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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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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2)
2016년 10월 07일 12시 20분  조회:1908  추천:0  작성자: 김장혁



                    6. 전시 번개식결혼
 

     원시림 유격대 밀영은 적들의 시야에 완전히 들었기 때문에 제일 위험한 곳으로 됐다. 그러나 진달래는 성칠 대장이 자기와 함께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밀영에 남아 적들을 유인하는 “미끼”로 된 것이 아주 고마웠다.
진달래는 그간 성칠의 통나무집에서 하옥의 대소변을 받아낸다, 옷을 씻어 갈아입힌다 하면서 혼미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 하옥을 살뜰히 간호하느라고 바람개비처럼 돌아갔다.
은녀도 유격대의 밥을 짓고는 달려 왔다. 그녀는 대야에 성칠의 오줌을 끓이어 놓고 따뜻한 오줌에 수건을 씻어 짠 후 하옥의 상처를 닦아 주었다.
진달래는 은녀가 하옥의 발을 닦아 주는 틈을 타서 하옥의 머리를 왼손으로 받들고 사슴의 피를 넣고 끓인 사슴고기국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호호 불어 입에 한 술, 한 술 떠 넣었다. 하옥의 얼굴에 점점 핏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이젠 국물이라도 몇 숟가락 씩 넘기는 것이었다.
성칠은 더부룩한 구레나룻을 어루만지면서 하옥을 살뜰히 보살피는 진달래와 은녀를 고마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진달래는 성칠을 쳐다보면서 “오빠, 언닌 며칠 후면 정신을 차릴 거 같아요.” 하고 웃음을 지었다.
“살아났으면 얼마나 좋겠니? 내게 시집 와서 평생 고생만 했어.”
진달래와 은녀를 내려다보며 성칠은 진심을 털어 놓았다.
“난 해준 게 아무 것도 없어. 그저 이렇게 보낼 순 없구나.”
그 말에 진달래는 감동돼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그때 하옥의 눈귀가 실룩거리더니 뜨거운 눈물을 귀밑에 주르르 흘리는 것이었다.
“여보, 깨났어?”
그러나 하옥은 눈을 뜨지 못하였다.
“오빠, 언닌 살아났어요. 이젠 살았어요.”
진달래는 환성을 질렀다.
은녀도 수건으로 종아리를 닦아 주면서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오빠 정성에 형님은 살아날 거 같아요.”
성칠도 퍼더버리고 앉아 하옥의 손을 잡고 중얼거리었다.
“그래, 꼭 살아 날 거야.”
뒤이어 그는 진달래를 돌아보았다.
“은녀에게 맡기고 우린 바깥에 진지정황을 돌아보자.”
“예. 그럼 은녀, 수고해요.”
진달래는 하옥의 머리를 베개에 살짝 내리어 놓고 숟가락을 은녀에게 넘겨주고는 일어 섰다.
바깥에서는 눈보라가 윙윙 세차게 불어치었다. 여기 저기 아름드리나무에서 눈덩이들이 날려 풍풍 떨어지었다.
성칠은 진달래를 데리고 전초진지를 둘러보았다. 경위원 조 꼬마가 뒤따라오면서 경계하였다. 통나무집들에서 멀리 떨어진 아름드리나무 우에서 나무 가지를 가로 타고 앉아 보초를 서는 병수와 득호가 보일락 말락 하였다.
성칠은 진달래를 돌아보면서 “보초를 겹겹이 강화해라. 요 며칠 새 특무들이 오거나 별동대가 습격하러 올 게야.” 라고 하였다.
     “예. 병수와 득호 등 10여명 증가해 세 겹으로 보초를 서고 있어요.”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외곽보초는 청년들을 윤번으로 세워라. 나이 들면 노련하지만 반응이 늦어.”
“알았어요. 즉시 청년들과 중년을 섞어 보초를 세우겠어요.”
    “군호도 바꿔라.”
    성칠은 진달래 귀에 대고 나직이 말하였다.
“군호를 ‘진달래’로 바꿔라.”
“예?”
진달래는 놀란 표정으로 성칠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머리를 끄덕이었다.
뒤에 멀찍이 서서 보초를 서는 조 꼬마를 돌아보고 나서 진달래에게 정색해 말하였다.
“진달래야, 전번에도 말했지만 넌 용천 대장과 결혼해라.”
진달래는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됐어요. 됐어. 오빤 날 시집보내고 시름 놓을 예산이죠? 적들의 대토벌을 앞두고 결혼은 무슨 결혼인가요?”
성칠은 앵돌아지는 진달래의 손을 잡아당겨 돌려 세워 놓고 정중하게 말하였다.
