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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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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2)
2017년 02월 16일 14시 59분  조회:1906  추천:0  작성자: 김장혁




                                  5. 지주를 청산

      동산에 구리바라 같은 아침 해가 두둥실 떴다. 찬연한 가을 햇빛이 아름드리 버드나무와 비술나무가 들어선 들에 숱한 금침, 은침을  내리뿌렸다.
       병완은 촌공소에서 일어나 마당에 나왔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불어왔다. 병완은 두 팔을 양쪽으로 벌리면서 시원한 가을 아침 공기를 한 가슴 뿌듯이 마음껏 들이 마시었다.
촌공소 위 칸에 사는 학수와 상우가 마당에 나오다가 반겨 맞았다.
“할아버지,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오, 그래. 광복 맞아서 그런가. 온 몸에 힘이 나는구나.”
학수도 인사했다.
“김 촌장 덕분에 우리 집에서 생각 밖으로 이리 좋은 집에서 살게 됐습니다.”
병완은 인사를 받았다.
     “이게 다 항일유격대 덕분이오."
병완은 인삼이 바깥에 나오자 다가가 나직이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제 밤 지주 놈들 움직임이 심상찮네. 먼저 손을 쓰는 게 좋을 거 같네.”
인삼은 마당을 둘러보다가 병완에게 말했다.
“안에 들어가 토론합시다.”
집 안에 있던 성칠 대장과 상순이 우쭐 일어나 할아버지한테 자리를 내주었다.
병완은 자리에 앉자마자 성칠한테 말했다.
“어제 밤 상순이 정찰한 정황은 아주 중요해. 위험한 징조야. 선손 써서 그 놈들을 몽땅 없애 버리는 게 상책이다. 이제 유격대가 조선에 나가면 상순이네 민병패로써는 그 놈들을 당하기 어려울 게 아니냐?”
성칠은 과단성 있게 말했다.
“옳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가기 전에 후환을 없애 버리어야겠습니다. 그 놈들은 지금 지주 무장을 조직해 가지고 우리가 간 다음 손을 쓸 수 있습니다.”
그는 인삼을 돌아보았다.
“그 놈들을 일망타진해야겠소. 먼저 조덕산이란 놈을 나포하기오. 그 놈들은 밤에 활동하지 않소? 또 활동장소도 자꾸 움직이고 있소. 조덕림이네 집에 모이지 않고 도가 집에 모이는 걸 보오. 그 놈들이 도망칠 가능성두 있소. 우린 오늘 저녁부터 그 놈들을 기습해 버리기요.”
인삼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내 먼저 장학산을 찾아가 눈치를 살펴야겠소.”
"그렇게 하오."
인삼은 성칠의 지시대로 유격대원 일여덟 데리고 소서구 어귀 장학산의 집으로 떠나갔다.
성칠은 막내조카 상순에게 머리를 돌렸다.
“상순은 민병들을 데리고 조덕림의 집에 가서 집을 청산하구 밭을 가난한 한족 백성들에게 나눠 줘라. 조덕림이네 집 눈치를 살펴 봐라. 다른 동향이 없는가.”
“나도 가겠다.”
병완도 나섰다.
그러나 성칠은 말렸다.
"아버진 년세 계신데. 토성 안 집에서 상순의 승리소식을 기다립소."
성칠은 칠백과 동욱을 불렀다.
“조덕산 놈은 우리가 떠나야 손을 쓸 수 있소. 우린 부대를 데리고 함흥 촌을 떠나는 척 하기요. 그럼 그 놈이 지주무장들을 몽땅 데리고 뛰쳐나올 게 아니오?”
그들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호랑이를 굴에서 끌어 내와야지.”
뒤이어 그들은 성칠 대장이 나직이 하는 말을 듣고 머리를 끄덕이더니 희죽이 웃었다.
성칠의 포치대로 유격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격대원들은 토성 안 갱도에 두 개 소대나 들어가 숨고 나머지 유격대원들은 일본 포로들마저 압송해가지고 몽땅 줄을 서서 대문 밖으로 씩씩하게 행군해 나갔다.
성칠 대장이 거느린 유격대 행렬은 함흥 촌을 벗어나고 조개덕을 지나 해동과 진수해쪽으로 행군해갔다.
