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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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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8)
2016년 12월 13일 10시 55분  조회:1791  추천:0  작성자: 김장혁




               7. 급변하는 세상

어느 날 기준과 창준은 웃새집 사랑 앞에서 전염병이 돌게 된 일을 두고 두런두런 말을 주고받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사랑간 앞에 땔나무무지와 짚무지를 꽉 쌓아 놓은 게 문젠 거 같다. 해볕이 잘 들지 않아 습해서 전염병이 돈 거 같아. 원래 우사간 자리지. 땅굴 같은 사랑간에 썩은 냄새 심해 사람이 붙어살긴 틀렸다.”
창준의 말에 기준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런 거 같소. 올해 또 토성 안 집 동쪽으루 해서 집을 하나 지어야겠소.”
 기실 전염병은 일제 731부대 놈들이 만주에 생물화학전염병균이 묻은 쥐랑 널어놓은 때문이였다. 그러나 기준 형제는 당시 사실 진상을 알 길이 없었다.  
창준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춘실의 집과 앞뒤 집에서 살기 신물이 나지 않니?”
그러나 기준은 고집을 썼다.
“한집 건너 사는데 괜찮소. 춘실도 전주에서 이사해 온 흥수한테 시집간다오.”
“헌 신짝도 짝이 있다고 애까지 가만히 낳은 춘실을 데려 가는 사람도 있구먼. 한 마을에서 빤히 알면서도 말이야. 허허허"
기준은 목소리를 낮췄다.
“흥수는 조선 전주에서 갓 이사 와서 잘 알지 못할 수도 있소. 상순이 중매를 서주었답데. 가만히 보면 춘실은 새금보다는 훨씬 사리에 밝은 앤 거 같소. 상순의 애까지 낳을 줄 알았더라면 … 에이, 이제 이런 말 해 뭘 하겠소?”
집 안에서 그들이 주고 받는 말을 들은 상순과 명옥은 각기 다른 생각을 하였다. 상순은 뒤늦게 후회하는 아버지가 한스러웠고 명옥은 춘실을 며느리로 삼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에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명옥은 스스로 마음을 눅잦히었다.
몇 달 후 고양이 쥐를 생각한다고 할가. 지학사는 제일 먼저 상순이네 집에 전기 줄을 늘여주자고 전공을 데리고 왔다.
한참 후, 지학사는 개화장을 짚고 스위치를 잘깍잘깍 켰다 껐다 하면서 잔뜩 늘여놓았다.
“이걸 보오. 오늘부터 환한 전등불 밑에서 살게 됐구먼. 내 말만 잘 듣소. 복이 넝쿨 채로 떨어질 게요.”
상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낮게 늘인 전기 줄을 두루 살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기네 집을 생각해 전기를 놓을 지학사가 아니라고 생각됐다. 하여 미심찍어 여기저기 살피어 보지 않으면 안됐다.
한때 지학사는 전기를 놔 주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의 인심을 얻었다. 사람들은 코 구멍이 새까맣게 기름등잔불을 켜지 않고 환한 전등불을 볼 수 있어 좋다고들 하였다.
그 기회를 타서 지학사는 개화장을 휘두르며 돌아다니면서 선동하였다.
“보오. 대일본제국은 조선에서 온 당신들을 2등 공민들로 대우해 주고 이 땅에서 보호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고 있소. 난  3등공민이란 말이오. 내 촌장을 하면서 집집이 돌아다니면서 협화회에 들게 했기에 당신들은 다신 토벌 받지 않고 편안히 살게 되지 않았소?”
상순은 지학사가 일본 놈이 놓아 준 전기를 이용해 백성들을 농락하는 것이 눈꼴 사나왔다.
어느 하루, 명옥은 재물에 삼은 빨래를 한 함지나 이고 강변에 가서 씻어 이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는 한 함지나 되는 빨래를 어디에 널까 두리번거리다가 울바자에 널었다. 나머지 옷을 물을 툭툭 털어 전기 줄에 훌 걸었다.
“앗!”
순간 명옥은 전기 줄에 붙어 온 몸이 마구 오그라들며 목을 조이는 것 같아 짹 소리도 치지 못하였다.
때마침 상순이 집에서 나오다가 문 옆에 있던 괭이를 쥐고 달려가 전기 줄을 탁 내리쳤다. 전기 줄이 툭 끊어지면서 명옥이 전기 줄을 쥔 채 땅바닥에 퉁 떨어지었다. 땅바닥에서도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의연히 풀떡풀떡 뛰는 것이었다.
이때 숱한 사람들이 달리어 와서 구경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당황해 난 상순은 괭이로 전기 줄을 탁, 탁 찍어 끊어 버리고 명옥을 전기 줄에서 떼 냈다.
명옥은 그때까지도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숨을 할딱거리었다. 상순은 명옥을 업어 집안에 들어가 구들에 눕히고 손을 주물러 주었다.
한참 후에야 명옥은 눈을 스르르 뜨고 상순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여보, 살았구만. 우리 다신 저 놈의 전기를 쓰지 말기요.”
명옥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다시 눈을 스르르 감는 것이었다.
기준은 며느리를 들여다보다가 상순을 보고 소리쳤다.
“그 놈 전기 줄을 다 끊어 버리어라. 이제껏 전기라는 걸 모르고서도 살았어.”
