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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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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장편과학환상소설 황천의 유령(5) 댓글:  조회:1763  추천:0  2015-06-08
제17장 어부지리 조왕돌 꼬마대통령은 임해의 허수아를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금은목걸이, 미녀군단, 우박과 운석은 몽땅 새로운 음모야. 인공우박과 별똥은 인위적인 거야!” 이 때 허수아도 만장굴 대통령 집무실에서 코치아를 의심했어요. “조왕돌이 한 짓이야. 과학에너지로 새로 독립한 우리 임해를 무너뜨리려는 거야. 자기 나라에도 우박이 쏟아지고 가짜 운석이 떨어지게 한 것은 자기 죄증을 덮어 감추려는 수작일 거야.” 조왕돌은 지하 벙커에 옮겨가 왔다갔다 거닐다가 우뚝 멈춰 섰어요. “허수아비를 용서하지 못해!” 보름은 만삭이 된 몸으로 안방에서 나와 “성내지 마. 좀 냉정하게 생각해 봐. 혹시 뱀 섬나라 놈들의 함정이 아닌지도 몰라.” 하고 말리었어요. 조왕돌은 두 팔을 벌려 보이면서 “뱀 섬나라 함정이란 증거가 없어.” 라고 하더니 벽에 걸어놓은 철갑모까지 벗겨 척 쓰고 지상으로 통한 계단을 척척 밟고 나갔어요. 보름은 근심스러운 눈길로 조왕돌을 바래었어요. 코치아 반도에는 전운이 무겁게 드리었어요. 남과 북으로 쪼개진 코치아에서는 서로 의심하고 반목하더니 끝내 비극적인 전쟁이 폭발했어요. 총사령관을 겸한 조왕돌 꼬마대통령이 직접 조왕돌 부대와 로봇부대를 영솔해 전선으로 날아갔어요. 연강 반은 화광이 충천하였어요. 미사일이 불꼬리를 달고 이쪽에서 저쪽 강안으로, 저쪽 강안에서 이쪽 산꼭대기로 날아 와 폭발했어요. 꽝! 꽝! 꽈르릉 꽝꽝! 벌써 선견부대는 변경의 철책을 무너뜨리고 탱크를 앞세워 연강 인조부교를 건너가고 있었어요. 하늘에서는 로봇 조왕돌 부대가 새까맣게 연강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이때 금붕어가 남편 클론바우 16세와 함께 우주비행선을 타고 변경에서 내리었어요. 금붕어는 무릎을 탁 치면서 조카를 쏘아보았어요. “제발 멈추세요. 동족상잔은 절대 안 돼요.” 그러나 조왕돌은 철갑모를 꾹 눌러 쓰더니 콧방귀만 뀌면서 거들떠도 보지 않았어요. 금붕어는 허연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조카의 두 손을 덥석 잡고 애원했어요. “대화로 허수아를 평화통일의 장에 나오게 유도해야 해요. 전쟁으로 무엇을 해결합니까? 대자연을 파괴하고 백성들에게 동족상잔의 아픔까지 주려고 이러세요?” 조왕돌은 듣는 둥 마는 둥 했어요. 옆에서 클론바우 16세가 끼어들었어요. “전쟁을 그만 두게나. 숱한 사람들이 식수를 하면서 어떻게 만든 새 생태환경인데. 핵폭탄에 날려보내려고 이래?” 조왕돌은 클론바우 16세를 쏘아보았어요. “작작 끼어들라고! 군법으로 다스릴 테야!” 갑자기 클론바우 16세가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더니 하늘로 훨훨 날아 올라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하늘에서는 클론바우 16세의 너털웃음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어요. “허허허, 코치아가 스스로 무덤을 파는구나! 허허허.” 클론바우 16세는 말을 마치자 날개를 힘 있게 퍼덕이더니 코치아 반도를 떠나 동쪽을 바라고 훨훨 날아가는 것이었어요. 이때 임해에서 쏜 미사일이 금붕어와 조왕돌이 마주 서서 말하는 산정에 날아와 떨어져 작렬했어요. “고모, 여긴 위험합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조왕돌은 옆에 서있는 조왕돌 1호 뭐라고 귓속말을 하더니 이렇게 분부했어요. “어서 고모님을 수도 지하 벙커에 모셔 가라!” “옛!” 조왕돌 1호가 양팔을 붙잡아 우주비행선에 끌고 가자 금붕어는 팔을 뿌리치면서 고함쳤어요. “뱀 섬나라 오랑캐들이 어부지리를 할 거야! 넌 꼭 후회하게 될 거야!” 이때 난데없이 낙동강 대안에서 고음확성기 소리가 우레 소리처럼 울려 퍼졌어요. “코치아 군 장병 여러분, 나는 임해 대통령 허수아입니다. 우린 뱀 섬나라에서 코치아 반도에 인공우박과 별똥을 내리 퍼부은 증거가 있습니다!” “쳇, 허수아비야, 겁나?” 조왕돌은 콧방귀를 뀌더니 확성기를 들었어요. “허수아비야! 적반하장, 무함 싹 걷어치워! 네 놈이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곧이들을 사람이 없어! 포탄 알이나 받아라!” 쿵! 기실 조왕돌은 파리 정찰로봇과 모기 정찰로봇이 뱀 섬나라에서 무전으로 실시간 제공한 동영상을 통해 뱀 섬나라가 한 짓이라는 것을 빤히 알고도 남음이 있었어요. 허나 뱀 섬나라보다도 나라를 분열하고 독립을 선포한 허수아가 더욱 괘씸했어요. 그는 허수아비야 말로 놔두면 자기 대통령자리를 위협하는 제일 위험한 적이라고 여겼던 것이죠. 임해를 토벌해 허수아의 정변을 평정하고 나중에 아카시아와 노르망디 동맹국과 함께 뱀 섬나라 죄를 묻자고 해도 듣지 않는 판에 임해와의 전쟁을 작심했던 것이죠. 허수아도 녹녹치 않았어요. “야, 고모 치마폭에 싸여서 노는 어린애야! 이마빼기에 피도 채 마르지 않은 놈 새끼, 감히 어르신님과 덤벼들어?!” 군사 가는 총과 대포로 말한다고 조왕돌은 더는 허수아비와 말을 섞기 싫었어요. 그가 손을 홱 휘두르자 상자에서 앵-앵- 날아 나온 파리특종부대가 임해 쪽으로 날아 넘어갔어요. 조왕돌은 로봇 조왕돌 1호로 둔갑해 연강을 날아 넘어갔어요. 그를 따라 조왕돌 부대와 로봇 부대는 파죽지세로 임해를 쳐들어갔어요. 임해의 장병들은 총 한방 제대로 쏴보지도 못하고 삽시에 난데없이 날아드는 파리 로봇과 모기 로봇에게 무리죽음을 당했어요. 폭격기에서 쏟아져 내린 파리와 모기 로봇들이 앵-앵 날아들어 임해 장병들의 팔에 매달려 독침을 쏙쏙 꽂아 넣고 독즙을 쏴넣어 독살해버렸어요. 더욱 무서운 건 벼룩이 로봇이었어요. 벼룩이 로봇은 작은데다 퐁퐁 뛰면서 사람들의 몸에 매달려 독침을 쏘고는 어디로 뛰어갔는지 잘 보이지도  않았어요. 조왕돌 부대는 하룻밤 사이에 임해의 이른바 수도 후산 교외에까지 쳐들어갔어요. 허수아는 조왕돌의 눈에 잘 뜨이지 않는 로봇에 당하자 망망한 바다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자고 허우적거리는 신세로 됐어요. 그때 허수아의 아내 임해자 부장이 좋은 제안을 했어요. “인공소낙비를 퍼부으세요. 조왕돌의 미세로봇들은 비를 두려워 해요! 전기회로에 물이 들어가면 끝장날 거죠.” 그 전술이 묘했어요. 우르릉 꽝꽝! 꽈르릉 꽝꽝!! 갑자기 번개가 번쩍이더니 소나기가 울고 먹장구름이 동풍을 타고 연강 반의 맑던 하늘에 뒤덮여 왔어요. 하늘에서 억수로 쏟아지는 농구공만한 우박과 인공소낙비에 까맣게 덮쳐들던 코치아의 파리, 모기, 벼룩이 미형로봇들은 약을 맞은 파리 떼처럼 땅바닥에 무리로 떨어졌어요. 허나 소낙비는 복제 조왕돌 부대는 막아내지 못했어요. 코치아 대군이 수도 후산 부근 만장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기슭에까지 덮쳐오는 형편에서 허수아는 황급히 뱀 섬나라에 구원을 요청했어요. 그러자 뱀 섬나라 왕궁에서는 버새 형제는 쾌자를 불렀어요. “허허허. 성공이요! 이간작전이 대성공을 했단 말이오. 저 놈들이 동족끼리 개처럼 물고 뜯더니 꼴이 보기 좋게 됐구먼. 이젠 출격할 때가 왔구먼.” 밴새가 떠들어대자 버새 왕은 손으로 눌러 앉히면서 눅잦혔어요. “잠간!” 그는 뾰족한 턱을 두 손가락으로 고이더니 중얼거렸어요. “우린 바다 건너 코치아에 붙은 불을 구경하다가 한 놈이 쓰러진 후 나머지 놈을 수습해버리면 되는 거야. 그것도 과학기술로 말이야.” “모르는 소리. 지금 허수아비가 허우적거릴 때 구원하는 척 하면서 출병해 코치아 반도에 상륙해야 하오.” 그 말에 버새 왕은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어요. “그거로구나.” 이때 임해 대통령 허수아가 비밀무전으로 또 아우성쳤어요. “뱀 섬나라 대왕님, 지금 코치아 놈들의 파리와 모기들이 우리 후산에까지 덮쳐와 살길이 없습니다. 구원병을 보내 주십시오! 빨리!” 버새 왕은 왕궁에도 파리로봇이 날아다니는 것을 발견한지라 교묘한 조왕돌이 첨단도청기로 도청할까봐 비밀부호로 문자메시지를 보냈어요. “좀 참으십시오. 우리 묘한 방법으로 그대를 도우리다!” 그 메시지를 받자마자 허수아는 무전기를 놓으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어요. “살았어. 뱀 섬나라에서 지원군을 보낸다.” 그는 우성 대통령을 보고 “대통령 특사로 나가 뱀 섬나라 지원군을 마중하십시오.”라고 했어요. 허나 우성 대통령은 퍽 반기는 표정이 아니었어요. “어찌 뱀 섬나라 오랑캐들을 우리 코치아 반도에 끌어들인단 말이오?” 허수아는 결기가 울컥 했어요. “고 젖내 나는 애 새끼에게 포로될 거면 아예 죽고 말아야지.” 이때 만장굴 안쪽에서는 거의 죽어가는 선영의 신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긁었어요. 바깥에서는 우레와 같은 굉음이 울렸어요. 꽈르릉 꽝꽝! 버섯구름이 솟구치었어요. 뒤이어 폭풍이 덮치더니 햇빛보다 훨씬 강한 빛이 소사해왔어요. “아차, 원자탄이야!” 광풍과 강열한 빛이 만장굴을 덮치었어요. 숨이 헉헉 막히고 얼굴이 따끔따끔해 났어요. “아, 저 놈들이 핵무기까지 써?” 허수아는 핵 전술부대에 명령을 내렸어요. “코치아 부대에 핵 미사일을 발사하라!” 코치아 반도에서 끝내 동족상잔의 처참한 핵전쟁 비극이 폭발했어요. 도처에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어요. 핵무기의 위력은 엄청 컸어요. 설상가상으로 코치아와 임해의 동해안선에 가마솥처럼 줄느런히 늘어섰던 핵발전소마저 폭탄에 명중돼 엄청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강열한 방사선을 방출했어요. 그 거대한 충격파에 지상의 모든 건물이 폐허로 됐고 강렬한 방사선 폭사에 코치아와 임해의 장병들은 훼멸 되다 시피 됐어요. 용맹을 떨치며 후산으로 쳐들어가던 복제 조왕돌과 로봇 조왕돌 부대는 물론이고 백성들과 가축, 지어 산골짜기에서 평화롭게 살던 숱한 호랑이와 사자, 멧돼지들마저 뼈다귀도 치르지 못했어요. 겨우 살아남은 호랑이와 사자, 진돗개와 풍산개는 코치아를 떠나 살 길을 찾아 헤매었어요. 원숭이들은 혹달개와 지능 원숭이 인 매발톱을 따라 수렴동을 떠나 유라시아 대륙을 따라 동북쪽으로 떠났어요. “가자, 클론바우 꼬마대통령이 이끄는 아마존 열대우림으로 가야 산다.” 완전히 폐허로 돼버린 코치아의 열대우림을 떠나는 원숭이들의 말이었어요. 허나 다행히 조왕돌은 만장굴에 쳐들어갔기에 핵 방사선에 덜 피복돼 목숨만은 건졌어요. 허수아는 조왕돌 부대가 침입하자 질겁해 딸 선영이마저 만장굴에 둔 채 부랴부랴 다른 구멍으로 빠져나가 숨어버렸어요. 조왕돌은 허수아를 찾아 어둠침침한 만장굴 막장까지 누비며 들어갔다가 침대에 누워 신음하는 선영을 발견했어요. 전지 불에 비친 선영의 모습은 산 송장이나 다름없었어요. 피골이 상접하고 피고름이 줄줄 흐르는 얼굴은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했어요. 조왕돌은 썩기 시작하는 손으로 다 썩어 갈고리 같이 뼈가 드러난 선영의 손을 잡고 흑흑 흐느끼었어요. “선영아, 난 죽을 죄를 지었어.” 선영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도 조왕돌의 말소리는 알아듣고줄이 끊어진 구슬처럼 눈물을 흘리었어요. 허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어요. 조왕돌은 침대머리에서 선영이 써놓은 쪽지를 주어 펼쳐들었어요. 거기에는 비뚤비뚤 쓴 글씨가 박혀 있었어요.   난 너와 영원히 함께 사랑하면서 살고 싶었어. 나를 먼저 죽이고 아빠에게 총을 겨눠라! 날 용서해.   “선영아!” 조왕돌이 선영을 끌어안는 순간 “꽝!” 요란한 굉음이 울렸어요. 화광이 충천하고 사람의 피와 살이 타는 그을음 냄새가 물씬 풍기어 코를 찔렀어요. “허허허, 언감 이 어른과 대들어?!” 다른 굴에서 허수아가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막장으로 들어갔어요. 모든 것은 허수아가 미리 획책한 마지막 고육계와 미인계였어요. 음흉하고 지독한 살인계책이었어요. 딸을 미끼로 폭탄을 인폭해 조왕돌을 죽였다고 생각한 허수아는 너털웃음만 터졌어요. 핵폭탄의 습격을 받았지만 수도 연화시 칼산 앞의 대통령궁 지하 벙커에 숨은 조왕돌의 어머니 사랑과 아내 보름 그리고 고모 금붕어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어요. 그 난세 판에 보름은 달덩이 같은 딸애를 낳았어요. 바다 건너에서 전쟁교사범들인 버새 형제는 왕궁의 벌건 기둥에 기대서서 징글맞게 너털웃음을 웃으며 쾌자를 불렀어요. “허허허. 개처럼 서로 물고 뜯는 꼴 보기 좋구먼!” “형, 퍽 쉽게 됐어. 히히히.” 버새 왕은 음흉한 몰골에 야심에 찬 이발을 들어냈어요. 욕심이 굴뚝같은 버새와 밴새는 코치아 반도에 꿀벌 로봇과 벼룩이 로봇 부대를 파견하고도 모자라 복제한 개 사람과 멧돼지 인도 파견했어요. 벼룩이 로봇은 몇 미터 높이로 폴짝폴짝 뛰는 놈들이어서 사람의 눈에도 로봇의 눈에도 띄지 않고 코치아 반도의 살아남은 로봇파리와 로봇모기들을 없애 치웠어요. 복제 조왕돌 부대는 뱀 섬나라의 개 사람과 멧돼지 인 부대에 모래성처럼 무너졌어요. 조왕돌 1호는 복제 조왕돌 부대와 원숭이인 부대를 파견해 막으려고 했어요. 허나 하늘에서 불시에 뱀 섬나라 폭격기가 투하한 폭탄에서 숱한 이가 기어 나왔어요. 그 놈 이새끼들은 매발톱 1호를 비롯한 원숭이 인들에게 덮쳐들었어요. 원숭이 인들은 총 몇 방 쏘지 못하고 벼룩과 이가 덮쳐들어 퍼뜨린 독 바이러스에 감염돼 목숨을 잃고 말았어요. 코치아 반도에 모든 생물과 로봇들이 소멸됐다고 인정한 버새 왕은 뱀 섬나라 방사능방지부대를 앞세우고 대군이 임해 남해안으로부터 등륙했어요. 후산 앞바다에는 섬나라 오랑캐들의 후속 군함들이 새까맣게 덮쳐들었어요. 그들은 핵 방사능으로 폐허로 된 코치아 반도를 반날도 되지 않아 남으로부터 북으로 백산 기슭까지 거침없이 점령하고 대통령 일가를 서캐 훑듯 하면서 찾았어요. 그들은 임해의 이른바 수도 후산 일대 만장굴 지하벙커에 숨어 간신히 가는 숨을 몰아쉬는 허수아 대통령을 나포했어요. “허수아비 같은 놈, 너도 대통령이냐?” 밴새 총사령관은 허리춤에서 젓가락만한 레이저비수를 꺼내 들었어요. “우린 친선 동맹국인데 어찌 이럴 수 있어?” “허허허, 동족끼리 개처럼 서로 물어뜯는 놈들이 어찌 몇 천 년 원수를 진 우리 뱀 섬나라와 동맹국 의리를 지킨다고 믿을 수 있단 말이냐? 개보다도 못한 놈들!” 밴새가 손에 쥔 레이저비수를 번쩍 휘두르자 허수아의 목이 썩둑 잘려 나갔어요. 나라를 분열시킨 허수아비는 뱀 섬나라 오랑캐들의 손에 더러운 끝장을 보고 말았어요. 밴새는 폐허로 된 코치아 수도 연화시로 개인과 멧돼지 인 부대도 모자라 꿀벌 부대와 벼룩 부대를 끌고 가서 대통령 집무실을 포위하고 쳐들어갔어요. 그때 대통령 집무실을 지키던 살아남은 호위무사 원숭이 인들은 매발톱의 지휘에 따라 나무 위에서 수류탄을 뿌리고 반 탱크 포까지 쏘면서 영용히 싸웠어요. 허나 방사선과 자외선 피폭을 받아 피부암에 걸린 데다 벼룩과 이들이 이악스레 물어뜯는 바람에 원숭이 인들은 하나, 둘 쓰러지더니 나머지 원숭이 인들은 대통령 집무실 앞마당에까지 밀려갔어요. 그들은 마지막 사람이 남을 때까지 뱀 섬나라 개 사람과 멧돼지 인들과 결사적으로 싸웠어요. 이윽고 대통령 집무실 대문이 활짝 열렸어요. “돌격!” 밴새 총사령관이 레이저비수를 휘두르자 악마들이 우르르 쓸어 들어갔어요. 조왕돌 대통령의 일가족과 고모도 지하벙커에서 몽땅 나포됐어요. “아니, 이것들이 몽땅 조왕돌 꼬마대통령이란 말인가?” 밴새 총사령관은 지하벙커에 똑 같이 생긴 숱한 조왕돌을 보고 놀랐어요. 복제 조왕돌 1호는 악마들에게 체포돼서도 허수아비보다는 기개가 꿋꿋했어요. 그는 가슴을 뻗치고 나서면서 “내가 조왕돌이다. 능욕하지 말고 어서 죽여라!”라고 했어요. “허, 천하의 조왕돌 각하께서 이렇게 쉽게 붙잡힐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밴새 총사령관은 징글맞게 웃으며 보름에게 눈길을 돌렸어요. 그 놈은 갓난애를 품에 꼭 껴안은 보름에게 한발자국한발자국 다가가더니 레이저비수로 볼을 건드리며 지껄이었어요. “아이고, 보조개가 옴폭 파이는 요 볼이 아까워서 조왕돌 대통령이 어찌 죽겠어?” 밴새는 보름의 품속에 안긴 갓 태어난 딸애를 매만지면서 능청을 떨었어요. “적어도 코치아의 귀공주인데 잘 키워서 우리 뱀섬나라 왕비를 삼아야지. 이쯤 하면 예의를 다 지킨 거겠지. 으흐흐흐. 흥!” 그는 사랑과 금붕어한테 다가가더니 차렷 자세를 취했어요. “어마나! 이거 금별 대통령의 귀부인과 여동생이 아닌가? 조왕돌을 어떻게 잘 두었으면 이 지경이 됐어? 당신 남편과 아들놈은 우리 나까아멘 왕을 죽이고 왕궁과 야스쿠니 신사를 풍비박살 냈단 말이야.” “나까아멘 악마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거야. 우리 코치아에 우박과 별똥까지 퍼붓고 핵전쟁을 유발시킨 게 네 놈들이란 걸 모르는 거 같아?” 버새 총사령관은 레이저비수를 조왕돌의 목에 대고 빈정거렸어요. “허나 누가 그걸 믿느냐?” “하늘이 굽어본다. 무섭지도 않아?!” 밴새는 음흉한 몰골을 드러냈어요. “넌 우리 죽기 전에 죽어!” 악마는 레이저비수를 들고 거들먹거리었어요. “허, 천하의 조왕돌 총사령관, 아니, 꼬마대통령이 이렇게 쉽게 체포돼 우리 손에 죽을 줄 몰랐어!” 악마의 손에서 레이저비수가 번쩍하자 조왕돌 1호의 머리가 피를 뿜으면서 땅바닥에 퉁 떨어져 나뒹굴었어요. “여보세요!” “얘야!” 지하벙커에는 사랑과 보름, 금붕어의 통곡소리가 처량하게 터졌어요. 버새 일당의 징글맞은 너털웃음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뱀 섬나라 대군은 코치아 대통령궁의 금고를 열어젖히고 금은 덩어리를 몽땅 약탈해 비행기에 실어갔어요. 그러고서도 성차지 않아 밴새 총사령관은 졸개들에게 명령해 군사비밀과 생물과학기술정보를 몽땅 들춰내게 했어요. 한참 서캐 훑듯 하던 군졸들이 대통령 지하벙커 안에서 두툼한 군사비밀문서를 들춰냈어요. 밴새는 군졸들을 끌고 대통령 지하벙커에서 뻗어나간 동굴로 한참 들어가다가 철문을 발견했어요. 몇몇 군졸들이 감자수류탄을 자물쇠에 달아매고 먼 곳에 숨어 총을 쏘았어요. 꽝! 수류탄이 폭파하면서 철문이 박살났어요. 횃불을 해 들고 군졸들이 먼저 실험실에 쓸어 들어가 유리실험관과 그릇들을 마구 팽개쳐 마스고 여기저기 서캐 훑듯 뒤번지었어요. 어둠침침한 실험실에서 밴새는 한 서류첩에서 금붕어 소장의 이름이 박힌 “음양인 개발에 대하여”란 실험보고서를 발견했어요. “뭐? 음양인? 이 놈들이 별 특별한 새 인종개량을 하려고 들었구나.” 밴새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횡설수설 중얼거리었어요. “금붕어, 이년, 클론바우 16세의 체외 사정한 정액을 받아 괴물을 만들더니 진짜 변태 됐구나. 어째 옆구리에서 애를 빼내는 여인을 개발해내지 못해? 쳇, 몇 천 년 전부터 모진 해산진통을 싫어서 여인들이 제왕절개를 해 애를 낳더니. 이젠 여인들이 입으로 씨를 받아서 똥집에다 애를 키워서 입이나 옆구리로 애를 빼낼 지경이구나.” 그는 그 연구실험 보고서를 서류가방에 슬쩍 넣고 또 다른 뭣이 더 없나 두리번거렸어요. 저쪽 책꽂이에는 조왕돌의 이름으로 된 파리로봇과 모기 로봇, 쥐 로봇, 독수리 로봇, 상어 로봇 등에 대한 자료였어요. “몽땅 가져다 우리 걸로 만들어야지.” 실험실 안을 발칵 뒤져 그렇다할만한 자료를 몽땅 챙기자 악마 밴새는 군졸들을 데리고 지하과학연구실험실에 불을 질러놓고 떠나갔어요. 악마 밴새 총사령관은 대형수송기에 사랑과 보름이, 갓난애까지 전리품처럼 싣고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면서 뱀 섬나라로 날아갔어요. 그들이 코치아 상공을 날아 지나가보면서 내려다보니 코치아 땅은 인간생지옥이나 다름없이 돼버렸어요. 핵전쟁으로 인해 나무와 풀 한 대 찾아보기 힘들게 산천초목이 몽땅 검게 다 타버려 잿더미를 이루었고 수도 연화시와 후산의 고층건물은 지진이나 화산폭발을 맞은 듯이 폐허로 돼 버렸어요. 시멘트기둥이 가로세로 넘어진 도시 길거리와 산과 들판에 여기저기 사람과 가축, 짐승들의 시체가 널려 염라왕국의 무덤을 방불케 했어요. 굶주린 까마귀들이 새까맣게 모여들어 썩어가는 시체를 뜯어먹느라고 야단법석이었어요. 귀국한 밴새는 금빛이 눈부시게 장식하는 왕궁을 둘러보고 깜짝 놀랐어요. 금돌로 왕궁 둘레에 토성을 쌓았고 벌건 나무 기둥 사이에 금빛이 번쩍이는 금 기둥을 세웠고 왕궁 광장에는 열대우림의 야자수가 우거졌고 심지어 백산의 미인 송이 하늘을 찌르며 서 있었어요. 푸르른 연못에서는 금붕어와 황어가 지느러미를 치켜세우고 노닐고 있었고 연못가에는 임해에서 실어온 꺼먼 부식토에 심은 벚꽃, 무궁화, 난초가 그윽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어요. 자기가 목숨을 걸고 고치아와 싸워 실어온 전리품으로 왕궁이 도금되었던 것이죠. 지붕 용마루도 용트림하는 금용이 누어있었어요. 바닥에도 누런 금돌과 하얀 주옥을 반들반들하게 깔지 않았겠어요? 지어 벽도 금돌로 쌓았고 왕 보좌도 금으로 만들었어요. 금으로 조각한 왕 보좌 뒤에 금룡과 금 뱀이 타래 쳐 올라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혀를 날름거리면서 옥을 박아 넣어 만든 눈깔로 자기를 노려보고 있었어요. 밴새는 형이 비스듬히 앉아 자기를 쏘아보는 왕의 금 보좌에서 빛나는 금빛에 눈이 부시어 부비고 나서 횡설수설했어요. “형, 음양 인을 개발하면 어때? 한 몸에 음양 생식기가 다 달렸으니까. 세계에서도 유명한 생물대학자 금붕어의 실험보고서처럼 이 세상에 강간도 윤간도 살인도 없지 않겠어?” 그 말에 버새 왕은 도리머리를 저었어요. “건 안 돼. 옥수수도 이파리를 너펄거리는데 황차 우린 지능동물인데 제 몸에 음양이 다 달려 있으면 무슨 멋이냐? 미녀를 쟁취하려고 경쟁할 필요도 없고. 에이,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 난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외생식기가 좋아.” “아니오. 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요. 자기 몸에 양물도 있고 옹달샘도 있으면 언제 하고 싶으면 밥을 먹다가도 돌아앉아 슬슬 할 수도 있고 길을 가다가도 서서 할 수 있고 얼마나 편리해?” “이 개명치 못한 놈아, 음양이 한 몸에 달린 음양인은 수음을 하기보다 무슨 재미있어?” 버새 왕은 온 몸에 소름이 끼친 듯 부르르 떨더니 뒷말을 이었어요. “넌 수컷할망구 그렇게 부러워?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반편이야. 어떤 자들이 남자 돼가지고 여자로 돼 보겠다고 변성 수술도 했지 뭐야? 결과 명만 짧아졌지. 남자면 남자로 사는 게 맞아. 뱀섬나라 왕족의 본성은 대외정복인 거야. 우리 나까 왕족은 낮에는 다라를 다스리고 밤에는 미녀를 정복하면서 사는 게 재미란 말이야. 우리 왕족에게서 성욕과 재물에 대한 탐욕을 빼고 나면 뭐가 남느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은 네 놈이야. 안나와 클론바우 가족이 대통령 보좌를 두고 싸우는 틈을 타 아카시아에서도 어부지리를 할 준비나 해.” 밴새는 욕심이 끝이 없는 형을 보고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형, 왕궁에 황금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코치아 반도까지 먹어치우고서도 만족 안 돼?” “에끼, 못 난 놈!” 버새 왕은 가물에 실 돌피 같이 가는 목을 빼들고 동생을 쳐다보면서 정색했어요. “끝없는 성욕과 탐욕, 그 걸 꼴딱꼴딱 채우려고 우린 끝없이 지구촌을 정복해야 해. 아카시아를 정복하면 널 아카시아 총독으로 임명해 아마존 유역을 영지로 떼 줄게. 열대우림이 우거진 아마존 강반에 가서 살면 좀 좋아?” “알았어. 내 아마존 괴물들을 싹 쓸어버리고 통일된 지구촌을 형님 대왕께 바치겠나이다.” “이제야 총사령관 아우답군. 허허허.” “으하하하~” 버새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군영으로 나가는 아우의 으쓱해진 어깨를 보면서 소파에 주저앉더니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어요.                   제18장 민주투표 저게 뭔가요? 하늘 현광 판에 글쎄 만삭이 된 안나 여대통령이 나타나지 않았겠어요? 화장을 짙게 한 안나 여대통령은 금발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더니 살기 찬 파란 눈알에 웃음기를 띠었어요. “여러분, 제가 그리 쉽게 죽을 거 같아요? NO, NO!” 두덜거리는 클론바우 18세가 하늘 형광판에 나타났어요. “아니, 분명 비명소리를 지르는 걸 들었는데…” 안나는 깔깔깔 웃었어요. “햇내기라고야. 건 미리 내 목소리를 로봇에 녹음해놓았다가 틀어놓은 거야! 난 네 놈이 찾아올 걸 진작 알고 시골에 피해 있었던 거야.” “참 간사하구먼.” 하늘의 형광판에서 똑 마치 대통령 선거경쟁 쟁론이나 벌리는 거 같았어요. “여러분, 저 괴물의 말을 믿지 마세요. 저 놈이야 말로 핵미사일로 우리 대통령궁을 폭파시키려고 미쳐 날뛴 핵전쟁 범죄자인데요.” “닥치지 못해! 난 그대들이 쏜 핵미사일을 받아 안고 백악관으로 날아가 마당에 박아놓았을 뿐이야.” 클론바우 18세는 화면에서 당장 코끼리 코를 뻗쳐 안나를 휘감아 내동댕이칠 듯 으르렁거리었어요. 그가 파초 같은 귀를 펄럭이며 코끼리 코로 콧방귀를 뀌었어요. 흥! 그 바람에 목화송이 같은 구름송이가 저 멀리 날리어 갔어요. 이때 하늘 어디에선가 부드러운 말소리가 은은히 울리어 클론바우 18세의 귀전을 울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클론바우 18세여, 그대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누구의 말소린가? 괴물 클론바우 18세가 하늘을 우러러 보아도 보이지 않았어요. 목소리를 들어보면 하늘 나라에 계시는 할머니 유리 박사의 부드러운 목소리 같았어요. 허나 딱 그런 것 같지도 않았어요. 너무나도 신성한 말씀이었어요. “그대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높은 대통령 자리에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자리에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고 힘이 있는 척 하지 말라. 안나 여대통령에게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하라. 착함으로 악을 전승하라. 안나와 모든 사람들과 평화적으로 보내라. 능력 있는 자는 힘으로가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긴다.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을 멈추라. 원수가 주리면 먹여주고 목이 말라 하면 물을 마시게 하라. 섬나라에 도사리고 앉아 혀를 날름거리면서 아마존 열대우림을 노려보는 악한 독사를 경계하라. 하늘이 알아서 악한 자에게는 악을 내려 보내 숫구멍에 불덩이를 올려놓을 거고 착한 자에게는 착한 보응을 해주리다.” 하늘에서 울리는 그 철리 있는 말을 듣고 클론바우 18세는 안나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바꿔 좋은 제의를 했어요. “그대여, 우리 설전을 그만두고 아카시아 백성들의 민주 투표로 대통령을 뽑으면 어때요?” “좋아. 민주 투표를 해보자. 젖내 나는 네가 괴력을 믿고 날친다만. 우둔한 게 왕으로 된다면 황소가 왕으로 되겠어. 픽,” 안나는 콧방귀를 뀌더니 “너희들 아마존 열대우림에 사람 같은 게 몇이 있냐?” 하고 빈정거리었어요. “허허허. 원숭이, 호랑이, 표범, 사자, 코끼리, 사슴, 서우. 호수의 악어, 하마, 물소, 또 바다의 고래, 물개…” “안 돼! 서우나 표범, 사자가 어찌 우리 아카시아 백성이란 말이여?! 동물을 동원해 투표해 대통령이 될 꿈을 꾸지도 마!” “왜? 우산나무, 칡넝쿨도 목숨을 가지고 있어요. 이 나라 백성들과 동식물에게 물어 보세요? 지구의 생태환경과 그들을 보호할 진짜 대통령이 누구인가요?” “호호호!” 안나는 배를 끌어안고 요절할 듯 웃어댔어요. “정말 웃기는 괴물이구나.” 지구촌의 백성들은 오리무중에 빠져 어느 편에 서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 했어요. 허나 뱀 섬나라 버새 왕은 남의 집에 불난 틈에 도적질이라도 한 기분에 잠겼어요. “아카시아에 난리 나고 맥도 총사령관이 꺼졌어. 코치아 내란 때처럼 어부지리를 하기 한창이야.” 밴새 총리는 싯누런 송곳니를 드러내며 음흉한 웃음을 웃었어요. 클론바우 18세는 생김새는 괴물이었지만요. 착한 정치를 펼치었어요. 그는 자기를 죽이려고 미쳐 날뛰던 안나를 넓은 흉금으로 용서했어요. 물론 그 일로 아카시아에 날아온 할아버지 클론바우 16세의 반대도 받았지만요. 클론바우 18세는 세상의 인심을 한 몸에 받아 안을 욕심이 생겼던 것이죠. 뱀 섬나라 악마 나까아버새를 제거하고 지구촌의 평화와 안정, 생태환경을 보호하려면 아카시아의 분열과 내전을 막아야 했어요. 괴물 클론바우 18세는 그리스 이야기 속의 아르고스처럼 눈이 백 개는 없어도 네 개 있었어요. 얼굴의 코 양옆에 두 개가 있는 외에 뒷골과 식지에도 하나씩 있었어요. 뒷골에 난 눈 덕분에 뒤로 달려드는 놈들도 방비할 수 있었어요. 옛날 섬나라 악마 나까아멘이 자객들을 보내 조왕돌을 비디오촬영기에 장착한 미형미사일을 쏘아 암살하려고 하는 것도 그가 뒷골에 난 눈으로 발견해 짓 부셔 버렸던 것이죠. 게다가 네 눈은 윤번으로 자면서 항상 주위를 살피고 있어 원수들에게 진공할 틈을 주지 않았어요. 그리스 이야기 속의 아고로스의 눈도 밤을 자지 않고 백여 개 눈이 교대로 주위를 살피었지만요. 그도 당할 때가 있었죠. 제우스는 상대를 현혹시키는 힘을 가진 헤르메스에게 헤라의 명에 따라 아고로스에게 결박당해 있는 이오를 구하라고 명령했어요. 괴력을 자랑하는데다가 백여 개나 되는 감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를 정면으로 덤벼들어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헤르메스는 목동으로 변신해 아르고스에게 접근해 피리를 불어 아르고스를 소르르 잠들게 만들었어요. 그때를 놓치지 않고 헤르메스는 아르고스를 죽여 버리고 이오를 구했던 것이다. 아르고스의 죽음을 슬퍼한 여신 헤라는 하늘에 흩어져 있던 아르고스의 100여개의 빛나는 눈을 자기가 기르던 공작새의 꼬리에 옮겨 달아 그의 충의를 기렸다고 했어요. 괴물 클론바우 18세의 네 개의 눈도 아르고스의 100여개 눈보다 못지않게 신통력을 가졌지만요. 후에 비참한 운명을 겪지 말아야 하겠는데요. 괴물이 스스로 아르고스의 비극적인 죽음에서 교훈을 삼아 네 개의 사발만한 눈에는 항상 경계의 빛이 어리어 있었어요. 괴물 클론바우 18세 뇌가 둘이어서 번갈아가면서 밤낮 자지 않고 궁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총명했어요. 그가 밤 낮 없이 궁리하는데 하늘에서 또 그 부드러운 말소리가 봄바람을 타고 들려 왔어요. “클론바우야, 내 말을 좀 들어라.” 클론바우가 정수리에 달린 눈으로 검푸른 밤하늘을 쳐다보았어요. 분명 허연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할머니 유리 박사가 하늘에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나도 아마존 열대우림에 간 손자가 퍽 보고 싶구나. 옛날 그리스에는 수도 케크롭스를 지키는 수호 여 천사 아테나가 있었다. 그때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여신 아테나는 이 도시를 서로 자신의 관할 하에 두겠다며 제왕 제우스에게 허락을 구했다. 제우스는 올림포스의 12신을 모두 소집해 회의를 열었어. 회의 결과 인간들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자가 케크로피아의 수호천사로 될 수 있다고들 했지. 그러자 포세이돈은 곧바로 삼지창을 휘둘러 큰 바위를 부순 다음 아름다운 말을 만들었어. ‘나는 말을 줄 수 있다. 너희들은 이 말을 타고 달려 나가 적을 무찌를 수도 있고 무거운 물건도 나를 수 있다. 또 쟁기를 매달아 밭을 갈 수도 있다.’ …” 클론바우 18세는 사발만한 눈을 슴벅이면서 하늘을 쳐다보면서 시조 할머니 유리 박사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어요. “반면에 아테나는 창으로 땅을 내리쳐서 한 그루의 나무가 솟아나게 했다.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나 가지를 넓게 뻗으며 수없이 많은 푸른 열매를 맺었다. ‘저는 이 올리브나무를 줄 수 있어요. 한낮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도시를 아름답게 꾸며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열매에서 나는 기름은 여러분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 줄 것입니다.’ 말이나 올리브나 모두 필요했지만 케크로피아 사람들은 고민 끝에 올리브를 선택했어. 그때로부터 그리스 수도의 이름을 여신 아테나의 이름을 따서 아테네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몇 천 년이 되도록 지금도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는 도시 수호의 여 천사 아테나의 10여 미터나 되는 동상이 서 있어. 그는 제우스의 딸로 태어났는데…” “할머니, 지금 안나와 경쟁 때문에 몇 천 년 전의 이야기를 들을 새 없어요.” “넌 총명한 애어서 알아들을 수 있을 건데. 도시 수호천사 아테나의 이야기를 하는 건 너도 우리 지구를 지키는 현시대의 수호천사가 되라는 거야. 인류에게 올리브나무를 만들어 준 가냘픈 힘을 가진 아녀자 아테나는 민심을 얻었어. 허나 싸울 궁리를 한 용맹한 투사는 괴력으로 삼지창을 휘둘러 커다란 바위를 부스고 전마를 만들어냈지만 민심을 잃어 수호신으로 되지 못했어. 폭력은 새로운 폭력을 낳을 뿐이야. 적수가 폭력을 휘두르더라도 선으로 악을 전승해라.” 총명한 클론바우 18세는 인차 알아들었어요. 그는 이전에도 우라노스, 크로노스, 제우스 3대 신과 신들의 어머니 가이아의 가르치심을 언제나 잘 들었어요. 그는 인디 인들과 아마존 동물 인들의 힘을 빌리어 우리 사랑스러운 지구를 지키고 싶었던 것이죠. 그는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거닐면서 파초 같은 귀를 퍼덕이며 코끼리코를 슬슬 매만지면서 궁리했어요. 어떤 때에는 대붕의 날개같이 커다란 날개를 퍼덕여 검푸른 하늘을 날아예면서 날이 감에 따라 망가져 가는 지구촌을 돌아보며 안나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궁리하고 또 궁리했어요. 나중에 그는 안나를 미운대로 착한 마음으로 포옹해 주기로 마음을 굳히게 됐어요. 안나는 클론바우 18세를 괴물이지만 조무래기 취급을 하면서 아직도 양보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때 시골 대통령궁에는 대머리를 번들번들 빛내면서 한 양키아저씨가 나타났어요. 안나는 대통령궁 소파에서 놀라 일어나면서 “당신 누구요?” 하고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어요. 그자는 번들번들한 대머리를 손으로 툭툭 찍으면서 상냥한 표정으로 안나 가까이에 다가갔어요. “나는 노르망디 생물학자 크론 박사입니다.” 그러자 경호원들이 막아 나서려고 했어요. “가만!” 안나는 손을 들어 제지시키었어요. “아, 알만해요. 거 복제기술로 코치아의 조왕돌 꼬마대통령의 복제 조왕돌 부대까지 만든 유명한 생물박사지요?” 크론 박사는 어깨를 으쓱했어요. 안나는 태연자약하게 소파에 앉으면서 크론 박사에게 자리를 권했어요. “용건은 뭔데요? 그 머나먼 노르망디에서 여기까지 왔어요?” 크론 박사는 안나의 옆 소파에 앉으면서 나직이 말했어요. “그리스 이야기 하나 들려주려고. 에헴.” “뭘? 언제 그럴 새 다 있겠어요?” 안나는 시끄럽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려고 했어요. “아테나 이야기를 들으면 안나 대통령께서 클론바우 18세와의 모순을 푸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여겨서 만리창파를 헤가르고 날아왔습니다.” “아테나 이야기라? 거 유리 박사가 한밤중에 클론바우 18세에게 말하는 걸 내 훔쳐 들은 적이 있는데요. 또 나보고 올리브 나무를 심어야지. 아마존 열대우림을 해쳐선 안 된다는 게 아닌가요?” “그보다도 더 중요한 거 있는데 말입니다.” “뭔데요?” 크론 박사는 “에헴, 에헴.” 하고 건 가래를 떼더니 천천히 얘기하기 시작했어요. “아테나는 제우스의 딸이지요. 제우스는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딸이 태어나서 자기를 죽일까봐 아테나를 태어나자마자 입안에 넣어 삼켜버렸습니다. 그런데 아테나가 제우스의 머리 안에서 어찌나 요란하게 구는지 불사신은 제우스는 두통이 심해 아들 헤파이스코스에게 도끼로 자기 머리를 두 쪽으로 짜개고 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아테나는 세상에 태어났지요.” 안나는 조금 기의한 눈빛을 보였어요. 크론박사는 계속 이야기했어요. “아테나는 소아시아의 어느 한 마을에는 천을 잘 짜는 아라크네라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아테나와 천을 짜는 기술을 비기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테나는 밸이 꼬여 노파로 변신해 아라크 소녀 앞에 나타나 ‘네가 천을 잘 짠다고 자랑하고 다닌다는데 인간들에게 그러면 괜찮은데 나와 그렇게 하려면 허락을 받아야 해.’라고 했어요. 그런데도 아라크네는 ‘아테나를 불러 시합을 해보면 확실한 걸 알 수 있을 겁니다.’라고 으스댔어요. 그리하여 아테나는 본 모습을 드러내면서 시합을 해보자고 했습니다. 다음날 그들 둘은 각기 짜온 베를 사람들 앞에 공개했습니다. 아테나가 짠 베에는 오랜 옛날 그녀와 포세이돈이 서로 케크로피아의 수호천사가 되기 위해 다투던 때의 모습이 묘사돼 있었지요. 아라크네의 베에는 에우로파를 납치해가는 흰 소와 레다를 강제로 데려가는 백조의 모습이 묘사돼 있었습니다. 흰 소와 백조는 여신 아테네의 아버지 제우스가 변신한 것이어서 아라크네는 연애를 주제로 묘사했습니다. 그 소녀는 자기 작품이 아테네의 작품보다 낫다고 으시댔습니다. 아라크네가 묘사한 내용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테나가 분노를 폭발하자 질겁한 아라크네는 목을 매여 죽어버렸습니다. 허나 아테나는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너는 살아 있어야 해. 그래서 나를 모욕한 인간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 후세에 널리 전해지도록 할 것이다.’ 아테나의 저주를 받은 아라크네의 몸은 점점 작아졌습니다. 피부는 회색으로 물들고 손과 발은 구부러져 여덟 개 다리로 갈라졌습니다. 결국 아라크네는 추한 용모를 가진 거미로 돼 계속 실을 뽑아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운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안나는 호 한숨을 쉬더니 “난 바보가 아닌데요. 거미로 되기 싫어요.”라고 하면서 크론 박사를 넌지시 바라보며 허무한 웃음을 지었어요. “크론 박사가 아테네와 아라크네의 이야기를 하는 목적은 날 보고 클론바우 18세에게 투항하라는 말이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아니, 투항이 아니라 양보하라는 것이 적절합니다. 클론바우 18세는 당세에 신통력을 가진 괴물입니다. 그와 싸우면 질 건 뻔합니다. 게다가 두 분이 세력 싸움을 하면 우리 지구 생태환경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안나는 답답한지 담배 한가치 꺼내 붙여 물고 뽁뽁 빨더니 시퍼런 연기를 호 내뿜었어요. “참말 복제기술의 원조다운 생물학자군요. 하긴 클론바우 18세 그 괴물은 당신의 그 복제기술에 의해 탄생된 거니까요. 당신이 복제기술을 발견했기에 클론바우 같은 괴물이 생겨 인류에 얼마나 큰 혼란을 불러 일으켰는가요? 옛날 아인슈타인이 핵을 발견했기에 지구촌에서 숱한 원자탄을 만들어내게 한 거나 뭐가 다르단 말인가요? 당신은 정말 괴짜죠. 지구촌에 당신 같은 괴짜가 나타날 때마다 세상은 온통 혼란해진다니까. 흥! 인류에 복제기술의 아들과 같은 괴물을 위해 나를 물러앉게 설득할 만 하지요. 흥!” 크론 박사는 트집을 쓰는 안나에게 인내성 있게 다가앉았어요. “딱 그런 것도 아닙니다. 전 객관적인 입지에서 말씀드린 건데요…” “뭔가 조금 알리는 거 같군요.” “거미신세로 되려고 하지 말고 클론바우 18세와 합작해 세상을 아름답게 개조해 보십시오. 그것이 당신을 구하고 지구촌과 인류를 구하는 유일한 출로입니다. 이제 신통력을 가진 괴물과 싸우다가 복중 아기마저 보호하지 못하고 뱀 섬나라 오랑캐들이 어부지리를 하게 하지 마십시오. 조왕돌과 허수아비를 보십시오. 동족끼리 싸우더니 결과가 어떻게 됐습니까?” 안나는 하얗게 질린 이마를 왼손으로 고이고 오른 손을 바깥으로 저었어요. 크론 박사는 그쯤하면 됐다고 대통령궁에서 물러나 나왔어요. 며칠 후 안나는 클론바우 18세에게 민주투표를 해서 대통령을 뽑는데 동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죠. 클론바우 18세는 환영했어요. 허나 아카시아의 안나 여대통령의 비서이자 남편인 죤스카는 어깨를 으쓱하며 두 팔을 벌려 보이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No! No!” “왜?” 안나는 만삭이 된 배를 내리쓸면서 말했어요. “이 배로 그 괴물과 싸워 이길 수 없어요.” “우리에겐 선진적인 핵미사일과 유도탄이 있어요. 괴물 따위가 다 뭡니까?” 허나 안나는 뚱뚱한 배를 두 손으로 안고 소파에 김빠진 공처럼 물앉으면서 신음소리를 냈어요. “헤이~ 그만 두세요.” “어찌 아카시아 강산을 하루아침에 괴물에게 내준단 말입니까?” “그게 우리 아카시아 대통령이 아시아의 코치아나 뱀 섬나라 대통령들과 다른 점입니다. 우린 아카시아에서 또 남북전쟁과 같은 전쟁이 일어나는 비극을 연출할 수 없어요. 우리 핵미사일이 무슨 소용 있어요? 괴물 클론바우 18세는 하늘에서 날아가는 핵미사일을 붙잡은 후 휘감아 안고 방향을 돌려 백악관에 날아와 폭파시킬 수 있었단 말이죠. 허나 마당에 박아놓고 가버리었어요. 어린 괴물의 흉금이 얼마나 넓은가요? 나는 우리 지구촌의 심장과 폐 같은 아마존 열대우림을 해친 악마가 되기 싫어요. 또 조왕돌이나 허수아비 같은 끝장을 보기 싫단 말이야.” 안나는 가냘픈 하얀 손으로 만삭이 된 배를 어루만지면서 “호~ ” 한숨을 내쉬었어요. “난 애나 낳으면서 현처양모로 되고 싶어요. 당신의 현숙한 아내로, 이 배속 어린애의 착한 어머니로 편안히 살고 싶어요.” 그러자 죤스카도 맥없이 소파에 물앉더니 턱을 고이고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렸어요. “불시에 착한 척 한다고 헤라나 아테나 될 거 같습니까? 흥, No! No!” 그날 저녁이었어요. 안나 여대통령은 침대에 누워 항아리 같은 배를 슬슬 어루만지면서 텔레비전을 보았어요. 그런데 뭐예요. 침대채로 훌 들리더니 창문을 열고 날아나가 곧바로 아마존 열대우림에 순식간에 이르렀어요. (이게 또 괴물이 무슨 요술을 부리는 게람?) 안나는 자기 몸을 내리 보다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글쎄 자기가 수사슴으로 변한 게 아니겠어요? (이 일을 어쩐담?) 그녀는 머리 위에 나무뿌리처럼 자란 뿌리를 매만지다가 흔들었어요. “배 속의 애는 어데 갔나? 이게 무슨 꼴이람? 망측해라.” 이때 채벌 공들이 총을 메고 자기한테 덮쳐 왔어요. 분명 자기가 클론바우 괴물을 나포하라고 아마존 열대 열대우림에 보낸 자들이었어요. “아하, 꽃사슴, 내 거야!” “고기는 네 먹고 뿌리는 내 거야!” 그 자들은 앞 다퉈 침대 위에 서 있는 수사슴을 잡으려고 총을 겨누었어요. 안나는 황급히 손을 흔들어 제지시키려 했는데 사슴 앞다리가 사람의 손처럼 말을 잘 듣지 않았어요. 그녀가 황급히 “안 돼! 난 안나 대통령이야!” 하고 고함쳤어요. 허나 안나는 그 고함소리가 여대통령의 고함소리가 아니라 수사슴의 고함소리라는 것에 깜짝 놀랐어요. 그녀는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어 “이 놈들, 난 안나야! 살려 달라는 말이 안 들려?!” 하고 또 고함쳤어요. 허나 수사슴의 고함소리를 알아들었을 리 없는 채벌 공들은 큼직한 수사슴 안나를 향해 총을 겨누더니 방아쇠를 당겼어요. 땅! 땅! 안나 수사슴은 가슴을 붙안고 쓰러졌어요. “앗! 사슴을 살려 달라!” “여보, 여보!” 안나가 깨나 보니 그것은 허황한 꿈이었어요. “그래, 내가 사슴이 돼보니까 그래, 아마존 열대우림의 모든 짐승들도 말하지 못하는 인간과 같아. 몽땅 살려내야 해, 절대 살해할 수 없어!” 죤스카는 또 빈정거리었어요. “여보세요. 나의 안나, 꿈에서 깨나세요. 누가 안나 여대통령의 동상을 세워 줄 거 같아요? 지구촌에는 유리 박사의 동상이나 클론바우 17세의 지구통일기념탑이면 다입니다. 허허허.” 허나 안나 여대통령은 식은땀이 흐른 얼굴과 잔등을 닦더니 만삭이 된 배를 다시 어루만지면서 뭐라고 중얼거리었어요. 한편 아카시아의 대부분 백성들은 클론바우와 같이 착하고 괴력을 가진 신과도 같은 클론바우 18세를 대통령을 모셔야 강대한 아카시아를 건설하고 뱀 섬나라 악마 형제를 전승하고 아카시아와 지구촌을 수호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죠. 더구나 아마존 열대우림의 인디인과 짐승들마저도 길들여 진 양처럼 순순히 클론바우 18세를 따랐어요. 그들은 클론바우 18세에게 한 표를 던졌어요. 결국 클론바우 18세는 총 한방 쏘지 않고 나약한 안나 전임 여대통령을 꺾고 아카시아의 신임 대통령으로 우뚝 일떠섰어요. 허나 그는 폐허로 된 백악관 대통령궁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안나가 새로 지은 목조 대통령궁에도 들지 않았어요. 그는 절반이나 타버린 아마존 열대우림에 임시 원목으로 지은 커다란 통나무집에 들어 초심에 묻혀 정사를 돌보았어요.                       제19장 평화 어느 하루, 할아버지는 자꾸 안나를 무력으로 없애 버리라고 귀띔했어요. 그러자 클론바우 할아버지의 솥뚜껑 같은 손을 잡고 말했어요. “할아버지, 이제 또 안나와 전쟁을 하면 이 아마존 열대우림은 끝장입니다. 할아버지가 코치아를 떠나 아마존 열대우림에 온 건 옛날 성인께서 가나안을 떠나 바빌론에 들어온 거나 다름없습니다. 몇 십 길이나 되는 해일이 덮쳐 올 때 집채 같은 파도가 바람벽으로 돼 광풍을 막아준 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모두 하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이제부터 할아버지는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손자가 평화와 자유의 새 세상을 여는 것을 구경하십시오.” 클론바우 16세는 머리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리었어요. “네 할미가 악마의 마수에 걸릴 거 알았더라면 훌 안고 아카시아로 날아오는 건데 그랬어.” 클론바우 18세는 침대 같은 소파에서 일어나 소나무 껍질처럼 터덜터덜한 손으로 손수 할아버지 얼굴의 눈물을 닦아드리며 위로했어요. “할아버지, 뱀 섬나라 악마들은 죄를 만나서 제명에 죽지 못해요. 그런데 조왕돌 삼촌이 그렇게까지 무맥하게 버새에게 당할 줄은 몰랐습니다.” 클론바우 16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기실 버새 놈은 죤슨이나 나까아맨과는 달리 교활하고 백가지 낯가죽을 가진 독종악마야. 양면수법을 쓰는 버새를 자칫 잘못 대처했다가는 큰 코를 다치겠어.” 괴물 꼬마대통령도 코끼리 코를 슬슬 만지면서 머리를 끄덕이었어요. “그런 거 같아요. 뱀 섬나라 악마들의 조상신은 원래 뱀이랍니다. 지금도 그 놈들은 사당을 짓고 저들의 조상신으로 뱀을 높이 모시는 걸 보십시오. 지어 금빛이 번쩍이는 새 왕궁의 보좌에도 타래 쳐 오르는 금룡과 뱀의 조각상을 세워놓았다고 합니다.” 클론바우 16세는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머리를 끄덕이었어요. 클론바우 18세는 아들을 시켜 안나 고문과 호랑이 왕 카시마, 사자 왕비컨, 맥도 총사령관 모셔오게 했어요. 허나 안나의 얼굴만은 보이지 않았어요. 컴퓨터에 마주 앉아 회의에 간접으로 참가한다면서 오지 않았던 것이죠. 말이 대통령궁이지 아마존 열대우림에 높이 쌓아 올린 커다란 통나무집일 뿐이었어요. 육중한 괴물 클론바우 18세는 커다란 침대나 다름없는 소파에 앉아 사발 눈을 굴리며 수하들을 둘러보더니 코끼리 코를 슬슬 만지면서 독수리 주둥이 같은 입을 벌리었어요. “오늘 여러 분들을 모신 것은 뱀 섬나라 악마들을 어떻게 처치할 건가를 의논하려는 것입니다. 뱀 섬나라 악마들은 암암리에 대량살상무기와 핵탄두를 생산했습니다. 악마들은 벼룩이와 이 같은 생물세균무기까지 개발해 코치아의 복제인 조왕돌 부대와 파리로봇 부대, 모기로봇 부대를 전멸시켰고 코치아를 핵무기로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뱀 섬나라는 또다시 독사의 이발과 발톱을 드러냈습니다. 뱀 섬나라 악마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주변국은 물론 멀지 않아 우리 아카시아에도 매우 큰 위협으로 됩니다. 어떻게 대처하면 좋겠습니까?” 맥도 총사령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선코를 뗐어요. “제가 뱀 섬나라에 주둔한 우리 아카시아 특수부대를 이끌고 가서 싹 쓸어버리겠습니다. 반날이면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사자 왕 비컨도 장담했어요. “대통령, 우리도 뱀 섬나라에 보내 주십시오. 악마형제들을 뼈다귀도 추리지 못하게 해 치우겠습니다.” 호랑이 왕 카시마도 “내 우리 호랑이들을 데리고 가서 금강석 송곳니로 악마 놈의 대가리를 물어 뜯어오겠습니다.” 하고 떠들었어요. 클론바우 18세는 컴퓨터 현광 판에 나타난 금발머리 안나 고문에게로 눈길을 돌리었어요. “고문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안나는 백악관에서 금발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더니 심중한 표정을 지었어요. “아직 뱀 섬나라에서 아카시아에 도전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전쟁보다는 평화담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클론바우 18세 꼬마대통령은 파초같이 넓적한 귀를 퍼덕이며 사자머리를 끄덕이었어요.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닙니다. 이제 뱀 섬나라와 전쟁을 하면 우리 아마존 열대우림은 끝장납니다. 상처를 많이 입은 지구촌을 더는 핵전쟁의 상처를 입게 해서는 안 됩니다. 될수록 평화담판으로 해결합시다.” “NO! NO!" 이때 맥도 총사령관이 앞에 놓인 원목탁자를 탁 치며 벌떡 일어나 노란 눈으로 괴물 대통령을 쏘아보면서 고래고래 고함쳤어요. “아낙네의 나약한 소리를 듣지 마십시오! 화근을 자초에 뿌리 채로 뽑아버리지 않으면 꼭 큰 화근이 됩니다. 뱀 섬나라 오랑캐들은 얼마나 교활하고 간사한 양면 파들이라고 어루만지려고 그럽니까?” 호랑이 왕은 자기 새끼 가죽을 벗겨간 원수 안나 몰골을 컴퓨터에서 보자 눈에 쌍불을 켜면서 쌍욕을 퍼부었어요. “남의 새끼 가죽을 다 벗겨 대통령 보좌에 깔던 년이 작작 착한 척 해라!” 난장판이 된 회의장소를 보고 괴물 꼬마대통령이 원목탁자를 두드리었어요. “됐습니다, 됐어. 우린 먼저 뱀 섬나라에 경고메시지를 보냅시다.”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자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통나무집에서 나갔어요. 그날 밤에 하늘에 달처럼 걸린 대형형광판에는 아카시아의 괴물 클론바우 18세 대통령이 나타났어요. “세계 정의적인 인민들은 전쟁의 폐허로 돼버린 코치아를 보라. 만약 뱀 섬나라에서 계속 세계 평화를 사랑하는 정의적인 인민들의 마음을 짓밟고 암암리에 핵무기와 대량살상 생물화학무기를 생산한다면 세계 정의적인 인민들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버새 왕은 황급히 동생을 불러 대책을 논의했어요. “평화담판을 하자고 제의하세요. 그 다음에…” 버새 형제는 뭐라고 한참 쑤군거리더니 한바탕 너털웃음을 웃어댔어요. 며칠 후 밴새 총리가 평화담판대표단을 이끌고 아마존 열대우림 상공에 나타났어요. 밴새 총리는 그를 쳐다보는 대표단 수하들을 보고 나직이 “투하하라!”라고 하며 손을 홱 저었어요. 수하들은 우주비행선 꽁무니를 살며시 열더니 검은 함을 열고 뭔가 꺼내 아래로 흩날려 보냈어요. 놈들이 허리춤에서 원격조종기를 꺼내 뚝뚝 누르자 날려 보낸 검은 점들이 쫙 흩어지더니 바람결처럼 열대우림에 사라져 버렸어요. 이윽고 호수 가에서 그들이 탄 우주비행선이 서서히 착륙했어요. 그들 일행은 아카시아 호위병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통나무 대통령궁 앞에 나타났어요. 10여 미터나 되는 육중한 클론바우 19세가 몸소 마중해 안으로 안내했어요. 괴물 꼬마대통령은 팔 네 개를 휘두르면서 “환영합니다. 머나먼 열대우림에까지 오느라고 수고했습니다.”라고 인사하고 나서 밴새 일행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어요. 괴물의 손이 어찌나 큰지 악수라기보다 밴새는 그저 넓적한 솥뚜껑 같은 손바닥에 손을 올려놓았다는 것이 나을 거예요. 통나무 대통령궁은 진짜 뱀 섬나라 수도 소꼬 연못가에 자리 잡은 금빛이 부시는 으리으리한 왕궁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이 누추해 보였어요. 허나 무엇인가 말할 수 없는 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만 같았어요. 저쪽에서 호랑이 왕과 사자 왕이 불이 뚝뚝 떨어지는 사발 눈을 부릅뜨고 당장 한 입에 물어뜯을 듯 으르렁거리었어요. 밴새는 잔등에 소름이 쪽 끼치어 낯가죽에 식은땀을 줄줄 흘렸어요. 클론바우 18세와 원목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나까아밴새 총리는 가죽만 웃고 살갗은 웃지도 않는 양면 파 몰골을 극력 감추면서 입술을 나풀거리었어요. “대통령님, 우리 뱀 섬나라와 아카시아는 친선의 국가로 대대로 보냅시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허락해 주십시오. 아무리 전패국이라고 해도 어찌 장장 몇 십 년 동안이나 군대를 주둔시켜 깔고 들어앉아 계속 식민지 통치를 한단 말입니까? 너무 하지 않습니까?” 클론바우 18세는 파초 같은 귀를 벌쭉이며 귓구멍의 미형도청기에서 울려오는 안나 고문의 말소리를 들었어요. “평화를 위해 독립을 비준한다고 하세요.” “음, 알았소. 오늘부터 뱀 섬나라의 독립을 비준하오. 허나 한 가지 전제가 있어.” “뭔데요?” 클론바우 18세는 긴 코끼리코를 슬슬 만지면서 엄숙히 말했어요. “우리나라와 영원한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오.” 그 말에 뒤로 좀 물러앉던 밴새는 교활한 눈깔을 땔 굴리더니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나기까지 했어요. “좋습니다. 우린 괴물, 아니, 괴력을 뽐내는 꼬마대통령을 보기만 해도 항상 위압감을 느낍니다. 헌데 평화협정을 맺으면 좋지요. 우린 허리를 펴고 살게 아닙니까? 허나 우리도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클론바우 18세 대통령은 파초귀가 뻘쭉해졌어요. “뭔가?” 밴새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발가벗고 나왔어요. “우리 뱀 섬나라에 주둔한 아카시아와 노르망디 연합군을 철수하고 집단자위권을 허락해주십시오. 그래야 우리나라는 완전한 독립국으로 되는 겁니다.” “뭐라고?!” 클론바우 18세는 노기충천해 불도저 갈고리 같은 손으로 탁자를 탁 치더니 고래고래 고함쳤어요. “건 어디 평화적으로 보내자는 건가?! 연합군이 철수하면 당신들은 언제라도 평화협정을 찢어버리고 전쟁이라도 하려는 거 아닌가?! 흥!” 코끼리 코의 콧방귀에 땅바닥의 먼지가 맞은쪽에 앉은 밴새 얼굴에 훅 풍기었어요. “애햄, 햄, 칵~ 퉤! 대통령궁이라는 게 이게 뭔가?” 밴새는 먼지를 먹고 목이 꽉 메 한참 꽥 질을 하다가 노기를 좀 눅잦히더니 낯가죽에 웃음기까지 바르면서 어조를 낮춰 부드럽게 말했어요. “우리가 집단방위 권을 달라는 건 절대 동맹국인 아카시아제국을 적대시하거나 전쟁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클론바우 18세대통령과 아들 클론바우 19세의 굳어졌던 사자 얼굴이 조금 느슨히 풀리었어요. 그걸 눈치 챈 밴새는 아첨과 이간질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어요. “어느 나라든 동맹국인 아카시아와 전쟁을 하자고 덤벼들면 우린 집단자위권을 행사해 군대를 파견해 지원할 겁니다. 특별히 노르망디에 도망가 여대통령까지 하고 있는 죤슨 악마의 딸 예리나가 앙심을 먹고 아카시아를 들이친다면 우린 동맹국인 아카시아를 지원할 것입니다.” “어~허, 허허허. 거 처음 듣는 좋은 소리군 그래. 뱀 섬나라 집단자위권을 비준하겠네.” 그러나 클론바우 18세는 뱀 섬나라를 마음 놓을 수 없어 한마디 더 했어요. “이후에 뱀 섬나라가 강대해져도 절대 우리 아카시아와 노르망디를 싸우게 이간질을 하고 어부지리를 할 생각을 하지 말게나.” “예~ 우리가 어찌 감히 괴물, 아니, 호랑이 코를 쑤시겠습니까요? 해해해.” 교활한 웃음을 짓는 나까아밴새 총리는 딱 불여우 같았어요. “오늘부터 우리 뱀 섬나라가 독립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괴물 대통령님의 덕분입니다. 우린 꼭 충성을 다해 괴물 대통령을 옹호해 지구촌의 평화와 자유를 보호할 것입니다.” 불여우 밴새는 발딱 일어나 군례까지 척 붙이었어요. 클론바우 18세 꼬마대통령은 그 엉큼한 속내를 꿰뚫어보지 못하고 어깨춤까지 덩실덩실 추었어요. 저게 뭐예요? 글쎄 클론바우 18세는 뱀 섬나라 총리의 몸뚱이를 한 손으로 휘감아 쥐더니 어깨에 달랑 올려놓고 지축을 울리게 펄쩍펄쩍 뛰며 댄스를 쳐댔어요. 밴새는 10여 미터 높이나 되는 괴물의 솥뚜껑 같은 손에서 떨어질까 봐 낯이 새까맣게 질리었어요. 그는 두 다리를 바둑거리면서 비명을 질렀어요. “얼른 내려놓으시오! 이게 뭡니까? 남의 나라 총리를 대하는 예의가 통 말이 아니야!” 그제야 제 정신이 펄쩍 든 괴물은 외손으로 어깨 위의 밴새의 사타구니를 잡더니 장기 쪽을 다루듯이 스리슬쩍 땅바닥에 내리어놓았어요. 밴새는 팔소매로 때 괴죄죄하게 묻은 낯가죽의 식은땀을 쓱 닦더니 괴물을 흘겨보며 두덜거리었어요. “평화협정에 서명이나 합시다.” 클론바우 18세는 항아리만한 사자머리를 흔들어대며 불도저 갈고리 같은 손가락으로 밴새 총리의 조개턱을 치켜들면서 너털웃음을 웃었어요. “허허허, 평화협정 체결을 경축하는 활동을 했더니만 밴새 총리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구먼. 히히히.” 클론바우 18세는 붓을 들어 평화협정과 호상 불가침협약 그리고 뱀 섬나라 연합군 철수조약, 뱀 섬나라 집단자위권 비준서, 뱀 섬나라 독립인정서에 일일이 서명하고 통나무로 새긴 도장까지 쾅 찍었어요. 도장을 어찌나 힘차게 찍었는지 지축이 쿵 울릴 지경이었어요. 먼지가 사처로 흩날렸어요. 뱀섬나라 외교관들은 손으로 코구멍을 막고 상통을 징그렸어요. 뱀 섬나라 밴새는 먹물도 마르지 않은 그 숱한 문서들을 들고 보면서 간사한 웃음을 지었어요. “감사합니다. 괴물 꼬마대통령님!” 그는 천금이나 얻은 듯이 괴물 꼬마대통령에게 허리 굽혀 인사한 후 평화담판대표단 일행을 데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어요. 그들이 탄 우주비행선은 흐릿한 하늘을 날아 뱀 섬나라로 향하면서 꽁무니로 뭔가 자꾸 날려 보냈어요.     제20장 불쌍한 원숭이와 호랑이 뱀 섬나라 버새 왕은 며칠도 지나지 않아 악마의 본질을 드러내기 시작했어요. 그는 코치아가 망한 틈을 타서 코치의 수도 연화시 공원에 자리 잡은 국립과학연구소의 철책에서 도망쳐 화과산 수렴 동으로 도망친 원숭이들을 잡아 헬기로 뱀 섬나라 왕궁에 강제로 실어왔어요. 금빛으로 눈 부시는 왕궁에서 버새 왕은 금 왕좌에 앉아 넓적하게 썬 고기 점을 씹더니 입을 쩝쩝 다시며 뱀 미녀에게 물었어요. “이건 무슨 고기야?” “고래 고긴데요.” “그러게 썩썩 한 게 맛이 없지. 물고기는 그래도 우리 뱀 섬나라 참치 생회 맛이 제일이지.” 그가 참치 생회를 집어먹는데 동생 밴새가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형, 모르는 소리야, 그래도 방사능 오염이 덜한 심해의 고래 고기를 먹는 게 제일 좋아. 고래 수명은 200여년이나 된대.” “그럼 넌 천년 산다는 학의 고기나 만년 산다는 거북이 고기를 먹으렴. 흥!” 버새는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진수성찬 상을 두루 살펴보더니 박수를 짝짝 치었어요. “원숭이를 끌어오라!” 궁인들이 커다란 원숭이를 가둔 쇠살창을 실은 밀차를 밀고 궁중으로 들어왔어요. 아니, 쇠살창 안에 갇힌 원숭이는 혹달개가 아닌가요? 국립과학연구소에서 가짜 원숭이 왕인 로봇 조왕돌 1호의 원형이 드러난 후 혹달개는 수렴 동에서 왕이나 다름없었어요. 그는 인간세상을 벗어나 대자연의 원숭이 왕국- 수렴동에 돌아간 것을 다행으로 여겼어요. 그런데 며칠 전에 또 뱀 섬나라 궁인들에게 잡히어 여기까지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버새 왕이 또 박수를 짝, 짝, 짝 치었어요. 내시가 가물에 실 돌피 같은 목을 빼들고 궁중이 쩌렁쩌렁 울리게 고함을 질렀어요. “풍악을 울려라!” 병풍 뒤에 줄느런히 둘러앉은 악사들이 살기 넘치는 풍악을 울렸어요. 그러자 요염하게 치장한 뱀 미녀들이 꼬리를 흔들며 기어들어와 상반신을 쳐들더니 주옥을 박은 바닥에서 춤을 추었어요. 뒤이어 병풍 양 옆에서 궁녀들이 손바닥을 짝짝 마주 치며 다리를 엇바꿔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나오더니 뱀 섬나라 전통무용을 신나게 추었어요. 혹달개는 살기 찬 눈으로 자기 머리를 노리는 악마들을 둘러보며 쇠살창 안에서 부들부들 떨었어요. 드디어 풍악이 멎고 미녀들이 무용을 멈추고 병풍 양옆에 줄느런히 늘어섰어요. 밴새 총리가 저로 집었던 물고기점을 사라에 탁 뿌리치더니 “퉤, 퉤!” 내뱉었어요. “방사능에 오염된 물고기는 맛이 없어 어디 먹겠어?” 버새가 말리었어요. “음식투정을 작작 하라. 자, 원숭이 뇌 장이나 파먹자!” 궁인들이 집게로 혹달개의 머리만 쇠살충 위로 나오게 딱 고정시킨 후 면도칼로 머리 털을 빡빡 밀었어요. 머리카락이 잘리어 우멍한 혹달개의 눈 위로 흩어져 내리었어요. 혹달개는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송곳니를 사려 무는 악마들을 둘러보았어요. 이때 우성 대통령이 벌떡 일어나 말렸어요. “원숭이를 잡아 먹는 건 너무 잔인합니다. 원숭이는 우리 인류와 제일 가까운 친척입니다.” “뭐, 뭐? 어쩌고 어째?” 버새가 벌떡 일어나 우성 대통령을 손가락질 했어요. “방사능 오염으로 지금 어디 먹고 살 게 있는가? 고기고 남새고 모두 세슘이 검출됐단 말이네. 그래도 저놈 원숭이들만은 고산지대 수렴 동굴 안에서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단 말이야. 저 놈들의 고기야 말로 방사능 오염이 덜한 일등 식료품이란 말이야. 잔말 말게.” 그 말에 뱀 인들은 질겁해 꼬리를 바들바들 떨었어요. 몇 해 전에 나까아멘 왕은 전문 뱀 인들을 잡아먹었으니까요. 버새 왕도 언젠가는 자기들을 잡아먹을 지 누가 알겠어요. 버새 왕은 망치를 쳐들고 혹달개 머리를 치려고 했어요. “안 돼!” 이때 우성 대통령의 연체 기형아 아들이 뛰쳐나오면서 팔을 네 개나 뻗쳐 내들어 쳐든 망치를 막아섰어요. 두 얼굴에 난 두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소리― “혹달개를 죽이겠으면 먼저 나를 죽여라!” “아니, 얘가!” 버새는 망치를 천천히 내리었어요. “혹 달개라니?” 그는 실눈으로 혹달개의 빡빡 밀어버린 머리를 내려다보았어요. “에끼, 퉤!” 그는 혹달개 머리에 달린 혹을 보더니 상통을 찡그리었어요. “저 혹을 봐라! 분명 방사능에 오염돼 암 덩이가 생긴 거 아냐? 이 놈들 암투성이 원숭이 골을 파먹고 날 죽으라는 거 아냐?!” 궁인들은 목을 움츠리었어요. “다른 원숭이를 끌어와!” “예~잇~” 궁인들은 혹달개 머리를 짝 한 대 갈겨주고 밀고 달려 나갔어요. “어서 날 죽여라!” 혹달개가 원숭이 말로 마구 고함쳤어요. 허나 궁인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어요. 이윽고 머리를 빡빡 민 다른 원숭이가 쇠살창 안에 갇힌 채 밀차에 끌려나왔어요. 아니, 수렴 동에서 호랑이와 싸워서도 죽지 않은 원숭이 매발톱이 아니겠어요. 매발톱은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악마들을 쏘아볼 뿐이었어요. 버새는 망치를 쳐들고 거들먹거리며 쇠살창에 다가가 매발톱의 머리를 슬슬 매만지면서 유심히 살펴보았어요. “아니, 이 놈이 대가리는 깨끗하구나.” 말을 마치자 그는 이를 사려 물더니 망치를 힘차게 휘둘러 매발톱의 머리를 내리깠어요. 딱 소리와 함께 매발톱의 두개골이 깨지면서 선지피가 사처에 튕기었어요. “악!” 매발톱 원숭이 비명을 지르는데요. 정수리에서는 뻘건 피가 줄줄 흘러내렸어요. 궁인들이 황급히 달려들어 집게로 부서진 두개골 조각을 집어내고 줄줄 흐르는 피를 닦아버렸어요. 원숭이는 죽어가느라고 온 몸을 바둑거리였는데요. 악마 형제는 포크와 숟가락으로 수박을 파먹듯이 매발톱의 뇌 장을 파먹었어요. 버새 왕은 입귀에 흐르는 뇌 장과 피를 손으로 쓱쓱 닦았어요. “어, 살 거 같다. 그 놈 방사능 오염 때문에 오래간만에 영양보충을 해본다.” 그 악귀 같은 모양을 보기도 끔찍해 뱀 인들은 온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외면해 버렸어요. “풍악을 울려라!” 뒤이어 궁녀들이 또 춤판을 벌렸어요. 뱀 인들은 사시나무 떨듯 하면서도 춤을 추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우성 대통령과 연체 기형아 아들은 보기도 처참해 연회 상에서 일어나 나가 버리었어요. 그들 부자간은 궁중에서 나오자 곧추 혹달개를 가둬 놓은 창고에 슬그머니 찾아 갔어요. 우성 대통령이 망을 보고 연체 기형아가 보초를 서는 궁인과 말을 걸면서 다가갔어요. 기형아는 두 팔로 궁인의 목을 끌어안고 다른 몸에 달린 손으로 팔소매 안에서 포크를 꺼내 목을 찔러 죽이고 창고 안에 뛰어 들어갔어요. 연체 기형아는 네 손을 급히 놀려 쇠살창문을 열고 혹달개를 구원해 냈어요. “어서 아마존 열대우림으로 달아나라!” 혹달개는 알아들었는지 머리를 끄덕이더니 몸을 훌쩍 날려 왕궁 토성에 뛰어 올라가더니 어디론가 사라졌어요. 죽기내기로 뛰어 간신히 화과산에 이른 혹달개는 저 멀리 폭포수와 숭숭 뚫린 원숭이 구멍을 바라보면서 수렴 동에 돌아갈까 하다가 주춤 멈춰 섰어요. (아니야, 언젠가 또 섬나라 오랑캐 악마들에게 붙잡혀 죽을 거야!) 혹달개는 수림의 나무위에 올라가 나뭇가지를 가로타고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고민했어요. (조왕돌도 우리 원숭이들의 구세주가 아니었어. 가짜 원숭이 로봇 조왕돌 1호를 보내 욕심 많은 우리 원래 원숭이 왕을 척살하고 바나나로 우리를 꾀여 화과산에서 내려가게 해 공원에 연금했지. 결국 우린 코치아 국립과학연구소의 새 인종개량 실험 품으로 됐지. 뭘? 우리 머리를 자르고 사람의 머리를 달아서 원숭이 인을 만들어? 원숭이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원숭이 인을 말이야. 방사능 오염이 심한 화과산에 더 있을 수 없어.) 오갈 데 없게 된 혹달개는 쓸쓸하기만 했어요. (그래도 우리 열대우림과 모든 동물들을 보호하는 클론바우 18세를 찾아가자.) 혹달개는 나뭇가지에서 훌쩍 뛰어내리었어요. 그리하여 혹달개는 화과산의 원숭이들을 데리고 수렴 동에서 도망쳤어요. 이때 하늘에 괴물들이 나타났어요. 바로 클론바우 18세가 이끄는 괴물 무리이었어요. 클론바우 무리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려고 차디찬 북태평양 바닷물에 뛰어들어 허우적거리는 원숭이들을 건져내 고래등 위에 앉혔어요. 클론바우 18세는 혹달개를 안고 아마존 열대우림으로 훨훨 날아갔어요. 한 달 남짓이 혹달개와 원숭이들은 나무숲이 우거진 아마존 열대우림에 이르렀어요. (이젠 뱀 섬나라 악마의 마수에서 벗어나서 살 거 같구나.) 헌데 뭐겠어요. 뱀 섬나라 악마들은 아마존 열대우림의 동물들이 방사능 오염에도 죽지 않는 생생한 먹이라고 여기까지 마수를 뻗쳐왔어요. 열대우림에서 혹달개는 질겁해 사시나무 떨듯 하는 원숭이들을 둘러보면서 정수리의 혹을 매만지면서 중얼거리었어요. “그 놈이 이 먼 데까지 올 수 있어?” 호랑이 왕 카시마는 산중왕답게 너럭바위 위에 드러누워 입을 다시었어요. “흠~, 겁도 많아. 그 놈들이 언감 어쩔라고?” 이때 하늘에 헬기가 열대우림 상공에 나타나 맴돌았어요. “아마존 열대우림의 생령들이여, 괴물과 호랑이 왕의 시달림 속에서 어떻게 고생하면서 살겠습니까? 우린 노르망디에서 날아온 저승사자들이야. 모든 생령들을 대표해 호랑이 왕 모녀를 잡아 가겠습니다. 절대 삐치지 마십시오.” 기실 그 놈 오랑캐들은 버새 왕의 령에 따라 금 왕좌에 펼 호랑이 가죽을 벗겨오라는 령을 받았던 것이었어요. 그것도 늙은 호랑이 왕의 가죽을 말고 호랑이 노왕의 귀여운 딸 카오바의 가죽을 벗겨 오라는 령이었어요. 호랑이 노왕 카시마는 엉거주춤 일어나 헬기를 쏘아보면서 으르렁거리었어요. “따~웅~” 호랑이들은 헬기를 노려보면서 어슬렁어슬렁 나무 숲속으로 숨어 버리었어요. 허나 헬기에서 총을 든 괴한들이 밧줄을 타고 나무숲에 뛰어내렸어요. 원숭이 왕 혹달개는 나무 위에서 그 놈들을 대뜸 알아보고 찍찍 소리쳤어요. “아니, 저 놈들은 뱀 섬나라 악마들이 파견한 놈들이야!” “뭐라고?” 호랑이 왕도 놀라 사발 눈을 슴벅이었어요. “아니, 저 오랑캐 놈들이 그 먼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 여기까지 왔어?” 원숭이들은 칙 넝쿨을 타고 이쪽저쪽 뛰면서 괴한들을 노려보면서 소리쳤어요. “저 놈들은 우리 뇌 장을 파서 먹는 악마들이야!” “악마들을 족쳐라!” 원숭이들은 미인 송의 잣 송치를 뱀 섬나라 오랑캐들에게 뿌리었어요. 아마존 열대우림의 동물들은 호랑이 왕의 지휘에 따라 싸울 태세를 갖추었어요. 땅! 땅! 괴한들은 총을 쏘았어요. 한 원숭이가 총을 맞고 미인 송 꼭대기에서 절벽 아래로 떨어졌어요. 뱀 섬나라 악마들의 피해를 받을 대로 받은 혹달개의 령에 따라 총을 든 괴한들을 겨누고 돌멩이를 날렸어요. 한 괴한은 대가리를 맞고 절벽에서 떨어졌어요. 얼룩 뱀은 칙 넝쿨에서 스르륵 기어 내려와 괴한의 목을 밧줄처럼 휘감아 칙 넝쿨에 매달아 죽이었어요. 호랑이들은 “따웅~” 사납게 울부짖으며 괴한들에게 덮쳐들었어요. 앞발로 총을 쳐 떨어뜨리고 송곳이로 괴한을 깨물어 죽였어요. 질겁한 괴한들은 헛총을 쏘면서 열대우림에서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이때 헬기에서 우레 같은 소리가 울렸어요. “아마존 열대우림의 친구들이여, 우린 버새 대왕의 령을 받고 호랑이 카시마의 가죽만 벗겨 가면 된다. 다른 동물들을 죽이지 않을 테니 쓸데없이 삐치지 말라!” 호랑이 왕 카시마는 자기 얼룩덜룩한 가죽을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리었어요. “저 놈들이 우리 가죽을 욕심내 여기까지 쳐들어 왔단 말인가?” 카시마와 카마바 모녀는 이를 갈았어요. “죽여치울 놈들!” 호랑이들은 으르렁거리면서 열대우림에서 빠져나가는 뱀 섬나라 괴한들을 쫓아 덮쳐나갔어요. “가만!” 호랑이 노왕 카시마가 딸을 불러 세웠어요. “왜요?” 카마바는 뒤돌아보며 물었어요. 카시마는 산 아래로 내려가 말리었어요. “얘들아, 총을 든 악마들에게 다치겠다. 이쯤 해 그만 두자.” 카마바는 꼬리를 흔들며 대가리를 쳐들고 쩌렁쩌렁 고함쳤어요. “아버진 금강석 송곳니를 해서 뭘 합니까?” 카시마는 주둥이를 벌려 번쩍이는 금강석 송곳니를 드러내 보이었어요. “보복이 무서운 거야.” “뭐? 저 놈들이 헬기에서 방송하는 거 보세요. 우리 가죽을 벗겨가려는 겁니다.” 정말 그랬어요. 코끼리랑 사자랑 모두 꼬리도 보이지 않았어요. 다만 원숭이들만은 미인 송 나무 위에서 계속 오랑캐들에게 돌멩이를 뿌리었어요. “아마존의 형제들, 뱀 섬나라 오랑캐들에게 속지 말라. 저 악마들은 우리를 하나, 하나 다 잡아 잡아먹을 거야.” 원숭이 왕 혹달개의 말에 일리가 있었어요. “아참, 이런 관건적일 때 그래도 클론바우 18세 대왕님께서 있어야 대책이 서는 건데.” 이때 느닷없이 헬기가 나무숲을 스치면서 나타나 밧줄로 카마바의 목을 턱 걸어 하늘로 끌고 올라갔어요. 아무런 방비도 없이 그저 당하고 말지 않았겠어요. 목이 매달려 헬기에 끌려 하늘로 올라가 저 멀리 사라지는 아들을 보면서 카시마는 그저 으르렁거리면 눈물을 흘릴 뿐 이었어요 … 하늘에 또 헬기가 나타났어요. “카시마는 들으라, 어시로 생겨서 어찌 아들의 가죽을 벗기는 걸 뻔히 두 눈을 뜨고 보고 있겠는가?” 카시마는 하늘의 헬기를 쏘아보며 으르렁거리었어요. “개 놈 새끼들, 제 명에 죽지 못할 놈들, 어디 두고 보자!” “우리 버새 대왕님은 왕 보좌에 펼 호랑이 가죽만 벗겨 가면 돼. 건데 금방 칼로 호랑이 가죽을 벗기다가 구멍을 내서 안 되겠어. 카시마, 어서 아무 호랑이 가죽이나 내놔.” 헬기에서 뭔가 수림에 쿵 떨어졌어요. 카시마랑 혹달개랑 뛰어가 보고 깜짝 놀랐어요. 글쎄 가죽을 벗긴 카시마의 알몸뚱이가 아니겠어요. “아니, 카시마야~ 불쌍한 내 새끼야!” 호랑이 노왕 카시마는 가죽이 다 벗긴 카오바를 껴안고 대성통곡 쳤어요. 그 소리에 혹달개는 남의 일 같지 않아 미인 송에서 뛰어 내려와 머리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었어요. 이때 갑자기 헬기에서 숱한 말벌들이 날아 내리어 호랑이 왕 카시마의 옆에 있던 호위병 호랑이에게 덮쳐들었어요. 말벌들은 호랑이 온 몸에 새까맣게 덮쳐들어 독침으로 찔러 죽이었어요. 카시마가 아무리 꼬리로 탁탁 치면서 쫓아도 막무가내였어요. 말벌들은 순식간에 독침으로 호랑이 가죽을 쏙쏙 도려 벗겨냈어요. 헬기가 날아와 카마바의 가죽을 밧줄에 매단 갈고리에 걸어가지고 날아갔어요. 이때 하늘에 괴물 클론바우 18세가 클론바우 가족을 거느리고 훨훨 날아왔어요. 그는 기다란 코끼리 코로 헬기를 휘감아 호수에 거꾸로 처박았어요. 풍덩! 굉음과 함께 허연 무보라가 사처로 튕겨 오르고 악마들은 물귀신으로 돼 버리었어요. 악어와 상어들은 이게 웬 떡이냐고 악마들의 고기를 뜯어 먹어 버리었어요. 갑자기 호수 물 위에 호랑이 가죽이 떠올랐어요. 분명 카마바의 얼룩 가죽이었어요. 악어와 하마가 호랑이 가죽을 물고 호수 물을 헤가르면서 헤어오더니 뭍에 훌 뿌리어 던지었어요. 호랑이 왕 카시마는 뭍에 뛰어가 카마바의 가죽을 매만지면서 대성통곡을 치었어요. “아무리 범은 죽으면 가죽만 남긴다고 해도 그렇지. 우리 범은 값진 얼룩가죽 때문에 가죽을 벗기고 생죽음을 당해야 하는가?” 아마존의 모든 생물과 나무숲은 슬픔에 잠겨 흐느끼고 호수 물도 비애에 잠겨 출렁이고 있었어요.  
26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8) 댓글:  조회:2621  추천:1  2015-06-05
                    7.일루의 희망     병완은 영월동에 돌아오자마자 먼저 덕팔의 집부터 들렸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삯전이라도 좀 벌어 바쁜 목이라도 열게 하려고 일루의 희망을 품고 마을 사람들을 공지에 불러가려고 서둘렀다.     덕팔이네 낮다란 초가삼간은 목수네 집 같지 않게 지붕 중간이 푹 꺼져 있었다. 그만큼 안주인이 시시콜콜 앓는 이 집의 푹 꺼진 살림형편을 보여 주는 상 싶었다.     덕팔은 어찌나 살림형편이 구차하였으면 서른 살이 퍽 넘어서야 마대치기장가를 다 들었겠는가.     어느 날 밤에 덕팔은 병완과 함께 가마 골에 가서 자기보다 열다섯 살이나 어린 과부네 집에 뛰어 들어가 딸 필순을 마대 안에 넣어 메다가 장가들었던 것이다. 후에 필순의 본가집 엄마가 알고 찾아왔을 때에는 필순이가 배가 남산만할 때였다. 그리하여 필순의 본가 집에서는 필순을 데리러 왔다가 덕팔이가 사람이 좋은데다가 기왕 쑤어놓은 죽을 밥으로 짓는 수가 없는지라 별수 없이 그만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고는 집으로 돌아 가버렸다.     병완이 삽작문을 열고 들어서자 점순과 철규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큰아버지!”     “오, 그래. 엄마는 더 앓지 않았니? 에이고, 이젠 점순이도 처녀티 나는구나.”    병완은 점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열네살인 점순은 정말 마치 시골에 방실 피어나는 물기 머금은 민들레 같았다.    병완은 마른기침을 깇으면서 윗방으로 들어갔다.     “아주버님 오셨소? 쿨룩쿨룩.”    아래 방에서 머리에 흰 수건을 동인 필순이 겨우 일어나 앉으면서  인사했다.    병완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일어나지 마오."    그는 괴춤에서 1원 20전을 꺼내 철규의 손에 쥐어주면서 아내에게 주라고 아랫방 쪽으로 손시늉했다.    "이건 어디서 난 돈입둥?"    필순은 철규가 받는 엽전을 보고 반색했다.    "한길수 영감이 미리 삯전을 줘서 가지고 왔소이다."    필순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이고, 그 구두쇠 어쩌다가 인심을 다 쓴다우?”    필순은 삯전을 보자 주름진 얼굴에 웃음기를 띠였다.      “전번에두 말했잖소? 우리 신설집 병관 형님을 찾아가서 병을 보이라는데. 어째? 치료비 모자라면 내 병관형님과 말할 테니까. 어서 가 병 보이오.”    병완의 말에 필순은 흰 수건을 동인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떻게 인정빚까지 지고 살겠습둥? 쿨룩쿨룩, 에헴. 차라리 내가 빨리 죽고 말아야지. 헌데 죽어지지 않는단 말입구마. 쿨룩쿨룩.”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이제 초겨울에 집짓기 끝나면 덕팔이하구 같이 우리 형님을 찾아가 보이기오.”    한참 후 그는 우쭐 일어났다.     “아무튼 우리 돌아올 때까지 몸조리를 잘하오. 철규야, 밭일을 그만 두구 오후에 한 영감네 마차에 앉아 우시장에 가거라. 날씨가 싸늘하니까 꼭 아버지하구 네 이부자리를 가지고 가라.”     “예. 그러잖아두 강냉이랑 뜯어 들여오면 아버지랑 일하는 공지루 찾아가보자 했습구마.”    철규가 뒤더수기를 긁적이면서 씨물씨물 웃었다.   아랫방에서 필순은 넉두리를 해댔다.    “에이고, 그 강냉이를 집에 들여올게 얼마나 남았다구 그러냐? 한 영감한테 가져 가구나면 온 한해 농사를 지은 게 남는 게 있다구 그러우? 아예 우시장에 가서 한날에 쌀 서너근씩 버는 게 낫지.”     병완은 기대에 찬 눈으로 점순을 바라보면서 문 밖으로 나와 짚신을 신었다. 그는 덕팔이네 앞날이 근심스러워서 땅바닥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어쩌면 마흔살을 갓 넘긴 아낙네 저렇게 못쓸 페병에 걸려 쿨룩거린단 말인가? 에이, 내  돌아오면 꼭 형님네 집에 데려다가 병을 보여야지.)     그는 점순과 철규의 배웅을 받으면서 최동욱의 집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최동욱의 아내 박경돈은 마흔이 넘었건만 의연히 옛날 고왔던 모습이 엿보였다. 그녀는 애를 낳지 못했기에 맨 날 큰 죄나 지은 것처럼 쪼그리고 앉아 살았다. 자식이 없어서 적은 집식구들의 입을 건사하기 쉬울 것 같았지만 최동욱의 집은 살림이 피지 못했다. 그만큼 동욱은 집으로 들어오면 아내와 신경질을 썼고 술만 마시면 도깨비장물을 먹은 사람처럼 경돈을 때리곤 했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병완이한테 혼 난적이 있었다. 정말 경돈은 이름처럼 돼지마냥 동욱에게 매를 맞고 욕을 먹고 살았다. 그래서 경돈은 앓지 말라고 본가 집 아버지가 돼지라고 이름을 지은 것마저 탓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타고난 팔자라고 생각하자 모든 것을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두고 되는대로 살고 있었다.     병완은 동욱의 아내 박경돈의 처지가 불쌍해 한숨을 푸푸 쉬면서 개울을 건너 둔덕으로 올라갔다.     경돈이 마당에서 뭘 주섬주섬 주어 돌려놓다가 인사를 했다.     병완은  삽작문 밖에서 경돈한테 삯전을 건네주었다.     “이 돈 1원 20전은 이 집 나그네 엿새 일한 삯전이오. 이부자리나 저 한 영감 집에 가져다주오.”    경돈은 병완의 믿음직한 태산 같은 뒷잔등을 바라보며  뒤에서 푸념질했다.    “에이고, 이 놈의 집에 돈을 서 말이나 쌓아 놓은들 무엇에 쓴담?”     병완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개울물을 건너 창렬의 집에 터벅터벅 올라갔다.    (집집마다 읽기 어려운 경이 있다더니 이 마을에 어느 집엔들 답답한 일이 없겠는가. 덕팔은 아내가 앓고, 동욱은 자식이 없어 대사고, 창렬은 집기둥 같은 창렬이 폐병을 앓아서 근심이 태산 같지 않은가. 쯧쯧. 세월이 더러워서, 원.)     병완은 이번 걸음에 상호를 공지에 데리고 가려고 마음먹고 올리막을 성큼성큼 걸어올라갔다.     상호는 집울안에서 마른 나무장작을 팡팡 패고 있었다. 그는 나무장작을 주어 땔나무무지에 쌓다가  병완을 발견하고 허리를 펴고 환성을 질렀다.    “큰아버지, 우시장에 갔다가 언제 왔습둥?”   병완은 삽작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문안부터 했다.    “아버지랑 무사하냐?”  상호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아버지는 병이 괜찮습구마. 큰아버님이 준 은덩이를 가지고 신설집에 가서 약을 져다 대접하였더니 많이 낫습구마.”   이때 창렬과 명순이 웃으면서 바깥으로 나왔다.   “그래, 공지에서 벌이가 되던가?”   창렬이 묻는 말에 병완은 창렬의 어깨를 다독이며 선선히 대답했다.   “밥벌이는 될 거 같네. 하루에 쌀 서너 근 품삯은 주더구먼. 한길수 어쩌다가 인심을 써서 제 돈으로 품삯전을 푼푼히 주더구먼.”   병완은 마루에 걸터앉아 두리번두리번 집안을 들여다보더니 물었다.    “어째, 은녀는 보이지 않소?”    창렬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다시 한길수가네 집으로 들어갔소.”    금방까지도 벙긋거리던 창렬의 얼굴에 수심의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병완은 그 모양을 보고 이상한 감이 들었다.    “그새 무슨 일이 있었는가?”   병완의 물음에 창렬은 그저 머리만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명순이 문설주에 기대여 옷고름으로 눈시울을 닦으면서 어깨를 들먹이는 것이 피뜩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소?”    그러나 창렬은 병완을 믿는 터라 넉두리를 했다.    “은녀는 부엌데기로 들어가고 가을에 감자랑 강냉이랑 다 한길수를 주고나니 새해 보릿고개를 넘길 것 같지 못하오.”    병완은 창렬의 손을 잡고 상호를 바라보며 간곡히 말했다.    “그럼 상호를 공지로 보내오. 삯전이라두 얼가간 벌면 살림에 보탬이 되겠는데."    창렬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시원한 대답은 없었다.    상호는 도끼를 놓고 땀을 씻으면서 아버지를 보고 간청했다.   “나를 공지에 보내줍소. 겨울 죽벌이는 되겠는뎁쇼.”   창렬은 마지못해 머리를 끄덕였다.  “어서 큰아버지를 따라 갈 차비나 해라.”   상호는 허리를 꿉썩 굽혔다.   "예. 알았습구마."   병완은 점심때가 된지라 엉덩이를 우쭐 들었다. 그러자 창렬이 손을 덥석 잡았다.   “이보게. 점심이나 잡숫고 가게나.”   “아니, 나도 집에 가서 점심 전에 이불 짐을 챙겨서 한 영감네 집에 가져가야 하네. 상호는 근심하지 마오. 내가 있으니까.”   병완은 창렬의 생강처럼 메마른 손을 놓고 삽작문 밖으로 나왔다. 뒤에서 창렬은 병완의 등 뒤를 믿음에 찬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창렬이네 빚을 물고 은녀를 데려 내 오려는 일루의 희망을 품고 상호 등 숱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데리고 공지로 가는 길을 떠났다.      병완은 위망이 높아 우시장 부근에서는 병완의 말이라면 누구나 다 따랐다.  숱한  마을 사람들은 품삯을 준다는 말을 믿고 품삯이라도 벌어 살림에 보태려는 일루의 희망을 품고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는 공지에 몰려갔다.        8. 콧수염쟁이와 뜨개소    품삯이 일루 희망의 꼬리를 쳐 숱한 농사군들을 유혹해 공지로 모여들게 했다. 돈의 마력은 고달픈 한숨을 쉬는 가난한 백성들을 고난일지 복일지 모를 쁠랙홀에 엉큼하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상호는 병완을 따라 공지에 와서 첫날부터 목재를 메 나르는 일을 했다.     (부지런히 일하면 품삯이야 벌겠지. 아버지 치료비라도 벌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빚을 다 물고 둘째누나까지 데려 내왔으면 더좋구.)    상호는 이런 일루의 희망을 품고 목재를 메고 병완 등이 일하는 목수 간으로 들어갔다.    한편 그는 한길수가 품삯을 선대해준다니 믿음이 가지도 않았다.   (그 영감은 고뿔도 남을 안 줄 깍쟁이 아닌가! 어쩌다 선심을 쓸가?)      대패질하던 병완이 상호를 보고 히죽이 웃었다.     “첫날에 너무 무리하게 메지 말고 천천히 해라.”    “예, 많이 나르면 삯전이랑 많이 주겠지유? 그 깍쟁이 영감이, 정말 해 서산에서 뜨잖습둥?”     “글쎄, 그 깍쟁이 웬 영문인지 삯전도 푼푼히 주더라.”     상호가 허리 굽혀 인사하고 나가는데 기준이 목재를 메고 들어섰다.     “아버지, 쉬엄쉬엄 일합소.”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나무를 들어 왼눈을 지긋이 감고 곧게 대패질했는가 보았다.     “에이구, 이런 목재로 어떻게 층집을 짓는다고 이래?”    기준이 볼라니 대패질한 나무에 나무벌레가 먹어 들어 간 자리가 있었다. 저쪽 나무통에 보니 톱질하다가 잡아낸 나무벌레가 몇이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아니, 저 벌레가 나무를 파 먹으면 집 기둥도 다 끊어나지 않겠습둥?”    기준의 눈이 다 휘동그래졌다.    병완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런 나무로야 기둥이나 대들보를 못하지. 몇 해 가지 않으면 요 놈의 나무 벌레 때문에 대들보가 끊어지고 말겠다.”     병완과 기준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이런 나무야 마루나 깔았지. 별수 있습둥? 쯧쯧쯧.”    기준의 맥 빠진 말이다.    병완은 대패질한 나무를 훌 쥐어 뿌리였다.    “마루에도 어디 쓰겠니? 마루도 몇 참 못가서 꺼지겠다. 한 영감은 이런 목재를 주구서도 어찌나 재촉하는지 어디 쉴 새 있느냐? 이제 금방 기초를 쌓아놓았는데 올 가을 전에 3층짜리 목조건물을 다 지으란다. 그 것도 본 적도 없는 일본식 건물로. 헤이.”    병완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더니 계속 대패질을 했다. 두 팔이 힘을 쓸 때마다 두 팔에 근육이 불뚝불뚝 살아났다. 마치 성난 용 두 마리가 꿈틀거리는 상 싶었다.     기준은 아버지 옆에 다가서서 근심어린 말을 올렸다.     “아버지, 이 많은 목수 일을 어떻게 아버지와 몇 사람이 다하겠습둥? 나도 하랍둥?”    병완은 기준한테 근심어린 눈길을 보냈다.    “글쎄, 넌 여편네가 막달이 돼서 몇 날이나 하겠니? 예산날이 언제쯤이라던?”      “아마 음력으로 시월 중순 쯤 이랍더구마.”     “음, 그럼 한달 푼히 있구나. 한영감하구 말해보고 그렇게 하자.”     창준도 한발 나섰다.     창준은 아버지를 닮아 훤칠하게 생긴 동생 기준과는 달리 보통 키에 호리호리하게 생겼다. 성격도 아버지를 닮은 동생 기준은 시원시원하게 툭툭 내쏘았지만 창준은 선비의 틀이 좀 난데다가 침착했다.     “아버지, 나도 목수 일을 배워서 하면 안 되겠습둥?”    병완은 대패질을 하다 말고 창준을 정색해 바라보면서 말리였다.     “얘, 넌 몸이 약해서 이렇게 힘든 목수일은 못한다. 삼부자가 다 목수 일을 하면 남들이 뭐라겠니? 저 놈들이 삯전을 많이 타자고 목수 일을 한다 할 게 아니냐? 기준은 어금의 결혼잔치준비를 해야 하지 않니? 그래 기준은 돈이 바쁜 것도 있다. 그러나 넌 급히 쓸 돈도 없는데 계속 잡일이나 해서 먹을 벌이나 해라.”    아버지 성미를 잘 아는 창준은 더 말해보았자 쓸 데 없다는 것을 알고 자리를 떴다.    이때 때마침 한길수가 중절모를 비뚤랑하게 쓰고 개화장을 휘두르면서 일본경찰국 국장 끼무라와 함께 목수 간에 들어섰다.    끼무라는 경찰국장에 헌병대 대장까지 겸하고 있어 우시장에서는 최고로 세도를 부리는 자였다. 사무실에 들어앉으면 국장사무를 보고 어디에 사고가 생기면 헌병대를 불러 출마하면서 헌병대 대장질을 했다. 이걸 두고 한길수가 아첨하는 말을 빈다면 "말을 타면 천군만마를 호령하고 말에서 내리면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 끼무라는 "낮에는 조선의 백성들을 못 살게 굴고 밤이면 미녀들을 껴안고 허리 불러지게 해대는 색마"였다.     끼무라는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병완의 가까이에 다가섰다.     그러나 병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패질을 계속 했다.     한길수가 중절모를 벗어 바로 쓰면서 끼무라 국장에게 병완을 소개했다.     “끼 국장님, 아니, 에헴, 끼무라 국장님, 이 목수는 우리 공지 목수 일을 책임진 김 도감입니다.”     통역 류강철이 통역해주었다.     끼무라 국장은 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병완의 우람진 체구와 근육이 불뚝불뚝 살아난 팔뚝을 보았다.     그는 하얀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긴상(김군), 하지메마스데(처음 보는데). 도조 요로씨꾸(잘 부탁하오).”      "뭐 하지마. 마슨다구?" 병완은 코수염쟁이를 피득 쳐다보고는 손을 잡지 않았다. 일어로 지껄이는 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것도 있지만 일본 사람의 손을 잡기도 싫었다. 그는 대패질을 계속 하면서 먼지 묻은 왼손을 쳐들어 손가락을 폈다 꾸부렸다 했다. 뜻인즉 손에 먼지가 묻어 악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핑계였다.      끼무라는 자존심이 상한대로 손을 되돌려가면서 대패질한 나무판자를 쥐여 어루만지었다.     “요로씨이(좋아)!”    끼무라는 엄지를 내밀었다.    류강철은 옆에서 한길수와 병완에게 통역해주었다.    “대패질을 잘했다고 치하하네. 감사를 드리게나.”    병완은 끼무라의 코 수염과 한길수의 번대머리를 번갈아보다가 대패질을 계속했다.    “빈 입만 놀리지 말고 삯전이나 푼푼히 달라고 하게나.”    류강철은 그 당돌한 말을 듣고 입을 딱 벌렸다. 한길수도 황급해났다.    그런 줄도 모르고 끼무라는 그저 빙그레 웃으면서 류강철을 돌아다보았다.    한길수가 제꺽 받아넘겼다.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통역하게나.”   그러자 류강철은 “고노 히도와 ‘간샤시마시다’ 또 이이마시다.( 이 사람은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하고 되는대로 통역해 주고나서 한숨을 푸- 내쉬였다.    “요로씨이, 요로씨이(좇지, 좋아)!”    목수 간을 나서자 끼무라는 한길수를 돌아보고 말했다.    “금방 본 그자는 이름이 뭔가?”    “김병완이라고 부릅니다. 목수이름을 알아 뭘 합니까?”    끼무라는 도리머리 질을 했다.    “아니야, 그자는 장수같이 생겼어. 그런데 눈길이 곱지 않더란 말이야.”    한길수는 끼무라의 속심이 뭔지 몰라 우선은 병완이를 헐뜯어놓고 볼 판이었다.    “그 놈은 힘이 무 짐작이지만 우직하기로 뜨개 소 같은 놈입니다. 그래서 그 놈을 도감으로 시킨 겁니다.”    유심히 듣던 끼무라는 한길수를 정색해서 보면서 말했다.   “저런 우직한 놈은 소처럼 잘 얼려서 부려먹어야 하네. 자칫하면 뜨개 소처럼 뜰 게 아닌가?”    한길수는 끼무라 앞에서 연신 허리를 굽씬거리었다.    “예, 알았습니다. 끼 국장님, 아니, 끼무라 국장님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뜨개소가 뜨기만 하면 가차 없이 메로 대가리를 까 부셔 뿌리를 뽑아버리겠습니다. 헤헤헤.”     “아니요. 내 말은 뜨개소가 뜨지 말게 잘 얼리라는 게요. 잘 얼려서 우리 황군의 경찰국 사무 청사를 잘 짓게 하란 말이요?”    “에- 예, 예, 알았습니다.”    자기까지는 아주 일본상전의 뜻을 잘 이해한 것 같았는데 틀릴 줄이야.    “예, 예, 먹을 풀을 푼푼히 줘서 뜨개소를 잘 얼립죠. 저 놈이고야 저 많은 인부들을 이끌고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지을 수 있으니까.”    끼무라는 몸을 한길수에게 돌리면서 물었다.    “저자가 인부들의 우두머린가?”    “아니, 내놓고 그런 건 아니지만 인부들이 저 놈의 말을 잘 듣지요.”      한길수는 병완을 헐뜯는다는 것이 그만 말이 빗나간 것을 알고 혀를 홀랑 내밀었다가 감빨았다.      끼무라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면서 목수 간 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김병완이라? 알았네.”    끼무라는 나무를 나른다, 톱질을 해 원목을 끊는다하면서 들끓는 공지를 돌아 보고 나서 한길수가 이 많은 인부를 데려다가 일을 해재낀다고 일본말로 연신 치하했다.    그는 코수염을 매만지면서 한길수의 번들 이마와 우멍 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한상은 정말 능력이 있는 놈이야, 이번 일만 잘하면 자위대 대장쯤은 시켜야겠어.)    한길수는 상전의 치하에 어깨가 으쓱해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렸다.    끼무라는 한길수의 어깨를 다독여주면서 분부했다.    “한상, 이제 가을 전에 2층집을 다 지어야겠네.”    “품삯만 푼푼히 주면 저 놈들이 문제없이 지을 겁니다.”    강철이 통역해주자 끼무라는 히죽이 웃더니 한길수의 가슴을 주먹으로 퉁퉁 치면서 말했다.    “대일본제국의 경찰국을 짓는데 무슨 놈의 삯전이야?”    통역을 들은 한길수는 낯으로부터 번들이마까지 뻘겋게 번져갔다.    “난 이미 숱한 삯전을 주었소이다. 이젠 재물이 거덜 날 지경입니다.”    한길수가 손수건을 꺼내 번들 이마에 송골송골 돋은 식은땀을 뚝뚝 찍으면서 말했다.    끼무라는 군도자루를 바른 손에 바로 잡아 쥐더니 눈알을 부라리면서 한길수를 쏘아보았다.     “한영감, 대일본제국을 위해 죽으면 어떤가?"     한길수는 두 손을 쳐들고 손사래를 쳤다.     "아니, 건 아니구. 저."     끼무라는 한길수를 쏘아보며 지껄여댔다.    "그까짓 몇 푼 안 되는 재물 그렇게 아깝소이까?”    한길수는 무릎이 다 나른해져 비칠거렸다.    그는  끼무라가 간을 빼가는듯 배 아팠다. 그러나 그는 발바리로서 머리도 빙글빙글 잘도 돌아갔다.    그는 용케도 발라맞췄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내 집을 팔아서라도 경찰국을 져야 하죠.”     그제야 끼무라는 한길수를 웃음기 담긴 눈길로 보면서 어조를 낮췄다.    “한상, 이제야 대일본제국의 충신답네그려. 껄껄껄.”    끼무라는 몇 대 안 되는 코 수염을 슬슬 쓰다듬었다.    “한상 가을 전에 집을 다 짓자면 이 인부들로는 안 되네. 더 모집해오게나.”    “예, 응삼을 운주동과 신흥동, 가마골에 보냈습니다. 근심하지 마시오.”    “응, 요로씨이(좋아), 우린 한상만 믿겠네. 올 가을에는 새 경찰국 사무 청사에서 사무를 봐야 하겠네.”    한길수는 끼무라 앞에서 연신 중절모를 벗어 쥐고 아픈 허리를 굽혔다.   한길수의 비굴한 모양을 목수 간에서 내다보고 병완은 건 가래를 퉤 내뱉었다.    “퉤! 언제부터 저렇게 구역질나게 번졌어?”    덕팔도 손바닥에 침을 뱉어 톱자루를 잡고 쓰르륵쓰르륵 톱질하면서 코웃음쳤다.    “흥! 더러워서. 보아하니 일본 경찰서나 파출소를 짓는 모양이오.”    최동욱은 자귀질하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지었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 고장에 들어와서 이렇게 큼직한 집까지 져 들고 안방주인행세를 할 예산이구만.”    “글쎄 말이네. 정말 삯전이 아니면 일본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싶지 않네.”    그들이 이렇게 말을 주고받으면서 삯전을 벌 일루의 희망을 품고 목수 일을 하다나니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판이다.      가을 하늘은 높고 프르러 다 올려다보였건만 일제 철발굽 아래 인간세상의 풍운조화는 예측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9. 인부모집      먹장구름이 뒤덮여 오더니 풍운조화를 헤아리기 어렵게 을씨년스럽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잔잔히 흐르던 조용한 개울물에 어디서 기어나온 미꾸라지 한마리가 간사하게 꼬리치며 물을 흐리우기 시작했다.          최구장은 서당방이 쉬는 날이 돼서 마루에 앉아 맏손자 근형(봉인)을 안고 한가히 놀면서 담배를 풀썩풀썩 피웠다.    응삼은 끼무라와 한길수 명을 받은지라 운주동으로 가자마자  옛날 서당방 은사 최구장을 찾아갔다.     응삼은 온 낯에 나오지 않는 웃음을 지으면서 최구장을 보고 다가가 인사부터 올렸다.     “선생님, 그간 무고합둥? 몸이랑 괜찮습둥? 해해해.”    최구장은 피끗 응삼을 내려다보더니 마지못해 대구했다.    “오, 그래. 십여년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더니 무슨 일로 불쑥 찾아왔는가?"    최구장은 재수없이 턱이 뾰족하고 뱁새눈을 팬들거리는 응삼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할 때면 자기가 먼저 남의 뒤 골을 톡 쳐놓고서는 질책하면 다른 애를 먼저 쳤다고 물고 늘어지기가 일쑤였다.    (이 자식이 무슨 바람이 불어 찾아 왔을까?)    응삼은 제 좋은 소리를 쳤다.    “선생님, 이런 일이 있습구마. 지금 일본 사람들이 우시장에 큼직한 집을 짓는뎁쇼...”   최구장은 담배재를 재떨이에 툭툭 털더니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그래, 이 늙은이가 일본 사람들 집짓기에 가라는 건가?”    “아, 아니, 아닙니다. 은사님. 어, 은사님의 손자 놈이 정말 귀엽구먼요.”    응삼은 마루에 기어 올라가 최구장 옆에 찰싹 들어붙어 앉아 근형의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머리까지 조아리면서 말했다.     “은사님, 일본 사람들은 신용을 지키는 사람들입구마. 꼭꼭 달 말이면 삯전을 주니까요. 운주동 사람들이 가서 부업이라도 하면 좀 좋아서.”     최구장은 먼 산을 바라보면서 한참 궁리하다가 담배를 길게 빨아 후— 내쉬었다.      “그래 일본 사람들이 삯전을 얼마씩이나 준다던가?”     응삼은 최구장의 턱 밑에 기어들어 말상을 갸우뚱거리면서 약사발을 올렸다.     “날마다 쌀 둬근 값은 줍꾸마. 저 영월동의 병완 영감은 목수 일을 해서 삯전으로 쌀 한 되 값은 받았습구마. 그 집 둘째아들과 셋째아들도다 공지에 갔습구마.”     “그래?”     응삼은 일 돼갈 거 같아 빈대눈을 팬들거리면서 한술 더 떴다.     “영월동의 한길수 어른이 직접 공지 총도감을 맡고 삯전을 내주고 있는데유. 틀림 있겠습둥?”     “다시 묻겠네. 우리 사돈영감이 확실히 우시장에 갔어?”     응삼은 말상을 조아렸다.     “예, 가구말구요. 병완 영감은 목수 일을 해서 맏손녀를 시집보낼 준비를 한다던데요. 정 믿어지지 않으면 가 봅소. 창준과 기준이 가지 않았는가.”     최구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이때 때마침 최구장의 맏아들 경숙과 둘째아들 경인이 마당에 들어섰다.    응삼은 그들을 보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고, 이 집의 끌끌한 일군들이 들어서는구먼.”   응삼은 최구장을 돌아다보면서 뾰족한 턱까지 흔들어대면서 말했다.   “은사님, 저 아드님들을 공지에 보냅소. 삯전이나 벌면 오죽 좋겠습니까? 황차 둘째아드님이 장가도 들어야 한다면서요?”  경인은 조금 부끄러운 듯이 귀밑까지 붉혔다.    “경인이, 자네 가시아버지 기준이도 공지에 갔네. 공지에 가서 돈을 벌어서 혼수나 준비하게나.”    경인은 응삼의 실눈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내 가시아버님께서도 갔소?”     “응, 그래. 지금 목수 도감을 하오. 한길수 영감이 총도감을 하는데 하루 일하면 쌀 반 되 값은 주오. 부지런히 일하면 쌀 한 되는 버오.”    경인은 퍽 호기심이 들어 했다. 그러나 경숙은 반신반의하면서 주춤거렸다.     응삼이는 최구장의 턱 밑에까지 다가들었다.     “은사님, 저 끌끌한 아드님들을 일하러 보냅소. 삯전은 근심하지 맙소. 정 받지 못할 것 같으면 한길수 어른이 있잖습둥?”    “쳇, 한길수를 믿어?”     최구장은 한길수가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우시장의 어떤 깍쟁이라고? 부채 아까워 얼굴을 부채에 대고 흔드는 영감. 린색하고 옹졸하기 그지 없어. 흥!)    응삼은 혀를 홀랑 내밀더니 인차 말머리를 돌렸다.    “삯전을 받지 못하면 한길수와 달라고 하란 말입구마. 옛날에 부자 집이 넘어가도 석삼년은 걸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한영감이 그 숱한 재산을 가지고 달아나겠습니까?”    그러자 경인이가 나섰다.   “그 말에는 조금 도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공지에 가본다?”   뒤이어 반신반의하는 경숙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형님, 형수가 오래잖아 해산하겠는데 쌀독을 빡빡 긁지 말구 우리 둘이 공지에 가서 일하기요. 내 가시아버지와 가시할아버지도 거기 가서 일한다구 하잖소. 갔다가 맞갖잖으면 돌아오기오.”    경숙은 동생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머리를 끄덕였다.    마루 우에서 지켜보던 응삼은 일이 돼가는 걸 보고 속으로 너털 웃음을 웃으면서 자리를 떴다.     “은사님, 편안히 계십소. 선생님이 이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공지에 보내면 덕을 쌓는 겁구마. 보릿고개를 넘을 쌀이나 마련하게 하면 좀 좋아서?”    응삼은 오늘 따라 지나치게 해해거리면서 허리를 굽혔다.    최구장은 담배 물주리를 뻑뻑 빨다가 연기를 후 불어내더니 재떨이에 털었다.   “그러지. 일감을 알려줘서 고맙네.”    응삼은 울바자 밖으로 나가면서도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해해해. 은사님이 이전에 하늘 천, 따 지를 가르쳐주시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한데요. 제가 어찌 은사님의 은공을 잊겠습둥? 좋은 일이 있으면 은사님 댁에 먼저 알려얍죠.”   응삼이 대문 밖으로 나가자 시끄럽던 집 울안이 조용해졌다.   경숙은 대문 밖으로 빠져나가는 응삼의 궁둥이를 보고 돌아섰다.    “저 응삼의 말을 믿을 만 합둥? 더구나  우시장에서 이름난 난봉군 한영감을 믿다간 한지에 방아를 걸겠습구마. 얼마나 떼질군이라구. 흥! ”    최구장은 엉거주춤 일어섰다.    “글쎄 한길수야 소문난 깍쟁이란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알지. 허나 일본 사람들은 혹시 삯전을 쥐겠는지, 한번 가볼만한 거 같아. 사돈영감들두 갔다구 하지 않니?”    경숙은 량미간을 찌프리었다.    “아버지, 일본 놈들을 믿습둥? 그 놈들은 조선을 통채로 먹어버린 엉큼한 도둑놈들입구마."    경인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형님, 먼저 며칠 가 일해보기오. 삯전을 주지 않으면 내 가만놔두지 않겠소.”   그러자 최구장이 정색해서 말했다.    “너, 경인은 절대 공지에 검을 절대 가지고 가지 말라. 무슨 사단을 일으킬라고. 쯧쯧.”    경인은 뒤덜미를 긁적거렸다.    “옳다. 너 오래지 않으면 장가가겠는데 무사해야 해.”    경숙의 말에 경인은 형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알았소, 형님, 절대 말썽을 일으키지 않을 테니. 근심하지 마오.”     최구장은 맏아들과 둘째아들을 내려다보면서 담배 물주리를 재떨이에 툭툭 털면서 물었다.    “거 넷째하구 막내는 뭘 하니? 걔들도 데리고 가렴.”    경숙은 아버지의 눈치를 흘끔 보면서 머리를 떨어뜨리며 경인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 있니?”   최구장의 얼굴에는 근심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흘러 지나갔다.   경인은 속이지 않고 낱낱이 말했다.   “넷째동생 경욱은 경석과 함께 또 약 담배 장사하러 우시장으로 갔습구마.”    최구장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이, 고놈새끼들, 언제 고약한 버릇을 뗄까? 너희들과는 달리 고 놈들은 부지런히 일해 살 예산이 없고 전문 약 담배 장사가 아니면 약 담배를 피운다. 어쩌겠니?”    최구장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더니 엉거주춤 일어났다.    “너희들이 우시장에 가면 고놈새끼들을 붙잡아서 공지에 데리고 가라. 약 담배 장사를 하다가 언제 순사 놈들에게 잡혀서 혼나지 못해서. 쯧쯧쯧.”    한편 최구장네 집에서 나온 응삼은 온 운주동을 돌아다니면서 최구장네 아들들이 몽땅 공지로 일하러 간다며 마을 사람들을 일하러 가라고 동원했다. 최구장이라면 운주동에서 한다하는 서당 방 선생인데 그가 아들들을 공지에 보낸다고 하자 모두들 공지로 가려고 나섰다.     응삼은 운주동에서 십여 명의 끌끌한 인부를 모집한 후 운주하를 건너 신흥동으로 갔다.    응삼은 신흥동에서 한다하는 김종국 구장을 먼저 찾아갔다. 그런데 김 구장이 일본사람의 앞잡이로 된 응삼을 거들떠도 보지 않을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응삼은 김 구장네 집 울안에 들어가 마주 나오는 김 구장을 보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댔다.   “김구장, 무사합둥? 우시장에 좋은 일감이 생겨서…”    응삼의 말이 채끝나지도 않았는데 김 구장이 빈정거렸다.    “아니, 자넨 우시장에 가서 한자리 했다더구먼. 무슨 일로 이 누추한 시골에 찾아왔는가?”    응삼은 속으로는 괘씸하였지만 일을 그르칠 까봐 꾹 참았다.    “사실 에헴, 김 구장, 저기 우시장에 일본사람들이 큰 집을 짓는데 좋은 일감이 생겼습구마…”    “응삼이, 좋은 일이 있으면 자네나 할 게지. 날 찾아와 뭘 하오? 난 허리 아파서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못하네.”     김종국은 조개턱을 건뜻 쳐들고 먼 산을 쳐다보면서 대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응삼은 뒤따라가면서 김 구장의 팔소매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아니, 김 구장, 내 말을 다 들어 봅소. 김구장, 저기, 저…”    “이 사람이, 왜 이래? 이 팔소매를 놓으라니까. 급히 가 볼 데 있는데 허리를 놔라, 놔. 이 사람이 정말 찰거머리 같다.”     김 구장은 팔을 휘둘러 뿌리치면서 대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응삼은 닭 쫓던 개 지붕을 쳐다보는 격이 되고말았다.     응삼은 뾰족한 턱을 살래살래 저으면서 가마골로 향했다.     가마골의 구장은 림호라는 사람이었다.    림호는 이 마을에서 힘깨나 꽤 쓰는 힘장사이었다. 이름 그대로 수풀 속에서 뛰쳐나온 호랑이같이 생긴 그는 더부룩한 구레나룻에 나비수염까지 길러서 딱 수호전의 리규 같았다.     한번은 한 마을의 석수, 용기 등이 기운봉으로 사냥하러 갔다가 간 날이 장날이라고 그만 호랑이를 만났다. 그들이 사냥총을 쏘아대면서 쫓아가자 호랑이는 겁을 먹고 절벽아래 나무숲속에 난 범의 석굴 안으로 달아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범이 굴 안에서 나오기를 기다려 잡자고 하였지만 림호 만은 담대하게 혼자 범의 굴로 뒤쫓아 들어갔다.     때마침 암펌이 새끼 둘을 입에 물고 굴 밖으로 나오다가 굴 어구에서 림호와 딱 마주쳤다.     “이 놈의 범 새끼, 어디로 도망치려고?”    림호는 범의 굴 안으로 고래고래 고함치면서 뒤쫓아 들어가 뛰어나가는 호랑이의 꼬리를 꽉 틀어잡았다.    화닥닥 놀란 호랑이는 똥물을 내갈기더니 굴 밖으로 뛰어나가면서 뒤발로 림호를 걷어찼다.    “이 놈 범새끼, 뒤 발 질까지 해? 어디 죽어 봐라.”    호랑이는 굴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림호는 범을 놓칠 까봐 꼬리를 단단히 잡고 발로 땅바닥을 긁으면서 뻗쳤다. 그렇게 호랑이와 림호가 반나절이나 싱갱이 질 하다나니 범이고 림호이고 다 기진맥진했다. 나중에 호랑이는 꼬리 껍질이 다 우악한 림호 손에 쭉 벗겨졌다. 그 놈 호랑이는 죽기내기로 굴 밖으로 나가려고 버둑거리다가 똥물을 열댓발 찔 갈기더니 풍덩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물앉고 말았다. 이때 바깥에 있던 석수랑 몽땅 뛰여 들어와 함께 호랑이를 비수로 찔러 죽였다.     사후에 석수가 “무슨 담에 범의 꼬리를 붙잡고 놓지 않았어?” 하고 묻자 림호는 범의 발톱에 긁힌 얼굴에 묻은 피를 손으로 쓱쓱 닦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허허, 내 머리 속에는 범의 꼬리는 단단히 쥐고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밖에 없었네.”     림호는 맨 손으로 호랑이를 잡을 정도로 힘은 셌지만 머리는 단순하고 우직한 사람이었다. 그러다나니 꾀 망둥이 응삼이가 운주동의 최구장과 신흥동의 김구장이랑 다 자식들과 마을사람들을 공지에 보낸다는 말을 그럴듯하게 하자 인차 공지에 가겠다고 나섰다. 림호 구장은 당장에서 석수와 용기, 길수를 불러왔다.     “우리 이 사람을 따라 우시장에 가보자. 감자농사두 잘 되지 않았는데 얼기 전에 동삼에 먹을 쌀이라도 벌어오자.”    림호 말이라면 하느님 말처럼 따라온 용기와 길수, 석수는 두말없이 따라나섰다.     응삼은 아주 쉽게 운주동과 가마골에서 만 하여도 서른대여섯이나 데리고 우시장으로 가게 됐다.     그는 신흥동에서 김 구장한테 코를 떼울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 놈 영감이, 어디 황군에게 혼나봐라.”     응삼은 신흥동쪽을 손가락질하면서 욕질하더니 마을을 떠났다.     응삼은 숱한 인부들을 데리고 우시장으로 돌아가자마자 한길수를 찾아갔다.     한길수는 인부들과 응삼을 번갈아보더니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수고했네. 끼무라 국장은 자네를 꼭 중용할거요.”     응삼은 신흥동의 김 구장에게 당한 수모가 내려가지 않아 길수에게 있는 말 없는 말 다 보태 물어먹었다.     “그 놈 김 구장을 혼내줍소. 내 찾아가니 개 닭 보듯 하면서 일본 놈들 집짓기엔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하지 않겠습둥?”    “그 놈이 언감? 경 칠 놈, 흥!”    “헌병들을 데리고 김 구장을 혼드검 내줘야겠네. 개배때기를 차도 주인을 보고 차라고. 주리를 틀어놓지 않는가 보자.”     한길수도 분이 나서 우멍 눈을 부라리면서 이를 쁙쁙 갈았다.     그는 그 길로 끼무라 국장에게 말해 헌병 몇을 데리고 말을 타고 신흥동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둬 식경 달려 운주하를 건너 신흥동에 이르렀다.     길수는 일단 일본 헌병들을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혼자 마을에 들어갔다.     어느 한집 돼지우리에서 둼을 쳐내는 한 늙은이가 눈에 띄었다.     “저게 김 구장이 아닌지?”    그 늙은이에게 다가가서 묻자고 하니 돼지 똥 구린내가 역겨워 다가가기 싫었다.     하여 멀찍이 서서 그 늙은이에게 소리쳤다.     “이보게, 여기 김 구장 집이 어느 겐가?”      그 늙은이는 돼지 똥을 쳐내다가 머리를 들어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는 일본 헌병들과 낯선 한길수의 번들이마를 번갈아 보더니 대구도 하지 않고 계속 돼지 똥을 쳐냈다.     "영감, 사람 소리 들리지 않는가?"     "?"     "김구장 집이 어디 있는가?"     “몇 집 건너 저 우에 있네.”     한길수는 그 늙은이가 가리키는 대로 몇집 건너 갔다. 아낙네가 집 마당에서 한창 절구에 낟알을 찧고 있었다.    그는 아낙네에게 다가가 물었다.    “김 구장네 집이 어느 겐가?”     아낙네는 절구 공이를 놓고 한길수의 낯선 얼굴과 마을 어귀에 들어선 일본 헌병들을 의아한 눈길로 번갈아 바라보다가 다시 절구꽁이를 딱딱 찧어댔다.     “아니, 묻는 말을 못 들었가? 이 마을 년놈들 다 귀 먹어린가? 참 이상할 정도얘. 이년, 어느 게 김 구장네 집인가? 왜 묻는 말 답하잖아? 엉?”     아낙네는 절구꽁이로 낟알을 계속 찧으면서 반문하지 않겠는가.    “댁은 뉘신지요? 김 구장을 찾아 뭘 해요?”    한길수는 아직도 나를 모르는 아낙네들도 있나 싶어 보란 듯이 번들이마를 쳐들고 을러멨다.    “이년, 이 어른도 몰라. 이 어른은 우시장공지 총도감이야. 묻는 말이나 대답해. 어느 집이 김 구장 집인가?”    아낙네는 머리를 들어 몇 집 건너 동쪽 집 돼지굴을 치는 령감을 흘끔흘끔 곁눈질하는 것이었다.    눈치챈 길수는 우멍눈으로 아래쪽을 돌아버더니 아낙게네한테 발작 다가서면서 물었다.    “저기 돼지 똥을 치는 영감이 김 구장인가?”    그러나 아낙네는 대답도 하지 않고 절구질만 했다.    “맞지? 저 영감두상이 김 구장이지?”    한길수는 돼지 똥을 치던 영감이 김 구장인 걸 알아차렸다.    한길수는 마을 아래쪽으로 되 내려가면서 욕지거리를 했다.    “더러운 영감, 분명 자기를 찾는데 이 어르신님을 이렇게 두벌걸음을 걷게 해? 어디 혼나 봐라.”    한길수는 일본 헌병들한테로 돌아가 돼지 똥을 쳐내는 김 구장을 손가락질을 하면서 가서 붙잡으라는 손시늉을 했다.    일본 헌병들은 말에 올라 곧추 김 구장네 집으로 짓쳐 들어갔다. 그자들은 말에서 뛰어내리자마자 돼지우리에 뛰어들어 돼지 똥을 쳐내던 김 구장을 끌어냈다.     “김 구장, 당신은 목이 몇 개 돼 감히 이 한길수 어른이 묻는 말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가? 이 어른을 두벌 걸음을 시키다니?”     김 구장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 허리를 꿋꿋이 폈다.     “난 일본사람들의 그늘 밑에서 구장 질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지 오래오. 구장도 아닌 나를 찾아 뭘 하오?”    한길수는 김 구장의 멱살을 틀어쥐고 호통 쳤다.    “어째 죽고 싶은가? 네깐 놈 감히 대일본제국의 경찰국 청사를 짓는 일을 방애한단 말인가?”    그러나 김 구장은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백발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난 자기 집 돼지우리도 제대로 짓지 못했는데 언제 일본사람들의 집을 짓는데 갈 새 있겠소? 그럴 새 있으면 내 돼지 굴이나 짓겠네.”     "뭐? 뭐?"    한길수는 김 구장의 멱살을 마구 흔들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그래 대일본 제국의 경찰국을 짓는게 중하냐? 너네 돼지굴이 더 중하냐? 이 놈. 당장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공지라 가라! ”    김 구장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릴? 한창 가을철이 돼서 마을 사람들은 감자랑 강냉이랑 걷어 들이느라고 어디 갈 새 있소?”    한길수는 김종국 구장의 멱살을 스르르 놓으면서 조금 치미는 분노를 눅잦히면서 말했다.    “가을걷이를 못해도 경찰국 집짓기를 하면 살수 있단 말이야. 공지에 가서 일하면 삯전을 준단 말이다. 그 삯전이면 겨울을 날수 있다.”     “허, 그 영감, 진짜 삶은 소대가리 다 웃다가 꾸러미 터질 소릴 다 한다. 겨울을 나고 나면 입에 거미줄을 칠 지경인데. 어떻게 보리고개를 넘으란 말이요?”    약이 오른 한길수는 꽥 고함쳤다.     “이 놈, 내 명을 거역할텐가? 어디 죽어봐라.”     한길수는 일본헌병들에게 김 구장을 바줄로 묶으라고 손시늉했다.     뒤이어 그는 두 팔을 뒤로 탈아 꽁꽁 묶은 김 구장을 끌고 마을 복판에 자리 잡은 널찍한 마당으로 갔다. 일본 헌병들은 김 구장을 마당 한복판에 있는 늙은 비술나무에 꽁꽁 묶어놓았다.    한길수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몽땅 이 마당에 모여라. 마당에 나오지 않는 날엔 일본제국의 총칼 맛을 보일테다!”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비술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일 밭에 나가고 어린애들까지 다 해도 마을 사람들은 20여명 밖에 모이지 않았다.    한길수는 번대머리에 돋은 땀방울을 생강 같은 손바닥으로 뚝뚝 찍어  닦으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난 우시장 일본경찰국 사무 청사 공지 총 도감 한길수야!”     그러자 마을 사람들 속에서 웅성거렸다.     누군가 “저 영감이 고개 넘어 영월동의 난봉쟁이 한길수가 아니냐?” 하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 속에서 쑤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이어졌다.      "저 소문난 건달놈이 일본 놈 덕분에 승급했구먼."     "저게 일본 놈들을 등에 업고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는 즛살을 어떻게 보겠니?"     "흥! 세상이 점점 더럽게 변해가는구먼."      허나 길수의 고함질은 계속 울렸다.     “김 구장은 대일본제국의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는 공지에 나가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방애하기까지 했다. 그 죄는 하늘에 사무치는 용서하지 못할 대역죄다. 오늘 마을사람들 앞에서 처벌한다. 이후에 누구든지 자기 집일을 하면서 대일본제국의 일을 하러 공지에 가지 않는 날엔 이 영감처럼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한길수는 숱한 마을 사람들 앞에서 말채찍을 휘둘러 김 구장의 가슴이고 다리고 사정없이 쨩 쨩 후려쳤다.     김 구장은 한길수가 휘두르는 채찍에 맞아 베옷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살갗이 채찍에 묻어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닥치오!”    이때 훤칠하게 생긴 중년사나이가 마을 사람들 속에서 뛰쳐나왔다.    한길수가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마을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밭에서 하나둘 마을로 돌아와 비술나무마당에 모여들었다.    “네 놈은 누구냐?”    한길수는 휘두르던 채찍을 들어 그 중년사나이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난 이 늙은이 맏아들 영진이오.”    중년사나이는 가슴을 쑥 내밀고 따지고 들었다.    “왜 죄 없는 우리 아버님을 이렇게 모질게 치는 거요?”    한길수는 억이 막힌 듯이 번들이마를 쳐들고 대가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그 애비에 딱 그 아들놈이구나. 네 애비 대일본제국의 사무 청사를 짓는데 가지 않은 건 둘째고 뒤에서 마을 사람들이 가지 못하게 방애했다. 그래도 죄 없어?! 대역죄야, 목을 쳐도 과하지 않아.”     한길수 우멍눈에서 무서운 불빛이 번쩍였다.      “이 놈, 죽어봐라! 이 놈!”    한길수는 이를 악물고채찍을 휘둘러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런데 영진은 왼팔을 들어 날아드는 채찍을 받아 꽉 틀어쥐어 홱 챘다. 채찍을 빼앗긴 한길수는 일본헌병들의 손에서 군도를 빼들고 휘둘렀다. 질겁한 애들이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만두오!”    이때 비술나무에 묶인 김 구장이 피가 낭자한 얼굴을 겨우 들면서 고함쳤다.    “한도감, 우리가 역사에 나가면 그만이 아니요? 무고한 사람을 자꾸 치지 마오.”     한길수는 군도를 내리우면서 살기등등했던 낯에 간교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기다렸던 말이었던 것이다.     “그래, 이제야 박바가지 같은 대가리 제대로 돌아섰군. 삯전도 주는데 왜 공지에 나가지 않아?  일본제국의 총칼 맛을 볼 게 있는가!”     한길수는 득의양양해 마을 사람들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쳤다.     “들어! 무릇 열여섯 살 이상 되는 사내들은 몽땅 내일부터 우시장에 가서 공지 일을 해야 해. 가지 않는 자가 발각되는 날엔 대일본제국의 법에 의해 엄벌을 가할 거야. 알겠는가?!”     그러자 마을사람들은 못마땅해 웅성거렸다.      “그래 저 밭의 감자랑 강냉이랑 제때에 걷어 들이지 않으면 어쩌오?”     “곡식이 눈 밑에 들어가면 뭘 먹고 산다오?”     “멧돼지 성화에 밭에 묻어둔 감자 아까워 죽겠는데."     “별 영감을 다 보겠네. 어째 조선 사람이라는 게 일본 사람 편에 서서 말하오?”     지어 이런 말소리마저 들리었다.     “우린 조선 사람들인데 일본 사람들의 일을 하지 않는다고 일본법에 의해 처형해? 이거 참, 원.”     “글쎄 말이요. 그래 답답하다는 게오.”     한길수는 마을사람들을 노려보다가 세길 네길 펄쩍 뛰며 꽥 고함쳤다.     “헛소리를 작작 쳐라. 이젠 일본과 조선은 하나로 됐다. 우린 대일본제국의 법을 따라야 한다. 내일 나를 따라 몽땅 우시장으로 가자. 집에 남아있는 자는 김 구장처럼 엄벌할테야."   그는 발로 탕탕 땅을 구르며 땅방울같이 을러멨다.    "일하러 가지 말자고 선동하는 자가 있으면 이 일본 군도로  목을 치겠어! 알았어?! 엉?”     한길수는 마을사람들을 위협하려고 일본 헌병의 허리에서 군도를 쓱 빼들었다. 뒤이어  늙은 비술나무를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군도로 내리찍었다. 비술나무껍질이 군도에 찍혀 한 뼘이나 벗겨져 누런 살이 드러났다.    이튿날 마을사람들은 핍박에 못 이겨 이불 짐을 꿍져 지고 한길수와 일본헌병들을 따라 우시장으로 떠났다.    신흥동에서 20여명의 끌끌한 인부들을 끌고 우시장으로 가는 한길수는 개 잡은 포수처럼 어깨가 으쓱해져 더 못된 궁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명천 땅에서 누가 감히 이 어른 말을 거역해? 목이 날아나지 못해? 허허허. 인부들에게 삯전도 줄 필요없어. 내 돈은 뭐 벼락 맞은 소고기라더냐? 네깐 놈들이 감히 어쩐단 말인가? 으흐흐. 흐흐.)                                      제5장 반항                                            1. 삯전      끼무라는 한길수와 짜고 들어 인부들의 품삯을 주지 않았다.      병완은 한길수가 신용을 저버리고 마을 사람들의 품삯을 주지 않는 것이 괘씸했다. 아무리 힘들게 대패질을 하고 톱질을 하여도 좁쌀 한 되도 차례지지 않았다.    (진짜 강물을 건너자 다리를 뜯어버리구나. 개 놈새끼.)    당장 맏손녀 어금을 시집보내야 하겠는데 손에 한 푼도 쥔 게 없어 근심이 태산 같았다.    결혼 날자는 하루하루 눈앞에 다가와 근심이 태산 같았다.     기준과 병완이 대패질을 쓱 쓱 할 때다.    한길수가가 응삼과 영팔 등을 데리고 목수 간으로 들어와 개화장을 휘두르며 거들먹거렸다.    “저, 김 도감, 대패질만 하지 말구 동네 민공들이 제대로 일하는가 좀 살피게나.”   병완은 거들먹거리는 길수가 눈에 거슬리어 부르튼 소리를 하었다.   “한도감, 난 부지런히 일만 하지 남을 살피는 일은 못하네. 품삯도 못 받는 도감인지 도깨빈지 못하겠네.”    그는 응삼을 건너다보며 뒷말을 이었다.     어떨꿍이 사람을 죽인다고 응삼은 벼슬욕에 실눈을 가슴츠레 뜨고 길수의 눈치를 핼끔거렸다.     그러나 길수는 속에 전혀 예산도 없었다.     “흥. 응삼을 어찌 자네한테 비길 수 있단 말이오? 자넨 내 의형제 아니요? 자네 말이라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듣지 않는가!”    병완은 이럴 때다고 제꺽 바쁜 일부터 들이댔다.    “여보게, 맏손녀를 시집보내야겠는데 손에 일전 한 푼 쥔 게 없어 근심이 태산 같네. 삯전이나 제때에 주오.”    삯전 말이 나오자 한길수는 대뜸 낯색이 어두워지며 퍼란 바위돌처럼 굳어졌다.    “나도 중간에서 진짜 시집살이네. 일본 사람들이 자초보다 다르게 노는 거 어쩌오? 삯전을 인차 줄  거 같지 않네.”     “그게 무슨 소리오?”    병완은 대패질하던 손을 멈추고 허리를 펴면서 한길수를 쏘아보며 따지고 들었다.    "자네 삯전을 딱딱 준다고 했잖은가? 그래 숱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데리고 왔는데. 지금 와서 핸들 나누우면 마을 사람들은 굶어죽으라는겐가?"    한길수는 말이 빗나갔음을 느끼고 중절모자를 벗어 쥐고 마른 기침을 깇더니 번들이마를 슬슬 어루만지면서 제꺽 말을 바꾸었다.    “근심하지 말게. 어떻게 하나 끼무라 국장님과 말해 설전에는 삯전을 주겠네.”    기준과 덕성을 비롯한 목수들은 품삯을 차일피일 미루는 한길수를 못 미더워하는 눈길로 쏘았다. 그들은 모두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한길수에게 아니꼬운 눈총을 쏘았다.     “아니, 모두 가을걷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공지로 왔는데 삯전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 누가 여기서 일하겠소?”     너부죽하게 생긴 덕성은 자귀로 깎던 목재를 들어 던지면서 노호했다.     “품삯을 안 주면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겠소. 감자랑 눈에 다 덮여버리면 어쩌오? 하다못해 산에 가서 사냥이라도 해야 살지. 쳇,”    바빠 맞은 길수는 병완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쑤군거렸다.     “자넨, 도감이 아닌가? 자네 삯전을 주지 않을까봐 그러오? 근심하지 말게나.”    병완은 누구나 다 들으라고 언성을 높였다.     “아니, 온 마을 사람들한테 삯전을 딱딱 준다고 불러왔는데 내 무슨 낯으로 그들을 대한단 말이요? 안되오. 달마다 꼭꼭 삯전을 계산해 주오.”    길수도 안 되겠다싶었든지 살짝 말을 바꿨다.     “그렇긴 하구만. 자넨 맏손녀를 시집보내야 한다니 내 오늘 끼무라 국장에게 말해서 먼저 주겠네.”    “안 되오. 온 마을 사람들의 삯전을 다 …”    한길수는 마을 사람들을 건너다보며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떠들지 말라는데도 왜 이래?”    “떠들지 않게 됐소?”     길수는 병완을 마구 끌다시피 해 목수 간에서 나왔다.    그는 병완의 귀에 대고 목소리를 낮춰 쑤군거렸다.     “내 말 듣소. 내일 목수 간의 삯전만 먼저 줄게.”     “안 되네. 온 마을 사람들 삯전을 몽땅 달란 말이오.”    한길수는 고집불통인 병완과 말해보았자 쓸데없는지라 또 다른 말을 꺼냈다.     “그래, 주지. 온 마을 사람들의 삯전을 다 주지.”    그제야 병완은 씩씩 거친 숨소리를 죽이면서 목수 간으로 되들어갔다.     이튿날 정말 한길수는 병완을 공지 총도감실에 불러갔다.    병완은 삯전을 주겠지 하고 총도감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총도감실에는 한길수와 응삼, 영팔, 수길 등 사람 외에도 끼무라 국장과 야마모도 소장, 털 한 모숨이 가메다까지 살기등등해 앉아있지 않겠는가.    가메다는 볼에 난 털 한 모숨 났다고 해 털한모숨이란 별명이 따라다녔다. 그는 볼의 털을 슬슬 어루만지며 눈을 버릇처럼 찔끔거리면서 키가 구척이나 되는 병완을 살기 찬 눈길로 노려보았다.    길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들이 삯전을 달라고 너무 떠드는 바람에 이게 뭔가? 끼무라 국장과 삼림파출소 야마모도 소장이 직접 자네를 만나러 왔네.”    야마모도 소장이란 자는 안경알 밑으로 구척 같은 병완의 아래위를 훑어보고 있었고 끼무라는 아주 반가운듯이 걸상에서 일어나 병완과 악수까지 청했다.    “요로씨이(좋아), 자네가 병완인가?”   류강철이 조선말로 통역해주자 병완은 끼무라의 손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말했다.    “그렇소이다. 삯전이나 줍소. 우린 지금 죽물도 먹기 힘드오.”    류강철이 통역해주자 끼무라는 피씩 쓰거운 웃음을 지었다.    “그래? 돈밖에 모르는 놈들. 우리 대일본제국에 충성하는 양민이 되고 싶지 않은가? 우리 대일본제국은 그대들의 충성심을 요구하네. 그럼 돈뿐이겠는가? 쌀이랑 미녀랑 많이 주지.”    끼무라는 세 살 짜리 애에게 사탕을 주고 얼리듯이 구슬렸다.    “아니, 미녀고 뭐고 싹 그만두고 삯전이나 주오.”    “주지. 간상, 자네가 어떻게 공지를 다스렸으면 이 놈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키자고 들겠는가?”    한길수는 잔등에 식은 땀을 쫙 흘리었다.    그는 병완을 쏘아보면서 나무랐다.    “주겠다는데 왜 나까지 욕을 먹이는가?”    병완은 그저 삯전을 주기만 기다리면서 입에 빗장을 지르고 말뚝처럼 떡 뻗치고 서 있었다.    상전 앞에서 바빠 맞은 한길수는 호주머니에서 동전 몇 잎을 꺼내 병완의 손에 척 쥐어주었다.    “얻소. 가져다 맏손녀를 시집보내게나.”   끼무라 국장은 입귀에 금이발을 드러내며 피씩 냉소했다.   “그깟 놈들이 대일본제국의 일을 하지 않으면 몽땅 죽여 버려! 또 인부들을 붙잡아오면 돼. 쳇, 대일본제국을 위해 일하는데 무슨 놈의 삯전? 우둔한 놈들, 정말 정신 나갔군. 흥!”     병완은 길수에게서 동전 몇 푼 받아 낸데다가 공지 모든 인부들의 삯전을 주겠다는 말을 듣고서야 총도감실을 나섰다.    그때 등 뒤에서 끼무라 국장이 야마모도소장을 돌아보면서 지껄여대는 소리가 들렸다.    “장승같은 놈, 힘깨나 쓸 거 같군. 우리 개로 길러볼만한 놈이네.”    “쳇, 딱 도깨비 같구먼.”    목수칸으로 돌아온 병완은 길수에게서 가진 동전 몇 잎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대패 틀 위에 잘그락 놓았다.     덕성은 눈이 동그래 물었다. “건 어데서 나온 거요?” 병완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길수 영감이 선심을 썼네. 날 보고 동전 몇 잎 받고 인부들의 입을 틀어막아 달라네.” 그러자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 한 영감은 정말 삯전을 주지 않을 작정인가?” “그러게 말이요. 괜히 여기 와서 뼈 빠지게 일한 것 같네.” “두 달째 삯전을 주지 않으니 코앞에 닥쳐온 양력설은 어떻게 쇤단 말이요.” “양력설? 쳇, 난 가을에 감자를 파오지 못하고 여기 끌려오다나니 눈 밑에 몽땅 파묻었소. 이 기나긴 겨울에 뭘 먹고 산단 말이요.”      “최구장네 경인처럼 버치나 틀었더라면 우시장에 가져다가 팔아 겨울나이 쌀이나 장만했지.” 그런 말을 들으면서 병완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 동전을 가져다 바쁜 목에 쓰게나.” 병완이 대패 틀 우에 놓은 동전 몇 잎을 건너다보면서도 서로 눈치를 볼뿐 누구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병완은 동전을 싹 쓸어 쥐더니 덕성이랑 몇몇 목수들에게 일일이 둬 잎씩 나눠주었다. 이때 기준도 나무에 묻은 대패 밥을 손으로 쓱쓱 털어버리면서 답답해 말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네. 맏딸을 대엿새 후에 시집보내야지. 아내가 막달인데 당장 몸을 풀어야 하오. 그런데 손에 쥔 게 어디 있소?”      덕성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동전을 기준에게 내밀었다.      “이걸 부조 삼아 가져다가 맏딸의 결혼에 쓰게나."       “싫소.”      기준의 말에 병완도 손을 내저으면서 사절했다.       “절대 그러지 마오. 양력설에 어떻게 빈손으로 가겠는가? 난 마을 사람들 앞에서 머리도 못 들고 다니겠네.”        덕성은 동전을 쥐고 병완과 기준이 그리고 다른 목수들을 돌아보다가 한 잎 만 기준에게 주었다.        “그럼 이 한 잎은 맏딸의 결혼잔치 부조인 셈 치고 받네. 나머지는 자네들이 꼭 받아야 하네. 사양하면 우리도 한 잎도 가지지 않겠네.”      기준은 기어이 사양했다.      “아니요. 우리도 제 몫을 가졌으니까. 이러지 말게나.”      덕성은 두툼하고 터실터실한 손으로 동전잎을 기어이 기준의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에이, 사람이. 부조도 받지 않는 법이 어데 있는가.”     기준은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병완은 기준을 보고 “덕성이, 성의는 이미 받았으니까 그만두게. 먼저 바쁜 목을 열고 보기요. 우린 감자떡이랑 빚어 놓고 결혼잔치를 하면 되네.”라고 했다.     덕성과 기준은 동전 한 잎을 가지고 주려거니 받지 않으려고 하거니 했다.     이때 한길수가 영팔과 응삼을 데리고 목수 간으로 우르르 쓸어 들어섰다.    그제야 덕성과 기준은 그만뒀다. 덕성은 할 수 없이 동전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아니, 자네들은 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미세 당기 세를 하오? 에헴.”     한길수는 건 가래를 떼면서 병완의 눈치를 흘끔 살폈다.     병완은 길수를 똑바로 마주보면서 말했다.      “총 도감, 모두들 삯전을 주지 않으면 계속 일하지 못하오. 감자랑 채 파지도 못하고 여길 오다나니 몽땅 눈 밑에 쓸어 넣었단 말이요. 동삼에 쌀을 살 삯전도 주지 않아 집식구들의 입에 거미줄을 치겠소.”      (아, 이 영감이 금방 입을 틀어막으라고 동전을 주었구만 오히려 인부들 쪽에 서서 대포를 쏜단 말이야. 흥!)      한길수는 속으로 좋지 않았다.      “그래도 공지에 왔기에 당신들의 입만은 집에서 근심하지 않게 되지 않았소? 너무 좋아서 그러오?”     그 말에 덕성은 팔을 걷어 올리더니 한길수의 코에 대고 삿대질하면서 따지고 들었다.      “아니, 그것도 말이라구 해? 우리 공지에 오지 않으면 사냥이라도 해서 쌀값을 장만할수 있어. 당장 삯전을 줘. 그러지 않으면 당장 그만두겠어.”     “옳소. 우린 그만두고 사냥하든지 삯일을 하든지 하겠소.”      “아니, 이것들이 누구 앞에서!”     영팔이 가죽채찍을 휘두르며 뛰쳐나왔다.     “닥쳐!”      한길수가 다급히 소리쳤다.     그는 영팔을 질책했다.     “에이, 못난 놈. 한마을 사람들에게 무슨 짓이냐?”     한길수는 나오지 않는 웃음을 억지로 낯에 게바르면서 구슬렸다.      “우린 한 마을 사람들이 아니고 뭐요?  좀 서로 사정을 봐 줄내기.  흐흐흐. 나도 일본 경찰국 끼무라 국장과 말해서 꼭 자네들의 삯전을 주게 하겠네. 근심 말고 일하게나. 나도 중간에서 정말 시집살이네.”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 한다. 그 말을 어떻게 믿으란 말이오?”     한길수는 중절모를 쓴 대머리를 건뜻 쳐들고 우멍 눈으로 천정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천하의 한길수가 그래 고만한 돈 주지 않으리라구 그러오?”     모두 길게 한탄하면서 대패질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한길수는 병완을 돌아보면서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더니 목수 간을 나섰다.     그날 일을 마치자 병완과 기준 부자는 한길수와 말하고 어금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운주동으로 돌아갔다.             2. 불운한 애들      기운봉은 은세계를 방불케 온통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늙은이의 은발을 날리듯이 하얀 눈가루를 바람에 흩날리면서 조용히 서있었다.      운주동은 하얀 이불을 들써 은빛세계를  방불케 했다. 초가집마다 하얀 꽃노을을 지붕 위에 쓰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딱 뭔가 살기 힘든 하소연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병완과 기준이 운주동에 돌아와보니 뜻밖에도 고방에서 사련이가 해산 앓음을 하고 있었다. 하옥이 고방에서 나오면서 반겨 맞았다.      “돌아왔어요?”      “오, 그래. 작은 며느리는 어찌된 일인가?"      병완은 물으면서 위방에 들어가 앉았다.      "아직 해산날이 멀잖소?”       하옥은 아랫방에서 걀쭉한 얼굴을 다소곳이 숙이고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나직이 대답했다.     “좀 앞당긴 거 같아요. 가을에 감자를 팔 때 삐치지 말렸지요. 그런데도 감자를 눈 밑에 파묻으면 어쩌겠는가면서 저 몸으로 삐치더니.”      “쯧쯧쯧. 조산 모는 왔느냐?”      “예, 진작 고방에 와 있어요.”     병완은 어두커니 서 있는 기준을 올려다보았다.     “너무 근심말아라. 네번째 애니까. 순산하겠지.”     뒤이어 그는 아랫방의 하옥한테 머리를 돌렸다.     “그래, 거 성칠은 어디로 갔느냐?”      “꿩 사냥하러 산으로 들어갔어요. 제수한테 꿩탕을 대접해야겠다더군요.”     하옥은  대야에 물을 떠가지고 고방에 들어갔다.     병완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에이구, 막내동생은 이젠 맏사위를 삼고 오래지 않으면 손자를 보겠는데 저 큰놈은 아직도 자식 하나 보지 못하였으니 어쩌는가?”     하옥은 고방에서 그 말을 듣고 칼로 에이는 듯이 가슴이 아팠다.     병완은 윗방에서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하는 기준을 보고 물었다.     “올해 1919년도지?”     “예.”      “그래. 올해는 특별한 해지. 서울에서 부른 ‘독립 만세!’소리가 우리 여기 이 산골에까지 다 울려 퍼졌지.”     병완은 바깥을 내다보면서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머리를 이쪽으로 돌리면서 물었다.     “오늘 몇 월 며칠이냐?”     기준은 머리를 들고 조금 생각하더니 “음력 10월 18일입구마.” 하고 대답했다.    “응, 참 좋은 날이구나.”    그때 고방에서 갓난 애기의 울음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렸다.     “응아, 응아, 응아.”     병완은 기준을 마주보면서 반가워 희죽이 웃었다.     "허, 그 놈이 울음소리 센걸 보니 혹시 사내애가 아닌지 모르겠군. 어서 알아봐라.”     기준은 황급히 정주간으로 내려갔다.      “조산모, 무슨 애요?”      “고추 달린 놈입구마."     "아들이란 말이오?”     "예. 아들입구마."    조산모의 말에 기준은 뒤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에이구, 아침을 먹으면 저녁쌀이 걱정되는 세월에 아들이면 뭘 하겠습둥? 입이 하나 불었으니 근심이 태산같구먼.”     조산모가 고방에 들어가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갓난애를 누더기에 싸서 안고나와 기준에게 안겨주었다.      기준은 갓난애를 안고 들여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에이고, 길쭉하게 생긴 놈이 딱 할아버지를 닮았구나. 쯧쯧.”      기준은 먼저 고방으로 들어가 사련을 보고 인사말을 아끼지 않았다.     “여보, 둘째아들을 낳느라고 수고했소.”     사련은 자애로운 얼굴표정으로 갓난애를 올려다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제야 기준은 애를 안고 고방에서 나와 윗방으로 올라갔다.    병완은 기준의 손에서 갓난애를 받아 안고 들여다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에이, 그 놈, 뭐나 길쭉한 게 시원하게 생겼구나. 애비를 닮아서 밸 때기 사나우면 어쩌지?”    기준은 뒷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아버님두, 조손 삼대 다 성격이 강하잖습둥? 이 애만은 어진 애여야겠는데.”     병완은 넷째손자를 안고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멀어서 닮지 않겠느냐? 아버지 대는 종 자 돌림이구. 내 대는 병 자 돌림이지. 너희들은 준 자 돌림이구 .얘들 대는 상 자 돌림이라. 상자에 무슨 글자를 달아준다?”     기준은 갓난애를 보면서 아버지한테 물었다.     “큰집 병권 큰아버님이나 관준 형님께 물어보고 이름을 지으면 어떻습둥?"    병완은 뜻밖에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아니야, 우리 부자간이 먼저 이름을 지어 놓고 물어보자.”    집 안에 한참 납덩이 같은 침묵이 흘렀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다 들릴 지경이었다.     한참 후 병완이 빙긋이 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요 놈을 숭상할 ‘상’ 자에 순임금이란 ‘순’ 자를 달아서 상순이라고 지으면 어떠냐? 뜻인 즉 ‘순임금을 숭상한다는 말’이다.”    기준은 아버지와 애를 번갈아 보더니 무릎을 탁 쳤다.    “예, 그 이름이 좋습구마.”    기준은 병완의 손에서 갓난애를 받아 안으면서 중얼거렸다.     "우리 상순아, 할아버진 널 상순이란 좋은 이름 지어주었다. 어디 보자. 에구, 이 봉이 눈을 봐라. 세 귀 눈인 게 사납게 생겼구나. 넌 커서 장차 순임금처럼 나라의 백성들을, 응, 우리 고향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알았지? 응?”       병완은 기준을 보고 일렀다.    "상순을 애 에미에게 가져다 젖이나 먹여라. 너무 차게 굴면 못쓴다.”    “예꾸마, 상순아, 엄마한테 가자.”      뒤이어 고방에서 기준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리었다.      “여보, 아버님께서 우리 둘째를 상순이라고 이름을 졌소. 상순아, 엄마한테 가자, 응.”     “오, 상순이, 이름이 참 좋소. 상순아, 젖을 먹어라.”     병완은 기준이 부부가 고방에서 주고받는 말을 윗방에서 듣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담배물주리에 담배를 꿍꿍 쑤셔 넣었다.     하옥이 따뜻한 미역국을 사발에 떠들고 고방에 들어갔다.     기준이네가 둘째아들을 보았다는 소문이 온 운주동 마을에 퍼지자 이 집 갓난애를 보러 오는 사람들로 문턱이 다슬 지경이었다.     어금은 혹시 어머니와 막내동생이 찬바람이라도 맞을까봐 바람간호를 하느라고 무척 왼 심을 썼다.     한 마을에 있는 최구장 내외간도 사돈집에 인사하러 왔다.     인사수작이 끝나자 모두들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병완은 담배물주리를 뻑뻑 빨면서 답답한 소리부터 했다.     “이제 이틀만 있으면 잔치를 해야겠는데 우린 아무 준비도 없습구마. 삯전을 주지 않아서 통말이 아닙구마.”     최구장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나도 경인에게서 들었습구마. 한달 동안 일해도 삯전을 주지 않으니 어쩌는가요? 저 경인은 삯전도 주잖는다고 슬그머니 빠져 집으로 돌아왔습디다.”     병완은 머리를 끄덕였다.     “ 내 숱한 사람들을 겨울나이 쌀이나 벌겠나 해서 공지로 가자고 동원했는데. 삯전을 주지 않아서 큰 일 났습구마.”     최구장은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우리 부자간은 마가을에 버들로 버치를 결어 팔아 잔치준비를 대충 했습니다. 우리도 준비한 게 없습니다. 산나물에 감자 떡이나 갖춰 놓고 결혼식이라고 올리면 됩지. 없는 살림살이에 별게 있습니까?”     “예, 구차한 세월에 간단히 대사를 치르깁소.”     병완과 기준도 한시름을 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의 흐름은 청산유수라 또 이틀이 흘러지나갔다.       운주동의 최구장의 둘째아들 경인과 기준의 맏딸 어금의 결혼잔치는 간소하게 치렀다.      병완은 잔치에 온 창렬과 덕성, 동욱 등 마을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괜히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공지에 가게 했구나. 삯전을 주지 않는 날엔 한길수를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다.)      병완은 잔치 날에도 속으로 윽별렀다. 그런데 한길수는 잔치 날에 낯짝도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오지 않길 잘했다. 괜히 잔치 날에 주먹이 날아나가면 어쩌니?)      백두산에 숨어 사는 최구철과 진달래가 위험을 무릅쓰고 잔치를 보러 왔다. 최구철이 백두산에서 사냥한 사슴고기를 가지고와서 모두들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잔치날에 최구장은 동생을 집아래목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일렀다.     “너네두 백두산에서 외롭게 살지 말고 여기 운주동에 내려와 살렴.”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최구철은 가죽장화로 하얀 눈을 밟아 문지르면서 도리머리질을 했다.      “서울에서 독립만세를 부른 후 보오. 일본 놈들이 우리를 어디 살게 하겠어요? 게다가 나는 고향에서 일본 놈들을 몇을 죽였으니까. 여기 와서 편안히 살 수 있겠어요? 괜히 붙잡히자고.”     최구장은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글쎄 말이야. 형제간에 한마을에서 살면 얼마나 좋겠냐? 그런데 일본 놈들 때문에 형제간에 이렇게 천리를 떨어져서 살아야 되니 얼마나 가슴이 아픈 일이냐?”     최구철의 코와 입에서 하얀 김이 거세게 뿜겨 나왔다. 마치 성난 사자가 노기를 토하는 듯 했다.     이때 경인의 막내 동생 경석이가 심부름을 하다가 약담배인이 올라 생야단이 일어났다.      최구장은 최구철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맏이 경숙을 시켜 막내 경석을 남들이 보지 않는 집 뒤에 끌어다가 붙잡아두게 했다.     “에이유, 저 꼬락서니를 어쩌니? 동네 창피해 어디 살겠느냐?”     최구장은 답답하여 가슴을 탕탕 쳤다.     최구장은 윗방에서 곰방대를 뻑뻑 빨다가 머리를 수깃하고 무슨 궁리를 하는 경숙에게 물었다.     “경숙아, 그래 공지에 또 갈 예산이냐? ”     “예? 품삯도 안 주는데 또 가겠습둥?”      “맞아, 갈 필요 없어.”      최구장은 곰방대의 재를 재떨이에 툭툭 털었다.     경숙은 허리를 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가지 말았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하더니 나지막이 근심을 털어놓았다.     “저 응삼이란 자식이 일본 헌병들을 데리고 가마골로 가서 사람들을 공지로 강제로 끌어갔답니다.”      최구장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응삼이 고놈새끼, 아이 때부터 교활하게 놀더니 일본 사람들한테 찰싹 들어붙어서 이젠 앞잡이질 하는구나.”      경숙은 볼 부은 소리를 했다.     “고놈새끼 말에 홀딱 넘어가서 공지로 가지 않았고 뭡니까?”    부자간은 윗방에 앉아서 한숨만 푸푸 내쉬었다.       기준이 둘째아들 상순을 본 해도 막가는 음력 동지섣달에 소대가리도 얼어 터질 듯 한 엄동설한이 들이닥쳐 살을 어이는 북풍이 윙- 윙- 불어쳤다. 모래알 같은 눈 쌀들이 날아와 창호지를 무섭게 두드렸다.      최구장네 집에는 언 감자도 이젠 거의 거덜이 날 지경이었다. 일본 놈들이 우시장에 경찰서를 짓고 우시장으로부터 두만강변의 회룡까지 철길과 큰길을 닦으면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김치움에 파묻어둔 감자, 생명줄 같은 얼마 안되는 감자마저 들춰내 다 빼앗아갔다.      엉망진창이 된 살벌한 세월에 최구장의 맏며느리 허옥실은 해산하려고 고방에서 해산앓음을 했다.      “에구, 이 야박한 세상에 나와서 어떻게 살려고 꿈틀거려?”     옥실은 배속에서 꿈틀거리는 아가를 만지면서 중얼거렸다.     이때 최구장의 로친 성단이 고방에 들어와 앉아 며느리 손을 잡고 위안했다.     “아가야, 하늘이 무너져두 솟아날 구멍이 있다구 근심말게나.”     세파에 부대끼여 성단은 쉰고개를 갓 넘어선 나이에 비해 얼굴에 잔주름이 죽죽 건너갔다.     “내 경숙이랑 산에 가서 버섯을 캐오라구 했는데 오는가 마중나가보겠소. 조산모가 옆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구 몸조심하게나.”      시어머니가 나가자 옥실은 수척한 얼굴에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정기없는 두눈은 섦음에 찬 샘구멍인가. 눈물이 하염없이 줄줄 흘러내려 입귀로 흘러들다가는 턱을 타고 어린 근형의 복숭아얼굴에 똑똑 방울져 떨어졌다.     옥실은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옥물고 해산진통을 참느라고 모진 애를 썼다.     성단이 아들마중을 갔다가 돌아왔을 때였다.    고방에서 갓난애의 울음소리가 “응아, 응아.” 하고 자지러지게 들렸다.    최구장은 웃방에서 곰방대를 들어 재떨이에 툭툭 털면서 로친을 나무랐다.    “에참, 주책없는 노친도. 맏며느리 애를 낳는데 아들마중을 가다니? 쯧쯧쯧.”    성단이 고방에 달아 들어 가더니 환성을 올렸다.     “며느리, 용하구나. 계집애를 낳았구만.”    초신감발을 하고 흰옷을 입은 경숙은 돌 버섯을 캔 바구니를 정주간 바닥에 내려놓고 희죽이 웃었다.     “큰사람, 딸을 안아보게나.”     성단은 갓난애를 포대기에 싸안고 나와 경숙에게 보였다.     경숙은 갓난애를 안고 서성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에구, 살기 바쁜 세월에 나서 어찌 하겠습니까? 입이나 하나 불었지.”     경숙은 아들 근형을 본지 1년 만에 음력 동지섣달에 연연 생으로 딸을 보았다.     최구장은 맏손녀를 안고 한참 궁리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몇 월 몇 일인가?”    경숙이 손을 꼽았다 폈다 하면서 한참 생각하더니    “음력으로 12월 5일입구마.” 하고 대답하자    최구장이 좀 궁리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 애 이름을 밝을 ‘명’ 자에 옥 ‘옥’ 자를 달아서 최명옥이라고 짓자.”     경숙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말이라면 다 따랐다.     “명옥이? 밝은 옥이라. 참 좋은 이름입니다.”     최구장은 덧붙였다.     “칠흑 같은 세월이 밝아오기를 기다려 잘 살라고 밝을 ‘명’자를 단 게다. 옥 ‘옥’ 자는 애 어미 이름에서 따왔다.”      “예—참 좋습니다.”     경숙과 성단은 서로 마주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성단은 바삐 부엌에 내려가 멱국을 끓여 고방에 들여갔다. 뒤이어 다시 부엌에 내려가 경숙이 기운봉에서 따온 돌 버섯을 함지에 씻어 가마에 얹고 부엌에 내려가 불을 땠다.      경인과 어금도 소문을 듣고 불붙이에서 달려내려와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경인과 어금은 잔치를 해서 얼마 안 돼 운주동에서 서쪽으로 한 3리 떨어진 불붙이라는 골 안에 가서 남의 사랑방을 빌어 들고 세간났던 것이다.    “아, 그, 우리 개성 최 씨네 어쩌다가 계집애를 봤소? 아 그, 쯧쯧쯧.”     경인은 조카 명옥을 안고 반가와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때 명옥과 년년생인 근형이 앙기장 아기장 걸어와 갓난애 명옥이 곱다고 고사리 손으로 어루만지었다.     최구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식들을 둘러보았다.     최구장의 집안에는 경사가 났지만 저녁에 가마에 얹을 쌀도 없어 최구장의 아내 성단은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긴긴 겨울과 보리 고개는 어떻게 넘는단 말인가?)     최구장이 마루에 나가 거위 털 같은 눈송이가 쏟아지는 벌판을 바라보면서 대통을 뻑뻑 빨며 근심했다.      그때 천만뜻밖에도 영월동의 성칠이 어깨에 사슴 한 마리를 메고 사립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다.      “사돈어른, 편안히 보냈습둥?”     “아니, 영월동의 사돈이 어떻게 돼서 여기로 왔소?”     성칠은 마당에 사슴을 훌 내려놓았다.     “전번에 장백산 밀림으로 들어갔다가 잡아 온 겁니다. 잡수라고 가져왔습구마.”    최구장이 바삐 성칠의 옷에 묻은 먼지와 눈을 털어주면서 위방으로 안내했다. 온 집안 식구들이 인사수작이 끝나자 어금이 큰아버지에게 손을 씻으라고 뜨거운 물을 대야에 담아 들여왔다.    성칠은 눈섭과 코수염에 낀 서리도 물에 씻어버렸다.     최구장은 성칠을 쳐다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우리 집에 가져오고 사돈네는 뭘 잡수시겠수?”      “전번 사냥에 멧돼지와 사슴을 여러 마리 잡았습구마. 사돈이 한 집안이라고 사양하지 맙소.”     최구장은 허리를 약간 앞으로 굽히면서 사의를 표시하고 나서 뒷말을 이었다.     “병완 사돈어른은 편안히 계신기우?”      성칠은 성단이가 들여보낸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후 답답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삯전두 주지 않는데 기어이 공지로 갔습구마. 숱한 사람들의 삯전을 받아 내고야 말겠답더구마.”     삯전 말이 나오자 최구장은 곰방대에 담배를 재워 넣으면서 말했다.     “거 영월동의 길수란 자가 무슨 사람입니까? 삯전을 주겠다고 했으면 줘야지. 남을 속여 먹으면 됩니까?”      성칠은 아주 분개해 말했다.     “길수도 문제지만 일본 놈들이 더 문제입구마. 경찰국 지으면서 삯전을 내놓지 않았단 말입구마.”     최구장은 부시를 쳐서 곰방대에 불을 붙여 뻑뻑 빨면서 말했다.      “응삼은 서당 제자인데 말이 아니더구먼. 한길수한테 붙어 살더니 이젠 일본 사람들의 졸개로 돼서 스승마저 등 쳐 먹는 망할 놈으로 돼버렸수다.”     성칠은 한길수에게 생각이 미치자 악이 났다.     최구장은 담배대통을 뻑뻑 빨며 한탄했다.     “옛말에 부자 한 놈이면 온 마을이 망한다는 말이 맞아요.”    성칠도 동을 달았다.     “요즘엔 한길수는 일본 사람들을 영월동에까지 끌어들여 큰 잔치를 벌리면서 개지랄을 합더구마.”     “개 같은 놈!”     집 안에서는 한길수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와 한숨소리가 뒤섞여 오고 갔다.     고방에서는 갓 난애 명옥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바깥에서는 풍설이 창호지를 치며 무섭게 윙윙- 울부짖었다.     어른들은 이 살벌한 세상에 태어난 애의 운명을 근심하면서 한숨만 후~ 후~ 쉬었다.                                                    3. 토성안집의 큰 잔치       갓 서른을 넘은 떠꺼머리 노총각 득호는 새끼로 질끈 동여맨 허리를 구부정하고 일만 수걱수걱 해 그런지 쉰 고개도 훨씬 넘어보였다.      길수네 집에서 머슴살이를 허리 부러지게 하였건만 오막살이집 한 채도 생기지 않았고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들지 못했다.      “득호야, 거 당나귀차를 헛간에 끌어다 넣어라. 당나귀 차 눈을 폭 맞아서야 쓰겠냐?”      “알았습구마.”    요염하게 화장한 월선은 버들잎눈섭꼬리 휘도록 표독스런 암펌의 눈길을 내쏘면서 끝임 없이 독사처럼 혀를 날름거렸다.    “얼른 말과 당나귀도 먹여. 일본 손님들이 술을 마시고 마당에서 춤마당을 펼친단다. 마당에 거적을 펴라.”     “예꾸마-”    득호는 월선의 끝없는 잔소리에 신물났다.    “은녀야!”     “얘—”    은녀는 절구를 꽝꽝 찧다가 부랴부랴 몸채 마루 아래로 달려 나왔다.     “‘얘’가 뭐냐? 에이, 계집애가 뭐야? 전라도 깍쟁이말도 아니고 함경도 도적놈의 사투리도 아니고.”     은녀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몸둘바를 모르며 머리마저 숙였다.     “얼른 풍로를 피워라. 일본 손님들이 발 씻을 물 끓여놓아라.”    “알았습구마.”    “아, 깜빡 잊었구나. 설거지 할 물도 미리 길어오라.”    그런데 부엌으로 들어가는 은녀의 등 뒤를 보다가 무슨 생각이 또 났던지 곁채를 향해 소리쳤다.     “춘실아,  얼른 몸채로 들어와! 응삼 마름도 오라고 해라. 얼른!”     “예, 갑네다. 에이 취!”     월선은 마루에서 정주간으로 들어가려다가 되돌아서 곁채를 내다보면서 소리쳤다.     “아니, 주인이 말하는데 ‘에이 취’가 뭐냐?”     춘실이 황급히 조끼를 껴입으면서 곁방에서 달려 나왔다.     “재채기를 했어요. 감기에 걸린 거 같어요.”     춘실은 암범 같은 월선을 뒤따라 몸채로 들어가면서 또 연신 재채기를 했다.      득호가 당나귀차를 끌어 헛간에 넣고 마당을 쓸고 나서 손의 먼지를 툭툭 터는데 은녀가 풍로를 들고 나온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뭉게뭉게 풍겨 오르는 연기에 은녀는 눈도 바로 뜨지 못하면서 상을 찡그리었다.      “은녀, 좀 빨랑빨랑 불 피워라!”      “알았습구마.”     은녀는 월선의 눈치를 흘끔흘끔 곁눈질하며 조심스레 풍로를 바람맞이에 내려놓았다.     마루 우에서 월선의 목소리가 우레 소리처럼 지동쳤다.     “은녀, 게서 뭘 해?! 얼른 물도 길어오라!”     “얘-”     은녀는 속으로 두덜거렸다.     (어느 일부터 먼저 하라오? 풍로를 피워라. 물을 길어라. 물을 끓여놔라. 원, 참. 손이 열개라도 다 못하겠다. 흥!)    “득호, 좀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나무를 패! 시키길 기다리지 말고 좀 제절로 척척 찾아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월선은 득호와 은녀를 하루 종일 오금에 불이 일도록 부려먹고서도 모자라는지 질책소리 끝없었다.     “땔나무가 산더미 같구먼. 씨! ”     득호는 낮은 소리로 투덜거리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월선은 유들유들하게 기름이 번지르르하고 살진 낯살에 표독스런 표정을 드러내면서 득호의 코가 맞힐 정도로 삿대질했다.     “뭐라구 투덜거려? 엉? 패라면 얼른 팰 거지. 언제 셈이 들겠냐? 저러니깐 서른 고개 넘어도 장가도 못가지. 그 주제에 계집애 궁둥이를 쫓아다녀?”      그 말이 어찌나 구역질나게 들렸던지 은녀는 마땅찮은 눈길로 쳐다보다가 월선의 표독스러운 눈길과 마주치자 머리를 숙였다.      은녀는 풍로 불을 피워놓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풍로에 올려놓은 후 정주간에 들어가 물동이를 오른 팔에 껴안고 나왔다.     득호는 은녀를 보고 마른기침을 했다. 그러자 은녀는 동이를 안고 다가갔다.     득호는 몸채의 동정을 두루 살피더니 은녀를 보고 나직이 귀띔해 주었다.     "오늘 저녁에 특별히 조심해라. 일본사람들은 몽땅 색마들이여서 계집애들을 보기만 하면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은녀는 몸을 옹송그리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은녀가 떠나가자 득호는 사랑채 앞에서 도끼를 휘둘러 땔나무를 힘겹게 팡팡 팼다.     하늘에서는 거위 털 같은 흰 눈이 풀풀 흩날려 내리였다. 영월동은 하얀 소복단장을 해갔다.    겨울 해는 코끼 꼬리처럼 어찌나 짧은지 어느새 서산으로 꼴깍 넘어가고 허연 눈이 덮인 대지에는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내리 드리워 어스름한 황혼을 수림 속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사면을 높다란 토성으로 두른 길수네 토성안집 울안은 오늘 따라 경사가 난 듯이 광솔 불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놓았다.     병풍을 두른 몸채 위방에서는 끼무라 국장과 상우남면 면장이 상좌에 앉아 기생 둘씩이나 끼고  술을 마시였다. 큰상에는 다리 부러지게 진수성찬을 차려 놓았다.  한길수와 월선이가 그들을  접대하느라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옆 상에 앉은 통역 류강철과 영팔 그리고 호위병은 끼무라 국장 덕분에 입귀에 개기름이 번지르르하게 게걸스레 먹어주고 있었다.     영팔은 닭다리를 쥐고 질근질근 씹으며 막걸리 잔을 기울이다가 위상을 힐끔 건너다보았다. 그는 끼무라 국장의 숟가락과 저가 어디로 많이 가나 살피다가 정지로 내려갔다.     영팔은 부엌에서 채를 볶아내느라고 땀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는 부엌 여를 보고 재촉했다.     “빨리 모두부를 더 올려라. 일본 손님들은 조선의 모두부를 특별히 맛나게 잡숫는다.”      은녀는 부엌여가 사발에 떠주는 야들야들한 우유 빛 두부를 들고 위방 미닫이를 사르르 열고 들어갔다.      끼무라 국장은 두부모를 들고 들어와 큰상에 놓는 은녀를 힐끔 쳐다보더니 눈길을 떼지 못했다.     은녀가 나가자 끼무라 국장은 지껄였다.      “스빠라씨이데스네(이쁘구나). 사꾸라만 보다가 여기 조선의 무궁화를 보니 별나게 예뻐 보이는구먼. 사람이 어찌 모두부나 돼지고기만 먹겠는가? 조선의 고사리 채도 먹어봐야지. 고사리 채 참 맛이 좋지.”     강철의 통역을 듣고 길수는 인차 말귀를 알아들었다.     "예, 예, 밤에 먹는게, 아니, 잡숫는게 더 맛있죠."     호색한이 호색한의 속궁리를 젤 잘 알아주었다.     (쳇, 벌써 그게 근질근질해나니? 개놈새끼, 조선 계집들 그게 뭐 별나다고. 흥! 내 계집들을 다치려구? 양심없는 놈. 계집을 놀아두 친구 계집은 다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두 몰라?"    그러나 그런 별스런 기분을 억지로 눅잦히였다. 그러나 어쩐지 속이 볶이우면서 알알해났다.       (쳇, 나도 맛보지 못한 꽃을? 내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성칠에게서 빼앗아온 계집애이라고. 은녀만은 안 돼.)     한길수는 짐짓 화제를 바꿔 아래 정주간을 돌아보면서 소리쳤다.      “은녀야, 거 고사리 채를 볶아오라.”     “한군, 우리 대일본제국은 목재, 석탄이 많이, 많이 필요하네. 우시장으로부터 회령까지 통하는 철길과 큰길을 빼야겠네. 우시장으로부터 여기 영월동과 저 앞의 운주동이나 어느 마을이나 쭉쭉 사통팔달한 길을 닦아야 되겠어.”     길수는 류강철이 통역하자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아직 경찰국 사무 청사도 채 짓지 못했는데 길을 닦을 사람이 어데 있다구 그럽니까?”     그러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 강철은 그대로 통역하지 않았다. 그대로 통역했다가 한길수가 혼쌀날게 아닌가.     “한군은 경찰국 사무 청사도 잘 짓고 길도 잘 닦겠다고 합니다.”     “그래? 허허허. 한도감이야 말로 우리 대일본제국의 충실한 개, 아니, 충신이야. 흐흐흐.”    끼무라는 길수를 가슴츠레 건너다보면서 금이발을 번쩍이며 계속 지껄여댔다.     “한군의 표정은 이상한데. 경찰국 사무 청사를 잘 짓고 길만 잘 닦으면 한자리 주겠네.”     길수는 그 말에는 귀가 솔깃해졌다.      “예. 알았습니다. 그런데 철길이나 큰길을 불시에 빼서 뭘 합니까?”      끼무라는 기생의 손에서 닭다리를 받아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입에 넣고 질근질근 씹으면서 거만하게 말했다.     “한군, 길을 잘 빼야 다니기도 좋고 돈도 벌기 쉽소. 우리 대일본제국은 철길을 잘 빼서 영월동의 목재하구 개마고원의 석탄이랑 황금이랑 몽땅 실어가야겠네. 그러자면 큰길과 철도를 잘 빼야 되지. 알만하오?”     길수는 그제야 끼무라 뒤에 숨은 탐욕스러운 날강도들의 그림자들이 얼른거리고 있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보는 상 싶었다.     “그런데 두만강변의 회령은 조선의 끝간 시골인데 거기까지 철길을 뺄 필요야 있습니까?”     끼무라는 막걸리를 한잔 쭉 내고 닭고기를 게걸스레 뜯어먹더니 허리를 쭉 펴면서 말했다.      “우리 대일본제국은 조선을 잘 건설하고 나아가서 만주국에 있는 천황의 황민들을 보호하러 들어갈 거요. 아, 그 넓은 만주벌이 그저 황무지로 되는 것이 얼마나 아깝소? 우리 조선의 황민들이 그 넓은 옥토 벌에 밭을 일구고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치면서 산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요. 안 그렇소? 한 군.”     한길수는 우멍눈이 환해지면서  시야가 확 트이는 것만 같았다.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희 번뜩 번졌다가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는 연신 번들번들한 대머리를 조아리면서 끄덕였다.     “이제야 좀 알겠습니다.”     “그때면 한 군은 지금의 총 도감이겠소? 아마 무슨 대장 자리쯤은 차려질 거요. 허허허.”     한길수는 짧은 가랭이를 춰주는 줄도 모르고 기뻐 입귀가 귀밑에까지 찢어질 지경으로 입이 함박만 해졌다.      “고맙습니다. 끼 국장님.”      “에, 또 끼 국장인가? 끼무라 국장이지.”      한길수는 황급히 아픈 허리를 굽히면서 대머리를 조아렸다.     “시골의 제가 너무 모르는 게 많아서 죄송합니다. 꼭 사무 청사와 길닦기 공지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흡족한 듯이 번들 이마를 건너다보면서 씨불였다.      “자넨 우시장으부터터 회령까지 통하는 철길을 닦으라는 말이 아니네. 이 뒤 마을 부근 길닦이와 경찰국 청사만 맡으면 되네.”      “예, 알았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한길수에게 끝없이 불어넣었다.     “이번에 경찰국 사무 청사 공지에 인부를 데려온 일로, 오늘 우릴 접대한 걸로 두루 보니 한 군은 정말 이 산골에 파묻혀있기는 아까운 인재네. 잘 하게나. 우리 일본제국은 잊지 않을 거야.”    “예, 고맙습니다.”    한길수는 숱한 사람들 앞에서 보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일본 경찰국장에게 머리를 조아려댔다.    월선은 일본 사람에게 너무 굽석거리는 영감을 보고 속으로 치미는    불길을 참느라고 속이 부글부글 괴여 번졌다. 그러나 겉으로는 기쁜 듯이 끼무라 국장에게 나오지 않는 웃음을 팔았다.      술이 거나하게 되자 끼무라는 색정광의 본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젠 일본 기생 년들을 물리고 우시장 조선기생 옥설을 데려오게나. 오늘을 다른 맛을 봐야겠네.”     “알았습니다.”     영팔이 나가서 이윽고 간드러진 웃음소리를 앞세우고 연지 꼰지 찍고 발끝에까지 분가루가 흩날리게 바른 옥설과 만금, 뽕녀가 들어왔다.     끼무라는 실눈이 대뜸 화등잔이 되여 옥설을 껴안았다.     옥설은 끼무라 국장의 무릎 우에 올라앉아 실버들 같은 허리를 이리 곰실 저리 곰실 배배 탈면서 갖은 애교를 다 부리였다.      한길수는 옥설을 뚫어지게 건너다보면서도 옆에 앉은 월선의 눈치가 보여 어찌 하는 수가 없었다.      한길수가 불편해 하는 것을 눈치 채고 끼무라는 월선을 보고 꼬부랑소리를 했다.     “여보세요. 곤하겠는데요. 나가 쉬세요. 나와 한 군 은밀히 할 말이 많이 있소이다.”     류강철이 통역하자 월선은 일어나 펑퍼짐한 엉덩이를 삐뚤거리며 나가면서 입귀를 비쭉거렸다.     뒤늦게 들어온 월향은 아저씨 한길수를 보고 머리를 까딱 하면서 살짝 웃음을 흘리었다.      끼무라는 월향을 보고 자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탕탕 치면서 와서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순간 한길수는 속에서 질투의 불길이 훅 치밀었다. 그러건 말건 끼무라는 옆에 앉은 월향의 볼을 살살 만지면서 놀아댔다.      만금과 뽕녀도 끼무라 국장 옆에 붙어 앉았으면 큰 떡이 생길 것 같았지만 별수 없이 한길수의 옆에 와 물앉았다.     월향은 평소에 길수가가 우시장에 오기만 하면 자기 몰래 옥설을 찾아 술잔을 기울이던 일이 괘씸해 보복하려고 들었다. 일부러 한길수의 애가 마르게 모두부랑 숟가락에 떠서 끼무라의 입에 넣어주고 아양을 떨어댔다.     끼무라는 막걸리 잔을 들어 옆에서 희희닥거리는 옥설을 끌어안고 빨간 앵두 입에 억지로 부어넣었다. 옥설은 얼굴을 돌리면서 도리머리 질 하다가 별수 없이 막걸리를 삼키였다.     그녀는 섬섬옥수로 막걸리단지를 들어 끼무라와 한길수의 잔에 쪼르륵 쪼르륵 부어 올렸다.     기생들의 애교를 부리는 간드러진 웃음소리를 안주로 위방에서는 술을 한잔 또 한잔 기울였다.      주흥이 도도해지자 끼무라는 일어나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인차 눈치를 챈 한길수는 손벽을 짝짝 치더니 기생들에게 당부했다.     “끼 국장이 즐겁게 어서 춤판을 벌려라.”     월향은 “추워서 바깥에서 어떻게 춤을 춰요?” 하고 몸을 옹송그렸다.     그러나 한길수가 눈을 굴리자 마지못해 일어나 나갔다.      드디어 마당에서는 북장단이 둥당 둥당 울리고 기생 년들이 비단치마자락을 날리며 학이 나래를 파닥이듯이 팔을 하느작거리면서 춤판을 벌렸다. 대낮 같은 대뜰아래 춤판이 한창인데 거위 털 같은 눈송이가 하늘하늘 쏟아져 기생들 춤사위 두새에 내려 앉았다.      끼무라는 마루 위에서 월향과 옥설의 가는 목에 팔을 얹고 몸을 기댄 채 춤판을 구경하다가 비칠거리면서 팔자걸음으로 땅바닥에 내려갔다.      “조선 춤이 멋이 없다. 우리 대일본제국의 사꾸라 춤을 췄쏘까?”     끼무라는 “사꾸라, 사꾸라.”하면서 일본 기생들과 함께 왼발 내딛고 손 벽을 짝 치고 오른손 쳐들고 왼손 펴고 오른발 내딛고 손 벽을 짝 치며 사꾸라 춤을 췄다. 기생들은 제법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췄다. 그들은 조선기생들과 한데 어울려 일본에 둔 고향과 부모들의 생각에 눈물까지 흘리면서도 잘들 돌아갔다.       “아이쿠!”      한창 흥이 나서 모두들 춤을 추다가 복판에 쓰러진 끼무라에게 놀란 눈길을 모았다.      끼무라가 엉덩방아를 찧고 오만상을 찡그렸다.     “빨리, 부축해라.”     한길수가 황급히 고함쳤다.     그는 영팔과 함께 달려가 양쪽에서 부축하였다. 끼무라가 그들의 귀 쌈을 찰싹 찰싹 갈겼다.     “바까(바보)! 콘칙쑈(관둬)!”    기생 년들은 발바리 상을 하던 길수가가 맞는 것을 보고 너무 우스워 입을 싸쥐고 돌아서서 키드득 키드득 했다.     기생 년들은 뺨을 감싸쥔 한길수의 독살스런 우멍 눈을 훔쳐보고 곁방으로 몸을 숨기였다.     춤판은 깨지고 월향과 옥설이 끼무라를 부축해 윗방으로 들어갔다.     끼무라는 방 문턱을 넘어서면서 마른 날에 우박이 쏟아지듯이 울컥울컥 토했다. 막걸리며 닭고기며 버섯이며 고사리며 쏟아져 구들에 떨어졌다.     개들이 이게 웬 떡이냐며 끼무라의 가다리 두 새로, 엉덩이 밑으로 대가리를 들이밀고 쩝쩝 먹어댄다.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지경. ㅋㅋㅋ     한길수와 영팔, 순사들이 짖어대며 먹어대는 개들을 쫓아내느라고 위방이 떠들썩했다.  
