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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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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5)
2016년 11월 10일 11시 39분  조회:1905  추천:0  작성자: 김장혁



                         12. , 장백산 기슭의 진달래

       성칠은 최구철을 업고 유격대원들을 거느리고 협곡에까지 전략적으로 전이하였다. 상순은 큰어머니를 업고 협곡에 가서 한쪽구석 밑바닥에 내려놓고 자기 웃옷을 벗어 펴 놓고 그 위에 눕혔다.
       진달래는 성칠의 잔등에서 아버지를 내리워 안고 피가 낭자한 얼굴에 볼을 비비며 흑흑 흐느껴 울었다.
성칠과 전우들은 모두 영용하게 희생된 최구철을 둘러싸고 머리를 숙이었다. 진달래는 자기 하얀 웃옷을 벗어 아버지 얼굴을 가리더니 꼭 끌어안고 흑흑 흐느껴 울었다.
진달래는 발딱 일어나 성칠과 함께 나무 가지를 끊어다 아버지 시체를 가리어 주었다. 유격대원들은 하얀 겉옷을 벗어 눈을 담아다 최구철의 시체를 하얗게 덮어놓았다.
유격대원들은 저마다 복수심으로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었다.
성칠과 진달래가 협곡 밑바닥에서 위쪽을 쳐다보니 좁은 물도랑만 한 틈으로 눈보라치는 하늘이 바라 보일뿐이었다.
“놈들은 꼭 이곳을 지나 갈 거야. 이제 칠백 중대장과 동욱 중대장이 적들의 배후를 매복습격 할 때 우린 이 협곡에서 놈들을 저격하자!”
성칠의 말에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였다.
진달래는 희생된 아버지 때문에 너무 울어 팅팅 부운 눈에 피까지 지었다. 전투를 앞두고 피진 그녀의 깜장 눈에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리었다.
“적들이 협곡 위에서 수류탄 같은 걸 내리 뿌리면 우리에게 불리하겠는데요.”
진달래의 근심에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과단성있게 말했다.
“적들에게 들킨 눈 갱도를 계속 쓸 순 없어. 꼭 전술을 바꿔야 해. 한철주 놈은 여기 지리에 깜깜부지야. 그 놈이 어찌 우리가 이런 협곡에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느냐?”
한편 한철주는 텅 빈 밀림속의 밀영을 폭파하고 불살라 버린 후 갱도를 발견하자 속으로 못내 놀랐다.
(이런 동굴로 쥐새끼처럼 신출귀몰하면서 이동작전했구나.)
그는 눈 함정에 빠진 놈들이 눈 동굴에서 뛰쳐나온 유격대에게 소멸당한 내막은 아직도 깜깜부지였다.
(이상한 일이야. 놈들이 정말 응세나 가메다가 말한 것보다 엄청 많았단 말인가?)
오리무중에 빠진 철주는 일본 놈들을 끌고 다시 산골짜기 쪽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적들이 한창 자그마한 골짜기를 넘어 가다가 굳은 눈이 쿵 꺼지었다. 적들은 또 눈 함정에 빠졌는가 하여 비명을 지르며 아우성쳤다.
그런데 저게 뭔가? 꺼진 곳에 모여 가 보니 눈 동굴이 드러났다.
한철주는 군도자루를 잡았던 오른손으로 무릎을 탁 쳤다.
“이때까지 속았구나!”
그제야 산등성이와 산골짜기에서 자기들에게 사격하던 유격대가 감쪽같이 사라진 비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눈 함정에 빠지었을 때 이 산등성이와 산골짜기 눈 동굴에서 사격하고는 눈 동굴로 신출귀몰하였구나.”
졸개들은 눈 동굴을 따라 유격대를 추격하자고 떠들었다.
그러나 철주는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실력을 보존하고 안전하게 밀림을 벗어나야 해.”