상순이 나가자 기준이도 도끼를 들고 나가  전기 줄을 마구 찍어 끊어 버렸다.
그는 끊어난 전기 줄을 들고 보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고함쳤다.
“이 걸 보오. 이렇게 껍질도 없는 전기 줄을 늘여 놓으니 전기에 붙지 않을 수 있소?”
모두들 껍질이 없는 전기 줄을 보면서 공포에 떨었다.
“우리두 전기 줄을 다 끊어 버려야겠소.”
지군선의 말에 영범도 말하였다.
“그 놈 전기를 쓰다가 사람을 잡아먹겠소.”
마을 사람들은 왁작 떠들더니 돌아가 전기 줄을 마구 끊어 버렸다.
지학사는 전기로 마을 인심을 얻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욕을 더 먹고 미움 깨를 사게 되었다.
지학사는 기준을 찾아 와서 명옥을 문안하는 척 하였다.
“전기를 쓸 줄 모르면 사고가 난다오.”
기준은 지학사를 흘겨 보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대체 무슨 심보요? 자넨 토성 안 집으로 들어가는 전기 줄은 몽땅 고무껍질이 있는 전기 줄을 늘였더구먼. 그런데 왜 우리 집과 몇 집에는 껍질이 없는 전기 줄을 늘였는가? 전기에 붙어 죽으라는 게 아니고 뭔가?”
지학사는 능청을 떨었다.
“환한데서 살라고 도와 줬는데 욕 하냐? 이거 정말 억울해 못 살겠다.”
기준은 주먹으로 구들을 퉁 치며 고함치었다.
“지 촌장, 가랑잎으로 제 눈을 가리우구 야옹 하지 말게! 내 용정에 가 정미소랑 두루 돌아보아 아오. 저렇게 껍질이 없는 전기 줄을 늘인 거 보지도 못했네. 자네 정말 껍질이 없으면 위험하다는 걸 몰랐는가?”
"어, 어, 어,"
이때 바깥에서 요염하게 치장한 일본 첩이 들어와 손마선질을 했다. 소문에는 지학사 첩이 벙어리라고 했다. 그러나 기실 지학사가 첩이 일본 녀성이라는 걸 속이려고 벙어리 시늉을 하게 했던 것이다.
때마침 첩이 와서 지학사는 떠들겠으면 떠들라고 개화장을 짚고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횡 하니 집에서 나가 버리었다.
해질 녘에야 명옥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기준은 눈을 뜨더니 겨우 일어나 앉는 며느리를 보고 한숨을 후 내쉬었다.
(얼마나 효성이 지극한 막내며느린데. 하마터면 잃을 번 했구나.)
기준은 막내며느리를 막내아들에게 맡기어 놓고 바깥으로 나갔다. 전날에 그는 아버지 말씀에 따라 창준형님이랑 김범호 매부랑 전기정미소를 짓자고 토론했는데 다시 토론하러 갔다.
병완은 창준과 범호를 데리고 토성 서쪽에서 한창 석마간 터를 돌아보고 있었다.
병완은 기준까지 다 온 것을 보자 오래동안 해온 속궁리를 말했다.
“정미소를 토성 서쪽 여기에 짓는 게 좋겠다."
기준은 널찍한 공터를 둘러보면서 뒷근심을 말했다.
“정미소는 좀 있다가 짓는게 어떻습둥? 쥐새끼 같은 지 촌장이 또 무슨 심술을 부릴지 모르겠습구마."
"어째?"
병완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기준은 금방 있은 일을 쭉 이야기 했다.
"하마트면 막내며느리를 죽일번 했습구마.”
범호는 개의치 않았다.
“쉬파리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하겠소? 정미소 옆에 보초를 설 방두 하나 붙여 짓기오. 우리 세 집에서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기요.”
병완은 찬동했다.
“옳다. 보초를 서면 그 놈인들 어쩌겠니? 그리고 정미소 전기 줄은 좀 실하고 껍질이 있는 걸로 늘이자. 그럼 합선되거나 불이 나거나 사람이 붙는 일은 생기지 않겠지 뭐. 용정에 가서 정미소를 보지 않았느냐? 어떻게 지으면 되겠는지.”
이렇게 되여 그들 삼부자는 함흥촌 복판에 전기로 매돌을 돌리는 정미소를 짓기로 의견을 모았다.
몇 달 후 정미소를 짓자 지 촌장의 관할하에 있는 전기를 써야 되었다. 기준은 지학사에게 허리를 굽히기 싫어 석마간을 짓는 일을 좀 미루자고 했다. 그러나 병완은 잠시 낮은 문턱에 머리를 숙이고 정미소를 지으면 마을 사람들이 절구 공이를 버리고 전기석마에 쌀을 찧어 먹으면 편리할 것이며 마을 사람들의 인심을 지학사에게서 이쪽으로 끌어 올 수 있다고 극구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기준과 창준은 자기 고집을 죽이고 정미소를 짓는데 발 벗고 나섰던 것이다.
상순은 며칠째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장학산과 조덕림 같은 중국 지주들이 한통속이 되어 국민당 군을 도와 나서는데 이상하고 궁금하였다.
(대체 국민당은 무슨 일을 하는 당이기에 지주들이 몽땅 그쪽 편일까? 성칠 큰아버지한테 물어보면 좋겠는데 북만으로 간 다음에는 어데 갔는지 찾아 갈 수두 없지 않은가?)
