아 그러오? 탄알도 없는데 언제 화약하구 철환을 얻어 사냥총 탄알을 만들겠소?”       성칠은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혹시 밀림에서 일본 놈의 특무라도 만나면 인차 신분이 폭로될 게 아니냐?” 동욱은 머리를 끄덕이다가 “밀림에서 의심스러운 특무를 만나면 몽땅 쏴 버리기요.”라고 통쾌하게 귀띔했다. 성칠은 뭔가 궁리하더니 “그럼 가자.”하고 성큼성큼 밀림 속으로 걸어 나갔다. 그들은 썩어빠진 아름드리나무가 누워 있는 밀림 속에 이르러 성칠과 칠백이 등이 한개 소조로, 동욱과 억복, 바위돌 등이 한개 소조로 나뉘어 사냥하러 떠나기로 하였다. 갈라 질 때 성칠은 분부했다. “적정이나 긴급정황이 있으면 연발사격으로 서로 알리기오.”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었다. 성칠 등은 둬 식경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 속을 헤매다가  밀림 속에서 사냥하기 시작하였다. 먹이를 찾던 꿩이나 독수리들이 푸르릉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그들은 자그마한 사냥물을 겨눠 총소리를 내면 혹시 적들에게 노출될까봐 감히 총을 쏘지 못하였다. 성칠은 칠백을 데리고 산골짜기 쪽으로 내려가 보았다. 내려 갈수록 눈이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고 점점 더 큰 아름드리나무들이 앞을 막아섰다. “살았어.” 성칠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 눈 덮인 산비탈에 아름드리나무들 속에 웬 벌거숭이 구새 먹은 나무통에 꺼먼 구멍이 나타났다. “구새통 속에 곰이 있지 않을까?” 칠백의 물음에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며 구새통 쪽으로 턱짓 하였다.그는 사냥총을 들고 눈을 헤치며 허우적허우적 구새통에 다가가 구멍을 들여다 보았다.구새통 구멍에 서리가 끼었던 것이다. “곰이 있어.” “허허허, 우리 유격대 먹으라고 하느님이 내린 곰이로구먼.” “쉿-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 들어. 혹시 적들이 있으면 어찌 하느냐?” 칠백은 계집애처럼 혀를 홀랑 내밀었다. 성칠은 장총 끝의 총창으로 구새통 안을 쑤셔 놓았다. 구새통 안에서 놀란 곰이 대가리를 쑥 내밀었다. 성칠과 칠백은 총창으로 숨통을 푹푹 찔렀다. 빗 찔려 성난 곰은 구새통에서 뛰어나와 무섭게 덮쳐들었다. 땅! 성칠은 하는 수 없이 총을 쏘았다. 총소리는 눈 덮인 밀림 속 골짜기에서 오래도록 메아리쳤다. 대갈통을 맞은 곰은 당장에서 태산이 무너지듯이 쓰러졌다. 여기저기서 놀란 사슴이며 노루며 깡충깡충 뛰어 달아나고 산새들이 푸르릉 하늘로 풍겨 올랐다. 성칠과 칠백은 총을 쏜바하고는 사슴이며 노루며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사슴과 노루가 총소리와 함께 거의 동시에 눈 위에 푹푹 꼬꾸라졌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도 총소리가 울렸다. “아마 동욱도 사냥을 시작한 거 같아.” 칠백이 중얼거리는 말이었다. 땅! 땅! 저쪽에서 연발 사격하는 총소리가 울리었다. “적정이 있구나. 은페해 주위를 살펴라.” 성칠의 명령에 따라 칠백 등 사냥꾼들은 모두 눈을 파고 엎드려 경각성을 높여 눈 덮인 밀림을 살피었다. 이때 빽빽이 들어선 아름드리나무사이로 사냥꾼 복색을 한 서너 사람이 사위를 기웃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제길할, 금방 본 사냥꾼들은 사슴이랑 잡았더구먼. 우린 사슴은커녕 쥐새끼도 못 잡았어.” “재수 없어.” “사냥은 아무나 하나?” 지껄이는 소리를 들어 보면 사냥꾼 같았다. 칠백이가 일어나려는데 성칠이 붙잡아 꾹 눌러 놓았다. “잠간! 저 자들이 쥔 총은 사냥총이 아니야. 저걸 봐. 신도 일본군화야.” 칠백도 놀랐다. “일제 장총! 쏴버릴까?” 성칠은 도리머리 질 했다. “좀 더 살펴보자.” 성칠은 칠백의 귀에 대고 뭐라고 말하였다. 뒤이어 그들은 갈라져 눈 속에 숨었다. 그 자들은 가까이까지 다가왔다. “어 참, 엄청 큰 곰이구나.” 한 놈이 발로 곰을 툭툭 걷어차며 중얼거리었다. “사냥꾼은 어데 갔어?” 그 자들이 두리번거릴 때었다. 땅! 성칠이 공중에 총을 쏘았다. 순간 그 자들은 나무 뒤에 숨으며 아우성치었다. “유격대다!” 땅! 땅! 성칠과 칠백은 사격했다. 두 놈이 꼬꾸라졌다. 나머지 두 놈은 그제야 성칠 등을 발견하고 장총을 버리고 품속에서 권총을 뽑아 들고 맞불질하였다. 푱! 푱! 성칠은 왼팔에 총알을 맞고 총을 떨어뜨렸다. 땅! 위기일발의 시각에 성칠을 겨누는 놈을 칠백이 쏘았다. 땅! 총소리와 함께 그 놈이 푹 꺼꾸러졌다. 나머지 놈은 총소리와 함께 곤두박질쳐 골짜기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이때 동욱이 합세하여 이쪽으로 덮쳐 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자지러진 총소리가 울리자 유격대 밀영은 즉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성칠은 권총을 쥔 오른손으로 왼쪽 팔을 붙잡고 명령하였다. “산골짜기로 도망친 놈을 수색하라!” “예!” 사냥꾼 출신의 유격대원들은 산골짜기 아래로 수색해 내려갔다. 그러나 그 놈이 어디로 도망쳤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동욱이 총을 맞고 쓰러진 놈들의 허연 한복과 껴입은 조끼를 헤치고 보니 일본군 속벌이 드러났다. “특무놈들이구나.” 성칠은 칠백에게 몇몇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계속 밀림 속을 수색하라고 명령하고 곰과 사슴을 메고 숙영지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그들이 금방 자리를 떴는데 느닷없이 “뻐꾹, 뻐꾹.”뻐꾹새 울음소리가 들리었다. 뻐꾹 뻐꾹 뻑뻑꾹 이쪽에서 화답하자 밀림 속에서 인삼이가 기동분대를 데리고 달려 나왔다. 인삼은 허연 천으로 동여맨 성칠의 팔을 보고 “김 대장, 모질 상하진 않았소?”하고 물었다. “괜찮소. 우린 빨리 이 곳을 떠나야 하오. 한 놈을 놓쳤으니까 그 놈에게 우리를 노출시켜선 안 돼.” “알았소.” 유격대원들은 성칠의 명령대로 놈들의 시체를 눈 속에 파묻어 버리고 노획한 권총과 장총 여섯 자루에 사냥물을 메고 밤도와 고의적으로 여러 갈래로 흩어져 군영으로 돌아왔다. 곰을 멘 유격대원들만 곧추 군영으로 돌아가고 나머지 유격대원들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영월구 쪽으로, 남만 쪽으로, 삼도구촌 쪽으로 흩어져 내려가다가 멀리 에돌아 이튿날에야 군영으로 돌아왔다.                            3.특무         눈 덮인 밀림 속의 군영은 전투 준비로 발칵 뒤집히었다. 일본 놈들이 파견한 특무놈들이 군영 부근까지 깊숙이 잠입한데다가 특무 한 놈을 놓쳤기 때문이다. 유격대에서는 더욱 경각성을 높이게 됐다. 성칠은 통나무집 안에서 한숨을 후 쉬면서 대비책을 궁리하고 있었다. 그때 하옥이가 사슴고기를 끓일 물을 길으러 물동이를 이고 나가려고 하였다. “여보, 특무 한 놈을 놓쳤으니 각별히 주의하오.” 하옥은 옆구리에서 권총을 꺼내 보이면서 “이거 있잖아요. 나도 쏠 줄 아니깐요. 근심하지 마세요.”하고 말하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성칠은 경위원 조 꼬마를 보고 “따라 가 보오.”하고 당부하였다. “옛.” 경위원이 나간 후에도 성칠은 칠백이네가 이틀 날 밤에까지 돌아오지 않자 속에 걸리었다. 하옥과 경위원 조 꼬마가 집에 들어서자 “중대장들과 상의할 일이 있어 나가 봐야겠소.”하고 말하였다. “왼팔을 상했는데 주의하세요.” 성칠은 웃으면서 “양, 내 오른팔이면 둬 놈쯤은 문제없소. 근심하지 마오.”하고 장담하며 바깥으로 나갔다. 경위원이 따라 나오려는 것을 성칠은 “동문 집에서 아주머니를 지키오.”라고 지시하였다. “옛.” 성칠은 곧추 진달래네 통나무집으로 찾아 갔다. 그가 들어서니 최구철은 보이지 않고 진달래가 부엌에서 불을 때고 있었다. 진달래는 일어나면서 “오빠, 어서 올라 가세요.”라고 인사하며 쌕 김이 쌕 뿜기는 가마 덮개를 바로 잡아 덮어 놓았다. 성칠은 곰과 호랑이 가죽을 깐 구들에 앉자마자 구들에 올라오는 진달래를 보고 입을 열었다. “군영을 버리고 동만이거나 북만 쪽으로 전이해야 될 거 같아.” 진달래는 구들에 쪼그리고 앉으려다가 철색얼굴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만간에 일본 놈들이 토벌하러 오겠지요. 어제부터 계속 궁리했어요. 어찌 이 좋은 군영을 그저 버리고 달아나겠어요? 견고한 밀림 속의 군영을 이용해 일본 놈들을 몇 놈이라도 죽여 치우고 떠났으면 좋겠어요.” 성칠은 너무도 기뻐 진달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옳다. 어쩜 내 생각하구 똑같니?” 진달래는 쑥스러워 머리를 좀 숙이면서도 손을 빼가지 않았다. 이때 바깥에서 빠드득빠드득 다급하게 눈 밟는 소리 들리었다. “군호!” “장백산!” 군호를 맞추는 소리에 뒤이어 문이 벌컥 열리었다. 성칠은 손을 스르르 놓았다. 인삼과 동욱이 들어왔다. “김 대장, 칠백중대장이 특무 놈을 붙잡아 가지고 돌아 왔소.” “양?”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칠백과 억복 그리고 바위 돌은 특무를 끌고 들어 왔다. 그런데 억복의 종아리 각반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억복은 특무의 엉덩이를 총 박죽으로 툭 쳤다. “이 놈이 눈 속에 숨었다가 선제사격을 하는 바람에 장딴지를 빗맞았습니다. 다행이 칠백 중대장이 이 놈을 뒤에서 깔고 들어 앉아 제압했기에 큰 일은 없었습니다.” “음, 다행이오.” 성칠은 구레나룻을 어루만지며 바닥에 선 특무 놈을 쏘아보았다. “네 놈은 누가 파견한 놈이냐?” “말해!” 억복은 악이 나 총 박죽으로 그 놈의 종아리를 툭 내리쳤다. “앗!” 특무 놈은 비명을 지르며 물앉았다. 성칠은 손을 들어 억복을 제지시키고 나서 위엄 있게 심문하기 시작하였다. “어서 말하지 못할까?” 특무 놈은 피 말라붙은 입술을 감빨며 벼룩 눈으로 성칠의 독기어린 세 귀 눈을 쳐다보고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말하지 않아도 죽고 말해두 죽을 판인데. 어서 죽여라!” “닥쳐!” 성칠은 구들을 꽝 치며 호통 쳤다. “우리 유격대는 종래로 말하면 말한 대로 한다. 낱낱이 탄백하면 관대하게 처리하고 항거하면 총살해 버릴 테다!” 특무 놈은 벼룩 눈을 깜짝이더니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장관, 제발 살려 줍소.” 성칠은 허리를 펴며 심문하였다. “네놈은 이름이 뭔데?" " 누가 파견한 특문가?” 특무 놈은 머리를 뚝 떨어뜨리며 탄백하기 시작하였다. “난 박응세라고 하는데 우린 우시장 경찰국 스즈끼 국장이 파견한 특무입니다.” “닥쳐! 우시장 경찰국 국장은 끼무란데? 스즈끼라니?” “끼무라는 할복해 죽고 헌병총대 부대장을 하던 스즈끼가 강직돼 우시장 경찰국 국장으로 왔습니다.” “우린 진작 다 안다. 네 놈을 떠본 거다. 한마디만 거짓말을 했다간 목을 베 버리겠어." "너희들 모두 몇이 왔는가? 두목은 누구냐?” “누구 앞이라고 언감 거짓말을 하겠습니둥? 우린 모두 일곱이 왔는데 두목은 백승철입니다.” “엉?!” “사실인가?” “예.” 성칠은 속으로 놀라 인삼과 칠백을 둘러보았다. “거짓말! 일곱이 온 게 셋이나 격살됐는데 왜 나머지 네 놈은 대가리도 내밀지 않았는가?” “사실입구마. 장관. 우린 두개 소조로 나뉘어 정찰했는데 왜 백승철 소조장은 우릴 보고 누가 격살당하든 몽땅 나서지 말고 한사람이 살아남더라도 돌아가 스즈끼 국장께 보고 해야 한다고 명령했는데.” 성칠은 일부러 건너짚기를 했다. “우린 네 놈들의 정체를 다 안다. 백승철이라면 함경도 경성 지나 웅진 부근에서 날강도질이나 하던 놈 아닌가? 그 형은 우리 유격대에 둘이나 죽고.” “그 놈이 여기까지 특무를 파견해 뭘 하라던가?” 특무는 말하기 시작한지라 술술 대답하였다. “별동대를 파견하기 전에 우리 보고 장백산 기슭의 유격대 군영하구 병력과 무기 배치, 쌀 정황을 구체적으로 잘 정찰해 오라고 했는데.” “별동대는 모두 몇 명이나 되는가?” 성칠은 중대장들과 눈을 맞추며 물었다. 박응세는 벼룩 눈을 끔적이더니 “한 30여명 되는 모양입디다.”라고 이실직고했다. “30명? 흥! 30명이 아니라 300명이 오라구 해라. 몽땅 소멸해 버릴 테야!” 성칠은 코 방귀까지 뀌면서 놈들을 멸시하였다. “네놈들이 동만 관동군과는 연계 없었는가?” “예. 있었습구마. 동만 관동군 부련대장 한철주 양반이 우리를 접견하고 관동군이 유격대 군영을 토벌하자면 우리가 잘 정찰해 와야 한다구 하면서 구체적으로 포치했는데.” “한철주? 그 놈은 명천 우시장 자위대 대대장 한길수의 맏아들이 아닌가?” “맞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어떻게 생긴 자인가?” “안경을 건 우먹한 눈이 퍽 인상적이었는데. 연설도 참 잘하고.” “키는 훤칠한 편이 아닌가?” “맞습니다. 잘 아시는구먼. 장관. 제발 날 살려 줍소.”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한 가지만 더 묻겠다.”하고 더 심문했다. “한철주 놈이 우리 군영을 언제 토벌하겠다던가?” “구체적인 날자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양력설 전에 한개 대대 병력을 파견해 우시장 별동대의 기습에 배합해 토벌하겠다고 했습구마.” “음. 우시장 별동대 대장은 누군가?” 박응세는 벼룩 눈을 굴리었다. “야마모도 소장입니다.” “림산파출소 야마모도 소장이 아닌가?” 응세는 깜짝 놀랐다. “장관님은 어쩜 일본 군관을 그렇게 잘 압둥? 보쇼. 난 거짓말을 한마디도 한 적이 없습구마. 장관, 제발 살려줍소.” 성칠은 눈을 감고 뭔가 궁리하더니 인삼 중대장과 뭐라고 귀속 말을 하더니 특무를 쏘아보았다. “네 놈은 죽어 마땅해. 그러나 탄백했기에 살려둔다.” 억복과 바위돌이 끌고 나간 후 성칠 대장은 경위원을 불러 특무를 어찌어찌 하라고 가만히 귀띔해 주었다. 경위원 조 꼬마까지 나간 후 성칠 대장과 중대장들만 남았다. 통나무집 안의 등잔불이 가물거리었다. 그들은 밤중까지 반 토벌작전계획을 반복적으로 작성하고 검토해 보았다. 나중에 성칠 대장이 허리를 펴면서 일어났다. “좋소. 우리 작전계획을 북만으로 간 김용천 대장에게 알리기요. 여러갈래 유격대들이 연합작전을 펼쳐야 섬나라 오랑캐들의 대토벌을 분쇄할 수 있소.”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었다.  
70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9) 댓글:  조회:2193  추천:0  2016-08-24