조덕림은 금방 대문을 빠져나오다가 떠나가는 유격대 속에 늠름한 성칠이랑 있는 것을 보고 동생이 말한 대로 함흥 촌을 들이 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조덕림이 대문에서 몇 발작 떼지 못하였을 때 병완과 상순이네와 딱 마주 띄웠다. 병완은 시름이 놓이지 않아 성칠이 몰래 친히 손쓰러 왔던 것이다.
병완은 조덕림이 자그마한 상자를 든 것을 보고 꽥 고함치었다.
“어데로 가?!”
“아, 김 촌장, 무슨 일로?”
조덕림은 상자를 잔등에 숨기면서 꺽꺽거리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병완은 조덕림의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지주를 청산하러 왔다.”
조덕림은 상자를 안고 냅다 뛰었다.
상순은 민병들에게 손을 홱 저었다.
“사로잡아라!”
조덕림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들어 돌아서며 쏘았다.
땅!
총알이 상순의 귀전을 스치고 앵-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날아갔다.
상순은 총창을 비껴들고 덮쳐가며 총을 쥔 조덕림의 오른 손을 탁 쳤다. 조덕림의 손에서 권총이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땅바닥에 뚝 떨어졌다. 조덕림이 권총을 주어드는 순간, 민병들이 왁 덮쳐들어 조덕림의 총을 빼앗았다.
땅! 땅!
조덕림은 권총을 빼앗기면서도 연속 방아쇠를 당기었다. 허나 총알은 공중으로 날아올라갔다.
민병들은 그 놈의 권총을 빼앗고 바로 꽁꽁 결박했다.
조덕림은 결박당해서도 고래고래 고함쳤다.
“나를 청산해? 이제 내 동생이 빨갱이 놈들을 몽땅 없애버릴게다. 빨갱이 놈들아! 썩어질 날이 오래잖다.”
그 놈은 나무상자를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상순이 자그마한 나무상자를 빼앗아 훌 열었다.  금목걸이로, 보석걸이로, 귀걸이로, 팔찌로 상자에 꽉 차 있었다.
상순은 조덕림을 집 마당에 있는 늙은 비술나무에 묶어놓고 병선을 보고 지키게 하고는 민병들을 이끌고 할아버지와 함께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안에는 혼비백산한 조덕림네 처자들이 이불을 들쓰고 엎디어 있었다.
그는 총칼로 이불을 활활 걷어 올리었다. 조덕림의 여편네가 바들바들 떨면서 두 손을 싹싹 비비였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오.”
상순은 총칼을 들이대고 물었다.
“조덕산이 어데 숨었느냐?”
조덕림의 여편네는 사시나무 떨듯하면서 중얼거리었다.
“요즘엔 온 적두 없소. 빨갱이들이, 저, 아니, 공산군이 온 후부터 우리 집에 얼씬도 하지 않았소.”
상순이 손을 홱 휘두르며 “수색해라!” 하고 소리쳤다.
민병들은 그 큰 집 서쪽 방과 동쪽 방을 구석구석 들춰 보았지만 조덕산의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상순은 조덕림의 집식구들을 몽땅 끌고 나와 마당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 흥수와 학수를 시켜 대문 밖을 경계하게 하고 병선과 태수를 시켜 조덕림을 지키게 했다.
병완은 민병들을 시켜 조개덕의 가난한 한족과 조선족 군중들을 불러 왔다. 마당에는 숱한 한족과 조선족 빈고농민들이 몰려 왔다. 그들은 평소에 자기 동생을 믿고 우쭐거리던 조덕림이 나무에 결박당한 것을 보고 깨고소해 했다.
병완은 먼저 한어로 말했다.
“오늘 지주 조덕림을 청산하겠소. 조덕림의 서쪽 방을 집도 없이 사는 장발래에게 주겠소.”
장발래는 좋아서 입이 함박만 해졌다.
“김 촌장, 감사하오. 집도 없이 살던 내가 이런 토성 안의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게 됐구먼. 허허허.”
장발래는 조덕림의 눈치를 힐끔 곁눈질해보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조덕림은 눈깔을 희번뜩거리면서 장발래 잔등을 쏘아보았다.