어느 하루 동산에 눈썹달이 떠서 바르르 떨고 있었다.
상순은 장학산과 조덕림이네 집에 가만히 가서 뭔가 알아내고 싶었다.
(옳다, 이 놈들이 뭘 하는지 염탐해 봐야지. 보아하니 장학산은 조덕림이네 동생 조덕산 단장 수하에 노는 거 같아. 조덕림네 집에 가 며칠 엿듣노라면 뭔가 알아 낼 수 있겠지.)
그가 어둠 속을 헤집고 아름드리 버드나무와 비술나무가 꽉 들어선 나무숲을 지나 조개덕으로 갈 때다.
느닷없이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었다. 깜짝 놀란 상순은 아름드리나무 뒤에 숨었다. 어둠 속에서 총을 멘 숱한 사람들이 말을 타고 조덕림의 토성 안 집 쪽으로 달리어 가는 것이 어슴푸레 보였다.
그가 토성 밖으로 에돌아 대문 가까이에 살금살금 다가가 보니 웬 놈들이 총을 쥐고 왔다 갔다 하면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토성 대문 안에 들어간다는 건 말두 안 돼.)
그는 토성을 쳐다보다가 토성 우에까지 뻗친 비술나무를 보고 꾀가 생겼다. 그는 토성 안 집안이 들여다 보일만한 아름드리비술나무에 원숭이처럼 바라 올라갔다. 그는 나무 가지에 다리를 걸고 앉아 전등불이 환한 토성 안을 들여다 보았다. 토성 안에는 놀라운 정경이 펼쳐지었다. 숱한 총을 멘 무장괴한들이 문마다 삼엄하게 지키고 있고 몇몇 머슴들이 한창 말을 풀어 마구간에 들이 매고 말먹이를 주고 있었다.
대낮같이 환하게 전등불을 켠 집안을 들여다보니 활짝 열어 재낀 창문 옆에 차린 술상 상좌에 낯모를 괴한이 앉아 있고 조덕림과 장학산 외에 놀랍게도 지학사도 앉아 술을 마시면서 떠들썩하고 있었다.
상좌에 앉은 나비 코수염쟁이가 한창 연설을 하고 있었다.
“일본 놈들은 오래지 않아 망하게 됐소. 일본 놈들은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 패배를 당했는데 소련도 독일을 전승한 후 총부리를 동쪽에 돌려대고 이미 일본과 전쟁선언을 했소. 관내에서도 국민당과 공산당이 합작해 일본 놈들을 호되게 족쳐 오래지 않아 항일전쟁은 승리하게 됐소. 우리 중국 사람들을 짓밟던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우리 중국 사람들은 당장 나라의 주인으로 될 것이오.”
장학산은 술잔을 들고 환호하였다.
“항전승리를 미리 축하해 한잔 마시기오.”
조덕림과 지학사도 술잔을 굽 냈다.
(동생? 그럼 저 자는 신경 부근에 있다던 조덕산이 아닌가?)
상순은 귀를 도사리고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계속 엿들었다.
허나 조덕산만은 술잔을 들지 않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항일전쟁이 이제 곧 승리한다고 해서 시름놓을 게 아니요. 지금 공산당군은 토지를 우리 지주들에게서 빼앗아 가난뱅이들에게 나눠 주면서 인심을 얻고 있소. 그들은 가난뱅이들을 영도해 우리 지주들을 청산하고 총살하고 있소. 일본 놈들을 몰아낸 후 그들은 가난뱅이들로 이른바 인민무장역량을 키워 우리 국민당 군과 천하를 다투려고 하오. 천하가 빨갱이들의 손에 들어가면 우리 지주들은 몽땅 총살당하고 조상들의 산소마저 건사하지 못하게 될 거요. 밭이랑 집이랑 몽땅 가난뱅이들에게 빼앗기게 돼 죽어도 묻힐 곳이 없게 될 거요.”
“그렇게 돼선 절대 안 되지.”
“빨갱이들을 용서할 수 없어!”
지학사와 장학산이 팔을 걷으며 고함치었다.
조덕산은 주먹을 불끈 쥐더니 술상을 탕 치면서 떠들었다.
“동만에서는 빨갱이들의 영도 밑에 있는 저 조선 가난뱅이들 유격대가 큰 후환이오. 이제 일본 놈들을 몰아내면 그 놈들은 가난뱅이들을 영도해 인민 정권과 무장 대오를 건립해 우리 한족지주들의 땅을 빼앗아 조선 가난뱅이들에게 나눠 주고 우리 한족 지주들을 청산하고 총살할 거오.”
“안될 소릴!”
“조선 빨갱이를 절대 놔 둘 수 없소.”
지학사는 권총까지 내들면서 떠들었다.
“아예 오늘 밤으로 함흥촌 기준이랑 상순이랑 그 놈들부터 없애 치우기요. 이 마을에서 그 놈들을 꺾자고 내 얼마나 애를 썼소? 소구유에 양 재물을 치기도 하고 껍질이 없는 전기 줄을 그 놈들의 집에 늘였소. 그런데 죽으라는 상순이나 기준 놈은 전기에 붙지 않고 아낙네가 떡 붙어 죽을 번 했소. 그런데 웬 일인지 번마다 그 놈들 부자가 썩어지지 않고 화를 피한단 말이오.”
