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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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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아동소설 꿈 많은 향화 김장혁 댓글:  조회:1522  추천:1  2018-12-29
                                단편아동소설                    꿈 많은 향화                                       김장혁        향화, 참말 이름처럼 어여쁜 애지요. 외씨같이 걀죽한 얼굴에 예지로 반짝이는 새별눈, 항상 응석을 부리는 작은 앵두입, 실로 비너스 버금으로 곱게 생겼다고 할 수 있겠지요.        옥에 티라고나 할가요. 그 걀죽한 얼굴 왼쪽볼에는 좁쌀만한 기미가 괘씸하게 나 있었어요. 말도 말아요. 그 기미 때문에 우리 귀여운 향화가 닭똥 같은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알아요? 향화는 원래 계산문제풀이는 번개불이 번쩍나게 풀어 학급에서 엄지손가락으로 꼽히였고 “패뜩골”이란 별명까지 딱 들어붙었어요. 그런데 요즘 그는 영희랑  무용써클실에서 디스코와 발레무용을 배워 신나게 추는 것을 흠모의 눈길로 바라보았지요. 그후부터 그는 어쩐지 응용문제풀이가 딱 싫어졌어요. 공부하기보다 춤추는 것이야 말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고상하다고 생각됐던 것이지요. 어느날, 향화는 영희를 앞세우고 무용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저를 무용써클에 받아주겠어요?” 향화는 간절한 눈길로 무용선생님을 바라보며 애원했어요. 무용선생님은 향화의 얼굴로부터 발끝까지 참빗질했어요. 그런데 무용선생님의 눈길이 향화의 볼에 피뜩 멎더니 도리머리질했어요. “돌아가 공부나 잘 하세요.” “녜? 요 기미 때문인가요?” 향화의 손이 기미에 가 멎었어요. “동문 무용하기엔 좀 그래요.” 향화는 무용교연실에서 나온 후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허나 패뜩골인 그의 머리에는 패뜩 한가지 꾀가 떠올랐어요. 그는 침대에서 바시시 일어나서 어머니 화장품통을 들춰 가지고 거울에 마주 섰어요. 뒤이어 눈물이 가랑가랑 맺혔던 눈언저리를 싹 닦고 그 얄미운 까만 기미에 새하얀 분을 발랐어요. 그러나 청어름에 서리 내린듯해 괘씸한 기미 형체를 감출 길 없었어요. 애탄 나머지 그는 아예 분세수를 하다싶이 했어요. 거울을 들여다보니 실로 온 얼굴은 밀가루주머니에 빠졌다 나온 것 같지 않겠어요. 눈섭은 서리를 맞은 것 같았고 오똑한 코마루 량옆의 물기어린 깜장눈만 가려볼 수 있었어요. 순간 향화는 입술을 꼭 깨물었어요. 량볼 우로는 줄 끊어진 구술처럼 눈물이 주르르 흘렀어요. 이튿날 아침, 향화는 세수를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머리카락을 훔치다가 걀죽한 얼굴에 웃움기가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어요. 어여쁘게 생긴 얼굴과 몸매를 보고 자신감이 생겨났어요. (무대와 열대여섯메터 밖에 있는 관중들이 어찌 화장하고 뺑뺑 돌아치는 요 작은 기미를 보아낸단 말인가! 우리 어머니 주근깨 다닥다닥해도 열다섯메터 밖에서 보면 미인이여서 “열댓메터 밖 미인” 아닌가. 나도 이제, 호호호.) 그는  축 처졌던 어깨가 당금 으쓱해졌어요. 무용수로 될 꿈이 새록새록 다시 싹 텄어요. 하여 그는 새 희망을 품고 재차 무용선생님을 찾아가 울먹울먹해서 기미 있어도 괜찮다고 실토정하면서 애원했어요.    그러나 무용선생님의 말씀은 이러했어요. “향화, 꿈은 좋은데요. 누구나 춤추고 싶으면 다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딱 기미 때문만이 아닌데요. 향화는 예쁘긴 한데요. 키가 좀 작아서 무용하기는 좀 그래요.” 원래 무용선생님은 처음에는 향화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 같아 완곡하게 거절했지요. 그러나 한 학생의 전도와 관계되기에 이 자리에서는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을 수 없었어요. 향화는 어깨가 맥없이 축 늘어졌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기보다 한뼘씩이나 더 큰 무용써클 애들이 춤을 추며 골리는듯한 눈길로 힐끔거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향화는 그만 위축감이 들어 엉엉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어요. 그는 책상다리라도 발 밑에 이어놓고 싶은 애절한 심정이였어요. “울지 마세요. 정 무용을 배우고 싶다면 오후부터 배우세요.” “예? 정말입니까? 야, 좋아라!” 향화는 언제 울었는가 싶게 눈물을 싹싹 닦고 무용선생님의 손을 잡고 퐁퐁 뛰다가 와락 안겼어요. 오후부터 향화는 영희네와 함께 아름답고 경쾌한 선률에 맞춰 무용을 배웠어요.  얼마나 신났는지 몰랐어요. 요즘 그는 벌써 명무용수로 돼 오색찬연한 무대에 올라 선녀처럼 날씬한 몸매를 놀리면서 장고를 둥기당당 치며 장고춤을 추는 꿈을 몇번이나 꾸었는지 몰라요. 그러나 무용배우기도 향화의 생각처럼 순풍에 돛을 단 격이 아니였어요. 아니,  하늘의 별따기처럼 느껴졌어요. 날마다 무용선생님의 장고를 치는 박자에 맞춰 반시간씩 련속 팔다리를 놀리면서 기본동작을 익히느라면 온몸이 해나른해졌어요. 좀 고달프긴 했지만요. 향화는 한학기 배운 후 어지간한 춤은 출 수 있어 고달픔을 어지간히 참아낼 수 있었어요. 한창 자랄 나이여서 그런지 그새 문턱에 올라 키를 재여보니 둬센치메터는 더 자란 것이 아니겠어요. (그럼 그렇지. 이제 반년 지나 솜옷을 입을 땐 더 크겠지. 등산복도 언니 것만큼 큰 걸로 사야지.) 그런데 뜻밖의 시련을 겪게 됐어요. 무용선생님은 발레무용 기본동작을 배워주기 시작했어요. 발끝으로 서기를 배울 때 실로 참기 어려운 아픔을 참아내야 했어요. 향화는 열개를 셀 때까지도 서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물앉고 말았어요. 향화는 발가락이 바늘로 쑤시는듯이 아파 널장판에 물앉아 두 손으로 발가락을 붙잡고 만지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어요. “울긴? 어서 서요. 이번엔 열다섯개 셀 때까지 서야 돼요.” “선생님, 발가락이 아파서 못 서겠어요.” 향화는 집에서 부모한테 응석을 부리듯이 어깨마저 흔들며 칭얼거렸어요. 무용선생님은 향화의 발을 매만지면서 차근차근 일깨워줬어요. “향화, 무용써클에 올 때 그 강렬하던 욕망은 어데 갔어요? 왜 요만한 아픔도 참지 못하고 물앉아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려면 몇분씩 서야 하는데요. 몇초 밖에 서지 못하고서야 어찌 무대에 오를 수 있겠어요? 자, 강자가 돼야죠. 견지하면 아픔이란 놈도 달아나요.” 향화는 마지 못해 일어나서 또 련습했어요. 그러나 나흘도 못돼 발가락이 부어오르더니 이젠 발목까지 팅팅 부어올랐어요. 발가락 뼈가 땅바닥에 닿기만 하면 뼈 속까지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아 눈물을 찔끔찔끔 짰어요. 게다가 발가락 끝은 이젠 걷기만 해도 아파났어요. 고통에 모대기는 향화의 내심을 꿰뚤어본듯이 무용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충고했어요. “꼭 견지해야 해요. 이 고비만 넘기면 썩살이 생겨 괜찮아요.” (흥! 남은 아파서 이가 다 쫓기는데. 춤? 무슨 놈의 뚱딴지 같은 바레무용이야!) 향화는 무용선생님의 충고를 들을 념도 하지 않았어요. 게사니무리 속의 병아리처럼 키 큰 영희랑 애들 속에서 춤을 출라니 얼마나 위축감이 들었는지 몰라요. 향화는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았는지 분이 콱 치밀었어요. 그후 영희가 와서 무용실로 가자고 잡아끌었어요. 그러나 향화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면서 다시는 무용실로 가지 않았어요. 한편 무용실에 발길을 끊으니 진절머리나게 매서운 무용선생님의 엄한 눈길을 받지 않는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어요. 어느 날, 청신한 아침 공기에 답답한 마음을 말끔히 씻으려고 향화는 운동장에 나갔어요. 자오록한 안개 속에서 어디에선가 둥기당당 가야금을 타는 은은한 선률에 맞춰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소리가 향화를 확 잡아 끌었어요. 천천히 다가가 보니 안개 속에 명암이 분명하게 실실이 내리드리운 수양버들가지 아래에서 이웃집 은희가 쪽걸상에 앉아 가야금을 둥기당당 타고 있지 않겠어요. (호- 저렇게 걸상에 착 앉아 가야금을 타니 얼마나 편안해. 뼈마디 아프게 발레무용을 출게 뭐야?) 향화는 또 패뜩골이 패뜩, 꿈도 패뜩 바뀌였어요. 그는 은희와 지청구를 들이대 그날 오전에 가야금선생님을 만나보게 됐어요. “오- 아주 곱게 생겼구만요.” 가야금선생님은 향화의 량손을 쥐여 손가락을 찬찬히 뜯어보더니 말했어요. “손가락도 길죽하니 실로 가야금타기에는 훌륭한 싹인 것 같아요.” 가야금선생님은 향화를 끌어당겨 맞은켠에 앉히면서 당부했어요. “가야금타기도 이를 악물고 배우지 않으면 발레무용공부처럼 중도랑패하게 되오. 견지할만 하오?” “예! 어떤 곤난이 있어도 꼭 견지하겠어요.” 한참만에야 향화는 해말쑥한 얼굴을 귀 밑까지 붉히면서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어요. (무용선생님이 벌써 뭐라고 쑥덕거렸는가?) 가야금선생님의 짙은 눈섭 아래 맑은 눈은 무용선생님의 엄한 눈과는 달리 상냥해 보였어요. 향화는 머리를 푹 떨구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생각할수록 별로 무용선생님이 자기를 무용써클에 받기 싫어서 마지 못해 받고서는 고의적으로 발이 아프게 굴어 저절로 물앉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됐어요. 사실 무용선생님은 향화를 잘 배워주라고 가야금선생한테 주탁했는데도 말이예요. 향화가 뾰로통해 침대에 걸터 앉아 있을 때였어요.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가 들가방에 뭘 들고 들어왔어요. “향화, 월병!” “야, 내 좋아하는 월병!” 향화는 어느결에 들가방을 채다가 월병을 량손에 쥐고 게걸스레 먹어댔어요. “어머니, 가야금을 사줘요? 예?” “얘, 얹히겠다. 천천히 먹어라.” 향화는 월병을 량볼이 볼록하게 넣고 오물거리다 콜록콜록 기침을 깇었어요. 그는 어머니 품에 안겨 칭얼거렸어요.  “어머니- 가야금을. 예?” 어머니는 향화 잔등을 다독여주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어요. “춤을 추는데 가야금을 해선 뭘 하느냐?” 향화는 입이 뾰로통해졌어요. “어머니, 발가락이 아파 발레무용을 추지 않겠어요. 이젠 가야금써클에 갈래요.” “그래?” 어머니는 한참 뭔가 생각하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어요. “얘야, 한창 꿈이 많을 때지만 자꾸 꿈을 바꿔서 되겠니? 뭐 하나 한가지를 꾸준히 해야지. 우물을 파도 한 곳을 파라고 하잖았니?” 향화는 발을 들어 속살까지 파난 발가락을 보이면서 불평을 털어놓았어요. “보세요. 발가락이 끊어질 지경인데요. 그래도 계속 발레무용을 춰야 하는가요?” 어머니는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어요. “아이구, 이게 웬 일이냐? 아프겠구나.” 어머니는 입으로 호호 발가락을 불어주면서 중얼거렸어요. “아프면 가지 말아야지. 괜히 발가락을 다 잃어먹겠다. 내 가슴이 막 미여지는 것 같아. 가야금을 사줄게. 가야금타기는 앉아서 하는 거니깐. 아프잖겠지.” “가야금을 사주겠다는 말씀이죠?” “그래, 우리 요 무남독녀를 사주고 말고.” “야- 좋아라.” 향화는 기뻐 퐁퐁 뛰였어요. 그때 아버지가 들어왔어요. 사연을 안 아버지는 입에 빗장을 지르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날 밤 향화는 꿈을 꾸었어요. 은하수가 거꾸로 쏟아지는 듯한 새하얀 백두폭포가 청석옥석을 부시면서 천길만길 하늘가에서 쏟아져내리고 단풍이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무대배경 앞에서 향화가 걸상에 편안히 앉아 칠색단색동저고리 옷고름을 날리면서 송학이 나래치듯 둥기당당 가야금을 타는데요. 박수갈채가 장내가 떠다갈듯했어요. “아갸갸!” 비명소리와 함께 향화는 발딱 뛰쳐 일어났어요. 꿈이였어요. 무용선생님이 억지로 무대에 끌어내가는 바람에 향화는 발레무용을 추게 됐어요. 그런데 얼마 추지 못하고 무대에서 뾰족한 못을 꽉 밟고 말았어요. 실로 진저리나는 춤이 그의 황홀한 미몽을 깨뜨렸어요. 그후 향화는 가야금선생님의 상냥한 눈길을 받으면서 쪽걸상에 편안히 앉아 어머니가 사준 새 가야금을 재미나게 튕겼어요. 무용써클에 가서 은희랑 함께 달타령 곡조에 맞춰 걸상에 착 앉아 가야금타기를 배우는 것이 발레무용배우기보다 식은 죽 먹기로 느껴졌어요. 그러나 오선보 우에 다닥다닥 들어붙은 콩나물대가리를 익히기는 실로 머리가 아픈 일이였어요. 성급한 향화는 그 놈의 콩나물대가리를 쟁개비에 기름을 달이다가 볶아 먹으면 머리에 곡조가 막 떠올랐으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럼 얼마나 쉽고도 신나게 가야금을 타겠어요. 가야금선생님은 향화의 곁에 다가와서 차근차근 타일렀어요. “향화, 어찌 단숨에 배를 불리겠소.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워야지.” 뒤이어 식보지식을 개별보도까지 해주었어요. 향화는 울며 겨자먹기로 도레미 콩나물대가리를 익히기 시작했어요. 오선보 악보에 따라 가야금을 타자고 하니 이번엔 두 손이 착착 배합되지 않았어요. 은희랑 다른 애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둥기당당 신나게 탔어요. 그런데 향화가 타는 소리는 애처로운 외마디 비명소리에 달가닥거리며 가야금줄을 받쳐든 나무쪼각이 공명밑판을 두드려 듣기도 역정났어요. 애탄 향화는 가야금줄을 마구 쥐여뜯다가 꽝 밀어버렸어요. 심지어 어떤 때에는 신경질적으로 가야금을 마구 발로 차버렸어요. 그때 가야금선생님의 말씀이 귀전을 아프게 때렸어요. “이를 악물고 배우지 않으면 춤배우기처럼 중간랑패를 하게 되오.” 향화는 눈물을 훔치고 마지못해 다시 가야금을 탔어요. 련며칠 가야금을 탔기에 오른손 식지와 중지 끝에는 콩알만한 물집이 생겼어요.  가야금줄을 튕길 때면 손가락으로부터 팔을 타고 심장마저 바늘로 찌르는듯 찡찡 아파났어요. “선생님, 이걸 보세요.” “오-” 선생님은 다가와 향화의 손가락을 쥐고 여겨보더니 책상 서랍에서 성냥곽을 들고 왔어요. “터치기오.” “어마나, 아프지 않습니까?” 향화는 새별눈에 겁기를 꽉 싣더니 손을 뒤로 움츠려뜨렸어요. “겁쟁이야, 우리도 몇번씩 터치우고 이젠 아프잖아.” “호호호!” 은희랑 코까지 싸쥐고 웃었어요. 선생님은 억지로 향화의 손을 쥐여다가 식지 물집 우에 성냥가치 꼬투리를 대고 화약껍데기를 쪽 문질러 딱총을 놓았어요. 피씩- “아이구머니! 선생님, 살랑살랑!” 향화가 엄살을 부리는 사이에 피씩- 소리와 함께 딱총을 맞은 물집이 데여 터지면서 진물이 주르르 흘렀어요. “엄살쟁이야, 이제도 두개 더 터치워야 해.” 은희랑 떠들었어요. 피씩- 피씩- 향화는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줄줄 흘렸어요. 집에 돌아온 후에도 손가락으로부터 가슴까지 찡찡 아려났어요. “아이유, 아파라. 아이고-” “뭐? 어째?” 향화가 문을 떼고 들어서면서 싸맨 손을 쥐고 죽는 상을 했어요. 어머니는 물기어린 눈으로 향화의 싸맨 손을 보더니 호호 불어줬어요. 뒤이어 어머니는 향화를 집에 데리고 들어가 밥상을 마주 앉혔어요. 손수 어린애처럼 밥과 국을 입에 한술한술 떠넣어주기까지 했어요. 말수 적은 아버지는 못마땅한 눈길을 보내더니 건가래를 뗐어요. “그렇게 어린애처럼 키우니깐. 의력이 없지.” 향화는 아버지가 얄미워 새별눈을 곱게 흘겼어요. 이튿날 향화는 손가락을 싸맨채 가야금써클실에 갔어요. “싸맨 걸 풀고 가야금을 타오.” “예?” 순간 향화는 새별눈이 화등잔처럼 휘둥그래졌어요. 상냥해보이던 가야금선생님의 눈길이 무용선생님의 엄한 눈길로 변해 겹쳐보였어요. 그는 흐릿한 눈길로 가야금줄을 내려다보다가 곡조고 뭐고 마구 쥐여뜯었어요. 물집이 터진 손가락에서 피고름이 흘러내려 가야금줄을 타고 눈물이 흥건한 향화의 얼굴에 마구 튕겼어요. 손가락, 팔, 가슴, 머리에까지 줄이 뻗치며 바늘로 찌르는듯이 아파났어요. 가야금줄은 신경질적으로 비명을 질렀어요. 향화는 가야금을 활 팽개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쿵 쓰러졌어요. 두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섧게 엉엉 울었어요. 이젠 당장 초중입학시험을 쳐야 하는데요. 향화는 응용문제풀기는 싫고 발레무용 꿈도 가야금 꿈도 다 수포로 돌아갔어요.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어느날 저녁, 향화는 텔레비죤에서 이런 장면을 보았어요. 그물 우로 쉭- 솟으면서 강타를 안기는 랑평, 지도원으로 된 랑평, 열렬한 박수소리 속에 수상대에 올라 금메달을 받는 중국녀자배구팀 녀자선수들. 웬 일일가요? 향화의 눈 앞이 흐릿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게 뭐예요? 향화는 수상대 선수들 속에 서 있는 자기를 발견했어요. 관중석에서 부러운 눈길로 하염없이 자기를 바라보는 영희, 은희. 숱한 동창생들의 눈길이 따가웠어요. 향화는 가슴이 부풀어올라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운동장으로 나왔어요. 실실이 늘어진 수양버들가지들이 넘실넘실 춤추는 사이로 보름달이 두둥실 걸려 은빛이 부서졌어요. 그 선경 같은 경치 아래에서 노랑저고리에 연분홍치마를 입은 은희가 가야금을 둥기당당 타고 있었어요. 그 선률에 맞춰 칠색단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은 영희가 선녀처럼 장고춤을 나풀나풀 추는 것이 아니겠어요. 무용선생님과 가야금선생님이 웃음을 지으며 팔을 홱 휘둘렀어요. 저건 웬 일인가요? 은희와 영희는 가야금을 타고 춤을 추면서 오선보 같은 오색령롱한 칠색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고향의 산마루를 훨훨 날아넘더니 예술학원으로 날아가지 않겠어요. 학교 녀자축구팀 말괄량이 경자 등 녀학생선수들은 축구공을 탕! 차더니 하늘로 날아오르는 축구공에 매달려 날아올라 체육학원으로 날아갔어요. 숱한 동창생들은 제마끔 입학시험지를 두 손에 들고 하늘로 쌩쌩 날아오르더니 자기 꿈대로 학교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함께 가자! 영희야, 은희야-” 향화는 두 손을 입에 모아대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목놓아 소리쳤어요. 이때 쏴- 소리와 함께 난데없이 산더미 같은 쓰나미가 덮쳐왔어요. 선생님들이 주는 가야금과 장고를 급급히 받아쥐고 타기도 하고 두드려도 보았어요. 하지만 가야금타기와 장고춤 실력이 차해 한키쯤 몸이 솟다가 되떨어져 내려오군 했어요. “향화, 뽈을 받소!” 졸지에 체육선생님이 툭 친 배구공이 씽- 날아왔어요. (옳지. 배구명장으로 돼 내 꿈을 실현해야지.) 향화는 황급히 받아치려고 손을 내밀었어요. 그런데 배구공이 소녀의 가슴에 쨩 맞았어요. 숨이 컥 막히게 찡 아파났어요. 가야금줄을 튕길 때 생긴 물집보다 더 아파났어요. “에잇, 배구도 못할 노릇이구나.” 이때 쓰나미가 당장 학교 담장을 박차고 들이닥칠 판이였어요. 향화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엉엉 울었어요. 저게 뭐예요? 갑자기 사나운 파도 속에서 고무풍선 세개나 불쑥 솟아올랐어요. 고무풍선 세개에는 각각 가야금, 장고, 배구공이 새겨져 있지 않겠어요. 향화는 머리 우에 둥둥 뜬 그 고무풍선 끈을 황급히 붙잡고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어요. 이젠 고향의 산도 저 먼발치의 모래무지처럼 아득히 내려다보였어요. 그런데 고무풍선은 영희와 은희가 간 예술학원이거나 경자가 간 체육학원 쪽으로도 날아가지 않았어요. 고무풍선은 아득히 높고 푸른 하늘 우의 먹장구름 속으로 날아들어갔어요. 그 먹장구름 속에 글쎄 올림픽 배구장이 있지 않겠어요.   향화가 구름과 고무풍선을 타고 바야흐로 배구장에 내리려는 순간이였어요. 펑! 퍼펑!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고무풍선이 몽땅 터졌어요. “앗!” 향화는 비명소리와 함께 끊어진 풍선 끈을 잡은채 두 다리를 바둥거리면서 떨어졌어요. 귀뿌리에서 윙윙- 소리났어요. 하늘 아래로 곤두박질쳐 내려갔어요. “어머니!” 향화는 두 손에 식은 땀을 쥐고 고함쳤어요. 그는 몸부림치다가 그만 침대에서 방바닥에 뚝 떨어졌어요. 그제야 향화는 자기가 이제껏 황홀하면서도 무시무시한 꿈, 고무풍선 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알게 되였어요. 오- 꿈많은 향화가 이제 또 무슨 꿈을 꾸겠는지요? 아무리 패뜩골이라고 해도 자꾸 패뜩패뜩 꿈을 바꿔서야 되겠어요?
186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10) 댓글:  조회:1390  추천:0  2018-12-24
                                                                                               군사분계선에서의 대적선전 1954년 상반년, 미군 제2사단이 아군 정면에서 철거한 후 남조선(한국)군은 원래 한개 사단 외에 2개 사단이 더 증파돼 왔다. 적정 변화에 따라 리해식 소속 군단에서는 전연사의 2개 민경대대마다에 조선족간부 15명 가량씩 배치하였다. 원래 영어번역원까지 합하면 한개 민경대대에 30여명 대적공작간부가 배치돼 비무장지대에서 활동하였다. 정전 후 우리 지원군의 맞은켠에 있은 괴뢰군 제2사단은 네번이나 우리 지원군에게 호되게 족치워 4만여명이나 살상되거나 포로됐다. 괴뢰군 수도사단은 상감령전역에서 8천여명이나 섬멸되였다. 금성전역에서 괴뢰군 수도사단의 “백호련대” 련대장 임익순이 포로되고 병사들이 전멸되였으며 장갑차련대 련대장 륙근수는 격사당했다. 그리하여 괴뢰군은 우리 지원군 민경들을 보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들은 우리 민경들의 곁을 지날 때면 총가목을 꽉 틀어쥐고 경계하는 눈길로 쏘아보면서 지나갔다. 한번은 적 민경이 산에서 스적스적 걸어내려오더니 분계선 부근의 양지바른 언덕 풀무지에 힌들 드러누워 코를 드렁드렁 골았다. 그러다가 발자욱소리에 깜짝 놀라 버덕덕 일어나 앉았다. 그는 철조망 너머 맞은켠에서 우리 지원군 민경이 걸어오는 것을 보자 화닥닥 일어나더니 총이고 뭐고 다 버린채 선불 맞은 노루처럼 뺑소니쳤다. 한번은 리해식은 남측 괴뢰군 민경 셋과 맞띄우게 되였다. 리해식은 그들에게 “어이, 여기 와 담배나 피우오.” 하고 말을 건넸다. 그들 셋은 서로 마주 보더니 하나는 총을 벗어들고 경계하고 하나는 경계하는 눈길로 리해식 등 셋을 살피면서 다가왔다. 그 자는 권연을 받아쥐면서도 온 얼굴에 겁기를 꽉 띄운 채 황황한 눈길로 리해식이 멘 총창을 힐끔힐금 쳐다보았다. 후에 리해식과도 면목익힌 뒤에 그 민경은 이렇게 말하였다. “처음에는 당신들의 총창을 보니깐 간담이 서늘해지더라구.” 괴뢰군 민경들은 리해식 등과 자주 만나면서 면목을 익히게 되자 함께 담배를 피우고 한담하며 과자나 통졸임, 술 같은 것을 먹고 마셨다. 상감령고지의 딱 맞은켠 서남산의 적 민경 중사 백만호는 리해식 등과 16차나 만났다. 어느날 지원군 민경 둘이 대적공작과 간부와 함께 분계선 철조망 옆을 순라하다가 백만호와 또 만났다. “어이, 만호, 와서 담배나 피우지.” “걸케 할라우.” 대적공작간부는 권연을 한통 꺼내 철조망 사이로 넘겨주었다. 백만호는 온지박이권연을 한대 꺼내 붙여물었다. 그는 한모금 길게 들이빨아 후- 연기를 내뿜더니 혀를 끌끌 찼다. “하, 거 담배 맛 둏다(좋다)!” 그가 권연갑을 되넘겨주려 하자 대적공작간부는 도로 밀어주었다. “까짓 걸, 피우라구.” “걸케 해 될가유?” “되고 말고.” 백만오는 알고보니 전라도의 가난한 농민의 자식이였다. 그는 생활이 구차한데다 핍박에 의해 입대했던 것이다. 대적공작간부는 그의 이런 특점에 근거해 정치공작을 들이댔다. “량식창고라고 불리우는 남조선엔 권연도 흔하잖아요?” “쳇, 모르는 소릴. 쌀 지어놓으면 주인량반들이 다 퍼가는데두유.” “우리 새 중국은 달라요. 백성들이 밭을 고루 나눠가지고 제 밭에서 지은 량곡은 땅세를 내놓고는 몽땅 농사군 거라고.” 백만오는 한숨을 후- 쉬며 부러워 볼멘 소리를 쳤다. “당신들 중국 대단하오. 헌데 우리 한국은 돈 있는 량반들 세상이죠. 울처럼 천한 사람의 지옥인데요.” 옆에 서 있던 민경이 끼여들었다. “북조선도 우리 중국과 같다오.’ 그러자 백만오는 한숨을 담배연기에 섞어 후- 내보내면서 철조망을 건드리며 말했다. “이까짓 철조망 쳐버리구 조선이 통일됐으면 얼마 좋겠시우.” 이때라고 대적공작간부는 아예 철조망을 사이 두고 백만오와 마주 앉았다. 민경이 호주머니에서 통졸임과 술병을 꺼냈다. “자, 한잔 합세.” “어, 거참, 매번 페를 끼쳐서 안됐시우.” 백만오가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면서도 다가앉아 술병을 들었다. “캬, 거 술맛 둏다(좋다). 이전에 늙은이들한테서 드을라니 중국 도수 높은 술이 맛 둏다던디우(좋다던데요). 마실수록 정 든다.” 그는 민경이 신문지에 담아 넘겨주는 통졸임을 손으로 집어씹다가 “조선보”신문에 눈길을 박았다. 그는 신문을 들여다보면서 물고기를 질근질근 씹어댔다. “평화적으로 조선문제를 해결한다? 참, 맞아요. 전쟁 해서 뭘 해요? 숱한 도시 재더미로 됐시우. 허우, 분계선 저쪽에 가봐요. 김화군엔 아무 것도 없는 쓸쓸한 재더미로 됐시우.” 그는 술병을 들어 꿀꺽꿀꺽 들이켰다. 대번에 울기 올라 얼굴이 빨개졌다. “만약 미군이 안 들어왔어봐요. 싸우긴 뭔 졷대가릴 싸워? 조선문제는 진작 풀렸을 걸, 쳇.” 그는 물고기통졸임을 집어 입에 넣고 질금질금 씹으면서 뒤말을 이었다. “이 신문에 쓴 게 맞아요. 북한의 평화주장이 맞아요. 이담 평화통일이 되면요. 중국에도 놀러 갈테요.” “좋소. 우린 환영하지.” 우리 대적공작간부는 시간이 좀 간지라 일어섰다. 그러자 맥만오는 술을 둬모금 꿀꺽꿀꺽 더 마셨다. “야, 거 술맛 일품이유.” “가져다 마시오.” “고마와요. 저 전번에 보던 ‘평화와 행복’이란 화보 있는가요?” “여기 있소.” 대작공작간부는 미리 준비해가지고 간 그 화보를 꺼내주었다. “자, 다시 만납세.” 백만오는 화보를 11장이나 품 속에 깊숙이 걷어넣더니 비칠거리면서 떠나갔다. 괴뢰군 제21사단의 1등병 장유익도 우리 민경들과 16번이나 만났다. 그는 조선정부의 평화통일 호소문을 우리 민경들에게서 듣고 철조망을 총탁으로 탁 내리치면서 석쉼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호소문에서 말한게 도리 있어요. 리승만이 미제 말을 듣지 않았으면 무슨 이 놈의 철조망이 생겼겠어요. 이 놈의 철조망 땜에 우리 겨레 마음대로 드나들지도 못하잖아요.” 그러자 우리 대적공작간부는 한술 더 떴다. “그렇소. 만민이 증오하는 이 놈의 철조망 때문에 전쟁으로 하여 흩어진 부모형제들이 만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니고 뭐요.” 장유익은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이 놈의 철조망이 아니면 나도 뭘 할락꼬 이 놈의 뒈질 곳에서 굶으면서 개고생하겠어요?” 대적공작간부는 이날 예기했던 목적에 달했기에 자리를 떴다. 우리 군 대적공작은 사전에 방안을 세우고 지도부의 비준을 받은 후 해나갔다. 선전하는 내용도 우리 나라의 평화외교정책과 조선정부의 평화통일 각항 관점에 따라 진행하였다. 선전하는 대상에 대해서도 가정환경, 민경대에서의 지위, 성격, 사상기초를 깐깐히 분석연구한 다음 선택성있게 골라 선전하였다. 주로 하층민경들을 대상해 선전했다. 그러나 적 민경 속에 잡입해들어온 특무나 군관은 아예 접촉도 하지 않았다. 한번은 381고지에서 대적공작간부 김권식과 김봉춘은 분계선 철조망 부근에서 몇몇 적 민경과 만나게 됐다. 구레나룻이 더부룩하고 마흔이 훨씬 넘은 키꺽다리가 민경병사들 속에서 그들한테로 스적스적 다가왔다. 보나 마나 직위 높고 심상치 않은 자였다. 그 뒤를 따라오는 민경들은 김권식이나 김봉촌을 잘 아는 사이였지만 이날만은 얼굴에 긴장한 그늘이 졌다. 구레나룻은 김권식이네를 가까이 만나자 이런 것부터 물었다. “친구, 왜 모택동이 준 군사견장을 달지 않았는가요?” “김권식은 아닌 보살을 떨었다. “우리 병사가 어찌 그런 일을 다 알겠소?” 구레나룻 꺽다리는 나무꼬챙이를 주어쥐더니 쭈크리고 앉아 땅바닥에 한자로 이런 글귀를 썼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는 어려운 일 없으리라.” 그는 우쭐 일어서더니 철조망 맞은켠의 김권식이네를 보고 물었다. “이 글 무슨 뜻인가요?” 김권식과 김봉춘은 서로 마주보면서 눈직하고는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모르겠소.” 김권식은 진짜 모르는 것처럼 뒤더수기까지 썩썩 긁었다. 구레나룻 꺽다리는 그들에게 또 웅글진 목소리로 물었다. “정치는 뭘 배웠소? 로씨야 사람들의 ‘정치경제학’을 배웠는가요?” “모르겠소.” 그러자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꺽다리는 깔보는 눈길로 그들을 쓸어보더니 손에 쥐였던 나무꼬챙이를 홱 집어던지고는 뒤짐을 지고 가버렸다. 그 놈이 간 뒤 상급에서는 통보를 민경대대에 내려보냈다. 원래 구레나룻 꺽다리는 서울의 한 적특무기관의 두목이였다. 그는 비무장지대 전연에 직접 와서 우리측 민경들의 정황을 시탐하러 왔다고 하였다. 그 자는 그번에 돌아가서 “그쪽의 자식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숭이들이더군.”라고 하였다고 한다. 우리 군 통보에서는 김권식과 김봉춘이 모르는 것처럼 했기에 우리 대적공작간부들의 신분과 사업의도를 숨겼다고 칭찬하였다. 어느 한번, 리해식은 대적공작이 비교적 잘 되는 381고지 민경관측소에 가서 적민경들과의 “련환모임”에 참가하려고 하였다. “가지 마십시오. 면목이 없는 사람이 나타났다가 보이지 않으면 적들의 의심할게 아닙니까?” 민경전사들이 말렸다. “리동무 얼굴은 우리 얼굴처럼 해볓에 그을지 않아 검실검실하지 않습니다. 몸도 실해서 간분게 인차 알립니다.” 그러나 리해식도 가야 할 리유가 있었다. “두개 사단 민경주둔지에 한번씩 가서 적정을 알아야겠소. 이번에 꼭 가야 하오.’ 그러자 민경들은 “그럼 관측소 관병인척 하면서 조선말을 하지 말고 한족민경인 척하시오.”라고 하였다. 민경들은 아주 솔직하고 모든 것을 주밀하게 타산하고 있었다. 리해식은 속으로 못내 감탄하였다. 그날 원래 오후 3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적민경들은 벌써 오후 2시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괴뢰군 민경들은 물자공급이 잘 안돼 밥도 온전히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북쪽의 우리 지원군 민경들과 련환모임이나 하여 중국의 먹거리를 얻어먹으려고 들었다. 리해식 등이 나타나자 적민경 넷이 우쭐우쭐 일어나 웃으며 마주나왔다. 김관식이 나가면서 인사했다. “미안하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적민경들은 낯선 리해식을 보고 나직이 물었다. “저 친구는 첨 보는데.” “오- 우리 관찰소 관찰병이요. 늘 나오지 않다가 우리 여기서 재미있게 논다니깐. 우릴 따라 온 거네.” “음, 그래? 자, 친구도 앉으랑께.” 리해식 등은 적민경들과 분계선 철조망을 사이두고 나란히 마주 앉았다. 그들이 호주머니에서 술과 통졸임을 꺼내자 적민경들은 입이 함박만해져 헤벌쭉거렸다. “아따, 번마다 신세져 잘 먹네.” 적민경들은 해식이네가 권할 새도 없이 벌써 너도 나도 한잔씩 부어 마셨다. “캬, 중국 술은 참 맛 좋아.” “그래, 벌써 배꼽이 쨍해난데이.” 적민경들이 통졸임통에서 절인 돼지기를 꺼내 맛나게 먹을 때였다. 김관식은 적민경 김관웅한테 술별을 건네며 물었다. “여보게, 친구, 그저껜 왜 오지 않았소? ‘6.25’ 에 전쟁준비 하느라고 못오게 하던가?” 김관웅은 술병을 받으면서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였다. “쳇, 관계없어. 전쟁 나면 누가 너거한테 총 쏜대? 총 들어 아무데나 마구 쏴대면 다야.” “하하하.” 그 소리에 모두 한바탕 웃어댔다. “자넨 진짜 전투고수야. 사격묘수 있거든.” 권커니작커니 술이 여러 순배 돌자 적민경들은 집 일로부터 세상만사, 조선전쟁에까지 다 말해도 개의치 않고 맞장구를 쳤다. 이럴 때 리해식은 제꺽 숱한 례를 들어 6.25전쟁은 미제와 리승만괴뢰군이 먼저 발돌한 것이라는 것을 까밝혔다. 적민경 김관웅은 그의 말을 듣고 머리를 끄덕였다. “아, 원래 그런 판이였구만. 그런 걸 우린 당신들이 먼저 쳤다고. 원참.’ 목적에 도달하자 리해식 등은 술을 가지고 가서 마시라고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선전용 신문으로 통졸임을 싸주었다. 통졸임을 먹을 때 보게 하려는 것이였다. “여보게, 친구. 잘 먹겠수다.” 적민경들은 나머지 술병과 통졸임을 주어넣고 비칠거리면서 떠났다. 그후 이 민경관측소에서는 적민경 소대장 김룡삼을 낚으려고 짜고 들었다. 어느날 점심, 김권식과 민경들은 김룡삼이 분계선 철조망 부근에 있는 걸 보고 순라하는 척하면서 다가갔다. “아니, 김소대장 아니요?” “오, 권식이, 허허.” 그들 둘은 철조망을 사이두고 굳게 악수까지 나눴다. 이때 우리측 민경관측소의 민경이 이쪽에 대고 소리쳤다. “어이, 점심이나 먹으라구-“ 등의덕이 대답했다. “우린 여기서 이 친구와 놀겠소. 좀 있다가 먹겠소.” 이윽고 취사원민경이 계획대로 물만두를 “죽엽청”술병과 함께 가져왔다. 김이 물물 나는 물만두를 보자 김룡삼은 군침을 꼴깍 넘겼다. 그는 아쉬운대로 떠나려고 하였다. “어이, 친구, 우리 중국 물만두나 맛보라구.” “걸케 해 될가요?” “되구말구요.” 그들은 철조망을 마주하고 술도 마시고 물만두도 먹었다. 김룡삼은 잘게 싼 물만두를 맛나게 먹으면서 연신 “하, 별맛이다. 별맛이야!” 라고 하였다. 술도 다 마시고 물만두도 기껏 먹은 김룡삼은 이런 엉뚱한 궁리를 내놓았다. “권식 친구가 딱 맘에 들어요. 우리 결의형제를 맺으면 어때요?” 권식은 등의덕과 마주보고 눈치를 맞추고 나서 인차 응낙하였다. “좋구말구요.’ 그리하여 한살 이상인 권식이 의형이 되고 적민경 소대장 김룡삼은 동생이 되였다. 그후 그들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졌다. 김룡삼이 휴가를 맞고 결혼하러 가게 되였다. 그러자 권식은 그에게 결혼부조로 그물수건을 보냈다. 김룡삼은 결혼하고 돌아와 권식에게 결혼사진마저 꺼내 보였다. 한번은 권식이 김룡삼을 보고 “심심해 죽겠네. 뭘 볼 것두 없구. 거게 뭘 신문 같은게 없소?”하고 물었다. 김룡삼은 고려도 없이 “우리한텐 ‘륙군보’ 밖에 없어요.”라고 하였다. 이튿날로 김룡삼은 괴뢰군 “륙군보”를 가져다가 철조망 너머로 쑥 내밀었다. 권식과 리해식이 보니 별로 가치 없었다. 권식은 이튿날 신문을 김룡삼한테 되돌려주기로 하였다. 김봉춘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적민경과 장기를 두었다. 김권식은 김룡삼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권식은 호주머니에서 “륙군보”를 꺼내 김룡삼에게 넘겨주면서 넌지시 물었다. “신문은 재미없소. 다른 건 없소?” “요새 우에서 내려보낸 3급비밀문건이 있어요. 부대 편제와 화학무기, 원자무기 훈련 같은 내용인데요.” 김룡삼은 후에 슬그머니 그 비밀문건을 가져다다 김권식에게 주었다. 김권식은 그 비밀문건을 중대부에 가지고 와서 촬영해두고 원본을 인차 김룡삼한테 넘겨주었다. 이 적민경관측소의 민경들은 괴뢰군 제11사단의 수색중대에 속했다. 어느날 밤, 리해식과 20여차나 만나본적이 있는 한 적민경이 군사분계선을 가만히 넘어와 의거하였다. 민경들이 그를 민경중대부에 데리고 갔을 때였다. 언제나 민경전사복을 입고 늘 그 적민경과 만나던 김권식이 소위견장을 단 지원군 군복을 입은채로 리해식과 그를 만났다. 그러자 그 적민경은 깜짝 놀랐다. “아니, 당신이 군관일줄은 꿈에도 몰랐는데요.” 상급에서는 적민경과 김권식이 익숙한 사이이기에 김권식을 보고 그 적민경을 데리고 평양에 있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련락부에 호송하라고 하였다. 그 민경을 데리고 평양에 갔을 때 련락부 장부장은 김권식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칭찬하였다. “지원군동무들은 비무장지대에서 대적정치공작을 참 잘했습니다.” 뒤이어 장부장은 김권식한테 차에 안내자까지 보내 평양구경을 시켰다. 후에 들을라니 의거해온 그 적민경은 학교에 가서 공부한 후 좋은 일자리를 찾아 잘 먹고 잘 산다고 하였다. 리해식은 늘 대적공작처 부처장 려광은 상감령지구 비무장지대에 가서 대적공작조 동지들을 도와 사업하였다. 추석 전 어느날 오후 3시, 리해식은 관찰병으로 가장하고 대적공작조 석정과, 조홍권, 리병정 그리고 두 민경과 함께 선전화보와 조선신문으로 싼 술 두병과 통졸임 두통, 월병 14개 그리고 배, 복숭아, 오이 20여개를 들고 분계선 철조망 곁으로 갔다. 이날 그들은 이 곳에서 적민경들과 “련환모임”을 가지기로 하였다. 그들이 가서 얼마 안돼 적민경 다섯이 산에서 내려왔다. “안녕들 하오?” “예, 안녕해요?” 적민경들은 인사를 받으면서 분계선 철조망을 넘어와 땅바닥에 된장국 한곽과 과자 두봉지를 내놓았다. 한 적민경은 난생처음 월병을 보는지 주어들고 신기해하며 한입 뚝 떼 먹어보았다. “이건 무슨 과잔가요? 이리 맛있는가요?” “월병이요.” “오- 월병, 거 보름달처럼 생겼다고 월병이라는 모양이지.” 리해식은 술을 권한다 월병을 먹으라고 쥐여 준다 하면서 월병의 래력을 말해주고 추석이면 온집식구가 다 모여 월병을 먹으면서 명절을 쇠는 중국의 전통풍속을 알려주었다. 조홍권은 사단 대적공작과 조리원 석정과를 가리키면서 그럴듯하게 말했다. “월병은 우리 부분대장이 명절에 먹으라고 사온 거요. 이 복숭아는 우리절로 마련한 거고 오이는 우리 심은 거요. 오늘 우리 실컷 먹고 마음껏 놀기요.” 애숭이티 나는 적민경이 혀를 끌끌 찼다. “보라우, 남들은 분대장이 병사들한테 먹을 걸 다 사준다네. 얼마나 좋겠나.” 이때 조홍권이 적민경에게 술병을 쥐여주며 말했다. “다 먹지 말고 남겼다가 전번처럼 관측소 형제들두 주라구. 관측소엔 몇사람이 남아 있소? 요걸루 되겠소?” 적민경은 별로 고려없이 “되구 말구요. 어제 온 세 사람 밖에 없는데요. 이걸 다 마시면 배 터질라구요.”하고 말하였다. 적민경은 새로 온 동료들 이름마저 낱낱이 알려주었다. 한창 권커니 작거니 할 때였다. 마흔이 넘은 려광 부처장이 허리에 흰 앞치마까지 두르고 얼굴에 밀가루칠을 좀하여 취사원으로 그럴듯하게 가장하고 물만두를 대야에 듬뿍 담아가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관측소에서 내려왔다. 조홍권은 적민경들에게 그를 가리키면서 소개하였다. “이 분은 우리 취사원이요. 물만두를 실컷 자시라구.” 려광 부처장은 만면에 웃음을 담고 적민경들에게 물만두를 권하면서 말하였다. “물만두는 우리 중국 사람들이 젤 즐겨 먹는 음식이요. 자, 내 손재간이 어떤가 맛보라구.’ 주름살이 죽죽 간 그가 취사원으로 꾸미고 척 나서니 실로 그럴듯하였다. 적민경들은 술이 거나하게 된 적민경들은 그를 의심하기는커녕 그의 후더운 거동에 마음이 훈훈해나서 조흥권이랑 손을 잡아 일으키더니 어깨춤을 덩실덩실 춰댔다. 노래소리, 웃음소리가 철조망 남북 저 멀리에로 울려퍼졌다. 조흥권과 춤 추던 적민경은 떠나면서 그에게 귀속말을 하였다. “오늘 오전에 351고지에서 전화로 날 오라지 않겠나요. 가보니 20여명이 새로 왔더구만.” 이때 한 적민경이 조홍권에게 “요 며칠새 중공군과 만났는가요?” 하고 물었다. “아니요.” “만약 누굴 만나든간에 오늘 일을 말하지 마세요.” 그러자 조홍권은 그를 안심시켰다. “우린 친구니깐. 시름놓으라구.” 적민경들은 헤여지기 아쉬워하면서 철조망을 넘어갔다. 이번 “련한모임”을 통해 적들의 새로운 병력배치정황을 알아냈다. 한번은 상감령 맞은켠 적민경 중사 박상원은 우리 민경에게 한가지 부탁하였다. “내 고향은 북반부 세포군 세로리죠. 거긴 저의 삼촌이 있는데 몇해 되도록 편지로 문안마저 하지 못했는데요. 편지라도 전해주겠는가요?” 그의 눈에는 크게 희망을 걸지 않으면서도 간절하게 부탁하는 빛이 어려 있었다. “되구 말구요.” 지도자의 동의를 거쳐 그가 써준 주소대로 한 간부를 보내 그의 삼촌에게 편지를 전해주었다. 눈보라가 윙- 윙- 휘몰아치는 날에 인차 그의 삼촌의 회답편지를 손수 가져다가 주었다. 박상원은 매우 감격하여 만면에 웃음을 피우고 우리 대적공작조 간부의 손을 굳게 잡았다. “난 편지를 주면서도 당신들이 정말 전해줄가고 근심했죠. 인제야 당신들이 진짜 절 도와준다는 걸 알았어요. 이 편지는 확실히 제 삼촌이 친필로 쓴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 은혜를 갚을가요?” 그는 감격된 나머지 뜨거운 눈물까지 두 볼에 주르르 흘렸다. “저의 부모들 모두 한국에 있으니 말이죠. 부모들이 아니면 벌써 고향에 돌아갔을 거예요. 전 자나깨나 제가 나서 자란 고향을 생각해요.” 이 일을 알게 된 후부터 적민경들은 더 각근히 굴었다. 하여 우리 군의 정치영향은 적군들의 가슴에 뿌리를 내리고 그 가족들에게까지 뻗쳤다. 이에 따라 북에 의거해오는 적민경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리해식 소속 군단 맞으켠의 적민경들만 해도 82명이나 의거해 넘어왔다. 그 속에는 중위급군관 3명과 사단부 특무대 특무 설종태도 들어 있다. 상감령 아래 하감령 아군 방어구역 안에는 작은 금광이 있었다. 이 금광의 광석은 금함량이 매우 놓았다. 그런데 전쟁 후에 비군사구역이 디면서 누구도 파내지 못하였다. 이 금광에서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400여메터 떨어진 곳에 적민경보초소가 있었다. 한 적민경 분대장은 어느날 밤에 보초를 서는 기회를 빌어 보초병에게 동정을 살피게 하고 미국식 손전지와 밥곽, 작은 마치를 가지고 분계선 철조망을 슬쩍 넘어와 서서 동정을 두리번거리면서 살피다가 슬금슬금 금광 굴 안으로 들어갔다. 좀 지나 굴 안에서 마치로 금광석을캐는 소리가 딱딱딱 들려왔다. 그의 거동을 진작 지켜보던 우리측 민경 넷은 한 사람이 분계선 쪽을 경계하고 세 사람이 동굴어귀를 포위하였다. 한 20분이 지나자 적민경 분대장이 밥곽 안에 금광석을 꼴똑 캐담아가지고 나왔다. “꼼짝 말엇!” 갑자기 시꺼먼 총구멍이 셋이나 겨누자 적민경은 와들짝 놀랐다. 그는 손전지와 마치를 땅바닥에 뚝 떨어뜨리고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금광석이 든 밥곽만은 놓지 않고 오히려 품에 꽉 껴안는 것이였다. “걸엇!” 민경관측소에서 책임자가 그의 손에서 밥곽을 받아 금광석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금광석을 캐서 뭘 하려오?” 그는 머리를 푹 수그리면서 쥐구멍에 기여드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저의 어머니 중병에 걸렷어요. 돈 없어 어머니 병치료 못하고 있는데요. 어머니 치료비 좀 만들려고 금광석이라도 캤어요.” 책임자는 엄숙하게 말하였다. “당신은 정전협정을 어기고 분계선을 넘어왔소. 우린 뒤에 보내 처리해야겠소.” 그 소리에 그는 벌떡 일어났다가 무릎을 꿇고 안자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울먹울먹한 얼굴로 책임자를 바라보며 간곡히 빌었다. “제발 그러지 말아요. 절 놓아줘요. 제가 갇히면 우리 어머니는 돈이 없어 병치료를 못해요. 이 금광석을 팔아 어머니 병치료하게 되면 제가 온 분대 민경들을 몽땅 데리고 와서 의거하겠어요. 은혜를 꼭 갚겠어요.” “일어나오. 우리 우에다 말해보지.” 책임자는 그가 어찌나 불쌍한 처지를 절절히 빌고 또 태도가 성실한지 상급의 비준을 거쳐 그날 밤으로 보초를 바꾸기 전에 놓아보냈다. 그리고 정전협정에 위반되는 행위라고 남조선측에 항의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우리 측 인도주의 처사에 감화된 그 적민경 분대장은 금광석을 팔아 어머니 병을 치료한 후 진짜 어머니까지 모시고 그의 분대 민경들을 몽땅 데리고 상감령 동쪽 조선인민군에 의거해왔다. 38선에서 대적공작사업은 피의 대가도 치르면서 위대항 업적을 쌓았다. 조선족대적공작간부 리병정, 조명석, 강남필 등 동지는 38선에서의 대적투쟁에서 영광스럽게 희생되였다. 38선에 붉은 피를 휘뿌린 그들은 아직도 조선 38선에서 고이 잠자고 있다.                 리목리암살사건 1956년 하반년, 지원군의 정치적 영향이 적군 내부에 점차 확대되여감에 따라 38선을 넘어 이북에 의거해온 적군이 날로 늘어났다. 당시 중국과 쏘련의 국제주의적인 지원을 받는데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 주석께서 령솔한 조선로동당의 령도아래 조선 인민들은 신속히 전쟁의 피해를 극복하고 재더미 우에 위대한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여 인민들의 생활수준도 남반부보다 훨씬 높았다. 그리하여 남반부의 평민백성들과 군인들이 월북하는 사건도 비일비재였다. 그리하여 적군 상층기관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리승만괴뢰군의 한 사단에서 남조선(한국) 괴뢰군 국방부에 한 보고에는 이런 애탄이 적혀 있었다. “철원지구의 비무장지대에서 공산군은 늘 우리 한국 군에게 정치선전하고 있다. 하여 쌍방은 적의가 없어졌다. 숱한 군인과 백성들이 월북했다. 만약 계속 이렇게 해나간다면 우리 한국 군의 사기에 영향줄 것이며 앞길이 막막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정황에 근거해 아군 맞은켠 적군지휘부에서는 일찍 민경들이 아군 민경들과 만나는 것을 금지할데 대한 명령을 내렸다. 또 전문 훈련받은 한무리 특무들과 헌병들을 민경들 속에 파견해 정전협정을 어기고 파괴활동을 감행하였다. 1956년 9월 20일, 상감령지구를 들썽케 한 리목리암살사건은 바로 그 철증으로 된다. 리목리는 38선 북쪽, 상감령 서쪽과 5킬로메터 떨어진 군사분계선 부근에 있는 마을인데 전쟁 때 포격에 재더미로 되고 말았다. 이 곳은 정전 후 적아쌍방 민경들이 늘 만나는 곳이였다. 9월 20일, 추석 이튿날이였다. 대적공작조의 석정과, 리병정과 민경전사 왕동무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술 한병과 과자 두봉지를 가지고 순라하러 나갔다. 그들 셋은 허리를 치는 잡초를 헤가르면서 순라선을 따라 살피면서 리목리로 갔다. 10시 쯤 되였을 때였다. 그들 셋을 본 적민경 셋이 351고지에서 슬금슬금 내려왔다. 그들은 리목리마을 뒤산 둔덕에서 만났다. “추석 잘 쇴소?” “엉? 음, 그래.” “어젠 왜 안 왔소?” “그럴만한 일 있었네.” 적민경 남종석이란 자가 얼버무리면서 흘끔거렸다. 서로 면목이 있는지라 석정과네는 무람없이 분계선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리병정은 앉자마자 술병과 과자를 꺼내 벌려놓았다. 적민경들은 좋아라고 술병을 주어들어 꿀꺽꿀꺽 둬모금 마셨다. 그들이 서로 한담을 하며 권커니작커니할 때 우리측 민경 왕동무는 뜻밖의 일을 막으려고 총을 멘채 옆에 서서 구경만 하였다. 한참 지나서 남종석이 바지춤을 쥐고 일어섰다. “야따, 술 좀 마시니 오줌 마렵군.’ 그 자는 한쪽으로 가서 소변 보는 것처럼 하였다. 그 놈은 권총을 슬쩍 꺼내 바지주머니 안에 넣어 총끝을 오줌구멍으로 해서 리병정에게 두방 쐈다. 땅! 땅! 야무진 총소리 울렸다. 리병정은 아래배와 왼가슴을 맞고 피못 속에 쓰러졌다. 그는 권총을 빼서 남종식을 겨누었지만 쏘지도 못하고 희생되였다. 피못 속에 쓰러진 그는 분노에 찬 두눈을 부릅뜨고 철조망 맞은켠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남종석과 그 짝패들은 미군식보총 두자루를 던진 채 데굴데굴 구을어 산 아래로 내려갔다. 석정과와 왕동무는 그 놈들에게 사격하였다. 한 적민경이 맞아 비칠거리다가 두 놈의 부축을 받으면서 도망쳤다. 뒤이어 나무숲 속에서 여러 놈이 나와 엄호하였다. (분명 저 놈들이 미리 짜고 들어 암살한 것이구나.) 석정과와 왕동무가 풀숲에 엎드려 찬찬히 보니 철조망 건너 풀밭에 미군식보총 두자루와 미국제톰식권총 탄알까지 2개가 풀밭에 있었다. 이때 부근에서 순라하던 조홍권이 총소리를 듣고 한개 소조의 민경들을 데리고 뛰여왔다. 그들은 인차 사람을 띄워 대대부에 알리는 한편 사건현지를 지켰다. 그날 리해식도 상감령지구 모 사 민경 2대 중대부에 있다가 사건보고를 받았다. 뒤이어 군 수장의 지시에 다라 한 부대장과 함께 한개 패 민경들을 데리고 사건현지에 뛰여갔다. 리해식과 부대장은 분계선에서 10여메터 떨어진 북산언덕 수림에 전투대형을 짓고 엎드려 사건현지를 보호하였다. 이 곳은 맞은켠 적들이 지키는 산보다 훨씬 낮은 개활지대 앞에 있는 산둔덕이여서 아군에게 매우 불리하였다. 산골짜기를 하나 사이 두고 한 백메터 떨어진 맞은켠 산 우의 나무숲에 벌써 철갑모를 쓴 적들이 새까맣게 몰려오더니 시꺼먼 총부리를 이쪽에 겨누고 있었다. 실로 힘껏 당긴 활시위처럼 일촉즉발의 팽팽한 분위기였다. 피못 속에 쓰러진 전우 리병정을 보자 동무들은 눈에 불길이 이글거렸다. “부대장, 명령하십시오!” “원쑤를 갚읍시다!” 전사들이 분노에 치를 떨자 부대장도 참을 수 없었던지 리해식을 돌아다보면서 물었다. “어쩌겠습니까?” 리해식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안되오. 우린 견결히 군단 수장의 지시대로 련합조사조가 올 때까지 사건현지와 리병정동지 시체를 지켜야 하오. 기다리기요. 사태를 확대시켜선 안되오.” 군단과 사낟에서는 점심 전에 사건현지에 직통전화기를 가설했다. 리해식은 전화기 옆을 한발자욱도 떠나지 않고 적정변화을 군단 수장에게 보고하였다. 따르릉, 따르릉. 군단 오보산 정위에게서 전화지시가 왔다. “동무는 인내성있게 전사들의 사상사업을 해야 하오. 상급의 명령이 없인 누구도 먼저 사격해선 안되오. 그렇게 되면 우린 주동으로부터 피동에 빠지게 되오.” “예, 알았습니다. 꼭 전사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리해식은 송수화기를 놓고 일어났다. 민경전사들은 새로운 지시가 있는줄 알고 총가목을 으스러지게 쥐고 세줄 횡대로 차렷자세로 섰다. 리해식은 부대장한테 대체적지시내용을 말하고나서 분노에 불타는 전사들의 눈길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동무들, 군단 정위 오보산 동지는 다음과 같이 지시했습니다. 비무장지대 일거일동은 직접 국제적인 외교투쟁에 관계됩니다. 전반 국면을 돌봐야지 일시적 충동에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행동은 지휘에 복종하고 우리 민경들은 정전협정을 지켜야 합니다.” “옛! 꼭 명령에 복종하겠습니다.” 전사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분계선 철조망을 뒤흔들면서 저 멀리 산에까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전사들은 조선 중부의 무더운 날씨에 땀을 철철 흘리면서도 소나무숲이 우거진 산둔덕에 엎드려 맞은켠 산의 나무숲 속에 점점 많아지는 적들을 노려보았다. 이날 오후, 리목리암살사건정보를 받은 중조측조사소조일군들이 차를 타고 달려왔다. 그들은 석정과와 왕동무에게서 사건경과를 들었고 이튿날 공동조사를 할 때 주의사항을 구체조치를 포치하였다. “리해식동무는 공동조사 경호를 책임지오.” “옛!” 리해식은 우렁차게 대답하였다. 리해식은 민경들을 데리고 밤낮 사건현지를 지켰다. 이튿날 아침에 군사정전위원회에서 파견한 제3련합관찰소조가 누런 기를 단 찌프를 타고 현지에 달려왔다. 그들은 풀숲을 헤치면서 분계선 철조망 옆으로 해서 산둔덕에 있는 사건현지에 이르렀다. 먼저 미군측에서 데려온 법의가 리병정의 시체를 검사하였다. 뻘건 피가 걸어붙은 굳어진 시체 왼쪽 가슴과 아래배에 총알이 뚫고 나간 구멍이 있었다. 북쪽을 향해 뒤로 쓰러진 시체의 자세나 철조망 남쪽 풀밭에 던지고 달아난 보총 두자루, 탄알깍지를 보아도 분계선 남쪽에서 총을 쏜 것이 불보듯 빤하였다. 그런데도 미군측 조장이란 꺽다리 중좌는 이렇게 얼토당토하지 않은 소리를 지르지 않겠는가. “총은 당신들 민경이 북쪽에서 이쪽에 대고 쏜 것이구만.” 그 말을 통역하자 우리측 조장 조선인민군 김류근 중좌는 엄숙하게 반박하였다. “당신들은 당신들측에서 저지른 만행을 반성해야 합니다. 공동조사에 아무런 성의도 없이 사건진상을 무시하고 책임을 우리측에 밀어버리려고 괴변을 부려선 절대 안됩니다.” 미군측 법의가 또 관건적인 문제를 두고 당나귀 떼질을 썼다. “권총 사격선과 시체에 난 총구멍이 일직선에 놓이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우리측에서 쏜 것이 아닙니다.” 우리측 부조장인 중국인민지원군 왕진강 소좌가 아주 풍자적으로 한마디 툭 쏘았다. “건 아마 미국의 권총 탄알이 요리조리 에돌면서 괴변 부릴줄 알기 때문이겠죠.” 통역원이 그 말을 영어와 조선어로 통역하자 적측 관찰원들은 입에 빗장을 지른 채 아무 말도하지 못하였다. 뒤이어 우리측 당사자들인 석정과와 민경 왕동무를 하나하나 불러다 사건경과를 일일이 물었다. 그들이 증실한 경과는 똑 같았고 현지실제정황과 딱 맞아떨어졌다. 이번에는 적측의 살인흉수 남종석 등 셋을 조사하게 되였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장면이 나타났다. 그 놈들 셋은 우리측 민경들에게 얻어맞은듯이 낯판대기에 반창고를 더덕더덕 붙히고 나타나지 않았겠는가. 총에 경상을 입은 놈은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나타났다. 우리측 당사자 석정과가 엄살을 부리는 그 자들을 손가락질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개놈들, 리병정을 쏴죽이고서두 맞은 척하긴? 반창고를 뜯어라! 상처를 어디 보자!’ 우리측 대표가 그 자들의 낯판대기 반창고를 쭉쭉 뜯어버렸다.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복수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우리측 대표와 경위일군들의 눈길을 보자 그자들 셋은 고양이를 본 쥐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미군측 조장은 그 난처한 모양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공동관찰소조에서 그 자들에게 사건경과를 물었으나 남족석은 꺽꺽거리면서 대답도 온전히 하지 못하였다. 또 그들 셋의 대답은 각기 달랐다. 미군측 조장은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올라 붉그락푸르락해서 영어로 뭐라고 욕지거리를 했다. 후에 리해식이 영어통역에게 물어보니 시켜준 서방질도 온전히 못하는 “밥통들”이라고 욕했다고 하였다. 한참 후에야 남종석은 얼토당토하지 않은 말을 불쑥 했다. “소변을 보다가 그만 오발했다니께.” 그 놈의 궤변에 우리측 대표가 반박했다. “련이어 두방이나 오발할 수 있는가? 오발이면 두발 다 명중해 살인까지 할 수 있는가?” 그러자 미군측 대표 중좌는 성난 어조로 “당사자들 조사는 이만합시다. 오늘 쉬고 래일 계속 조사합시다.”라고 하고는 수행인원들을 끌고 산 아래로 우르르 쓸어내려갔다. 조사가 끝나자 리해식은 전사들을 보고 사건현지 경호를 철수하게 하였다. 그날 전우들은 리병정 렬사의 유체를 조선 평강군 성암리의 푸르싱싱한 소나무가 우거진 지원군렬사릉원에 안장하고 리병정렬사의 성명과 가정주소를 쓴 종이장을 넣고 밀봉한 큰 놋그릇을 묘지아래에 엎어놓고 파묻어놓았다. 뒤이어 부대에서는 성대한 추도대회를 열었다. 리병정 렬사는 중국 길림성 휘남현 사람으로서 16세 밖에 안되는 어린 나이에 중국인민지원군에 입대해 조선전쟁터에 나왔으며 선후하여 포병, 통신원, 보병부대 조선어번역원으로 일하였으며 1954년에 비무장지대 대적공작사업을 하다가 불행하게 희생되였다. 9월 22일 오전 9시 좌우, 중조측소조 성원들은 먼저 사건현지에서 서쪽으로 50메터 떨어진 둔덕에 서서 적측대표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적측 대표들이 351고지 동쪽 산골까기에서 알라오고 있었다. 몇몇 괴뢰군 병사들은 낡은 책상과 걸상을 몇개 들고 따라왔다. 이윽고 백명은 실히 될 적측 일군들이 산둔덕에 있는 사건현지에 올라왔다. 그런데 그들은 온 오전 담판에 성의가 없이 질질 끌면서 궤변을 부리기만 하였다. 오후에 담판이 시작되자마자 우리측 소조장 김류근은 적들이 사건현지에 남긴 미국제자동보총 두자루와 미국제톰식권총 탄알까지 두개를 쥐여 미군측 꺽다리조장의 코 앞에 내들면서 말했다. “보시요. 이건 철증입니다. 당신들측 민경들이 고의적으로 정전협정을 파괴하고 암암리에 총으로 우리측 민경들을 쏘아 비무장지대에 긴장국세를 조성했습니다. 우리는 강렬한 항의를 제기합니다.” 철증 앞에서 미군측 꺽다리 조장은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김류근 조장은 이런 요구를 제기하였다. “정전협정 해당 규정에 따라 우리는 살인흉수를 호되게 징벌할 것을 요구합니다. 금후 다신 이런 암살사건을 저지르지 않도록 잘 단속해야 합니다.” 입에 빗장을 지르고 있던 미군측 꺾다리 조장은 더는 잔꾀를 부릴 수도 없는지라 “참 유감스럽습니다.” 하고 한마디 하고는 산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수행인원들도 우르르 뒤따라 산아래로 내려갔다. 리목리암살사건을 돌이켜보면, 적들이 얼굴에 칼상처자국이 있는 리병정을 군관으로 알고 암살하려고 미리 획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범행지점도 사건을 저지른 후 달아나기 좋은 둔덕진 곳을 골라 미리 정해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측 민경들이 경각성을 높이지 않아 피의 교훈을 얻고 말았던 것이다. 리목리암살사건이 발생한지도 수십년이 되였다. 그러나 소나무가 우거진 산둔덕을 바라볼 때마다 리해식의 눈 앞에는 리목리암살사건에서 희생된 리병정렬사의 묘지가 선히 떠오르군 한다.                                       제7장 조국으로 개선              칠혈육의 정 1958년 2월 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서는 성명을 발표하여 조선에서 즉시 모든 외국군대를 철수하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실현할데 관한 여러가지 건의를 제기하였다. 2월 7일, 중국 정부에서도 평화적으로 조선문제를 해결할 군면을 열고 미제로 하여 조성된 원동의 긴장국세를 완화시키기 위해 성명을 발표하여 조선정부의 성명을 완전히 지지한다고 표시하였다. 2월 10일, 주은래 총리가 외교부장 진의 등 동지들을 주요성원으로 한 중국정부대표단을 령솔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하였다. 방문기간에 주은래 총리는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2월 17일, 중국정부와 조선정부에서는 중국인민지원군이 조선에서 철거할데 관한 세계를 뒤흔든 련합성명을 발표하였다. 이튿날, 중국인민지원군총부에서는 성명을 발표하여 중조 두 나라 정부의 련합성명을 옹호하며 1958년 내에 중국인민지원군을 전부 철수하며 4월 말 전에 먼저 6개 사단을 철수한다고 성명하였다. 그리고 성명에서는 미국과 기타 나라의 군대도 조선반도에서 몽땅 철거할 것을 요구하였다. 모든 외국 군대를 조선반도에서 철수하고 평화적으로 조선문제를 해결할데 관한 문제는 조선군사정전협정에 명확히 규정돼 있었다. 정전 후 적아쌍방은 3개월 이내에 고위급정치회의를 열고 모든 외국 군대가 조선에서 철수해야 했다. 그러나 정전된 12일 후인 1953년 8월 8일에 미제와 리승만괴뢰군은 침략성적인 “공동조약”을 맺고 12월 12일에는 모든 외국 군대를 철수할 문제를 협상할 고위급협상회의를 공공연히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바람에 줄곧 그 고위급형상회의를 열지 못하였다. 미제는 또 전쟁준비를 다그치기 위해 중립국감찰소조를 남조선에서 철거하라고 강박했다. 중립국감찰소조가 핍박에 의해 남조선(한국)에서 철가한 이듬해인 1957년 6월, 미제는 증원무기를 조선반도에 들여오지 못한다는 조선정전협정 규정을 무시하고 남조선에 원자탄과 로케트를 끌어들여 계속 조선반도의 긴장국세를 조성하였다. 이와 반대로 중국인민지원군은 조선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였다. 조선을 곧 떠나게 되자 지원군과 조선 인민군, 인민들은 피로써 맺어진 친선의 정을 잊을 수 없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조선전쟁터에서 중조 부대와 인민들은 피로써 친선의 정을 맺었다. 지원군이 38선 부근에 진군했을 때였다. 상감령, 평강지구 조선인민들은 몇백명이나 되는 전선원호대를 무어가지고 지원군의 부상병과 탄약을 날라주었다. 19세 민청원 처녀 김명옥은 담가로 부상병을 들어나르다가 적기가 날아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죽더라도 지원군 부상병을 살려내야 한다.) 김명옥은 재빨리 담가를 나무숲 아래에 내려놓고 자기 몸으로 지원군 부상병의 몸을 덮었다. 쌩- 꽈르릉, 꽝꽝! 적기가 던진 폭탄이 그들의 옆에 날아와 작렬하였다. 담가 옆에 서 있던 나무가 날아나고 파편이 김명옥의 허벅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치마에 피가 뻘겋게 물들었다. 적기가 날아가자 그녀는 허벅다리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쓱 문지르고는 이를 옥물고 담가를 메였다. 그것을 본 부상병은 두 볼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담가에서 내리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김명옥은 지원군 전사를 설복해 되눕히고나서 이를 옥물고 담가를 들더니 아픈 다리를 쩔룩거리면서 앞으로 한걸음한걸음 나갔다. 그녀가 상감령전선에서 10킬로메터나 떨어진 전선병원에 이르렀을 때에는 피가 코신에 질벅하였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고 깨문 입술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19세 나는 조선 처녀 석길영은 이름난 전선지원모범이였다. 석길영의 집은 상감령 뒤쪽의 김화군 장덕면 매송리에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가증스러운 미제공중날강도의 폭격에 목숨을 잃었다. 원쑤를 갚으려고 그녀의 오빠는 조선인민군에 들어갔고 그녀는 혼자서 늘 적들의 비발치는 포화를 무릅쓰고 산에 올라가서 도라지와 야들야들한 삽주이파리, 개암나무버섯 같은 산나물을 캐다가 지원군부대에 가져다주군 하였다. 1952년 6월의 어느날 그가 광주리와 괭이를 가지고 산에 올라가 도라지를 캘 때였다. 갑자기 적들이 쏜 포탄이 날아와 부근에서 작렬하였다. 꽝! 굉음과 함께 석길영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때 부근에 있던 지원군 취사원들이 피못 속에 쓰러진 그녀를 발견하고 달려갔다. 석길영이 캔 돌라지는 사처에 널려 있었고 석길영의 왼쪽발이 뭉청 날아나고 끊어난 발목에서 뻘건 피가 줄줄 흘렀다. 하여 바삐 석길영을 업어 부근 지원군병원에 가서 구급하였다. 석길영이 캔 도라지랑 삽주랑 반광주리는 지원군 모부 진지 무후좌력포패에 보내졌다. 취사원들이 광주리 안에 써넣은 편지를 보고서야 모두들 석길영이란 조선처녀가 이 산나물을 캐오느라고 왼쪽발을 적들의 포탄에 잃었다는 것을 알고 모두들 비통에 잠겼다. 이튿날 전투에서 그 패 전사들은 “석길영의 원쑤를 갚자!” 하고 드높이 구호를 부르면서 적 땅크(탱크) 6대나 까부셨다. 그해 가을 상감령전역의 포소리가 울렸다. 지원군 의료일군들의 치료받아 상처를 완치한 석길영은 출원하자마자 지팽이를 짚고 마을의 처녀들과 함께 전선으로 통한 큰 길 옆에 더운물공급소를 차렸다. 그녀들은 적들의 포격을 무릅쓰고 마른 나무가지를 주어다가 물을 끓여 뜨거운 정이 듬뿍 담긴 더운 물을 지나가는 지원군 아저씨들에게 드렸다. 물이 특별히 귀한 상감령전역의 목마른 지원군 전사들은 그녀들의 뜨거운 물을 마시고 고무돼 영용히 적들을 무찔렀다. 마을의 숱한 녀성들은 석길영을 본받아 분분히 일떠나 “석길영담가대”, “석길영수혈대”를 무어가지고 전선지원에 일떠섰다. 온 마을에서는 전선지원의 열조가 일어났다. 조선정부에서는 석길영 처녀의 전선지원공적을 표창하기 위해 2급국기훈장을 수여하였다. 후에 지원군 부대에서는 석길영 처녀에게 재봉침 한대를 선물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밤낮 외발로 재봉침을 돌리면서 지원군 전사들의 옷을 기워주었다. 조선전쟁이 끝난 뒤 지원군 군단에서는 석길영에게 새 벽돌기와집을 지어주었다. 그러자 석길영은 군 수장에게 열정이 넘치는 감사신을 써보냈다. 그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저 석길영은 그대들의 뜨거운 보살핌과 치료를 받은 수천수만의 조선 인민 가운데 한 사람인데요. ‘조중 인민들은 친혈육과 같다.’는 이 한마디 말은 저의 몸에서 낱낱이 드러난다고 생각돼요. 제가 적포탄에 맞아 왼쪽발을 잃어 목숨이 위험할 때 중국인민지원군 간호원언니들이 국제주의정신을 발양해 자기들의 붉은 피를 뽑아 저의 몸에 넣어 저를 살려냈습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그대들은 끊임없이 먹을 쌀과 생활용품을 가져다주었고 저에게 재봉침 한대를 가져다주었어요. 이번에는 또 저에게 새 집까지 지어주었죠. 하여 저는 생활상의 모든 곤난을 이겨나갈 수 있었어요. 저는 이런 한마디 말을 하고 싶어요. 저도 중국 인민들처럼 그대들 중국인민지원군을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부를 것이예요.” 1958년에 중국인민대표단 단장 곽말약동지가 친히 석길영에게 기념장 하나를 드리자 그녀는 두 볼에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저의 혈관에서는 지원군의 피가 흐르고 있어요. 저의 심장이 뛰는 날까지 저는 조중친선을 위해 싸울 거예요.” 후에 석길영은 지원군 그 군단 주둔지에서 이사해갔다. 리해식은 귀국하는 도중에 신문에서 석길영이 지원군에 대한 깊고 깊은 감정을 품고 지팽이를 짚고 머나먼 길을 걸어 평양에까지 와서 귀국하는 지원군 전사들을 환송했다는 소식을 보았다. 1952년 10월, 세계를 들썽한 상감령전역의 총소리가 울리자 회양군 란곡면 현리의 농민 박재근은 담가원호대에 들었다. 어느날 밤, 박재근과 그들의 담가대는 지원군 부상병들을 담가에 메고 산둔덕으로 올라갔다가 산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이 산기슭에 담가를 내려놓고 잠시 땀을 들일 때였다. 갑자기 적기가 앵- 하고 날아왔다. 박재근은 황급히 담가를 나무 아래에 내려놓고 숨었다. 적기는 그들의 꼭대기에 날아와 폭탄을 떨어뜨렸다. 박재근은 바삐 자기 몸으로 지원군 부상병의 몸 우에 엎드렸다. 꽝! 굉음과 함께 폭탄이 공중에서 작렬하였다. 파편이 날아와 박재근의 잔등에 박혔다. “억!’ 외마디소리와 함께 박재근은 입귀로 피를 흘리며 일어나지 못했다. “재근이!” “재근이!” 담가대 사람들이 애타게 불렀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그를 전선병원에 업어갔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박재근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피기없는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띠염띠염 물었다. “그 지원군, 부, 부상병은 어떻게, 돼, 됐나?” “근심 말아요. 안전히 병원에 왔어요.” “음.” 그제야 그는 가쁜 숨을 후- 몰아쉬더니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지원군 부상병도 담가대원들도 모두 애절하게 통곡하였다. 상감령전투의 총포소리 속에서 당지 당정기관과 지원군부대 대표들은 흐르는 피눈물과 함께 박재근렬사를 상감령 산기슭에 묻었다. 조선전쟁이 끝나자 지원군 이 군단부대에서는 군단 경위2련의 전사들을 파견하여 박재근렬사의 기와집을 현리촌 도려옆에 지어주었다. 집문 우에는 빨간 바탕에 금색테두리칠을 하고 “불멸의 국제주의전사 박재근렬사의 집”이란 글을 새긴 커다란 편액을 걸어놓았다. 황금나락이 설레이는 가을의 어느날 점심에 박재근렬사의 안해 리옥선과 딸 박숙금은 3년 동안이나 살아온 방공굴 같은 헌 집에서 새 벽돌기와집에 들었다. 그날 새집들이의식에는 박재근렬사가 생전에 몸바쳐 구한 부상병 소속 지원군 군단 정치부 주임 범춘양이 부대대표들을 이끌고 당지 조선 당정지도자들과 함께 참가하였다. 후에 명절이면 군단의 수장들은 사람을 파견하여 위문편지와 명절선물을 가지고 박재근렬사의 가족을 찾아가 보았다. 1956년 한해 봄에만 해도 지원군 이 군단에서는 박재근렬사네 집에 량식 1,800근을 보내주어 보리고개를 근심걱정없이 넘게 하였다. 지원군 군단에서 상감령 전초에서 떠나기 전에 군장 범영 소장 일행은 박재근렬사의 안해 리옥선과 작별인사하러 갔다. 군 수장들이 탄 차가 박재근렬사의 집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회양군 당정지도자들과 인민군 대표들, 그리고 박재근렬사의 안해 리옥선과 마을사람들 수백명이 진작 동구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부대의 수장과 동지들을 보자 리옥선 아주머니는 5년 동안이나 지원군부대에서 살뜰히 보살펴준 일을 생각하고 범군장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두 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는데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석별의 정으로 차넘치는 작별의식은 환락으로 차넘치는 군악소리 속에서 시작됐다. 범염 군장이 군단 전체 장병들을 대표하여 위대한 국제주의전사 박재근렬사의 안해 리옥선 아주머니에게 “위대한 국제주의전사 박재근동지는 영생불멸하리라.”는 글발이 새겨진 거폭의 편액을 드렸고 당장에서 그 편액을 새 벽돌기와집에 걸어주었다. 그리고 빨간 꽃댕기를 목에 건 백마 한필, 굴암돼지 한마리와 새끼돼지 두마리를 선물로 드렸다. 뒤이어 범염 군장 일행은 박재근렬사의 묘소 앞으로 가서 당지 조선풍속에 따라 제사를 지냈다. 범군장과 조선 당지 당정군 책임자들이 애절한 군악소리 속에서 꽃다발을 렬사묘지에 드렸다. 뒤이어 범군장은 렬사묘지에 제주를 부어드리고 중국 풍속대로 향불을 피우고 절을 세번 하였다. 범군장은 축축한 눈길로 렬사의 묘지를 바라보며 호주머니에서 추도문을 꺼내 비통하게 읊었따. “…우리는 귀국한 후에도 영원히 박재근 렬사가 몸바쳐 우리 지원군 전사를 구한 국제주의정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박재근렬사는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박재근렬사여, 고이 잠드시라.” 범군장은 머리 숙여 경례하였다. 뒤이어 렬사의 가속과 함께 렬사의 묘지에 가토하고 푸른 애솔을 묘지 앞에 심었다. 리옥선 아주머니는 범군장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었다. 범군장은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그녀의 손을 굳게 잡아 흔들었다. 범군장 일행은 갈라지기 아쉬운 석별의 정을 안고 차에 앉아 천천히 저 멀리 떠나갔다. 리옥선 아주머니는 딸을 데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락조가 깔린 묘지 앞에 오도카니 서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차가 저 멀리 까만 점으로 아물거리다가 산굽인돌이를 에돌아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아, 조선 전쟁터에서 피로써 맺어진 중조 인민들의 친선의 정은 세월이 흘러도 영원하리라.              안녕히! 조선이여!         4월의 상감령에는 봄볕이 완연하였다. 상감령 아래 산꼴짜기에는 개울물이 촐랑촐랑 노래하며 흘렀다. 상감령에는 영웅들의 선혈을 머금고 피여난 연분홍 진달래가 부드러운 봄바람에 나풀나풀 춤추고 있었다. 리해식 소속 지원군 군단은 전우들의 피로 물든 아아한 상감령, 구소운영웅고지 등 40킬로메터나 되는 전연진지를 조선인민군에 넘겨주고 조국으로 돌아가게 되였다. 모두들 조국에 돌아갈 날이 돌아온 것으로 하여 기뻐 야단이였다. 그러나 비밀을 지킬데 관한 규정에 따라 누구든지 중국 국내에서 온 편지를 받아볼 수 있을뿐 국내에 편지를 써서 부치지 못하였다. 리해식 등 대적공작처 간부들은 창문과 문을 뜯어 개울가에 메고 가서 겨우내 다닥다닥 붙어 있은 종이를 강물에 퍼지워 새끼줄로 닦아 말끔히 벗긴 후 되달아놓았다. 그리고 사무실도 말끔히 청소하여놓았다. 조선인민군 군단 수장들 선견대가 밤중 어둠을 빌어 비밀리에 38선 부근 지원군 군단 군영에 들어왔다. 두 나라 군단의 수장들은 회담을 가지고 진지교환문제를 토론하였다. 그들은 군사작전, 정치사업, 후근, 무기창고 등 각 부문별로 동시에 회담을 가지고 해당 인계사항을 토론하였다. 리해식은 군단 정치사업인계부문 회담에 참가하였다. 그때 군단 대적공작처 처장 왕진강이 병치료를 하려고 귀국하였기에 정치부 수장의 지시에 따라 리해식이 대적공작처를 대표하여 대적공작처의 사업을 인계하게 되였다. 조선족인 리해식이 정치사업부문 회의를 주최해 인계하였기에 통역원이 없어도 되였다. 회담 후 중조부대 군단의 련합명령에는 목표를 폭로하지 않기 위해 일선부대와 비군사무장지대 민경부대의 인계사업은 밤에 하기로 하였으며 넘겨주는 지원군측에서는 인계받는 조선인민군측에서 온 후 한 주야 함께 당직을 서도록 하였고 이튿날 밤에 가만히 진지에서 철수하기로 하였다. 진지를 인계하기로 된 날 밤에 조선인민군 제1집단군 모 사단 사단장 김철만 소장과 정치부사단장 리길남 상좌를 비롯한 조선인민군 전우들이 38선 전연진지로 가만히 들어왔다. 어깨겯고 싸우던 지원군 장병들과 조선인민군 장병들은 서로 포옹하며 환희에 잠겼다. 조선인민군 한 정찰소대장은 시퍼런 비수를 뽑아 지원군 퇀 정찰참모 유자여에게 기념으로 주었다. “이 비수는 전쟁년대에 정찰임무를 수행할 때 미군 놈을 넷이나 찔러죽인 비수요.” 그러자 유자여 참모는 자기가 결혼할 때 안해가 준 베개를 그 정찰소대장에게 기념으로 주었다. 조선인민군 한 부련대장은 든든하게 수건한 갱도와 교통호, 또치까를 인계받은 후 만족한 웃음을 지으면서 지원군 모 퇀 수장에게 말하였다. “참 훌륭한 진진데요. 당금 싸운다 해도 난 이 진지에서 전투를 지휘할 수 있겠어요. 지원군동지들 안심하십시오. 우린 꼭 38선을 잘 지킬 것입니다.” 지원군 군단 정치부에서는 군지휘부의 강당과 문예, 체육기재 같은 것을 조선인민군에 인계하게 되였다. 그런데 무대에 친 천막은 얼마전에 군단 문화처에서 만원이나 들여 국내에 가서 새로 사다 친 것이였다. 문화처의 한 동무는 천막을 두고 가기 아까와 손으로 매만지면서 “이걸 떼가고 원래 걸 쳐놓으면 어떨가요?” 하고 물었다. 그때 일손을 거들던 정치부 수장이 듣고 도리머리질하였다. “그대로 몽땅 놔두오.” 그리하여 리해식 등은 강당의 우아한 장식을 그대로 남겨두고 청소까지 말끔히 해놓았다. 깨끗하고 장식이 우아한 강당을 인계받은 조선인민군의 해당 책임자는 매우 기뻐하였다. “무대장식이 대단히 멋집니다.” 38선 비무장지대의 대적공작을 인계할 때였다. 지원군 사단 대적공작과 과장은 리해식 등과 함께 직접 조선인민군 모 사단 대적공작지도원 등을 지원군 순라일군들로 가장시켜 데리고 직접 군사분계선의 철조망을 따라 거닐면서 적과 접촉하는 지점, 그리고 적측 민경들의 활동법칙, 순라로선, 관찰소의 위치 및 우리 대적공작조의 활동범위와 민경분대의 배합 등 정황을 일일이 소개해주고 모든 대적공작을 인계하였다. 며칠 후 인계회의에서 사단 대적공작과 과장은 몇년래 대적선전공작의 기본정황과 경험교훈을 소개하였다. 중국인민해방군 총정치부 대적공작부 부장 장재정 소장과 지원군 총정치부 대적공작부 부장 장락정중좌가 군단의 대적공작과 적정종합자료 등 사업서류 수십부를 리해식 등과 함께 일일이 심사한 후 조선인민군 정치부 대적사업 지도원 고실성 등 해당 책임자들에게 인계하였다. 조선인민군 고길성 지도원은 정밀한 자료를 받아보고 감탄하였다. “실로 이런 자료는 얻기 힘든데요. 이건 지원군 동지들이 피땀으로 바꿔온 1선자료지요. 우리 대적공작에 매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리해식은 개성에서부터 간직해온 모주석마크 두개를 고길성과 문창록에게 달아주었다. 그들 둘은 아주 기뻐하면서 포탄깍지 밑굽으로 만든 담배재떨이를 리해식에게 주었다. 기념품교환을 마치자 그들은 사무실 앞마당에 나가서 전체 대적사업일군들과 함께 합영을 촬영하였다. 리해식은 몇십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 담배재떨이를 건사해두었다. 매번 그 재떨이를 볼 때마다 그때 그 인계사업을 할 때 정경이 떠오르군 하였다. 전연진지의 인계사업이 끝난 후 영웅진지 상감령고지 등 비무장지대 민경부대의 인계사업이 시작되였다. 지원군 민경들은 대낮에는 조선인민군 민경들을 안내하여 흰구름 감도는 망원초소에 올라가 지형을 익숙하게 알려주고 적정을 일일이 소개해주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적특무를 잡던 구소운진지 산기슭이며 영웅 황계광렬사가 희생된 상감령 고지며 상감령지구를 들썽케 한 “리목리암살사건” 현지 산둔덕이며 몽땅 손금 보듯이 눈 앞에 확 안겨왔다. 중조 부대 민경들은 하루 낮에 밤을 이어 어깨겯고 웅위로운 삼강령 주봉진지 우에 서서 총가목을 잡고 격강성 높이 38군사분계선 철조망 남쪽의 적정을 주시하며 살폈다. 지원군 민경들이 진지를 떠날 시간이 되자 두 나라 전우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형편에서 서로 굳게 포옹하는 것으로 천마디 만마디 말과 석별의 정을 주고 받았다. 참말리해식 등 지원군 대적공작과 간부들과 민경들은 몇년 동안 피를 흘리며 싸우면서 지켜온 38선을 떠나기 아쉬웠다. 특히 영용히 희생된 전우들을 38선 부근 산에 묻어두고 조선을 38선을 영영 떠나려고 하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흐르는 눈물을 팔소매로 닦고 38선에 영영 고이 잠든 전우들, 영웅들의 혼과 떨어져 조국에로 돌아와야 했다. 영웅 황계광의 동생 황계서도 형제부대와 함께 38선 부근 상감령 진지에 와서 구소운렬사와 형님 황계광렬사와 작별하였다. 그는 형님 황계광이 희생된 곳에 묵묵히 머리를 숙여 애도를 표시하고 그 곳에 푸른 소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그는 주먹을 불끈 들고 맹세하였다. “형님, 마음놓소. 나는 꼭 구소운 렬사와 형님의 자아희생정신을 따라배워 피로 바꿔온 승리열매를 굳게 지켜내겠소!” 밤중에 전연진지를 떠난 지원군 장병들의 대오는 이튿날 아침에 38선 부근 군영을 떠나게 되였다. 그들이 상감령에서 까마아득히 멀어져 점점이 흑점처럼 아물거리다가 사라질 때까지 조선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손을 젖고 또 저었다. 1958년 4월 15일, 리해식은 지원군 군단 기관과 직속대 간부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38선에서 제일 가까운 역, 남쪽에서 북으로 달리는 시발역, 조선 강원도 평강군 소재지에 있는 복계역에 이르렀다. 역광장에 한복을 입은 조선인민들과 군복을 입은 조선인민군 장병들 환영의 꽃물결이 설레였다. 오전 8시 47분, 렬차가 고동을 울리더니 천천히 앞으로 미끌어져 나갔다. 영원히 갈라지지 않음을 상징하는 숱한 색종이줄이 렬차 우의 지원군 장병들의 손과 렬차 아래 조선인민들의 손을 이은 채 주르르 길게 뻗어져나갔다. 수천명 조선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은 눈물을 휘뿌리면서 꽃묶음과 채색기를 흔들며 환호하였다. “잘 다녀가세요!” “다시 만나요!” 목메인 목소리를 저 멀리 뒤로 하면서 무정한 렬차는 북으로, 북으로 달렸다. 렬차는 어느덧 평강평원을 벗어나 나무숲이 우거진 선포산골에 들어섰다. 리해식은 사면을 꽉 밀봉한 짐차바곤에 들어 바깥의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는 이불짐을 풀어놓고 털썩 드러누워 잠을 청하였다. 그러나 정작 조선을 떠나게 되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렬차는 선후하여 강원도 고성역, 원산역을 지나 드디여 조선의 수도 평양에 이르렀다. 3년 전쟁기간에 미제 침략자들은 40여만 인구를 가진 이 아름다운 도시 평양에 42만 8천 700여개 폭탄을 떨구었다. 이는 평양시 시민마다 폭탄 1개를 맞은 셈이였다. 정전 후 평양시는 재먼지가 푸실푸실 흩날리고 그을음내가 코를 찔렀다. 그러나 리해식 등이 렬차에 앉아 평양시에로 달려왔을 때는 판판 다른 모습이였다. 영웅적인 조선인민들은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주석과 조선로동당의 영명한 령도 아래 전쟁의 상처를 말끔히 가시고 재더미 우에 아름다운 평양시를 건설해 시내 모습을 일신시켰다. 웅위로운 평양역 대청, 그 둘레에 높이 솟은 층집들, 우중중하게 솟은 공장 건물과 꿀뚝들, 새 학교와 구락부 건축물들… 실로 평양은 공원 속의 도시여서 아름답기로 그지없었다. 평양역에서 조선정부의 당정 책임자들과 시민들이 노래부르고 춤추면서 지원군 장병들을 열렬히 환송하였다. 리해식 등이 탄 렬차는 이튿날 오후 1시에 조선의 제일 마지막 역인 신의주역에 이르렀다. (이제 몇발자국만 더 가면 압록강다리다. 압록강다리를 넘어서면 오매에도 그리던 위대한 조국의 땅이다.) 리해식은 조국으로 돌아간다는 기쁜 심정과 더불어 8년 동안이나 청춘을 바쳐 싸워오면서 정을 붙인 조선 땅을 정작 떠나게 되는 아쉬운 감정이 한데 뒤엉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석별의 정을 안고 신의주역 홈에 내려섰다. 실로 그가 1950년 11월 밤중에 조선 땅에 들어설 때 신의주가 아니였다. 그때에는 미제 공중날강도의 폭격에 신의주는 불바다로 되여 짙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도시였다. 미제 공중날강도들이 내리드린 폭탄파편이 죽음의 노래를 부르면서 쌩- 쌩- 날아다니고 백성들이 폭탄을 피해 살구멍을 찾아 달아다니던 도시가 아니였던가. 그러나 8년 후 그들을 맞아주는 것은 즐비하게 선 고층건물과 하늘을 떠이고 솟은 공장굴뚝이였다. 따뜻한 봄볕 아래 안겨오는 신의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순간 리해식은 8년 동안 조선에서 청춘을 바쳐 헛되게 싸우지 않았다는 긑없는 긍지감을 느꼈다. 환호소리가 우뢰같이 울렸다. 진작 홈에 나와 기다리던 조선 평안북도 당정군 지도자들이 마주 나와 지원군 범군장 등 수장들과 굳게 악수하고 포옹하며 작별하였다. 청년학생들과 인민군 전사들은 조선 땅에서의 제일 마지막 꽃묶음을 지원군 장병들에게 안겨주었다. 우뢰 같은 환호소리 속에서 지원군 장병들은 렬차에 올라탔다. 뿡- 뿡- 렬차는 드높은 고동소리를 길게 울렸다. 렬차는 중조 두 나라 인민들의 깊고 깊은 친선의 정과 석별의 정을 안고 압록강다리 쪽으로 서서히 미끄러져나갔다. 리해식 등 지원군 장병들은 저마다 금빛 눈부시는 군공메달과 항미원조기념메달, 조선조국해방전쟁기념메달, 중조친선기념메달을 한 가슴 가득 달고 목에는 붉은 넥타이를 휘날리며 신의주 인민들이 안겨준 꽃묶음을 흔들었다. 눈물을 휘뿌리면서 꽃묶음을 흔드는 조선인민들의 환송의 꽃물결이 점점 멀어져갔다. 지원군 장병들은 목메여 드높이 웨쳤다. “잘 있으라! 영웅적인 조선 인민들이여!” “안녕히! 조선이여!”                                                      
185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9) 댓글:  조회:1090  추천:0  2018-12-19
                                                                                         판문점에서의 문화향연 지원군정정담판대표단 정치부 선전과 문화조리원으로 있은 리해식은 정전담판 기간에 국내에서 온 여러 예술단체를 조직하여 중조대표단과 중립국대표단에 가서 공연시켰고 조선 개성의 명승고적을 참관시켰다. 그는 또 조선측대표단 구락부와 함께 체스꼬슬로벤스꼬와 뽈스까대표단의 일상문화생활을 배치하고 황야에서의 적막감을 풀어주고 문화생활을 풍부히 하려고 늘 한주일에 한번씩 “국제사교무만회”를 조직하였다. 한번 사교무만회를 조직하자면 쉽지 않았다. 악대만 있어선 안되였다. 녀성이 적은 담판대표단에서 춤짝이 있어야 춤을 출 수 있었다. 그리하여 리해식은 량미간을 찌프리다가 외지에서 온 문예단체 녀성들을 데려오고 그래도 모자라니 심지어 녀성들이 좀 있는 정전대표단 기요처, 통신처와 병원 등 단위에까지 가서 예쁘고 문화수양이 있는 녀성 군관과 간부들을 데려왔다. 사교무대청 네벽에는 중국, 조선, 체스꼬슬로벤스꼬, 뽈스까 등 네개 나라 국기를 가득 세워놓았고 사교무대청에는 오색령롱한 불빛이 반짝였다. 사교무청 둘레에 놓은 책상에는 포도주, 맥주, 사이다 등을 줄느런히 갖춰놓았다. 진짜 “국제사교무만회” 같은 분위기가 났다. 사교무만회가 시작되기 전에 지원군 정치부 주임 두평 장군과 황하 대표가 약속한대로 앞당겨 사교무대청에 들어섰다. 리해식 등 사업일군들이 마주 나가 인사했다. “수장동지, 안녕하십니까?” “동무들, 수고합니다.” 황하 대표와 두평 장군은 그들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었다. 우리 나라 수장들을 비롯한 4개 나라 대표단 수장들이 뽈스까원무곡의 아름다운 선률에 맞춰 예쁜 중조녀성동지들과 손잡고 사교무를 추며 즐겁게 빙글빙글 돌아갔다. 사교무만회에 참가한 중국 남자들은 악대를 내놓고 리해식 등 사업일군 몇사람 밖에 없었다. 외국 대표단에는 녀성사업일군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춤을 추자요.” “감사합니다. 함께 춥시다.” 뽈스까대표단의 마흔살 푼한 교제과장은 리해식한테 다가와 서투른 한어로 춤을 추자고 한 손을 앞으로 벌려보였다. 리해식은 주저없이 그녀의 허리와 손을 잡고 왈쯔곡에 맞춰 춤추며 돌아갔다. 오색령롱한 색전등이 반짝이는 사교무대청에서 그들은 아름다운 선률에 맞춰 쌍쌍이 돌아가는 춤군들의 물결을 따라 몇바퀴나 빙글빙글 돌아갔다. 사교무대청에는 중국과 조선, 체스꼬슬로벤스꼬, 뽈스까 4개 나라 군인들 사이 친선의 정이 흘러넘쳤다.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5주년이 되는 1954년 10월 1일, 고려왕궁 옛터 개성시 만월대 푸른 하늘에는 오성붉은기가 훨훨 휘날리고 만월대 둘레에는 여러가지 색기들이 꽉 들어섰다. 정문 층계에는 빨간 네모기둥으로 루각을 세웠는데 어찌나 현란한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리해식 등은 원래 색기를 꽂은 곳에 이전에는 대형행사 때마다 커다란 “평화흰비둘기”기발을 꽂아놓았댔다. 그런데 하룡 원수가 중국인민 제3기 조선위문단을 거느리고 왔다가 만월대위문대회 회장에 몽땅 흰비둘기기발을 꽂은 것을 보고 “전쟁의 불길이 금방 멎자 동무들 여기는 태평성대로구만!” 하고 비평하였다. 그뒤부터 리해식 등은 만월대고 어데고 평화를 상징하는 “흰비둘기”기발을 꽂지 않고 국경절날에도 몽땅 색기를 꽂았던 것이다. 국경절날 오전 만월대 넓은 광장에서 체육운동회와 문예만회가 성대히 거행되였다. 천여명 운동원과 장병들이 참가한 운동회개막식에 조선인민군 리상조 중장, 중국인민지원군 정국옥 장군 등 두 나라 수장들이 주석대에 올랐다. 달리기, 투탄, 사격 등 항목으로 벌어진 이번 국경절 5돐 경축 체육운동대회는 지원군대표단의 규모가 제일 큰 체육운동대회였다. 또한 조선에서 가진 제일 마지막 체육운동대회였다. 그날 밤 경치가 수려한 송악산 아래에서 또 중국, 조선, 체스꼬슬로벤스꼬, 뽈스까 수장들이 참가한 4개국 사교무만회를 성대히 열었다. 리해식은 개성에서 사업하는 기간에 조국에서 온 여러 참관단을 안내해 판문점과 래봉장, 개성의 명승고적과 경치가 수려한 풍경구를 참관시켰다. 1954년 늦가을, 리해식은 중국작가협회 고옥보 등20여명 작가들로 구성된 중국작가대표단을 안내해 박연폭포를 유람하였다. 그들이 차를 타고 개성시에서 동북쪽으로 12킬로메터 쯤 달려갔을 때였다. 늦가을이여서 온 산과 들판은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타는듯이 빨갛게 물들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었다. 박연폭포는 조선 3대 폭포의 하나이고 송도 3대 유람명승지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이 탄 차가 폭포 가까이에 이르자 폭포 량옆의 절벽에 옛날 유람인들이 한자로 새긴 제사와 이름이 확 안겨왔다. 차에서 내려 폭포 아래에 가서 머리를 들어보니 새하얀 폭포수가 30메터 남짓한 높은 절벽에서 쏴- 하고 굉장한 소리를 울리며 날아내려 쏟아졌다. 진짜 “은하수가 구천에서 내리는듯”하였고 눈사태가 무너져내리는 상 싶었다. 고옥보 등 작가들은 혀를 끌끌 차며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폭포가 쏟아져떨어지는 곳에는 40평방메터가량 될 못이 누워 있었다. 못의 물은  맑기로 물 밑바닥이 다 들여다보였다. 이 못을 옛사람들은 “고모못”이라고 불렀다. “고모못”의 서쪽에는 큰 바위돌이 물 속에 누워 있었다. 그 웃대가리가 수면 우에 드러나 있었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룡암석이라고 하였다. 룡암석 우에는 중국 당조의 저명한 시인 리백의 시 “려산폭포”의 두 시구가 새겨져 있었다.       3천자를 내리쏟아지는 폭포수     은하수가 구중천에서 쏟아지는듯하도다   룡암석에 새긴 이 두 시구는 송도의 이름난 기생 황진희의 필적이라고 한다. 그 한자체는 어찌나 필치가 힘있고 섬세한지 룡이 꿈틀거리는듯하고 봉황이 춤추며 하늘로 오른상 싶이 폭포와 조화되여 기세가 하늘을 찌를듯하고 매우 아름다웠다. 그 시구의 오른쪽 아래에 리백의 시구와 황진희의 글씨를 칭송한 칠언절구가 새겨져 있었다.       려산의 진면모는 그림에도 없거니     예로부터 유람객이 몇이나 다녀갔더뇨?     여기 리백의 시 황진희의 글재주만이     세상에 짝 없는 절승경개라 하노라   박연폭포의 장관을 두고 이름난 기생 황진희가 이런 시구를 남겼다.       옥 같은 폭포수 은하수런가     우뢰 같은 폭포 단풍숲 속에 가로 누웠구나     유람인들 려산폭포에 가지랑 말으시고     천마산의 박연폭포 구경함이 나으리오   리해식은 장관을 이룬 박연폭포를 배경으로 유명한 작가 고옥보와 함께 룡암석 앞에 나란히 앉아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폭포 옆의 산기슭을 따라 빨간 단풍나무숲을 헤치면서 폭포 꼭대기 옆으로 올라갔다. 폭포꼭대기 수면에는 커다란 바위돌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바위돌을 “섬바위”라고 불렀다. 당지 민간전설에 의하면, 박연폭포라는 이름은 이 바위돌에 깃든 이야기에서 생긴 것이라고 하였다. 멀고먼 옛날 어느날 달밤에 피리를 잘 부는 박진사라는 선비가 혼자 달빛을 밟으면서 이 폭포로 왔다. 그는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에서 폭포의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되여 이 섬바위 우에 앉아 흥겹게 피리를 불렀다. 그의 맑고도 귀맛을 돋구는 피리소리는 룡궁의 한 예쁜 룡녀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하여 그 룡녀가 못 속에서 걸어나와 박진사에게 사랑을 고백하였다. 뒤이어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고 못 속에 들어갔다. 후에 박진사의 어머니는 폭포에 와서 아들을 찾아헤매다가 아들을 찾지 못하게 되자 절망한 나머지 폭포 아래 못 속에 몸을 던졌다. 하여 후세사람들은 이 폭포를 박연폭포라고 이름을 지어 불렀고 폭포 아래 못을 고모못이라고 불렀다. 박진사가 앉아 피리를 불던 물 속의 바위는 섬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제6장 비무장지대에서의 대적투쟁                   특수한 투쟁환경 봄, 정전 후 두번째로 맞는 봄이 왔다. 화염에 그은 조선반도에 비단결마냥 부드러운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고 산에는 빨간 진달래와 철죽꽃, 모란꽃이 활짝 피여 그윽한 향기를 풍기였다. 원래 한족속인 진달래와 철죽꽃, 모란꽃이 서로 반기여 웃음꽃을 피우며 한들한들 춤 추고 있었다. 리해식은 산의 청신한 아침 공기를 한 가슴 후련히 들이켜고나서 38선 산에 핀 진꽃을 구경하면서 겹겹이 둘러선 산등성이를 둘러보았다. 1954년 말에 개성 중조정전대표단을 철수하자 리해식은 개성을 떠나 회창에 있는 지원군총부 정치부 대적공작부에 전근되여 사업하다가 상감령지구 40킬로메터 구간 38선을 지키는 모 군단 대적공작처에 전근돼 사업하였다. 리해식은 처음으로 38선을 가까이에서 돌아보게 되였다. 38선에는 산발을 따라 철조망이 멀리 뻗어갔고 남북으로 2킬로메터 되는 비군사지대에는 남북의 군대가 없었다. 그러나 철갑모를 쓴 쌍방의 민경들이 손을 잡고 서로 철조망을 사이 두고 오가면서 순라하고 있었다. 그 철조망 사이는 손을 내밀어도 서로 잡을 수 있을만했다. 어떤 곳에는 두겹으로 철조망을 늘였고 그 중간에 난 한메터 되는 오솔길로 쌍방 민경이 다 순라하면서 다녔다. 하여 적아 쌍방의 민경이 팔과 팔을 스치면서 지나갈 때도 있었다. 산발과 들판을 다라 뻗어나간 철조망과 분계선패말을 보자 리해식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쩜 조상들이 살아온 조선 땅이 이렇게 두 토막 났어?” 그렇다, 저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과 한강 강물은 서으로 흐르고 흘러 서해에 가서 서로 부둥켜안고 흐느끼며 통곡치고 있지 않는가! 언제 가면 38선이 조선민족의 념원을 안고 무너지겠는가!   전쟁의 불길은 꺼졌지만 38선 비무장지대의 특수한 환경에서의 투쟁은 멎은 적이 없었다. 리해식 소속 군단이 지키는 상감령, 구소운 진지인 391고지를 포함한 김화, 평강, 철원 방선의 삼각지대에는 상감령 뒤쪽의 오성산, 서쪽의 평강, 철원이 있었다. 이 곳은 군사요새여서 전쟁년대에 적아 쌍방이 대가를 아끼지 않고 쟁탈한 곳이였다. 일찍 미군은 시종 이 지구를 점령하지 못해 “철삼각”이라고 불렀다. 때문에 정전 후에도 적들은 정전협정을 뒤전에 두고 전신무장한 특무들을 늘 이 곳 비무장지대에 파견하여 사단을 일으켰고 아군의 민경을 기습하군 하였다. 한번은 괴뢰군 한개 소대가 가만히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철원 이북지구 5호교 동쪽에 있는 아군 민경부대를 기습하였다. 아군 전사들은 세배나 되는 적들에게 맹렬한 사격을 가해 적들을 몽땅 분계선 남쪽에로 몰아냈다. 적들은 정전협정을 어기고 수시로 각종 정찰기를 우리 상감령지구에 보내 저공비행하면서 정찰하고 기관총소사를 하였다. 이런 첨예하고 복잡한 투쟁환경에 비추어 각 전연 사단과 퇀에서는 1953년 11월부터 정찰대와 민경대를 합하여 두개 민경중대를 내오고 륜번으로 보초서게 하였다. 후에 각 보병퇀에서는 전투경험이 있고 날랜 전사들을 뽑아 계속 민경력량을 보충하였다. 하여 1956년 봄에는 지원군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우리 군단 전연사단에 민경대를 내왔는데 서너개 중대가 되였다. 사단 정찰과장이 민경대대 대대장을 겸임하고 사단 대적공작과 과장이 정치위원을 겸임하였다. 비무장재대를 관찰하고 통제하기 위해 군사분계선 가까이에 있는 상감령, 391고지, 석광산, 상가단동 동쪽의 무명고지 등 열몇개 중점진지와 고지에 민경관찰소를 세웠고 매개 관찰소마다 드러난 민경관찰소와 은페관찰소를 세웠다. 관찰소마다 지형특점에 근거해 관찰구역내 지형, 지물, 심지어 일초일목까지 몽땅 번호를 달아놓고 원거리 망원경과 포대경 등 관찰도구로 남쪽의 적정을 밤낮으로 관찰하였다. 어느날 이른 아침에 상감령관찰소의 민경전사가 포대경으로 분계선 부근 우리측 구역내 풀밭을 관찰하다가 풀밭이 한줄로 우묵하게 헤친 자리가 난 것을 발견하였다. “저기는 우리 민경들이 밤중에 매복해 있지 않은 곳이요. 풀밭에 헤친 흔적이 있는 걸 보면 밤중에 적특무가 저기에 들어온 것 같소.” 그 관찰소 민경책임자는 민경들을 령솔해 허리를 굽히고 총가목을 틀어쥐고 그 곳 풀밭에 살금살금 다가가 수색하였다. 과연 적특무 한 놈이 풀 속에 파묻고 숨어 있었다. 우리 민경들은 당장에서 그 놈을 체포하였다. 이런 사건은 비일비재였다. 포화가 울부짖던 전쟁터가 비무장지대로 된 후 상감령에는 몇해 되여도 풀 한대 자라나지 않았다. 세월이 류숴처럼 흘러감에 따라 이 곳에는 천천히 잡초가 키를 넘게 자라고 인가가 없는 들판으로 되여갔다. 리해식은 어느 한번 상감령고지에 올라가 흙 한줌을 움켜쥐여 보았다. 절반은 벌겋게 녹이 쓴 탄알깍지나 파편부스러기였다. 움푹한 포탄구뎅이에 고인 물이나 돌짬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몽땅 벌거스름한 녹이 쓴 물이였다. 이 곳 민경들은 오래동안 이런 물을 마시고 이런 물로 지은 벌건 밥을 먹었다. 쇠물맛이 좀 났지만 별일은 없었다. 비무장지대 산마루에는 포탄과 폭탄에 맞아 끊어진 나무와 삭정이가 아주 흔했다. 한번은 군단 대적공작과의 조명석과 강남필이 산 아래에 내려가 과동할 나무를 줏다가 전쟁년대에 묻어놓은 반땅크(반탱크)지뢰를 밟았다. 꽝! 요란한 굉음과 함께 두 동지는 장렬히 희생되였다. 잡초가 우거지자 비무장지대에서는 야생동물들이 나타나 번식하기 시작하였다. 한번은 우리측 민경들이 상감령 서쪽 금곡리 일대에서 송아지만큼 큰 메돼지가 풀밭에 나타난 것을 발견하였다. 우리측 민경들은 정전협정을 지켜 메돼지한테 총을 쏘지 않고 놔두었다. 그 메돼지는 땅을 뚜지면서 분계선 남쪽으로 건너갔다. 땅, 땅, 땅.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아군 민경 한개 소조가 총소리 난 맞은켠에 가서 숨어 동정을 살폈다. 괴뢰군 민경군관이 부스럭부스럭 풀밭으로 다가오더니 민경병사들에게 물었다. “웬 일이야? 엉?!” 괴뢰군 민경병사는 목구멍으로 기여드는 소리로 대답하였다. “메돼지한테 총 쐈는데요. 놓쳐버렸어요.” “흥, 밥통 같은 녀석!” 적민경 군관은 욕지거리하더니 가버렸다. 우리측 민경들은 총알에 맞은 그 메돼지는 이쪽 풀밭에 와서 피를 흘리면서 축 늘어져 가느다란 숨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남쪽의 몇몇 민경들이 와서 가만히 그 메돼지를 메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300킬로그람은 실히 될 엄청 큰 메돼지를 어떻게 메간단 말인가? 이튿날 우리 측 민경들이 죽은 메돼지를 여겨보니 발쪽은 소발쪽 같이 컸고 잔등에 풀까지 자라나지 않았겠는가. 후에 아군 민경들은 마차 한대를 가져다가 겨우 민경대대부에 실어왔다. 그 메돼지를 잡아서 우리 전 련 민경들이 몇끼니 잘 먹었다고 하였다.   