                                            9.오랑개령을 넘어        최구장은 공포와 어둠을 밟으며 어부와 함께 두만강 변으로 나갔다. 큰 버드나무 아래 철썩이는 두만강 물에 쪽배가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진달래가 유골상자를 말배에 단 말을 몰고 왔다.         어부는 닻줄을 와락와락 걷어 배우에 쾅 처박았다.        “오르라우.” 어부는 볼 부은 소리로 퉁명스레 말하면서 삿대를 들었다. 말투마저 남대말투로 바뀌었다. 그는 바위돌과 면목 모를 사내가 벌건 상자를 말배에서 끌러 들고 쪽배에 실으려고 하자 우먹한 눈 확에 겁기를 띠었다. “아니, 저 벌건 상자!” “쉿!” 바위돌은 어부의 입을 손으로 막으면서 주위를 살폈다. “까딱 말고 삿대를 젓소.” 어부는 겁기를 띈 눈으로 바위돌과 유격대원 그리고 최구장과 진달래를 훑어보았다. 유격대원이 벌건 상자를 쪽배에 실었다. 진달래는 어부를 보고 나지막이 말했다. “우린 장백산 항일유격대예요. 우리 유격대는 백성을 해치지 않아요.  겁내지 마세요. 누가 우리 조선 사람들이 조상마저 제대로 모시지 못하게 했는가요? 일본 날강도 놈들도 사람인가요? 그 놈들의 말을 듣지 마세요.” 어부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근심어린 말을 했다. “쪽배에 네 사람이 다 탈 수 없다니께.” 진달래가 나지막하나 위엄있게 말했다. “큰아버지와 바위돌 두 분만 타면 돼요.” 그래도 어부는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이쪽에 일본 놈들이 없어도 저쪽에 위만 경찰들이 득실거리오.” 진달래는 최구장과 바위돌이 쪽배에 올라타자 대안을 건너보다가 말했다. “근심마세요. 저길 보세요. 벌써 우리 유격대원들이 마중하러 왔어요.” 어부도 밤장막이 드리운 두만강 대안 버들강변에서 초롱불빛 같은 것을 보았다. 진달래가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냈다. “저건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거예요. 안심하고 도강하세요. 일본 놈들과 위만경찰놈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우리가 몽땅 해치울 테예요.” 진달래 말에 어부도 담이 커졌는지 한숨을 푸 내쉬더니 삿대를 강바닥에 쿡 박아 힘껏 떠밀었다. 쪽배는 사품 치며 흐르는 두만강 강심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큰아버지, 잘 가세요.” 최구장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물러가라고 손을 내저었다. 진달래와 유격대원은 쪽배를 따라 버들강변을 내려가면서 바랬다. 일단 정황이 있으면 맞대응하려는 것이었다. 쪽배가 두만강 격류를 타고 아래로 떠내려가면서 강심으로 다가갈 때까지 아무런 정황이 없었다. 쪽배가 대안에 거의 닿을 때였다. 갑자기 마을 쪽에서 개 짓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었다. 뒤이어 이쪽으로 말발굽소리가 요란하게 다가왔다. "네놈이 그 놈들과 내통했지?"  뒤이어 웬 조선말 대답소리가 들려왔다. “ 면목모르는 강도 놈들입구마. 그 놈들이 우리 집 쪽배를 빼앗아가지고 이쪽으로 달아났소이다.” 분명 부자영감 허창수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였다. “저기 쪽배가 두만강을 다 건너는구만.” 뒤이어 일본 놈의 독기어린 목소리가 울렸다. “샤게끼(사격)!” 땅! 땅! 땅! 야무진 총소리가 두만강 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쪽배는 두만강 대안 버들강변에 악착스레 저어갔다. 말을 탄 유격대원들이 이쪽으로 습격해오면서 총질과 돌팔매질을 했다. 유격대원들은 일본 놈들을 가로막아 상류 쪽으로 유인해갔다. 진달래와 유격대원은 그 틈을 타서 버들강변에서 산기슭 수림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한 많은 두만강물소리가 철썩철썩 들릴 뿐이었다. 유격대원들은 산기슭 수림 속에서 진달래 등과 합세한 후 말을 타고 상류 쪽으로 쏜살같이 전이했다. 한편 최구장네는 쪽배를 타고 한 일리쯤 내려가 두만강을 건너 순조롭게 유골상자를 쪽배에서 내리워 버들방축에 들어갔다. 어부는 울상이 되여 중얼거렸다. “당신들은 훌 떠나가면 그만이지만 난 인젠 어찌는기우?” “옛소. 이걸 로비를 해가지구 처자를 데리고 만주로 들어오오. 난 최구장이라고 부르는데 오늘 이 은혜는 후일에 꼭 갚아드릴게요.” 어부는 동전 열 몇 닢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이젠 그럴 수밖에 없는이오.” 바위돌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아예 그 놈의 어부를 그만두고 만주에 들어가서 우리 유격대에 드오. 일본 놈들을 몰아내지 않고서야 우리 조선 사람들이 편안히 살 수 있소?” 최구장이 물었다. “은공은 명함을 어떻게 부르오?” “리흥수라고 부르는데유. 난 전라도 사람인디 여기서 사공을 하면서 집식구들이 오길 기다리는 중인뎁쇼.”        사실 리흥수는 전라도 고향을 떠나 간도로 들어오는 난민이였다. 전라도 깍쟁이라는 말이 있다. 전라도 깍쟁이는 부채가 아까워 부채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얼굴을 부채에 대고 흔든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전라도 사람인 리흥수도 어찌나 깍쟁이질했으면 마을 사람들이 리깍쇠라고 별명까지 지어 불렀겠는가.        "알았소. 우린 진수해 함흥촌으로 들어갈 예산이니까. 함흥촌에 와서 나 최구장을 찾소.” 어부는 무거운 목소리로 “알았는지라고.”라고 하더니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때 버들방천에서 버드나무들을 헤치는 소리가 들리었다. 뻐꾹뻐꾹 버들숲속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었다. 바위돌도 입에 손가락을 넣더니 뻐꾸기 소리를 냈다. 뻐꾹뻐꾹 뒤이어 버들숲속에서 대여섯 사람이 나타났다. 바위돌은 어둠속에서도 인차 상대방을 알아보았다. “억복이!” “바위돌아!” 억복과 바위돌은 서로 얼싸 안았다. 최구장도 뒤에 나타난 자식들을 알아보았다. “얘들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맞아들 경순이가 아버지 앞에 넙적 엎드리면서 절을 올렸다. “아버지, 그간 무사합니까? 우린 아버지랑 건너올 때가 된 것 같아 마중 나왔다가 근형을 이쪽 나루터에서 만났지요.사위도 왔습니다.” 경인과 경욱 그리고 상순도 절을 올렸다. 최구장은 상순을 보고 여간 반가워하지 않았다. “명옥의 신랑도 왔구먼.” 버드나무숲속에서 상순은 최구장에게 절을 꾸벅 올렸다. “가시할아버지, 그간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항상 근심하면서도 제때에 마중하지 못해 미안합구마.” 최구장은 상순의 몸을 두 손으로 부축해 일으켰다. “별 소릴." 그는 몸을 돌리더니 리흥수의 손을 잡아 상순 앞에 왔다. "은공 리흥수오. 이 후에 함흥촌에 오면 잘 도와 주게나. 이 분 쪽배 아니면 어떻게 유골상자를 모시고 두만강을 건넜겠소." 상순은 흥수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감사하오. 난 상순이라고 부르오. 이후에 진수해 함흥촌에 오면 날 찾소." 흥수는 어깨 쩍 벌어진 상순을 보고 아주 반색했다. "상순이라지? 후에 찾아갈게유." 최구장은 넷째아들 경욱에게 몸을 돌리면서 물었다. “네까지 왔는데 셋째 경민은 어떻게 됐느냐?” 튼튼하게 생긴 경욱이가 대답했다. “셋째형님은 칼에 잘리운 손을 치료하려고 함흥촌에 갔다가 진수해에 내려 왔습니다. 조카사위 상순이네 칠촌 아저씨 되는 시준 의사한테 가서 치료를 받는 중입니다. 시준 영감이 의술이 높아서 약을 몇 첩 달여 마시나 염증은 치료됐습니다.” “음. 그럼 됐어.” 최구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손비는 어떻게 되었느냐?” “손비도 형내 약을 쓰고 하혈은 멎었습니다.근심 하지 마시오.” 서로 인사가 끝났을 때였다. 억복은 바위돌의 어깨를 툭툭 치였다. “됐어, 우린 끝내 도강하였어.” 이때 진달래가 말했다. “인차 이 자리를 떠야 해요. 총소리를 듣고 꼭 위만 경찰들이 수색하러 올 거예요.” 그리하여 최구장 등은 유골상자를 메고 마중 나온 억복과 근형, 상순을 뒤따라 버들 숲을 빠져 어둠을 타서 두만강 변을 떠났다. 리꺽쇠는 쪽배를 저어 두만강을 되 건너가 조선쪽 두만강 변 마을로 돌아갔다. 이때 뒤에서 꽥꽥 고함소리에 뒤이어 버들 숲을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이 부근 대안에서 총소리 울렸어. 꼭 이 부근에 웬 놈들이 들어와 잠복했을 수 있어. 버들방천을 서캐 훑듯 수색하란 말이야.” 억복과 바위돌이 마주 쳐다보더니 허리를 굽히고 뒤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상순이가 비수를 뽑아들고 버드나무숲속에 숨어 뒤에서 다가오는 놈들을 기다렸다. 근형이와 최구장은 유골상자를 버드나무 잎으로 훑어 덮어놓고 숨을 딱 죽이고 버드나무숲 속에 엎드려있었다. 뒤쪽에서 말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 왔다. “여보게, 밤중에 이 무인지경에서 유격대나 만나면 어떡하나?” “소대장님, 괜히 우리나 목숨을 잃을게 아닙니까?” “저길 보십시오. 별들이 보이지 않는걸 보니 소낙비가 쏟아질 자정입니다. 돌아갑시다.” “작작 지껄여! 총소리가 울렸는데도 수사하지 않으면 돌아가서 일본 헌병대 놈들에게 목을 잘리울 게 아니냐?” “일본 놈들은 어째 수색하지 않고 밤에 일이 나면 우리만 못살게 군답니까?” “조선쪽에서 총소리가 났는데 저쪽에 일이 있겠지. 여기에 무슨 일이 있다고 그럽니까?” “너희들 정말 죽고 싶으냐? 잔말 말고 버들방천을 수색해라!” 그러자 바위돌과 억복은 괴춤에서 조약돌을 꺼내 거머쥐었다. 이때 위만 괴뢰군 세 놈이 슬금슬금 다가오면서 버들 숲을 와삭와삭 헤치었다. 한 놈은 억복의 머리앞에 와서 오줌을 쏴 내갈기였다. 억복이 조약돌을 뿌리려고 손을 쳐들었다. 그 찰나 바위돌이 쳐든 손을 잡아 내리웠다. 이때 번개가 번쩍이고 우레가 하늘땅을 진동했다. “아이고, 소낙비를 맞겠어. 어서 돌아가자.” 괴뢰군 놈들은 꼬리 빳빳해 도망쳤다. 억복이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바위돌과 억복은 괴뢰군이 가버리자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버드나무숲을 나섰다. 그들은 최구장과 상순이 그리고 유골상자를 멘 근형을 보호하면서 산기슭 길에 올라섰다. 뒤이어 장대 같은 소낙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잘 됐어. 소낙비는 맞겠지만 따라오는 놈들이 없을게 아닌가?” 억복의 말에 바위돌은 팔소매로 이마의 비 물을 쓱 닦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 놈들이 이렇게 억수로 퍼붓는 비를 맞으려 하겠냐?” 바위돌과 억복은 안전을 생각하여 상순의 말을 따라 골짜기에 난 벌판길을 택하지 않고 산기슭에 난 길을 택해 어둠과 소낙비를 무릅쓰고 걸어 나갔다. “이제 오랑캐령만 넘어서면 선바위가 나지고 용드레촌과도 그리 멀지 않을 겁니다.” 상순의 말에 최구장은 허리를 구부정하고 걸으면서 물었다. “여기서 함흥촌까지는 몇 리나 되오?” “함흥촌까지는 백칠팔십리 됩구마. 어떤 사람들은 이백 리는 된다고 합니다.” 최구장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걸음으로는 한 사흘 걸어야 하겠구먼.” 이때 상순이가 말했다. “가시할아버지, 아예 가시증조할아버지를 아무도 모르는 진수해 남산에 모시면 어떻습둥? 함흥촌에 모시면 시끄러운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 어떤 놈들이 우리 뒤를 밟아 함흥촌에까지 오면 증조할아버지를 어떻게 면례해 또 다른 곳에 옮겨 모시겠습니까?” “진수해라는 곳은 함흥촌에서 몇 리나 되나?” “함흥촌에서 한 십오 리는 떨어진 자그마한 시내입니다.” “그게 좋을 것 같구먼. 옛날 조조도 누가 자기 산소를 다칠까봐 숱한 무덤을 만들어 자기 시체를 숨기게 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아무도 몰래 아버지 산소를 써서 숨겨보세.” 그들이 이런 말을 주고받으면서 두만강 버드나무숲속을 떠나 한 삼리를 걸었을 때였다. 갑자기 뒤쪽에서 말발굽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바위돌과 억복은 바삐 최구장등을 보고 산기슭 나무숲속에 엎드리라고 했다. 바위돌은 혹시 진달래랑 오지 않았는가 하여 입에 손가락을 넣더니 뻐꾸기 소리를 냈다. “뻐꾹뻐꾹” 요란하게 울리던 말발굽소리가 뚝 멎더니 말을 탄 한패의 그림자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멈춰 섰다. 산기슭 밤하늘에는 비방울이 쏟아지는 소리와 말들의 투레질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숨 막힐 듯이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바위돌이 또 뻐꾸기 우는 소리를 냈다. 말무리 속에서도 뻐꾸기 우는 소리가 났다. “뻐꾹뻐꾹 뻑뻑 꾹 - ” 그러자 바위돌과 억복은 나무숲속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령 길에 나갔다. “바위돌이 맞아요?” “예, 진달래 중대장!” 진달래는 말에서 내리면서 기뻐했다. “귀신이 곡할 듯이 우린 여기서 면바로 만났구먼요. 다들 무사한가요? 큰아버지랑은 어데 있어요?” 바위돌이 나무숲속에서 나오는 최구장 등을 되돌아보면서 말했다. “저기 계십니다. 다 무사히 도강하였어요.” 그러자 진달래는 말고삐를 유격대원에게 넘겨주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큰아버지, 무사해요?” “오, 그래. 너희들도 무사하였나?” “예. 우린 큰아버지를 보낸 후 일본 놈들을 따돌리고 상류 쪽으로 말을 달려 곧게 건너왔댔어요. 이쪽에 무슨 정황이 있나 찾아 헤매다가 함흥촌 쪽으로 올라가면서 큰아버지를 찾는 중이였어요. 그런데 여기서 만나리라고는 정말 천만 뜻밖입니다요.” 뒤이어 진달래는 유골상자를 말 잔등에 처매라고 하고 최구장에게 얼굴을 돌렸다. “우리는 해가 밝기 전에 함흥촌으로 가서 할아버지를 모셔야 해요.” “그래, 그런데 아버지 산소를 진수해에 쓰기로 했다. 진수해로 가자.” “예? 그럼 10여리는 가까워 졌구먼요. 빨리 이 두만강 변을 떠납시다. 소낙비가 쏟아지지만 일본 놈들이 오지 않는다고 할 수 없어요. 조선 쪽의 일본 놈들이 꼭 이쪽에 기별을 보내 우리를 수색하라고 했을 거예요.” 최구장은 밀짚모자를 쓴 머리를 끄덕였다. “잠간!” 모두들 떠나려는데 최구장이 말 잔등에서 내리면서 말했다. “잠간만 기다려라. 아버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 모두들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쳐다보았다. 이때 최구장은 바위돌 옆의 말잔 등에 실은 유골상자에로 다가가더니 질척질척한 진흙탕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었다. 진달래도 황급히 그 옆에 엎드렸다. 모두들 꿇어앉았다. 최구장은 머리를 진흙탕에 조아리면서 말했다. “존경하는 아버님,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옵소서. 아버님을 고향에 편안히 모시지 못하고 이렇게 이국땅에 모시고 와서 정말 죄송하옵니다. 유교경전을 통달하여 전생에 남과 악한 짓을 한 게 없건만 왜놈들은 왜 이다지도 우리를 못살게 굽니까? 별 수 없이 만주로 아버님을 모시고 와서 계속 모시려고 하오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옵소서.” 옆에서 진달래도 한마디 올렸다. “할아버님, 이젠 만주에 넘어와서 산소자리로 길을 떠나겠는데요. 마차에 모시지 못하고 말 잔등에 모셔서 불편하시리라 믿습니다. 이 불효한 손녀를 용서하옵소서.” 최구장과 진달래는 유골상자를 향해 절을 올렸다. 그러고서야 최구장은 꼬부장한 허리를 펴면서 일어났다. 진달래는 일어나자마자 손을 홱 저었다. “출발!” 그들 일행은 몽땅 말에 올라 진수해를 바라고 질척질척한 산길을 달렸다.                  10.이국 타향에 모신 조상의 산소 한 둬 시간 말들을 타고 거침없이 달려 그들은 진수해역에서 서남쪽으로 하여 자리 잡은 남산에 이르렀다. “뿡-” 밤차가 경적을 드높이 울리면서 칙칙폭폭 칙칙폭폭 산 기슭 철길에서 달렸다. 최구장은 말꼬리를 잡아당겨 세우고 산정에 서서 새벽의 어둠 속에 잠긴 사위를 둘러보았다. 삐죽삐죽 산세가 험준한 산들이 푸르른 쪽빛속에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디선가 뻐꾹새가 뻐꾹뻐꾹 구슬피 울었다. 산수에 밝은 최구장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상순이, 자네 사는 함흥촌은 어느 부근인가?” 상순이 머리를 들어 서북쪽을 훑어보더니 손을 들어 가리켰다. “저쪽으로 한 십팔 리쯤 가야 합니다.” “음, 그래?” 이때 최구장의 마음을 환히 읽은 진달래가 최구장과 말머리를 나란히 했다. “큰아버님, 함흥촌에는 모시지 못해요. 놈들이 우리를 추적하면 꼭 함흥촌으로 먼저 찾아갈 게 아닌가요? 여기서 좋은 자리를 찾아 모시자요.” 최구장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러는 수밖에 없구나. 올 추석에나 네 아버지를 모시고 산소에 오너라.” 진달래는 최구장의 옆에 바싹 다가서며 정답게 말했다. “예, 추석에는 할아버지께 꼭 제주를 올리도록 하겠어요.” 최구장은 편안한 때가 아니어서 별 수 없었다. 한참 두루 산정과 산기슭을 돌아다니면서 보았다. 그는 서북으로 도끼봉을 바라보고 서쪽으로 뭇산 위에 높이 솟은 삼형제산을 바라보고 북에 유유히 흐르는 부르하통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여기 양지바른 언덕아래에 모시자. 