상순은 그 소리를 듣고 모든 사건 진상을 알게 되었다.
(원래 모두 네놈이 한 짓이구나.)
이때 조덕산이 손사래를 치었다.
“로형, 건 모르는 소리요. 아직 항일 전쟁이 승리하지 못한 형편에서 일본 놈들과 싸우지 않고 먼저 공산당 유격대부터 죽이면 안 되오. 섣불리 풀을 건드려 뱀을 놀래지 마오. 모든 건 항전이 승리한 후 손을 써야 하오. 지금은 누가 빨갱인가를 잘 정찰해 둬야 하오. 우선 우리는 몰래 우리 무장대오를 건립해 둬야 한단 말이오.”
조덕산은 주위를 둘러보며 의아해 물었다.
“상순이랑 공산당원인가?”
장학산이 대답했다. 
“아직 공산당에 든 거 같잖소. 내 어떻게 하나 우리 쪽에 끌어당겨오겠소.”
조덕산은 가재수염을 슬슬 어루만지면서 무슨 궁리를 하더니 입을 열었다.
“옳소. 상순과 같은 청년우두머리는 죽이기보다 우리 손아귀에 넣는 게 좋소. 좋기는 장형이 양아들 인삼을 우리 쪽에 끌어오면 좋겠는데. 동만에서 우리 국민당 군을 널리 확충하려면 우리 한족 지주들과 위만 경찰들만 의거해서는 안 되오. 한족 가난뱅이들과 조선 지주 그리고 조선 가난뱅이들도 될수록 우리 쪽에 끌어 들이어야 하오. 만약 이 마을의 상순이랑 계속 우리 대오에 들어오지 않고 공산당 빨갱이들을 따라 가려고만 하면 그때에는 가차 없이 목을 쳐버려야 하오. 허나 손을 쓸 시간은 명확하오. 항일 전쟁의 총소리가 멎자마자 일거에 손을 쓴단 말이요.”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었다.
조덕산은 술잔을 들었다.
“자, 한잔 들고 말하기요.”
넷은 술을 쭉 들었다.
조덕산은 안주를 저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고 쩍쩍 씹다가 가재수염을 손수건으로 쓱 닦더니 계속 말하였다.
“당면에는 중국 지주들로부터 중국 가난뱅이들까지 우리 주위에 뭉치게 하오. 이 부근 패랑천촌, 조개덕, 소서구 일대 손호표, 제지주, 왕지주를 몽땅 국민당 군에 들게 하오. 그자들이 빨갱이들과 조선 가난뱅이들에게 우리 재산을 빼앗기지 말도록 보호해야 하오. 생각해 보오. 조선 가난뱅이들이 조선에서 들어와 우리 조상들이 물려 준 땅을 빼앗아 가면 되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고함쳤다.
“절대 용서할 수 없소.”
지학사는 뒷근심을 털어놓았다.
“아예 난 촌장을 그만 둘가 하오. 괜히 일본 개다리라고 중국 사람들한테나 조선 가난뱅이들한테 맞아 죽지 않을까?”
그러자 조덕산은 손사래를 치었다.
“아니오. 노형, 잠시 일본 놈들의 일을 하는 게 필요하오. 일본 놈들이 도망칠 때 기회를 봐서 우린 일본 놈들의 무장을 빼앗아 우리 대오를 무장시켜야 하오. 지 촌장과 장형은 해동분주소의 지학구 소장을 설복해 해동분주소와 진수해파출소 안에서도 우리 사람을 발전시켜야 하오. 진수해 일대 중국 지주들과 가난뱅이들을 우리 대오에 보내게 하오. 누가 자기 아래에 어느 만큼 사람을 확충하는가를 보고 난 그에게 군직을 줄 예산이오.”
모두들 권세욕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지학사가 대뜸 앞질러 나섰다.
 “난 가병을 몽땅 조 단장에게 내놓겠소. 손호표 지주와 제 지주를 설복해 가병을 데리고 우리 국민당 군에 들어오게 하겠소.”
“좋소. 노형은 패장쯤은 될 수 있소.”
조덕림은 조덕산을 보고 바투 들이댔다.
“동생, 난 여기 온 지형이나 장형을 데려 왔으니 무슨 직을 주겠나?”
조덕산은 저가락으로 밥상을  탕 쳤다.
“야따, 형님!  급을 따지지 마오! 여러분, 우리 국민당 군을 확충하는데 전력하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위엄있게 늘여놓았다. 
"동만에서 삼도만 전흥 소교, 천교령, 묘령, 천교령, 라자구, 녕안 일대 마희산 무리들 속에서 우리 군은 대오확충과 무기 장만에 손쓰고 있소. 목단강과 할빈 일대에서도 우리 국민당군은 대오를 확충하고 공산당 빨갱이들과 싸울 준비를 다그치고 있소. 장개석 위원장님의 명령에 따라 이제 몇 백만 국민당 정규군이 동북에 들어 올 것이오. 이 광활한 동북 땅을 공산당에 두 손을 들어 내 줄 순 없지 않소. 우린 천만대군을 가진 국민당군의 영도아래 동만 각지의 무장대오와 손을 잡고 일본 놈들과 공산당군을 이 땅에서 몰아내면 우리 세상에서 부유하게 살게 될 게요. 그 날이 오면 이 땅도 나라도 몽땅 우리 거요! 그때면 모든 게 노형들 게 아니겠소?"
