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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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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    대하소설 졸혼 제6권 92 김장혁 댓글:  조회:1465  추천:0  2023-05-21
대하소설     졸혼       제6권         92. 기사회생(起死回生)   어둠의 이불이 서서히 내려 모텔에서 초저녁부터 바람 피우는 벌거숭이들을 가려준다.  신음소리, 아우성소리, 비명소리, 개 죽을 먹는 쩝쩝 소리,  흐느낌소리 반죽돼 귀를 어리럽게 간음한다. 모텔의 김보스는 젤 안방에서 이상한 비명소리 나는 감을 느꼈다. (중국 교포아가씨 방 아닌가?) 순간 김보수의 눈 앞에는 금방 숙박비로 동전 한줌을 쥐여 주던 아가씨 초췌한 몰골이 떠올랐다. (돈도 빡빡 거덜났어? 동전으로 숙박비를 내다니? 눈도 정기 없었어. 혹시 무슨 일 있었나?) 김보스는 그 방 문께에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다른 방에서 어찌나 바람쟁이들이 아우성치고 신음소리 심한지 방 안의 동정을 똑똑히 들을 수 없었다. “아니, 이게 뭐냐? 피 아닌가!” 방 문쯤으로 씨뻘건 피가 주르르 흘러나오며 비린내 물씬 풍기지 않겠는가.  김보스는 콩알눈이 데꾼해졌다.  원래 호텔방 비좁은 바닥은 복도보다 높다보니 피가 문 밖으로까지 흘러나왔던 것이다. 김보스는 깜짝 놀라 문을 꽝꽝 두드렸다. “아가씨! 아가씨! 웬 일인기여? 문 열어! 아가씨!” 방 안에서 신음소리 날뿐 문은 열리지 않았다. 김보스는 부랴부랴 카운터에 달려나가 열쇠뭉치를 꺼내 가지고 달려왔다.  그는 황급히 열쇠로 문을 절컥 열고 침실에 뛰여들어갔다. 이게 뭔가? 반라체 아가씨가 침대 피못 속에 반듯이 누워 있는데 팔목에서 씨뻘건 피가 땅바닥에 줄줄 흘러내렸다. 반쯤 걷어올린 불룩한 아랫배도 이리저리 째져 있지 않겠는가. 깨진 술병사리 쪼각이 피 랑자한 침대머리께 땅바닥에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분명 깨진 술병사리쪼각으로 손목을 베고 배를 푹푹 찌르고 가로세로 짼 것 같았다. “아니, 아가씨, 무슨 짓인기여?” 김보스는 당황망조해 뺑뺑 맴돌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는 파출소와 구호대에  신고했다. 김보스는 아가씨의 팔목을 꽉 잡아 눌러 지혈시키려고 시도했다.  얼마 안지나 경적소리 요란히 들렸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쏜살같이 달려와 골목에 들어섰다. 경찰들은 모텔에 들어오자마자 먼저 신고자를 찾았다. 그들은 김보스를 따라 아가씨가 쓰러진 모텔방으로 들어갔다. 발들여놓고 돌아설 자리도 없는 비좁은 코구멍방에서 피비린내가 물씬 코를 찔렀다.   그들은 사건 현지에서 피못 속에 쓰러진 나영의 처참한 광경을 보고 김보스한테 아가씨 신원과 사건경과를 조사하였다.  그때 음식점의 허보수가 허둥지둥 모텔에 나타났다. “나영이, 어느 방에 있는가? 아니, 이게 뭐요? 나영이! 음식점에서 자라니께. 엄동설한에 기어이 나가? 참.” 경찰은 허보스한테 아가씨를 어떻게 아는가 물었다. “아니, 음식점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던 아가씨야.” “아가씨 이름은 뭔데요?” “나영이야, 나영.” 경찰들은 목책에 나영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경찰들은 허보수를 카운터에 데리고 나가 조용히 음식점에서 벌어진 일을 조사하였다. 허보스는 뜨물에 빠진 멧돼지 퉁사발눈이 돼가지고 마스크를 벗더니 엇저녁에 있은 사연의 자초지종을 쭉 이야기했다. “음식점에선 별 다른 일은 없었어유. 요즘 식당에서 나가겠다는 걸 내 로임을 높여주고 붙잡아두려고 했지요. 그런데 나영은 몸이 저래가지고서도 기어이 모텔에 나가 자겠다고 하지 않겠어요. 엄동설한 밤중에 어데 간다고 그러는가고 음식점에서 자고 래일 낮에 가도 된다고 했지요. 그런데도 기어이 엄동설한에 트렁크를 끌고 나가버렸죠. 난 나영이 근심돼 어데로 가는가고 뒤따라 이 모텔까지 왔댔지요. 나영이 모텔에 들자 난 한시름 놓고 음식점에 돌아갔지요. 오늘 일손이 딸려서 나영을 찾아왔는데. 이런 일 있을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요....” 구급대원들은 먼저 아가씨 팔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시키고 담가에 담아 구급차에 실어 병원으로 쏜살 같이 달려갔다. 김보스가 제때에 발견하고 신고했기에 다행이였다. 구급차에 실려가는 나영은 아직 숨이 가늘게 붙어 있었다.  그러나 병원 구급실에서도 의연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경찰들은 병원 구급실 복도에서 나영을 지키면서 신원을 밝혀내는데 전력했다. 그들이 나영의 방에 있는 소지품들을 다 들춰보아도 려권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경찰들의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그들은 먼저 나영의 핸드폰부터 열어보고 친척이나 지인을 찾으려고 서둘렀다. 중국에 친 전화 외에 젤 전화를 많이 친 전화는 최정호와 박지영의 한국 전화번호였다. 정호한테 아무리 전화를 쳐도 뚜뚜 소리만 날뿐이였다. 경찰들은 경찰청 서류실에 련계해서야 정호와 나영은 모두 인터폴 공개수배범, 도주범이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정호는 체포중 도망쳤다고 했다.  경찰들은 일단 병원에서 나영을 지키면서 구급되기를 기다려 체포해 구금하기로 했다. 경찰은 먼저  박지영한테 전화를 쳤다. “여보세요. 박지영씨인가요? 우린 경찰인데요.  네? 네. 나영씨 친척인가요? 네? 친구라구요? 네. 다른 일 아니고 나영씨 지금 병원에 사고로 입원했는데요. 네. 인차 병원에 올 수 있는가요? 네. 병원에서 구급하고 있는데요. 나영의 신변에 친인척이 하나도 없어 그래요. 네.  여긴 XX대병원인데요. 네. 인차 올 수 있는가요? 네, 협조해 줘 감사해요. 병원에서 기다리겠어요.” 십분도 안돼 박지영이 눈이 황황해 병원 구급실 복도에 나타났다. “아니, 나영아, 무슨 일이냐?”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가와  경찰들을 만났다. “경찰아저씨, 제가 박지영인데요.” 경찰은 마주 인사했다. “생각보다 퍽 빨리 왔는데요.” “네. 제가 이 병원에서 간병하고 있는데요.” “그래요?” 경찰들은 파란 색 간호사 복을 벗지도 않고 달려온 박지영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반색했다.   “참 잘됐어요.” 박지영은 경찰들한테서 대개 사건경과를 들었다. “에이, 애도 죽긴 왜 죽어?” 지영은 친구의 불행에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녀는 구급실에서 나온 의사한테 물었다. “생명에는 지장 없는가요?” “피를 많이 흘려 모진 빈혈이 왔어요. 제때에 수혈해 구급했기에 모자가 다 생명에는 지장 없어요. 며칠 보양하면 정신차길 거 같애요.” 박지영은 포도눈이 데꾼해졌다. “애라니요?” 의사는 지영의 놀란 포도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환자분은 임신 다섯달이나 됐는데요. 유리쪼각으로 아랫배를 여러 곳 찌른 걸로 압니다. 아랫배 상처를 수술해 유리쪼각을 다 주어내고 째진 배도 꿰매놓았는데요. 수술이 아주 성공적으로 잘 됐어요. 넘 근심 마세요.” 지영은 머리를 끄덕이며 한숨을 호- 몰아내쉬였다. (임신한 건 이제껏 내한테도 속였구나. 정호를 따라다니더니 임신까지 했구나.) 여기까지 생각하자 지영은 나영의 처지가 불쌍했다. 나영은 그래도 친구가 있어 다행이였다. 지영은 죽마고우 나영의 치료비를 먼저 척 선대해주었다.  며칠 후 나영은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였다. 머리에서는 제3차 대전을 하고 있었다. 모텔인지 음식점인지 어둑시그레 한 곳이다.  정호인지 음식점 허보수인지 뒤로 달려들어 나영을 와락 끌어안는다. “왜 이래요?” “인생이 얼마라고 내캉 놀자.” 경상도 말 하는 걸 보면 허보수 같았다. “메스꺼워. 이걸 놔!” 허나 그자는 나영을 놓지 않고 침대에 쓰러눕힌다. 나영은 손으로 그 자의 턱을 치받쳐올리고 발버둥질치며 아우성쳤다. “몸이 이런데 어째 사정도 안 봐주고 짐승처럼 마구 달려드는가요?” “괜찮아. 살살 다룰터니.” 그자는 나영의 치마를 와락와락 쳐들고 덮쳐들었다. 나영의 백지장 같은 허벅다리 훌렁 드러났다. 나영은 단말마적으로 저항하며 고함쳤다. “아, 아, 이러지 말라. 경찰에 신고할테야!” 그 놈은 싯누런 승냥이 톱이를 드러내며 씨벌였다.  “나영이, 그대를 사랑해.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걸 누가 체포해간대? 안 잡아간다는기여. 히히히.” ... 그놈은 끝내 그걸 한동이나 싸넣고 뿍 빠져나가 철써덕 쓰러졌다.   환각인가? 배가 불시에 둥둥 불어나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임신시켰어? 그 놈 정자는 뭔데 단통 임신해? 변강쇠게 돼 그런가? 이걸 어쩌나?)       나영은 속이 한줌만해져 둥기배를 끌어안고 근심이 태산 같았다.  그런데 그 놈이 숨을 돌리자 또 달려들었다. “이 개놈새끼, 물러가지 못해?!” 나영은 마구 몸부림치며 고함쳤다. “나영아, 왜 이래? 꿈을 꿨니?” (누군가?) 갑자기 귀에 익은 녀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영이 눈을 스르르 떠보았다. 눈까풀이 천근무게나 돼 조금도 뜨기 힘들었다. 그러나 쌍겹눈은 기적적으로 천천히 틈이 생겼다. 사면이 온통 새하얗고 파란 간호사복을 입은 낯익은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나영아, 끝내 살아났구나.” (누군가?) “나영아, 날 알아보겠니? 나 지영이야.” (지영이?) 나영은 그제야 시름놓고 눈을 다시 감아버렸다. 온통 새까만 천길나락으로 다시 서서히 빠져들어갔다.  저승사자들이 들 것을 들고 길목을 지키다가 안되겠다 싶어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더니 사라져버렸다. 뺀질뺀질한 번대머리, 희죽거리는 우멍눈, 게슴츠레한 퉁방울눈, 보기도 싫다하니 피뜩피뜩 나타났다. 며칠 후 허보스가 구급실 복도에 나타났다. 허보스는 울상이 돼 경찰한테 물었다. “나영이 없어 냉면 한그릇도 못해유.  나영이, 어떤가요? ” “괜찮아요. 이제 곧 정신 차릴 거요.”  허보스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쾌자를 불렀다. “살았어. 우리 음식점 살았어.” 경찰은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나영은 병세가 호전되면 체포해가야 되는데요. 달리 방도를 구하세요.” 허보스는 혼비백산했다. “지금 뭐라고? 달리 방도를 구하락꼬? 안될 소리. 우리 음식점은 나영 같은 주방장이  없인 안돼.” 경찰은 나직이 말했다. “나영은 인터폴 공개수배범인데요. 꼭 체포해가야는데요.” 허보수는 아연실색했다. “뭐라고? 저렇게 곱게 생긴 아가씨 웬 공개수배범인기여? 배 뚱뚱해가지고 무슨 못된 짓 해?” 경찰은 더 해석하지 않았다. “달리 주방장을 구해요.” 허보스는 발길을 돌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음식점 다 망해빠지게 생겼네그려.” 그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묶음을 만지작거렸다. (세상 일은 실로 짐작키 어려워. 하마터면 공돈을 치료비로 내놓을번 했잖아?) 허보스는 원래 나영의 치료비를 선대해주려고 돈 500만원이나 가지고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돈을 지금 남아가지고 가게 돼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한편 허보스는 속으로 나영이 없을 음식점 주방에 생각이 미치자 속이 재가루로 돼버렸다.  그는 엘레베이터에서 나영의 불룩한 배와 당장 젖폭포가 터질듯한 풍만한 젖가슴이 떠올랐다. 순간 괴춤 속에서 그게 머리를 천천히 쳐들고 아랫배개 찡해나면서 정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참 아쉽구나. 입에 다 들어온 비게덩이를 놓치다니.) 그는 은근히 부풀어올랐던 정욕도 맥없이 쓰러지는 감을 쓸쓸하게 느꼈다.  저승사자가 죽음을 재촉하는 북소리 귀가를 아프게 때렸다.  사선에서 헤매던 혼이 염라전 재빛 토성 넘어 구리문을 두드린다.         백골이 시끄럽다고 입을 쩝쩝 다시더니 하품을 하며 낮잠을 청한다.           빨간 나리꽃이 염라전에서 시들지 않고 기사회생하오니 염라전 썩은 문턱에 자란 잡초가 하느적거리며 작별인사를 하누나.
355    대하소설 졸혼 제6권 91 김장혁 댓글:  조회:1388  추천:0  2023-05-13
대하소설            졸혼              제6권                김장혁        91. 자유와 참사랑의 신이여 철조망이 촘촘히 박힌 높다란 재빛벽돌담장을 두른 감옥, 재빛토성 네귀의 초소에서 법경이 총가목을 쥐고 경각성 높이 사위를 둘러보며 보초를 서고 있다. 희미한 해빛 몇가닥이 간신히 비껴드는 어둠침침한 감방에 번대머리가 차디찬 벽에 기대 앉아 있다. "빨리 죽여라! 개새끼들아, 난 성자유를 위해 싸우다가 죽는다.죽어도 자유남신이 될 거다. 졸혼의 샛별이 될 거야!씨," 그때 몇간 건나 독감방에에서 욕설이 쏟아져나왔다. 날강도,사형수 허병칠의 목소리다.  허병칠의 옆방에서 오정룡은 코웃음쳤다. “흥, 죽어 신이 되면 뭘 한다고 저래?” 오정룡은 공상국 부패분자 오청룡 국장의 동생인데 숱한 녀성들을 강간하고 살해하였으며 날강도질하다가 로씨야에서 인터폴에 나포돼 국내에 인도됐던 것이다. 사형을 앞둔 오정룡은 감방에 힌들 들어누워 수음을 하며 강간하던 녀성들을 떠올렸다. 그의 머리 속에 젤 인상깊은 일은 망아산 소나무숲 속에서 동료강도들과 함께 쇠파이프로 정호를 까눕히고 가무단의 림하영을 륜간하던 일이다. (오호,가수 림하영,얼마나 예뻤는가.) 오정룡은 림하영의 우유빛 허벅다리와 엉덩이를 떠올리자 그것이 꿋꿋이 머리를 쳐들었다. 사람은 당장 죽게 돼도 그것만은 본능인가. 괴춤을 내리고 그걸 쥐여 손놀림을 빨리 했다. 끝내 걸죽한 옥수수죽 같은 걸 내쏘며 신음했다.생명의 마지막 순간,마지막으로 쾌감을 느끼고 맥없이 손을 스르르 놓으며 눈을 스르르 감았다. "날강도, 살인범 오정룡, 나와!" 오정룡은 질겁해 몸을 옹송그리더니 뒤로 앉은걸음을 비실비실 하며 중얼거렸다. “안가겠다.왜 죽으러 가겠니?" 쇠살창문이 절커덩 열렸다.  법경 서넛이 우르르 쓸어들어와 독수리가 병아리 덮치듯이 오정룡의 팔을 붙잡아 끌고 나갔다. 사형장은 감옥과 별로 멀지 않은 화장터 토성 밖에 있었다. 재빛단층건물에 들어서자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법경은 오정룡의 신분을 확인한 후 호령했다. "침대에 누워!" 그러나 오정룡은 도살장에 끌려들어가는 소처럼 퉁사발눈을 부릅뜨고 뒤걸음질쳤다. "싫어!죽기 싫어!" "이 놈 눕지 못해?!" 법경들이 덮쳐들어 오정룡을 침대에 쓰러눕히고 네각을 바줄로 꽁꽁 묶었다. 오정룡은 별 욕설을 다 퍼부었다. 녀법경이 주사바늘을 정맥에 꽂고 안락사주사기계 단추를 눌렀다.  오정룡은 30초도 지나지 않아 까딱하지 못했다. 한때 망아산 수림 속을 누비며 강간, 략탈, 살인을 일삼던 날강도 오정룡은 끝내 처단되였다.   오정룡에 뒤이어 살인범,부패부장 허병칠도 사형당했다.허병칠은 직권을 빌어 림하영 등 숱한 녀학생들한테서 돈과 성 착취를 했고 자기 부패한 죄행을 덮어감추려고 정희를 도끼로 머리를 찍어 처참하게 살해했던 것이다.   허병칠은 사형장에서 침대에 사지를 꽁꽁 묶여 까딱 할 수 없게 되자 세상이 보기 싫어 눈을 스르르 감았다. 저승사자가 죽음을 재촉하는 북소리 어디선가 울렸다.온통 잿빛벽돌이 쳐다보였다. 법경이 허병칠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없는가?" 허병칠은 눈을 스르르 감더니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띄염띄염 말했다. "새는 먹이를 위해 죽는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은 먹이를 너무 탐내지 말아야 한다. 당간들한테 전해달라.공걸 훌훌 받아넣지 말고 법을 지키면서 사는게 젤 행복하다고.난 후회없이 살았다. 이쁜 림하영이랑 숱한 미녀대생들을 데리고 실컷 살았기에 후회없다. 한이... " 말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안락주사약이 정맥으로 흘러들어 목숨을 거둬갔다. 정호는 법률학습시간에 허병칠이 사형 직전에 남긴 말을 법경에게서 듣고 머리를 끄덕였다. 정호는 감방에 누워 비껴드는 몇가닥의 해빛을 바라보며 끊임없는 속궁리를 굴렸다.  (저승사자 최혜영을 태평양 무인도 사지에서 구해주고 숱한 부패분자들의 죄행을 적발한 '립공속죄'로 해 나는 죽음은 면했다. 하지만  오정룡이나 허병칠의 끝장과 단지 종이 한장을 두고 있을 뿐이야.저승사자는 어찌 그렇게 몰인정해. 목숨 걸고 구해줬건만 그럴 수가? 쌍불을 켜고 내 죄행을 밑굽까지 파헤쳐 15년 징역살이를 다 하게 한단 말인가?) 뜻밖에도 웬 녀성이 면회하러 왔단다. (누군가?순정인가? 왔다간지 며칠도 안되는데.) 그러나 면회실에 나가 보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금발미녀 아사꼬가 아니겠는가. 그녀는  남태평양 무인도 해적들의 손에서 자기와 최혜영을 구해낸 미녀로봇이였다. "안녕하세요? 최국장님,무사히 보냈는가요?" "아니, 어떻게 돼 여기까지 왔어?" 아사꼬는 금발을 뒤로 쓸어넘기면서 주위를 둘러보면서 앵두입으로 나직이 종알거렸다. "어때요? 감옥살이 하기 싫은가요? 제가 구해줄가요? 요까짓 쇠살창이야 무슨?"         아사꼬는 두 손으로 면회실의 쇠살창을 잡아 비틀었다. 그러자 쇠살창이 쭉 벌어졌다. 정호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절대 그러지 마. 이제 또다시 법을 어기고 싶잖아." 그러자 아사꼬는 비틀어벌렸던 쇠살창을 제대로  쭉 펴서 바로잡아 맞춰놓았다. 그녀는 도리머리를 잘래잘래 저었다.       정호는 뒷말을 이었다.     "혜영 덕분에 감옥에서 무탈하게 잘 보내고 있어.남태평양 무인도겠어? 먹을 근심, 잠자리 근심 없이 무탈하게 보내네." 아사꼬는 머리를 끄덕였다. "최국장님도 준법교육을 받을만하구만요.무슨 어려운 일 있으면 저한테 말하세요.언제든지 도와줄게요." 아사꼬는 기실 문걸한테서 태평양 무인도에서해적들의 손에 혜영이 걸려들었다는 기별을  듣고 망망한 바다를 날아가 혜영과 정호를 구해냈던 것이다.정호는 아사꼬한테서 문걸이 보내서 아사꼬가 구하러 오게 된 사연을 듣고 속으로 놀랐다. 문걸의 깊은 죽마고우정이랄가, 인도주의 정신이랄가, 가슴깊이 맞혀왔다. 아사꼬가 떠나간 후 정호는 감방에 들어누워 눈을 스르르 감았다. 순간 공포의 파도가 덮쳐오는 망망한 남태평양의 무인도에서 벌어진 일이 눈 앞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정호는 해적들의 몰사격을 당할 수 없어 칼을 버리고 해안가 절벽에서 바다에 풍덩 뛰여들었다. 푱! 푱! 푱! 무수한 총알이 바다물 속에서 그의 머리를 스쳐지나가며 죽음의 노래를 불렀다. 정호는 바다 복판으로 헤염쳐나가지 않고 잠수해 절벽 밑에 헤여가 들쑥날쑥한 바위돌에 딱 붙어 있었다.하영이랑 데리고 대학가 수영장에 다니면서 수영을 한 덕에 파도 세찬 바다에서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해적들은 한참 바다물에 헛총질하다가 뭐라고 씨벌이더니 혜영을 끌고 소굴로 떠나가버렸다. 정호는 사선에서 벗어나자 다  혜영이 해적들한테 잡혀간 걸 떠올랐다. 아직도 혜영이 구해달라고 애원하던 고함소리 귀전을 아프게 때렸다.       정호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또 한편으로는 자기를 나포하려고 미쳐날뛰던 혜영이 해적들한테 살해당하면 모든 것이 끝날게 아닌가는 생각도 떠올랐다.그러나 그는 인차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돼, 절대 혜영을 해적들 손에 죽게 놔둘 순 없어. 날 잡으려고 쫓아온 건 괘씸하지만 한 고향  녀성인데. 꼭 구해야 한다.그런데 맨손으로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검푸른 공포의 파도가 덮쳐와 해안가 바위돌을 처절썩 들부시고 허연 물보라를 일궜다. 배가 촐촐해나면서 허기났다. 파다닥 파다닥 정호가 여겨보니 바위돌 틈에 손바닥만한 물고기가 파닥거리며 끼어 있지 않겠는가. 파도에 밀려왔다가 바위에 부딪쳐 끼워 미처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물고기였다. 정호는 손을 홱 날려 제꺽 물고기를 붙잡아 우두둑 우두둑 뜯어 질근질근 씹어 넘겼다. 그러나 허기를 달래긴 역부족이였다.     정호는 해안가 바위틈에 손가락을 박으며 한걸음한걸음 간신히 절벽을 기어올라갔다. 절벽 돌틈에 비수가 있잖겠는가. 분명 그가 해적들의 총알을 피해 바다에 뛰여들 때 버린 비수였다. (혜영을 구해야지.) 정호는 비수를 쥐자 혜영을 구할 신심이 솟구쳐올랐다. 그는 손으로 비수날을 닦아 달빛을 빌어 서슬푸른 칼날을 훑어보면서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서슬푸른 비수를 들고 달빛을 빌어 수풀 속을 헤치며 절벽을 타고 협곡의 해적들의 소굴로 한발작한발작 더듬어 나갔다. 한식경이 지나 정호는 천신만고 끝에 해적들의 소굴에 접근했다. 그가 수풀을 헤치고 희미한 등불빛이 비낀 자연석굴을 들여다보았다. 떠들썩하는 자연석굴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글쎄 반라체 혜영은 해적놈들한테 집단륜간당하고 있지 않겠는가!         혜영은 해적들한테 깔린 채 개 목을 다는 비명소리를 질러대며 대성통곡치고 욕해댔다. "짐승 같은 개놈새끼들, 어디 죽어봐라!" 정호는 비수를 빼들고 자연석굴로 덮쳐나가려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잠간!" 갑자기 머리 뒤 하늘공중에서 들리는 웬 녀인의 목소리, 정호가 머리를 홱 돌려보니 달밤에 하늘에서 웬 금발녀인이 수풀에 날아내리지 않겠는가. "누구야?" 금발미녀는 식지로 정호 입을 막았다. "쉿-" 그녀는 나직이 말했다. "미녀로봇 아사꼰데요.문걸선생이 보내서 왔어요. 혼자 어떻게 숱한 해적들을 당한다고 그래요?"        순간 정호는 저도 몰래 문걸의 의리심에 감동을 먹었다.         (생사선에서 헤맬 때 그래도 문걸이구나, 아주 속이 깊은 놈이구나. 아직도 날 절친으로 보는가? 네 안해를 빼앗고 짓밟은 량심도 없는 놈인데.) 정호는 아사꼬의 손을 뿌리치며 앞으로 나가려고 했다. "혜영이 해적들한테 륜간당하는 걸 어떻게 가만놔두오. 목숨 걸고라도 구해야지." 아사꼬는 정호의 팔을 붙잡았다. "헤덤비지 말아요. 내 말 좀 들어요. 이제 해 밝으면 저 놈들이 또 강도질하러 바다로 나갈 겁니다.그때 우리 혜영을 구하는게 상책입니다." 정호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아사꼬와 함께 절벽 수풀 속에 납짝 엎드려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지루한 시간이 공포와 함께 천천히 흘러지나갔다.  하늘이 서서히 푸름히 밝아왔다. 남태평양은 북반구와는 달리 동북쪽 바다에서 해가 불쑥 뜨더니 북쪽하늘에 서서히 걸려 있는 것이였다. 아사꼬 말처럼 해적들은 해적선을 부르릉부르릉 발동을 걸더니 바다로 나갔다. 석굴 주변을 둘러보니 몇몇 해적들이 보초를 서고 있을 뿐이였다. 아사꼬는 옆에 엎뎌 있는 정호를 돌아보며 나직이 말했다. "강공을 해선 안돼요.지혜롭게 구출해야죠.내 먼저 자연석굴에 접근해 보초병 놈들을 해치우면 그때 쳐들어 오세요." 정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아사꼬는 적수공권으로 자연석굴로 스적스적 걸어나갔다. 해적들은 아마 서라고 꽥 고함치는 것 같았다. 아사꼬는 해쭉해쭉 웃으며 두 손을 쳐들고 주춤 멈춰섰다. 해적들은 꿈처럼 무인도에 나타난 금발미녀를 보자 총을 거두고 덮쳐들었다. 그런데 저게 뭐야? 아사꼬는 불시에 허망 날아나가며 발길을 날려 보초병을 쓰러눕혔다.그녀는 어데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섬약한 손으로 한놈을 허망 들어 태를 쳐놓았다. 나머지 보초병놈은 총을 갈겼다. 아사꼬는 하늘로 씽 날아올랐다.그는 슈퍼맨처럼 씽-씽 -날아나가며 보초병의 목을 잡아 비틀어 줴뿌렸다. 쿵! 보초병놈의 대가리 바위돌에 부딪혀 서리맞은 박대가리처럼 우글어들었다. 그때 정호도 비수를 빼들고 자연석굴로 덮쳐내려갔다.그는 아사꼬한테 채워 쓰러진 보초병놈들을 비수로 푹푹 찍어 숨을 거둬버렸다. 온 밤 혜영과 녀성들을 륜간하고 곤하게 자빠져 자던 해적 두목은 바깥이 소란스러워 눈을 번쩍 떴다.그는 바깥 뜻밖의 정경에 질겁해 선불 맞은 노루처럼 자연석굴에서 빠져나와 해안가로 도망쳤다. "어디로 도망쳐!" 아사꼬가 씽 하늘로 솟구쳐 올라 날아갔다. 두목 놈은 하늘공중에 날아오는 미녀한테 권총을 휘둘렀다.  푱! 푱! 총알이 금발미녀 몸에 맞아 불꽃을 튕겼다.그러나 금발미녀는 끄떡하지 않고 계속 추격해 날아갔다. 질겁한 두목 놈은 권총을 버리고 바다물에 풍덩 뛰여들었다.아사꼬는 하늘로 씽 날아가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두목을 한손으로 붙잡아 씽- 절벽가로 날아가 바위돌에 탕 태를 쳐놓았다. 개 목을 다는 비명소리, 두목놈의 피섞인 뇌장이 바위돌에 더럽게 튕겼다. 정호는 아사꼬와 함께 권총과 자동카빈총 빼들고 자연석굴로 쳐들어갔다.녀성들이 아우성치며 석굴 구석에 숨는다. 해적 두 놈이 총을 쏘며 반격했다. 정호가 련발사격해 두 놈을 쓰러뜨렸다. "최국장!" 혜영은 정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녀성들은 정호를 다른 해적인가고 두려워 흘끔거렸다.               정호가 보니 혜영의 초췌한 몰골은 그제날 언제 위풍이 당당한 현퇀급 검사였는가 의심될 정도. ㅋㅋ.       검불이 다닥다닥 붙고 푸시시한 파뿌리머리카락, 독기 빛나던 어글어글한 눈은 어데 가고 정기를 잃은 두 눈, 팔에서 너펄거리는 람루한 와이샤쯔, 가랭이 다 째지고 피 즐벅한 청바지,  너무나 처참한 몰골.      정호는 해적의 시신에서 군복을 와락와락 벗겨 헤영을 입으라고 주었다. 혜영은 주춤 주저하다가 별 수 없이 한쪽 구석에 가서 해적의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었다. 랍치당해 온 이국 녀성들도 해적들의 시신에 달려들어 옷을 벗겨 입고 반라체를 가리었다.     옆에서 아사꼬가 거들면서 혜영의 삼검불 같은 머리에 붙은 검불을 뜯어주었다.    아사꼬와 정호는 바다로 나간 해적들이 무인도에 되돌아올가봐 근심됐다. 그들은 혜영 등 녀성들을 구해가지고 재빨리 한 많은 무인도를 떠나야만 했다. 그들은 해적들이 해안가에 정박해뒀던 나머지 해적선에 해적들의 소굴의 금은덩이와 식량, 휘발유를 싣고 무인도를 서서히 떠났다...      그런데 항해경험이 없는 정호는 그만 지구 남반구에 속하는 남태평양에서는 해가 북반구와는 달리 남쪽에 뜨는게 아니라 북쪽에 뜬다는 걸 몰랐다. 하여 그는 조국이 있는 북으로 간다는 것이 그만 남쪽으로 해적선을 몰고 망망한 바다에서 헤맸다. 설상가상으로 휘발유마저 다 떨어져 해적선은 방향도 없이 표류하였다. 다행히 남태평양의 자그마한 섬나라 경비정이 바다에서 표류하던그들을 구원하였다.       남태평양 섬나라에서는 정호와 아사꼬가 자기 나라 녀성들을 해적들의 마수에서 구하고 숱한 금은보화를 섬나라에 기부했다고 영웅으로 상대접하였다. 원시마을 추장 같은 자그마한 섬나라 까마잡잡한 딸맹이 국왕은  자기 나라에  남아 해적들을 다 잡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정호와 아사꼬는 황선희를 귀국할 때까지 보필하면서 조국에 돌아왔던 것이다.       (죽어도 조국의 귀신이 되고 싶었지.)   정호는 여기까지 생각하자 감방을 둘러보며 저으기 허전하고 쓸쓸한 감이 들었다.     (혜영이 야속하다, 야속해. 목숨걸고 구해줬건만 대의멸친해 날 15년징역에 구형해 법원에 기소했다.)      무인도에서 헤영의 옷이 다 해진 져 가슴이 다 훌렁 드러난 걸 보고 정호는 자기 와이샤쯔를 벗어 입혔다. 그런데 석굴에서 해적들한테 륜간당하면서 그 와이샤쯔마저 다 째졌다. 