그때 제해봉이 소리쳤다.
“동쪽방은 나를 주오.”
조덕림은 아연실색했다.
“아니, 네 놈이 감히 내 집을 가져?”
조덕림은 계속 꽥꽥 고함쳤다.
“네놈이 뭐가 돼서 내 집을 가난뱅이들에게 나눠주니? 제해봉, 네 놈 새끼 두고 보자. 내 집을 빼앗아 어디 잘 사는가?”
병완은 꽥 소리쳤다.
“조덕림, 이놈, 주둥이를 다물지 못할까? 이게 어디 네 집이냐? 네 놈이 국민당을 믿고 우쭐거렸다간 동쪽 방도 몽땅 청산해 버리겠다.”
병완 촌장은 상순을 보고 “그 놈을 끌고 조개네 밭으로 가자.”라고 했다.
상순은 조덕림을 끌고 조덕림의 집 뒤로 갔다.
병완은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식구 여섯이나 되는 제해봉한테 조덕림네 밭을 여섯 짐 청산해준다.”라고 선포했다.
그러고 나서 나무자로 여섯 짐을 재여 말뚝을 박아 주었다.
제해봉은 밭에 꿇어 앉아 두손으로 검은 흙을 움켜쥐어 냄새를 맡았다.
드디어 그는 머리를 들고 병완과 민병들을 올려다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게 내 땅이요?"
그때 조덕림이 소리쳤다.
“어디 네 땅이냐? 내 땅이야! 감히 내 땅을 다치겠니?”
병완 촌장은 조덕림을 손가락질하며 고함쳤다.
“이건 우리 함흥 촌에서 당의 토지개혁정책에 따라 제해봉에게 준 밭이다. 이제부터 조덕림, 이 밭은 네놈의 밭이 아니라 제해봉의 밭이다.”
제해봉은 좋아서 야단쳤다.
“김 촌장, 만세!”
그러자 병완은 제해봉을 말렸다.
“내 만세를 부르다니? 유격대와 공산당에 감사를 드리게나.”
“공산당 만세!”
제해봉은 구호를 불렀다.
“저 조덕림이 공산당과 유격대가 공산공처를 한다면서 나쁘다더니 공산당이 너무 좋구나. 난 공산당과 유격대 덕분에 밭을 여섯 짐이나 가졌소. 이제부턴 공산당과 김 촌장의 말을 듣겠소. 뭘 시켜도 다 할 테요.”
병완은 장용객에게도 조덕림의 밭을 청산해 다섯 무나 주었다. 그리고 조덕림의 밭을 소작맡았던 최경숙에게는 소작을 맡았던 밭을 주고도 세 무를 더 나눠주었고 경민과 경석에게도 네 무씩 분배해주었다.
경숙은 동생들과 함께 밭을 분배받은 기쁨을 나누면서 아쉬워했다.
“아버지하구 경인이네두 함흥 촌에서 진수해로 내려가지 않았더라면 밭을 나눠가졌겠는데 그랬다.”
병완은 그 외에도 조덕림에게서 빼앗은 상자안의 금은보화를 꺼내 유격대 군비로 쓸 만큼 남기고 조선족과 한족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주었다.
집과 밭 지어 금은붙이까지 나눠가진 가난한 조선족과 한족 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구호를 불렀다.
“공산당 만세!”
“항일유격대 만세!”
병완은 성칠의 포치대로 조덕림을 보고 을러멨다.
“네 놈이 이제 다시 가난한 농민들에게서 집과 밭을 되빼앗아내는 날엔 나머지 동쪽 방과 나머지 밭을 몽땅 청산해 버릴 테다!”
상순은 조덕림을 풀어주고 함흥 촌으로 돌아오면서 조용히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조덕림이 국민당 조덕산 영장과 한통속인 게 뻔한데 왜 놔줍니까? 그놈이 우리에게 총까지 쏘았는데요.”
병완은 상순을 데리고 촌공소로 들어가 나직이 말했다.
“그물을 널리 쳐서 큰 고기를 잡으려는 거야.”
그제야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병완은 상순을 보고 나직이 귀속 말로 분부했다.