모두들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술잔을 들었다.
상순은 그 자들이 술상을 파하고 집으로 돌아 갈 때까지 나무 우에서 듣다가 살금살금 내려 왔다. 그런데 나무 가지 우에 너무 오래 다리를 끼고 도정신해 놈들의 말을 듣다나니 다리가 저리어 겨우 나무 우에서 내려왔다.
(이 긴급정황을 유격대에 알려야 하는데.)
그는 사위를 둘러보며 아름드리나무숲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8.친일 부자 집을 습격

상순은 큰아버지가 북만으로 갔다는 것을 알뿐 구체 지점을 몰라 속을 끙끙 앓고 있었다.
어느 하루 마을에 갓 이사해 온 이계삼이란 한족중년사나이가 그를 찾았다. 상순은 훤칠하게 생긴 이계삼을 따라 태평강가 버드나무숲 속으로 갔다.
이계삼은 희죽이 웃으면서 말했다. 
“상순이, 내 이 마을에 이사해 와 보니 자넨 정말 능력도 있고 전도가 유망한 청년이오.”
상순은 뒷덜미를 긁적거리다가 경각성을 높여 이계삼의 뒷말을 기다렸다.
“상순이, 믿고 하는 말이오. 자네 큰아버지한테서 자네 말을 많이 들었소. 성칠 대장은 우리가 함흥촌에 가게 되면 자네를 많이 도와주라고 하더구먼.”
“예- 그럼…”
이때 함흥촌 동북쪽 골 안에 있는 동구마을의 조선 중년사나이 허영주가 스적스적 다가오기에 상순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괜찮네. 우린 조선의용군 3지대에서 온 전우들인데 모두 자네 큰아버지와 전우요.”
이계삼은 품속에서 편지 한통을 꺼내 상순에게 건네주었다.
“김성칠 대장의 편지오.”
상순은 천자문과 조선 글을 최구장의 서당 방에세 배운 후 상길 형에게서도 짬짬이 배웠기에 한자와 조선어를 섞어 쓴 편지를 읽을 수 있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상순아, 일가 모두 있느냐? 후어머니가 세상을 떴다는데도 보지 못해 미안하구나. 네가 대신 한가위 날에 벌초도 드려라. 이번엔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지 말라. 할아버진 이젠 연세가 계시는데다가 할아버지와 같은 웃어른을 지하들의 묘소에 벌초나 가토를 다니게 하는 우리 조선 사람의 여절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아마 장백산 기슭에 가서 열사들의 묘지를 찾아 봐야 같다.
이계삼과 허영주 동지는 북만에서 만난 조선의용군 3지대 혁명 전우들이다. 우린 북만에서 일제 놈들과 피어린 각축전을 벌리고 있다. 그때부터 아는 혁명적 동지이고 중국 공산당 지하당원들이다. 그들의 영도아래 마을 사람들과 청년들을 묶어 세워 일제와 주구, 악질지주들과 투쟁해라. 우리는 오래지 않아 일제를 몰아내고 광복을 맞게 됐다. 땅의 주인으로 날이 멀지 않았다. 그러나 항일 전쟁이 승리해도 혁명이 끝난 것이 아니다. 악질지주들은 국민당을 등에 업고 우리 가난한 사람들이 땅의 주인이 되는 것을 막고 계속 인민들을 압박착취하려고 한다. 우리가 진정 땅의 주인이 되려면 국민당 반동파와 악질지주들까지 타도하고 인민정권을 세우고 놈들을 청산해 집과 땅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 주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 나라의 주인으로 되는 것이다.
이계삼 동지와 허영주 동지를 받들어 일해. 할아버지께는 따로 편지를 이계삼 동지를 보고 전해 드리게 하겠다.
 
         큰아버지 김성칠
                                       1945 5 15 북만에서
상순은 단숨에 편지를 두 번이나 읽어보고 품속에 깊이 간직한 후 머리를 들어 이계삼과 허영주를 번갈아 보았다.
이계삼은 상순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상순동무, 우리 당 조직에서는 동무를 믿소.”
“고맙습니다. 믿어 줘서. 무슨 일이든지 시키십시오. 목숨을 내 걸구 일본 놈들과 개다리놈들과 싸우겠습니다.”
허영주도 상순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민병들을 묶어 세워 일본 놈들과 개다리지주들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해야 하오.”
“예. 알았습니다. 이미 20여명을 조직해 놓았습구마. 군사훈련도 시키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포치하십시오. 민병들을 데리고 적들을 족치겠습구마.”
상순이 가슴을 쭉 뻗치고 다짐했다. 그러고 나서 자기가 조덕림의 토성 밖 나무 위에서 엿들은 긴급정황을 알리었다.
이계삼은 상순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부탁하였다.
“좋소. 아주 중요한 정황이요. 한 가지 주의할 게 있소. 이해득실에 의해 급변하는 정치형세에 장충국과 장학산 부자와 우리 오늘 셋이 만난 거 같은 일을 절대 말하지 마오. 꼭 비밀을 엄수해야 하오. 마을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데서 우리하구 절대 다른 말을 하지 마오. 그저 한마을에 사는 일반관계인척 하면 제일 좋소. 그러나 금방과 같은 긴급정황은 꼭 인차 알리도록 하오.”
“예, 알았습구마.”