정호와 아사꼬는 해적들을 처단하고 두목의 시신에서 얼룩덜룩한 군복을 벗겨 헤영한테 입혀가지고 해적선에 올라 한많은 남태평양 무인도를 벗어났던 것이다. (전번에 혀영은 머리도 염색하고 남색검찰복을 척 입고 면회하러 감방에 나타나잖겠어? 파뿌리처럼 허옇고 푸시시한 머리카락, 갈기갈기 찢어진 람루한 와이샤쯔를 입었던 무인도 혜영의 처참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지. 그런데 그게 뭐야? "무인도에서 제 륜간당한 비밀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라. 만약 탄로나는 날엔 가만놔두지 않겠다." 진짜 육친도 구명은인도 모르는 저승사자야.)   그는 억지로 심리균형을 유지하려고 들었다.  (그래도 저승사자 덕분에 난 힘든 로동개조는 안하잖는가. 감옥에서 죄수들의 문화과 교원노릇을 하면서 춤도 추고. 이게 내 여생에 인생의 가치를 실현하는겐가? 아, 서글프구나. 내 인생, 참 자유와 성해방을 추구하던 사랑의 유령, 졸혼의 신이 이게 무슨 처지람?원통하다. 원통해. 이젠 하소연할 데도 없어. 또 하소연해 뭘해?)  얼마 지나지 않아 군철이 면담하러 왔다고 하였다. 면담실에 나가보니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번대머리가 우멍눈에 뜨거운 눈물범벅이 돼 기다라고 있지 않겠는가. (딱 나를 떼닮았구나. 저 대머리,우멍눈을 봐라. ㅎㅎ.) "아버지!태평양 무인도에서 해적들한테까지 붙잡혔다던데 얼마나 고생했겠습니까?어떻게 해적들 손에서 빠져나왔는지 살아오기만 해도 천만다행입니다." "하느님 안배겠지. 다 아사꼬가 구해준 덕분이야." 정호는 군철에게 태평양 무인도에서 있은 일을 쭉 이야기하고 나서 정색했다.       그는 아들의 두 손을 꼭 잡고 신신당부했다. "군철아, 넌 절대 아버지 전철을 밟아선 안돼. 남이 돈뭉치를 줘도 훌훌 받아먹지 말라. 사람은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직권을 빌어 공걸 탐내지 말고 법을 지키면서 사는게 젤 행복하다.나를 봐라. 공걸 훌훌 받아먹구 이게 무슨 꼴이냐?" 그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뒷말을 이었다. " 졸혼이구 뭐구 다 그만둬라. 졸혼은 비극의 프롤로그, 크라이막스야. 나를 봐라. 졸혼하구 얼마나 숱한 녀성들을 해쳤느냐?네 엄마 영희,이모 순정도 해친게 마음이 아프다. 어디 그뿐이야? 황선희, 나영이, 정희, 임하영이, 미희… 그 외에도 숱한 녀성들을 데리고 질탕하게 놀았지.난 숱한 녀자들을 해쳤다. 나영은 내하구 살아서 임신해서 자살하고 정희는 도끼에 찍혀 죽었어. 하영은 륜간당하고 제명당했지. 하영이 불쌍하다. 황선희랑 하영이랑 너네 회사에 갔다는데 네가 잘 보살펴라. 내 죄과 를 네가 씻어주고 보듬어 줘라. 너네 엄마도 불쌍하다. 한뉘 속을 태우며 살다가 사망했지. 그땐 졸혼하고 미녀들의 육감에 좋아 놀아났지.난 사랑을 일종 유희로 보았다."      정호는 우멍눈으로 군철을 마주 보며 물었다.     "문걸이 정신병에 걸렸다더니 어떠냐?"    "지금 춘희박사랑 옆에서 보살펴서 많이 낫습니다."    "그래, 문걸은 기실 정신병자 아니야. 아사꼬를 보내 우릴  구한 걸 봐라. 속이 얼만 깊은 사람이냐? 다만 참사랑인지 뭔지 너무 집착하는게 흠이야. 지금 세상에 어디 티없이 맑고 깨끗한 참사랑이 있느냐? 춘향이 사라진지 몇백년인데. 허이구, 참 답답하다. 난 문걸이 주장하는 정신적인 사랑, 전통적인 사랑을 부정하고 나는 육감적인 사랑을 추구했다. 그래서 숱한 녀성들을 몇해에 하나씩 갈아타면서 놀았지. 나는 졸혼하고 가정을 벗어난 자유로운 생활을 추구했지. 순정을 속이고 문걸을 속이고 영희를 데리고 몇십년을 살았어. 지금 생각해보면 숱한 녀성들을 즐기는 것이 참된 사랑이나 락이 아니지.진정한 행복한 사랑은 녀성의 미모나 수량에 있는게 아니야. 한 녀성을 진정으로 깊이, 넓게 사랑하는 사랑이야 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랑이지." 정호는 원래 말수 적었다. 그러나 아들과 말할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아서인지, 아니면 군철의 장래가 근심돼서인지 숨돌릴새도 없이 죽 이야기했다. "얘야, 넌 이젠 절대 졸혼이구 뭐구 그냥 해선 안돼. 아서라.졸혼은 구름처럼 떠돌아다니는 사랑의 유령이야. 졸혼은 구름 속의 허황한 신기루야. 실체가 없이 구름 속에서 숨박곡질하면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바람결처럼 사라지는 괴물이야. 졸혼은 바람쟁이야. 숱한 사람들을 유혹해 행복한 가정을 파괴하고 떠돌이 사랑유령에 홀리워 환각과도 같은 사랑의 바다에서 떠돌게 하는 방랑객이야. 넌 어서 졸혼 그만두고 리나하구 복혼해 애들을 데리고 행복하게 살아라.그게 사랑의 자유보다 낫고 더 행복해." 군철은 그저 건성으로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이렇게 되뇌였다. "아버지, 리나를 지내보지 못해 잘 모르고 하는 말씀입니다. 리나는 싸가지없는 녀잡니다. 양아버지를 어찌나  괄시했는지 양아버진 딱 질색입니다. 자기 먼저 밥을 먹겠는데 양아버지 애를 봐주지 않는다고 뭐라고 욕했는지 압니까? '며느리를 배려할줄도 모르는 바보 령감태기'라고 욕했습니다. 리나는 또 한심하게 탐욕스럽습니다. 이번에 회사에서 아파트를 짓자 직권을 빌어 양아버지와 춘희, 이모를 받아 아파트를 더 타자고 꿍꿍이를 합니다. 얼마나 과욕합니까? 리나는 꼭 이후에 부패분자로 될 위험한 녀자입니다. 애들을 보면 불쌍하지만요. 어떻게 그런 탐욕스럽고 싸가지도 없는 녀자와 삽니까?애들과 내 전도를 망치고 우리 집안을 망치라고 그럽니까?" 사실 리나는 군철이 아파트를 더 챙기려고 하지 않자 끝없이 도도거렸다. “당대표라는 명예를 위해 그럽니까? 아니면, 더 높은 벼슬자리에 기여오르려고 그러는가요? 그런데 어째 성당위 조직부에서 조직건설처 처장으로 제발시키려 할 땐 가지 않는가요?” 군철은 당시 성당위 조직부의 요구에 따라 성내 대도시 대기업에 돌아다니면서 어떻게 외자기업에서 당조직을 건설했는가는 사적보고를 하였다. 그리하여 성당위 조직부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조직처 처장으로 임명됐었다. 그러나 군철은 미국 상무부의 간섭과 압력으로 해 회사와 직원들의 밥통문제가 위기에 처한 시기에 회사를 훌 떠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정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그래도 송림과 길림의 에민데 너무 참혹하게 굴지 말라. 손자들이 퍽 보고 싶구나.” 군철은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애들이 크면 데리고 오죠." "아니야, 내 감옥에서 나가기 전엔 애들을 데리고 오지도 말라. 애들이 할애비 이런 모습 보면 장차 좋찮다."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 저와 리나 일은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아량있게 처리할테니까.졸혼은 글쎄 아버지 말씀처럼 가정을 파괴하고 병주고 약주는 요사한 뺑덕에미죠. 양아버지도 이렇게 인정합디다. 보십시오. 졸혼 때문에 양아버지와 어머니 리혼하고 가정이 깨여지고 얼마나 망신스럽습니까? 아버지도 졸혼 때문에 이모와 리혼하고 이게 뭡니까?" 부자간은 면회실에서 호심탄회하게 소설 같은 인생사, 가정사를 담론하고 사랑과 결혼, 졸혼과 재혼, 가정과 자녀들에 대해 한참이나 이야기하고 혜여졌다. 정호는 면회실에서 돌아서나가는 아들의 넓직한 뒷잔등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때 한 나이 이슥한 녀검사가 군철을 불러세웠다. 그녀는 군철을 한 사무실에 데리고 가더니 나직이 말했다.                  "난 황선희라고 부르오. 최국장 아드임이죠?"        "예, 무슨 일입니까?"        황선희는 정색했다.       " 아버지 옥바라지를 근심하지 말고 회사 일이나 잘 보오."       "네?"       뜻밖의 말에 군철은 저으기 놀라 우멍눈을 흡떴다.       황선희는 인정이 넘치는 어글어글한 눈으로 군철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 최국장은 내 구명은인이오.  내 이제 당장 퇴직하게 되는데 아버지 옥바라지를 도맡겠소."        군철은 아버지한테서 들은 것과는 달리 황선희 국장검사는 대의멸친하지만 인정과 의리도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후에 황선희가 면회하러 와서 "옥바라지를 도맡겠다."고 하는 말을 하자 정호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뒤이어 정호는 무인도 비극의 어두운 그림자를 채벗어나지 못한 까마잡잡한 황선희 모습을 보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덕은 쌓은 데로 가고 죄는 지은데로 가는구나. 이게 다 인과보응이지.)         정호는 황선희와 헤여진 후 끝없는 상념에 잠겼다. 사랑이란 무엇이고 졸혼이란 무엇인가? 구경 졸혼에 사랑 자유가 있고 인생 자유가 있는 걸가? 졸혼은 왜 이다지도 사람들을 들볶고 속타게 하는 걸가? 정호는 쇠살창을 거머쥐고 흐리멍텅한 밤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 자유와 졸혼의 신이여! 그대는 지금 이게 뭡니까?” 그때 하늘에서 문걸의 목소리가 울리는 상 싶었다.      “아, 참사랑의 유령이여, 그대는 어데 있는가?” 순간 강남의 안개 자오록한 호수에서 원앙새들이 쌍쌍이 호수물에 떠노닐면서 종알거리지 않겠는가.        "세상에 순박한 참사랑이 어디 있는가요? 우리 원앙새도 기실 짝꿍이 눈을 피해 가만가만 바람 피우는데요."         찰나, 어둠침침한 하늘에서 성자유의 람루한 깃발이 졸혼을 걸치고 보기 싫게 펄럭거리며 날아지나가며 콧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갑자기 성자유의 유령과 참사랑신이 밤하늘에서 꽝 격돌해 폭발했다.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하얀 별찌가 강남 호수에  퉁퉁  떨어진다. 호수에 강렬한 기포가 일어나고 호수물이 부글부글 끌어번진다. 원앙새들이 어둠침침한 호수에서 암암리에 바람 피우다가 깜짝 놀라 푸드득푸드득 흐리멍텅한 하늘로 풍겨오른다.       웬 일일가?       흐리멍텅한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졌는가?     거부기들과 게들이 모여왔다.      "아니야, 참사랑의 별이야." "아니야, 전번에 호수에서 건진 뻘건 참사랑의 심장이야."       자유와 참사랑에 슴배인 펄떡펄떡 높뛰던 심장이 하늘로 솟아올라 참사랑의 별이 되지 않았던가.      그 자유와 참사랑의 신이 별찌로 떨어져 호수물 속에서 북극 상공의 오로라처럼 빨갛고 파란 한줄기 빛이  빛발친다. 백길 물 속에서도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아닌가.      참사랑의 오라라 찬란한 빛발에 음침한 허위가 산산히 부서지는 순간이다.     후수에서 시뻘건 번개가 번쩍이며 뻘건 혀로 호수의 잡 것들을 핥아버린다.  천둥소리 하늘땅을 진동하며 호수를 들었다 놓으며  격조 높은 참사랑의 서정시를 폭발시킨다.        어둠침침한 호수에서 암암리에 바람 피우며 짹짹거리던 원앙새와 사다새들이 푸드득푸드득 도망간다.      밤하늘에서 뜨거운 심장으로 연주하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은은히 메아리친다.     참사랑의 신은 자유와 참사랑 유령마저 사라진 세상에서 살기도 싫었으리라. "졸혼의 허울을 훌훌 벗겨버리고 참사랑의 한줄기 밝은 빛으로 어지러운 세상을 밝게 비주치라."      저게 뭔가?      아사꼬와 영희, 춘희, 순정이, 하영이, 나영이, 정희 등이 숱한 미녀들이 밤하늘에서 사랑의 유령처럼 너울너울 졸혼원무를 추고 있지 않는가.               탐욕스런 색마가 쇠살창을 거머쥐고 우멍눈을 뚝 부릅뜨고 미녀들을 노려보며 게춤을 흘리며  버둑질한다.      성자유의 람루한 깃발이 철조망을 두른 쇠살창에 걸려 발버둥질친다.     아, 졸혼의 유령이여! 자유와 참사랑의 신이여! 
354    대하소설 졸혼 제5권 (80) 김장혁 댓글:  조회:1273  추천:0  2023-05-11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90.사랑의 유령   천태만상의 구름 사이로 희미한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파묻었다 한다. 구름 그물은 해빛을 잃은 해와 달을 건졌다 토했다 하며 세상을 변덕스럽게 만든다.  휴가일이 되자 군철은 양아버지 병문안하러 떠났다.리나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리나는 원래 시양아버지를 곱게 보지 않았다. 양아버지도 리나를 잔소리쟁이라고 좋아하지 않았다. 괜히 리나를 데리고 갔다가는 혹 떼러 갔다가 혹 하나 더 달고 올가봐 근심되였다. "전 가지 말고 집에서 애들과 노오." 그러자 리나는 함박꽃처럼 활짝 웃음을 지었다. "당신 수고하세요.빠이, 빠이!" 리나는 애들을 데리고 공원으로 나가버렸다.  보마차 바람에 번대머리 위에서 몇대 안되는 머리카락이 뒤로 흩날린다. 군철은 보마차를 몰고 다리는 길에서 양아버지와 친아버지 완전히 다른 사랑사를 회억하며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그는 마음이 비길데 없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양아버지를 보라.사랑의 첫 츄피터 화살을 잘 못 쏘니 어디 녀자 복이 있는가? 어쩜 친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한 것도 간파하지 못하고 어머니한테 사랑의 츄피터 화살을 날린단 말인가?어머니 마음 속에는 친아버지가 있었는데. 마지못해 눈을 찔끈 감고 어머니는 양아버지와 결혼했지. 그것도 배 속에 친아버지 아들인 나를 품은 채. 글쎄 그때 당시 어머니는 누구 아들인 걸 모르긴 했지. 다 친아버지 잘못이야.어쩜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순정 이모와 결혼한단 말인가? 아무리 벼슬이 중하다고 해도 어쩜 정치결혼을 한단 말인가? 그게 사랑 사기군 아니고 뭔가?어머니 잘못도 있어.내가 양아버지 아들이 아니란 걸 안 다음에도 어찌 양아버지를 한평생 속이고 살았는가. 글쎄 핍박에 의해 그랬다고 해도 량심이 없는 거지.양아버진 내가 자기 친아들이 아니고 친아버지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정신타격을 받고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던가.) 군철은 우멍한 눈에 눈물이 핑그르 돌았다. (양아버지는 나를 친아들로 알고 얼마나 사랑했는가. 손자들도 자기 친손자들로 알고 키워주느라고 리나한테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 설겆이까지 하면서 고생했지.그러나 그 모든 것이 허황한 짓임을 알았을 때, 어머니 허황한 가짜사랑에 얼마나 큰 정신충격을 받았겠는가. 바꿔놓고 내가 그런 뜻밖의 비극을 당하면 어떻겠는가. 내 두 아들이 몽땅 리나가 외간 남자와 살아서 난 애들이라면 어떻게 됐겠는가? 난 살인이라도 했을 거야.하도 양아버지 마음이 착하고 어질어 그저 넘어갔지." 한편 군철은 어머니도 불쌍했다. (양아버지와 친아버지 두 남자 사이에서 얼마나 속을 태우면서 살았겠어? 어머니도 보면 친아버지를 사랑한 것 같은데.양아버지를 그리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내심갈등 속에서 몇십년 살지 않았겠는가. 양아버지와 함께 딸까지 낳으면서. 허위로 포장된 가정에서 한 이불을 쓰고 몇십년이나 살았어.) 군철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랑은 얼마나 변덕스러워? 세상 풍운조화보다도 더 변덕스러워.눈 앞을 헤아리기 힘들어.음-) 갑자기 차창 밖에 안개가 자오록이 덮쳐왔다. 차 앞을 어디 어딘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군철은 불시에 차를 급정거했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자오록한 안개 속이야. 코 앞을 분간하기 어려워.어머니가 사망한 후 양아버지는 구급실에서 면목익힌 춘희박사의 참사랑을 추구했지.춘희박사는 어쩜 그럴 수 있어?  자기 피를 수혈해 양아버지를 구해준 것만은 감사하지. 그런데 어찌 도쿄에 일본 남편 다이로교수를 두고 양아버지를 그렇게 따르게 만들어? 애태우게 만들어? 처음부터 맺고 끊어야지. 아버지가 미련을 두지 말게 썩뚝 관계를 끊어버려야지.) 그때 어데선가 춘희박사의 소명소리 들리는 상 싶었다. "군철이, 모르는 소리. 다 저네 양아버지 탓이오. 난 처음부터 저네 아버지를 존경했을뿐 재혼할 생각은 없었소.저네 양아버진 내 구급환자여서 동정했고 인도주의 차원에서 구해줬을 뿐이오. 저네 양아버지 어머니 비정사실을 안 후 정신타격을 받았소.난 또 쓰러질가봐 저으기 근심됐던 거요. 저네 양아버지 비운의 사랑 쁠랙홀에서 헤여나오게 하려고 애썼소. 함께 등산도 하고 교제무도 추면서 위문했소.그런데 저네 양아버지 날 짝사랑할 줄을 누가 알았겠소?…" "닥치시오!" 군철은 핸들을 탁 치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당신 등산 갔다가 협곡에 빠졌을 때 뭐랬습니까?누굴 속이렵니까? 후에 양아버지한테서 다 들었습니다.양아버지를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댔습니까? 양아버지는 뭐 행복지수 높은 분이요,존경하고 사랑할만한 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직도 누굴 속이렵니까?" 유령이 대답하는가? 아니, 분명 춘희박사 목소리가 귀전을 아프게 때린다. (환각인가?) "군철이,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구만.그때 우린 협곡 눈구덩이에 빠졌댔는데 아무리 기여나오려고 해도 기여나오지 못하게 됐소.그런 정형에서 저네 양아버지와 나는 생사선을 헤매게 됐소.저네 아버진 심장병환자인데 아직 그때까지만 해도 완쾌되지 못한 형편이였소. 그때 구급신호를 보내려고 등산복까지 불태워버려서 너무 추워 저네 양아버진 체온이 급격히 내려갔소. 난 그를 내 무릎에 올려놓고 끌어안아 체온을 보장했소. 구급대를 기다리며 위로의 말을 하느라고 그랬던 거요. 내 무슨 죄를 졌소? 저네 양아버지를 구해주고서도 이게 무슨 일이오? 이게 무슨 죄를 만났소?배은망덕해도 한두가지 아니오.정말.흐흐흑, 흑흑." (지금 울고 있어? 협곡 눈구덩이에선 그렇다 치고 왜 울 아빠를 도쿄에까지 데리고 가서 함께 살 것처럼 사람을 간질렀습니까?) "그땐 내 어떻게 일본에서 사는가 보여주려고 그랬소. 더 말해 뭘 하겠소?" 하늘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더 없었다. 자오록하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세상 변덕스러운 만물이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군철은 착잡한 생각에서 깨여나 보마차를 몰고 쏜살같이 달려 병원에 도착하였다. 그는 정신병과 주원실에 갔다가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쇠살창으로 병실을 들여다보니 양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의사사무실에 가서 담당녀의사한테 물어보았다. "40대 돼보이는 녀성 모녀가 환자를 모시고 바람 쏘이러 나갔어요." "아버지 요즘 병세가 어떱니까?" "많이 호전돼가고 있어요.정신이 말쑥할 때가 많아요. 특히 저 모녀간이 자주 찾아온 다음부터 병세가 눈에 뜨이게 호전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정신상에서 큰 위로를 받은 거 같아요." "네,사람은 알아봅니까?""아직은 알아보는 것 같지 않은데요." "네. 감사합니다." 군철은 인사하고 나오면서 피뜩 물음표가 떠올랐다. (누굴가?지예가 왔는가?어머니라는 녀성은 누굴가?) 문걸은 주원실 울 안으로 나갔다.  강남은 사철푸른 화창한 봄날과 같았다.울창한 월계화나무숲이 우거진 정원에 웬 녀성 둘이 휄체어를 밀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뒷모습이 별로 눈에 익었다.  (아니,춘희박사와 마끼?!) 우멍눈에 놀라움이 번쩍 번개쳤다.  춘희 모녀가 아버지를 휄체어에 태워가지고 산보하지 않겠는가.         (춘히는 내게 즉살나게 욕먹고 뭔가 깨닫고 병문안 왔을까? 아니면, 마끼를 위생소 소장으로 임명했다고 감사해 왔을까?)  군철은 천천히 다가가 춘희박사한테 허리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김박사님, 어떻게 돼 여기까지 왔습니까? 감사합니다.미안합니다." 춘희는 마주 인사하였다. "네. 리선생님은 저의 환자인데 당연히 찾아봐야죠." 군철은 마끼한테도 인사했다. "쉬는 날에 쉬지 못하고. 고맙소." 마끼는 또 당돌한 말을 했다. "최전무 아버님이자 저의 아빠나 다름없는데요." 춘희는 외까풀눈으로 마끼를 흘끔 곁눈질하더니 흘겨보았다. (무슨 망년된 소릴?최전무는 애 둘이나 달린 홀애비야.) 순간, 군철은 내심의 갈등을 어쩔 수 없었다.그는 춘희 모녀 손에서 휄체어를 받아밀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 마끼는 뭘 념두에 두고 내 양아버지를 아버지라고 하는 걸가? 자기 어머니와 아빠 그런 사이라고 아버지라고 할가? 아니면 나를 사랑하기에 아버지랄가?춘희박사는 아버지와 관계를 회복하려는 걸가? 아니면 아빠와 그만두고 마끼를 내한테 붙여놓으려는 걸가?) 군철은 원피스를 입은 마끼 우유빛얼굴부터 하얀 종아리까지 내리 곁눈질해 쓸어보았다. (마끼는 확실히 매력이 톡톡 쏘는 처녀애야.나이는 어려도 다이로교수를 대처한 걸 봐. 얼마나 총명하고 슬기로운가?조 초롱초롱한 새까만 쌍까풀눈을 봐. 얼마나 평양 아가씨처럼 매력적인가. 저 탄력있는 우유빛몸매는 얼마나 탐스러운가? 애어린 요 처녀애는 사과배처럼 사박사박할 거야. 한잎 똑 떼 먹으면 얼마나 시원하고 달콤할가? 애어린 처녀의 매력은 핵폭탄처럼 위력이 있어.마끼 탄력있는 몸매는 꽃잎이나 비단처럼 보들보들할 거야. 내 무슨 못된 생각이야? 진짜 촌수가 개판이구나.) 군철은 뜨거운 피가 끓어번져 그저 땅이 꺼지게 한숨만 후- 길게 내쉬였다. (사랑은 알고도 모를 일이야. 사랑은 마술사야, 요술쟁이야. 아버지 좋아하는 녀성의 딸마저 좋아하게 요술을 피우는구나. 사랑은 구름 속의 신기루와 같은 거야. 사랑의 신기루는 구름 속에 안개 속에 잠겼다가도 구름을 헤치고 자기 모습을 나타내지. 그러다가도 한순간에 무너지고 바람결처럼 사라지지.) 그때 군철의 복잡한 내심 격돌에 화답하듯이 문걸이 고래고래 고함쳤다. "참사랑은 바람이야. 10급 태풍이야. 구름을 몰아오고 소낙비를 몰아오고 우박을 몰아온다!오, 변덕스러운 사랑이여! 졸혼이여, 그대는 어찌나 변덕스러운지 걷잡을 수 없는 백두산 천지 풍운조화여라!졸혼은 병 주고 약 주는 간사한 뺑덕에미야!" 문걸은 정신이 나갔는지 아니면 정신병인 척하면서 속심의 말을 하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사랑은 사기군이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하는 척 하면서 몇십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한 이불을 들쓰고 아들딸을 낳으면서 산다. 사랑은 허위적인 거야. 사랑은 허위적인 신사숙녀야.사랑은 흑사심이야.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척하는 사랑도적놈이야.사랑좀벌레야. 사랑하면서도 함께 살지 않는 생리별하는 성노예야.참사랑은 황금 흑사심에 죽는다.참사랑은 참 불쌍해.황금에 눈이 어두우면 사랑이고 뭐고 다 벗어던진다. 사랑은 헐값에 파는 고물단지야. 금전만능시대에 사랑은 한푼어치 값도 없어. 금전을 위해서라면 참사랑도 헌신짝처럼 차버린다… 참사랑은… 참사랑은 개팔자야. 떠돌이야…" 춘희는 문걸이 자기를 빗대고 욕하는 것 같아 바늘에 가슴을 쏙쏙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 군철은 아버지가 자기 친어머니를 욕하는 것 같이 들렸다. (지금 아버지는 정신이 말쑥해진 것 같다. 절대 정신환자의 말 같잖아.그런데 아버진 아직도 날 알아보지 못한다. 그게 마음이 아파구나.언제면 아빠 제정신을 차릴가?) 이때  병원 정원에 리나가 나타났다. 뒤에는 또 지예도  나타났다. "시아버님!"  뜻밖에도 문걸은 사람을 알아보는지 리나는 아니꼬운 눈길로 피뜩 쳐다보고는 외면했다. "아버지!" 지예가 아버지를 부르며 두 팔을 벌리고 달려왔다. "오, 지예! 내 딸 지예야!" 갑자기 문걸은 휄체어에서 일어나 지예를 와락 끌어안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아버지! 나를 알아보는구나! 아버지!" 지예는 아버지 품에 안겨 줄 끊어진 구슬처럼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군철은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이래서 피는 가리지 못한다고 하는구나.아빠는 양아들은 알아보지 못해도 친딸은 먼저 알아보는구나.ㅋㅋ.) 군철은 좀 서글펐지만 양아버지가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해 기뻤다. 그는 춘희박사를 불러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박사님, 전번에 무례하게 굴어 미안해요. 그 사이 저의 아버지 병문안해 정신위안해줘 고맙습니다." 춘희는 군철의 대머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천만에 말씀,당연히 제가 위안해줘야죠. 미안해요. 아버지 병은 저에게도 책임이 있는데요." 군철은 우멍눈으로 춘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당돌한데요. 김박사는 도대체 우리 아버지를 사랑하는가요? 병이 치료되면 재혼해 함께 살 예산인가요?" 춘희는 정색했다. "아직 재혼까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그러나 리문걸선생님은 행복지수가 높고 존경하고 사랑할만한 분입니다.병세도 이제 곧 나아질 겁니다." 군철은 습관처럼 대머리 위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엄숙하게 말했다. "또 그 말씀이군요.아버지 병세가 기적적으로 나아지기 시작하는데요. 이젠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우리 아버지를 사랑하든 말든 질질 끌지 말고 맺고 끊듯 하십시오.괜히 두번 다시 저의 아버지한테 상처를 주지 마십시오.아버진 이제 정신타격을 받으면 자살할가 봐 두렵습니다." 춘희는 머리를 끄덕였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저는 이제 일본에 건너가서 다이로교수와 리혼수속을 해야겠습니다."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한가지 당돌하게 부탁드립시다. 이젠 그까짓 다이로교수 유산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괜히 자기를 해치고 남을 해치겠습니다.황차 다이로교수는 김박사님의 은사 아닙니까? 젤 간고할 때 친딸처럼 도와준 은인이 아닙니까? " 춘희는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듣다가 번쩍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 "그건 저의 일이니깐. 삐치지 말아주십시오.마끼를 잘 부탁드립니다." 군철은 춘희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알았습니다. 마끼를 위생소 소장으로 임명했습니다.우린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서로 도우면서 삽시다." "당연히 그래야죠.고맙습니다."     군철은 문걸한테 걸어가는 춘희 뒷모습을 보면서 한탄했다. (아, 사랑이란 실체가 도대체 무엇인지,누구도 정확한 해답을 하기 어렵다.사랑은 변덕스러운 요술쟁인가 봐!사랑은 바람에 흩날리는 구름송이야. 사랑은 바람쟁이, 사랑은 사기군이야,사랑은 신기루야. 사랑은 눈물의 녀신, 사랑은 유령이야!하느님이여 대답해보시라. 도대체 사랑은 무엇입니까?) 하늘도 땅도 대답이 없다. 아, 사랑의 유령이여, 사랑의 신이여, 그대는 어느 하늘 나라에 계십니까?