비록 명당자리는 아니로되 아버님을 모실만한 곳이라고 할 수 있어.” 상순과 근형은 말 잔등에서 유골 궤를 조심스레 내리워 둔덕진 곳에 모셔놓았다. 삽이 없어서 근형이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말을 타고 가면 좋겠는 것도 남들의 눈에 날까봐 그러지도 못하고 질척질척한 진창길을 주먹을 쥐고 달려 내려갔다. 최구장은 아버지의 유골을 산소 오른쪽으로 하여 모셔놓고 안신 제를 지냈다. 그는 진달래를 보고 조선에서 가지고 온 낙지와 물고기 몇 마리를 안신자리 앞에 놓게 하고 자손들을 이끌고 유골에 절을 올렸다. 천천히 머리를 든 최구장은 유골을 향해 말씀을 올렸다. “아버님, 어머님,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주옵소서. 섬나라 오랑캐 놈들의 등살에 이기지 못해 아버지를 정든 고향 개성에도 모시지 못하고 두 번째 고향 명천에도 고이 모시지 못했습니다. 이런 산 설고 낯선 만주 허허벌판에 모시게 돼 원통하고 죄송스러워요. 여기까지 오시느라고 아버님과 어머님은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요? 이 죄 많은 자손들을 용서하옵고 자손들이 만주에서나마 일본 놈들의 철 발굽 밑에서 벗어나 배불리 먹고 잘 살게 구천에서라도 도와주옵소서. 이제 아버님과 어머님을 여기 양지바른 곳에 모시겠습니다.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안심하시고 편안히 계십시오.” 최구장은 말을 마치고 땅을 치면서 흑흑 흐느껴 울었다. “할아버님, 할머님, 편안히 계십시오.” 경숙과 경인을 비롯한 손자들 그리고 손녀 진달래도 흑흑 흐느끼면서 울면서 절을 올렸다. 마을에 가서 삽을 들고 달려온 증손자 근형도 넙적 꿇어 엎드려 절을 연신 세 번 올렸다. 최구장은 손수 자손들과 함께 유골상자를 열고 유골을 조심스레 하나하나 꺼냈다. 뒤이어 머리로부터 목, 척추, 다리 뼈를 순서대로 다시 상자에 조심스레 넣었다. 이때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오고 있었다. 진달래는 바위돌을 보고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산정 곳곳에 올라가서 주위를 경각성을 높여 잘 살피세요.”하고 명령했다. 총알을 맞아 구멍이 펑 뚫린 골반 골을 들고 유심히 보던 최구장은 또 목 놓아 울었다. “어버이, 용서하세요. 일본 놈들 때문에 죄 없는 어버이 골반에 관통상까지 맞게 한 이 불효한 자손들을 용서하옵소서. 뼈에 구멍까지 뚫렸으니 얼마나 아팠겠어요. 아, 세상 독종 일본 놈 새끼들을 어떻게 하면 이 원수를 다 갚을고?” 저쪽에서 무덤을 파던 경인과 경숙이 놀라운 눈길로 골반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한참 후 무덤도 다 파고 유골도 상자 안에 다 정성 들여 넣었다. 최구장은 미리 준비한 하얀 천으로 유골을 싼 후 상자덮개를 덮어놓았다. “아버님, 어머님, 이제 부모님을 이국 타향에라도 모시겠어요. 편안히 고이 잠드세요.” 경숙과 경인은 하얀 천으로 된 여러 갈래 바 줄로 유골상자를 들어 무덤 속에 천천히 내리워 모셔놓았다. 최구장이 허리를 구부정하고 삽을 주어들고 흙을 관 위에 조심스레 눈물방울과 함께 주르르 흘려 내려 보냈다. 그러자 자손들이 차례로 삽을 쥐여 흙을 무덤 속에 흘려 내려 보냈다. 진달래도 떨리는 손으로 삽을 쥐여 흙을 떠 관 위에 흘려 내려 보냈다. 근형까지 흙을 퍼 넣자 모두들 아주 빨리 흙을 퍼 넣었다. 드디어 자그마한 봉분이 산중턱에 외롭게 생겨났다. 최구장과 자손들은 연신 아홉 번이나 큰절을 올렸다. 뒤이어 최구장은 자손들을 둘러보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너희들도 우리 최 씨의 유구한 역사를 알아둬야 한다. 우리 최 씨는 조선 성씨가운데서 제일 긴 성씨의 하나이다. 우리 시조는 신라 건국 전설에 나오는 신라 서라벌 여섯 촌중의 돌산고허촌 촌장 소벌도리이다. ‘삼국사기’ 에 따르면 신라 3대왕 유리왕님께서 기원 32년에 신라 6개 큰 마을 촌장들에게 성을 하사하였느니라. 알천양산촌장 알평에겐 이씨를, 무산대수촌장 구례마에겐 손씨를, 취산진지촌장 지백호에겐 정씨를 하사하셨어. 금산가리촌장 기타에겐 배씨를, 명활산고아촌장 호진에게는 설씨를 하사하셨고 우리 시조 돌산고허촌 촌장 소벌도리님께는 최씨를 하사하셨다. 그 최씨가 380여개 본으로 나뉘었는데 우리 개성 최씨는 신라 말기 개경, 그러니까 지금의 개성에서 대장을 지낸 최우달 장군님을 시조로 모시고 있느니라. 그의 아들 최응은 문장에 뛰여나 후고구려 왕 궁예 휘하에서 신임을 받아 대관을 지냈다. 후손 천보는 리조 초기에 한성부윤을 지냈고 그의 증손 최명창은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다. 나의 아버님은 개성 최씨 네 집안에서 10대 장손이느니라. 그러니까 나는 11대 장손이고 경숙은 12대 장손이다. 근형은 13대 장손이야. 모두들 잘 기억해둬라.” 모두들 작달막한 근형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최구장은 계속 뒷말을 이었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모두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개성에서 태여났는데 일본 놈들의 핍박으로 50여 년 전에 명천에 들어왔다. 저 내 동생 최구철과 진달래네 모녀간도 할아버지를 모시고 개성에서 살다가 일본 놈들의 핍박에 의해 정든 고향을 떠나 머나먼 장백산에 들어가 피신해 있으면서 살게 됐다. 원래 아버지를 할아버지와 조상들이 계시는 개성에 모셔야 하겠지만 일본 놈들의 성화에 모시지 못하였구나. 그리고 일본 놈들이 득실거리는 명천에도 모셔 둔 채 우리 몸만 빠져 나올 수 없어 여기에 모셔 왔다. 일본 놈들의 성화에 우린 이젠 자기 고향에도 찾아갈 수 없게 되였구나. 우리는 자기 조상들도 보지 못하게 되였고 산소도 고향에 쓸 수 없게 됐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울면서 여기 외로운 산에 아버님과 어머님을 모시게 됐어. 이제부터 우린 대대로 여기에 산소를 써야겠다. 비록 고향에 돌아갈순 없지만 여기를 두번째 고향으로 생각하고 황무지를 개간하고 자자손손 배불리 먹으면서 살아보자. 이제 나라를 되찾게 되는 날 너희들이 내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나까지 모셔 내갈 것을 부탁한다.” 자손들은 몽땅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면서 섧게 흑흑 흐느껴 울었다. 제사까지 다 지내자 동녘하늘이 환히 밝아왔다. 삼라만상이 기지개를 켜면서 사위를 둘러본다. 최구장 일행은 흐리멍덩한 하늘아래 쓸쓸한 산소를 되돌아보면서 산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그런데 경석이가 보이지 않았다. 약 담배 인이 박힌 그가 또 아버지와 형제들의 눈을 피해 약 담배를 피우러 숲속으로 달아난 것이 분명했다. “에구, 또 약 담배 인이 올라온 모양이구나. 저 놈 막내를 어쩌겠니? 조선에서 떼버리고 왔더라면 시름을 놓았을 걸. 쯧쯧쯧.” 최구장은 속이 답답해 메마른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진달래는 한숨을 호 내쉬더니 최구장 일행과 일일이 작별인사를 했다. “큰아버님, 오빠들, 몸조심하면서 잘 계셔요. 무슨 일이 있으면 인편에 알리세요.” 최구장은 진달래의 해 빛에 탄 철색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돌아가면 구철 동생에게 문안 전해라. 편할 때 진수해로 놀러 오라고 해라. 그런데 넌 언제 시집가겠냐?” 최구장의 한숨 섞인 말에 진달래는 생글 웃어보였다. “일본 놈들을 다 몰아내면 시집가지요.” “에이, 일본 놈들을 언제 몰아내겠냐? 쯧쯧.” 진달래는 최구장께 넙쩍 큰절을 올린 후 말에 올라탔다. 바위돌과 억복이랑 유격대원들이 몽땅 말을 탔다. 최구장은 말을 타고 산정으로 치달아 달려 올라가는 진달래 일행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진달래 네가 수림 속으로 사라진 후에야 그들은 외롭고 쓸쓸한 무덤을 떠나 천천히 산에서 내려왔다.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4권                                           김장혁                      제17장 장백산에 피어난 진달래                1.음흉한 획책      우시장 경찰국과 헌병대대 사무실은 벌둥지를 쑤셔놓은듯이 발칵 뒤집혔다. 업동 경찰총국 부국장이며 헌병총대 부대대장 스즈끼가 강직돼 우시장 경찰국 국장 겸 헌병대대 대대장으로 내려 왔던 것이다. 그는 졸개들을 끌고 우시장 경찰국 국장 사무실에 들어가 끼무라 국장의 자리에 도고히 앉았다. 그 앞에 끼무라가 꿇어앉았다. 스즈끼 국장은 상부의 처벌서를 읽었다.   끼무라는 연약하고 무능해 관할구역에 출몰하며 살인, 방화하는 김용천, 김성칠과 진달래를 괴수로 하는 유격대 놈들과 김병완과 김기준 등 반일파괴분자들을 한 놈도 나포하지 못했다. 또 우시장 자위대대 한길성 대대장, 야마다 면장, 유격대에 피살당하게 했다. 똘만 경찰도 중상입게 했고 숱한 대일본제국 병사들이 기습받아 참살당하게 했다. 김병완과 김기준 등 반일파괴분자들은 우시장 경찰국과 숱한 군용다리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경찰과 헌병의 기강을 바로잡고 우시장 일대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끼무라를 철직시키며 할복 형으로 처벌한다. 스즈끼 부국장은 뱀의 혀 같은 혀바닥을 날름거렸다. "나도 무능한 널 잘 단속하지 못했다고 강직처분받았어."  스즈끼 국장은 시퍼런 군도를 끼무라 앞에 덜러덩 쥐어 뿌렸다. “하이(옛)!” 끼무라는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숙였다. 뒤이어 군복과 허연 적삼을 벗고 선뜩선뜩한 군도 끝을 불룩한 배에 가져다 댔다. “천황페하, 대일본제국에 충성을 제대로 하지 못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시체 돼 혼이라도 유격대 놈들을 물어뜯게 해주옵소서.” 말을 마치자 끼무라는 군도로 배를 푹 찔렀다. 꽈당! 끼무라는  바닥에 대가리를 쪼으며 쿵-덩- 쓰러졌다. 뻘건 피가 흐르는 군도를 틀어쥔 채 코통스런 오만상을 찡그리였다. 맥없는 눈길로 어딘가 한 곳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의 뚱뚱한 배는 군도에 쭉 째져 있었다. 그 자가 쓰러진 채 재차 푹 찌르자 더러운 피가 주르르 흘러 널 바닥을 메스껍게 적시었다. 한참 버둑거린 끼무라는 천천히 죄악적인 한생을 끝장 보았다. 스즈끼는 이마에 손을 얹고 눈을 지그시 감아 버리었다. 그 끔찍한 참상을 보기도 섬직했다. 하긴 자기도 언젠가는 끼무라와 같은 끝장을 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한참 후 스즈끼는 수하 대소 장교들을 몽땅 사무실에 불러들이었다. 일본 놈들과 자위대대 놈들은 배를 가르고 피 못 속에 쓰러진 상전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스즈끼는 닭을 잡아 원숭이를 훈계하려고 들었다. “다들 보았지? 누구든지 대일본제국에 제대로 충성하지 못하고 유격대와 그 족속들을 한 놈이라도 놓치는 날엔 저런 끝장을 볼 줄 알라.” “하이!” 수하 놈들은 스즈끼 국장과 쓰러진 끼무라를 번갈아 흘끔흘끔 곁눈질하면서 공포에 떨었다. 스즈끼는 훈계를 계속했다. “바로 네놈들이 병완과 기준을 살려 간도에 보냈어. 네놈들은 한개 소대나 되는 사냥꾼들이 포수대에 들었다가 유격대원으로 되게 만들었어. 네놈들은 우리 명천 우시장에 유격대들이 마구 쳐들어오게 했다. 네놈들은 야마다 면장과 한길성 대대장, 똘만 경찰을 반주검으로 만든 죄인들이야! 네 놈들은 경찰국과 숱한 다리가 무너지게 만든 죄인들이야! 범죄자들이야!” “하이!” 놈들은 차렷하고 또 군례를 올리었다. “병완과 기준은 경찰국 청사와 다리를 파괴한 주모자들이야. 네놈들은 그 놈 부자를 놓친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졌어. 네놈들의 목엔 이미 칼이 대져 있다. 이제 조금만 군사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 날엔 언제든지 네 놈들의 목을 쳐 버릴 거야! 알만한가?!” “하이!” “옛!” 스즈끼는 모두들 나가라고 손짓하고 나서 야마모도 소장을 쏘아보았다, "남게.” 한쪽에 우두커니 서있던 야마모도는 복판으로 나서고 다른 놈들은 힐끔거리며 사무실에서 기신기신 나갔다. 몇몇 졸개들이 끼무라의 시체를 줄줄 끌어 내갔다. 한때 숱한 무고한 백성들을 살해한 끼무라 놈은 개처럼 줄줄 끌리어 나갔다. 널판바닥에 더러운 피가 주르르 흘러 내렸다. 졸개들은 시체를 치우고 뻘건 피를 걸레로 말끔히 닦아낸 후 스즈끼 국장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나갔다. 야마모도는 감히 스즈끼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말뚝처럼 서 있었다. “앉게, 야마모도 소장.” 스즈끼는 맞은 편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 했다.그제야 야마모도는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며 스즈끼 앞 왼쪽 의자에 조심스레 앉았다. 스즈끼는 옆에 다가와 나란히 앉았다. “야마모도 소장, 자넨 여기 정황을 손금 보듯 하지 않는가?” “하이!” 야마모도는 벌떡 일어나 군례를 척 붙이었다. “믿어 줘 감사합니다. 국장님을 위해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좋아, 대일본제국에 충성하게나.” “예. 천황페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앉게나. 내 상의할 일이 있네. 이제껏 끼무라 국장이 큰 그물을 쳐서 큰 고기를 잡는 전술은 실패했네. 조선 사람을 백 명 잘못 죽이더라도 유격대 한 놈을 놓쳐선 안 되네. 우리 황군은 중국 대륙을 쳐 들어가면서 ‘삼광정책’을 쓰지 않는가? 몽땅 죽이고 몽땅 불태우고 몽땅 약탈해야 해.” “알겠습니다.” 스즈끼는 졸개가 가져온 차물을 후후 불면서 마시고 나서 뒷말을 이었다. “항일유격대를 자기 구역에서 기다렸다가 소멸한다면 계속 얻어맞기만 하게 되네. 명천이나 우시장을 기습하고 장백산 일대 밀림 속에 숨어 버리면서 신출귀몰하는 유격대를 여기서 기다리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스즈끼는 야마모도 쪽으로 다가앉으면서 나직이 물었다. “우린 특무소조를 간도에 파견해 놈들의 정황을 정찰해야겠어. 별동대를 조직해 그 놈들을 파악 있게 기습해야 하겠네.” “예, 고명합니다. 참 고명합니다.” 야마모도는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었다. “여기 특모 소조장을 시킬 조선 사람 없는가?” “왜 하필 조선 사람입니까?” “우린 일관적으로 조선 사람으로 조선 유격대를 치는 수법을 쓰네. 자위대하구 별동대 조선 사람들을 위주로 조직할 예산이네. 똘만이 그간 간도에 드나들면서 유격대 정보를 많이 수집했겠는데 참, 이젠 페물짝이 됐어. 기억력이 도끼등으로 돼버렸어.” 야마모도는 한참 생각을 더듬다가  입을 열었다. “특무 소조장 할 놈이 있습니다." "누군가?" " 뱅승철이란 놈인데요. 그의 형 둘이나 진달래네 유격대에 죽어 원한이 깊습니다. 이전에 경찰국을 지을 때부터 끼무라 국장님을 도와 특무노릇을 아주 잘 했습니다.” “음, 그래 그자는 김성칠이라던가? 그 놈 유격대 대장을 잘 아는가?” “잘 알다 뿐이겠습니까.” “조선 경찰 허꺽쇠가 특무 소조장을 시키자는 사람도 있네.” “허꺽쇠는 너무 나섰기에 유격대 대장들에게 환히 드러났습니다. 백승철은 그저 건달인가 하지 우리가 파견한 특무 소조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됐네. 그럼 백승철한테 특무 소조장을 맡기고 허꺽쇠를 부소장으로 임명해서 훈련시키게나. 우리 일본군으로 별도로 특무소조를 조직합세. 이미 간도에 여러 번 드나든 적이 있는 가메다를 특무소조 소조장으로 임명합세. 장백산 유격대 놈들이 기병소분대두 있다던데 눈이 온 후에야 말 발자국을 명심해 정찰해야 되네. 자위대대 대대장은 영팔한테 맡기고 부대대장은 수길한테 맡기겠네.” 스즈끼는 허리를 의자등받이에 기대며 정중하게 말하였다. “자넨 별동대 대장을 맡게. 부대장엔 헌병소대장 나까노라이찌로를 시키겠네.” “예?!’ 