그는 장백산 기슭 밀림 속의 밀영을 폭파하고 불사른 사진과 애기 엄마의 수급이 있었기 때문에 더는 유격대와 싸우기 싫었던 것이다. 장백산 기슭의 산골짜기마다 호랑이 아구리 같았고 저승 같았고 무덤 같아 질겁했다.
“눈 동굴을 폭파해버리고 산골짜기 막바지 쪽으로 에돌아 철퇴하라! 우린 해 지기 전에 큰 함정 같은 밀림을 빠져 나가야 해.”
그는 하얀 장갑을 휘두르며 명령하였다.
꽝! 꽝! 꽝!
적들은 작은 산골짜기 눈 동굴을 폭파해 버리었다.
땅! 땅! 땅!
이때 뜻밖에도 밀림 서남쪽과 동남쪽에서 유격대가 나타나 적들의 배후를 습격 해왔다.
      "사격!"
      한철주는 절망에 찬 고함을 질렀다.
      그는 눈 위에 납작 엎드려 중얼거리었다.
       “이건 또 뭐야? 금방 동굴로 달아난 놈들을 족쳐 버리었는데 남쪽에서 또 웬 놈들이야?”
       칠백과 동욱이 영솔한 유격대 두개 중대는 밀림에서 아름드리나무들을 은페물로 삼으면서 맹렬히 사격하며 맹호마냥 적들에게 덮쳐 들었다.
       “전우들 원수를 갚자!”
       땅! 땅!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자!”
       땅! 땅! 땅!
       “일본 주구 한철주 놈을 생포하자!”
      구호소리, 총소리,  비명소리, 아우성소리 뒤범벅이 돼 밀림에 울려퍼졌다.
      (저 귀신 같은 놈들이 어떻게 내 이름까지 알아?)
      한철주는 새하얀 옷을 입은 유격대원들이 백호처럼 덮치어 오는 것을 보고 장백산 밀림에서 유격대의 손에 죽고 싶지 않았다.
“3중대, 엄호해! 1중대와 2중대는 날 따라 산골짜기로 철퇴!”
한철주가 일어나 철퇴하려 하였다.
“보고!”
철주가 돌아보니 1대대장이었다.
“웬 일인가?”
1대대장은 난처해하였다.
“보고, 1중대는 거의 다 죽고 둬 개 분대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 많은 유격대 놈들을 어떻게?”
철주는 이를 악물고 대대장의 귀쌈을 찰싹 갈겼다.
“빨리 유격대를 막지 못할까?! 네 놈이 그러고서도 일본 섬나라 오랑캐냐?”
대대장은 담대하게도 철주의 귀쌈을 찰싹 갈기면서 눈깔을 부라리었다.
“네놈 조선 노예 놈 따위가 감히 우리 황군을 모독해?!”
철주는 군도를 빼들며 을러멨다.
 “감히 상관 명을 거역해?! 총살할 테야!”
“총살해! 조선 노예 새끼야!”
대대장이 대들었지만 철주는 용하게 참아냈다.
“이제 산에서 내려가면 네놈부터 군법에 의해 처단할 테다!”
철주는 군도를 칼집에 되 넣으며 1중대장을 불러 고래고래 고함쳤다.
“빨리 엄호해!”
“하이!”
적들은 1중대 엄호하에 간신히 산골짜기 막바지까지 도망치었다. 그 놈들이 하얀 물이 파먹은 물곬 우로 뛰어 넘을 때었다.
꽈르릉! 꽝! 꽝!
폭발 굉음과 함께 물곬 양편 협곡이 우르르 무너졌다. 숱한 적들이 협곡 아래로 거꾸로 처박혔다.
“아,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구나!”
한철주는 절망에 빠지었다. 그 놈은 군도를 빼들고 하늘에 휘두르며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철퇴!”