353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9) 김장혁 댓글:  조회:1191  추천:0  2023-05-09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9. 미녀들의 추파 신경을 느슨하게 만는 일요일,  흐리멍텅한 하늘에 어쩌다가 희미한 아침해가 흐리마리하게 나타났다.  똑,똑, 똑, 휴가일을 알리는 노크소리와 함께 여느 때처럼 리화가 들어섰다. "어머니!" 애들은 기다렸다는듯이 엄마를 보자 환성을 지르며 두 팔을 벌리고  문께로 달려나갔다.  리나는 눈물이 글썽해 두 아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 정경을 보는 군철의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둘째 길림은 어머니 목을 꼭 끌어안고 애원했다. “어머니, 이젠 일요일에만 오지 말고 날마다 와.” 형인 송림은 더구나 한심한 소리를 했다. “엄마, 오늘부터 저녁에 가지 마. 우리 한 집에서 자자.” 길림이 맞장구를 쳤다. “그래. 엄마, 난 엄마 목을 꼭 끌어안고 잘테야.” 리나는 멍해 서 있는 군철을 힐끔 곁눈질하며 대답했다.  “오, 건데 엄마 일이 바빠 저녁에 가야 돼.” 리나는 한 손에 하나씩 애들의 손을 잡고 침실로 들어갔다. 군철은 세 모자를 돌아보면서 마음이 쓰려났다.  (애들을 보면 리나와 복혼해야 해. 졸혼도 한도 있지. 애리싸도 미국 경제간첩으로 잡혀갔지. 언제까지 졸혼을 끌어야 한단 말인가? 어머니와 양아버지를 봐라. 졸혼하고 뭐 자기 인생을 산다더니. 엄마는 암으로 사망했지. 양아버지는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는가. 친아버지는 졸혼하고 숱한 젊은 미녀들한테 푹 빠지더니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는가. 졸혼이란 가정을 깨는 허황한 개짓이야. 자손들한테 오물을 들씌워주는 짓거리야. 애들이 있고야 무슨 졸혼인가? ) 군철은 쏘파에 앉아 한숨을 후- 내쉬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그렇다고 리나와 딱 복혼해야 하는가? 도대체 나하구 리나에겐 사랑이 남아 있는가? 리나 말처럼 사랑의 불씨는 의연히 남아 있는 건가? 아니면 뭔가? 근근히 사랑의 열매 둘 밖에 남은게 더 있는가? 글쎄 리나하구 복혼하면 애들한테도 좋고 회사에 주는 영향도 좋을 수 있지. 나는 당위 서긴데. 차마 아버지처럼 그렇게 못 살아... 나는 절대 부패분자 아버지처럼 살아선 안돼. 색마로 살아선 안돼. 인생의 가치가 그저 육감적으로 주색을 즐기는 건가? 너무나도 저렬한게 아닌가? 숱한 녀자들을 얼려내려고 각종 비렬한 수단을 다 써가면서 부정축재를 하고. 나중에는 감옥에 들어가고. ) 군철은 내심의 갈등이 심하게 격돌했다. (언제 아버지를 면회하러 고향 감옥에 가봐야는데. 양아버지도 병문안하고.) 바깥에서는 먹장구름이 파도치며 밀려왔다. 번개가 번쩍이며 집 안에까지 쳐들어왔다가 하늘 땅을 진동하는 우뢰소리를 남기고 사라졌다.  순간 뜻밖에 그의 눈 앞에는 회사의 숱한 숫처녀들의 추파가 빛나는 눈길이 떠올랐다.  제일 먼저 비서 경희가 떠올랐다. 하나도 떠오르고 추파를 보내던 마끼도 떠올랐다. (그 녀자애들은 모두 훌륭하고 참한 녀자들이지.) 경희는 항상 군철이 출근하면 새물새물 웃는 얼굴로 맞이하고 커피를 타온다, 사무상을 닦는다 하면서 군철의 주위를 젤 근거리에서 맴돌았다. 한번은 경희가 군철의 사무상을 닦다가 그만 탄력있는 엉덩이가 그만 의자 앞에 서 있는 군철의 팔을 스쳤다. “어허.” 군철은 감전이나 된듯이 어색하게 웃었다. 경희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더니 침묵하며 사무상을 대충 닦고 물러갔다. (경희는 30대 초반인데다가 북경대학 졸업생이지. 리나에 비하면 나이는 일여덟살 어려도 참 수양있지.) 순간 경희가 박문의 비서로 있을 때 술상에서 박문이 허벅다리를 막 만지면서 치근거려도 들이대고 있던 일이 불쑥 떠오르며 마음을 비길데 없이 했다. (그땐 어쩔 수 없어 들이대고 있은 거야.)  군철은 너그럽게 량해하려고 들었다. 그는 경희의 항상 맑고 밝은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환한 웃음을 새물새물 짓는 것이 녀신처럼 퍽 사랑스러웠다. 항생 생글방글 웃는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모습이 좋았다. 그 눈길 속에 들어가보고 군철은 놀랐다.  (경희가 날 사랑하고 있는 건가?) 군철이 회사에서 아무리 좋은 총각들을 소개해주면서 대상에 대한 요구가 어떤지 물으며 속뽑이를 해보았다. 그때마다 경희는 다 거절했다. “전 시집 안가요.” 경희는 새무룩이 웃으면서 사양했다. “쳇, 처녀 시집가지 않는다는 거야 다 새빨간 거짓말이지.” 군철은  넌짓이 물어보았다. “경희는 도대체 어떤 총각한테 시집가려고 그러오?” 경희는 자기 대상문제에 무척 관심 가지는 군철이 은근히 좋았다. 그러나 그녀는 속과는 달리 머리를 들며 정색했다. “전무님, 다신 저의 결혼문제를 묻지 마세요. 전 독신주의자예요. 전 최전무님의 비서로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족해요.” 군철은 능청스레 물었다. “그래 한뉘평생 시집가지 않고 내 비서로 늙을 수야 없잖소? 말도 안돼.” 경희도 꽤나 흥분된 것 같았다. “괜찮아요. 한평생 최전무님 곁에 있어도 행복해요.” 경희는 속을 뒤번져보인 걸 느끼고 빨간 혀를 홀랑 내밀며 머리를 다소곳이 숙였다. 군철은 속으로 웃었다. “누굴 속여? 누구한테 곁에서 항상 추파를 보내더니, 참, 누구한테 꼬리를 쳐들어보여?” 경희는 그런 군철의 마음을 읽었을가? “결혼해 뭘 해요? 전무님처럼 애들 둘이나 낳고 리혼하자고 결혼해요? 미안해요. 제가 그만...” 그녀는 혀를 홀랑 내밀었다. “괜찮소. 나하구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 참 좋소.” 그제야 경희는 한숨을 호 내쉬였다. 경희는 내심으로 군철을 탄복하였다.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종알거렸다. (전무님, 저는 전무님 같은 총각이면 시집 갈 거예요. 애 둘이 없어도 어떻게 될지 몰라요. 리나 언니가 옆에 없어도 또 몰라요... 아니, 내가 무슨 못된 생각을.) 경희는 스스로 귀 밑까지 붉히였다. 그녀는 군철의 우멍눈이 자기 속마음을 꿰둟어본 것 같아 바늘방석에 앉은듯이 불안해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전무님, 다른 일 없으면 나가보겠습니다.” “잠간, 경희, 이젠 내겐 바라볼게 하나도 없소. 이번에 직원들의 아파트 건축비용으로 내 전재산을 다 내놓은 걸 저도 알잖소?”      경희의 쌍까풀눈 귀에 조서가 섞인 독살이 흘러지나갔다.      "저를 뭐로 보고 하는 말입니까? 제가 뭘, 최전무 재산이나 넘보고 따르는 저렬한 녀자로 보입니까?" 경희는 군철을 곱게 흘겨보고는 오쫄 일어나 비서실로 종종걸음쳐 나가버렸다.       (조, 핼끔 흘겨보는 모습, 오-호-, 톡톡 쏘는 모습 얼마나 이쁜가? 아버지도 저렇게 이쁜 녀자들 추파에 유혹됐겠다. 오, 어쩌나? 안돼, 난 아빠처럼 주섹에 빠져 살아선 절대 안돼. 아빠 결과는 얼마나 비참한가? 절대 아빠 전철을 밟아선 안돼.) 군철도 사내대장부였다. 그에게도 칠정육욕이 있었다. 그에게도 사랑도 있고 리별의 아픔도  있고 눈물도 있었다. 그에게는 소설 같은 인생사가 있었다. 그는 전무 사무실에서 탄력있는 몸매를 흔들며 나가는 경희 뒷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저 탄력 있는 몸매, 항상 추파를 보내는듯한 까만 포도눈, 저 밝은 표정,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러나 내가 어찌 경희한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 경희보다 거의 열살이나 이상인데. 나에겐 애 둘이나 달려 있어. 나에게는 정신환자 양아버지에 감옥살이를 하는 친아버지가 있어. 아니, 그것보다도 난 당위 서기이고 당대표야, 수천명 직원들의 신임을 받는 당대표야. 그들의 리익을 대변하는 당위 서기, 전무야. 그럼 난 어쩜 좋아?..) 리나와 애들을 집에 두고서도 군철은 기나긴 묵념에 잠겼다. 그의 눈 앞에는 피뜩 하나의 어글어글한 쌍겹눈이 떠올랐다.  군철은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할끗 할끗 쳐다보는 눈길, 아, 그윽한 추파 담긴 그 눈길, 꼭 깨문 입, 항상 군철에게 소름이 끼치게 하던 그 조그마한 입, 공포 자체의 칼날 같은 입이였지.) 문뜩 뚫어지라고 쳐다보는 하나의 쌍겹눈에 운선의 부릅뜬 눈이 겹놓여 보였다. (안돼, 하나는 운선의 녀친이야. 그들은 하버드대 동창생이자 10여년이나 사귀여온 죽자살자 하는 련인이야. 절대 의리도 없이 비도덕적으로 아우의 녀자를 가로챌 수 없어.” 군철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나는 련애관이 이상한 녀자야. 미국에 있을 때 흑인지도교수와 좋아했다지 않는가? 그것도 함께 미국 하버드대에 류학간 남친 김운선을 옆에 두고 톰이란 흑인교수와? 으흐흐, 량심없는 년, 배신자야, 애비와 똑 닮았어. 애비는 내 아빠를 배신하고 물어먹고 잡아가고. 흥, 네년은 운선을 배신한 년, 배를 갈아타고 톰교수한테 올라타고 이젠 또 나한테? 어림도 없어. 안그래도 배신자 같은 년 너무 섬찍해서 박총경리한테 비서로 보내버렸는데. 절대 그년의 추파에 유혹돼선 안돼.)        군철은 숱한 미녀들이 추파를 보내는 것이 도저히 리해되지 않았다. (혹시 내가 돈깨나 버는 걸 보고 숱한 처녀애들이 추파를 보내는 걸가? 30대 경희, 하나, 심지어 20대 마끼까지... 아니면, 내가 오해했는가? 하나는 물론 능력은 있어. 직원들의 아파트도 하나가 건축설계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짓겠는가? 미국 하버드 대학을 석사생이 달라. 동양과 서양 건축 예술을 결합하고 우리 조선족의 전통건축예술을 계승하는 풍격으로 설계하지 않았겠는가. 이제 고향의 진달래까지 아프트 울안에 심어놓으면 고향 조선족마을 같겠는데. ㅎㅎㅎ. 하나는 운선의 련인이 아닌가? 더구나 하나 애비는  일본과 한국에까지 쫓아가 내 친아버지를 나포하지 않았던가? 어찌 친아버지 원쑤를 용서한단 말인가? 어찌 원쑤의 딸과 한 이불을 쓰고 산단 말인가? 안돼, 절대 안돼!) 그는 쏘파에 앉아 차탁을 탕 쳤다. 커피잔이 번져지면서 커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군철은 황급히 걸레를 가져다가 커피를 닦아버렸다. 그는 창 밖을 내다보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성호는 배신자야, 죽마고운데 어찌 내 아버지를 붙잡으려고 미쳐 날뛴단 말인가? 뭐? 정의용사 위용을 떨치려고? 흥, 아버지가 하도 날래서 한국 홍대입구에서 화장실에 들어가는 척 하면서 정철의 차에 앉아 도망쳤으니 말이지. 정철은 미희란 한국 기생 오빠라는가. 아버진 기생 덕에 도망친 거지. 아버지도 참, 어쩜 태평양 무인도에까지 도망쳤다가 붙잡혀 온단 말인가?)  군철은 아버지 일을 생각하니 기막혔다. (아버진 잘 있는지? 언제 애들을 데리고 감옥에 면회하러 가봐야는데. 아버진 친손자들을 한번도 보지 못했는데...) 그는 이일 저일 생각만 해도 골치 아팠다. 요즘엔 마끼가 꽤나 복잡하게 굴어 골치 아팠다. (요먼저 봐라. 단둘이 남으니 꼬리를 치는 거. 고약한 년. 아버지를 정신병에 걸리게 해놓고 피해버린 춘희박사 때문에 그런게 아니야. 마끼가 어쩐지 꽉 씹어놓고 싶을 정도로 미운게 이상해. )   순간, 군철의 눈 앞에는  할끔할끔 쳐다보며 추파를 보내던 마끼 쌍까풀눈이 삼삼거렸다.  (유리알처럼 밝은 그 눈, 그 빛뿌리는 강렬한 추파, 오, 사람 죽인다, 죽여. 전번에는 다이로교수를 보내놓고 단둘이 남자 그게 뭔가? 홀딱 벗고 꼬리를 치지 않았던가.)     군철은 마끼한테 물었다. “전번에 무슨 롱담을 그렇게 하오?” 마끼는 쌍까풀눈을 치켜떴다. “뭘 말인가요?” “뭐요? '첩'이구 뭣이구. 당대표를 어떻게 보고 그런 허망소릴 하오? 그래 내 첩을 둘 놈이라고 보오?” 그제야 마끼는 해시시 웃으며 머리를 다소곳이 숙였다. “미안해요. '첩'소린 잘 못했습니다. 반성해요. 그러나 진심의 말을 했어요. 저는 최전무님을 존경하고 사랑는데요.” “쳇, ㅉㅉㅉ.” 군철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러나 마끼의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은 계속 종알거렸다. “최전무님은 진짜 땅을 밟고 하늘을 떠인 사내답습니다. 얼마나 모든 인간관계를  아량있게 처사했는가요. 이번에도 저를 천방백계로 보호해주었지요. 다이로교수 마음도 상하지 않게 해 백신생산에 의료기술지원을 계속 받게 됐지요. 그보다도 최전무는 인간적으로 그냥 좋아요...” (그때 분명 내심장은 쿵쿵 높뛰고 있지 않았던가?) 군철은 마끼의 당돌한 말에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만, 그만, 안 될 소릴. 이젠 볼 일 다 봤으니깐. 돌아가오.” 그때 군철은 어색한 국면을 타개하려고 화제를 바꿔 마끼를 회사 위생소 소장으로 임명한다고 했다. 마끼는 어색하게 히쭉 웃었다. “혹시 저를 좋아하는가요? 나나, 아니, 복화도 있는데요. 복화를 소장으로 임명하는게 나을 거 같은데요. 저의 어머니는 최전무 양아버지를 괴롭힌 장본인인데요. 저도 밉겠는데요. 왜 저를 위생소 소장으로 임명하죠? ” 군철은 믿음에 찬 눈길로 마끼를 바라보며 정색했다. “저네 어머니는 어머니고 마끼는 마끼지. 나는 간부를 제발할 때 절대 개인감정으로 대하지 않소. 주요하게 인간성과 도덕품질, 지식수준, 그리고 관리능력을 보오. 마끼는 이번에 다이로교수를 아주 지혜롭게 대처했소. 위생소 소장을 충분히 잘할만한 관리인재요.” “어마나!” 마끼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감동을 먹었다. “최전무님, 사랑해요. 꼭 저한테 숫처녀장가 들 생각 전혀 없는가요? 이건 한 숫처녀의 소박한 첫사랑인데요. 소중히 여기고 심중하게 고려하길 바래요. 기회는 단 한번뿐인데요. 기회를 놓치고 이담 가슴치며 후회하지 말아요.” 추파는 번대머리에 닻을 내리는데 유혹은 꼬리 치며 서정시를 쓴다.         (조 백지장처럼 새하얀 우유빛 얼굴을 봐. 얼마나 매력적인가.) 로맨틱하고 파격적인 사랑의 서정시는 황혼을 빨갛게 불태우더니 날개를 서서히 펴고 빨간 하늘을 훨훨 날고 있었다. “또, 또, 또. 쓸데 없는 헛소릴, 횡설수설, 얼마나 사람 해치는가 생각이나 해보고 그러오? 돌아가 위생소나 잘 관리하오. ” “전무님은 조만간에 한 숫처녀의 순박하고 로맨틱한 사랑을 느끼게 될 거예요. ㅎㅎㅎ” 마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문 밖으롤 뛰여나갔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군철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마끼의 강렬한 빛 뿌리는 밝은 눈길을 피하지 않고 그저 웃어보였다. (같은 값에 분홍치마라고 사랑스런 어린 숫처녀를 사귀는게 낫지 않겠는가! 어허, 내 무슨 망년된 궁리, 렴치도 없어. 열살이나 지하 숫처녀를 어찌...) 그때 리화가 애들을 데리고 객실에 나왔다. “아빠하구 함께 놀자. 아빠를 뽀뽀해줘라!” 길림이 먼저 달려갔다. 애들은 군철의 품에 안겨 량볼에 뽀뽀했다. 군철은 저쪽에서 자기를 쳐다보는 리나의 화기없는 눈길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 외까풀눈에는 신심도 없어보였다. 확실히 군철을 따르는 숱한 처녀애들을 이길 용기와 신심이 없었다.  (그래, 리나, 넌 다만 송림과 길림, 유일한 재산이자 무기이지. 두 아들을 무기로 삼아 피동적으로 방어만 할뿐이잖은가.) 리나는 두 아들의 어머니일뿐이지 그녀에 대한 군철의 불평은 많고도 많았았다.   (이전에 그게 뭔가? 머리 허연 문걸 양아버지 우릴 돕느라고 애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데려가고 심지어 날마다 설겆이까지 해줬는데. 넌 뭐랬어? 애만 안고 놀고 잔소리만 해댔잖은가? 양아버지 고향에 돌아갈 때 넌 엉덩이도 들지 않고, 인사는커녕 내다보지도 않았지? 며느리로서 어쩜 인정도 없이 그럴 수 있어? 허나사나 대학 석사생까지 졸업한 문화가 있는 인간으로서 그럴 수 있어? 넌 양아버지 뭐란다고 '검정개 돼지 흉 한다고나 해라.'고 욕까지 하지 않았어? 참 인간수양이 너무 너무 모자라. 사람이 아니야. 지금 숱한 처녀들이 날 따르니 질투하고 떼버리려고 별 비렬한 수단을 다 쓰고 있잖니? 심지어 내 침실에 도청기까지 장치해놓고 도청까지 하고. 물론 애리싸를 붙잡은 건 잘 했지만. 그때 너의 추악한 본성은 끝내 드러났다. 네 같은 년과 복혼해도 절대 행복할 수 없어.) 그는 리나 벌린 추악하고 비렬한 일을 두루 생각하면 치떨리고 진절머리 났다. 그러나 애들을 보면 이상하게 또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였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어쩌란 말인가? 계속 졸혼해 살아보았지만 그저 그래.  애리싸가 미국 경제간첩일줄이야. 으흐흐, 생각만 해도 치떨려.) 군철은 숱한 처녀들과 리화를 놓고 비교하면서 선택하는 관건적인 시각이 돌아왔다. 그 선택과정도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꼈다. 미녀들의 매력적인 추파가 핵충격파처럼 강렬한 빛 뿌리며 군철의 흉벽을 쿵, 쿵 쳤다. 두 아들을 내세운 리나의 심리방파제는 가련하게 한겹한겹 무너져갔다. (아, 하느님이여,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조물주여, 당신은 왜 이 세상에 사랑을 만들어놓고 또 자유를 구속하는 가정을 만들어놓고 두 아들까지 만들어 주었습니까? 참된 사랑은 남녀 피끓는 두 심장으로 연주하는 사랑신의 멜로디 아닙니까? 두 아들을 위해 다 식어버린 옛 사랑에 다시 불을 달아야 합니까? 아니면, 참된 뭇 처녀들의 추파 오선보에 새 사랑의 노래를 엮어 목청껏 불러야 합니까?)        미녀들의 강렬한 추파가 핵복사마냥 군철의 마음을 지지고 볶는 콧노래소리 은은히 귀를 간음한다. 허허허.  
352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8) 김장혁 댓글:  조회:1206  추천:0  2023-05-05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8. 다이로교수와 마끼   군철은 집 안의 이일 저일에 골치 아팠다. 친아버지는 감옥에 갇혀 있고 양아버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리화와 애들 문제도 골치아팠다. 회사 일도 골치아팠다. 요즘 박문 총경리 말을 듣어보니 미국 상무부와 재무부의 압력을 받아 회사 풍비박산날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을 알게 되였다. 설상가상으로 회사는 베트남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아주 컸다. 수천명 직원들의 앞날이 파도 세찬 망망한 대해에 밀려나갈 위기도 있었다. 군철은 회사 가산 옆의 백신공장건물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였다. (다행이야,백신제약공장에서 이젠 백신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됐어. 자체로 생산한 백신이 우리 수천명 직원들의 코로나예방에 큰 도움이 됐지. 지금 코로나 심해 대외판매도 잘 되고 있어. 우린 이젠 살아남으려면 이제부터 우리 중국 직원들의 새 길을 탐구해야 해.) 백신공장이 리윤을 내게 돼 군철에게는 조그만치 위안되였다. 밴신공장도 그리 쉽게 성공한 것이 아니였다. 황선희는 박사였지만 백신까진 연구한 바는 전혀 없었다. 근근히 페병환자들을 치료한 처방이 전부였다.  위생소 소장에 백신공장 공장장을 맡은 황선희 박사는 밤낮이 따로 없이 맴돌아쳤다.  그는 군철을 찾아와 대머리를 쳐다보면서 백신제조의 애로사항을 피력했다. "야마구찌 다이로교수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 백신을 연구제조할 수 없습니다. 다이로교수를 너무 박대하지 마세요.마낀지 마귄지 하나쯤 없어도 백신연구엔 지장이 될게 없습니다.복화만 있어도 돼요." 군철은 우멍눈으로 황소장을 힐끔 건나다보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어떤 땐 마끼를 수하직원이라면서 보호하는 척하더니. 참, 이젠 다이로교수의 희생양으로 내몰 작정인가?) 황선희는 진작 김춘희 모녀를 질투했다. 게다가 이번에 그들 모녀간이 다이로교수한테 배은망덕한데다가 숱한 돈을 사기쳤다고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기회에 마끼(가은)마저 위생소와 백신공장 기술과에서 몰아내고 싶었다. "백신 때문에 그래 죄도 없는 마끼를 희생양으로 만들어서야 됩니까?" 군철은 기어이 마끼를 법정에 내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군철의 눈치를 챈 황선희박사는 제꺽 번져누웠다. "다이로교수 때문에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다이로교수 무리한 요구와 위협공갈 때문에 마끼를 법정에 세우지 않아도 됩니다. 이젠 백신도 시험생산에 성공했고 곧 대량생산에 투입되게 됐습니다. 음력설을 쇠고나면 가능하게 코로나도 정점을 찍고 사멸될 수 있습니다.백신 수요량도 급감할 수 있습니다.때문에 코로나에 너무 기대하지 마십시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황박사는 의료지식은 빵점인 번대머리를 쳐다보며 이실직고했다. "무슨 질병이나 아무리 살상력이 강한 병독을 가지고 있더라도 발병, 고조,사멸의 계단을 겪게 됩니다.지금 국제 코로나흐름새를 분석하면 이제 봄이 오면 전세계 코로나는 사멸의 길을 걸을 거 같습니다." 그제야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기대에 찬 우멍눈으로 황선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멀잖아 백신도 대량 생산할 필요없게 되겠군요. 그럼 우리 회사에서 백신 대신 생산할 새 약종을 미리 연구해두십시오." 황선희는 자신있게 말했다. "금심하지 말아요. 저에게는 성기능제고 특효비방강장제약처방이 있습니다.다이로교수가 저에게만 가만히 전수해준 비방인데요.한국에 나가 시험해 봤는데요. 성기능제고에 특효입디다.한국제 비아그라드보다도 효과가 빠르고 좋았습니다. 성기능제고약을 수요하는 국내외 환자들이 아주 많다고 생각합니다." 기실 황선희는 그 성기능제고약으로 일찍 정호한테 써보았다. 그런데 정호는 놀랍게 변강쇠로 변모해 날마다 녀인사냥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 되였던 것이다. (최전무, 자네 애비도 내 약 먹고 변강쇠로 된 거야. 순정도 내가 수란관을 잘라버려서 애를 못 낳았어.) 황박사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던 비밀을 헤쳐보면서 번대머리를 쳐다보며 속으로 희죽이 웃었다.  군철은 그런 진상내막을 전혀 모르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알았습니다. 차차 강장제생산을 연구해봅시다." 군철은 황박사를 보내놓고서도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강장제도 다이로교수와 련관되는군. 그렇다고 시비를 떠나 다이로교수 눈치만 볼 수 없잖은가?다이로교수는 고양이처럼 회사 위생소에 쏠락거리면서 끝내 마끼도 회사 위생소에 있다는 것을 알아내지 않았는가.다이로교수는 만약 회사에서 마끼를 법정에 세우는 것을 협조하지 않으면 백신합작연구제조를 철회하겠다고 을러멨다.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군철에게는 또 하나의 골치거리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면서 사무실에서 왔다 갔다 거닐며 궁리를 번개같이 굴렸다. (마끼를 더는 위생소에서 빼돌려 숨길 수는 없어. 다이로교수와 마끼를 사무실에 불러 시비를 갈라야지.) 다이로교수는 통지를 받은 이튿날 아침 일찌기 벌써 군철의 사무실에 와 쏘파에 틀스레 앉아 있었다. 이윽고 마끼가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녀는 마스크를 벗으며 놀라운 눈길로 어색하게 다이로교수를 보면서 허리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양아버님, 그간…" "닥쳣!무슨 양아버님? 사기군 같은 년!" 다이로교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퉁사발눈에 쌍불을 켜고 마끼를 쏘아보면서 손가락질하였다. "너, 이년, 사기군 같은 년, 내 애를 낳아주겠다고 해놓고 숱한 예약금과 금은장신구를 사취해가지고 중국에 도망치지 않았어? 어디 내 돈을 내놓지 않고 감옥에 가지 않는가 두고 봐! "가만,가만." 군철이 손사래를 쳤다. "다이로교수님,조용히 말하십시오." 다이로는 그제야 쏘파에 되앉으면서 두덜거렸다.  "네년,도망치긴 어디로 도망쳐?! 너네 중국에 이런 말 있잖아? 손오공이 아무리 날뛰여도 여래불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군철은 다이로교수를 재차 제지시키고나서 다이로와 마끼를 번갈아보며 무거운 입을 떼였다. "오늘 두분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시비를 가려야겠습니다. 저는 어느 한쪽 말을 듣고 결론을 내리지 않고 공정한 립장에서 이 문제 시비를 가리려고 합니다." "쳇, 공정하긴 뭐 공정해?"    다이로교수는 군철의 말을 중도무이하며 두덜거렸다. "쳇, 공정했으면 사기군년을 다 위생소에서 빼돌려 감춰 놓았겠는가? 편파적으로 작작 나오라고.흥." 군철은 털끝만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다이로교수님, 어찌나 죽일상 하는지 저는 마끼를 보호해야 했습니다.저도 그간 이 사건을 여러 측면으로 조사했기에 진상내막을 얼마간 알고 있습니다." 다이로교수는 퉁퉁한 네모낯을 들어 군철을 바라보며 애원했다. "진짜 사기입니다. 최전무, 내 돈을 찾아주십시오.억울합니다. 내 돈만 찾아주면 당신네 회사에선 백신 내놓고도 나와 합작하면 숱한 새 약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군철은 마끼를 건나다보며 물었다. "마끼, 사건 진상이 어떤지?한다미도 거짓말을 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하오." "네." 군철은 법관처럼 심문하듯이 마끼 말을 유도해냈다. "마끼, 다이로교수 말에 의하면, 마끼는 다이로교수의 애를 낳아주겠다고 하고 숱한 돈과 금은장신구를 가지고 중국에 들어왔다는데 맞소?" "네.그런 일 있습니다." 마끼는 다이로교수를 쏘아보며 말했다. "우린 계약까지 맺었습니다. 이걸 보십시오." 군철은 사전에 마끼가 지금 쳐든 계약서를 미리 보았다. 그러나 짐짓 처음 본 상하며 쇼를 놀았다. "아니,건  계약서 아닌가?" 그는 계약서를 들고 보다가 다이로교수 앞에 가서 쳐들고 물었다. "다이로교수님, 이런 계약서를 맺은 적이 있습니까?" 다이로교수는 자기 친필서명과 도장이 박힌 그 계약서를 보는 순간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년이 꾸민 불평등사기계약서야!내 미리 알았더라면 서명했겠는가?" 마끼는 코웃음쳤다. "쌍방이 체결한 계약서도 부인해서 되는가요?생떼질이지.흥!" 다이로는 억이 막혀 마끼를 손가락질했다. "네년이 내 애를 낳아주지도 않고 예약금과 금은장신구를 사기쳐가지 않았느냐? 사기행각이 불 보듯 뻔하지 않는가?!" 마끼는 한발작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나섰다. "다이로교수님, 제가 당신의 애를 낳아주겠다고 했습니다. 당신의 애를 낳아주면 당신의 예약금을 가져도 되겠지요?" 다이로교수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따지고 들었다. "넌 어디 애를 낳아줬는가?" 마끼는 해죽거리며 또 다이로교수한테 물었다. "당신의 애를 낳아주면 유산을 몽땅 나한테 주겠다고 계약하지 않았는가요?" 그 말에 다이로교수는 일루의 희망의 빛이 어린 퉁방울눈으로 마끼의 몸을 살폈다.  마끼의 배는 아직도 홀쪽하지 않겠는가.  "그랬지? 애만 낳아주면야. 유산뿐이겠느냐? 그러나 넌 지금도 배가 홀쪽 하잖느냐?나하구 섹스한 적도 없고. 돈 가지고 훌 도망쳤잖아?" 다이로는 마끼를 괘씸해 당장 잡아먹을 상 했다. "배은망덕한 년,주리를 틀어놓을 년." "호호호." 마끼는 코를 싸쥐고 웃었다. 다이로는 약을 올리는 마끼를 보고 벌떡 일어나 손가락질하며 고함쳤다.  "웃긴? 왜 웃어?날벼락 맞아 뒈질 년!" 그러나 마끼는 깔깔 웃더니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을 꺼냈다. "다이로교수님, 양아버님, 당신은 섬나라에 돌아가 나한테 유산마저 넘겨줄 준비나 하세요" "무슨 소리야?" 다이로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마끼의 말은 한심했다. "당신의 애는 이제 곧 세상에 태여나게 되는데요.어서 돌아가 포동포동한 당신 애나 안아볼 준비나 하세요." 군철도 그 뜻밖의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해 마끼를 내려다보았다.  "넌 배 홀쪽한데? 어데서 내 애가 태여나?" 다이로교수는 어안이 벙벙해하며 어처구니없어 마끼를 손가락질했다. "또 사기치려고 꿍꿍이지?" "아니예요."         다이로는 퉁방울눈으로 마끼를 쏘아보았다.        "너 혹시 로봇미녀 아사꼬 배에 임신시킨 건 아니겠지? 그년한테 난 혼났어."        "호호호."       마끼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사꼬는 잘 있지요?"       "오, 너네 가짜엄마,  어디로 도망갔는지 몰라. 스위치를 꺼놨는데 어떻게 저절로 켜고 어디로 도망쳤어." 마끼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는 핸드빽에서 자그마한 명함을 꺼내 다이로교수한테 건넸다. "이 녀자를 찾아가세요.이 녀자 배에 양아버님의 애가 있는데요. 오래잖으면 이 세상에 태여날 때 됐습니다.돌아가서 잘 보살피세요." "뭐라고?" 다이로교수는 명함을 몇번이고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교토,이찌하나 기생거리, 야마구찌 사꾸라?" 그는 머리를 쳐들고 퉁사발눈으로 마끼를 쳐다보면서 미심한 표정을 지었다. "난 이 녀자 하구 섹스한적도 없어. 내 애가 어떻게 생겼어?" 마끼는 코를 싸쥐고 사무실이 떠나게 깔깔깔 웃었다.  "양아버진 이럴 땐 유명한 생물학자, 성학자 같잖아요. 지금 세월에 딱 성교해야 임신하는가요? 실험관 애를 만들 수도 있잖아요?" "엉?" 다이로교수는 호기심에 찬 눈길로 마끼의 앵두입을 흘끔거리며 하회를 기다렸다. 마끼는 군철을 쳐다보며 종알거렸다. "최전무 앞에서 말하긴 부끄럽긴 한데요." 군철은 손사래를 쳤다. "괜찮소. 어서 이실직고하오." 마끼는 꺼리낌없이 낱낱히 말했다. "나와 어머니 짜고들었는데요.어머닌 양아버지 정액을 은밀히 실험관에 받아뒀지요. 제가 기생거리에 가서 사쿠라한테 돈을 주고 란자를 받아내 가져다가  실험관에서 양아버지 정액을 수정시켰지요. 그 수정란을 다시 사쿠라 자궁에 넣어 시험관애를 임신하게 하는데 성공했지요." 다이로교수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명함장을 다시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사쿠라? 사쿠라?" 그는 명함을 품 속 호주머니에 잘 간직하고 마끼를 쳐다보며 생떼질을 썼다. "애는 사쿠라가 낳게 됐는데. 돈을 왜 너한테 줘?계약을 어겼기에 일전한푼도 줄 수 없어. 내 돈 내놔!" 군철은 다이로교수가 가소로웠다. "이보세요. 다이로교수님, 계약서도 있고 애도 보게 해줬으면 됐지. 생떼질을 쓰지 마십시오." 마끼도 한마디 했다. "다이로교수님, 당신은 저의 양아버지이자 지도 교수인데요. 어쩜 그럴 수 있어요. 계약서에 당신 애를 낳아주면 돈도 주고 유산도 주겠다고 명명백백히 쓰여 있지 않는가요? 제가 꾀를 써서 사쿠라 배를 빌어 당신 애를 낳아주게 했는데요.뭐가 다르다고 이래요?감지덕지해 할 대신 고까짓 돈이 아까워 이게 뭔가요?" 마끼는 최후일격을 가했다. "다이로교수님, 부끄럽지 않아요? 양딸과 딱 쌀아서 애를 낳아야 하는가요? 섬나라 교수에겐 인륜도 없는가요?" 다이로교수는 퉁퉁한 네모얼굴을 어디다 감출데 없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여들억가고 싶었다. 살진 낯은 귀밑까지 벌거희데데하게 번져갔다.    그는 품 속에서 명함을 꺼내더니 핸드폰을 들었다. "모시모시, 사쿠라씨인가요? 안녕하세요? 네, 전 의과대학 교수 야마구찌 다이로입니다. 네. 야마구찌 마끼라고 기억나는가요?네. 그래요. 그의 말에 의하면, 당신이 내 애를 품었다고 하는데요.사실인가요?네? 그래요? 감사해요. 저의 애를 낳기만 하면 전 전부 재산을 다 드리겠습니다. 네, 지금 제가 중국에 있는데요. 당장 돌아가 당신을 만나야겠습니다.네, 빠이, 빠이," 확인한 다음에야 다이로교수의 바위처럼 굳어졌던 퉁퉁하고 유들유들한 얼굴이 느슨히 풀렸다. "마끼,감사해. 예약금은 가져라. 그러나 내 유산은 넘보지 말라. 또 금은장신구는  돌려달라.사쿠라한테 기념품으로 줘야겠다." 군철은 조소가 흐르는 우멍눈으로 야비한 다이로교수를 내리쓸어보았다. "너무 야박합니다.마끼 은공을 갚을 대신 옹졸하게 뭡니까? 황차 그 금은장신구는 일본 공항에 차압된 저의 아버지 거 아닙니까?" 그제야 다이로교수는 창피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최전무님, 금은장신구 가지구려,후에 제약공장 계속 힘껏 지원해주지." 그러나 군철은 손사래를 쳤다. "금은장신구는 당신이 마끼한테 사례금으로 준 걸로 합시다." 그는  다이로교수를 바래며 악수까지 했다. "다이로교수님, 애를 보게 된 걸 축하합니다.이제 기회 있으면 황박사와 합작해 성기능제고약을 생산해봅시다." 다이로교수는 애를 보게 돼 입이 함박만해 연신 머리를 조아리렸다.  갑자기 다이로교수는 마끼한테 머리를 돌리더니 고래고래 을러멨다. “이제 사쿠라 낳은 애 DNA를 검사해봐야 알 수 있어. 내 앤지, 아닌지? 또 사기쳐 봐라. 하늘도 용서하지 않을 거야. ” 퉁발눈에는 분명 미심한 빛이 어려 있었다. 마끼는 해쭉 웃으며 빈정거렸다. “양아버님, 분명 교수님의 훌륭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포동포동한 아드님일 건데요. 저에게 유산 넘겨줄 일 잊지 마세요. 양아버지 어머니한테 써준 유서대로 유산을 엄마한테도 줘야 해요.” 다이로교수는 퉁사발눈을 뚝 부릅뜨며 주먹을 건뜻 쳐들어보였다. "당장 춘희와 리혼수속해야 해. 유산은 무슨 유산이야."       다이로교수는 마끼한테 헤벌쭉거리면서 바람결처럼 떠나가버렸다. 군철은 사무실에 돌아와 마끼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왜 하필 일본 기생한테 임신을 부탁했소?"         마끼는 해쭉 웃으며 대답했다.        "성변태를 조롱하려고 그랬습니다. 아무리 교수라 해도 기생년과나 짝이 맞죠. 평소에 다이로교수는 사쿠라라는 기생을 자주 찾아갔죠. 다이로는 성의료과학자를 벗어나 성변태예요. 성변태에겐 기생과 만든 실험관애나 차례져도 대득이죠. ㅋㅋㅋ." 군철은  어이없어 마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다림은 하품하며 부채질하더니 초저녁 잠을 청한다.        어데선가 녀인의 앙칼진 푸념소리 귀를 간음하며 신음한다.        숫처녀의 순박한 자장가소리 한수의 천진한 동요처럼 가슴을 애절하게 설레이게 한다...     