“그런 게 아니야. 우린 가정문제와 혁명의 후대문제도 잘 해결해야 한다. 날 봐. 자식 하나 없이 얼마나 비참하냐?”
“픽!”
진달래는 코웃음을 치었다.
“오빠도 걸 알아요? 누가 자식을 보지 말라고 붙들어 뒀어요? 낳을 수 있어도 낳을 방도를 대지 않아 그렇지요.”
성칠의 눈치를 보던 진달래는 뒷말을 다른 데로 돌려 버리었다.
“명천에서 형내사돈이 금방 함흥촌에 들어왔대요. 전번에 아버지 큰아버지를 보러 함흥촌에 갔다가  규혁 사돈에게서 첩약을 지어왔댔잖아요. 그 약을 달여 언니를 대접하면 언닌 일어날 거라고 해요. 언니하구 행복하게 살아요.”
“남의 걱정 말구 네 대상문제나 근심해라. 전번에 넌 하옥을 붙잡고 울면서 분명히 말하지 않았니? 용천대장과 결혼하겠다고?”
     진달래는 정색하였다.
“용천 대장이 동의하면 결혼할 게요. 나도 양심 있는 계집애예요. 절대 하옥 언니 발등을 밟지 않을 거예요.”
진달래는 돌아서더니 아름드리나무에 기댄 채 어깨를 들먹이며 흑흑흑 흐느끼어 울었다.
성칠은 진달래의 어깨를 다독이어 주었다.
“잘 생각했다. 이제 용천 대장이 오면 전시 결혼식을 치르자.”
진달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주먹으로 성칠의 가슴을 마구 치어댔다. 성칠은 진달래를 꼭 껴안아 주었다.
“넌 영원히 내 여동생이야.”
성칠은 뒤이어 “내세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때 우리 함께 살자.” 라고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억지로 꾹 삼키어 버리었다.
이때 눈보라치는 밀림 속에서 인기척이 들리었다.
“군호!”
“장백산!”
“군호!”
“장백산!”
옛 군호를 대자 보초병과 조 꼬마는 모두 총을 그 쪽으로 겨누었다.
“꼼짝 말엇!”
아름드리나무 뒤에서도 총부리를 이쪽에 돌리어댔다.
“왜 이래? 난 용천 대장이야! 저쪽 성칠 대장이나 진달래 중대장과 물어 보라고.”
그러자 성칠은 권총을 허리춤에 되 꽂아 넣으며 나무 뒤에서 나와 보초병에게 “그만!” 하고 손을 들었다.
나무 뒤에서 개털 모자를 쓴 용천 대장이 “허허.” 웃으면서 나와 이쪽으로 걸어 왔다.
“용천 대장,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더니 정말 왔구먼. 허허허.”
성칠은 마주 나가 용천을 끌어안았다. 그러나 진달래만은 권총을 허리춤에 찔러 넣고 아름드리나무 쪽으로 돌아 서서 외면한 채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었다.
용천은 진달래가 이상했지만 먼저 성칠에게 위문부터 하였다.
“아주머니 상했다더니 어때요?”
성칠은 한숨을 내쉬며 “괜찮네. 진달래 아버지 가져온 약까지 달여 먹이면 괜찮을 거 같아.” 라고 하였다.
용천은 그때까지도 돌아서 못 본 척 하는 진달래의 잔등을 보고 의아해 성칠을 보고 물었다.
“저 진달래 아닌가? 왜 날 보고 인사도 안 해?”
그제야 진달래는 몸을 돌리더니 “돌아왔어요?” 하고 인사하며 다가왔다.
용천은 진달래의 손을 굳게 잡아 흔들었다.
“그래, 진달래 중대장은 여중호걸이야. 우시장까지 쳐나가 자위대 대대장 한길수 놈캉 백승만 형제까지 처단하고 큰아버지까지 모셔왔다면서. 허허허.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랐데이.”
진달래는 머리를 숙이고 발끝으로 눈 바닥을 살살 허비었다.
“왜 오늘 따라 진달래중대장이 이렇게 말수 적고 수집어졌제이?”
용천은 성칠을 돌아보면서 “집에 들어가 얘기합세. 바깥에서 얼게 할 예산인고?” 하고 말하였다.
성칠은 용천의 팔을 잡고 고의로 진달래네 집으로 끌고 갔다.
진달래는 뒤돌아보면서 눈을 찔끔 하는 성칠을 곱게 흘겨보면서 성칠의 집 쪽으로 발길을 돌리었다.
토끼 꼬리만한 겨울해가 벌써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 가고 있었다.