야마모도는 깜짝 놀라 벌떡 뛰어 일어났다. 그는 삼림을 지키는 것이 낫지 신출귀몰하는 유격대와 정면으로 싸우기 겁났던 것이다. 형 야마다와 자위 대대장 한길수가  살해당한 꼴을 보지 못했는가. 꿈에도 유격대에 놀라 벌떡 깨난적이 한두 번만 아니었다. “야마모도 대장, 내일부터 특무소조와 별동대를 조직해 훈련시키게나. 올해 천혜의 눈이 녹기 전에 장백산 항일유격대를 몽땅 없애 버려야겠네.” 스즈끼의 명령이었다. 야마모도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하지 않으면 안됐다. “또 있네.” “예?” “우리 별동대만으로는 수 십 년 조선반도와 간도에서 유격전술을 써온 의병대 출신 유격대를 소멸할 수 없네. 우리 별동대는 기습해야 하네. 그래도 유격대토벌은 관동정규군에 의거해야 하네. 그런데 용정통감부 간도파출소 소장 사이또도 이젠 늙어 무능하네. 문제는 간도 여러 파출소들에서 치안을 잘 유지해야 유격대 놈들이 여기까지 기습하지 못하겠는데 말일세. 내 사이또 소장을 탄핵하는 편지를 써서 상부에 보냈네.” 스즈끼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야마모도에게 편지 한통을 꺼내 주었다. “간도 용정에 있는 관동군 장교에게 줘야겠네. 어쨌든 우리 별동대 기습에 관동군 주공이 필요하단 말이네. 민병 같은 우리 별동대로만은 유격대를 기습하기는커녕 매복습격당하지 않아도 다행이야. 관동군 속에 잘 아는 장교가 없는가?” 야마모도는 한참 궁리하더니 머리를 끄떡였다. “있습니다.” “누군가?” “바로 한길성 대대장의 맏아들 한철주입니다. 그는 관동군에서 부련대장을 하는데 길림에 있다가 동 만에 돌아왔다는 거 같습디다.” “동만?” 스즈끼는 김빠진 공처럼 맥이 풀려 의자에 스르르 물앉으며 안경알을 춰 올렸다. “장백산 기슭에 돌아왔구먼.” 스즈끼는 이마에 손을 얹고 한참 궁리하다가 머리를 버쩍 들었다.        “그런 천재일우의 인맥을 놓칠 순 없네. 이 편지를 한 련대장한테 전하게. 관동군의 토벌이 없인 이번 기습작전이 실패하게 되니까.”        “하이!” 야마모도는 벌떡 일어나며 군례를 올리고 나갔다. 그는 관동군이 주공을 맡으면 자기는 협공이거나 기습이나 슬슬 하면서 살 구멍을 찾을 궁리를 했다. 그제야 조금 안도의 숨이 나왔다. 이튿날 스즈끼 국장은 일본 경찰 스까다를 시켜 별동대와 두개 특무소조, 자위대 두목들을 몽땅 불러 들여 임명사항을 공포하고 임무를 포치하였다. 일본 놈들과 친일주구들은 대일본제국과 천황페하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였다. 야마모도 등 대소 두목들이 나간 후에도 스즈끼는 이마를 짚고 안경알 속의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한참이나 골똘히 궁리하였다. 이윽고 벌떡 일어난 그는 군도를 쓱 뽑아 들고 날이 선뜩선뜩한 칼날을 손가락 끝으로 쓱쓱 훑으며 이빨을 뿌드득뿌드득 갈았다. “김병완, 김용천, 김성칠, 최진달래, 김기준… 네놈들을 나포하지 않고선 이 세상에서 살지 않을 테야!” 군도가 의자등받이에 탁 내리박혀 부르르 떨었다. 보름 후 바깥에서는 거위 털 같은 눈이 풀풀 흩날려 내렸다. 스즈끼 국장은 별동대 야마모도 대장을 불렀다. “백승철과 가메다에게서 소식이 있는가?” 야마모도 대장은 바위 돌처럼 굳어진 얼굴을 풀지 못하면서 대답하였다. “가메다한테서 장백산 밀림 속의 유격대 군영 위치를 파악해냈다는 기별이 금방 왔습니다.” “그래도 털 한 모숨이 해냈군. 구체적으로 말하게나.” 야마모도 대장은 목이 말라 혀끝으로 입술을 축이더니 뒷말을 이었다. “간도 영월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안보라는 집단부락은 장백산 일대로 통하는 교통요충지입니다. 이전에도 유격대 놈들이 그 집단부락을 습격하여 십가장과 촌장을 살해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집단부락의 자위대에서 장백산 쪽으로 쌀과 소금을 싣고 가는 장사꾼차림의 사람들 셋을 발견하고 털 한 모숨한테 보고했답니다. 털 한 모숨이가 특무 둘을 데리고 사냥꾼인 척 하면서 멀찍이 뒤를 밟아 유격대 장백산 군영을 알아냈답니다.” “좋아, 우린 상부에 보고하지도 말고 유격대 놈들을 일망타진해야 하네. 자넨 즉시 별동대를 거느리고 간도에 들어가 관동군 주공을 협조해 장백산 항일유격대를 기습해 김성칠과 진달래의 대가리를 떼 오게!”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괜찮겠습니까?” “관계하지 말게. 상부에서 우리 출병사실도 모르니까. 별동대가 몽땅 죽어도 모르지 않는가?” 그 말에 야마모도는 혼이 훌 날아 날 번하였다. 그러나 인차 상전이 듣기 좋은 말을 골라 하였다. “오, 참 묘합니다. 만약 우리 별동대가 전공을 세우면 그때 보고 해도 좋을 게 아닙니까? 헤헤. 정말 고명합니다. 고명해. 허허허.” 스즈끼 국장은 일어나 다가오더니 야마모도대장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야마모도 대장, 절대 소홀히 기습하지 말게. 가메다와 백승철을 재차 파견해 장백산 유격대 병력과 군영 배치 지도를 그리게 하게나. 유격대 정보를 구체적으로 정찰해 오게 한 후 불시에 기습하게나.” “하이!” 스즈끼 국장은 야마모도의 군례에 군례로 답하고 나서 말하였다. “야마모도 대장, 별동대의 원정습격승리소식을 기다리겠네. 사꾸라관에서 당신의 승리적인 개선을 축하해 질탕하게 놀아 보세.” “하이! 꼭 국장님의 명령대로 올 겨울 안에 김성칠과 진달래 놈의 목을 쳐오겠습니다.” 야마모도 대장은 재차 군례를 척 올리고 나갔다. 그러나 그는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는 바깥에 나오자마자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이 머리가 온전히 목 위에 붙어 돌아올 수 있을까?) 야마모도 대장은 소름이 끼쳐 뒤잔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스즈끼 국장은 사무 상에 앉아 이마에 왼손을 얹고 머리를 숙이더니 오래도록 못된 궁리를 하였다.         사무실 난로 안에서 간혹 석탄덩이가 탁탁 튀는 소리가 납덩이 같이 무거운 침묵을 깼다.  
69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8) 댓글:  조회:2153  추천:0  2016-07-21
                        7.흐느끼는 두만강 흐리멍텅한 하늘 아래 나무숲이 점점 우거지자 백승철은 더럭 겁났다. 그는  결박된 채 말잔등에 앉아 황군을 따라가다가 똘만을 보고 주둥이를 놀렸다.     “여보, 우리 승만 형님은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지을 때부터 끼무라 국장님을 위해 밀정노릇까지 했소. 황군을 위해 일해 주겠다는데 왜 나를 묶어 가오? 당신은 조선 사람이 아니요? 좀 풀어주게 사정해주오.”     똘만이가 대충 번역해준 말을 듣고 가메다는 말고삐를 잡아당기더니 뒤돌아보았다. 그는 마을이 보이지 않자 교활한 웃음을 지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멍청이. 원, 어찌 무삼이 보는데서 자넬 써 주겠다고 말해? 정체가 다 드러나면 장차 어떻게 우리 황군을 위해 일하겠는가?” “예 - ” 가메다는 똘만을 돌아다보면서 “풀어주게.”하고 말했다. 똘만은 승철을 부축해 말에서 내리게 한 후 바 줄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승철은 넙적 꿇어앉자 가메다에게 큰절을 올리면서 두 손을 싹싹 비비었다. “감사합구마. 이 목숨이 붙어있는 한 황군을 위해 무슨 짓이든 다하겠쏘다.” 가메다는 씨물 웃으면서 지껄이었다. “좋아, 자넨 최구장과 돌멩이 유격대 두목 진달래랑 본적이 있지 않는가? 먼저 그 놈들의 행방을 알아내게나." “내 손으로 그 년놈들을 잡아 칼탕 치지 않고선 절대 눈을 감지 못하겠습구마.” “요로씨이(좋아),먼저 그 놈들 행방부터 빨랑빨랑 알아내라는데. 으흠,” 가메다는 호주머니에서 엽전을 한줌 꺼내 짤그락거리더니 승철에게 훌 넌네주었다. “진달래 년을 찾아내게. 그 놈들 오래잖아 두만강을 건너 갈거야. 간도까지 쫓아가서라도 그 몇몇 놈들의 행방을 알아내게.” 백승철은 엽전을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지껄였다. “그 놈들을 보기만 하면 도끼로 찍어죽이겠습구마.” 가메다는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아니야, 풀을 건드려 구렁이를 놀래우지 말게. 알았어?" "예, 예. 허허." "그 놈들 꼬리만 밟으면 돌멩이 유격대 놈들 줄줄이 걸려들게 아닌가?” “예, 예, 예. 긴 낚시를 놓아 큰 고기를 잡자? 그겝지비. 헤헤헤.” 가메다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 놈은 턱의 한 모숨 털을 슬슬 매만지면서 백승철을 만족한 표정으로 내리보며 교활한 웃음을 지었다. 똑 마치 사냥군이 훌륭한 사냥개를 한 마리 얻어 웃음주머니 흔들흔들 하는 상이었다. “자, 어서 떠나게.” “아니, 함께 가지 않고?” “이이에(아니), 단독으로 행동하게. 우리와 함께 다니면 신분이 드러날 수 있지 않는가?” 백승철은 어깨를 툭 떨어뜨리면서 난처한 기색을 지었다. “그 놈들은 총을 가진 놈들인데. 내가 어떻게 빈손으로 그 놈들을 당하겠습둥?” 가메다는 말 잔등에서 내려 자기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 백승철에게 척 건네주었다. “자, 받게. 자넨 돌멩이 유격대에 원한이 깊어쏘까. 우린 믿네. 자네 우리 황군 위해 대단히 잘하리라고 믿는단 말이야.” 백승철은 다시 무릎을 꿇었다. “돌멩이 유격대 놈들은 불공대천의 원숩구마. 그 놈들을 붙잡지 않고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겠습구마.” “요로씨이(좋아)!” 가메다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그는 똘만을 보고 백승철에게 권총을 쓰는 요령을 일일이 가르쳐 주게 했다.       백승철은 일본 놈의 특무로 되여 백마를 타고 먼저 한발 앞서 떠났다. 한편 가메다는 헌병 소분대를 끌고 동북쪽을 바라고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달려갔다. 그들은 아예 중도에서 아무 곳에서도 멈추지 않고 두만강 강변 변경검사소에 이르렀다. 철조망을 늘인 두만강 철교우의 망루 앞에는 간도로 들어가는 조선 백성들로 하얀 물결을 이루었다. 일본 군대들이 두만강변경검사소에서 두만강을 건너가는 조선 사람들의 몸을 일일이 수색했다. 가마를 빼 지게에 진 장정들로, 이부자리를 이고 애를 업고 양 손에 어린이를 이끌고 따라가는 여인들로 고향을 떠나 살길을 찾아 만주벌로 들어가는 서러운 조선 사람들로 장사진을 쳤다. 털 한 모숨과 똘만은 헌병 소분대를 이끌고 망루에 이르자마자 말에서 내려 망루에 뛰어 들어갔다. 망루를 지키던 일본 경찰은 발뒤꿈치를 척 붙이고 군례를 척 붙혔다. 그러자 가메다도 군례로 답례했다. 그는 망루에서 보초를 책임진 변경검사소 소장을 찾아 유골궤짝을 가진 최구장과 진달래를 비롯한 돌멩이유격대 정황을 일일이 말했다. “이 놈들은 우리 우시장 헌병대의 자위대 대대장을 살해한 장백산 돌팔매유격대들이오. 꼭 협조해 나포해주시오.” 검은 경찰복을 입은 경찰소장은 머리를 조아렸다. “와까리마시다(알았습니다). 그 놈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꼭 나포해 헌병대에 보내겠습니다.” 검사소 소장은 이윽고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뒷말을 이었다. “장백산 유격대 말은 많이 들었소. 그런데 그 놈들이 시허연 대낮에 여기 다리로 건너가자고 오겠소이까?” 가메다는 열이 부쩍 올라 사무 상을 탕 치면서 벌떡 일어나 고함쳤다. “그게 무슨 소리요? 돌멩이 유격대는 교활한 놈들이어서 바로 당신들이 그렇게 경계를 늦추는 코밑에 나타 날 수도 있단 말이요.” 검사소 소장은 황망히 일어나면서 손을 저어댔다. “알았소이다. 좌우간 오늘부터 그런 자가 나타나면 붙잡지요. 당신들은 망루 안에 숨어서 바깥에 지나가는 자들을 살피란 말이요. 바깥초소에 당신들이 서 있으면야 그 놈들이 괜히 놀라 달아날게 아니요?” “그렇게 합세.” 변경검사소의 검사는 더 엄밀해졌다. 검사소의 경찰들이 몽땅 출동해 조선 난민들의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일일이 검사하고서야 지나보냈다. 털끝만치라도 수상한 자가 발각되면 망루 안에 끌어다 고문했다. 가메다 등 일본 헌병들은 망루 안에 숨어 창문으로 바깥 초소를 지나는 조선 사람들을 하나하나 감시했다. 그때 백성철이 나타났다. "아니, 저 놈은 어째 여기 왔어? 똘만이, 저자를 빨리 데려오게." "하이," 이윽고 백승철이 망루에 들어섰다. "우둔한 놈, 넌 진달래 패거리 눈에 띄면 안돼." "네? 내 변장했기에 알아보지 못합구마. 여기엔 그 년놈들이 얼씬하지두 않았습구마."  가메다는 턱의 털을 슬슬 만지다가 명령했다. "피난민들 속에 들어가 잘 살피게." "예." 그리하여 똘만과 백승철은 조선난민으로 가장하고 난민 속으로 왔다 갔다 하며 살폈다. 그들은 이따금 먼발치에 쭈크리고 앉아 담배를 풀썩풀썩 피우면서 두만강 다리를 건너는 난민들을 서캐 훑듯 살폈다. 한참 후에 웬 40대중반의 사나이가 고리짝 하나를 지게에 지고 허리를 굽히고 스적스적 다가왔다. 그 뒤에 자그마한 솥에 보자기를 넣어 인 아낙네가 어린것을 업고 손에 잔밥들을 하나 잡고 두 어린애들을 이끌고 뒤따라왔다. 가메다는 턱의 털 한 모숨을 슬슬 매만지다가 벌떡 일어나면서 바깥쪽으로 손을 홱 저었다. 헌병들이 일제히 망루 밖으로 뛰쳐나갔다. 가메다는 바깥에 나가자마자 고리짝을 지게에 진 사나이를 불러 세웠다. 그 사내는 아무런 겁기도 없이 묵묵히 서서 가메다를 마주 바라보았다. 가메다가 여겨보니 최구장도 근형도 아니었다. 그런데 엄청나게 육중한 몸집을 보면 힘깨나 쓸 사내였다. “궤짝 안에 뭐 있쏘까?” 사내는 사발 같은 눈으로 땅바닥을 내려다보면서 선선히 대답했다. “농기구요.” 검사소 소장도 다가와 그 사내의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을러멨다. “궤짝을 내려놓으란 말이야.” 사내는 두말없이 지게를 땅바닥에 내리워 손에 쥐였던 받침대를 받쳐놓고 고리짝을 조심스레 내리워놓았다. 검사소 소장이 군도 끝으로 고리짝을 가리키면서 을러멨다. “히라이데(열엇)!” 똘만이가 옆에서 번역해주었다. “열라.” 사내는 시끄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씩씩거리며 고리짝을 열었다. 가메다가 들여다보니 안에는 보습 날이며 낫이며 괭이 날이며 식칼이 들어있었다. 변경검사소 소장은 시퍼런 식칼을 쥐여 쳐들고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칼날에 대고 슬슬 쓸어보았다. “날이 선뜩선뜩해. 이걸로 살인도 할 수 있다.” 똘만이가 옆에서 번역해주자 그 사내는 픽 코 방귀를 뀌었다. “아니, 그까짓 식칼을 가지고 왜 이렇게 시끄럽게 굽니까? 빨리 건너가게 해줍소. 만주에 가서 땅을 일궈야 죽물이라도 먹지.” “이 놈, 입을 벌리면 다 말인가 하는가?” 가메다는 군도를 빼들고 그 사내 목에 대고 호령했다. “웃통을 벗어!” “벗으라면 벗지.” 그 사내가 웃통을 벗어버리자 가메다는 실눈을 해가지 양어깨를 살펴 보는 것이었다. “봐라, 양어깨 다 뻘건걸 보니 총을 메고 다닌 게 틀림없다. 네가 돌멩이 유격대 놈이야!” 가메다의 말에 사내는 억울하여 픽 코웃음 쳤다. “아니, 이보, 우리 조선 사람들은 지게를 메고 다니다나니 어깨가 뻘겋소. 총이란 게 어떻게 생긴 줄도 모르는데 날 보고 총을 메고 다녔다고? 나 원 참, 한심하기 짝이 없소.” “뭣이?” 가메다는 군도를 쳐들면서 버럭 고함쳤다. “이 놈이 감히 나한테 대들어? 죽고 파?” 아낙네가 두 팔을 벌리며 남편 앞을 막아 나서면서 두 손을 싹싹 비볐다. “황군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우리 여섯 식솔은 다 이 나그네 두 손을 바라 보고 농사를 지어 삽구마.” 가메다는 아낙네의 꽤나 예쁜 얼굴을 쳐다보더니 쳐들었던 군도를 내리우면서 희죽이 웃었다. “우쯔꾸씨이 온나요.(고운 계집이군) 이년, 이후에 황군의 말을 많이많이 잘 들었쏘까. 빠가요로(멍청이야).” 아낙네는 고맙다고 두 손을 싹싹 빌면서 허리를 굽실거렸다. 아낙네가 남편을 보고 빨리 지게를 지고 다리를 건너자고 눈짓했다. 사내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면서 고리짝을 지게에 올려놓고 지고 떠나려고 했다. 천하의 까마귀는 다 검다고 변경검사소 소장 놈은 군도로 아낙네의 앞길을 막았다. 