25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7) 댓글:  조회:2735  추천:1  2015-05-26
                 6. 읽기 힘든 경      자오록한 안개 카텐이  서서히 걷히며 하루 서막을 멋지게 열어놓는다. 보이지 않는 화가가 파란 하늘 도화지에  꽃구름도 둥실 띠워 놓고 자취를 감춘다. 아침 햇살이 은침, 금침으로 이영납새를 송곳질하며 콧노래를 부르며 기지개를 켠다.     병완은 마루에 앉아 대통을 뻑뻑 빨면서 먹장구름이 몰려오는 하늘을, 변화 무쌍한 하늘을 내다보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안돼. 우리 집 대 끊기게 할 순 없어. 첩을 들여앉혀서라도 성칠한테 떡돌 같은 손자를 안겨 줘야지.)        마당 백약나무 가지에 난데 없는 까치 날아와 꽁지를 달싹이며 까깍, 까깍 울었다.        (오늘 무슨  기쁜 소식이 있다고 까치 저리도 울어? 누가 오겠는가? 옛날부터 여자가 애를 낳지 못하는 건 칠거지악중의 으뜸가는 죄악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하옥은 시집 온지 10년이 넘도록 애를 하나 낳지 못하지 않는가.)      병완은 대통을 문턱에 탁 털어버리며 중얼거렸다.       “이러다간 장손을 안아보지 못하구 말겠다. 그만 기다렸으면 잘 기다렸지. 흥!”      그는 지난해 가을 달밤에 성칠과 은녀가 한길수네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방둑 버드나무아래에서 이야기 하는 것을 본 후에는 착잡한 생각에 빠지곤 했다.      (은녀 영월 엄 씨만 아니어도 진작 새 며느리로 맞아들여 왔을 걸.)      성칠의 일에 골머리가 아픈데 설상가상으로 막내딸 곰순마저 운주동의 전주 김씨네 맏며느리로 범석에게 시집 간지 석삼년이 지나가도록 태기가 보이지 않아 큰 근심거리였다.      단오명절에 병완의 4대 스물일여덟이나 되는 식구들이 몽땅 영월동에 다시 모여 명절을 쇠게 됐다. 그런데 이튿날에 운주동의 최구장이 사촌동생 최구철과 조카 진달래, 맞아들 경숙과 둘째아들 경인을 데리고 영월동으로 찾아왔다.     병완의 온 집안 식구들이 몽땅 나가서 마중하여 인사를 나눴다.     특히 성칠은 구철의 앞에 넙죽 엎드려 큰절까지 올렸다.     그때 얼굴이 가맣게 탄 진달래가 나와서 성칠의 손을 잡고 생글방글 웃으며 반기었다.      "오빠, 그간 잘보냈는가요?"     하옥은 먼 발치에서 두 손을 앞섶에 모아쥐고  멍해 서있었다. 성칠은 아내 하옥을 보기 민망하여 뒤를 흘끔 돌아보면서 인차 손을 뺐다.       모두들 집안에 들어와 좌석을 정하자 최구장이 염소수염을 슬슬 어루만지더니 말했다.       “지난해 이 집 맏아드님 신세에 감자농사도 지켜내고 멧돼지고기도 잘 먹었어요. 참말로 감사해요.”     “천만의 말씀을. 우리 두 집안이야 진작 서로 사돈이 아닌가요. 내 막내며느리 최사련이는 개성 최 씨 아닙니까? 그 집과 한집안 사람들이 아니고 뭣이요.”      한참 족보를 따지더니 최구장은 최사련이 자기 집안 누이벌이 된다는 것을 인차 확인했다.      작달막한 막내며느리 최사련은 임신한 몸으로 최구장과 최구철에게 인사를 올린 후 부엌에 내려가 동서들과 함께 점심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한참 후 병완은 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또 인사를 올렸다.      “어느 해 가을에 내 맏아들 성칠이 백두산까지 갔다가 최구철 영감의 신세를 많이 졌더구먼. 정말 감사하오.”       최구장과는 달리 억대우같은 최구철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단마디로 뚝 찍어 말했다.       “우리 사냥꾼들이야 세상을 다 자기 집으로 여기죠. 수림 속에서 서로 만나면 형제처럼 생각하지요.”      진달래는 성칠의 처 하옥만 자꾸 쳐다보았다.     사실 최구장이 이번에 진달래까지 데리고 온 것은 진달래의 청에 못 이겨 성칠의 집안형편 특히 성칠의 아내가 있는가 없는가를 확인하려는 것도 있었다.     최구장은 확실히 성칠에게 예쁜 아내가 있는 것을 보고 진달래의 혼사말은 접어두기로 했다.     이때 최구철이 형님에게 눈짓했다.     최구장은 뜻밖의 혼사 말을 꺼냈다.     “김 영감, 우리 두 집안은 세세대대로 피를 나눈 형제처럼 보냅시다. 하긴 이번 걸음에 우리 집 둘째아들 경인과 이 집 맏손녀와의 혼사 말을 하러 왔소이다.”    병완은 놀랍기도 하고 기뻐서 바로 앉으면서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저, 칼을 잘 쓰던 총각과 말이요?”     최구장은 “예, 그렇소이다.”라고 대답했다.     병완은 경인을 마주 보면서 거듭 치하했다.     "전번에 청명절에 굿 구경을 하다가 보니 칼도 잘 쓰고 날래더구먼.”      경인은 제꺽 일어나서 허리를 굽히며 겸손하게 답례했다.     “재간 없는 놈을 치하해주어 고맙습니다.”    병완은 인사를 받고나서 기준을 돌아보았다.     “ 좋은 일이오. 그러잖아도 맏손녀가 이젠 시집갈 나이도 돼서 신랑감을 찾아주자고 하였소이다. 이제껏 혼사 말이 많이 들어도 마땅한 자리가 없었는데 잘 됐소이다. 어금이 애비는 어떻소?”     기준은 경인을 다시 여겨보더니 시원하게 한마디로 뚝 찍어 말했다.     “아버지 의향을 따르겠습구마. 아버지께서 결정을 내립소.”      “이 일만은 아비가 결정하오.”     그때 부엌에서 어머니와 함께 부엌일을 하던 어금은 부끄러워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병완은 원래 불같이 급한 성미인지라 이 혼사 말을 응낙했다.     “좋소이다. 귀 댁 둘째아들을 둘째 손녀 신랑으로 맞아들이겠습구마.”     “감사하옵니다. 경인아, 이젠 가시조부모부터 인사를 올려라.”     최구장이 부탁하자 경인은 가시집 어른들에게 순서대로 일일이 큰절을 올렸다.     병완은  성희를 보고  술상을 차리게 했다. 이윽고 뜨거운 사돈의 정을 나누는 술판이 벌어졌다.      운주동에 돌아온 최구장은 둘째며느리를 삼게 되여 속이 흐뭇하기로 더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정작 사돈보기를 하고 결혼잔치를 치르자니 돈이 없어 한숨만 땅이 꺼지게 나갔다.      집집마다 읽기 힘든 경이 있다고 최구장의 집에도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다섯째아들 경석은 막내라고 응석받이로 자랐다. 그는 장가를 든 지 몇 해 되건만 어찌나 약 담배를 피웠는지 집 안에 큰 경을 칠 지경이었다.     경석은 최구장의 집 앞 몇 집 건너 세간나서 살았다.     최구장은 경석이 서당방을 나온 후 형내 할아버지 관준에게 보내 형내와 함께 한의를 배우게 했다.     경석은 게을러 공부나 일이나 다 하기 싫어 했다. 그는 관준 스승한테서 귀동냥이나 해 침도 놓고 한의 처방도 좀 뗄줄 알게 됐다.  그런데 량혜자한테 장가를 들어 세간 난 후부터 가장이노라고 병이나 봅네 하면서 집 일에는 손가락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그후 우연히 약 담배에 맛을 들인 후부터 집구석에 들어 누어 약 담배만 풀썩풀썩 피웠다.     혜자는 게으름뱅이 남편을 믿고 살기 힘들다고 내내 시아버지한테 찾아와서 고청을 들이군 했다.     어느날 혜자는 경석이 시아버지 질책했건만 계속 집구석에 들어누워 약담배를 풀썩풀썩 피우는 것을 보고 눈이 퉁퉁 붓게 대성통곡쳤다.  나중에 그녀는 애 띠를 들고 뒤 산으로 스적스적 올라갔다. 그녀는 이를 옥물더니 정말 나무에 올가미를 매놓고 목을 턱 걸고 매달리고 말았다.     경숙이 소문을 듣고 부랴부랴 뒷산에 뒤쫓아올라갔다. 제수는 글쎄 나무 가지에 애 띠로 목을 매 둥둥 달려 있지 않겠는가.     경숙은 황급히 축 늘어진 제수 몸을 무릎으로 받치고 왼손으로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 목을 맨 띠를 풀었다.    그는 지체할세라 제수를 들쳐 업고 집으로 달려왔다.    제수 몸이 축 처져서 자꾸 내려가 춰 업느라고 엉덩이에 두 손이 가닿았다. 그러자 혜자의 몸이 옴찔 움직이지 않겠는가.    “부끄러운 걸 아는 거 보니 살아났구나.”    경숙은 중얼거리면서 제수를 업고 집에까지 돌아왔다.    시어머니 성단은 작은며느리를 경숙의 잔등에서 받아 함께 가마 목에 눕혔다.    성단과 옥실은 혜자의 손을 주물러 준다, 수건을 젖혀 이마를 닦아준다 하면서 분주히 서둘렀다.    소문을 들은 형내가 달려와서 발바닥과 코에 침을 몇 대 놓았다.     한참 후 혜자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젠 살았구나. 아가야, 물을 받아넘겨라.”      혜자는 시어머니가 숟가락으로 떠 넣는 물을 받아 겨우 넘기었다.      그녀의 눈귀로부터 눈물이 주르르 흘러 양 볼을 적시면서 베개 잇에 뚝뚝 방울져 떨어졌다.      최구장은 며느리 옆에 다가앉아 달래였다.      “아가야, 내 경석이, 그 놈을 톡톡히 혼내 줄 테야. 다신 멍청이 짓 하지 말라우."      혜자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간신히 띠염띠염 말했다.     "아,아버님, 어, 어떻게 저런 나, 나그네를 믿고 살아-요. 죽, 죽기보다 못 해-유. 흐흐흑, 흑흑.”      “쯧쯧쯧,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새파란 나이에 이를 악물고라도 살아야지.”     최구장은 답답해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집 안에서는 여인의 흐느껴 대성통곡 소리가 동네 떠나가게 끊임없이 울렸다. 애닲은 울음소리 사람들의 마음을 칼로 에이며 깊숙이 파고 들었다. 딱 마치 초상난 집 같아 스산하기 그지없다.      집 앞의 살구나무에 웬 비둘기가 앉아 날개를 파닥이며 하옥의 처지 불쌍해 굿이나 하듯 섧게 꾸- 꾸- 울고 있다…               제5장 음모궤계      1. 친일주구     앞을 가리기 힘들게 눈보라치는 을씨년스러운 겨울. 박달나무가 얼어 탁탁 터지고 여우도 엄동설한에 눈물을 흘리면서 눈 덮인 수림으로 도망간다.     휘몰아치는  친일 주구의 우멍눈이 눈보라 속에 숨어 교활한 눈빛을 번쩍인다. 아첨이 눈발 속에서 해해거리며 거만하게 딸까닥거리는 게다짝에 비굴하게 절을 꾸벅꾸벅한다.      당나귀차가 명천 우시장 큰 거리 돌바닥길을 딸까닥딸까닥 절주 있게 달렸다. 당나귀차에는 중절모자를 쓴 한길수가 개화장을 짚고 앉아 우멍눈을 떡 감고 구두발만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의 집에 마차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빨리 닫는 마차에 앉았다가 사고라도 날가 봐 당나귀차에 앉아 길을 떠났다.          그는 지금 철주가 꼬드긴 대로 우시장에 와서 일본 쪽빨이들 품에 안기러 오는 길이었다. 한길수는 날개가 돋혀 한시급히 일본 사람들이 욱실거리는 명천으로 날아가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다.      (그 놈새끼 말대로 일본 사람들을 등에 업고 병완을 꺾어버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 맏아들 말이 맞아. 이런 세월에 순풍에 돛을 달고 제 노릇이나 하는게 제일이지. 모슨 놈의 만세야?)       그런데 한길수는 일본 말을 통 모르는 것이 참 답답했다. 불시로 배우는 수도 없는 일이어서 먼저 일본말 통역을 찾기로 했다.     득호는 차를 세우고 뒤돌아다보면서 물었다.     “주인어른, 우시장에 다 왔습구마. 어디로 가겠습둥?”     “에이, 듣기도 싫은 함경도 도둑놈 사투리! 흥!”     한길수는 우멍 눈을 번쩍 뜨더니 두덜거리며 등의자에서 몸을 뗐다. 한참 두리번거리던 그는 일본 병사들이 보초를 서는 초소가 있는 쪽을 개화장으로 가리켰다.      “저리 가자.”      득호는 기절초풍한 나머지 고삐를 쥔 채 멍해 주인어른을 뒤돌아다보았다.      "아니, 쪽발이새끼들한테 무슨 경을 치자구 이럽둥?"     한길수는 개화장으로 득호 잔등을 툭 치면서 재촉했다.     "빨리 가잖고 뭘 해?"    득호는 시에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차듯 고삐로 당나귀 잔등을 탁 치면서 중얼거렸다.    “저쪽은 허월향 기생집인데요.”     길수는 발로 득호 엉덩이를 탁 차놓으며 왈칵 성냈다.    “야, 이 놈아, 가라면 갈 게지. 뭘 알아서 꾸물거리느냐?"    득호는 그제야 이 늙은 두상이 또 속이 근질거려나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당나귀 잔등을 쳐 차를 동남쪽으로 빨리 몰았다.     “득호야, 집에 가서 기생집에 갔다는 말 절대 하지 마라. 알만 하냐?”     “예, 목이 떨어지자고 혀바닥을 놀리겠습니둥?”     “음. 우리 집에서 일하자면 입이 무거워야 해. 알만해?”    "네. 주인어른이 기생집에 들린 걸 절대 입 밖에 내지 않겠습구마."    ''에끼, 이 놈아, 차나 잘 몰아라!"     한길수는 이젠 우멍 눈을 크게 뜨고 등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떼고 여기저기 살피면서 득의양양해 코 노래를 흥얼거리었다. 그는 어쩐지 기생 월향의 기생방에 갈 때면 흥이 났던 것이다.     (이래서 사내대장부는 창검 속은 쉽게 지나가도 미인관은 넘어가지 못한다고 하는 거야. 어험.)      한길수는 여편네 월선이 허벅다리를 꼬집어 놓으면서 기생집출입을 하지 말고  해 넘어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라는 말도 귀 등으로 흘려버리고 말았다. 하긴 이 근년에 마흔 고개도 넘은 월선과 밤잠을 억지로 자고 나면 이전에 애교가 찰찰 넘치던 월선이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됐다. 그리하여 흘러간 세월로 하여 마음이 별스럽게 쓸쓸해나기만 했다.      그새 변화가 눈 뜨이게 생겼다. 허월향 기생집 옆에는 양옥으로 일본 기생집 사꾸라관이 일떠섰다. 일본 기생 년들이 게다짝을 짝짝 끌면서 화복을 입고 궁둥이를 비뚤거리며 기생집에서 나와 거리를 나돌아 다녔다.     거리 곳곳마다 초소를 세우고 일본 헌병들이 시퍼런 총창을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몸과 짐을 꼼꼼히 수색했다. 한길수 네가 초소로 다가가자 일본 헌병 둘이나 다가와 총창을 들이대고 내리라고 시늉하면서 뭐라고 씨부렁거렸다.    “에참, 세상이 더럽게도 변했네. 이 우시장에서 누가 언감 내 앞길을 막는 놈이 다 있었던가? 오래 사노라니 원, 별것들을 다 보겠다.”     “고노 빠까새끼(이 바보새끼)!”    한 일본병사가 일어에 조선어를 섞어 고함치면서 총 박죽으로 길수의 턱주가리를 들이갈겼다.    싸움꾼 출신인 길수는 낯을 옆으로 피하면서 날아드는 총 박죽을 왼손으로 비껴 치우면서 두덜거렸다.     “야, 정말 이 새끼들!”    길수는 개화장을 쳐들었다가 치미는 밸을 억지로 꾹 참았다. 그는 바위돌처럼 굳어졌던 박대가리 근육을 풀면서 억지로 웃음지으며 뭐라고 손시늉했다.     그제야 일본 병사들은 한길수를 당나귀 차에서 내려오라고 손짓했다. 그 놈들은 몸부터 수색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당나귀 차까지 이리저리 수색한 후에야 놓아주었다.    길수는 투덜거리면서 기생집 앞에 간신히 이르렀다. 그러자 벌써 문어귀에 서있던 기생 년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와 아양을 떨고 교태를 부리면서 마중했다.     “아유, 오랜만인데요. 영월동의 한 양반!”     “어서 오세요. 당신 생각에 잠도 안 오데요.”     “그래, 그래. 어험.”      그제야 한길수는 금방 당한 굴욕감에서 서서히 풀려나오면서 길죽한 낯에 웃음 구름이 흐르기 시작했다.     두 기생이 한길수의 양팔을 안고 기생집에 들어가 복도의 층계를 올라갔다. 그래도 길수는 어쩐지 이맘 때면 언제나 달려 나와 자기를 마중하던 월향이 보이지 않는 것이 속에 걸리었다.     “월향이 없냐?”     팔을 낀 기생년은 한참이나 아무런 대답도 없이 잠잠하다가 입귀를 배시시 열었다.     “월향 언니는 오늘 귀한 손님이 있어요. 우리와 폭 취토록 술을 마시면 어때요?”    길수는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올라 꽥꽥 고아댔다.      "이 우시장에 날 내놓고 또 누가 있다고 그래? 그년 보고 얼른 나와 마중하라고 햇! ”      이때 옆에서 부축하면서 층계를 오른 기생들이 기겁해 손으로 한길수의 입을 막으면서 월향의 방을 눈짓했다.      한길수는 우멍눈을 가슴츠레 뜨면서 뭔가 눈치 챘다.      (어떤 놈이 왔기에 이 지랄들인가?)     길수는 월향을 찾아와 중대사를 토론하여야 하겠는데 웬 놈이 와서 붙들고 앉아있는 것이 아주 불안했다.     그러나 옆에 꼭 붙어 옥방으로 들어가는 기생 년들이 어찌나 예쁜지 월향이고 일본 놈의 통역이고 만나는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는 점차 색마의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양옆에 예쁘고 살 냄새 풍기는 기생 년을 두고서도 모자라 복도 벽에 줄느런히 걸어놓은 반라체기생년들의 사진을 흘끔흘끔 도적눈을 팔았다. 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리고 두 손으로 반 라체 하신을 가린 기생, 일본 녀인머리처럼 부푼 머리카락을 휘감아 올려 동이고 젖가슴을 살짝 반쯤 드러낸 채 외면한 기생, 그 기생들의 사진을 보는 길수의 눈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아이유, 이 양반도. 우리 뭐가 짝져서 어디에 눈을 팔아요?”      “빨리 우리 방으로 들어 가자요.”     기생들이 뾰로통한 표정을 짓자 한길수는 기생 년들의 야들야들한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구슬렸다.     “그래. 어서 들어가자. 요것아.”    길수는 월향의 방을 그저 건너 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월향의 방에서는 웬 왜놈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알아듣지도 못할 일본 노래를 부르면서 저인지 숟가락인지 술잔인지 사라인지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라리 잘됐다. 이 젊은 기생 년들과 놀면 좀 좋아서. 월향은 월선처럼 이젠 한물 지나간 년이야.)    길수는 복도 마지막까지 나가면서 칸칸의 미닫이문 옆의 벽에 걸린 기생 년들의 사진을 몽땅 점검했다. 그래도 어째 시원치 않았다. 그는 자기 양팔을 안고 있는 기생 년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왼쪽팔을 안은 기생은 얼굴이 걀쭉한 년인데 외까풀 눈으로 생글 웃으면서 애교를 부리는 그 눈이 아주 매혹적이었다.     “이름이 뭐지?”    걀쭉한 기생은 해시시 웃으면서 “뽕녀얘요.”라고 대답하며 몸을 비비 탈았다.    “뽕녀? 좋아. 너와 함께 한판 하면 뽕뽕 가겠구나. 허허허.”    길수는 이번에는 눈길을 돌려 오른팔을 안은 년을 훑어보았다.    반 너머 드러난 풍만한 젖가슴이 백설같이 희고 보름달같이 둥근 우유 빛 얼굴이라든가 진주같이 반짝이는 쌍가풀 눈이라든가 오똑한 코에 키스를 기다리는 빨간 작은 입술이라든가 실로 정이 찰찰 흘러넘치고 그녀의 온몸에서 향기가 그윽하게 풍겼다.     “에라, 오늘 질탕하게 놀아야겠다. 잘 모셔야 돼.”    길수의 욕망에 찬 말에 기생 년들은 호들갑을 떨면서 미닫이문을 열고 길수의 팔을 감싸 안은 채 안방으로 들어갔다.     “에이구, 한 양반. 진짜 황금 한양반을 가지고 왔나 봐.”     “그래. 영월동 한 양반이 그래도 황금 한냥 반이야. 호호호.”     안방에 있던 기생년도 일어나 사뿐사뿐 다가와 길수를 반겨 맞았다.     “안녕하세요?”     한길수는 탐스레 그년의 온몸을 눈으로 쓸어 만졌다.    절반밖에 비단으로 가리지 않은 온몸이 다 익은 감같이 말랑말랑해보였다. 그래서 바삐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복숭아이마에 키스부터 뻑 안겼다.     “넌 이름이 뭐냐?”     “만금이예요. 이뻐해줘요.”     한길수는 양팔에 계집 하나씩 끼고 구들에 들어앉으면서 떠들어댔다.      “그래, 그래. 에이고, 요것들아. 오늘 늘어지게 놀자구나. 누가 소리할 줄 아냐?”      “예. 옥설이가 소리야 잘하지요.”      뽕녀의 말에 옥설은 벽에 기대놓은 가야금을 내려다 술상 저쪽으로 하여 놓았다.     뽕녀와 만금은 바삐 술상을 차려놓고 한길수의 잔과 자기 앞의 잔에 술을 찰찰 넘치게 부었다.     뽕녀와 만금이가 한길수의 양 무릎에 올라앉아 잔을 들었다.     “자, 한잔 드세요. 우리 친애하는 한 양반.”      “오, 그래, 그래. 너희들 남대치 말이 우리 함경도 말보다 참 듣기 좋구나.”     한길수는 한잔 쭉 굽냈다.     “캬- 거, 술맛이 좋다. 옥설아. 유행가 한곡 불러라.”     옥설은 꽃방석 우에 치마를 꽃처럼 동그랗게 씌우면서 들어앉아 가야금을 둥기 당당 탔다. 뒤이어 온방에 둥기 당당 가야금소리에 맞추어 은방울 굴리는 듯 청아한 목소리가 간드러지게 울렸다.         첫사랑에 마음을 적시던 그 날 밤       오동추야 기나긴 정열의 깊은 밤       나는야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내 사랑 멀리멀리 가버린 첫사랑         가야금아 둥기 당당 울려라       강남에 날아갔던 제비는 돌아오고        훈훈한 봄은야 찾아왔건만       언제 돌아오랴  기약없이 떠나간  첫사랑          “그래, 그래. 너의 첫사랑 내가 이렇게 돌아오지 않았느냐? 그런 의미에서 한잔 들자. 오, 요것아. 헤헤.”       길수는 왼팔로 뽕녀를 안고 오른손으로 술잔을 입에 가져가려고 했다.       그런데 만금이 술잔을 앗아 입에 가져갔다.      길수는 양팔에 뽕녀와 만금을 안고 만금이가 입에 부어주는 대로 술을 마셔댔다. 입귀로 술이 흘러 비단적삼을 적셨다.     “어, 술맛 좋구나. 옥설아, 거 쓸쓸한 노래 그만 부르고 여기 와서 술이나 따르라.”     옥설은 가야금을 내려놓고 나비가 날아와 꽃 위에 옮겨 앉듯이 다가와 섬섬옥수로 술병을 들어 놋 잔에 찰찰 넘치게 부어 길수의 앞에 드렸다.     “아이고, 요 손이 어쩌면 이렇게 부드럽고 매끌매끌하냐? 요 손으로 입에 부어넣어라.”     옥설은 두 손으로 잔을 들어 한길수의 침이 발린 입에 술을 부어넣었다.     “어허, 술맛이 참 좋구나. 세상에 이런 재미보다 더 좋은 게 있다더냐?”     한길수는 만금과 뽕녀의 허리를 놓고 술병을 쥐어 두 잔에 술을 찰찰 넘치게 붓더니 한잔은 옥설에게 주고 나머지 잔은 자기 손에 쥐였다.     “옥설아, 너를 만나 정말 기쁘구나. 한잔 들자.”    댕그랑.    한길수와 옥설은 놋 술잔을 마주치고 기분 좋게 죽 들이마셨다. 술이 묻은 옥설의 빨간 입술은 앵두처럼 더욱 빨갛게 물기가 돌았다. 옥설을 쳐다보는 한길수는 말 이발을 드러내며 음탕한 웃음을 술이 발린 입가에 띠웠다. 뒤이어 그는 두 손으로 옥설의 하얀 얼굴을 받쳐 들고 은은한 정이 그윽한 깜장 눈을 들여다보면서 지껄였다.    “야, 요년. 하늘이 어쩜 오늘 나에게 너같이 예쁜 애를 주었을까. 네 고향은 어디냐?’’    옥설은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김해예요.”라고 대답했다.    한길수는 “그래? 김해라. 멀기도 먼 곳에서 왔구나.”라고 하면서 기막힌지 옥설을 놓아주었다.    “얘, 앉아라. 김해가 얼마나 좋은 고장이니 이런 시골에 와 이런 돈을 버느냐?”   옥설의 깜장 눈에는 이슬이 반짝였고 머리는 폭 숙여졌다.   “너 무슨 일이 있었느냐? 말해라. 이 영월동의 한길수는 여기 우시장의 왕이니까 어느 놈이 너를 업신여기거나 못살게 굴면 내가 어디까지라도 쫓아가 그 놈의 대갈통부터 박산내겠다. 겁나 말고 어서 말해라.”    옥설은 고개를 천천히 들고 한길수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눈치 빠른 한길수는 얼른 옥설의 손을 잡고 잔등을 살짝살짝 다독여주면서 지껄여댔다.    “자, 어서 말해봐. 객지에 나와서 고생이 많지? 성씨부터 말해봐. 집에는 누구랑 있냐?”    만금과 뽕녀는 질투의 눈길로 옥설을 쏘아보았다.    옥설은 눈물을 흘리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집은 김해에 있는 김해 김 씨예요. 우리 집에는 우리 오누이밖에 없어요.”    “그래. 네 집이 아주 가난한 모양이지. 이런 일을 하러 이런 시골에 보낸걸 보면.”    한길수가 아무래나 지껄이는 말에 옥설은 화도 내지 않고 묵묵히 하얀 볼에 눈물만 하염없이 줄줄 흘리었다.      그러자 한길수는 가래 같은 손으로 옥설의 볼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울지 마라. 얘, 네가 울면 내 가슴에 칼이 박히는 것 같이 아프다. 네가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필시 무슨 말 못할 연유가 있겠다. 어서 말해 봐.”      이때 말수 적은 옥설이 갑자기 한길수의 손을 뿌리치면서 훌 일어나면서 그릇이 깨지는 듯 악청으로 소리를 질렀다.     “누가 여기 오기 싶어서 고향을 떠나 왔는가 해요? 누가 이런 노리개질을 하고 싶어 하겠어요? 저 일본 놈들이 붙잡아 와서 여기까지 끌려왔지.”     한길수는 펄쩍 놀라 일어났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일본 사람들이 말이 아니구먼. 이런 일이야 어디 강박하면 되는가? 혹시 너 네 집에서 일본사람들에게 빚을 많이 진건 아니야?”     옥설은 문께로 나가면서 “쳇, 우리 집은 김해에서도 한다하는 부자 집인데 바다를 건너온 일본 사람들에게 무슨 빚을 진단 말인가요? 만금과 뽕녀와 술을 천천히 드세요. 난 오늘 기분이 엉망이 돼서 나가봐야 하겠어요. 후에 놀러 오세요.”    “아, 아니. 옥설아, 가지 말라.”    한길수는 보배나 잃은 듯이 허전해 옥설을 따라 막 일어나 나가려고 했다. 그 바람에 중절모자가 벗어지면서 번들 이마가 드러났다. 만금과 뽕녀는 배를 끌어안고 깔깔깔 웃어댔다. 그녀들은 황급히 중절모자를 주어준다 번지진 술잔을 주어다 놓는다 하면서 킬킬거렸다.    원래 이마 벗겨진 사내가 바람기가 세다고 했다. 또 월향의 말대로라면 번들 이마 한길수는 너무 바람을 피워 여인들과 섹스를 하다나니 여인들이 너무 바빠 위의 한길수의 머리를 끄당겨서 머리털이 다 빠져 번들 이마로 됐다고 하기도 했다.    이때 바깥에서 웬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렸다.     “이 년아, 어디로 갔는가 했더니 잘한다. 네가 감히 내 발등을 디뎌? 이년, 이 경칠 년아. 오늘 죽어봐라.”     찰싹!    옥설의 새된 비명소리 들려왔다.    한길수가 나가 보니 개 난장판이 벌어졌던 것이다. 글쎄 월향이가 옥설의 귀를 삐틀어 쥐고 방치로 옥설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월향은 한길수를 발견하자 독살스런 눈길로 그를 쏘아보았다.     “퉤, 더러운 영감태기, 그 우멍 눈깔에도 젊은 계집이 보이는 모양이지. 옛날에 누구 덕에 영월동을 가진 걸 다 잊었어? 배은망덕한 더러운 영감태기!”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찬다고 월향은 옥설의 머리채를 휘감아 쥐더니 마구 끄당겼다.     옥설은 두 손으로 머리를 틀어쥔 월향의 손을 잡고 “애고고.” 하며 휘청거렸다.     그 바람에 나체나 다름없는 옥설의 우유 빛 젖가슴이 반쯤 드러나 출렁거렸다.    여기저기서 문이 열리며 색정광이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들은 큰 구경거리나 생긴듯이 한길수와 월향을 손가락질하면서 웃고 떠들어댔다. 월향은 숱한 사람들 앞에서 한길수를 망신시켜주려고 한손으로 옥설의 머리채를 틀어쥔 채 다른 손으로 불시에 한길수의 귀 쌈을 찰싹 갈겼다. 그 바람에 한길수의 중절모자가 월향의 손에 빗맞아 벗겨지면서 잔등으로 굴러 땅바닥에 뚝 떨어져 나뒹굴었다. 순간 한길수의 번들 이마가 훌렁 드러나 전등불빛아래 번들거렸다. 한길수는 번들 이마의 땀을 뚝뚝 손으로 찍으면서 월향을 콱 밀치고 옥설의 머리채를 틀어쥔 손을 풀려고 모진 애를 썼다.     “옳다! 잘한다. 이 년 놈들이 작당을 해서 나를 때리려고? 아이고, 분해라! 나 죽는다! 아이고, 이 개 쌍년아, 죽여치우겠다!”     월향은 원통해 악을 딱딱 쓰면서 고함치고 옥설을 꼬집고 쥐어뜯어댔다. 갑자기 그녀는 옥설의 머리채를 놓고 번들 이마를 찰싹찰싹 갈겼다.     구경꾼들은 복도가 꽉 차고 떠나갈듯이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이때 어느 방에서 나왔는지 한 주정뱅이가 장단까지 메고 나와서 두드리면서 노래를 불러댔다.     “얼씨구 좋다 둥둥. 절씨구 좋다 둥둥. 잘도 싸우라 둥둥. 무기를 대줄게 둥둥. 죽을 내기로 싸워라, 둥둥. 우리 선수 잘 한다 둥둥. 죽여라, 살려라! 둥둥 당당 둥둥 당당!”     갑자기 월향의 방문이 쭈르르 열리더니 코 수염을 기른 사나이가 허연 훈도시 바람에 튀어나왔다. 주정뱅이들과 색정광들이 죽 비켜섰다.    “콘칙쇼(닥쳐)! 난노 고도까(무슨 일이냐)?”    코 등에 붓으로 점을 똑 찍어놓은 듯 코 수염은 아주 위엄스러웠다. 그 뒤로 갱핏하게 생긴 조선인이 뒤따라와 머리를 조아렸다.    뒤이어 그자는 주정뱅이들에게 위엄스런 눈길을 돌리고 우쭐해서 고함쳤다.     “우리 우시장 일본제국 헌병대 대장이시자 총경찰국 끼무라 국장이시다. 너희들이 언감 여기 와서 끼무라 국장의 주흥을 깨뜨리느냐? 어째 대가리가 목에서 떠나고 싶으냐?”     한길수는 제 정신이 펄쩍 들어 코수염을 바라보았다. 보통 키에 똥똥한 땅딸보 끼무라 국장은 옴몸에서 위엄과 힘이 빛발 쳤다.     끼무라는 한길수를 보더니  꽥 고함쳤다.     “빠까새끼 모노라!”     무지한 길수는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저 양반, 뭐라구 하오? 뭐? ‘바가지새끼 못 놀아? 내가 바가지라고? 원, 참.”    그 말에 통역 강철이는 어처구니없어 손으로 입을 싸쥐고 웃었다.    끼무라는 강철과 길수를 번갈아보더니 더구나 언성을 높여 욕지거리를 했다.     “빠까모노(바보)라! 혼야꾸시데(번역해줘)!”     “뭘? 빠개지게 못 논다고?”     끼무라 국장은 다가오더니 한길수의 귀 쌈을 찰싹찰싹 갈겼다. 그가 뭐라고 꽥꽥 고함치자 통역이 이렇게 번역해주었다.     “온 조선이 일본제국의 땅이 됐으니 이 땅 우의 산이고 강물이고 계집이구 몽땅 우리 황군의 것이야! 네가 함부로 놀라는 계집들이 아냐!”     길수는 얼얼해나는 귀 쌈을 손바닥으로 붙들고 그 말을 들으면서 귀뿌리가 웅 하는 것을 느꼈다.     (별 놈 다 있구나. 네놈들이 오지 않았을 때 이 우시장에서 누가 감히 이 어른의 뺨을 쳤니? 우시장의 계집은 몽땅 내 것이었는데 이 오랑캐들에게 수모를 당하다니? 시비도 없는 일본 놈들과 못 놀겠다.)     밸 같았으면 옆에 보이는 걸레대로 오랑캐 개 대가리를 박살나게 때리고 싶었다. 젊었을 때 같으면 그의 소 발굽 같은 주먹이 진작 코 수염의 면상에로 날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영월동을 독차지하려면 이 모든 것을 참아야 했다.     볼을 싸쥔 길수의 이글거리는 눈길을 보고 끼무라 국장은 기생방에 되들어가 군도를 들고 나왔다.    그때 옥설과 만금이가 끼무라의 양팔에 매달리면서 말리였다.     “류 통역 좀 일본말로 말리세요. 영월동 갑자 한길수 어른이시오.”     옥설의 말에 그제야 제 정신이 펄쩍 든 통역 류강철은 끼무라국장의 귀에 대고 뭐라고 쑹얼거렸다.    끼무라 국장은 한길수의 번들이마를 쏘아보다가 자기 팔을 감싸 안은 하얀 두 팔을 내려다보더니 군도를 든 채 지껄였다.    “고노 빠까 또 난노 간께이까(이 바보와 무슨 관계인가)?”      기생 년들이 끼무라가 뭐라고 지껄이는지 알 턱이 있는가? 그저 머리만 끄덕이면서 군도를 앗아내려고 했다.     화날대로 난 끼무라 국장은 두 기생 년을 활 뿌리치고 서리발치는 군도를 들고 한길수에게 덮쳐들어 내리찍었다. 하도 한길수가 옛날 솜씨가 있어 옆으로 몸을 날리면서 날아드는 군도를 피하였으니 말이지 몸이 진작 두 동강이 나고야 말았을 것이다.     한길수는 일본 국장에게 반격을 가할 수도 없는지라 이리저리 날아드는 군도를 좁은 복도에서 피하다가 다리야 날 살리라고 층계 쪽으로 황급히 달아났다.     이때 월향은 그 꼬락서니가 보기 좋다고 손벽을 쳐댔다. 그녀는 진물로 더러워진 팬티를 쭉 벗어 자기 옆으로 달려 지나가는 한길수의 번들 이마에 꾹 씨워 놓았다.     뒤에서 끼무라가 군도를 휘두르면서 달려왔다.    "사람 살려라!"    한길수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번들 이마에 팬티를 뒤집어 쓴 채 아래층으로 달아났다.    그는 황급히 당나귀 차에 달려가 올라 앉으려고 버둥거렸다. 갑자기 일본 헌병 놈들이 달려들어 허리춤을 꽉 잡아챘다. 그 바람에 바지가 쭉 벗겨지면서 한길수의 함지만한 엉덩이가 훌렁 드러났다.     한길수는 인력거에서 허망 눈길에 떨어져 굴면서도 바지춤만은 춰 입었다. 월향의 팬티를 번들 이마에서 벗겨 던지며 일어섰다. 그는 이쪽에 군도를 쥔 끼무라 국장의 뒤를 따라오는 통역에게 고함쳤다.     “이보게, 국장님께 잘 말해주게나. 사실 저분께 드릴게 있어 왔네.”    통역은 재미나서 구경만 하다나니 또 통역할 것마저 다 잊고 멍해 서있었다.     이때 옥설과 뽕녀가 끼무라 국장의 뒤를 쫓아와 양팔을 안고 군도를 휘두르지 못하게 말리면서 살뜰한 몸짓으로 애교를 부렸다.     끼무라 국장은 통역을 되돌아다보면서 꽥 고함쳤다.     "류상(류군), 하야꾸 혼야꾸(빨리 번역해)!”     강철은 한길수란 건달두목을 알고도 남음이 있는지라 길수에게 좋게 마구 날조해 통역했다.     “저 영월동 한길수령감은 대일본제국 끼무라 국장에게 선물과 함께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이 계집들은 마음속에 끼무라 국장 밖에 없다면서 오늘 밤에 둘이 다 국장님을 잘 모시겠다고 합니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던지 끼무라는 군도를 든 채 두 계집을 차고 월향의 칸으로 되들어갔다.     옥설은 끼무라를 끼고 기생집 문턱을 넘어서면서 당나귀 차에 올라탄 한길수에게 눈을 찔끔 감아보였다. 월향은 길수를 허비고 뜯고 싶었다. 그년은 끼무라가 옥설을 안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끼무라에게 원망에 찬 눈길을 보냈다.    주정뱅이는 모든 일이 끝났는데도 또  뜨르륵 딱딱 둥둥 장단을 치면서 흥타령인지 넉두린지 지지벌거렸다.    “얼씨구 좋다. 둥둥. 절씨구 좋다! 둥둥. 잘도 싸워. 둥둥. 무기를 대줄게, 둥둥. 죽을내기로 싸워라. 둥둥. 우리 선수 잘 한다 둥둥. 죽여라 살려라 둥둥!”                2. 먹은 소 똥을 눠      한길수는 고양이에게 쫓긴 쥐처럼 당나귀 차에 앉아 꼬리 빳빳해 도망갔다. 그는 맥없이 고개를 숙이고 왼손으로 이마를 짚고 착잡한 생각에 잠기었다.      (젠장, 우시장에서 한다하는 한길수가 이게 무슨 꼴이람? 머리에 털이 돋아나서부터 언제 오늘처럼 이렇게 개꼴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는가? 참, 일본 사람들과 놀기 힘든데. 이럴줄 알았더라면 영팔과 응삼을 데리고 왔겠는 걸. 그래두 병완을 꺾자면 참아야는가? 흥! 더러워서, 원? 어떻게 해야 끼무라 국장과 친해질 수 있을까?)      득호는 해도 중천에 걸렸는지라 주인에게 묻지도 않고 당나귀차를 몰고 영월동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섰다.     “에끼, 이 등신 같은 물건짝아, 일본 사람들과 친하기는커녕 개꼴망신을 당하구  어떻게 머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느냐?”     한길수가 꽥꽥거리자 당나귀차는 시내 쪽으로 되달렸다.     한길수는 한 주막집에서 내린 후 득호를 보고 영월동에 가서 응삼과 영팔, 수길을 데려오라고 했다.    득호가 황급히 당나귀차를 몰고 떠나려고 할 때다.    한길수가 불러세웠다.     “잠간! 응삼을 보고 금덩이도 푸짐히 가지고 빨리 오라구 해라!"     그는 호주머니를 쳐들어보였다.     "요걸루 될 거 같잖다."     “예. 주인어른!”    득호는 당나귀 잔등에 채찍을 안기면서 영월동으로 부랴부랴 떠나갔다.    한길수는 주막집에 들어가 조용한 쪽으로 가서 빈 상에 마주앉았다.    그는 주인 보고 개고기를 한 사발 달라고 해 막걸리를 게걸스레 쭉쭉 들이켰다.    한참 막걸리로 답답한 마음을 지지니 그제야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는 상 싶었다. 그는 막걸리를 마시면서 어떻게 하면 일본 사람들과 다리를 놓겠는가고 머리 속에서 궁리가 뱅뱅 맴돌았다.    얼마나 시간이 갔을까. 해가 거의 중천에 걸렸다. 한길수가 답답한 막걸리를 쭉쭉 들이켜고 있을 때다.     바깥으로부터 응삼과 영팔, 수길이 달려 들어왔다.    응삼이 실 돌피 같은 허리를 꿉썩 굽혔다.    “주인어른님, 오래 기다리지 않았습둥?”    “그래, 자, 앉아라. 너희들도 막걸리 들어라.”    한길수는 주인답게 막걸리를 권했다.     막걸리를 한 순배 돌린 후 한길수는 통탄했다.     “야- 이전에 이 우시장에 오면 누가 감히 나와 말대구나 했겠느냐? 그런데 지금 바깥세상은 영 딴 판이구나. 철주 말처럼 우시장도 영 일본 사람들의 세상이 돼버렸구나.”      그는 뒤이어 울분을 이기지 못해 주먹으로 술상을 탕탕 치면서 근심했다.     "이후에 일본 사람들이 내 밭과 삼림을 내놓으라면 어쩌지?"       응삼은 양미간을 찌푸리고 뱁새눈이 실눈이 돼 쑹얼거렸다.      "일본 놈들도 푹 삶아논 개다리 잘 삶아놓으면 근심할게 없습구마. 차마 웃는 낯에 침을 뱉겠습둥? 해해해."     그는 주인에게 막걸리를 따라 올렸다.      “주인어른, 먼저 통역이나 만나 끼무라 국장과 만나게 다리를 놔달라고 해봅시다."      한길수는 응삼한테 손삿대질하면서 명했다.     "당장 일본 놈들 초소에 가보게나."      "옛!"     응삼은 영팔과 함께 일본 헌병이이 지키는 초소 앞에서 경찰국 2층 양옥 쪽을 들여다보면서 군관 같은 놈이나 통역 같으루 한 놈을 눈뿌리 빠지게 기다렸다. 그러나 종시 그런 놈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국장과 강철이 혹시 아짇고 기생집에 있을 수도 있어.)     응삼은 영팔을 데리고 기생집 쪽으로 가 기웃거렸다.     “뭘 해? 가라, 가!”     일본 헌병이 총박죽으로 응삼과 영팔을 떠밀면서 꽥꽥거렸다.     이때 기생집에서 군도를 찬 콧수염쟁이놈과 통역 같으루 한 조선인이 기생 년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혀 꼬부라진 소리로 뭐라고 떠들면서 나왔다.     그런데 그 조선인은 눈에 퍽 익어보였다.     (아니, 저게 서당방 친구 류강철이 아닌가? 살았구나. 살았어. 하느님이 류강철이를 보내주는구나.)     응삼은 끼무라 국장에게 허리를 90도로 꿉썩해보이고 나서 강철을 보고 소리쳤다.     “이보게, 강철이!”    그런데 강철은 응삼을 몰라보았다. 그는 날카로운 눈길로 응삼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물었다.     “누구던가?”     “응삼이, 응삼이네. 우리 운주동에서 최구장의 서당 방에서 천자문을 배우지 않았는가?”     그제야 강철은 아는 척 했다.      “아, 이제야 알기는구먼. 여긴 무슨 일로 찾아왔소?”     응삼은 동문서답했다.     “일본에 유학 갔다더니 높이 솟았구먼."     강철은 안경알을 춰올리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경찰국장의 통역을 해 밥벌이나 하네."    "때마침 잘 됐네."    응삼은 강철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말했다.    "좀 시간을 내오. 긴히 여쭐 말이 있네.”    옆에 서 있던 끼무라 국장은 버릇처럼 깍지를 건 엄지와 식지로 콧수염을 쓸쓸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다레까?(누군가?)”    강철은 일어로 “내 소굽시절의 친구지요.”라고 대답했다.    뒤이어 그는 “점심에 다른 일이 없으면 이 친구하고 만나게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청을 들었다.    “요로씨(좋아.)”    찌프차 한대가 달려와 앞에 멈춰 서자 끼무라 국장은 호위병과 함께 척 앉아 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사라졌다.    강철은 응삼이 이끄는 대로 한길수가 기다리는 술집으로 갔다.     그는 술집에 들어갔다가 한 시간 전에 난동을 피우던 건달의 번들이마를 보고 뒤지참하더니 되나가려고 했다.    “어이, 통역선생. 섭섭히 대하지 않겠으니 가지 마오.”     강철은 문 밖에 나가 뒤따라 나온 응삼에게 물었다.     "저건 씨름판에서랑 생떼질 쓰던 그 건달 아니야?”     응삼은 홱 뒤돌아다보더니 입가에 식지를 댔다.     “쉬- 말조심하게나. 저 양반 이 우시장을 쥐락펴락 하는 대장부야. 내 주인어른이야.”     그제야 강철은 주춤 멈춰섰다.     “그래. 무슨 일이냐?.”     응삼은 뱁새눈으로 술집 주위를 흘끔흘끔 둘러보았다. 뒤이어 호주머니에서 잔등에서 둘러멘 주머니를 끄르더니 금빛이 번쩍번쩍 하는 금덩이 하나 꺼내 스리슬쩍 강철의 손에 쥐어 주었다.     “부탁이네. 우리 저 주인어른을 경찰국장에게 연줄을 달아주게나. 우리 주인어른은 자네 은공을 잊지 않을게요.”     “그 일?”    강철은 서너 냥은 될 금덩이를 놓칠 수 없었다.     (밑져 본전이니까. 한번 나서 보자.)     그는 대번에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금덩이를 호주머니에 슬쩍 주어 넣더니 응삼의 어깨를 툭툭 쳤다.     “동기친구를 봐서라도 한 영감을 한번 도와주지. ”     “고맙네. 우리 어른께 여쭈어서 자넬 꼭 후한 대접을 하게 하겠네.”    그런데 강철이가 상을 찡그리면서 이런 말을 할 줄이야.     “네 주인이 주색에 너무 빠졌더라. 오늘도 대취해 개꼴망신했다. 대일본제국을 위해 일하려면  주색에 너무 빠져선 안 돼. 아까도 끼무라 국장앞에서 그게 뭐야? 쯧쯧."     응삼은 강철한테 바짝 다가섰다.     "꼭 잘 말해주게나. 사내가 어찌 한두번이야 주색에 빠지지 않겠는가? 꼭 잘 말해주게나. 부탁이네."     강철은 짐짓 제빠드해보였다.     "내 말은 해보겠네만은 끼무라 국장님이 한 영감을 받아주겠는지 잘 모르겠어.”    응삼은 강철이 금덩이를 더 받아 먹으려고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불 보듯  꿰뚫어보아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모르는 척 하면서 바싹 달라붙었다.    “이보, 들어가 우리 주인을 보기오. 우리 주인은 인심이 후한 분이야."   강철은 마지못해 응삼에게 끌려들어가듯 술집으로 되들어갔다.    한길수는 우멍눈을 활짝 뜨며 반색하였다. 그는 손으로 버릇처럼 번들이마를 쓱쓱 쓰다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권했다.    “면목 있는 분이구먼. 아까 추태를 보여서 미안하오.”    한길수는 기생집에서 추태를 보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천만에 말씀. 피차일반입구마.”    류강철이 발라 맞추는데 한길수는 응삼에게 눈짓했다.    응삼이 금덩이가 들어찬 주머니를 어깨에서 끈을 끌러 내려놓았다.    한길수는 가래짝 같은 손을 주머니에 쑥 넣더니 단번에 금덩이 두개나 꺼내 류강철의 앞에 척 내놓았다.    “자, 받게나."    강철은 황금덩이를 보고 반색하면서도 사양하는 척 했다.   한길수는 우멍눈으로 강철을 엄엄하게 바라보며 입을 뗐다.   "무거운 부탁을 합세. 나는 대일본제국을 위해 일하고 싶은데. 으흠, 경찰국장님에게 알선해주게나. 이후에 내가 허리를 펴게 되면  자네를 잊지 않을게.”    류강철은 금덩이를 스리슬쩍 받아쥐고 허리를 꿉썩거렸다.     “우시장에서 한 어른의 성선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 압니다. 저는 한 어른을 위해 할 일이 있는 것만도 아주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이 금덩이 없어도 제가 어련히 알아서 해주지 않으리라고 이럽니까?”      한길수는 금덩이를 손수 쥐여 영팔이 손에 쥔 주머니에 넣어 강철에게 건네주었다.      “자, 이거 무거운 부탁을 하기오. 이후에 사노라면 이거겠겠소? 허허허.”     그제야 류강철은 별 수 없다는 듯이 묵직한 금주머니를 받아 챙기었다.     “근심하지 말고 기다립시오. 오늘 오후에 꼭 한 어른을 만나도록 끼무라 국장에게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길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례하면서 술집 바깥까지 바래다주었다.     한길수는 류강철에게 부탁했다.     “좋기는 경찰국청사에서 국장님을 만났으면 좋겠소.”     류강철은 “그게 좋겠습니다. 기별을 기다리십쇼.”라고 한마디 말하고는 자리를 급급히 떴다.     응삼은 밖에 나가 득호를 보고 당나귀 차에 류강철을 모셔다주라고 분부했다.     류강철은 당나귀차에 앉아 떠나가면서 어깨가 으쓱해났다.      (어떤 금덩이야? 이런 거간이야 말로 백번이라도 설 수 있지. 한길수 영감에게 면목을 내고 금덩이도 챙기니 . 헛참, 이거야 말로 꿩 잡고 알도 먹고 둥치를 털어 불을 때는 격이 아니겠는가. 흐흐흐.)      그는 당나귀차를 타고 부랴부랴 집에 가서 금덩이 세 덩이를 아내에게 맡기였다. 그는 점심도 먹지 못하고  당나귀차를 타고 단숨에 우시장경찰국으로 달려갔다.     우시장에서 2층 양옥집은 일본 경찰국 청사 밖에 없었다. 경찰국을 둘러싼 벌건 토성 네 귀의 초소에는 총칼을 비껴든 일본 헌병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자못 경계가 삼엄했다.      강철이 통행증을 내보이자 대문보초병은 들여보냈다. 그는 곧추 끼무라 사무실 앞 복도 걸상에 앉아서 경호원과 함께 이 말 저 말 하면서 끼무라 국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참 후 끼무라 국장은 경호원과 함께 뚜벅뚜벅 2층 복도로 올라왔다. 류강철은 기립하여 서 있다가 끼무라 국장이 다가오자 허리를 구십 도로 꿉썩 굽히며 인사했다.     끼무라 국장은 사무실에 들어가 틀스럽게 군도를 벗어 검 틀에 걸어놓고 의자에 앉았다.     강철은 인차 끼무라 국장의 옆에 다가가 무거운 입을 떼였다.     “국장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이전과는 달리 너무나도 굳어진 류강철의 표정을 보고 “무슨 중대사가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왼쪽앞자리를 권했다.     류강철은 아주 그럴듯하게 말했다.     “이 우시장을 다스리자면 순수한 일본헌병들로만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일본제국을 도와 일할 당지 조선인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끼무라는 류강철의 말에 동감을 표시했다.     “소우데스네(그렇습니다). 나도 그 일 때문에 요즘 류 군과 말하려던 참이요. 좋기는 우시장에서 아니, 온 명천에서 영향력이 있는 자들이면 더욱 좋소. 그런 자들을 우리 옆에 사냥개처럼 길러두면 우리 안보에 좋지.”     끼무라가 의기투합해 하자 류강철은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국장님, 그 적임자가 나졌습니다.”    끼무라는 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어떤 사람이요?”라고 물었다.     “그 어른은 이전부터 이 우시장이고 온 명천까지 쥐고 흔들던 깡패두목입니다.”     류강철의 말에 흥미가 갔던지 끼무라는 벌떡 일어났다.    “빨리 그 자를 내앞에 불러오오. 바로 그거네. 나는 우시장의 한다하는 깡패, 건달들을 묶어세워 우리 대일본제국의 충실한 제2의 헌병대나 다름없는 조선인경찰대를 묶어세우겠네. 지방관리도 몽땅 우리에게 충성하는 자들로 시킬 예산이네. 그게 누군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가?”     그런데 류강철은 그 다음 말을 인차 하지 않고 차물을 마셨다. 그러자 끼무라 국장은 아주 조급해 류강철의 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류강철은 차잔을 놓으면서 천천히 입을 떼였다.     “끼무라 국장님은 그분을 진작 오늘 오전부터 알고 있습니다.”     끼무라는 안경알 안으로 사기 눈을 희번뜩거리더니 책상을 탕 쳤다.    “혹시. 오전에 옥방에서 기생 년을 셋이나 데리구 놀던 그자 말인가?”    류강철은 우쭐 일어나서 끼무라 국장의 옆으로 다가갔다.    “맞습니다. 이전에 이 우시장에서 그분의 이름만 들어도 어린애들도 울음을 다 그칠 정도였습니다. 지금 영월동에 숨어서 살지만 그분의 수하에는 이 우시장이고 명천에고 숱한 주먹치기친구들이 있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의자에 되 주저 앉으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그자는 내 검도를 대여섯 번이나 피했소. 사람이 주먹치기군은 틀림없소. 아주 날랜 사람이지.”     그 말에 강철은 일이 돼 단다고 속으로 쾌자를 불렀다.     그런데 끼무라의 그 다음 말은 아주 실망스러웠다.     “류군은 사람을 잘못 보았네. 그렇게 아침부터 주색에 빠진 자가 어떻게 우리 대일본제국 경찰국장의 한 팔이 되겠는가?”   (쳇, 자기는?)    먹은 소 똥을 싼다고 강철은 거기에서 물러설 인간이 아니었다.    “주색에 빠진다고 다 국장님의 한 팔이 되지 못한다는 법이야 없잖습니까? 문제는 일본제국을 위해 일을 하려는가 하지 않으려는가 하는 마음이, 아니, 충성심이 관건이라고 봅니다. 그는 능력도 있고 주먹도 세고 친구나 부하가 많습니다. 장차 국장님을 위해 큰일을 할 사람이니 한번 기회를 주어 보십시오. 낭패는 없을 겁니다. 또 장차 목숨을 걸고 사람 잡이를 해야 할 사람들이 한가할 때에는 주색에 조금 빠진들 무슨 큰 일입니까?”     끼무라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손가락으로 사무 상을 똑똑 치면서 한참 궁리를 굴리었다.     드디어 그는 버릇처럼 코 수염을 쓸면서 자기 충실한 통역 류강철을 유심히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  먼저 만나봅세.”    “하잇(옛)! 와까리마시다(알았습니다)! 지금 당장 불러오겠습니다.”     류강철은 차렷 자세로 군례를 올린 후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는 사무 청사 마당에 나가 일본 헌병이 모는 삼륜오토바이에 앉아 인차 약속한 술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헐레벌떡거리면서 술집에 뛰어 들어가자마자 한길수에게 구십도 경례를 올렸다.     “한 어르신님, 끼무라 국장께서 지금 당장 한 어른을 만나겠답니다.”    한길수는 번들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응삼에게 눈짓했다.    응삼이 제꺽 눈치채고 또 금덩이 하나를 꺼내 류강철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강철이는 감히 받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러지 맙소. 내가 어디 금덩이를 받자고 나섰습니까? 한 어른은 우리 이 우시장의 영웅호걸인데요. 금더이를 보고 나선게 아닙니다.”     한길수는 더는 굳이 주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강철이가 아주 역은 놈이라고 생각했다.    (네놈이 언감 금덩이에 눈이 어두워 너무 욕심을 쓰면 이담 가만놔들 거 같애? 흥, 이 어른이 장차 칼자루를 쥐면 네놈에게 준 금덩이의 두 배도 더 받아낼지 모르니까.)    “으흠, 가보세.”    한길수는 일어나 떠나려다가 되앉으면서 머뭇거렸다.    “그런데 오전에 일을 쳐놓아서 망신스러워 어떻게 국장님을 만나겠소. 인상이 영 좋지 않겠는데 가서 되겠소?”    류강철은 허리를 굽히면서 여쭈었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국장님께 오전의 오해를 풀리게 잘 해석해드렸으니까 끼무라 국장은 양해하였습구마.”    “그래? 으흐흐. 참 수고 많았네.”    한길수는 용기를 얻고 강철을 따라 술집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 오토바이가 있었지만 한길수는 앉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자기 당나귀 차에 오르려고 했다.     강철은 바삐 말리면서 한길수가를 자기 오토바이 쪽으로 부축해갔다.      한길수는 응삼을 보고 금덩이보자기를 달라고 하여 어깨에 둘러멨다.    “자네들은 저 술집에서 술이나 마시면서 기다리게나.”     분부를 마치자 강철한테 손을 홱 휘둘렀다.     응삼과 영팔, 수길은 오토바이를 타고 쏜살같이 멀어져가는 한길수 잔등에 대고 구십도 경례를 했다.                                                  3. 총도감의 꿈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한길수와 류강철이 끼무라 국장의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다.  뜻밖에도 월향이 콤파스처럼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표독한 눈길로 쏘아보지 않겠는가.      한길수는 월향한테 손삿대질하면서 이빨을 악물고 당장 잡아 먹을 상 했다.      “이년, 팬티를 다  내 머리에 씌워?"      월선은 눈에 쌍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더러운 두상, 날 버리고 젊은 년들과 놀아? 오늘 내 죽고 네 죽고 해보자!”     월향은 이를 악물고 걸레대를 마구 휘둘렀다.            “콘칙쇼(닥쳐)!"      끼무라는  한길수 부처간이 고양이와 쥐처럼 싸우는 꼴을 보다 못해 꽥 고함쳤다.      경호원들이 우르르 뛰어들어왔다.      월향은 한길수를 손가락질하며 대성통곡쳤다.      "끼무라 국장님, 저 놈을 박살냅소, 저놈, 오전에 광기를 부리던 저 놈을 잊었습네까?"       끼무라는 엉거주춤 일어서 월향을 손삿대질했다.     "경호원, 저 년을 끌어 내가!”     승냥이가 병아리를 채가듯 경호원들이 월향의 팔을 잡아끌고 나갔다.     그제야 한길수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가 둘러보니 100 평방미터는 실히 될 사무실은 일본 냄새가 물씬 풍겼다. 끼무라 국장이 앉은 정면에는 고약딱지 일본국기와 “무훈영구”라는 글자를 새긴 무사도 기발이 걸려있었고 사무실 양옆 벽 밑에는 사꾸라 꽃이 만발한 그림으로 단장한 병풍이 둘러서 있었다. 그 앞에 좌우로 참대의자가 죽 두 줄로 놓여 있었다.     사무실이 조용해지자 끼무라 국장은 군도를 왼손으로 잡고 거만하게 다가와 한길수의 손을 꽉 잡으면서 아래위를 다시 유심히 살펴보았다.    “한군, 당신의 성선은 잘 알았소이다. 한군, 우린 영원한 친구로 될 수 있네.”    이제껏 우시장에서 누구에게 허리를 한번 굽혀보지 않은 한길수였다. 하건만 일본 사람의 세상이 되고만 우시장 땅에서 이젠 끼무라 국장한테 처음 허리를 굽혔다.     “끼 국장님, 저는 강철통역을 통해 어르신님의 천하에 빛나는 슬기와 뛰어난 무공을 널리 알았습구마. 오늘 또 드넓은 흉금으로 오전에 있은 오해를 일소해버리고 포옹해주니 정말로 자식을 안아주는 친부모처럼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류통역의 통역을 듣고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왼손으로는 한길수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마치 사냥군이 사냥개 대가리를 다독이듯이.     "허허. 별말을. 녀색을 밝히는덴 자네나 나나 피차일반이지. 주색잡기엔 자넨 내 버금은 가겠어."     끼무라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사냥개 앞에서 체모를 잃는 것 같았다.     끼무라 국장이 제자리에 가서 앉아 이렇게 달리 말했다.     "사내대장부란 드문드문 유흥을 즐길 수도 있네. 그러나 한도를 넘어선 안돼."    "네, 네. 그렇습죠."     한길수는 허리를 꿉썩거리며 어깨에서 금덩이 주머니를 끌러서 끼무라의 사무상 위에 올려놓았다.     “끼 국장님, 이건 국장님을 처음 만난 인사입니다. 적은대로 받아주시고 저를 믿어주십시오.”     끼무라는 사무 상에 부딪쳐 묵직한 소리가 나는 주머니를 내려다보면서 눈이 둥그래졌다.     한길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황금빛이 반짝이는 금덩이들을 꺼내 사무상 우에 죽 내놓았다. 황금 쉰 냥은 족히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끼무라 국장의 표정이 대번에 바위돌처럼 굳어졌다.     “이이에(아니),  간상(한군), 난 황금덩이보다 당신의 충성심을 요구하네. 그게 황금보다 더 귀중하네. 알았소이까?"      류 통역이 통역해주자 한길수는 잔등에 식은땀을 쪽 흘리면서 오리무중에 빠졌다. 속으로는 황금덩이보다 더 좋은 것이 뭐가 있어서 이러나고 원망했다.     “끼 국장님, 이 황금덩이는 저의 충성심입니다. 이 금덩이는 내 어떻게 마련한게라구 이럽둥?”     무지한 한길수는 끼무라 국장이라고 하니 성이 끼고 이름이 무라인가고 끼 국장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융통성이 있는 류 통역이 끼무라 국장이라고 다 붙여 통역해주었기에 오해는 사지 않게 됐다.     끼무라 국장은 안경알 너머 한길수를 쏘아보면서 총알을 내뱉듯이 한 마디 한 마디 내쏘았다.     “난 황금보다도 한상이 대일본제국 위해 목숨 바칠 충성심을 더 요구하네.”     류 통역이 통역해주자 한길수는 끼무라 국장의 사무 상 앞에 털썩 꿇어앉아 맹세하듯이 말했다.     “끼 국장님, 저는 목숨을 다 바쳐 대일본젝국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저는 끼 국장님의 한 팔이 돼 이 우시장일대를 대일본제국 끼 국장님의 새 세상으로 만들어 드리겠습구마.”     끼무라는 안경알 밑으로 간사한 웃음을 지으면서 지껄였다.     “요로씨이(좋아), 바로 그거네.”     끼무라 국장은 의자에서 일어나 한길수의 앞에 뚜벅뚜벅 다가왔다. 그는 두 팔로 한길수를 끌어안아 일으키면서 자리를 권하고 그 옆에 나란히 앉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길수는 손수건으로 번들이마에 돋아난 땀방울을 닦으면서 오전에 있은 일을 구구히 설명했다.      끼무라 국장은 말을 질질 늘여놓는 걸 딱 질색했다.      끼무라는 한길수의 잔등을 툭툭 다독여주면서 뇌까렸다.      “괜찮네. 중국 속담에 ‘싸우지 않으면 사귈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우린 첫 만남이 참 우스웠지만 대일본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있는 한 친근한 벗으로 될 수 있네.”     “고맙습니다.”     끼무라 국장이 박수를 툭툭 쳤다.     일본 시녀들이 우르르 나오더니 푸짐한 술상을 차렸다.     “간상이나 내나 다 술을 좋아하지 않소. 자, 한잔 들면서 이야기하기요.”     그들이 댕그랑 술잔을 마주칠 때다.     병풍 뒤에서 화복차림을 한 일본 기생들이 악기랑 들고 게다짝을 짝짝 끌고 사뿐사뿐 걸어 나와 곱게 인사를 드렸다.     끼무라 국장은 한편으로 조선 사람들과 싸우면서도 항상 경찰 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일본 기생집 사꾸라관의 기생들을 데리고 놀았다. 오늘도 우시장에서 처음으로 친일 하려는 조선 사람을 접대하려고 일본 기생년들을 경찰국에까지 불러 왔던 것이다.     일본 전통민요 “사꾸라” 곡이 은은히 울렸다. 일본 기생 년들이 돌아가면서 사꾸라 춤을 곱게 추었다.     피리소리에 맞춰 병풍 뒤에서 게다소리가 딱딱 나고 가늘고 하얀 손들이 병풍우로 올라왔다 내려갔다 한다. 뒤이어 반 라체를 한 일본 기생 년들이 병풍 뒤에서 흘러나와 춤판을 벌렸다.     일본 기생 년들이 추는 춤판을 한참 멍하니 쳐다보는 한길수는 선경에 들어선 것만 같아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한참 후 끼무라는 술상과 기생 년들을 물리고 사무 상에 되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만난 첫날부터 일을 좀 시켜야 하겠소. 지금 이 사무실이 너무 비좁아서 멋있게 3층집으로 지어야 하겠네. 간상이 총도감을 맡게나.  지금부터 목수를 구해 박달령의 적송을 많이 베서 실어 와야 하겠소. 장차 우리 대일본 제국에서 백두산의 적송을 실어가려면 갑산으로 가는 길도 잘 닦아야 되겠네.”      끼무라 국장은 작은 일부터 시켜보고 능력을 보아서 한길수를 써주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 눈치를 챈 한길수는 대뜸 “제가 도맡아서 새 경찰국청사를 짓겠습니다. 목수랑 목재랑 인부랑 근심하지 마십쇼.”라고 선선히 대답했다.      끼무라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술잔을 들어 한길수에게 주었다.     “자, 간상(한군), 간상이 경찰국 청사를 명년에 멋있게 지을 것을 미리 축하하여 한잔 듭세.”     끼무라와 한길수는 술잔을 부딪치고 나서 죽 들이켰다.     “간상, 우리 일본대제국을 위해 일하려면 우리 일본의 선진문명을 받아들여야 하겠네.”     끼무라 국장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한길수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연신 “예, 예.” 하고 대답했다.     끼무라 국장은 강철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강철은 병풍 뒤로 가더니 이발사를 데리고 왔다.      강철은 한길수가를 보고 “끼무라 국장은 어른님을 관심하여 머리를 깎아드리라고 하였습니다.”라고 공손히 말했다. 그제야 제 정신이 든 한길수는 자기 외채머리를 만지면서 끼무라 국장의 희죽이 웃는 낯을 바라보았다.      “부모가 준 머리털이 아까운데..."     "고린내 나는 머리카락마저 아까워?”     끼마라 국장의 위엄에 찬 말을 강철이가 통역해 듣고 별수 없었다. 한길수는 끼무라 국장이 지켜보는데서 둬 자 길이나 되는 머리채를 썩뚝 베 버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한칼, 한칼 발치에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한길수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끼무라는 거울을 손수 들어다 한길수에게 비춰 보이면서 지껄였다.      “보라니깐. 간상, 하이칼라 번대머리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허허. 얼마나 신사다운가? 이제야 진짜 우리 대일본제국의 총도감 같네그려. 흐흐흐.”     끼무라는 손벽을 딱딱 쳤다. 시녀들이 술 두 잔을 쟁반에 들고 다가왔다.     끼무라는 한길수와 잔을 마주치고 굽을 죽 내였다.     한길수는 울분과 함께 그 술을 목구멍에 부어넣었다.     끼무라는 술잔을 놓으면서 명했다.     “한 군, 내일부터 목수와 인부를 징집해 경찰국 청사를 짓게네.”    강철이 옆에서 일일이 번역해주자 한길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 아니, 당장 동삼이 닥쳐오는데 어떻게 집짓기를 합네까?"    "뭐라고? 초겨울이 돼 괜찮아."    그래도 한길수는 어정쩡해 서서 끼무라 정신 있는가 쳐다보았다. 강철이 옆에서 허벅다리를 툭툭 치며 눈짓했다.     그제야 한길수는 마지못해 연신 번들이마를 조아리었다.     “알았습구마. 명령대로 하겠습구마.”     끼무라 국장은 새로 얻은 개 한 마리를 귀여워하듯 한길수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그의 손을 굳게 잡아 흔들었다.     한길수는 어깨 축 처져 경찰국 대문 어귀에서 진작 기다리던 당나귀 차에 올라탔다.     가을해도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하늘의 구름장들에도 불이 달린 듯이 뻘겋게 불타고 있었다.      길수는 당나귀차에 앉아 건들건들 몸을 흔들며 시내거리를 달렸다. 이때 술집 부근에 이르자 큰길 옆에서 진작부터 기다리던 응삼 등이 마중했다.      “일이 어떻게 되였습둥? 아니, 머리채는 어쨌습둥?”     응삼이 긴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묻자 한길수는 언짢은 기분을 감추면서 큰소리부터 쳤다.     “끼무라 국장은 대일본제국의 사람이 되려면 머리채부터 바치라고 해서 바쳤네. 끼 국장은 네 눈깔로 그래도 이 한길수가를 알아보더구나. 날 총도감으로 임명했어.”     “예? 아, 예. 감축드립구마.”     응삼과 영팔, 수길은 모두  숱한 금덩이를 내밀고 고작해야  고까지 총도감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상우남면 파출소 소장도 아니고.      한길수는 제 좋은 꿈을 꾸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총도감을 잘하면 이제 경찰서장을 시키겠는지 누가 아느냐?)      그는 버릇처럼 득호 잔등을 구두발로 툭 찼다.      "어서 가자, 해 넘어가는구나.”     “이라! 쨔!”     득호는 당나귀 엉덩이를 채찍으로 연신 갈겼다.     "주인님, 빨리 가겠으면 날 차지 말고 당나귀를 찹소."    허길수는 단통 우멍눈을 부라리면서 욕했다.     "웬 대꾸질이냐? 널 차면 어째? 당나귀를 차면 말을 알아듣니?"     당나귀는 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차를 끌고 네 굽을 안고 달렸다. 그 뒤로 응삼과 수길, 영팔이 말을 타고 전후좌우로 옹위하고 달렸다.     한길수는 가을바람을 한껏 들이켜니 가슴이 후련하고 뿌듯해났다. 그는 말 이발을 입술 새로 드러내면서 음흉한 낯에 별의별 엉뚱한 궁리를 다 하고 있었다.     (흥, 이제 일본 경찰국장을 등에 업었으니 영월동이겠는가? 아니야, 온 명천일대를 독점해 버릴 테야. 병완이, 네 놈이 나한테 허리를 굽히지 않고 어디 배겨내는가 보자.)      병완을 떠올리자 으쓱해졌던 어깨가 축 처지는 감이 들었다. 이전에 병완을 얼리고 닥쳐보았지만 후려채지 못한 것이 속에 걸리었다.      그러나 끼무라 국장을 떠올리는 순간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끼무라 국장을 등에 업은 이상 병완 같은 시골 놈이 언감 나와 어쩐단 말인가? 은녀랑 되빼앗아와야지. 흥!)      그는 눈을 떡 감았다.      순간 그의 눈앞에는 이런 흐뭇한 장면이 떠올랐다. 자기가 권총과 군도를 척 차고 일본군모를 삐딱하게 눌러쓰고 가죽장화를 척 신고 병완이랑 호령한다. 은녀랑 월향이랑 옥설이랑 숱한 미녀들이 전후좌우로 자기를 옹위하면서 애교를 부린다.     한참 후 우멍 눈을 스르르 떠보니 당나귀 차는 어느덧 운주동강이 감돌아 흐르는 치마봉 기슭을 달리고 있었다. 아래쪽에서는 개울물이 은빛달빛과 구름을 싣고 쏜살 같이 흐르고 있었다.      길수는 술기운이 뻗치는데다가 가을바람을 맞으니 열기를 띤 얼굴이 선선해나고 배가 울렁거렸다. 이제 바야흐로 군도와 권총을 차고 경찰두목질을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뿌듯해나고 별스레 울렁거리었다.      “오─”      “예?”     득호는 주인이 무슨 분부가 있는가 하여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니,  아무 일도 아니야. 빨리 몰게나.”      “예. 짜! 짜!”    당나귀는 채찍을 맞고 대가리를 양쪽으로 떨어대더니 네 굽을 안고 딸까닥 딱까닥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달리는 당나귀 차의 바퀴처럼 길수의 사유도 다급해졌다. 술기운이 도도해지자 혈액순환도 생각도 빨리 굴렀다.    순간 월향에게 오전에 개꼴망신을 당하던 일이며 그 젊고 예쁜 기생 옥설을 가지고 놀지도 못하고 끼무라가 휘두르는 군도를 피해 달아나던 일이며를 생각하니 세상이 더럽게 변했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월향이 원망스러웠다. 이전에 자기가 10여년 다닐 때 언제 한번 자기에게 소홀히 대하였던가. 그런데 지금은 일본 끼무라 경찰국장에게 찰싹 달라붙어 자기를 개 닭 보듯 한단 말이다. 그뿐인가! 끼무라 국장을 등에 업고 나를 업신여겨도 분수가 있지. 숱한 사람들 앞에서 자기 번들 이마를 치고 더러운 속옷을 벗어 내 머리 꼭뒤에 씌우기까지 하다니?     (참 야속해!)    (월향이, 마흔 고개를 쳐다보는 네년이 없으면 데리고 놀 계집이 없을 것 같냐? 얼마든지 있지, 있어. 옥설이, 만금이, 뽕녀. 어허이구, 보름달 같은 그년들이면 네년보다 훨씬 낫고 실컷 놀 수 있다. 퉤!)     해가 뜨자 달이 지듯이 옥설이랑 길수의 눈앞에 나타나자 월향은 매력을 잃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월향에게도 끼무라 국장이 나타나자 건달부자 길수가가 마음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월향은 그날 오후에 끼무라 국장의 사무실에 가서 자기 기생방에 와서 옥설이랑을 끼고 애를 먹이는 한길수를 없애치워 달라고 고발하러 갔던 것이다. 그러나 끼무라 국장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 쫓기어 났던 것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한길수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당나귀 차 우에서 자기 좋은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월향의 기생방에 있는 옥설이랑, 뽕녀랑, 만금이랑 예쁜 기생들을 몽땅 데리고 놀겠는가고 궁리했다.     (아니, 이 세상의 미녀들이란 미녀는 몽땅 데리고 놀고 싶다. 아이고, 세상의 미인들아, 어째 내 애간장을 이다지도 애태우게 하느냐?)     그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오전에 옥설과 뽕녀, 만금을 만나 술을 몇 잔 마셨지만 월향과 10년 동안 논 것보다 기분이 훨씬 좋았다. 그런데 월향을 외면하고 그 애들과 논다는 것은 암 펌의 입안에서 토끼를 빼내는 격이기도 했다. 황차 월향은 일본 경찰국 국장 사무실에도 드나드는 수기생이 아닌가?     (어떻게 한다?)    저 멀리 어슴푸레 마을이 다가온다. 그는 집에 있을 때에는 마을의 고운 계집애들을 데리고 놀고 고을에 가면 옥설과 만금이, 뽕녀와 놀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월향과 함께 기생집에 있던 월선이도 한때는 아주 예뻤다. 그래서 기생집출입을 밥을 먹듯이 하던 길수는 기생집만 가면 월선이 아니면 월향에게 달라붙어 술을 처먹고 녀색을 즐기었다. 월선에게 빠져버려서 그는 어떤 때에는 영월동에서 내려오면 한 보름동안 아예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본댁이 철주를 싸 업고 우시장에 내려와 기생집에 와서 길수를 불러 가기도 한 적이 있었다.     길수는 본댁이 미워서 기생집 주인에게 황금덩이를 쥐어주고 월선을 떼 내 영월동에 데려다 첩으로 들여앉혔다. 그리하여 본댁은 철주를 싸 업고 서울 쪽에 있는 본가 집으로 달아났던 것이다. 길수는 말을 타고 쫓아가 본댁에게 황금덩이를 주면서 로비라도 하라고 했다. 그러나 본댁은 눈물 한 방울 떨구지 않고 그 황금덩이를 한 냥도 받지 않고 가버리었던 것이다.    길수가 월선을 첩으로 데려온 데는 그럴만한 속셈이 있어서였다. 수기생 월선이가 기생집에 들어앉아 있는 한 월향을 비롯한 다른 기생들과 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월선을 집에 데려오니 집에 있을 때에는 월선과 놀고 고을에 가서는 월선의 여동생이자 처제인 월향을 비롯한 더 젊은 개생들과 마음껏 놀 수 있어 아주 좋았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 월선도 월향도 다 늙었어. 고 옥설을 월선 대신 둘째 첩으로 들여앉히고 고을에 가서는 뽕녀와 만금을 데리고 놀았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그 암범 같은 월선이가 가만 있겠는가! 시골의 은녀를 부엌데기로 들여와도 어찌 하나 퉁 사발 눈깔에 쌍불을 켜고 달려드는 게. 에이고.)     순간 그의 눈앞에는 마름 응삼의 색시 춘실의 고운 모습이 피뜩 떠올랐다.     경상북도에서 난 춘실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이모네 집에서 눈치 밥을 먹으면서 자랐다. 그런데 춘실은 이모부가 죽고 이모계부가 들어오자 팔자가 바뀌어 버린 여자였다. 글쎄 이모계부가 쩡하면 달려들어 어린 그녀를 능욕하려고 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모네 집에서 뛰쳐나와 조선 팔도를 헤매다가 우시장 거리에서 밥을 빌어먹으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길수에게서 밥을 몇 때 얻어먹고 이 시골에 따라와 응삼의 처로 됐던 것이다. 그리하여 춘실은 주인어른이라면 응삼보다도 아버지처럼 공대했다.     (아무리 계집이 없어도 내 어찌 굴 어귀 풀을 뜯어 먹으리오?)     이때 그의 눈앞에는 또 새별 같은 깜장 눈에 쌍 머리채를 치렁치렁 땋아 늘인 은녀가 피뜩 떠올랐다. 점점 능금같이 익어가는 그 복성스러운 얼굴이 그의 가슴마저 찡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억대우 같은 병완이 떠올랐다. 설상가상으로 은녀를 좋아한다고 온 마을에 소문난 성칠을 떠올리자 도리머리 질이 나갔다.    “안 된다! 안 돼! 오! 안 된단 말이다!”    “예?”    득호는 주인어른의 말에 당나귀고삐를 쥔 채 몸을 뒤로 돌렸다. 그 바람에 당나귀 고삐를 왼쪽으로 꽉 당기고 말았다. 당나귀가 코 구멍이 아파 왼쪽으로 대가리를 돌리면서 달려 나갔다.    “아이쿠!”    당나귀 차가 길수와 득호를 실은 채 낭떠러지에서 굴러 개울물에 풍떵 떨어졌던 것이다.   “ 빨리 주인어른을 살려라!”    응삼이랑 바삐  개울물에 우르르 쓸어달려 내려갔다. 길수는 다행히 깔려죽지는 않았다.    대신 당나귀차  밑에서 구렁인지 뱀인지 욕지거리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개자식, 어떻게 차를 몰았기에 이 지경 만들어?!” 그런데 이번에는 기어 일어나는 길수의 낯에 당나귀가 걸쭉한 똥물을 찔찔 쏴놓았다.     “에 퉤퉤! 득호, 이 자식 어디 죽어봐라!”    길수는 차밑에서 벌벌 기여 일어났다.    “아니, 주인어른, 죽지 않았습둥? 천만다행입구마.”    “뭐라고? 이 자식!”    길수는 일어나자마자 득호에게 주먹을 턱 안겼다.     득호는 개울물에 벌렁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때 응삼 등이 내려와 당나귀 똥을 낯에 바른 번들이마를 보고 겨우 웃음을 참았다. 그들은 길수를 부축하고 개울물에 똥투성이 머리를 닦아주었다.   “에, 퉤, 퉤!”   수길과 영팔이 양쪽에서 길수를 부축해 둔덕으로 올라갔다.    당나귀차는 또다시 어둠을 타 분주하게 산골길로 달렸다.           4. 꼬임 수    한길수는 오른손으로 옆구리를 짚고 응삼의 부축을 받으면서 간신히 비틀비틀 집에 들어섰다.    월선과 후처의 아들 선주는 마중 나왔다가  무슨 큰 봉변을 당하기나 한 것처럼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번대머리 뒤에 둬자나 되던 머리채가 보이지 않찮는가.     “아니, 영감, 그 몇 대 안 되던 머리털마저 어쨌어요? 홀랑 벗어진 게 무슨 꼴인가요?”    월선의 말에 한길수는 손을 내저으면서 돌려 맞췄다.     “모르는 소리를 작작 해. 이 어른은 일본 선진문명을 받아들이구 총도감을 바꿔 온 거야. 이후에 누구든지 머리채를 자르고 하이칼란지 하이딸인지 해야 된돼.”     생벼락 같은 소리에 월선과 선주는 입을 함박만큼 쫙 벌렸다. 그들은 머리채를 감싸쥐고 덴덥해 눈마저 휘둥그래졌다.     “철주넨 왜 보이지 않느냐?”     월선은 어둠 속에서 눈을 흘기면서 선처 아들을 헐뜯었다.     “서울로 떠났어요. 뭐 일본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합디다.”     “그래? 그래도 그 녀석이 장차 큰일 할 놈이야. 지금 세월에 일본말을 배워 두는 게 낭패 없어. 이 골짜기 둼 무지에 박혀서 애비 벌어 놓은 걸 받아먹겠어? 그 녀석 둘째 놈보다 썩 나아!”    그 소리에 월선은 두덜거렸다.    “영감도, 정말 손바닥과 손등이 다르다고 어쩌면 내 난 새끼를 그렇게 낮잡아 말해?”     한길수는 허리를 만지며 상을 찡그리면서도 끼무라 국장의 위엄스러운 목소리가 귀전에 들리는 상 싶었다.     “내일부터 목수와 인부를 구해서 경찰국청사를 짓는 일을 시작해야겠네.”    길수는 방에 들어가 누웠다가 앓음 소리를 내면서 간신히 기여 일어났다.    “게 응삼이 있는가? 고새도 참지 못해 여편네 궁둥이를 쫓아갔는가?”    온 울안을 울리는 그 고함소리에 누가 태만하겠는가.    응삼은 끌신을 작작 끌고 부랴부랴 본채에 들어왔다.    “주인님, 찾았습둥?”   응삼이 다급히 마루에 올라왔다.   “앉게. 긴히 의논할 일이 있네.”    길수는 등잔불 밑에 베개로 왼쪽옆구리를 받치고 비스듬히 기대 누워 우멍눈으로 응삼을 마주보며 말했다.   “끼무라 국장은 내일부터 목수와 인부를 끌어다가 경찰국청사를 지으라고 하였네. 그런데 내 아무리 생각해봐도 목수는 저 병완을 초과할 사람이 없는데. 그 뜨개소 같은 놈이 고분고분 말 듣겠는가? 숱한 인부를 며칠 새에 어떻게 끌어간단 말인가? 여기 영월동의 열대엿 살 이상 되는 사람을 몽땅 끌어가도 3층집을 짓기에는 엄청나게 모자랄 텐데 말이야. 아이고, 이 일을 어쩐단 말이냐?”    한길수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응삼은 옆에서 길쭉한 박대가리를 기웃거리더니 한참 후에야 얍슬한 입술을 나불거렸다.   “병완은 억지로 우격다집해선 안됩구마. 우시장에 절대 끌어가지 못합구마. 얼려 데려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삯전을 주겠다 했습둥?"    “삯전 같은 소리를 다하네. 남의 나라두 통 채로 빼앗아간 그 도적놈들이 삯전을 주자겠는가?"   응삼은 한숨을 푸 내쉬었다.     “이후에는 일본 사람들을 욕하지 마옵소. 말말 간에 그런 말이 불쑥불쑥 나가면 큰 야단이 나겠습구마.”     “그래, 그건 네 말이 옳아.”    길수가 혀로 입술을 감빨면서 수긍했다.    응삼은 뒤이어 이런 수를 내놓았다.   “이렇게 하깁소. 좋은 청부업거리가 생겼는데 삯전도 푼푼히 준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살기 바쁜 가난뱅이들이 좋다고 왁 쓸어 갈 겁니다.”     그제야 한길수는 일어나 상을 찡그리면서 허리를 붙잡았다.    “그래도 자네 그 박대가리에서 잔꾀가 잘 나오네그려. 허허. 아이고, 허리야.”      응삼은 바삐 길수를 부축해 눕혔다.     “근심맙소. 이 응삼이 있는 한 경찰국청사 아니라 온 우시장을 다시 지으라고 해도 근심할게 없습구마. 인부가 모자란다는 구실로 주인어른은 운주동과 신흥동, 가마골까지 온 상우남면을 다 관할하게 해달라 하깁소.  인부도 채우고 장차 일이 잘 되면 면장이나 군수로 승진하는데 길을 닦아놓는게 아입둥?  이거야 말로 일거양득이지요. 헤헤헤.”     한길수는 응삼의 말에 귀맛이 당겼다.    “그래? 그래. 내가 면장이나 군수가 되면 자넨 꼭 아전이  될 수 있어. 허허허.”    이튿날 기운봉 쪽에 해가 두둥실 뜨기 바쁘게 응삼은 영팔을 데리고 병완을 부르러 떠나갔다.     그들은 여우들처럼 징검다리를 홀짝홀짝 뛰어넘어 개울물을 건너 둔덕우로 올라가면서 보니까. 식전아침부터 뭘 찧는지 물레방아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병완은 마당에서 도끼로 나무를 팡팡 패다가 응삼과 영팔이 다가오자 패놓은 나무토막들을 한쪽에 주어 쌓아놓았다.     “영감, 주인어른이 도감어른과 긴히 상론할 일이 있다고 모셔오라 합더구마.”    “또 무슨 일로? 혹시 은녀를 데려 가려는 건 아니겠지?”    응삼은 허리를 꼽싹거리었다.     “예, 아닙니다. 가보면 알겁꾸마. 좋은 청부업거리가 생겼습꾸마. 어서 가시죠.”    그는 가슴츠레한 뱁새눈으로 병완의 눈치를 살폈다.    “좋은 청부업거리면야 자네들이나 가서 할 게지. 당장 감자도 파구 강냉이도 뜯어 들여야겠는데 바쁜 사람을 찾아와 뭘 하오?”    응삼은 진작 병완이 이렇게 나오리라고 진작 짐작했었다.     그는 웃음을 낯에 게 바르면서 지껄였다.    “김도감어른, 우리 주인어른은 도감어른하구 서로 도우며 화목하게 살자고 은덩이도 드리고 은녀도 내보내 주었소. 지금 주인어른이 허리를 상해서 오지 못했는데 한번 가보면 어떻습둥?”    병완은 너무 한감이 들어 도끼를 스르르 놓았다.    “그래, 주인어른이 모질 상했는가?”    “예. 당나귀차 운주하에 떨어져 허리를 모질 상했소.”    응삼의 말에 병완은 나무토막을 모아놓고 일어서면서 “가봅세.”라고 했다.   성칠이가 집에서 나오면서 물었다.   “아버님, 어데로 갑니까?”    병완은 되돌아보면서 대수롭잖게 말했다.    “한 영감이 허리를 상했다는데 피뜩 가보고 오겠다."    물레방아를 찧던 성희와 하옥은 떡가루가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면서 둔덕 아래로 내려가는 병완의 뒤 잔등을 바라보면서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병완이 토성 안 대문에 들어서자 한길수는 우멍눈으로 쏘아보며 속으로 윽별렀다.   (저 놈을 그저 방망이로 뒤대가리를 쳐 죽였으면!)     그러나 그는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짐짓 마루에까지 나가 마중하며 아닌 보살을 떨었다.     “김 도감, 어서 오오. 아이유, 내 허리 아파서 땅바닥까지 나가 마중하지는 못하겠소. 어서 올라오오.”    병완은 마루에 성큼 올라서며 문안부터 했다.     "허리를 모질 상했다던데. 어떻소?”      길수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병완의 손을 잡고 비틀비틀 웃방으로 들어갔다.    “김 도감을 보니 허리 병이 낫는 것 같네. 허허허. 아이유.”     한길수는 입술에 게발린 소리를 하다가 앉으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응삼이 달려들어 와 한길수를 부축하여 앉혔다.     병완은 앉자마자 머리채를 싹둑 잘린 번대 머리를 마주보면서 놀라 했다.     “아니, 머리채는 어쨌소?”    한길수는 번대 머리를 손으로 쓱 씻어 올리면서 지껼였다.    “시원한 게 너무나 좋아서? 우시장에 갔다가 일본 사람들 신식을 따라서 머리채를 잘라버렸소.”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체 무슨 청부업거리가 생겼기에 이른 아침부터 나를 불렀소? 난 할 일이 많으니까 얼른 말하오.”    그러나 길수는 정지를 내다보면서 소리쳤다.     “여보, 김 도감이 왔는데 술상이나 차려 가져오오.”    병완은 넉가래 같은 손을 저으면서 사양했다.     “이러지 마오. 한 영감, 난 가을이 돼서 일이 바쁘오. 어서 할 말이나 하오.”     그럴수록 한길수는 늦장을 피웠다.     어느 결에 월선이와 둘째며느리 남복금이가 술상을 맞들어 들여왔다.       “아무리 농번기라도 술이야 한잔 마시면서 얘기하기요. 자, 한잔 받소.”     한길수가 놋 술잔에 막걸리를 부어 권하자 병완은 어찌는 수가 없어 받고 길수 앞에 놓인 놋 술잔에 한잔 따랐다.     길수는 술잔을 들고 수작을 피웠다.      "병완이, 우린 씨름판에서 싸움 끝에 정 든  형제간이 아니고 뭐요?  자, 한잔 들기요.”    병완은 마지못해 놋 술잔을 들어 댕그랑 마주 치고 굽을 쭉 냈다. 길수는 곁의 응삼에게도 한 잔 부어주었다.     응삼은 속으로 슬그머니  병완을 질투하였다.    (네깐 놈이 주인어른을 도와 뭐 해준 일이 있느냐? 상대접을 받아? 흥!)    그는 한뉘 슬슬 기면서 고생한 자기를 푸대접하는 주인어른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쓸개가 다 쓰려났다. 그는 그런 질투와 원망을 놋 술잔에 담아 단숨에 쭉 들이켰다.     막걸리가 서너 순배 돈후에야 한길수는 무거운 입을 떼였다.     “이보게, 김 도감, 이번에 내 좋은 청부업거리를 얻어놨으니까. 우리 마을 사람들을 잘 살게 만들 예산이네.”     병완은 세 귀 눈에 의아한 눈빛을 띠우면서 턱밑에 바투 들이댔다.    "툭 까 놓고 말하오. 무슨 청부업거리오?”     길수도 더는 질질 끌고 싶지 않았다.    “어제 우시장에 가서 3층집 짓는 일을 맡아 놨네. 자네 좀 목수 일을 맡아주게. 그리고 마을사람들을 이 좋은 청부업에 동원해주게나. 삯전을 딱딱 주는 일이니까. 참 좋은 돈벌이기회네.”     병완은 닭다리를 하나 쥐여 한입 뚝 떼여 씹으면서 완곡하게 거절했다.     "숱한 감자와 강냉이는 누가 걷어 들이겠소? 맏손녀 어금이가 추석이 지나면 당장 결혼해야 하겠는데 혼수 감을 장만해야겠는데.”      길수와 응삼은 개의치도 않았다. 병완은 십중팔구는 그렇게 나오리라고 미리 짐작했기 때문이다.     응삼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는 주인을 보자 팔을 걷도 나섰다. 그는 바가지로 오지독안의 막걸리를 푹 퍼서 병완의 앞에 놓인 놋 술잔과 길수의 앞에 놓인 놋 술잔에 찰찰 넘치게 따랐다.     “김도감, 집일이야 성칠이나 안분들이 하면 되지. 이런 청부업거리 어데 가 얻소? 우리 주인어른이 얻지."    병완은 눈을 떡 감고 묵무부답하고 목석처럼 떡 앉아 있었다.    응삼은 한길수한테 뱁새눈을 찔끔해보이고나서 뒤를 이었다.    "한번 우리 주인을 돕는 셈 치고 나서줍소. 그러면 우리 주인어른께서 그 감자와 강냉이를 판 돈만큼 벌게 하지 않으리라고 그럽둥? 거저 김 도감에게 은덩이를 수무 냥이나 줄라니 고만한 게야 어련히 봐주지 않으리라고 그럽둥?”     응삼의 말은 실로 그럴듯했다.     “그런데 우시장에 무슨 부자가 있어서  3층집을 다 짓는다오?”     병완이 묻는 말에 응삼이가 제꺽 “그거야…” 하고 입을 열려는데 길수가가 손으로 슬쩍 그의 허벅다리를 꼬집어놓았다.     “양, 저, 우시장에 그런 대부자 있소. 삯전은 근심하지 마오. 내 달마다 딱딱 주겠소. 한마을에서 살면서 내 거짓말을 하겠소? 자네 정 믿지 못하면 선전을 줄 수도 있소.”     그제야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막걸리 잔을 또 들었다.     “글쎄, 돈을 벌수만 있다면 가서 목수 일을 할 수도 있지.”     한길수는 대번에 찌푸렸던 낯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말끔히 걷으면서 놋 술잔을 높이 쳐들었다.     “자, 김 도감, 오늘 통쾌하게 한잔 듭세."     병완은 한길수 잔과 마주치고 막걸리잔을 굽냈다.      길수는 사기나 너스레를 떨어댔다.     "자네 도감까지 맡소. 영월동 사람들을 집짓기에 동원해주오. 영월동에서 자네 말이라면 누가 듣지 않겠수?"    병완은 생각 밖으로 손사래를 치며 사양할줄이야.    "아니, 도감은 그만 두오. 무슨 일인지 모르구 어찌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겠소?"    한길수는 소발굽 같은 주먹으로 병완의 어깨를 툭 쳤다.    "야따, 목수하구 도감 삯전은 따로 한몫씩 줄 테니. 근심하지 말게나. 하하,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을 때는 격이라 일거양득이 아니겠소? 자, 한잔 들기오.”    그제야 병완은 웃으면서 통쾌하게 한 잔 냈다.    일이 돼가는 걸 보고 응삼도 따라 막걸리를 한 사발을 죽 굽을 낸 후 병완을 쳐다보면서 간사한 웃음을 지었다.             5. 고양이 쥐 생각      길수와 응삼은 웃음주머니 흔들거렸다. 둥글소 같은 병완이 모르쇠를 댈까봐 은근히 근심했댔는데 일이 술술 풀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다.      길수는 막걸리 기운이 점점 피자  한시름을 턱 놓고 목침을 베고 그 자리에 스르르 쓰러져 굳잠에 빠지고 말았다.     응삼은 몸채에서 나오자 사랑채로 나갔다.      춘선이 문소리 들리자 도도거리었다.    “주인영감은 병완 영감이 뭐 그리 대단해서 하느님처럼 모신대요? 흥, 제 애비라도 그렇게 모시지 못할 거야.”    “쉿-”    응삼이 뾰족한 턱으로 바깥을 가리키었다.    춘선은 계속 도도도 했다.    “듣겠으면 들으라지. 뭐? 우리 나그네가 주인 어른을 도와 사사건건 얼마나 고생했는데 왜 독집 한 채 주지 않는대요? 저 병완 영감이 뭘 했다고 도감에다가 은덩이를 스무 냥이나  준대요? 이른 아침부터 병완을 불러다가 상빈대접을 한대요?”     응삼은 여윈 주먹을 쳐들어 춘선의 머리 위에 쳐들었다.     “야, 이년아,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들어. 작작 떠들어라. 입이 성해있는 게 원수냐?”     춘선은 주먹을 피해 저쪽으로 드텨 앉으면서 계속 종알거렸다.     “에이고, 바보 같은 나그네. 그렇게 여편네와나 우쭐거려. 한뉘 꿉씬거려도 차례진 게 뭔가요? 맨 함경도 머저리들이 산골에 처박혀서 노는 꼬락서니 보기도 싫어, 보기 싫어! 흥!”     춘선의 콧방귀에 응삼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었다.     “빌어먹을 년, 너 남대치는 뭘 그리 잘 났냐? 굶어 죽는 거 주인이 데려다가 걷어 주고 이렇게 유식한 나그네한테 시집보내주니 어째 배때 쑤셔나니? 응?”    춘실은  “빌어먹을 년”이란 말이 제일 귀에 거슬리었다. 그건 길거리에서 빌어 먹으면서 여기까지 왔다가 한길수를 따라 응삼에게 시집왔기 때문이었다. 응삼이 금방 “빌어먹을 년”이라고 했다고 그녀는 가마뚜껑을 들었다 쟁강 놓으며 가마뚜껑을 끌어안고 엉엉 울어댔다.      “에이, 빌어먹을 년.”      꼴보기 싫어 응삼은 길죽한 말대가리를 흔들면서 바깥에 나가 버렸다.     한편 집으로 돌아온 병완은 집 식구들에게 금방 한길수에게서 들은 말을 죽 했다.     성칠은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 저었다.     “아버지, 좀 심중하게 고려하시오. 한 영감이 무슨 일로 선심을 다 쓰겠습니까?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난 믿어지지 않습구마.”     그러나 병완은 자기 주견을 세웠다.     “밑져 본 전이라구 삯전만 주면 해 볼만 해. 어금의 혼수도 마련하구. 마을 사람들도 몇 푼 되지 않는 밭을 믿고 어떻게 명년 보리 고개를 넘기겠니? 이 좋은 기회에 좀 벌어서 쌀이나 사서 보태면 좀 좋아?"     성칠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러다가 한길수 삯전을 안 주면 어쩝둥?"    "삯전을 주지 않는 날부커 일하지 않지. 뭐.”    병완은 벽이라도 차고 나가는 불 같은 성미였다. 그 성미를 알고 있는 성칠은 더 말리지 못했다.    병완은 마른기침을 하며 우쭐 일어났다.     “난 우시장 갈 차비를 하겠다. 너희들은 밭에 가서 감자나 파오너라.”     병완은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성칠을 되돌아보면서 부탁했다.     “며칠 사냥을 못하더라도 밭일을 해라.”    “예, 아무튼 우시장에 가서 몸조심 합소.”    성칠도 우쭐 일어나 바깥에 나갔다.    그는 외양간에 들어가 소를 풀어내다가 소 수레에 메웠다. 그는 어머니와 아내를 수레에 앉히고  감자밭으로 떠나갔다.          한참 후 응삼이 영팔을 데리고 헐레벌떡거리면서 올리막으로 올라왔다.     “김 도감, 주인어른께서 허리 아파서 오시지 못하고 분부를 전하라고 하시여 왔습네다. 헤헤헤.”     병완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면서 세 귀 눈으로 응삼을 건너다보았다.     “금방 다 말했는데 또 무슨 잔소리 그리 많느냐?”     이번에는 영팔이 썩 나서면서 대답했다.     “저, 주인어른은 김도감이 혼자 우시장에 가지 말구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가랍디다.”     병완은 목수도구를 넣은 멜 통을 메고 둔덕 아래로 내려가면서 대답했다.     “알았네. 내 저기 덕성과 덕팔이, 창렬이, 동훈이랑 다 데리고 가지.”    응삼과 영팔은 기뻐서 병완의 앞에서 춤이라도 출 듯 껑충껑충 뛰어 개울물 쪽으로 달려갔다.     영팔은 징검다리를 단숨에 달아 건너갔다. 그런데 응삼은 징검다리를 토끼새끼처럼 뛰어 건너가다가 그만 돌을 빗 디뎌 그만 개울물에 풀러덩  빠지면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물병아리를 방불케 하는 응삼은 실 돌피 같은 몸을 겨우 일으켰다. 이윽고 그는 저 멀리 뛰어간 영팔에게 손을 휘저으면서 토성 안으로 오소리처럼 쫑드르르 달려갔다.     병완은 그 우스운 모양을 보고 피씩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먼저 덕팔네 집을 찾아갔다. 평소에 말수가 적은 덕팔은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시름시름 앓는 노친으로 하여 속을 여간만 태우지 않았다. 며칠 전에 병완은 덕팔에게 둬 냥짜리 은덩이를 가져다주면서 노친을 데리고 운주동에 있는 신설 집 자기의 관준 형님을 찾아가보라고 했다.    병완의 형님 병관의 맏손자 관준은 이조말년 궁정의 어의였던 할아버지 김승중의 한의술을 물려받아서 어진간한 병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서도 척척 진단해 처방을 떼였는데 약이 병에 말을 참 잘 들었다. 그리하여 병완이가 한번 관준 손자를 찾아가보라고 하는데도 고지식한 덕팔은 말을 들을 염을 하지도 않았다. 하긴 덕팔은 천생 남의 빚을 지거나 공짜를 얻어먹으면서 살지 않으려는 외고집쟁이였다. 그는 병완이 공짜로 주는 은덩이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고 관준 의사를 찾아가 볼 엄두도 내지 않았다.     (어떻게 하나 이번에 덕팔도 돈을 벌어 노친의 병을 치료하게 해야겠는데.)     병완은 이런 생각을 구을리면서 개울 건너편에 있는 덕팔의 낮다란 초가집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때 때마침 덕팔이 넓은 어깨에 통나무를 메고 뒤울 안에서 앞마당으로 나왔다.     병완은 삽작문을 열고 울안에 들어서면서 덕팔의 어깨 우에서 통나무를 받아 내려놓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시장에 좋은 부업거리 생겼네. 우리 함께 가 보기오. 한두 해 일하면 노친의 치료비두 벌게 아닌가?”     덕팔은 통나무를 턱 깔고 앉더니 숨을 헐떡거리면서 자세히 물었다.     “무슨 일이기에? 가을걷이도 하지 않고 우시장 한끝으로 가겠소?”    병완은 덕팔의 옆에 나란히 앉으면서 담배물주리를 꺼내 담배를 꿍꿍 다져넣고 붙여 물었다.    “한길수가 우시장에 가서 층집짓기를 맡아 왔다오.”    덕팔은 네모 번듯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쳇, 한길수를 믿고 돈 벌자구?  한길수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못하겠소. 죽게 일해서 그 놈이 좋은 노릇을 하자고? 쳇!”    “길수는 달마다 품삯을 딱딱 주겠다고 했소. 한마을 사람들인데 선전을 줄 수도 있다고 하더구먼. 품삯을 주지 않으면 돌아오면 되지. 뭐?”    병완의 말에 덕팔도 담배를 붙여 물더니 담배연기를 후 길게 내뿜었다.    “그럼 한번 가 본다? 가을은 철규와 점순에게 맡기지.”    이렇게 돼 병완은 덕팔을 데리고 떠나게 됐다.     병완과 덕팔이 목수도구상자를 메고 개울을 건너 둔덕에 올라서는데 창렬이 허리를 구부정하고 나왔다.     “형님네는 어디로 가오?”    병완은 걸음을 멈추고 “우시장에 집짓기부업을 하러 가는 길일세. 그런데 몸은 어떤가?”라고 문안부터 했다.    덕팔도 시시콜콜 앓는 창렬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창렬은 삽작문을 열고 나와 기침을 쿨룩쿨룩 깇으면서 간신히 말했다.    “그래도 병완 형님이 준 은덩이로 약을 지어다가 먹었더니 많이 낫소.”    그는 덕팔한테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혹시 흙짐이나 멜게 있으면 나도 좀 부르오.”    병완은 생강처럼 바짝 마른 창렬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동생, 이 몸으로 어데 가서 일을 한다고 그러오. 집에서 병 치료나 잘하게나.”    창렬은 바깥으로 나오면서 부탁했다.   “저 상호라도 좀 데리고 가면 좋겠는데.”    은녀와 상호가 삽작문을 나서더니 허리를 굽히면서 이구동성으로 곱게 인사했다.     병완은 상호를 대견스레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얘들, 이젠 어른이 다 됐구나.”     창렬은 집안형편이 가난하여 겨우 늦장가라도 들어서 얻은 은녀와 상호를 바라보면서 희죽이 웃음을 지었다.     순간 그의 이마에 난 밭고랑 같던 주름살이 쭉 펴졌다.     “우리 먼저 가서 품삯을 제대로 받게 되면 상호도 데리고 가지.”         병완과 덕팔은 곧장 토성 안에 있는 길수네 팔간대청으로 들어갔다.     그때 대문 앞에 진작 한길수와 응삼, 영팔이 진작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병완은 걸어 나가 문안부터 했다.한 영감,  밤새 허리 아파 고생이 많았겠소.”      한길수는 반색을하였다.    “자네가 일하러 가겠다니 허리 병이 뚝 떨어 기는 것 같네. 흐흐흐.”    뒤이어 그는 개화장으로 땅을 짚고 서서 말했다.    “아무튼 우시장에 가서 응삼과 합작해 일군들을 잘 관리해서 집짓기를 잘하게나. 내 여기서 마을사람들을 더 동원해가지구 며칠 후에 따라가겠네. 그럼 어서 길을 다그치오. 난 집에 들어가 좀 누워야겠소.”     병완은 덕팔, 최동욱과 함께 병수가 모는 마차에 앉아 우시장으로 떠났다.     개화장을 짚고 대문어귀에 선 한길수의 우멍 눈에는 살기에 찬 음흉한 눈빛이 서려있었다.     (은녀를 당장 빼앗아 와야지. 아니야, 괜히 병완과 성칠이 펄쩍 날뛰겠다. 그러면 집짓기가 끝장나고 내 창창한 앞길이 막힐게 아닌가? 안되지. 꾹 참아야지. 내가 이 영월동과 운주동을, 아니야, 온 상우남면 나가서 우시장까지 쥐락펴락 할 때는 은녀 하나뿐이겠는가? 온 우시장의 계집들을 몽땅 내 집에 잡아와야지. 으흠!)     한길수는 제 좋은 궁리를 하면서 대문어귀에서 떠나 집울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병완이네는 경찰국 대문 앞에서 총창을 비껴든 일본 헌병들에게 몸수색부터 당했다. 병완은 머리가 썩둑 잘리어 나간 것 같은 일본 놈 군모 밑의 짧은 머리를 보니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    응삼이 무슨 종이장을 꺼내 일본놈 한테 건네고나서 뭐라고 손방아를 찧어댔다. 헌병은 종이장과 응삼이네와 병완이네를 번갈아 훑어보더니 응삼을  2층집 대문 안에 들어가게 했다.    한참 후 응삼이 강철을 데리고 나왔다. 강철은 병완을 보고 아는 척 했다.    “아니, 이거 퍽 눈익은 분이먼."    응삼은 실돌피 같은 허리를 :쭉 펴고 병완을 춰올렸다.    "이분은 우시장을 뒤흔들던 씨름장수 김병완 어르신님이네."    "오- 글쎄 면목 있다니까."    강철은 병완의 소발족 같은 손을 잡아 흔들었다.    "장사님, 반갑습니다.”    수다스러운 그 인사수작에 병완은 그저 눈인사를 할 뿐이었다.      응삼이 어색한 기분을 깨려고 병완과 강철의 앞에서 실 돌피 같은 허리를 꼽싹거렸다.      “김령감, 이 양반은 내 동창생 류강철입구마. 이전에 운주동의 최구장에게서 천자문이랑 함께 배운 동창생이오. 류 선생은 일본까지 유학갔다가 와서 우시장에서 아주 갑부로 됐지요. 그래서 이번에 3층집을 짓게 됐소.”      강철은 없는 배를 쓱 내밀고 어깨가 으쓱하여 부자인 척하면서 거들먹거렸다.      “집만 잘 지읍시우. 삯전은 근심하지 맙소.”     사실  일본 경찰국을 짓는 일이라면 병완이랑 목수를 그만 둘 것은 불 보듯 빤했다.  그래서 응삼과 한길수는강철의 집을 짓는다고 거짓을 꾸며댔던 것이다.     병완은 묵무굽답하고 돌부처처럼 덤덤히 앉아 있었다.     그는 류강철이 일본 헌병군복을 입은 것을 보고 눈에 거슬렸다.     (이 놈도 일본 사람들의 덕분에 갑부로 된 게 아닌가?)     류강철과 응삼은 병완 등을 마차에 싣고 경찰국에서도 한 1리쯤 떨어진 뒤 산 쪽으로 달려갔다.      둔덕진 곳으로 올라가 한참 걸으니 평평한 땅이 나졌다.      류강철은 모자를 벗어 땀을 씻으면서 가죽장화를 신은 발까지 탕탕 구르며 지껄여댔다.     “바로 이곳이네. 풍수쟁이를 청해 우시장 주변산수를 답사시켰지. 풍수쟁이는 이곳이 바로 우시장에서 집을 지을 천하제일 명당자리라더구먼.      병완이 그 곳을 둘러보니 참말로 명당자리인 것 같았다.       동쪽과 북쪽에는 기운봉에서 뻗어 내려 온 깎아지른 듯 험산준령이 병풍처럼 둘러서있었다. 서쪽에는 남대성하 지류가 흘러 지나가고 있었으며 둔덕아래 남쪽으로는 우시장 시내가 한눈에 안겨왔다. 참말로 우시장 시내에서 개미새끼가 기어가도 손금 보듯이 환히 살필 수 있는 천혜의 군사요충지였다.      병완은 류강철을 피뜩 곁눈질해보며 속궁리했다.      ( 저눔이 갑부는 갑분 모양이지. 무슨 돈으로 3층집이나 짓는단 말인가?)      병완은 류강철에게 “그래 집 도본은 어디 있소?” 하고 물었다.      류강철은 없는 배를 쑥 내밀고 날카로운 낯을 이쪽에 돌렸다.       “도본이라니?”    그는 의아해 병완이를 돌아다보다가 깨달은 것이 있는지 머리를 꺼떡거렸다.    “아, 설계도를 그러겠구먼. 근심하지 마시오. 이제 일본 설계사가 설계도를 가지고 올겝구마.  오늘은 공지나 돌아보고 푹 쉽소. 요 사람들로야 어떻게 일을 시작하겠습둥?”    그러나 병완은 조급해났다.     “이보,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우린 밭에 강냉이하구 감자를 걷어 들이지 못하고 널어 놓은 채 하루 품삯이라도 더 벌려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요.”    대뜸 붉으락푸르락해 지는 병완을 보자 강철이 쪽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눈알을 굴리면서 떽떽거렸다.    “이 영감이, 어느 안 전이라고 함부로 고함질인가? 품삯은 무슨 엿 먹을 품삯이란 말인가? 일하기 전부터 품삯을 달라고? 흥!”     응삼은 실눈으로 병완의 노한 얼굴을 살피더니 손으로 강철의 허벅다리를 스리슬쩍 툭 치며 뱁새눈을 찔끔해보였다.     “김 도감, 노여워하지 마오. 오늘 놀아도 삯전은 우리 한 어른께서 다 주오. 삯전 근심은 하지 마오. 오늘은  이제 일군들이 오면 그들을 지휘해 먼저 토성을 파면 되오.”    덕팔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오른 강철과 병완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그의 너부죽한 얼굴에는 근심에 찬 그림자가 얼굴에 흘러지나갔다.    강철은 분을 이기지 못하여 씨근덕거리다가 발로 돌 쪼각을 탁 차버리고 “흥!” 하고 코 방귀를 뀌더니 저 멀리로 가버렸다.     바빠 맞은 응삼은 강철을 따라가 팔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나무람했다.     “자네 어째 일을 망치자고 이래? 지금 일손을 하나 얻어 온다는 게 하늘에 별 따기인 걸 모르는가? 우리 주인어른이 손이 발로 되게 빌어서 데려온 일군들이네. 우리 주인어른은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품삯을 주기로 했네.”        강철은 침까지 퉤 내뱉었다.     “대일본제국의 경찰국을 짓는데 무슨 놈의 삯전인가?”    “언성을 좀 낮추게나. 저 영감들이 듣겠네. 성질이 불 같아. 벽이라도 마구 박차고 나갈 령감이야.”    응삼은 뱁새눈으로 힐끔 저쪽 병완을 훔쳐보았다. 다행히도 병완과 덕팔도 뭐라고 쑤근거리면서 이쪽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때 덕팔은 병완에게 근심을 털어놓았다.    “저 일본 군복을 입은 치머리가 삯전을 정말 주지 않으면 어쩌겠소?"    "삯전을 주잖으면 그만 둘판이지.뭐."     "저 말하는 거 보오. 무슨 경찰국을 짓는다고 하지 않소?”    병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잘못 들었겠지. 우시장에 경찰국이 있는데 또 무슨 경찰국을 짓는다고 그러오? 우리 처음 들렸을 때 일본 헌병이 총창을 꼬나들고 보초를 서던 대문 안 집이 바로 일본경찰국이라던데.”    그러나 덕팔은 계속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살림집터가 이렇게 엄청나게 클 수 있소?”   병완도 반신반의했다.    “글쎄 일본 사람을 초과하는 부자가 우시장에 있을 수 있소?  이제  도본이 오면 대개 알 수 있겠지.”     “삯전을 주기만 하면 뭘 짓던지 관계는 없지.”     덕팔은 더부룩한 구레나룻을 매만지면서  땅바닥에 누워있는 너럭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품삯을 주지 않으면 돌아가 한 영감과 따지겠소.”     병완의 그 말에 덕팔과 동욱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때 응삼과 강철은 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달려가 버렸다.      한참 후 류강철과 응삼이 일본 군복을 입은 자와 함께 마차에 앉아 달려왔다.     마차에서 내린 일본 사람이 누런 종이 장을 꺼내들고 여기저기 가리키면서 뭐라고 말하자 류강철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윽고 응삼이 병완과 덕팔을 불렀다.      그들은 일본 설계사의 설계도대로 먼저 동서가 한 150미터, 남북이 한 100여미터 되게 말뚝을 박고 하얀 실을 쭉쭉 쳐 놓았다.      한참 역사를 하고나니 해가 중천에 둥실 걸렸다.      응삼이 우시장에 내려가더니 뭔가 한보자기를 사들고 왔다.     “자, 풍찬노숙하면서 우리 동창의 집을 짓느라고 고생들이 많소. 오늘은 이걸로 점심과 저녁이라고 먹소.”     응삼이 보자기를 풀자 누런 강냉이떡에 마늘짠지였다. 병완이네는 집을 떠난 이상 별수 없이 그들은 강냉이떡도 맛있게 먹었다.     덕팔은 강냉이떡을 한입 뚝 떼여 씹으면서 또 근심을 털어놓았다.      “이제 해가 저물면 밤에 어데서 자오?”     응삼은 뱁새눈을 한껏 크게 뜨면서 대답했다.     “옳소. 오후에는 저기 가져온 재목으로 기둥을 세우고 초막을 짓소.”     병완 등은 점심식사가 끝나기 바쁘게 먼저 토성을 쌓기로 한 북쪽에 인부들이  들 수 있는 움막을 짓기 시작했다.     해질 때까지 경사진 둔덕을 파고 반토굴 움막을 대충 지어놓았다.     엿새 후에 한길수가 직접 마차를 타고 공지로 찾아왔다. 그는 개화장을 짚고 다 지어놓은 인부가 들 움막을 둘러보더니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병완이, 수고 많았네. 먼저 엿새 품삯을 주겠소.”     보통 하루품삯이 8전이나 10전이면 대단했는데 한길수는 한마을의 사람들이라면서 20전씩 주는 것이었다.     병완은 한길수를 보고 “허리는 괜찮소?” 하고 문안부터 했다.     한길수는 허리를 만지면서 상을 찡그렸다.     “아직도 조금만 힘써도 아프오.”     병완은 대통을 꺼내 담배를 쑤셔 넣으면서 넌지시 물었다.     “좌우간 품삯을 주니 고맙소. 그런데 어째 류 통역이 삯전을 주지 않고 한영감이 주오?”     한길수는 그들이 든 움막 구들에 걸터앉더니 둘러댔다.     “류 통역이 돈이 바빠서 그러는데 좀 기다리오. 그건 그만두고 병완이, 자네는 아직 목수 일을 할 게 없으니까 토성을 쌓는 일에서 손을 떼게나. 우리 마을 일군들로는 근본 이 집을 명년까지 다 짓지 못하오. 운주동과 신흥동, 가마골로 나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일군들을 더 모집해 와야겠네. 자네 아들과 손자들까지 다 데려오오.”      한길수는 우멍눈으로 묵묵히 앉아있는 병완의 눈치를 힐끔 살피였다.     거부하는 눈치가 보이지 않자 뒷말을 이었다.     “거 최구장이 아들이 여럿이 되던데. 사돈인 자네가 나서서 좀 동원해보게나.”     병완은 귀가 솔깃해하겠는가 하였는데 병완이 벌컥 성을 낼 줄은 천만뜻밖이었다.      “한영감은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얕잡아보기 시작했소? 내가 그까짓 도감을 바라고 여기로 왔는가 하오? 삯전이라도 벌어서 맏손녀 혼수 감이나 마련할 까고 온 게지.”     한길수는 번들 이마에 송골송골 돋아난 땀방울을 팔소매로 뚝뚝 찍었다.     “허허허, 김 영감, 내 말을 잘못해 미안하오. 품삯은 꼭 줄 테니 좀 동원해주오. 하루에 쌀 너 근씩 버는데 좀 좋아서 그러오? 한 일 년 일하면 농사 질을 하기보다 훨씬 낫게 벌게 아니오?”     “에헴!”     병완은 마른 기침을  하더니 뒷말을 이었다.      “품삯만 주면 누군들 일하러 오지 않겠소?  동원해 보지.”      “알았네."    한길수는 개화장을 짚고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이유, 요 허리가 아파서.”라고 하면서      한길수는 움막 앞에서 우뚝 멈춰서더니  병완을 되돌아보았다.     “내 마차에 앉아 집에 갔다가 오오.”      병완은 덕팔과 동훈을 되돌아보면서 작별을 고했다.     “내 집에 갔다올테니까. 마가을 추위에 몸 주의하게나.”     덕팔은 “형님, 잘 갔다가 오오. 우리 집사람과는 무사하다고 잘 전해주오.” 라고 말했다.     그는 삯전 1원 20전을 병완한테 건네주면서 부탁했다.     “내 노친한테 전해주오. 삯전을 버는데 철규도 오라고 전해주오.”      그러나 최동훈은 자식을 하나도 보지 못해 그저 삯전만 병완의 손바닥에 달랑 올려놓았다.      “이거나 우리 집 사람에게 주오.”     병완은 품삯을 잘 건사한 후 한길수와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서산을 바라보니 해가 어느새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서 땅에 얼굴을 비빌 지경이었다. 마차는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며 산둔덕을 내려 영월동을 바라고 달려갔다.                      6. 똥벼락을 맞은 번대머리       마차가 우시장을 벗어나 시골길로 한참 달릴 때다.       한길수가 마차 위에서 무릎을 탁 쳤다.      “아차, 깜빡 잊었구나."     그는 응삼을 돌아보며 물었다.     "자네 최구장의 서당방에 가서 공부한 적이 있지 않은가?”     “예.”      한길수는 응삼의 어깨를 탁 쳤다.    “하늘이 나를 돕는구먼. 자네는 이 길로 먼저 최구장을 찾아가서 운주동 사람들을 동원해 달라고 하게나. 끼무라 국장이 다그치라고 하던데.”     응삼은 뱁새눈이 실눈이 돼 상을 찡그리었다.    "좀 살살 칩소. 간 다 떨어지겠습구마."     “잔말 말구 어서 운주동하구 신흥동, 가마골에두 돌아다니면서 인부를 모집하라구. 한 백명 있어야 돼. 알겠는가?!"    “백명이나?"    "백명이면 백명이지. 뭐 잔말이 그렇게두 많아?"    "예, 알았습구마.”    응삼은 땅방울같이 을러메는 길수 앞에서 잡소리 집어삼켰다.    마차는 둬 시간 달려서 운주동과 영월동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 갈림길에 들어섰다.    병수가 마차를 세우자 응삼이가 마차에서 노루새끼처럼 폴짝 뛰어내렸다.    응삼은 떠나가는 마차에 대고 실 돌피 같은 허리를 꿉썩거렸다.    마차는 또다시 한참 제방둑길로 달렸다.     그때 병완이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마차를 세워. 병완이, 웬 일인가?”    한길수가 이상해했다.    득호가 말고삐를 채 달리는 마차를 세웠다.    병완은 제방둑길 옆으로 내려갔다.    “저 산등성이에 있는 감자밭에 좀 가봐야겠네. 제때에 거둬들이지 못해 멧돼지들이 파먹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네.”    “음, 알았네. 자네도 마을사람들을 많이 동원해보게나.”    “그러지.”    병완은 허리를 구부정하고 산등성이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마차는 계속 어두워져가는 강둑길로 달려갔다. 저 멀리 어슴푸레 마을이 다가왔다.    한길수는 고을에 기생년을 가득 두고서도 영월동에도 놀이개계집을 둘 예산으로 은녀를 한사코 자기 집에 끌어다 넣었던 것이다.   (성칠이, 그 새끼, 사냥해서 엄창렬의 빚을 문다고? 사냥하기 어디 그리 식은 죽 먹긴가? 쳇!)    순간 길수는 눈앞에 머리채를 치렁치렁 땋아 늘인 풍만하고 생생한 은녀의 반달 같은 얼굴이 떠올랐다.    (은녀는 정말 우리 산골 치고는 이뻐. 토스래기 감자처럼 복실복실 하구 사과처럼 사박사박한게. 고 계집 정말 통 채로 먹어도 비린내 나지 않을 거야. 으흐흐.)    그는 본처를 맏아들 철주와 함께 서울로 보내고 월선을 들여앉힌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월선은 어려서는 순수한 계집으로 써먹기는 좋았다. 그런데 마흔 고개가 가까워 가면서 우악스러워져 쩍 하면 한길수가 어데 가서 다른 계집을 데리고 노나 눈만 밝히고 심술을 부리는 것이었다.    (에참, 월선이 눈치가 보여서 어디 은녀를 데려와도 챌 틈이 있는가? 흥! 참 재수 없어. 처녀라면 눈독을 들이는 줄 알고 눈깔이 화등잔이 돼서 살핀단 말이야.)    순간 그의 눈앞에는 마름의 색시 춘실의 모습이 피뜩 떠올랐다.    (그래, 은녀를 삼키지 못하면 춘실이라도 데리고 놀았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오늘 응삼이를 가마골에까지 가보라고 해놨으니 이 틈에 스리슬쩍. 으 흐, 흥.)    춘실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이모네 집에서 자랐다. 이모부가 세상 뜨면서 이모계부가 들어왔는데 그자는 색정광이었다. 이모가 없기만 하면 춘실에게 슬금슬금 다가들어 손을 잡고 지분거렸다. 춘실은 능구렁이 같은 이모계부의 능욕에 신물이 나서 도망쳐 나왔다. 그녀는 우시장의 거리를 헤매다가 그만 건달 놈들에게 걸려들어 혼난 적이 있다. 그 후 춘실은 건달들과 휩쓸려 다니면서 마구 굴렀다. 하여 이모네는 춘실이 열다섯 살 나던 해에 스물다섯 살이나 연상인 응삼에게 시집보냈던 것이다.    (춘실이, 그년이 걀쭉한 게 예쁜 거야. 으흐흐, 오늘밤에 놀아 볼가? 춘실을 건사하느라고 응삼이가 야단치지만 이 어른 앞에서는 안 될걸. 흥!)    그는 눈을 지긋이 감고 걀쭉한 춘실을 끌어안는 꿈도 꾸었다. 그런데 불시에 그의 눈앞에 춘실의 몸에 휘감긴 숱한 사내들이 떠올랐다. 순간 역겨운 반감이 목구멍까지 울컥 치밀었다.    (춘실의 몸뚱이는 기생년들보다 더 더러워. 안 돼, 그년은 한물 지나간 년이야. 에- 퉤, 퉤!)     그는 다시 머리채를 치렁치렁 땋아 늘인 은녀를 떠올렸다.     (오, 은녀, 그 년 터질 것만 같은 하얀 젖무덤, 펑퍼짐한 엉덩이, 아이고 생각만해도 죽을 거 같애.그래, 춘실이 같은 건 열개를 주고서도 못 바꾸지.)    은녀 하얀 허벅다리와 엉덩이를 련상하자 한길수는 그게 불끈 일어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성욕으로 온 몸이 찡 전률했다.    "오홍!"    그가 고양이 불알 앓는 소리로 신음소리를 뱉어냈다.    “아이쿠!”   마차가 제방둑길 굽인 돌에서 그만 운주하 강바닥에 쿵 굴러떨어졌다. 하도 강둑의 팔뚝만큼 한 버드나무들이 굴러 떨어지는 마차를 조금 막아주었으니 말이지. 무슨 사고가 났을지 몰랐다.    마차가 굴러떨어지는 순간,  득호는 훌쩍 뛰어내렸다. 하지만 한길수는 마차와 함께 그만 사품 치는 차디찬 가을강물에 빠지고 말았다. 마차 밑에 깔린 길수는 강물에서 허우적거렸다. 다행히도 가을이여서 강물이 얕았으니 말이지 여름철처럼 큰물이 졌을 때 같았으면 길수는 영낙없이 물에 빠져 죽었을 것이다.    득호는 제방둑아래로 느릿느릿 내려가면서 물었다.    “주인님, 괜찮습둥?”   한길수는 물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상을 찡그린 채 호통쳤다.   “야, 이 놈아, 아이고, 번마다 사고내니?! 아이고.”   득호는 이를 쁘드득 갈았다.   (개새끼, 항상 내 머리를 개화장으로 딱딱 치던 놈. 이번에도 썩어지지 않았구나. 내 네놈을 죽이지 못한 게 한이야.)   “빨리 내 다리를 빼내라. 애고고, 아파 죽겠다. 사람을 살려라. 아이고, 나 죽는다, 죽어.”   득호가 느릿느릿 내려가 안간힘을 다해 마차 한쪽을 들었다.  그제야 길수는 마차 밑에 깔린 다리를 빼내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뭐야?   물에서 벌떡 일어난 말이 똥물을 쫙 내갈겼다. 그 통에 한길수의 번대머리는 말똥물벼락을 맞고 말았다.    “에퉤, 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 등을 깬다더니, 에퉤, 퉤. 번마다 똥물 벼락이야. 이게 무슨 꼴이람?”   한길수는 양손으로 낯에 뛴 말 똥물을 쓱쓱 닦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개자식, 마차를 어떻게 몰았으면 이 넓은 길에서 강바닥에 처박힌단 말이냐? 에, 퉤, 퉤, 더러워라. 이전에도 딱 여기서 당나귀차를 번지더니. 이제 집에 가봐라. 네놈을 가만 놔두는가. 개 놈 새끼!”   득호는 손바닥에 물을 담아 길수의 번대머리를 빡빡 닦어주면서 중얼거렸다.   “죽었는가 했는데. 죽지 않았으면 다행입지.”   길수는 아픈데 약을 올려 주는 것 같아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 개놈아, 내 죽기를 그리두 바랐느냐? 개자식! 말하는 거 보면 고의로 차를 번지지 않았어?!”   길수는 부아가 터져 똥물이 다 씻어진 번대머리로 득호의 면상을 들이받았다.   떵 소리와 함께 득호는 면상이 쥐가 밟아놓은 장마당이 돼서 강물 속에 썩박나무처럼 쓰러졌다.   “아이고, 주인님도, 살려주니까. 뜨개소처럼 뜨긴?”   길수는 강물에서 절버덕절버덕 걸어 제방둑으로 나가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개자식, 집에서 쫓아내지 않는가 봐라.”   길수는 제방 둑에 올라서서 발을 탕탕 구르면서 운주하강반이 다 떠나가게 고래고래 고함쳤다.   “저 물에 빠진 마차를 어쩌느냐? 엉?”   득호는 마차에서 말을 벗겨내면서 대구했다.   “말이나 가져가고 마차는 내일 사람들을 데려다가 끌어 올려가지.”   한길수는 야단쳤다.   “마차를 잃어버리는 날엔 네놈의 목을 썩 베서 마차에 제사를 지내겠다.”   득호는 말을 제방 둑에 끌어올려가면서 계속 맞대구를 했다.   “무슨 장사가 있어서 마차를 강바닥에서 끌어다가 가져간다고? 해가 다 졌는데 내일 와서 끌어가지.”   “무슨 일이오?”  그들이 강바닥에 떨어진 마차를 내려다보면서 한참 찧고 박고 할 때다.  생각지도 않은 병완이 돌아왔다.   “저걸 어쩌느냐? 이 놈 새끼, 마차를 어떻게 몰았으면 강바닥에 처박혔다니까. 난 마차에 깔려 하마터면 죽을 번했네.”   병완은 강바닥에 절벅절벅 내려가 마차를 들여다보더니 소리쳤다.   “득호, 마차에 말을 메우게나. 내 뒤에서 밀게.”   득호는 제방 둑에 떡 서서 두덜거렸다.    “아무리 힘이 세도 말도 못 끌어올리는 마차를 어떻게 건지겠소? 내일 마을 사람들을 데려다가 끌어올리기오.”    길수가 발을 탕 구르면서 득호의 뺨을 찰싹 갈겼다.   “냉큼 말을 메우지 못할까?”    득호는 병완이 마차를 바로 잡아 세워놓기를 기다려 말을 마차에 메웠다. 말이 앞에서 끌고 병완이 뒤에서 끙끙거리면서 힘써 떠밀자 마차는 힘겹게 한발자국한발자국 제방 둑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원래 경사도가 급하여 말이 그만 무릎을 꿇었다.    “말을 채찍으로 치게!”    병완의 고함소리에 득호는 말 잔등을 채찍으로 짱 내리쳤다. 놀란 말이 벌떡 뛰어 일어나면서 우로 껑충 뛰어올라갔다.    그때 병완은 마차 뒤끝을 번쩍 들어 둔덕 우로 떠밀었다. 마차는 제방 둑으로 올라갔다.    병완은 손에 묻은 모래먼지를 툭툭 털었다.   길수는 병완의 소 같은 힘에 혀를 끌끌 찼다.   “아직도 힘이 무짐작이군.”   길수는 분질러진 개화장을 들어 득호의 어깨를 탕 치면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개놈새끼, 네놈은 한뉘 머슴질이나 하다가 썩어질 놈이야. 죽을 번 한걸 생각하면 네 각을 다 뜯어 버려도 원수를 다 하지 못하겠다.”   “아이고, 주인님, 왜 이렇게 모질게 치오? 내일부터 내 마차를 몰지 못하면 누구 마차를 타고 명천에 갑둥?”   득호가 익살을 부리자 길수는 뺨을 찰싹 갈겼다.   “다시 마차를 몰아? 병수를 몰게 하면 했지. 마구간이나 쳐내라.”   마차는 다시 어둠을 밟으면서 느릿느릿 달려 끝내 영월동에 이르렀다.   높다란 토성 앞에서 한길수는 개화장을 짚고 쩔뚝거리면서 오만상을 찡그리었다.   한길수는 집대문 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엄살을 부렸다.    “여보, 아이고, 나 죽소.”   월선이 버선 바람으로 황급히 마루 아래로 뛰어내려 암범처럼 달려 나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영감, 어찌된 일이예요? 어데 아파요?”   월선은 한길수의 팔을 부축하다가 상을 찡그렸다.    “으, 차가와! 아니, 옷도 폭 젖었구먼요. 어떻게 된 거요? 또 허리 뚝 부러지게 기생년들하구 놀았는가요? 풍류를 즐기구 아픈 건 괜찮잖은가요?”    한길수는 월선의 살진 팔에 몸을 기대면서 오만상을 다 찌푸렸다.   “마차 번지어졌어. 아이고, 허리, 다리 다 아파 죽겠소. 아니, 팔만 부축해 되오?”    그러자 월선은 팔마저 활 놓아버리면서 발까지 동동 굴렀다.    “어데 가서 오입을 하다가 혼나고 집에 돌아와 여편네하구 생 지랄이야!”   길수는 절뚝거리면서 겨우 다리를 옮겨 디뎠다.   “그런 일 없어!”   그때 응삼의 집 방문이 배시시 열리였다.   응삼의 처 춘실이 걀쭉한 낯을 반쯤 드러내며 바깥동정을 살폈다. 은녀도 물동이를 이고 대문 안에 들어섰다.    한길수는 여자들을 보자 더 죽는 소리를 냈다.    “이 쌍년들아, 제 집 주인이 아파 죽어도 대갈도 내밀지 않느냐? 저런 못된 계집들이라고야. 아이고, 나 죽는다, 나 죽어.”   그제야 춘실은 끌신을 작작 끌며 달려 나와 한길수의 한쪽 팔을 부축했다.   “아니, 주인어른, 어쩌다가 이렇게 모질게 다쳤어요?”    길수는 침방울을 튕기면서 고양이 불알을 앓는 소리를 쳤다.    “아이고, 저 득호란 녀석이 마차를 운주하에 처박았댔어. 아이고.”     “저런! 우둔한 놈. 그래 마차는 마사지지 않았어요?”    월선이 마차를 벗기는 득호를 흘겨보면서 묻는 말에 길수는 월선을 활 밀치면서 버럭 화를 냈다.    “저리 비켜! 내 상한 게 중요하냐? 그따위 마차가 중요해?”    그제야 월선은 혀를 홀랑 내밀었다.    “당연히 우리 주인님이 중요하지요. 해해해.”    월선은 부엌 문선을 잡고 서있는 은녀가 눈에 뜨이자 호통 쳤다.    “이년아, 멀쩡히 서서 뭘 해?! 주인어른을 부축하지 못하고.”    월선은 참말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차는 격이라고나 할까.    은녀는 머리를 숙이고 바삐 춘실과 함께 한길수를 거들어 마루에 올랐다.   한길수는 겨우 걷네 마네 하면서 호통 쳤다.    “저리, 피하란 데도! 보기도 싫다.”    월선은 눈을 흘리기면서 영감의 팔을 활 놓아 버렸다.    (에구, 어째, 어떤 땐 내 궁둥이를 졸졸 묻어다니다가, 흥! 이젠 다 파먹은 김치 독이라고 헌신짝 버리듯 하려고? 흥, 바람둥이 개 버릇을 개를 떼 주겠어? 양태머리 체네 보니 또 싱숭생숭해나나 보지.)     방안에 들어가자마자 한길수는 앓음 소리를 내며 쿵 쓰러졌다.    “아이고, 나 죽는다. 아이고, 내 다리야, 허리야! 여보, 젖은 옷을 벗기고 새 걸로 바꿔 입혀주오. 허리에 요도 깔아주오. 아이고, 저기 냉수도 한 사발 떠오오.”     월선은 밀창을 활 열고 들어와 두덜거렸다.    “어떤 땐 ‘저리 피켜!’라고 호통질치더니, 흥! 어떤 땐 시중이 끝이 없어? 쳇!”    월선은 영감의 젖은 옷을 와락와락 벗겼다.    한길수는 황급히 사타구니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월선은 춘실과 은녀를 올려다보면서 호령햇다.    “잠간만 나갔다가 들어오너라.”    춘실과 은녀가 나가면서 미닫이를 닫아버렸다.    월선은 사타구니에 걸친 젖은 것마저 벗기고 고리궤짝 안에서 새것으로 꺼내 바꿔 입혔다. 그리고 고리궤짝 우에 얹어놓은 요를 와락와락 내리워 길수의 허리 밑에 펴주면서 두덜거렸다.    “에구, 한 둬달은 편안히 자게 됐구먼.”     한길수는 신음소리를 연신 내면서 요를 깔고 들어 누우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아이고, 남은 아파 죽겠는데 계속 악다구니질이야.”    월선은 젖은 옷을 훌 안아 미당이를 열고 활 내던졌다.    “은녀야, 그걸 씻어 말리어라. 이 바쁜 양반이 래일 입고 가야지.”    은녀가 젖은 옷을 들어 부엌 쪽으로 내려갈 때였다.    “아이고, 나 죽는다. 춘실아, 들어오너라. 은녀도. 얼른!”    한길수는 미닫이를 열고 들어오는 춘실을 보더니 우멍 눈에서 한 가닥의 이상한 빛이 번쩍였다.    “춘실아, 여기 다리를 좀 주물러라. 아파 죽겠다.”   춘실은 감히 손을 척 대지 못하고 월선의 눈치를 올려다보았다.   월선은 또 빈정거렸다.    “주물러 줘라. 젊은 년의 손길이 더 좋은 모양이야.”    월선은 아예 안방에서 훌 나가더니만 미닫이를 쾅 닫아버렸다.    (허리와 다리를 상한 놈이 설마 일을 치겠어? 흥!)   월선은 안방에 대고 소리쳤다.    “은녀야, 넌 부엌에 내려와서 저녁상이나 차려라.”    “예.”    은녀는 위방에서 나와 부엌에 내려가 젖은 옷을 함지에 불러놓고 저녁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것부터 먼저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위방에서 색정광 한길수가 수작을 피우는 소리가 역겹게 들리었다.    “아이고, 좀 우로 올라가면서 꽝꽝 주물러라. 오, 오호, 그래, 어 시원하다.”    춘실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리었다.    “주인어른, 우리 집 사람은 함께 오지 않았어요? 아니면 우시장 공지에 있어요? 좀 우리 집사람을 많이 봐주세요.”    “그래, 근심하지 말라. 오늘 신흥동에 인부들을 모집하라고 보냈다. 에구, 아픈 데를 그렇게 주무르면 어찌나? 살살 만져라. 응, 응, 오호, 그래, 그렇게 살살. 그래. 아, 참 좋아.”    월선은 아래 방에서 위방에 대고 입귀를 비쭉거렸다.    (에구, 연놈들이 한창 논다. 음특한 놈, 허리 분질러져 가지고도 또 거기 근질거리는 모양이지.)    이때 안방에서 길수의 소리가 울렸다.    “거게 은녀 있냐? 춘실이 힘들어하니까. 이젠 네가 올라와 문질러라.”    월선은 듣다못해 위방을 향해 소리쳤다.    “아니, 저녁밥상을 차리는 애를 불러 가면 저녁은 언제 들겠어요?”     “안 먹어도 돼. 아파죽겠는데 저녁은 무슨 놈의 저녁. 아픈 데부터 만져야지. 으 흐, 시원하다.”     월선은 두덜거리면서도 은녀를 올라가라고 눈짓했다.    은녀는 행주에 손을 닦고 나서 위방 미닫이를 주르륵 열고 들어갔다. 이윽고 위방에서 한길수의 만족한 말소리가 들렸다.     “어, 시원하다, 시원해. 에구, 젊은 년의 손이 다르긴 달라. 보들보들한 게, 어, 시원하다. 시원해.”    아랫방에서 월선은 위 방에 대고 “퉤!” 하고 침을 뱉더니 입귀를 비쭉거렸다.  