적들은 협곡을 건너지 못하고 또 밀림 속으로 달아났다. 그런데 몽땅 하얀 옷을 떨치어 입은 유격대원들은 칠백 중대장과 동욱 중대장, 인삼 중대장의 영솔 하에 서남쪽과 동남쪽, 서쪽에서 포위권을 좁히며 백호처럼 덮쳐들었다.
사기가 땅바닥에 떨어진 적들은 밀림 속 산지사방에 흩어지면서 달아났다.
이때 협곡을 폭파해 버리고 빠지어 나간 성칠 대장은 진달래 중대장과 함께 북쪽과 동쪽으로부터 적들을 습격하였다.
혼비백산은 철주 놈은 군도를 빼 들고 패잔병들을 데리고 혈로를 뚫고 북을 바라고 도망쳤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철주 놈이랑 사경에서 벗어났는가 하였더니 북쪽 밀림에서 한 50미터 거리를 두고 유격대를 거느린 성칠 대장과 딱 마주쳤다.
성칠은 권총을 겨누면서 고함쳤다.
“한철주 놈아, 날 알아보겠느냐? 투항하면 살려준다!”
“퉤! 내 손에 죽어 봐!”
한철주 놈은 옆에 선 놈의 손에서 수류탄을 빼앗아 뿌리었다.
“꽝!”
요란한 굉음과 함께 아름드리나무 가지들에서 눈가루가 쏴르르 쏟아지었다.
뚜루룩, 뚜루룩!
일본 놈의 기관총수가 눈 둔덕에 엎드려 성칠 대장 쪽에 몰 사격을 가하였다. 성칠은 눈 둔덕에 엎드려 상순의 손에서 사냥총을 받아쥐어 기관총수 놈의 대가리를 겨눠 방아쇠를 당겼다.
땅!
명사수의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기관총수 대가리가 박살났다. 뇌 장과 뻘건 피가 튕기며 허연 눈을 더럽혔다.
“야, 성칠 놈아! 담이 있으면 1대 1로 결투를 벌려보자! 엎뎌 있지 말구 어서 나오지 못해?!”
철주 놈은 미친 듯이 고함치며 기관총을 쏴대며 성칠한테로 덮쳐 왔다. 상순은 큰어머니를 업고 뒤로 철퇴하였다.
그때 옆에 섰던 3중대장 놈이 기관총을 빼앗아 쏘며 “한 련대장! 빨리 도망치쇼!” 하고 고함쳤다.
3중대장 놈의 맹렬한 기관총소사에 하옥을 업은 상순의 발부리에서 눈꽃이 튕겨 오르면서 푱! 푱! 푱! 비명 소리를 냈다. 상순은 업고 달리던 하옥을 내리워 눕히고 그 우에 덮으며 엎드리었다.
푱!
하옥은 머리에 흉탄을 빗맞았다. 하옥의 손에 쥐었던 권총이 눈 위에 뚝 떨어지었다. 상순이가 웬 일인가고 머리를 돌리어 큰어머니를 쳐다보았다. 하옥의 머리에서 피가 쿨쿨 솟구쳤다.
상순은 권총을 주어 품에 간직하며 대성통곡 쳤다.
“큰어머니! 큰어머니!”
그러나 하옥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검둥이는 자기 주인에게 기관총을 쏜 3중대장 놈에게 맹호처럼 덮쳐갔다. 검둥이는 적 3중대장 놈의 뒤로 덮쳐 잔등을 타고 올라가 목을 꽉 깨물었다. 3중대장 놈은 목이 분질러 져 뒈졌다. 허나 검둥이는 3중대장 놈의 목을 꽉 깨문 채 놓지 않았다. 이때 뒤에서 덮쳐나온 7소대장 놈이 검둥이에게 죄악의 총을 쏘았다.
땅!
검둥이는 “깨갱” 비명을 지르며 푹 쓰러지었다. 그러나 검둥이는 죽어 가면서도 3중대장 놈의 목을 꽉 문채 놓지 않았다.
성칠도 달려와 하옥을 붙안고 눈물 흘리며 애타게 불렀다.