성칠이 용천을 데리고 들어가자 최구철은 사냥총을 들고 보초 서러 바깥으로 나갔다.
자리를 정하고 마주 앉자 용천은 “그래 그간 정황이 어떠오?” 하고 물었다.
성칠은 그간 적아 정황을 상세히 말하고 나서 “인삼 중대장을 영월구 쪽에 보내 선제기습작전을 벌려 적들을 교란시킬 작전계획도 세웠네. 여기 밀림 속의 통나무집들에 적들을 깊이 유인해 매복습격전두 벌릴 계획이오.” 라고 덧붙이었다.
성칠은 구들에 목데기와 담배통, 부시 돌을 죽 벌리어 놓고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작전계획을 설명하였다.
“우리가 매복 습격할 때 용천 대장은 북만의 유격대를 거느리고 동북쪽에 매복해 있다가 인삼 중대와 함께 밀영에 쳐들어온 적들을 포위해 협공해 주오.”
성칠은 목데기를 쭉 북으로 밀고 부시 돌을 뒤따라 밀면서 뒷말을 이었다.
“최후에 매복 습격 전을 끝낸 후 우리 밀영의 유격대는 북만으로 이렇게 전이한단 말이오. 용천 대장넨 우리 뒤를 이렇게 뒤따르는 적들을 매복 습격해 주오.”
용천 대장은 성칠의 말을 듣고 머리를 끄덕이었다.
“참 좋군. 이 작전계획이 성공하면 일본 놈들의 반동기염을 여지없이 꺾어 놓겠는데.”
그는 머리를 숙이고 한참이나 궁리하더니 무겁게 뒷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작전계획은 너무나도 모험인데이. 적들이 접대(이미) 장백산 밀림속의 밀영를 발견했다는데이. 한개 중대 유격대원들의 목숨을 미끼로 삼다니? 너무 위험하제이. 우린 유격대원 한사람이라도 아껴야 하는 기여. 있자노, 우린 희생정신과 용감성에만 의거해 전투해선 절대 안 된다이.”
그러나 성칠은 자기 작전계획을 고집하였다.
“희생정신이 없이 어떻게 일본 놈들을 소멸하겠는가?”
용천도 목에 지렁이 같은 피 줄을 세우며 양보하지 않았다.
“우리 유격대는 이제껏 기동 령활한 유격전술로 적은 대가를 내면서 일본 놈들을 족치었제이. 다 발각된 밀영으로 진지전을 해선 안 된다니께. 김 대장은 매복습격 전을 하려지만. 적들이 꼬임에 들겠는가? 황차 난도 한개 소대 30여명 밖에 데리고 오지 못했제이. 지금 몇 백명 적들이 여길 토벌하러 떠났다고 하데이. 유격대원들의 목숨으로 모험하지 말라니께.”
성칠이 머리를 숙인 채 도리머리를 흔들며 잘 납득돼 하지 않자 용천은 주먹으로 구들장을 쿵 치며 질책하였다.
“그래 이전에 성칠 대장이 고향에서 모험적으로 저목장을 습격했다가 상호캉 은희 목숨까지 잃게 한 피의 교훈을 잊었단 말인가?!”
이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최구철이 들어왔다.
“살랑살랑 말하라니까. 바깥에서 다 들리네.”
“예. 알았습니다.”
최구철이 나가자 용천은 나직하면서도 과단성 있게 말했다.
“우리 작전계획을 조절하자니께. 매복습격 전을 다 부정하는 거 아니라니께.”
용천은 이젠 원시림유격대 대장은 성칠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조금 타협하기로 마음을 고치어 먹었던 것이다. 성칠은 그제야 다가앉았다.
그들 둘은 등잔불을 밝히어 놓고 담배통과 목데기, 부시 돌, 재떨이까지 이쪽저쪽에 옮기어 놓으면서 작전계획을 반복적으로 검토하면서 조절하였다.
성칠은 더부룩한 구레나룻을 쓰다듬으며 장기 쪽처럼 펼치어 놓은 담배통이랑 재떨이랑 내리어다 보았다.
“참 좋구먼. 조절했기에 더 빈틈없이 됐네 그려. 허허허.”
용천은 허리를 펴며 성칠을 마주 보았다.
“접대(이전에) 고함쳐 미안하이. 히야(형님), 허허허.”
성칠은 사람 좋게 허허 하고 마주 보며 웃었다.
“허, 사람이라고. 몇 해 갈라졌더니 좀스러워졌군 그려. 경상도 남도치답잖게.”
“그래? 잘 못했데이.”
바깥에서는 눈보라가 윙윙 세차게 휘몰아치어 통나무집 문을 모래알을 마구 쥐여 뿌리는 듯이 두드리었다.