그들은 남의 이목을 끌까봐 인차 흩어지어 버드나무숲 속에서 빠져나갔다.
상순은 먼저 웃새집에 가서 할아버지한테 금방 있은 일을 말하고 나서 큰아버지 편지를 보이었다.
병완은 한참 읽어보더니 상순에게 말하였다.
“내 생각에도 우린 이계삼과 허영주를 도와 마을 사람들을 묶어세우고 당지 친일주구들과 싸울 준비를 해야겠다. 산에는 네가 들어가 봐라. 난 마을에서 이계삼과 영주를 도와 일을 해야 되겠다.”
“예, 알았습니다.”
상순은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윽고 상우형님이 놀러 왔다. 그런데 쌀 고생이 어찌나 막심했던지 상순이네도 가마에 쌀을 얹은 지 며칠 잘 됐다. 그래도 명옥이가 돼지 굴 부근에 불을 때자고 쌓아 놓았던 콩꼬투리를 매돌에 갈아서 끓였다.
한참 후 명옥이가 시형과 남편에게 그 콩꼬투리가루로 끓인 죽을 퍼서 밥상에 올리었다.
그러자 상우는 그 콩꼬투리가루로 끓인 죽을 후후 불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에이, 이 세월에 콩꼬투리가루 죽이라도 한 사발이면 온 하루 견딜 수 있지.”
그 말에 상순은 억이 막혀 입을 하 벌리고 있다가 죽사발을 밥상에 달랑 내려놓았다.
“형님, 그래 죽 한 사발을 잡숫고 어떻게 온 하루 삐친단 말이오? 형수는 형님을 죽 한 사발도 안 준단 말이오?”
상우는 제수 앞인지라 아내의 허물을 하기 싫어 에둘러댔다.
“이 세월에 쌀이 없는데 네 아주머닌들 무슨 재간에 죽을 끓이느냐? 아내와 동선이랑 순애랑 먹고 나면 죽물 한 숟가락도 남는 게 없다.”
그러자 상순은 한숨을 천정이 날아나게 내쉬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어질고도 어진 상우 형이 불쌍해 한마디 해 주고 싶었다.
“형님, 형수와 말해서 때마다 죽물이라도 얼마간씩 나눠 잡숫소. 처자만 처자라고 하다가 형님이 굶어서 세상을 뜨기라도 할까봐 정말 근심스럽소.”
동생의 충고에 상우는 그저 묵묵히 앉아 대답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상우는 “에이, 오늘은 제수 덕분에 콩꼬투리가루 죽을 잘 먹고 견디겠는데 내일은 또 어찌 하겠느냐?”라고 하더니 비틀거리며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떠나가는 형님의 뒤 잔등을 멀거니 바라보면서 상순은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는 언제 공산당의 말대로 가난한 백성들에게 땅이 차례지어 배불리 먹고 살겠는가고 가슴을 치면서 한탄하였다.
(이대로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순 없다. 마을 사람들이 다 굶어 죽겠다.)
저녁에 그는 마을 청년들을 불렀다. 버들강변에 상길과 흥수, 학수, 성수와 상진, 보준, 태수, 정수, 경학, 학준 등 20여명 청년들을 불러 모았다.
상순은 7촌 조카 경학을 잘 부르지 않았는데 유서집 상진이 불러서 왔던 것이다. 경학은 늘 부실한 엄마 때문에 남보다 잘 살기 어렵다고 외웠다. 그런데 조선에서 간도로 들어 올 때 두만강을 건너 와 도문 시장에서 어머니를 잃어버린 후 찾다 못해 찾지 못하자 혼자 함흥촌에 왔던 것이다.
동생 광학은 “아무리 살기 바쁘다고 엄마마저 찾아오지 않는 형님을 믿고 어떻게 한 마을에서 살겠는가?”라고 하면서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리었던 것이다.
경학의 처는 남편을 보고 “시어머니를 찾아오오. 내 잘 모셔 드리겠습소.”라고 하였다.
후에 경학은 진수해에서 어머니를 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어머니 박만식은 “경학아, 광학아.” 하고 울면서 돌아다니었다.
경학은 어머니를 보고서도 정신병자라고 낯이 깎인다고 못 본 척 했다.
경학은 마을로 돌아와 “정신병자 같은 어미를 겨우 피해 돌아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들 했다.
가능하게 어떤 사람들이 경학을 헐뜯어 한 말인지는 몰라도 그 일로 하여 관준은 두고 두고 경학을 욕했다.
상순은 경학이 아무리 그러면 그렇게 불효를 저질렀겠는가고 믿지 않았지만 민병조직행사에는 잘 부르지 않았다. 후에 상순은 경학을 보고 엄마를 찾아오라고 타이르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상진 형이 알려 경학이 온바 하고는 놔두었다.
그는 십여 명 청년들을 둘러보면서 나직이 말하였다.
“지금 마을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됐다. 허나 친일 지주들의 쌀 창고에는 쌀이 썩어 날 지경이다. 우리는 가난한 농민들이 고혈로 지은 양식을 찾아다 굶어 죽어가는 마을 사람들을 구해야 되겠다.”
“옳다. 지주 놈들의 쌀을 빼앗아 먹고서라도 살아야 한다.”