351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7) 김장혁 댓글:  조회:1220  추천:0  2023-05-02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7.둥지  휴일이다.     다른 때 같으면 휴일이면 군철은 애들과 함께 천륜지락을 즐기는 휴식의 한때를보내는 행복한 날이였다. 그러나 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먹장구름이 사품치며 흐르는 아파트 창 밖을 내다보면서 근심이 태산 같았다.  그는 아침을 대충 챙겨먹고 애들을 보모한테 맡겨놓고는 보마차를 타고 회사 아파트 건축공지로 부랴부랴 달려갔다.      (만약 반도체회사를 진짜 베트남으로 옮겨간다면 어쩌는가? 숱한 직원들은 하루 새에 허망 바깥에 나앉게 되지 않겠는가.)     그는 생각할수록 회사와 직원들의 앞날이 암울하기만 했다. 저도 몰래 땅이 꺼지게 장탄식이 나갔다.    (아파트라도 다 지어 직원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새들도 둥지 있는데 우리 직원들이 아파트도 없이 허망 나앉아 셋집살이를 시킬순 없다.)     그는 수천명 직원들의 아파트를 짓는 사업이 급선무였다.    "평방당 10만원씩이나 하는 아파트 한채씩만 가져도 직원들은 살 수 있겠는데.자금난으로 이제사 호수를 메꿔놓고 기초공사를 하고 있지 않는가. 아파트건축공사를 다그쳐야지.건데 자금난이 문제야.) 군철은 시정부 공업주관 부시장한테 가서 비난사정해 회사 앞의 호수 자리에 직원들의 35층짜리 고층아파트를 짓는 토지사용허가와 건축허가를 맡아냈던 것이다.  그런데 박문 총경리보고 건축비용을 대달라고 하자 말상을 흔들면서 딱 잡아뗐다. "말도 안돼. 지금 미국 놈들의 통제로 해 반도체 생산과 판매가 부진상태인데. 아파트 건축비용까지 대달라고? 되지도 않을 소릴." 군철은 미리 생각한 수를 대지 않으면 안되였다.그는 당대표, 당위 서기로서 수천명 중국 직원들을 위해 나서서 바른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우리 반도체회사에서 해마다 얼마나 많은 수입을 올렸습니까? 그래 아파트건축비용 한푼도 대주지 않겠습니까?말도 안됩니다.본사에서 량심이 있습니까? 어떤 땐 우리 중국 직원들을 리용해 숱한 돈을 벌고 이젠 헌신짝 차버리듯 할 예산입니까?" 박문 총경리도 난처한 처지가 있었다. "글쎄 낸들 대주고 싶지 않겠나? 지금 인건비 높아간다고 본사 리회장님이 생 야단치시는데. 어떻게 해?인건비 때문에 숱한 직원들을 내보내라고 하지 않았어?" 사실 코로나가 심한데다가 미국 양키들이 이른바 반도체동맹을 강요하고 날따라 통제가 심해졌다. 인건비는 올라가고 생산과 판매가 부진하자 회사에서는 본사 지시대로 약 3분의 1이나 되는,천여명 직원을 정리해 회사에서 내보냈던 것이다. 박문 총경리는 손바닥날을 가로 홱 날리는 시늉까지 해댔다. "우리 회사에서 아파트까지 져준다면 내나 자네나 무사할 거 같아? 썩뚝 잘릴 거야." 그러나 군철은 당대표, 당위 서기 직책을 잊을 수 없었다. 이 시각에도 그의 뇌리에는 수도 북경 인민대회당에 가서 전국당대표대회에 참가하던 일이 떠올랐다. 그의 눈앞에는 조선족대표들 모습이 떠올랐다. 소장 별이 박힌 군복을 입은 리현옥 소장은 중국인민해방군 모 로케트연구소 소장이며 우리 나라에서 첫 조선족녀장군이였다. 연변조선족자치주 홍경 주장의 당당한 모습도 우렷이 떠올랐다.      군철은 리현옥 소장과 홍경 주장의 이름이 당중앙 후보위원의 반렬에 오른 것을 보고 당의 현명한 민족정책과 민족의 긍지감을 한없이 느꼈다.  그때 군철은  당과 인민을 위해 목숨바쳐 열심히 일할 것을 마음 속으로 다지고 또 다지였다. 그는 이 시각 수천명 직원들의 리익을 위해 전무직위를 잘릴 위험도 무릅쓰고 추호의 양보도 없이 당당하게 시비를 따졌다. "그까짓 거, 전무자리 잘리면 잘렸지요.더는 참을 수 없습니다!" 그의 우멍눈에서는  무서운 빛이 번쩍이며 번개쳤다. 그는 우뢰 같은 소리로 따지고 들었다. "중국 정부와 직원들이 아니면 당신들 한국 회사에서 중국 땅에 회사를 차리고 숱한 돈을 벌 수 있었겠습니까?저는 전무직을 걸고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회사에서 마땅히 건축비용을 대주지 않으면 배은망덕하는 행위로서 용서할 수 없습니다. " 박문은 군철의 날카로운 말에 기가 좀 꺽여들었다. "쳇, 바로 중국 정부 대변인 거 같아." 군철은 속이지 않고 말했다. "저는 이 회사 당위 서기이자 공회 주석입니다. 직원들을 위해 한마디 말도 안하면 저를 해서 뭘 해요.저는 중국 직원들의 대변인이자 대표입니다.  " 군철은 박문을 얼리고 닥치고 했다. 박문은 이렇게 노기등등해 로골적으로 자기한테 대들고 뜨고 언성을 높이는 번대머리 군철을 처음 보았다. 그는 금방까지도 무서운 빛이 번쩍이던 우멍눈에 조금 웃음기를 담더니 박문의 사무상에 다가가면서 나직이 귓속말을 했다. "박총경리님,그럼 회사 돈을 좀 빌려 씁시다. 아파트를 다 지은 다음 직원들에게서 건축비용을 회수하면 돌려드리죠." "뭐?" 그 말에 박문 총경리는 길죽한 말상을 쳐들고 군철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도리머리를 가로저었다. "안돼. 직원들에게 무슨 돈이 있어 건축비용을 회수한다고 그래?평방당 10만여원이나 하는 집을 직원들이 살 수 있어?직원들한테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이 있으면 어째 직원들의 돈으로 아파트 지을게지." 군철은 박문의 태도에 하나도 개의치 않고  한술 더 떴다. "직원들에게 아파트시장 가격보다 퍽 싸게 팔 예산인데요." 박문은 우멍눈을 치켜보며 물었다. "그래 평방당 얼마에 팔 예산인가?" "이 위치에 시가는 평방당 10만원은 훨씬 넘어 받을 수 있지요. 그러나 직원들에게 평방당 한 5만원에 팔 예산입니다.그래도 직원들은 평방당 5만원은 번 셈이죠.백평방짜리 아파트 한채면 500만원은 식은 죽 먹기로 벌 수 있으니깐. 직원들도 모금하면 적극 동참할 겁니다. 그럼 건축비용을 일정하게 마련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쁜 목만 열어주세요." 박문은 어이없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직원들이 몇백만원씩 낼 수 있겠는가?" "이제 아파트를 다 지으면 저 아파트를 차압하고 은행대부금을 내면 돼요.직원들이 먼저 선불금만큼 모금하면 돼요.” 박총경리가 관심하는 건 건축비용이 아니였다. 군철도 그걸 간파했다. “박총경리께도 건축비용 대준 감사비로 아파트 둬채 드리죠." “안돼, 안돼. 난 중국 시정부에서 준 아파트 있잖아? 괜히 회사 자금람용죄에 걸려 감옥에 갈 걸. 난 감옥밥 먹기 싫어.” “박총경리님, 물러나기 전에 아드님과 따님한테 한채씩 미리 장만하면 좀 좋아 그래요?” 박문도 뒷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사실 그는 이제 반년도 안돼 총경리를 그만두고 귀국하면 퇴직해야 했다. (무러나기 전에 권력을 빌어 챙길 건 챙겨야지. 에라, 모르겠다.) 박문은 몇십억(한화)이나 아파트 몇채 앞에 넘어가고 말았다. "아파트 두채라? 해볼만한 장사거래구먼, ㅎㅎㅎ,아우가 그래도 항상 못난 히아(형)을 위해 아량있게 처사하네.” 그제야 박문 총경리는 선선히 대답했다.  “그럼 직원들과 계약을 맺고 건축비용을 선대해주지." 군철은 기쁜 나머지 통쾌하게 말했다. "회사에서 아파트건축비용은 얼마간이라도 대주는 걸로 하고요.그럼 본사 리회장님께도 아파트 주지요, 아님, 현찰로 감사비를 드려도 돼요."  "그래? 건 엄밀한 비밀로 하게.발각되면 회사 돈 람용죄로 감옥살이 할 수도 있어.선대는 해줄 수 있어. 그러나 본사 리회장님의 비준을 맡아야 해." "감사해요.리회장님과 박총경리님께 사례비로 아파트 두채씩 꼭 드리겠습니다." 박문은 군철을 힐끔 건너다보며 횡설수설했다. "참, 아우 오늘 왜 특별히 이래? ㅎㅎㅎ.아우도 애들 둘이나 되는데 둬채 가지게나."  그러나 군철은 손사래질했다. "아니, 나한테 차례진 한채면 족해요." 박문은 리해되지 않는다는듯이 도리머리질했다. "아우,새도 먹이를 위해 죽는다고 하잖아? 자네 아파트 짓자고 시정부랑 뛰여다니고 내하고 건축비용 얻어내지 않았으면 아파트 지을 수 있나? 사례비로 한채 쯤 더 가져서야 문제 될게 없잖아?" 그러나 군철은 정색하며 손사래쳤다. "당위 서기가 어찌 권력을 빌어 아파트를 한채 더 가질 수 있겠습니까?" 박문은 콧웃음쳤다. "흥,당위 서기는 사람 아닌가? 욕심이 그래 꼬물만치도 없어?" 군철은 정중하게 말했다. "우리 중국 공산당원은 법률과 직권에 규정된 리익 외에 직권을 빌어 불정당한 사리를 도모해선 안돼요. 이것이 바로 당원이 일반사람들과 다른 점이죠." 그러자 박문은 군철을 곁눈질하며 두덜거렸다. "그러고 보면 나도 두채 가져선 안될 거 아뇨?당위 서기가 날 더 줬다고 뒷말을 달고 다닐게 아닌가?" 군철은 내심하게 해석했다. "아니죠. 한채는 박총경리님께 차례진 몫이고요. 한채는 건축비용을 대준 사례금이죠. 은행대부금을 내도 그보다 더 많은 리자를 갚아야죠." "리자 대신 경제권을 쥔 총경리한테 아파트를 준다?" "그래요." "그럼 최전무도 두 채 가져 문제 없어." 박문은 정색해 말했다. "보라고,자네 시정부랑 국토자원국에랑 건설국에랑 가옥관리국에랑 뛰여다니지 않았더라면 아파트 지을 수 있었겠나? 응당 사례금으로 한채 더 줘야지." 박문은 최군철을 끌어들여 입을 틀어막고 아파트를 두채 가지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했다.그러나 군철은 두채 가질 수 없었다. "저는 시정부에서 준 집 한채 있잖아요? 그리고 리화와 난 리혼했기에 리화 과장도 한채 탈 수 있어요. 장차 애들 집까지 언제 근심하겠어요.몇천명 직원들의 아파트문제가 더 긴요한데요. 저는 저한테 차례진 한채 외에 한푼도 안 가지렵니다." 박문은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다가 이렇게 뒤근심했다. "나도 두채 그만두겠네.본사에서 알면 괜히 뒷말을 듣겠네.괜히 철창 속에 갇히겠네." 그러자 박문은 말상을 비뚤렁하며 한참 궁리했다. "내캉(내게) 뒷말도 안 듣게 할 묘책이 있습니다." "?" 박문은 말상을 들어 군철의 번대머리를 쳐다보았다. "내 아들과 딸을 우리 회사 직원으로 받아들입세. 그럼 사례금이란 명목도 필요없이 난 세 사람 몫으로 세채나 탈 수 있잖은가요?" "그래요?허허허. 그게 묘책이군요." 박문은 꾀망둥이였다. 자기 사리를 도모하는데는 진짜 이골이 텄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 회사 간부들의 특성이였다.        그는 군철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 놈 박대가리 비상해. 별의 별 꾀가 다 쑥쑥 빠져나온단 말이야.) 그러나 그는 속과는 달리 짐짓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우. 이래 되겠나?본사 리회장님은 인건비 올라가단고 자꾸 직원을 줄이라는데. 내 아들과 딸을 받아들여 되겠나? 뒷말이 두려워." "소주대학의 영국 켐푸리치대학 분원 석사생과 프랑스 리오대학 분원 박사생을 우리 직원으로 초빙하는데 웬 뒷말입니까?누가 당치도 않은 뒷소릴 해요? 당장 잘라버리겠습니다.흥." 박문 총경리는 이때만큼 날카롭게 결단하는 군철에게 못내 탄복했다. "아우를 옆에서 여겨보면서 당위 서기를 잘 뒀다고 보오. 언제나 회사와 직원들 리익부터 챙기는 자넬 보면서 나도 점차 적화돼가는 감을 느끼오. 당신들 공산당원들은 우리 부르죠아와는 판판 달라. 허허허."      그는 인차 랭정성을 찾으면서 말했다.     "아파트는 5년 이상 우리 회사에 근무한 직원들한테만 주게나." "아니, 그럼 박총경리님 아드님과 딸 어떻게 해요?" "어, 거도 그래..."     박문은 할 말이 더 없었다.     군철은 바로 이런 대목을 진작 내다보고 박문의 아들딸을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이다. 박문의 입을 틀어막고 직원들을 더 줄이지 않고 전체 직원들에게 한채씩 나눠주려는 것이였다.     아파트를 나눠주기 전에 직원을 대폭 줄이게나. 그래야 아파트 건축 부담도 줄고 회사의 인건비 부담도 덜 수 있잖겠나? 이건 일거량득이야." "네, 알았습니다. 줄이죠." 그러나 군철은 이젠 겉으로는 "예,예."건성으로 대답하면서 회사보다도 직원들의 리익을 챙기려고 자기 줏대대로 해나갔다. 하긴 본사에서 중국의 수천명 직원의 앞날을 등지고 회사를 베트남에 이전하려고 드는 판에야 . 그는 당대표로서 회사가 이전하기 전에 전무 직권을 빌어 수천명 중국 직원들의 앞날과 리익을 위해 뭔가 하나라도 챙겨줘야 했다. 그는 우선 박문 총경리를 푹 삶아 건축비용을 얻어내 아파트를 지어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급선무였다.   군철은 당장 인사과에 전화를 걸었다. "리과장, 어서 사무실에 오오." 그날로 군철은 소주대학 박사생 박슬기를  회사 인사과 직원으로 초빙했고 박문의 아들은 경영과에 초빙했다.하여 박문의 아들과 딸은 회사에 출근하네 하고 낯이나 보이고 소주대학에 가서 공부하면서도 아파트를 타게 되였다. 최군철 전무는 아파트 건축공사 총책임자로서  이렇게 간고하게 본사 리회장과 회사 박문 총경리한테서 아파트 건축비용을 얻어내는데 성공해 아파트공사를 벌려나갔던 것이다. "빨리 아파트를 지어야 해? 밤이 길면 꿈도 많아지지." 군철은 박총경리와 차용계약서를 쓰고 회사 돈을 얼마간 먼저 내다가 건설비용으로 썼다. 그러나 판 부족이였다.  군철은 공회회의를 열고 전체 직원들에게 자체로 모금해 아파트를 지을 것을 동원하였다.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모두 대찬성하였다.         공회 부주석 김운선이 앞장서 호응했다. “우리 아파트를 짓는데 건축비용을 모금합시다.” 직원들이 구호 부르듯 호응해나섰다. "옳습니다. 우리 힘으로 우리 아파트를 건설합시다!" 직원들은 삼삼오오 머리를 맛대고 의론이 분분했다. 경희가 나서 소리쳤다. “아파트 한채에 몇백만원씩 벌겠는데 돈을 내놔야지.” "그래. 옳소.언제 봐도 최서기는 우리 직원들을 잘 챙겨준단 말이오." 그 기회에 하나도 끼여들었다. "저런 당대표 어디 있소?" "옳소. 우리 당위 서기야 말로 우리 부모 같단 말이오." "자금을 모아 우리 아파트를 지읍시다!" 직원들은 너도 나도 앞장서 모금해 건축비용을 충족히 마련할 것을 다졌다.     군철은 시정부에서 준 아파트를 3분의 2 시가로 팔고 셋집을 잡고 나갔다. 심지어 양아버지한테 림시로 준 자기 아파트마저 팔아 건축비용으로 내놓았다. 물론 건축비용을 선대한 것이다. 그러나 리나는 야단쳤다. "집을 몽땅 헐값으로 팔고 어쩌자는 건가요? 애들을 데리고 셋집에 허망 나앉다니?" 리나는 번대머리를 쳐다보면서 바보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회사에서 아파트를 짓지 못하는 날엔 어쩔 예산인가? 제정신인가요? " 군철은 손사래쳤다. "집을 팔아 회사에 헌납한 것도 아닌데. 왜 이래? 내 일에 삐치지 마오. 건축자금이 시급히 수요되는데. 어쩌오? 회사가 무너지기 전에 아파트를 지어 직원들에게 한채씩 나눠줘야지." 리나는 어처구니없어했다. "어이구, 제 노릇을 못하라고 당위 서기를 하는가요?  당대표 되더니 진짜 새빨간 상 한다. 당대표는 사람이 아닌가요? 둥지 없어도 되는가요?" 군철은 정색해 엄숙하게 말했다. "저는 당원이 아니오? 우리 입당할 때 어째 입당했소? 아빠처럼 직권을 빌어 제 욕심만 차리자고 입당했소?" 리나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 말을 들어보세요. 법률과 도덕에 어긋나지 않는 한 챙길 건 챙겨야죠." 우멍눈이 무섭게 화등잔이 돼 리나 앵두입을 쳐다본다. "뭘 챙긴다고 그래?"  리나는 믿고 숨김없이 말했다. "림하영을 회사 공회 문예부장으로 받을게 뭡니까? 순정 이모를 하영 대신 부장으로 받아두었더라면 이 기회에 아파트를 타게 할 수 있잖겠습니까? 또 문걸 시아버지랑 춘희박사랑 회사에 받았더라면 아파트를 타게 하지." 번대머리는 버릇처럼 머리카락을 뒤로 빗어넘기며 피씩 조소했다. "무슨 리유로 양아버지와 김춘희 박사를 회사에 받아?" "시양아버진 건축설계사 아닙니까? 아직 늦지 않아요. 고층아파트 짓자면 고급건축설계사 리문걸씨 필요하다고 받으면 돼요. 김춘희 박사는 제약공장이나 위생소에 필요한 의료박사 아니고 뭔가요? 제가 인사서류를 회사에 제기하고 당신이 나서서 박총경리만 구슬려내면 도장을 꽉 박아서 오늘 내로 회사에 받아들일 수 있잖아요? 인사과장과 전무가 직원 몇을 받는 거야 식은 죽 먹기 아닌가요? 그럼 장차 우린 일약 몇천만원 유산을 상속 받겠는데." "닥치오." 우멍눈이 무서운 빛을 뿌린다. 그 한줄기 밝은 빛은 바늘로 되여 리나의 탐욕스런 가슴을 아프게 찔러주었다. 심장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나올 지경이다. "한가지 묻기오. 김춘희박사한테 아파트를 주는 것과 우리 유산상속이 무슨 상관이 있소?" 리나는 활짝 웃으며 나왔다. "보세요. 시양아버지와 김춘희박사가 그런 관계 아닌가요? 시아버지 병이 나으면 춘희박사와 어떻게 될지 아는가요? 춘희 박사가 지금 아버지 병문안을 다닌다던데요." 군철은 리나를 손가락질하며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무서운 핵산골이구만.아주 멀리 내다봤구만. 박총경리는 우리 회사에 5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만 아파트를 주라고 했소." 리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 박총경리 아들과 딸도 아파트 못 타겠는데요." "바로 그거야. 내 박총경리 아들 딸을 받은 것도 그 때문이야. 박총경리 아들과 딸한테 아파트를 주려면 임직 5년 안된 직원들한테도 아파트를 줘야 하잖겠소." "박총경리 입을 틀어막으려는 거군요."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리나를 정시하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우린 절대 인사과장과 전무라는 직권을 빌어 엄청난 사리를 도모해선 안되오. 우리 어째 입당했소? 한마음 한뜻으로 인민들의 리익을 위해 복무하자고 입당한게 아니오? 당의 취지가 뭐요? 나는 당대표이자 우리 수천명 직원들의 대표요. 직원들의 리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잖소? 이게 당대표의 사명감과 의무감이오."       그러나 리나는 도리머리를 홰홰 내저었다.       군철은 리화를 안심시켰다. "걱정마오. 나와 제게 한채씩 차례지면 애들 둥지 근심할 필요있소?" 리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아니, 그녀는 무등 기뻤다. (혹시 나하구 복혼하려는 건가? 이젠 졸혼 재미없지? 애리싸도 강제출국당하고... 그런데 애들 둥지말만 했지. 우리 둥지라고 하진 않았잖아? 허이구, 언제 이놈의 지루한 졸혼 끝날가?) 리나는 우멍눈을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군철은 집의 저금까지 빡빡 끌어모아 도합  2천 7백만원이나 건축비용으로 내놓았다. 전체 직원들의 모금과 회사 자금으로 아파트건축공사의 바쁜 목은 열어놓았다. 그리하여 아파트 건축공사는 지체없이 진척돼 나가게 되였다.  그런데 새로운 골치거리 생겼다.   변덕스러운 강남의 비가 자주 쏟아지는 날씨 때문에 건축공사가 지장을 받는 날이 많았다. “어떻게 하나 회사가 무너지기 전에 아파트를 다 지어 직원들에게 나눠줘야겠는데. 이 놈의 강남의 날씨가 돕질 않네.” 군철은 변덕스런 창 밖의 하늘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빌었다. “하느님이여, 제발 우리 직원들을 살려주옵소서. 회사가 베트남으로 이전하기 전에 아파트를 다 짓게 비를 내려보내지 마옵소서.제발. ” 그는 출근하는 날이고 휴일이고 차를 타고 회사 건축현지에 달려가 이것 저것 차질이 없는가 살피고 현지에서 해결해주었다. 호수 자리에 건축하는 직원들 아파트는 군철과 2천여명 직원들의 소원과 지극정성에 받들려 날에 날마다 놀라운 스피드로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어머, 벌써 20몇층까지 올라갔잖은가.