“오늘 저녁에 성칠의 말대로 가능하게 조덕산이랑 토비들을 끌고 우리 함흔촌을 칠 수도 있다. 난 마을사람들을 동원해 마을 외곽의 목책과 토성 그리구 갱도도 잘 손질해놓을게. 마을 사람들을 여러 마을의 토성 안에 피신시키자.  넌 민병들을 데리고 마을 주변 산봉우리에 올라가 잘 순라해라. 일단 토비들 동정이 있으면 칼산과 계수동 서산에 봉화를 피워 신호를 보내라.   다른 마을의 민병들이 인차 봉화가 피어 오른 마을을 포위해 토비들을 협공하기로 하자.”
“예. 할아버지.”
상순이 떠나가려고 할 때다.
“잠간!”
“예!”
병완은 상순을 보고 나직이 분부했다.
“토비들을 포위 습격할 때 우리 민병들끼리 서로 사격하지 말도록 왼팔에 허연 수건을 동여매게 하자.”
“예! 알았습니다.”
상순은 할아버지의 명에 따라 마당에 나가 민병들을 두 개 소조로 나눠 행동을 시작했다. 한 개 소조는 여러 마을 사람들을 재빨리 토성 안에 피신시키고 다른 한개 소조는 소서구와 계수동 쪽으로 나뉘어 순라를 하러 떠나갔다.

                         6. 충고

       한편 소서구로 간 인삼은 장충국의 토성 안 집으로 곧추 들어갔다.
장충국은 바깥에서 땔나무를 패는척 하면서 망을 보았다. 인삼이 유격대원 일여덟을 데리고 들어서자 장충국은 도끼를 쥔 채 그들을 쏘아보았다.
“동생!”
충국은 유격대원들을 아니꼽게 바라보다가 굳어진 얼굴을 좀 느슨히 풀었다.
“형님, 왔소?”
인삼은 충국의 잔등을 툭툭 다독이였다.
“양아버지 있느냐?”
충국은 집안에서 들으라고 언성을 높였다. 
“형님, 좀 양심 있게 노오. 우리 집에서 형님을 미안하게 대한 게 뭐요?”
인삼은 집안에 꼭 장학산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자식!)
인삼은 유격대원들을 바깥에서 보초를 서게 하고 혼자 집안으로 들어갔다. 충국이 마당 안팎에 흩어지는 유격대원들을 둘러보고 인삼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인삼이 집안으로 들어가자 장학산은 권총을 허리춤에서 꺼내 들었다. 장리국은 식칼을 들고 인삼을 쏘아 보았다. 다만 장학산의 처 충씨와 딸 미련만은 궤 안에서 뭘 꺼내 챙기다가 손을 떼며 인삼을 바라보더니 바들바들 떨었다.
인삼이 혼자 들어선 것을 보고서도 장학산은 권총을 거두지 않고 물었다.
“그래, 양애비를 청산할테냐?”
인삼은 구들 턱에 걸터앉았다.
“양아버지, 나를 어째 믿지 못합니까?”
그제야 장학산은 총을 허리춤에 질러 넣으면서 두덜거렸다.
“우리 집은 대대로 이 땅에서 양심적으로 살아왔다. 일본 놈들이 쳐들어오자 난 목숨 걸고 너네 유격대에 쌀을 가만히 실어다 주었다. 허나 일본 놈을 몰아내자 너희 공산당이 한 노릇이 뭐냐? 나를 믿게 하느냐? 우리 밭을 조선에서 온 가난뱅이들한테 나눠주고 이제 또 우리 집도 청산하러 온 게 아니냐?”
인삼이 장학산의 두 손을 잡았다.
“양아버지,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전번에도 말했지만 그런게 …"
장학산은 인삼의 손을 홱 뿌리쳤다.
“놔라, 놔. 너를 도와준 결과가 이런 거냐?”
그러나 인삼은 나직이 말했다.
“양아버지,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양아버지를 다른 중국 지주들만은 다르게 대합니다. 아버지는 항일애국자기 때문에 집과 밭을 보류하게 하지 않았고 뭣입니까?”
“보류? 지금 병완은 네 눈치를 봐서 잠시 놔둔 거야. 이제 네 떠나가면 이 집도 조만간에 빼앗고 말게다.”
인삼은 고의적으로 말을 흘렸다.