성칠은 용천의 손을 굳게 잡았다.
“우리 장백산 밀림과 북만 유격대가 잘 합작해 여기서 일본 놈들을 소멸합세.”
말을 마치자 일어나려다가 그는 되앉더니 “용천이, 내 자네하구 꼭 할 말이 있네.”라고 하였다.
“뭔데?”
성칠은 정색해 말하였다.
“아우, 아우도 이젠 마흔이 넘었는데 결혼해야지.”
“전투를 앞두고 웬 결혼 말이제이? 누가 내 같은 빈 털털이한테 시집온대?”
성칠은 용천의 손을 잡아 쥐었다.
“내 여동생 진달래도 이젠 마흔 고개를 올리다 보네. 진달래하구 결혼하면 좋지 않은가?”
“아니, 아니, 무슨 농담하는 기오?”
“농담 아니야.”
용천은 등잔불을 빌어 성칠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한숨을 후 내쉬었다.
“우리 유격대는 언제나 목숨을 내 놓아야 할지 몰라. 진달래를 데리어다 무슨 고생시킬락꼬?”
성칠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한마디만 묻겠네. 내 누이 진달래 어때? 마음에 들어?”
용천도 정색해 대답하였다.
“진달래는 여중호걸인 기오.”
그러나 성칠의 눈치를 흘끔 보더니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안 돼, 말도 안 돼. 전투를 앞두고 무슨 결혼인감?”
성칠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럼 됐네. 아우와 여동생 중매는 성공했네. 허허허. 오늘 저녁에 말이 나온바 하곤 맺고 끊기요. 내 진달래를 데려 올 테니 오늘 저녁에 여기 묵게나.” 라고 하였다.
“이보라우, 히야, 어데 번개 불에 마른 소고기 구워 먹는 격을 할래요? 진달래 말도 받아 보지도 않고스리.”
용천도 따라 일어났다.
성칠은 용천을 마구 밀어 앉혀 놓고 신을 신으러 방바닥으로 내리어 갔다.
이때 문이 벌컥 열리었다.
최구철이 들어섰다.
“사돈어른, 진달래를 용천 대장께 주겠습둥?”
최구철은 사냥총을 벽에 걸면서 “내 밖에서 다 들었네. 세상 듣다 반가운 소식이네. 용천 대장은 훌륭한 사위 감이지. 다만 진달래 어쩌겠는지?” 라고 하였다.
“허허허, 근심맙소. 내 이미 전에 진달래와 말이 있었습니다. 내 가서 진달래를 데려 옵지. 전시인데 전시 번개식결혼식을 올리어 줍시다.”
성칠은 통쾌하게 웃더니 문 밖을 나섰다.
이윽고 성칠은 진달래를 데리고 집안에 들어섰다. 진달래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방바닥에 서 있었다.
구철은 “얘야, 이리 올라오너라. 넌 용천 대장께 시집가는 게 어떠냐?” 하고 물었다.
진달래는 오늘 밤 따라 수집은지 머리도 들지 못하며 외면하였다.
성칠은 앵돌아진 진달래를 보다가 “여자란 말하지 않으면 좋다는 말입니다. 이전에도 용천 대장한테 시집가겠다고 나한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라고 하며 진달래를 끌어다 구들에 올라와 용천과 나란히 앉히어 놓고 선포하였다.
“용천 대장과 진달래 중대장은 오늘부터 한 쌍의 혁명적인 부부로 됐음을 천하에 공포합니다. 사위 용천 대장은 가시아버지께 예를 올리게나.”
용천은 최구철에게 큰절을 올리었다.
“곱게 길러 주신 진달래와 잘 살겠어요. 감사해요.”
최구철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사위도 반자식이라고 몸조심하고 오래오래 금술 좋게 살게나.”
“예.”
용천이 앉으려는데 성칠은 “부부 맞절이오.” 하고 둘을 마주 세웠다.
용천과 진달래는 맞절을 올리었다.
성칠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결혼을 축하하네. 축배라도 한잔 드려야 하는데 전시라 별 수 없군. 그럼 둘이 잘 얘기하게나.” 라고 하였다.
용천은 송구스러워 엉덩이를 들며 “형님, 세상에 이렇게 마른 나무 꺾듯 하는 결혼도 있어?” 하고 중얼거리었다.
방바닥을 내리어 가는 성칠이 비틀거리었다.
등잔불 밑에서 비틀거리는 성칠의 너부죽한 뒤 잔등을 바라보며 진달래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니 어깨를 들먹이었다.
“이보게, 사돈, 내 할 말이 있네.”