“여보! 여보! 정신 차리오.”
그러나 피가 낭자한 하옥의 얼굴은 굳어지었고 영영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였다.
“야, 이게 웬 일이오?”
성칠은 하옥을 내리어 놓고 권총을 들고 “검둥아! 내 검둥아!” 하고 고함치더니 노기충천한 눈길로 적들을 쏘아보았다.
“사격!”
유격대원들은 적들에게 복수의 불길을 안기었다.
상순은 나무 가지로 큰어머니 시체를 가리워놓고 눈물에 젖은 눈으로 마구 덮어 놓았다.
적들의 2중대 중대장과 몇몇 소대장 놈들이 사격하며 엄호했다. 그 틈을 타 몇몇 놈들이 한철주 놈을 보호하며 밀림 쪽으로 도망쳐 버렸다.
진달래는 나무 가지를 구르며 나무와 나무사이를 날듯이 뛰어 나가 기관총을 쏘는 적 7소대 소대장 놈에게 돌팔매를 안겼다.
딱!
7소대 소대장 놈은 대갈통이 빠개져 푹 꼬꾸라졌다.
그때 상순이 사냥총을 버리고 총알이 빗발치는 밀림 속으로 뛰어 나가 기관총을 노획해 적들에게 돌려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뚜루룩, 뚜루룩!
총알은 도망치는 적들 무리로 쓸어 눕히었다. 그러나 기관총을 쏴본 적 없는 상순이기에 방아쇠를 계속 당기는 바람에 후충격파에 견디지 못해 기관총구는 점점 하늘로 쳐들어지었다.
“상순아, 기관총대 낮춰!”
한철주는 도망치면서도 기관총소사를 하는 상순을 피뜩 돌아보며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뭐, 상순, 김호라더니. 네놈 아무 때든 내 손에 죽어!”
성칠은 권총을 휘두르며 고함쳤다.
“한철주 놈을 생포해라!”
“돌격!”
성칠 대장은 유격대원들을 이끌고 한철주 등 일제 침략군 놈들을 추격하였다.
한철주 놈은 해질 녘에야 패잔병 한개 중대의 병력을 데리고 겨우 포위권에서 벗어나 영월구와 몇 십리 떨어진 들판에 이르렀다.
그는 상가집 개처럼 헐레벌떡거리더니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머리에 댔다.
옆에서 2중대장이 권총을 빼앗았다.
“왜 이래?”
한철주 놈은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두개 중대 병력에 별동대 야마모도 소장까지 잃었는데 무슨 면목으로 사령부에 돌아간단 말인가?”
그러자 수길이 말리었다.
“장병들이 많이 살상당했지만 우린 유격대 밀영과 갱도를 폭파해 버렸고 진달래 년의 대가리도 떼 오지 않았습니까? 이게 혁혁한 전공 아니고 뭡니까? 스쯔끼 국장 말대로 우린 백 사람을 잘못 죽이더라도 유격대를 한 놈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한철주 놈은 머리를 맥없이 끄덕이었다.
그는 무슨 생각이 피뜩 떠올랐던지 무릎을 탁 쳤다.
“아차, 잊었네. 밀림에서 총알에 대가리를 맞아 죽은 게 분명 성칠 놈의 여편네었네. 그년의 머리를 떼 와야 했는데, 쯧쯧쯧.”
수길도 머리를 끄덕이었다.
“나두 봤습꾸마. 그때 우리 대가리도 지키기 바쁜데 언제 그년 대가리를 떼올 새 있었습둥? 저기 계집유격대 대장 대가리 둘이나 있으면 됐습꾸마. 대신 가져다 바치면, 헤헤.”
그 말에 긴장이 풀렸는지 철주 놈은 눈 위에 털썩 들어앉았다.
적들이 금방 좀 쉬려고 할 때다. 어둠이 깃드는 산기슭 쪽에서 또 소란스러워졌다.