“글쎄 나도 이제 대부대를 따라 떠날 예산이오. 그래서 가기 전에 양아버지를 찾아와 충고합니다. 절대 국민당군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괜히 그 놈들의 얼림수에 걸려 이 집도 목숨도 건지지 못하겠습니다.”
장학산은 인삼에게 다가 앉으면서 나직이 물었다.
“그래, 너 오늘 정말 떠나가니?”
“예. 건 왜 물어요?”
“어, 아, 아니야. 네가 가면 우린 어떻게 살겠니? 저 가난뱅이들이 내 집을 빼앗고 죽일게 아니야?”
장학산은 무슨 궁리를 하더니 인차 볼 부은 소리를 했다.
“우리를 데리고 가렴? 대체 어디로 가자고 그러니?”
인삼은 별로 고려도 하지 않은 듯이 말했다.
“난 저기 온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오늘 떠난 대부대를 따라 진수해를 거쳐서 조선으로 나가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런데 양아버지를 만나보고 떠나려고 왔습니다. 이제 이렇게 가면 언제 또 만나겠습니까?”
장학산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정말 큰일이다. 네까지 가고 고만한 밭으로 어떻게 사니? 우린 충국도 농사 지을줄 모른다. 소작료나 받아먹고 살던 우리를 농사를 지으라고? 흥!”
충국도 끼어들었다.
“형님, 나도 형님네 유격대와 함께 일본 놈들과 싸운 걸 알잖고 뭐요? 일본 놈들을 몰아낸 후 이게 어디 우리 세상이 됐소? 조선가난뱅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지. 꼬리빵즈들은 참 양심이 없어. 조선에서 밥을 얻어먹으러 온 주제에 남의 땅에서 주인행세를 한단 말이오.”
인삼은 억이 막혔다.
“보아하니 양아버지나 동생들이나 국민당군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거 같구먼.”
그는 장학산의 허리춤을 보며 엄숙하게 물었다.
“양아버지, 그 권총을 내놓소. 어데서 난 권총이오?”
장학산은 권총을 두손으로 붙잡으면서 벌떡 일어났다.
“안 돼! 네까지 가는데 누가 보호해 준다더니?”
인삼은 짐짓 바깥을 내다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양아버지,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권총 한자루로 어떻게 목숨을 지킨다고 그럽니까? 날 줍소.”
“안 돼! 네가 정말 이 양애비 은정을 잊지 않는다면 내게 권총이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충국도 끼어들었다.
“형님, 한번만 봐주오.”
인삼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양아버지, 참 답답합니다. 내 부자지간의 정의를 생각해서 권총을 못 본 걸로 하겠소. 난 조선에 나가면 다입니다. 양아버지 은정을 잊지 못해 충고합니다. 총을 버리고 공산당과 유격대 편에 서시오. 이래야 아버지 일가 목숨을 구할수 있습니다. 지금 동만은 공상당 수중에 장악됐습니다. 절대 조덕산 같은 국민당군의 선동을 듣지 마시오. 국민당군이 여기 오기전에 민주연군에 몽땅 뒈지지 않는가 두고 보십시오.”
인삼의 말에 장학산은 궁리하더니 권총을 인삼에게 주었다.
“네 말을 따를게.”
인삼은 권총을 받으면서 “잘 생각했습니다.”라고 했다.
충국은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삼은 장학산의 마음이 변한 것을 틀어쥐고 물었다.
“양아버지, 내한테 할 말은 없습니까?”
장학산은 인삼과 충국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무거운 입을 뗐다.
“난 세상일에 삐치지 않으련다.”
인삼은 장학산의 손을 잡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충고하지만 절대 남의 충동에 놀지 마십소. 일이 있으면 말하십시오.”
그러나 장학산은 손을 빼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없다, 없다니깐. 잘 가라. 나도 너한테 충고하마. 조선에 가면 다신 절대 이 마을에 돌아오지 말라. 그게 너를 구하는 길이다.”
인삼은 장학산의 그 말을 듣고 그 말의 무게와 함의를 대개 짐작했다.
장학산은 인삼에게 한참 뭐라고 말했다. 인삼도 뭐라고 양아버지에게 충고를 하고 갈라졌다.