최구철은 성칠을 따라 바깥으로 나오면서 자리를 비웠다.
성칠은 뒤따라 나온 최구철을 모시고 자기 통나무집으로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7. 개싸움

       장백산 지역으로 통하는 교통요새에 자리 잡은 영월구에 고약딱지기발이 펄럭이고 금방 기차에서 내린 수백 명 일본 놈들이 총칼을 번뜩이며 영월구를 짓밟는 군화 소리 어지럽게 요란하였다.
오토바이 한대가 달려와 영월구파출소 앞에 멈춰 섰다. 안경을 건 한철주 부련대장이 내려 우멍한 문을 번뜩거리었다. 마중 나온 영월구파출소 소장 등 경찰 놈들이 차렷하고 군례를 척 붙이었다.
한철주가 파출소 안으로 들어가기 바쁘게 모두들 일어나 군례를 척 붙이었다.
“한 련대장, 오셨소?”
한철주는 어안이 벙벙해 하였다.
(명천 림업파출소 야마모도 소장이 어찌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이때 뒤에서 류강철이 나오면서 소개했다.
“야마모도 대장입니다. 이번에 별동대 대장으로 왔습니다.”
그제야 한철주는 일일이 악수하였다.
“모두 멀리서 왔구먼. 야마모도 대장, 수고 많습니다. 아니, 수길 형님도 오고.”
강철은 옆에서 굽실거리면서 일일이 소개하였다.
“한 련대장, 수길 친구는 자위대 대대장을 하다가 이번엔 별동대 부대장으로 왔소.”
한철주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수길의 어깨를 툭툭 치었다.
“이전에 내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인데 잘 하게나.”
“충성을 다하겠소.”
모두들 인사를 끝마치고 자리에 앉자 영월구파출소 소장은 졸개들을 시켜 따뜻한 차물을 올리었다.
한철주는 일본 놈들의 앞잡이 본성을 잃지 않았다.
“야마모도 대장님,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여기서 함께 합동 작전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야마모도 대장은 발바리 상을 하는 한철주의 굽힌 잔등을 툭툭 치며 치하하였다.
“한 군은 일본에 유학까지 갔다 와서 일본 말을 스라스라(술술)하는구먼. 벼슬도 직상승하고. 허허허.”
한철주는 안경알을 춰올리며 헤벌쭉 웃어 보이었다.
“다 대일본제국에서 길러 준 덕분이죠.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야마모도 대장은 슬슬 개여 올리는 한철주가 좋았다. 그는 말 속에 말이 있는 말을 하였다.
“군의 가친은 유격대 계집의 돌멩이에 맞아 사망했소다. 정말 안 됐소.”
한철주는 숱한 사람들 앞에서 창피하기도 하고 악이 나 이를 뿌드득 갈았다.
“이번에 부친의 원수를 갚지 못하면 원시림에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그는 사무 상을 꽝 쳤다.
“난 원수를 갚자고 신경에서 스즈끼 국장님의 편지를 받고 동만에 나왔습니다. 김성칠, 최동욱, 김칠백 그리구 진달래 계집년을 잡아 죽이지 않고선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겠습니다.”
야마모도는 자기 격장법이 수가 든 것 같아 희죽이 웃으면서 지껄였다.
“이번에 원시림 유격대를 장백산 원시림에서 모조리, 깡그리 소멸해 버립시다.”
야마모도는 한철주에게 뭐라고 귀속 말을 하더니 수하 사람들을 다 내 보내고 둘이 딱 남았다. 한철주가 통역도 필요 없어 강철마저 내보냈다.
“한 부련대장, 조용히 작전을 연구합세.”
한철주는 차 컵을 들어 후후 불며 “먼저 대장님의 고견부터 들어 봅시다.”하고 슬쩍 피해버리었다.
야마모도 대장은 사양하지 않고 떠벌여댔다.
“한 부련대장도 알겠지만 장백산 지역 항일유격대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면서 유격전에 능하네. 우린 기동 영활한 이동작전으로 그 놈들의 유격전을 제압하면서 한 놈 한 놈, 한개 소 분대 씩 소멸해야 하오.”
그 말에 한철주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유격대 꽁무니나 따라 다녀서야 언제 유격대를 전멸시키겠습니까? 청산리나 봉오동 전투에서도 바로 그래서 토벌에 실패했습니다. 우린 우세한 병력으로 원시림 유격대를 포위 섬멸해야 합니다.”
젖내 나는 놈이 장교노라고 우쭐거리는 것이 눈에 거슬렸지만 야마모도는 억지로 꾹 참으면서 지껄이어댔다.