350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6) 김장혁 댓글:  조회:1183  추천:0  2023-04-29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6. 강남의 풍운조화 강남의 날씨는 변덕스럽기 그지없었다. 일년 4계절 맑은 날을 보기 힘들었다. 항상 하늘은 먹장구름에 뒤덮여 밝은 해가 난 날을 별로 볼 수 없었다. 맨날 흐리멍텅하게 상을 찡그린 을씨년스럽기로 짝이 없었다.  뭣이 불만이기에 두터운 먹장구름으로 지지누르다가도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대지를 뒤흔들고나서는 우박을 내리쏟아붓고 소낙비가 쏟아지는가?  동북의 오뉴월 소낙비는 소잔등을 다툰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남방의 소낙비는 시도 때도 없이 불시에 와르르 쏟아진다. 소낙비는 오래 내리지 않고  10분 내지 20분 와르르 쏟아붓고는 걷어치운다. 그러나 소낙비는 골물을 이루며 사납게 채마밭을 덮치고 행인들을 괴롭혔다. 그러기에 남방에서 안해 없이는 살아도 비옷이나 우산이 없이는 살기 힘들다. 하여 수많은 강남 촌사람들은 을씨년스럽고 변덕스러운 날씨에 일하기 힘들었다. 그들은 아예 비도 가리고 땡볕도 가릴 수 있는 커다란 참대살모자를 쓰고 일한다.  강남에 어쩌다 해 번쩍 뜨면 이젠 소낙비가 끊났는가 해 길 가려고 나서면 순식간에 또 소낙비가 쏟아진다. 겨울에도 먹장구름이 맨날 지지누르고 있어 보슬비가 부슬부슬 쏟아진다. 어떤 때에는 련 한달 반동안이나 먹장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어 해난 날을 별로 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해도 숨박꼭질하듯이 구름 속에 숨었다가 언제 불쑥 나올지 모를 지경이였다. 모두들 해가 난 날을 그렇게 고대했지만 하늘에는 종시 해가 나오지 않아 침침하고 습기 차 말이 아니였다. 이불장 안의 이불이 다 축축해 그대로 덮기조차 어려웠다. 해난 날만 오면 강남의 아낙네들은 누게 든 이불과 옷을 베란다에 내다 말리느라고 분주했다. 집집마다 베란다에 널어놓은 이불이 줄느런히 늘어선 풍경이야 말로 희한했다.   강남의 풍운조화는 변덕스럽기로 헤아리기 힘들었다.  또 소낙비가 오려나보다. 먹장구름이 강남 땅에 돛을 내리고 있다. 사나운 바람꼬리로 대지를 내리치며 휘파람을 분다.  제비도 둥지가 날려갈가봐 부랴부랴 둥지를 찾아 날아간다. 짹짹 주둥이를 벌리며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들이 근심된다. 헛참, 누구 탓인가? 지구온난화 탓인가? 알프스산맥 탓인가? 희말라야산맥 탓인가? 아니면, 동해바다 탓인가? 강남 땅 때문인가? 하늘과 물어보고 땅과 물어보아도 대답이 없다.  미라는 밤중에 홍두깨를 내밀듯이 박문을 보고 질문했다.  “왜 우리 한국은 4계절이 분명하게 날씨가 평온한데요. 거의 비슷한 위도에 처한 여긴 왜 이렇게 변덕스러운가요? 겨울에도 맨날 보슬비가 구질구질 내리고. 심지어 소낙비까지 쏟아져요? 불쑥 들이닥치는 하소연이 박문의 머리를 아프게 쳤다. ”글쎄.” “그래도 하늘과 강남 땅만 탓하겠는가요?” 자연의 철학자도 기상학자도 대답이 궁했다.  “그저 강남이 돼 그렇겠지... 오늘 보오. 해 반짝 나잖았어? 히히히.”  “죽잖으면 살 소리. 해 났을 때 이불이나 널어야지.”  (쳇, 당신도 이제 세상 풍운조화가 얼마나 변덕스러운가 알게 될거야.) 박문은 요즘 미라가 어찌나 날씨를 나무리며 두덜거리는지 골치 아팠다.그는 강남의 변덕스러운 날씨보다도 변덕스러운 안해 마음이 더 골치 아팠다. (어떤 때는 상해 신기루 어떻구. 황포강 어떻구 하더니,참, 이젠 상해나 소주에 더 볼거리 없으니깐.지루해?가뜩이나 코로나 때문에 회사 일이 골치 아픈데. 아내마저 골치 아프게 굴어. 건데 아내를 놓쳐선 안돼.한국에라도 훌 가버리면 어떻게 해? 또 밤이 무서운 세월을 보내야 할게 아닌가?) 그는  턱을 고이고 이불을 안고 나가는 안해를 바라보았다. "아이고, 어떻게 여기서 살아? 이불 축축한 거 보세요.이런 이불 덮으니 자꾸 허리 아프죠." 박문은 길죽한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고 궁리하였다. 그는 베란다에 나가 이불 너는 안해한테 다가갔다. 애들도 소주대학 숙사에 가고 없는지라 그는 미라를 꼭 끌어안았다. "왜 이래? 남들이 보면 늙은게 주책없다고 하잖겠어?" 미라는 두팔굽으로 뒤에서 찰떡처럼 달라붙는 남편을 마구 쳐놓으며 이불을 툭툭 털어널어놓았다. "여보,상해나 소주에서만 맴돌지 말고 다른데 관광 가 보오." "어델?" 미라는 이불을 널고 옷장을 열고 눅에 든 옷견지를 와락와락 꺼내 안고 베란다에 나갔다. 박문은 진지하게 권고했다. "절강 소흥이나 오진에 관광 가보오." "거긴 뭘 볼게 있대요?" 미라의 어리어리한 쌍까풀눈에는 벌써 호기심이 반짝였다. "최전무 말에 의하면, 소흥엔 중국의 유명한 작가 로신의 옛고향집이 있다고 해. 오진에는 중국의 유명작가 모순의 옛고향집이 있다고 하데.당신 작가니깐. 가 보면 느끼는 바가 많을 거야.” "그럼요. 당장 가야겠어." 미라는 단통 박수치며 환성을 질렀다. "그래, 이번 주말에 나와 함께 갈가?" "그래요." 박문은 중국의 명승고적으로 아내를 강남에 붙잡아두고 싶었다. (이젠 그저 명승고적으로는 안되겠어. 거진 봤으니깐. 미라는 작가 아닌가. 이젠 중국 유명작가들의 옛고향으로 유혹해야지.) 그저 강남의 수향보다도 작가라는 인문관광내용이 보태지자 미라의 마음을 끄는데 쉽게 성공할 수 있었다. 안해를 좀 안착시켜놓자 박문은 링컨승용차에 앉아 회사로 부랴부랴 달려갔다.한국 회사 총경리 위풍을 부리는 순간이 노래하며 번개같이 날아갔다. 그는 으리으리한 사무실에 들어가 사무상에 앉아서도 불안해났다. 집에서는 안해가 도도거리고 바깥에서는 미국 양키놈들 때문에 무언의 압력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녀비서 하나가 김이 몰몰 나는 커피잔을 차탁에 올려놓고 두 손을 맞잡고 분부를 기다렸다. 박총경리는 커피잔을 들어 후후 불며 마시고나서 입을 다시며 분부했다. “최전무를 부르오.” “네, 곧 부르겠습니다.” 하나가 허리 굽혀 인사하고 나갔다. 이윽고 군철이 헐금씨금 사무실에 들어서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밤새 무사했습니까? 박총경리님.” 박문은 길죽한 박대가리를 가로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골치 아파 죽겠네.” 박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군철의 앉은 맞은켠 쏘파에 앉았다. “미국 양키놈들은 말이 아니야. 날따라 우리 반도체를  한심하게 통제하네.” 그는 아내 때문에 골치 아팠지만 그건 빼고 회사 반도체문제부터 꺼냈다.   “아우도 세상형편이 돌아가는 걸 알겠지만 말이야.” 군철도 맞장구를 쳤다. “미국 양키놈들은 말이 아니죠. 날이 갈수록 우리 목을 조이고 있지요.” “그래.” 박문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미국 양키놈들은 우리 한국 본사 반도체생산을 통제하다못해 이젠 반도체 메모리와 칩 생산과 시장을 통제하네. 이번엔 미 상무부에서 우리 본사 보고 중국에 있는 우리 분회사 메모리(memory)와 칩(芯片)생산과 판매 명세장을 바치라고 한다네. 미국 양키들은 애리싸랑 숱한 경제간첩을 파견해 우리 상업비밀을 정탐하자고 날뛰다가 중국 안전부에 다 잡히니깐. 이젠 내놓고 우리 상업비밀을 내놓으라고 을러메는 거 아니고 뭔가?” 그는 너무나도 억이 막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군철도 답답해 두 손을 맞잡고 근심했다. “사업비밀은 우리 회사 목숨과도 같은데요. 어떻게 훌훌 내놓아요? 우리 속이고 가짜를 제공한들 그놈들이 어쩐단 말인가요? 무장간첩이라도 중국까지 파견해 우릴 붙잡아가겠는가요?”  박문은 손사래를 쳤다. “안되네. 가짜 명세장 미국 양키놈들한테 발각되는 날엔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도 몰라.” 군철은 납득되지 않았다. “우리 회사 중국 땅에 있는데도 미국 놈들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가요?” “별 수 있는가? 우리 한국은 미국 놈들의 식민지인데. 미국 상무부에서는 한국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네. '중국에 있는 반도체회사 생산과 시장판매 명세장을 제공하게 할 방법과 수단이 많고도 많다.”고 을러멨다네. 무슨 말인가? 제공하지 않으면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는 거야.” 군철과 박문은 둘 다 속이 타 오랜만에 권연을 붙여 물었다. 속이 탄 연기가 사무실을 채우며 천정으로 날아올라갔다. 하나가 담배연기 냄새를 맡고 노크하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녀는 두 손을 맞잡고 권고했다. “박총경리님, 최전무님, 흡연은 건강에 불리한데요.” “알어. 나가 보게나.” 박문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손사래만 쳤다. 하나가 도리머리질하며 나가버렸다. 박문은 뒷말을 이었다. “한국 정부는 안보를 위해, 미국의 핵우산을 제공받으려면 미국 말을 듣지 않으면 안되네. 미국에서 핵우산을 공짜로 제공해주려고 하겠는가? 한국 정부에 경제상으로 미국의 핵우산을 포함한 군사지원에 보답하라는 거야. 한국 기업들에서 미국에 투자하라고 동원하고. 한국 반도체도 미국 통제하에 대중국 견제에 동참해라고 하네. 미국에서는 한국뿐 아니야. 일본, 화란, 한국, 중국의 대만에까지 손을 뻗쳤네. 이런 동맹지역의 반도체회사는 모두 미국 편에 서서 중국의 반도체 생산물자반입과 반도체 생산을 고립켜 중국 경제를 파탄시키자는 거야.”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요. 미국에서는 내놓고 화웨이를 제재하고 맹부회장을 체포하기까지 했지요. 중국정부에서 하도 외교가 세기에 맹부회장이 풀려나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됐댔지요.” 박문은 어이없어 길죽한 말상을 홰홰 저었다. “미국에서는 얼마나 교활한가? 일본과 한국 반도체기업에서 미국에 공장을 짓고 반도체생산을 해야 한다네. 만약 미국에 공장을 세우면 5프로 보조금을 준다네. 그 보조금을 주고 반도체생산을 완전히 미국 통제하에 하라는게지.” 군철도 국제 반도체계의 풍운조화를 얼마간은 짐작하고 있었다. “중국 대만 台积电(TSMC,)반도체회사를 보세요. 미국에서 이른바 “군사보호”의 미명하에 군수물자를 제공해주고 대신 대만 台积电반도체 회사를 보고 미국에 회사를 옮겨 차리라고 강요했지. 그래 미국에 투자해 반도체공장건물을 짓고 생산준비를 했지요. 그런데 미국에서 신용을 저버렸지요. 보조금을 준다해놓고 해뜩 번져누웠지요. 그 놈들은 미국에 투자한  “세계 각지 120개나 되는 반도체회사 보조금신청을 심사한다.”는 미명하에 여직껏 보조금을 안주고 있지요. 신용이 없는 놈들이죠. 그러니 미국에 투자한 반도체회사들이 쫄딱 망하게 됐지요. 보조금은 일전한푼 못 받고 미국 양키놈들의 통제를 받기만 하게 됐죠. 그래서 일부 대만 반도체기술자들은 중국 대륙에 들어와 광주에 반도체회사를 차렸지요. 소주에도 중국 대만의 기업이 얼마나 많이 들어왔습니까? 중화민족으로서 중국 대륙에 와야만 허리를 펴고 회사를 차릴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박문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미국 양키놈들은 날강도야. 신용도 없고 무법천지야. 그저 힘센 걸 믿고 원자탄과 칼을 들이대고 회사를 통채로 빼앗아가지 못해 미쳐 날뛰고 있네. 그러나 무슨 수가 있는가? 이른바 미국 양키들의 안보지원을 받으려고 한국 정부는 미국에 머리를 조아리면서 아부하고 있잖나? 우리 회사는 또 한국 정부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가? 우린 또 한국 본사 말대로 명세장을 바치지 않을 수 있는가? 말을 안들으면 아우나 내나 당장 잘릴 판인데. ” 박문은 사무상에 돌아가 앉으면서 정색했다. “재무부와 생산부에 말해 명세장을 정리해 바치라고 하게나. 인차 본사를 통해 미국 상무부에 보내야 하네. 자칫 미국 상무부에 걸려들면 큰 일이네. 미국 상무부의 제재를 받으면 우리 회사는 망하네. 미국 양키들은 우리 회사가 중국에 반도체생산회사를 차린 것 마저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고 있네. 이젠 우리 분회사가 중국에서의 반도체 메모리와 칩 생산량까지 제한한다고 하였네. 기실 미국의 제재가 소리없이 이미 작동하기 시작했네. 이미 우리 회사 생산량이 3분의 2나 감소되지 않았나? 설상가상으로 이제 미국에서 생산량까지 제한해 통제하면 우리 회사는 무사하지 못해. 미국 놈들은 우리 회사를 중국에서 반도체회사를 차려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거야. 미국 양키놈들은 우리 회사를 비롯한 한국 일체 반도체회사에서 중국 시장에 칩과 메모리를 판매하는 것도 엄격히 통제하고 있네. 중국 시장을 잃으면 우리 회사는 전도가 암울하네. 우리 한국도 중국 시장을 잃으면 경제가 힘드네. 한국의 대중국 무역액은 전반 한국 무역총액의 24프로나 차지하네. 중국 시장을 잃으면 한국 무역총액의 근 4분의 1이나 떨어져 나간다는 말일세.” 박문 총경리는 너무 답답해 한참이나 뒷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최전무, 지금 까뜩이나 반도체시장이 침체상태인데. 미국 놈들의 제재까지 받으면 우리 한국 회사반도체회사에서 어떻게 중국에서 계속 회사를 차려나가겠는가? 자칫 회사에서...” 박총경리는 뒷말을 하려다가 주춤하더니 얼버무렸다.  기실 본사 리회장은 박문 총경리 보고 비밀리에 중국에서 계속 S시반도체유한회사를 계속 견지해 차려나갈수 있겠는가를 전면점검하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박문총경리는 그 내막을 중국측 대리인이나 다름없는 군철에게 미리 말할 수 없었다. (자칫 소란이 일어날게 아닌가? 그래도 지금 아직 중국에서 메모리와 칩 3분의 1 생산량과 시장판매를 유지하고 있잖은가?) 박문은속으로  근심하는 바와는 달리 말끝을 얼버무려버렸다.     “이게 미국의 식민지 한국 회사의 아픔이야. 이 릉욕과 수모를 언제까지 당해야 할지. 참 가슴이 답답하네.” 군철도 한국 기업에 기생해 사는 팔자가 개탄스러웠다. 그도 이미 본사 리회장이 미국의 통제와 제재를 받으면서 중국에서 더는 반도체회사를 차리기 힘들어한 나머지 근자에 베트남을 비밀리에 고찰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언제든지 중국 분사를 정리하고 베트남으로 훌 회사를 이전할 수도 있어.) 회사 위기가 먹장구름처럼 다가오고 있었다.세상의 풍운조화는 실로 짐작하기 어려웠다. 군철은 가슴이 미여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가슴을 쾅쾅 치며 속으로 통탄했다. (당당한 중국 공민인데. 한국 회사에 목을 매워 한국 기업인들을 따라 릉욕을 당해햐 하다니. 참. 언제면 한국 회사를 떠나 내 손으로 우리 중국 회사를 차리겠는가? 언제면 한국 회사 눈치를 보지 않고 허리를 펴고 살 수 있겠는가?) 한참 후에 군철은 천천히 머리를 들더니 강경하게 한마디 보탰다. “미국이 아무리 중국 반도체 생산을 통제해도 중국 반도체 생산과 경제 성장을 막을 거 같습니까? 중국은 최근 15개월 내에 한화로 169조원의 반도체영업수익을 올렸습니다. 중국에서는 지금 96조원(한화) 투자해 광동에 아주 방대한 반도체그룹을 건설합니다. 화워이에서도 1300여억딸라나 투자해 자체로 반도체 연구와 개발, 생산할 예산입니다. 이제 화워이는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 미국의 반도체생산물자와 부품이 필요없이 멀지 않은 장래에 자체로 반도체를 개발생산할 겁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화워이 리사장의 딸, 부회장인 맹녀사를 체포하는 연극을 놀았지만 중국과 국제사회의 강렬한 항의에 석방하지 않으면 안됐지요. 그래 맹부회장녀사를 일년여만에 석방했지요. 요먼저 맹녀사는 화워이는 이젠 미국 놈들의 조폭한 통제와 제재에 관계없이, 미국의 생산물자와 부품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메모리와 칩을 생산한다고 선포했습니다.”       박문도 한마디 보탰다.       "미국에서 이른바 반도체동맹을 결성하려고 하지만 네덜란드는 말을 듣지 않는다네. 네덜란드에선 이렇게 나온다네.  '미국에서 무슨 자격으로 이른바 반도체동맹이란 구실로 우리 나라 반도체생산까지 지배하려고 들어? 한심한 놈들, 우리 나라가 무슨 미국식민진가? 네덜란드 반도체가 거대한 중국 시장에 진출하지 않고 전도 있는가?' 이러니 미국의 이른바 반도체동맹은 구멍이 뚫린 거지."      "허허."      군철은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유럽의 프랑스, 독일 등 미국 동맹국들도  미국의 자사자리한 자기 나라 경제중심 이른바 '경제동맹'에 반기를 들고 나왔지요. 미국에선 유럽 동맹국들에 러시아를 제재한다면서 러시아산 석유를 사지 마라 했지요. 유럽은 석유난으로 이 추운 겨울에 얼어죽을 번했지요. 그 틈을 타 미국에선 자기 나라 석유를 러시아산 석유보다 더 비싸게 유럽에 팔아먹었지요. 미국에선 처처에서 재재요, 뭐요, 동맹이요 나발불면서 자기 나라 리익만 챙겼지요. 그래서 유럽 동맹국들의 반감을 사게 된 거죠. 유럽의 수많은 미국 동맹국 지도자들은 미국의 자사자리적인 외교관을 간파하였습니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중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자'는 미국의 말을 듣지 않고 중국을 방문하고 중국과 숱한 경제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박문은 가슴을 치며 통탄하였다.      "언제면 미국 양키놈들의 통제가 사라지고 회사를 살려낼가? 한국에서도 네덜란드처럼 당당하게 나와야 하는데."      "한국은 미국에 아부하고 의존하는 반식민진데 유럽의 네덜란드나 프랑스처럼 나올 수 있겠습니까?"  "언젠가는 당당한 자주국으로 나와야지. 어떻게 이렇게 계속 살아?"   박문 총경리와 최군철 전무는 속이 답답해 애꿎은 담배만 풀썩풀썩 태웠다.  뽀얀 연기가 사무실에 자오록했다. 니꼬찐냄새가 복도에까지 꽉 찼다.  그 고약한 담배 냄새에 비서실의 하나마저 골치 아팠다.  흐리멍텅한 바깥 하늘에서는 먹장구름이 사품치고 소용돌이치며 예측키 어려운 풍운조화를 온양하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미국 양키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들의 목을 옥조이는 것 같아 숨막히기만 했다. 머나먼 태평양 건너 양키놈들의 음흉한 파란 눈이 판들거리면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슬픔의 꼬리가 호수에 닻을 내리며 애처러운 비명을 지른다. 어디에선가 딸라때 더덕더덕 더럽게 묻은 양키놈들의 징글스러운 너털웃음소리 뭇사람들의 귀를 강간한다. 판난 딸라가 하늘에서 저승사자 손에 든 기발처럼 너펄거리며 대지를 괴롭히고 있다.   
349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5) 김장혁 댓글:  조회:1211  추천:0  2023-04-26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5. 마끼의 흐느낌소리                        회사 가산 바위돌의 우멍한 눈들이 갓 지은 백신공장 건물을 멍하니 바라보며 하품을 한다.        군철의 웅대한 설계도에 따라 숱한 자동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회사 앞의 호수에 흙을 실어다  쏟아넣느라고 분주히 오가고 있다. 이제 호수를 메우고 직원들의 고층아파트를 짓는단다.         S시에서 아파트 한평방에 10만원씩 하는데 직원들에게는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직원들은 일을 해도 희열에 잠겨 힘든줄 모르고 밤낮이 따로 없이 일하였다.  야마구찌 마끼는 위생소에서 나와 호수 옆의 가산을 꿰질러 나갔다. 그녀는 요즘 지꾸 왼눈까풀이 파들거려 불길한 징조 아닌가 하여 불안하기만 했다. 마끼는 행정사무실 쪽에서 한 콧수염쟁이가 회사 대문으로 나가는 것을 피뜩 보았다. “아, 아니, 깜짝이야.” 그녀는 눈에 익은 그림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가산의 들쑥날쑥한 바위 뒤에 몸을 찰싹 붙이며 대문 쪽을 면밀히 주시했다. 콧수염쟁이는 회사 행정사무실에 대고 꾸벅 허리를 굽혔다.  (행동거지 봐. 딱 정신병자 같애.) 나이와는 달리 파란 양복에 넥타이까지 척 매고 중절모를 꾹 눌러쓴 그 콧수염쟁이, 그 콧수염쟁이 퍽 눈에 익었다. (아니, 저게 다이로교수 아닌가?) 마끼는 가슴을 졸이며 가산 석굴에 몸을 깊숙이 숨겼다. 그녀는 얼굴만 반쯤 내놓고 다이로교수를 살폈다. (야마구찌 다이로는 산어구지(山口)에서 난 애라는가. 그래서 성씨도 山口 라고 하지 않아?) 마끼는 다이로교수를 모욕하닥 혀를 홀랑 내밀었다. “나도 야마구찌 성을 탔으니깐. 양딸이니깐. 기실 나도 욕한게 아닌가? 이래서 누워서 침을 뱉으면 제 낯에 떨어진다는게 아닌가?” 마끼가 여겨보니 다이로교수는 씨엉씨엉 회사 대문 앞으로 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바람결처럼 사라졌다. 마끼는 이제 무슨 태풍이 불어칠지 몰라 당황해났다. (다이로 왔다고 엄마한테 알려야지.) 마끼는 가산 주위를 흘끔거리며 부랴부랴 위생소에 불 맞은 노루처럼 뛰여들어갔다. “어마나!” 문을 떼고 들어가다가 복화와 딱 마주쳤다. “하마트면 이마를 쪼을번 했잖아? 무슨 일에 이렇게 달아다녀?”  복화의 이상해하는 눈길을 보고 마끼는 당황한 기색을 억지로 감추며 어색하게 해쭉 웃어보였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황선희박사는 어데로 갔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마끼는 천천히 자기 사무상으로 다가가며 속생각을 번개같이 굴렸다. (복화(나나)는 라이벌이야, 천적이야. 그저 놔뒀다간 무슨 일을 칠지 몰라. 안돼. 다이로한테 우리 모녀간이 여기 있다는 걸 알려주는 날엔 끝장이야.) 마끼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나나, 한가지 부탁하자.” “그래. 무슨 일?” 복화는 화기애애한 눈길로 마끼를 마주 바라보며 하회를 기다렸다. 마끼는 억지로 살살 눈웃음지으며 복화의 두 어깨를 끌어안기까지 했다. “왜 이래? 너 무슨 일 있어?” 마끼는 놀란 자기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굴을 복화 볼에 가져다댔다. “앗, 뜨거워. 네 얼굴 왜 이리 화끈화끈해?” 복화는 얼굴을 떼고 마끼의 당황한 빛이 얼른거리는 외까풀눈을 들여다보았다. 마끼의 눈 안으로 들어가보고 뭔가 느낌이 닿았다. 마끼는 더는 이실직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우린 죽마고우 아니고 뭐냐?” “거야 그렇지.” “네가 일본에서 라체로 교타이모리스시상에 오른 비밀을 내 여직껏 엄수했잖아. 이게 친구지간이지.” “그래, 친구지간이면 그래야지. 내 루추한 비밀을 지켜줘 고맙다.” 복화는 자기가 숱한 손님들 앞에서 라체로 교타이모리스스상에 누워 있은 추문과 생체관찰 수업시간에 라체모델을 선 일을 마끼가 폭로할가봐 저으기 두려웠다. 복화의 그 약점을 틀어쥐고 마끼는 복화에게 스스럼없이 말했다. “다이로교수가 여기까지 찾아왔어.” 복화도 저으기 놀라했다. “그래?” 마끼는 머리를 들어 복화의 쌍까풀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 여기 있다는 걸 다이로교수한테 절대 말하지 말라. 다이로교수 아는 날엔 난 끝장이야. ” 복화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어. 근심말라..” 복화의 그 한마디에 마끼는 주르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고마워. 이전에 일본에서 널 괴롭힌 걸 용서해달라. 그때 난 다이로교수의 사랑과 유산을 독차지하고 싶었어. 다 욕심이 부른 죄과야.” 복화는 진작 일본에 있을 때 마끼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마끼가 괘씸했지만 궁지에 빠진 마끼를 용서해주기로 했다.  “다 지나간 일이야. 이제부터 우린 서로 량심적으로 친자매처럼 서로 돕고 보호해주면서 살아야 해.” “고마워, 나나.” 마끼는 복화를 와락 끌어안았다. 복화는 마끼를 밀어내며 부탁했다. “이젠 날 나나라고 부르지 말라. 이젠 난 복화로, 중화인민공화국의 당당한 공민으로 살고 싶다. 알만해?” 마끼는 복화의 강인한 빛뿌리는 눈을 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는 복화에게 진 량심의 빚으로 해 죄송하고 미안했다. 또 복화의 언니다운 동정에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따르릉, 따르릉. 위생소 전화가 급촉히 울렸다. 복화가 전화를 받고나서 송수화기를 절컥 놓았다. “최전무가 널 부른다.” “알았어. 곧 갈게. 내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날 지켜달라. 알았지? 인생은 모든게 엎음갚음이야.” 마끼는 짤막히 말하고나서 부랴부랴 위생복을 벗어버렸다. 그녀는 옷장에 다가가 나들이 옷으로 갈아입고 마스크까지 끼고 핸드빽이랑 척 들도 문을 나섰다. “어쩐다? 훌 도망쳐버린다? 그럼 모든게 끝인데. 다이로교수한테 우리 모자간이 붙잡히면 형사죄를 질지 어떻게 알아? 위생소에서 몇년 일해야 5천만엔 벌어? 직업이고 뭐고 다 버리고 도망칠가?” 그녀는 가산을 꿰질러 행정사무대청으로 나가면서 별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다.  “긍정코 다이로교수가 나를 물어먹었을 거야. 이젠 끝장이야. 아니야. 난 10여년이나 강간당한 어머니를 대신해 피땀값을 받아냈을 뿐이야.” 그녀는 이를 옥물었다. “내 어디 공돈을 가지고 도망쳤는가? 어머니 대신 애를 낳아주는 대가를 가지고 온 것 뿐이지.” 녀자는 문턱을 넘어서면서도 열두가지 생각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대체 어쩌는가 보고 결단하자.” 마음을 정하자 마끼는 새로 지은 백신공장건물 옆으로 해 곧추 행정사무대청으로 향했다. 그녀는 2층 전무실에 가서 가볍게 노크했다. 비서실에서 경희의 걀죽한 얼굴이 문을 빠금 열고 나타났다. 뒤에 인사과장 리화의 경멸하는 눈길이 내비쳤다.  “최전무 기다리오. 어서 들어가오.” 경희는 문을 뚝 떼고 마끼 등을 들이밀다싶이 했다. 으리으리한 전무사무실 사무상에 번대머리가 전등불빛에 번쩍번쩍 번쩍였다. “안녕하세요? 최전무님.” “어서 앉소. 이후엔 내 앞에서 절대 마끼라는 이름을 쓰지 마오. 가은이 이름이 얼마나 이쁘오? 우리 조선어로 된 이름을 두고 왜 자꾸 섬나라 오랑캐 이름을 쓰겠소? 안그래?” 최전무는 무슨 사무가 바쁜지 서랍을 뒤적이다가 마끼한테 자리를 권했다. 마끼는 천천히 쏘파에 앉았지만 어쩐지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조마조마해 안절부절 못했다.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르는 침묵, 사람의 피를 말리는 침묵, 납덩이처럼 무거운 침묵이 독사처럼 똬리를 치고 도사리고 앉아있다가 천천히 흘러 지나갔다.  번대머리는 버릇처럼 몇대 안되는 머리를 대머리 뒤로 쓸어넘기더니 우멍눈을 스르르 감고 한참이나 속궁리를 굴렸다.  (가은은 진짜 다이로교수 말대로 사기쳤을가? 사실 진상이 규명되기 전엔 다이로한테 가은이를 내줄 순 없어.) 군철은 우멍눈을 살며시 뜨고 가은의 몸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조, 우유빛얼굴을 봐. 얼마나 귀여운가? 얼마나 귀여운 녀동생인가? 에크, 이게 뭔가? 절대 아빠처럼 녀색에 미쳐선 안돼. 난 당원이 아닌가?) 군철은 마른 침을 꼴깍 넘기며 우멍눈을 스르르 감고 계속 속생각을 굴렸다. (어찌 내 녀동생 같은 가은을 섬나라 오랑캐한테 팔아먹는단 말인가? 물론 량심과 법에 어긋났다면 별 수 없지만.)  드디어 그는 건가래를 떼며 입을 열었다. “한가지 묻기오. 가은이, 다이로교수를 잘 아오?” “네- 잘 알다뿐이겠습니까? 그분은 저의 도사인데요.” “그저 그뿐이오?” “다이로교수는 저의 어머니 박사생 지도교수인데요. 저의 양아버지인데요.” “그래?” 군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지개를 짓더니 마끼한테 우멍눈길을 돌렸다. “가은이, 다이로교수 찾아왔던데. 그의 금은보화와 숱한 돈을 사기쳤다던데...” “억울합니다.” 마끼는 벌떡 일어났다.  “복화 물어먹었습니까? 아님, 황박사?” “그게 중요한게 아니오. 묻는 말에나 솔직하게 대답하오.” 그녀는 단통 왕왕 대성통곡치며 하소연했다. “한쪽 말만 듣고 저의 모녀를 억울하게 굴지 마세요.” 경희는 커피잔을 들고 들어오다가 마끼의 고래고래 고함치는 소리에 주춤 멈춰섰다. 군철은 경희한테 커피잔을 두고 나가라고 바깥 쪽으로 손짓했다. “그래? 뭐가 억울하단 말이오?” 마끼는 더는 감출게 없었다.  두려울 것도 없었다. “다이로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10여년 동안이나 저의 어머니를 변태처럼 강간하고 릉욕했습니다. 밤이면 침실에서 어머니가 다이로, 그 변태한테 당하면서 죽어가는 비명을 지르는 걸 들을 때마다 내 가슴은 칼로 어이는 거 같았어요. 가슴이 갈길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마끼는 대성통곡치며 말했다. "저는 어머니 10여년 동안 릉욕당한 값을 대신해 받아냈을뿐입니다.” 군철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소리오? 그래 다이로교수 숱한 돈과 황금을 사취해가지고 중국에 도망쳤다던데. 지금...” 마끼는 격분해 쌍까풀눈에서 불이 이글거렸다. “저는 다이로교수가 어머니를 보고 애를 낳으라고 협박하는 걸 보고 어머니 대신 애를 낳아주겠다고 했어요. 전 다이로교수 애를 낳아줄 비용을 받아냈을 뿐입니다. 저에게는 당시 다이로교수와 맺은 계약서도 다 있습니다. 제가 어디 사기를 쳤는가요?” “그래? 계약서까지 있다고?” “네. 후에 가져오면 보세요.” 군철은 턱을 고이고 사무실을 뚜벅뚜벅 거닐었다. (계약서까지 썼으면 다른 문제지. 그런데 다이로교수를 너무 섭섭하게 굴면 백신 합작생산에 차질이 생길게 아닌가?)  그는 한참 거닐며 궁리하다가 우뚝 멈춰섰다. “한가지 묻기오? 그 금은장신구는 누구 건지 아오?” “당연히 내 거지요.” 군철은 사무상에 가서 앉더니 마끼를 독기어린 눈길로 쏘아보았다. 꽝! 갑자기 군철은 사무상을 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 금은장신구는 내 아버지 거야. 모르는가 해?” “네?” 마끼는 너무나도 뜻밖이여서 일어나며 군철의 번대머리와 우멍눈을 쳐다보았다.       (그거구나. 탐욕스런 부패분자. 금은장신구 욕심내? 황금흑사심이라고. )      마끼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윤기나는 번대머리를 훔쳐보았다.     (더러운 놈, 네놈 욕심을 채워주는 거야 간단하지. 아깝지만 그까짓거 가져다주고 화를 면하자.)      그녀는 우멍눈을 똑바로 보며 그 놈의 마음 속으로 벼룩처럼 뛰여들어가 보았다.      "제가 당장 그 금은장신구 가져다 드리죠. 그럼 모든게 끝이지요?"     "뭐라고?!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래?"       "그럼?"      마끼는 심리부담이 꼬리치는 것을 느꼈다. (그럼 처녀 몸을 원하는가? 더러운 색마!) "그럼 뭘 원하는가요?" 마끼는 우멍눈을 핼끔 쳐다보았다.        바깥에서는 또 번개가 번쩍였다. 우르릉 꽝, 꽝! 우뢰가 사무실마저 집어삼킬듯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창살 같은 소낙비가 와르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내다보니 눈 앞을 헤아리기 어렵게 물안개가 자오록이 피여오르기까지 했다.  “다이로교수가 며칠 찾아와 다 말했소. 내 친아버지 일본 건너갈 때 공항에 차압됐던 거라고. 그걸 다이로교수가 찾아다가 가은한테 주잖았는가?” 마끼는 자기를 뚫어지게 쏘아보는 군철의 우멍눈을 피하면서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며 끄덕였다. “알만해요. 복화가 말하던가요? 황박사 말하던가요?” “누가 말했는가는 관계없소. 제가 아는가? 모르는가? 그것만 대답하오.” 마끼는 도리머리를 가로저었다. “전 최전무님 아빠 건지는 몰랐어요.” 마끼는 자리에 물앉더니 베아링처럼 속궁리를 굴렸다. (더러운 놈, 네놈도 다 당위 서기냐? 그래도 나보고 당학습을 하라고? 퉤, 이때까지 부패분자 애비 금은장신구를 찾으려고 그랬구나. 그래서 우리 엄마 위생소에 안 받구 날 들볶아댔구나. 악어 주둥이엔 뭔가 물려줘야 물지 않는다잖아? 흥.) 그녀는 이윽고 파랗게 질린 앵두입을 열었다. “당장 최전무님께 그 금은장신구를 가져다 드리죠.” 군철은 대머리를 절레절레 가로 저으며 사무상에 앉더니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오. 그런게 아니오. 난 절대 그 금은장신구를 탐내 그러는게 아니오. 내 아빠 공항에 차압당한게지만 래원이 불명확한 거요. 그걸 내 가진다면 뭐요? 나도 부패분자로 될게 아니겠소? 아버지한테 가져갈 것도 아니오. 그는 이젠 황금 백냥이 있어도 쓸모없게 됐소. 죄만 가중해질뿐이오.” 천만뜻밖의 대답이였다. 바깥에서는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추녀 끝에서 실폭포가 점점 더 세차게 쏟아졌다. “그럼 도대체 어쩌랍니까?” 군철은 소홀히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 “좀 묻긴 그런데. 가은씨는 계약대로 다이로교수 애를 낳아줄 예산이오?” 마끼는 그 물음에 얼굴을 붉히는 것이였다.  부끄러워하는 표정이 대낮 같은 사무실 등불빛에 환히 드러났다. 가은은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아니죠.” “왜? 그럼 사기친 거로 될게 아니오?” “아무리 돈이 귀중해도 어찌 처녀 몸으로 그럴 수까지 있겠는가요?” “그럼 사기 아니고 뭐요?” “아니예요.” 마끼는 털어놓고 말했다. “한 일본 녀성 보고 저 대신 다이로교수한테 애를 낳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젠 오래잖아 다이로교수 애를 낳을 때도 됐습니다. 다이로 애를 낳아주면 저는 계약대로 다 한 것이 아니고 뭡니까?” 군철은 물끄러미 마끼 백지장 같은 걀죽한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뭐라고? 일본 녀성 보고 대신 애를 낳아달라 했다고?” “네. 저는 그 일본 녀성한테 보수를 다 주었는데요.” 군철은 우멍눈을 딱 감고 궁리했다.  한참 후에 그는 우멍눈을 천천히 뜨더니 깍지손을 사무상에 올려놓았다. 군철은 마끼한테 다가와 부드러운 손으로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주며 말했다. “그 말썽도 많은 금은장신구를 다이로교수한테 주고 발편잠을 자오. 나는 섬나라 오랑캐놈들한테 저네 모녀를 버리고 싶지 않소. 한겨레의 량심으론 차마 그렇게 못하겠소. 다이로교수가 법에 거는 날엔 편안한 날이 없을 거요. 난 형사법정에 피고로 나선  마끼 모녀간을 차마 눈을 펀히 뜨고 볼 순 없소.” 마끼는 군철이 오늘처럼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녀는 군철의 그 페부를 치는 말에 마끼는 눈물로 하얀 볼을 적시였다. 마끼는 헤아리기 어려운 군철의 깊은 마음을 깊이 깊이 느끼면서 흑흑 흐느껴 울었다.  드디여 대성통곡치며 말했다.  “최전무님, 구명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오빠라고 불러도 되겠는가요? 오빠, 저의 모든 걸 다 바쳐 그 은공을 갚으렵니다.”        군철은 마끼의 두 어깨를 가볍게 잡고 외까풀눈을 정겹게 들여다보며 말했다. “필요없소. 한 겨레 선배, 회사 책임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뿐이오. 나는 정의와 량심을 주장하오. 한겨레 녀동생을 인간적으로 구하려고 할뿐이오.” 마끼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더니 오쫄 일어났다. 그녀는 사무실에 최전무와 단둘인 것을 보고  번대머리 드넓은 품에 와락 안기며 왕왕 대성통곡치며 흐느꼈다.다. 그녀는 당돌하게 고백했다. “최전무님, 저를 꺼리지 않는다면요, 흐흐흑, 흑흑흑,  제가 한몸 다 바쳐 최전무님을 한평생 남편으로, 아니, 신랑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흐흐흑.” 말을 마치자 마끼는 몸을 홱 탈아 외면하며 문께로 걸어나갔다. 등뒤에서 이런 웅글진 말소리가 들렸다. “어처구니 없는 소릴!” 마끼가 문 밖에 나가다가 리나와 딱 마주쳤다. 리나는 마끼를 흘겨보았다.  "싸가지없는 간나새끼, 퉤!" 마끼는 리나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달음박질쳐 층계로 내려갔다. 등뒤에서 리나 과장과 최전무 옥신각신 다투는 소리 들렸다. “잘들 놀고 있네. 얼리고 닥칠만 하잖아? 20대 처녀 첩으로 들어서자는데. 얼마나 좋겠는가? ” “그 입 다물지 못해?” 경희는 황급히 비서실 문을 닫아버렸다.  이제 이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 누가 알겠는가?!