24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 댓글:  조회:2158  추천:0  2015-05-14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3장 운주동         1. 경성 힘장사         어느 날 하늘에서는 거위털 같은 함박눈이 푸실푸실 니렸다. 그러나 성칠은 말을 타고 눈길을 헤치면서 사냥 길에 나섰다. 검둥이는 여느 때처럼 앞에서 코로 킹킹 냄새를 맡으면서 달려 나갔다.       성칠은 재수 없어 명천군 산골에서 박달령까지 넘으면서 고생했건만 토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성칠은 한길수가 은녀를 빼앗아 갈 예산을 하는 눈치가 보이는지라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그럭저럭 꿩 사냥이나 하면서 들어 가다나니 명천의 원시림도 벗어나고 경성군 주을면의 어떤 눈 덮인 산기슭에 이르렀다. 명천의 산보다는 달리 잔나무가 우거졌을 뿐이었다.      그때 웬 중년사나이가 애들 둘을 데리고 무릎이 펑펑 빠지는 산기슭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사냥군인가?)      산에서 젤 두려운게  야수보다도 사람을, 특히 사냥군을 만나는 것이다.      순간 성칠은 총가목을 으스러지게 쥐고 경계의 눈초리 꼿꼿해졌다. 그런데 중년사나이와 애들은 손에는 총도 없이 빈 손이 아닌가?      (그럼 나무군인가?)     그런데 손에 낫도 도끼도 들지 않고 맨 바 줄만 어깨에 메고 터벅터벅 올라오고 있지 않는가.     그 사내는 산 속의 나무들을 둘러보더니 어깨의 바줄을 벗어 애들에게 건네주었다. 뒤이어 그 사내는 팔뚝만하고 대여섯 길만큼 한 나무를 손으로 잡고 “윽!” 하고 어깨로 떠밀어서 툭 끊는 것이었다.      애들이 나무를 척척 모아 놓고 바 줄로 꿍꿍 묶어놓는 것이었다.       (정말 괴력을 가진 힘장사구나.)      칠성은 말에서 내려 말고삐를 잡고 스적스적 다가가면서 인사를 건네었다.      “여보시오. 과연 힘장사구먼. 도끼도 쓰지 않고 이 실한 나무를 어깨로 툭툭 끊다니. 쯧쯧쯧.”      성칠은 혀를 끌끌 찼다.      그 사내는 손을 마주 툭툭 쳐서 눈을 털면서 성칠과 적토마를 엇갈아보면서 말했다.        “어데서 온 양반인지는 모르겠소만. 우린 대대로 이 지방에서 살면서 도끼를 쓸 줄 모르고 땔나무를 했다오.”       성칠은 그 사내를 우러러보며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알고 지내기오. 난 명천군 상우남면 운주동의 사냥꾼 김성칠이오.”       그 사내는 통쾌하게 대답했다.       “경성군 주을면 용천동 리원삼이오. 이 애들은 내 맏이 장활과 둘째 장은이오. 얘들아, 어서 인사해라.”       애들은 낯선 성칠을 힐끔 쳐다보더니 어색하게 그저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리원삼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시골에서 자란 애들이라서 수줍음을 많이 타 인사할 줄을 잘 모르오.”      성칠은 저 산 아래 바라보이는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여기 멧돼지나 호랑이 같은 큰 야수들이 출몰하지 않소?”      리원삼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으면서 넉두리처럼 중얼거렸다.      “여긴 멧돼지랑 호랑이랑 많소. 여름과 가을 한철에는 그 놈의 멧돼지하구 곰 성화로 감자농사와 옥수수농사를 망쳐먹는 때가 많소. 그런데 온 마을에 사냥총 한 자루 없으니 그 놈들을 어디 당해내겠소?”      성칠은 머리를 끄덕였다.      이때 원삼은 성칠의 아래위를 살펴보더니 뒤말을 이었다.      “이보시요. 먼 곳에서 왔는데. 자, 누추한 대로 우리 집으로 가서 토장국이나 먹고 사냥을 하오.”      성칠은 그러지 않아도 언 주먹밥을 먹고 눈보라를 무릅쓰고 헤매느라고 시장기가 들었다. 그리하여 리원삼의 집에 가서 잠간 쉬고 싶었다. 황차 황소처럼 우람지게 생긴 리원삼이가 사내대장부 같아 마음에 들었다.      “그러기요.”       리원삼은 어깨로 사발 밑굽 같은 나무 몇 대를 더 떠밀어 툭툭 끊어 큰애의 손에서 바 줄을 받아쥐어 대여섯 대씩 묶어 두 단을 만들었다.      이때 둘째 장은이가 손에 눈덩이를 쥐여 형 장활에게 뿌렸다. 면바로 장활의 낯에 맞아 눈만 팬들거렸다.     “이 새끼, 어디 덤벼봐라.”       맏이는 동생에게 연속 눈을 쥐여 뿌렸다.       “그만두지 못하겠니?”       원삼이 눈을 뚝 부릅뜨자 애들은 그제야 머리를 수굿하면서 손에 쥐였던 눈을 버리고 손을 톡톡 털었다. 그리고 땔나무 하나씩 골라잡고 산 아래로 끌고 내려갈 잡도리를 하는 것이었다.       성칠은 원삼에게 권고했다.       “나무 단을 말 잔등에 싣고 가기요.”      그러나 원삼은 사양했다.       “아니, 그만두오. 산에서 말보다 내 어깨가 낫소.”      성칠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때 원삼은 긴 머리 태를 목에 몇 번 감고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어 비볐다. 뒤이어  그 큰 나무 단을 두개나 “엇차!” 소리와 함께 단번에 오른쪽 어깨에 척 둘러메고 산 아래로 발길을 돌렸다.     “가기오.”     성칠은 입이 함박만큼 딱 벌어졌다.     “아니, 그러지 말고 내 말 배때에 한단씩 달아매면 되오. 저 죄꼬만 애들이 어떻게 나무를 끌고 간다고 그러오.”     원삼은 머리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일없소. 그 애들도 어려서부터 나무를 끌고 내려가 놔서 괜찮소.”     원삼은 나무단을 두 단이나 메고 눈 덮인 산비탈에서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성칠도 힘을 꽤나 썼지만 원삼의 로지심 같은 괴력에 저으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나무단을 메고 눈 덮인 산비탈을 평지를 걷듯 내려가는 원삼의 억대우 같은 뒤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애들이 끌고 내려가는 나무 두대를 바로 묶어 말안장에 매여 끌고 원삼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갔다. 검둥이는 버릇처럼 성칠의 앞에서 귀 벌쭉해서 달려 나갔다.      원삼은 중도에서 한 번도 숨도 돌리지 않고 산기슭까지 내려가 한 헐고 낮은 초가집 울안에 들어가 나무단을 쾅 메쳤다.       그는 뒤에서 말에 나무 두 대를 매 끌고 오는 성칠과 두 아들을 돌아보았다.         “에이, 사람도 끝내 말로 끌고 오네.”        성칠이 울안에 들어섰을 때 집안에서 키가 작달막한 중년여인이 나왔다.       “인사하오. 명천군 영월동에서 온 사냥꾼 김성칠이오.”       “반갑습구마.”       원삼의 아내는 허리를 굽혀 함경도 말로 인사하고는 집안에 들어가더니 부엌에 내려가 불을 일구고 솥을 부시였다.       성칠은 적토마 배때에 걸어놓았던 그물주머니에서 꿩 두 마리를 꺼내 들여갔다.      “자, 사냥을 많이 하지 못하였소. 이걸 끓여 먹기오.”      “야, 양양 맛있다. 꿩고기 맛있다.”      “양양 맛있다. 오래오래 맛있다.”      애들은 알락달락한 꿩을 보자 퐁퐁 뛰면서 노래를 불렀다.      “아니, 이 눈 덮인 산속에서 헤매면서 잡은걸 주다니. 참, 자넨 빈손으로 집에 가겠소?”       “근심하지 마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사냥하면 될게 아니겠소.”       원삼은 마지못해 꿩 두 마리를 받아 아내한테 주었다.       그러자 묵직한 꿩 두 마리를 받은 원삼의 아내는 “아니, 두 마리나!” 하고 여간 감탄해마지 않았다.        성칠은 사냥총을 들고 집안에 들어가 벽에 기대 세워놓고 원삼과 마주 좌석을 정해 앉았다.       원삼이가 털모자를 벗자 고슬고슬한 양머리가 드러났다. 원삼의 양머리라든가 툭 튀어나온 이마아래 쑥 꺼져 들어간 눈이 사내내장부의 매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나이에 비해 때 이르게 이마에 패인 밭고랑 같은 주름살이 지지 않았겠는가. 그 주름살은 풍상고초를 겪으면서 살아온 원삼의 흘러간 인생길을 보여주는 상 싶었다.        원삼의 아내가 꿩 깃털을 한대씩 뽑아주자 애들은 좋다고 깃털을 기발처럼 쳐들고 밖으로 뛰어나가 깡충깡충 뛰놀았다.       성칠이 집안을 둘러보니 서발막대기를 휘둘러도 걸칠 것이 없었다. 덕 우에 놓인 함지와 조왕 쪽에 반지르르한 쌀독 몇 개, 벽 쪽에 놓인 농짝 두개밖에 눈에 뜨이는 것이 없었다. 까래는 따닥따닥 기워 볼품없었다.      “이 마을에 모두 몇 호 살고 있소?”        성칠의 물음에 원삼은 곰방대에 담배를 쑤셔 넣고 불을 붙이면서 대답했다.       “한 십여 호 사오. 내 춘삼 맏형님과 인삼 둘째형님, 무삼 동생도 이 마을에서 사오. 우리 집안은 몇 대를 이어 이 골 안에서 살아왔소. 그런데 죽물이나 겨우 먹는 신세요.”        성칠은 집안 살림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아까 들으니 강냉이농사나 감자 농사를 믿고 사는 거 같은데 곰과 멧돼지 성화에 어떻게 살겠소?”      원삼은 가래짝 같은 손으로 무릎 우에 떨어진 담배 재를 털면서 한숨부터 내 쉬었다.      “살기 어렵소. 황무지를 일궈 강냉이하구 감자를 심어먹고 몇 십리 동쪽으로 나가서 동해바다에서 물고기나 잡아 먹고 살지. 그런데 여름과 가을에는 정말 그 놈 곰 멧돼지 성황에 강냉이 밭과 감자밭이 절단 난단 말이오. 하도 산에 나무가 많아서 땔나무걱정은 하지 않지만 이 골안에서 살기 힘드오..”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술이 서너 순배 돌자 원삼은 우묵한 눈을 슴벅이면서 성칠을 보고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초면강산이지만 부탁 하나 해도 되겠소?”      “무슨 부탁이 있으면 말하오.”       원삼은 이런 말을 꺼냈다.       “명년 여름이나 가을에 우리 여기 와서 멧돼지하구 곰 사냥을 해주오. 그 놈의 멧돼지하구 곰 성화에 어디 감자하구 강냉이 농사를 해먹고 살겠소?”       성칠은 두 말 않고 서슴없이 대답했다.       "알았소. 꼭 오지."       원삼은 희쭉 웃으면서 술잔을 쳐들었다.       "감사하오. 자, 한잔 쭉 들기오."      성칠은 한장 굽내고 술잔을 밥상에 놓았다.      원삼은 껌정눈을 슴벅이면서 성칠한테 물었다.      “손님네 명천은 그래도 우리 여기보다는 살기 괜찮지 않소?”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우리 거기도 한가지오. 밭이 몇 무 안되는데 그것도 한길수라는 지주네 땅을 붙이는 게요. 소작료를 내고나면 멀건 죽물도 마시기 힘드오. 그래서 나는 일년 사지장철 사냥을 하느라고 산에서 헤매오. 사냥을 하는 게 농사를 짓는 것만 퍽 나으니까.”        그들은 살림살이 말을 하다나니 마주 앉아 한숨만 푸푸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성칠은 부엌의 솥에서 쌕 김이 쌕 뿜겨 나오는 것을 보자 배를 굶어온 적토마와 검둥이가 생각났다.      “아차, 깜짝 잊었구먼. 집에 말먹이풀이 좀 없소? 벼 짚이라도 좋소.”      그러자 원삼은 구척 같은 몸을 움쭐 일으켰다.      “있소. 사냥꾼이 말을 굶겨서야 안 되지.”       성칠은 원삼을 따라 나가 벼짚을 한 아름 안아다가 작두에 썩썩 썰어서 외양간의 암소와 함께 말을 먹였다.       뒤이어 그들이 되들어왔을 때에는 구들복판에 꿩고기국과 막걸리동이 한동이 더 올랐다…      그날 성칠은 원삼과 함께 꿩고기를 안주하여 권커니 작커니 하면서 막걸리를 두 동이나 마시였다. 원삼 일가도 성칠의 덕에 꿩국을 실컷 먹었다.      점심상을 물리자 성칠은 원삼이부부가 말리는 것도 마다하고 말을 타고 사냥 길에 다시 올랐다.       하늘이 무너졌는지 함박눈이 앞을 가리지 못할 지경으로 수림에 무너져내렸다. 검둥이는 킹킹 거리면서 앞에서 달렸다.                                                                       2. 날강도 삼형제        성칠이 눈덮인 수림에서 사냥하면서 한 심심산골 마을의 앞산에 이르렀다. 적토마도 하루 동안이나 눈 덮인 산을 달리면서 풀 한줌 먹지 못하여 지칠 대로 지쳤다.       성칠은 열기라고는 없는 겨울해가 느릿느릿 져 가는지라 산 아래 바라보이는 마을로 내려갔다. 깎아지른 절벽아래 눈 덮인 마을 어귀에  고래등처럼 덩실한 토성 안 집 한 채가 있었다.       성칠은 마을 어귀에 있는 그 첫 집 대문을 쾅쾅쾅 두드렸다.       대문이 벌컥 열리더니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곱사등이 중년사내가 마주 나왔다. 얼굴은 아주 시끄러워 하는 표정으로 바위돌처럼 퍼러덩덩하게 굳어 있었다.      “웬 일인가?”      성칠은 말 잔등에서 뛰어내리면서 대답했다.      “주인님, 말먹이 벼짚이라도 한 단 있으면 좀 주겠습둥. 말이 온 하루 굶어서 더 갈수 없구만.”       곱사등이 사내는 적토마를 아래 위 훑어보더니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아이고, 참 좋은 말이구먼. 말먹이 있고 말구요. 자, 저기 마구간으로 끌고 들어가 매 놓으라구. 말먹이를 내다주리다.”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적토마를 마구간에 매놓았다. 이윽고 빠드득빠드득 눈을 밟는 소리 마구간쪽으로 다가갔다. 곱사등이 말먹이를 소쿠리에 담아다가  마구간 구유에 쏟아놓았다.     성칠은 곱사등에게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했다.     “고맙소이다. 주인어른, 훗날 내가 사냥을 하게 되면 꼭 그 은공을 갚아드리오리다.”     곱사등은 퉁퉁하게 생긴 생김새보다는 다르게 아주 해박하고 싹싹하게 놀았다.     그는 허리를 굽신거리면서개여올렸다.      “천만의 말씀을요. 지나가던 길손에게도 떡을 대접할 함경북도 인심에 요까지 거야 무슨.”     곱사등은 성칠의 손을 뜨겁게 잡아 집안으로 끌었다.     “자, 루추한 우리 집에 왔으니 막걸리라도 한잔 마셔야지요.”    그들이 집안으로 들어가자 검둥이는 밖에서 망을 보듯이 엉덩이를 땅바닥에 붙이고 귀가 뻘쭉해 꼿꼿이 세우고 사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성칠이 집안에 들어가 보니 아낙네도 없는 집안이 아주 으리으리했다. 이윽고 성칠이 곱사등과 함께 한창 막걸리를 마실 때였다.     밖에서 빠드득빠드득 눈을 밟는 어지러운 소리와 함께 검둥이가 짖어대는 소리가 “왕 왕 왕” 났고 말이 “오 호 홍” 하고 호용하는 소리가 났다.     불길한 느낌이 든 성칠은 벌떡 일어나 벽에 기대놓은 사냥총을 집어 들고 뛰쳐나갔다.     그가 문 밖으로 한발 내디뎠을 때였다. 뒤에서 쉭 바람소리가 났다. 성칠은 휙 몸을 돌려 돌아보았다. 허나 늦었다. 곱사등이 씽 달려나오면서 방망이로 성칠의 뒤통수를 딱 내리쳤다.     딱! 딱!    방망이가 이마를 아찔하게 내리쳤다. 순간 성칠은 눈에서 불찌가 일고 몸이 휘청거리었다.    곱사등은 입술을 깨물고 방망이로 재차 치려고 했다.      그때 검둥이가 아가리를 짝 벌리고 곱사등에게 다려들었다. 검둥이는 날카로운 톱이로 곱사등이 손목을 물어뜯었다.       "아이구! 이 놈 개새끼!"      곱사등은 방망이를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검둥이가 짖어대는 소리에 성칠은 정신을 차렸다. 성칠은 뒤 골을 손으로 만지더니 간신히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면서 버티고 섰다.       그는 눈앞에 검둥이와 싱갱이 질 하는 곱사등을 보자 눈에서 복수의 불길이 타올랐다. 마구간에서 마적과도 같은 괴물의 사내가 둘이나 비수를 뽑아들고 뛰쳐나왔다.       마구간에서 적토마가 “오 호 홍!” 하고 고함치면서 뒤 발질로 키꺽다리를 차 넘겼다.     성칠은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고 정면으로 달려드는 난쟁이를 소발 통 같은 주먹으로 쳐 눕히었다.     그는 오른발을 들어 장단지에서 비수를 뽑아들었다.     말에 채워 쓰러졌던 꺽따리가 일어나면서 비수를 들고 허공 날아 나오면서 성칠의 목을 겨누고 찔렀다.      성칠은 옆으로 홱 피하면서 발길로 비수를 잡은 그자의 손목을 탁 찼다.       쒹-      비수가 마구간 천정에 날아가 꼽히면서 부르르 비명을 지르면서 떨었다.      성칠은 그자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그자는 배를 끌어안고 “억!” 소리와 함께 앞으로 푹 쓰러졌다.      성칠은 키꺽다리 허벅다리에 비수를 콱 박았다.     동료가 쓰러지자 질겁한 난쟁이는 마구간 뒤 문을 박차고 삼십육계 줄행랑이 제일이라고 꼬리 빳빳해 줄행랑을 놓았다. 그러자 검둥이한테 귀를 물리어 떨어진 곱사등은 귀를 싸쥐고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했다.      “제발 살려주오.”      성칠은 한발을 날려 곱사등의 아래 배를 걷어찼다.      “아이쿠!”     곱사등은 아래 배를 붙안고 앞으로 쿵 무릎을 꿇었다.     성칠은 쪼그리고 앉아 비수로 곱사등의 턱을 쳐들고 위엄 있게 고함쳤다.      “봐라. 내가 누군가! 명천에서도 한다하는 씨름꾼 김병완의 맏아들이다. 네까짓 세 놈이 아니라 열 놈이라도 달려들어 봐라. 한주먹에 다 때려 죽여 버릴 테다.”      “아이고, 병완 장수의 선성은 들은 지 오래오. 제발 살려 주오. 저 적토마가 욕심나서 그랬지 장사를 살해하자는 생각은 없었소.”      성칠은 비수에 묻은 피를 곱사등의 팔소매에 쓱 닦은 후 장 단지 칼집에 찔러 넣고 을러멨다.     “네놈이름이 뭐냐?”     곱사등은 구레나룻을 어루만지었다. 그는 성칠이 자기를 죽이지 않을 눈치를 보자 삶의 용기가 났다. 그는 상을 찡그리며 아래 배를 붙안은 채 일어나 앉으면서 쥐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난 경성군 주을면 백승만이요.”      성칠은 머리를 돌려 마구간에 쓰러진 키꺽다리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저건 누구냐?”     “내 동생 승핵이오. 야, 승핵아, 일어나 형님께 살려달라고 절을 해라. ”    “아파 일어두 나지 못하겠는데 무슨 놈의 절이요. 형님, 살려줍소.”       성칠은 또 따지고 들었다.      “달아난 난쟁이새끼는?”      “내 막내 동생 승철이오. 이 주을면에서는 우리 삼형제만 나서면 울던 애들도 울음을 그쳤소. 그런데 오늘 적토마를 훔치려고 그만 형님을 몰라보고 건드렸는데 제발 목숨만 살려주오.”       성칠은 그제야 이마가 아파 손으로 만져보았다. 끈적끈적한 무엇이 만지었다. 손을 내리워 보니 손에는 검붉은 피가 즐벅했다.      “아이고, 장사, 제발 살려주오."      "누가 니 형님이야?"     "난 아직도 장가도 들어보지 못했소. 우에는 칠순에 나는 늙은 엄마가 있소. 내가 죽으면 누가 우리 엄마를 먹여 살리겠소?"      눈에서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리던 성칠은 피씩 하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가소로운 놈들, 너희들 노모를 생각해 목숨은 살려주겠다. 대신 집에 있는 금은붙이를 몽땅 꺼내 보자기에 싸놓아라. 네놈들이 훔친 금은붙이로 가난한 백성들을 구해야 하겠다.”      “살았구나.”     승만은 간사한 웃음을 흘리면서 집에 들어가 반들반들한 농궤에서 금빛이 번쩍번쩍하는 금덩이 몇 덩이와 새하얀 은 몇 덩이를 보자기에 싸서 성칠에게 건네주었다.     이때 밖에서 또 검둥이가 짖는 소리와 적토마의 호용수리가 들리었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칠은 사냥총과 금은보자기를 들고 밖에 나섰다. 마을 사람들이 먼발치에 서서 웅성거리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자 성칠은 마루에 올라서서 고함쳤다.      “이건 승만이 삼형제가 마을사람들과 길손들을 털어 모은 검은 금은붙이입니다. 마을에서 누가 곤난하면 썩 나서시오. 이 금은붙이를 가져다가 쓰시오. 자, 가져 가시오.”      그러나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옆에서 승만이 쏘아보는데 누가 감히 그 금은붙이를 가져간단 말인가?     눈치챈 성칠은 이렇게 말했다.     “알았소. 여기 이 도적놈 승만이 삼형제가 무서워 가져가지 못한단 말이지. 그럼 좋소. 이후에 가만히 명천군 상우남면 영월동에 있는 이 성칠의 집에 와서 금은붙이를 가져다가 써도 됩구마.”      이때 승만의 키꺽다리동생 승핵이 벌벌 기여마당에 나왔다.     원래 성칠은 승핵의 요해처를 찌르지 않고 허벅지를 찍어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쓰러 눕히기만 했던 것이다.      성칠은 적토마도 배불리 먹은 것을 보고 마구간에 가서 말 고비를 벗겨가지고 나왔다. 그는 사냥총으로 곱사등이 승만의 구레나룻을 가리키면서 다시 으름장을 놓았다.      “네 놈 삼형제 다시 무고한 길손을 해치기만 해봐라. 내 언제든지 달려와 주리를 틀어놓을 테다.”     승만은 기가 꺾여 허리를 굽신거리면서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예, 예. 다신 안 그러겠소.”     성칠은 적토마에 뛰어올라 검둥이를 앞세우고 눈길을 달려 그 마을을 떠났다.     적토마가 뛰어가는 뒤에서는 눈보라가 무서운 비명소리를 지르며 사납게 불어쳐 절벽아래 눈 덮인 마을을 단숨에 집어 삼킬 것만 같았다. 눈보라 속에 삼형제 꿍꿍이는 삼라만상을 감추고 말았다.                                3. 되찾아온 은녀        토끼꼬리만한 겨울 해가 눈보라 속에서 뒹굴다가 서산으로 그물그물 넘어가고 있었다.       성칠은 사냥에 나섰다가 경성 산골마을 여인숙에서 날강도 삼형제를 만나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번했다. 그는 살아 집으로 돌아온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은녀가 되 붙잡혀 한길수 집에 부엌 여로 되들어가지 않았겠는가!      한길수는 성칠이 준 웅담을 다 달여 먹었지만 신기를 돕지 못했다고 하면서 가짜 웅담에 속았다고 생떼를 썼다. 그는 은녀가 이제도 3년은 부엌 여를 해야 빚을 물수 있다고 강다짐으로 은녀를 끌어갔던 것이다.     성칠은 분이 꼭두까지 치밀어올랐다. 그는 한길수를 찾아가 한바탕 따져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찌나 말리는지 그 자리에 물앉았다.    밖에서 눈보라가 윙 윙 휘몰아치는 초겨울의 어느 날 달밤이었다.    검둥이가 요란스럽게 “왕, 왕, 왕.” 요란하게 짖어댔다.    기준이 문을 열고 내다보니 아닌 밤중에 상판이 길쭉한 응삼이 한길수를 부축해 개울을 건너 헐금씨금 올라오고 있었다.    기준은 집에 들어가 아버지한테 알렸다.     병완은 황급히 문밖에 나가 마중했다.     “이거 어떻게 돼 이 밤에 우리 집에 다 오오?”    한길수는 개화장으로 눈 덮인 땅바닥을 쿡쿡 찌르면서 거들먹거렸다.    "에헴, 그래 그간 잘 지냈는가?"    어조마저 전에 없는 친절을 보였다.    “양, 어서 집안에 들어가기요.”    병완은 팔을 들어 집 쪽으로 안내했다.     한길수와 응삼은 아주 거만스레 집에 들어가 틀스레 타리대를 치고 앉았다.     창준은 길수에게 인사하고 나서 무슨 일로 찾아 왔나 궁금해 눈치를 살폈다.     응삼은 산더미 같은 병완을 마주 바라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런 우직스러운 놈은 아들과 며느리 말처럼 얼리고 닥쳐야지. 맨 힘으로는 꺾을 수 없어.)    “에헴, 병완이, 우린 몇 십 년 전에 씨름판에서 익힌 친구지.”    병완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내밀 듯 하는 그 한마디 말에 한길수를 흘끔 쳐다보았다.     “땅을 밟고 하늘을 떠인 사내대장부들이 친구 사이에 목숨을 내놓고 아까울 게 있는가? 이게 사내대장부의 의리심이란 말이요. 당신이 이 골 안에 나를 믿고 왔는데 잘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네.”      선심을 쓰는 그 말에 병완은 해가 서산에서 뜨나 자기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정주에 앉아 두 어른의 말을 듣던 성칠과 창준을 비롯한 온 집식구들도 서로 마주 바라보면서 이상야릇해 했다.     병완은 가타부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담배 물 주리에 담배를 꿍꿍 쑤셔놓으면서 한길수의 뒷말을 기다렸다.     이때 길수는 번들이마에 돋는 식은땀을 뚝뚝 찍더니 응삼에게 눈짓했다.     응삼은 보자기에 싼 묵직한 무엇을 척 병완의 앞에 내놓았다.     “헤헤, 병완 어른, 받소. 이건 우리 주인어른이 겨울나이 쌀이나 사라고 주는 약소한 선물이오.”      응삼은 그 자리에서 보자기를 헤쳐 보였다.      백설같이 번쩍이는 흰 은덩이는 피뜩 보아도 스무 냥은 실히 되는 것 같았다. 은덩이는 등불 빛에 반사돼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한길수 마름질을 십 여 년이나 해온 응삼도 이렇게 많은 은덩이를 선물로 가진 적이 없었다.     “이건 무슨 은덩이요?”     한길수는 담배대통을 길게 빨아 퍼런 연기를 후 내뿜더니 말했다.      “사내대장부끼리 에둘러서 말하지 않겠소. 자네가 우리 집 도감이 돼 주게나. 응삼은 장부나 관리하고 동생이 도감이 돼 날 도와 모든 걸 관리하면 오죽 좋겠나. 년 말에 땅값에서 이렇게 줄게.”      한길수는 두 손을 펴대더니 엄지손가락 하나를 꼽아 보였다. 뜻인즉 열 분의 하나를 주겠다는 뜻이었다.     참말로 돼지에게 겨를 주고 살점을 먹으려는 심보였다. 병완을 앞잡이로 내세워 영월동의 가난한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면서 콩물주머니를 쥐여 짜듯 해보려는 심보가 아닌가!    “이 은전 받을 수 없소.”    병완은 은보자기를 길수의 앞으로 쓱 밀어주었다.    “이 사람아, 난 아주 좋은 뜻으로 주는 게거늘 뭔가?”     길수는 다시 은보자기를 병완의 앞에 밀어주었다.     “내가 그만하면 자네를 봐주는 건데 뭐가 모자라나? 이 영월동에서 일인지하 천인지상 자리에 올려 세우겠다는데도.”     대뜸 길수는 낯에 주름살이 쫙 퍼지더니 병완의 너부죽한 얼굴을 흘금거렸다.      담배만 뻑뻑 빨던 병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당신네 집에 가서 머슴을 살지 못하겠소.”     그러자 길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근심하지 마오. 자네를 보고 우리 집에 와 있으라는 게 아니요. 그저 며칠에 한 번씩 일이 있을 때마다 와서 도와주면 되네.”     병완은 그저 묵묵히 앉아 애꿎은 담배물주리만 뻑뻑 빨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응삼이 혀를 날름거렸다.    “헤헤, 우리 주인어른은 넓은 마음을 먹고 선심을 쓰는데 이 은덩이를 받아주오. 세상에 후회 약은 없으니까.”     병완은 응삼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응삼이는 혀를 홀랑 내밀더니 얇은 입을 꼭 다물어버렸다.     병완의 얼굴에는 근심에 찬 검은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집안에는 쥐 죽은 듯이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한참 후 병완이가 담배 물 주리를 담배 재떨이에 툭툭 털어 짓눌러 꺼버리고는 쇠 덩이를 콘크리트바닥에 굴리는 듯 하는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음, 먼저 요구가 있는데 들어주겠는가?”     길수는 병완의 앞으로 다가앉았다.     “어디 말해보게나. 내 어련히 들어주지 않을라고.”    “은녀를 돌려보내주게나.”    길수의 눈에는 은녀의 풍만한 젖가슴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아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째? 은녀를 며느리로라도 삼으려는가? 듣자니 이 집 맏아들과 은녀가 눈이 맞아 돈다던데.”    병완은 똑바로 한길수를 보면서 정색했다.     “자넨 생떼 질을 작작 쓰게나. 창렬이 페병에 먹으려던 곰의 열을 주고 빚을 다 물었는데도 약효가 없다고? 당장 은녀를 돌려보내주게나.”     길수는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길수는 병완을 끌어당기려면 그 요구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응삼이 옆에서 설설 기면서 슬그머니 길수의 무릎을 톡톡 치면서 뱁새눈을 질끈 감아보였다. 그러자 길수는 마음이 아픈 대로 대답해버렸다.     “그렇게 합세. 또 무슨 요구가 있는가?”     “없네. 이 은전은 가져가게. 이게 없어도 난 살만하네. 또 이담에 이자에 이자를 받으려고 들면 난 줄 은덩이가 없네.”      “아니, 이 길수가 언제 그렇게 옹졸했다고? 이건 선물로 주는 거네. 누가 빚 문서에 올렸는가? 에참, 그럼 이렇게 결정하구 난 가겠네.”     병완은 말리지 않았다.     응삼의 감아버린 듯 하는 뱁새눈에는 간사한 웃음이 어리어 있었다.    한길수가 은덩이를 두고 가버리자 성칠은 중간 방에서 안방으로 올라와 병완이 앞에 와 앉았다.     “아버지, 정말로 그 쥐새끼 같은 한길수네 집에 들어갈 예산입둥?”     병완은 담배 물 주리를 두고도 손 담배를 말아 불을 붙여 물었다.    “내 뭘 그 자식에게 허리를 굽힐 것 같으냐? 한길수는 나를 얼리려고 잔꾀를 쓰는 것 같아. 흥정은 붙이고 말은 하기에 달렸다구. 먼저 임기응변해 은녀를 빼 내오고 보자.”     그제야 성칠이 한숨을 후 내쉬었다.     부자지간에 하는 말을 성희와 하옥도 정지에서 듣고 한시름을 놓았다. 그녀들의 얼굴에서 감돌던 검은 구름이 점차 가시어졌다.     이튿날 은녀는 새 초롱 속에서 놓여나온 새처럼 겨울바람이 불어오듯 사뿐사뿐 개울물가에 난 길로 하여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에구, 내 딸아, 고생이 많았겠구나.”     창렬은 마루에 서 있다가 지팡이를 버리고 은녀를 와락 끌어안고 볼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은녀는 몇 달 동안이지만 남의 집 종살이를 하여 양기가 죽었고 눈길에도 정기가 없었다. 때 이르게 은녀의 얼굴에는 잔주름이 이마를 타고 건너갔다.     뒤따라 나와 딸을 붙안은 명순도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눈물을 질금 질금 쏟았다. 곁에서 지켜보던 성칠과 병완도 묵묵히 서로 붙안은 그들 세 식구를 바라보았다.     창렬의 세 식구는 한참이나 붙안고 울다가 병완 부자에게로 돌아서더니 일제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정말 감사하오. 자네 부자간은 참말 우리 일가의 은인이오.”     병완은 창렬의 휘어 든 잔등을 툭툭 치면서 위안했다.     “별말을 다 하오. 우리 집안과 당신네 엄씨네는 세세대대로 형제처럼 지낸 한집안이 아니고 뭐요?”      엄창렬은 병이 다 나은듯 기침도 멎었다. 지팡이를 버리고 허리를 쭉 펴고 가슴을 쑥 내밀었다. 그는 병완의 부자간에게 안주를 끓여 막걸리라도 대접하려고 장작을 와락와락 안아 부엌에 들여갔다.      “이러지 말게나. 난 길수네 집에 볼 일이 있으니까 가봐야 하겠네.”     병완은 말을 마치자 발길을 돌렸다.     성칠은 허리춤에서 백설 같은 은덩이를 하나 꺼내 창렬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걸로 겨울나이 쌀을 사서 잡숬소.”     “아니, 자네 이럴 변이라고.”     창렬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성칠은 입에 손가락을 댔다.      “쉬, 말씀 말고 씁소.”      그는 은녀를 되돌아보며 눈을 찔끔해보이고는 성큼성큼 개울가로 내려갔다.      은녀는 문설주를 잡고  믿음직한 성칠의 뒤잔등을 바라보다가 동전으로 눈굽을 찍으며 돌아섰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가늘게 들먹이고 있었다.     가녀린 어깨 너머 슬픔이 처량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쓸쓸히 쏟아지는 눈발 속에 애틋한 첫 사랑의 싹이 숨어 고개를 숙이고 구슬프게 울고 있지 않는가!                                 4. 꿍꿍이       바깥에서는 아직도 눈보라가 윙윙 사납게 휘몰아쳐 게딱지 같은 초가집들이 날려나 갈 것만 같았다. 엄동설한에 어찌나 추운지 여우가 눈물을 다 흘리고 박달나무가 얼어서 탁탁 터질 지경이었다. 허나 높다란 토성 안에 자리 잡은 한길수의 집 안에는 불을 어찌나 땠는지 봄날처럼 후끈후끈해 다.     본채에서 응삼은 한길수와 마주 앉아 꿍꿍이를 꾸미고 있었다.    그는 뱁새눈이 실눈이 돼가지고 길쭉한 말상을 찌푸리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병완이 우리 집 도감을 하지 않을 거 같소이다.”      길수는 반쯤 모로 돌아앉으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건 무슨 소리야? 먹은 소 똥을 눈다고 은덩이까지 받았지. 은녀까지 찾아갔는데 안해?”     그는 속으로 응삼이 괜히 병완이가 들어와 자기 위에 앉는 것을 시샘한다고 여겼다.     한길수의 속내를 모르는 응삼은 뱁새눈을 콩알처럼 동그랗게 뜨고 정색해 말했다.     “옛날에 토끼새끼가 용왕을 속여 넘긴 이야기 기억나지 않습둥? 토끼는 거부기 등에 앉아 바다에서 빠져나가 뭍으로 오르자마자 간이고 뭐고 하나도 주지 않고 달아나지 않았고 뭡둥?”     길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건 다 옛말이지. 병완이 그렇게 쉽게 신의를 저버릴 사람은 아니야. 내가 그렇게 잘 대해주는데 언감 변심한단 말이요?”     그래도 응삼은 계속 쏭알거렸다.    “은덩이는 주더라도 은녀는 인질처럼 붙잡아둘 걸 그랬소이다.”     월선은 길수 옆에 앉아 며느리와 함께 밥상을 손수 거두다가 신경질을 썼다.      “뭐 어째? 그년을 내보낸 건 잘된 일이야. 그 굼뜬 년을 내보내고 이제 나이도 듬직하고 역빠른 여자를 들여와야네.”     월선은 밥상을 거두면서 속으로 두덜거렸다.    (저 나그네 곰의 열을 먹더니 그게 놀랍게 세졌단 말이야. 항상 은녀 몸을 흘끔흘끔 훔쳐보군 하던데 언제 일을 칠지 몰라. 은녀를 첩으로라도 들여앉히기 전에 내보낸 건 잘된 일이야.)    “닥치지 못할까!”    한길수가 밥상을 탁 치는 바람에 국물그릇들이 왱그랑 절그랑 부딪쳐 국물이 주르르 구들에 흘러 떨어졌다.    “제길 할, 은녀를 빼가고도 들어오지 않아만 봐라. 내 살려두는가!”     길수는 퉁방울눈알을 부라리었다. 번들이마의 피줄마저 노기에 지렁이처럼 살아나 풀떡풀떡 뛰었다.     뜻밖에도 이튿날에 병완이 또 찾아왔다.     그는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을 짓고 길수의 집에 들어와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이 물었다.      “오늘 무슨 할 일이 없소?”     한길수는 응삼을 흘겨보았다.     (봐, 내 말 맞지? 신의를 저버릴 병완이 아니지? 흥!)     길수는 병완을 돌아보며 알은체 했다.     “오, 왔는가? 병완이, 자넨 낯만 보이면 되네.”     병완은 허리에서 보자기를 풀어내더니 길수 앞에 쓱 밀어주는 것이었다.     “이건 뭐요?”     한길수는 우멍눈이 휘둥그래났다.     “은녀를 내갔으면 됐지. 친구지간에 은덩이는? 어련히 한 주인의 도감이 되지 않을라고.”     병완의 말에 길수는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했다. 은덩이를 도로 받자니 자존심에 허락되지 않았고 도로 줘 보내자니 병완이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백설같이 반짝이는 은덩이가 아깝기도 했다.      그때 응삼이 뽀족한 턱을 쳐들고 끼여들었다.       “주인어른, 정 받지 않겠다면 먼저 받아 둡소.”     길수는 짐짓 “에끼, 이 사람아, 내 어찌 줬던 걸 도로 받는단 말인가!” 하고 능청스레 아닌 보살을 떨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는 은덩이를 싼 보자기를 스리슬쩍 응삼의 앞에 밀어 보냈다.    주인의 눈치를 챈 응삼은 제꺽 그 보자기를 받아 쥐었다.    “이후에 수고비로 드려도 늦지 않을 것 같소.”    철주는 병완이 빈 손으로 문 밖을 나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자기 꾀가 드는 것 같아 속으로 흐뭇해했다.     한길수는 응삼과 철주를 불러놓고 다음 일을 상논 했다.     “얘들아, 아무리 봐도 성칠에게 속힌 것 같다. 창렬 네 빚 대신 그 곰의 열을 받아 먹은 게 영 속에 내려가지 않는단 말이야.”      응삼은 뱁새눈을 간사하게 뜨며 끼어들었다.     “이젠 병완이 우리 사람이 됐으니 창렬이 누굴 믿고 빚을 갚지 않는단 말입니까? 이번 기회에 창렬을 보고 은녀를 되돌려 보내라고 하든지, 아니면 빚 문서를 다시 꾸며 돈을 내라고 하든지 합세다.”     길수는 조왕 쪽의 월선과 며느리 눈치를 힐끔 보면서 중얼거렸다.     “에이고, 빚 문서를 다시 꾸며서야 언제 그 가난뱅이한테서 받아내겠소? 아예 다시 은녀를 붙잡아 오는 게 상책이야.”     “안돼! 그년을 데려다 첩년이라도 시킬 예산인가요? 이제 내보낸 지 며칠이라고 그년을 또 끌어들인단 말이요? 그저 은녀, 은녀 하면서. 원,  더러운 꼬락서니를 못 보겠어.”     월선은 구들에서 일어나 호랑이 궁둥이를 흔들면서 발까지 탕탕 구르며 야단쳤다.     그때 철주가 나서서 난처한 기분을 돌려세웠다.     “엄마 말에도 도리 있습니다. 이제 은녀를 들여다 앉히려면 병완이가 또 은녀 역세를 들 수도 있습니다. 그 일은 덮어놓고 있다가 우리 빚 문서에 그대로 적어두었다가 아무 때 건 병완이 눈을 감아주게 한 후 받아내면 됩니다. 문제는 병완이 이 마을 가난뱅이들의 역세를 들기에 우리 집에서 빚을 받아내기 어려운 것입니다.”     응삼은 그러지 않아도 그 놈 우직한 병완이 자기 우에 와서 누르고 앉는 것이 속에 걸렸는데  한술 더 떴다.    “아예 저 병완 놈을 없애치우면 우리가 이 마을에서 쥐락펴락 하면서 살겠는데.”    그러자 철주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누가 듣겠습니다. 이 일은 천천히 의논해봅시다. 그래도 병완이 우리 집에 들어와 도감을 하겠다고 하니 천만다행입니다. 이후에는 창렬의 빚을 받아도 아버지가 나설게 없습니다.”     “그럼 누굴 내세우겠니?”     “병완을 내세우십시오. 빚도 받아내고 병완과 창렬을 리간 놀면 일거량득이 아니겠습니까? 흐흐흐.”     철주 말에 길수는 번들이마를 끄덕였다.     며칠 후 길수는 병완을 불렀다.     병완이 길수네 으리으리한 울안에 들어서니 길수가 번들 이마에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 집 도감이 왔소? 오늘 내 요긴한 일이 있어 자네를 불렀네. 자, 안에 들어가 의논합세.”    길수는 병완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가 마주 앉았다.     “이런 일이오. 저, 전번에도 말이 있었지만 그 곰의 열이 되면 몇 원이나 되겠소? 그러니 자네가 응삼과 함께 창렬의 집에 가서 빚으로 한 십 원이라도 받아오게나.”    병완은 건 가래를 떼더니 도리머리질했다.    “이보,  너무 염치없이 놀지 마오. 그 곰의 열은 우리 성칠이 창렬의 폐병을 떼라고 준 게요. 그걸 가져다 먹고 빚을 받지 않겠다구 했으면 다지. 이제 와서 또 번져 누우면 이후에 영월동의 몇 백 집에서 누가 자네의 말을 믿겠소. 난 그런 일을 돕지 못하겠네.”     병완은 아예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려고 했다. 길수는 어이없다는 듯이 멍해 앉아서 떠나가는 병완의 떡돌같이 넓은 뒤 잔등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듯 했다.     길수는 어린 아들 철주의 말을 들어 병완에게 놀림을 당한 듯 하는 감이 들었다. “제길 할, 병완에게 도감을 맡기니 이 집안 일이 더 시끄러워!” 그 말에 철주의 색시 단춘이 정주에서 입귀를 비쭉했다.     안방에서 철주는 아버지를 일깨워 주려고 들었다.     “아버지, 지금 서울이고 어디고 일본 사람들이 게다짝을 딸까닥거리면서 욱실거리고 있습니다. 전번 3월 1일에 조선 사람들이 서울에서 독립하겠다고 ‘만세’를 부르면서 야단쳤습니다. 여기서는 아무도 ‘만세’를 부르지 않았습니까?”     길수는 우습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내 명천과 우시장에 내려가니까 몇몇 조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만세!’ 하고 외치더라. ‘만세!’ 하고 소리쳐 뭘 한다니? 쪽발이들이 만세소릴 듣고 도망간다더니?”      철주는 답답하다는 듯이 머리를 홰홰 돌렸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 나라를 빼앗았기에 장차 살기 더 힘들게 될 것입니다. 맨 우리 조선 사람들만 살아도 손바닥만 한 땅에서 살기 힘든데 일본 사람들까지 들어와 빼앗아 먹으니 말입구마.”      한철주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뒷말을 이었다.     “사실 나도 3.1운동 때 서울 광화문 앞에서 시위행진을 했다가 일본 놈들한테 쫓겨 고향으로 피신해 왔습구마. 이다음 이 골 안에도 일본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을 거 같습니까? 지금 우리는 이 마을의 인심을 틀어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눈앞의 이익을 너무 차리지 말구 인심을 내야 합니다. 병완 같은 힘장사들도 도감자리를 주어서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것이 옳습니다. 이거야 말로 눈앞의 작은 이익을 버리고 이 골 안의 큰 이익을 통 채로 챙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뭡니까? 인심이 천심이라고 이 골 안에서 병완에게 인심이 쏠렸기에 자칫하면 이 골 안의 실제 주인은 병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자가 일본사람들과 먼저 손을 잡는 날엔 우리 땅이고 뭐고 다 빼앗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엄중한가? 그런데 네가 일본 사람들과 등을 졌으니 큰일이고나.”     철주는 개의치 않았다.     “근심 마십시오. 일본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 수 없을 겁니다.”     아들의 말에 길수는 번들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씃더니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었다.     한참 후 길수는 선수를 치려고 들었다.    “그럼 우리가 먼저 명천 고을에 가서 일본 사람들을 친해 놓는 게 옳지 않는가?"     철주는 입을 함박만큼 딱 벌리었다.      “아닙니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 나라를 통 채로 먹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자들이 삼림이 우거진 우리 이 골 안을 와서 보면 놔 둘 것 같습니까?”     “그럼 어찐단 말이냐?”    아버지가 난감해 상을 찡그리자 한철주는 마른기침을 하더니 뒷말을 이었다.     “당면에 이 골 안의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빚을 받지 못할 까봐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기실 일본 사람들을 더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내 말은 일본 사람들을 친해놓자는 게다.”     그 말에 응삼이가 말대가리를 흔들면서 찬동했다.     “주인어른의 말씀이 옳습구마. 일본 사람들도 사람이겠지요. 우리가 그자들을 잘 친해놓으면 등에 업고 병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 골 안을 쥐락펴락할 수 있습지요.”     “음.”    길수는 번들이마를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우멍 눈을 흡떴다가 떼룩거리면서 속궁리를 굴리고 있었다.    응삼이 길쭉한 말대가리를 길수의 귀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리자 길수는 말 이발을 드러내면서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음, 그렇지, 그래. 음, 그 수가 참 좋아. 눈앞에 이익만 볼게 아니구나. 음, 그래, 그거야 말로 돼지들에게 겨를 주고 통째로 잡아 돼지고기를 먹는 격이지. 허허허.”     토성 안 집에서는 간사한 웃음소리가 끊지 않고 꿍꿍이를 꾸미는 두런두런 말소리 날이 질 때까지 계속 들렸다.  토성 밖에서는 밤  늦게까지 음산한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5. 운주동의 검객      해빛도 따사로운 새 봄이 왔다. 치마봉과 기운봉 기슭에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온 산이 연분홍으로 파랗게 물들었다. 뻐꾹새들이 수림 속에서 뻐꾹뻐꾹 울고 들에는 종달새가 지종지종 울며 밭갈이를 재촉하고 있었다. 운주동 마을 옆의 운주하 개울물이 구름 싣고  파란 하늘을 싣고 조잘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운주동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기운봉은 누르스름한 바위와 토색 흙으로 단장한 뭇 산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기운봉의 들쑥날쑥한 갈색바위절벽은 사시장철 구름 속에 안개 속에 잠겨있었다. 안개처럼 물기어린 구름들이 절벽을 씻어 올리다가도 풀렸다. 구름이 천천히 걷히면서 가파른 절벽이  드러나기도 하고 다시 모려오는 구름 속에 자취를 감추기도 하면서 절경을 이루었다.      천태만상의 구름송이는 기운봉의 허리에 감겨 한참씩 쉬다가는 갈 길이 바쁜지 어디론가 총망히 사라져버렸다. 기운봉과 치마봉에 먹장구름이 감돌고 번개가 산허리를 번쩍 칠 때는 꼭 얼마 안 있어 소낙비가 쏟아지군 했다.     비온 뒤면 기운봉과 치마봉 사이 산골짜기에서 쿨쿨 솟는 샘물과 비 물이 갈색바위를 부시며 쏟아져 쏜살같이 흘러 운주동 골짜기를 휩쓸며 흘러 신흥동 쪽으로 내달아간다.     운주하를 따라 내려가면서 몇 백미터씩 내려가면서 드문드문 통나무집들이 스산하게 널려있었다. 그 통나무집들은 대부분 기와나 벼 짚이거나 조 짚 대신 널판자를 기와처럼 지붕에 얹고 못으로 고정시킨 “널기와 집”이였다. 다만 서당을 차린 최구장의 집만은 청기와를 얹은 목조 팔간 집이었다.      어느 날, 병완은 자식들을 몽땅 안방에 불렀다. 쉰 고개에 오른 병완의 머리에 서리가 새하얗게 내리였다。      병완은 대통에 담배를 꿍꿍 쑤셔 넣고 붙여 물고 뻑뻑 빨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옛말에 팔촌이 한 구들이라고 우리 집은 커서 사대가 한 구들에서 살아도 된다. 요즘 한길수가 얼리고 닥치고 하는 수작을 봐라. 묵밭마저 더 일구지 못하게 하는데 어떻게 살겠느냐? 스물두 넘는 식구들이 한 구들에서 손바닥만 한 돌밭을 믿고선 입에 풀칠도 하지 못한다.”      병완은 눈 굽에 눈물마저 픽 돌았다.      그는 비장한 결심을 내린 듯이 뒷말을 이었다.     “이젠 별수 없구나. 난 맏이 성칠과 함께 여기서 살 테니까 창준과 기준은 운주동에 세간나 살아라.”      기준은 근심스러워 했다.      “우리 다 가면 저 길수가 아버지 네를 업신여기지 않겠습둥?”      병완은 대수로워하지도 않았다.      “까짓놈들, 흥!"      성칠이 옆에서 위안했다.     "나두 있으니까. 근심할게 없다.”     그리하여 며칠 후 창준과 기준 형제는 상우남면 운주동에 세간나갔다.      운주동에는 키 넘는 새가 들어 누워 있어 새골이라고도 불렀다. 새밭이 무연하게 펼쳐진 골 안에 창준은 아버지와 함께 집을 짓고 들었다. 그때로부터 창준네 집안은 웃새집이라고 불리웠다.    기준 네는 운주동 웃새집에서 한 300미터 떨어진 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때로부터 기준네 집은 성남집이라고 불리웠다.      기준은 맏아들 상우와 맏딸 어금이, 그리고 임신한 아내 사련을 데리고 봄에 누런 잔디가 말라붙은 바위틈새에 듬성듬성 난 묵은 풀에 불을 달아 태워 버리었다. 잔 나무들을 도끼로 찍어낸 후 소대가리 같은 나무뿌리들을 괭이로 파내고 도끼로 패서 집에 날라 갔다.    기준은 해뜨기만 하면 온 집 식구들을 데리고 바위 틈 사이에 재를 펴 놓고 나무로 구멍을 뚫고 기밀을 심었고 운주하 강변에 일군 황무지 밭에는 감자를 심었다.     어느 날, 어금은 사철 맑은 운주하 개울물에 빨래하러 나갔다.     빨래터 개울물이 어찌나 맑은지 조약돌이 다 들여다보였고 물고기 몇 마리가 조약돌 틈새에서 지느러미를 하느작거리는 것이 다 들여다보였다.     어금이 한창 개울물에 빨래를 휑구어 납작한 빨래 돌에 올려놓고 방치로 쨩쨩 칠 때다.     애래 쪽 개울가 백사장에 머 태가 치렁치렁한 한 총각이 나타났다. 어금은 누군지 똑똑히 볼 새 없이 빨래를 방치로 땅땅 두드려 개울물에 활활 휑궈 버드나무가지에 널어 말리었다.     그녀는 피뜩 아래쪽을 바라보다가 한 총각이 검술을 익히는 멋진 모습을 보았다.    “어덴가 퍽 눈 익은데?”     그 총각은 시퍼런 검로 몸 주위를 휘감으면서 휘두르는데 서리발이 사처로 빛발쳤다. 총각은 훌 뛰어 날면서 칼로 내리찍었다. 두 다리를 앞뒤로 모래바닥에 쭉 펴고 앉았다가도 훌쩍 뛰어 일어나면서 턱을 발로 차는 동시에 옆으로 칼로 가로 찔렀다.      총각이 검술을 연습하는 장면은 정말 신출귀몰해 보기 장관이었다. 마치 호랑이가 앞발을 쳐들고 구름 속의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졌다가도 구름 속에서 날아 내려오면서 꼬리로 땅을 치는듯하고 닭이 외발로 선후 원숭이가 왼팔을 이마 위에 얹고 해를 가리고 먼 곳을 보는 듯 했다. 꿈틀거리는 용이 대가리를 쳐들고 영용무쌍하게 앞으로 무찔러 나가는 듯이 검을 춤추면서 앞으로 찔러나갔다.       그 날랜 검술장면을 보다나니 어금은 그만 손에 쥐였던 빨래를 모래바닥에 뚝 떨어뜨렸다.        “어마나!”       어금은 화뜰 놀라면서 혀를 홀랑 내밀었다. 그녀는 인차 모래가 다닥다닥 매달린 빨래를 들고 개울물가에 가서 훌훌 씻어 버두나무 숲에 널어 말리었다.     이때 허옥실이 봉인을 업은 채 빨래함지를 이고 사뿐사뿐 빨래터에 다가왔다.     “아니, 언니, 참 오랜만이요.”     어금은 방치를 놓고 옥실한테로 다가가 빨래함지를 받아 내려놓고 어린애의 볼에 뽀뽀를 했다.     “아이유, 애기 곱다야, 봉인아, 뽀뽀하자.”     옥실은 빨래 돌을 바로잡아 놓으면서 “봉인이 이름을 우리 시아버지가 근형이라고 고쳤소. 봉인이라는 이름은 애명이라오. 그래서      우리 요 14대 장손부터는 뿌리 근자 돌림으로 애들의 이름을 짓는다오.”라고 했다.     “근형이, 그 이름 좋다. 최구장어른이야 훈장이기에 아무튼 이름도 잘 지을 분이죠.”     그들이 한창 빨래를 하는데 징검다리로 한 총각이 검을 들고 건너왔다.     어금과 옥실이 여겨보니 칼을 둘러멘 총각은 다름 아닌 옥실의 시동생인 경인이었다. 어금이가 바라보니 아까 저기에서 검술을 익히던 그 총각 같았다. 그리하여 어금은 대뜸 머리를 숙이는데 넙죽한 얼굴이 귀밑까지 홍당무가 돼버렸다.     “아주머니, 아직 빨래하자면 물이 차갑겠는데 어째 애까지 업고 나왔소?”     훤칠하게 생긴 경인은 성큼성큼 빨래터에 다가왔다.     “일없소. 시동생, 검술을 익혔소?”     옥실은 미소를 지으면서 시동생을 바라보며 빨래를 했다. 그런데 어금은 경인이가 다가오자 머리를 점점 더 수굿하고 몸을 외로 탈면서 빨래를 했다. 어금은 웬 일인지 경인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쾅쿵쾅 높뛰는 것을 느끼었다.    그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 챈 옥실은 어금의 어깨를 톡 밀었다.    “얘, 우리 시동생이야. 은인을 보고서도 모르는 척 해서야 되니?”    어금은 경인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쥐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간 잘 지냈소?”    경인은 검을 뒤로 가져가면서 인사를 받았다.    “양, 그쪽에서도 잘 보냈소.”    그는 서리발치는 칼을 모래바닥에 놓고 개울물에 근육이 울뚝 뿔뚝 한 팔부터 썩썩 씻더니 푸푸 물을 불면서 세수하는 것이었다.     “어, 시원하다.”    옥실이 자기 머리 수건을 벗어주려다가 어금의 옆구리를 톡 건드렸다.     어금은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눈을 곱게 흘기며 옥실을 바라보았다.      옥실은 어금의 옆구리를 더 세게 서너 번이나 톡톡톡 다쳤다.      어금은 그제야 별수 없다는 듯이 머리 수건을 벗어 경인에게 내밀었다.      “옜소. 수건으로 얼굴을 닦소.”     경인은 인차 그 수건을 받지 못하고 옥실을 건너다보았다.    옥실은 눈을 찔끔해보였다.     “아주머니, 이래도 되오?”     “별소리를 다한다. 초면도 아닌 오랍누이 같은 사이에."     옥실은 말을 마치자 어금의 눈치를 살피었다.      어금은 그 자리에 앉아있기 어색해 빨래를 대충 휑구어 꽉꽉 짜더니 함지에 담아 이고 일어났다. 그녀는 몽당치마를 걷어 안은 채 바람이 일게 버드나무숲에 가서 그 곳의 빨래도 걷어 함지에 담아 이더니 머리를 이쪽에 돌렸다.     “언니, 먼저 집에 가겠소.”     “응, 그래라.”     어금은 경인에게 눈인사를 곱게 하고는 머리를 돌려 사락사락 모래를 밟으면서 동네 쪽으로 멀어져갔다.     옥실과 경인은 토론이나 한 듯이 엉거주춤 일어나서 동네 쪽으로 빨래함지를 이고 몽당치마자락을 휘날리면서 가는 어금의 뒤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한참 후 옥실은 빨래를 물에 활활 휑구면서 옆에 앉아 칼자루를 매만지는 경인을 보고 넌짓이 말했다.    “시동생, 저 어금은 예쁜데다가 마음씨 또 착한 애요. 저 애를 내 둘째동서로 삶았으면 좋겠는데 아주버니 생각에는 어떻소?”     경인은 외까풀 눈을 끔뻑했다.     “그럼 오죽 좋겠소? 그런데 명천의 울뚝이라고 소문난 기준이라는 양반이 맏딸을 쉽게 줄까?”     그러자 옥실은 정색하여 경인을 바라보면서 힘 주어 말했다.     “걱정하지 마오. 시부모와 말해볼게.”     경인은 신심이 한 가슴 뿌듯이 생겨났다.     “글쎄 우리 아버지와 병완 영감은 아주 가까운 사이 돼서 아버지가 나서면 설득시킬 것 같기도 하오만.”    청명절이 다가왔다. 사람들은 모두 한복차림에 지지고 볶은 제물을 갖춰가지고 조상의 산소로들 갔다.     운주동 뒤 산에는 성처럼 돌담을 쌓은 옛성이 있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옛 성은 고구려 옛성이라고도 했다. 최구장은 그 성안을 명당자리라고 했다. 그 바람에 운주동과 영월동, 신흥동의 사람들은 그 성안 평평한 산중턱에 앞 다투어 산소를 썼다.      청명이 되자 사람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조상들의 산소에 와서 가토를 하고 제주를 올리고 절을 올렸다. 성안 평평한 산중턱에서는 무당들이 한창 굿을 하느라고 야단법석이었다.     사람들은 제사를 끝내자 이 곳에 모여들어 무당들이 굿을 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요염하게 치장한 무당이 무대에 올라서서 굿을 했다.     “천지신명이시여, 천하의 악귀들을 몰아내고 천하의 어진이들을 잘살게 도와주옵소서. 남자귀신이면 지고 나가고 여자귀신이면 이고 가주옵소서. 조상신들이여, 이 불쌍한 후손들을 도와주옵소서. 병마를 몰아내고 오곡이 풍성하게 복을 내리옵소서.”     무당의 굿이 끝나자 사람들은 제사상에 올렸던 통돼지를 칼로 저며 내 간장에 찍어 먹었다. 그래야 굿이 잘 든다고 했다.    뒤이어 악귀를 몰아내는 검술표현이 있었다.    그때 산소에 갔던 병완이 일가도 굿 구경을 하러 사람들 틈에 끼여 있었다. 검객 경인이 나서서 머리태를 휘날리며 훌 날아오르면서 앞으로 검으로 내찔렀다. 그는 땅바닥에 앞뒤다리를 펴서 대고 앉았다가도 하늘로 훌쩍 뛰어 오르면서 옆으로 찍었다.  발로 턱 차기를 하고 뱀이 굴속에서 나오듯이 앞으로 검을 찌르면서 나가다가도  뒷발질을 하며 몸을 홱 돌려 뒤를 찌르기도 했다.     그 날랜 장면을 보고 모두들 혀를 끌끌 찼다.        어금도 아버지 기준의 옆에서 경인오빠의 서리발치는 날랜 검술표현을 보고 박수를 연신 치였다.      “잘한다!”     기준도 그 놀란 검술표현에 고함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장내 숱한 사람들은 경인의 검술솜씨에 연신 찬탄을 금치 못했다.     병완이 기준을 보고 검객을 손가락질하며 물었다.    "눈에 익은데. 누군지 모르겠냐?”      기준은 아버지를 보고 조용히 말했다.      "최구장네 둘째아들이 아닙니까? 전번에 최구장 네 맏아들이 큰잔치를 할 때 신랑의 말고삐를 잡았던 그 총각 말입구마.”      병완은 검술재주를 피우는 경인을 보고 머리를 끄덕였다. 경인은 곤두박질재주를 부리며 칼을 휘두르기도 하고 서리발치는 칼로 악귀를 찍어 토막 내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23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 댓글:  조회:3613  추천:3  2015-05-08
                      6. 운주동 서당 훈장      최구장은 큰며느리 허옥실을 보고 성칠이 준 멧돼지 고기를 푹 끓이라고 했다.      최구장 일가가 사는 명천군 상우남면 운주동은 함경북도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심심산골이었다. 정말 그가 살던 고향 개성이란 옛 고려의 수도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곳이었다.      지금도 최구장은 눈을 스르르 감으면 자기 고향 개성이 눈앞에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가군 했다. 자기가 어려서부터 공부하던 서당이며, 고려 충신 정몽주가 철퇴에 맞아죽은 선죽교며, 고려의 옛 궁전터전이며, 어려서부터 드레 박으로 샘물을 길어다 마시던 큰 길옆의 우물터며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함경북도라고 하면 원래 이씨 왕조 때 죄를 지은 자들을 정배를 보내던 곳이었다. 그렇게 사람이 못살 산골이어서 범죄자들이나 정배를 보내 고생을 시킬 곳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개성에 들어온 후 서당 글을 가르치던 최구장 영감도 계속 마음 놓고 글을 가르칠 수 없었다. 일본 사람들은 자기들의 일본글을 가르쳐야 하지 한자나 조선 글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제껏 대대로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른 황이나 익혀온 최구장 네를 보고 알지도 못하는 일본 말을 가르치라고 하는 일본 사람들의 심사는 이를 데 없이 괘씸했다. 그것이야 말로 최구장의 명줄과 같은 서당 훈장 밥통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작은 집의 사촌동생 최구철마저 일본 놈 몇을 총을 놓아 죽였기에 최구장 일가는 일본 놈들의 요시찰 인물로 점 찍혀 살기 어렵게 됐다. 그리하여 최구장은 정든 고향을 떠나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은 명천 우시장에서도 멀리 떨어진 심심산골에 들어와 수림 속에 밭이나 일구어 감자농사를 지어 먹으면서 살게 됐던 것이다. 비록 심심산골이고 고향 개성처럼 환한 고을은 아니지만 일본 사람들이 없어 기를 펴고 살 수 있고 시골 애들에게 마음 놓고 서당에서 글을 다시 가르칠 수 있어 좋았다.       운주동 서쪽에 누르스름한 뭇 산우에 기운봉이 우뚝 솟아있었다. 기운봉의 들쑥날쑥한 갈색바위는 사시절 구름 속에 안개 속에 잠겨있었다. 그 구름 모양은 천태만상이었다. 피어올랐다 풀렸다 하는 구름송이, 안개처럼 물기어린 구름송이, 햇솜같이 새하얀 구름송이, 고기비늘처럼 무늬를 정연하게 돋친 구름송이로 정말 아름답기만 했다. 구름송이들도 기운봉의 허리에 감겨 한참씩 쉬고서는 어디론가 가뭇없이 사라지군 했다. 하여 멀리서 보면 기운봉은 마치 구름바다의 섬을 방불케 했다.        기운봉의 청석옥석 사이로 샘물이 쿨쿨 쏟아져서는 갈색바위를 부시며 철철 흘러내려 운주동과 신흥동 마을로 달려갔다. 운주동은 서쪽의 기운봉 기슭으로부터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운주하 개울물을 따라 한 5, 6리나 되게 죽 뻗은 산골짜기에 한두 집씩 게딱지처럼 여기저기 스산하게 널려 있었다. 개울물 남쪽에는 운주동 마을에 집들이 죽 늘어서 있었고 개울물 북쪽에는 신흥동 마을이 산을 등지고 죽 늘어서있었다. 기운봉 동쪽 기슭에 있는 운주동 뒷산꼭대기는 좀 평평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곳이 명당자리라고 하는 최구장의 제의에 따라 산소를 쓰고 그 주위에 돌로 토성을 높다랗게 쌓아 놓았다. 그리하여 성과도 같은 그 토성안의 산소로 하여 운주동의 일부 집들을 성남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운주동의 이런 시골 집들은 통나무집들이었다. 대부분 아름드리나무들을 톱으로 썩썩 켜 통나무채로 쌓은 후 나무못으로 고정시켜놓고 그 우에 지붕틀을 올리고 널판자를 기와처럼 얹은 통나무집이다. 집집마다 잡나무를 베다가 울바자를 집 둘레에 높다랗게 세웠다. 진짜 산골 마을의 풍경이었다.       최구장은 어려서 고향 개성에서 서당공부를 하여 천자문, 논어, 대학, 중용을 다 배웠다. 또 풍수지리마저 익혀서 집을 어떤 데 지어야 좋고 어디다 산소를 써야 명당자리라는 것을 환히 꿰뚫었다. 기운봉 기슭의 성은 바로 그의 제의에 따라 개척한 명당산소자리였다.      게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최구장은 몽땅 해리하고 푸는 방법을 정확하게 깨우쳐 주군 했다. 그리하여 개성으로부터 운주동에 이사해 온 후에도 마을 사람들은 그를 유식한 서당훈장으로 모시였고 애들을 그의 서당에 보내 공부시켰다.      또 사람들은 그를 해리장으로 높이 모시고 무슨 일이 생기면 그를 찾아 해결방도를 물었고 결혼하거나 장례를 치르면 은전을 가지고 와서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최구장이 아침 밥술을 놓기 바쁘게 마을의 병욱이가 아들 시준의 손목을 잡고 최구장의 팔간 집 울안에 들어섰다.       “최 훈장님, 아침을 잡수셨습둥?”       그러자 최구장은 버릇처럼 왼손으로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움찔 일어나 마중했다.      “김 영감, 오늘 일찍 하오다. 어서 오너라. 시준이 요즘 공부를 잘하더라.”      시준은 인차 구십도 경례를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최 선생님!”      최구장은 인차 시준의 손목을 잡아 마루에 끌어올렸다.     “에이, 시준도 이젠 열 둬 살 먹더니 철들었네. 이리 올라와. 오늘도 제일 먼저 서당에 왔구나.”     시준은 다른 애들보다는 달랐다. 말수가 적은데다가 눈만 뜨면 책만 들여다보고 중얼거렸다. 그 애는 서당에 들어서자마자 책보를 풀어놓고 마루에 손가락으로 글을 오리면서 중얼거렸다.      “내 뭐랬소? 책을 익혀 살 놈은 어릴 때부터 다르다니까.”     그는 윗방에 들어가 그때까지 일어도 나지 않은 장손 봉인의 엉덩이를 커다란 손바닥으로 짝짝 쳤다.      “이 자식, 일어나라. 해 궁둥이를 다 비춘지도 오래다.”      둬 살 밖에 안 되는 봉인은 일어나 앉으면서 두 손으로 눈을 비벼댔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봉인은 할아버지 품에 와락 안기였다.       “할아버지!”       “오, 그래. 요 놈이 우리 집안의 기둥과도 같은 14대 장손이지! 요 놈도 공부를 잘해야겠는데.”       이때 최구장의 딸 죽순이 앙기작앙기작 걸어와 봉인을 밀어냈다.       “가. 내 아버지야!”       여자애는 볼에 볼우물을 옴폭 파며 흘겨보았다.       “그래, 아빠는 장손도 고와하지만 하나 밖에 없는 우리 딸을 정말 고와하지.”       최구장이 딸과 손자를 안고 노는 재미나는 모습을 보고 병욱은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최구장의 맏아들 경숙이도 옆에서 히죽이 웃었다. 허옥실도 부엌에서 아침상을 거두면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방실 웃었다.       이때 마을 애들이 다 와서 최구장은 제일 윗방에 들어가 애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시준이랑 병권의 맏손자 형내랑 천자문을 따라 외우는 낭낭한 글소리가 이 시골에 울려 퍼졌다.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를 황!”     최구장의 막내아들 경석은 공부하기 싫어 천자문을 외우는 척 하면서도 바깥을 흘금흘금 곁눈질 했다.     (에이, 씨, 바깥에 나가 놀았으면 얼마나 좋겠니? 운주하에 나가서 목욕도 하고 모래에 물도랑을 파면서 놀겠는데. 날마다 하늘 천, 따 지야?)     막내아들의 그런 속내를 꿰뚫어본 듯이 최구장은 대통으로 경석의 머리를 한 대 딱 쳐놓았다.      “아가!”      비명소리에 애들이 모두 손으로 머리를 만지는 경석에게 머리를 돌려 보고 캐득거렸다.      “공부에 집중해! 왜 자꾸 바깥을 흘금거리면서 정신을 팔아? 그러고서야 입으로 아무리 외운들 글자가 머리 속에 들어가나? 못된 놈 새끼! 다시 공부에 집중하지 않아 봐! 회초리로 종아리를 칠 테야! 어험.”      경석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버지가 무서워 눈치를 흘금 거리며 하늘 천, 따 지를 외웠다.      최구장은 철 없는 경석을 보고 골치 아파 했다.      맏아들 경숙은 자기 대신 이젠 가문의 농사일을 담당했기에 공부를 할 새 없어 시키지 못하고 둘째 경인은 천자문을 떼고 무예를 익히느라고 검을 들고 달아 다녔다. 셋째 경민은 허약한데다가 넷째 경욱과 함께 공부에는 뜻이 없고 약 담배 장사에 흥취가 박혔다.     (헤이, 생각만 해도 가운이 답답하다.)     최구장은 생각다 못해 총명한 막내 경석에게 희망을 두고 어려서부터 공부를 시키는 판이었다. 장차 형내네 할아버지 관준한테 보내서 한의공부를 시킬 예산이었다. 서당 훈장질을 이어받아서야 살기조차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막내아들은 삶의 그루를 바꿔 심어 의사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속셈으로 관준의 손자 형내에게서 서당 공부 학비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경석은 놀음에 탐해 정신을 집중해 공부를 잘 하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한참 후에야 경석과 애들은 금방 일을 잊은 듯 했다.       서당에서는 애들의 글 읽는 소리가 랑랑하게 울려 퍼졌다.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를 황‧‧‧”       바깥이 불시에 어두워지더니 먹장구름이 뒤덮여 왔다. 먹장구름 속에서 시뻘건 불구렁이 기운봉을 번쩍 덮쳤다. 그 놈은 숱한 불혀로 기운봉을 감싸핥아버리고는 먹장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우르릉 꽝꽝       우레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번개가 번쩍였다.       뒤이어 추녀 끝에서 숱한 실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그제야 경석은 바깥에 나가 놀 궁리를 접고 정신을 집중해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하늘이 도운 셈이었다.      최구장은 그제야 한숨을 후 내쉬며 저쪽 마루로 나갔다.      그는 대통에 담배를 쑤셔 넣고 부시를 쳐 불을 달아 물고 뻑뻑 빨았다. 그는 몰려 오는 비구름을 바라보며 세상의 풍운조화를 예측하기라도 하는듯이 손을 꼽았다 폈다 하면서 무슨 궁리를 하고 있었다.                            7. 수림에서 맺은 연분       최구장의 맏아들 경숙은 키도 크고 힘 골도 썼다. 그가 운주동의 막바지에 있는 옥실을 아내로 맞아들이게 된 데는 그럴만한 연분이 있었다.      양천 허씨 네 큰 딸 옥실은 이름과 같이 살결이 백설처럼 희였고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한데다가 호리호리하게 생긴 처녀애였다.      녹음이 짙은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기운봉 기슭의 수림은 비온 뒤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타나자 더욱 청초하고 수려하였다.      옥실은 어린 남동생 명철과 함께 버드나무바구니를 끼고 머루를 따러 기운봉 기슭으로 올라갔다.    개암나무들이 듬성듬성 난 풀숲 속에 빨간 나리꽃 송이 활짝 피어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방불케 했다. 수림 속에 스며드는 부채살 같은 해살 속에 하느적거리는 나리꽃, 도라지꽃은 옥실을 반겨 맞았다.     “야- 저 나리꽃!”    옥실은 환성을 지르면서 두 손을 활짝 벌리고 치마 자락을 나풀거리며 나리꽃 쪽으로 달려갔다.     그때 나무꼬챙이를 쥐고 뒤따르던 명철이가 고함쳤다     “누나! 조심해, 여긴 뱀이 많은 곳이야!”     옥실은 그런 말에 신경을 쓸 새 없이 달려가 나리꽃을 몇 송이 꺾어 뾰족코에 대고 흠흠 꽃향기를 맡았다. 까만 반점이 박힌 빨간 나리꽃은 곱기도 하고 향기로웠다. 그런데 빨간 나리꽃의 노란 화분이 하얀 얼굴에 묻어 노란 분칠을 한 것 같아 자연미를 한껏 돋구어주었다.      옥실은 노란 장미꽃, 빨간 장미꽃을 꺾는다, 하얗고 파란 나팔꽃을 줄기채로 훑어낸다 하더니 꽃다발을 틀어 머리 우에 얹었다. 참말로 꽃 같은 얼굴에 꽃다발을 얹고 수림 속에서 달아 다니는 옥실의 그 모습이 비할 데 없이 예쁘기도 했다.      명철은 몽둥이를 쳐들고 누나 뒤를 따라 다니면서 어데 뱀이 기어 나오면 당장 때려죽일 듯이 의심스러운 풀숲을 돌아가며 헤치면서 살폈다. 그런데 명철은 누나의 머리에서 나리꽃잎을 하나 뚝 뜯어 내 입에 넣고 씹었다.     옥실은 눈을 곱게 흘기면서 종알거렸다.    “야, 애도 남의 고운 꽃다발의 꽃 이파리를 뜯어먹다니?”    명철은 또 꽃 이파리를 하나 뜯어먹으면서 빈정거렸다.    “산속에서 뛰어 다녔더니 이 어른이 좀 시장하단 말이야.”    옥실은 명철이 또 꽃 이파리를 뜯어 낼까봐 꽃다발을 벗어 손에 쥐고 봇나무 수림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야, 이 머루를 봐라.”     명철은 봇 나무 숲속에 멈춰선 누나를 보고 뒤따라 뛰어갔다.     그들의 눈앞에는 황홀경이 나타났다. 허리만큼 실한 봇 나무에 바를 걸친 듯이 얼기설기 내리 드린 머루넝쿨에 까만 머루송치가 데룽데룽 매달려있었다.     파랗고 넙죽한 머루 이파리 속에 매달린 까만 눈동자처럼 초롱초롱 윤기 나는 머루 알은 탐스럽기만 했다.     옥실은 가늘고 하얀 식지와 중지로 머루 한 알을 뜯어 입안에 넣고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었다.     “아이고, 시큼해라.”     옥실은 대번에 외까풀 눈을 한일자로 감아버리면서 오만상을 찌프리었다. 명철은 다다가 머루 한 송치를 뜯어 입에 포도 알을 넣고 질근질근 씹었다. 뒤이어 그는  누나와 함께 포도송치를 부지런히 따서 옥실이 든 버드나무바구니에 넣었다. 어느새 바구니에는 까만 머루송치가 무룩하게 쌓였다.     이때 저쪽에서도 영월동의 상우와 그의 큰 누나 어금이 산나물을 캐면서 이쪽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얼굴이 너부죽하고 곱게 생긴 어금은  벌써 처녀티가 완연했다. 자지 색 나리꽃을 입에 문 어금은 숲속에 내린 나리꽃같이 예뻤다. 그녀의 남동생 상우는 중등 키에 실하게 생긴 편이었다.      옥실은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눈인사를 하였다. 그녀는 청석바위 우에 뻗어 올라간 머루줄기 밑에 까만 머루송치가 다닥다닥 달려 있는 것을 보고 그리로 와삭와삭 풀숲을 헤치면서 다가갔다.      그녀가 탐스러운 머루송치를 뜯어 바구니에 담자고 하얀 손을 뻗칠 때다. 하얀 바탕에 새까만 점이 얼룩덜룩 박힌 터덜터덜한 독사가 머루넝쿨에서 혀를 날름거리면서 노려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앗! 뱀이야!”     그 비명소리에 명철은 반사적으로 왼쪽어깨에 둘러멨던 몽둥이를 오른손에 바꿔 쥐였다.     “에이크!”     명철은 몽둥이를 휘둘러 독사를 내리쳤다. 그런데 독사가 그만 몽둥이에 맞아 옥실이 든 바구니에 툭 떨어졌다.      “에구머니!”      옥실은 바삐 바구니를 달랑 떨어뜨렸다.     설상가상으로 독사 한 무리가 바위 밑 풀숲에서 기어 나와 대가리를 쳐들고 그들을 공격해왔다. 분명 굴 독사들은 이 불청객의 침입을 그저 볼 수만 없었던 모양이다.     이 나무 저 나무 가지들에서 독사들이 데룽데룽 매달려있다가도 땅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그 놈들은 대가리를 쳐들고 그들에게로 맹공격해왔다.      “피해!”      위기일발의 시각에 경숙과 경인이 고함치며 낫을 들고 뛰어왔다.      그들은 낫을 휘둘러 고사리 숲처럼 대가리를 쳐들고 옥실한테 달려드는 독사무리 목을 쳐댔다. 상우도 달려와 명철과 함께 몽둥이로 나무 가지에 데룽데룽 매달린 독사들을 때려잡았다.      옥실과 어금은 봇 나무 뒤에 숨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오른 식지를 입에 물고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면서 총각 애들이 독사를 잡는 것을 보고 있었다.     총각애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와 낫에 맞아 뱀의 대가리와 피가 사처로 날렸다.      “이 놈들아! 다 덤벼들어라!”     사기난 명철도 고함치면서 몽둥이를 휘둘러 독사들을 때려 죽였다.     대가리가 낫에 맞아 날아난 뱀들은 의연히 꼬리가 꿈틀거렸다.     옥실과 어금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점점 뒤로 비실비실 물러서며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했다.     호리호리한 총각 경인은 뒤돌아보면서 다급히 소리쳤다.      “삼십육계에 줄행랑이 제일이오. 어서 빨리 달아나오. 우리 독사무리를 막을 테니.”     그제야 정신차린 옥실과 어금은 걸음아 날 살리라고 바구니고 뭐고 다 던져버리고 머루 덩굴 숲속에서 달아났다.      한참 후에 명철과 경인이 뻘건 피 묻은 낫과 몽둥이를 들고 숲속에서 뛰어나왔다. 경숙은 머루를 담은 바구니를 들고 와서 옥실에게 내밀었다.     “자, 이 좋은 머루를 가지고 가오.”     옥실은 머루바구니를 받으면서 귀밑까지 발갛게 붉혔다.     “고맙소. 여러분이 아니었더라면 큰 경을 쳤을 번했소.”     그녀는 고마운 눈매로 키 큰 경숙을 쳐다보았다.     명철은 옆에 서 있다가 자기 누나에게 경숙과 경인을 인사시켰다.    “누나, 이제 금방 알았는데 이 형님은 운주동 최훈장네 형님들이라오.”     옥실이 나서면서 경숙과 경인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러나 원래 말수가 적은 경숙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둘째 경인은 앞에 나서면서 인사를 받았다.      “일이 생기지 않았으니 됐소. 이후에는 이 근방에 와서 머루를 따지 마오. 독사에게 물리면 큰일이 아니오?”     이때 상우가 나서 알은체 했다.     “알고 보니 큰아버지 전번에 외우던 최 훈장 어른 네 형님들이구만. 우린 영월동의 김병완 할아버지의 작은 집 손자 맏손자 상우와 맏손녀 어금이오."      경숙과 경인이도 전번에 수림 속 감자밭에서 만났던 성칠을 떠올리면서 아주 반갑게 대했다.      어금은 최사련 할머니와 성칠 큰아버지에게서 최구장과 최구철 두 어른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 초면이었지만 이젠 구면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키는 크지만 말수가 적은 경숙보다 중등 키에 해박해 보이는 경인에게 눈길이 더 갔다.       그는 버들바구니를 왼팔에 낀 채 가리마를 쪽 낸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인사를 드렸다.       “정말 고맙소. 두 분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무슨 사고가 생겼겠는지 모르겠소.”       경숙보다도 키가 더 큰 경인은 시무룩이 웃으면서 어금을 바라보며 화답했다.      “천만의 말씀을. 우린 령을 사이 두고 영월동과 운주동에 사는 형제와 같은 사람들이오. 이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도우면서 살기요.”      명철이 넓은 가슴을 치며 말했다.      “옳소. 우리는 한마을에서 사는 형제들이오. 이후에는 한집안의 형제들처럼 재미나게 보내기요.”      허옥실은 수집어서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경숙을 훔쳐보았다.     경숙은 가타부타 말없이 낫을 들고 나무하러 기운봉 기슭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뒤에서 옥실은 멀어져가는 경숙을 지켜보면서 서 있었다.      경인과 상우, 명철, 어금 등은 수림 속에서 웃고 떠들면서 놀다가 점심때가 다 돼서야 각기 자기 고향마을로 내려갔다.      울울창창한 수림에서 부채살 같은 해빛이 처녀총각들의 뒤를 따라 걸어왔다. 드문드문 그들이 주고 받는 말 틈새에도 옥 구슬을 끼워주기도 했다.                                                                             8. 결혼       그때부터 옥실의 눈앞에는 뱀을 잡아주고도 아무 말 없이 산으로 나무하러 성큼성큼 떠나가던 경숙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 없이 맑고 푸른 가을의 하늘은 푸르기만 했다.      옥실은 샘물터에 가서 바가지로 샘물을 푸려고 샘물을 들여다보는 순간 경숙의 길쭉한 얼굴이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웬 일이지?)      옥실은 한숨을 호 내쉬면서 바가지로 잔잔한 샘물을 저어 경숙의 모습을 지워버렸다. 그녀가 쪼그리고 앉아 두 손을 무릎에 얹고 샘물을 들여다보니 고요해진 물에 또 경숙의 상반신이 떠올랐다.      옥실은 누가 볼까 봐 황급히 바가지로 샘물을 물동이에 퍼 담아 이고 샘물터를 떠나갔다.     열다섯 살의 이팔청춘 옥실은 그때로부터 저도 모르게 경숙에 대한 사랑의 싹이 트는 것을 가슴 속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하루. 옥실은 빨래터에 가서 빨래를 했다. 넙죽한 돌에 빨래를 놓고 방치로 탁탁 쳐서는 조약돌이 환히 다 들여다보이는 운주하 개울물에 빨래를 불렀다가 왈왈 헹궈 꾹 꾹 짰다. 그리고는 빨래를 버드나무가지에 훌훌 널어 말렸다.     그런데 흐르는 개울물에도 경숙의 모습이 떠오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우람진 체격에 길쭉한 얼굴, 짙은 눈썹에 두부모같이 두꺼운 입술, 항상 말수 적은 그 입은 철문처럼 꾹 닫겨져 있었다.     “아니, 이게 웬 일일까?”     옥실이 중얼거리는데 개울물에 떠오른 그 그림자는 자기 쪽으로 움직여 오는 것이었다. 이상한 것은 거울같이 맑은 개울물 안에 서있는 경숙은 자기 앞에 쪼그리고 앉는 것이었다.     옥실은 조약돌을 주어 물에다 힘껏 뿌렸다.     출렁!     순간 물방울이 옥실의 얼굴과 저고리에 뿌리우면서 경숙과 자기 그림자도 지워졌다.     화뜰 놀란 옥실이가 너무나도 이상해 옷을 털면서 일어나 돌아다보니 경숙이가 실로 말없이 앉아 자기를 보고 있었다.     “아니, 경숙오빠!”     “허허허.”     “남은 물을 맞고 깜짝 놀라 죽겠는데 너털웃음을 웃소? 흥!”    옥실은 경숙을 고운 눈길로 흘겨보면서 동전을 감아쥐며 돌아섰다. 순간 옥실의 하얀 볼이 귀밑까지 홍당무로 돼버렸다.    “누가 보겠소.”     옥실은 빨래와 방치를 와락와락 대야에 담아 이고 버들강변을 떠나버렸다.     뒤에서 경숙은 멀어져가는 옥실의 잔등을 보면서 너털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허허허. 누가 보면 뭐라오?”     이윽고 최구장 어른이 호미를 들고 버들강변으로 다가왔다.     “경숙아, 옛말에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했다.”     그러자 경숙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장가들 나이가 되여도 처녀애들과 말도 못합둥?”     그 말에 최구장은 경숙의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중얼거렸다.      “오- 그래, 내가 잊었구나. 너도 장가 이젠 들 나이가 되였지.”      최구장은 쪼그리고 앉아 호미를 개울물에 씻으면서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한참 후 허리를 펴면서 일어섰다.      “그래 저 옥실이 네 마음에 드니?”     경숙은 그저 히죽이 웃으면서도 아무 말도 못했다.     “좋단 말이지. 알았다. 내 혼사말군을 허도이사한테 보내 혼사 말을 해야겠다.”     최구장은 신흥동의 만춘집 김 구장에게 부탁해 맏아들 경숙의 혼사 말을 신흥동의 옥실의 아버지 허득필에게 했던 것이다.    허득필은 술이라면 오금을 못 쓰고 농사일이라면 뒷전이어서 살림이 형편없었다. 딸 옥실과 명실의 중간에 아들 명철이 있었다.    “주인집 영감 있소?”    김 구장이 집 울안에 들어서자 그때까지 막걸리를 마시던 허득필은 바삐 막걸리사발을 내려놓고 마루에 나가 맞이했다.     “아니, 어떻게 돼 이 구차한 우리 집에 찾아왔소? 허허. 어서 올라와 한잔 같이 하기요.”     김 구장은 고무신을 벗고 머리 태를 어깨 너머 뒤로 척 돌려가더니 집안에 들어가 사양하지 않고 술상에 마주 앉았다. 원래 김 구장도 술을 반가와 하여 허 씨 와는 알맞춤한 술친구였다.      이때 허씨 처자들이 모두 나와 곱도록 인사를 올렸다. 김 구장은 피뜩 옥실에게 눈길을 멈추었다가 허득필에게 돌렸다.      허득필은 막걸리를 부어 주면서 지껄였다.      “아니, 신흥동에서 한다하는 만춘집 구장 어른이 어떻게 돼 서발막대기를 휘둘러도 걸칠게 없는 우리 집에 찾아왔소? 자, 좌우간 반갑소. 어서 드오.”      김구장은 막걸리를 한 사발 죽 마신 후 건가래를 뗐다. “에헴, 이 집에 내 혼사 말을 하러 왔소.”      그 말에 조왕 쪽에 있던 옥실은 두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었다. 그는 마음 속에 경숙이 있는데 김 구장이 자기 집 아들에게 혼사말을 하면 어찌 하겠는가고 저으기 근심했다.     그때 허득필은 싹아 떨어진 이발이 다 들여다보이게 입을 하 벌리고 김 구장을 쳐다보다가 막걸리동이에 바가지를 넣어 막걸리를 퍼 김 구장 앞의 사발에 부으면서 정색해 물었다.      “그래, 김 구장 어느 아들과 혼사 말을 하러 왔소?”     그러자 김 구장은 손을 들어 살래살래 흔들었다.      “아니오. 아니. 참. 에헴."     허득필은 막걸리를 붓던 사발을 밥상에 달랑 놓으며 다가앉았다.     "그럼 뉘네 집하구?"     "저 강 건너 운주동 최구장네 맏아들과 혼사 말을 하러 왔네.”      허득필은 옥실을 힐끔 내려다보더니 다시 김 구장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때 옥실은 부끄러워서 뒷문을 열고 뒷마당에 나가 추녀 밑에 서서 집안에서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을 엿들었다.     허득필은 김 구장과 맞 잔을 하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 최구장어른이 김구장을 보냈소?”      “그러잖구. 최구장 집은 사방 십리 안에 이름 있는 유식한 가문이 아니고 뭐요? 이 집 맏딸을 그 집에 맏며느리로 보낸다면 얼마나 좋겠소?”       허득필은 귀가 솔깃해졌다.      “김 구장이 중매를 서니깐. 길게 말해 뭘 하겠소. 내 맏딸을 최구장 집에 주기로 하겠소.”      옥실은 뒤 벽에 기대 문틈으로 그 말을 엿듣고 부끄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옥실은 기도나 드리듯이 두 손을 맞잡아 가슴에 대고 북녘하늘을 바라보더니 잠간 눈을 딱 감았다. 이윽고 뒤울안에서 구새 목 쪽으로 살금살금 달아났다.      김구장은 막걸레를 죽 들이마시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매듭을 지었다.     “그럼, 혼사 말이 성사 된 걸로 최구장에게 전하겠소."     “가만!”     아주 시원하게 대답하던 득필이 김 구장을 따라 일어나면서 꼬리를 달았다.     “그런데 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옥실을 시집보내고 이 집 농사는 누가 짓겠소. 한 3년 있다가 시집보내야 될 것 같소이다.”     김 구장은 어이없다는 듯이 조개턱을 흔들면서 허득필의 낯에 대고 삿대질을 했다.     “에끼, 이 사람아, 그래 다 큰 딸을 시집보내지 않고 영영 붙들어두고 자네 대신 농사 질을 시키겠는가!”      “아니, 그런 말은 아니요.”     “그래, 딸을 준 대신 막걸리 값이라도 달라는 건가?”      허득필은 씨무룩이 웃었다.      “알만하오. 곤난한 살림살이에 기둥같이 믿던 맏딸을 그럴 수도 있지. 내 알아서 최구장에게 말해주지.”      최구장은 김 구장에게서 혼사말을 갔다 온 과정이야기를 죽 듣고 나서 그 이튿날로 둘째아들 경인을 시켜 송아지 한 마리를 사돈 허득필에게 보내주었다.     두 사돈집에서는 그해 섣달 초하루에 경숙과 옥실의 결혼을 올리기로 했다.     최구장 일가는 경사가 났다.     최구장의 아내 성단은 임신한 몸이 돼가지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돋을 지경으로 바삐 돌았다. 그녀는 감자떡이나 빚어놓고 녹두 길금이나 깨 기름에 볶고 두부와 닭 알 지짐을 지쳐 상우에 올리고 닭이나 잡아 큰상에 올려놓았다. 막걸리를 많이 겨를 수 없어 성단은 경인과 경민을 전날 우시장 고을에 가서 막걸리나 몇 동이 사서 수레에 사서 실어오게 했다.      원래 옛날 남부와 중부 조선에서는 결혼잔치를 사흘이나 했다. 결혼잔치 첫날에는 신랑이 백마를 타고 신부네 집에 가서 큰상을 받고 신부네 집에서 하루 밤 자고 이튿날에야 신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신부에게 큰상을 받게 한다. 그리고 사흘에는 신랑이 다시 신부를 데리고 신부네 집에 가서 가시부모에게 인사를 올려야 했다.      그런데 함경북도에 들어온 후 살림살이도 힘들기에 많은 사람들은 결혼잔치를 간단히 하루에 다 치르는 것이 새로운 습관으로 돼버렸다.     최구장과 허득필은 토론하고 여기 함경북도 새로운 습관대로 결혼식을 간단히 치르기로 했다.     신랑 경숙은 백마를 타고 삼촌 최구철과 동생 경인을 비롯한 상빈들의 옹위를 받으면서 운주하 개울물을 지나 앞마을 신흥동의 허득필의 집에 이르렀다.     마을 아낙네들은 울바자 박에 모여서서 손가락을 입귀에 물고  신랑이 허 씨 네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소곤거렸다. 신랑이 키도 훤칠한데다가 매부리코라던가 사내답다고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말고삐를 잡은 총각 경인이도 아주 잘났다고 혀를 둘렀다.     양태머리를 무릎아래까지 내리 드리운 경인은 키도 경숙보다 더 크고 몸도 탄탄하고 날렵해보였다. 게다가 경인은 고을에 가서 태권도와 무술을 배워서 명절이거나 굿을 하는 날에는 칼춤을 아주 날래게 추어 운주동과 신흥동에는 물론 영월동에까지 인기 있는 총각이었다.     경숙은 버선발로 가시집 마루를 딛고 안방에 들어가 큰상을 점잖게 받았다. 백두산 원시림에서 내려온 최구철은 경인 등 상빈들을 데리고 아주 틀스레 곁방에 들어가 상빈 상을 받았다. 경인은 수시로 앞뒤로 달아 다니면서 오촌 숙 최구철과 형님 경숙이 사이에 말을 전했다.     점심때가 거의 될 무렵에야 신랑 경숙은 큰상을 물리고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옥실과 함께 가시부모인 허득필 부부를 비롯한 가시집안 어른들에게 절을 올렸다.     옥실이 고운 한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면서 가마에 오를 때 허득필은 서운해 멍해 서 있다가 바가지로 막걸리를 퍼서 죽 들이켰다.  그의 처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얼굴을 돌리었다.     경숙은 백마에 올라타고 고삐를 잡은 경인과 함께 앞서고 그 뒤로 사인교를 탄 신부 허옥실이 뒤따랐다. 상빈들인 최구철은 적토마를 타고 그 뒤에서 옹위하면서 따랐다. 백마를 탄 신랑 경숙은 다른 때보다도 더 늠름해 보였다.     앞마을에서 신랑신부의 행렬이 운주동에 나타나자 최구장을 비롯한 시집 식구들은 마을 어귀까지 달려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반겨 맞았다. 은녀는 육촌 오빠 경숙이가 결혼한다고 하자 아버지와 함께 며칠 전에 백두산 기슭에서 말을 타고 최구장 큰아버지 집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그는 육촌오빠 경숙이 장수처럼 백마를 타고 가마에 탄 신부를 데리고 늠름하게 오는 것을 보고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성칠은 최구철과 진달래가 왔다는 기별을 받고 마을 타고 백두산에서 잔치 집에까지 찾아 달려왔다. 최구철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진달래와 함께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가마에서 신부가 나오자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신부에게 쏠렸다.     “와- 정말 곱다.”     “신흥동에 저렇게 고운 색시가 있었니?”     “글쎄 말이야."     "경숙이 색시 고와서 온 밤 자지 못하겠다.”     바자굽과 구새 목에서 아낙네들이 수군거리는데 마을 처녀들은 부러운 눈길로 새 색시 옥실을 바라보았다.     새 색시가 큰상을 받자 최구장은 한시름을 푹 놓았다…     이듬해 음력 2월 2일에 옥실은 옥동자 봉인을 낳았다. 옥동자는 외까풀 눈에 얼굴은 자그마 해도 귀엽기만 했다.     옥실은 포대기에 싼 봉인을 남편 경숙에게 안겨주었다.     봉인을 안고 경숙은 너무 좋아서 매부리코를 실룩거렸다.        “어허, 그 놈이 보채기도 보챈다.”      그는 애를 안고 서성거리다가 아버지에게 안겨주었다.      최구장은 맏손자를 안고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는 애 볼에 뽀뽀를 해주면서 중얼거렸다.      “봉인아, 이 놈아, 네 놈은 우리 개성 최씨 가문의 기둥 같은 14대장손이다. 어이구, 우리 14대 장손어른이 대단히 역빠르겠는데. 허허허.”       맏손자를 본 최구장은 이마의 밭고랑 같은 주름살이 단번에 쪽 펴지면서 내 천 자가 이전에 비해 얕아진듯했다.      봉인이라는 이름은 최구장이 임시 지어 부른 애명이었다. 후에 최구장은 뿌리 근자 돌림으로 손자들의 이름을 짓기로 하고 봉인의 이름을 근형이라고 지었다.      마당의 앙상한 나무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 꼬리를 달싹거리며 근형이 태어난 것을 세상에 알리기라도 하듯이 깍 깍 깍 노래하고 있었다. 뻐꾸기가 화답이나 하듯 눈덮은 수림에서 뻐꾹뻐꾹 울었다. 까치와 뻐꾸기는 화음으로 봉인의 길고 긴 인생의 꿈을 미리 꾸고 있는가? 그 울음소리 특별히 애처롭고 비장하지 않는가?  
22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 댓글:  조회:2062  추천:0  2015-04-28
          제2장 고향 마을의 사람들                      1.샘물터에서 만난 처녀       서리발 나는 해볕이 개마고원 원시림의 숫구멍을 내리쪼이기 시작하였다. 개마고원에는 마가을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별유천지였다.     성칠은 적토마 배를 툭 차 박차를 가하면서 령길을 벗어나 적송이 우거진 산비탈을 내리달렸다.     한참 달리다가 저 멀리 고향 마을이 내려다보이자 목이 말라 마른 침을 꼴깍 넘겼다. 말배에 처맨 조롱박을 풀어 쳐드니 물방울이 몇 방울이 마른 입술에 떨어졌다. 성칠은 입술의 물방울을 혀로 감빨다 말고 저 멀리 보이는 샘물터에 눈길을 박았다.     “샘물을 실컷 마셔야 하지.”     좁다란 골짜기 막바지 샘물터에서 웬 처녀가 바가지로 샘물을 한 바가지 한 바가지 물동이에 퍼담고 있는 것이었다. 하얀 무명저고리로 감싼 가녀린 어깨 위로 외태머리를 치렁치렁 드리운 처녀, 깜장치마를 입은 처녀의 동실한 뒷모습이 그렇게도 아름다울 수야 있겠는가.      (은년가? 은흰가?)       검둥이가 앞서 달려가려는 것을 성칠이 “휙!” 휘파람을 불어 불렀다.        그는 말을 달리다가 살짝 뛰어내려 살금살금 샘물터로 다가갔다.        (뒷모습은 은녀와 똑 같은데.)        성칠이 샘물터의 처녀 뒤까지 살금살금 다가갔는데도 처녀는 아직도 자취를 모르고 있었다. 성칠은 뒤로 다가가 두 손으로 처녀의 두 눈을 꽉 막았다.        “왁!”     “어마나!”     후닥닥 놀란 그 처녀는 두 손으로 성칠의 두 손을 잡고 손가락을 하나 꼭 잡아 푸느라고 안간힘을 다 썼다.     "누구야? 놔, 놔라니깐!"     성칠은 손가락에 힘을 더 주면서 걸걸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누구겠꽁?”     “이걸 놔봐!”     “맞추고야 놓을 테야.”      “성칠 오빠겠꽁.”       “아니다. 은녀야.”       “그럼? 아냐. 성칠 오빠 맞다. 응응. 이걸 놔.”      성칠이 아무리 목소리를 숨기려고 하였지만 은녀의 귀를 속일 수는 없었다.      성칠이 두 손을 활 놓자 은녀는 그의 두 손을 잡은 채 돌아앉으면서 쌍까풀눈을 똥그라니 떴다.      “오빠 맞구나! 나쁜 놈!”      은녀는 성칠의 넓은 가슴에 주먹을 안기다가 성칠의 가슴을 활 밀어놓았다. 성칠은 준비 없어 벌러덩 엉덩방아를 찧었다.      “얘야, 목이 말라 째지는 것 같다. 물 한바가지를 주렴.”      “그래요.”      은녀는 강원도 영월군에서 이사해 와서 남대치 말을 곧잘 했다.      그녀는 물바가지로 샘물을 한 바가지 푹 퍼서 손바닥으로 바가지 밑에 흐르는 물을 쓱 닦았다.      "자요."      그녀는 두 손으로 물바가지를 쑥 내밀었다.      성칠이 급히 받아 마시려고 하자 은녀가 물바가지를 도로 가져갔다.      “야, 목이 말라 죽겠는데 무슨 장난이야.”      “아니. 급히 마시지 말아요.”     은녀는 물바가지에 풀잎을 하나 뜯어 띄워 놓은 후 다시 내밀었다.     “자, 드세요.”     성칠은 물을 마시려다가 풀잎을 보고 상을 찡그렸다.     “물바가지 안에 웬 풀잎이냐?”     은녀는 생글방글 웃으면서 종알거렸다.     “오빠가 바쁜 걸음을 달려온 후 물을 급히 마시다가 얹힐 가봐 그래요.”     “오, 그래?”     은녀는 옥 같은 이를 드러내며 쌔물쌔물 웃으면서 성칠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성칠은 물바가지 물에 뜬 풀잎을 후후 불면서 샘물을 꿀꺽꿀꺽 마시었다.       “어, 시원하다. 이제야 살 것 같다. 자, 한바가지 더 주렴.”      성칠이 물바가지를 내밀자 은녀는 샘물을 또 한바가지 폭 퍼 주면서 종알거렸다.       “자, 드세요. 땅 밑에 샘물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실컷 드세요.”      “그래, 은녀 샘물이 특별이 시원하구나.”     성칠은 시원한 샘물을 연속 두 바가지나 마셨다.     “호호호, 괜히 물배만 채우겠소.”     은녀는 또 한바가지 퍼서 두 손으로 내밀었다.     성칠은 그 한 바가지마저 다 마시고서야 뒤에 따라온 검둥이 대가리를 쓰다듬었다. 검둥이도 성칠과 은녀를 번갈아보면서 꼬리를 흔들거렸다.     성칠은 말배에 건 주머니에서 큼직한 곰의 고기덩이를 꺼내서 은녀에게 내밀었다.     “이건 뭐예요?”     "사냥한 거야. 집에 가져다 앓는 아버지한테 대접해라. 이 장꿩 꼬리털 하나만은 기념으로 잘 건사해.”    성칠이 정색해 말하자 은녀는 귀밑까지 발갛게 상기됐다.    “오빠, 은희 언니가 알면 괜히 오해하겠어요.”    “뭘, 오해한다는 거야. 오빠 너한테 주는 건데.  언제 셈평이 들겠니? 또 널 고와하면 뭐라니?”      “아이고, 부끄러워라. 호호호.”     은녀는 물바가지를 떨어뜨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외면했다.     가리마를 낸 귀밑에 칠색무지개가 더 곱게 피였다. 이팔청춘의 은녀는 실로 산속 숲속에 피어난 한 송이 함박꽃 같았다. 함치르르한 머리카락아래 짙은 눈썹아래 긴 속눈썹에 어울리게 새별처럼 반짝이며 새물대는 눈, 옥 같은 이, 구김살 하나 없는 빨간 입술, 빨갛게 달아오른 두 볼에 귀밑머리 몇 오리가 흘러내려 가을 산바람에 하느작거렸다.      “보기는?”       “보는데 고운 얼굴이 축나니?”      성칠은 은녀을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그 넓은 품에 안겼던 은녀는 덴 겁을 한 듯이 바삐 뒤로 물러섰다.     “놔요. 저기 누가 온다는데도.”      짐짓 골짜기아래 저쪽으로 눈치하자 성칠은 그 곳을 내려다보면서 손을 놓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에이, 요게 어디서.”     “호호호, 아저씨가 이러면 되는가요?”     “그런가? 내 너무 한 겐가? 에크, 저게 네 엄마가 오는구나. 그럼 내 먼저 내려가겠다.이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알려라."      성칠은 적토마 잔등에 훌쩍 뛰어올라 검둥이를 앞세우고 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굽이진 골짜기 아래로 사라졌다.       은녀는 촉촉한 눈길로 멀어져가는 성칠 오빠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골짜기 저 아래에서 한손으로 치마 자락을 걷어안고 올라오는 어머니를 보자 제정신이 펄쩍 들어 물동이를 이고 장 꿩과 곰 고기를 들고 아래로 치마자락이 휘날리게 내리 걸었다.        은녀가 인 물동이에서 바가지 물동이에 부딪치는 소리가 동 동 동 절주 있게 들려왔다.        은녀는 금방 있은 분간하기 어려운 일에 생글 웃다가 무거운 그림자가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햇님도 처녀 총각의 이런 연극을 많이 보았으련만 숫처녀의 웃음에 화답이나 하듯이 씨물 웃었다. 시원하고 맑은 가을 샘물은 여전히  뭘 조잘조잘 속삭이면서 흐르고 흘러 성칠이 네 집 앞을 굽이굽이 흘러내려갔다.       은녀는 물동이에서 얼굴에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손으로 닦으면서 어머니를 따라 집 안에 들어섰다. 그런데 응삼의 자그마한 주먹 낯을 보자 불길한 예감이 들어 주춤 멈춰 섰다.      “오, 은녀가 돌아왔구먼. 마침 잘됐다.”     응삼의 이지러진 애호박 같은 낯에 간사한 웃음이 흘러지나갔다. 은녀가 왼손에 쥔 장 꿩에 눈길이 닿자 주름살이 죽죽 간 그의 길쭉한 낯에 음흉한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은녀가 집안에 천천히 들어가 장 꿩을 부엌에 내리어 놓고 물동이를 내리어 물독에 쏴- 부었다. 그녀가 동이를 안고 다시 샘물터로 가려고 문 밖에 나섰다.      그때 집 안에서 쿨룩쿨룩 기침소리와 함께 엄창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 은녀야, 가지 말고 들어오라.”     은녀가 집 안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쑥 꺼져 들어간 가슴을 손으로 두드리면서 쿨룩 거렸다.     은녀는 바삐 물동이를 구들에 내려놓고 구들에 올라가 아버지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창렬은 응삼을 내려다보면서 말하였다.      “작은 나리,  딱한 사정을 들어주오. 은녀를 데려가지 못하오. 내 병이 나으면 꼭 그 집에 들어가서 일해 빚을 갚아주겠소. 쿨룩쿨룩.”      은녀는 깜짝 놀라 발딱 일어나더니 이글이글 불타는 눈총을 응삼에게 쏘았다.      응삼은 개의치 않고 엄창렬에게 호통쳤다.      “애햄, 그래 자네가 언제 병이 나아서 3년 전에 진 빚을 갚는단 말이요? 약을 쓰겠다고 해서 뀌워줬더니. 참 량심없게 놀아? 은녀가 이젠 저렇게 컸으니 딸 신세라도 져야지 않겠소?”       부엌 쪽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창렬의 처 명순이 두 손을 마주잡고 통사정하였다.      “조금만 말미를 줍소. 애 아버지가 저렇게 앓는데 은녀까지 들어가고 나면 이 집 농사는 누가 짛겠소? 딱한 사정을 좀 봐줍소.”      “그것도 말이라고 해?”     응삼이 발딱 일어나면서 뾰족한 참새 입을  짹짹거렸다.      “염치 있소? 신세를 졌으면 갚을 줄도 알아야지. 딸년들이 저렇게 컸는데 일도 시키지 않는가? 그래 요리 간에 보낼 예산인가? 은녀 안 되면  은희를 가져가야겠소.”      납덩이 같은 침묵이 집안에 흘렀다.      한참 후 응삼이 일어나면서 구렁이 같은 말 한마디 내뱉었다.      “정 딸년들을 못 들여보내겠으면 처라도 들여보내오.”      응삼이 엉덩이를 툭 털면서 바닥에 내려가 신을 신었다. 응삼은 문을 박차고 나가면서도 우멍 눈은 은희의 하얗고 말쑥한 얼굴과 풍만한 젖가슴을 흘끔 곁눈질했다.      그때까지 아버지 잔등을 두드리던 은녀가 쌍까풀눈을 들어 응삼을 바라보았다.      “나리,  내 들어갈테니 엄마는 놔 두세요.”       응삼은 실 돌피 같은 몸을 돌려 창렬과 은녀, 은희를 번갈아보면서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오, 그래 참 심청 같은 효녀로구나. 내일 인차 우리 집에 들어오라.”      창렬이 은녀를 밀치면서 일어나 손을 내저었다.     “저, 나리, 은녀는 죽어도 못 들여보내겠소. 내 눈에 곰팡이가 끼기 전에는 안 되오.”     응삼은 머리 뒤로 담배연기를 흩날리면서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독살스레 을러멨다.     “내일 보내게나. 오지 않으면 이 놈의 집을 허물어 갈 줄 알아라. 퉤! 배은망덕한 놈들.”     응삼이 삽짝문을 열고 나가자 창렬은 은녀와 은희를 붙안고 잔등을 어루만지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은녀야, 안 된다, 안 돼. 내가 죽으면 죽었지 너희들을 남의  부엌데기로 들여보내지 못한다. 안 된다, 안 돼.”      은녀는 아버지 잔등을 두드려주면서 하얀 얼굴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뒤이어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헌 까래 위에 눕혀놓았다. 앓는 아버지 초췌한 얼굴을 내려다보는 은녀의 가슴은 한 오리 한 오리 저며 내는 것만 같았다. 눈물과 땀방울이 흘러내려 은희의 양 볼에 눈물범벅이 된 귀밑머리 몇 오리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이때 바깥이 어두워지더니 돌개바람이 사납게 불어쳤다. 순식간에 돌개바람에 창렬의 집 이영이 흩날려 하늘높이 날아났다. 앙상한 연목가지가 퍼런 하늘아래 덩그렇게 드러났다.  먹장구름이 덮쳐오더니 가을비 구질구질 쏟아져 내렸다. 을씨년스러운 하늘아래       집 안에서는 쿨룩쿨룩 기침소리에, 천정에서 새 떨어지는 물을 받느라고 분주한 소리, 명순과 은녀, 은희의 흐느낌소리가 반죽돼 상가집처럼 처량하게 귀를 아프게 했다.     은녀의 남동생 상호는 사내노라고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고 눈을 부릅뜨고 씩씩 거렸다.     땅거미가 질 무렵에 먹장구름이 흘러가고 가을비 멎자 기러기 몇 마리 끼룩끼룩 슬프게 울면서 날아 지나가고 있었다.                                                                                                                                        2. 부엌녀            가을바람이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의 하현달을 스쳤다. 처량한 달빛이 영월동을 희끄무레 비추었다. 창렬의 집 지붕이 달빛에 앙상하게 드러났다.       집 문이 열리면서 은녀가 나왔다.       집 안에서 쿨룩쿨룩 기침소리와 함께 “은녀야, 이 달밤에 어디로 가냐? 그 집에는 못 간다.”라고 하는 창렬의 목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뒤이어 창렬의 처 명순이 뒤따라 나오면서 은녀의 손목을 잡았다.      “어디로 가는 거냐? 한씨 댁에 못 들어간다. 어서 집에 들어가자.”      어머니가 손목을 잡아 마구 끌었다.      은녀는 어머니의 손을 마구 뿌리쳤다.      “엄마, 내가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 집 기둥을 빼주겠습니까?”      명순도 더는 말릴 힘이 없어 못이 박힌 듯 우두커니 서서 은녀가 개울가로 내려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명순은 두 볼로 흐르는 눈물을 삼키면서 개울가에까지 따라 나왔다.      “얘야, 아무튼 몸을 주의해라. 그 색마 같은 한길수를 주의해라.”      “나도 다 컸으니 근심하지 맙소.”      은녀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저고리 동전을 들어 닦으면서 개울물을 따라 허둥지둥 걸어 내려갔다.      달빛을 싣고 졸졸 흐르는 개울물, 은녀는 그 개울물에 놓인 징검다리를 보자 둔덕 저쪽에 있는 칠성 오빠네 집 쪽에 눈길을 보냈다.          성칠 오빠 집의 등잔불빛이 눈물이 고인 은녀의 눈에 희미하게 알른거리면서 뜨였다.      은녀는 한숨을 호- 내쉬면서 맥없이 개울가에 쪼그리고 앉았다.     은녀의 귀전에는 성칠 오빠가 말고삐를 잡으면서 자기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알려라.”라고 하던 말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왔다.     (어쩐담? 믿을만한 사람은 성칠 오빠 밖에 없다. 알릴까?)     은녀는 엉거주춤 일어서다가 되 물앉았다.     “안돼. 내가 들어가서 고생할지언정 성칠 오빠까지 부담시킬 수는 없지.”     왕 왕 왕!     성칠네 집 쪽에서 검둥이가 짖어댔다.      은녀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들어 피뜩 성칠네 집 쪽을 바라보았다. 등불 빛에 키가 후리후리한 검은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그 그림자는 마당에서 장작개비를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오빠, 난 어쩌면 좋아? 흑흑흑,”      은녀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흐느껴 울다 말고 양태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럴 수는 없어. 이 몸이 더 고달프면 고달팠지.”      은녀는 독한 마음을 먹고 개울 아래쪽으로 걸어갔다.      이때 갑자기 버스럭 소리가 개울가에서 들려왔다. 은녀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몸을 옹송그리고 소리나는 쪽을 살폈다.      킹!      버드나무숲 속에서 버스럭 버스럭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검둥이가 뛰어나왔다.      “검둥이야, 네가 웬 일이냐?”       검둥이는 뛰어와서 은녀의 치마 밑으로 발등과 장딴지를 핥을 상을 했다. 따뜻한 코김이 발등을 간지럽혔다.      은녀는 쪼그리고 앉아 검둥이의 뒤통수를 매만지다가 다독여주었다. 검둥이는 은녀의 품에 안기면서 끼깅거렸다. 검둥이는 성칠을 따라다니면서 자기 주인과 은녀의 각별히 친한 사이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검둥이도 마치 은녀의 가련한 처지를 불쌍해하는 것 같았다.      이때 징검다리 쪽에서 인기척소리가 났다.     은녀가 검둥이 잔등을 쓸어주다가 머리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니 달빛아래 후리후리한 사나이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담배불빛이 희끄무레 밝아지더니 성칠의 덩실한 코 마루와 입이 보였다.      “오빠, 으흐흑.”      은녀가 뛰어가서 성칠의 품 안에 안기면서 어깨를 들먹였다. 쓸쓸한 하현달빛을 빌어 은녀의 눈에서 줄줄 흐르는 눈물을 볼수 있었다.     “은녀, 웬 일이냐?”     성칠은 은녀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는 검둥이가 개울 쪽에 대고 왕 왕 왕 짖어대자 사냥꾼의 민감한 감각으로 개울가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상해 검둥이를 따라 집에서 내려왔던 것이다.     “은녀야, 어서 말해라. 너 무슨 일이 있구나.”      은녀는 어깨를 들먹이면서 성칠의 품에서 스르르 나왔다. 처량한 하현달빛에 그녀의 눈에 고인 눈물이 쓸쓸하게 반짝였다.      이윽고 은녀는 목안으로 들어가는 소리로 말하였다.      “한영감이 나를 부엌여로 들여갈 예산이오.”      성칠은 은녀의 두 팔에서 손을 떼면서 한길수가네 집 쪽에 침을 퉤 뱉었다.      “그 놈 새끼! 언감 네한테 손을 댄단 말이냐? 들어가지 말라. 그 놈이 감히 어쩌는가 두고 보자.”      성칠은 열이 올라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안 되오. 내가 가지 않으면 길수 놈이 빚 대신 우리 집 기둥을 뽑아가겠다고 했소.”     “쳇, 그러기만 해보지. 가만 놔두지 않겠다. 가자, 집으로 돌아가자.”      성칠은 은녀의 손목을 잡고 마구 집 쪽으로 끌다시피 했다.      은녀는 끌려가면서 통사정했다.      “이러지 마오. 내 이 밤에 가지 않으면 그 번들 이마가 내일 개다리들을 끌고 와서 집을 허물어갈게요.”     그러건 말건 성칠은 은녀를 다짜고짜 끌고 은녀네 집 쪽으로 향했다.     “일없다. 내 방법을 댈게. 너를 그 쌍놈 영감태기네 집에 들여보낼 순 없다.”     “빚을 졌으니 무슨 용빼는 수 있소?”     그 말에 성칠이도 은희를 마구 끌고 가다가 손을 스르르 놓았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담배쌈지를 꺼내 담배를 말아 부시를 쳐서 불을 붙여 물면서 개울가 모래바닥에 물앉았다.      개울물이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면서 파란 가을 하늘과 달빛을 싣고 졸졸 흐르고 있었다.      은녀도 성칠의 옆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은녀는 조약돌을 쥐여 애꿎은 모래바닥에 줄을 쪽쪽 그었다.     이윽고 성칠의 입에서 콘크리트바닥에 쇠공을 굴리는 듯 목소리가 울렸다.     “은녀야, 한영감의 빚을 물어주면 그만이야. 너는 저 개울가의 버들을 베서 버치를 틀고 나는 사냥을 해서 그 놈의 빚을 말끔히 물어  주고 네 아버지 폐병도 치료해주자.”    “오빠, 오빠의 마음은 고맙소만 형님과 오빠네 일가에 미안하오.”     “그런 소리를 하면 못써.”     하현달이 치마봉을 희미하게 비추었다. 남쪽산등성이는 희끄무레 하고 산 음달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누워있었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 그들의 뺨을 시원히 적셔주었다. 어디에서인가 짝을 잃은 외기러기가 구슬프게 끼룩끼룩 울고 있었다.     이튿날,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오자 성칠은 동생 창준과 기준을 데리고 창렬의 집으로 갔다.     성칠은 집안에 들어서자 벽에 기대여 겨우 앉아있는 창렬이를 보고 말하였다.     “은녀 아버지 근심하지 맙소.”      창렬은 그저 기침을 쿨룩쿨룩 했다.     성칠이 바닥에 서서 구들에 올라가지도 않고 뒤 말을 이었다.     “내가 사냥을 해서라도 한 씨 댁의 빚을 물어줄 테니 아예 근심하지 마시오.”     “고맙네. 쿨룩쿨룩. 자네 신세를 쿨룩, 너무 져서. 쿨쿨, 쿨룩쿨룩. 아,”     창렬은 일어서려고 하였다.     “천만의 말씀, 이웃사촌이라고 서로 도우면서 살아얍지.”     성칠은 성큼 구들에 올라가서 일어서려는 창렬을 만류하며 도로 앉혔다. 조왕간 쪽으로 하여 앉은 은녀 어머니와 은녀 그리고 은희까지 맑은 웃음을 지었다.     창준과 기준은 형을 따라 밖에 나와 지붕에 올라갔다. 흩날리고 남은 이영을 고루고루 펴놓고 그 우에 새 단을 올려 이영을 잇기 시작하였다. 이때 은녀와 창준의 맏아들 상훈과 둘째아들 상길마저 달려와 새 단을 걸이 대에 걸어 지붕에 올렸다. 상호는 마당에 널린 새를 비로 쓸어 모았다. 기준의 맏아들 상우도 와서 마당에서 새로 새끼를 꼬았다. 여럿이 반나절을 역사 질 한 끝에 새 이영으로 탈바꿈했다.       명순과 은희, 은녀는 집안 부엌에서 점심차비에 바삐 돌아쳤다. 은녀는 성칠 오빠가 준 장 꿩 깃털을 한대 뽑아 사랑방 천정에 꽂아놓았다. 명순은 그 장 꿩을 뜨거운 물에 튀를 해 곰의 고기와 함께 칼 모태에 놓고 돔박돔박 칼로 썰어 큰 가마에 얹었다.       은녀가 부엌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불을 지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마에서 쌕김이 쌕 소리와 함께 뿜겨 나왔다.      창렬은 지팡이를 짚고 마당에 서서 기침을 쿨룩쿨룩 하면서 지붕우의 성칠 네를 쳐다보았다.      “수고들 했네. 사닥다리를 주의해 내려들 오게나.”     성칠 네가 금방 사닥다리에서 마당에 내려서기 바쁘게 한길수가 응삼과 수길 등 하인들을 데리고 마당에 쓸어들었다.     “에헴, 하긴 잘하는구먼. 은녀는 들여보내지 않고.”     번들이마에 중절모자를 삐뚤게 쓰고 거들먹거리는 길수를 보고 기준의 얼굴에서는 언짢은 기색이 유표하게 흘렀다.     은녀는 벌써 겁을 집어먹고 명순의 뒤에 숨어 두 손을 가슴 위에 맞잡고 서 있었다.     성칠은 아주 너그럽게 한 씨 댁의 앞에 다가갔다.     “한영감, 여기는 뭘 하러 행차했소?”    한길수는 말이발을 앙다물고 투덜거렸다.    “자네 삐칠 일이 아니네. 병 치료에 남의 돈을 잘 썼으면 갚을 줄도 알아야지. 양심이 있는가? 이젠 석삼년이 되도록 본전도 한 잎 갚지 않았단 말이오.”     그때 실 돌피 같은 응삼이 우쭐해서 은녀 쪽으로 다가갔다.      “은녀야, 어서 우릴 따라 가자. 괜히 집 기둥이 뽑히겠다.”     그때 옆에 서있던 기준이가 어깨로 응삼을 콱 밀쳤다.     “누가 감히 이 집 기둥을 뽑아간다던가?”     “내다!”     한길수는 호랑이처럼 고함치며 발길로 짚 기둥을 탁 찼다. 그 바람에 천정에서 흙 부스러기가 우수수 흩날려 떨어졌다. 주먹으로 벽을 꽝 치자 주먹만큼 벽이 우멍하게 패여 들어갔다.     “어느 놈이 빚을 갚지 않고 내 앞에서 큰소릴 친단 말인가! 엉?!”    기준이 한발 앞으로 나서는 것을 성칠이 막으면서 웃는 얼굴로 나서며 비아냥거렸다.     “한 씨 주먹이라면 이 명천 바닥에서 누가 모르겠소? 손가락을 빼  빚을 갚겠소?”    한길수는 목을 옆으로 삐뚤면서 귀를 기울였다.     “무슨 말인가?”     성칠은 한영감에게 다가서 나직이 말했다.      “한 달만 말미를 줍소. 내 사냥해서 대신 갚아주지.”      “또 기다려? 안 돼! 오늘 은녀를 데려가야겠네!”     한길수가 으르렁거리는데 응삼이 옆에서 길쭉한 박대가리를 가로저으면서 풍을 쳐댔다.    “그렇지요. 오늘 안으로 저 은녀를 데려가야 하겠네. 데려가구 말구. 흥!”    응삼은 창렬 쪽으로 박대가리를 돌리더니 뱁새눈을 부라리었다.     “나으리 벼락 같은 성미를 모르는가? 날래 은녀를 보내라구.”    그때 기준이 썩 나서면서 들이 댔다.    “한영감, 대체 빚을 얼마나 졌다고 은녀가 들어가야 합둥?”    한령감은 개화장으로 땅바닥을 콕 찌르면서 고함쳤다.    “빚을 진지 석삼년이 되니 이자에 이자까지 120원이네. 30원이면 소 한마리야. 아니, 자네들은 뭔가? 더운밥을 먹고 괜히 식은 걱정하다가 다치지 말게.”    길수는 머리를 돌리더니 고함쳤다.    “얘들아, 뭣들 해? 어서 저 은녀를 데리구 가자.”     하인들이 우르르 쓸어가서 은녀의 양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러자 기준이 힘줄이 꿈틀거리는 팔을 휘둘러 하인의 귀쌈을 짝 갈기면서 땅방울같이 고함쳤다.     “썩 피키지 못할까? 백주에 감히 남의 양가집 고운 딸을 빼앗아간단 말인가! 엉?”     한영감은 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는 자기나 뺨을 맞은 모욕감이 들었다.     “아니, 저 놈이 개배때기를 차도 주인을 보고 차라고. 네가 감이 내 하인을 쳐? 이 놈아!”     어지간한 사람이면 한 영감이 을러메기만 해도 질겁해 진작 달아났으련만 기준은 떡 뻗치고 서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길수가 덮쳐 와서 개화장으로 탁 내리쳤다. 기준은 개화장을 떡 받아 쥐고 비틀었다. 한영감은 준비 없이 개화장을 휘둘렀다가 뜻밖의 반격을 받아 개화장을 빼앗겼다. 한길수는 중절모자가 땅바닥에 떨어져 굴면서 박 같은 번대 머리가 드러나고 말았다.      “에끼, 이 놈, 언감 대들어?!”     길수는 숱한 마을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고 말았다. 그는 체면을 세우려고 이번에 왼손으로 치는 척하다가 오른 주먹으로 기준의 얼굴을 내질렀다. 이번에도 기준이가 날아드는 주먹을 몸을 낮추면서 왼손으로 탁 쳐올려 막으면서 피했다. 뒤이어 날아드는 왼손을 턱 받아 쥐고 비틀었다.     “애개개, 이 놈이, 울뚝이놈. 애비 같은 사람과 정 버르장머리 없이 노는구나.”     이때 응삼이 뒤에서  영팔, 수길 등 하인들에게 고함쳤다.     “자네들은 뭘 하는가? 주인어른이 당하는데.”      영팔과 수길은 동네방네에 소문난 한다하는 싸움군이였다. 그들은 대판 팔을 걷고 싸움판에 뛰어들었다.      “기준아, 그만해라!”     성칠이 말렸다.     이때 은녀가 고함치면서 앞에 썩 나섰다.     “이러지들 맙소. 내 부엌데기로 들어가면 모든 게 끝이 아니겠소.”     기준도 한길수도 모두 손을 놓았다. 한길수는 오른손목이 아파 왼손으로 부여잡고 오만상을 찌푸리었다.      “그래, 진작 그래야지. 에이, 팔목껍질이 다 벗겨졌군.”       한영감은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기를 찬다고 기준이랑은 감히 업신여기지 못하고 창렬의 목덜미를 잡아 활 밀쳤다.      “이게 다 네 놈 탓이야! 죽여치울 놈, 빚을 갚지 않고 저 놈들을 믿고 우쭐대?”     창렬은 엉덩방아를 찧고 땅바닥에 쓰러진 채  가슴을 부여잡고 기침을 쿨룩쿨룩 했다.     그새 응삼이가 땅바닥에 떨어진  중절모를 주어 한길수의 번대머리에 삐뚤게 씌워주었다.      뒤이어 하인들은 은녀를 붙잡다 싶이 하여 앞세우고 개울 아래쪽으로 향해 발걸음을 뗐다. 창렬과 명순은 저쪽으로 가면서 이쪽을 되돌아보는 은녀를 보고 땅을 치면서 울었다.     성칠은 보다가 안 되여 한길수에게 통사정을 하였다.     “은녀를 제발 데려가지 맙소. 내 사냥을 해서 꼭 빚을 물겠습구마.”     “은녀를 먼저 데려갈 테니까. 자네가 사냥을 해서 빚을 물면 그때 다시 내오게나.”    성칠은 별수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기준만은 울뚝 밸을 못 이겨 눈에서 불길이 이글거렸다.     “사람을 업신여겨도 유분수지. 아무리 빚을 졌다고 남의 딸을 빼앗아가다니. 이 집에서는 어떻게 농사를 짓고 산단 말이요?”     한길수는 개화장을 휘둘러 기준이를 가리키면서 빈정거렸다.     “아하, 아직도 은희와 상호가 있지 않는가? 저 울뚝밸이 정말 귀찮게 논다니까? 이 담에도 오늘처럼 그렇게 버릇없이 놀다가는 내 버릇을 단단히 가르쳐줄테다.”    한길수는 개를 잡은 포수처럼 우쭐해 어깨를 으쓱하면서 응삼과 수길 등 하인들을 데리고 개울 쪽으로 내려갔다.     저 불쌍한 은녀를 보라. 하인들에게 납치되다 시피 해 개울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 창렬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가슴을 치면서 울음보를 터뜨렸다.     “다 내 잘못이지. 내 빨리 죽었더라면 빚을 지지 않고 살았겠는데. 은녀를 언제 찾아내오겠느냐? 어이구. 내 딸아. 쿨룩, 쿨룩.”     명순은 남편을 부축하면서 부엌여로 들어갔다. 둘째딸 은희는 저고리 동전으로 눈물이 글썽한 눈 굽을 찍었다.     상호가 엄마를 달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엄마, 울지 마! 응? 울지 마. 흑, 흑, 흑.”     그 광경을 보고 모두들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성칠과 기준은 격분해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3. 호랑이와의 박투       이튿날 창렬은 성칠이 준 곰의 열을 내놓으면서 명순에게 분부했다.       “여보, 이제 늙은 게 더 살아 뭘 하겠소. 이걸 팔아서 빚을 갚고 은녀를 데려 내오오.”       때마침 성칠이가 문안하려고 집안에 들어서다가 창렬이 하는 말을 들었다.       “은녀 아버지, 곰의 열은 얻기 힘든 귀중한 약잽구마. 곰의 열을 잡숫고 페병을 치료합소. 내 오늘부터 사냥해서 그 빚을 꼭 갚아드리겠습니다. 그 곰의 열은 꼭 잡수시오.”      창렬은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꼬장꼬장 마른 곰의 열을 들고 쳐다보였다.      “이걸 먹기보다 이걸로 은녀를 데려 내오면 얼마나 좋겠소. 쿨룩, 자네가 황소 네 마리 값에 맞먹는 쿨룩, 쿨룩 빚을 어떻게 갚는다고 그러오?”       그러나 성칠은 억대우 같은 몸을 일으키면서 고집썼다.       “은녀 아버지, 곰의 열을 달여 잡숫고 몸조리를 잘 하시오.”     성칠은 밖에 나가 적토마에 훌쩍 뛰어올랐다.     은희는 바깥에 나와 바랬다.    “오빠, 잘 다녀오세요.”       “응, 잘 있어라.”     성칠은 은희와 상호를 돌아보며 명순에게 다시 인사하고 말을 달려 산으로 올라갔다.     명순은 은희와 함께 낫과 새끼를 들고 버치 골 쪽으로 내려갔다. 동네 집 성칠이가 사냥해서 자기 집 빚을 무는 것을 눈을 펀히 뜨고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버들을 베다가 버치라도 틀어 팔아서 보태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마가을이었건만 참나무가지는 봄기운을 잃지 않은 듯이 물빛이 어려 있었다. 줄기에만 버드나무 잎이 몇 개씩 매달려있는 앙상한      버드나무가지들이 한길수에게 은녀까지 빼앗기면서 당하고 있는 명순 일가의 처지와 같아 가엽게만 생각됐다.    그들은 물기가 파란 버드나무가지들을 한 줌 한 줌 베여 땅바닥에 모아놓았다.    한참 낫질을 하다가 명순은 허리를 펴고 팔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이런 생각을 다했다.     “호- 성칠에게도 아들이나 하나 생겼으면 얼마나 좋겠니? 하옥은 어쩜 애도 하나 못 낳아?”      그녀는 너무 싱거운 걱정을 하는 것 같아 도리머리를 흔들더니 다시 허리를 굽히고 낫질을 하여댔다.     한편 사냥을 나선 성칠은 노루와 꽃사슴을 보고도 범이나 곰을 놀랠 까봐 총을 놓지 않았다.     그는 곧추 령을 몇 개 넘어 한 달전에 암 콤을 잡은 그 낭떠러지 위로 말을 타고 올라갔다.     한참 달리다가 그는 나무에 말고삐를 슬쩍 매놓은 후 바위 위에 앉아 한식경이나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곰이 얼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검둥이가 귀를 곤두세우더니 벌떡 일어나 사위를 쳐다보면서 끼깅거렸다. 뒤이어 노린내가 코를 찔렀다. 성칠은 서늘한 가을바람에 실려 오는 노린내를 맡자 호랑이가 부근에 왔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인차 총에 장탄한 후 바위 옆의 큰 나무 우에 올라가 주위를 신경을 도사려 살폈다.     “따 웅!”     얼룩호랑이 낭떠러지 아래로 성큼 뛰어 내렸다. 분명 주린 호랑이가 사람 냄새를 맡고 달려왔다.     검둥이가 낭떠러지 아래에서 왕왕 짖으면서 호랑이의 시선을 자기 쪽으로 유인해갔다.     호랑이도 그리 쉽게 얼리지 않았다. 호랑이는 검둥이를 덮쳐드는 척 쫓아버리고는 곧추 성칠이 바라 올라간 나무 밑에 어슬렁어슬렁 기어오더니 사발 눈으로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호랑이는 나무 우에 걸터앉아 총을 겨냥하고 자기를 노려보는 성칠을 발견하자 “따 웅— ” 하고 울부짖었다.     땅!     성칠은 선제공격했다. 철알에 빗맞은 호랑이는 성난 사자마냥 픽 돌아섰다. 사발 눈에서 불이 이글거렸다. 호랑이는 저쪽으로 달아갔다가 다시 이쪽으로 덮쳐왔다. 그 놈은 아가리를 쩍 벌리고 나무에 올라탄 성칠의 발밑에까지 뛰어올랐다. 그러나 성칠의 발밑을 스치면서 바위 저쪽에 풍덩 뛰어넘어갔다. 이렇게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뛰어 풍덩 떨어지고 저쪽에서 이쪽으로 날뛰어 풍덩 떨어지군 했다. 세 번 덮쳐 아가리로 물지 못하자 날아지나가면서 쇠꼬리 같은 꼬리를 휘둘러 성칠을 땅 쳤다. 다행이 꼬리가 먼저 나무줄기에 맞은 후 성칠의 얼굴을 때렸다. 성칠은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대번에 눈앞에서 번개치는 듯 하더니 코앞에서 따뜻한 무엇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호랑이는 저쪽 낭떠러지아래까지 달아나서 사발 눈을 슴벅이면서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성칠은 사냥총을 겨냥했다.       땅!     호랑이는 또 빗맞고 꼬리 빳빳해 달아났다. 호랑이가 날린 꼬리에 맞아 성칠은 눈에 별찌가 일어나 제대로 조준하지 못했던 것이다.     성칠은 팔소매로 뻘건 코피를 닦으면서 두덜거렸다.     “참 재수 없군. 끝내 놓쳐버렸군.”     그는 나무에서 주르르 미끄러지어 내리었다. 검둥이가 달려와서 꼬리를 휘청거리면서 문안이라도 하는 듯이 피 묻은 코앞을 핥았다.     “검둥아, 일없다. 어서 이곳을 떠나가자.”     성칠은 말고삐를 풀고 말 잔등에 올라 검둥이와 함께 아름드리나무속을 살피면서 수림 속을 빠져나왔다. 가을하늘도 높아진 듯이 명랑해졌다. 저 건너 쪽에 나무가 없는 곳에 감자밭이 보였다.     “옳지, 놀란 호랑이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 바에는 해 지기 전에 멧돼지라도 잡아가야지. 전번에 덫을 놓은 게 걸렸는가도 가보자.”     그는 말에서 내려 검둥이 뒤통수를 다독이고 나서 감자밭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먼발치에서 볼라니 덫에 거먼 무엇이 걸린 것 같았다.     “그럼 그렇겠지. 아무튼 빈손으로야 돌아갈 수 없지.”     성칠이가 다가가 보니 검둥이만한 중멧돼지 한마리가 덫에 걸려있었다. 성칠이가 그 놈을 덫에서 풀어내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사각사각 감자를 갉아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크!”     성칠은 저쪽에서 삐죽한 주둥이로 땅을 뒤지면서 감자를 파먹는 송아지만큼 한 암 멧돼지를 보고 황급히 감자밭에서 허리를 구부정하고 적송나무밭 쪽으로 뛰어갔다.     멧돼지도 이쪽 인기척을 느끼자 감자를 파먹다 말고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이쪽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이상하게도 멧돼지의 잔등에 애솔나무가 자라나있었다. 분명 멧돼지는 사냥꾼들의 총알이 싫어서 소나무밭에 가서 송진에 대고 몸뚱이를 비비다가 모래밭에 가서 딜딜 굴렀던 것이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면 멧돼지의 온몸은 송진과 모래알이 들어붙어 철갑을 두른듯하게 됐다. 그 놈 멧돼지는 솔 씨가 송진과 함께 잔등에 들어가 박혀 애솔나무가 자랐던 것이다.     성칠은 멧돼지가 자기를 완전히 발견하지 못하고 다시 감자를 파먹는 틈을 타서 뒤로 살금살금 달려갔다.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멧돼지 배때기에서 파란 불티가 일었다. 그러나 모래 철갑 때문에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총소리에 놀란 멧돼지는 몸뚱이를 홱 돌렸다. 화약 냄새를 맡은 그 놈은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고 성칠에게 덮쳐왔다. 성칠은 미처 장탄을 할 새 없어 총을 버리고 장딴지에 찬 비수를 쑥 뽑아들었다. 멧돼지가 곧게 덮쳐들자 성칠은 옆으로 살짝 피했다가 비수로 멧돼지 배때기를 푹 찍었다. 철갑 같은 모래철갑을 꿰뚫고 멧돼지 배때기에 비수가 박혔다. 그러나 비수를 되빼기 전에 멧돼지는 홱 돌아서 재차 공격하여왔다. 이때 검둥이가 멧돼지 뒤 다리를 물어뜯고 적토마가 뒤 발질로 멧돼지를 차댔다. 그 틈을 타 성칠은 재차 습격해오는 멧돼지를 피했다. 그는 인차 사냥총을 집어 들고 나무 밭으로 달아났다. 그는 적송나무를 안고 빙빙 돌면서 장탄했다. 멧돼지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송곳니를 드러내고 덮쳐드는 찰나였다.     땅!     성칠은 멧돼지의 아가리 안에 사냥총을 넣을 지경으로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멧돼지가 송곳니로 깨무는 바람에 총대는 부러지고 멧돼지는 맥없이 성칠의 앞에 털썩 쓰러졌다. 성칠도 멧돼지 앞에 맥없이 쓰러졌다. 검둥이는 멧돼지가 숨을 쉬는 것을 보고 목을 깨물어 완전히 숨통을 끊어놓았다.      한참 후 성칠은 멧돼지 배에 꼽힌 비수를 뽑아 배를 가르고 염통과 간, 폐를 꺼내 검둥이에게 줘 먹이고 몸뚱이를 반쪽씩 갈라 말 잔등 양쪽에 척 걸었다.      그가 말고삐를 잡고 감자밭을 떠나려고 할 때다.      “그 놈 멧돼지들이 감자밭을 도륙냈구나.”     백발이 성성한 한 영감이 호미를 쥐고 거의 절단 난 감자밭을 돌아보며 하는 말이다.     성칠이 머리를 돌려보니 백발영감 뒤에 젊은이 대여섯이 호미와 괭이를 쥐고 걸어오고 있었다.     “감자밭을 밟아 못쓰게 만들어 미안합구마.”     작달막한 영감은 말에 처맨 멧돼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오. 멧돼지들을 잡아서 감사하오."     성칠은 중멧돼지를 말 잔등에서 내리워 놓았다.     “이 멧돼지들은 이 감자밭을 파먹고 자란 멧돼지입니다. 가져갑소.”     그러나 영감은 받지 않았다.     “피를 흘리면서 잡은 멧돼지를 가지고 가오.”     성칠은 “원래 다 드려야 하겠지만요. 남에게 진 빚이 있어 이 작은 멧돼지만 드립니다. 꼭 받아주시오.”라고 했다.     “보아하니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성칠은 한길수네 빚 대신 부엌 여로 들어간 은녀를 빼내오려고 사냥하게 된 경과를 죽 이야기했다.     백발영감이 한숨을 후- 내쉬면서 멧돼지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성칠이 억지로 밀어주었다.      백발영감은 마지못해 멧돼지고기 반쪽을 받으면서 물었다.     “젊은이, 고향이 어딘가?”     “이 산 너머 영월동입니다.”     “오, 그렇구먼.”    백발영감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인사했다.    “난 운주동 최구장이오. 얘들은 다 내 아들들이요.”    성칠은 말고삐를 놓고 넙적 엎드려 절을 올렸다.    “아니, 젊은이, 이게 웬 일이가?”     최구장이 바삐 성칠을 붙잡아 일으켰다.    성칠은 일어나며 “혹시 최구철이라고 압니까?”    최구장과 아들들이 놀라운 기색을 띠었다.     “그래. 내 동생이지. 어데서 본적이 있소?”     성칠은 최구장의 두 손을 잡았다.    “이전에 구철 삼촌의 신세를 많이 졌습구마.”    그는 백두산에 갔을 때 있은 일을 죽 이야기했다.    최구장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정말 넓고도 좁은 게 세상인가 보오. 일본 놈들에게 쫓긴 동생이 백두산까지 들어가 숨은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소. 내게 연루될 까봐 찾아오지 않은 모양이요.”     최구장은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북녘하늘을 바라보면서 눈시울에 맑은 눈물이 글썽해졌다.     성칠은 최구장과 갈라지면서 인사했다.     “삼촌으로 모시겠습니다. 후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최구장은 성칠의 두 손을 잡고 반가와 했다.     "후에 다시 구철을 보면 놀러 오라고 전해주오."     "예."     성칠은 최구장 일행과 갈라져 말고삐를 잡고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최구장의 맏아들 경숙은 메 부리 코를 쓱 문지르면서 “그 형님이 인심도 후하오. 멧돼지고기 반쪽이나 주다니.”라고 했다.     둘째아들 경인이 맞장구를 쳤다.     “함경북도 사람들이 원래 인심은 후한 거야.”     한편 성칠은 검둥이와 적토마를 이끌고 하늘이 올려다 보이지 않는 수림 속을 걷고 걸어 어느덧 샘물터에까지 왔다.     그제 날에는 이 샘물터에서 은녀가 떠주는 시원한 샘물을 마시면서 갈증을 풀었는데 오늘 샘물에는 낙엽이 둥둥 떠 있을뿐이었다.      은녀가 없는 텅 빈 우물을 내려다보노라니 성칠은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했다.     검둥이는 은녀의 체취를 맡아 보려는 듯이 킹킹거리면서 은녀가 앉아 샘물을 퍼주던 샘물터의 납작한 바위돌이며 흐르는 샘물가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 보는 것이었다.     성칠은 말고삐를 쥐고 샘물가에 와서 적토마에게 먼저 시원한 샘물을 실컷 들이켜게 한 후 자기도 두 손으로 샘물을 퍼서 둬 모금 들이켰다.     그는 손으로 입술을 쓱 닦으면서 저 아래쪽의 한길수의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내려다보노라니 이가 갈렸다.     그는 적토마와 검둥이를 끌고 곧추 엄창렬의 집으로 향했다.     그때 마루에서 명순이 치마폭으로 무릎을 덮고 창렬과 마주 앉아 버치를 틀고 있었다.     서산 버치골 쪽을 바라보니 가을비가 구질구질 내리기 시작했다.     “여보, 성칠이 우리 은녀를 좋아하는 거 같소.”     “그럼 어떻소?”     “우리 은녀를 내오면 성칠의 작은댁으로 들여보내면 어떻소?”     창렬의 말에 명순은 덴겁해서 도리머리질 했다.     “우리 아무리 못 살아도 본댁이 새파래 살아있는데 첩으로야 못 주지요. 법이 없이도 살 병완 영감도 차마 우리 은녀를 아들의 첩으로 삼자고는 하지 않을 거예요.”    창렬은 고집했다.    “쳇, 모르는 소리. 지금 맏며느리 하옥이가 십여년이 넘도록 애를 낳지 못해 속이 타 죽는데 작은며느리를 두지 않고 되겠소. 은녀를 지킬 사람은 성칠 밖에 없소.”    명순은 영감을 외까풀 눈을 곱게 흘기면서 입귀를 비쭉했다.    “당신네 영월 엄씨와 영월 김 씨는 옛날부터 통혼하지 않는 한 집안 같은 사람들이라면서?”    그 말에 창렬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가 버치 골짜기 쪽으로 해 치마 봉을 올려다보니 벌써 치마봉 위의 구름송이에 불이 달린 듯이 저녁노을이 곱게 피고 있었다.     “성칠은 언제 오겠냐? 후- 쿨루쿨룩.”     그때였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성칠이 적토마 고삐를 잡고 마당에 들어섰다.     창렬의 내외간은 동시에 환성을 질렀다.    명순이 먼저 버들가지를 놓고 치마폭을 한손으로 걷어쥐고 마루에서 황급히 내려왔다. 창렬은 그제야 버들가지를 쥔 채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마당에 내려섰다.     “잘 있었습둥?”     창렬은 가냘픈 가슴에 성칠을 안고 떡판 같은 잔등을 어루만지였다.     “그래, 그래. 고생이 많았겠구먼. 이 가슴에 묻은 피는 웬 일인가?”     “호랑이를 잡지도 못하고 꼬리에 빗맞아 코피를 흘린 것이니 일없습니다.”     “에이, 안전에 주의하게나.”     “예.”     성칠이 말 잔등에서 멧돼지고기를 부리는데 옆에서 구경만 하면서 힘을 보태주지 못하는 창렬은 안타깝기만 했다.     갑자기 그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던 모양이였다.      “가만, 성칠이. 여기다 멧돼지고기를 부리지 말고 아예 실은 채로 한 영감네 집으로 가져가고 은녀를 데려 내오게나.”     성칠은 도리가 있는 듯 해 부리던 멧돼지고기에서 손을 뗐다. 한참 궁리하다가 그는 중 멧돼지고기 반쪽을 부리어 부엌에 들여갔다.     “이건 잡수시오. 한영감이 멧돼지 한마리만 받고 은녀를 내놓겠습니까?”     그러나 창렬은 숨이 차 헐헐거리면서 고집을 거두지 않았다.     “아니어. 쿨룩쿨룩, 저 전번에 나를 준 곰의 열까지 다 가지고 가서 통사정해보게나. 난 곰의 열을 먹기보다 은녀를 데려 내왔으면 심병이 뚝 떨어질 것 같네. 금이야, 옥이야 하던 딸을 빼앗기니 가슴이 답답해 죽겠네.”      성칠은 생각을 고쳤다.     “곰의 열만은 그만 둡소. 한영감이 내놓지 않으면 내 이제 사냥을 더 해서 한 달 안에는 은녀를 꼭 데려 내오겠습니다.    명순도 부엌에 들어가 함지에 물을 퍼들고 나왔다.    “성칠이, 은녀 아버지 말을 듣소. 은녀만 데려 내오면 저영감의 병이 나을게요. 곰의 열을 가지고 가게나.”    성칠은 함지 물에 손의 피를 썩썩 씻으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성칠이 한 영감의 집으로 떠난 후 명순은 멧돼지고기를 베여 함지에 담아 이고 개울 건너 병완이네 집으로 떠나갔다.                  4. 빚문서       어둠침침한 어둠이 해를 몰아내고 도고한 토성에 타리대를 치고 앉아 다리쉼을 하고 있었다. 저 멀리 공포가 깨난 수림 속에서 승냥이가 주린 배를 신음하면서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성칠은 적토마 잔등에 멧돼지를 싣고 한길수의 토성 안 집 대문 안에 들어섰다.       그때 한길수는 마루바닥에서 응삼과 마주 앉아 한창 뭐라고 쑤군거리면서 담배를 뻑뻑 빨고 있었다.       “아니, 어디서 난 적토마야?”       응삼의 말에 한길수는 기둥에 기대앉은 채 건 가래를 뗐다.       “에헴, 해 다 졌는데 웬 일인가?”      성칠은 곧추 마루 밑에까지 말을 몰고 다가섰다.      “빚을 갚자고 왔소.”      응삼은 씽 드르르 달려 내려와 말 잔등에 건 멧돼지고기를 말대가리를 기우뚱거리면서 여겨보았다.     그때 부엌에서 은녀가 문선을 잡고 성칠을 내다보고 반겨 맞았다.      “오빠!”      성칠의 곁으로 다가온 은녀는 화들짝 놀랐다.      “아니, 이 가슴의 피는? 어데 상하지는 않았소?”      성칠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한길수 쪽으로 몸을 돌리고 쇠덩이 굴리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멧돼지를 가지고 은녀를 내놓읍소."      "쳇!"     한길수는 담배대통을 마루에 탁 쳐 털어버리면서 벌떡 일어나 고함쳤다.     “무슨 소릴? 요까짓 멧돼지 고기 120원이나 가?”      성칠은 반문했다.     “한 250근은 되는데 안 된다니?”     응삼은 길쭉한 박대가리를 홰홰 내저었다.     “안 될 소릴 작작 하라구. 돼지고기 한 근에 50전씩이나 치겠다고? 흥!”     한길수는 발로 마루를 구르면서 꽥꽥 고함쳤다.     “걸 장마당에 가져다 팔아 은전을 가져 오게나! 120원에서 한 푼이라도 골아봐라! 은녀를 문밖으로 한 발자국이나 데려 내가겠구나! 흥!”     응삼은 옆에서 붓는 불에 키질을 했다.     “주인어른님, 소 한 마리에 30원 밖에 하지 않는데 멧돼지 한마리에 20원에서 더 하겠습둥? 우릴 바보 취급한다니까!”     “그래, 그래. 요까짓 걸로 어림도 없어. 우릴 뭘로 보는 거냐?”     한길수는 돌아서서 잔등을 보이더니 또 대통에 담배를 담아 꿍꿍 다졌다.     성칠은 품속에서 뭔가 꺼내보였다.     “자, 이건 백두산에서 자란 곰의 열이오. 이 열을 잡수면 허리 병이고 내장 병이고 다 떨어지구마.”    한길수는 귀가 솔깃해 몸을 홱 돌렸다. 그는 점점 성칠이 쥔 웅담쪽으로 낯을 가까이 하면서 눈이 사발만해졌다.    “이걸 잡수면 또 그 아래게 힘을 쓰오.”    “그래?”    한길수는 제꺽 성칠의 손에서 웅담을 뺏다시피 채갔다.     “그럼 이걸 두고 은녀를 데려가게.”    성칠은 한 발자국 다가섰다.    "문서를 내다 줍소."     그때 응삼이 나서면서 새된 소리를 쳤다.     “가만! 그까지 웅담이 백 원이나 된단 말인가? 고까짓 걸로 누굴 속이려고? 저 함박꽃 같은 은녀를 데려가? 안 될 소릴! 흥.”     월선도 위방 문선을 잡고 내다보다가 혼자말로 욕지거리를 했다.      "잘 하긴 잘 해. 저 쌍놈 영감태기 웅담을 먹고 동네 간나새끼들 엉덩이를 들쑤시려고? 은녀를 내보내면 누굴 부려먹어? 흥!"     나그네 귀 석자라고 한길수는 응삼과 월선의 푸념질에 웅담을 쳐들고 은녀와 번갈아보았다. 그러나 이윽고 우멍한 눈에 이상한 눈빛이 번쩍였다.     “저깟 계집년이야 없으면 말라지. 건강장수야 말로 돈을 주고도 못 바꾸는 게야. 이걸 먹고 오래 살면 다야.”     응삼은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야단쳤다.    “주인어른, 어쩌면 만 가지 일을 다 냉정하게 처리하다가도 이 일은 저 놈의 말을 딱 곧이듣고 이럽니까? 진짜 웅담인지 속아 넘어가지 맙소.”     그러자 한길수는 웅담을 쭉 감빨아보았다. 당장 상을 찡그렸다.      “아, 쓰다. 진짜 웅담이야.”     응삼은 어이없다는 듯이 뱁새눈을 한일자로 감아버리면서 길쭉한 상판을 가로저었다.     “이이고, 주인영감도. 정신 나갔나.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네.”     찰싹!    어느 결에 한길수가 그의 귀 쌈을 얼얼하게 갈겼다.    “어디서 개 주둥아리 질이냐?”      응삼이 한대 맞고 뱁새눈을 떴을 때에는 노기등등한 한길수가 눈깔을 부라리면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이윽고 한길수는 웅담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가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뒤로 홱 저으면서 고함쳤다.      “개자식, 누가 정신 나갔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얼빠진 놈이라고. 어서 빚 문서를 내다주고 멧돼지고기나 부엌에 들여가!”     월선은 별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홰홰 저면서 살진 엉덩이를 흔들거리며 영감을 따라 집안에 들어갔다. 응삼은 얼얼해나는 볼을 매만지면서 옆채에 들어갔다.     성칠은 멧돼지고기를 부엌에 메 들여 다주고 은녀의 손목을 잡고 나왔다. 은녀는 성칠의 옆구리에 바싹 다가가 붙었다. 평소에 그렇게 으르렁거리면서 우쭐하던 응삼은 한풀 꺾인 채 빚 문서를 꺼내다 성칠에게 건네주었다. 성칠은 빚 문서를 갈기갈기 찢어 활 팽개치고 은녀를 데리고 적토마를 끌고 대문 밖을 나섰다.     등 뒤에서는 응삼의  개 짖는듯 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짜 웅담을 먹고 우리 주인 영감 그게 맥을 쓰지 못하는 날엔 가만 놔두는가 봐라. 흥! 제길 할, 재수 없을러니 별 일을 다 본다. 쳇!”     그 욕지거리에 대꾸하는 듯이 검둥이가 돌아서서 “왕, 왕, 왕!” 무섭게 짖어댔다.                               5. 치마봉 전설      높은 가을하늘에서 보름달이 구름을 뚫고 얼굴을 내밀고 나와 조약돌을 치고 박으며 흐르는 버치 꼴 개울물에 은파를 뿌렸다. 저기 치마봉 양지쪽에도 은빛이 희끄무레 깔려있었다. 호랑이의 울부짖음 소리가 먼 수림 속에서 들려왔다.     성칠은 은녀를 데리고 개울 물가를 걸었다.      “은녀, 우리 여기서 좀 쉬어 갈까?”      은녀는 별빛이 반짝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성칠을 쳐다보았다.     “오빠, 사냥을 갔다가 와서 곤하지는 않소?”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버들잎을 주르르 훑어 버렸다. 그는 적토마를 버드나무가지에 매놓고 은녀에게 물었다.     “일없다. 치마봉 전설을 들어 보겠니?”     은녀는 어린애처럼 환성을 올렸다.      “난 오빠 얘기를 듣기 좋아하오. 어서 얘기해주오.”      그리하여 그들은 돌돌돌 흐르는 개울물을 마주하여 버드나무아래 제방 둑에 나란히 앉았다.     성칠은 마른기침을 몇 번 하더니 제법 옛말을 할 잡도리였다. 은녀는 두 무릎 우에 턱을 고이고 손가락으로 모래에 줄을 족족 그으면서 하회를 기다렸다.     “저 치마봉을 봐라. 얼마나 치마폭 같이 생겼냐?”       그들은 한참이나 말없이 저 멀리 치마봉을 바라보았다. 치마봉은 정말 치마폭처럼 아래는 퍼지고 우는 짤룩하고 치마 주름처럼 내리 발로 바위돌이 들쑥날쑥 박혔다.       “그렇다고 보니 정말 치마폭 같소.”      은녀가 머리를 가볍게 끄덕였다.      성칠은 담배쌈지를 꺼내 담배를 말기 시작했다. 은녀가 담배쌈지를 빼앗다 시피 했다.      “내 말아줄게.”      은녀가 담배 대를 자기 입에 대고 침을 쪽 발라 종이를 말아 꼭 싼 후 성칠의 입에 쏙 밀어 넣어주었다. 성칠은 은녀의 침이 붙은 따뜻한 담배를 붙여 길게 빨아들였다. 특별히 담배 맛 있었다.      "고맙다."     “고맙긴? 난 오빠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될지 모르겠소.”     “에이, 그게 무슨 소리냐? 그래 오빠라는 게 여동생이 승냥이 입에 들어가는 걸 뻔히 보고만 있어서야 되니?”      은녀는 성칠의 팔을 두 손으로 꼭 껴안았다. 그때 버들방축에서 버스럭버스럭 소리가 들렸다.     “음. 저기 짐승이 온 모양이구나. 사냥총을 한방 놓을까?"     은녀는 황급히 말렸다.     “아니, 그러다가 누가 상하면 어쩔 라고 그러오?"     더욱 요란하게 버스럭버스럭 소리가 나더니 검둥이가 뛰어가자 그 인기척이 멀리 사라지고 조용해졌다. 이상한건 그쪽으로 뛰어간 검둥이가 한 번도 짓지 않고 꼬리를 흔들흔들 흔들면서 이쪽으로 뛰어온 것이다.      성칠은 십중팔구 누구라는 것을 짐작하고 바로 앉았다.      그는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았다가 후 내 뿜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은녀는 세운 한쪽무릎을 두 손으로 잡고 앉아 성칠의 옛말을 귀담아 들었다.       뒷산 수림 속에서는 뻐꾸기 "뻐꾹 뻐꾹" 애처롭게 우는 소리 귀청을 처량하게 간질렀다.       “멀고먼 옛날에 이 버치꼴에는 소를 모는 목동이 살았단다.”      목동은 어찌나 피리를 잘 부는지 그 구성진 피리소리를 듣고 새들마저 날아와서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그런데 목동은 나이가 들도록 이 심심산골에 시집오려는 처녀가 없어서 장가를 들지 못한 노총각으로 되었다.     어느 하루 목동은 소를 몰다가 너무 더워 이 개울물에 와서 목욕이나 하려고 버드나무를 헤치면서 다가왔다. 그런데 글쎄 그때 하늘에서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선녀가 둘이나 너울너울 춤추면서 내려왔다. 너무 황홀해 그 선녀들을 쳐다보는데 선녀들은 너무 더워서 주위를 대충 살펴보고서는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를 훌훌 벗어버리더니 개울물에 뛰어들어 목욕하기 시작했다.       처음 눈같이 하얀 선녀들의 몸을 훔쳐본 목동은 목구멍에서 쿵쿵 소리가 날 지경으로 심장이 높뛰었다. 선녀들은 옥같이 흰 살을 드러내놓고 두 손으로 물을 서로 끼얹으면서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때 목동이 모는 소 무리에서 늙은 암소 한마리가 나서더니 이렇게 귀띔했다.      “주인님, 저 선녀들 속에서 더 고운 선녀의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를 숨겨두면 주인님의 천생배필은 문제될게 없소이다.”      그 말에 어진 목동이었지만 장가들 생각으로 슬그머니 다가가서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를 훔쳐 산 둔덕의 숲속에 숨겨두었다.     하늘에서 벼락이 치는 듯 옥황상제의 심부름꾼이 선녀들을 궁전에 돌아오라는 령을 내렸다.     다른 선녀들은 저고리와 치마를 입자 하늘로 날아올랐건만 한 선녀는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가 없어져 하늘로 날아오를 수 없었다. 목동은 선녀를 보고 자기와 천년배필을 무을 것을 약속하면 치마를 내주겠다고 했다. 선녀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목동의 까만 얼굴을 바라보더니 마지못해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로부터 선녀는 저 버치 꼴에 삼을 심어 삼베로 베천을 짜고 버들을 베 광주리와 버치를 틀면서 목동과 함께 잘 살았다고 한다.      그들이 한창 깨알이 쏟아지게 살 때 선녀가 인간 세상에 숨어서 사는 것을 알고 옥황상제는 심부름꾼들에게 잡아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심부름꾼은 하늘에서 내려오자마자 선녀의 머리채를 잡아 쥐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목동이 아무리 소리치고 선녀가 아무리 발버둥 질 쳐도 소용없었다.      이때 늙은 암소가 목동을 보고 자기 등을 타고 풀썩 솟아오르라고 했다. 목동이 정말 그렇게 하였더니 몸이 하늘로 씽씽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거의 따라 잡으려고 할 때였다. 심부름꾼은 다시는 선녀를 날지 못하게 선녀의 연분홍치마를 벗겨 내리 던졌다. 그런데 뒤따라 날던 목동의 몸이 그 연분홍치마에 감기여 더 날지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때 땅에 떨어진 선녀의 연분홍치마가 굳어져 저 치마 봉으로 됐단다.”       성칠의 말에 은녀는 다가앉으면서 물었다.      “그럼 그 목동은 저 치마봉에 깔리어있단 말이오?”      “그래, 그러나 목동은 행복하게 눈을 감았지. 죽어서도 사랑하는 선녀의 치마폭에 싸여 묻혔으니 말이다.”     “호- 어쩜 저 치마봉에는 그런 눈물어린 전설도 있어요.”     개울물이 돌돌 흐르는 버치 꼴 개울물가에는 나그네와 처녀의 한숨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한참 납덩이같은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성칠은 은녀의 따뜻한 손을 더듬어 잡고 나서 조용히 말했다.      “은녀, 난 너를 고와한다.”      “어마나!”      은녀는 외마디소리를 가늘게 질렀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돌아앉았다.      “어째? 넌 나를 좋아하지 않지?”       성칠의 물음에 은녀는 손을 성칠에게 맡긴 채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녀는 홧홧 달아오르는 얼굴을 두 무릎 사이에 숨기면서 나직이 말했다.       "누가 좋아하지 않는다 했소? ”      성칠은 은녀의 허리를 끌어당겨 꼭 안고 은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달빛을 빌어 은녀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버드나무 그림자에 희미하게 가려진 은녀의 얼굴이 그렇게도 예쁠 줄은 몰랐다.      “넌 처녀이구 난 아내가 있는 나그네야. 그런데 나는 아들도 딸도 없을 놈이야. 우린 저 치마봉 전설의 목동과 선녀처럼 함께 살수 없는 게지?”      성칠의 애탄 목소리에 은녀에게서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나그네면 어떻고. 처녀면 어떻대? 아들딸만 많이 낳고 잘 살면 좀 좋아서.”      성칠은 화들짝 놀랐다.       “은녀야!”      성칠은 은녀를 꼭 껴안았다. 은녀의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그러나 성칠은 맥없이 팔을 풀었다.      은녀는 성칠의 품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어 성칠의 구레나룻수염이 짙은 성칠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오빠, 우리 둘이 좋아하는데 또 뭣이 두렵소?”      성칠은 몸을 돌려 바로 앉았다.     “안 된다, 안돼. 우리는 함께 살 수 없어. 내 큰아버지는 우리 영월 김 씨 집안과 너네 영월 엄 씨네는 통혼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은녀는  돌아앉아 어깨를 들먹이었다.     "왜? 우리 두 집안이 전생에 무슨 원쑤라도 맺았다오?"    애탄 건 성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치며 한탄했다.      "아니야. 우리 두 집안은 친형제하구 같단다. 그러나 통혼은 안된단다."     "왜?"     은녀는 종주먹으로 성칠의 가슴을 쾅쾅 치며 물었다.     "500년 전에 우리 집안 김려생할아버지하구 너네 조상 엄흥도 할아버지가 목숨걸고 리조 단종왕을 보호했지. 그 두분 충신할아버지들이 우리 두 집안은 친형제 같다면서 그때부터 서로 통혼하지 않기로 했단다."     "그때면 그때지. 500년 후에도 그 언약 따를 건 뭔가요?"     "우린 대대로 조상들의 언약을 무조건 지켰단다. 지금도 절대 못 고쳐."     성칠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면서 말없이 은빛달빛이 깔린 한 많은 치마봉을 바라보았다.     오- 사랑하면서도 사랑할 수 없는 고통, 그 고통이야 이루다 말할 수 있으랴?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고 밸이 끊어지는 것만 같을 것이였으리라.     달도 차마 눈 뜨고 보기 구슬펐던지 구름 속으로 외면했고 개울물이 구슬프게 돌돌돌 흐느끼면서 흐르고 있었다. 적토마는 배가 고팠던지 성칠과 은녀의 잔등에 대고 투루루 뜨거운 입김을 뿜었다. 검둥이도 뛰어와 끼깅거리면서 길을 재촉했다.     성칠은 흐느끼는 은녀를 데리고 버치꼴 막바지로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올라갔다. 그 발자욱마다 애잡짤한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그 피눈물로 그들의 어울리지 않은 사랑의 애탄 가슴을 잠시나마 식여줄 수 있을가?  