“이건 내 혼자 의견이 아니네. 스즈끼 국장께선 우리 별동대를 보내 밀림 속의 유격대를 기습해 진달래 년의 대가리를 베 오라고 했네. 우리 기습에 배합해 자네가 포위섬멸전을 하든 이동작전을 하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네. 알만한가?”
삼림이나 지키던 야마모도가 대부대작전도 모르면서 손가락질하는 것이 거슬리었지만 한철주는 큰 국면을 돌보기로 하고 침묵을 지키었다.
야마모도는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지껄였다.
“사실 이번에 자네한테 스즈끼 국장의 편지를 보내게 한 사람도 나일세. 자네도 알겠지만 전임 경찰국장 끼무라나 가친께서도 진달래 년을 어쩌지 못했네. 그런 고로 끼무라 국장은 할복해 죽고 자네 가친도 참살 당했네. 자네가 짜개바지를 입고 젖내를 풍기면서 달아 다닐 때부터 우린 의병과 항일유격대와 싸워 왔네. 유학이나 했다고 선배들의 가르침도 받지 않고 우리 대일본제국의 황군을 마음대로 지휘할 작정인가? 쓸 데 없는 자존심을 버리고 우린 잘 협동작전해야 하네.”
묵묵히 앉아 있는 철주를 보고 야마모도는 자기 말에 완전히 승복한 것으로 오해하고 바위 돌처럼 굳었던 얼굴이 좀 풀리었다.
“유격대를 기습하려면 정규군이 좀 필요하네. 내 데려온 별동대는 몇 달 밖에 훈련받지 못한 오합지졸들이네. 자네 관동정규군에서 한개 소대쯤 떼 주게나.”
한철주는 더는 물러 설 데 없게 되자 반발하였다.
“그게 어디 아이들 장난입니까? 상부의 허락을 맡아야 합니다. 군법이 무섭지 않습니까?”
야마모도 대장은 얼리고 닥치기 시작하였다.
“하하, 금방 말했는데도, 황군 앞에서 마구 헤덤비는가? 저 오합지졸들을 가지고 어떻게 백전백승하는 밀림 유격대를 소멸한단 말인가? 큰 국면을 생각하게나. 황차 세상 사람이 모르게 유격대 두목들의 머리를 베자마자 정규군에 돌려주면 그만이네.”
머리를 숙이고 궁리하는 한철주를 보고 야마모도는 가련한 표정도 지어 보이었다.
“이번에 진달래 대가릴 떼 가지 못하는 날엔 자네나 내나 몽땅 자기 대가리를 쳐 가지고 가야 돼.스즈끼 국장도 목이 날아 나고. 어떤가? 떼 주지?”
그제야 한철주는 머리를 들고 속으로 이 일본 영감태기 유격대에 겁을 먹기도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비밀을 지키겠습니까?”
그러자 야마모도는 한철주에게 다가앉으면서 “암, 여부가 있겠는가?”하고 반색하였다.
“그럼 한개 소대를 대장께 드리죠. 꼭 감쪽같이 기습해 진달래 년의 대가릴 떼 오십시오.”
야마모도는 한철주의 어깨를 툭툭 치며 호언장담하였다.
“우린 박응세와 가메다를 통해 진달래의 통나무집이 밀림 속 어데 있는 것까지 다 손금 보듯 하네. 꼭 자네 아버지 원수를 갚아 주지.”
뒤이어 그들 둘은 오래도록 꿍꿍이를 꾸미었다…
이튿날 눈보라를 무릅쓰고 별동대 놈들은 먼저 떠나고 관동군은 휴식정돈한 후 둬 시간 후에 떠났다.
별동대가 해질 녘에 영월구에서도 한 50여리 떨어진 안보촌 뒤 산골짜기에 이르렀을 때다. 별동대 일본 군 소대는 아무 군소리 없는데 조선인 소대에서 쑤군거리는 소리가 들리었다.
야마모도는 수길에게 “저 자들이 왜 떠드는 거요?” 하고 물었다.
수길은 다가와 “저 놈들이 맥이 없다면서 산골짜기 아래 마을에 들어가 한잠 푹 자구 갔으면 좋겠답디다.” 하고 대답하였다.
류강철이 통역해주자 야마모도는 발을 탕 굴렀다.
“정신 나간 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산세가 험한 걸 봐라. 여긴 분명 유격대가 출몰할 수 있는 산골짜기야. 흥!"
그때 영월구파출소 소장이 끼어들었다. 
"이전에도 지게군과 십가장까지 척살당했습니다."
그 말에 야마모도는 더럭 겁나 더 고집썼다.
"계속 전진해야 돼!”
통역을 듣자 수길은 뒷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정말 지쳐서 이젠 모두 가지 못하겠답니다.”