보이지 않는 전선 38선의 철조망을 상이에 두고 보이지 않는 전선에서 적들은 암투를 끊임없이 벌렸다. 적들은 우리 군 방어구역 정면에만 하여도 지면특무파견소 3개, 특무파견관찰소 5개나 세웠으며 서울과 일본의 오끼나와, 중국의 대만으로부터 미베와 리승만괴뢰군, 장개석국민당 특무기관에서 훈련해낸 특무들을 끌어다가 우리 군 방어구역에 잠입시켜 정보를 수집하군 하였다. 1954년 5월의 어느날, 391고지 관찰소에서는 망원경으로 맞은켠 비무장지대 남쪽으로 적들의 찌프 한대가 달려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찌프에서 내린 적 서너 놈이 이쪽을 망원경으로 살피더니 손질하면서 뭐라고 지껄여댔다. 뒤이어 두 놈을 남겨두고 찌프는 천천히 되돌아가는 것이였다. “저 놈들이 오늘 밤에 건너오려는게 분명하오.’ 로민경 왕길청이 곁에 서 있는 두 전사에게 망원경을 넘겨주면서 보라고 하고는 인차 대화기로 상급에 보고하였다. 뒤이어 그는 명령에 따라 두 전사를 데리고 391고지 기슭의 지정된 지점으로 떠났다. 해는 붉게 타는듯한 저녁노을 속으로 내리면서 몇가닥의 마지막빛을 뿌리였다. 땅거미가 꼴깍 넘어가는 해를 바래면서 어둑어둑 지기 시작하였다. 적들이 찌프를 타고 와서 두 놈을 남겨 놓은 맞은 켠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땅크가 지나간 길이 우불꾸불 뻗어나갔다. 왕길청은 두 전사를 돌아보면서 “여기 호형으로 매복하기요.”라고 낮게 말하였다. 그리하여 왕길청이 정면에 매복하고 두 전사는 앞으로 해서 량옆에 매복했다. 숨막힐듯한 침묵 속에서 하늘에 아기별이 하나 둘 뜨기 시작하였다. 때는 봄이라지만 밤이 깊어가니 오싹오싹 추워났다. 이때 그들은 자기들이 지금 매복한 곳은 바로 전투영웅 구소운동지가 장렬히 희생된 곳이라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왕길청은 머리를 돌려 어둠 속에 소소리 높이 솟아 있는 구소운렬사의 기념비를 우러러보았다. (구소운렬사는 이글거리는 불에 타 죽으면서도 견지했다. 요까짓 추위가 다 뭔가? 꼭 견지해 특무놈들을 붙잡아야지.) 왕길청과 두 전사는 이를 악물고 풀밭에 엎드려 예지로 반짝이는 눈으로 앞을 살폈다. 시간은 일초, 일초 흘렀다. 적정변화는 없었지만 그들 셋은 꼼짝하지 않고 열시간이나 엎드려 있었다. 갑자기 맞은켠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찬찬히 여겨보니 검은 두 그림자가 이쪽으로 허리를 굽히고 슬금슬금 다가왔다. (음, 이놈들 끝내 오는구나.) 왕길청은 량쪽 련락바줄을 당겨 두 전사에게 주의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때 다가오던 두 그림자는 왕길청과 한 3메터 떨어진 곳에 와서 주춤 멈춰섰다. 왕길청과 두 검은 그림자 사이에는 풀무지가 있었다. 두 특무놈은 풀무지 곁에 서서 손시늉질하면서 뭐라고 쑤군덕거렸다. 왕길청은 적들이 매복권에 들어온 뒤 손쓰려고 기다렸다. 그러나 적들은 반시간이 넘도록 까딱하지 않고 있었다. 날이 거의 밝아오자 두 특무는 몸을 돌려 풀무지를 떠나려고 하였다. “꼼짝 말엇!” 왕길청은 번개같이 뛰여나가 독수리가 병아리 덮치듯 한 놈의 목덜미를 잡아누른 동시에 권총을 꺼내 다른 특무를 겨눴다. 두 전사가 덮쳐나와 두 특무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냈다. 적특무들은 돌연습격에 부들부들 떨면서 두 손을 천천히 들었다. 왕길청과 한 전사가 두 특무놈의 두 팔을 바줄로 꽁꽁 묶은 다음 앞에 세우고 압송하였다. 뒤에서 다른 전사가 경계하면서 따라왔다. 그들이 민경중대부로 돌아왔을 때는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한단천 강물은 군사분계선을 가로 질러 쏴쏴 쏜살같이 흘렀다. 적 특무들은 한단천의 쏴쏴 높은 물소리를 빌어 항상 물곬을 따라 북으로 기여들군 하였다. 어느날, 신입민경 장진국은 두 로전사와 함께 한단천 강변 풀숲에 매복하여 강변을 주시하였다. 풀숲에는 귀뚜라미들이 찌르륵찌르륵하고 땀내를 맡은 모기들이 앵앵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릴뿐 아무런 동정이 없었다. 밤 10시가 넘었을 때다. 갑자기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장진국은 어쩐지 짐승의 울음소리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경각성을 높여야지.) 또 반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그와 그리 멀지 않은 앞에서 꿩 한마리가 놀라 푸드득 날아났다. (오, 짐승이 꿩을 놀래웠으면 꼭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날텐데. 부스럭거리지 않는 걸 보면 꼭 무슨 놈의 조화가 있어.) 그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주위 동정을 살폈다. 몇분이 지난 뒤 과연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수상한 검은 그림자가 강가를 따라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장진국은 긴장해나 어쩌면 좋을지 몰라 숨소리마저 거칠어졌다. 그는 인차 매복조 조장에게 적정을 발견했다고 찍찍 쥐소리를 냈다. 검은 그림자는 이쪽으로 느릿느릿 다가오다가 문뜩 멈춰서더니 이쪽 동정을 살피느라고 두리번거렸다. 장진국은 참을 수 없어 그 놈을 덮치려고 들었다. 그때 그의 속내를 짐작이나 한듯이 조장에게서 적이 매복권에 들어설 때까지 꾹 참으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제야 장진국은 한숨을 후 내쉬고 꾹 참고 적의 동정을 살폈다. 검은 그림자는 두리번거리면서 이쪽으로 점점 다가왔다. 10메터, 5메터, 3메터… 장진국은 까딱하지 않았다. 그 그림자는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의 옆으로 해 걸어지나갔다. 그 그림자가 자기 뒤로 한 7, 8메터 지나간 뒤에야 장진국은 천천히 일어나 총을 빼들고 검은 그림자를 따라갔다. 그가 그 자를 따라 10여메터나 뒤를 밟았는데도 그 자는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젠 포위권 복판에까지 들어섰다. 딱! 딱! 장진국은 특무를 붙잡자는 신호를 보냈다. “꼼짝 말엇!” 조장과 다른 로민경이 특무놈의 앞에 불쑥 나타나 총을 겨눴다. 장진국은 뛰여나가 총을 그 특무의 뒽통수에 겨누었다. 그 특무놈은 어두운 풀숲에서 뛰쳐나온 맹호 같은 지원군 세 민경, 자기에게 겨눠진 시꺼먼 총부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놈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천천히 두 손을 쳐들었다. 그 놈은 어찌나 놀랐는지 이발마저 덜덜 맛쪼았고 바지에 오줌까지 셀셀 쏘았다. 장진국은 그 놈의 허리춤에서 권총과 비수를 뽑아냈고 두 로민경은 그 놈의 두 팔을 뒤로 비틀어 노끈으로 꽁꽁 묶었다. 그들은 밤도와 그 특무놈을 압송해가지고 민경중대부로 돌아왔다. 중대부에서 심문해보니 그 놈은 대만에서 파견한 국민당 특무였다. 상감령 서쪽의 수동은 분계선과 가까운 개활지대였다. 우리 한개 민경분대의 작은 관측소가 여기 있었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부는 가을밤에 신기암 등 민경들은 모두 매복하러 나가고 주둔지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이날 밤 두 특무놈은 우리 민경들이 매복하러 나가고 주둔지에 사람이 적은 틈을 타서 민경을 붙잡아가려고 기여들었다. 그런데 그 특무놈들은 주둔지에 이상하게 사람이 하나도 없자 제 방귀에 놀라 주춤 멈춰서고 말았다. “중공군이 우리 속을 뒤집어본게야.” “옳아, 빨리 뻗자구!” 그 놈들은 황망히 관측소에서 뛰여나와 한 200메터 떨어진 풀숲에 가서 납작 엎드렸다.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오는데도 두 특무는 감히 분계선을 넘지 못하고 계속 엎드려 날이 어둡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매복하러 나갔던 민경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나무를 팬다, 밥을 짓는다 하면서 분주의 돌아쳤다. 신기암은 낫과 바줄을 찾아들고 이영으로 쓸 풀을 베러 면바로 특무들이 엎딘 풀숲으로 스적스적 걸어갔다. 그는 한창 풀을 베다가 땀을 닦으려고 허리를 펴는 순간, 한 20메터 떨어진 풀숲에 철갑모자가 눈에 띄였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다가 풀숲 속의 철갑모자 밑에서 한쌍의 까만 눈깔이 떼룩떼룩 구으는 것을 발견하였다. (특무놈이구나!) 신기암은 성난 사자처럼 낫을 휘두르면서 덮쳐들었다. 그러자 두 특무놈은 불쑥 일어나 권투자세를 취했다. 부대축구선수 출신인 신기암은 발길로 나먹은 특무의 아래배를 탁 걷어찼다. 그 놈은 뒤로 벌렁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 놈들! 꼼짝 말엇! 네깐 놈들은 내 적수도 안돼! 여긴 몽땅 우리 사람들이야. 누구든 까딱하면 낫으로 모가지를 벨테야!’ 신기암은 서투른 조선말로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렸다. 풀숲에 뻐드러져 아래배를 싸쥔 나먹은 특무놈은 부들부들 떨었고 젊은 놈은 쳐들었던 주먹을 내리웠다. 신기암은 나먹은 특무의 두 팔을 비틀어 풀을 묶으려고 가지고 간 바줄로 꽁꽁 묶었다. 뒤이어 얼이 빠져 못박힌듯 떡 서 있던 젊은 놈의 팔도 뒤로 비틀어 한데 꿍꿍 묶었다. “걸엇!” 신기암은 낫을 쳐들고 그 두 놈을 앞세우고 한 20메터 나가서 관측소의 동지들을 불렀다. “어이, 특무놈들을 붙잡았소.” 나무를 패던 민경들이 우르르 달려와 함께 두 특무놈을 민경중대부로 압송하였다. 1957년 6월의 시루가마 속처럼 무더운 어느날 밤이였다. 대만 국민당특무 세 놈이 철원 이북지구에서 분계선을 넘어 비무장지대 우리측 통제구역으로 기여들었다. 그 놈들은 비무장지대를 벗어나 아군 제1선부대쪽에까지 들어갔다가 밤 0시 쯤에 아군 제1선부대 보초병에게 발각되였다. 땅, 땅, 땅! 아군 보초병들이 사격하였다. 세 특무놈은 황망히 비무장지대 나무숲 속에 들어가 숨었다. 아군 제1선부대에서는 비무장지대에 천라지망을 친 한편 인차 비무장지대 우리측 관측소 민경들에게도 통지했다. 민경 부패장 구양신복은 한개 민경소조를 보내 수색하게 하고 자기는 조선인민군 민경대에 통지하러 떠났다. 그가 돌아올 때는 이미 아침해살이 나무숲을 비추었다. 그는 지꿎게 내리는 비를 무릅쓰고 우항리를 지나가다 질척질척한 진흙바닥에 박힌 의심스런 발자욱을 발견하고 추격하였다. 그가 나무가 꽉 들어선 수림을 질러나가 우항리 서남쪽의 개울가에 이르렀을 때였다. 개울가 개흙바닥에 어지러운 발자욱이 다닥다닥 찍혀있지 않겠는가. (안돼. 여기 서 있다간 습격받을 수도 있어.) 그는 인차 개울가에서 물러나 높은 곳에 올라가 납짝 엎뎌 살폈다. 이때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가 몸을 낮추면서 뒤돌아보니 자기가 파견한 민경소조가 다가오지 않겠는가. “어떻게 돼 왔소?” “두 사람의 발자욱을 따라 추격중입니다.” “음, 좋소. 계속 발자욱을 살피오.” “옛.” 그들은 흩어져 질척질척한 풀숲을 살폈다. “보십시오. 여기에 발자욱이 또 있습니다.” 부패장 구양신복이 전사가 가리키는 땅바닥을 살펴보니 과연 북으로 향한 발자욱이 있었다. 발자욱의 진흙이 스르르 내려앉는 것을 보아 금방 난 발자욱 같았다. “이 발자욱을 따라 수색하기오.’ “예.” 갑자기 개울가 수림 속에서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엎드렷!” 땅! 땅! 구양신복은 총소리 난 곳에 총 두방을 쏘았다. 그러나 수림에서는 아무런 반격도 하지 않았다. 구양신복은 두 민경을 제자리에서 엎드려 계속 살피게 하고 한 민경을 거느리고 수림을 수색했다. 수림 속에 웬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오른쪽 태양혈에 권총 탄알구멍이 펑 뚫려 피가 쿨쿨 솟구치고 있지 않겠는가. 그 자는 뻘건 눈은 펀히 뜬 채로 있었다. “뛸데 없자 자살한 거요.” 구양신복은 그 놈의 호주머니를 들췄다. 호주머니에는 위조한 중공 당원 당증과 군사칭호 등이 있었다. 특무놈들은 모두 세 놈이 왔는데 죽은 이 놈은 국민당 상위군관 특무조장 설총이였다. 설총은 아군 모 전연사 정치부 선전과 부과장으로 가장해 잠입하려고 들었던 것이다. “나머지 두 놈은 어디로 도망쳤을가?” 구양신복은 한 전사를 보내 중대부에 보고하는 한편 계속 민경들을 령솔해 발자욱을 따라 수색해나갔다. 다른 수색조도 와서 함께 군사분계선에서 100메터 떨어진 수림에까지 수색했다. 그런데 두 발자욱이 수림 부근에서 없어졌다. “꼭 이 수림 속에 있소. 남쪽으로부터 북쪽으로 수색하기요.” 구양신복은 민경들을 령솔해 풀숲을 헤치면서 수림 속을 샅샅이 훑으면서 나갔다. 그런데 뒤에서 한 민경이 돌멩이를 디뎌 넘어졌다. 쿵! 이때 그들의 10여메터 앞에서 두 놈이 놀라 후닥닥 뛰여 일어났다. 한 놈은 서쪽으로 달아나고 한 놈은 남쪽으로 달아났다. “투항하면 살려준다!’ 구양신복은 성난 사자처럼 호통치며 서쪽으로 달아나는 특무놈을 추격했다. 특무놈은 선불맞은 노루처럼 기를 쓰고 달아났다. 구양신복 등 민경들은 추격하다가 사격하였다. 로련한 특무는 빽빽한 나무와 돌무지를 요리조리 에돌면서 총탄을 피해 도망쳤다. 민경들은 지형에 익숙한지라 특무놈의 오른쪽을 질러나가면서 추격했다. 뒤를 힐끔 돌아다보던 특무는 구양신복에게 총질했다. 그런데 총알이 떨어졌다. 구양신복은 총알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맞사격을 하며300여메터나 추격했다. 질척질척한 진흙 때문에 뛰기 힘들자 신짝을 벗어던지고 추격했다. 질겁한 특무는 황망히 뛰다가 발을 헛딛고 풀쳐 쿵 넘어졌다. 구양신복은 제꺽 탄창을 바꿔넣고 그 놈의 뒤에 대고 총 두방을 쏘았다. 땅, 땅. 일어나서 또 뛰던 그 놈은 질겁해 비칠거렸다. 구양신복은 한 10메터 가까이까지 쫓아가 서투른 조선말로 꽥 고함쳤다. “손들엇!” 특무놈이 알아듣지 못하자 이번엔 한어로 호통쳤다. “무기를 놧!” 그제야 특무놈은 알아듣고 권총을 질척질척한 진흙탕에 뚝 떨어뜨렸다. 민경 량패호가 뛰쳐나가 특무의 권총을 주어들었다. “걸엇!” 그들 둘이 특무를 북으로 압송하려고 총신으로 뒤잔등을 떠밀었다. 그런데 그 놈은 떡 버티고 서서 자꾸 분계선 남쪽을 건너다보면서 좀처럼 걸을 념을 하지 않았다. 분명 동료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서 민경들을 습격하고 자기를 데려갔으면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잡초가 우거지고 나무들이 꽉 박아서서 적측에서는 그들을 똑똑히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오래 있을 곳은 아니였다. “빨리 걸엇!’ 그들은 특무를 압송해가지고 재빨리 군사분계선과 멀리 떠나갔다. 그제야 느릿느릿 걷던 특무놈은 구원탈출을 바라던 꿈을 버리고 걸음을 재우쳤다. 남쪽으로 달아난 특무놈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붙잡힌 대만 국민당특무 이름은 주두운으로서 주지라는 가명을 썼다. 이 자는 중국 운남성 사람인데 국민당군 중위군관이였고 남쪽으로 달아난 놈은 소위군관이였다. 민경대대 주둔지에서 심문할 때 주지는 솔직하게 탄백하였다. “우리 대만 특무 26명은 1956년 10월에 대만 국민당군에서 뽑혀 미군 오끼나와 군사기지에 가서 미군과 장개석특무기관의 전문훈련을 넉달동안 받은 후 이 곳에 파견되였습니다.” “임무는 무엇인가?” 주우둔은 심문하는 민경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두 손을 마주 비비며 공손히 탄백하였다. “우린 두번째로 분계선을 넘어왔습니다. 이번 임무는 지원군의 신식 복장과 견장, 령장 견본을 얻어가는 것입니다.’ 1957년 7월의 어느날 밤이였다. 민경반장 장송주는 밤 11시 반 쯤 되자 민경 호원우, 류기귀와 함께 신호용 자갈돌을 호주머니에 넣고 창창 대살처럼 쏟아지는 소낙비를 무릅쓰고 매복구역으로 떠났다. 이런 궂은 날씨일수록 특무들이 넘어올 가능성이 더 컸기 때문에 그들은 경각성을 더 높여 수색하며 나아갔다. 그들이 매복구역까지는 아직 절반 밖에 가지 못했을 때였다. 한 50메터 앞엥서 갑자기 무엇이 진창에 빠지는 것 같은 소리 났다. 그들은 납작 엎드렸다. 장송주는 뒤에 신호용자갈을 두개 뿌렸다. 그러자 그들 셋은 인차 삼각형대형을 지어 매복해 총가목을 잡고 포복전진했다. 목표까지 대여섯메터 떨어진 풀숲에 기여갔을 때였다. 비옷을 쓴 웬 놈이 풀숲에 쭈크리고 앉아 비를 막으며 쉬고 있었다. 장송주는 자갈 하나 뿌려 까딱 움직이지 말라고 암시했다. 뒤이어 그는 혼자 량손에 권총과 보총을 쥐고 살금살금 기여나갔다. 한 2메터 가까이에까지 기여갔는데도 그 놈은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손들엇!” 장송주는 벌떡 일어나 덮쳐나가며 고함쳤다. 총부리를 본 그 놈은 벌떡 일어나면서 손을 휙 저었다. 무슨 빛이 번쩍하지 않겠는가. (전기칼!) 장송주는 인차 그 놈의 뒤덜미를 탁 쳤다. 그 놈은 손에 쥔 권총을 풀숲에 떨구며 꺼꾸러졌다. 그 놈의 손을 더듬어보니 전기칼은 없고 대신 손목에 야광시계가 빛뿌렸다. 야광시계를 전기칼로 오해했던 것이다. 이때 뒤에 있던 호원우와 류기괴가 덮쳐와 번뜩이는 총창으로 그 놈을 겨눴다. 장송주는 민경관측소에 신호탄을 쏘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2개 조의 민경들이 뛰여왔다. 그들은 특무를 압송해가지고 밤도와 민경대대부로 돌아왔다. 민경대대부에서 심문한 결과 그 놈은 대만 국민당특무 진문병이였다. 그 특무와 함께 국민당특무 세 놈이 건너왔던 것이다. 그런데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져 앞을 가리기 힘든데다가 길이 질고 미끄럽다고 대만 국민당 소좌군관 특무책임자는 비무장지대에 들어온 후 흩어져 행동하자고 해 특무 넷이 다 흩어졌다고 했다. 38선에서 특무잡이투쟁에서 우리 민경들은 피의 대가도 치렀다. 8월의 어느날 밤, 상감령 부근 민경관측소 민경 양경영과 엽세택 등은 금곡리 일대에 가서 매복조를 교대하려고 떠났다. 그들이 금곡리 소무명고지 한 산골짜기로 내려갈 때였다. 땅, 땅! 밤정적을 깨뜨리는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제일 앞에서 걷던 엽세택이 “특무!” 하고 쿵 넘어갔다. 양경영과 다른 민경은 기민하게 몸에 걸쳤던 솜외투를 벗어 허연 안이 겉으로 나오게 번져 풀숲에 덮어놓고 량옆으로 흩어져 매복했다. 땅! 땅! 땅! 적 특무들은 흰 외투에 대고 총 몇방씩 갈겼다. 양경영과 민경은 사격불빛이 번쩍거리는데다 대고 련발사격했다. “앗!’ 적 특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콩볶듯하는 총소리를 듣고 민경관측소의 한 부패장은 민경들을 데리고 뛰여왔다. 그들이 보니 민경 엽세택은 이미 피못 속에서 숨을 거두었고 양경영과 민경은 특무를 수색하고 있었다. 부패장은 민경들을 령솔해 날이 밝을 때까지 수림과 풀숲을 샅샅이 수색하였다. 한 교통호를 수색하다가 특무놈이 쭈그리고 앉아 왼손으로 바지우에까지 피가 즐벅한 허벅다리를 누르고 오른손에 권총을 쥐고 두리번거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무기를 놧!’ 그래도 특무놈은 무기를 놓지 않았다. 그러자 부패장은 그 놈에게 총 몇발 쏘며 뛰여가 그 놈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아냈다. 사실 이날 대만 국민당 “국방부” 제2청 특무 왕인강(가명)과 만발생 두 놈이 지원군 군관으로 가장해가지고 분계선을 넘어 기여들었다. 금방 총에 맞은 이 놈은 엽세택에게 사격한 후 양경영 등이 쏜 총에 맞아 다리를 상해 도망하지 못했고 다른 특무놈은 북쪽으로 도망해 잠입했다. 적측 어떤 특무들은 아주 로련하였다. 1956년 8월 어느날 밤, 철원 철도를 따라 웬 놈이 38선을 넘어왔다. 웡, 웡, 웡. 민경부대의 사냥개가 짖어댔다. 민경들이 개를 따라 가보니 분계선 이쪽 200메터 되는 강가에서 헌 옷 우에 고무바지를 입은 웬 꺽다리가 강을 건느려고 꾸물거리고 있었다. “꼼짝 말엇!’ 그 놈은 흠칫 놀라더니 민경들을 보자 아닌 보살을 떨었다. “헤헤, 난 리승만괴뢰군 군관인데 이북에 의거하러 왔습니다.” 희죽벌죽 웃으며 아주 능숙한 한어로 지껄이지 않겠는가. “좋소. 우릴 따라 가기요.” “예, 예.” 그 자는 도강하려고 입던 고무바지를 벗어버리고 권총마저 꺼내 민경에게 주고는 민경을 따라 공손히 걸었다. 민경중대부에서 리해식은 그 자를 심문하였다. “의거하러 온 걸 환영하오. 괴뢰군 어느 련대에 있었소?” “예, 괴뢰군 X 군단 X 사단 X련대에서 대대장질 했지요.” “그럼 그 사단의 리모 사단장을 잘 알겠구만.” “예, 예,잘 알고말고요.” 그자는 아주 침착하게 대답하였다. “그럼 사단장이 뭘 즐기는지 잘 알겠구만.’ “건, 접촉이 별로 없다나니깐, 잘 모르는데요.” 무릎 우에 놓은 그자의 손가락이 바르르 떨렸다. 리해식은 짚이는데가 있었다. “그럼 그 련대 김학길 련대장은 잘 알겠지?” “예, 당상급인데유. 잘 알아요.” “그는 장기를 잘 두지?” “예, 평소에 저와 장기를 잘 두는데요.” “닥쳣! 그 련대에는 근본 김학길 련대장이라고 없어. 허튼 수작 말고 빨리 탄백햇!” 그자는 꼬리가 드러나고 말았다. 리해식은 오래동안 괴뢰군 포로와 의거해온 괴뢰군 장병들을 심문해왔기에 괴뢰군의 력사, 군정소질, 정치사상, 관병관계, 군영생활 등과 우리 군 맞은켠 괴뢰군 사단, 련대 군관들의 이름, 출생지, 애호, 가정정황까지 손금 보듯 환히 알고 있었다. 그자는 리해식에게 잘 못 걸린줄 알고 혀를 홀랑 내밀며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더니 탄백하기 시작하였다. 올해 53세인 이 특무는 김영송이라고 불렀는데 류관민이란 한족이름을 썼다. 그는 한어, 일어까지 정통한 특수훈련을 받은 직업특무로서 일제와 미제, 리승만 괴뢰군 고급특무기관에서 20여년 동안이나 간첩활동을 해왔다. 그는 선후하여 9차나 분계선을 넘어 비무장지대에서 제일 가까운 복계역에 기여들어 항상 기차를 타고 조선 평양과 함흥 등지에까지 잠입하여 조선 북반부의 정치, 군사, 경제 등 정보를 훔쳐간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강을 거너 북에 깊숙이 잠입하려다가 발각되자 거짓으로 의거하러 온 척했다가 꼬리를 밟혔던 것이다. 어떤 특무들은 당원증이나 공무원증 같은 것을 휴대하고 지원군으로 가장해 들어왔다가 번번히 그물에 걸렸다. 당시 지원군 당원들은 근본 당원증이란 것을 휴대하고 다니지 않았다. 비무장지대에서는 계속 이전 지원군 흉장을 달았지만 후방 제1선 부대에서는 새 군사칭호에 따라 몽땅 흉장을 달지 않고 새 군복을 입었다. 그런데 지원군으로 가장한 특무놈들은 흉장을 단 이전의 지원군 군복을 입었으니 나포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위조한 공작증은 더구나 어처구니없었다. 그때 지원군 사단에는 정치처가 없고 정치부가 있었다. 그런데 특무들의 위조한 공작증에는 사단 정치처 부처장이란 글자가 박혀 있었으니 말이다. 적들은 38선 우리측 비무장지대에 기여들어 정전협정에 어긋나는 도발사건 2, 323차나 저질렀고 59명이나 되는 특무들이 우리측 민경들에게 나포되였다. 그중에는 대만 국민당특무 10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우리측 민경들은 의심한 자 17명을 나포하고 총과 무전기, 사진기 등 수많은 특무도구를 로획하였다.                                                 
184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8) 댓글:  조회:1148  추천:0  2018-12-13
                    적군 포로들       먹장구름이 뒤덮인 하늘에서 지꿎은 장마비가 구질구질 쏟아졌다.       서울을 떠나 판문점을 향해 북으로 달니는 자동차들에는 겨릅대처럼 피골이 상접한 중조 측 포로들이 람루한 옷을 입고 비물에 푹 젖은채 맥없이 꽉 박아 서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우묵한 눈을 맥없이 내리뜬 포로들, 쏜살같이 내달리며 흔들리는 자동차 우에서 상처가 아파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소리를 내는 포로들, 두 다리 없는 포로들, 팔을 잃은 포로들, 참말로 그들의 모양은 처량하고 끔찍스러웠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그 무슨 인성이요, 인도주의요, 인권을 밥 먹듯 외치쳐대는 미군, 그 머나먼 아메리카에서 조선반도에 싱겁게 기여든 미군 측에서는 중국인민지원군 포로들에게 아무런 의료처치대책도 대지 않았다.         반면에  개성을 떠나 판문점을 향해 남으로 달리는 풍막자동차들에는 피둥피둥 살지고 불깃불깃하게 혈기왕성한 미군과 괴뢰군 측 포로들이 편안히 앉아 가고 있었다. 적측 포로들은 몽땅 회색캬바진 새 옷을 떨쳐입고 희희락락 떠들썩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꽉 차넘쳤고 수심의 그늘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이 둘러멘 배낭에는 자기가 쓰던 시계와 라이터, 만년필과 치솔, 악기 그리고 우리측에서 준 기념품 같은 것을 불룩하게 걷어넣었다. 몇몇 부상당한 포로들 곁에는 흰 위생복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약가방을 둘러메고 청진기를 목에 건 채 딱 붙어앉아 간호하고 있었다. 포로교환구에 건너갈 때 적측의 어떤 포로들은 목에 기타를 걸고 겨드랑이에 불룩한 배낭을 끼고 떨굴가봐 조심스레 느릿느릿 걸어갔다. 적측 포로들 속에는 지팽이를 짚은 포로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부상당한 포로들은 우리측 포로수용소 의료일군들이 제때에 치료했기에 사지를 끊긴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측 포로들은 제때에 처치받지도 못하고 치료받지 못해 두 팔을 잃었거나 심지어 사지를 다 잃은 포로도 있었다. 우리 측 남녀포로들은 옷을 쫄딱 벗기우고 큰거리에 끌려나가 조리돌림을 당했고 돌팔매까지 맞았다. 녀성포로들은 강간당하기까지 않았던가! 미군측에서 우리측에 건네준 18부의 두꺼운 포로사망부에는 우리측 사망된 포로들의 이름이 꽉 박혀 있었다. 미군측에서는 많이 줄여서 8,840명만 죽었다고 했지만 기실 13,814명이나 집중영에서 사망, 살해되였다. 우리측의 눈물겹고 들끓는 장면과는 달리 적측 포로접수구의 분위기는 아주 쌀쌀하였다. 적측 포로들은 우리측 사업일군들과 굳게 악수하고 갈라져 적측 교환소에 가서도 웃으면서 이쪽에 대고 손을 저었다. 포로접수소 곁에 괴뢰군과 미군 병사들이 이쪽을 노려보면서 시꺼먼 총을 부여잡고 서 있었다. 군관들은 허리에 두 손을 찌르고 포로들을 쏘아보았다. 적측 포로들은 그 놈들을 보자 웃음을 거두고 몸을 옹송그리면서 접수소 안으로 들어갔다. 괴뢰군 군관은 허리에 두 손을 지르고 다리를 거만하게 척 벌리고 서서 괴뢰군 포로들을 보고 쌀쌀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자식들, 맥살도 없이 포로되다니? 저쪽에서 고생했지?” 괴뢰군 포로들은 그자에게 눈길도 돌리지 않고 휴게실천막에 들어갔다. 포로들이 우리측 수용소에 있을 때 대우를 잘 받았다는 말을 할가봐 적측에서는 취재하러 온 기자들이 자기들 포로들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제한하였다. 그자들은 전신무장한 적병들을 포치해 휴게실천막 둘레를 줄지어서서 지키게 하였고 휴게실천막으로 들어가는 길과 기자들 사이에 바줄을 매놓고 마구 드나들지 못하게 막았다. 포로들이 휴게실천막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기자들은 포로들에게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미군 안전군관은 사전에 기자들에게 공산당에 도움이 되는 보도를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어떤 기자들은 돌아오는 포로들에게서 가만히 취재해가지고 미군의 검사를 피해 38선 이남, 남조선(대한민국) 경기도 파주 부근의 문산에 가서 소식을 보도하였다. 어떤 기자들은 일본 도꾜에 날아간 후 보도하였다. 이는 우리측에서 포로교환접수구 련합적십자회 사무실에 기자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면서 취재하게 하는 것과는 완전히 딴 판이였다. 적들이 아무리 소식을 봉쇄하려고 들어도 세계 정의적인 기자들의 보도에 의해 세계인민들은 우리측에서 적측 포로들을 아주 잘 우대했다는 것을 다 알게 되였다. 심지어 적측포로들도 우리측 포로수용소를 “어디 포로수용소 같은가? 꼭 학교나 휴양소 같네.”라고 할 지경이였다. 1952년 10월, 가을의 하늘은 푸르고 높았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시원히 불어왔다. 맑은 물에 둘러싸인 조선 북반부 벽동전쟁포로관리소 운동장 주위에는 붉은기가 휘날리고 주석대 정면 량켠에는 중조 두 나라 국기가 높이 휘날렸다. 축구장에서는 흑인포로들과 백인포로들이 섞여 축구시합을 벌리느라고 법석거렸다. 작은 체육장에서는 집단체조하는 포로들, 권투시합과 씨름을 하는 포로들, 구경하면서 하하하 하고 웃음보를 터뜨리는 포로들로 법석 들끓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포로라는 수치감과 고독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황혼 무렵에 포로들은 줄을 지어 포로수용소에 들어갈 때 “동방홍”과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불렀다. 밤이 되자 포로들은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으며 중조부대 선전대의 공연을 구경하기도 하였다. 12일 동안의 운동대회를 벌린 뒤 우승을 따낸 포로들에게 포로관리소의 수장이 직접 상품과 기념품을 발급하였다. 포로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운동대회는 정말 잘 열렸네.” , “이번 운동대회는 력사에 오를만해. 우리는 영원히 잊을 수 없네.” 라고 하였다. 어떤 포로는 “운동대회는 포로라는 걸 다 잊게 했네.”라고 하였다. 한 미군 포로군관은 “지원군은 포로관리에서 전례없는 력사를 창조하였다.”라고 하였다. 운동대회에서 상품을 탄 한 포로는 흥분된 나머지 구호까지 불렀다. “모주석 만세!” “중국인민지원군 만세!” 운동대회 기간에 포로들은 저마다 자기 가족에게 편지를 써서 운동대회 성황을 알렸다. 한 포로는 자기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 중량급권투경기에서 우승을 한 경과를 상세히 쓰고나서 집에 돌아가면 운동대회에서 탄 금빛빈침 등 정밀한 상품을 가져다주겠다고 하였다. 제네바공약 규정에 따라 우리 중조측에서는 1951년부터 포로들이 자기 가족들에게 편지나 사진을 보내게 하였다. 적지 않은 포로들은 편지에 제집 식구들에게 지원군 포로관리소에서 잘 보내기에 시름놓으라면서 “포로로 있는 것이 전선에서 싸우기보다 더 안전하다.”고 하였다. 한 포로의 안해는 남편의 편지를 받고 “줄곧 매우 건강하다고 하니 지나간 두해에 비해 마음이 놓입니다.”라고 하였다. 3년 사이에 적측 포로들은 도합 2만 9천여통의 편지를 써서 가족들에게 보냈다. 편지 거개가 포로관리소가 좋다는 말을 써넣었다. 하여 우리측 포로정책에 대한 그 어떤 모욕중상도 믿는 사람이 없게 되였다. 성탄절이 돌아왔다. 바깥날씨는 실로 박달나무가 얼어 터질 지경이였다. 그러나 적측 포로들은 봄날처럼 훈훈한 집 안에서 성탄절을 즐거이 쇠였다. 회장에는 성탄나무, 은색의 종, 빨간 초가 갖춰져 있었다. 벽에는 숱한 표어가 붙어 있고 책상 우에는 국외에서 산 권연과 사타이 수두룩이 올랐다. 실로 집 안에는 서양민족풍속과 종교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미국과 영국적 포로들은 본토에서 집식구들과 함께 성탄절을 쇠는 감을 느끼게 되였다. 만회에서 한 금발머리 포로는 제2차세계대전 때 포로돼 독일파쑈집중영에서 갖은 시달림을 받던 정경을 소개하고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독일 사람들은 천주교와 기독교를 믿지만 우리한테 성탄절을 쇠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갖은 혹형을 다해 우릴 못살게 굴었습니다. 중국 인민들은 종교를 믿지 않지만 우리한테 이렇게 성대한 성탄만회를 차려주었습니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중국은 세계에서 제일 문명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온몸이 쇠기둥같이 새까만 포로가 일어나 구호를 불렀다. “중국인민지원군 만세!” “모주석 만세!” 장내에서는 우뢰 같은 구호소리가 울려퍼졌고 박수소리, 웃음소리, 찬탄소리 끝없었다. 서양음악에 맞춰 포로들은 춤추고 노래하였다. 에이피통신사의 한 기자가 다가와 묻자 좋은 대우를 받은 영국의 한 포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린 중조측 포로수용소에서 뜨끈뜨끈한 구들 우에 침대에서 새 이불을 덮고 잤고 잘 먹으면서 충분한 휴양을 하고 왔습니다. 우리 든 수용소에는 철조망도 없고 때리고 욕하는 일도 보고 죽자고 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전선에도 약품이 딸렸지만 우리한테 먼저 썼습니다. 내 두 다리는 여섯달이나 움직이지 못했는데 중국 사람들이 치료해주었습니다. 보시오.” 그 포로는 성큼성큼 걸어보였다. 그러고나서 멨던 불룩한 배낭을 벗어 풀어헤치고 여러가지 약을 꺼내보였다. “내 다리병이 도질가봐 약까지 넣어보냈수다. 중구사람은 제일이요.” 그 포로는 엄지손가락을 흔들어보였다. 미군 군의도 미국과 영국 포로들의 신체를 검사해보고 모두 매우 건강한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42살에 나는 미군 상병자포로 상위 크린은 튼튼한 신체를 군의한테 검사맞히고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으면서 기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대전시 부근에서 남하하는 조선인민군 전사들에게 포로됐습니다. 그때 조선인민군 전사들은 비행기 폭격을 무릅쓰고 6일 동안이나 간고한 행군을 해서야 전선을 떠나 우리를 후방에 호송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들과 한집 식구들처럼 이밥에 물고기반찬을 해서 하루에 세끼씩 먹었습니다. 비행기 폭격이 심한 날에는 세끼를 먹을 음식을 두때나 한때에 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얼마만큼 크면 그 많은 걸 다 먹겠습니까? 실로 배를 두드리면서 먹을 지경이였죠.” 그 포로는 분개한 어조로 뒤말을 이었다. “그때 젤 괘씸한 건 미군 날강도드이 날아와 기관총소사하고 폭격을 해대는 것이였습니다.” 참말로 이 모든 것은 입으로 “인도주의”와 “인성론”을 부르짖는 미제와 리승만괴뢰군이 우리 포로들을 갖은 수단으로 구타하고 릉욕하고 무참히 살해한 죄행과는 얼마나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가!                     포로쟁탈전 판문점에서 33일 동안 전쟁포로를 서로 송환하였지만 아직도 중조측의 지원군과 조선인민군 포로 각각 15,000명과 8,000명, 적측의 포로 351명이 송환되지 못하고 남아 있었다. 9월 10일부터 정전협정 해당 규정에 다라 중립국 포로송환위원회의 지도아래 인도군대에서 량측 포로를 지켰다. 당시 중립국 포로송환위원회는 정전협정에 따라 인도, 체스꼬슬로벤스꼬, 뽈스까, 스위스, 스웨리예 등 5개 국으로 이뤄졌다. 인도 대표이며 인도 륙군중장 티마이야 장군이 주석으로 임명되였다. 쌍방에서는 해석대표단을 파견하여 자기측 포로들에게 90일 동안 해석사업을 하여야 했다. 이는 조선전쟁의 특정된 조건하에서 전쟁포로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세계 전쟁력사에서 전례없는 복잡하고도 특수한 투쟁을 벌리는 것이였다. 우리 측대표단에서는 지원군에서 능력과 경험이 풍부한 정치사업일군돌로 대표단 성원을 구성한 한편 지원군 포로 지도자 왕방, 위림, 손진관 등 23명 골간들이 잠시 개성에 남아 포로해석사업을 협조하도록 결정하였다. 미군측에서 우리측 포로들을 인도부대에 넘겨줄 때 우리측 해석대표단에서는 관찰대표를 파견해 철조망 밖에서 인도부대의 접수사업을 관찰하였다. 미군측에서 이른바 “되돌아가는 것을 거절하였다.”는 우리측 포로들은 모두 얼굴이 창백하고 피골이 상접했으며 “PW(전쟁포로) 글자가 박힌 헌 바지를 입고 미군식군용화를 신고 등에는 낡아빠진 담요를 말아메고 맥없이 걷고 있었다. 그들의 새 흰 적삼에는 국민당휘장이 새겨져 있었다. 그 적삼은 얼마전 대만 국민당특무 두목 방치 일당이 그들에게 준 “례물”이였는데 인도부대에 넘겨주게 되자 억지로 입힌 것이였다. 집중영에 돌아간 후 인도부대 병사들이 포로들의 적삼을 벗기고 검사할 때 그들의 가슴과 잔등에 국민당휘장도안을 새긴 것이 드러났다. 우리측 관찰일군들이 동정어린 눈길로 포로들을 여겨보면서 지나가자 포로들은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집중영에 들어가면서도 몸을 돌려 이태 남짓이 보지도 못한 지원군일군을 돌아다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이쪽을 넘어오고 싶어하면서도 겁나 넘어오지 못하는 그런 초조와 공포의 그늘이 어려 있었다. 첫날에 인도부대는 인민군포로 1,000명을 넘겨받았다. “우릴 살려주십시오!’ 갑자기 9명의 조선인민군 포로가 인도부대에서 지키는 판문점포로송환소 쪽으로 고함치며 달려왔다. 그들은 손에 쥐였던 태극기를 홱 뿌리고 인도 병사들 속에 달려들어왔다. 그리하여 그들은 인차 인도 병사들에게 호송돼 우리측 포로송환접수소로 돌아왔다. 기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놀라운 장면을 찰칵찰칵 촬영했다. 적측에서는 인도부대가 지키는 포로들 속에 포로로 가장한 수많은 특무들을 잠복시켜 미군총부 특무기관인 CIA 쥐휘 밑에 우리측 포로들을 엄밀히 통제하고 있었다. 이밖에 거제도 제64야전병원을 옮겨왔다. 실제상 특무지휘중심을 옮겨다 직접 서울특무총부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특무들은 한 집중영의 500여명 포로들을 보고 진짜이름을 대면 공산당이기에 죽이겠다고 위협하면서 누구나 진짜명단카드를 인도부대에 넘겨주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우리측 관찰대표가 집중영에 오기만 하면 포로들더러 까만 색안경을 끼게 하여 특무들이 정체를 감추게 하였다. 특무들이 아무리 포로들을 위협했지만 9월 20일과 27일에 도합 67명의 지원군 포로들이 적들의 통제를 벗어나 인도부대의 호송하에 우리측으로 우르르 넘어왔다. 이는 판문점을 들썽케 했다. 포로들은 판문점에 이르러 차에서 내리자 대륙에 못돌아간다는 국민당과 장개석이 직접 서명한 문건을 꺼내 내동댕이치는가 하면 국민당휘장도안을 새긴 런닝을 벗어던지고 가슴팍에 새긴 국민당휘장도안을 가리키면서 국민당 특무들을 욕하였다. “이게 바로 우리 포로를 붙잡아둔 미군과 장개석의 죄증입니다.” 우리측의 한 포로는 자동차 안에서 얻어맞아 중상을 입었다. 우리측 접수일군들이 포로를 담가에 들어내리우자 의료일군들이 인차 그 담가를 받아들고 의료실로 달려들어가 구급하였다. 여러 나라 기자들은 또 그 장면을 촬영했다. 적측 특무들의 마수에서 벗어난 우리측 포로들은 인도부대 부사령 신그 준장, 려단장 파는테르 준장을 비롯한 인도부대 장병들과 적아쌍방 기자들 앞에서 집중영 안에서 우리측 포로들을 못살게 굴고 해석사업을 파괴한 적들의 죄행을 공소하였다. “해석사업을 할 날이 다가오자 특무들은 우리한테 ‘만약 중조 해석대표가 천막 안에 들어서기만 하면 모여들어 족쳐라. 필요하면 죽여치워라!’고 충동질하였습니다.’ 이어 포로 왕모가 일어나 말했다. “나는 제주도 제3포로집중영에서 물을 긷고 불을 때는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난  포로집중영에서 달아나 인도부대를 찾아와 보호받았습니다. 그러자 안달아난 특무들은 인도부대 한 소좌와 중위를 갑자기 붙잡아 인질로 두고 나를 내놓으라고 핍박하였습니다. 이걸 보면 포로영에 얼마나 많은 특무들이 미친듯이 활동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뒤이어 이렇게 폭로하였다. “어떤 포로집중영에서는 특무들이 비밀전보기를 설치하고 상관과 련계를 달고 있습니다. 특무들은 몽둥이와 비수를 이불 속에 감춰가지고 포로집중영에 들어왔습니다. 어떤 자들은 가죽신바닥에 철편을 넣어가지고 들어와 콩크리트바닥에 갈아서 비수를 만들어 휴대했습니다.” 그러자 인도부대 부사령 신그 준장이 포로들에게 물었다. “누가 그런 철편을 꺼내 보일만한가?” 한 포로가 자기 신은 미군 가죽신을 벗어 칼로 신 밑바닥을 째더니 철편 하나를 꺼내 보였다. “정부소대장 이상 포로는 이런 철편을 꺼내 비수로 만들어 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신그 준장은 철편을 쥐고 찬찬히 뜯어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한 포로는 품 속에서 적 특무들이 준 “반해석사업질문”이란 소책자를 꺼내 흔들면서 적발하였다. “미군 당국에서는 포로들더러 이 소책자에 찍힌 질문을 다 외워라고 강요했습니다. 우리측 해석대표들이 해석하기 시작하면 련속 외워둔대로 질문을 들이대서 해석사업을 파괴하라고 했습니다. 만약 질문이 깜빡 잊어졌을 때에는 ‘대만에 가겠다!’, ‘대만에 가겠다!’고 떠들어라고 시켰습니다. 만약 누가 떠들지 않으면 천막기둥에 목을 매 죽이겠다고 을러멨습니다.” 우리 측 포로들은 그 자리에서 포로집중영에 숨은 국민당 특무들의 이름과 특무조직을 까밝혔다. 우리측 포로 조모는 일어나서 적들에게 잘리워 절반 밖에 남지 않은 귀를 가리키고 적삼을 걷어올려 12센치메터나 째진 가슴의 상처자리를 보이면서 공소했다. “거제도 전쟁포로집중영에 있을 때 하루는 ‘정치훈련강의’를 하는 미군 교도관이 미국의 민주를 버쩍 고아댔습니다. 내가 ‘민주를 실시한다는게 왜 그 많은 중국 포로들을 살해했는가?’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미군 교도관은 말문이 막혀 나를 쏘아보지 않겠습니까?” 그날 밤, 국민당 교도관이 그를 끌고 나가 한바탕 치고 박고 했다. “이튿날엔 총살한다고 했습니다. 나를 포로집중영 밖에 세워놓고 한 미군 병사  보고 총을 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군 병사가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한 국민당 특무가 흉악한 몰골을 짓더니 비수를 뽑아들고 덮쳐들어 내 오른쪽 귀를 절반이나 베갔습니다. 그 놈은 베간 내 귀를 물통에 처넣고 포로들 보고 그 물을 마시라고 강박했습니다. 내 귀에서는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습니다. 아픈 건 더 말데 있습니까. 그날 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는 국민당 특무놈들은 천막 속에 뛰여들어 수건으로 내 입을 틀어막고 비수로 내 배를 쨌습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쭉 길게 째지 않았습니까! 내 너무 아파 마구 뒹구는데 다른 국민당 특무가 들어와 ‘죽이지 말고 전형으로 둬 다른 놈들의 버릇 가르치면 더 좋아.’ 하고 을러멨습니다. 특무들은 실로 살인마귀들입니다.” 10월 2일, 지원군 포로 장자룡은 집중영천막 안에서 “난 조국으로 돌아갈테야!” 하고 고함치면서 대청통곡쳤다. “개자식, 죽어봐라!” 살안마귀 특무 두 놈이 욱 달려들어 장자룡을 엎어놓고 걷어차고 짓밟아놓았다. 그 놈들은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장자룡의 두 팔을 장막기둥에 뒤로 비끌어매놓고 온밤 치고 박았다. 지어 나무몽둥이로 머리고 가슴이고 다리고 마구 조겨댔다. 장자룡은 성한데 없이 피가 랑자하였다. 피비린내가 집중영천막 안에 물씬 풍겼다. 포로들은 온 밤 너무 아파 신음소리를 내는 장자룡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모두 머리를 두 다라 사이에 파묻었다. “개자식, 중공 땅에 돌아갈텐가? 엉?!” “죽어도 돌아갈테야! 어디 죽여봐라! 이튿날 날이 밝자 또 다른 특무들이 서슬푸른 비수를 뽑아들고 장자룡의 피에 젖은 옷을 쫄딱 벗겼다. 야수 같은 특무들은 이발을 사려물고 비수로 장자룡의 가슴팍에서 살을 썩 베냈다. 장자룡은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놈, 오늘 회를 쳐놓겠다!” 특무놈들은 장자룡의 팔과 다리, 가슴팍에서 살점을 한점한점 저며냈다. 장자룡은 비명을 치다못해 까무러쳤다. 뒤이어 특무놈들은 장자룡의 귀를 썩뚝 자르고 손가락을 잘라냈다. 심지어 그의 머리 가죽을 칼로 쭉 오려 턱까지 쭉 벗겨 베냈다. 포로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머리를 숙였다. 특무들은 장자룡의 머리가죽을 쳐들어 흔들면서 그걸 보라고 몽둥이로 포로들을 툭툭 때렸다. 살인마귀들은 비수로 장자룡의 배를 가르고 심장을 떼내 비수에 꿰서 뻘건 화로불에 바질바질 구웠다. 뒤이어 그걸 날창에 꿰가지고 포로들한테로 한걸음한걸음 다가왔다. “개자식들, 봤지? 중공 땅에 돌아가려는 자는 이런 끝장이야!” “이 자식들, 이걸 먹어!” 특무들은 포로들의 두귀와 코를 붙잡고 장자룡의 심장을 그들의 입에 마구 쑤셔넣더니 씹어 먹으라고 날창으로 위협하였다. 집중영장막 바깥에서 이 처첨한 광경을 본 중립국일군들은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졌다. 실로 하늘 아래 사람으로서 어찌 이런 끔찍한 짓을 다 할 수 있단 말인가! 극악무도한 특무놈들은 뼈 밖에 남지 않은 장자룡의 시체를 벌판에 끌고 가 휘발유를 치고 포로들의 고무신 열컬레를 한데 태웠다. 자기들의 죄장을 덮어감추려는 것이였다. 그러나 고무 타는 냄새와 함께 사람의 살이 타는 노릿내가 네시간 동안이나 풍겼다. 적들은 나중에 재가루가 된 뼈를 파묻으면 고리를 잡힐가봐 땅에 묻지 않고 강물에 가져다 던졌다. 판문점을 들썽케 한 “장자룡학살사건”이 발생한 뒤 지원군 포로 11명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꼬 특무들의 마수에서 벗어나 인도부대 송환접수소에 달려왔다. 그들은 장자룡학살사건경과를 온천하에 폭로하였다. 우리측의 요구에 따라 인도부대에서는 27일이나 지난 뒤에야 조사하였다. 그들은 학살사건이 발생한 28호 포로집중영의 포로들을 몽땅 포로집중영 앞의 마당에 나와 모여앉게 하였다. 이때 조국 땅에 돌아가려는 16명 포로가 특무들이 위협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포로들 앞에 걸어나가 장개석 대만 특무들이 장자룡을 죽인 죄상을 폭로하면서 인증을 섰다. 살인마귀들은 생떼질을 썼지만 인도부대 병사들에게 잡혀 끌려갔다. 인증을 선 포로를 포함해 27명 지원군 포로들이 인도부대 보호를 받아 우리측 송환접수소에 돌아왔다. 미제는 저들의 모략책동에 “방애”하는 인도부대를 어떻게 해서나 2천명으로 줄이려고 미쳐날뛰였다. 그러나 인도부대에서는 미제의 압력을 물리치고 5천여명 장병들을 중립구에 파견하였다. 중립국포로송환위원회에서는 쌍방에서 제때에 포로해석사업을 하도록 하려고 미군측에 천막 32개, 큰마당 2개를 짓고 장막들에 통하는 길을 닦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미군측에서는 해석사업을 지연시켜 90일만 차면 우리측 포로들을 되끌고 갈 목적으로 30일 동안 걸려야 천막을 짓고 길을 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중조측에서는 미제의 비렬한 음모를 간파하고 그 공사를 주동적으로 맡아 나흘에 천막을 다 짓고 길을 다 뺐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20일 동안이나 중단된 해석사업은 10월 15일에야 다시 시작되였다. 이날 티마이야장군은 원 계획대로 제28호, 제31호 포로영의 1천여명 지원군 포로들에게 해석사업을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해석사업을 할 때 무력이나 위협수단을 쓰지 못합니다.” 그런데 각 집중영에서 온 포로“대표(특무)”ㄷ르은 박에 나와 해석을 듣는 것을 거절해나섰다. 그 놈들은 해석대표단들더러 천막 안에 들어와 해석하라고 해놓고 흉측한 짓을 하려고 시도하였다. “안돼!” 티마이야 장군은 책상을 탕 치면서 당장에서 거절하였다. “포로들은 반드시 지정된 장소에 와서 해석을 들어야 합니다. 돌아가서 포로들더러 나오 해석을 들으라고 하시오. 시그럽게 굴지 마십시오.” 여러 나라 기자들, 중립국포로송환위원회 대표들과 중조측 해석대표들이 장막에 가서 기다렸다. 그러나 오전 10시가 썩 지나도 포로들은 특무들의 위협을 받고 나오지 못하였다.   티마이야 장군은 기자들을 둘러보면서 “만약 12시까지 나오지 않으면 필요한 조치를 대겠습니다.”라고 하였다. 12시 돼도 포로들의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도부대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대지 않고 내심하게 기다렸다. 오후 4시 20분까지 애타게 기다려서야 31호집중영천막에서 500여명 지원군 포로들이 나와 32개 천막 안에 들어갔다. 천막 문어귀마다 미국 대표와 미군 군복을 입은 국민당특무들이 서서 천막 안에 들어가는 포로들을 가로보면서 위협하였다. 우리측 해석대표들은 포로들에게 인사말을 하고나서 1952년 4월 6일, 중조 두 나라 발언인이 발표한 포로문제성명과 포로들에게 알리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와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 팽덕회동지의 글을 읽어주었다. “우리는 전체 포로들이 조국의 품에 돌아오는 것을 열렬히 환영할 것입니다.’ “개나발이다! 가면 투쟁하고 총살한다!” 포로들 속에 혼입한 특무놈들이 책상을 치면서 고함치자 특무들의 위협받은 포로들도 떠들어댔다. “대만으로 돌아가겠다!” 포로들은 소학생들이 암기내듯 그 소리만 쳤다. 그리하여 해석사업을 계속 할 수 없게 됐다. 이때 미국측 관찰대표로 가장하고 문어귀에 서 있던 국민당특무가 소리쳤다. “내 길안내를 해주겠습니다. 대만으로 가겠으면 이 문으로 나가시오.” 포로들은 특무들의 위협받고 핍박에 못이겨 그 문으로 나갔다. 첫날에 해석사업을 거쳐 겨우 14명 지원군 포로들이 우리측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인도부대에서는 포로들에게 오전 11시 전으로 지정된 곳에 나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90여명 국민당특무들이 천막 밖에다 전호를 파놓고 비수와 날창까지 들고 죽 늘어서서 지키면서 인도부대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후 특무들의 창궐한 위협과 파괴를 받아 남영의 우리측 포로해석사업은 자꾸 중단됐다. 나중에는 아예 해나갈 수 없었다. 12월 20일 우리측과 중립국인 뽈스까, 체스꼬슬로벤스꼬의 노력하에 33일 동안이나 중단되였던 해석사업이 다시 시작되였다. 이틀간에 480명 포로에게 해석해 겨우 56명 포로들이 우리측에 송환되였다. 중조측 정전대표단 정치부 선전과 영사대에서는 륜번으로 북영의 적측포로들에게 영화를 상영하였다. 그때 중립국 포로송환위원회의 규정에 따라 정치적 색채가 짙지 않은 영화를 뽑아서 티마이야 장군의 심사를 받고야 돌릴 수 있었다. 중국측의 기록영화 “8.1운동회”는 통과되였다. 그 다음날 리해식 등은 조선 새 영화 “정찰병”을 티마이야 장군에게 심사받으러 가야 하였다. 그날 밤, 리해식은 영사대를 데리고 찌프를 타고 판문점 인도부대 군영에 달려갔다. 문 어귀에 있던 인도부대 장병들이 군례를 올렸다. 뒤이어 그들은 리해식 등이 강당에 들어가 영사기랑 장치하는 것을 거들어주었다. 강당에는 2,3백명 인도 장병이 앉아 있었다. 한참 후 훤칠하고 뚱뚱한 티마이야 장군이 몇몇 군관들의 호위하에 강당 뒤문으로 들어와 탄자를 깐 높고 큰 의자 앞으로 걸어왔다. 이때 직일관이 뭐라고 소리치자 앉아 있던 인도 장병들이 몽땅 일어섰다. 리해식 등도 덩달아 일어섰다. 티마이야 장군이 의자에 앉아 모두들 직일관의 소리치자 몽땅 앉았다. 티마이야 장군의 참모장이 리해식과 함께 긴 걸상에 앉았다. 조선 새 영화 “정찰병”은 한어로 번역하지 않은 영화였다. 그리하여 리해식이 영화를 보다가 한어로 번역해주면 영어번역원이 티마이야 장군한테 영어로 번역해주었다. 어떤 때 리해식이 좀 번역하지 않으면 참모장은 리해식 보고 빨리 번역하라고 무릎을 툭툭 치면서 재촉하였다. 영화가 끝났다. 인도 장병들은 강당이 떠나가게 박수를 쳤다. 리해식이 여겨보니 티마이야 장군도 손벽을 둬번 치는 것이였다. 심사에 통과된 셈이였다. 리해식 등이 영사기를 거둬 상자 안에 넣을 때 몇몇 인도 병사들이 우리 영어번역원과 손삿대질하면서 떠들썩하였다. 찌프에 앉아 개성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리해식은 영어번역원에게 물었다. “금방 인도 병사들이 뭐라고 그리 떠들썩했소?” 영어번역원은 안경을 닦아 끼더니 “오- 영화를 잘 찍었다더구만. 조선인민군 정찰병들은 아주 용감한데 미군은 좀 얻어맞으면 손 드는 멍청이들이라더구만.” “하하하.” 찌프차는 그들의 웃음소리를 싣고 밤정적을 헤가르면서 쏜살같이 내달렸다. 미군 측에서는 1개월 7일이 지난 뒤에야 북영의 자기측 포로들에게 해석사업을 진행하였다. 해석상업을 방애하고 파괴하는 미군측과는 달리 우리 중조측에서는 북영에다 난방설비와 소음제거설비까지 장치한 5개 천막을 쳐놓았다. 미군측 해석대표는 숱한 기자들과 기술전문가들을 데리고 차를 타고 북영에 와서 내렸다. 기술전문가들은 천막 밖에서 발전기 발동을 건다 장막 안에 록음기를 가설한다 하면서 맴돌아쳤다. 이때 건장한 괴뢰군 포로들이 깨끗한 새 옷을 입고 이불짐과 일용품을 가득 넣은 멜가방을 메고 장막 안에 들어와 조용히 앉아 기다렸다. 괴뢰군 군관은 손목에 찼던 손목시계를 벗어 미국제만년필과 함께 책상 우에 놓고 미국고급권연을 라이터 불에 붙여 꼬나물었다. 이때 책상 우에 놓은 록음기에서 민요 “아리랑”곡이 은은히 울려나왔다. 뒤이어 한 녀성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울렸다. “포로오라버님들, 자유대한의 품에 안겨요. 우린 꼭 뜨겁게 포옹할 거예요.” 미군측 해석대표는 녀성의 울음소리로 포로들의 마음을 흔들려고 들었다. 그러나 포로들은 그 녀성과 아무런 관계없는지라 들었는둥만둥해하였다. 뒤이어 괴뢰군 국방부장의 유혹에 찬 록음연설이 울렸다. “형제들, 대한민국으로 돌아오면 후한 로임을 내줄 것이며 제때에 승급시켜줄 것입니다. 절대로 ‘잘못’을 따지지 않고 그대들의 뜻에 맞게 일자리를 알선해줄 것입니다.” 뒤이어 송환돼간 포로들의 육성을 풀어놓았다. 모든 포로들은 조용히 귀담아듣고 있었다. 심지어 한 포로는 필기장에 뭔가 적고 있었다. 그것을 본 적측 해석대표는 흡족해하던 나머지 필기하는 그 포로에게 다가가 사진 몇장 꺼내보였다. “이 포로는 한국에 간 뒤 온집식구와 단란히 모여 매우 잘 지내고 있어.” 그때 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곁의 한 포로가 피씩 웃더니 일어나 말했다. “그 포로는 우리 잘 아는 백모인데요. 그는 장가도 못 가 안해도 없는데 웬 네살짜리 앤가요?” 괴뢰군관은 난처해 변명하다가 화제를 바삐 돌려버렸다. 다른 천막에서 처음으로 긴 양태를 내리드리운 한 괴뢰군 녀성포로가 해석을 다 듣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전 진작 갈 길을 골라놨어요. 이건 저 혼자 고른 거죠.” “너거 부모 돌아오길 기다려. 너건 부모도 생각 안해?’ 녀성포로는 핼끔 쳐다보면서 아츠런 소리를 질렀다. “저의 부모는 미제 날강도 폭탄에 맞아 사망했어요!” 녀성포로는 슬퍼서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머금고 입술을 깨물었다. 괴뢰군 군관은 지꿎게 씨벌였다. “너건 시집가서 편안히 안 살련?” “저도 한국에 돌아가 편안히 살려 해요.” 괴뢰군 군관은 헤벌쭉 웃으면서 한발작 다가섰다. 그때 녀성포로가 뒷말을 이었다. “미제 양키놈들이 한국에서 물러가야 돌아가겠어요. 리승만 괴뢰정권이 신물나게 보기도 싫어요. 미군 놈들이 당신들 양애비라도 되는가요? 왜 그 놈들 수하에서 놀아나는가요?” 코 떼운 괴뢰군 군관의 얼굴에는 대뜸 환멸의 빛이 어렸다. 어떤 포로는 일어나 군관을 손삿대질하며 소리쳤다. “당신이나 양키놈들 구속받지 말고 북반부에 넘어오라고!” 괴뢰군 군관은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올라 낯이 수수떡처럼 지지벌개서 꽥 소리쳤다. “개자식, 네깢 놈이 돌아오건말건 내캉 무슨 상관이여?” 그러고는 장막에서 훌 나가버렸다. 천막에서는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첫날 적측 해석대표들이 끙끙 갑자르면서 온종일 해석했지만 돌아가려는 포로는 하나도 없었다. 리승만괴뢰군 귀국작전 총책임자 백영준 준장은 일찍 “대한민국 포로 15%는 돌아오게 해석할 수 있다.”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결과를 보고는 “몇이라도 건너온다면 하늘이 구해준 거지.” 하고 말하였다. 미군측에서는 해석을 해보았자 헛수고라는 것을 알고 포로들이 해석을 거절한다는 리유로 나머지 23명 포로들에게 해석하지도 않았다. 해석사업이 끝나는 마지막 날인 1953년 12월 23일에 미군측에서는 북영 부근의 논밭에서 확성기에 록음을 풀어놓고 다시는 저희들 병사들을 보로 찾아가지도 않았다. 1954년 1월 21일, 미군측에서는 중조측 그리고 티마이야 장군을 비롯한 중립국 포로송환위원회의 견결한 반대도 무시하고 남영의 우리측 포로를 “백성의 신분”으로 고쳐 “석방”하였다. 한 미군 군관이 특무들을 만나 뭐라고 쑥덕거리더니 포로들을 몽땅 대만에 보낸다고 선포하였다. 누가 중국 대륙에 가겠다고 하기만 하면 반주검이 되게 구타한 다음에 배 우에 끌고 가서 마대에 넣어 바다에 처넣었다. 그것은 판문점 부근에서 죽이면 꼬리를 잡히기에 바다에 가서 죽였던 것이다. 특무들은 포로들 보고 으르릉거리며 으름장을 놓았다. “23일이 지나면 인도부대는 네놈들을 돌려보낼 권리를 행사하지 못해. 누가 달아나면 우리 총이 용서하지 않어!” 특무들은 포로들을 대여섯명씩 한데 팔과 다리를 묶어 달아나지 못하게 하고는 이른바 “석방”하였다. 뒤이어 열서너대 미군 직승비행기(헬기)가 분주히 날아왔다갔다하면서 중조측의 포로 21,000여명을 몽땅 실어 남조선(한국) 포항, 군산 등지와 대만에 끌어다가 괴뢰군과 장개석비도군에 각기 편입시켰다. 14,000여명 지원군 포로를 인천항에 압송하여 배에 오를 때 미군은 중립국부대가 부두에 들어가 임무를 집행하지 못하게 하였다. 지원군 포로를 실은 첫 큰배가 황망히 인천항구를 떠나다가 그만 미군의 군함을 부딪쳐놓아 28명의 미군 병사가 물에 빠져 물귀신이 대버렸다. 지원군 포로를 실은 첫 큰 배가 대만 기륭항에 이르렀을 때였다. 백여명이나 되는 포로병 “지도자(특무)”들이 포로대오를 떠나 줄을 서서 환영하러 나온 국민당 장령들에게 거수경례하고 굳게 악수하였다. 그것을 보고서야 영국 기자는 포로들 속에 숱한 국민당 특무들이 섞여 있었다는 것을 믿게 되였다. 특무들이 아무리 엄하게 통제했지만 중국측 포로들은 대여섯이 팔을 한데 묶이운 채 인도부대 병사들 속에 끼여 우리 측으로 넘어왔다. 적측으로 넘어가지 않은 북영의 적측 포로 347명(그중 미국, 영국 등 국적포로 22명)은 인도부대가 영지를 떠난 뒤 1월 23일에 각기 중조 두 나라 적십자회에 넘겨주었다. 그날 그들은 북영을 떠날 때 에이피통신사, 국제신문사, 프랑스신문사와 인도통신사 기자들의 취재를 받게 되였다. 한 영국 기자는 한 영국포로와 한시간 남짓이 이야기를 나눈 후 “당신이 만약 돌아가고 싶으면 우리와 함께 갑시다. 밖에 차가 있는데 빨리 갑시다.”라고 권고하였다. 그 포로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감사합니다. 중국측에서도 저를 가라고 자꾸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전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이젠 우리가 자원해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믿을만합니까?” 그러자 영국 기자는 머리를 끄덕였다. 뒤이어 전체 포로들은 사전에 준비해둔, 귀국하지 않겠다는 공동성병을 엄숙하게 읽었다. 그날 오후, 적측 포로들이 차에 앉아 개성시에 이르자 개성시 인민들의 열정적인 연도환영을 받았다. 그번 포로쟁탈전에서 특무들의 통제를 벗어나 인도부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우리측으로 넘어온 중조측 포로는 502명이나 되며 해석을 받고 넘어온 포로는 136명이나 되였다. 이 기간에 적측 포로는 4명이 넘아갔는데 그중에는 미군 포로 1명이 들어 있었다.
183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7) 댓글:  조회:1329  추천:0  2018-12-08
                  판문점 정전 그리고 돌아온 포로들   1년 6개월이나 끌어오던 포로송환문제에 관한 협의는 1958년 6월 8일에야 달성되였다. 그때부터 쌍방은 조인의식준비사업을 다그치게 되였다. 그런데 이튿날인 6월 9일에 남조선(한국) 국회에서는 귀국을 거절하는 조선측 포로를 즉시 석방하며 중국측 포로는 즉시 대만에 넘겨줄데 대한 “결의안”을 통과하였다. 이어 리승만 괴뢰군 헌병사령 원용덕에게 6월 17일부터 마산, 부산, 로산 등지에서 중조 포로를 석방하라고 명령하였다. 6월 17일 오후, 포로영을 지키던 미군 경호일군들은 그림자를 감추었다. 밤 9시에 남조선 반공청년단 단원들, 대대장, 경비대원들은 여러 집중영에 뛰여들어 포로들에게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너희들을 몽땅 석방한다!”, “안 달아나는 놈은 끝장낸다!” 하고 위협했다. 몇천명을 헤아리는 포로들은 그 놈들이 미리 끊어놓은 철조망을 꿰뚫고 우르르 쓸어나가 어둠 속에서 포로영 뒤산을 하얗게 뒤덮으며 도망쳤다. 특무들은 포로들을 뒤산 아래에 미리 서 있던 자동차들에 억압적으로 떠밀어싣고 부랴부랴 그 곳을 떠나가버렸다. 또 이와 동시에 미국측에서는 중조측 포로 2만 7천여명이나 억류하였다. 6월 19일, 중조측 수석대표 남일 장군은 이 사건과 관련해 미군측에 엄정한 항의를 제기하였다. 세계 평화를 요구하는 인민들과 여론을 불구하고 리승만은 판문점담판을 파괴하려고 남조선(한국) 경내에 계엄령을 내리고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 괴뢰군 참모장 백선엽을 불러들였으며 “단독으로 북침”하려고 미쳐날뛰였다. 중조부대에서는 리승만의 기염을 꺾어버리고 정전담판에 배합하기 위하여 금성 남부전선에서 제3차 진공을 발동하였다. 천여문의 대포가 금성 남쪽의 25킬로메터에 달하는 적방어선에 분노의 불길을 토하였다. 아군 6개 군의 우세한 병력이 괴뢰군 4개 사단에 맹렬히 공격하였다. 하여 괴뢰군 도합 78,000여명을 살상포로하고 땅크 45대, 자동차 279대, 대표 425문을 로획하였다. 그리고 220여평방킬로메터나 되는 땅떵어리를 빼앗아내여 금성 남부 아군방어선을 곧게 펴놓았다. 아군이 계속 남쪽으로 쳐들어가자 미군측 수석대표 해리슨은 7월 15일에 당황망조하여 다시 판문점 담판석상에 돌아와 앉았다. 날따라 땡볕이 쨍쨍 내리쬐여 무더위만 더해가는 7월 20일에 중조측에서 조인대청을 조선민족의 특색이 짙은 기념물로 짓기 시작하였다. 나흘 사이에 길이 38메터 너비 18메터나 되는 정전조인식대청을 다 짛어놓았다. 조선 력사에서 잊을 수 없는 1953년 7월 27일 아침해가 불쑥 솟아올랐다. 비 온 뒤 맑은 하늘은 푸르기도 하였다. 오전 9시 45분, 조인식에 참가할 쌍방의 군관들과 기자, 촬영사들이 조인대청에 들어왔다. 오전 9시 59분, 쌍방대표단 성원들이 조인대청에 입장하였다. 중조측 대표들로는 남일 대장, 리상조 중장, 정국옥 장군, 시정문 장군, 주연 소장 등이였다. 오전 10시, 쌍방 수석대표들인 남일대장과 해리슨 중장은 조, 중, 영 세가지 문자로 된 13부의 정전협정서에 조인하였다. 점심, 라지오방송에서는 조선인민군 김일성 최고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 팽덕회 총사령관이 내린 정전명령이 울려퍼졌다. 1953년 7월 27일 밤 10시(평양시간), 조선군사정전협정은 정식으로 효과를 보기 시작하였다. 개성전선에서 밤낮없이 콩 볶듯 들려오던 총포소리가 가뭇없이 들리지 않았다. 이날 밤 맑게 개인 하늘에는 몇날째 처음으로 금싸락을 뿌려놓은듯 뭇별이 총총하였다. 집집마다에서 마음놓고 방공창문카텐을 젖혀놓아 고려왕조의 개성은  하늘의 별무리가 내려앉은듯이 환하였고 환락의 분위기로 들끓었다. 7월 28일 오전 9시 30분에 팽덕회 사령관이 개성시 송악산 기슭에 자리잡은 지원군대표단 본부 회의실에서 조선군사정전협정서와 림시보충협정서에 서명하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원수는 평양에서 조선정전협정서와 림시보충협정서에 서명하였다. 개성에서 동남쪽으로 25킬로메터 떨어진 유명한 홍산포진지는 판문점담판을 보위하기 위해 7,600여명 미군과 괴뢰군을 소멸한 3차나 치렬한 전투를 한 피로 물든 전투진지였다. 7월 28일, 즉 정전한 그 이튿날, 홍산포진지에서는 지원군 전사들과 어제날의 적들인 영군 병사들과 정전을 경축하는 련환모임을 가졌다. 이 고지의 영군 병사들은 지원군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전에 영군의 한 부상병이 아군에 포로됐을 때다. 전사들은 상처를 잘 싸매주고 영군에 통지해 담가를 들고 와서 부상병을 들어가게 하였다. 그때 전사들은 그들이 안전하게 자기 진지로 돌아갈 때까지 총 한방도 쏘지 않았다. 영군 병사들은 “중국 사람은 말하면 말한대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감탄하였다. 전날 사전에 쌍방대표와 영어번역원이 함께 련환모임을 잘 협상한 후 오전 10시에 련환모임이 열렸다. 홍산포 진지에는 영어로 “정전을 경축한다!”, “우리는 당신들이 평안히 영국 고향에 돌아갈 것을 축원한다!” 등 구호를 새긴 붉은기가 펄럭였다. 그들은 서로 평화를 노래하는 영어와 조선어, 한어 문자가 박힌 축기를 교환하고 쌍방의 대표가 정전을 축하하는 축사를 드렸다. 뒤이어 그들은 미리 준비한 술잔을 들어 권커니작커니 하면서 술을 마셨고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춤추고 노래하였다. 한 영군 병사는 감개무량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린 조선과 중국 사람들과 싸우려고 하지 않소. 개 같은 미국 놈들과 리승만이란 놈이 한동아리가 됐기 때문이요. 만약 미국 놈들이 간섭하지 않았더라면 조선문제는 진작 조선 사람들끼리 해결했을 거요.” 북경영화촬영소와 여러 나라 기자들이 소문을 듣고 달려와 이 격동적인 장면을 촬영하고 취재했다. 7월 30일 오후 6시, 개성전선의 보병부대는 앞당겨 진지를 떠났다. 홍산포진지의 용사들은 피로 지켜온 피로 물든 진지를 떠나게 되였다. 그들은 떠나가면서 머리를 들어 메꿔놓은 진지공사, 포격에 콩가루 된 온 산을 둘러보았다. 영군 병사들은 진지에서 철거하면서 이쪽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지원군 전사들도 손저어 해답하였다. 7월 30일 밤 10시, 아군 개성전선의 제일 마지막 경비부대가 떠날 때 팽덕회 최고사령관이 진지에 와서 부대 장병들을 시찰하였다. 포로송환을 할 때 리해식은 몇몇 동무들과 함께 판문점에서 올리뛰고 내리뛰면서 위생통과구역에서 장소배치, 환영대오조직 등 사업을 하였다. 포로접수구역은 판문점에서 서남쪽으로 1킬로메터 떨어진 가설령에 설정됐다. 불도젤로 빤빤하게 민 가설령 언덕에 길이 200메터나 되는 주홍색루각을 지어놓고 루각에 “조국의 품”이란 커다란 간판을 걸었다. 리해식 등 사업일군들은 주위에 색기를 촘촘히 꽂아놓았다. 8월 5일 오전 9시, 포로접수구역에 제일 첫패의 우리측 포로들이 송환되여왔다. 포로들은 미군 위생차우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중국인민지원군 군가를 노래부르고 구호를 부르면서 접수소에 다가왔다. 숱한 사업일군들과 기자들이 그쪽으로 눈길과 렌즈를 돌렸다. 그들은 먼 곳에서 높은 주홍색루각에 걸린 “조국의 품”이란 간판과 중조 국기를 보자 자기 피로 물들여 자체로 만든 자그마한 중조 국기를 흔들면서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동방홍”을 높이 부르고 “조국 만세!” 구호를 높이 불렀다. 그들은 두 볼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날 조중측 수석위원 리상조 중장, 위원 정국옥 장군 등이 마중하러 나왔다. 포로들은 차에서 내려 미군 놈들에게 갖은 모욕을 받던 설음이 북받쳐올라 사업일군들의 품에 와락 안겨 엉엉 울었다. 그들은 미군 놈들이 준 군복을 벗어버리고 포로접수소 천막에 들어갔다. 어떤 포로들은 실한오리 걸치지도 않고 건너왔다. 그리하여 우리측에서는 바삐 팬티를 400여개나 만들어 접수소에 가져와 그들에게 입혔다. 포로들은 접수소를 지나 위생구역에 들어갔다. 그들은 옷을 몽땅 벗어 번호를 단 후 둘둘 말아 뙤창만한 구멍으로 안에 떨어뜨렸다. 우리 사업일군들은 그 옷을 몽땅 호주머니로부터 혼솔까지 샅샅이 검사해 일부 남조선과 중국 대만특무들을 붙잡아냈다. 남조선과 중국 대만 놈들은 포로를 송환하는 기회에 특무를 혼입시켜 북반부에 침투하려고 들었던 것이다. 목욕을 다한 포로들은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 새 군복을 갈아입고 자동차에 다시 올라 개성시 교외에 있는 포로접대소와 병원에 가서 휴식하고 치료받았다. 포로송환 젤 마지막날인 9월 6일 오전 9시에 미국측에 인질로 갇혀 있던 이른바 “전쟁범죄자”들인 지원군포로 지도자 왕방, 위림, 장택석(영어번역), 오성덕을 비롯한 138명과 조선인민군포로 지도자들인 박상현, 리인철 등이 돌아왔다. 중조측 리상조 중장, 정국옥 장군 등이 마중나왔다. 제일 앞 위생차에서 박상현이 내렸다. 피골이 상접하고 눈확이 우묵하게 들어간 그는 리상조 중장의 품에 와락 안겨 엉엉 울었다. 그는 “나는 동지들을 보고서야 조국에 돌아온 걸 알, 알게 됐습니다.”라고 하며 울었다. 그는 이윽고 머리를 들더니 “지원군포로 지도자 왕방이랑 돌아왔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때 수장들이 “오늘 다 돌아오오.”라고 하자 한시름 놓았다. 박상현은 원래 조선 모 도의 당위원회 지도일군이였다. 1950년 10월 적들이 북반부에 쳐들어올 때 차에 앉아 북으로 철퇴하는 길에서 당지 반동분자들에게 들키워 미군에 생포되였다. 포로집중영에서 어느 자인지 포로조직구성 기밀을 루설하는 바람에 박상현의 신분이 발각됐다. 미군 놈들은 그를 사면에 바람이 불어들어오는 쇠살창독방에 가둬 얼궈 죽이려고 획책하였다. 그는 손가락이 다 다슬도록 쇠살창감방 땅바닥을 파서 동굴을 파고 바람에 날아드는 나무 잎을 한잎한잎 모아 동굴에 펴고 한파를 피하면서 살아남았던 것이다. 제일 마지막 위생차에서 귀밑머리난 듬성듬성하게 남은 지원군 모 사단 정치부 주임 겸 부정위 오성덕이 내렸다. 그는 수장들의 손을 굳게 잡아 흔들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수장들은 그를 굳게 포옹해주었다. 오성덕은 모 사단 부정위였는데 제5차 전역 때 부대를 따라 철퇴하다가 적들의 포위를 돌파하지 못하였다. 그는 10여명 전사들을 데리고 남쪽 험산준령에서 1년 6개월 동안이나 유격전을 하다가 전우들이 다 희생되고 탄알마저 다 떨어져 체포됐다. 그는 미군이 감방에 들이뿌린 신을 되내뿌리고 자기가 몇해전에 조국에서 항미전쟁에 나올 때 다 파이난 신을 밤도와 깁어 신고 돌아왔다. 판문점 포로교환소에 와서야 그는 그 헌 가죽신을 벗었다. 북경군사박물관에서 온 한 사업일군이 오성덕이 신고 온 그 헌 가죽신을 북경군사박물관에 가져가려고 찾아달라고 했다. 그리하여 리해식은 한 총무일군의 침대 밑에서 그 헌 가죽신을 찾아냈다. 들고 보니 그 헌 가죽신은 다닥다닥 깁고 기워서 원래 신 모양을 찾아볼 수 없었고 두껍고 무거웠다. 다만 신바닥만이 조선에 올 때 조국 부대에서 준 것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후에 그 헌 가죽신은 북경군사박물관에 보관해두었다. 박상현, 오성덕 등 포로지도자들은 중조부대 수장들과 함께 차에 앉아 개성시로 떠나갔다. 바깥에서 기다리던 중조부대 군관들과 사업일군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환영하였다.                               비참한 녀성포로들 리해식은 당년에 중조 녀성포로들이 인간생지옥 같은 미제 집중영에서 갖은 시달림을 다 받은 비참한 사실, 그녀들이 송환돼올 때 그 눈물겨운 장면을 잊을 수 없었다. 1953년 8월 9일 송환돼온 2,873명 포로 가운데는 조선인민군 녀성포로 473명과 중국인민지원군 녀성포로 1명이 있었다. 오전 10시 쯤 되자 우리측 녀성포로들을 실은 미군측 트럭과 위생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측 교환접수구역에 거의 이르렀다. 저 멀리서부터 녀성포로들의 노래소리, 구호소리, 울음소리가 한데 뒤섞여 들려왔다. 그녀들은 손에 손마다 자체로 만든 중조국기를 들고 흔들고 있었다. 트럭우의 녀성포로들은 운전실쪽으로 몰려서서 이쪽에 대고 손을 흔들며 흑흑 흐느껴 울고 있었고 다 쉰 목소리로 계속 구호를 불렀다. 그녀들은 차에서 부축받으면서 내리자마자 가슴이 뭉클해났다. 그녀들은 우리측 사업일군들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 대성통곡쳤다. 인간생지옥에서 갖은 시달림과 모욕을 당한 그녀들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어머니 조국의 품에 돌아왔는데 어찌 기쁘지 않으랴. 적지 않은 녀성포로들은 벗어쥐고 있던 신으로 위생차 유리창문을 까부셨다. 미군 교환관이 차문을 열자 신짝을 그 자들한테 비발치듯 줴뿌렸다. 미군측 군관들은 날아가는 신짝들을 피해 우리측 교환관 등뒤에 피하였다. 심지어 미군 운전수들은 질겁해 위생차 운전실 꼭대기에 올라가 피하였다. 녀성포로들은 차에서 내리면서 수많은 거폭의 표어를 펼쳐들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형제적인 중화인민 만세!” 그 붉은 표어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 표어는 조선인민군 녀성포로 김영자 등이 부산역에서 차에 올라 북으로 떠날 때 손가락을 깨물어 쓴 것이였다. 그녀들은 그 표어를 들고 단식투쟁을 벌려 자체로 만든 인민군 군복을 입고 인민군 모자를 쓰고 돌아왔다. 그녀들은 작은 중조 국기를 들고 줄을 지어 씩씩하게 걸어 우리측 자동차에 올라탔다. 그녀들 속에는 중국인민지원군 녀성포로 양옥화도 있었다. 그녀는 길이 1메터, 너비 60센치메터 되는 오성붉은기를 들고 차에 올라탔다. 수무살 밖에 안되는 양옥화는 중국인민지원군 사업일군을 보자 머리를 숙이더니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 피눈물은 그의 여윈 얼굴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이때 위생통과구에서 기다리던 지원군 정치부 주임 두평 장군이 다가와서 양옥화의 손을 잡고 친절히 위문하였다. “동무는 끝내 조국의 품에 돌아왔습니다. 조국은 어머니처럼 동무를 보살필 것입니다. 푹 쉬면서 몸조리를 잘하시오.” 방송소에서도 양옥화를 위해 한어로 환영사를 방송하여 그녀를 열렬히 환영하였다. 양옥화는 감격의 눈물로 옷섶을 적셨다. 이때 미군측 위생차에서 중상을 입은 조선인민군 녀성포로 3명을 담가에 들어내리였다. 인간성이라고는 꼬물만치도 없는 미군 놈들은 갖은 수단으로 우리 측 녀성포로들을 모욕하고 박해하였다. 조선인민군 녀성포로 김모는 조선 황해도 해주시 녀대학생이였다. 그녀는 전쟁의 포소리가 울리자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였다. 1950년 9월 중순에 미군이 인천에 등록한 뒤 인천 부근에서 체포되였다. 그녀는 미군 놈들을 이렇게 규탄하였다. “그때 저는 150여명 녀군관과 녀전사들과 함께 서울 림시수용소에 압송돼갔어요. 미군 놈들은 몸을 수색한다는 구실 밑에 우리 옷을 몽땅 벗기고 총칼로 우리를 협박하여 서울 남대문의 사람이 제일 많은 큰거리로 몰고 나가질 않겠어요. 말을 듣지 않는 녀성포로는 날창으로 푹푹 찔러 온몸에 피가 랑자하게 만들었지요. 놈들은 추악하게도 촬영기자더러 그 장면을 찍어 수용소 흑판보에 내걸어 전람시키기까지 했어요.” 김모는 모욕감에 몸을 떨면서 팔소매로 눈물을 쓱 씃고 계속 공소하였다. “개만도 못한 미군 소위 두 놈이 80여명 남녀포로들을 서울역에 압송해갈 때였어요. 달아나는 걸 방지한다는 허울 밑에 옷을 몽땅 벗기고 남자와 녀자의 손목을 한데 묶고 우격다짐으로 내걷게 하였어요. 그리고 잔등에다 ‘우리는 핍박에 못이겨 인민군에 가담하였다.’는 글을 써붙였댔지요. 그리고 숱한 사람들을 불러다 구경시키고 돌팔매질을 하게 했어요. 으흐흑, 흑흑.” 격분해 여기까지 공소하던 김모는 더는 말을 잊지 못하고 엉엉 통곡쳤다. 이때 옆에 서 있던 한 녀성포로가 공소하였다. “남조선 광주시 포로수용소에서는 어쨌겠어요. 미군 군관놈이 녀성포로들을 커다란 방에 가둬놓고 옷을 몽땅 벗으라고 으르댔지요. 어데서 옷을 몽땅 벗기운 남자포로들을 데려다몰아넣고 호통쳤어요. ‘듣건대 공산당은 춤추길 좋아한다던데 오늘 춤을 춰라. 빨리 췃!” 쫄딱 벗은 남녀포로들이 억지로 춤을 추는 시늉을 내는 걸 보면서 양키놈들은 사탕을 질근질근 씹다가도 하하하 하고 징글스레 웃었댔지요. 짐승보다 못한 양키놈들은 짐승처럼 성욕이 발작하여 녀성포로들에게 달려들어 젖가슴을 만지고 끌어안아 땅바닥에 넘어뜨리고 강간도 서슴찮고 했어요. 으흐흑, 흑흑.” 그 녀성포로는 모욕감에 두 손으로 얼굴을 싸쥐더니 울다가 또 공소하였다. “그, 그 미군 놈들은 우릴 강간했고 심지어 밥하던 14세 박에 안되는 포로소녀마저 빼놓지 않고 강간하였어요.” 그녀가 말을 잇지 못하자 옆에 있던 녀성포로들이 너도 나도 공소하였다. “남조선 대전시에서 한번은 미군 군관놈이 한 조선인민군 녀성포로를 붙들어내다가 사지를 묶어놓고 강간한 후 감방에 들여보냈지요. 두번째로 또 그 녀성포로를 강간한 후 총으로 쏴죽였는데요. 서울 괴뢰군형무소의 괴뢰군 군관놈들은 녀성포로 6명이나 붙잡아다가 륜간하였어요. 그중 한 녀성포로는 음부가 터져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비참하게 죽고 말았어요.” 당시 조선중앙통신사의 보도에 의하면, 우리측 녀성포로들 가운데서 미제와 괴뢰군 놈들에게 128명이 강간당하였는데 반항하다가 살해된 녀자포로가 34명이고 적들이 강간한 후 죄행을 덮어감추려고 살해한 녀성포로가 44명이나 되며 기타 리유로 살해한 녀성포로가 120명이나 된다고 하였다. 개성에 집이 있는 한 녀성포로는 이렇게 공소하였다. 1950년 가을, 적들은 500여명이나 되는 녀성포로들을 부산녀전쟁포로집중영에 가둔 후 사회의 녀건달들을 인민군녀성포로로 가장시켜 녀성포로들 속에서 활동하게 하였다. 그들은 미군과 괴뢰군을 비호하였으며 도처에서 음탕한 말을 해대면서 녀성포로들의 사상을 부식하고 롱락하려고 들었다. 녀성포로들은 그년들의 음모를 제때에 간파하고 몽땅 집중영에서 몰아냈다. 그러자 적들은 침대를 다 걷어가고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이에 분개한 녀성포로들은 한결같이 단식투쟁을 벌렸다. 하여 끝내 침대 우에서 자게 됐고 식사도 좀 개선되였다. 그후 적들은 단식투쟁을 한 22명 녀성포로들을 단식투쟁 지도자라고 붙잡아갔다. 적들은 그녀들을 몽둥이로 때리고 전기취조를 하였으며 바늘로 손가락 끝을 찌르면서 단식투쟁 지도자를 대라고 을러멨다. 련 5일 동안이나 고문을 들이댔지만 아무 단서도 쥐지 못한 적들은 할수 없이 그녀들을 내놓았다. 1952년 봄, 적들은 녀성포로들을 몽땅 포로들이 “사망섬”이라고 부르는 거제도포로집중영에 압송해 가두었다. “우리 녀성포로들 속에는 전기취조를 받아 정신착란이 온 리모가 있었지요. 한번은 그가 ‘혼자 나가지 말자’는 우리 녀성포로들의 포로보호규정을 잊고 혼자 변소로 갔지요. 그를 본 양키놈은 경위실에 붙들고 들어가 강간하지 않았겠어요. 하여 리모는 완전히 미쳐버렸어요. 그때 우리는 너무 격분해서 시위하면서 항의했지요. 미군 집중영당국에서는 별수없이 리모를 강간한 양키놈을 녀성포로영에서 다른데로 전근시켰지요.” 양모의 말에 이어 서울 태생인 송모가 석쉼한 목소리로 공소하였다. 그의 말투는 완전히 남쪽 서울말씨였다. “전 1952년 5월 두드사건 뒤 담판에 참가한 3명 녀성포로 가운데 한사람이죠. 두두가 석방된 뒤 저도 다른 담판대표들과 함께 잡혀갔죠. 양키놈들이 저를 심문하다가 옷을 벗기고 강간할락꼬 미쳐날뛰잖겠어요. 제가 물고 뜯고 하면서 마구 밀쳐대니께. 양키놈들이 흉악한 상통을 해가지고 새빨갛게 단 쇠꼬챙이로 저의 젖가슴이캉 허벅다리캉 마구 지지지 않겠어요. 이 보세요.” 그녀의 걷어올린 팔다리를 보니 성한 데 없었다. “그때 중립국인 스웨리예대표단이 집중영을 시찰할 때 전 양키놈들의 위협도 무릅쓰고 달려나가 팔다리 걷어올리고 양키놈들의 죄행을 공소했던 거래요. 그랬다고 절 또 단독감방에 가두질 않겠어요. 교환돼서 돌아올 때에야 내놓았어요.” 이때 숱한 어린애들을 혹은 안고 혹은 손잡고 온 녀성포로들이 다가왔다. 그녀들은 대부분 군관 가속이여서 부대를 따라 남하하였다가 포로됐던 것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생인 23살 되는 조선인민군 녀성포로 김모는 둬살 박에 안되는 남자애를 안은 채 두 볼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전 포로된지 여섯달만에 집중영에서 이 어린애를 낳았지요. 옆의 동무들이 보살펴주지 않았더라면 저와 이 애는 집중영에서 굶어죽었을 거예요. 전 애를 낳고 몸이 어찌나 허약한지 두달 동안이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 했지요. 그때 녀성포로들은 가련할 정도로 적은 밥그릇에서 밥 한숟가락씩 내 그릇에 더 놓아 우릴 먹게 했어요. 저는 눈물과 함께 전우들이 주는 밥을 삼키면서 끝내 몸을 춰세워 이 애를 살려냈어요. 후에 극악한 양키놈들은 모자방에 우릴 따로 가둬 굶겨 죽이려고 달려들었어요. 녀성포로들은 항의했지만요. 양키놈들은 우리 모자를 끌어다가 모자방에 따로 감금하였지요. 한 녀성포로는 굶어서 갈비뼈가 아롱아롱한 자기 어린애가 울자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정신이 나가 그만 자기 어린애를 침대 우에서 목을 조여 죽이까지 하였어요.” 가련한 23명 산모포로들은 1953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건군절에 어린애를 업고 철조망에 “우리는 전쟁포로가 아니다!”는 표어를 내걸고 철조망 안에서 구호를 부르며 시위행진하였다. 땅! 땅! 적들은 그녀들에게 최루탄을 130여발 쏘았다. 숱한 애들이 놀라 몇달동안이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조선정전협정이 체결된 후에야 적들은 선전목적에 어린애들에게 옷과 신을 내주고 먹을 것을 좀 주었다. 쉰이 다 된 늙은 녀성포로들과 산모포로들이 어린애를 데리고 위생통과구역에 들어간 뒤였다. 환영하러 나온 부녀들이 이런 말을 주고 받았다. “죽일 양키놈들, 어쩜 쉰이 다 된 녀성을 다 포로라고 붙잡아뒀을가?” “글쎄 말이요. 썩어질 놈들이 어린애한테 무슨 죄 있다고 감방에서 고생시켰다오?’ 조선 녀성들은 질서을 유지시키는 리해식을 보더니 욱 모여와 물었다. “지원군동무, 저 어린애한테 어떤 옷을 입히는가요? 큰 군복을 입히는가요?” 리해식은 웃으면서 “근심하지 마십시오. 우린 어린애들도 돌아온다는 걸 알고 사전에 다 준비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윽고 새 군복을 입은 녀성포로들이 나왔다. 그녀들 속에는 하얀 바탕에 파란 무늬 가로 간 “꼬마해군” 군복을 입고 해군모자를 쓴 둬서너살 되는 남자애들과 빨갛고 노란 치마저고리를 입은 녀자애들, 칠색단저고리에 파란 조끼를 입은 어린애들이 위생통과구역 앞에서 나왔다. 초조히 근심하던 부녀들은 그제야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내며 환호하였다. 집중영에서 갖은 천대를 다 받던 녀성포로들은 곱게 차려입은 자기 어린애들을 안고 손에 손잡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목청껏 구호를 불렀다. “김일성 원수님 만세!” “모택동 주석님 만세!” 그 뒤에 지원군 녀성포로 양옥화가 새 지원군 군복을 입고 나왔다. 환영하러 나온 군중들은 그녀에게 꽃묶음을 안겨준다, 얼굴을 만진다 하면서 위안하였다. 어깨까지 쌍태머리를 땋아내리드리운 얼굴이 걀쭉한 중국 이 처녀는 열정적인 조선 부녀들 속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양옥화는 리해식 소속 군단에 있었다. 그녀는 1951년 5월 하순 제5차 전역이 끝날 때 북한강 북안인 지암리 부근에서 소속 사단과 함께 포위를 돌파하다가 포로되였다. 그녀는 꿈에도 자기가 전쟁터에서 포로돼 양키놈들이 왔다갔다하는 집중영 철조망 속에 갇히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처음에는 며칠 동안이나 집중영에 웅크리고 앉아 창백한 얼굴에 겁기 띤 눈으로 철창 밖에서 총칼을 비껴들고 삽살거리는 미군 놈을 지켜볼뿐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적들은 그녀를 심문실로 끌고 가서 “사단 책임자가 누군가?” 하고 심문하였다. 그때 눈이 파랗고 코대가 큰 미군놈을 보던 양키놈을 쏘아보던 양옥화는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문하던 미군 군관놈들은 엉큼한 마음을 먹고 미국 사탕 한봉지를 꺼내주면서 희죽거렸다. “더러운 개자식!” 양옥화는 미군 놈이 손에 든 그 사탕을 땅바닥에 탁 쳐던졌다. 그녀는 발로 심문실 문을 꽝 차고 나와버렸다. 그후에도 미군 군관놈은 더러운 마음을 죽이지 않고 그녀를 끌어내갔다. 그럴 때마다 조선인민군 녀성포로들은 단식투쟁을 하면서 항의하였다. 하여 그 양키놈은 양옥화를 되돌려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교환돼 돌아올 때 양옥화는 조선인민군 녀성포로들과 함께 부산역에서 맨 마지막 렬차바곤에 앉아 북상귀국의 길에 들어섰다. 그녀들은 당장 조국의 품에 안길 것을 생각하고 끓어번지는 내심의 감격을 억누를길 없었다. 순간 차칸에서는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동방홍” 노래소리, 구호소리, 웃음소리와 환호소리가 울려퍼졌다. “개쌍년들, 무슨 개지랄들이냐?!” 양키놈들은 게사니처럼 꿱꿱거리더니 차창을 꽁꽁 닫아걸고 차간에 독가스탄을 들이쏘았다. 탕, 탕탕, 탕탕탕! 여섯발의 독가스탄이 녀성포로들과 어린애들 속에 날아와 터졌다. 순간 차간 안은 독가스로 자욱해졌다. 탕! 또 독가스탄이 날아왔다. 양옥화는 다른 녀성포로들과 어린애들을 구하려고 선뜻이 제 몸으로 독가스탄을 막았다. 그의 손은 폭발하는 독가스탄에 맞아 벌겋게 데였다. 돌아오는 길에서 국민당 특무놈들이 그녀를 정치적으로 롱락하고, 육체를 릉욕하려고 하였다. 그때 그녀와 조선인민군 녀성포로들이 견결히 반항했기에 위험에서 벗어났다. 몇해 동안 집중영에서 적들과 싸우면서 조선인민군 녀성포로들과 양옥화는 두터운 친선의 정을 맺었다. 갈라진 후에도 조선인민군 녀성포로들은 손목시계 하나를 개성시병원에서 치료받는 양옥화에게 기념으로 보내주었다. 양옥화는 송환돼 돌아오는 날까지도 조국에서 신고 온 겹겹이 기운 신을 신었다. 조국을 그처럼 그리던 그녀가 이제 곧 조국의 품 속으로 돌아가게 되였다. 그녀는 조선인민군 녀성포로들과 함게 차에 앉아 개성시를 떠났다. 그들이 탄 차는 점점 멀어져갔다. 그 뒤에서는 우리측 접수일군들과 조선 군중들이 미제와 괴뢰군 집중영에서 갖은 릉욕을 다 당한 그녀들에게 오래도록 박수갈채를 보냈고 손을 저었다.                  적군 포로들 먹장구름이 뒤덮인 하늘에서 지꿎은 장마비가 구질구질 쏟아졌다. 서울을 떠나 판문점을 향해 북으로 달니는 자동차들에는 겨릅대처럼 피골이 상접한 중조 측 포로들이 람루한 옷을 입고 비물에 푹 젖은채 맥없이 꽉 박아 서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우묵한 눈을 맥없이 내리뜬 포로들, 쏜살같이 내달리며 흔들리는 자동차 우에서 상처가 아파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소리를 내는 포로들, 두 다리 없는 포로들, 팔을 잃은 포로들, 참말로 그들의 모양은 처량하고 끔찍스러웠다. 미군 측에서는 그들에게 아무런 의료처치대책도 대지 않았다. 이때 개성을 떠나 판문점을 향해 남으로 달리는 풍막자동차들에는 피둥피둥 살지고 불깃불깃하게 혈기왕성한 미군과 괴뢰군 측 포로들이 편안히 앉아 가고 있었다. 적측 포로들은 몽땅 회색캬바진 새 옷을 떨쳐입고 희희락락 떠들썩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꽉 차넘쳤고 수심의 그늘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이 둘러멘 배낭에는 자기가 쓰던 시계와 라이터, 만년필과 치솔, 악기 그리고 우리측에서 준 기념품 같은 것을 불룩하게 걷어넣었다. 몇몇 부상당한 포로들 곁에는 흰 위생복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약가방을 둘러메고 청진기를 목에 건 채 딱 붙어앉아 간호하고 있었다. 포로교환구에 건너갈 때 적측의 어떤 포로들은 목에 기타를 걸고 겨드랑이에 불룩한 배낭을 끼고 떨굴가봐 조심스레 느릿느릿 걸어갔다. 적측 포로들 속에는 지팽이를 짚은 포로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부상당한 포로들은 우리측 포로수용소 의료일군들이 제때에 치료했기에 사지를 끊긴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측 포로들은 제때에 처치받지도 못하고 치료받지 못해 두 팔을 잃었거나 심지어 사지를 다 잃은 포로도 있었다. 우리 측 남녀포로들은 옷을 쫄딱 벗기우고 큰거리에 끌려나가 조리돌림을 당했고 돌팔매까지 맞았다. 녀성포로들은 강간당하기까지 않았던가! 미군측에서 우리측에 건네준 18부의 두꺼운 포로사망부에는 우리측 사망된 포로들의 이름이 꽉 박혀 있었다. 미군측에서는 많이 줄여서 8,840명만 죽었다고 했지만 기실 13,814명이나 집중영에서 사망, 살해되였다. 우리측의 눈물겹고 들끓는 장면과는 달리 적측 포로접수구의 분위기는 아주 쌀쌀하였다. 적측 포로들은 우리측 사업일군들과 굳게 악수하고 갈라져 적측 교환소에 가서도 웃으면서 이쪽에 대고 손을 저었다. 포로접수소 곁에 괴뢰군과 미군 병사들이 이쪽을 노려보면서 시꺼먼 총을 부여잡고 서 있었다. 군관들은 허리에 두 손을 찌르고 포로들을 쏘아보았다. 적측 포로들은 그 놈들을 보자 웃음을 거두고 몸을 옹송그리면서 접수소 안으로 들어갔다. 괴뢰군 군관은 허리에 두 손을 지르고 다리를 거만하게 척 벌리고 서서 괴뢰군 포로들을 보고 쌀쌀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자식들, 맥살도 없이 포로되다니? 저쪽에서 고생했지?” 괴뢰군 포로들은 그자에게 눈길도 돌리지 않고 휴게실천막에 들어갔다. 포로들이 우리측 수용소에 있을 때 대우를 잘 받았다는 말을 할가봐 적측에서는 취재하러 온 기자들이 자기들 포로들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제한하였다. 그자들은 전신무장한 적병들을 포치해 휴게실천막 둘레를 줄지어서서 지키게 하였고 휴게실천막으로 들어가는 길과 기자들 사이에 바줄을 매놓고 마구 드나들지 못하게 막았다. 포로들이 휴게실천막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기자들은 포로들에게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미군 안전군관은 사전에 기자들에게 공산당에 도움이 되는 보도를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어떤 기자들은 돌아오는 포로들에게서 가만히 취재해가지고 미군의 검사를 피해 38선 이남, 남조선(대한민국) 경기도 파주 부근의 문산에 가서 소식을 보도하였다. 어떤 기자들은 일본 도꾜에 날아간 후 보도하였다. 이는 우리측에서 포로교환접수구 련합적십자회 사무실에 기자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면서 취재하게 하는 것과는 완전히 딴 판이였다. 적들이 아무리 소식을 봉쇄하려고 들어도 세계 정의적인 기자들의 보도에 의해 세계인민들은 우리측에서 적측 포로들을 아주 잘 우대했다는 것을 다 알게 되였다. 심지어 적측포로들도 우리측 포로수용소를 “어디 포로수용소 같은가? 꼭 학교나 휴양소 같네.”라고 할 지경이였다. 1952년 10월, 가을의 하늘은 푸르고 높았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시원히 불어왔다. 맑은 물에 둘러싸인 조선 북반부 벽동전쟁포로관리소 운동장 주위에는 붉은기가 휘날리고 주석대 정면 량켠에는 중조 두 나라 국기가 높이 휘날렸다. 축구장에서는 흑인포로들과 백인포로들이 섞여 축구시합을 벌리느라고 법석거렸다. 작은 체육장에서는 집단체조하는 포로들, 권투시합과 씨름을 하는 포로들, 구경하면서 하하하 하고 웃음보를 터뜨리는 포로들로 법석 들끓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포로라는 수치감과 고독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황혼 무렵에 포로들은 줄을 지어 포로수용소에 들어갈 때 “동방홍”과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불렀다. 밤이 되자 포로들은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으며 중조부대 선전대의 공연을 구경하기도 하였다. 12일 동안의 운동대회를 벌린 뒤 우승을 따낸 포로들에게 포로관리소의 수장이 직접 상품과 기념품을 발급하였다. 포로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운동대회는 정말 잘 열렸네.” , “이번 운동대회는 력사에 오를만해. 우리는 영원히 잊을 수 없네.” 라고 하였다. 어떤 포로는 “운동대회는 포로라는 걸 다 잊게 했네.”라고 하였다. 한 미군 포로군관은 “지원군은 포로관리에서 전례없는 력사를 창조하였다.”라고 하였다. 운동대회에서 상품을 탄 한 포로는 흥분된 나머지 구호까지 불렀다. “모주석 만세!” “중국인민지원군 만세!” 운동대회 기간에 포로들은 저마다 자기 가족에게 편지를 써서 운동대회 성황을 알렸다. 한 포로는 자기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 중량급권투경기에서 우승을 한 경과를 상세히 쓰고나서 집에 돌아가면 운동대회에서 탄 금빛빈침 등 정밀한 상품을 가져다주겠다고 하였다. 제네바공약 규정에 따라 우리 중조측에서는 1951년부터 포로들이 자기 가족들에게 편지나 사진을 보내게 하였다. 적지 않은 포로들은 편지에 제집 식구들에게 지원군 포로관리소에서 잘 보내기에 시름놓으라면서 “포로로 있는 것이 전선에서 싸우기보다 더 안전하다.”고 하였다. 한 포로의 안해는 남편의 편지를 받고 “줄곧 매우 건강하다고 하니 지나간 두해에 비해 마음이 놓입니다.”라고 하였다. 3년 사이에 적측 포로들은 도합 2만 9천여통의 편지를 써서 가족들에게 보냈다. 편지 거개가 포로관리소가 좋다는 말을 써넣었다. 하여 우리측 포로정책에 대한 그 어떤 모욕중상도 믿는 사람이 없게 되였다. 성탄절이 돌아왔다. 바깥날씨는 실로 박달나무가 얼어 터질 지경이였다. 그러나 적측 포로들은 봄날처럼 훈훈한 집 안에서 성탄절을 즐거이 쇠였다. 회장에는 성탄나무, 은색의 종, 빨간 초가 갖춰져 있었다. 벽에는 숱한 표어가 붙어 있고 책상 우에는 국외에서 산 권연과 사타이 수두룩이 올랐다. 실로 집 안에는 서양민족풍속과 종교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미국과 영국적 포로들은 본토에서 집식구들과 함께 성탄절을 쇠는 감을 느끼게 되였다. 만회에서 한 금발머리 포로는 제2차세계대전 때 포로돼 독일파쑈집중영에서 갖은 시달림을 받던 정경을 소개하고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독일 사람들은 천주교와 기독교를 믿지만 우리한테 성탄절을 쇠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갖은 혹형을 다해 우릴 못살게 굴었습니다. 중국 인민들은 종교를 믿지 않지만 우리한테 이렇게 성대한 성탄만회를 차려주었습니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중국은 세계에서 제일 문명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온몸이 쇠기둥같이 새까만 포로가 일어나 구호를 불렀다. “중국인민지원군 만세!” “모주석 만세!” 장내에서는 우뢰 같은 구호소리가 울려퍼졌고 박수소리, 웃음소리, 찬탄소리 끝없었다. 서양음악에 맞춰 포로들은 춤추고 노래하였다. 에이피통신사의 한 기자가 다가와 묻자 좋은 대우를 받은 영국의 한 포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린 중조측 포로수용소에서 뜨끈뜨끈한 구들 우에 침대에서 새 이불을 덮고 잤고 잘 먹으면서 충분한 휴양을 하고 왔습니다. 우리 든 수용소에는 철조망도 없고 때리고 욕하는 일도 보고 죽자고 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전선에도 약품이 딸렸지만 우리한테 먼저 썼습니다. 내 두 다리는 여섯달이나 움직이지 못했는데 중국 사람들이 치료해주었습니다. 보시오.” 그 포로는 성큼성큼 걸어보였다. 그러고나서 멨던 불룩한 배낭을 벗어 풀어헤치고 여러가지 약을 꺼내보였다. “내 다리병이 도질가봐 약까지 넣어보냈수다. 중구사람은 제일이요.” 그 포로는 엄지손가락을 흔들어보였다. 미군 군의도 미국과 영국 포로들의 신체를 검사해보고 모두 매우 건강한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42살에 나는 미군 상병자포로 상위 크린은 튼튼한 신체를 군의한테 검사맞히고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으면서 기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대전시 부근에서 남하하는 조선인민군 전사들에게 포로됐습니다. 그때 조선인민군 전사들은 비행기 폭격을 무릅쓰고 6일 동안이나 간고한 행군을 해서야 전선을 떠나 우리를 후방에 호송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들과 한집 식구들처럼 이밥에 물고기반찬을 해서 하루에 세끼씩 먹었습니다. 비행기 폭격이 심한 날에는 세끼를 먹을 음식을 두때나 한때에 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얼마만큼 크면 그 많은 걸 다 먹겠습니까? 실로 배를 두드리면서 먹을 지경이였죠.” 그 포로는 분개한 어조로 뒤말을 이었다. “그때 젤 괘씸한 건 미군 날강도드이 날아와 기관총소사하고 폭격을 해대는 것이였습니다.” 참말로 이 모든 것은 입으로 “인도주의”와 “인성론”을 부르짖는 미제와 리승만괴뢰군이 우리 포로들을 갖은 수단으로 구타하고 릉욕하고 무참히 살해한 죄행과는 얼마나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가!