“또 뭐야??”
한철주 놈이 소스라쳐 일어났다.
그때 수길이 몇 몇 졸개들과 함께 웬 놈을 끌고 왔다.
“누구냐?”
“영월구분주소 소장입니다.”
한철주는 깜짝 놀랐다.
“자넨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 왔어?”
소장은 풀썩 무릎을 꿇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어제 밤에 유격대 놈들에게 분주소가 날아 났습니다. 그래 유격대를 피해 한 련대장네 관동군을 찾아 왔습니다. 나를 관동군에 받아 줍소. 분주소 소장 질을 못하겠습니다. 언제 또 신출귀몰하는 유격대 습격을 받을지 누가 압니까?”
한철주 놈은 소장 놈의 귀쌈을 찰싹찰싹 갈겼다.
“제길 할, 밥통 같은 놈! 유격대 놈들한테 얼이 다 빠졌군.”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리인지.
사실 성칠 대장이 밀림에서 일본 놈들의 별동대와 관동군을 매복 습격하는 기회를 타 용천 대장은 북만 소대를 거느리고 영월구분주소를 기습하여 분주소를 폭파해 버리고 경찰 일여덟 놈을 살상했던 것이다.
하하하. 꼴 보기 좋다, 밀림과 영월구에서 매복습격과 기습당한 일본 놈들의 꼬락서니를 봐라.
한편, 성칠은 뉘엿뉘엿 지는 해를 올리다 보고 그만 두었다.
그는 전우들과 하옥의 시체를 하얀 눈으로 덮고 그 위에 나뭇가지를 얹어 시체 자리를 표시해 놓았다.
이 땅의 초부들이여, 이 땅을 무심히 밟지 말라. 이름 모를 항일선렬의 넋이 소리없이 그 곳에 누워 있을지 누가 알랴. 어느 산골짜기 바위돌을 무심히 차지 말고 아무 나무나 마구 찍지 말라. 그 돌 밑에나 나무 밑에 우리 항일렬사가 묻혀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하얀 눈에 뒤덮인 무덤에서 빨간 피가 괴여 흘러나왔다. 진짜 눈에 매화가 핀듯하고 밀림에 연분홍 진달래가 피어오르는 상 싶었다.
        아, 장백산의 진달래, 그대는 정녕 우리 민족 항일열사들의 선혈로 물들어 피어난 생명의 꽃이어라. 진달래는 항일 투사들의 혼을 상징하는 불멸의 꽃이며 눈보라 치는 밀림에 남긴 항일투사들의 발자국마다에 피어난 항일투쟁 역사의 발자취이다.
        이제 매서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새 봄날이 오면 밀림에는 수많은 진달래가 피어 온 원시림을 연분홍빛으로 곱게 물들이리라.
 
 
 
 
 
 
 
 
 
 
 
 
 
              제18 여명의 전야

                                                        1. 교하 여관

       함흥촌 상공에는 먹장구름이 침침하게 내리 드리워 있었다.
       항일유격대의 매복습격전과 기습을 받은 일본 관동군 놈들과 경찰 놈들은 이를 갈며 미친 듯이 항일유격대 근거지를 토벌하고 살인과 약탈, 방화를 거리낌 없이 하였다.
      함흥촌도 예외 없이 일제의 쇠 발굽 밑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지난 겨울에 상순은 할아버지의 포치에 따라 형내와 충국을 데리고 원시림에 들어가 항일유격대를 도와 싸우고 부상병들을 치료해 준 후 마을로 가만히 돌아왔다. 그는 전장에서 하옥의 권총을 건사했는데 유격대에 바치지 않고 가만히 품속에 넣어 가지고 돌아 왔던 것이다.
그는 집 식구들과 형내, 충국에게도 말하지 않고 궁리하던 끝에 어둠의 장막을 빌어 권총을 기름종이에 싸서 자그마한 오지그릇에 넣어 가만히 웃새집 사랑채 천정구멍 덮개를 열고 중 천정 우에 감춰 두었다.