348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4) 김장혁 댓글:  조회:1272  추천:0  2023-04-23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4. 금은장신구의 비밀 회사 추녀 끝에서 쏟아지던 실폭포가 점점 가늘어졌다.  (날씨도 변덕스럽긴, 참.)  언제 소낙비 쏟아졌는가 싶게 불시에 해가 번쩍 떴다. 군철은 꼭뒤까지 올라간 성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폭우가 휩쓸고 지나간 회사 울안의 가산과 금방 지은 백신공장 건물을 두루 바라보며 속궁리를 굴리고 또 굴렸다. 따르릉, 초인종이 다급하게 울렸다. 녀비서 경희가 부랴부랴 들어와 화사하게 웃으며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최전무님, 불렀습니까?” 군철은 사무상에 앉으면서 분부했다. “황선희박사를 부르오.” “네.” 경희가 나가려고 할 때였다. “잠간!” 경희는 되돌아서 상전의 우멍눈을 바라보았다. “커피를 드릴가요?” “음.” 군철은 습관처럼 대머리 위 몇대 안되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더니 건가래를 떼며 틀스레 뒷말을 이었다. “황박사와 담화 끝나면 복화와 가은도 단독으로 부르오.” 경희는 허리를 꼽싹했다. “네, 즉시 대기하라고 통지하겠습니다.” “보안대에 말하오. 요즘 다이로교수를 회사에 한발작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라고 하오.” “네. 알겠습니다.” 경희는 황박사를 호출한 후 커피를 풀어 군철의 사무상 옆의 차탁에 올려놓고 나갔다. 이윽고 황선희박사가 전무 사무실에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황박사님.” 군철은 사무상에서 일어나 마주 나가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춘희를 쌀쌀하게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마음 속으로부터 황선희박사를 존경하고 믿었다.  군철은 우선 황박사의 깊은 의학지식을 존경했다.  사실 황선희박사는 맥살을 잘 못 추는 남성들의 성기능치료에 아주 능란한 치료경험이 있었다. 그는 한국에 나갈 때마다 성기능치료제중약을 한보따리씩 가지고 가서 기 죽은 한국 남성들의 성기능을 회복시켜주고 뭉치돈을 벌군 하였다.그 성기능치료제는 오래전부터 정호한테 실험해 성공한 약이였다. 정호는 그 약을 먹고 성기능이 놀랍게 강해져 변강쇠로 됐던 것이다. 정호는 숱한 아가씨들을 매일이다싶이 재끼지 않으면 몸에 열이 나고 불안해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한번은 황선희가 성기능회복치료를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억만부자 회장령감이 황선희를 찾아왔다. "황박사님, 아이고, 나를 살려주세요." 회장령감은 고양이 불알 앓는 상을 하면서 지청구를 들이댔다. "숱한 미녀들을 두고 그게 잘 안돼서 죽겠수다. 돈이 많아도 무용지물이죠. 어떻게 내 기를 살려주십시오. 네? 돈은 근심하지 말아요." 황선희박사는 자기 앞의 포로를 씨무룩이 웃으며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5천만원만 내놓으십시오. 꼭 치료해 기를 살려드리죠." 회장령감은 금방까지도 돈자랑을 한바탕 늘여놓아가지고도 생각 밖으로 깜짝 놀라며 뒤저참했다. "아니, 뭐? 5천만원이나?" "네. 5천만원입니다. 아까운가요?" "아, 아니, 그런게 아니고." "아까우면 기 죽은대로 아가씨들을 바라보며 군침만 흘리며 사세요." "아, 아니, 5천만원이면 5천만원이지.흐흐흐.당장 줄게." 회장령감은 카드를 꺼내다가 주춤 손을 멈췄다. "먼저 절반 드릴게요. 내 기 살아나면 그때 나머지 절반 드릴게요." 돈 앞에 보이는 기업인의 랭정성과 침착성이였다.  수전노의 주산알이 딱딱 튕기는 소리 들리는 순간이다. "그렇게 합시다." 이윽고 회장령감이 은행에 가서 2천 500만이나 든 돈봉투를 들고 되돌아왔다. "자,받으세요.어서 기회복약이나 주세요." "그러지요." 그런데 황선희박사가 내민 중약을, 비닐봉지에 싼 한봉지 중약을 보고 회장령감은 어이없어 도리머리마저 홰홰 돌려댔다. "아니, 요까짓 거 5천만원이야?내 준 돈봉투보다도 더 작은데?" 회장령감은 중약 한봉지를 쳐들고 보면서 어처구니없어했다.  유들유들한 얼굴에 단통 반신반의하는 기색의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지나갔다. "황금보다도 더 귀한 성기능회복 비방약인데요.가져다 술에 불궈 하루에 한잔씩만 딱딱 마셔요.한달 후이면 그게 변강쇠 거처럼 꿋꿋하게 되지 않는가 보세요.그때 나머지 2천 5백만원이나 잊지 말고 가져오세요."  그 회장령감은 한달 후에 돈봉투를 찾아가지고 황박사를 찾아와 인사했다. "황박사, 날 살려냈네. 기적이네. 아가씨들이 죽겠다고 고함을 막 치잖겠어? 으흐흐, ㅎㅎㅎ. 이제야 살맛이 나네. 그래. 허허. 그게 되살아나서 아가씨 은밀한 마음의 대문을 열고 씨원히 들어갈 때 얼마나 기분났는지 몰라. 씨원히 소변 보고 나올 때면 얼마나 기분이 상쾌하고 거뜬해? 섹스하고 난 통쾌한 기분, 딱 소변본 그 씨원한 기분이야.그게 안돼 얼마나 애먹었다고? 그게 안되면 살아 뭘 해요? 돈 해 뭘 해요? 안그래? 황박사님." 회장령감은 너무 감사해 황선희박사한테 뽀나스로 천만원이나 더 주고 갔다.  그후 그 회장령감을 통해 숱한 회장님들이 찾아왔다. 그리하여 황선희박사는 앉은 자리에서 숱한 돈을 벌었던 것이다. 군철은 그 소문을 아버지한테서 진작 들은바 있었다.그는 황선희박사 의료기술보다도 인도주의정신에 더욱 존경하였다. (황선희박사는 어머니가 암에 걸렸을 때 극진히 치료해준 분이 아닌가? 물론 그때 암 말기여서 구하진 못했지만 감사하지. 그때까지만 해도 김춘희의사도 아버지를 구하고 어머니도 극진히 치료해주었지.그런데 어쩜 김춘희의사는 돈에 눈이 어두워 저따위로 변질했을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칠 때마다 군철은 가슴이 쓰려났다.그는 김춘희로부터 다시 황선희한테 생각을 돌렸다.   (황박사는 적어도 아버지 출국비자를 수태 만들어주었고 공항에서도 자기 안위를 돌보지도 않고 아버지 출국을 엄호한 분이 아닌가.) 군철은 아주 친절히 두 손으로 황선희박사의 손을 잡아 흔들며 깎듯이 인사했다.  황선희는 인사를 받으며 징상내막을 잘 모르는 군철의 믿음에 속으로 미안했다.   “안녕하십니까? 최전무님.”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었다. (미안해. 최전무, 난 그대 아버지를 가지려고 수단을 가리잖았어.) 황선희는 순정의 수란관을 수술해버려 종신 임신하지 못하게 만들어놨댔다. 그녀는 순정이 임신하지 못하면 정호의 마음이 자기한테 돌려지겠는가고 오산했던 것이다. 그러나 군철은 황선희가 그런 비렬한 수단을 쓴 것은 깜깜했다.  황선희는 정호와 순정한테 지은 죄,  그것이 량심적으로 미안해  황선희는 정호가 부패죄행이 드러나 위기에 처했을 때 자기 전도와 안위를 돌보지 않고 정호를 외국으로 빼돌리는 일을 도와나섰던 것이다. 사실 진상내막을 잘 모르는 군철은 황선희를 무조건 믿어주었다.  그는 황박사한테 자리를 권하고나서 사무상에 가서 앉아 황박사의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을 믿음에 찬 우멍눈으로 들여다보았다. “황박사님, 지금 백신생산진척은 어떻게 됐습니까?” 황선희는 반반한 대머리와 어쩌다 웃음기 넘치는 우멍눈을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실험실에서 이미 코로나 백신 시험제조에 성공했습니다. 이제 백신을 시험사용해보고 대량생산하면 됩니다.” 순간 군철은 의자에 잔등을 기대며 한마디 했다. “오- 황박사, 끝내 성공했구만요.” 군철은 흥분된 나머지 자리에서 우쭐 일어났다. 그는 황선희한테 다가와 두 손을 뜨겁게 잡아 흔들기까지 했다. “축하합니다. 황박사님, 그대는 우리 회사 3천여명 직원들을 구해냈습니다. 아니, 우리 나라 숱한 코로나환자를 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황선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저 개인의 공이 아닙니다. 다 다이로교수의 의학지도 덕분입니다. 마땅히 다이로교수한테 감사를 드려야죠."  군철은 좀 의아해 물었다. “네? 그래  그간 다이로교수가 의학적으로 지도했단 말입니까?” 황선희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요. 다이로교수는 일본에서 코로나 백신을 발명한 분입니다. 제가 백신을 생산하려고 하는데 정보를 제공해달라고 부탁했더니만요. 두말없이  백신제조정보를 저에게 제공했는데요. 다이로교수 연구해낸 밴신은 일본 전리권과 전매권을 획득한 백신인데요.” 군철은 명예와 공을 뒤로 하고 너무나 솔직하게 나온 황선희박사가 더욱 믿어웠다. “다이로교수를 오해했구만요. 미안합니다. 전번에 사무실에 찾아온 걸 박대한게 후회됩니다.” 황선희는 자리에 돌아가 앉는 군철의 너부죽한 뒷잔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이로교수를 절대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와 합작해야 우리 회사에서 백신제조, 나아가서 기타 성기능회복제랑 개발생산할 수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황박사님.” 군철은 천천히 돌아가 창문 가에 다가가더니 우멍눈을 팬들거리며 베아링처럼 속궁리를 굴렸다.  황선희는 초조하게 하회를 기다는 수 밖에 없었다.  (정호와 결혼했더라면 저런 아들을 보았겠는 걸. 모두 팔자 탓이야!) 황선희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저도 몰래 희쭉 웃어버렸다. 한참 후에야 군철이 천천히 창문에서 돌아섰다. “황박사님, 한가지 물어봅시다. 혹시 다이로교수가 김춘희와 마끼 모녀간의 행방을 물은 적이 있습니까?” 황선희는 올 것이 왔구나고 생각했다. 에둘러대려고 해도 쓸데 없다는 것이 피뜩 머리를 쳤다. “네, 묻습니다.” 군철은 두 팔에 깎지를 끼더니 따지고 들었다. “그래, 여기 있다는 걸 말했습니까?” 황선희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모른다고 했습니다." "왜?" "다이로교수한테 그걸 말해주는 날엔 마끼는 끝장입니다. 마끼는 적어도 우리 위생소 의사 아닙니까? 제가 어찌 저의 수하 의사를 험지에 내몰겠습니까?” 군철은 반신반의하는 눈빛이 어린 우멍눈으로 황선희를 내려다보았다.  황선희는 그 이상한 눈길을 외면하며 머리를 숙였다. 군철은 우멍눈을 가슴츠레 뜨고 황선희를 쏘아보며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누가 아는가? 혹시 김춘희 모녀를 질투해 이 기회에 다이로교수 손을 빌어 제거하려고 들었을지.기실 백신제조는 황선희 말처럼 마끼가 필요없이 황선희박사와 복화가 다이로교수 지도아래 얼마든지 해낼 수 있잖았는가? 그러나 황박사와 더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야. 더 따져 봐야 다이로교수한테 마끼 행방을 대줬다고 승인하겠는가?) 그는 춘희 모녀를 보호하려다가 괜히 황박사마저 잃고 말고 싶지 않았다. (황박사가 다이로한테 대줬다면 다이로교수가 나한테 춘희와 마끼 행방을 물을 필요있겠는가? 또 회사에 나타나지 않고 직방 중국 사법기관이거나 인터폴에 소송해버리면 다지. 황박사를 믿자.) 마음을 정하자 군철은 어둡던 얼굴이 순식간에 해말쑥해졌다. 군철도 이젠 한다하는 성숙된 정객으로 번지고 있었다. “황박사님, 잘했습니다. 우린 다 고향을 떠나 강남에 온 한 고향 조선족들이 아닙니까? 우리 회사에 몇십명 밖에 안되는 조선족들은 다 형제자매처럼 한데 똘똘 뭉쳐야죠.”  군철의 뒷조사는 황선희로서도 대답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끈질겼다. “황박사님, 한가지 더 물어봅시다. 춘희 모녀와 다이로교수는 도대체 무슨 관계입니까?” 황선희는 군철의 앞에서 아는대로 이실직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이로교수는 김춘희의 박사 지도교수이자 후남편입니다. 마끼는 다이로교수의 양딸입니다.” “네- 그렇군요.” 군철은 서랍에서 종이 몇장을 꺼내더니 우쭐 일어나 황선희 앞에 다가와 내밀었다. “이걸 보십시오. 다이로교수는 김춘희 모녀가 자기 숱한 돈과 금은장신구를 사기쳐 달아난 범죄자라고 했습니다. 사법기관에 소송하겠다고까지 했습니다.” 황선희는 마끼의 이른바 죄악에 대한 공소편지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녀는 군철을 쳐다보면서 이실직고했다. “저도 다이로교수한테서 들었습니다. 다이로교수는 얼마나 고대했는지 압니까? 춘희가 아들을 낳아주었으면 하고.그런데 춘희는 10여년 동안 함께 살면서도 갖은 수단을 다해 다이로교수의 소원을 이뤄주지 않았지요. 다이로교수를 변태라면서도 춘희가 떨어지지 못한 건 무엇 때문입니까? 다이로교수의 유산때문입니다...” “건 다이로교수 말이 아닙니까?”  군철이 한마디 끼여들었다. 황선희는 머리를 끄덕였다. “다이로교수 분석이 맞습니다. 칠순이 다 된 다이로한테서 춘희가 바라볼게 뭡니까? 몇억엔도 넘는 다이로교수 재산에 눈이 어두워진게죠. 다이로교수 꺼벅 죽으면 몽땅 후처와 양딸 게 아니겠는가요? 마끼는 어머니 대신 다이로교수 애를 낳아주겠다고 얼려 다이로교수 숱한 돈과 금은장신구를 사취해가지고 중국으로 도망쳤습니다.” 군철은 자초지종을 다 듣고나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한심한 세상이구만." 뒤이어 이런 생각이 피뜩 머리를 아프게 치는데야. (돈에 눈이 어두워지면 후남편이나 양아버지도 살해할 수도 있지. 참 위험한 일이구만. ㅋㅋ.” 황선희는 군철의 눈치를 흘끔 쳐다보면서 한마디 보탰다. “최전무님이 사람을 잘 알고 대하는데 도움이 되겠는가 해 이실직고했는데요. 널리 살펴주십시오.” 그녀는 아들과 같은 군철을 존경했다. 나이와는 달리 아주 랭정하고 전면적이여서 고향병원의 류원장 부자간과는 달리 퍽 믿어웠다.  (군철은 애비보다 퍽 낫지, 저 높은 지위에 숱한 미녀들한테 휩싸여 살면서도 다치지 않는 걸 봐.) 군철도 미더운 눈길로 거의 엄마 나이 되는 황선희박사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황박사님의 충고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황선희는 군철이 자기 말을 믿자 한술 더 떴다. “기실 마끼가 가지고 도망친 금은장신구는 최전무 아버지 겁니다.” “뭐라고? 어느 아버지 말입니까?” 군철은 벌떡 일어났다. 황선희는 군철의 우멍눈을 직시하며 적발했다. “친아버지 거죠.” 군철은 황선희 옆에 와서 쏘파에 나란히 앉으면서 물었다. “좀 상세히 말씀해줄 수 없습니까?” 황선희는 커피잔을 들어 호로록 마시고 나서 무거운 입을 뗐다. “그 금은장신구는 최전무 친아버지가 저와 함께 일본에 건나갈 때 가지고 간 겁니다. 그런데 재수없이 공항에서 차압다했지요. 최국장은 저를 보고 다이로교수를 통해 공항에 차압된 그 금은장신구를 찾아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제가 귀국할 때까지도 그 일이 잘 풀리지 않았지요. 그런데 마끼가 다이로교수의 애를 낳아주겠다고 홀리는 바람에 다이로교수는 자기 친척집 동생을 통해 공항 직원한테 돈을 찔러주고 찾아내왔지요. 다이로교수는 마끼가 애를 낳아주겠다는 말에 해당 계약서에 따라 예약금 몇천만원에 그 금은장신구를 먼저 마끼한테 주었지요. 마끼는 그 금은장신구를 가지고 중국에 도망쳤지요.” 군철은 들을수록 너무 어처구니없어 입을 헤벌리고 말았다. “오- 한심한 사기군이구만.” 그러나 군철은 머리 너무 뜨거워나기는커녕 더욱 랭정하게 분석했다. “황박사 말씀 듣고보니깐. 마끼가 사기친 것이지. 춘희박사는 사기친게 아니구만. 건데 다이로교수는 왜 시기군 모녀라고 할가?”  황박사의 추측은 아주 날카로워졌다. “아마 에미와 딸이 짜고들었는가 했겠지요.” 군철은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 "이후에 무슨 새 소식이 있으면 인차 알려주십시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황선희는 사무실을 나서면서 나이에 비해 뭐나 랭철하게 분석하는 군철을 속으로 못내 탄복했다. (당대표가 뭐나 다르긴 달라.) 번개가 번쩍였다. 꽈르릉,꽝꽝, 머리를 쳐다보니 하늘에서는 먹장구름이 무섭게 덮쳐오고 있었다. (세상의 풍운조화는 헤아리기 힘들어.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347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3) 김장혁 댓글:  조회:1125  추천:0  2023-04-20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3. 콧수염쟁이와 마끼 먹장구름이 초원에서 달리는 말무리처럼 한데 엉켰다가도 흩어지면서 쏜살같이 질주한다.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 소리 천지를 뒤흔들어놓았다.  소낙비가 하늘에서 냄비로 퍼 붓듯이 억수로 쏟아졌다. 우박이 돌총질해 나무잎들이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떨어져 구을며 아우성친다. 강남의 날씨는 변덕스럽기로 그지없었다. 먹장구름이 걷히고 해가 반짝 나기 시작했다.  까치가 나무가지에 앉아 까만 꽁지를 달싹이며 기분좋게 깍깍 울어댔다.  전날과는 달리 이튿날엔 아침부터 어둠침침한 안개가 호수면까지 지지누르며 숨막히게 뒤덮인다.  변덕스런 날씨처럼 세상의 풍운조화도 진짜 한치 눈 앞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마끼(가은)는 군철이 그렇게 나올줄은 실로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어쩜 우리 엄마한테 그럴 수 있어. 그만하면 그대를 잘 해줬건만, 어쩜 그럴 수 있어. 우리 엄마 다이로와 류원장한테 당해서 의지가지 없는데. 뭐야? 우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긴 고사하고.흥, 우물에 돌을 던져? 당대표라는게 뭔가? 회사에서 백신공장을 차리려면 어머니 같은 의학박사 수요되는데. 엄마를 쫓아내?) 마끼는 침대에 쓰러져 이불을 머리 위에 들쓰고 누워 있는 어머니가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마끼(가은)는 군철을 잘해주느라고 모진 애를 썼다.  군철 전무는 가은이 복화를 질투하고 싸우면서 물어먹기까지 한 내막을 알면서도 회사 위생소에 받아주었다. (복화가 꼭 최전무한테 날 고발했을 거야? 건데 날 받아줘?) 가은은 회사 위생소에 초빙되리라고는 크게 희망을 걸지 않았었다. 그런데 최전무가 받아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랐다.  그녀는 인재를 중시하는 최전무가 마음 속으로부터 고마웠다.  가은은 입회한 후 군철의 사무실에 찾아가서 일본 돈 50만엔을 드렸다.  그러자 군철은 단통 우멍눈이 데꾼해졌다. “이건 뭐요?” 가은은 쌍까풀 포도눈을 말끔거리며 환하게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드디여 빨간 립스틱을 살짝 바른 앵두입을 곱게 열었다. “저를 위생소에 받아주어 고맙습니다. 적은 성의지만요. 일본 놀러 가는데 보태세요. 이후에도 전무님을 잘해드릴게요. 뭐든 부탁하세요.” 군철은 엔뭉치를 되밀어주었다. “내 당대표라는 거 모르오? 난 절대 이런 돈을 일전한푼 받지 않소. 아무리 경제시대라고 해도 그렇지. 이런 돈 받지 않아도 난 로임으로 얼마든지 일본에 유람갈 수 있소.” 가은은 외까풀눈으로 군철을 할끔 쳐다보면서 속으로 웃었다. (별, 청렴한 척하면서. 당대표는 뭐 돈을 쓰지 않는가?) "이미 내민 돈을 어찌 되받아요?" 가은의 말에 군철은 엔뭉치를 쥐여 가은의 손에 되쥐어주었다. "용건이 더 없으면 그만..." 가은은 어이없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군철의 훌렁 벗어진 번대머리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멍한 눈보다 까까머리가 전무의 체모에 맞지 않는 감이 들었다.  그녀는 눈짐작으로 군철의 머리크기를 재여가지고 그 길로 가발상점으로 갔다.  그녀는 며칠 후에 가발상점에 가서 미리 예약한 가발을 찾아가지고 군철을 다시 찾아갔다. 군철은 가발을 받아 이리저리 보았다. “써보세요.” 가은은 촬영모드를 켠 핸드폰을 군철의 얼굴 앞에 가져다댔다. “퍽 젊어보여요. 요 콧수염만 깎아버리면 미남인데요. 호호호.” 그때 리화가 서류철을 들고 들어오다가 그 장면을 발견했다. (아니, 가은이?) 리화는 놀란 눈길로 군철과 가은을 번갈아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년놈들이 놀긴 논다. 언감 내 앞에서? 흥!) 리화는  경멸과 질투에 찬 눈길로 가은(마끼)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더러운 년, 여기까지 와서 뉘 남편을 사기치려고 꼬리를 쳐? 가차없이 잘라버려야 해!) 가은은 리화를 보자 덴겁해 뒤로 비실비실 물러나 사무실에서 나갔다. 리화는 가은의 뒤꽁무니를 쏘아보며 속으로 별렀다. (마귀 같은 년, 네년까지 남의 부부 사이에 끼여들어? 좋은 끝장 있는가 봐라.) 마끼, 회사에서는 가은을 뒤에서 마귀라고 별명을 지어 부르고 있었다.  리화는 어쩐지 깨고소해났다. 속으로 자기를 웃기도 했다. “내가 왜 마끼를 질투하지? 마끼는 상대도 아닌데. 난 군철의 아들 둘이나 낳아준 자본이 있지 않는가? 새파란 20대 말의 처녀가 40대 초반의 군철과 좋아한다? 생각만 해도 어림도 없지. 그러나 세상의 풍운조화는 짐작하기 어렵지...” 가뜩이나 회사에서 군철의 주위를 맴돌며 꼬리치는 미녀들이 많은데다가 가은이까지 끼여드는 것 같았다.  순간 리화는 속이 괴지게 불편해났다. 가은은 리화의 그런 질투하고 경계하는 눈치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춘희는 전날에 군철 전무한테 쫓기우다싶이 회사에서 나온 후 마끼의 세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푹 쓰러졌다.  그녀는 이튿날 아침까지 밥숟가락을 들지도 않고 누워 천정만 쳐다보았다. 가은은 그런 어머니를 보기 마음이 알알이 쓰려났다... 똑, 똑, 똑. 노크소리와 함께 경희와 리화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리화는 서류철을 펼치더니 종이 한장을 꺼내 사무상에 올려놓았다. “이걸 보세요.” “뭐요?” 군철은 가발을 뒤로 쓰다듬으며 문건을 들어 피뜩 보았다. “뭐? 국제 사기군? 야마구찌 마끼를 찾는다고?…” 군철은 의자 등받이에서 잔등을 떼며 우멍눈을 번쩍 뜨고 찬찬히 뜯어보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마끼는 사기군이라고?” 군철은 그 종이장을 사무상에 내려놓고 가발마저 훌 벗어 사무상에 내동댕이쳤다. 리화는 그 장면을 보고 깨고소했다. 리화의 가발을 쓰레기통에 처넣는 걸 보면 더 씨원할 거 같았다. 그녀는 속으로 잘코사니를 불렀다.  경희가 커피잔을 사무상 옆의 차탁에 올려놓고 두 손을 맞잡고 상전을 쳐다보았다. 군철은 경희를 보고 나가라고 하고나서 리화한테 나직이 물었다. “이 편지는 어데서 온 거요?” 리화는 군철의 옆에 다가오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전번에 우리 회사에 찾아온 일본 교수 생각나죠? 우리와 합작해 백신제조공장을 세우자고 찾아왔던 다이로교수 말입니다.” “오, 그래. 그 콧수염쟁이가 이런 편지를 보내왔어?” “예,” 군철은 다이로교수의 편지를 몇번이고 뜯어보았다. 그는 읽으면 읽을수록 마끼 모녀가 가증스러웠다. “어쩌면 이런 짓을 다 해? 마끼가 이런 사기군일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다이로교수 애를 낳아주겠다고 해놓고 애도 낳아주지 않고 예약금을 몇천만엔이나 떼먹고 도망쳤어. 숱한 황금도 떼먹고... 참 한심하구만.” 리화도 때를 만났다고 맞장구를 쳤다. “에미는 아버님 참사랑을 사기치고 딸은 양애비 돈을 사기치고. 참 심통한 마귀 같은 사기군 모녀군요.” 군철은 의자 등받이에 잔등을 대고 반쯤 의자를 돌려 창 밖을 향해 돌아앉았다. 그는 우멍눈을 딱 감고 대머리를 슬슬 어루만지면서 속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렸다. 리화는 챤스를 잡은 것 같아 옆에서 날카로운 입김을 불어넣었다. “전번에 춘희를 받지 않길 잘했어요. 사회에서 알면 뭐라겠어요? 우리 회사를 사기군 소굴이라고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군철은 아무 말도 없었다. 우멍눈을 꾹 감고 죽은듯이 앉아 있었다.  리화는 계속 서리낀 입김을 불어넣었다. “이번에 아예 사기군 마끼를 회사에서 잘라버립시다. 사기군 마끼 모녀를 다이로교수한테 바쳐버립시다. 사기군 모녀가 없어도 다이로교수와 합작하면 미국과 일본 선진 의약기술로 얼마든지 백신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때 군철이 우멍눈을 천천히 떴다. 우멍한 외까풀눈을 가슴츠레 뜨고 창 밖을 하염없이 내다보았다. “개인감정으로 처사하지 마오.” 천만뜻밖이였다. 군철의 그 한마디 말에 리화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낮은 돌을 밟지 마세요. 돌다리도 두드려보면서 건너라고 하지 않았는가요?” 군철은 생각을 정했는지 의자를 삥 돌려 사무상에 마주 앉으면서 한마디 내뱉었다. “알았소.” 리화는 퍽 근심돼 안절부절 못했다. “야마구찌 다이로교수가 찾아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군철은 정색해 리화를 마주 바라보았다. “이 일을 누구랑 아오?” “아직 경희를 내놓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군철은 무서운 빛이 번쩍이는 우멍눈으로 리화를 쏘아보았다. “이 일을 아직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오. 알았소?” 리화는 마지막으로 마끼를 한입 더 꽉 물어뜯었다. “네.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기군을 비호해서 뭘 해요? 마끼 엄마한테  수모를 덜 받아서 아직도 그럽니까?” 군철은 두손을 맞잡아 사무상에 올려놓고 엄숙하게 말했다. “이 일을 내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까딱 말하지 마오. 다이로교수 오면 회사에 들여놓지 마오.” “아니, 그럼 백신합작생산을 어떻게 해요?” “회사 밖 다방 같은데서 토론하면 되오. 사실 진상이 밝혀지기 전엔 뭐나 소홀히 결정하지 말아야 하오.아무리 그래도 우린 조선족류학생 마끼를 섬나라 오랑캐한테 바칠 순 없잖소?” 리화는 입을 꼭 닫아맸다. 그녀는 군철이 일단 생각을 정하면 벽이라도 박차고 나가는 성질이라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튿날 점심 때 거의 돼서 진짜 불청객이 리화와 함께 군철의 사무실에 찾아왔다. 마스크를 벗자 길게 기른 콧수염과 더부룩한 구렛나룻이 드러났다. “오하이요고자이마스(안녕하십니까)?” 군철은 대뜸 야마구찌 다이로교수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일어를 잘 모르기에 영어로 인사했다. “G00dmorning(안녕하십니까)?” 그는 못마땅한 눈길로 리화를 쏘아보았다.  리화는 몸둘바를 몰라하면서 해석했다. “보안이 그만 소홀해서 들어왔군요.” “참. 복화를 불러오오.” 군철은 한마디 흘리고는 인차 화기애애한 부드러움이 비낀 우멍눈으로 환하게 웃으면서 다이로교수를 마중했다. “교수님, 어서 앉으십시오. 백신합작사안으로 오셨습니까?” 군철은 우멍눈으로 다이로의 눈치를 흘끔 보았다. 이때 복화가 다급히 들어왔다. 그녀는 마스크를 벗으면서 다이로교수한테 깎듯이 인사했다. "교수님, 은사님, 오랜만인데요." 다이로교수는 복화를 보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나나, 여기 있었어?" "네. 최전무네 회사 위생소에서 일해요." 다이로교수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본 석사생이 회사 위생소에 있다니? 참." 나나는(복화)는 군철과 리화의 눈치를 흘끔 보며 말했다. "큰 병원은 아니지만요.3천여명 직원들의 코로나 등 질병 예방을 하기에 보람찬데요." "뭐나 만족하면 행복한 법이지." 다이로교수는 군철을 보고 복화를 치하했다. "나나는 세상 순박하고 착해요.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 노력으로 살려고 애씁니다. 참 참한 녀자애죠." 군철은 우멍눈에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다이로교수는 인사수작이 끝나자 군철을 보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전번에 귀 회사에 편지를 보낸 걸 보았습니까?" "네, 보았습니다만." 군철은 우멍눈으로 다이로교수를 응시했다. 다이로교수는 복화 앞인데도 날카롭게 털어놓고 말했다. "마끼는 국제사기군입니다. 마끼를 내놓으십시오! 그는 내 숱한 돈을 사기치고 중국으로 도망친 국제사기군입니다.” 그러라 군철은 잔등을 의자등받이에 붙이면서 시치미를 땄다. “마끼라니? 누굴 그럽니까? 우리 회사엔 그런 사람 없습니다.” 복화는 군철을 놀란 외까풀눈으로 쳐다보며 군철의 말을 그대로 통역했다. 다이로는 차탁을 탁 치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내 춘희를 미행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회사에 마끼 꼭 있을 겁니다. 춘희는 딸을 찾아 왔을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정말 금시초문인데요. 허망 건너 짚지 마십시오.” 다이로교수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회사에 춘희 오지도 않았단 말입니까?” “오긴 왔습니다. 우리 회사 위생소에 들어올가고 해서." "그래, 춘희를 초빙했습니까?" "건 우리 회사 인사비밀입니다만, 일단 초빙응하지 않았습니다." "참 잘했습니다. 회사를 망쳐먹을 년입닌다." 군철은 우멍눈으로 다이로를 쓸어보며 화제를 돌렸다. "마끼라는 사람 없습니다. 백신생산사항을 토론할가요?” 다이로교수는 대뜸 성을 벌컥 냈다. “안되겠구만. 춘희를 법에 걸어야겠습니다. 중국에도 정의와 법이야 있겠지.” 군철은 콧수염쟁이를 마주 보며 태연자약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다이로교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뭐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조선족들끼리 비호하는구만.백신이고 뭐고 모르겠습니다.어디 두고 봅시다. 량심없는 놈들." 다이로교수는 콧방귀를 흥 뀌면서 군철을 도끼눈으로 흘겨보면서 사무실에서 나갔다. "도대체 어쩌려는 겁니까?춘희박사를 초빙하지 않고 다이로교수마저 받아들이지 않으면 백신을 어떻게 생산합니까?" 리화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군철은 나나를 나가보라고 손짓하였다. 나나가 허리 굽혀 인사하고 나갔다. 군철은 리화를 보고 나직이 말했다. "우리가 마끼마저 바치는게 더 큰 손실이오.다이로교수는 백신생산 때문에 찾아온 거 같소? 마끼 허실을 탐문하려고 온 거요." 그 말에 리화는 알 도리가 좀 있는지 머리를 끄덕였다. 하늘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풍운조화를 온양하고 있다. 먹장구름이 꼬리치며 공포의 서정시를 구상하고 있다. 놀란 갈매기가 호수면을 스치며 부랴부랴 둥지를 찾아 날아가고 있었다.