그러자 잔밥들은 겁을 집어먹고 어머니의 양손을 잡고 엉엉 울었다. 소장 놈은 음충한 눈길로 아낙네 엉덩이를 노려보면서 지껄였다. “넌 만주에 못 가. 우리 변경검사소 밥을 지어.” “아니, 이건 또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립네까? 애들 넷이나 키우는 에미를 떼 내면 우린 어떻게 사오?” 아낙네가 솥을 인 채 입을 딱 벌렸다. 사내도 억이 막혀 흐린 하늘만 쳐다보며 황소숨을 몰아쉬면서 씩씩거렸다. 그러건 말건 소장 놈은 아낙네를 자기 여편네나 다 된 것처럼 망루 안으로 마구 끌고 들어갔다. 아낙네는 끌려가면서도 나그네를 돌아보면서 통곡 쳤다. “여보, 여보~” 사내도 눈물을 흘리면서 처량하게 고함쳤다. “여보, 점순이!” 차마 보지 못할 그 참경을 보고 두만강을 건너려던 아낙네들은 모두 자기 머리를 수그리면서 자기 얼굴을 감추었다. 어떤 아낙네들은 밉게 보이려고 땅바닥의 흙먼지를 낯에 마구 쳐 바르기도 했다. 애들은 어시 손을 놓지 않고 떼를 쓰면서 울었다. 나그네는 끌려가는 아내를 놔달라고 똘만을 보고 사정했다. 똘만인들 어떻게 하랴. 황군 소장의 말 한마디면 시퍼런 대낮에도 남의 아낙네를 빼앗아가는 판인데. 아낙네와 사내가 애들을 데리고 두만강을 건널 때에는 건너가지 못하게 하더니 인제는 아내를 빼앗더니 사내를 강제로 다리목에서 쫓아 두만강을 건너가라고 몰아세웠다. 이윽고 변경검사소 소장 놈이 망루에서 나오더니 사내를 보고 지껄였다. “여편네 근심하지 말어. 황군이 밥을 입빠이(많이) 준다. 빨랑빨랑 만주국에 가. 돈이나 많이 벌어서 여편네 찾아가.” 사내는 일본 놈들의 총칼 앞에서 별수 없이 아내를 멍해 쳐다보면서 나지막하게 “여보, 당신을 두고 어떻게 가라오?”하고 애달프게 한마디 내뱉었다. 소장 놈은 졸개들을 시켜 그 사내를 총칼로 두만강 다리 쪽으로 마구 밀어냈다. 그 사내는 아내를 빼앗긴 원한을 한가슴 가득 안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두만강을 건너 만주벌에로 들어가야만 했다. 사내는 총박죽에 떠밀리어 몇 걸음 비칠비칠 걸어 나갔다. 다리목에서 아내가 발을 동동 구르며 대성통곡 치면서 “여보! 얘들아!”하고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그 사내는 머리를 천천히 돌렸다. “내 꼭 당신을 데리러 올게!” 무쇠 같던 사내도 참지 못하고 고함치면서 두 볼에 피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애들은 두 팔을 벌리고 “어머니-!” 하고 부르며 애처롭게 대성통곡 쳤다. “하야꾸 이께(빨리 갓)!” 일본 놈들이 총 박죽으로 사내의 엉덩이를 탁 밀쳤다. 사내는 총 박죽에 떠밀리어 지게를 진채 애들을 양손에 하나씩 거머쥐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걸어 두만강다리를 건너갔다. 두만강도 흐느끼며 그 사내와 처자의 이별의 피눈물을 싣고 철썩 철썩 노호하면서 흐르고 있었다.             8.두만강 나루터 한편 두만강다리 근처에 다가와 동정을 살피던 진달래 등은 변경검사소 일본 놈들의 검사가 심한 것을 발견했다. 하여 부득불 다리를 건널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됐다. 그들은 산기슭 수림 속에 숨어서 철썩철썩 사품치며 감때사납게 흐르는 시퍼런 두만강을 내려다보면서 도강계획을 세우고있었다. 진달래의 철색얼굴에는 준엄한 표정이 굳어져있었다. “큰아버지, 우린 대담히 대낮에 나루터를 건너야겠어요. 등잔불 밑이 더 어둡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최구장은 아버지 유골이 담긴 벌건 상자를 매만지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래보자. 건데 군마랑 어쩌지?” 진달래는 결단성이 강했다. “큰아버지랑 건넌 후 우린 두만강 상류로 가서 건널 예산인데요.” “음, 그게 비슷해.” 최구장은 머리를 끄덕이다가 턱을 홰홰 저었다. “야, 야속하다, 야속해. 어쩜 아버지 유골을 제대로 모시자고 해도 죄 취급을 당한단 말이냐?” 진달래도 눈시울에 뜨거운 이슬이 맺혔다. “일본 날강도 놈들은 나라마저 빼앗아갔는데 조상들을 잘 모시게 하겠어요? 일본 날강도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야 편히 살 수 있어요.” 최구장도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여직껏 너희들한테 ‘공자’ 왈, ‘맹자’ 가라사되, ‘지호자야’를 가르쳐오면서 중용지도를 주장했지. 허나 이제야 새 도리를 하나 알게 됐다. 날강도 놈들에게는 인정을 베풀어선 안 돼. 총칼을 든 날강도 놈들은 총칼로 몰아내야 해.” 그는 기침을 쿨룩쿨룩 했다. 진달래가 옆에서 큰아버지 잔등을 톡톡톡 다독여주었다. 최구장은 흰 머리카락을 마른 생강 같은 손으로 훔치고 나서 구부정한 허리를 폈다. “우리 진달래는 참 장하다. 머슴아도 아닌 게 총을 메고 일본 날강도 놈들과 싸우고 있지 않나. 나도 늙지만 않았어도 총칼을 들고 일본 놈들과 싸우겠다. 근형도 이제 만주에 들어가면 진달래를 따라 총을 들고 일본 놈들과 싸워라. 그게 효성을 다하는 거야.” 이때 두만강 나루터에 건너갔던 나룻배가 천천히 다가왔다. 진달래가 근형을 보고 포치했다. “먼저 큰조카가 내려가 봐라. 알아보는 사람이 있나 떠 보자.” “알았소. 내 먼저 가서 동정을 살피고 올게.” 근형은 말을 마치자 밀짚모자를 꾹 눌러쓰고 스적스적 산기슭을 내려 나루터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두만강 물은 연 며칠 억수로 쏟아진 장맛비로 하여 흙탕물이 사납게 사품 치며 흐르고 있었다. 나루터에는 남루한 한복을 입은 조선 아낙네들이 애들의 손목을 쥐고 바구니에 주먹밥인지 뭔지 이고 나루쪽배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일본 놈 두 놈이 장총을 둘러메고 나룻배에 오르려는 사람들의 짐과 몸을 수색하고 있었다. 소용돌이를 만나 나룻쪽배는 뒤꽁무니를 자꾸 물에 떠밀리면서 겨우 나루터에 다가섰다. 근형이 다가가자 일본 놈이 경계하는 눈길로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그 놈은 근형의 꾹 눌러쓴 밀짚모자를 훌 벗기었다. “아, 이 놈이?!” “앗! 털 한 모숨!”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두만강나루터에서 털 한 모숨이 가메다와 근형의 눈길이 딱 마주쳤던 것이다. “네놈들이 다리를 건너지 못하니 나루터에 나타날 줄 알았어. 내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래다!” 가메다 놈이 근형의 팔을 잡으려는 순간 근형은 콱 떠밀어버리고 두만강 물에 첨벙 뛰어들었다. 장총을 메고 보초놈으로 가장했던 가메다 놈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쑥 뽑아 사품 치며 흐르는 두만강 물을 겨누었다. 근형이가 머리만 들면 방아쇠를 당길 판이었다. “아니, 저 놈이!” 그 위기일발의 시각에 진달래가 주머니에서 닭 알만 한 돌멩이를 꺼내 날렸다. “아이쿠!” 딱 소리와 함께 가메다 놈은 비명을 지르며 권총을 두만강 물에 떨어뜨렸다. 그 놈은 피 낭자하게 흘러나오는 뒤통수를 싸쥐고 나루터에 보기 좋게 쓰러졌다. 다른 한 일본 놈이 장총을 벗어들고 이쪽을 겨냥했다. “땅!” 고요하던 두만강가 수림 속에 야무진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십여 명 헌병대 놈들이 총을 들고 초소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진달래는 황급히 자기 말의 고삐를 최구장에게 쥐어 주면서 말했다. “큰아버지, 빨리 이 자리를 떠야 해요. 빨리 말을 타세요.” “너희들이나 타고 빨리 가라. 이 늙은게 무슨 죄 있다고 저 날강도 놈들이 이다지도 못살게 군대?” 진달래는 수하의 유격대원들을 보고 “시간이 없어요. 빨리 큰아버지를 모시세요.” 하고 명령했다. 최구장은 유격대원들의 부축임을 받으면서 진달래의 말에 올라탔다. 모두들 말에 올라 그 자리를 떴다. 다급한 형편에서도 진달래는 말배에 처 맨 유골상자가 제대로 있나 살피면서 수림 속으로 달렸다. 나루터에서는 일본 놈들이 대적이나 만난 듯이 왝왝 고함치고 총을 쏘면서 진달래 등이 숨었던 수림 속으로 돌격해왔다. 그러나 놈들이 산기슭의 수림 속에 이르렀을 때는 진달래 등이 두만강 상류 쪽으로 바람결처럼 사라진 뒤였다. 닭 쫓던 개 신세로 된 일본 놈들은 그제야 두만강에 뛰어든 근형의 생각이 떠올라 총구멍을 두만강 쪽으로 돌려대고 두만강 나루터로 되돌아갔다. 그제야 제 정신을 차린 가메다는 뒤통수를 싸쥐고 상을 찡그리면서 기여 일어났다. “물에 뛰어든 그 놈, 그 놈은 최구장네 맏손자야. 놓쳐선 안 돼!” 놈들이 한참 두만강수면을 살펴보았지만 근형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가메다가 그래도 머리가 베아링처럼 빨리 돌아갔다. “고노 빠까야로라(이 바보같은 놈들아), 그 놈이 물에 뛰어든 지도 오랜데 아직도 여기 강물을 사발눈깔로 쏘아봐서야 어떻게 찾아내느냐? 빨리 저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찾아봐!” 그제야 일본 놈들은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맞다. 그 놈이 아래로 떠내려간 지도 오래 되잖아!” 놈들은 총을 꼬나들고 아래쪽으로 달려 내려갔다. 그러나 그들이 어찌 사품 치며 쏜살같이 흐르는 두만강 급류에 떠내려간 근형을 따라잡겠는가! 근형은 진작 가메다 놈이 진달래가 날린 돌멩이에 맞아 쓰러진 순간 물 위에 머리를 내밀어 숨을 돌린 후 물속으로 자맥질하면서 두만강급류를 타고 몇 리 아래에서 만주 쪽의 강기슭에 올랐던 것이다. 한편 두만강변의 변경검사가 심한 정황에 대비해 진달래는 일행을 이끌고 두만강 강변을 달리지 못하고 내지 쪽으로 에돌아 두만강 상류의 한 마을에 이르렀다. 진달래가 말을 탄 유격대원들을 이끌고 두만강 강변에 가 정찰했다. 그 곳 두만강은 하류 쪽보다 강폭도 넓지 않고 물살도 잔잔했다. 게다가 산골 쪽이어서 일본 놈들의 검색도 심하지 않았다. 다만 반나절에 한번 정도로 일본 헌병대가 지나다녔다. 그런데 만주 쪽의 정황은 위만 괴뢰군들이 자주 출몰하여 이쪽보다 경계가 삼엄해보였다. (아무리 지킨들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위만 괴뢰군이야 쉽게 따돌릴 수 있을 거야.) 저녁에 그들은 마을에 들어가 가져온 죽으로 야외에서 저녁을 대충 요기했다. 진달래는 입가심으로 샘물에 양치질을 하는 최구장에게 다가가 무릎을 굻고 주저앉았다. “큰아버지, 지체할 수 없어요. 빨리 도강합시다. 도강할 좋은 방도가 없어요?” 최구장은 천천히 구부정한 허리를 펴면서 말했다. “다시는 나루터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 보아하니 일본 놈들은 나루터마저 지키고 있는 거야. 마을에 들어가서 좋기는 고기잡이꾼들의 쪽배를 얻었으면 좋겠는데. 안되면 문짝 같은 거라도 있으면 아버지 유골만 무사히 건너가면 돼. 우리야 말을 타고 저 상류 쪽으로 건너가도 되겠는데 말이다. 저 유골이 우리 표적이 돼 놈들에게 계속 꼬리를 잡힌 거야.” 한참 궁리하던 진달래가 무릎을 치면서 일어났다. “큰아버지, 그렇게 하자요. 큰아버지는 바위돌과 함께 고기잡이꾼으로 가장해가지고 먼저 할아버지 유골을 쪽배에 싣고 건너면 돼요. 만일 일본 놈들이 나타나면 우리가 더러 여기서 막고 더러 말을 타고 상류 쪽으로 건너가서 마중하겠어요.” “그런데 만주 쪽 정황을 모르고 건넜다가 큰 코 다칠라. 세밀히 계획을 짠 후 도강하자.” “그래요. 그럼 억복이란 대원을 파견해 대안의 정황을 알리라고 하지요.” 그리하여 진달래는 대부분 유격대원들을 보고 군마를 지키게 하고 억복을 불렀다. 훤칠하게 생긴 억복은 장수다웠다. “억복 동무, 헤엄칠 줄 아오?” 억복은 가슴을 치면서 자신 있게 말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강원도 영월부근의 북한강에서 헤엄치면서 자라서 헤엄만은 자신이 있어요.” 진달래는 억복을 엄숙하게 바라보면서 명령했다. “좋소. 대안의 정황을 정찰하러 가오. 만약 대안에 일본 놈들과 위만 괴뢰군들이 없으면 초롱불을 세 번 켰다 껐다 하는 것으로 암호를 보내오. 만약 정황이 좋지 않으면 초롱불을 한번만 켰다가 꺼 버리오.” “알았습니다.” 억복은 인차 두만강으로 가서 세찬 물결에 첨벙 뛰어들었다. 진달래는 억복이 뱀장어처럼 슬슬 두만강을 헤엄쳐 건너가는 것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뒤이어 진달래는 농촌아낙네차림을 하고 최구장과 함께 마을로 쪽배를 빌러 들어갔다. 물론 백여 미터 뒤에는 바위돌이 보위하면서 뒤따랐다. 최구장은 마을 동구 밖에 이르러 마을을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마을 앞에 있는 저 높다란 토성을 두른 집에 가 빌어보자. 부자네만이 고기배가 있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기 배 있겠니?” 그러자 진달래는 절레절레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부자들이란 다 깍쟁이들인데요. 쉽게 훌훌 빌려 줄까요?” “돈은 귀신도 매돌을 돌리게 한다는데 돈을 줘보자. 빌려 주지 않는가?” 그제야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였다. “글쎄요.” 그들은 두만강 변을 따라 마을 앞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러다가 피뜩 두만강 물에 둥 둥 떠있는 쪽배에서 어부 같은 중년사나이가 고기그물을 정리하는 것이 보였다. 최구장은 허리를 구부정하고 다가가 물었다. “여보, 배를 좀 빌려 쓸 수 없어요?” 중년사나이는 흘끔 이쪽을 쳐다보면서 쓴 웃음을 날렸다. “당신들을 빌려주고 난 뭘로 고기를 잡겠소. 주인영감께 혼나라구?” 그러자 최구장은 다가가 손바닥만 한 물고기들이 가득 담긴 쪽배를 들여다보면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배 값은 우리가 푼푼히 물게.” 그러자 중년사나이는 힐끔힐끔 최구장과 진달래를 번갈아보더니 시끄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내 고기배도 아닙구마. 주인영감네 걸 세 맡았수다. 허창수 영감은 얼마나 깍쟁이라고 빌려 줄 것 같소? 고뿔도 남을 그저 주지 않을 영감태기구마.” “주인영감과 말해 빌려줘요.” 중년사나이는 뒤따라온 바우돌을 힐끔 쳐다보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실, 오후에 일본 놈들이 두만강변을 따라 여기까지 달려와서 혹시 벌건 상자를 싣고 건너려는 늙은이가 있으면 고발하라고 했소. 만약 그런 사람을 건너 주었거나 알고도 고발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목을 쳐서 대가리를 두만강 물에 처 녛겠다고 한바탕 을러메고 갔단 말입구마.  내 골이 몇개라구 배를 빌려 주겠습둥." 그러자 최구장은 막막하여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더니 진달래를 되돌아보면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최구장이 언덕우로 올라오자 바우돌은 허리에 찬 권총을 만지여보이면서 중얼거렸다. “이거 한방이면 알아볼 걸 가지구. 흥!” 그러나 진달래는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안돼요. 우리 유격대는 백성의 유격대인데 백성을 다쳐서야 돼요? 지주 영감과 말해서 안 되면 그때엔 마지막수를 쓰기요. 바위돌은 멀찍이 서서 저 고기 배를 지키오.” 최구장과 진달래는 별수 없어 요행을 바라고 마을 앞에 있는 토성 안 집으로 찾아갔다. 그 뒤에 백여 미터 거리를 두고 바위돌이 뒤따라갔다. 높다란 토성을 두른 큰 집 앞에 이르자 최구장은 커다란 구리문고리를 잡아 대문을 두드렸다. “주인님, 계십니까?” “해두 다 넘어가는데 웬 놈이 시끄럽게 굴어?” 이윽고 토성 안에서 신발을 짝짝 끄는 소리가 들리었다.  대문중간의 작은 문이 삐꺼덕 열리면서 머슴 같아 보이는 중년사나이가 머리를 내밀었다. “웬 일이요?” “아니, 주인 영감을 만나 긴히 상의할 일이 있어 그러오.” 머슴은 최구장과 진달래 아래위를 눈여겨보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요?” “아따, 이 양반, 주인과 만나야 말한다고 하지 않았소?” 이때 토성 안에서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리었다. “무슨 일이냐?” 