21    장편과학환상소설 황천의 유령(4) 댓글:  조회:1742  추천:2  2015-04-28
제14장 밤중에 나타난 미녀들 조왕돌은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코치아의 신임 대통령으로 올라갔어요. 고모 금붕어소장은 과학연구만 하고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10대 꼬마대통령 조왕돌과 임해의 자칭 대통령 허수아는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시시탐탐 노려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화약 냄새를 풍길 뿐 총성이 울리지 않았어요. 뱀 섬나라 나까아버새 왕은 분단된 남북에 불이 난 틈을 타서 어부지리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아 도둑놈의 속이 바질바질 탔어요. 버새 왕은 왕궁에서 게다짝을 짝짝 끌며 왔다 갔다 하면서 못된 궁리를 굴리었어요. “무슨 수를 쓰면 코치아와 임해를 싸우게 할 수 있을까?” 버새 왕은 손으로 벌건 아름드리 나무기둥을 두드리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어요. 그때 옆에 다가온 밴새 신임총리가 귀속 말로 위로했어요. “형님, 근심하지 마.” 버새 왕은 아랫배까지 드리운 팔소매를 홱 저으며 돌아서면서 의아해했어요. “무슨 수라도 있어?”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소.” 밴새는 버새 형에게 귀속 말로 뭐라고 쑤군거리었어요. 그제야 버새는 그늘이 진 낯에 가는 미소를 지었어요. “음, 어디 네 말대로 연극이 벌어지나 두고 보자.” 이튿날 밤이었어요.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한밤중에 밴새가 왕궁에 들어와 다급히 소리 쳤어요. “형, 어서 일어나. 날 따라 가자.” 버새 왕은 하나꼬를 껴안고 자다가 벌떡 일어났어요. 그는 호기심에 차 두말없이 승용차에 앉아 동생을 따라 달려갔어요. 승용차가 도착한 곳은 소꼬 교외에 자리 잡은 한 군용비행장이었어요. 그런데 저게 뭔가요? 대형 수송기에 한창 미끈한 체격에 하얀 우유 빛 얼굴의 미녀들이 군용수송기에 오르는 것이 희미한 공항 불빛에 보이었어요. “아니, 어디서 난 미녀들이야?” 버새의 물음에 밴새가 머리를 돌려 마주 보면서도 입에 빗장을 지른 듯 침묵을 지켰어요. 갑갑해난 버새는 동생을 보고 “또 숱한 미녀를 복제했어? 저 예쁜 미녀들을 코치아에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하고 멍하니 미녀들을 바라보았어요. 뒤이어 버새는 뭐라고 중얼거리며 비행기에 오르는 미녀들 줄 속으로 들어갔어요. 이상하게도 미녀들은 생김새가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겠어요. 보들보들한 꽃밭에 들어간 충격을 받은 버새는 왕의 체신도 잃고 말았어요. 그는 한 미녀의 손을 잡아 홱 끌어당기었어요. “아야!” 미녀는 새된 소리를 지르며 따뜻하고 매끌매끌한 손을 빼가려다 말며 버들잎 눈썹을 치켜 올리며 쳐다보았어요. “야, 너무 아름다워. 코치아에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버새는 연신 한탄하더니 “너 이름이 뭐지?”하고 물었어요. “아마구찌 모모에.” “아마구찌 모모에? 너무 너무 예쁘구나. 요걸 아까워 어쩌지?” 불시에 버새 왕은 모모에를 와락 끌어안더니 앵두 입에 키스벼락을 뻑뻑 안겼어요. 마른 장작 같은 손은 벌써 헤벌려진 화복 가슴을 헤치고 들어가 주물럭거렸어요. 개성해방을 부르짖던 저 버새를 보세요. 숱한 미녀와 군인들을 안중에 두지도 않고 모모에를 안아 하늘 높이 추켜올리며 미친 듯 껄껄껄 웃어댔어요. 눈 깜짝 할 새 벌어진 사태에 밴새 총리가 소리쳐 형을 말렸어요. “형, 왜 이래?” 버새 왕은 모모에를 놓아 주고 팔에 묻은 분을 툭툭 털며 아쉬워했어요. “왜 남의 재미를 망가뜨려? 우리가 한 번도 놀아보지 못한 미녀를 보내?” 그러나 밴새의 말은 달랐어요. “형, 이래선 안 돼.” 그는 주위를 눈치 보며 버새 왕을 일으켜 세우며 귀속 말로 뭐라고 쑤군거리었어요. 버새도 너무 둔한 바보는 아니었어요. 그제야 그는 미녀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눈치를 챈 거 같았어요. 그는 수송기 승강기에 올라가는 모모에의 허리를 다시 끌어안아보고서야 놔주면서도 아쉬움을 금치 못해 중얼거리었어요. “대왕인 내가 한 번도 놀아 보지 못하고 무슨 대사 났다고 코치아에 저 숱한 미녀를 보내? 이간을 놓는 일이 그렇게 중요해?” 무정한 두 대의 군용수송기는 문을 쾅 닫더니 수백 명이나 되는 미녀들을 싣고 버새 왕의 머리 위를 날아지나 서쪽으로 사라졌어요. 순식간에 두 대의 군용수송기는 칠칠야밤을 타 저공비행해 레이더를 피하면서 코치아와 임해의 국계에 철조망을 늘인 우뚝 솟은 산골짜기 상공에 이르렀어요. 두 대의 군용수송기는 철조망을 늘인 산골짜기 벌판을 한 바퀴 돌더니 코치아 변경 들판으로 날아갔어요. 저게 뭐예요? 군용수송기에서 숱한 낙하산을 투하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변경 선을 지키던 코치아 병사들은 처음에는 낙하산을 보고 후방에 투하하는 상대방 국가의 적들인가 하여 사격하려고 총을 들었어요. 허나 코치아 변경 선 밤하늘에 조명탄이 대낮처럼 밝혀지면서 밤하늘에서 확성기로 미녀들의 부드러운 애원소리가 절절히 울렸어요. “코치아 국군 장병 여러분, 우릴 살려 주세요. 우린 임해의 허수아비에게 핍박에 견디지 못해 코치아로 도망해온 탈남 미녀들이예요. 제발 사격하지 마세요.” “뭐? 미녀들이야?!” 코치아의 장병들은 대낮 같은 조명탄의 불빛을 빌어 한복을 입은 미녀들이 하늘에서 줄줄이 낙하하는 모습을 보고 군침을 흘렸어요. 진짜 낙화 암에서 하얀 꽃들이 쏟아져 내리는 듯 했어요. “이게 웬 떡이냐?” “꿈이냐? 생시냐?” 병사들은 꿈이 아니고 현실이기만을 기도하며 총을 거두었어요. 그들은 눈을 부비고 밤하늘에서 날아 내리는 미녀들을 쳐다보며 달걀 침을 꼴깍 꼴깍 넘기었어요. 이북 변경선 밤하늘에서 미녀들이 눈송이처럼 날아 내리고 있었어요. 어떤 병사들은 벌써 전호 속에서 뛰쳐나가 철조망에 걸린 낙하산을 거두는 미녀들을 빼앗다 시피 끌어안고 버둥거리기 시작했어요. “이게 웬 떡이냐?” “한밤중에 하늘에서 공짜 미녀들이 쏟아져 내렸어!” 한 장교는 권총으로 한창 미녀들을 안고 씨름하는 병사들을 겨눴다 내리었다 하면서 제일 예쁜 미녀를 빼앗으려고 돌아다녔어요. 그는 한 병사에게 희롱당하는 미녀 모모에를 발견하자 버럭 고함쳤어요. “물러나지 못해?!” 그 병사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어요. “보고! 중대장님! 이 미녀가 특별히 예뻐요.” “그래? 썩 꺼져!” 중대장은 모모에를 안아 일으켜 껴안고 들여다보았어요. “참, 예쁜 미녀로구나.” 그는 얼빠진 채 중얼거리었어요. “야~ 보들보들한 게 죽여주는구나. 풍만한 거 살맛 풍기는구나. 넌 어데서 왔냐?” “우린 임해에서 도망친 탈남 미녀들인데요.” “뭐라고? 임해에서 무슨 선심을 써서 우리한테 미녀를 보내 줘?” 좀 이상했어요. 그때 모모에가 앵두 입으로 코치아어로 종알거리었어요. “우린 임해 허수아비의 가혹한 압박을 피해 도망한 피난미녀들인데요. 강간하지 말고 살려 주십시오. 속담에 웃는 낯에 침을 뱉지 않는다 하지 않았어요?” “그래?” 중대장은 좀 이상하다하면서도 더 캐물을 겨를이 없었어요. “에라, 입안에 들어온 떡을 먹고 보자.” 그는 굶주린 이리처럼 모모에에게 덮쳐들었어요. 그때 들판의 여기저기에서 육박전이나 벌어진 듯이 장병들이 미녀들과 씨름을 하는 상 싶었어요. 이게 뭐예요? 이튿날 새벽녘에 숱한 미녀들은 살그머니 곯아떨어진 장병들의 품속에서 빠져나와 바람결처럼 어디론가 사라지었어요. 그 보다도 더 큰 일은 뒤에 있었어요. 곯아떨어졌던 장병들의 그것이 벌그스름해지며 팅팅 부어났어요. 뒤이어 찡찡 통증이 나 견디기 어려워 그걸 붙잡고 땅바닥에서 굴기 시작했어요. 순식간에 덮쳐든 후폭풍은 더 심했어요. 모모에와 재미를 보고 입이 함박만 해졌던 그 중대장은 그것이 썩어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니, 이게 무슨 성병이냐?” 말을 마치자 중대장은 숨을 거두었어요. 온 들판에는 장병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스산하게 널려 있었어요. 이 급변사태는 살아남은 몇몇 병사에 의해 수도 연화시 지하 벙크에 있던 조왕돌 꼬마대통령 겸 총사령관에게 보고됐어요. 조왕돌은 황급히 고문인 고모와 함께 방역일군들을 데리고 헬기를 타고 곧추 변경에로 날아갔어요. 그들이 하얀 방독 옷을 입고 방독 면구를 쓰고 헬기에서 내려 그 참상을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어요. 군부대 하얀 방독 옷을 입고 방독 면구를 쓴 방역일군들은 장병들의 썩어 떨어진 그걸 채집해 유리실험관에 담았어요. 그들은 여기저기 벌판에 널린 하얀 낙하산을 보고 미녀들이 어디에서 날아온 년들인가는 단서라도 있나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허나 털끝만한 단서도 잡지 못했어요. 방역일군들은 미인계에 빠져 죽은 장병들의 시체를 자동차에 실어 국립묘지에 묻어주었어요. 방역연구일군들은 즉시 장병들이 질 안에 에이즈보다도 더 독한 성병바이러스를 지닌 미녀들과 성교를 해 죽었다는 검역 결과를 총사령부에 보고했어요. “제밀할, 허수아비가 언감 이렇게 혹독한 미인계를 썼단 말인가! 내 백배, 천배로 갚아주마!” 조왕돌은 무슨 짓을 하려는지 허선영 비서를 불렀어요. “얘~” 허선영은 임해 대통령 허수아의 무남독녀이었어요. 헌데 그녀는 한 학급의 동창생이자 첫사랑인 조왕돌을 마음속에서 지울 수 없어 코치아에 남아 조왕돌의 비서로 일했던 것이었어요. 그녀는 대통령집무실에 들어서자 “무슨 분부가 있는가요?” 하고 물었어요. 조왕돌 꼬마대통령이 뭐라고 명하려고 할 때 옆에서 금붕어가 “잠간!” 하고 오른 손을 쳐들었어요. “고모, 왜 또?” 금붕어 고문은 흰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더니 소파에서 일어나 조왕돌을 보고 말했어요. “아직 임해에서 저지른 미인계라는 것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잖아요? 좀 심중히 행동하세요.” 금붕어 고문은 비서 앞이라 조카지만 대통령이라고 존대를 써주었어요. “자칫하면 어부지리를 하려는 자들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죠.” “고모! 단서라도 있어요?” 조왕돌은 일어나 집무실을 뚜벅뚜벅 거닐며 번개같이 궁리를 굴리었어요. 집무실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번개가 번쩍이고 우레가 요란하게 울렸어요. 금붕어 고문은 과단성 있게 말했어요. “허수아가 아무리 둔해도 바보겠어? 어찌 드러내놓고 미인계를 쓸 수 있어?” 그제야 조왕돌 꼬마대통령은 머리를 끄덕이었어요. “그럼 버새가 꾸민 연극?” 금붕어는 심중한 표정을 지었어요. “좀 기다려 보자요.” 조왕돌은 곧 “알았어요.” 하고 말하며 허선영 여비서를 보고 나가도 된다고 손을 바깥쪽으로 저었어요. 그제야 허선영은 한숨을 호~ 내쉬며 돌아서 나갔어요. 그녀인들 연인과 아빠가 싸우기를 바라겠어요?                 제15장 피눈물로 얼룩진 금 목걸이 며칠 후 또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미녀사건이 실패하자 뱀 섬나라 악마들은 두 번째 수를 썼어요. 이번에는 야밤에 민간수송기에 금빛 은빛이 반짝거리는 금은목걸이를 비롯한 숱한 금은목걸이를 실어다 임해 해변의 수도 후산에 투하하였어요. 이튿날 날이 훤히 밝아오자 후산의 사람들은 문 밖에 나왔다가 깜짝 놀랐어요. “이게 웬 떡이냐?!” 길바닥 여기저기에 숱한 금빛 은빛이 반짝이는 목걸이가 널려 있지 않겠어요. 사람들은 앞 다퉈 빼앗다 시피 주어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어요. 그 놀라운 장면의 뉴스를 보고 코치아의 사람들은 부러워했어요. 그런데 며칠 후에는 코치아의 수도 연화시 거리에도 숱한 금목걸이가 널린 사건이 발생하였어요. 호위병들이 금목걸이를 주어 연화시에 있는 대통령궁으로 들어와 꼬마대통령에게 가만히 선물로 드렸어요. 금빛이 반짝이는 금목걸이를 보는 순간 지금까지 줄곧 자기를 짝사랑해 비서를 하면서 다른 남자에게 눈길도 한번 팔지 않는 허선영이 떠올랐어요. “그래 나는 선영에게 해준 게 아무 것도 없어.” 그는 대통령궁을 두리번거리면서 비서실로 도적발걸음을 옮겼어요. 그때 선영이 차를 부어들고 비서실에서 나오다가 조왕돌을 보고 깜짝 놀라했어요. 조왕돌은 주위를 흘금 곁눈질하더니 선영을 밀다 시피 하면서 비서실로 들어갔어요. 그는 비서실에 단 둘인 걸 확인하자 호주머니에서 호위병이 드린 금목걸이를 꺼내 내밀었어요. “어마나! 이건?” “선물이다.” 선영은 금목걸이를 받아 매만지다가 가슴에 대고 어린애처럼 환성을 질렀어요. “우~와~ 정말 예쁜 금목걸이구나. 정말 귀중한 선물이야.” “에구, 나만 쳐다보면서 사는 네가 너무너무 가긍해. 빨리 멋진 신사를 찾아 시집가.” 그 말에 선영은 눈물을 구슬처럼 주르르 흘렸어요. 조왕돌은 눈물을 흘리는 선영의 가냘픈 목에 금목걸이를 손수 걸어 주었어요. 그런데 저게 뭐예요? 몇 시간 후에 그 놈의 금은 목걸이를 목에 건 선영의 목 부위가 벌겋게 번지다가 나중에 썩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뿐이 아니었어요. 시내에서 금목걸이를 주어 건 숱한 사람들도 같은 증상을 보이었어요. 급보를 받은 조왕돌은 선영을 찾아가 그 문제의 금 목걸이를 벗겨 들고 피부병원의 전문의를 불렀어요. “대체 뭔가 봐 주시오.” 허나 의사들은 금 목걸이를 아무리 살펴봐도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어요. 뒤이어 침대에 누워 있는 선영의 썩기 시작한 목을 아무리 검사해도 이름 모를 피부병이어서 도리머리를 가로 저었어요. 나중에 국립방사능검역소에서 검측한 결과 그 문제의 금은 목걸이는 금과 은으로 도금한 핵 폐연료봉이며, 사람들은 방사능에 의해 감염되었다는 것을 밝혀냈어요. 조왕돌은 깜짝 놀라 금목걸이를 지하실험실에 가져다놓게 했어요. 죄송스러워 난 그는 입원한 선영한테 찾아 갔어요. 선영은 목이 썩으면서 진물이 줄줄 흘러 붕대를 둘둘 감고 있었어요. 조왕돌은 침대에서 일어나 앉으려는 선영의 손을 잡아 도로 눕히면서 “미안해. 내 죄를 지었구나.” “아니야, 그럴 거 없, 없어.” 선영은 목이 아파 뒷말을 잇지 못했어요. 그녀의 얼굴은 붉게 상기 됐어요. 우유 빛을 찾아보기 힘들게 검붉게 번지어가는 그녀의 얼굴을 보는 조왕돌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어요. 그때 선영이 조왕돌의 손을 매만지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어요. 그때 보름이 만삭이 된 배를 안고 선영을 보러 병실에 찾아왔어요. 선영은 잡았던 조왕돌의 손을 가리키면서 가냘프게 뭐라고 말하려 하는 것이었어요. 보름은 남편의 벌겋게 부어오른 손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여보! 당신의 손도 방사능에 피폭된 거 아니야?!” “그런 거 같아.” 보름은 진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조왕돌의 손을 보고 야단쳤어요. “아니, 손이 썩기 시작하는군요. 이 일을 어쩌지?!” 이때 병원 앞마당에 요란한 엔진 소리가 울리더니 헬기가 내리어 와 앉는 것이었어요. 조왕돌에게서 기별을 들은 허수아가 헬기를 타고 딸을 보러 부랴부랴 날아왔던 것이죠. 헬기에서 선글라스를 낀 호위병들이 줄줄이 내려 죽 늘어서고 허수아가 내려 병원으로 들어오는 것이 창문으로 보였어요. 순간 병원에 있던 조왕돌 꼬마대통령의 호위병들도 분주히 뛰어와 대치상태를 유지했어요. 다급한 발자국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활짝 열리더니 허수아가 뛰어 들어왔어요. “선영아!” 그는 조왕돌의 손을 훌 치우면서 딸의 와락 끌어안고 엉엉 대성통곡을 치었어요. “선영아! 모두 저 조왕돌이 너를 해쳤어!” 선영도 목이 꺽 메여 눈물을 줄줄 흘리었어요. “아니, 이게 뭐야? 곱던 얼굴이.” 허수아가 선영을 얼굴을 매만지다가 깜짝 놀라 손을 떼었어요. 거멓게 번진 얼굴가죽이 썩기 시작하면서 슬쩍 벗기어져 진물이 줄줄 흘렀어요. 조왕돌과 보름은 썩어가는 선영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 얼굴을 돌리었어요. 딸을 끌어안고 어린애처럼 엉엉 울던 허수아는 갑자기 몸을 홱 돌리더니 조왕돌을 쾅 밀치었어요. 조왕돌은 저쯤에 가서 허망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다 네 놈 새끼 탓이야! 네 놈 새끼 우리 임해에 금목걸이를 뿌렸지?” 조왕돌은 껑충 뛰어 일어나 반격을 가했어요. “당신이 우리 코치아에 미녀를 보내 성병을 퍼뜨렸지? 선영은 당신들이 떨어뜨린 금목걸이를 목에 걸고 저렇게 됐어.” “뭐라고? 적반하장이라고. 네놈새끼 내 귀여운 외동딸을 여비서로, 아니, 여종으로 써먹다가 선심이나 쓰는 것처럼 저 못 쓸 놈의 금목걸이를 선영의 목에 걸어주었기에 저 모양이 된 거야.” “아니, 생사람을 잡지 마세요. 만약 내 선영을 죽이자고 금목걸이를 선물로 걸어 주었다면 내 성을 갈겠어요. 흥!” 그 말에 허수아는 쳐들었던 주먹을 내리고 조왕돌의 깜장눈을 빤히 바라보았어요. 마치 조왕돌의 속마음의 창문인 눈으로 기어들어가 속마음을 파보려는 듯이 말이죠. 뒤이어 그는 호위병들과 간호사들을 돌아보면서 말했어요. “선영을 데리고 가자!” 담가에 들려 나가는 선영을 따라 나가면서 조왕돌과 보름은 죄송한 마음에 안절부절 하지 못했어요. 선영은 들려나가면서도 “아빠, 날 내려줘. 조왕돌과 함, 함께 있게 해 줘.” 하고 간신히 띄엄띄엄 말했어요. 조왕돌은 선영의 썩어가는 손을 잡고 따라 나가면서 연신 “죄송해! 내가 죽을 죄를 지었어. 해준 게 없이 널 해쳤어. 날 욕해. 죽여라.”라고 했어요. 선영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아, 아니야, 난 죽, 죽어도 네 귀, 귀중한 선, 선물 받아 후회 없어. 행, 행복했어.” “선영아!” 조왕돌은 눈물을 흘리며 선영의 입귀에 흐르는 피고름을 닦아 주었어요. 보름도 손수건으로 선영의 눈물을 훔쳐 주었어요. “저리 피해! 작작 간살을 피워!” 허수아는 조왕돌을 활 밀치며 눈을 흘기며 선영을 안아 헬기에 실었어요. 이윽고 헬기는 원한을 품은 허수아 일행을 싣고 무정하게 날아갔어요. 허수아 대통령은 귀국하자 즉시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문제의 금은 목걸이를 몽땅 회수해 방사능검역소에 보관할 것을 지시했어요. 허수아가 지하 대통령집무실이 있는 만장굴 안에 들어서자 안쪽 동굴 침실 침대에서 귀여운 외동딸 선영의 신음소리가 들리었어요. 허수아는 부랴부랴 안쪽 동굴로 달려 들어가 침대머리에 주저앉았어요. 그는 등불을 빌어 썩어가는 선영의 관골이 튀어나오고 멀거니 뜬 눈이 폭 꺼져 들어간 선영의 얼굴에서 흐르는 피고름을 손수건으로 살살 닦으면서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었어요. “어느 놈이 한 짓일까? 내 백배로 원수를 갚아 주마.” 그때 허수아는 이불 밑에서 쪽지 한 장을 꺼내 아버지 앞에 내밀더니 도리머리를 살래살래 흔들었어요. 허수아가 그 허연 쪽지를 받아 펼쳐보았어요.   아버지, 절대 조왕돌 꼬마대통령을 오해하지 말아요. 금목걸이는 그가 저에게 준 최고 사랑의 선물이죠. 그가 나를 죽이려고 악의적으로 목에 걸어 준 거 절대 아니라요. 만약 그것이 진짜 방사성이 강한 핵 폐연료봉이라는 걸 알았다면 자기 손이 썩어 떨어질 줄 알면서 맨 손으로 걸어 주었겠어요? 저는 조왕돌을 영원히 사랑해요. 저를 조왕돌의 신변에 돌려 보내주세요. 그의 품속에서 죽고 싶어요.   “쳇! 어리석기도 짝이 없구나.” 허수아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딸의 마음을 상할까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피눈물과 함께 삼키었어요. 후산 만장굴 대통령 집무실에서 문제의 금은 목걸이가 든 특제유리실험관을 들여다보더니 왔다 갔다 하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어요. (전번 미녀사건을 우리 짓인가 오해해 코치아에서 보복하는 거 아닐까? 혹시 조왕돌, 그 놈이?) 허나 그는 인차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군사력이 우리 임해의 여섯 배나 되는 조왕돌이나 금붕어가 이런 암수를 써? 그 썩어 떨어진 손을 보면 조왕돌의 짓이 아닌 거 같아. 금 목걸이에 문제 있는 걸 알면 제 손으로 선영의 목에 그 금목걸이를 걸어 줄 리 있었겠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허수아 대통령의 시야에는 저 푸른 바다 넘어 섬나라가 떠올랐어요. 순간 그의 눈앞에는 버새와 밴새의 음흉한 몰골이 드러났어요. “전번 미녀사건은 버새 짓일 수도 있어. 그럼 이번 사건도 그 놈이? 아니면 조왕돌의 보복?” 허수아비는 오리무중에 빠진 채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지었어요. 한편 조왕돌도 지하과학실험실에서 유리관 안에 넣어둔 금목걸이, 선영의 목에 걸어 주었던 그 문제의 금목걸이를 바라보면서 이마 살을 찌푸리었어요. “분명 허수아비가 오해하고 있어. 보복하는 걸까.” 유리관 안에 넣어둔 금목걸이는 알지 못할 비밀을 품은 채 살기 찬 빛을 뿌리고 있었어요.                                                                            제16장 우박과 별똥         어느 날, 갑자기 먹장구름이 연화시 북쪽에 있는 칼산 상공에로 몰려 왔어요. 용트림하며 무섭게 덮쳐오는 먹구름 속에서 뻘건 불 뱀이 칼산의 허리를 휘감아 치더니 구름 속으로 되들어가 버리는 것이었어요. 꽈르릉 꽝꽝! 요란한 우레 소리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며 천지를 진동했어요. 그런데 저게 뭐예요? 하늘 저쪽 북쪽에서 휘몰아쳐 오던 더운 먹장구름과 남에서 북상하던 찬 구름이 칼산 마루에서 쿵 부딪치더니 무서운 광경이 나타나지 않겠어요. 아, 글쎄 탁구공만큼 큰 꺼먼 산성 우박이 마구 쏟아져 내리어 왔어요. 순식간에 꺼먼 우박은 칼 산 주위 농작물이고 뭐고 싹쓸이를 하면서 연화시 쪽으로 덮쳐 오는 것이었어요. “저, 저걸?! 올해 농사 전폐했구나.” 먹장구름 속에서 총알처럼 쏟아지는 시꺼먼 우박 알은 점점 더 커졌어요. 이젠 애기 골만한 껌정 우박이 마구 연화시 고층 아파트의 유리창문을 부시었어요. 가로등이 박살나 파편처럼 유리 조각이 사처로 튕기어 났어요. 우박은 각일각 점점 더 큰 것이 쏟아졌어요. 이젠 농구공만큼 큰 우박이 쏟아져 아파트 지붕이 마구 부서져 나갔어요. 꽝! 꽝! 꽝! 진노한 하늘에서 항아리만 한 누런 우박이 쏟아져 건물 벽이 뭉텅 뭉텅 부서져 나갔어요. “사람 살려요!” 고층 건물 여기저기서 아우성 소리와 비명소리가 울리었어요. 세상에 이런 날벼락이 어디에 있겠어요. 엄청 큰 우박의 피해는 점점 커갔어요. 가로수들이 허리가 뭉텅 부러지고 끊어져 나갔어요. 가로등 기둥이 부러지어 길바닥에 맞절을 했어요. 여기 저기 전선대가 부러지고 전기가 합선되면서 불티가 탁탁 튕기고 불길이 활활 타올랐어요. 사람들은 종래로 이렇게 큰 우박이 쏟아지는 걸 못 보았어요. 진짜 날벼락을 당했어요. 길바닥에서 달리던 승용차들이 물독만 한 누런 우박에 맞아 납작하게 됐어요. 승용차 문이 찌그러들어 차 안에 갇힌 사람들이 아무리 버둥거리어도 기어 나올 방도가 없었어요. 밀집 폭탄처럼 쏟아지는 우박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 기수부지인데요. 처참하기 그지없었어요. 대부분 머리가 깨지지 않았으면 허리가 분질러져 피투성이 된 채 즉살했어요. 우박은 근 반시간 동안이나 연화시를 부시어 놓았어요. 우박이 휩쓸고 지나간 도시는 쑥대밭이 돼 버리었어요. 숱한 사람들이 항아리만 한 우박에 맞아 즉살하면서 길바닥에는 뻘건 피가 도랑물처럼 왈왈 흘렀어요. 껌정 우박과 노란 우박이 무너진 아파트 지붕이고 길바닥이고 어디라 없이 뒤덮여 순식간에 북극의 얼음산을 방불케 했어요.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너진 벽체 뒤에 숨어 하늘을 기웃거리며 쳐다보면서 감히 바깥으로 나오지 못했어요. 또 우박이 쏟아져 내릴까봐 질겁해 공포에 벌벌 떨었어요. 여기저기서 죽은 친인을 붙안고 땅바닥을 치며 하늘을 원망하며 대성통곡을 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이때 저게 뭔가요? 금방까지 우박이 쏟아지더니 갑자기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었어요. 산더미 같은 검정 우박덩이와 노란 우박덩이가 녹기 시작했어요. “이제야 살 거 같구나.”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고르는데요.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저게 뭐예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이 거위 털 같은 눈송이가 쏟아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상 기우야!” “사람들이 차를 타고 다니면서 온실가스를 대량 방출하더니 꼴 보기 좋게 됐다.” “하늘이 진노해 천벌을 내리는 거야!” 반팔 셔츠를 입었던 사람들은 몸을 옹송그리며 황급히 폐허 같은 무너진 집으로 들어갔어요. 허나 늦었어요. 여우도 추워서 눈물을 흘리고 박달나무도 얼어 탁탁 터질듯 한 혹독한 한파가 덮쳤어요. 난방설비도 없이 살던 아열대 지방인 코치아와 임해는 삽시에 공포의 한파 속에 떨었어요. 은세계를 방불케 하는 백설세계에서 사람들은 추워서 모여 들어 덜덜 떨다가 쓰러졌어요. 어떤 도시 사람들은 우박에 맞아 휘어든 가스관에서 쌕 뿜기어 나오는 가스에 라이터로 불을 달아 불을 쪼이었어요. 허나 그것도 잠시뿐 가스가 폭발하면서 난동이 끊이지 않았어요. 지어 변경에서 장병들은 총을 들고 보초를 서다가 얼어 동상처럼 굳어져 버렸어요. 일부 군인들은 총을 들고 지하대피소에 뛰어 들어가 추위를 피했기에 간신히 목숨을 건졌어요. 간혹 농촌 마을에서는 그래도 어떤 사람들이 돼지굴이나 소 외양간을 허물어 불을 피워 추위를 피하려고 했어요. 허나 판 부족이었어요. 삭정이나 나무들이 다 탄 다음에는 악마 같은 한파를 당해 낼 수 없었어요.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 덮쳐든 한파는 임해와 코치아의 수많은 인명을 싹쓸이 해 갔어요. 숱한 사람들이 동태처럼 된 채 한파 속에 얼어붙어 버렸어요. 헌데 계절은 속이지 못한다고 언제 우박이 쏟아지고 한파가 덮치고 지나갔나 싶게 이번에는 열풍이 대지를 휩쓸었어요. 그 열풍에 산더미 같은 우박덩이들이 녹아내리고 동태처럼 얼음조각상이 됐던 시체들이 천천히 녹으면서 피물이 길바닥을 적시고 사처에서 피비린내가 물씬 풍겼어요. 홧홧 달아오르기 시작한 대지는 사람들을 당장 구워 먹을 것만 같았어요. 그래도 한파보다는 많이 나았어요. 뒤이어 천천히 한파도 사라지고 열풍도 사라지더니 대지는 또다시 옛날로 돌아가 천천히 기온이 정상을 되찾았어요. 여기저기에서 울리는 대성통곡 소리에는 간혹 조왕돌 대통령을 원망하는 소리도 섞여 터져 나왔어요. “대통령이라는 놈이 지구온난화 이상기후를 다스릴 궁리는 하나도 하지 않더니 진노한 하늘에 당하지 않았는가?” “에이, 죽은 내 아들이 불쌍하지. 이 늙은 게 죽어야 하는데. 애들을 앞세우고 어떻게 살아? 어이~ 어이~” “하늘도 무심하지.” “헤이, 하늘이 진노한 게야.” “지하 대통령궁에 깊숙이 들어박혀서 뭘 하는지?” 조왕돌과 금붕어는 무너진 대통령 집무실에서 나와 재해형편을 알아보고 한쪽으로 복구 조치를 대고 한쪽으로 연구일군들을 데리고 껌정 우박과 노란 우박을 실험실에 유리실험관에 담아 지하과학실험실에 들여다 검사하기 시작했어요. 한 연구일꾼이 실험실에서 새된 소리를 질렀어요. “이건 인공우박입니다!” “인공우박?!” 조왕돌 꼬마대통령은 지하실험실에서 우박 검험 지를 보면서 고민에 빠졌어요. (그날 분명 북에서 날아온 더운 기류와 남에서 북상한 찬 기류가 칼산에서 부딪치면서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한 건데…) 그는 지하실험실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우뚝 멈춰 섰어요. (진짜 어느 놈의 새로운 과학적인 도발이야! 도대체 어느 놈의 음모일까?) 소꼬에 보낸 파리정찰로봇이 아무리 왕궁을 맴돌며 감시해도 미인계나 금 목걸이 사건의 단서를 장악하지 못했던 것이죠. 이번에도 버새 형제의 수상한 낌새를 발견하지 못했어요. 우박의 피해를 수습하기도 전에 더 큰 사달이 났어요. 밤하늘에서 별똥이 긴 불꼬리를 물고 마구 쏟아져 내렸어요. 꽝! 꽈르릉 꽝꽝! 별똥은 이번에는 거대한 우박 피해를 금방 받은 코치아 뿐만 아니라 임해의 산과 들판에 떨어졌어요. “이건 진짜 천재야! 인간들이 하늘을 노엽히더니 이젠 인류를 멸종시킬 예산이야.” 별똥의 무차별 폭격은 무서운 것이었어요. 지상의 모든 건물을 박살내고 불이 활활 달렸어요. 별똥이 떨어질 때마다 우레와 같은 폭음과 함께 지진이나 화산이 폭발할 때처럼 땅이 떨며 무섭게 진동했어요. 진짜 공포의 하늘과 땅이었어요. 허나 이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울렸어요. “여러 분, 나쁜 일이 좋을 일로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이야 말로 하늘이 내려 보내는 천금 가는 보배입니다. 운석을 팔면 천금을 얻을 수 있어요.” “뭐라고? 운석은 천금 가는 보배?” “그래, 옛날에도 그램 당 수십만 달러 씩 하는 운석을 주어 하루 새에 억만 부자로 된 사람이 숱했던 거야.” 코치아와 임해의 백성들은 단통 억만 부자로 된 기분에 들떠 있었어요. 이튿날 동녘이 희붐히 밝아오자 숱한 사람들이 목숨을 내걸고 별 똥이 떨어졌음직한 산으로 들판으로 달려 나갔어요. “우박에 농사를 전폐했는데 별똥이라도 주어서 갑부로 돼야지.” 도시의 사람들은 “승용차고 집이고 몽땅 부시어졌는데 뭘 믿고 살아? 운석이라도 주어서 집을 사야지.”하고 지팡이를 짚고 나섰어요. 어떤 지식인들은 지남침이거나 탐사전문용의기까지 얻어 들고 나섰어요. 전날 공포의 밤에 별똥이 떨어지었음직한 곳을 두루 헤매다가 움푹 파인 곳에서 꺼멓게 탄 돌을 흔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어요. 허나 사람의 욕심이 어디 한정이 있어요? 운석을 하나 주면 둘을 갖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심이 아니겠어요? 어떤 때에는 운석 하나를 발견하고 서로 자기 것이라고 밀고 닥치고 하다가 손찌검 질까지 하기도 했어요. 저걸 어쩌는가요? 운석을 품속에 안고 무너진 집에 가져다 놓거나 궤 안에 넣어 잘 보관했는데요. 지어 잠을 자도 누가 빼앗아 갈까 봐 품속에 안고 잤는데요. 그 놈의 운석이 보배인가 했는데요. 화는 그 놈의 운석에서 나지 않았겠어요. 운석의 화로 팔다리가 벌겋게 부어오르다가 나중에는 썩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하, 이거 원 참, 하늘에서 떨어진 별 똥이 웬 일인지요? 또 핵 폐연료봉인가요?      
20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 댓글:  조회:2056  추천:2  2015-04-17
                  8.원시림의 총소리       그들이 산기슭으로 한 둬 시간 내리 걸으니 수림 속 저 멀리에 희미한 등불 빛이 가물거리는 것이 보였다. 인가가 있다고 생각하자 성칠은 피곤기가 오면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 나면서 시장기도 났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간신히 그 등불이 켜진 토굴집 앞에 이르렀다.      “왕 왕 왕!”      갑자기 송아지 같은 얼룩개 한마리가 덮쳐 나왔다. 허나 그 놈 얼룩개는 검둥이를 보자 꼬리를 흔들면서 서로 붙어 끼깅거렸다.     집 안에서 늙은이의 기침소리가 나면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났다.     뒤이어 문 여는 소리가 나면서 웬 개털모자가 쑥 나와 두리번거렸다.     “주인님, 사냥을 왔다가 길을 잃었는데 하루 밤 묵으면 안 되겠습둥?”     “들어오오.”     집 안의 늙은이 목소리다.     “고맙습구마.”    성칠은 개털 모자를 따라 집 안에 들어갔다.    집 밖에서는 검둥이와 얼룩이가 서로 좋다고 뛰놀았다.     어두운 집안을 둘러보니 벽에는 호랑이와 멧돼지 등 산짐승가죽들이 줄줄 걸려 있었다. 곰의 가죽을 시꺼멓게 깐 구들에는 한 백발로인이 이불로 반신을 가리고 누었다가 상반신을 겨우 일으켜 반쯤 앉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절을 받읍소.”   성칠은 구척장신을 굽히더니 털썩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절까지 무슨?”    늙은이는 황망히 몸을 앞으로 굽히며 절을 받았다.     개털모자는 그때까지도 경계에 찬 눈길로 성칠의 아래위를 훑어보고 있었다. 하긴 아닌 밤중에 이 무인산골에 뛰어든 낯선 사냥꾼을 누가 소홀히 믿겠는가?     “얘, 뭘 하느냐? 저녁상이나 놓을 게지. ”      호랑이가죽옷을 입은 개털모자는 모자도 벗지 않은 채 “예, 알았어요.”라고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은방울을 굴리는 듯 아녀자의 목소리었다.     성칠은 사냥총을 벗어 벽에 걸어놓고 그물망태기를 벗어 개털모자에게 주었다.      “사냥이 잘 되지 않아서 꿩 둬 마리밖에 잡지 못했습니다. 이걸 끓입소.”      늙은이는 사람 좋게 히죽이 웃었다.     “에이, 늙은 사냥꾼 집으로 왔는데 아무리 살기 막막하기로서니 그래 자네가 먹을 게 없을라고? 그만두게나. 사냥을 하노라면 사냥이 잘 안 되는 날이 있지.”     개털모자는 솥에서 김이 문문 나는 삶은 감자와 고기를 놋그릇에 담아 구들의 밥상 우에 올려다 놓고 은저 한 쌍과 숟가락을 갖춰 놓았다. 그리고 바깥으로 개 먹이를 들고 나갔다. 이윽고 개들이 먹이를 맛있게 먹으면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리었다.      “어른신도 함께 저녁을 잡숩시다.”     늙은이는 상반신을 일으켜 앉으면서 “우린 진작 먹었네.”라고 했다.     성칠은 눈속을 헤매면서 배고팠기에 삶은 감자 한 사발과 멧돼지고기 한 사발을 게 눈 감추듯 다 먹어치웠다.      그러자 음식에 취해 눈까풀이 천근 무게나 되는듯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가 다리 아파 깨나 보니까. 등잔불 밑에서 아까 그 개털모자가 구들에 범의 가죽을 씌운 이불 밑에 누운 자기 다리를 자그마한 손에 눈을 쥐여 비비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개털 모자를 벗은 것을 보니 그제야 쌍태 머리 아녀자인 것이 완연히 드러났다. 산 속에서 자란 처녀애지만 꽤나 예뻤다.      성칠이 일어나려고 하자 늙은이가 옆에서 말리였다.      “누워있게. 겨울 신을 신지 않아서 발이 얼었구만. 멧돼지야, 눈으로 계속 비벼 냉기를 빼라. 그러잖으면 고생할 거야.”     늙은이는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뒷말을 이었다.     “여기 장백산은 가을에 눈이 펑펑 쏟아지네. 이후부터 장백산에 들어와 사냥하겠으면 겨울복색을 든든히 갖춰 가지고 오게. 나도 며칠 전에 산에 들어갔다가 불시에 눈이 터져서 혼났네. 고뿔에 걸린지도 며칠 됐네. 얘 멧돼지가 없으면 이 산골에서 내 홀로 얼어 죽었을 게요.”     성칠은 처녀애를 멧돼지라고 부르자 자기 귀를 의심했다.     (참, 마음씨 착하고 고운 처녀애를 멧돼지라니?)     한참 후 멧돼지라는 처녀애는 대야에 담았던 눈을 밖에 내다 던지고 들어왔다. 토막나무를 안고 들어와 부엌아궁이에 서리었다. 부엌아궁이에서 불길이 세차게 타 번지면서 부엌 쪽을 환히 비췄다. 그 불빛에 멧돼지라는 이름과는 달리 쌍태 머리를 가슴 앞에 늘어뜨린 처녀애의 예쁜 모습이 환히 보였다.     호랑이가죽옷을 입은 그녀는 숲 속에 핀 진달래 같다고 할까?      짙은 눈썹아래 이글이글 타 번지는 예리한 눈길과 우뚝 솟은 코, 두툼한 입술. 참말로 눈 속에 피어난 한 떨기 건실한 매화꽃송이와도 같이 예뻤다.     “그래, 젊은이는 어데서 왔게?”    늙은이 물음에 성칠은 멧돼지에게서 눈길을 뗐다.    “예. 명천군 상우남면 쪽에서 왔습구마. 김성칠이라 부릅구마.”    늙은이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글쎄. 함경북도 사투리 보니 그렇게 짐작했네. 난 최구철이라고 부르는 늙은인데 황해도 개성에서 이 산골에 온 지 한 오륙년 되네.”     최구철은 담배를 말아 붙이었다.     “상우남면에 우리 개성 최 씨 네 집안 형님이 있네. 그 형님이 산골에서 서당 훈장질을 한다던데.”     “예- 바로 우리 산골 앞에 그런 분이 계십구마. 혹시 최구장, 그 분을 그러지 않습니까?”     최구철은 “맞아. 바로 그분이야.”라고 말하고 뒤 말을 이었다.     “큰아버지 구장형님을 데리고 우리 개성에서 떠나서 명천에 들어갔지. 구장 형님네 큰아버지는 모두 잘 있는지 모르겠소. 또 조카들은 다 잘 있는지 모르겠구먼.”     성칠은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일일이 소개해드렸다.    “에이, 그 황막한 산골에서 뭐 심으면 잘 살겠습둥? 최구장의 부친은 세상을 뜬지 몇해 되고 자녀들도 모두 잘 있습니다.”    최구철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이걸 보오. 세상은 넓으면서도 좁지. 두루두루 알아보면 면목이 있거든. 구장 형님은 자식농사를 잘했네 그려. 허허허.”     아버지 말에 부엌아궁이 앞에 있는 멧돼지도 의심의 눈길을 완전히 풀었다.    솥에서 쌕 김이 쌕- 하고 나기 시작하였다. 멧돼지는 솥뚜껑을 열고 나무꼬챙이를 넣어 훌훌 저었다. 그리고 물을 좀 더 붓고 솥뚜껑을 닫은 후 또 나무토막을 부엌아궁이에 더 서리어 넣었다.     한참 후 멧돼지는 꿩고기를 걸이어 모태에 놓고 툭툭 찍어 돔박돔박 썰더니 세 사발에 담아왔다. 셋은 한집 식구들처럼 둘러 앉아 꿩 국을 후후 불면서 맛있게 먹었다.    최구철은 성격이 아주 시원시원했다.    “자, 이젠 밤도 깊었구먼, 곤하겠는데 한잠 푹 자기요.”    멧돼지는 웃방에 따로 성칠의 이불을 펴드렸다.    이튿날, 성칠이 눈을 떠보니 창살 밖이 벌써 환하였다.    정주간에서 흘러드는 구수한 장국냄새가 코를 찔렀다.    두런두런 부녀간이 낮게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리었다.    “어제 따뜻한 꿩국을 먹어 그런지 몸이 거뿐하구나. 열두 쑥 빠진 거 같다. 손님한테두 멧돼지장국을 푹 끓어대접해라.”    “예. 알았어요. 그런데 멧돼지 고기 거덜 났어요.”    “일없다. 내 오늘 사냥하러 가겠다.”     그 말소리를 엿들은 성칠은 하루라도 더 있기 미안하였다. 그런데 일어나 앉으니 다리가 얼었는지 띠끔 띠끔 아파났다.     이때 최구철이 미닫이문을 열고 문턱너머 들여다 보는 것이었다.     “어, 일어났어? 간밤에 드문드문 신음소리를 내더구먼. 자네 다리 언 거 같소. 여기서 며칠 푹 쉬게나.”     성칠은 일어나 정주간에 절룩거리면서 나갔다. 그는 억지로 다리를 절지 않으려고 했지만 절룩거리는 다리가 발각나고 말았다.     “에이, 그 다리가 얼어도 웬간히 언 게 아니구먼.”      성칠은 대수롭잖게 여겼다.      “좀 지나면 나을 겁니다.”      성칠은 방바닥에 내려가면서 대야를 쥐고 밖에 나갔다. 그는 조상의 비방을 쓰기로 작심하고 집 동쪽에 간 그는 오줌을 대야에 받았다. 그때 검둥이와 얼룩이가 껑충껑충 뛰어와 끼깅거리면서 주둥이로 성칠의 바지를 들췄다. 성칠은 꿇어 앉아 손으로 검둥이의 뒤덜미를 쓰다듬어 준 후 언 다리에 오줌을 바르고 주물렀다.     최구철은 밖에 나와 소변을 보려다가 성칠을 보고 이상해 하였다.     “뭘 하나?”    “오줌으로 언 다리를 찜질합구마.”    “오- 오줌 약?”     최구철은 양미간을 찌푸리더니 대야의 누런 오줌을 들여다보면서 신기해하였다.     “오줌으로 어떻게 언 다리를 치료하겠는가? 이 사람아, 추운데 집안에 들어가게나.”      성칠은 최구철을 쳐다보면서 설명했다.      “때간에 오줌냄새를 피울빠봐 그럽니다. 이 오줌 찜질은 궁정 어의를 지낸 우리 증조부 때부터 물려받은 비방입니다.”    최구철은 오줌대야를 내려다보며 신기해했다.     “그래? 그래도 추운 겨울에 바깥에서 이게 뭔가? 들어 갑세.”  들어갔다.      성칠은 하는 수 없이 오줌대야를 들고 구철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부엌에 가서 숯불에 오줌 대야를 놓아 좀 따끈따끈하게 덮인 후 꺼내 한참 오줌 찜질을 하니 다리가 시원한 감을 느꼈다.      아침에 시원한 멧돼지고기장국까지 먹은 후 성칠은 사냥총을 메고 바깥에 나가는 최구철을 따라 총을 메고 나섰다.     구철은 말렸다.      “아니, 자넨 집에서 쉬게나. 언 다리를 가지고 어디로 간다고 그래?”      “괜찮습구마.”     성칠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 라고 하면서 기어이 따라 나섰다.      이윽고 구철과 성칠은 적토마를 타고 산 아래 수림 속으로 뛰어갔다. 그들의 앞에서 검둥이와 얼룩이가 길잡이로 나서 눈이 뒤덮인 수림 속으로 냄새를 맡으면서 뛰어다녔다.     그들이 말을 타고 한 20리 달렸을 때다. 백두산에 언제 눈이 있었느냐는 듯이 하얀 은세계는 사라지고 누런 옷을 입기 시작한 아름드리나무들이 하늘 높이 소소리 솟아있는 원시림이 나타났다.      백두산 꼭대기는 눈 덮인 엄동설한이었지만 여기 원시림은 아직 가을 풍경이었다. 아름드리나무들 속에서 말을 타고 들어가 하늘을 쳐다보면 나무 가지와 나무 잎들이 뒤덮여 새파랗게 보일뿐 푸른 하늘을 찾아 볼 길이 없었다. 다만 소소리 치솟은 아름드리나무로 이루어진 밀림 속으로 부채 살처럼 비쳐드는 실실이 은실금실 해 빛을 보아야만 맑은 날과 흐린 날을 가릴 수 있을 뿐이다. 밀림 속에는 천년 묵은 나무 잎들이 썩은 검은 부식토가 깔려 있어서 푹신푹신한 푸른 주단 같았다. 어떤 곳에는 썩박나무가 넘어가 다른 나무에 기대 서 있었다. 거기에는 버섯과 이끼, 가느다랗고 파란 잔풀이 듬성듬성 돋아있었다. 이따금 산새들이 수림 속에서 지저귀면서 노래했다.        검둥이와 얼룩이가 앞에서 달리다가 멈춰서면서 꼬리를 흔들거렸다. 한참 말을 타고 천천히 걷는데 산새들이 하늘로 풍겨오르면서  지저귐 소리 자지러지다가 멎어버렸다. 앞쪽 원시림 속에서 육중한 꺼먼 무리들이 오른쪽으로부터 왼쪽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달리던 적토마들도 겁이 나서 멈춰 섰다. 구철과 성칠은 서로 눈길을 마주치면서 히쭉 웃었다. 그들은 곰 대여섯 마리가 무리를 지어 거의 지나가기를 기다려 뒤에 떨어진 곰을 목표물로 정하고 앞으로 말고삐를 놓아 달려 나갔다.      구철은 방아쇠를 당겼다.      땅!     야무진 총소리가 고요하던 장백의 림해를 깨웠다.     총소리와 함께 곰 한마리가 쓰러져 나뒹굴었다. 한 마리는 배때를 맞고 주춤 하다가 장탄하는 그들을 발견하고 수림 속으로 죽기내기로 도망쳤다. 검둥이와 얼룩이가 뛰쳐나가 쓰러졌다가 되 일어나 도망치려는 곰을 물어재꼈다.      그들이 말을 놓아 덮쳐나갔을 때였다. 수림 속에서 웬 나무숲을 가르는 와삭와삭 소리가 요란스레 났다. 금방 앞에서 지나갔던 곰의 무리가 되 덮쳐 왔다. 적토마들도 놀라 앞발을 쳐들면서 “오 호 홍!”하고 말머리를 돌려 내뛰기 시작하였다.      “에크!”       뒤에서는 동료를 잃어 성난 곰들이 무리를 지어 검둥이에게 덮쳐들었다.      “검둥아! 이쪽으로 오너라!”     검둥이와 얼룩이는 귀를 뻘쭉 하더니 이쪽으로 도망쳤다.     구철과 성칠은 토론이나 한 듯이 두개 방향으로 나눠 달리다가 말머리를 홱 돌리었다.     구철은 제일 먼저 덮쳐오는 곰에게 명중탄을 안겼다.      땅!      저쪽에서 성칠도 명중탄을 퍼부었다.      땅!      곰 두 마리가 쓰러지자 뒤따르던 곰들이 끼깅거리면서 멈춰 섰다.     이때 성칠의 잔등 쪽에서 쉭- 하고 소리 났다. 머리를 홱 돌리는 순간 멧돼지 한마리가 거리대날 같은 이발을 빼물고 덮쳐들었다. 성칠은 몸을 홱 탈아 피하면서 총 탁으로 멧돼지 주둥이를 탁 갈겼다. 멧돼지는 이발이 깨져 비명소리를 지르며 땅바닥에 나 떨어졌다.      그러나 성칠도 그 놈의 앞발에 잔등을 긁히어 가죽옷이 죽 미여졌다. 수림 속 사처에서 곰무리들과 멧돼지들이 덮쳐 나와 위기일발에 처하게 되였다.    “성칠이! 도망칩세.”     “예!”     성칠이가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려 할 때다. 뒤에서 곰 한 놈이 뛰어나와 적토마 다리를 꽉 깨물었다. 놀란 말이 앞발을 쳐들었다가 내뛰는 바람에 성칠은 말 잔등에서 뒤로 퉁 떨어지고 말았다.     곰이 성칠을 물려는 위기일발의 순간이다.     쒹-     난데없는 돌멩이가 날아와 그 놈 곰의 주둥이를 까부셨다. 곰이 피를 토하면서 무서운 비명소리를 질렀다. 그 놈 곰은 대가리를 돌려 껑충껑충 수림 속으로 도망쳤다.     쒹- 쒹-    연이어 돌멩이가 날아와 뒤따라 성칠을 덮치던 곰의 대갈통을 연신 까부셨다. 곰은 황급히 수림 속으로 도망쳤다.     성칠이 마른 풀숲에서 일어나면서 여겨보니 뜻밖에도 호랑이가죽옷을 입은 쌍태 머리 멧돼지가 원숭이처럼 백마를 타고 달려오면서 돌멩이를 홱홱 뿌리고 있었다.     “메돼지 왔냐?”     “예!”     멧돼지가 연신 멧돼지와 곰들을 돌로 까부시자 힘을 얻은 성칠과 구철은 사냥총을 쏘아 곰 무리를 쫓아버렸다.     “오빠! 괜찮아요?”     멧돼지는 성칠의 째진 잔등을 보고 머리에 맸던 이봉을 풀어 잔등의 상처를 닦아주었다.     성칠은 대수럽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괜찮소.”     그는 적토마를 끌고 수림 속에 들어가 웃통을 벗더니 오줌을 누면서 손으로 오줌을 받아 자기 상처 입은 잔등에도 쓱쓱 발랐다.      구철은 성칠이가 끌고 오는 적토마의 다리를 굽어보며 혀를 끌끌 찼다.      “쯧쯧, 그 아픈 다릴 해가지고."      "비방 오줌 약을 썼으니 괜찮습구마."     "빨리 멧돼지와 함께 가서 발구를 몰고 오게나.”    성칠은 “제가 여기서 지키겠습니다. 가서 발구를 몰고 옵소.”    구철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말을 타고 집 쪽으로 달려갔다.    “아버지하구 함께 같이 가오.”    성칠의 말에 멧돼지는 깜장 눈으로 빤히 쳐다보면서 “짐승들이 덮쳐오면 어떻게 해요?라고 했다.     멧돼지는 성칠의 이글거리는 눈길을 피해 몸을 외로 틀며 쌍태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올해 열 몇 살이오?”     멧돼지는 고개를 숙이면서 “열일여덟은 돼 보이는구먼.”라고 하는데 눈덮인 숲속에 피여난 매화처럼 이뻤다.    멧돼지는 나리꽃 한 송이를 뜯어 꽃향기를 맡으면서 “참말로 향기로운데. 난 올해 열아홉이예요.”라고 대답하고 나서 고개를 숙이고 쌔물쌔물 웃었다.    성칠은 후- 한숨을 쉬었다.     “한창 꽃피는 나이구먼. 그런데 아주 고운 처녀애에게 멧돼지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구먼.”     그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진달래라고 부르면 어떻소?”     멧돼지는 그 말에 반색했다.     “진달래? 최진달래? 호호호. 그 이름이 참말로 내 성미에 맞아요. 아버지는 멧돼지처럼 닥치는 대로 마구 뒤져 먹고 강하게 자라라고 멧돼지란 이름을 지었다고 해요.”      성칠은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방 난 내 눈을 의심하였소.어쩌면 처녀애가 말 타고 달리면서 돌을 백발 백중할 수 있단 말이오?”     멧돼지는 나무숲을 살피면서 종알거렸다.     “우리 집은 개성에서 한다하는 사냥꾼이었지요. 난 어려서부터 나무에 바라 오르기 좋아했죠. 또 그네를 뛰기 좋아했는데 이 나뭇가지 위에서 저 나뭇가지 위를 뛰어 다니기를 연습하였지요.”      성칠은 “돌멩이는 언제부터 뿌렸기에 그렇게 백발백중을 할수 있단 말이요?”라고 하였다.      그러자 멧돼지는 말고삐로 백마의 잔등을 살짝살짝 건드리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어려서 나도 아버지나 오빠처럼 사냥꾼이 되려고 사격을 배우려고 하였지요.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계집애가 무슨 사냥을 한다고 그러는가 총을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산골 강바닥에 나가 돌을 뿌리는 연습을 했지요.”      그녀는 옆구리의 돌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 보라는 듯이 날아가는 새를 겨누고 씽 날렸다. 날아가던 새가 돌에 맞아 푹신푹신한 주단 같은 땅바닥에 뚝 떨어졌다. 그러자 얼룩이가 달려가 입에 물고 꼬리를 휘휘 저었다.      “얼룩아, 검둥이와 함께 나눠 먹어라.”      “오빠는 올해 춘추가 어떻게 돼요?”     성칠은 나이를 속이지 않았다.     “올해 이젠 서른하고도 두 살이나 되오.”      “어머! 그럼 우리 큰 오빠와 동갑이네요.”     “오빠 있소? 오빠를 두고 처녀애가 무슨 사냥이오?”    순간 멧돼지의 철색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흘러갔다.     그녀는 수림 속을 쓸어보며 머리를 숙였다.     “오빠는 일본 놈들에게 어디로 잡혀갔는지 알 길이 없어요.”      멧돼지는 팔소매로 눈물을 닦으면서 돌아섰다.     “몇 해 전에 일본파출소의 마쯔무라 소장 놈이 개성에서 몇십리 떨어진 우리 산골에까지 들어 사냥을 하지 못한다고 윽박지르지 않겠어요. 우리 여섯 식구는 손바닥만 한 땅도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하고 사냥을 해서 사는데 이건 입을 닫아 매고 죽으라는 게 아니고 뭐예요? 우리 집에서 계속 사냥을 하자 하루는 마쯔무라 소장놈이 개다리들을 앞세워가지고 와서 사냥총을 빼앗아가겠다고 야단치지 않겠어요. 성이 꼭뒤까지 치민 경호 큰오빠는 사냥총 탁으로 일본 놈을 한대 갈겼죠. 그러자 마쯔무라 소장놈은 ‘이 놈을 강제징용에 끌어가야겠다.’고 을러메더니 사냥총을 빼앗고 경호 오빠를 마구 끌고 가지 않겠어요. 경호오빠는 강박군대에 끌려가 간도에 들어갔다고 해요. 경호오빠가 끌려간 후 며칠이 지나서 마쯔야마 놈이 또 경환 둘째오빠마저 끌고 가려고 했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분이 치밀어 김치 움에 치워놓았던 사냥총으로 그 놈을 쏴 눕혔지요. 일본 놈들은 뜻밖의 습격을 받자 다리를 맞고 쓰러진 마쯔무라 놈을 업고 꼬리 빳빳해 달아났지요. 그런데 누가 알았겠어요. 우리가 도망치려고 보 짐을 싸가지고 집에서 나올 때 도망쳤나 했던 일본 놈들이 우르르 들이닥쳐 앞길을 가로 막았어요. 일본 놈들의 총질에 경환 오빠와 어머니가 가슴을 맞아 피를 흘리면서 당장에서 쓰러져 숨을 거두었어요. 악에 받친 아버지는 사냥총으로 맞불질해 일본 놈 두 놈을 쓰러뜨리었어요. 혼 줄이 난 놈들은 혼비백산해 사처로 달아났어요. 그러자 나와 아버지는 마구 간에서 말고삐를 풀어 말을 타고 도망쳐 인적이 없는 여기 장백산 원시림 속까지 들어 왔던 거예요.”      성칠은 멧돼지의 하소연을 듣고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오-  참 안 됐구만. 명천 우시장에도 쪽발이들이 들어왔다오. 허나 아직 우리 마을에까지는 들어오지 않았소. 큰 경을 칠 놈들이오.”      그제야 성칠은 자기가 집에 들어갔을 때 멧돼지가 경계의 눈길을 보낸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이때 검둥이와 얼룩이가 “왕 왕!”, “왕 왕!”하고 요란하게 짖어댔다.     동시에 사처에서 나무숲을 와삭와삭 헤치는 소리가 났다.      성칠이와 메돼지가 여겨보니 숲속에서 굶주린 호랑이무리와 이리무리가 곰의 고기 냄새를 맡았는지 아니면 사람과 말을 보고 잡아 먹자고 왔는지 몰려오고있었다.      성칠과 멧돼지는 토론이나 한 듯이 말 잔등에 뛰어올랐다. 성칠이가 먼저 호랑이무리에 대고 총을 쏘았다. 숱한 철 알이 우박 치듯 호랑이무리에 날아갔다.      호랑이들이 겁을 집어먹고 달아났다. 그러나 교활한 이리무리들은 적토마와 백마를 전후좌우로 슬슬 돌면서 포위하더니 불시에 우르르 덮쳐들었다. 백마가 다리를 깨물려 “오 호 홍!”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앞발을 쳐들었다가 이리를 내리 짓밟고 뒤발로 차기도 하였다. 이때 멧돼지가 백마잔등에서 나무 가지에 뛰어 올라가 허리에 찬 가죽주머니에서 닭 알만 한 돌을 꺼내 연신 승냥이의 대가리를 겨누고 날렸다.    앞장서 덮쳐들던 승냥이 몇 마리가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검둥이와 얼룩이도 승냥이들에게 덮쳐들어 깨물었다.    땅!    이때 또 원시림에서 야무진 총소리가 났다.     피뜩 보니 수림 속에서 구철이 발구를 몰고 달려와 합세해 총탄을 퍼 부었다.     그들 셋이 총질과 돌팔매질을 하자 이리무리도 몇 마리 주검을 남기고 수림 속으로 꼬리 빳빳해 도망쳤다.             9 .사냥꾼과 진달래     해빛도 비껴들지 못하는 원시림은 다시 무서운 정적을 되찾았다.     구철과 성칠은 발구에 곰과 이리 몇 마리를 싣고 귀로에 올랐다. 말을 탄 진달래는 앞에서 혹시 야수들이 덮쳐들까봐 앞길을 살피면서 달려 나갔다.     집에 돌아와 곰을 부리어 창고에 끌어 들여가고 나니 어느 덧 점심 때도 훨씬 지나갔었다.     성칠은 구철을 보고 “집식구들이 기다릴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구철은 손바닥을 탁탁 털면서 극구 말렸다.     “이 사람아. 숱한 짐승을 잡아 놓고 고기 한점도 먹지 않고 가겠나? 며칠 묵게나.”    성칠은 “아닙구마. 집을 떠나온 지 오래기에 가야 합니다.”라고 하며 기어이 떠나려고 했다.     “그럼 저 곰 고기와 멧돼지 고기를 얼마간 가지고 가게나.”    구철은 딸을 돌아보았다.    “멧돼지야, 오빠를 배랠 차비를 해라.”     “예, 알았어요. 아버지.한가지 여쭐 말씀이 있어요.”      멧돼지는 구철을 보면서 지청구를 들이댔다.      “왜 그래?”     구철은 나무장작을 안아 부엌에 들여가다가 몸을 뒤로 반쯤 탈면서 물었다.     멧돼지는 몸을 흔들어댔다.     “아버지, 이젠 멧돼지라고 부르지 마세요."      구철은 씨무룩이 웃었다.       "왜?"       진달래는 입이 뽀로통해 종알거렸다.      "성칠 오빠 나한테 고운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뭐겠공?"       구철은 성칠과 진달래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뭔데?"      "진달래, 어때요?”     “그래?  참 좋구나. 백두산의 진달래는 눈 속에서도 얼어 죽지 않지. 진달래야, 해가 지련다. 어서 오빠를 모시고 갈 준비를 해라.”     “예.”     진달래는 생글방글 웃음 지으면서 나무장작을 한 아름 안고 아버지를 따라 부엌에 들어갔다. 이윽고 그녀는 집안에서 호랑이가죽옷을 한 견지 들고 나왔다.     “오빠. 이걸 바꿔 입어요. 가죽옷이 다 째졌어요.”    진달래는 성칠의 째진 웃옷을 봇기고 새 가족옷을 갈아입히면서 마음이 아파했다.    "에이고, 잔등이 멧돼지 이빨에 깊숙이 긁히었어요. 쯧쯧 , 피고드름이 다 맺혔어요.”     성칠은 호랑이가죽옷을 갈아입은 후 검둥이를 불러 뒷간 쪽으로 데리고 가서 검둥이의 째진 귀에 대고 오줌을 쌌다.      그러자 검둥이는 대가리를 흔들어 오줌을 털어버렸다.      “검둥이야, 오줌은 우리 조상 때부터 물려온 명약이다. 아까운 약을 털어버릴게 뭐냐?”       진달래는 피씩 웃었다.      (오줌이 무슨 명약이람? 진짜 명약은 우리 백두산 약초인데.)       구철은 벌써 곰의 각을 뜯어내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성칠은 구철을 도와 각을 뜯고 진달래는 나무토막을 안고 집에 들어가 물을 끓인다, 쌀밥을 짓는다 하면서 복숭아이마에 땀방울을 줄줄 흘렸다.      한참 후 성칠은 쌀밥에 멧돼지고기장국을 두 사발이나 먹었다.       구철은 더 만류할 수 없음을 알았다.       “성칠이, 저 곰 두 마리와 이리 두 마리를 가지고 가게나.”       그러나 성칠은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렇게 많이 어떻게 가지고 가겠습둥? 이 심산 밀림에서 굶어 죽을 번 했는데 덕분에 살아 남은 것만 해도 고맙습니다.”       구철은 아주 통이 큰 사내대장부였다.       “에끼, 이 사람아. 야수들에게 죽을 번 하면서 숱한 야수를 잡았는데 어떻게 빈손으로 보내겠나. 저기 적토마 옆구리에 싣고 가면 돼. 곰의 열도 둬 개 빼놓았는데 가지고 가게나. 내장 병에 참 좋은 약이지.”      성칠은 한 마을에 사는 엄창렬이 폐병이 심한 것이 머리에 또 올라 곰의 열 두 개는 받아두었으나 적토마마는 재삼 사양하였다.     “적토마를 보내고 뭘 타고 사냥하겠습니까?”     구철은 손까지 내저었다.      “적토마 두 마리나 되는데 걱정인가. 저 적토마는 새끼를 밴 암말이네. 명년 봄이면 망아지를 낳을게야. 근심두 팔자야. 곰 네 마리나 잡아두고 가는데 말 한필을 주는게 무슨 그리 대순가?”      구철은 통쾌하게  “허허허” 웃었다.     성칠은 적토마에 곰의 고기를 백여 근 달고 떠나게 됐다.     진달래가 고개를 갸웃하고 궁리하다가 성칠을 따라 나섰다.     “오빠를 바랠 게요. 가다가 또 야수무리를 만나면 어쩌겠어요.”     성칠은 말 잔등에 오르면서 히쭉 웃었다.      “근심하지 마오. 사냥꾼이 야수를 두려워 처녀의 호송을 받겠소? 소 웃다가 꾸러미 터지겠소.”      “멧돼지야! 아니, 진달래야. 조심해 갔다 오라!”      “예.”     성칠은 구철에게 큰 절을 올리고 진달래와 함께 적토마를 타고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천천히 떠나갔다.     검둥이와 얼룩이는 신이 나서 앞에서 쌍쌍이 꼬리를 휘저으면서 달려 나갔다.      그들은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바라고 말을 타고 원시림 속을 달렸다. 적토마를 탄 성칠과 백마를 탄 진달래는 참말로 한 쌍의 백마왕자와 백마공주 같았다.      성칠이 피뜩 보니 말을 타고 개털 모자를 쓴 진달래의 얼굴은 눈 속에서 피어나는 한 떨기 매화꽃송이 같았다. 진달래는 성칠의 눈길을 느끼자 부끄러운지 두 다리로 말배를 툭 차더니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그들은 눈보라 속을 헤가르면서 원시림에서 한참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한식경이나 달리니 눈 덮인 수림이 사라지고 단풍이 든 원시림이 나타났다.      성칠은 말고삐를 낚아채더니 진달래를 바라보며 당부했다.     "진달래, 이젠 해가 져가는데 어서 집으로 돌아가오.”     진달래는 말머리를 나란히 하면서 개털 모자를 벗어 다시 꾹 눌러썼다.      “괜찮아요. 여기부터 야수들이 많이 출몰하는 곳인데요. 좀 더 바래드릴게요.”      성칠은 진달래를 쫓아가면서 “아니야. 이젠 돌아가라고.”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달래는 계속 달려가면서 말머리를 돌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또 한참 내리달렸다. 이젠 원시림이 끝이 나고 가둑 나무와 싸리 밭이 나타났다.      성칠은 또 말렸다.      "진달래, 이젠 돌아가오.”      그제야 진달래는 닫는 말을 천천히 멈춰 세웠다.      그녀는 개털 모자를 벗어 쥐고 성칠을 빤히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성칠은 곰의 고기를 넣은 가죽주머니를 바로잡아놓으면서 물었다.       “뭘?”       진달래는 먼 수림 속을 바라보다가 성칠에게 철색얼굴을 돌렸다.        “집에 어린애 몇인가요?”       성칠은 말채찍을 매만지면서 반문했다.       “아, 그걸 왜 묻소?”       진달래는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쌍태 머리를 매만졌다.       “물으면 안돼요?”      성칠은 한숨을 후- 길게 내쉬더니 솔직하게 말하였다.      “어, 괜찮지? 난 아직 자식이 없소.”       그 말에 진달래는 숙였던 고개를 들면서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왜요? 오빠는 아직 장가를 들지 않았는가요?”      그러자 성칠은 솔직히 대답하였다.       “아니요. 장가를 간지 15년이 되는데 자식을 하나도 보지 못했소.”       “그래요?”       진달래도 한숨을 호- 내쉬였다.       “형님은 아주 예쁘지요?”      성칠은 헤벌쭉 웃었다.      “어? 저, 그저 그래. 옛날부터 아내 자랑을 하는 건 상 머저리지.”      그러자 진달래는 손으로 입을 싸쥐고 사내애처럼 깔깔깔 웃었다.      “알았어요. 묻는 내가 우둔하지요.”      성칠은 원시림 쪽으로 되돌아보더니 물었다.      “진달래, 이젠 야자 해도 되지?”      진달래는 호호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되고말고요. 열두 살이나 이상 오빤데요. 얼마나 어색하구 장벽이 있는 것 같았는지 몰라요.”      성칠은 또 재촉했다.      “이젠 어서 돌아가라. 이 다음 사냥하러 이 근방에 오면 내 꼭 여동생 집에 올 거야.”     진달래는 떠나려 하지 않고 흉금을 털어내놓았다.     “오빠, 난 이 인적 없는 원시림이 싫어요. 생각 같아서는 나서 자란 고향으로 가고 파요. 어려서 돌 뿌리기를 연습하던 고향의 강가로 돌아가고 싶어요. 눈 감으면 고향의 강이 막 떠올라요. 그러나 아버지가 일본 놈을 쏴 죽인 죄로 돌아갈 수도 없어요. 오빠네 명천 산골에라도 가서 살고 파요. 그 곳에 큰아버지도 계시거든요. 아버지는 일본 놈들에게 잡힐까봐 이 산속을 떠나지 않거든요. 이렇게 짐승처럼 원시림에서 한 발작도 못나가고 5년 동안이나 갇혀 살았어요.”       성칠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아직 우리 명천에는 그 쪽발이들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도 잘 대해주면 그렇게까지 악독할까?”       진달래의 눈에서는 불길이 이글거렸다.       “오빠는 그 놈들을 몰라요. 얼마나 악독한 놈들이라고.”       “알았다. 내라고 그 쪽발이들을 고와 그러겠니? 그저 지껄이지 말고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살자는 거지.”       이어 그는 진달래의 손에서 말고삐를 잡아 채 말머리를 돌려놓으면서  작별인사를 하였다.       “이젠 돌아가라. 시간이 나지면 우리 명천에 아버지와 함께 놀러 오렴. 구장 큰아버지도 만나고. 빨리 돌아가라.”       진달래는 갈라지기 아쉬워하면서 이슬 맺힌 깜장 눈을 끔쩍이면서 작별인사를 하였다.      “오빠네 일가와 구장 큰아버지를 보면 인사를 전해줘요. 잘 돌아가세요. 오빠!”       “다시 만나자!”      적토마와 백마도 갈라지기 아쉬워 “오 호 홍!”, “투루루!”하고 투레질하면서 말머리를 돌려 서로 응시하였다.      적토마와 백마는 주인들이 박차를 가하자 남북으로 갈라져 천천히 달려 나갔다. 백마와 적토마는 점점 멀어져가고 말 잔등의 남녀는 자꾸 서로 뒤를 돌아보았다. 서로 흑점이 돼 아물거리다가 진달래는 눈 덮인 원시림 속으로 사라지고 성칠은 누런 개마고원 산기슭으로 사라졌다.       사냥군과 진달래는 공간적으로는 점점 멀어져갔다. 그러나 앞을 갈릴 수 없는 눈보라 속에 그들의 알고도 모를 정은 점점 깊어만 갔다.  
19    장편과학환상소설 황천의 유령(3) 댓글:  조회:1606  추천:1  2015-04-08
제8장 평화장막 뒤 연극 코치아에서 정변이 일어나자 웃음주머니가 터진 자들은 뱀 섬나라 버새 총리 형제였어요. “허허허. 끝내 터졌어. 그 놈들이 원래 그런 새끼들이야. 꽤나 총명하고 용맹한데 말이야. 진흙처럼 한데 뭉치지 못하고 쩍 하면 모래알처럼 싹 흩어져 버리지. 옛날부터 서로 물고 뜯고 그런 새끼들이야. 그래서 나라가 망하고 주변국의 침략을 받고 그랬던 거야.” “하하하. 형님, 우린 어부지리를 하게 됐구먼.” “뭘?” 버새는 교활한 실눈을 번쩍 떴어요. 밴새는 어둠침침한 지하실험실을 둘러보더니 형의 귀에 뾰족한 입을 들이대며 나직이 말했어요. “우린 암암리에 코치아와 임해에 무기를 대줘 싸우게 부추기잔 말이요. 백산 열대우림의 원목도 슬슬 채벌해 실어오고 남쪽 임해의 수산물도 스리슬쩍.” 훔치는 시늉을 하는 동생을 보며 버새는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그 역어 빠진 조왕돌이나 금붕어가 낚시에 걸려들겠나?” 밴새 소장은 주먹까지 내휘둘렀어요. “우린 먼저 임해의 힘을 빌리어 코치아를 멸망시키고 나중에 임해를 없애치우잔 말이야! 아무렴 우리 형제가 10대 조왕돌을 이기지 못하겠어? 흥!” 뒤이어 그는 형의 귀에 대고 뭐라고 쑤군거렸어요. “오~ 그래, 그래. 참 멋져.” 버새는 음침한 지하밀실에서 동생과 지껄여댔어요. “허나 그렇게 간단히 볼 놈들이 아니야. ‘코치아(可起亚)’라는 건 백일하에 드러난 야심인 거야. ‘코치아’는 피뜩 보면 영어 같지만 기실 한어로 보면 ‘코치아는 아시아에서 일어난다.’는 말이야. 허수아비도 만만히 보지 말라. 얼마나 음험한 정객이냐? 정변까지 서슴지 않았잖아.” 그들 형제는 이튿날부터 온 밤 세운 음모궤계대로 행동하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허수아와 인맥이 있는 우성을 시켜 비밀리에 군용트럭과 핵탄두를 실은 뱀 섬나라 대형 군함에 앉아 바다를 건너 임해의 수도 임해로 건너가게 했어요. 자칭 임해 대통령 허수아는 우성과 함께 임해 부두에 나가 임해 군인들이 뱀 섬나라의 차량과 핵무기, 탱크 등을 부리는 것을 구경하며 입귀가 귀밑까지 짜개진 것은 더 말할 게 없었어요. 그 후 연 몇 달 동안 뱀 섬나라의 중고차와 중고탱크, 중고장갑차 등이 군함에 앉아 연속 임해에 들어섰어요. 조용하던 임해는 각종 엔진소리로 분주하고 산골짜기와 거리를 메울 지경으로 각종 트럭과 탱크들이 요란하게 달리었어요. 바다에서는 뱀 섬나라에서 고가로 팔아먹은 시월 호 대형유람선이 푸르른 바다를 헤가르면서 달리고 있었어요. 시월 호 계열 대형유람선은 기실 뱀 섬나라에서 평형수를 아무리 많이 실어도 평형회복이 잘 안 돼 전복사고를 자주 내는 배였어요. 뱀 섬나라는 중고 유람선 시월 호에 펜치 칠이나 해서 임해에 팔아먹었던 것이죠. 그런 줄도 모르고 희한해 하는 임해 허수아비 대통령을 보고 버새 총리는 너무나도 우스워 터지는 웃음보를 참느라고 입을 틀어막고 킬킬거리었어요. 어허, 별 일이죠. 자원이 없는 형편에서 뱀 섬나라에서는 수천 년 동안 다른 나라의 걸 수입해 개작을 하고 가공업만 벌리어왔는데요. 이번에는 숱한 핵무기와 탱크, 트랙을 수출하고서도 버새 대왕과 밴새 총리는 임해의 허수아 자칭 대통령에게서 귀금속을 가져가려고 하지 않았어요. 허수아는 너무나도 이상해 밴새 총리에게 물었어요. “뱀 섬나라에서 뭔가 가지고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밴새 총리는 선심이나 쓰는 것처럼 말했어요. “아니, 아니, 임해에서 금방 나라를 세워서 어렵겠는데 동맹국인 우리 어찌 욕심을 차리겠습니까. 돌아갈 때 임해 습지에서 검은 부식토나 실어가지요.” “예?” 허수아비 대통령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허나 허수아비 대통령의 부인 임해자는 코치아 농림부 부장 출신이기에 대개 짐작하고 머리를 끄덕였어요. 밴새는 그럴듯하게 얼ㄹ 넘겼어요. “습지의 검정 부식토를 파다가 뱀 섬나라 왕궁에 아름다운 화원과 연못을 만들겠습니다. 끊임없는 화산 폭발에 우리 뱀 섬나라는 화산재로 뒤덮여 있어 곡식과 꽃이 자랄 수 없죠. 그래서 흙이 황금 값이죠.” 허수아비 대통령은 머리를 끄덕이며 흔쾌히 대답했어요. “부식토를 마음대로 실어 가십시오.” 버새 총리가 임시 대통령궁에서 나가자 허수아비 총리는 아내 임해자 농림부 부장을 보고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우리 임해에 흔해 빠진 습지 부식토를 가져가다니?” “뱀 섬나라에서는 연기 속의 이산화탄소를 분해해 탄소와 산소를 만드는 습지가 욕심나 침을 흘리고 있어요.” “그런다고 뱀 섬나라 도시 연기를 왕궁의 습지가 다 빨아들일 수 있겠나? 흥!” 버새 총리는 부식토를 싣고 바다를 건너가 으리으리한 왕궁의 연못과 화단에 임해에서 배로 실어온 검정 부식토를 펴고 연못을 만들고 꽃을 심었어요. 왕비 하나꼬는 연못에 펴는 검은 부식토를 보고 손뼉까지 쳐댔어요. “이제 연꽃이 피면 얼마나 곱겠어요. 꽃나비가 나풀나풀 날아다닐 거죠.” “그래, 우리 왕궁이 연꽃, 벚꽃 백화가 만발한 지상낙원이 되지~ 허허허.” “호호호.” 한편 뱀 섬나라 뱀 왕은 아카시아와 루스끼아, 코치아, 노르망디 등 나라의 연합사령부 몰래 군수물자를 코치아의 한 개 지역이나 다름없는 임해에 팔아먹는 것에 진노했어요. 그는 무더위를 피해 화산 동굴 샘물에 얼룩덜룩한 몸뚱이를 불구고 꼬리로 찰랑찰랑 샘물에 물장구를 치면서 우로 향한 바람구멍에 머리를 들이밀고 시원한 동굴 바람을 쏘이며 궁리했어요. (버새 형제는 야심이 있어. 뱀 인들을 시켜 버새를 없애버린다?) 그는 물장구를 잠간 멈추더니 “에이, 안 돼. 인간세상은 원래 시끄러운 곳이야.”라고 했어요. 뱀 왕은 목욕을 마치자 돌기둥을 타고 바깥으로 스르르 기어나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어요. 이 뜻밖의 소식에 버새는 입이 함박 만해졌어요. (이게 웬 호박이 넝쿨 채로 굴러 떨어져?) 버새는 너무나도 기뻐 어깨춤이 절로 났어요. 그날로 그는 자칭 대왕이 돼 왕궁에 들어갔어요. 화산 동굴의 뱀 왕의 왕궁에는 들어가지 않고 소꼬에 미리 짓고 연못을 만든 왕궁에 들어갔어요. 뒤이어 그는 동생 밴새를 불러 총리로 임명해 본격적으로 생체실험을 통한 인간복제를 시작하라고 했어요. 밴새 총리는 좀 주춤했어요. “옛날부터 731공정은 너무 잔인한 생체실험을 했다고 세인들의 질책을 받았는데.” “괜찮아, 내놓고 생체실험을 하지 말고. 저, 뭐, 생명과학을 연구한다는 간판을 내걸고 지하연구실에서 사체를 해부하는 것쯤은 괜찮지 않아?” “에~ 거 묘수요.” “그래, 사람의 목숨을 연장할 수도 있고 순식간에 죽일 수도 있는 생물무기를 연구제조해라.” 화산 동굴에는 살기 넘치고 나까 왕족의 너털웃음소리로 떠나갈 듯 했어요. 그런데 그 날 밤, 나까아버새 대왕은 착잡한 생각이 들었어요. 버새 왕은 코치아에서 돌아온 하나꼬와 갓 결혼해 왕후로 삼았는데요. 게다가 동생이 숱한 미녀를 복제해냈어요. 눈알이 파란 프랑스 미녀로, 눈이 노란 루스끼야의 금발 미녀로, 살색이 새하얀 백인종 미녀로 왕궁이 차고 넘칠 지경이었어요. 음위가 와서 그 일이 잘 되지 않았어요. 아차, 왕궁에 숱한 미녀들과 뱀 미녀들이 앞 다퉈 버새의 왕비거나 첩이라도 되려고 했지만요. 그것이 말을 잘 듣지 않아 야단이었어요. 번마다 하나꼬의 원망하는 눈길을 곁눈질하면서 침대에 맥없이 스르르 떨어질 때마다 미안한 감과 실망감, 주눅이 반죽돼 그를 괴롭히었어요. 그는 침대에 오르기마저 싫어 쩍하면 밤중에도 동생 밴새 총리가 차린 생명과학연구소에 가서 생체실험을 하는 장면을 구경했어요. 밴새가 직접 연구일군들을 데리고 한창 생체실험을 하고 있었어요. 암암리에 연구일군들이 마대치기를 해온 아카시아의 백인종 마루타를 옷을 쫄딱 벗겨 냉동실에 억지로 마구 밀어 넣었어요. 밴새가 스위치를 누르자 순식간에 생사람이 얼음조각처럼 돼버렸어요. “얼었어. 얼어!” 밴새가 냉동실 문을 열고 들어가 쇠몽둥이로 얼음기둥처럼 꽁꽁 언 백인 마루타의 팔을 땅땅 쳤어요. 얼음처럼 팔이 산산이 부서졌어요. 얼음 같은 팔의 얼음조각이 땅바닥에 널렸어요. “됐어!” 밴새가 냉동실 스위치를 누르자 얼었던 마루타가 순식간에 녹아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NO! NO!” 정신이 든 백인종 마루타는 끊어난 팔이 아파 냉동관 안에서 고함을 질렀어요. “하하하!” “허허허!” 밴새 형제와 연구일군들은 재미 있다고 백인종 마루타를 손가락질을 하면서 징글맞게 너털웃음을 쳤어요. 밴새가 스위치를 누르자 진공 가마 안의 공기가 빨려 나오기 시작했어요. 루스끼야 마루타와 코치아 미녀 마루타는 숨이 막혀 마구 유리창을 두드리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했어요.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루스키야 마루타와 코치아의 미녀 마루타는 진공 가마 안에서 눈알이 툭 튀어나왔어요. 이윽고 눈알이 뿍 빠져 유리창문에 와 맞아 썩은 달걀처럼 터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뒤이어 볼이 마구 째지더니 버둥거리다가 처참하게 죽는 것이었어요. “허허허. 진공상태에선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이구먼.” 버새는 연구일군들을 둘러보면서 음흉하게 웃었어요.     제9장 아마존 열대우림의 호랑이 왕 아마존 수천수만 년 묵어빠진 열대우림이었어요. 하늘을 가린 울울창창한 나무숲이 우거졌어요. 천여 년 전에 클론바우 17세 시대에 백산 열대우림에서 파다가 심은 미인 송은 하늘을 찌르며 숲을 이루고 있었어요. 이 백산 미인 송은 어찌나 매칠하고 목질이 좋은지 자고로 왕궁의 재목으로 씌었지요. 아마존 열대우림의 시조나 다름없는 우산나무들은 주인 노릇이나 하려는 것처럼 욕심을 부려 가지들을 축구장만큼 폭넓게 몇 십 미터씩이나 뻗쳤어요. 우산나무는 진짜 우산처럼 열대우림의 소낙비를 피해도 될 것 같았어요. 몇 십 길씩이나 깊은 협곡의 열대우림에는 팔뚝만큼 한 칡넝쿨이 얼기설기 그물처럼 뻗어나갔어요. 절벽 위의 칡넝쿨은 바위틈을 꿰지르고 나가기도 했고 바위를 묶어 건뜻 들기도 하면서 우산나무와 미인 송들 사이를 구불구불 몇 백 미터씩이나 뻗어나갔어요. 어떤 칡넝쿨은 서로 뒤엉켜 감겨 있기도 했으며 바처럼 미인 송과 우산 나뭇가지에 곧추 뻗어 있기도 했어요. 어떤 구불구불한 칡넝쿨에서는 원숭이들이 매달려 쫓기 내기도 하고 외손으로 잡고 그네를 뛰며 놀기도 했어요. 어떤 원숭이들은 야자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야자를 따 시원한 물을 빨아 먹었어요. 호랑이 카시마가 어슬렁어슬렁 야자나무 밑으로 기어와 야자수를 마시는 원숭이를 쳐다보면서 뻘건 혀를 널름거리었어요. “얘, 야자를 내리뜨려 주렴.” “기어 올라와 제 발로 따 먹으라고. 해해해.” 원숭이가 비아냥거려도 카시마는 야자나무를 기어 올라갈 수 없어 닭 쫓던 개 지붕을 쳐다보듯 했어요. 열대우림에서는 구렁이와 칡넝쿨을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어요. 칡넝쿨에 디룽디룽 걸려 있던 얼룩 뱀은 낮잠을 자다가도 분주히 뛰노는 원숭이들이 성가신 듯이 혀를 날름거리면서 스르르 기어 와 덮치려고 했어요. 깜짝 놀란 어미 원숭이들이 새된 소리를 짹짹 지르자 새끼 원숭이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쳤어요. 어린 원숭이 한 마리가 뱀에게 쫓기다가 질겁해 그만 칡넝쿨을 구르면서 저쪽 칡넝쿨에 뛰어넘어가 잡으려다가 그만 절벽 아래로 떨어졌어요. 어미원숭이가 새된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 내려가 새끼원숭이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그때는 늦었어요. 그때 저게 웬 일인가요? 위기일발의 찰나에 그물 같은 칡넝쿨이 절벽 아래로 훌 날아 내려와 절벽 아래로 떨어지던 원숭이를 받아 안더니 위로 끌어 당겨 올라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물 칡넝쿨에서 새끼원숭이를 받아 안고 머리를 쓰다듬던 어미원숭이는 그물 칡넝쿨이 너무 고마워 왼손으로 쓰다듬다가 줄줄이 늘어진 칡넝쿨을 타고 절벽 위로 씽 날아올라갔어요. 그런데 너무 속도가 빨라 절벽 위에 떨어지면 상할 거 아니겠어요. 그 찰나에 대나무 잎을 뜯어먹던 코끼리가 긴 코를 뻗쳐 하늘에서 떨어지는 새끼원숭이를 척 받아 안아 키꺽다리 기린의 잔등에 앉혀 놓았어요. 그때 어미 원숭이가 칡넝쿨을 잡고 그네를 뛰며 날아가 기린의 잔등에서 새끼를 안고 눈물을 흘리었어요. 어미원숭이는 눈물을 지으며 코끼리와 기린에게 감사를 드렸어요. 뒤이어 어미원숭이는 새끼원숭이를 안고 절벽 가에 가서 칡넝쿨을 매만지면서 “감사해요, 칡넝쿨 형제들. 당신들이 내 새끼를 구했어요.”라고 했어요. 저게 뭔가요? 칡넝쿨이 답례나 하듯 스르르 움직이더니 적십자 조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겠어요. 칡넝쿨은 눈과 귀가 없어도 어미원숭이 말을 알아듣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요. 아마존 열대우림의 동물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칡넝쿨이나 야자나무나 우산나무, 이파리가 넙죽한 파초 등 숱한 식물도 모두 목숨이 있고 모든 걸 보고 듣는 눈과 귀가 있었고 그들도 자녀가 있었어요. 더욱이 그들에게도 천지만물과 모든 동물들을 사랑하는 사랑심이 있었어요. 울울창창한 열대우림에는 하늘에서 희미한 햇빛 몇 가닥이 나무 잎 새로 비껴들 뿐이었어요. 혹시 하늘에서 희미한 햇빛 몇 가닥이 나무 잎 새로 비껴들 뿐인데요. 열대우림 복판에는 아마존과 더불어 커다란 거울 같은 호수가 푸르른 하늘과 꽃구름송이를 떠이고 고요히 누었어요. 열대우림 속에는 인디안 원시부락도 있고 그들의 적수인 산중대왕 호랑이와 사자들이 숱한 야수들을 다스리면서 이웃해 살고 있었어요. 아마존 유역의 호랑이 왕 카시마는 사람처럼 자기네 호랑이 말을 말할 줄 알았어요. 사실 아마존 유역에 웬 괴물이 들어온 후 호랑이의 말을 사람의 말로 번역해 놓은 바람에 범의 말을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됐어요. 허나 호랑이들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어요. 그리하여 아직 완전히 서로 소통은 잘 되지 않지만요. 그래도 관건적인 뜻은 전달이 가능했어요. 아마존 열대우림 속에서 인류와 야수들의 생존경쟁도 아주 치열했어요. 서리발치는 차디찬 햇살이 부채 살처럼 수림 속을 비추는 어느 날 이른 아침이었어요. 어미 호랑이왕 카시마는 두 새끼에게 젖을 먹이다가 수림이 우수수 바람에 울어도 엉거주춤 일어나 눈알을 부라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또 인간들이 침범해오는가?” 호랑이 왕 카시마는 엉거주춤 일어나 아가리를 쩍 버리면서 기지개를 켜더니 “이거 배고파서 어디 견디겠느냐?” 하고 너럭바위 우에서 사처를 둘러보았어요. 그때 하늘에 길이 10여 미터도 넘는 커다란 괴물이 나타나 훨훨 날아 왔어요. “저게 뭐야? 코끼리코를 달았는데 코끼리는 아니고. 뭐야?” 호랑이 왕 카시마는 깜짝 놀라 새끼들을 주둥이로 물어 바위 틈새에 숨겨 놓고 하늘을 계속 쳐다보았어요. 진짜 놀라운 괴물이 하늘에 나타나 아마존 유역의 수림을 날아예면서 기웃거렸어요. 한쪽 날개만 해도 5, 6미터나 되고 엄청 큰 날짐승이었어요. “쳇, 저 놈 괴물이 우리 호랑이 가족도 아니면서 어인 호랑이 얼룩무늬가 있지? 제법 사람 대가리 이마빼기에 대왕 왕자도 씌어있고. 흥! 더러운 괴물 놈! 네 놈이 아마존에 와서 왕이라도 하려는 거야? 어림도 없어!” 호랑이 왕 카시마는 하늘의 괴물을 쳐다보면서 두덜거렸어요. 수림 속은 전에 없이 조용해졌어요. 숱한 짐승들이 나무숲에 숨어 숨이 한줌만 해서 경계의 눈길로 하늘에 나타난 괴물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코치아 동물들이라면 그 괴물이 누구라는 것을 다 알 수 있었어요. 허나 아마존 유역의 짐승들은 처음 보는 놀라운 괴물이어서 공포의 그늘이 온 아마존 수림을 짓눌렀어요. 그 괴물이 유유히 사라지자 호랑이 왕 카시마는 안도의 숨을 후~ 내쉬더니 새끼 둘을 한 입에 물고 산 아래 습개지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내려갔어요. 호수에서는 한창 사슴들과 노루들이 물을 먹고 있었어요. “저 놈들이 물을 먹을 때 돌연 습격해 잡아먹어야지.” 그러나 카시마는 금방 하늘에 나타났던 괴물 같은 야수들이 새끼를 물어 갈까봐 근심돼 사냥터로 될 호수 옆에 숨겨 놓고 사냥할 예산이었어요. 이윽고 카시마는 호수 가에 이르러 우거진 갈대숲 속에 새끼들을 숨겨 놓으면서 새끼들에게 당부했어요. “얘들아, 엄마가 사냥해 올 테니, 숨어 기다려라!” 어미가 당부하는데도 카오바는 수컷이노라고 여동생 카마바를 자꾸 앞발로 치며 장난질했어요. “작작 장난쳐! 괜히 곰에게 잡혀가지 못해서.” 그제야 카마바는 장난을 그만 두고 곰이 오나 사위를 둘러보았어요. 카시마는 새끼들을 갈대숲에 숨겨 놓고 가다가 시름 놓이지 않아 연꽃의 너부죽한 잎을 몇 개 물어다 새끼들에게 덮어 놓고서야 사냥하러 갔어요. 호수에서 물을 먹던 사슴과 노루들은 갈대숲을 와락와락 헤집으며 어슬렁어슬렁 기어오는 호랑이를 발견하고 물에 뛰어들어 헤엄쳐 도망쳤어요. 며칠을 굶은 호랑이 왕 카시마는 사슴을 놓칠 수 없었어요. 헌데 그가 물에 뛰어들어 헤엄치며 쫓아갈 때었어요. 수림 속에서 곰이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와 호랑이 새끼 쪽으로 덮쳐 왔어요. “에끼, 저 놈 곰 새끼!” 사슴을 쫓다가 새끼들이 근심돼 흘끔 돌아다 본 호랑이 왕 카시마는 깜짝 놀라 사슴들을 놓아주고 뭍으로 허우적허우적 기어 올라왔어요. “야, 이 놈 곰 새끼!” 호랑이 왕 카시마는 정신을 잃고 뛰어와 새끼들을 막아 나서면서 곰에게 덮쳐들었어요. “어허, 대왕님, 왜 이러십니까? 저도 대왕님의 백성인데요.” 곰은 아주 여유작작한 표정으로 능글맞게 빈정거렸어요. 호랑이는 아닌 보살을 하는 곰을 앞발로 칠상을 하면서 고함쳤어요. “내 사냥하는 틈에 내 새끼를 잡아먹으려 했지?!” 곰은 엉거주춤 멈춰서더니 “아니, 언감 산중 대왕님의 아들딸을 감히? 히히히, 목이 말라 물을 먹으러 내려오는 중인데요.”라고 둘러 맞췄어요. 곰이 호수로 떠나가자 카마바와 카오마는 어미 얼굴을 앞발로 건드리며 뛰놀다가 젖을 먹겠다고 징징 거렸어요. 카시마가 연 며칠 굶어서 젖이 잘 나오지 않아 새끼들은 배고파 울었어요. “얘들아, 나를 따라 호수로 가자.” “예~” “거기 호수에서 사슴을 잡아 주세요.” “응, 그래.” 호랑이 왕 카시마는 호수에 새끼들을 데리고 가더니 한입에 둘을 다 물고 헤엄쳐 호수에 들어갔어요. 그는 한참 헤엄쳐 호수 가운데 자그마한 섬에 새끼들을 내리어 놓았어요. 그는 상대적으로 호수 복판에 있는 이 자그마한 섬이 안전하다고 생각했어요. 곰이나 승냥이가 섬에 오려면 호수를 한 동안 헤엄쳐야 했으므로 사냥할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장난치지 말고 곰이나 승냥이 오면 소리쳐 엄마를 불러라!” “예~” “에이고~ 언제 저것들이 다 크겠느냐?” 호랑이 왕 카시마는 갈대숲에 숨어 사냥물을 노렸어요. 호수 섬에서 멀지 않은 대안에서 사슴들이 풀을 뜯어 먹거나 물을 들이켜고 있었어요. 카시마는 호수에 스르르 스며들어 헤엄쳐 갔어요. 그때까지 사슴들은 무슨 위험이 닥쳐오는 것도 모르고 풀을 뜯고 있었어요. 어떤 사슴들은 목이 어찌나 말랐는지 호랑이가 다가오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물을 먹었어요. 저게 뭔가요? 갑자기 호랑이 왕 카시마가 물속으로 쑥 꺼지더니 사라져 버렸어요. 그는 자맥질해 사슴 무리에 덮쳐 갔어요. 사슴들은 사라진 호랑이 왕을 보고 물에 빠져 죽었다고 생각했는지 시름 놓고 물을 들이켜거나 풀을 뜯어먹고 있었어요. 이윽고 난데없던 호랑이 왕 카시마가 호수가 물속에서 불쑥 튀어나왔어요. 원래 호랑이 왕 카시마는 자맥질해 덮쳐왔던 것이죠. 호랑이 왕 카시마는 놀라 도망치는 사슴 무리에서 한 놈을 와락 덮쳐 목을 물어 끊었어요. 그 틈에 물을 먹던 곰도 놀라 도망치는 사슴 한 마리를 덮쳐잡았어요. “쳇, 더러운 곰의 새끼, 남의 불에 가재를 구워 먹어?!” “대왕님, 신세에 주린 배를 달래게 됐구먼요. 허허허.” 곰은 사슴을 물고 숲 속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호랑이 왕 카시마도 사슴을 물고 섬으로 돌아가 새끼들과 함께 배불리 먹었어요. 그는 피 묻은 입을 뻘건 혀로 다시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렸어요. “에이, 어디서 날아온 괴물이지? 우리 아마존에선 보지도 못한 엄청 큰 괴물인데. 어떻게 당할까? 내 산중왕 자리도 이젠 흔들흔들 하는구나.” 이때 또 하늘에 엄청 큰 괴물이 나타났어요. 재잘거리던 산새들도 나무숲에 숨어 울음소리를 딱 그쳤고 호수에서 헤엄치던 물오리들도 갈대 숲속에 숨어버렸어요. 호랑이는 대가리를 쳐들고 괴물을 쳐다보며 새끼들을 품속에 감췄어요. 세월은 유수와도 같이 흘렀어요. 쥐면 부서질까 놓으면 깨질까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애지중지 키운 카마바와 카오바는 어느덧 큰 호랑이로 됐어요. 허나 어미 호랑이 왕 카시마는 이젠 나이도 들어 송곳니 하나가 홀랑 빠졌어요. 카시마는 빠진 송곳니를 뱉어버리면서 근심에 싸여 중얼거렸어요. “에이 참, 인간들이 열대우림을 자꾸 찍어내 짐승들이 점점 줄어드는데. 설상가상으로 송곳니까지 빠져서 이젠 어떻게 사냥하지? 이 새끼들 뭘 먹이지?” 그 말에 아들 호랑이 카오바가 뜻밖의 말을 했어요. “그럼 엄만 왕위를 내놓아야 하겠구먼.” “뭐라고?” “송곳니도 없이 어떻게 왕을 해? 외래 침략자 인간들은 둘째 치고 엄마 나와 싸워 이겨? 이젠 내가 왕을 해야지.” 카시마는 너무나도 억울해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카시마를 흘겨보았어요. “얘야, 내가 너를 어떻게 고생스레 키웠는데 나를 밀어내고 왕위를 차지하려고 하니?” 그때 카마바도 나섰어요. “엄만 이젠 늙었어. 산중 호랑이 왕은 카마바 아니면 내가 해야 해.” “엄마 늙었다고 너희들이 어찌 이럴 수 있니?” “이제야 알았어요? 엄마도 이전에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몰아내고 여기 왕위를 차지했다면서? 이게 우리 호랑이 가족이 사는 대물림 전통이 아니겠어? 부모가 늙으면 쫓아버리는 거.” 그 말에 억이 막혔지만요. 카시마는 할 말이 없었어요. 사실 10여 년 전에 자기도 그랬으니까요. 카시마의 부모들은 카시마에게 쫓기어 사냥감도 적은 다른 산골짜기에 갔다가 굶어 죽었지요. 허나 카시마는 남은 한쪽 송곳니만으로도 카마바나 카오바를 이길 수 있었어요. 허나 카시마는 언젠가는 두 송곳니가 홀랑 빠지면 호랑이 왕위를 내놓고 떠나야 했어요. 명지한 카시마 호랑이 왕은 아예 일찍이 왕위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조용히 이 호수 가를 떠났어요. 어머니가 떠나가자 그 다음엔 오누이가 호랑이 왕 자리를 놓고 서로 물고 뜯으면서 결사적으로 싸웠어요. 결국 카오바가 이겨 카마바는 어미가 떠난 쪽으로 따라 가버렸어요. 호랑이 왕위를 차지한 카오바는 숱한 사슴들을 둘러보면서 웃음주머니가 흔들거리었어요.                                             제10장 치과병원에 나타난 괴물   아마존 열대우림의 하늘에 또 며칠 전에 나타났던 괴물이 나타났어요. 그 놈은 하늘에서 땅바닥에 내리지도 않고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면서 날아예더니 고래고래 고함쳤어요. “아마존의 창생들아~ 나는 클론바우 18세느니라.” “뭐? 클론바우 18세? 금시초문 괴물인데?” 카오바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한쪽 앞발로 당장 허빌 듯이 쳐들고 버럭 고함쳤어요. “웬 말이냐? 우리 호랑이 가족은 대대로 이 아마존강가 호수에서 왕을 해 왔노라. 어디서 굴러온 놈이기에 감히 여기 와서 떠드느냐?!” 그런데 그 괴물은 호랑이 말도 다 알아듣지 않겠어요. 원래 그 괴물은 호랑이 유전자를 좀 타고 난 놈이었거든요. “허허허, 창생들아, 겁내지 말라. 난 너희들을 구하러 온 구세주이다.” 카오바는 하늘에서 선회하는 괴물 클론바우 18세를 쳐다보면서 볼 멘 소리를 쳤어요. “당신은 누군데 낯선 이 아마존 고장에 와서 왕이요, 구세주요 자처해? 덩치만 크면 왕인가 해?” 클론바우 18세는 나래를 접으면서 호수 섬에 날아내려 앉았어요. “산중왕이라는 호랑이가 아직도 그래 이 클론바우 18세의 명성도 듣지 못했어? 난 일찍 천 년 전에 아카시아 대군을 이끌어 지구촌을 통일한 적 있는 클론바우 17세의 아들이란 말이야.” “허허허. 웃기는 양반이라고. 당신 아버지가 천 년 전에 지구를 통일했는데 당신을 천년 후에 났어? 거짓말을 해도 유분수지.” “허허허. 그래 넌 여기 아마존에서만 살다나니 지금 인류사회가 얼마나 발전한 걸 모르는구나.” 그제야 카오바는 이상한 눈길로 클론바우 18세를 여겨보았어요. 옴 몸은 온통 터덜터덜한 악어가죽을 뒤집어 쓴 거 같은데요. 코끼리 코를 단 머리는 사자머리요, 낯은 딱 사람의 낯인데 귀는 파초처럼 넓은 코끼리 귀요, 양쪽으로 쭉 뻗은 커다란 날개 밑과 가슴에 웬 사람의 팔이 세 개나 달려 있었어요. “그래 당신은 도대체 사람이요? 코끼리요? 사자요? 도대체 뭐요?” “난 사람이네. 허나 내 몸에는 우리 지상에서 제일 한다하는 짐승들의 유전자와 피가 다 흐르고 있네.” 이때 코끼리 한 마리가 덮쳐오며 고함쳤어요. “네 이놈, 클론바우, 잘 왔어. 넌 우리 조상의 코와 귀를 가졌건만 어째 그 못 된 놈의 사람들에게만 효성을 하느냐? 도적놈은 살려 두어도 배은망덕한 놈은 살려두지 못해!” 코끼리는 단통 달려들어 긴 코로 클론바우 18세의 몸을 감아 메치려고 들었어요. “저리 비켜!” 순간 클론바우 18세가 고함치며 벌떡 일어나더니 하늘로 훌 날아올랐어요. 괴물은 날아 내리면서 헛방을 친 코끼리 엉덩이를 발길로 탁 걷어찼어요. 아, 저게 뭐예요? 아, 글쎄 그 육중한 코끼리는 제 힘에 저만치 나가서 호수에 풍덩 처박히고 말았어요. 괴물은 호수 위를 스칠 듯이 날개를 퍼덕이며 휙 날아예더니 긴 코로 코끼리의 코를 내리눌러 휘감더니 저만치 내 뿌리쳤어요. 그 육중한 코끼리는 저쪽 호수에 퉁 떨어져 버둥거리었어요. 산 더미 같은 허연 물보라가 사처로 튕겨올랐어요. 한참 후에야 코끼리는 겨우 호수에서 헤어나와 뭍에 기어올라와 씩씩거리며 긴 코와 꼬리를 휘둘러 진흙탕을 털더니 꼬리 빳빳해 도망쳐 버렸어요. 산을 옮길 듯한 클론바우 18세의 무서운 괴력을 보고 호랑이 대왕 카오바는 눈이 화등잔처럼 동그래졌어요. “그래 당신은 인류의 구세주 요한인가요?” “난 천지만물이 보내온 새 구세주야.” “예~” 호랑이 왕 카오바는 넓적 꿇어앉더니 머리를 조아리었어요. “눈이 있어도 태산을 알아보지 못했는데 제발 살려 주십시오.” “일어나라고. 일어나.” 클론바우 18세는 두 손으로 새 호랑이 왕 카오바를 부축해 일으켜 잔등을 다독여 주며 말했어요. “우리 함께 잘 해 보자고. 내 몸 속에는 호랑이와 코끼리의 유전자와 피도 흐르고 있네.” “예~ 예, 예, 예. 정말 구세주의 몸을 보니 호랑이의 얼룩무늬가 갔구먼요. 좀 악어 껍질에 가리어져서 그렇지. 얼룩 밑바탕은 좀 알리네요. 이 긴 코끼리 코도 그렇고.” “허허허.” 열대우림의 대왕 자리를 내놓게 된 새 호랑이 왕 카오바는 버쩍 춰올리면서도 속으로는 “넌 잡종이로구나.” 하고 욕했어요. 며칠 후 그 놈의 괴물 클론바우 18세가 또 하늘에 나타나 훨훨 날더니 옛 호랑이 왕 카시마를 안고 내리더니 땅바닥에 훌 내리어놓지 않겠어요. “아니, 왜 이러는 거요?” 카오바는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너희들, 호랑이 세계는 왜 이래? 자기를 낳아 길러주느라고 얼마나 고생한 엄마도 늙으면 몰라라 하고 몰아내? 배은망덕해도 어쩜 … 쯧쯧쯧.” 그 말에 카오바는 엄마 호랑이 카시마를 흘끔 곁눈질 해보았어요. “클론바우 대왕님, 난 이 호수를 이미 카오바 왕에게 넘겨줬어요.” “아따, 왕을 하지 않더라도 살기 좋은 여기 아마존 유역에서 으뜸으로 사냥해 먹을 짐승들이 많은 호수 가에서 살아야 하지요. 근심하지 말고 여기서 살라고.” 카시마는 아들 카오바의 눈치를 살피며 호수 섬에 물앉고 말았어요. 원래 클론바우 18세는 코치아에서 대통령이 되지 못하자 홧김에 도망쳐 홀몸으로 태평양을 날아 넘어 아카시아로 날아 왔던 것이죠. “그래, 내가 다시 아버지 대통령께서 천 년 전에 이룩한 위업을 계승해야지.” 그는 먼저 새 호랑이 왕 카오바와 그 어미 카시마를 한 품에 안고 하늘로 훨훨 날아올랐어요. “아니, 이 괴물이, 우릴 어디로 데리고 가?” “내 좋은 곳에 데리고 가마.” “아니, 내려놓으세요. 우린 아마존을 떠나기 싫어요.” “아마존보다 더 좋은 곳에 데리고 가마.” “어딘데요?” “뉴욕에 데리고 가서 우리 아카시아 전통역사를 보여줄 게.” 클론바우의 품에서 버둥거리며 호랑이들은 고함쳤어요. “제발 우릴 내려놔 주십시오. 우린 아카시아고 인류고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어요. 우린 교활한 인간이라면 딱 질색인데요. 우린 대대로 열대우림에서 꽃사슴이나 잡아먹으면 다입니다.” “사람들이 열대우림이나 파괴하지 못하게 말리세요. 그 놈들이 우리 열대우림을 난벌하는 바람에 생태계가 파괴돼 꽃사슴 수가 점점 줄어든단 말입니다. 우린 뭘 사냥해 먹고 살랍니까?” “구세주라면 그 일부터 하세요. 짐승들이 인류사회의 전통인지 역사를 알아 뭘 합니까?” “알았어. 너희들도 내 하는 일을 도와줘야 나도 너희들을 도울 게 아니야?” 그들이 이렇게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벌써 뉴욕 상공에 이르렀어요. “저 아래를 보게나.” “뭘?” 호랑이들이 푸르른 창공에서 내려다보니 저 먼 발치에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가 즐비하게 늘어선 것이 보였어요. 그런데 시교에 푸른 유리가 번쩍이는 높다란 탑과 산마루처럼 높은 여인의 동상이 나타났어요. “저건 뭔가요? 할 짓이 없으니 인간들이라고? 아까운 건축 재료를 낭비하면서.” “글쎄 말이요. 엄마, 인간들이 저런 쓸데없는 거 짓느라고 우리 아마존 열대우림을 난벌해 간단 말입니다.” “그래, 괘씸한 놈들!” 모자간은 계속 사람들을 욕했어요. “그런 게 아니야.” 클론바우 18세는 그들 모자 호랑이를 안고 구름 위에 우뚝 솟은 그 두 탑 상공을 훨훨 날아예면서 말했어요. “저건 목재로 쌓은 탑이 아니야. 금강석으로 쌓은 탑과 동상이야.” “에~ 아까운 금강석을 없애면서.” 카시마 호랑이 엄마가 물었어요. “혹시 저 탑이 자유여신조각상이 아닌가요?” “아니야. 건 저쪽에 있어.” 클론바우 18세가 가슴에 달린 세 번째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강가에 조그마한 자유의 횃불을 든 여신상이 보일락 말락 했어요. 여신상은 탑에 비하면 난쟁이 같았어요. “그래, 이 탑은 뭔가요?” 카시마의 물음에 클론바우 18세는 간단히 설명했어요. “저건 말이야, 우리 아빠 클론바우 17세가 아카시아 대군을 이끌어 지구촌을 통일한 업적을 기리어 천 년 전에 세운 지구통일기념비야. 금강석으로 세운 건데 에펠철탑보다도 몇 배나 높아.” “따웅~ 그러기에 구름 우에 우뚝 솟았지. 금빛이 번쩍번쩍 하고 파란 유리 같은 것이 멋있어.” “저 지구통일기념비는 높이가 2962.57미터나 돼. 지구통일기념비의 높이를 2962.57미터로 한 건 비문에 밝힌 것처럼 아카시아제국의 국민들이 클론바우 꼬마대통령의 영도아래 지구촌을 통일한 위대한 업적을 쌓은 날인 2962년 5월 7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어.” 호랑이 왕들은 너무나도 신기한 것이 많아 감탄이 끝이 없었어요. 카오바 호랑이 왕은 “아차, 그런데 왜 좀 무너졌지요?” 하고 의아해 했어요. “몰라. 어떤 사람들은 우리 아빠를 질투한 거야.” 클론바우 18세는 사람들이 오존층을 파괴해 지구를 통일한 자기 아빠를 증오해 지구통일기념비를 폭파해 버린 사실은 몰랐던지 말하지 않았어요. “그 옆의 여인 동상은 뭔가요?” “건 내 17세 할머니 유리박사의 업적을 기리어 세운 유리박사동상이야.” “유리 박사? 좀 듣던 이름이야. 우리 호랑이 가족들이 말하던데 유리 박사는 후에 아카시아 사람들의 미움을 사서 코치아로 도망쳤다고 하던데요.” “남의 할머니를 욕하지 마!” 그제야 호랑이들은 혀를 훌렁 내밀더니 입에 빗장을 지르고 말았어요. 클론바우 18세는 호랑이 왕들에게 아주 내심하게 설명했어요. “저 유리 박사 동상은 높이 296.257미터나 돼. 비문에는 유리 박사가 지구를 통일하는 사업에서 쌓은 불멸의 업적을 일일이 새겨 놓았지. 기념비와 동상의 높이 마지막 두 글자를 다 ‘57’자로 새긴 건 클론바우 꼬마대통령의 탄생일인 5월 7일과 지구촌통일일인 5월 7일을 기념하기 위한 거라고 해.” “오~ 흠, 정말 인간 세상에는 신기한 것도 많구먼.” 구름 우에 우뚝 솟은 금빛으로 번쩍이는 소소리 높이 솟은 기념비와 동상을 바라보는 호랑이 왕들과 클론바우 18세는 긍지감에 가슴이 설레었어요. 여러 분들도 기억할 텐데요. 맥슨 박사는 지구촌의 저명한 생물학자였지요. 그는 천여 년 전인 기원 2958년에 코치아적 아카시아 저명한 천문학자 유리 박사와 결혼한 후 17년 동안의 17차나 되는 반복적이고 간고한 복제과정을 거쳐 2975년에 성공적으로 클론바우 계열 인면수신의 괴물들을 복제해냈지요. 클론바우 17세는 일찍 아카시아 대군을 이끌고 지구촌을 통일한 적이 있는 위대한 대통령이었어요. 그가 바로 클론바우 18세 꼬마대통령의 아버지 되는 분이죠. 지구통일기념비와 유리동상을 구경시킨 후 클론바우는 호랑이왕들을 안고 뉴욕시내에 내려갔어요. 괴물과 호랑이들을 보자 숱한 차들이 멈춰 섰고 먼발치에서 숱한 사람들이 그들을 구경하느라고 거리가 인산인해를 이루었어요. 그 속에는 총을 든 백인경찰과 허리의 권총을 만지작거리는 흑인경찰도 끼어 있었어요. 카시마와 카오바는 사람들이 겁이 나 벌벌 떨었어요. “이보시오. 우릴 아마존에 돌려보내십시오. 우린 인간세상이 싫습니다. 저놈들이 우리 아마존 열대우림의 원목을 난벌하던 도적놈들입니다. 저 경찰들의 눈길이 무섭단 말입니다.” “저 경찰들이 총을 만지작거립니다. 우린 화약 냄새가 제일 싫습니다.” 카시마의 말에 클론바우 18세는 “호랑이 왕, 겁나 말아. 저 사람들은 아마존 호랑이 왕을 구경하자고 그래.”라고 하며 달래며 어떤 1층집으로 데리고 갔어요. “여긴 어딥니까?” “뉴욕에서도 소문난 명 치과병원이야.” 카오바는 질겁해 “따웅~ 병원엔 어째? 혹시 우릴 마취 시켜놓고 잡자고 그러진 않아? 호랑이 가죽을 벗겨 애인에게 외투를 지어주자고 안 그래?”라고 했어요. “에끼, 호랑이 왕아. 아무렴 내가 자네들을 해치겠나? 어서 들어가세.” 허나 호랑이 왕들은 클론바우 18세가 들어가지 않는 것을 보고 “구세주께서 같이 들어가셔야 들어가겠습니다.”라고 했어요. 클론바우 18세는 10여 미터나 되는 몸을 굽혀 치과병원 문에 들이 밀어보이면서 “내가 들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작지 않아? 어서 들어가. 빠진 송곳니 대신 쇠같이 딴딴한 송곳니를 해줄 테니까.”라고 했어요. 그제야 늙은 호랑이 왕 카시마는 송곳니 빠진 주둥이를 헤 벌리고 치과병원에 들어갔어요. “이크, 호랑이야!” 치과의사는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씩씩 맡으면서 들어오는 호랑이 사발눈깔을 보는 순간 혼비백산해 의자 밑으로 기어들어가 엎드려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었어요. “허허허. 겁나 말게. 내가 지키니까. 호랑이 왕은 당신을 어쩌지 않을 거요.” 괴물 클론바우 18세가 너털웃음을 하는 말에 기어 나올 의사가 아니었어요. 그때 호랑이가 꼬리로 치과의사 궁둥이를 툭툭 치면서 입을 함지만큼 벌리면서 말했어요. “치과의사, 겁나하지 마오. 정말 저 괴물의 말처럼 이 호랑이 대왕에게 송곳니를 만들어만 주면 내 업고 다니겠어.” 클론바우 18세가 호랑이 말을 사람의 말로 통역해주었어요. 그제야 치과의사는 감싸 안았던 머리를 들고 호랑이를 쳐다보이었어요. 호랑이 왕 카시마는 대문짝 같은 거울에 대고 입을 창문만큼 “아~” 하고 벌리고 들여다보는 것이었어요. 치과의사는 벌벌 기어 일어나 거울을 들여다보았어요. “아! 이거야 말로?” 치과의사는 코를 싸쥐고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왜?” 호랑이 왕 카시마는 사발 눈을 껌뻑이며 의아해 했어요. “입에서 악취 코를 찔러!” “그래? 사슴의 고기를 먹어본 지도 오랜데 무슨 ‘냄새’, ‘냄새’ 하면서. 참. 어서 검사나 잘 하라고.” 호랑이 카시마는 거울에 대고 입을 벌리고 이리저리 비춰보이었어요. “저걸 보오. 오른쪽 송곳니가 다 싹아 떨어졌단 말이오. 우리 호랑이 송곳니는 짐승을 사냥하는 무기란 말이오. 그런데 한쪽 송곳니가 싹아 떨어지니 짐승을 잡기 힘든 건 둘째고 애지중지 키운 애들한테도 업신여김을 당한단 말이오.” 카시마 호랑이 대왕은 뒤에 있는 카오바를 힐끔 되돌아보며 하소연했어요.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이 어디 있어? 다른 짐승들이 물어 갈까봐 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하며 갈대숲에 숨겨놓고 사슴을 잡아다 먹이면서 키워도 다 크면 제 어미부터 사냥터에서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한단 말이네. 에이, 더러운 호랑이 왕국이지. 제 늙고 보니 옛날 내 어미를 쫓아낸 거 후회막급이군. 쩝쩝쩝.” 이윽고 치과의사가 주사기를 뽑아 들자 호랑이 왕은 질겁했어요. “건 뭐야? 송곳 같은 거?” “대왕님, 마취주사라는 겁니다. 이걸 놓으면 이를 만들 때 아프지 않습니다.” “그래?” “입을 ‘아~’ 하고 벌리십시오.” 호랑이가 입을 짝 벌리자 눈 깜짝할 새에 치과의사는 마취주사를 놓았어요. 한참 후 치과의사는 금강석으로 쇠 송곳 같이 딴딴한 이발을 해 넣어 주었어요. 한참 후 치과병원에서 나오자 클론바우 18세는 카시마와 카마바를 데리고 식당으로 갔어요. 뉴욕시의 숱한 사람들이 괴물과 호랑이들을 슬슬 피해 먼발치에서 구경했어요. 괴물 클론바우 18세는 식당 보이를 불러 쇠갈비와 사슴 고기를 각각 한 가마씩 청했어요. 그것도 생 걸로 말이죠. 카시마와 카마바는 이게 웬 떡이냐고 고기를 뜯어먹었어요. 카시마는 처음에는 이가 근심돼 만만한 사슴고기만 뜯어먹었어요. 빠진 이 대신 해 넣은 송곳니로 드문드문 뜯어먹어 보았는데 고기가 잘 씹혔어요. “으흠, 새 송곳니가 꽤나 든든한데.” 뒤이어 카시마 호랑이 왕은 소갈비를 물어 마구 뜯었어요. 갈비도 마구 뜯어 먹을 만 했어요. “이게 웬 일야? 새 이가 든든한데.” 카시마는 이번에는 소뼈를 마구 뜯어 널었어요. 금강석 송곳이가 어찌나 든든한지 소갈비도 뜯어먹을 수 있지 않겠어요! “으흠, 클론바우 대왕님의 덕분에 늘그막에도 사냥할 수 있게 됐군.” 늙은 호랑이 왕 카시마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속으로 자기를 아마존 호수 가에서 몰아낸 배은망덕한 아들딸을 욕했어요. 아들 호랑이 카오바는 속으로 은근히 근심했어요. (엄마 이가 저렇게 든든하면 내 왕위를 되찾을 게 아닌가? 이 일을 어쩌지?) 아마존 열대우림 호수 가에 돌아간 카시마는 사자를 비롯한 뭇짐승들을 보기만 하면 클론바우 18세에 대한 칭찬을 혀끝이 달아빠지게 했어요. “사람은 다 교활하고 나쁜 놈인가 했더니 아니야, 괴물 클론바우 18세는 우리 아들딸보다도 효성이 지극하고 인정미가 풍긴단 말이야.” 늙은 호랑이 왕 카시마가 호랑이 가족들에 소문을 퍼뜨리자 온 아마존 열대우림에서는 모든 짐승들이 콜론바우 18세를 따르고 그의 말이라면 다 들었어요.                 제11장 괴물의 기적 괴물 클론바우 18세는 원래 호랑이와 사자, 코끼리, 타조, 매, 고래 등 16종 동물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유전자도 물려받았어요. 때문에 이런 동물의 말을 아주 짧은 기간에 다 익혀 알아듣고 할 수 있게 됐어요. 게다가 사람의 말도 다 알아듣고 할 수 있어 동물과 사람의 의사소통에 아주 편리했어요. 그는 육중한 괴물이었지만요. 과학기술과 군사지식이 박식한 쌍 박사 학위를 가진 과학자였어요. 그는 원숭이 말을 번역하여 사람이 알아듣게 한 과학자 조왕돌의 번역보청기를 한 걸음 더 발전시켰어요. 그는 아마존 과학연구소에서 여러 가지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 클론바우 가족 과학자들의 우세를 이용해 다기능 번역보청기를 연구개발해 냈어요. 이 번역보청기를 귀에 끼기만 하면 모든 동물들의 말이 자동으로 번역돼 들리었어요. 클론바우 18세는 호랑이 왕 카시마의 귀에 맞는 번역보청기를 제조해 끼워주려고 했어요. 그러자 카시마는 대가리를 흔들면서 “우린 괴물 꼬마대통령의 말만 알아들으면 됐지. 다른 짐승들의 말을 알아들어 뭘 해?” 하고 말하면서 번역보청기를 끼려고 하지 않았어요. 클론바우 18세는 손수 카시마의 귀에 번역보청기를 끼어주면서 타일렀어요. “산중왕은 원숭이나 사자, 지어 사슴 모든 동물의 말을 잘 듣고 고충을 헤아려야 해.” “그까짓 놈들이야 그저 우격다짐이 제일이지. 그 놈들의 말을 다 듣고 타일러서야 뭘 잡아먹고 살아?” “모르는 소리. 자, 끼라고. 다른 세상이 열릴 거야.” 카시마는 싫은 대로 귀를 들이댔어요. 그런데 번역보청기를 끼자마자 뭐예요? 나무 위에서 뛰노는 원숭이들의 짹짹 울음소리도 “저 호랑이 왕을 봐라. 이제 우리말도 알아들으면 우릴 해치지 않을 거야.”라고 호랑이 울부짖는 소리로 들리지 않겠어요. “이상해, 이 놈 번역보청기 괴물이야. 이 놈을 끼니 저 원숭이들이 호랑이 말을 할 줄 아는 놈들로 된 거 같아.” 이번에는 나무 숲속에서 이쪽을 할끔할끔 훔쳐보는 꽃사슴의 소리도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저 호랑이 놈이 우리말을 죄다 알아들으면 우리 어떻게 피해 다니지?” “뼈다귀도 치르지 못하겠다!” “쉿- 저 놈이 이쪽을 본다.” “혹시 몰라, 우리말을 알아들으면 우릴 불쌍히 여겨 잡지 않겠는지?” “픽, 개가 똥을 먹는 습관을 버리겠니?” 호랑이 왕은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 코웃음이 났어요. (그래, 난 알아 못 들은 척 할 테야. 네 놈들이 뭐라고 지껄이는가 어디 들어보자꾸나. 으흠.) 호랑이 왕뿐만이 아니었어요. 클론바우 가족과 모든 짐승들이 귀에 딱 맞게 만든 이 최첨단 번역보청기를 끼기만 하면 모두 사람처럼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어요. 물론 자기 특유한 짐승소리로 말했지만요. 번역보청기는 다 알아듣게 번역해 주었어요. 그리하여 모든 짐승들이 모두 소통하면서 클론바우 18세의 명령을 따르게 됐어요. 그런데 클론바우 18세는 우스운 일도 했어요. 그도 칠정육욕이 있었던 것이죠. “어 참, 나도 이젠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나 보지.” 그는 파초 같은 귀를 펄럭이며 사발 같은 눈알을 슴벅이면서 한참 무슨 궁리를 하고 있었어요. “나도 짝이 있어야 하겠는데. 아마존의 인디안 인들이나 코치아인들이나 어디 나와 궁합이 맞을 사람이 있어야지? 쳇!” 그는 애나서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더니 푸르른 하늘로 날아올랐어요. 그는 아마존 열대우림 위로 훨훨 날아예면서 계속 짝에 대해 궁리했어요. “이 넓은 지구촌에 그래 내 짝이 없단 말인가! 그렇다고 클론바우 계열 인들과 근친결혼을 할 수도 없지 않는가!” 클론바우 18세는 갑갑해 바람을 쏘이려고 아마존을 따라 날아가다가 푸르른 바다를 날아옜어요. 그때 바다에서 커다란 돌고래가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며 재롱을 부리고 있었어요. 순간 하얀 물 바래가 하늘로 튕겨 올랐다가 사처로 부서졌어요. “내 색시를 하려면 적어도 저 고래만큼은 커야 하겠는데. 고래 아니면 뱀 섬나라 뱀처럼 체통이 커야지. 허나 뱀 섬나라 얼룩덜룩한 뱀 인은 닭살이야!” 이때 돌고래가 또 하늘로 날아올랐어요. 새하얀 배와 까만 잔등이 아주 매력적이었어요. “저 돌고래를 내 짝으로 만들면 어떨까?” 클론바우 18세는 괴상한 유혹에 휘말려들었어요. “그래, 내 아버지도 고래 배에서 태어났다고 하지 않아. 나도 고래 할머니 후손인 거야. 금붕어 할머니를 머리는 좀 닮았지만 체통은 별로야.” 순간 하늘을 날아예는 클론바우 18세의 사발 눈에는 후산 해양 동물연구소 앞바다에서 금붕어 할머니와 함께 고래가 짝짓기를 구경하던 장면을 떠올렸어요. 금붕어 할머니 말에 의하면 고래는 한번에 0.3톤이나 되는 정액을 사정한다고 했지요. “그래, 나도 고래 후손인거야. 고래야 말로 괴물의 천생배필이야.” 이때 바다에서 하늘로 뛰어 오르던 암 고래가 바다에 해뜩 번져 눕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니, 저 놈이 짝짓기를 해?” 순간 질투심이라고 할까요. 괴물 클론바우 18세는 커다란 날개 짓을 힘껏 하더니 해뜩 번져 넣은 암 고래한테 덮쳐들었어요. 괴물은 세 개의 팔로 고래 수놈을 떼놓았어요. 그래도 수놈이 떨어지지 않고 덮쳐들자 클론바우 18세는 암 고래를 안고 하늘로 날아 올라가 버리었어요. 필경 그도 고래 후손이어서 암 고래와 궁합이 맞았던지 하늘에서 짝짓기를 했던 것이죠. 일을 마치고서야 클론바우 18세는 그 암 고래를 놓아줬어요. 고래가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푸르른 바다에 새하얀 물기둥이 치솟고 물 바래가 축구장만큼 튕겨 올랐어요.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고래 어머니는 고래 같기도 하고 날 짐승 같기도 한 괴물을 낳았어요. 바로 클론바우 19세었어요. 클론바우 19세는 “아하, 이게 웬 일이지?” 하고 놀라했어요. 그러자 아비 클론바우 18세는 “왜 그래?” 하고 물었어요. “제가 고래들의 말을 다 알아 들을 수 있어요.” “뭐라고?” 그때 때마침 푸르른 바다에서 고래 어머니가 물에 뛰어 올랐다가 풍덩 뛰어내리었어요. 클론바우 19세는 바다 물에 뛰었어요. 아들의 뒤를 따라 클론바우 18세도 물에 뛰어들었어요. 원래 그들 부자는 모두 고래 어머니 배에서 나왔기에 고래처럼 헤엄칠 수 있었어요. 클론바우 19세는 고래 어머니를 따라 헤엄친다, 물 위로 뛰어오른다 하면서 재롱을 피우며 바닷물에서 놀았어요. 클론바우 18세는 아들의 뒤를 따라 물에서 헤엄치기도 하고 하늘로 솟아올라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더니 푸른 바다 위로 날아가기도 하면서 구경했어요. 그때 클론바우 18세는 물 속에서 고래 어머니와 찍찍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어요. “얘야, 아버지를 따라 인간 세상에 나가 살 거지. 바다 물에 돌아와서 뭘 해?” “어머니, 난 육지보다 바다가 좋은데요.” “어, 네가 내 말을 알아들어?” “예. 이 세상에 어머니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들도 있는가요?” 그제야 고래 어머니는 클론바우 18세한테 다가와 지느러미를 흐느적거리며 친절을 나타냈어요. “에이고, 고생문이 열렸구나. 넌 인간 세상에서 어떻게 살겠니?” “건 뭘 두고 하는 말씀인가요?” “엄마처럼 바다에서 살면 바다의 왕으로 살겠는데 말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데요. 그런 인간들 속에서 사는 거 얼마나 좋다고 그래요?” 고래 어머니는 클론바우 19세의 사람 머리를 주둥이로 툭툭 건드리면서 찍찍거렸어요. “만물의 영장이란 사람들이 지금 핵 오염수를 바다에 빼서 우리는 못 살 때를 만났다. 더욱이 한심한 건 뱀 섬나라 어민들은 우리 몸의 몇 천배나 되는 어선을 몰고 와서 우리 고래를 대량 잡아간다. 그 놈들은 우리 고기를 저며 내 수도 소꼬 식당에 팔아먹는단다. 전번에 너의 외할머니와 내 남편도 잡혀갔다.” “뱀 섬나라 놈들이 정말 지독하구만. 어쩜 자기 나라에 흔한 뱀을 잡아 먹지 않고 우리 고래를 잡아 식탁에 올린단 말인가요? 내 꼭 외할머니 원수를 갚아야 하겠어요.” 고래 어머니는 바다위로 머리를 내밀어 콧등으로 물을 뿜어내고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켠 후 바다 물속으로 되돌아와 말했어요. “섬나라 인들은 뱀을 조상신으로 모신다. 그래서 나라 이름도 뱀 섬나라라고 하지. 악마라도 자기 조상신들을 잡아먹어서야 되겠니? 몇 해 전에 뱀 섬나라 나까아멘 왕은 뱀과 뱀 인들을 마구 잡아먹었기에 죄를 만나 끝내 뱀 인들에게 잡혀 죽고 말았지. 아카시아 사람들도 말이 아니야. 뱀 섬나라 놈들이 자기 나라 고래를 잡아가는데도 못 본 척 한단 말이다.” 이때 클론바우 18세도 물에 뛰어들었다가 그들의 말을 알아듣고 끼어들었어요. “아카시아 여대통령 안나는 힘이 없구먼.” “그래요. 안나는 마음치례나 했지. 어디 대통령 구실을 하오?” 주춤 헤엄을 멈춘 고래 어머니는 의아한 눈길로 괴물 클론바우 18세를 곁눈질했어요. “아니, 당신 어떻게 우리말을 알아듣지?” 그러자 클론바우 18세는 날개를 지느러미처럼 가두면서 몸을 흔들어 친절함을 나타내며 번역보청기를 낀 건 슬쩍 빼고 말했어요. “이상할 게 없지. 내 16세 외할머니도 고래야. ” “그래요? 내 듣건대 당신 할머니는 정상인 금붕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친할머니는 금붕어 할머니 맞아. 그러기에 난 사람과 동물들의 유전자를 다 물려 받은 만물의 영장이란 말이야.” “만물의 영장이 그런 짓을 해?” “뭘?” “요즘 난 당신 덕분에 남편한테 혼나요.” “왜?” 고래 어머니는 눈을 흘기면서 “몰라 물어요? 전번에 저를 폭행하지 않았고 뭔가요?” 그 말에 클론바우 19세는 아버지 클론바우 18세를 쳐다보았어요. “내 언제 폭행했어?” “내 남편은 당신이 나를 강간해 고래가 아닌 저 괴물을 낳았다고 야단치는데?!” “남을 무함하지 말라고. 당신이 좋아하지 않았으면 내가 어찌 저 애를 만들 수 있어?” 클론바우 18세는 찍찍거리며 불만을 토로하는 고래 어머니를 두고 물속에서 더 놀고 싶지 않았어요. “옳다. 네 놈이 잘 왔다. 뭐 약육강식이라 떠들었지? 그럼 오늘 네 죽고 내 죽고 싸워보자.” 이때 고래 남편이 대문 짝 같은 주둥이를 쫙 벌리고 덮쳐 왔어요. “에크!” 클론바우 18세는 물속에서 도망치듯 물 위로 솟구치더니 푸르르 푸른 하늘로 날아올랐어요. 괴물은 순식간에 아마존 열대우림에 날아와 내리었어요. “허허허. 진짜 사람과 동물이 대화할 수 있는 새 세상이 열렸구나.” 열대우림에서 숱한 짐승들이 뛰놀며 이런 말을 주고받는 동물들을 보며 괴물은 자기 과학연구 성과에 긍지감을 느끼면서 흐뭇해 수림이 떠나가게 통쾌하게 웃었어요.                                   제12장 아마존 열대우림에서의 생사박투 어느 하루, 조용하던 아마존 유역 열대우림에 아카시아 채벌대가 불도저와 무한궤도 트랙터까지 앞세워 길을 빼면서 요란하게 들어왔어요. “아니, 저 놈들이 또 우리 서식지 원목을 난벌해갈 예산이구나.” 먼저 나선 것은 사자 왕이었어요. 사자 왕후는 새끼를 끌어안으며 “나서지 말아요. 괜히 만물의 영장을 건드렸다가 사냥총에 맞아 죽겠어요.” 하고 말렸어요. 사자 왕은 산정의 너럭바위 위에 올라서서 수림 속으로 기어드는 사람들을 보고 으르렁거리었어요. “저 놈들이 우리 열대우림을 난벌해 가면 사슴이랑 멧돼지랑 서식지가 없어져 죽을 거 아니야? 그럼 우리 잡아먹을 초식동물들이 점점 줄어든단 말이야. 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라도 그렇지. 지구촌이 어디 저 놈들 혼자 살 곳인가?” 사자 왕이 답답해 갈기털을 꼿꼿이 세우고 꼬리를 휘휘 저으며 사발 눈으로 난벌하는 인간들을 내리 쏘아보았어요. 채벌 공들은 통나무를 베는 길을 내려고 아마존 열대우림의 유일한 통로 어귀 칡넝쿨을 도끼로 탁탁 찍었어요. 칡넝쿨이 아무리 넝쿨을 거두며 피하려고 해도 막무가내이었어요. 칡넝쿨은 피 즙을 흘리며 잘리어 나갔어요. 아, 글쎄 하늘을 찌르며 수백 년 씩 자란 원목도 전기톱질에 쿵쿵 쓰러지었어요. 날이 감에 따라 산기슭으로부터 올라오면서 벌거숭이 땅이 잔등을 드러냈어요. 허나 사자 왕은 고약한 채벌 공들을 쏘아보면서도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릴 뿐 속수무책이어서 뻘건 혀로 입술을 다실뿐이었어요. 숱한 원숭이는 황급히 나뭇가지를 안고 내려다 보다 쓰러지는 나무에서 다른 나뭇가지로 날아갔어요. 새들도 못 살 때가 왔다고 짹짹거리며 포르르 날아났어요. 이때 푸르른 창공에 날개가 6미터나 되는 커다란 괴물이 날아 와 휘휘 돌아치면서 고함쳤어요. 괴물 클론바우 18세었어요. “닥쳐라!” 클론바우 18세는 하늘에서 난벌하는 인간들을 향해 내리 꼽히었어요. 비행기가 하강하는 듯 쉭- 소리와 함께 어느 결에 괴물의 코끼리 코가 휙 하더니 전기톱질을 하던 채벌 공을 감아 훌 내뿌리었어요. 씽- 풍덩! 전기톱을 쥔 채 채벌 공이 하늘에서 포물선을 그리더니 호수 물에 날아가 처박혔어요. 호수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채벌 공을 보고 사자 왕은 쾌자를 불렀어요. “허허허. 통쾌하군!” 호랑이 왕 카시마는 클론바우 18세에 합세해 호랑이들을 거느리고 채벌 공들을 습격했어요. 불시에 들이닥친 호랑이 무리를 본 채벌 공들은 겁을 집어 먹고 전기톱을 버리고 트랙터에 올라 몰고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어디로 도망가?!” 이때 사자 왕도 사자들을 거느리고 산정 숲 속에서 뛰어내려 와 앞길을 막았어요. 채벌 공들이 절벽 가에까지 뒤로 비실비실 물러섰을 때었어요. 칡넝쿨에 디룽디룽 걸쳐 있던 얼룩 뱀들이 채벌 공들의 목을 휘감아 칡넝쿨에 매달았어요. 그러자 똥 벌들이 앵- 날아와 채벌 공들의 팔과 낯에 독침을 찔러 넣고 독즙을 쏘아댔어요. 여기저기서 채벌 공들의 개목을 다는 듯 비명소리가 들리었어요. 습지에 숨어 동정을 살피던 개구리들이 “개굴, 개굴” 노래하며 응원했어요. 저게 뭐예요? 칡넝쿨이 그물처럼 펼쳐지더니 채벌 공들을 덮어 씌웠어요. 우산나무 기둥들은 통발처럼 모양을 바꾸더니 채벌 공들을 옥죄여 가두었어요. 독수리들이 하늘에서 날아내려 채벌 공들의 콧대와 눈알을 마구 쪼아댔어요. 호랑이와 사자들은 채벌 공들을 물어뜯어 팔과 다리, 엉덩이를 마구 내던지었어요. 살아남은 몇몇 채벌 공들은 질겁해 트랙터를 몰고 꼬리 빳빳해 줄행랑을 놓았어요. 그때 10여 미터나 되는 육중한 괴물 클론바우 18세가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트랙터 천정을 매 발톱으로 쫙 긁어놓았어요. 쟁강! 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트랙터 천정이 째지었어요. “다시 열대우림을 채벌하겠는가?!” 채벌 공들은 사람의 말까지 하는 괴물을 보는 순간 꿈인지 생신지 몰라 낯가죽을 꼬집어보았어요. 분명 생시였어요. “아니, 당신은 누구요?” “난 클론바우 18세야. 너희들은 누구 명을 받고 여기 와서 숱한 짐승들의 보금자리를 해치는 거야?” 그때 그래도 담이 있는 채벌 공이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겨우 대답했어요. “우린 안나 여대통령의 명을 받고 대통령궁을 지을 목재를 베러 왔습니다. 괴물이여, 제발 살려 주십시오.” “안나 대통령이 이런 짓을 해라 했을 리 없어. 네 놈들이 언감 거짓말을 할 텐가?!” 클론바우 18세가 사발 눈 흰자위를 굴리더니 코끼리 코로 트랙터를 휘감아 홱 내던졌어요. 풍덩! 그 큰 채벌 트랙터가 허망 호수 물에 날아가 떨어졌어요. 그 괴력에 채벌 공들은 눈자위가 뒤로 번져 지었어요. 그들은 질겁해 두 손을 쳐들어 머리를 감싸 안으며 사시나무 떨듯 했어요. “제발 살려 주십시오. 다신 채벌하러 오지 않겠습니다.” 클론바우 18세는 코끼리 코로 채벌 공들을 하나하나 슬슬 건드리며 위협했어요. “이 놈들, 돌아가서 안나 여대통령께 전해라! 다시 아마존 유역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날엔 내 대통령궁에 쳐들어가 그 년의 목을 비틀어 줄 거야!” 채벌 공들은 목이 접질린 자로, 팔 가죽이 벗겨진 자로, 다리뼈가 부러진 자로 볼 품 없이 됐어요. “다시 와봐라! 이 트랙터처럼 망가질 줄 알아!” 괴물 클론바우 18세는 을러메는 소리와 함께 코끼리 코로 나머지 그 육중한 트랙터 무한궤도를 휘감더니 허공 들어 바위 돌에 꽝 메치었어요. 꽝! 요란한 소리와 함께 트랙터는 옥창이 돼버렸어요. 채벌 공들은 클론바우 18세의 괴력에 깜짝 놀라 눈알이 흰자위 밖에 없이 돌아 가버렸어요. 클론바우 18세는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쇳덩이 같은 주먹으로 트랙터 운전실을 마구 두드리고 발로 짓밟아 납작하게 옥창을 만들어버렸어요. “안나 대통령이 감히 옛날 아카시아 죤슨 악마나 뱀 섬나라 오랑캐 나까아멘의 옛길을 걸어? 네년이 언감 아마존 열대우림의 생태환경을 파괴하려고 든다면 내 이 무쇠주먹이 용서하지 않을 거야!” “예~ 예~ 알았습니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이젠 우릴 놔 주십시오.” 채벌 공들은 처음 보는 괴물의 괴력에 혼이 날아났어요. 그들은 살 구멍을 찾아 헤맸어요. 그때 나무 가지 위에서 원숭이들은 빨간 엉덩이를 돌려대고 채벌 공들의 낯짝에 똥오줌을 싸 갈기었어요. “히히히.” “해해해.” “깔깔깔.” 원숭이들은 여기저기서 도망치는 채벌 공들에게 잣송이랑 쥐어뿌리면서 조롱했어요. 어떤 원숭이들은 나무 위에서 과일을 뜯어 채벌 공들에게 마구 뿌렸어요. 호랑이 왕 카시마는 클론바우 18세를 보면서 으르렁거렸어요. “아예 저 놈들을 열대우림의 귀신으로 만들어버립시다. 인간들이 다신 얼씬하지 못하게.” “안 돼, 놔 보내게. 괜히 살기 좋던 아마존 유역이 인류와 동물의 피비린 전쟁터로 되겠네.” 클론바우 18세의 말에 호랑이와 사자들은 송곳니를 빼물고 채벌 공들을 쏘아보면서 억지로 참았어요. 채벌 공들은 으르렁거리는 호랑이들과 사자들의 눈치를 슬슬 살피며 열대우림을 빠져나갔어요. 아름드리나무 위에서 원숭이들은 밤알을 따서 채벌공의 대가리에 뿌렸어요. 딱! 따 닥! 여기저기 나무위에서 날아오는 밤알에 맞아 살아남은 채벌 공들은 밤알만큼 부어 오른 대가리를 붙안고 허둥지둥 도망쳤어요. 이때 난데없는 소낙비가 수림에 와르르 쏟아져 내렸어요. 채벌 공들이 흘금흘금 곁눈질하며 수림을 두리번거리었어요. 저쪽 호수에서 거대한 고래 어미가 이쪽 수림에 물을 뿜어 대고 있었어요. 숱한 동물들은 자기들의 보금자리 원목을 난벌해가려는 인간들을 조롱하고 있었던 것이죠. 10여 미터나 되는 거대한 얼룩 뱀이 스르르 기어오더니 채벌 공들을 훌 휘감아 조이었어요. 채벌 공들의 비명소리가 수림을 서글프게 울렸어요. 그 처절한 비명소리를 듣고 클론바우 18세가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면서 쏜살같이 날아와 황급히 말리었어요. “그만 둬!” 거대한 얼룩 뱀은 당장 물려고 들던 아가리를 쩍 벌리고 클론바우 18세를 쳐다보면서 대가리를 흔들어댔어요. “대통령님, 이 독종 놈들을 살려 보내선 절대 안 됩니다.” “이미 싸우지 않으려고 두 손을 든 사람들을 해쳐선 안 돼. 우리가 사람들을 착한 마음으로 대하면 사람들도 우릴 해치지 않을 거야.” “걸 믿어요? 우리가 저희들을 해치지 않았는데도 우릴 죽이려고 덤벼드는 걸 보시오. 이제 핵무기나 미사일을 가지고 와서 우릴 죽이자고 하지 않는가? 기어드는 족족 다 잡아 죽여 치워야 합니다.” “그 숱한 사람들을 다 죽일 수 있어? 우리 지구촌에서는 사람과 동물이 모두 조화롭게 공존해야 하네.” 그 말에 얼룩 뱀은 아주 아쉬운 듯 아가리를 쩝쩝 다시며 채벌 공들을 놔주었어요. “헤이, 이제 대통령님은 후회할 겁니다. 어쩜 이런 결단을 내립니까?” “누가 대통령이래?” “우린 클론바우 18세 님을 아마존 열대우림 동물들의 대통령으로 모신지 오랜데요.” “쳇, 이 놈들이 못하는 짓이 없구먼. 내가 어디 대통령 자리를 탐내 아카시아에 온 거 같아?” 겨우 목숨을 건진 채벌 공들은 아마존 열대우림을 벗어나자마자 다리야 날 살리라고 꼬리 빳빳해 도망쳤어요.                           제13장 괴물 꼬마대통령과 여대통령의 겨룸 겨우 살아남은 채벌 공들은 백악관에 돌아가 조난당한 경과를 죽 이야기 했어요. 안나 여대통령은 펄쩍 뛰었어요. “뭐라고? 그래 아카시아 땅에 감히 나를 훈계하는 놈도 있어?” 팔을 붕대로 어깨에 처맨 채벌 공은 안나 대통령의 표독스레 쏘아보는 하얀 얼굴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말했어요. “그 놈은 신장이 10여 미터나 되는 괴물입디다. 하늘을 훨훨 나는가 하면 트랙터마저 코끼리 코로 휘감아 호수 물에 허망 처넣었습니다. 진짜 괴력을 가진 괴물입니다. 모든 동물들은 신기하게도 그 놈의 명을 따르면서 뭐 ‘꼬마대통령, 대통령님!’ 하거나 ‘만물의 영장’이라고 떠받듭디다.” “뭐? 혹시 클론바우 18세란 놈이 아닌가?” 안나 여대통령이 백악관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어요. 그때 채벌 공이 꿈에서 깨난 소리를 저질렀어요. “맞습니다. 뭐 이제 안나 여대통령이 백성들과 동물들의 생존을 고려도 하지 않고 아마존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날엔 이 클론바우 18세가 용서하지 않겠다고 합디다.” 안나 여대통령은 창문 밖으로부터 눈길을 이쪽으로 홱 돌렸어요. “그래 그 놈이 확실히 사람의 말까지 하더냐?” “예. 호랑이와 사자, 지어 원숭이와 멧돼지들과도 뭐라고 저희들끼리 말을 주고받는 거 같습디다.” “그래? 괴물 클론바우 18세가 코치아에서 사라져 이상하다 했더니 우리 아카시아에 기어들었구나. 이거 큰 일 났는데.” 안나 여대통령은 위기감이 부쩍 들었어요. 그녀는 탱크부대를 이끌고 아마존 열대우림으로 달려갔어요. 그는 탱크 위 뚜껑을 살며시 열더니 머리를 내밀고 햇빛도 들지 않는 열대우림을 가만히 둘러보았어요. 이때 하늘 어디에선가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려 왔어요. “지구는 우리 인류의 혼자 것이 아닙니다. 아마존 열대우림이나 지구촌의 모두가 모든 생명을 가진 동물의 보금자리입니다. 안나 여대통령께서 소중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안나는 하늘을 쳐다보다가 무서운 감이 들었어요. 혹시 하느님이 욕심 천덕꾸러기인 자기에게 천벌을 내리려고 구름 속에 내려온 것이나 아닌가싶어서였어요. 동방의 옥황상제가 왔을 리는 없는데요. 허나 그것은 분명 클론바우 18세의 목소리였어요. “나는 하느님도 신선도 아닙니다. 나는 하늘 신과 땅 신, 모든 동물신의 혼을 타고 난 클론바우 18세입니다. 하느님도 신선도 우리 지구촌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여러 분들은 저를 믿고 따르십시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 지구촌에서 생태환경을 파괴하는 모든 악마들의 씨를 깡그리 말리고 아마존 열대우림, 아니, 우리 만물의 보금자리인 지구촌을 보호 할 것입니다. 그리스와 로마 신화의 제우스나 헤라, 아테나 같은 신들은 모두 당시 군주나 관리를 신격화한 존재입니다. 누가 지구를 보위하면 그가 바로 현시대 지구보위신입니다. 아니, 신보다 더 위대한 인물로 될 겁니다.” 안나는 코웃음을 쳤어요.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10대 애가 큰 소리는 팡팡 잘 팽개친다. 네가 오늘 하늘땅, 인류의 신으로 자처해? 고대 헤라나 아테나 여신을 아느냐? 새 생명을 잉태해 낳은 여성이 얼마나 위대한 힘이 있는지 알아? 세상에 여자가 없인 영웅호걸도 대통령도 없어!” 클론바우 18세는 구름 속에서 코끼리 코를 슬슬 매만지더니 우레와 같은 소리를 쳤어요. “고대 그리스 여신들을 들어다 날 내리 눌러 보려고? 어림도 없어! 그 숱한 여신들은 모두 대 신왕 제우스를 당하지 못했지. 여신들은 모두 영웅호걸 제우스에게 깔린 아내 아니면 첩이었단 걸 잊지 마시오.” 안나는 탱크 뚜껑 위에 홀라당 올라서더니 표독스런 눈길로 클론바우 18세를 쏘아보며 앙칼진 소리를 질렀어요. “그만해! 사자머리로도 로마와 고대 신을 알아? 흥! 약육강식의 지구촌에서 그래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지 않고 살 수 있느냐? 호랑이는 사슴을 잡아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느냐? 사람이 나무를 베어 집을 지은들 어떻단 말이냐? 사람이 그래 멧돼지나 고래를 잡아먹지 않고 어떻게 사느냐? 넌 동양에서 태어나서 살생을 하지 않는 고대 동양철학을 좀 배운 모양인데 어디 네 고견을 들어보자.” 그 요망한 물음에 클론바우 18세가 부서지는 구름인지 안개인지 그 속에서 괴물의 모습을 서서히 드러냈어요. “이제 내가 대통령이 되면 삼림과 동물 보호법을 제정해 내리고 삼림경찰과 동물경찰을 내세워 동물을 지킬 거예요.” “동물경찰을 내세우면 그 숱한 뱀과 범 같은 육식동물을 말린대? 흥!” 클론바우 18세는 아마존 열대우림에 날아 내리면서 파초 같은 나래를 퍼덕이더니 아름드리나무 위에 앉았어요. 그 실한 나무도 그 육중한 몸뚱이를 이기기 힘들어 휘청거렸어요. 그 바람에 빗물이 안나 대통령이 앉은 탱크에 소낙비처럼 쏟아졌어요. “뱀과 호랑이 육식습관을 고쳐 초식동물로 바꿔놓을 거예요.” “호호호! 개가 똥을 먹는 버릇을 네가 고쳐? 호호호! 진짜 웃겨!” 안나는 표독스러운 눈길로 클론바우 18세를 쏘아보았어요. “한심한 코흘리개구나. 풀은 생명이 없다더냐? 곡식은 어떻게 먹어? 네 말대로라면 곡식도 식물의 아들딸들인데. 생존을 위해서는 모든 동물의 자연경쟁은 용서해야 해. 이게 지구촌에서 몇 십만 년, 몇 억년 생태균형을 유지해온 법칙이야. 인간들이 그래 동물을 잡아먹지 않고 어떻게 살아? 피를 빼고 먹으면 되는 거야.” “피를 빼고 먹으면 건 고기가 아닌가요? 허나 곡식은 다른 거예요. 먹어도 되는 거예요. 인류나 동물이 그래 곡식도 먹지 않고 서북풍을 마시거나 퍼런 바닷물을 퍼먹고 살겠습니까?” 안나는 말문이 꽉 막혀 한참 끙끙 속을 앓다가 새된 소릴 질렀어요. “내 너와 말장난을 할 새 없다. 시간을 줄 터이니 잔말 말고 아마존 열대우림을 내놓아라!” “흥!” 클론바우의 콧방귀에 안나는 하마터면 호수에까지 날아날 번 했어요. 기겁한 안나는 탱크 안에 스며들어 뚜껑을 꼭 닫아버린 후 꼬리 빳빳해 백악관으로 달아나 버렸어요. 아마존 열대우림에는 수천 종의 나무와 식물이 있었어요. 게다가 8천여 종이나 되는 곤충들과 3천여 종이나 되는 새들, 수백 종에 달하는 희귀동물들이 살고 있었어요. 지구촌에서 제일 큰 아마존에는 2천여 종이나 되는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어요. 날카로운 이발로 먹이를 공격하는 물고기도 있고 전기를 일으켜 먹이를 잡거나 적수를 쓰러뜨리고 자기를 보호하는 전기뱀장어도 있었어요. 안나 여대통령은 아마존의 풍부한 자연자원이 욕심났고 개발할 생각이 아주 많았어요. 좋기는 백악관을 수림의 자연경치도 좋고 공기도 좋은 호수가의 열대우림에 지었으면 아주 좋을 거 같았어요. 안나는 열대우림에 괴물 클론바우 18세가 있는 한 그 꿈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아냈어요. “그 놈의 괴물은 날기도 하고 코끼리코로 아름드리나무도 송두리째 뽑아버릴 수 있는 괴력을 가지고 있단 말이야. 그뿐인가? 사자 대가리에 뇌가 둘이나 있는 놈이야. 학벌이나 낮은가? 과학 박사에 군사학 박사란 말이야. 세상에 어쩜 저런 괴물을 낳았을까? 오호~” 안나는 한숨만 호 내쉴 뿐이었어요. 안나라야 금발미인이라는 덕분에 원래 아카시아 죤슨 대통령 수하에서 여비서로부터 부장을 해먹은 여인에 불과했죠. 그 후 죤슨 악마가 클론바우 17세와 코치아의 금별 대통령과 금붕어 여총리 오누이에 의해 복멸된 후 일약 아카시아의 여대통령으로 부상했던 거죠. 그것도 조왕돌 부장과 금붕어 여성총리의 용서를 받아 겨우 살아남아 기어올랐던 거예요. 그때 안나 여대통령은 조왕돌 부장과 금붕어 총리, 노르망디 톰 총사령관을 비롯한 지구촌의 정상들이 참석한 성대한 취임연설에서 지구촌의 생태환경을 보호할 맹세까지 했던 거죠. 허나 암암리에 백악관 대통령궁을 화려하게 장식하려고 아마존 유역 열대우림의 원목을 난벌해 갔던 것이죠. 사자 왕과 호랑이 왕 등은 자기 삶의 터전이 줄어드는 것을 눈을 빤히 뜨고 보면서도 용빼는 수가 없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아마존 유역에서 물러서야만 했어요. 이번에는 괴물 클론바우 18세에게 딱 걸렸어요. “이 일을 어쩐다? 별난 괴물 놈이 금붕어와 조왕돌에게 코치아에서 밀려나니 우리 아카시아에 기어들어? 흥! 어디 우리 아카시아에서 배겨내는가 보자!” 안나 여대통령은 깊은 수렁 같은 고민에 빠졌어요. “어떻게 하면 괴물을 몰아내고 대통령 보좌를 지킬 수 있을까?” 그는 금빛이 반짝이는 으리으리한 대통령궁을 둘러보는 순간 대통령궁을 내놓기 아까운 생각이 굴뚝처럼 생겼어요. 사람의 욕심이란 무서운 요물이죠. 악마죠. 그녀는 대뜸 클론바우 18세를 죽여 치울 궁리가 머리를 탁 쳤어요. “옳지, 그 괴물을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작살내 버려야지.” 그녀는 궁전을 또박또박 거닐면서 악독한 암살 계획을 차곡차곡 세워 갔어요. 그녀는 이를 악물고 주춤 멈춰 섰다가 다시 거닐면서 살인계획을 반복적으로 검토하고 점차 완성품을 만들어나갔어요. “됐어! 그 놈이 아무리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아예고 고래처럼 바다에서 헤엄치고 땅에서 타조보다 더 빨리 달리는 괴물이라도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걸.” “비서!” 죤스카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어요. 그는 안나의 정치, 군사, 경제 비서이자 사적으로는 생활 비서였어요. 동양의 어느 나라 기쁨조보다는 좀 인격이 보장된 애인 격이죠. 그는 안나 여대통령의 총애를 받아 대통령보다도 슬그머니 권력의 짭짤한 맛을 더 향수하고 있는 자였어요. 안나 여대통령은 죤스카의 귀에 대고 뭐라고 쑤군거렸어요. “예~ OK! 허나 그 괴물을 잘 못 건드렸다간 봉변을 당하겠는데. 왜 그렇게 모진 마음을 먹었습니까?” 안나는 화를 버럭 냈어요. “왜 말이 그리 많아? 그렇게 하라면 할 거지!” “OK! OK!” “잠간!” 안나 여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나가려는 죤스카를 불러 세웠어요. “또 무슨 분부가 있습니까? 대통령 각하!” 죤스카는 돌아서며 어깨까지 으쓱해 보이었어요. “오라고.” 안나는 다가온 죤스카를 와락 끌어안더니 볼을 죤스카의 털이 부숭부숭한 가슴에 파묻고 살살 비비며 종알거렸어요. “난 겁나요. 괴물 클론바우 18세가 겁나요. 그 놈을 꼭 없애 버리세요. 힘이 모자라면 뱀 섬나라에 파견한 맥도 총사령관의 부대를 불러 들여서라도 아마존 열대우림 속에 기어든 클론바우 18세 족속들을 재 가루를 만들어버리세요.” 안나의 파란 눈에는 살기가 번쩍이었어요. 그 악독하고 살기 찬 안나 여대통령의 말에 애인 죤스카도 섬직해날 지경이었어요. 눈치를 챈 안나는 화제를 스리슬쩍 돌렸어요. “내 뱃속에는 당신의 애가 뛰놀고 있어요.” 죤스카는 안나 여대통령을 꼭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위안했어요. “왜 이리 취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제 삼림 특수경찰들을 파견해 그 놈을 없애 버리겠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복중아기만 잘 지키십시오.” “OK!” 그제야 안나는 해시시 웃으며 털보숭이 가슴에서 얼굴을 떼고 헝클어진 금발머리를 쓰다듬어 올리며 대통령의 보좌로 돌아갔어요. 그녀는 식지를 딱 튕기면서 자신만만해 대통령궁에서 나가는 죤스카를 바래고 나서도 어쩐지 불안한 감을 감추지 못했어요. 며칠 후 아마존 유역 열대우림에는 또다시 불청객들이 나타났어요. 대통령 비서 죤스카가 직접 특수요원들을 데리고 헬기에 앉아 아마존 열대우림 상공을 선회하며 클론바우 18세가 언제 나타나는가를 정찰했어요. 사슴과 줄 말, 멧돼지 무리랑은 겁을 먹고 아름드리나무 숲속으로 도망쳐 버렸어요. 호랑이 왕 카시마는 그래도 전날 괴물 클론바우 18세가 “아마존의 호수와 수림, 모든 동물과 산천초목을 몽땅 동원해 안나 일당과 싸우면 이길 수 있어.”라고 하던 말을 떠올라 왕답게 금강석 이발을 빼물고 나무초리 사이 하늘 조각으로 날아다니는 헬기를 쏘아보면서 으르렁거렸어요. 사자 왕 비컨도 사자머리 털을 흩날리며 헬기를 노려보면서 송곳이빨을 드러냈어요. 헬기는 열대우림을 몇 고패 돌더니 호수 가 상공에 멈춰 섰어요. 헬기 안에서 죤스카 비서는 특공대원들을 돌아보며 명령했어요. “호수에 연꽃잎 밑에 숨은 사슴이라도 잡아라! 그래야 만물의 영장이노라 너덜거리던 클론바우 족속들이 나타날 거 아닌가!” “예!” 특공대원들은 헬기를 타고 날아다니면서 총을 쏘았어요. 땅! 호수에서 풀을 뜯어먹던 사슴의 머리가 박살났어요. 벌겋게 번지어가는 호수 물위에는 피로 물든 사슴의 뿔이 둥둥 떴어요. 땅! 열대우림에 숨어 할딱거리는 호랑이 왕의 새끼 카오바의 엉덩이에 총알이 날아와 박혔어요. 순간 카오바가 폭 꺼꾸러져 버둥거리었어요. 한 헬기에서 몇 명의 특공요원들이 내려오더니 시퍼런 비수를 뽑아들고 카오바의 가죽을 벗겨 싣고 북을 바라고 도망쳤어요. “따-웅-! 저 놈들이 오빠 가죽을 벗겨 가지고 도망칩니다!” 카마바가 고함치는 쪽을 바라 보니 그 헬기는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어요. “따웅~ 내 네놈들과 생사결판을 내겠다!” 허나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헬기들을 쳐다볼 뿐 호랑이 왕 카시마나 사자 왕 비컨은 용빼는 수가 없었어요. “닥쳐!” 이때 열대우림 상공에 우레와 같은 고함소리가 울렸어요. 열대우림 속의 호랑이 왕과 숱한 동물들이 몽땅 하늘을 쳐다보았어요. 순간 하늘에 십여 미터나 되는 나래를 퍼덕이며 클론바우 18세가 나타났어요. “이젠 살았다!” “괴물 대통령이 오셨다!” 동물들은 환성을 질렀어요. 저걸 보세요. 클론바우 18세는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초음속 스피드로 헬기에게 덮쳐들었어요. “왔어! 괴물이 또 왔어.” 죤스카 비서는 황급히 클론바우 18세를 손가락질 하면서 명령했어요. “빨리 총을 쏴!” 땅! 땅! 땅! 헬기에서 총알이 날아갔어요. 허나 클론바우 18세의 갑옷 같은 터덜터덜한 비늘을 뚫지 못하고 불꽃을 튕기었어요. “아니, 저 괴물이 방탄 옷이라도 입었나?” 특공요원들도 총을 쏘며 처음 보는 괴물에 당황해 났어요. “이 놈들아! 죽고 싶어?!” 클론바우 18세는 꽥 고함치며 덮쳐들어 세 팔로 헬기 꽁지를 잡아 마구 내동댕이쳤어요. 헬기는 그만 중심을 잃고 이리 저리 휘둘리기 시작했어요. 클론바우 18세가 기다란 코로 헬기 몸뚱이를 휘감아 아래로 처박았어요. 꽈당 요란한 굉음과 함께 헬기가 그만 잠자리처럼 호수 물에 거꾸로 처박혔어요. “야, 하! 시원하다!” “진짜 통쾌해!” 호랑이 왕 카시마와 카마바는 은바늘 같이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환성을 질렀어요. 사자 왕 비컨은 너럭바위 위에 올라가 구경하다가 몽둥이 같은 꼬리로 너럭바위를 탁탁 치며 환호했어요. 수림 속의 멧돼지와 얼룩말도 껑충껑충 뛰며 좋다고 야단쳤어요. 특히 남편을 잃은 꽃사슴은 클론바우 18세가 원수를 갚았다고 감사해 호수 연꽃잎을 들고 보면서 눈물까지 흘렸어요. 저게 뭐예요? 클론바우 18세는 금방 호수에 거꾸로 처박아 넣은 헬기를 두 손으로 쳐들고 뭍으로 씽 날아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제야 물이 주르르 흘러나오는 헬기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죤스카 비서가 기어 나와 땅바닥에 철써덕 떨어졌어요. 클론바우 18세는 죤스카 비서를 두 손가락으로 집어 쳐들고 우레 같은 목소리로 경고했어요. “이놈, 돌아가서 안나에게 전해라. 다시 우리 아마존 열대우림에 얼씬거리기만 해 봐라. 절대 용서하지 않을 테다! 여기 사는 모든 동물들은 나의 백성과 같아. 다시 열대우림을 난벌해 대통령궁을 짓기만 해 봐라! 대통령궁을 훌쩍 들어다 태평양에 처넣을 테야! 알만해?!” “예, 예. 알았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우리 돌아가서 안나 여대통령을 말리겠습니다.” 이때 열대우림에서 뛰쳐나온 호랑이 왕 카시마 족속들과 사자 왕 비컨 족속들을 비롯한 짐승들이 뛰쳐나와 불이 이글거리는 사발 눈을 부릅뜨고 죤스카 비서를 쏘아보며 으르렁거리었어요. “그 놈을 우리에게 맡기십시오. 뼈다귀도 남기지 않고 다 씹어 없애 버리겠습니다.” 카시마 호랑이 노왕이 뾰족한 금강석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으르렁거리며 하는 말에 클론바우 18세는 손사래를 쳤어요. “안 되네. 인간들과 아마존 열대우림의 짐승들은 모두 서로 화목하게 살아야 하네.” 사자 왕 비컨은 누런 깃털을 곤두세우면서 열대우림이 떠나갈듯이 고함쳤어요. “그 놈들을 살려 보내선 안 됩니다. 전번에 채벌 공들을 살려 보냈는데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이번에는 헬기에 기관총까지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까? 이제 저 놈들은 화염방사기로, 탱크와 대포, 미사일, 지어 원자탄을 가지고 와서 우리를 죽이려고 들 것입니다. 지구촌에 요망한 인류가 살아 있는 한 우리 동물들이 편안히 살날이 없습니다.” 허나 클론바우 18세의 대답은 달랐어요. “아니야, 우리가 인간들을 해치지 않으면 인간들도 우리를 해치지 않을 거야.” 사자들과 호랑이들은 허연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면서도 용케 클론바우 18세의 말을 듣고 죤스카와 몇몇 특공요원들이 열대우림을 빠져 나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참았어요. 죤스카는 대통령궁에 돌아가 안나 여대통령에게 보고했어요. “아, 그 놈 클론바우 18세는 당하기 힘듭디다. 그 놈을 사자들이랑 호랑이들의 대통령이라고 부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겨우 살아남아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놈 괴물의 말을 야수들이 다 알아듣고 명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걸 어떻게 알아들어?” “그 놈들이 내 귀에 보청기 같은 걸 끼어 줍디다. 괴상하게도 으르렁거리는 사자와 호랑이들의 말이 우리 사람의 말로 통역돼 들리지 않겠습니까?” 그 소리에 안나 여대통령도 아연실색했어요. “그 놈들이 정말 슈퍼맨들이구나. 우리 인간들이 못하는 일을 아마존 열대우림에 들어앉아 해낸단 말인가!” 안나는 클론바우 가족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어요. 그녀는 파란 눈알을 데굴거리며 번개같이 속궁리를 했어요. (안 돼! 클론바우 족속을 살려 둬 선 안 돼. 그 놈들이 아마존 유역 열대우림의 모든 동물들을 손안에 넣고 이제 클론바우 계열 인들을 몽땅 우주에서 내리어 복제해내는 날엔 난 대통령은커녕 살아남기도 어려워. 그 괴물들을 어떻게 처치한다?) 안나 여대통령은 백악관의 드넓은 대통령집무실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악독한 계책을 꾸미고 있었어요. 그래요. 클론바우 18세는 클론바우 가족의 원시조인 호랑이와 사자, 코끼리, 타조, 매, 고래 등 짐승들과 해양 동물들의 삶의 터전을 지켜주어 동물들의 지지를 얻었지요. 클론바우 18세는 뒤이어 또 우주비행선으로 우주에 유령처럼 떠다니는 클론바우 가족의 조상들을 하나하나 모셔 내리어 실험실에서 재생시켜 다시 호랑이와 사자, 코끼리, 타조, 매, 고래 등 짐승들의 유전자와 결합해 숱한 괴물 인들을 복제해냈어요. 사자 인, 호랑이 인, 코끼리 인, 타조 인, 고래 인이 아마존 유역을 채우고 넘을 지경이었어요. 클론바우 18세는 본격적으로 아카시아를 아마존 열대우림처럼 생태환경이 좋은 동물들의 낙원으로 차릴 꿈을 익혀가고 있었어요. 그는 암암리에 클론바우 꼬마대통령이 일찍 천여 년 전에 지구를 통일한 업적을 기리어 세운 지구통일기념비에 화환을 드리면서 아카시아에서 클론바우 가족의 정통성을 세우려고 꿈꾸었어요. 게다가 아마존 열대우림의 인디안 인의 입을 통해 아카시아 인간들 속에서 클론바우 18세의 위신은 하늘 높이 솟아올랐어요. “안 되겠어. 클론바우는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어.” 안나 여대통령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안절부절 못했어요. “죤스카!” “예~” 비서 죤스카는 잔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대통령 집무실에 뛰어 들어왔어요. “특수부대를 데리고 가서 아예 아마존 열대우림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리시오!” “예~” “어째 겁나?” “아니, 아닙니다. 열대우림을 불태워버려도 초음속 비행기보다도 더 빨리 나는 괴물을 없애지 못할 건 불 보듯 빤한 일입니다.” “그렇게 신심이 없어서야 어찌 괴물을 없애?! 그까짓 괴물이 뭐가 그리 대단해?” 죤스카는 으르렁거리던 호랑이 왕과 사자 왕이 떠올라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어요. “여대통령님, 복중 아기의 아비를 기어이 아마존 열대우림에 보내 죽이렵니까? 맥도 총사령관을 불러다 핵무기로 아마존 열대우림을 없애 버리십시오.” “그래, 그러지요.” 안나는 배 속에서 꿈틀거리는 아기의 아비를 보낼 것까지 없었어요. “맥도 총사령관을 불러들이시오.” “옛!” 죤스카는 나가려다 주춤 멈춰 섰어요. “열대우림을 잿더미를 만들고 무슨 재목으로 대통령궁을 짓겠습니까?” “무슨 잔말인가? 아마존 열대우림이 없으면 백산 열대우림이 있지 않는가?!” 죤스카 비서는 안나 여대통령의 앙칼진 목소리에 대가리가 목 위에 남아 있나 만져보더니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통령집무실에서 나갔어요. 이튿날 아마존 열대우림 상공에는 초음속전투기와 우주비행선이 하늘을 새까맣게 가리면서 날아왔어요. “전번에 내가 뭐랍디까? 저 놈들을 살려 보내면 안 된다는데도.” 얼룩 뱀이 기어와 대가리를 쳐들고 후회했어요. 사자왕 비컨도 고함쳤어요. “하늘땅이 안나 악마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이때 전투기들이 열대우림에 내리꽂더니 겨끔내기로 소이탄으로 폭격했어요. 뒤이어 커다란 폭격기가 나타나더니 화염방사기로 열대우림에 불을 질러 버렸어요. 순식간에 열대우림은 불바다로 돼버렸어요. 하늘을 찌를듯하던 원목들에 불이 훨훨 붙어 잿더미로 돼버렸어요. 바나나를 따먹던 원숭이들이 데 죽었고 얼룩 뱀이 황급히 불을 피해 호수로 스르르 기어들어갔어요. 고래 어미는 남편과 함께 아마존 강에까지 헤엄쳐 와 물을 뿜어 댔어요. 허나 열대우림의 불길을 막기에는 판 부족이었어요. 클론바우 18세는 호랑이 왕 카시마와 사자 왕 비컨을 돌아보며 “너희들은 동물들을 데리고 빨리 호수에 뛰어들라. 아마존 강을 따라 바다로 들어가 피신하라. 이제 내가 안나 악마를 제거한 후 너희들을 데리러 갈게!” “알았습니다.” 모든 동물들은 불바다를 피해 호수에 뛰어들었어요. 숱한 고래들은 주둥이로 열대우림에 활활 타오르는 불에 물을 뿜어댔어요. 허나 막무가내였어요. 불길은 열대우림을 삼켜버리고 있었어요. 안나 대통령이 보낸 로봇독수리들은 열대우림에 날아와 애 어린 원숭이와 호랑이, 사자 무리를 공격해 눈을 빼먹었어요. “고래 부대, 저 로봇독수리 무리에 물 대포를 쏘라!” 클론바우 18세의 명령이 떨어지자 숱한 고래들이 호수에서 물을 대포처럼 뿜어 댔어요. 웬 일이예요? 로봇독수리들이 무리로 열대우림에 떨어졌어요. 원래 로봇독수리들의 전기회로에 물이 들어가 폐물 짝이 돼버렸던 것이죠. 클론바우 18세는 클론바우 계열 복제 인들을 거느리고 전투기와 폭격기에 덮쳐들었어요. 우주비행선에 안전하게 들어앉은 맥도 총사령관은 전투기들에 명령했어요. “미사일로 공격하라!” 삽시에 숱한 미사일들이 클론바우 가족들에게 날아왔어요. 허나 클론바우 계열 인들은 날개를 퍼덕이며 용케도 미사일을 피하며 전투기에 덮쳐들었어요. 그들은 전투기를 붙잡아 안고 바다에 뛰어들었어요. 풍덩! 전투기가 바다 물에 떨어지면서 새하얀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어요. 맥도 총사령관은 전세가 기울자 최후로 핵미사일을 클론바우 18세에게 쏘았어요. 쒹- 핵미사일은 자석이라도 붙은 듯이 공중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이리저리 피하는 클론바우 18세에게 날아왔어요. 저게 뭔가요? 클론바우 18세가 글쎄 하늘공중에서 열대우림에 날아드는 핵미사일을 덥석 붙안고 방향을 바꿔 날아가지 않겠어요. 핵미사일은 길고도 긴 흰 꼬리를 그으면서 북으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그는 핵미사일을 안고 날개를 퍼덕이어 초음속스피드보다 더 빨리 백악관으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순식간에 백악관 상공에 덮쳐든 클론바우 18세는 우레와도 같이 고래고래 고함쳤어요. “안나, 물건을 원 주인에게 돌려줄까!” 순간 한 여인의 비명소리가 백악관에서 울렸어요. “NO! NO-!!" 클론바우 18세는 줄 욕을 퍼부었어요. “네 년의 배 속에는 불의, 탐욕, 악의가 가득해. 우리 아마존 열대우림의 동물들을 해치는 무자비한 악마!” 허나 꽈르릉 하는 요란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어요. “엄중경고야!” 클론바우 18세는 백악관 마당에 미사일을 쿡 박아 놓고 훨훨 날아올랐어요. 며칠 후 백악관 마당에는 숱한 야수들이 나타났어요. 원래 클론바우 18세 꼬마대통령은 야수들 보고 남아메리카 제일 남단인 혼 각으로 도망치라고 했어요. 허나 야수들도 의리심이 있는지라 안나의 무리와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꼬마대통령을 혼자 사지에 두고 피신할 수 없었던 것이죠. 호랑이 왕 카시마는 딸 카마바와 함께 아들 카오바의 원수를 갚으려고 숱한 호랑이들을 이끌고 백악관에 덮쳐들어 안나의 시체라도 찾자고 두리번거렸어요. 백악관 마당에 폭발하지 않은 몇 키는 될 핵미사일이 쿡 박혀 있지 않겠어요. 그들은 핵미사일을 어루만지면서 감탄했어요. “우리 괴물 대통령은 참 대단해.” 카시마 호랑이 왕이 자랑을 늘여놓자 카마바도 맞장구를 쳤어요. “만물의 영장이 되긴 싹 틀렸어. 항상 이렇게 어진 척 해서야 언제 카오바의 원수를 갚고 안나를 제거하겠어요.” 이때 카시마 호랑이 왕은 박살난 채 거멓게 그은 시멘트기둥 조각들을 둘러보면서 이상해 했어요. “근데 그 놈 요정 년의 시체가 왜 보이지 않지?” 그러자 아들 호랑이 카오바가 대수로워 하지도 않았어요. “별 근심을 다 합니다. 백악관이 텅텅 비었는데요. 그 년이 살아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죠.” “그 말도 맞아.” 카시마는 목을 빼들고 두리번거리다가 “아니, 저게 뭐야? 호랑이 가죽이야!” 하고 소리치면서 대통령 보좌로 뛰어갔어요. “아니, 이게 혹시 카오바 가죽이 아닐까?” 카시마는 대통령 보좌에 깐 호랑이 가죽에 코를 대고 벌름거리더니 고함쳤어요. “옳은 거 같아!” 그는 대통령 보좌에 깐 호랑이 가죽을 에워싸고 돌면서 따웅~ 하고 고함치더니 대성통곡 쳤어요.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야~ 따~웅~ 어쩜 가죽을 벗겨 여기 깔려 있느냐? 따~웅~” 카시마와 카마바는 불이 왕왕 이는 눈길로 원수를 찾는 여대통령궁을 둘러보았어요. 여기저기 껍질을 벗긴 원목이 가로세로 널려 있었어요. 저쪽에 고대 로마 궁전처럼 세워진 기둥, 제법 건뜻 들린 추녀와 용마루는 여대통령의 도고한 위엄을 뽐내는 상 싶었어요. “에이, 제밀할 년, 내 새끼 가죽을 벗겨 네 년의 더러운 엉덩이에 깔아!” 카시마 호랑이 왕은 뾰족한 인공 금강석 이빨로 벌건 기둥을 마구 물어뜯어놓았어요. “엄마, 이를 상하겠습니다.” 아들 호랑이가 말하면서 엄마 대신 발톱으로 벌건 기둥을 허비었어요. “가만!” 이때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코끼리와 코끼리 인들이 우르르 쓸어와 코로 기둥을 휘감아 훌훌 뽑아 버렸어요. 순간 대통령궁이 지붕이 쿵 무너졌어요. 잿빛 화산재가 숨 막히게 풍겨 올랐어요. 어떤 코끼리는 육중한 몸뚱이로 넘어가지 않고 대가리를 쳐들고 있는 나머지 기둥을 마구 떠밀어 넘어뜨리었어요. 원숭이들은 벌건 기둥 위에 뛰어 올라가 마구 뛰놀다가 오줌과 똥을 갈겨 놓았어요. 원숭이들은 그것도 모자라 채 무너지지 않은 지붕 자리에 올라가 잿빛 기와를 벗겨 땅바닥에 마구 뿌려 던져 박살냈어요.    