346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2) 김장혁 댓글:  조회:1116  추천:0  2023-04-16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2. 초빙 거세찬 구풍이 하늘땅을 집어삼킬듯이 불어친다. 먹장구름이 몸부림치며 흩날려간다.   기와장이 마구 뒤흔들려 날려갈상 싶다.  회사 울 안의 계화나무가  무서운 비명을 지르며 허리 부러질 지경으로 맞절을 한다. 먹장구름 속에서 뻘건 독사가 시뻘건 혀를 몇가닥 뻗쳐 회사 건물을 핥아갔다.  번쩍, 섬광이 번쩍인다. 우르릉 꽝꽝! 꽈르릉 꽝꽝! 우뢰소리 하늘땅을 뒤흔든다. 드디여 회사 지붕에서 수천갈래 실폭포가 쏟아진다.  회사 전무 군철은 오랜만에 권연을 꺼내 물고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였다. 그는 권연을 길게 빨아들였다가 속 탄 연기를 후- 뿜어냈다. 파란 연기가 타래치며 천정으로 피여올라갔다. 요즘 그는 집안 일로, 회사 일로, 사생활로 해 고민의 망망한 바다에서 몸부림치면서  헤매고 있었다. 젤 골치 아픈 일은 양아버지 문걸의 정신병이였다.  양아버지가 짝사랑에 실련해 신경병이 도지는 바람에 고민의 절벽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전처럼 양아버지를 정신병원에 보내지 않고서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길바닥에서 헤매게 하는 건 너무 한 것 같았다.  (자칫 교통사고치거나 낯선 놈들한테 얻어맞아 상하면 어쩐단 말인가? 혹시 저라다가도 이전처럼 병원에 있다가 시간이 흘러가면 점차 호전되지 않을가? 그러나 이번엔 너무나도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히웠어. 그렇게 쉽게 호전될가?) 아버지 병이 심해질수록 군철은 춘희가 원망스러웠다. 마끼마저 사기군 같고 마귀처럼 슬그머니 미워지기 시작하는 감을 어쩔 수 없었다. (춘희는 춘희고, 마끼는 마끼지.) 군철은 군자 자태로, 회사 전무의 넓은 흉금으로, 당대표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들 모녀에 대한 염오감을 어쩌는 수 없었다. (어쩜 자기 때문에 신경병까지 걸린 아버지를 버리고 달아난단 말인가? 량심 있는가? 박사는 무슨 개 코 같은 박사. 인정머리도 없는 개똥박사라고나 해라. 어쩜 그렇게까지도 인간성이 없어. 네년도 그래 인간이냐?) 군철은 권연을 한모금 길게 빨아 담배연기를 후- 내뿜었다.  그는 창문 밖에서 쏟아져내리는 소낙비를 하염없이 내다보면서 이전에 리문걸 양아버지와의 이왕지사를 회억하였다. (내가 어릴 때 양아버지는 나를 친아들로 알고 그렇게 사랑했겠지. 여름이면 나를 자전거에 태워가지고 로천수영장에 가서 헤염치며 놀았댔지. 아, 그땐 얼마나 즐거웠어? 양아버진 날 자전거에 태워가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꼭꼭 양고기뀀집에 데리고 들어가 맛나는 양고기뀀을 먹였지. 아, 그때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보질보질 구워진 양고기를 함께 맛나게 먹던 그 시절이 그립구나.) 순간 군철은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는 사무상에 돌아가 앉아 권연을 재떨이에 비벼끄고나서 웃옷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두 볼을 적시는 뜨거운 눈물을 닦았다. 그는 회사 일이 바빠 한주일에 한번씩 밖에 병원 살창 속에 갇혀 사는 아버지를 찾아가 보지 못하였다. (친아버지야 어디 아버지 구실을 하나라도 했는가? 양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애지중지 길러 대학에 보냈구. 뒷바라지도 다 했지. 양아버진 나를 장가를 보내주고 상해에 그 비싼 아파트도 사주었지. 애나게 그림을 그려 자가용까지 사주었지. 아, 양아버지, 당신은 진짜 내 친아버지입니다. 아버지, 어쩜 그런 몹쓸 병에 걸렸습니까? 아버지, 꼭 치료하고 저와 함께 만년에 행복하게 삽시다.) 군철은 소리내 흐느끼며 울었다. “으흐흑, 흑흑, 흑흑흑...”    똑, 똑, 똑, 노크소리 조용히 들렸다. 군철은 황급히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단정히 사무상에 마주 앉았다. “들어오십시오.” 뜻밖에 불청객 가은이 밉다하니 찾아오지 않았겠는가. (마귀 같은 년, 보기도 싫어.) “최전무님, 안녕하세요?” 가은은 해사하게 해쭉 웃으며 인사부터 건넸다. 그러나 군철은 무뚝뚝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소?” 가은은 서성거리다가 맞은 쪽 쏘파 앞에 두 손을 잡고 선 채 무겁게 입을 뗐다. “최전무님, 믿고 찾아왔는데요. 저의 어머니를 회사 위생소에 받아주시겠나요?” “뭐라고?” 군철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반문했다.  (우리 널 제명해버려도 모자라겠는데 에미를 초빙하라고? 흥!) 그러나 군철은 인차 너무 했다는 것을 직감하고 침착성과 랭정성을 되찾으면서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는 버릇처럼 대머리 위의 몇카락 되지 않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면서 우멍눈을 가슴츠레 뜨고 가은을 뜯어보았다.  뒤이어 우멍눈을 딱 감고 어떻게 응부할가 한참이나 궁리했다. 무거운 침묵이 으리으리한 사무실에 공포스레 흘렀다. 가은은 저승사자 같은 군철의 딱 감아버린 우멍눈을 훔쳐보며 바늘방석에 앉은듯이 조마조마해 두 손을 맞잡고 서 있었다. 한참 후에야 군철이 우멍눈을 번쩍 뜨더니 틀스레 물었다. “이전에 높은 경제대우로 위생소에 초빙하려고 해도 저네 엄마는 응하지도 않았잖소?   건데 이번엔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이 불쑥 오겠다고 하니깐. 도대체 웬 일이요? 우리 회사 오자면 오고, 가자면 가는 정거장인가 하오?” 가은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간신히 입을 뗐다. “미안해요. 그땐 모녀간이 한 위생소에서 일하기 불편해서 제가 고향 병원에 가라고 권고했는데요.” 군철은 가은을 경멸에 찬 우멍눈으로 쏘아보며 빈정거렸다. “그런데 지금은 왜 오려 한다오?” 가은은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 몰라 서성거렸다. (엄마 고향 병원에서 제명된 말을 할 순 없어. 그럼 괜히 엄마 몸값만 내려갈게 아닌가?) 그녀는 에둘러대는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코로나가 심한데요. 어머니는 우리 위생소에 와서 최군철 전무의 영명한 지도아래 백신을 생산하는 제약공장을 차리자고 그래요. 중국의 숱한 코로나환자들을 생각해서라도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래 체면이 깎이줄 알면서도 우리 자그마한 위생소에 돌아오겠다고 하더군요.” “코로나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오겠다? 참 고상하구만. 인도주의정신이 다분하구만.” 가은은 제 좋은 생각을 했다. “그럼 저의 어머니를 위생소에 받아주는 거죠? 전무님,” 군철은 하품을 길게 했다. “그게 뭐요?” “네?” 가은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박사님이 무슨 일을 이렇게 처사하오? 저네 엄마는 뭐 하고  저를 보냈소? 저는 뭐 우리 회사 인사과장이오?  무슨 자격이 있어?” 뒤이어 전무어른은 나가라고 문 바깥 쪽으로 손짓했다. “네, 미안합니다. 제가 곧 어머니를 보내겠습니다.” 가은의 말에 군철은 시끄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일이 바쁘니깐. 먼저 어머니를 인사과장한테 데리고 가오. 뭐나 순서가 있는게지. 일본까지 류학갔다가 온 석사생이 그게 뭐요? 일본에서 그따위로 양성받았어? 섬나라 석새생은 자질이 고작인가?” 가은은 몸둘바를 모르고 뒤로 슬슬 물러서며 말했다. “예. 알았습니다. 리화언니한테 데리고 가지요.” 군철은 비실비실 뒤로 물러가는 가은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서랍을 열고 뭔고 뒤적였다. 한참 후, 전화벨이 자지러지게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군철은 송수화기를 들었다. 인사과장 리화한테서 온 전화였다. “김춘희 박사를 데리고 가랍니까? 네. 등록을 다 했습니다.” “데리고 오오.” 군철은 한마디 하고는 송수화기를 덜컥 놓고 자리에 앉아 우멍눈을 딱 감아버렸다. 그의 눈 앞에는 춘희 모녀의 지나간 일들이 피뜩피뜩 떠올라 괴롭혔다. (어쩜 자기를 그렇게 진정으로 사랑한 내 양아버지를 버리고 훌 떠나간단 말인가? 당신도 사람인가? 춘희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진짜 군철에게는 고통스러운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회사를 생각하면 춘희 같은 의학박사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양아버지를 배신한 걸 생각하면 괘씸하기로 그지없었다. 똑, 똑, 똑. 노크소리가 울렸다. 군철에게는 더 궁리할 시간적 여지가 더 없었다. “들어오십시오.” 문이 조용히 열리며 인사과장 리화와 비서 경희가 춘희를 데리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군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나갔다. “안녕하십니까? 김박사, 참 오랜만인데요.” 춘희는 선뜻이 인사부터 하면서 마주 걸어나갔다. “안녕하세요? 최전무님,” 군철은 춘희 내민 손을 잡아주지도 않고 회피하면서 맞은 켠 쏘파에 자리를 권했다. “앉으십시오.” 경희가 커피 두 컵을 들고 들어와 군철과 춘희 차탁 앞에 놓고 나갔다. 그 사이 리화는 춘희 서류를 사무상에 가져다 놓았다. 군철은 춘희 서류를 펼쳐보지도 않고 우멍눈으로 춘희를 쏘아보았다. “고향으로 훌 떠나가더니 어떻게 돼 되찾아왔습니까?” 춘희는 리화 눈치를 흘끔 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합니다. 최전무님, 사실 모녀간이 한 위생소에서 일하기 불편해 고향 병원에 돌아갔댔습니다.”         군철은 조소를 입귀로흘리면서 따지고 들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 우리 자그마한 위생소에 들어오려고 합니까? 지금은 모녀간이 콧구멍만한 위생소에서 머리를 맞대고 일해도 괜찮겠습니까?” 춘희는 병원에서 제명당했다는 말은 못하고 얼버무려고 들었다. “그땐 반도체회사에서 백신제약공장을 차려낼 수 있겠는가는 고려도 있었습니다. 그래 두루해서 돌아가게 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백신제약공장을 차릴 신심이 있습니다. 저와 황선희 언니가 최첨단의약제조기술을 제공하고 최전무가 제약공장 건설에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주면 성공할 거 같습니다. 황차 지금은 코로나환자가 급증하기에 세계 선진적인 백신수요량이 급증하고 있잖습니까? 판로도 있잖습니까? 인도주의 정신으로 제약공장 차리면 됩니다.” 군철은 사무상에 돌아가 앉아 엄숙히 춘희를 내려다보았다. (양아버지를 버리고 달아난 조 뺑덕이에미를 어쩌겠니? 량심을 버린 걸 생각하면 초빙하긴 고사하고 당장 사무실에서 쫓아내고 싶어.) 갑자기 군철의 눈에서 무서운 번개가 번쩍였다. 뒤이어  우뢰가 울리는듯한 고함소리 터졌다. “당신도 인간인가?! 앓는 사람을 훌 버리고 도망치다니. 그러고도 내 앞에서 언감 인도주의 정신을 담론합니까? 당신도 의학박사입니끼? 개똥박사라고나 해라. 자기를 그렇게 사랑한 사람을 헌신짝 차버리듯한단 말인가? 앓는 사람을 치료해줄망정 그게 뭔가? 최저한도의 의료일군의 직업도덕마저 꼬말치도 없는 인피를 쓴 쓰레기야!” 춘희는 모든 것이 틀려간다고 여기고 자리에서 우쭐 일어났다. “초빙문제를 담론하지 않고 욕설이나 퍼붓자고 저를 오라, 가라 했습니까?” 리화는 깜짝 놀랐다. 군철은 사무상을 꽝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빙은 둘째입니다. 사람의 량심부터 짚고 넘어가야지.”  리화는 둘 다 이렇게 나올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춘희는 문께로 나가면서 말했다. “위생소에 받지 않겠으면 마십시오. 내 이 위생소 아니면 살지 못할 거 같습니까?” 군철은 무서운 빛이 번쩍이는 우멍눈으로 무뚝뚝하게 춘희를 쏘아볼 뿐이다. 춘희는 문꼬리를 잡았다가 천천히 되돌아섰다. “당대표까지 한 전무라고 믿고 찾아왔더니만요. 옹졸하게 사적인 앙갚을 할줄은 진짜 몰랐군요.” 말을 마치자 춘희는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잠간만요.” 리화가 쫓아나가면서 춘희를 말렸다. “가겠으면 가라지. 놔둬! 인간의 량심을 버린 자는 쓰지 못해! 인간성도 없는 놈들이 무슨 약을 만들면 뭐 쓰게 만든다고? 흥!” 군철은 벌떡 일어나 사무실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거닐었다. 리화는 두 손을 벌려보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여보세요. 지금 백신제약공장을 세우려면 황선희 혼자 믿고 됩니까? 좀 참으면 어때요?” “그만해! 저런 인간성도 없는 개똥박사 없으면 우리 회사에서 백신을 생산하지 못할 거 같아? 흥! ”         군철은 계속 저주했다. "최저한도의 인간성마저 없는 개똥박사야. 그런 개똥박사 우리 회사를 위해 온전히 일할 거 같아?! 사기군 같은게. 믿기 어려운 떠돌이야. 어디 잘 되는가 두고 보자." 창문 밖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사무실 안에까지 번개 쑥 들어왔다가 나갔다. 퍽 공포스러운 분위기다. 꽈르릉, 꽝꽝!  우뢰소리가 하늘땅을 뒤흔들어 놓았다.  폭우가 앞을 가리지 못하게 억수로 쏟아졌다.
345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1) 김장혁 댓글:  조회:1151  추천:0  2023-04-13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1. 인과보응  낚시군들은 흔히 낚시로 물고기를 낚을 때 그 손맛이 좋아서 자꾸 낚시하러 간다고 한다. 잉어가 낚시에 걸려 새하얀 배때를 파닥이며 물위로 올라오는 순간, 낚시군은 약담배쟁이가 약담배를 빨아들이며 흥분할 때보다 더 흥분된다는가. 그래서 미끼를 넣어 물에 낚시를 드리우고 몇시간이고 멀건 물을 들여다보면서 기다리는게지.  그 기다림 속에 낚시를 하는 인생철학이 무르익어간다는가. 물고기를 먹긴 좋아하지만 인내성이 없는 사람들은 낚시를 못하지. 그래서 그물이나 전기고기잡이기구를 메고 강물에 가서 물고기를 잡지. 전기물고기잡이기구 량극막대기를 벌려 돌틈에 밀어넣고 전기를 탁 넣는다.  갑자기 방출된 전기로 물고기를 탁 쳐 정신을 잃게 하지. 그 다음 그물건지개로 스리슬쩍 물고기를 떠내면 손쉽게 잡을 수 있는게지.      류원장은 더 묘하게 “물고기”를 낚는 유명한 낚시군이다. 그는 물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전문 이쁜 수하녀성들을 낚아채는 유명한 낚시군이였다. ㅋ       그는 흔히 자기 권력을 리용해 수하직원의 승급문턱을 높이거나 꼬물만한 착오를 졌을 때 처분을 주거나 제명하는 등 비렬한 위협수단으로 잡기 매끄러운 “물고기”를 낚아서 손에 스리슬쩍 넣군 하지.       류원장도 례외가 아니였다. 그는 자기 사무실에서 물고기가 전기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보고 음흉하게 빙그레 웃었다. 사냥군이  깡충깡충 뛰놀던 노루가 자기가 쏜 화살을 맞아 쓰러지는 것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순간이랄가. 춘희는 쏘파에 물앉아 외까풀눈을 딱 감고 당장 까무러칠 지경에 빠졌다. “춘희, 난 일이 바빠. 나가보라구.” 그 소리에 춘희는 겨우 눈을 떴다. “어디 아파?” 반질반질한 박대가리가 시야에 흐리마리하게 들어왔다. 뒤이어 더러운 손이 슬쩍 와서 팔을 어루쓸며 잡아 일으킨다.  “이걸 놓으시오. 내 절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춘희는 가까스로 정신을 추술리고 일어나 앉았다.  그녀는 류원장의 안경알 밑에서 판들거리는 퉁사발눈을, 게슴츠레한 퉁사발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저를 제명합니까? 이건 국가 사업일군사용제도에 맞지 않습니다. 권력람용입니다.” 류원장은 어처구니없어했다. “뭐? 권력람용? 말도 안돼. 내 개인의 결정이 아니야. 병원당위 결정이야. 무조직, 무기률인 춘희를 제명하지 않고선 내 어찌 몇천명 직원들을 다스린단 말인가.” 춘희는 사정했다. 그러나 애걸복걸하진 않았다. “이제부터 병원 일을 열심히 하면 안되겠습니까?” 류원장은 이때라고 미끼를 슬쩍 던졌다. “그리 쉽게 넘어갈 순 없지. 그러나 당위 모든 결정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깐. 여지는 좀 있지 않겠는지.” 류원장은 습관처럼 박대가리를 긁적거리면서 흘끔 춘희를 곁눈질해보았다.  그 음흉한 눈길이 메스꺼웠다. “도대체 무슨 일로 저를 제명합니까? 그저 제때에 출근하지 않은 거, 그 한가지 때문입니까?” 춘희는 원인을 알고 싶었다. “그 한가지 때문이 아니지.” 류원장은 자리에 돌아가 높은 의자에 척 들어앉더니 위엄있게 박대가리를 쳐들었다. 그는 아주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춘희를 노려보았다. “춘희 때문에 우리 병원은 일본 모 대학 부속병원과의 의료기술합작에 파탄됐단 말이야. 아주 엄중한 책임이야. 또 금후 숱한 의료일군들의 일본 류학의 길마저 막힐 가능성도 있어.” “네?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춘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그럼 다이로의 마수가 여기까지 뻗쳤단 말인가? 비렬한 놈, ) 춘희는 대개 원인을 알 것 같았다.  (분명 다이로교수가 앙갚음으로 단위에 그간 있은 모든 걸 제보하고 병원에 압력을 가한 것이 뻔하지 않는가.) 춘희는 모든 걸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녀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춘희는 그간 모녀간이 일본에서 무슨 짓을 한 걸 잊지야 않았겠지? 그게 무슨 짓인가?” 박대가리는 사냥물-춘희를 얼리고  닥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지는 있지. 모든 건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가? 춘희 박사의 태도에 달렸소.” 그때 류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춘희한테로 다가왔다. “모든 건 대가가 있는 법이야. 이만한 도리 쯤이야 춘희박사도 알겠지?” 미끼를 물었는가고 스리슬쩍 건드려보는 판.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박대가리는 춘희한테 스리슬쩍 다가오며 지껄여댔다.          "춘희, 저 안방에 황금침대 있는데 어떤가 구경해 보겠소?"           "네?"     류원장은 오리무중에 빠진 채 어정쩡해 서 있는 춘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니, 이걸 놓으시오. 아니, 진짜, 물러나지 못하겠습니까? 소리치겠습니다.” 류원장은  춘희를 더 꽉 끌어안았다. “왜 이래?” 찰싹! 춘희는 박대가리 유들유들한 볼때기를 한대 갈겨주었다. 류원장은 춘희를 훌 놓아주었다. “가라! 넌 이젠 우리 병원 의사 아니야.” 류원장은 손가락으로 문 쪽을 가리켰다. “나가! 사기군 같은 년!” “가라면 못 갈 거 같은가? 이 병원이 아니면 박사가 살 길이 없을 거 같은가? 흥! ” 춘희는 콧방귀까지 뀌면서 문께로 척척 걸아나갔다.  등뒤에서 이런 말꼬리가 뒤따랐다.  “감옥에 갈 준비나 해. 일본 다이로교수가 널 가만 놔둘 거 같은가? 꼴 보기 좋게 됐구나. 흥! 이게 인과보응이라는 거야.” 그 뜻밖의 소리에 춘희는 몸을 홱 돌렸다. “뭐라구? 그래 다이로교수가 어디에 있습니까?” 류원장은 일어나 창문쪽으로 외면해버렸다. “어서 나가라! 보기도 싫어.” “내 입이 터지면 당신도 원장자리를 지키기 힘들걸 아십시오.” 춘희는 한마디 하고 문을 꽝 닫고 원장실에서 나왔다. 류원장은 띠끔하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네따위 사기군이 날 어쩐다고. 흥! 해볼대로 해봐!” 류원장은 의과대학 약학과 본과생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로원장인 애비 덕분에 숱한 의학박사들을 물리치고  원장으로까지 제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이 놈의 병원은 사제간이란 특수한 인간관계가 얼기설기 무섭게 얽혀있었다. 몇십년 동안 원장을 해먹은 류원장의 아버지는 이 병원의 왕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무서울 지경으로 기반이 든든하고 아래위로 인맥이 아주 넓었다. 그리하여 류원장은 의과대학을 졸업하자 애비 덕분에 이 병원 약국에 들어앉아 숱한 제약공장에서 뭉치돈을 받아먹었다. 그는 애비 덕분에 몇년 안돼 일약 약국 주임으로 제발됐고 또 몇해 뒤엔 부원장으로 직진했으며 애비가 퇴직하고 고문으로 물러앉자 헬기를 타고 원장자리에까지  직승진했던 것이다.  류원장은 의료지식은 보잘 것 없었지만 우점 한가지는 있었다. 사람관계만은 확실히 잘 처리했다. 사람관계를 잘 처리하는 으뜸가는 재간을 말할라치면,  돈을 아끼지 않고 아래위 사람들에게 푹푹 찔러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어떻게 말할가. 정치외교에 능하다고나 할가. 그는 게바라올라가기 위해선 돈을 아끼지 않았고 정치외교에 항상 남보다 선수를 치군 했다. 정치눈치도 꽤나 빨랐다. 기회를 잘 포착하고 재낄손이 남달랐다. 자기보다 우수한 라이벌을 갖은 비렬한 수단을 다해 무함하고 물어먹고 뒷다리를 잡아당기고 발로 숫구멍을 차 내리뜨렸다. 애비가 뒷받침해주는데다가 그의 능란한 정치외교술 덕분에 본과생에 불과한 그는 황선희나 춘희 같은 숱한 박사들도 쥐락펴락할 수 있었다. 권력의 맛을 들인 류원장은 병원 안에서 직권을 리용해 직위를 승진시켜주거나 처분으로 위협하거나 미끼를 던져주고 나꿔채는 등 비렬한 수단으로 암암리에 반반하게 생긴 녀성들을 유린하였다. “퉤, 더러운 놈, 제명에 죽는가 어디 두고 보자. 네놈이 없으면 내 살지 못할 거 같아?”      춘희는 집에 돌아가 주저없이 짐을 챙겨가지고 그 길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어쩐지 뒤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눈길이 자기를 뒤쫓는 감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택시 뒤를 돌아보아도 꽁무니를 바싹 따르는 차는 보이지 않았다. 공항에 나가 숱한 사람들 속을 꿰질러 안전검사구에 이르러서도 누군가의 눈길이 미행하는 것 같았다.  숱한 사람들 속에 웬 마스크도 끼지 않은 콧수염쟁이로인이 피뜩 스쳐지나갔다. “뭐야? 다이로교수?” 그러나 허연 콧수염쟁이를 먼 발치에서 뜯어봐도 다이로교수 같지 않아보였다. 황차 그 로인은 회색외투를 입고 있지 않는가. 사실 다이로교수는 회색옷을 입기 싫어했다. 나이에 비해 늙어보인다고 회색옷이라면 질색했던 것이다. 다이로교수는 나이와는 어울리지도 않게 젊어보이는 파란 외투나 하얀 외투를 입기 좋아했다. 춘희는 비행기에 탑승하면서도 어쩐지 누군가의 눈길이 자기 잔등을 누비는 것 같아 불안하였다. 드디여 고통의 심연과 절망에 빠진 그녀를 실은 비행기는 상해 포동으로 날아갔다. 비행기에서 그녀는 다이로교수를 한없이 증오했다. (네놈이 날 어떻게 압박하고 성착취했는데. 고까짓 돈을 마끼한테 준게 그렇게도 아깝는가? 제명에 죽지 못할 늙다리!) 춘희는 콧수염쟁이 다이로를 떠올리자 증오감에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놈 늙다리 혹시 중국에 들어와 우리 병원에 찾아왔댔는가? 아니야.) 춘희는 고민에 빠져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깍쟁이령감이라고 해도 고까짓 돈 때문에 여기까지 쫓아오기야 했겠는가? 그럼 류원장한테 고발신을 써보냈는가? 가능성이 높아.” 그녀는 중얼거리면서 구름이 파도치는 비행기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발 아래 뒤로 날려가는 고향 산천을 바라보자 콧마루가 시큼해났다. (아, 태줄을 묻은 정든 고향이 아닌가?) 20여년 일해온 정든 고향에서 쫓기워가는 신세 기막혔다. 류원장이 한없이 협오스러웠다. (박대가리나 콧수염쟁이나 다 개놈들이야. 인간도 아니야. 색마들이야. 사기를 치고 녀성들을 유혹해 나꿔채는 놈들이야. 악마들이야. 어쩜 우리 세상이 이다지도 더러워졌단 말인가?) 그녀는 자기가 더러운 세상에 물젖어 황금몽을 꾸는 개똥박사로 된 것은 꼬물만치도 깨닫지 못하였다. 그저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기만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남의 얼굴의 티만한 흠집은 보아내도 자기 얼굴에 묻은 커다란 검댕이는 보지 못한다고 한 것 같았다. (가은이 남 부럽잖게 살게 하기 위해선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수 있다.) 그녀는 이를 옥물었다. 그런데 피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콧수염쟁이, 그 늙다리 진짜 나를 뒤쫓아온다면 어쩌지? 가은을 중국 사법기관에 사기죄로 기소했다면 어쩌지? 인터폴에 소송해 가은을 잡아가려고 한다면 어쩌겠는가?) 여기끼지 생각이 미치자 춘희는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아 앞길이 막막했다. (아이고, 만약에 하나, 진짜 다이로가 그랬다면 어쩌지? 아이고, 하느님, 이 일을 어쩌는가?) 춘희는 두 손을 마주 쥐고 두 눈을 꼭 감고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하느님이여, 비나이다, 비나이다. 제발 우리 모녀간을 해치지 못하게 보우해 주옵소소.) 비행기는 어둠침침한 구름층으로 날아들어갔다. 세상만물을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비행기 차창 밖의 하늘은 흐리멍텅해져갔다.    