머슴이 머리를 돌리면서 시끄럽다는 듯이 말했다. “기어이 주인을 만나 의논할 일이 있다고 합구마.”  “들여보내라." 최구장은 머슴을 따라 대뜰 안으로 들어갔다. 마루에는 곰방대를 문 뚱뚱한 영감이 앉아 그들의 아래위를 가슴츠레 뜬 눈으로 훑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입둥?” 최구장이 다가가면서 말했다. “난 지나가던 길손인데요. 이 집 배를 세내 타고 두만강을 건너가려고 그러오. 세는 푼푼히 줄 테니까.” 영감은 곰방대를 뿍 길게 빨아 후 연기를 내보내더니 일어나 앉았다. “혹시 무슨 짐을 싣고 건너가려는 게 아니요?” 최구장은 진달래를 되돌아보면서 말했다. “예. 이 애 애비에게 뭔가 줘 보내야 할 게 있습구마.  이 애는 원래 만주에 사는데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그만 큰물이 져서 그만, 헛참,  고기 배에 이 애를 잠간 건네주고 오려고 그러오.” 부자 영감은 곰방대를 툭툭 재떨이에 털면서 말했다. “안되오. 내일 저 아래 나루터로 가서 건너면 될 걸 가지구. 자꾸 시끄럽게 구지 마오. 우리 집 쪽배는 고기잡이로 세를 주고 없소.” 진달래는 듣다못해 허리춤을 만지었다. 눈치 챈 최구장이 진달래의 손을 잡아 내리웠다. 허창수는 눈치채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최구장은 마지막으로 지주 영감에게 말했다. “영감, 내 실토정을 하오리다. 사실 내 동생을 따라 처자들을 데리고 만주에 들어가 살려고 하오. 그런데 어찌 아버지 산소를 여기 고향에 두고 간단 말이요? 아버지 산소를 파서 유골을 상자에 담아 모시고 만주벌로 들어가려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자기 조상의 유골을 모시고 만주벌로 들어가려는 것도 막고 있소. 좀 내 딱한 사정을 봐주오.” 허창수는 맨 발 바람으로 마루에서 내려와 최구장의 손을 잡고 마루 우로 안내했다. “야, 그런 줄도 모르고. 빌려주지, 빌려주지. 듣고 보니 당신은 효성이 대단하구만. 만주에까지 아버지 유골을 모시고 가다니. 쯧 쯧 쯧.” 부자 허창수 영감은 최구장을 안방에 모시고 들어가 자리를 정해 앉은 후 인사수작을 걸었다. “길주에서 이사온 허창수라고 부르오. 이름도 괴상하지. 이 마을 사람들은 내가 창고에 자꾸 뭔가 끌어들인다고 이름도 창수라고 졌다고 놀리오. 심지어 ‘깍쟁이영감’이라고까지 별명을 달아 부르오.” 그러자 최구장도 속이지 않고 답례했다. “난 명천에서 온 최구장이라고 부르오. 어떻게 쪽배를 빌려주오. 내가 마지막효성을 다하게 말이요.” 그러자 허창수는 개기름이 유들유들한 낯에 억지로 웃음을 띄우며 시원히 대답했다. “좋소. 알고 보니 우린 한 고향 친구로구먼. 당신 효성에 감복되오. 세구 뭐구 다 그만두구  배에 아버지를 잘 모시고 두만강을 건넙소.” 최구장은 “고맙소.”라고 하면서 동전 열 몇 닢을 내놓았다. “아니, 이건 뭐, 쯧쯧, 한 고향 친구네 집에 왔다가 저녁도 먹지 않구 가겠수?” 허창수는 인사말을 하면서도 어느 결에 동전을 까래톱 밑에 스리슬쩍 쓸어 넣었다. 이때 때마침 두만강 변에서 만났던 어부사나이가 성큼성큼 들어섰다. “어, 마침 잘 왔다. 고기는 얼마 잡았는가?” “날씨 차지 흙탕물이 져서 몇 마리 잡지 못했습구마.” 그 사내는 고기 대여섯 마리를 내놓았다. 허창수는 대뜸 눈을 치켜뜨면서쏘아보다가 곁에 최구장이 있어 억지로 성을 참았다. “자네, 좀 수고하게나. 이 분들을 쪽배로 두만강을 건늬워주게나.” 사나이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주인님, 일본 놈들에게 들키면 목이 떨어지자고 이럽둥? 난 못하겠습구마.” “이 배운 게 없는 쌍놈아, 웬 잔소리냐? 목줄을 끊어 놓기 전에 얼른 갔다 오지 못할까?” 어부사나이는 목을 움추리더니 마지못해 최구장 등을 데리고 두만강 변으로 나갔다. 뒤에서 허창수는 그들을 아주 인정스레 바래주었다. 그리고 최구장네가 대문을 나서기 바쁘게 집안에 들어와 까래 밑의 동전을 허벼내 세여 보았다. 허창수는 불시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황급히 엽전을 농궤에 집어넣고 중절모를 쓰고 휭하니 어디론가 바람결처럼 나갔다.  
68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7) 댓글:  조회:2057  추천:0  2016-07-14
                       5. 경성 여관집 울울창창한 수림 속을 말 타고 달려가면서 진달래는 근형에게 물었다. “그래 큰아버지는 이맘때면 어디까지 갔을까?” 근형은 말을 타고 작은고모와 나란히 달리면서 대답했다. “글쎄 말이요. 수레를 몰고 떠났기에 잘 갔으면 경성군 경내에나 들어섰을 게요. 할아버지가 애타게 기다리겠는데 빨리 가기요.” “그래. 무사히 갔는지 근심스럽구나.” 근형은 새단과 함께 타서 늦은 것 같아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했다. 검둥이도 그들이 탄 백마를 따라 달렸다. 장사꾼으로 가장한 유격대원 셋이 말을 타고 뒤따랐다. 황혼이 붉게 타오르고 땅거미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경성군의 시골에서 깎아지른 절벽 앞에 자리 잡은 마을에 이르렀다. 절벽 앞에 도사리고 있는 첫 집은 좀 잘 사는 여관인 것 같았다. 진달래는 깎아지른 절벽과 같은 산세와 절벽 앞의 마을 그리고 여관집을 살펴보더니 철색얼굴에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여긴 회룡 쪽으로 가는 길목이기에 일본 놈들이 꼭 중시할게요. 이전에 성칠 오빠도 이 부근에서 날강도를 만나 적토마를 빼앗기고 목숨마저 잃을 번한 적이 있다고 했소. 꼭 안전에 각별히 주의하오. 말이 지쳤기에 먹이를 먹이고는 인차 떠나기요. 금별 장군께서 우리 소식을 애타게 기다릴 거요. 바위돌과 근형인 저 집에 먼저 들어가오. 정황이 발생하면 조카가 검둥이를 내보내고 바위돌은 총을 쏘아 신호를 보내오. 우린 여기 있다가 쳐들어가겠소.” 두 어깨가 쩍 벌어지고 바위처럼 튼튼하게 생긴 유격대원 바위돌이 나서면서 “옛!” 하고 대답한 후 근형 쪽으로 돌아섰다. 근형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작은고모 네는 저녁 식사도 하지 않겠소? 배고프겠는데.”하고 근심했다. 진달래는 말 잔등에 달아맨 주머니를 툭툭 쳤다. “여기 며칠 먹을 주먹밥이 있어. 돈 좀 주고 말들이나 잘 먹여라.” 근형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바위돌과 함께 말 다섯 필이나 끌고 여관집 쪽으로 조심스레 걸어갔다. 진달래는 새단과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길옆의 나무숲에 들어가 숨었다. 근형이 앞장서 나가 높다란 대문을 두드렸다. “주인님, 계십둥?” 울안에서 신발을 끄는 소리가 작작 들리었다. 이윽고 대문의 작은 문짝이 삐꺼덕 열리더니 안에서 허리가 구부정하고 구레나룻을 기른 곱사등이 나와 사팔뜨기 눈으로 근형과 바위돌의 아래 우를 훑어보았다. 그의 눈길은 말 다섯 필 가운데서도 백마에게서 멈추더니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 “예, 말장사군인 모양이구먼. 아, 이 좋은 말을 다섯 필이나 끌고 오다니. 쯧쯧. 정말 희한한 백마로구먼요.” 곱사등은 대문을 열면서도 사팔뜨기 눈으로 백마와 근형이 네를 흘끔흘끔 훔쳐보며 끝없이 중얼거렸다. “오늘 맨 부자들만 우리 집을 찾는구먼. 허허, 참 재수 좋은 날인데.” 곱사등이영감은 구레나룻을 매만지다가 백마의 고삐를 덥석 잡더니 왼손으로 대문 안을 가리켰다. “어서 들어 오시우. 내가 마구간에 가서 말먹이를 푼푼히 줄 테니까. 숙비나 푼푼히 주오.” “예, 근심하지 마오.” 근형은 대문 안에 들어서면서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여관은 몸채에 사랑방에 모두 두 채나 됐고 마구간과 우사간도 있었다. 마당에는 수레가 있고 우사간에는 소 한마리가 먹이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수레와 소가 퍽 눈에 익어보였다. (저건 상철이 부자네 증조부 유골을 싣고 가던 수레 같은데. 혹시 할아버지네 여기에 든 게 아닐까?) 근형은 곱사등이영감이 백마를 마구간에 매놓고 나오는 것을 보고 뒤따라 사랑채에 있는 손님방에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사랑방에는 할아버지와 상철의 부자가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아니, 이 불효자식아, 어데 달아났다가 이제야 왔느냐? 엉?” 최구장은 벌떡 일어나 근형의 뺨을 찰싹 갈겼다. 근형은 바깥동정을 살펴보더니 그간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을 간단히 말했다. 최구장은 근형을 품에 꽉 끌어안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참 잘했어. 넌 과시 효자로구나. 엄마 유골을 외가 집에까지 모셔가다니. 쯧쯧. 과시 내 장손답구다. 넌 우리 가문의 14대 장손이야,  오해해서 미안해.”       최구장은 바위돌의 너부죽한 어깨를 툭툭 쳤다.  “참 수고 많았소. 당신들이 아니면 우리 일가는 정말 몇 번이나 죽었겠는지 모르겠소. 우리도 이제 금방 이 집에 들었소.” 이때 밖에서 신발을 끄는 소리가 작작 들렸다. “손님들, 저녁상을 올리랍둥?” 북으로 올라갈수록 함경도 사투리가 짙었다. “빨리 들여오오.” 한참 후 신발을 작작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랑방문이 삐꺼덕 열리였다. 양태머리를 딴 열댓 살 돼 보이는 처녀애가 먼저 작은 개다리 밥상을 들여오고 중년여성 둘이 멱국에 조이밥사발들을 쟁반에 들고 들어왔다. 뚱뚱한 중년여성이 밥상을 다 차려놓고 치마를 걷어쥐고 일어나면서 손님들을 보고 말했다. “먼 곳에서 오느라고 허기 나겠는데 갖춘 건 없어도 많이 듭소.” “예, 맛있게 들겠습구마.” 최구장이 인사를 받으면서 벽에 기댔던 허리를 떼고 밥상에 다가앉았다. 그는 어쩐지 뚱뚱한 중년여성은 별로 눈 덕에 살이 진 것이 살이 세보였다. 모두들 밥상에 다가앉았다. 이때 처녀애가 중년여성을 따라 나가면서 까마잡잡한 얼굴로 바위돌을 흘끔 보더니 눈을 찔끔 감았다 뜨면서 턱 끝으로 밥상을 가리키고는 돌아나갔다. 바위돌은 그 표정에 뭔가 암시하는 것이 있는 거 같아 밥상을 쳐다보면서 양미간을 찌푸렸다. 근형이 배고파 숟가락을 들어 밥을 퍼먹으려고 할 때였다. “가만!” 바위돌이 손으로 근형의 밥숟가락을 막았다. “어째? 배고파 죽을 지경이오.” “쉿-.” 바위돌은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바깥동정을 살피였다. 뒤이어 그는 웃 호주머니에서 가늘고 짤막한 은침을 쏙 뽑더니 멱국사발에 찔렀다. 그는 한참 후 은침을 쏙 뽑아 창문 쪽에 가더니 창호지에 비껴드는 저녁 노을빛에 대고 이리저리 보았다. 금방 은빛이 나던 은침은 시꺼멓게 타버렸다. 그는 밥상으로 다가와 까맣게 타버린 은침을 여럿에게 보이면서 조용히 “멱국에 독약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모두들 “양?”하고 놀라 어안이 벙벙해 했다. “이전에 작은 집 성칠 삼촌이 이 근방에서 날강도 삼형제를 혼내줬다더니 이 집이 아닌지도 몰라.” 상철이 하는 말에 모두들 머리를 끄덕였다. “옳소. 이 집이겠소. 어떻게 이 날강도들의 집을 벗어나 아버지 유골을 모시고 무사히 만주로 갈까?” 최구장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바위돌이 말했다.  “아직 산 사람두 살아나가기 힘든데 유골 근심을 다 합니까? 내 하라는 대로 합소. 밥과 국을 다 버리고 죽은 척 하시요.” 이때 밖에서 신발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황급히 국과 밥을 몽땅 부엌아궁이에 쏟아 넣었다. 그들은 바위돌의 말대로 밥을 먹다가 다 쓰러진 것처럼 배를 끌어안고 여기저기 쓰러져 게 침을 입귀에 게 발랐다. 바위돌은 근형을 보고 검둥이를 진달래부대장에게 보내라고 하고 문 가까이에 쓰러져 있었다. 이윽고 몸채에 벅적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가보기요. 이 맘 때면 다 쓰러졌을 게요.” 뒤이어 삐꺼덕 사랑채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허허허, 약을 푼푼히 넣었더니 몽땅 뒈졌구먼. 승핵이 하구 승철인 빨리 주검이나 거둬라. 이젠 희한한 백마랑 몽땅 우리들 게다. 저 궤짝 안엔 이장사군들이 무슨 금은보화를 걷어넣었는지 어디 열어보자.” 바위돌이 눈을 가슴츠레 뜨고 보니 곱사등이영감이 들어오면서 구레나룻을 슬슬 매만지면서 지껄여 대고 있었다. 그 뒤에 더 젊고 뚱뚱한 두 중년사내가 들어왔다. 꺾다리가 지껄이었다. “형님의 날강도 버릇은 개를 떼 주겠소? 이전에 명천의 성칠이란 놈에게 혼 나고서도 이런 짭짤한 맛에 자꾸 사람을 죽이지 않고 뭐요. 흐흐흐.” “그 놈 새끼, 잔말 말고 빨리 시킨 일이나 해라.” 곱사등은 구들에 올라오면서 발길로 바위돌의 다리를 툭 걷어찼다. “에이구, 곰같이 생긴 놈도 독약을 먹고 이 모양을 봐라. 딱 썩어진 멧돼지 같아. 얘들아, 오래두면 누구한테 들키겠어. 싹 산골짜기에 실어다가 깊숙이 파묻어버려라. 에헴, 어디 궤짝이나 열어볼까. 무슨 보물단지가 있는지? 에헴, 에헴.” 키꺽다리 승핵이란 놈이 바위돌에게로 다가올 때 바위돌이 벌떡 일어나면서 권총을 뽑아들었다. “꼼짝 말엇!” “아이쿠!” 승핵이와 승철이란 놈은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땅! 승핵이 비명소리와 함께 바깥에 쿵 쓰러졌다. “이게 뭐야?” 곱사등이는 홱 돌아서면서 바깥으로 쫓아나가는 바우돌의 손에 든 권총을 보고 바들바들 떨었다. 형내와 상철이, 근형이 덮쳐들어 곱사등이를 땅바닥에 허공 재껴 놓고 팔을 비틀고 깔고 들어앉았다. 땅! 바우돌은 마구간에서 백마를 타고 말 잔등에 납작 엎드려 달아나는 난쟁이 승철을 향해 또 총을 쏘았다. 그러나 말의 배때에 총알이 푱푱 박혔다. 승철은 비수를 뽑아들었다. 그자는 몸을 반쯤 일으키더니 바위돌한테 비수를 날렸다. 바위돌이 옆으로 급히 피하였지만 비수가 팔에 꽂혔다. 그새 승철은 말 잔등에 다시 납작 엎드린 채 열린 대문을 빠져나갔다. 이때 대문바깥에 있던 진달래가 덮쳐왔다. 진달래는 백마잔등에 납작 엎드려 달아나는 사람이 모를 사람인지라 진작 쥐고 있던 조약돌을 날렸다. 딱! 면바로 그자의 대갈통을 명중했다. “아이쿠!”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백마는 납작 엎드린 그 놈을 태운 채 저 멀리로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달아났다. 검둥이가 쫓아 달려가면서 “왕! 왕! 왕!”짖어댔다. 진달래가 유격대원 둘을 거느리고 대문 안에 들어서면서 호통 쳤다. “장백산 유격대다! 몽땅 꼼짝 말고 바깥에 나와!” 집안에서 여성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이구, 큰일 났구나.” 뚱뚱한 중년아낙네가 치마를 걷어안고 제일 먼저 엎어질듯이 나오면서 애걸복걸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우린 아녀자들이라 날강도 짓을 한 게 없습구마.” 진달래가 유격대원들을 돌아다보더니 집안을 향해 손을 홱 저었다. “집안을 수색해!” 유격대원들이 집안에 뛰어 들어가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때 집안에서 상철과 근형이 곱사등이를 끌고 나왔다. 진달래는 뜻밖에 큰아버지 최구장을 만나 기뻐 어쩔 줄 몰랐다. “큰아버지, 그러잖아도 큰아버지 행적을 몰라 바삐, 바삐 쫓아온 길이예요. 몸이 어때요?” 진달래는 큰아버지 얼굴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난 괜찮아. 넌 참말로 장해, 진달래야, 네가 유격대를 거느리고 마천령에까지 쫓아가서 오라비들을 다 구했다는 걸 근형에게서 다 들었다.” 최구장은 진달래를 끌어안고 잔등을 다독여주었다. 진달래는 몸을 돌려 바위돌에게서 자초지종을 보고 받았다. 이때 유격대원들이 얄팍한 중년아낙네와 양태머리를 땋아늘인 처녀애를 끌고 나왔다. “대장, 이 둘 밖에 없습니다.” “알았소.” 뚱뚱한 아낙네는 살진 눈 덕을 치뜨면서 진달래라는 유격대 여자대장을 흘끔 훔쳐보았다. 철색 얼굴에 까만 포도알눈은 일반 여성들보다 퍽 달랐다. 여자 대장은 퍽 위엄 있고 날래 보이었다. 진달래는 바위돌의 팔 상처를 수건으로 싸매주고 몸을 돌렸다. 