18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2) 댓글:  조회:2301  추천:1  2015-04-01
            4.충신 김려생             이튿날 이른 아침에 벌써 병완은 베 모자를 쓰고 베적삼과 베 바지를 입고 일가 로소를 데리고 할아버지 김수종의 산소로 떠나갔다.      함경도 명천군 상우남면 쪽으로 산등성이를 넘어 운주동 뒷산 기슭으로 가니 벌써 큰집 형님 병권과 하나밖에 없는 조카 관준과 큰손자 상철, 둘째손자 상렬까지 모두 베옷을 입고 산소에 와있었다.      어제 큰집에 갔던 창준도 산소 옆에 있다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는 것을 보고 마중 나와 인사했다.      “아버지, 어머니 오셨습둥?”      “오, 그래. 에이, 그 놈 함경도 사투리, 참.”      남편이 눈을 뚝 부릅뜨자 성희는 작은 앵두 입을 닫고 말았다.      병완과 병관 두 집 식구들은 산소 앞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병완은 억대우처럼 생겼으나 형님 병권은 선비처럼 허약하게 생겼었다. 병권과 병완, 둘 밖에 없는 형제는 할아버지 김수종과 아버지 김승중이 과거를 본 후 궁정에 들어가 어의로 되였다가 봉변을 당한 것을 보고 과거장에 가지도 않았다. 하나 밖에 없는 녀동생 곰순은 남존녀비 세월에 공부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병권은 후토에 술을 부어놓고 큰절을 세 번 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간 잘 계셨습니까? 자손들이 제를 지내러 왔습니다. 인사 받으십시오.”     아낙네들은 산소 앞에 제사상을 차리고 남정네들은 벌초를 하기에 바빴다.     병권과 병완은 벌초를 마치자 자손들을 죽 차례로 세우고 제주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할아버지, 그간 조상들께서 저희들을 잘 보우해주셔서 우리 일가가 대대로 아무런 액운이 없이 앞날이 활짝 열렸습니다. 할아버지들의 바다같이 깊고 하늘같이 큰 은공을 우리는 대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조상들께서 계속 우리 후손들을 행복하게 보우해주옵소서. 할아버지, 후손들의 절을 받으십시오.”      병권이 목이 메 말하자 모두들 넙적 엎드려 큰절을 세 번씩 올렸다. 병완은 산소 앞에 차린 제사상에서 차조이밥사발을 받쳐 들고 숟가락으로 큼직하게 한 숟가락 떠서 산소 옆으로 해 파묻었다.      “아침 대접이 늦어서 미안합니다. 할아버지.”      그들은 할아버지에게 제사를 올린 뒤 아버지와 어머니를 합장한 산소에 옮겨갔다.      “아버지, 아침식사가 늦었습니다.”      병권은 후 토에 술을 붓고 절을 한 뒤 병완과 함께 벌초를 하면서 눈물을 파란 풀잎에 뚝뚝 떨어뜨렸다. 자손들도 옷자락으로 얼굴을 닦았다.      제주를 붓자 누군가 먼저 흑흑 흐느껴 울자 모두들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병권은 하얀 수염을 흩날리면서 산소 앞에 꿇어앉아 흰 종이에 붓으로 쓴 글을 곡을 붙여 읽기 시작하였다.      “서울에서 궁중 어의로 계시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이 어인 일입니까? 이런 산골짜기에 묻힌 지도 어언 3년이나 됩니다. 이 도리깨자식들이 불효하여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잘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 불효자식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대대손손 산소를 잘 모셔드리겠습니다. 구천에서 자손들을 도와주시면서 굽어 살피소서.”      제사행사가 끝나자 병권은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면서 형제와 자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얘들아, 너희들은 들어라. 우리 할아버지는 원래 이씨 조선 순조왕대에 궁중 어의였느니라. 할아버지는 조상들에게서 대대로 물려받은 오줌 비방 약을 잘 썼는데 그만 손조왕 왕실에 썼다가 그만 들키어 쫓겨났다. 내 아버지 명함은 김승중이셨는데 역시 순종조의 궁중 어의였다. 왕은 할아버지를 내쫓았다가 자존심을 꺾으면서 다시 할아버지를 황궁에 모셔 들여가지 못하고 아버지를 모셔갔다. 그런데 아버지도 할아버지처럼 오줌약을 썼다가 쫓겨 날 줄을 누가 알았겠느냐?”      병권은 목이 꺽 메여 술잔을 들어 꿀꺽 마시고 뒤 말을 이었다. 모두들 병권을 바라보면서 귀를 도사리었다.      산소 옆의 소나무에서 까치가 우짖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 고향은 서울이었다. 그러나 그이는 할아버지를 따라 할아버지의 고향인 상우남면 바로 이곳으로 낙향하였다. 너희들이 생각해보아라. 아버지는 얼마나 자기 고향 서울을 떠나기 싫었겠느냐? 그러나 효자인 아버지는 떠나기 아쉬운 자기 고향을 버리고 할아버지가 항상 외우던 할아버지 고향으로 내려 왔단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 형제를 낳았단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고향 서울이 얼마나 그리웠겠느냐? 하긴 고향 서울은 그리웠겠지만 그 멍청이 같은 순조왕이 있는 서울을 떠난 것도 잘 된 일이였지. 아버지는 생전에 그렇게 효자였다. 할아버지를 위해서는 자기 모든 것을 버리셨다.”      병권은 말을 마치자 모두들 일어나 산소에 술을 부어 올리고 세번씩 큰 절을 올렸다.     병권과 병완이 곡을 부르자 모두들 울면서 곡을 했다.     한참 후 제사상에 둘러앉자 병권은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아버지는 낙향한 후 병을 잘 보았을 뿐만 아니라 지식이 있어 이 상우남면에서 받들린 분이었다. 그래서 명천군읍에서 문서 벼슬을 하라고 면장이 추천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벼슬에 흥취가 없고 그저 할아버지 이 고향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병만 보았단다. 우리 영월 김 씨는 원래 경주 김씨에서 내려온 김씨 돼 그런지 심지가 굵고 어지간한 일에 머리를 숙이는 법이 없었다. 이전에 천년 신라를 통치해온 우리 경주 김 씨의 후손들은 다 그렇게 대틀이었지. 그까지 순조왕이 다 뉘라더냐?”      병완이 병권의 무릎을 툭 다쳤다.       “형님, 누가 듣겠소.”      병권은 병완의 무릎을 치면서 대수럽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뭐라니? 아버지는 고향이 너무 보고 싶으면 돈을 벌어가지고 서울에 드문드문 가서 어린 실절 친구들도 만나보군 하였단다.”      이때 기준이가 움쭐 일어나면서 이렇게 물었다.      “큰아버지, 그럼 왜 우리는 경주 김씨라 하지 않고 영월 김씨라 합둥? 이 영월동과 무슨 관계있습둥?”      “그래, 아버지 말해 주지 않은 모양이구나. 허, 이러기에 족보를 만들어야 한다. 전번에 집안 문장 어른이 후손들의 이름을 적으러 왔던데 저기 상우랑 상훈이랑 다 적어갔다. 이 다음 족보를 찍을 때 다른 애들도 낳는 족족 일일이 찍어 넣어야지.”      병권은 기준에게 얼굴을 돌렸다.      “잘 물었다. 우리 영월 김 씨가 어째 경주 김 씨에서 나왔다고 하는가? 그럼 모두 들어두어라."      모두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병권의 옛말을 들었다.       “이조 제6대왕 단종 때 있은 일이다. 그러니까 1453년 좌우 되였을 때다. 그때 단종은 겨우 13살 밖에 안 되는 어린 임금이었다. 내 14세 조부 김려생(金丽生)은 그때 단종왕 때 궁정의 통정대부 정1품 벼슬을 했다.”      병완은  놋그릇에 물을 부어 형님에게 주었다.       병권은 물을 한 모금 꿀꺽 마시고는 뒤 말을 이었다.       “그런데 단종왕의 삼촌이 되는 수양대군은 일당을 모아가지고 단종왕을 왕위에서 끌어 내리고 자기가 왕이 되였단 말이다. 그자가 바로 이조 제7대왕 세조왕이었지. 김려생 할아버지는 그때 사육신들인 김종서 등 보다 못지않게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지조를 버리지 않았지. 그는 벼슬을 버리고 가만히 단종왕을 따라 강원도 영월군으로 내려갔다.”       병권은 너무 비통해 한숨을 후 내쉬고 나서 뒤이야기를 이었다.       “우리가 영월 김 씨로 된 데는 비장한 옛말이 있다. 그때 세조왕은 단종왕을 따라 다니는 충신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려고 미쳐 날뛰었다.그래서 려생 할아버지는 감히 단종왕이 영월로 가는 마차를 따라 큰길로 가지 못하고 령길을 타고 묵묵히 따라 갔단다.그때 세조왕은 단종왕에게 시종 한사람과 시녀 두 사람을 딸려 보냈고 지금 영월읍 서북쪽으로 난 골안에 6간 집 한 채를 지어주고 살게 하였다. 그리고 늘 군사를 보내 어디로 도망치지나 않는가 감시했다. 그런 형편에서 려생 할아버지는 늘 먹을 것도 장만하여 가져갔다. 한번은 단종왕을 보고 도망치라고 권유하였지. 그런데 어린 단종왕은 삼촌인 세조왕이 두려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하였다. 단종왕을 그냥 그자리에 모셔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려생 할아버지는 단종왕을 억지로 모시고 영월 북쪽에 있는 절로 가서 구경하는 척 하면서 도망칠 궁리를 하였다. 그런데 밀고가 들어가서 세조왕의 군사들이 단종왕을 잡으러 절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려생 할아버지는 바삐 단조왕을 절의 큰 구리종 속에 숨겨두면서 ‘누가 와서 불러도 까딱 대답하지 말고 신이 올 때까지 기다리십시오.’라고 했다. 그런데 단종왕은 뜨거운 구리종 속에 들어가 앉자마자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물을 마시게 가져오라고 했다. 려생 할아버지는 절에 들어가 물을 찾았으나 중들이 물을 다 치워놓고 우물에 자물쇠를 잠가 놓아 물을 퍼올 수 없었다. 그래서 별수 없이 헌 바가지를 들고 물을 뜨러 산골짜기에로 내려가 냇물을 한바가지 퍼들고 올라왔지. 그가 거의 절에 돌아올 때 군사들이 들이닥쳐서 단종왕을 찾느라고 온 절을 발칵 뒤졌지. 려생 할아버지는 조마조마해 애 태웠단다. 그런데 일이 되지 않으려니까 그랬던지. 한 병졸이 단종왕을 찾다 못해 신경질이 나서 창으로 단종왕이 숨은 구리종을 떵 치면서 ‘이 놈 단종왕 나오지 못하겠는가?’하고 고함치자 단종왕은 자기가 거기 숨은 걸 아는가 해 벌벌 떨면서 구리종에서 나왔단다. 그리하여 단종왕은 다시 영월읍 서쪽 집에 갇히고 말았단다. 그 후 세조왕은 단종왕을 따르는 충신들이 영월에 모여서 다시 역모를 꾸밀까봐 고민했지. 세조왕은 단종왕을 죽이라는 간신들의 말을 듣고 독주를 내려 단종왕을 죽이고 말았다.”      “헤이, 삼촌이란 왕이 자기 조카를 죽이다니? 쯧쯧.”      관준이 혀를 끌끌 찼다.     "세조왕은 지독하였지. 세조왕이 두려워서 누구도 감히 단종왕의 시체를 거둬 장례를 치르지 못하였단다. 그때 려생 할아버지는 영월리 호장 엄흥도를 가만히 불러 상의한 후 엄흥도의 아들들과 함께 밤중에 단종왕의 시체를 관작에 넣어 영월읍 서쪽으로 하여 산중턱에 아늑한 양지바른 작은 둔덕 위에 모셨단다. 그리고 엄흥도와 함께 낮이면 나무 위에 올라가 단종왕의 산소를 누가 다치지 않나 지키고 밤이면 산소 옆을 돌면서 지켰단다. 하루도 아니고 3년 동안 그렇게 지키노라니 얼마나 고생이 막심하였겠니? 려생 할아버지는 단종왕의 3년 제사까지 지냈지. 세조왕의 추포영이 내리자 려생 할아버지는 영월에서 도망쳐 가솔들을 거느리고 여기 함경도 명천군에 와서 변성명을 하고 감자농사를 짓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 자시면서 살았단다.”      모두들 “오~” 하고 한탄하였다.      기준은 조용히 듣다가 궁금해났다.     “큰아버지, 그래 엄흥도 양반은 후에 어떻게 되였습둥?”      “엄흥도 양반은 도망치기는커녕 자손들에게 ‘내가 선왕의 시신을 거둔 것이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그게 신하된 도리가 아닌가? 그게 죄라고 구족을 멸한다 해도 나는 두렵지 않다.’라고 하면서 계속 그 자리에서 살았단다. 우리 려생 할아버지는 내내 단종왕을 잊지 못해 낙루하면서 한식이거나 단오 때거나 추석이면 늘 단종왕이 묻힌 강원도 영월군 쪽에 제사상을 차리고 절을 올리곤 하였단다. 후에 려생 할아버지는 임종시에 부인 순천 박씨와 아들들인 복중과 복덕, 손자들인 산룡과 대룡, 언룡을 불러놓고 이렇게 신신당부하였단다.‘나는 생전에 나를 그렇게 사랑하고 아껴 준 단종왕이 묻힌 곳을, 강원도 영월군을 잊을 수 없구나. 너희들부터 경주 김씨로부터 영월 김씨로 고쳐라. 그러면 우리 자손들도 대대로 목숨을 보전하는데 안전할 것이다. 너희들은 자손들을 꼭 공부를 시켜라. 그러나 과거 보러 가지는 말라. 벼슬을 하면 구족을 조사할 터이니 너희들이 내 자손인 것을 알면 잡아 죽일 것이다.”      “오- 그래 우리가 영월 김씨로 되였구먼요.”      “그런데 어째 증조부와 할아버지는 궁정의사를 해도 붙잡히지 않았는가요?”      “그건 160여년이 지난 후 이씨 조선 왕은 려생 할아버지를 이씨 왕조에 충성한 충신이라고 반포하고 단종 왕을 왕으로 추대하였지. 그리고 영월군 영월읍 서쪽으로 한 3킬로메터 떨어진 장릉에 단종왕의 기념비와 왕릉를 그럴듯하게 건설했지. 그 후에야 우리 일가도 마음대로 과거를 보고 벼슬도 하게 되였다. 그래서 할아버지도 과거에 합격된 후 뛰어난 의술로 하여 궁정의 의사로 될 수 있었구 붙잡지 않았단다.”      “예-”     기준이랑 모두 그제야 머리를 끄덕였다.      창준이 또 한마디 물었다.       “우리가 어째 영월 엄씨네와 통혼하지 않는다고 합니까?”       “오, 그래. 충신 김려생 할아버지와 엄흥도 호장은 목숨을 내걸고 단종 왕을 보호하고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지내였고 또 그 산소를 3년이나 지키면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였지. 그때부터 려생 할아버지와 엄흥도 할아버지는 피를 나눈 친형제처럼 지냈단다. 그래서 려생 할아버지와 엄흥도 호장은 후에 ‘우리는 친형제와 같기 때문에 자손들은 서로 통혼을 하지 말자.’고 약속하였단다. 그때부터 영월 엄 씨와 영월 김 씨는 통혼하지 않았단다.”      “예-”      여기저기에서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긴 감탄이 흘러나왔다.       성칠은 큰아버지를 바라보면서 한마디 더 물어보았다.      "그럼 우리 집 안에선 우리 마을 엄창렬네하구 통혼하지 말아야 합둥?" 그 말에 하옥은 남편을 흘끔 곁눈질하면서 언짢아하는 눈치를 보였다.     병관은 그저 지나가는 물음으로 여기고 제꺽 대답했다.      "그래. 엄씨는 다 영월 엄씨야. 형제 집안과 어떻게 통혼하니?"     병완은 맏아들을 이상해  돌아보았다.     (혹시 저 자식이 개울 건너편 집 창렬이네 은녀를 좋아하는가? 하옥이를 두고? 아니야. 절대 그러지야 않겠지? 본댁을 두고 무슨 짓을?)     기준은 병권 곁에 바싹 다가앉았다.     “큰아버지, 그래 려생 할아버지 산소랑 어데 있습니까?”      그러자 병권은 긴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잘 물었다. 려생 할아버지의 산소는 아직도 명천군 상우면 동남쪽 67리 되는 포하동 풍무덕에 있단다. 이전에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따라 려생 할아버지의 산소에 가 보았는데 그 산소자리가 명당자리더라. 남쪽에는 출렁이는 동해 바다물이 출렁거리고 사면에는 낮은 산 둔덕이 둘러있고 북쪽에는 양지바른 둔덕이 양팔을 들어 벌리고 있는 자애로운 품 같은 것이 서있어 아주 아늑하더라. 오늘도 우리가 려생 할아버지 산소가 너무 멀어서 가지 못하는 것이 한이구나. 보통 자손들이란 자기 부모부터 가까운 조상들의 산소를 찾아가는 것이 상례로구나. 원래는 가까운 곳에 있으면 할아버지와 조상들의 산소를 다 찾아보아야 하였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구나. 참 안타까운 일이야.”      가을바람에 병권의 새하얀 염소수염도 흩날리었다.      “이젠 이야기를 그만하고 다시 제주를 붓고 절을 올린 후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집으로 내려가자.”      “예, 알았습구마.”      성희와 며느리들은 아침 제사상을 차렸다. 조부모와 부모의 산소에 절을 올리고 곡을 하는 병권과 병완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들이 식사를 마치고 떠나가자 산소는 다시 처량하게 적막강산으로 되였다. 소나무들도 조용한 산소를 내려다보면서 서늘한 가을바람에 서글프게 휴- 휴- 설레었다. 까마귀가 나무가지에 앉아 꽁지를 들썩이며 까욱- 까욱 처량하게 울었다. 화답이나 하듯 건너편 수림 속에서 뻐꾸기가 "뻐꾹", "뻐꾹" 애처롭게 울었다.                                                                       5.양반집 건달              추석 이튿날, 하늘은 가없이 높고 맑고 파랗다. 꽃구름송이들이 듬성듬성 떠 춤추며 흘러가고 있어 더욱 낭만적이고 기분이 좋았다. 다람쥐들도 콧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며 볼이 뽈록하게 도토리를 입에 물어 굴에 들여가느라고 분주하다. 토끼도 겨울나이 준비에 승냥이 방어할 굴을 여러개 파느라고 뺑뺑 맴돈다.      병완과 성칠 부자는 곰의 가죽과 고기를 수레에 싣고 명천 우시장 쪽으로 떠났다. 겨울에 먹을 쌀을 얼마간이라도 장만해야 했다.      그들이 마을에서 벗어나 산골짜기 어구에 거의 들어설 때였다. 뒤에서 급촉한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병완이 흘끔 뒤돌아다보았다.      한길수가 자주 빛 말을 타고 나는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한길수는 말을 타고 수레와 나란히 가며 지껄여댔다.      “병완이, 당신 배은망덕해도 한두 가지 아니구먼.”    그의 길쭉한 낯은 바위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우멍눈은 보기에도 무섭게 음험한 독살이 차넘쳤다.     “건 무슨 말이요? 어제 애들을 보내 데리러 가니 당신이 오지 않아가지구두. 그래 곰의 고기를 기준한테 보내지 않았소?”     “쳇, 옛말이면 듣기나 좋지.그 걸로 어느 코에 발라?”     한길수는 말을 탄 채 말상을 흔들면서 침까지 퉤 내뱉었다.     병완은 원래 인품이 후했다. 그는 수레에서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허리춤에서 시퍼런 칼을 빼내 곰의 고기를 열 근은 실히 되게 썩썩 베 한길수에게 넘겨주었다.      그제야 한길수는 고기덩이를 받아쥐고 이리저리보더니 낯의 근육이 느슨히 풀렸다. 그는 말 잔등에 채찍을 날리면서 달려 가 버렸다.       하늘과 금을 그어놓은 듯 한 산등성이 령길에서 병완부자가 탄 수레와 한길수가 타고 되돌아가는 말은 점점 멀어져갔다. 가을바람이 우수수 불어친다. 벌거숭이 누른 땅 위에 맥없이 서있는 옥수수 마른 이파리들이 너풀거린다. 붉게 타는 듯 한 단풍잎이 어느새 철이 지난 듯이 지기 시작하였다. 저 멀리 높은 하늘에서 기러기 떼들이 줄지어 끼룩끼룩 남으로 날아갔다. 독수리가 검은 날개를 쭉 펴고 나래 치면서 먹이를 찾는 상 싶었다. 기러기 떼들이 산산이 피해 날아 나 버린다.     병완 네가 몇 해 전 봄에 짐짝을 메고 처음 영월동에 왔을 때 이 산골에는 한 씨 네 밖에 없었다. 그때 한씨 네는 억대우 같은 병완을 보고 밭이나 소작을 주어보려고 자기 집에 머물게 한 적이 있었다.     목수재간이 있는 병완은 손바닥 같은 몇 뙈기 묵밭보다도 산골짜기에 들어선 아름드리나무들이 제일간 마음에 쑥 들어왔다.     (저 아름드리나무들을 찍어서 함지를 파 팔면 쌀 근심은 할 게 없겠다.)     동상이몽이라고 한길수는 소작농으로 병완을 쓰려고 궁리하였고 병완은 목수 질하여 살 궁리를 하였다.     이튿날부터 병완은 산에 올라가 나무를 찍어 집을 지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한길수는 기어이 자기 집부터 먼저 지으라고 야단쳤다. 그리하여 병완은 넓은 골짜기 어구 새 집터에 한길수네 집을 지어주고 산골짜기 막치기 쪽의 더 좁은 집터에 자기네 집을 지었던 것이다.      그 후 선후하여 이 산골짜기에 덕성과 덕팔, 엄창렬, 성팔 네가 알몸신세로 처자를 데리고 이사해왔다.     한길수는 제손으로 농사를 하기 싫은데다가 병완이네 부자는 목수재간과 사냥재간으로 살아가기에 그들의 손을 믿고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소작농을 얻자고 그들을 오는 족족 받아주었다. 병완은 이 적적한 산골짜기에 친구가 생겼다고 그들을 먼저 자기 집에 들게 하였다.  봄이 오자 그들에게 새집을 지어주었고 함께 묵밭을 떠서 옥수수라도 심어 먹으면서 살아 왔던 것이다. 원래 이 마을은 한길수 네가 달이 솟아 오르는 산골이라는 뜻으로  승월동이라고 이름을 지었댔다. 그런데 병완과 엄창렬 네가 다 본이 영월이여서 아예 영월동이라고 불렀다. 그 바람에 덕성과 덕팔, 성팔이 네도 영월동이라고 따라 불러 영월동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길수는 자기 딴에는 영월동에서 땅 몇 십 헥타르를 가진 부자노라고 어깨 으쓱하였다. 형님 한길주와 짜고 들어서 명천군 아전 질을 하던 자기 조부와 면장노릇을 하였던 아버지 산소가 이 산골에 묻혔다는 구실로 명천군 군수에게 금과 은냥을 먹이고 이 산골을 독차지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저 병완이 온 후 덕성과 덕팔, 성팔, 엄창렬이 네 마을의 인심을 다 가져가서 점차 자기가 뭐라고 해도 말이 통 서지를 않았다. 그는 내내 어떻게 무슨 구실로 병완이 네 일가를 이 산골마을에서 쫓아내고 다시 이 마을을 쥐락펴락 하고 싶었다.      한길수는 고래 등 같은 기와를 얹은 팔간태청의 넓은 마루에 앉아 곰방대로 번대머리를 썩썩 긁으면서 높다란 토성 너머 먼 산을 바라보며 음흉한 속궁리를 하고 있었다.      (병완아,어디 두고 보자. )      그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던지 곰방대를 쥐고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마름을 불렀다.      “여보게, 응삼이!”      “예-”     곁방 문이 열리면서 실돌피처럼 생긴 응삼이가 괴춤을 쥔 채 맨발 바람으로 뛰어 나왔다. 그는 머리가 삼검불 같았지만 주인에게 해시시 웃어 보이면서 허리를 연신 꼽싹거리는 것만은 잊지 않고 있었다.     “주인어르신님, 무슨 분부가 계십둥?”     “에이, 저 함경도 말투만 들어도 정이 뚝 떨어져. 쯧쯧.”     길수는 버릇처럼 곰방대로 번들 이마를 쓱쓱 긁더니 뒷말을 이었다.     “거 병완이 10년전에 우리 집에 와서 살았잖아. 그 장부를 가져오게나.”      “예, 그런데 그걸 불시에 찾아 뭘 하겠습니다”      응삼은 입버릇처럼 또 함경말투를 쓰고 혀를 홀랑 내밀며 말투를 바꿨다.     “장부를 가져다 뭘 하려구?”     “앗따, 가져오라면 가져올 게지. 무슨 잔말이 그리도 많아?”     “예, 알았습구마.”     응삼은 뒤짐을 짚고 몸채에 홱 들어가는 번들 이마를 보고 투덜거렸다.     “난 또 무슨 큰일이나 났다고. 괜히 식전 아침부터 설치면서 남의 재미를 깨버릴 건 뭔가? 흥.”      누구의 명이라고 어기겠는가. 응삼은 바지 괴춤을 춰 입으면서 신을 작작 끌고 곁채로 들어갔다.     곁채 구들에는 아직도 이불이 어지러이 나뒹굴었다. 그 이불 한 쪽이 들렸는데 음삼의 여편네의 허연 허벅다리와 흘러내린 박속 같은 젖무덤이 드러나 있었다. 문소리가 덜컥 하자 응삼의 여편네 춘실은 이불귀를 들어 젖가슴을 가리었다.     “무슨 일이기이기에 식전부터 지랄인가요?”     “에이, 주인어른이 아마 또 병완과 맞붙을 예산인 모양이요. 장부를 가져오라고 하는걸 보니. 그 둥글 소 같은 녀석을 어쩌자고 지껄이는지 모르겠소. 어디 또 한번 혼나고 싶은 모양이지.”     응삼은 궤짝에서 장부를 꺼내더니 들고 나가려다가 앵돌아져 눕는 여편네에게 눈길이 돌아갔다. 그는 이불을 들어 덮어주더니 춘실의 볼을 살짝 매만지면서 구슬렸다.      “요, 귀염둥이야. 얼른 갔다 올게. 이젠 해도 한발 떴으니 일어나 밥이나 해라.” “알았어요.”     춘실은 이불을 잡아당겨 턱에까지 더 꼭 쓰면서 눈을 곱게 흘겼다. 아마 춘실은 작달막하고 실 돌피 같은 나그네라도 살뜰한 멋에 붙어사는 것 같았다.     응삼은 장부책을 쑥 뽑아 들고 몸채에 들어갔다.     한길수는 염소수염을 쓸쓸 어루만지면서 밥상에 마주 앉아있었다.     “자, 여기 앉게. 거 장부책에 있겠지? 병완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우리 집에 와 있었다는 게 말이야.”     “예. 여기 있습구마.”     주인의 눈치를 살피던 응삼이는 주인의 가까이에 설설 기듯이 다가가 앉더니 근시안경을 걸고 장부책을 내리 훑었다. 담배 대여섯 모금을 빠는 새 응삼은 안경알 안의 빈대떡 같은 눈알을 데굴거리더니 장부책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1903년입니다. 그해 노일전쟁이 있은 해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1903년 음력 2월 9일부터 그해 가을 9월 16일까지 있었습니다. 한 반년 푼하구먼요.”    “고작인가? 거 2월을 12월로 고치게나.”    응삼은 안경알을 춰올리면서 번대머리를 건너다보며 난감해했다.    “아니, 그럼 년도가 틀립니다.”     한길수는 곰방대로 밥상을 탕 쳤다.     “에끼, 이 멍청아, 년도를 1902년으로 하면 될게 아닌가?”     “그런데 더 써넣을 자리도 없는데 어떻게 글씨를 고치겠습둥?”     “가져 오게.”     한길수는 장부책을 당겨가더니 퉁방울눈을 뚝 부릅뜨고 들여다보았다.     “이걸 보게나. 여기 건너금 두개 밑에 한 개를 더 그으면 한자로 3자가 되고잖는가? 여기 2자 앞에 열십자를 하나 더 써넣으면 될게 아닌가.”      응삼은 안경테를 붙잡고 빈대떡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보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아주 절묘합구마. 되겠습니다. 주인 어른신은 원래 이런걸 아주 묘하게 고치는데 이골이 텄습니다.”      “에끼. 이 자식. 한대 딱 맞고 싶은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얼른 고쳐놓게.”     한길수가가 곰방대를 쳐들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아이고!”     응삼은 머리를 싸쥐고 비명을 지르면서 장부책을 안고 무릎걸음으로 비실비실 뒤로 물러서다가 사랑채로 나갔다.     한길수는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바삐 끌신을 끌고 물러가는 응삼의 가는 뒤 잔등을 바라보며 뒤 근심도 없지 않아 있었다.     “저 병완이를 건드렸다가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어쩌다가 내 할아버지가 여기 함경도에 정배를 와서 이런 구렁텅이에 빠졌나? 저런 물귀신 같은 병완과 자웅을 또 결해야 하다니. 참 억이 막힌 일이다.”          한길수는 쩍 하면 할아버지를 원망하군 하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원래 황해도에서 아전노릇을 하였다. 그런데 무너져가는 조정과 매관매직의 그릇된 행위를 보고 바른 말을 하였다가 그만 도절도사에게 잡혀 곤장을 맞고 웅진에 정배를 왔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대바른데다가 지식이 있어서 몇 해 되지 않아 함경도 명천군청에 들어가 아전노릇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길수의 부자간은 할아버지와 판판 달랐다. 길수의 아버지는 서당공부는 뒷전이고 전문 도박놀이터에 가지 않으면 기생놀음을 하였던 것이다. 가산을 탕진하게 되자 그의 아버지는 두 아들을 남기고 독주를 마시고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자 길수의 어머니도 그날로 남편이 마시다가 만 독주를 마저 들이켜고 세상을 떴던 것이다.       하루 사이에 부모를 잃은 한길수는 아주 절망에 빠졌다. 원래 한길수는 아버지만은 달리 할아버지의 가르침 밑에 서당공부도 잘하고 참하였다. 그러나 부모가 돌아가자 굴레 벗은 말처럼 마구 구을러 다니며 못된짓이란 짓은 다 했다.       그는 점차 서당에는 다니지 않고 못된 짓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무장사군들의 나무단에 불을 지르지 않으면 나무꼬챙이로 어린애들의 언 귀를 짱짱 쳤다. 뒷간 옹이구멍으로 여인들의 허연 엉덩이를 훔쳐보지 않으면 똥구덩이에 돌멩이를 들이뜨려 똥 벼락을 맞게 하기도 하였다. 막내로 자란 그는 점차 돼지 심술을 꽉 묶어놓고 만든 고약한 심술쟁이로 변해갔다. 똥 누는 애를 물 앉혀 놓기도 하고 방아 호박에 똥오줌을 싸 넣기도 하였으며 되는 호박에 말뚝을 박지 않으면 칼로 호박껍질을 동그랗게 도려내고 호박 속을 파낸 후 똥을 싸 넣고 호박껍질 덮개를 살짝 덮어놓기도 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한길수는 술집을 드나들면서 술이나 처마시고 쩍 하면 걸고 들어 싸우기가 일쑤였다. 우시장거리에서 한길수 무리가 왔다하면 모두 썩 피해갔다. 심지어 애들마저 한길수 말만 하면 울음을 딱 끄칠 지경이였다.      어디 그뿐인가?      어려서부터 녀자들 변소간을 옹지구멍으로 엿보더니 커가면서 개버릇이 커갔다. 길거리를 다니다가도 반반한 여자만 보면 오금을 못쓰고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지껄여댔다. 이쁜 녀자를 그날 안으로 재껴치우지 않고선 시름놓지 못했다.  반반한 딸을 가진 집에선 한길수 온다면 숨이 한줌만 해서 딸을 숨겨 놓느라고 야단쳤다.      한길수는 또 명천 우시장 거리 기생집에 오입하러 문턱이 다슬게 다니었다. 요즘엔 일본 기생년들 궁둥이 맛을 들여 집에 붙어있지 않았다. 아무리 기생출신이라도 월선은 영감이 기생행골에 이를 쁙쁙 갈았다.       한길수는 굴레를 벗은 말이요, 우리에서 뛰쳐나간 호랑이새끼 같았다. 그는 말이 양반집 아들이지 실지는 비단에 감싼 심술쟁이요, 싸움꾼이요, 오입쟁이었다.       한번은 길수가 씨름판에 구경을 갔다. 웬 키가 훤칠한 사내가 숱한 상대를 하나하나 이기고 황소를 타고 씨름판을 한 바퀴 도는 것을 보고 심술이 났다.      그는 팔소매를 썩썩 걷으면서 구경꾼들 속을 비집고 나가면서 자기 앞을 지나가는 황소를 탄 사내대장부를 보고 걸고들었다.      “어이, 당신은 일등이라지만 이 한길수와 씨름을 해보지도 않고 어찌 일등이라고 할 수 있겠소. 그 황소 잔등에서 내려오게나. 한판 겨뤄보겠나.”      그 거동은 거만하기로 짝이 없었다. 일등을 한 사내대장부는 흥이 다 깨지고 기분이 잡쳐서 소잔등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는 소고삐를 자기 친구에게 넘겨주고 나섰다.       “장사는 누구신지 통성명이나 하기요.”       한길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빈정거렸다.       “아니, 그래 당신은 이 명천에서 이름이 짜한 싸움꾼 한길수도 모르고 황소를 탔소?”     그 사내대장부는 넉가래 같은 손을 척 내밀었다.     “오, 그렇구먼. 나 상우남면 운주동의 김병완이오.”     “그래? 당신 키는 구척이요. 힘 깨나 쓰는 모양인데. 나와 한판 붙어 보겠는가?”      한길수가 걸고 들었지만 병완은 점잖게 받아 넘겼다.      “이보시오. 씨름판은 끝났으니 명년에 다시 씨름판에 나와 겨뤄 보는 게 어떻소?”       그러자 한길수는 우쭐해났다.      “아니, 일등을한 양반이 무슨 겁이 그렇게 많아? 어째 황소를 이 어른께 빼앗길 까봐 그래? 잔말 말고 한판 붙어보자.”      병완은 황소 잔등에서 훌쩍 뛰여내렸다.      그는 팔소매를 걷더니 씨름판 복판으로 들어갔다.      한길수는 병완의 뒤를 따라 들어가면서 모래바닥에서 돌멩이를 슬쩍 오른 손에 감춰 쥐었다.     심판이 그들 둘의 잔등을 치면서 “시작!” 하고 소리치기 바쁘게 길수는 오른손에 쥐였던 돌멩이로 병완의 무릎을 딱 치면서 뒤로 꺼꾸러뜨렸다.     구척장신이요, 힘장사인 병완은 무릎이 너무 아파서 힘도 못써보고 상을 찡그리면서 맥없이 뒤로 넘어졌다.      한길수는 손에 쥐였던 돌을 모래바닥에 떨군 후 발로 모래를 차서 푹 덮어 버리었다. 뒤이어 그는 어깨가 으쓱해서 씨름판을 한 바퀴 돌면서 빈정거렸다.     “보라고, 황소를 탄 일등이 내아래 무릎을 꿇었어. 흥! 일등도 그저 그래! 퉤퉤!”     이때 병완이 아픈 무릎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더니 일어났다.     심판이 다가와 한길수에게 말했다.    “삼판양승이니 아직 두 판을 더 해야 결판나오.”     한길수는 손에 쥔 돌이 없어 당황해났지만 성난 사자처럼 황소숨을 거칠게 몰아 쉬면서 으르릉 거렸다.     “이 자식, 어디 죽고 싶으면 덤벼 봐라!”     그러나 병완은 쓰거운 듯이 피씩 웃으면서 길수에게 다가섰다. 그러자 한길수는 자신이 없으면서도 어찔 수 없어 마주 붙었다.     “시작!”      심판이  두 손으로 씨름군들의 잔등을 탁 치며 고함쳤다.     한길수는 왝왝 고함치면서 억대우 같은 병완을 이리저리 떠밀기도 하고 옆으로 밀어 붙이었다.     한길수도 한다하는 싸움꾼이였기에 병완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는 처음에는 한길수가 떠밀고 밀어 붙혀도 당하는 척 하였다. 그러나 한길수가가 숨을 돌리느라고 동작을 멈춘 순간 다리를 끌어당기다가 왼손으로 오른팔을 어깨 위에 둘러메고 오른손으로 왼다리를 당기다가 사타구니 밑에 오른팔을 쑥 넣고 건뜻 쳐들었다. 한길수는 숱한 구경꾼들의 머리 위로 두 다리를 뻐둑거리면서 두 손을 허우적거렸다.     “물러가라!”      병완은 길수를 머리 위로 강아지 휘두르듯 빙글빙글 휘두르다가 구경꾼들의 머리 위로 테 밖에 내동댕이쳤다. 어지간한 사람이면 면상이 모래에 박혀 잘못됐을 것이다. 그러나  날랜 길수는 허공 날아 떨어지는 순간,  원숭이처럼 살짝 모래불에 곤두박질하면서 다시 벌떡 일어났다.       "개자식, 어디 죽어봐라! 퉤!"       길수는 종아리 각반에서 시퍼런 비수를 뽑아들고 음흉한 우멍눈으로 병완을 쏘아보았다.       그래도 병완은 겁기가 하나도 없었다.       구경꾼들은 비명소리를 지르면서 와야 하고 흩어졌다. 길수가 비수를 휘두르면서 달려들어 배를 겨누고 푹 찌르자 병완은 옆으로 몸을 탈면서 오른발을 날려 비수를 차 떨어뜨렸다. 길수가 비수를 쥐는 순간 병완은 왼발을 날려 아래 배를 콱 걷어찼다.       “억!”       길수는  아래 배를 끌어안고 쓰러졌다.      구경꾼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길수는 다시 덮쳐들고 싶었으나 숨이 꺽 막혀 맥을 쓸 수 없었다. 한길수는 아래배를 붙안고 창피한대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았다.       그 후 앙갚음을 하려고 길수는 싸움꾼 친구들을 불러가지고 병완이네 집까지 쫓아가 걸고 들었다.     "야, 이놈아, 오늘 씨름 결판내자."       병완은 길수가 덤벼드는 족족 멨다가 처박어주었다.      그는 길수를 꽉 안아 바자 밖으로 훌 내던졌다. 길수는 기신기신 기여 일어나 엉덩이의 먼지를 툭툭 털며 또 덤벼들었다. 이번에는 병완은 배잡이로 멋지게 길수를 짱 넘어뜨리었다.        "3판 양승이니 내 이겼소. 결판 났으니 어서 돌아가오."      길수는 손으로 턱에 묻은 진흙을 쓱 문대며 랭소했다.      "흥! 모레 또 해보자!"       따라왔던 싸움군 친구들도 길수가 병완의 적수가 아니라는 것을 보아냈다.       "형님, 그만하오. 상대가 아닌 것 같소."     "개소릴 작작 쳐! 내 그놈 허리를 뚝 분질러놓지 않는가 봐라! 퉤!"       길수는 날마다 지면서도 사흘이 멀다하게 찾아와 계속 병완과 걸고 들었다.      하루도 아니고 연 보름동안 길수는 병완과 씨름을 걸었지만 날마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중에 그는 시퍼런 작두를 들고 와서 죽기내기로 싸움을 걸었다.      미운 놈을 떡을 더 준다고 병완은 길수와 같은 자는 꺾어 놓는 것이 상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번에 한길수가 찾아왔을 때었다.       병완은 미리 준비해 놓은 집안의 술상에 길수의 손을 잡고 들어갔다.       “그럼 그렇겠지. 이 길수가가 누구라고 언감 이긴단 말인가! 허허, 으흠.”       길수는 병완이 주는“항복술”을 받아 마시고 개 잡은 포수처럼 어깨 으쓱해서 싸움군 친구들을 데리고 돌아갔다.       그 후에는 우시장에서 싸움을 걸고들 때마다 먼저 상대방에게 이렇게 묻군 하였다.      “너 운주동 일등씨름군 병완을 아느냐?”       상대방이 눈이 휘 동그래졌다.     “병완 힘장사 어떻게 아오?”       길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우쭐렁거리며 흰소리를 쳐댔다.       “병완도 다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놈이 술상 차려놓구 무플을 꿇고 두손이 발이 되게 싹싹 비니 가만놔뒀지.”       병완의 결의형제라는 말만 들어도 대부분 싸움꾼들은 무릎을 푹푹 꿇었다.      "형님, 눈이 있어도 태산을 알아보지 못했소. 용서하오.”     "그럼 술 한잔 내야지. 으흐흐."      한길수는 이렇게 낯선 싸움군들한테서 항복술 한잔 얻어마시고 개 잡은 포수처럼 어깨를 살구고 우쭐렁거리며 길거리를 싸다녔다. ㅎㅎㅎ                                         6.묵은 빚            처음에 한길수는 병완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자기 집에 들어 살게 했을뿐만 아니라 쌀도 십여 말이나 주었다. 그런데 병완이 이 산골 막바지에 집을 짓고 든 후부터 마을 인심이 병완에게 쏠리고 자기 말이 잘 서지 않았다. 그러자 길수는 날이 갈수록 병완이가 아주 불편하게 생각 됐다. 지어 그를 이 산골에서 쫓아내야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길수는 뒷짐을 지고 마루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곰방대를 홱 휘두르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그 놈에게 빚더미를 들씌워서 쫓아내야지.”       그는 중문 밖에 대고 소리쳤다.      “거 응삼이, 영팔이!”      “예꾸마!”      대답소리와 함께 응삼과 영팔이 마루아래에 뛰어왔다. 마루 위에 서서 불호령하는 번대머리의 우멍눈에서는 무서운 번개불빛이 번쩍였다.       “거 머슴꾼들까지 다 데리고 병완의 집에 가서 빚재촉을 하게나.”       “예? 우리가?”      응삼과 영팔은 겁기 어린 눈길로 서로 마주 쳐다보다가 머리를 뚝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뭣들 하는가! 얼른 떠나지 않고.”     땅방울 같은 호령소리에 누가 언감 거역하겠는가.     그들은 목안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해 놓고 마지못해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그들의 뒤 잔등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 항우 같은 병완이라도 견디기 어려울걸.”     길수는 곰방대를 휘두르면서 염소수염을 쓰다듬었다. 그의 눈길이 어디로 가면 어디에서 이글이글하는 불길이 타 번질 것만 같았다.      그는 마루 위에서 호랑이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주춤 멈춰 섰다.       “아니야! 그 물소 같은 병완을 응삼이 후릴 수 있겠는가! 내 직접 가봐야지.”      길수는 집에 들어가 벽에 걸어놓은 중절모자를 번대머리 우에 올려놓고 특제개화장을 들고 문 밖을 나섰다.     이때 정주간에서 한창 분칠하던 월선이 문을 벌컥 열고 쫓아 나왔다.      “여보, 괜히 자는 호랑이 콧구멍을 들쑤셨다가 무슨 경 치려고 그래요? 병완이 누군데?”      그래도 길수는 개화장을 홱 휘두르면서 큰소리를 땅땅 쳤다.       “그깐 놈이 언감 어쩔라고.”      그러나 월선은 두툼한 입술을 계속 너펄거렸다.      “코나 떼우지 말구 오세요.”      “그 주둥아리를 다물지 못할까!”      그 호령소리에 월선은 입울 삐쭉거리면서 정주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길수는 개화장을 휙휙 휘두르면서 득의양양해서 중문을 지나 대문 밖을 나갔다.       실개울을 건너 골짜기 막바지로 올라가는데 저 멀리 덩그런 팔간 초가집 앞에서 나무를 패는 병완의 소잔등 같은 잔등이 보였다.       벌써 응삼이 장부책을 옆구리에 끼고 영팔 등 10여명 머슴을 데리고 올라가더니 장부책을 펼치고 뭐라고 꽥꽥 소리치면서 손으로 병완의 낯에 대고 삿대 질 하는 것이 보였다.      “10년 묵은 빚을 올해 안으로 다 갚도록 하게나.”       그 말에 집안에서 창준과 기준이 등이 다 뛰쳐나와 입을 짝 벌렸다.       그런데 괘씸한 병완은 근본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끼를 휘둘러 나무만 팡팡 패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길수는 헐금씨금 숨이 바쁘게 달아올라가 꽥 소리쳤다.     “병완이. 빚 문서를 들었겠지?”     “흥!”     병완은 아니꼬운 눈길로 피뜩 길수를 보고는 계속 시퍼런 도끼로 나무를 팼다.     길수는 개화장을 짚고 서서 실돌피 같은 응삼 쪽으로 낯을 돌렸다.      “응삼이, 저 자식한테 장부를 불러줬는가?”      “예. 불러 주고 말구요.”      “아마 이 양반이 잘 듣지 못한 거 같네. 이 집 식구들이 다 듣게 그 10년 묵은 빚 장부를 다시 잘 불러주게. 아마 대대로 물어도 다 물것 같지 못할 거니까.”      “예. 알았습꾸마.”      응삼은 병완의 잔등에 대고 곡이나 하듯 빚 장부를 내리 읽었다.      “1903년, 아니. 1902년 노일전쟁 당시 12월 6일에 김병완은 일가식솔 열을 데리고 우리 주인님 한길수 씨의 집에 들어와 얹히어 살았다. 이듬해 1903년 9월 16일에 집을 짓고 나갔다. 열 식구 숙비를 계산하면 하루에 3원 50전으로 눅게 치더라도 280일이면 980원이라. 물 값은 하루에 10전으로 계산해도 28원이라. 변소사용세에 문턱세. 공 먹은 공기 세에 밟은 땅값까지 합치면 도합 67원 80전이라. 합계를 하면 총 빚은 1,075원 80전이라. 거기에 해마다 3푼 이자로 계산하면 10년이면 도합…”       “닥치지 못할까!”      그때까지 도끼로 나무를 팡팡 패던 병완이 시퍼런 도끼를 들고 돌아서면서 우레 같은 소리로 고함쳤다.       그 바람에 응삼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풀썩 물앉았다.       이때 한길수가 개화장으로 땅바닥을 쿡 찍으면서 한 발자국 나섰다.      “아하, 병완이, 사람이 빚을 졌으면 갚을 줄도 알아야지. 웬 고함질인가?”      “어쩌자고 이러오? 누가 이 골 안에 오겠다는 걸 오라 해놓구 지금에 와선 이게 무슨 짓이요?”      “아따. 아무리 결의형제라도 공 게면 공 게고 빚이면 빚이지. 그래 생떼를 쓰면 단가? 아름차하지 말고 천천히 갚도록 하오. 빚을 갚지 못하겠으면 이 집을 내놓고 내 개척해 놓은 이 마을에서 썩 물러가란 말이오. 그럼 그 산더미 같은 빚을 갚지 않아도 돼. 어험, 에헴. 헙. 쯧쯧쯧.”       “쳇! 그리 쉽지 않을걸!”        “어디, 두고 보자. 이 마을에서 배기는가?”      “나도 한마디 해두지만. 당신이 의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나도 사정을 두지 않을게요.”      “그저 이 자식을!”      약이 오를 대로 오른 한길수는 개화장을 휘둘러  내리치려고 하였다.     옆에 섰던 영팔이가 긴 마른 장작을 쥐여 병완의 어깨를 탁 내리쳤다. 장작깨비 툭 끊어나 푸르르 날아 저 멀리 땅바닥에 가서 떨어졌다.           병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떡 버티고 서서 영팔을 쏘아보았다. 다른 사람 같으면 장작개비에 맞았으면 진작 어깨뼈가 부러졌거나 푹 꺼꾸러졌을 것이다. 그러나 병완은 시퍼런 도끼를 떨어뜨렸을 뿐 까딱하지 않았다.     그는 뚝 부릅뜬 퉁방울눈으로 한길수를 쏘아보았다.     게다가 창준과 기준마저 괭이와 도끼를 들고 다가왔다.      창준은 키가 자그마하고 성질도 순한 편이었지만 기준은 아버지를 닮아 키도 크고 억대우 같이 생긴데다가 성깔이 아주 사나왔다.한길수는 숱한 사람들 앞인지라 순순히 물러설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개화장을 들어 병완을 힘껏 내리쳤다. 병완은 어느 결에 개화장을 받아 쥐어 비틀면서 길수의 허리를 감아 안아 둘러메쳤다. 길수는 오만상을 찡그리며 겨우 벌벌 기어 일어나 질겁한 나머지 개화장을 쳐들었다가 스르르 내리웠다.      그는 뜻밖에 성난 사자처럼 덤벼드는 병완을 보고 억지로 웃음을 지으면서 말투마저 고쳤다.       “허허, 어험, 병완이, 이러지 말게나. 우린 의형제기 아닌가! 영팔이, 자네도 그만하게. 병완이, 내 무정한 게 아니요. 자네가 열 식구를 데리고 근 열 달이나 살았으면 빚을 갚는 게 옳지!”     병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침을 퉤 뱉었다.     “그럼 내 당신네 헌 집에 있으면서 저 고래 등 같은 새 집을 지어준 목수공전은 얼마나 되는가? 내 당신네 집 농사를 10년이나 일전한푼 받지 않고 지어주건 어쩌겠는가? 그걸 3푼 이자로 계산하면 10년이면 얼마나 되는가? 우리 열 식구가 들어 산 것과 어느 게 더 많은가?”      그 말에 길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입이 쩍 벌어졌다가 딱 막혔다.      그는 남이 자기 신세를 진 것만 따졌지 자기가 남의 신세를 진것은 꼬물만치도 생각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한참만에야 길수는머리 돌았는지  제 쪽에서 오히려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야 자네가 우리 집에서 살면서 진 인정 빚에 못 이겨 한 일이 아닌가? 그래 의형제라는 게 그런 수고비까지 받겠는가? 배은망덕한 놈.”     병완은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어째 당신은 짝 시비만 하오?”     도리를 따지나 힘으로 싸워 보나 이기지 못하게 되자 길수는 시에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차듯 개화장으로 응삼의 엉덩이를 툭 치면서 고함쳤다.     “바보 같은 놈, 돌아가자. 이런 시비곡직 없이 무지막지한 놈과 더 말해봤자 본 전도 못 찾겠다.”     “허허허.”      “하하하.” 병완 일가 식솔들은 길수가 기 꺾여 돌아가는 낭패상을 보고 모두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마당을 감돌아 흐르는 물도 시원한지 쿨쿨 소리치면서 웃음 싣고 구름 싣고 흘러내려갔다. 그러나 웃는 애들 속에 서 있는 병완과 성희의 얼굴에는 수심에 찬 검은 구름이 스쳐지나갔다.     “아이고, 나 죽는다. 아이고, 허리, 다리, 팔이 다 아프구나. 좀 꽉꽉 문지르오.”     길수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구들에 마구 쓰러져 죽는 상을 했다.      월선은 길수의 허리를 문지르면서 비꼬아댔다.      “그래 숱한 사람들을 끌고 가서 빚을 받았는가요?”     “말도 말아. 병완 놈이 어찌나 우악스러운지 촉도 못 걸겠더군. 빚이야 갚지 않고 어디 견디는가 보라지.”     길수는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에이, 그 놈 새끼를 내 놔두는가 보지. 이 산골에서 살기나 하겠소. 아이고, 병완이 생각만 하면 골통이 뻐개지는 것 같다니까.”     그러나 월선은 영감의 허리를 문질러주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었다.     “내 이전에 뭐라 했어요? 소같이 우둔한 병완을 끌어들이지 말라는데도. 혹을 떼버리지도 못하고. 이젠 길러준 개한테 발을 물리게 됐구먼.”     길수는 번들이마를 뒤로 쳐들어 돌리면서 잔소리를 했다.      “에이유, 쓸데없는 잔말 말구 좀 꽉꽉 문질러.”     “그만하면 됐지. 어쨌다고 잔소린기여?”     그러자 번들이마는 아예 반듯이 돌아누웠다.     “안 되겠소. 거 부엌 여를 와서 문지르라 하오. 젊은 게 손에 힘이 더 있겠지.”     월선은 영감한테 쌍까풀눈을 흘기면서도 시끄러워 머리를 곁채로 돌렸다.    “얘, 부엌 여야. 여기 오너라!”    “예.”     곁채에서 부엌여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신을 작작 끄는 소리가 다가왔다.     월선은 집안에 들어서는 부엌 여를 쏘아보면서 욕부터 퍼부었다.     “에이, 저 망할 년. 주인이 아파 야단인데 인사말 한마디도 할 줄 몰라? 주리를 틀어놓을 년, 어서 나를 도와 주인님의 아픈 허리와 다리를 주물러 드려라.”      “예. 어데 모질 아픈가요?”      부엌 여는 구들에 꿇어앉아 길수의 허리를 꽉꽉 문질러주었다.     그제야 길수는 번들 이마를 베개에 붙이면서 두 눈을 사르르 감았다.      "그래, 그래도 젊은 게 손이 달라. 손에 힘이 있단 말이요.”     한참 후 번들이마가 눈을 번쩍 떴다.    “여보, 이젠 내 아픈데 없소. 조용히 자게 해주오. 은녀야, 거 냉수 한 그릇  떠오렴.”     “예.”     그제야 월선은 한숨을 호 내쉬더니 버릇처럼 또 두덜거리기 시작하였다.     “영팔이랑 큰소리나 쳤지. 병완 앞에서는 호랑이를 본 개 새끼처럼 주먹을 한번 휘두르지 못하고 꼬리 빳빳해서 달아나다니? 참, 기막힌 일이 아닌가요? 무용지물들을 한 무리나 기르는 거면 개를 기르겠어. 쯧쯧쯧.”     “시끄럽소. 정주간에 나가오.”     한길수는 월선을 활 밀어버렸다.     월선은 뒤로 밀려나면서 빈정거렸다.     “에이유,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찬다더니 이건 어데 가 꺾이고 누구하구 신경질을 써요? 흥!”      “썩 나가지 못할까!”     월선이 두덜거리면서 나가는데 부엌여가 냉수 한 그릇을 퍼들고 들어섰다. 길수는 비단요 우에 일어나 앉아 냉수를 받아 꿀꺽꿀꺽 마시고 사발을 주면서 부엌 여를 힐끔 쳐다 보았다.      어깨 넘어 치렁치렁한 쌍태 머리, 쪽 갈라 금을 낸 가리마아래 훤한 이마, 짙은 눈썹아래 물기 일고 정기 도는 한 쌍의 머루알눈, 주름 없는 말쑥한 얼굴, 꼭 닫힌 입술…     “후~”     길수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부엌 여는 길수의 눈길을 피해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물 사발을 들고 정주간으로 나갔다.     “후~”      그녀의 등 뒤에서 길수가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뜨겁게 들리었다.      이때 마당 쪽에서 신을 끗는 소리가 작작 나더니 응삼의 목소리가 울렸다.      “어르신, 어르신!”     번들이마는 미닫이를 활 열면서 “왜 그래?”하고 물었다.     실 돌피 같은 응삼이 어느새 집안에 들어와 길수의 귀에 대고 쑥덕거렸다.    “주인님, 지금 고을에는 일본 사람들이 득실거립구마. 일본 사람들에게 병완을 밀고해버리면 어떨까요?”    “쉿!”     길수는 입가에 손가락을 대더니 부엌 여를 힐끗 눈길질 했다.     “부엌 여야, 그만 문지르고 부엌에 나가 봐.”     부엌 여가 일어나 나가자 길수는 상을 찡그리면서 일어나 앉았다.    “일본 오랑캐 말인가? 흥!”    길수는 말 이빨 새로 흘러내리는 게 침을 쓱 문대고 이었다.    “건 신중해야 하네. 일본사람들이 그러지 않아도 전번에 저 뒤 산 수림을 보더니 목재가 욕심나 하더라. 자칫하면 호랑이를 쫓아내고 승냥이를 끌어들이는 격이 될 수도 있어.”     그제야 응삼은 길죽한 머리를 조아렸다.    “예, 그러고 보니 난 하나만 알았지 둘은 몰랐습구마. 그래도 주인님의 도량이 바다처럼 넓습니다. 해해해.”    이때 서울에서 공부하는 길수의 맏아들 철주가 트렁크를 들고 들어왔다. 학생모에 학생제복을 입은 철주가 늠름해 보였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길수는 아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입이 단통 쩍 벌어졌다.     “응, 그래. 서울에 가 공부를 하더니 시골 때를 말끔히 벗었구나. 말투도 서울말씨고.”     길수는 일어나려다가 엉거주춤 물앉았다. 허나 철주 뒤에 따라 들어서는 박단춘과 손자 녀석 명호를 보더니 꾹 참고 상을 찡그리면서도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철주와 박단춘은 명호를 데리고 절까지 올렸다.     “오, 그래. 일어나라.”    철주와 단춘은 일어나 정주간에서 들어오는 월선에게도 절을 올렸다.    “에이고, 요 내 새끼야.”    월선은 손자 녀석을 그러안고 핥을 상을 하였다.    단춘이 정주간에 나간 후 철주는 길수를 보면서 물었다.    “허리를 상했는가요?”     “응, 길러준 개한테 물렸다.”    “예?”    철주가 일어나 상처를 보려 하자 길수는 그만두라고 하고 나서 병완과 있은 일을 죽 이야기하면서 수를 대달라고 하였다.    길수와 응삼이, 아들 철주가 한자리에 앉아 쑤군덕거리기 시작했다.    앞마당 살구나무 위에서 참새 몇 마리가 짹짹거렸다. 마당개도 왕- 왕- 짖어댔다. 집 안에서는 세 사람이 뭐라고 떠들썩거리다가 웃고 떠들었다.                                                          7. 민족의 성산 백두산        치마봉 아래 산기슭은 벌써 울긋불긋 단풍이 들었고 마른 풀잎들이 선들바람에 흐느적거렸다. 영월동 앞의 적송과 백송, 미인송이 빼곡히 들어선 원시림과는 달리 치마봉 기슭에는 잡목이 빼곡히 들어섰다.     푸르른 하늘에서 매가 돌개바람에 휘감겨 날리는 연처럼 빙빙 선회하다가 줄 끊어진 연처럼 내리 꽂힌다. 이때라고 생각한 성칠은 누렇게 번진 풀 속으로 검둥이를 추겼다. 검둥이가 코를 풀 속에 파묻고 냄새를 맡으면서 내달리다가 매가 돌던 하늘아래에 가서 멈춰서더니 꼬리를 휘청휘청 저어댔다.     “킁킁!”     개 코 방귀 소리를 들으면서 성칠은 그리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웬걸!      알락달락 무늬 간 장 꿩 한 마리가 긴 꼬리털을 흐느적거리면서 까투리와 함께 뭔가 주둥이로 쪼고 있었다.      “휙~”      성칠이 휘파람을 불자 검둥이가 슬슬 그 자리를 피한다.      땅! 땅!      까투리는 폴싹 쓰러졌다.      푸드득!      총알을 빗맞은 장꿩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땅! 땅!     장꿩은 맥없이 내리 꽂히더니 풀숲에 퉁 떨어졌다.     검둥이가 씽- 풀숲 속에 달려나가  꿩과 까투리를 한입에 물고 되돌아와 꼬리를 저어댔다.     성칠은 장 꿩과 까투리를 받아 쥔 후 요도로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검둥이에게 주고 그물가방에 그 두 마리 꿩도 걷어 넣었다.     이젠 해도 숫구멍을 내리쪼이기 시작하였다. 그물가방을 툭툭 치던 성칠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멧돼지나 곰이나 호랑이라도 잡으려고 산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원시림을 걷고 걸어 어디까지 들어갔는지 짐작하기 어려웠을 때였다.      웬 일가?       불시에 수림속이 어두워지더니 때 아닌 안개가 뒤덮였다. 희끄무레하고 담담한 해 빛이 짙은 구름층을 겨우 뚫고 나왔는데 몽롱한 안개바다 속에 빨려 들어가 대지는 어둠속에 잠겨있다. 숨 막힐 듯이 구름 밑에 안개 밑에 지지눌린 산봉우리가 삼라만상을 두꺼운 안개 속에 감춰버렸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안개는 천길 절벽의 천년 이끼 낀 청석 낭떠러지를 보일락 말락 하게 씻어 올리고 있었다. 참말로 미묘한 절승경개에 성칠은 가슴 뿌듯해 혀를 끌끌 찼다. 그 바위 틈 사이로 노란 잔등에 토색 줄이 쪽 간 다람쥐가 깡충깡충 뛰놀다가 쪼르르 나무우로 기어오른다.      자오록하던 안개가 기암괴석에 빨려들어갔는지 수림 속에 스며들었는지 차츰 하늘이 개이었다. 그런데 9월말 날씨에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웬 일일까? 혹시 꿈을 꾸는 게 아닌가? )     성칠은 검둥개를 앞세우고 한참 눈 덮인 수림을 빠져나가니 수림이 끝나고 애나무가 자란 앞에 눈 덮인 깎아지른 절벽이 앞을 막았다. 그는 절벽을 톺아 올라 넘으면 사냥할 산짐승들이 있을 것 같았다. 절벽너머 세상을 보고 싶은 호기심과 충동에 의해 그는 돌 뿌리를 잡고 바위틈에 손톱과 손가락을 박으면서 눈 뿌리 아찔한 천길 절벽을 톺아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절벽에 부석부석한 돌 뿌리는 훌렁 빠져 나왔다. 결국 그는 한길 너머 올라갔다가도 눈 덮인 땅바닥에 퉁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래도 포기할 성칠이 아니었다. 그는 완강한 의력으로 손가락이 긁히어 피가 흘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의악스레 절벽을 톺아 올랐다. 검둥개는 절벽에 올라가지 못하고 절벽 우에 올라간 주인을 쳐다보면서 “왕왕!” 짖어댔다.     해님이 방실 웃음 지을 때 칠성은 피 나는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절벽 앞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의 눈앞에는 백설을 뒤집어 쓴 산봉우리들 복판에 웬 바다같이 넓고 푸르른 천지물이 나타났다.     (하늘에 닿은 높은 산봉우리 복판에 바다와 같이 넓은 푸르른 천지가 있다니? 참 괴이한 일이 아닌가!)     성칠은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말로 인간세상에서 보기 드문 절승경개었다. 눈 뿌리 아찔하게 솟은 산봉우리들이 눈꽃노을을 쓰고 그에게 손짓하고 있었고 발밑에 있는 맑고 푸른 거울 같은 천지물이 파란 빛으로 그를 맞이해 주었다.     “이게 아버지 늘 말씀하시던 천하절승 백두산이 아닌가?”     성칠은 두 손을 입가에 벌려대고 목청껏 고함쳤다.      "야- 백두산아! 내가 왔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백두산에 성칠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메아리쳤다. 검둥개도 벼랑아래에서 “왕 왕 왕!” 하고 요란하게 짖어댔다.     성칠은 백두산 꼭대기의 청신한 공기를 가슴 뿌듯이 한껏 들이마시고 자기가 선 봉우리를 둘러보았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백두산인가! 백설이 뒤덮여있는 산봉우리아래 얼음굴이 숭숭 뚫린 곳에서 선인이 금단을 구웠다는 관면봉, 안개와 구름이 감도는 저 가마 덮개와 같은 화개봉, 독수리의 두 날개와 같은 예리한 두 암석이 치솟은 천곡봉, 천층만층 절벽으로 이루어진 신비석 같은 용문봉, 용이 드나드는 문이었다고 하는 용문봉 남쪽으로 하여 빨간 노을이 비낀 자하봉, 눈 밑에 절벽이 드문드문 검푸르게 치솟은 철벽봉, 옥기둥처럼 서있는 석벽 우에서 은실 같은 하얀 실 폭포가 쏟아져 천지에 흘러드는 옥주봉, 잔등에 사닥다리폭포를 업고 있는 제운봉, 눈을 뒤집어쓴 호랑이가 웅크리고 엎드려 있는 것 같은 와호봉, 하늘에 장검을 찌른 것 같은 백운봉…      성칠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백두산의 절경을 둘러보았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어떤 봉우리는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바위에 날아내려 앉은듯하고 어떤 봉우리는 용녀가 거울을 마주하여 머리를 빗는 듯했다. 어떤 것은 흉측한 사자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원숭이가 장기 쪽을 들고 앉아 있는 것 같았으며 어떤 것은 큰 눈을 부릅뜬 백발 로인과도 같았다.      천변만화하는 백두산의 하늘에는 안개가 또다시 뭉게뭉게 피어올라 뭇산 봉우리들에 베일을 씌어 주더니 스르르 사라졌다. 갑자기 까만 구름이 서북쪽으로부터 둥둥 떠오더니 천지 못 속으로 스며들었다. 뒤이어 동남쪽으로부터 흰 구름송이가 떠올라 천지를 한 바퀴 빙 돌더니 천지 못 속으로 들어갔다. 한참 후에 흰 구름과 검은 구름이 천지 못 속에서 불끈 솟아오르더니 한데 뒤섞여 타래 쳐 오르더니 우르릉 꽝꽝 하고 우레 소리가 울리고 번개가 번쩍였다. 그것은 똑 마치 서북쪽의 흑룡과 동해바다의 백룡이 천지의 용과 천지에서 만나 잔치를 벌리었다가 영토분쟁이 생겨 싸움판이 벌어 것 같이 보였다. 뒤이어 하늘에서 눈 덮인 백두산과 퍼런 천지에 밤송이 같은 박재를 마구 쏟아부어댔다.        “아니! 이거 눈 덮인 천지간에 우박이 쏟아지다니!”      칠성은 놀란 소리를 지르면서 그물망태기를 들어 우박을 막았다.      아, 천하절승 백두산! 백두산 열여섯 봉우리는 하늘아래 어깨 겯고 우뚝우뚝 솟아 금수강산을 지켜선 대장부들 마냥 어깨 겯고 천지의 물을 굽어보고 있었다.      성칠은 청신한 산 공기를 마음껏 가슴 뿌듯이 들이켜고 나서 백두산의 천하절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전설에 의하면, 먼 옛날에 한 도인이 하루는 눈이 뒤덮인 절벽을 내려 천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헌데 못 속에서는 몇 마리의 잉어가 새빨간 꼬리를 하느작거리면서 헤염쳐 다니고 있었다. 도인이 잔파도에 들어서 잡으려 하니 그 고기는 하느작거릴 뿐 달아나지 않아 단번에 붙잡혔다. 이어 또 다른 한 마리를 잡으려고 하다가 꿈꾸던 도인은 발이 미끄러져 물에 쑥 빠져 들어가 다시 나올 수 없었다. 그가 바위를 붙잡고 백 길을 더 내려가니 돌층계가 사다리처럼 놓여있었다. 사처로 두리번거리며 여겨보니 전각과 용을 새긴 옥기둥이 금빛이 반짝거리는데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가 한가운데 화려한 궁전으로 들어가니 백발이 성성한 한 로인이 수정 침대 우에 누워 우레 소리같이 요란하게 코를 고르고 있었다. 도인은 더 앞으로 못 다가가고 옥전에서 뒷걸음을 치다가 돌아서서 못 속에서 헤어 나오기 시작하였다.       한 백발자국 와서 머리 돌려 궁전을 바라보니 오색영롱한 것이 눈을 부시면서 은파 속에서 번쩍이는 것이었다. 도인은 사지 나른해지면서 맥이 없었다. 그는 돌층계에 기대서서 숨을 돌렸다. 그러나 온 몸이 한 토막의 나무와 같은 감이 들더니 파도에 따라 둥둥 뜨면서 불씨에 잠이 오는 것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도인이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그의 곁에 사냥꾼 둘이 서 있었다. 눈을 번쩍 크게 뜨고 바라보니 자기는 이미 승자하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두 사냥꾼은 못에서 한 사람이 둥둥 떠오자 원래는 서쪽비탈에서 동쪽비탈에로 헤엄쳐 가는 사람인가 했는데 건지고 보니 못에 빠진 도인이었다고 하였다. 사냥꾼에 의해 구원된 도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천지에 용궁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고 한다. 성칠과 검둥이는 넓은 보천석 위에 올라가 앉아 한참 쉬다가 승자하를 따라 내려갔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천지 용궁에는 용왕의 다섯 마리 태자교룡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온 몸에서 린광이 번쩍이었는데 바람을 불러오고 비를 몰아 올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 해 봄, 배꽃이 키 다툼하며 피어날 때 이 다섯 형제는 가만가만 못 우에 떠올랐다. 아, 보지 못했으면 몰라도 이 그림과도 같은 아름다운 풍경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구름과 안개를 잡아타고 백운봉에 올라 천지의 물에 굴절돼버렸던 열여섯 봉 절승경개를 보고 완전히 도취돼버렸다.       그들이 지난 자리에는 다섯 갈래 깊고 깊은 골짜기를 남겼다. 그러나 봄빛은 좋으나 오래있지 못하게 됐다. 맏이는 사형제를 데리고 용궁에 되돌아가려 하였다. 그중에서 삼태자만은 인간춘색에 미련을 두고 도주에 슬그머니 사형제를 떨어져 달아났다.      꽈르릉!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두 산봉우리가 갈라지면서 한 가닥 빛이 서북쪽으로 날아가고 깊고 깊은 협곡이 하나 생겼다. 하여 천지의 물은 그 협곡을 따라 흐르게 되였으며 은파가 번쩍거리게 되였다. 이것이 바로 성칠이가 본 오늘의 승자하인 것이다.     그 후 셋째태자 용남은 용궁에 오래간만에 돌아왔다. 용왕이 그를 용궁의 규례를 어겼다고 쫓아버리자 배 한척을 무어가지고 그 우에 앉아 승자하를 따라 동해 바다 속의 용왕을 찾아가려고 하였다.      원래 천지 용왕과 형제간인 동해 용왕이 이 소식을 듣고 맏아들을 보내왔다. 천지동쪽으로 커다란 흰 구름송이가 날아오더니 셋째태자 용남이가 탄 배가 머무른 승자하 상공에 둥둥 떠 내려왔다. 구름 속에서 숱한 채색구름이 내려왔다. 그것들이 차츰 오색찬란한 비단옷을 입은 선녀로 변해 내려와 용남의 둘레에 달려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그를 옹위하였다. 뒤이어 흰 구름이 둥둥 떠내려와 용남과 선녀들을 감싸더니 하늘로 솟아올라 동해바다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용남이가 탔던 그 배는 주인이 없어 방향을 잃고 물길에 떠밀려 승자하 동쪽 기슭에 걸쳐 있었던 것이다.       성칠은 썩은 배를 총탁으로 두드리면서 개탄하였다.       “어허, 네 처지 가련하구나. 주인 잃고 물에 밀려 바위 우에 걸쳤으니까. 제 어이 동해바다에 떠가서 만리 창해를 헤가르며 달리랴. 오늘은 썩은 나무로 돼 어이 하여 후세사람들의 의논거리로 돼 답답한 한탄만 자아내는가!"      성칠은 바위를 부시면서 소리치며 급물살을 타는 승자하를 따라 한 3 리를 내려갔다. 갑자기 발밑에 우당탕퉁탕 천둥소리와 같은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천천히 바위 돌을 잡으면서 절벽 굽을 따라 내려가면서 보니 백길 절벽에서 거센 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아하! 이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늘 외우던 민족의 성산 백두산의 폭포구나!”      백설 같은 폭포수는 눈사태가 무너져 내리는 듯이 청석옥석을 부시며 쏟아지고 있었다. 그 절경은 마치 흰 용 두 마리가 백설을 쏟아 붓는 것 같기도 하고 흰 한복을 입은 백화암의 궁녀들이 절개 굳게 뛰어내리는 것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그 맑은 물은 부서져도 흰 물 바래로 쏟아지고 물갈퀴와 안개를 사처로 펼치면서 아치교처럼 칠색무지개를 꽃피웠다. 아마 견우와 직녀도 여기 아름다운 아치교 같은 칠색무지개를 보면 은하수에서 만나 부둥켜 안고 울기 전에 먼저 여기 백두 폭포에 와서 아름다운 절승경개에 취해 웃고 떠들면서 놀리라!       폭포 옆 절벽 길을 내린 후 성칠은 한숨을 후- 쉬면서 폭포를 돌아다보았다.      “아, 참말로 백두폭포는 천하절승이구나.”       성칠은 폭포와 그 주위의 절벽을 둘러보면서 눈 덮인 바위 우에 앉아 숨을 돌렸다. 그런데 사냥꾼 성칠은 별스럽게 노린내가 어디선가 풍겨와 코를 간질이는 것을 발견하였다.      “왕 왕 왕!”     성칠은 대뜸 주위에 뭐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사냥총을 들고 날카로운 눈길로 검둥개가 짖는 쪽을 바라보았다.      “에크!”     그리 멀지 않은 너럭바위 우에 얼룩호랑이가 우뚝 서서 불지가 뚝뚝 떨어지는 눈깔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성칠이 사격거리를 줄이면서 허리를 구부정하고 앞으로 나갈 때었다.      “따 웅!”      백두산이 떠나갈듯이 호랑이가 울었다. 호랑이는 성칠이 다가가자 팔뚝 같은 꼬리를 휘젓다가 꼬리 빳빳해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성칠이 보니 호랑이가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어느새 산비탈에 오르더니 흐릿한 하늘과 눈 덮인 산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성칠은 맥이 진해 호랑이를 뒤쫓지 않고 검둥이와 함께 산 아래로 부랴부랴 내리기 시작하였다.      백두폭포에서 쏟아진 맑은 물은 집채 같은 청석바위를 부시면서 흰 물갈퀴를 일구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쏜살같이 흐른다. 마치 성난 백마가 수없이 청석바위우로 달리는 듯 쏴-쏴 소리치며 산기슭으로 굽이굽이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오- 이 강이 바로 천지 동북쪽에서 흐르는 백하겠구나. 저 내륙에 가서는 송화강이고.”     성칠은 눈을 빠드득빠드득 밟으면서 그 백하에 다가가 맑은 물을 두 손으로 퍼 시원히 마셨다. 그러니 가슴에 백두 열여섯 봉이 솟는 듯 새 힘이 솟구쳤다.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백하는 천고의 원시림을 적시면서 흘러지나 동북평원을 적시면서 송화강으로 탈바꿈하여 나중에 흑룡강과 우쑤리강과 합쳐 동해바다로 흘러들어간다고 했다. 백두산 동남쪽기슭에서 발원한 700리 두만강은 동해바다로 흐르고 백두산 서쪽기슭에서 발원한 푸르른 압록강은 서쪽으로 흘러 발해와 황해 어구에 흘러들어간다고 했다.)      그렇다, 송화강과 두만강, 압록강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원동의 이 땅을 적시면서 흐른다. 더 많은 수난사를, 더 높은 소리로 두런두런 아야기를 나누려고, 민족의 빛나는 력사를 더 높이 노래 부르려고 골짜기 어구에서 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더 크고 세찬 강을 이루면서 바다로  몇천년, 아니, 몇만년 줄곧 흘러갔다.지만 끝내는 넓은 바다에 가서 만나서 서로 부둥켜 안고 바다에 오는 길에 수많은 수난을 겪은 이야기하면서 대성통곡치지 않는가.      백두산은 줄기줄기 뻗어 개마고원의 수많은 산과 태백산과도 이어졌고 북으로 줄기줄기 뻗어져 대흥안령과 소흥안령과 이어졌으며 서북쪽으로 료동 반도와 발해에까지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동으로는 장고봉을 넘고 우쑤리강을 넘어 저 동해에까지 천고의 비밀을 안고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      이때 검둥이가 또 앞으로 뛰여나가면서 “왕!왕!” 짓기 시작했다.     성칠은 어께에서 총을 내리어 개가 짖는 쪽으로 겨냥하면서 살펴보았다. 금방 달아났던 호랑인가고 경계하였는데 웬 사슴이 절룩거리면서 김이 물물 나는 강물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게 웬 떡이냐!)    “검둥아! 축!”     성칠이 지령을 받고 검둥이가 사슴을 쏜살같이 쫓아갔다. 사슴은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면서 절룩거리며 눈밭에서 도망쳤다. 그러나 상한 다리를 가지고 뛰면 어디로 뛴단 말인가! 검둥이가 사슴을 거의 따라 잡을까 말까 할 때 사슴은 김이 물물 나는 강물에 풍덩 뛰어들어 건너갔다.     웬 일일까?     그 김이 물물 나는 강물을 건너더니 사슴은 다리를 절룩거리지 않고 쏜살같이 달아나는 것이었다. 검둥이가 아무리 쫓아가도 거리는 좁혀지기는커녕 점점 멀어졌다.      “제길! 그럴 줄 알았더면 총을 갈겼겠는걸.”      성칠은 닭 쫓던 개 지붕을 쳐다보듯 하였다.      “검둥이야! 돌아오너라. 호랑이라도 만나겠다.”      검둥이는 꼬리를 흔들거리면서 뛰어왔다. 사슴을 놓쳐 미안하다는 듯이 검둥이는 대가리를 눈밭에 파묻을 상하면서 엎드린 채 끼깅거렸다.     “괜찮아! 어서 내려가자! 날이 어두워지는구나!”     백두산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고 풍설이 일면서 무서운 귀신의 곡소리와 같은 비명소리를 내고 있었다.     성칠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골짜기를 따라 내려갔다. 미끄러져 넘어지면 일어나고 허기지면 그물 속에서 꿩 다리를 빼서 검둥이와 함께 끊어 먹고 갈증이 나면 눈을 한 움큼 움켜쥐어 먹으면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힘겹게 산 아래로 걷고 또 걸었다.     마가을 해는 빨리도 지고 있었다. 벌써 해는 빛을 거둬가지고 물러서고 어둠이 원시림에 도사리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공포가 휘파람을 불려 여기저기 수림에서 으르릉거리는 이리떼들의 소리와 무시무시한 죽음의 노래를 연주고하고 있었다.      
17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 댓글:  조회:3685  추천:6  2015-03-25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1권                              김장혁 저                                                                                    제1장 천하장사와 양반집 아들                       1.물레방아 집 힘장사        희끄무레하고 담담한 해가 짙은 구름층을 겨우 뚫고 나왔다. 한줄기 밝고 강한 햇빛이 금빛을 반짝이며 어둠침침한 수림 속을 부채살처럼 비춘다. 그것도 잠간, 희미한 해빛은 을씨년스런 수림을 춤추며 스치고 지나가더니 인차 몽롱한 안개와 구름  바다 속에 빨려 들어갔다. 대지는 또다시 어둠침침한 흑흑칠야를 방불케 하는 어둠 속에 잠겨 버렸다. 희미한 장막이 숨 막힐 듯이 금수강산을 짓누르며 구름 밑에, 안개 속에 지지눌린 영월동을 비참하게 짓밟고 있었다. 이윽고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실로 미묘한 안개 속 수림바다의 절승경개를 자랑하려는 듯이 낙낙장송이 천천히 드러나고 있었다. 여기저기 기암괴석이 안개 속에 륜곽을 드러내려고 애쓰고 있다.      가녀린 잔디도 돌덩이를 떠밀고 일어나려고 애처롭게 기지개를 편다. 흑흑칠야 수림 속에서도 진달래꽃, 철죽꽃, 모란꽃이 가냘프게 피어 방실방실 수줍게 웃음짓는다. 가녀린 나리꽃도 수풀 속에 숨어 이쁜 얼굴을  반쯤 내밀고 무시무시한 사위를 살피며 산바람에 가만히 한들한들 춤을 춰 본다.         “뻐꾹, 뻐꾹”       뻐꾸기 처량한 울음소리가 고요한 수림 속의 정적을 가늘게 깨우고 있었다.       따- 웅-       이때 산중 왕 호랑이가 아직도 자기 존재를 알리려는듯 수림 속의 고요를 뒤흔들면서 울부짖었다. 산새들이 놀라 나무가지에서 포로롱 포로롱 날아났다. 희미한 안개 속에서 이슬 맺힌 파란 풀을 뜯어 먹던 사슴 떼들이 놀라 수림 속으로 깡충깡충 달아났다.       안개가 차츰 개이면서 수림의 정체가 천천히 드러났다. 아름드리나무들을 꿰뚫고 저 먼 곳에서 하얀 파도를 끊임없이 일구는 퍼런 바다가 아득하게 바라보인다. 수십 길씩이나 되는 미인송들이 비탈을 덮고 산기슭까지 내려와 깎아지른 낭떠러지에 와서 주춤 멈춰 서 버렸다.     그 아래 좀 평평한 땅바닥에 통 소나무를 기둥으로 척척 세우고 지은 팔간집이 목수의 재간을 자랑하면서 우뚝 솟아있었다. 턱턱 갈라터진 뻘건 기둥들은 이 집이 지은 지 퍽 오래됐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 싶었다. 개마고원기슭 삼림 속에 자리 잡은 영월동 제일 서쪽 집은 산골의 독특한 멋을 피우는 듯이 통나무 굴뚝이 지붕보다 훨씬 높이 솟아 있었다.        건뜻 들린 지붕과 추녀 너머 뒤 산골짜기에서 맑은 벽계수가 청석옥석을 부시면서 새하얗게 물갈퀴를 일구며 쿨쿨 쏟아져 굽이쳐 흘렀다. 맑은 벽계수는 집 앞으로 굽이쳐 흐르다가 물방아 함지를 힘 있게 친다. 그 맑고 힘 있는 물을 맞아 물방아가 세차게 돌면서 쿵더쿵 쿵더쿵 쌀 방아를 찧는다.      물방아 공이가 쿵 하고 방아 호박 안의 쌀을 치고 건뜻 쳐들리면 옆에 오또기처럼 쪼크리고 앉은 성칠의 아내 하옥이가 방아 호박 안에 흩어진 쌀을 방아 호박 복판에 쓸어 모아 놓곤 하였다. 흰 한복을 입은 김하옥은 세월과 생활난에 부대끼었지만 아직도 그제 날   예쁘던 얼굴이 엿보였다.       복슬복슬하고 걀쭉한 얼굴에 버들잎같이 굵직한 눈썹, 정기 도는 어글어글한 두 눈, 시골 아낙네답지 않게 빨갛고 얇은 입술, 어디를 보아도 산골에서 감자를 파먹고 사는 여인답지 않게 예뻤다.        쿵더쿵 쿵더쿵.       방아소리가 절주 있게 울린다. 시어머니 리성희와 며느리들인 하옥과 곱단이, 사련은 추석맞이떡가루준비에 바빴다. 굴뚝 저쪽 산기슭에서는 키가 훤칠한 김병완이 지게에 땔나무 대여섯 단을 해지고 허리를 구부정하고 내려 왔다.       혈기 왕성한 벌건 얼굴에 짙은 눈썹아래 이글이글 빛나는 눈, 우뚝 솟은 코에 두툼한 입술, 실로 잘 생긴 사내대장부였다. 쩍 벌어진 어깨라든가 소다리 같은 팔, 큼직한 손을 보면 힘을 쓸 사내대장부라는 것이 엿보였다. 하긴 그는 나무를 하러 가면 근본 낫이나 도끼 같은 것을 가지고 가는 법이 없었다. 빈 지게에 바 줄을 얹어 지고 가면 다였다. 어진간한 팔뚝 같은 나무도 밑둥을 거머쥐고 어깨를 들이대고 “윽.” 하고 들이밀면 뚝 부러져 나가곤 하였다.       “헤이 차!”       병완은 지게를 벗어 나무무지에 기대여 놓고 머리 수건을 벗어 먼지를 툭툭 털고 얼굴과 목의 땀을 쓱쓱 닦아버리고나서 나무 잎도 수건을 휘휘 휘둘러 털어 버렸다. 검둥이는 두 다리사이에 대가리를 파묻고 마당에 엎드려 있다가 껑충 뛰어 일어나 주인에게 달려가 앞발로 주인의 품을 짚으면서 "끼잉-" 하고 서적을 부렸다.      “이 놈 개, 저리 가!”       검둥이는 땅바닥에 뛰어내려 서서는 “끼깅” 거리면서 병완의 바지를 들추면서 코 김을 불어넣었다.        병완은 검둥이가 귀여워 마디 굵은 다섯 손가락으로 검둥이의 뒤 덜미를 썰썰 어루만져주었다.       이윽고 병완은 검둥이를 밀어 보내고 나무 단을 풀어 토막나무 위에 올려놓고 시퍼런 도끼를 휙휙 휘둘러 잔 나무들을 팡팡 팼다. 맏아들 성칠은 사냥을 가고 없었고 둘째아들 창준과 셋째아들 기준은 나무 짐을 메고 오더니 나무를 패서 무지기 시작하였다.         성희는 방아를 다 찧은 떡가루를 버치에 담아 들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나무를 패는 남편과 아들들을 보고 반색하였다. “땔나무를 많이 해 와서 추석을 잘 쇠겠어요.”        성희의 본가 집은 원래 경상남도여서 남대 말을 계속 하였다. 하여 여기 함경도 아낙네들은 그를 남도치 혹은 남대치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성희는 “그럼 너거는 고슴도친가 베."하고 웃으면서 말대꾸를 하군 하였다.        "이 산골에서 어데서 하얀 찹쌀을?"        성희는 부엌 칸으로 들어가면서 한숨 섞인 말을 하였다.       "보리 고개도 넘기 힘들었는데 어데 가 쌀을 얻었겠어요? 저 개울 건너편 칠백이네 집에서 떡가루를 내러 왔다가 한 대야 내주더군요. 호- ”          “그래도 작년 추석이겠소?”       병완은 손바닥에 침을 뱉어 양손을 쓱쓱 비비더니 도끼를 쥐여 나무를 팡팡 패서 훌훌 쌓아 놓았다. 한식경을 패니 나무토막이 무더기를 이루었다. 그는 나무토막을 와락와락 한 아름씩 안아 부엌에 들여갔다. 나머지 나무토막은 가로 세로 에를 얽으면서 척척 쌓아 놓았다.       병완은 원래 재간이 대단한 목수였다. 나무자도 없을 때에는 나무를 오른손으로 받쳐 들고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가늠해가면서 찍고 깎고 밀고 닦아 문을 짜면 문이 귀 간 곳이 없이 쑥쑥 들어가 맞았다.      그가 저 아래 산골 어귀 토성안집 부자 한길수 영감네 팔간대청을 지을 때 일이다.      병완이 한창 문을 짜느라고 대패질을 할 때다.      며칠 사이에 출입문에 창문을 10여개나 짠 것을 보고 한길수 영감은 길쭉한 말상을 가로 저으면서 우멍 눈을 껌벅이더니 미심쩍은 눈길로 병완이가 대패질 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창문 하나를 쥐고 어슬렁어슬렁 문틀 쪽으로 가더니 들어맞나 맞춰보았다. 그런데 이게 뭔가?! 창문이 문틀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병완이, 이걸 보게나. 숱한 문을 짜더니 이게 뭔가?!”       병완은 대패질을 그만두고 대패 틀 안의 대패 밥을 손가락으로 파내면서 이쪽에 눈길을 돌렸다.       “뭐 어쨌다고 그리 야단이요?”       “문이 문 틀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니까! 흥!”      그  말에 병완은 알만하다는 듯이 스적스적 다가가더니 창문을 들고 보았다. 그는 두말없이 창문 네 변두리의 먼지를 손으로 싹싹 닦고 입으로 푸푸 불어버리더니 창문을 들어 턱 맞췄다. 창문은 문틀 안에 들어가 딱 맞고 실오리만한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뒷짐을 지고 굿이나 보던 한길수 영감은 그제야 무릎을 탁 치면서 도리머리 질까지 하면서 통 어이없어 하였다.      마루 돌을 메여다 올릴 때다. 작은 마루 돌은 일군들이 다 메 올렸다. 이제 네 사람이 겨우 목도를 하여 겨우 수레에 실어온 엄청나게 큰 청석 마루 돌은 누구도 메기 싫어 뻔히 보고만 있었다.      “아니, 멍청해들 뭘 해? 엉? 당장 정문 마루 돌로 올려 앉히지 못 할까?!”      한 영감이 막대기로 땅바닥을 쿡쿡 찌르면서 땅방울같이 을러멨다. 그러자 여러 머슴들은 세줄 그물을 청석 마루 돌 밑에 들이대었다. 그러나 아무리 넷이 달려들어 한쪽 귀를 들어보려고 해도 움쩍하지 않았다.      “이봐라, 지레대로 떠들어라! 에이, 머리통은 뒀다 뭘 하느냐?”      칠백의 애비 덕성과 용칠의 애비 성팔이 목도채로 한쪽 귀씩 떠들어 겨우 큰 쇠줄그물에 청석 마루 돌을 담았다. 그리고 앞뒤에 둘씩 목도를 멨다. 그들 넷이 목에 손가락만큼 한 피 줄을 일구면서 상통을 찡그리며 목도를 떠 메여 드니 우드득 우드득 목도채에서 소리 났다. 그들 넷은 힘겹게 한발자국한발자국 대뜰 아래로 다가갔다.       앞에서 비칠거리던 덕성이 갑자기 푹 꺼꾸러졌다. 그러자 한영감태기는 씽 달려들어 벼락같이 을러메면서 덕성을 마구 막대기로 후려 갈겼다.      “손을 떼오! 남은 쓰러졌는데도 때리다니? 흥.”      반공중을 짜개면서 울리는 병완의 천둥 같은 웅글진 목소리.      “이 놈이, 뉘 하고 큰 소리냐? 제 집 머슴을 치는데 상관이냐?”      한영감은 막대기로 병완의 앞에 대고 휘휘 삿대질하면서도 비실비실 뒷걸음 질 쳤다.      “마루 돌을 옮겨가면 되지 사람을 칠 건 뭔가? 흥! 퉤!”      병완은 버릇처럼 손바닥에 침을 뱉어 쓱쓱 비비더니 팔 소매를 걷어 올리면서 성큼성큼 청석 바위 돌 쪽으로 다가갔다. 성팔과 덕성이 거들어주려고 하니 병완은 한손으로 밀어 부쳤다. 그는 숨을 길게 들이쉬더니 꿈틀거리는 용 같은 두 팔로 청석바위를 끌어안아 한쪽을 움쩍 쳐들어 어깨에 기대 세웠다. 그는 “끙” 소리와 함께 그 큰 청석 마루 돌을 어깨에 둘쳐 메고 엉덩이를 일으켰다.      한영감의 눈이 다 새 똥그래졌다.       “아니, 저게 사람인가? 황소인가?”       병완은 청석 마루 돌을 메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 대뜰아래에 슬쩍 내려놓았다.       쿵!       순간 바람이 쉭 일면서 먼지가 마루 돌 밑에서 일었다.       모두들 그 장면을 보고 입을 짝 벌렸다. 눈이 새 똥그래졌다. 그들은 어깨 먼지를 툭툭 터는 병완을 쳐다보았다.      손에 비지땀을 그러쥐고 뒤따라가던 덕성과 성팔 등 머슴들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들은 욱 병완한테 밀려가 함께 지레대로 청석 마루 돌을 바로잡아놓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이 영월동에서는 병완을 천하장사라고 혀를 끌끌 찼다…     성희는 병완이 패 들여온 나무를 아궁이에 꽉 쑤셔놓고 불을 그어댔다. 쏴- 소리와 함께 불이 일면서 구들 고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떡가루를 물에 반죽해 솥 안의 시루 위에 얹으니 이윽고 가마에서 김이 문문 났다.      시루떡이 다 돼 가는데 사냥을 나간 맏아들 성칠이 돌아오지 않았다. 병완은 마루에 걸터앉아 곰방대에 담배를 쑤셔 넣고 불을 붙여 물고 자꾸 산 쪽을 올려다보았다. 속이 탄 연기가 입안에서 꾸역꾸역 풍겨 나왔다.                 2. 곰과 생사박투      성칠은 추석을 쇠려고 사냥총과 요도를 차고 사냥에 나섰다. 하늘아래 첫 동리인 영월동을 벗어나 산등성이 몇 개를 타고 넘으니 무시무시한 원시림이 나졌다. 호랑이와 이리떼들의 굶주린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왔다. 무시로 들이닥칠 야수들을 경계하면서 성칠은 살금살금 원시림 속을 누비면서 헤쳐 나갔다. 그러나 점심이 되도록 꿩 꼬리도 만져보지 못했다.       “후~”      성칠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면서 사냥총을 푸른 이끼 낀 너럭바위에 기대 세워놓고 기대앉았다.      순간 노린내가 물씬 풍기어오면서 코를 찔렀다. 성칠은 노련하게 본능적으로 손을 사냥총에 가져갔다. 그가 사방을 두리번두리번 살펴볼 때였다.     “에크! 저게 뭐야?”      너럭바위 앞 낭떠러지에서 얼룩 곰 한마리가 커다란 바위 돌을 들고 앉아 있지 않겠는가.      어미곰이 쳐든그 바위 돌 밑에서 새끼 곰 두 마리가 짐승의 뼈다귀를 아드득아드득 널고 있었다. 이 놈의 곰은 짐승을 잡아 각을 뜯어 너럭바위를 겨우 들어다 짓눌러놓았다. 어미 곰은 새끼 곰들을 데려다 바위 돌을 들고 먹이고 있었다.      성칠은 민첩하게 바위 뒤에 숨어 사냥총을 허공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땅!       야무진 총소리가 원시림의 고요를 깨뜨리며 메아리쳤다.       순간 깜짝 놀란 얼룩 곰이 바위를 뚝 떨어뜨렸다. 얼룩 곰은 자기 새끼가 바위 돌에 깔려 죽은 것도 모르고 낑 하고 고함치면서 어디에 사람이 있나 껑충껑충 뛰면서 헤덤볐다. 그러나 바위 뒤에 숨은 성칠을 발견하지 못했다.      사람이 보이지 않자 어미 곰은 다시 돌아와 금방 떨어뜨린 바위 돌을 움쩍 들었다. 그제야 새끼가 바위 돌에 깔려 죽은 것을 발견하고 얼룩 곰은 꽥 삼림이 떠가갈듯이 비감하게 소리쳤다. 그 놈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올라 새끼 곰의 각을 앞발로 쭉쭉 뽑아 사처에 던졌다.      성칠은 너무 우스워 목구멍을 마구 떠미는 웃음을 겨우 참으면서 낭떠러지 아래를 살폈다. 얼룩 곰은 새끼 곰들의 각을 다 뜯어 사처에 쥐여 뿌린 후 끼깅거리면서 산중턱을 따라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래도 성칠은 얼룩 곰이 돌아올 까봐 아주 노련하게 낭떠러지아래 수림 속을 한식경이나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그는 얼룩 곰이 확실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새끼 곰의 각을 주으러 조심조심 내려갔다. 그는 주위를 예리한 눈길로 살펴본 후 아무런 기척도 없자 새끼 곰의 다리며 갈비뼈며 주섬주섬 주어 주머니에 넣고 아구리를 바줄로 꽁꽁 묶었다.        “끼깅!”        갑자기 등 뒤에서 얼룩 곰이 울부짖음 소리가 들려왔다.       성칠은 주머니를 활 던지고 사냥총에 손이 갔다. 몸을 홱 돌려보니 간 것 같던 얼룩 곰이 시뻘건 혀와 톱날 같은 이빨이 다 보이게 뾰족한 주둥이를 짝 벌리고 덮쳐왔다.       성칠은 총을 쏠 새도 없어 사냥총을 쥔 채 몸을 훌 날려 얼룩 곰의 잔등을 뛰어넘어 갔다. 얼룩 곰이 둔중한 몸을 훌 돌리면서 덮쳐들 때다. 성칠은 땅을 구르면서 척 나무 가지를 하나 잡아 쥐었다. 뒤이어 발을 우로 걸더니 쉭 나무우로 올라갔다. 얼룩 곰은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듯 나무 위를 멍해 쳐다보았다. 얼룩 곰은 원쑤를 갚으려고 악을 딱딱 쓰면서 나무를 안고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성칠은 나무 가지를 발로 구르면서 다른 나무 가지 위로 날아가 서서 사냥총에 총알을 재워 넣었다. 곰은 또 이쪽 나무에 따라와 아득바득 기여오르려고 악을 썼다. 그는 얼룩 곰이 가까이 엉금엉금 기어오르기를 기다렸다. 짝 벌린 곰의 아가리에 대고 “땅!” 총을 놓았다.       얼룩 곰은 아가리에 명중탄을 맞고 피를 튕기면서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둔중한 얼룩 곰은 아주 교활했다. 성칠이 사냥총을 안고 땅바닥에 뛰어 내렸다. 죽은 것처럼 너부러져 있던 얼룩 곰은 벌떡 일어나 성칠한테 덮쳐들어 사냥총을 덥석 틀어쥐었다. 성칠은 얼룩 곰에게 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꽉 틀어쥐고 안간힘을 다 썼다. 헛수고였다. 얼룩 곰은 아주 쉽게 사냥총을 빼앗아 뚝 끊어버렸다. 얼룩 곰은 아주 장난이나 칠 듯이 사람처럼 앞발을 들고 직립하여 덮쳐들었다. 그 찰나에 성칠은 옆구리에 찼던 보도를 쑥 뽑아 얼룩 곰의 숨통을 콱 찔렀다. 그런데 얼룩 곰은 날쌔게 오른 앞발로 보도를 콱 쳐버렸다. 뒤이어 얼룩 곰은 성칠을 안아 쓰러 눕히고 깔고 들어앉아 장난이나 치듯이 엉덩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성칠은 아무리 일어나려고 악을 써도 육중한 얼룩 곰의 엉덩방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성칠은 그만 기진맥진하고 말았다.       범에게 물려도 정신만 올똘히 차리면 살 구멍이 있다고. 성칠은 땅바닥에 떨어진 보도를 피뜩 보았다. 그는 너무 숨이 막히고 아파 상을 찡그리면서도 얼룩 곰이 엉덩이를 들 때마다 간신히 조금씩 보도 쪽으로 기어가 손에 보도를 덥석 잡아 쥐었다. 그는 보도로 엉덩방아를 찧는 곰의 사타구니 새의 불 중태를 힘껏 찔렀다. 한 번, 두 번. 연속 칼질에 얼룩 곰은 모진 비명을 지르더니 성칠의 팔을 앞발로 내리쳤다. 성칠은 머리를 옆으로 탈면서 날아드는 얼룩 곰의 앞발을 보도를 쥔 오른손을 들어 막았다. 그러나 날아드는 곰의 앞발을 피하지 못하고 팔을 썩 긁히었다. 순간 찢겨진 그의 팔에서 뻘건 피가 주르르 흘렀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얼룩 곰이 자기 쪽에 돌아앉는 순간 불 중태에 보도를 쑥 박아 넣고 마구 휘저었다. 얼룩 곰은 피를 콸콸 쏟으면서도 성칠을 깔고 들어앉아 놓지 않았다. 성칠은 몸을 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육중한 얼룩 곰에게 깔리어 몸을 뺄 수 없었다. 그때 난데없는 병완이 쏜살같이 달려오면서 고함쳤다.      “이 놈 곰놈아! 어디 죽어봐라!”      병완은 쇠 발족 같은 무쇠주먹으로 얼룩 곰의 대가리를 연신 떵떵 쳤다. 얼룩 곰은 눈 통에서 피가 마구 튕겼다. 얼룩 곰은 드디어 입을 쩝쩝 다시더니 몸뚱이를 홱 돌려 병완한테 달려들었다. 그때 병완은 어데서 그런 힘이 났던지 날쌔게 얼룩 곰의 잔등에 돌아가 곰의 목을 끌어안고 홱 뿌리쳤다. 성칠도 그 틈을 타서 보도로 목 아래 시허연 삼각형 명줄에 콱 박아 넣었다. 얼룩 곰은 병완의 부자 앞에 쿵 쓰러졌다.        병완은 육중한 얼룩곰에게서 눈을 떼고 성칠에게 눈을 돌렸다.         “괜찮니?”        “아이고, 아파 죽겠습니다.”       성칠은 피 범벅이 된 오른 팔을 감싸 쥐고 상을 찡그리면서 발로 곰을 툭툭 건드려 보았다. 곰은 대가리가 피 못이 된 채 꿈쩍도 하지 못하였다.       원래 병완은 무슨 감각이 갔든지 나무를 패서 다 쌓아놓자 맏아들이 근심돼 찾아 떠났던 것이다. 그는 반나절이나 찾아서야 여기서 곰에게 깔려 봉변을 당하는 성칠을 찾았던 것이다.       “얘, 그 긁힌 팔에 오줌을 눠라.”       “예? 피 나는데 오줌을 싸면 아리지 않습니까?”      병완은 성칠의 팔소매를 걷어 올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줌 약은 조상들이 물려준 밀방이다. 오줌은 소염을 해. 손을 벴거나 긁을 디뎠을 때 오줌에 불구면 인차 지혈이 되고 독을 뺄 수 있다. 자, 여기에 오줌을 눠라.”      성칠은 돌아서서 팔에 대고 오줌을 누웠다. 처음에는 좀 아린 감이 나더니 대번에 팔에서 흐르던 피가 멎고 아픈 감이 덜 났다. 참말 신기하였다.     병완은 옷깃을 쭉 찢어 성칠의 오른팔을 꽉 싸매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너의 노할아버지 김수종과 할아버지 김승중은 모두 대대로 이씨 왕조 궁중 어의였다. 한번은 왕실의 어린 왕자가 저 서울에 있는 창덕궁 뒤 산에서 뛰놀다가 묵은 나무 긁을 딛여 발바닥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아파서 발을 싸주고 땔, 땔 굴면서 대성통곡 쳤단다. 그래서 시종들이 그 어린애를 업고 어의인 너의 증조부한테로 찾아왔단다. 그때 너의 증조부는 미리 받아둔 오줌을 담은 그릇을 꺼내 오줌이라는 말도 하지 않고 그 왕자의 발을 불궈 주었단다. 그러자 대번에 피가 멎고 한 반시간 불구니 발에서 피가 더 나지 않고 애도 아프다고 더는 울지 않았단다. 그런데 후에 왕실의 어른이 치아가 통세 나서 증조부가 그 오줌 약을 입에 물게 했다가 들통이 나서 화를 입었단다. 미리 받아놓은 오줌이 없어서 증조부는 약방 뒤 문으로 나가 오줌을 눠서 도자기그릇에 쏟아 줬는데 그만 오줌이라는 것이 들통이 나서 곤장 20대를 맞고 궁중에서 쫓겨났단다. 그러나 그 왕실의 어른은 오줌을 입에 물고 치아 병을 치료했다는 말을 하면 왕실의 위엄에 손상이 갈 까봐 까딱 말을 내지 않았단다. 후에 왕의 동생이 그만 위병과 대장염에 걸려 항상 배를 끌어안고 땔, 땔 굴렀단다. 그래서 왕궁에서는 다시 증조부를 불렀으나 증조부는 다시 궁중에 들어가지 않았단다. 그러자 황궁에서는 만약 다시 왕궁에 들어오지 않는 날엔 구족을 멸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내렸단다. 그래도 증조부가 가지 않아서 대신 할아버지가 왕궁에 들어가 그 왕제의 동생을 치료해주었단다. 그런데 후에 또 왕의 동생에게 오줌을 대접해 위병과 대장염을 치료한 것이 드러나 할아버지는 황궁에서 곤장 50대를 맞고 쫓겨나고 말았단다.      “그런데 왜서 왕은 우리 증조부나 할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게야 더러운 오줌을 대접받았지만 병이 나았으니 죽이지 않았겠지.”      “그럼 왕궁에서 쫓지 말 것이지.”      “그러나 왕실의 위엄을 보이느라고 내쫓았겠지. 자 , 팔에다 한 번 더 오줌을 눠라.”     “할아버지가 계속 왕궁에서 어의를 했으면 우리도 서울에서 계속 살았겠는데. 참, 이런 산골에서 산단 말입니다.”     “얘, 우린 이 산골이 딱 제일이다.”      “글쎄 골안에서 살아도 아버지도 할아버지처럼 의사를 하면서 서울에서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큰아버지는 의사를 하지 않습니까? 아버지는 왜 하지 못합니까?”      “예로부터 맏이에게 재간을 물려주는 법이다. 난 병권형님의 의사공부 뒷시중을 하느라고 명천군 상우남면 운주동에 있을 때 어려서부터 일했단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가 힘이 센들 왕이 되겠니? 그래도 할아버지 김수종 대로부터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비방 책을 물려받은 병권형님이 더 잘 살게 됐지. 병권 형님네 큰집조카 관준이나 어린 큰집손자 형내까지 대대로 그 밀 방을 이어받아갔다. 나는 힘깨나 쓰니까 씨름판에나 돌아다녀 황소나 타고 말았지. 다 팔자 소완이지. 난 네가 맏이지만 사냥하는 재간밖에 물려 준 게 없다. 둘째 창준이나 셋째 기준에게는 물려준 재간이 하나도 없다.””      “아버지 힘을 물려받았으면 됐습니다. 허허허.”      “그래?”     병완은 해를 피뜩 올려다보더니  뒤 말을 이었다.      “가을해는 짧기도 하고나. 해지기 전에 집에 들어서지 못하겠다.”     병완은 성칠이가 오줌을 팔에 다 누자 천으로 싸매주고 나서 3백 근 되는 곰을 척 들러 메더니 앞에서 산아래로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성칠은 보도를 허리춤에 찬 후 왼손에 총을 주어들고 뒤따랐다. 아버지의 잔등에 척 내리 드린 곰의 반 몸뚱이와 사람 발 같은    곰의 발을 보면서 성칠은 아버지의 근력에 저도 몰래 혀를 끌끌 찼다.      그들이 마지막 산등성이에 올라섰을 때에는 그들의 그림자가 몇 백미터 되게 길어보였다. 산들도 긴 그림자를 남기면서 영월동을 뒤덮어 놓고 있었다.       이때 검둥이가 뛰어와 꼬리를 휘휘 저으면서 끼깅거리며 그들 부자를 반겨 맞았다. 원래 성칠은 사냥할 때면 검둥이를 데리고 다녔지만 오늘 데리고 가지 않았다. 한 것은 검둥이는 쩍 하면 조심하지 않아 꿩이랑 날아나게 하는 폐단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 곰에게 물린 성칠은 검둥이를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을 여간 후회하지 않았다.      (검둥이를 데리고 갔더라면 되돌아선 곰의 자취를 미리 알 수 있었을 걸.)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도 마지막 황혼 빛을 뿌리면서 구름까지 태우는 듯 저녁노을을 붉게 불태웠다.                   3.달밤의 북장구소리       그들이 집에 돌아오자 성희는 성칠의 상한 팔을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 성칠의 아내 하옥은 부엌쪽으로 돌아서서 저고리 고름으로 눈 굽을 찍었다.     드디어 하옥은 눈물을 훔치고나서 얼른 치마자락을 쭉 찢어 달려나와 성칠의  팔을 싸매주었다.     성칠은 히죽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어머니, 괜찮아요. 아버지가 오줌 약을 쓰라 해서 지혈시켰어요.”     "그래, 오줌은 참 좋은 약이지. 나도 한산 이 씨 가문에서 이 영월 김 씨 가문에 들어섰을 때에는 네 할아버지 오줌 약을 곧이듣지 않았던 거야. 후에 써보니 참 좋은 약이데. 나도 한번은 나무하러 갔다가 생 긁을 밟았어. 건데 할아버지 말씀대로 따뜻하게 덥힌 오줌에 발을 잠그니 인차 지혈되고 소염 되잖았겠나? 자, 빨리 집에 들어가 이 팔의 상처를 오줌 물에 씻어."      어머니 말에 성칠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내 하옥도 뒤따라 들어갔다.     병완은 마당에서 곰을 튀 하면서 오줌에 아들의 팔을 씻어주는 며느리를 보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한 식경 후 병완은 곰을 다 튀를 해 각까지 뜯어 얼마간 갈라 바깥에 임시로 건 큰 가마에 넣었다.      그때 동산마루 소나무 숲에 구리바라 같은 둥근달이 걸려 영월동에 금빛을 내리비췄다. 둥근달은 밝은 얼굴을 내리드리워 성칠 일가의 동정에 살폈다.      병완은 곰의 각을 뜯다가 기준을 보고 부탁했다. “저 개울 건너 덕성과 성팔을 놀러 오라고 해라. 저 토성 안 한길수 주인영감도 오라고 해라. 곰의 고기 생겼을 때나 함께 한잔 하야지.”       “예. 알았습꾸마.”     기준은 인차 개울 건너로 뛰어갔다.      이윽고 이웃들인 덕성과 성팔이 등이 느릿느릿 걸어왔다.      “아따, 이 집에서는 무슨 일로 이렇게 초저녁에 온 동네가 떠나가게 야단법석이오?”     성팔이 길쭉한 얼굴을 잔뜩 쳐들고 오면서 하는 말이다.     병완은 바깥 부엌아궁이에 나무토막을 넣다가 호랑이 몸뚱이 같은 몸을 일으키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게나. 우리 맏이가 곰 한 마리를 사냥했는데 나눠 먹자고.”     얼굴이 네모 둥글하게 생긴 덕성은 코까지 벌름거리면서 사람좋게 웃었다.     “흠흠, 무슨 구수한 냄샌가 했더니 곰의 고기 익는 구수한 냄새구먼. 허허허.”      "건데 왜 한길성인 안 보이는가?"      병완은 기준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한영감이 집에 없데?"    기준은 서성거리며 대답했다.    "있습데. 건데 가난뱅이들 하구 안 논답더구마."    "뭐라고?"    "흥!"     덕성과 성팔은 콧방귀를 뀌었다.      병완은 주춤 일손을 멈췄다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어느새 병완은 다리 두개씩 넣은 마대를 덕성과 성팔의 앞에 척 가져다 놓았다.     “자, 많지 못해. 가져다 먹게나.”      “덕분에 잘 먹겠소.”      덕성과 성팔이 가려고 하자 병완은 말렸다.      “그걸 가져다 두고 인차 와서 곰의 고기에 한 잔씩 마시이요.”      “이 집 아주머니 거룬 막걸리가 시원하던데. 곰의 고기에 시원히 마시지 뭐.”      성희가 생글 웃으며 반겼다.      “그래요. 어서 갔다가 동서랑 식구들을 다 데리고 오세요.”      “그럽세.”      덕성과 성팔은 흐뭇한 지 코 노래까지 흥얼흥얼 부르면서 곰의 다리 든 마대를 메고 둔덕 아래로 내려갔다.     성희는 남편을 보고 “저 고개 너머 시아주버니네 식구들은 어쩔까요?” 하고 물었다.      병완은 좀 궁리하다가 두툼한 입을 열었다.      “내일 제사에 가겠는데 이 밤에 어떻게 승냥이들이 욱실거리는 령 길을 형님이 어떻게 넘어온다고 그러오? 저 창준을 보고 곰의 고기를 가져가게 하기요.”      “예, 알았어요.”     성희는 곰의 고기보따리를 챙겨 둘째아들 창준에게 줘서 보냈다.     “령 길을 주의해서 갔다 오너라.”     “예, 이걸 보세요.”      창준은 방망이를 들어보였다. 그래도 성희와 둘째며느리 곱단은 못내 시름을 놓지 못하는 눈치였다.      “늦은데 돌아오지 말고 큰집에서 쉬고 내일 그 길로 산소에 오너라.”     “예. 알아서 하겠습니다.”     병완은  “어째, 한 영감은 까딱 하지 않을까?” 하고 의아한 눈길로 개울 건너 토성 안의 덩실한 팔간 집 쪽을 내려다보았다.     “어이구, 저 한영감댁이야 부자노라고 우리 같은 가난한 사람들과 한자리에서 술을 마시자 하겠어요?”     성희  말에 병완은 “글쎄-” 하고 말하면서 곰방대에 담배를 채워 붙여 물고 뻑뻑 빨았다.     “그래도 미운 걸 떡을 더 주라고 기준에게 곰의 고기를 좀 들려 보내오.”     “예. 알았어요.”     성희는 내키지 않았지만 수긍하였다.     그는 언제 남편의 말을 듣지 않은 적이 없었다. 욱 하면 벽이라고 차고 나가는 남편의 성미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또 남편의 말을 순순히 듣는 것을 숙명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때 병완의 큰며느리 김해 김 씨 하옥과 둘째 며느리 전주 김 씨 곱단이, 셋째며느리 개성 최씨 사련은 벌써 서늘한 마당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큰상 세 개를 벌려놓고 식기며 수저를 가져다 놓느라고 치마 자락을 날렸다. 기준의 처 사련은 가마뚜껑을 열고 김을 호호 불면서 식칼을 넣어 곰의 고기가 익었나고 콕콕 찔러보았다.     “익었느냐?”     “예. 익었습구마.”     사련이 허리를 굽히면서 시어머니에게 대답하였다.     시어머니와 작은며느리는 곰의 고기 덩이를 꺼내 통나무칼판에 놓고 찬물에 손을 묻혀 호호 불면서 곰의 고기를 돔박돔박 썰었다.     병완은 성칠과 함께 마당 한가운데 장작개비를 모아놓고 우등불을 피웠다. 우등불은 마당을 너머 저 멀리 산발을 따라 수림까지 대낮처럼 환하게 밝혜 놓았다. 침침한 어둠이 한순간에 모두 놀라 도망가며 자리를 내주었다.     이윽고 덕성과 성팔이 네가 식솔들을 다 데리고 왔다. 성녀는 며느리들과 함께 우등불 옆에 큰상 세 개를 차려놓았다.     상좌에는 병완과 덕성, 성팔, 엄창렬이 앉고 아래 상에는 성칠과 기준 그리고 덕성의 아들 칠백과 칠성이, 성팔의 아들 용철과 용구가 앉고 말상에는 성희를 비롯해 하옥이, 곱단이, 사련이, 기준의 여동생 곰순 등 아낙네들과 상우, 상훈 등 애들이 죽 둘러앉았다. 실로 큰 잔치나 벌어진 것 같았다. 밤하늘의 별들도 내려와 밥상을 기웃거리며 군침을 흘린다.      병완은 소발굽 같은 손으로 막걸리 동이를 들어 덕팔과 성팔, 창렬의 잔에 차례로 돌아가면서 붓고 잔을 높이 들었다.     “자, 내일 추석인데 오늘 저녁에 곰의 고기에 막걸리를 마음껏 마시고 춤도 추고 놀아 보기요.”     “들기요.”     잔을 딱딱 마주치고 여럿은 허허 호호 웃으면서 떠들썩하게 막걸리를 마셨다. 그리고 문문하게 삶은 곰의 고기를 맛나게 먹었다.     구중천의 달도 막걸리아 곰의 고기 먹고 싶어 군침을 흘리면서 밥상에 슬밋슬밋 다가앉는다.     “옛소. 이게 웅담이요.”     병완은 거의 주먹만큼 한 웅담을 담은 사발을 성팔과 창렬의 앞에 밀어놓았다.     “웅담이 쓰지 않소?”     “쓴 게 약이라오. 위장이 좋지 못한데 먹소. 만 병 통치약이요. 창렬이, 자넨 페가 좋지 못한데 웅담을 먹소.”     “야, 이걸 팔면 명년 식량은 해결하겠는데 내 어찌 혼자 먹는단 말인가?”      성팔이  웅담그릇을 들고 아래 상에 가더니 성칠의 앞에 놓았다.      “옛다. 웅담은 상한 팔에 좋아. 팔을 긁어 놓은 곰의 웅담을 먹으면 팔이 인차 나을 게다.”      성칠은 우쭐 일어났다.      "아니, 이래서야 되겠어요? 나눠 잡숩깁소.”    그는 기어이 웅담을 숟가락으로 끊어 덕팔과 성팔이, 아버지 앞의 접시에 놓았다.     “야따, 거 웅담이 뭐 그리 맛있겠다고 그리 야단이여? 그럼 서로 사양하지 말고 조금씩 맛이나 보세."    덕성은 둥글넙적한 얼굴에 난 수염을 손으로 쓱 닦으면서 저가락으로 웅담 꼬치를 집어 입안에 넣었다.    “야, 쓰다.”     “쓰거운 게 약이라오.”     병완은 껄껄 웃었다.     “자, 막걸리를 들라고. 인차 씻어 내려가게. 쓴 게 밸에 들어가면 잡 벌레가 다 죽을게요.”      제일 아래 상에 앉은 하옥과 사련이, 곱단이 네는 곰의 국을 몇 술 뜨다가는 놓고 곰 고기를 썰어 국물에 담아 이 상 저 상에 올리느라고 행주치마를 두른 채 송골송골 내돋은 땀을 손으로 훔쳤다.     나그네들은 달빛이 담긴 막걸리 사발을 들어 마시니 가슴에 달이 뜨고 흥이 저절로 났다.     어린 상우와 상훈이 등은 "양양, 맛있다. 오래오래 맛있다."라고 짝짝 쿵을 쳐대면서 먹어댔다.    한참 후 술이 거나하게 된 성팔이 길쭉한 턱을 잔뜩 쳐들고 마당에 쫙 깔린 달빛과 우등 불을 둘러보면서 말하였다.    “홀 잊었구먼. 그렇지, 거 병완이, 자네 집에 북이 있잖소? 그걸 내다 치면서 한바탕 춤을 추며 놀게나.”    “그래, 좋아, 놀아보세.”     춤을 추면서 논다는 말에 애들은 좋다고 밥상에서 일어나 우르르 마당에서 빙빙 돌면서 뛰놀았다.     병완이가 북을 내오자 성팔이 받아 쥐어 둥두둥 둥두둥 가락맞게 두드리면서 마당 한가운데서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그러자 덕팔도 일어나고 병완도 일아나 함께 도라지를 부르면서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자, 젊은 각시들도 일어나 춤을 추오.”     성팔이 말하자 색시들은 부끄러워 옷고름으로 낯을 가리면서 슬슬 뒤로 좀 물러나 얌전하게 도라지를 추었다. 애들도 어머니들을 따라 아기장 아기장 걸으면서 그것도 도라지라고 팔을 나풀거리면서 춤을 추었다. 아낙네들은 하나둘 부엌에 들어가 그릇들을 부시고 바깥 암시부엌 아궁이에 토막나무를 더 서리어 식은 곰 고기 국을 덥혔다. 성희와 곱단은 큰집에 간 창준이가 언제 돌아오겠는가고 개울 건너 쪽을 자꾸 내려다보았다.      남정네들은 모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춤을 추다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술상에 돌아와 앉았다.     병완은 잔을 들고 “자, 또 한 사발 듭세.” 하고 덕팔과 성팔의 막걸리사발과 마주쳤다. 성팔은 한 사발 들고 막걸리사발을 상에 내려놓으면서 피뜩 무엇이 떠오른 모양으로 우쭐 일어났다.     “내 집에 가서 피리를 가져다 불게.”     그러자 성팔의 아들 용철이 따라 일어섰다.      “아버지, 어두운데 내 갔다가 오겠습니다.”     “오, 그래.”     성팔이 떠나간 후 덕팔이 술상을 저 가락으로 두드리면서 노래를 흥얼흥얼 불러댔다.             한양 천리 떠나간들 너를 어이 잊을 소냐?           소랑당 고개 마루 나귀마저 울고 가네           춘향아 울지 마라 얼싸 안고서          그립던 이 내 마음 아서 아서라           어느 때 어느 날자 함께 즐겨 웃어 보랴         덕성의 걸걸한 노래를 들으면서 막걸리를 둬 사발 드는 새에 이윽고 용철이 대나무피리를 가지고 왔다. 성팔은 피리를 입술에 대고 몇 번 불어보더니 제법 맑게 불렀다. 덕성이 드문드문 북을 둥둥 피리 절주에 맞춰 두드려 흥을 돋우었다.       달빛이 깔린 시골마을에 맑고 부드러운 피리소리가 북장구에 맞춰 곱게 울리었다. 그 은은한 피리소리와 가락 맞게 울리는 북장구소리가 밤 정적을 조용히 깨우며 수림 속으로 오래도록 메아리쳐갔다. 물레방아 쪽으로 벽계수가 달빛과 구름을 싣고 피리소리에 맞춰 촐랑촐랑 노래하면서 흘러갔다.      마당 한가운데 피워놓은 우등 불도 흥겨워 가을미풍에 너울너울 춤을 추고 은빛 달님도 마당에 내려와 색시들과 함께 그 아름다운 선율에 도취돼 예쁜 얼굴로 웃음 지으며 춤 추고 있었다.       밝은 달빛 아래 시골 농가 오락판풍경은 진짜 한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를 방불케 하지 않겠는가.