야마모도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지형을 둘러보다가 산골짜기 아래쪽을 가리키었다.
“저기 시야가 넓게 트인 벌판에 가서 논두렁 밑에 누워 자자.”
그 말에 수길은 기 번지어질 지경이었다.
“환히 드러난 곳에서 자다가 유격대 습격을 받자고?”
그러나 야마모도는 고집하였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들, 눈이 덮인 벌판에서 자면 적어도 유격대들이 접근하는 걸 멀리서두 발견할 수 있어. 허나 이런데서 자다간 유격대가 와서 목을 다 베가도 모를 거 아냐?”
수길은 듣고 보니 그럴 법해 수긍하고 말았다. 관동군 소대장도 쉰다는 말에 따라 나섰다.
여기저기에서 “벌판에서 자다가 유격대 총알받이 되겠다.”라고 하는지 뭔지 별 말이 다 들리었다.
야마모도는 권총을 빼들고 “내 명령에 복종해! 복종하지 않는 놈은 당장 총살할 테야!”하고 호통 쳤다.
땅!
산골짜기에서 야무진 총소리가 메아리치었다. 총소리와 함께 제일 뒤에서 걷던 놈이 눈 위에 푹 꼬꾸라졌다.
놈들은 질겁해 부들부들 떨며 야마모도의 권총을 힐끔거리며 산 아래로 뒷걸음질 쳤다. 처음에 적들은 야마모도 대장이 겁을 주느라고 뒤떨어진 자를 쐈나 여기고 계속 앞으로 빨리 걸음을 재우쳤다.
땅! 땅!
총소리와 함께 또 뒤꽁무니에서 뒤따르던 두 놈이 푹푹 쓰러지었다. 그제야 야마모도대장이 총을 뽑아 들었지만 총을 쏘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다.
“유격대!”
“엎드렷!”
야마모도 대장의 아우성소리를 듣고 적들은 제각기 흩어져 아우성치며 눈 우에 쓰러지듯이 엎드리어 맞불질하였다.
원래 밀림에서 미리 내려 매복 진을 치고 있던 유격대는 인삼 중대장의 지휘아래 놈들에게 선제공격을 들이댔던 것이다.
야마모도는 저지러진 총소리를 듣고 고함쳤다.
“유격대 소 분대야! 겁먹지 말고 사격하라!”
관동군 놈들은 사격해댔지만 별동대 놈들은 눈 속에 대가리를 파묻고 까딱하지 않았다. 유격대 사격도 뜸해졌다. 야마모도는 코 수염을 씰룩거리며 유격대가 사격하는 산꼭대기를 쏘아보았다. 눈보라 속에 사격하는 불빛이 몇 가닥 보이지 않았다.
야마모도는 군도를 뽑아 들고 산꼭대기를 향해 휘두르면서 고함쳤다.
“돌격!”
적들은 단말마적으로 산꼭대기를 향해 돌격해 올라갔다. 관동군 놈들은 날창을 번뜩이며 산중턱에까지 덮치어 갔다. 그러나 별동대 놈들은 수길의 지휘아래 겨우 산비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저런 등신들 데리고 어떻게 신출귀몰하는 유격대를 기습하겠는가?”
야마모도는 중얼거리다가 “아차, 잘 못될 번했어.”라고 중얼거리더니 “벌판으로 철퇴하라!”하고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산중턱에까지 겨우 기여 올라 온 수길은 헐레벌떡거리며 의아해 하였다.
“넌 지휘관 감이 아니야.”
“예?”
수길은 뒷덜미를 긁적거리며 의아해 하였다.
“우리 별동대 여기서싸우는 게 아냐! 장백산유격대 두목 진달래년을 잡아야 해! 백 놈을 놓치더라도 그 년만 잡으면 돼!”
그제야 수길은 “에, 알 거 같습니다.”하고 야마모도를 뒤따라 벌판으로 내리어 갔다.
졸개들도 눈먼 총질을 하면서 벌판으로 달아났다.
땅! 땅! 땅 땅 땅 땅!
적들이 퇴각할 때었다. 또 산꼭대기에서 또 유격대원들이 맹렬히 사격하였다. 몇몇 놈들이 또 쓰러지었다.
“수길 부대장, 유격대 꼬임 수에 걸리어 들지 말고 빨리 조선별동대를 데리고 벌판에 철거하라.”
“예. 정말 야마모도 대장 짐작 대롭니다.”
적들은 눈 우에 뻘건 피와 함께 여러 놈의 더러운 시체를 남기고 피가 질벅한 눈을 밟으면서 벌판으로 꼬리 빳빳해 도망치어 내려갔다. 유격대는 야마모도 대장이 짐작한대로 더 추격하지 않았다.