그는 곱사등이 백승만과 뚱뚱한 아낙네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네 놈들은 여기에 여관을 차리는 척하면서 전문 길손을 살해하고 재물이나 약탈하는 날강도들이구나. 네놈들을 살려뒀다간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겠는지 모르겠구나.” “제발 살려주오. 강도질이야 사내들이 했지비. 우리 아녀자들이야 어찌?” 뚱뚱한 아낙네는 승핵의 시체와 진달래를 번갈아보면서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며 애걸복걸했다. 곱사등이영감이 하늘을 쳐다보다가 머리를 푹 떨어뜨리면서 중얼거렸다. “그만 떠드오. 명이 이만한 걸 빈다고 살려주겠소? 죽어도 함께 죽는 게 낫지?” “저 영감을 봐라. 당신 죽더라도 여편네와 제수는 살려 달라고 빌지 못할망정 쯧쯧!” 옆에 있던 바위돌이 진달래의 귀에 대고 양태머리 처녀애를 가리키면서 귀속 말로 뭐라고 말했다. 진달래가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는 양태머리 처녀애한테 다가가 다정하게 손목을 쥐고 물었다. “이 날강도 집 애냐?” 처녀애는 뚱뚱한 아낙네와 곱사등을 번갈아 할끔할끔 곁눈질해보면서 진달래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일없어. 말해 봐. 겁나 말고 말해 봐!” 처녀애는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머슴인데요.”라고 했다. “알았어. 넌 이쪽으로 오너라.” 양태머리 처녀애는 뚱뚱한 아낙네 눈치를 흘끔흘끔 보면서도 진달래 쪽으로 건너왔다. 진달래는 건 가래를 떼더니 권총을 뽑아들었다. 이때 옆에 서 있던 최구장이 나서서 진달래의 권총을 내리누르면서 말했다. “얘, 조카야, 살생을 그만해라. 이 사람들은 길을 잘못 들어서서 날강도질을 하는 게야. 한길수처럼 일본 놈들의 개다리질은 한 것 같지 않아. 내버려 둬라. 우린 갈 길이나 빨리 가자.” 이때 토성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었다. 진달래가 대문 밖을 내다보니 숱한 마을사람들이 총소리를 듣고 먼발치에서 구경하다가 유격대가 왔다는 말을 듣고 모여왔다. 진달래는 마을 사람들 쪽으로 걸어 나갔다. 한 사내가 나서더니 백승만을 손가락질했다. "이 놈을 죽여치웁소. 이 놈은 명천에서 경찰서를 지을 때도 일본 놈들한테 병완 영감이랑 우릴 고자질한 개다립니다. 죽여 치웁소." "옳습구마. 죽여치웁소!" "우리 마을 사람들을 못 살게 구는 악당들입구마!" "저 미친개 같은 삼형제 없애치우면 우리 편안하게 살겠는데. 흥!" 진달래는 최구장과 눈길을 맞추고나서 다시 권총을 빼들었다. 최구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여러분, 우리는 일본 놈들과 싸우는 장백산 항일유격대입니다. 유격대는 우리 조선 인민들의 군대입니다. 오늘 날강도질을 일삼는 악질지주 백승만을 처단하고 곡창을 열어 여러분께 식량을 주겠습니다.” 진달래 말을 듣고 마을사람들은 살 때를 만났다고 웅성거렸다. 어떤 사람들은 유격대가 왔다고 하면 이런 좋은 일이 있을 것을 예견하고 벌써 쌀 주머니랑 버치랑 들고들 왔다. 여기저기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 악질날강도 삼형제를 죽여 버려라!” “죽여 버려라!” 진달래는 바위돌을 돌아보면서 명령했다. “백성들을 대표해 이 날강도 놈을 처단하라!” 바위돌이 권총을 들었다. 땅! 날강도 곱사등이 백승만은 한뉘 날강도질을 하다가 자기 집 문 앞에서 처단 당했다. “여러분, 곡창을 열고 쌀과 가정기물을 마음대로 가져가십시오!” 마을 사람들은 “와야!”하고 쳐들어와 창고 문을 괭이로 까부시고 식량을 주머니에 가마니에 버치에 퍼 담아 메고 들고 좋아 야단쳤다. 진달래는 유격대 대원들을 거느리고 궤짝을 까부시고 들춰낸 금은붙이들을 꺼내 로비로 남기고는 백성들에게 몽땅 나눠주었다. 그는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백성들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는 대장답게 유격대원들을 거느리고 최구장 등을 모시고 길을 떠났다. 최구장은 상철과 형내를 보고 “사돈, 우리 일을 돕느라고 연루될 건 빤하오. 아예 이 길로 함께 만주국으로 가기요. 상철을 보내 집식구들을 데려오게 하면 안 되오?”라고 권고했다. 상철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우리가 언제 일본사람들을 노엽힌 일을 하였소? 사돈어른의 유골을 모셔다주었는데 무슨 죄가 있단 말이요? 부모자식들을 고향에 두고 어찌 내 혼자 살겠다고 만주국으로 가겠소? 우린 될 수 있으면 그래도 고향에서 병을 보면서 살겠소.” 최구장은 더는 권고하지 못하고 근심스레 말했다. “내 조카랑 말을 가지고 왔으니 아버지 유골을 말 잔등에 실어가도 되오. 이젠 사돈어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오.” 상철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우린 사돈들을 더 바래지 못하고 돌아가겠소.” 진달래 중대장은 두 유격대원에게 상철과 형내를 고향에까지 호송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백승만의 뚱뚱한 첩과 얄팍한 제수를 한바탕 훈계하고 놓아주었다. 진달래는 두 유격대원과 함께 최구장 등을 호송하면서 북쪽을 바라고 밤도와 떠났다. 그녀는 자기 말에 곱단이라고 부르는 양태머리처녀애를 태워가지고 떨꺼덕떨꺼덕 북으로 뛰어갔다.                      6. 추포           연속 유격대에 골탕을 먹은 늙다리 끼무라 국장은 앓아 눕고 말았다. 운주동에서도 유격대 습격을 받아 응삼을 잃었고 마천령에서는 서대문형무소로 반일분자들을 압송하다가 유격대 습격을 받고 빼앗겼다. 이번에는 신설동 뒷산 기슭에서 유격대에게 습격당해 한길수 대대장을 비롯한 졸개를 여섯이나 잃고 말았다. 그 번 유격대의 매복습격을 받아 그도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번했던 것이다. 요행 한길수가 목을 매워 끌려가는 새에 매복 권에서 빠져나와 도망쳤으니 말이지 늘그막에 천당으로 갈 번했던 것이다. 일본 헌병대병원의 새하얀 병상에 누운 끼무라 국장은 생각할수록 잔등에 소름이 쪽 끼쳤다. “또 돌팔매유격댄가?!" 그는 최구장 등을 쫓다가 돌멩이가 날아오자 도망쳐 돌아간 일본 놈과 개다리들의 보고를 받고 이를 뿌드득 갈았다. 일본 헌병총대 대장 놈은 헌병대와 자위대에 경성으로부터 두만강가까지 길목을 봉쇄하고 돌팔매유격대를 검거할 것을 명령했다. 특히 돌팔매유격대가 자주 출몰하는 명천과 경성, 회령, 종성, 무산 등 군의 헌병대 대장들에게 유격대를 한해 내에 모조리 나포해야 하며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군법으로 목을 치겠다고 했다. 끼무라 등 헌병대장들은 말을 타고 운주동에 번쩍, 수 백 리나 떨어진 마천령에 번쩍,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일본 놈들을 족치는 최동욱과 진달래가 거느리는 유격대의 그림자도 붙잡지 못했다. (쳇, 그래 전문 군사학원에서 훈련을 받은 우리 대일본제국의 헌병대가 일개 시골의 계집년이 이끄는 돌멩이유격대도 당하지 못한단 말인가? 이대로 물러설 순 없어. 한길수의 백마를 빼앗아갔으니 백마를 탄 놈만 나포하면 돌팔매유격대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거야. 혀를 잡기만 하면 간도사령부거나 관동사령부에 보고해 그 놈들의 장백산 본거지를 소탕해버려야 해. 뭐? 금별장군이라지. 그 괴수부터 나포해야 하는 건데. 에이, 골머리야.” 끼무라 대대장은 주먹으로 이마를 툭툭 쳤다. “옳아, 먼저 관준 조손 3대를 쥐어짜면 뭔가 필시 나올 거야.” 이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곱살하게 생긴 일본 간호사가 들어왔다. 예쁜 간호사의 새하얀 위생복 밑으로 드러난 하얀 우유빛 다리를 보자 끼무라는 아랫배로보터 전기에 붙은 듯 찡해오면서 온 몸에 정욕이 끓어 번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그는 간호사를 와락 끌어안았다. “대장님, 왜 이래요? 이젠 건강이 많이 회복됐는가 봐요.” “너 대장님을 위안해주면 안 돼?” “대장님, 이러지 마세요. 이러면 제가 어떻게 대장님의 병을 치료해드려요? 이러지 말고 위안부나 기생집에 가 예쁜 기생들을 찾으세요.” “그래?” 끼무라는 간호사를 스르르 놓으면서 기생 생각을 하자 온몸이 조금 흥분되는 감을 느꼈다. 그러나 인차 도로 자기를 욕질했다. (그까짓 돌팔매유격대와는 꼼짝하지도 못하면서 야들야들한 기생들과 큰 소릴 쳐? 쳇, 난 군인이야. 그 놈의 돌팔매유격대를 붙잡지 못하고선 기생방에 안 갈 테야! 음.) 끼무라 대장은 이불을 활 차버리면서 벌떡 일어났다. “이리 급히 기생집에 가나요? 주사나 맞고 가요.” “그만 둬!” 끼무라 대장은 간호사를 밀쳐버리고 환자복을 활활 벗어버렸다. 그는 군복을 척 갈아입더니 권총과 군도를 허리에 차고 병실 문을 박차고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뒤에서 간호사가 눈이 똥그래 놀란 표정을 짓다가 코를 싸쥐고 캐득거렸다. "까르르, 깔깔깔, 캐득캐득." 헌병대사무실에 돌아간 끼무라 대장은 수하들을 몽땅 불러 모았다. 사무 상에 위엄 있게 마주 앉은 끼무라가 수하들을 둘러보니 맨 무능한 밥통들 밖에 눈에 뜨이지 않았다. “가메다!” “하이(옛)!” 끼무라 대장은 벌떡 일어나서 가메다 앞으로 씨엉씨엉 걸어가더니 귀쌈을 찰싹, 찰싹 갈겼다. 가메다는 두 발을 착 붙이면서 “하이(옛)!”하고 군례를 붙이였다. “무능한 놈! 신설동 뒷산 기슭 길에서 돌멩이가 몇 개 날아오니 유격대라고 도망쳐? 운주하에서는 탄약상자를 메고 강을 건넌 유격대 놈을 왜 놓쳐 버렸어? 빠가요로(멍청한 놈)!” 끼무라 대장은 발을 탕 구르면서 호통 쳤다. “사흘 내에 유격대 한 놈이라도 잡지 못해 봐. 네 놈의 배를 군도로 갈라놓겠어. 당장 신설동의 관준을 잡아와!” “하이(옛)!” 가메다가 황급히 밖에 뛰어나가 울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졸개들을 데리고 말을 타고 황급히 신설동으로 덮쳐갔다. 끼무라 대장은 눈길을 야마모도 소장에게로 돌렸다. “지금 유격대는 수림속이거나 령 길을 타고 출몰하고 있네. 자넨 삼림경찰들을 거느리고 운주동과 신설동, 영월동, 신흥동, 운주동과 가마골 일대의 수림과 령 길을 몽땅 봉쇄하게!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말이야?! 알았어?! "하이!" "이제 그 곳에서 유격대가 출몰하는 거 놓치는 날엔 네 놈부터 군법에 의해 목을 칠줄 알아!” 야마모도 소장은 십여 년 전만 해도 다 같은 소장이었지만 지금은 헌병대장과 소장이란 엄연한 급별 차이가 있고 당상급인지라 용빼는 수가 없었다. “왜 꾸물거리면서 대답이 없쏘까?” 야마모도 소장은 마지못해 느릿느릿 “예.” 하고 대답했다. 좀 지나 이런 말꼬리를 달았다. “끼무라 대대장, 전번 신설동 수림속 전투를 잊었소? 대대장네 헌병대와 우리 삼림파출소 경찰에 한길수 대대장의 자위대까지 합세해 포위공격해서도 유격대를 한 놈도 붙잡지 못했지 않았소? 한길수 대대장마저 유격대의 돌멩이에 맞아 처참하게 죽었잖소? 그런데 우리 삼림파출소 경찰들로만 신출귀몰하는 유격대를 나포하라는 건 너무 무리한 것 같소.” 끼무라 대대장은 사무 상을 탕 쳤다. “저런 멍청한 놈을 봤나? 다 당신같이 무능한자들이 소장자리를 차지했기에 그까짓 돌팔매유격대를 번마다 놓친단 말이야!” 끼무라 대대장은 일어나 야마모도소장을 교활한 눈길로 보면서 간사한 웃음을 지었다. “자넨, 잊었나? 유격대 손에 처참하게 죽은 형님을.” 야마모도 소장은 축 쳐졌던 어깨를 들먹이더니 눈에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어떤가? 할만 한가?” “하이, 내 손으로 그 놈 돌팔매유격대를 붙잡아 칼탕 치지 않고선 돌아오지 않겠소이다! 한 대대장 백마를 빼앗아 타고 달아 난만큼 백마를 찾는 날엔 유격대 꼬리를 밟을 수 있소이다.” “참 좋아. 항상 저렇게 머리를 써야 돼. 꼭 이 명천에서 유격대 씨를 없애치우잔 말이야. 그래야 우린 살 길이 있는 거야. 군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네.” “하이!” 야마모도 소장도 군례를 척 붙이고 문 밖으로 나가 헌병대 울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졸개들을 데리고 떠나갔다.  졸개들 속에는 조선 친일구 경찰 허꺽쇠를 내놓고도 친일특무 똘만이도 있었다.        똘만은 함흥촌 동쪽 늙은 비술나무 부근에서 밤중에 기준을 우연히 만나 붙잡아가다가 유격대 기습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때 기준이 권총을 빼앗아 대갈통을 연신 까는 바람에 똘만은 하마트면 죽을 번했다. 그는 정신 잃고 피를 줄줄 흘리며 쓰러졌댔다. 그런데 유격대가 기습하고 수림 속으로 사라진 후 졸개들이 되돌아와 숨이 가물거리는 그를  업어갔던 것이다. 똘만은 용정 일본군병원에서 반년이나  치료받고도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다. 일본 놈들은 몸값이 꽤나 높은 특무라고 똘만을 서울 일본군 병원에 보내 치료받게 하였다.  그리하여 일년 후에야 똘만은 겨우 살아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 놈은 육체는 살았지만 기억력이 형편없이 떨어져 기준을 붙잡은 일, 지어 기준한테 맞아 죽을번 한 것마저 아리숭해했다.        끼무라가 병완 부자 행방을 물었을 때 함흥촌 부근에서 발견한 것도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끼무라는 페물이 된 똘만을 잠시 간도에 보내지 않고 업동 헌병대에서 개처럼 부려먹었다.       가메다 경찰은 똘만과 허꺽쇠 등 조선 졸개들을 끌고 신설동에 있는 신설집 관준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그들이 삽작 문안에 쓸어 들어갈 때 관준이 마루에까지 나와 쏘아보면서 서있었다. “잡아 족쳐!” 관준은 졸개들에게 끌리어 마루에서 내려가면서 욕설을 퍼질렀다. “아니, 이 놈들아, 왜 이래?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이래?” 가메다는 볼의 털 한 모숨을 슬슬 만지면서 실눈으로 관준을 노려보았다. 허꺽쇠란 경찰 놈이 꺽꺽거리면서 지껄여댔다. “어, 김, 김영감, 의사, 의사인척하면서 장백산유격대, 유격대하구 내통하였지? 탄백해!” 관준은 바 줄에 양팔을 뒤로 비틀리어 묶이면서도 허리를 펴려고 애쓰면서 고함쳤다. “이게 무슨 망발이요? 난 앓는 사람을 치료했지 유격대란 말은 듣다 첫소리요.” 이때 부실한 상철의 아낙네가 문 밖으로 나오면서 혀를 끌끌 찼다. “아이고, 시아버님, 내 뭐랬습둥? 그 최구장을 묻어 다니지 말라는데두. 쯧쯧쯧, 최구장네 유골을 싣고 가라더니 꼴 보기 좋게 됐습구마.” 경학이가 엄마를 쏘아보았다. “이 부실한 엄마를 봐라. 아버지를 잡아가라는 게요? 아무 말이나 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오.” 경학은 참다못해 자기 엄마를 마구 부엌으로 떠밀어 들여보냈다. 형내의 아내는 문설주를 짚고 밖을 내다보면서 그저 눈물만 속절없이 흘리다가 돌아서면서 동전으로 눈 굽을 찍었다. 이때 가메다 놈은 경학을 가리키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저 놈 새끼를 잡아라! 저 놈도 전번에 유격대 유골을 실은 수레를 따라 갔다. 돌멩이질을 한 유격대와 내통한 적이 있어.” 졸개들인 허꺽쇠와 똘만이 부엌 문 어귀에 있는 경학에게로 덮쳐들었다. 경학은 울상을 지으면서 몸부림쳤다. “아니, 이걸 놓소. 내 무슨 죄 있소? 남의 면례하는 걸 도와 유골수레를 몰았는데도 죄요?” “잔말 말고 헌병대로 가자! 네 형과 애비는 어디로 갔어?” “우리 아버지와 형님이 무슨 죄 있다고 이러오?” 경학이가 변명하려고 해도 가메다는 점점 더 고래고래 고함쳤다. “그 날 네놈들이 분명 수레를 몰고 나를 유인했어. 그 바람에 난 산에 매복해있던 유격대 놈들의 돌멩이에 맞아 하마터면 죽을 번했다! 끌어가!” 졸개들은 관준과 경학을 마구 묶은 채 밀고 닥치면서 삽작문을 나섰다. 경학은 근형이 수림 속에서 돌팔매질을 한 걸 가지고 돌팔매질을 한 유격대라고 떠들어대는 꼴이 너무나도 가소로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입술을 깨물며 내막을 밝히지 않았다. 