“양아버지, 이 못난 양아들을 마지막까지 염려해 주어 고맙습니다.”
인삼은 문을 나서며 장학산을 돌아보면서 눈물까지 주르르 흘렸다. 장학산도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충국은 인삼을 따라 나오면서 팔소매를 잡아당기였다.
“형님, 조선에 가기 전에 병완 촌장과 말하오.저 아래 토성 안 집을 내게 돌려주라고 말이오. 나도 이젠 나이 있는데 장가를 가서 그 집에서 살아야겠소.”
인삼은 충국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이 답답한 놈아, 넌 그 착취계급의 사상을 싹 씻어버려라. 혼자 욕심스레 그 큰 집을 쓰고 살아서야 되니? 가난한 사람과 고루고루 나눠 다 같이 살아야 한다. 집을 가지려니 하지도 말아라.”
“알았소, 알아. 그게 공산당의 토지개혁정책이 아니오? 흥!”
충국은 인삼을 대문 밖에까지 바래주었다.
“형님, 잘 가오. 이 난세에 강냉이 밭에서 이파리가 흔드는 소리가 나도 주의하오. 조선에 갔다가 생각대로 안 되면 다시 오오.”
“응.”
인삼은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태평강으로 내려갔다. 인삼은 아름드리버드나무숲에 들어서자 몸을 돌리더니 소서구 어귀를 돌아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아름드리버드나무숲이 가을바람에 쏴쏴 무섭게 설레였다. 먹구름이 천지꽃산으로부터 뭉게뭉게 몰려왔다. 때 아닌 가을에 웬 소낙비가 오려는가? 먹장구름 속에서 번개가 대지를 번쩍 찌르더니 우뢰가 꽈르릉 천지를 진동했다.
인삼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버드나무숲속에 바람결처럼 사라졌다.
아름드리 버드나무숲속에서 난 데 없는 뻐꾹뻐꾹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었다.
이윽고 상순이 몇몇 민병들을 데리고 순라하면서 버드나무숲 속으로 들어갔다.
한편 병완이 촌공소 마루에 나가 짚신을 신을 때었다. 애를 업은 진달래 중대장이 경위원과 여성유격대원을 데리고 토성 안에 들어섰다.
“사돈어른, 그간 무사했어요?”
병완이 마주 나가 인사했다.
“아니, 사돈색시 왔구만. 우리 맏이두 기다리다가 오늘 진수해로 떠났소.”
“예?”
진달래 중대장은 저으기 놀랐다.
“여기에 용천 대장은 오지 않았어요?”
병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지 않았소. 북만에 가지 않았던가?”
그 말에 진달래중대장은 어깨를 툭 떨어뜨리더니 눈물을 줄줄 흘렸다.
“예. 아무리 기다려도 경주 아버진 오지 않았어요.”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진달래네 일행 셋을 촌공소안으로 안내해 들어갔다.
“애까지 업구 길에서 얼마나 고생했겠소.”
병완은 진달래중대장을 촌공소 사무실 안방에 데리고 들어갔다. 진달래는 이슬이 맺힌 눈을 목수건으로 닦고 나서 함흥 촌에서 있은 일을 병완에게서 들었다.
진달래 중대장은 경주를 여성유격대원에게 맡기고 일어섰다.
“은녀를 여기에 데려와야지. 상순사돈네 집에 둬선 위험할 거 같아요.”
그러자 병완이 말렸다.
“지금 움직이지 마오. 괜히 적들이 눈치를 채겠소. 놈들이 어데서 우리 촌공소를 감시하고 있을 줄도 모르오.”
그러자 진달래는 구들에 들어앉았다.
“그럼 이제 날이 어두워지면 데려 오지오. 먼저 누굴 보내 기별하는 거 좋을 거 같아요.”
“옳소.”
병완은 말을 마치자 바깥으로 나가 학수를 불러 당부했다.
병완은 집안에 들어오자 진달래를 보고 말했다.
“아차, 깜빡 잊었군. 진달래 중대장, 큰오빠가 여기 갱도에 있소.”
“예? 큰오빠가 살아 있어요?”
“내  불러올게.”
그때 때마침 상순이 마을을 순찰하다가 촌공소에 들어섰다.