182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6) 댓글:  조회:1495  추천:1  2018-12-02
         래봉장에서의 첫 겨룸        리해식은 정전대표단의 문화선전을 책임진 간사로서 조국에서 문예계 대표단이 개성에 오기만 하면 래봉장에 안내하고 래봉장에서의 첫겨룸을 소개해주군 하였다.        래봉장은 송악산 남쪽 기슭, 개성시 고려동 북쪽끝에 자리잡고 있다. 차를 타고 래봉장에 가 둘러보면 사면이 산에 둘러싸이고 장원에 여러가지 버드나무들이 우거진 것이 한눈에 안겨온다. 래봉장 대문 밖의 언덕에는 작은 옛탑이 서 있다. 래봉장 대문으로 울안에 들어서면 우거진 록음 속에 인공호가 조용히 누워 있고 호수 가운데 작은 수중 정자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호수 량 옆에는 래봉장 큰 건축물로 통할 수 있는 두갈래 오솔길이 나 있다.       래봉장 단층집 왼쪽은 곁채이고 복판에는 두개의 큰 원채가 있다. 첫 원채는 쌍방의 참모일군들이 정기회의를 연 곳이다. 두번째 정면대청은 첫 정전담판을 한 곳이다. 후에 담판장소를 판문점으로 옮겨갔지만 래봉장의 담판대청의 탁자며 의자며 모든 것을 그대로 두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제는 쏘련을 주요적수로 하고 전략적 중점을 구라파에 두었다. 미제는 조선전쟁에 륙군 총수의 3분의 1에 달하는 9개 사단, 공군의 5분의 1에 달하는 1,450여대의 비행기와 해군의 절반에 달하는 함대와 해군 륙전대를 투입시키고 많은 군사장비와 물자를 투입하였다. 그런데 의연히 날따라 패배하는 국면을 돌려세울 수 없었다. 게다가 조선전쟁으로 하여 구라파에서의 방어력량(당시 구라파에는 6개 산단 밖에 없었다.)이 영향을 받는 불리한 형편에서 부득불 조선전쟁을 시급히 끝내고 발을 빼려고 하였다.        1951년 5월 31일, 미제와 유엔군이 우리 중조 부대의 다섯번째 타격을 받아38선 이남으로 쫓기워간 후, 당시 미국 국무경 애치슨은 그의 고문이며 일찍 쏘련 주재 미국 대사로 있은 카이난을 시켜 개인신분으로 유엔 주재 쏘련 대표 마리끄를 통해 조선정전담판의 가능성을 알아보게 하였다.         6월 23일, 마리끄는 유엔 보도기구를 통해 조선전쟁 쌍방에 정전담판을 할 것을 건의하고 외국 군대가 조선반도에서 철거할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어 6월 30일, 유엔군 총사령관 리치위 장군은 미국정부의 위임을 받고 중조부대에 방송연설을 하였다. 그는 방송연설에서 자기는 미국 정부의 명령에 좇아 조선정전담판을 하려 하며 담판은 조선 동해의 원산항구 밖의 단마르크료양선에서 할 수 있다고 하였다. 7월 1일, 중조 측의 김일성 수상과 팽덕회 총사령원은 라지오방송을 통해 담판을 동의하며 담판지점을 38선에 있는 개성지구에서 하며 시간은 1951년 7월 10일부터 15일까지 사이로 하자고 하였다.         7월 8일, 제1차 정전담판을 준비하기 위한 쌍방 련락관들의 예비회의가 여기 래봉장에서 먼저 열리게 되였다. 오전 8시 22분 맑디맑은 개성시 하늘에 미국 직승비행기(헬기) 한대가 나타나더니 요란한 엔진과 프로펠라 소리를 내면서 개성시 서북쪽으로 날아가 고려동 래봉장 부근의 지정된 곳에 내렸다.        비행기 문이 열리더니 미국측 대표 켄니아 상좌를 비롯한 3명의 군관과 2명의 번역원이 내려 겁기어린 눈길로 여기저기를 힐끔거리면서 래봉장 대문 안에 들어갔다.        오전 8시 반, 련락관회의가 정식으로 열렸다. 우리 중조 측에서는 조선인민군 상좌 장춘산, 중국인민지원군의 시성문 등 3명 군관이 참가하였다. 맞눈총을 놓는 담판대청의 분위기는 매우 팽팽하였다. 중조 측의 수석련락관 장춘산 상좌가 먼저 회의를 시작한다고 선포하고 예비회의의 중요성과 회의내용을 강조하였다. “이번 회의는 정식담판대효회의 장소와 휴식실, 공급 및 기타 해당 문제를 사전에 토론하고 준비하여 정식대표회의에 유리한 조건을 지어주는 것입니다.” 미군측 수석련락관 켄니아 상좌는 별다른 생각도 없이 “고맙습니다.” 하고 한마디 할뿔이였다. 장춘산 상좌가 켄니아 상좌에게 “먼저 어느 문제를 토론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고 묻자 켄니아 상좌는 꿈에서 깨여난듯 불쑥 물었다. “정식회의를 언제 열려고 합니까?” 그러자 중조측 대표들은 대답 대신 코웃음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쌍방의 최고사령관들이 편지로 정식담판은 7월 10일부터 15일에 열기로 결정하지 않았는가. 실로 코 막고 답답한 노릇이였다. 이때 갑자기 꽝 하고 소리 났다. 간이 콩알만해 창문 곁에 앉아 있던 괴뢰군 련락관 리수영 중좌는 깜짝 놀라 그만 걸상에서 떨어져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는 얼음강판에 넘어져 버둑거리는 소 눈깔로 희번뜩거리며  두리번거리다가 바람에 창문이 꽝 닫긴 소리라는 걸 알고서야 제풀에 얼굴이 귀밑까지 벌개졌다. 그는 그제야 엉뎅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제자리엣 돌아가 앉았다. 좀 지나 또 회장 바깥의 문이 바람에 꽝 떨어져 넘어갔다. 미군의 한 련락관은 깜짝 놀라 떼굴떼굴 주위를 살피다가 문이 넘어간 걸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였다. 회의에서 우리 측이 제기한 의견을 미군 측에서 다 접수하였다. 이어 군사정전담판에 참가한 쌍방 정식대표명단을 교환한 후 회의를 끝냈다. 7월 10일 오전 8시 전 세계 인민들의 눈길을 모으는 조선정전담판이 래봉장 담판대청에서 정식으로 열리게 되였다. 중조 측 담판대표단 수석대표로는 조선인민군 대장 남일이였고 대표들로는 조선인민군 소장 리상조, 중국인민지원군 부사령원 등화 장군, 참모장 태방 장군, 조선인민군 소장 장평산이였다. 유엔군측의 수석대표로는 미군 원동해군 사령원 쵸이 중장이였고 대표들로는 미군 공군 소장 크레찌, 미군 륙군 소장 코디스, 해군 소장 베크, 리승만 괴뢰군 소장 백선엽이였다. 유엔군측 대표들은 중조측의 요구와 준비회의의 사전결정에 따라 의외사고를 방지하고 안전을 위해 백기를 꽂은 찌프차에 앉아 38선을 넘어 래봉장에까지 느릿느릿 달려왔다. 그 모양을 보고 중조측 담판대표단 일군들은 미제 사촉하에 움직이는 유엔군이 투항을 상징하는 백기를 걸고 온다고 비웃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미국 측 대표들은 담판석상에서 전쟁의 모든 죄과를 중조 측에 들씌우면서 담판에 장애를 조성하였다. 쌍방이 담판회의 의정을 토론할 때 중조측 수석대표 남일 장군이 담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세가지 의정안을 제기하였다. “첫째, 쌍방에서 협희한 후 모든 군사행동을 정지해야 합니다. 둘째, 38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하고 전쟁포로송환 등 문제를 토의해야 합니다. 셋째, 모든 외국군대를 조선으로부터 철거시킨 문제를 토의해야 합니다.” 남일 장군의 발언에 뒤이어 등화 장군이 남일 장군의 세가지 제의안을 지지한다고 발언하였다. 미군측 수석대표 쵸이 장군은 도리여 괴상한 론조로 문제를 제기하였다. “정전 유관 제 항목에 협의를 달성하고 군사정전위원회를 세워 사업하기 전에는 군사행동을 정지할 수 없습니다.” 뒤이어 쵸이 장군은 “우선 전쟁포로를 송환할 문제부터 토론합시다.”라고 하였다. 오전의 담판은 의정문까지 협의를 달성하지 못하고 끝났다. 오후 회의에서 미군측은 갑자기 유엔군측의 20여명의 기자들을 회의에 참가시킬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우리 중조측에서는 미군측의 무리한 요구를 동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쌍방의 협상을 거쳐 합당한 시기에 쌍방의 기자가 개성에 들어와 취재할 수 있도록 허락할데 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첫날의 담판은 의정문제마저 협의도 맺지 못하고 끝났다. 7월 12일 오전 7시 45분, 미군측에서는 쌍방의 협상을 거치지도 않고 20명 기자와 65명 대표단 성원을 숱한 차에 태워가지고 개성 동남쪽의 판문점에 들이닥쳤다. 그들을 몽땅 래봉장회의에 참가시키려는 것이였다. 판문점에 있던 중조측 련락관은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대표단 대표들만 지나가게 하였다. 무지막지하고 야만적인 쵸이 장군은 붉으락푸르락해서 숱한 차대를 끌고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되돌아 달아났다. 그런 뒤 사흘이나 담판석상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7월 15링에야 미군측 대표들은 낯을 내밀었다. 중조측의 제의하에 쌍방이 협상한 후 개성시 십자로어귀를 중심으로 반경 5백야드 지대를 중립구로 정하였다. 중립구내에서는 일체 군사활동을 엄금하며 중조 단방면의 적은 수효의 군사경찰일군들이 경무기를 휴대하고 중립구의 안전사업을 책임지게 하였다. 담판의정문제에 대해서 7월 26일까지 쟁론하던 끝에 겨우 다섯가지 의정안만 협의를 달성했다. 7월 27일, 실제문제를 토론하기 시작하자 미군측 수석대표 쵸이 장군은 싸움터에서 얻지 못한 것을 담판석상에서 얻어보려고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세우고 침방을 튕기면서 떠들어댔다. 그는 세계여론과 조선전장의 실제적정황을 무시하고 38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하려는데 대해 극구 반대해나섰고 중조측이 군사분계선으로 하려는데 대해 극구 반대해나섰다. 그는 중조측이 림진강 서쪽에서는 뒤로 철거하여 2천 내지 3천 평방킬로메터의 지역을 내놓아야 하며 동부와 중부 전선에서는 3천 내지 4천 평바킬로메터 지역을 내놓아야 한다고 무리하게 요구하였다. 이것은 총 한방도 쏘지 않고 중조측의 1만 2천여평방킬로메터나 되는 땅을 빼앗으려는 악동하고 망녕된 궤계 아니고 무엇인가! 당시 전쟁터의 정황을 놓고보면, 전쟁이 사작되여서부터 정전담판이 시작된 7개월 사이에 38선을 중심으로 적측에서도 38선 이북으로 두차례나 쳐들어왔고 중조부대가 38선 이남으로 두차례나 쳐들어갔다. 중조 부대는 38선 이남지구를 5개월 동안 점령하였고 적측에서는 두달동안 점령하였다. 중조측에서는 38선 이남의 145킬로메터나 되는 지역, 37도 위도선에 위치한 수원 이남 지역까지 쳐들어갔댔으며 북으로 철퇴한 후에도 개성을 비롯한 38선 이남의 3,630킬로메터에 달하는 지역을 통제하였다. 적측에서는 38선 이북의 165킬로메터 종심에 달하는 구간의 4,630평방킬로메터에 달하는 38선 이북의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조측에서 통제하는 38선 이남 지역은 개성을 포함하여 경제상, 군사상에서 모두 가치가 큰 요충지였다. 중조측에서는 미군측의 무리한 요구를 견결히 거절하고 반박하였다. 중조측에서는 군사적으로 빈번히 전쟁터에서 승리함으로써 담판석상에서 미제와 리승만괴뢰군의 기염을 여지없이 꺾어놓았다. 그리하여 미군측에서는 제나름대로 할 수 없었고 발언권도 잃고 말았다. 이때 미군측은 비밀회의를 하자고 새로운 제의를 내놓았다. 8월 17일부터 비밀회의를 열었다. 비밀회의기간에 중조측 대표는 38선을 분계선으로 하자던 제의를 그만두고 전선실제접촉선을 분계선으로 삼자고 하였다. 미군측은 들을념도 하지 않고 무력으로 1만 2천여평방킬로메터나 되는 땅을 빼앗으려고 전선에서 대진공을 하는 한편 담판회의를 악렬하게 파괴했다. 8월 15일, 미제와 리승만괴뢰군은 이른바 여름철공세를 들이댔고 뒤이어 가을철공세를 들이댔다. 적괴수 팸프리드는 자기 수하의 미군 제8군을 포함한 9개 사단의 병력으로 덮쳐들었다. 허나 20일 동안 싸운 결과 적들은 7만여명의 병력과 땅크 129대, 비행기 189대를 손실당하고 말았다. 8월 16일 밤이였다. 땅! 땅! 갑자기 야무진 총소리가 담판회중립구의 고즈넉이 잠들었던 하늘을 깨웠다. 지원군 경위패 패장 요경상이 8명 경위전사들을 데리고 중립구내 송곡동 부근에서 순라할 때였다. 그 곳에까지 매복해 있던 30여명 미군 놈들이 불의습격했다. 요경상 패장이 당장에서 숨지고 다른 한 전사가 부상당하였다. 이튿날 개성시 군민들은 요경상렬사의 시체를 개성시에서 제일 경치가 좋은 자남산 기슭에 안장하고 추도대호를 열었다. 렬사의 까만 화강석 묘비 앞면에는 “요경상렬사지묘”라는 글자가 새겨졌고 뒤면에는 미제가 정전담판을 파괴하고 렬사를 살해한 죄장이 새겨져 있다. 리해식은 개성에 온 뒤 수많은 중조 군민들과 함께 요경상렬사의묘지를 침앙한적이 있다. 적들은 군사적으로 중조측에게 타격을 입고 더 큰 지역을 빼앗겼으며 요경상렬사를 살해하였기에 세계여론의 질책을 받았다. 미군측 수석대표 쵸이 장군은 부끄러운대로 담판석상에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미제 공중날강도들은 8월 16일과 8월 22일에 중립구 중조담판대표 숙사에 폭경하고 소사하였다. 그리하여 담판장소를 부득불 판문점에 옮겨가지 않을 수 없었다. 10월 25일, 2개월이나 미제의 파괴로 말미암아 중단되였던 담판은 개성시에서 동남쪽으로 15킬로메터 상거한 판문점에서 다시 열리게 되였다. 적들은 1만 2천킬로메터에 달하는 지역을 자기들의 손에 넣으려는 무리한 요구를 다시 들고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개성은 서울을 방어하는데 수요되는  요충지라면서 개성을 내놓으라고 떼질썼다. 그러지 않으면 고성과 금성 2개 도시로 개성을 바꾸자고 하였다. 사실 그때 고성과 금성 지구는 우리 중조부대의 통제 밑에 있었고 적들은 이 두 곳에서 매우 작은 곳만을 통제했을뿐이였다. 첫 의정안인 군사분계선과 비군사구역 문제는 4개월 동안 쟁론을 거쳐 11월 27일에야 합의를 보았다. 이는 중조측에서 합리하게 방안을 내놓고 한차례 또 한차례 적들의 음모를 분쇄하고 강대한 군사적타격을 잘 배합한 결과이다. 1953년 6월 17일 쌍방이 최종적으로 확정한 군사분계선은 1951년 11월 27일에 정한 군사분계선보다 개성지구를 포함하여 190여평방킬로메터나 남으로 더 나갔다. 그때로부터 래봉장은 미제 침략자가 아군에게 5차 타격받고 “흰기”를 들고 와서 담판을 한 곳으로, 중조 인민의 공동의 원쑤 미제와의 첫겨룸에서 중조인민이 승리한 상징으로 되여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었다.                      판문점 정잔담판장소가 판문점에 옮겨지자 중조측 정전담판대표단 정치부 선전과도 판문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였다. 리해식 등이 찌프에 앉아 개성시에서 동남쪽으로 한 15킬로메터 즘 달려가니 푸르른 들판에 둘러싸인 펑퍼짐한 산둔덕에 자리잡은 판문점이 한눈에 안겨왔다. 당지 민간전설에 의하면, 옛날 지금의 판문교에서 서북 쪽으로 200여메터 떨어진 곳에 땅 밑에서 퐁퐁 솟아나는 맑은 샘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샘물을 마시면 백병이 떨어진다고 소문이 파다히 퍼졌다. 그리하여 조선 팔도에서 숱한 사람들이 병을 치료하려고 이 샘물을 마시러 샘물터로 찾아왔다. 그때 부근에 살던 마음씨 착한 한 농사군은 샘물 사시러 오는 사람들의 숙식을 마련해주려고 샘물터 옆에 려관방을 차려놓았고 벌레와 먼지가 들어가지 않게 우물을 판장문으로 덮어놓았다. 그때로부터 사람들은 이 곳을 판문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류수와 같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 전설 속의 “판문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다만 직경이 반메터 남짓하고 십여메터 깊이 되는 옹둘우물이 남아 있다. 이 샘물터로부터 동쪽으로 몇발작 걸어가 작은 언덕을 굽어들면 동서로 뻗은 길이 나지고 그 길 북쪽에 널판자와 참대삿자리로 지은 장방형의 큰 집이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판자집이 바로 쌍방대표단이 담판하는 회의장소였다. 이 판자집을 중심으로 반경이 천야드 되는 둥그런 원 안은 회장구역이다. 회장구역 네귀의 상공에는 빨간 줄을 네줄이나 칠한 커다란 고무풍선이 둥둥 떠 있었다. 이것은 회장구역 공중표식물이다. 밤이면 탐조등을 밝혀 그 고무풍선을 대신하였다. 회의장소로 된 그 장방형 집은 회장구역의 유일한 집이였다. 그 나머지는 몽땅 흰 방수포장막이였다. 회장 남쪽에 회장과 나란히 앉아 있는 큰 천막집이 있었는데 쌍방 참모일군들이 회의를 하는 곳이였다. 이 천막집의 동쪽과 서쪽에 좀 큰 천막집이 각기 있었다. 이 곳은 쌍방대표단이 쉬는 곳이였다. 도로 남쪽에는 우리측 사업일군과 기자들이 쉬는 두개의 천막집 외에 판문교를 가까이한 척측의 천막집이 몇개 있었다. 찬찬히 여겨보면 온 회장구역 내의 크고 작은 천막은 이미 비바람과 해볕에 희읍스름하게 퇴색하였다. 담판회의장으로 쓰는 장방형 큰 집 꼭대기의 참대삿자리도 희읍스름하게 퇴색하였다. 이 큰 집의 남쪽과 북쪽에는 유리창문 몇개가 있었다. 서쪽과 동쪽에는 문이 하나씩 있었는데 웃문턱 우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흰비둘기 조각이 박혀 있었다. 담판 할 때면 우리 중조측 대표들이 서쪽 문으로 회장에 들어가고 미군측 대표들은 동쪽 문으로 들어가게 되여 있었다. 리해식은 서쪽 출입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회의장에 들어갔다. 회의장 복판에는 남북으로 록색천을 띤 긴 책상이 가로 놓여 있었다. 이 긴 책상 남쪽 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작은 국기가 꽂혀 있었고 긴 책상 북쪽 우에는 유엔의 작은 기대가 꽂혀 있었다. 담판할 때면 쌍방대표는 동서 량쪽에 나뉘여 마주앉고 뒤줄에는 번역일군과 참모들이 앉아 있었다. 선전과 로동지들이 해식에게 우리 측 대표단이 이 담판석상에서 적측 대표단과 날카롭게 맞서 싸우던 정경을 말해주었다.   1952년 5월 23일, 미군측 선임수석대표 해리슨 중장이 전임 수석대표 쵸이 중장을 대신하여 판문점에 나타나 담판석상에서 포로송환문제를 가지고 생떼질하였다. 전쟁포로송환에 아무런 성의도 없는 미군측 선임수석대표 해리슨은 탐판회장에 들어선 첫날부터 무리한 첫마디를 던졌다. “당신들이 우리 측 방안을 언제 접수하면 언제 담판을 다시 하겠습니다.” “당찮은 말을 하지도 마십시오.” 우리 측 대표는 엄숙하게 반박하였다. 해리슨은 어깨를 으쓱하며 두 팔을 벌려보였다. “닷새 후에 다시 담판합시다.” 5월 27일에 다시 담판할 때 해리슨은 매우 거만스레 떠벌이였다. “담판을 중지합시다. 당신들의 발언에 아무런 흥취도 없습니다.” 6월 7일, 담판석상에서 해리슨은 유엔군의 수석대표이자 미군 3성박이장군이라는 체면도 잊었다. 그는 실하고 긴 목을 기린의 목처럼 빼들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가 하면 휘파람을 휘-휘- 불기까지 하면서 도무지 담판에는 정신을 팔지 않았다. 해리슨은 앉아 있기도 싫던지 제쪽에서 “사흘동안 담판을 중지합시다.” 하고 선포하고는 번역일군이 번역하기도 전에 벌컥 일어나 회장을 나가버렸다. 더욱 한심한 일도 있었다. 해리슨은 후에 련속 몇번이나 회장에 들어시기 바쁘게 회의를 중지한다고 선포하고는 되돌아나갔다. 확실히 그는 고의적으로 담판을 방애하여 유엔군 총사령 클라크 상장의 명령대로 포로송환을 하루하루 지연시켜 중조측 포로를 억류하며 두드사건의 진상을 감추려고 하였다. 미제 침략자들은 1949년 8월 제네바에서 63개 제약국이 제정한 “전쟁포로에 관한 제네바공약”을 공공연히 어기고 포로를 돌려보내지 않고 잔혹하게 학살하였다. 그자들은 포로의 입 안에 휘발유를 부어넣고 불을 달아 태워죽이고 강한 전기불빛을 비춰 눈을 멀궈놓았으며 시뻘겋게 단 쇠꼬챙이로 포로의 몸을 지지고 손톱을 집게로 집어 뺐으며 바깥에 끌고 나가 산 과녁으로 삼아 총살하였으며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세균실험을 한 후 바다물에 처넣어 참혹히 죽였다. 녀자포로들을 강간한 후 젖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손발을 베버리고 휘발유를 치고 불태워 학살하였다. 그리고 포로들을 강박하여 이른바 “반공구국군”, “대한청년단” 등 반동조직에 들게 하였으며 포로의 몸에 한자와 영어로 반동구호를 새겼다. 1951년 10월까지만 해도 미제 침략자들은 중조측 포로 17,000여명이나 잔혹하게 학살하였다. 그러면서도 담판석상에 나와서는 포로들이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세계여론을 기만하려고 들었다. 뒤이어 미국 전쟁포로집중영당국에서는 미군 참모장련석회에서 채택한 이른바 “자원적인 귀환”의 “원칙”에 좇아 두달 전에 남조선 거제도 조선인민군 포로들이 집중된 62호 전쟁포로집중영을 시점으로 잡고 마수를 뻗쳤다. 그날 전쟁포로집중영당국에서는 6대의 장갑차에 1개 영의 전신무장한 병력을 실어다 적수공권인 5천명 전쟁포로병들이 갇힌 62호 감방을 물샐틈없이 겹겹이 포위하였다. 적병들은 총칼을 빼여들고 집중영에 뛰여들어 닥치는대로 찔러죽였다. 눈깜짝할 사이에 120여명 포로들이 피못에 스러져 숨졌다. 290여명 포로들이 팔이거나 다리를 찔려 쓰러졌다. “가만 있다가 죽을게면 싸우다가 죽자!” 누군가 웨치자 조선인민군 포로들은 빈 주먹으로 적병들과 맞다들었다. 어떤 포로들은 적병들의 날창을 비껴치우고 멱살을 거머쥐고 골받이(헤딩)를 들이대 쓰러눕혔다. 어떤 포로들은 찔러들어오는 날창을 비껴쥐고 소발쪽 같은 무쇠주먹으로 적의 대갈통을 쳐 눕혔다.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한 미군 적병은 조선인민군 포로들의 물매를 맞고 늘어졌다. 이밖에 30여명 양키놈들이 맞아 코가 삐뚤어졌거나 팔다리가 부러졌고 빼앗긴 날창에 찔리워 옆구리에서 피가 즐벅이 흐르거나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 바빠맞은 양키놈들은 포로영 대문 밖으로 뿔뿔이 꽁무니를 뺐다. 4월 6일, 거제도집중영에는 서슬푸른 살기가 어리였다. 이날 거제도 83호 집중영 철조망 안팎에는 기관단총을 비껴든 미군 양키놈들이 물샘틈없이 둘러싸고 있었다. 미군은 누가 “자원적으로 되돌아가겠는가?” 고 포로들을 하나하나 심사하고 부류끼리 나눠놓기 시작하였다. 포로들은 적들의 총칼이 숲을 이룬 삼엄한 심문실에 끌려들어가 하나하나 심사를 받게 되였다. 한 포로가 떨리는 다리를 글며 끌려나가자 사무상에 마주 앉은 한 미군 군관놈이 철갑모 밑으로 파란 눈깔을 떼룩거리면서 뭐라고 씨벌여댔다. 옆에 선 괴뢰군 번역원이 번역하였다. “북으로 되돌아가는게 소원인가?” “예, 꼭 돌아가겠습니다.” “죽자고 그따위 소릴 쳐?!” “자나 깨나 마음이 그런 걸 어쩌랍니까?” “망할 자식!” 그 군관놈이 꽥 고아댔다. 뒤에 섰던 두 놈이 그 포로의 정수리를 총박죽으로 탁 쳤다. 그 포로는 그 자리에 풀썩 꺼꾸러져 까무러쳤다. 반주검이 된 그 포로는 줄줄 끌리워나갔다. 그 다음 포로가 끌리워 들어갔다. “보았지? 돌아가자면 저런 끝장이야!” 미군 군관놈이 길다란 손가락으로 삿대질하였다. “그래도 되돌아갈텐가?” “죽어도 되돌아가겠다!” “이 놈, 죽어봐라!” 그 군관놈이 손짓하기 바쁘게 옆에 섰던 적병들이 날창으로 그 포로의 옆구리를 콱 찔렀다. “앗!” 비명소리와 함께 그 포로는 왼손으로 옆구리를 찌른 날창을 틀어쥐고 적의 멱살을 거머쥐려는듯 오른 손을 허공중에 내뼏쳤다가 허우적거리더니 맥없이 옆으로 스르르 쓰러졌다. 그 포로의 시체가 끌려나가자 또 다른 포로가 끌려들어왔다. 그 포로는 끌려나가는 포로의 시체와 자기를 쏘아보는 파란 눈깔을 번갈아 보면서 천천히 사무상 앞에 다가가 섰다. 군관놈은 오른손을 머리 우로 올려 엄지와 식지를 마주쳐 딱 소리를 냈다. “OK! 저 끝장 봤지? 넌 돌아가지 않지?” “난 죽어서 시체 돼서라도 이북 땅에 가고 싶다!” “엉?!” 또 물매를 면할 수 없었다. 적들이 아무리 무력으로 강박하여도 조선인민군의 대부분 포로들은 한결같이 이북 땅에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적들은 하나하나 심사하던 것을 그만두고 한패한패씩 분류하였다. 이북으로 돌아가려는 포로들을 십자나무기둥에 비끄러매놓고 알몽뚱이에 시뻘건 쇠꼬챙이로 “반공”, “멸공”이란 글자와 태극기, 유엔기 도안을 새겼다. 뿌지직뿌지직 살이 타들어가는 소리, 비명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다. 뒤이어 적들은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청원서에 억지로 혈인을 찍게 강박하였다. 이날 오후, 전신무장한 미군 놈들이 중국인민지원군 전쟁포로들이 든 거제도 제71호 포로집중영을 겹겹이 둘러쌌다. 이어 포로집중영 장관 두드장군의 대표인 벨 상좌가 집중영대문 안에 들어섰다. “오늘, 되돌아가려는 자들을 분류해야겠다.” 지원군 포로대표가 한발 나서서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세우면서 항의하였다. “전쟁포로를 몽땅 디돌려보내는 것은 제네바공약의 규정이다. 미국은 제네바공약 제정 참가국이다. 때문에 반드시 제네바공약대로 무조건 우리 포로들을 송환해야 한다. 당신들의 이른바 ‘자원귀환’은 제네바공약에 대한 란폭한 위반행위이다.” 벨은 말문이 막혀 대문 밖으로 나갔다. 이윽하여 전신무장한 미국 병정들과 국민당 특무들이 뛰여들어와 조국으로 돌아가려는 포로들을 비수와 날창으로 찌르고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렸다. 삽시에 비명소리와 신음소리, 포로들이 반항하는 웨침소리가 울리였다. 이날 오후 72호, 86호 집중영에서만 해도 중국인민지원군의 99명의 포로들이 살해되였다. 적들의 칼에 큼직하게 살점을 뜯기운 포로가 300여명이나 되였고 중상 입은 포로는 340명, 경상 입은 포로는 천여명이나 되였다. 적들의 이런 만행에 극도로 분개한 중조 포로들은 주밀한 계획을 세우고 반항하였다. 포로들은 단식하는 한편 포로집중영철조망 안에서 시위행진하면서 포로집중영당국의 최고장관 두드가 직접 나와 포로대표와 담판하자고 웨쳤다. 1952년 5월 7일 오후 1시, 미군 두드 준장이 전신무장한 한개 소대 병사들의 호위 밑에 거제도 제76호 전쟁포로집중영 대문 앞에 나타났다. 그 자는 거만스레 대문짝 하나 열만한 거리를 두고 조선인민군 포로대표와 담판하자고 책상에 마주 앉았다. 조선인민군 포로대표는 두드 량 옆에 총을 든 적병이 딱 붙어선 것을 둘러보고 말했다. “총을 든 병사 앞에서 어떻게 담판할 수 있는가?” 두드는 모든 것을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뒤로 손을 저었다. 두 병사는 뒤로 썩 물러섰다. 두드 옆에는 시종부관 밖에 남지 않았다. 그제야 조선인민군 포로대표는 두드가 마주 앉은 사무상에 다가가 마주 앉았다. “미군이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 포로를 학대하고 되돌아가려는 포로를 억류하고 있다. 식량과 마실 물도 제때에 공급하지 않고 있다. 이는 전쟁포로의 합법적인 권익을 침범하는 비법적 행위이다. 이후에 다시는 이런 폭행이 발생하지 않도록 담보해야 한다.” 두드는 듣는둥마는둥하면서 손칼을 꺼내 연필을 깎다가고 손톱깎개로 손톱을 딱딱 깎았다. 담판은 두시간이나 하였지만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였다. 이때 갑자기 4명의 조선인민군 포로가 대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한 억센 포로가 독수리 병아리 덮치듯 덮쳐나가 집제 같은 손으로 아무런 준비도 없는 두드의 손을 꽉 틀어쥐였다. 다른 한 포로는 두드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다른 두 포로는 두드의 두 팔을 건뜻 들어 포로집중영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뚱뚱한 두드는 묶이운 돼지처럼 두 다리를 버둥거리면서 돼지 멱 따는 소리를 질렀다. 적병들은 총을 쏠 수도 없어 발만 구르며 왔다갔다 맴돌아쳤다. 포로들은 포로집중영의 대문을 꽉 닫고 쇠빗장을 찔러놓았다. 실로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돌연습격이였다. 이 찰나에 두드 장군은 평소의 그 거만하던 위풍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질겁한 나머지 낯이 창백해지고 바지에 오줌까지 질질 쌌다. 이때 포로들은 진작 준비해두었던 길이 7메터, 너비 2메터 되는, 영어로 된 프랑카드를 포로집중영 대문 우에 내걸었다. 그 프랑카드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우리는 전쟁포로집중영 장관 두드 준장을 생포하였다. 그의 생명안전을 꼭 담보한다. 우리는 그와 정당한 담판을 끝낸 다음 꼭 안전하게 돌려보내겠다. 엄중한 무장행동으로 하여 생기는 일체 후과는 몽땅 너희들이 책임져야 한다!” 포로대표들은 두드에게 엄정히 경고하였다. “네가 놓여나갈 수 있는가 하는 건 네 태도에 달렸다. 전쟁포로들의 정당한 요구를 재빨리 들으며 거제도의 각 집중영에서 대표를 보내 담판에 참가할 수 있게 해라.” 두드는 연신 “yes”, “yes(예, 예.)” 하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털이 부시시한 손으로 송수화기를 들더니 집중영당국 사무실에 76호 집중영의 포로대표 두 사람을 데리고 각 집중영에 가서 포로대표들이 담판에 참가하게 통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날 밤, 남조선 경상남도 남해바다의 외로운 섬인 거제도 17개 집중영의 중조 포로대표 43명 (그중 녀포로대표 3명)이 76호 전쟁포로집중영에 모여왔다. 그들은 즉시 중조 포로위원회 창립 대회를 열었다. 대회장 정면에는 중조 두 나라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포로들이 자체로 그린 중화인민공확국 모택동 주석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 원수의 채색초상화가 모셔져 있었다. 둘레 벽에는 오색령롱한 종이꽃이 달려 있었다. 두드는 끌리워와 이 대회에 억지로 참가하였다. 그는 먼저 주석대에 가서 흰 별이 박힌 장군모자를 벗고 차렷자세를 취하더니 중조 국기와 수령의 초상화에 경례하고 또 전체 포로들에게 경례한 후 공손히 지정된 자리에 가서 앉았다. 대회에서는 대표들의 협상을 거쳐 전쟁포로위원회의 정부위원장을 선출하였다. 조선인민군 포로대표이며 원 조선인민군 사단 참모장 리XX가 위원장으로, 중국인민지원군 포로대표이며 원 중국인민지원군 모 영 교도원 손진관이 부위원장으로 당선되였다. 두두가 생포된 소식이 각 집중영에 인차 퍼지자 중조 포로들은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그들은 각기 부동한 방법으로 자기 담판대표들을 성원하였다. 602호 집중영의 지원군 포로들은 밤도와 돛천으로 길이 8메터, 너비1메터 되는 프랑카드를 만들어 이튿날 이른새벽에 철조망 어귀에 걸어놓았다. 기타 집중영에서도 중조 국기를 내걸고 수천수만의 포로들이 철조망 옆에 줄을 서서 자작악기로 국가와 군가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불러 자기 담판대표들을 성원하였다. 이때 미군은 20여대의 땅크(탱크)와 1천여명 보병을 동원하여 76호 집중영을 겹겹이 포위하였다. 두드와 직무를 대신할 콜쓴 준장은 고성기를 통해 집중영에 대고 으르대였다. “10분 내에 두드 장군을 내놧! 그러잖으면 무력으로 구해낼테야!” 중조 포로대표는 두드에게 엄숙하게 알려줬다. “만약 콜쓴이 무력으로 평화적 담판을 파괴한다면 우리는 네 생명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두드는 질겁하여 인차 떨리는 손에 송수화기를 들었다. “콜쓴 장군, 만약 무력으로 진압하면 내 생명이 위험해. 절대 경거망동하지 말게나.” 담판을 거쳐 두드와 콜쓴은 부득불 포로대표들이 제기한 네가지 요구에 서명하였다.   첫째, 전쟁포로에 대한 일체 폭행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 둘째, 비법적으로 전쟁포로를 억류하는 이른바 “자원적인 귀환”이라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 셋째, 강박적인 선별을 그만둬야 한다. 넷째, 중조포로위원회를 승인해야 한다. 두드와 콜쓴이 서명한 이 네가지 요구는 정식문건으로 작성되였다. 10일 밤 9시 남짓하여 78시간이나 갇혔던 두드 장군은 석방되였다. 포로대표의 요구에 따라 집중영을 포위하였던 땅크가 뒤로 물러가고 콜슨의 대표이며 미군 제49헌병대대 대대장 래윈 중좌가 두드를 태울 찌프를 몰고 와서 조문과 영문으로 된 “접수증”을 내놓고 두드 장군을 데려가려고 하였다. 두드는 떠나가기 전에 중조포로대표들이 미리 갖춰놓은 필을 들어 허연 종이장에 “난 꼭 있는 힘껏 협의를 준수하고 이 협의를 실현하기 위해 힘쓰겠습니다.”라고 써서 서면으로 태도표시를 하였다. 그는 떠나면서도 뚱뚱한 몸뚱이를 연신 굽신거렸다. 그러나 두드가 석방되자 미군은 협의서에 서명한 글씨 먹이 채 마르기도 전에 협의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새로 부임된 유엔군 총사령 클라크 장군의 명령에 따라 콜쓴의 자리를 차지한 보트나 장군은 우리 중조측 포로들에 대한 야수적인 보복을 감행하였다. 1952년 5월 23일 거제도의 6, 223명 조선인민군 포로들은 “미국 지옥에서 죽어가는 우리 포로들을 구해달라.”는 련명호소서를 남로당(남조선로동당)의 령도하에 있는 인민유격대를 통해 북반부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 보냈다. 하여 미제의 진면모는 온 천하에 발가졌다. 바로 이런 정세에 비춰 정전담판 미군측 신임수석대표 해리슨은 유엔군 총사령 클라크 장군의 명령에 좇아 집중영당국의 보복적인 “류혈만행”에 배합하고저 전쟁포로송환문제를 천방백계로 질질 끌었다. 또 중조측의 방안은 고려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급기야 회의를 중지시켰다. 10월 8일 미국측은 무기한으로 정전담판을 그만둔다고 선포하고 “비행기, 대포더러 발언하게 하여” 담판에서 얻지 못한 것을 전쟁터에서 얻으려고 달려들었다. 적들은 팸프리트 장군의 직접적인 지휘하에 상감령지구에 대한 미친듯한 추기공세를 들이댔다. 그러나 그들은 43일 동안에 우리 지원군의 금성철벽의 진지를 점령하지 못하였을뿐만아니라 25,000여개 주검을 남기고 말았다. 전쟁터에서 코밥을 먹은 적들은 또 담판석상에서 돌아왔다. 1953년 4월 6일, 여섯달이나 중지되였던 담판을 판문점에서 다시 열게 되였다. 5월 25일, 미군측 수석대표 해리슨은 중조측에세 제기한 주요원칙을 다 접수하였다. 그날 괴뢰군대표 최덕신 장군은 말로는 문산에서 서울에 전화를 치는 사이에 대표단의 직승비행기(헬기)가 떠났기에 담판에 참가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기실 정전담판에 불복하고 계속 북진해 무력으로 조선반도를 통일하려는 리승만괴뢰군정권의 명령에 따라 정전담판에 참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 리승만괴뢰군은 쌍방에서 곧 협희를 달성하게 도리 전쟁포로문제에 대한 토론에도 참가할 생각도 아예 없었다. 1953년 6월 8일, 전 세계 인민들이 관심하고 주시하여온, 미국측의 저애로 하여 1년 6개월이나 끌어온 전쟁포로송환에 관한 협의를 달성하였다. 담판기간에 1년 동안이나 휴식전문가로 된 해리슨 장군은 끝내 포로송환에 관한 중조측의 공정합리한 제의안에 자기 이름을 써넣지 않으면 안되였다.                    비밀부호        리해식이 정전대표단 정치부 선전교육과에서 사업한지 얼마 안되는 7월 초의 어느날이였다. 해식은 지원군 병상자포로들이 가져온 자료를 정리하고저 병상자포로들이 든 집을 찾아갔다. 그는 자리에 앉기 바쁘게 병상자포로들에게 인사하고 찾아온 사연을 말하였다. 한창 둥그런 조선식밥상 우에 널려 있는 종이쪼각을 이어놓던 한 다리 잃은 포로는 해식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건 우리가 생명을 무릅쓰고 가져온 비밀부호입니다. 여기엔 우리 포로들이 적들과 싸운 사적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자 옆에 앉은 한쪽 팔을 잃은 포로가 구체적으로 말하였다. “이 종이쪼각에는 세계를 들썽한 ‘두드포로사건’과 ‘제주도 상공에 오성붉은기가 휘날리게 한 사건’도 적혀 있습니다.” 뒤이어 그들은 자기들이 북반부로 돌아올 때의 경과부터 이야기하였다. 제주도 제8집중영에서 미군 신문을 통해 포로송환문제가 거의 합의를 달성하게 되여간다는 것을 알게 된 그들은 조국으로 돌아갈 희망으로 차넘쳤다. 하여 그들은 집중영에서의 투쟁사적을 비밀부호로 가만히 담배갑종이에 써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비밀부호를 암기해두었다. 이 비밀부호로 된 숱한 종이쪼각을 집중영을 떠나게 되는 여러 사람이 나눠가지고 가게 되였다. 어떤 포로는 그 종이쪼각을 꾸겨 옷섶에 넣고 기워맸고 어떤 포로는 모자 안이나 신 안에 넣고 기워맸다. 어떤 포로들은 종이쪼각을 꼬깃꼬깃 꾸기여 다른 종이에 싸서 홍문에 밀어넣고 떠날 차비를 하였다. 1953년 4월 11일, 판문점정전담판대표단 쌍방련락관회의에서 중조측 수석련락관 리상조 소장과 미군측 수석련락관 딴니르 소장은 각각 병상자포로를 송환할데 관한 협정에 서명하였다. 그리하여 4월 중순에 되돌가게 된 제주도 제8포로수용소의 700여명 지원군 병상자포로들은 비밀부호종이쪼각을 지닌 채 다른 수천명 포로들과 함께 부산전쟁포로수용소에 압송되여갔다. 그들은 거기에 있던 포로들과 함께 귀국선서대회를 가졌으며 부산전쟁범죄자감옥에 갇힌 지원군 포로, 원 모 사단 부정위 오성덕을 석방하여 귀국시키며 귀국하는 부상자포로들 귀국길에서의 안전을 담보해줄 것을 미군집중영당국에 제기하였다. 그러나 미군중영당국에서 답복하지 않자 사흘이나 단식투쟁을 벌렸다. 적들은 선전수요로부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포로들에게 치솔과 비누 같은 일용품을 나눠주고 미군식군복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50명을 한조씩 무어 여섯면이 꽉 막힌 철제기차바곤에 앉혔다. 도중에 말할 권리도 주지 않았으며 음식도 음료수도 주지 않았다. 적들은 문산에서 포로들을 자동차에 갈아앉히자 판문점을 향해 쏜살같이 달렸다. 그들이 지나가는 길마다 경계가 아주 삼엄하였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봄바람이 비단결처럼 얼굴을 부드럽게 만지면서 산들산들 불어왔다. 판문점 전쟁포로송환구역에는 쌍방의 숱한 위생차와 트럭이 드나들었다. 차문을 열자 어깨를 덮는 머리카락, 맥없이 드인 눈, 창백하고 피기없는 얼굴을 한 포로들이 람루한 옷을 걸친 채 헝겊막대기처럼 휘청거리면서 우리 측 사업일군들의 부축을 받아 차에서 내렸다. 그 포로들은 차에서 내리자 동지들의 품 속에 얼굴을 파묻고 어린애처럼 처량하게 엉엉 대성통곡쳤다. 그것은 포로영에서 학대를 당할대로 당한 포로들의 설음이였다. 뒤이어 내리는 포로들은 거개가 다리 없거나 팔이 하나 없는 불구자들이였다. 어떤 포로는 두 다리가 다 없어 우리 사업일군들이 업어서 내리웠다. 마지막으로 내린 여섯명의 녀성포로는 사지가 다 끊어져 없고 맨 몸뚱이만 남아 있어 담가에 실어 내리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내리우면서 볼라니 몸의 길이가 70 내지 80센치메터 밖에 안되였다. 사업일군들은 그 비참한 정경을 보고 눈물을 금치 못하였다. 야수 같은 미군 병정들은 이런 녀성포로들을 압송해오면서도 야욕을 채우려고 달려들었던 것이다. 사지가 없는 녀성포로들은 격분해 소리칠뿐 반항할 수 없어 그저 당하기만 하였다. 하여 한 녀성포로는 정신병에 걸려 20여명 동료들의 간호 밑에 겨우 판문점에까지 올 수 있었다. 그녀는 북반부에 돌아왔지만 정신상 육체상 다시는 이전의 처녀로 돌아갈 수 없게 되였다. 남성포로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적들이 내준 람루한 옷을 벗어던지고 빤쯔(팬티)만 입고 포로송환선을 넘어왔고 어떤 남성포로들은 아예 미군이 준 실 한오리 걸치지 않고 사업일군들의 부축을 받아 절뚝거리면서 건너왔다. 어떤 포로들은 적들이 길에서 준 치솔과 과자봉지 같은 것을 따라온 적들에게 쥐여뿌렸다. “개놈들, 이래구서 잘했느라고 나발불려구?  언제 한번 이런 걸 줬느냐? 옜다, 가지고 가라!” 쟁그랑! 댕그랑! 포로들이 줴뿌리는 고뿌 속에서 튕겨나온 것은 마른 무우짠지와 곰팽이 허옇게 낀 닦은 콩이였다. 어떤 포로들은 변질한 음식과 함께 미제를 풍자하는 쪽지를 차 안에 남겨두었다. “이런 걸 사람 보고 먹으라구? 미국 경제가 불경기라는 거 알 수 있지. 우린 이 음식을 가련한 코큰이들한테 돌려준다!” 8일 동안 교환을 거쳐 우리 측 전쟁포로 6,670명이 돌아왔다. 그중 지원군 포로가 1,030명이였다. 그때 부상당한 포로병들이 벗어던진 수천벌의 헌 옷과 수천컬레 신은 맑디맑은 강물 밑바닥의 조약돌이 들여다보이던 강물에, 포로송환구역 가까이에 있던 사천하에 버렸다. 그강물은 오래동안 흐려 있었다. 부상당한 포로는 격분해 말했다. “그때 우리 포로들은 누구도 치욕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옷이고 뭐고 하나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비밀부호종이쪼각을 가진 동무들이 옷을 벗어던지지 않자 동료들은 마구 욕을 퍼부었습니다. 실로 참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야전병원에 온 뒤 람루한 옷섶이거나 모자 혼솔에서 비밀부호종이쪼각이나 종이쪽지를 꺼내서야 동료들은 오해를 풀었습니다.” “예- 그랬군요.” 해식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밥상 우에 놓인 종이쪼각을 무심히 볼 수 없었다. 거기에는 우리 지원군 포로들이 적 포로집중영에서 피와 목숨으로 싸운 사적이 적혀 있었으니 말이다. 그때 리해식 등 사업일군들은 포로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들여서야 비밀부호로 된 종이쪼각을 맞추고 자료를 정리해냈다. 몇십년이 지난 오늘 그때 비밀부호 종이쪼각을 가지고 돌아온, 부상포로들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들이 가져온 자료중에서 “10월의 붉은 노래”의 매력만은 아직도 력사에 길이 남아 있다. 1952년 5월, 판문점 담판석상에서 미군측에서는 포로송환문제를 질질 끌어댔다. 미군 포로집중영당국에서는 중조 포로들을 더욱 잔혹하게 박해하고 학대하였다. 뒤이어 그해 7월 초에 적들은 귀국하려는 7천여명 지원군 포로들을 제주도 포로집중영에 옮겨다가 가두었다. 이에 9월 25일, 지원군 포로지하령도조직인 “공산주의단결회”에서는 귀국하려는 지원군 포로들이 갇힌 제8포로수용소의 각 집중영에 국기게양식을 하라고 지시하였다. 만약 미군당국에서 국기게양식을 간섭하게 되면 일체 대가를 아끼지 말고 국기를 보호하라고 거듭 강조해 지시하였다. 이 지시에 따라 각 집중영에서는 적들의 눈을 피해 가만히 여러가지 준비사업을 다그쳤다. 그들은 국기를 만들 때 빨간 물감이 없으니 주먹으로 자기 코를 탁 쳐서 코피를 터지우거나 칼로 자기 팔을 베여 흐르는 피를 받아 적삼과 흰천에 빨갛게 물들였다. 그리고 국기를 올릴 때 쓸 바줄을 꼬고 천막을 칠 때 쓰는 나무막대기 몇개를 이어 넉장 길이나 되는 기대를 만들고 또 적들 몰래 집중영 부근에 기대를 세울 구뎅이를 석자 깊이로파놓았다. 국경절 전야에 각 집중영의 전쟁포로들은 선서대회를 열고 돌격대, 결사대, 예비대와 구급대를 무었다. 어떤 포로들은 담배갑이나 파지에 조국에 대한 사랑과 충성심, 그리고 바야흐로 벌어질 생사박투를 맞이할 결의가 담긴 결심서, 혈서, 청원서를 “공산주의단결회”에 보냈다. 어떤 포로들은 종이쪼각에 이렇게 썼다. “나는 죽음으로 당과 모주석의 은정에 보답하며 적들에게 우리 애국의 권리를 박탈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겠다!” “우리의 끓는 피로 국기를 보호하겠다.” 그들은 가정주소를 서로 남기고 조국의 오성붉은기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칠 것을 맹세하였다. 국경절이 돌아왔다. 맑게 개인 제주도의 푸른 하늘에 흰구름 몇쪼각이 둥둥 더서 해발 1,900여메터나 되는 한나산 허리에 걸렸다. 이른 아침에 서늘하고 습기찬 바다바람이 제주도집중영 철조망을 쓸며 포로집중영에 불어들었다. 해 뜨기 전에 벌써 일어난 포로들은 처량한 섬에서 조국이 있는 쪽 바다 저 멀리를 내다보았다. “아, 지금 쯤 조국의 수도 북경과 고향 그 어데서나 국경절맞이로 들끓을 것이다!” 이국의 외로운 섬에서 초롱 속에 갇힌 새로 된 그들의 마음은 쓸쓸하기 그지 없었다. 그들은 누구도 아침 숟가락을 들지 못하였다. 아침 7시, “공산주의단결회”에서 통일적으로 국기를 올리라고 명령하였다. 감격적인 시각이 닥쳐왔다. 각 집중영의 전쟁포로들은 정연하게 줄을 서서 국기게양식을 거행하였다. 포로들이 자체로 만든 악기로 연주하는 장엄한 국가 속에 피로물ㄹ든 10폭의 오성붉은기가 바다바람에 나붓기면서 이국 땅 제주도 푸른 상공에 서서히 게양되여 나붓기였다. “차렷!”, “경례!” 구령소리가 나자 질서 정연히 줄지어 선 포로들은 푸른 하늘에 나붓기는 국기에 거수경례를 드렸다. 이국 땅에서 휘날리는 오성붉은기를 보자 전쟁포로들의 마음은 설레였고 눈물이 두 볼을 적시면서 하염없이 흘렀다. 조국에 돌아간듯한 느낌으로 가슴을 들먹였다. 휘날리는 붉은기 아래에서 포로들은 조국의 “국가”, “동방홍”, “조국을 노래하네”와 같은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조국 만세!” “모주석 만세!” 여기저기서 구호소리가 울렸다. 노래소리와 구호소리가 오래도록 메아리쳤다. 제8포로수용소의 10개 포로영에서 10폭의 오성붉은기가 높이 오르자 미군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놈들은 당황한 나머지 11대의 땅크(탱크)와 전신무장한 1개 영의 병력으로 포로수용소를 물샘틈없이 포위하였다. 분위기는 대뜸 팽팽해졌다. 미군 적지휘관은 고성기를 통해 위협하였다. “5분 내 기발을 내리우라! 만약 내리지 않으면 행동할테다!” 포로들은 1분이라도 기발을 더 오래 걸면 그만큼 승리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누구도 적들의 위협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 못 박힌듯이 까딱 움직이지 않고 질서 정연하게 줄 지어 선 채 휘날리는 붉은기를 눈물을 머금고 바라보았다. 5분이 지났다! 또 5분이 지났다. 그러나 붉은기는 의연히 푸르는 하늘에서 휘날리였다. 1개 련의 적들이 철조망 대문을 열고 총칼을 번쩍이면서 7호 포로집중영에 덮쳐들었다. 미군 제8군 정보초의 개다리상위 부르크스가 권총을 뽑아들고 꽥꽥 고함치며 앞장서 뛰여왔다. “기발을 내리웟!” “계속 기발을 안 내릴텐가?! 한 놈도 남기잖고 다 죽여치울테다!” 포로들은 치미는 분노를 누를길없어 일제히 목청껏 웨쳤다. “우리는 죽음을 겁나지 않는다!” “네놈들의 반사발밥을 먹기도 싫다!” “개다리상위놈아, 오기만 해라. 네놈의 대가리를 박산낼테다!” 포로들의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길에 질겁한 적들은 포로들을 향하여 최루탄을 쏘아댔다. 포로들은 코를 싸쥐고 쿨럭거리면서도 누구도 하나 물러서지 않았다. 뒤이어 상관의 명령을 받은 적들이 철조망 안으로 우르르 쓸어들어왔다. 그 놈들은 오성붉은기를 향해 미친듯이 덮쳐들었다. 돌격대와 결사대의 몇십명 포로들은 명령소리와 함께 돌멩이를 뿌려 적들에게 반격을 가하면서 놈들을 막아나섰다. 적들은 망루와 장갑차, 땅크(탱크)에서 중기관총을 쏘았다. 뚜르륵, 뚜르륵… 수많은 포로들이 피못 속에 쓰러졌다. 몇몇 포로들은 비발치는 총탄을 무릅쓰고 재빨리 오성붉은기를 내리워 휘발유를 치고 불태워버렸다. 죽더라도 조국의 국기가 적들의 손에 들어가게 할 수 없었다. 제8포로수용소의 7호포로집중영의 “공산주의단결회”의 기대에서 기발이 내린 것을 보자 다른 아홉개 집중영에서도 기발을 내리웠다. 포로들은 자기 생명으로 적들과 싸우면서 조국의 영광스러운 국경 3돐을 경축하였다. 이날 국기를 보호하는 반시간 동안의 투쟁에서 고용, 마여룡, 진건화 등 50여명 포로들이 영광스럽게 희생되였고 130여명이 부상당하였다. 포로들은 모두 흰옷을 입고 흰꽃을 달고 렬사들의 령위에 200여개 하얀 꽃다발을 올리고 성대한 추도대회를 가졌다. 추도대회가 끝난 뒤 포로들은 줄을 서서 렬사들의 령위를 들고 경비가 삼엄한 집중영 철조망 안을 세바퀴 돌면서 미군 포로영당국에 항의하였다. 그때 오성붉은기를 보호하기 위해 영광스럽게 희생된 제8포로수용소의 전우들을 기념하려고 포로들은 가요 “10월의 붉은기 노래”를 지어 불렀다. 제주도에서 판문점에로 돌아올 때도 그들은 줄곧 이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또 불렀다.                                 
181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5) 댓글:  조회:1145  추천:1  2018-11-27
                 조국의 위문품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는 어느날, 비서과 과장 리홍천이 리해식을 찾았다. “리동무, 조국 인민들이 보낸 위문품을 몇백리 떨어진 후방역에까지 실어왔다오. 이 사업을 맡은 려지전이 일보러 귀국하고 없소. 리동무가 몇몇 전사들을 령솔해 자동차 네대에 실어오오.” “예.” 리해식은 처음 이런 무거운 임무를 맡았기에 저으기 속이 두근거렸다. 리홍천 과장은 긴장한 빛이 흐르는 해식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거듭 당부하였다. “적기가 우리 후방공급도로를 미친듯이 폭격봉쇄하고 있소. 꼭 공습에 주의를 돌려서 위문품을 안전하게 가져오오.” “예, 꼭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해식은 무겁게 대답하면서 두발뒤꿈치를 척 붙이며 거수군례를 척 드렸다. 이윽하여 리해식은 네대의 자동차에 8명 전사들을 이끌고 밤도와 길을 떠났다. 그는 제일 앞의 자동차 운전실 조수석에 앉았다. 자동차 대오는 동북 쪽으로 눈덮인 산길을 누비면서 달렸다. 눈덮인 산들이 차창 밖으로 하여 뒤로 피끗피끗 지나갔다. 가는 길에서는 적기공습을 받지 않아 밤중에 순조롭게 목적지 역 부근에 이를 수 있었다. 창고 둘레에는 철조망을 늘였는데 보초병들이 총을 들고 왔다갔다하는 것이 자동차 헤드라이트불빛에 보였다. 해식은 자동차 운전실에서 뛰여내렸다. 창고 책임자가 다가와 해식이 건넨 소개신을 받아 손전지불로 비춰보더니 창고로 통한 대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자동차에 위문품을 실을 때였다. 해식이 위문품 마대아구리를 풀어보니 안에 숱한 작은 위문품주머니가 가득 들어 있었다. 손으로 만져보니 사탕이랑 비누랑 필기장이랑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네대의 자동차에 위문품을 꽉 박아 싣고 적재함마다 방수포를 씌우고 굵다란 바줄로 꽉 조여동였다. 이윽고 창고대문을 나와 밤눈길을 누비며 서남 쪽으로 달렸다. 리해식은 제일 앞 자동차 운전실 조수석에 앉아 차창 밖의 밤하늘을 주시하였다. 띠띠- 자동차 경적소리가 나자 앞을 살펴보니 조선 백성들이 소수레를 몰고 지나가는 것이 차창 밖으로 피끗피끗 보였다. (운전수들은 다 재간 있어 자동차 운전에는 문제 없을 거야. 적기 공습만 받지 않으면 되겠는데…) 해식은 차창유리를 다 내리우고 밤하늘과 뒤로 물러가는 눈덮인 고산준령을 살폈다. 차대는 어느덧 적기가 자주 폭격하는 따발령길에 들어섰다. 자동차들이 따발령길마루에 올라 내리막길을 달릴 때였다. 땅! 땅! 땅! 갑자기 먼 곳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산꼭대기와 산 아래에서도 총소리가 울렸다. 아군 초소에서 보내는 방공신호였다. “헤드라이트를 끄시오!” 해식의 명령에 따라 해드라이트불빛은 몽땅 꺼졌다. 자동차가 멈춰선 곳은 양지쪽 비탈길이였다. 대낮 해볕에 눈이 다 녹아버려 미끄러운데다가 불빛이 없어 더 달리기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굽인돌이 내리막길이여서 자칫하면 차가 골짜기에 처박힐 위험도 있었다. 이때 적기가 그들 머리 우에서 웅웅거리면서 맴돌았다. 분명 그들의 차대를 발견한 것이였다. 해식이 뒤의 차를 돌아보았다. 운전실에서 한사람씩 뛰여내려 흰천이나 흰수건을 흔들면서 차의 길잡이를 하였다. 운전수들은 그 흰천이나 흰수건을 보면서 차를 천천히 앞으로 내몰았다. 해식도 그들처럼 운전실에서 뛰여내려 허리춤에서 흰 세수수건을 쑥 뽑아쥐고 제일 앞차의 차길을 인도하였다. 찬바람이 윙- 윙- 휘몰아쳐 뼈 속까지 스며들었다. 그들의 차대가 금방 멈춰섰던 곳에서 한백여메터 떠나 내리막으로 내려왔을 때였다. 꽈르릉, 꽈르릉, 꽝, 꽝! 차대가 멈춰섰던 자리에 숱한 폭탄이 작렬하였다. 그 굉음은 귀청을 쨀듯하였다. “허참, 다행이로군.” “하마트면 폭탄에 맞아 콩가루가 될 번했군.” 차길을 인도하던 전사들이 떠들썩했다. 전사들과 운전수들은 자주 자동차로 군수품이랑 싣고 이 곳을 드나들었기에 아주 능란하게 적기의 공습을 대처했던 것이다. 이때 적기가 그들의 상공에 조명탄 두개를 떨구었다. 삽시에 온 산발이 달밤보다도 더 환해졌다. “쳇, 우릴 살려주는군. 동무들, 고속도로 따발령을 벗어납시다!” “옛!” 해식은 뒤에 선 차들에 소리치고 운전실에 올랐다. 운전수들은 헤드라이트를 끈 채 조명탄의 환한 불빛을 빌어 쏜살같이 달렸다. 순식간에 산비탈 굽이진 내리막따발길을 벗어났다. 적기는 저 뒤 멀리 따발령 상공에 떨어져 웅웅거렸다. 적기의 폭격봉새선을 벗어나자 해식은 안도의 숨을 후- 내쉬였다. 그들은 밤낮 적기의 폭격봉쇄선을 뚫고 달려 마침내 사단 전연진지에까지 이르렀다. 리과장은 해식의 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임무를 잘 완수했소. 수고 많이 했소.” 그때 해식은 그저 뒤더수기만 긁적거렸다. 해식은 인차 위문품을 각 퇀에 나눠주었다. 위문품을 받아안은 전호 속의 전우들은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어쩔줄 몰라하면서 더욱 잘 싸우려고 굳게 다짐하였다. 그 정경을 바라보는 해식의 마음은 자그마한 일이라도 한 자부심으로 벅차기만 하였다.                      피로 맺어진 친선        북한강 동안의 산세가 가파로운 어음산고지, 문등도로로부터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상심령고지”에 이르기까지 산에 산마다, 들에 들마다 그 어디에나 중조 두 나라 형제부대에서 어깨겯고 싸운 친선의 노래와 이야기가 깃들지 않은 곳이 없다.        일찍 1951년 가을, 지원군 모 부대에서는 울긋불긋 단퐁이 든 산발을 타고 넘어 조선인민군 모군이 지키던 문등도로연선의 고지를 물려받으러 진군하고 있었다. 그런데 적들은 금성 남쪽에 대한 공세에 배합하려고 아군이 진지를 넘겨받기 이틀 전에 조선인민군 모 군단 진지에 미친듯이 덮쳐들었다.       적들의 밀집포격에 진지는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적지 않은 진지는 개미떼처럼 갑자기 덮쳐드는 적들에게 점령당하였다. 인민군 장병들도 완강하게 저격하다가 수많이 피못 속에 쓰러졌다. 심지어 조선인민군의 한 련대는 에돌아 포위해 조여드는 적들로 하여 아슬아슬한 시각에 이르렀다. 이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자 지원군 모 퇀에서는 명령에 따라 앞당겨 전호 속에 뛰여들어 조선인민군 전사들과 어깨겯고 적들과 백병전을 벌렸다. 지원군 한개 패의 전사들은 직접 조선인민군 한 대대장의 지휘를 받으면서 싸웠다. 이 패의 8반 전사들은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적들과 육박전을 벌리다가 몽땅 장렬히 희생되였다. 부패장 리홍로는 진지에 혼자 남아 적들의 세차례 미친듯한 진공을 물리치고 80여명의 적을 진지 앞에 쓸어눕혔다. 이 패의 영용한 저격으로 하여 조선인민군 모 련대부 기관은 안전하게 앞당겨 후방에 전이하게 되였다. 조선인민군 모 군단 군단장은 이들을 높이 칭찬하면서 진지를 넘겨줄 때 이 지원군부대에 한폭의 축기를 기념으로 드렸다. 지원군 모부가 문등도로연선의 진지를 넘겨받아 지킬 때였다. 하루는 적들의 땅크(탱크) 40대나 무리를 지어 지심을 울리며 문등도로를 따라 기세사납게 덮쳐왔다. 그러나 땅크를 까부신 경험이 적은 지원군 모 퇀의 장병들은 5킬로메터 남짓이 쳐들어온 적 땅크를 노려볼뿐 속수무책이였다. 적들의 땅크는 각일각 우리 지원군 모 퇀부를 위협하며 박근하여왔다. 이 아슬아슬한 시각에 문등도로 동쪽에 있던 조선인민군부대에서 류탄포를 쏘았다. 꽝!꽝! 굉음과 함께 적 땅크 부근에서 버섯구름이 치솟아올랐다. 제일 앞에서 덮쳐오던 4대의 땅크가 자욱한 초연 속에서 무한궤도가 벗겨져 옴짝달싹하지 못하였다. 질겁한 적 땅크들은 그 자리에서 맴돌다가 대가리를 돌려 도망쳤다. 지원군 퇀부의 지휘원과 전사들은 식은땀을 그러쥐였던 손을 스르르 풀면서 한숨을 후- 내쉬였다. 이윽고 조선인민군 부대에서는 7명으로 조직된 조선인민군 반땅크소조를 이 퇀에 파견하였다. 조선인민군 반땅크소조 전우들은 지원군 전호에 건거왔다. “우린 지원군 수장의 지휘에 따라 적 땅크를 까부시러 왔습니다.” “환영하오!” 퇀 수장은 그들의 손을 굳게 잡았다. 조선인민군 반땅크소조의 전사들은 지원군 전사들에게 금방 땅크를 까부신 경험교훈을 총화하면서 땅크격파기술을 차근차근 가르쳐주었다. 그들은 이렇게 석달동안이나 지원군 전사들과 함께 한 전호 속에서 적 땅크와 싸웠다. 이리하여 수많은 반땅크 용사들을 육성해냈다. 그들은 적들의 이른바 “땅크개척전”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하고 진지가 공고해진 뒤에야 조선인민군 진지로 건너갔다. 떠나갈 때 두 나라 형제 전우들은 서로 붙안고 눈물로 두 볼을 적시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실로 피로 맺어진 중조 두 나라 친선의 정이 문등도로연선의 전호마다 산봉우리마다에 차고 넘쳤다. 1953년, 조선인민군 “2.8”건군절 전야에 사단 정치부 비서과 리홍천의 인솔하에 특등공신 팽복례 등 몇몇 영웅모범대표들이 조선인민군 친선사단을 방문하러 갔다. 그때 리해식도 번역원으로 함께 갔다. 그들 일행은 찌프에 앉아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헤가르면서 눈덮인 산길로 달렸다. 그들이 눈덮인 한 높은 산 기슭의 수림 속에 자리잡은 조선인민군 사단 지휘부에 이르렀을 때였다. 미리 길 옆에서 기다리던 친선사단의 정치위원과 부사단장이 정치부의 숱한 동지들과 함께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은채 그들한테로 몰려왔다. “환영합니다! 전우들!” “오느라고 수고했습니다.” 그들은 악수를 한다, 포옹한다 하면서 기뻐 어쩔줄 몰라하였다. 산기슭에서 열린 영웅모범좌담회의장에는 숱한 조선인민군 장병들이 모여앉아 있었다. 리홍천 과장과 팽복례 등 영웅모범대표들과 리해식 등은 조선인민군 사단부 수장들과 함께 주석대에 올랐다. 우뢰 같은 박수소리가 눈덮인 산기슭 대회장에 울려퍼졌다. 조선인민군 친선사단 수장의 환영사에 뒤이어 지원군 특등공신 팽복례가 주석단 발언석에 나갔다. 회의장에는 또 우뢰 같은 박수갈채가 터졌다. 팽복례는 숨을 한껏 들이그어 들먹이는 가슴을 눅잦히고나서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자기 전투사적을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저는 1949년에 서안 남쪽의 소오대산전투에서 입대한 전사입니다. 지금 중국인민지원군 모 퇀 제2련 부지도원입이다. 저는 오늘 제5차 전역때 고대산진지를 어떻게 지켜 싸웠는가를 회보하겠습니다.” 회의장은 물뿌린듯 조용하였고 조선인민군 전우들은 팽복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고대산전투는 우리 사단이 출국한 후의 첫 전투였다. 고대산은 높이가 1,100여메터나 되였다. 서쪽으로 련천에 잇닿았고 북으로는 철원 평원을 내다볼 수 있어 사방 몇십킬로메터를 통제할 수있는 제일 높은 고지였다. 제5차 전역때에는 우리 군이 차지한 중요한 군사요새였다. 적들은 토이기려단의 다섯개 영을 긁어모아가지고 영국의 한 황가땅크영의 엄호하에 이 고지를 돌파구로 삼아 우리 지원군의 전진을 가로막아보려고 망녕되게 시도하였다. 1051년 4월 21일 오후, 2련에서는 고대산을 지킬 전투임무를 맡고 떠나게 되였다. 지도원은 전 련의 동지들에게 힘차게 전투동원을 하였다. “동무들, 이번 전투는 우리 련이 조선에 온 후 첫 전투입니다. 우리는 꼭 나라와 군의 위력을 떨쳐야 합니다. 그 어떤 대가를 내서라도 고대산진지를 지켜 주력부대가 승리적으로 출격하게 해야 합니다!” 전 련 전사들은 우뢰와 같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견결히 나라와 모주석을 위해 우리 군의 영광을 떨치겠습니다!” 그날 밤으로 2련에서는 적들의 미친듯한 폭격과 포격을 무릅쓰고 아아한 고대산에 올라갔다. 팽복례는 한개 전투소조를 데리고 고대산의 맨 앞에 있는 전연진지에 배치되였다. 그들은 인차 밤도와 괭이와 공병삽으로 전호를 팠다. 타는듯한 침묵 속에서 새날이 밝아왔다. 그들은 전호 속에 엎디여 총을 겨누고 산 아래를 노려보았다. 오전 9시 쯤 되였을 때였다. 쌩- 쌩- 포탄이 날아와 진지에서 련이어 작렬하였다. 꽝! 꽈르릉 꽝! 꽝! 뒤이어 남쪽 하늘에서 적기가 편대를 지어 날아왔다. 적기는 기수를 낮추더니 산마루 진지를 스칠듯이 날아지나가면서 기총소사를 하고 소이탄을 내려뜨렸다. 적기는 쉼없이 겨끔내기로 폭격해댔다. 진지는 삽시에 불바다로 되였다. 파편과 흙모래, 돌과 끊어진 나무가지들이 사처로 날아났다. 전호 속에 엎딘 그들의 온몸은 흙모래에 뒤덮였다. 팽복례는 머리 우의 흙먼지를 도리머리질해 털고 산 아래 적들의 동정과 하늘을 번갈아 살폈다. 때마침 적기가 기수를 낮추고 앵- 아츠러운 소리를 지르면서 기총소사를 해댔다. “그때 저는 압록강을 건는 이튿날에 본 비참한 정경이 떠올랐습니다. 미제 공중날강도들의 폭격을 받아 재더미로 된 한 마을을 지날 때였습니다. 한 젊은 녀성이 피못 속에 쓰러졌는데 서너살 된 어린애가 고사리손으로 그 녀인의 얼굴을 쥐여 흔들면서 ‘어머니, 어머니.’ 하고 애처롭게 울지 않겠습니까. 그때 또 갑자기 적기가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폭탄을 떨궜습니다. 하마트면 그 어린애의 목숨마저 빼앗아갈 번했습니다. 미제 공중날강도들은 아름다운 조선의 그 얼마나 많은 도시와 마을을 재더미로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그 얼마나 많은 부녀들과 어린애들의 목숨을 빼앗아가갔는지 모릅니다. 그때부터 미제 공중날강도를 보면 저는 기관단총을 들어 미제 날강도놈들에게 한배짐씩 갈기군 했습니다.” 팽복례의 말을 리해식이 번역하자 제일 앞줄에 앉았던 조선인민군 고사포수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 구호를 불렀다. “미제 공중날강도를 타도하자!” “타도하자!” 구호소리는 하늘땅을 뒤흔들었다. 또다시 조용해지자 팽복례는 계속 이야기했다. 폭격이 멎자 적들은 한개 련이나 되는 병력으로 그들 셋이 지키는 고지에로 개미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런데 왼쪽에 엎디여 적들에게 불벼락을 안기던 전우의 총소리가 뚝 끊었다. 피끗 머리를 돌려보니 그 전우의 귀언저리에서 선지피가 쿨쿨 쏟아져 흐르고 있지 않겠는가. 팽복례가 바삐 그 전우를 안아 전호 속에 내리워놓고 보니 이마로부터 귀 우에 관통상을 입어 피와 뇌장이 섞여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피묻은 그 한쌍의 눈, 복수심으로 이글거리는 눈만은 부릅뜬 채 한 곳을 무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전우의 시체를 내려놓은 팽복례는 적들에게 몰사격을 들이댔다. “이 개놈들아! 오라! 다 죽여버리겠다!” 그는 성난 사자처럼 고함치면서 사격하였다. 적들은 무리로 쓰러졌다. 산 아래로 물러내려갔던 적들은 군관이 권총으로 위협하자 또다시 고지에로 덮쳐왔다. 팽복례가 한창 사격하고 있을 때였다. 오른쪽에 있던 전우가 수류탄을 뿌리면서 일어섰다가 그만 오른 가슴을 붙안고 “억!” 하며 쓰러졌다. 팽복례가 달려가 그 전우를 안고 붕대뭉치를 가슴에 넣었지만 피는 쿨쿨 나오기만 하였다. 적들이 코 밑까지 덮쳐왔다. 그는 전우를 내려놓고 전우의 피묻은 기관단총을 들고 적들에게 맹렬히 사격하였다. 적들은 맹사격에 숱한 주검을 남긴 채 산 아래로 몰켜내려갔다. 그는 숨진 두 전우의 시체를 안아다가 제일 견고한 전호에 조용히 눕혀놓고 속궁리를 하였다. (혼자서 어떻게 할가? 마구 해재껴볼가? 안돼! 내가 죽는 건 별문제다. 그러나 진지는 누가 지키겠는가? 이 진지를 빼앗긴다면 주력부대의 출격에 불리해.) 그는 연기가 군데군데 피여오르고 적들의 주검이 겹겹이 쌓인 상중턱에 눈길을 돌렸다. (적들은 무리승냥이처럼 많고 나는 혼자다. 어떻게 하면 고지를 지켜낼가?) 그는 기관단총 탄창에 복수의 탄알을 한알한알 꽉 재워넣었다. 흙 속에 파묻힌 수류탄을 하나하나 파내 전호 앞에 쌓아놓았다. 그런데 위력이 센 수뢰가 보이지 않았다. 초조하게 전호 안을 쓸어보던 그의 눈길은 미시가루주머니에 가 멎었다. (옳지!) 그는 무릎을 탁 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미시가루주머니를 오리오리 찢어 수류탄을 서너개씩 한데 쥐여 묶었다. 그것을 수뢰대용으로 쓰려는 것이였다. 푱! 푱! 갑자기 산 아래에서 총알이 날아와 전호 앞 돌멩이에 부딪쳐 돌가루를 날렸다. 후닥닥 일어나보니 2개 중대나 되는 적들이 그가 혼자 지키는 고지에로 엉금엉금 기여오르고 있지 않겠는가! 이때 포탄이 날아와 진지의 여기저기에서 터졌다. 포격이 멎자 적들은 주린 이리떼처럼 고함치면서 욱 덮쳐왔다. “개놈들!” 팽복례는 적들을 향해 맹렬히 사격하였다. 그는 여기저기 뛰여다니면서 가까이 다가드는 놈들부터 쏴눕혔다. 토이기 병사 두 놈이 전호 속에까지 뛰여들어왔다. 그 두 놈은 전호에 있는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아둔하게도 산꼭대기에 대고 헛총질하였다. 팽복례가 총을 쏴 죽이려는데 10여메터 되는 전호 앞에 또 한놈이 뛰여내렸다. 그 놈은 전호 굽인돌이에 착 붙어 선 팽복례를 발견하지 못하고 눈깔을 희번뜩거리면서 전호 안을 이리저리 살피며 이쪽으로 다가들었다. 땅! 땅! 팽복례가 선손을 써 그 놈을 쓸어눕혔다. 뒤에서 나는 총소리에 몸을 돌린 두 토이기(터키) 병사가 영문을 차리기도 전에 팽복례가 수류탄을 날렸다. 꽝! 굉음과 함께 그 두 놈도 자욱이 일어나는 연기 속에 스러졌다. 이때 전호 밖에서 적들은 팽복례가 혼자인줄 발견하고 새까맣게 무리지어 미친듯이 덮쳐왔다. 이 위기일발의 시각에 팽복례는 미리 묶어놓은 수랴탄을 한묶음 한묶음 적들의 무리 속에 냅다 뿌렸다. 꽝, 꽈르릉 꽝! 꽝! 련속 일어나는 굉음과 함께 적들의 시체 우에 적들이 뻐드려져 겹겹이 쌓였다. 나머지 적들이 산 아래로 뒤걸음질치다가 줄행랑을 놓을 때까지 그는 수류탄을 뿌리고 또 뿌렸다. 팽복례는 용감하고 슬기롭게 혼자서 3개 중대나 되는 적들과 싸우면서 고대산고지를 굳게 지켜냈다. 장내에서는 우뢰 같은 박수소리가 터졌다. 팽복례가 주석단에 돌아와 앉았는데도 박수소리는 오래도록 그칠줄 몰랐다. 인민군 장병들은 박수를 치며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 조선인민군 한 군관은 팽복례의 두 손을 굳게 잡아흔들면서 찬탄하였다. “당신은 참 대단합니다. 혼자서 3개 중대 놈들과 싸워 이겼으니깐. 당신은 실로 령활하구만. 미시라루주머니마저 놈들과 싸우게 했다니까. 허허허.” “하하하.” 숱한 장병들이 웃음보를 터뜨렸다. “계속하여 조선인민군 첫 녀고사포수 김창화동무가 자기 전투사적을 소개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소개에 뒤이어 열렬한  박수소리 속에서 퇴색한 군복을 입은 수무나문살 되는 녀전사가 주석단 발언석으로 성큼성큼 걸어나왔다. 억대우 같은 그녀는 녀자 같지 않아 보였다. 그는 남자 목소리처럼 웅글진 목소리로 말하였다. “저는 조선인민군 녀전사입니다. 미제 공중날강들이 우리 사랑스러운 조국의 하늘에서 마구 미쳐날뛰면서 숱한 형제자매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저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여 저는 남성동무들처럼 고사포수로 돼 미제 공중날강도들을 호되게 족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처음 제가 고사포수로 되려고 하자 수장들은 ‘고사포수는 녀자들이 할 일이 아니요.’ 하고 거절하였댔습니다. 제가 하도 졸라대니깐 수장들은 응낙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조수로 돼 남성동무들에게서 고사포 조종과 사격 기술을 까근하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은 순풍에 돛단듯이 쉬운 것이 아니였습니다. 처음 적기가 나타났을 때 제가 너무 긴장한데다가 적개심에만 불타다보니 고사포를 제대로 조종하지 못해 적기가 그만 꽁무니를 빼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락심하지 않고 고사포다루기를 계속 꾸준히 익혔습니다. 그후 적기 네대가 날아왔을 때 잘 묘준해 쏘았습니다. 한대가 떨어지고 세대는 격상되였습니다.” 장내에서는 우뢰 같은 박수소리가 터졌다. 김창화는 발언석에서 내려 지원군 수장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그때 그녀는 리해식과도 악수를 나누었다. 그녀의 손아귀가 어찌나 센지 손이 시큰해났다. 뒤이어 김창화 등 녀고사포수들이 고사기관포 조종표현을 하였다. 억대우 같은 김창화는 고사기관포 각을 뜯자 그 무거운 포신을 혼자 척 둘러메고 내닫는 것이였다. 뒤이어 고사기관포 각을 번개같이 맞추고 빙글빙글 조종대를 돌려 목표를 겨누는 것이였다. 잇달아 박수갈채가 터졌다. 그날 해질 무렵에야 두 나라 군대 영웅모범좌담회의가 끝났다. 두 나라 장병들은 굳게 악수를 나누면서 석별의 정을 금치 못하였다. 그들은 갈라지기 아쉬운 마음으로 찌프에 앉아 눈길로 서서히 미끌어져나갔다. 그후부터 지원군 친선대표단이 조선인민군 그 사단으로 가기만 하면 꼭 녀고사포수 김창화를 의례히 찾아보았다. 조선인민군 그 사단의 친선대표단에서는 지원군 이 사단에 오기만 하면 꼭 팽복례를 만나보고서야 돌아갔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두 나라 두 사단의 형제부대가 전선에서 피로 맺은 전투적친선의 정은 날따라 깊어만 갔다              제5장 개성에서의 나날                        개성에로       1953년 4월 말에 리해식은 사단 대적공작과로부터 군단 정치부 대적공작과에 전근해 사업하게 되였다.        6월 초의 어느 하루, 리해식은 한 과에 있는 조리원 리묵과 함께 군단 포로수용소에서 방금 전선에서 압송해온 포로를 심문하여 적정자료를 정리하였다.        대적공작과에서 새로운 임무가 있기에 해식더러 인차 돌아오라는 기별이 왔다.        “리동무, 심문한 재료를 옛소. 마저 수고하오.”         “다시 만나기요.”         리해식은 리묵과 굳게 악수를 나누고는 이불짐을 꿍져메고 부랴부랴 군단 대적공작과로 돌아갔다.         거기에는 벌써 해식의 로전우 조선어번역원 김진태, 강길하가 있었다. 이밖에도 여러 사단에서 선발한 사단 정치부 주임과 퇀 정치위원, 사단 보위과장, 영 교도원까지 하여 모두 23명이나 와 있었다.         군단 참모장 등임준은 그들을 둘러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동무들은 우리 군에서 여덟가지 조건에 따라 선발해온 간부들입니다. 동무들은 우리 군의 해석대표단 일원으로 되여 개성으로 가서 중조정전대표단의 사업을 한몫씩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         모두들 뜻밖의 일이라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이어 개성정전담판 과정과 추세 및 우리 지원군 군단에 있다가 포로된 사람들의 기본정황을 소개하였다.         조선전쟁의 특점은 미제 침략자들과 군사상에서 치렬한 투쟁을 할뿐만아니라 정치상에서도 치렬한 투쟁을 하는 것이였다. 때문에 조선전쟁은 군사와 정치 투쟁이 뒤얽힌 첨예하고도 복잡한 투쟁이였다.        1951년 7월 10일에 조선군사정전담판이 시작된 이래 조선전쟁은 싸우다가  담판하고 담판하다가도 싸우는 국면으로 넘어갔다.        1953년 3월 말, 중조 두 나라 정부에서는 또다시 전쟁포로를 교환할 문제를 공평하고도 합리하게 해결할 방안을 내놓았다. 중조측대표단의 노력으로 하여 4월 중순에 오래동안 끌어오던 전쟁포로송환문제에 대한 담판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교활한 적들은 조중측의 성의와 노력을 도외시하고 “전쟁포로를 되돌려보내는 문제”와 ‘정전감독문제” 담판을 질질 끌어대였다. 당시 우리 중조 두 나라 부대의 병력은 대단하였으며 군사물자공급이 충족하였고 싸울수록 강대해졌다. 정전담판에 배합하기 위해 5월 중순에 중조 두 나라 전선부대들에서는 금성 일대에서 제1차 진공을 들이대여 적들에게 침중한 타격을 주었다. 하여 정전담판석상에서 미국과 영국의 태도는 좀 누그러들었다. 그러나 리승만은 미군 호전집단의 지지 밑에 계속 담판에 참가하지 않았을뿐만아니라 무력으로 북침하여 조선반도를 통일하려고 망상하면서 담판의 진전을 막아나섰다. 이런 정황에 근거하여 우리 중조 부대에서는 원래 서쪽의 미군을 위주로 치던 계획을 고쳐 동쪽의 괴뢰군을 위주로 족치고 적당히 미군을 치며 영군을 잠시 치지 않는 전술을 썼다. 하여 5월 중순부터 금성 남부계선에서 두번째 공격을 발동하였다. 이 공격전에서 아군은 세개 퇀의 우세한 병력으로 리승만 괴뢰군 제5사단 27련대를 돌연습격하여 한시간 10분 동안에 적들을 몽땅 섬멸해버렸다. 그리고 리승만 괴뢰군 제8사단을 포함하여 도합 4만 1천여명의 적을 살상, 포로하고 정면적진을 12킬로메터나 무찔러나갔으며 6킬로메터나 뚫고 들어갔다. 호된 타격을 받은 미제 침략군은 당황한 나머지 급급히 판문점담판석상에 나와 태도를 고쳤다. 하여 조선정전이 실현될 가능성이 어느때보다도 매우 커졌다. 판문점에서는 당금 실현될 정전을 위해 여러가지 준비사업을 바삐 서두르고 있었다. 이제 바야흐로 도장을 찍게 될 조선정전협정서의 포로송환에 관한 규정에 따라 참전쌍방에서는 규정된 수효의 해석대표단을 쌍방의 전쟁포로수용소에 보내 직접 되돌려보내지 않는 포로들을 설복하여 제 나라로 돌아가게 하여야 하였다. 군참모장 등임준은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동무들은 이전에 해본적 없는 포로송환사업을 하게 되였습니다. 전 군단 동지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승리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후 돌아올 것을 축원합니다.” 6월 6일 밤, 리해식, 김진태 등 일행은 군부 주둔지 자제동에서 자동차에 앉아 개성을 바라고 밤길을 누비며 서쪽으로 달렸다. 달리는 차에서 저 멀리 뒤로 물러가는 주마등 같은 산등성이들을 바라보면서 리해식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이번에는 코를 맞대고 적들과 싸우게 됐구나. 적들은 우리 조선족번역일군들을 아니꼬와할텐데…” 리해식은 자동차에 앉아서 갈마드는 심정을 눅잦히려고 눈을 스르르 감고 잠을 청하였다. 그들이 탄 자동차는 8월 오전 7시 쯤에 길고도 긴 골짜기를 따라 굽이굽이 달리다가 당시 전 세계 인민들이 주목한 조선중립구 개성시에 들어섰다. 개성시는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였다. 남쪽에는 진봉산이 우뚝 솟아 있고 북쪽에는 가파로운 송악산이 38선을 등제 진채 우뚝 서 있었다. 아아한 송악산 아래 자리잡은 개성시내에 은띠 같은 시내물이 울퉁불퉁한 언덕 사이로 흐르는 것이 자동차 우에서 완연히 내려다보였다. 시내물을 따라 언덕에 자리잡은 조선 옛식 기와집들이 거개가 그대로 풍치있게 서 있는 것이 한눈에 안겨왔다. 개성시의 큰길에 들어서니 거리는 숱한 행인들과 달리는 차들로 붐비였다. 먼 곳에서 들리는 포소리 외에 개성시 상공에는 적기의 아츠런 엔진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조선전쟁터에 나온 뒤 포화가 울부짖는 전선에서 밤을 대낮으로 삼던 우리는 처음으로 대낮에 차를 타고 조선 땅 우의 들끓는 사가지로 달렸다. 실로 딴 세상에 들어선듯하였다. 이때 한 동무는 기쁜 마음을 누를길없어 달리는 자동차 우에서 두팔을 쭉 벌리더니 시를 읊듯 말하였다. “아, 끝내 평화로운 도시 개성에 오고야 말았구나!” 그들은 개성에 들어간 후 새 임무를 맡아 하게 되였다. 강길화와 리해식은 정전대표단 정치부 선전교육과에서 문화사업을 맡게 되였고 김진태는 대안감독소조에 갔으며 사단 보위과장 량자단은 경위처에 가 사업하게 되였다.                     유서깊은 옛도시 개성       개성은 조선 반도 중부에 있는 유서깊은 유명한 옛도시이다. 일찍 고려왕조의 시조 왕건이 918년에 개경(오늘의 개성)을 고려의 수도(서울)로 정해서부터 1392년에 고려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근 500년 동안의 력사를 가진 고려왕조의 수도(서울)이였다. 천여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옛도시 개성에는 아직도 고려 명승고적이 그대로 많이 남아 있었다.       난생처음 개성에 온 리해식은 개성의 명승고적에 부쩍 호기심이 동하였다. 그와 김진태는 쉴짬이거나 저녁식시후면 좋다하는 이런 명승고적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보았다. 실로 백문불여일견이라고 직접 자기 눈으로 보니 현란할 정도로 황홀하였다.      어느날, 그들은 송악산 남쪽에 있는 명승고적 “망월대”에 가 보았다. 송악산 남쪽 기슭으로 해서 한 50메터 올라가자 20메터쯤 되는 돌층계가 나타났다. 그 돌층계를 올라가니 승평문 유적이 나타났고 동서로 길이 450메터, 남북으로 너비 150메터나 되는 넓은 옛날 콩크리트바닥이 훤하게 한눈에 안겨왔다. 광장 같은 이 곳은 원래 고려왕조 궁전의 옛터로서 회경전을 중심으로 수많은 궁전이 들어앉아 있었다. 그런데 1361년 홍두군이 쳐들어와 호화로운 고려왕궁전은 몽땅 재더미로 되였고 지금은 그 청석돌바닥이 광장처럼 훤하게 남아 있을뿐이였다. 력사기재에 따르면, 원래 “만월대”는 “망월대”였는데 후에 “만월대”라고 고쳤다 한다. 옛날에는 망월대의 궁전에서 회경전이 중심궁전이였고 그 남쪽 정면에는 승평문이 있었는데 어전의 주요출입문이였다. 회경전의 좌우에는 동락정이 대칭되게 세워져 있었는데 이름 그대로 궁전의 오락장소였다. 회경전의 남북에는 신풍문이 있었으며 동서에는 춘덕문이 있어 회경전으로부터 직접 왕후와 왕귀비의 진궁과 춘궁에 이를 수 있었다. 서쪽 정면 옆으로 하여 난 태초문은 임금의 침궁인 건덕전에 이르는 문이였다. 회경전의 기초돌은 아직도 군데군데 들쓱날쑥하여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회경전 뒤쪽에 있던 장화전, 원덕전과 자화전 등 적지 않은 궁전의 기초돌은 거개가 알아볼 수 없게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 정경을 둘러보자 해식은 가슴이 뭉클해났다.                         망월대                쓸쓸하고도 슬프도다              하늘 찌르던 왕궁은 어디메뇨?              썩고 만 망월대 맨 바닥만 남았구나               처량하게도 잡초 속에                 묻노니, 천하를 호령하던 옛 임금 어데 가고               너울너울 춤 추던 궁녀들은 어디에 갔노?               양키놈들 철발굽에 조상들 산소 짓밟히거늘               망월대 옛터는 비분에 몸소리치누나   정전 후 지원군담판대표단에서는 망월대의 빤빤한 맨 바닥 북쪽으로 하여 대단히 큰 무대형구락부를 지었다. 대표단에서는 여기에서 대형 집회, 구기시합, 연극과 영화관람 등 활동을 벌렸다. 어느날, 리해식과 김진태는 개성시 중심의 북안동 경내에 있는, 소문 높은 남대문을 퍽 인상깊게 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벌써 여러 나라에서 온 여러가지 살색의 기자들이 노랗고 하얀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사진을 찍는다, 구경한다 하면서 떠들썩하고 있었다. 소문과는 달리 남대문 성루는 미제 공중날강도들의 폭격에 은데간데 없고 다만 무지개식 돌문과 돌각담이 남아 있었고 그 우에 원래 성루에 걸렸던 커다날 종이 놓여 있었다. 이 종은 “선복사종”이였는데 창평의 “상원사종”, 경주의 “복덕사종”, 천안의 “성지사종”, 지평의 “상원사종”과 함께 조선의 5대 명종 가운데의 하나였다. 이 옛종은 청동으로 부어 만든 것이였다. 직경은 1,8메터, 높이는 2.12메터, 웃부분의 직경은 0.23메터, 무게는 14톤이나 되는 큰 종이였다. 주요 공예는 매우 독특하였는바 종의 겉면에는 우로부터 아래로 꽃무늬가 일곱줄로 새겨져 있었고 그 꽃무늬로 종을 아래우가 나뉘게 그려놓았다. 일곱줄의 꽃무늬 사이에 사자와 범, 말과 같은 여러가지 동물과 한자, 고조선어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가석하게도 미제 날강도들의 폭탄파편에 맞아 종의 여기저기에 깊고 누런 생채기가 나 있었다. 심지어 어떤 곳은 구멍이 펑펑 뚫렸다. 리해식과 김진태는 종을 돌아가면서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세여보았다. 27곳이나 깊은 상처를 입지 않았겠는가. 력사기재에 따르면 이 옛종은 1336년 고려목왕 2년에 부어만든 것으로서 원래는 개성시의 선복사에 걸려 있었는데 1563년 리조 명종 18년에 선복사가 불에 타버리자 개성시 남대문 루각에 옮겨다 걸어놓았다고 한다. 남대문도 지금과는 달리 아주 장관이였다고 한다. 남대문은 원래 옛 고려 서울 개경 반월성의 남정문루각이였다. 고려왕조가 망한 해인 1391년에 짓기 시작하여 리씨왕조가 선 이듬해인 1393년 리씨왕조 태조 2년에 남대문루각을 다 지었고 한다. 당지 사람들의 소개에 따르면 남대문에는 미제 공중날강도들의 폭격을 맞기 전까지만 해도 커다란 무지개식돌대문 우에 30메터 길이나 되는 다섯칸의 목제루각이 있어 매우 웅위롭고 장관이였다고 한다. 비록 웅위로운 루각은 미제 날강도들의 폭격에 날아났지만 해식과 진태는 무지개식돌대문 우에 놓인 커다란 옛선복사종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찰칵 찍었다. 당시 개성 남대문이 숱한 유람객을 끈데는 그가 력사의 견증자라는데도 있었다. 1950년 4월 남조선 소장 김석원이 개성 남대문루각에서 기세흉흉하게 군대를 사열하였다. 그는 숱한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떠들어댔다. “이제 북진명령이 내리기만 하면 일거에 38선을 돌파하고 북진할 것이다. 38선을 돌파하는데는 오직 나 김석원만이 해낼 수 있다.” 김석원은 아마 1949년의 5월부터 10월 사이에 두번이나 있은 처참한 실패를 잊은 것 같았다. 당시 남조선 괴뢰군 제1사단 상좌사장 겸 38선지구전선 사령관으로 있은 김석원은 다섯달 사이에 두번이나 38선 이북을 들이쳤다. 그런데 번마다 조선인민군 경비대의 호된 타격을 받았다. 1949년 5월, 김석원은 직접 괴뢰군 제1사단 주력인 제11련대를 지휘하여 송악산으로부터 북반부를 쳐들어갔다. 그때 괴뢰군은 조선인민군에게 호되게 얻어맞아 볼꼴없이 송악산으로부터 개성 남대문 앞에까지 쫓기워 갔다. 1950년 6월 25일, 평양시간으로 6시에 미제와 리승만괴뢰군이 북침할 때도 조선 북반부를 진공하는 남조선 괴뢰군의 첫발의 포탄도 바로 당시 남조선 괴뢰군이 차지한 개성 남대문 앞에서 쏘았다. 북반부로 제일 먼저 쳐들어간 괴뢰군부대 역시 바로 두달 전에 남대문루각에서 우줄렁거리면서 떠들어대던 김석원이 지휘한 적이 있는 괴뢰군 제1사단이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오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품 속으로 돌아온 개성시 남대문은 제일 훌륭한 견증자가 아닌가. 적들은 졌고 인민은 이겼다. 후에 리해식이 개성을 떠난 1955년에 개성시 인민들은 남대문루각을 원 모양대로 수건하고 서녹사종을 남대문루각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개성의 선죽교는 고려왕조의 충신이며 저명한 학자 정몽주(1337년-1392년)가 리조 태조 리성계의 아들 리방원 일파에게 손죽교에서 피살된데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리해식과 김진태가 개성시 교외 선죽동 경내 우거진 나무숲 속에 자리잡은 선죽교로 갔을 때였다. 흐르는 강물은 없고 흙모래가 물곬을 꽉 메워 다리 웃면과 다리 란간, 쇠사슬만 지면에 드러나 있었다. 돌다리 웃면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을 보아 선죽교도 그리 크지 않은 것이 엿보였다. 원래 다리 밑으로 로계라는 강이 있어 강물이 흘렀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의 철발굽이 조선의 땅을 짓밟을 때였다. 일본 놈들은 당지 백성들을 핍박하여 선죽교 밑으로 흐르던 로계강 물곬을 50메터 떨어진 곳에로 돌려놓게 강박하였다. 그때로부터 선죽교 아래에는 강물이 흐르지 못하였다. 하여 말을 타고 빠져나갈 수 있던 다리 구멍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흙모래에 막히웠고 나중에는 다리 웃면과 란간 밖에 남지 않았다. 다리 웃면에 둘러세운 란간과 쇠사슬은 듣는 말에 의하면 정몽주의 후예들이 1780년 리씨왕조 정조 4년에 이 다리를 보존하려고 세운 것이라고 한다. 선죽교 옆에는 돌다리 하나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 다리 역시 그때 정몽주 후예들이 선죽교를 보존하려고 인도교를 따로 놓은 것이라고 한다. 선죽교는 지금으로부터 1천여년 전인 919년에 고려왕조 태조 왕건이 서울 개경(오늘의 개성) 성곽에 짓기 시작하여 놓은 것이다. 당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돌로 쌓아놓은 이 선죽교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흙모래에 묻히기 전에는 아주 장관이였다고 한다. 리해식과 김진태는 장관을 이루었던 선죽교를 눈 앞에 그려보면서 선죽교를 둘러싼 돌란간을 이어놓은 쇠사슬에 걸터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선죽동 경내에는 또 정몽주가 공부를 한 적이 있는 “송양서원”이 있었다. 아늑하게 자리잡은 송양서원의 푸른 기와, 건뜻 쳐들린 처마, 참말로 조선민족의 건축특색이 짙게 안겨왔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송양서원”은 개성에 남아 있는 력사고적 중에서 력사가 제일 유구하다고 한다. 옛날 정몽주는 리성계의 아들 리방원 일파에게 피살되기 전에 이 곳에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후에 1573년 리조 선조 6년에 개성의 유생들이 정몽주의 자에 따라 이 서원을 “문충당”이라고 이름을 달아 선배문학가이며 고려왕조의 마지막충신 정몽주를 기리였다. 1575년 리씨왕조 선조 8년에 조정에서는 이 서원에 “송양서원”이라는 편액을 내려서 걸게 하였다. 지금 볼 수 있는 “송양서원”이란 편액은 바로 그때 건 조정의 편액이라고 한다. 개성시 인민들은 정몽주에 관한 일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리해식 등에게 개성시 운학동 경내에 목청전이 있다면서 그 곳에 유관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목청전은 리씨왕조 시조 리성계가 즉위하기 전에 들어 있던 집이였다. 정몽주는 리성계 아들 리방원 일파에게 살해되기 전에 목청전에서 일찍 리성계가 베푼 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고 한다. 리성계가 리씨왕조 시조로 된 후 1410년 태종 18년에 목청전을 궁전으로 고쳤으며 후에 리씨왕조가 한양(지금의 서울)에 궁전을 옮긴 후에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절당으로 되였다. 1950년 12월, 미제와 리승만괴뢰군이 개성에서 철퇴할 때 불을 질러 목청전의 수많은 건축물이 불타버렸고 그 나머지는 적기의 수차 폭격에 재더미로 되였으며 비바람에 씻기워 흙무지로 돼버렸다. 듣는 말에 의하면, 정전 후 조선정부에서는 목청전이 있던 곳에 이전 모습대로 목청전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개성은 또 세계에 이름난 인삼의 고향이였다. 개성시의 여기저기에는 인삼장이 많기도 하였다. 우리 중조 두나라 정전담판대표단 정치부 주둔지인 만월대 밖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 인삼장의 가공공장이 있었다. 원래 가공공장건물은 다 적기의 폭격에 무너져 로동자들은 림시로 지은 간이설비로 인삼을 가공하여 밖에 내다가 말리우고 있었다. 리해식과 김진태는 늘 밥술이 떨어지기 바쁘게 인삼장에 가서 거닐면서 인삼을 말리우는  공예과정을 돌아보군 하였다. 시간이 오래되자 처녀로동자들과 낯이 익게 되였다. 처녀들은 그들이 나타나자 생글방글 웃으면서 인삼뿌리를 한줌 쥐여주었다. “가져다가 뜨거운 물에 불궈 마시라요.” 리해식이 부드럽게 사양하자 처녀들은 까르르 웃어댔다. “지원군동지들은 실로 기률이 너무나도 많죠. 인삼뿌리를 몇뿌리 맛보는데요. 큰 일 나겠어요? 돈 내라는 것도 아닌데요. 호호호.” 리해식도 웃으면서 처녀들에게 한미디 하였다.        “바로 동무들이 돈을 안 받기에 감히 가져가지 못합니다.”        그러자 처녀들은 또 깔깔 웃어댔다.