병완과 기준은 조용히 상순을 불러 그간 산에 갔던 얘기를 들었다.
“참, 잘했어. 일본 놈들 콧대를 여지없이 꺾어 놔야 해!”
상순에게서 하옥의 비보를 듣고 병완은 슬퍼 눈물까지 찔끔 흘리었다.
기준은 팔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아주머닌 우릴 얼마나 보살폈다고. 참, 비통하구나.”
그들의 말을 엿듣던 온 집 식구들은 모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지새금은 뒤에서 근심했다.
“저 생원 때문에 이 집안 큰 일 나겠다. 큰시아버지 유격대에 갔으면 됐지 생원까지 삐칠 게 뭐요? ”
명옥은 그 말에 속이 걸리는 데 있었지만 큰집과 화목하게 살려고 그만 두었다. 영자는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 목을 끌어안고 칭얼거리었다.
“아버지, 어데 갔댔어?”
“응? 장사하러 갔지.”
상순은 영자를 안고 뽀뽀해 주었다.
이튿날 상순은 또 약 담배 장사하러 떠났다.
하긴 그가 약 담배장사를 하지 않으면 집식구들은 입에 거미줄을 칠 지경이었다. 유격대에 쌀과 약, 소금을 사가느라고 약 담배장사를 해 번 돈을 다 쓰고 장학산의 빚을 물지도 못하였다. 게다가 패용천산 앞의 논밭이 물에 쫄딱 밀리어 벼를 얼마 거두지도 못했는데 손호표 지주는 소를 죽인 앙갚음으로 소작료로 6할이나 가져가 버렸던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 명옥은 본가 집에 가서 좁쌀 세말을 가져다 온 집식구들이 죽을 쒀먹으면서 연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순은 충국을 데리고 먼저 공석촌으로 갔다.
월금 누나네 집으로 가면서 둘째매형을 보고 돈을 꿔 달라고 통사정을 들이대었다.
둘째매형 박범석은 결혼 때 인사도 받지 않은 가시아버지는 미워했지만 사내대장부 같은 막내처남만은 좋아 하였다.
그는 농궤 자물쇠를 열고 돈을 꺼내 주면서 “옛소. 200원이오. 가져다 돈을 많이 버오.”라고 하였다.
월금은 장사하러 떠나는 막내오라비를 보고 얼마나 대견하였는지 몰랐다.
(조선에서 넘어와 오랑캐 령을 넘을 때만 해두 바지에 오줌을 싸더니. 쯧쯧, 저게 언제 저렇게 커서 장사하러 다 다니니?)
그녀는 동구 밖에까지 따라 나와 허리춤에서 돈을 몇 입 꺼내 막내오라비에게 슬쩍 건네주었다.
“이걸 가지고 가서 길에서 배고플 때 뭘 좀 사먹어라.”
“고맙소. 누나.”
상순은 둘째누나가 준 돈까지 염낭에 깊숙이 간직하고 나서 진수해 큰매형네 집으로 갔다. 상순의 큰 매형 최경인은 조선에서 들어와 부모를 모시고 진수해에서 서당을 차리고 애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상순은 큰 매형의 집에 들어 가 먼저 최구장 사돈어른 양주에게 인사를 드리고 큰 매형에게 찾아 간 사연을 말하였다.
경인은 아내와 상의하고 600원이나 척 내 놓았다.
"막내처남 어쩌다 돈 꾸러 왔는데 도와 줘야지. 이건 우리 일가의 명줄과 같은 돈이네. 아무튼 가지고 가서 주의하면서 돈을 많이 버오."
어금은 자기 막내오라비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남편이 고마웠다.
“감사하오.”
상순은 큰 매형이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고마웠다. 그는 최구장 사돈어른으로부터 돌아가면서 인사하고 떠나가려고 하였다.
그때다.
“외삼촌!”