“최 중대장이 왔구먼. 용천대장은?”
병완은 상순을 보고 말했다.
 “빨리 갱도 안에 내려가 경호 사돈을 불러 오라.”
진달래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 갱도에서 한 사람이라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아요. 제가 내려 가 오빠를 보겠어요.”
그때 경주가 “엄마, 맘마.” 하면서 앵앵 울었다.
“옳다. 너도 큰아버지 보러 가자.”
진달래는 경주를 안고 상순이 쌀독을 치우자 갱도 안으로 내려갔다.
시꺼먼 갱도 안에서 유격대원들은 등잔불 밑에서 저녁밥을 든든히 먹으면서 전투준비를 한창 하고 있었다.
진달래는 갱도바닥에 내려서기 바쁘게 고함쳤다.
“오빠, 멧돼지 왔어요. 오빠!”
“멧돼지야!”
유격대 속에서 경호가 마구 엎어질듯이 달려 나왔다.
그들 오누이는 갱도 안에서 경주를 사이에 두고 붙안고 대성통곡 쳤다.
그 바람에 경주도 “엄마! 맘마!” 하고 울었다.
“경주야, 울지 마라. 큰아버지야!”
경호는 조카를 받아 안고 “경주라고? 아버지도 살아계시면 외손자를 보고 얼마나 반가와 하겠나?”
“글쎄 말이예요."
이때 칠백도 진달래를 보고 다가왔다 
“아주머니, 무사히 왔구먼. 형님은 오지 않았제이?”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또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어깨를 들먹였다.
“아주머니, 근심하지 말라니께. 우리 형님은 꼭 살아 있을 거라우. 난도 이제 일본 놈들을 잡아 치우면서 고향으로 나가겠다이.  (희야)형님이랑 경주에 가면 만날 수도 있제이.”
그때 동욱이가 다가와 말했다.
“다 산산이 흩어져 자기 고향으로 돌아 가버리면 유격대는 어찌겠소?”
칠백은 대수로워 하지도 않았다.
“일본 놈들이 다 망하면 유격대를 해서 뭘 하겠소?”
동욱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난 아직 내 안해 원쑤를 갚지 못했소. 고향에 돌아가 꼭 원쑤를 갚고 안해 산소에 가서 알려야겠소."
"에이구, 그 놈들이 달아난지도 오래겠소. 보오. 룡정의 스쯔이로랑 몽땅 섬나라로 도망치지 않았소?"
“됐어요. 고향 말은 후에 하세요. 여기 국민당 토비들이 당장 이 마을로 쳐들어올 판인데요. 우리 전투준비를 하자요.”
그리하여 진달래중대장과 칠백중대장, 동욱중대장은 셋이 두 개 소대 병력을 세개로 나눴다. 칠백 중대장과 동욱 중대장은 유격대원들을 령솔해 가만히 갱도를 통해 토성 밑 갱도로 나가 총구멍을 열어놓고 토성 밖을 내다보며 적정을 살피었다. 진달래중대장은 한 개 분대 병력을 데리고 촌공소 안으로 되나와 병완과 함께 적들 야습에 대처할 작전을 꾸미였다.
이윽고 상순이 나가더니 민병들을 데리고 가서 농사군들의 옷을 여나문벌 가지고 왔다.
진달래 중대장은 경주를 여성 유격대원에게 업혀 놓고 농촌 아낙네 차림을 하였다. 유격대원들도 몽땅 유격대 옷을 벗어 놓고 농사군들의 옷으로 바꿔 입었다. 그들은 강냉이단을 가득 가져다가 그우에 유격대 옷을 입혀 마당에 파놓은 전호와  집 안에도 구석구석 세워 놓았다. 뒤이어 진달래중대장과 병완은 유격대원들을 령솔해 상순이가 이끌고 들어온 민병들 속에 섞여 토성 안에서 나갔다. 진달래는 상순이네 집에 가서 은녀까지 데리고 유격대원들이 숨은 버드나무 숲속에 숨었다.
       상순은 진달래를 비롯한 유격대원들을 버드나무숲 속에 남겨두고 마을을 돌며 순라했다. 인삼은 토성안 촌공소에 돌아와서도 양아버지 장학산이 근심스러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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