16    장편과학환상소설 황천의 유령(2) 댓글:  조회:2017  추천:1  2015-03-23
장편과학환상소설 황천의 유령(2)    제4장 수렴동의 원숭이 왕 뱀 섬나라에서 검정 개 사람과 멧돼지 인을 개발한 특대뉴스가 온 지구촌에 보도되었어요. 금붕어 소장은 새로운 인종개발에 줄곧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면서 과학적인 무기제조에 골몰하는 조왕돌과 클론바우 18세에게 의미심장하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옛날에 신의 대왕 제우스는 누님이자 아내인 헤라의 계략에 빠져 세멜레가 한줌의 재가 돼버리자 세멜레의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꺼내 자기 넓적다리를 째고 넣어 길렀어. 제우스의 다른 딸 아테나는 제우스가 입에 넣어 삼켜 버렸어. 장차 커서 아버지를 죽이고 제왕의 자리를 차지한 자기처럼 자식들이 자기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할까 봐 겁나서였지. 허나 아테나는 아버지 제우스의 머릿속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어. 갑자기 두통이 심해 머리를 싸쥐고 맴돌던 제우스는 아들 헤파이스토스에게 도끼로 자기 머리를 찍어 가르게 했지. 제우스의 머릿속에서 딸 아테나가 튀어나왔어. 그것도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손에는 창과 방패까지 들고 세상에 나왔대. 우린 고대 신들을 참고해 지구를 보위할 새로운 보호 신을 창조해야 해.” 클론바우는 “우~와~” 하고 감탄했어요. 허나 할머니 뜻과는 달리 뒷말이 곱지 않았어요. “새로운 인종을 개발해 뭘 합니까? 보십시오. 난 사람도 아니고 고래도 아니고 사자도 아닌 게 무슨 괴물입니까? 조왕돌 삼촌처럼 고운 색시에게 장가도 들어보지 못하고. 원, 흥!” 클론바우 18세가 코끼리 코로 콧방귀를 뀌자 사무 상 위 물 컵이 허공중에 날아나 땅바닥에 떨어졌어요. 그 바람에 난데없는 물벼락이 쏟아져 내리었어요. 며칠 후 조왕돌은 잔잔한 낙조가 내리 비친 바다가 백사장에 세운 아버지 금별 대통령과 가시아버지 차슬기 국방부방의 동상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어요. 순간 코치아도 고모 말씀처럼 인종개량을 해놓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튿날 조왕돌은 원숭이 가죽을 쓰고 홀로 화과산으로 들어가 잠복해 있으면서 수렴동의 원숭이 무리를 관찰하려고 했어요. 아내 보름의 얼굴에 대뜸 어두운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어요. 그녀는 남편의 손을 잡아 만삭이 된 배에 대 보이며 지청구를 들이댔어요. “제가 오래지 않으면 해산하게 되는데요. 우리 보배 아빠마저 옆에 없어서야 되겠어요?” 조왕돌은 보조개가 옴폭 파이는 보름 달 같던 보름의 얼굴이 수척해진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허나 코치아, 나아가서 지구촌의 인류 생존과 보존이 걸린 중대한 과학연구를 위해 조왕돌은 원숭이 가죽을 주섬주섬 찾아 내 챙기었어요. 보름은 안방에 들어가더니 시퍼렇게 날이 선 칠성비수 한 자루 가져다 내 밀었어요. 비수 칼자루에 금으로 별 7개 박혀 있다고 해 칠성비수라고 했는데요. 건 시아버지 금별 대통령의 명함을 상징하기도 했어요. “아버님이 남긴 비수예요. 호신용으로 이거라도 가지고 가세요. 꼭 아버님의 혼령이 하늘에서 당신을 지켜 줄 거예요.” 조왕돌은 미소를 지으며 칠성비수를 받았어요. “근심하지 말고 복중아기나 잘 키우오.” 그제야 금붕어와 보름은 안도의 한숨을 호 내쉬었어요. 조왕돌은 헬기를 타고 순식간에 동해바다에 뿌리를 박은 화과산 수림과 가까운 산정에 내렸어요. 수행 십여 명 복제 조왕돌과 로봇 조왕돌 1호는 정찰 장비를 헬기에서 부리어 장막 안에 두고 대기했어요. 조왕돌은 산정에 올라서서 수림 속에 치솟은 절벽을 둘러보았어요. 안개인가 구름송이인가 기암괴석과 절벽 사이를 파도치다가 사라지자 백길 절벽 위에서 하얀 눈사태가 무너져 내리는 듯이 쏟아져 내리는 백운폭포가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어요. 폭포수가 하얀 물발처럼 가리고 있어 먼 곳에서는 폭포 뒤에 숭숭 뚫린 수렴동의 원숭이 굴들이 보이지 않았어요. “허, 이 심산에 이렇게 멋있는 원숭이 왕국이 있었는가!” 조왕돌은 감탄이 나왔어요. 그는 망원경을 꺼내 수렴동쪽을 세심히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수렴동 위쪽 절벽 위에는 숱한 원숭이들이 햇볕 쪼임을 하면서 뛰놀고 있었어요. 어떤 원숭이들은 나무에 매달려 그네를 뛰면서 재롱을 피우고 있었어요. 독수리가 날아 내리다가 굳어진 것 같은 기암괴석 아래 너럭바위 위에 커다란 원숭이 한 마리가 틀스레 앉아 있었어요. 숱한 원숭이들이 그 원숭이에게 바나나와 복숭아를 뜯어다가 바치는 것이었어요. 갑자기 그 원숭이가 살기 넘치는 갈색 우묵 눈을 부릅뜨더니 아가리를 짝 벌리며 고래고래 고함치었어요. 그러자 숱한 원숭이들은 짹짹 새된 소리를 지르며 바위돌 틈과 나뭇가지 사이에 몸을 옹송그리고 바들바들 떠는 것이 보이었어요. “저 원숭이가 수렴동의 ‘손욕’이라는 원숭이 왕이 틀림없는 것 같구나.” 째진 귀와 검정 코를 보면 그가 왕위에 오를 때 얼마나 치열한 결투를 벌이었는지 짐작이 갔어요. “저 놈, 원숭이들을 어떻게 얼려 데려다가 우리 코치아를 목숨으로 사수할까?” 조왕돌은 원숭이 가죽을 씌운 로봇 조왕돌 1호를 불러 뭐라고 귓속말을 했어요. 로봇 조왕돌 1호는 머리를 끄덕이었어요. 그는 바나나 한 꾸러미를 들고 원숭이처럼 나무에 바라 올라가 나뭇가지를 굴러 저쪽 나뭇가지로 날아 건너 뛰어갔어요. 그가 원숭이 무리에 나타나자 손욕 원숭이 왕은 몸을 옹송그리면서 영역에 침범한 침략자를 공격하려고 했어요. 허나 로봇 조왕돌 1호가 가지고 간 바나나를 한 꾸러미나 너럭바위 위에 올려놓으면서 머리를 숙였어요. 원래 원숭이도 자기들의 말이 있었어요. 짹짹 해도 그 속에는 여러 가지 뜻을 나타냈지요. 손욕 원숭이 왕은 글쎄 원숭이 말로 물었어요. “짹(넌), 어디에서 온 놈이야?” “대왕님, 저를 받아주십시오. 저는 외롭게 백산 열대우림 부근에서 살던 원숭이입니다. 여기 화과산 수렴동에 원숭이들의 지상낙원 왕국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 왔어요. 한평생 대왕님을 효성을 다해 모시렵니다.” 원숭이 왕은 자기 왕위를 위협할 놈이 아니라고 여겼던지 경계심을 풀면서 로봇 조왕돌 1호의 아래위를 훑어보는 것이었어요. 흠잡을 데 없는 보통 원숭이였어요. 조왕돌은 저쪽 머나먼 산정에서 컴퓨터 현광 판으로 파리 로봇이 찍어 보낸 동영상을 보면서 머리를 끄덕이었어요. 손욕 원숭이왕은 의심이 많아서 로봇 조왕돌 1호를 받아 주려고 하지 않았어요. “짹짹(이 놈), 고까짓 바나나 한 꾸러미로 내 환심을 사려고? 어림도 없어.” 손욕 원숭이왕은 로봇 조왕돌 1호에게 바나나 꾸러미를 홱 팽개쳤어요. “네 놈을 받아주면 과일이 얼마나 많이 축나겠어? 꼬까지 한 꾸러미겠니? 한 기차라도 모자랄 거야? 그러잖아도 인간들이 화과산 수림을 마구 벌목해 먹이가 점점 줄어드는데 입이나 늘었지.” 로봇 조왕돌 1호는 그래도 아주 내심하게 바나나 꾸러미를 주어 원숭이 왕 앞에 있는 너럭바위 위에 올려놓았어요. “대왕님, 저의 호의를 받아 주십시오. 저도 밥값은 할 겁니다.” 원숭이 왕 손욕은 “어떻게?” 하고 묻는 듯이 우묵 눈으로 흘끔 쳐다보았어요. “제가 인간들을 설복해 화과산 수림을 벌목하지 못하게 하겠어요.” “허, 거 듣다 귀맛 좋은 소리군!” 원숭이 왕 손욕은 올 방자를 틀고 바로 앉으며 로봇 조왕돌 1호를 보고 물었어요. “될 수 있겠어?” “되고말고요. 제가 이제 산 아래 인간들과 연계를 달아 사람들이 우리를 잡지 못하게 하고 과일도 실어오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잘 살 수 있으면 우리 화과산 수렴동에 와서 뭘 해?” 순간 원숭이왕의 우묵 눈에 의심과 살기가 반죽해 무섭게 번쩍이었어요. “너 이놈, 혹시 인간들이 보낸 간첩 아니냐?” “아니, 이건 무슨 맑은 날에 생벼락 같은 말씀입니까?” “안 그럼 어떻게 인간들이 네 말을 고분고분 들어? 어서 떠나가라!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로봇조왕돌 1호가 뭐라고 또 말하려고 하자 원숭이왕은 대노해 용상이나 다름없는 너럭바위 수박을 쥐어뿌리었어요. 수박이 로봇 조왕돌 1호의 머리에 맞아 박살나 절벽아래까지 날아가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어요. 로봇 조왕돌 1호가 떠나려고 할 때었어요. “잠간!” 머리에 혹이 달린 건장한 혹달개 원숭이가 원숭이 왕 손욕에게 권고했어요. “대왕님, 저 자가 인간과 인맥이 있는 거 같으니까. 먼저 저 자를 보내 인간들과 담판해 우리 화과산 수림을 난벌하지 못하게 말리고 과일도 따가지 못하게 하면 어떻습니까?” 매 발톱이란 원숭이도 동의해 나섰어요. “대왕님, 만약 저자 말대로 될 수만 있다면야 얼마나 좋습니까?” “쯧, 쯧, 쯧, 이 원숭이들을 봐라! 어쩜 낫살이나 처먹은 놈들이 경계심이 없느냐? 그래 너희들이 감히 내 왕권에 도전할 테냐?” “아니, 건 무슨 소립니까? 우린 수렴동 원숭이 왕국을 위해 하는 말인데요.” 원숭이들이 로봇 조왕돌 1호를 받아들이자고 하는 바람에 원숭이왕은 민심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어요. “미안하네. 금방 자네를 시험해 본 거야. 난 의심스러운 사람을 쓰지 않고 쓰는 사람은 의심하지 않네. 이제부터 자넨 인간들과 외교활동을 해보게나.” 이쪽에서 조왕돌 부장은 컴퓨터를 들여다보다가 박수를 쳤어요. “됐어. 로봇 조왕돌1호 원숭이 왕국에 발을 붙이는데 성공!” 로봇 조왕돌들과 복제 조왕돌들은 일제히 주먹을 쳐들며 “파이팅!”을 불렀어요. 알고 보니 원숭이 왕 손욕은 스스로 자기는 3천여 년 전 화과산 수렴동의 원숭이 왕 손오공의 98대 후손이라고 자처했어요. 아하, 당나라 때 당승을 따라 저팔계와 사승 사형제와 함께 서경으로 불경을 얻으러 간 그 절세의 영웅 손오공을 말하는 거지요. 원숭이 왕 손욕은 힘도 세고 머리도 좋지만요. 너무나도 욕심이 과해서 원숭이들은 뒤에서 “손요귀”라고 욕하고 있었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손욕 원숭이 왕은 오늘도 폭포수가 쏴-쏴- 쏟아지는 수렴동 그늘에서 늘어져 푹 자고 일어나자마자 원숭이들에게 호령했어요. “허허허, 오늘 날씨가 참 좋구나. 백운봉 꼭대기에 올라가 놀자꾸나.” 그는 숱한 원숭이 아가씨들의 옹위를 받으면서 층암절벽을 톱아 올라 백운봉에서 제일 높은 자리 독수리 바위에 올라가 척 드러누웠어요. 하품을 짝짝 하던 손욕 원숭이왕은 “하- 낮잠을 잤더니 잔등이 근질거리는구나. 아가씨들아, 내 잔등을 긁고 이나 잡아라.” 하고 명령했어요. 누구의 명이라고 언감 어기겠어요. 원숭이 아가씨들은 독수리바위 앞의 너럭바위에 비스듬히 원숭이 왕을 둘러 앉아 손으로 잔등을 긁어준다, 어깨를 주물러준다 하며 옆구리며 엉덩이 털을 살살 번지면서 이를 잡았어요. “어, 시원해라. 오늘 수렴동 백운봉의 경치가 참말 좋구나. 어서 춤을 춰라!” 원숭이 아가씨들은 원숭이 왕 앞에서 찍찍거리며 엉덩이춤을 추었어요. “얼씨구나 좋다, 지화자 좋을시고!” 손욕 원숭이 왕은 흥이나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춤판에 끼어들어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어요. 그러다 산 아래에서 숱한 원숭이들을 데리고 부지런히 복숭아를 뜯는 혹달개에게 눈길이 멎었어요. (이 수렴동에서 내 왕위를 도전할 놈은 저 혹달개 뿐이야.) 그는 저쪽에서 망을 보며 수렴동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로봇 조왕돌 1호를 보고 손짓했어요. 로봇 조왕돌 1호가 깡충깡충 다가가 너럭바위 앞에 머리를 숙이고 앉자 손욕은 이런 말을 꺼냈어요. “우리 수렴동에서는 원숭이들의 서열이 있어. 네가 저 혹달개를 싸워 이길 수 있냐?” 그 뜻밖의 제의에 로봇 조왕돌 1호는 머리를 숙였어요. “나는 천성이 순진해서 싸움이란 걸 해 본적이 없습니다.” 원숭이 왕은 자기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로봇 조왕돌 1호가 눈에 거슬렸어요. 이 수렴동에서 이제껏 누가 감히 그의 말을 거역했겠어요. 로봇 조왕돌 1호가 싸울 염을 하지 않자 손욕은 원숭이 왕 품위도 없이 혹달개를 헐뜯기 시작했어요. 그는 복숭아를 광주리에 담아 메고 절벽으로 올라오는 혹달개를 손가락질하며 빈정거렸어요. “아가씨들, 저 혹달개를 봐. 어쩌면 저렇게 못 났어. 털을 봐. 불에 태워 죽일 놈이 돼 그런지 불같이 새빨갛지. 이마빼긴지 숫구멍엔 혹이 들어박혔지. 송곳니를 봐. 멧돼지 송곳니처럼 뾰족한 게. 저 혹달개는 자기 이를 잡아 씹어 먹는 멍청이야. 돼지만도 못해.” “호호호” 원숭이 아가씨들이 웃어대자 손욕은 흥이 점점 도도해졌어요. “오랑캐 종자 같은 게, 저 엉덩이를 보오. 빨갛다 못해 홍무우 같다니까. 저 놈 때문에 우리 원숭이 엉덩이를 애들이 뭐라는지 알아? ‘잔나비 밑구멍이 빨갛다’ 하지 않아?” 원숭이 아가씨들은 코를 싸쥐고 요절할 듯이 깔깔깔 웃으며 지껄여댔어요. “잔나비 밑구멍이 빨갛다. 빨간 건 사과.” “사과는 맛있어!” “호호호” 손욕은 계속 지껄이었어요. “맞아, 아가씨들의 말이 맞아. 빨간 사과면 먹기나 좋지? 저 혹달개 놈 땜에 우리 원숭이 엉덩이가 다 팔린단 말이야.” 이때 불여우처럼 생긴 불여우 원숭이 아가씨가 실버들허리를 배배 꼬면서 응석을 부렸어요. “오늘 기분도 좋은데요. 우리도 화과산 기슭에 사는 마을 사람들처럼 돼지고기 안주에 모태주를 마실까요?” “오ㅡ 그래.” 원숭이 왕 손욕은 너럭바위에서 일어나 불여우의 잔등을 다독이어 주더니 로봇 조왕돌 1호에게 손짓했어요. “어이, 백산 원숭이! 옳아. 이젠 자넬 백산이라고 부르겠네.” 로봇 조왕돌 1호가 다가가자 손욕은 원숭이 왕의 틀을 차리면서 분부했어요. “백산, 자넨 우리 화과산 수렴동에 숱한 과일과 고기를 가져오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치지 않았는가? 얼른 저 아래 산기슭 마을에 가서 모태 주와 푹 삶은 돼지고기를 가져오게나.” 이것은 로봇 조왕돌 1호를 고험하려는 것이었어요. “예, 알았습니다.” 조왕돌은 나는 듯이 절벽을 내려 수림을 꿰질러 나가 순식간에 조왕돌이랑 있는 산정으로 돌아왔어요. 조왕돌은 로봇 조왕돌에게 뭐라고 또 귓속말을 했어요. 드디어 로봇 조왕돌 1호는 산기슭으로 내려가 사람들을 시켜 모태 주 몇 병과 과일 3수레, 푹 삶은 멧돼지고기 한 수레나 실어 화과산 아래로 가져오게 했어요. 그러자 원숭이 왕 손욕은 입귀가 귀밑에까지 째질 지경이었어요. “확실히 백산은 희한한 놈이야, 어쩜 머나먼 북녘에서 왔건만 사람들을 우마처럼 부려 먹는단 말이야! 허허허!” 아가씨들도 로봇 조왕돌 1호를 신기한 눈길로 바라보았어요. 손욕은 양팔에 원숭이 아가씨들을 하나씩 껴안더니 지분거렸어요. “오늘 실컷 먹고 질탕하게 놀아보자!” 속욕과 원숭이 아가씨들은 푹 삶은 돼지다리를 한 짝씩 쥐고 곤드레만드레 취토록 모태 주를 마시었어요. 다른 원숭이들은 먹고 싶어 바위틈에서 이쪽을 훔쳐보면서 군침을 질질 흘렸어요. 허나 욕심 많은 원숭이 왕은 근본 줄 염도 없었어요. 이때 로봇 조왕돌 1호는 원숭이 몰래 가만히 과일과 돼지고기를 뭇 원숭이들에게 나눠 주었어요. “백산! 네 이놈! 내 돼지고기를 가지고 인심을 내?!” 어느 결에 눈치 챈 손욕은 로봇 조왕돌 1호를 독기어린 눈길로 쏘아보는 것이었어요. “아니, 내가 가져온 건데요. 어찌 대왕님 혼자 거라고 그래요?” “뭐, 뭐?! 이놈이 언감 나한테 도전해?!” 손욕은 성이 나 펄펄 뛰더니 원숭이 아가씨들을 활 놔버리고 씽- 로봇 조왕돌 1호에게 덮쳐들었어요. 로봇 조왕돌 1호는 반항도 하지 않고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허망 숫구멍을 물리었어요. 혹달개랑 매발톱이랑 숱한 원숭이들이 찍찍 비명을 지르면서 돌 틈과 나무 뒤에 숨어 로봇 조왕돌 1호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냈어요. “아가!” 그런데 이변이 생겼어요. 글쎄 원숭이 왕이 입을 싸쥐고 굴렀어요. 웬 일일까요? 원래 로봇 조왕돌 1호의 숫구멍은 쇠로 만든 것이죠. 원숭이 왕은 쇠 숫구멍을 딱 깨물었다가 송곳니가 부러졌던 것이죠. “허허허. 아무 거나 물어 되나?” 로봇 조왕돌 1호는 너털웃음까지 웃다니요? 뭇 원숭이들은 의아해 원숭이 왕과 로봇 조왕돌 1호를 번갈아 보았어요. 원숭이 왕은 피가 줄줄 흐르는 입을 싸쥐고 공포에 질린 눈길로 백산을 쏘아 보았어요. 그렇게 그저 쉽게 지고 말 원숭이 왕이 아니었어요. 그는 독수리바위 밑으로 씽 뛰어가더니 두 길이나 되는 쇠몽둥이를 빼들고 휘두르며 덮쳐 왔어요. “그만 싸우십시오!” 혹달개가 나서서 말리었어요. “백산은 우리 수렴동에 숱한 과일과 돼지고기를 가져 왔습니다. 이제 인간들과 연줄을 놓아 잘 살게 만들 원숭이를 치지 마십시오.” “원숭이 왕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금고봉으로 단매에 쳐 죽일 테야!” 손욕이 금고봉으로 로봇 조왕돌 1호의 머리를 땅 내리쳤어요. 허나 로봇 조왕돌 1호는 날아드는 금고봉을 피하지도 않았어요. 쟁강! 쇠와 쇠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불티가 튕겼어요. 허나 로봇 조왕돌 1호의 머리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원숭이 왕 손욕은 너무 이상해 재차 금고봉으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연이어 내리쳤어요. 땅! 땅! 땅! 땅! 쇠 부딪치는 소리가 날뿐이었어요. 로봇 조왕돌 1호는 몸을 좀 휘청할 뿐 태산처럼 끄떡하지도 않았어요. 원숭이 왕은 더럭 겁이 났어요. (이놈은 무슨 놈이야?) “따웅~” 이때 때마침 얼룩호랑이 한 마리가 절벽 위에 나타났어요. 호랑이는 격노해 부르짖었어요. 그런데 호랑이가 말하지 않겠어요. 로봇 조왕돌 1호가 그 말을 로봇두뇌로 분석해보니 호랑이는 이렇게 고래고래 고함치는 것이었어요. “네 놈들이 감히 내 부모의 가죽을 벗겨 용상에 펴놓고 앉아 있어! 내 오늘 부모의 원수를 갚으러 왔다. 원숭이 왕 놈아, 명년 오늘은 네 제사 날이다!” 원숭이들은 겁이 나 칡넝쿨을 잡고 굴러 폭포 뒤의 수렴동 안으로 들어가 피신했어요. “후에 보자!” 손욕은 로봇 조왕돌 1호를 놓아주더니 금고봉을 거두고 칡넝쿨을 잡고 수렴동안으로 날아 들어가려고 했어요. 따웅~ 호랑이가 덮쳐들어 칡넝쿨을 물어뜯는 바람에 원숭이 왕은 그만 폭포아래 못에 풍덩 떨어져 허연 물 바래를 일구었어요. 호랑이는 놓칠세라 절벽 아래로 어슬렁어슬렁 기어내려 갔어요. “날 살려라!” 원숭이 왕 손욕은 금고봉을 쥐고 뭍에 기어올라 뭇 원숭이들에게 소리쳤어요. 그런데 누고도 나서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혹달개와 매발톱이 뛰어 내려가 자기들의 왕에게 덮쳐드는 얼룩호랑이의 앞을 막아 나섰어요. “이 놈, 우리 왕을 놔둬라!” 그들은 호랑이를 슬슬 유인해 절벽위로 올라갔어요. 그 틈을 타서 원숭이 왕 손욕은 나무위로 바라 올라가 몸을 피했어요. 호랑이는 절벽 위에 따라 올라가 혹달개와 매발톱을 한입에 물려고 씽 덮쳐들었어요. 그때 로봇 조왕돌 1호가 씽 날아가더니 호랑이 잔등에 올라탔어요. “위험해! 어서 내려!” 허나 로봇 조왕돌 1호는 호주머니에서 레이저비수를 꺼내 호랑이 목에 휙 휘둘렀어요. 그러자 호랑이는 찍 소리도 못하고 목이 썩 잘리어 나갔어요. “와-!” 혹달개와 매발톱을 비롯한 원숭이들은 환성을 질렀어요. 그 모든 것을 본 원숭이 왕 손욕은 자기 목을 어루만지면서 로봇 조왕돌 1호와 더 싸울 용기마저 잃고 쳐들었던 꼬리를 내리었어요. “백산 왕 만세! 백산 왕 만세!” 허나 뭇 원숭이들이 로봇 조왕돌 1호를 둘러싸고 왕이라며 하늘땅이 진감할 듯이 만세를 부르자 용서할 수 없었어요. 그는 불시에 금고봉을 쳐들고 씽 덮쳐 왔어요. “네 놈들의 왕이 눈을 빤히 뜨고 살아 있는데 감히 백산을 왕으로 옹립할 작정인가?!”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기를 찬다고나 할까요? 손욕은 로봇 조왕돌 1호와는 어쩌지 못하고 혹달개와 매발톱과 생사결단하고 화를 냈어요. 그는 진짜 손오공처럼 금고봉을 휘두르며 혹달개와 매발톱을 절벽으로부터 수렴동 안에까지 쫓아 들어갔어요. 혹달개와 매발톱이 살짝살짝 피할 때마다 빗맞은 금고봉이 들쑥날쑥한 바위에 맞아 불꽃을 튕겼어요. 혹달개는 머리에 날아드는 금고봉을 피해 두 바위날 사이에 몸을 숨겼어요. 손욕이 금고봉이 바위에 맞아 쟁그랑 불꽃을 튕길 때었어요. 혹달개는 두 손으로 금고봉을 꽉 틀어쥐고 몸을 솟구쳐 뒤발로 손욕의 두 눈 통을 콱 찔렀어요. “아이쿠!” 손욕은 금고봉을 떨어뜨리고 눈 통을 싸쥔 채 도망쳤어요. “죽여라!” “손 요귀를 죽여라!” 숱한 원숭이들이 돌멩이를 뿌렸어요. 이때 매발톱이 씽 달려 나가더니 두 손으로 손욕의 목을 꽉 깨물어 폭포 아래로 내리 떨어뜨렸어요. 풍덩! 한동안 손오공의 98대 후손 원숭이대왕이노라고 우쭐거리면서 갖은 행패를 다 부리던 손욕은 처참히 폭포수에 빠져 들어갔어요. 순간 탐욕으로 물든 더러운 뻘건 피가 폭포수 위로 피어올랐어요. 한참 후 손욕은 뭍에 기어 올라왔지만 결국 원숭이들의 돌 총질에 맞아죽고 말았어요. 허나 어느 원숭이도 전날 원숭이 왕 손욕의 죽음을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기뻐서 모두들 로봇 조왕돌 1호 앞에서 깡충깡충 뛰며 콧노래를 부르고 어깨춤을 당실당실 추었어요. 다만 그제 날 손욕 원숭이 왕을 따라 부귀영화와 향락을 누리던 애첩 불여우 원숭이아가씨가 폭포아래에 내려가 손욕을 내려다보며 가냘프게 흐느낄 뿐이었어요. 그 처참한 정경을 컴퓨터 형광판에서 들여다보고 조왕돌은 도리머리를 저었어요. 혹달개와 매발톱은 절벽 위에 거연히 서 있는 로봇 조왕돌 1호한테 다가오더니 양손을 쥐어 높이 쳐들었어요. “이제부터 백산에서 내려온 하느님 같은 백산을 우리 화과산 원숭이 왕국의 새 원숭이 왕으로 높이 모신다!” 원숭이들은 수렴동과 화과산이 떠나갈 듯 고함쳤어요. “백산 대왕 만세!” “만만세!” 허나 로봇 조왕돌 1호는 겸손하게 왕위를 사양했어요. “난 원숭이 왕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외교부장을 하면 됩니다.” 뒤이어 그는 혹달개와 매발톱의 손을 쥐고 높이 외쳤어요. “원숭이 대왕으로 혹달개를 모시고 매발톱을 총리로 모시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혹달개와 매발톱은 기어이 로봇 조왕돌 1호를 원숭이 왕으로 모시자고 고집했어요. 그리하여 로봇 조왕돌 1호가 여기 화과산 제99대 원숭이 왕으로 되었어요. 모두들 환호하며 큰 잔치를 베풀었어요. 조왕돌은 모든 것이 뜻대로 돼 기뻐했어요.     제5장 분기 과학기술부와 국방부를 통관하는 조왕돌 부장이 한창 연화시 국립과학연구소 실험실에서 원숭이 인 개발로 고민하고 있을 때었어요. 만삭이 된 보름이가 찻잔을 들고 사무실에 들어왔어요. 그녀는 얼굴에 볼우물을 옴폭 파면서 생글 웃었어요. “차를 들고 하세요.” “불편한 몸으로 차는 무슨, 아가씨들을 시키지 못하고.” 조왕돌은 찻잔을 들어 후후 불더니 쭉 마셨어요. 보름이 나가자 허선영 아가씨가 들어오는 것이었어요. 선영은 허수아 총리의 활발한 무남독녀인데요. 조왕돌을 첫사랑으로 짝사랑했지요. 허나 조왕돌은 보름의 보름달 같은 볼에 옴폭 파이는 볼우물이 사랑스러웠지요. 허수아 총리가 딸을 전도 유망한 금별 대통령 가문의 외동아들 조왕돌에게 주려고 국립과학연구소에 보내 조왕돌의 시중을 들게 했지만요. 조왕돌은 그렇게 따르는 선영에게 등을 돌리고 차슬기 부장의 딸 보름과 결혼했던 것이죠. 선영은 조왕돌에게 시집가지 못할 바에는 시집가지 않는다고 하면서 조왕돌의 비서로 일하고 있었어요. 허선영은 조왕돌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살거렸어요. “들어오라고 하세요.” “예. 알았어요.” 이윽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떠들썩했어요. “OK! 조왕돌 부장!” 뱀 섬나라 인종개량연구소에서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던 버새 형제는 깜짝 놀랐어요. “아니, 저 검둥이는 맬쓴이 아닌가?” 사실, 톰 사령관은 노르망디에 유학하러 온 조왕돌과 친한 친구로 지냈지요. 그는 맬쓴이 강간죄로 총살당하게 되자 비밀리에 맬쓴을 구해달라고 손을 내밀었던 것이죠. 버새 총리가 자기 여동생을 강간한데 앙심을 품고 사형을 하겠다면서 사형수이기에 개 사람을 개발하는 실험 품으로 쓰겠다고 하더라는 말까지 했어요. 그래서 조왕돌은 감쪽같이 복제기술로 맬쓴을 복제해 가짜 맬쓴을 가만히 감방 안에 들여보내고 진짜 맬쓴을 감방에서 빼내 코치아에 데려왔던 것이지요.” 뱀 섬나라 쪽 밴새 소장은 이를 뿍뿍 갈았어요. “고약한 놈들!” 그러나 조왕돌은 대수로워 하지도 않는 표정을 지었어요. “뱀 섬나라에서 강간을 한번 했다고 사형에 처하는 건 너무 해. 그것도 생사람의 머리를 쳐서 개목에 다는 실험 품으로 쓴다는 건 너무나도 비인도주의적이지. 그래서 꼭 구해줘야 하겠다고 생각한 거야.” “옳아! 그놈 버새는 악마야! 내 언젠가는 급선봉이 돼서 뱀 섬나라로 쳐들어가 그 버새 놈을 버릇 고쳐 주겠어.” 맬쓴은 조왕돌 부장과 포옹까지 하고 사무실에서 사라졌어요. 그는 그 길로 노르망디로 날아가 버렸어요. 국립과학연구소 실험실 부근 공원 안에 바나나며 사과며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어요. 숱한 원숭이들이 나무 가지에 올라타고 앉아 바나나를 발라 먹으며 놀고 있었죠. 그들은 원숭이 인 개발에 실험 품이 된 건 모르고 임시는 사람들이 주는 걸 잘 먹으니까 좋다고들 놀아빠졌어요. 혹달개와 매발톱을 비롯한 원숭이들은 로봇 조왕돌 1호 새 원숭이 왕을 따라 국립과학연구소 수림에 이사해 왔던 것이죠. 조왕돌과 연구일군들이 공원에 들어서자 원숭이들은 짹짹 울부짖으며 나무 가지를 잡아 마구 굴렀어요. “우릴 실험 품으로 쓰지 마세요.” 놀랍게도 혹달개가 사람 말을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원숭이가 사람의 말을 하다니?” 연구일군들이 이상해 했어요. 조왕돌은 그를 돌아보면서 “원숭이 말을 번역해 직접 사람의 말로 번지는 미형보청기를 원숭이 목과 귀에 달아 놓았지. 원숭이들은 우리말을 원숭이 말로 번역해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숭이 말은 또 우리말로 통역돼 울리고 있소.” 라고 했어요. “우리 부장은, 확실히 괴상한 과학자야!” 뒤에서 연구일군들이 조왕돌의 뒤를 따라가면서 엄지를 내휘둘렀어요. 뒤이어 조왕돌은 혹달개와 매발톱이란 원숭이를 불러 그들의 몸에 주사기를 꽂더니 유전자를 빼내고 돌려보냈어요. 그는 실험실에 들어가 원숭이 유전자와 미리 받아둔 이름 모를 여성의 유전자를 결합시키고 줄기세포기술로 원숭이 인을 개발했어요. 조왕돌의 원숭이복제기술에 모든 과학자들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날 저녁이었어요. 뱀 섬나라 중앙 HNK텔레비전방송국 우주화면에 낮에 조왕돌 연구소 사무실에 나타난 맬쓴이 자기가 뱀 섬나라에서 빠져 나오게 된 경과를 말하는 장면이 흘러 나왔어요. 뒤이어 대머리 버새 총리가 나타났어요. “우리 뱀 섬나라에서는 코치아의 조왕돌이 강간범 맬쓴을 빼돌린 죄행에 강렬한 항의를 제기한다! 조왕돌은 즉시 강간범을 뱀 섬나라에 돌려보내야 한다! 만약 강간범을 계속 비호한다면 그 모든 후과는 코치아에서 책임져야 한다!” 그러자 코치아 BKC텔레비전방송국 우주화면에는 조왕돌 부장이 나타났어요. “뱀 섬나라에서는 비인도주의적인 사형 법을 폐지하고 비인도주의 적인 행각을 중지해야 한다. 맬쓴이 강간을 한번 했다고 총살하고 지어 사냥개 사람을 만드는 실험 품으로 쓰는 것은 제네바 인도주의 협의를 위반한 것이다. 개목과 돼지 목에 사람의 머리를 잘라 달고 사람의 목에 개와 돼지 대가리를 다는 것은 인륜을 더럽게 짓밟는 만행이다. 또 국제 동물보호법에도 위반된다. 우리는 뱀 섬나라에서 세계 인류와 동물을 해치는 악랄한 책동에 항의한다. 우리는 세계 인도주의적인 인민을 대표해 뱀 섬나라에서 즉시 악행을 멈출 것을 강력히 제기한다!” 버새 총리도 물러서지 않았어요. “코치아는 화과산 수렴동의 원숭이들을 강제로 연화시 국립과학연구소에 압송해다 원숭이 인을 만들고 있다. 그건 그래 동물보호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고 뭔가?! 로봇 원숭이를 원숭이 왕으로 세우고 원숭이들을 바나나로 기편해 그 좋은 수림이 우거진 산속에서 연화시 실험실로 끌어내지 않았는가? 코치아 국연에서 원숭이들을 하나하나 쇠틀에 동여매고 대가리를 깨 뇌 장을 숟가락으로 파먹고 있다는 걸 이 세상에서 누가 모르는가?!” 조왕돌은 어처구니없는 무함에 반격을 가했어요. “우린 그런 일을 절대 하지 않았다. 날조하지 마라! 정 믿지 못하겠으면 우리 실험실이거나 국가 연회를 검사하라!” 조왕돌 부장과 나까아버새의 분기와 국제 정쟁은 시야, 비야 끝이 없었어요. 어느 하루, 조왕돌은 후산 해양 동물연구소에 있는 고모 금붕어 소장을 보러 비행기를 타고 남해 백사장에서 내렸어요. 저쪽 바다에서 고래 떼들이 파도 위로 뛰어올랐다가 하얀 물 바래를 일구며 바다 품에 뛰어들며 뛰놀고 있었어요. 금붕어는 조카의 손을 정답게 잡고 말했어요. “내 생각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존하려면 저 고래 같은 큰 동물 쪽으로 복제했으면 좋겠어. 고래 인, 악어 인, 상어 인 말이야.” 조왕돌은 의아해하면서 머리를 들어 고모를 마주 보며 계속 듣기만 했어요. “지금 세계적으로 새 인종복제 붐이 일고 있지 않니? 아카시아에서도 안나 여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연구팀을 무어 가지고 호랑이 인과 사자 인을 복제해냈다고 하지 않아?” 조왕돌은 코웃음을 쳤어요. “호랑이 인과 사자 인은 말도 안 돼요.” “왜, 상대방을 제압하는 덴 그래도 맹수가 제일이잖아?” 조왕돌은 도미머리를 흔들었어요. “약점도 있어요. 과녁이 너무 크지요. 또 호랑이는 자기를 낳은 어미와도 왕위와 먹이를 다투는 의리 없는 맹수예요. 30년도 살지 못하는 동물입니다.” 금붕어는 서리 내리기 시작한 머리카락을 훔쳐 뒤로 넘기더니 바닷바람에 거멓게 타버린 얼굴에 수심의 그늘이 지었어요. “그래 네 타산은 어떠냐?” 조왕돌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숨김없이 말했어요. “소형방향으로 연구개발해야 한다고 봐요. 공룡처럼 뭐나 커도 최첨단과학무기를 장악한 인간을 이길 수 없어요. 나는 로봇 모기나 로봇 꿀벌이나 로봇 벼룩이 같은 미형로봇을 연구해낼 예산인데요. 폴딱폴딱 뛰는 로봇벼룩은 레이더로도 발각하지 못합니다. 사냥개 사람과 멧돼지 인에게 딱 붙어 다니는 로봇벼룩이나 로봇 이를 개발할 예산입니다.” 금붕어는 연신 머리를 끄덕였어요. “음~ 알았어. 참 그럴듯하구나. 허나 절대 뱀 섬나라처럼 생물화학무기를 생산하지는 말라.” 그녀는 십대 밖에 안 되는 소년 조왕돌이 이같이 궁량이 넓을 줄은 몰랐어요. 백사장에는 벌써 붉은 낙조가 내리고 있었어요. 저쪽에 우뚝 솟아 있는 금별 대통령과 차슬기 부장의 동상도 조왕돌을 대견스레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 뒤 몇 달도 안 돼 조왕돌은 연구일군들을 데리고 국립과학연구소에서 비밀리에 로봇벼룩과 로봇꿀벌, 로봇 이를 수태 개발해 제조했어요.     제6장 클론바우 가족들 클론바우 18세는 성이 나서 코끼리코를 쳐들었다 놨다 씩씩거리면서 할아버지 클론바우 16세를 찾아 갔어요. 어찌나 콧바람이 센지 길가의 먼지가 새뽀얗게 하늘로 날아 올라갔어요. 클론바우 16세는 기린들이 사는 목장처럼 천정이 높다란 해변가의 별장에서 코끼리 코를 드리운 채 맥없이 소파에 기대 앉아 있었어요. “할아버지, 금붕어 할머니는 통 말이 아닙니다. 흥!” 클론바우 18세가 노해 콧방귀를 뀌자 차탁 위의 물 컵이 천정에 날아가 부딪쳤다가 땅바닥에 떨어져 잘랑! 박살났어요. “얘, 할 말이 있으면 천천히 해라! 괜히 물 컵만 깨지 말고.” 클론바우 18세는 3~4톤이나 되는 육중한 몸을 소파인지 침대인지에 털썩 주저앉아 긴 코를 손으로 슬슬 만지면서 두덜거리었어요. “금붕어 할머니는 본가 집만 돌보면서 우리 클론바우 가족들을 따돌리고 있단 말입니다. 이전에도 나를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 오빠 금별 대통령을 돌보지 않고 뭡니까? 지어 금고주를 외워 내 골을 빠개지게 만들 지경이었지요. 그런데 오빠가 죽자 이번에는 또 조카 조왕돌을 대통령으로 내세울 예산인지 또 나를 보고 나서지 말라고 합니다. 왕과 대통령의 씨가 어디 따로 있습니까?” 그때 두 마리 고래가 파도에 밀려 별장 가까이에 와서 희뜩 번지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허연 배때가 바닷물 위에 훌렁 드러났어요. “저길 보세요. 고래 죽지 않았는가요?” 클론바우 16세는 얼핏 눈길을 보내더니 개의치도 않았어요. “건 고래가 짝짓기를 하는 거야.” “예?” 조왕돌은 너무나도 신기해 축복이나 하듯이 뛰노는 고래 무리 속에서 바닷물에 희뜩 번지어 누워 있는 고래 두 마리를 바라보았어요. 이윽고 두 고래는 볼 일을 다 봤는지 되 번지어 눕더니 바다 물속으로 유유히 사라졌어요. 그걸 보더니 클론바우 18세가 두덜거리었어요. “나도 조왕돌 외삼촌처럼 고운 여자와 결혼해 애도 낳고 싶단 말입니다. 사람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괴물 같은 데로 누가 시집오겠습니까? 대통령도 하지 말라지. 무슨 멋에 살랍니까?” 클론바우 16세는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했어요. “네 아버지는 천 년 전에 이 지구촌을 통일한 위대한 꼬마 대통령이었어. 아카시아에는 아직도 그들의 업적을 기리어 세운 지구촌통일기념비와 그의 할머니 유리박사기념동상이 있단다. 기념비 높이가 천 미터도 넘는단 말이야.” 클론바우 18세는 깜짝 놀라 파초 같은 귀를 너펄거리며 벌떡 일어났어요. “뭐라고요? 우리 집안에 지구촌을 통일한 위대한 꼬마 대통령이 있었단 말입니까?” “그래. 우리 집안 클론바우 가족은 전 세계를 재패한 위대한 대통령 가족이지.” “왜 이제야 말합니까? 그렇고 보면 우리 가족은 대통령 자격이 당당한 가족이군요. 흥!” 클론바우 18세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의기양양해 하자 클론바우 16세는 코끼리 코를 슬슬 만지면서 말리었어요. “허나 이번 대통령 선거에는 나서지 말라!”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금붕어 할머니처럼 그 말씀인가요?” “그래.” 클론바우 16세는 소파에서 일어나 10여 미터나 되는 육중한 몸뚱이로 집안 거실에서 뚜벅뚜벅 거닐며 말했어요. “동양은 우리 조상들이 살던 아카시아 서양과 달라. 우린 아카시아에서 위신이 섰지만 코치아에서는 민심이 따르지 않아. 괜히 조왕돌의 의심을 싸게 되면 이런 별장이겠니? 목숨도 부지하기 힘들게 될 거다. 명심해라.” 클론바우 18세는 코끼리 발통 같은 주먹으로 악어껍질이 터덜터덜한 가슴을 탕탕 치다가 갑자기 나직이 말했어요. “우리 아카시아에 가면 어떨까요?” “글쎄, 이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들 조손은 금붕어 몰래 암암리에 다른 궁리를 하고 있었어요. 한참 후 클론바우 18세는 바깥으로 나와 잔등에 달린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더니 하늘로 훨훨 날아올라 갔어요. 금붕어 소장은 생각하다 못해 우주공간에 떠돌아다니는 우주비행선 냉동관 안에 있는 클론바우 1세로부터 클론바우 15세까지 몽땅 가져다 녹여 살려내 새로운 인간복제를 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천여 년 전에 아카시아의 생물학자 맥슨 박사와 코치아의 유명한 천문학자 유리 녀사는 결혼해 인간복제 기술과 줄기세포기술로 17년 동안에 클론바우 1세로부터 17세까지 복제해냈던 것이죠. 그들 부부는 지금부터 천여 년 전인 2958년 5월 7일에 클론바우 1세를 낳았죠. 이상하죠? 유리 박사께서 어떻게 100 킬로그램이나 되는 클론바우를 낳을 수 있어요? 클론바우 1세는 보통아기였어요. 후에 낳은 클론바우 17세는 고래만 한 괴물이었죠. 맥슨 박사는 클론바우 1세의 유전자를 사자의 정자에 주입해 사자 난자와 수정시킨 수정란을 사자 어머니 배에 넣어 길러 낳게 했지요. 그 애가 바로 애급의 금자탑 옆에 누워 있는 인면수신의 조각상처럼 사람의 머리에 사자의 몸을 가진 제2세 복제 클론바우지요. 제2세 복제 클론바우는 수사자의 대가리만큼 큰 머리에 온 몸에 사자의 털이 더부룩해 엄동설한에도 털옷을 입을 필요가 없었지요. 방사능의 직사에도 어지간히 견딜 수 있었죠. 게다가 총명한 맥슨 박사와 유리 박사의 뇌세포를 물려받아 클론바우 17세는 총명한 머리 안에 뇌가 둘이나 있어 두뇌가 엇갈아 쉬면서 밤낮없이 머리를 쓸 수 있었죠. 그는 밤낮없이 공부를 해 열 몇 살에 벌써 정치경제학과 군사 두 개 박사 학위를 탈 수 있었죠. 그래서 클론바우 17세는 그때 온 지구촌에 잠을 자지 않는 어린이로 소문이 났었지요. 지금 사람들이 자는 시간이 얼마나 아까워요. 그래요. 기실 백년을 산다고 해도 눈을 뜨고 사는 시간이 50년 밖에 더 될게 있나요? 클론바우 17세는 자지 않는 특수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났지요. 기실 복제기술은 맥슨 박사가 발명한 것이 아니죠. 복제기술은 21세기 초에 이딸리아 밀라노 비코카대학의 면역병리학자 마리아루이사 라비트라노 박사가 발명한 것이죠. 그는 인간의 유전자를 가진 돼지를 생산해냈지요. 그 후 900여 년 동안 지구촌의 유전학자들은 이 중대한 과학성과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복제기술로 별의별 사람의 유전자를 가진 동물들을 생산해내는데 성공했죠. 지구에 생물이 생긴 건 약 30억 년 전의 일이죠. 그때 지구에 생긴 바다에서 햇빛을 받아 광합성작용으로 해 생명유기체가 형성됐지요. 그러니까 지구촌의 모든 생물이, 말하자면 모든 동물들은 생김새는 서로 다르지만 유전자를 감정해보면 유사한 것이 많아요. 말하자면 고양이와 호랑이 유전자는 98.3%나 같죠. 사람과 원숭이, 성성이 유전자도 비슷하죠. 완전히 다른 유전자나 줄기세포로 새로운 생명체를 생산할 수도 있어요. 허나 2천여 년 전에 발명한 인류의 과학지식과 문명은 제10차 핵전쟁으로 해, 핵폭탄의 방사선과 지진, 해일에 몽땅 재 가루로 돼 사라져버렸지요. 그때 과학기술서적은 남은 것이 없었어요. 다만 중국의 만리장성과 애급 금자탑, 아카시아의 지구통일에 마멸할 수 없는 막대한 기여를 한 괴물 클론바우 17세 꼬마대통령의 공적을 기리어 세운 지구통일기념비 그리고 지구통일에 한 대천문학자 유리 박사의 공적을 기리어 세운 유리 박사 동상 외에 여러 묘비에 새긴 비문과 중국 막고 굴 돈황 벽화 밖에 남은 것이 없었어요.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일이나 중국 돈황 석굴의 관음보살이나 코치아 석굴암의 석 불상이 몇 천 년이나 남은 역사적인 기적을 잊지 말아야 해요. 이제부터라도 과학발명을 녹 쓸지 않는 구리에 새겨 석굴암에 보존할 것이 아주 필요해요. 컴퓨터나 디스크에 보관해서는 인차 사라져 버려요. 새로운 과학기술을 다시 발견하려면 인류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몰라요. 봐요. 지금 2천 년 전에 발견한 복제기술과 줄기세포 기술을 지금도 다시 개발하려면 또 시간이 걸려요. 과학기술 자료가 없기 때문이죠. 다행히 클론바우 16와 17세, 18세는 태공에서 천년 동안이나 잠자다가 수혜박사와 금별 대통령 그리고 금붕어 소장의 혜택을 받아 살아남았기에 인간복제 기술도 계승할 수 있게 되지 않았어요? 제2세 복제 클론바우의 유전자를 부엉이와 독수리의 수정란에 주입시켜 사람과 사자, 독수리, 부엉이 특성을 가진 제3세 복제 클론바우를 복제해냈어요. 독수리에게서 물려받은 클론바우의 사발 눈은 특수한 독수리눈이여서 천 미터 밖의 땅바닥에서 쥐새끼가 뛰놀아도 다 볼 수 있는 천리혜안이었죠. 그래서 레이더도 필요 없이 비행기나 뭇 짐승들이거나 사람들의 움직임을 다 보아낼 수 있지요. 그의 눈은 또 얼굴에 두 개 있는 외에 뒷골과 오른손 중지에도 하나씩 더 있죠. 그래서 뒤에서 오는 뜻밖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었죠. 한번은 아리바바 공국의 한 텔레비전방송국 기자가 아카시아 백악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서 들어가려는 클론바우 꼬마대통령을 뒤에서 비디오촬영기에 숨긴 소형미사일로 암살하려고 했어요. 그때 클론바우 17세 꼬마대통령은 뒷머리에 달린 눈알로 제때에 발견하고 코끼리 코와 같은 코를 휘둘러 비디오촬영기무기를 휘감아 내동댕이쳐 박살냈지요. 그래서 목숨을 구했던 것이죠. 맥슨 박사와 유리 박사는 복제 클론바우의 유전자를 선후해 사자와 독수리, 부엉이, 상어, 코끼리, 타조, 고래 등 숱한 동물의 수정란에 주입시켜 제4세로부터 제17세 복제 클론바우를 복제해냈던 것이죠. 그래서 클론바우 17세는 사람과 사자, 독수리, 상어, 코끼리, 타조, 고래 등 동물들의 모든 훌륭한 특성을 다 유전 받은 세상에 둘도 없는 인면수신의 괴물로 되었어요. 클론바우의 입은 독수리 주둥이처럼 뾰족한데다가 이발은 상어 이발처럼 날카로워 어지간한 생 짐승 고기도 칼을 쓸 필요 없이 마구 뜯어 먹을 수 있었어요. 클론바우에게 17세는 또 앞뒤에 팔 네 개에 3.5미터 되는 날개까지 두 개나 달려있었어요. 그래서 클론바우는 앞뒤 손으로 앞뒤로 달려드는 놈들을 때려눕힐 수 있을 뿐 아니라 승용차나 비행기가 필요 없이 푸르른 하늘에서 초음속 비행기보다도 더 빨리 훨훨 날아다닐 수 있었죠. 수십 년 전에 어머니 수혜 박사와 오빠 금별 대통령이 지하 동굴에서 클론바우 꼬마대통령을 냉동관 안에서 꺼내 주사를 놓아 살려 낸 후 지구를 통일한 비결을 얘기해 달라고 강요했지요.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금붕어의 어머니 박수혜 박사는 수하들을 시켜 마취독침을 쏘라고 암시했어요. 눈치를 챈 클론바우 꼬마대통령은 날개를 뻗쳐 화닥닥 날아오르면서 독침을 피하더니 글쎄 수하들을 네 팔로 쓸어 눕히고 금별 대통령과 그의 어머니 박수혜 박사 그리고 유리 박사님과 맥슨 박사를 안고 동굴을 벗어나 백산까지 날아간 적도 있었지요. 금붕어는 클론바우 17세에 관한 자료를 뒤적이면서 중얼거리었어요. “우린 지구촌을 보위하려면 클론바우 꼬마대통령 같은 슈퍼맨이 대량 필요해. 어서 우주에 올라가 클론바우 1세로부터 15세의 우주비행선을 찾아내 우리나라에 실어 와야지.” 클론바우는 그 말을 듣고 머리를 가로 저었어요. “클론바우 1세는 저 클론바우 가족의 조상들인데요. 어떻게 코치아에 실어와요?” “왜 안 돼?” “클론바우 가족은 아카시아 생물학자 맥슨 박사할아버지의 후손들이죠. 국적은 아카시아란 말입니다. 저는 클론바우 가족이 다시는 클론바우 17세처럼 날아가는 핵미사일을 안고 방향을 돌려 죤슨 악마가 탄 핵잠수함으로 덮쳐들다가 장렬히 희생되던 일이 재연되게 할 수 없어요.” 금붕어 소장은 클론바우 18세를 쏘아보며 말했어요. “얘야, 클론바우 가족의 할머니는 코치아의 유리 박사이다. 그가 살아계신다면 네 말을 들으면 얼마나 노여워하겠느냐?” 클론바우가 파초 같은 귀를 강구고 듣자 금붕어 소장은 내심히 타일렀어요. “우리 코치아를 봐라. 2천 년 전에 줄기세포연구에 착수했어. 하지만 조금만 실패하면 비난하고 중지시켜 줄기세포연구는 수많은 곡절을 겪었기에 발전하지 못했다. 유리 박사님과 맥슨 박사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벌써 천 년 전에 새로운 인종 클론바우 가족을 개발해낸 위대한 발명가이고 선구자란 말이야.” 클론바우 18세는 감개무량해 가슴을 들먹이며 씩씩거리었어요. 그 바람에 금붕어 소장의 허연 머리카락이 마구 휘날리었어요. 이튿날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왔어요. 금붕어 소장은 클론바우 18세를 불렀어요. “우주에 가서 클론바우 15세가 탄 우주비행선을 끌어내리어 오자.” “또, 또 시작하는 거예요? 아무리 복제를 해내도 나와는 상관없어요. 클론바우 여동생이 될 뿐 근친결혼을 하지 못해요.” “야, 이제 10대 소년애가 무슨 장가타령이냐?” 클론바우 18세는 할머니를 따라 우주비행선에 올라타면서 두덜거리었어요. “기원 2000년인가 해요? 지금은 기원 4000년이란 말입니다. 저는 밤에도 자지 않다나니 1년이면 남이 3년 사는 것만큼 살았단 말이오. 그러니 10대라도 남이 30살 먹은 거나 다름없이 성숙됐단 말입니다. 황차 지금 환경오염으로 해 사람들은 단명이란 말이죠. 내가 이제 몇 해 더 살지 알아요?” “얘, 고모 앞에서 무슨 말버릇이냐?” 그제야 클론바우 18세는 갈색 매 눈으로 고모를 흘끔 곁눈질하며 우주비행선을 하늘로 몰았어요. 우주비행선은 그들의 새 꿈을 싣고 하늘로 날아올랐어요. 우주비행선은 대기층에서는 괜찮았는데요. 태공에 올라가자 말이 아니었어요. 태공쓰레기로 해 우주비행선은 근본 속도를 낼 수 없었어요. 우주비행선 잔해로, 천여 년 전에 아카시아 악마 죤슨 대통령이 아카시아인들을 시켜 버린 생활쓰레기로, 오염이 심한 지구촌에서 살기 싫어 숱한 사람들이 우주비행선에 올라가 냉동관 속에 들어가 버린 바람에 숱한 낡은 우주비행선으로 해 태공은 무시무시한 유령들이 둥둥 떠다니는 염라왕국 같았어요. 클론바우 18세는 태공 쓰레기를 피해 이리저리 몰면서 두덜거리었어요. “정말 인간들이 대사야, 온 지구촌을 다 더럽히다 못해 우주까지 오염시켰단 말이야. 인간들이 요물이야. 인류가 지구촌에 생존하는 한 지구촌을 싹 못 쓰게 만들어. 싹 죽여 버릴 놈들이야.” 금붕어는 우주비행선의 둥근 유리창으로 바깥 하늘을 참빗질하면서 타일렀어요. “우리 인류가 환경의식이 바로 설 때면 우리 지구촌은 환경이 좋아져 살기 좋은 곳으로 될 거야.” “깨지 못한 인간들이 욕심을 쓰다나면 언제? 편안하게 살자고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다 못해 이젠 우주비행선을 탄단 말이야. 우리처럼 제 몸에 날개가 있어 하늘로 훨훨 날아다니면 얼마나 좋겠어?” “장차 새 인종은 너처럼 날 수 있어야 되지.” 금붕어는 희죽이 웃으며 말하다 새된 소리를 질렀어요. “저기 있어!” 클론바우 18세가 유리창으로 왼편을 바라보니 낡아빠진 우주비행선 하나가 유령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우주비행선에 새긴 색 바래진 글씨가 희미하게 보였어요.   우주비행선 주인: 클론바우 15세. 냉동관 입관 시간:2962년 11월 4일.   “바로 저거야!” 쉰이 넘은 금붕어 소장은 어린애처럼 환성을 질렀어요. 금붕어 소장은 이전에 조왕돌과 함께 쌓은 경험에 따라 아주 순조롭게 클론바우 15세 냉동관을 실은 낡은 우주비행선을 끌고 코치아로 서서히 돌아왔어요. 로봇독수리들과 로봇타조들은 낡은 우주비행선을 호위하면서 우주비행장에 내렸어요. 이렇게 금붕어 소장은 선후하여 클론바우 1세부터 14세까지 몽땅 끌어내려다 숱한 클론바우 가족을 복제해내 클론바우 부대를 건립하였어요. 연구소 울안을 보세요. 타조 인이 긴 목을 빼들고 모래톱을 쏜살같이 달리고 있어요. 그 뒤로 사자 인과 호랑이 인이 뒤 쫓고 있었어요. 고래 인이 파도를 헤가르면서 허~푸~ 허~푸~ 헤엄치며 윙크 하는 바다 가에서 악어 인들이 낮잠을 자고 있었어요. 황사가 흩날리는 하늘에서는 독수리 인들이 훨훨 나래 치며 군사연습을 하고 있었어요. 진짜 오래지 않아 코치아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에는 정상인들이 점차 사라지고 별의별 괴물들로 메워질 지경이었어요.                       제7장 정변 대통령 선거를 하기도 전에 허수아 총리는 대선출마를 선언하고 승용차를 몰고 도시와 농촌을 돌아다니면서 자기에게 투표하라고 유세를 했어요. “저 국무총리 허수아, 기호 1번, 1번에 투표하면 백성들은 베개를 베고 누어있어도 산더미 같은 복제호박을 먹을 수 있습니다 …” 그는 금붕어와 클론바우 18세가 태공에서 클론바우 15세를 내리어 타조 인을 개발한다는 정보를 듣고 아주 기뻐했어요. “참 좋아. 금붕어와 조왕돌은 인종개량에나 몰두해라. 그 틈에 난 대통령이 될 거야.” 허수아 총리는 흐뭇해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계속 유세를 했어요. 이때 허수아 총리의 유세를 듣던 백성들이 머리를 쓱쓱 긁으며 쳐다보더니 “말만큼 됐으면 방귀를 타고 서울로 다 가겠다.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어요. 옆에서 겨드랑이 밑을 긁어 이를 잡아 입에 넣고 바작바작 씹어 먹던 계집애가 욕설을 퍼부었어요. “백성들이 이를 잡아먹고 사는데 웬 복제호박소린가?” “잊지 마세요. 기호 1번, 허수아를 대통령으로 찍어주세요.” 허수아는 백성들이 뒤에서 자기를 욕하는 것고 모르고 도처에서 금붕어 소장을 헐뜯고 자기를 하늘에서 내려 보낸 주처럼 불어댔어요. 그리고 조왕돌 같은 10대는 셈이 들지 못해 나라를 맞길 수 없다면서 대통령 적임자는 자기라고 홍보했어요. 조왕돌은 후산에 날아오자마자 후산 국립생물연구소에 들어와 고모에게 이실직고했어요. “고모가 대선후보로 나서지 않는 바람에 허수아 총리가 이번 대선에 단독후보로 나선다고 해요.” 그제야 금붕어는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었어요. “난 또 무슨 급변사태나 벌어졌나 했지.” “고모, 그가 단독후보면 이번 대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요? 하나마나 허수아비가 대통령으로 될 거 아닌가요?” 금붕어는 말뚝처럼 떡 버티고 서 있는 조왕돌을 보고 내심하게 타이르기 시작했어요. “허수아 총리는 제일 자격 있는 후보야. 그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를 제대로 이끌어 생태환경을 개선하고 인종을 개량해낼 수 있다.” 그러나 조왕돌은 반발하고 나섰어요. “아닙니다. 그는 지금 뱀 섬나라와 야합해 임해에 독립왕국을 세우려고 꿈꾸고 있어요.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 금붕어는 허연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면서 말했어요. “전번에도 말하지 않았느냐? 지금 나라의 사분오열을 막기 위해선 단일후보를 내는 것이 옳다. 우린 과학이나 연구하고 정치에 관심하지 말자.” 조왕돌은 탁장까지 탕! 치면서 반발했어요. “그게 할아버지 대부터 몸 바쳐 피를 흘리며 싸운 나라를 책임지는 말입니까? 고모가 총리를 하면 어떻고 내 소년 대통령으로 되면 어떻단 말이요? 클론바우 17세 형님은 벌써 천 년 전에 10대 소년시대에 지구촌을 통일한 초대 꼬마대통령으로 되지 않았습니까? 클론바우 가족까지 우리를 도우면 우리가 능히 허수아비를 꺾을 수 있어.” 그 말에 금붕어는 적이 놀라 벌떡 일어나 조왕돌의 곁에 와 앉았어요. 그는 조카의 손을 잡고 내심하게 타일렀어요. “건 절대 안 돼. 그렇게 되면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한 뱀 섬나라 나까아버새 총리 형제가 어부지리를 할 일 밖에 있느냐?” “흥!” 조왕돌은 콧방귀까지 뀌었어요. “왜 그렇게 부처님 같이 약한 소리만 해요? 우리가 양보하면 허수아비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우리를 척결하고 뱀 섬나라에 주권을 팔아먹을 게 뻔합니다. 고모는 허수아비가 첫사랑이라고 너무 감싸고돌지 마십시오. 흥!” “다신 내 앞에서 허수아 총리 험담을 하지 말라!” 금붕어는 자기 사무 상 앞에 돌아가 앉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조왕돌을 쏘아보는 것이었어요. 한참 궁리하던 조왕돌은 벌떡 일어났어요. “알았어요. 고모는 연구소나 지키십시오. 흥!” “조왕돌아!” 금붕어가 뒤쫓아 나갔으나 조왕돌은 어느 결에 로봇독수리를 잡아타고 바람결처럼 하늘로 사라졌어요. 그날 오후에 코치아에서는 정변이 일어났어요. 글쎄 조왕돌은 로봇부대와 원숭이 인 부대를 거느리고 국회사당을 포위했어요. 전 지구촌의 보도매체는 위성카메라의 초점을 코치아 국회 마당에 돌렸어요. 숱한 기자들이 비디오촬영기를 메고 국회 마당에 쓸어들었어요. 허수아 총리는 조왕돌을 불러 훈계조로 물었어요. “뭐 하려는 거야?!” “우린 국회에서 무 호보 대선 결의안을 순조롭게 통과하게 보호하러 왔습니다.” “야, 네가 감히 내 앞길을 막으려는 거야? 난 네 아버지를 도와 악마 죤슨과 나까아멘을 처단한 1등 공신 총사령관이고 총리란 말이야? 나를 내놓고 이 나라 대통령이 될 후보가 또 누가 있단 말이냐?” 조왕돌도 만만치 않았어요. “허허허, 묵은 그루에 이밥을 먹던 소리를 작작 하세요. 나까아멘 악마를 처단할 때 누가 총사령관이었단 말입니까? 이 조왕돌 총사령관이 로봇부대와 조왕돌 부대를 파견해 나까아멘 악마와 싸울 때 당신은 후방에 숨어서 입방아만 찌었지 한 일이 뭡니까?” 허수아도 진짜 허수아비처럼 물앉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이 버릇없는 새끼를 봐라! 너의 아버지 금별과 난 짜개바지친구야. 우리가 야망의 바다에서 아카시아 악마 죤슨을 처단할 때 넌 이 세상에 나지도 않았다. 이마에 피도 마르지도 않은 10대 짜개바지 입은 놈이 대통령을 탐내? 고목을 늙었다고 잘 못 건드렸다가 깔리면 일어나지 못해.” “당신이나 임해 독립왕국 꿈을 꾸지 말란 말이요. 나라를 사분오열 하려는 당신 음모를 모르는 거 같은가?” “흥!” 기자들은 허수아 총리와 조왕돌 총사령관의 불꽃 튕기는 설전을 비디오카메라에 담으며 코치아의 앞날을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딱, 딱, 딱! “통과 됐습니다!” 국회 의사당 안에서 의장이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바깥의 확성기에서 울렸어요. “뭐라고? 통과라니?” 허수아 총리는 국회청사에 걸린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서 자기 눈을 의심했어요. 조왕돌과 클론바우 18세가 제기한 제의 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어요. 분명 국회의원들은 단독후보공천을 반대하고 있었어요. 조왕돌은 깔깔깔 웃었어요. “내가 뭐랍디까? 민주와 자유, 정의를 지지하는 백성들은 분명 우리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젠 사흘 후면 백성들의 대통령이 나올 겁니다.” 사흘 후죠. 이날은 코치아 백성들이 잊을 수 없는 대선의 날이었어요. 이게 뭐예요? 반전이 일어났던 것이죠. 전번에도 그랬지만요. 후보에도 나서지 않고 대통령선거에 근본 관심이 없는 금붕어 소장의 표수가 제일 많았어요. 코치아의 투표인수가 총 3천만여 명밖에 안 되는데요. 금붕어 소장이 첫 자리를 차지했는데요. 1천 9백만 표나 됐어요. 그 버금으로 조왕돌 총사령관 600만 표, 세 번째로 허수아가 글쎄 300만 표, 꼴지에 클론바우 18세가 50만 표였어요. “안 돼, 어찌 이럴 수가 있어?” 허수아 총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백성들은 방사능오염에 쓰러져가는 백성들의 안위는 돌보지 않고 단독후보 공천을 내세워 대선 유세에 피 눈이 돼 돌아다닌 그를 미워했어요. 허나 백성들은 대통령선거에는 관심이 없이 지구촌의 생태환경과 인류의 생존 그리고 백성들의 안위를 근심해 과학연구에 몰두하는 착한 금붕어 소장을 백성들의 대통령으로 뽑았지요. 또 강대한 국방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한 뱀 섬나라와의 전쟁을 앞두고 총명하고 파워 넘치는 조왕돌을 꼬마대통령으로 뽑았던 것이죠. “허, 참, 코치아 백성들은 종족관념이 무서운 사람들이구먼.” 클론바우 18세는 코끼리 코를 어루만지며 속상해 눈물까지 흘렸어요. 눈물방울이 어찌나 컸는지 발등을 깰 지경이었어요. “나도 조왕돌 총사령관을 도와 코치아를 보호하려고 피 흘리며 싸웠건만 인정해주지 않는구먼. 어디 코치아에서 섧어서 살겠어? 전쟁을 하면 ‘클론바우’, ‘클론바우’ 하고 평화 년대에는 소 닭 보듯 한단 말이야.” 클론바우 18세가 대성통곡을 치자 금붕어는 위로해 주었어요. “대통령은 안 됐지만 코치아 역사에는 너의 공훈이 커.” 클론바우 18세는 답답해 바깥으로 나가더니 파초 같은 귀를 펄럭이며 중얼거리었어요. “코치아 능연 각상에 누구 얼굴 새길 거냐? 세상은 넓고도 넓건만 코치아는 클론바우 가족을 용납하지 않는구나.” 괴물 클론바우 18세는 사발 눈에 눈물을 흘리며 무슨 궁리를 한참 했어요. 이윽고 그는 마음을 먹은 듯이 7미터나 되는 커다란 날개를 퍼덕여 하늘로 날아올랐어요. 그는 뒤도 바라보지 않고 동북 방향을 바라고 훨훨 날아가 버리었어요. 한편 조왕돌 총사령관은 코치아 정예군을 거느리고 후산시 국립과학연구소를 보위하러 왔어요. 탱크가 둘레를 요란하게 돌면서 지키고 로봇들이 분주히 돌아치며 수시로 주위 정황을 동영상으로 찍어 국립과학연구소 사무실 안에 있는 조왕돌 총사령관에게 보냈어요. 조왕돌은 고모를 보고 정중히 인사했어요. “감축 드립니다. 우리나라 수천 년 역사에서 19번째 여대통령으로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고모, 아니, 금붕어 여대통령님,” 그러나 금붕어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어요. “난 대통령을 할 예산도 없어.” 조왕돌은 정색해 고모를 보면서 말했어요. “고모는 백성들이 선거한 당당한 대통령입니다. 전번에는 오빠와 경쟁하기 싫어 그랬다 치고 이번에는 사양하지 마세요.” 금붕어는 난처해했어요. “얘야, 난 지금 연구해야 할 항목이 너무나도 많아. 타조 인에 뒤이어 고래 인을 만들어 클론바우 18세와 궁합을 맞춰 봐야 하겠다. 그 애는 장차 너처럼 장가도 가고 부드러운 피부를 가지고 싶다고 했어. 헌데 방사성이 강한 지금 지구촌에서 어떻게 정상인의 피부를 가질 수 있느냐? 정상인들의 피부도 방사성오염에 견디는 악어나 뱀의 피부로 개량하려고 하는 세월에 무슨 궁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고모의 말을 듣고 조왕돌은 머리를 끄덕였어요. “그래요. 며칠 새 클론바우 18세가 보이지도 않아요. 모든 근심을 내려놓고 대통령 보좌에 오르세요. 제가 잘 지켜드릴게요.” 이때 바깥이 소란스러워졌어요. 조왕돌이 손목에 찬 컴퓨터를 보니 허수아 총리가 손을 휘저으며 금붕어 대통령을 만나자고 떠들썩하고 있었어요. 금붕어는 머리를 끄덕이었어요. “들어오라고 해라.” 허수아 총리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금붕어와 조왕돌을 번갈아 쏘아보며 말했어요. “이번 대선은 무효이다! 어떻게 단일후보를 폐지하고 1차선거로 대통령을 뽑아? 말도 안 돼!” 금붕어는 손수 차를 따라 드리며 “나도 대통령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요. 백성들이 뽑았으니까 어찌 하는 수가 없군요.”라고 부드럽게 말했어요. 조왕돌은 씩씩거리는 허수아 총리를 보면서 정색해 말했어요. “백성들이 뽑은 대통령인데요. 누가 감히 왈가불가 해요? 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거요.” “거들먹거리긴? 까불지 마!” “뭐라고요?!” 조왕돌은 격분해 일어났어요. 이때 파리로봇이 앵 날아오더니 조왕돌의 귀에 앉아 말했어요. “총사령관님, 저 허수아비는 자기를 옹호하는 숱한 군인들을 임해로 보내 집결시키고 있어요.” “음~” 조왕돌은 허수아 총리를 흘끔 곁눈질 하더니 바깥으로 나왔어요. 그는 장병들을 불러 놓고 포치했어요. “경계를 허술히 하지 말라.” 그는 수하 군관에게 뭐라고 한참 포치한 뒤 사무실로 돌아왔어요. 금붕어 대통령이 허수아의 손까지 잡고 애원하듯 말하는 것이었어요. “오빠, 우리 힘을 합쳐 코치아 생태환경을 복구하자. 총리를 계속시킬 터이니 날 좀 도와줘.” “쳇,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됐지? 네 치마 밑에서 총리나 해야 하니? 흥!” 금붕어 대통령은 허수아의 손을 놓고 자리에 돌아가 앉아 물었어요. “그래, 대체 어쩌려는 거야?” 허수아도 정색해 말했어요. “나는 우리 조상들이 살던 임해로 내려가 ‘임해’라는 나라를 세울 예산이야.” “말도 안 돼!” 금붕어는 사무 상을 탕 치며 벌떡 일어났어요. “그래, 무슨 짓거리야? 코치아를 사분오열해?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조왕돌도 정중히 말했어요. “왜 그렇게 오망을 써요? 그래 또 동포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싸우겠어요?” “난 닭의 대갈통이 될지언정 돼지 꼬리를 하지 않겠어.” 허수아는 툭툭 털고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 버리는 것이었어요. 조왕돌은 귀에 날아 들어간 로봇파리를 시켜 로봇모기를 시켜 허수아에게 독침을 쏘게 하고 싶었어요. 허나 고모의 눈치를 보면서 그만 두었어요. “저 걸 어쩌니? 뭐 ‘임해국’을 세워?” 이때 귀에서 로봇파리가 말했어요. “허수아 총리는 이미 헬기를 타고 임해로 내려갔어요. 그는 이미 임해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대통령으로 올라앉았어요. 그를 따르는 무리가 족히 30여만 명은 돼요.” 금붕어가 대성질호했어요. “이건 정변이야, 정변!” 조왕돌 총사령관은 벌떡 일어났어요. “고모, 아니, 대통령님, 제가 로봇부대와 조왕돌 부대를 이끌고 임해로 내려가겠습니다.” 금붕어 대통령은 황급히 일어나며 손사래를 쳤어요. “안 돼! 내전은 절대 안 돼!” “허나 그놈 허수아비가 조만간에 군대를 몰고 이리로 쳐들어 올 거예요. 선제공격을 합시다.” “안 돼! 절대 무력을 써선 안 돼.” “그럼 어쩐단 말이요?”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해. 일단 우리는 북으로 올라가 수도 연화시에 대통령 부를 세우고 허수아와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자.” “그 놈이 제대로 발을 붙이지 못했을 때 들이치면 반나절도 안 걸리겠는데요. 이제 놔두었다가 진짜 나라가 진짜 남과 북으로 갈라지겠어요.” “그래도 무력은 안 돼. 허 총리와 대화를 해 보자.” “다 고모가 우유부단한 탓이죠. 진작 대통령에 취임했더라면 저 허수아비가 대통령 꿈을 꾸지도 않았을 거요.” 금붕어는 도리머리를 저었어요.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왜 저래? 악마야, 악마!” 금붕어와 조왕돌은 연구일군들과 군인들을 영솔해 황급히 북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어요. 그 대오 속에는 괴물 클론바우 가족도 끼어 있었어요. 허나 클론바우 18세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어요. 참 실망스러운 일이었어요.
15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머리말 댓글:  조회:3754  추천:13  2015-03-18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머리말        반만년을 피 줄을 이어온 우리 조선민족은 피눈물 나는 수난도 많이 겪어왔다. 특히 한일 합방 후 야수 같은 일제의 철 발굽 아래 망국노의 설음을 맛 볼대로 다 맛보았다.        나의 증조부와 할아버지, 아버지의 고향은 조선 함경도 명천군의 한 두메산골에 있었다. 일본 놈들은 소잔등 같은 바위돌이 더덕더덕 들어 눈 돌밭에, 심지어 터 밭에마저 곡식을 심지 못하게 하고 소나무를 심으라고 핍박하였다. 손바닥만 한 밭마저 없게 된 우리 일가는 “만주에 가면 땅이 넓어 배불리 먹으면서 살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1925년 동지섣달 눈이 풀풀 흩날리는 엄동설한에 정든 고향을 떠나 중국 만주에 들어왔다. 그때 나의 아버지는 일곱 살 밖에 안 됐다. 아버지는 큰아버지의 지게에 올라가 앉기도 하고 몸이 얼어들면 지게에서 내려 걸으면서 부모를 따라 만주 땅에 발을 들여놓았다.         나의 일가가 걸어온 길은 수천수만의 중국조선족들의 피눈물 나는 이야기속의 하나이다. 중국에 들어온 우리 조선족들은 이 땅에 첫 괭이를 박아서부터 해를 이고 나가 달과 별을 지고 돌아오면서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 벌을 만들었고 이 땅을 보호하기 위해 형제민족들과 함께 피를 흘리면서 목숨까지 바쳐 일제 침략자들과 결사적으로 싸웠다. 한반도와 만주에는 항일투사들의 발자국이 역력히 찍혀있다. 의병대장 홍범도 장군, 김좌진 장군, 항일의사들인 안중근, 윤봉길… 등 항일투사들의 얼이 이 땅에 살아 숨 쉰다. 휘날리는 오성 붉은 기에는 우리 조선족 선열들의 선혈도 물들어있다. 그들은 일제를 몰아내고 광복의 기쁨을 맛보았으며 분단의 아픔도 맛보았다. 조선족들은 한족을 비롯한 형제민족들과 함께 중국공산당의 영명한 영도아래 토지개혁을 하여 토지를 분배받았으며 따뜻한 대가정의 현명한 민족정책 아래 이 땅에 연변조선족자치주까지 일떠세웠으며 나라의 진정한 주인으로 되였다. 그들은 중국공산당의 영도아래 이 땅에 두 번째 고향을 개척하였으며 새로운 장렬한 민족의 서사시를 엮었다.        나는 수많은 조선족 할아버지들의 이민사를 정리하면서 그들이 일제 통치하에서 정든 고향을 떠나 신음하며 살아온 피 눈물 나는 이야기, 항일투사들의 피어린 항일투쟁사 그리고 해방 후 당의 영명한 령도 하에 우리 조선족들이 행복한 생활을 하여온 이야기를 많이 듣고 보고 정리해냈다. 이 내용을 주선으로 조선족 백년 역사의 한 폐지를 보여준 대하소설을 써서 조선족들에게 자그마한 기념비를 세워 주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받았다. 그리하여 대학을 갓 졸업한 열혈청년교원시절부터 쉰 고개를 넘어설 때까지 과외시간에 프랑스 작가 발자끄의 “인간희극” 속의 수많은 장편소설들, 조선 작가 리기영의 장편소설 “두만강”, 한국 작가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과 “아리랑”, 한국 작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중국 조선족작가 리근전의 장편소설 “고난의 년대” 등 수많은 역사제재소설을 읽으면서 장편소설에서 역사반영의 예술특징을 연구하고 역사제재 소설 창작기량을 닦으려고 모지름을 썼다.       하루 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나는 계몽스승들인 김재권 선생, 김진산 선생, 김설봉 선생, 김철환 선생, 리광평선생의 고무와 지도를 받고 용기를 내여 지난 세기 80년대 초에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을 창작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교원사업이 힘든데다가 대하소설 출판가능성을 저울질하다나니 약 55만여자 창작하고 필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일반교원인 내가 대하소설을 창작하여 출판한다는 것은 중국 조선족 문단과 출판부문으로 놓고 말한다면 하늘의 별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스스로 정신 기둥이 무너져 물러앉은 셈이었다. 그후 20여 년 동안 십여 차 이사하면서도 나는 그 초고를 버리지 않고 간직해왔지만 감히 계속 써내려갈 엄두를 내지도 못하였다.       그후 20여 년 동안 연변인민방송국의 기자와 연변인민출판사의 편집사업을 하면서 나는 한동안 핍박에 의해 양산박에 오르듯이 “구멍 막기 식 땜질 문학창작”을 해왔다. “성인문학 작가이기에 아동문학창작을 잘 할 수 없다.”는 일부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문학 창작에 몰입하여 아동문학 작품집 “호랑이와 사냥꾼”과 장편 과학 환상소설 “야망의 바다”와 “욕망의 천지”를 창작하여 세상에 내놓았으며 “동심컵” 한중아동문학상과 “옹달샘컵” 한중아동문학상도 탔다. 작가협회 수필분과에 속한 작가로서의 체면을 차리려고 수필집 “리별”도 펴내고 수필집출간식도 가졌으며 제1회 두만강수필문학상을 비롯해 대소 수필상도 6개 받았다. 방송국 기자로 사업하면서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와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를 연변인민출판사 김철환주임선생님, 리성권 전임사장과 김근총주임선생님의 방조하에 출간하였다. 그후 문학작품집 “사랑환상곡”을 한국 학술정보사에서 출판하였으며 문학작품집 “사랑은 요술쟁이야”와 실화집 “빨간 장미꽃 함정”을 연변인민출판사와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출판하였다. 그외에 나는 중편과학환상소설 "괴물 클론바우 꼬마대통령 모험기", 중편과학환상소설 "지구보위전", 중편소설 "사랑환상곡", 중편소설 "애인바람", 중편소설 "무덤으로 향한 참사랑" 등 300여편의 중단편소설과 동화, 수필, 실화를 발표하였다. 문학창작에서 신심을 얻은 나는 대담히 다시 필을 들고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을 창작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구사회로 돌아가 밤이면 밤마다 우리 민족의 조상들과 항일투사들과 함께 당시 생활을 함께 하면서 팬 밤이 그 얼마인지 모른다. 어떤 때에는 꿈에 나타난 그분들과 함께 숨 쉬고 담소하고 울기도 하였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다. 내 필 끝에서 우리 민족의 조상들과 수많은 항일투사들이 재생했고 작품 속에서 활동하게 되였다. 다년간 방송국 기자 사업과 여러 가지 종합잡지 편집사업을 해왔기에 글을 써놓고 다시 읽어보면 어쩐지 열혈 청년시절에 쓴 것보다도 생동하지 못한 곤혹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더는 대하소설창작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민족의 사명감과 의무감을 안고 우리 민족에게 자그마한 기념비라도 세워줘야 하겠다는 의욕 밑에 필승의 신념으로 밤중까지 이 대하소설창작에 혼신을 불태웠다. 어떤 때에는 새벽부터 도정신해 글을 쓰다나니 시계를 올려다보고 출근 시간이 돼 짝짝 신을 다 신고 단위로 달려가서 편집들의 웃음거리를 만든 적도 있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휴식일이면 하루에 열 몇 시간씩 컴퓨터에 마주 앉아 까딱하지 않고 글을 수개하다나니 엉덩이에 썩 살이 배기고 부스럼과 종기까지 나서 너무 아파 엉덩이를 들고 쪼그리고 앉거나 가슴에 베개를 받치고 엎드려 글을 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창작에 너무 열을 올리다나니 눈이 너무 피곤해 피가 지고 고기가 동공에 씌우기 시작해 수술까지 했다. 그래도 나는 어디로 출장 가든지 핸드 컴퓨터거나 필기장과 필을 가지고 다니면서 소설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한번은 인천공항에서 글 쓰기에 도정신 하다나니 그만 항공편을 놓칠 번 한 적도 있었다. 한번은 길림신문사에서 수필문학상시상식이 있었는데 나는 시간이 아까워 수상하러도 가지 못했다.  또 한번은 길림신문사 로인수기상 평심위원으로 돼 50여편의 수기를 다 평심했지만 시간이 아까와 시상식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시간을 짜내  "로년세계" 편집사업을 하면서 소설창작에 몰두하였다. 제일 한심한 것은 그렇게 밤낮 애타게 창작한 파일이 컴퓨터 건판을 하나 잘 못 눌러 50만자나 없어진 것이다. 그때 나는 컴퓨터기술이 차해 되돌리기를 할줄 몰라 파일을 원래대로 복원하지 못했다. 나는 너무나도 애나고 실망하고 맥이 풀려 한 주일이나 다시 컴퓨터에 마주 앉아 글을 쓰지 못했다.        나도 칠정육욕이 있는 사람이다. 남들처럼 술도 마음껏 마시고 장기도 놀고 싶고 아내와 함께 명승고적을 유람하기도 싶었다. 허나    항상 “놀 걸 다 놀고 언제 글을 쓰냐?”라고 하던 김재권 은사님의 가르치심을 되새기면서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놀고 싶은 야마를 정복하고 기나긴 “글 감방”에 갇혀 글을 쓰고 또 썼다. 나는 20여 년 기나긴 세월 글 감옥에 갇혀 우리 조선민족을 위해 뭔가 자그마한 기념비라도 끝내 만들어 냈다는데서 더 없는 긍지감을 느낀다. 오늘 “글 감방”에서 나오면서 “글 감방”에 갇혀 살아온 지나간 나날들을 후회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생행로에서 아주 보람차게 살았다고 가슴깊이 느낀다.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에 많은 흠집이 있으리라고 생각되면서도 우리 민족 조상들이 살아온 한 폐지를 찾아볼 수만 있고 우리 조선민족에게 자그마한 기념비라도 세워주었다면 행운으로 여기겠다. 나는 평생의 정력이 깃든 이 대하소설을 항일전쟁승리 70돐과 우리 사랑스런 조선민족의 광복 70돐에 삼가 드리는 바이다.        생전에 많은 역사제재를 제공한 우리 민족의 조상들에게 감사의 큰 절을 올린다. 그리고 이 대하소설의 출판을 위해 용기와 신심을 주시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여러분들께 삼가 감사를 드린다. 특히 한국 새 천년 민주당 전임대표이며 세계선린회 서영훈 이사장님, 이웃사랑복지회 이정호 회장님, 한국 경기도 교육삼락회 채순목 회장님, 계몽스승들인 김재권선생님, 김설봉선생님, 김철환선생님, 김진산선생님, 그리고 중국 연변인민출판사 이성권 전임사장과 료녕민족출판사 조문편집실 전임주임이며 심양시 고려경제문화교류중심 이사장 전정환,  그리고 이 대하소설을 힘써 내준 한국 교문사 이완표 사장님과 편집선생님 여러분께 삼가 감사를 드린다. 저의 작품에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드넓은 민족심으로 널리 량해할 것을 바란다.                                      저자 김장혁                                                          2013년 1월 31일 중국 연길에서                        
14    장편과학환상소설 "황천의 유령" 표지 댓글:  조회:1992  추천:1  2015-02-15
13    장편과학판타지소설 "황천의 유령"(1) 댓글:  조회:2091  추천:1  2015-02-09
장편과학환상소설 황천의 유령 김장혁 저                                                 차례 머리말 제1장 사랑의 오아시스 제2장 쌍두머리 연체 기형아 제3장 사냥개 사람과 멧돼지 인의 탄생 제4장 수렴동의 원숭이 왕 제5장 분기 제6장 클론바우 가족들 제7장 정변 제8장 평화장막 뒤 연극 제9장 아마존 열대우림의 호랑이 왕 제10장 치과병원에 나타난 괴물 제11장 괴물의 기적 제12장 아마존 열대우림에서의 생사박투 제13장 괴물 꼬마대통령과 여대통령의 겨룸 제14장 밤중에 나타난 미녀들 제15장 피눈물로 얼룩진 금 목걸이 제16장 우박과 별똥 제17장 어부지리 제18장 민주투표 제19장 평화 제20장 불쌍한 원숭이와 호랑이 제21장 지구촌의 우산 제22장 악마의 끝장 제23장 하늘땅이 진노 제24장 황천 제25장 유령                                 머리말 인류의 절제 없는 욕망으로 인해 지구촌의 생태환경은 여지없이 파괴되고 있다. 하늘에 구멍이 펑 뚫리기 시작했다. 도시를 메우는 자동차들의 페기, 수풀처럼 일떠선 굴뚝에서 내뿜는 연기… 온실가스로 인해 오존층이 파괴돼 자외선이 인류 생존의 터전을 위협하고 있다. 일부 군국주의자들이 암암리에 얼기설기 금이 간 지구 지진대에서 미친 듯이 핵실험을 해 화산 폭발과 지진을 끊임없이 유발하고 있다. 러시아 체르노빌에서, 일본 후꾸시마에서, 지구촌의 여기저기에서 끊임없이 원전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인류의 무질서한 핵 장난으로 해 지구촌은 나날이 방사성 오염이 심해가고 있다. 황사와 연기, 미세먼지는 지구촌의 하늘을 가릴 지경이다. 이제 멀지 않아 인류는 무더운 여름에도 방독 면구를 쓰고 방독복장을 입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인류는 끊임없는 욕심을 절제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고 말게 될 것이다. 지구 생태환경 보호는 전 인류의 생존을 위한 급선무이며 중대한 공정으로 부상했다. 이 황홀한 꿈은 작가인 저를 부르고 있다. 나는 이 막연한 꿈을 향해 무조건 죽기내기로 달려 갈 것이다. 화산이 폭발하고 지진이 일고 해일이 덮쳐 와도 그 괴상하고 엉뚱한 꿈을 향해 날아 갈 것이다.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한생에 나는 작가의 사명감과 의무감으로 우리 민족과 나라의 번영발전, 지구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쳐 끊임없이 필을 날릴 것이다. 독특하고 낭만적인 예술수법과 자유분방한 필치로 지구촌의 생태환경과 인류의 생존을 보호하기 위해 엉뚱하고 괴상한 과학 환상소설을 창작해내려고 모질음을 썼다. 이것이 바로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황홀한 꿈을 실현하는데 자그마한 보탬이라도 하려는 나의 꿈, 과학 환상세계로 훨훨 날아가는 나의 엉뚱한 꿈이다. 한국 교문사 이완표 회장님과 편집선생님들께서는 2013년에 나의 장편과학환상소설 “욕망의 천지”를 정성을 다해 출판해 주셨다. 한국 아동문학연구회 부회장이며 “서울문학” 주필 서정일 선생님께서는 나의 장편 과학 환상소설 “야망의 바다”와 그 속편 “욕망의 천지” 줄거리를 한국 “서울문학”에 실어주셨다. 연변인민방송국의 청소년편집부 부장 채선 여사께서는 나의 장편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를 연속방송드라마로 각색하여 지난해에 연속 방송해주셨다. 수많은 네티즌 분들께서는 조글로 홈 페이지에 들어와 나의 장편과학환상소설들을 보셨다. 중국 연변아동문학연구회 회장이며 저명한 문학평론가, 아동 문학가이신 김만석 교수님께서는 저의 장편과학환상소설 “욕망의 천지”를 두고 “욕망의 과학 환상소설”이란 제목으로 문학평론을 쓰셨으며 중국 연변아동문학연구회에서는 나의 장편과학환상소설 “욕망의 천지”에 “웰빙 아동문학상”과 묵직한 상품을 안겨주었다. 이는 번개처럼 번쩍이는 창작 영감이 내 머리를 치게 한 “불티”였으며 “황천의 유령”이란 환상세계로 힘겹게 날아가는 나에게 환상의 나래를 펼쳐주었다. 나는 끝내 장편과학환상소설 3부작- “야망의 바다”, “욕망의 천지”, “황천의 유령”을 창작해냈다. 중편과학환상소설 “괴물 클론바우 꼬마대통령 모험기”와 “지구 보위 전”은 모두 장편과학환상소설 3부작과 연관된 전주곡이므로 5부작으로 된 대하과학환상소설인 셈이다. 2005년부터 10년 동안에 나는 5부작 과학환상소설로 된 나의 두번째 대하소설을 창작해낸 것으로 해 인생을 보람차게 보낸 긍지를 느낀다. 가련하게 짧고도 짧은 반디 불 인생에 과학 환상소설 탐구와 창작은 저 가없는 우주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쓸쓸하고 고독한 골고다의 언덕을 넘어 "황천"에서 "유령"처럼 벗어나면서 예순 고개 마루를 바라보니 인생은 너무나도 허무한 일장춘몽이라, 자유로운 독수리로 둔갑해 지구촌을 훨훨 날고 싶은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 번진다. 특히 장편과학환상소설 “황천의 유령”을 출판해 주신 한국 교문사 이완표회장님과  편집선생님들께 삼가 감사를 드린다. 이제껏 항상 나의 문학작품 출판을 물심양면으로 지지해 주고 제1애독자로 된 아내 이영숙씨 그리고 나의 판타지소설 창작을 위해 많은 최첨단 과학기술정보를 제공해준, 길림대학에서 지구응용물리학을 전공한 아들 김문천과 일본 고베대학 해사과학기술학부 해양기상연구실에서 석사연구생으로 해사에 전공한 며느리 정연에게 감사를 드린다. 특히 나의 인생에 최대의 선물이고 삶의 에너지인 맞손자 김세빈을 안겨준 아들과 며느리에게 이 기회를 빌어 감사를 드린다.   저자 김장혁 2015년 3월 9일                         제1장 사랑의 오아시스   방사능 오염이 극심한 기원 4009년 어느 하루 밤이었죠. 십여 년 전에 제11차 세계핵전쟁 때 뱀 섬나라 악마 나까아멘이 달을 폭파해버리었죠. 그 바람에 일그러지고 못생긴 반 조각달이 하늘에 떠있었어요. 이젠 지구촌에서는 구리바라 같이 둥근 보름달을 볼 수 없었어요. 조각달의 쓸쓸한 달빛이 화산재로 뒤덮인 시꺼먼 화산섬과 허연 바다를 갈라놓았어요. 철썩철썩 화산바위를 치는 바다의 물결이 뱀과 뱀 인들이 욱실거리는 음침한 화산섬의 밤을 공포에 떨게 했어요. 화산재가 뒤덮인 저쪽 화산 동굴 어귀 야자나무 가지에는 얼룩 몸뚱이에 사람의 머리가 달린 뱀 인이 디룽디룽 걸려 있었어요. 꽈르릉 꽝꽝! 갑자기 요란한 폭음과 함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달빛이 어린 고요한 바다에 백길 불기둥이 솟아올랐어요. 아차, 바다 밑에서 화산이 폭발한 거예요. 화산 돌멩이와 화산재가 화산 동굴 어귀에까지 날아와 쿵쾅, 쿵쾅, 퉁, 퉁 떨어졌어요. 나무 가지에서 기린의 목같이 실한 얼룩 뱀이 털렁 떨어져 스르르 굴로 기어들어갔어요. 야산의 들개들과 멧돼지들이 날 살리라고 화산 동굴로 뛰어 들어갔어요. 음침한 화산 동굴에서는 뱀 섬나라 뱀 왕이 총리 나까아버새와 코치아의 정치망명가 김우성 대통령, 신하들과 함께 미래 인류의 생존을 두고 토론하고 있었어요. “에이, 저 놈들이 어디라고 마구 뛰어들어?!” 뱀 왕이 나무기둥에 디룽디룽 매달린 채 1미터 반도 넘는 긴 혀를 날름거리며 고함치자 총리 나까아버새도 귀찮은 듯이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에이고, 멧돼지들까지 우리 동굴에 뛰어들다니? 여기 무슨 민정부인가? 대피소인가?” 그 소리에 몇몇 경호원들이 레이저 검을 휘두르면서 들개와 멧돼지들을 동굴 밖으로 쫓아냈어요. 허나 들개들은 아가리를 쩍 벌리고 달려들면서 화산 동굴에서 나가려고 하지 않았어요. 멧돼지들도 꿀꿀거리며 좀처럼 나가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뱀 왕이 왕의 풍도를 발휘했어요. “에이고, 놔둬라! 그 놈들도 살 길이 없어 믿고 들어왔는데.” “끄응~” 화산섬의 들개도 알아들었는지 뱀 왕을 쳐다보면서 울었어요. 멧돼지들은 꿀꿀 거리면서 아예 동굴 안에 앞다리를 쭉 벗고 들어 누었어요. 죽어도 뱀 왕과 함께 죽고 살아도 뱀 인들과 함께 살려는가 보지요. 짐승들도 뱀 왕과 나까아버새가 사는 이 화산 동굴보다 더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것을 아는가 보지요. 화산 동굴에는 적어도 뱀 인들과 인간들이 먹다가 버린 찌꺼기라도 있었죠. 하긴 끊임없는 화산 폭발과 달이 반 조각으로 폭파되면서 쏟아져 내린 달의 운석들로 해 뱀 섬나라나 코치아나 지구촌은 형편없이 파괴됐지요. 악의 축으로 돼버린 뱀 섬나라를 점령하기 위해 벌린 핵전쟁으로 해 뱀 섬나라 인간들은 방사능 오염을 피해 화산 동굴이나 전쟁준비로 파놓은 갱도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됐어요. 일부 돈 많은 부자들은 심지어 잠수함을 만들어 타고 바다 물속으로 피신해 살고 있었어요. 엉망진창이 된 뱀 섬나라를 복구하기에는 얼룩 몸뚱이에 사람의 대가리를 단 뱀 왕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이었어요. 그는 신하들이 반대하는 것도 마다하고 10여 년 전에 처단된, 뱀 섬나라 악마 나까아멘 왕의 먼 친척이 되는 나까아버새를 데려다가 총리 석에 앉혔고 우성 대통령을 고문으로 모셨던 것이죠. 뱀 왕은 벼루기 눈을 굴리면서 좌중을 둘러보더니 혀를 날름거리었어요. “이제부터 뱀 섬나라를 복구할 대책을 의논합시다.” 그러자 나까아버새가 공을 세우려고 먼저 입을 뗐어요. “화산 폭발, 지진과 해일 그리고 방사능 오염을 전승하고 우리나라를 복구하려면 인종부터 개량해야 합니다.” 그 말에 우성 대통령은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안 됩니다. 또 나까아멘 악마의 전철을 밟을 예산인가요? 사람도 아니고 뱀도 아닌 뱀 인들을 복제해내서 코치아의 조왕돌과 클론바우와 싸워서 얻은 것이 뭔가요? 세계 핵전쟁과 섬나라의 멸망 밖에 얻은 게 있어요?” 나까아버새는 첫마디에 면박을 당하자 기분이 상했어요. 자꾸 자기를 전임 왕과 연계시켜 염오하는 것이 피곤했어요. 허나 그는 용케도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버렸어요. 사실 나까아버새의 할아버지 나까이시이로는 731공정을 주도한 생체실험 전문가였지요. 그는 기실 천인공노할 전쟁범이었지만요. 아카시아 군이 섬나라 본토 등륙을 막는 전역에서 아카시아군에 반변해 등륙의 길을 열어주고 아카시아군 에 731공정 생체실험 자료를 몽땅 넘겨준 덕분에 처단되지 않았어요. 그의 가족은 아카시아 군에서 제공한 고급 아파트에서 아카시아 군의 두툼한 로임까지 받아쓰며 풍요롭게 살았어요. 그는 생물학자 동생 나까아밴새와 함께 생체실험을 해 얻은 새로운 인체비밀과 인종개량, 대량살상 생물화학무기 등 일련의 논문을 정리해냈던 것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나까아버새를 버새라 부르고 동생 나까아밴새를 밴새라고 별명을 지어 놀리었어요. 그는 우묵한 눈으로 우성을 돌아보며 물었어요. “그럼 우성 대통령께서는 다른 방도라도 있는가요?” “예.” 우성 대통령은 화산 너럭바위에서 일어서기까지 했어요. “우리 뱀 섬나라는 바다와 섬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우린 인종개량보다도 바다와 섬을 우리 인간들과 모든 생물들이 살기 좋은 친환경 지상낙원-사랑의 오아시스로 재건해야 합니다.” 그 말에 화산 동굴에 쭉 뻗은 두 앞다리 사이에 대가리를 파묻고 들어 누어 그들의 의논을 듣던 들개들과 멧돼지들마저 마치 알아나 들은 듯 귀를 뻘쭉 하며 일어나 앉았어요.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요?” 버새는 우성의 말을 반박했어요. “우리 뱀 섬나라에서 혼자 생태환경을 보호하고 개선해서야 무슨 쓸 데 있습니까?" 우성도 자기 관점을 주장했어요. "옛날에 한 깍쟁이 마을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집에 군일이 있었는데 모두 축의금으로 술을 한 병씩 가져가기로 됐습니다. 그런데 깍쟁이들은 '나 하나쯤이야' 하고 너도 나도 술 대신 물을 병에 담아 가지고들 가지 않았겠습니까. 결국 온 마을 사람들이 술이라고 가져온 걸 마셔 보니 몽땅 물이였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나 다 '나 하나쯤이야' 하고 너도 나도 생태환경을 복구하지 않아서야 됩니까? 우린 국제공조를 해 꼭 생태한경을 복구해야 합니다." 버새 총리는 또 반박해 나섰어요. "언제 그런 옛말을 다 들을 새 있습니까? 지금 방사능 오염에 우리 뱀 섬나라에서 정상인으로써는 살아남기도 힘듭니다. 혹독한 자외선으로 해 방독면구나 자외선 방지 우산을 쓰지 않고서는 살이 썩어 들어 갈까봐 화산 동굴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린 이런 열악한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을 복제해내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우성 대통령은 자기 관점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결국 우성 대통령은 식수조림해 녹지를 폭넓게 조성해 사랑의 오아시스를 건설하자고 하고 나까아버새 총리는 새로운 인종개량을 고집하였어요. 그때 뱀 왕이 기둥에 화산 동굴의 돌기둥에 스르르 기어 올라가면서 말했어요. “그만들 하십시오. 두 분의 생각이 모두 도리가 있습니다.” 뱀 왕은 돌기둥에 얼룩 몸뚱이를 둘둘 감은 채 대가리만 쑥 내밀고 혀를 날름거리었어요. “뱀 섬나라에 녹지를 조성해 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방사능 오염에 적응할 수 있는 인종개량도 합시다. 지금 우리 뱀 섬나라 백성들이 못 살 때를 만났다고 코치아로 도망치는 바람에 저 화산재가 뒤덮인 텅 빈 도시와 마을들에는 버려진 개들과 멧돼지들이 욱실거립니다. 참, 어쩌다 우리 뱀 섬나라가 이 지경이 됐어?” 어둠침침한 동굴 안에서는 땅이 꺼질듯 한 한숨소리만 들릴 뿐이었어요. 며칠 후, 뱀 왕은 더워서 혀를 널름거리면서도 돌기둥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왔어요. 그는 우성 대통령을 따라 화산 동굴에서 나가 구불구불 기어 간신히 산정으로 올라갔어요. 화산재가 두툼히 뒤덮인 화산에는 녹색의 초목은 찾아 볼길 없었어요. 대신 화산재 위에는 뱀이 구불구불 기어간 자동차 바퀴 자국 같은 자국과 사람의 발자국 자리가 남아 있었어요. 저 멀리에서는 검푸른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어요. 우성 대통령은 화산 주위를 둘러보면서 입을 뗐어요. “보십시오. 우리 뱀 섬나라는 해마다 수 백차 화산이 폭발하고 지진이 일어나고 해일이 섬을 덮치기에 사람이 살기 힘들어요. 섬에 화산재가 덮여 아열대 기후인데도 초목이 자라기 힘들지요.” 뱀 왕은 기다란 목을 빼들고 우성 대통령을 쳐다보면서 물었어요. “그럼 우리 섬에서는 이젠 영원히 푸른 초목을 볼 수 없단 말입니까?” 우성 대통령은 머리를 가로 저었어요. “아닙니다. 우리는 영국 왕립 온실처럼 두꺼운 유리를 댄 온실을 지어 화산재를 막읍시다.” 뱀 왕은 우묵한 벼룩 눈이 다 튀어나올 지경이었어요. “이 화산에 유리를 얼마나 날라 오면 그렇게 큰 온실을 짓겠습니까?” “섬마다 한두 개 온실을 지어 먼저 화산에 생존할 수 있는 묘목을 기른 후 화산에 옮겨놓고 기르자는 것입니다.” 그제야 뱀 왕은 빼들었던 목을 내리면서 “음~ 건 비슷해요.” 하고 말했어요. 그리하여 뱀 섬나라에서는 우성 대통령의 영솔아래 화산재에 견딜 수 있는 두터운 유리를 생산해 섬마다 온실을 지었어요. 진짜 200여년이 되도록 문제없는 영국 왕립 온실을 방불케 했어요. 뒤이어 방사능에 덜 오염된 아프리카 초목을 비행기로 날라다가 온실에 심어 화산에 녹색의 생태환경을 복구하기 시작했어요. 아프리카 초목은 대부분 사막과 모진 가뭄에도 살아 왔기에 뱀 섬나라 사람들이 온실에 심었다가 몇 달 후 화산재를 벗겨버리고 비옥한 흙을 날라다 펴고 심은 후 정성을 들여 가꾸자 기적적으로 살아났어요. 뱀 섬나라에는 점차 푸르른 나무숲이 생겨났어요. 진짜 이 섬 저 섬 여기저기에 축구장 몇 개만큼 한 사랑의 오아시스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나 세슘으로 오염된 바다에 사랑의 오아시스를 건설하려면 국제 공조가 필요했어요. 뱀 섬나라, 어느 한 나라의 힘으로써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우성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여 뱀 왕은 화산 동굴 옆에 세워진 핵발전소부터 없애 버리고 해변가의 둔덕과 바다에 풍력발전기를 세웠어요. 그리고 강물마다 수력발전소를 대량 앉히기 시작했어요. 특히 코치아 유명한 과학자 조왕돌에게서 새로운 마그마 발전기술과 무궁무진한 바다 파도의 힘으로 발전하는 새로운 발전기술을 인입해 무공해 발전에 새 돌파를 했어요. 우성의 가시집을 비롯한 숱한 지붕에는 태양에너지 발전기가 보기 좋게 놓이었어요. 하긴 뱀 왕은 몇 해 전에 원전사고로 수많은 방사성 물질이 바다에 흘러 들어간 일을 잊을 수 없었어요. 방사능물질에 오염된 바다의 물고기와 풀에는 대량 세슘이 검출되고 있었어요. 그뿐이 아니죠. 핵전쟁과 원전 사고로 해 공기에도 방사능물질이 많이 유포돼 뱀 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입쌀과 강냉이, 밀, 수수, 지어 산 속의 산나물에마저 세슘이 대량 함유돼 있었어요. 이런 곡식과 나물을 먹으면 인류는 멸종의 위기에 빠지고 말 것이죠. 세슘이 대량 함유돼 있는 사료나 풀을 먹고 자란 돼지고기를 먹으면 사람도 세슘에 감염되기 마련이라는 도리도 뱀 왕은 우성 대통령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이죠. 우성 대통령의 아이디어처럼 이제 과학자들이 방사능 오염물질을 중화시킬 화학제품을 연구해내기만 하면 바다와 육지의 방사능 오염은 꼭 제거할 수 있게 되었어요. 뱀 왕은 우성 대통령을 마주보며 기뻐 어쩔 줄 몰라 했어요. “이제 막 방사능 오염이 제거되고 푸르른 초목이 넘실거리는 뱀 섬나라의 사랑의 오아시스, 아니 찬란한 미래를 보는 거 같습니다.” 그 날 뱀 왕과 우성 대통령은 해가 중천에 걸릴 때까지 뱀 섬나라 나아가서 지구촌의 앞날을 그려보았어요. 저쪽에서는 우성 대통령과 뱀 왕의 꿈을 깨우려는 듯이 화산이 또 폭발했어요. 시뻘건 불기둥이 하늘을 찔렀어요. 꽈르릉! 꽝꽝! 연이어 일어나는 폭음과 함께 화산 돌멩이와 화산재가 이쪽으로 날아왔어요. 뒤이어 지진이 일어나 섬이 뒤흔들리고 해일이 덮쳐 왔어요. 화산 동굴의 숱한 뱀 인들이 날 살리라고 산등성이로 구불구불 기어 올라갔어요.           제2장 쌍두머리 연체 기형아 며칠 후 버새 총리는 속이 갑갑해 화산 동굴을 떠나 들놀이를 나갔어요. 그가 화산을 벗어나 한 고개를 넘어서니 푸르른 나무숲 속에 놀랍게도 한 마을이 보이었어요. (아니, 우리 뱀 섬나라에 이렇게 생태 환경이 좋은 마을도 있어?) 푸르른 수림 속에 줄지어 옹기종기 들어앉은 살림집들은 어찌나 아담한지 한 폭의 산수화를 방불케 했어요. 아열대 지대와는 달리 야자나무랑 적고 아프리카 사막에서 자라는 선인장이랑 많이 눈에 뜨이었어요. 이 마을은 또 우성 대통령의 아내 하루꼬와 가시부모 스즈끼 부부 등이 살던 고향 마을이었어요. 마을 뒷산에는 수림 속에 을씨년스러운 산신당이 도사리고 앉아 마을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마을 앞의 시퍼런 바다 물은 버새를 보고 환호하는 듯이 넘실넘실 춤을 추었어요. “코치아로 달아났던 뱀 섬나라 백성들이 이렇게 살기 좋은 마을에 다 돌아오겠구나.” 그가 한참 땀을 들이며 마을을 둘러볼 때었어요. 우성 대통령이 뭔가 들고 고개를 넘어오고 있었어요. “어디를 갔다가 옵니까?” 우성 대통령은 손에 든 주머니를 들어 보이면서 “아내가 오래지 않으면 몸을 풀게 돼서 미역을 사 오는 중입니다. 초음파 검사를 해 보니 뭐 쌍둥이라지 않겠습니까?”라고 했어요. “쌍둥이를 보게 된 걸 축하합니다.” 우성 대통령은 버새 총리의 손을 잡으면서 “자, 우리 집에 내려가 좀 쉬고 가십시오.” 라고 했어요. 버새는 사양하지 않고 우성 대통령을 따라 갔어요. “이 마을은 어떻게 돼 이렇게 생태환경이 좋은 대로 남아 있습니까?” 우성 대통령은 “우리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식수조림을 했지요.”라고 했어요. “가만, 그래 인종개량 문제는 뱀 왕과 의논이 잘 됐습니까?” “뱀 왕이 잘 접수할 거 같지 않습니다.” 버새 총리는 한숨을 후 내쉬었어요. “장차 정상인은 방사성 오염으로 해 이 지구촌에 살아남기 힘듭니다. 악렬한 생태환경에 대비해 지금부터 인종을 개량해야 하는데 그 둔한 뱀 왕의 귀에 통 말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건 코치아 금붕어 총리의 관점이었죠. 우성 대통령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버새 총리는 계속 지껄였어요. “뭐나 새로운 과학을 발견해내면 항상 보수파들의 반대를 받기 마련이죠. 허나 지구촌의 인류를 보존하려면 방사능 오염에 견디는 두터운 피부를 가진 새 인종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들은 어느새 선인장과 야자수가 줄느런히 늘어선 어떤 집 마당에 들어섰어요. “응아~ 응아~” 그때 집 안에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렸어요. 그것도 한 애가 아니라 두 애가 울어대는 목소리 같았어요. 우성은 늘그막에 본 쌍둥이를 안아 보려는 급한 마음에 미역 주머니를 든 채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어요. 그는 집 안에 둘러선 가시어머니와 조산사들을 헤집고 아내가 누운 침대로 다가갔어요. “보기요! 우리 쌍둥이를!” 아내 하루꼬는 남편을 외면하면서 줄 끊어진 구슬처럼 두 볼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어요. “왜?!” 우성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는 하루꼬의 옆에 누워 눈을 뜨지도 못하고 울고 있는 “쌍둥이”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아니, 이게 뭐야?!” 글쎄 하신은 하나인데 웬 나무 아치처럼 두 상반신에 머리가 둘이나 붙어 있지 않았겠어요. 더욱 놀라운 건 한 치나 되는 잿빛털이 부스스 난 팔에 온 몸에 뱀의 비늘이 덮여 있는 것이었어요. “세상에 이런?!” 조산사들을 번갈아 보아도 모두 외면할 뿐 묵묵부답이지 않겠어요. 그래요. 방사능 오염에 뱀 섬나라 여성들은 숱한 기형아들을 낳았지요. 하루꼬의 어머니 하도꼬는 눈물을 훔치더니 우울해 말뚝처럼 서 있는 우성과 스즈끼를 돌아보며 중얼거리었어요. “저 상반신을 수술해 둘로 나눠놓으면 되겠는데요.” 스즈끼는 무뚝뚝하게 말했어요. “둘 밖에 없는 다리를 어느 애에게 달아주겠어?” 우성은 너무 기막혀 무릎을 꿇고 쪼그리고 앉으면서 중얼거리었어요. “난데없는 뱀의 껍질은 왜 들쓰고 나왔어?” 하도꼬는 사위 우성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혹시 팬티를 바 줄에 널어놓은 걸 뱀이 다치지 않았을까요?” 하고 허황한 추측을 했어요. 우성은 가시어머니를 힐끔 곁눈질하며 눈을 흘기었어요. “뱀이 날개라도 있다고 그 높은 줄에 날아올라 갔겠습니까?” “바 줄의 팬티가 바람에 날려 떨어진 거 내 주어 다시 건 적이 있어요. 팬티를 개가 물어 뱀의 굴에 가져갔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래도 그렇지, 뱀이 팬티에 사정이라도 해 놓았단 말인가요? 사정해 놓아도 어떻게 하루꼬 배속에 뱀의 껍질을 만들어 넣어요?…” 사실 우성은 가시어머니 하도꼬와 나이가 비슷했어요. 늘그막에 어린 색시 하루꼬를 얻어 늦둥이를 보았는데 저런 귀신을 낳다니요? 마당에서 사람들은 우성 대통령의 아내 하루꼬가 글쎄 머리 두 개에 온 몸에 뱀의 비늘이 번쩍이는 연체 기형아를 낳았다는 말을 듣고 모두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이 기이한 소문은 바람결처럼 산과 들을 넘어 온 뱀 섬나라에 퍼져 나갔어요. 그것도 코치아의 전임대통령과 일본 시골 미녀가 만들어낸 걸작이어서 해일이 덮치듯이 세상에 거대한 충격파를 일으켰어요. 버새는 눈물을 닦으면서 마당에 나오는 우성의 손을 잡고 위로의 말을 했어요. “이게 바로 방사능 오염에 신음하는 지구촌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꼭 방사능 오염에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인종을 개발해 내야 합니다.” 우성 대통령은 눈물이 글썽해 머리를 끄덕이었어요. 뒤이어 그는 자기 눈이 믿어지지 않은 듯이 다시 쌍두 연체기형아를 찬찬히 내려다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이런 기형아를 낳아서 죄송해요.” 하루꼬는 눈물을 펑펑 쏟았어요. 우성은 하루꼬의 손을 잡고 얼굴의 눈물까지 닦아주면서 위안했어요. “아니야, 당신 탓이 아니야. 방사능 오염에 인간들뿐만 아니라 뱀 인과 뱀, 그리고 개들마저도 기형 새끼를 낳고 있소. 정상인들은 다른 방도를 대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이 지구촌에서 살기 힘들게 됐소.” 순간, 버새는 속에서 웃음주머니가 흔들거리었어요. (우성 대통령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상 뱀 왕인들 어찌 하겠어? 세상은 인재 경쟁인 거야?) 며칠 후 화산 동굴에서 버새 총리의 사회아래 뱀 섬나라 국무회의가 열렸어요. 버새 총리는 돌기둥에 매달려 빈대 눈을 스르르 감고 뭔가 궁리하는 우둔한 뱀 왕을 쳐다보면서 첫 마디부터 인종 개량을 들고 나왔어요.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방사능 오염으로 기형아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기름개구리처럼 배는 똥똥하나 머리는 뱀의 대가리처럼 작은 애로, 다리는 기나 허리가 짧은 애로, 다리 세 개인 애로 별의별 애들이 다 태어납니다. 지어 눈이 세 개거나 팔이 하나 밖에 없는 애들도 태어났습니다.” 돌기둥에 몸뚱이를 감은 얼룩 뱀 왕은 불시에 빈대 눈을 떴어요. “모르는 소리들이요. 건 신이 내린 쌍두머리 어린애네. 옛날 우리 뱀 섬나라에는 변재천(辨财天)이란 여신이 있었네.” 그 뜻밖의 말에 버새가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는 것이 어두운 석유등불을 빌어서도 엿볼 수 있었어요. 하긴 버새는 무슨 신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것은 뱀 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자기네 나까 왕족만이 하늘이 뱀 섬나라에 내린 신이며 뱀 섬나라의 현실적인 통치자라고 인정하기 때문이었어요. 때문에 다른 신의 말을 하는 것은 예로부터 자기들 나까 왕족에 대한 도전이거나 이단으로 여겨 왔어요. 그런 눈치를 모를 리 없는 뱀 왕은 아니었지만 뒷말을 이었어요. “변재천은 7복신(七福神)의 한분이야. 비파를 들고 있는 여신의 모습이 어찌나 예뻤으면 우리 뱀 섬나라에서는 흔히 미인을 ‘변재천 같다’고 할 지경이었겠는가.” 버새는 변재천을 반박해 나섰어요. “뭐 그렇게 예쁘다고? 변재천 여신은 원래 인도의 사라스바티 여신인데 진나라를 거쳐 우리 뱀 섬나라에 들어오면서 어떤 모양이 됐는지 압니까? 중국 귀부인 복장에 팔이 여덟 개나 됐는데 손마다 무기를 들고 있는 악귀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단 말입니다. 진짜 악귀 같았는데도 아름다워? 흥!” 뱀 왕은 목에 지렁이 같은 핏줄을 세우면서 고함치었어요. “지혜와 물의 수호 여신을 모욕하지 말게! 변재천은 물과 지혜, 예능, 재복의 수호신이었어. 대중들에게 가장 친근한 여신이기에 지금도 전국 각지 물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변재천 여신을 높이 모시고 있네. 물이 없이도 농사를 짓고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가?” 어둠침침한 화산 동굴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지경으로 조용해지었어요. 뱀 왕은 계속 뒷말을 이었어요. “변재천은 후에 풍요의 신 우가진(宇贺神)과 결합해 머리는 노인이고 몸은 뱀의 형태로 된 우가변재신(宇贺辨财神)으로 됐네.” 그 말에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었어요. 여기저기서 이런 소리도 들렸어요. “오~ 그러기에 우리 뱀 섬나라에서 뱀을 풍요와 부를 전해주는 신의 존재로 보았지.” “뱀 섬나라에서 뱀 왕을 높이 모시게 된 것도 바로 그 우가진 때문인 거야.” “아니야, 우가변천 여신 때문이야.” “우가변천 여신은 바로 우가진과 변재천 여신이 합친 신이야. 우가변천 여신은 바로 이 뱀 왕의 조상 신인입니다.” “우~와~” “이제야 알 거 같군.” 모두들 환성을 올렸어요. 이때 버새의 말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어요. “변재천이 어디 세상에 있는 여신이라고 그럽니까? 건 다 미신입니다. 미신!” 허나 뱀 왕은 증거를 댔어요. “무슨 소린가? 자네 이 세상엔 나까 왕족만 있나 해? 변재천 여신의 성지는 확실히 아직도 있어.” 다른 국무위원들의 눈길은 모두 기둥에 매달린 뱀 왕의 괴물 같은 인두에 쏠렸어요. 뱀 왕은 기둥에서 스르르 내려 소파 같은 너럭바위에 똬리를 틀고 긴 목을 빼들고 말했어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시가현 비와호 속에 있는 작은 섬이 바로 변재천의 성지야!” 모두들 눈이 휘 동그래 머리를 끄덕였어요. 허나 버새는 뒤로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어요. “하나꼬네 연체 기형아 사건을 보더라도 이젠 정상인은 방사능에 오래 견딜 거 같지 못해 사라지게 될 겁니다. 대신 머리 둘인 연체 기형아가 속출할 겁니다. 정상인의 살가죽보다 두터운 멧돼지 가죽과 텁수룩한 멧돼지 털은 방사능 오염에 견딜 거 같습니다.” “나까아버새 총리는 즉시 방사능과 자외선에 견딜 새로운 인종을 개발하십시오.” 뱀 왕은 말을 마치자 돌기둥을 타고 스르르 화산 동굴 안쪽의 너럭바위 침대로 들어가 버리었어요. 버새 총리의 야망이 첫 걸음을 내 딛는 순간이었어요. 짝짝짝! 버새가 손뼉을 치자 숱한 뱀 인 미녀들과 궁녀들이 달려 나와 살 때를 만났다고 춤판을 벌리었어요.                 제3장 사냥개 사람과 멧돼지 인의 탄생 버새가 화산 동굴로 들어왔어요. 그러자 뱀 왕은 돌기둥에 감았던 얼룩 몸뚱이를 스르르 풀면서 기어 내려와 어망 간에 “버새 총리” 하고 별명을 부르면서 앉으라고 너럭바위를 꼬리로 가리키었어요. “그래 인종개량을 할 좋은 방안이라도 나왔는가요?” 뱀 왕은 대가리를 쳐들며 빈대 눈으로 버새를 마주보며 물었어요. 버새는 너럭바위 소파에 앉더니 주위를 둘러보더니 “주위를 물려 주시요.”라고 했어요. 뱀 왕은 별나게 신비하게 논다하면서도 경호원들까지 주위를 다 물리었어요. 그제야 버새는 뱀 왕 가까이에 다가앉더니 귓속말로 나직이 말했어요. “사냥개 사람과 멧돼지 인을 개발하면 어떻습니까?” “뭐, 뭐? 사냥개 사람과 멧돼지 인?” “방사능 오염에 견딜 최적의 새 인종입니다.” “허허허, 세상에 금시초문인데. 쳇.” 뱀 왕은 화산 동굴이 떠나갈 듯이 앙천대소했어요. “뱀 인보다 나을 거 뭔가요? 그래 그놈들에게 사람의 손이라도 달려 있는가요?” “개는 적어도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의리 있는 동물입니다. 잘 길들이면 우리 뱀 섬나라를 보위하는데 한몫을 톡톡히 할 겁니다.” “개는 그렇다 치고 멧돼지는 사람들이 주는 먹이나 먹으면서 쿨쿨 자는 비둔하고 우둔한 놈인데 어찌 일하는가?” 뱀 왕은 어이없다는 듯이 얼룩덜룩한 목을 길게 빼들고 화산 동굴 밖을 내다보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허나 버새 총리는 계속 뒷말을 이었어요. “멧돼지의 용감한 정신은 아주 귀합니다. 장차 외세의 압박을 받지 않으려면 우리 국민에게 멧돼지처럼 용감히 싸우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또 원전과 핵전쟁으로 인한 방사능에 모든 생물이 살기 힘들어합니다. 허나 방사능으로 오염된 유령도시 열악한 환경에서도 멧돼지들은 아주 강한 생존능력과 왕성한 번식능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제야 호기심이 좀 가 보이는 뱀 왕의 표정이 가스 등잔불에 확연히 드러났어요. 버새는 흥이 나서 지껄여 댔어요. “제가 이번에 연구한 인종개량 방법은 코치아의 조왕돌 부장의 인간복제기술이나 줄기세포기술과는 판판 다른 새로운 방법입니다.” “무슨 방법이기에?” 뱀 왕은 눈을 대뜸 크게 떴어요. 버새는 비밀이 나갈까 봐 뱀 왕의 귀에 닿을 듯이 입을 대고 뭐라고 쑤군거리었어요. 뱀 왕은 하마터면 기절초풍할 번했어요. “사람을 잡겠다. 쯧, 쯧.” 뱀 왕은 어이없다는 듯이 목을 움츠리면서 도리머리를 가로 저었어요. 버새는 가느다란 목을 움츠리더니 슬슬 만지었어요. “방사능이 심한 뱀 섬나라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길 밖에 없어요. 개털과 돼지 털은 우리 피부를 핵 방사선에 노출되지 않게 어느 정도 보호해 줄 겁니다. 또…” “됐어!” 뱀 왕은 너무나도 놀란 채 얼룩 목을 빼들고 버새를 쏘아 보았어요. “나를 보게나. 무슨 괴물인가? 사람도 아니고 뱀도 아니고. 숱한 뱀 인들이 나까아멘 악마의 시달림에 고생했네. 그런데 또 숱한 사람들을 개나 돼지 같은 괴물로 만들려고?! 말도 안 돼! 흥!” 버새는 벌떡 일어났어요. “오래지 않아 정상여인들은 몽땅 하루꼬처럼 연체 기형아를 낳을 겁니다. 사냥개는 주인에게 충성심이 대단한 동물이지요. 멧돼지는…” 뱀 왕은 콧방귀를 “흥!” 하고 뀌었어요. “됐네, 됐어. 우리 뱀 섬나라 사람들이 원래부터 코치아 사람들에게 ‘섬나라 오랑캐’라는 말을 듣는데 진짜 ‘섬나라 오랑캐’를 만들 작정인가?! 정말 삶은 소대가리 웃다가 꾸러미 터질 소릴 치면서 돌아다니는구먼.” 뱀 왕은 돌기둥을 휘감으면서 화산 동굴 막장으로 기어 올라가버려 꼬리도 보이지 않았어요. (에이고, 저런 둔한 뱀을 믿고 어떻게? 흥!) 버새는 속으로 두덜거리면서 화산 동굴에서 나가 버리었어요. 허나 우성 대통령의 아내 하루꼬가 쌍두머리 연체 기형아를 낳은 기문이 뱀 섬나라의 비극적인 현실로 보편화되면서 뱀 섬나라 인종개량에 탄력을 받게 했어요. 버새는 인종개량연구소의 동생 나까아밴새 소장과 함께 연구진을 이끌어 본격적으로 사냥개 사람과 돼지 인 연구개발에 몰입했어요. 뱀 왕은 숱한 뱀 인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인종개량연구소에 몸소 찾아 왔어요. 뱀 왕은 연구소의 문이 너무 작아서 10여 미터나 길고 1미터 반이나 되는 육중한 몸뚱이로 들어갈 수 없어 바깥에서 밴새 소장과 버새를 불렀어요. 뱀 왕은 쇠살창 안에서 왕왕 짖어대며 뛰노는 사냥개들과 꿀꿀거리며 주둥이로 땅을 뚜지는 멧돼지를 둘러보면서 이런 말을 꺼냈어요. “내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네.” 버새는 시끄러운 표정을 지었어요. 뱀 왕이 한다는 말은 이런 거였어요. “정상인들이 자외선방지 우산을 들고 방독 면구를 쓰지 뭐. 몸에다는 자외선 방지 복장을 입으면 되지 않을까?” “예? 정말 답답합니다. 이 무더운 여름에 화산 동굴에 들어 누워 있어도 더워서 혀를 빼물고 헐헐거리면서도 방독 면구를 쓰고 어떻게 산다고 떠들어댑니까?” 뱀 왕도 자기를 깔보는 버새를 좌시할 수 없었어요. “그래 우리 뱀 섬나라 사람들을 몽땅 개나 돼지로 만들 예산인가?” 버새가 엉뚱한 소리를 쳐댔어요. “옛날 우리 섬나라 태양신 이자나기노미코도는 일향국의 미야자키현의 아와기하라 온천에서 목욕해 황천의 오물을 몽땅 씻어버리고 나서 두 눈과 코로 삼 귀자를 낳았지요. 왼쪽 눈으로 아마테라스오미카미를 낳고 오른쪽 눈으로 쓰쿠요미노미코도를 낳았습니다. 코로 스사노오노미코도를 낳았지요.” “어째 입으로 새끼를 낳는 해괴망측한 인종을 개발하지 못해?” “황족의 조상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와 스사노오노미코도는 확실히 입으로 자식들을 뱉어 낳았어요.” “닥치오! 그래 옛날 신들을 빌어 인륜을 해칠 생각인가? 정상인이 세상에 태어나는 정상 출로는 여자의 하신인 거야! 자넨 이제 옆구리로 애를 빼는 인간을 개발할지도 모르겠구먼.” 그제야 버새는 자기가 너무 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았어요. “미안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습니다. 대왕님.” 뱀 왕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손으로 콧물까지 쓱 닦아 털었어요. 그는 숱한 뱀 인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산재가 시뿌옇게 덮인 연구소 마당을 구불구불 빠져나갔어요. 뱀 왕이 왕궁 격인 화산 동굴로 구불구불 돌아 왔어요. 그가 너무 더워 화산 동굴의 목욕탕이나 다름없는 샘물웅덩이에 꼬리로부터 몸뚱이를 반쯤 불구고 가죽이 얼룩덜룩한 머리를 하늘로 뻗어 올라간 화산 동굴 구멍에 올려 보내고 헐떡거릴 때었어요. 우성이 찾아왔어요. 뱀 왕은 샘물 웅덩이에서 기어 나와 돌기둥을 타고 스르르 기어 올라갔어요. “우성 대통령, 우리 샘물 웅덩이에 몸을 불구고 목욕하면서 이야기하면 어떻습니까?” “좋지요.” 뱀 왕과 우성은 다시 어둠침침한 샘물 웅덩이에 내려가 몸을 잠그고 시원한 샘물을 몸에 끼얹기 시작했어요. 뱀 왕궁이지만요. 그래도 온천도 있고 샘물도 있어 꽤나 좋았어요. 이윽고 시종이 가스 등잔불을 밝혀 놓았어요. 뱀 왕은 손으로 등잔불빛에 비끼는 얼룩덜룩한 비늘에 물을 끼얹으면서 물었어요. “어, 시원해라. 용건은 뭐요?” 우성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대담히 입을 열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버새 형제를 중용하는 게 좋지 않은 거 같습니다.” “또, 또 그 말?” 우성은 대수로워 하지 않는 뱀 왕에게 은밀히 말했어요. “제가 알아보았는데 버새의 외할아버지는 제11차 세계핵전쟁 때 뱀 섬나라 육군 중장 전쟁범인데요. 그 놈은 뱀 섬나라 생체실험에 이골이 난 자입니다.” “그만, 그만. 난 다 알고 있습니다. 버새의 할아버지는 악마 나까아멘의 할아버지와 친형제입니다. 허나 혈통을 너무 옴니암니 따지지 마십시오. 지금은 어떻게 핵전쟁으로 망가진 우리나라를 복구하고 방사능오염에서 인류를 건지겠는가 하는 게 중요합니다.” 뱀 왕은 어둠침침한 화산 동굴에서 가스등잔불빛을 빌어 빈대 눈으로 우성 대통령을 힐끔 곁눈질해 보더니 이런 결정을 내리었어요. “당신은 학생들을 데리고 당장 코치아에 건너가 선진 과학기술을 배워 오십시오. 그게 우리나라를 구하는 길입니다.” “예, 알았습니다.” 버새가 사냥개 사람과 돼지 인을 만드는데 걸림돌인 우성 대통령을 코치아에 추방하지 못해 내린 결정이죠. 한편 버새는 뱀 왕의 지시대로 뱀 섬나라에 주둔한 유엔 연합군사령부에 가서 새 인종개량 방안을 비준 맡았어요. 맥도 총사령관과 검둥이 톰에게서 스트레스를 받은 그는 인종개량연구소로 돌아오자마자 허탈감에 빠져 맥없이 소파에 물앉았어요. 버새의 말을 듣고 밴새 소장은 화가 치밀어 옷을 벗어 소파에 팽개치기까지 하면서 두덜거리었어요. “제길, 아무리 전패국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쩜 이다지도 인격을 모욕한단 말이오?” “그만!” 버새는 손사래를 치면서 벽이고 천정이고 가리키며 입에 식지를 댔어요. “쉬- 속담에 벽에도 눈과 귀 있다고 했어. 저 양키들이 우리가 회보하기 전에 벌써 모든 정보를 장악하고 있더라. 세계 최첨단도청기를 사처에 장치했을 수 있단 말이야.” 밴새는 화를 풀지 못해 길쭉한 머리만 가로 흔들면서 이발로 입술을 꽉 깨물었어요. 순간 터진 입술에서 뻘건 피가 주르르 흘렀어요. 버새는 고의로 들으라고 언성을 높였어요. “우린 아카시아 맥도 총사령관님과 노르망디 톰 총사령관님의 지시대로 국제사회의 협약을 어기지 말자. 인륜을 해치는 일도 하지 말면서 인종개량을 하자.” “왜?” “또 제11차 세계핵전쟁 때처럼 생체실험을 했다는 말을 들을 게 있느냐?” “?” “먼저 인간복제기술과 줄기세포를 이용해 방사능에 견딜 수 있는 털이 부스스한 사람의 피부를 만들어 보자.” “또 유엔 연합군총사령부에 청시해야 하지 않겠어?” “당연하지.” 이때 어디서인지 맥도 장군의 우렁우렁한 말소리가 들렸어요. “회보할 거 없어. OK! 그렇게 하게나!” 깜짝 놀란 그들 두 형제가 눈이 휘 동그래 연구실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어요. 나중에 분명 컴퓨터 현광 판에 맥도 장군이 희죽이 웃는 상판이 있지 않겠어요. 밴새 소장이 제일 아끼는 사냥개 요사다마오가 현광 판의 맥도 장군을 쏘아보며 컹컹 짖었어요. 밴새는 사냥개 마오가 어찌나 곱았으면 자기 여동생 이름과 비슷하게 지었겠어요.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어요. 원래 맥도 장군은 컴퓨터 현광 판을 이용해 모든 걸 손금 보듯 하고 있었어요. “자네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으니까. 절대 허튼 수작을 하지 말게나.” “알았습니다. 총사령관님.” 버새 형제는 허리를 굽실했어요. “OK!” 그날부터 밴새는 연구일군들을 이끌어 개 털 같은 털이 부스스 난 인간의 피부를 연구 개발했어요. 밴새 소장은 자기가 제일 아끼는 사냥개 요사다마오를 불렀어요. 요사다마오는 꼬리를 저으면서 주인에게로 뛰어 왔어요. 밴새가 요사다마오 귀밑에 주사침을 슬쩍 꼽더니 마취 주사를 놓았어요. 요사다마오는 인차 핸들 쓰러지더니 스르르 눈을 감았어요. “자, 어서 개 가죽을 도려내 내 팔에 이식하게.” 연구 일군들은 사냥개 요사다마오를 수술대 위에 눕혀 놓고 앞 다리의 가죽을 손바닥만큼 도려내 옆의 수술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밴새 소장의 마취한 팔에 이식해 실로 한 코한 코 기웠어요. 그리고 도려낸 밴새 팔의 살가죽을 요사다마오의 앞다리 도려낸 가죽 부위에 이식해 놓았어요. 한 달 후 이번 이식수술은 줄기세포를 이용한 이식이기에 아주 성공적이라는 것이 증명됐어요. 밴새의 팔에는 털이 부스스한 개 가죽이 들어붙었어요. 살도 썩지 않고 자외선이 강한 햇볕에 견딜 수 있었어요. “성공이다!” 연구소 일군들은 환성을 질렀어요. 그후 밴새 소장의 자기 희생정신의 고무를 받아 연구소 일군들은 너도 나도 자기 팔과 다리에 사냥개들의 가죽을 이식했는데요. 모두 성공했어요. 며칠 후 연합군 흑인군관 맬쓴이 뱀 섬나라 처녀를 강간한 사건이 텔레비전에 방송됐어요. 그 사건은 사냥개 사람과 돼지 인을 개발하는데 탄력을 받게 됐어요. 버새 형제는 기뻐 어쩔 줄 몰랐어요. 그런데 귀신이 곡할 듯이 어쩜 강간범은 톰 사령관의 동생 맬쓴 장군이었어요. 설상가상으로 강간당한 처녀는 버새 총리의 여동생 하사다마오였어요. 그날 저녁에 하사다마오는 오빠들의 연구소에 왔다 돌아가다가 호수 옆에서 맬쓴에게 강간당했던 것이었어요. 어찌나 짐승처럼 강간했으면 하사다마오는 자궁에 구멍이 나 하신에서 연 며칠 동안 하혈했어요. “아, 저 짐승 같은 껌둥이를 어찌나? 정말 칼 탕을 쳐 놓아도 원수를 다 못하겠다.” 밴새가 연구소 병원에서 핏기 없이 하얀 여동생 하사다마오의 얼굴을 매만지면서 이를 부득부득 가는데요. 톰 사령관이 바나나며 사과며 노르망디 포도며 사들고 찾아왔어요. “밴새 소장, 죄송하네. 난 가문을 대표해 사죄하네.” 그는 과일꾸러미를 내밀더니 어깨까지 으쓱하며 머리를 숙이었어요. “흥!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단가? 우리 뱀 섬나라 법에는 강간죄는 사형입니다!” 톰 총사령관은 금방 빌고 들던 표정이 가뭇없이 사라졌어요. “그래, 기어이 내 동생을 죽여야 하겠는가?! 그럼 나부터 죽이란 말이야!” “강간범 동생을 비호할 텐가! 아무리 그래도 식민지 통치를 한답시고 점령군이 순수한 처녀를 마구 강간해도 된단 말인가?!” 톰 총사령관은 허리에 찬 권총을 어루만지며 까만 얼굴에 흉측한 몰골을 드러냈어요. “어림도 없어! 우리 노르망디에서는 인도주의를 고양하네. 아무리 강간범이라도 교형을 처하지 않고 감옥에 보내 교양하네. 내 동생은 노르망디 사람이기에 노르망디 군법에 의해 처리할 거네. 우린 맬쓴을 인도해 노르망디에 보내겠네. 누가 막기만 하면 내 이 권총이 대갈통에 바람구멍을 큼직하게 뚫어 줄 거야! 흥!” 톰은 시허연 눈자위를 무섭게 굴리며 위협했어요. “허허허.” 갑자기 톰 사령관은 너털웃음을 웃었어요. “나도 알고 있어. 자네들이 이 좋은 기회에 사형수로 될 내 동생을 실험 품으로 삼으려 한다는 걸!” 톰 사령관은 하사다마오를 힐끔 내려다보면서 지껄여댔어요. “하사다마오, 일이 이 지경이 된바 하고는 내 동생과 결혼하라고. 내 동생은 너와 한판 붙어보고 동양사람 치고 제일 섹시하다고 했어.” 찰싹! 밴새는 분통이 터져 톰 총사령관의 귀 쌈을 한 대 갈기었어요. “짐승 같은 놈, 뭐 결혼하라고?” 톰 총사령관은 오른손을 권총에 가져갔다가 내리우며 헤벌쭉 웃었어요. “이 놈아, 네 여동생이 한번 강간당한 게 무슨 큰 일이 났다고 이래? 본 총사령관의 제수가 돼 달라면 네 놈 일가를 봐주는 거야. 네 놈들 뱀 섬나라에서 제11차 세계핵전쟁을 일으켜 우리 노르망디와 아카시아, 루스끼야 그리고 코치아의 숱한 무고한 백성을 방사능오염에 죽게 한 걸 생각하면 강간한 건 아무 것도 아니야. 이 놈들, 권주를 마시지 안고 벌주를 마셔 봐!” 하사다마오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새하얀 이불로 얼굴을 가리었어요. 이불이 무섭게 떨며 가늘게 파도쳤어요. “흥!” 톰 총사령관은 콧방귀를 뀌더니 문을 쾅 박차고 나가 버리었어요. 사령부로 돌아가자 톰 총사령관은 소파에 앉아 턱을 고이고 양미간을 찌푸리더니 동생 맬쓴을 감옥에서 빼내려고 속궁리를 돌렸어요. 그는 피뜩 코치아의 조왕돌의 복제기술이 떠올랐어요. 조왕돌은 노르망디에 와서 크론 박사에게서 인간복제기술과 줄기세포기술을 배워낸 세계에서도 유명한 과학자였어요. 조왕돌은 노르망디에 유학 갔을 때 톰과 축구공으로 해 싸움질한 뒤 친해진 친구였어요. “OK!” 톰 총사령관은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어요. 며칠 후 톰 총사령관은 버새에게 전화를 걸어왔어요. “여보게, 내 동생 맬쓴은 죽을죄를 지었네. 허나 우리 좀 절충합세. 내 동생을 총살하기보다 사형수니까 새 인종개발에 유용하게 쓰게나.” 순간 버새는 무거운 짐을 벗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홀가분해짐을 느꼈어요. “허허허. 남들은 당신을 버새라고 하더구먼. 그래도 버새 총리가 노새보다는 사리 밝네 그려. 하하하.” (뭐라고? 네 이놈, 내 이제 네 동생을 육장 벌레를 만들어 놓지 않는가 봐라!) 성 날대로 난 버새는 그날로 동생과 연구일군들과 함께 밀봉차를 서너 대 몰고 가서 감옥 안에서 검둥이 맬쓴을 연구실에 끌고 왔어요. 맬쓴을 수술대에 눕혀 놓고 결박하자 고함을 버럭 쳤어요. “이 놈들, 네놈들이 또 생체 실험을 하려고? 하늘땅이 용서하는가 봐라!” 그러나 허연 옷을 입은 연구일군들이 맬쓴의 팔다리를 꽁꽁 묶어놓았어요. 한 연구일군이 주사바늘을 걷어 올린 팔에 푹 박아놓고 마취 주사를 놓자 맬쓴은 점점 허튼 소리를 치다가 스르르 눈을 감는 것이었어요. 버새가 손을 홱 저었어요. “시작하라!” 밴새는 여 간호사들을 보고 맬쓴의 옷을 홀랑 벗기고 약솜으로 온 몸을 닦게 했어요. 여 간호사들은 맬쓴의 한자나 될, 무섭게 큰 그걸 보고 눈알이 뒤집힐 지경이었어요. (저런 걸로 들쑤시니 우리 소장의 여동생 자궁이 다 판났지.) 눈에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리는 밴새는 수술 칼을 쥐자마자 말 거 같은 꺼먼 걸 쓱쓱 도려내 토막토막 칼 탕을 쳤어요. “우마!” 여 간호사들은 너무 끔찍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비명소리를 질렀어요. 밴새는 시꺼먼 토막을 비닐에 싸들고 복도에 나가더니 꼬리를 흔들거리며 쳐다보는 사냥개 요사다마오에게 뿌려 주었어요. 요사다마오 사냥개는 왕왕 짖어대더니 꼬리를 휘청거리면서 꺼먼 그걸 눈 깜짝 할 새에 몽땅 씹어 먹었어요. “개 같은 놈, 또 내 여동생을 강간해 봐라! 흥!” 실험실에 되돌아간 밴새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맬쓴의 머리를 쓱쓱 도려냈어요. 거의 동시에 다른 연구일군이 사냥개 요사다마오를 불러들여 마취주사를 놓은 후 다른 수술침대에 눕혀 놓고 대가리를 썩썩 잘라냈어요. 뒤이어 밴새는 피 뚝뚝 떨어지는 맬쓴의 검정머리를 개목에 척 비스듬히 이식해 놓았어요. “이 개놈아, 넌 이젠 사냥개 사람이야!” 동시에 이쪽에서는 맬쓴의 목에는 개 대가리가 이식됐어요. 수술은 순식간에 끝났어요. 마취주사 약독이 나가자 맬쓴의 머리가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어요. 눈을 스르르 뜬 맬쓴은 여기저기를 둘러보더니 일어나려고 안간 힘을 썼어요. 버둥거리던 맬쓴의 개 몸뚱이는 기적적으로 네발로 엉거주춤 일어났어요. 확실히 개는 사람보다 생명력이 강했어요. 허나 저쪽 수술대의 개 대가리를 단 맬쓴의 몸뚱이는 일어나질 못했어요. “아니, 내 몸이 이게 뭐야?” 맬쓴은 개 몸뚱이로 바뀐 자기 몸뚱이를 내려다보며 눈알이 다 뒤집힐 지경이었어요. “넌 원래 검정 개 새끼야!” “당신들은 누구요? 왜 날 이렇게 만들어 놨어?” “맬쓴, 넌 세상에 둘도 없는 선진 인종 사냥개 사람으로 된 거야. 알만 해? 허허허.” 버새는 “허허허.” 너털웃음을 웃었어요. “안 돼! 말도 안 돼! 펀펀한 사람을 이게 뭐야?” 그는 하신을 내려다보고 더욱 질겁해 소리쳤어요. “아니, 한자나 되던 내 건 어쩌고 요런 조고만 거야?” 그 혼겁한 소리에 여 간호사들은 코를 싸쥐고 웃었어요. 맬쓴은 저쪽 침대에서 갓 일어나는 개 대가리와 꺼먼 벌거숭이 자기 몸뚱이를 발견하고 몸부림쳤어요. “아야, 왕, 왕, 왕!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저게 내 몸뚱인데!” 맬쓴은 개처럼 짖어대며 야단쳤어요. 밴새 소장은 코웃음을 치었어요. “개가 똥을 먹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다더니? 흥!” 실험실 안 여기저기에서는 키득, 캐드득 웃음보가 터졌어요. 사냥개 사람 맬쓴을 개발한 며칠 후에 뱀 섬나라에서는 멧돼지 인도 성공적으로 개발해 냈어요.                     제4장 수렴동의 원숭이 왕 뱀 섬나라에서 검정 개 사람과 멧돼지 인을 개발한 특대뉴스가 온 지구촌에 보도되었어요. 금붕어 소장은 새로운 인종개발에 줄곧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면서 과학적인 무기제조에 골몰하는 조왕돌과 클론바우 18세에게 의미심장하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옛날에 신의 대왕 제우스는 누님이자 아내인 헤라의 계략에 빠져 세멜레가 한줌의 재가 돼버리자 세멜레의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꺼내 자기 넓적다리를 째고 넣어 길렀어. 제우스의 다른 딸 아테나는 제우스가 입에 넣어 삼켜 버렸어. 장차 커서 아버지를 죽이고 제왕의 자리를 차지한 자기처럼 자식들이 자기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할까 봐 겁나서였지. 허나 아테나는 아버지 제우스의 머릿속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어. 갑자기 두통이 심해 머리를 싸쥐고 맴돌던 제우스는 아들 헤파이스토스에게 도끼로 자기 머리를 찍어 가르게 했지. 제우스의 머릿속에서 딸 아테나가 튀어나왔어. 그것도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손에는 창과 방패까지 들고 세상에 나왔대. 우린 고대 신들을 참고해 지구를 보위할 새로운 보호 신을 창조해야 해.” 클론바우는 “우~와~” 하고 감탄했어요. 허나 할머니 뜻과는 달리 뒷말이 곱지 않았어요. “새로운 인종을 개발해 뭘 합니까? 보십시오. 난 사람도 아니고 고래도 아니고 사자도 아닌 게 무슨 괴물입니까? 조왕돌 삼촌처럼 고운 색시에게 장가도 들어보지 못하고. 원, 흥!” 클론바우 18세가 코끼리 코로 콧방귀를 뀌자 사무 상 위 물 컵이 허공중에 날아나 땅바닥에 떨어졌어요. 그 바람에 난데없는 물벼락이 쏟아져 내리었어요. 며칠 후 조왕돌은 잔잔한 낙조가 내리 비친 바다가 백사장에 세운 아버지 금별 대통령과 가시아버지 차슬기 국방부방의 동상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어요. 순간 코치아도 고모 말씀처럼 인종개량을 해놓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튿날 조왕돌은 원숭이 가죽을 쓰고 홀로 화과산으로 들어가 잠복해 있으면서 수렴동의 원숭이 무리를 관찰하려고 했어요. 아내 보름의 얼굴에 대뜸 어두운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어요. 그녀는 남편의 손을 잡아 만삭이 된 배에 대 보이며 지청구를 들이댔어요. “제가 오래지 않으면 해산하게 되는데요. 우리 보배 아빠마저 옆에 없어서야 되겠어요?” 조왕돌은 보조개가 옴폭 파이는 보름 달 같던 보름의 얼굴이 수척해진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허나 코치아, 나아가서 지구촌의 인류 생존과 보존이 걸린 중대한 과학연구를 위해 조왕돌은 원숭이 가죽을 주섬주섬 찾아 내 챙기었어요. 보름은 안방에 들어가더니 시퍼렇게 날이 선 칠성비수 한 자루 가져다 내 밀었어요. 비수 칼자루에 금으로 별 7개 박혀 있다고 해 칠성비수라고 했는데요. 건 시아버지 금별 대통령의 명함을 상징하기도 했어요. “아버님이 남긴 비수예요. 호신용으로 이거라도 가지고 가세요. 꼭 아버님의 혼령이 하늘에서 당신을 지켜 줄 거예요.” 조왕돌은 미소를 지으며 칠성비수를 받았어요. “근심하지 말고 복중아기나 잘 키우오.” 그제야 금붕어와 보름은 안도의 한숨을 호 내쉬었어요. 조왕돌은 헬기를 타고 순식간에 동해바다에 뿌리를 박은 화과산 수림과 가까운 산정에 내렸어요. 수행 십여 명 복제 조왕돌과 로봇 조왕돌 1호는 정찰 장비를 헬기에서 부리어 장막 안에 두고 대기했어요. 조왕돌은 산정에 올라서서 수림 속에 치솟은 절벽을 둘러보았어요. 안개인가 구름송이인가 기암괴석과 절벽 사이를 파도치다가 사라지자 백길 절벽 위에서 하얀 눈사태가 무너져 내리는 듯이 쏟아져 내리는 백운폭포가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어요. 폭포수가 하얀 물발처럼 가리고 있어 먼 곳에서는 폭포 뒤에 숭숭 뚫린 수렴동의 원숭이 굴들이 보이지 않았어요. “허, 이 심산에 이렇게 멋있는 원숭이 왕국이 있었는가!” 조왕돌은 감탄이 나왔어요. 그는 망원경을 꺼내 수렴동쪽을 세심히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수렴동 위쪽 절벽 위에는 숱한 원숭이들이 햇볕 쪼임을 하면서 뛰놀고 있었어요. 어떤 원숭이들은 나무에 매달려 그네를 뛰면서 재롱을 피우고 있었어요. 독수리가 날아 내리다가 굳어진 것 같은 기암괴석 아래 너럭바위 위에 커다란 원숭이 한 마리가 틀스레 앉아 있었어요. 숱한 원숭이들이 그 원숭이에게 바나나와 복숭아를 뜯어다가 바치는 것이었어요. 갑자기 그 원숭이가 살기 넘치는 갈색 우묵 눈을 부릅뜨더니 아가리를 짝 벌리며 고래고래 고함치었어요. 그러자 숱한 원숭이들은 짹짹 새된 소리를 지르며 바위돌 틈과 나뭇가지 사이에 몸을 옹송그리고 바들바들 떠는 것이 보이었어요. “저 원숭이가 수렴동의 ‘손욕’이라는 원숭이 왕이 틀림없는 것 같구나.” 째진 귀와 검정 코를 보면 그가 왕위에 오를 때 얼마나 치열한 결투를 벌이었는지 짐작이 갔어요. “저 놈, 원숭이들을 어떻게 얼려 데려다가 우리 코치아를 목숨으로 사수할까?” 조왕돌은 원숭이 가죽을 씌운 로봇 조왕돌 1호를 불러 뭐라고 귓속말을 했어요. 로봇 조왕돌 1호는 머리를 끄덕이었어요. 그는 바나나 한 꾸러미를 들고 원숭이처럼 나무에 바라 올라가 나뭇가지를 굴러 저쪽 나뭇가지로 날아 건너 뛰어갔어요. 그가 원숭이 무리에 나타나자 손욕 원숭이 왕은 몸을 옹송그리면서 영역에 침범한 침략자를 공격하려고 했어요. 허나 로봇 조왕돌 1호가 가지고 간 바나나를 한 꾸러미나 너럭바위 위에 올려놓으면서 머리를 숙였어요. 원래 원숭이도 자기들의 말이 있었어요. 짹짹 해도 그 속에는 여러 가지 뜻을 나타냈지요. 손욕 원숭이 왕은 글쎄 원숭이 말로 물었어요. “짹(넌), 어디에서 온 놈이야?” “대왕님, 저를 받아주십시오. 저는 외롭게 백산 열대우림 부근에서 살던 원숭이입니다. 여기 화과산 수렴동에 원숭이들의 지상낙원 왕국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 왔어요. 한평생 대왕님을 효성을 다해 모시렵니다.” 원숭이 왕은 자기 왕위를 위협할 놈이 아니라고 여겼던지 경계심을 풀면서 로봇 조왕돌 1호의 아래위를 훑어보는 것이었어요. 흠잡을 데 없는 보통 원숭이였어요. 조왕돌은 저쪽 머나먼 산정에서 컴퓨터 현광 판으로 파리 로봇이 찍어 보낸 동영상을 보면서 머리를 끄덕이었어요. 손욕 원숭이왕은 의심이 많아서 로봇 조왕돌 1호를 받아 주려고 하지 않았어요. “짹짹(이 놈), 고까짓 바나나 한 꾸러미로 내 환심을 사려고? 어림도 없어.” 손욕 원숭이왕은 로봇 조왕돌 1호에게 바나나 꾸러미를 홱 팽개쳤어요. “네 놈을 받아주면 과일이 얼마나 많이 축나겠어? 꼬까지 한 꾸러미겠니? 한 기차라도 모자랄 거야? 그러잖아도 인간들이 화과산 수림을 마구 벌목해 먹이가 점점 줄어드는데 입이나 늘었지.” 로봇 조왕돌 1호는 그래도 아주 내심하게 바나나 꾸러미를 주어 원숭이 왕 앞에 있는 너럭바위 위에 올려놓았어요. “대왕님, 저의 호의를 받아 주십시오. 저도 밥값은 할 겁니다.” 원숭이 왕 손욕은 “어떻게?” 하고 묻는 듯이 우묵 눈으로 흘끔 쳐다보았어요. “제가 인간들을 설복해 화과산 수림을 벌목하지 못하게 하겠어요.” “허, 거 듣다 귀맛 좋은 소리군!” 원숭이 왕 손욕은 올 방자를 틀고 바로 앉으며 로봇 조왕돌 1호를 보고 물었어요. “될 수 있겠어?” “되고말고요. 제가 이제 산 아래 인간들과 연계를 달아 사람들이 우리를 잡지 못하게 하고 과일도 실어오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잘 살 수 있으면 우리 화과산 수렴동에 와서 뭘 해?” 순간 원숭이왕의 우묵 눈에 의심과 살기가 반죽해 무섭게 번쩍이었어요. “너 이놈, 혹시 인간들이 보낸 간첩 아니냐?” “아니, 이건 무슨 맑은 날에 생벼락 같은 말씀입니까?” “안 그럼 어떻게 인간들이 네 말을 고분고분 들어? 어서 떠나가라!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로봇조왕돌 1호가 뭐라고 또 말하려고 하자 원숭이왕은 대노해 용상이나 다름없는 너럭바위 수박을 쥐어뿌리었어요. 수박이 로봇 조왕돌 1호의 머리에 맞아 박살나 절벽아래까지 날아가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어요. 로봇 조왕돌 1호가 떠나려고 할 때었어요. “잠간!” 머리에 혹이 달린 건장한 혹달개 원숭이가 원숭이 왕 손욕에게 권고했어요. “대왕님, 저 자가 인간과 인맥이 있는 거 같으니까. 먼저 저 자를 보내 인간들과 담판해 우리 화과산 수림을 난벌하지 못하게 말리고 과일도 따가지 못하게 하면 어떻습니까?” 매 발톱이란 원숭이도 동의해 나섰어요. “대왕님, 만약 저자 말대로 될 수만 있다면야 얼마나 좋습니까?” “쯧, 쯧, 쯧, 이 원숭이들을 봐라! 어쩜 낫살이나 처먹은 놈들이 경계심이 없느냐? 그래 너희들이 감히 내 왕권에 도전할 테냐?” “아니, 건 무슨 소립니까? 우린 수렴동 원숭이 왕국을 위해 하는 말인데요.” 원숭이들이 로봇 조왕돌 1호를 받아들이자고 하는 바람에 원숭이왕은 민심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어요. “미안하네. 금방 자네를 시험해 본 거야. 난 의심스러운 사람을 쓰지 않고 쓰는 사람은 의심하지 않네. 이제부터 자넨 인간들과 외교활동을 해보게나.” 이쪽에서 조왕돌 부장은 컴퓨터를 들여다보다가 박수를 쳤어요. “됐어. 로봇 조왕돌1호 원숭이 왕국에 발을 붙이는데 성공!” 로봇 조왕돌들과 복제 조왕돌들은 일제히 주먹을 쳐들며 “파이팅!”을 불렀어요. 알고 보니 원숭이 왕 손욕은 스스로 자기는 3천여 년 전 화과산 수렴동의 원숭이 왕 손오공의 98대 후손이라고 자처했어요. 아하, 당나라 때 당승을 따라 저팔계와 사승 사형제와 함께 서경으로 불경을 얻으러 간 그 절세의 영웅 손오공을 말하는 거지요. 원숭이 왕 손욕은 힘도 세고 머리도 좋지만요. 너무나도 욕심이 과해서 원숭이들은 뒤에서 “손요귀”라고 욕하고 있었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손욕 원숭이 왕은 오늘도 폭포수가 쏴-쏴- 쏟아지는 수렴동 그늘에서 늘어져 푹 자고 일어나자마자 원숭이들에게 호령했어요. “허허허, 오늘 날씨가 참 좋구나. 백운봉 꼭대기에 올라가 놀자꾸나.” 그는 숱한 원숭이 아가씨들의 옹위를 받으면서 층암절벽을 톱아 올라 백운봉에서 제일 높은 자리 독수리 바위에 올라가 척 드러누웠어요. 하품을 짝짝 하던 손욕 원숭이왕은 “하- 낮잠을 잤더니 잔등이 근질거리는구나. 아가씨들아, 내 잔등을 긁고 이나 잡아라.” 하고 명령했어요. 누구의 명이라고 언감 어기겠어요. 원숭이 아가씨들은 독수리바위 앞의 너럭바위에 비스듬히 원숭이 왕을 둘러 앉아 손으로 잔등을 긁어준다, 어깨를 주물러준다 하며 옆구리며 엉덩이 털을 살살 번지면서 이를 잡았어요. “어, 시원해라. 오늘 수렴동 백운봉의 경치가 참말 좋구나. 어서 춤을 춰라!” 원숭이 아가씨들은 원숭이 왕 앞에서 찍찍거리며 엉덩이춤을 추었어요. “얼씨구나 좋다, 지화자 좋을시고!” 손욕 원숭이 왕은 흥이나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춤판에 끼어들어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어요. 그러다 산 아래에서 숱한 원숭이들을 데리고 부지런히 복숭아를 뜯는 혹달개에게 눈길이 멎었어요. (이 수렴동에서 내 왕위를 도전할 놈은 저 혹달개 뿐이야.) 그는 저쪽에서 망을 보며 수렴동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로봇 조왕돌 1호를 보고 손짓했어요. 로봇 조왕돌 1호가 깡충깡충 다가가 너럭바위 앞에 머리를 숙이고 앉자 손욕은 이런 말을 꺼냈어요. “우리 수렴동에서는 원숭이들의 서열이 있어. 네가 저 혹달개를 싸워 이길 수 있냐?” 그 뜻밖의 제의에 로봇 조왕돌 1호는 머리를 숙였어요. “나는 천성이 순진해서 싸움이란 걸 해 본적이 없습니다.” 원숭이 왕은 자기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로봇 조왕돌 1호가 눈에 거슬렸어요. 이 수렴동에서 이제껏 누가 감히 그의 말을 거역했겠어요. 로봇 조왕돌 1호가 싸울 염을 하지 않자 손욕은 원숭이 왕 품위도 없이 혹달개를 헐뜯기 시작했어요. 그는 복숭아를 광주리에 담아 메고 절벽으로 올라오는 혹달개를 손가락질하며 빈정거렸어요. “아가씨들, 저 혹달개를 봐. 어쩌면 저렇게 못 났어. 털을 봐. 불에 태워 죽일 놈이 돼 그런지 불같이 새빨갛지. 이마빼긴지 숫구멍엔 혹이 들어박혔지. 송곳니를 봐. 멧돼지 송곳니처럼 뾰족한 게. 저 혹달개는 자기 이를 잡아 씹어 먹는 멍청이야. 돼지만도 못해.” “호호호” 원숭이 아가씨들이 웃어대자 손욕은 흥이 점점 도도해졌어요. “오랑캐 종자 같은 게, 저 엉덩이를 보오. 빨갛다 못해 홍무우 같다니까. 저 놈 때문에 우리 원숭이 엉덩이를 애들이 뭐라는지 알아? ‘잔나비 밑구멍이 빨갛다’ 하지 않아?” 원숭이 아가씨들은 코를 싸쥐고 요절할 듯이 깔깔깔 웃으며 지껄여댔어요. “잔나비 밑구멍이 빨갛다. 빨간 건 사과.” “사과는 맛있어!” “호호호” 손욕은 계속 지껄이었어요. “맞아, 아가씨들의 말이 맞아. 빨간 사과면 먹기나 좋지? 저 혹달개 놈 땜에 우리 원숭이 엉덩이가 다 팔린단 말이야.” 이때 불여우처럼 생긴 불여우 원숭이 아가씨가 실버들허리를 배배 꼬면서 응석을 부렸어요. “오늘 기분도 좋은데요. 우리도 화과산 기슭에 사는 마을 사람들처럼 돼지고기 안주에 모태주를 마실까요?” “오ㅡ 그래.” 원숭이 왕 손욕은 너럭바위에서 일어나 불여우의 잔등을 다독이어 주더니 로봇 조왕돌 1호에게 손짓했어요. “어이, 백산 원숭이! 옳아. 이젠 자넬 백산이라고 부르겠네.” 로봇 조왕돌 1호가 다가가자 손욕은 원숭이 왕의 틀을 차리면서 분부했어요. “백산, 자넨 우리 화과산 수렴동에 숱한 과일과 고기를 가져오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치지 않았는가? 얼른 저 아래 산기슭 마을에 가서 모태 주와 푹 삶은 돼지고기를 가져오게나.” 이것은 로봇 조왕돌 1호를 고험하려는 것이었어요. “예, 알았습니다.” 조왕돌은 나는 듯이 절벽을 내려 수림을 꿰질러 나가 순식간에 조왕돌이랑 있는 산정으로 돌아왔어요. 조왕돌은 로봇 조왕돌에게 뭐라고 또 귓속말을 했어요. 드디어 로봇 조왕돌 1호는 산기슭으로 내려가 사람들을 시켜 모태 주 몇 병과 과일 3수레, 푹 삶은 멧돼지고기 한 수레나 실어 화과산 아래로 가져오게 했어요. 그러자 원숭이 왕 손욕은 입귀가 귀밑에까지 째질 지경이었어요. “확실히 백산은 희한한 놈이야, 어쩜 머나먼 북녘에서 왔건만 사람들을 우마처럼 부려 먹는단 말이야! 허허허!” 아가씨들도 로봇 조왕돌 1호를 신기한 눈길로 바라보았어요. 손욕은 양팔에 원숭이 아가씨들을 하나씩 껴안더니 지분거렸어요. “오늘 실컷 먹고 질탕하게 놀아보자!” 속욕과 원숭이 아가씨들은 푹 삶은 돼지다리를 한 짝씩 쥐고 곤드레만드레 취토록 모태 주를 마시었어요. 다른 원숭이들은 먹고 싶어 바위틈에서 이쪽을 훔쳐보면서 군침을 질질 흘렸어요. 허나 욕심 많은 원숭이 왕은 근본 줄 염도 없었어요. 이때 로봇 조왕돌 1호는 원숭이 몰래 가만히 과일과 돼지고기를 뭇 원숭이들에게 나눠 주었어요. “백산! 네 이놈! 내 돼지고기를 가지고 인심을 내?!” 어느 결에 눈치 챈 손욕은 로봇 조왕돌 1호를 독기어린 눈길로 쏘아보는 것이었어요. “아니, 내가 가져온 건데요. 어찌 대왕님 혼자 거라고 그래요?” “뭐, 뭐?! 이놈이 언감 나한테 도전해?!” 손욕은 성이 나 펄펄 뛰더니 원숭이 아가씨들을 활 놔버리고 씽- 로봇 조왕돌 1호에게 덮쳐들었어요. 로봇 조왕돌 1호는 반항도 하지 않고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허망 숫구멍을 물리었어요. 혹달개랑 매발톱이랑 숱한 원숭이들이 찍찍 비명을 지르면서 돌 틈과 나무 뒤에 숨어 로봇 조왕돌 1호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냈어요. “아가!” 그런데 이변이 생겼어요. 글쎄 원숭이 왕이 입을 싸쥐고 굴렀어요. 웬 일일까요? 원래 로봇 조왕돌 1호의 숫구멍은 쇠로 만든 것이죠. 원숭이 왕은 쇠 숫구멍을 딱 깨물었다가 송곳니가 부러졌던 것이죠. “허허허. 아무 거나 물어 되나?” 로봇 조왕돌 1호는 너털웃음까지 웃다니요? 뭇 원숭이들은 의아해 원숭이 왕과 로봇 조왕돌 1호를 번갈아 보았어요. 원숭이 왕은 피가 줄줄 흐르는 입을 싸쥐고 공포에 질린 눈길로 백산을 쏘아 보았어요. 그렇게 그저 쉽게 지고 말 원숭이 왕이 아니었어요. 그는 독수리바위 밑으로 씽 뛰어가더니 두 길이나 되는 쇠몽둥이를 빼들고 휘두르며 덮쳐 왔어요. “그만 싸우십시오!” 혹달개가 나서서 말리었어요. “백산은 우리 수렴동에 숱한 과일과 돼지고기를 가져 왔습니다. 이제 인간들과 연줄을 놓아 잘 살게 만들 원숭이를 치지 마십시오.” “원숭이 왕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금고봉으로 단매에 쳐 죽일 테야!” 손욕이 금고봉으로 로봇 조왕돌 1호의 머리를 땅 내리쳤어요. 허나 로봇 조왕돌 1호는 날아드는 금고봉을 피하지도 않았어요. 쟁강! 쇠와 쇠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불티가 튕겼어요. 허나 로봇 조왕돌 1호의 머리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원숭이 왕 손욕은 너무 이상해 재차 금고봉으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연이어 내리쳤어요. 땅! 땅! 땅! 땅! 쇠 부딪치는 소리가 날뿐이었어요. 로봇 조왕돌 1호는 몸을 좀 휘청할 뿐 태산처럼 끄떡하지도 않았어요. 원숭이 왕은 더럭 겁이 났어요. (이놈은 무슨 놈이야?) “따웅~” 이때 때마침 얼룩호랑이 한 마리가 절벽 위에 나타났어요. 호랑이는 격노해 부르짖었어요. 그런데 호랑이가 말하지 않겠어요. 로봇 조왕돌 1호가 그 말을 로봇두뇌로 분석해보니 호랑이는 이렇게 고래고래 고함치는 것이었어요. “네 놈들이 감히 내 부모의 가죽을 벗겨 용상에 펴놓고 앉아 있어! 내 오늘 부모의 원수를 갚으러 왔다. 원숭이 왕 놈아, 명년 오늘은 네 제사 날이다!” 원숭이들은 겁이 나 칡넝쿨을 잡고 굴러 폭포 뒤의 수렴동 안으로 들어가 피신했어요. “후에 보자!” 손욕은 로봇 조왕돌 1호를 놓아주더니 금고봉을 거두고 칡넝쿨을 잡고 수렴동안으로 날아 들어가려고 했어요. 따웅~ 호랑이가 덮쳐들어 칡넝쿨을 물어뜯는 바람에 원숭이 왕은 그만 폭포아래 못에 풍덩 떨어져 허연 물 바래를 일구었어요. 호랑이는 놓칠세라 절벽 아래로 어슬렁어슬렁 기어내려 갔어요. “날 살려라!” 원숭이 왕 손욕은 금고봉을 쥐고 뭍에 기어올라 뭇 원숭이들에게 소리쳤어요. 그런데 누고도 나서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혹달개와 매발톱이 뛰어 내려가 자기들의 왕에게 덮쳐드는 얼룩호랑이의 앞을 막아 나섰어요. “이 놈, 우리 왕을 놔둬라!” 그들은 호랑이를 슬슬 유인해 절벽위로 올라갔어요. 그 틈을 타서 원숭이 왕 손욕은 나무위로 바라 올라가 몸을 피했어요. 호랑이는 절벽 위에 따라 올라가 혹달개와 매발톱을 한입에 물려고 씽 덮쳐들었어요. 그때 로봇 조왕돌 1호가 씽 날아가더니 호랑이 잔등에 올라탔어요. “위험해! 어서 내려!” 허나 로봇 조왕돌 1호는 호주머니에서 레이저비수를 꺼내 호랑이 목에 휙 휘둘렀어요. 그러자 호랑이는 찍 소리도 못하고 목이 썩 잘리어 나갔어요. “와-!” 혹달개와 매발톱을 비롯한 원숭이들은 환성을 질렀어요. 그 모든 것을 본 원숭이 왕 손욕은 자기 목을 어루만지면서 로봇 조왕돌 1호와 더 싸울 용기마저 잃고 쳐들었던 꼬리를 내리었어요. “백산 왕 만세! 백산 왕 만세!” 허나 뭇 원숭이들이 로봇 조왕돌 1호를 둘러싸고 왕이라며 하늘땅이 진감할 듯이 만세를 부르자 용서할 수 없었어요. 그는 불시에 금고봉을 쳐들고 씽 덮쳐 왔어요. “네 놈들의 왕이 눈을 빤히 뜨고 살아 있는데 감히 백산을 왕으로 옹립할 작정인가?!”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기를 찬다고나 할까요? 손욕은 로봇 조왕돌 1호와는 어쩌지 못하고 혹달개와 매발톱과 생사결단하고 화를 냈어요. 그는 진짜 손오공처럼 금고봉을 휘두르며 혹달개와 매발톱을 절벽으로부터 수렴동 안에까지 쫓아 들어갔어요. 혹달개와 매발톱이 살짝살짝 피할 때마다 빗맞은 금고봉이 들쑥날쑥한 바위에 맞아 불꽃을 튕겼어요. 혹달개는 머리에 날아드는 금고봉을 피해 두 바위날 사이에 몸을 숨겼어요. 손욕이 금고봉이 바위에 맞아 쟁그랑 불꽃을 튕길 때었어요. 혹달개는 두 손으로 금고봉을 꽉 틀어쥐고 몸을 솟구쳐 뒤발로 손욕의 두 눈 통을 콱 찔렀어요. “아이쿠!” 손욕은 금고봉을 떨어뜨리고 눈 통을 싸쥔 채 도망쳤어요. “죽여라!” “손 요귀를 죽여라!” 숱한 원숭이들이 돌멩이를 뿌렸어요. 이때 매발톱이 씽 달려 나가더니 두 손으로 손욕의 목을 꽉 깨물어 폭포 아래로 내리 떨어뜨렸어요. 풍덩! 한동안 손오공의 98대 후손 원숭이대왕이노라고 우쭐거리면서 갖은 행패를 다 부리던 손욕은 처참히 폭포수에 빠져 들어갔어요. 순간 탐욕으로 물든 더러운 뻘건 피가 폭포수 위로 피어올랐어요. 한참 후 손욕은 뭍에 기어 올라왔지만 결국 원숭이들의 돌 총질에 맞아죽고 말았어요. 허나 어느 원숭이도 전날 원숭이 왕 손욕의 죽음을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기뻐서 모두들 로봇 조왕돌 1호 앞에서 깡충깡충 뛰며 콧노래를 부르고 어깨춤을 당실당실 추었어요. 다만 그제 날 손욕 원숭이 왕을 따라 부귀영화와 향락을 누리던 애첩 불여우 원숭이아가씨가 폭포아래에 내려가 손욕을 내려다보며 가냘프게 흐느낄 뿐이었어요. 그 처참한 정경을 컴퓨터 형광판에서 들여다보고 조왕돌은 도리머리를 저었어요. 혹달개와 매발톱은 절벽 위에 거연히 서 있는 로봇 조왕돌 1호한테 다가오더니 양손을 쥐어 높이 쳐들었어요. “이제부터 백산에서 내려온 하느님 같은 백산을 우리 화과산 원숭이 왕국의 새 원숭이 왕으로 높이 모신다!” 원숭이들은 수렴동과 화과산이 떠나갈 듯 고함쳤어요. “백산 대왕 만세!” “만만세!” 허나 로봇 조왕돌 1호는 겸손하게 왕위를 사양했어요. “난 원숭이 왕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외교부장을 하면 됩니다.” 뒤이어 그는 혹달개와 매발톱의 손을 쥐고 높이 외쳤어요. “원숭이 대왕으로 혹달개를 모시고 매발톱을 총리로 모시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혹달개와 매발톱은 기어이 로봇 조왕돌 1호를 원숭이 왕으로 모시자고 고집했어요. 그리하여 로봇 조왕돌 1호가 여기 화과산 제99대 원숭이 왕으로 되었어요. 모두들 환호하며 큰 잔치를 베풀었어요. 조왕돌은 모든 것이 뜻대로 돼 기뻐했어요.