180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4) 댓글:  조회:1425  추천:0  2018-11-22
                                   대적정치공세       아군이 지키는 어음산과 500고지, 백운산으로부터 한강 동안에 이르기까지 뻗은 산과 산골짜기에는 백설이 새하얗게 뒤덮였다. 새하얀 어음산은 그 꼭대기가 흰 구름 속에 잠겨 있어 먼 곳에서 보면 산꼭대기와 구름을 분간하기조차 힘들었다.        어둠이 깃든 뒤 은빛 달빛이 깔린 산마루는 참말로 장관을 이루었다.       1953년 양력설을 전후하여 리해식이 소속한 중국인민지원군 60군 181사는 전례없는 대적정치공세를 발동하였다. 일찍 국내 해방전쟁시기 181사단은  태원전역에서 정치공세로 6,730여명의 적을 포로했거나 쟁취하였으며 사천 북부에서도 토비숙청할 때에도 2정치공세로 5, 500여명의 토비들을 포로했거나 쟁취하여 상급의 칭찬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군의 승리는 아군의 작전에 의거할뿐만아니라 적군에 대한 와해공작에도 의거해야 한다는 모택동 주석의 빛나는 사상과 대적정치공세에 대한 지시에 근거하여 사단에서는 정치부 범극양 주임의 령솔하에 두차레 회의를 열고 사단 정면의 리승만 괴뢰군 제3사단의 정치사상정황을 참답게 분석한 다음 전연진지의 보병과 포병에 배합하여 새 해에 대적정치공세를 벌리기로 결정하였다. 전 사단에서는 리해식을 비롯한 19명 조선족번역원을 뽑아 각 퇀의 전연진지에 보냈다. 그때 리해식은 사단 비서과로부터 다시 대적공작과에 돌아가 사업하였다. 그 외에 조선인민군에서 1년 남짓이 대적정치공세방송을 한 적이 있는 리정숙과 안옥순을 비롯한 6명의 방송원(아나운서)이 사단 대적공작과에 와서 방송을 하게 되였다. 그때 사단 오른쪽에 위치한 상감령에서는 적아쌍방이 한창 판가리싸움을 벌리고 있었다. 그때 해식 등은 적아 사이의 거리가 백메터로부터 천여메터 밖에 안되는 유리한 환경을 리용해 대적정치공세를 발동하였다. 대적공작과에서는 지휘소의 통일적인 지휘 아래 방송소를 꾸리고 만화를 그리였으며 구호판을 만들었고 삐라를 등사하였다. 그리고 적들에게 보낼 “선물주머니”에 사탕, 과자, 담배, 술, 마른 낙지, 일용품, 삐라와 “안전통행증”을 나눠 넣는 일을 해나갔다. 초연이 자욱한 싸움터에서 하루의 전투가 끝나 밤의 정적이 내리드리우면 포화에 그은 진지에도 무거운 정적이 깃들기 시작한다. 적병들은 아군의 저격탄에 맞을가봐 온 하루종일 가슴을 조이면서 알음장같이 차가운 전호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차디찬 또치카 안으로 기여들어가 얼음덩이처럼 차고 굳은 주먹밥을 긁어먹는다. 그들에게는 진지의 정적이 새로운 비애와 공포의 시작으로 되는 것이였다. 이럴 때면 헤여진지 오랜 친지들을 더욱 그리게 된다. 적병들의 이런 심리상태를 꿰뚫어보고 있는 아군 제1선진지의 대적공작조는 대를 놓칠세라 대적정치공세방송을 시작하군 하였다. 민족감정이 짙은 조선인민군 녀방송원의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적진상공의 정적을 헤가르며 산간에 메아리쳤다.   “괴뢰군 병사들, 그대들은 엄동설한의 고지 우에서 얼마나 고생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대들이 미제 침략자들과 그자들의 꼭두각시질하는 허수아비 괴뢰대통령 리승만역도에게 강제로 끌려나와 언제 죽음이 차례질지도 모르는 몸서리치는 위험 속에서 등 시리고 손 시린 고용병의 설음을 겪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대들이 우리 방송에 귀를 기울이는 이 시각 저 하늘의 밝은 달을 우러러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그대들은 도대체 누굴 위해 미제 놈들의 대포밥이 돼야 합니까? 그대들이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고 있는 이 시각, 그대들의 부모처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들도 미제 식민지 리승만괴뢰정부의 시달림 속에서 그대들과 마찬가지로 무서운 인생고를 치르고 있습니다…”   아군 방송에 적병들의 반향을 수집하려고 어음산 서쪽 산비탈에 설치한 아군 방송소에서는 방송이 시작되면 첫날에 조선족번역원 1명과 패장 1명, 전사 2명으로 무어진 도청소조를 적진 가까이에 파견하였다. 그들의 모험적인 행동이 일단 발견되면 위험하기에 전연진지의 총포가 몽땅 동원되여 그들을 보호할 대책을 미리 세워놓았다. 그들은 흰 위장복을 입고 사전에 정찰해놓은 로선을 따라 한자 두께나 되는 적설을 헤치며 적진에서 20메터 떨어진 곳에까지 기여들어갔다. 마침 대낮처럼 밝은 달빛 아래 적병사들의 일거일동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아군 진지의 방송이 시작된지 얼마 안돼 몇몇 적병이 또치까에서 기여나와서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중 한 적병은 아예 털모자를 벗어들고 목을 빼들고 듣고 있었다. 도청조의 전우들은 놈들의 코밑에서 적병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한 적병이 중얼거렸다. “허, 저 치들 말에 일리 있잖아?” 그러자 한 적병이 받았다. “글쎄, 똑마치 우리한테 왔다 간 거처럼 말하잖아.” 이때 웬 검은 그림자가 또치까에서 언뜰하더니 게사니처럼 웩웩거렸다. “이 맹추 같은 것들, 게서 뭣들 해? 중공군의 깜장콩알 얻어먹자고 그래?” 말투를 들어보니 군관인 듯하였다. 적병들은 찍소리 못하고 또치까 안으로 기여들어갔다. 군관인 듯한 그 검은 그림자는 스적스적 보초선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윽고 보초선에서 욕질하는 소리가 들러왔다. 보초병이 아군 방송에 귀를 기울이다가 그 군관이 온 것도 모른 모양이였다. … 밤이 깊었건만 아군 진지에서 울리는 녀방송원의 청아한 목소리는 백설이 망망한 뭇산의 협곡에서 메아리쳤다. 지심을 울리는 대포소리를 대체한 그 방송소리는 적병들의 가슴을 울려주었다.   “괴뢰군 장병들이여, 우리는 이 기회를 빌어 우리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의 포로정책과 의거하는 자에 대한 정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은 모든 포로에 대하여, 그리고 무기를 놓고 의거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군관이든 병사이든, 그의 정치적 신앙이 어떻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그의 생명안전을 담보해주며 절대 죽이지 않고 인격을 모욕하지 않으며 개인 재물을 빼앗지 않습니다. 이밖에 또 부상당했거나 앓는 사람에 대해서는 치료해주며 집에 돌아가겠다는 사람에게는 로비를 주어 돌려보냅니다. …”   뒤이어 적 장관들의 기만적인 선전목적을 까밝히고나서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의 전쟁포로관리소의 실제정형을 소개하였다. 아군 사단 정면에 대치하고 있는 괴뢰군 제3사단에는 북조선 함경도 지역에서 남조선으로 타향살이를 하러 갔다가 강제징병된 강제병도 일부 있었다. 그런데 이른바 “백골부대”라는 뜻으로 관병들의 철갑모자의 오른쪽과 왼쪽 팔소매에 해골표식이 박혀 있었다. 이 사단의 18련대는 당시 리승만군대의 3개 “정예련대” 가운데의 한 련대인 “백호련대”였다. “천하무적”이라고 자처하는 이 사단은 조선전쟁 최초에 남진하는 조선인민군에 의해 5,900여명이나 소멸되였는데 2개 련대가 몽땅 녹아났던 것이다. 그후 1951년 현리전투에서 우리 중국인민지원군의 포위전에 걸려 반수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그해 11월에 “김일성고지”전투에서 또 조선인민군에게 얻어맞아 4,200여명이나 섬멸당하고 사단 참모장 이하 수많은 장관과 병사들이 포로당하였다. 우에서 말한 몇차례 전투에서 포로된 이 사단의 적잖은 장관들과 병사들은 아군의 포로관대정책에 의해 석방되여 남조선으로 돌아갔다. 그러므로 이 사단의 인원들이 끊임없이 바뀌였지만 적잖은 장관과 병사들은 아군의 포로정책에 대해 료해하고 있었다. 리해식은 어느날 아군에 의거해 넘어온 괴뢰군 23련대의 리연모라는 병사와 담화를 나누었다. 아군 방송, 특히는 포로정책에 대한 아군의 선전에 그쪽에서 어떤 반향이 있는가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린 장관님들의 방송을 듣고 처음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로병사가 후방에서 중공군에게 포로당했다가 놓여나온 사람을 직접 만나봤다고 하면서 북쪽에선 방송에서 말한 거처럼 포로를 죽이지도 않고 잘 먹인다고 하잖겠습니까. 그러자 우리는 포로병도 저렇게 잘 대해준다니 주동적으로 의거해 넘어간다면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직접 의거하지 못하는 날엔 아예 포로나 되는게 맞다고 생각했지요. 어느때 어떻게 죽겠는지 모를 세월에 목숨이나 건지는게 상수지요.” 리연모는 아군 방송을 듣고 의거할 용단을 내린 6명 적병 가운데 한 사람이였다. 그는 아군이 방송한 포로정책과 의거방법을 거의 한줄도 틀리지 않게 조목마다 줄줄 외웠다. 아군 방송소에서는 또 북에 고향을 두고 남조선에 나간 적병들이 많은 정황에 근거해 그들이 즐겨 듣고 또 그들의 고향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노래들을 방송하였다. 례컨대 그때 적후에서 애창된 “대동강의 달밤”, “북녘의 나그네”, “락화류수” 같은 류행가와  “양산도”, “아리랑” 등 타령들을 자주 방송하였다. 이런 노래들은 적군의 병사들과 하층군관들의 환영을 받았으며 그들의 호감을 샀다. 때로는 이런 노래가 방송되면 맞은켠 산의 적병들도 따라 노래불렀다. 심지어 노래가 끝나자 제18련대 적병들이 노래를 잘한다고 소리치고 박수치면서 “재청!”, “재청!” 하고 웨쳤다. 녀방송원(아나운서)이 다시한번 노래하자 적진에서는 또다시 요란한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어느날 깊은 밤이였다. 맞은켠 산의 적병들이 아군과 주동적으로 말을 걸고 아군의 녀방송원(어나운서)더러 “울며 헤여진 부산항”이라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하였다. 녀방송원 리정숙은 쓸쓸하고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울며 헤여진 부산항 돌아볼제 련락선 란간머리 흘러드는 달빛 리별만은 어렵더라 리별만은 슬프더라 더구나 정들인 사람들끼리…   1절이 끝나자 맞은켠 산의 적병들이 울음섞인 목소리로 2절을 받았다.   달빛아래 허허바다 파도만 치고 부산항 간 곳 없는 수평천리길 리별만은 무정터라 리별만은 야속터라 더구나 정들인 사람들끼리…   고성기를 통하여 울려나가는 방송원(아나운서)의 노래소리와 적병들의 웅글진 남저음의 육성이 합창되여 울려퍼지는 이 노래소리, 그 노래소리는 일제의 식민지통치하에 울면서 지게 지고 쪽박 차고 고향을 떠나 북쪽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느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바다와 현해탄을 건너 일본 땅으로 향하던 우리 민족의 수난의 력사에 대한 애잡짤한 회억을 불러일으켰고 한피줄을 타고 난 겨레들이 총부리를 맞대고 싸울 것이 아니라 독립자유의 새 나라를 건설하여야 하며 쓰라린 지난날의 그 피눈물의 력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후에 의거해온 한 병사의 말에 의하면, 괴뢰군 23련대 9중대의 19살난 병사 신정빈은 아군이 방송한 “사향가”를 듣고 친인들이 생각나서 통곡치면서 “집에 가겠다! 이 쓸쓸한 고산에서 미국 놈들의 대포밥이 되지 않겠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밖에 아군은 방송을 통해 적군관들의 폭행과 탐오사건의 내막을 폭로하였다. 이런 자료들은 모두 적의 포로병과 의거자들에게서 조사해 얻은 것이였다. 아군이 이름까지 찍어 탐오사실을 까밝히자 한 하층군관은 적군관들이 이전처럼 병사들과 우쭐거리지 못하였고 병사들을 모아놓고 화식비를 떼먹은 걸 잘 못했다고 승인하였고 그후엔 다신 떼먹지 못하였다. 아군은 그 하층군관이 병사들의 수당금을 떼먹은 사실을 모르고 방송하지 못하였다.  그 하층군관은 수당금을 떼먹은 사실은 병사들도 모르기에 숨기고 승인하지 않았다. 여하튼 적 군관들은 아군 방송을 대단히 두려워했다. 그러나 적병들에게는 아군의 방송은 “벗”으로 되였다. 의거해온 적병들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고지에서 하루 저녁이라도 방송을 듣지 못하면 무엇을 잃어버리기나 한 것처럼 허전하였다. 아군 방송에서 적병들의 고통스런 생활을 말할 때면 “우리 졸병들이 이렇게 추운 눈 속에 묻혀 고생하는 거 저 방송이나 알아주지 누가 알아줘?” 하고 장탄식하였다. “고향”이나 “부모처자”라는 말만 나오면 전호를 파던 공병삽을 팽개치고 제자리에 털썩, 털썩 들어앉아 눈물을 머금고 방송에 귀기울였다고 하였다. 리해식 등 아군 대적공작과의 전우들도 직접 그런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군의 방송이 시작되기만 하면 적진에서 들려오던 , 밤도와 방어시설을 만드느라고 공병삽이 자갈돌에 부딪치는 소리, 나무를 켜는 톱질소리, 도끼로 나무를 찍는 소리가 가뭇없이 그치고 반디불 같은 불빛이 반짝반짝이였다. 적병들이 담배를 꼬나물고 깊은 상념에 잠긴 채 아군 방송을 듣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아군에 의거해온 괴뢰군 22련대 1대대 1중대 하사 오기술은 이렇게 말하였다. “군관들은 사람을 관리할 수 있지만 우리 귀는 관리할 수 없었지요. 군관들은 당신들의 방송을 듣지 말라고 했지요. 뭐 중공군의 방송은 독이 있어 누가 들으면 누가 얼리운다나요. 그러나 우리 병사들은 그들의 기만과 공갈을 듣지 않고 일하는 척하면서 귀로는 당신들의 방송을 들었지요.’ 그의 말에 의하면, 적병들은 아군이 보낸 선물에서 먹는 것외에 중조 두 나라 군대에서 찍어보낸 “안전통행증”을 제일 좋아하였다고 한다. 이런 “안전통행증”은 어떤 것은 대포로 쏘아보낸 것이고 어떤 것은 “선물주머니”에 넣어 전연진지의 철조망에 걸어놓았는데 적병들이 벗겨간 것이였다. 적병들은 “안전통행증”을 줏기만 하면 군관들의 눈을 피해 가만히 치워두었다. 어떤 병사들은 일부러 “안정통행증”을 쭉 찢어 두 쪼각을 내서 군관이 보는데서 몸에 건사하였다. 군관이 물으면 “담배종이로 쓰려고 그래요.”라고 변명하였다. 그러나 “안전통행증”은 담배종이로 쓴 것이 아니라 적병들의 “호신부”, “구명부”로 되였다. 의거해온 오기술도 가만히 “안전통행증”을 한장 주어두었다가 의거해올 때 썼던 것이다. 적 장관들은 아군 방송에서 울리는 진리의 목소리를 두려워했다. 그들은 병사들이 중공군의 선전에 넘어갈가봐 맹렬한 화력으로 아군 방송을 대처해나섰다. 그 놈들은 먼저 기관총으로 우박이 쏟아지듯 몰사격을 가하고는 뒤이어 여러가지 포를 마구 쏘아댔다. 그러나 아군 방송은 그 자들의 포사격이 심하면 심할수록 끊은 적이 한번도 없다. 오히려 고성기의 최대공률을 풀어 우렁찬 목소리로 놈들과 맞섰다.   “괴로군 장관들, 이런 헛수작을 걷어치우라. 너희들이 포탄 한발을 더 갈길수록 너희들 집에서 그만큼 세금을 더 물고 월가의 전쟁무기장사군들의 배를 불린다는 걸 왜 아직도 모르는가?”   “겨레의 량심 있는 조선 사람들이라면 미제 침략자들을 위해 아까운 목숨을 바치지 말라.’   때를 같이하여 아군 진지의 화력도 “발언”하기 시작하여 놈들의 화력점을 벙어리로 만들군 하였다. 아군 방송소는 웃층이 두터운 갱도 안에 설치돼 있기에 어진간한 비행기 폭격에도 무너질 위험이 없었다. 포사격 따위는 대수롭지도 않았다. 적들은 갱도 안의 방송소를 어쩌는 수 없게 되자 갱도 밖 높은 바위 틈사리나 키 높은 소나무 우둠지에 걸어놓은 고성기나팔을 묘준하여 포사격하였다. 그리하여 고성기나팔이 “부상”당하지 않으면 “희생”되군 하면 방송을 더 할 수 없게 되였다. 어느날 낮방송을 하는데 적들의 포탄이 아군 방송소가 설치돼 있는 갱도 어귀에서 연해연방 터졌다. 그 바람에 갱도 안의 고성기 공작등이 마구 흔들거렸다. 이때 전연진지 패에서 방송소리가 끊어졌다고 전화보고가 들어왔다. 보고를 받자 리해식은 즉시 포탄이 마구 작렬하는 갱도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방송선을 따라 가며 살펴보아도 끊어지지 않았다. 고성기나팔이 장치돼 있는 바위돌 앞에까지 뛰여갔을 때 고성기 나팔이 포탄파편에 맞아 볼품없이 오그라든 것을 발견하였다. 고성기나팔 중간의 발성기마저 꾸불어들지 않았겠는가. 해식은 인차 비발치는 포탄을 무릅쓰고 새 나팔을 가져다 바위틈사리에 잘 장치해놓고 소나무가지를 꺾어다가 잘 위장해놓았다. 그러자 아군의 방송은 또 적진 상공에서 울려퍼졌다. 아군의 새 해 대적정치공세는 적군 심리작전부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그 놈들은 대만특무기관에서 한패의 국민당 특무들을 매수하여 아군처럼 방송소를 세워놓고 한어방송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군 전연진지의 전사들은 그 방송을 듣고 분개해 펄펄 뛰였다. “개놈들, 백주에 무슨 놈의 새빨간 거짓말만 지껄여대는 거야.” “어르신님들이 너희들 발언권을 박탈하는 걸 봐라!” 장병들은 중기관총과 여러가지 포로써 그들의 방송에 대답해나섰다. 방송은 포격에 “벙어리”로 돼버렸다. 며칠 후에도 그 방송은 울리지 않고 영영 “벙어리”로 돼버렸다. 후에 의거해온 적병들에게서 그 내막을 알게 되였다. 원래 방송소에 왔던 심리작전과의 몇몇 대만특무들은 고지의 괴뢰군 군관한테 줄욕을 먹었다. “네놈들이 중공군의 포격을 불러왔어!” 결국 아군의 포화에 더 얻어맞기 싫어하는 군관들에게 방송하러 온 특무들은 쫓기워났던 것이다. 불비가 쏟아지는 조선 전쟁터에서 아군 대적정치공작과에서는 적들에게 선물을 보내주면서 새로운 “사탕폭탄” 대적정치공세를 진행하였다. 섣달 그믐날 밤이였다. 대적정치공작과의 포치에 따라 정찰경험이 풍부한 퇀 정찰대 부패장 손라자는 몇몇 전사들을 령솔하여 흰 위장복을 입고 12개 선물주머니를 메고 적의 네갈래 봉쇄선을 감쪽같이 넘어 적진에서 20여메터 떨어진 철조망에 걸어놓고 안전히 돌아왔다. 설날 아침에 아군은 방송을 통해 13개 곳에 280여개 선물을 보낸 것을 적병들에게 통지한 후 연막탄을 쏘아 군관들 몰래 선물주머니를 가져가게 하였다. 어느날, 리해식은 아주 가까운 적진에 대고 “여보시오, 우리 보낸 선물 받았습니까?”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한 적병이 “벌써 가져다 먹은지 오랜데요. 지원군 동무들 고맙습니다요.” 하고 대답하고는 손으로 입을 가리키며 먹는 시늉까지 하였다. 한 무명고지에서 포로된 한 적병은 선물주머니 5개를 가져다가 군관 몰래 동료들이 똑같이 나눠먹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과장랑 먹으면서 지원군이 우리를 후하게 대하는 걸 보면 포로돼도 절대 죽이지 않는다는 말이 정말인 거 같다고 뒤공론하였다. 그 포로병은 포로됐을 때 아군이 보낸 손거울과 세수비누을 휴대하고 있었다. 한번은 적병이 과자를 먹을 때였다. 적군관이 보고 “그 과자엔 독이 있어.”라고 하였다. 그러자 적병은 과자를 더 크게 떼먹으면서 “독이 있다고? 그럼 독살돼 보죠.”라고 하면서 뻐기였다. 적군관은 억이 막혀 성이 상투 밑까지 치밀어 얼음판에 넘어간 황소처럼 눈알을 희번쩍거렸다. 그러나 뭐라고 할 말이 없어 다른 적병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아 꿀떡꿀떡 마셨다. 드디여 그 군관은 “중국인민지원군 드림”이란 글씨가 박힌 권연을 꺼내 붙여물고 연기를 길게 빨았다가 후- 내뿜었다. “이건 진짜 천금 주고도 사기 힘든 중국 담배야!” 군관이 떠나간 후 술병을 빼앗긴 적병은 두덜거렸다. “제길, 재수 없어! 이담부턴 선물주머니 얻거들랑 그 자리에서 다 먹어치워야지. 쳇!” 다른 한 적병이 쐐기를 쳤다. “장관들 말대로 중공군이 운수선이 끊어져 급양이 딸린다면 우리한테까지 이 많은 선물 보낼 수 있겠노? 꼭 물자가 풍족할 거 아뇨? 장관들 말 믿지 못하겠어.” 아군의 대적정치공세에 의해 적지 않은 적병들이 이렇게 의논하고 의거해오기까지 했다. 걀죽하게 생긴 20살 밖에 안된 방송원(아나운서) 리정숙 처녀는 기침을 콜록콜록 깇으면서도 련 며칠동안이나 방송을 견지하였다. 수척해진 그의 얼굴을 보고 리해식은 “좀 쉬오.”라고 권고하였다. 리정숙은 수척해진 얼굴에 가벼운 웃음을 생글 지으면서 “괜찮아요. 아무 일도 없어요.”라고 하였따. “그러다간 큰 병이나 나겠소.” “고마와요. 전 방송을 계속 할 수 있는데요.” 아무리 권고해도 그녀는 들을 념을 하지 않았다. 안옥순은 얼굴이 동그스름하게 생긴 18세 밖에 안되는 처녀애였다. 그는 당지 학교에서 우리 지원군 부대에 와서 지원군 군복을 입은 고중졸업생이였다. 어떤 때 안옥순은 련 몇시간씩 목청을 돋궈 방송하느라고 입술이 마르고 목이 다 쉬였다. 해식은 “목이 다 쉬였구만. 좀 쉬오.”라고 권고하였다. 안옥순은 방실 웃으면서 마이크 앞에서 일어섰다. “예, 참 미안해요. 방송이 똑똑하지 못했겠네요.” 그녀는 꽃처럼 부드럽게 말하더니 포탄상자 우의 고뿌를 들고 갱도 저쪽으로 사뿐사뿐 걸어가 갱도 돌틈에서 떨어지는 물을 고뿌에 받아 마시는 것이였다. 뒤이어 이쪽에 돌아오더니 “이젠 괜찮을 거예요.” 하고 다시 마이크 앞에 다시 앉아 계속 방송하였다. 목소리는 좀 나아졌지만 목이 오죽 아팠으면 침을 겨우 넘기겠는가. 얼굴이나 말씨는 꽃처럼 부드러웠지만 속은 강하길 그지없는 두 처녀 전우에게 못내 감탄이 갔다. 심룡섭은 방송선이 끊어지기만 하면 씽씽 날아와 작렬하는 포탄을 무릅쓰고 절룩거리는 다리를 끌고 갱도 밖 산정에 올라가서 방송선을 이어놓았다. 어떤 때에는 적들의 폭격에 확성기 나팔이 굴러떨어져 마사질가봐 비발치는 탄우를 무릅쓰고 방송이 끝날 때까지 두팔로 확성기나팔을 붙안고 있군 하였다. 양력설을 전후하여 19일 동안 사단 대적정치공작과의 19명 조선족전사들은 조선인민군에서 파견돼온 6명의 녀방송원(아나운서)들과 함께 리승만 괴뢰군에 도합 133시간에 달하는 109차 방송선전을 진행하였고 적전연진지에까지 접근해 268차 대적함화를 진행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나날들은 실로 가슴이 벅차고 아짜아짜한 추억을 불러일이킨다.                             정신화력망            박달나무가 얼어터지고 승냥이들이 눈물을 똑똑 떨굴 한겨울 엄동설한이다.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는 고산준령의 적진 앞에는 여러가지 색갈로 그린 만화와 표어패쪽이 박혀 있었다.       금방 갱도에서 나온 적병들은 그것들을 보고 주춤 멈춰섰다. 그들은 갱도 어귀에서 제일 가까운 만화를 찬찬히 뜯어보는 것이였다. 통졸임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술병을 꺼꾸로 쳐들고 꿀꺽꿀꺽 마셔대는 군관, 그 아래에서 쭈그리고 앉아 주먹밥을 먹고 있는 적병들… “허허, 심통하게도 그렸군 그래. 저 치들이 주먹밥 먹는 우릴 본 거 아뇨?” “그러게 말이야.” 그들이 빠드득빠드득 눈밟는 소리를 내면서 눈깔린 교통호를 걷는데 교통호와 철조망, 어데라없이 숱한 만화와 표어판이 눈에 죽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거기에는 조선어로 이런 구호들이 씌여 있었다. “돈 있는 집 새끼들은 군대노릇을 하지 않고 가난한 집 자식들만 군대 되여 죽고 말게 됐다!” “여기에는 안전한 곳이 없다!” “당신은 살고 싶은가? 돌격할 때에는 뒤에 서고 달아날 때에는 앞장서라!” “투항해야 안전하다.” “우리는 포로를 너그럽게 대한다!” 적병들은 그것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다 읽어보았다. 추위 때문인지 적병들은 옷깃을 여미고 몸을 옹송그리고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어떤 자들은 지뢰나 본듯이 그 패말을 보고 뒤걸음치더니 동굴 속으로 되들어갔다. 사단 대적공작과에서 해제낀 사업이 위력을 떨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조선족번역원들은 지원군 전사들에게 대적함화와 일상용어에 관계되는 간단한 조선말을 몇마디씩 배워주었다. 실로 봄날에 구으는 눈덩이가 커지듯이 날에 날마다 더 많은 장병들이 간단한 조선말과 대적공작지식을 알게 되였다. 하여 아군은 “정신화력망”의 위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작은 대가를 내고 전투의 승리를 취득할 수 있었다. 해가 추위에 오스스 떨며 지는 무렵, 한개 반 가량 되는 적병들이 한줄로 서서 전연진지 서쪽 골짜기를 오락가락하였다. 그 놈들은 그 골짜기 허리에 동굴까지 파놓고 오고 갈 때 들려 몸을 녹이고는 새벽에야 돌아가군 하는 것이였다. 이렇게 련 며칠 규칙적으로 왔다갔다 하군 하였다. 리해식 소속 모 퇀에서는 한 정찰참모를 시켜 퇀 정찰패의 제3반 정찰병들을 이끌고 그 곳에 가서 “혀”룰 잡아오게 하였다. 정찰병들은 흰 위장복을 입고 어둠을 타서 아군 전연진지 전우들의 엄호 밑에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덮인 산 아래를 따라 적진을 향해 더듬어나갔다. 그들이 적전연진지와 가까운 절벽 밑에 이르렀을 때 계획대로 아군의 포가 불을 토하였다. 포탄이 적진에서 작렬하는 틈을 타서 정찰병들은 바위를 타고 절벽에 올라 철조망을 번개같이 날아넘었다. 포화가 멎자마자 그들은 혀를 잡을 동굴 가까이까지 접근해갔다. 그들이 보초놈과 서너메터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보초 서던 세놈이 그들을 발견하고 황급히 총을 쏘았다. 이어 수류탄 하나가 나라와 폭발하였다. 다행히 정찰병들이 눈 우에 납짝 엎드렸기에 상하지 않았다. “사격!” 정찰참모의 명령에 따라 정찰병들은 일제히 사격하였다. 그 세 놈은 허리 잘리운 나무통처럼 나가 뻐들어졌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보초를 서던 한 놈이 동굴 쪽으로 달아나면서 고함쳤다. “중공군이 왔다!” 정찰병들은 그 놈을 쫓아가 동굴 어귀를 봉쇄하였다. 독 안에 든 쥐가 된 적들은 동굴 안에서 법석 고아댔다. 적 분대장은 전화기를 돌려대더니 송수화기에 대고 상전에게 보고하느라고 게사니처럼 꿰꿱거렸다. “전화선을 끊어버렷!” 정찰참모의 명령. 두 정찰병이 동굴 밖으로 나온 전화선을 비수로 몇토막 냈다. 몇몇 장찰병들이 원 계획대로 동굴 안의 적들에게 조선말로 고함쳤다. “총을 놓으면 살려준다!” “우리 지원군은 포로를 너그럽게 대한다!” “무기를 놓고 손드록 나오라! 살려준다!” 함화소리는 무형의 정신화력이 돼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적들이 두 손으로 총을 받쳐들고 눈덮인 동굴 어귀에 나타났다. 맨 마지막에는 적 분대장이 전화통을 두 손으로 머리 위에 쳐든 채 나왔다. 정찰병들이 덮쳐나가 무기를 해제하고 포로를 세여보니 모두 여섯이였다. 정찰병들은 아군 진지에 돌아가는 신호탄을 쏘았다. 그들은 로획한 여섯자루의 자동보총과 전화기 한대를 나눠 메고 포로를 압송하여 귀로에 올랐다. 쿵, 쿵쿵! 정찰병들의 앞길을 차단하려고 적들이 대포를 쏘았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 슬기롭고 영용무쌍한 정찰병들이 아군 진지의 전호 속으로 돌아온 뒤였다. 어느날 밤, 이 퇀 5련 2패에서는 불시에 적들의 한개 소대 진지를 습격하였다. 2패 패장은 4반과 5반을 데리고 산을 뛰쳐나온 맹호마냥 적진의 왼쪽 뒤로 전호에 뛰여들어 적의 지휘소 쪽으로 쳐들어갔다. 4반 1조 전사들은 정면으로 적진의 제일 높은 곳을 점령하여 적들의 소대와 분대 진지를 이은 전호 교차점을 차단해버렸다. 4반의 2조와 3조에서는 번개같이 적진 옆 유리한 지형을 점령하여 적들의 퇴로를 막아버리고 증원하러 오게 되는 적들을 막을 태세를 갖췄다. 뒤이어 5반 반장이 2조와 3조 전사들을 령솔해 오른쪽에서 적 지휘소 또치까에 다가들었다. 그때 적 소대장이 한창 전화를 거는 것이 등불빛에 보였다. “한 동무 엄호하고 또치까 량쪽을 포위하라!” 4반의 한개 소조도 정면으로 몰사격을 가하면서 조선말로 고함쳤다. “너희들은 몽땅 포위됐다! 투항하라!” “총을 놓으면 살려준다!” “우린 포로를 너그럽게 대한다!” 그 조선말함화소리는 포위당한 적들의 가슴을 비수마냥 파고들었다. 적들은 아우성쳤다. “총 쏘지 마쇼-” “제발 살려주쇼-” 뒤이어 무기를 놓은 적들이 하나, 둘 두 손을 쳐들고 나왔다. 세여보니 적 소대장까지 도합 15명이나 되였다. 다른 또치까의 22명 적들은 아주 교활하게 놀았다. “손들엇!” 지원군 전사들이 고함쳤다. 그러자 적들은 “투항하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두 손을 들고 나오는 적들은 보이지 않았다. “손들고 나왓!” “예, 예.” 몇놈이 또치까에서 나오는 것이 어슴푸레 보였다. “손들엇!” “넷!” “손벽을 쳐라.” 혹시 손에 총을 쥐였을가봐서였다. “네,네.” 쨕, 쨕, 쨕! 손벽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한 놈이 손에 권총을 쥐고 다른 손으로 자기 뺨을 치는 것을 발견하였다. “총을 놧!” 그러자 그 놈은 권총을 휘둘러 아군 전사를 쏘았다. 땅! 지원군 전사는 몸을 옆으로 숙이면서 그 놈에게 명중탄을 안겼다. 땅! 그 놈은 거짓 투항하고 발악하다가 격살당하였다. 거짓 투항한 나머지 22명 놈들은 또치까 안에서 최후발악을 하다가 모두 영용한 지원군 전사들에게 격살되였다. 전사들은 뒈진 적들의 주검 우에 우리 대적공작과에서 조선어로 쓴 삐라를 뿌려놓고 떠났다. 그 삐라에는 이런 조선글들이 박혀 있었다. “산꼭대기는 네놈들의 무덤이다!” “투항하지 않으면 이런 끝장을 보게 될 것이다!” “봐라! 이것이 바로 미제와 리승만 괴뢰군 위해 목숨 판 끝장이다!” 그번 습격전에서는 선후하여 5분 동안에 적 한개 소대 병력을 없애치웠다. 이것은 실로 군사타격과 “정신화력망”의 위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적들의 사기를 꺾어놓은 승리였다. 한번은 이런 일도 다 있었다. 적 군관 한 놈과 병사 몇놈이 또치까에 갇히워 총을 쏴대면서 발악하였다. “투항하면 살려준다!” “무기를 놓고 나왓!” 아군 전사들의 조선말고함소리가 적 또치까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또치까 안의 적들은 계속 불질하였다. 이때 위리 한 대적공작골간이 또치까 총구멍으로 권연 두통을 뿌려넣었다. 쌔까만 밤이여서 똑똑히 볼 수 없어 적들은 아마 신식수류탄이 날아들어왔는가고 했던지 몽땅 피해 한쪽 켠에 엎드렸다. 그런데 한참 있어도 폭발하지 않았다. 한 적병이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권연이야!” “뭐라고?” “중국권연 두통이야!” 적들은 또치까 안에서 우야 소리치며 모여들어 너도 나도 담배를 나눠 피웠다. “투항하면 살려준다!” “투항하지 않으면 쏴죽일테다!” 적병들과 군관은 담배를 붙여물고 풀썩풀썩 피우면서 또치까 안에서 두 손을 들고 나왔다. 어떤 때에는 적병이 시체 속에 죽은 것처럼 누워 있다가 도망치려고 하였다. 그럴 때면 우리 전사들은 호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죽은 상을 하고 누워 있는 적병의 입 안에 밀어넣었다. 달디단 사탕을 입에 물자 그 적병은 령단묘약이나 먹은듯이 부시시 털고 일어나 쑥쓰러워하면서 두 손을 머리 우로 쳐들었다. 한 적병은 두 다리에 관통상을 입어 포로됐기에 데리고 올 방법이 없었다. 그러자 전사들은 그 포로에게 사탕과 담배를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안됐습니다. 할 수 없구려. 바쁜대로 제 진지에까지 기여갈만 하면 기여가시오.” 뒤이어 전사들은 붕대를 꺼내 피 흐르는 두 다리의 상처를 동여매주고 솜바지가랭이를 잘 내려주었다. 그러고도 그 포로가 얼가봐 적병의 군용탄자를 주어다 펴고 그 우에 눕히고 머리에는 비 옷을 가리워 눈보라를 막아주었다. 그 장면을 목격하고 부상당한 다른 포로병들은 길 수만 있으면 다 우리 전사들을 따라 기여 아군 진지에로 넘어왔다. 아군 전사들을 따라 길 수 없는 포로병, 다리를 상한 그 포로와 다른 포로들은 두 볼을 적시는 눈물을 팔소매로 쓱 문지르고 물기어린 감격된 눈길로 어둠 속에서 사라져가는 지원군 전사들의 뒤그림자를 바래면서 감탄하였다. “정말 인정미 찰찰 넘치는 군대야, 국방군 같으면 누가 관계하겠노? 정 메고 가기 싫으면 깜장콩알 한알 먹이면 다지.” “글케 하면서도 고생시키지 안을락꼬 그러는기여 하고 떠벌이지 않았노? 쳇!” 어느날 밤, 전연진지의 한 소분대에서는 패장 상국의와 반장 전홍인이 지휘밑에 괴뢰군 제3사 23련대 9중대의 한개 분대가 지키는 진지를 돌연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맵짠 밤바람이 가슴 속에까지 엄습하는 엄동설한에 전사들은 무릅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밟으면서 네시간이나 힘겹게 행군해서야 적진의 옆을 에돌아 밤중에 적진 뒤쪽 벼랑 밑에 이르렀다. 흰 위장복을 입은 돌격조와 수색조의 전사들이 패장 상국의의 명령에 따라 목마를 타는 방법으로 금방 절벽 우에 하나하나 올라갔을 때였다. “누구얏?” “구령!” 적 보초놈에게 발각되였다. 반장 전홍인이 어느새 수류탄을 날렸다. 꽝! 수류탄 폭발소리와 함께 그 보초놈은 쓰러졌다. 아군 전사들을 발견한 오른쪽 또치까 안의 적들이 이쪽에 대고 불질하였다. 어둠 속에서 사격하는 불빛이 번쩍번쩍 이쪽으로 비껴왔다. “앗!’ 전사 뢰귀청이 비칠거리더니 오른쪽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옆에 선 전사가 그를 부축하였다. 뢰귀청은 자기를 부축하는 전사의 팔을 쳐버리면서 고함쳤다. “나는 일없소. 적들을 빨리 족치오.” 뢰귀청은 상처에서 오는 모진 진통을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기관단총으로 놈들에게 뚜루룩뚜루룩 맹렬히 사격하였다. 적들의 화력이 대뜸 그에게로 돌려졌다. 뢰귀청은 적들의 화력을 끌어오고 장렬히 희생되였다. 그 틈을 타서 반장 전홍인과 다른 전사는 번개같이 덮쳐가 적 또치까 꼭대기에 올라갔다. 적들이 총구멍으로 요란스레 총질하였다. 전홍인 반장과 다른 전사는 수류탄을 세개나 또치까 구멍으로 뿌려넣었다. 꽝! 꽝꽝! 수류탄폭발소리와 함께 총질하던 몇놈이 뻐드러지고 또치까는 잠잠해졌다. 전홍인 반장과 그 전사는 또치까 출입구 어귀에 다가들어 안에 대고 서투른 조선말로 땅방울같이 을러멨다. “투항하면 살려준다!’ “우린 포로를 너그럽게 대한다!” “빨리 나왓!” 그 소리를 듣고 어둑시그레한 또치까 안에서 한 적병이 엉금엉금 기여나와 두 손을 천천히 들었다. 전홍인 반장은 미리 갖고 온 사탕을 호주머니에서 한줌 꺼내 그 적병의 쳐든 손을 내리워 쥐여주었다. 그러면서 조선말로 이렇게 한마디 한마디 어루쓸어댔다. “우리 지원군은 포로를 너그럽게 대하오. 당신의 생명안전을 담보하오.” 이때 패장 상국의가 거느린 몇몇 전사들도 벼랑 우에 올라와 그 또치까를 에둘러쌌다. 독 안에 든 쥐로 된 적들은 우리 전사들이 하는 말을 들었고 너그러운 태도도 보았다. 이때 포로된 적병이 반장 전홍인이 준 사탕을 쥔 손을 흔들면서 또치까 안에 대고 소리쳤다. 그러나 우리 지원군 전사들은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지원군은 너그럽다…”는 한마디 말만 알아들었을뿐이다. 좀 지나자 또치까 안의 적병들이 하나 둘 두 손을 쳐들고 느릿느릿 걸어나왔다. 아군 전사들은 포로들에게 다가가 사탕과 압축과자를 한줌씩 쥐여주었다. 땅! 땅땅! 정면으로 쳐들어가던 수색조는 다른 또치까 놈들의 저격을 받고 있었다. 한 전사가 어깨에 총탄을 맞고 비칠거렸다. 전사들은 또치까 문어귀에 나타난 적을 겨누고 맹렬히 사격하였다. 그 적병이 꺼꾸러졌다. “투항하면 살려준다!” “빨리 나왓!” 좀 지나 적병 3명이 총을 놓고 두 손을 쳐들고 나왔다. 적 한개 분대가 몽땅 살상되거나 포로되였다. 전투는 승리적으로 끝났다. 그런데 날이 밝기 전에 부상병을 데리고 8명 전사가 포로 8명을 압송해서 적 봉쇄구역을 벗어나 아군 진지로 돌아갈 길이 막연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눈덮인 지형이 눈 설고 눈덮인 산발 여기저기에 지뢰가 매설돼 있어 한발자욱도 내딛기 힘들었다. 게다가 적들의 포화가 심해 길이 막힐 위험이 무시로 있었다. 아군 전사들이 서성거릴 때 포로들이 길잡이를 서겠다고 손시늉을 하면서 나섰다. 포로들은 자기들을 너그럽게 대해주는 지원군에 감화됐던 것이다. 포로들은 아군 전사들의 앞에 서서 눈덮인 산발을 이리 돌고 저리 돌아 지뢰구역을 안전하게 벗어나게 길잡이를 하였다. 그리하여 아군 전사들은 포로들이 헤쳐나가는 눈길을 따라 첩첩한 화력봉쇄선을 뚫고 나와 아군 진지에로 돌아왔다. 상급에서는 이 반에 영예롭게 집체2등공을 기입해주었다.        그 후 아군 진지에는 아군의 “정신화력망”에 감화된 괴뢰군 8명 포로가 아군 한개 반 전사들의 길잡이를 해준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
179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3) 댓글:  조회:1272  추천:0  2018-11-18
                               제3장 황해도 곡산군에서                        친선의 정이 흘러넘치는 산골       1951년 6월 12일 밤에 해식이네 사단은 황해도 곡산군의 세림리와 외락리에 이르러 휴식정돈하게 되였다.        곡산이란 곳은 문자 그대로 산과 골짜기가 많았다. 또 나무 숲이 우거져 군대가 주둔하기 좋은 곳이였다. 옥에 티라고나 할가 골짜기에 오불꼬불하고 올리막내리막이 많은 좁은 길뿐이여서 군용차들이 다니기 어려운 것이 흠이였다.        부대가 들어오자 고즈넉이 잠들었던 이 산골은 들끓기 시작하였다. 이전에 자동차를 구경조차 하지 못한 산골의 조무래기들은 마을에 들어선 자동차며 찌프며 구경하느라고 차에 올라가 야단법석하였다.       전사들은 나무와 풀을 베여다가 마을 뒤산기슭 수림에 간이막집을 지었다. 공병영에서는 괭이를 휘둘러 사단 수장들과 기관 동지들이 들 토막집과 2, 300명이나 들어갈 수 있는 깊고 큰 방공굴을 팠다.       며칠 후 사단에서는 당지 조선 인민정부와 인민군중들과의 거래가 잦게 되자 리해식을 사단 대적공작과로부터 민운과에 전근시켰다. 사단 사령부와 정치부의 큰 방공굴에서 자주 영화를 돌리거나 문예공연을 하였다. 그때면 아무리 자리가 모자라도 리해식은 상급의 지시에 따라 당지 조선 백성들을 모셔다 제일 좋은 자리에 앉게 하여 구경시켰다. 모내기철이 되자 전체 장병들은 조선 백성들을 도와 모를 꽂아주었으며 사래긴 옥수수밭 기음도 매주었다. 그리고 쉼이면 전선의 승리소식도 전해주었다. 실로 온 산골짜기에는 친선의 정으로 들끓었다. 조선의 당지 도와 군 인민정부에서는 지원군부대에 말사료가 떨어진 것을 알고 인차 숱한 말사료를 실어왔으며 자주 문예단체를 파견하여 지원군 장병들에게 다채로운 위문공연을 해주었다. 어떤 때에는 미제의 공습에 위험했지만 조선위문단 배우들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사단 주둔지에 찾아와서 다채로운 문예종목을 공연하였다. 그들은 공연한후 쉼시간이면 피곤을 무릅쓰고 전사들의 옷을 씻는다, 옷을 깁고 단추를 달아준다 하면서 눈코뜰새 없이 보냈다. 장마철에 잡아들자 하늘은 개일줄 모르고 큰 구멍이나 뚫린듯이 소낙비가 대줄기처럼 쏟아져내렸다. 산홍수가 터져 오불꼬불한 산길은 뭉텅뭉텅 끊어져나갔다. 40년래 처음 보는 큰비로 하여 철도는 10여 곳이나 끊어졌고 다리는 백여개나 끊어져 40날이나 운수가 막혔다. 리해식의 소속사단에서도 산길이 끊어져 기관간부들은 10여킬로메터나 되는 곳에 가서 식량과 부식물을 메와야 하였다. 그리고 큰물피해로 하여 당지 백성들의 생활에도 막대한 곤난을 조성하였다. 하여 아군단에선는 각 사의 병력을 떼내여 군부 참모장 등사준의 지휘하에 주둔구역의 주요운수선인, 문암리로부터 룡암리에 이르는 21킬로메터 도로를 너비가 7메터 되는 큰길을 닦기로 결정하였다. 사단에서는 정치부 주임 범극양의 지휘아래 3개 보병영이 길닦기에 참가하였다. 이 구간의 길은 동서로 뻗었는데 굽인돌이가 많은데다가 걷기조차 힘든 령길이였다. 룡암리에서 문암리로 가자면 강변을 따라 가다가 크고 작은 26개의 강한 올리막굽인돌이를 거쳐 산꼭대기에 올라야 했다. 또 그 산꼭대기에서 다시 18개의 경사도가 강한 내리막굽인돌이를 내려 작대동에 이른 후 강곬을 따라 굽인돌이 5킬로메터 남짓한 길을 가야 하였다. 큰비가 내린 후 다리와 작은 배수로들이 홍수에 밀려 끊어났거나 무너져 사람이나 소나 다 걷기도 힘들었다. 그런 길로 군용자동차는 달릴 엄도도 내지 못하였다. 이런 길을 닦는다는 것은 실로 난사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로동도구도 없어 곤난이 막심하였다. 량미간을 쪼프리면 꾀가 생긴다고 전사들은 미제 공중날강도들이 내리뜨린 나팜탄탄피로 톱을 만들어 나무를 베왔고 버드나무가지를 베다가 광주리를 결어 흙을 날랐다. 어느날 장병들이 한창 들끓는 열의로 길닦이를 할 때였다. 갑자기 남쪽 하늘에서 적기들이 아츠런 엔징소리를 내면서 공중을 짜개며 날아왔다. “적기다! 은페!” 전사들은 모두 길옆의 수림에 들어가 피신하였다. 적기들은 기수를 숙이더니 기관총으로 소사하고 폭탄을 마구 투하하였다. 갓 닦아놓은 길에 폭탄구뎅이가 벌집처럼 수태 났다. 쿵! 쿵! 쿵! 쿵쿵! 아군의 맹렬한 고사포사격에 적기 한대가 시꺼먼 연기를 뭉게뭉게 풍기면서 저 먼 산에 처박혀 폭발하였다. 나머지 적기들은 겁을 집어먹고 황급히 남쪽으로 꽁무니를 뺐다. “만세!” “만세!” 전사들은 삽과 괭이, 멜대를 추켜들고 환호했다. 사기 오른 아군에서는 이른바 “공중교살전”을 벌리려는 공중날강도 3대를 떨구고 한대를 격상해버려 길닦이부대를 엄호하였다. 아군 사단 모 퇀 전사 하명산은 하루에 정으로 돌 7립방메터나 깨냈다. 전사들은 하명산처럼 손바닥에 피물집이 졌지만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억세게 돌을 캐고 흙을 메날라 길을 닦았다. 길바닥에 펼 모래가 없으면 심지어 10~15킬로메터 길을 오가면서 모래를 한광주리 한광주리 날라다 폈다. 전사들은 무거운 모래짐을 메나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모래 한광주리를 더 날라 길을 닦으면 그만큼 중조친선의 꽃이 더 아름답게 필 것이 아니겠소?” 아군 전체 길닦이장병들은 31일 동안 적기의 공습과 장마비를 무릅쓰고 악전고투하여 룡암리로부터 문암리에 이르는 21킬로메터나 되는 길을 너비 7메터나 되는 빤빤한 모래길로 닦아놓았다. 그들이 메나른 흙과 모래는 93만여립방베터로서 가히 자그마한 산을 이룰 수 있었다. 그들은 다리 3개를 수축하고 배수로 93개를 뺐으며 자동차은페소 20개를 구축해놓았다. 큰길을 닦아놓았기에 부대의 운수와 당지 조선 백성들의 생활에 커다란 편리를 가져다주었다. 당지 조선 백성들은 이 길을 걸을 때마다 지원군 장병들의 창거에 찬탄을 금치 못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황해도와 곡산군 등 당정지도자들도 여간 감탄해마지 않았다.                                           미제의 세균전에 맞서             1951년 7월, 제5차 전역에서 참패를 당한 미제는 개성에서 열린 정전담판에서 중조군대가 통제하는 커다란 지역을 싸우지 않고 제 손아귀에 넣으려고 시도하였다. 그 무리한 요구가 중조담판대표단의 거절당하자 미제는 그해 여름 장마철에 남조선의 수원, 군산, 부산, 김포, 성남, 대구 등 공군기지로부터 600여대 비행기를 띄워 중조군대의 주요교통요새를 폭격해 봉쇄하려고 망녕되게 시도하였다. 그러나 역시 참패를 면치 못하였다.       미제는 실패를 달가와하지 않고 1952년 새해 벽두부터 조선전쟁터에서 세균전을 암암리에 들이댔다. 일찍 미제는 2차세계대전 때 동북지구에서 일제가 731부대를 이끌고 세균무기실험을 해온 세균연구자료와 일본세균전쟁범죄자들을 리용하여 새로운 세균무기를 연구하여 제조하였다. 그 놈들은 1950년 12월에 황해도 등지로부터 패주할 때 처음으로 전염병세균을 뿌린 적이 있었다. 그후 조선 신의주와 중국 단동 교외 일대에도 세균무기를 투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번마다 중조 두 나라 반세균전문가들에 의해 좌절당하였다. 극악한 미제는 그후에도 계속 남조선 경상남도 거제도 등 미군 전쟁포로관리소에서 중조 두 나라 포로들의 몸에 대고 비인간적인 세균실험을 했다. 반복적인 실험을 거쳐 미제는 끝내 새 세균무기를 제조해냈다. 미제는 공군 비행사에게도 “터지지 않는 폭탄”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그들을 보고 세균폭탄을 아군의 전연진지와 교통요새에 마구 투하하게 하였다. 그리고 대량의 특무들을 북반부에 파견하여 세균전의 효과를 정탐해오게 하였다. 3월 중순, 지원군은 황해도 금천군 구이면 경내 산속에서 미군 정보기관에서 파견한 왕지가라고 별명을 단 특무를 붙잡았다. 피끗 보아도 그 자는 중국인임이 틀림없었다. 그 자가 입은 지원군 군용외투 팔소매에는 “US”글자가 박혀 있었고 외투 왼쪽어깨에는 십자가 모양의 “부호가 새겨져 있었다. “당신은 뭘 하는 사람인가? 낱낱이 교대하라.” 지원군 심문일군이 묻자 그 자는 머리를 푹 수그렸다가 천천힏르면서 무거운 입술을 뗐다. “나는 본명이 왕기고 중국 절강성 사람입니다. 국민당 ‘반공항로단’ 성원인데 참조미군의 ‘원동정보과’ 정탐일군입니다. 나는 다른 9명의 중국적 대만특무들과 함께 서울 ‘미군전연정보기관련락처’의 명령을 받고 서울에서 두대의 비행기에 앉아 북반부 여기에서 락하산을 타고 내렸댔습니다.” 왕기라는 특무는 쪽걸상에 앉아 두 손을 바르르 떨더니 마주 비볐다. 심문일군은 그 자를 날카롭게 쏘아보면서 바투 들이댔다. “임무는 뭔가?” 왕기는 심문일군의 날카로운 눈길을 피하면서 머리를 수그렸다. “지원군으로 변장하고 세균전 효과를 알려고 왔습니다. 말하자면, 저- 공산군에 전염병이 도는 정도와 사망률과 같은 정보를 수집하려고 왔습니다.” 심문일군은 왕기의 몸에서 군용지도와 도청기 등을 수색해냈다. 이 놈을 체포할 때 전사들은 돌격총과 통신용비둘기를 빼앗아냈던 것이다. 미제의 세균전을 막으려고 지원군과 조선인민군, 그리고 조선 당지 인민정부에서는 중국에서 파견해온 40여명 반세군전 전문가들의 지도 밑에 한차례 반세균전을 벌리였다. 아군 주둔지인 곡산군에서는 2월 중순부터 적들이 투하한 세균벌레를 발견하였다. 적들은 밤중에 선후하여 51차나 세균탄을 떨구었다. 이런 세균탄에는 전염병균을 가진 벼룩, 파리, 거미 그리고 돼지고기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이런 세균탄은 밤중에 공중에서 터진데다가 세균벌레가 매우 넓은 지역에 널렸기에 잡기 매우 힘들었다. 어떤 세균벌레는 삐라와 함께 투하하였기에 삐라를 쥐기만 하면 전염병에 걸릴 수 있었다. 사단에서는 3월 중순부터 동원되여 세균벌레를 잡고 면역사업을 펼쳐나갔다. 한번은 장병들이 산에 올라가 풀 속에 널린 세균벌레를 발견하였다. 한 전사의 발등에 커다란 세균벌레가 올라붙었다. “어이, 빨리! 그 독거미를 털어내 태우오.” 다른 동무가 다급히 웨치자 그 전사는 대수롭잖게 빈정거렸다. “쳇, 겁날게 뭐요? 이 어른은 전선에서 적기와 포탄도 겁나지 않았소. 요까짓 쪼꼬만 거미를 겁나할 거 같소? 원참.” 결과 그 전사는 전염병에 걸리고 말았다. 이와 반면에 어떤 전사들은 진짜 바줄을 보고도 뱀인가고 놀라는 우수운 일도 있었다. 한번은 사단 정치부의 간부들이 조선 백성의 집뜨락에서 밥을 먹을 때였다. 갑자기 쥐 한마리가 집 안에서 뛰쳐나왔다. “쥐, 쥐! 아이유, 쥐요!” 모두 후닥닥 뛰여일어나 밥사발을 쥔 채 쥐를 피해 이러저리 뛰여다녔다. 쥐가 달아나자 밥사발을 쥔채 서로 손가락질하면서 배를 끌어안고 껄껄 폭소를 터뜨렸다. 실로 싸움터에서 오십보를 달아난 자가 백보를 달아난 자를 웃는 격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단에서는 반세균전 전문가들을 청해 반세균전상식을 강의하게 하고 사상사업을 하여 장병들의 공포심리와 한시름 놓는 사상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전체 장병들을 동원하여 며칠새에 쥐 몇만마리나 잡아 마을에서 800여메터 떨어진 곳에 깊은 구덩이를 파고 묻어버렸다. 그리고 취사칸과 들집, 변소를 자주 깨끗이 쓸어 전염병세균 벌레가 끼지 못하게 하였으며 몸도 자주 씻어 정결을 유지하고 벼룩 같은 전염병균벌레가 끼지 못하게 하였다. 조국에서는 면역주사를 보내 모든 장병들과 당지 백성들에게 제때에 놔주었다. 면역주사를 맞은 전사들은 주사자리를 문지르면서 감개무량해하였다. “모주석과 조국 인민들이 비행기로 면역주사까지 보내주었는데 우린 꼭 적들의 세균전을 이겨 모주석과 조국 인민들의 배려에 보답해야 하오.” 아군의 선전과 동원을 거쳐 당지 조선 인민들도 세균벌레를 잡고 면역사업을 열성스레 벌렸다. 한번은 해식이 조선인민군 문화련락처 동지와 함께 일보러 어느 한 마을 동구 밖에 이르렀을 때였다. 마을 길어귀에 세운 소독실을 지키던 두 처녀가 앞길을 막아나섰다. “서세요. 소독실에 들어가 소독하고 마을로 들어가세요.” “우리는 일이 바빠서 그만두기요.” 해식의 말에 두 처녀는 웃음기를 거두더니 때뜸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안돼요. 이건 인민위원회와 지원군부대에서 공동으로 결정한 규정입니다. 부대 동지들도 꼭 소독해야 마을에 들어갈 수 있어요.” 그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길옆에 있는 소독실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소독실에 들어가니 뜨끈뜨끈한 온실에서 김이 문문 났다. 한 5, 6분 들어가 있으니 온몸이 뜨거워 견디기도 힘들었다. 온몸에는 땀이 후줄근히 내배였다. 밖에 나오니 온몸이 축축해졌다. “호호호. 뜨겁지요? 이젠 마을에 들어가도 돼요.” 얼굴이 걀죽한 처녀는 그들을 보고 깔깔깔 웃어댔다. “음, 괜찮습니다.” 마을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그들처럼 이렇게 온실에 들어가 소독하여야 하였다. 이밖에 군민은 련합으로 몇개 방역구와 공중관찰소를 내오고 적기가 세균탄을 투하하는가를 밤낮으로 밤하늘을 지켰다. 일단 적기가 세균탄을 투하하기만 하면 책임구역에 따라 즉시 군민들이 총출동하여 세균벌레를 잡아 없애버렸다. 3개월 동안 군민이 함께 노력 끝에 아군 구역에서 전염병이 돌지 못하게 하였다. 하여 미제가 벌린 세균전은 곡산군에서 철저히 실패하고 말았다.                                                                                      간부문화학습반    리해식 소속사단의 적지 않은 패장들은 신문을 읽을줄 몰랐고 어떤 련장들은 전사들의 이름마저 틀리게 불러 웃음통을 터뜨릴 때도 많았다. 심지어 어떤 영장이나 영급간부들도 행군작전할 때 지도마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명을 틀리게 말해 작전에 막대한 장애를 조성하였다. 그리하여 어떤 영장은 문서나 비서를 불러 지도를 보고 해석해달라고 할 지경이였다. 이런 실정에 근거하여 사단에서는 700여명이나 되는 패 이상 간부들을 조직하여 간부문화학습반을 조직하였다. 전사들은 사단 사령부가 자리잡고 있는 동산기슭의 이깔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수림 속에 간부문화학습반 강당과 숙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방공에 편리하게 하려고 강당 자리의 나무가지와 풀을 한대도 다치지 않고 해볕이 쨍쨍 내리쪼이는 삼복염천의 무더위를 무릅쓰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다른 산에 가서 억척스레 나무와 풀을 베 날라다가 700여명이나 들어갈 수 있는 강당을 지었다. 그리하여 이 강당에서는 문화학습도 하고 영화나 문예공연도 구경할 수도 있게 되였다. 숙사와 숙사 사이를 50메터씩 띄우고 이갈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하고 못이 없으니 칡넝쿨로 얽어매서 웃갓을 씌워놓고 풀로 이영을 이어놓았다. 해식은 학습반을 꾸리자 한자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불붙듯하였다. 열한살부터 시골의 일본학당에서 겨우 4년 공부한 그는 반문맹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일본글 밖에 배우지 못해 한자는 한글자도 몰랐다. 다행히 8.15광복 후 마을야학교에서 “천자문”이나 “삼자경”, “론어” 같은 옛글을 좀 배운 적이 있어 몇글자를 알뿐이였다. 부대에 온 뒤 비로소 한자를 조금 배웠지만 반문뱅모자는 의연히 벗지 못하였다. “야- 이 좋은 기회에 한자를 배웠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때 때마침 사단 정치부 주임 범극양이 그를 찾아왔다. “리동무, 이번 학습반에 참가하오. 이 좋은 기회를 놓쳐서야 되겠소?” “예. 꼭 참가하겠습니다.” 리해식은 어찌나 기뻤는지 범주임의 손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그날부터 해식은 리직하고 공부를 하나 다름없었다. 개학 첫날에 700여명 학원들은 사단 수장의 동원보고가 끝나자 인차 문화교원의 가르침 밑에 한자를 한글자, 한글자 배우기 시작하였다. 큰 강당에는 걸상마저 없어 땅바닥에 박은 빤빤한 나무통에 앉아 무릎 우에 책을 놓고 공부하였다. 필기장이 없어 학원들은 나무꼬챙이로 땅바닥에 한획한획 그으면서 한자를 익혔다. 그들을 가르치는 문화교원은 당시 전국적으로 널리 쓰는 “기건화속성식자교수법”에 따라 교수하였다. 이름난 기건화동지는 원래 이 군단 후근부 문화교원이였는데 그가 고안해낸 속성식자교수법은 당시 전군, 나아가서 전국에 널리 보급되였다. 그후 기건화동지는 북경에 전근돼가서 전국문맹퇴치위원회 부주임으로 부임되였다. 그들은 기건화속성교수법에 따라 먼저 한어주음자모와 병음을 배운 뒤 그림을 보면서 병음을 달고 글을 익혔다. 학원들은 전면교육과 개별교육을 결합하여 가르침을 받았기에 매우 빨리 한자를 익혔다. 하루에 스무나문개 한자를 익혀 한주일에 2, 3백개 한자를 익힐 수 있었다. 뙤약볕이 재글재글 내리쪼이는 낮에 나무그늘 밑에서 공부하기도 숨이 막혔지만 모두 아주 즐겁게 공부하였다. 다만 조명등이 없는데다가 등불관제가 엄해 아까운 밤시간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뿐이였다. 후에 학원들은 손전지불을 리용하여 공부하였다. 숱한 손전지불이 대낱같이 환하게 켜져 밤중 반공습에 불리하게 되였다. 량미간을 쪼프리면 꾀가 생긴다고 여러 동무들은 침대에 모기장을 치고 손전지 앞끝에 작은 구멍이 뚫린 천씌우개를 씌우고 그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빌어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침대 안은 밝지만 밖에 불빛이 새가지 않아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었다. 스무나문날 밖에 안되는 돌격적인 학습을 거쳐 학원들은 대부분 500 내지 600자 이상 한자를 배워냈다. 학원들의 실제 진도에 따라 공고반과 제고반으로 나눠 계속 공부하게 되였다. 리해식은 이전에 고한어를 좀 배운 기초가 있어 한자를 600자 이상 술술 내리쓸 수 있게 돼 제고반에 들어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반문맹의 모자를 벗게 되였다. 대부분 학원들은 한달 반의 학습을 거쳐 문맹의 모자를 벗고 흥겹게 각기 자기 사업터로 돌아가 서부전선으로 진군해 새 전투임무를 완수하게 되였다.                                                                 제4장 동부전선에서                           저격전       아군은 조선 황해도 곡산군에서 1년 넉달 동안 휴식정돈한 뒤 1952년 10월 25일에 동부전선에 이르러 조선인민군으로부터 어음산 일대의 20킬로메타나 되는 방어진지를 물려받았다. 아군 사단에서 맡은 진지는 동으로는 어음산 서쪽으로부터 서로는 북한강 동안에 이르기까지 10킬로메터나 되였다. 조선 동부전선의 지형특점은 가파롭고 높은 산이 많고 나무숲이 우거진 것이다.       적아 쌍방은 모두 5, 6백메터로부터 천여메터 되는 높은 고지에 견고한 진지를 쌇고 대치하고 있었다. 중조 두 나라 부대의 간고한 노력 밑에 조선반도의 허리를 가로 질러나간 250킬로메터나 되는 갱도식방어체계를 세워 진공할 수도 있고 방 어도 할 수 있는, 력사상 전례없는 “지하장성”을 이루었다. 이런 “지하장성”은 거의 모두 인공적으로 괭이나 삽 같은 것으로 판 것이다. 이는 실로 중조 두 나라 장병들이 피땀으로 수축한, 적들이 쳐들어올 수 없는 금성철벽이였다.       이런 금성철벽의 진지와 대치한 적들의 제일 먼 거리는 천여메터, 제일 가까운 거리는 백여메터 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저격전을 벌리기 아주 좋았다.       그때 40일 사이에 적 103명이나 쏴죽이고 9명의 저격수를 육성해낸 리해식 소속 사단 모 퇀 5련의 반장이며 청년저격수인 양지문의 사적은 전 지원군에 널리 알려졌다. 사단 비서과에 있던 리해식은 그때 양지문의 사적을 직접 정리하였고 또 그의 저격재능을 직접 목격한바 있다. 양지문은 전 반 전사들과 함께 적들과 제일 가까운 북한강 동안의 전연진지인 572.4고지에 배치받았다. 572.4고지와 굽이쳐흐르는 북한강을 사이 두고 2, 3백메터 떨어진 곳에 적들의 진지가 있었다. 양지문이네 고지는 대안의 적들이 지키는 고지보다 훨씬 높아 적들의 일거일동을 손금보듯 환히 볼수 있었다. 상급에서는 명사수인 양지문에게 저격임무를 주었다. 어느날, 적 취사원이 밥배낭을 메고 주요진지가 있는 서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 놈, 어디 깜장콩알 맛이나 봐라!” 양지문은 그 놈의 엉뎅이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땅, 땅, 땅땅! 그 놈의 엉뎅이를 20여메터나 따라가면서 스물대여섯발이나 쏘았다. 그러나 그 놈은 쓰러지기는커녕 양지문을 놀리기나 하듯 느릿느릿 걸어갔다. “제길, 저 놈새끼를 거저! 헤이.” 그는 주먹으로 전호 벽을 꽝 쳤다. 좀 지나 양지문은 그 놈이 나무 세그루가 서 있는 곳을 돌아 서쪽으로 가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첫나무 쪽에 총을 겨누고 그 놈의 옆구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아니나다를가 그 놈이 첫나무에서 둬메터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양지문은 인차 방아쇠를 당겼다.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그 놈은 두다리로 나무를 걷어차면서 대가리를 땅바닥에 처박더니 까딱하지 못하였다. 이윽고 한 놈이 그 곳에롤 달려와 그 놈의 시체를 끌어가려고 하였다. 땅! 그 놈도 네각을 뻗고 쓰러졌다. 이때 바빠맞은 적 몇놈이 시체를 끌어가려고 그 곳에로 욱 뛰여나왔다. 한 놈이 섶나무무지 가까이로 달려오다가 “땅!” 하는 총소리와 함께 뻐드러졌다. 뒤따라오던 두 놈도 두 방의 총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적들은 다시는 그 곳에 얼씬하지도 못하였다. 고지에는 어느덧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내리드리웠다. 별들이 하나, 둘, 반짝거리고 구리바라 같은 둥근달이 동녘하늘에 두둥실 떴다. 양지문은 전호 속에서 전사들을 모아놓고 이날 벌린 저격전 경험을 총화하였다. “처음에 명중하지 못한 건 흐르는 북한강 큰 강물과 골짜기가 탄알을 흡인하여 탄도에 편차가 생겼기 때문이오.” “옳습니다. 강과 골짜기를 넘어 저격하자면 양반장처럼 목표를 정하고 기다렸다가 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양지문은 어둑시그레한 전호 속에 둘러선 전우들을 둘러바다가 달빛을 빌어 강 건너편을 손가락질하면서 차근차근 말하였다. “그럼 저 세그루 나무가 선 곳을 1호 목표로 정하고 저 땔나무무지 부근을 2호 목표로 정합시다. 거리는 300메터로 정하고…” “예, 그렇게 합시다.” 이튿날, 동녘하늘에 아침해가 뿔끈 솟아올라 산을 타는듯 붉게 물들였다. 타는듯하던 단풍잎이 이젠 다 떨어진 뒤라 적들의 진지 안의 동정이 똑똑히 내려다보였다. 저격전을 벌리기엔 참 안성맞춤하게 목표가 잘 보였다. 이때 적진에 두 놈이 나타났다. 그 두 놈은 전날에 저희들 동료들이 총에 맞은 교훈을 섭취했는지 이전처럼 걷지 않고 후미진 곳으로 해 에돌아 양지문의 사격대 맞은켠에서 불쑥 나타나더니 이쪽으로 어정어정 걸어왔다. “흥, 그 놈새끼들이.” 양지문은 앞으로 묘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여섯발의 총소리와 함께 그 두 놈은 뻐드러졌다. 놈들은 시체를 글어갈 엄두도 못내고 기관총으로 양지문의 사격대 쪽에 대고 쏘아댔다. 양지문은 머리를 들 수 없었다. “어이, 양반장, 여기 와 보오.” 전호 저쪽에서 포병패장이 망원경을 들고 불렀다. 양지문이 전호로 기여가서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적기관총의 위치가 똑똑히 보였다. 양지문은 사격대에 돌아와 잘 묘준하여 두루룩 뚜루룩 한배짐 갈겼다. 그 놈의 기관총도 벙어리로 되였다. 그런데 다른 적 기관총이 계속 울부짖었다. 머리만 쳐들면 총알이 푱, 푱 소리를 지르면서 전호 벽에 박혔다. 그런데 적 기관총의 위치가 알리지 않았다. 량미간을 쪼프리면 꾀가 나온다고 궁리하던 끝에 양지문은 련락원더러 나무작대기에 모자를 벗어 전호 우에 올리밀었다 내리웠다 하게 하였다. 과연 모자를 올리밀기만 하면 총알이 쌩쌩- 날아와 모자에 구멍을 뚫었다. 양지문은 다른 곳에 엎드려 인차 적기관총의 위치를 발견하고 총을 겨눠 한 수무발을 련발로 갈겼다. 그 놈의 기관총도 벙어리로 돼버렸다. 뒤이어 적들은 참을 수 없었던지 한놈한놈 시체를 끌러 나왔다. 양지문은 적들이 나오는 족족 쏘았다. 이날 양지문 반의 전사들은 적 11명이나 쏴죽였다. 사흩날, 적들은 전호에 중기관총 한정을 걸어놓고 미친듯이 사격해댔다. 그리고 진지 뒤에서 숱한 놈들이 점점 더 많이 오락가락하였다. “제길할 놈들, 어디 대포 맛이나 봐라!” 양지문은 패의 주봉진지에 알려 포사격을 요구하였다. 쿵! 쿠궁! 쿵쿵! 아군의 무후좌력포가 불을 토했다. 적진지가 뭉청뭉청 날아났고 적 기관총도 벙어리로 돼버렸으며 세 놈이 즉살하였다. 이때 무너진 적진에서 다섯 놈이 슬금슬금 기여나왔다. 양지문은 인차 한배짐 쏘았다. 세 놈이 쓰러지고 나머지 두 놈은 시체에 길이 막혀 황급히 무너진 동굴 속에 뛰여들어갔다. 이윽고 그 두 놈은 동굴 속에서 나올 엄두도 내지 못하고 나무막대기에 모자를 걸어 동굴 밖으로 내밀었다 들여갔다 하면서 시탐했다. “허허, 고놈의 잰내비들이 흉내는 잘 낸다.” 양지문은 웃음보를 터뜨리면서 전사들과 함께 그 두 적을 가만 놔두었다. 몇분이 지난 뒤 그 놈들은 시름놓고 동굴에서 나와 되돌아가는 것이였다. 땅! 땅! 두방의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그 두 놈은 땅에 키스를 하며 버둥거렸다. 어느날 양지문이 진소화를 데리고 사격대에서 저격요령을 가르칠 때였다. 때마침 적 두 놈이 진지에서 나와 강변으로 내려오는 것이였다. “저 놈들을 쏴 보오.” “예.” 진소화는 그 두 놈의 앞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땅! 땅땅! 땅! 몇방을 쏘았지만 한 놈도 꺼꾸러지지 않았다. 총알은 자꾸 적의 앞에 가 먼지를 폴싹폴싹 일궜다. “진동무, 좀 뒤쪽으로 해 쏘오!” “아니, 놈들이 앞으로 다가오는데 뒤에 대고 쏘다니요?” “그럼 내 쏠테니 보오.” 양지문은 의아해하는 진소화를 피끗 돌아보면서 총을 받아쥐더니 적의 뒤로 한발자욱 사이 둔 곳을 겨누어 쏘았다. 한방에 한 놈씩 쏴눕혔다. “아니, 웬 일일가?” 진소화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강물이 흐르기에 편차가 생기오.” “예-“ 그제야 터득이 된 나얼니 진소화는 처녀애처럼 귀 밑까지 빨개났다. 그 이튿날 진소화는 양지문의 말대로 좀 뒤쪽으로 해 겨누고 세방을 쏘아 세 놈을 쏴 죽였다. 그날 점심 때였다. 다섯 놈이 나와서 죽은 세 놈의 시체를 끌어가느라고 야단법석했다. 진소화는 기관총을 가져다가 뚜루룩뚜루룩 갈겼다. 다섯놈이 몽땅 쓰러졌따. 그런데 한 놈도 산 아래로 굴러내려오지는 않았다. 총을 맞지 않은 놈들이 죽은 것처럼 납짝 엎드려 있었다. 격분한 진소화는 방아쇠에 손을 건 채 숨을 죽이고 살폈다. 그때 한 놈이 머리를 불쑥 들었다. 땅! 점발사격에 그 놈은 땅에 머리를 푹 박았다. 뒤이어 네 놈에게도 한방씩 갈겨주었다. 네 놈이 즉살하고 한 놈이 부상입고 기여 전호로 돌아갔다. 오후에 적들은 보복하려고 아군의 진지에 대고 포격과 기관총 사격을 해대는 한편 시체를 끌어갔다. 뒤에서는 군관이 권총을 휘두르면서 감독하고 있었다. 양지문은 뒤에서 우쭐거리는 그 군관놈을 겨눠 갈겼다. 땅! 총소리와 함께 그 놈은 권총을 뚝 떨구고 산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내려왔다. 양지문은 시체를 끄는 놈들이 보이는 족족 쏴눕혔다. 그러자 적들은 더는 시체를 끌러 나오지 못하였다. 그후부터 적들은 대낮에 밖에 나와 오줌똥도 감히 누지 못하고 동굴 안에서 통졸임통에 눠서 밖에 내던지군 하였다. 적들이 나오지 않자 용사들은 60밀리메터포로 포격하여 진지 밖에 끌어내다 한놈, 한놈 쏴죽였다. 후에 적들은 아예 동굴 속에서 나올 념도 하지 못하였다. “이젠 잘 됐네. 적들이 밥 먹거나 똥 싸는 것도 우리 손에 달렸구만.” “우리가 굶으라면 굶게 됐다니깐.” “하하하.” 전사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나중에 적들은 밤중에 흙을 넣은 벼짚가마니로 진지를 반키 넘게 쌓아놓고 결사적으로 저격을 막으려고 시도하였다. 적격수들은 적들이 나와도 잠시 쏘지 않았다. 그러자 적들은 점점 담이 커져 더 많이 나와 다녔다. 적들은 겁이 나 선불맞은 노루처럼 통로를 훌쩍훌쩍 뛰여 지나가군 하였다. 하여 몸뚱이를 내밀지 않아 저격하기 어려웠다. “옳지!” 양지문은 무릎을 탁 쳤다. 그는 포병더러 적 전호에 포를 쏘아 큰 구멍 세개를 내게 하였다. 적들이 그 무너진 세 구멍으로 지날 때 몸뚱이가 드러나기만 하면 쏘군 하였다. 하여 적진에서는 비명소리와 아우성소리가 높아갔다.       전연부대의 저격수들은 이런 저격방법으로 11월부터 12월까지 두달 사이에 도합 1,400여명이나 살상하였으며 포격하여 1,600여명이나 살상하였다. 당시 저격수들이 살상한 적의 인수는 동시기 섬멸한 적 총수의 46.6%에 달한다. 이밖에 포격으로 적 땅크 8대, 자동차 13대, 여러가지 포 13문이나 까부신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다.  
178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2) 댓글:  조회:1405  추천:0  2018-11-13
                                                       제2장 잊을 수 없는 첫봄        새로운 전투임무 조선 중부의 춘삼월은 말 그대로 산과 들에 봄빛이 무르녹는 계절이였다. 1951년 봄은 리해식이 조선에서 맞는 첫봄이여서 더구나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어느날 아침, 해식이 금방 일어나 세루를 하려고 하는데 교도원이 찾아왔다. 교도원은 여느때와는 달리 낯선 사람을 대하듯이 해식의 표정을 살피면서 천천히 말을 꺼내는 것이였다. “우리 군은 조국에 돌아가게 됐소.” “예?!” 해식은 뜻밖의 소식에 깜짝 놀랐다. “아니, 아직 4차 전역도 끝나지 않았는데 귀국하다니?” 교도원은 해식과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하였다. “조국에서 다른 군이 나와 우리 군을 대신해 싸우고 우리 군은 조국에 돌아가 휴식정돈하게 됐소.” “예- 거 참 기쁜 소식이군요.” 해식은 하루빨리 부모형제들이 계시는 조국 마을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긴 그는 시간도 없었지만 군사비밀을 지키기 위해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조선전쟁터로 떠나오면서도 어머니와 조선전쟁에 나간다는 말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그는 나이 어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리해하지 못했다. 기실 심양공안총지대에서 리석재촌까지 5킬로메터 밖에 되지 않기에 반나절이면 부모를 만나보고 올 수도 있었다. 썩 후에 안 일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오래동안 아들자식에게서 편지 한장 없자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무릅쓰고 그가 있던 심양공안총지대에까지 찾아왔댔다. 그때 공안총지대의 책임자들은 그가 조선전쟁에 나갔다는 말을 에둘러 말해줘 돌려보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날마다 속을 바질바질 태우면서 둘째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해식은 당장 부모형제를 만날 생각을 하니 기뻤다. “그래 언제 떠나게 됩니까?” “오늘 떠나게 되오.” “예? 오늘 말인가요?” “음, 그렇소.” 그런데 교도원은 기뻐하는 기색은 별반 없고 매우 침울한 표정이였다. 한참 담배를 피우던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우리 군에 있는 조선말번역원들은 몽땅 남아야 한다오.” “예?” 해식은 잘못 듣지나 해서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조선 싸움터에 새로 오게 되는 군에도 번역원들이 필요하다오. 하긴 동무들이 없이야 정말 말하는 벙어리, 듣는 귀머거리지.” 실로 그러했다. 조선전선에서 조선족번역원들이 없이는 한발자욱도 내딛기 힘들었다. 길을 물어도 그렇고 특무를 심문해도 그렇고 쌀을 얻어와도 그렇고 주숙을 배치하자고 해도 그렇고 조선말번역원들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해식이랑 조선말번역원들은 모두 사상상 잘 납득되지 않았다. 그들도 똑 같은 지원군 전사들이고 번역원질만 한 것이 아니라 전우들과 어깨겯고 똑같이 적들과 싸웠는데 왜서 그들만 귀국하고 번역원들은 귀국하지 못하는가? 여기까지 생각한 해식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는 교도원을 찾아가 다시 말해볼가고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지원군총부의 결정이라는데 말해서 무슨 소용 있겠는가고 잠자리에 털썩 되들어눕고 말았다. 다섯달이나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전우들과 갈라질 시각이 닥쳐왔다. 1951년 3월 23일에 부대는 귀국의 길에 올랐다. 영장과 련장, 지어 통신원까지 해식과 굳게 악수를 나누면서 석별의 정을 금치 못하였다. 진귀산 교도원은 해식을 와락 끌어안았다. “리동무, 그간 고생 많았소. 우린들 왜 동무를 데리고 가고 싶지 않겠소. 부대 수요니깐 방법없소. 조선전선엔 동무들이 수요되오. 꼭 끝까지 수고하오.” 해식은 목이 꽉 메여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리해식 소속군의 170여명 조선말번역원들은 사상상 잘 납득되지 않았지만 대렬을 지어 원 부대에서 남은 간부들의 지휘 밑에 길을 떠났다. 그들은 황해도 곡산군 장림동에 가서 명령을 대기하였다. 곡산군 소재지는 포화에 거밋거밋한 재더미로 돼 볼품도 없었다. 해식이네는 곡산군과 그리 멀지 않은 산간마을 장림동에 들었다. 이 마을은 곡산군 소재지와는 달리 대부분 초가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몇달동안 전쟁의 연기 속에서 그슬어난 해식 등은 담이 커진데다가 정서파동까지 있어 적들의 공중날강도의 폭격도 두려워 하지 않고 조선온돌방에 척 들었다. 책임자들은 170여명 번역원대오에 림시당지부를 세웠다. 리해식 소속사단에서 온 50여명은 한개 행정대조로 되였다. 리해식은 당지부 위원 겸 대조장으로 되였다. 그가 이끄는 행정대조는 단독으로 장림동의 한 부락에 들었다. 우리 행정대조에는 한 퇀에서 번역을 한 전우들도 여럿이 있었다. 장림동에 온 다음에도 학교에서 부대에 온 동무들이 귀국해 계속 공부하려고 의견이 많았고 사상정서파동이 제일 심하였다. 어떤 동무들은 책임자를 질질 따라다니면서 손이 발이 되게 빌면서 애원하는가 하면, 어떤 동무들은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까지 하였다. 어떤 동무는 이렇게 질문하기도 하였다. “우리도 부대와 함께 네개 전역에 다 참가했습니다. 다른 동무들이 고생할 때 우리도 수고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귀국할 때 우리는 왜 귀국하지 못합니까?” 심지어 어떤 동무들은 책임자의 코등에 대고 손가락질하면서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세우고 떠들어댔다. “통말이 아니야. 어떤 동무들은 귀국해 쉬게 하고 우린 여기다 팽개친단 말인가?” 책임자들이 상급의 지시에 따라 이런저런 해석을 했지만 그런 동무들을 쉽게 설복할 수 없었다. 하긴 당시 어떤 부대에서는 귀국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바삐 귀국하다보니 조선에 남게 될 번역원들에 대한 사상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떤 동무들은 행군하다가 남게 되였는가 하면, 어떤 동무들은 외출해 사업하다가 불리워 와 남게 되였는가 하면, 어떤 동무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남아 이 곳에 모여오게 되였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때 해식이네와 함께 한 마을에 든 김동무가 불시로 사망하였다. 그는 원래 리해식과 한 퇀에 있었댔는데 며칠전 전선에서도 아무 일도 없었다. 전쟁 때여서 이런 산골엔 의사도 없다보니 앓다가 불행하게도 사망하였다. 봄비가 지꿎게 구질구질 내리는 날, 함께 싸워온 전우를 포탄파편이 널린 조선 땅에 파묻은 그들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원래 들떠 있던 동무들은 안착되지 않아 들락날락하였고 어떤 동무들은 귀국하려고 인계사업책임자에게 아첨하기까지 하였다. 해식은 사단 번역대오 책임자의 신분으로 부대 정치기관을 거쳐 장림동에서 사망된 김동무의 혁명렬사증명서를 수속하여 한통의 편지와 함께 그의 집에 부쳐보냈다. 해식은 개울물이 졸졸 흐르는 강가를 조용히 거닐면서 동무들의 사상정서문제에 비추어 자기 사상도 검토해보게 되였다. 사색의 쪽배는 바람 따라 한곬으로 달렸다. (일찌기 조국에 돌아가 어머니를 본다면 물론 어머닌 속을 태우지 않을 게다.) 그는 머리를 들어 어머니가 계시는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허나 그 푸른 하늘아래 포화에 그슬린 조선의 산이 피끗 보이는 순간 그는 강뚝의 조약돌을 발길로 툭 걷어찼다. 조약돌은 사내물에 날아가 떨어지면서 촐랑 하며 물꽃을 일구었다. 해식은 머리를 들어 남녘하늘을 바라보았다. (포화에 그은 저 구름 아래 남녘땅은 지금 미제의 철발굽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다.) 순간 그의 눈 앞에는 물바다로 된 락동강반이 떠올랐다. 일곱살에 어머니 손을 잡고 살길을 찾아떠난 락동강반 고향마을이 삼삼히 떠올랐다. (안돼. 내 고향에는 지금 양키놈들이 욱실거릴 거야. 미제를 놔둔다면 조선도, 고향도 어머니도 편안하지 못할 것이다. 조선은 아직도 싸우고 있다. 미제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지도 못하고 귀국한다면 무슨 면목으로 어머니를 본단 말인가? 미제 양키놈들을 고향 땅에서 몰아낼 때까지 싸워보자.) 해식은 마음을 굳게 다잡자 마을 향해 제방뚝을 따라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느날 인계사업을 책임진 지도자는 마을 앞의 푸르무레 물이 오른 버드나무와 백양나무 아래에서 번역원대오 당지부확대회의을 열었다. 봄빛을 머금은 내가의 버들개지는 오동통하게 살이 쪄오르고 천지만물은 양춘을 즐기려는듯 제맘껏 기운을 펴고 춘흥을 떨치려는 상 싶었다. 버드나무숲 사이로 출렁이며 흐르는 시내물에는 해빛이 반사되여 천만개의 은싸락이 뛰노는듯 반짝거렸다. 지부확대회의에는 각 사의 매개 당소조 조장도 참가하였다. 지도자가 사상토론을 하도록 하였다. 어떤 동무들은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살구면서 의견을 제기하였다. “우리도 전사들과 함께 비발치는 탄우 속에서 사선을 넘나들었습니다. 우리도 당연히 조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또 어떤 동무들은 온화한 어조로 분석하였다. “우리 번역대오의 절대 대부분 동무들은 당중앙과 모주석의 호소에 따라 자원적으로 지원군에 참가했고 사상바탕이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불시에 부대가 돌아가는데 남게 되니 사상이 잘 타개되지 않은데 있습니다.” 회의장소는 벅적 들끓었다. 마지막으로 지도자가 여러 동무들의 이견을 종합해 말하였다. “동무들의 의견은 모두 도리가 있습니다. 우리 적지 않은 동무들은 모두 당과 모주석의 호소에 따라 자원적으로 중국인민지원군에 참가한 열혈청년들이며 혁명성이 강한 혁명전사들입니다. 몇차례 전역에서 매우 용감하였으며 적극적으로 사업했고 시련을 겪어냈습니다. 이는 여러 분들의 사상은 아주 밑바닥이 든든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함께 싸우던 부대가 귀국하는데 남게 되니 사상정서파동을 일으키게 됐습니다. 이 점은 리해됩니다. 그러나 전선에는 수많은 번역일군이 수요됩니다. 상급에서는 전투시련을 격은 로번역원동지들을 남겨 새로 조선전선에 나온 부대에 번역골간으로 배치하게 됐습니다. 이는 미제를 타승하고 항미원조전쟁의 승리를 취득하는 수요입니다. 번역원들이 없으면 조선전선에서 한발자욱도 걷기 힘듭니다. 동무들은 제4차 전역까지 공훈이 아주 큽니다. 여기 모인 동무들은 모두 당지부 위원 이상 골간들입니다. 당지부의 골간동무들이 앞장서 조선전쟁에 남고 또 여러 동무들에게 남게 되는 중요성을 설명하고 도리를 똑똑히 알려준다면 사상문제는 꼭 해결될 것입니다.” “옳습니다.” “견결히 상급의 명령에 복종하겠습니다!” 지도자는 당지부 위원들과 당소조 조장들의 의견이 통일되자 번역원대오의 사상문제를 해결할 구체 요구와 방법을 제기하였다. “먼저 사상동원대회를 엽시다. 그래도 터득돼하지 않는 동무들은 소조장동지들이 개별사상공작을 합시다.” 며칠 동안 동원대회준비를 한 후 이번에도 역시 마을 앞 개울가의 버드나무와 백양나무숲이 푸르르게 우거진 전번 당지부확대회의를 연 그 곳에서 전체 번역원 사상동원대회를 열었다. 지도자가 또 여러 번역원동무들에게 조선에 남게 되는 중요성을 설명하고 도리를 똑똑히 설명해주었다. 번역원들 대부분은 부대와 동북 여러 기관과 기업소, 학교, 사업단위에서 온 혁명청년들이여서 일정하게 사상각오가 높았기에 사상이 타개되였다. 실로 그들은 조선인민들의 곤난을 자기 곤난으로 생각했지 남의 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의 공동한 특징이고 한피줄을 타고난 겨레 넋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부분 번역원들은 사상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이 안착돼 자기 든 집의 마당을 쓴다, 물을 길어준다 하면서 돌아쳤다. 개별적으로 의연히 들락날락하면서 안착하지 못하는 몇몇 동무들은 조장들이 책임지고 조용히 찾아 속심을 나누었다. 하여 모든 동무들이 한결같이 조선전선에 남아 계속 번역원을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정찰병   조선 황해도 곡산군 장림동에 있을 때 리해식은 한 퇀에서 번역원을 한 로전우 김진태를 만났다. 김진태도 처음에는 역시 다른 동무들과 마찬가지로 정서가 퍽 좋지 않았다. 그러다가 해식을 만나자 김진태는 너무 반가와 그간 서로 회포를 털어놓게 되였고 사상문제도 해결되였다. 김진태는 꺽다리인데다가 강직하고 통쾌한 성격을 가졌는데 사업심이 아주 강하였다. 그는 일찍 1946년에 동북민주련군에 참군하여 정찰병을 하였었다. 조선전쟁이 폭발하자 흑룡강성의 어느 현 공소사에서 간부사업도 그만두고 자원하여 지원군에 참가했다. 단동에 모일 때 그는 정찰병을 한 적이 있었기에 해식이네보다 한주일 앞서 압록강을 넘어와 사단 정찰과에 배치받아 조선말번역원으로 되였다. 그는 사단 정찰과에 간 날 밤으로 정찰과장 리옥봉과 통성명을 할 새도 없이 50여명 정찰원들과 함께 정찰하러 떠났다. 그들은 태천남면의 한 산봉우리에서 불시에 적들과 맞다들게 되였다. 리옥봉 과장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매미가 껍데기를 벗어버리는 전술을 써서 모든 등짐을 몽땅 벗어 나무가지에 걸어놓고 산 아래로 슬쩍 내리빠졌다. 적들은 포위해 올라오면서 나무에 걸린 등짐에 대고 총질을 해댔다. 나중에 어두운 밤에 저희들끼리 맞불질해댔다. 산마루에 올라와 나무가지에 걸린, 숱한 탄알구멍이 펑펑 뚫린 등짐을 보고서야 적들은 속은줄을 알았다.  그날 밤, 그들은 적들을 뒤떨궈놓고 혀를 붙잡아 적정을 몽땅 정찰해냈다. 그때 김진태는 번역을 잘해 혀를 제대로 심문하여 적정을 알아내고 길안내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하였다. 하여 정찰과에서는 무슨 일을 하나 그가 없어서는 안되였다. 38선을 돌파할 때 그가 부대를 따라 설한풍이 휘몰아치는 화악산에 올랐다가 산꼭대기에서 사흘 밤과 낮을 뛰여다니면서 뛰여다니면서 사업하다나니 동상까지 입었다. 산에서 내리자 한 산골마을에서 동상을 치료하게 되였다. 동상을 입은 김진태는 쩔룩거리는 다리를 끌고 다니면서 80여명 동상환자들이 들 자리를 해결해준다, 조선 백성들에게서 먹을 쌀을 얻어준다, 남새를 얻어온다 하면서 눈코뜰새없이 맴돌아쳤다. 함께 동상치료를 받던 한 영장은 감동돼 이렇게 말하였다. “김진태동무 때문에 우린 굶어죽지 않게 됐소. 동무는 번역원이고 난 영장이지만 지금 우린 모두 김동무 말대로 하겠소. 무슨 일이 있으면 분부만 하오.” 이처럼 조선전선에서 조선말번역일군들은 모두 중국인민지원군 지전원들의 아낌을 받았고 존중받았다. 실로 부대 지휘원들의 말대로 “번역원들이 없이는 한발자욱도 내딛기 힘들었다.” 적들도 “지원군 한개 영을 놓칠지언정 번역원 한명이라도 놔두지 않겠다.”고 떠들어댈 지경이였다. 리해식과 김진태는 련 몇달간 갈라졌다가 만났기에 할 얘기도 많았다. 그들 둘은 천천히 시내물이 졸졸 흐르는 강가에 걸어갔다. 버들개지 오동통하게 싹트고 푸러러가는 버드나무밭을 지나 그들은 봄빛도 따사로운 제방뚝에 나란히 앉았다. “그래 동상을 입은 다리 이젠 괜찮소?” “음, 그래.” “아마 그간 인상깊은 얘기도 많을건데…” “그래, 어험.” 김진태는 습관처럼 마른 기침을 깇더니 지나간 추억을 더듬었다. “그게 아마 지난 2월일 거요. 그때 나는 금방 동상을 치료하고 나오자 조선인민군부대와 련락할 임무를 맡고 통신원 두 사람을 데리고 이천군의 어느 한 두메산골을 지나게 됐소. 련 며칠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걷다나니 길을 가면서도 끄떡끄떡 졸음이 오구 배에서는 꾸르륵꾸르륵 소리 날 지경이였소. 그래 두루 두메산골을 살펴보니 길옆에 오두막 같은 화전민집 한채가 보이더군.” “그럼 어무데서나 푹 잘게지.” “그래, 그래서 그 길옆집에 가서 사립문을 두드리니 서른댓살 되는 한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내다보더구만. 내가 조선말로 ‘우린 지원군인데 하루밤 쉬여 갑시다.’라고 했지.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들어오세요.’라고 하더구만. 집에 들어가보니 서너살 푼한 아이 하나 있더군. 주인은 어데 갔는가고 물으니 로력대로 며칠 나갔다고 하지 않겠소. 우리 셋은 곤한지라 그녀가 해주는 저녁밥을 먹자마자 웃방에 들어가 쉬였지. 통신원들은 잠자리에 들자마자 코를 드렁드렁 골더구만. 외딴집이여서 방공할 근심은 없었는데 나는 정찰병의 민감성으로 해서 바스락소리만 나도 귀를 도사리는 습관이 있었소.” 해식은 숨을 죽이고 그의 이야기에 점점 끌려들어갔다. “잠이 들가말가하는데 아래방에서 앓음소리가 나질 않겠소. 인차 깨난 나는 우리 셋에게 손목시계 하나 없지 등잔불도 없어 내려가 보기도 그렇고 해서 웃방에 앉은채로 ‘어디 편찮습니까?’ 하고 물었지. 아주머니는 그저 배 아프다고 하더구만. 아무 대책도 댈 수 없어 근심하면서 공연히 이 집에 들렸다고 후회했지. 곤하게 잠든 통신원을 깨워도 별 수 없고 해서 나는 그냥 웃방 사이문 옆에 앉아 동정만 살폈지. 그런데 그 녀자의 앓음소리는 점점 급해졌소. 급해난 나는 아무것도 가릴 새 없이 아래방에 가서 병고를 물어봤지. 아주머니도 안되겠던지 해산할 모양이라고 하지 않겠소.” “저런, 거참 야단났구먼.” 그의 말을 들은 해식마저 등골에 식은땀이 돋았다. “그래, 난 총각 아니구 뭐야? 얼마나 망칙하오? 이젠 그 자릴 피할 수도 없고 총각의 체면도 가릴 새 없게 됐지. 자칫하면 두 생명이 잘못될 판이잖소. 그래서 아주머니가 하라는대로 했소. 자리도 깔아주고 궤짝을 들춰 헌 천쪼각두 꺼내주었지. 등불이 없는지라 캄캄한 밤에 평생 처음으로 당하는 봉변이라 어쨌으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소. 그렇다고 곤히 잠든 통신원을 깨워야 별 수 없어 혼자 진땀을 뺐댔소. 둬 시간 걸려서 어린애를 낳는데 역겨운 냄새가 물큰 풍겨 막 토할 것만 같더군. 억지로 참으면서 방 귀퉁이에 흙으로 만든 코굴에 불을 피워 산모와 어린애를 안치해두었지. 아궁이에 불을 피워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지어 산모에게 먹였소.” “허허. 자넨 제법 조산원노릇을 했구만.” “에끼, 이 사람.” 김진태는 해식의 어깨를 떠밀고는 뒤말을 이었다. “아주머니 부탁대로 한 십리 떨어진 곳에 가서 그 아주머니의 시어머니를 알렸댔소. 시어머니는 깜짝 놀라더니 자그마한 보따리에 뭘 싸들고 치마꼬리에 휘파람소리 나게 달려갔댔소. 그땐 벌써 먼동이 훤히 떴는지라 우리는 그 집 시어머니가 해준 아침밥을 먹고 가라는 만류도 불구하고 길을 떠났댔소.” “허, 자긴 고사하고 숱한 고생 했구만.” “거야 어쩌오? 뜻밖에 당한 봉변인데.” 김진태는 담배를 둬모금 들이빨더니 계속 뒤말을 이었다. “그후 또 그 곳을 우연히 지나게 되였소. 그때 내가 마당을 쓰는 주인을 보고 지난 사연을 말했지. 그러자 주인은 내 손목을 으스러지게 잡고 ‘안해한테서 사연 들었지요. 헌데 숱한 지원군 속에서 주소도 이름도 남기지 않은 분을 어떻게 찾겠는가 했지요. 그런데 오늘 귀인을 만났구만요.’라고 아주 반가와하질 않겠소. 그는 자기 안해를 불러 인사시킵데.” “정말 감격적인 상봉이였겠구만.” “두 말이면 잔소리지. 아주머닌 부끄러움을 참아가면서 인사하더니 아들애를 내 품에 안겨주더구만. 그리고는 ‘그때 잠간 본 면목이라 만나도 말치 않으면 알 수 없었지요.’라고 하면서 앞으로 오빠로 모시겠다고 하지 않겠나. 그런데 나이를 따져보니 그 아주머니가 이상인지라 결국 나는 동생벌이 됐소. 그날 나는 그들 내외가 정성껏 차려준 산나물채에 점심밥을 달게 먹고 후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섭섭히 헤여졌소. 아마 후엔 다시 만나볼 것 같잖소.” 김진태는 담배연기를 길게 후- 내뿜었다. 해식은 그의 이야기를 솔깃해 듣다가 정찰병들은 단독행동할 때가 많아서 재미나는 이야기도 많을 것 같았다. “참 재미나는 이야기구만. 하나 더 하게나.” “하참, 이 친구, 답답한 판에 그런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나는가?” 해식은 “답답할수록 얘기타령이나 하면 속이 시원할게 아닌가?” 하고 이야기를 더 해달라고 지청구를 들이댔다. 그러자 김진태는 이런 이야기를 한토막 들려주었다. 한번은 김진태가 김화군 금곡리에서 북쪽으로 약 20리 떠어진 군부 2선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억수로 쏟아지는 비에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보도랑오솔길이 어찌나 질척질척한 진탕길인지 신발에 누른 진흙이 떡떡 붙어나 한발자욱도 걷기 힘들었다. 한 열흘 전선에서 지친 몸은 기진맥진하여 아무데서나 좀 쉬고 갔으면 하는 생각이 났다. 군단부에 이르니 오후 7시가 되였다. 김진태가 앉아 쉬기도 전에 작전과에서는 1선지휘부의 전화지시를 전달하면서 군의와 함께 속히 금남면 천곡리로 갔다가 돌아오라는 것이였다. 김진태는 맥이 딱 없으면서도 젖은 옷을 짤 새도 없이 돌아서서 군의와 함께 길을 떠났다. 철원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진창길을 넘어서니 봄비가 더욱 억수로 쏟아져 어두운 밤은 더욱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김진태는 부주의로 미끄러져 도랑에 철러덩 빠져 온몸이 흠뻑 젖고 말았다. 군의의 부축을 받아 겨우 도랑에서 기여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추위에 온몸이 오돌오돌 떨리고 이빨이 덜덜 맞쪼였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간신히 한 초가집을 만나 그 집에서 하루밤 묵을 작정을 하고 주인을 찾았다. 헌데 뜻밖에도 그 집 녀자는 문을 딱 막으면서 “딴 집으로 가세요.”라고 하는 것이였다. “아니, 어두운 밤에 어데로 가라는 거요?” 그들이 아무리 사정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들은 북조선에 어디 이런 사람이 있는가고 생각하면서 억지로 그 녀자를 밀고 웃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녀자는 할 수 없는지 아래방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이런 백성들에게는 사정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였다. 젖은 옷을 짜서 입고 차디찬 방에서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서서 저녁밥도 먹지 못한 채 서로 한족말로 토론하였다. “아무래도 이 집 녀자 수상해.” “경각성을 높여야겠소.” 그들은 벽을 의지하여 섰는지 앉았는지도 모르게 엉거주춤 서 있다가 어느결에 경각성이고 뭐고 굳잠에 곯아떨어져 코를 드렁드렁 골았다. 그녀가 깨우기에 와뜰 놀라 일어나보니 밤 열한시가 되였다. 그녀가 아래방에 내려와서 저녁식사를 하라고 하니 더럭 의심났다. (초저녁에는 집 안에 들여놓지도 않더니 지금 청하지도 않았는데 밥까지 해줘?) 그들은 밥을 먹느냐, 안 먹느냐고 토론하다가 군의가 아래방에 내려가서 둬술 떠서 검식해보았다. “일없소. 먹기요.” 군의가 한어로 말하자 김진태도 아래방에 내려가 숟가락을 들었다. 그들은 한 사발이나 되는 밥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다 재꼈다. 그런데 아래목에 있던 둬살 되는 어린애가 모질게 앓고 있었다. 군의가 어린애 이마를 짚어보니 몹시 따가왔다. 군의는 인차 주사를 놓아주고 약을 먹였다. 어린애의 신혈은 인차 점점 내려갔다. 그러자 그 녀자는 “옷도 젖었는데 아래방에서 자세요.”라고 친절히 말하는 것이였다. 그러나 그들 둘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웃방으로 올라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녀자는 웃방은 너무 추운데 기어이 아래방에서 자라고 하면서 이불까지 내려다 펴주는 것이였다. 의심이 더럭 난 그들은 권총에 장탄을 하고 서로 교대하면서 자기로 하였다. “허허, 헌데 먼저 군의가 지키구 내가 둬시간 자기로 했는데 나는 그만 시름놓고 어찌나 달게 잤는지 깨고보니 창 밖이 훤하더구만. 옆에서 군의도 정신없이 자지 않겠소. 허허허. 내가 흔들어 깨우자 깜짝 놀란 군의는 벌떡 일어나 제꺽 권총을 쥐지 않겠소. 내가 말리니 눈을 비비면서 ‘언제 잠들었는지 몰랐네.’ 하지 않겠소. 우리가 이불을 거두면서 보니 어린애는 병이 나아서 앉아 놀구 그 녀자도 기뻐 생글거립데. 집주인 녀자는 아침밥을 해놓구 우리가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않았겠소. 우린 그 녀자가 끓인 된장국에 아침밥을 달게 먹고 길을 떠나게 된 판이였지. 떠날 때 나는 그 녀자한테 ‘어제는 왜 그렇게 랭대했소? 헌데 오늘은 왜 또 이렇게 환대했소?’ 하고 물어보았댔소. 그러자 그 녀자는 방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지 않겠소. ‘저는 열성군속인데요. 사실 며칠 전에 지원군이라고 자처하는 자가 우리 집에 들렸댔는데요. 그 자가 어찌나 치근거리면서 행실이 추잡한지 겨우 빠져 달아났댔어요. 그 자는 꼭 괴뢰군특무인 거 같아요. 그래서 어제도 겁이 나서 막아버렸지요. 헌데 여겨보니 당신들은 아주 정직한 진짜 지원군이더군요. 그래서 있는 힘껏 대접했죠.’ 그래서 우린 그 녀자와 뜨거운 악수를 나누면서 헤여졌소.” “음, 실로 당신은 고생도 많이 하고 과거사도 많구만.” 시내물이 황혼빛에 붉게 물들어서야 그들은 시간이 퍼그나 흐른 것을 깨닫고 자리를 떴다.                     포로를 압송 수무날 푼히 조선 황해도 곡산군 장림동에서 휴식정돈한 170여명 번역원들은 제5차 전역이 시작되기 전에 새로 조선전선에 나온 부대로 배치돼갔다. 리해식 등이 사단 대적공작과에 배치받은지 이틀도 안되여 1951년 4월 22일 제 제5차 전역의 포성이 쿵쿵 울렸다. 리해식은 대적공작과의 리보화 과장을 비롯한 주자가, 장광우 등 여섯 동무들과 초면이였지만 구면처럼 서로 서먹서먹한 것이 털끝만치도 없이 무람없이 보냈다. 리해식 소속사단은 1944년 8월 태항산1려, 385려 및 신사군 일부 장병들로 무어진 부대로서 일찍 항일전쟁시기 하남 서부에서의 적후무장투쟁, 해방전쟁시기 2천리중원포위돌파, 청구와 련수, 림성 등 도시보위전, 림분과 태원성 공격전, 맹량고와 진령 산구에서의 운동전 및 함양저격전 등 수많은 이름난 전투에서 빛나는 공훈을 세운 부대, 전투경험이 아주 풍부한 영웅부대였다. 리해식이 이 사단에 배치된 이튿날, 이 사단은 제5차 전역에 뛰여들었다. 사단에서는 미군 제25사와 토이기려단, 미군 3사단간의 련계를 끊어버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선봉퇀은 비교적 약한 토이기려단의 방어선을 돌파구로 삼고 무찔러나갔다. 그들은 이튿날 밤 2시에 적군의 종심에로 41.5킬로메터나 무찔러들어가 한탄천으로부터 한강 북안의 금곡리에 이르는 방어선까지 점령하여 전투임무를 순조롭게 완수하였다. 뒤이어 그들은 비오는 밤낮이 따로 없이 계속 적들을 추격하였다. 이때 적들이 많이 포로되였다. 사단 대적공작과의 주자가와 장광우가 전문 미군과 토이기 포로들을 영어로 심문하였다. 괴뢰군 포로가 잠시 없었기에 해식은 포로들과 별로 접촉하지 못하였다. 제5차 전역 제2단계에서 지원군총부에서는 력량을 집중하여 정전담판에 응하지 않는 동부전선의 리승만괴뢰군을 족치라고 명령하였다. 그리하여 리해식 소속사단은 서부전선으로부터 동부전선으로 진군하여 5월 15일에 춘천 부근에 들이닥쳤다. 5월 16일 오후 6시부터 제5차 전역의 제2단계 전투가 시작되였다. 17일 밤, 이 사단은 격전 끝에 토이기려단과 프랑스군 한개 영의 방어선을 돌파하였다. 18일 밤, 이 사단은 계속 남쪽으로 진군하였다. 리해식이 한창 부대를 따라 행군할 때였다. 리보화 과장이 영어번역원인 주자가와 해식을 불렀다. “동무들은 사 경위련 부련장과 함께 한개 경위패를 거느리고 전연진지에 가서 포로롤 사단포로수용소에까지 압송해오시오.” “옛!” 리보화 과장은 그들을 번갈아보면서 포로를 인계받을 위치와 주의할 점을 차근차근 얘기하였다. “전연진지로 가자면 적들의 포격이 심한 도로와 큰 강을 건너야 하오. 특별히 주의하오. 포로들을 꼭 안전하게 압송해야 하오.” “예, 알았습니다.” 이때 경위련의 부련장이 경위전사 20여명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길을 다그쳤다. 억수로 비를 쏟아붓는 하늘에 언제 흐렸더냐 싶이 별들이 반짝였다. 해식은 모젤권총을 차고 청신한 밤공기를 한껏 들이켜고는 대오의 제일 뒤에서 걸었다. 한 2, 3킬로메터 걸어갔을 때였다. 먼 곳에서 “쿵-쿵-”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씽-” 하는 소리가 들렸다.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였다. 그들은 제자리에 납짝 엎드렸다. 포탄 몇발이 그들이 엎드린 곳에서 저만치 멀리 떨어졌다. (눈먼 포탄이구나.) 해식은 이젠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를 듣고서도 어데 떨어져 폭발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엎드렸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한 산비탈의 보리밭을 와삭와삭 헤치고 나갈 때였다. 쿵, 쿵- 먼 곳에서 포소리 울리더니 포탄이 씽- 하고 귀청을 때리면서 날아왔다. 해식은 불길한 감이 들어 앞에 대고 고함쳤다. “엎드렷!” 무두들 거리를 띄워 납짝 엎드렸다. 꽝, 꽈르릉, 꽝꽝! 고막이 터질듯한 폭발소리와 함께 묵직한 물건이 면바로 해식의 오른 허벅지를 탁 쳤다. 순간 그는 오른 허벅지가 끊어지는듯 아파났다. (끝장났구나. 파편에 다리가 끊어진 모양이지?) 그는 바르르 떨리는 입술을 옥물면서 오른손으로 때끔때끔 아파나는 허벅지를 죽 내리만져보았다. 그런데 축축한 피는 만지우지 않고 대신 대야만큼한 흙덩이가 만지웠다. “음, 살았구나.” 그는 허벅다리 우의 흙덩이를 밀어버리고 일어났다. 안도의 숨이 후- 나갔다. 앞을 보아도 상한 사람이 없었다. 보리밭을 나서니 산비탈 아래 희읍스럼한 신작로와 그 앞에 굽이쳐흐르는 강물이 보였다. 물소리를 들어보면 그리 깊지 않을 상 싶었다. 해식은 옆에 선 주자가와 부련장에게 얼굴을 돌렸다. “안되겠소. 여기 있어도 위험하오. 거리를 띄워 신작로를 건너기오.” “예, 그렇게 합시다.” 그들은 거리를 띄워 번개같이 신작로를 건넜다. 금방 신작로 아래에 내려섰을 때였다. 쿵, 쿵, 쿵쿵! 씽- “엎드렷!” 해식은 고함치며 신작로 밑에 가로 뚫린 배수관구멍에 머리르 쑥 들이밀고 엎드렸다. 다른 동무도 뛰여와 머리를 해식의 머리 옆으로 쑥 들이밀었다. 머리는 도관 안에 들어갔지만 몸뚱이와 다리는 도관 밖에 몽땅 드러났다. 그런데 포탄은 그들이 엎딘 곳과 좀 떨어진 곳에서 꽝, 꽝 작렬하였다. 그들은 머리만 보호하고 몸뚱이를 보호하지 않은 자기들이 우스워 낄낄 웃었다. 폭발소리가 멎자 그들은 일어나 그 배수관을 들여다보면서 또 껄껄 웃었다. 그들은 황급히 우르르 쓸어나가 무릎팍까지 오는 강물을 뛰다싶이 해 건넜다. 전연진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적들의 봉쇄포격이 더 심하였다. 나중에는 몇발자국 달리군 하다가도 포탄을 피해 엎드려야 했다. 여기저기에서 불기둥이 자꾸 일어났다. 송고봉진지에까지 다 갔을 때에는 경위패의 전사들 가운데서 따라온 전사가 10여명 밖에 되지 않았다. 해식과 주자가는 전연진지의 모 퇀 부퇀장을 찾아갔다. 부퇀장은 그들 보고 한무리 포로를 압송하라고 하였다. 피뜩 봐도 80여명은 잘 되였다. 이때 동녘하늘이 푸름히 밝아왔다. 그들은 량옆에 소나무숲이 우거진 으슥한 작은 골짜기를 찾아 거기에 포로를 압송해 몰아넣고 해가 넘어가기를 기다렸다. 포로들 속에는 코가 크고 눈알이 파란 프랑스군의 포로들이 있는가 하면 키가 작달막한 괴뢰군 포로도 30여명 있었다. 프랑스군 포로는 주자가가 맡고 괴뢰군 포로는 해식이 맡았다. 그리고 10여명 경위패 전사들은 부련장의 지휘 밑에 경위임무를 맡았다. 그들이 포로를 접수할 때까지도 프랑스군 포로들은 두덜거리면서 미군 놈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미군 2사단은 죽을 림박까지도 우리 프랑스사람들까지 못살게 군단 말이야. 제길, 하느님도 용서하지 않을 거야!” 해식과 주자가는 먼저 포로들에게 미시가루를 나눠주었다. 괴뢰군 포로들은 그래도 미시가루를 받아 억지로 먹었지만 프랑스군의 “나으리포로”들은 음식습관에 맞지 않아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좀 지나 그들은 해식이랑도 미시가루에 닦은 콩을 먹는 것을 보고 배고픈지 억지로 따라 먹는 것이였다. 후에는 먹기 싫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 주는 족족 다 받아먹었다. 뒤이어 해식과 주자가는 각기 자기가 맡은 포로들에게 간단한 교육을 하였다. 해식은 자기를 쳐다보는 괴뢰군 포로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중국인민지원군은 포로를 너그럽게 대합니다. 우선 당신들의 생명안전을 보호하며 절대 당신들 개인재물을 가지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우리 지휘에 복종해야 됩니다. 특히 대낮에 방공기률을 엄격히 지켜야 합니다. 허가 없이 마음대로 움직여서는 안되며 마구 달아다녀선 절대 안됩니다.” 우리 교육을 받은 프랑스군 포로들은 담이 콩알만해져 말을 괜찮게 들었다. 그런데 괴뢰군 포로들은 배고프다는둥, 대소변을 보겠다는둥 하면서 야료를 부렸다. 이런 형편에서 해식이랑은 뜻밖의 사단을 막으려고 포르들의 손칼이나 라이터 같은 것을 몽땅 몰수하였다. 라이터는 원래 몰수규정에 든 물건이 아니였다. 그러나 수용수에 가면 돌려주기로 하고 몰수하였다. 그것은 적기가 날아올 때 고의로 불을 질러 목표를 드러내면 적기가 와서 폭격, 소사하게 하고 그 혼란한 틈을 타서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어느덧 포화에 그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어둠의 장막이 산골짜기를 뒤덮었다. 해식과 주자가는 포로들에게서 로획한 총을 가져다가 격침을 다 빼서 그들이 보관하고 한자루씩 나눠 포로들이 메게 하였다. 뒤이어 말을 잘 듣지 않는 괴뢰군 포로들을 앞에 세우고 프랑스군 포로들을 뒤에 일렬종대로 세우고 경위패 전사들의 호송하에 산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이 전날에 건는 강과 신작로에 이르렀을 때였다. 놈들의 포탄은 의연히 무시로 날아와 작렬하였다. 해식과 주자가 그리고 부련장은 토론 끝에 뜻밖의 사고를 방지하려고 전사들을 시켜 신작로에 널린 전화선을 주어오게 하였다. 그리고 포로들더러 반메터씩 사이 두고 줄을 서게 한 후 전화선으로 포로들의 왼손을 차례로 얽어매놓았다. 그러자 포로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더럭 겁나 숨소리마저 씩씩 거칠어졌다. “겁나 마시오. 안전하게 봉쇄선을 넘으려고 묶습니다.” 그제야 포로들은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였다. “예- 그런 걸 또…” “글쎄 말이야. 괜히 놀랐잖아.” 해식은 재삼 기률을 강조하였다. “포탄이 날아와도 절대 마구 뛰지 말고 지휘에 복종하시오.” 포로들은 “예.”, “예쓰(Yes)” 하며 수긍하였다. 그들이 시작로 남쪽의 강변 모래톱에 이르렀을 때였다. 쿵, 쿵, 쿵쿵! 포격소리와 함께 포탄 몇발이 씽-씽 날아와 그들의 부근에서 작렬하였다. 강물에서 여러개 물기둥이일었다. 질겁한 포로들은 우르르 강물에 뛰여들어 마구 달려나갔다. 그런데 한 손을 전화선에 묶인 포로들은 목숨을 살리려고 제마끔 뛰다나니 적잖은 포로들이 물에 넘어졌다. 포로들은 마구 당기고 끌리우고 하면서 앞으로 좀처럼 나가지 못한채 고함만 질렀다. (안된다. 이러다간 여기서 대포밥이 되겠다.) 해식은 날창을 빼들고 전사들에게 고함쳤다. “동무들! 포로를 묶은 전화선을 서너사람씩 건너 끊어놓소!” 해식과 전사들이 몇 사람 사이씩 건너가면서 전화선을 끊어놓았다. 해식은 허리에 찬 모젤권총을 뽑아들고 공중에 대고 휘두르면서 목청을 돋구어 고함쳤다. “당신들은 몽땅 앞으로 달려나가시오. 강물과 도로를 건넌 다음 둔덕에 모이시오. 누구든지 마구 달아나면 총살할테요!”  그러자 포로들은 찍 소리 못하고 삼삼오오 짝을 져 무릎을 치는 강물을 달려 건넜다. 도로까지 건는 포로들은 둔덕에 서서 뒤의 포로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봉쇄선을 지나온 다음 포로들을 세여보니 한명도 차나지 않았다. 해식은 포로들을 둘러보면서 위안하였다. “겁나 마시오. 이제 좀 더 가면 목적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산길이 질척해서 걷기 힘들 겝니다. 허나 한 사람도 대오를 떨어져선 안됩니다.” 포로들은 “예”, “예” 하면서 수긍하였다. 그들이 달빛을 빌어 어둠을 뚫고 사단지휘소와 좀 떨어진 개울가 오솔길을 걸을 때였다. 땅! 갑자기 앞에서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해식이 바삐 모젤권총자루에 손을 가져다대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웬걸! 한 괴뢰군 포로가 총에 맞아 땅바닥에 네각을 뻗고 쓰러져 있고 포로들은 질겁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해식은 죽은 포로의 시체를 살펴보다가 허리를 펴며 눈길을 부련장한테 돌렸다. “웬 일이오?” 부련장은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면서 대답하였다. “이 포로가 맥이 없다면서 총을 메지 않구 떡 들어앉아 걷지 않습디다. 그래서 화김에 쏴죽였습니다.” 해식은 버럭 화를 냈다. “적들이 총을 놨으면 우린 포로들을 너그럽게 대해야 하오. 이게 무슨 짓이오? 마음대로 포로를 총살하다니? 우리 군대 포로정책을 엄중히 위반했단 말이오! 에참! 포로들 속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쳤는지 아오? 엉?!” 부련장은 입에 빗장을 지른 채 찍소리도 못하였다. 포로들은 겁기를 띤 눈으로 그들을 번갈아보았다. 해식과 주자가는 포로들에게 해석하여 공포정서를 해소하게 하였다. 그제야 포로들은 지휘대로 줄을 서서 목적지를 향하였다. 날이 푸름히 밝아올 때 그들은 포로들을 사단 포로수용소의 지정된 지점에까지 압송하였다. 그리고는 거뿐한 걸음으로 사단 대적공작과로 돌아갔다. 얼마 후 들은 말에 따르면, 포로를 죽인 그 부련장은 상급으로부터 행적철직처분을 받아 보통전사로 돼 반에 내려갔다고 하였다.                       북한강반의 피어린 자욱       5월 중순의 어느날 밤,  달빛도 없이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이따금 먹장구름 속에서 뻘건 구렁이가 불혀를 한강 쪽에 날름거려 핥고는 사라졌다. 하늘땅이 맞붙을듯 우뢰소리가 우르릉 꽝꽝 울리고 바가지로 퍼붓는듯이 대줄기 같은 비가 억수로 쏟아져내렸다. 해식의 소속사단 기관과 직속부대 장병들은 비옷을 걸치고 소낙비를 무릅쓰고 북한강에 이르렀다. 손을 내밀어도 제 손가락을 똑똑히 볼 수 없이 캄캄한 밤에 허연 강물이 깊다란 골짜기로 해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굽이쳐 뻗어나간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장병들은 춘천 동북쪽에서 북한강을 건너 홍천 쪽으로 쳐들어가야 하였다. 해식이랑 북한강을 초조히 바라보았다. 그때 곁에 서 있던 조선 아바이가 석쉼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평소에는 바지가랭이를 걷고 건널 수 있었어요. 관데 비가 내려 깊은 곳은 아마 배꼽까지 올 거라구.” “예-” 해식은 비옷을 입었지만 찬 비물에 추워 우둘우둘 떨었다. 부대 장병들은 까만 밤에 아래도리를 벗어 총과 문건주머니, 미시가루주머니와 함께 비옷 속에 넣어 머리에 이고는 손에 손잡고 차디찬 강물을 건넜다. 키 작은 해식이 강심에 들어서자 찬물이 가슴팍을 쳤다. 차디찬 강물에 뻗뻗해진 두 다리는 점점 옮겨딛기조차 힘들었다. 정치부의 년세 많은 과장들은 급류 속에서 휘웅적거리면서 걷기 힘들어해 해식이랑 청년전사들이 다가가 부축해줘야 했다. 쉰 남짓한 취사원은 커다란 밥가마를 지고 세찬 급류가 사품치는 강심에 이르자 한발자욱도 내딛지 못하였다. 그러자 한 청년전사가 그를 업고 강을 건너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들은 강을 건느자 질척한 진창길을 더듬으면서 동북쪽으로 전진하였다. 밤중에 이르러 사단 기관대오가 행군해나가는 부근에 포탄이 씽씽 날아와 폭발하였다. 화광이 번쩍이고 굉음이 귀청을 때렸다. 꽝! 굉음과 함께 해식에게서 서너메터 떨어진 곳에서 포탄이 작렬하였다. 정치부 서류궤짝을 진 말이 파편에 맞아 대가리가 날아났다. 사양원이 가슴에 중상을 입었다. 해식의 앞에 웅크리고 앉았던 청년전사와 장과장이 다리에 파편을 맞고 쓰러졌다. 후에 안 일이지만 장과장은 다리가 썩어 절단하지 않으면 안되였다고 한다. 만강의 전쟁은 끌날 같은 젊은 청년전사의 목숨을 빼앗아갔고 젊은 간부 장과장을 종신불구자로 만들어놓았다. 아군 대오는 밤도와 그 오솔길을 따라 산에 올랐다. 그들이 산중턱에 오를 때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왔다. 어둠과 나무에 가려진 바위들이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이때 앞선 제6대대(사단 사령부의 대호)로부터 제자리에서 숙영하라는 명령이 전해왔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누구의 명령이 없었지만 장령들은 작은 군용삽과 괭이로 어둠 속에서 각기 혼자 숨을 엄페호를 팠다. 그리고 그 엄페호 안에 축축이 젖은 나무잎을 훑어다가 펴고 비옷을 입은 채 엄페호 안에 쭈그리고 앉아 쉬였다. 전투가 앞에서 백열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엄페호 안에 들어앉자마자 코를 드렁드렁 골았다. “어이, 일어들 나시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누가 소리치는 바람에 모두들 놀라 깨여났다. 어느덧 동녘하늘에 둥근 해가 두둥실 떠서 금빛을 뿌리고 있었고 아름다운 아침노을이 온 산비탈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빽빽이 들어선 나무숲 사이로 해빛이 부채살처럼 비껴들었다. 비도 멎은지라 이른아침의 수림 속 공기는 청신하기 그지없었다. 해식은 시원한 아침공기를 가슴 뿌듯이 한껏 들이켜면서 엄페호에서 기여나왔다. 그러자 주자가가 그의 얼굴을 손가락질하면서 킬킬 웃어댔다. “허허, 똑마치 흑인 낯 같구려.” 해식도 주자가의 낯을 가리키면서 빈정거렸다. “별, 검정개 돼지 흉 한다고 하오. 동무 낯은?” “엉?” “하하하.” “허허허.” 서로 남의 까만 얼굴을 둘러본 동무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온 얼굴은 포탄에 날린 흙먼지에 두눈과 입을 내놓고 진짜 흑인처럼 새까맸다. 그들은 인차 산골짜기에 내려가 세수를 하고 엄페호에 다시 들어가 푹 쉬였다. 그후 장병들이 그 산을 내려 화천으로 가자 군부에서는 지암리쪽으로 쳐들어가 북한강 남쪽에서 적들에게 포위된 형제사단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사실 제5차 전역 제2단계에 동부전선에서 온 아군에서는 토이기려단의 방어선을 뚫고 홍천 동북쪽의 송고봉과 한계 일선을 점령하였으며 미군 제2사단의 지휘를 받은 프랑스영과 괴뢰군 제2사단의 일부를 섬멸하고 숱한 놈들을 포로하였다. 그러나 적진으로 너무 깊이 들어간 형제사단에는 쌀과 탄알이 거의 떨어졌다. 하여 지원군총부에서는 5월 21일에 전역을 끝마치고 긴급히 철거하라고 명령하였다. 해식의 소속사단은 북한강을 건느고 다른 한개 형제사단은 북한강 이남에서 부상병들의 호송을 보호할 임무를 맡았다.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이 북으로 철거하자 적들은 미군과 괴뢰군 13개 사단과 오토바이화한 보병 및 포병과 땅크부대로 “특견대”를 무어가지고 공군의 배합 밑에 도로를 따라 아군의 꼬리를 물고 추격하여왔다. 5월 24일에 미군 24사단 특견대는 가평과 북한강 나루터를 점령하였다. 그리하여 부상병호송을 엄호하던 아군의 형제사단은 적에게 삼면으로 포위되였다. 어둠은 포화에 그은 희미한 해를 서서히 삼키고 무수한 별들을 하나, 둘 낳기 시작하였다. 어두운 밤장막을 빌어 그 형제사단은 소양강 북쪽에서 저격전을 벌리고 금방 북한강을 건넜다. 그런데 또 화천 서쪽과 지암리 남쪽에서 포위당하였다. 아군 한개 군의 나머지 사단들에서는 그 형제사를 구출하라는 명령을 집행하였다. 그러나 수적으로 렬세여서 포위를 돌파하게 구출하지 못하였다. 군부에서는 형제사단을 보고 견결히 포위를 돌파하라고 명령하였다. 하여 그 형제사단에서는 병력을 두길로 나눠 포위를 돌파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숱한 부상병들을 가진데다 적들의 포격이 어찌나 심한지 한걸음도 전진하기 힘들었다. 그리하여 두갈래 병력은 할수 없이 회합한 후 사단의 주요지휘원은 다시 분산하여 포위를 돌파하자고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식량이 떨어진지도 사나흘이 되였고 탄약도 거의 떨어졌다. 결과 사단과 퇀급의 지휘원과 전사 몇백명이 포위를 돌파하였을뿐 나머지 지휘원과 전투원들은 대부분 포로되였다. 당시 사단 부정위 겸 정치부 주임 오성독은 부상병 몇십명을 데리고 적들의 포화가 심한 봉쇄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말았다. 적들의 포위권이 점점 조여드는데다가 새날이 밝아왔다. 오성덕 부정위는 전사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 유격전을 벌리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오성덕 부정위는 전사들을 거느리고 38선 남쪽의 고산준령에서 14개월 동안이나 기적적으로 유격전을 벌렸다. 마지막에 몇명의 전사들 밖에 남지 않아 전투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는 미군의 한 수색대에 발각되여 마지막탄알까지 다 쏘아 적들을 사살하고 불행하게도 체포되였다. 그 형제사단이 좌절당한 뒤 리해식 소속사단은 명령에 따라 화천에서 금화 남쪽의 광덕리와 상해봉, 복중산 일대에 나가 쳐들어오는 적들을 저격하는 동시에 포위를 돌파하여나온 전우들을 구출하였다. 5월도 막 가는 무더운 어느날 오전이였다. 김화 일대에 금방 들어선 사단 대적공작과의 동무들이 한 산비탈 소나무숲에서 공중날강도를 피해 숨어 있을 때였다. “어이, 동지들!” 갑자기 해식이랑 엎드려 있는 산 아래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산아래를 내려다보니 한 전사가 푹 쓰러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빨리 가보기요.” 리보화 과장이 해식이랑 데리고 산 아래로 달려내려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허리에 권총을 찬 삼십대 젊은 지원군 간부였다.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하였고 입술은 말라터졌다. “분명 굶어서 까무러쳤군. 빨리 산 우에 업고 가 뭘 좀 먹이기요.” 해식이랑 그 동무를 번갈아 업으면서 대적공작과의 방공굴어귀 큰 나무 밑에까지 갔다. 증국생은 자기 비옷을 땅바닥에 펴고 그 동무를 눕혔다. 해식이랑은 바삐 미시가루를 풀어 그 동무의 입 안에 한술한술 떠넣었다. 이윽고 그 동무는 맥없이 눈을 천천히 뜨고 그들을 둘러보는 것이였다. 몸은 비록 겨릅대처럼 여위였지만 두 눈에만은 견강한 빛이 어려 있었다. 정신을 차린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형제사단 퇀 정치처 보위과장 가요선입니다. 포위를 뚫고 나온데는 이 권총의 공로가 컸습니다.” 그는 허리에 찬 권총을 매만졌다. “나는 산마루에 숨어 있으면서 며칠동안이나 산에서 내릴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산에서 살금살금 내리면서 보니 철갑모를 쓴 놈들이 쌍쌍이 보초를 섭디다. 나는 보초 서는 적들을 피해 잔나무와 풀숲에 숨으면서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딱 피하지 못할 놈들은 이 총으로 한방에 한 놈씩 쏴죽이고 겨우 포위구역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내 머리 속에는 단 한가지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꼭 자기 부대를 찾을 때까지 견지해야 한다.’ 그래서 배고프고 맥이 없어도 이를 악물고 견지했습니다. 헌데 저 산 아래서 우리 동지들이 보이자 나, 난 그만 맥없이 쓰, 쓰러졌댔습니다. 으흐흑, 흑흑…” 여기까지 말한 이 억센 사나이는 그만 울음보를 터뜨렸다. 두 줄기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적시였다. 이처럼 형제사단의 적지 않은 전우들은 나무숲에 숨어다니면서 간고하게 적들과 싸우면서 북두칠성을 바라보고 북쪽 방향을 확인하고 북으로, 북으로 걷고 또 걸었다. 그들은 배고프면 비술나무껍질을 벗기거나 나무이파리나 쑥을 뜯어 미국놈들이 먹고 버린 통졸임통에 넣고 끓여 요기를 하고는 계속 무거운 다리를 옮겨디디면서 끝내 부대를 찾아왔다. 포위를 돌파한 형제사단의 동지들을 구하는 임무를 완수한 사단에서는 량식과 탄약을 보충받은 후 덮쳐드는 적들과 주동적으로 싸우게 되였다.        참말로 북한강반에 남긴 피어린 자욱마다에는 우리 지원군 용사들의 애국충정이 력력히 찍혀 있다. 오늘도 저 북한강은 지원군 용사들의 용맹과 슬기를 노래하며 흐르고 있으리라.  