학교에서 돌아온 근덕은 상순을 보고 반겼다.
근원과 해옥 등 조카들이 우르르 모여와 반겼다. 그들은 모두 멀쑥하게 생긴 작은 외삼촌을 좋아했다.
상순은 외조카들을 일일이 안아 주면서 “내 이제 돈을 많이 벌면 엿 사탕을 사다 줄 게.”라고 말하고는 집을 나섰다.
경인은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따라 나와 충국을 곁눈질하면서 “처남, 장사할 때 누구나 너무 믿지 마오.”라고 신신당부하였다.
“양, 근심하지 마오. 얘는 내 친구요.”
상순은 인사를 마치자 진수해역으로 나갔다.
상순은 충국을 데리고 진수해역에 나갔다.
그들은 기차를 타고 아주 순조롭게 명천과 우시장에 달려 나갔다.
그들은 약 담배 장사꾼들에게서 약 담배를 사자마자 숨도 돌릴 새 없이 기차를 타고 곧추 귀로에 올랐다.
그들은 기차를 타고 교하에 가서 내렸다.
상순은 충국을 데리고 교하 시내를 돌다가 역 부근의 한 여관에 들어갔다.
여관의 뚱뚱한 주인은 그들과 짐을 흘끔거리었다.
“무슨 장사를 하오?”
상순은 “약장사를 하오.”라고 하였다.
충국은 손으로 상순을 툭툭 치면서 사실대로 말하지 말라고 눈짓하였다.
여관 주인은 불신에 찬 충국의 거동을 보더니 저쪽으로 가 버리었다.
충국은 상순을 보고 나직이 꾸지람 하였다.
“왜 약장사 말을 하오? 저 사람이 일본 놈들이라도 데리고 오면 어째?”
그러나 상순은 “감히? 가만 놔두지 않을 테야.”라고 큰소리를 탕탕 쳐댔다.
충국이 근심하는데도 상순은 “교하의 약 담배장사꾼을 하나도 모르는데 여관 주인 보고 도와달라면 어떨까?” 하고 물었다.
충국은 “형, 어쩌자고 그래?”하고 놀라했다.
상순은 “여관 주인이 여관까지 메고 달아나겠니? 일이 뒤틀려지면 여관이라도 팔아서 내라고 할 판이지.”라고 하였다.
그 말에 충국도 “글쎄 말이오.” 라고 하며 상순의 말을 따랐다.
상순은 충국을 데리고 짐을 들고 여관 주인이 든 방으로 찾아 갔다.
“무슨 일이오?”
여관 주인은 흘끔거리며 상순이 손에 든 짐을 쳐다보았다.
상순은 여관 주인의 방에 들어가 걸상에 앉았다.
그는 집안에 주인만 있는 것을 보고 조용히 “주인, 큰 장사를 해보지 않겠소?” 하고 속뽑이를 해보았다.
“무슨 장사를?”
“글쎄 우리와 손을 잡고 장사할 생각이 없소? 여관방만 차려서야 어떻게 갑부로 되겠소?”
상순이 바투 들이대자 주인은 “무슨 장사인지 돈만 벌면 해보지.” 라고 하였다.
상순은 짐을 내밀면서 “약 담배를 팔아 주오. 그럼 한몫 톡톡히 주지.”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였다.
주인은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약 담배?! 일본 순사 놈들한테 들키면 목이 날아나!”
상순은 황급히 손으로 주인의 입을 막고 바깥을 살피었다. 이윽고 머리를 돌리고 물었다.
“하겠소? 안 하겠소?”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리를 숙이고 궁리하였다.
한참 후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헛일 삼아 해보기오.”
“당신은 여기 면목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약 담배를 파오.”
“알았소. 내 팔아보지.”
주인이 대답하자 상순은 약 담배 짐을 내보이고 맡기었다. 그는 안전을 고려해 다른 여관에 자리를 옮기었다.