12    "야망의 바다" 머리말 댓글:  조회:1595  추천:1  2015-01-30
          장편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                머리말 언제부터인가 나는 별들이 깜빡이는 하늘이 무너질가봐 근심하였다. 잠수함 같은 고래가 윙크하는 바다가 마를가봐 밤중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지구촌 사랑의 오아시스가 재더미로 돼버릴가봐 두려워났다. 지어 별이 날아와 지구를 충돌할가봐 공포에 떨었다. 우주에서 누군가 나를 꾸짖는것이 아니겠는가? 미친 놈이 별 근심을 다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지 않는가? 왜 하늘에 구멍이 펑펑 뚫릴가봐 정신나간 놈처럼 한숨만 쉬는거냐? 별이 지구를 부딪치겠으면 부딪치라지. 눈깜짝할 새에 함께 죽으면 다 아닌가? 지구가 뜨거워나고 이 큰 땅이 꺼질가봐 근심할게 뭔가? 전쟁과 방서성오염으로 푸르른 들판이 사라지면 사람들이 어데서 살겠는가고 개탄할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태산 같은 근심을 안고 환상의 나래를 펼쳐 야망으로 차넘치는 바다로 훨훨 날아갔다. 그 푸르른 야망의 바다에 인류생존의 룡꿈을 가진 남북골과 금붕어가 수중층집을 짓는다. 룡과 독사, 고래들이 악마와 지구보위해전을 펼친다. 거북선이 불을 토하고 문어가 악마새끼들을 바다물에 집어 처넣는다. 하늘에 구멍을 뚫었던 괴물 클론바우 꼬마대통령마저 천년 굳잠에서 깨여나 지구촌의 평화와 생태환경을 보호하려고 악마들이 쏜 핵유도탄을 공중에서 받아안고 방향을 돌려 악마에게로 덮쳐든다. 남북골은 핵로케트로 지구를 충격하려고 날아오는 소혜성을 박산낸다. 욕심쟁이 죤스 악마는 지구촌을 독점하려고 전쟁의 불길로 지구촌을 불태워버리고 하늘과 땅, 바다마저 시꺼멓고 찐득찐득한 기름칠을 하려고 미쳐 날뛴다. 예는 화살로 악당들을 족치고 녀와는 가냘픈 몸으로 펑펑 구멍난 하늘을 다시 기우려고 왼심을 쓴다. 렬강들의 략탈적인 개발과 에네르기쟁탈전으로 하여 지구촌은 날따라 엉망진창이 되여가고 수중층집마저 신기루처럼 무너진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바다에서도 살기 어렵게 된 인류, 인류는 어데서 살아야 하는가? 환상으로 출렁거리는 를 읽고나서 그대들도 하늘이 무너질가봐 한가닥의 한숨소리라도 낸다면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리라. 저자 김장혁 2008년 5월 27일  
11    중편과학환상소설 지구보위전 김장혁 댓글:  조회:1881  추천:1  2014-04-06
중편과학환상소설         지구보위전               김장혁                                 1 세월은 흐르는 물과도 같이 빨리 흘러 어느덧 기원 3519년이 되였어요. 600년전에 유리박사와 그의 아들 클론바우꼬마대통령에 의해 오존층이 파괴되면서 지구의 절반이나 되는 생물이 훼멸되다싶이 되였고 당시 지하와 바다물밑에서 일하던 인간들이 수백만명밖에 살아남지 못하였댔어요. 그후 군비경쟁과 대외확충계획으로 하여 제9차세계핵전쟁이 일어나 지구는 방사성물질오염으로 하여 볼품없이 됐지요. 600년동안 인간들은 오존층을 만구하고 지구의 방사성물질오염을 제거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투쟁을 하였어요. 그리하여 지구에는 다시 생물이 번성하기 시작하였어요. 또 천여년동안 우주과학을 대폭적으로 발전시켜 이젠 지구촌에서만 살던 인간들이 21세기초에 자가용을 타듯이 자가용우주비행선을 타고 달나라와 화성에까지 가서 살게 되였고 지어 태양계를 벗어난 외성인들과도 우주쟁탈전이나 지구보위전을 벌리게 되였어요. 이런 환상적인 시대에 박무빈이는 지구촌에서 태여났어요. 이마가 툭 튀여나오고 뒤골도 별나게 툭 튀여나가 애들은 모두 무빈이를 남북골이라고 별명을 달아 놀려댔어요. 그런데 아빠를 닮아 우멍눈에 코는 유별나게 컸어요. 그래서 어떤 어른들은 무빈이가 양키놈의 후대가 아닌가고 의심하기도 할 지경이였어요. 무빈의 아빠 박천우는 날마다 하늘의 별만 쳐다보는 천문학박사이고 엄마 다혜는 핵로케트를 전문 연구하는 핵물리학박사예요. 아빠는 황페해진 지구를 구하기 위하여 어린 외동아들 무빈이에게 지구의를 사다주면서 지구에 대해 흥취를 가지도록 이끌어주었어요. 그런데 무빈이는 유치원에 다닐때부터 아빠의 뜻과는 달리 소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가방을 척 벗어던지고는 컴퓨터에 마주앉아 컴퓨터게임을 한다 하면 노랗게 삭은 이발이 뽁뽁 빠져나간 무아재입안이 환히 들여다보이게 입이 귀밑까지 벌어질 지경이였고 컴퓨터에 다 빨려들어갈 지경이였어요. 어떤 때에는 무빈이는 컴퓨터를 너무 놀아 눈이 아픈것 같으면 성호랑 최성이랑 조무래기들과 함께 마당에 나가 뽈을 차고 무리를 지어 전투놀음을 놀았어요. 무빈이는 팔다리는 약하였지만 뼈는 굵어 힘깨나 썼고 이마와 뒤골이 툭 튀여나온 남북골탓인지 상상외로 소뇌가 발달하여 주먹치기도 어지간히 하였어요. 그리하여 다혜박사는 늘 아빠를 보고 이렇게 원망하군 하였어요. “어유, 우리 저 남북골을 보세요. 놀음에만 탐내 어쩔가요? 공부를 잘하라고 이름을 문빈이라고 짓자고 하니 당신이 기어이 무빈이라고 짓더니 보세요. 전문 렵기적인 짓에만 흥취를 가지지 않는가구요?” 그때마다 천우박사는 “괜찮소. 장차 그래도 우리 무빈이가 남자답게 큰일을 하지 않는가 보오.” 하고 말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군 하였어요. 그런데 무빈이가 열네댓살을 먹더니 기적이 일어났어요. 무빈이는 어느 한번 맨날 하늘만 쳐다보는 아빠를 따라 천문대에 가서 망원경으로 신비한 밤하늘을 쳐다본후부터 별에 대해 특별한 흥취를 가지게 되였어요. 그후부터 무빈이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뽈을 차지 않으면 컴퓨터를 놀았고 일요일이면 꼭 아빠를 따라 천문대에 가서 커다란 망원경으로 별들이 반짝이는 신비한 밤하늘을 구경하기 시작하였어요. “아빠, 저 깜빡이는 별동네에는 사람이 있나요?” 턱을 고이고 밤하늘을 쳐다보는 아들을 보고 아빠는 흐뭇해났어요. “있지. 그러나 우리는 아직 많이 발견하지 못하였단다.” “엄마가 만든 우주비행기를 타고 저 별동네로 날아갈수 없나요?” “있구말구, 이다음 너도 하늘의 별을 공부하고 로케트만 잘 배우면 하늘의 별나라로 날아가 마음껏 구경할수 있단다.” 별나라를 바라보던 아빠는 머리를 돌려 무빈이의 초롱초롱한 우멍한 눈확속의 포도알같은 눈을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뒤말을 이었어요. “이번 일요일날에 달나라로 려행을 할가?” “아, 좋아라.” 일요일이 되였어요. 무빈이는 아빠와 엄마와 함께 자기집앞 활주로에 세워놓은 우주비행선에 올라탔어요. 우주비행선이 눈뿌리 아찔하게 빠른 속도로 씽 날아오르자 꽃구름이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동화속의 하늘이 발아래에서 피끗피끗 뒤로 스쳐지나갔어요. 이윽고 달나라에 착륙하여 달나라해관검사를 마치고 호화로운 호텔에 들었어요. 밤이 되자 별들이 깜빡이는 밤하늘에 달보다도 더 환하고 큰 아름다운 지구가 떠올랐어요. “아, 참말 아름다운 지구지?” “예.” 무빈이는 호기심에 찬 눈길로 달나라에서 아름다운 지구를 바라보고있었어요. 그때 아빠는 이렇게 의미심장하게 말하였어요. “저기 조선반도북쪽으로 하여 우리가 사는 장백산이 아니고 뭐냐? 우리는 우리가 사는 저 아름다운 지구를 잘 지켜내야 한다. 그러자면 아빠가 하는 별나라공부랑 잘해야 한다.” 그러자 턱을 고이고 별나라와 지구를 포도알같은 우멍눈을 때록때록 구을리면서 번갈아보던 무빈이는 머리를 끄덕였어요. “예, 별나라공부가 참 재미날것 같아요.” 지구로 돌아온후 무빈이는 그때로부터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아빠가 주는 천문학에 관계되는 책들을 주먹코를 벌름거리면서 부지런히 읽기 시작하였어요. 제일 처음에는 그것이 흥취에 의한 탐독이였다면 나중에 천우박사의 지도아래 천문학에 관한 독서는 무빈으로 하여금 재빨리 수많은 천문학지식을 장악하게 하였어요. 그리하여 소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무빈이는 이름을 달지 못한 꼬마천문학박사로 불리웠고 아빠의 유력한 조수로 되였어요.                 2 어느 일요일날 밤 무빈이는 아빠를 따라 천문대에 가서 망원경으로 별동네를 바라보다가 이렇게 물었어요. “아빠, 저 북두칠성옆에 있는 혜성이 어째 전번 주일보다 더 밝아보여요.” “뭐라니? 그럴수 없겠는데. 어디 보자.” 천우박사는 무빈이를 한쪽으로 물러나게 하고 안경을 건 얼굴을 망원경안으로 들여보냈어요. 그런데 하느님 맙소사. 진짜 무빈이가 말한대로 천왕성옆에서 반짝이던 혜성이 더 밝아졌고 이쪽으로 달려오는듯한감을 주었어요. “이걸 어찌느냐? 끝내 근심하던 일이 또 들이닥치는구나.” “웬 일이세요? 혜성이 지구쪽으로 달려오고있는건 아니겠지요?” “아직 그런건 같지 않지만 그런 위험을 배제할수는 없다.” 우멍눈이 휘둥그래 난 무빈이는 “큰일인데요. 그럼 국가우주지진국에 알리고 대책을 대야 할게 아닌가요?” 하고 말하였어요. 그러자 천우박사는 “그래야지. 그러나 이전에도 이런 회보를 여러번 했지만 정부에서는 꿈만해했다. 이번에는 중시하겠는지 모르겠다.” 하고 말하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였다. 천우박사는 아들 무빈이를 데리고 정부청사 201층에 자리잡은 우주지진국 리철학국장의 사무실에 올라갔어요. 노크하고 들어가자 쏘파에 비스듬히 기대여앉아 안경밑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리국장이 반갑지 않게 맞아주었다. 아빠 천우박사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였어요. “리국장, 긴급한 일입니다. 지금 혜성3519MN이 태양계쪽으로 소리속도의 90배나 되는 속도로 날아오고있습니다. 리국장도 알고있겠지만 6500만년전에 거대한 운석이 중부아메리카 메히꼬부근에 떨어져 원자탄의 몇억조배에 달하는 위력으로 지구의 모든것을 훼멸시키였지요. 그때 공룡같은 거대한 동물도 다 무리죽음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리철학국장은 천우박사의 회보를 듣고 이게 무슨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이 별이 떨어질가봐 근심하는가 하는 태도였어요. “난 또 무슨 일이라구? 지진이 나는가 하였더니 혜성이 날아오는걸 가지고 놀랄게 뭐요? 까딱 말을 내지 내지 마오. 국가에서는 며칠전에 벌써 허성박사가 한 회보를 전달해듣고 혼란이 일어날가봐 혜성소식을 봉쇄하라고 하였소. 황차 혜성의 궤도를 측정해보면 지금 지구와 충돌할 위험이 1프로밖에 없지 않고 뭐요. 그러니 천문학연구경비를 더 주려니 마오. 다른 정황이 있으면 그때에 가보기요.” 그 말에 실망한 천우박사는 “그래도 조치를 사전에 대야 될게 아닌가요?”하고 바투들이댔어요. 그러자 리국장은 안경알을 춰올리면서 이렇게 성을 냈어요. “박천우박사, 이건 국가의 결정이요. 박사보다 우리가 아래우정황을 더 잘 아오. 우리는 국가의 지시대로 해야 하오.” 아빠는 정부청사에서 나와서 아들 무빈이를 보고 이렇게 말하였어요. “경제가 락후한 이 나라에서는 천문학연구가 안된다. 저런 중대한 회보를 하여도 천문학연구경비를 더 타내오자고 그러는가고 근본 응대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린 무빈이는 이렇게 말하였어요. “아빠, 그래도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는 정부를 설득하여 대책을 대야 할게 아닌가요? 지금 혜성은 소리속도보다 90배나 빠른 속도로 지구쪽으로 날아오고있는데 시간을 쟁취하여야 하지요.” 아빠 천우박사는 너무너무 실망한것 같았어요. “쓸데없다. 그런 정부에 가서 말하는건 소 귀에 경읽기와 같다. 황차 지금 혜성이 비행하는 궤도를 보면 가능하게 지구에서 몇백킬로메터 상공으로 날아지나갈지도 모른다.” 아빠도 자포자기하고 요행을 바라면서 지구가 될대로 되라고 맥을 버렸어요. 지구를 구하기 위하여 어린 무빈이는 큰 마음을 먹었어요. 이튿날, 무빈이는 학교이고 뭐고 다 걷어치우고 아빠와 엄마 몰래 정부청사로 종주먹을 쥐고 뛰여갔어요. 문지기가 “서랏! 여긴 어린애들이 들어가는데 아니야. 이 애는 학교에 가지 않고 웬 일이냐?” 하고 말하면서 무빈의 앞을 가로막았어요. “아니, 아저씨, 우주지진국의 리국장을 만나 긴히 여쭐 말씀이 있어 그러는데 들어가게 해주세요. 시간이 바쁜데 좀 앞길을 막지 마세요.” 그러자 문지기는 코방귀를 흥 하고 뀌였어요. “요 죄꼬만 애숭이말을 누가 듣는다고 그래? 썩 가지 못하겠느냐?” 그러나 무빈이는 문지기의 겨드랑이사이로 쑝 빠져 정부청사에 들어가 지진국사무실로 곧게 찾아갔어요. 노크하고 들어가니 리국장은 신문을 뒤적이다가 매부리코를 쓰다듬으면서 피끗 무빈이를 내려다보았어요. “너는 왜 왔니?” 그러자 무빈이는 제법 어른스레 쏘파에 가서 앉으면서 이렇게 징중하게 말하였어요. “리국장선생님, 어제 우리 아빠가 찾아와서 말하였지만 혜성이 지구를 충돌하는 날에는 지구가 박산이 납니다. 빨리 대책을 대야 합니다.” “흥, 그건 너 애들이 삐칠 일이 아니다. 어서 학교에 가서 공부나 해라. ” 리국장은 시끄럽다는듯이 신문으로 얼굴을 막고 신문을 보았어요. 그러건 말건 무빈이는 자기 말을 해내려갔어요. “리국장도 알겠지만 100메터 크기의 혜성이 지구를 충돌하는 날에는 원자탄의 몇억배되는 힘으로 폭발하게 되지요. 그러면 온 지구의 동물이고 생물이고 훼멸될 가능성이 많지요.” “그건 너보다 우리 우주지진국의 어른들이 더 잘 안다. 괜히 떠들지 말고 학교에 가라. ” 그러나 무빈의 설교는 계속되였어요. “6500만년전에 큰 혜성이 아메리카중부 메히꼬에 떨어져 지구륙지의 모든 생물이 멸종하고 바다밑과 하늘의 생물만이 생존한걸 잊어서는 안되지요.” 리국장은 아예 응대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조급해난 무빈이는 리국장이 보는 신문을 쥐여당기면서 설교를 들이댔어요. “리국장께서는 씨비리에 운석이 떨어진 사실을 잊으셨나요. 1908년에 커다란 운석이 씨비리에 떨어져 제주도만큼한 땅덩어리우의 살림이 훼멸되고 동물과 식물이 몽땅 타죽어버린것을 말이예요.” 리국장은 전화를 들더니 이렇게 꽥꽥 고함쳤어요. “허비서, 당장 이 죄꼬만 새끼를 쫓아내오. 시끄러워 죽겠소!” 리국장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뚱뚱하게 생긴 녀비서가 뛰여들어오더니 무빈이의 뻘쭉한 당나귀귀를 마구 쥐여당기면서 리국장사무실에서 끌어냈어요. 뒤늦게 쫓아온 문지기도 201층 복도에까지 쫓아올라와 무빈이를 마구 끌고 나갔어요. 이렇게 되여 무빈이는 더는 정부청사에 들어가 리국장에게 충고를 해줄수 없게 되였어요.                          3 집에 돌아온 무빈이는 생각하면 할수록 지구가 혜성의 충격을 받아 훼멸될것만 같아 속이 탔어요. 그러면 무빈의 학교도 집도 별장도 다 무너지고 코끼리며 호랑이며 사슴이며 공작새들이 사는 동물원도 몽땅 재더미가 되지 않겠어요. 더구나 자기와 아빠, 엄마마저 몽땅 타죽게 될게 아니겠어요. 그는 속이 답답하여 서호랑 최성이랑 함께 뽈을 차려고 찾아갔어요. 그런데 서호는 원격조종기로 노는 직승비행기를 가지고 놀면서 뽈을 찰념을 하지 않았어요. 고 놈의 직승비행기가 책상만큼밖에 안되여도 서호가 보조개가 옴폭 패일 정도로 입을 꼭 다물고 원격조종기를 꼭꼭 누르기만 하면 하늘에서 쌩쌩 날아다니기도 하고 땅에 살짝 내리기도 하였어요. 그때 무빈이는 기발한 생각이 피뜩 떠올랐어요. “옳지, 조 놈의 직승비행기에다 록음기와 확성기를 달아매여 날게 하면 어떨가?” 무릎을 탁 치고 일어선 무빈이는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아빠가 천문대에 나간 틈을 타서 록음기에 대고 뭐라고 챙챙하게 록음하였어요. 점심에 아빠가 돌아오자 무빈이는 직승비행기를 사달라고 졸라댔어요. 그러자 아빠는 “얘야, 그걸 사서 뭘 하겠느냐?” 하고 심드렁한 태도를 취하였어요. 무빈이는 아빠 손을 잡고 몸을 배배 탈면서 지청구를 들이댔어요. “아빠, 서호랑은 다 직승비행기를 가지고 노는데 나도 갖고 놀고싶어요. 사주세요, 녜?” 아빠가 그래도 응낙이 없자 무빈이는 이번에는 엄마목을 끌어안고 응석을 부렸어요.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직승비행기를 사주지요 예?” 엄마 다혜박사는 무빈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천우박사와 웃는 눈길을 마주쳤어요. “엄마 사준다. 야- 좋아라.” 아빠도 시무룩이 웃었어요. “아빠도 사준다. 야-호!” 그리하여 무빈이는 아빠가 밤에도 천문대에 나간 틈을 타서 원격조종직승비행기에 록음기와 확성기를 매달았어요. 그다음 원격조종직승비행기를 밖에 가지고 나가서 원격조종기를 꼭꼭 눌렀어요. 이윽고 원격조종직승비행기는 서울의 밤하늘을 날면서 록음방송을 하기 시작하였어요. “여러분, 여기는 우주지진꼬마방송국입니다. 긴급소식입니다. 지금 3519MN혜성이 소리속도의 90배 속도로 우리 지구와 달쪽으로 날아오고있습니다. 혜성이 지구와 부딪치는 날에는 우리 지구는 훼멸성적인 타격을 받게 됩니다. 지구상의 모든 건물과 살림은 물론 모든 동물과 생물은 멸종할 위험이 있습니다. 인류문명은 훼멸의 위기를 겪게 되였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 길을 가던 사람들은 얼굴이 새까매나면서 밤하늘을 쳐다보았어요. 자그마한 직승비행기가 날아다니면서 계속 방송을 하고있었어요. “우리는 한시급히 아름다운 지구를 보위하는 긴급전투를 벌려야 합니다. 40억년의 력사를 가진 아름다운 지구는 그간 재난도 어러번 당하였습니다. 9억년전에 지구는 큰 행성과 부딪쳐 모든 생물이 멸종하였댔습니다. 4억년전에는 온 지구가 얼음덩이로 얼어붙어 재생하였던 생물이 몽땅 훼멸되였댔습니다. 바다물속으로부터 다시 재생한 생물은 공룡과 같은 괴물을 비롯한 숱한 생물을 재생시켰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인차 어린애의 록음말소리를 듣고 곧이듣지 않았어요. “어린애가 뭘 안다고 저런다오?” 한 아낙네의 말에 나그네인듯한 남성이 대꾸하였어요. “그러게 말이요. 근심할게 있소?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가 폭발하면 다른 사람들이 죽을 때 같이 죽으면 되지. 빨리 집에 가서 텔레비죤드라마나 보기요.” 그러나 “우주지진꼬마방송국” 무빈의 방송은 계속되였어요. “6500만년전에 커다란 운석이 소리속도보다 90배 빠른 속도로 지구를 향해 날아왔댔습니다. 운석이 대기층에 들어선후 공기와 마찰이 생기면서 온도가 급속히 올라갔고 태양빛보다 더 밝은 빛을 발산하였습니다. 운석은 중앙아메리카 메히꼬부근에서 떨어졌습니다. 폭발 당시 산생된 에네르기는 전 세계의 모든 핵폭탄이 폭발할 때 산생되는 에네르기의 수천배에 달하였습니다. 하늘땅을 진감하는 폭발음은 인차 폭풍과 거대한 에네르기를 산생시켰습니다. 운석이 충격한 중심부위의 온도는 태양온도의 2배를 초과하였고 거대한 폭풍은 바다를 건너 륙지의 구석구석에 남김없이 퍼져나갔습니다. 그때 공룡들은 영문을 몰라 사처로 뛰여다녔습니다. 운석은 폭발의 충격에 의해 삽시간에 증발하여버렸습니다. 폭발충격에 의해 산생된 열량은 화재를 일으켜 지구상의 수많은 삼림들이 재더미로 되였고 대기층에 산소결핍현상이 생기면서 공룡들이고 모든 동물들이 죽게 되였습니다. 폭발의 충격에 의한 열량으로 하여 많은 바다물마저 증발되였습니다. 이런 증발물은 먼지와 함께 대기층에 이르러 지구전체를 가리웠댔습니다. 대량의 먼지와 천연기체, 각종 방사성원소들이 지구 곳곳에 흩어졌습니다. 지구를 덮고있던 먼지와 기체는 태양광선을 차단한채 반년동안이나 해를 가리우고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구온도가 급격히 내려가면서 령하 30도의 엄한속에서 지구는 점차 얼음으로 뒤덮였습니다. 그리하여 식물이 얼어죽고 공룡을 비롯한 동물들도 얼어죽게 되였습니다. 우리 지구의 날개가 달린 공룡만이 살아남아 지금의 새들로 진화하였을뿐입니다.” 처음에는 모두 애들이 하는 장난이라고 듣지 않다가 어찌나 그럴듯하게 말하는지 점차 길가던 사람들의 발목을 잡았어요. 사람들은 그 원격조종직승비행기가 하늘을 빙빙 돌면서 하는 방송에 점차 귀를 기울이게 되였어요. “우리는 아래와 같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1908년 6월 30일 씨비리에 커다란 운석이 떨어져 제주도만큼 큰 삼림이 충격파와 불에 훼멸되였고 숱한 동물과 식물이 다 불타죽고말았습니다. 2001년 1월 2일 소행성이 지구를 습격해올 때 미국에서 핵로케트를 발사해 격추하였기때문에 우리 지구인들은 가능하게 륙지에서 일어날번한 재난을 모면하였댔습니다. 2002년에는 2002MN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위험궤도에 들어섰댔습니다.” 하늘에서 무빈의 록음말소리가 울리는것을 듣고 제일 바빠난것은 무빈의 아빠 천우박사와 엄마 다혜박사였어요. “아니, 저 자식이 미치지 않았어?” 아빠 천우박사의 말에 엄마 다혜박사는 이렇게 근심에 싸였어요. “저 애가 저렇게 록음방송을 하면 우리가 시켰는가고 하지 않겠어요?” “글쎄 말이요. 보라니깐, 저 애에게 직승비행기를 사다주더니 큰 경을 치지 않았는가구.” “가서 당장 직승비행기를 빼앗아내고 록음방송을 중지시키자요.” 그들은 자가용승용차를 몰고 광화문앞 광장으로 달려갔어요. 무빈이는 숱한 사람들이 하늘의 직승비행기를 쳐다보면서 방송을 듣는것을 보면서 가로수뒤에 숨어서 한창 신이 나서 이발이 빠진 입이 함박만해 직승비행기를 원격조종하고있었어요. “이 놈새끼, 직승비행기를 내리워라!” 난데없이 아빠와 엄마가 불쑥 나타나 무빈의 손에서 원격조종기를 빼앗았어요. 엄마는 무빈의 엉뎅이를 쨕쨕 때렸어요. “요 놈새끼야, 어쨰 이렇게 애를 먹이는거냐?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는거냐?” 그러나 무빈이는 두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도 게두덜거렸어요. “지구를 보위하려면 이렇게라도 혜성이 지구를 충돌하는 위험성을 선전해야 해요.” 그러나 아빠는 땅에 곤두박질하다싶이 한 직승비행기를 자가용승용차에 싣고나서 이렇게 말하였어요. “야, 이건 너같은 애들이 할 일이 아니다. 누가 코흘리개들의 말을 곧이 듣는다고 그러느냐?” 다혜박사는 땅바닥에 앉아 발버둥질치면서 엉엉 우는 무빈이를 억지로 자가용승용차에 싣고 꼭 껴안았어요. 그녀는 속으로 엉뚱한 아들 무빈이가 기특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였어요.                    4 숱한 사람들은 코흘리개 록음소리지만도 술렁거리기 시작하였어요. “정말 혜성이 지구에 날아와서 부딪치는 날에는 큰일이요.” 그러나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애들이 말하는것처럼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가 혜성과 부딪쳐 폭발하겠소?” 그러나 무빈이는 놀음감원격조종직승비행기를 쓰지 못하자 집에 있을 때나 학교로 갈 때나 어떻게 혜성이 지구와 달 사이로 날아오는가는것을 알리겠는가고 량미간을 쪼프리고 속궁리하였어요. 그는 집에 들어가기도 싫고 아빠가 일하는 천문대에 가기도 싫었어요. 그래서 인터넷바에 들어갔어요. 그는 코를 풀럭거리면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여는 순간 무릎을 탁 쳤어요. “옳지, 인터넷사이트에 지구쪽으로 날아오는 혜성소식을 실어야 하지.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이 어마어마한 긴급소식을 보게 될것이고 내가 올린것도 모르고 어른 천문가가 올렸는가고 믿을것이 아니겠는가! 그럼 그렇지! 야-호!” 무빈이는 인차 인터넷사이트에 어제밤에 방송한 내용을 실은외에도 지구와 혜성의 충돌위험성을 타자해 사이트에 올렸어요. 사람들은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어제 하늘에서 괴상한 원격조종비행기에서 나던 록음내용외에도 지구와 꼬리달린 혜성사진과 함께 사이트에 쓴 다음과 같은 내용도 볼수 있었어요. “2001년에 미국에서 지구쪽으로 다가오는 작은 혜성을 로케트로 쏘아떨군 뒤를 이어 2002년에 2002MN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위험궤도에 들어섰댔습니다. 그때 미국천문학가들이 하브망원경으로 이 긴급한 정황을 발견하고 인차 클린톤대통령에게 정황을 회보하였습니다. 그때 당시 클린톤대통령은 며칠 더 관찰해보고 만약 혜성이 확실히 지구에 부딪힐 위험성이 있다면 핵로케트를 쏘아 그 작은 혜성을 떨구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세밀한 관찰에 의하여 그 혜성과 지구가 부딪칠 위험이 적다는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과연 약 열흘후에 그 혜성은 태평양 200킬로메터 상공을 스쳐지나갔댔습니다. 만약 그 혜성이 지구와 부딪치는 날에는 지구가 엉망진창이 되였을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직경이 2킬로메터나 되는 혜성이 화성을 지나 지구쪽을 소리속도의 90배 속도로 날아오고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마땅히 이 혜성의 위해성을 알고 대책을 대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의 우주지진국에서는 사회혼란이 조성될수 있다면서 백성들의 눈을 가랑잎으로 가리우고 아옹할 예산을 하고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내용을 인터넷사이트에서 보고 뒤숭숭하여졌어요. 한입 건너 두입 건너 온 지구촌에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더는 농사를 짓기 싶지 않았고 공장과 학교는 문을 닫아걸었어요. 오래지 않으면 지구가 혜성과 부딪혀 폭발하여 다 죽겠는데 나가 아글타글 일할게 없다고 하였어요. 키꺽다리 서호랑은 난쟁이 최성이와 함께 날마다 학교에 가지 않고 원격직승비행기를 가지고 놀았어요. 부자들은 재산이 아까와 밸이 끊어질듯하였고 앞다퉈 처리하고 자가용우주비행선을 타고 먼 달나라로 달아났어요. 적지 않은 사람들은 향수에 물젖어 날마다 술이나 먹고 흥타령을 불렀어요. 음식점은 물론 노래방과 안마원은 날마다 살았을 때 향수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어요. 또 일부 사람들은 우주지진국에 전화로 혜성에 관한 정황을 문의하였고 텔레비죤에서 정확한 정황을 방송할것을 요구하기도 하였어요.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 밤하늘의 별무리들속에서 어느 별이 지구쪽으로 날아오는가고 멍하니 바라보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기만 하였어요. 지어 어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신경이 잘못 되였고 정신이 나간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며 절도, 살인과 강간 등 악성사건이 련속 부절히 발생하였어요. 그러자 바빠맞은것은 제일 먼저 우주지진국이였어요. 리국장을 비롯한 우주관계자들은 이런 소문을 퍼뜨린것은 전적으로 천우박사부자간이 한짓이라고 추측하였어요. 그들은 천우박사를 불러들여 사건경위를 조사하기 시작하였어요. 리철학국장은 노기등등하여 안경알밑의 소눈깔 같은 눈알이 다 빠져나올듯이 천우박사를 쏘아보면서 훈계하였어요. “천우선생은 왜 무조직 무규률이요? 내가 뭐라고 합데? 절대 경솔히 소문을 내지 말라고 하였는데 그 집 아새끼가 록음방송을 하고 인터넷사이트에 소문을 퍼뜨리는 바람에 온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단 말이요. 꼭 당신이 시킨게요.” 아빠는 너무너무 억울하였어요. “난 무빈이를 시킨적이 없습니다.” “아니요. 꼭 시켰소. 당신은 지구촌사회를 혼란에 빠뜨렸기때문에 행정적, 형사적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이요.” 그러자 천우박사도 양보하지 않았어요. “리국장, 그건 절대 내가 한짓이 아닙니다.” “이 동무가 로실하지 못하구만. 여길 보오.” 리국장은 텔레비죤을 켜고 비디오테프 하나를 꺼내 띠웠어요. 그러자 화면에 원격조종직승비행기가 보였고 거기에서 울려나오는 무빈의 목소리가 들리였으며 천우박사가 원격조종직승비행기를 자가용승용차에 싣고 다혜박사가 무빈이를 데리고 차에 앉아 떠나가는 장면이 나타나는것이였어요. “그래도 승인하지 않겠소?” “아닙니다. 그건…” “닥치오!” 리철학국장은 사무상을 탁 쳤어요. 그 바람에 사무상우의 차잔이 땅바닥에 짤라당 떨어져 박산났어요. “그래도 아니라고? 물증이 있는데도 아니라고? 승인하고 하지 않는것은 당신의 태도에 달린것이요. 그러나 이 사건이 이미 온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았으니 당신은 천문대사업터에서 일하지 못하오. 철직이요. 그리고 우리는 사법기관에 사회를 혼란시킨 죄로 당신부부를 소송하겠소.” 천우박사는 더 말해도 소용없자 우주지진국에서 나와버렸어요. 그렇다고 자기가 하지 못한 일을 한 아들을 물어먹을수도 없었어요. 집으로 돌아오자 다혜박사가 한창 무빈이를 회초리로 종아리를 치면서 심문하고있었어요. “다시 그러겠니? 네가 중뿔나게 그런짓을 하였기에 큰 경을 치르게 되였다. 아이고, 이 놈아!” 그러나 무빈이는 뜨러운 눈물방울을 똑똑 떨구면서도 안 그러겠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어요. 그러자 아빠가 말리였어요. “그만두오. 온 사회가 이 일을 알게 한건 오히려 잘된 일이요. 우리 어른들이 감히 못하는 일을 우리 무빈이가 해냈단 말이요. 이젠 어떻게 이 일을 수습하는가 구경만 하면 되오.” 천우박사는 다혜박사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아버리고나서 무빈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것이였어요. 천우박사의 말이 맞아떨어졌어요. 적와대에서는 사회가 혼란한 원인을 인차 알아내였어요. 김성대통령께서는 사태의 엄중성을 느끼고 인차 리철학국장을 불러 구체정황을 조사하였어요. 그러자 리국장은 그간 정황을 회보하고나서 아주 자랑스레 이렇게 덧붙였어요. “우리는 즉시 이렇게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천우박사를 철직시키고 감옥에 처넣으라고 사법기관에 소송하였습니다.” 리국장은 김대통령이 자기 처사를 대단히 칭찬하리라고 생각하였어요. 그러나 대통령은 노기등등해 고래고래 고함쳤어요. “철직받아야 할 사람은 천우박사가 아니라 리국장, 당신이요. 이런 긴급한 사건이 발생하기전에 지구쪽으로 날아오는 혜성의 정황을 정부에 알리고 대책을 강구하여야 하였소. 그러나 당신은 국장으로서 그걸 솜으로 불을 싸듯이 덮어감추려고 하다니? 참, 내가 눈이 멀었지. 무빈이같이 죄꼬만 애들보다도 우둔한 당신같은 사람을 국장으로 임명하다니!” 그 말에 리국장은 머리를 무릎우에 떨어뜨릴 지경이였어요. 그저 욕이나 하려니 하였는데 그에 그치지 않았어요. 김성대통령의 목소리가 적와대에 쩌렁쩌렁 울려퍼졌어요. “비서실장, 당장 저 리철학국장을 철직시키고 사법부문에 고소하여 저자의 실직행위를 법에 따라 호되게 다스리도록 하시오. 대신 천우박사부자를 각각 국장과 부국장으로 임명하고 이 긴급사태에 대처할 대책을 구하도록 하시오.” “예이-” 리국장이 머리를 툭 떨구고 나간후 김성대통령은 즉시 비서실장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천우박사네 집으로 달려가 천우박사부자를 만났어요. 김대통령은 량손으로 천우박사와 무빈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하였어요. “그간 수고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중대한 정황을 알려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리국장을 이미 철직하였소. 대신 당신들 부자가 국장과 부국장을 맡아 위기에 처한 지구촌을 구해주시오. 필요한 인력과 물자는 정부에서 몽땅 대줄테니깐 근심하지 말고 요구하십시오.” “고맙습니다. 무빈이가 저의 아들이라고 말하는게 아니라 소학교학생이지만 우주지식이 저만 못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 나이가 어린 소학생이고 정식학위도 가지지 못하였기에 부국장을 시키지 말고 그저 과외로 저를 도와 혜성을 관찰하면 될것 같습니다. 자칫하면 또 기자들이 우리 부자들을 두고 물의를 일으킬가봐 걱정됩니다.” 그러자 김성대통령도 머리를 끄덕였어요. “그것도 그렇구만. 이 큰 사업을 하려면 학술계의 인정을 받아야지요. 이번 일만 하여도 우주학술계의 인정을 받을 좋은 론문을 써낸게 아니겠습니까? 이만큼 훌륭한 박사론문이 어데 있겠습니까? 그럼 서울대학교 유관 박사생도사들을 초청하여 인차 혜성과 지구충돌에 관한 론문답변을 하고 박사학위를 주도록 하십시오.” 그러자 무빈이는 이발 빠진 입이 함박만해서 어쩔줄 몰라하였어요. “대통령께 감사를 드려라.” “김대통령님, 고맙습니다.” 무빈이가 절을 올리자 김대통령께서는 아주 정중하게 무빈의 죄꼬만 손을 잡아흔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박부국장, 아빠 천우국장을 도와 꼭 이번 혜성을 깨버리고 지구를 지켜달라. 부탁드린다.” 천우박사와 무빈이는 대통령께 머리를 조아렸어요.                       5 이튿날 리철학박사는 자가용우주비행선을 타고 달나라로 달아났어요. 그는 인차 달나라에 가서 혜성충돌로부터 달나라를 보위할 계획을 대통령에게 드렸어요. 그리하여 그는 달나라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달나라의 우주항천사령부 총사령을 맡게 되였어요. 그 소식을 들은후 아빠와 엄마 그리고 무빈이는 한시름을 턱 놓았어요. 박천우국장과 박무빈국장이 서울에서 지구촌의 과학가들을 불러 련 10여일동안에 “소행성의 충격을 피면하고 지구를 보위할데 관한 학술토론회”를 다섯번이나 열었지요. 로씨야의 한 과학가는 “태양우산”을 로케트에 실어 소행성에 올려보내 고정시키고 태양의 빛에네르기를 빌어 소행성의 궤도를 바꾸게 하는 방법으로 소행성이 지구를 충격하지 못하게 막아보자고도 건의하였지요. 한국의 허주박사는 로케트로 원자력발동기를 실어 소행성에 올려보내 고정시키고 점화해 소행성이 지구를 충격하지 못하도록 궤도를 바꿔보자고 건의하였지요. 중국의 과학가 장국승박사는 원자탄으로 소행성을 폭파해버리자고 하였지요. 그러자 적지 않은 과학가들은 큰 소행성을 폭파하여 수천개의 소행성이 지구를 충격하게 하여도 마찬가지로 지구의 인류문명이고 뭐고 몽땅 훼멸하게 된다면서 안된다고 하였어요. 미국의 과학가들은 소행성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형원자탄을 수십차 폭발시켜 그 방사선충격파로 소행성을 지구충격궤도에서 벗어나게 하여 한차례 소행성의 지구충격피해를 피면하게 하자고 건의하였지요. 나중에 박천우국장과 토론한후 무빈부국장은 버릇처럼 손수건으로 코를 쓱 닦은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어요. “여러 과학자들의 의견을 한마디로 종합하면 두가지 방법입니다. 한가지 방법은 소행성의 궤도를 바꿔 소행성이 지구를 충돌하는것을 피면시키자는것입니다. 다른 한가지 방법은 소행성을 폭파해 없애버리자는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첫번째 방법을 대봅시다.” 그러자 과학가들은 그 의견에 동의하였어요. 그러나 한 과학가는 이런 질문을 하였어요. “그런데 무빈국장, 소행성은 2000메터나 되는데 우리가 어떻게 궤도를 바꾸게 하겠습니까?” 그러자 무빈국장은 결단성있게 대답하였어요. “소행성에 날개를 달아 소행성의 궤도를 바꿔봅시다.” 그러자 과학가들은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떠들썩하였어요. 무빈국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어요. “지구를 구하는 일은 우리 우주지진국만의 일이 아니예요. 우리는 반드시 핵항천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어요. 핵발동기에 커다란 날개를 달아 소행성의 비행궤도를 바꿔야 하겠어요.” 그리하여 우주지진국과 핵항천부 과학가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였어요. 이제 우주지진국의 요구에 따라 다혜부장이 맡은 핵항천부에서 일할 차례가 되였어요. 다혜부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어요. “우주지진국의 방안은 성립될수 있어요. 그러나 핵발동기날개를 혜성에 안전하고도 단단히 고정시키려면 우주비행원들이 소혜성에 올라가서 구멍을 뚫고 핵발동기날개를 고정시켜야 해요.” 그러자 천우박사가 주먹코를 만지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어요. “그런데 혜성은 태양계에 들어선후 태양빛을 받기만 하면 몇백도씩 뜨거워지지요. 우리는 혜성이 달빛을 받지 않는 틈을 타서 그늘이 진 곳에 그엉을 뜷고 핵발동기날개의 발을 혜성에 고정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자그마한 혜성이 천천히 자전하기에 해빛을 받지 않는 시간이 약 반시간밖에 안됩니다. 이 짧은 시간내에 임무를 완수하자면 우리는 이번 3519MN혜성이 무슨 물체로 생겼는가부터 알아내야 합니다. ” 그리하여 먼저 무빈부국장이 나섰어요. “제가 직접 화성부근에 가서 혜성을 관찰하여 그 내부구조를 알아내겠어요.” 그러자 다혜박사가 막아나섰어요. “안된다. 넌 항천경험이 없고 지질탐사경험이 없어 안된다.” 그러자 천우박사가 나섰어요. “내가 화성부근에 가서 그 혜성의 구조를 알아내겠소. 그사이 김성대통령에 청시하고 즉시 삼성제조업체에 고온상태에서도 녹지 않을 재료로 핵발동기날개를 제조하게 하오.” 천우박사는 다혜박사에게 주먹코를 돌리더니 이렇게 귀속말을 하였어요. “만일을 대비해 혜성을 폭파할 핵로케트를 잘 점검하도록 하오.” 우주지진국과 핵항천부의 방안을 김성대통령이 동의하였어요. 이튿날 천우박사는 허주박사와 함께 핵항천부에 가서 생사를 기약할수 없는 우주비행선에 올랐어요. 씽- 핵우주비행선은 천우박사 그리고 조수 리정박사와 허주박사를 싣고 밤하늘로 날아올랐어요. 다혜박사와 무빈부국장은 날마다 별들이 깜빡이는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시뻘건 뱀같은 꼬리를 달고 지구쪽으로 날아오는 혜성에 눈뿌리를 박고 태산같은 근심에 싸였어요. 며칠후 3519MN혜성과 가까이 접근한 천우박사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3519MN혜성은 광물질로 형성된것이요. 날개를 달아 궤도를 바꾸지 않으면 폭발하는수밖에 없소. 혜성이 이미 화성을 지나 지구와 달쪽으로 날아가고있으니 한시급히 굴진기와 고정나사, 핵발동기날개를 우주비행선에 실어 올려보내오.” 그러자 무빈이는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컴퓨터형광막에 나타난 아빠를 보면서 울먹거리며 말하였어요. “아빠, 돌아오세요.” 그러자 천우박사는 이렇게 말하였어요. “그럴 새 없다. 우리가 지구에 갔다가 다시 핵발동기날개를 싣고 오려면 늦어진다. 근심하지 말아라. 모든게 잘될거다.”                             6 핵항천부 부장 다혜박사의 명령에 따라 우주비행원 10여명과 핵발동기날개 등을 실은 우주비행선이 하늘로 씽- 날아올랐어요. 며칠후 석철송박사 등 우주비행원들과 핵발동기날개를 실은 우주비행선이 천우박사가 탄 우주비행선과 태공에서 만났어요. 그들은 천우박사의 명령에 따라 함께 혜성쪽으로 날아갔어요. 또 며칠이 지나 그들은 혜성에서 약 50킬로메터 떨어진 태공에까지 접근하여갔어요. 먼저 천우박사 등이 탄 우주비행선이 천천히 해를 등진 혜성뒤면을 접근하였어요. 그들은 지구와 각도가 맞지 않게 핵발동기날개를 달아야 하였어요. 이때 리정박사는 천우국장에게 “아예 리철학국장이 달아난 달나라에 혜성이 날아가게 방향을 조절해놓으면 어떻습니까?”라고 하였어요. 그러자 허주박사도 찬동해나섰어요. “옳습니다. 달나라놈들이 언제든지 우리 지구촌에 앙심을 품고 에네르기와 자원 략탈전쟁을 할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헬리움을 비롯한 새 에네르기를 달라고 하니 거절하고서도 우리에게서 식료품을 빼앗아가려고 마음을 먹은지 오래지 않고 뭐예요.” 후에 온 우주비행원들도 찬동해나섰어요. “이번 기회에 달나라악종들을 멸종시킵시다.” 그러나 천우국장은 반대하였어요. “그렇게 할수 없소. 지구촌사람이나 달나라사람들이나 모두 살람들이요. 우리는 지구를 보위하여야 할뿐만아니라 지구의 후방이나 다름없는 달도 보위하여야 하오.” 천우국장은 아주 착한 표정을 지은채 우주비행원들을 둘러보면서 뒤말을 이었어요. “자, 시간이 없소. 혜성이 지구와 달에 다 부딪치지 말게 각도를 확정한후 날개를 고정시킬 구멍을 뚫기요.” 그러자 다른 사람들은 의견이 있으면서도 군소리를 더하지 못하였어요. 그들은 지구각도를 관찰하고 날개방향을 확정한후 굴진기로 구멍을 뚫기 시작하였어요. 천우박사 등의 지능우주복에서는 김이 피여오르고 우주비행선에서는 경보신호가 띡띡 울렸으며 열기가 확확 뿜기는 광석에서는 연기가 피여오르기 시작하였어요. “국장님, 우리가 할테니까 들어가세요.” 그러나 천우박사는 주먹코를 벌름거리면서 “아니요. 이 광물질을 기념으로 가지고 가서 지구촌에서 이다음 지구에 날아오는 혜성을 대처할 방도를 연구할 때 쓰게 해야 하겠소.” 하고 말하면서 굴진기로 계속 광석바닥에 구멍을 뚫었어요. 그런데 어느덧 반시간이 거의 되여 해빛이 희미하게 비껴들자 혜성광석바닥에서 김인지 연기인지 피여오르기 시작하였어요. “이젠 우주비행선에 올라가 문만 열고 서서 구멍을 뚫기요. 빨리 해제껴야 하오. 어떻게 다시 해빛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려 다시 뚫겠소?” 모두들 우주비행선에 올라서서 화로불속에서 일하는것처럼 땀을 뚝뚝 떨구면서도 재빨리 끝내 구멍을 다 뚫었어요. 천우박사는 주먹코를 주먹으로 쓱 씻더니 “빨리 핵발동기날개를 다시오.” 하고 긴급명령을 내렸어요. 저쪽 우주비행선에서 기중기로 핵발동기날개를 부리웠어요. 처음에 내려진 날개는 극상해야 한 5메터밖에 안되는것 같았지만 접은 날개를 쭉쭉 펴자 50메터는 실히 될것 같았어요. 덩실하게 높이 솟은 은빛쇠기둥에 은빛핵발동기날개가 달린것이 장관이였어요. 이때 해빛이 혜성에 비껴들기 시작하였어요. “핵발동기를 작동해 날개를 돌리시오. 우주비행선문을 닫고 태공에 날아들 오릅시다!” “옛!” 우주비행선은 하늘로 날아올랐어요. 핵발동기날개는 바람개비처럼 윙윙 돌기 시작하였어요. 저것이 뭐예요. 핵발동기날개가 얼마간 돌아가자 연기가 피여오르는 혜성이 글쎄 자전을 멈추기 시작하였어요. 다시 천우박사가 원격조종기로 방향을 조절하자 혜성은 조금 방향을 돌리기 시작하였어요. 지구촌천문대에서 이 정경을 컴퓨터에서 보던 다혜박사와 무빈부국장은 “야- 호!” 하고 환성을 질렀어요. “아빠! 이젠 돌아오세요.” “그래, 이젠 시름놓고 지구로 돌아가도 되겠다. 지구촌에서 다시 만나자.” 천우박사는 우주비행선조종사들에게 명령을 내렸어요. “우주비행선들은 지구로 향해 출발!” “예잇!” 우주비행선들은 지구를 향해 날아갔어요.                      7 무빈이는 서호랑 성주랑 같이 천문대관측소에서 밤하늘에서 시뻘건 꼬리를 금발처럼 흩날리면서 이쪽으로 날고있는 혜성을 구경하면서 혜성의 궤도를 측정하고있었어요. 엄마 다혜박사는 시름놓고 남편 천우박사가 돌아오기를 손꼽아기다렸어요. 천우박사랑 탄 우주비행선이 지구와 달사이로 다가왔을 때였어요. 갑자기 하늘에 비행접시가 여섯대나 나타났어요. 그 비행접시들은 두 우주비행선에 세대씩 달려들어 맹공격을 가하여왔어요. “너희들은 누구냐?” 천우국장이 묻자 비행접시에서는 태공이 쩌렁쩌렁 울리게 고함치는것이였어요. “우린 달나라 리철학총사령이 보낸 신병들이다. 우린 진작 너희들의 행동을 주시해보아왔다. 핵발동기날개를 돌려 혜성이 우리 달나라에 부딪치게 하려고 한 너희들의 죄악적목적도 다 알고있다. 나쁜 놈들, 어서 우주의 귀신이 돼라!” “뭐? 리철학국장이 보낸 달나라군사들인가? 내 말 좀 듣소. 우리를 절대 오해하지 마시오. 우린 지구촌도 달나라도 충격하지 않게 방향을 조절해놓았소.” “헛소리를 하지 말앗! 저 밤하늘을 보라. 혜성이 지금 꼬리를 끌고 우리 달나라로 날아오고있다.” 천우박사가 밤하늘의 혜성을 바라보니 확실히 달쪽으로 날아가는것 같았어요. “이럴수 없어! 착각이야! 오해하지 말라!” 리국장이 머리를 가로젓자 저쪽 비행접시에서 쌍욕이 쏟아졌어요. “개소리! 누구를 속여! 우린 네 놈들이 혜성우에서 음모를 꾸미는 소릴 다 들었다.” “네 놈이 우리 리총사령을 물어먹고 국장자리를 차지하고서도 살아서 지구로 돌아갈것 같은가!” 사전에 달나라놈들을 경계하지도 않은 천우박사랑 속수무책이였어요. 씽- 유도탄이 천우박사가 탄 우주비해선에 날아왔어요. 조종사가 날쌔게 우주비행선을 조종해 첫 유도탄을 피하였어요. 씽- 두번째 유토탄이 또 날아왔어요. 쾅! 유도탄이 중도에서 허주박사가 쏜 유도탄에 맞아 박살이 났어요. 그런데 그 파편에 맞아 천우박사가 탄 우주비행선외곽이 크게 다쳤어요. 우주비행선은 기우뚱하더니 지구대기층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였어요. 그 정경을 보던 허주박사는 우주비행선을 몰아 떨어지는 우주비행선을 따라 날아갔어요. 일단 대기층에만 떨어지면 지구인력에 의해 지구쪽으로 떨어지면서 우주비행선이고 사람이고 몽땅 연소돼 분신쇄골이 될것이였어요. 허주박사는 어떻게 하든 떨어지는 비행선을 따라잡아 천우박사 등 3명을 이쪽 우주비행선에 실으려고 하였어요. 그러나 비행접시가 여섯대나 덮쳐들어 용빼는수가 없었어요. 그 전투장면을 보던 무빈이는 “아빠! 빨리 우주비행선에서 뛰여내려요!”라고 고함쳤어요. 그제야 제정신이 들었는지 천우박사 등은 내리꼰지는 우주비행선을 버리고 태공에 뛰여내렸어요. 진공상태가 같은 태공에서 그들은 중력가속도에 의해 지구를 둘러싸고 위성처럼 돌기 시작하였어요. 비행접시에서 유도탄을 날렸어요. 그런데 천우박사랑 지능우주복을 입었기에 유도탄을 피하였어요. 유도탄은 천우박사의 두다리새로 쑥 빠져나가 달나라쪽으로 날아갔어요. 기관총을 쏘아도 지능우주복을 입은 천우박사랑을 명중하지 못하였어요. 악에 받친 리철학국장은 달나라 총사령부에서 호랑이처럼 고아댔어요. “그 놈을 두 비행접시로 짓쪼아 죽여라!” 청천벽력같은 그 명령에 따라 비행접시 두대가 날아와 천우박사랑을 릉지처참이 되게 짓쪼아 죽였어요. 뜻밖의 봉변에 무빈이와 엄마는 깜짝 놀랐어요. “아빠!” “여보!” 비행접시의 놈들은 천우박사가 탔던 우주비행선을 따라잡아 그안에서 천우박사가 파온 혜성광석을 도적질해 갔어요. 이때 태공싸움은 고조에로 올랐어요. 허주박사는 날쌔게 우주비행선을 조종하면서 요리조리 피하며 복수의 불벼락을 안겨 그중 한 비행접시를 격추하였어요. 그러나 비행접시는 5대 1의 우세를 믿고 허주박사가 탄 우주비행선을 포위하고 줄유도탄을 날렸어요. 꽝! 요란한 폭파소리와 함께 허주박사와 리정박사 등이 탄 우주비행선이 박산났어요. 지구촌의 우주비행사들과 천문학과 핵기술전문가들은 몽땅 태공에서 황천객이 되고말았어요. “여보!” “아빠!” 다혜박사와 무빈부국장은 서로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을 쳤어요.                           8 무빈부국장은 아빠와 숱한 전문가들을 잃은데다가 달나라 우주항천사령부 우주비행사놈들이 비행접시를 몰고 가서 핵발동기날개방향을 조절해놓는 바람에 혜성이 지구쪽으로 날아오는것을 발견하였어요. “다 내 잘못이다. 저 달나라로 달아난 리철학국장을 주의하지 않고 우주비행선에 무기를 싣지 않은 탓이다.” 다혜박사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눈물이 랑자한 무빈의 얼굴을 매만지면서 후회하였어요. “엄마, 난 꼭 저 달나라놈들에게 복수의 불벼락을 안기고야말겠어요.” 무빙이가 종주먹을 쥐고 말하자 엄마 다혜박사는 이렇게 말하였어요. “얘야, 복수보다도 먼저 지구쪽으로 방향을 돌린 혜성부터 처리해야 한다.” 무빈이는 버릇처럼 손수건으로 눈물과 코물을 쓱 닦고 서호랑과 함께 대책을 연구하기 시작하였어요. 이때 김성대통령께서 무빈이네 집에 찾아왔어요. 그는 두손으로 다혜박사와 무빈의 손을 잡고 문안인사부터 하였어요. “안되였습니다. 우리는 지구를 보위하는 전쟁에서 지구촌의 가장 위대한 우주지진전문가 천우박사 등을 잃었고 핵전문가들과 우주비행사들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비통을 힘으로 바꿔 혜성을 없애버리고 지구를 보위하며 달나라놈들을 전승해야 하겠습니다.” 이튿날 대통령은 적와대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다음과 같은 명명장과 임명장을 내렸어요. “우주지진국의 전임 박천우국장, 최항부장, 리성박사, 허주박사 등 전문가들을 지구보위충신으로 몀명하며 지구보위전기념비를 세우고 그들의 이름을 새겨넣는다. 원 우주지진국과 핵항천부를 통털어 우주핵항천사령부로 통합하며 무빈부국장을 총사령으로 임명하며 다혜부장을 총고문으로 임명한다.” 또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어요. “무빈총사령은 제2대소년과학가들을 이끌고 혜성을 없애고 달나라놈들을 전승하여 지구를 보위하라.” “예잇!” 무빈총사령관은 아빠를 잃은 슬픔에 흑흑 흐느끼면서 어깨를 달싹이며 대회장을 나섰어요. 그간 무빈이와 서호랑 성주랑 많이 컸어요. 그는 우주핵항천사령부로 돌아오자 서호랑 성주랑과 함께 혜성과 달나라 놈들을 없앨 궁리를 하였어요. 무빈총사령관은 엄마 다혜박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어요. “이제 핵발동기날개를 조절하자고 하여도 우세한 비행접시를 가진 달나라놈들의 방해가 심해 용빼는수가 없어요. 우리는 제2방안대로 핵로케트로 혜성을 박산내면 어떨가요?” 그때 다혜박사가 무빈에게 이렇게 귀띔해주었어요. “그 행동방안이 좋을것 같다. 직경이 2킬로메터나 되는 혜성을 핵로케트로 폭파해도 수만개 작은 운석이 지구에 떨어지는 날에는 지구의 모든 륙지가 불바다로 될게다. 100메터짜리 운석이 지구와 부딪쳐도 폭바능량이 10M나 된다. 그 20배나 되는 혜성이 지구와 부딪치면 지구는 박살이 나지 않아도 불바다로 될게다. 그러나 혜성을 콩가루되게 박살만 내면 별문제이다. 한편 이번에도 달나라놈들이 혜성으로 날아가는 우리 핵로케트를 발견하고 태공에서 반로케트체계로 떨어뜨리면 실패할게 아니냐? 그러니 여러모로 꼼꼼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젠 시간이 며칠 없다. 빨리 지구촌의 모든 학자들을 불러 대책을 마련하여야 하겠다.” 그러자 무빈이는 쏘파에서 일어나 사령부를 거닐면서 이렇게 말하였어요. “옳은 말씀이예요. 우리는 오늘 지구촌의 모든 과학가들을 불러 대책을 마련합시다.”                    9 그날 텔레비죤과 인터넷사이트에는 회의통지가 떴어요. 그러자 지구촌 어데서인가 백여명 박사들이 총사령부회의실에 모여들었어요. 회의에서 많은 학자들이 자기 방안을 내놓았어요. 그들이 발언한 내용을 종합하여 무빈총사령관은 다음과 같이 최후명령을 내렸어요. “첫째, 최성부장이 책임지고 수십개 핵로케트를 몇번에 나눠 쏘아 혜성을 폭파시키시오. 둘째, 다혜총고문과 서호부장이 책임지고 우주특공비행사들을 달나라에 파견하여 리철학총사령을 사로잡아오고 달나라 핵로케트지휘부와 핵로케트발사계통을 짓부십시오. 그러나 달나라 방사성오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우리는 달나라에 절대 핵로케트를 쓰지 말아야 됩니다. 셋째, 모든 지구촌의 사람들은 잠수함을 타고 비다밑으로 대피하십시오. 잠수함이 없는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날아올라가 박산난 혜성쪼각을 피하도록 하십시오.” 그때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장내에 우렁차게 울렸어요.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온 한 깜둥이박사가 이런 질문을 들이댔어요. “그 방안이 좋기는 하지만 한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달나라놈들은 리철학사령의 명령에 따라 우리 천우국장 등 전문가들을 살해하였습니다. 이번 핵발동기날개를 다는 방안이 실패한것도 리정박사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기때문에 우리가 달나라의 놈들에게 경각성을 높이지 않은데 있습니다. 그놈들이 이번에는 지구를 핵로케트로 공격할것입니다. 우리가 아예 이번 기회에 혜성이 달나라로 날아가게 유도하여 달나라의 놈들을 없애버리면 어떻겠습니까? 혜성과 달의 충돌이 실패하면 핵로케트로 멸종시키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무빈총사령관은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어요. “나는 그 의견에 찬동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천우박사의 주장을 견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지구의 후방과 같은 달나라를 핵로케트로 공격할수 없으며 제9차세계대전때의 비극을 재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지구를 보위하여야 하지만 달나라를 파괴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서 새로 발견한 달나라의 헬리움-3핵에네르기는 100킬로그람이면 지금 우리 지구의 모든 핵원자력발전소가 1년동안 발전하는 량과 맞먹는 막대한 새 핵에네르기입니다. 달나라에는 헬리움-3외에도 금과 은 등 자원이 아주 풍부합니다. 지구의 인구가 급상승하는 형편에서 우리는 지구의 후방이나 다름없는 달나라자원을 파괴하지 말고 이후에 달나라를 잘 개발하고 건설하여야 합니다. 이번 전쟁에서 우리는 달나라에 절대 핵로케트를 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 말에 주석대아래에서는 죄꼬만 무빈총사령을 두고 웅성거리기 시작하였어요. “딱 마치 제 애비를 닮았구나.” “그 애비에 그 아들이지.” “딱 마치 신처럼 착한척하고있지 않는가?” 그러나 무빈총사령관은 그 모든것에 개의치 않고 손수건으로 코를 쓱 닦더니 이렇게 뒤말을 이었어요. “어떻게 말하면 혜성을 폭파해 수천개의 작은 쪼각이 되여 지구 곳곳에 떨어지면 좋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600여년전 제9차세계대전때 유리박사와 클론바우대통령에 의해 오존층이 파괴되고 핵전쟁으로 하여 방사성물질로 오염된 지구의 륙지표층을 혜성쪼각폭우로 한번 활 번져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환경오염을 제거하고 새로운 지구땅덩어리를 만들게 아닌가요? 이건 사람의 힘으로는 할수 없는 일로서 천재일우의 좋은 기회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무빈의 총명한 방안에 박수를 보내주었어요. 그러나 아메리카에서 온 눈이 파란 힐박사는 의문을 제기해왔어요. “무빈 총사령관, 그러다가 몇천년이나 건설해온 우리 아메리카합중국의 건물이 몽땅 무너지는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자 무빈이는 이렇게 답변하였어요. “우리는 될수 있는 한 제9차세계대전 전쟁피해를 받아 방사성오염을 제일 많이 받은 지역에 혜성쪼각이 떨어지게 기술적으로 폭파하여야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구라파, 중동,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에 말입니다. 이렇게 하자면 혜성이 제1차폭파에서 폭파된 정황을 보고 준확하게 제2차, 제3차폭파를 해야 됩니다.” 구라파의 머리가 희슥희슥한 빠르긴박사는 이런 질문을 하였어요. “달나라사람들은 지구촌에서도 다 뛰여난 항공, 항천, 지질, 핵로케트 등 부문의 전문가들입니다. 그들은 리철학박사처럼 지구촌에서 달아난 학자들로서 이곳의 모든 정황을 손금 보듯하고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상대로 하여 싸워 이길수 있다고 봅니까?” 무빈총사령관의 대답은 간단하였어요. “우린 꼭 이길수 있습니다. 우리 지구보위전은 정의적인 전쟁이기때문입니다.” 서울대학교의 학술계에서는 이번에 댄 방안과 숱한 학자들의 질문에 준 무빈의 대답은 아주 좋은 박사론문과 론문답변이라고 하면서 그에게 박사학위를 줄것을 제의하였어요. 그러자 숱한 학자들이 박수를 쳐서 찬동하였어요. 그러나 무빈총사령관은 이렇게 겸손하게 말하였어요. “저는 아직 지구보위전에 성공하지 못하였어요. 이번 지구보위전에서 저의 방안이 성공하면 박사학위를 가져도 늦지 않아요.” 우주전쟁에 직면한 총사령부사무실은 총사령부청사안의 잠수함 같기도 하고 세워놓은 우주비행선 같기도 한 자그마한 전시사무실로 이사하였어요. 전시사무실은 동서남북, 상하로 회전할수도 있고 날수도 있는 이동식사령부였어요. 무빈총사령관은 손수건으로 오똑코를 닦은후 제1호명령을 내렸어요. “최성부장은 핵로케트를 혜성에 발사하라!” 핵로케트들이 씽씽 혜성으로 날아갔어요. 달나라에서는 리철학총사령의 명령에 따라 반로케트유도탄을 쏘아 지구촌에서 날아가는 핵로케트를 몇개 명중해 공중에서 버섯구름이 일었어요. 그때 무빈총사령관의 제2호명령이 떨어졌어요. “서호부장, 로케트를 달나라 핵로케트기지와 로케트방어기지에 쏘는 동시에 즉시 달나라로 출발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먼저 다혜총고문과 서호부장은 즉시 로케트를 쏘았어요. 쓩쓩! 복수의 로케트들이 달나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아갔어요. 달나라에서는 즉시 반로케트유도탄을 쏘아 지구촌에서 쏜 로케트를 여러개 명중해 떨구었어요. 그러나 나머지 로케트들이 달나라 로케트기지에 날아가 떨어졌어요. 달나라에서는 뜻밖의 로케트기습을 당해 란장판이 되였어요. 그 틈을 타서 서호부장과 다혜총고문은 50대나 되는 우주비행선들에 소년아동우주특공대원들을 거느리고 달나라로 출발하려고 하였어요. 그때 무빈이는 “엄마는 직접 가지 않아도 돼요. 지휘부에서 총지휘를 하세요.”하고 만류하였어요. 그러나 엄마는 “지구를 보위하느라고 남편마저 잃은 마당에 내 손으로 리국장놈을 잡아오겠다.” 하고 말하면서 기어이 우주비행선에 올라탔던것이예요. 우주비행선이 달나라쪽으로 날아가자 달나라의 시선은 단번에 그들에게로 집중되였어요. 리철학총사령관은 숱한 비행접시들을 파견해 반격하였어요. 무빈총사령관은 컴퓨터형광막에서 눈을 떼지 않고 태공전쟁장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두번째 명령을 내렸어요. “최성부장은 즉시 혜성에 핵로케트를 발사하시오!” 쓩쓩! 핵로케트들이 이번에는 혜성을 향해 날아갔어요. 이 모든것을 지켜보고있던 리철학총사령은 즉시 명령을 내렸어요. “로케트로 혜성으로 날아가는 지구촌의 핵로케트들을 격추하라!” “옛!” 그런데 부관이 단추를 누르지 않았어요. 리철학총사령은 부관쪽을 피끗 건너다보았어요. “부관, 로케트를 발사하지 않고 뭘 하오?” 부관은 단추에 손을 댄채 까딱하지 않았어요. “리총사령, 지금 핵로케트들이 태공전쟁마당을 날아지나가고있습니다. 태공에는 지금 지구촌우주비행선과 우리 달나라의 비행접시가 뒤엉켜싸우고있습니다. 자칫하면 핵로케트들이 폭발하여 태공에서 싸우는 용사들을 몽땅 죽일수 있습니다. 좀 있다가 쏩시다.” 이때 지휘부마당에 난데없는 비행접시가 날아와 내렸어요. 비행접시에 죄꼬만 애들이 내리니 리철학바사는 지구의 애들이 달나라에 관광하러 왔는가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아니, 이 전쟁마당에 저 놈들이 싸우러 나가지는 않고 여기에 돌아와서 뭘 해?”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서호부장을 비롯한 죄꼬만 애들이 돌격총을 들고 지휘부에 뛰여들었어요. “꼼짝 말엇!” 그 순간 부관은 유도탄발사단추를 눌렀어요. 유도탄이 혜성으로 날아가는 지구의 핵로케트들을 추격해 날아갔어요. 부관이 또 단추를 누르려고 할때 키꺽다리 서호부장이 권총을 땅 쏘았어요. 부관은 가슴에 총탄을 맞고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어요. 이때 리철학총사령은 기습을 받아 얼떨떨해진 나머지 유리병밑굽같은 안경알밑으로 공포에 질린 눈알을 펀들거리면서 말뚝처럼 멍해 서있었어요. 서호부장이 이끈 꼬마기습대원들은 리철학사령관을 묶어 비행접시에 싣고 하늘로 다시 날아올랐어요. 비행접시안에서 리철학사령관은 다혜박사를 보고서야 진상을 알고 번대머리를 툭 떨어뜨렸어요. “오늘이 있을줄을 알았는가? 지구인들을 배신하고 해치고서도 살아남기를 바랐던가?” 다혜박사의 비수와 같은 말에 리철학총사령관은 머리를 무릎사이에 푹 파묻고말았어요. 다혜박사와 서호부장은 리철학총사령을 심문하여 달나라 핵로케트발사계통이 어데 있는가를 장악한후 준확하게 포격하여 짓부셔버렸어요. 지휘부가 마비되였지만 달나라의 비행접시들은 선진적인 항공기술을 믿고 아주 완강하게 저항하였어요. 놈들은 혜성으로 날아가는 핵로케트들이 몇개 떨어지자 사기 충천해서 비행접시를 몰고 추격하면서 유도탄으로 요격하려고 시도하였어요. 이 모든것을 컴퓨터형광막에서 여겨보고있던 무빈총사령관은 지휘부에서 다음과 같이 명령하였어요. “서호부장은 즉시 리철학총사령을 핍박하여 달나라의 놈들이 혜성으로 날아가는 유도탄을 막는 무모한짓을 하지 말게 제지시키라.” 이극고 태공에서는 달나라 리철학총사령의 떨리는 명령소리가 울렸어요. “달나라비행접시의 용사들은 명령을 즉시 집행하라! 혜성으로 날아가나는 핵로케트들을 요격하지 말고 모두 달나라로 돌아가라!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자는 달나라 군법에 의해 처단할것이다!” 달나라의 비행접시 우주비행사들은 지구의 우주비행선 12대나 떨구고 사기나서 야단하다가 리총사령의 명령이 떨어지자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별수없이 달나라로 철거하였어요. 그러나 비행접시대대의 대장 나까무라중장만은 가만히 레이다감시망을 피해 지구쪽으로 날아왔어요. 무빈총사령관이 자기 전략전술이 효과를 본것을 보고 득의양양해할 때였어요. 문득 나까무라중장이 모든 비행접시가 총사령부청사 큰 유리창문앞에 나타났어요. 유리창문밖에서 불줄기가 날아왔어요. 우멍눈으로 진작 눈치챈 무빈총사령관은 단추를 눌렀어요. 총사령부사무실이 총사령부청사 천정문을 열고 하늘로 씽- 날아올랐어요. 그러자 나까무라중장이 쏜 로케트가 사령부청사밑으로 빗날아지나가면서 시퍼런 바다에 박혀 꽝하는 굉음과 함께 폭발해버렸어요. 나까무라중장이 비행접시를 돌려 날아오르면서 하늘로 날아오른 총사령부사무실에 재차 로케트를 쏘았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총사령부사무실이 땅에 살짝 내리더니 자동차처럼 쏜살같이 내달리면서 로케트를 피하였어요. 나까무라중장이 또 로케트를 쏘려는 순간 총사령부사무실은 잠수함처럼 바다물밑으로 쑥 잠수해버렸어요. 로케트는 잠수함같은 사령부사무실우의 바다물에서 꽝 터지였어요. 순간 새하얀 물기둥이 바다물우로 치솟아올랐어요. 그러나 잠수함같은 전시사령부사무실은 수백메터 바다물밑에서 하나도 다치지 않았어요. 비행접시는 다시는 잠수해버린 전시사령부사무실을 추격해 공격할수 없게 되였어요. 원래 나까무라중장은 바다가에 있던 총사령부전시사무실이 우주비행선처럼 날수도 있고 륙지에서 승용차처럼 달릴수도 있고 잠수함처럼 바다에 잠수도 할수 있는 특수이동식사무실이라는것을 모르고 공격하였던것이예요. 이윽고 무빈총사령관은 바다밑에서 바다우의 비행접시가 빙빙 돌면서 기회를 노리는것을 우멍눈으로 면밀히 관찰하다가 로케트발사단추를 꼭 눌렀어요. 그러자 로케트가 바다물밑에서 새하얀 물기둥을 일으키면서 씽 날아올라 비행접시를 면바로 명중하였어요. 꽝! 요란한 폭파소리와 함께 비행접시가 폭파되여 잔해가 바다 여기저기에 떨어지면서 새하얀 물기둥들을 일으켰어요. 치렬한 격전을 하는 새 지구에서 쏘아올린 핵로케트들이 련속 날아가 혜성을 폭파시켰어요. 혜성은 백여개 커다란 쪼각으로 산산이 박산나서 지구쪽으로 날아왔어요. “최성부장, 핵유도탄 150개를 혜성쪼각들을 묘준하여 발사하라!” 명령과 함께 쓩쓩 핵유도탄이 혜성쪼각들을 향해 날아갔어요. 달나라비행접시와 로케트기지의 방애가 없자 핵유도탄들은 지구대기층에 접근해오는 혜성쪼각들을 태반이나 명중하였어요. 하늘에서 꽝꽝! 꽝꽝꽝! 요란한 굉음이 울리더니 혜성쪼각들이 몇톤씩 되는 자그마한 운석으로 되여 대기층에 들어섰어요. 무빈총사령관은 바다물밑의 총사령부에서 컴퓨터형광막에 나타난, 불꼬리를 흩날리면서 날아오는 운석들을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명령하였어요. “최성부장, IMS유도탄계통을 작동하여 륙지를 덮치는 큰 운석들을 명중해 폭파해버리라!” 명령과 함께 5초후에 숱한 유도탄들이 큰 운석들을 골라 날아갔어요. 대부분 큰 운석은 굉음과 함께 까부셔져 대기층을 경과하면서 연소된후 몇킬로그람되는 조그만 운석으로 분쇄되여 륙지와 바다에 떨어졌어요. 운석우박이 떨어져 폭발되면서 도시와 농촌은 군데군데 화산폭발처럼 불기둥을 일구었고 직경이 몇십메터되는 웅뎅이가 생기였어요. 뒤이어 흑먼지바람이 일면서 지구표면을 한층 활딱 번져놓았어요. 그러나 사전에 바다밑으로 피한 사람들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모두 안전하였어요. 바다에 떨어진 운석우박은 숱한 새하얀 물기둥을 일구었을뿐 수백메터 바다물밑에 가라앉은 지구촌사람들이 탄 잠수함들을 건드리지 못하고 천천히 바다물밑으로 가라앉았어요. 그러나 아메리카합중국 뉴욕시에 한톤이나 되는 운석이 떨어지면서 1천 700여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도시가 원자탄 몇십개를 맞은것보다도 더 큰 피해를 받았어요. 꽈르릉 꽝꽝! 요란한 폭발소리와 함께 꽃구름을 뚫고 하늘을 찌르던 도시의 고층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온 도시가 폭발충격에 불바다로 재더미로 되였어요. 다행히 무빈총사령관의 지시대로 사전에 바다물밑으로 시민들이 피신하였기때문에 인명피해는 아주 적었어요. 한차례 지구보위전은 끝났어요. 지구인들은 무빈총사령관의 지휘아래 달나라사람들의 방애를 제지시키고 지구와 혜성충돌을 막아내였어요. 무빈총사령관은 전시사령부사무실을 바다물밑으로부터 해변가 뭍으로 몰고 나왔어요. 그는 아직 사처에 흩날리는 먼지와 여기저기 치솟는 불길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지구를 보위한 긍지감으로 하여 조그마한 가슴이 뿌듯하였어요. 한편 아빠 천우박사를 잃은것으로 하여 마음이 몹시 아팠어요. (야, 아빠도 지구를 보위한 오늘의 기쁨을 함께 누렸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때 태공으로부터 다혜박사와 서호부장이 탄 우주비행선이 륙지에 가볍게 살짝 날아내려왔어요. 우주비행선의 문이 열리면서 엄마 다혜총고문과 서호부장 등이 리철학총사령을 끌고 내려왔어요. “엄마!” “서호부장!” 무빈총사령관은 두팔을 벌리면서 달려나가 엄마품에 안겼어요. 서호부장과 최성부장도 다혜박사의 품에 안겼어요. 이때 김성대통령이 직접 직승비행기를 타고 총사령부청사로 날아와 내렸어요. 그는 무빈총사령관모자와 서호부장, 최성부장 등 어린 친구들과 기타 일군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고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우리 지구촌인민들은 당신들이 지구보위전에서 거둔 오늘의 승리를 영원히 잊지 않을것입니다. 무빈총사령관은 이번 지구보위전에서 아주 좋은 박사론문을 내놓았습니다. 나는 다시한번 무빈총사령관에게 박사학위를 줄것을 서울대학교 학술계에 건의합니다.” 이때 서울대학교 총장이 박사학위증서를 정중하게 무빈총사령관에게 주었고 서호부장과 최성 등에게는 명예박사학위증서를 드렸어요. 모두들 우뢰와 같은 박수로 축하하였어요. 그러나 무빈총사령관은 지구촌을 배반하고 아빠를 살해한 리철학이란 놈을 보자 눈에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렸어요. “네 이 놈, 지구촌사람들에게 천추에 용서못할 죄를 짓고서도 살기를 바라는거냐?” 그러자 리철학은 번대머리를 번쩍 쳐들고 안경알을 춰올리더니 이렇게 고래고래 고함쳤어요. “네 놈들이 이번에는 요행 살아남았지만 너무 기뻐하지 말아라. 지구를 에워싼 태양계에만 해도 아직도 4000여개 소행성이 있고 큰 행성만 해도 170여개나 있다. 이 행성들은 언제든지 지구를 훼멸시킬수 있다는걸 알아두어라. 어디 두고보자, 지구촌의 네 놈들이 언제까지 살아남는가를! 흥! 죽일테면 빨리 죽여달라!” 김성대통령은 리철학을 지구촌대법원에 넘겨 그의 배신행위와 지구촌을 파괴한 살인전쟁죄를 묻게 할것이라고 하였어요. 무빈총사령관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어요. “우리는 대자연의 피해가 무서운것이 아니라 자기 지구촌을 아끼지 않고 파괴하는 리철학과 같은 놈들이 더 무섭습니다. 지구보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구를 보위하기 위하여 우리는 아직도 몇백번, 아니 몇만번 대자연과 싸우고 지구를 파괴하려는 놈들과 싸워야 합니다.” 다혜박사와 서호부장, 최성부장, 성주 등은 머리를 끄덕였어요. 그들은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여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하는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였어요.               주: 중편과학환상소설 “지구보위전”은  2008년 “아동문학”에 련재, 2009년 “동심컵 한중아동문학상” 수상.                           -저자 김장혁
    중편과학환상소설         괴물 클론바우꼬마대통령모험기                                김장혁                                                                     1       과학의 폭발시대인 2958년 5월 7일, 아메리카제국의 유명한 생물유전대학가 맥슨박사와 아시아천문지리대학가 유리녀박사의 아들인 괴물 클론바우가 고래어머니의 배에서 이 세상에 태여났어요. 이는 인류력사에 기록될만한 기적이 아닐수 없어요. 그런데 이상하죠? 클론바우는 어찌하여 고래어머니 배에서 이 세상에 태여났을가요? 하긴 클론바우는 난 날부터 백킬로그람도 넘는 엄청나게 크고 괴상하게 생긴 괴물이였기때문이지요.       맥슨박사와 유리녀박사는 7년동안에 아주 복잡한 실험을 10여차나 거쳐 그들의 제17대복제어린이인 클론바우를 복제해냈지요. 21세기초에 이딸리아 밀라노 비코카대학의 면역병리학자 마리아루이사 라비트라노박사는 인간의 유전자를 돼지정자에 주입해 란자와 수정시켜 인간의 유전자를 가진 돼지를 생산해냈지요. 그후 근 900년동안에 유전학자들은 이 중대한 과학성과를 끊임없이 발전시켰지요. 하여 맥슨박사는 먼저 자기와 유리박사의 유전자를 분리시켜 900여년전인 21세기의 크론기술로 자기들의 총명한 뇌세포유전자를 가진 제1대복제클론바우를 복제해냈지요.        그런 다음 제1대복제클론바우의 유전자를 사자의 정자에 주입해 란자와 수정시킨 다음 수정란을 사자어머니 배에 넣어 길러 낳게 하였지요. 그 애가 바로 애급의 금자탑옆에 누워있는 인면수신의 조각상처럼 사람의 머리에 사자의 몸을 가진 제2대복제클론바우였지요. 제2대복제클론바우는 수사자의 대가리만큼 큰 머리에 온몸에 사자의 털이 텁숙하여 엄동설한에도 털옷을 입을 필요가 없었지요. 게다가 총명한 맥슨박사와 유리녀박사의 뇌세포를 물려받아 총명한 머리안에 뇌가 둘이나 들어있어 두뇌가 엇갈아 쉬면서 밤낮없이 머리를 쓸수 있어 잠을 잘줄 모르는 어린이로 불리우게 되였지요. 하긴 사람들이 밤에 자는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가요. 기실 백년을 산다고 하여도 눈을 뜨고 사는 시간은 50년밖에 되지 않는것이 아니겠어요. 하여 맥슨아버지와 유리어머니는 뇌 둘이나 되여 자지 않는 특수인간으로 만들어냈던것이예요. 맥슨박사는 제2대복제클론바우의 유전자를 부엉이와 독수리의 수정란에 주입시켜 사람과 사자, 독수리, 부엉이의 특성을 다 가진 제3대복제클론바우를 복제해냈어요.     이런 방법으로 맥슨박사와 유리박사는 복제클론바우의 유전자를 선후로 사자, 독수리, 상어, 코끼리, 타조, 고래 등 숱한 동물의 수정란에 주입시켜 제4대클론바우로부터 제17대복제클론바우를 복제해냈던것이예요. 하여 실로 클론바우는 사람과 사자, 독수리, 상어, 코끼리, 타조, 고래 등 동물들의 모든 훌륭한 특성을 다 유전받은 세상에 둘도 없는 인면수신의 괴물로 되였어요. 독수리에게서 물려받은 클론바우의 퉁사발눈도 특수한 독수리눈이여서 천메터 밖의 땅바닥에서 쥐새끼가 뛰노는것도 다 볼수 있는 천리혜안이였어요. 하여 레이다도 필요없이 비행기거나 뭇짐승들이거나 사람의 움직임을 다 보아낼수 있지요. 그리고 그의 눈은 얼굴에 두개 있는외에도 뒤골과 오른손 중지에도 하나씩 더 있었지요. 하여 뒤로부터 오는 뜻밖의 공격을 막아낼수도 있고 머리가 들어가지 못하는 옹이구멍같은데도 중지손가락을 넣으면 중지눈으로 집 안을 다 들여다볼수 있었어요. 하여 얼마나 편리한지 몰라요.       클론바우의 입은 독수리주둥이처럼 뾰족한데다가 이발은 상어이발처럼 날카로왔어요. 하여 어지간히 생짐승고기도 칼을 쓸 필요없이 마구 뜯어먹을수 있었어요. 클론바우에게는 또 앞뒤에 팔 네개에 3.5메터짜리 날개까지 두개나 달려있었어요. 하여 클론바우는 앞뒤로 달려드는 놈들을 앞뒤손으로 몽땅 때려엎을수 있을뿐만아니라 승용차나 비행기도 필요없이 푸르른 하늘에서 초음속비행기보다도 더 빨리 훨훨 날아다닐수 있었어요.     제14대복제클론바우의 유전자와 꼬끼리의 유전자의 결합에 의하여 만들어진 클론바우의 코는 코끼리의 긴 코를 딱 떼 닮았어요. 그 놈의 코는 힘이 어찌나 센지 사자같은 맹수도 허리를 감아 2~30메터씩이나 뿌려던질수 있지요. 게다가 냄새를 어찌나 잘 맡는지 몇킬로메터밖에서 양고기뀀을 구워먹어도 그 냄새를 맡을수 있어 유리어머니보고 사내라고 졸라대서 생 야단이였어요. 설상가상으로 클론바우의 배가 코끼리배처럼 어찌나 큰지 한마리의 양고기를 다 구워먹어도 성차하지 않았어요. 제15대복제클론바우의 유전자와 타조의 유전자의 결합에 의하여 만들어진 제16대복제클론바우의 다리는 괴상하게도 타조의 다리같이 껑충한데다가 탄성이 좋아서 지상에서 달리는 동물가운데서 제일 빨리 닫고 뛸수 있지요. 제17대복제클론바우는 제16대복제클론바우와 고래어머니의 유전자를 받고 태여났기에 난 날부터 고래새끼들과 함께 파도가 세찬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염을 슬슬 치는것이였어요. 실로 클론바우는 바다에서 허염칠수 있고 땅에서 달아다닐수 있을뿐만아니라 하늘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이 세상의 괴물이였어요. 어린 친구들, 클론바우와 같이 괴상한 어린이를 본적이 있나요? 없지요? 좀 기다려봐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괴물 클론바우가 또 어찌는가 말이예요.                             2       클론바우는 진짜괴물이였어요. 고래의 배에서 바다물에 나오자마자 허우적허우적 헤염치면서 “아빠!”, “엄마!”하고 말하였으며 뭍에 오르자마자 타조다리같이 껑충한 다리로 성큼성큼 걷기까지 하였어요. 하여 두달도 안되여 맥슨부부는 클론바우를 데리고 유치원에 갔지요. 그런데 애들은 사람의 머리에 짐승의 사지를 한 괴물, 그 엄청난 괴물- 클론바우를 보자 무두들 기겁했어요.     “어비(베)-!”     애들은 비명을 지르며 산지사방으로 흩어졌어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려고 뺑뺑 맴돌았어요.      어디 그뿐인가요? 어른들마저 시내 큰길에서 걷는 이 괴물을 보고 겁이나 산지사방으로 달아났지요.     텔레비죤방송국에서는 기자들을 파견하여 이 인면수신의 괴물을 촬영하여 온 세상에 방송하였어요. 그러다보니 한돌도 안되는 클론바우는 일약 이 세상의 뉴스인물로 되였지요.      어린 클론바우는 자기 또래애들과 놀지 못하는 것이 아주 고통스러웠어요.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기를 이런 괴물로 낳은 것을 원망하기 시작하였어요. 교실에 가도 키가 어찌나 큰지 교실 천정에 숫구멍이 닿을 정도였어요. 덩치가 어찌나 큰지 걸상도 침대만큼 큰 걸 단독으로 깔고 앉아야 했어요. 클론바우는 젤 앞에 앉고 싶은데 선생님은 젤 앞에 앉게 못했어요. 앞에 앉으면 다른 애들이 뒤에서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던 거죠. 하여  클론바우는 젤 뒤에 침대 같은 걸상을 깔고 앉아야 했어요.       클론바우는 집에 돌아와 앞에 앉지 못하게 한다고 입이 뾰로통해해하며 길다란 코를 휘둘러댔어요.      그때마다 맥슨박사 부부는 클론바우를 보고 늘 타일렀어요.      “얘야, 그런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잘해라. 미래의 세계는 바로 인재경쟁시대이고 지식과 자질, 능력의 시대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들이 단지 지금 보통인간의 능력만을 가지고서는 이 지구촌과 한없는 우주를 정복할수 없느니라. 너는 사람의 대뇌에 짐승의 사지를 가진 슈퍼맨(초인)이기에 장차 이 지구촌을 통치할 구세주로 태여난것이야.”     어린 클론바우의 귀에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통 귀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그러나 “너는 장차 이 지구촌을 통치할 구세주”라는 말만은 귀맛이 당겼어요.      맥슨부부는 클론바우가 너무 거물급괴물이여서 유치원에 가지 못하게 되자 별수없이 집에다 자기 친구박사들을 가정교사로 모시고 클론바우에게 영어, 조선어, 한어, 철학, 력사, 수학, 물리, 화학을 가르치게 하였고 자기들이 직접 생물학과 천문지리학을 가르쳤어요.       클론바우는 맥슨박사부부의 태아조기교육을 잘 받았기때문에 벌써 배속에서 댄스가요같은것을 감상하여왔고 아버지 맥슨박사에게서는 영어자모 A, B, C, D에 영어말까지 배웠고 코리아의 어머니 유리박사에게서는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같은 천자문을 배웠어요. 그런데 클론바우는 맥슨부부의 기대와는 달리 생물이나 천문학에 흥취가 있는것이 아니라 전문 정치나 철학, 경제학과 력사 같은 사회과학에 흥취가 있었어요.      클론바우는 머리가 총명한데다가 뇌가 둘이여서 밤낮이 따로 없이 계속 공부를 하여 열살에 벌써 철학과 력사학 박사과정까지 다 공부를 하였지요. 열살 어린 나이와는 달리 그는 《변증법적지구촌통일론》이란 박사론문을 썼는데 지구촌의 전쟁과 평화, 평화와 통일, 통일과 인류문명발전의 변증법적관계를 완벽하게 론술하면서 지구촌통일의 필요성을 천명하였으며 그 구체적통일방안을 론술하였어요. 하여 이 박사론문은 일약 세계학술계와 군사계를 크게 진동하였으며 국제박사학위평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였어요. 하여 클론바우는 여덟살에 일약 유명한 사회과학박사로 되였던것이예요.       클론바우는 필경은 어린애여서 집에서 공부를 하다가도 위생실로 가는척하면서 늘 소학교에 가서 애들과 놀았어요. 처음에 기겁하던 애들도 차차 클론바우가 자기들을 해치지 않자 다가와서 클론바우의 코끼리 코처럼 치렁치렁 드리운 길다란 코를 매만지다가 코에 매달려 "후쌰! 후쌰" 그네를 뛰기도 하였죠.     담이 큰 어떤 애들은 그의 코를 타고 목에까지 올라가 가로타고 앉아 그의 파초잎같이 넙죽하고 큰 귀를 매만지면서 놀았어요.어떤 애들은 클론바우의 길다란 코를 미끄럼대처럼 타고 쪼르르 쪼르륵 미끌어져 내려왔어요.    선생님들도 처음에는 괴물같이 육중한 클론바우가 애들을 상하게 할가봐 경계했지만요. 나중에는 점차 클론바우를 귀여워하면서 애들과 어울려 놀게 놔두었어요.     한번은 애들이 선생님의 포치대로 물초롱으로 교실 앞의 화단에 물을 주었어요. 그러자 클론바우는 수도실에 가서 물통에 길다란 코를 뻗쳐 넣더니 단번에 물을 몇초롱되게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겠어요. 뒤이어 하단에 돌아가면서 길다란 코로 물을 쏴- 쏴- 쏟아부었어요.     "와- 클론바우 참 대단해!" 선생님이 치하하며 환성을 질렀어요.     그 바람에 애들은 인차 물 주는 일을 끝마치고나서 기뻐 클론바우를 칭찬하며 야단쳤어요.    신바람 난 클론바우는 녀선생님과 애들을 네 팔로 꽉 껴안더니 잔등에 태웠어요. 뒤이어  타조다리로 땅을 구르며 껑충껑충 달리다가 세메터씩이나 되는 날개를 퍼덕이면서 하늘로 훨훨 날아올랐어요.     클론바우는 선생님과 애들을 태우고 어느새 눈 깜짝할 사이에 아메리카제국의 아마죤강방상공에서 훨훨 날아예다가 푸르디푸른 태평양상공을 날아넘어 하와이섬에 이르렀어요. 그들은 야자수 물을 시원하게 마시면서 하와이의 해변가풍경을 실컷 구경했어요. 사생들은 또다시 클론바우의 잔등에 업히여 훨훨 날아 후지산을 날아넘고 한라산을 지나 어느덧 어머니 유리박사의 고향인 백두산 아래까지 날아왔어요.                                     3      클론바우는 욕심쟁이였어요. 그는  아빠 엄마와 졸라대 백화상점에 가서 가서 전문 땅크나 대포, 유도탄, 우주비행선 같은 놀음감만 골라 사달라고 했어요. 아마 장차 지구촌을 통일할 위인이 돼 그런지 놀음을 놀아도 전문 땅크나 우주비행선 같은 놀음감으로 전쟁놀음을 놀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클론바우는 아빠나 엄마의 기대와는 달리 생물이나 천문, 지리에는 그리 관심이 없고 전문 나뽈레옹, 히틀러와 무쏠리니, 나치스, 도요도미히데끼와 같은 파쑈들에 대해 부쩍 흥취를 가지고 그런자들의 인물전기를 보기만 하면 빵 한쪼각으로 끼니를 에우면서 시간이 가는줄을 모르고 읽었어요.     어느날, 아빠와 엄마는 클론바우를 불러놓고 이렇게 타일렀어요.     “얘야, 네가 온 지구촌을 통일하려는 생각은 아주 웅대한 목표야. 그런데 그저 입방아를 찧는 정치나 배워서야 어찌 이 세상을 하나로 통일할수 있겠느냐? 천문지리니 생물과 물리, 화학과 같은 자연과학을 알아야 지구촌을 쥐고 흔들 강대한 무기를 장악할수 있단 말이다.”      그러나 클론바우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어요.      “아빠, 엄마, 내 말을 좀 들어보소. 이 세상에서 자연과학을 연구하기보다 남이 자연과학을 연구하여 얻어놓은 성과를 빼앗아 먹는것이 낫다는 도리를 어째 모릅니까? 내가 이 지구촌을 독차지하면 그 무엇이든 몽땅 내것이 아니겠어요? 원자탄, 중성자탄, 전자탄 그리고 금자탑, 만리장성, 아마죤강, 장강, 나이제르하, 아랍의 석유, 아시아의 금과 은, 동, 오스트랄리아의 다이아몬드와 비취…흐흐흐, 지구촌의 모든것이 몽땅 내것이예요.”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클론바우에게 충고하였어요. “얘야, 이 지구촌을 통일하는 일이 그리 쉬운줄 아느냐? 고신과학기술을 장악한 인재와 강대한 무기가 있어야 한다. 자연과학을 알아야 과학가들을 지휘하여 이 세상을 쥐고 흔들수 있는 강대한 무기를 제조할수 있고 나아가서 지구촌을 통일할수 통일할수 있어. ” 그러자 총명한 클론바우는 인차 부모의 그 말뜻에 깊은 도리가 있다는것을 터득하고 그날부터 다시 핵물리와 화학공정, 생물, 천문지리를 전공하였어요. 하여 그때부터 그는 자연의 힘을 빌어 지구촌을 다스릴 엉뚱한 궁리를 하였어요. 그가 사회과학분야에서 철학과 력사학 박사학위와 군사공업학박사학위까지 탄데다가 중성자탄과 전자탄을 발명한것을 보고 아메리카제국에서는 그를 일약 군사공업부 부장으로 임명하였다. 클론바우가 알심들여 연구한 끝에 수많은 선진적인 제2대 중성자탄과 전자탄, 생물화학무기가 발명되였어요. 아메리카제국에서는 즉시 그 선진적인 무기로 아라비아제국과 결사전을 벌렸어요. 클론바우부장은 컴퓨터현시판앞에 서서 퉁사발눈을 껌뻑거리면서 자기가 발명한 중성자탄로케트가 석유의 바다로 불리우는 아라비아에로 날아가는것을 흐뭇하게 바라보았어요. 쿵쿵쿵! 아라비아반도에서 수만개의 채색버섯구름이 화산폭발처럼 일어났어요. 순식간에 아라비아제국을 재더미로 만들었어요. 그후 아메리카제국에서는 아라비아반도로부터 해만바다가의 항구에까지 석유수송관을 늘이고 이젠 얼마 남지 않은 아라비아반도의 석유를 돈 일전 한푼 팔지 않고 석유운송선에 실어다 물처럼 쓸수 있게 되였어요. 그런데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하였어요. 600여년전에 자살식폭발방법으로 늘 보복행위를 감행하던 아랍제국에서는 암암리에 괴물 클론바우꼬마부장을 암살할 계획을 획책하고있었던것이예요. 어느 하루, 군사공업부사무청사는 클론바우꼬마부장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로 떠들썩하였어요. 클론바우가 아라비아제국을 멸망시킨 경과를 일일이 소개한후 몸을 돌려 군사공업부사무청사로 되돌아들어가려고 할 때였어요. 한 아랍인후예기자 모하모드가 비디오촬영기로 클론바우의 잔등을 묘준하여 촬영하는척하다가 빨간 스위치를 눌렀어요. 쉭! 갑자기 비디오촬영기렌즈에서 소형로케트가 클론바우를 향하여 씽 날아나갔어요. 그러나 클론바우는 서너메터나 되는 날개를 퍼덕이더니 하늘로 훌 날아오르면서 긴 코를 뻗쳐 모하모드를 향해 코방귀를 흥! 하고 뀌였어요. 그 바람에 모하모드는 비디오촬영기식소형로케트발사기를 멘채 열서너메터밖으로 뿌리워 날아나갔어요. 소형로케트는 하늘로 날아올라가는 클론바우꼬마부장의 발밑을 스칠듯이 아슬아슬하게 날아지나가 군사공업부사무청사벽에 박혔어요. 쿵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군사공업부사무청사가 허공에 날아났어요. 하여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기자들과 정부관원들이 목숨을 잃고말았던것이예요. 사실 클론바우는 진작부터 중지에 박힌 눈으로 수염이 더부룩한 아랍인후예기자인 모하모드를 의심해 눈박아보아왔으며 코끼리귀같이 큰 귀를 도사려 미리 모하모드의 비디오촬영기에서 이상한 작동소리가 들린다는것을 들었던것이였어요. 그가 돌아선 순간 손을 뒤로 뻗쳐 손가락에 달린 중지눈으로 살펴보노라니 모하모드의 비디오촬영기에서 이상한 빛이 자기에게로 비치는것을 보고 날개를 퍼덕여 하늘로 날아올랐던것이예요. 하여 모하모드가 특제암살전문용비디오촬영기식소형로케트발사기로 쏜 로케트를 피하였던것이예요. 아라비아인들은 클론바우꼬마부장을 살해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을뿐만아니라 국제테로명단에 올랐어요. 아메리카제국에서는 아메리카에 이주해와 근 1000여년이나 살아온 아라비아인들을 몽땅 아메리카제국에서 쫓아내 남아메리카주 최남단인 혼각에 강제이주시켰으며 그들의 정착지주위에 철조망을 늘이고 군인들을 파견하여 밤낮으로 감시하게 하였어요.                                4 클론바우꼬마부장은 숭용차도 비행기도 타지 않고 자기 날개로 날아다니는 인면수신의 괴물이여서 지명도가 높았어요. 게다가 아라비아제국과의 전쟁승리후 그의 위신이 전세계에서 전례없이 높아졌어요. 하여 클론바우는 일약 아메리카제국 대통령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여 열두살에 일약 꼬마대통령으로 되였어요. “으흐흐, 이 지구촌은 바야흐로 내것으로 돼가는구나.” 클론바우는 사자얼굴에 득의양양한 빛을 띠우며 기다란 코를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호탕하게 웃었어요. 그는 자기가 정복한 아라비아반도를 돌아본후 유럽과 아시아의 푸른 창공을 훨훨 날아예면서 온 지구촌을 삼킬 계획을 무르익혔어요. 사흘후 클론바우대통령은 유럽으로부터 아메리카제국에 돌아와 대통령부안을 훨훨 나래치다가 날개를 접으면서 대통령보좌에 슬쩍 날아내려앉았어요. (으흠, 그간 아시아제국에서 유럽의 선진기술을 재빨리 인입하여들여 유럽련맹제국 버금으로 강대한 적수로 되였단말이야. 게다가 아시아제국은 인구가 세계인구의 절반이나 차지하기에 가만놔두어서는 우리 아메리카제국에 큰 위협으로 될게 아닌가!) 그는 즉시 과학기술부 부장인 아버지 맥슨박사와 군사공업부 부장 챨스대원수, 참모장련석회의 주석 제크대원수, 우주항천천문과학기술부 부장인 어머니 유리박사를 비롯한 과학가, 대원수, 부장들을 불러놓고 유럽제국과 아시아제국, 나아가서 아프리카제국을 없앨 작전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어요. 챨스대원수가 선코를 뗐어요. “유럽제국에는 아직도 20세기에 제조한 원자탄이 적어도 5천여매나 있습니다. 만약 핵탄두로케트로 우리 아메리카제국을 습격한다면 우리 미싸일방어체계에 빈 구석이 있기에 큰 봉변을 당할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유럽련맹제국은 우리 아메리카제국과 지리적으로도 가깝기에 일단 그들을 건드렸다가는 해군륙전대가 직접 바다를 건너 우리를 칠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서뿔리 건드리지 않는것이 좋습니다. 게다가 유럽련맹제국의 각 나라는 우리 나라와 세세대대로 친한 동맹이였기에 우리가 먼저 들이친다면 이후에 누가 우리와 친구로 지내자 하겠소이까.” 그러자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파초같은 귀를 도사리고 듣다가 퉁사발만한 눈알을 데굴거리면서 이렇게 말하였어요. “대원수의 생각은 나의 생각과 똑같소이다. 잠시 유럽련맹제국을 놔두고 아시아제국부터 해치웁시다. 그런데 몇백년동안 전쟁준비로 갱도를 깊숙히 파고 쥐새끼들처럼 량식을 가득 저장한 아시아제국을 원자탄이나 전자탄을 써서는 몇개 대도시나 훼멸시킬뿐이지 완전히 글복시킬것 같지 못한데.” 순간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살기차고 험상궂은 얼굴에 수심의 그림자가 흘렀어요. 이때 어머니 유리박사가 나서서 말리였어요. “원자탄과 전자탄, 중성자탄을 이젠 그만 쓰는것이 옳은것 같소. 아랍제국을 칠 때 물론 우리는 이겼지만 원자탄과 질자탄과 중자탄의 방사성물질의 오염을 받은 아라비아반도에 적어도 몇백년은 사람이나 모든 생물이 살수 없게 되였고 방사성물질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지금 무리로 죽어가고 살아있는 사람들도 기형아를 낳고있어요. 핵전쟁은 인류에 지울수 없는 죄를 졌다는걸 명심해야 하겠어요.” 그러나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어요. “그건 지나친 근심입니다. 그까짓 놈들이 다 썩어져도 아까울것이 없소이다. 우리가 이 지구촌을 다 통제한다면 사람이 없을가봐 근심할것이 뭡니까? 아시아를 치자고 하니 어머니는 아마 조국이 위협받을가봐 막아나서는것 같은데요. 아시아를 훼멸시킬 우리의 결심은 드팀없습니다. 계속하여 어떻게 아시아제국과 유럽련맹제국을 훼멸시키고 이 세상을 독차지할것인가 하는 계획을 토론합시다.” 군사가들은 그 말에 도리가 있다면서 머리를 끄덕였어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길다란 코를 슬슬 어루만지면서 군사가들과 군사공업가들을 내려다보았어요. 그때 어머니 유리박사가 또 입을 열었어요. “여러분들은 1997년 2월에 한 혜성이 지구를 충격할번한 사실을 생각이나 해보았는지요?” 그런데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코끼리코로 코방귀를 흥! 뀌였어요. 그 바람에 대통령의 그 넓은 사무상우에 놓였던 초롱만큼 큰 차잔이 씽 날아나면서 대통령부에 작은 비가 와르르 쏟아졌어요. “어머니, 소혜성과 지구충돌이 우리 지구촌통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요?” 그러자 어머니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언성을 높이였어요. “관계있구말구요. 우리는 우주의 힘을 빌어 지구를 통일해야 돼요. 그래야 제일 빠르고 쉽게 통일할수 있지요.” 그러자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파초같은 귀가 대번에 뻘쭉해났어요. 유리박사는 뒤말을 이었어요. “내가 옛이야기를 꺼내는것은 9백년전의 경험에 근거해 달을 폭파시켜 아시아대륙을 덮어버리는것이 상책이라는것을 말하기 위한것이였어요. 그렇게 되면 아시아에서 벅실거리는 인간들을 몽땅 생매장할수 있을뿐만아니라 달의 흙으로 태평양의 일부분 바다를 메워 지구의 륙지면적도 넓힐수 있지요. 이뿐이 아니예요. 이번 전쟁에 원자탄이나 중성자탄을 쓰지 않기에 방사성오염의 피해를 피면할수도 있지요.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을 때는 격이라 하겠어요.” 그 기발한 착상에 꼬마대통령 클론바우와 모든 과학가들과 군사가들은 눈이 휘둥그래지였어요. “거참 묘책이로구만.” 클론바우대통령은 엉거주춤 일어나 타조다리로 대통령부를 성큼성큼 거닐면서 속궁리를 구을리다가 여간만 근심스러워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달을 폭파시켰다가 그 충격에 지구가 날아나면 어찌겠어요? 그리구 달을 잘못 폭파했다가 우리 아메리카제국을 덮어버리면 어찌겠나요? 정말 걱정이 태산같은데요.” “그건 근심 말아요. 지구와 달의 인력, 지구와 달의 자전시간을 잘 계산한후 달이 아시아대륙을 비추는 시간을 맞춰 달의 한쪽 모퉁이를 폭파하면 우리 아메리카제국에 털끝만한 피해도 없이 아시아제국을 파묻어버릴수 있어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퉁사발눈을 데굴데굴 구을리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이렇게 지시하였어요. “거참 그럴듯하구만요. 그럼 어머니께서 달폭파계획을 책임지고 실행해보세요. 그리고 여러분들은 달폭파계획을 극비밀에 붙이시오. 자칫하면 달폭파전에 최후발악을 하는 아시아 각국의 진주항식습격을 또다시 받을수도 있어요.” “예잇!” 우주항천천문과학기술부 부장 유리박사의 지휘아래 약 반년이란 긴장하고 주밀한 준비를 거쳐 수천개의 원자탄과 수백개의 중성자탄, 수천개의 전자탄을 실은 운반로케트가 새까맣게 달나라 땅덩어리로 씽씽 날아올라갔어요. 뒤이어 우주항천천문과학기술부의 과학일군으로 가장한 군인들이 시추기로 달의 땅바닥을 백여메터 뚫고 그 지하갱도에 숱한 핵무기와 중성자탄, 전자탄을 기중기로 들어다 넣었어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세메터반씩이나 되는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면서 하늘높이 날아올라 노트북으로 달폭파비밀행동을 꼼꼼히 관찰하였어요. 그런데 그때까지도 아시아제국과 유럽련맹제국의 달나라고찰소들에서는 아메리카제국의 음흉한 음모를 모르고있다가 뒤늦게야 원자탄과 중성자탄 등 핵무기를 달나라에 가져다 파묻은 정보를 수집하였어요. 그러나 그때까지만 하여도 그들은 그저 아메리카제국에서 지구를 오염시킬가봐 원자탄과 중성자탄, 전자탄을 달나라에 가져다 실험하거나 소각시키자고 그러는가고 오산하였던것이예요. 그러나 그들도 그것이 폭파하면 어떤 후과를 초래한다는것을 알고 천문학가들과 핵전문가들을 불러놓고 대책을 상의하였어요. 그러나 때는 늦었어요. 유리부장과 제크대원수는 그들이 대책을 내놓기전에 손을 썼어요. 그들은 달이 아시아제국 상공에 뜨자 달 한모퉁이를 폭파시켰던것이예요. 꽈르릉! 꽝꽝! 은빛달빛이 아시아대륙을 비추는 밤하늘에서 갑자기 우뢰가 울리고 번개가 번쩍이는듯하더니 달 한모퉁이가 뭉청 폭파되여 지구를 덮쳤어요. 달의 돌과 흙은 일순간에 달빛을 가리우면서 날아내렸어요. 그런데 그 돌과 흙은 그만 지구와 달의 인력이 평형을 이룬 곳에서 하늘을 가리우면서 멈춰섰어요. 그때였어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퉁사발 눈으로 노트북을 들여다보다가 바삐 제2호명령을 내렸어요. “제2대우주비행선을 파견하시오!” 그러자 또 숱한 우주비행선들이 우주공간으로 날아올라가 하늘을 가리운 돌과 흙덩이에 원자탄을 폭파하였어요. 꽈르릉 꽝꽝! 달의 흙과 돌은 원자탄폭발의 충격에 의해 달의 인력을 벗어나 지구를 향하여 덮치면서 날아내렸어요. 그러나 그사이 예상시간보다 몇시간 더 걸리다보니 지구가 동으로 얼마간 돌아갔기에 서부아시아와 지중해 및 지중해연안의 아프리카와 구라파 일부 나라를 덮어버렸어요. 일부 흙은 아메리카제국에도 날아내려 대통령부 푸른 잔디우에 와르르 떨어졌어요. 지중해가 메워지면서 충격을 받은 바다물이 성난 사자처럼 바다가의 해발 50메터이하의 륙지에 덮쳐들어 몽땅 삼켜버렸어요. 그리하여 아메리카제국의 뉴욕시와 워싱톤시, 샌프랜시스코, 유럽련맹제국의 런던과 로마, 빠리, 아시아의 도꾜, 부산, 방코크, 뉴델리 등 대도시가 바다물에 잠기고말았어요. 아메리카제국의 대통령청사도 바다물에 잠겨 클론바우꼬마대통령 등은 부득불 내지로 옮겨야만 하였어요. 깜짝 놀란 아시아제국과 유럽련맹제국, 아프리카제국에서는 분분히 아메리카제국의 지구훼멸전과 인류멸종전을 규탄하였어요. 그리고 국방부에 아메리카제국의 운반로케트가 달로 날아가는것을 레이다로 감시하고 일단 발견하기만 하면 가차없이 핵미싸일로 격추하라고 지시하였어요. 세계 여론과 감시로 하여 아메리카제국은 다시는 달폭파계획을 실행할수 없게 되였어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대통령부에서 날개를 축 늘어뜨리고 이마를 짚고 앉아 긴 코를 슬슬 만지면서 고민에 잠겨있었어요. 그러나 지구촌을 통일하려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의 모험사상은 개변되지 않았어요. 달폭파계획은 아시아제국을 훼멸시키지는 못하였지만 지중해를 절반 넘어 메웠고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제국의 일부 나라를 덮어버렸는가 하면 일부 나라는 바다에 잠기게까지 하였던것이예요. 하여 아메리카제국의 위엄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속으로 은근히 웃음주머니가 흔들거렸어요.                                                5 꼬마대통령 클론바우는 임기내에 지구촌을 통일하려고 또 암암리에 새로운 방안을 토론하기 시작하였어요. 그의 야심을 제때에 파악한 유럽련맹제국과 아프리카제국에서는 2001년 “9.11”사건때처럼 아메리카제국에 보복하려고들었어요. 약 반년간의 연구끝에 아프리카제국에서는 가짜딸라를 십여톤이나 찍어냈어요. 그리고 지하실에서 비밀리에 그 가짜딸라에 아프리카에서도 제일 전염성이 강하고 불치병의 바이러스인 DKX를 발라놓았어요. 그런 다음 어두운 밤을 타서 그 가짜딸라를 초음속비행기에 싣고 저공비행하여 레이다를 피하면서 아메리카제국에 이르러 뉴욕시와 워싱톤시, 로스안젤레스시, 샌프랜시스코시, 그리고 오타와시, 토론토시, 빠나마시, 브라질시, 부에노스아이레스시 등 20여개 대도시에 거의 동시에 산발하였어요. 이튿날 이른아침, 아메리카제국의 시민들은 밖에 나왔다가 길바닥에 드문드문 널린 백딸라짜리 딸라를 발견하였어요. 그러자 그들은 너도나도 “이게 웬 공떡이야!” 하고 마구 빼앗을 내기하면서 주어 챙겨넣었어요. 그런데 아차! 이게 웬 일이냐! 그들이 어찌 그 딸라에 전염병균이 묻어있을줄을 알았겠어요. 글쎄 코큰이들이 손가락을 입술에 대여 침을 발라가지고 두툼한 공짜딸라를 세여보다가 전염병균에 감염되고말았어요. 반시간도 안되여 그만 입이 팅팅 붓기더니 입술이고 볼이고 썩어떨어지고 뒤이어 눈이 멀고 목이 썩어 부러지는것이 아니겠어요. 그 전염속도도 어찌나 빠른지 온 아메리카의 절반이나 넘는 사람들이 하루사이에 그 악성전염병에 걸려 병원이 모자라고 미처 치료할새 없이 무리로 죽어 쓰러져갔어요. 길거리마다 입이 썩은자로, 목이 썩어떨어진자로, 팔이 썩어떨어진자로 주검이 된자로 버글거렸어요. 이 급보를 받은 꼬마대통령 클론바우는 경황실색하여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대통령부에서 안절부절 못하였어요. 그는 악이 치받쳐 대통령부에서 퉁사발눈깔을 부라리며 타조다리로 성큼성큼 거닐면서 독수리주둥이를 쫙 벌리고 이를 뻐드득뻐드득 갈았어요. “내 아프리카제국사람이고 유럽련맹제국사람이고 이 온 땅덩어리 인간들을 몽땅 죽여치우겠다!” 그때 또 생물학가인 아버지 맥슨박사가 매부리코를 벌씬거리면서 일어서서 발언하였어요. “내 보건대 아프리카제국을 보복하고 유럽제국과 아시아제국을 멸망시키려면 우리 아메리카제국에서는 크론복제기술과 새 유전학원리를 리용하여 클론바우꼬마대통령과 같은 많은 우량종인개발을 추전시킴과 더불어 미생물화학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보오.” 그러자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아버지 맥슨박사의 말인지라 퉁사발눈을 한번도 깜짝하지 않고 듣다가 이렇게 물었어요. “그런데 우량종인간을 얼마만큼 만들어내면 이 넓은 지구촌의 모든 인간을 몽땅 대적해 없애버리겠어요. 그리구 우량종인간이 나만큼 자라자해도 10여년이나 걸릴게 아닌가요?” 그러나 맥슨박사는 자기 의견을 고집하였어요. “시간이 걸려도 이 지구촌을 완전히 통일하려면 그래도 손이 네개, 날개 두개 달리고 뇌도 두개인 우량종인개발을 미루지 말아야 되오. 쾌속인간복제로 직접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을 복제하면 2년동안이면 가히 대통령과 같은 괴물인간을 몇백명을 복제할수 있다고 보오.” 그 바람에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이나 참모장련석회의 주석 제크대원수나 군사전문가들도 모두 머리를 끄덕였어요. 그러나 남아메리카 빠나마시와 브라질시 시민들까지 무리로 전염병에 걸려 쓰러져가는것을 보고 클론바우대통령은 우량종인간이 복제되고 자라나기를 몇년동안 기다릴수 없었어요. 하지만 련 며칠 군사전문가와 과학가들이 회의를 열어도 뾰족한 수가 없었어요. 클론바우대통령이 속이 바질바질 타 불가마뚜껑우의 개미처럼 맴돌때였어요. 참모장련석회의 주석 제크대원수가 밤중에 꼬마대통령 클론바우를 찾아왔어요. “꼬마대통령님, 그 놈들이 가져온 병균이 묻은 딸라를 몽땅 시민들의 손에서 회수하여 비밀리에 아프리카와 유럽에 실어다 널어놓으면 어떻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한참 궁리하던 클론바우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그 수가 좋겠지만 그 놈들이 진작 방비대책을 댔을것이요. 딸라라 하면 이젠 온 세상사람들이 쥐기도 으쓸해할게 아닌가요?” “그럼 유럽엔이나 아프리카돈에다 그 병균을 발라놓으면 어떨가요?” “안돼요. 매 한가지로 성공되기 힘들게요. 어떻게 그놈들이 쓰지 않은 새 방법을 써야 하겠는데요.” 꼬마대통령은 연기같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푸푸 내쉬였어요. 그러던 어느 하루 밤, 어머니는 클론바우꼬마대통령과 함께 차를 타고 교외로 달려갔어요. 어머니 유리박사는 아무도 없는 머나먼 교외로 가서 차를 멈춰세웠어요. 검푸른 파도가 출렁이며 깎아지른듯한 절벽을 처절썩처절썩 치고있었어요. 그녀는 아들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간곡한 어조로 말하였어요. “클론바우야, 아메리카제국의 대통령이되여도 만족하여야 한다. 예로부터 세계를 독점하려던 나뽈레옹이나 히틀러나 다 끝장이 어떠하였다는것을 모르느냐? 우리가 이젠 아라비아와 유럽, 아프리카의 사람들을 몽땅 건드려놓았으니 그들은 련합하여 계속 보복하려 할게 아니냐? 이렇게 계속 서로 보복해나간다면 이 지구촌에 전쟁이 끊을새 있겠느냐? 전쟁은 인류에게 또 얼마나 크나큰 재앙을 들씌우느냐?” “어머니,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입니다. 온 아메리카를 독차지하면 유럽과 아시아, 지어 아프리카와 대양주를 다 가지고싶고 온 지구를 다 가지면 달과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 나아가서 온 우주를 다 가지고싶지요. 인류사회는 약육강식의 세상이예요. 이제 우리가 가만 놔둔다고 하여 그들이 우리를 가만놔둘것 같아요? 아니예요. 우리가 온 지구를 다 통일하여야만 이 세상에는 다시는 전쟁이 없을것이예요. 이것이 바로 전쟁과 평화, 통일과 평화의 변증법적관계예요. 어머니, 저를 도와주세요. 어떻게 하면 저 유럽과 아프리카 개새끼들을 멸종시키고 이 지구를 독차지할수 있을가요?” 그 말에 어머니 유리박사는 머리를 끄덕였어요. 그녀는 별들이 총총한 맑은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한숨을 길게 쉬더니 이렇게 말하였어요. “얘야, 네 말에도 도리가 있구나. 인류의 평화를 위해 이땅에서 하루속히 전쟁을 끝내려면 그렇게 하는수밖에 없구나. 원래 나는 이 무서운 비밀계획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려 하였다. 한것은 인류력사에 지구인을 훼멸시킨 천추에 용납하지 못할 죄를 짓게 되기때문이였다. 20세기에 원자탄을 발명한 아인슈타인도 원자탄이 사람을 잡는 강대한 핵무기로 된후 얼마나 후회하였던냐? 그러나 우리 아메리카제국의 백성들이 아프리카깜둥이들이 뿌린 생물화학무기에 무리로 쓰러져가는것을 보고 가만 놔둘수는 없구나. 그래서 이 비밀계획을 부득불 쓰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 그 말에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퉁방울눈이 반짝이고 파초귀가 뻘쭉하여졌어요. “어머니, 이 지구촌의 인간을 몽땅 죽여치울 비밀계획과 무기가 있으면 빨리 말씀해주세요.” 어머니 유리박사는 아들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손으로 별들이 총총한 하늘을 가리키면서 천천히 입을 뗐어요. “저 하늘에 구멍을 뚫는 방법이야.” “녜?!” “지구주위의 오존층은 태양의 적외선을 막기에 지구에서 모든 식물과 동물이 살수 있단다. 그러나 일단 이 오존층만 파괴해놓으면 지구의 모든 생물이 다 강렬한 적외선을 받아 죽고말것이다. 그까지 로케트싸움을 하거나 원자탄과 중성자탄전쟁을 해가지고서야 어느 천년에 지구촌의 모든 사람을 없애버리고 통일하겠느냐? 원자탄이나 중성자탄은 폭발할때 버섯구름이 일어나 사람들에게 눈치를 채게 할수있지만 오존층파괴로 인한 적외선복사는 쥐도 새도 모르게 실행할수 있단 말이다. 그리고 원자탄이나 중성자탄이 폭발할때 방사선이나 그 충격파로는 50킬로메터안의 지상의 사람을 죽일수 있지만 한메터반이상의 갱도안에 들어가 피신하여도 살수 있단말이다. 그러나 오존층을 파괴하면 영원한 적외선복사로 온 지구의 모든 생물을 몽땅 영원히 없앨수 있단 말이다. 그리구 원자탄이나 중성자탄, 전자탄은 폭발할 때뿐이지 한두시간후에는 피해를 받지 않지만 오존층을 파괴하면 적외선복사가 영원히 지속되면서 온 지궁에 모든 생물이 몇백년, 지어 몇천년내지 몇만년동안 살수없단 말이다.” “어머니, 그런데 어째 내 천문학박사과정에는 인류 생존과 훼멸에 그렇게 중요한 오존층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어요?” 어머니는 클론바우의 사자머리털을 쓸어주면서 이렇게 대답하였어요. “네가 전문 히틀러처럼 사람을 죽이고 지구를 통일할 궁리를 하기때문에 너무나도 위험해 가르치지 않았단다. 일찍 일부 환경보호국의 전문가들과 천문학가들이 인류생존을 위해 오존층을 보호할데 대해 많이 강조하였단다. 그들은 오존층을 보호하기 위하여 록색세계를 만들려고 나무를 심고 림지를 보호하고 공업오염을 방지하려고 애를 썼단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삼림면적이 적어지고 공업화학품연소오염에 자동차페기오염이 심해가고 원자탄과 중성자탄, 전자탄전쟁으로 하여 지구의 오존층은 날이 갈수록 파괴되여갔단다.900여년전인 21세기에 벌써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북빙양과 남극주의 일부 얼음층이 녹아내려 태평양과 대서양, 인도양의 수많은 섬나라가 바다물에 잠기였고 아시아의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태평양의 일부 섬나라, 그리고 로씨야북부에 큰 삼림화재가 련속 일어났단다. 그때 우리 아메리카제국에 속하였던 미국에서도 자주 삼림화재가 발생하였단다. 그리고 21세기중엽에 이르러 지상에 적외선직사력이 강하여져 사람들이 해볕이 쨍쨍 쪼일 때면 적외선방지우산을 들지 않으면 바깥에 나서서 걷기조차 힘들었단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류생존을 위한 환경보호의식이 차하였고 오존층보호에 대해서는 근본 중시가 따라가지 못하였단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아프리카제국과 유럽제국에 보복하고 지구촌을 통일하고 통치하기 위하여 부득불 오존층을 파괴해야 되니 마음에 좀 걸리는구나.”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그래도 보세요. 우리가 선손을 써서 유럽이나 아프리카 놈들을 없애버리지 않으면 우리가 몽땅 죽어버리게 되지 않아요?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상이예요. 어서 그 구체적인 절차를 말해주세요.” 하고 졸라댔어요. 어머니는 클론바우의 손을 꼭 잡고 “이 비밀계획은 꼭 아무에게나 말하지 말아야 한다. 알겠니?” 하고 다짐을 땄어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머리를 끄덕였어요. 그는 어머니의 말을 들을수록 눈앞이 환하여져 세메터반이나 되는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고 하늘을 향하여 네팔을 쳐들고 힘차게 흔들면서 환성을 질렀어요. “어머니, 어머니는 적어도 몇세기이래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천문학가이고 위대한 군사무기전문가이세요. 이다음 이 아들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이 지구촌의 전세계를 통치하면 어머니 유리박사에게 자유녀신동상보다도 더 높은 기념비를 세워주겠어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어머니 유리박사를 앞의 두팔로 얼싸안고 반공중으로 훨훨 나래쳤어요. “어머니, 그리구 아버지 맥슨박사에게 말해서 이제 복제할 클론바우1호, 2호…100호 등에게는 적외선방지층을 제조해넣어야 하지 않을가요?” “그래, 그런데 지구촌의 기타 인종들이 다 소멸된후 너보다 못지 않게 총명하고 능력이 있는 그 애들이 너와 대통령보좌를 다툴가봐 근심되는구나.” “어머니, 발명가 아버지가 있으니 근심하지 말아요. 아버지는 그 애들이 출생하기전에 그 애들의 대뇌에 손오공에게 씌웠던 금고주같은것을 미리 장치해놓는대요. 일단 그 애들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원격조종기로 대뇌를 조이거나 폭파시키면 다래요. 히히히, 얼마나 묘해요.” “그래, 참 묘하구나.” “하하하! 난 이 지구촌의 유일한 통치자이고 영원한 대통령일것이예요. 유일한 통치자! 영원한 대통령! 하하하!” 클론바우의 웃음소리가 먹칠한듯한 하늘아래 아메리카대륙에 오래오래 메아리쳤어요. “쉿- 누가 듣겠다.” 그제야 클론바우는 격동된 심정을 억지로 내리누르면서 훨훨 나래쳐 어머니 승용차가 선 큰길에까지 날아와 내렸어요.                                  6 그날 밤부터 유리박사의 어둑시그레하고 조용한 지하밀실에서 유리박사와 클론바우대통령 모자간은 오존층파괴계획을 암암리에 세워가고있었어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파초귀를 뻘쭉 세우고 퉁사발눈으로 어머니 유리박사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물었어요. “오존층파괴를 잘 모르겠는데요. 내 아둔한 생각에는 먼저 산소를 만드는 온 지구의 살림과 풀같은 록색세계를 몽땅 불태워버리고 아라비아반도의 석유관에 몽땅 불지르고 전세계 화학공장을 폭파하고 불을 지르면 오존층을 파괴할수 있지 않을가요?” “그런 원시적인 방법으로도 오존층을 파괴할수는 있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우리는 쥐도 새도 모르게 순식간에 오존층을 구멍을 뚫어놓아야 한다. 다른자들이 눈치채는 날에는 인차 국제여론의 질책은 둘째치고 전 세계가 모든 선진적인 무기로 우리 아메리카제국을 들이칠것이 아니겠느냐?” “그럼 어머니 생각에는 어떻게 하면 그 놈들이 눈치챌사이 없이 오존층을 파괴해버릴수 있을가요?” 그러자 유리박사는 자못 심중한 표정을 지으면서 손으로 입을 가리우면서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의 파초귀에 대고 소곤거렸어요. “오존층에 특제 원자탄과 질자탄을 폭파하는것이다.” 그 말에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오- 그럼 그렇지.”하고 말하면서 머리를 끄덕였어요. 그러다가 그는 수심에 잠기더니 어머니 유리박사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어머니, 그런데 온 지구의 오존층을 다 파괴하면 우리가 지구촌을 손쉽게 통일하고 독차지하겠지만 우리는 적외선이 쨍쨍 내리쪼이고 불이 활활 타번지는 벌거벗은 지구의 어데 가서 살아야 하는가요?” 그 말에 어머니도 심중하여졌어요. “나는 오존층 보호와 파괴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여보았지만 오존층파괴후 인류생존이나 오존층회복에 대해서는 아직 깊이 연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내 보건대 그때 우리가 유럽이나 아시아, 아프리카, 대양주 상공의 오존층만 파괴하고 우리 아메리카제국상공의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고 보호하면 문제없다고 본다. 그리고 륙지상공의 오존층이 다 파괴된다 하여도 바다상공의 오존층은 보존될수 있어 적외선이 덜 침투되는 바다에서 살거나 지하에서 살면 될게 아니냐? 그리구 적외선방지우산을 제조하고 오존층회복공사를 벌리면 될것 같아.” 그러자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독수리의 매부리주둥이에 샘물을 한초롱이나 부어넣어 꿀떡꿀떡 마시더니 으시댔어요. “옳아요. 이 지구촌을 먼저 내것으로 만든 다음에 우리가 금이고 옥이고 미녀고 몽땅 가지고 저 넓고넓은 태평양의 넓은 바다밑에 들어가거나 인적이 없는 남극주에 가서 산들 뭐가 근심되겠어요? 하하하!” 약 반년동안 아메리카제국에서는 아프리카에서 딸라에 발라 산포한 전염병균을 제거하는 한편 주밀한 준비를 거쳐 오존층파괴비밀행동이 시작되였어요. 2962년 5월 7일 밤, 하늘에는 킬러호 태풍의 영향으로 하여 먹장구름이 뒤덮이고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하늘땅을 뒤흔들면서 울렸어요. 이런 때에 오존층에 원자탄을 폭파시켜도 유럽인들과 아프리카인들은 원자탄이 폭발하는것을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우는가고 오해할것이 아니겠어요. 이때라고 생각한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어머니와 제크대원수, 챨스대원수, 맥슨박사 등과 함께 미리 준비한 적외선방지우산을 씌운 대통령부에 모여앉았어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퉁사발눈으로 컴퓨터현광막을 살피면서 명령하였어요. “우주항천천문과학기술부 특종부대, 즉시 출발할것!” 삽시에 우주비행선도 아닌 수백명이나 되는 클론바우복제인들이 특제핵탄두로케트를 안고 하늘로 날아올랐어요. 클론바우대통령의 예측대로 클론바우1호를 비롯한 복제인들은 금속으로 제조한 우주비행선도 비행기도 아니여서 기타 여러 제국의 레이다들이 발견하지 못하였어요. 망원경으로 보면 그저 아주 큰 새들이 하늘에 새까맣게 날아오르는가고 여길수밖에 없었어요. 하여 클론바우복제인들은 아주 순조롭게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대양주 상공에 있는 오존층에까지 날아갔어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의 초조하고 긴장하던 사자얼굴이 확 풀렸다가 다시 살기등등한 험상궂은 얼굴로 변하였어요. 그는 독수리주둥이를 악착스럽게 놀렸어요. “핵탄두로케트를 발사할것!” 쓩쓩쓩! 클론바우복제인들은 핵탄두로케트를 오존층에 발사하고 밤도와 지상으로 급급히 되날아왔어요. 꽈르릉 꽈아앙 꽝! 꽝! 꽝! 수백개의 번개불이 번쩍이고 천둥같은 폭파굉음이 을리였어요. 아무런 방비도 없던 여러 제국들에서는 그저 이상하게 하늘에서 련속 수백개의 번개가 치고 우뢰가 운다고 여겼어요. 그런데 하늘에서 뻘건 버섯구름이 피더니 밤장막이 드리운 온 하늘을 시뻘겋게 불태우면서 온 대지를 대낮같이 비추었어요. 순식간에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대양주 상공의 오존층이 산산이 박산났어요. 이윽고 그 충격파가 대지에까지 무섭게 휩쓸어들어 탑식고층건물이 몽땅 무너졌어요. 물론 몇백킬로메터 상공에는 원자탄과 중성자탄을 폭발시켰기에 대지에 대한 핵복사의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야단이 벌어졌어요. 씨비리와 알프스산맥부근삼림에 큰 불이 일어 살림이 타버리고 범과 사자, 사슴떼들이 놀라 들판으로 달아내려왔어요. 뒤이어 아라비아반도의 석유시설들에서 몽땅 천길 백길씩 불길이 뿜겨올랐고 타다남은 석유가 바다에 흘러들어 둥둥 뜨다가 파도에 실려 퍼지는 바람에 먼바다까지 더럽혔어요. 그러자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는 아메리카제국에서 원자탄을 썼다는것만은 알았지만 그들이 오존층을 파괴하였다는것은 모르고있었어요. 아차! 더 큰일은 뒤에 벌어졌어요. 밤장막이 걷히고 해가 떴어요. 적외선은 아시아로부터 대양주, 유럽과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죽 돌면서 구멍뚫린 오존층을 넘어 거침없이 대지를 직사하였어요. 적외선이 비추는 대지의 범과 사자, 승냥이 등 짐승들과 사람들은 삼대 쓰러지듯하였어요. 사람들이 급급히 들리여 병원에 가보니 모두 적외선이 투과되여 대뇌세포가 죽지 않았으면 백혈병에 걸렸고 피부에 물집이 생기고 고름이 나던데로부터 마구 썩어들어갔던것이예요. 어떤 사람들은 보기도 흉측하게 눈이 메고 썩어들어갔어요. 여러 제국의 원자탄과 중자탄 기지에서 일하던 군대들도 몽땅 쓰러져 전투력을 잃었어요. 온 지구의 여러 병원에서는 인차 오존층의 파괴로 하여 적외선의 직사를 받아 사람들이 무리로 쓰러져 죽어간다고 결론을 지었어요. 국제적십자회에서는 엄정한 성명을 발표하여 오존층을 파괴하고 인류를 멸종시키려는 아메리카제국의 죄행을 규탄하면서 그 모든 후과를 책임지라고 하였어요. 그러나 클론바우대통령과 유리박사는 서로 포옹하면서 승리를 경축하였어요. “야호-! 지구촌은 우리들의것이야! 으흐흐흐!” “해해해! 클론바우야, 넌 이제 지구촌의 유일한 대통령이 될것이다. 해해해!” “아싸! 어머니, 내 사전에 약속한대로 어머니에게 자유녀신상보다 더 높고 아름다운 지구통일녀신유리박사동상을 세워주겠어요.” 실로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아메리카제국의 수도에 금강석으로 에펠철탑보다도 몇배나 높은, 높이 2962.57메터나 되는 지구통일기념비를 세웠어요. 지구통일기념비의 높이를 2962.57메터로 한것은 비문에 밝힌것과 마찬가지로 클론바우대통령을 비롯한 아메리카제국의 국민들이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의 령도하에 오존층을 파괴하여 전 지구촌을 통일한 위대한 업적을 쌓은 날인 2962년 5월 7일을 기념하기 위한것이였어요. 동시에 어머니 유리박사에게는 자유녀신상보다 더 높은, 높이 296.257메너나 되는 지구통일녀신유리박사동상을 세워주고 비문에 유리박사가 오존층을 파괴하여 지구를 통일하는 사업에서 쌓은 불멸의 업적을 일일이 새겨놓았어요. 기념비와 동상의 높이 마지막 두글자를 다 “57”자로 새긴것은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의 탄생일인 5월 7일과 지구촌통일일인 5월 7일을 기념하기 위한것이였어요. 그 금빛으로 번쩍이는 소소리 높이 솟은 기념비와 동상을 바라보는 유리박사와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긍지감에 가슴이 설레이였어요. 그런데 그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였어요. 글쎄 유럽제국과 아시아제국, 아프리카제국, 대양주제국에서는 련합으로 핵로케트를 아메리카상공의 오존층에 발사하였어요. 순식간에 아메리카제국의 상공에는 핵로케트가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면서 날아왔어요. 레이다를 통해 그 긴급정보를 제공받은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황급히 컴퓨터형광막을 들여다보았어요. 시뻘건 로케트들이 혜성의 꼬리처럼 불을 토하며 아메리카를 노리면서 덮쳐오고있었어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퉁사발눈을 부릅뜨고 긴급명령을 내렸어요. “우주비행부에서는 미싸일방어시스템을 작동하여 즉시 핵로케트를 대서양과 태평양 상공에서 폭파시키라!” 아메리카제국의 반미싸일애국자유도탄이 즉시 부동한 방향으로 핵탄두를 향하여 날아갔어요. 하여 적지 않은 핵탄두는 태평양과 대서양 상공에서 폭파되였어요. 그러나 일부 핵탄두는 아메리카제국상공의 오존층이거나 지상에서 폭발하여 태평양과 대서양 상공과 아메리카제국의 하늘과 땅은 몽땅 불바다로 되였어요. 적외선이 내리직사하자 아메리카제국의 코 큰이들도 무리로 쓰러졌어요. 다만 남아메리카 최남단인 혼각에 강제이주시킨 아랍인들만이 철조망속에서 살아남았던것이예요. 다행히 클론바우꼬마대통령과 그의 부모, 그리고 수백명 클론바우복제인들은 미리 준비해놓은 적외선방지우산을 썼기에 즉살을 면하였어요. 그들은 온 지구에서 유일하게 오존층이 파괴되지 않은 남극주의 남극반도의 서쪽에 있는 알렉산드르섬에로 훨훨 날아갔어요. 나머지 군사기지의 챨스대원수와 제크원수 등 군사전문가들은 칠함대의 핵잠수함을 타고 가만히 바다밑으로 잠수하여 알렉산드르섬에로 갔어요.                          7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남극주에 온후 일주일만에 세계각지로 파견된 클론바우복제인들에게서 아주 기쁜 소식을 받았어요. 온 지구에 남극주를 제외한 륙지와 바다의 모든 생물이 몽땅 멸종하였던것이예요. 다만 지하에서 일하던 탄부들이나 군사기지조직의 몇만명밖에 안되는 성원들이 살아남았던것이예요. “으하하하! 내가 진정 이 지구촌을 통일하고 유일한 대통령이 되였구나! 아핫하하. 이건 모두 어머니 유리박사의 공로예요. 어머니, 내 절을 받으세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너무 기뻐 네메터나 되는 몸을 넙적 엎드려 유리박사에게 큰 절을 굽석 올렸어요. 유리박사는 자기 천문학연구성과가 이같이 큰 성과를 따내고 외동아들 클론바우를 14세에 통일된 지구의 유일한 대통령으로 올려놓은것으로 하여 무등 기뻐했어요. 이젠 꼬마대통령 클론바우는 클론바우복제인들을 시켜 태양우산을 쓰고 유럽이나 아시아에 날아가서 금이고 옥이고 명승고적의 유물이고 몽땅 날라오게 하였어요. 그런데 클론바우는 아무리 통일지구촌의 대통령이 되여 금산과 옥산을 쌓아놓고 산다고 하여도 멋이 적었어요. 먹을 량식이 없는데다가 클론바우복제인들 수백명밖에 거느리지 못하여서 그저 옛날 원시씨족사회의 두령같고 허명무실하였던것이였어요. 설상가상으로 그들은 황급히 도망치다나니 겨울옷도 가지고 오지 못하여 금돌로 금빛이 번쩍번쩍하는 으리으리한 금집을 지었지만 추운 고생을 하기 어려웠어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과 클론바우복제인들은 그래도 괜찮았는데 맥슨박사와 유리박사, 제크대원수, 챨스대원수는 추워서 몸을 옹송그리고 바들바들 떨었어요. 그들은 솜옷이나 털옷이 얼마나 그리운지 몰랐어요. 설상가상으로 태평양과 대서양의 바다마저 오존층의 파괴로 말미암아 모든 생물이 멸종되다싶이 되여 먹을것이 없어 생야단이였어요. 그들은 먼저 뭐든 먹고 살아야 하였어요. 하여 남극주에서 수백만년을 평화롭게 살던 펭긴새부터 하나하나 잡아먹기 시작하였어요. 그런데 하루에 수백명이 펭긴새고기만 먹다나니 반년도 가지 않아 펭긴새마저 멸종될 위기를 겪게 되였어요. 그들은 이젠 대통령이고 귀족이고 량반의 허울을 홀랑 벗어버리고 생존을 위해 파도가 세찬 바다가에 가서 원시적인 도구로 물고기를 잡고 미역과 같은 바다풀을 건져내 끓여 먹어야 하였어요. 그런데 페유가 바다물을 더럽혀 기름이 묻은 바다풀마저 싹싹 씨어 먹어야 하였는데 그것만 먹고서는 살것 같지 않았어요. “이젠 뭘 먹고 산단 말인가? 후-”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는 남극주의 허허벌판을 맥없이 바라보며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지었어요. 이때 유리박사가 여윈 얼굴을 들어 아들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을 바라보면서 처음으로 후회하는것이였어요. “이럴줄 알았더라면 자초에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았을걸 그랬다. 이젠 지구촌에 유일하게 남은 우리마저 생존하기 어렵게 되였구나.” 그러자 맥슨박사가 목에 지렁이같은 피줄을 세우면서 꽥꽥 고함쳤어요. “보라니까. 내가 무라던가? 그래도 지구를 통일하려면 우량인종우생학을 연구하여 전 인류를 정복하여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인류를 훼멸시키는 그따위 개짓을 하더니 이젠 돌을 들어 자기 발등을 깐 격이 되고말았구만. 헤이, 아무리 온 지구의 금산이구 옥산이구 다 가져다 금집을 지어놓아도 무슨 소용이 있는가? 먹고 살수 있어야 빛이 나구 지구를 통일한 보람이 있지.” 그러자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이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 아버지 말을 중둥무이시켰어요. “아버지, 그래도 지구를 통일하였기에 이젠 이 지구에 전쟁이 없어진게 아닌가요? 이제 와서 그런 맥이 빠진 말을 해서 무슨 소용이 있어요. 이젠 목전의 생존위기를 벗어날 대책을 구해야 해요. 이제부터라도 오존층을 복구하고 생존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방책을 의논합시다.” 그러자 유리박사와 챨스대원수, 클론바우복제인들이 머리를 끄덕였어요. 이때 맥슨박사가 아주 지독한 계책을 내놓았어요. “이 지경이 되였으니 볼것이 없구나. 저 남아메리카 최남단인 혼각에 우리에게 쫓기워난 아랍인들이 아직도 한 몇천명 살아있지 않고 뭔가? 그자들을 하나하나 잡아먹잔 말이요.” “옳소이다. 얘들아, 오늘부터 혼각의 아랍인들을 날마다 몇십명씩 잡아오너라.” “예잇-!” 그리하여 그후부터 남극주 알렉산드로섬의 괴물들은 아랍인들을 피비리게 잡아먹기 시작하였어요. 그런데 몇달이 지나니 아랍인들도 멸종하여 이젠 또다시 식량난을 겪어야 하였어요. 모두들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는데 그래도 유리박사가 묘책을 내놓았어요. “우린 우리 나라에서 수백년동안 제조해온 칠함대의 잠수함을 몰고 먼바다로 나가 적외선의 피해를 덜 입은 깊은 바다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고 바다풀을 건져내 먹고 살아야 하오.” 그 말에 클론바우대통령은 파초귀가 벌쭉하여졌어요. “그래도 어머니가 제일이야. 클론바우복제인들은 즉시 칠함대 잠수함을 몰고 먼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고 바다풀을 건져오도록 하여라.” “예잇-” 클론바우복제인들이 부랴부랴 떠났어요. 이때 아버지 맥슨박사가 황급히 뛰여들어와 기쁜 소식을 전하였어요. “얘야, 남극주의 얼음과 눈이 녹기 시작한다. 아마 적외선의 복사를 받은 지구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그런것 같아. 만약 남극주의 얼음과 눈이 녹고 기온이 기타 대륙의 온도만큼 올라간다면 여기서도 곡식을 심어 먹고 살수 있을게 아니냐?” “그래요. 오늘 일이 술술 잘 풀려나가는군만요. 으흐흐-후-” 그런데 며칠후 찬찬히 여겨보니 바다물이 점점 남극주륙지를 먹어올라오고있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금빛으로 번쩍이는 대통령부청사앞마당에까지 바다물이 올라와 출렁거렸어요. 이거 생야단났어요. 그들은 바삐 바다로 나간 클론바우복제인들을 불러 남극주에서 제일 높다는 곳에 금과 옥으로 다시 층집을 줄줄이 지어놓았어요. 그런데 남극주에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쵸몰랑마봉과 같은 산이 없어서 그곳도 그리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하였어요. 전 지구의 오존층의 파괴로 하여 한달도 지나지 않아 북빙양과 남극주의 온도마저 섭씨 령상 40도로 올라갔어요. 남극주의 얼음과 눈이 다 녹아버리고 파란 풀이 뾰족뾰족 자라났어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기뻐서 어깨춤을 덩실덩싱 추면서 으시댔어요. “아싸! 이젠 살길이 나지는구만. 이 넓은 남극주들판에 록색세계가 펼쳐지면 우린 살길이 열릴것이 아니요?” 그런데 바다물이 계속 붓는 바람에 풀밭이 몽땅 삼키우고말았어요. 출렁이는 망망한 바다물의 포위속에서 든 꼬마대통령일행은 불도가니속에 든 개미 채바퀴 돌듯하였어요. “아이고!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클론바우대통령은 맥없이 두날개를 축 드리우고 타조다리로 금집에서 왔다갔다하였어요. 그는 끓어오르는 가마안의 콩물처럼 불어올라오기만 하는 망망한 바다를 내다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토해냈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먼바다에 나갔던 클론바우복제인들은 바다에 산 물고기가 없어 적외선복사를 받아 바다물우에 둥둥 뜬 죽은 물고기를 수태 주어왔어요. 굶은 사람들이 먹을것이 생겼다고 그 물고기를 끓여먹고 모두 전염병에 걸려 설사를 하고 밸이 끊어져가는 바람에 온 남극주가 바글바글 끓어번졌어요. 대노한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클론바우복제인들을 몽땅 불러다 원격조종기로 그들의 대뇌속 금고를 딱딱 진동시키면서 문초를 하였어요. “이 놈들아, 왜 죽은 고기를 주어와서 우리를 죽이려고 들었는가? 그 죄는 천번만번 죽어 마땅하다!” 복제인들은 머리를 싸쥐고 대굴대굴 구을었어요. 그러면서도 담대한 클론바우가 변명하였어요. “사실 이전에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제국들에서 날아온 일부 핵로케트를 우리 애국자미싸일로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폭발시키지 않았고 뭐얘요? 그 바람에 태평양과 대서양 상공의 오존층이 파괴되는 바람에 먼바다에도 적외선의 복사가 심하여 물고기들도 무리로 죽어버렸지요. 그러니 큰 고기들이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림시 살았지만 그것도 적외선의 복사를 받아 죽어가다나니 산 물고기는 없닥싶이 되고 바다물우에 죽은 물고기가 한벌 둥둥 떠있더구만요. 그래서 굶기보다 그거라도 먹어보려고 가져왔던것이에요. 죽을 죄를 졌소이다. 그러나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그 말에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흠칠 놀라면서도 노기는 사라질줄을 몰랐어요. “이 잡아먹을 놈들이 죽을 죄를 져가지고서도 변명이냐?” 그러자 클론바우1호는 목숨을 내걸고 바른 총질을 하였어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 죽을 죄는 기실 꼬마대통령 당신들 모자간이 졌소이다. 당신들 모자간이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아름답던 지구가 이 지경이 되였겠나이까?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처럼 온 지구의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이 먹을것이 없고 적외선복사로 하여 멸종되였겠나이까? 전 지구촌의 모든 생물의 이름으로 당신들 모자간을 목을 매죽이고 뼈가루를 내고 살을 저며내도 원쑤를 다 갚지 못할것입니다.” 그 말에 복제인들이 “옳소. 다 오존층을 파괴했기때문이요.” 하고 고함쳤어요. 대노한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너희들이 반란할테냐? 이런 날이 있을것을 알고 우리 아빠 맥슨박사가 너희들을 복제해낼 때 대뇌피질에 손오공에게 씌웠던 금고주를 장치해놓았다. 어디 금고주맛이나 봐라.” 하고 으시대더니 원격조종기를 눌러 금고주를 조였어요. 그러자 수백명 복제인들이 머리를 싸쥐고 대굴대굴 구을었어요.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원격조종기를 재차 눌러 클론바우1호의 머리를 폭파시켰어요. 뒤이어 클론바우의 부모들은 챨스대원수와 함께 굶은 이리처럼 달려들어 클론바우1호의 고기를 숯불에 구워 그날 저녁은 잘 먹었어요. 그것이 닭을 잡아 원숭이를 길들이는 큰 효과를 거두었어요. 그날부터 누구도 감히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의 비위를 거슬리지 못하였어요.                       8 며칠후 어느날 밤, 유리박사는 아들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어요. 그녀는 별들이 총총한 남극주의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어요. “얘야, 먼저 아메리카에 세운 내 지구통일녀신동상을 없애버려라. 이후에 이 지구에 인류가 다시 생긴다면 세인들은 그 동상을 보고 내가 오존층을 파괴하였다고 몇천년, 몇만년을 두고 욕할것이 아니냐?” 클론바우꼬마대통령도 이젠 느끼는바가 있었는지 머리를 끄덕였어요. “그런데 그걸 없애지 않는것도 좋은 점이 있는것 같아요. 차라리 그 지구통일기념비와 어머니의 지구통일녀신동상을 놔두어 세인들이 다시는 오존층을 파괴하지 말게 하는것이 어떨가요?” 그러자 유리박사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그렇게 하면 지구의 후세인들에게는 유익하겠지만 우린 영원히 몸둘 곳이 없게 될게다.” 그렇지만 꼬마대통령은 자기 고집을 돌려세우지 않았어요. “우리 모자간은 전 지구의 인류를 멸종되게 하였어요. 그 피빚을 어떻게 다 갚겠어요. 피의 교훈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어요?” 그 말에 어머니도 더 할 말이 없었어요. 뒤이어 꼬마대통령 클론바우는 답답하여 어머니 유리박사에게 물었어요. “지금 우리 생존을 위해서라도 오존층을 복구할 방도를 찾아야 하겠는데요. 천문학가인 어머니께서는 오존층을 파괴할줄도 알고 복구할 방법도 알고있겠지요?” “어렵게 되였어. 이제까지 나를 비롯한 천문학가들은 오존층의 파괴와 보호에 대해 연구하였지만 오존층복구에 대해서는 깊이 연구하지 못하였단다. 그리구 사람의 한생이 너무 짧기에 이제 몇십년여생에 어떻게 그렇게 큰 연구과제를 연구해내겠느냐?” 유리박사는 김이 빠진 공처럼 맥을 버리고 땅바닥에 퍼더버리고 주저앉았어요. 꼬마대통령은 어머니 유리박사를 껴안아일으키면서 간절히 부탁하였어요. “어머니,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아요. 이젠 오존층복구를 실험해보지 않아도 당장 죽기는 매일반인데 죽기전에 어머니가 생각해낸 방법대로 한번 실험해보자요. 실패하면 또 다른 방법으로 해보지요.” 그러자 어머니 유리박사는 중국의 옛 신화를 이야기하였어요. “아시아의 중국에는 라는 신화가 있었느니라. 옛날옛적에 이 세상에 해가 아홉개나 떠서 온 세상이 물바다로 되였단다. 하여 원시인들은 불에 타죽지 않으면 데서 살기 곤난하였단다. 이때 활을 잘 쏘는 명사냥군 예가 활을 쏘아 해 여덟개나 쏘아떨구었고 하늘에 해개 하나만 남았단다. 그때부터 지구라는 이 땅덩어리가 너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아 만물이 생장하는 푸르른 옥토로 되여 살기 좋은 곳으로 되였다고 한다.” 머리가 총명한 클론바우는 인차 계발을 받고 “그럼 우리도 저 놈의 해를 핵로케트로 폭파해버릴가요?” 하고 말하였어요. 그러자 유리박사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적외선복사를 피하는데는 그게 한가지 방법이고 다른 한가지 방법은 오존층을 복구하는거야. 천문학에도 관계되는 또 하나의 옛날 중국신화에는 는 이야기가 있단다. 옛날에도 모르긴 해도 하늘이 구멍이 나서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되지 않으면 비가 억수로 퍼부어 물바다가 되여 사람들은 살기 힘들었단다. 그리하여 녀와는 곤륜산맥의 화강석을 녹인 용암을 퍼다가 구멍난 하늘을 조금씩 기워나갔다. 그런데 화강용암을 다 퍼 기웠지만 딱 사람의 몸뚱이가 나들만하게 깁지 못해 그 하늘구멍으로 폭포수처럼 비물이 억수로 쏟아져 내렸단다. 하여 녀와는 최후로 자기 몸으로 하늘구멍을 막았단다. 하여 그때부터 이 세상에는 수재가 없어 지구는 만물이 생장하기 좋은 옥토벌로 되였단다. 그러나 우린 여태껏 그런 신화를 너무 거짓말로만 생각하여왔지. 기실 그 짧고도 신비한 신화에는 아주 깊은 철리적인 도리가 담겨져있었단다. 그 신화들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교훈과 계시를 주느냐? 해가 너무 뜨거워도 어두워도 인류와 모든 생물이 살아나갈수 없는것이고 또 오존층을 파괴해 하늘에 구멍을 내도 살길이 없는게 아니고 뭐니? 그런줄도 모르고 우린 우둔하게 하늘에 구멍을 뚫었구나. 그러니 우린 인젠 죽을 길밖에 없구나.” “어머니, 그렇게 맥빠진 말만 하지 말아요. 우리도 녀와처럼 아무것으로라도 구멍난 저 하늘을 기워 이 세상에 다시 만물이 소생할수 있는 아름다운 지구를 재복구해보자요.” “그럼 예를 불러다 먼저 해를 폭파해보자.” 뒤이어 대천문학가 유리박사는 예를 불러다 해를 폭파할 일을 의논하였어요. 그런데 잔등에 활과 살을 멘 예는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 저었어요. “지금의 해는 옛날의 해보다 거리가 멀고 어찌나 큰지 화살을 쏘아서는 떨굴수 없어요.” 꼬마대통령 클론바우는 다급히 “핵로케트를 쏘면 어떨가요?” 그러자 예는 핵로케트에 대해 오래동안 물어본후 “실험은 해보지요.”하고 말하였어요. 하여 신심을 가진 꼬마대통령은 몇개 남지 않은 핵로케트를 하늘의 해를 겨누어 쏘았어요. 몇시간후 컴퓨터형광막에는 실로 태양에서 원자탄과 중성자탄이 폭발하는 장면이 나타났어요. 그런데 태양의 한쪽모퉁이가 폭파되면서 지구쪽으로 숱한 별찌가 떨어지는데다가 적외선이 더욱더 강하게 지구를 복사할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안되겠어. 어머니, 이번에는 녀와를 불러오세요.” 어머니 유리박사가 컴퓨터 통합검색판을 탁탁 치자 형광막에 고대의 녀와가 팔소매를 너울너울 저으면서 날아내려왔어요. 그런데 유리박사가 그렇게도 기대하였던 녀와아가씨는 그들 모자간이 하늘에 그렇게도 무지하게 큰 구멍을 냈다고 핀잔하였어요. “하늘구멍이 너무나도 커서 나도 별 뾰족한 수가 없군요. 오존층을 복구하고 하늘구멍을 막으려면 록색세계삼림에서 산소를 많이 제조하여 하늘에 올려보내야 하죠. 그런데 이젠 수림이 없어 산소를 제조하지 못하니 어쩐단 말인가요.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바다물을 분해해 산소를 만들어 하늘에 올려보내보세요.” 그리하여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울며 겨자먹기로 물분해공장을 세우고 바다물을 분해하여 산소를 제조하여 남극주인들이 먹는 한편 하늘에 올려보냈어요. 그런데 온 하늘이 뚫린 구멍은 좀처럼 기워지지 않았어요. 하긴 그렇게 엄청나게 크게 뚫린 하늘구멍을 어느 천년에 다 기워맨단 말인가요? 유리박사와 꼬마대통령이 오존층을 복구하지 못하여 애가 바질바질 타할 때였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먹을것이 없어 생야단이였어요. 어느날 밤중이였어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이 금빛이 번쩍이는 대통령부청사에 앉아있으니 너무나도 갑갑하여 밖으로 나와 거닐었어요. 클론바우복제인들의 숙소쪽에서 뭐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파초귀에 들리는것이 아니겠어요. (이 놈들이 밤중까지 자지 않고 뭐라고 지껄이고있을가?) 의심이 부쩍 든 꼬마대통령은 어슬렁어슬렁 다가가 문옹이구멍에 중지를 밀어넣어 중지눈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파초귀를 기울였어요. “바다물을 끓여서야 언제 하늘구멍을 막겠는가?” 한자가 툴툴거리는데 다른자들은 더구나 듣기에도 끔찍한 말을 하는것이 아니겠어요. “오존층을 파괴하더니 먹을것이 없지 않고 뭔가? 전번에 클론바우1호까지 잡아먹는걸 보아라. 언젠가는 우리도 잡아먹지 않는가 봐라.” 그러자 클론바우110호가 우쭐 일어나서 고함치는것이였어요. “형님 여러분, 그 놈들에게 잡히워 죽기전에 아예 우리가 그 놈의 금고주원격조종기를 빼앗아낸후 반란을 일으켜 클론바우모자간을 잡아치우고 달아납시다.” 깜짝 놀란 꼬마대통령 클론바우는 발길로 문을 탁 차고 들어가 먼저 클론바우110호의 금고주원격조종기를 눌렀어요. 탕! 야무진 폭파소리와 함께 클론바우 110호의 머리가 박산났어요. 그러자 다른 클론바우복제인들은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아우성을 치면서 뿔뿔히 흩어졌어요. 그후부터 클론바우모자간과 제크대원수 등은 먹을것이 없는데다가 후환을 없애려고 독한 마음을 먹었어요. 그들은 원격조종기로 금고주를 눌러 복제인들을 하나하나 잡아 구워먹기 시작하였어요. 그러자 이제부터 남극주에 오른 수백명사람들이 서로 잡아먹기 시작하였으며 남에게 잡히울가봐 겁이 나 신경을 도사려야 하였어요. 어느 하루, 클론바우복제인들은 살이 피둥피둥 찐 늙은 대원수 챨스를 노려보았어요. 그러자 챨스대원수는 질겁하여 꼬마대통령에게 고발하려고 허둥지둥 달아났어요. 그러나 때는 늦었어요. 초음속비행기보다도 더 빨리 나는 클론바우복제인들앞에서 달아나면 어데로 달아난단 말인가요. 결국 대원수 챨스는 무리승냥이들 같은 클론바우복제인들에게 붙잡혀 단번에 사지를 뜯기웠어요. 클론바우복제인들은 독수리들처럼 후닥닥 날아내려 늙은 대원수 챨스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점을 뜯어먹었어요. 어느 하루 이른 아침, 복제인들은 배고파 무리를 지어 바다물에 뛰여든 제크대원수를 잡아먹자고 쫓다가 환성을 질렀어요. “대통령님, 살 길이 나졌어요.” “저걸 보세요. 숱한 돌고래들이 태평양으로부터 이쪽으로 헤염쳐오고있어요.” “저것들을 몽땅 잡아먹으면 몇해는 살것 같아요.” ]꼬마대통령은 복제인들과 함께 먼바다로 훨훨 날아가 무리를 지어 이쪽으로 헤염쳐오는 돌고래무리를 구경하였어요. 실로 장관이였어요. 커다란 잠수함 같은 돌고래들이 물밑으로 헤염쳐오다가도 하늘 높이 솟구쳤다 바다물에 떨어질 때면 하얀 물기둥이 몇십메터 솟구쳐올랐어요. 오랜만에 지구우에서 자기들을 내놓고 산 동물을 보자 복제인들은 하늘이 떠나가게 환성을 질렀어요. “하하하, 이러기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구나.”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흥이 나서 복제인들을 보고 함대를 몰고 가서 돌고래들을 잡으라고 하였어요. 뒤이어 복제인들이 함대를 몰고 다니면서 돌고래들에게 총포사격을 가하였어요. 그런데 저게 웬 일이예요. 돌고래들이 펄떡펄떡 뛰다가 남극주상공에로 날아올랐어요. 꽈르릉, 꽝! 꽝! 돌고래의 자살식폭발굉음과 함께 지구에서 유일하게 남은 남극주상공의 오존층마저 몽땅 산산이 박산나고말았어요. 그 바람에 벌겋게 불타는 하늘아래 남극주땅바닥이 드러나면서 지세가 낮아져 바다물이 덮쳐들었어요. 순식간에 금빛찬란한 대통령부가 물에 잠기기 시작하였어요. 복제인들은 그래도 적외선방지우산을 가지고 태여나서 괜찮았지만 맥슨박사와 유리박사 그리고 제크대원수는 적외선복사를 받고 쓰러졌어요. 뒤이어 클론바우꼬마대통령도 머리가 어질어질해나는감을 느꼈어요. 설상가상으로 복제인들이 돌고래를 잡아 고기를 가져왔지만 핵복사와 적외선복사를 받은 고래고기를 먹을수 없었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복제인들의 살점도 핵복사와 적외선복사를 받아 먹을수 없게 되었어요. “어머니,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요? 아, 하느님이여, 나에게 재생의 기회를 한번만 더 주신다면 나라와 나라가 싸우고 지구를 통일하더라도 오존층만은 구멍을 뚫지 않을것이예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우거지상이 되여 오만상을 찡그리며 참회하였어요. 유리박사가 미심한데 있어 이렇게 중얼거리는것이였어요. “이상해. 어떻게 되여 돌고래들이 그렇게 하늘높이 솟아올라 남극주의 오존층을 폭파할수 있었단 말인가?” 이때 때마침 몇몇 복제인들이 어미고래를 잡다가 배속에서 나진 네모난 금속판을 가지고 왔어요. “이걸 보세요. 금속판에 새긴 쪽지예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그 네모난 금속판을 가져다 부모와 함께 유심히 살펴보았어요. 쪽지에는 간단히 영문으로 이렇게 씌여져있었어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과 그의 부모는 명심하라. 당신들이 오존층을 파괴하였기에 넓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살던 우리 바다물고기들은 먹을것이 없어 무리로 멸종하게 되였느니라. 지구의 식물이고 동물이고 멸종되였기에 이제 몇천만년후에야 다시 재생할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너희들에게 살해된 지구의 모든 생령들을 대표해 너희들을 징벌하기 위하여 유럽제국에 유럽제국에 살아남은 몇몇 과학가들이 우리 몸에 장치한 핵로케트를 품고 만리바다도 멀다하지 않고 헤염쳐와서 남극주하늘에도 구멍을 냈다. 너희들은 이제껏 우리를 말도 못하는 우둔한 물고기로만 보면서 레이다로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공적으로 너희들을 징벌할수 있었느니라. 너희들에게 다시는 지구의 모든 생령을 잡아먹는 천추에 용납하지 못할 개짓을 하지 말것을 경고한다. 클론바우대통령의 생모 돌고래 2962년 11월 4일   “아하이구, 이젠 나를 낳으신 돌고래 어머니마저도 나를 징벌하는구만요.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늘에 오르자고 하여도 하늘의 적외선이 징벌하고 땅에 들어가자 하여도 들어갈 땅구멍이 없이 몽땅 바다물천지지.” 꼬마대통령은 온 지구의 얼음이 몽땅 녹아내려 망망한 바다에 잠겨 몇백평방메터밖에 남지 않은 남극주의 땅바닥을 쓸쓸히 바라보면서 가슴을 치며 통탄하였어요. 이때 유리박사가 그의 손을 잡아끌고 조용한 대통령부로 들어가 문을 꼭 닫았어요. “얘야, 인젠 이 지경이 되였으니 별수없구나. 우주비행선을 타고 우주공간에 날아올라가자.”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황급히 어머니께 “화성쪽으로 달아나면 어떨가요?” 하고 물었다. “안돼! 2045년에 지구인들은 벌써 거기에 우주비행선으로 우주공간소를 세웠다. 그리고 2150년부터 지구인들이 화성에 이사해가 살았다. 화성인들은 지구환경오염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의 후대이기때문에 지구오존층을 파괴한 우리 죄행을 진작 알고있다. 때문에 우리를 증오하지 환영하지 않을거다. 그들은 우리가 또 화성의 환경까지 파괴할가봐 우리를 없애버리려고 할게다.” “그럼 어델 가요?” “우린 태양계에서 발을 붙이고 살지 못해. 태양계를 떠나 드넓은 우주공간에 들어가야 할것 같아. ” 그때 옆에 서있던 아버지인 생물학가 맥슨박사도 머리를 끄덕였어요. “태양계를 벗어난후 우리 셋이 다 랭장고관속에 들에가 순식간에 랭동된단 말이다. 그러면 몇천만년후에 하늘구멍을 메운 그때에 혹시 누가 우리 우주비행선을 발견하고 랭동관속에서 우리 랭동시체를 꺼내 녹여주면 재생할수 있다. 그때면 누군가에 의해 지구의 오존층이 복구되여 또다시 푸르르고 아름다운 지구에서 살수 있겠는지 누가 알겠느냐?” “오- 그게 정말 묘수로구만요. 살았다, 살았어!” 이리하여 꼬마대통령 클론바우는 부모와 함께 가만히 하나밖에 없는 우주비행선에 올랐어요. 그런데 이를 눈치챈 클론바우복제인들이 새까맣게 날아와 덮쳐들더니 하늘로 날아오르는 우주비행선을 네팔로 꽉 붙잡고 놓지 않았어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이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퉁사발눈을 희번뜩거릴 때였어요. 어머니 유리박사가 앙칼진 목소리로 고함쳤어요. “빨리 금고주를 조종해라. 저 놈들을 몽땅 전멸시켜라!” 아버지 맥슨박사도 맞장구를 쳤어요. “우리 죄를 다 아는 저 놈들을 한놈이라도 살려둬서는 안돼! 만약 저 놈들의 입이 터지는 날에 몇천만년후에라도 누가 우주비행선 랭동관속에서 우리를 꺼내 녹여 재생시켜주겠느냐? 오히려 언 대가리를 박산낼것이다.”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음흉한 표정을 짓더니 원격조종기를 눌렀어요. 순간 다 잡아먹고 수십명밖에 남지 않은 클론바우복제인들이 몽땅 머리를 싸쥐고 바다아래로 곤두박혀 새하얀 물기둥을 일으켰어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기름때물이 출렁거리는 바다와 적외선의 폭사를 받아 재더미로 된 황페한 지구의 땅덩어리, 핵전쟁의 포화에 그을어 시꺼먼 산성비가 구질구질 내려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한 시꺼먼 지구의 땅덩어리, 시꺼먼 산성눈이 푸실푸실 내리고 망망한 바다에 포위된 손바닥만한 남극주를 바라보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며 우주비행선조종기에 손을 가져갔어요. 씽- 우주비행선이 벌겋게 불타는 하늘로 날아올랐어요. 그들은 먼저 어데 살곳이 없겠는가고 지구를 한고패 삥-삥- 돌아보았어요. 그런데 그들이 살던 아메리카대륙이나 유럽대륙이나 아시아, 아프리카, 대양주 대륙이나 어데라 없이 절반은 페유가 출렁거리는 바다물에 잠기였고 강렬한 적외선복사에 의해 모든 생물이 발을 붙일 곳이 없었고 삼림이고 들판이고 뭐고 전 지구의 인류문명이 몽땅 재더미로 되였던것이예요. 륙지에 내려가보니 사람들 그리고 범, 사자, 소, 돼지, 개 등 동물들이 무리로 죽어 백골이 데굴거리였고 시체가 썩은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어요. 실로 땅이 있어도 살 곳이 없었고 하늘이 있어도 날아다닐 하늘이 없게 되였던것이예요.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일행은 별수 없이 이번에는 달나라로 날아올라가 보았어요. 그런데 달에도 여기저기 원자탄과 중성자가 폭발한 구뎅이가 패웠고 달덩이도 절반이나 깨져 볼품이 없게 되였던것이예요. 하늘이 어찌나 크게 구멍이 났는지 별처럼 총총히 들어앉았던 달나라관측소의 과학일군들도 몽땅 사망되고 페허로 되였던것이예요. 실로 이젠 달나라에서도 살수 없게 되였어요. 절망을 느낀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용빼는 수가 없어 다시 우주비행선에 올라 하늘로 날아올라 지구를 내려다보았어요. 아메리카땅우에는 의연히 드높은 지구통일기념비와 지구통일녀신유리박사동상이 우뚝 솟아 번쩍이면서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어요.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폭파해버릴 여유도 핵무기도 없었어요. 그들은 별수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우주비행선안에 장치해놓은 랭동관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누운후 랭동관금속덮개를 꼬오옥 닫는수밖에 없었어요. 그 랭동관안벽에는 꼬마대통령 클론바우와 부모의 성명, 출생 년, 월, 일, 그리고 랭동관에 입관된 날자 2962년 11월 4일이 새겨져있었어요. 그리고 랭동관덮개에는 “후세인들은 절대로 오존층을 파괴하는 미친 자멸행위를 하지 말지어다.” 라는 그들의 유언이 또박또박 새겨져있었어요.    주: 이 중편과학환상소설은  "아동문학" 2006년에 련재됐음.         -저자 김장혁