177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1) 댓글:  조회:1452  추천:0  2018-11-08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는 1991년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하였고 “료녕조선문보”에서 전문을 련재했으며 연변인민방송국에서 2년 동안 련속랑독하였다.       올해 10월 25일은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전쟁 참전기념일이다.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참전 68주년을 기념하여 이 장편실화소설을 여기에 올린다.            제1장 38선으로                  조선전선으로          1950년 초겨울의 어느날, 심양시공안총지대 병사 리해식은 총가목을 으스러지게 틀어쥐고 소가툰역 부근에서 철도보초를 서고 있었다. 군용렬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심양역으로부터 단동 쪽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달리는 렬차 우에 실린 대포들의 쳐들린 포신이며 렬차의 뙤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바깥을 내다보는 지원군 전사들의 어렴풋한 모습들이 피끗피끗 스쳐지나갔다. (후- 남들은 양키놈들을 족칠텐데. 난 뭐람!) 조선전선으로 달려나가는 군용렬차들과 전사들은 멀리 눈바램하는 해식의 입으로는 가느다란 한숨이 새여나왔다. 해식이 보초근무를 마치고 련부 사무실로 찾아갔을 때였다. 때마침 부련장 겸 당지부 서기인 임안리가 조선지도를 펼쳐놓고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부련장, 지원군에 보내주십시오.” 임안리 부련장은 지도에서 눈을 떼고 해식의 아래우를 훑어보더니 입을 뗐다. “허, 또 전선으로 가려는 동무 하나 더 불어났구만. 이제 금방 최천보도 왔댔소. 난 동무들의 심정을 리해하오. 그런데 지방부대에는 아직 전선에 나가라는 명령이 내리지 않았소.” “아니, 부련장, 양키놈들이 문 앞까지 쳐들어왔는데 이렇게 뒤에서 보초나 서랍니까? 안됩니다. 지원군에 보내주십시오. 통쾌하게 양키놈을 족치겠습니다.” 임안리 부련장은 고뿌에 김이 물물 나는 뜨거운 물을 부어 해식한테 내밀고 자기도 한고뿌 부어 들었다. “낸들 어째 조선전선에 달려나가고 싶잖겠소? 그러나 군용철도를 잘 지키는 것도 조선을 지원하는게 아니겠소?” 그는 시무룩이 웃으면서 마치 해식의 얼굴에서 대답이나 찾으려는듯이 그의 표정을 살피는 것이였다. “알만합니다.” 해식은 나직이 대답하고는 물도 마시지 않고 고뿌를 가벼이 내려놓고 련부 사무실 문 밖을 나섰다. 그는 숙사에 돌아와 저녁밥을 먹지도 않고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나는 구사회에서 쓰디쓴 맛을 다 보았다. 이제 금방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니 양키놈들이 조선에 전쟁의 불길을 질렀다. 만약 양키놈들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우린 또다시 쓰라린 구사회로 돌아가게 될게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해식의 눈에 불이 이글거렸다. 눈 앞에서는 지나간 쓰라린 회억이 영화필림처럼 스쳐지나갔다... 리해식은 조선 락동강반의 한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 해마다 락동강의 큰물피해를 입어 고향의 농사군들은 입에 거미줄을 칠 지경이였다. 락동강 강물은 불고불어 성난 사자처럼 헐망한 강뚝을 떠박지르고 마을에 덮쳐들었다. 삽시에 마을은 큰물 속에 잠기고 말았다. 올망졸망하게 들어앉은 초가집들은 큰물에 잠겨 모래무지처럼 무너졌다. 밥상이며 함지며 문짝이 물에 둥둥 떠내려갔다. 설상가상으로 시름시름 앓던 아버지마저 한많은 세상을 뜨고 말았다. 어머니는 네 자식들을 데리고 밥을 빌어먹으면서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해식이 열살나던 해에 어머니는 자식들을 데리고 락동강반을 떠났다.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압록강을 건너 중국 만주 영구지구에 이르러 괴나리보짐을 풀고 일제가 꾸린 영흥농장에 발을 붙였다. 그들은 일제의 가혹한 압박과 착취를 받으며 인간의 최하층에서 굶주린 생활을 하면서 겨우 연명하였다. 일제가 패망한 후 그들은 한두해 더 벌어가지고 정든 고향을 찾아가자고 하였다. 그러나 국민당군이 영구에 등륙하여 논밭에다 진지를 만들고 포사격을 해댔다. 그리하여 논밭에는 포탄구덩이가 벌둥지처럼 가득 패웠다. 농사군들은 눈을 펀히 뜨고 파괴돼가는 논밭을 멍하니 바라보면서도 어쩌는 수 없었다. 이태동안이나 농사를 하나도 짓지 못하였다. 해식은 소학교 4학년까지 다니고는 책을 집어던지고 형과 함께 여름이면 료하 동쪽에 가서 삯일을 찾아했고 겨울에는 얼어드는 두 손을 호호 불면서 갈대를 베거나 땔나무를 해다 팔아 입에 풀칠이나마 해나갔다. 그런데 그때 국민당통치구역의 물가는 날개라도 돋친듯이 하루에도 세번씩 날아올랐다. 해식과 형이 온하루 나무를 해서 몇십리 밖에서 영구에 메다 팔아도 수수쌀 몇근 밖에 살 수 없었다. 그만하면 꽃이였다. 나중에는 수수겨 몇근 밖에 살 수 없었다. 하여 온집 식구들은 수수겨떡을 목이껑껑 메게 넘기면서 살아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국민당군의 세금도 날마다 가중해져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실로 가난한 사람들은 하늘에 오르려고 해도 날개 없었고 땅 속에 들어가려고 해도 문이 없었다. 1947년 겨울의 어느날, 해식과 형은 뼈 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를 무릅쓰고 동냥하러 나섰다. 한 마을에 이르러 땅거미질 때까지 밥 한술 얻어먹지 목하고 주린 배를 끌어안고 돼지굴에라도 들어가 자려고 찾아헤맸다. “누구얏?!’ 졸지에 고함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두리모자를 박아쓴 국민당군 졸개들이 절컥절컥 총탄을 재워들고 덮쳐왔다. 그 놈들은 총박죽으로 멍해 서 있는 그들 형제의 옆구리를 탁 치고는 몸수색부터 해댔다. 헛물을 켠 놈들은 해식의 형제 손바닥에 총을 다루어 장알기 박혔는가고 만져보았다. 꼬리를 잡지 못한 놈들은 그들의 귀뺨을 찰싹찰싹 쳤다. “말햇!  팔로군 맞지? 엉?!” 한어거 서툰 그들 형제는 꺽꺽거렸다. “오- 이건 뭐야? 응?” 이때 덧이가 난 장승 같은 놈이 형의 등짐에서 “영흥조선인교포자위대”라는 조선글이 박힌 완장을 들춰내 쳐들고 빈정거렸다. 그것은 8.15 직후에 마을에서 조직한 자위대에 참가했을 때 형이 탄 완장이였다. “당나귀 떼질을 쓸텐가? 말햇! 팔로군 맞지? 엉?!” 무리승냥이 같은 놈들을 해식의 형제를 사정없이 치고 차댔다. 해식의 형은 원래 한어를 변변히 하지 못하는데다가 놈들이 미쳐날뛰자 당황한 나머지 더 꺽꺽거렸다. 그러자 키꺽다리놈은 퉁방울눈깔을 뚝 부릅뜨면서 허리춤에서 모젤권총을 빼들었다. “말햇! 팔로군 맞지? 말하잖으면 쏴죽일테다!” 해식은 이젠 끝장이구나고 덜덜 떨었다. 뒤따라온 어머니랑 마을 사람들이 얼음장 같은 땅바닥에 꿇어앉아 통곡치면서 두 손을 싹싹 빌었다. 그러나 놈들은 고래고래 호통치면서 해식 형제 귀뺨을 쨩쨩 쳤다. 손바닥이 아프자 놈들은 손을 내밀게 하고는 허리띠로 미친듯이 쳤다. 쨩! 쨩! 해식 형제는 손이 아파 이를 악물었다. 그러자 극악한 놈들은 해식의 언 뺨을 혁띠로 갈겼다. 놈들은 한식경이나 혹독하게 때리면서 고문해도 아무 단서도 쥐지 못한데가다 헐벗고 굶주린 해식 형제의 앙상한 몰골, 그리고 겁이 나서 벌벌 떠는 해식 형제를 보고는 또 한바탕 물매를 안기고는 놓아보냈다. 그후 해식 일가는 심양시 교외 조선족들이 모여사는 리석재촌에 왔다. 해식의 형은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고 해식은 삯일을 찾아하면서 류리걸식하는 생활을 겨우 면하였다. 1948년 10월, 료심전역의 포성과 함께 리석재촌도 해방되였다. 해식이네는 논밭 3무와 초가집 구칸을 분배받았다. 해식은 마을의 7명 청년과 함께 해방군에 입대하였다… (그렇다, 중국공산당 덕분에 우린 오늘이 있게 됐다. 절대 미제 양키놈들이 우리 행복과 조선 인민의 보금자리를 짓밟게 할 수 없다. 나는 전 련에서 선참으로 입당했고 또 모범당원이 아닌가! 꼭 지원군에 나가야지.) 해식은 뜬눈으로 온 밤을 보내다싶이 하였다. 실로 엄동설한의 추위를 맞본 사람만이 봄날의 따사로움이 귀한줄 더 잘 알기 때문이였다. 어느덧 창 밖이 희붐이 밝아왔다. 해식은 이불을 차고 곧추 련부 사무실로 달려갔다. 때마침 임안리 부련장이 대야에 세수물을 떠들고 바깥으로 나왔다. “부련장, 날 지원군에 보내주십시오.” 임안리 부련장은 버릇처럼 시무룩이 웃었다. “진짜 질기구만. 상급에서 지시가 있을 때 동무 요구를 우선 고려해주지. 돌아가오.” “에이 참!” 해식은 어깨가 축 처져 숙사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오후였다. 해식이 보초를 서고 있는데 임안리 부련장이 성큼성큼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기쁜 소식이오. 동무는 지원군에 나가게 되였소.” “네?” 해식은 혹시 잘못 듣지나 않았는가 해 임안리 부련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허허.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니오. 지금 지원군엔 동무처럼 조선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수요된다오. 련부에선 우리 련의 조선족전사들을 몽땅 지원군에 보내기로 결정했소.” “경롓!’ 해식은 임안리 부련장에게 거수경례를 올린 후 어찌나 기뻤는지 그의 두손을 붙잡고 껑충껑충 뛰였다. 련부에서는 조선전선으로 나가는 20여명 조선족전사들에게 기념품으로 일기장과 원주필 하나씩 나눠주었다. 련부 문화교원 마지방은 해식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제사를 써주었다. “비굴하지 말고 위무가 당당하라. 부화방탕하게 살지 말고 고결하게 살라.” 그 의미심장한 글발들은 몇십년이 지난 오늘까지 해식의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지원군에 입대해 심양시를 떠나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조선전선으로 나갈 때 비밀을 지키라는 지시가 있었기에 해식은 어머니한테 편지 한장도 못하였다.              철혈산혈전 1950년 11월 13일, 심양시공안총지대 리해식을 비롯한 30여명 조선족전사들은 군용렬차를 타고 심양을 떠나 압록강철교를 지나 조선전선에 나갔다. 그들은 전선에 나가자마자 지원군 모 사단의 번역원으로 배치받았다. 리해식은 중국인민지원군 594퇀 제2영 6련에 배치됐다. 후리후리한 지도원 가수걸은 그의 두 손을 굳게 잡았다. “환영하오. 리동무, 갓 강을 건너왔을 때 조선말을 아는 동무가 없어서 정말 답답했소. 이젠 잘 됐소. 손시늉을 하지 않아도 되겠군.” 해식은 그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번역도 아주 어깨가 무거운 임무라는 것을 못내 느끼였다. 그가 전선에 나가서 얼마 안돼 11월 25일 황혼무렵에 제2차 전역의 첫포성이 울렸다. 제2차 전역에서 리해식 소속 군단의 전투임무는 태천지역으로부터 괴뢰군 제1사단과 미군 제24사단에 반격을 가하면서 창동과 고성동, 룡산동 방향으로 무찔러나가는 것이였다. 아군이 이 전역에서 거둔 승리는 쉽게 이뤄진 것이 아니였다. 가장 치렬한 전투는 아군 모퇀 1영 기관총련에서 벌린 “철혈산혈전”을 꼽을 수 있다. 부대의 앞장에 선 기관총련의 용사들은 뼈속까지 오싹 스며드는 찬바람을 무릅쓰면서 무거운 중기관총을 둘러메고 발목을 넘는 굳은 눈을 밟으며 자동차에 앉아 도망치는 적들을 두다리로 산마루를 넘어 지름길로 번개같이 추격했다. 태천군 소재지까지 추격해 갔을 때였다. 그들은 드디여 미군 제24사의 퇴각을 엄호하는 남조선군 1개 련대의 꼬리를 밟았다. 적들은 캄캄한 밤이여서 아군 병력이 얼마인지 알 수 없었다. 쿵쾅! 쿵쾅! 꽈르릉 꽝꽝! 포탄이 사처에서 폭발하자 적군은 대부대가 추격해온줄로 여기고 선불맞은 노루처럼 무리를 지어 꼬리빳빳해 도망쳤다. 기관총련의 용사들은 도망치는 적들을 바싹 추격해가며 기관총으로 몰사격을 퍼부어 무리로 쓸어눕혔다. 어느덧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왔다. 그제야 적들은 아군 병력이 고작 한개 련(중대) 밖에 안된다는 것을 알고 아군보다 10배나 되는 한개 련대(퇀)의 병력으로 진공대형을 갖추고 우회포위하면서 공격해왔다. 급변한 적정에 직면해 요충의 련장은 과단성 있게 팔을 홱 휘둘렀다. “빨리! 동쪽 산마루를 점령할 것!” 전 련 용사들은 기관총을 둘러메고 그리 높지 않은 산봉우리를 번개같이 점령하였다. 용사들은 결사전을 벌리려고 산봉우리에 곡괭이로 언 땅을 파고 구으는 돌이며 끊어진 나무며 날라다가 진지를 만들었다. 꽝! 꽝! 포탄이 아츠런 소리를 내면서 씽- 씽- 날아와 그들의 주위에서 폭발하였다. 소나무 가지들이 뭉청뭉청 끊어져 마구 날렸고 온 산은 불바다로 됐다. 불길과 연기가 하늘을 꺼멓게 불태우면서 타래쳐 올랐다. 설상가상으로 미제의 쌕쌔기가 산봉우리를 스칠듯이 날아다니면서 기총소사를 하였다. 약이 오른 전사들은 경기관총을 들고 적기를 몰사격했다. 질겁한 적기는 저공비행을 하지 못하고 아무데나 폭탄을 마구 내리던지더니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적들의 포격이 멎었다. 용사들은 무너진 엄페진지를 다시 구축하였다. 교활한 적들은 깎아지른듯한 절벽이 있는 정면으로는 덮쳐올라오지 못하고 밋밋한 뒤쪽으로 엉금엉금 기여올랐다. “개놈들, 박격포 맛이나 봐라!” 박격포수 동세동은 포탄이 놈들 속에 면바로 날아가 폭발하지 않는 것을 보고 두손으로 박격포 포신을 부여잡고 쏘아댔다. 꽝! 꽝! 그가 쏜 포탄이 련속 놈들 속에 날아가 작렬하였다. 동세동은 손이 데자 팔소매로 포신을 싸쥐고 전우더러 계속 포를 쏘게 하였다. 련속 30여발의 명중포탄을 맞은 적들은 10여개 주검을 남기고 뿔뿔이 흩어져 산아래로 달아났다. 요련장은 손수 동세동의 맨 손에 붕대를 감아주면서 말했다. “잘 족쳤소.” 이때 산 아래에서 요란한 엔진소리가 울려왔다. 적병들이 땅크와 장갑차 여라문대 뒤에 새까맣게 붙어 고지를 향해 진공해왔다. 요련장은 침착하게 박격포패 리천명 패장과 대책을 상론하였다. 꽝! 그때 산아래에서 요란한 폭음과 함께 맨앞에서 덮쳐오던 적 탱크가 무한궤도가 툭 끊어져 그 자리에서 뭉개고 있지 않겠는가. 알고 보니 1반 전사 리금명이 산 아래 길옆에 굴러내려가서 묶음수류탄을 던졌던 것이다. 뒤에서 달려오던 땅크(탱그)들은 길이 막혀 더 앞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산골짜기가 떠나게 엔진소리를 낼뿐이였다. “잘 족쳤다!” 요련장은 주먹으로 땅바닥을 탁 치면서 기뻐했다. 뒤이어 그는 전 련의 실력을 보존하려고 놈들이 재진공하기 전에 2패와 3패는 포위권을 뚫고나가 적들을 족치라고 명령했다. 2 패와 3패 용사들은 영용하게 싸우면서 적들의 포위권을 뚫고나갔다. 요련장은 고지에 남은 1패의 매개 반에 투탄소조를 하나씩 배치하였다. 뒤이어 그는 팔소매를 걷어올리더니 근육이 불뚝불뚝한 팔을 휘두르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명령하였다. “동지들, 탄약을 절약하라. 놈들이 가까이 오기 전엔 사격하지 말라. 무리죽음을 안기지 못할 땐 수류탄을 뿌리지 말라.” 적들이 돌격해오자 용사들은 명중탄을 안겼다. 적들은 번마다 용사들의 진지 앞에 무리주검을 남겼다. 200여명이나 목숨을 잃고 나머지 800여명 적들은 해가 서산에 기울기 시작하자 최후발악하면서 재진공하였다. 40배도 넘는 적들은 수적우세를 믿고 한개 패도 안되는  20여명 아군의 진지를 무리승냥이들처럼 덮쳐왔다. 용사들은 적개심이 이글거리는 눈길로 적들을 노려보면서 기관총에 탄알을 재우고 수류탄 도화선고리에 손가락을 걸었다. 이때 요련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용사들, 조국과 조선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침략자들과 생사결판을 낼 때가 닥쳐왔습니다. 동지들, 침략자를 호되게 족치라! 사격!” 요련장의 명령소리가 떨어지기 바쁘게 용사들은 놈들에게 일제히 불벼락을 안겼다. 몇십배나 되는 적들은 삼단처럼 쓰러진 동료들의 시체 우를 넘고 넘어 아군 진지에 아득바득 덮쳐왔다. 벌써 어떤 진지에서는 몇십명 적들이 2명 밖에 안되는 전사들과 육박전을 벌리고 있었다. 적들의 공중날강도들도 고지 우로 날아다니면서 폭탄을 떨구었다. 폭탄이 작렬하는 소리, 함성소리, 비명소리로 고지는 떠나갈듯하였다. 머리에 중상을 입은 강세동은 벌건 피가 붕대 밖으로 훌러 얼굴을 덮었건만 반자동보총을 휘둘러 놈들을 무리로 쓸어눕혔다. 복부에 중상을 입은 부지도원 고성운은 왼손으로 배 상처구멍을 누르고 오른손에 모젤권총을 들어 고지에 다가드는 놈들에게 명중탄을 안겨 다섯이나 꺼꾸러뜨렸다. 일당백의 용사들에게 호되게 얻어맞은 놈들은 무리주검을 남기고 산중턱까지 흩어져 도망쳤다. 그런데 아군 고지에는 박격포 포탄 세발, 기관총 탄알 반배짐, 수류탄은 한 사람 앞에 하나도 되나말가하게 밖에 남지 않았다. 산중턱까지 도망친 적들은 괴수가 휘두르는 권총 앞에서 또다시 고지를 향해 엉금엉금 기여올라왔다. 정황은 매우 위급하였다. 요련장은 피뜩 고지에 널린 돌멩이를 보고 용사들에게 명령하였다. “동지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영광을 떨칠 때가 닥쳐왔습니다. 탄알이 없으면 돌멩이로 원쑤놈들을 까라! 돌멩이가 없으면 삽과 곡괭이로 찍으라!” 용사들은 돌멩이를 진지 앞에 모아놓고 덮쳐오는 적들을 노려보았다. 놈들이 질겁한 눈길로 진지를 노려보면서 한발작 한발작 다가왔다. 50메터, 30메터, 20메터. “쐇!” 요련장의 명령과 함께 명중탄이 날아갔다. 놈들은 보기 좋게 시체 우에 겹겹이 쓰러졌다. 놈들의 더러운 피는 눈덮인 산중턱까지 뻘겋게 물들어갔다. 수류탄과 탄알이 다 떨어지자 용사들은 돌멩이를 내리뿌려 원쑤들의 대갈통을 까부셨다. 산 아래로 도망치던 적들은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처음에는 멍해 고지를 쳐다보았다. “빨갱이들이 탄알이 떨어졌다! 돌격!” 적들은 또다시 무리승냥이처럼 고지로 기여올라왔다. 포화에 그은 어둑시그레한 해는 서산에 걸려 불타는 황혼빛을 보내왔다. 요충의 련장은 황혼빛에 뻘겋게 번쩍이는 놈들의 총칼을 날카로운 눈길로 쓸어보면서 용사들에게 명령하였다. “동지들, 적들을 얽어매는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날 따라 포위를 뚫고 나갑시다.” 요련장은 복부에 중상을 입은 부지도원 고성운동지를 둘쳐업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고성운 부지도원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 글렀소. 날 내려놓고 전사들을 지휘해 포위를 돌파하오.” 요련장은 눈물이 글썽해 전우를 내려다보았다. 고성운의 옷은 피투성이 돼 있지 않겠는가. 조국대지로부터 조선전쟁터까지 오래동안 어깨겯고 싸워온 로전우를 차마 두고 가기 마음이 쓰라렸다. 나머지 전우들을 지휘하려고 부득불 밸을 끊는듯한 애절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요련장은 머리를 홱 들더니 허리춤에서 모젤권총을 꺼내 휘두르며 명령하였다. “동지들, 날 따라 돌격!” 요련장과 지도원이 앞장서 돌격하면서 모젤권총으로 여러 놈을 쏴눕혔다. 적들이 질겁해 뒤주춤 하는 새에 용사들은 함성도 드높이 날창과 삽, 곡괭이로 적들을 찌르고 찍어 눕혔다. 용사들은 쓰러진 적들의 시체에서 돌격총을 빼앗아 사격하면서 철거하였다. 용사들은 끝내 혈로를 뚫고 2패와 3패 용사들과 회합해 유리한 진지에로 이동하였다. 부지도원 고성운은 피가 랑자한 고지 땅바닥에 엎드려 생명의 최후 안깐힘을 다해 모젤권총을 들어 적들을 쏘아눕혔다. 그는 적들을 자기한테 유인하면서 동지들의 포위돌파를 엄호하였다. 무리승냥이 같은 적들이 우르르 덮쳐들자 그는 모젤권총 방아쇠를 련속 당겨 네놈이나 쏴죽였다. 몇놈이 덮쳐들어 그를 붙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는 모젤권총에 남은 마지막탄알로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후에 안 일이지만 당지 조선인민들은 눈물을 머금고 고성운 등 지원군렬사들의 유체를 산꼭대기에 안장하였꼬 지원군렬사들의 영웅사적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이 무명고지를 “철혈산(铁血山)”이라고 이름을 고쳐지었고 산꼭대기에 높디높은 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                                       남조선특무 태천을 점령한 아군 제2영은 박천으로 퇴각하는 미군 24사의 뒤꽁무니를 꽉 물고 바싹 추격하였다. 날마다 미군의 숱한 폭격기들이 날아와 교통요로를 폭격해 아군의 추격을 막아보려고 미쳐날뛰였다. 그리하여 아군은 대낮에는 공중날강도들의 푝격을 피해 산림이나 살골짜기에 숨어 쉬고 밤이면 야음을 타서 남으로 적들을 추격하였다. 캄캄한 야밤에 눈덮인 가파로운 령마루를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오르내리거나 살얼음이 진 강을 발목까지 빠져 발을 얼구면서 건넌다는 것은 진짜 힘겨운 일이였다. 특히 강에 놓인 얼음이 깔려 매끌매끌한 돌징검다리를 건너기란 실로 어려웠다. 조금만 부주의하면 돌징검다리에서 미끌어져 살얼음이 간 차디찬 강물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시간을 다투는 추격의 길에서 언제 양말을 벗어 물을 짜서 신을 새 있겠는가. 잠간 지나면 양말과 신, 발이 한데 얼어붙어 너무 발이 아파 입술을 깨물고 걸어야 했다. 날이 밝아야 아군 전사들은 신을 벗어 피묻은 양말과 발을 세간내울 수 있었다. 그러나 대낮에 흰눈이 뒤덮인 산림 속이거나 산골짜기에 숨어 있기란 야간추격보다 더 어려웠다. 온몸이 추위에 와들와들 떨리고 젖은 신발이 얼어들어 발가락이 바늘로 찌르는듯이 아파났다. 전사들은 랭장고처럼 차디찬 눈덮인 산골짜기에서 추운대로 양지쪽에 모여 흰 위장포를 쓰고 둘러앉아 쪽잠을 잤다. 어떤 전사들은 큰 바위돌 밑의 눈을 치고 마른 나무가지나 풀을 주어다 깔고 누워 잤다. 어떤 전사들은 몇몇씩 짝을 무어 이불짐을 풀어 펴고 잔등과 잔등을 맞붙혀 온기를 느끼면서 쪽잠을 잤다. 이런 판에도 이불짐을 진채 눕자마자 코를 드렁드렁 고는 잠꾸러기들도 있었다. 어느날, 해식은 풋잠이 들가말가했는데 눈보라가 확 얼굴을 더피는 바람에 “흑-” 하고 잠을 깼다. 그는 우들우들 떨리는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 언 발을 녹이려고 발을 구르면서 서성거렸다. 그때 사무장이 두 손을 호호 불면서 다가왔다. 련장은 찬 해볕에 양망을 말리우고 있었다. 그는 련장한테 다가가 지청구를 들이댔다. “련장, 저아래 초가집이 보이지 않습니까? 물이나 끓여 오랍니까? 전사들이 미시가루라도 먹게.” 련장은 양말을 신으면서 한마디로 툭 잘라버렸다. “안되오. 방공기률에 어긋나오.” 면도칼날 같은 성격의 련장을 아는지라 사무장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맥없이 돌아섰다. 그는 눈을 한웅큼씩 쥐여 입에 넣으면서 마른 미시가루를 삼키는 전사들을 돌아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애타게 기다리던 밤은 드디여 오고야 말았다. 하늘에 총총한 별들도, 서쪽 하늘에 걸린 눈섭달도 추위에 바르르 떨며 찬빛을 야밤 상공에 뿌렸다. 아군 전사들은 눈을 툭툭 털고 일어나 행장을 잘 꾸며 메고는 또 추격의 길에 나섰다. 보무당당히 산에서 내려 전진하는 대오는 실로 산에서 내린 맹호가 앞으로 내달리는듯하였다. 12월 초순 2영은 적들을 추격하여 청천강 북안에 이르렀다. 어느날,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올 때였다. 우리 대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흰 한복을 입은, 마흔살 푼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잔등에 보짐을 메고 척후반 앞에 나타나 이쪽으로 눈길을 흘끔흘끔 주었다. (어째 이런 곳에 불쑥 나타났을가?) 척후반 반장은 괴이쩍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쏜살같이 뛰여가 그 사내를 붙잡았다. 그 사내는 못마땅한듯 자기 팔을 붙잡은 반장의 손을 마구 뿌리쳤다. 말이 통하지 않아 반장은 뒤따라오는 영부 쪽으로 손가락질하면서 팔을 잡아끌었다. 그사내는 별 수 없다는듯 한숨을 후- 내쉬더니 머리를 떨구며 앞에서 느릿느릿 걸었다. 진영장은 그 조선사내의 아래우를 훑어보았다. 흰한복을 입고 흰머리수건을 쓴 걸 보니 농사군 같았다. 그러나 진영장은 경각성을 늦추지 않았다. “뒤에 전할 것, 6련 리번역 빨리 오라!” 6련이 제일 뒤에 섰기에 영장의 명령이 전달돼오자면 앞에 선 숱한 전사들의 입을 거쳐야 했다. 그런데 어느 전사가 틀리게 말을 전달했는지 6련에 전달됐을 때에는 왕청같게 번져졌다. “6련 리발원 빨리 오라!” 6련 리발원은 밤중에 무슨 리발인가고 이상하다 하면서도 바삐 대오 중간에 있는 영지휘소로 달려갔다. “보고! 진영장, 날 찾았습니까?” 리발원을 보자 영장은 버럭 성을 냈다. “리번역을 오라 했지. 언제 동물 오라 했소? 흥! 빨리 리번역을 오라고 하오.” “하하하.” “허허허.” 대오에서 일대 폭소가 터졌다. 워낙 영에서는 모두 리해식을 헐하게 “리번역(李翻译)”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리발원(理发员)이란 한어발음이 “리번역(李翻译)”이라는 한어발음과 비슷하여 이런 희극이 벌어졌던 것이다. 리발원은 영장에게 코를 떼우고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면서 련부에 달려와 련장에게 금방 영장의 말을 전하였다. “하하하.” “허허허.” 또 술렁거렸다. 련부 통신원꼬마가 익살을 부렸다. “여보게나. 이른새벽에 누가 놈들을 코 앞에 두고 머리를 깎는다고 헐레벌떡 뛰여갔는가. 공은 세우지 못하고 코만 떼우고 돌아오다니, 원, 사람두.” 대오 속에서는 또다시 웃음보가 터졌다. 리해식은 황급히 뛰여서 대오 중간에 있는 영부에 갔다. “리동무, 저 사람이 의심스럽소. 좀 심문해봐야겠소.” “예.” 처음에는 영장이 심문하면 해식이 번역하고 그 사내의 말도 한어로 번역해주었다. “당신은 뭘 하는 사람이오?” 그 사내는 조선말을 하는 해식을 보자 얼굴에서 긴장한 빛을 저으기 가셔졌다. “피난 나온 농사군이올시다.” “어데서 사는가요?” “당신들이 금방 떠난 마을에 있으니께. 자꾸 묻지 말라니께. 미국 놈들이 포를 쏴대니께 피난 나왔다이.” 해식은 영장에게 번역해줄 새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당신네 집에는 식구 몇이오?” “예? 예. 처자들 모두 다섯인뎁쇼.” “그럼 당신만 포탄에 맞을가봐 나오고 처자들은 어쨌는가?” 그제야 그 자는 말이 빗나간 것을 깨닫고 겨울 개구리처럼 입에 빗장을 지르고야 말았다. 해식이 마을정황이랑 물어봐도 함구무언이였다. 말투를 보아도 남조선 경상도 말투였다. 영장은 해식의 회보를 듣고 그 자에게 날카로운 눈길을 박았다. “못된 놈, 등짐에 뭣이 있는가 벗겨보오.” “옛!” 해식이 그 자의 등짐을 벅겨 풀어헤쳤다. 영어가 박힌 고급권연 몇갑이 나왔다. 영장은 허리께로 점점 올라가면서 바르르 떠는 그 사내의 오른 손을 탁 쳐버리고 허리춤을 수색했다. 끝내 허리춤에서 날이 한뽐 반이나 되는 시퍼런 비수를 들춰냈다. 영장은 미국권연과 비수를 그 사내 코 앞에 대고 흔들면서 쇠덩이 구으는듯한 목소리로 질문하였다. “이건 뭐냐? 그래도 떼를 쓸텐가?!” 그 사내는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영장은 경위원에게 명령하였다. “이 놈을 퇀부에 끌어가시오!” “옛!” 퇀부에서 심문한 결과 그 놈은 남조선 특무였다. 그 놈은 청천강 이북 지원군 정보를 수집할 임무를 맡고 파견되였던 것이다.                             단지       2영은 12월 중순의 어느날 새벽에 순천에서 10킬로메터 쯤 떨어진 한 작은 산골마을에 주둔하였다. 날이 아직 밝지 않아 어둠컴컴하였다. 전사들은 이불짐을 풀지도 못한 채 조선 백성들의 집 구들에 털썩털썩 드러누워 코를 드렁드렁 골았다. 20여일 동안이나 계속 밤도와 급행군하면서 하루 밤도 온전히 자보지 못했기에 곤해빠졌던 것이다. 해식은 련장, 지도원, 련부 통신원과 함께 한 집에 들었다. 취사원은 잠기오른 눈을 쥐여뜯으면서 련지휘부가 든 집 앞에 가마를 걸고 밥을 지었다. 그도 어찌나 곤했던지 연신 하품을 하였다. 집 안에 든 해식이네도 하품소리를 다 들을 수 있었다. 취사원은 어데 가서 얻어왔는지 돼지고기 몇근을 콩에 섞어 볶았다. 김이 문문 나는 밥과 구수하게 볶은 채를 퍼놓고 취사원은 통신원더러 각 반에 통지하라고 일렀다. 각 반에서는 스무날만에 처음 뜨끈뜨끈한 밥과 돼지고기채를 먹게 된지라 조선집들에서 큰 대야를 빌어 밥과 채를 타가면서 좋아 야단쳤다. 각 패에서 식사통지를 내고 련부에 돌아온 통신원은 밥과 채를 뜨려고 정지에 나갔다. 서른댓 되는 아주머니는 두 아이를 데리고 자다가 일어나 웬 일인가고 물었다. 조선말을 모르는 통신원은 그릇을 빌리라고 손시늉을 하였다. 잠을 덜 깬 아주머니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서 있었다. 그러자 통신원은 손전지로 여기저기 비추다가 구들머리에 둥글고 깊숙하게 생긴 질그릇을 손가락질하면서 빌려 쓰자고 손시늉을 하였다. 아주머니는 조선말로 뭐라고 하였다. 통신원은 손전지불빛에 비친 표정이나 말하는 어조를 보아서 빌리지 않으려는 것을 짐작하였다. (젠장, 이까짓 질그릇 하나 빌려 안줘?) 통신원은 “쓰고 가져다주겠수다.” 하고 한어로 말하고는 제꺽 질그릇을 들고 나왔다. 아주머니는 뭘 하려고 그걸 들고 나가는지 몰라 궁금해하다가 되누워 잤다. 통신원은 질그릇을 들고 나와 그 안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취사칸에 가서 물을 부어 훌훌 휑구어내고는 밥과 채를 담아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자, 일어들 나서 따뜻한 밥이나 드시오. 돼지고기채도 있습니다.” 해식이랑 깨나보니 통신원이 어느새 돛천으로 문과 창문을 가리워놓고 기름등불까지 켜놓지 않았겠는가. 구수한 냄새가 나는 밥과 채 그릇이 구들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그들은 희미한 등불 밑에서 제 사발에 밥과 채를 담아 맛나게 실컷 먹었다. 그들이 숟가락을 놓자 통신원은 “남은 채와 밥을 뒀다가 래일 먹읍시다.”라고 하면서 질그릇에 담은 채와 밥을 출입문 웃문틀 우의 시렁 우에 올려놓고 보로 덮어놓았다. 이때 창 밖이 희붐히 밝아왔다. 그들은 공중날강도 습격을 피하려고 산으로 올라가려고 서둘렀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사이문을 열고 방 안에 머리를 들이밀고 두리번거렸다. 해식이 “뭘 찾습니까?”하고 묻자 아주머니는 “애들이 깨나서 오줌을 뉘여야겠는데 요강을 찾아요.”라고 했다. “우리 방엔 없는데요.” “아니예요. 날 밝기 전에 한 나어린 동무가 정지에 나와서 가져갔는데요. 내가 아무리 요강단지라고 해도 기어이 들고 올라갔어요.” 아주머니는 시렁 우에 올려 놓은 질그릇에 눈길이 미치자 “바로 저건데요.” 하고 말하면서 손으로 가리켰다. 해식이 련장과 지도원에게 번역해는 새에 통신원이 시렁 우에 놓인 질그릇을 내리웠다. 그들은 손전지불을 비추면서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글쎄 밥과 채를 담았던 질그릇 안에는 버캐가 싯누렇게 한벌 들어앉아 있지 않았겠는가. 그들은 메스꺼워 금방 먹은 것이 다 울컥 올라왔다. 련장은 통신원을 호되게 꾸짖었다. “젠장, 물건을 빌어도 분수가 있지. 어쩜 요강단지에다 밥을 다 퍼오는가? 말을 모르면 리번역이나 깨울게지. 참.” “리번역이 하도 달게 자서…” 꼬마통신원이 머리를 푹 떨어뜨리면서 혀아래소리로 우물거렸다. 가지도원이 련장 보고 유모아로 익살을 부렸다. “됐소. 보잖고 먹으면 약이라구. 우린 아주 맛나게 먹었잖았소? 그만하구 산에나 올라가기요. 공중날강도들이 날아와서 ‘환송’하길 더 기다리지 말기오.” 그들이 산에 올라가 피신 했을 때였다. 누구의 입에서 새여나갔는지 련부에서 요강단지에 밥을 퍼다 먹었다는 소문이 파다히 퍼졌다. 모두들 배를 끌어안고 폭소를 터뜨렸다. “허허허. 련부에선 생활개선을 참 그럴듯하게 했군그려.” “단지는 단진데 요강단지에다 밥을 다 타다 먹다니. 헛 참.” “하하하.”                                              38선을 돌파        목화송이 같은 함박눈이 내렸다. 온 하늘이 그대로 무너져내리는듯이 쏟아져내리는 큰눈은 높고 낮은 산봉우리와 산골짜기를 은빛세계로 만들어놓았다. 여기는 눈덮인 조선 중부지구, 우리 중조 두 나라 용사들이 곧 돌파해야 할 38선 최전선이다. 용사들은 눈덮인 38선 이북에 높이 솟은 산들과 깊은 골짜기에 흰 위장포를 쓰고 은페해 있으면서 총공격의 명령을 대기하고 있었다. 미제 공중날강도들이 겨끔내기로 날아와 저공비행을 하다가도 목표를 발견하지 못하고 되돌아가기도 했고 눈먼 포탄들이 아군 용사들의 머리 우를 날아지나 산마루에서 꽝꽝 작렬하기도 하였다. 소나무들이 뭉청뭉청 끊어져 나딩굴고 주먹만큼한 돌멩이들이 날려 떨어졌다. 미제 침략군과 리승만 괴뢰군은 아군의 38선돌파를 막아보려고 6개 군의 병력을 38선 이남에 몰아넣었다. 교활한 미제 침략군은 9개 사단의 리승만괴뢰군과 1개 려단의 토이기군을 전연에 배치하고 자기들은 뒤에서 독전대노릇을 하였다. 1950년 12월 31일 밤에 중조 두 나라 용사들은 적들에게 숨돌릴 새도 주지 않고 38선을 돌파하는 제3차 전역의 첫 포성을 울렸다. 2영이 소속된 군단은 평양, 양덕, 곡산 일대에서 만단의 준비를 한 후 제3차 전역에 한주일 앞서 38선지대에 솟은 화악산, 국망봉과 수리개봉 3형제산 맞은켠에 와서 매복해 있었다. 형제부대에서 화악산, 국망봉과 수리개봉 꼭대기에 승리적으로 오성붉은기를 꽃을 때 2영 소속퇀은 수리봉을 점령할 전투임무를 맡았다. 수리봉은 조선 동부의 산봉우리들과는 달리 산비탈이 밋밋했다. 그런데 남쪽 비탈은 도리여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가포로왔다. 적들은 수리봉 북쪽 기슭에 첩첩히 철조망을 늘이고 지뢰를 매설해놓고 괴뢰군 제5사단 35련대의 병력을 몽땅 배치해 지키게 하였다. 총공격 신호탄이 하늘에 솟아오르고 포탄이 적진에 날아가 맹렬히 폭발하였다. 흰 위장포를 쓰고 눈 우에 엎뎌 있던 1영과 3영의 용사들은 함성도 드높이 맹공격을 시작하였다. 한시간 동안의 치렬한 진공전을 벌려 적들의 방선을 돌파하고 적 1개 중대를 소멸하였다. 나머지 적들은 우리 제1선 용사들이 눈덮인 가파로운 산비탈에 오르는 틈에 도망쳐버렸다. 퇀 예비대로 남은 2영은 퇀지휘소와 함께 북쪽 비탈로부터 백설이 뒤덮인 수리봉을 넘게 되였다. 가파롭고도 매끄러운 산눈길을 한줄로 장사진을 쳐서 오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다. 좀 주의하지 않으면 산 아래쪽으로 한 30메터쯤 쭉 미끄러져내려가면서 엉덩방아를 찧는 판이였다. 하여 용사들은 온밤 19시간 동안이나 미끄러져내려갔다가는 올라가면서 산꼭대기에 올랐다. 차디찬 겨울해가 눈보라가 이는 산꼭대기를 비추었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찌나 가파로운지 눈이 아찔해났다. 게다가 산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남쪽 산비탈 복판에 있는 깊은 골짜기뿐이였다. 골짜기에는 눈이 두텁게 갈렸는데 밤도와 적들을 추격해내려간 용사들이 밟아놓아 미그럽기로 얼음강판같이 빤들빤들하였다. 골짜기 량옆은 나무가 우중충하게 들어서고 여라문길씩이나 되게 깎아지른듯한 절벽이 서 있었다. 이런 골짜기의 미끄러운 눈길로는 홀몸으로도 내려가기 힘들었는데 중무기를 실은 말이나 노새를 타고 내려간다는 것은 실로 힘겨운 일이였다. 심지어 선두부대에서는 포탄알을 안고 내려가던 전사가 산 아래로 미끄러져내려가다가 그만 포탄이 바위에 부딪쳐 폭발해 희생되기까지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2영이 산골짜기로 내려갈 때에는 포탄격발장치를 빼내가지고 산비탈아래로 내려갔다. 중무기를 실은 노새와 말은 뒤에서 바줄로 말배를 매서 당기면서 한발자욱한발자욱 내려갔다. 2영이 눈보라 치는 그 산골짜기로 다 내려갔을 때에는 차디찬 얼음공 같은 겨울해가 서쪽으로 다 기울어졌다. 파도치는 흰물바래인양 눈보라는 세차게 휘몰아쳤다. 도로에 들어서자 2영은 전투대형을 지어 춘천으로 짓쳐나갔다. 도로에는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적들이 내버리고 도망친 숱한 대포와 자동차, 휘발유통 같은 것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어떤 자동차는 돛천으로 우를 가리웠다. 해식과 영부 통신원이 자동차 우에 올라가 돛천을 휙 젖히고보니 그 안에는 미국식군용털탄자와 목이 긴 새 가죽신이 수두룩이 쌓여 있었다. 그들은 새 가죽신을 갈아신고 털탄자를 하나씩 말아메고 뛰여내렸다. 그들이 미국식열바퀴짜리 트럭 앞을 지날 때였다. 차 밑에 있는 돛천이 움찍거리는 것이 보였다. 해식이 다가가 돛천을 홱 젖혔다. 아니, 글쎄 눈깔이 새파랗고 키가 엄청 큰 양기놈이 서양녀자사진 한장을 쥐고 누워 있지 않겠는가. 해식을 본 그 양키놈은 짐짓눈을 딱 감고 죽은 돼지처럼 누워 까딱하지 않고 있었다. 그 꼴을 본 영부 통신원은 성이 상투 밑까지 치밀었다. “네놈들이 얼마나 많은 조선인민을 살해했는가! 오늘 네놈을 천당에 보내줄테다!” 뚜르륵! 돌격총소리와 함께 양키놈은 비명을 지르면서 돛천 속에서 네각을 쭉 뻗고 말았다. 잘 죽였다! 해식이네 여기로 추격해올 때였다. 길 옆의 한 초가집에 들어가보니 싸늘한 구들에 한 조선녀성의 시체가 피못 속에 쓰러져 있었다. 그 녀인의 시체는 실 한오리 없이 다 벗기웠고 다 드러난 젖가슴에는 영어를 새긴 시퍼런 비수가 박혀 있었다. 그 죄악적인 비수가 박힌 상처로부터 검붉은 피가 흘러내려 흥건하였다. 분명 양키놈들이 강간하고 살해한 것이였다. 미제 승냥이들의 짐승 같은 죄행을 생각하자 해식은 치미는 분을 억누르지 못하여 돛천 속의 그 양키놈의 시체를 발길로 탁 걷어찼다. 2영이 춘천에 이르렀을 때 1영과 3영은 춘천을 이미 해방했었다. 2영은 홍천방향으로 도망치는 괴뢰군 제5사단을 숨돌릴 새도 주지 않고 추격하였다. 용사들은 이틀동안 추격하여 1월 4일 새벽 2시 쯤에 홍천에서 약 5킬로메터 떨어진 도로에 이르렀다. 아군을 발견한 적들이 도시에 불을 지르고 도망칠 준비를 다그치고 있었다. 온 시가지에서는 세찬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연기가 뭉게뭉게 타올랐다. 세찬 불길은 5킬로메터 떨어진 곳에서도 보였고 그슬음내가 코를 매캐하게 찔렀다. 2영 용사들은 홍천을 바라고 구보로 달렸다. 홍천에 들어가기 전에 용사들은 도로를 떠나 홍천시 동북쪽의 한 산봉우리를 점령하였다. 이때 눈덮인 맞은켠 산비탈에서 조선말을 하는 군대들이 앞으로 움직여나가는 것이 보였다. 땅, 땅땅, 뚜루룩… 전사들은 괴뢰군을 발견하였다고 총질하였다. 맞은켠 군대들은 눈 우에 납짝 엎드렸다. 그러나 맞불질을 할 대신 한족말로 이쪽에 대고 고함쳤다. “어이-! 쏘지 마시오. 우린 조선인민군입니다.” “사격하지 마시오!” 뒤따라온 영장이 제지시켰다. 영장은 사건경과를 물어본 뒤 해식을 돌아다보면서 련계를 달라고 하였다. “정말 조선인민군인가고 물어보오.” “옛.” 해식은 맞은켠 눈덮인 산에 대고 목청을 돋구어 물었다. “동무들은 조선인민군 어느 부대요?” 맞은켠에서 인차 대답하는 소리가 울려왔다. “우린 동족에서 쳐들어온 조선인민군 제12사단의 선두부대요.” “무슨 임무를 맡았소?” “홍천의 적을 치러 왔습니다!” 뒤이어 쌍방지휘원들은 산골짜기에 난 도로를 사이에 두고 2영이 서북쪽으로 쳐들어가고 조선인민군이 동북쪽으로부터 홍천에로 쳐들어가기로 결정하였다. 2영과 조선인민군은 숲 속에서 뛰쳐나온 맹호들처럼 홍천으로 쳐들어갔다. 적들은 질겁해 꽁무니를 뺐다. 도망치지 않고 발악하던 놈들은 깜장콩알을 받아먹고 네각을 뻗고 말았다. 홍천시는 적들이 질러놓은 불에 재더미로 되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불붙은 대들보와 연목가지들이 우지끈 땅바닥에 떨어졌다. 새벽 3시 홍천시는 완전히 해방되였다. 중조 두 나라 형제부대는 38선을 돌파한 후 처음으로 남반부의 땅에서 회합하였다. 승리의 기쁨으로 하여 두 나라 전우들은 서로 포옹하였다. “만세!” “만만세!”          승리를 경축하는 소리가 밤하늘에 오래도록 메아리쳤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장군은1월 5일 평양시간으로 밤 8시에 평양과 서울 두 곳에서 240문 대포로 24발씩 쏘아 제2차 서울해방의 승리를 경축하며 조선 각지에서 서울 해방을 경축하여 집회를 가지도록 명령하였다. 중국의 대도시들에서도 서울해방경축집회를 가졌다.        쿵, 쾅, 쿵쿵, 쾅쾅!        우뢰 같은 포소리가 새하얗게 눈덮인 대동강반과 한강 량안에서 장엄하게 울렸다. 그것은 중조 두나라 용사들의 위력을 과시한 대포소리, 적들의 38방어선을 승리적으로 돌파한 승리의 축포소리, 남으로 꼬리빳빳이 꽁무니를 빼고 있는 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대포소리였다!
176    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10) 댓글:  조회:2450  추천:2  2018-10-28
                                      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10)                                        김장혁   향화는 버들잎눈섶을 치켜올렸다. “아니, 감사해요. 건데 오늘 여기서 주면 안돼요?” 견물생심이라고 향화는 아양을 떨면서 반색했다. “집에 두고 왔다. 랠 오전 9시 만에 내 낚시질하는 부르하통하강뚝에 오라.” 향화도 아닌 보살을 떨었다. “그저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찾아가요? 강뚝 어디 쯤 오라는지 명확히 알려주세요.” “연신교 북쪽 강뚝으로 해서 서쪽으로 한 500메터 쯤 올라오라. 내 거기서 낚시질하면서 기다릴게.” “알았어요. 꼭 갈게요.” “옛다.” 살인악마는 향화의 목에 올가미를 확실히 걸자고 들었다. 팁까지 300원이나 주었다. “감사해요. 오빠.” (세상에 이리 좋은 일이 어데 있겠는가.) 이젠 핸드폰 준 대신 안마받고 몸도 가지지 않을뿐더러 팁까지 준다. 향화는 기분이 한결 좋아 흥이 났다. 살인악마는 속으로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건 네 목숨을 낚을 미낀줄 알아라. 흥!) 이튿날 이른 아침, 살인악마는 부르하통하강 모래바닥에 시체를 파묻을 구덩이까지 깊숙이 파놓고 낚시질 하면서 향화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약속한 9시 됐는데도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다. 12시 넘도록 눈뿌리 빠지게 강뚝을 훑으면서 기다려도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양향화는 녀성의 특유한 감각으로 덮쳐오는 위험을 느끼고 안마원에서 영영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후에 수사일군들은 다른 안마방에서 재차 그녀를 찾아냈다. 그때 그녀는 핸드폰을 둘러싸고 김춘일과 있었던 자초지종을 다 털어놓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수사일군들의 시선은 점점 김춘일한테로 집중되기 시작하였다. 그날로 살인악마는 호텔에 다시 찾아가보고서야 비로소 양향화가 영영 사라라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젠 김춘일도 신변이 점점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개쌍년을 안마방에서라도 죽여버렸을 걸. 간나새끼, 어디로 도망쳐? 몸이나 가만가만 파는 매춘부년, 다른 안마방에 갔겠지. 그것도 특수복사(쎅스) 하는 안마방에 갈 밖에. 흥, 이제 찾아내기만 해봐. 혀바닥을 베버릴테야! 그 더러운 XX에 시퍼런 비수를 박아넣지 않는가.) 살인악마는 양향화 때문에 몹쓸 매독이란 성병에 걸린 적이 있었다. 최초에 그것이 벌겋게 부어나면서 아파나더니 나중에는 부스럼이 생기고 진물이 나더니 아파나면서 마구 썩어들어갔다. 색마는 그걸 치료하려고 숱한 치료비를 썼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잔등에 식은 땀이 나고 치 떨렸다. (개쌍년, 네년은 살생부에 이미 들었어. 개간나새끼, 죽었어! 염라대왕을 만나러 보내줄게. 으흐흐-) 살인악마는 치를 떨면서 싯누런 이빨을 쁙쁙 갈았다. 죽을 각오까지 한 살인악마는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진형 훈계를 듣지 않은게 후회되오. 이젠 언제 죽을지 모르오. 굴어귀 풀을 뜯어먹어서 숱한 꼬리를 남겼소. 이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거 같소.) 살인악마는 목숨이 붙어있는 한, 한 사람이라도 더 살해하고 재물을 빼앗아 더러운 야욕을 채우려고 작심하고 미쳐 날뛰였다.                    최후발악 2001년 8월 27일 새벽 1시 경, 캄캄한 어둠을 타서 살인악마 김춘일은 수박을 쪼개는 한자나 되는 시퍼런 칼을 품고 사냥물을 노리면서 싸다녔다. 그 놈은 연길시 연남가 장안거 3조의 한 세집에 전등불이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혹시 성생활을 하는 거 구경할 수 있잖을가? 진짜 성디스크를 구경하자꾸나.) 살인악마는 음탕한 궁리를 굴리며 그 세집 창문 옆에 슬금슬금 다가갔다. 음흉한 눈이 문발 밑 틈으로 세집 안을 기웃거렸다. 뜻밖에 일남일녀가 아니라 두 녀성이 속옷 바람에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 받지 않겠는가. 새파란 녀성들의 풍만한 젖가슴을 멍해 보던 색마는 아래배가 찡해나며 치미는 성욕을 참을 길이 없었다. “오호홍-“ 악마는 앓음소리를 내면서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놈은 슬금슬금 출입문 쪽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쥐여당겨보았다. 뜻밖에 문을 걸지도 않았다. (이게 웬 떡이냐?) 그때 바깥의 인기척을 느꼈든지 세집 안의 전등이 딸깍 꺼졌다. 때마침이라고 생각한 색마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손전지로 이리저리 비추었다. “앗!” “누구얏?!” “소리치면 죽인다.” 색마는 긴 칼을 들이댔다. 두 녀성은 손전지불에 비친 서슬푸른 긴 칼을 보는  순간 간이 콩알만해져 바들바들 떨었다. 그 가련한 상을 보고 색마는 승리의 쾌감을 느꼈다. (너넨 대낮에 날 어디 사람으로 봤니? 그러나 밤이면 난 진짜 왕이란 말이야. 흐흐흐. 어느 놈을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어느 간나새끼를 강간해버리기 싶으면 강간해!) 날강도는 악마와 색마의 본성을 드러냈다. 그 놈은 구들에 널린 양말로 그녀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흰 전화선을 썩뚝 끊어 그녀들의 두 팔을 뒤로 꽁꽁 묶어놓았다. 뒤이어 악마는 시퍼런 칼을 내려놓고 그녀들을 보고 을러멨다. “엎뎌!” 색마는 그녀들을 나란히 꿇어엎디게 강박한 후 괴춤을 내리깔고 범행습관대로 뒤로 짐승처럼 번갈아 강간하였다. 둬번씩 해재낀 후에야 색마는 괴춤을 춰올렸다. “오늘 어르신님이 기분 좋기에 죽이진 않겠어. 돈을 몽땅 내놔.” “저기 있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날강도는 그녀들이 가리키는 곳을 손전지로 이리저리 비추었다. 그 놈은 조모의 화장대 위에서 한국화장품 몇개, 조모의 지갑에서 280원을 들춰내고 김모의 지갑에서 20원을 들춰내가지고 도망쳤다. 살인악마는 이튿날 호텔에 가서 후남을 불러냈다. “엄만 어떻소?” “괜찮아요. 요즘 많이 좋아졌어요.” “이젠 초면도 아닌 친군데 함께 병문안 가볼가?” “돼요. 감사합니다.” 후남은 춘일을 따라 병문안하러 병원으로 향했다. 큰 병원 앞 광장에 이르렀을 때였다. 웬 거지애가 무슨 글판을 세워놓고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구걸하고 있었다. 글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엄마가 간암에 걸렸는데 치료비도 엄청 모자랍니다. 엄마 죽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도 학비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착한 여러분 선심을 써서 도와주면 고맙겠습니다.   “에이유, 참 기막힌 사연이구나.” 춘일은 후남의 앞에서 서슴없이 아주 착한 가면구를 쓰고 나섰다. 그는 전날 새벽에 강탈한 돈에서 백원이나 꺼내 불쌍한 거지애한테 주었다. 그 장면을 보고 후남은 말리지 않고 오히려 감탄했다. “오빤 참 착한 분이예요.” 춘일은 자기 이중연극이 먹혀들자 속으로 흐뭇해났다. 병원에 가서 춘일은 몇차례 살인하고 강탈한 돈을 두툼히 내놓으며 선심을 다 썼다. “어머니, 병치료를 잘해 하루속히 건강을 회복하십시오.” “어우, 번마다 이렇게 도와주어 고맙소.” 어머니는 감사해하면서도 꾀죄죄하게 생긴 춘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자기 딸보다도 일곱살이나 이상이라고, 나이 차 너무 난다고 나무랐다. 사실 춘일은 후남보다 열한살이나 이상이였다. 춘일이 아무리 착한 가면구를 쓰고 선심을 써도 종이로 개똥을 싸 숨길 수는 없었다. 로련한 어머니는 비록 시골 아줌마였지만 첫눈에 어째 춘일의 게발린 웃음 속에 음침한 쌍까풀눈이 별로 인상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후남이 착한 오빠라고 믿고 따르는데다가 춘일이 돈을 아끼지 않고 병문을 자주 오는 것을 보고 마음의 방선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어머니는 후남을 보고 제 좋을대로 하라고 놔두었다. “에이, 이젠 그 호텔에 다니지 마오. 내 얼마든지 가시부모까지 벌어먹일만 하오. 우리 집에 가서 함께 살기오.’ 순진하고 단순한 후남은 김춘일이 살인악마인지도 모르고, 살인하고 강탈해 돈을 푹푹 줴주는 것도 몰랐다. 그저 표면만 보고 “김춘일을 마음씨 착한 남자, 어질고 순박한 연길시 교외 남자”라고 믿고 의지하고 싶었다. 또한 시골에서 연길시 교외 장백향 임평촌에 시집가도 출세한 거나 다름없다고 여겼다. 그녀는 너무나도 경솔하게, 총망히 춘일 이네 집으로 가서 살인악마와 한 이불을 쓰고 살면서 악마의 정욕배설도구로 되기 시작하였다. 춘일은 어린 후남을 데리고 놀면서 속으로 미친듯이 고함쳤다. “봐라. 나도 어리고 이쁜 색시 있어.” 번마다 이불 안에 들어가 밤새도록 후남과 살을 섞으면서도 배신하고 달아난 의란진 시골의 그 복숭아얼굴 처녀를 련상하면서 속으로 미친듯이 오열을 터뜨렸다. “네년이 없어도 봐라. 열한살이나 어린 색시 마음까지 빼먹고 산다. 나도 이젠 당당한 처녀점유자란 말이야. 허허허.” 그때 살인악마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것 같았다. 이젠 랠 죽어도 원이 없을 것만 같았다. “8.27”입실강탈강간사건을 저지른지 열흘도 안된 2001년 9월 6일 밤, 살인악마는 또 연길시 연남가에서 입실강간강탈사건을 저질렀다. 악마는 그날 밤 초저녁부터 비수를 품고 어둠 속에서 공포와 살기를 몰고 다니면서 사냥물을 찾아 헤맸다. 철남시장 부근에서 가로등에 빨간 적삼을 입고 홀로 지나가는 서른살 푼한 조모 녀성을 발견하였다. (오늘 네년이 죽어봐야겠구나.) 악마가 빨간 옷을 입은 녀성을 살해한 것은 우연한 일치였다. 밤이지만 빨간 옷을 입은 녀성이 악마의 눈에 더 잘 띄였던 것이다. 악마의 탄백을 빈다면, 의란진 시골의 배신하고 시집가버린 처녀도 빨간 옷을 입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빨간 옷을 입은 녀성만 보면 악이 치밀고 복수의 비수를 뽑아들게 됐다고 하였다. 살인악마는 빨간 옷을 입고 밤에 싸다니는 녀성은 나이트클럽이나 안마방, 노래방 돈 많고 이쁜 아가씨들이여서 강탈, 강간할만한 사냥물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괴상하게 적지 않은 피해녀는 확실히 눈에 환히 띄는 빨간 옷이나 노란 옷을 입은 녀성들이였다. 그 소문이 퍼져 한때 녀성들은 빨간 옷이나 노란 옷을 입고 다니기 무서워 했다. 살인악마는 조모 녀성의 집에까지 늑대처럼 슬금슬금 미행하였다. 조모녀성은 뒤에 살기가 몰려가는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집에 들어가더니 출입문을 안으로 잘칵 잠갔다. “문을 안으로 잠그는 걸 보면 더 올 사람이 없는 모양이구나. 흐흐.” 살인악마는 어둠 속에서 징글스레 웃으면서 음충한 눈길로 집 안을 살폈다. 조모 녀성이 빨간 옷을 활 벗더니 속옷 바람에 전등불을 꺼버렸다. 살인악마는 조모 녀성이 잠들 때를 기다려 비수 끝으로 출입문 유리 한장을 뜯어내 문옆에 살짝 내려놓고 죄악의 마수를 뻗쳐 문걸개를 슬쩍 벗겼다. 절컥! 나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때까지 집 안에서는 코를 고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악마는 도적고양이처럼 집 안에 슬금슬금 기여들어 구들 우에 슬쩍 올라갔다. 바깥의 가로등불빛에 조모 녀성의 반라체가 어둠 속에 희미하게 드러나 보였다. 악마는 서슬푸른 비수를 조모 녀성의 목에 댔다. “까딱 말엇!” 살기찬 호통소리에 조모 녀성이 벌떡 깨나 일어났다. “앗!” 조모 녀성은 시꺼먼 그림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목에는 이미 선뜩선뜩한 비수가 차겁게 느껴졌다. “옷 벗어!” 조용했지만 압박감이 몸서리쳤다. 조모 녀성은 목에 댄 비수가 겁나 속옷까지 몽땅 벗는 수밖에 없었다. “꿇어엎뎌!” 살인악마는 비수를 든 채 괴춤을 내리고 범행습관대로 그녀를 꿇어엎디게 핳 후 무참히 강간하였다. 두번이나 강간한 후 날강도는 조모 녀성의 허벅다리 옆에 놓인 베개잇을 쥐여다가 피묻은 그걸 쓱쓱 닦고 괴춤을 춰올렸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전에 살인악마는 현지에 지문이나 족문을 남기지 않으려고 걸레로 구들바닥을 닦기까지 하는 치밀한 반정탐술책을 썼다. 그러나 이젠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강간해도 붙잡히지 않자 심드렁해져 그런데 소홀히 했다. 살인악마는 이날 밤에 강간을 다한 후 조모 녀성의 몸 속에서 그걸 빼낼 때 다른 때와는 달리 요대기 위에 숱한 정액을 흘렸다. 또 조모 녀성의 몸 속에도 숱한 정액을 남겼다. 베개잇에도 그걸 닦으면서 숱한 정액을 발라놓았다. 그 죄악의 정액이 모두 후에 자기 목에 올가미를 건 단서로 될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손전지로 그녀의 목과 손을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그놈은 조모 녀성의 손가락에 낀 금반지를 보자 가차없이 쑥 뽑아냈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비수를 목에 대고 호통쳤다. “돈을 내놔!” “예,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잔말 말고 돈 내놔!” 질겁한 조모 녀성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옷장을 주섬주섬 들추더니 핸드빽을 털어내 돈을 몽땅 주었다. 날강도가 세여보니 350원이였다. (이거면 우리 색시 얼릴만하겠군.) 가시어머니 치료비를 줄 타산이였다. “오늘 기분 좋았으니깐. 어르신님이 죽이지 않겠다. 허나 공안국에 신고만 해봐라. 다시 찾아와 네년의 목을 칠테야! 알았지?!” 조모 녀성은 바들바들 떨면서 그저 머리만 끄덕였다. 살인악마는 구렁이처럼 집 안에서 빠녀나가 어둠 속으로 바람결처럼 유유히 사라졌다. 조모녀성은 격분한 나머지 즉시 파출소에 찾아가 강간사건을 신고했다. 수사일군들의 말에 의하면 조모녀성 같이 사건신고를 하는 피해녀성이 아주 적다고 한다. 피해자들이 제때에 사건을 신고해야 시간을 놓치지 않고 수사하고 범죄자를 나포할 수 있다. 또 피해녀들이 용감히 증인으로 나서야 법정에서 법적증거에 근거해 흉수를 엄벌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피해자들이 사건을 제때에 신고하지 않고 강간피해은사가 폭로되면 가정이 깨질가봐 증인으로 나서기 꺼려한다. 결과 수사와 판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며 흉수가 그물에서 벗어난 페단이 있다고 한다. 이런 점을 미루어보아 즉시 사건신고를 한 조모녀성은 아주 용감한 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살인악마 김춘일은 택시를 잡아타고 연신교 부근에서 내린 후 택시를 갈아타고 자기 집에까지 달려왔다. 사건현지 부근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자기 집에까지 가면 단서로 될 수 있다는 반정탐능력이 주도한 도주였다.           밤중 금반지 새벽에 악마가 집에 들어설 때까지 후남은 웃방에서 텔레비죤을 보면서 그 놈을 다 신랑이라고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리 늦어 왔습니까? 자꾸 밤중에 어데로 다닙니까?” 그녀가 따지고들자 악마는 헤헤 웃으면서 그럴듯하게 에둘러댔다. “양, 친구하구 볼 일이 있어 좀 늦었소.” 후남은 이불 안에 들어온 춘일한테서 술냄새마저 나지 않는 것을 보고 좀 미심쩍었다. 그러나 “마음씨 착하고 어진 신랑”을 믿고 더 캐묻지 않았다. “동무, 지금 연길시내에 날강도 나타나 숱한 사람을 죽이고 숱한 녀성들을 강간하고 강탈한답니다. 동무 없을 때 일이라도 생기면 어쩝니까?” 후남은 저으기 근심되였다. 그러자 김춘일은 피씩 웃더니 능청을 떨었다. “근심하지 마오. 내 있는 한 어느 놈이 언감 저를 털끝 하나 다친다오?” 호언장담하면서도 속으로는 얼어드는 허탈감을 어쩔 수 없었다. (야, 이렇게 좋은 색시감을 두고 어떻게 죽겠는가? 조만간에 경찰들한테 붙잡혀 죽을 판인데.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야, 어떻게 시내 숱한 아가씨들을 두고 아까워 죽겠는가! 그래도 통쾌하다. 숱한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는가. 숱한 이쁜 아가씨들을 강간해버렸어. 이젠 어린 색시도 얻었다. 당장 죽어도 원이 없어!) 살인악마는 색시와 한 이불에 들어서도 아직도 강간과 강탈의 격동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사랑의 허리에 딜딜 감긴 사기가 독사처럼 순진한 후남의 마음과 몸에 칭칭 감겨들었다. 그러나 순진한 시골처녀는 이중행태를 하는 살인악마의 량면수법과 사기를 간파하지 못했다. 양가죽을 뒤집어쓴 살인악마 김춘일은 이불 안에서는 잠시나마 인간성을 보였다. 그는 후남의 오른손을 가져다가 무명지에 금반지를 끼워주었다. “금반지 아닌가요? 이건 어데서?” “쉿-” 후남은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한 금반지를 보고 놀라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일어나 전등불까지 환히 켜고 손가락을 쳐들고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요 며칠 장사가 잘 되오. 그래서 오늘 경리가 나한테 상금으로 이 금가락지를 다 주지 않겠소. 흐흐흐.” “네, 그 경린 정말 인심이 후한 분이군요.” 춘일은 심통하게 거짓말을 꾸며댔다. “원래 어떤 사람이 있으면 어떤 친구가 있다잖소?” “네, 거지애한테 백원이나 주는 거 보고 동무도 인심이 후하다 했습다. 그러니깐 이렇게 금반지 주는 친구도 생기지.” 그녀가 어찌 그 금반지는 금방 조모 녀성을 강간하고 강탈해온 피묻은 죄악의 금반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겠는가! 후남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고 흥분된 그녀를 하늘에 둥둥 뜨게  통통한 몸까지 불태워주었다. 색마는 금방 조모 녀성을 강간하던 장면을 련상하면서 후남을 보고 조모가 엎딘 체위처럼 꿇어엎디게 하고 그 짓을 했다. 후남의 앓음소리가 너무 높아서 밀창 건너 정지에서 엄마가 자꾸 마른기침을 깇었다.  “좀 소릴 작작 내오.” 그제야 쑥스러워난 후남의 신음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후- 한숨을 토해내고나서 춘일은 요대기 위에 쓰러져 천정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그는 후남한테 끼워준 금반지가 단서로 될가봐 저으기 근심되였다. 흥분이 가라앉자 살인악마의 랭정성과 침착성이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그는 모로 누워 후남의 통통한 몸을 꼭 끌어안고 무명지에서 금반지를 빼냈다. “왜?” “이건 모양도 곱지 않소. 남이 준 낡은 거 껴서 뭘 하겠소? 팔아버리고 더 고운 새 거 사줄게.” 후남은 좀 서운했지만 인차 진정했다. 춘일의 말을 믿었다. (이전에도 핸드폰을 되찾아가더니 후에 핸드폰번호를 바꾸고 되주지 않았는가.) “하긴, 새 걸 사주면 그거야 말로 우리 사랑의 기념품이죠.” “그래도 우리 후남이 내 마음을 잘 안다니까.” 춘일은 후남을 꼭 끌어안고 뽀뽀까지 해주었다. 흥분이 가라앉자 그는 살인악마의 랭정성을 완전히 회복하였다. (안돼, 티끌만한 단서라도 남겨선 안돼!) 살인악마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무슨 단서라도 남긴 것이 없는가 깐깐히 검토해보았다. (장갑과 비수는 강물에 던지지 않았는가. 꼬리 밟힐 게 없구나.) 이튿날 후남은 춘일의 부탁대로 금반지를 팔러 시내로 갔다. 살인악마는 부르하통하 강뚝에서 낚시질하면서 핸드폰으로 정황을 물었다. “금반지 팔았소?” “네. 지금 지하상점에 있어요.” “오, 잘했소. 그럼 마음에 드는 금반지 있는가 백화랑 돌면서 봐두오. 후에 절 데리고 가서 사줄게.” “네. 고마워요.”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고 그들이 대화하는 순간 즉시 수사일군들이 몽땅 감청, 록음하고 있었다. 무지막지한 살인악마가 어찌 정보처의 특제감청록음기가 실시간으로 감청, 록음까지 하고 있을줄이야 알았겠는가. 현대과학수사를 깜깜부지인 살인악마는 그런줄도 모르고 핸드폰으로 말하면 태평무사하다고 착각했다. 그는 고정전화는 전화선에 전화를 련계하면 남의 전화를 들을 수 있지만 핸드폰은 무선전이기에 전화선을 련결할 수 없기에 도청할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김춘일은 그녀만은 진짜 잘 해주었다. 젖가슴은 풍만해 뭉글뭉글하지만 인물은 수수하고 엉덩이와 허벅다리마저 별스레 딴딴해 살맛은 별로 없었다. 자기가 강간한 축모 자매랑 연남가 조모 녀성이랑 예쁜 녀성들에 비하면 진짜 볼데 없었다. 하지만 후남은 순박해서 좋았다. 자기를 단순하게 믿고 따라서 얼리기 좋았다. 살인악마는 그 순진한 쌍까풀눈에 실망의 그림자가 지나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후남이 임신해서 입떳이 나서 시원한 과일이나 랭명을 먹고 싶어하면 아무리 돈이 딸려도 두말없이 사다가 먹였다. 그녀가 물만두튀김을 먹고 싶어하면 심지어 택시를 타고 시내에 가서 음식점을 돌아다니면서 물만두튀김을 시켜 가져다 주군 하였다. 후남은 점차 춘일의 내실을 알게 되였다. 그는 무슨 무역공사 고정직원이 아니라 직업도 없는 류랑객이라는 것을 점차 알게 되였다. 그러나 이미 쒀놓은 죽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점점 부러오는 몸을 보고 될대로 되라고 자포자기했다. 그저 자기를 아끼고 잘 대해주기만 하면 좋은 신랑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생활형편이 점점 어려워지자 후남은 아무 일이라도 찾아하려고 했다. 그러자 춘일은 자기가 장사를 해서 얼마든지 그녀와 어머니를 먹여살릴 수 있다면서 집에서 고이 놀게 하였다. 심지어 때시걱마저 삐치지 말게 해 뒤에서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을 때도 있었다. 춘일은 후남을 보배처럼 아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자기를 버렸지만 후남만은 자기를 믿고 따랐다. 그것이 고마워 후남한테만은 절대 복종하였고 큰소리 한번 치지 않았으며 얼굴 한번 붉힌 적이 없었다. 그녀가 너무 심심해 어쩌다가 마을에 마실을 나가거나 트럼프를 치러 나가면 춘일은 밤이면 꼭꼭 데리러 가군 하였다. 그는 후남의 허리를 껴안고 집에 돌아오면서 능청을 떨었다. “지금 시내에서 살인범이 숱한 사람을 죽인다는 걸 듣지 못했소. 밤에 놀러 다니다가 일이 나면 어쩌겠소? 낮에나 놀고 밤엔 집에 있소.” “너무 심심해 그래요.” 김후남은 늘 그런 감언리설에 속히우면서 살인악마와 한이불을 덮고 1년 반이나 살았다. 그녀는 사랑을 사기 치는줄도 모르고 표면현상에 순진한 눈이 흐려서 김춘일이 살인악마라는 것을 꿰뚫어보아내지 못했다. 살인악마의 사기와 허위로 포장된 “사랑”은 거짓에 거짓말로 포장되면서 누렇게 색바래지고 있었다. 허위적인 “사랑” 속에 들어찬 사기가 점차 누런 똥물로 번지면서 괴여나오고 있었다. 후남의 눈에는 콩깍지 끼워서 춘일이, 살인악마가 꽃을 반겨 나풀나풀 춤추는 부나비처럼 곱게 보였다. 진짜 자기라는 꽃 한송이 밖에 모르는 남자처럼 보였다. 순진한 쌍까풀 청포도눈에 똥이 피지 않았고 뭔가? 그 놈의 부나비는 낮에는 자기 집 꽃을 맴돌면서 한들한들 춤 추며 나래치고 밤에는 다른 집 꽃에 날아앉아 꽃잎을 짓밟고 알을 쓸고 있었는데… 어쩜 그렇게도 깜깜부지였을가? 후남은 선후하여 두번이나 임신하였다. 그러나 김춘일은 두번 다 인공류산시켰다. 후남은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결혼하지 않았다고 자꾸 류산시키는 건가요? 우리 정식 등록하고 결혼합시다.” “아니, 그런게 아니오.” “그럼 뭔가요?” 춘일은 묵묵부답하였다. “대체 뭔가요?” 후남은 답답해났다. “우리 랠 당장 민정국에 가서 등록하고 정식으로 결혼합시다. 부모도 동의했잖아요. 동무도 이젠 서른여덟이나 되잖아요. 내쪽에서 낳아주겠다는데 어쩜 그렇게 애 욕심도 없어요?” 그러나 춘일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가로흔들었다. 그는 자기를 믿고 따르는 후남을 련루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것만은 진정인 것 같았다. 춘일은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었다.  (난 언제 잡혀 총살맞을지 모르잖는가. 후남아, 널 애까지 달린 어린 과부로 만들고 싶지 않다. 내 총살맞은 후 네 전도를 망치고 싶잖아. 넌 아직 젊어서 이제라도 훌륭한 남자한테 시집가야 해. 또 애비 없는 애를 해서 뭘해? 그 놈(계집애)이 한평생 살인범의 자식이란 딱지를 달고 애비처럼 이 놈의 세상에서 고생하라고? 엄마와 형제 너까지 이제 속태우게 생겼는데. 내겐 자식이 없어야 해. 알만해?) 그러나 춘일의 그런 속내를 모르는 후남은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그저 자기를 아직도 떠보는가고만 여겼을뿐이였다. 그녀가 어찌 그렇게 마음씨 착하고 후더운 신랑감이 양가죽을 뒤집어 쓴 승냥이, 세상에 둘도 없는 살인악마, 숱한 녀성들을 강간하고 참혹하게 해친 변태적인 색마, 금반지와 금목걸이 핸드폰을 수태 빼앗은 날강도일줄이야 알았겠는가! 그녀가 어찌 알았겠는가! 김춘일이 밤중에 나가 비수를 품고 싸다니면서 살인하고 강간하고 강탈하고 수많은 혈채를 가득 진 몸으로 새벽에 돌아와 이불 속에 뱀처럼 기여들어 기만극을 놀줄이야. 살인악마가 붙잡혀간 후 집에 찾아온 수사일군들한테서 진상을 들은 후, 자기한테 가져준 숱한 금목걸이와 금반지가 몽땅 살인강탈한 장물이라는 것을 들은 후, 후남은 경악한 나머지 까무러치고 말았다. 허리 굽은 어머니는 춘일이 이젠 색시도 얻고 사람이 되는구나고 믿어왔다. 그러나 놀라운 비보를 듣고 정신을 잃고 까무러쳤다. 살인악마 김춘일은 늙은 어머니의 가긍한 모성애를 기만하고 릉욕하고 배신한 불효자식, 아니, 망나니, 개자식이다. 한참후 불쌍한 고부는 정신을 차리자 또 서로 부둥켜안고 하늘이 무너지게 대성통곡치고 재차 까무러치고 말았다…                                     악마의 말로         눈섭달이 철조망을 두른 감방 바닥을 쓸쓸히 내리비추며 죽음의 공포를 퍼붓는다.        사형수로 된 살인악마는 눈섭달마저 단두대에 오른 자기 목을 치는 량날일월도로 보였다. 먹장구름에 갈고 씻긴 그 은빛량날일월도는 서슬이 더욱 퍼래 감방바닥에 쏟아져내려 사형수한테 공포를 자아냈다.         실실이 내리비치는 은빛달빛도 자기 목에 걸 올가미로 요술을 부리면서 내리드리우는 것 같았다. 수많은 원혼들이 은빛달빛을 타고 내려오며 눈부시는 숱한 은빛바늘로 악마의 눈깔을 콕콕 찌른다. 혼비백산한 악마는 공포에 질려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었다.         구름 속에서 쏘아보는 눈섭달의 눈초리에서 실뱀들이 줄줄 흘러낼 꼬리를 꼬부려 올리더니 올가미로 변신했다. 숱한 실뱀 같은 올가미가 줄줄이 감방에까지 내리드리웠다. 복수의 살기찬 올가미들이 혀바닥을 날름거리면서 악마의 목에 거미줄처럼 걸려 점점 옥죄여든다.         환각에 빠졌는가?         살인악마는 도리머리를 아무리 저어도 죽음의 저승사자가 송곳이를 앙다물고 악착스럽게 다가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귀전에는 죽음을 재촉하는 염라전 저승사자의 북소리가 둥둥 들려왔다. (언제 죽을지 모를 판이구나.) 그때 여기 저기 구석에서 비명소리, 신음소리, “제발 살려주세요!” 구명소리 애처롭게 들렸다. 분명2001년 10월 말 강간사건 피해녀 김모의 애걸소리가 귀전을 아프게 때리고 있었다. 저건 12월 2일 특대입실살인사건 때 최모 처녀의 비명소리 아닌가. 순간 살인악마의 눈앞에는 상을 찡그린 피해녀들의 참상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10월 말의 어느날 밤 12시 경, 색마는 연길시 연남가 장남골목에서 금방 택시에서 내린 빨간 등산복과 노란 등산복을 입은 두 처녀가 한 세집에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고 슬슬 미행하였다. 색마는 성욕을 억제하지 못해 그녀들이 잠들기를 기다릴 새도 없이 벽돌장으로 유리창문을 깨고 세집에 뛰여들었다. 그는 손전지로 처녀들을 비추면서 호통쳤다. “옷을 벗엇!” 김모 처녀가 전등불을 찰칵 켰다. 색마는 인차 꺼버리고 돼지 목 따는 소리로 또 호통쳤다. “옷을 벗지 못해?!”  색마가 벽돌장을 머리 위에 쳐들고 당장 칠 상하는 것을 보고 처녀들은 질겁한 나머지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하라는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꿇어엎드려!” 색마는 나란히 꿇어엎딘 처녀들을 짐승처럼 륜번으로 강간하였다. 야욕을 실컷 채운 뒤 색마는 그녀들의 등산복 호주머니에서 20원을 들춰내 가지고 도망쳤다. 살인악마는 주공안국 마효동 국장이 직접 텔레비죤을 통해 공개수배령을 내린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2001년 12월 2일 초저녁에 또 어슬렁어슬렁 밤사냥에 나섰다. 이날 저지른 사건은 살인악마가 마지막으로 저지른 악성 입실살인사건이다. 그해에 특별히 폭설이 내려 온 천하가 은세계를 방불케 하였다. 살인악마는 부르하통하를 건너 연길시 연서가 공신시장 부근 한 음식점에 들어가 료리를 청해놓고 술을 쭉쭉 마셨다. 그런데 술을 다 마셨는데도 국밥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째 아직도 국밥을 안들여오는가?” 살인악마는 인내성을 잃고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퍼부었다. 최모 처녀는 두 손을 맞잡고 다가가서 “죄송해요. 인차 들여가지요. 좀 기다려 주십시오.” 하고 공손히 말하였다. 그러나 살인악마는 밥상까지 꽝꽝 치면서 계속 고래고래 고함치면서 쌍욕을 퍼부었다. 최모 처녀는 주방 안의 남자친구 필모를 들여다보면서 낮은 소리로 두덜거렸다. “얼핏 봐도 나쁜 사람처럼 생겼어. 딱 건달 같애.” 나그네 귀 석자라고 그 말을 들은 살인악마는 앙심으로 이글거리는 눈길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 어른을 욕해? 쌍간나새끼, 살기 싫은 모양이군. 어디 죽어봐라!) 무고한 사람도 수태 살해한 살인악마는 자기를 욕까지 하는 만만한 처녀를 놔둘리 만무하였다. 살인악마는 억지로 꼭두까지 치민 성을 내리누르고 술을 더 청해 먹는 척하면서 그녀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얼핏 들을라니 필모가 그날 로임 800원을 탄다고까지 하지 않겠는가. (오늘 꿩 먹고 알 먹게 됐군.) 한참 후 최모 처녀가 결산까지 다 마치고 퇴근길에 오르는 것이였다. 살인악마는 그들을 미행하여 낮다란 세집에까지 갔다. 새벽 한시까지 세집 안에서 처녀총각이 시끌벅적거리더니 뒤이어 곤하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살인악마는 비수로 유리창문 유리 한장을 뜯어내고 세집 안에 뛰여들었다. 그 놈은 부엌에서 식칼을 쥐여 먼저 필모의 목을 두번이나 찔러 살해했다. 최모 처녀는 이불로 옹크린 몸을 감싸고 바들바들 떨었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러나 살인악마는 마수로 몸을 감은 이불을 홱 제치고 최모 처녀의 배를 푹 찌르면서 을러멨다. “다시 봐라. 내 건달 같지?” “앗!” 최모 처녀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가로흔들었다. “아니, 아니예요. 잘못했습니다.” 살인악마는 또 한번 찌르면서 물었다. “얼핏 봐도 나쁜 사람처럼 생겼지?” “아갓! 아니.” 살인악마가 칼질을 할 때마다 최모 처녀가 시뻘건 피를 흘리면서 죽는다고 비명을 질렀다. 그때마다 살인악마는 더없는 쾌감을 느끼면서 징글스레 웃었다. “내 비수 앞에서 얼마나 많은 아가씨들이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걸했는지 아느냐? 난 숱한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은 살인악마야!” “제발 살려주세요.” 최모 처녀는 두 손을 싹싹 비볐다. “허허허. 죽는게 무서우면 어째 그렇게 욕했어? 어디 죽어봐라.” 살인악마는 잔인무도하게 무고한 최모 처녀를 한칼한칼 배를 가르고 밸을 들어내 란도질했다. 음부에 칼을 찔러놓고 휘저었다. 나중에 목을 찔러 참혹하게 살해하였다. 비수로 벽의 회칠을 쭉 긁어 처녀의 피로 얼룩진 음부에 뿌렸다. 피해녀의 뻘건 피를 묻혀 흰 벽에 “살인자는 복수의 악마”라고 써놓을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필적을 남겼다가 단서라도 남길가봐서… “그래, 난 숱한 사람을 죽였어! 한 서른 죽였는가 했는데 14명 밖에 죽이지 못했다고 한다. 보들보들한 처녀들도 수태 강간했다. 이젠 죽어도 목숨값을 했어.” 사실 살인악마 김춘일은 1998년부터 2001년말까지 부르하통하강반에 자리잡은 조양천진과 연길시를 돌아다니면서 모두 23건의 악성 형사사건을 저질렀다. 그중 고의살인사건 11건을 저질러 14명이나 살해하고 5명을 살인미수했으며 고의상해사건 2건을 저질러 2명을 각기 중상과 경상을 입혔다. 15건의 강탈사건을 저질러 1만 225원어치의 재물을 강탈하였으며 강간사건 8건 저질러 10명의 녀성을 강간하고 1명 녀성을 강제외설하였다. 2002년 4월 10일, 연변인민중급법원에서는 고의살인죄, 고의상해죄, 강간죄, 녀성강제외설죄, 강탈죄를 병합하여 살인악마 김춘일을 사형에 언도하고 정치권리를 종신토록 박탈하며 개인의 전부 재산을 몰수한다고 판결하였다. (야, 시내 그 숱한 미녀들을 아까와 어떻게 죽겠는가?) 순간 살인악마는 사형당할 날인줄도 모르고 수음을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젤 예쁜 축모 자매를 강간하던 장면을 련상하면서 문질러도 그것이 말을 듣지 않아 성사하지 못하고 말았다. 죽음을 앞두고 육체에서 혼이 실실 새나가면서 그것도 완전히 마비상태에 처해 있지 않겠는가! “뭘 꾸물거려!” 사형수의 발목에 채운 쇠고랑이 절렁거리는 소리를 듣고 급촉히 다가오는 발자욱소리가 쿵쿵 들렸다. “마지막 밥이야. 어서 먹엇!” “예?” 감방 안에 들이밀어넣는, 예전과는 달리 푸짐한 밥판대기를 보고 살인악마는 의아해했다. “마지막밥이라니?” “오늘 먼 길에 오르게 됐네.” “오늘 총살하는가?” 법경은 대답 대신 쌀쌀이 쏘아보며 머리를 끄덕이고는 가버렸다. 살인악마는 대뜸 온 낯에 공포로 꽉 찼다. 돼지발쪽과 닭다리도 있건만 밥맛이 없어 숟가락을 드네 마네 하다가 맥없이 달랑 내려놓았다. 순간 살인악마의 귀전에 선배죄수 진씨의 목소리 또 귀전이 아프게 들려왔다. “봐라, 형님의 경고 듣잖더니. 끝내 죽게 됐지?” (개소릴 작작 쳐. 네놈새끼 말대로 손발을 건사하느라고 번마다 장갑을 끼고 행사했어. 번마다 잠든 다음에 손을 썼지. 살인할 때도 비수로 가슴을 찌르지 않고 대부분 목을 찔렀지. 넌 목동맥을 찌르면 젤 쉽게 사람을 죽일수 있다고 했지. 가슴을 찌르면 어떤 땐 갈비뼈(륵골)가 비수를 막아 심장을 찌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지.건데 다 무슨 소용 있는가?) 악마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이를 뿌드득 갈았다.  (진형, 장형, 난 강간할 때도 피해녀들이 보지 못하게 번마다 꿇어엎디게 한 후 뒤에서 했소. 지문과 족문을 남기지 않으려고 걸레로 사건현장을 싹싹 닦아놓고 나왔어. 심지어 범행 때 장갑과 운동화마저 강물에 버렸어. 어디 그뿐인가? 피해자 피가 튈가봐 비수나 도끼를 쓰지 않고 망치를 썼댔어. 그런데 이게 뭔가?) “아니야. 처음엔 망치를 썼지만 후엔 비수나 도끼를 썼잖아. 12월 2일엔 식칼을 쓰고 세집에 두잖았어? 그렇게 깐깐하지 못하고서도 천하 제일 날강도냐? 쳇, 마지막엔 고까짓 비수도 아까와 버리지 않고 계속 품에 휴대하고 싸다니지 않았어? 좁쌀 같은 놈, 좀스럽게 아껴서 남은게 뭔가? 결국 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깠지.” 살인악마는 도리머리질하면서 안타까워 속으로 부르짖었다. (쓸데 없는 개소릴 작작 쳐라. 잡힌게 그 탓이 아니야.) “뭔데?” (진형도 몰랐어. 문제는 지문보다도 강간할 때 피해녀들 거기에 싸 넣은 정액이 문제였어. 유전자를 감정해 날 잡았어. 또 강탈한 핸드폰을 줄곧 추적했어. 귀신도 곡할 그런 과학기술 있는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내하구 후남이, 양향화 대화한 걸 몽땅 감청하구 록음해 틀어놓더라니깐. 진형,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니오? 핸드폰은 선도 없는데 어떻게 내 핸드폰과 걔네 핸드폰에 련계해 도청했단 말이오?)       애 때부터 공부를 온전히 하지 못한 무식쟁이, 법맹, 살인악마 김춘일이나 진씨, 장씨 등 일체 범죄자들은 최첨단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날따라 끊임없이 새롭게 발전하는 수사일군들의 최신첨단과학수사수단을 영원히 알 수 없다.  유전자감정, 거싯말탐지기,고주파벽체투과원거리도청기, 최첨단벽체투과영상감시기... 등등은 아직도 들어보지도 못한 것이 아닌가.       그제야 진씨도 고개를 끄덕이였다.        “진짜 뛰는 놈 우에 나는 놈이 있군. 이젠 수사일군들이 참 무섭구나. 우리 도적들도 이젠 진짜 살기 어렵게 됐구나.” 선배죄수 장씨가 떠들어댔다.  “시끄러워! 작작 떠들어. 날강도답게 죽어야지. 누가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다더냐? 죽는게 그렇게 겁나면 날강도질은 왜 했어? 날 봐라. 네지마스로 남의 눈깔을 하나 빼놓고 감옥에서 12년 살아도 씁쓸하잖느냐?”  (그래, 이제 후회한들 무슨 소용있는가?) 살인악마는 미친 놈처럼 닭다리를 쥐여 개처럼 마구 뜯어먹기 시작하였다. 이 시각, 살인악마는 숱한 무고한 생령들에게 목숨을 빼앗아간 피빚을 지고서도 죽을 때까지 자기 죄악을 뉘우치기는 고사하고 소홀히 숱한 단서를 남겨 수사일군들한테 붙잡힌 것을 후회하였다. 드르릉, 드르릉, 절칵. 감방 쇠살창문이 쭉 열리더니 철갑모와 두리모자를 쓴 법경과 무장경찰들이 뛰여들어와 그를 감방에서 끌어내갔다. 아니, 또 환각이 머리를 쳤다. 저승사자들이 덮쳐와 칼을 휙휙 휘두른다. 염라전에서 죽음을 재촉하는 북소리 둥둥 울린다. 하늘에서 실실히 실뱀이 마구 쏟아져내렸다. 그 실뱀들이 팔뚝만한 구렁이로 둔갑하더니 감방 천정에  매달려 꼬리가 휘말려올라가면서 숱한 올가미로 둔갑해 디룽디룽 드리워졌다. 천정에서 내려온 숱한 올가미는 살인악마의 목을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꽁꽁 옭아맸다. 살인악마가 아무리 발버둥질칠수록 점점 더 옥죄여들어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숱한 피해자들이, 억울한 혼들이 몰려와 올가미를 조이고 있지 않겠는가. 죽음 앞에서는 영웅이 따로 없다. 숱한 사람들을 살해한 극악무도한 살인악마도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다리 떨려 비실거리면서 경찰들이 량팔을 붙잡아 끌어올려서야 자동차에 겨우 올라갔다. 달리는 자동차 위에 온전히 서지도 못했고 자동차 바닥에 커다란 액체지도를 줄줄 그려놓았다. 량옆에서 법경들이 꺽쇠 같은 손으로 살인악마의 묶인 두팔을 꽉 붙잡고 압송하였다. 공개심판장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피해자 가족들의 증오의 눈길이  살인악마를 쏘아보고 있었다. 혼이 절반이나 날아난 살인악마는 격분하는 인파 속에서 어머니와 형제들을 찾았다. 그러나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시체를 기다려 화장하려고 진작 사형장에 가서 대기하고 있었다. 후남도 양아가씨도 보이지 않았다. 후남은 뒤늦게나마 수사일군들한테서 한 이불을 덮고 살을 섞어온 김춘일이 살인악마라는 말을 듣고 너무나도 경악했다. 그녀는 살인악마가 대준 어머니 치료비가 몽땅 살인하고 강탈해온 돈이라는 말을 경찰한테서 듣고 섬찍했다. 믿어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착한 척하던 그가, 어진 척하던 그가 살인악마라니?) 그러나 모든 것은 현실이였다. 김춘일은 살인악마였다. 자기 무명지에 끼워준 금반지도 이름 모를 피해녀의 손가락에서 빼낸 것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뜻밖의 강충격으로 그녀는 몇번이고 까무러쳤다. 살인악마한테 속힌 것이 억울하고 격분했다. 그 놈한테 순진한 사랑을 롱락당하고 무참히 짓밟힌 것이 한이였다. 한심하게 두번이나 임신까지 한 것이 너무나 분통이 터지다 못해 허무했다. 그녀는 절망의 심연에 빠지고 말았다. 나중에 그녀는 경찰들에게 김춘일의 수상한 점을 낱낱이 적발하였고 김춘일에게서 얻어가진 금목걸이, 금반지, 금팔찌를 몽땅 바쳤다.        그녀는 그런 악마도 막내아들이라고 사람을 만들겠다고 애쓰던 머리 허연 어머니가 불쌍했다. 그리하여 어머니 자녀들한테 알려 어머니를 맡기고는 어디론가 바람결처럼 사라졌다. 살인악마는 사형장으로 끌려나가면서 이미 혼이 절반이나 날아났다. 산기슭에 자리잡은 사형장에는 건축쓰레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악마가 자동차에서 끌려 내려오자 사형장 하늘과 륙지에서 난데 없는 숱한 해골들이 하얀 이빨을 악물고 성난 사자처럼 고함치며 덮쳐왔다. 분명 그 놈한테 살해된 억울한 원귀들이 자기 피를 되찾으려고 덮쳐오고 있지 않겠는가. “에크!” 혼이 날아난 살인악마는 오만상을 찡그렸다. 남의 피를 먹으면 피 임자가 자기 피를 찾으러 찾아온다고 했다. 분명 조양천진의 왕옥분, 조양천진 동성촌의 김모, 조양천1중 기념비 부근에서 살해된 황모, 공신시장부근 음식점의 최모 처녀와 필모…피가 랑자한 14명 원귀들이 송곳이를 악물고 덮쳐왔다. 원귀들은 살인악마의 목이고 대가리고 마수고 마구 물어뜯는다. 개들이 달려들어 악마의 그걸 물어뜯어갔다… 피해자 가족들이 악마의 살점을 한점 한점 저며낸들 어찌 원쑤를 다 갚을 수 있겠는가. 그 얼마나 많은 가정이 살인악마로 해 산산 박산났는가! 그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령들이 목숨을 잃었는가! 어찌 총 한방으로 원쑤를 다 갚겠는가! 하느님이 악마의 정수리에 용암처럼 이글거리는 거대한 숯불덩이를 올려놓는다. 뿌지직뿌지직 살인악마의 혼이 타들어가는 소리, 비명소리 들린다. 땅! 정의에 찬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죄악에 찬 살인악마의 유령을 화장터 이글거리는 씨뻘건 용광로에 처넣었다.  악마의 유령은 아우성치면서 굴뚝에서 뭉게뭉게 타래쳐오르는 씨꺼먼 연기에 휘말려 염라전으로 날아갔다. 이젠 죄악에 찬 살인악마의 혼이 부르하통하강반에서 영영 사라졌다! 살인악마에게 무참히 살해된 억울한 혼들에게 알리고 싶다- 슬기로운 수사일군들이 살인악마를 나포하여 원쑤를 갚아주었다고, 이젠 저세상에서 조용히 눈을 감아도 된다고. 부르하통하강반에는 다시 조용한 평화가찾아와 무르녹고 있었다. 락조 비낀 부르하통하는 웃음꽃과 행복의 노래를 싣고 금잔디, 은잔디 속에서 뛰놀며 유유히 흐르고 있다. 아, 이 땅에 다시는 살인악마의 유령이 나타나지 말았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끝)   김장혁 프로필: 필명: 민성   1958년 중국 길림성 연길시 조양천진 출생. 1982년 1월 중국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 1982년 1월- 1987년 중국 길림성 용정시 용정중학교 교원. 1988년-1996년 중국 길림성 연변인민방송국 기자. 1997년- 2016년 선후하여 중국 연변인민출판사 "소년아동"과 "별나라"련합편집부 부주임, "청년생활"편집부 부주임, 와 “농가” 잡지련합편집부 주임 겸 주필 력임. 중국조선족로인협회 상무리사, 료녕성조선족로인협회 명예회장 력임. 2018년 5월 연변인민출판사 편심(교수급고급편집)으로 정년퇴직.    저서: 총 18권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장편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 장편과학환상소설 "욕망의 천지" 장편과학환상소설 "황천의 유령"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 장편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 아동문학작품집 "호랑이와 사냥군" 실화작품집 "빨간 장미꽃 함정" 문학작품집 "사랑환상곡"(한국 학술정보사 출판) 문학작품집 "사랑은 요술쟁이야", 수필집 "리별" 등      수상: 백두문학상, 아리랑문학상, 전국소수민족아동문학작품우수상, 동북3성우수도서상, 한중동심컵아동문학상, 한중옹달샘아동문학상, 웰빙아동문학상, 두만강수필문학상, 2010년 연변작가협회 선진작가상 등 30여개 문학상 수상.                              