청년들은 상순의 말에 모두들 팔을 걷고 나섰다. 그들은 몽둥이와 칼을 들고 이번에는 일성 골 안이 아니라 동산을 넘어 성산 촌에 가서 악질지주네 집을 들이치러 떠났다.
상순은 아주 능청스레 거지행사를 하면서 토성 안 집 대문을 두드리었다.
“누구요?”
상순은 밀짚모자를 꾹 눌러 쓰고 대야를 들고 “묵은 밥이라도 좀 빌어먹기요.”라고 하였다.
그러자 안에서 지주가 대문의 조그마한 문을 열더니 “또 거지가 왔구나. 밥이 없다. 가라, 가!” 하고 두덜거리며 상순을 콱 밀치었다.
상순은 지주 놈의 손목을 잡아 홱 태를 치었다. 뚱뚱한 지주는 땅바닥에 거꾸로 처박히었다.
상순이 손을 홱 젓자 숱한 청년들이 몽동이와 칼을 휘두르며 지주를 묶어 토성 안에 끌어다 마루 기둥에 결박해 놓고 창고를 부시고 쌀 주머니 채로 두 수레나 실어 내갔다.
상순은 떠나가면서 뚱뚱한 지주의 배를 툭툭 건드리며 을러메었다.
“우리 가난한 백성들은 먹을 게 없어 죽어 가는데 네 놈은 창고에 쌀이 썩어날 지경이구나. 저 쌀로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구제하겠다. 파출소에 알리는 날엔 다음번엔 네놈의 목을 칠 줄을 알아라.”
“호한, 제발 목숨만 살려 주오.파출소에 절대 알리지 않겠소.”
“알려도 우린 겁나지 않다. 그까짓 경찰 놈들까지 몽땅 죽여 치울 날이 오래지 않다.”
“예, 예. 알았습네다.”
상순은 혼자 비수를 쥐고 지주를 지키고 있다가 성수랑 먼 곳까지 수레를 몰고 갔으리라고 생각되자 한 둬 식경 후에야 지주를 묶어 둔 채 토성 대문을 빠져 나갔다.
그들은 마을에 돌아오자마자 쌀을 몽땅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후에 이 일을 알게 된 이계삼은 상순을 불러 말하였다.
“지주에게서 쌀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한 것은 잘 한 일이오. 후에는 이런 중대한 일을 할 땐 내한테 말하구 하오. 자칫하면 적들에게 꼬리를 밟힐 수 있소.”
“예, 알았습니다.”
상순은 뒷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어느 날, 최구장의 집에 막내사위 정형만이 찾아 왔다.
그는 처자를 잃은 후 일본 놈들을 피해 가마골의 구장 임호와 마을 친구 석수와 용기와 함께 간도로 도망쳐 와서 항일 유격대에 들어갔었다. 그는 유격대를 따라 중소 변경에 자리 잡은 북만에 전이해 일본 놈들과 싸웠다. 그는 성칠 대장의 파견을 받고 함흥촌 부근에 왔다가 가시집에 들린 것이다.
그는 토성 안 집 서쪽에 자리 잡은 가시부모를 보자 엎드려 큰 절을 하면서 대성통곡 쳤다.그는 몇해 전에 큰물에 목숨을 잃은 계순과 어린 아들딸이 그리워 울고 또 울었다.
“내 어데 가서 계순이 같은 각시를 얻겠습니까? 얼마나 현처양모인데. 으흐흑, 흑흑.”
최구장 등 식솔들은 모두 울었다.
형만이 왔다는 말을 듣고 죽순과 석은 부부도 달려 왔다.
“이게 몇 해만이오?”
그들과 형만은 또 서로 붙안고 울었다.
형만은 비단옷감을 가시부모에게 드리었다.
“가시부모 옷이나 지어 입으시오.”
성단은 비단옷감을 되밀어 주었다.
“눈 가슴에 달아 다니면서 옷감까지 가지고 오다니? 가져다 노자로 쓰오.”
형만은 비단옷감을 되드리었다.
“계순이 알면 울 겁니다. 계순이가 세상을 떠났다고 사위 아니겠습니까? 이 막내사위 주는 선물로 옷을 지어 입으십시오. 로비는 성칠 사돈어른이 주어서 입습니다.”
그는 가시집 식구들을 둘러보다가 이마 살을 찌푸리었다.
“어째 셋째처남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자 성단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경민은 일본 놈들에게 손을 잘리어 농사도 짓기 힘들지 어떻게 살겠소? 그래 약 담배장사를 하다가 조선에 가서 그만 일본 놈들에게 붙잡혀 감옥에서 맞아 죽었소.”
형만은 그 소리에 놀라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지었다.
“셋째형님이 정말 안 됐구먼. 그래 그 애들은 어떻게 삽니까?”
"셋째며느리 애들을 데리고 경민이 생전에 약 담배장사를 해 벌어 조개덕에 사 놓은 밭을 다루면서 그럭저럭 사오.”
“둘째처남 네는 어디서 삽니까?”
“진수해에서 사오.”
형만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이제 일본 놈들이 망하면 우린 조선 고향에 돌아가 삽시다. 그때면 우리도 고향 땅의 주인이 되겠지요. 이제 잘 살 날이 멀지 않습구마.”