며칠 후 상순과 충국은 그 여관에 되돌아가 주인을 찾았다.
“주인, 약 담배 값을 주오.”
주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잖아도 자네들을 찾자고 했네. 전날에 약 담배를 팔러 다니다가 순사 놈한테 들키어 약 담배 짐을 던지고 달아났네.”
“뭐라고? 약 담배 값을 내 놔. 이 놈!”
“말을 듣고서도 떠들어? 떠들면 순사들이 다 잡아 가! 미친 놈들, 잡혀 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인줄 알아라. 흥!”
상순은 열통이 터지었지만 용빼는 수가 없었다.
충국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어쩔 줄 몰라 했다.
“내 뭐라던. 이런 놈을 믿고 어떻게 장사하니?”
상순은 주먹을 연신 날려 주인의 면상을 장마당이 되게 만들어 놓았다.
“네깐 놈이 감히 우리 돈을 떼먹어? 어째 여관에 불을 콱 지르래?”
그 말에 주인은 혼비백산하였다.
“불을 질러? 순사 불러야겠어.”
그 놈은 피 터진 코를 손으로 문대며 옆방에 대고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얘들아! 빨리 순사 불러! 이 놈들 여관에 불을 지르겠대!”
옆방에서 여편네가 소리쳤다.
“살인이야! 사람 살려요!”
상순이 피뜩 바깥을 내다보니 중절모를 쓴 웬 사내가 들이 닥쳤다.
“봐라! 순사 왔어. 이 놈들, 어디로 달아나?”
여관 주인이 우쭐거리었다.
바빠 맞은 상순은 충국을 돌아보면서 “뛰어라!” 라고 고함치며 문 밖을 뛰어 나갔다.
그는 몸을 날려 울안에서 덮쳐드는 순사 놈을 발길을 날려 걷어찼다. 순사 놈도 만만찮은 놈이어서 옆으로 슬쩍 피하면서 권총을 빼들었다. 상순은 옆으로 몸을 살짝 낮추면서 재차 발길을 날려 그 놈의 권총을 차 떨어뜨리었다. 충국이 뒤따라 나오며 권총을 주어 들었다. 그런데 땅 밑에서 솟아나온 듯이 순사 놈들이 대여섯이 호각을 불며 뒤쫓아 왔다. 상순은 충국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아 제일 앞에서 쫓아오는 순사 놈을 겨눠 한방 갈겼다.
땅!
총소리와 함께 그 순사 놈이 가슴을 붙잡고 꺼꾸러졌다.
다른 순사 놈들은 대갈통을 싸쥐고 부랴부랴 도망쳤다.
상순과 충국은 한참 이 골목 저 골목 빠져 달아나다가 뒤따르는 놈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헐떡거리며 멈춰 섰다.
상순이 권총을 품속에 걷어 넣는데 충국이 두덜거렸다.
“에이 참, 약 담배 값도 찾지 못하고 이게 뭐야?”
상순은 대수롭지 않아 하며 너털웃음까지 웃었다.
“허허허, 야, 이 놈아, 목숨까지 잃을 수야 없지 않느냐? 이후에 여관 주인 놈을 찾아가 약값을 받아내자.”
“초상집 개 신세 됐구먼두, 너털웃음이 나와? 흥!”
“목숨만 있으면 돈이야 아무 때건 벌겠지.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약 담배 값 대신 권총 한 자루 벌었으면 본전은 됐어.”
충국이 손을 내밀었다.
“권총은 내 주은 거야.”
허나 상순은 희죽이 웃으며 충국의 손을 탁 쳐버렸다.
“내 순사 놈을 발길로 차지 않았더라면 권총은커녕 둘 다 황천객이 된지 오랠 거 아냐?!”
그들은 마주 보더니 너털웃음을 웃으며 그 길로 교하 아래 산 기슭까지 달아났다. 거기서 밤중에 목재를 실은 짐차를 타고 한 많은 교하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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