이때 신설집에서 아우성소리가 나자 마을사람들이 모여와 억울하다고 혀끝을 쯧쯧 찼다. 가메다는 허꺾쇠와 똘만이 등 졸개들과 함께 관준과 경학을 끌고 개를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면서 명천을 바라고 휭 하고 떠나버렸다. 뒤에서는 관준의 노친과 부실한 상철의 아내가 아우성쳤다. 오후에야 가메다 일행은 관준과 경학을 끌고 헌병대 대문 안에 들어섰다. 끼무라 대장은 사무실에서 시퍼런 군도를 뽑아들고 살기어린 가슴츠레한 눈길로 칼날을 훑어보면서 관준의 일가를 어떻게 심문할 것인가부터 못된 궁리하고 있었다. “보고! 관준과 손자 녀석을 잡아왔습니다.” 가메다가 사무실에 들어와 널 바닥이 다 울리게 발뒤축을 척 붙이면서 군례를 올리며 보고했다. 끼무라 대장은 군도를 칼집에 척 박아 넣고 몸을 홱 돌렸다. “그래 유골을 싣고 간자들은 어쨌는가?” 가메다는 털 한 모숨이 날아날듯이 숨을 몰아쉬고 나서 가슴을 쑥 내밀며 대답했다. “그자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디다. 아마 아직 돌아온 것 같지 않습니다. 이제 돌아만 오면 당장 나포해오겠습니다.” “요로씨이(좋아), 그 놈들을 혹독하게 족쳐 돌멩이유격대 향방을 알아내게.” “하잇(옛)!” 가메다는 군례를 척 붙이고 나갔다. 그는 씩씩거리면서 지하에 있는 고문실로 들어갔다. 허꺽쇠와 똘만이가 한창 관준과 형내의 웃통을 벗기고 심문대 가름대에 두 팔을 머리 위로 쳐들어 단단히 비끌어 매고 있었다. 가메다는 먼저 가죽채찍을 골라 쥐더니 다짜고짜 관준의 가슴을 사정없이 쨩, 쨩 후려쳤다. “말해! 돌팔매유격대가 어데 갔어?” 관준은 신음소리를 내더니 간신히 머리를 쳐들었다. “모르오.” “네 아들과 손자들이 유격대와 내통하지 않았으면 산에서 돌멩이가 날아왔겠어?” 그때 경학이가 머리를 쳐들고 어망간에 “그건 유격대가 아니라 …” 하다가 입술을 깨물더니 말끝을 삼켜버리었다. 맞은편에서 관준이가 “어험.”하고 건 가래를 뗐다. 제꺽 눈치 챈 경학은 입에 빗장을 꼭 채워버렸다. 제꺽 눈치 챈 가메다는 허꺾쇠에게 눈짓 했다. 허꺽쇠와 똘만이 경학한테 늑대처럼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래, 네 놈이 그날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제일 잘 알겠구나. 산 위에서 돌멩이를 뿌린 자들이 유격대가 아니면 누구냐?” “모르오.” 똘만은 만두 낯에 박힌 빈대 눈을 때록거리면서 채찍질했다. “얼른 말하지 못해? 죽기 전에!” 경학은 아파 눈물방울을 똑똑 떨어뜨리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난 그저 최구장 사돈어른이 조상의 유골을 간도에 가져가는 걸 도와주었을 뿐이요.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오?” 가메다는 경학이 어린것을 보고 돌파구로 삼으려고 들었다. “묻는 말만 사실대로 대답하면 넌 어리기에 내보내겠다. 그래 그 날 산에서 돌멩이를 뿌린 게 누구냐?” “유격대가 아니란데.” 가메다는 채찍으로 경학의 턱을 쳐들면서 턱밑에 다가들며 언성을 낮춰 물었다. “그래 누구냐?” “최구장네 맏손자입꾸마. 유격대도 아닌데 그저 겁이 나서 도망쳐 가지고.” 그 말에 허꺽쇠와 똘만은 적이 놀랍고도 우스워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가메다는 뒤로 물러서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 분명 유격대가 돌을 뿌렸어.” 관준이 또다시 건 가래를 떼자 경학은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망한 털 한모숨이 가메다는 채찍을 놓고 멍하니 서서 관준과 경학을 쳐다보면서 착잡한 궁리를 하고 있었다. (최구장의 맏손자 근형이란 녀석을 가지고 유격대라고 거짓보고 할까? 진상이 밝혀지는 날에는 군법이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는 자기 배를 내려다보았다. (끼무라 대장은 유격대를 붙잡지 못하면 군법에 따라 배를 갈라버리겠다고 했다. 아니야, 이 놈들을 쥐어짜선 아무것도 얻어낼 게 없어. 시간이 없어. 빨리 최구장과 근형을 붙잡아야 돌팔매유격대의 꼬리를 밟을 수 있다.) 털 한 모숨은 몸을 홱 돌리면서 똘만을 날카로운 눈길로 쏘아보면서 명령했다. “허꺽쇠에게 이 놈들을 맡기고 넌 날 따라 최구장 네를 붙잡으러 가자!” “옛!” 가메다와 똘만은 채찍소리와 신음소리가 어울려 울리는 고문실에서 황급히 나왔다. 그들은 그 바람으로 한개 헌병 기병 소분대를 끌고 경성 쪽을 바라고 성난 사자들처럼 덮쳐갔다. 그들은 한길수의 백마를 타고 달아난 돌멩이유격대정황을 알아보려고 백승만이네 여인숙에 들리었다. 그런데 여인숙 마당에 들어가자마자 가메다네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곱사등이 백승만의 시체가 그때까지도 집 마당에 쓰러져있었다. 돌멩이에 맞아 피투성이로 된 낯은 팅팅 부어서 딱 잡아놓은 여윈 돼지대가리 같았다. 말을 탄 일본 헌병들이 들이닥치자 백승만의 여편네랑 기절초풍했다. 똘만이가 말에서 뛰어내려 썩 나서면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백승만의 여편네에게 질문했다. “고약한 놈들, 이건 누구의 시첸데 아직도 치우지 않느냐? 황군이 왔는데 썩은 냄새를 피우면서.” 백승만의 처는 똘만을 핼끔 쳐다보면서 말했다. “사실, 우리 집 영감인데요. 며칠 전에 유격대에게 맞아 죽었어요. 며칠 전에 산에 장례를 지냈는데 마을의 고약한 놈들이 시체를 파내서 마당에 되가져다 버렸어요.” 그간 조선어를 전문 배워서 진작 알아들은 가메다는 머리를 끄덕거리었다. 뒤이어 그는 말에서 내려 채찍으로 승만의 대가리를 이리저리 건드려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네 영감이 와루이고도(나쁜 짓)을 많이 했소다. 마을 사람들이 이러는 거야.” 가메다의 말에 승만의 로친은 머리를 땅바닥에 떨어뜨릴 지경이었다. 똘만이 물었다. “유격대들이 어느 쪽으로 갔느냐?” 승만의 처는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자 가메다가 피 묻은 채찍으로 승만의 여편네를 툭툭 건드리면서 지껄였다. “우리 황군은 너희 영감 원수를 갚아 주겠소. 말이 해. 유격대 어디로 갔어?” 유격대에게 경고를 받은 적이 있는 승만의 여편네는 감히 혀끝을 놀리지 못했다. 가메다는 턱에 난 털 한 모숨이를 쓱쓱 매만지다가 서슬 푸른 군도를 쑥 뽑아 승만의 여편네의 목에 척 들이대면서 고함쳤다. “말하지 않으면 죽어, 죽었쏘까! 유격대 어디로 갔어? 엉?!” 승만의 여편네는 그만 풀썩 물앉으면서 입을 열었다. “저기 경성 쪽으로 달아났는데요. 두만강 변으로 갈 거예요." "유격대 몇 사람인가?" 가메다의 호령에 여편네는 흘끔 도적눈을 치뜨다가 내리깔며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서넛 밖에 안됩니다. 우리 영감은 어떤 계집애가 쏜 총에 죽었수다. 그 계집애 우두머린 거 같았소이다." "쏘까? 전번에도 계집이 지휘했어. 그 유격대 계집년을 추포해야 해." 가메다는 군도를 칼집에 도로 척 꽂아 넣고 말에 오르면서 을러멨다. “이후에도 그 놈 돌팔매유격대들이 나타나면 인차 황군에게 고발해라. 그러지 않으면 목이 날아날 줄 알아라.” 한바탕 을러메 놓고 가메다는 똘만이랑 끌고 집 대문을 나가자마자 동북쪽을 바라고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덮쳐갔다. 그들은 말을 타고 한참 달려가다가 경성군 주을면의 한 산기슭에서 웬 괴한이 팔뚝만한 나무를 두 손으로 잡고 어깨로 떠밀어서 툭툭 끊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저런 괴물도 있단 말인가?” 가메다는 말을 달리다가 말고 그 괴한한테로 말을 탄 채 달려갔다. “어이, 당신 누구요?” 그 괴한은 힐끔 가메다의 낯을 쳐다볼 뿐 의연히 나무를 어깨로 떠밀어 툭 끊을 뿐이었다. “이 놈, 묻는 말이 왜 대답 안 했소까?” “내가 누구든 당신들과 무슨 상관이요?” 똘만이 나서면서 말했다. “네 놈이 언감 누구 앞에서 쌍스럽게 말대답이야?” 가메다가 채찍을 들어 똘만을 제지시켰다. 그러자 똘만은 어조를 좀 부드럽게 고쳤다. “이보. 힘장사, 이분은 우리 황군 헌병대 소대장이란 말이요. 댁은 누구요?” 조금 누그러든 그 말에 그 괴한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난 이 마을에 사는 리무삼이요.” 사실 원삼의 동생 무삼은 어려운대로 고향을 지키려고 춘삼이, 인삼이, 원삼이 세 형님을 따라 간도로 가지 않고 남았던 것이다. “리무삼? 음, 참 대단한 힘장사구먼.” 가메다는 리무삼을 손아귀에 넣고 싶었다. “힘장사, 여기 산골에 묻혀서 고생하지 말고 우리 자위대에 가서 일하지 않겠소? 황금을 푼푼히 줄게.” 리무삼은 허리를 펴면서 가메다를 쳐다보다가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 흔들었다. “왜?” “난 여기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사는 게 제일 편안하오. 총을 메고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면서 살기 싫단 말이요?” 가메다는 아주 실망스러워 격장법을 피웠다. “당신 사내대장부 옳소까?" 그는 새끼손가락을 내들어 아래로 내리 찌르는 시늉을 했다. "당신 이거야, 쫄장부!” 리무삼은 가메다를 힐끔 곁눈질하더니 묵묵히 대답하지 않았다. 똘만은 리무삼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심기가 곧은 자이기에 끌어당겨오기 힘들 것 같았던 것이다. “저, 한 가지 물어보기요. 며칠 전에 여기로 유골궤짝을 멘 사람을 보지 못했소?” 똘만의 물음에 리무삼은 소잔등 같은 잔등이 흠칫 하는 것 같았다. 그는 며칠 전에 자기 집에서 묵어간 최구장 네를 묻는다는 것을 번연히 알았다. 그러면서도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못 봤소.” 가메다는 교활한 눈빛을 번쩍이더니 한걸음 다가서면서 물었다. “그럼 백마를 탄자가 여기로 지나가는 건 보지 못했는가?” 그것은 며칠 전에 백마를 타고 자기 집에 들린 승철이란 자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이었다. 무삼은 경성 일대에서 소문 높은 날강도 삼형제 백승만, 백승핵, 백승철을 귀못이 박히게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승철은 며칠전에 그의 마을에 나타나 무삼을 보고 처음에는 자기가 날강도들에게 쫓기어 피신해 다닌다면서 먹을 걸 달라고 가련하게 사정했다. 그러나 하루도 아니고 먹을 것이 떨어지면 사흘이 멀다하게 찾아왔다. 나중에 승철은 실상 자기는 유격대에게 쫓기어 달아났다고 이실직고했다. 한참 궁리하다가 무삼은 승철과 같은 날강도는 경성 일대에서 없어져야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 있을 게 아닌가고 생각됐다. “봤소.” “어데 있소까?” “며칠 전에 우리 집에 왔다가 먹을 걸 가지고 밀림 속으로 들어갔소.” “좋아, 참 좋아.” 가메다는 똘만에게 눈짓하더니 꽥 고함쳤다. “이 놈을 묶어라!” 뜻밖에 결박된 리무삼은 어안이 벙벙해 고함쳤다. “왜 이럽니까? 묻는 말을 제대로 대답해도 죕니까? 이건 너무 억울하오.” 그러자 가메다는 살기찬 낯에 냉소를 지으면서 코 수염을 옴짝거리면서 지껄였다. “하하하, 이 시골뜨기야, 네놈은 분명 최구장을 알고 있어." 그 놈은 뒤를 돌아보면서 팔을 홱 휘둘렀다. "이 놈 집으로 가자. 이 놈의 집에 매복해있으면 최구장과 백마를 탄 돌팔매유격대 꼭 나타날 거야!” 가메다 일행은 리무삼을 꽁꽁 바줄로 묶어 앞세우고 산기슭아래 마을로 향했다. 리무삼이 일본헌병들에게 꽁꽁 묶이워 산에서 끌리어내려 오는 것을 보고 무삼의 아내와 자식들은 놀랐다. “아니, 나무하러 간 사람에게 무슨 죄 있다고 이러오?” 키가 작달막한 무삼의 아내가 도도거리었다. 똘만이가 나서면서 무삼의 아내를 활 밀어 재끼고 집안으로 늑대처럼 어슬렁어슬렁 들어갔다. “네 놈 집 식구들은 돌멩이질을 하는 유격대와 내통한 혐의를 받고 있어. 한 놈도 꼼짝 말고 집안에 있어!” 무삼의 일가식솔들은 뜻밖의 봉변을 당했다. 그들은 몽땅 집안에 갇히어 밖으로 얼씬하지도 못하게 됐다. 혹시 뒷간으로 가도 일본 헌병 놈이 따라가 뒷간을 지켰다. 교활한 가메다 놈은 자기는 고방에 들어가 몇몇 헌병들과 함께 편히 자면서 몇몇 헌병들이 교대로 집안과 수림 속에서 보초 서게 했다. 일단 마을 사람들이라도 이 집에 얼씬거리기만 하면 다 잡아가둬 아무도 자기들이 이 집안에 있는 동정을 알지 못하게 했다. 사흘이 지났다. 백승철이 백마를 타고 이 집 마당에 나타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살기 찬 이 집안에 일본헌병들이 한개 분대나 들어있는 줄도 모르고 승철은 거들먹거리면서 집안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게, 무삼이, 먹을 게 다 떨어졌네. 주먹밥을 해놓았는가?” 그자가 지껄이면서 마당에 들어섰을 때다. 몇몇 일본헌병들이 승냥이가 양을 덮치듯이 일제히 덮쳐나가 백마를 탄 승철을 나포해 말 잔등에서 끌어 내리었다. 가메다와 똘만도 뒤따라 뛰어나갔다. 똘만은 백마를 보자 말대가리를 어루만지면서 지껄였다. “허허허, 사랑스런 백마야, 이 백마는 분명 한길수대대장의 백마입니다.” “요로씨이(좋아), 한 대장 백마가 끝내 우리 손에 돌아왔구먼.” 가메다는 버릇처럼 턱의 털을 슬슬 어루만지면서 꽁꽁 묶인 채 꿇어앉은 난쟁이 승철의 턱을 채찍으로 쳐들었다. “이 놈, 유격대 놈아, 네 놈이 담대하기로 우리 한 대장을 살해하고도 시퍼런 백마까지 척 타고 돌아다녀?” 승철이 가메다를 보고 고함쳤다. “뭐? 유격대라니요? 난 유격대 놈들에게 형님 잃고 겨우 목숨을 건져가지고 이렇게 수림속에서 근근득식하면서 피난살이 하는뎁쇼.뭘? 유격대?! 이거 억울해 어떻게 살아랍둥?” 가메다와 똘만은 승철을 들여다보았다. “그래 네놈이 누, 누군데. 유격대와 그런 원, 원수를 졌다고 그, 그래?” 가메다는 급하면 말을 먹는 모병이 또 도졌다. “난 백승철이요. 웅진의 백승만의 막내동생이란 말이오.” “백승만?” 순간 가메다는 눈깔의 흰자위마저 번져지게 희번뜩거리며 승철의 아래위를 훑어보는 것이었다. 백승철은 진달래가 이끈 유격대에 당하던 전후과정을 쭉 이야기했다. “그래, 유격대를 이끈 놈이 확실히 계집이었단 말인가?” “예, 피뜩 그자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니 그 계집 대장은 진달래라고 부르는 거 같았습구마.” “음, 진달래 대장? 그년을 꼭 잡아야 해.” 가메다는 백승철을 풀어주라고 한 후 가을바람에 우수수 울부짖는 산을 멀리 바라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또 헛수고를 했어.) 가메다는 몸을 홱 돌리더니 교활한 눈으로 무삼을 쏘아보더니 “저 놈도 풀어줘라.”하고 명령했다. 똘만은 의아해 가메다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가메다는 이렇게 지껄였다. “이 놈은 우직한 놈이야. 금방 백마를 탄 승철이 왔다간걸 고하지 않았던가?” 백승철은 무삼을 원망어린 눈길로 힐끔 쳐다보았다. “알고 보니 영감이 날 물어 먹었구먼.” 그 말에 무삼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황군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 자넨 한뉘 날강도질을 해먹는 자가 아닌가? 언제 자네한테 당할지 누가 아는가? 일찌감치 황군에게 바치는 게 낫지.” 그들 둘이 말싸움을 하는 것을 보던 똘만이 신경질을 썼다. “됐네, 됐어. 이후에 둘 다 우리 황군을 위해 일해 주게나.” 무삼은 묵묵부답 하였으나 백승철은 만면춘풍이었다. “대장님, 권총 줍소. 우리 형님들을 살해하고 우리 집안 여인숙을 망하게 만든 유격대 놈들을 몽땅 잡겠습구마.” 가메다가 피씩 코웃음을 치면서 말 잔등에 올라탔다. “저 놈을 묶어가지고 가자. 저 놈이 우리 황군을 우습게 보는구나. 우리가 잡지 못하는 돌팔매유격대를 저 놈이 혼자 잡아?” 뒤결박을 당하면서 승철은 억울하다고 고함쳤다. “황군을 돕겠다는데 무슨 죄라고 이럽니까? 당신들 꼭 후회할 겁구마.” 그러건 말건 가메다 일행은 백승철을 결박해가지고 동북쪽을 바라고 말을 놓아 산길을 달려갔다. 그 놈들의 뒤로 먼지가 새뽀얗게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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