175    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9) 댓글:  조회:1891  추천:1  2018-10-25
                          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9)                                            김장혁                촌티 훅훅 풍기는 김후남은 피뜩 보아도 애티나고 순진한 것이 드러났다. 비록 의란진 시골의 복숭아얼굴 처녀처럼 볼에 볼우물을 폭폭 파는 매력은 없었지만 터질 것만 같은 풍만한 가슴만은 퍽 성적인 유혹력이 있었다. 색마 김춘일은 복숭아얼굴 처녀처럼 생긴 카운터 처녀애 김후남을 돈으로 얼려내려고 했다. 그리하여 또 비수를 품고 밤거리에 나섰다. 핸드폰의 유혹 2001년 8월 16일 새벽 1시경에 살인악마는 비수를 품고 연길시 연남가의 한 층집아빠트를 지나가다가 층계어귀에서 웬 남녀가 도란도란 주고받는 말소리를 들었다. (개새끼들, 바람이 나도 한두가지 아니구나. 밤중까지 게지랄이군.) 살인악마는 이를 악물며 비수를 쑥 뽑아들었다. 남녀는 한담에 열중하다나니 어둠 속에서 공포와 위험, 살기가 엄습해가는 것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살인악마는 그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뒤로 덮쳐갔다. 서슬푸른 비수가 번뜩했다. 살인악마는 먼저 오모의 가슴과 잔등을 악착스러레 마구 찍었다. 그 놈은 수사일군들을 다른데로 유인하려고 김모의 잔등을 마구 찍으면서 한어로 고함쳤다. “너네 한국 놈들은 전문 중국 조선족들을 사기쳤어!” 오모와 김후남은 쿵 쓰러지면서 핸드폰가방과 핸드빽을 떨어뜨렸다. 살인악마는 아빠트 구역인지라 핸드폰가방과 핸드빽을 주어들고 황급히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그 놈은 한참 달아나다가 한 골목길에 꺾어들었다. 헐레벌떡거리면서 핸드폰가방과 핸드빽을 들춰보았다. 현금 1,200원에 998형핸드폰과 소령통핸드폰이 들어 있지 않겠는가. (허허허. 이게 웬 떡이냐? 이거면 계집년들을 실컷 구슬리겠군.) 살인악마는 혹시 단서로 될가봐 커다란 핸드폰가방은 어둠 속에 활 던져버렸다. 자그마한 핸드빽만은 꽤나 고급스러워서 김후남을 주려고 가지고 도망쳤다. 한편, 고함소리, 비명소리와 신음소리를 들은 이웃들이 하나둘 전등불을 켜더니 바깥으로 뛰여나왔다. 그들은 층계어귀에 쓰러진 오모와 김후남 녀성을 발견하고 인차 병원에 호송하였다. 오모와 김후남 녀성은 구급받았기에 다행히 구사일생으로 사경에서 벗어났다. 살인악마는 득의양양해 그날 새벽으로 호텔로 찾아가 김후남을 구슬리려고 하다가 그만 두었다. 새벽에 찾아갔다가 자칫 김후남녀성의 오해를 살가봐 겁났던 것이다. 새벽이슬을 맞은 놈의 특유한 경계심이 또 작동했다. 이튿날 그는 부르하통하에 가서 목욕까지 하고 옷에 혹시 피가 묻지 않았는가 두루 살펴보았다. 다행히 토색잠바여서 피 흔적이 별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조금만 미심한데 있으면 강물로 싹싹 닦아버렸다. 그는 집에 돌아와 아주 내심하게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내렸다. 쥐새끼, 바퀴벌레 그리고 살인악마가 쏘다니기 좋은 시각이 됐다. 살인악마는 신사처럼 새 옷을 쭉 빼입고 김후남한테 줄 선물까지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양향화(가명)와 김후남(가명) 만나러 호텔로 갈 때만은 부자인척 항상 택시를 잡아타고 달려갓다. “어서 오세요? 오빠, 왔습니까?” 호텔에 들어서자 카운터에서 김후남이 복숭아얼굴에 환한 웃음꽃을 피우며 반갑게 맞이했다. “그래, 잘 있었소?” “네, 요즘 왜 오지 않았습니까?” 춘일은 이젠 거짓말도 밥 먹듯 술술 잘도 해재꼈다. “무역공사에서 장사컬레로 로씨야에 갔다 오라고 해서 올 새 없었소.” 그는 선물가방부터 앞세웠다. “자, 이걸 받소. 뭐 줄게 없어 생각하다 못해 그저 이런 거 가져 왔소.” “바쁘겠는데 무슨 선물까지 가져왔어요.” 정교한 핸드빽을 열어보니 안에 소령통핸드폰이 들어 있지 않겠는가. “어마나, 핸드폰 아닙니까?” “그래. 핸드폰이요. 내 사랑스런 처녀한테 핸드폰이 없어서야 되겠소?” “감사합니다. 오빠.” 춘일은 일약 김후남 앞에서 자애로운 오빠로 스리슬쩍 변신했다. 그는 손으로 김후남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달콤한 말부터 박아넣었다. “야따, 오빠 주는 건데 어째 사양하오. 무슨 곤난한 일이 있으면 오빠한테 말하오. 내 칼산에 오르더라도 꼭 해결해주지. 허허허.” 김후남은 핸드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면서 감지덕지해 했다. “오빠, 정말 감사합니다. 오빠한테서 거저 귀중한 선물을 받기만 할 순 없는데요. 오빠, 뭘로 이 은공 다 갚을가요?” 확실히 그때 당시 핸드폰 한대에 시가로 몇천원씩 했다. 어떤 핸드폰은 만원 밑을 했다. 그때 갓 대학을 졸업한지10여년이나 되는 사업일군들도 한달 로임을 몇백원 밖에 받지 못하였다. 몇달 로임이 드는 BB호출기를 차고 다니는 사람도 대단해보였는데 황차 핸드폰임에랴. 김후남은 그 핸드폰이 어제 밤에 비수로 사람을 찍어 쓰러눕히고 강탈한 것이라는 것도 전혀 모르고 감지덕지해하였다. 살인악마는 아주 착한 척하며 이때만은 사람좋게 웃었다. “허허허. 뭐 은공이고 뭐고. 그저 이제부터 날 오빠로 여기고 믿으면 되오.” 수물넷이 되도록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아온 김후남은 통을 크게 쓰는 살인악마를 마음씨 착한 남자로 착각했다. “예, 알았습니다. 오빠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날 밤에 살인악마는 천신만고 끝에 얻은 김후남의 환심을 잃고 싶지 않았다. 색마는 점잔을 빼면서 양향화한테서 정규안마를 받았다. 양향화의 하얗고 보들보들한 손이 허벅지를 슬슬 주물러주자 씨원하기 그지 없었다. 그는 눈을 지긋이 감고 오만가지 생각을 굴렸다. (혹시 어제 빈틈이 없었는가? 현장에 단서로 될만한 걸 남긴 건 없는지? 장갑을 끼고 해재꼈으니까. 버린 핸드폰가방에두 지문이 남았을리 없구. 건데 저 김후남한테 준 핸드폰이 대사야. 혹시 피해녀가 살아 있으면 여기 왔다가 자기 핸드폰을 알아보면 어쩌지? 혹시 핸드폰을 치다가 들키면 어쩌지?) 그는 대책을 대야겠다고 생각했다. (허나 핸드폰은 집에 놓은 고정전화하구는 다르지. 어디서 쳤는지 누가 알아? 누가 혹시 핸드폰을 친 위치를 물으면 말하지 말라면 되지. 경찰놈들, 그 재간에 어데 가서 핸드폰을 찾는대?) 양향화는 오늘도 이 놈의 부자놈한테서 뭔가 빨아내려고 갖은 수를 다 썼다. 그녀는 외까풀눈을 살며시 내리뜨고 춘일의 사타구니를 흘끔흘끔 훔쳐보면서 허벅지 안쪽을 슬슬 어루만지며 자꾸 그걸 자극하였다. 순간 색마는 싱숭해나 아래배로부터 찡 전기 뻗치는 것 같았다. “아야, 그만, 그만. 참기 힘든데.” “참을게 뭔가요? 남자들이 참으면 병든다던데요.” 색마도 넌짓이 능청을 떨었다. “돈만 있으면, 해해해. 뭐가 어려운데요?” 양아가씨는 샐쭉 웃었다. “무슨 해결책이 있느냐? 아야, 좀 작작 그래라.” “왜 점잔을 빼는가요?” 색마는 꼬리 치는 양아가씨를 보자 온몸이 근질거렸다. 그러나 오늘만은 꾹 참았다. 밑층 카운터에 있는 복숭아얼굴 처녀애한테 잘못 보일가봐서였다. “에이구, 세상 인심은 모두다 한장 종이장만큼 사이를 뒀지요.” “무슨 말이냐?” “여긴 당신과 나 밖에 없어요. 문만 잠그면 누가 알아요? 이 안에서 우리 둘이 뭘 하는지?” “넌 입이 꽤나 가볍더구나. 우리 여기서 논 걸 저 아래 카운터한테 다 얘기했지?” “호호호. 제가 바보인가요?” “진짜 한번도 말하지 않았어? 내 팁이랑 준 일도.” “그런 일 누가 감히 말해요? 여기서 쫗겨날려고? 아니, 경찰한테 잡혀가자고?” “하긴, 우리 둘이 뭘 했나? 아무 것도 안했는데. 흥! 경찰이 무서울게 뭐냐?” “호호호. 맞아요. 우린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정규안마를 했죠. 네? 호호호.” 양아가씨도 꽤나 능청스러웠다. 그녀가 자꾸 아래배와 허벅지를 꿍꿍 내리누르고 만지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어. 김후남이 무슨 내 색시라도 됐다더냐? 입 안에 들어온 고기부터 먹고 볼 판이지.) 색마는 더는 참을 수 없어 안마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째 일어나요?” 색마 춘일은 양아가씨 탄력있는 허리를 붙안고 귀에 대고 쑹얼거렸다. “만원짜리 핸드폰 줄게. 내하구 친하자.” 양아까씨는 춘일의 팔을 풀더니 능청스레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날 그날 결산하면서 노는게 젤 좋아요.” 춘일은 멜가방에서 커다란 핸드폰을 꺼내보였다. “봐. 욕심나지?” “어마나, 진짜네.” 양아가씨는 대뜸 눈이 화등잔이 다 됐다. “만원짜리야.” “어마나.” 양아가씨는 핸드폰을 받아쥐고 환성올렸다. 허나 그것도 잠시뿐, 안색이 인차 흐려졌다. “이따위 가져다주고 나보고 엄청나게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어림도 없어요. 만원짜리 갚자면 내 몇번 들이대야 해요? 백번이나? 아이구, 아름차라. 한 석달 죽어줘야겠구만요. 싫어요. 이 잘난 걸 안 가지겠어요. 바본가 해요?” 그러자 색마는 슬슬 구슬렸다. “내 어디 대가 딱딱 따지는 좀부스러긴가? 한 스무번이면 돼. 로씨야로 장사하러 갔다오다나니 녀자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지경이야.” “진짜 굶었어? 호호호. 모두 로씨야에 가면 금발머리처녀애들부터 재낀다던데요. 난 안하겠어. 괜히 에이즈병 옮겠다.” “야, 오빠를 좀 도와주면 안돼?” 양아까시는 큰 부담거리를 부리운 것 같아 한숨을 호- 내쉬였다. “이게 진짜 쓸만한 핸드폰인지 누가 알아요? 진짜 만원이나 하는가요?” “당장 전화 쳐봐.” 양아가씨는 핸드폰을 받아 카운터에 전화를 쳐보았다. “여보세요, 누굴 찾아요?” “후남이냐? 나 양향화야.” “오- 그래? 어데서 전화 치느냐?” “공중전화야.’ “알았어. 가만, 금방 그 단골부자 모시고 올라갔잖아? 언제 나갔어.” “오, 배 쌀쌀해나서 먹을 거 좀 사러 나왔어. 이따 보자.” “오, 내 위생실에 간 틈에 나갔댔나?” “오- 그래, 비상뒤문으로 나왔댔어. 그 단골부자 안 갔지?”  “응, 그래. 그 손님 안 갔어. 널 기다리겠다. 빨리 들어오라. 괜히 총경리한테 잘리겠다.” “응, 인차 들어갈게.” 양향화는 핸드폰을 끄고 춘일한테 핸드폰을 내밀었다. “진짜군요.” “그래. 그 핸드폰 척 가지고 다니면 몸값이 얼마 올라가는지 알아?” 양향화의 허영심을 꽁꽁 채워주는 말이였다. 견물생심이라고 그녀는 허영심에 둥둥 떠서 당장 핸드폰을 침실에 가져다 깊숙이 챙겨넣었다. “해해해.” 그녀는 웃으며 안마방에 돌아왔다. 드디여 안마방 문을 닫아걸고 안마침대에 드러누웠다. 보스와 다른 아가씨들의 눈을 가리고 색마와 갈보는 더러운 교역을 벌렸다. 그러나 무지한 살인악마나 양아가씨나 자기들이 지금 무슨 사단을 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벌써 그때부터 주공안국 정보처에서는 그 핸드폰을 감청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수사일군들은 그 핸드폰의 소유자와 위치 등을 추적하면서 긴 그물을 치고 큰고기를 낚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인악마는 양향화와 김후남한테 준 핸드폰이 중대한 단서로 될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그런데도 며칠 후 양아가씨는 그 핸드폰을 지하상점에 가져다 팔아먹었다. 수사일군들은 과학수사의기로 그 핸드폰을 추적해 되찾아냈다. 살인악마와 양아가씨는 그런줄도 모르고 제딴에는 가랑잎으로 자기 눈을 가리고 야옹 하며 처사했다. 살인악마는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숱한 녀성들을 강간하고도 나포되지 않자  더욱더 담대해졌으며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자기 눈에 거슬리는 자가 있기만 하면 가차없이 미행하여 기회를 노려 살해했다. 이젠 자기는 누굴 죽이자면 죽이고 누굴 강간하자면 강간하고 누구의 재물을 빼앗자면 뺏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미친듯이 계속 사건을 저질렀다. 귀전에 또 선배죄수 진형의 훈계가 아프게 채찍질했다. “이 바보야, 왜 빼앗은 핸드폰을 양아가씨한테 줬어?” “하하하.” 악마는 너털웃음을 웃었다. “진형, 형은 모르오. 스무번이나 하기로 하고 양배추한테 줬소. 낡은 핸드폰인데. 이런 장사 어디 있소? 야시장에 가지고 팔아도 그만한 값을 받지 못하오. 알기나 하고 말아호? 진형, …” 진씨가 대뜸 벌컥 성 냈다. “우둔한 놈! 지금 돈을 따질 때냐?!” “그래, 뭐요?” “임마, 내 뭐라 했어? 절대 굴어귀 풀을 뜯어먹지 말라고 했잖아. 건데 넌 풀어귀 풀 같은 양배추한테 핸드폰을 줬어. 카운터 김후남이라던가. 그 간나새끼한테도 주고. 똥담이 크기도 크구나.” “건데 어쨌단 말이요. 난 서른살도 퍽 넘었소. 이젠 장가도 들지 못한 로총각이란 뒷말 듣기도 신물이 나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내 그게 병신인가 한단 말이요. 남자는 녀자를 점유하는 정복자가 아니고 뭐요? 나도 김후남을 얼려내 진정한 녀자정복자로 되겠단 말이요. 세상사람들한테 나도 색시가 있다고 선포하고 싶소. 난 병신이 아니란 걸 간나새끼들한테 보여주고 싶단 말이요.” “그래, 허허허. 색시라도 만들 예산인가?” “양, 내라구 색시도 없이 살겠소? 형님을 보오. 감옥에서 녀자 생각나니 참을 수 없어 내 밑구멍에다 다 대고 지랄발광하면서 내쏘지 않았댔소?” “임마, 그때는 그때고. 이젠 자유세상에 나오잖았어? 세상에 일회용 간나새끼들이 쌔고 버렸는데. 왜 색시 고집해? 생각나면 강간하더라도 색시는 절대 금물이야. 네 엄마 감독하는게 모자려 옆에 젊은 감독 붙여둘 예산이냐?” “엄마하구 색시 하나 얼려넘기지 못하겠소? 잘 해주면 얼렁뚱땅 얼려넘길 수 있소. 강간하는 것도 별재미지만 나도 진짜 따르는 색시를 데리구 날마다 재미를 보면서 살겠소.” “야, 임마, 꼬리를 잡히지 않겠으면 당장 그만 둬. 우리 같은 강도나 절도범들은 일회용녀자가 제일이야. 옆에 딱 붙어 감시하는 색시가 필요없어. 불편해. 네 엄마 곁에서 감시하는게 좋더니? 이제 색시 있어봐. 눈이 하나 더 많아 살인, 강간하겠구나. 환장하고 자빠졌구나. 자유롭게 날강도질 하겠으면 색시도 엄마도 랭혹하게 버려야 해! 그래, 혼자 살아야야 거칠게 없는 천하제일 자유로운 강도야!” 그 말에 살인악마는 눈이 데꾼해졌다. “개새끼, 죽자고 진짜 환장했구나. 네놈은 왜 통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경찰들이 피해자 핸드폰을 추적하기라도 하면 넌 낙자없이 잡혀. 알만해?” 사실, 경찰들은 여직껏 그 핸드폰을 감청(도청)하면서 추적해왔다. 그리하여 호텔에서 전화를 친 양향화나 김후남은 경찰들의 감시대상으로 되였다. 양향화가 연길시 지하상점에 가지고 팔자 수사일군들은 인차 추적해 되찾아갔다. 그리고 양향화를 데려다가 심문하였다. 그런데 양향화는 죽어라고 살인악마한테서 가졌다고 한마디도 불지 않고 안마원에서 주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리하여 경찰들은 그때부터 양향화, 김후남과 통화한 모든 사람들을 수사권에 넣고 전화마저 도청하면서 감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런줄도 모르고 살인악마는 핸드폰으로 자꾸 양향화와 통화하고 있었다. 경찰들은 긴 그물을 늘여 큰 고기를 잡으려고 아직도 살인악마가 준 핸드폰을 쓰고 있는 김후남을 건드리지 않고 계속 도청하고 감시하였다. “아, 듣고 보니 그렇구만. 형님, 어쩌면 좋소?” “좋기는 경찰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그 핸드폰 되찾아라.” “알았소. 그래도 관건적인 때는 형님이 제일이요.” “또 있어.” 귀신처럼 밤하늘에 나타나 울리는 진씨의 계시가 지척에서 귀전에 쟁쟁하게 들렸다. “그게 뭐야? 어쩜 그런 우둔한 짓거리를 해?” “또 뭐요? 빙빙 에돌지 말고 단마디로 툭 찍어 말하란 말이오. 진짜 답답하오.” “팬티 말이야. 팬티!” “팬티 어쨌단 말이오?” “왜 이웃집 아낙네 팬티를 그랬어?” “일시 성충동을 참지 못해 그랬소. 건데 어째?” “이 우둔한 놈아, 팬티를 그래놔서 이젠 마을 사람들이 네놈을 성변태라고 욕할게 아니냐?” “욕하겠으면 욕하라지. 뭐라오? 못 들은 척하면 다지.” “야, 이 놈아, 이젠 주변에 강간사건이 생기면 마을 사람들은 다 널 의심할게 아니냐? 경찰에 고발할 거고.” “양? 아니, 걸 어쩌오?” 진씨는 안타까와했다. “네놈도 이제 저승사자한테 붙잡혀 갈 날이 오래잖구나. 어쩜 굴어귀 풀을 먹지 말라, 건드리지 말라, 그렇게 말해줘도 눈치코치 없니? 쯧쯧쯧. 이제 염라전에 가게 됐구나.” “뭐라오? 진형, 어쩜 좋소.” “이젠 형도 별 수 없어. 호텔에도 작작 드나들어. 꼬리 길면 밟혀! 모든 건 네절로 알아서 해!” “진형, 진형!” 진형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그때 대신 경찰이 총을 빼들고 뛰여들었다. “아니, 난 죄 없소. 죄 없어!” 살인악마는 와닥닥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또 악몽을 꾸지 않았겠는가. 부시시한 눈을 비비고 보니 또 잔소리쟁이 엄마가 의심스러운 눈길로 자기를 쏘아보지 않겠는가. “요즘 밤중에 쏠락거리면서 나쁜 짓을 하지 않았어?” “아니오. 엄만 왜 효자를 자꾸 의심합둥? 엄마 죽는 걸 보자고 나쁜 짓 하겠습둥?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은 엄마 밖에 없는데. 자꾸 쓸데 없는 근심하지 맙소.” “나쁜 짓 해봐라. 내 양재물을…” “또, 또 그 말입둥? 알았소. 알았어. 주의할게! 에이, 원, 잔소리두 그렇게 많습둥?! 흥!” 살인악마는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했다. 언제 늙은 엄마와 말씨럭을 할 새 없었다. 그는 황급히 옷을 주섬주섬 꿰입고 핸드폰을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헌 자전거를 타고 부랴부랴 부르하통하강으로 달려갔다. 그는 사냥개 쫓아올가봐 이젠 쩍 하면 자전거를 타고 싸다녔다. (간나새기, 어째 전화를 받지 않아? 진짜 경찰한테붙잡히지 않았어?) 살인악마는 자전거를 강뚝 버드나무숲 속에 세워놓고 큰 길에 나섰다. 그는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세워 잡아타고 곧추 호텔로 달려갔다. 아침 일찍 호텔에 들어서자 후남은 놀라운 눈길로 멍해 그를 쳐다보았다.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흐르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오빠, 왔어요?” 반겨 맞던 표정이 아니라 심드렁한 표정이였다. “오, 그래. 내 조용히 말할게 있다.” “뭔데요? 여기서 말하시오.” “핸드폰을 어쨌느냐?” 후남은 픽 코웃음치면서 랭소했다. “왜, 되찾기라도 하겠습니까?” “아니, 아니오.” 악마는 주위를 살펴보고 손님도 없는 것을 보고 나직이 말했다. “후에 내 더 좋은 핸드폰으로 바꿔줄게. 이 핸드폰이 헌게 돼서 잘 고장나오. 인체에도 좋지 않고.” 후남은 핸드폰을 핸드빽 채로 꺼내 주었다. “아까우면 가져 가세요. 쨋쨋하게. 흥.” “아니오. 손질해서 주던지 보기오.”       허위와 기만으로 포장된 "사랑"   춘일은 핸드폰을 챙겨넣으면서 한숨을 후- 내쉬였다. “어째 기분이 좋은 것 같잖다. 날 믿소. 꼭 더 좋은 핸드폰을 줄게. 그래도 곤난한 일이 있으면 해결해줄 사람은 이 오빠 밖에 없잖소.” “진짜?” “오, 그래, 곤난한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라고.” 후남은 그제야 정색했다. “오빠, 내 불시에 돈을 좀 쓸 일이 있는데… 좀 도와주겠어요?” 기대에 찬 눈길을 떼지 않는다. “그래. 말해봐. 무슨 일인데?” 후남(가명)은 눈을 내리깔면서 울먹울먹했다. “요즘 불시에 엄마가 앓아 치료해야겠는데 치료비가 떨어져 그래요.” “그래?” 악마는 통이 크게 놀았다. 그는 그럴줄 알았다는듯이 미리 준비한 불룩한 지갑을 꺼냈다. “자, 이걸 몽땅 가져다 쓰오.” “어마나! 진짜 오빠, 감사합니다.” 후남은 입이 함박만큼 짝 벌어졌다. 지갑을 열고 세여보니 천원이나 들어있지 않겠는가. 후남이 그 돈을 벌려면 일년이나 다리 아프게 카운터에 서서 맴돌아야 했다. “은공을 어떻게 갚을가?” “또, 또, 또. 그저 오빠를 믿어만 주면 돼.” 후남은 돈을 챙겨넣으면서 종알거렸다. “오빠, 하늘아래 오빠만 믿겠어요.” 악마는 후남을 얼려내기 위해서라면 아까울 것이 없었다. 간이라도 빼줄 수 있었다. 행복한 웃음을 짓는 후남의 복숭아얼굴, 그 얼굴에서 생글거리는 한쌍의 순진한 청포도 눈만 보아도 즐거웠다. “이제 치료비를 더 얻어다 줄게. 근심하지 마오.” “감사해요. 우리 엄마만 나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오빠, 뭐든 말해요. 나도 오빨 도와줄게요.” 이때야 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우리 친구로 친하면 안되겠소?” “호호호.” 후남은 입을 싸쥐고 호들갑스레 웃었다. “어째? 내 나이 많다고 그러오?” “오빠, 올해 나이가 어떻게 돼요?” “서른 한살이오.” 제딴에는 여섯살이나 줄였다. 그것도 주세로 나이를 슬쩍 둘러댔다. “나이가 뭐 대순가요? 좋아요. 오빠, 친구 하는게 더 좋을 거 같으면 좋아요. 친구 합시다.” “허허허.” 색마는 후남의 손을 꽉 쥐고 흔들다가 쥐여당기면서 귀여운 복숭아얼굴에 뽀뽀를 쪽 했다. “오늘 비오는데 아예 호텔에 들어 쉬고 가요.” “그래? 좋아.” (이게 웬 떡이냐? 호박이 넝쿨채로 굴러들어오지 않는가? 헤헤헤.) 밖에서는 장대 같은 소낙비가 창창 쏟아졌다. (하늘도 날 돕는구나.) 춘일은 후남을 따라 호텔 웃층으로 올라갔다. 후남은 호텔 3층에 올라가더니 키로 구석진 단간방 문을 열었다. “오빠, 후에도 소낙비 내리면 여기서 푹 쉬고 가요.” “감사하오.” 그러나 춘일은 문을 열어주고 되나가려는 후남의 탄력 있는 뒤잔등을 보면서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무슨 멋에 혼자 여기서 고독하게 있으라오?” 그는 후남을 뒤따라 나가려고 했다. “아차, 가만, 오빠, 오늘 소낙비가 와르르 쏟아져서 손님이 오잖겠구나.” 후남은 되돌아와 침대머리에 앉았다. 춘일은 그녀의 곁에 나란히 앉으면서 살인악마의 본성을 억지로 감추면서 다정하게 물었다. “엄마, 무슨 병에 걸렸소?” “간경화복수에 걸렸어요. 배 둥기만한데요. 흐흐흑, 흑흑.” 춘일은 후남의 들먹이는 어깨에 자연스레 손을 얹었다. “어디에 입원했소? 함께 병문안 갈가?” 후남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춘일을 미덥게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오빠, 초면에 어머니한테 가긴 좀 그래요. 오빠 준 돈으로 저 혼자 병문안을 가면 돼요.” 춘일은 김후남(가명)을 꼭 끌어안아주었다. “치료비는 근심하지 마오. 우리 꼭 엄마를 살려내기오.” “감사해요.오빠.” 후남은 와락 춘일의 품에 안겼다. 춘일은 처음으로 주동적으로 자기 품에 안긴 처녀의 풍만한 가슴을 노려보았다. 뒤이어 색마는 피로 얼룩진 악마의 손을 그녀의 가슴에 스르르 넣으면서 거치른 숨을 몰아쉬였다. 후남은 처음에는 춘일의 손이 구렁이처럼 가슴으로 기여들자 반사적으로 손으로 밀어버리면서 몸을 옹송그렸다. 그러나 지꿎게 끌어안고 키스하며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그 손을 밀어버릴 힘이 없었다. 그녀는 그 손에서 돈을 얻어다가 어머니를 살리고 봐야 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 색마의 손을 더 밀막지 못하고 하는대로 내맡기고 말았다. 기편과 강탈, 허위와 금전으로 포장된 죄악의 “사랑”이 움트고 있었다… 사실 후남의 부모는 후남의 아래로 아들을 낳으려고 후남의 이름을 그렇게 야사시하게 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간염에 시시콜콜 앓다나니 애를 더 가질 여유가 없어 그만 두었던 것이다. 무남독녀로 된 후남은 어머니 치료비라도 마련하려고 시내에 들어와 여기저기 떠돌면서 하바닥에서 구을어왔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리 애나게 일해도 날따라 가중해가는 어머니 병을 치료할 비용이 딸렸다. 그러던 차 김춘일이 그녀의 앞에 뛰여들어 통이 크게 도와주었다. 이제껏 지껄이는 남자는 많아도 어머니 치료비 말만 나오면 쭈물거리면서 뒤걸음질쳤고 심지어 꽁무니를 빼더니 다시는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그러나 춘일은 진짜 사내대장부답게 통크게 척척 도와주었다. 그녀는 그것이 사내의 진정으로 느껴졌다. 색마는 조용한 호텔방에서 몸이 홧홧 달아오른 후남을 당장 해치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마른 나무 꺾듯해서는 후남을 장기적으로 점유하는데 불리할가봐 억지로 꾹 참고 놓아주었다.         후환을 없애버려야 후남이 어머니 병문안을 가자 살인악마는 본성을 드러냈다. “양씨를 놔뒀다간 꼬리를 밟히겠는데. 가차없이 죽여버려야 해.” 살인악마는 꿈이였지만 귀신이 곡할 지경으로 밤하늘에 나타난 진형의 계시가 신통하다고 여겼다. “경찰들이 양간나새끼 핸드폰을 추적하면 큰 일인데. 간나새끼 나한테서 가졌다고 불면 끝장 아닌가?” 그는 양씨를 호텔방에 불러 조용히 허실을 령탐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인차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아니야. 양씨가 이 호텔방을 알아선 안돼. 그럼 나와 후남의 관계가 드러날게 아닌가. 절대 못할 노릇이야.” (좋기는 미리 강바닥 버두나무 숲에 미리 구덩이를 파놓고 그 쌍년을 강뚝에 불러다 죽여치우고 파묻어버리는 건데. 쌍년이 그렇게 으쓱한 곳에 가자구 할가?) 살인악마는 한참 어떻게 양아가씨를 없애치우겠는가 궁리하다가 무릎을 탁 치면서 일어섰다. “먼저 양아가씨 허실을 알아보고 손을 써도 늦지 않아.” 그는 후남을 완전히 점유하지 못한 형편에서양아가씨를 당장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일회용 정욕배설도구를 없애버리고 어쩌는가? 날마다 강간한다는 것도 쉽지 않아. 밤중에 어둑시그레한 골목으로 싸다니는 간나새끼들이 있어야 강간하지.) 그는 사우나실에 들어가서 시원히 샤와를 슬슬 하면서도 계속 번개같이 속궁리를 굴렸다. 뒤이어 그는 아주 신사처럼 안마복을 입고 안마방에 올라갔다. “양아가씨를 불러주오.” 안마방 복도를 지키는 남성복무원한테 조용히 여쭈었다. “네. 양향화, 단골손님이 부르오. 1호 귀빈방에 모시오.” “네-” 향화가 궁둥이를 배틀거리면서 다가왔다. “오빠, 왔구만요.” 양향화는 악마를 보고 속으론 망똘짝이 떨어지듯이 놀라면서도 아양을 떨어댔다. 춘일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안마방에 들어가 침대에 들어누웠다. 향화가 머리를 꼭꼭 누를 때 살인악마는 딱 감았던 쌍거풀눈을 번쩍 떴다. “어째 전화를 받지 않아?” “네- 일이 바빠서요.” 향화는 핸드폰을 팔아버린 걸 알면 춘일이 의심할가봐 에둘러댔다. “핸드폰 고장나지 않았소? 좀 손질해줄게.” “아니, 아니. 그 핸드폰 참 좋은데요.” “가져오라. 내 좀 쳐보자.” (이 자식, 주고 후회돼?” “되찾으려는 건 아니겠죠?” “날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리야?” “그래도 어떻게 믿어요? 난 이젠 대가를 적게 치렀는가요? 날마다싶이 숨을 죽이고 기절나게. 질기기도 질긴게. 흐흐흐.” (이 간나새끼, 정말 죽자고 환장했어?) “가져오라면 가져올게지. 무슨 잔소리냐?” “진짜 물리자고? 안돼요. 그 핸드폰이 무슨 만원짜리라고 그래요? 지하상점에 가지고 가서 물어보니 4천원 밖에 안한다던데. 누굴 사기쳐요?” “뭐라고? 내 사기쳤다고? 그럼 그 핸드폰을 당장 가져오라. 당장 4천원 줄게.” “네? 그런 걸 만원짜린가 했지. 나만 당했잖아요?” (이년 진짜 죽어야 되겠구나.) 살인악마는 당장 죽여치우고 싶었다. 그러나 살인환경이 맞갖지 않았다. 그는 억지로 거치른 숨소리를 눅잦혔다. “혹시 그 핸드폰에 누가 전화 치지 않더냐?” “걸 알아 뭘 해요?” “묻는 말이나 대답해라.” “아니요. 저는 아는 사람도 없는데요. 누가 나한테 전화 치겠어요?” (이 놈새끼, 뭔가 뒤에 걸리는게 있구나.) 향화는 경찰까지 찾아온 일까지 련상되자 그 핸드폰에 문제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녀는 점차 김춘일이 악마처럼 무서워났다. (혹시 빼앗은 핸드폰인가? 에라, 핸드폰을 팔아버렸지. 여기서 도망쳐버리자. 이 놈새끼 어데서 다시 찾는다더냐? 내 어디 머저린가? 여기서 이 놈한테 당할게 뭐냐?  이제두 열몇번이나!) 살인악마도 음흉한 살인계획을 짜고 있었다. “핸드폰을 어쨌니?” “잃어버렸어요. 미안해요.” “그래? 그래서 내 전화 받지 않았구나.” (이 년 핸드폰을 안 내놓는 거 봐라.) 그때 안마방 천정 공중에서 진형의 계시가 또 귀전을 때리는 상 싶었다. “이 놈아, 꼬리 길면 밟혀! 그년을 당장 죽여버려!” 살인악마의 앞에는 이젠 어떻게 향화를 어데 얼려다 죽이겠는가하는 일만 남았을뿐이다. (가차없이 꼬리를 잘라버려야지. 이년이나 후남이나 걸림돌이 되기만 하면 몽땅 가차없이 죽여버려야 해!) 살인악마는 속과는 달리 능청스레 선심을 쓰는 척하면서 향화를 구슬려대며 눅잦혔다. “향화, 핸드폰을 네한테 줬으니깐. 네가 팔든 말든, 잃어버렸든 말았든 관계없다. 핸드폰을 주고 네보고 대가로 몸을 공 팔게 하는 것도 오랜 친구로서 할 일이 아니구나. 너무 쨋쨋하게 논 날 량해하면 안되겠느냐?” “이제야 진짜 오빠 같아요. 언녕 그렇게 나올게지. 감사하다는 말이라도 듣지.” 향화는 선심을 쓰면서 미끼를 던지고 올가미를 목에 거는 살인악마의 음흉한 속심은 꿰뚫어보지 못하고 해해해 아양을 떨었다. “오늘 최고 써비스를 해드리죠.” 춘일은 바짝 당겼던 고삐를 느슨히 늦췄다. “힘들면 오늘 안마 이만해도 돼.” “네? 오빠,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잖아도 어제 밤에 손님이 많아서 제대로 자지 못해 곤한데요. 호호호. ” 향화는 춘일의 꺼슬꺼슬한 얼굴에 뽀뽀까지 쪽 해주었다. 그녀도 이상해할 정도였다. 평소에 돈을 딱딱 따져가면서 안마하던 수전노가 오늘은 선심을 쓰니 말이다. 그녀도 자기 궁리를 따로 했다. 그녀는 이번 안마만 끝나면 당장 도망칠 잡도리였다. 이 놈의 무서운 색마의 마수에서 한시급히 벗어나고 싶었다. 진짜 신물나게 지긋지긋했다. 살인악마는 일어나면서 양아가씨를 돌아보았다. “향화, 돈이 바쁘면 아무 때건 말해라. 오빠 해결해줄게.” “에이, 고맙기도. 오빤 진짜 좋은 남자요.” (갈보, 불여우!) 살인악마 김춘일도 알았다. 양향화는 순진한 후남처럼 그렇게 쉽게 얼려넘기지 못한다는 것을 불 보듯 빤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미끼를 던지는 것을 잊지 않았다. “향화, 여긴 자주 올데 아닌 거 같소. 래일 아홉시 쯤에 연신교 서쪽으로 해 한 500메터 떨어진 부르하통하강뚝에 나오오. 새 핸드폰을 산 거 줄테니까.” “네? 또 새 핸드폰을?”  
174    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8) 댓글:  조회:1738  추천:0  2018-10-22
                                      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피못 속에 쓰러진 大哥大형님 지난 세기 70년대 말부터 연길에는 여기저기 사교무청이 나타나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90년대 말부터는 한국 문화가 흘러들면서 안마방, 노래방,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 간판이 여기저기 걸리기 시작하였다.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내리자 연길 시내에는 여기저기 오색령롱한 네온등불빛이 반짝이면서 행인들을 싱숭생숭하게 유혹하였다. 유혹의 밤거리에 살인악마가 호주머니에 강탈한 돈을 두툼히 넣고 비수를 품고 싸다녔다.       2001년 7월 28일 밤, 살인악마 놈은 또 사냥물을 찾으려고 시내 여기저기 골목골목 누비면서 싸다녔다. 분홍색 네온등불빛이 반짝이는 층집 아래로 지나가다가 노래소리 자지러지게 울리며 귀맛을 자극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으흠, 여긴 무슨 세상이냐? 어르신님이 어디 한번 들어가보자.” 살인악마는 이젠 강탈한 돈을 물 쓰듯 하며 안마방과 노래방에 문턱이 다슬게 드나들면서 부화타락한 생활을 즐겼다. 진짜 흑백세계를 벗어나 오색령롱한 블랙홀에 들어선 순간이였다. (돈 앞에서는 나한테도 이쁜 아가씨들이 야들야들한 몸을 바치지 않았는가. 언제 경찰한테 붙잡혀 총살당할지 어떻게 알아? 짧게 살더라도 죽기 전에 인간세상의 락이란 락을 다 한바탕 통쾌하게 맛보고 죽어야지.) 살인악마는 선글라스까지 척 끼고 음악소리 자지러진 대청에 들어서면서 불룩한 호주머니를 어루만지며 아가씨들 앞에서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웬 일인가? 커다란 대청 무대에서 이름난 예쁜 녀가수가 악대 반주에 맞춰 금방울 굴리는듯한 청아한 목소리로 경쾌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겠는가. 멋지게 차려입은 남녀들이 그 노래소리에 맞춰 붙안고 금붕어들처럼 소용돌이치면서 빙글빙글 돌아갔다. 어떤 취객들은 아가씨들을 끌어안고 별로 발자욱도 떼지 않고 서성거리고 있었다. 벽 밑에 칸막이 좌석에 차린 술상들에서 신사들과 아가씨들이 둘러 앉아 술을 마시면서 즐기고 있지 않겠는가. (아하, 이런 지상락원도 있었는가? 죽기 전에 인간세상 락을 실컷 맛보고 죽을 판이지.) 살인악마도 한쪽 구석으로 가서 빈 술상에 앉았다. 그는 아가씨들을 붙안고 춤추며 돌아가면서 희희닥거리는 사내들을 음흉한 눈길로 쏘아보았다. 대뜸 심술이 나서 지독한 궁리를 굴리고 있었다. (개새끼들, 난 일자리도 없어 밥벌이도 못해 쥐구멍 같은 집에서 쥐새끼처럼 산다. 네놈들은 무슨 돈이 그렇게 많아 썩어나느냐? 날마나 술 처먹고 초저녁부터 아가씨들을 붙안고 쿵자자야?! 어디 죽어봐라!) 보스는 얼핏 봐도 초라한 옷을 입은 그가 돈도 없을 것 같았던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살인악마는 선글라스를 벗어 닦아 다시 끼였다. 그는 자기를 사람취급도 하지 않는 보스가 눈에 거슬려 한참이나 쏘아보았다. (오늘 밤엔 저새끼 죽어야겠군.) 살인악마는 잡아먹을 상하면서 음흉한 눈길로 보스를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이때취한듯한 사내가 목침만한 핸드폰을 귀가에 대고 뭐라고 고함치며 거들먹거리면서 대청에 들어섰다. 그 자가 숱한 친구들의 옹위를 받으면서 어찌나 거만스럽게 노는지 살인악마의 눈에 거슬렸다. 90년대 말 당시 목침처럼 커다란 大哥大핸드폰은 한대에 어지간한 집 한채 값만큼 하였다. 어떤 핸드폰은 저그만치 1만 8천원씩이나 했었다. 진짜 어지간한 부자가 아니고서는 집 한채만한 그런 핸드폰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개새끼, 누구 앞이라고 거들먹거리면서 틀을 차려?” 그때 보스는 황급히 달려나가면서 大哥大를 든 사내한테 꿉썩거렸다. “大哥大큰형님이 왔소? 어서 오오. 젤 이쁜 아가씨들을 배치하지.” 보스는 그 자를 데리고 춘일이 앉은 술상에 다가왔다. “이 술상을 내야겠소. 숱한 귀빈이 왔는데 자리를 바꾸기오.” “뭐라고? 내 먼저 왔는데 물러나라니?” “손님, 미안합니다. 혼자 큰 상을 차지하면 어쩝니까? 저쪽에 따로 자리 내줄테니 바꿔 앉으십시오.” 살인악마는 날강도 본성을 드러냈다. “여보게! 주인! 어째 혼자 왔다고 깔보는가?!” “아니, 미안합니다. 이 술상은 大哥大형님이 먼저 예약한 상입니다. 저쪽에 작은 상으로 옮겨주십시오.” 그때 大哥大형님이란 자가 이쪽을 쓸어보았다. “넌 어디서 굴러온 개새끼야, 연길 시내에서 이 大哥大형님도 모르고 사는 놈새끼 다 있어? 썩 물러가지 못하겠니?!” 숱한 수하들이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고 쏘아보면서 당장 칠 상하며 다가왔다. 살인악마는 피씩 랭소했다. 밸 같아선 당장 비수를 목에 박아놓고 싶었다. (쳇, 네 같은 놈이 다 큰형님이야? 개새끼, 죽고 싶어 환장했니?) 그러나 살인악마는 인차 놀라운 인내성으로 꼭두까지 치밀어오르는 밸을 꾹  참았다. 그는 지는 척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났다. “감사합니다.” 보스가 공손히 다른 자리에 인도해주었다. 보스가 복무원을 보고 뭐라고 분부했다. 아가씨들이 서넛이나 살냄새를 풍기면서 大哥大형님 쪽으로 우르르 다가갔다.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들이 大哥大형님의 목에 휘감기면서 아양을 떨었다. 살인악마는 격분을 억지로 참으며 술이라고 들면서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개새끼, 뭐 대단해서 혼자 아가씨를 서넛이나 데리고 술 처먹어?” 大哥大형님의 무릎에 마구 올라앉는 아가씨로, 소고기점을 집어 입에 넣어주는 아가씨로, 젖가슴에 손을 넣어 만져도 두 팔로 그자의 목을 휘감으면서 아양을 떠는 아가씨로… 살인악마는 보기만 해도 심술이 점점 욱 치밀었다. 살인악마는 大哥大형님을 노려보면서 음흉한 궁리를 굴렸다. (퉤, 더러워서, 원. 개새끼, 오늘 밤에 네놈부터 염라왕국에 보내줄게.) 꽝꽝꽝! 살인악마는 술상을 꽝꽝 치면서 고함쳤다. “보스! 여기 오라이!” 그제야 보스가 황급히 달려왔다. “왜 불렀습니까?” “왜 나한텐 아가씨를 보내지 않는가?!” 보스는 딱해 하였다. “미안합니다. 먼저 안주와 술부터 많이 청하시오. 그럼 아가씬 인차 따라나옵니다.” 살인악마는 보스를 흘끔 쳐다보면서 을러멨다. “어째 돈이 없다고 업신여기는가?!” 살인악마는 호주머니에서 지페를 두툼히 꺼내 술상에 꽝 놓으면서 큰소리쳤다. “이 집에서 젤 비싼 안주와 술 가져오라구!” “알았습니다. 큰형님. 아가씬 몇을 올릴가요?” “여섯을 올려라!” “팁 백원씩인데요.” “야따, 왜 그리 말 많은가? 잔말 말고 올리라니깐!” “옛! 황제 대접을 하겠습니다. 황제페하!” 돈이면 다였다. 돈이 많으면 귀신도 부려먹는다더니 진짜 말 그대로였다. 거들떠보지 않던 보스가 놀란 눈빛으로 그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허리를 꿉썩거리면서 비실비실 뒤걸음질쳤다. 이윽고 대야 같은 접시에 산해진미가 수두룩이 올랐다. 아가씨들도 진짜 서넛이 달려나와 붙어 앉았다. “보스!” “옛, 황제페하!” 보스가 헐레벌떡 달려와 허리를 꿉썩. “어째 아가씨 여섯 요구했는데 넷 밖에 없는가?” 보스는 허리를 재차 꿉썩거리면서 헤쭉거렸다. “원래 한 손님에게 아가씨 하나 밖에 안돌아갑니다. 넷이면 진짜 황제대접인데요. 아가씨들도 딸리는데 량해합시오.” “그래? 그럼 봐준다는 걸 알아.” 살인악마는 大哥大형님을 놓치지 않으려고 미리 술값을 치렀다. 또 아가씨들한테 몇장씩 미리 쥐워주었다. 뒤이어 야들야들한 아가씨 허리를 끌어안고 초두부처럼 하들하들한 허벅지를 슬슬 매만지면서 기분좋게 술잔을 기울였다. 살인악마는 살인하고 강탈한 피묻은 돈을 아가씨들한테 팔면서 질탕하게 술을 마시였다. 그러나 그의 살기 넘치는 음흉한 눈길은 시종大哥大형님이란 자에게서 떼지 않았다. 한참 아가씨들을 끌어안고 술을 마시고 은은한 음악에 맞춰 춤도 추고 술자리에 돌아올 때였다. 大哥大형님이란 자가 숱한 수하들의 옹위를 받으면서 아가씨와 함께 바깥으로 주르르 나가는 것이 피뜩 보였다. 살인악마는 사냥물을 놓칠세라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재차 아가씨들한테 훌훌 뿌려주고 뒤따라 바깥으로 나갔다. 돈 욕심이 났는지 한 아가씨가 뒤따라 나왔다. “오빠, 이렇게 그저 갑니까?” “후에 보자.” 살인악마는 두 손을 맞잡고 버들가지 같은 허리를 탈면서 아양을 떠는 밤아가씨마저 돌아다보지도 않았다. 大哥大형님이란 자가 택시에 올라타자 살인악마도 황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꽁무니를 물었다. 앞선 택시는 연길시 연남주유소 부근에서 멈춰섰다. 뒤따라간 살인악마는 택시에서 내려 먼 발치에서 大哥大형님을 노려보았다. 보스인듯한 사나이가 세집 앞에 이르러 허리를 굽신거렸다. “大哥大형님, 오늘은 이렇게 루추한대로 여기서 이 아가씨하구 보내오.” 그러고나서 그 사내는 아가씨인듯한 녀성을 돌아보고 분부하는 것이였다. “大哥大형님을 잘 모셔라. 팁은 받지 말라. 내 푼푼히 줄게. 알았지?” “네. 잘 모셔드릴게요.” 大哥大형님이 비칠거리면서 손을 홱 저었다. 보스와 다른 사나이들이 다 가버렸다. 아가씨가 세집 문 열쇠를 열자 大哥大형님은 아가씨 허리를 껴안고 비칠거리면서 세집 안으로 들어갔다. 살인악마는 이를 악물더니 뿌드득뿌드득 갈았다. “날 깔보았지? 오늘 밤에 어디 죽어 봐라.” 살인악마는 윽벼르면서 철남 야시장에 가서 장갑과 손전지, 비수와 망치까지 샀다. 미리 휴대한 비수는 만일의 경우를 봐서 호신용으로 바지 안으로 다리에 감은 각반에 찔러넣어두었다. 그는 세집 앞에 돌아왔다. 밤 11시 경까지 세집의 전등불빛이 문발 밑으로 새여 나왔다. 집 안에서 코 고는 소리가 나기를 기다리자니 아득하였다. 원래는 그의 범행할 때의 관례대로 굳잠에 빠진 후 손을 쓰려는 속심이였다. 그때 세집 안에서 거센 숨소리와 아가씨의 흥분된 신음소리가 들렸다. 살인악마가 세집 문발 밑으로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글쎄 실 한오리도 걸치지 않은 남녀가 그때까지 성유희를 놀고 있지 않겠는가. (꽤나 질긴 년놈들이구나.) 창문 하나 사이를 두고 살인악마는 세집 안에서 흥분된 사내와 아가씨가 희희닥거리면서 노는 것을 보고 속이 비길데 없었다. 부글거리는 심술과 성욕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꽝! 살인악마는 비수를 뽑아들고 문을 박차고 뛰여들어갔다. 탕! 먼저 전등불부터 비수로 쳐 깼다. 뒤이어 비수로 녀자 위에 엎딘 사내 목을 두번이나 푹푹 찔렀다. “네깐 놈이 다 大哥大형님이냐?! 썩어져라!” 살인악마는 大哥大형님한테 미친듯이 칼질하면서 고함쳤다. “누굴 업신여겨?! 개새끼, 또 술상을 빼앗아봐라. 또 거들먹거려봐라!” 大哥大형님은 당장에서 피못 속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살인악마는 손전지를 켜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그때까지 아가씨는 이불로 젖가슴을 가리우고 바들바들 떨었다. “엎뎌라!” “제발, 살려주십시오. 뭐든 하라는대로 할게요.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잔말 말고 엎뎌라!” “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입 다물어!” 살인악마는 옆집에서 혹시 들을가봐 겁났던 것이다. 뒤이어 손전지로 식장을 이리저리 비추더니 저가락을 찾아 들고 돌아섰다. “헤헤헤. 더러운 년, 네 년 XX 어느만큼 깊기에 大哥大놈새끼 그렇게 좋아 지랄이냐? 어디 한번 보자. 히히히.” 살인악마는 저가락으로 그녀의 하신을 푹푹 찔렀다. “아이, 아가, 아가! 제발 살려주십시오.” 살인악마는 싯누런 이발을 드러내고 징글스럽게 헤벌쭉거렸다. “이년, 목소리 곱더구나. 네년 신음소리 참 듣기 좋았어. 어디 한번 다시 울어봐라.” 녀성은 너무 아파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헤헤헤. 참 좋아.” 녀성은 죽겠다고 비명을 지르는데 살인악마는 귀맛 좋다고 변태적으로 너털웃음을 웃었다. 성욕이 발동한 살인악마는 습관처럼 녀성을 꿇어엎디게 한 후 괴춤을 내리깠다. “화냥년, 바람둥이년, 네년이 어디서 이리 굵은 거 맛 보겠어? 오늘 실컷 해봐야겠다. 히히히.” 살인악마는 남의 아가씨를 빼앗아 강간하면서 무한한 “승리의 쾌감”을 느꼈다. 피해녀가 비명소리를 높이 지를수록 엉덩이까지 쨕쨕 치며 야수처럼 변태적인 흥분과 오열을 터뜨렸다… 살인악마는 여러가지 체위로 몇번이나 강간하고나서야 녀성의 몸에서 손을 뗐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제발 빕니다.” 살인악마는 빨래줄에 걸어놓은 수건으로 피범벅이 된 그걸 쓱쓱 닦고 괴춤을 올리면서 징글스레 웃었다. (살인악마는 수건에 닦아놓은 피묻은 정액이 후에 단서로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놈은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피와 정액이 묻은 수건을 들었다가 구석에 던지고 걸레로 구들과 장판의 피흔적을 썩썩 닦아버렸다. “오늘 기분 좋았어. 살려줄게. 똥담이 있으면 공안국에 가서 신고해라. 그땐 네년도 저놈처럼 저승에 보내줄게.” 녀성은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빌고 또 빌었다. “절대 신고하지 않을게. 제발 살려주십시오.” 살인악마는 장갑을 낀 손으로 이마에 돋은 땀을 쓱쓱 닦았다. 뒤이어 그 놈은 손전지로 세집 안을 이리저리 비추며 호통쳤다. “돈을 내놧!” 피해녀가 핸드빽에서 200원을 꺼내 주었다. “어째 요거뿐이냐?” 살인악마는 大哥大형님을 손가락질하면서 을러멨다. “이 개새끼, 돈이 있는 척 너들거리더니 요것 밖에 안줬는가?” 피해녀는 두 손을 싹싹 빌었다. “건 다른 손님한테서 가진 거예요. 大哥大형님한테선 아직 일전도 가지지 못했어요?” “오, 그래? 그럼 이 놈새끼한텐 돈이 있겠군.” 살인악마는 손전지를 이리저리 비추다가 누런 궤짝 위에 놓인 커다란 핸드폰빽을 발견했다. 핸드빽 쟈크를 쭉 열자 그 안에서 목침 같은 8088형 핸드폰과 돈 700원이 나왔다. “흥, 개새끼, 요것 밖에 없는 놈이 거들먹거리긴! 이 주제에 아가씨들을 수태 데리고 놀아? 더러운 사기군!” 살인악마는 핸드폰과 돈을 챙기고 비수를 휘둘러 피해녀의 젖가슴을 쭉쭉 오려놓았다. “앗!” 피해녀의 비명소리를 듣고 살인악마는 징글스레 웃었다. “헤헤헤.” 뒤이어 으름장을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개쌍년, 공안국에 신고하는 날이면 네년도 천당에 보내줄테야. 알았지?” “네, 어찌 감히 신고하겠어요? 절대 안합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살인악마는 비수로 회칠한 벽을 쭉 그어놓고 유유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려권과  출국꿈   “앗! 개새끼!” “야, 야, 또 잡소리 치느냐?” 어머니가 마구 흔들어깨웠다. “야, 어째 이러우?!” 춘일은 와닥닥 일어나면서 고함쳤다. “야, 깨나라. 꿈을 꿨니? 어째 잡소리 치니? 그래서 깨웠다.” 그제야 춘일은 손으로 팅팅 붓긴 눈을 비비고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밤 악몽을 꾸지 않았겠는가. 춘일은 한참이나 앉아 금방 꾼 꿈이 이상해 깊은 회상에 잠겼다.   글쎄 꿈에 자기가 경찰한테 쫓기워 고향 중로변경에까지 도망치지 않았겠는가. 뒤에서는 경찰들이 사냥개를 앞세우고 나무숲을 헤치면서 바싹 뒤쫓아왔다. 그런데 앞에는 가파롭고 높은 절벽이 막아서서 어떻게 바라오를 수 없었다. 절벽만 넘으면 로씨야 타국 땅이였다. 그는 손에 침을 뱉고나서 죽기내기로 절벽으로 톺아올랐다. 왕! 왕! 왕! 갑자기 사냥개가 덮쳐왔다. 그는 사냥개를 발로 차면서 도망치려고 허둥거렸다...   춘일은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으면서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때 머리를 번쩍 치는 령감이 있었다. (그래, 로씨야로 도망치자. 이 놈 위험한 곳에서 훌 도망쳐버리면 그만이야.) 그는 어려서부터 로씨야와 아주 가까운 고향 동녕의 시골에서 자라면서 로씨야가 어떻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로씨야는 치안도 허술하고 날강도질을 해먹기 아주 편리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고향으로 돌아가 중로변경을 넘을가?) 그러나 그는 인차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안돼, 이 곳에서 잃어지면 꿈에서처럼 경찰들이 날 범죄자로 의심해 당장  고향에까지 추격할 거야. 꿈에서 나타난 장면이 진짜로 될 수도 있어. 그럼 려권을 내가지고 당당하게 장사하러 간다고 속여넘기자. 로씨야 땅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중국 경찰인들 무슨 수가 있어?) 그는 가닥을 잡자 신분증과 전날에 강탈한 돈을 챙기고 바깥에 나서려고 신을 뀄다. 또 어머니가 따라나오면서 물었다.  “또 어디로 가느냐?” 춘일은 또 얼려넘기기 시작했다.  “엄마, 장사하러 먼 길을 떠나지 않겠는지 모르겠소.”  “어디로 가자고?” “조선에 장사하러 가야겠습구마.” “어째 여기서 장사 잘 되잖느냐?” “여기서 좁쌀처럼 장사를 해서야 언제 큰 돈을 벌겠습둥?” “아무튼 조심해라. 이 에미를 하루라도 더 살게 하겠으면 나쁜 짓 하지 말라.” “알았습구마.” 춘일은 건성으로 대답하고 집에서 나왔다. 그는 먼저 시내 리발점에 들려 머리를 척 올리깎고 백화상점에 가서 토색잠바까지 사 입었다. 그도 이젠 세인들의 눈을 속이려고 신사처럼 몸치장을 해 위장할줄도 알았다. 신사처럼 쭉 빼자 그는 택시를 잡아타고 파출소로 달려갔다. 그는 담대하게도 곧추 파출소에 들어가 당직실에 있는 녀경찰한테 신분증을 내밀었다. “려권을 내주십시오.” “려권은 시공안국 호적과에 가서 내십시오.” 녀경찰은 춘일을 피뜩 쳐다보더니 “잠간, 신분증을 좀 봅시다.” 하고 춘일의 손에서 신분증을 훌 채갔다. “주시오. 빨리 려권 내러 가야겠는데.” 녀경찰은 컴퓨터를 열고 뭔가 신분증과 대조해보는 것 같았다. 춘일은 속이 떼끔했다. (이게 제절로 풀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여들잖았어?) 기왕 그렇게 된바하고는 태연자약하게 대처해야 했다. 황급히 문께와 사위를 휘둘러보았다. 안되면 문을 박차고 도망칠 판이였다. “10년 징역살이 한 적 있는 전과자군. 전과자는 려권 내지 못합니다.” 녀경찰은 곱지 않은 눈길로 춘일을 훑어보더니 신분증을 훌 뿌려주었다. “지금 어데 거주해 있습니까? 등록 했습니까?” 춘일은 심장박동이 심하게 쿵쾅쿵쾅 높뛰였다. “전과자는 사람이 아닙니까? 중국 공민이 아닙니까? 려권도 내주지 않는게 도리 있습니까?” 녀경찰은 떠나가며 두덜거리는 춘일을 쏘아보았다. “려권 안 내주겠으면 말게지.” 춘일은 제쪽에서 오히려 큰소리로 밸을 쓰면서 파출소 문을 박차고 나왔다. 문밖에 나서자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작은 골목에 굽어들어 다리야 날 살려라고 황급히 도망쳤다. 한참 뛰다가 큰 길을 빠져나오자 택시를 불러 타고 파출소에서 멀리, 멀리 도망쳤다. 그는 괴로울대로 괴로왔다. “그래, 전과자는 조선 장사도 못하고 로씨야 장사도 하지 못한다고? 세상 전과자는 출국도 못하고 장사도 못하는구나. 그럼 어떻게 살아라는 건가? 직업도 없고 밭도 없는데. 전과자는 이 세상 넓은 감시망 속에 갇혀서 감시받으면서 살라는 거냐? 그럼 별 수 없지. 빼앗아 먹지 안으면 굶어죽겠는데. 별수 없지.” 그는 파출소를 찾아갔던 무지한 자기를 웃었다. (세상물정도 모르고 담대하게 파출소까지 찾아갔어? 허허허. 네놈 진짜 간이 큰 날강도군. 흐흐흐.) 그도 이때만은 법맹인 자기가 너무 허무해 손바닥으로 이마를 툭툭 쳤다. 그는 로씨야로 도망칠 길이 막혀버리자 가슴이 답답해났다.                                                   성변태와 이웃집 아줌마의 팬티 “어떻게 할가?” 천방지축 걸으면서 궁리하다가 그는 “에라, 모르겠다. 질탕하게 놀고 보자.” 하고 시내에 또다시 들어갔다. 그는 오색령롱한 네온등이 깜빡이는 황홀한 시내를 훑으면서 유흥업소를 서캐 훑듯이 올리훑고 내리훑었다. 그의 치치부레한 쌍까풀 돼지눈깔에 피뜩 한 호텔에 걸어놓은 사우나간판이 번쩍 뛰여들었다. 간판의 연분홍네온등불빛이 깜빡이면서 숱한 예쁜 아가씨들이 손짓하며 부르는 것 같아 유혹을 참지 못했다. 맞은켠에서는 노래방과 안마원의 아가씨들이 깜빡이는 오색령롱한 네온등불빛 아래에서 추파를 보내면서 유혹하고 있었다. “사우나라, 뭐 하는 곳이냐? 저기 들어가본 적이 없잖은가. 오늘 밤엔 저기 들어가 실컷 놀아보자구나.” 그는 주저하지 않고 그 호텔 사우나실에 들어갔다. 겉보기에는 목욕탕 같았다. 그러나 본세기 초에 연길에 갓 들어온 사우나 문표만 해도 60원이나 했다. 장사군들은 바로 사우나라는 “최초발명품”으로 사내들의 호기심과 허영심을 유혹해 돈을 깍쟁이로 끌어들였다. 춘일은 주저없이 두툼한 지갑을 꺼내 카운터에 탕 메쳤다. “안마 하겠어요?” “그래, 젤 고급 써비스에 젤 이쁘고 어린 아가씨를 보내라구.” 춘일은 강탈해온 돈을 녀카운터 앞에 탕탕 메치면서 큰소릴 꽝꽝 쳤다. “예- 알았어요. 귀빈님, 어서 샤와실에 들어가세요.” 춘일은 카운터 처녀의 우러러보는 눈길을 한 몸에 받으면서 더 없이 흐믓해났다. 그는 신을 활 벗어 신궤에 처넣은 후 아주 신사처럼 틀을 차리면서 어깨 으쓱해 샤와실에 들어갔다. 그는 옷을 활활 벗어 옷궤에 훌훌 처넣고 김이 물물 풍기는 뜨거운 물함지에 뛰여들었다. 따가운 물에 때 괴죄죄한 더러운 몸을 불구고 누워 눈을 스르르 감으니 세상 피곤이 다 풀리는 것 같았다. 순간 금방 파출소에서 녀경찰한테 눈총을 맞으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몽땅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김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한참 후 물함지에서 나와 때 쭉쭉 일어나는 더러운 몸뚱이를 때밀이까지 싹 하고나니 피로 얼룩진 죄악의 몸뚱이가 잠시나마 깨끗해진 것 같았다. 춘일은 샤와실에서 나왔다. 그때 한 아가씨가 마주 나와 구십도경례를 하면서 반겨 맞았다. “양향화(가명)라고 불러요. 오빠, 황제처럼 잘 모셔드릴게요. 귀빈님, 웃층에 올라갑시다.”   (필자주: 피해자와 모고한 자의 명예와 은사를 보호하기 위해 이미 사망한 피해자, 피치 못할 피해자를 내놓고는 가명을 달았음을 알림)   춘일은 무심히 알은체하면서 거만스레 앞에서 걸었다. “양향화. 오, 이름 하나 곱구나.” 아가씨는 춘일의 팔을 붙안고 아양을 떨었다. “인물도 괜찮은데요. 호호호.” “그래?” 춘일은 그제야 아가씨를 유심히 살폈다. 훤칠한 키에 이목이 청수하게 생긴 아가씨였다. “진짜 이름처럼 예쁘구나.” 춘일은 아가씨의 옹위와 애교를 받으면서 어깨 으쓱해 안마방에 들어갔다. 그는 아가씨 안마를 받으면서 눈을 지긋이 감고 오만가지 궁리를 다 굴렸다. (아, 돈만 많으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건데 죽을 죄를 진 난 조선도 로씨야도 아무 나라도 출국할 수 없게 됐어. 이젠 도망칠 곳도 없어. 서른여섯살을 먹도록  살가운 색시도 얻지 못했어. 그렇다고 사흘이 멀다하게 뻐스에 매달려 장 보러 가는 아낙네들 엉덩이만 쫓아다닐 순 없잖은가.) 색마는 야욕을 채우지 못한 날에는 새벽에 이불 밑에서 스스로 손으로 자꾸 쳐드는 그걸 문지르면서 자극해 수음하였다. 한번은 뉘네 아낙네가 글쎄 팬티를 빨아 바줄에 널어놓은 것이 아니겠는가. 춘일은 바줄 밑으로 지나갔다. 팬티에서 별스런 냄새가 풍겨 코를 찔렀다. (이게 녀자 냄샌가?) 그는 팬티를 벗겨 코에 대고 별스러운 녀성의 체취를 킁킁 맡아 보고 별 맛이여서 입을 쩝쩝 다시였다. 순간 변태적인 성적 충동을 느꼈다. 사위를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었다. 그는 녀성의 팬티를 가지고 집에 와서 김치굴로 들어갔다. 뒤이어 팬티를 코끝에 대고 한참이나 냄새를 씩씩 맡았다. “아!’ 그는 더는 참지 못하고 팬티를 입에 대고 쩝쩝 핥고 빨아댔다. 자꾸 쳐드는 그걸 참을 수 없어 신음소리를 내면서 괴춤을 내렸다. 팬티를 그것에 휘감아쥐고 수음을 하느라고 세차게 문질러댔다. 눈을 지긋이 감고 이웃집 꽤나 예쁜 아낙네 얼굴과 펑퍼짐하고 뭉글뭉글한 엉덩이를 련상하면서 더 세차게 문질렀다. “오, 오-” 끝내 오열을 터뜨렸다. 잠간 사이에 변태적으로 성만족을 느끼는 순간이였다. 뒤이어 그는 걸죽한 정액이 발린 팬티를 쳐다보면서 히죽거리다가 어쩔가 궁리했다. 팬티를 잘 씻어서 가져다 바줄에 되 걸가하다가 그만 두었다. (들키면 큰 일이야. 쓰레기무지에 버릴가?) 춘일은 품 속에서 비수를 뽑아들고 팬티를 오리오리 찢어버렸다. (안돼. 김치움에 뒀다가 엄마한테 들키면 큰 일이야.) 그는 지저분하게 김치움 바닥에 널린 팬티 오리를 걷어쥐고 김치움에서 나왔다. 그는 사위를 둘러보다가 쓰레기무지에 가서 팬티쪼각을 재무지에 훌 버리고 발로 재를 스리슬쩍 덮었다. “이 변태야, 남의 팬티를 가져다 뭘 했소?” 어디서 나타났는가. 글쎄 이웃집 아낙네가 재무지를 들춰 오리오리 찢어진 젖은 팬티를 쳐들었다. “아니, 어째 남의 새 팬티를 이렇게 만들었소?” “누굴 무오? 금방 개 팬티를 물어다가 물어뜯었는데. 내게 덮어씌우오? 별 아낙넬 다 보겠다.” 아낙네는 한발자욱도 물러서지 않고 따지고 들었다. “금방 내 집 안에서 창문으로 다 내다봤소. 바줄에서 내 팬티를 벗겨가는 거. 계속 모르쇠를 대겠소?” 아낙네는 팬티를 쳐들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걸 봐. 이게 어디 개 물어뜯은겐가? 분명 가위로 벤게 아니고 뭐요? 이게 어째 이렇게 젖었어?” 아낙네가 팬티를 찬찬히 뜯어보고 눈이 화등잔이 돼 고함쳤다. “여기다 코까지 풀어놓았어? 아니, 아니야. 오우- 저게 변태구나. 여기다 혹시 그걸… 아이구, 저 변태같은게. 서른이 넘게 장가가지 못하더니 남의 팬티에 대고, 에이구, 저 정신병자를 어쩌겠니? 저거…” 색마는 숱한 마을 사람들 앞에서 찍소리도 못했다. 그는 머리도 쳐들지 못하고 모르쇠를 대면서 자리를 떠나버렸다. 속으로 저 아낙네를 죽일가말가 고르는 판. 허나 인차 리지를 회복하였다. 귀전에 선배 장형의 훈계소리가 울렸다. “굴어귀 풀을 건드리지 말라는데 화를 청했구나. 쯧쯧쯧.” 그 일로 해 마을 사람들은 뒤에서 장가가지 못한 로총각이 변태라고 뒤공론했다. 당시 춘일은 그 변태적인 행동이 단서 중 하나로, 수사일군들이 자기를 잡는 올가미로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태가 엄중한 줄을 알았을 때는 후회막급이였다.       양아가씨와 카운터 색마도 어처구니 없어 안마를 받으면서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왜 웃어요?” 양아가씨가 물었다. “예쁜 아가씰 만나니 좋아서 웃어.” 양아가씨는 춘일의 허벅지를 살살 매만지면서 아양을 떨었다. “꽤나 미사려구를 달고 다니는구만요. 달달한 말만 골라하면서. 호호호.” 양아씨는 살인악마인줄도 모르고 돈을 벌려고 아양을 떨며 유혹하고 매만지면서 꼬시고 있었다. “제 안마 씨원하죠?” “그래, 아이고, 야, 야, 거길 작작 만져. 좀 참기 바쁘다.” “히히히. 참다가 병 나겠어요.” 양아가씨는 허벅지에서 손을 치우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안마원이나 아가씨들을 날마다 찾아올 순 없잖아. 이런 유흥업소에는 경찰들이 자주 들이닥친다. 자칫 언제 표창죄로 잡힐지 몰라. 그럼 살인죄도 련루될 수도 있어.) 살인악마는 강탈수입보다 날마다 룡암처럼 용용 솟구치는 정욕, 야욕이 한심했다. 아니, 억이 막혀 미울 때도 있었다. 하루에 세번 해재껴도 시뻘건 용암처럼 끓어번지는 정욕을 미처 식힐 수 없었다. 끝없이 용용 치솟아오르는 야욕의 불길을 끌 수 없었다. 돈을 얼마나 강탈하면 담당하겠는가! (어떻게 목숨 걸고 빼앗은 돈 팔지 말고 안될가? 장구한 처녀를 얻지 못할가?) 그는 연분홍 전등불빛을 빌어 양아가씨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자기 아래배를 살살 만지고 있었다. 아니, 아래배를 매만져 성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자기 돈을 벌려고 유혹하고 꼬시고 있지 않는가.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 흥!) 살인악마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이 년은 안돼. 돈때 묻은 더러운 년. 일회용일뿐이야. 돈을 주면 몸을 내번지지만 돈만 안주면 흘겨보면서 등 돌리는 화냥년이야.) 그는 일회용이 아니라 장구적으로 점유할 아가씨를 물색하려고 들었다. 그날 밤에 살인악마는 신사처럼 점잖게 양아가씨한테 팁으로 100원 쥐워주고 그저 일회용으로 써먹고 나와버렸다. 그런데 살인악마는 카운터에 나와 결산하다가 깜짝 놀랐다. 카운터 처녀를 유심히 바라보는 순간 어쩜 자기 눈을 의심할 지경이였다. “아니, 복숭아얼굴, 복숭아처녀! 네년이…” 그는 하마트면 고함칠번 했다. “안녕히 가세요.” 다시 여겨봐도 머리 숙이면서 곱게 인사하는 처녀, 카운터 처녀가 그 복숭아얼굴 처녀 같지 않은가. 그러나 그 처녀는 그저 생글 웃으면서 눈인사를 할뿐이였다. 다시 쳐다보니 심통히도 복숭아얼굴 그 처녀와 닮았을뿐, 아니였다. 나오면서 재삼 쳐다봐도 복숭아얼굴 처녀가 아니지 않겠는가. 자꾸 쳐다보는 그를 보고 그 처녀도 이상한지 웃음을 거두고 춘일을 찬찬히 여겨보는 것이였다. “왜 사람을 자꾸 눈자리나게 보는가요? 내 얼굴에 꿀이라도 붙었는가요?” “양? 양, 양. 너무 이쁘오.” “감사합니다. 참, 말 잘하는군요. 또 오세요.” “오, 오. 그래, 또 오지.” 신을 꿰고 나오면서 다시 되돌아보아도 심통한 걸 어쩌는가. 시골냄새 확 풍기는 순박한 처녀였다. (오, 네년은 어디 숨었어? 네년을 꼭 찾아내기만 해봐라. 흥!) 살인악마는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살인악마는 정수리까지 치미는 원한에 복수하려고 끝없이 살인하였다. 또 도저히 막아버릴 수 없는 30대 변태적인 색마의 야욕을 채우려고 야수처럼 강탈하고 강간하였다. 강간하지 못한 날에는 강탈한 돈을 가지고 그 호텔의 사우나 안마방에 가서 양아가씨를 찾아가 돈을 주고 야욕을 채웠다. 그러다나니 이젠 카운터 처녀와도 구면이 됐다. 김춘일은 슬며시 그녀를 보고 말을 걸어보았다. “저는 어데서 왔소?” 복숭아 처녀는 생글 웃더니 눈을 곱게 흘겼다. “예? 걸 물어서 뭘 합니까?” 색마는 허구푼 웃음을 지었다. 그는 어진 척하면서 뒤더수기를 긁적이였다. “이젠 구면인데 알고 지내면 안되오.” “네?” 그녀는 막연해했다. “손님, 진짜 웃깁다.” “알려주면 안되오?” “단골손님인데 괜찬습니다. 그저 농촌에서 온 김씨라고 불러요.” “그래, 김씨 처녀, 수고했소. 이름은 뭐요?” “이름이 하도 미워서 말하기 좀 그래요.” “뭐길래?’ 춘일이 지꿎게 묻자 그녀는 마지못해 알려줬다. “이름이 밉다고 웃지 마시오. 김후남인데요.” “오- 괜찮소. 김후남. 우리 친하기오.” 색마는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둘러보고 미끼를 훌 던졌다. 지갑에서 50원짜리 돈 두장을 꺼내 밀어주었다. “이래 되겠어요?” “어서 넣소. 그저 오빠 준 써비스로 여기면 되오.” “오빠? 오빠 없는 저에게 오늘 밤에 오빠 생겼구나. 오빠, 좋아요.” 처녀는 “아니, 아니,”하면서도 돈은 슬쩍 카운터 서랍에 쓸어넣는 것이였다. “건 절 주는 거요.” “알았어요.” 김모 처녀는 다시 서랍의 지페 두장을 지갑에 챙겨넣었다. “잘 쓰겠어요. 오빠는 어데 출근해요? 정말 부잔 거 같아요. 사흘이 멀다하게 이 비싼 사우나에 다니는 걸 보니.” “오? 그래, 그렇지. 난 시내 무역공사에 다니오.” “글쎄요. 돈 쓰는 걸 보면 큰 장사군인게 알려요. 또 오세요.” “양. 그래, 수고했소.” 색마는 문 밖을 나오면서 씽긋 웃으면서 되돌아보았다. 그는 바깥에 나와서 연분홍네온등불빛이 깜빡이는 밤거리를 거닐면서도 가슴이 쓰라렸다. (어쩜 명승촌에서 사라진 그 년을 딱 떼닮았어?) 순간 또다시 실련의 상처, 배신의 쓰라림이 온몸을 괴롭혔다. “네년을 찾아내기만 해봐라. 칼탕을 쳐놓을테야!” 색마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뒤이어 한쪽 구석으로 금방 “오빠”라고 부르던 김모 처녀를 떠올리자 흐뭇해났다. (김후남이라. 널 내 손아귀에 넣어야지.) 색마는 김후남을 채다가 잃어버린 복숭아얼굴 처녀의 대용품으로 쓰고 싶었다. 아니, 영구한 정욕배설도구로 쓰려고 들었다. 살인악마는 김후남을 만나 사랑을 사기치러 그 호텔로 찾아갈 비용을 마련하려고 또다시 범죄의 길로 나섰다.    