“이젠 살았구나.”
수길의 말에 야마모도는 군복웃옷 단추를 벗기고 헐떡거리며 지껄었다.
“내가 뭐라던가? 벌판에 내려와야 산다는데. 저 놈들이 벌판에까지 감히 내리어오기만 해보라지!”
“에- 정말 대장님 고명합니다. 고명해!”
“이럴 줄 알고 한 련대장과 어제 작전을 짜 놓았네. 산에서 유격대만 만나면 우리 별동대에서 그 놈들을 유인해 벌판에 끌어 내오면 한 련대장네 관동군 대부대가 포위섬멸해 버리기로 했네.”
“그런데 저 놈들이 꼬임 수에 들어야겠는데.”
“두구 보게. 아무 때나 우리 함정에 빠지지 않는가?”
“그런데 놈들을 유인하는 미끼로 된 우리 위험하겠는데.”
“닥쳐! 재수 없는 말 말라!”
“옛!”
“전투대형으로 논두렁에 의지해 매복해 자고 있으라.”
“여기서 잔다고? 미끼로 써도 너무 하잖습니까?”
곤해 빠진 별동대 놈들은 눈 우에 털썩털썩 쓰러지었다.
수길이 여기저기 힐끔거리며 두덜거릴 때었다.
땅! 땅! 땅 땅 땅!
마을 쪽에서 총소리가 요란히 울리었다.
“일제 놈들의 대갈통을 까 부셔라!”
“쐇!”
금방 눈 우에서 일어난 몇몇 놈들이 비명소리를 지르며 눈우에 푹푹 꼬꾸라지었다.
“유격대다! 쏴!”
수길이 고함쳤다.
야마모도도 “사격!”하고 고함치었다.
“개새끼들 덤벼라!”
      별동대 조선인놈들은 조선말로 고함치며 일제히 눈보라 치는 마을 쪽에 대고 사격하였다.
숱한 불줄기가 마을로 날아갔다. 웬 일인지 마을 쪽에서 총소리가 뜸해지었다. 기실 그때 인삼 중대장의 지휘대로 유격대는 벌판의 놈들에게 사격한 후 마을에 금방 들어선 동북쪽의 적에게 돌려 대고 몰 사격을 하였다. 그들은 별동대와 관공군을 서로 맞불질하게 개싸움을 붙여놓고 서북쪽 산골짜기로 신출귀몰했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마을에 들어선 관동군은 자기들에게 사격하는 벌판의 별동대를 유격대로 오해하고 맹사격을 퍼부었다.
한철주는 웬 초가집 구새 목에 숨어 군도를 뽑아 들고 벌판을 향해 휘둘렀다.
“유격대다! 사격!”
한철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관동군은 벌판의 별동대에게 몰 사격을 가하였다.
유격대는 마을에 갓 들어선 관동군과 벌판의 별동대를 개싸움을 시켜 놓고 살짝 빠져 전이하였던 것이다. 관동군과 별동대는 한식경이나 왝왝 고함치며 싸웠다.
한참 후에야 서로 일본 말로 왝왝 고함치는 소리를 듣고 사격을 멈추었다.
한철주가 둘러보니 눈보로 치는 마을의 눈 덮인 길바닥 여기저기에 숱한 더러운 시체가 나뒹구는 것이었다.
“제길 할, 속았군, 속았어! 유격대 놈들에게 속았단 말이야!”
야마모도는 그때까지도 몰랐든지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올라 군도를 빼든 채 마을 쪽을 쏘아 보며 고함치었다.
“사격!”
수길이 다급히 손사래 치며 말리었다.
“야마모도 대장, 저쪽은 한 련대장네 부댄 거 같습니다. 사격을 멈춥시다.”
야마모도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사격!”
일본 놈들은 한 련대장의 일본군을 향해 계속 사격하였다.
저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리었다.
“사격을 멈추십시오. 야마모도 대장!”
“한 련대장 부댄가?”
“예!”
그제야 야마모도는 군도를 논두렁에 내리꽂으며 짚고 서더니 황급히 명령했다.
“사격을 멈췃!”
별동대 놈들이 여기저기서 두덜거렸다.
“제길 할, 유격대 놈들에게 놀아났군."
"온 밤 개싸움을 했군!”
야마모도는 군도로 눈 덮인 논바닥을 쿡쿡 찍으면서 성이나 씩씩거리었다.
맞은편에서 한철주도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허허 벌판에서는 피비린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공포가 어둠 속에서 승냥이처럼 마을로 슬금슬금 기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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