9    욕망의 천지 표지 댓글:  조회:1826  추천:1  2013-12-23
욕망의 천지 표지
8    욕망의 천지(5) 댓글:  조회:1832  추천:1  2013-12-20
 제13장 지구촌 “영토평균재분배론” 개 밸처럼 생긴 조그마한 뱀 섬나라는 끝임 없는 지진과 화산폭발 그리고 태풍과 해일, 폭우와 홍수 등 자연재해로 인해 살길이 막막했어요. 우성을 따라 코치아로 달아난 하루꼬랑 야사시꼬랑 잘 살고 있다는 소문이 스즈끼로부터 시작해 한입 두입 건너 뱀 섬나라 사람들에게 급속하게 퍼져나갔어요. 그러자 뱀 섬나라 수많은 백성들은 분분히 지진과 화산폭발이 잦은 섬나라를 버리고 코치아로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뱀 섬나라 백성들은 집을 팔아치우고 관광 철에 관광하러 오는 척 하면서 왔다가 상업이나 공업 기업소를 차리겠다는 구실로 코치아에 남아 살면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어요. 코치아 출입국사무소에서는 관원들을 파견해 뱀 섬나라 백성들을 기한 내에 돌아가라고 동원했어요. 그러자 뱀 섬나라 상인들은 울상을 지으면서 “우리를 돌아가라는 건 지진과 화산폭발에 죽으러 가라는 거나 다름없죠. 우린 자연재해를 피해 바다를 건너온 난민이란 말이오. 난민으로 걷어 달란 말이오.”라고 했어요. 어떤 부자들은 “우리 기업인들을 영입하면 좀 좋아서?”라고 하면서 엉덩이를 지긋이 들이밀고 코치아에서 살려고 떼를 썼어요. 그래요. 뱀 섬나라 백성들은 지진과 화산폭발 그리고 태풍과 폭우가 적어 살기 좋은 코치아의 땅이 부러웠어요. 더구나 그 뒤에 무연히 펼쳐진 유라시아 대륙을 보기만 해도 군침이 날 지경이었어요. “어째 저 좋은 땅을 두고 이런 자연재해가 심한 뱀 섬나라에서 살아야 돼?” 뱀 섬나라의 민심은 황황하고 모두들 바다 건너 코치아의 땅을 바라볼 지경이었어요. 그때라고 생각했죠. 노바시 수상은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어요. “그렇지! 바로 이거야!” 그는 왕궁에 들어가 나까아멘 왕을 찾았어요. “대왕님, 수가 생겼습니다!” 노바시 수상은 자리에 앉기 바쁘게 왕을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어요. “또 무슨 고명한 수라도 생겼는가?” 노바시 수상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뭐라고 입을 떼려다가 괴물 조왕돌의 도청을 피하려고 윗 호주머니에서 필을 꺼내 종이에 뭔가 적었어요. 나까아멘은 자기 앞에 내민 종이에 적인 글을 보았어요. 지금처럼 백성들이 몽땅 코치아로 달아나면 우리 왕조도 도읍을 당장 연화시로 옮겨가야 할 처지입니다. 지금 물고기들이고 백성들이고 모두 코치아의 땅, 아니, 유라시아대륙을 열망합니다. 이 기회에 대륙으로 쳐들어가서 살면 어떻습니까? 나까아멘은 머리를 끄덕이다가 인차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어요. 그도 필을 들어 뭐라고 종이에 사각사각 써내려갔어요. 이윽고 나까아멘이 노바시에게 내민 종이에는 이런 말이 오리발로 헤집어 놓은 듯이 적혀있었어요. 어째? 10차 핵전쟁의 쓴 맛을 보지 못해서?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여들어 아카시아의 죤슨 악마를 죽이 듯 우릴 죽일 거야? 욕심을 부리다가 우리 조그마한 뱀 섬도 지켜내지 못하지 않을가? 노바시와 나까아멘은 필로 말을 주고받았어요. 대왕님, 그렇게 심약한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2차 대전 때보다 정황은 다릅니다. 우린 비록 자연재해를 많이 입었지만 암암리에 군사공업을 발전시키지 않았습니까? 통신위성을 발전시킨다는 명목 하에 탄도미사일을 발전시켜 코치아와 노르망디, 아카시아를 능가했습니다. 전번에 괴물 조왕돌이 왔을 때 화산 동굴 속의 731공정 공장을 폭파하는 척 했어요. 허나 우리는 지마화산 밑에 암암리에 규모가 엄청 큰 731공정을 경영해왔습니다. 2천여 년 동안 대륙을 쳐들어갈 칼을 갈아오면서 독가스, 독 바이러스, 독 곤충 등 대량살상무기가 얼마나 생산했지 모릅니다. 우리 해군은 남해에서 패배하는 척 하면서 코치아와 시탐 해전을 펼쳤지만 세계에서 최강입니다. 우리는 화산 동굴에 수많은 핵탄두와 중자탄두, 질자탄두를 숨겨두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우리는 수많은 지능로봇부대와 우주비행접시를 동굴 속에 숨겨 놓았습니다. 조왕돌이 개발한 로봇독수리 따위를 웃도는 진짜 사람 같은 로봇들입니다. 일단 명령만 내리면 코치아를 단숨에 정복할 수 있습니다. 허나 우린 내놓고 코치아를 침략할 순 없어! 그만 두라. 곤하구먼. 여기까지 쓰고 나서 나까아멘은 필을 놓고 하품을 하면서 소파 등받이에 잔등을 붙이고 눈을 딱 감아버렸어요. 더 보기 싫다는 의미였어요. 그때 가메다 국방부장이 들어왔어요. 그는 노바시 수상을 쏘아보면서 빈정거렸어요. “항상 외교전이요, 심리전이요 하면서 떠들던 수상께서 언제부터 전쟁을 불사하려고 했습니까? 이제야 제 정신이 드는 모양이구먼요.” 그러자 노바시는 제꺽 식지를 입에 대더니 “쉿!” 하고 필을 들어보였어요. 나까아멘은 실눈을 살며시 뜨고 노바시와 가메다를 훔쳐 보았어요. 그때 가메다가  종이에 이런 글을 써서 내 미는 것이었어요. 나까아멘은 그 종이를 받아 눈을 가슴츠레 뜨고 보았어요. 대왕님, 이 기회에 대륙으로 쳐들어가는 총체적 방향은 맞습니다. 수천 년 동안 원전과 핵실험으로 해 우리 이 땅은 모든 생물이 살기 힘들 지경으로 오염됐습니다. 우리는 백성들을 데리고 피난민으로 가장해가지고 코치아로 들어가 손을 씁시다. 허나 나까아멘 왕은 도리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몇 글씨 적었습니다. 영토를 확장하는 건 동의되네. 허나 더 묘한 방법이 없는가? 코치아와 힘을 합쳐 지구의 영토를 평균 분배하자고 해야 하지요. 나까아멘 왕은 실눈으로 노바시를 슬며시 바라보면서 쪽지를 썼어요. 코치아의 총명한 놈들이 이젠 우리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곧이듣지 않을 걸.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가메다의 비서가 들어왔어요. 동시에 난데없는 파리 한 마리가 천정에서 앵 날아와 쪽지 위로 앵앵 날아다녔어요. “에이, 이 똥파리! 왕궁에까지 날아왔어?” “예? 파리요? 허허허, 파리마저 살수 있다는 걸 보면. 에헴, 왕궁은 방사선에 노출되지 않은 게지요.” 나까아멘 왕은 실눈이 동그래 가메다를 흘겨보았어요. 그때 가메다 국방부장은 비서가 귀에 대고 쑤군거리는 소리를 듣더니 나까아멘을 보며 큰소리를 쳤어요. “언제까지 심리전 따위를 하려고 그럽니까? 아예 핵무기와 중자탄으로 코치아 놈들을 몽땅 쓰러버리고 대륙으로 쳐들어갑시다.” 나까아멘 왕은 도리머리를 흔들더니 종이와 필을 들어 가리키면서 가메다에게 넘겨주었어요. 난 대왕님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누군들 조상들이 세세대대로 수천 년 동안 살아온 뱀 섬나라를 떠나려고 하겠습니까? 우린 2천 년 전처럼 코치아를 우리 식민지로 만들어 그 놈들의 양곡과 광물자원을 빼앗아오고 인력을 노예처럼 부려 먹으면 됩니다. 왕궁은 의연히 뱀 섬에 둡시다. 그러자 나까아멘은 가메다에게 또 쪽지를 건넸어요. 어떤 수로? 만약 패전하면 이번엔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아예 우리 뱀 섬에 원자탄 우박을 내리 쏟아 부을 거란 말일세. 자칫하면 우리 뱀 섬나라는 지구의 지도에서 사라질 수도 있어. 근심하지 마십시오. 약소국가인 코치아도 영토 욕심이 있을 겁니다. 영토를 나눠 주겠다고 구슬리면 우리와 손을 잡을 겁니다. 나까아멘은 머리를 끄덕였어요. 그 날로 뱀 섬나라는 노바시 수상을 파견해 이른바 코치아와 손잡고 영토 확장을 하자고 제의해 왔어요. 허나 허수아 총리는 총리부에서 노바시 수상의 천천히 속심을 파보기로 했어요. “뱀 섬나라는 원래 영토가 적은데 어떤 이유로 영토를 나눠주겠단 말입니까?” 노바시 수상은 허수아 총리를 웃는 얼굴로 마주 보며 내심하게 설명했어요. “지금 지구촌의 영토는 아주 불균형적으로 분배됐습니다. 일부 초대강국은 인구가 얼마 되지 않지만 지구촌의 5분의 1이나 되는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제가 말을 하지 않아도 어느 나라라는 걸 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어떤 초대강국은 동으로 라틴아메리카로부터 아시아대륙을 건너 서쪽으로 유럽에까지 가로 타고 앉아 아주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생육연령의 여인들이 아이를 가지지 않아 인구는 2천여 년 전의 2억으로부터 이젠 5천만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 두 나라보다도 인구가 적지만 영토는 몇 십 배나 더 차지하고 산단 말입니다. 이게 도리에 맞습니까? 지구를 만들 때 어디 초대강국만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살라고 규정해 놓았습니까? 이건 불합리한 영토역사가 조성한 것입니다. 이제라도 영토를 인구에 따라 평균으로 재분배해야 합니다.” 그 말에 허수아 총리도 머리를 끄덕였어요. 그러자 노바시 수상은 계책이 들 것 같아 한 술 더 떴어요. “코치아에서도 숱한 영토를 남에게 빼앗겨 쓴 맛을 알리라 믿습니다. 코치아나 우리 뱀 섬나라나 우리 약소국이 아니오? 약소국은 무력이 약해 역사적으로 대국의 침략을 받고 쫓기다 못해 이렇게 섬에 쫓기어 와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약소국인 우리 뱀 섬나라나 코치아는 인구가 1억 내지 2억을 웃돕니다. 허나 우리 두 나라는 초대강국들의 몇 십 분의 1밖에 안 되는 영토를 겨우 차지하고 살고 있습니다. 또 어떤 나라는 전 세계 인구의 5분의 1, 인구가 20억이나 거의 되지만 영토는 인구가 2천만도 안 되는 초대강국의 4분의 1도 안됩니다. 이것이 그래 공평합니까?” “공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해결책이 어디 있습니까? 유엔에서도 해결책이 없는데.” 허수아 총리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어요. 노바시 수상은 격동돼 탁자를 탕 치더니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어요. “안 됩니다! 지구가 생겨나고 인류가 생존하기 시작해서부터 영토는 어느 초대강국의 것이라고 규정해놓았습니까?! 지구촌의 영토는 모든 사람들의 공동소유입니다. 우린 손잡고 시비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허수아 총리는 눈이 데꾼 해 흥분한 나머지 낯이 수수떡처럼 지지벌개진 노바시 수상을 쳐다보았어요. “지구의 영토를 인구 비례에 따라 평균재분배해 지구촌의 모든 백성들이 공동으로 경영해야 합니다.” “평균재분배?” 허수아는 뜻밖에도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이론은 그럴 듯한데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의하겠습니까? 특히 초대강국들이 자기 조상들이 피를 흘리면서 점령한 영토를 내놓으려고 하겠습니까? 그것도 이젠 수천 년 동안 세세대대로 조상들이 살아온 영토인데 말입니다.” 이때라고 생각한 노바시 수상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허수아 총리를 건너다보았어요. “그러기에 우리 약소국들이 연대해야 합니다. 우리 뱀 섬나라와 코치아 그리고 수많은 약소국가가 손을 잡기만 한다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외교수단으로 되지 않으면 무력으로라도 영토를 재분배해야 합니다. 제 말에 도리가 있지요?” 노바시 수상이 스리슬쩍 차 넘긴 공이 허수아 총리에게 날아왔어요. 허수아 총리도 이젠 세 살 먹은 어린이나 혈기왕성한 청년이 아니었어요. 그는 아주 노련하게 그 공을 받아 차 넘겼어요. “되지도 않을 소리입니다.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마십시오. 2천여 년 전의 교훈을 잊지 마십시오. 옛날에도 당신들의 조상들은 러시아 양키들의 손아귀에서 우리 코치아를 보위한다는 미명하에 우리나라에 기어들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건 무슨 소리입니까? 그때도 우리는 코치아 백성들을 잘 살게 철도를 부설해 주었고 수력발전소를 세워 전기를 보게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뱀 섬나라가 서유럽에서 배워온 선진과학기술과 문명을 당신들의 조상들에게 무상으로 전파해주었단 말입니다. 당신들은 우리가 부설한 철도를 근 100년 동안이나 잘 쓰지 않았습니까? 또 우리 강력한 군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봉폐됐던 청나라 대문을 열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그 넓은 만주에 들어가 벼농사도 지으면서 잘 살지 않았습니까?” “퉤!” 허수아 총리는 노바시 앞에 건 가래를 퉤 뱉더니 탁자를 치면서 일어나 고함쳤어요. “그따위 말로 나를 유혹하려는 겁니까? 당신들은 지구촌의 영토를 평균재분배하고 공동경영하자는 미명하에 또 우리 코치아 백성들을 당신들의 침략군에 편입시켜 대포 밥으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고 뭡니까!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코치아 인민들은 절대 당신들의 대륙침략전쟁에 놀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노바시는 더는 안 될 줄 알고 중절모를 찾아 쓰고 일어났어요. “후회할 거요. 이 좋은 기회에 대륙을 재분배하지 않고 언제 한단 말이요? 정녕 금별 대통령의 의도도 이러하십니까?” 허나 허수아 총리는 단연히 대답했어요. “그렇습니다. 나는 코치아 대통령과 인민을 대표해 당신과 담판하는 것입니다.” 노바시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던졌어요. “속담에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않는다고 어찌 친선동맹을 맺으러 온 사신한테 이렇게 무례하게 대한단 말입니까? 참 섭섭합니다.” “친선동맹? 흥!” 허수아는 콧방귀를 뀌었어요. “당신들은 일관적으로 웃는 얼굴에 칼을 품은 자들이었죠. 코치아를 없애려고 한쪽으로 난민들 속에 특수부대와 로봇부대 무장간첩들을 파견한 걸 모르는가 합니까?” “예?” 노바시 수상도 놀랐습니다. (귀신도 모르게 한 노릇인데 이 놈들이 벌써 알다니?) 허나 그는 인차 살인마수로서의 침착성을 회복하면서 자리에 되앉았어요. “건 무슨 소립니까? 근거 없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허수아 총리는 냉소했어요. “이런 적반하장이라고 원?! 코치아를 발판으로 대륙을 침략하려는 당신들의 야욕을 다 알고 있단 말이오. 더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욕심을 버리시오. 욕심이 과하면 화를 자청하게 된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노바시 수상도 만만히 돌아갈 수 없었어요. “나도 말해두지만 권하는 술이나 마실 게지 벌주를 마시려 들지 마시오!” 노바시는 코만 떼우고 뱀 섬나라에 돌아갔어요. 그는 귀국하자마자 곧추 왕궁으로 돌아갔어요. 그는 김빠진 공처럼 나까아멘 왕과 가메다 국방부장 앞에 물앉아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어요.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종이쪽지놀음을 했는데도 저 놈들이 어떻게 우리 계획을 다 알지?” 허나 나까아멘과 가메다는 서로 쳐다볼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요.  오늘도 노바시와 나까아멘의 앞에 파리 한마리가 앵앵 날아다녔어요. 바로 그 파리가 문제였어요. 조왕돌은 이번에는 미형파리로봇을 파견해 주야로 뱀 섬나라 왕궁을 감시하게 했던 것이었죠. 파리로봇은 나까아멘 등이 종이쪽지에 뭐라고 썼는가를 날아다니면서 몽땅 촬영해 조왕돌이 거느린 사이버총사령부에 보냈던 것이죠. 그런데 뱀 섬나라 국정원에서도 그저 파리거니 하고 깜깜 모르고 있었어요. 허허허. 조왕돌은 괴짜는 괴짜지요? 그 놈의 커다란 골에서는 별의별 괴상한 재간이 다  마구 쏟아져 나왔지요. 그런 줄도 모르고 이번에는 나까아멘은 수하들을 데리고 지하왕궁에 들어가 또 새로운 꿍꿍이를 꾸몄어요. 파리로봇은 제꺽 제일 뒤에서 지하내전에 들어가는 가메다의 잔등에 내려 앉아 매달려 들어갔어요. 가메다가 먼저 입을 열었어요. “국정원에서 장악하건대 우리 정보를 코치아에서 미형로봇으로 정찰한 것으로 들어났습니다. 이 지하에는 모든 전파를 차단했기에 구두로 의사를 교환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이 지하내전에도 로봇청찰기가 들어오면 큰 일이 아닌가!” 가메다는 근심하는 나까아멘 왕의 귀에 대고 쑤군거렸어요. “우리 정보를 수집하는 순간 로봇정찰기는 촬영하는 순간 자폭할 겁니다. 광선차단기로 인한 자폭시스템을 가동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조왕돌은 사이버총사령부에 앉아 궁리하다가 이번에는 파리로봇으로 정찰촬영만 해 저장해두게 했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가메다는 나까아멘에게 계책을 드렸어요. “코치아 놈들과 손을 잡을 필요 없습니다. 우리 핵탄두와 중자탄두, 질자탄두와 대량살상무기, 화학무기이면 그 놈들을 열다섯 번도 몽땅 쓸어 눕힐 수 있습니다. 우리는 코치아를 발판으로 대륙으로 쳐들어가 우리 지구촌 영토를 평균재분배하고 아시아 공동경영의 위업을 성사시킬 수 있습니다.” 노바시도 끼어들었습니다. “이제껏 우리는 심리전을 쓰지 않으면 무력을 썼습니다. 이번엔 심리전과 무력을 동시에 써서 그 놈들을 숨 돌릴 새도 없이 일망타진 합시다.” 허나 나까아멘은 왕답게 신중했어요. “그렇게 쉽겠는가? 자네들은 항상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열대여섯 살 밖에 안 되는 조왕돌이 아니면 클론바우 18세에게 놀아났단 말이오. 내가 어떻게 자네들을 믿고 이렇게 엄청 큰일을 벌린단 말이오. 괜히 우리 왕궁을 날려 보낼 짓을 하지 않겠는지 모르겠네. 난 소꼬 왕궁에서 이렇게 진수성찬을 먹고 미녀들을 데리고 놀면서 호화롭게 살 수 있지 않는가! 옛날 중국의 성인 공자어른께서 잘 가르쳤네. 중용지도야 말로 왕궁을 지키고 이 나라 백성들을 구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가메다는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어요. “이번엔 꼭 승산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뱀 섬나라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바다의 물고기마저 뱀 섬을 떠나 코치아 땅과 바다로 달아나고 있지 않습니까? 난민들과 물고기에 독성물질을 발라 코치아를 멸망시킵시다.” “?!” 나까아멘과 노바시는 그 그럴듯한 계책에 깜짝 놀랐어요. “이뿐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번에 공중으로부터 독가스를 코치아 놈들에게 씁시다. 이 독가스는 냄새도 없고 색깔도 없어 발견하지 못합니다. 허나 이 독가스는 살상력이 아주 강합니다. 순식간에 몇 백 킬로미터 안의 공기 중의 산소를 몽땅 흡수해 버리고 독성을 방출하기에 모든 생물이 끝장납니다. 이런 독가스를 코치아 수도 연화시에 떨어뜨리면 금별 대통령이고 조왕돌이고 다 잡아치울 수 있습니다.” “자네 말을 들어보면 어찌나 그럴듯한 지 방귀를 타고 서울로 가겠네. 잘 따져보게나. 조왕돌이란 놈이 교묘하게 숱한 복제기술로 금별 대통령을 복제해놓아서 어느 놈이 진짜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흥! 어떻게 잡아?!” 허나 가메다는 숙어들지 않았어요. “그 놈 금별이 열이 아니라 수백만 명이면 어쩝니까? 독가스탄을 조그만 코치아에 수십 개 떨어뜨리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그 엄청난 독성과 살상력은 코치아 놈들을 우리 뱀 섬나라에 무릎을 꿇게 할 것입니다.” 그제야 나까아멘 왕은 조금 머리를 끄덕이는 것이 어두운 지하내전의 촛불에 비쳤어요. 가메다는 신나서 계속 지껄여댔어요. “또 있습니다. 인공 비를 이용해 코치아에 독성물질을 투하하는 방법입니다. 지금 코치아에는 가물이 들어 농작물이 말라 죽고 지어 가축들과 사람들도 무더위에 푹푹 쓰러지고 있습니다.” “가만! 여기서 그만 말합시다. 혹시 코치아 놈들이 도청이라도 하면 어쩝니까?” 나까아멘 왕은 노바시의 말에 개화장을 짚고 일어났어요. 파리로봇은 이번에는 그들을 앞질러 동굴 밖으로 날아나갔어요. 그들 셋은 그런 줄도 모르고 이번에는 왕궁 화원에 나가 거닐면서 이야기 했어요. 파리로봇은 왕궁으로 날아 들어갔어요. 대신 이번에는 조왕돌이 파견한 꽃나비로봇이 하늘하늘 춤을 추면서 화원의 꽃송이 위에 나타났어요. 꽃나비로봇은 뱀 섬나라 왕과 수상 그리고 국방부장의 밀담을 일일이 촬영해 조왕돌 총사령관에게 보냈어요. 허나 무슨 기미라도 차렸는지 그들 셋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걷다가 이번에는 왕궁 마당에 있는 못에 가더니 잠수함을 타고 바다로 나가버렸어요. 그런데 이번에도 잠수함 옆으로 철갑상어가 나타나는가 하면 금붕어가 나타나 바다 물  속에서 하늘하늘 춤을 추는 것이 아니겠어요. 건 모두 조왕돌 총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금붕어 소장이 물고기정찰로봇을 내보낸 것이었어요. 진짜 바람벽에도 귀가 있다고 뱀 섬나라에서 아무리 보안하려고 애써도 총명 영리한 코치아 로봇간첩들의 눈과 귀를 피할 방법이 없었어요. 잠수함이 상대적으로 정보누출이 될 위험이 적다고 느낀 그들 셋은 왕의 전용잠수함에서 밀담을 계속 했어요. 한참 후 나까아멘 왕은 성급해 명령했어요. “됐네. 들어보니 그럴 듯한데 즉시 코치아를 공격하게! 이번엔 꼭 성공해야 하네.” “옛!” 어느 날 코치아 백성들이 가물어 나무 그늘 밑에서 하늘을 쳐다보면서 한탄 할 때었어요. 쿵! 쿵!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맑은 하늘에 난데없는 먹장구름이 피어오르더니 이쪽으로 덮쳐왔어요. 당장 소낙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어요. “야, 어쩌다가 소낙비가 오는구나!” “하늘이 우리 농사꾼들을 돕는구나!” 농사꾼들을 기뻐 어쩔 줄 모르면서 트랙터를 몰고 먹장구름이 덮쳐오는 쪽으로 지어 달려가기까지 했어요. 저쪽 산기슭에서 벌써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저게 뭐예요. 아차, 소낙비를 맞은 곳의 곡식과 소와 사람들이 삼대 쓰러지듯 했어요. 뱀 섬나라 악마들이 코치아 산골에까지 독가스탄을 떨어뜨렸던 것이었어요.  쿵! 쿵! 갑자기 그리 멀지 않은 지상에서 미사일이 날아 올라가 작렬했어요. 미사일에 맞은 먹장구름은 산산이 박살나버리더니 흩날려 가버리지 않겠어요. 조왕돌이 지휘하는 기동미사일부대에서 뱀 섬나라 악마들이 독가스탄을 살포할 것을 미리 짐작하고 면밀히 감시하며 대기했어요. 그들은 연화시 교외에서 작렬하려고 몰려드는 먹장구름속의 독가스탄이 분열되기 전에 까부셔버렸던 것이죠. 뱀 섬나라의 이 독가스탄은 인공 비를 내리기 위한 먹장구름으로 위장했기에 발견하기 힘들었어요. 허나 독가스탄의 분열이 오래 걸려 이번에도 예정살상효과를 내지 못했던 것이죠. 그 모든 것을 정찰 위성으로 감시하던 가메다는 악에 받쳐 돼지 멱따는 소리를 쳤어요. “연화시에 직방 독가스탄을 터뜨려라!” 씽씽- 이번에는 우주비행선으로 코치아 상공에 독가스탄을 내리 떨어뜨렸어요. 허나 모든 것을 예견한 금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클론바우 18세는 클론바우 부대를 이끌고 하늘에 날아 올라가 코치아 상공에 날아 내리는 독가스탄을 받아 안고 훨훨 날아갔어요. 그런데 그들은 금별 대통령이 지시한 남해 상공으로 날아가지 않고 방향을 바꾸어 뱀 섬나라 상공으로 날아갔어요. 가메다는 깜짝 놀랐어요. “아니, 저 놈 괴물들이 어찌?!” 노바시는 옆에서 발까지 동동 굴렀어요. “아이고! 망했어, 망해! 이번에도 돌을 들어 자기 발등을 깠구나!” 나까아멘 왕은 울상을 지었어요. “아이고, 남 잡이가 제 잡이로 됐구먼!” 그러나 가메다는 군인답게 침착성을 회복했어요. “미사일을 쏘라!” 뱀 섬나라의 미사일부대에서는 괴물 클론바우들을 겨누어 요격미사일을 발사했어요. 허나 클론바우들은 새처럼 미사일들을 이리 저리 피하면서 뱀 섬나라 왕궁에 덮쳐갔어요. “아이고, 저 독가스탄을 어떻게 해?!” 이때 하늘에서 클론바우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쩌렁쩌렁 고함쳤어요. “뱀 섬나라 악마들아, 다시 우리 코치아를 넘보기만 해봐라!” 클론바우들은 독가스탄을 안고 왕궁 마당에 날아 내렸어요. “앗!” 나까아멘 왕과 노바시 수상은 내전을 달려 들어가 왕후의 침대 밑에 기어들어가 머리를 틀어박고 숨어버렸어요. “하하하!” 클론바우는 항아리 배를 끌어안고 폭소를 터뜨렸어요. “이 독가스탄은 너희들이 것이니 주인에게 돌려주겠다.” 그 말에 왕궁의 미녀시종들은 죽어가는 비명을 지르면서 대전 안으로 도망쳤어요. 허나 그들이 기둥 밑에 납작 엎드려 머리를 감싸 안고 살며시 눈을 떠보았어요. 글쎄 클론바우들은 독가스탄을 터뜨리지도 않고 물독처럼 마당에 놓아두고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고 있었어요. 클론바우 18세는 쥐새끼들처럼 놀라 뛰어 다니는 왕궁의 놈들을 내려다보고 하늘이 쩌렁쩌렁 울리게 을러멨어요. “이 놈들아, 네놈들을 죽이려면 열다섯 번도 죽였다. 허나 우리 인자하신 금별 대통령께서 네 놈들을 살려 두는 것이니까. 침략의 야욕을 버리고 더는 코치아의 어진  백성들을 괴롭히지 마라. 안 그러면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다!” 가메다는 머리를 숙이고 벌벌 떨었어요. 클론바우 18세 등이 하늘로 높이 날아 올라가 가물가물 사라질 무렵에야 가메다는 제정신이 들어 황급히 명령했어요. “저 놈들에게 미사일을 쏘라!” 허나 미사일은 대붕처럼 날아예는 클론바우들을 맞히지 못했어요. 가메다는 닭 쫓던 개 지붕을 쳐다는 격으로 하늘을 멍해 쳐다보았어요. 이윽고 정신이 펄쩍 든 그는 황망히 수하들을 시켜 독가스탄을 왕궁에서 실어 내가느라고 소란스러워졌어요. 한참 후 동해안에서 요란한 폭음이 들렸어요. 꽝! 꽝! 꽝! 파도치는 바다에서 날아예던 애매한 갈매기 떼들이 독가스를 맡고 맥없이 물에 툭툭 떨어졌어요.     제14장 마그마의 여파  희읍스름한 하늘에는 거위 털 같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어요. 금별 대통령은 적와대 창문가에 서서 옛날보다 퍽 맑아진 하늘에서 산성 눈이 덜 내리는 것을 내다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어요. 어느 날, 금별 대통령은 각료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서해바다에 있는 수중집무실로 나가 국무회의를 열었어요. 조왕돌 최고사령관이 먼저 입을 열었어요. “당면 에너지 고갈문제가 코치아와 인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우리 한산의 지진대 밑에서 부글부글 끓어 번지는 마그마를 이용해 발전할 수 없을까 연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자 일제히 뚱뚱한 조왕돌에게 눈길이 쏠렸어요. 말단의 커다란 소파에 앉은 조왕돌은 이젠 정상인으로 돌아왔어요. 훤칠한 키에 과학연구에 몰두하면서 머리를 많이 써서 그런지 아버지를 닮은 남북골이 아주 커진 것 같았어요. 운동을 부지런히 하더니 이젠 제법 속옷 밑으로 울뚝불뚝한 근육이 내비쳤어요. 금별 대통령은 대견스레 아들을 바라보았어요.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라.” 조왕돌은 뚱뚱한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입을 열었어요. “지금 온실가스가 대량 방출되면서 지구온난화가 극심합니다. 제일 피해가 심한 곳은 북극의 북극곰입니다. 노르웨이 해양 동물연구소의 최신과학정보에 의하면 북극의 절반이나 넘는 얼음이 녹아 숱한 북극곰들이 잡아먹을 물개와 바다사자가 생존하지 않아 살아가기 힘들다고 합니다. 이제 북극곰이 북극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인류에도 생존 경종을 주는 것입니다.” “또, 또 동문서답이군. 해양 동물에 대한 것은 금붕어 소장이나 림해자 부장에게 넘기고 새 에너지 개발을 말하게나.” 금별 대통령은 눈까지 흘겼어요. 조왕돌은 계속 말했어요. “북극의 얼음이 녹은 현상은 우리 인류에게 좋은 일로도 됩니다. 지금 뱀 섬나라에서 땅이 없어 지구촌의 영토를 평균분배하자고 하는데 북극에 이사해 가 살게 하면 어떨까요?” 조왕돌은 들었거니 말거니 계속 뒷말을 이었어요. “이전에도 제가 말했지만요. 북극 지역은 개발하지 않은 처녀지로서 에너지자원이 풍부한 복지예요. 우리 코치아는 북빙양의 얼음가스와 원유를 개발할 수 있죠. 허나 운송이 문제입니다. 송유관을 늘이고 유라시아대륙을 잇는 고속철도를 놓는다 해도 뱀 섬나라 악마들 같은 놈들이 득실거리는 세월에 우리 코치아로 에너지가 도착하기 전에 다 채갈 것이 아닌가요?” 도청을 방지하려고 금별 대통령은 수중대통령 집무실을 떠나 이번에는 잠수함에 올랐어요. 금별 대통령은 잠수함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어요. “중심의제로 한산 화산의 마그마로 발전할 데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라.” 조왕돌은 여러 각료들을 둘러보면서 말했어요. “제가 요즘 엉뚱한 궁리를 했습니다. 저 한산 지진대 금이 실린 곳에서 드문드문 뿜겨 나오는 마그마로 발전하면 안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말에 모두들 눈이 동그래졌어요. “무슨 망상인가? 마그마를 잘 못 건드렸다가 거대한 화산폭발이라도 유발하면 어쩌려고? 뱀 섬나라에서 핵실험을 속이려고 활화산에 금이 선 곳에 지하핵실험을 해서 자꾸 지진과 화산이 폭발하지 않는가!” 차슬기 국방부장은 연신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조왕돌은 신심에 차 말했어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보십시오. 주전자에서 뿜겨 나오는 쌕 김을 보고 증기터빈을 발명해 인류는 기차를 타고 달아 다니게 되지 않았습니까? 고래를 보고 잠수함을 발견했고 새를 보고 비행기를 제조하지 않았습니까? 우린 하늘의 태양에너지발전과 바다의 수력발전, 풍력발전을 모두 했습니다. 이젠 마그마발전 새 시대를 열어나가야 합니다.” 허수아 총리도 잔등을 의자등받이에서 떼면서 귀가 솔깃해 했어요. “좀 구체적으로 말해라.” 조왕돌은 설계도를 꺼내놓고 말했어요. “이건 저의 초보적인 방안입니다. 우리가 사는 둥근 지구의 땅 속에는 끓어 번지는 마그마라는 무궁무진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특수기계로 이 마그마의 열을 이용해 발전한다면 지구촌은 전기를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모두 입을 딱 벌리고 조왕돌을 쳐다보았어요. “관건은 마그마에 녹지 않는 도관을 꽂아 넣는 작업입니다.” “그러다가 마그마가 무한정하게 뿜겨 나오면 어쩌지? 우리 코치아는 마그마에 뒤덮이게 될게 아닌가?” “우리는 땅 속의 물을 펌프로 뽑아 마시듯이 도관으로 뿜겨 오르는 마그마를 딱 틀어막아 통제할 수 있는 설비를 만들어내면 됩니다. 지진대에 실린 금에 도관을 박고 마그마에서 방출하는 열만 이용해 증기터빈을 돌려 발전하기에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능히 마그마라는 이 마왕을 길들여 우리를 위해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생산하게 할 수 있습니다.” “건 정말 새로운 과학발명이구먼.” 허수아 총리가 머리를 끄덕였어요. 클론바우는 슬그머니 질투가 나서 툴툴거렸어요. “무슨 망상과대증인지 모르겠구먼. 부질없는 마그마 장난을 하다가 지구라도 쪼개 놓으면 어쩐단 말이오? 지진대에 실린 금에 도관을 박다가 화산이 폭발하면 어쩌자고?” 그러나 그는 금붕어 할머니가 쏘아보는 눈길을 맞고 독수리 부리 같은 입을 다물어버렸어요. 금별 대통령은 허수아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을 둘러보면서 의향을 물었어요. “마그마발전항목을 채택해도 되겠습니까?” 허수아 총리는 제꺽 “채택해서 국회에 교부합시다.”라고 했어요. 모두들 서로 눈치를 보다가 이구동성으로 동의했어요. 말단에 앉은 금붕어 소장은 옆에 앉은 조카 조왕돌의 손을 꼭 잡아 주었어요. 이튿날부터 조왕돌은 조왕돌과학기술연구소의 기술부대와 클론바우 18세가 이끄는 클론바우 특수부대를 이끌고 마그마발전소 건설에 달라붙었어요. 그들은 시추기를 싣고 먼저 한산 기슭에 이르렀어요. 한산은 지진대 금이 선 곳에 웅크리고 앉아 있어 산꼭대기에서 드문드문 화산이 폭발하면서 시뻘건 용암이 마구 분출됐어요. 어지간한 담력에는 마그마가 풍풍 분출돼 분출구 옆에 용암이 마구 튕기는 화산에 접근해 마그마로 발전할 엄두도 내지 못할 거 아닌가요? 허나 클론바우 18세는 조왕돌을 질투하면서도 그의 엉뚱한 궁리가 너무나도 신기하고 엉뚱해 한번 조왕돌을 따라 인류를 위해 기적을 쌓고 싶어 따라 나섰어요. 물론 그들의 가죽은 방사선이나 용암의 뜨거운 열에도 일반 사람들의 피부보다 더  견딜 수 있기에 마음이 든든한 것도 있었지요. 클론바우 18세는 조왕돌의 설계에 따라 먼저 용암이 마구 뿜겨 오르는 지진대 금이 선 곳에 시추를 시작했어요. 꽝! 갑자기 요란한 굉음과 함께 화산이 폭발하면서 시추 탑이 무너지고 용암이 하늘을 찌를 듯이 튕겨 올랐어요. 시추를 하던 클론바우 특수요원들은 하늘로 튕겨 올랐지만요. 날개가 있어 놀란 닭들처럼 하늘 공중에서 푸다닥거리다가 화산재가 쌓인 둔덕에 살짝살짝 날아 내렸어요. 허나 고생스레 시추한 구멍의 도관은 끊어지고 시추 탑은 넘어졌어요. 클론바우 18세는 사발 눈을 부릅뜨고 조왕돌을 쏘아보았어요. “이 한산 화산에서 대체 전기를 낼 수 있다고?! 흥!” 그가 콧방귀를 뀌는 바람에 화산재가 조왕돌을 뒤덮어버렸어요. 조왕돌은 화산재를 툭툭 털어버리면서 화산재가루가 뒤덮인 잿빛얼굴에 허연 이를 드러내며 내심하게 말했어요. “클론바우야, 좀 내심하게 기다려. 너희들이 도관만 꽂으면 인차 발전할 수 있어.” 클론바우 18세는 기다란 코끼리코를 슬슬 만지면서 조왕돌을 쏘아보다가 희죽이 웃었어요. “그럼 우리 해보지!” 클론바우 18세는 조왕돌의 조그마한 손바닥에 갈퀴 같은 손바닥을 탁 치더니 시추를 계속 했어요. 특수부대 클론바우 요원들은 넘어진 시추 탑을 다시 세우고 시추를 계속 했어요. 이번에는 성공하여 펑 뚫린 구멍에 마그마에 끝내 특수도관을 박아 넣었어요. 뒤이어 그 도관에 물 펌프를 증기 터빈까지 장치해 놓았어요. 조왕돌은 남북 골 뒷덜미를 슬슬 만지더니 힘 있게 명령했어요. “발전!” 순간 기적이 일어났어요. 마그마에서 풍겨 오른 열에 물 펌프가 물을 뿜자 쌕 김이 풍겨 나오면서 증기터빈을 힘 있게 돌렸어요. 시공현장에 걸어놓은 전등알이 환하게 빛났어요. “성공이다!” 정말 클론바우 18세가 이끄는 특수부대 용원들이 아니었으면 일반인들이야 어찌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마그마의 고온 속에서 시추를 할 수 있었겠어요? 조왕돌과 클론바우 18세는 조왕돌 부대와 클론바우 특수부대를 이끌어 한산에 숱한 도관을 내리 꽂고 발전소를 차려놓았어요. 이 새 기적은 삽시에 지구촌에 뉴스로 보도됐어요. 노바시와 가메다 등은 나까아멘 왕과 함께 왕궁 내전에서 간첩들이 보내오는 동영상을 처음부터 한산에 시추하는 것을 살펴보면서도 도리머리를 가로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정신 나간 놈들, 이젠 화산까지 건드려 전기를 내?” “자멸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어요. 코치아에서는 마그마로 발전하는데 성공했던 것이죠. 노바시 수상은 나까아멘에게 말했어요. “저 놈들이 마그마발전을 발명했지만 혜택은 아마 코치아보다 우리 뱀 섬나라가 더 볼 것입니다.” 나까아멘은 노바시를 쓴 눈길로 흘겨보았어요. “건 무슨 소리인가?” “우리나라에는 활화산이 270여개나 있습니다. 우린 저 놈들의 새 발명을 이용해 화산의 풍부한 마그마와 지열을 이용해 발전합시다.” “오~” 나까아멘은 그제야 해시시 해졌어요. “거 정말 남의 불에 게를 구워 먹는 격이군 그려. 헌데 어째 우리 뱀 섬나라는 발명할 줄은 잘 모르고 전문 남의 걸 개작할 줄만 아는지 몰라. 창조 형 인재가 적은 게 문제야. 정말 승리의 비애를 느낄 일이야.” 가메다가 끼어들었어요. “창조할 줄 모르면 개작할 줄이라도 알아야지.” 그는 건 가래를 떼더니 한술 더 떴어요. 그는 나까아멘의 귀에 대고 쑤군거리었어요. “저 놈들이 화산에 박은 도관에 핵탄두를 폭발시켜 아예 코치아를 마그마로 불바다를 만들어 버립시다.” “오? 그래?” 나까아멘은 속이 시원해 했어요. 허나 뒷근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자넨 항상 괴상한 암수를 짜냈지만 번마다 참패를 당했네. 혹시 실패하면 우린 지구촌에 석자 몸뚱이를 감출 곳도 없을 거야.” 허나 가메다는 사무라이 본성을 드러냈어요. “아주 간단합니다. 도관에 똥을 싸 넣으면 됩니다.” 노바시도 선비답지 않게 사무라이로 탈바꿈해 이를 갈았어요. “이거 어디 악이 나 살겠어요. 고기도 죽고 그물도 망가지라지.” 가메다는 그날로 암암리에 특수요원들을 지하실에 불러 모아 이리이리 하라고 포치했어요. “코치아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우리 대륙점령과 대동아공동경영의 위대한 꿈을 실현할 수 없다.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겠는가?” “옛! 목숨 바쳐 대왕님의 원대한 이상을 실현하겠습니다!” 특수요원 대장 나까소네가 자기 무리를 대표해 힘차게 결심했어요. “좋아. 오늘 저기 지하실에서 위안부들을 실컷 데리고 놀게!” 특수요원들은 그 말뜻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어요. 이제 코치아 한산으로 가면 생사를 가리기 힘들게 빤했어요. 지하실에서는 여인들의 울음소리와 비명소리에 신음소리가 어지러이 섞여 들렸어요.  이튿날 밤에 뱀 섬나라의 특수요원들은 밤도와 초음속 비행기를 타고 레이더 감시를 피해 바다수면을 스칠 듯이 저공비행해 코치아 한산 상공으로 날아갔어요. 나까소네 등이 핵폭탄을 잔등에 지고 한산에 날아 내릴 때었어요. 진작 기다린 듯이 밤하늘에 괴상한 클론바우들이 날아왔어요. “이 독종 놈들, 서라!” 여기 저기 구름 속에서 괴물들이 날아 나오면서 고함쳤어요. 모두 클론바우들만은 아니었어요. 조왕돌 총사령관이 파견한 독수리로봇들과 갈매기로봇 그리고 슈퍼맨로봇들도 분기식비행기처럼 날아왔어요. 그들은 낙하산을 타고 날아 내리는 나까소네 일당들을 하나하나 붙잡아 그물 망태기에 처넣었어요. 허나 나까소네 대장은 죽음을 각오하고 목청을 가다듬어 고함쳤어요. “위대한 시각이 닥쳐왔다. 핵폭탄을 폭발하라!” 그는 낙하산 줄을 뚝 끊어버리고 한산 발전소를 향해 날아 내려갔어요. 뒤이어 우레와 같은 폭음이 한산이 날아나게 여기저기에서 울렸어요. 꽈르릉 꽝꽝! 시추 탑과 발전소가 무너졌어요. 순간 금이 실린 화산 지진대에 금이 나면서 마그마가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어요. 용암이 골짜기를 따라 마구 흘러넘쳤어요. 용암이 쓸고 내려간 골짜기의 마을과 농지는 초토화됐어요. 텔레비전으로 그 재해현실을 이를 갈며 보던 나까아멘과 가메다는 통쾌하게 웃었어요. “하하하. 꼴 보기 좋다!” “허허허. 이번엔 성공했구나.” 허나 악마들은 너무 일찍이 기뻐했어요. 체포된 특수요원들의 잔등에 졌던 핵폭탄은 초음속비행기에 실리어 뱀 섬나라로 날아올 줄이야! “아이고, 저걸 어쩌나!” “저 놈들이 자살 핵폭탄을 터치지 않고 왜 지고 우리 쪽으로 날아와?! 엉?!” 나까아멘과 노바시는 고양이 낙태한 상을 지으면서 지하실 끝 쪽으로 깊숙이 도망쳤어요. 가메다만은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면서 고함쳤어요. “우주비행접시들은 즉시 핵폭탄을 진 특수요원들을 동해바다 상공에서 처치하라!” 뱀 섬나라 우주 비행선들이 즉시 밤하늘로 날아올랐어요. 허나 뒷근심이 풀리지 않은 가메다는 또 두 번째 명령을 내렸어요. “미사일부대는 특수요원들이 탄 초음속 비행기를 미사일방어시스템으로 요격하라!” 쉭! 쉭! 미사일이 불꼬리를 달고 동해 바다 밤하늘로 날아올라갔어요. 뒤이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일부 초음속 비행기는 동해 바다 상공에서 요격돼 폭발됐어요. 숱한 파편들이 바다에 떨어지면서 시허연 물갈퀴를 일구었어요. 허나 귀신에게 홀린 듯이 일부 초음속비행기는 특수요원들을 싣고 계속 뱀 섬나라 상공으로 날아왔어요. “저 놈들이! 에끼, 이 놈들아, 기수를 돌려 코치아 상공에 날아가 핵폭탄을 폭발시켜!” 허나 들었는지 마는지 요격당하고 나머지 초음속 비행기는 계속 밤하늘을 가르면서 뱀 섬나라 쪽으로 날아갔어요. 우주비행접시들이 초음속 비행기를 막아 더러 요격했지요. 하지만 딱 한 대가 화산 꼭대기에 날아와 폭발했어요. 꽈르릉 꽝! 처음에는 화산 꼭대기에서 핵폭탄이 폭발하면서 버섯구름을 일으켰어요. 강렬한 방사선이 비치며 휩쓸린 산림과 수도 소꼬를 비롯한 도시들은 대뜸 잿더미로 돼버렸어요. 거대한 진동은 나까아멘 왕과 노바시 수상이 숨은 왕궁 지하실에서도 발밑의 땅바닥이 움찔거릴 지경이었어요. “아이고, 또 망했다, 망했어!” 노바시가 비명을 질렀어요. “저 놈 가메다 덕에 원폭피해를 단단히 입는구나! 우리 왕궁이 끝장났겠구먼!” 뒤이어 화산이 강렬하게 폭발했어요. 원자탄이 폭발하면서 원래 금이 실렸던 화산이 진동을 받아 노했던 것이었어요. 여기저기에서 마그마가 하늘 높이 튕겨 올랐어요. 시뻘건 용암이 사나운 파도를 치면서 뱀 섬나라의 개 밸 같은 땅덩어리를 휩쓸었어요. 원래 한산 화산으로 날아가던 일부 초음속 비행기에 앉은 특수요원들은 조왕돌이 쏘아올린 전자 교란 탄에 맞아 기억력과 공간방향 감별능력을 상실했어요. 그리하여 한산 화산으로 날아간다는 것이 뱀 섬나라 지마화산으로 날아와 핵탄두를 폭발시켰던 것이죠. 허허허. 세상에 과학이 발전하면 이런 일도 있다니까요. 며칠 후 코치아에서는 남쪽 섬 한산의 핵 오염과 마그마발전소 사태를 대처할 긴급회의를 열었어요. 이번 회의는 적와대가 아니라 한산 기슭에서 열었어요. 각료들은 금별 대통령과 함께 방독, 방 세슘 면구와 옷을 입고 회의에 참가했어요. 핵 피폭을 받은 사화산인 한산이 수천 년 잠을 자다가 다시 활화산으로 탈바꿈해 시뻘건 마그마가 하늘 높이 튕겨 오르고 산기슭으로 시뻘건 용암이 쇳물처럼 흘러넘치고 있었어요. 사처에서 연기가 그물그물 피어오르고 화산재가 마구 떨어져 아주 위험했어요. 먼저 조왕돌 박사의 의견을 들어보았어요. 조왕돌은 마이크를 들고 웃으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어요. “화산 폭발은 일대 재난입니다. 그러나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산 화산분출구에 커다란 이동식 가마덮개를 씌워놓고 마그마의 열로 거대한 발전소를 세울 수 있습니다.” 클론바우 18세도 엄지를 내둘렀어요. “조왕돌 삼촌은 괴짜요, 천재적인 대과학자요!” 이젠 그도 조왕돌을 탄복했어요. 모든 각료들도 머리를 끄덕였어요. 허나 허수아 총리만은 양미간을 찌푸리고 뭔가 생각하고 있었어요. 한참 후 그는 머리를 천천히 들고 의문을 제기했어요. “이 큰 화산 분출구에 어떻게 엄청 큰 가마덮개를 씌우겠습니까?” 그러자 클론바우가 가슴을 탕탕 치면서 장담했어요. “우리 클론바우 부대 요원들이 헬기를 몰고 분출구 위에 특제 쇠 덮개를 덮어버리겠습니다.” 조왕돌도 신심에 찬 말을 했어요.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 통 덮개를 만들지 않고 축구장 지붕을 만들듯이 숱한 덮개를 만들어 각을 맞출 것입니다.” 그제야 허수아 총리도 머리를 끄덕였어요. 이튿날부터 조왕돌과 클론바우 18세는 클론바우 18세 1호로부터 150호까지 지도해 헬기로 가마 덮개로 화산분출구를 덮기에 분주했어요. 정말 클론바우들과 같은 살가죽이니까 방사선오염과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용암의 몇 천도 되는 고열에서도 견딜 수 있었죠. 허나 사고도 종종 일어났어요. 헬기를 몰고 가던 클론바우 1호가 글쎄 하늘 높이 튕겨 오르는 용암에 맞아 헬기 날개가 부러지는 바람에 화산 분출구에 떨어졌어요. 클론바우는 황급히 헬기에서 뛰어내려 몸에 달린 날개로 푸다닥 하늘로 날아올라 겨우 구명했어요. 적지 않은 클론바우들은 부글거리는 용암에 피부가 기름이 번지르르하게 데고 있었어요. 조왕돌은 보다 못해 자기와 똑같이 생긴 복제 조왕돌들을 돌아보았어요. 몽땅 조왕돌과 생김새는 같았지만 덩치가 좀 작을 뿐이었어요. “이젠 너희들이 저 일을 해야 하겠다.” 그러자 클론바우 18세가 눈을 흘겼어요. “정신 나갔어요? 저 부글부글 끓는 마그마에 빠져 죽으려고 환장했어요?!” “근심 말라.” 허나 뚱뚱하고 훤칠한 조왕돌은 조왕돌 1호를 돌아보면서 “네가 로봇부대를 이끌고 덮개를 막아라!”라고 당부했어요. “예! 최고사령관!” 조왕돌 1호가 군례를 척 붙이고 손을 홱 젓자 조왕돌 2호부터 150호까지 몽땅 허리에서 원격조종기를 꺼내들었어요. 저게 뭐야? 숱한 독수리로봇들과 인형로봇들이 산 위에 날아오더니 클론바우들의 헬기를 빼앗아 몰고 덮개 조각들을 싣고 화산분출구로 달아갔어요. 화산분출구에서 용암이 마구 튕겨 올랐지만요. 그들의 앞길은 막을 수 없었어요. 클론바우들과 조왕돌들은 새가 둥지를 틀듯이 헬기에 덮개 조각을 실어 하나하나 맞춰나갔어요. 그런데 화산이 또 폭발하면서 거대한 덮개를 뭉청 끊어 날려 보냈어요. 허나 조왕돌의 총명한 재질로 해 덮개는 하늘로 날아올라 갔다가도 떨어지면서 되 붙었어요. 전자파로 고강도 자석의 인력으로 해 되 붙은 것이었어요. 이번에는 인형로봇들이 모는 헬기에 산소공급이 모자라 추락사고도 일어났어요. 허나 조왕돌들은 로봇부대를 지휘해 화산분출구를 막는 공사를 멈추지 않았어요.  한 달도 안 돼 화산분출구를 막고 숱한 증기터빈을 가설하고 두 달 만에 발전하기 시작했어요. 화산이 폭발해도 덮개로 꽉 막아 놓았기에 화산재와 용암이 마구 날리지 않아 화산 주변 생태환경보호에도 유리했어요. 화산이 폭발하면 그 거대한 덮개는 화산폭발과 함께 일정하게 훌쩍 뛰었다가도 제 자리에 딱 들어가 앉으면서 태연자약한 자세로 앉아 있었어요. 화산 폭발을 미리 예견하면 덮개를 조절해 거대한 우주 비행선처럼 슬쩍 하늘로 솟으면서 완충역할을 했지요. 내릴 때에는 거대한 우주비행선이 내리는 것처럼 지상 쪽으로 기체를 분무하면서 가볍게 내려앉곤 했던 것이죠. 마그마를 덮는 커다란 덮개는 내화벽돌과 합금 등 내화특수재료로 만들었어요. 하기에 마그마가 튕겨 올라와도 덮개에 막혀 다시 화산분출구에 떨어졌어요. 일부 덮개에 붙은 마그마는 덮개에 단 긁개로 긁어 부글부글 긇는 마그마에 떨어뜨려 버렸어요. 그러니 크게 근심할 필요 없었어요. 한산 화산발전소에서 아무런 지장이 없이 코치아의 절반 땅에 공급할 전기를  공급할 수 있게 됐어요. 하여 이전에 인류와 지구 생태환경에 악영향만 주던 화산의 마그마는 길들여져 이젠 인류에게 복을 주게 됐어요. 이거야 말로 꿩 먹고 알 먹는 일거양득이 아니겠어요. 나까아멘 왕과 노바시 수상은 지하실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었어요. 며칠 후에야 제 정신을 차린 그들이 바깥에 나와 보니까요. 왕궁은 재 가루도 남지 않고 날아난 것이 아니겠어요. 몇몇 돌기둥이 유령처럼 썩박나무처럼 나뒹굴고 있었어요. 그리하여 그들은 아예 지하왕궁에 들어갔어요. 가메다는 연 며칠 그들의 면전에 나타나지도 않았어요. 나까아멘과 노바시는 코치아에서 고의적으로 한산 화산발전소를 건설하는 과정을 생중계하는 것을 보고 크게 깨달았어요. “살았어. 이젠 우리 270여개나 되는 화산 분출구에 저 놈들처럼 화산발전소를 세우자니까.” “허허허. 이걸 두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거죠.” “하하하.” 지하왕궁에서 그래도 웃음이 터져 나올 수 있어 다행이었어요. 허나 국제 여론은 만만치 않았어요. 아카시아의 안나 대통령은 직접 텔레비전방송에 나서서 경고메시지를 보내왔어요. “뱀 섬나라는 교훈을 섭취할 대신 대륙침략야욕을 버리지 않고 코치아의 발전소를 핵 공격했다. 이는 정의적인 세계인민들에 대한 도전이다. 또다시 핵전쟁을 발동한 뱀 섬나라는 자멸 밖에 있을 수 없다. 뱀 섬나라 악당들을 소멸하지 않고서는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우리 아카시아는 뱀 섬나라 악당들을 전멸시키는 인민전쟁을 불사할 것이다!” “아이고, 저걸 어찌 한단 말인가?” 나까아멘은 낙태한 고양이 상을 지으면서 바늘방석에나 앉은 듯이 안절부절 하지 못해 지하왕궁을 왔다 갔다 했어요. 이때 텔레비전에서는 노르망디에 정치망명을 간 죤슨의 딸 예리나도 나타났어요. “뱀 섬나라는 절대 우리 아빠의 옛길을 걷지 마십시오. 욕심을 너무 부리면 시체도 파묻을 땅이 없게 됩니다!” 그런데 코치아의 금별 대통령은 텔레비전에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가 말하지 않아도 국제 여론은 나까아멘 왕에게 경고하기에는 충분했던 것이었죠. 며칠 후 아카시아의 함대가 하와이에서 출발해 서태평양을 건너 뱀 섬나라 북쪽에서 상륙해 곧추 소꼬를 향해 덮쳐 왔어요. 유럽의 노르망디 해군은 남해를 거쳐 곧추 소꼬로 진격하고 있었어요. “망했다, 망했어! 이번엔 뼈를 묻을 곳도 없게 됐어.” 나까아멘은 비명을 질렀어요. 그때 가메다가 지하왕궁에 뛰어 들어왔어요. 나까아멘은 왕의 체신도 잊고 가메다의 귀 쌈을 찰싹 갈겼어요. “에이고, 이 자식, 너 때문에 우리 왕궁 문을 닫게 됐어.” 가메다는 얼얼한 볼때기를 만지면서도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었어요. “대왕님,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침략군을 막겠습니다.” “그래, 막아라. 막지 못하면 네 놈의 대가리를 잘라서 왕궁 쓰레기 무지에 처넣고 제사를 지내겠어.” 나까아멘은 어둠침침한 지하왕궁에 털썩 엉덩방아를 찧고 물앉더니 엉엉 울면서 감탄했어요. “아이고, 수천 년 대를 이어온 우리 왕족이 대를 끊게 됐구나. 어쩜 코치아 놈들이 항상 우리보다 한 수 위란 말인가? 엉엉, 2천여 년 전 메이지유신부터 우리 조상들은 언제나 코치아에 앞섰지. 유럽의 선진기술과 과학기술을 가져다 항상 아시아에서 앞서 나가면서 지어 대동아공영권까지 얻으려고 절반 지구를 진격했었지. 허나 오늘 우리는 대륙에 건너가기도 전에 저 조까짓 발판 하나도 당하지 못하고 있단 말이야. 아이고, 원통해라.” 가메다와 노바시는 황급히 미친것 같은 나까아멘 왕을 부축해 침대에 눕히어 놓았어요.        그래도 가메다는 사무라이답게 뱀 섬나라 군을 지휘해 반격을 하였어요. 그는 무인전투기를 파견해 아카시아 정예 해군육전대와 교전하면서 나까아멘 왕의 도망을 위해 시간을 벌고 있었어요.                                   제15장 지구로 날아오는 소행성 남으로 아카시아 수사자와 호랑이를 방불케 하는 괴물 인종병사들이 뱀 섬나라 뱀 인 병사들을 무찌르며 쳐들어왔어요. 북으로는 노르망디의 공룡부대가 톰 사령관의 지휘아래 쳐들어왔어요. 이젠 이 두 강국은 뱀 섬나라 3분의 1이나 점령했어요. 루스끼야는 뱀 섬나라에 이번 기회에 앙갚음을 했던 것이었어요. 전번에 뱀 섬나라가 인구 몇 천만 밖에 안 되는 루스끼야에서 세계의 영토 5분의 1이나 차지했다고 맹비난하면서 지구촌의 영토를 평균재분배를 주장한 데 앙심을 품고 있었죠. 루스끼야 군은 서쪽으로부터 쳐들어가 뱀 섬나라의 군사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주요 큰 섬들을 점령했어요. 원래 뱀 섬나라는 13개 섬으로 이루어졌는데 그중 8개는 이미 열강들에게 점령당했어요. 뱀 섬나라가 외세를 막느라고 코치아를 교란하지 못하는 틈을 타서 코치아에서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지구 생태환경보호를 연구하고 국력을 키우고 있었어요. 괴짜 조왕돌은 코치아를 둘러싼 바닷물과 냇물이 합할 때 생기는 흡인력을 이용해 발전소를 세웠어요. 그리하여 코치아에서는 전기를 대외로 수출할 지경이었어요. 어디 그뿐인가요? 조왕돌은 바다의 파도를 이용해 발전기를 돌렸고 돼지고기기름에 특제 유를 섞어 휘발유를 생산해냈는가 하면 뱀장어를 길러 소형발전기를 돌리기도 했어요. 그 놈의 남북 골에는 하여간 엉뚱한 과학기술이 물물 쏟아져 나와 뭇사람들을 감탄하게 했어요. 클론바우 18세도 조왕돌을 질투하던 데로부터 이젠 속으로 못내 탄복했어요. “조왕돌 삼촌은 진짜 괴상한 천재야.” 클론바우 18세는 기다란 코끼리코를 슬슬 만지면서 엄지를 내둘렀어요. 그런데 큰 일 났어요. 아, 기원 4000년을 앞둔 기원 3999년 12월에 들어서기 바쁘게 태양계 밖에 있던 DMZA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어요. DMZA 소행성은 직경이 20킬로미터나 되는데요. 그 운행궤도가 바뀌면서 지구와 충돌할 궤도에 진입했어요. 이젠 하프망원경으로도 보일 지경이어요. 이제 오래지 않으면 육안으로도 소행성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소행성이 지구를 충돌하는 날에는 지구는 산산이 부서지고 인류문명이 몽땅 훼멸될 판이었어요. 세계 인심은 또다시 소란해졌어요. “보라니까. 뱀 섬나라에서 2년 전에 예측한 말이 옳단 말이요. 기원 4000년에 지구가 종말 된다 했잖아? 그때 소혜성이 지구를 충돌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어?!” “소혜성이 충돌하면 지구가 박살나겠는데!” 이때라고 뱀 섬나라 나까아멘 왕과 노바시 그리고 가메다는 바다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이 떠들어댔어요. “하늘이 우리를 돕고 있어.” 나까아멘 왕의 말에 노바시 수상은 무릎까지 탁 쳤어요. “잘 됐습니다. 이 기회에 세계 인심을 우리한테 끌어옵시다. 소혜성과 지구의 충돌에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판에 우리 본토를 침략하던 노르망디와 아카시아의 군대들도 전쟁을 그만둘지 모릅니다.” 가메다는 어깨가 자못 가벼워지는 감을 느꼈어요. “당장 방송공세를 하게나!” “옛!” 나까아멘 왕과 노바시는 구부리었던 허리를 쭉 펴고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탁 치면서 지하왕궁을 왔다갔다 거닐었어요. 코치아의 맑은 하늘에는 갑자기 뱀 섬나라 NHEK방송사 여성아나운서가 떴어요. “여러분, NHEK방송사 아나운서 야마구찌 모모에입니다. 저는 놀라운 소식을 방송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은하계에서 직경이 20킬로미터나 되는 DMZA 소행성이 지구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바로 2년 전에 우리 뱀 섬나라가 예측해 제가 방송한 비극이 곧 우리 지구촌에 사실로 되는 순간입니다. 지금 DMZA 소행성은 음속의 90배나 되는 속도로 우리 지구와 달나라를 향해 날아오고 있습니다. 허나 코치아의 이른바 유명한 천문대학자 유리 박사는 지구인들을 속이는 거짓 과학정보를 날조했습니다. 이젠 천살도 넘는 노 할멈의 노망을 믿지 마십시오.  직경이 20킬로미터나 되는 혜성이 지구를 충돌하면 어떤 훼멸성적인 재난이 생기는지 알기나 하고 떠들었습니까? 우리에게는 이제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2년 전부터 대책을 댔더라도 우리 지구는 일대 재난을 모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금별 대통령이 내세운 유리 박사의 세치 혀끝에 놀아나 지구는 재난을 모면할 시간을 놓쳤습니다. 이제 또 코치아의 말을 믿겠습니까?” 지구촌의 모든 백성들은 이 놀라운 방송을 쳐다보고 땅바닥에 주저앉았어요. 야마구찌 모모에 아나운서는 이번에는 영어로 방송하기 시작했어요. “평화를 주장하는 노르망디와 아카시아 군인들은 들으십시오. 세계 평화를 사랑하는 인민들은 뱀 섬나라에 눈길을 돌리십시오. 노르망디와 아카시아 군인들은 총을 놓고 들으십시오. 이제 DMZA 소행성이 지구를 충돌하게 됩니다. 그때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훼멸하게 됩니다. 6,500년 전에도 운석이 중부아메리카주에 떨어져 공룡과 같은 거물들도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황차 지금 인류가 살아남을 거 같습니까? 1908년에도 커다란 운석이 씨비리에 떨어져 제주도만큼 큰 삼림이 충격파와 불에 훼멸되고 숱한 사람들과 동물들이 불타 죽었습니다. 직경이 20킬로미터나 되는 혜성이 지구를 충돌할 판인데도 노르망디와 아카시아에서는 코치아 이간질에 놀아나 계속 우리 뱀 섬나라에서 싸우다가 물귀신이 되겠습니까? 어서 자기 고향에 돌아가 죽기 전에 부모형제나 만나보세요. 예쁜 미녀들이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말에 노르망디와 아카시아 군인들은 총을 내리고 서로 마주 쳐다보면서 의논이 분분했어요. “죽기 전에 기생집에 가서 놀기나 하자.” “그래, 죽겠는데 무슨 전쟁이야!” “총을 놓지 말라!” 톰사령관이 권총을 빼들어 휘두르면서 위협해도 아무런 쓸모없었어요. 노르망디와 아카시아 군인들은 총을 든 채 뱀 섬나라 기생집에 쳐들어가 미녀들을 껴안고 흥청망청 놀았어요. 그 기회에 뱀 섬나라 왕궁에서는 한시름을 덜게 됐어요. 숨을 돌려 노르망디와아카시아 군대를 반격할 기회를 찾게 됐어요. 지구촌의 사람들은 길을 걷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야마구찌 모모에의 연속 방송을 듣고 낯 색이 새까매졌어요. 온 지구촌의 사람들은 일할 맥이 나지 않았어요. 농사꾼들은 농사를 짓기도 싶지 않았고 공장과 학교는 문을 닫았어요. 당장 혜성이 지구를 충돌해 죽을 판인데  일할 게 없다고 했어요. 부자들은 숱한 재산이 아까워 앞 다투어  자가용 우주비행선을 사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달나라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우주비행선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은 잠수함을 사서 상대적으로 소혜성 충돌 시 완충작용이 있는 심해로 잠수해 숨어버렸어요. 우주비행선이나 잠수함을 살 수 없는 평민백성들은 날마다 술이나 흥청망청 마시고 흥타령을 부르면서 죽기를 기다리며 놀았어요. 살았을 때 향수하려는 사람들이 음식점이나 노래방과 마사지원으로 몰려들었어요. 허나 이제 당장 죽겠는데 누가 음식점을 하고 아가씨 질을 한 대요. 너도 놀고 나도 놀고 죽기를 기다리는 판에. 금별 대통령은 적와대에서 긴급국무회의를 열었어요. 천세도 넘는 유리 박사는 허옇게 서리 내린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긴급국무회의장에 들어섰어요. 국내 유명한 천문학자들이 속속 다 왔어요. 600세가 다 된 다혜 박사도 백설이 내린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회의장에 나타났어요. 천문학을 전공한 클론바우 18세도 손을 펼 날이 왔어요. 유명한 대과학자 조왕돌도 빠질 수 없었어요. 각료들과 천문학자들이 다 모이자 금별 대통령은 나무망치로 탁상의 목탁을 땅땅 땅 힘 있게 쳤어요. “지금 DMZA 소행성이 지구를 충돌한다고 하는데 대책을 대야 하겠습니다. 이 기회를 타서 뱀 섬나라에서는 세계 인심을 우롱하고 우리 코치아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 고립시키려고 합니다. 먼저 과학이론으로 학술적인 반격을 가해야 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유리 박사가 나서야 하겠습니다.” 그러자 유리 박사는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아닙니다. 제가 나서면 반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럼 누가 나선단 말입니까? 유리 박사가 나서서 수습해야죠.” 금별 대통령은 답답해 났어요. 유리 박사는 말단에 앉아 있는 괴물 클론바우 18세를 가리켰어요. “클론바우 18세가 나서면 더 좋아요.” “예?” 모두들 놀라면서 일제히 클론바우 18세에게 눈길을 모았다가 다시 유리 박사에게 돌렸어요. “제가 몸을 빼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모든 책임을 지고 뒤에서 클론바우 18세에게 과학자료도 제공해 주겠습니다. 클론바우 18세는 천문학 박사예요. 황차 그는 지구를 통일한 아카시아 클론바우 꼬마대통령의 조카벌이 되고 생김새도 비슷합니다.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와 유럽 사람들은 클론바우 18세의 말을 저의 말보다 더 믿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클론바우 18세가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파초 같은 귀를 뻘쭉하며 코끼리코를 슬슬 매만지면서 이런 제안을 했어요. “우리는 전 지구촌의 천문학자들을 초청해 국제천문학학술회의를 열고 세계 천문학 과학기술연구 성과로써 소혜성을 대처해야 합니다.” 모두들 클론바우 18세의 엉뚱한 제의에 머리를 끄덕였어요. 이렇게 돼 코치아에서 지구를 충돌하려는 소혜성을 대처할 방안을 연구할 국제천문학학술회의가 열리게 됐어요. 회의장 벽에 걸린 대형 형광판에는 지구로 날아오는 소혜성이 나타났어요. 진짜 공포의 마귀가 지구촌에 덤벼드는 장면 같았어요. 루스끼야의 한 과학자는 “태양우산”을 미사일에 실어 소혜성에 올려 보내 고정시키고 태양의 빛에너지를 이용해 소혜성의 궤도를 바꿔 소행성이 지구를 충격하지 못하게 막아보자고 건의하였어요. 클론바우 18세는 미사일로 원자력발동기를 단 대형 날개를 실어 소혜성에 올려 보내 고정시켜 소혜성의 궤도를 바꾸자고 건의했어요. 코치아의 유리 박사는 먼저 우주비행선 탐지기를 보내 소혜성이 무슨 물질로 구성됐는가를 채집해 분석한 후 어떤 방법을 쓰겠는가를 제기했어요. 아카시아의 한 학자는 원자탄으로 소혜성을 폭파해버리자고 했어요. 그러자 적지 않은 천문과학자들은 커다란 소혜성을 폭파해 부서진 수천 개의 소혜성이 지구를 충격해도 마찬가지로 지구의 인류문명이고 뭐고 몽땅 훼멸하게 된다고 하였어요. 노르망디의 천문과학자들은 소혜성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형원자탄을 수십  차 폭발시켜 그 방사선충격파로 소혜성을 지구 충돌궤도에서 벗어나게 하여 한차례 소혜성의 지구충돌을 피면하자는 논문을 발표했어요. 금별 대통령은 30여 년 전에 소혜성을 폭파시킨 경험에 근거해 종합해 자기 견해를 말했어요. “여러 과학자들의 방안을 종합하면 두 가지 방법입니다. 하나는 소혜성의 궤도를 바꾸자는 것이고 하나는 소혜성을 폭파해 버리자는 것입니다. 30여 년 전의 경험을 미루어 먼저 첫째 방안을 실시해 봅시다.” 이때 차슬기 국방부장이 들어와 금별 대통령 곁에 다가가 서류 한 장을 내밀었어요. 금별 대통령은 그 서류를 들여다보더니 책상을 꽝 쳤어요. 그는 벌떡 일어나 좌중을 둘러보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어요. “이번 소혜성 지구충돌을 막는 방안을 순조롭게 실행해 지구를 보위하려면 우선 뱀 섬나라의 파괴를 막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지구는 자연재해보다도 인재가 더 막심합니다.” 뒤이어 그는 원격조종기로 벽에 걸린 대형 형광판을 조절했어요. 순간 화면에는  뱀 섬나라에서 노르망디 군 진지에 독가스탄을 폭발시키는 장면이 나타났어요. 뒤이어 뱀 섬나라 북단의 철거하는 아카시아 군 진지에서 소형원자탄이 폭발해 버섯구름이 치솟는 장면이 나타났어요. “보십시오. 뱀 섬나라 악마들은 소혜성이 지구를 충돌하러 돌진해오는 기회를 이용해 노르망디와 아카시아 군에 독가스탄과 원자탄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장악한 군사정보에 의하면 뱀 섬나라 악마들은 우리 이번 방안을 파괴해 소혜성이 지구촌을 충돌해 훼멸시킨 후 지구촌 영토를 재분배하고 재패하려는 야욕을 실현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세계 여러 나라 천문학자들은 뱀 섬나라 악마들부터 소멸해야 소혜성 충돌의 위험에서 지구를 구할 수 있다고 했어요. 이때 대형 형광판에 노바시 수상의 흉측한 몰골이 떴어요. “이 보십시오. 천문학자 여러분, 웃기지 않습니까? 우린 지금 우리 뱀 섬나라에 침략한 노르망디와 아카시아의 침략군을 물리치는 정의적인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2천년이나 갈아온 칼을 쓰지 않고 어떻게 강대한 침략군을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원자탄이나 독가스를 쓰는 걸 욕하지 마십시오. 개도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담장을 뛰어 넘는다고 우린 죽기 전에 가릴 거 없습니다. 소행성이 지구를 충돌할 겁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첨단기술로 예측한 인류의 재난이 현실로 되는 시각입니다. 지구는 종말 할 날이 닥쳐왔습니다. 이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연법칙입니다. 자연의 순리를 인위적으로 막으려는 우둔한 당신들이 우습습니다. 염라왕국에나 가서 만납시다. 천당은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득바득 하지 말고 우리 뱀 섬나라 위안부들이나 놀다가 가십시오. 헤헤헤.” 노바시는 말 이발을 드러내면서 징글맞게 웃으며 추악한 몰골을 드러냈어요. 금별 대통령은 대형 형광판을 겨눠 원격조종기를 눌렀어요. 형광판에는 다시 별무리 속에서 지구로 돌진해오는 소혜성이 나타났어요. 그런데 저게 뭐예요? 소혜성은 불꼬리를 늘이면서 날아오고 있었어요. 모든 과학자들은 일제히 “할례혜성이다!” 하고 고함쳤어요. 뒤이어 회의장은 야단났어요. 일부 과학자들은 대형 형광판에 나타난 불꼬리를 끄면서 날아오는 혜성을 손가락질하면서 떠들었어요. “할례혜성이라면 직경이 20킬로미터라고 해도 실제는 더 작은 혜성일 수 있소.” “이젠 지구는 살았소. 할례혜성이면 저 놈의 꼬리만 잘라버려도 되니까.” 조금 위안되는 순간이었어요. 여러 나라 천문학자들은 소혜성을 막기 위해 국제공조를 하기로 결의했어요. 국제천문학학술대회는 위안과 불안 속에서 끝났어요. “우린 절대 방심해선 안 됩니다. 어서 빨리 행동방안대로 움직여야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모든 방안은 군사방안으로 넘어가기에 군사비밀을 엄수해야 하겠습니다.” 차슬기 국방부 부장이 하는 엄숙한 말이었어요. 금별 대통령은 즉시 차슬기 국방부장과 함께 구체적으로 소혜성의 물질을 채집해 물질구조분석을 할 데 대해 지시했어요. 이번에도 조왕돌이 이끄는 조왕돌 로봇부대에서 이 중대한 임무를 맡기로 했어요. 찻잔을 들고 들어오던 보름은 하마터면 떨어뜨릴 번 했어요. (님을 하늘로 보내고 나는 어떻게 근심스러워 살아?) 그녀는 선영이 저쪽에서 보는 것 같아 가까스로 진정하면서 찻잔을 말단에 앉은 조왕돌과 클론바우 18세 앞에 내려 놓았어요. “흥!” 클론바우 18세가 문께로 나가가면서 뀌는 콧방귀에 대통령의 지하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어요. 그는 슬그머니 금별 대통령이 원망스러웠어요. (외가 집 큰할아버지는 이번에도 자기 아들에게 영웅이 될 기회를 주는구나.)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코치아의 우주비행선이 소혜성이 날아오는 하늘로 날아 올라갔어요. 금별 대통령과 차슬기 국방부장 그리고 허수아 총리는 대형형광 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어요. 소혜성은 확실히 불꼬리가 좀 더 길어 보였어요. “할례혜성일 가능성이 점점 많아.” 금별의 말에 허수아도 머리를 끄덕였어요. 차슬기는 “방심할 수 없어. 할례혜성이라도 지구를 휩쓸고 지나가면 그 몇 억 도나 되는 방사성 불길에 지구는 훼멸성적인 화재를 입을 거야.” 하고 했어요. 그들 삼총사는 이젠 30십여 년 전의 10 대 중반의 소년이 아니었어요. 100세 시대라 하지만 이젠 반백을 넘긴 장년이 됐어요. 그들은 밤늦게까지 대통령 대형 형광판 앞에서 지구로 날아오는 소혜성을 관찰하면서 대처할 방안을 연구했어요.                             제16장 하늘에서 떨어지는 갈치 어느 날, 금붕어 소장이 해양 동물을 연구하려고 동해로 나갔을 때었어요. 갑자기 집채 같은 파도가 밀려오더니 갈치 떼가 밀려왔어요. “이게 뭐야?” 파도에 밀려온 3~4미터 길이의 갈치가 산더미를 이루었어요. “심해의 갈치가 바다가로 헤어 나오면 지진이 일어난다던데. 또 뱀 섬나라 쪽에 지진이나 화산폭발이 있을 징조인가?” 금붕어는 이상해 여기저기를 살피는데 이번에는 하늘에서 몸통이 한 아름씩 되는 갈치가 눈송이처럼 새하얗게 바다에 떨어졌어요. “이건 또 뭐야?” 그 말에 화답이나 하듯이 갈치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우린 세슘주사를 맞아 다 죽게 됐어요.” “아니, 저게?! 물고기가 어떻게 말한담?” 금붕어는 너무도 놀란 나머지 모래톱에 풀썩 물앉아버렸어요. “우리 갈치도 바쁜 목에 들면 입을 벌려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 한참 후 제정신을 차린 그녀는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나서 헛일 삼아 갈치무리에 대고 제일 큰 갈치에게 물었어요. “그래 너희들에게 누가 세슘주사를 놓았단 말이냐?”   “뱀 섬나라 가메다 국방부장이 말하면 죽인다고 했어요.” “아니, 그래 뱀 섬나라 국방부장이 너희들에게 세슘주사를 놓았단 말이냐?” 갈치는 별스레 모래밭에 헤어 나오면서 애원했어요. “제발 불쌍한 우리 심해 갈치를 살려주세요. 우린 금방 뱀 섬나라 바다에 잡혀 가서 세슘으로 오염된 바닷물에 목욕시키고 지어 세슘주사까지 놨어요.” 갈치는 모래톱에서 잡기나 하듯 몸통을 꼿꼿이 세우더니 바르르 떨며 싹싹 빌었어요. “우리 죄 없는 갈치들을 구해 주십시오. 아니, 우리 모든 해양 동물을 뱀 섬나라 악마들에게서 구해 주십시오.” 다른 갈치도 애원했어요. “우린 금붕어 소장만 믿겠습니다. 이름도 우리와 같이 물고기 이름을 가졌으니까요.” “그래, 그래. 알았다.” 산더미 같은 숱한 갈치들이 몽땅 바다 가에서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서더니 일제히 고함쳤어요. “우리를 악마들의 손에서 구해주십시오!” “구해주십시오!” “아, 이 불쌍한 갈치들아, 너희들을 꼭 구해주겠으니 근심하지 말어라.” 금붕어는 모래톱에 꿇어앉아 두 손을 쳐들고 맹세했어요. “고맙습니다!” 갈치들은 파도치는 해변 가에서 춤이나 추듯 몸을 바르르 떨었어요. 진짜 가관이었어요. 금붕어 소장은 갈치들이 불쌍해 소녀처럼 모래를 치면서 대성통곡을 쳤어요. “할머니! 할머니!” 클론바우 18세가 고함치면서 타조 발 같은 손으로 흔들어 깨웠어요. 금붕어가 벌떡 일어나 보니 꿈을 꾸었던 것이죠. “할머니, 불쌍한 갈치들을 구하겠다고 하면서 울었어요. 혹시 꿈을 꾸었습니까?” 금붕어는 “응, 꿈을 꾼 것 같구나. 허나 너무나도 생생해 꿈 같지 않아.”라고 하면서 얼굴의 눈물을 닦았어요. “빨리 동해바다로 가보자. 꼭 바다에 무슨 일이 생긴 거 같구나.” 할머니한테서 꿈 이야기를 들은 클론바우 18세도 너무나도 꿈이 괴상해 황급히 할머니를 업고 동해 바다로 훨훨 날아가 보았어요.  동해 바다로 나가보니 할머니가 말한 대로 갈치가 바다가로 산더미처럼 밀려와 모래톱을 새하얗게 은빛으로 장식하고 있었어요. 클론바우 어머니를 업고 모래톱에 날아 내리었을 때었어요. 몸통이 한 아름씩 되고 길이가 십여 미터 되는 어떤 갈치들은 모래톱에 뛰어 올라와 펄떡펄떡 뛰다가 쓰러지는 것이었어요. “진짜구나!” 클론바우가 경악해 하며 사발 눈이 히뜩 번지어질 지경이었어요. 금붕어는 모래톱에 꿇어 앉아 갈치들을 매만지면서 “이 갈치들을 어쩌니?”하고 말하며 눈물을 펑펑 흘렸어요. 갈치는 아가미를 벌렸다 닫았다 하면서 뭔가 말하는가 싶었어요. “응, 알았다. 뱀 섬나라 놈들이 세슘에 오염된 바닷물에 목욕시키고 세슘주사까지 놓았지?” 갈치는 대가리를 끄덕였어요. 이때 동해를 지키던 뱀 왕이 우성 대통령을 목마에 태어가지고 구불구불 모래톱을 훑으며 다가왔어요. 뱀 왕이 지나간 모래톱에는 트랙터 바퀴 자국 같은 깊을 골당이 파였어요. 뱀 왕은 우성 대통령과 함께 차슬기 국방부장의 명령에 따라 동해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죠. “금붕어 소장은 어떻게 돼 여기에 이런 기이한 일이 일어난 것을 알고 왔소? 그러지 않아도 차슬기 국방부장과 금붕어소장에게 알리려고 했는데.” 우성 전임 대통령이 놀란 눈길로 갈치들을 둘러보았어요. 뱀 왕은 갈치들이 불쌍했어요. “저 것들이 바다에서 다 살았구나. 뱀 섬나라 나까아멘이나 가메다한테 걸리면 살아남기 힘들어. 우리 화산 동굴에 있을 때 얼마나 고생했다고. 그 놈들은 뱀 섬나라의 상징이자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우리 뱀들을 가지고 생체실험을 해서 우리 같이 뱀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괴물을 만들었지. 그러고서도 모자라 나중엔 잡아먹기까지 했단 말이야.” 뱀 왕은 허리를 쭉 펴더니 몸을 일이키면서 머리를 들고 판들거리는 눈으로 바다 저 멀리 뱀 섬나라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뱀 섬나라 놈들을 생각하면 이가 부득부득 갈린다!” 뱀 왕의 눈에서는 뻘건 불길이 이글거렸어요. 우성 전임대통령은 금붕어를 보고 말했어요. “지금 정부에서는 뱀 섬나라에 자꾸 동곽 선생 같은 착한 정치를 베푸는데요. 안 됩니다. 독은 독으로 치고 악은 악으로 쳐야 합니다.  이번에 소혜성을 성공적으로 대처하려면 우선 뱀 섬나라 놈들부터 처치해야 합니다.” 금붕어는 속으로는 우성 전임대통령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오빠의 정치에 영향이 갈까봐 가타부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우성 전임대통령은 또 한마디 했어요. “보시요. 뱀 섬나라에서는 이젠 갈치에까지 세슘주사를 놓아 동해에 떨어뜨려 우리 코치아 국민들을 다 씨를 말리려고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금붕어는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서리 내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뒤로 빗어 넘기면서 물었어요. “건 무슨 말씀인가요?” 우성은 뱀 왕을 돌아보면서 대답했어요. “우린 동해바다를 지키면서 밤중에 일본 초음속비행기들이 날아와 동해 바다에 갈치들을 떨어뜨리는 것을 직접 발견했습니다.” 그 말에 금붕어는 오늘 신 새벽 꿈을 떠올리면서 중얼거렸어요. “그 놈들이 그런 짓을 했기에 내 꿈에도 난데없는 커다란 갈치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꿈을 다 꾸었지. 악독한 놈들!” 우성 전임대통령은 계속 말했어요. “그 놈들은 이전에도 남해의 대륙붕과 홀섬을 계속 자기 영토라고 떠들지 않았습니까? 요즘 소혜성이 지구를 충돌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인심이 혼란하고 홀섬을 떠나는 주민이 많아지는 틈을 타서 홀섬을 건너다보고 있습니다.” 뱀 왕도 “맞소. 이 눈으로 보았단 말이오. 어서 금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뱀 섬나라 놈들이 홀섬을 침략하지 못하게 조치를 대야 하오.”라고 동을 달았어요. 이때 하루꼬가 일본에서 갓 도망쳐온 아버지 스즈끼의 팔을 끼고 모래톱에 나타났어요. 하루꼬는 그 사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구명은인인 우성 전임대통령과 결혼해 홀섬에 집을 잡고 밀월을 보내고 있었어요. 꽈르릉 꽝꽝! 모두 갑자기 울리는 우레와 같은 굉음에 깜짝 놀랐어요. 동해 바다 물에서 허연 물기둥이 솟아올랐어요. 화산이 폭발했던 것이죠. 모래톱이 마구 뒤흔들리고 갈치들이 황급히 바다에 뛰어 들어갔어요.  우성은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어요. “하늘도 무심하지. 왜 저 뱀 섬나라 악마들을 가만 놔둘까?” 그날로부터 금붕어는 세슘 오염을 산화해 제거하는 소독약을 몇 차 바곤을 바다 물에 부어넣기 시작했어요. 그 소독약으로 뱀 섬나라에서 도망쳐온 뱀 왕과 하루꼬, 하나꼬 등 뱀 가족을 몽땅 살려 냈던 것이죠. 뱀 섬나라에서 동해 바다에 떨어뜨린 갈치들은 금붕어가 쏟아 넣은 소독약으로 해 일정하게 세슘오염을 제거했어요. 그러나 적지 않은 갈치들은 세슘오염에 견디지 못하고 무리죽음을 당했어요. 해일이 덮쳐오면서 집채 같은 파도가 출렁거렸어요. 시퍼런 파도에 시허연 갈치들이 모래톱에 밀리어 들어왔다가도 썰물에 바닷물에 끌려들어가 둥둥 떠다녔어요. 금붕어를 비롯한 해양 동물연구소 연구일군들은 갈치들이 모래톱에까지 밀리어 나와 짝짝 아가미를 벌리면서 죽어가는 처참한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었어요. 허나 그들은 맥을 버리지 않고 모래밭에 밀리어 나온 갈치들에게 소독약을 더 진하게 발랐어요. 그러자 소독약이 퍼지자 갈치들의 몸통이 세슘의 오염을 털어버리고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했어요. “야, 우리가 해냈어!” 금붕어는 너무나도 기뻐서 소녀처럼 주먹을 하늘로 쳐들었어요. 그녀는 황급히 초음속 비행기를 타고 연화시에 있는 적와대로 날아갔어요. 금붕어는 대통령부에 들어가자마자 동해바다에 나타난 기이한 현상을 회보했어요. 그녀는 뱀왕과 우성 전임대통령이 하던 말까지 전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어요. “뱀 섬나라 놈들을 가만 놔둬선 지구촌은 둘째이고 코치아도 지키기 힘듭니다. 군사적으로 징벌합시다. 노르망디와 아카시아가 들이치는 기회를 이용해 우리나라 군도 합세해 협공한다면 뱀 섬나라를 정복하기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 허나 금별 대통령은 대답하지 않았어요. “우린 평화를 수호해야 한다. 아카시아와의 핵전쟁의 상처가 가실까 하는 이때 또다시 우리나라를 전쟁에 휘몰아 넣는다면 천고의 죄인으로 된다. 다신 전쟁이란 말을 하지도 말라.” 금붕어 소장은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허나 벽이라도 차고 나갈 오빠의 고집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기에 다시 말을 꺼내지 않았어요. 이때 조왕돌이 들어왔다가 고모와 아버지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다가 한마디 했어요. “아버지, 언제까지 참아야 합니까? 뱀 섬나라에서 이젠 몇 번입니까? 계속 우리를 죽이려고 갖은 획책을 꾸미지 않았습니까? 아버지와 고모를 이간질 하고 독가스를 퍼붓고 화산을 폭발시키고 소혜성 충돌설과 지구 종말론으로 인심을 소란시키고 대륙침략야욕을…” “그만 해라!” 허나 조왕돌은 내친 김에 계속 말했어요. “아버지는 왜 그렇게 심약합니까? 어째 여성인 고모보다도 더 심약해요? 아버지가 동의하지 않아도 로봇부대와 클론바우 부대를 이끌고 뱀 섬나라를 징벌할 테입니다.” “닥쳐!” 아버지가 성을 내는 것을 보고서야 조왕돌은 입을 다물고 성이 나서 씩씩거리면서 대통령 집무실에서 나갔어요.    동해 바다에는 뱀 섬나라 바다에서 살 길을 찾아 코치아로 도망치는 뱀 섬나라 백성들이 탄 배가 속속들이 들어오고 있었어요. 바다 우에서는 코치아로 도망치는 배들이 줄느런히 늘어서 파도에 넘실거렸어요. 바다 밑에서는 코치아 동해로 도망치는 바다 고기들이 줄을 쳤어요. 나까아멘 왕은 바다 속의 집무실에서 핵물질과 독가스에 오염돼 검퍼런 바다 속을 내다보면서 가메다를 질책했어요. “허참, 자네 하는 일이 어느 게 제대로 된 게 있어?” 그러나 가메다는 머리를 숙이지 않았어요. “대왕님,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그 놈들이 혼줄 날 날이 오래지 않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나까아멘은 가메다에게 머리를 돌리면서 물었어요. “무슨 수로?” 가메다는 노바시를 흘끔 곁눈질하더니 손을 왕의 귀에 대고 뭐라고 지껄이었어요. 나까아멘 왕은 가메다의 귓속말을 들으면서 “오~ 그래? 그래. 정말 묘하구먼. 허허허.”하고 너털웃음을 웃었어요. “즉시 행동을 개시하게!” “옛!” 가메다는 군례를 척 붙이고 나서 돌아서서 수중왕궁을 빠져나갔어요. 음흉한 음모궤계가 꾸미어지는 검퍼런 바다에서는 집채 같은 파도를 출렁이기만 했어요.                       제17장 소혜성의 날개 코치아의 우주비행장에서는 뜻밖의 일이 발생했어요. 글쎄 금별 대통령이 직접 우주비행선을 몰고 이번 소혜성 정복 제1전선에 나가겠다고 했던 것이죠. 차슬기 국방부장은 말렸어요. “내가 갈테니 가지 말라. 대통령집무실 대형 형광판 앞에 앉아 지휘하면 된다.” 허나 금별 대통령은 곧이듣지 않고 우주복을 입고 우주비행선 쪽으로 걸어갔어요. 조왕돌은 아버지를 뒤따라가면서 조용히 말했어요. “아버지, 돌아가세요. 소혜성에 날개를 다는 일은 우리가 할 테니까요.” 허나 금별 대통령은 나직이 명령했어요. “시간이 없다. 어서 핵 발동기날개를 우주비행선에 실어라!” 클론바우 18세도 뭐라고 말하려고 하다가 그만두었어요. 그는 벽이라도 차고 나가는 외가 집 큰할아버지의 성격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이죠. 금별 대통령은 차슬기 국방부장과 함께 우주비행선에  타자 손을 홱 저었어요. “우린 짧은 시간 내에 소행성의 비행궤도에 진입해야 한다. 출발!” 출발 신호탄이 푸른 하늘로 씩씩 날아올랐어요. 금별 대통령과 차슬기 국방부장이 탄 우주비행선이 제일 먼저 날아올랐어요. 조왕돌들과 클론바우들이 탄 우주비행선이 뒤따라 날아올라 전후좌우로 금별 대통령이 직접 모는 우주비행선을 옹위했어요. “조왕돌아, 뱀 섬나라 놈들이 가능하게 암암리에 우리 앞길을 가로 막을 수 있다. 잘 감시해라.” 조왕돌이 모는 우주비행선 앞에 걸린 게시판에 금별 대통령이 보낸 메시지가 떴어요. “알았습니다.” 조왕돌은 인차 답장을 보낸 후 레이더로 푸르른 하늘을 감시했어요. 한참 비행해 그들은 태공에 진입했어요. 그때 또 다혜 박사에게서 메시지가 왔어요. “소혜성의 궤도에 들어간 후에는 소혜성의 비행속도만큼 음속의 90배 속도로 비행해야 안전하게 소혜성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며칠 후 그들은 순조롭게 소혜성의 비행궤도에 진입했어요. 저 멀리 뻘건 꼬리를 달고 날아오는 커다란 소혜성을 발견했어요. “우주비행선 편대는 모두 초음속 90배 속도로 비행하라!” “옛!” 금별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여러 우주비행선은 미사일발동기를 열고 번개같이 날아 소혜성에 접근했어요. 소혜성은 할례혜성이 아니라 진짜 엄청 큰 혜성이었어요. 직경은 확실히 20킬로미터는 될 것 같았어요. 금별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햇빛을 받을 때 소혜성 온도가 천도를 넘기에 오르지 못한다. 우주비행선은 소혜성이 해를 등질 때만이 상대적으로 지표온도가 내려간다. 그때 그늘이 진 소혜성 쪽에 착륙할 수 있다. 시간은 반시간 밖에 없다.” 조왕돌이 물음을 제기했어요. “먼저 소혜성의 광물질을 분석한 후 날개를 달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미 소혜성에 왔는데 그럴 필요도 시간도 없다. 날개를 달면 그만이야.” “알았습니다.” 여러 우주비행선은 즉시 태양이 비추지 못하는 소헤성의 뒷면으로 날아갔어요. 소혜성은 햇빛이 사라지자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허나 울퉁불퉁한 표면에는 공포의 흰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어요. 어떤 곳은 아직도 움찔움찔 움직이면서 뻘건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었어요. 그들은 과감하게 금별 대통령의 뒤를 따라 우주비행선을 몰고 소혜성에 날아  내렸어요. 그들이 숱한 접은 날개를 부리어 쭉 폈어요. 좌우로 100여 미터씩이나 날개를 쭉쭉 펴졌어요. 그때 허수아 총리한테서 급전이 날아왔어요. “대통령과 정예우주비행선이 소혜성으로 날아간 틈을 타서 뱀 섬나라 놈들이 동해로부터 우리 코치아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금별 대통령은 즉시 명령을 내렸어요. “수아, 빨리 해자와 금붕어와 함께 해군을 지휘해 침략군을 막아라!” 대통령과 총리의 오가는 말을 듣고 클론바우 18세는 분개한 나머지 육중한 몸을 어기정어기정 조왕돌에게로 움직여가 코끼리코를 슬슬 만지면서 나직이 말했어요. “아예 이 기회에 혜성이 뱀 섬나라로 날아가 부딪치게 날개를 달아 놓을까요?” 조왕돌은 클론바우 18세의 독수리눈을 쳐다보면서 “글쎄 말이야.”라고 대답했어요. 금별 대통령이 말렸어요. “아니야, 우리 코치아와 뱀 섬나라는 이웃이 아니냐? 뱀 섬나라에 혜성이 떨어져도 우리 코치아, 아니, 온 지구가 무사할 거 같니?” 그제야 뭔가 깨달은 듯 클론바우 18세는 사자머리를 슬슬 매만지면서 툴툴거렸어요. “소혜성보다 뱀 섬나라 놈들이 더 문제야! 이번에 지구촌에 돌아가기만 해봐라. 콩가루를 만들어놓지 않는가!” 클론바우 18세 말에 복제 클론바우들은 뱀 섬나라 놈들을 윽윽 별렀어요. “어서 날개를 고정할 구멍을 파라!” 금별 대통령의 명령에 힘이 센 복제 클론바우들은 소다리 같은 팔을 휘두르면서 굴진기로 구멍을 파기 시작했어요. 어느 결에 햇빛이 오래지 않아 비추게 됐어요. 클론바우 발밑의 광물질들이 점점 달아오르면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어요. “앗! 따가워라!” 복제 클론바우들의 악어껍질 같은 두터운 살가죽도 달아오르는 열기에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러자 금별 대통령은 황급히 “우주비행선에 올라가서 문을 열고 구멍을 파라!”라고 명령했어요. 숱한 복제 클론바우들은 황급히 우주비행선에 올라가 문을 열고 서서 힘겹게 구멍을 파기 시작하였어요. 이때 조왕돌이 조왕돌 로봇부대에 명령했어요. “로봇들이 구멍을 파라!” 명령이 떨어지자 복제 조왕돌들이 지휘하는 숱한 로봇들이 우주비행선에서 뛰어 나왔어요. 그들은 복제 클론바우들의 손에서 굴진기를 받아들고 뜨르륵 뜨르륵 구멍을 파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여기저기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숱한 구멍을 뚫어 놓았어요. 허나 조왕돌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로봇들에게 저쪽 한 모퉁이로 해 커다란 구덩이 두 개를 일직선으로 계속 파게 했어요. 차슬기 국방부장은 의아해 조왕돌을 건너다보면서 물었어요. “건 뭐하자고?” 허나 그건 복제 조왕돌이었어요. “예?” 차슬기가 되돌아보며 두리번거리면서 찾아보니 진짜 조왕돌은 우주비행선 위에 앉아 있었어요. 육중한 조왕돌은 엄숙한 표정을 지었어요. “핵 발동기를 단다고 해서 혜성의 궤도를 바꿀 수 있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  뱀 섬나라 우주과학자들이란 변수가 남아 있습니다. 뭐나 여지를 둬야 하지요.” 금별 대통령은 클론아우들이 핵 발동기날개를 부리는 것을 보다가 조왕돌에게로 눈길을 돌렸어요. 조왕돌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어요. “뱀 섬나라 놈들이 핵 발동기 날개를 우리 코치아 방향으로 돌려놓으려 한다는 군사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만약 이번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면 저 구덩이에 핵폭탄을 파묻어 넣고 소혜성을 아예 폭발해 버려야 합니다.” 금별 대통령은 아들을 대견스레 바라보았어요.  “시간이 없다. 빨리 핵 발동기날개를 고정시키라!” 차슬기 국방부장이 목청을 가다듬어 명령했어요. 햇빛이 소혜성을 비추기 시작하면서 지면이 움찔거리더니 갈라터지고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어요. 조왕돌 부대 로봇들은 먼저 핵 발동기 발들을 이미 파 놓은 구멍에 고정시켰어요. 그 다음 핵 발동기가 달린 날개를 10개를 발들에 단단히 고정시켰어요. “빨리 우주비행선에 오르라!” 모든 사람들과 로봇들은 몽땅 우주비행선에 올랐어요. 강렬한 햇빛이 소혜성을 비추었어요. 불기둥이 강렬하게 치솟기 시작했어요. “날개를 가동하라!” 금별 대통령의 명령이 떨어지자 복제 조왕돌들은 원격조정기로 핵 발동기날개를 가동했어요.  백여 미터씩이나 쫙 펴진 은빛날개가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소행성을 떠나자!” 소혜성에서 몇 백 킬로미터 떨어진 태공에서 불기둥이 치솟는 소혜성을 바라보니 불타는 소혜성은 번개같이 돌아가는 핵 발동기날개에 의해 천천히 궤도를 바꾸기 시작했어요. “지구촌으로 귀항!” 복제 조왕돌들과 클론바우들은 기뻐서 야단쳤어요. “어, 지구촌은 살았구나!” 지구로 돌아가는 그들이 바라본 녹색의 지구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랐어요. 클론바우 18세는 다른 소리를 쳤어요. “우린 저 살기 좋고 아름다운 지구를 보위해야 한다. 허나 지구촌에 뱀 섬나라의 나까아멘 같은 악마들이 살아 있는 한 편안한 날이 없다.” 그때 금별 대통령이 우주비행선 앞좌석에 걸린 게시판에 지시가 떴어요. “떠들지 말고 우주공간을 잘 살피라!” 아니 저게 뭐예요. 삿갓처럼 생긴 비행물체가 그들이 떠나온 소혜성 부근을 맴 도는 것이 아니겠어요. “조왕돌은 로봇부대를 거느리고 즉시 저 비행접시들을 감시하라! 만약 핵 발동기날개를 건드리기만 하면 저격하라!” “옛!” “우리도 가겠습니다!” “클론바우 특수부대는 지구촌에 돌아가 뱀 섬나라 침략군을 저격할 준비를 하라!” “옛! 알았습니다!” 조왕돌이 로봇부대를 이끌고 우주비행선을  몰고 쏜살같이 소혜성 부근으로 다가갈 때었어요. 비행접시들은 소혜성에 접근하더니 미사일로 핵 발동기날개를 조준해 쏘는 것이 아니겠어요. 조왕돌은 황급히 미리 소헤성에 파묻는 미사일방어체계를 가동했어요. 조왕돌이 원격조종기를 누르자 날아가던 미사일이 요격 당해 ᄄᅠᆯ어졌어요. 일부 비행접시들은 기수를 돌려 조왕돌 부대의 우주비행선을 향해 덮쳐왔어요. 한차례 우주공간에서 우주비행선과 우주비행접시들의 접전이 벌어졌어요. 조왕돌은 우주비행선을 몰아 소혜성 뒤로 추격해 가면서 고함쳐 물었어요. “네 놈들은 누군데 감히 소혜성 날개를 파괴해?!” 뱀의 대가리를 새긴 비행접시들이었어요. “우린 뱀 섬나라 우주비행접시들이다. 네 놈들을 죽여야 우리가 지구촌을 재패할 수 있어!” 말을 마치자 불길이 날아왔어요. 조왕돌은 급히 기수를 올려 피하면서 반격을 가했어요. 뱀 섬나라 비행접시가 불을 토하면서 소혜성에 부딪쳐 박산 났어요. 그 바람에 핵 발동기날개 하나가 파손 됐어요. 황급해난 비행접시들은 소혜성에 미사일을 갈기면서 도망쳤어요. “조왕돌 부대는 소혜성의 핵 발동기날개를 지키라!” “옛!” 금별 대통령과 클론바우들은 지구촌 쪽으로 도망치는 뱀 섬나라 비행접시들을 추격해 갔어요. 비행접시들은 우주전투경험이 풍부한 금별 대통령의 불벼락을 맞고 하나하나 대기층에 떨어져 연소돼 재 가루로 돼버렸어요. “조왕돌 최고사령관, 소혜성의 날개는 어떤가?” 차슬기 국방부장의 물음에 조왕돌의 대답소리가 똑똑히 들렸어요. “하나만 파손됐습니다.” 차슬기 국방부장이 명령했어요. “뱀 섬나라 비행접시들은 하나도 남지 않고 전멸됐다. 조왕돌 부대는 즉시 지구촌에 귀항해 침략군을 반격하라!” “옛!” 코치아의 여러 우주비행선이 속속 수도 연화시 우주비행장에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 개선했어요. 국민들은 환호했어요. “코치아 우주영웅들 만세!” 우주 비행사들을 환호하는 만세소리가 코치아의 하늘땅을 진감했어요.                     제18장 소혜성과의 결투 지구촌의 모든 천문대 관측소의 망원경들은 지구로 날아오는 소혜성을 감시하면서 궤도를 측정하고 있었어요. 소혜성은 예정대로 지구를 충돌할 궤도를 벗어나 달나라 쪽으로 빗나가고 있었어요. 모두들 비지땀을 쥐고 소혜성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후 내쉬었어요. 그런데 며칠 후 코치아의 국방부장 차슬기가 대통령부에 찾아와 놀라운 소식을 보고했어요. “금별아, 소혜성은 지구로 돌진해 온다!” 조왕돌은 황급히 서쪽 벽에 걸린 대형 형광판을 들여다보았어요. 확실히 소혜성은 다시 지구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어요. “아니, 저게 어떻게 된 일인가? 어제 밤까지도 궤도를 바꿔 달 저쪽으로 기울었더니?” 그러자 차슬기 국방부장은 “핵 발동기 날개가 몽땅 끊어져 버렸어.” 하고 소리쳤어요. 금별 대통령은 황급히 차슬기가 가져온 하프망원경이 관찰한 전자화면을 확대해 보았어요. 순간 핵발동기만 돌아가는 화면이 나타나고 날개가 몽땅 끊어난 처참한 정경이 나타났어요. 이때 허수아 총리도 대통령부에 찾아왔어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어제 밤까지 아무 일도 없던 핵 발동기날개가 몽땅 끊어지다니?” 차슬기는 의혹을 제기했어요. “글쎄 말이야! 소혜성이 원래는 지구 쪽으로 오던 궤도를 바꿔 달 쪽으로 날아갔어. 그런데. 참, 아무래도 뱀 섬나라 놈들이 한 짓인 거 같아. 그 놈들을 없애 버려야 소혜성을 전승할 수 있다.” 허수아는 금별을 마주 보면서 이상해 했어요. “조왕돌은 뱀 섬나라 비행접시들을 근심해 로봇우주비행선을 남겨 소혜성 주위를 맴돌면서 지키고 있어. 아직 그렇다 할 증거를 장악하지는 못했어.” 금별 대통령은 의자에서 일어나 소혜성을 바라보면서 이를 악물었어요. “시간이 없다. 두 번째 행동방안 대로 헬륨폭탄으로 소혜성을  폭파해버리자!” 금별 대통령은 긴급군사회의를 열었어요. 회의에는 허수아 총리와 차슬기 국방부장 외에도 우성 전임대통령이 참가했어요. 천세도 넘는 유리 박사는 이젠 기력이 많이 못해져 클론바우 16세와 아가씨의 부축을 받으면서 간신히 회의장에 들어왔어요. 500세도 넘는 다혜 박사도 아가씨의 부축을 받으면서 들어왔어요. 회의장에는 금붕어 소장과 림해자 해양수산물부장 그리고 클론바우 18세와 조왕돌 최고사령관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어요. 금별 대통령은 단독직입으로 말했어요. “지금 소혜성은 궤도를 바꾸었다가 다시 지구 쪽으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헬륨폭탄으로 소혜성을 박살내야 하겠습니다. 1차 폭파에서 남은 큰 운석들을 2차 폭파에서 없애 버려야 합니다. 만약 2차 폭파에서도 의연히 큰 운석이 남아도 지구촌 인류에 막대한 재난을 줄 수 있습니다. 3차 폭파를 해 없앨 각오를 해야 하겠습니다.” 금별 대통령은 비장한 각오를 하고 일어나 말했습니다. “지구와 인류를 구하는 이번 군사행동은 제가 직접 우주비행선을 이끌고 실행하겠습니다.” “안 됩니다!” 차슬기 국방부장이 벌떡 일어났어요.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금별 대통령은 대형 형광 판 앞에서 지휘하면 됩니다.” 공식적인 회의만큼 차슬기는 죽마고우에게도 존대를 쓰면서 엄숙하게 말했지요. 허수아 총리도 말렸어요. “대통령까지 갈 필요는 없습니다. 차슬기 부장과 클론바우 18세 아니면 조왕돌 최고사령관이 가면 됩니다.” “안 되오. 이번 소혜성을 박살내는 전투는 지구와 지구촌의 인류의 생명안전에 관계되는 중대한 대사요. 30여 년 전에 소혜성과의 결투를 해본 경험이 있는 내가 꼭 가야 하오. 근거리에서 지휘해야 정확하게 소혜성을 박살낼 수 있소.” 금별 대통령은 허수아 총리한테 다가와 손을 굳게 잡더니 어깨를 다독였어요. “허수아비야, 코치아를 맡긴다. 내가 혹시 잘 못되면 코치아 국민들을 이끌어 뱀 섬나라 악마들을 전승하고 코치아, 아니, 지구촌을 보위하게나. 부탁이다.” 대통령과 총리는 모두 어린 시절로 돌아가 서로 별명을 부르면서 말했어요. “야, 이 남북골 같은 게 무슨 소리야? 불길한 말을 하지 말고 가지 마라.” 금별 대통령은 우성 전임 대통령한테 다가가 두 손을 굳게 잡았어요. “대통령께서 연세가 계시지만요. 뱀 섬나라와 코치아의 정황을 잘 알고 계시니까요. 허수아 총리를 도와 이 나라를 구해주십시오.” “믿어주어 고맙네. 부디 무고히 돌아오게나.” 우성 전임대통령은 허연 머리를 끄덕였어요.  금붕어도 오빠의 신변이 근심됐어요. 허나 금붕어나 조왕돌, 아니, 그 자리에 앉은 여러 사람들은 금별 대통령의 곧은 성격을 알고도 남음이 있어 더 말리지 못했어요. 금별 대통령과 차슬기 국방부장은 조왕돌 최고사령관이 이끄는 조왕돌 로봇부대 특수요원들을 이끌고 우주비행선으로 나갔어요. “아빠!” 모두들 뒤돌아보았어요. “조왕돌아!” 한 처녀애가 소리치면서 달려 왔어요. 그 처녀애는 차슬기 국방부장의 딸 보름이었어요. 그녀는 소꿉친구 조왕돌 최고사령관의 비서로 일하면서 조왕돌과 열애하는 사이었어요. 차슬기 국방부장은 보름을 꼭 껴안고 얼굴을 비비었어요. “아빠, 하느님께서 아버님과 여러분을 보우해줄 것입니다.” “그래, 내가 너희들을 보더라도 살아야지. 조왕돌과 결혼할 때 내가 네 손을 잡고 가서 직접 조왕돌에게 넘겨줘야지.” 차슬기 부장은 결혼식장에서처럼 보름의 손을 잡아 조왕돌에게 넘겨주었어요. 조왕돌은 보름의 손을 잡고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보름은 조왕돌의 품에 안겨 어깨를 달싹이었어요. 조왕돌은 보름을 꼭 껴안고 황소숨을 후 내쉬었어요. 이윽고 보름은 눈물이 질벅한 얼굴을 들어 조왕돌의 수척해진 얼굴을 마주 보면서 말했어요. “꼭 혜성을 깨버리고 돌아오세요. 제가 칼산 꼭대기에서 기다리겠어요.” 조왕돌은 코마루가 시큼해나 입을 씰룩거리었어요. “그래, 내 꼭 돌아와 그대와 결혼하리다.” 그 장면을 본 금별 대통령과 차슬기 부장은 머리를 숙였어요. 보름은 떠나가는 시아버지 금별대통령과 본가 집 아버지 차슬기 부장 그리고 신랑 조왕돌에게 두 손 모아 큰절을 올렸어요. 우주비행장 저쪽에서 그 장면을 본 선영은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어요. 그녀는 부디 조왕돌이 무사히 돌아올 것을 기도했어요. 금별 대통령과 차슬기 부장은 한 손씩 잡아 부축해 보름을 일으켜 세웠어요. 조왕돌은 눈물을 손으로 쓱 닦고 성큼성큼 우주비행선 쪽으로 걸어 갔어요…     금별 대통령은 우주비행선에 오른 후 간단한 연설을 발표했어요. “지금 뱀 섬나라 악당들은 소혜성이 지구를 충돌해 지구 종말론을 고취하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인심이 황황한 기회를 타서 코치아를 발판으로 대륙침략의 야욕을 실현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혜성을 제거해 지구와 지구인들을 보호하고 허황한 지구 종말론을 종말지어야 합니다. 뱀 섬나라 대륙을 침략하려는 야심과 지구촌의 영토를 재분배하고 재패하려는 야망은 결코 실현될 수 없습니다. 승리는 영원히 우리 영웅적인 코치아 인민들에게 속합니다! 인류의 무절제한 욕망은 지구를 망가뜨리고 인류의 무덤을 스스로 파게 됩니다. 뱀 섬나라에서는 이제라도 대륙침략의 야욕을 버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이웃나라 코치아와 친선나라로 보낼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나까아멘 왕과 뱀 섬나라는 그 반면거울로 돼 지구인들에게 교훈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핵전쟁을 막아야 합니다. 핵전쟁으로 인해 뱀 섬나라와 코치아가 심한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세계 핵전쟁은 지구를 훼멸하고 인류가 생존할 생태환경을 해치게 됩니다. 승리는 평화와 박애, 정의를 사랑하는 지구촌 인민들에게 속할 것입니다!”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은 텔레비전화면을 보고 머리를 끄덕이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어요. “출발!” 금별 대통령의 명령이 떨어지자 우주비행선은 헬륨폭탄을 싣고 하늘로 날아올랐어요. 그들이 혜성에 거의 접근할 때었어요. 난데없는 우주비행접시 여섯 대가 편대를 지어 날아왔어요. 찬찬히 보니 뱀의 대가리를 새긴 뱀 섬나라의 놈들이 아니겠어요. “코치아 놈들, 염라왕을 보러 갈 준비나 해라!” 조왕돌도 고함쳤어요. “잘 만났다. 네 놈들이 소혜성 날개를 박살냈지? 조왕돌 부대 돌격!” 로봇들이 모는 우주비행선은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전투편대를 갖추고 삼면으로 뱀 섬나라의 비행접시들을 공격했어요. 그새 금별 대통령 등의 우주비행선은 곧추 불꼬리를 달고 지구 쪽으로 날아오는 소혜성을 향해 돌격해나갔어요. “미사일로 공격!” 조왕돌 최고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로봇들은 비행접시들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어요.    꽝! 꽝! 꽝! 피하기만 하던 코치아 우주비행선의 반격에 그만 3대의 비행접시는 미사일에 격추되고 말았어요. 나머지 3대는 질겁해 우주 공간으로 멀리 도망쳐 버렸어요. 로봇비행사가 모는 3대의 우주비행선은 그 놈들을 놓칠세라 추격해갔어요. 그 사이 금별 대통령이 이끄는 우주비행선은 소혜성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까지 접근해갔어요. 조왕돌이 청시해왔어요. “아빠, 즉시 헬륨폭탄으로 소혜성을 공격하랍니까?” “아니야. 완전히 폭파해버리기 위해 우린 소행성에 헬륨폭탄을 매장한 후 원격조정기로 폭파해야 한다. 전번에 미리 구덩이를 파놓았기에 이번엔 쉽게 됐다.” “알았습니다.” 그들은 인차 소혜성 가까이에 접근했어요. 차슬기 부장과 조왕돌 최고사령관이 자진해 햇빛이 비추지 않는 소혜성 뒷면으로 해 소혜성에 오르려고 했어요. 그런데 망원경으로 소혜성을 아무리 수색해도 그늘이 진 곳에는 전번에 파 놓은 구덩이가 보이지 않았어요. 소혜성을 맴돌면서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전번에 파놓은 구덩이는 햇빛이 비추는 곳에 빤히 보였어요. 아직도 구덩이가 햇빛을 등진 곳으로 돌아가려면 반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했어요. 이때 또 뱀 섬나라 비행접시들이 급습해 왔어요. 이번에도 조왕돌은 로봇우주비행사들을 파견해 저지했어요. “헬륨폭탄은 고온에 폭파하지 않습니다. 원격조정기로 눌러야 폭발합니다. 구덩이 정황을 잘 아는 제가 로봇우주비행사들을 지휘해 소혜성에 올라가 헬륨폭탄을 묻고 돌아오겠습니다.” “내가 같이 가겠네.” 차슬기 부장이 따라나섰어요. 금별 대통령은 급히 고함쳤어요. “조왕돌이 혼자 가라!” 조왕돌은 아버지와 가시아버지를 돌아보고 나서 소혜성에 우주비행선을 몰고 돌진했어요. 지구촌 코치아 고향 칼산에서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보름은 눈물을 줄줄 흘렸어요. 조왕돌은 로봇우주비행사들을 지휘해 소혜성 구덩이 옆에 날아갔어요. “즉시 헬륨폭탄을 구덩이에 매장하라!” 로봇들은 구덩이 상공에서 헬기처럼 떠있는 우주비행선에서 항아리만큼 한 헬륨폭탄을 부리어 구덩이에 천천히 내려놓기 시작했어요. 씽- 갑자기 미사일 한매가 날아와 폭발하면서 로봇이 모는 우주비행선이 폭발했어요. 헬륨폭탄은 구덩이에 꽝 떨어졌어요. 허나 다행히 폭발하지는 않았어요. 하늘에서는 뱀 섬나라 우주비행접시들이 미쳐 날뛰면서 미사일을 소혜성에 퍼부으면서 로봇들이 헬륨폭탄을 부리는 것을 막았어요. “뱀 섬나라 우주비행접시들을 저격하라! 대통령을 보호하라!” 조왕돌의 명령에 따라 로봇들은 우주비행선을 몰고 우부비행접시들을 막아 싸웠어요. 우주공간에는 삽시에 미사일 폭발소리가 요란했어요. 몇몇 우주비행선과 뱀 섬나라의 우주비행접시들이 우주에서 폭발해 추락했어요. 금별 대통령은 로봇우주비행사들이 모는 우주비행선을 지휘해 뱀 섬나라 우주비행접시들과 용맹하게 싸웠어요. 그는 될수록 우주비행접시들을 유인해 소행성에서 헬륨폭탄을 파묻는 조왕돌 등에게서 멀리 떨어진 우주공간으로 유인해가서 싸웠어요. 그 사이 로봇들은 조왕돌의 지휘아래 헬륨폭탄 10여개를 커다란 구덩이에 안전하게 파묻어놓았어요. “소혜성에서 철거하라!” 조왕돌은 원격조절기를 꽉 틀어쥐고 명령했어요. 이제 원격조절기를 누르기만 하면 1차 폭파는 성공할 판이었어요. 갑자기 시뻘건 불줄기가 이쪽으로 쭉 날아왔어요. 꽝! 뱀 섬나라 우주비행접시가 쏜 미사일에 조왕돌이 탄 우주비행선 꼬리가 뭉텅 날아 났어요. 순간 조왕돌은 우주비행선 밖으로 튕겨 나왔어요. “앗!” 조왕돌은 우주공간에서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어요. 그때 차슬기 국방부장은 즉시 추격해오는 우주비행접시에 미사일 반격을 가했어요. 꽝! 요란한 굉음과 함께 뱀 섬나라 우주비행접시는 박살났어요. 차슬기 부장은 우주비행선을 몰고 대기층 쪽으로 추락하는 조왕돌을 쫓아갔어요. 그 장면을 보고 보름은 칼산에서 꿇어앉아 두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모아 쥐고 하늘에 기도를 드렸어요. “제발 하느님께서 저의 아빠와 신랑을 구해 주옵소서. 부탁입니다. 꼭 구해 주옵소서.”  한참 후에 차슬기 부장은 아주 능숙한 솜씨로 조왕돌을 우주비행선에 붙잡아 들여왔어요. “살았어.” 그제야 눈을 뜬 조왕돌은 손을 들어보면서 놀란 소리를 질렀어요. “아니, 원격조종기를 떨어뜨렸구먼요.” 금방 미사일 공격을 받았을 때 우주비행선에서 튕겨 나오면서 떨어뜨렸던 것이죠. “이걸 어쩌는가요? 원격조종기가 없으면 소혜성에 내려가 수공으로 스위치를 눌러 헬륨폭탄을 폭파해야 합니다.” “내가 갈게.” 차슬기 부장이 나섰어요. 허나 조왕돌 최고사령관은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아닙니다. 헬륨폭탄 스위치는 저 혼자 압니다. 수류탄처럼 손으로 인폭장치를 쥐어 당겨 뽑아야 폭발하기에 제가 가야 합니다.” 차슬기 국방부장은 절망에 빠졌어요. “그런 법은 없어. 로봇들을 보내지.” 허나 조왕돌의 대답은 실망스러웠어요. “보십시오. 그들은 모두 전사됐습니다.” 차슬기 부장이 우주를 돌아보니 로봇들이 모는 우주비행선 10여대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저쪽에 금별 대통령만이 보였어요. “이 일을 어찌 하는가?” 조왕돌은 우주비행선에서 차슬기 국방부장을 보고 눈물이 글썽해 말했어요. “보름을 잘 부탁합니다. 가시아버지, 보름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주십시오. 결혼해 잘 살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보름에게 죽을죄를 졌습니다.” “아니야,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어?” 차슬기 부장은 머리를 푹 숙였다가 무릎을 탁 치며 고개를 들었어요. “됐네. 미사일로 헬륨폭탄을 쏘아 폭파하면 되지 않는가!” “안 됩니다. 헬륨폭탄은 인폭장치가 가동되지 않으면 핵융합을 할 수 없어 폭파되지 않습니다. 그때면 헬륨폭탄이 폭발하기 전에 소행성이 지구를 충돌하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미사일도 절약해 뱀 섬나라 악당들을 저격해야 이번 지구 보위 전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이럴 법이! 내가 자넬 바래주지.” 차슬기 국방부장은 우주비행선을 몰고 소행성에 접근했어요. 조왕돌이 우주비행선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었어요. 갑자기 차슬기 부장이 훌쩍 소행성에 뛰어내리면서 문을 꽝 닫고 바깥으로 걸어버렸어요. “내 딸 보름을 잘 부탁하네!” “가시아버지! 안 됩니다. 제가 가야 합니다.” 조왕돌이 문을 열려고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걸려서 열리지 않았어요. “이건 내가 해야 할 몫이네. 빨리 떠나게! 시간이 없어!” 차슬기 부장은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구덩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어요. 그는 지구 쪽을 돌아보면서 고함쳤어요. “보름아! 조왕돌 최고사령관을 모시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 칼산에서 이 정경을 본 보름은 “아버지! 위대한 내 아버지!” 하고 대성통곡을 치다가 까무러쳐 쓰러졌어요. 차슬기 부장은 우주비행복이 고온에 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구덩이로 뛰어갔어요. “술기야!” 금별 대통령은 고향 죽마고우의 별명을 마지막으로 목 놓아 불렀어요. “남북골아, 애들을 부탁하마!” 차슬기는 금별에게 손을 저었어요. 뒤이어 그는 지구촌을 향해 고함쳤어요. “소혜성 놈아, 죽어봐라! 우리 지구인들은 승리했다! 사랑하는 지구 만세!!” “가시아버지!” “슬기야!” 금별 대통령과 조왕돌 최고사령관은 목놓아 불렀어요. 꽈르릉 꽝꽝! 거대한 굉음과 함께 소혜성은 헬륨폭탄이 폭발하면서 우주공간에서 박살났어요. 지구촌에서도 사람들은 소혜성 부근에 비치는 강렬한 방사선을 볼 수 있었어요. 망원경에는 산산 박살난 소혜성 조각들이 불꼬리를 달고 날아가는 것이 보였어요. “저걸 어찌 하는가?” 조왕돌은 눈물을 씻으면서 우주공간을 살피다가 맥이 풀린 말을 했어요. “왜?” 금별 대통령은 산산이 부서진 운석들을 살펴보았어요. 글쎄 그중 커다란 운석이 눈에 띄었어요. 얼핏 보아도 축구장만큼은 될 거 같았어요. “2차 폭발을 하라!” 허나 조왕돌은 절망에 가까운 소리를 쳤어요. “우린 미사일도 몇 개 없어요.” “내 우주비행선에도 하나 밖에 없구나.” 금별 대통령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결연히 말했어요. “헬륨폭탄 하나면 충분하다.” 이때 갑자기 또 뱀 섬나라 우주비행접시들이 날아왔어요. “이 가메다 국방부장이 네 놈들을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래다!” 조왕돌은 막아 나가면서 대성질호했어요. “비열한 놈들, 남이 미사일이 떨어지기를 기다려 암수를 쓰는 거냐?!” 가메다의 빈정거리는 소리가 우주공간에 쩌렁쩌렁 울렸어요. “군사는 얼림 수를 쓰는 걸 거리지 않는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어? 어리긴 어리구나. 좀 더 배워야겠구나! 허허허.” 조왕돌은 가메다 무리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려 미사일을 발사했어요. “미사일이 없다더니 저 놈이!” “하하하. 넌 허허실실이란 말도 배우지 못했느냐?!” 조왕돌의 말을 듣고 겁을 집어 먹은 가메다는 기수를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에크! 어떤 조왕돌 놈이라고?!) 허나 그때는 늦었어요. 씽- 미사일 한방이 날아가더니 가메다 놈이 탄 우주비행접시에 명중됐어요. 가메다 놈은 돼지 멱따는 비명을 질렀어요. 그 놈이 탄 우주비행접시는 불기둥이 된 채 대기층으로 거꾸로 처박혀 불타버리고 있었어요. 나머지 뱀 섬나라 우주비행접시들은 더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뒤꽁무니를 뺐어요. 조왕돌이 추격하려고 할 때 금별 대통령이 말렸어요. “그만 둬라! 미사일을 남겼다가 저 놈 운석을 깨버려라!” 조왕돌은 아쉬운 대로 추격을 멈췄어요. 그들 부자간은 큰 운석을 향해 짓쳐 나갔어요. 그때 도망치던 뱀 섬나라 우주비행접시들이 일제히 기수를 돌리더니 되 공격해 왔어요. 쉭- 쉭- 미사일이 날아왔어요. 그중 마시일 하나가 금별 대통령이 탄 우주비행선의 날개를 스치고 지나갔어요. 순간 유선이 터지면서 화염이 활 솟구쳤어요. 우주비행선은 기우뚱하더니 한쪽으로 비틀거렸어요. 이때 클론바우 18세가 거느린 우주비행선 네 대가 구름 속에서 날아나와 영용하게 뱀 섬나라 우주비행접시들을 막아 싸우면서 추격했어요. 지구촌의 사람들은 그 정경을 보고 모두 경악했어요. 코치아 대통령부에서 사랑은 대형형광 판에서 그 정경을 차마 볼 수 없어 머리를 숙였어요. 이때 금별 대통령은 커다란 운석을 향해 헬륨폭탄을 발사하려고 단추를 눌렀어요. 허나 우주비행선이 미사일에 맞아 찌그러들면서 헬륨폭탄이 떡 걸려 발사가 되지 않았어요. 그러자 금별 대통령은 헬륨폭탄을 실은 우주비행선을 몰고 거대한 운석을 부딪쳐 폭발시킬 비장한 결심을 내렸어요. 뒤이어 그의 격앙된 목소리가 우주에서 쩌렁쩌렁 울렸어요. “지구보위 전 승리 만세!” “지구촌 평화와 친선 만세!” 금별 대통령은 구호를 연속 부르며 불타는 우주비행선을 비틀비틀 몰고 커다란 운석을 향해 간신히 날아갔어요. “아버지! 멈추세요! 제가 미사일로 공격하겠어요.” 허나 금별 대통령은 멈추지 않았어요. “안 된다. 미사일로 저 큰 운석을 깨지 못해! 어머니, 고모와 보름을 부탁한다!” “아버지!” 금별 대통령은 사랑하는 처자를 남겨두고 우주비행선을 몰고 운석을 들이 부딪쳤어요. “지구촌은 영생할 것이다!” 꽈르릉 꽝! 금별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고함치며 우주비행선을 몰고 운석을 들이받았던 것이죠. 헬륨폭탄이 폭발하면서 축구장만한 운석이 박살나고 말았어요. “아버지!” 조왕돌은 눈물을 머금고 나머지 운석 조각들에 나머지 미사일을 발사했어요. 꽈르릉 꽝꽝 제3차 폭발이었어요. 운석 조각들은 박살나 대기층으로 날아가면서 연소됐어요. 바다에 운석 조각들이 떨어지면서 숱한 물기둥을 일으켰어요. 일부 운석 조각들이 지상에 떨어지면서 강렬한 진동이 일고 여러 삼림에 불이 붙었어요. 허나 지구는 뱀 섬나라 악당들이 바라던 대로 깨지지 않고 보호됐어요.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은 그날, 기원 4000년 1월 1일, 금별 대통령과 차슬기 국방부장이 지구를 보위하기 위해 희생된 날을 기억하게 됐어요. 나까아멘 왕은 잠수함에서 우주대전을 구경하다가 절망에 빠져 물앉았어요. “허참, 이번에도 실패란 말인가? 괜히 가메다 국방부장만 잃지 않았는가!” 노바시 수상은 속으로 가메다가 우주에서 코치아와 싸우다가 죽은 것이 잘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은 가메다가 살아 돌아와도 나까아멘 왕의 손에 죽기 마련이었으니까요. 나까아멘은 시종들을 보고 “일이 끝났어. 어서 잠수함을 지하왕궁에 몰아들여가라.” 하고 나직이 분부했어요. 잠수함은 바다에서 지하실로 미끄러져 들어가 자취를 감추어버리었어요.  조왕돌과 클론바우 18세가 우주비행선을 몰고 코치아 연화우주비행장에 서서히 내리었어요.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은 영웅 최고사령관이 소혜성과의 결투에서 승리하고 개선한 것을 환호했어요. 아카시아의 안나 부장은 “조앙돌 최고사령관은 자랑스러운 지구수호천사야!”라고 높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어요. 노르망디에서 죤슨의 딸 예리나도 감탄했어요. “금별 대통령은 세계 평화수호신이야!” 톰 사령관의 딸 애리카는 검정 얼굴에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예리나에게 말했어요. “참말 클론바우 18세도 잘 싸웠어. 금별과 조왕돌은 지구수호신 부자야!” 사랑은 보름을 데리고 “조왕돌아!” 하고 목놓아 소리치면서 달려 나가 포옹했어요. 조왕돌은 “아버님들을 모시고 돌아오지 못해 죽을죄를 졌습니다.”라고 하며 눈물을 펑펑 쏟았어요. 사랑이 뭐라고 말하려는데 옆에 서있던 우성 전임 대통령이 조왕돌의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앞질러 말했어요. “아니야, 아니. 금별 대통령과 차슬기 국방부장께서는 지구를 보위하고 세계 평화를 보위하기 위해 장렬히 희생되신 분들이시다.” 조왕돌은 보름을 꼭 껴안아주면서 눈물을 흘렸어요. “미안해, 나를 대신해 가시아버지께서 가셨구나.” 보름은 신랑의 품에 안겨 흐느껴 울었어요. 허수아 총리와 클론바우도 다가와 손을 잡고 문안했어요. 금붕어는 조카 조왕돌과 조카며느리 보름을 껴안고 울었어요. 림해자 해양수산물 부장도 다가와 죽마고우의 아들 조왕돌의 손을 잡고 잔등을 도닥여 주었어요. 우주비행장은 감격과 눈물의 파도로 끝없이 출렁거리었어요. 지구촌의 환호성소리 속에서 나까아멘 등 뱀 섬나라 악당들이 꾸며낸 기원 4000년 지구 종말론도 철저히 종말을 고하게 됐어요. 어느덧 지구촌은 4000년 1월 2일의 평화로운 아침을 맞게 됐어요.                                                     제19장 악마의 끝장 소혜성을 성공적으로 박살낸 후 코치아에는 날따라 정쟁이 심해져 갔어요. 우성 전임대통령을 위수로 한 허수아 총리 등은 악은 악으로 다스려야 한다면서 뱀 섬나라를 쳐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들은 모두 끊임없이 도발하는 악의 축 뱀 섬나라를 전승해야 지구촌의 인류는 평화로운 환경에서 살 수 있으며 지구의 생태환경도 보호할 수 있다고 했어요. 금붕어 소장은 악이 받쳐 말했어요. “뱀 섬나라 악당들은 이미 우리 남해를 점령했고 본토에까지 쳐들어왔어요. 악의 뿌리를 뽑아 버리지 않으면 우린 하루도 평안히 살 수 없어요. 이번에 아예 뱀 섬나라를 초토화해버립시다!” 허나 조왕돌은 반대의견을 내놓았어요. “나의 귀전에는 아직까지도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높이 외치신 구호소리가 쟁쟁합니다. 그 구호는 뭘 의미하십니까? 아버님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십니다.” 그때 노르망디제국의 톰 사령관이 찾아 왔어요. 톰은 조왕돌이 어려서 클론기술을 배우러 크롱 박사를 따라 노르망디에  갔을 때 면목 익힌 친구였어요. 그때 톰은 숱한 깜둥이를 데리고 와서 조왕돌의 축구공을 빼앗았다가 싸움을 하던 애였어요. “톰 총사령관, 환영한다!” 조왕돌은 톰의 손을 굳게 잡았어요. 톰 사령관은 흰 이를 드러내면서 깜장얼굴에 웃음을 지었어요. “조왕돌 최고사령관, 우리 몇 년 만이야? 합작해 악마의 소굴을 치자!”   허나 조왕돌은 “No! 우린 이웃과 친선관계를 건립해야 해.” 금붕어는 조카를 흘겨보았어요. “네 아버지가 지구를 보위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건 누구나 다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평화는 그저 악당들에게 들이대고 맞기만 해도 이루기 어렵다. 튼튼한 안보를 기초해 소규모 전쟁으로 끊임없이 전쟁책동을 꿈꾸는 악당들을 소멸해야 영구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법이다.” 클론바우 18세도 파초와 같은 커다란 귀를 펄럭이며 듣다가 합세했어요. “흥! 아직도 큰할아버지 만년의 착오적인 무조건, 무원칙적인 평화노선을 고집해서야 됩니까? 흥!” 클론바우 18세가 콧방귀를 뀌는 바람에 조왕돌의 앞에 놓였던 물 컵이 날아나 땅바닥에 퉁 떨어져 깨졌어요. 조왕돌은 자기 견해를 고집했어요. “악은 악으로 친다고 해서 코치아에서도 뱀 섬나라처럼 뱀 섬나라 본토를 침략해서는 안 됩니다. 코치아와 뱀 섬나라가 서로 원수를 갚고 복수를 하면 언제 가야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올 수 있겠습니까?” 허나 모든 사람들은 조왕돌의 견해를 반대해 나섰어요. 톰 사령관은 어이없다는 듯 두 팔을 벌려보였어요. “난 조왕돌 총사령관이 이렇게 나약할 줄 몰랐어. 어렸을 땐 꽤나 패기 있었는데. 우린 뱀 섬나라를 초토화해버릴 거야!” 말을 마치자 수하들을 데리고 뱀 섬나라를 치러 떠나가 버렸어요. 코치아 허 총리나 장관들은 모두 뱀 섬나라 악마들을 족쳐야 영구한 평화가 올수 있다고 입을 모았어요. 결국 우성 전임대통령과 허수아 총리의 제의대로 코치아 영토에서 뱀 섬나라 침략군을 족쳐 물리치기로 했어요. 클론바우 18세는 소 발굽 같은 주먹으로 책상을 탕 치면서 고함쳤어요. “아예 원자탄으로 나까아멘 놈의 소굴을 짓부수어 버립시다.” 허나 조왕돌은 또 반대의견을 내놓았어요. “건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핵무기를 쓰지 말아야 합니다.” 클론바우 18세는 사발 눈을 부릅뜨고 고래고래 고함쳤어요. “여러분들은 기억날 겁니다. 뱀 섬나라 악마들은 핵무기금지조약을 공공연히 위반하고 먼저 우리나라 한산 화산 마그마발전소에 핵무기를 썼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나라 남해와 후산 일대에도 핵무기를 써서 숱한 무고한 백성들을 살해하고 생태환경을 여지없이 파괴했습니다. 악마들은 또 뱀 섬나라 본토에 징벌하러 들어간 노르망디와 아카시아, 루스끼야 군에 핵무기와 독가스탄을 썼습니다. 그래서 이 몇 개 나라에서도 핵무기로 뱀 섬나라 악당 놈들을 족쳐 대가리를 숙이게 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악마들에게 들이대고 맞아야 합니까?! 우리도 핵무기로 뱀 섬나라 악당들을 징벌해야 합니다!” 허나 조왕돌은 한사코 반대했습니다. “핵무기는 절대 안 됩니다. 우리가 뱀 섬나라처럼 핵무기를 쓴다면 우리도 지구 생태환경과 인류를 해치는 악마들과 다를 바가 뭡니까?” 조왕돌이 한사코 반대하는 바람에 노르망디와 아카시아 군과 함께 뱀 섬나라 본토를 쳐들어가고 핵무기를 쓰려던 허수아 총리의 계획은 통과되지 못하였어요. 허나 상규무기로 남해와 후산 지대에 쳐들어온 뱀 섬나라 침략군을 몰아내기로 했어요. 조왕돌은 납득되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회의장에서 나갔어요. 허수아 총리는 조왕돌을 흘겨보면서 중얼거렸어요. “조왕돌은 아직 어려서 정치를 잘 모르오. 과학이나 연구할 사람이지 정치를 할 사람이 아니란 말이오. 내내 조왕돌의 동곽 선생처럼 모기가 물어도 죽이지 않고 옷을 벗고 ‘요 불쌍한 것들아, 좀 살살 물어라. 난 아프단 말이야.’ 이래야 한단 말인가?” 허수아 총리의 그 말에 금붕어는 조금 귀에 거슬렸어요. 허나 그녀는 벌렸던 입을 꼭 다물어버렸어요. 하긴 지금은 뱀 섬나라 악당들을 대적해 싸운 것이 중요하지 국정이 갈려서는 안 됐던 것이었어요. 클론바우 18세는 클론바우 특수부대를 지휘해 남해에 침략한 뱀 섬나라 해군을 물리치러 출발했어요. 조왕돌은 로봇부대를 정돈한 후 후산에 쳐들어온 뱀 섬나라 침략군을 물리치러 나갔어요. 금붕어도 거북잠수함대를 이끌고 동해에 쳐들어온 뱀 섬나라 해군을 막아 싸웠어요. 이때 뱀 섬나라 왕 나까아멘은 지하왕궁에서 못된 음모를 꾸미고 있었어요. “노바시 수상, 내 새로운 공격방안을 생각했네.” “예?” “고려원전을 폭파하게나.” “예? 예!” 노바시는 시중을 부르려고 바깥으로 나가려다 되돌아섰어요. “그런데 고려원전을 폭파하면 그 놈들이 우리 원전도 폭파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나까아멘 왕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어요. “원전을 폭파해 핵 방사선에 코치아 놈들이 살지 못하게 하란 말이야. 어서!” “예, 허나 그 숱한 고려 원전이 폭발되면 이웃 나라인 우리나라 바다와 공기에도 오염이 크지 않겠습니까?” 나까아멘 왕은 왕의 보좌에서 검을 쓱 빼들며 고래고래 고함쳤어요. “유엔군이 본토를 공격하는 바람에 우리가 다 죽게 됐어. 죽기 전에 그 놈들도 살지 못하게 지구를 망가뜨릴 거야!” “예. 알았습니다. 지구를 망가뜨리죠. 고려 원전마다 우리가 다 죽은 후 폭발하게 시한폭탄을 장치해 놓겠습니다. 그럼 누가 우리 한 짓이라고 의심하겠습니까?” 노바시 수상은 말을 마치자 바깥으로 나가 시종을 불러 특수요원들을 파견해 고려 원전에 시한폭탄을 장치하게 했어요. 노바시 수상이 들어오자 나까아멘은 또 횡설수설하기 시작했어요. “노바시 수상, 코치아의 금별이 땅에 떨어지지 않았는가?” “예, 그 놈 차슬기 국방부장도 혜성의 희생 품이 됐지요.” 나까아멘은 뾰족한 조개턱을 개 턱처럼 쳐들고 빈정거렸어요. “지금 이제 조왕돌만 제거하면 코치아를 손에 넣는 일은 낭중취물이 아니겠는가!” 노바시 수상은 대뜸 왕의 뜻을 눈치챘어요. “숱한 복제품들을 가지고 있는 고놈 조왕돌을 죽이기 쉽겠습니까?” “요즘 내 생각한 게 있어.” 노바시 수상은 나까아멘이 손짓하자 가까이 다가가서 귀를 나까아멘의 입에 대다시피 하고 눈을 딱 감고 귀담아 들었어요. “우리 지구에서 재난덩이는 과학자들이야.” “예?” 노바시는 놀라 머리를 들고 나까아멘이 제정신인가고 쳐다보았어요. 허나 나까아멘은 분명 똑똑히 말했어요. “들어보게나. 아인슈타인이 원자와 핵을 발명하지 않았는가? 그 바람에 우리 지구촌에는 원자탄이 탄생했네. 아인슈타인이 원자와 핵을 발견하지 못하고 핵물리학을 발전시키지 않았더라면 우리 지구촌은 핵 오염도 없이 원시적으로 잘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그제야 노바시는 머리를 끄덕였어요. “맞습니다. 참말 고명합니다.” 나까아멘은 흥이 도도해서 계속 늘여놓았어요. “과학자들이 자동차나 화학공업을 발명하지 않았더라면 지구의 온난화가 있겠나? 보라고. 공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자동차가 제일 적은 아프리카 땅은 오염이 적지 않은가? 우린 장차 아프리카에 가서 깜둥이들과 함께 살아야 할지도 몰라.” 노바시 수상은 나까아멘의 뜻밖의 말을 들으면서 해가 서산에서 돋지나 않나  지하왕궁에서 바깥에 나가 보고 싶었어요. (네 놈 때문에 지구가 얼마나 상처를 입었는데 네 놈이 언감 지구 생태한경을 왈가불가해?) 노바시의 속심은 모르고 계속 지껄였어요. “과학자들과 과학서적을 모조리 없애 치워야 지구촌은 오염도 없지. 그래야 인간과 모든 생물들이 원시 생태환경에서 편안히 살 수 있는 거야. 코치아에서도 조왕돌을 없애 버려야 세상이 편안해지게 된단 말이야. 그 놈은 무슨 과학을 연구해내겠는지 알고도 모를 놈이란 말이야.” 노바시는 속으로 이렇게 대답했어요. (픽! 나까아멘 네 놈부터 죽여 버려야 세상이 편안할 거야.) 그런 줄도 모르고 나까아멘은 녹음기 단추를 철컥 누르더니 노바시 수상에게 명령했어요. “금방 내가 한 말을 녹음해 놓았네. NHEK텔레비전방송국에 가지고 가서 방송하게나.” “예. 알았습니다.” 나까아멘과 노바시의 대화가 그대로 방송되자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은  정신이 나가지 않았나 했어요. 게다가 NHEK텔레비전방송국의 여성 아나운서의 논평을 듣고 죽일 놈은 나까아멘이라고 했어요. 이때 코치아 땅에서 이변이 일어났어요. 자연재해와 나까아멘의 비인간적인 폭행에 견디기 어려워 코치아에 피난을 간 뱀왕과 숱한 뱀 섬나라의 백성들은 우성 전임대통령을 뱀 섬나라 망명정부 대통령으로 선거했어요. 허나 우성은 이웃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려고 뱀 섬나라 대통령을 사절하고 뱀 왕을 대통령으로 추천했어요. “뱀 왕이야 말로 뱀 섬나라의 대통령으로 될 만한 분입니다. 그는 뱀 인들을 비롯한 뱀 섬나라 백성들을 자기 자손처럼 사랑한 어진 대통령감입니다.” 뱀 왕은 너무 황송해 얼룩덜룩한 긴 목을 빼들고 모여온 뱀 섬나라 백성들을 둘러보면서 뒷덜미를 긁적거렸어요. “내가 어찌 대통령까지 하겠소?” 우성 전임대통령은 뱀 왕의 손을 들어 소리 높이 고함쳤어요. “뱀 왕은 나까아멘 악당보다 더 나은 착하고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대자연의 순수한 마음을 가진 뱀 왕이 지도하면 뱀 섬나라에는 평화가 깃들고 환경오염을 방지하고 인류와 모든 생물의 생존을 보호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뱀 왕 만세!” “뱀 왕 대통령 만세!” 뱀 섬나라 백성들은 망명정부 대통령 뱀 왕을 모시고 뱀 섬나라에 쳐들어가 나까아멘 왕을 사살하고 고향에서 행복하게 살자고 떠들었어요. 뱀 왕은 뱀 섬나라 망명정부 대통령으로 된 후 뱀 섬나라 국민들의 민심에 따라 뱀 섬나라에 쳐들어가기로 했어요. 그때 클론바우 18세가 날아와 그들 속에 내렸어요. “뱀 대왕님, 레이자검을 휘두르는 나까아멘 왕의 호위무사들을 적수공권으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제가 클론바우 특수부대를 데리고 도와 달랍니까?” 그러자 뱀 왕은 목을 길게 빼고 클론바우 18세의 코끼리코를 마주 보면서 장담했어요. “근심하지 마십시오. 우린 힘으로가 아니라 꾀로 나까아멘 악마의 소굴에 가만히 쳐들어가 없애 치우겠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승리는 우리 뱀 인들에게 있습니다!” 뱀 왕은 뱀 인들과 미녀 특수소부대를 이끌고 밤도와 코치아 허수아 총리와 금붕어 소장이 제공한 잠수함을 타고 감쪽같이 바다 밑으로 해 뱀 섬나라에 건너갔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나까아멘 왕은 지하왕궁에서 노바시 수상과 함께 더 악독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어요. “노바시 수상, 이른바 지구의 생태환경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과학자들을 죽이는 기회에 조왕돌을 죽이자고 한 노릇이 물거품이 됐네 그려.” 노바시 수상은 자기에게 죄를 물을까봐 나까아멘 왕이 시퍼런 검을 쓱 뽑아 손가락으로 선뜩선뜩한 칼날을 쓱쓱 훑는 것을 겁기어린 눈길로 살피었어요. “어험, 고육지책을 쓰는 수밖에 없군 그려.” “예?!” 나까아멘은 검으로 노바시 수상을 겨누면서 중얼거렸어요. “놀랄 거 없어. 물고기도 죽고 그물도 망가뜨리세.” “?!” 나까아멘은 검을 도로 검 집에 쓱 걷어 넣으면서 분명히 말했어요. “우리 달을 폭파해 버리자고. 으흐흐흐.” 이를 부득부득 가는 미친 왕을 보면서 노바시는 사시나무 떨듯 온 몸을 떨었어요. “달을 폭파해 뭘 하자고 또 그, 그럽니까?” 나까아멘 왕은 이를 뿌드득 갈았어요.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서 악명이라도 남겨야지 않겠나. 이제 달을 폭파해서 지구와 달의 인력 균형을 파괴해버린단 말이야! 그럼 지구가 목성이나 금성이나 화성에 가 붙겠는지 아는가? 혹시 태양 아버지한테 가서 떡 들어붙으면 더 좋지! 그렇게 되면 지구의 모든 인류가 훼멸 될 거야! 내가 이미 달에 시한헬륨폭탄을 가득 묻어 놓았어. 이제 언젠가 달이 폭파할 거야.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악명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야.” 노바시 수상은 속으로 미친 왕을 욕했어요. (우리 대왕은 백치, 천치구나, 천치!) 그래도 그는 항상 그러했듯 낯가죽에는 웃음을 살짝 바르고 나서 말렸어요. “대왕님, 그만하세요. 이제라도 코치아에 투항하고 평화와 친선을 도모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불러옵니다. 지구를 없애고 우린 어디서 살겠습니까?” “뭐? 뭘? 길러준 개 발뒤축을 물어?!” 나까아멘 왕은 검을 쓱 뽑아 노바시의 배를 푹 찔렀어요. “앗!” 노바시 수상은 배에 들이박힌 검을 잡고 지하왕궁에 쓰러졌어요. 꾸불거리는 그의 배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어요. “으하하하. 배은망덕한 개 한 마리를 잡았구나.” 미친 나까아멘은 송곳 이를 드러내면서 징그럽게 웃어댔어요. 꽈르릉 꽝! 꽝! 갑자기 지하왕궁 천정이 무너지고 지하왕궁 문이 열리더니 물이 해일처럼 덮쳐들었어요. “아니, 이거 코치아 놈들이 핵무기를 쓰지 않겠다고 해놓고 배신행위를 해?!” “나까아멘 악마 놈아! 살인악마 네 놈을 처단하려고 우리가 바다를 건너 왔다!”  갑자기 난데없는 인면수신의 뱀들이 지하왕궁에 구불구불 기어들어와 대가리를 쳐들고 혀를 날름거리면서 덮쳐들었어요. “호위무사, 호위무사들은 뭘 하는가?!” “호위무사들이 여기 있다!” 헌데 저게 뭐예요? 레이자검을 휘두르기 전에 뱀 인들이 쏘는 독즙을 맞아 호위무사들은 지하왕궁  안에 삼대 쓰러지듯 했어요. “나까아멘, 너 이 악마 놈, 오늘 같은 말일이 올 줄을 몰랐지? 악은 악으로 다스릴 차례다!” 나까아멘은 깜짝 놀라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검을 쥐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면서 지하왕궁 굴 어귀를 내다보았어요. 희미한 등불아래 항앙리만큼 몸통이 실한 인면수신의 뱀 왕이 스르르 기어들어와 머리를 쳐들고 혀를 날름거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어느 결에 숱한 인면수신의 뱀 인들이 구불럭구불럭 기어들어와 나까아멘을 포위했어요. “아, 이 놈들이 화산 동굴에서 키워주었더니…” “에끼, 이 놈 왕아, 우릴 생체 실험하고서도. 죽어봐라!” 나까아멘 왕이 말을 채 하지도 못했는데요. 뱀 왕이 쏜살 같이 구불구불 기어나가더니 항아리만큼 실하고 10여 미터나 되는 얼룩덜룩한 몸뚱이로 나까아멘 악마를 휙 휘감더니 꽉 조이었어요. “아, 아야, 앗!” 뱀 왕의 얼룩덜룩한 몸뚱이에 휘감기어 나까아멘 악마는 죽어가는 소리로 비명을 질렀어요. 그의 몸뚱이고 상통이고 다 찌그러져 들어갔어요. 그때 뱀 왕은 대문짝 같은 아가리를 쩍 벌렸어요. 순간 아가리에서 1미터 반이나 되는 팔뚝만한 혀가 호랑이 꼬리처럼 휙 휘둘러 나까아멘의 목을 칭칭 감아 꽉 조이었어요. 하나꼬가 낳은 뱀 인이 달려들어 나까아멘의 대가리를 꽉 깨물어 쭉 뽑아버렸어요. 순간 대가리가 떨어진 악마의 목에서 시뻘건 피가 마구 튕겨 올랐어요. 숱한 뱀 인들은 우르르 기어나가 나까아멘 악마의 시체를 물고 마구 물고 뜯었어요. 어떤 뱀인들은 나까아멘이 대가리를 도끼로 부시고 자기 부모형제들의 고기를 씹어 먹은 악마의 이빨을 까부시었어요. 하루꼬와 야사시꼬 등 뱀 섬나라 미녀들은 땅바닥에 나뒹구는 피가 랑자한 나까아멘의 대가리를 밟고 서서 서슬 푸른 비수로 혀를 잘라냈어요. “이 더러운 혓바닥! 우리 뱅 여인들의 젖가슴을 도려내 채를 볶아 먹던 악마의 혀다!” 미녀들은 악이 나 비수로 악마의 혀를 칼 탕을 쳐버렸어요.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그녀들은 피가 질벅한 주둥이에 우줌을 싸 넣고 악마, 아니, 색마의 눈깔을 도려내고 똥물을 싸 넣었어요.  악마 나까아멘은 검을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인면수신의 뱀 여인들에게 씹혀 뼈다귀만 남고 말았어요. 이 때었어요. 난데없는 악어 떼들이 달려들어 피가 뚝뚝 떨어진 나까아멘의 뼈다귀들 물고 동굴에서 빠져나가 냇물가로 갔어요. “놔라! 그 뼈다귀는 우리 몫이야!” 수림 속에서 삽시에 소뿔 같은 송곳 이를 드러내고 멧돼지들이 달려들었어요. 악어들은 뼈다귀를 놓고 황망히 냇물에 뛰어들었어요. 멧돼지들은 나까아멘의 뼈다귀를 물고 수림 속에 들어갔어요. 그 놈들은 주둥이로 구덩이를 파더니 나까아멘의 뼈다귀를 파묻어주었어요. 사실 그 말할 줄 아는 멧돼지들은 조왕돌이 파견한 조왕돌 부대의 로봇멧돼지들이었어요. 조왕돌은 나까아멘 왕이 비록 악마지만 코치아가 이웃나라 뱀 섬나라 인민들과 평화적인 환경에서 친선의 정을 쌓아가려고 아무도 몰래 멧돼지 로봇들을 보내 국왕의 례로 나까아멘 왕의 장례를 치러 준 것이었어요. 그 날로 뱀 왕은 뱀 섬나라를 점거하고 백성들을 안무하는 한편 NHEK텔레비전방송을 통해 나까아멘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방송하게 했어요. 이전에 나까아멘 악마의 지시대로 “4000년 지구 종말론”을 방송하던 그 여성아나운서 야마구찌 모모에가 속보를 방송했어요. “나까아멘 악마는 척살되고 이제부터 뱀 섬나라에는 만민의 구세주이신 뱀 왕이 대왕으로 추대됐어요. 우리 뱀 대왕님은 뱀 인으로 태어났지만 나까아멘 왕과 비길 데 없이 어질고 착한 분이십니다. 그이는 이제껏 생체실험을 당하던 미녀들과 뱀들을 보호해 왔습니다. 이번 세계대전에서 뱀 대왕님은 코치아에 피난 간 뱀 섬나라 백성들과 인면수신의 뱀 인들을 지휘해 악마 나까아멘을 없애버렸습니다.” 뱀 섬나라와 코치아 백성들은 모두 악마 나까아멘 일당을 없애 버린 승리를 환호했어요.                              제20장 UFO요정과 글리제667C행성의 매력 지구상에서 뱀 섬나라의 악마 나까아멘과 노바시 그리고 가메다를 제거했지만 지구촌은 생태환경이 형편없이 파괴됐어요. 조왕돌에게는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어요. 그는 지하과학실험실에 들어가 그간 로봇들이 수집해놓은 기밀자료들을 하나하나 보고 들으면서 정리했어요. “차를 들고 일하세요.” 보름이 찻잔을 건네었어요. 그런데 파리 로봇이 녹음해 보낸 카드에서 흘러나오는 나까아멘 왕과 노바시의 말에 깜짝 놀랐어요. 그 것은 바로 고려 원전과 달을 폭파하려고 시한폭탄을 장치하라는 대목이었어요. “이걸 어쩌는가!” 조왕돌은 즉시 허수아 총리에게 핸드폰으로 회보했어요. 그러자 허수아 총리는 클론바우 18세와 조왕돌을 불러 욕설부터 퍼부었어요. “왜 이제야 회보하는 거야! 이 일을 어찌 한단 말인가?!” 꽈르릉! 갑자기 연화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해 쪽에서 폭발 굉음이 울렸어요. 클론바우 18세가 날개를 퍼덕이더니 급급히 날아가 보았어요. 한참 후 날아돌아온 클론바우 18세는 날개를 탁탁 털어 접으면서 황급히 말했어요. “고려원전 1호기와 2호기가 폭발했습니다.” 허수아 총리는 긴급명령을 내렸어요. “너희들은 즉시 클론바우 부대와 조왕돌 부대를 이끌고 모든 고려 원전에 장치한 시한폭탄들을 수색해 제거해라!” “달에 장치한 헬륨폭탄은 어쩌겠습니까?” 조왕돌의 물음에 허수아 총리는 고쳐 명령했어요. “클론바우는 고려원전을 수색하고 조왕돌은 달나라 헬륨폭탄을 제거해라!” “옛!” 클론바우 18세는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에 올라 클론바우 부대를 부르러 황급히 날아갔어요. 꽈르릉 꽝! 꽝! 이번에는 남해 부근에서 폭음이 들렸어요. “이거 온 나라 원전이 다 폭발하면 방사선 오염에 이 나라 땅에서 어떻게 산단 말인가!” 허수아 총리는 주먹으로 무릎을 치면서 울상이 됐어요. 조왕돌은 황급히 복제 조왕돌 로봇부대를 찾아 떠나갔어요. 조왕돌은 로봇부대를 이끌고 우주비행기에 앉아 달나라로 날아갔어요. 허나 늦었어요.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이는 것 같았어요. 꽈르릉 꽝! 꽝! 연이어  하늘에서 폭음이 울렸어요. 조왕돌이 그쪽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이게 뭐예요? 한창 일식을 하던 달 한 모퉁이가 폭파돼 뭉텅 날아나지 않았겠어요. 이젠 지구인들은 둥근 보름달을 다 보았어요. 순간 숱한 운석이 하늘을 새까맣게 덮으면서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어요.  “아이쿠! 이 일을 어찌 하는가?!” 지구촌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황급히 바닷물 속에 뛰어 들어갔어요. 일부 사람들은 그래도 잠수함에 앉아 바다 물속에 들어가 숨어버렸어요. 일부 사람들은 초음속 비행기나 우주비행선을 타고 운석을 피해 다른 쪽 하늘로 도망쳤어요. 허나 대부분 코치아 백성들은 운석우를 피하지 못하고 당했어요. 나까아멘 악당은 뱀 섬나라 천문학자들과 우주비행사들을 시켜 달과 지구의 자전과 공전 속도와 시간을 계산해 폭파지점과 각도를 조절해 달을 폭파시켜 운석우가 코치아를 강타하게 했던 것이었어요. 운석우는 지구를 강타하면서 여기저기 바닷물에 하얀 물기둥들을 일으켰어요. 코치아의 여기저기 삼림에 불길이 일었어요. 시가지는 원자탄이나 맞은 듯이 층집이 무너지고 화염 속에 휩싸였어요. 그런데 뱀 섬나라 천문학자들의 계산이 조금 오차가 생겨 코치아 남단과 뱀 섬나라 사이 남해 바다에 운석이 대량 떨어졌어요. 그 바람에 퍼런 바다에는 난데없는 운석재로 숱한 섬이 생겼어요. 뱀 섬나라 동북부는 강타를 받아 화산 동굴이고 뭐고 다 묻혀버리고 해일이 뱀 섬을 엄습했어요. 달나라에서 날아 내린 운석에서는 엄청 강한 방사선과 헬륨 방사선이 방출됐어요.  설상가상으로 원전이 폭발하면서 방사선 오염이 대단해 생물들이 무더기로 죽어버렸어요. 아무리 인종개량을 한 뱀 섬나라 국민들이라고 해도 방사선에는 견디지 못하고 피부암과 백혈병에 걸려 버러지처럼 쓰러졌어요. 코치아의 대과학자 조왕돌 최고사령관은 지하실험실에서 과학연구를 하다가 허수아 총리가 부른 국무회의에 참가하러 총리부로 갔어요. 금별 대통령이 장렬하게 희생된 후 허수아 총리는 코치아의 원수나 다름없었어요. 그는 회의에서 이런 의문을 제기했어요. “지금 뱀 섬나라를 해방해 뱀 왕이 잘 관리하고 있습니다. 허나 핵전쟁과 달 폭발로 해 지구 생태환경은 여지없이 파괴됐습니다. 방사선이 대량 방출돼 지구촌의 인류는 물론 모든 생물들이 생존위험을 겪게 됐습니다. 오늘 회의에서는 지구와 인류의 앞날을 두고 스스럼없이 토론해 봅시다.” 그러자 조왕돌이 이런 엉뚱한 생각을 말했어요. “혹시 나까아멘 왕을 죽이지 않고 대뇌를 수술해 악한 세포를 빼버리고 착한 세포를 주입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혹시 착한 임금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 말에 금붕어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다가 “조왕돌 최고사령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나까아멘과 같은 악종은 고칠 수 없어.” 그러자 조왕돌은 또 이런 의문을 제기했어요. “만약 나까아멘 악당이 획책한대로 달이 산산 박살났더라면 지구가 태양에 가 붙었을지 목성에 가 붙었을지 누가 압니까? 만약 우리 지구에서 인류가 살 수 없다면 어디에 가서 살아야 할까요?” 그 의문에 천문학자 가문의 후손인 클론바우 18세가 버릇처럼 코끼리코를 슬슬 매만지면서 독수리부리 같은 입을 열었어요. “요즘 난 놀라운 천문학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에헴.” 천백 살 가까운 유리 박사도 허연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면서 주름이 조글조글 간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자기 후손인 클론바우 18세를 바라보았어요. 클론바우 18세는 흥이 나서 뒷말을 이었어요. “지구에서 약 1억 9000만 킬로미터 떨어진 우주에 지구보다 5배나 더 큰 UFO 요정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행성에는 지구와 비슷한 생태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초보적으로 발견됐습니다. 물도 있어 생물이 생존할 가능성도 발견됐습니다.” 그때 허수아 총리가 유리 박사에게 물었어요. “지구 말고 인류가 살 수 있는 행성이 또 있습니까?” 그러자 유리 박사는 다혜 박사와 눈길을 마주 친 후 말했어요. “있지요. 노르망디 남부천문대와 리스본 천문대 센터에서 벌써 태양과 아주 가까운 우주에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슈퍼지구 3개나 발견했습니다.” “어우와!” 모두들 눈이 휘둥그렇게 됐어요. 천문학자인 클론바우 18세도 코끼리코를 휘두르며 파초 같은 귀를 벌쭉거리면서 감탄했어요. 유리 박사가 뒷말을 이었어요. “천 년 전에 클론바우 꼬마대통령이 지구촌을 통일하면서 핵전쟁을 일으켰고 그 후 500년 전에 제10차 핵전쟁에서 인류의 모든 천문학에 관한 과학기술 자료가 몽땅 훼멸 됐기 때문입니다.” 클론바우 18세는 자기 큰아버지 클론바우 꼬마대통령의 말이 나오자 괜히 가슴이 설레었어요. 허수아 총리는 궁금해 물었어요. “그래 인류가 살 수 있는 물이나 농사를 지을 토지가 있는가요?” 유리 박사는 머리를 끄덕였어요. “있지요. 다만 거리가 너무 멀어 인류가 가기 힘들지요. 지구와 약 22광년 거리에 있어 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죠. 갓난애라고 해도 지구에서 떠나 그 행성에 도착하고 나면 한생을 절반이나 다 살았지요. 만약 50세 장년이 떠나면 그 행성에 도착하고 나면 사망할 나이가 다 되겠어요.” 클론바우 18세는 기다란 코끼리코로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어요. 그 바람을 맞은 유리박사가 숨이 막혀 말하려고 입을 열려다가 다물었어요. 이윽고 그녀가 숨을 돌려 다시 입을 열었어요. “이 3개 행성은 태양의 3분의 1 정도로 큰 글리제667C라는 별의 주위를 돌고 있는데요.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이라는 것이 확정됐어요. 물도 액체상태로 표면에 있습니다. 다만 이 행성들이 목성처럼 가스로 이뤄졌는지 아니면 지구처럼 바위로 된 것인지 아직 과학적인 탐사를 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 말에 클론바우 18세는 파초 귀를 펄쩍거리며 듣다가 벌떡 일어나 고래고래 고함쳤어요.   “쓸데없는 근심할 필요 없습니다. 지구에 이상이 생기면 인류가 UFO 요정이나 그런 행성에 가서 살면 될 게 아닙니까?” 그러자 조왕돌이 면박을 주었어요. “닥쳐라! 우린 우주과학을 발전시켜 인류가 살 수 있는 새로운 오아시스를 발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악당들과 우주 천체의 습격으로부터 아름다운 지구를 보위해야 한다. 당면에는 인간들의 무절제한 욕망을 절제해 지구의 생태환경을 보위하는 것이 지구촌 인류의 최적의 선택이라는 걸 명심해라!” 사랑은 아들을 대견스레 바라보았어요. 금붕어는 손자 클론바우 18세에게 책망의 눈길을 보냈어요. 클론바우 18세는 볼이 불룩해 파초 같은 귀로 달아오른 얼굴에 부채질을 펄럭펄럭 했어요. 허수아 총리는 마지막에 이런 제안을 했어요. “이번 지구 보위 전에서 목숨을 바쳐 싸운 금별 대통령과 차슬기 국방부장의 기념동상을 세우면 어떻습니까?” 모두들 서로 쳐다보았어요. 유리 박사가 박수를 쳤어요. 뒤이어 다혜 박사도 박수를 쳤어요. 회의장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졌어요. 반년 후 코치아 만장굴 대통령 집무실 자리 앞 양지바른 언덕아래에는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를 마주해 몇 십 미터 높이로 된 금별 대통령과 차슬기 국방부장의 동상이 나란히 땅을 차고 일떠섰어요. 동상 주위에는 달에서 떨어진 운석들로 비장한 조형을 이루고 있었어요. 동상 제막식에는 아카시아 대통령 안나, 뱀 섬나라 대통령 뱀 왕, 노르망디 신임 여성대통령 예리나를 비롯한 숱한 대통령들이 모처럼 참석했어요. 그 외에 코치아와 뱀 섬나라 수많은 유지인사들이 경모의 심정을 품고 참석했어요.   허수아 총리는 동상 제막식에서 두 친구들을 회억해 목멘 소리로 추도사를 올렸어요. “…기원 4000년 1월 1일, 코치아의 위대한 금별 대통령과 차슬기 국방부장은 코치아와 지구를 보위하기 위해 장렬히 희생됐습니다. 그들은 저 하늘에서 반짝이는 금별과 샛별처럼 영생하리라…” 금붕어와 림해자, 사랑, 클론바우 18세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금별 대통령과 차슬기 국방부장의 동상을 우러러보며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어요. 조왕돌과 보름은 클론바우 18세 등과 함께  하늘 높이 우뚝 솟아오른 동상에 생신한 생화를 드리었어요. 조왕돌은 아버지와 가시아버지 동상을 바라보면서 묵묵히 착잡한 생각에 빠졌어요. (이 좋은 지구를 두고 어디에 가서 산단 말인가? UFO요정과 글리제667C행성과 같은 새 행성을 개발해 인류가 이사해가 사는 것도 좋겠지만 목전에는 지구 생태환경보호가 급선무야. 지구만 제대로 보호하면 하필 다른 행성에 가서 살 것이 무엇인가?) 연 며칠 코치아와 뱀 섬나라 유지인사들은 평화와 정의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금별 대통령과 차슬기 국방부장의 동상에 꽃다발을 드리었어요. 꽃을 드리는 행렬은 해가 질 때까지 끝이 보이지 않았어요. 어느 덧 동상 앞에 놓인 꽃은 산더미를 이루었어요. 허수아의 딸 선영과 대통령의 비서 이슬도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생화 묶음을 동상에 드렸어요. 그 후 해마다 4000년 1월 1일이 되면 금별 대통령과 차슬기 국방부장을 기념해 지구촌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찾아와 두 분의  동상에 꽃다발을 드리고 머리를 숙이었어요. 금별 대통령과 차슬기 국방부장은 푸르른 하늘아래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동상으로 우뚝 솟아 있었어요. 아니, 그들은 저 하늘의 금별과 샛별로, 지구촌 인류의 마음속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만리장성과 금자탑으로 살아 있었어요. 불그레한 낙조가 비낀 칼산을 등지고 푸르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묵묵히 서 있는 동상들은 인류가 오염된 지구촌에서 살지 못하면 어디에서 살아야 하냐고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저쪽 뱀 섬나라에서 또 무서운 대지진이 일어나고 강렬한 화산이 폭발했어요. 유라시아대륙판과 태평양대륙판이 또 강렬하게 충돌하면서 뱀 섬나라 섬들이 깨지어 점점 바닷물에 침몰돼가고 있었어요. 뱀 섬나라 악마들이 화산 근처에서 지하핵실험을 일삼았기에 화산이 금이 세게 실려 진노했던 것이죠. 수도 소꼬도 맥없이 덮쳐드는 해일 속에 서서히 잠기고 있었어요. 꺼지는 땅덩어리와 함께 뱀 섬나라 고층건물과 왕궁, 군국주의 영혼을 달래던 야스쿠니신사가 세로 스르르 쓰러지면서 서서히 바닷물에 파묻히었어요. 왕궁과 야스쿠니신사의 몇 천 년 묵은 뻘건 썩박나무기둥들과 위패들이 방사선에 오염된 바닷물에 둥둥 떠다녔어요. 달이 폭파돼 흙과 운석이 떨어지면서 코치아와 뱀 섬나라 해협에 생긴 길쭉한 섬에는 뱀 섬나라 피난민들이 바글거리고 있었어요. 뱀 섬나라 백성들은 날 살리라고 코치아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던 것이죠.  남해의 푸르른 바다 저 멀리 인류의 끝없는 욕망을 품은 검푸른 용이 파도에 밀려 꿈틀거리며 덮쳐 오고 있었어요. 똑 마치 무절제한 욕망으로 차 넘친 천지의 앞날을 근심해 인류에게 무엇인가 속삭이려고 노호하고 있는 것만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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