173    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악마의 유령(7) 댓글:  조회:1850  추천:1  2018-10-19
                              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토끼도 굴어귀 풀을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네.”         춘일의 귀전에는 선배죄수 진씨가 하던 말이 쟁쟁하게 울렸다. “진형, 그게 무슨 말이요?” 진씨는 감방에 누워 춘일의 우둔한 머리를 툭툭 쳤다. “이 바보야,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몰라.” 진씨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춘일도 덩달아 일어났다. “생각해봐라. 토끼가 제 굴어귀 풀을 뜯어먹으면 굴이 드러날게 아니야? 그럼 어떻게 되겠니?” 초중도 온전히 다니지 못한 춘일은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 “오, 옳소. 굴어귀 드러나면 토끼 다른 짐승들한테 잡혀 죽는단 말이 아니오?.” “그래, 그렇구 말구. 허허허. 꽤나 촉기 빠르군. 넌 전도 창창한 도적으로 될 수도 있어. 허허허.” 그러자 우두머리 장씨가 비꼬았다. “그런 바보한테 가르치나 마나. 생긴 거 봐라. 어디 남자 같은가. 계집애 같은게 뭘 해먹고 살겠어?” 춘일은 울컥 반발심이 생겼다. 그러나 인차 꾹 참고 견뎠다. “춘일아, 진씨 말을 듣지 말라.” 장씨가 비꼬았다. “저렇게 굴어귀 풀도 먹지 않는 놈이 어째 여기까지 왔다니?” “또, 또, 또. 장형, 그만 하라구. 그게 다 피로 얼룩진 교훈이 돼 하는 말이요. 우리 후배들이야 우리 전철을 밥지 말아야지. 이젠 감옥밥을 먹기 지긋지긋하오. 언제 이 놈의 세월 끝날가?” 알고보니 진씨는 여러번 남의 집을 털다가 붙잡혀 5년 징영살이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후에는 사처로 돌아다니면서 전문 금고를 털다가 덜미를 잡혀 또 11년이란 중형을 받은 몸이였다. 그는 너무 창피해서 남들한테 형기를 줄여서 말했던 것이다. 5년이 지나가고 8년이 지나가도 감옥에서 나가지 못하는 진씨와 장씨를 보고 춘일은 미심했다. 진씨와 장씨와 8년 세월 감옥살이 하다나니 이젠 친형제나 다름없이 속심의 말을 하는 “옥우”(狱友)로 되였다. “야, 굴어귀 풀을 먹지 않고 외지에 가서 금고를 털면 일없겠는가 했는데. 헛참, 왕청 같은데서 걸릴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 그 놈의 지문을 도끼로 콱 찍어버렸겠는 걸. 후회막급이야.” 진씨 말에 장씨가 동을 달았다. “한탄한들 무슨 수가 있어?” 진씨는 춘일을 돌아보면서 정색해 말했다. “넌 절대 굴어귀 풀을 먹지 말고 지문이나 족문을 남기지 말라. 꼬리를 밟히면 죽는 날이야.” 장씨도 제일 안쪽에서 우쭐 일어나 앉았다. 그는 목소리를 낮춰 춘일한테 말했다. “네놈 덩치라도 컸으면 내 솜씨를 물려줄텐데.” 춘일은 장씨의 손을 덥썩 잡으면서 무릎을 꿇었다. “형님, 아무 재간이라도 배워주오. 주먹치기. 양?” 장씨는 춘일의 뺨을 어루만졌다. “이 자식, 성깔만은 사납더라. 자전거나 빼앗는 시시한 강도질 하긴 아까운 놈이야.” “형님, 내 잣이는 작아도 자존심만은 강하오.” 그러나 장씨는 왕청 같은 소리를 쳤다. “이 놈아, 강하기만 하면 되는가 해? 너무 강하면 부러져. 굽힐줄도 알아야 한다. 이 형을 봐. 항상 지지 않으려고 싸움질하다나니 비수로 남의 눈깔 빼먹고 감옥에 들어오지 않았어?” 알고 보니 장씨는 밥 먹듯 싸움질하다나니 몇번이고 감옥에 제 집 나들듯 했다. 전과자인 그는 기실 이번에 남의 눈알을 빼놓아서 12년이란 중형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장씨도 창피한지 자기 형을 줄여서 옥중 친구들에게 6년형이라고 거짓말을 하군 하였다. “속담에 사람 무는 개 짓지 않고 뜨는 소 음메 하지 않는단 말이 있어. 속은 강해도 겉으로는 나약하고 어진 척해야 해. 빈 물통이 소리 높다고 어쩌지 못하는 놈일수록 겉으론 센 척하면서 떠든단 말이야. 그런 빈 퉁재(통)들이 언젠가는 꼭 덫에 치워.” “형님, 진짜 도리 있는 말이요.” 처음으로 살인까지 한 춘일은 선배죄수들이 하던 말을 곱씹으면서 경험교훈을 훑어보았다. (10여리 떨어진 강뚝에서 사건을 쳤는데. 진형, 굴어귀 풀을 먹은 건 아니지?) 그는 강뚝을 거닐면서 피씩 웃었다. “장형, 형님 말처럼 누가 걸고 들어도 나약한 척하고 마을 사람들과 한번도 싸운 적이 없소. 쥐 죽은듯이 자존심을 꺾고 양처럼 사오.” 한번은 마을 길 옆에서 몇몇 사람들이 장기를 두고 있었다. 그때 춘일이 옆에서 구경하다가 훈수를 들었다. “야, 이 말로 면포를 먹으란 말이요. 담에 차로 장훈 치면 이기오.” “야, 작작 삐쳐. 죄꼬만 새끼, 개뿔도 모르면서 계속 삐치개질 하겠니?” 지게 된 사내는 밸이 울컥 치밀어 장기쪽을 춘일한테 쥐여뿌렸다. 분명 잣이 작은 춘일을 업신여긴 것이다. 당장 잡아먹을 상하고 눈을 부라리였다. 그때 처음 춘일은 욱 뭔가 치밀어 그 사내를 독기어린 눈으로 마주 쏘아보았다. “이 새끼, 누굴 보니? 야, 이 눈길 봐라. 꽤나 서슬이 시퍼렇구나. 진짜 당장 뜰 상이야.” 그 사내가 벌떡 일어나면서 당장 주먹으로 칠 상이였다. “덤벼라!” 그 사내는 손으로 춘일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면서 호통쳤다. 그때 진형의 말소리가 춘일의 귀전을 아프게 때렸다. “굴어귀 풀을 절대 건드리지 말라.” 장형의 말도 들렸다. “사람 무는 개 짓지 않는다.” 춘일은 억지로 밸을 참으면서 일어도 나지 않고 못이기는 척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짓지 않는 개 사람 문다. 두고 보자.) 기실 춘일은 덩치는 작아도 200근짜리 쌀마대도 한쪽 옆구리에 안아 집 안에 들여간 적도 있었다. 그 사내와 맞붙으면 얼마든지 이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과 싸워 좋은 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억지로 참고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러자 사내가 우쭐했다. “어디서 굴러온 놈새끼, 배긴 돌을 빼려고 해? 이 마을에 왔으면 쥐죽은듯이 살아. 감히 마주 쏘아봐?” 그때 춘일은 어디서 그런 인내성과 용기 생겼는지 모른다. “형님, 잘못했소. 다신 삐치지 않을게.” “됐소, 돼.” 마을 사람들까지 말리자 그 사내는 그만두고 계속 장기를 두었다. 춘일은 10년 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하면서 죄수들한테 얻어맞고 똥통을 나르면서 갖은 굴욕을 다 당하였다. 대신 굴육을 당하고 강제로동을 하면서 어지간한 인내성을 키운 것이 아니였다… 강탈하던데로부터 살인까지 한 김춘일은 처음에는 더럭 겁이 났다. 사냥개가 발자욱이라도 따라 집에까지 찾아올가봐 겁났다. 그리하여 지하상점에 가서 새 운동화를 사 신고 밤도와 낡은 운동화를 벗어 아까운대로 부루하통하 강물에 활 던져 버렸다. 그래도 저녁이면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경찰들이 자기를 나포하러 뛰여들어오는 악몽에 놀라 와닥닥 일어났다. 몇번이고 잡소리를 쳐서 어머니가 미닫이를 밀고 웃방에 들어와 흔들어 깨우군 하였다. 밤이 돼도 감히 바깥에 나가 돌아다니지 못하였다 그러나 일년이 지나가도 나포되지 않은데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담이 점점 커졌다. (또 한번 손 써 볼가?) 그러나 사람을 죽이고서도 몇십원 밖에 뺏지 못해 수지가 맞지 않는 감이 들었다. (그럼 훔쳐볼가?) 어느날 김춘일은 비수를 품 속에 휴대하고 장백향 인평정류소에서 연길 시내행 뻐스에 올라탔다. 그날 따라 장날이여서 뻐스 안에 시루 속의 콩나무러럼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섰다. 그는 장보러 가는 아낙네들 사이에 끼여 밀치닥거렸다. (농촌 아낙네들 돈을 훔쳐볼가?) 그는 한 아낙네의 뒤에 딱 붙어섰다. 그런데 뻐스가 굽이를 돌면서 밀치닥거리는 바람에 아낙네의 살진 엉덩이가 딱 자기 거길 비비닥거렸다. 대뜸 아래배가 찡해났다. 순간 그것이 벌떠덕 깨나 일어났다. 주위를 흘끔 둘러보았다. 눈치 챈 사람들이 없었다. 빼곡이 들어선 사람들 속에서 들이미는 푹 처진 엉덩이를 피하는 수도 없었다. (으흠, 처음인데. 이런 짜릿한 감각, 어허, 에라, 모르겠다.) 춘일은 주위 사람들을 살피면서 아낙네의 푹 퍼진 엉덩이에 그것을 밀착하면서 문질러댔다. 아낙네가 못마땅한 눈길로 흘끔 돌아보았다. 춘일은 아낙네 귀에 대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사람이 꽉 차서… 오래잖으면 내리겠는데…까딱하면 죽여치우겠어.” 참고 견디라는 암시와 위협이였다. 만약 듣지 않으면 엉덩이에 비수 끝을 박을 수도 있었다. 아낙네는 춘일을 쿵 밀어놓고 다른 쪽으로 밀고 나가려고 애썼다. 그런데 밀치닥거리는 사람들,  빼곡이 들어선 사람들 속에서 점점 더 밀착해오는 춘일을 두고 용 빼는 수가 없었다. 음흉한 춘일은 아낙네 허벅다리를 두 손으로 꽉 붙들고 흔들거리는 뻐스 절주에 맞춰 더 밀착해갔다. 아낙네도 더 반항해도 쓸데 없는 것을 알고 입을 하 벌리고 오만상을 점점 더 찡그렸다. 이윽고 춘일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몇십년 막혔던 뭔가 씨원하게 터져나가는 순간이였다. 외설당하고서도 꼼짝 못하는 아낙네를 보고 춘일은 더 음흉한 궁리를 했다. (이년, 완전히 겁먹었어. 돈도 빼앗아내야지.) 아낙네는 낯선 자가 딱 붙어선데다 쯘쯘해오는 바지와 엉덩이를 느꼈다. 염오감이 울컥 치밀어 더는 참을 수 없어 마수에서 벗어나려고 서둘렀다. 아낙네는 뻐스가 시내 어귀에 들어서자 신풍정류소에서 황급히 내려버렸다. 춘일은 부랴부랴 아낙네를 따라 내렸다. “아주머니, 무겁잖습둥? 내 들어줄게.” 능청스레 짐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뒤따라 갔다. 아낙네는 대뜸 얼굴이 온통 겁기가 까맣게 번졌다. “어째 이래오? 모를 사람인데.” 춘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뻐스에 올라타느라고 그들을 주의하지 않았다. 그때 아낙네는 어디서 그런 꾀가 나왔는지 모른다. “운전수, 잠간 세웁소! 여기 일이 있습구마.” 뻐스 운전수가 당장 몰고 떠나가려다가 칙 하고 멈춰세웠다. 아낙네 고함소리에 아마 뻐스에 앉을 아낙넨가 여겼던 모양이다. 그때 아낙네는 다시 열리는 뻐스 문 안에 되올라갔다. 무섭게 쏘아보는 아낙네의 염오감에 찬 표독스런 눈길, 멀어져가는 뻐스 뒤꽁무니를 멍청히 쳐다보던 악마 춘일은 닭 쫓던 지붕 쳐다보는 개 신세로 되고 말았다. “헤이, 그 년 보낸게 잘한 일일 수도 있어. 괜히 굴어귀에서 풀을 건드려 잡히겠다.” 춘일은 스스로 위안하면서 도리머리질 했다. 그때 별재미를 본 김춘일은 강간하지 못한 때에는 녀자 생각이 나기만 하면 사람이 젤 붐비는 시내 뻐스를 골라가면서 올라타 류사한 외설을 하면서 변태적으로 성만족을 얻으려고 범행했다. (사람을 죽인바 하고는 세상을 놀래우게 크게 하자. 한 사람을 죽여도 죽고 백사람을 죽여도 죽기는 마찬가지야. 붙잡히기 전에 더 많은 사람을 죽여서 이 놈의 세상에 보복하자. 사회에 혼란을 조성하고 세상 사람들이 공포에 벌벌 떨면서 발편잠을 자지 못하게 할 거야. 세상에 백명을 살해한 천하제일 날강도 악명을 남기자.) 살인악마는 숨이 붙어있는 한 하나라도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 굴어귀 풀을 먹지 않으면서 무등 신경을 썼다. 1999년부터 2000년 8월까지 연길에서 더는 사건조작을 하지 않고 밤중에 택시를 잡아타고 조양천진에 가서 싸다니면서 살인, 강탈하였다. 앞에서 말한 1999년 조양천1중 기념비 부근 “9.25”특대살인상해사건, 강휘의 처 왕옥분과 딸을 살해한 “8.05”특대입살인상해사건을 비롯한 6건의 특대 악성 살인상해강탈사건을 저질렀다. 하여 조양천진 사람들을 공포에 벌벌 떨게 하였다. 공안기관에서 조양천진에 공안분국을 세우고 밤낮없이 수사하고 순라하자 교활한 살인악마 김춘일은 성동격서전술이나 쓰는 것처럼 조양천진에서 꼬리를 감추고 일년 반만에 또다시 연길의 밤에 나타났다. 그는 선후하여 연길 장백시장 부근에서 “10.24”특대입실살인강간외설사건,  “12.02”입실살인강간사건 등 도합 16건의 악성 살인강간강탈사건을 미친듯이 저질렀다. 1999년 8월 13일 밤 9시 경에 김춘일이 비수를 품고 연길시 연남가 부근을 떠돌다가 공군부대주택구의 북쪽 철도와 갈림길 어구에 이르렀을 때였다. 주택구 북쪽 담장 뒤 수림 속에서 웬 남녀가 도란도란 주고 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밤중에 수림 속에서 한창 재미를 보는구나. 난 서른이 넘어도 녀자 맛을 한번도 온전히 보지 못했다. 개놈들, 오늘 밤에 죽어봐라.” 살인악마는 이를 악물고 비수를 뽑아들고 슬금슬금 말소리 나는 수림 속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왕국산과 주모 녀성은 열렬하게 얘기하다나니 살인악마가 비수를 뽑아들고 살기등등해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마수와 살기가 무고한 그들에게 악착스럽게 뻗쳐왔다. 살인악마 김춘일은 비수로 왕국산의 가슴과 배를 푹푹 찔렀다. “앗!” “살인!…” 비명소리와 함께 왕국산이 가슴과 배를 끌어안고 몇발자욱씩 뛰여가다가 푹 쓰러졌다. 김춘일은 피묻은 비수를 뽑아들고 뛰여가 그때까지 못박힌듯이 멍해 서 있는 주모 녀성의 목과 잔등을 마구 내리찍었다. 주모녀성도 당장에서 피못 속에 쓰러져 숨졌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는 살인악마는 하루 밤에 두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가고도 주모의 시신에 비수에 묻은 피를 쓱쓱 닦아 비수를 품에 넣고 아무런 일도 없은듯이 집으로 여유작작하게 가버렸다. 밤 9시 경에 행인들이 연길역 저탄장 부근 철길과 갈림길 어귀에서 왕국산의 시체를 발견하고 부근의 수림 오솔길에서 주모 녀성의 시체를 발견하고 110경보봉사대에 사건보고를 하였다. 연길시공안국 110경보봉사대 경찰들이 즉시 사건현장에 출동해 사건을 형사경찰대대에 보고한 한편 사건현장을 보호하였다. 형사경찰대대 수사일군들은 경찰차를 몰고 질풍같이 사건현장에 달려갔다. 그들은 시신을 검사한 한편 수림 속에 세워진 자전거번호에 근거하여 인차 피해자의 신원을 밝힌 후 가족들에게서 정황을 료해하였다. 주모 녀성의 딸 리모의 말에 의하면, 그날 저녁 어머니는 왕국산에게 전화를 친 후 집에 찾아온 왕국산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고 하였다. 리모는 그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생리별일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어머니를 부르면서 대성통곡쳤다. 어찌 비통하지 않겠는가! 두 가정에서는 하루 밤 사이에 안해와 남편을 각기 잃지 않았는가! 어린 자녀들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고 말지 않았는가! 피해가족들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수사일군들을 보고 꼭 날강도를 붙잡아 원쑤를 갚아달라고 하였다. 살인악마는 해빛이 비추는 대낮을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달빛이 깔린 달밤도 좋아하지 않았다. 살인악마에게는 해와 달이 자기를 추적하는 조명등처럼 보였다. 어둠컴컴한 밤은 쥐새끼와 바퀴벌레, 모기가 좋아했다. 살인악마도 좋아했다. 어머니는 춘일이 수상하게 자꾸 밤에 나가는 것을 보고 꾸중했다. “얘, 왜 밤중에 자꾸 나가니?” “엄마, 반가와 하는 물고기 잡으러 갑구마. 엄마 생각해봅소. 우리 밭이 한뙈기 있습둥? 뭐 있습둥? 물고기라도 잡아야 먹고 삽지. 내 장사 하는 것만 믿고서야 우리 모자간이 입에 풀칠도 못합구마.” 춘일은 낮에는 장사하러 간다고 어머니를 속이고 밤이면 물고기잡이를 한다고 얼려넘기군 하면서 밤중까지 싸다니면서 살인하고 강탈하고 강간하였다. “얘, 얼음이 땅땅 얼었는데 어떻게 물고기를 잡는다고 그러니?” 춘일은 곡괭이를 쳐들어보였다. “얼음을 끄고 구멍을 뚫으면 물고기들이 막 구멍으로 올라옵구마. 온 겨울 얼음 밑에서 산소 못 먹어서 막 올라옵구마. 허허허.” 그래도 어머니는 시름을 놓지 못했다. “이 자식아, 요즘 살인사건이 자꾸 난다고 텔레비죤에서 방송하지 않느냐? 밤에 위험한데 나가지 말라.” “엄마, 근심하지 맙소. 막내아들이 잣은 작아도 그런 강도한테 당할 사람이 아닙구마.” “나쁜 짓하고 돌아다녔다간 이 에미 쥐약 걸죽하게 풀어먹고 죽는다.” “야, 엄마, 아직도 날 믿지 못합둥? 난 이젠 젤 착한 량민입구마.” 김춘일은 이젠 어머니가 “쥐약 걸죽하게 풀어먹고 죽겠다.”는 말에 귀못이 박힐 지경이였다. 막 신물이 났다. 이젠 엄마 죽겠다고 해도 대수롭지도 않았다. (엄마, 이젠 난 서른여섯이나 됐습구마. 아직도 어린애 취급하면서 겁먹입둥? 누가 곧이나 듭겠구만. 흥!) 춘일은 어머니를 속여넘기고 곡괭이와 주머니를 들고 눈보라 쌩쌩 불어치는 캄캄칠야에 바깥으로 나왔다. 그는 단순한 어머니는 속여넘길 수는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후에 기민하고 슬기로운 수사일군들을 그런 속임수로 속여넘기지 못했다. (엄마, 막내아들을 용서합소. 난 재간이 있습둥? 직업이 있습둥? 내겐 돈도 없고 색시도 없습구마. 원한과 비수 밖에 없습구마. 이 세상엔 법이 멀고 주먹은 가깝습구마. 이 세상 악당들한테 복수하겠습구마. 10년이나 감옥에 처넣은 놈들한테 골탕 먹이겠습구마. 그 놈들 가족들이 비수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비비게 만들겠습구마. 랠 붙잡혀 죽더라도 숱한 놈들을 죽이겠습구마.) 살인악마는 이빨을 쁙쁙 갈았다.  (이젠 몇놈을 죽였지?) 살인악마는 전문날강도로 둔갑해 살인수를 셌다. (농기공장 토성밑에서 년놈 둘.) 그는 염모와 리모가 죽지 않고 되살아난 것도 몰랐다. 어디 가서 확인할 수도 없어 오산하였던 것이다. (연신교 서쪽 강뚝에서 년놈 둘, 조양천진 량곡기름상점집에서 셋, 조양천1중 기념비 옆에서 둘, 조양천술공장 부근 집에 들어가 년놈 둘, 공신시장 부근 세집에서 에미 하나…허허허. 적잖게 죽였구나. 허나 아직 멀었어. 백명 쯤 죽여서 세상에 천하제일날강도 김춘일이라고 악명을 남겨야지. 으흐흐흐.) 살인악마는 복수의 비수를 또 뽑아들었다. 그는 엄동설한에 비수로 먹물을 부어놓은듯이 깜깜한 하늘을 마구 찍어놓았다. 단번에 몇사람씩 살해한 후부터 살인악마는 점점 담대해졌다. 이젠 리지를 잃고 선배죄수들의 경험교훈이고 10계명이고 모두 살인악마의 살기에 색바래져갔다. 망치가 없으니 더 사지도 않고 비수만 휴대하고 싸다녔다. “야, 이 놈, 둔기로 머리를 쳐 죽여야 피가 몸에 튕기지 않아.” 그때 선배죄수 장씨의 귀띔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장형, 이젠 나도 어지간한 날강도 아니란 말이요. 비수로 숱한 사람을 죽여도 경찰놈들이 날 붙잡지 못했소.” 살인악마는 루차 죄행을 저질러도 잡히지 않자 기고만장해서 진씨와 장씨의 말을 귀등으로 흘려보냈다. 처음에는 그래도 범행할 때 입은 잠바와 신었던 운동화도 밤도와 부르하통하 강물에 버렸다. 그러나 차차 옷과 신이 아까와 그만두었다. (번마다 신과 옷을 버리면 이제도 얼마나 새 걸 사야 되겠는가? 경찰들이 아직 사냥개를 앞세워 발자욱을 따라올만큼한 수사기술이 없는 거 같애.) 그날 밤은 2001년 2월 27일 초저녁이였다. 살인악마는 자전거를 타고 부르하통하 강뚝을 따라 달리면서 음흉한 눈길로 강뚝 아래 나무숲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면서 사냥물을 찾았다. 눈길을 다른데 팔다나니 그만 맞은 쪽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던 김모와 졻은 눈길에서 턱 부딛쳤다. “죄꼬만 나그네, 씨팔, 피할게지. 눈깔이 멀었었어?” “뭐라고?” 피뜩 보니 스물둴 밖에 안될 훤칠한 청년이 아닌가. 큰 덩치를 믿고 체구 작은 춘일을 업신여기고 걸고 든 것 같았다. “죄꼬만 새끼, 버릇이 없구나.” 낮에 눈을 내리깔며 참으면서 살던 어진 춘일이 아니였다. 그들은 한참 강뚝에서 옥신각신 다투다가 갈라졌다. (이 새끼 오늘 밤에 죽어봐라.) 앙심을 먹은 살인악마 김춘일은 갈라져 가는 척하다가 자전거를 돌려타고 먼발치에서 김모를 미행하였다. 김모는 뒤에 살인악마가 미행하는 것도, 죽음의 공포와 살기가 덮쳐가는 것도 눈치도 채지 못하고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강뚝 아래 연길시 소영향 공신촌 26선 뻐스정류소 종점 부근의 한 낮다란 세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였다. 살인악마는 김모의 세집을 똑똑히 봐둔 후 부근을 두리번거렸다. 부근 한 집 마당에 손잡이뜨락또르가 눈에 띄였다. 그는 사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인기척이 없자 공구상자를 들춰 망치와 손전지를 꺼내가지고 김모의 세집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이게 뭔가?) 세집 창문 카텐 한쪽 귀가 들려 있지 않겠는가. 살인악마는 변태적으로 들린 카텐 밑으로 세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김모와 웬 처녀가 옷을 와락와락 벗고 이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엿보였다. “개새끼들, 죽기 전에 재미를 실컷 봐라. 명년 오늘은 제사날인줄 알아라.” 전등불이 꺼졌다. “오우- 차가워라. 몸을 좀 녹이세요.” “언제 그럴 새 있소? 하느라면 차가운줄도 모르오. 요 귀여운 것아. 어서.” “야- 급하기도. 좀 천천히, 아우, 차가워라.” “에이, 좋다.” 살인악마는 벽에 기대서서 까만 세집 안에서 처녀총각이 좋아 하는 것을 들으면서 심술이 울컥 났다. 당장 세집에 쳐들어가 칼탕을 쳐놓고 싶었다. 그러나 자칫하면 풀을 건드려 뱀을 놀래울가봐 억지로 참는 수 밖에 없었다. 세집 안에서는 밤중까지 끝없이 행복의 노래소리가 들렸다. 살인악마는 심술이 나고 역겨워서 멀찍이 가서 몇시간이고 서성거리면서 세집 동정을 살폈다. 새벽이 가까워오자 세집 안에서 코를 드렁드렁 고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 죽어봐라.) 살인악마는 항상 피해자들이 잠들기를 기다려 마수를 뻗쳤다. 장비 같은 장군도 굳잠에 빠졌을 때 목을 잘라가도 용빼는 수가 없지 않았는가. 하여 살인악마는 피해자들이 잠든 절호의 범행기회를 노렸다. 그 놈은 비수 끝으로 출입문 유리창 오리대를 슬슬 뽑아내고 유리를 쑥 뽑아냈다. 그래도 세집 안에서는 코를 고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문걸개를 스리쓸쩍 벗긴 살인악마는 세집 안에 도적고양이처럼 슬금슬금 기여들어갔다. 그 놈은 손전지로 이리저리 비춰보고 먼저 김모의 머리를 망치로 마구 내리깠다. “앗!” 비명소리와 함께 김모는 대번에 머리가 터져 뇌척수가 마구 흘러내렸다. “앗! 제발 살려주세요.” 살인악마는 손전지로 처녀를 비추면서 망치를 쳐들었다. “난 흑룡강성에서 온 살인범이다. 아무 것도 무섭지 않아. 난 보복하러 왔다. 우쭐렁거리더니 어디 죽어봐라.” 김춘일은 을러메면서 망치로 박모 처녀의 배와 하신을 마구 내리팼다. “돈을 내놧!” 박모 처녀가 일어나 옷궤를 들췄다. 손전비불에 그녀의 터질것만 같이 탱탱한 젖가슴, 하얗고 탄력있는 엉덩이 비춰졋다. 순간 살인악마는 당장 뒤로 덮쳐들어 강간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그러나 살인악마는 오래 있을 곳이 못된다는 것을 직감하고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억지로 꿈틀거리는 욕망을 꾹 참고 또 참았다. 박모 처녀가 이윽고 돈 400원을 들춰내 주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살인악마는 손전지로 김모가 죽었는가고 확인하였다. 손전지불에 꿈지럭거리는 김모의 목에 건18K짜리 금목걸이 눈에 띄였다. “허허. 이 놈새끼, 부자집 새낀 모양이구나. 금목걸이까지 목에 걸구 우쭐거려?” 살인악마는 김모가 살아있는 것을 보고 식장에서 시퍼런 식칼을 들춰내 들고 또다시 김모의 얼굴을 마구 찍어놓았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그 놈은 식칼로 박모의 목에 대고 위협하였다. “고분고분 말 들어. 까딱하면 죽여버리겠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옷을 입지도 못한 박모 처녀는 구들에 꿇어앉아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빌었다. “걸엇!” 살인악마는 처녀가 옷을 주어입기를 기다려 식칼로 위협하면서 세집에서 나와 강뚝으로 끌고 갔다. 그 놈은 음흉한 눈길로 사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강뚝 남쪽 아래로 박모처녀를 끌고 내려갔다. “옷을 벗엇!” 박모 처녀가 우둘우둘 떨면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째 죽고 싶어? 살고 싶으면 고분고분 말 들엇!” 살인악마는 시퍼런 식칼을 목에 대고 호통쳤다. 목에 차가운 식칼이 닿이자 선뜩한 감이 들었다. 연약한 처녀의 몸으로 어찌 시퍼런 식칼을 들이대는 살인날강도 핍박을 이길수 있겠는가. 박모 처녀는 할수 없이 눈보라 윙윙 휘몰아치는 엄동설한에 살인악마 앞에서 옷을 벗지 않으면 안되였다. 처녀는 실 한오리 걸치지 못한 채 두 손으로 가슴을 붙안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서 있었다. “엎드려!” 처녀는 질겁해 벗어놓은 옷 위에 드러누워 가슴을 붙안고 바들바들 떨었다. “이 간나새끼, 사람의 말도 알아듣지 못해? 엎드려라는데!” 처녀는 찍소리 못하고 무릎을 꿇고 엎디였다. 살인악마는 그녀가 자기 얼굴을 기억할가봐 뒤로 하는 것이 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도 진씨가 가만히 배워준 것이였다. 짐승 같은 살인악마는 박달나무도 얼어 탁탁 터질 엄동설한에 박모 처녀를 언 땅에 무릎을 꿇고 엎디게 한 후 미친듯이 강간하였다. 한참 후 살인악마 김춘일은 괴춤을 춰올리더니 범행에 쓴 망치와 손전지를 주어 얼음구멍에 처넣었다. 그때까지 박모 처녀는 실 한오리 걸치지 못한 채 못박힌듯이 서서 바들바들 떨었다. 살인악마 김춘일은 박모 처녀의 손에 식칼을 쥐워주면서 씨벌였다. “넌 원쑤진 일 없어. 오늘 이 어른을 기분좋게 해줬기에 살려줄게. 세상물정도 모르고 버릇없이 까분 죄꼬만 새끼를 보복하려는 것뿐이야. 이 식칼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담이 있으면 이걸로 네 신랑 죽였다고 신고해라.” 박모 처녀는 살인악마의 마수에서 풀려나 겨우 살아남았다. 그녀는 주섬주섬 팬티만 주어 꿰고 겉옷을 걷어안고 부랴부랴 강뚝 위로 달아났다. 그녀는 다리야 날 살려라고 어떻게 세집까지 도망쳐 왔는지 몰랐다. 세집에 들어가자마자 날강도가 또다시 찾아올가봐 문을 단단히 닫아걸어놓고 피못 속에 쓰러진 김모를 마구 흔들면서 불렀다. 그러나 인사불성이 된 김모는 깨여날줄 몰랐다. “어서 일어나오. 엉엉, 엉엉.” 박모는 대성통곡을 치다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바깥으로 뛰여나가 종주먹을 쥐고 어데라 없이 내뛰였다. 그녀는 42선 뻐스종점 부근에서 아무 집이나 마구 새벽문을 당당당 두드렸다. “여보세요! 사람 구해주세요.” 그때 정의감이 있는 김영남이란 사내가 세집에서 나왔다. “무슨 일이요?” 그녀한테서 사건경과를 들은 김영남은 그녀를 도와 피못 속에 쓰러진 김모를 택시에 실어 병원에 호송하여 구급하게 하였다. 기적이 일어났다. 살인악마의 마수에 걸린 김모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였다. 그러나 심한 둔기타격상을 받아 뇌척수가 흘러나와 지금도 머리가 말쑥하지 못하고 얼굴과 목에 보기도 흉한 칼에 찔린 흉터를 남겼다. 그는 미혼녀가 살인강간악마에게 강간까지 당한 일로 하여 마음 속에 지울수 없는 정신상처를 입고 말았다. 김영남은 박모 처녀를 도와 공안기관에 사건을 신고하였다. 수사일군들은 사건현장을 깐깐히 수사한 후 흉기로 썼던 식칼을 찾아 건사하였다. 뒤이어 박모 처녀를 따라 강뚝에 가서 강간현장도 수사하고 얼음을 끄고 강물 속에서 살인악마가 버린 손전지와 망치를 건져냈다. 살인악마는 날이 갈수록 더욱 야수처럼 밤이면 연길시 연남가와 하남가, 연서가 공신시장 부근의 단층집이거나 부르하통하 강뚝으로 싸다니면서 계속 살인하고 짐승처럼 변태적으로 녀성들을 강간하였으며 재물을 여지없이 강탈하였다.    
172    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6) 댓글:  조회:2175  추천:0  2018-10-12
                  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김장혁       새 마을에 이사해온 후 김춘일은 마을 사람들이 자기 과거를 모르기 때문에 더는 머리를 숙이고 살 필요없어 잠시나마 마음 한쪽구석이 놓였다.       그는 여름이면 비바람이 몰아쳐도 반디를 만들어 들고 부르하통하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왔다. 이웃집에까지 얼마간씩 나눠주고 나머지 물고기로 물고기장국을 끓여 어머니한테 대접하였다.       그들이 든 30평방메터 좌우 되는 벽돌집도 김춘일의 형님과 누님들의 덕분에 산 집이였다. 그것도 서너 집이 쭉 붙은 중간통이여서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토끼도 굴어귀 풀을 뜯어먹지 않는다고 이중 삶을 사는 김춘일은 속으로는 복수의 칼을 갈면서도 겉으로는 이웃들과 착한 척하면서 인사치례도 잘했다. 호주머니에 동전마저 몇푼 없으면서도 뉘네 집에 환자가 생기거나 군일이 생기면 아끼지 않고 부조를 하군 하였다. 이웃집에서 돼지굴을 지을 때도 팔소매를 걷우고 나서서 도와주군 하였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기까지 하였다. “새로 이사해온 집 총각은 아주 착하고 마음씨 후하오.” “효성이 지극한 효자요.” “한번은 어머니가 앓자 춘일은 업고 공사병원에 가서 병을 보였고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다니면서 좋다는 약은 다 써주었소.” “물고기를 잡아서는 이웃들한테 쭉 돌렸습니다. 인심이 후하기로 소문 높습니다.” “누구와 싸울줄 모르는 어진 청년입니다. 직업이 없어 생활이 어렵습니다.” “그 집 모자간이 가난해 불쌍합니다.” 가면에 속히워 마을의 일부 사람들은 김춘일의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였다. 그 덕분에 김춘일은 제일 처음 사건수사 때 호구조사를 내려온 경찰들의 눈을 잠시나마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춘일의 속내는 모르고 가련한 어머니는 마지막수로, 자살로, 죽음으로 위협하였다. 그 바람에 막내아들이 이젠 진짜 사람이 되는가고 여기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막내아들의 밸때기를 아는지라 돌변한 막내아들을 보고 속으로 저으기 놀랐다. 그녀는 막내아들을 어려서부터 엄격하게 키우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항상 옆에서 막내아들에게서 밤낮 눈길을 떼지 않고 꼼꼼히 살피였다. 이전과는 달리 털끝만치도 의심스러운 일을 하는 것 같기만 하면 조용히 그 놈의 비뚤어지는 속알멀치를 푹푹 찔러 고름을 터치워주군 하였다. 서른살을 다 먹은 김춘일은 그러는 어머니가 불쌍해 아직 서뿔리 서두르지 못하였다. 그는 계속 형제들의 신세에 살 수 없어 여기저기 수소문해 도문시 한 기업에 얼렁뚱땅 취업하였다. 회사 보스는 어깨가 딱 벌어진 김춘일이 힘을 쓸 것 같은지라 짐을 싣고 부리우는 일을 시켰다. 춘일은 자그마한 키와는 달리 힘꼴은 꽤나 썼다. 그는 온몸이 먼지투성이 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거운 짐도 척척 둘러메 싣고 부리웠다. 일이 끝나 새뽀얗게 먼지를 들쓴 자기 모양을 손거울로 훔쳐 보고 속으로 신세타령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 눈치 밥을 먹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면 먼지도 무거운 짐도 가냘 픈 몸으로 달갑게 받아들였다. 보스의 온갖 잔소리와 심지어 욕설도 눈물과 함께 삼키면서 참고 견디였다.        (10년 동안이나 돈 일전 한푼도 받지 못하고 강제로동을 다 하지 않았는가. 거기에 비하면 괜찮아. 힘들게 일하면 일한 것만큼 돈을 탈 수 있지 않는가.)       그는 이렇게 스스로 위안하면서 힘든 일, 궂은 일, 더러운 일을 가리지 않고 수걱수걱 억척스레 일했다. 그는 첫달 고달프게 일해 번 로임을 처음 타자 어머니가 반가와 하는 명태와 미꾸라지를 사다가 푹 국을 끓여 대접하였다. 그도 잠시나마 인간성을 회복할 때도 있었다. 그가 어려서부터 뭘 사달라고 하면 뭐든 도리머리를 가로 저은 적 없는 어머니였다.  년로해가는 어머니한테만은 효성을 다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최저한도의 요구마저 실현되기는 어려웠다. 기업에서 자재가 잃어진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 보스는 김춘일을 의심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어데서 알아냈는지 보스는 그가 10년이나 감옥살이를 한 전과자인 것을 안 후부터는 더욱 험상궂고 의심에 찬 눈길로 그를 쏘아보는 것이였다. (이건 버선목이라고 뒤집어보이겠는가.) 결국 반년도 채우지 못하고 보스한테 잘리우고 말았다.       연길에서도 전과자는 어느 기업에서나 발을 붙이기 힘들었다.      누가 자전거를 빼앗아 10년이나 감옥살이를 한적이 있는 자를 직원으로 두겠는가.      직업을 떼우고 연길행 뻐스를 타고 돌아오는 김춘일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세상은 자기를 우롱하고 짓밟는 것 같았다. 잠시나마 잊은 옛상처 동통이 도져  아프기로 이를데 없었다.       이건 보스가 그의 옛상처를 아프게 건드린데다가 소금을 뿌린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개새끼, 진짜 죽자고 환장했어?)       순간 김춘일의 야수성이 되살아났다.       증오심과 복수심이 가슴을 울먹거렸다.       보이지 않는 지하에서 이글거리다가 당장 폭발할 화산 같았다.       그러나 그는 자칫 서뿔리 서둘렀다간 어머니가 자살할 수도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음식점에서 취토록 술을 마시고 억지로 참아왔다. 일하러 갈 대신 반디를 들고 나가는 막내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희슥한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기면서 굽은 허리를 펴며 일어섰다. “얘,출근하진 않고 비오는데 무슨 고기잡이냐?” “오늘부터 할 일이 없게 됐습구마.” “얘, 단위에서 무슨 일이 생겼느냐?” “아니, 아무 일도 없습구마. 부리울 짐이 없답구마.” 어머니는 어두운 아들의 낯을 살펴보고 기분이 엉망인 것을 보고 육감적으로 뭔가 맞히 것이 있었다. “얘야, 혹시 무슨 일이 있어도 다 좋게 생각해라.” “알았습구마.’ 김춘일은 순간 늙은 어머니가 불쌍해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는 반디를 들고 비틀거리면서 부르하통하에 나갔다. 소낙비가 내리는 날에 부르하통하 강물은 흙탕물이 무섭게 사품치며 흘렀다. 그는 반디를 들고 물에 뛰여들어 활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럼 모든 것이 끝나지 않겠는가. 그러나 늙은 어머니가 마음이 아파 자살할가봐 그만두었다. 그날 따라 흐린 물에 미꾸라지가 특별히 반디에 많이 들었다. 온 하루 반디질을 하여 물고기를 반 초롱은 거의 잡아 가지고 돌아왔다. 물고기라도 많이 잡아 그런지 우울한 기분이 좀 돌아섰다. (에이, 차라리 잘 됐다. 도문까지 통근해도 몇푼 차례지는가. 내 밑천을 아는 도문에 다신 가지 말아야지. 차차 연길에서 일자리를 찾아봐야지.) 김춘일은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잠시라도 마음의 안정을 억지로 다잡았다. 그는 두루 수소문해 끝내 연길시 모 공장에 취직하게 되였다. 그 공장은 예술공예품을 생산하는 공장이였다. 그런데 예술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김춘일은 시키는 력공도 온전히 하지 못하였다. 한번은 불주의로 예술공예품을 떨궈 박산냈다. 그러자 보스는 험상궂은 눈길로 쏘아보면서 한참이나 입에 담지 못할 요설을 퍼붓지 않겠는가. “아니, 이런 바보라구야. 걸 마스면 어쩌느냐?” “그게 얼만지 아는가?” “이달 로임에서 뜯어내야지. 흥!” 순간 김춘일은 속으로 울컥 했다. “개새끼, 어째 죽고 싶어?” 콱 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용케도 억지로 꾹 참았다. 그는 감옥살이 10년에 무서운 인내성을 키웠던 것이다. 어머니를 위해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온갖 굴욕도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꽃이였다.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였다. 우연이랄가? 필연이랄가? 그 공장의 보스와 옛날 자기가 일한 적 있는 차수리부 보스는 면목을 좀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그리하여 재수없이 김춘일의 밑바닥이 끝내 드러나고 말았다. 10년이나 감옥살이를 한 적이 있는 전과까지 있다는 것을 안 보스는 그를 가차없이 잘라 내쫓았다. 김춘일은 공장에서 밀려나와 쓸쓸히 비를 맞으면서 강뚝을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온몸을 흠뻑 적시는 비물을 맞으면서 걸으며 그는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였다. (그래 난 10년 감옥살이를 억울하게 한 놈이야. 그래 나 같은 놈은 이 세상에 발붙이고 살 수도 없단 말인가?) 먹장구름이 꽉 누르고 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하늘을 쳐다보아도 대답이 없었다. 순간 년로한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괴로왔다. 더 없이 불쌍하고 쓰라렸다. 그러나 앙심을 모질게 먹기 시작한 그는 어머니도 돌볼새 없이 악마로 탈바꿈해갔다. “그럼 좋아. 이젠 내 방법대로 살겠다. 어디 두고 보자.” 그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여 길가의 백양나무를 꽝꽝 쳤다. 비물이 와르르 떨어져 온몸을 아프게 때렸다. “이 놈 세상과 해볼테다! 날 억울하게 감옥에 걷어넣었지? 날 못살게 내쫓았지? 원쑤를 갚을테야!” 그는 어깨를 들먹이면서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그는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후에도 전과자라는 것이 드러나기만 하면 어디에도 취직하기 어렵고 잘리운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였다. 가령 잠시 속여넘겨도 로임도 제대로 타지 못하고 쫓겨나는 개 팔자, 신세로 된다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 세상은 날 용납하지 않는구나. 내 청춘을 파묻어버린 이 세상에 보복할테야!” 그는 잃어버린 청춘이 아까왔다.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사랑하는 처녀마저 잃어버렸다.” 며칠이고 달빛을 밟으면서 부르하통하강뚝을 거닐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납득이 되지 않고 억울하기만 했다. 그는 이전에 명랑촌에서 떠나가버린 복숭아얼굴의 처녀를 생각하자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개쌍년, 날 버리고 떠나가버려? 이제 만나기만 해봐라.” 그는 복숭아얼굴의 시골처녀애를 공원에 데리고 들어가 나무숲 속에서 볼우물을 옴폭 파는 볼에 키스만 한 것이 한없이 후회됐다. (어째 졸졸 따라다니는 고 년을 재껴버리지 않았어? 곱도록 놔둔게 머저리지.) 그는 이제 다시 만나기만 하면 그 놈의 얄미원 복숭아볼을 비수로 쭉쭉 그어놓겠다고 윽별렀다. 그러나 그 처녀애를 다시 찾을 길이 없었다. 의란진 명랑촌에서 그 처녀가 사라졌고 그녀의 부모마저 어디엔가 이사해가버렸다. 말로는 김춘일의 보복이 두려웠는지 연길 시내에 숨어 산다고 했다. (내 찾아내는 날이면 몽땅 죽여버릴테야! 살아남기나 하겠구나.) 환하게 비추는 달이 똑 마치 볼우물을 옴폭 파는 복숭아처녀의 볼 같아 얄미웠다. 그는 몇번이고 품 속에서 서슬이 시퍼런 비수를 뽑아들고 달을 향해 사정없이 휘둘렀다. 쭉쭉 그어놓고 찔렀다. 그때부터 그는 달이 환히 뜨는 달밤이 싫었다. 쥐새끼처럼 어둠 껌껌한 밤을 좋아했다. “난 서른이 되도록 아직도 장가도 가지 못했다. 아까운 청춘을 허송하면서 로총각으로 늙어간다. 개새끼들아! 개쌍년들아, 어디 죽어봐라!” 순간 원한이 화산처럼 북받쳐올라 몸부림쳤다. 당장 가슴이 터지게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는 세계관이 비뚤어져 모든 문제를 자기한테서 찾지 않고 사회와 인민정부, 인민법률과 경찰과 법관들에게 몰밀어붙였다. 그리하여 사회를 적대시하고 나쁜 보복심을 키워 나중에 살인악마로 되였다. 그는 끝내 10년 동안 속으로 끙끙거리면서 참고 견디면서 갈고 또 갈아온 시퍼런 복수의 비수를 뽑아들었다. 두번이나 기업에서 쫓겨나 허망에 나앉게 된 김춘일은 멍멍한 하늘을 쳐다보아도 원통하고 격분하고 한스웠다. 자전거를 빼앗아 타고 달아난 죄과가 자기 한생에 얼마나 큰 치명적인 걸림돌이 되였는가를 한번 또 한번 뼈아프게 절감하였다. 그러나 그는 교훈을 찾을 대신 이 세상에 보복하려고 기로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였다. “오, 그래. 이 세상이 진짜 날 버리는구나. 그럼 좋아, 나도 이 세상을 등질 수밖에.” 그는 부르하통하 강뚝을 걸으면서 버드나무 잎을 훑어 강바닥에 휘뿌렸다. (이래서 옛날부터 강도가 생기고 토비무리가 생긴게 아닌가? 옛날 량산박 같은데 있으면 가고 싶구나. 내 무송이나 로지심 같은 무예와 힘이 있었으면 세상에 둘도 없는 강도 되겠는데. 참, 우리 부모 왜 날 요렇게 죄꼬맣게 만들었어? 헛참.) 김춘일은 정작 강도의 길에 들어서려고 했지만 자기한테는 총도 비수도 없었다. 남을 제압할만한 힘도 무예도 없었다. 더구나 밤낮 붙어앉아 옆에서 감시하는 어머니가 더 골치거리였다. (내내 집에 앉아 있으면 엄마가 또 바가지로 쌀독을 빡빡 긁지 않겠는가. 어째 일하러 가지 않는가고 꼬치꼬치 캐물을게 아닌가?) 그는 머리 허연 어머니가 서른도 넘은 자기 때문에 속을 태우는 것만은 속에 걸렸다. 그렇다고 어머니 때문에 세상에 앙갚음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두나무가 우거진 부르하통하 강뚝을 왔다갔다 하면서 속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리던 그는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장사를 한다고 하면 엄만 꼭 곧이들을 거야.) 이튿날 아침 김춘일은 밥술을 드네 하고 누나가 미국에서 부쳐온 돈을 다 털어 챙겨넣고 바깥으로 나갔다. “엄마, 오늘부터 무역공사에 가서 장사하러 다니오. 이제 돈을 많이 벌어오면 엄마를 호강시킬게.” “뭐라고? 일자리 찾았어?” 어머니는 밭고랑처럼 파인 주름살을 잠시나마 펴면서 막내아들을 내다보면서 손짓하였다. “들어오라. 몇가지 알아보자.” “야, 출근해야겠는데 어째 그럽둥?” 춘일은 언짢아하면서도 되들어왔다. “출근하는 단위 무슨 무역공사냐?” 김춘일은 신을 신은채 문어구에 서서 희죽이 웃으면서 에둘러댔다. “근심하지 맙소. 연길시 대외수출입공사 아래 기업인데 로씨야랑 조선이랑 돌아다니면서 장사한답구마. 이제 돈을 벌면 엄마 좋아하는 이메쉬랑 명태랑 미꾸라지랑 많이 사다 대접할게.” “오~ 그래, 이 근년에 무역공사에서 돈을 잘 번다더라. 좋은 단위에 취직했구나.” 그러나 어머니는 미답지 않았다. “건데 그리 좋은 무역공사에 어떻게 취직했느냐? 너도 로씨야랑 조선에랑 나다닌다더냐?” 김춘일은 픽 서글프게 웃었다. 그는 어머니 주름살이 거미줄처럼 간 볼에 입을 가져가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엄마, 남이 듣고 웃겠소. 내 언제 출국하면서 돈을 벌겠소. 무거운 짐이나 싣고 부리우는 일이나 했지.” 어머니는 머리를 끄덕였다. “힘이 들어도 괜찮다. 제 힘으로 일해 돈을 벌어서 살면 좋다.” 어머니는 시름을 좀 놓는 상 싶었다. 김춘일은 조왕 쪽으로 가는 어머니 등이 굽은 뒤모습을 보면서 속여 넘긴 것 같아 흐뭇해 웃었다. “이걸 봐라.” 어머니는 식장에서 자그마한 비닐봉지를 꺼내 들었다. “뭡니까?” “쥐약이야.” “네?” 뜨물에 빠진 돼지 눈깔 같은 김춘일의 쌍까풀눈이 단통 흰자위 다 드러나게 데꾼해졌다. “엄마, 쥐약을 해서 어쩌자고 그럽니까?” 어머니는 허리를 펴면서 엄중하게 경고했다. “네놈이 또 나쁜 짓을 하기만 해봐라. 엄만 쥐약을 걸죽하게 풀어먹고 죽고 말 거야.” “야, 엄마, 절대 이러지 맙소.” 춘일은 신을 신은채로 황급히 구들에 올라가 어머니 손에 쥔 쥐약을 빼앗으려고 했다. 어머니는 쥐약봉지를 뒤잔등에 숨기면서 경고했다. “이 쥐약을 빼앗으면 내 또 사둘 거야. 나쁜 짓 하겠니? 안하겠니?” “절대 안합구마. 내 머저리 돼서 또 감옥에 가서 고생하겠습둥?” 그쯤 해놓고 어머니는 쥐약을 식장에 되걷어넣었다. 김춘일은 한참 어머니를 안정시켜놓고 다시 우쭐 일어나 바닥에 내려가 신을 꿰면서 구슬렸다. “이제 무역공사에서 장사를 어떻게 하는가 잘 배워가지고 내 혼자 장사할 예산입구마. 내 돈을 많이 벌면 엄마를 발바닥에 털이나게 호강시킬게. 기다립소.” 어머니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엄마를 죽이지 않겠으면 제 힘으로 꿍꿍 벌어 살아라.” “예, 근심하지 맙소.” 김춘일은 집에서 나오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울안을 벗어나자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는 아직도 출옥후 7년 동안일자리를 얻으려고 여기저기 떠돌면서 거지처럼 헤매던 일을 생각하면 진절머리 났다. 불현듯 또 자기를 버리고 시집가버린 명승촌 복숭아얼굴 처녀가 떠올랐다. 비길데 없이 괘씸해났다. “개쌍년, 그때 깔고 들어앉아 해재껴버렸더라면 그년이 다른 남자한테 시집가지 못했겠는데. 허나 감옥에 갔다온 내게 시집오자 했겠는가?” 이런 막연한 생각을 하자 원한만 사무쳤다. 그는 복숭아얼굴 처녀의 행복을 자기 고통으로 생각하였다.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들지 못하고 녀자의 몸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한번도 본 적도 맛도 보지 못했다. 그는 부르하통하 강뚝에서 거닐거나 시내에서 가다가도 처녀총각들이 손잡고 재미나게 얘기하면서 지나가는 것을 보아도 고통스러웠다. 그때마다 떠나가버린 복숭아얼굴 처녀 생각이 났다. 실련의 고배를 한컵 또 한컵 들이켰다. 이 세상에 원한이 사무쳤다. 그는 달밤이 싫었다. 배신한 처녀의 복숭아얼굴 같은 달이 자기를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해와 달이 다 보기 싫었다. 증오했다. 원한이 사무쳤다. 어둠컴컴한 밤이 좋았다. 그는 귀신처럼 단층집 구역을 돌아다니녔다. 삽살개처럼 줄느런히 늘어선 낮다란 세집들을 전문 쏘다니면서 복숭아얼굴 처녀를 찾아 헤맸다. “애비에미 연길에 있다잖아. 그년도 분명 연길에 있을 거야. 못난 주제에 언제 부자집에 시집갔겠어? 세집살이나 하겠지.” 그는 혹시 복숭아얼굴 처녀를 허름한 세집에서 찾아낼 것 같은 일루의 희망을 품게 되였다. 하여 서시장에 가서 비수를 사서 품 속에 넣고 세집들을 기웃거리면서 서캐훑듯 하였다. 어떤 때에는 밤중에 단층집 문발 밑으로 남들이 행복하게 생할하는 것을 훔쳐보아도 남의 행복을 짓뭉개놓고 싶었다. 삽으로 찍고 도끼, 망치로 내리까고 비수로 란도질해놓고 싶었다. 녀성들을 닥치는대로 마구 강간하고 음부를 비수로 마구 찔러 죽이고 싶었다. 그후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죽는 것을 보고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변태적으로 심리균형을 유지해나갔다. 1998년 3월 2일 밤 10시 좌우, 김춘일은 어두운 밤장막을 빌어 부르하통하 강뚝을따라 연동교 부근으로부터 스적스적 하남교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연변농기공장 부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한쌍의 처녀총각이 강뚝에 앉아 끌어안고 한덩이로 된 채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련애를 하고 있었다. (어허, 너희들은 참 재밌구나.) 그는 어둠 속에서 주위를 휙- 둘러보았다. 강뚝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 (어디 망치맛이나 봐라.) 그는 이를 악물고 처녀총각의 뒤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난 목단강에서 온 살인범이야!” 고함소리와 함께 총각 염모가 망치에 맞아 쓰러졌다. 김춘일은 비수까지 빼들고 처녀를 위협해 강뚝과 공장 토성 사이에 끌고 갔다. “제발 살려주세요.” 처녀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빌었다. “돈을 내놧!” “네, 네. 다 줄게.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리모 처녀는 멜가방을 벗어 훌 뿌려주었다. 김춘일은 멜가방을 턱 받아쥐였다. 두 손을 싹싹 비비는 처녀는 아주 예뻤다. 김춘일은 딴 생각을 하면서 사위를 또 살폈다. 좀 으슥한 곳이면 강간했으면 좋겠는데 행인이 자주 드나드는 강뚝에선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이년도 빨간 등산복을 입었어?) 순간 악마의 눈 앞에 빨간 옷을 좋아하던 복숭아얼굴 처녀가 떠올랐다. (에이, 개쌍년, 죽어봐라!) 김춘일은 망치를 휘둘러 사정없이 리모 처녀의 머리를 딱 내리깠다. 리모 처녀도 당장에서 두개골절상을 입고 피못 속에 쓰러졌다. 염모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날강도는 가방을 채가지고 어둠 속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가 피 흐르는 머리를 매만지면서 다가가보니 련인 리모 처녀는 피못 속에 쓰러진 채 인사불성이 되지 않았겠는가. 염모는 황급히 리모를 부둥켜안아 일으키면서 애타게 불렀다. “어서 깨나라. 깨나!” 이윽고 리모 처녀가 간신히 깨여났다. “파출소에 가서 신고하자.” 염모와 리모는 상처를 처지할 새도 없이 파출소에 가서 사건을 신고하였다. 경찰들은 두개 소조로 나뉘여 행동했다. 한개 소조는 사건현지 부근에 달려가 범죄자를 추적하였다. 한개 소조는 경찰차로 그들 둘을 실어 연길시병원으로 갔다… 악마로 변하기 시작한 김춘일은 항상 비수와 망치를 휴대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망치 같은 둔기로 강탈 같은 행각을 벌렸다. 어진간해서는 비수를 쓰지 않았다. 자기를 나포하려고 달려드는 자가 있으면 막부득이 찌르려고 품 속에 비수를 품고 돌아다녔다. 김춘일은 문화정도는 초중 밖에 안된다. 그러나 감옥살이 10년에 감옥 안에서 선배범죄자들한테서 범행에 관한 경험교훈을 들어둔 것은 적지 않았다. 선배범죄자들은 이른바 범행한 경험교훈을 일러주었던 것이다. “보통 비수나 도끼 등 예리한 흉기를 쓰지 말아야 해. 비수로 사람을 찍으면 단통 피가 튕겨 자기 몸에 피를 묻힐 수 있어 단서를 남길 수도 있다. 특히 목이거나 심장을 비수로 찌르면 목과 심장 동맥에서 피가 쌕 뿜겨나와 범행하는 자에게 튕긴다. 그럼 범행현지에서 멀리 달아나지도 못하고 법망에 걸릴 수도 있어. 그러나 망치 같은 둔기로 사람의 머리를 쳐 죽이면 피가 튕기지 않아 단서를 남기지 않을 수 있다.” 그리하여 악마 김춘일은 이번에도 비수를 쓰지 않고 망치를 휘둘러 염모와 리모 처녀의 머리를 내리깠던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 몸에 피도 튕기지 않아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고 순조롭게 도망칠 수 있었다. 김춘일은 하남교를 벗어나 썩 멀리 떨어진 곳에까지 도망치자 강뚝에 주춤 멈춰섰다. 사위를 둘러보아도 쫓아오는 발자욱 소리가 들리지 않고 쥐 죽은듯이 고요했다. 그는 황급히 멜가방을 열고 들춰보았다. 멜가방 안에는 현금 20원이 들어 있지 않겠는가. (한달 로임이야. 허허.) 20원이면 진짜 90년대 중기에는 어진간한 로동자의 한달 로임이 됐다. 춘일은 도문과 연길의 기업에 있을 때 온 몸에 먼지를 들쓰고 무거운 짐을 메날라도 한달에 20원을 받지 못할 때도 있었다. 손쉽게 20원을 빼앗은 김춘일은 처음 강탈의 “단맛”을 보았다. 그는 며칠 후 빼앗은 돈을 가지고 집에 쌀도 사다 쌀독에 부어넣고 어머니가 반가와하는 명태를 사다가 명태국을 끓여 대접하였다. 어머니는 그저 아들이 무역공사에 가서 일해 번 돈으로 샀는가고 맛있게 들었다. 그때 당시 연길에는 새로운 유흥업소인 안마원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오색령롱한 네온등불빛이 깜빡이면서 행인들을 유혹하였다. 안마원에는 꽃처럼 예쁘고 보들보들한 아가씨들이 오글거렸다. 김춘일은 호주머니에 돈이 좀 생기자 명멸한는 네온등불빛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안마원에 들어가서 신사처럼 아가씨들한테서 안마도 받았다. (헛참, 아릿다운 아가씨들이 꿍꿍 주물러주니 이렇게 시원할 법이라구야.) 그는 이제야 신사답게 사는 멋이 난다고 웃음주머니 흔들거렸다. 악마로 탈바꿈한 김춘일은 석달이 지나도 수사하러 오는 경찰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자 점차 담대해졌다. 그는 경찰들의 동태를 슬슬 살피다가 자기 꼬리를 쉽게 잡지 못한다고 오산하고 다시 손을 쓰기 시작하였다. (흥, 경찰놈들이 무슨 재간에 이 어른을  붙잡아? 어림도 없어.) 김춘일은 콧방귀를 뀌였다. 그는 몇달 전에 농기공장 토성과 강뚝 사이에서 염모와 리모를 망치로 치고 20원을 강탈하고 득의양양해 중얼거렸다. “깜쪽같이 해치우고 단서로 될만한 건 다 버렸는데 저네겠소?” 그날 밤에 그는 돈을 빼앗아가지고 강뚝을 따라 서쪽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연신교를 지나 백석 정수장 맞은켠에까지 도망쳐왔는데도 뒤쫓아오는 자취가 하나도 없었다. 그는 헐떡거리면서 망치와 장갑을 제방뚝 버드나무 밑에 구덩이를 파고 흙으로 대충 파묻어두었다. 그리고 강변에 가서 잠바와 바지에 피나 묻지 않았는가고 벗어들고 손전지로 이리 저리 비춰 보았다. 털끝만한 의심이 들면 강물로 닦아버렸다. 모든 것을 말끔히 처리했다고 생각하자 한시름 놓고 도적고양이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면서 경찰들이 사냥개라도 풀어놓을가봐 근심되였다. 진래감옥에 있을 때 선배죄수 진씨한테서 사냥개가 냄새를 맡으면서 추격하는 것이 젤 두렵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죄수들은 흔히 감옥에 들어가면 휴양하면서 교도관의 눈과 귀를 피해 서로 경험교훈을 교환한다고 한다. 춘일이 진래감옥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였다. “쳐라!” 두목 장씨가 고함쳤다. 죄수들이 욱 모여들어 춘일을 엎어놓고 물매를 안겼다. 한 죄수가 감방 되창문으로 교도관이 오는가 망을 보고 두목이 김춘일을 무릎을 꿇리고 심문하듯 족따졌다. “죄꼬만 새끼, 무슨 죄를 져서 들어왔어?” 험상궂게 생긴 두목 장씨는 무서운 눈길로 쏘아보았다. “걸 알아 뭘 하오? 재수없이 걸린 건데.” 다른 죄수들이 호통쳤다. “묻는 말이나 대답햇! 아직도 매를 적게 맞았구나.” 진씨가 귀썀을 챨싹 갈겼다. “말할게, 말할게. 자전거를 빼앗아타고 달아나다가 재수없이 붙잡혔소.” 춘일은 쥐구멍으로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건경과를 쭉 이야기했다. “몇해 판결받았어?” “10년.” 순간 춘일은 억울해 목구멍으로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하면서 울먹거렸다. “와- 진짜 억울하겠구나.” 그제야 죄수들은 춘일을 느슨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감옥에서 죄수들은 자기들끼리 부류를 나눈다고 했다. 깡패나 싸움군은 영웅취급을 하였다. 그 다음에 강탈범을 2류로 사내취급을 하고 절도범은 3류로 취급하였고 강간범이나 남녀관계로 잡혀 들어온 죄수는 제일 시시한 하바닥으로 취급해 몰아부친다고 한다. 심지어 강간하거나 바람쓰던 과정을 탄백하라고 고문까지 하며 들으면서 재미를 보기가 일쑤였다. 살인범은 당장 총살맞을 바보라고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탐관오리는 탐오나 부패, 회뢰지로 들어오면 죄수들마저 제일 미워하고 기회를 보아 두들겨 패놓군 한다고 하였다. 춘일은 다행히 강탈범이여서 2류에 속해 덜 몰리우게 되였다. 그러나 나이 제일 어려서 모진 학대와 조롱을 받아야 하였으며 똥통을 나르ㅡ르는 것 같은 뒤치개질을 해야 하였다. “이 자식, 여기 들어왔으면 선배어른들께 입회인사 해.” 춘일은 감옥으로 떠날 때 엄마가 면회하러 와서 주고 간 돈을 몽땅 털어내놓았다. “요거뿐이냐?” 두목 장씨가 퉁사발눈깔을 부라리자 죄수들이 당장 잡아먹을 상 했다. “아, 더 있소. 옛소. 다 줄게.” 춘일은 호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놓았다. 그러고나서 호주머니를 다 털어보였다. “이젠 아무 것도 없소.” “좋아, 여기 들어왔으면 이 어른의 말을 잘 들어야 해. 알만해?” “네, 네, 네. 형님.” 춘일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똥통을 내가라.” 두목 장씨의 령이 떨어졌다. “네?’ 춘일은 구석에 놓인 초롱을 힐끔 돌아보았다. “엉?!” 장씨가 주먹이 움찔했다. “네, 네.” 누구 명령이라고 감히 어기겠는가. 진씨가 되창문을 열고 왜가리 목처럼 긴 목을 빼들고 교도관을 불렀다. “똥통을 내가게 문을 열어주시오.” 인차 발자욱 소리 쿵쿵 들리더니 문을 여는 절카당 소리 났다. 춘일은 밤새 누워서 싯누런 똥이 들어찬 초롱을, 악취가 풍기는 그 똥통을 들고 나갔다. 억울함을 억누르면서 싯누런 똥을 변소에 쏟아넣고 참대꼬챙이로 똥통을 왈왈 휘저으면서 수도물에 씼어 들여왔다. 그날부터 갓 들어온데다가 나이가 제일 어리다나니 김춘일은 감방 안의 똥통을 날마다 들어내가고 씻어와야 했다. 며칠 후 진씨는 로실해보이는 춘일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하였다. 모래를 치는 일을 하면서 진씨는 멀찍이 간 교도관의 눈치를 보면서 넌지시 말을 걸었다. “야, 임마, 얼마나 바보냐? 자전거를 왜 빼앗아 타고 달아났다고 승인했니? 그저 타보고 돌려주겠다고 할게지.” “그래도 쓸데 없소. 재수없이 강타시기 아니고 뭐요? 별 수 없답데.” 춘일은 진씨한테 나직이 물었다. “형님은 어째 들어왔소?” 그러자 진씨는 멀찌기 서 있는 교도관의 눈치를 흘끔 보면서 나직이 말했다. “금고를 털다가 잡혔어.” 춘일은 머리를 끄덕였다. “돈은 많이 벌었겠구만. 그래 몇년 판결받았소?” “5년이야.” “양?” 진씨는 또 승용차를 훔친 적도 있었다. (승용차와 금고를 훔친 절도범도 5년인데. 참 억울하구나. 난 자전거를 빼앗았다가 10년 판결을 받다니? 법이 불공평하구나.) 김춘일은 오해했던 것이다. 진씨는 강타투쟁을 하기 3년 전에 잡혀 들어온데다가 강탈죄가 아니라 절도죄여서 그 정도 판결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김춘일은 절도죄 아니라 강도죄이기에 절도죄에 비해 더 중했다. 설상가상으로 강타투쟁 때 모범껨을 당했던 것이다. 춘일은 후에 어머니가 면회하러 와서 주고 간 과자랑 떡이랑 돈이랑 몽땅 두목과 진씨한테 주었다. 그는 다른 건 잘 몰라도 인사성만은 밝아서 죄수들 속에서 인심을 얻었다. 진씨는 춘일을 동생처럼 생각하면서 자기 범죄경험교훈도 들려주었다. 진씨는 감방 바닥에 춘일과 나란히 누워 자면서 나직이 말했다. “금고를 털 때 나는 숱한 지문을 남긴 걸 몰랐어. 만약 장갑을 끼고 했더라면  이런 신세로 되지 않았을 수도 있어. 손발만 잘 건사해야 해. 지문이나 족문을 남기지 않으면 경찰들도 붙잡지 못해.” 두목 장씨가 덧붙였다. “쳇, 쓸데 없다. 지문을 남기지 않아도 잡힐 때 있어. 사람을 죽일 때 눈알까지 빼가야 붙잡히지 않는다더라. 죽은 사람의 눈을 사진 찍으면 살인범이 누구라는게 나온다더라.” 진씨가 픽 하고 코웃음쳤다. “에이, 믿기지도 않는 소릴. 그래서 남의 눈을 찔러놓았소? 죽은 사람 눈이 뭐 사진기랍데? 형님은 싸움이나 했지. 도적질은 안되오.” 두목 장씨는 무리싸움을 하다가 칼로 남의 눈알을 찍어놓아 상해죄로 6년 징역을 받았다고 했다. 진씨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지금 젤 무서운 건 경찰들 사냥개요. 저 옆방의 강간범을 보오. 가을에 옥수수밭을 지나가는 처녀를 강간했다가 경찰들이 풀어놓은 사냥개한테 붙잡혔다고 하지 않소. 사냥개는 강간한 자리에 있는 발자욱을 따라 냄새를 맡으면서 곧추 10리 밖에 있는 저 바보네 집까지 찾아왔다잖소. 개 글쎄 앞발로 그 새끼네 집 문을 턱 짚고 서서 왕왕 짖어대더라오. 경찰들은 사냥개를 따라와서 인차 저 바보를 잡았다오.” “개를 피하는 방법은 없을가?” 두목 장씨가 물었다. 진씨가 장씨한테 돌아누우면서 귀에 대고 나직이 쑤근거렸다. “이전에 나와 함께 이 감방에 갇혔다가 나간 한 선배가 말하던데. 사건을 저지를 때 옷이고 장갑이고 양말이고 몽땅 벗어서 강물에 띄워보내는게 상책이라오. 태워버릴 수 있으면 더 좋고. 제일 좋은 방법은 강물을 훌 건너는게라오. 그럼 아무리 냄새를 잘 맞는 사냥개도 물에 밀려간 발냄새를 더 맡지 못한답데.” “오-사냥개 아무리 냄새를 맡아도 강을 건너면야 무슨 수 있냐? 발자욱이 물에 밀려가 없어지길래 냄새를 못 맡겠지.” “그게 참 묘수로군.” 춘일은 감옥에서 10년 동안 숱한 선배죄수들에게서 경험교훈을 들으면서 저도 몰래 어지간한 반정탐능력을 키워갔다. 그날 밤에 그는 사냥개 따라올가봐 겁나 뒤를 힐끔거리면서 신까지 벗어던질가 궁리하였다. 그러나 3월 초의 날씨는 아직도 추웠다. 발을 얼굴가봐 그만두고 요행을 바라고 집으로 들어갔다. 길에서 경찰을 봐도 자기를 붙잡으로 왔는가하여 머리를 수깃하고 걸었다. 잔등에 식은 땀이 쪽 끼치군 하였다. 그러나 그가 심장을 조이면서 서너달 기다려도 경찰은 찾아오지도 않았다. “그럼 그렇겠지.” 그물에서 빠져나온 그는 돈도 다 떨어져 또 강도행각을 벌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내리드리우고 달도 뜨지 않자 김춘일은 신을 꿰고 바깥으로 나가려고 서둘렀다. “얘, 요즘 밤에 어디로 자꾸 나가느냐?” “고기 잡으로 나갑구마. 장사도 안되지. 어쩌겠습둥? 고기라도 잡아야 먹구 살지.” “응, 다른 짓 했다간 용서하지 않는다. 이 에미 쥐약을 풀어먹구 죽는 꼴 보기 싫으면 나쁜 짓 하지 말라. 알았지?” “야, 엄마, 감옥에서 나온 후 내 언제 한번 일을 쳤습둥? 아직두 막내아들을 믿지 못하겠습둥?” 어머니는 토색잠바까지 든든히 입고 나서는 춘일을 물끄러미 쳐다볼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춘일은 어머니를 슬쩍 속여 넘기자 반디와 물초롱을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부르하통하 강뚝에 이르자 이전에 파묻어놓은 망치와 비수를 찾아보았다. 녹이 좀 쓸었을뿐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망치 자루가 다 썩어 못쓰게 되지 않았겠는가. 그는 망치 대가리를 강물에 훌 던져버렸다. 녹이 쓴 비수를 모래불에 쓱쓱 갈아 품속에 간직한 후 사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반디와 물초롱을 강뚝 버드나무숲 속에 치워놓았다. 그날 밤은 1998년 6월 1일 11시도 넘은 밤중이였다. 달도 없는 어둠컴컴한 밤이였다. 그는 부르하통하 남쪽 강뚝을 따라 사냥물을 노리면서 동쪽으로 스적스적 걸어내려갔다. 어두운 밤에 어디에선가 남녀가 희희덕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사돈보기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이럽니까?” “무슨 대수요. 우린 당장 결혼하겠는데.” “야, 어째 이리 성급합니까? 날 진짜 사랑하면 이러지 말고 보호해야지.” 김춘일은 호주머니에서 장갑까지 꺼내 낀 후 비수를 쑥 뽑아들고 슬금슬금 처녀총각의 뒤에 다가갔다. 부시럭거리는 소리로, 거치른 숨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이젠 어둠 속에서 남녀가 부둥켜 끌어안고 꿈지럭거리는 것까지 보였다. (개새끼들, 이 어른은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들지 못했어. 네놈들은 여기서 밤중까지 희희덕거려? 어디 죽어봐라.) 악마는 이를 악물고 남녀의 뒤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돈을 내놧!” 고함소리와 함께 악마는 서슬푸른 비수를 홱 휘둘렀다. 악마는 정모의 배를 푹푹 찔렀다. “앗!” 비명소리와 함께 정모가 배를 붙안고 꺼꾸러졌다. “앗!” 오모 녀성은 가슴을 붙안고 푹 쓰러졌다. 악마는 정모의 호주머니와 오모 녀성의 손가방을 싹싹 털어 돈을 챙겼다. 살인악마는 정모와 오모 녀성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고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악마는 강뚝을 타고 서쪽으로 헐떡거리면서 도망쳤다. 그는 사위를 둘러보아도 인기척이 없는 것을 보고서야 강가에 내려갔다. 그는 장갑을 강물에 버리고 피 묻은 비수를 강물과 모래에 말끔히 씻고 닦았다. 또 옷에 튕긴 피도 강물에 말끔히 닦아버렸다. 선배죄수들의 말대로 범행시 입었던 옷을 몽땅 강물에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가난한 그는 옷이 아까와 요행을 바라고 그만 두었다. 어둠 속에서 악마는 수풀 속에 치웠던 반디와 물초롱을 찾아들고 집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빈 물초롱을 들고 집에 들어가 어머니 의심을 받을게 속에 걸렸다. 그후부터 악마는 어머니와 동네 사람들을 속이려고 범죄하러 나가는 날엔 아침 장마당에 가서 미리 물고기를 사다가 반디와 물초롱을 치워두는 부근 모래불에 구덩이를 파고 파묻어두었다. 그리고 범행을 한 후에는 구덩이에서 물고기를 파내 물초롱에 담고 집으로 돌아갔다. 교활한 그는 이런 수로 어머니와 동네 사람들을 속이고 밤이면 물고기 잡으러 가는 척하고 하나 또 하나의 악성 사건을 저지르러 돌아다녔던 것이다.   그날 밤에 비수에 심장을 찔린 오모 녀성은 불행하게도 당장에서 숨졌다. 정모는 비수에 찔려 소장이 파렬된데다가 소장마저 혈관이 터져 당장에서 실혈성 쇼크를 일으켜 강뚝에 쓰러졌다. 그때 강뚝을 지나가던 행인이 정모와 오모 녀성이 강뚝에 쓰러져 있는 처참한 정경을 발견하고 인차 병원에 호송하였다. 정모는 병원에서 구급받아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오모 녀성은 살인악마에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171    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5) 댓글:  조회:1857  추천:1  2018-10-08
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김장혁       살인악마 김춘일은 수사일군들의 압송하에 사건현지에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자랑삼아 여기에서 누구를 어떻게 죽였고 저기에서 누구를 어떻게 엎디게 하고 강간하였다고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자인하고 확인하였다. 심문하는 수사일군들이나 김춘일을 압송하던 수사일군들이나 모두 살인악마가 저지른 죄행에 다시한번 섬찍함을 느꼈다. 김춘일을 나포한 전역에 참가한 전체 수사일군들과 경찰들은 더 없이 흥분에 감겼다. 김광진 국장은 김춘일심문비디오테프를 전우들과 함께 돌려본 후 처음으로 지휘부에서 차탁 우에 도라지짠지와 마른 명태 같은 간단한 안주에 맥주를 갖춰놓고 이번 승리를 경축하여 축배를 높이 들었다. “자, 동무들, 수고 많았소. 승리를 경축해 건배!” “건배!” 김광진 국장의 제의에 따라 수사일군들은 기쁨의 축배를 들고 통쾌하게 마셨다. 그들이 어찌 기쁘지 않으랴! 이 사건을 해명하기 위해 김광진 국장이 자지 못한 밤은 얼만가? 집에 돌아가지도 않고 지휘부 사무실을 집으로 삼고 지새운 밤은 또 얼마였던가! 그가 이 사건으로 애태운 속은 또 얼마인가! 그가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전우들도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수사일군들이 한밤중에도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면서 털끝만한 단서라도 얻으려고 달아다닌 밤은 얼마인가! 그들이 수집한 정보와 자료는 또 얼마인가! 백성들도 소식공개회를 통해 사건해명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그들은 너무 기뻐 1월 30일 주동적으로 연길시공안국 대청 앞에 모여와 폭죽을 터뜨리고 춤판을 벌렸다. 그들은 꽹과리를 울리고 북을 둥둥 두드리며 도라지춤을 추고 양걸춤을 추면서 살인악마를 나포해 백성들의 해를 제거한 위대한 승리를 경축하였다. 백성들이 어찌 기쁘지 않으랴! 밤이면 홀로 거리를 다니기 무서워하던 그들이, 아이들을 홀로 학교에 보내기 무섭던 그들이 아닌가! 낮이나 밤에 자기를 뒤따라오는 사람이 있어도 머리카락이 곤두서며 공포에 떨던 그들이 이젠 발편잠을 자게 됐다. 그들은 마효동 국장과 김광진 국장 그리고 수사일군들에게 축기와 채색표어를 드렸다. 표어에는 다음과 같은 금빛글발이 새겨졌다.   인민생명의 보호신, 인민의 훌륭한 충복   인민경찰들 수고하셨습니다!   인민을 위해 해를 제거한 공안기관 감사합니다!   그렇다, 살인악마가 나포된 날은 백성들과 경찰들에게는 경사스러운 나날이였다.  이 사건해명에 중대한 기여를 한 김광진 국장과 수사일군들은 승리를 경축하는 희열에 잠겨 백성들과 함께 춤을 추면서 승리의 기쁨을 마음껏 나누었다. 녀경찰들은 기쁨의 사탕을 수사전역에 참가한 수사일군들에게 드렸다. 연길시공안국 앞마당은 승리의 희열로 오래동안 출렁이였다. 국가공안부와 길림성공안청에서는 이번 특대살인강간강탈계렬사건을 해명한 승리를 축하하여 축하전보를 보내왔다. 성공안청에서는 이번 사건해명에 중대한 기여를 한 집체와 수사일군들에게 상금10만원을 주기로 결정하였으며 국가공안부에서는 그들에게 공훈을 기입해주었다.           살인악마의 뿌리 “삼자경”에서는 “인간은 애초에 원래 성질이 착하였다. 그러나 배우면서 달라진다.”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태여날 때는 모두다 똑같이 “응-아”하고 순결하고 청아한 목소리로 이 세상에 고고성을 울리면서 태여났다. 인간은 결코 원래부터 악의 본성을 가지고 태여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라면서 차차 처한 환경과 배우는 것이 다르기에 성격도 달라지게 되며 사람마다 부동한 길을 걸으면서 각이한 성격과 이미지를 가지고 변하여간다.        어떤 사람은 탐관오리로 되고 어떤 사람은 뱅성들을 해치는 살인악마로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럼 김춘일은 어떻게 돼 평범한 인간으로부터 사람마다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살인악마로 되였는가?        김춘일은 중국 흑룡강성 동녕현의  한 시골 마을에서 5남매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여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살인악마가 아니였다.        그럼 그의 가정환경이 나빠서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변질하였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의 가정은 조국과 인민의 해방을 위해 영용하게 싸워온 영광스러운 군인세가였다. 그의 아버지는 일찍 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에서 영용히 싸운 투사였으며 중상을 입은 퇴역영예군인이였다. 그의 삼촌은 항미원조전쟁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장렬히 희생된 렬사였다. 그의 형님도 중국인민해방군에 영광스럽게 입대하여 입당하였고 패장으로 제발됐으며 여러차례 공훈을 세운 퇴역군관이였다. 그의 누나 셋도 사회에서 사회공작을 아주 잘하는 훌륭한 간부와 사업일군이였다. 그럼 이렇게 훌륭한 가정에서 자란 그가 어떻게 돼 인민정부와 공안국, 인민을 등진 살인악마로 되였는가? 세상에서 제일 순결하고 대공무사하고 자애로운 사랑은 모성애라고 할 수 있다. 모성애는 세상에서 그 어느 사랑과도 비할바 없이 고결하고 열렬하고 일편단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형적으로 지나친 모성애, 편애는 애들을 애꿎게 자라게 하고 자기 밖에 없는 애, 자고자대자하는 애로 키울 수도 있다. 기형적인 모성애는 어떤 때에는 애들을 기고만장하고 자존심이 강하고 누구 말도 잘 듣지 않는 애, 고집이 센 기형아로 키울 수도 있다. 김춘일은 바로 막내로 태여나서 집에서 너무 어루만진 모성애에 의해 기형적으로 괴벽한 성격을 가진 애로 변하였다. 막내인 김춘일이 형님과 누나들과 말다툼이 생기거나 손지검이 생기면 어머니는 고저장단과 시비를 따지지 않고 춘일의 역성을 들군 하였다. 그리하여 김춘일은 점차 자라면서 집에서 제 밖에 없노라고 우쭐거렸다. 김춘일은 마을에 나가서도 누구한테 지려고 하지 않았다. 원래 키도 작고 힘도 없는 그는 애들한테 늘상 맞아 울고 다녔다. 그때도 어머니가 동네에 나가 아들의 역성을 들군 하였으며 맏아들을 시켜 역성을 들게까지 하였다. 애들한테 늘상 맞아 얻어터진 김춘일은 반발심이 생겨 형을 믿고 쩍하면 애들과 걸고 들어 싸웠으며 얻어맞으면 꼭 보복하려고 하였다. 어떤 때에는 닥치는대로 낫이고 도끼고 마구 쥐여 휘두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춘일도 나이 좀 들자 어떤 때에는 좀 점잖을 빼기도 하였으며 엉뚱한 꿈을 꾸기도 하였다. 김춘일에게도 어려서 황홀한 인생의 꿈이 있었다. 그는 참군할 나이도 안된 17세 때 아버지와 형님의 영향을 받아 군인복장을 입고 씩씩한 군인이 되려는 엉뚱한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꿈이 물거품이 되자 그는 사회에 불만을 품고 점차 범죄의 구렁텅이로 굴러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당시 그는 입대 신체검사도 다 통과되였다. 신체검사표의 어느 조목에나 다 큼직한 “합격”이란 글자가 씌여졌다. 그는 이제 마을사람들이 다 흠모의 눈길을 보내는 초록색군인복장을 입고 가슴에 꽃까지 달고 영광스럽게 참군하는 꿈이 현실로 되리라고 여긴 나머지 웃음주머니가 흔들거렸다. 그의 천진란만한 가슴은 황홀한 꿈으로 세차게 울렁거렸다. 그런데 남들이 군복을 입고 가슴에 커다란 꽃을 달고 동네 처녀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자동차에 앉아 마을을 떠날 때에야 그는 자기 꿈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알게 되였다. (신체검사나 정치심사나 다 합격됐는데 어째 나를 가지 못하게 하는가?) 의심이 부쩍 든 그는 해당부문 책임자를 찾아가 따지고들었다. “난 어째 부대에 못 갑니까?” “넌 안돼!” 해당 부문 책임자는 단마니로 딱 잡아떼는 것이 아니겠는가! “왜 안됩니까? 우리 가정 성분이 안됩니까? 뭐가 안됩니까? 난 신체검사도 합격됐는데 왜 안됩니까?” 그제야 책임자는 실토정했다. “넌 밸때기 더러워서 부대에 가지 못해.” 김춘일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소립니까? 그래도 내처럼 사내같은 청년이 군인답지비.” “안돼, 넌 부대 기률을 지킬 수 없어.” “네?” 김춘일은 억이 막혀 한참이나 뒤말을 찾지 못하였다. 참말로 칼자루를 쥔 강자가 이기지 칼날을 쥔 약자가 이기겠는가? 그 책임자는 “입대할 나이 안됐다”는지 어떻다는지 이 구실 저 구실 수태 대면서 그를 가지 못한다고 딱 잡아뗐다. 무슨 수가 있단 말인가? 그때부터 김춘일의 세계관은 기형적으로 변하여갔다. 그는 정부의 관리들을 보기만 해도 다 나쁜 놈들로 보여 미웠고 인간세상이 미웠다. 남이 잘되는 것도 심술이 났고 남들이 행복에 겨워 웃어도 증오하였다. 어덴가 불만을 쏘아부어 분풀이를 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사실 그때 그가 조금만 랭정하게 생각해도 문제는 기회가 있어 해결됐을 수도 있었다. 그때 그는 17세 밖에 안되기에 아직도 몇번이고 입대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 합격돼도 가지 못하였기에 자기는 완전히 기회없다고 절망에 빠졌던 것이다. 그의 사상이 세속을 따라 굽이를 돌지 못하였다. 진짜 허황한 꿈 같은 산에서 가볍게 내려올 수 없었다. 입대하지 못한 김춘일은 그때부터 어중이떠중이들과 휩쓸려 다니면서 무리싸움도 하고 산에 가서 수림에 불을 지르기도 하였다. 하여 그는 공안기관에 나포돼 형사구류되기도 하였다. 며칠후 미성년이라고 공안기관에서는 그를 교육한 후 석방하였다. 그는 자기를 단속할 대신 이번에는 공공장소에서 여러차례 도폭뢰관을 폭발시켰다. 그리하여 공안기관에 체포되여 15일이나 류치소에 구류되였다. 그러자 그때부터 그는 점차 공안기관과 경찰마저 증오하기 시작하였다. 나아가서 점차 이 세상 사람들을 다 증오하기 시작하였다. 버들가지는 홰친홰친할 때 후려잡쳐야 곧게 펼 수 있다. 그러나 버드나무가 사발통처럼 굵어진 다음엔 곧게 펼래야 펼 방법이 없다. 마찬가지로 애들의 나쁜 버릇은 어릴 때 단단히 혼살내 떼버려야 한다. 뼈다귀 굵어진 다음에는 편애와 모성애에 휘말려든 나약한 어머니인들 어쩌겠는가? 아니, 호랑이마냥 사나운 아버지인들 어쩌겠는가? 김춘일의 골잣이 삐뚤어져 먹고 심술이 바르지 못한 것을 뻔히 보면서도 부모들은 용빼는 수 없었다. 맹자의 어머니는 맹씨네 둘째아들 맹자를 사람으로 만들려고 일곱번이나 이사한 적이 있다고 한다. 맹자는 어려서 백정네 이웃에서 살면서 백정이 돼지를 잡는 것을 보고 개고 고양이고 뭐고 다 잡아 파묻기도 하고 팔자고 들었다. 그리하여 맹자의 어머니는 애들은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궁리 끝에 일곱번째로 서당 옆으로 이사했다. 맹자는 서당에서 애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고 공부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자녀교양에 방법이 있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이사를 일곱번이나 한 덕분에 맹자는 나중에 유교학설의 창시자 가운데의 한 성인으로 되였다고 한다. 맹자를 알리 없는 어머니였지만 김춘일이 고향의 나쁜 애들과 휩쓸려다니면서 싸움질하면 사람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어떻게 하나 마을의 나쁜 애들과 떼놓아야지. 그럼 사람이 될지 누가 아는가?) 어머니는 이제라도 막내아들을 사람으로 만들려고 1982년에 춘일을 데리고 한뉘 살아온 정든 고향을 떠나 산설고 낯선 연길시 산골마을인 의란진 명랑촌 제3촌민소조로 이사하여왔다. 연길시 교외였지만 적막한 시골인데다가 아는 친구도 없다고 김춘일은 마음을 붙이지 못하였다. 그는 자꾸 친구들이 있는 고향마을에 돌아겠다고 심술을 부렸다. 막무가내로 부모들은 인맥을 통해 막내아들한테 연길 시내한 차수리부에 일자리를 찾아주었다. 시내로 들어가 일하게 되자 다행히 김춘일은 부대로 가지 못한 일을 점차 잊어버리고 삶의 새 길을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부대로 가지 못한 것도 김춘일 본신에게 문제 있었다. 밸때기 더럽다고 눈에 난데는 자기 잘못이지 누구 탓인가. 그러나 김춘일은 자기한테서 문제를 찾지 않고 무장부장이 뒤문거래를 했다 오해하면서 늘 꽁한 속에 넣고 나쁜 놈이라고 욕하고 보복하려고 들기까지 했던 것이다. 날따라 번영해가는 연길시내를 돌아보고 그의 젊은 가슴은 처음으로 설레이기 시작하였다. (부대고 뭐고 가지 않길 잘했어. 돈만 있으면 이런 시내에 집을 사고 고운 색시를 얻어놓고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삶의 희망과 욕망은 그로 하여금 잠시나마 심리 균형과 안정을 되찾고 부지런히 일해 돈을 벌게 하였다. 그는 아침 일찌기 차수리부에 출근해 보스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차수리부에 널린 낡은 부속품도 거두고 비자루를 찾아들고 청소도 말끔히 해놓았다. 그는 걸레를 들고 수리하러 들어온 차 앞뚜껑을 열고 발동기도 쓱쓱 닦아놓았다. 스푸를 모시고 차수리기술을 익히려고 땅바닥에 들어누워 먼지투성이 부속품을 뜯어내고 바궈넣기도 하였다. 엄동설한에 땀을 철철 흘려도 힘드는줄 몰랐다. 그는 자기 힘으로 번 돈을 타는 날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쉬는 날에 뻐스를 타고 부모를 보려고 이사해온 마을에 돌아갔을 때였다. 이웃집 한 처녀와 부모가 정미소에서 쌀마대를 소수레에 싣지 못해 낑낑거리고 있었다. “물러납소. 내 실어줍지비.” 김춘일은 두말없이 다가가 혼자 쌀마대를 훌쩍훌쩍 들어 수레에 실어주었다. 그러고도 소수레를 집에까지 몰고 갔다. 그는 숨도 돌리지 않고 쌀마대 두마대를 집 안에까지 안아들여간 후 쌀독에까지 좌르르좌르르 부어넣어 주기까지 하였다. “감사하오. 이사온 집 총각이.” 허리구부정한 령감이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오빠.” 처녀는 복숭아 얼굴에 홍조가 어린채 두 손을 앞에 맞잡아쥐고 곱게 인사하였다. 김춘일은 사내답게 인사를 받았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잖습니까? 이후에 집에 무슨 힘든 일이 있으면 날 부릅소. 내 얼마든지 해드립지.” 그는 처녀가 떠 주는 바가지를 받아 랭수를 단모금에 꿀떡꿀떡 밑굽을 냈다. “야, 이 집 물이 시원합구마.” 김춘일이 집 안에서 나오는데 복숭아 얼굴의 처녀가 따라나오면서 또 곱도록 인사했다. “오빠, 이후에 놀러 오오.” “오, 그래, 그래. 무슨 일이 있으면 날 찾소.” “네- 잘 가요.” 곱도록 인사하는 복숭아 얼굴의 귀여운 처녀를 보는 순간 김춘일은 처음으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아래배로부터 전기가 찡 명치끝까지 쭉 뻗치면서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빠도 없는 처녀는 그때부터 이웃집 춘일을 친오빠처럼 믿고 따랐다. (이게 웬 떡이냐? 복호박이 넝쿨채로 굴러떨어지는 판이 아닌가.) 김춘일은 얼마나 흐뭇했는지 몰랐다. 그는 시내에서 일해 로임을 타면 얼마간 떼내고 어머니한테 바치고 슬그머니 처녀한테 과자랑 과일이랑 맛있는 걸 사다주기도 하였다. 어떤 때에는 연길 시내에 데리고 가서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도 사먹이기도 하였고 연길공원에 들어가서 연애도 하였다. 그는 사랑하는 처녀로 하여 아무리 어지럽고 힘든 일을 하여도 힘든줄을 모르고 차수리부 보스가 시키는대로 억척스레 일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였다. 정확한 인생관을 수립하지 못했기에 자기 언행과 생활에 대한 규칙이 별로 없고 엄격히 단속하지 못하였다. 그날 춘일은 차수리부에서 별로 할 일도 없어 차수리부 문 앞에서 시내 큰길에서 오가는 차와 행인들을 멍청히 바라보면서 해볕쪼임을 하였다. 그때 빨간 적삼을 입은 한 소녀애가 빨간 자전거를 타고 올리막으로 느릿느릿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저 자전거를 타고 큰길로 한번 씽 달려볼가?) 일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일을 치고 말게 되였다. 초중 밖에 다니지 못한 김춘일은 머리가 아주 단순하였다. 그는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치는지도, 후과를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는 소녀애를 쫓아가 자전거를 홱 빼앗아 타고 내리막으로 씽 달아났다. 소녀애가 발을 탕탕 구르며 김춘일을 손가락질하며 고함쳤다. “날강도를 붙잡아요!” “그 앞의 놈이 내 자전거를 타고 달아났습니다!” “섯!” “경찰이다!” “도망치면 쏜다!” 하늘에서 경찰이 날아내렸는가. 김춘일은 200메터도 달아나지 못하고 그만 순라하던 경찰한테 앞길이 막혔다. 그는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붙잡혔다. 경찰은 김춘일의 손목에 쇠고랑이를 철컥 채우고 자전거를 끌고 파출소로 갔다. 1983년 9월은 당시 형사범죄자들을 호되게 타격할데 관한전국인대상무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전국적으로 강타(严打)투쟁을 진행한 시기였다. 그리하여 그해 9월 8일에 김춘일은 연길시인민법원 법정에 나세게 되였다. 연길시인민법원에서는 호되게, 엄중하게, 신속하게 범죄자를 타격하는 원칙에 따라 김춘일에게 상상하기도 어렵게 중한 처벌을 내렸다. “자전거를 강탈한 김춘일을 강탈죄로 유기징역 10년에 언도한다!” 법관이 판결서를 랑독하자 김춘일은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법맹인 그는 저도 몰래 이를 악물었다. (어쩜 자전거 빼앗아 탔는데 10년이나 판결한단 말인가?) 자기를 붙잡은 경찰이 가증스럽고 법관이 미웠다. (이 놈의 세상에 어디 공정한 법이 있단 말인가?) 그는 머나먼 진래감옥에 가서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억울했다. 심지어 빨간 옷을 적삼을 입은 소녀애마저 미웠다. (개쌍년, 내 나가기만 해봐라. 네 년부터 죽여치울 거야.) 그때부터 확실히 김춘일은 빨간 옷을 입은 녀자를 보기만 하면 눈에 증오와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렸던 것만은 사실이였다. 만기석방돼 출소 후 빨간 옷을 입은 녀성만 보면 혹시 자전거를 타고 가던 그 소녀애가 아닐가고 추측하기도 하면서 복수의 이발을 간 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진래감옥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김춘일은 세상 법이 리해되지 않았다. 후에 감옥에 들어오는 죄수들을 여겨보아도 손잡이뜨락또르나 택시를 강탈하고서도 중해야10년이고 경하면 5~6년 밖에 판결받지 않은 것이 아니겠는가. 자기가 출소하기 전에는 고급승용차를 도적질한 절도범도 10년 내지 12년 징역을 받은 자들도 있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심리균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우리 집이 가난해서 돈도 먹이지 못하고 문도 없는게 죄지. 아무 권세도 돈도 없는 농민의 자식이라고 업신여겨 그렇게 중한 10년 판결을 내린게 아니고 뭔가?) 법맹인 그는 오해를 가질수록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하고 괘씸했다. 생각할수록 법원이 공정하지 못한 것 같았고 자기를 붙잡은 경찰이 미웠고 자기를 물어먹은 그 빨간 옷 입은 그 계집애가 괘씸하였다. 고된 강제로동을 하고 감방 바닥에 들어누우면 명랑촌에 두고 온 이웃집 처녀의 복숭아 얼굴이 떠올랐다. 법관이 판결서를 랑독할 때 법정에서 통곡치던 어머니와 복숭아 처녀의 비통한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더우기 면회하러 온 어머니한테서 이웃집 처녀가 10년이나 기다리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한테 시집갔다고 하지 않겠는가. 진짜 마른 하늘에서 내리친 청천벽력이였다. 그래도 이제껏 그 처녀가 마음 속에 있어서 아무리 고된 강제로동도 뻗치면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처녀가 자기를 떠났다는 말을 듣자 그는 믿고 기댔던 정신기둥이 와그르르 무너지는 감을 느꼈다. 더는 삶의 용기마저 잃고 말았다. 그의 앞에는 아무런 꿈도 없어졌고 어둠컴컴한 절망의 심연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감옥에서 아예 자살해버리려고 마음먹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감옥에서 일하다가 옥경이 중시하지 않는 틈을 타서 뾰족한 곡괭이에 머리를 박고 죽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번마다 옥경한테 들키워 숨이 붙었다. 죽지도 못하게 되자 김춘일은 악한 마음을 먹게 되였다. (죽기도 두렵지 않으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어디 이 놈의 세상 놈들과 한번 내 죽고 네 죽고 해보자.) 그때로부터 그는 악마로 돼 세상에 악명을 남기려고 들었다. (숱한 년놈들을 죽여 이 놈의 사회에 보복할테야.) 법맹인 그가 오해할수록 세계관이  삐뚤어져 갔다. 가슴을 오리오리 저며는듯한 실련의 고통은 김춘일로 하여금가슴 속에 품은 원한의 비수를10년 동안이나 시퍼렇게 갈고 또 갈게 하였다. 사랑도 있고 부모형제도 알아보는 보통인간으로부터 그를 야수 같은 살인악마로 탈바꿈하게 만드는 시간과 공간이였다. 김춘일은 이전에 쇠살창으로 비껴드는 보름달을 보면서 항상 복숭아 같은 의란 산골의 련인의 얼굴을, 복숭아얼굴에 옴폭 패이는 볼우물을 련상하면서 그리고 또 그리였다. 항상 보름달의 볼이 똑마치 복숭아처녀의 볼 같아 보일 때도 있었다. 복숭아얼굴의 처녀가 볼우물까지 옴폭 파면서 수줍게 웃는 고 복숭아얼굴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래도 감방에서 나가면 그 처녀와 결혼해 애를 낳아 기르면서 깨알이 쏟아지게 사는 허황한 꿈도 꾸었다. 그러나 사랑의 황홀한 꿈마저 산산이 박산난 이젠 보름달마저 보기 싫어졌다. 오히려 보름달의 볼이 똑 마치 감방에 있는 자기를 조롱하고 비웃는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그는 쇠살창 사이로 쓸쓸히 감방 바닥에 비껴드는 한많은 달빛이 싫어 누더기이불로 낯을 가리우고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군 하였다. 그때마다 이빨을 뻑뻑 갈았다. (더러운 년, 배은망덕한 년, 애나게 일해 로임을 타서 네년한테 숱한 옷과 먹거리를 사주었건만 날 배신해? 그간 내 머슴처럼 너네 집 일을 얼마나 해줬어? 그래도 차례진 건 배신이야?) 진짜 갑순이를 빼앗기고서도 어쩌지 못한 멍청이 - 갑돌이 같았다. 실련의 고통을 아프게 씹으면서 그는 이를 뿌드득뿌드득 갈았다. 복숭아얼굴처녀를 잃어버린 것도 몽땅 법관이 자기를 10년 징역으로 판결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1~2년 판결해도 혹시 처녀가 자기를 기다렸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그런 막연한 생각을 할수록 법관이 괘씸했고 이 사회에 원한이 뼈 속까지 사무쳤다. 신문 한장 읽지 못하고 방송도 듣지 않은 법맹 김춘일은 당시 사회법제환경을 알 수 없었다. 1983년 당시 사회치안형세가 복잡해지고 혼란해지고 범죄률이 급상승하고 있는 새로운 정황에 근거하여 전국인대상무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엄하고 중하게 신속하게 범죄자들을 타격하는 시기여서 강간을 한번 하고서도 15년 판결을 받거나 정상이 악렬한 강간범은 총살을 받은 자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세상물정을 알고 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 잘못부터 반성해보고 그런 오해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절도죄와 강탈죄는 형량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몰랐다. 승용차를 훔친 죄보다도 자전거를 강탈한 강도죄는 비하지 못할 중죄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다. 프랑스의 한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쟝발쟝은 만두 하나 훔쳤다가 감옥에 갇혔다. 그런데 쟝발쟝은 몇번이고 탈옥하다가 붙잡혀 형벌이 배로 늘어난다. 탈옥전과자가 있는 루범이기에 죄에 죄를 가해 나중에 16년이나 징역살이를 해야 했다. 김춘일은 시골에서 자라면서 견식도 좁고 본 책도 별로 없기에 무지막지하기로 짝이 없었다. 때문에 세상의 모든 법은 만약 전과자가 범죄하면 그 죄가 가중해져 더 가중하게 판결하게 된다는 것을 알리 없었다. 김춘일은 동녕 고향에서 산에 방화하고 공공장소에서 도폭뢰관을 폭발한 전과자로서 여러차례 공안기관에 체포돼 처벌받았다. 그러나 그 악습을 고치지 않았기에 자전거 한대를 강탈했지만 가중한 판결을 받았던 것이다. 또 당시 강타투쟁의 준엄한 현실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모른 그는 법관이 공정한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고 여겼고 심리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복수의 칼만 갈고 또 갈았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세상물정을 알고 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 잘못부터 잘 찾아보고 자기를 살인악마로 변하게 만들 그런 오해의 구렁텅이에는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오해가 없었더라면 10여년 동안이나 원한과 증오를 가슴 속에서 싹을 키우고 나아가서 출옥 후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사회복수심과 녀성에 대한 변태적인 증오심을 활화산처럼 폭발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칫 손을 잘못 놀려 10년이란 아까운 청춘을 감옥살이에 매몰시켰으면 그 피의 교훈을 찾고 바른 길에 들어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회에 보복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고 녀성들을 강간해서야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을 수 있겠는가? 문화정도, 신분, 가정배경의 고저를 물론하고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인민정부와 사회, 인민과 법을 등지고 보복하기에 혈안이 돼 미쳐 날뛰던 자들은 일시 횡행하더라도 결국 좋은 끝장이 없었다. 그러나 김춘일은 여지없이 파괴된 심리균형과 오해로 해 자기 인생궤적을 죄악적인 기로로 찍어나갔다. 부대로 가지 못한 일 때문에, 이른바 “억울하게 가중하게 판결한 일” 때문에, 떠나가버린 첫사랑 때문에 그는 철창 속에서 생각하면 할수록 분통이 터졌다. 복수심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의 기형적인 사상발전은 그를 점차 보통사람으로부터 죄수로, 죄수로부터 건달로, 건달로부터 나중에 살인악마로 변하게 하였던 것이다.                  악마의 유령 기형적인 복수심은 김춘일로 하여금 눈에 띄게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돌변해 탈바꿈하게 하였다. 그는 원래 강제로동을 하기 싫어 뼈대를 아꼈지만 갑자기 돌변해 억척스레 일해재꼈다. 겉보기에는 개조표현이 좋아진 것 같았지만 기실 내면으론 딴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 속에는 개조표현이 좋은 것처럼 보여 하루 속히 지긋지긋한 징역살이를 앞당겨 끝내고 세상에 나가 복수하려는 것이였다. 1991년 10월 말, 김춘일은 끝내 감옥에서 석방되였다. 그는 연길에 돌아와 보고 몰라보게 변한 세상에 깜짝 놀랐다. 연변병원 앞에는 택시가 줄느런히 늘어서 있지 않겠는가. 거리마다에 음식가게가 줄느런히 열렸다. 그는 감옥살이 10년에 매몰된 자기 청춘이 아까와 가슴이 칼로 어이는듯이 아파났다. (사람의 일생에 10년이 몇번이나 있는가.) 김춘일은 죄수의 몸으로 이사해와 몇해 살던 의란진 시골마을에 돌아갈 면목이 없었다. 그래도 무슨 수가 있는가. 그는 머리를 수깃하고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중에야 집에 들어갔다. 늙은 어머니는 감옥에서 돌아온 막내아들을 부둥켜안고 어루만지면서 울었다. “얘야, 이젠 다신 나쁜 짓을 하지 말라. 아직 넌 젊다. 이제라도 바른 길로 가면서 엄마와 함께 조용히 살자.” 그러나 김춘일은 엄마 두 팔을 내려놓으면서 억울함을 토로했다. “엄마, 엄만 모릅꾸마. 난 억울합구마. 자전거 한대 빼앗아 탔는데 어찌 10년이나 감옥에 처넣습둥? 지금 봅소. 그보다 더한 죄도 몇해 밖에 감옥살이를 하지 않습구마.” 그러자 엄마는 씽드르르 조왕 쪽에 가더니 시퍼런 칼을 찾아 들고 목에 댔다. “엄마, 엄마, 왜 이럽둥? 칼을 놓읍소.” 엄마는 진짜 마지막수를 썼다. “이놈새끼, 10년 감옥살이를 하고서도 나쁜 버릇을 떼지 못했구나. 어째 엄마 죽는 걸 보자고 아직도 개소리냐? 네 나쁜 버릇 고치지 않는 날엔 이 에미 당장 목을 베고 죽어버리겠다. 이젠 막내아들이 나쁜 짓 해 감옥에 다시 가는 걸 못보겠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그런 꼴 못 보겠다.” 엄마는 식칼로 목을 썩 베였다. 목에서 검붉은 피가 주르르 흘렀다. “엄마, 이러지 맙소. 내 고칠게. 고칠게. 꼭 고칠게. 이러지 맙소.” 춘일은 제정신이 펄쩍 들어 덮쳐나가 어머니 손에서 피묻은 식칼을 빼앗아냇다. 뒤이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엄마, 제발 다신 이러지 맙소. 난 엄마 불쌍해 감옥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왔습구마.” 춘일은 어머니의 목을 싸매주고 칼자국을 여겨보았다. 다행히 칼이 깊이 들어가지 않고 살가죽을 좀 빗베였을뿐이였다.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이튿날 춘일은 잠시나마 인간성이 회복돼 어머니를 모시고 연길 시내 병원에 가서 상처를 처치하였다. 그는 뻐스에 앉아 집으로 돌아오면서 목에 붕대를 딜딜 감고 흰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어머니를 보고 불쌍해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죽음으로 위협한 것이 효과가 있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서도 으름장을 놓았다. “이 놈아, 이제 다시 나쁜 짓을 하는 날엔 엄만 언제든지 식칼로 목을 썩뚝 베고 죽어버린다. 잊지 말라. “예, 예, 예. 야, 엄마, 다신 나쁜 짓을 하지 않을게.” 그는 어머니가 자살할가봐 궁리하다못해 날마다 채를 끓인 후에는 꼭꼭 식칼을 치우고 내놓지 않았다. 그런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한술 더 떴다. “이 놈아, 식칼을 치운다고 죽지 못할 거 같아? 쥐약을 풀어먹고 죽을 수도 있다. 저수지에 뛰여들어죽을 수도 있지. 큰길에 달려나가 왕청에서 오는 차 앞에 뛰여들어 죽을 수도 있지.” “야, 엄마, 제발 그런 궁리 하지 맙소.” 춘일도 엄마를 살리려고 마지막수를 썼다. “엄마 죽는 날엔 내 무슨 짓을 할지 모릅구마. 이 세상에 엄마 내놓고 이젠 믿을만한 사람도 하나도 없습구마. 아까운 사람도 없습구마.” “이놈 새끼야, 이제라도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 에민 우리 집 막내 사람이 되는 걸 보았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 김춘일은 이젠 어머니가 죽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엄마 죽는 날엔 내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리라고? 흥!) 잠시나마 인간성을 회복했던 그는 어머니를 안심시키느라고 잠시 복수계획을 멈추었다. “엄마, 연길 시내 쪽으로 이사해가깁소. 이 마을에서 어떻게 머리를 들고 살겠습둥.” 춘일은 어머니와 말하지 않았지만 복숭아얼굴 처녀가 떠나가버린 마을을 보기만 해도 실련의 옛상처가 되살아나 아파났던 것이다. 어머니도 춘일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의란진 명랑촌 제3촌민소조를 떠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 모자간은 연길시 교외, 비행장 서쪽에 자리잡은 장백향 인평촌 제6촌민소조에 림시거주호로 이사해왔다. 그때 김춘일은 속으로 음흉한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결코 어머니 때문에 복수심을 포기할 인간이 아니였다. 그렇지만 새로 이사해온 마을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 진짜 양가죽을 뒤집어 쓰려고 애쓰는 승냥이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전과를 모르고 겉표면만 보고 그를 닭의 모가지도 비탈지 못할 어진이로 착각하였다. 김춘일은 음흉한 발톱을 감추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일자리를 찾아 일하기 시작하였다.                         