최구장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사위, 내 몫까지 유격대에서 일본 놈들을 호되게 족치어 두 아들의 원수를 갚아 주게나. 난 아들 둘이나 일본 놈들에게 잃었네. 중용지도를 숭배해온 나도 이젠 일본 놈들을 보면 악이 나네. 내 젊기만 해도 자네들과 함께 총을 들고 일본 놈들과 싸우겠소만.”
이때 소문을 듣고 기준과 창준이네 형제 일가족들도 형만을 찾아 왔다. 그들은 한참 성칠 형의 근간 형편을 두루 물어보다가 돌아갔다. 형만은 유격대의 일은 될수록 이런 저런 구실로 대답을 회피하거나 따로 활동하다나니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리었다.
그는 상순이 돌아가려고 할 때 뒤따라 나왔다.
“사돈 총각, 좀 보기오.”
상순은 형만과 함께 버드나무가지들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늘어 서 있는 태평강 가로 갔다.
상순이 먼저 “우리 큰아버지랑 잘 있습니까?”하고 물어 보았다.
“그래, 성칠 대장이 전번에 보낸 편지를 읽어 보았소?”
“예, 읽어 보았습니다. 정말 이계삼이라고 압니까? 성칠 큰아버지 편지에 믿을만한 중국 공산당 지하당원이라고 했던데.”
“옳소. 믿을만하네. 그는 성칠 대장과 조선의용군 3지대에서 동만에 먼저 파견한 수많은 지하당원 가운데 한사람이네.”
상순은 “오~”라고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는 형만을 믿고 단도직입적으로 그간 고민거리를 물어 보았다.
“이전에 큰아버지랑 우리 할아버지하구 아버지한테 일본 놈들을 조선에서 몰아내는 날이면 우리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이제 일본 놈들이 망하면 우리 조선 고향에 돌아가겠는데 또 중국의 국민당과 싸울 필요 있습니까?”
“글쎄 말이야. 난 조선이 광복되면 조선 고향으로 돌아가 사는 게 옳은 거 같아. 성칠 대장도 이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똑똑히 말했소. 정작 오래잖아 조선이 광복을 맞게 되니 조선에 돌아가려는지 중국에 남으려는지 까딱 말하지 않는다. 후에 그를 만나면 잘 물어 봐라.”
그날, 형만은 성칠 대장이 이번 걸음에 함흥촌에 들리면 상순에게 민병을 잘 조직하라고 재삼 부탁하더라는 말을 남기고는 총망히 함흥촌을 떠나 진수해 쪽으로 갔다. 상순이 보건대 별로 진수해 일대 일본 놈들의 적정을 정찰하러 나온 것 같았다.
형만과 갈라진 후 상순은 한가위 날이 다가 올수록 큰아버지를 만날 날을 애타게 기다리었다. 그것은 큰아버지 편지에 한가위 날 쯤에 장백산 줄기줄기 산마다 누워 있는 열사들의 묘지를 찾아 보겠다고 한 말 때문이었다.
(안 되겠다. 아직 항일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큰아버지가 딱 한가위 날에 장백산에 간다고 할 수 있겠는가? 미리 장백산 밀림 속에 가서 약재도 캐고 사냥도 하면서 큰아버지를 기다려야 하지.)
상순은 원래 이계삼과 물어 보고 북만으로 가서 큰아버지를 만나려고 했지만 그만 두었다. 그것은 이번 걸음에 이계삼을 확실히 믿을만한 공산당 지하 간부인지 허실을 알아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 복잡한 동란 시기에 아무나 무턱대고 믿고 따를 순 없지.)
상순은 아버지와 원시림으로 간다는 말을 한 후 괭이를 들고 일하러 가는 척 하면서 문 밖을 나섰다. 지학사 촌장도 일본 놈들이 오래잖으면 망한다고 그러는지 상순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그리하여 상순은 지학사 눈을 피해 쉽게 마을을 벗어날 자신이 있었다.
그때 집안에서 큰딸 숙자의 울음소리가 터지었다.
상순은 집안에 되들어가 명옥의 품속에 안긴 돐이 거의 된 숙자의 볼을 만지었다.
“귀여운 내 딸아, 내 사냥해서 사슴고기랑 가져 올게. 아빠 인차 온다.”
숙자는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아빠를 보자 애고사리손을 내 밀면서 울음을 그치었다.
상순은 숙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밀짚모자를 꾹 눌러 쓰더니 아쉬운 발걸음을 떼어 문밖을 나섰다. 숙자는 전해에 이 가난한 상순이네 집에서 태어났던 것이다.
그는 천지꽃산 비탈에 가서 할아버지 산소 옆에 파묻어둔 오지독을 파내고 그 안에서 기름종이에 싼 권총을 꺼내 품속에 깊숙이 간수하였다. 상순은 새 집에 이사할 때 웃새집 천정에 감춰뒀던 권총을 꺼내 산소 옆에 구덩이를 파고 기름종이에 꽁꽁 싸서 오지독에 넣어 파묻어두었던 것이다. 
상순은 인차 생각을 바꾸었다.
(아니야, 총을 가지고 가면 혹시 길에서 일본 놈들이라도 만나면 시끄럽지 않을까? 교하에서 빼앗은 권총을 괜히 충국에게 줬다. 권총 두 개 있으면 헛일 삼아 이번에 하나 가지고 가는건데.)
그는 권총을 오지독에 넣고 원래 자리에 잘 파묻어 놓은 후 마을에 되 내려가 낫을 찾아 들고 괭이를 메고 먼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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