170    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4) 김장혁 댓글:  조회:2138  추천:0  2018-10-04
                           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김장혁        백일하에 더러난 살인악마의 몰골        어데선가 어둠 속에서 덫에 치운 쥐새끼가 네 발을 바둥거리면서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상 싶었다.        살인악마 김춘일은 경찰차에 압송돼 갈 때에는 집 안에서 체포될 때와는 달리 멍해 앉아 함구무언하였다. 그는 머리를 수깃하고 어떻게 최후에 심문받을 때 발뺌할 것인가고 속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리고 또 굴렸다. 그는 쇠살창으로 가로 세로 막은 경찰차의 헤드라이트불빛을 빌어 차창 밖으로 흩날리는 눈보라를 퀭해 바라보았다. 순간 머리가 빠개지고 폭발할 것만 같았다. 꾀죄죄한 쌍까풀눈 앞에는 그에게 살해돼 피못 속에 쓰러진 수많은 피해자들의 피로 얼룩진 시체들과 피가 고통스레 이그러진 얼굴들, 피로 반죽된 얼굴들이 마구 떠올랐다. 흩날리는 눈보라 대신 그들의 혼이 마구 몰려왔다. 자기 목을 옥죄이려고 창문에 매달리는 것만 같았다. 순간 머리끼 곤두섰다.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것도 한순간이였다. 악착스러운 살인악마는 인차 랭정하게 침착성을 회복하였다. 뻘쭉한 귀에는 자기가 휘두른 비수에 맞아 피를 뿜기며 쓰러지던 피해자들의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왔다. 순간 살인악마도 공포에 온몸을 으스스 떨면서 움츠려뜨렸다. (아, 수태 죽인 죄를 어떻게 다 감춘단 말인가?) 살인악마는 자기절로도 기딱막혔다. 피해자들의 통곡소리, 살인악마를 잡아치우라는 고함소리가 귀청을 아프게 때렸다. 그는 눈을 딱 감고 요지부동한 채 처음 사건부터 검토하면서 어데다 단서를 흘렸는가고 훑어보고 또 훑터보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럴 여유가 그리 많지 않았다.        경찰차는 눈보라를 헤치고 질풍같이 달려 순식간에 연길시 복판에 자리잡은 연길시공안국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쇠살창을 댄 경찰압송차 문이 드르릉 열리자 김춘일이 전신무장한 경찰들에게 끌리워 차에서 내려섰다. 모래알 같은 눈가루가 죄악이 넘치는 살인악마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달아났다. 김춘일도 알았다, 이제 쇠살창 안에 갇히면 다시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쇠고랑이를 차고 걸으면서 눈보라 무섭게 휘몰아치는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빨리 걸엇!” 김춘일은 경찰한테 떠멀리워 발에 찬 무거운 쇠고랑이를 절거럭거리면서 형사대대 지하심문실 문 앞으로 끌려갔다. 지하 심문실 철문이 드르릉 열리는 순간 김춘일은 도살장에 드러서는 야수처럼 흉악한 빛이 번뜩이는 눈길로 주위를 흘끔흘끔 둘러보았다. “어서 들어갓!” 수사일군 둘이 량쪽에서 그 놈의 량팔을 붙잡아 홱 나꿔채 심문실에 떠밀고 들어갔다. 수사일군들은 지휘부의 심문방안에 따라 살인악마에게 숨을 돌릴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밤도와 심문하기 시작하였다. 평상시에 살인악마는 어둠컴컴한 밤이 좋았다. 자기 죄악적인 꼬리를 감추기 좋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만은 어쩐지 심문실 안의 어둠이 싫었다. 아니, 순간적으로 머리끼 곤두섰다. 숱한 무고한 사람들을 처참하게 살해한 악마가 처음으로 느껴보는 무시무시한 공포였다. 경찰들이 그를 끌어다 심문실 벽에 장대처럼 세웠다. 조명등이 환히 켜지면서 샷타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찰칵! 찰칵! (사진을 찍어? 별짓거리를 다 하는군.) 경찰들이 그를 좌측면으로 돌려세웠다. 찰칵! 찰칵! 이번에는 우측면으로 돌려세웠다. 찰칵! 찰칵! 숫구멍에 무엇인가 쭉 내려와 닿더니 덜컥 멈춰섰다. “신장 1메터 68!” “혈형 AB형!” 경찰의 목소리가 무시무시할 지경으로 적막강산인 심문실 안에 챙챙하게 울렸다. 뒤이어 김춘일은 경찰들에게 끌리워 쪽걸상에 물앉았다. 김춘일은 번개같이 속궁리를 했다. (수사일군들이 무슨 단서라도 잡았는가? 그럴 순 없어. 번마다 내가 지문을 남기지 않으려고 장갑을 끼지 않았던가. 또 사건현지에 족문을 남길가봐 항상 걸레로 말끔히 닦아놓았는데…쳇,) 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사일군들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썰매뛰기를 하는 상 싶었다. (개새끼들이, 증거가 있었으면 진작 잡았지. 흥! 어데서 아무런 증거도 없이 범죄자로 몰려고? 작작 추측해라. 내 절로 불 거 같애? 쳇, 어림도 없어!) 김춘일은 여기까지 생각하자 당당하게 머리를 쳐들고 수사일군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수사일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 강렬한 조명등이 그의 민낯을 대낮같이 환히 비추었다. 그의 일거일동, 아니, 미묘한 표정변화도 손금 보듯 살필 수 있었다. 김춘일은 꾀죄죄한 쌍까풀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쪼프렸다. “성명?” “알면서 묻소?” 수사일군의 비수같은 말이 찌를듯이 내달려와 귀전을 쨩 때렸다. “묻는 말만 고분고분 대답하라. 성명?” “김춘일이요.” “년령?” “38세요.” “아니다. 36세!” “양력설을 쇴으니깐 38센데.” “아니, 36주세야!” “마음대로 할게지. 그게 무슨 대산가?” “묻는 말에나 대답해.” 나이를 대답하는 김춘일의 입이 씰룩거렸다. 38세까지 밖에 살지 못하고 총살당할 자기 악팔자가 기막혔을가. 자꾸 나이를 한살이라도 부풀렸다. 수사일군은 위엄있게 날카로운 눈길로 쏘아보면서 심문했다. “김춘일, 어째 여기에 잡혀왔는지 알만하지? 자기 죄행을 낱낱이 교대하라.” 김춘일은 아주 제쪽에서 억울한 것처럼 눈깔까지 부라리면서 시치미를 땄다. “아니, 내 무슨 죄를 졌다고 생사람을 붙잡아다가 이러는가?!” 수사일군은 사무상을 꽝 쳤다. “네가 지은 죄는 네가 제일 잘 알 거야. 이실직고하지 못할가?!” 그러나 김춘일은 묻는 말에 못들은 척하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뒤이어 아예 입에 빗장을 꾹 지르고 죽은 돼지처럼 묵묵부답하였다. 수사일군은 내심하게 심문하였다. “한가지 묻자. 강탈살인사건 때 강탈한 핸드폰이나 금목걸이, 금가락지, 나이론운동복을 보여줄가?” 김춘일이 눈을 흘끔거렸다. 조명등이 10여메터나 되는 길다란 사무상을 비추었다. 김춘일은 사무상을 흘끔 쳐다보고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자기가 강탈한 숱한 장물과 살인도구가 줄느런히 진렬돼 있지 않겠는가. 수사일군은 사무상 우에서 핸드폰을 쳐들어보였다. “이건 네놈이 지난해(2001년) 9월 22일 밤에 강탈해서 네 녀자친구 양모한테 줬던 파도표 핸드폰이야. 넌 애인 김모한테도 강탈한 핸드폰을 줘서 팔게 했어. 바로 이 핸드폰이지?” “누가 강탈했소? 그 핸드폰을 얻어봤소.” “아직도 거짓말 하겠는가?” 수사일군은 이번엔 금목걸이와 금반지를 쳐들어보였다. “이건 네가 지난해 8월 27일 강간강탈사건 때 강탈해 애인 김모한테 준 거지? 김모는 돈이 딸려 며칠 후에 연길시 지하상점에 가져다가 팔았다. 어떤가? 다 우리 입으로 일일이 말해야 탄백하겠는가?” 장물을 보고 섬찍해난 김춘일은 속으로 애인 김모를 욕했다. (개쌍년, 벌써 다 불었는가? 목숨 걸고 금목걸이랑 금반지랑 핸드폰이랑 빼앗아가져다 줬건만, 세상 인심은 난측이야. 네년은 벌써 로실히 탄백하고 다른 남자를 찾아가 살 궁리를 했구나. 뺑덕이 에미 같은 년, 내 살기만 하면 네년부터 껍질을 벗겨놓겠다. 죽어 귀신이 돼도 악귀 돼서 네년들을 물어뜯어놓을테야!) “살인강탈한 증거물이 다 있는데도 계속 뻗치겠는가? 이 살인도구들도 일일이 쳐들어 해석해야 말하겠는가?” 그러자 태연자약하던 김춘일은 낯에 긴장한 빛을 띠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살인악마는 그렇게 쉽게 자기 죄행을 승인하고 단두대에 오를리 만무하였다. 어지간한 범죄자들은 이쯤 되면 심리방선이 산산이 박산나서 탄백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강심장인 살인악마는수사일군들의 강도 깊은 수사에도 용케도 끈질기게 10여시간이나 뻗치면서 아닌 보살을 떨었다… 김춘일은 아예 눈을 스르르 감고 입에 빗장을 지른 채 속궁리만 베아링처럼 굴렸다. 간혹 입술 속에서 이빨을 앙물기도 했다. (개쌍년, 얼마나 그년을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아꼈는데. 목숨을 내걸고 빼앗은 돈하구 금은장신구를 네년한테 얼마나 가져다 주었어? 고급옷으로 올리감고 내리감아주었건만. 배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 네년은 제 신랑을 잡아먹는 개쌍년이란 말이냐? 내 붙잡힌지 하루도 안돼 물어먹어?) 생각만 해도 원통하고 격분했다. 배신감이 온몸에 덮쳐와 죽기보다 못했다. 쇠고랑이를 차고 갇히지만 않았으면 배신당한 앙갚음부터 하고 싶었다. 축모 자매들처럼 비수로 잔등을 째놓고 엉덩이를 찔러놓지 못한 것이 한이였다. 자기를 버리고 딴 놈한테 안길 궁리할줄 알았더라면 복숭아처럼 복스런 얼굴에 담배로 지져 흉허물을 내놓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터질듯이 풍만하고 망글망글한 젖가슴에 바늘로 자기 이름을 새겨놓지 못한 것이 가슴 아팠다. 하들하들한 허벅다리 살을 한근 쯤 도려내 영영 흉측한 생채기를 내주지 못한 것이 대가리 뻐개지게 아프게 때렸다. (바깥 도적은 말려도 집 안 도적을 말리지 못한다고. 쳇, 그 년이 날 물어먹을 줄 알았으면 제일 먼저 그년부터 죽여버려 입을 틀어막아버리는 건데. 후회막급이야.) 김춘일의 온 몸에는 복수심이 사납게 파도치고 휩쓸고 지나갔다. 귀에는 수사일군이 묻는 말이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순간 그의 꼭 감은 눈 앞에는 생글생글 웃는 어린 처녀 김모의 고통스레 일그러뜨린 복숭아얼굴,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가늘게 들먹이는 그녀의 가긍스런 모습이 삼삼이 떠올랐다. 잡혀 오는 날 밤에도 그녀는 자기 목을 꼭 끌어안고 바깥으로 나가려는 자기를 말렸다. “아무데도 가지 말아요. 요즘 밤에 잡소리도 자꾸 칩데다. 사람의 일을 어떻게 알아요? 몸에 병이 나면 꿈이 많대요. 오늘만은 저와 함께 일찌기 잡시다.” 김춘일은 날마다 경찰들이 집에 뛰쳐들어와 자기를 잡아누르고 쇠고랑이를 채우는 악몽을 꾸군 하였다. 그러다가도 애인 김모 처녀가 흔들어깨우면 와뜰 놀라 벌떡 일어나 어둠 속에 주먹을 마구 휘두르고 발길질을 날리면서 고함까지 쳤다. 악몽을 깨고나면 김춘일은 김모 처녀의 풍만한 몸을 꽉 끌어안고 풍만한 젖가슴부터 만지고 핥고 빨았다. 리모, 축모 자매 등 녀성들을 뒤로 강간하던 장면을 떠올리면서 자못 흥분되였다. 그때 강간하던 그 체위대로 김모 처녀도 뒤로 달려들어 이불 속에서 번개처럼 해재꼈다. 참을 수 없는 흥분과 거치른 숨소리를 훌 토해내고나면 어쩐지 경찰과 쇠고랑이, 쇠살창, 총살… 등 모든 공포가 날아나는 것이 이상했다… 김춘일은 수사일군들이 끈질기게 심문해도 대답 한마디 하지 않고 제 궁리만 했다. (그 년하구 범행을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는데 무슨 사건 때 빼앗은 핸드폰인지 알턱이 뭔가? 혹시 그 년이 내가 자주 밤에 나가 금목걸이요, 금반지요 가져다 줬기에 련속 생기는 살인사건과 련관되지 않는가고 의심할 수도 있지. 그러나 내 밑구멍을 따라다니지도 않은 년이 어떻게 내막을 알아? 경찰놈들이 혹시 그 년이 탄백한 것처럼 핸드폰을 주어다가 사건과 짜맞추기를 하는지 어떻게 아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김춘일은 꾀죄죄한 쌍까풀눈을 번쩍 떴다. 자기 눈을 비추는 조명등불빛에 어둑시그레한 심문실 안도 수사일군도 아무 그림자도 잡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차, 하마트면 교활한 요놈들한테 속을 번 했어. 입을 꾹 다물고 한마디도 내뱉지 않은게 다행이야!) 살인악마 김춘일은 불 보듯 환히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자기가 한마디만 내뱉아도 자기 목에 건 숱한 올가미를 하나하나 풀기는커녕 더 옥죄여든다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때 어두운 심문실 저쪽에서 수사일군의 쇠덩이 구으는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김춘일, 한가지 묻자. 밤중에 어데로 그렇게 자주 싸다녔는가?” 김춘일은 다시 침착성을 회복하고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그 목소리도 너무나도 거침없으면서도 잔잔하게 흐르는 물소리처럼 여유작작하게 들렸다. “어머니한테 대접하려고 물고기를 잡으러 부르하통하강에 다녔소.” 나포되기 전에 얼마나 주밀하게 준비한 뻔뻔한 대답인가. “참 그럴듯한 핑게구나. 여름이면 몰라도 겨울에 땅땅 언 강에 가서 무슨 물고기를 잡았는가?” “모르면서 작작 성가시게 구오. 당신은 겨울에 얼음을 끄고 고기잡이를 할줄 모르는 모양이구만. 부르하통하강 강바닥에 가서 보오.  물고기를 잡느라고 파놓은 얼음구멍이 얼마나 많은가.” “허허. 참 핑게 대자구 얼음구멍을 미리 많이 파뒀더군.” 수사일군은 어처구니 없어 너털웃음을 웃었다. “하난 알아도 둘은 모르는 놈이라구, 야, 넌 얼음구멍을 많이 파놓을수록 네놈이 더욱 의심받을 걸 몰랐지? 엄동설한에 곡괭이로 얼음구멍을 파서 무슨 고기를 잡는가? 얼음구멍이 금방 땅땅 얼어붙는데. 그게 여기엔 황금 300량이 없다는 얘기와 다른게 뭐냐?” 김춘일은 그 여우작작하게 코웃음치는  수사일군이 한심했다. (남은 염라전 앞에서 버둑질하는데 너털웃음을 웃어?  황금 300량? 무슨 얘기야?) 무지한 그가 어찌 “여기에 황금 300량 없다.”는 말의 의미를 알아듣겠는가? 수사일군들은 차바퀴전술을 써서 여러 심문소조로 나뉘여 지휘부의 포치와 심문방안대로 륜번으로 심문하였다. 그들은 김춘일에게 일분도 숨을 돌릴 시간과 공간을 주지 않고 증거를 딱딱 들이대면서 련속 심문을 들이댔다. “그래 겨울에 물고기를 몇초롱씩 잡았어? 왜  밤중에 나갔다가 새벽에야 돌아왔는가?” “거야, 겨울에 고기 잘 잡히지 않아서 그렇지. 뭐.” 김춘일은 신경질까지 발칵 썼다. “별 시시껄렁한 물고기잡이까지 다 묻소? 물고기잡이하구 살인사건 무슨 상관 있소?” “언제 살인사건을 물었는가? 네가 밤중에 왜 싸다녔는가고 물었지? 옳다. 그럼 네가 말해봐라. 어느 살인사건부터 심문하는게 옳은가?” 그제야 김춘일은 밸을 쓰다가 말실수를 한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순간 혀를 홀랑 내밀어 마른 입술을 감빨았다. “우린 네가 그새 어디로 싸다닌 걸 다 안다. 로실히 탄백하고 발편잠을 자라.” 그러나 김춘일은 동문서답했다. “당신들은 정말 지독하오. 밤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소? 물 한고뿌 주오.” “그래, 물 마시고 몽땅 탄백하라.탄백하구  며칠이라도 발편잠을 자라구.” 김춘일은 물 한고뿌를 받아 단숨에 꿀꺽꿀꺽 밑굽까지 다 마셨다, 그는 쇠고랑이를 찬 손으로 물고뿌를 돌려주고나서 한술 더 떴다. “담배 한대만 주겠소?” “여기 무슨 양로원인가 하는가?” 그러나 옆에 앉은 수사일군은 다른 말을 했다. “탄백하면 줄게. 어서 탄백하라. 우린 모든 증거를 다 장악했다. 저걸 봐라.” 다른 조명등이 벽에 걸린 영사막을 비추었다. 이윽고 환등이 켜졌다. 영사막에는 커다란 지문이 나타났다. “이건 장백시장 부근에서 저지른 ‘10.24’입실살인강간사건 때 남긴 지문이야.” 김춘일은 눈을 비비고 한참이나 영사막의 지문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그의 육안으로는 누구 건지 알리 만무하였다. 그는 번개같이 속궁리를 굴렸다. (아니야, 절대 그럴 수 없어. 언제나 장갑을 끼고 범행했어. 털끝만한 지문과 족문도  남기지 않으려고 그날 밤에도 걸레로 구들을 싹싹 닦아놓았어. 어림도 없어. 누굴 중 떠보려고? 이 놈들이 괴상해. 내 지문을 채취하지 않고서도 내 건지 어떻게 알아? 진짜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귀신 같은 놈들이 별 짓을 다한다.) 그때 또 환등편이 바뀌였다. 이번엔 뻘건 손지장이 나타났다. “넌 아마 기억못할 거야. 이건 네가 십여년 전에 법원에서 10년 징역을 받을 때 심문기록에 손지장을 찍은 거야. 그때 지문을 우린 다 대조해보았다.” “?!” “한번 대조해볼가?” 두 지문을 합치자 일치하게 무늬가 똑같았다. 그러자 김춘일은 와닥닥 뛰쳐 일어나며 고함쳤다. “생사람을 작작 잡아라! 누구 지문을 가져다 내 거라고 야단인가?! 너네 경찰들을 곱게 보는 것 같은가?!” “그래, 넌 20대 초반부터 우리 경찰들을 곱게 보지 않았다. 사회에 불만이 많은 놈이였다. 공공장소에서 뢰폭도관을 폭발시켰다. 처녀의 자전거를 강탈했다.” “네놈은 숱한 무고한 사람을 살해했다. 숱한 무고한 녀성들을 강간하고 살해했다. 네놈은 천번만번 죽어도 마땅하다!” “어서 자기 죄행을 탄백하지 못하겠는가?!” “허허허. 하하하!” 갑자기 김춘일은 쪽걸상에 앉으면서 미친 놈처럼 앙천대소했다. “난 확실히 나를 붙잡은 경찰이나 10년 판결을 한 법관을 증오했다. 불공평한 이 사회에 불만이 있었어. 그러나 난 절대 살인강간범이 아니야! 생사람을 잡지 말고 증거를 내놓아라.!” 조명등이 길다란 상을 대낮같이 비추었다. 거기에는 숱한 사건 번호를 단 살인도구가 줄느런히 진렬돼 있었다. 수사일군이 피묻은 식칼을 들어보였다. “이걸 알지? 이건 네놈이 공신촌 부근 세집에서 음식점에 다니던 필모와 김모 처녀를 살해할 때 쓴 식칼이다.” 이번엔 피묻은 망치와 시퍼런 식칼을 쳐들어보였다. “이건 네 놈이 공신촌 부근에서 김모를 때려 까무러치게 하고 박모 처녀를 위협해 부르하통하 강뚝에 가서 강간할 때 쓴 흉기이다. 어떤가? 아직도 탄백하지 않겠는가?!” 수사일군의 말소리는 마디마다 김춘일의 귀에는 저승사자가 죽음을 재촉하며 둥둥둥 울리는 북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리 쉽게 탄백할 김춘일이 아니였다. 그는 필경 10년이나 감옥살이를 하면서 다른 범죄자들한테서 들은 것이 많은 놈, 일정한 반정탐능력을 갖춘 교활한 특수범죄자- 살인악마였으니깐.   어둠 속에서 공포가 저승사자들처럼 스물스물 기여들어 온 몸을 엄습했다. 김춘일의 한 몸으로는 온 몸에 기여든 공포와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휘감긴 올가미를 떨쳐버릴 재간이 없었다. 억울하게 살해된 숱한 혼이 몰려와 사지를 억눌렀다. 숱한 피해녀들이 달려들어 죄악에 찬 손을 붙잡아 수사일군들한테 쳐들어 보이지 않겠는가. 김춘일은 점차 이것이 생시인지 꿈인지 모르게 환각이 오기 시작하였다. 수사일군들이 증거를 들면서 련속 들이대는 심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빗장을 꽉 질렀던 입이 마구 열리면서 묻지도 않는 말을 횡설수설 널어놓기 시작하였다. 심문실 철문이 드르릉 열렸다. 어둠 속에서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릴뿐이였다. 하얀 의사복을 입은 법의가 다가오더니 김춘일의 팔을 걷어올리고 혈관에 주사바늘을 찔러 더러운 뻘건 피를 뽑아냈다. 팔에서도 뭔가 빼갔다. “흡혈귀 같은 놈들, 무슨 짓거리냐? 생사람 피를 뽑아 뭘 해?” “입 다물어!” 뒤이어 수사일군이 대야에 물을 떠가지고 다가왔다. 뒤이어 김춘일의 죄악의 손을 말끔히 씼고 닦았다. “또 뭔 지껄이야?” 수사일군은 뻘건 도장찜과 종이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뒤이어 김춘일을 끌고 가서 손을 쥐여 도장 찜에 가져갔다. “지장을 찍어라!” 김춘일은 될수록 억지로라도 태연자약한 척 했다. 하지만 때 괴죄죄하고 음흉한 낯에 조금 당황한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정신방선이 와그르르 무너지기 시작한 순간이였다. “지장을 찍어 뭘 하는가? 난 살인범 아닌데.” “네 놈은 증거를 들이대도 탄백하지 않잖아? 네 눈으로 직접 확실한 증거를 대조해 봐라.” “허허허. 무능한 놈들, 할 일도 없구나. 쓸데 없이 지문을 찍어 뭘 해? 살인악마가 사건현지에 지문을 남겼더냐?” 김춘일은 손바닥을 도장 찜에 툭 찍어 허연 종이에 땅 찍으면서 횡설수설하며 수사일군의 눈치를 흘끔 훔쳐보았다. 수사일군은 대답 대신 김춘일의 손가락을 도장 찜에 툭툭툭 찍어 허연 종이에 꼭꼭 눌렀다. 어느 손가락이나 돌아가면서 지장을 다 찍었다.      법의가 이번엔 김춘일의 고수머리를 몇대 줴당겨 뽑았다. "아가! 간나새기들처럼 남의 머리는 왜 끄당기는가?! 별 짓을 다 한다. 씨베.' "차차 알게 될 거야." 수사일군은 김춘일을 쪽걸상에 되앉혔다. “우둔한 것들이 피까지 뽑아 뭘 해? 살인범이 사건현지에 피 한방울이라도 흘렸다더냐?” “쓸데 없는 소릴 작작 치고 자기 죄행을 낱낱이 탄백하라!” 김춘일은 아직도 수사일군들이 어떻게 자기가 빼앗아 애인 김모와 녀자친구 양모한테 준 핸드폰을 주어왔는가 하는 것이 리해되지 않았다. 우둔한 김춘일이 어찌 공안국에서 선진적 최첨단과학설비로 그 핸드폰들을 추적하고 감청해왔다는 것을 알겠는가?!       (필자 주: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핸드폰 위치추적은 별로 놀랄 일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20년 전인 당시에 벌써 주공안국에는 핸드폰 위치추적과 통화음성 감청, 록음하는 최첨단과학설비가 있었다. 심지어 이 최첨단설비는 추적핸드폰이 전국 각지 어느 도시 어느 거리, 어느 아파트 부근에서 통화한다는 것을 수시로 준확하게 밝히고 지시할 수 있다.)        주공안국 정보처에서는 최첨단과학설비로 피해자들이 강탈당한 핸드폰번호를 입력하여 핸드폰 위치를 추적하고 통화 음성을 감청하고 록음해왔다.       이런 최첨단과학수사를 한다는 것을 우둔한 김춘일이 어찌 알았겠는가?       수사일군들은 정보처에서 보내온 핸드폰 위치와 통화 정보에 근거해 지하상점 등지에서 핸드폰을 파는 김모와 양모를 신속히 련행하여 핸드폰을 회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풀을 건드려 뱀을 놀래우지 않으려고 양모와 김모를 놔주고 그녀들의 사용중인 기타 핸드폰을 계속 감시해왔던 것이다. 김춘일이 김모와 양모와 통화한 내역도 필림처럼 일일이 록음되였다. 수사일군들은 그 통화내역에 근거해 김춘일을 중점혐의대상으로 점찍고 장시기 감시하여왔다. 김춘일을 나포하는 날 밤에도 김춘일이 핸드폰으로 형제들한테 어머니를 부탁하는 전화하는 것을 듣고 위치추적기로 살인악마가 집에 있다는 것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나포하였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김춘일은 깜깜부지였다. 때문에 귀신이 곡할 지경으로 이상할 수 밖에 없었다. 이때 심문실 벽에 걸린 영사막에 또 놀라운 환등화면이 련속 나타났다. 김춘일은 그 영화 같은 화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장백시장 부근에서 쇠살창을 뜯은 창문, 피못이 된 구들에 쓰러져 있는 남자, 구들을 확대경으로 세심히 수사하는 수사일군들, 구들에 난 지문을 발견하고 촬영하는 수사일군, 확대지문… 제일 마지막에는 수사일군과 한 녀성의 목소리까지  울려왔다.   수사일군: 그 놈이 강간한 위치는 어디오? 녀피해자: 바로 여기, 이 구들입니다. 수사일군: 그 놈이 신을 벗고 구들에 올라왔소? 녀피해자: 아닙니다. 신을 신은 채 올라온 걸로 기억됩니다. 수사일군: 그 놈이 손에 장갑을 꼈습데? 녀피해자:네. 꼈습니다. 아, 아니, 한참 지랄쓰다가 장갑을 벗고 내 엉덩이를 치고 만지고 개지랄 했습니다. …   록음대화를 듣자 김춘일은 깜짝 놀랐다. 너무 놀라 하마트면 쪽걸상에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을번하였다. 대신 저도 몰래 바지에 오줌을 줄줄 내쌌다. 김춘일은 화면을 눈깔이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머리를 수깃하고 그때 범행과정을 꼼꼼히 돌이켜보았다. (그럴 수 없는데. 아차, 그래, 그랬구나. 장갑 끼니 감각이 좋지 않다고. 미친 놈,  벗었댔구나. 뒤로 하다가 그 년 특별히 감각이 좋은 엉덩이를 보고 그만, 아하이고, 이 걸 어쩌나?)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 잠시 육체적인 감각을 찾다가 스스로 목에 건 올가미 그 자체였다. “허허허. 어떤가? 그래도 탄백하지 않겠는가?” 수사일군의 너털웃음과 함께 비수처럼 예리한 말이 어둠을 헤가르면서 날아왔다. “네 놈은 아주 교묘하게 사건을 저지른 후 단서로 될수 있는 흔적을 없애느라고 했다. 그러나 도처에 숱한 단서를 남겼다.” “탄백햇!” “네 놈이 장백시장 부근 세집에서 강간한 녀성, 공신촌 부근 부르하통하 강뚝에서 강간한 피해녀들이 눈이 시퍼래 살아 있다. 일일이 데려다 대질해야 탄백하겠는가?!” “탄백하라!!!” 수사일군들의 불호령에 양가죽을 뒤집어쓴 승냥이 같은 김춘일은 더는 뻗치지 못하고 정신방선이 와그르르 무너졌다. 그는 인간탈을 훌렁 벗어버리고 살인악마의 흉악한 몰골을 드러냈다. 그 놈은 주먹으로 쪽걸상을 꽝꽝 치더니 벌떡 일어나 고함쳤다. “야- 그 쌍년들을 몽땅 죽여버리지 못한게 한이다. 그 간나새끼들을 몽땅 죽였더라면 내 무슨 이런 꼴이 됐겠는가!” 죽음 앞에서는 영웅이 따로 없었다. 살인악마는 자기 죄를 알기에 죽을 각오를 하지 않은 건 아니였다. 그러나 정작 죽음의 문턱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1차반응은 비겁하기 그지 없었다. 리지를 무너뜨리는 미치광이 발악 그 자체였다. “어허허허, 하하하하.” 살인악마는 싯누런 이빨을 드러내놓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러다가도 죽음이 겁났는지 쇠고랑이를 찬 두 손으로 대갈통을 부여잡고 대성통곡쳤다. “어허헉, 으흐흑, 원통하다! 원통해!” 또 덮쳐 왔다. 숱한 원귀들이 이그러진 흉상을 드러내면서 어둠 속에서 덮쳐왔다. 피해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살려주세요. 네?” “뭐든 다 줄테니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난 아직 서른도 안돼요. 제발 살려주세요.” “허허허.” “네 년도 죽어봐라! 내 생긴게 나쁜 놈처럼 생겼다 했지? 그래, 난 살인하고서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는 살인악마야! 허허허.” 분명 자기가 공신시장 부근에서 세집에 뛰여들어 마지막으로 강간하고 살해할 때  처녀가 애걸하는 목소리였다. 두 손을 싹싹 비비는 그녀를 강간하고 살해할 때 분명 자기 너털웃음소리, 호통질- (이게 생신가? 꿈인가?) 살인악마는 환각이 마구 떠올랐다. 저승사자들이 죽음을 재촉하는 칼부림이 휙휙 머리끼 곤두서게 목을 스치고 날아지나갔다. 어데선가 어둠 속에서 저승사자의 북소리 둥둥 울린다. 어둠의 사닥다리를 타고 숱한 올가미들이 내리 드리운다. 어둑컴컴한 단두대, 교수대에 맨발바람으로 오른다. 땅! 땅! 야무진 총소리가 울린다. 대갈통이 뻐개지면서 피묻은 뇌장이 사처로 튕겨난다. 쥐새끼들이 쫑드르르 덮쳐들어 뇌장을 파먹는다. 독수리들이 날아와 눈깔을 빼먹는다. 시체는 화장터에 끌려가 용암처럼 이글거리는 불가마에 처넣어진다. 죄악의 살인악마의 더러운 시체가 정의의 화염 속에서 불타 재가루로 돼 매캐한 시꺼먼 연기로 귀신처럼 하늘로 날아올라간다. 살인악마의 유령이 정처없이 날아다니다가 개똥물에 처박힌다. “앗! 아니야, 아니!” 살인악마는 대갈통을 부둥켜안고 바들바들 떨면서 몸부림쳤다.     “어서 탄백하라!” “살인악마, 네 정체는 백일하에 다 드러났다!” “탄백하고 며칠이라도 발편잠을 자라!” 어둠컴컴한 지하심문실에서 수사일군들의 호통소리가 귀청을 아프게 때렸다. 김춘일은 악몽에서 깨여났다. 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돼, 절대 이렇게 죽고 말 순 없어. 어떻게 하나 이 생지옥에서 벗어나야 해. 불공평한 이 놈의 사회에 더 보복해야 해. 꼭 간나새끼들을 백명 강간하고 살해해 세상에 제1호 악명을 남겨야 해.) 살인악마는 철 같은 증거 앞에서도 쉽게 죄행을 자인하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어떻게 법망을 벗어나 재차 악행을 저지를 궁리를 망녕되게 시도했다. 김춘일은 금방 정신 나간듯이 말실수를 한 것을 못내 후회하였다. “김춘일, 자기 죄행을 아직도 탄백하지 않겠는가?” “내 무슨 죄 있다고 생사람을 잡아다가 이렇게 고문하는가?” “금방 피해녀들을 다 죽였더라면 이렇게 잡히지 않았겠다고 후회하지 않았는가?” “야- 이러지 맙소. 밤낮 자지 못하게 심문하니까. 정신 나간 소릴 친 거 물고 늘어지지 말라이! 흥.” 김춘일은 사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또 괴변을 부리기 시작했다. “지금 몇시오?” “몇시든 관계 말고 탄백이나 해라.” 김춘일은 횡설수설 게두덜거렸다. “여우 새끼 같은 놈새끼들이, 사람을 자지 못하게 련속 심문하니 어디 제 정신을 차리겠냐?” 어둠 속에서 수사일군의 쇠덩이 구우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10.24’ 살인강간강탈사건 때 피해녀 리모를 데려다 대질하겠는가? 그러기 전에 어서 탄백하라.” 기실 언제든지 수사일군들의 말대로, 리모 녀성을 심문실 바깥 암실에 데려다 커다란 불투명유리창으로 심문실 안에 갇힌 김춘일의 몰골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잖은가. 김춘일은 일정한 반정탐능력을 갖췄기에 그걸 모를리 없었다. “넌 그때 신을 신고 장판널에 남긴 파도무늬 간 운동화 발자욱은 육안으로 볼 수 있어 다 닦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구들장판에 남긴 손바닥 자욱은 제대로 닦아버리지 못했다. 어떤가? 어서 탄백하라.” 김춘일의 정신방선은 물구멍에 뚫린 모래성처럼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입에 빗장을 꽉 지르고 침묵을 지켰다. 그는 죄행을 자인하는 날이면 저승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죄를 자인하지 않는 한 네놈들이 무슨 수가 있어? 이제 또 무슨 짓거리를 하는가 두고 보자.) 그는 군견이라도 자기 발자욱을 따라 냄새를 맡으면서 따라올가봐 봄과 여름, 가을에 조양천진과 연길시 공신시장 부근에서 사건을 저지른후 늘 부르하통하 강물을 건넜다. 군견도 물을 건너면 발자욱 냄새를 따라올 재간이 없다는 말을 진래감옥에 있을 때 다른 선배죄수한테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고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그는 뭍에 오르기 전이면 항상 강가에 앉아 한참이나 발과 다리를 싹싹 씻고서야 사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어둠을 타 도적고양이마냥 집에 어슬렁어슬렁 기여들어가군 하였다. 그는 이 시각에도 자기 범행은 빈틈이 없었다고 믿고 인차 침착성을 되찾고 아닌 보살을 떨었다. “당신들은 이제 금방 찍어간 지문을 가지고 그러는데. 난 그 사건과 아무런 관계없소. 괜히 생사람을 잡지 말고 내놓으라이. 집에 계시는 로모를 내 없으면 누가 모시겠소? 누구나 다 엄마 있잖소? …” “닥쳣! 우린 살인악마를 놔둘 수 없다. 네 집 형편을 몰라 그러는가 해? 5남매나 되는데 살인범을 처단해도 근심할 필요없다. 어서 탄백하라.” 걸걸한 목소리 들렸다. 그 목소리 임자는 김광진 국장이였다. “김춘일, 아닌 보살을 작작 떨고 영사막을 보라.” 김춘일은 머리를 들었다. 영사막에는 두개 지문이 나타났다. 두 지문을 합치자 일치했다. 이번엔 다음과 같은 문자가 나타났다.   강간사건 피해녀 질 속의 정액 DNA감정결과 김춘일 DNA와 완전히 일치함. 강간사건 때 사건현지에 남긴 음모(阴毛)와 김춘일의 머리카락의 유전자도 완전히 일치함.   이건 김춘일도 상상 밖이었다. “저건 뭐요?” 김광진 국장이 비수로 심장을 찌르듯이 최후일격을 가했다. “네 놈은 ’10.24’, ’12.02’ 등 계렬살인강간략탈사건 때 숱한 피해녀들을 강간하고 그녀들의 몸 속에 숱한 정액을 남겼다. 또 요대기 위에나 구들장판에도 수태 흘려 놓았다. " (아차! 그때 난 다 강간하곤 피해녀 앞에서 커다란 거시기를 흔들면서 자랑하며 수건으로 닦지 않았는가. 그게 단서로 될줄이야)        "네놈  머리털을 뽑은게 이상하지? 네 머리털에서 채취한 유전자와 강간사건현장 구들장판과 요 우에 남긴 검부지(털) 유전자는 완전히 일치해. 이게 제일 중요한 단서로 됐다. 또 피해녀 질 속 정액의 유전자와 네 유전자가 일치하다는 것이 과학수사에 의해 검증됐다. 네 놈이 바로 조양천진과 연길 계렬살인강간략탈사건의 흉수라는 것이 철같은 증거로 증명됐다.” 꽈당탕! 절거럭! 순간 김춘일은 쪽걸상에서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쇠고랑이를 찬 두 손으로 대가리를 싸쥐고 아우성쳤다. “아하하하, 이럴 수가?!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어허, 헉헉, 아이고-” 10여명이나 살해한 살인악마도 철 같은 증거 앞에서 더는 뻗칠 수 없었다. 살인악마는 정신방선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죽어가는 돼지처럼 비명을 질렀다. 그는 살인하고 강간하고 강탈해도 “손과 발만 잘 건사하면 아무런 단서를 남기지 않는다.” 그런줄만 알았다. 그러나 피해녀들의 몸 속에 남긴 정액도 증거로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불여우 같은 놈들, 피만 뽑아가는가 했더니 무슨 듣지도 못한 뭐? 유전자라는 거 뽑아다 다 대조했는가? ) 그는 피를 뽑아가도 대수롭잖았다. 그는 어느 사건현지에나 자기 피 한방울 흘린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지한 그는 시대최신과학의 발전변화에 따라 정액을 채취해 유전자를 감정하는 새로운 과학수사를 깜깜부지였던 것이다. 옛날에 그런 말도 있지 않는가? 세상에서 남자들은 세 끝을 주의하면서 살라고. 혀끝과 손끝, 좆끝을 주의하라고. 혀를 잘못 놀려 정치착오를 지지 말아야 하며, 손끝을 잘못 놀려 도적질하거나 탐오하거나 살인하고 강탈해선 안되고, 좆끝을 잘못 놀려 바람 피우거나 강간하지 말아야 한다고. 속담에 산에 걸려선 넘어지지 않지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고. 살인악마 김춘일은 아무리 단서를 남기지 않으려고 빈틈없이 손발을 건사하느라고 모지름을 썼지만 생각지도 않은 정액DNA검증에서 걸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하였다. 수사일군들은 소뿔은 단김에 뺀다고 김춘일한테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드센 정치공세를 들이댔다. “철 같은 증거가 다 있다. 계속 떼를 쓰겠는가?죄행을 낱낱이 탄백하라!” “죄는 지은 자한테로 간다고 네 놈은 죽을 죄를 지었다. 몽땅 탄백하지 못하겠는가!” 수사일군들은 땅바닥에 쓰러져 바지에 오줌 똥까지 내싸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김춘일을 쪽걸상에 붙들어앉혔다. 김춘일은 보통 신속히 강간하고 현장에서 달아나기 위해 피해녀들을 벽이거나 창문을 잡고 허리를 굽히게 하거나 구들에 절반 꿇어엎디게 하고 뒤로부터 달려들어 강간하였다. 그는 그렇게 강간하면 자기 민낯을 피해녀들한테 로출시키지 않기에 안전하다고 믿었다. 어떤 때는 례외도 있었다. “10.24 사건 때 리모 녀성이 성병이 있다고 하자 상을 징그리던 김춘일은 리모 녀성을 구들바닥에 반쯤 굻어엎디게 한 후 뒤로 강간하였다. 그런데 리모 녀성이 통곡치면서 구들바닥에 꽈당 쓰러졌다. 또 김춘일은 감각이 무뎌 제맛을 보지 못해 장갑을 벗고 피해녀의 엉덩이를 쨕쨕 치고 만지면서 강간하였다.그때 살인악마는 구들바닥을 짚어서 손바닥과 지문을 남겼다.        (그 놈의 보들보들한 엉덩이를 만지고 때리다가 화근을 남길줄이야.) 또 한참 강간하는데 리모 녀성이 오열을 토해내면서 몸을 탈며 버둑거리자 그만 측면으로 눕혀놓고 마주보면서 변태적인 체위로 마구 강간하였다. 그리하여 리모 녀성에게 흉악한 야수  민낯을 로출되고 말았던 것이다. 수사일군들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우리가 일일이 증거를 다 들어야 탄백하겠는가! 어서 탄백하라!” “야, 이 새끼들아, 백명 간나새끼들을 강간하고 살해하지 못한게 한이다. 불공평한 이 사회에 보복하지 못한게 최대 한이다! 개새끼들아, 네놈들을 몽땅 죽여치우고 싶다!” 김춘일은 이빨을 뿌드득뿌드득 갈면서 속으로 부르짖었다. 철 같은 증거 앞에서 살인악마도 용빼는 수가 없었다. 정신방선이 물 먹은 모래성처럼 와그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오후부터 김춘일은  죽을바하고는 통쾌하게 살인하고 강간하고 강탈한 죄행을 온 세상에 자랑하고 싶었던지,  살인악마의 본성을 드러내면서 자랑삼아 줄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밑도 끝도 없이 깜깜한 어둠을 타서 도처에서 행악질하던 살인악마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169    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3) 댓글:  조회:2236  추천:0  2018-09-30
                               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김장혁             연길시 “12.02”특대입실살인사건               기민한 담당경찰은 털끝만한 의혹도 놓칠 수 없었다. 그는 김춘일한테서 수사의 눈길을 떼지 않았다. (일부 마을사람들이 김춘일을 마음이 어지고 효자이고 모범남편이라고 했지만 혹시 가면을 뒤집어쓴 이중인인지 누가 아는가?) 담당경찰은 어쩐지 여러가지 의혹을 물리칠 수 없었다. 고수머리라든지 키도 비슷했다. 다만 입고 다니는 웃옷이 누르스럼한 잠바가 아닐뿐이였다. 이날도 담당경찰은 사복하고 연길 비행장 근처에 자리잡은 임평촌 제6촌민소조 부근 큰 길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백양나무 뒤에 숨어 담배를 풀썩풀썩 피우면서 김춘일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한식경이나 기다렸는데도 김춘일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전 아홉시 반쯤에 담당경찰은 마을에서 나오는 길을 놔두고 김춘일의 집 뒤 밭으로부터 큰길에 난 오솔길을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한참 후 아니나다를가 김춘일이 물초롱과 반디를 들고 옥수수밭으로 해서 나타났다. 김춘일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어질어질해 보였다. 담당경찰은 외면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스적스적 시내 쪽을 바라고 가는 척 하였다. 김춘일이 부르하통하 쪽으로 멀리 간 후에야 그는 자전거를 길 옆에 세워놓고 다른 색갈의 옷을 갈아입고 태양모까지 쓰고 김춘일을 미행하였다. 김춘일은 그런줄도 모르고 부르하통하에 가서 반디로 물고기잡이를 하는 것이였다. 마가을이여서 부르하통하강물은 그리 깊지도 않았고 조약돌이 환히 들여다보일 지경으로 맑았다. 김춘일은 한참 반디질하더니 따뜻한 양지바른 모래둔덕에 가서 힌들 들어누워 태양모로 낯을 가리우고 쿨쿨 자는 것 같았다. 그는 기실 고기잡이에는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가 물고기를 잡으러 자주 부루하통하에 온다는 가짜신호를 보여주려는 것뿐이였다. 혹시 누가 밤중에 자주 어데 갔는가고 차문하면 어머니한테 대접하려고 물고기를 잡으러 부르하통하에 갔다고 에둘러대려는 것이였다. 제딴에는 묘책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강물이 차고 심지어 얼어붙으면 밤중에 부르하통하게 물고기 잡으러 갔다는 핑게를 에둘러대기 어렵게 돼 골머리를 앓았다. 김춘일은 한참 자는 척 하면서 태양모 채양 밑으로 교활한 눈깔을 판들거리면서 강변을 살폈다. 강뚝에서 산보하는 척하는 담당경찰을 발견하였다. 불길한 징조를 예감한 김춘일은 부시시 일어나 반디를 들고 차디찬 강물에 들어서서 반디질하는 척하면서 강뚝에서 오가는 담당경찰을 흘끔흘끔 훔쳐보았다. (어디서 딱 본 놈 같은데.) 김춘일은 속이 덜컥 했다. 죄를 진 놈은 항상 발편 잠을 자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김춘일은 자기 뒤를 따르는 사람만 보면 미행하는 경찰인가고 해 질겁해 경각성을 높이군 하였다. 그는 대충 반디질하는 척 하고는 반디를 훌훌 털어버리고 감아쥐더니 뭍으로 올라왔다. 뒤이어 그는 물초롱과 반디를 들고 마을 쪽으로 스적스적 걸어갔다. 담당경찰의 감시는 계속 뒤따랐다. 그러나 사람 열이 도적 한놈을 붙잡지 못한다고 경찰들이 고강도수사와 감시를 하는데도 김춘일은 밤이면 도적고양이처럼 출몰하면서 계속 악성사건을 저질렀다. (어디 네놈들이 날 붙잡아봐라. 흥! 이제도 백명을 죽이겠다.) 2001년 11월 4일 살인악마는 자정이 넘어 연길시 장백향 신풍촌의 리모 녀성네 집 부근에 이르렀다. 리모 녀성은 마당에 있는 변소로 들어가 소변을 보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집 안에 들어가자 문걸개를 걸려고 돌아서는 순간 비수가 문틈으로 쑥 들어왔다. “문을 열어, 안그럼 죽인다.” 나지막하면서도 위압적인 “명령”이였다. 뱀에게 혼난 사람은 바줄만 봐도 뱀인가고 놀란다고 리모 녀성은 깜짝 놀랐다. 요즘 살인악마가 자주 출몰한다는 것을 들은 그녀는 바들바들 떨면서 문을 열었다. 악마는 비수를 리모 녀성의 목에 가져다대고 을러멨다. “으흐흐, 짹짹거리면 죽인다. 난 숱한 사람을 죽였기에 죽는 걸 무서워 하지 않는다. 내 말 고분고분 들어. 까딱하면 죽인다. 알았어?” 리모 녀성은 온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전등불을 껏!” 잘칵! 전등불이 꺼졌다. 악마는 또 리모 녀성을 이불 우에 엎디게 하고 뒤로 달려들어 강간하였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집 안을 뒤져 운동복 한벌과 금목걸이를 강탈해가지고 부랴부랴 도망쳤다. 수사일군들은 리모 녀성의 사건신고를 받고 사건현장에 급히 달려왔다. 세심한 수사한 결과 또 그 살인악마가 한 짓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법의가 리모 녀성의 몸에서 채취한 정액도 또 그 놈의 것이라는 것이 판명되였다.      2001년 12월 2일 새벽 한시에 연길시 연서가 원지거 공신시장 부근에서 또 연길시를 들썽케 한 특대입실살인사건이 발생하였다. 한 녀성이 전화로 형사경찰대대에 사건보고를 하였다.      “경찰입니까? 내 딸과 한 청년이 세집에서 몽땅 살해당하였습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도 있단 말입니까?”      당직수사일군은 황급히 필로 적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상세히 이야기해주십시오.” “내 딸애는 공신시장 부근 한 음식점에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련 나흘동안이나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음식점에 찾아가니 딸애와 남자친구는 출근하지 않은지 나흘이나 된다고 합디다. 그때 식당주인네 어린애가 ‘저기 아재네 집이 있습니다.’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 어린애를 따라 세집에 가보니 문에 자물쇠가 잠겨져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자물쇠를 마스고 낮다란 세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으흐흑! 글쎄 애들이 피못 속에 쓰러져 있지 않겠습니까. 엉엉-” 전화기 속에선 울음소리가 비통하게 울렸다. “세상에 어디 이런 생벼락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딸이 무슨 죄를 졌다고 이럽니까? 어허허, 헉헉!” 당직수사일군은 피해자 부모 그리고 세집과 음식점 주인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일일이 기록한 후 즉시 형사경찰대대 지도부에 보고하였다. 김광진 국장과 김경선 부국장, 조경룡 부대대장 등은 기술수사일군들을 이끌고 즉시 사건현지에로 출발하였다. 숱한 경찰차가 공신시장 부근으로 질풍같이 달려갔다. 그들은 피해자 부모의 안내를 받으면서 사건현지인 세집으로 찾아갔다. 낮다란 세집의 출입문 유리창 한쪽이  깨진 것을 보아 악마가 유리창문을 깨고 집 안에 들어간 것이 분명하였다. 수사일군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자그마한 구들에 두 남녀의 시체가 나란히 피못 속에 쓰러져 있지 않겠는가. 시체 썩은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속옷 밖에 입지 않은 남자 필모의 시체를 보아 이 한쌍의 처녀총각이 굳잠에 빠진 후 살해당한 것 같았다. 필모의 목에 비수에 찔린 상처가 깊숙이 나 있었으며 상처에 검붉은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처녀 최모의 시체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얼굴이고 가슴이고 허벅다리고 어데라 없이 칼로 오리오리 오려 놓았고 배까지 쭉쭉 가르고 음부를 비수로 마구 란도질해놓았었다. 흉수는 비수로 흰 벽을 쭉 긁어 벽의 회가루를 그녀의 음부에 뿌려놓았다. 그 참경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놀라운 것은 그녀의 음부에는 피와 찐득찐득한 정액이 섞여 있는 거이였다. 극악한 살인악마는 살인현지에서 그녀를 강간하고 살해한 것이 분명하였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는 살인악마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악독한 짓을 할 수 없었다. 피해자의 부모들은 수사일군들의 손을 꼭 잡고 통곡쳤다. “이 원쑤를 꼭 갚아주십시오.” 그 참경을 수사일군들은 격분을 참지 못했다. 심지어 김광진 국장은 너무 격분해 심장병이 도져 사건현지에서 까무러칠 지경이였다. 그리하여 수사일군들은 경찰차에 김광진 국장을 황급히 병원에 호송하였다. 수사일군들은 이 극악한 살인악마를 하루속히 나포할 결심을 다지고 또 다지면서  이를 악물었다.                            악마를 나포 쥐는 어둠을 타 싸다니며 교묘하게도 고양이 눈을 피해가면서 계속 아파트 벽을 구멍내고 집 안에 뛰여들었다. 그러나 달빛이 환해지고 함박눈까지 펑펑 쏟아지기까지 해 큰거리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한번 사고를 내고서는 굴 속에 깊숙이 숨어 바깥 동정을 살피고는 또 요행을 바라고 싸다녔다. 살인악마는 겨울이 닥쳐오자 달밤이 싫었고 함박눈이 염오스러웠다. 이젠 부르하통하 강물이 얼어붙어서, 금방 파놓은 얼음구멍도 땅땅 얼어붙어서 밤중에 반디를 들고 고기잡이를 하러 다녔다고 더는 핑게를 대기 힘들었다. 악마에게는 커다란 달이 똑마치 자기를 감시하는 경찰들의 커다란 눈과 커다란 망원경 같아보였다. 함박눈은 마치 경찰들이 사무상에 펼쳐놓은 커다란 심문지처럼 보였다. 달과 함박눈을 보기만 해도 악마는 머리끼 곤두섰다. 악마는 궁리 끝에 밤중에 부르하통하에 가서 얼음을 끄고 고기를 잡는 척 하였다. 거의 며칠에 한번씩 강바닥에 가서 눈을 치고 곡괭이로 얼음을 끄고 커다란 구멍을 파 놓았다. 무지한 악마는 얼음구멍을 많이 뚫어놓을수록 고기잡이를 했다고 집식구들한테 핑게를 대기 좋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얼마나 우둔한 악마인가? 살인악마가 똑마치 공안기관과 한바탕 겨루려는듯이 련속 특대입실살인사건을 저지르자 김광진 국장은 밤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는 이불짐을 지휘부 사무실에 가져다 놓고 편이국수로 대충 끼니를 에우면서 불철주야로 련 한달 남짓이 집에도 돌아가지 않고 사건해명을 지휘하였다. 그의 안해는 빨래를 깨끗이 빨아서 지휘부 사무실에 가져다주었고 때때로 밥반찬을 해서 날라오군 하면서 남편의 사건해명사업을 지지해주었다. 그 장면을 보고 주공안국 마효동 국장도 여간만 감동돼 하지 않았다. 김광진 국장은 일찍 공안부로부터 숱한 악성 형사사건을 해명한 “전국 10대영웅모범”이란 영예칭호를 받아 안았다. 그는 이번 사건을 해명하지 못하면 정부와 인민군중들에게 교대하기 힘들고 인민군중들의 생명안전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최후결심을 다지고 수하 수사일군들에게 다음과 같이 엄숙하게 말하였다. “이 사건을 해명하지 못하면 우리 공안국의 치욕입니다. 음력설 전으로 이 사건을 해명하지 못하면 난 국장을 사직하겠소.” 그러자 수사일군들도 이구동성으로 태도표시를 하였다. “음력설 전에 이 사건을 해명하지 못하면 우리도 사직하겠습니다.” 김광진 국장은 미더운 눈길로 수사일군들을 둘러보면서 최후결전에 나설 것을 호소하였다. “우리는 백성들의 생명안전을 책임진 수사일군들입니다. 하루 속히 그 살인악마놈을 나포하지 못하면 백성들의 생명안전이 얼마나 더 큰 위협을 받게 될지 모릅니다. 의심스러운 자들을 한 놈도 놓치지 말고 인민군중들에 의해 참답게 수사해야 합니다. 털끝만한 단서라도 우리 그물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김광진 국장은 배수진을 치고 최후결전을 포치하였다. 김광진 국장과 수사일군들은 개인의 안위나 벼슬 같은 것은 념두제 두지도 않았다. 그들의 한결 같은 념원은 하루속히 살인악마를 나포하여 백성들의 생명안전을 담보하려는 것뿐이였다. 수사일군들은 김광진 국장의 지시대로 최후결사에 떨쳐나섰다. 2002년 양력설이 지나 력사상 보기 드문 폭설이 쏟아져 온 대지를 은세계로 만들어 놓았다. 어두운 밤이면 쥐새끼처럼 출몰하는 살인악마가 죄악의 발자욱을 감추기 힘들게 되였다. 수사일군들과 경찰들은 이 좋은 시기를 놓치지 않고 단서를 잡기 위해 야밤에도 중점지역의 순찰을 강화하였다. 김광진 국장은 경찰들과 함께 무릎까지 풍풍 빠지는 눈길로 중점지역을 순라하면서 매복진을 일일이 돌아보았다. 뒤이어 지휘부에 돌아온 그는 마효봉 국장과 함께  연길과 조양천진 략도를 땅바닥에 펼쳐놓고 밤늦도록 사건을 연구하였다. 사건현지분포도를 보면 부르하통하 강뚝에서 3차, 조양천진 동쪽구역에서 6차, 연길시 서쪽구역에서 도합 15차 발생하였다. 김광진 국장은 지휘봉으로 사건현지분포도를 톡톡 치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최근 범행로선을 보면 조양천진 동쪽지역과 연길시 서쪽지역에 집중되였다. 조양천진 동쪽, 연길시 서쪽의 연서, 하남, 연남, 신풍, 연서 구역이 아닌가!...) 한참 생각에 잠겼던 김광진 국장은 마효동 국장에게 머리를 돌렸다. “그 놈은 주요하게 조양천진 동쪽 구역과 연길시 서쪽과 남쪽 구역에서 범행했습니다. 그 놈은 굴어귀 풀을 먹지 않느라고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끝내 우리한테 자기 굴어귀를 드러내놓고 말았습니다.” 마효동 국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아무리 교활한 여우라고 해도 꼬리 길면 밟히기 마련이지.” 김광진 국장은 계속해 자기 견해를 피력하였다. “우리가 이제껏 재래식 수사를 한데 한계가 나타났습니다. 우린 항상 어데서 사건이 생기면 당지에서 혐의자를 나포하려고 당지수사에 주력했습니다. 룡정시공안국에서는 조양천에서, 우리 연길시는 연길시에서 수사했지. 이번에 우린 그 약점을 극복하고 조양천과 연길을 한 사건현지판으로 보고 룡정시와 우리 시가 련합해 수사합시다. 어떻게 보면 조양천과 연길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동일한 한 놈이 저지른 범행일 수도 있습니다.  그 놈은 이 곳 지리환경을 아주 잘 아는 놈입니다. 범행하고는 자기 굴로 잠복하는 놈입니다. 꼭 이 구역 안에서 출몰하면서 범행하고 있는 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색연필로 조양천 동쪽구역과 연길 서쪽구역에 커다란 원을 휙 쳐놓았다. 마효동 국장은 탄복했다. “맞소. 그 놈은 전과자라면 반정탐능력이 있을 수도 있소. 때문에 자기 마을이거나 자기 집 근처에서는 범행하지 않았을 것이요. 하지만 련속 범행하고는 자기 집으로 드나든게 분명하오. 우리는 그 수상한 놈의 소굴부터 사출해내야 하오.” 김광진 국장은 마효동 국장과 한창 연구한 후에도 밤이 깊도록 혼자 널다란 지휘부 사무실에서 뚜벅뚜벅 거닐면서 살인악마의 특점을 분석연구하였다. 그는 머리 속에 이번 살인악마의 잔인무도한 몰골을 그려가기 시작하였다. “일부 사건들에서 그 놈은 이렇게 고함치지 않았는가. ‘난 흑룡강성에서 온 살인범이다.’, ‘난 목단강에서 온 살인범이다.’, ‘난 숱한 사람을 죽였다. 아무 것도 무섭지 않다.’ 이 몇마디 말을 련계시켜보면 네 놈은 가능하게 흑룡강성과 일정한 관계 있는 놈, 연길시 부근에서 사는 놈일 수 있다. 키는 1.68메터 좌우, 고수머리, 좀 걀쭉한 얼굴…” 김광진 국장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창 밖을 내다보면서 계속 사건을 추리해나갔다. (그 놈이 수많은 녀성을 강간하였고 핸드폰도 여러 대 강탈해갔다. 그 놈이 혹시 빼앗아간 핸드폰을 쓸 수도 있지 않을가?) 그는 인차 전화를 걸어 특수정보부문에 그 놈이 강탈해간 핸드폰통화정부를 수집한 정황을 알아본 후 “그 놈의 전화거래 정보수집을 계속 다그치시오.”하고 지시하였다. 김광진 국장은 연길과 조양천진의 략도에 표시해놓은 사건발생지를 일일이 살펴보았다. (‘10.24’사건이 발생한 날 새벽 4시에 빨간 조끼를 입은 자가 인평촌 일대에서 반디와 물초롱을 들고 나타나지 안았는가. 혹시 인평촌에 그 놈의 소굴이 있지 않을가? 인평촌을 서캐 훑듯 해서라도 그 수상한 놈을 찾아내야 한다.) 그는 전화로 인평촌 구역을 책임진 담당 수사일군과 경찰들에게 지시하였다. “인평촌에 있는 외지인들을 다시 세심히 조사하시오. 특히 흑룡강성에서 온 외지인들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재수사하여 살인악마와 체모특징이 비슷한 자가 있으면 주시하시오.” “예. 한 자가 좀 수상해 미행해 정찰하는 중입니다.” 그가 전화를 놓고 창 밖을 내다보니 벌써 2002년 1월 17일 새벽이 푸름히 밝아오고 있었다. 전체 수사일군들은 새로운 지시에 따라 인평촌과 신풍촌을 중심으로 인민군중들을 동원하여 단서를 하나하나 장악하면서 재차 긴장한 수사에 착수하였다. 환한 달빛 속에서 살인악마의 유령이 실뱀처럼 알릴듯말듯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연길시 의란진파출소에서도 제보가 들어왔다. “십여년 전에 흑룡강성에서 우리 의란진 명랑촌으로 의사해온 김춘일이라는 전과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델 이사간다는 말도 없이 모자간이 잃어졌습니다.” 김광진 국장은 즉시 전화로 담당 경찰과 수사일군을 찾았다. 담당경찰은 전화에서 “호구조사를 할 때 의란진 명랑촌 사람으로 등록된 것을 보고 흑룡강성에서 온 사람인줄은 몰랐댔습니다. 다만 그가 십여년 전에 10년 징역을 한 적이 있는 전과자라는 것을 알고 감시하는 중입니다.”라고 회보하였다.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한게 없소?” “있습니다. 김춘일은 아무 영문도 없이 마을의 녀성이 집 울안 바줄에 널어놓은 녀성의 속옷을 비수로 오리오리 오려놓은 적이 있습니다. 또 여름부터 내내 밤중이면 고기잡이를 나간다고 반디와 물초롱을 들고 부르하통하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다가오자 괭이로 얼음을 까고 고기를 잡는다고 했는데 요즘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택시를 타고 어덴가 자주 다닌다는 택시 운전수의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김광진 국장은 전화기에 입을 바짝 가져다 대고 지시하였다. “그 택시운전수를 찾아 김춘일의 정황을 널리 수사하오.” “네. 알았습니다.” 이튿날 해당 수사일군한테서 급촉한 전화가 왔다. “새로운 단서가 잡혔습니다. 그 택시운전수의 말에 의하면 이전에 사건이 자주 발생한 나날에 김춘일은 항상 밤중에 자기한테 전화를 쳐서 택시를 타고 조양천이 아니면 연길 쪽으로 여러번 다녔답니다.” “오, 새로운 정황이구만.” “그가 택시를 타고 다닌 날이면 꼭꼭 살인사건이나 강간사건이 발생해서 택시운전수는 여태껏 김춘일을 수상해했답니다.” 기실 김춘일은 눈이 내리고 겨울이여서 마을을 빠져나가던 옥수수밭도 없어진데다가 눈길에 꼬리를 밟힐가봐 범행수단을 바꿔 밤중이면 택시를 불러 타고 마을을 빠져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교활한 김춘일이라고 해도 지정된 택시를 자꾸 불러 탄 자체가 역은 새 방아간을 지난 일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택시 운전수가 자기를 의심해 후에 파출소에 신고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어느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중, 김춘일은 택시 운전수가 자기를 의심하기 시작한 줄도 모르고 또 그 택시를 불러 탔다. 택시 운전수는 그날 밤에도 사건을 저지르고 잔뜩 흥분돼 횡설수설하는 김춘일을 보고 담대하게 한미디 슬쩍 물었다. “네가 연길과 조양천 살인사건들과관계없는가? 만약 네가 한 짓이면 나쁜 짓을 그만두고 일찌기 자수해라. 이후엔 내 택시를 부르지 말아라.” 김춘일은 대뜸 반발했다. “야, 야, 내 섭섭하게 군게 없잖아? 항상 택시비를 푼푼히 줬는데도 그래? 진짜 의리도 없구나.” “네가 붙잡히면 괜히 나도 흉수를 도왔다고 말을 듣겠다.” 김춘일은 호언장담했다. “근심하지 말라. 내 붙잡힐 거 같니?. 아무리 사건을 저질러도 공안기관에서 해명하지 못해. 범행할 때 손과 발을 잘 건사하면 붙잡히지 않는다. 이렇게 장갑을 끼고 발자욱이랑 걸레로 싹싹 지워버리면 돼. 단서가 없는데 어떻게 붙잡아? 허허허.” 택시 운전수는 김춘일을 점점 더 수상해하면서도 자기한테 련루될가봐 제보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기가 죄를 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수많은 녀성들이 강간당하고 죽어가는 것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저 놈이 언제 내 안해도 살해할지 누가 알아?) 택시 운전수는 공개수사통고를 보고 큰 마음을 먹고 수사일군들을 찾아 제보하였다. 또 전화감청처 수사일군한테서 중요한 정보가 날아왔다. “김춘일은 강탈한 숱한 핸드폰 하나를 녀자친구 양향화한테 줘서 연길시 지하상점과 핸드폰시장에 가져다 눅거리로 처리한 적이 있음. 또 한대는 형을 줬는데 단서로 잡힐가봐 겁이 났는지 형한테서 핸드폰을 되찾아다가 강물에 처넣었음.” “살인악마는 바로 김춘일, 그 놈이야.” 김광진 국장은 지휘부에서 이 중대한 정보를 입수한 후 뇌리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수많은 의문이 련달아 떠올랐다. (그 놈은 피해자들이 묘사한 범죄자의 체모특징과 흡사해. 손과 발만 잘 건사하면 범행해도 우리가 해명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럼 뭔가 여러차례 범행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뭐? 걸레로 발자욱을 닦으면 단서가 없는데 어떻게 붙잡는가고? 허허허. 이건 수많은 사건현지에 발자욱을 찾기 어려웠던 것과 맞아 떨어지지 않는가. 그럼 그 놈은 우리가 해명하지 못한 어떤 사건을 저지른 전과자가 아닌가?) 김광진 국장은 과단성 있게 김춘일을 중점범죄혐의자로 점찍고 수사일군들에게 즉시 김춘일의 범죄서류와 평시복장, 장물(핸드폰 4대, 호출기 한대, 금가락지와 금목걸이 등), 사건조작시간 등 정황을 더 상세히 수사할 것을 지시하였다. 며칠후 인심을 격동시키는 희소식이 전해왔다. 김춘일은 전과자로서 흉수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는 원래 보통키에 힘도 별로 없었지만 생김새보다는 달리 자존심과 복수심이  아주 강했다. 그는 흑룡강성 동녕현에서 출생했다. 한번은 그는 사소한 일로 말다툼이 벌어졌댔다. 공공장소에서 보복하려고 여러차례 도폭뢰관을 폭파하여 동녕현공안기관으로부터 보름동안 구류처분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들의 더러운 소문이 돌자 어머니는 더는 마을에서 머리를 들고 살기 어려워 1982년도에 연길시 의란진 명랑촌으로 이사해왔다. 그러나 김춘일은 악습을 고치지 않고 강탈죄를 지어 1983년도에 유기징역 10년에 언도돼 진래감옥에서 감옥살이를 한 적도 있었다. 김춘일은 만기 석방되자 연길시 의란진 명랑촌에서 살 면목이 없었다. 김춘일과 어머니는 연길시 장백향 임평촌 제6촌민소조에 이사해와 림시거주해 살게 되였다. 김춘일의 범죄서류를 읽을수록 의심이 들어 김광진 국장의 외까풀눈은 심하게 이그러져 삼각형으로 변해져갔고 심장박동은 쿵쾅쿵쾅 더 높뛰고 급촉해졌다. 김춘일은 직업도 밭도 없어 장사를 하는 척하면서 부르하통하 강물에서 고기잡이나 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밤중에는 어데론가 나갔다가 새벽에야 돌아온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겨울에는 반외투를 입고 누런 털모자를 쓰고 다녔다. 그 옷차림은 “10,24”특대입실살인강간사건 때 범죄자가 입은 옷차림과 똑 같았다. 특수정보수집부문의 조사를 거쳐 무직업자 김춘일은 핸드폰을 두대나 쓰고 있었다. 김춘일의 동거녀 김모와 녀자친구 양모가 그에게서 가진 몇대의 핸드폰을 핸드폰시장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눅거리로 팔아버렸다. “11.04”입실강간강탈사건 때 강탈한 나이론운동복 한벌을 녀자친구 양모네 집에 가만히 가져다두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그리고 “12.02”특대살인강탈사건 때 강탈한 핸드폰 번호가 13944381302인 삼성표 핸드폰을 그의 형이 김춘일한테서 가진 후 여러번 썼다. 후에 김춘일은 단서를 잡힐가봐 그 핸드폰을 찾아다가 부르하통하 강물에 처넣은 사실도 밝혀졌다. “김춘일은 확실히 흑룡강성과 관계있는 전과 많은 놈이구만!” “살인악마는 김춘일, 바로 그 놈이야!” 지휘부에서 총지휘 마효동 국장과 김광진 국장은 김춘일에게 중대한 범죄혐의가 있다고 일치하게 인정하고 비밀리에 긴급나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날 밤은 잊을 수 없는 밤, 지휘부의 벽시계는 2002년 1월 21일 밤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휘부 사무실은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였다. 물 사무실에는 납덩이처럼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수사일군들은 전신무장하고 지휘부 사무실에 렬을 지어 초조히 전투명령을 대기하였다. 이윽고 김광진 국장이 그들의 앞에 성큼성큼 나타났다. 수사일군들은 그의 날카로운 눈길을 바라보면서 전투명령을 기다렸다. 김광진 국장은 엄숙한 눈길로 수사일군들을 쭉 둘러보았다. (얼마나 지혜롭고 용맹한 수사일군들인가.) 그는 자못 엄숙하게 무거운 입을 떼였다. “오늘 밤중에 김춘일을 나포해야겠습니다. 오늘 나포행동은 음력설 전에 살인악마를 잡아내 백성들이 마음놓고 음력설을 쇠게 하는가 못하는가 하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습니다. 금방 최전선에서 전해온 정보에 의하면 살인악마는 집에 있답니다. 꼭 일거에 살인악마를 나포해야 하겠습니다.” 수사일군들은 가슴을 쭉 내밀고 우렁차게 대답하였다. “옛, 명령대로 꼭 살인악마를 나포하겠습니다!” “출발!” 출발명령이 내렸다. 십여명 수사일군들은 지휘부에서 나가 경찰차에 나뉘여 올라탔다. 몇대의 경찰차가 조용히 지휘부 울안을 벗어나가 눈보라를 헤가르면서 연길비행장 서쪽 끝 부근에 자리잡은 연길시 장백향 인평촌 제6촌민소조를 향해 질풍같이 달려갔다. 경찰차들은 번개같이 비행장에 접근했다. 제일 앞 경찰차에는 김광진 국장과 박상남 부국장, 김경선 부국장이 앉았다. 김광진 국장은 수시로 대화기로 선두에서 지휘하면서 달렸다. “전체 수사일군들은 경찰차를 고속도로에 세워놓고 도보로 포위할 것!” 수사일군들이 경찰차에서 내렸다. 눈보라가 무섭게 휘몰아치면서 룡처럼 꿈틀거리며 고속도로를 휩쓸어갔다. 대화기에는 김광진 국장의 나즈막하지만 쇠덩이 구으는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1소조는 큰길목을 지키라.” “옛!” “2소조와 3소조, 4소조는 각각 마을의 동, 서, 남 쪽을 포위하라. 살인악마를 놓쳐선 안된다.” “옛!” 뒤이어 대화기에서 수사일군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2소조 이미 동쪽에 도착!” “3소조 이미 도착!” “4소조 이미 남쪽을 포위!” 김광진 국장은 경찰차에서 내려 명령을 내렸다. “각 소조 주의, 의심스런 개미새끼 한마리라도 놓치지 말고 몽땅 나포하라!” “옛!” 김광진 국장은 뒤에 서고 있는 5소조와 6소조 수사일군들을 돌아보면서 오른 손을 힘있게 홱 휘둘렀다. “김춘일의 집을 포위하고 살인악마를 나포하라.” “옛!” 김광진 국장과 박상남 부국장, 김경선 부국장 등 수사일군들은 고속도로로부터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헤치면서 마을에 접근하였다. 그들은 어느덧 마을 복판 동쪽으로 해 자리잡은 김춘일의 집을 향해 슬금슬금 접근해갔다. 달도 살인악마의 흉측한 몰골이 보기 싫어 꽁꽁 숨어버린 무시무시한 밤중이였다. 악마와 천사, 영웅들의 최후결전을 앞둔 어둠 깔린 마을에는 인기척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나도 무거운 정적이 깃든 밤중이였다. 두터운 어둠 속에서 눈보라가 저승사자처럼 윙윙 기승을 부리며 사납게 휘몰아쳤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소리가 눈길을 헤치면서 나가는 수사일군들의  빠득빠득 눈 밟는 소리를 메꿔주었다. 어둡고 눈보라 휘몰아치는 날이면 살인악마의 유령이 둥둥 떠돌고 흉측한 악귀의 정체를 은페하기 좋은 날이였다. 또한 쥐를 잡는 고양이가 어둠 속에 숨어 두 귀를 쫑긋하고 발톱을 숨기고 쥐새끼 나타나기를 기다릴 은페하기 좋은 시각이기도 하였다. 모든 나포행동은 어둠 속에서 무시무시하게 진척돼나갔다. 수사일군들은 김춘일의 집을 철통같이 포위하고 점점 조여들어갔다. 그때까지 마을에서는 개미새끼 하나 얼씬거리지 않았다. 포위망은 악마를 몰아가면서 옥죄여져갔다. 담당 경찰과 수사일군도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수사일군들은 담당 경찰과 수사일군의 인도를 받으면서 쭉 붙은 서너집 가운데서 준확  중간통에 있는 김춘일의 벽돌집에 접근해갔다.       김광진 국장은  벽에 붙어서서 성에 낀 창문 곁에 귀를 대고 김춘일의 집 안 동정을 살폈다.       전등불이 꺼진 집 안에는 쥐새끼 뛰노는 소리 하나도 없이 물 뿌린듯이 조용하였다.       김광진 국장은 수사일군들을 돌아보면서 손을 홱 휘둘렀다. 나포명령이였다. 김광진 국장은 제일 앞장서 불시에 문을 뚝 떼고 뛰여들어갔다. 수사일군들이 일시에 우르르 뛰여들었다. “누구야?!” 집 안에서 황급히 놀란 소리 들렸다. “경찰이다!” 대답과 함께 손전지불이 어지럽게 안방 구들을 비췄다. 이불 안에서 30대 말의 사내가 벌떡 일어났다. “꼼짝 말엇!” 김광진 국장이 갈구리 같은 손으로 김춘일의 대가리를 꽉 눌렀다. 박상남 부국장과 김경선 부국장이 수사일군들과 함께 김춘일의 팔과 다리를 비틀어 꽉 누르고 차디찬 쇠고랑이를 절컥 채웠다. “왜 이럽니까? 내 무슨 죄가 있다고 생사람을 억울하게 붙잡습니까?” “잔말 말엇!” 잘칵! 전등불이 켜졌다. 밀창을 여닫는 소리 나더니 김춘일의 어머니가 희슥한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면서 아래 방에서 들어와 울며 넉두리를 했다. “아이구, 밤중에 이게 웬 일입니까? 경찰이 밤중에 자는 사람 잡아갑니까?” 담당수사일군이 체포장을 꺼내 김춘일에게 보이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김춘일을 살인, 강간, 강탈한 혐의로 체포한다. 김춘일은 죄악을 숨기지 말고 교대할 준비 하라. ” 김춘일은 횡설수설 했다. “쳇, 그럴듯한 체포구만. 무슨 증거가 있단 말인가?” “넌 숱한 증거를 제공했다. 잔말 말고 가자.” 김춘일은 계속 게두덜거렸다. 이때 구들 복판 이불 안에서 또 뭔가 꿈지럭거렸다. 김광진은 독기 오른 세모난 외까풀눈으로 김춘일을 무섭게 쏘아보면서 물었다. “누군가?” 김춘일은 대수롭잖게 대답했다. “녀자친굽니다.” 초췌한 몰골을 지은 춘일은 쇠고랑이를 찬 두 손으로 눈을 비비며 횡설수설하면서 아닌 보살을 떨었다. “내 무슨 죄 있다고 남이 색시하고 자는데 뛰여들어 이 지랄인가? 경찰이면 단가?” 김광진 국장은 호랑이처럼 을러멨다. “뭐라고? 네가 지은 죄는 네가 젤 잘 알 거야. 우리는 무죄인을 나포하지 않는다. 이제 공안국에 가면 모든 죄악이 다 밝혀질 거야.” 그제야 김춘일은 빠질래야 빠질 수 없는 덫에 치운 것을 알았다. 목에 걸린 올가미가 점점 옥죄여드는 감을 온몸으로 서서히 느꼈다. 압박감과 긴장감에 목이 타는듯이 말라들었다. “엄마, 물을 주오.” 김춘일의 말에 로파는 정지에 나가 랭수 한바가지를 떠다 입에 가져다 댔다. 물을 한바가지나 다 마신 김춘일은 경찰을 보고 말했다. “내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우리 엄마한테 주오.” 경찰이 호주머니에서 꺼낸 돈을 로파한테 주자 로파는 활 뿌리쳤다. “얘야, 늙은게 돈을 해서 뭘 하겠느냐? 네나 가지고 가서 쓰려무나. 이 에민 네가 그저 무사히 집에 돌아왔으면 좋겠다. 엄마는 돌아오는 날까지 기다리겠다.” 김춘일은 통곡치는 어머니를 보고 눈물 한방울 흘리지도 않고 어망간에 불쑥 이런 말을 한마디 했다. “엄마, 난 이젠 돈이 필요없습구마. 그 돈으로 음력설에 맛 있는 물고기를 사서 잡숫소. 난 이젠 엄마한테 물고기를 다 잡아 대접했습구마.” 혹시 김춘일은 수사일군들 앞에서 자기는 효성이 지극한 효자라는 걸 마지막으로 방패 삼아 보여주자고 일부러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사일군들은 그 한마디 말에서 김춘일은 확실히 지은 죄가 많기에 스스로 불귀길에 오른 것을 자인한 것이라고 점 찍었다. 그렇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살인악마에게 이젠 무슨 돈이 필요하겠는가? 살인하고 강탈한 돈과 금붙이가 산더미 같아도 이젠 영영 쓰지 못하게 되지 않았는가.       으흐흐, 허허허…   
168    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2) 김장혁 댓글:  조회:2297  추천:0  2018-09-25
                      장편정탐실화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김장혁 살인악마는 수사일군들이 도처에서 수사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처에서 죄악의 마수를 뻗쳤다. 2001년 9월 22일 새벽 2시경, 흉수는 연길시 연남가 장안가 부근의 한 골목에서 빨간 옷을 입고 황급히 지나가는 박모 녀성을 발견했다. (으흐흐. 오늘 네년이 죽을 차례다.) 악마는 녀성만 보면 강간하고 략탈하고 죽이고 싶은 충동이 욱 치밀었다. (하나 죽이면 어떻고 열을 죽이면 어떤가? 기왕 살인한바하고는 백명을 죽여도 한번 죽지 백번 죽겠느냐?) 이런 독한 앙심을 먹은 살인악마는 박모 녀성을 슬금슬금 미행하기 시작하였다. 박모 녀성은 웬 검은 그림자가 따라붙은 것을 보고 발뼘발뼘 걷다가 줄달음쳤다. 얼마 가지 않아 그녀는 자그마한 골목에 꺾어들더니 낮다란 세집에 들어갔다. 그녀는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황급히 노끈으로 문걸개를 걸어매놓았다. 살인악마는 그녀의 세집을 확인한 후 골목길에 세워놓은 농용차 공구상자를 들춰 장갑을 꺼내 낀 후 망치와 손전지를 꺼내들고 그녀의 세집으로 다가갔다. 불이 환히 켜진 세집 안에서 뜻밖에도 남녀의 주고 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웬 놈이 내 뒤를 따라오지 않겠습니까? 머리끼 막 곤두섭디다.” “내 있는데 겁날게 뭐요? 어서 자기요.” “에이유, 급하기두. 혹시 그 놈이 따라와 뛰여들면 어쩝니까?” “내 있는데 겁나 마오.” “그래도 그렇지.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그 놈이 정말 오겠는지 어떻게 압니까? 좀 있다 잡시다.” 이때 악마는 싯누런 이빨을 악물고 문을 슬쩍 당겨 늘어난 노끈을 비수로 끊고 문을 벌컥 열고 뛰여들어갔다. “이 개년놈들아, 죽어봐라!” 악마는 먼저 전등불을 탁 쳐 깨버렸다. 뒤이어 망치를 휘둘러 남자 엄모의 머리를 치면서 을러멨다. “넌 나한테 빚을 졌다!” 그 놈은 망치로 엄모의 머리를 세번이나 내리깠다. 엄모는 당장에서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푹 쓰러졌다. 악마는 두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바들바들 떠는 박모녀성을 보고 을러멨다. “돈을 내놔!” “제발 살려주오!” 박모 녀성은 벽에 걸어놓은 빨간 웃옷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주었다. 악마는 핸드폰을 받아쥐고 또 을러멨다. “돈을 내놔!” 박모녀성은 할수 없이 옷장에 넣은 핸드빽을 꺼내 돈을 들췄다. “손가방 채로 가져왓!” 박모 녀성은 떨리는 손으로 핸드빽마저 내밀었다. “이 개놈아, 죽어봐라!” 이때 쓰러졌던 엄모가 정신을 차리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발길로 망치를 차 떨구었다. 뒤이어 주먹을 휘두르며 갈범처럼 무섭게 덮쳐들었다. “이 새끼, 썩어지지 않았어?” 살인악마는 황급히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사건 보고를 받은 연길시공안국 수사일군들은 사건현지에 와서 엄모와 박모녀성에게서 사건정황을 일일이 조사한 후 즉시 당시 주공안국 제7처에 련계해 강탈당한 박모 녀성의 핸드폰 위치를 추적해냈다. 연길시 한 호텔 안마원에서 그 핸드폰을 쓰는 양향화( 가명) 녀성을 수사해냈다. 귀신이 곡할듯이 자기를 찾아낸 수사일군들의 앞에 선 향화는 깜짝 놀랐다. 수사일군들은 향화를 형사경찰대대에 련행하여 심문하였다. 희미한 전등불빛 아래 쪽걸상에 앉은 향화는 무릎 우에 놓은 두 손을 바르르 떨었다. 심문일군은 그녀의 모든 것을 다 여겨보았다. 뒤이어 양향화의 성명과 나이, 주소 등 일반정황을 확인한 후 심문일군은 엄숙히 말했다. “동무는 사실대로 탄백해야지. 하나라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면 법률적인 후과를 책임져야 하오.” 양향화는 목구멍으로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하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핸드폰은 어데서 얻은 거요?” 향화는 머리를 떨어뜨리면서 쥐죽은 소리로 대답했다. “네. 야시장에서 산 겁니다.” “어떤 사람한테서 샀소?” “한 50대한테서 샀습니다.” “30대 초반 아니고?” 향화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압니까?” 양향화는 어망간에 말실수를 한 것을 알고 혀로 입술을 날름 핥았다. 사실 양향화는 악마의 녀자친구였다. 그날 밤에 악마는 강탈한 핸드폰을 그녀한테 주었던 것이다. “로실히 말하지 못하겠소? 30대 초반한테서 샀소? 아니면 가졌소?” “아니, 샀어요. 50대처럼 늙어보이던데요. 30대 초반인가요?” “그래. 가졌지?그 남자는 누구요? 지금 어데 있소? 로실히 탄백하면 죄가 경해질 수 있소.” 그러나 양모는 악마가 어떤 놈인 걸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악마의 위협을 받은 그녀는 절대 악마를 불 수 없었다. 한마디를 부는 날에는 죽음 밖에 없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였다. “진짜 얻어본 거예요. 전 죽어도 몰라요. 모르는 걸 자꾸 물으면 어떡해요?” 심문일군들도 용 빼는 수가 없었다. 그들은 억지로 심문해선 더 알아낼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고 긴 그물을 쳐서 큰 고기를 잡으려고 먼저 양향화를 석방해 감시하기로 했다. 수사일군들은 양향화한테서 로획한 핸드폰에서 대화한 적이 있는 수십개 전화번호를 일일이 장악하고 감청하기 시작하였다. 공안국에서는 연길시에 보이지 않는 그물을 널리 쳐놓고 악마가 뛰여들기를 기다렸다. 련속 발생한 악성 사건으로 하여 연길시와 조양천진은 또다시 공포 속에 잠기였다. 흉수가 빨간 옷을 입은 녀성을 잘 살해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녀성들은 아예 빨간 옷이고 노란 옷이고 악마한테 환히 보이는 옷을 입기도 두려워했다. 사람들은 대낮처럼 환한 가로등 아래에서도 낯선 사람을 만나면 혹시 자기 뒤를 미행하는 사람이 아닌가고 신경을 도사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녀성들은 남편이 마중오지 않으면 저녁에 퇴근하기 두려워하였으며 학생들은 부모가 데리러 가지 않으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실로 그때는 남자들도 밤에 혼자 시내를 다니기 무서울 정도로 온 도시가 공포에 떨었다…                      슬기로운 수사일군들 공포의 밤은 계속 되였다. 아파트 구역마다에 공포와 살기가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도사리고  있었다. 유유히 흐르는 저 검푸른 부르하통하 강물은 살인악마가 살포한 어둠 속에서 공포와 살기를 싣고 동으로 흐르고 있었다. 수사일군들이 늘여놓은 보이지 않은 그물이 유령처럼 온 조양천진과 연길시 시내를 떠돌아다니면서 갖은 악행을 저지른 살인악마를 향해 올가미처럼 죄여들고 있었다. 부르하통하강반에 자리잡은 당시 룡정시 조양천진과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정부 수부인 연길시에서 련속 악성 살인, 강간, 강탈, 절도 사건이 발생하자 수사기관의 고도로 되는 중시를 불러일으켰다. 수사일군들은 사회 여러 방면의 묵직한 압력과 인민군중들의 기대를 가슴과 어깨에 짊어지고 하루속히 살인악마를 나포해 인민군중들의 생명안전을 보장하려고 불철주야 수사에 나섰다. 그들은 살인악마를 나포하지 않고선 집에도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가도에까지 심입해 군중들한테서 널리 수사를 벌리면서 털끝만한 단서라도 색출해내려고 갖은 모지럼을 다 썼다. 최초에 수사일군들은 개개의 사건들을 정밀분석하였다. 그런데 사건들에 대한 수사일군들의 견해도 같지 않았다. 어떤 수사일군들은 범죄혐의자를 성변태라고 하였다. 그 리유는 명백했다. 악마는 밤중에 시내 거리에서 녀성만 보면 성충동을 강하게 받아 강간하려고 덮쳐들었다. 몇몇 사건을 보아도 그 놈은 남의 부부가 성생활을 하는 것을 창문으로 들여다보고 그들이 잠들기를 기다려 뛰여들어 살인하고 녀성을 강간하였으며 재물을 략탈해갔다. 축모 녀성 자매를 꿇어엎디게 하고 뒤로 달려들어 번갈아 강간하고 돈을 략탈해간 사건이 그 실례로 된다. 어떤 수사일군들은 살인악마가 사회에 불만이 많은 놈이며 재물을 탐내 강탈을 목적으로 살인하는 자라고 인정하였다. 여러 사건을 보면 범죄자는 무고한 사람을 마구 살해한 후 돈을 뒀을 것 같은 집 안의 옷장이나 식장 같은 곳을 들추었다. 조양천진에서 벌어진 “8.5”살인사건이 그 실례로 된다. 악마는 왕옥분을 살해하고 남편 강휘마저 살해하려다가 살인미수를 저질렀으며 딸애마저 살해하고 옷장과 이불장을 들춘 흔적이 있었다. 조양천제1중학교 운동장에서 살인악마는 무고한 황모를 살해하고 최모 녀성을 살인미수했으며 옷을 벗겨가지고 도망치는 변태적인 행동거지를 했다. 연길시 맥주공장 부근의 사건을 보아도 그렇다. 살인악마는 삽으로 세집의 무고한 리정미 녀성을 마구 찍어죽이고 그녀의 딸한테서 호출기를 빼앗아가지고 도망치지 않았던가. 룡정시공안국 여러 수사일군들의 견해는 맞아떨어졌다. 살인악마는 확실히 사회에 불만이 많은 놈으로서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해 사회에 복수하려고 들었던 것이다. 조양천진분국의 김기봉 국장은 수사일군들을 령솔해 가도와 군중 속에 심입해 사회에 불만이 많은 자, 감옥에 갔다가 온 자, 류사한 전과자들을 일일이 수사하기 시작하였다. 룡정시공안국과 연길시공안국 어떤 수사일군들의 분석은 아주 정확하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수사일군들은 그 수많은 악성 살인사건을 살인악마 한 놈이 저지른 것이라고 분석하지 못하였고 매개 사건 혹은 몇개 사건만 한데 련계시켜 살인악마의 범행특징을 분석하였던 것이다. 수사일군들의 견해도 조금씩 달라 사건을 분석하는데 애로가 생겼고 수사망은 날이 갈수록 넓어지고 전선은 날이 갈수록 길어졌다. 그리하여 투입된 경찰력량은 많지만 사건해명 진전은 빠르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살인악마는 공안국 수사일군들과 겨루어보려고나 하는 것처럼 계속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 갖은 악행을 다 저질렀다. (개놈새끼, 우리와 기싸움을 하려고 해? 어디 누가 이기는가 두고 보자.) 주공안국 부국장 겸 연길시공안국 국장 김광진은 이를 뿌드득뿌드득 갈았다. 김광진 국장은 선후하여 연길시공안국 부국장, 안도현공안국 국장, 화룡시공안국 국장을 담임한 경험이 풍부한 오랜 형사수사지도일군이였다. 그는 여러 시, 현 공안국 수사일군들을 령솔하여 수많은 악성 형사사건들을 해명하였다. 화룡시공안국 국장을 할 때 김광진은 수사일군들을 령솔하여 수많은 밀수범죄자들을 검거해 밀수차량을 압수하였다. 한번은 수사를 거쳐 한 살인범죄혐의자가 림산작업소의 깊은 수림 속에 잠복했다는 정보를 장악했다. 살인범죄혐의자는 반정탐능력이 있는데다가 무예가 출중했고 설상가상으로 항상 몸에 서슬푸른 비수를 휴대하고 다녔다. 긴급한 관두에 김광진 국장은 수사일군들을 령솔해 림산작업소에 들어가 범죄혐의자를 추격했다. 수색도중에 김광진 국장은 범죄혐의자가 한 림산작업소 통나무무지 옆에서 나무를 패는 것을 발견하였다. 숱한 수사일군들이 일시에 덮쳐들면 풀을 건드려 뱀을 놀래울가봐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김광진 국장은 생명안전도 고려하지 않고 과단성 있게 결단하였다. 그는 수사일군들을 둘러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내 저 놈을 나포하겠소. 주위에 매복해 있소. 의외 정황이 생기면 동시에 출격하오.” “안됩니다. 혼자 위험합니다. 우리 함께 나포합시다.” “명령대로 하오.” 수사일군들이 주위에 매복하기를 기다려 김광진 국장은 홀로 스적스적 그 놈한테로 다가갔다. 그 놈은 낯선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대뜸 경각성을 높이면서 도끼를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김광진 국장은 낯색 하나 변치 않고 웃음띤 표정으로 다가가면서 말부터 걸었다. “길을 잃어 그러는데. 여긴 XX림산작업소 맞소?” “맞소.” “감사하오.” 김광진 국장은 그 놈한테 다가가면서 “나무를 패달라오?”라고 하면서 다가들어 불시에 도끼자루를 꽉 틀어쥐더니 머리로 그 놈을 떠받았다. 그 놈이 “앗!” 하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휘청하는 사이에 김광진 국장은 도끼를 빼앗아 쳐들고 위협했다. “꼼짝말앗!” 시퍼런 도끼를 쳐다보던 그 놈은 쏘아보면서 품 속에 손을 넣어 비수를 뽑아들었다. “꼼짝말앗!” 그때 김광진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들었다. 수사일군들도 일시에 사처에서 덮쳐들었다. “왜 이러오? 당신들은 누구요?” “우린 화룡시공안국 수사일군들이다. 네놈을 살인혐의로 나포한다.” 김광진 국장은 손수 그 놈의 손에서 비수를 빼앗아내고 손목에 쇠고랑이를 철컥 채웠다. 한번은 연변 모 중학교 보이라꿀뚝 안에서 재를 퍼내던 보이라공이 죽은 녀성의 시체를 발견하고 공안국에 사건을 신고했다. 김광진 국장은 즉시 수사일군들을 거느리고 사건현지에 가서 녀성의 신원을 확인하고 사건현지를 꼼꼼히 과학수사를 진행하였다. 그는 녀성 시체 목에 금목걸이가 그대로 있는데다가 빨간 등산복 호주머니에 현금이랑 얼마간 있는 것을 보고 과단성 있게 결론을 지었다. “이 사건은 낯선 사람이 재물을 위해 살인한 사건이 아닌 것 같소. 이 녀성을 잘 아는 놈이 살해 했을 가능성이 높소.” 수사방향은 이 녀성과 관계되는 남자들 쪽으로 결정됐다. 수사일군들은 그 녀성의 호출기와 집 전화에 걸려들어온 숱한 전화 속에서 한 남성을 중요한 혐의자로 정하고 수사하였다. 그 남자는 한 공장의40대 초반의 공장장이였다. 그는 피해녀성과 애매한 애인관계가 있었다. 수사일군들이 고수머리를 한 그 공장장을 나포해 심문한 결과 아니나 다를가 그 자가 그 녀성을 살해했던 것이다. 수사일군이 그 자한테 왜 그 녀성을 살해했는가고 심문하자 그 자는 어처구니 없는 대답을 했다. “난 금목걸이, 돈도 수태 줬는데도 말을 듣지 않아 죽여버렸습니다.” 사실 그날 밤에 그 자는 피해녀성을 불러내 보이라꿀뚝 밑에서 간음하려고 했다. 그런데 피해녀성은 엄동설한에 춥다면서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하여 숱한 걸 얻어가지고서도 말을 듣지 않는다고 목을 조여 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황한 김에 그녀의 목에 걸린 금목걸이를 가지고 달아나지 못했다. 그 자는 그 금목걸이가 기민한 수사일군들에 세밀한 수사에 의해 단서로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풍부한 사건해명경험이 있는 김광진 국장은 연길시에서 련속 일어난 악성 살인사건을 해명하려고 이번에는 아예 집에도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주숙하면서 진두에서 수사를 지휘하였다. 보통키에 날렵하게 생긴 체격, 예지로 예리하게 빛나는 외까풀눈, 카르스마가 넘치는 눈길… 범죄자들은 김광진 국장을 보기만 해도 질겁해 벌벌 떨었다. 김광진 국장과 주공안국 형사경찰지대 기술수사대대 최만복 대대장은 반복적인 토론과 연구를 거쳐 다음과 같이 인정하였다.       재래식으로 어느 지역에서 사건이 생기면 어느 지역에서 범죄혐의자를 수사하는데 그져서는 안된다. 말하자면 조양천진에서 숱한 사건이 생기면 조양천진에서만 범죄자를 찾아서는 안된다. 또 연길에서 사건이 생기면 연길에서만 범죄혐의자를 수사해서는 안된다.      조양천진과 연길 서쪽지역에서 생긴 대부분 사건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단층집에서 발생하였고 강도가 녀성들의 돈 5원이나 20원, 40원도 놓치지 않고 빼앗아간 것을 보아  살인악마는 탄층집 같은 수수한 집에서 사는최하층에서 돌아다니는 신분이 아주 낮은 탐욕스러운 놈이라는 공동한 특점이 있다고 락인을 찍어놓았다.      또 흉수가 먼저 남자를 살해하고 녀성을 강간하거나 나중에 강탈한 것과 같은 공통한 범행특점해쳤다.      또 어느 녀자나 모두 꿇어 엎디게 한 후 뒤에 서서 강간하면서 극력 자기 민낯을 로출시키지 않으려고 한 공통한 강간특점도 로출되였다.           이 모든 것에 근거하여 혹시 이 사건들을 한 놈이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고 의심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룡정시 조양천진과 연길시 서부지역을 계선이 없이 연길시공안국과 룡정시공안국에서 통일적으로 수사해야 한다고 인정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흉수가 강간할 때 남긴 단서와 정액을 몽땅 국가공안부 형사수사국에 보내 흔적감정전문가들에게 진일보 흔적과 유전자 감정을 하여줄 것을 요청하였다.       불여우 같은 살인악마는 녀성을 뒤로 강간하면서 낯을 로출시키지 않으면 단서를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교활한 악마라고 해도 오판했다. 악마는 자기가 녀자들의 질속에 싸넣은 죄악적인 정액이 자기 목에 건 올가미로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북경에서 기쁜 소식이 전해져왔다. 국가공안부 형사수사국의 검증을 거쳐 조양천진과 연길시 계렬살인강간강탈사건현지에 남긴 발자욱과 지문은 한 흉수의 것이라고 밝혀졌다.       김광진 국장과 최태복 대대장은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그럼 그 숱한 악성사건을 몽땅 한 놈이 저질렀단 말인가?”        김광진 국장의 감탄에 최태복 대대장도 동을 달았다.      “야, 여러가지 특징을 모두 갖춘 놈이 아니고 뭐요?”      수사일군들의 눈앞에는 살인악마의 흉악한 몰골이 유령처럼 서서히 나타나더니 점차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사회에 불만을 품은 극악무도한 살인악마! 녀색에 오금을 못쓰는 강간범! 항상 녀성을 뒤로부터 달려들어 강간하는 성변태! 탐욕스러운 좀도적! 날강도! 1.68메터쯤 되는 키에 고수머리! 빨간 잠바거나 누르스럼한 잠바를 입은 놈! 여름에는 늘 모자채양이 넓고 긴 태양모를 꾹 눌러쓰고 다니는 살인악마!          이 사건은 국가공안부 2000년 특대감독수사사건으로 되였다. 2001년에 길림성공안청에서는 이 사건을 10대 공개수사사건으로 결정했으며 10대 공개수사사건 가운데서도 특대공개수사사건으로 결정하고 전 성 각급 공안국 수사기관에 수사협조를 통보지시하였다. 국가공안부 형사경찰총국과 길림성공안청에서는 여러차례 전국 10대 기술수사전문가 진리명까지 연길에 파견하여 사건현지에 가서 세심한 기술수사를 하였고 구체적인 기술지도를 하게 하였다.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위와 정부 그리고 연길시와 룡정시 당위와 정부에서는 이 계렬사건해명을 고도로 중사하고 어떤 대가를 내서라도 하루속히 사건을 해명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들은 수사기관에서 “사람이 수요되면 사람을 파견해주며 수사비용이 수요되면 비용을 푼푼히 대주겠다.”라고 하면서 공안기관의 든든한 뒤심이 되였다.       2001년 하반년, 연변주공안국에서는 이 계렬살인강간강탈사건의 공동한 특점에 근거하여 통일적인 사건해명총지휘부를 세우고 주공안국 국장 마효동이 총지휘를 맡았으며 주공안국 부국장이며 연길시공안국 국장 김광진, 주공안국 부국장 엽립화 등이 부총지휘를 담임하였다. 연길시분지휘부의 총지휘는 김광진 국장이 담임하였으며 부국장 김경선과 형사경찰지대 대대장 허효봉이 부총지휘를 담임하였다. 김광진 국장의 지시에 따라 연길시공안국에서는 반금순 정위가 특수정보선을 책임지고 박상남 부국장이 정보선을 책임지고 조립본 부국장이 로동교양인원과 만기석방인원선을 책임지며 허효봉 대대장이 중점지구인 연길시 공신시장 일대와 인평촌 일대를 책임지기로 하였다.          룡정시분지휘부의 총지휘는 룡정시공안국 정룡호 국장이 담임하였으며 부국장들인 김기봉과 김택룡이 부총지휘를 담임하였다.          주공안국과 연길시공안국, 룡정시공안국에서는 천여명이나 되는 경찰들을 투입하여 이 사건해명에 달라붙었다. 총지휘부에서는 전체 경찰들을 여섯개 대대로 나누어 사건수사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총지휘부의 지시대로 수사일군들은 사건이 많이 발생한 지역인 조양천진과 연길시 하남가, 연남가, 연서가, 연서가 공신시장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연길시 장백향 신풍촌, 임평촌, 공신촌, 민주촌 그리고 조양천진 교동촌, 광영촌, 조양촌 등지를 중점지역으로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주단식수사를 진행하였다.          수사일군들은 중점지역에 매복수사진을 쳐 사건발생시 당장에서 악마를 나포하기로 하였다.          중점지역의 택시 업주와 운전수, 강뚝수리공, 강바닥모래운송업자, 낚시군, 기타 물고기잡이군 등 인원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몽땅 일일이 수사하였다. 심지어 밤중에 부르하통하에 가서 자주 물고기를 잡거나 목욕하는 사람들도 수사하였다. 수사일군들은 중점지역의 음식점, 상점, 노래방, 안마원, 다방, 나이트클럽, 술집 등 유흥업소를 중점적으로 수사하면서 그런 장소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 가운데 악마와 비슷하게 생긴 보통키에 고수머리를 한 자가 있는가고 감시하였으며 공안국 수사에 협조해 의심스러운 자가 나타나기만 하면 즉시 고발할 것을 일일이 부탁해놓았다. 흉수가 핸드폰을 여러대 강탈해간 정황에 근거하여 수사일군들은 계렬사건에 관계되는 통신정보를 전면적으로 수집하고 세밀하고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가치 있는 단서를 일일이 수집했다.         연길시공안국의 백여명에 가까운 녀경찰들도 주동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야밤수사와 호구조사에 나섰다.         수사일군들은 오만여호의 주민을 조사방문하였으며 각종 정보와 단서 2만여개를 장악하였으며 각종 재료 8망여건을 심열하였다. 주내 기타 현, 시 공안국에서도 연길시와 룡정시 공안국을 협조하여 당지에 있는 조양천진의 중점인구 천여명과 기타 인원 4천여명, 인터넷지명수배범 400여명을 수사하였다. 그리하여 전 주 공안기관에서는 연길, 조양천계렬살인강간강탈사건을 해명하는 기간에만 하여도 각종 형사사건 275건을 해명하였으며 각종 형사범죄혐의자 172명을 사출하였다.        당시 김광진 국장과 허효봉 대대장의 포치에 따라 수사일군들은 연길시 장백향 임평촌 제6촌민소조에도 수사하러 갔다. 그때  림시로 거주하고 있는 김춘일이 별로 살인악마의 초상과 비슷함을 직감한 두 남녀경찰은 그의 집에 찾아가서 조사하였었다.        그때 깜짝 놀란 김춘일은 속으로 망똘짝이 퉁 떨어지는 감을 느꼈다. (이 놈들이 어떻게 돼 벌써 나를 찾아냈을가? 그래 오늘 끝장 볼 마지막날이란 말인가? 진짜면 네 죽고 내 죽고 어디 해볼 판이지.) 그러나 그는 인차 살인악마의 랭정을 되찾고 점차 침착해졌다. (아니야, 이웃집에도 들어가 조사한 걸 보면 아직 꼬리를 밟은 건 같잖아.) “호구부와 신분증을 내놓소.” 김춘일은 일반조사를 하려고 드는 남녀경찰을 흘끔흘끔 도적질해보면서 웃방에 올라가 서랍이랑 이불장이랑 뒤번졌다. “아, 여기 있구만.” 김춘일은 호구부를 들고 오면서 남자경찰을 흘끔 훔쳐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자경찰은 자기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이였다. 그때 경찰이 보건대 김춘일은 눈길에 카리스마나 살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눈길이 맥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김춘일은 그 눈길이 너무 날카로와 심장이 비수에 찔리는듯 질겁해났다. 그러나 억지로 태연자약한 척 하려고 애썼다. 이때 비행기가 하늘을 가르면서 솟아올랐다. 비행기 요란한 엔진소리가 귀청을 째지게 때렸다. 녀경찰이 호구부와 신분증을 번갈아보더니 김춘일한테 예리한 눈길을 돌렸다. “흑룡강성에서 온 림시거주주민이군요. 온지 몇해 되는가요?” “예-?! 뭐라구-?” 김춘일은 비행기 소리에 잘 듣지 못한 척 하면서 반문했다. “흑룡강에서 온지 몇해 되는구만.” 비행기가 지나간 후에야 들은 척 하면서 능청을 떠는 김춘일. “예-몇해 됩니다.” 김춘일은 일반조사를 하러 온 것을 보고 점점 침착성을 회복했다. 그는 묻지 않는 말에 횡설수설하면서 호구조사를 하러 온 경찰들의 주의력을 다른 데로  분산시키려고 들었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아니, 호구조사를 하러 왔습니다.” 녀경찰의 말에 김춘일은 안도의 숨을 후~ 내쉬였다. “예~ 그렇군요. 그런 걸 난 또 무슨 큰 일이나 생겼는가 했지. 흥!” 두 남녀경찰이 악취가 훅훅 코를 찌르는 20평방메너나 되나마나한 집 안을 살펴보니 말이 아니였다. 옷장과 이불장, 서랍 외에 서발막대를 휘둘러도 걸칠 것이 없어보였다.     때가 덕지덕지한 가마목 쪽 구들에 그래도 하야말쑥하게 생긴 애어린 처녀가 로파와 마주 앉아 있었다. “저 처년 누군가요?” “예~ 내 미혼처입니다.” 처녀가 오쫄 일어나면서 불평을 토로했다. “미혼처라니? 사람을 웃기잖소?” 경찰들은 인차 경각성을 높이면서 춘일과 그 처녀를 번갈아보았다. “누가 이런 집에서 산답데?” 경찰은 인차 차문했다. “무슨 일을 하오?” “둘 다 무직업자입니다.” “직업도 없이 어떻게 세식구를 먹여살린단 말이요?” 김춘일은 실수한 것을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인차 둘러댔다. “난 장사를 다닙니다. 누나 미국에 있는데 생활비를 좀 대줍니다.” 처녀가 뭐라고 입을 열려는데 김춘일이 처녀한테 눈을 흘겼다. “경찰들 앞에서 집안 허물을 작작 하오. 미혼처를 미혼처라고 하잖고 뭐라겠소?” 김춘일이 어름장을 놓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처녀는 두 경찰을 보고 인상깊은 한마디를 하지 않겠는가. “녀자친구라고 해도 과언인데요. 저런 빈털털이를 믿고 어떻게 삽니까? 무슨 놈의 미혼처? 누가 저 거지 같은 나그네 미혼처란 말입니까?” 그때 로파가 말렸다. “한 이불을 덮고 살면서도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그제야 처녀는 입을 다물었다. 녀경찰은 벽에 걸어놓은 옷을 쭉 살폈다. 그러나 그날 따라 잠바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보통키에 고수머리, 정기 없는 쌍까풀눈이 퍽 인상깊었다. 김춘일은 처녀가 댕댕거려도 한마디 말대구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아 아주 어져 보였다. 두 경찰은 풀을 건드려 뱀을 놀려놓지 않으려고 그쯤 하고 마을로 나왔다. 그들은 이웃집에 가서 호구조사를 하면서 김춘일을 물어보았다. 녀경찰이 이웃집 춘일이 어떤 사람인가고 묻자 한 아주머니는 혀를 끌끌 찼다. “춘일은 효자입니다, 효자. 홀로 난 늙은 엄마한테 얼마나 효성을 다한다고 그럽니까?” 그 아주머니는 춘일이 밤마다 부르하통하에 나가 어떻게 물고기를 잡아다가 끓여대접한다는지, 자기는 술도 마시지 않고 장마당에 가서 맛있는 돼지고기랑 사다가 대접한다는지, 미혼처를 어떻게 아낀다는지 모범남편이라는지 혀가 다슬 지경으로 칭찬이 자자했다. 또 다른 집에 가서 50대 중반의 사나이와 김춘일을 물어보았다. 역시 그러루한 답변이 나왔다. “에이, 김춘일은 어지다 못해 제 앞의 말도 할줄 모르오. 마을 사람들과 한번 싸운 적도 없습니다. 진짜 닭의 모가지도 비탈지 못할 어진이입니다. 어떤 때 마을 사람들은 그를 남자 아니라고까지 할 지경입니다.” 그때 김춘일의 표면현상에 미혹된 일부 마을사람들의 말에 의해 김춘일은 잠시나마 수사망에서 빠져나가게 되였다. 그러나 담당경찰들은 어쩐지 김춘일의 초상이 살인악마의 초상과 비슷하다고 여겼다. 김광진국장과 허효봉 대대장은 회보를 받은 후  담당  수사일군들과 경찰들에게 경각성을 늦추지 않고 주의해 관찰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기민한 수사일군들의 천리혜안이 그의 일거일동을 느슨히 감시하기 시작하였다.          연길시 “10.24”특대입실살인강간사건 공포의 어둠이 두툼히 깔리더니 대지 구석구석을 위협하면서 유령처럼 둥둥 떠돌아다녔다. 텔레비죤을 통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살해되고 녀성들이 강간략탈당하는 것을 보고 인민군중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어둠은 공포와 살기가 차넘치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반복되게 하였다. 어둠의 장막이 두툼히 깔리기만 하면 선량한 백성들은 머리끼 곤두서고 공포에 떨어야만 하였다. 그러나 두텁게 깔린 어둠은 살인악마에게는 가장 좋은 은페물이였으며 가장 좋은 출동시기였다. 대지에 어둠이 깔리자 여기저기 숨었던 쥐새끼들이 먹이를 찾아 굴에서 슬금슬금 기여나와 어둠이 깔린 거리를 쏘다녔다. 고양이들은 어둠 속에 숨어 쥐굴을 지키거나 길목을 지키다가 볼이 뽈록하게 먹거리를 물고 쏘다니는 쥐새끼들을 앞발로 탁 쳐 이빨로 꼭 깨물었다. 어둠의 장막이 요술쟁이처럼 대지에 서서히 내리드리웠다. 달의 볼에서 요사한 빛이 뿜겨져나오다가 먹구름에 산산이 부셔졌다. 달의 눈섭에서 요술쟁이 스리슬쩍 기여나와 악마를 배동하여 실뱀처럼 꼬리를 치면서 인간세상에 내려와 여기저기에서 요술이나 부리는 상 싶었다. 어둠이 두툼이 깔리고 사람들이 모두 하루 일에 곤기를 느껴 깊이 잠든 밤중에 살인악마는 쥐새끼처럼 기여나와 길목을 지키는 고양이를 교활하게 피하면서 사냥물을 찾아 쏘다녔다. 수사일군들이 밤낮이 따로 없이 수사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2001년 10월 24일 밤중, 탕탕탕! 웬 녀성이 연길시 공안국 하남파출소 당직실문을 급촉하게 두드리면서 소리쳤다.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빨리 문을 여시오!” “뭐라고?!” 당직경찰은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 녀성은 헐레벌떡거리면서 황급히 사건보고를 했다. “내 친구 강간당했습니다! 남자친구는 살해되구!” 당직경찰은 인차 소장한테 보고하였다. 파출소 소장은 즉시 연길시공안국 형사경찰대대에 보고하였다. 수사일군들은 하남파출소 소장 일행과 함께 즉시 사건보고를 한 그 녀성의 집에 가서 피해녀 리모 녀성을 만나 사건정황을 알아보았다. 리모 녀성은 공포에 질린 채 이날 밤에 발생한 치떨리는 사건을 쭉 이야기하였다. “저녁에 나와 남자친구 라모는 친구들과 함께 우리 세집에 와서 술을 마시였습니다. 친구들이 돌아간 후 남자친구는 술을 과하게 마셔서 먼저 잤습니다. 나는 새벽 2시까지 VCD를 보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가 풋잠이 들었가 말가 할  때 갑자기 쿵 소리나지 않겠습니까. 글쎄 웬 놈이 앞창문으로 뛰여들어오지 않았겠습니까. 으흐흑.” 리모는 너무 놀라 그때 일을 회상하면서 바들바들 떨며 뒷말을 잘 잇지 못했다. 수사일군들이 위문하면서 용기를 북돋아줘서야 겨우 진정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놈은 손전지로 이리저리 비추더니 시퍼런 비수를 뽑아들더니 먼저 흉악하게 남자친구의 목을 찍어 죽였습니다. 그 놈이 나한테 다가오자 나는 질겁해 구들에 꿇어앉아 ‘제발 살려달라.’고 싹싹 빌었습니다. 으흐흐, 흑흑, 흑흑.” 대성통곡치던 리모 녀성은 그래도 용기를 내서 끝까지 이야기했다. “그 놈은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짐승 같은 성변태입니다. 나를 한식경이나 유린했습니다. 그 놈은 나를 보고 ‘너 가라. 파출소에 가서 고발하겠으면 고발해라. 난 두렵지 않다. 고발하는 날엔 돌아와서 네년을 죽여버리겠다.' 하고 을러메지 않겠습니까? 그 놈이 문을 열고 나가자 나는 겁나 한참 떨었습니다.  너무 겁나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죽을둥살둥 모르고 친구네 집으로 뛰여왔댔습니다.” 실로 천만다행이였다. 그 살인악마놈은 항상 단서와 후환을 없애려고 살인까지 꺼리김없이 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날에는 살인악마가 리모 녀성을 유린할대로 다하고 환장하였던지 그녀를 살려주었으니 말이다. 수사일군들은 그녀를 보고 “흉수는 어떻게 생긴 놈입데?” 하고 자세히 물어보았다. 리모 녀성은 외까풀눈을 내리깔고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띠염띠염 말하였다. “그 놈은 조선족입디다. 한어도 제대로 하지 못합디다. 몸집은 좀 호리호리한 편인데 키는 1.68메터 좌우 될 겁니다. 좀 길쭉한 낯에 쌍까풀눈인 것 같습니다.” 분명 살인하고서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는 그 살인악마였다. 사건의 엄중성을 느낀 수사일군들은 즉시 피해녀 리모와 함께 사건현지로 달려갔다. 그들은 연길시 하남가 장백시장 부근의 한 낮다란 세집 앞에 이르렀다. 창문 쇠살창은 진작 사람이 드나들만큼 뜯어져 있었다. 사후에 안 일이지만 창문에 댄 쇠살창은 리모와 라모가 초저녁에 집을 비운 틈에 살인악마가 그날 저녁에 범행을 하려고 미리 뜯어놓기까지 했던 것이다. 리모는 그 쇠살창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새벽에 이 문으로 뛰여들었댔습니다.” 수사일군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10평방도 되나마나한 낮다란 세집 안에서 피비린 냄새가 확 풍겨 코를 찔렀다. 수사일군들의 눈 앞에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정경이 펼쳐졌다. 비수에 목을 찔려 사망한 라모가 이불을 덮어쓴 채 피못 속에 쓰러져 있었다. 아직도 비수에 찔린 라모의 목에서는 뻘건 피가 줄줄 흐르고 있지 않겠는가. 얼핏 보건대 구들에는 신발자욱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세심한 수사일군들은 리모한테 살인흉수가 그녀를 유린할 때 머물렀던 자리를 물어보았다. “바로 여깁니다. 그 놈이 여기 구들에 올라와서 나를 유린했습니다.” 세심한 수사일군들은 확대경을 꺼내들고 깐깐히 기술수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에이, 아무 것도 찾기 힘들 겁니다.” 리모 녀성의 말에 수사일군이 의아해했다. “왜?” 리모 녀성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젓더니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그 놈이 떠나기 전에 저기 걸레를 가져다가 자기 섰던 자리를 싹싹 닦았습니다.” 그러나 수사일군들은 포기하지 않고 구들장판과 널장판을 확대경으로 정밀하게 관찰하였다. 한참 후 끝내 널장판에서 살인악마의 완정한 족문을 발견해 성공적으로 채집해내 촬영까지 해두었다. 이는 이전에 비해 아주 큰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수사일군들은 리모 녀성을 보고 “조용히 더 알아볼 일이 있소. 우리가 동무의 안전을 보호할테니 함께 공안국에 가기오.”라고 하였다. 리모는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아니, 겁나서 아무데도 가지 못하겠습니다. 난 할 말을 다 했습니다. 라모 부모한테 알리고 짐을 싸가지고 빨리 이 세집을 떠나야겠습니다. 언제 그 놈의 보복을 받을지 모르잖습니까?” “우리 공안국이 있는 한 그 놈을 겁낼게 없소. 우리가 보호할테니 겁나 말고 가기오. 그 놈을 나포해 처단해야 동무는 완전히 안전할 수 있소.” “여기서 물어보시오.” “아니, 조용히 물어볼게 있소.” 좀 생각에 잠기더니 리모 녀성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가겠습니다. 내 친구와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오.” 수사일군들은 리모와 녀자친구를 함께 데리고 형사경찰대대 사무실로 돌아왔다. 수사일군들은 녀자친구를 사무실에 두고 리모를 단독으로 다른 사무실에 데리고 들어갔다. 자리를 정하고 앉자 수사일군은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물었다. “혹시 그 놈이 동무를 강간하지 않았소?” 그 물음에 리모 녀성은 단마디로 딱 잡아뗐다.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 놈이 동무를 놔둘리 없겠는데.” “내가 요즘 월경이 와서 몸이 더럽다고 하자 그 놈이 손을 뗍디다.” 수사일군들은 계속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그럴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리모 녀성은 “그 놈이 저의 팬티까지 벗겨보고 월경이 온 걸 확인하고서는 진짜 손을 뗍디다. 그저 젖가슴이랑 엉덩이랑 만지고 맙디다.”라고 하기까지 했다. 수사일군들은 리모 녀성이 자기 신변을 보호하려고 방패를 내든다고 생각하고 내심하게 설복공작을 하였다. “그 놈은 살인하고 강간하고 략탈하고야 마는 범행특점을 가진 살인악마요. 이미 숱한 녀성을 강간했소. 그 놈을 나포하려면 유력한 증거가 있어야 하오. 우린 수많은 강간피해녀성들한테서도 그 놈이 남긴 정액을 채취해 철같은 증거를 수집해두었소. 동무의 신변비밀을 지켜줄테니 제대로 그 놈의 죄악을 적발해야 하오. 강간했지?” 한참 생각에 잠겼던 리모 녀성이 끝내 입을 열었다. “저기 온 녀자친구한테도 비밀을 지켜주십시오.” “우린 꼭 비밀을 지키오. 그래서 저를 단독으로 데려다 묻지 않소?” 그제야 시름이 놓인 리모 녀성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천천히 사건 진상을 토로하였다. “그 놈은 확실히 저를 강간했습니다. 팬티를 벗겨보고 월경이 온 것을 보고서도 짐승처럼 달려들었습니다. 으흐흑, 흑흑흑.’ 그녀는 오열을 터뜨렸다. 이윽고 그녀는 수사일군들에게 사건경과를 상세히 이야기했다. 그 놈은 리모 녀성을 구들에 엎디게 하고 뒤로 달려들어 야수처럼 세번이나 강간하였던 것이다. (또 그 악마군!) 수사일군들은 리모 녀성을 설복하여 끝내 법의실에 데리고 갔다. 법의는 그녀의 질에서 살인강간악마의 피묻은 죄악의 정액을 채취해냈다. 살인강간악마가 제 아무리 단서를 남기지 않으려고 장갑을 끼고 비수로 라모를 살해했는가 하면, 낯을 보이지 않으려고 뒤로 리모 녀성을 강간했을뿐만아니라 걸레로 구들장판을 싹싹 닦기까지 했지만 어찌 리모 녀성의 몸에 정액이란 유력한 증거를 남길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 수사일군들이 제공한 단서에 근거하여 풍부한 수사경험을 가진 김광진 국장은 지휘부에서 수사일군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인민법률의 천라지망은 점점 인평촌에 있는 김춘일에게로 조여갔다. 수사일군들은 그와 련계 있는 애인 김후남과 녀자친구 양향화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주의깊게 감시하였다. 하여 가치 있는 단서와 정보가 련속 지휘부에 보고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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