344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0) 김장혁 댓글:  조회:1275  추천:0  2023-04-12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0.황금몽 황금이 흑사심이라고 예로부터 그 놈의 개도 안 먹는 돈 때문에 친구지간에 이나고 부모형제가 반목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하지 않았던가. 황금몽은 춘희로 하여금 다이로교수와 허위로 포장된 부부관계를 맺게 하지 않았던가. 물론 처음 시작에는 다이로교수와는 아주 애틋한 사제간이였다. 춘희는 어려운 때에  따뜻한 손을 다이로교수의 은정에 감지덕지했었다. 그러나 변태 같은 다이로교수의 성억압과 성착취가 심해감에 따라 다이로교수에 대한 그녀의 염오감만 벅차오르게 하였다. 나중에 그녀는 다이로교수의 유산에 눈이 어두워 그 변태적인 "강간"에 혼합된 성억압에 굴종하는 "성노예"로 전락돼갔다. 그 더러운 황금몽으로 하여 춘희는 문걸과 맺은 순박한 사랑도 애매한 관계로 돼버렸다. 아니, 그 참사랑에 황금먹칠을 해버리고 말았다. 문걸도 나중에는 춘희의 그런 더러운 심보를 점차 간파하기 시작했지만 가슴에 얼기설기 내린 사랑의 뿌리를 뽑기에는 너무나도 무기력했다.  춘희는 원래는 문걸의 구명은인이였지만 황금몽으로 하여 문걸에게는 사랑의 빚을 진 "죄인"으로 돼버렸다.   문걸은 실련의 크나큰 충격으로 하여 또다시 신경병이 발작했다. 그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호수가에 달려가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쫙 벌리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 세상에 그래 참사랑이 없단 말인가! 하느님이여, 태호님이여, 말씀이나 해다오. 춘희는 무슨 미친 고기를 먹어 돈 밖에 모르는가!" 문걸은 도리머리를 홰홰 젓다가도 가슴을 탕탕 쳤다. 미친듯이 고함지르며 호수가를 돌아다녔다.  유람객들과 행인들은 모두 정신병자라고 슬슬 피해 달아났다. 문걸은 낯선 녀성한테 달려가 마구 포옹하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춘희, 그대는 내 참사랑이오. 오, 그대 없이 난 못 살아. 그대는 내 구명은인이야. 내 몸에는 그대의 피가 흐르고 있단 말이오.내 가슴에는 그대의 뜨거운 사랑이 흐르고 있단 말이오." "미친 놈!" 한족녀성은 가래짝 같은 손을 들어 문걸의 뺨을 찰싹 갈겼다.  남편인지 뛰여와 문걸을 주먹으로 치고 발길로 걷어찼다.  한족사내들은 우르르 모여들어 문걸을 치고 박으며 물매를 안겼다. 지독한 한 사내는 발길로 문걸의 사타구니를 마구 걷어찼다. 가은(마끼)과 복화(나나)가 호수가를 산보하다가 문걸이 물매를 맞는 것을 발견했다. "손을 떼라!" 가은과 복화가 뛰여와 무리승냥이 같은 년놈들을 뜯어말렸다.그제야 승풀이를 다 한 년놈들은 침을 퉤, 퉤 뱉으며 스리슬쩍 꼬리를 감춰버렸다. 문걸은 얻어맞아 얼굴이 피투성이 돼가지고도 의연희 델델 구을며 고함쳤다. "춘희, 보았지? 나를 죽게 놔두오. 그대와 살지 못할 바에야 살아 뭘 해?" 춘희도 산보하러 나왔다가 그 처참한 정경을 보았다. "리선생님,이게 웬 일입니까? 어서 집에 돌아갑시다." 문걸은 머리를 들어 춘희를 보고서도 알아보지 못하고 손으로 코피를 쓱 씃으며 중얼거렸다. "넌 누구냐? 뭐? 집? 내게 집이 다 있소?" 춘희와 가은이는 문걸을 부축해 일으켜 호수가에 데리고 가서 코피 줄줄 흐르는 얼굴을 호수 물에 씼고 닦아주었다. 저쪽에서 군철과 리화가 휴일이여서 어쩌다가 애들을 데리고 산보를 나왔다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아버지! 이게 웬 일입니까? 아이구, 아버지!" "아버님, 집으로 돌아갑시다." 문걸은 군철을 흘끔 쳐다보며 허탈하게 허구푼 너털웃음을 웃었다. "허허허. 내게 집이 어데 있어? 사랑도 없는데 무슨 집이 다 있어?" 그는 군철의 목덜미를 틀어쥐고 마구 뒤흔들며 고함쳤다. "네놈들이 우리 조선족들을 업신여기지? 엉?내 홀애비라구 업신여기지? 날 사랑하는 사람 없다고 때렸지?" 문걸은 군철의 머리를 골받이로 떵 들이받았다. 군철은 뒤로 벌렁 엉덩방아를 찧었다. 군철은 제꺽 되일어나 아버지 팔을 붙잡아 부축했다. "아버지, 집에 돌아갑시다." "할아버지!아빠 때리지 말라." "할아버지!울지 말라." 애들도 울면서 문걸의 품에 안기려고 고사리 손을 쳐들며 소리쳤다. 그러나 문걸은 귀여운 손자들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춘희는 그 처참한 정경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문걸을 군철과 리화한테 맡겨놓고 그 자리를 한시바삐 떠나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문걸 때문에 결코 황금몽을 벌릴 수 없었다. 다이로교수에게 당한 성억압과 성착취 대가를 받아내고 싶었다.진짜 이젠 돈에 집착이 갔다. 가은한테 상해에서 아파트를 사 주자면 다이로교수를 더 줴짜내야 했다.  끈질기기도 한 녀자,  박사는 무슨 놈의 박사, 개똥박사야.  황금몽을 꾸는 이 순간만은 춘희는 박사, 의사인 것이 아니라 돈에 미친 수전노 같았다. 춘희는 집착스런 사랑에 미쳐버린 문걸을 상해에 두고 고향으로 훌 날아와 버렸다. 얼마나 홀가분한지 몰랐다. (난 문걸한테 빚진게 없다. 누가 문걸을 보고 나를 사랑하라고 했는가. 모두다 짝사랑이란 걸, 진작 알았어야지. 뭔가? 열댓살이나 어린 나를 넘봐? 일본 류학 박사를 넘 봐?기름개구리 학의 고기를 먹으려는거지. 어림도 없어.) 그녀는 입을 악물었다. 얄팍한 외까풀눈을 무섭게 이상한 빛을 뿜고 있었다. (나도 몰라. 내가 왜 이렇게 돈에 미친 년으로 됐지? 나는 인정도 없는 인간으로 돼버렸는가? 아니야, 난 가은의 어머니야. 가은을 위해선 살인 내놓고는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내 팔자는 개팔자지만 가은이만은 나처럼 사랑도 없고 돈도 없는 빈털털이로 살게 할 순 없어.안돼. 내가 혀를 가로 물지언정 가은이만은 없는게 없이 살게 해야지.) 그러나 모든 일이 탐욕스런 춘희 생각대로 그리 쉽게 되겠는가? 그녀가 고향 병원에 돌아오자 병원 류원장이 개별담화를 하자고 원장실에 불러갔다. 류원장은 몇천명 의료일군을 쥐락펴락하는 관료인지라 사무실도 백여평방메터에 크고 작은 3개 방을 혼자 차지하고 있었다. 중간에는 자그마한 회의실이 있고 안방은 원장어른이 은밀히 담화를 하는 원장 사무실이다. 날마다 무슨 은밀히 비밀담화를 하는지 대낮에도 항상 사무실 창문의 카텐을 꽁꽁 쳐놓고 어둑시그레한 사무실에서 일을 보았다.사무실 젤 안방에는 금빛이 번쩍이는 구리침대가 놓여 있었다. 말로는 원장어른이 피곤하게 일 보고 낮잠을 자는 침대라는가. (두터운 카텐을 친 어둑시그레한  거기서 무슨 짓을 하는지 누가 알아?)  춘희는 말수 적은 류원장이 다이로교수보다 퍽 두려웠다. (무슨 일로 날 찾을가? 혹시 황선희를 제명하고 그 자리에 날 앉히려는 건가? 황선희는 부패분자 정호를 도와 출국수속을 해주고 도망치게 하더니 꼴 좋게 됐다. 병원에서 제명 받지 않았어?흥, 일본 류학 박사가 뭔가? 군철이네 회사 자그마한 위생소에 가서 원장이면 뭘 해? 지금은 코로나 예방하는 백신이 시급히 수요되긴 하지만,  군철이네 회사는 반도체회사인데 백신을 생산할 수 있겠는가? 백신을 제조하긴 의학기술력량이 판 부족이고.뭐? 미국 상업경제간첩 애리싸가 제공한 의료정보에 의해 자체로 백신을 생산해?될가?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황선희 호박 쓰고 돼지 굴에 들어갔지.의학박사가 개똥박사 된 꼴이지.흥.) 춘희는 자기가 군철의 초빙에 응하지 않은 것을 잘했다고 스스로 자부했다. 그녀는 류원장이 불시에 부르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원장실 문을 조용히 두드렸다. "들어오게나." 안에서 류원장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춘희가 문을 스르르 열고 들어가니 회의실 건너 원장사무실 어간 문이 열려 있고 메주덩이 같은, 박바가지머리가 창문에 비낀 해빛에 드러났다. 류원장은 춘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직이, 그러나 위엄있게 자리를 권했다. "앉게나." 류원장은 조선말도 꽤나 잘했다. 그는 뭔가 들고 보다가 놓으며 한참이나 맞은켠 의자에 옹송그리고 앉은 춘희를 노려보았다. 공포에 찬 기류가 이새끼마냥 엄습해왔다. 춘희는 바늘방석에 앉은듯 안절부절, 조마조마한 기분이였다. 그때 반공중에 독사가 서린 말꼬리가 그녀의 목을 휘감아 디룽디룽 달아맸다. "너도 사람이냐?!배은망덕한 년!" 깜짝 놀랄 지경. (아니, 갑자기 무슨 욕지거릴?) 춘희는 흠칠 놀라며 다소곳이 숙였던 머리를 천천히 들어 류원장이란 자를 쳐다보았다. "류원장님, 무슨 일이 있었는가요?" "몰라 물어?!" 류원장은 검은 테안경을 벗어 박대가리 위에 쳐들고 가슴츠레한 눈길로 춘희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춘희는 그런 것 쯤에 기 죽을 녀자가 아니였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서 툭 까놓고 말하십시오." 류원장은 잔등을 의자에 붙이더니 춘희를 쏘아보기만 했다. 춘희도 류원장의 유들유들한 볼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마주 쏘아보았다. (네놈이 날 일본에 류학보내놓고 얻어먹지 못해 이 지랄 해? 황선희 처녀를 잡아먹은게 네 애비 아닌가? 너도 날 박사로 만들어놓고… 어림도 없어. 개꿈을 꾸지도 말어. 흥!) 박대가리는 그저 닥쳐선 안되겠든지 언성을 좀 낮췄다. "김춘희, 뭐요? 병원에서 동무를 일본에까지 류학 보내서 박사까지 만들어줬으면 병원 일을 잘해야지. 뭐요? 간다 온단 말도 안하고 일본에 남자친구까지 데리고 가서 반년씩이나 엎어져 있는가? 병원에 미안하지 않는가?"    그제야 춘희도 머리를 숙이며 반성했다. "미안합니다. 딸을 오랜만에 만나서 제때에 오지 못해 죄송합니다. 일본 가 있은 반년 로임을 일전한푼 받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따위 반성하는 몇마디 말에 훌 고삐를 놓아줄 류원장어른이 아니였다. "흥! 반년 로임을 받지 않는 걸로 끝날 거 같은가?" 춘희는 머리를 들고 류원장의 퉁사발눈을 쳐다보았다. 그 격노한 퉁사발눈에 들어가 사연을 주어들고 나올 것처럼 오래도록 퉁사발눈을 들여다보았다. "네? 또 무슨 일 있습니까?" 류원장은 천천히 일어나 뒷짐을 짓고 뚜벅뚜벅 거닐었다. "알면서 물어? 춘희 일본에 가 일 치는 바람에 우리 병원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쳤는지 아는가?" "무슨 일입니까? 툭 까놓고 씨원히 말하시오." 류원장은 걸음을 뚝 멈추고 의자에 돌아와 앉았다. "안되겠소. 춘희를 우리 병원에 뒀다간 무슨 국제영향을 끼치겠는지 모르겠소. 병원 당위에서는 무조직, 무기률인 김춘희를 우리 병원에서 제명하기로 했어.황선희와 김춘희 없으면 우리 병원 돌아가지 못할 거 같아? 숱한 박사들이 주임을 하자고 줄을 섰어.흥!" "네?" 춘희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콧방귀를 뀌는 류원장의 두툼한 입술을 쏘아보았다. "병원 신용과 위신을 팔아먹은 자는 가차없이 잘라버릴 거야.량심없는 자에겐 사정없는 법." 류원장은 춘희를 똑똑히 들어두라고 한마디 덧붙여 내뱉었다. 시꺼먼 구멍에서 구렁이가 튕겨나왔다. 구렁이는  춘희 목을 꽉 얽동여매 말도 나가지 못하게 억눌러버렸다. 공포가 꼬리치며 침침하게 춘희 량미간을 조여버렸다. 춘희는 김빠진 공처럼 쏘파에 무너져버렸다. 황금몽에 사랑탑이 무너졌다.  박사 토성 밑도 꺼져버린다. 발 밑이 쿵 꺼져버린다. 눈 앞이 아찔해나며 먹칠한듯한 심연으로 무너져 내려간다…
343    대하소설 졸혼 제5권 (69) 김장혁 댓글:  조회:1223  추천:0  2023-03-21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79. 무인도의 해적들 한참 쾌속정을 몰고 바다를 달리다가 저 멀리 섬 같은 것이 희미하게 시야에 안겨왔다. “일단 섬에 오르고 봅세.” 철석은 정호를 돌아보더니 쾌속정을 그 섬으로 몰았다.  섬에 점점 다가가면서 보니 그 섬은 녀인섬보다 그리 크지 않았으나 열대우림은 더 무성했다. 기괴하게 사람의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정호랑은 오히려 그것이 더 좋았다. 허허바다에서 원래는 사람을 만나면 기뻐해야 할 대신 사람이 더 무섭고 싫었던 것이다. 어떤 때에는 야수들보다 탐욕스럽고 색마 같은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였다. 피뜩 보니 코끼리 코 모양 벼랑이 서 있는 그 섬은 확실히 무인도 같았다.  철석은 최고운전기술을 다 발휘해 용케도 부두도 없는 해변가 들쑥날쑥한 바위 틈새에 쾌속정 머리를 들이댔다. “어서 내리우.” 정호는 허수아비처럼 돼버린 혜영을 부축해 바위에 올랐다. 혜영은 정호를 하루속히 잡아가지 못하는 것이 원쑤 돼 속으로 칼을 가는데 정호는 혜영을 인간적으로 착한 마음으로 거들었다. (속담에도 웃는 낯에 침을 뱉지 않는다고, 아무리 한뉘평생 사람을 잡아가두는 저승사자질 했다고 해도 사경에 처했을 때 잘 대해주면 봐주겠지.) 그것이 정호의 기대이자 막연한 바람이고 미련이였다. 철석은 쾌속정의 동아줄을 룡두처럼 생긴 바위에 단단히 매놓았다. 쾌속정만 파도에 밀려가면 망망한 바다 가운데서 오도 가도 못하고 갇히게 되고 말 것이 아닌가.  젤 앞에서 정호는 시퍼런 칼을 들고 수풀을 헤치면서 동정을 살피며 앞으로 나가고 뒤에서 철석이 량손에 칼과 미희 손을 잡고 뒤따랐다.  철석은 고의로 뒤에서 느릿느릿 걷더니 미희 손을 꽉 잡으며 뭔가 암시했다. “왜?” 미희가 주춤 멈춰서 오빠를 쳐다보았다. 철석은 식지를 입에 가져다대였다. “쉿-” 정호와 혜영은 저 앞에서 걸어나가고 있었다. 미희는 의아해 오빠를 곱게 흘겨보았다.  철석은 미희의 귀가에 입을 가져다대고 나직이 말했다. “우리 저 놈들을 따라가 개고생할게 있느냐? 어선을 빼앗으면 한국으로 돌아가자.” “안돼. 난 저 사내 여자야.” “저 놈 뭘 보고 따라다녀? 이젠 알거지 됐어. 초상집 개야.” 미희는 눈을 흘겼다. “오빠, 량심 있어? 숱한 금은장시구 얻어가질 땐 어쩌고?” 철석은 미희 손을 훌 놓고 손을 들어 수염을 가로 쓱 닦았다. “그때는 그때고." 철석은 나직이 말했다. "지금 그 금은붙이도 다 어선에 두고 왔잖아? 녀인도 년들이 다 가져갔을 거야. 저놈한테선 이젠 얻어가질게 쥐 뿔도 없어. 괜히 도주범과 공범이 될게 있어?” 철석은 미희 손을 잡고 마지못해 정호네 그쪽으로 걸어갔다.  집채 같은 파도가 해변가 바위돌을 처절썩 갈기며 하얀 물보라를 일구며 공포를 더해주었다. 무시무시한 무인도는 그야말로 염라전처럼 뒤숭숭하게 굴었다. 정호는 철석이 오누이가 다른 궁리하는 것도 모르고 앞으로 걸어나가다가 주춤 멈춰섰다. (저게 뭔가?) 한무리 사람들이 녀성 대여섯을 끌고 섬에 오르고 있지 않겠는가? 정호가 철석을 돌아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해적무리 아닌가?” 철석과 미히도 어둠이 사지를 펴는 해변가 들쑹날쑹한 바위돌 틈으로 얼핏얼핏 보이는 총까지 멘 사내들을 보고 공포에 떨었다. 녀성들은 흐느끼며 해적들에게 끌려 섬에 올라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 철석은 혜영과 미희를 걱정스레 뒤돌아보았다. 정호가 무릎을 탁 쳤다. “위기가 기회일 수도 있어.” “뭔데?” “저 놈들 배를 타고 어선 쪽으로 가자.” 그러자 철석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 맞아. 배를 빼앗자.” 미희가 손사래를 쳤다. “오빠네 둘이 어더렇게 저 숱한 해적들을 대적해?” “저 놈들 몰래 가만히 해적들 배에 오르기만 하면 돼.” 정호는 철석을 보고 혜영과 미희를 지키라고 하고  해적들이 사라진 수림 속으로 슬금슬금 뒤따라갔다. 혜영은 흰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더니 정호를 말렸다. "어쩌자고 그러오? 괜히 해적들한테 당하지 못해." 정호는 주춤 멈춰서 되돌아보며 말했다. "저놈들이 소굴이 어데 있는지 알아둬야지. 해지면 파악있게 무인도를 벗어날 수 있어." 철석은 두 손 들어 동감했다. "맞아, 가 보라구." 해변가에서 해적들은 뭐라고 쑤근거리더니 협곡 속으로 스며 들었다. 두 놈이 총까지 메고 협곡을 지켰다. 정호는 나무가지와 칡넝쿨을 잡고 벼랑 위로 한걸음 한걸음 나가면서 토비들의 눈을 피해 미행하였다. 한참 뒤따라가니 협곡 막바지 수풀 속에 자연 석굴이 드러났다. 해적들은 석굴에 독사들처럼 동굴에 흘러들어갔다. 정호는 수풀을 헤치며 도적고양이처럼 슬금슬금 동굴 어귀까지 접근했다.해적들은 어둠침침한 석굴에 들어가 숱한 보짐을 벗어 동굴 창고에 무져놓았다. 정호는 석굴이 너무 어두워 해적놈들이 뭘 하는지 똑똑히 볼 수는 없었다. 다만 공포의 석굴 어둠 속에서 녀인들의 아우성소리, 비명소리가 들릴뿐이였다.보나마나 해적들은 자기들의 전리품인 녀인들을 석굴 안에서 강간하고 있을 것이였다. 잠시후 녀인들의 비명소리에 점차 흐느낌소리로, 신음소리로 변해 들려왔다. (해적들은 강간하는데 정신이 팔렸을 거야.이 기회에 석굴에 들어가봐야지.) 정호는 석굴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펴보았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고 수풀이 바다바람에 쏴쏴- 소리치며 몸부림칠 뿐이였다. 정호는 시퍼런 칼을 쳐들도 슬그머니 석굴 어귀 들쑹날쑹한 바위 틈에 숨어들어 석굴 안을 들여다보았다. 녀인들의 흐느낌 소리를 들어봐선 석굴은 그리 깊지 않은 것 같았다. 정호는 슬금슬금 석굴에 들어갔다. 한 굽이 돌아들어가자 석유등불을 밝힌 좀 넓은 석굴 안에서 해적들은 한창 집단강간하고 있었다. 녀성들은 널판구들바닥에 쭉 들어누워 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녀인들은 사지가 꽁꽁 묶여 옴짝짝달싹 못하고 울며불며 당하고 있었다.  "아!" 갑자기 석굴 어귀에서 보초를 서던 해적이 정호를 발견하고 놀라 꽥 비명소리를 질렀다. 정호는 황급히 시퍼런 칼을 쳐들어 위협하였다.     보초병은 비명소리치며 석굴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도적이야!" 한창 재미를 보던 해적들은 황급히 바지가랭이를 춰입고 이쪽으로 달려나왔다. 해적우두머리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슨 일이야?" 보초놈은 손가락으로 석굴 바깥을 가리켰다. "두령님,웬 놈이 석굴 어귀에 나타냈댔습니다." "그래?" 우두머리는 권총을 들고 굴 어귀에 슬금슬금 다가갔다. 보초병도 총을 들고 뒤따랐다.   정호는 바람결처럼 아름드리고목 뒤에 숨어버렸다. 우두머리는 벽에 붙어 굴어귀에까지 가서 바깥 동정을 살폈다. 그러나 파도소리와 해풍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다만 해풍에 바위에 맞절을 하는 야자나무 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두머리는 보초놈한테서 자초지종을 들은 후 너털웃음을 웃더니 보초병의 어깨를 다독였다. "이보게.당장 붙잡아오지 못해?” “옛!” “ 괜히 내 흥을 깨뜨리면서.흥!" 그는 가래짝 같은 손바닥으로 보초병의 어깨를 툭 쳤다. "아직도 가잖고 꾸물거려?!" "옛!" 정호는 그 놈들이 뭐라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저놈들이 강간하는 틈을 타 무인도를 벗어나야 해.) 그때 갑자기 엔징소리 들리더니 뒤이어 저쪽에서 쾌속정이 씽 달려 바다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야? 쾌속정 아닌가?" 꽈르릉! 꽝! 꽝! 먹장구름 속에서 번개가 뻘건 혀를 뻗쳐 무인도를 강타하며 핥아갔다. 뒤이어 대살 같은 폭우가 쏟아졌다. 정호는 황급히 칼을 들고 부랴부랴 폭우가 쏟아지는 어둠침침한 수림을 헤가르며 혜영이랑 두고 온 수림으로 되돌아갔다. "이게 뭐야?" 수림에는 대살처럼 창창 쏟아지는 폭우 속에 철석과 미희는 꼬리도 보이지 않고 혜영이 상반신이 벌거숭이 된 채 나무에 꽁꽁 묶여 있지 않겠는가! 사실, 철석은 정호가 해적무리를 뒤쫓아간 후 칼로 혜영이 다 해진 적삼을 벗겨내 오리오리 베내서 바줄을 깠다. 그 바줄로 미희와 합세해 혜영을 꽁꽁 결박지워 나무에 묶어놓고 도망쳤던  것이다.  혜영은 정호를 보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뭐라고 코소리를 쳤다. 그녀는 입이 천에 틀어막혀서 말하지 못하고 코방귀만 꼈다. 정호는 황급히 칼로 혜영의 결박을 잘라 풀어주고 나서 자기 적삼을 벗어 혜영에게 입으라고 건넸다. "철석이랑 어데 갔소?" "그 년놈들이 날 묶어놓고 쾌속정을 타고 혼자 도망쳤소.주고 받는 말을 들어보니 아마 녀인섬에 가는 것 같았소. 뭐, 어선을 몰고 한국에 돌아갈 모양입데. 미희 그 개쌍년, 변강쇠 아까운지 발버둥질치며 울며 불며 기다리자 합데. 건데 철석이 미희를 마구 끌고 갔소." "그랬구나. 개새끼,량심없는 개놈새끼!제명에 썩어지지 못할 거야!" 정호는 눈앞이 캄캄해났다. 그는 해변가를 두루 살피다가 질겁해 바들바들 떠는 혜영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겁나 마오. 내가 살아있는 한 혜영을 꼭 지켜낼 거요.” “고맙소. 그 은공 잊지 않을게.” 혜영은 살고팠다. “빨리 이 무인도를 떠나야 하오." "무슨 수로?" 혜영은 반신반의했다. "해적놈들의 배를 몰고 달아나야지." 땅! 땅! 갑자기 폭우 쏟아지는 열대우림을 찢으며 총소리 울렸다. 뒤이어 여기저기서 검은 그림자들이 수풀 속에서 뛰쳐나오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크! 빨리 뛰자!” 정호는 혜영의 손을 잡고 선불 맞은 노루처럼 수풀 속으로 뛰여들어갔다.   그런데 수풀 속에서 시꺼먼 총구가 그의 가슴을 찔렀다. 땅! “앗!” 뒤에서 혜영이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부둥켜안고 쓰러졌다. 뒤에서 해적이 혜영을 쏴눕혔다. 정호는 허리를 굽히며 앞에선 검은 그림자한테 덮쳐들어 총구를 하늘공중에 쳐들었다. 땅! 땅! 땅! 야무진 련발총소리와 함께 총구에서 하늘로 불찌가 날아올라갔다.  정호는 검은 그림자를 어깨에 떠메 해변가 절벽 아래에 내리메쳤다. “악!” 비명소리와 함께 해적놈은 파도 속으로 내리꽂혀 버렸다.  정호는 몸을 홱 돌려 자세를 낮추며 아름드리나무를 껴안고 돌면서 연신 검은 그림자를 차 눕혔다. 그는 칼을 휘두르며 갈범처럼 싸우면서도 혜영을 찾느라고 눈길을 날렸다.  저쪽에서 혜영의 아우성소리 애처롭게 들렸다. “정호! 제발 날 버리지 말고 살려주오!” 정호가 대살처럼 창창 쏟아지는 폭우를 무릅쓰고 어둠컴컴한 수림을 살폈다. 꽈르릉, 꽝! 꽝! 번개불을 빌어 몇몇 해적들한테 결박돼 끌려가는 혜영을 볼 수 있었다. “혜영이!” 정호는  땅바닥에 떨어진 총을 주어들고 생사를 가릴 새 없이 쏘아대며 해적들에게 덮쳐갔다. 몇몇 해적들은 맹호처럼 덮쳐드는 정호 기세에 눌려 헛총질을 해대며 혜영을 둘러메고 수림 속으로 꼬리빳빳해 도망쳤다. 그러나 몇몇 해적들은 수림에서 총질하면서 대들었다. 정호는 혜영을 구하려고 필마단기로 결사적으로 해적들에게 뎦쳐들었다. 그러나 수림 여기저기서 총소리를 듣고 점점 더 많은 어두운 그림자들이 꽥꽥 고함치며 덮쳐왔다. 설상가상으로 아무리 격발기를 당겨봐도 절컥거릴뿐 탄알마저 다 떨어졌다.  “살려달라! 구해달라!” 저쪽에서 혜영이 단말마적으로 고함쳤다. 정호는 하는 수 없이 혜영을 구하지 못한 채 해변가 절벽에서 바다에 풍덩 뛰여들었다…   
342    대하소설 졸혼 제5권 (68) 김장혁 댓글:  조회:1241  추천:0  2023-03-20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78. 탈출 검푸른 파도가 무섭게 휘파람을 불며 들쓱날쑥한 바위를 들부셔놓고는 병 주고 약 주듯이 넘실거리면서 애무한다. 갈매기들이 집채 같은 파도 위를 날아예며 날개로 자유로운 서정시를 쓴다. 정호와 철석은 쇠사슬에 묶여 두 팔을 뒤짐진 채 경호녀들한테 끌리워 다녔다. 철석은 미희가 식인종 녀악마들한테 살해된 후 우울해졌다. 그는 어떻게 하면 식인녀악마들한테 복수의 칼을 박아주겠는가고 이를 쁙쁙 갈았다. 녀우두머리는 철석의 불찌 티는 눈길을 보고 속심을 진작 다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건장하고 날랜 경호녀를 뽑아 특별히 정호와 철석을 쇠사슬로 두 팔을 뒤짐 지워 묶은 채 끌고 다니게 했다. 녀우두머리는 정호와 철석을 륜번으로 데리고 놀았다. 워낙 성욕이 강한 녀우두머리는 어떤 때는 정호와 철석을 동시에 짐승처럼 유린했다.  성자유를 그렇게 주장하던 변강쇠 정호도 이젠 성노예노릇을 하기든 진절머리났다. 색마 정호는 처음에는 워낙 변강쇠여서 녀우두머리의 저돌적인 섹스를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서로의 만족을 느끼면서 음양조화가 생기면서 어쩐지 서로 호감이 갔다. 녀우두머리는 심지어 어떤 때는 정호 두 팔의 쇠사슬을 풀고 즐기기도 했다. 물론 경호녀들이 대창과 시퍼런 칼을 들고 한시도 녀우두머리 옆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 녀우두머리는 이날도 정호의 쇠사슬을 풀어주고 침대에 들어누워 살진 눈시울을 살풋이 내리깔더니 살뜰한 애무를 기다렸다.  “좋은 기회야. 개쌍년들을 쳐눕히고 도망치자.” 철석은 정호한테 중얼거렸다. “안돼.” 정호는 손으로 녀우두머리 축 늘어진 젖가슴을 슬슬 매만져주면서 도리머리를 저었다. “산굴을 벗어나기 전에 란도질 당할 거야.” “요 몇이야 내 혼자라도 해치울 수 있어.” 정호는 녀우두머리 검누런 젖가슴을 혀로 핥아주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산굴 밖의 야만인들은 소라나팔 소리만 들으면 순식간에 우릴 포위하고 란도질 할 거야.” 녀우두머리는 우멍한 눈을 번쩍 떴다. “이 놈들이 뭐라고 지껄여?” 경호녀들이 시퍼런 칼을 정호 목에 들이댔다. “아니, 도정신해 애무하지 못할가?!” 정호는 뭐라는지 야만녀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분명 그들이 대화한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라는 걸 눈치챘다. 녀우두머리는 황급히 신음소리하면서 하신을 요리곰실 조리곰실 탈았다. 정호는 바삐 녀우두머리의 바빠하는 데부터 막아버렸다. 녀우두머리는 신음소리를 련발하더니 거머리 매달린 것 같은 검푸르고 두툼한 입술을 푸들푸들 떨더니 입을 쫙 벌렸다. 턱마저 점점 쳐들었다. 한참 란장판을 이룬 후 녀우두머리의 신음소리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녀우두머리는 만족됐는 모양이다. 저 꼴을 보소. 정호의 목을 꼭 끌어안고 헤쭉 웃으며 이마에 키스까지 뽁 해주었다.  정호는 메스꺼워 볼에 묻은 걸죽한 침을 손등으로 쓱 씃었다.  녀우두머리가 뒤를 둘러보며 뭐라고 호령했다. 경호녀들은 와락 달려들어 정호 두 손을 뒤로 탈고 쇠사슬로 묶어버리고 열쇠를 절컥 채웠다. 녀우두머리는 정호와 철석을 끌고 헤벌쭉거리면서 산굴에서 나갔다. 경호녀들은 시퍼런 칼과 예리한 대창을 들고 성노예 둘을 끌고 해변가로 나갔다. 검푸른 파도가 그들을 집어 삼킬 상 하면서 덮쳐들었다. 어선과 갑판에 묶어놓았던 쾌속정이 파도에 몸부림쳤다. 언제 야만녀들이 어선 위의 쾌속정을 바다에 부리워놓고 동아줄로 어선에 달아매 놓았다. 어선에는 대창과 시퍼런 칼을 들고 왔다 갔다하면서 보초를 서는 몇몇 야만녀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노호하며 덮쳐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녀우두머리는 오히려 두 팔을 쫙 벌리고 뭐라고 고함을 빽 쳤다. 경호녀들도 발로 꺼먼 바위돌을 탕탕 구르며 녀우두머리를 따라 고함쳤다. 그 틈에 정호는 철석을 넌지시 건너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도망치자.” 철석은 머리를 끄덕이며 쇠사슬을 거머쥐며 옆의 경호녀를 노려보았다. 철석의 근육이 울뚝불뚝한 두 팔에서 룡이 꿈틀거렸다. 정호가 녀우두머리를 흘끔흘끔 곁눈질하며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였다. 그는 한 발길에 녀우두머리를 바다에 차넣을 챤스를 노렸다.  그때 녀우두머리가 쾌속정을 가리키면서 뭐라고 지껄였다. 경호녀들이 정호의 쇠사슬을 풀어주더니 쾌속정으로 떠밀었다.   녀우두머리와 경호녀들도 쾌속정에 올라탔다. 녀우두머리는 정호를 보고 앞을 가리키며 쾌속정을 모는 손시늉을 했다. 쾌속정을 타고 놀 예산인 것 같았다. 정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잘 됐어. 하느님이 우릴 살려주려는구나.” 그러나 그는 쾌속정을 몰줄은 몰랐다. 그는 녀우두머리를 돌아보고 철석을 가리키면서 몰게 하라고 손시늉했다.  녀우두머리는 정호를 배에서 밀어내고 철석을 쾌속정에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아마 둘다 쾌속정에 태우면 신변안전이 위험하다고 여긴 것 같았다. 정호는 고의로 늦장을 부리면서 철석이 쾌속정에 올라왔는데도 내리지 않고 서성거리며 기회를 노렸다.  철석은 쇠사슬을 풀자 발동을 걸고 쾌속정을 씽- 바다로 몰았다.  녀우두머리가 뭐라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철석은 쾌속정 키를 홱 탈았다.  “앗!” 경호녀들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대창으로 하늘을 그으며 비틀거렸다. 정호는 맹호처럼 덮쳐나가며 경호녀들을 콱 떠밀었다. 그는 연신 뛰여오르며 원앙새발길을 날렸다. 몇몇 경호녀들이 바다물에 풍덩풍덩 떨어졌다. 그러나 몇몇 경호녀들은 대창과 시퍼런 칼을 휘두르며 우르르 정호한테 달려들었다. 정호는 살생하고 싶지 않아 경호녀를 차넘겨 바다에 처넣었다. 그러나 경호녀들은 칼을 입에 물고 헤염쳐 쾌속정 배전을 부여잡고 아득바득 쾌속정에 기여오르려고 했다. 정호는 한 경호녀 입에서 시퍼런 칼을 빼앗아내 무섭게 휘둘렸다. 그러나 항상 칼등으로 팔을 쳐 위협만 했다. 녀우두머리는 황급히 시퍼런 칼을 철석의 목에 댔다. 철석은 몸을 옆으로 탈며 홱 피했다. 그는 녀악마 칼을 빼앗아 되 그년의 목에 댔다. 정호도 무서운 호랑이처럼 고함치며 나머지 경호녀들을 발길질 주먹질해 바다에 마구 처넣었다. 정호가 마지막 경호녀가 휘두르는 대창을 긴 칼로 쳐올리고 칼등으로 대창을 쥔 팔을 탁 쳤다. 경호녀도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대창으로 칼을 걷어올리고 몸을 홱 피했다. 뒤이어 허망 공중에 날아올랐다가 내려오며 날창으로 찔렀다. 정호는 대창에 어깨쭉지 찔려 칼을 떨어뜨렸다. 그때 철석이 꽥 고함치며 녀우두머리 대갈통 위에 시퍼런 칼을 쳐들었다. 그 찰나, 녀우두머리가 뭐라고 꽥 고함쳤다.  그 호령소리에 경호녀는 대창으로 정호 가슴팍을 찌르려다가 주춤 멈춰섰다. 그 순간, 정호는 쓰러진 채 발길을 날려 녀경호의 종아리를 걷어차 딴죽을 걸었다. 경호녀는 맥없이 대창으로 배전을 찌르며 쿵 쓰러졌다. 정호는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날아내리며 발길로 경호녀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앗!” 경호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경호녀는 그저 야만녀 아니였다. 건장한 경호녀는 숨만은 붙어 있어 가슴을 할딱거렸다. 그러나 숨이 져가는지 펀히 뜬 깜장눈은 시퍼런 파도위에 날아예는 감매기들을 바라보는가. 깜장눈은 깜빡하지도 못하고 하늘 한 곳만 쳐다본다. “이년 뒈져라!' 정호가 무쇠주먹으로 한대 더 안기자고 할 때였다. “그만 둬!” 철석이 손사래쳤다. “우린 살인죄를 질 필요까진 없잖아? 녀인도를 벗어났는데 죽이까지 할 필요없어.” 정호는 머리를 끄덕이며 손바닥을 탁탁 털었다. 그때 화살이 쓩- 쓩- 날아왔다. 녀인도 해변가에 순식간에 소라나팔 소리가 진동쳤다. 숱한 야만녀들이 먹장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년들은 쾌속정에서 우두머리와 경호녀가 당하는 걸 보면서도 쾌속정에 접근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며 고함쳤다.  어떤 년들은 시퍼런 칼을 물고 바다물에 뛰어들어 헤염쳐 덮쳐왔다. 어떤 년들은 꽥꽥 고함치며 황급히 어깨에서 활을 벗겨들고 쾌속정에 화살을 날렸다.  “아니, 저게 미희 아닌가!” 철석은 황급히 쾌속정을 몰고 도망치려다가 그만두고 해변가를 가리켰다.  정호가 해변가를 살펴보니 두 팔을 결박당한 미희와 최혜영(은영)이 야만녀무리 속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지 않겠는가. 들쑥날쑥한 바위돌 위에 야만녀들이 미희와 머리 싯허연 혜영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쟤들은 전번에 칼탕맞고 잘못되지 않았던가?” 정호는 의아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뭔 소리야?” 정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환각인가? 아니, 악몽인가.” 철석은 쾌속정 핸들을 놓고 벌떡 일어났다. 그는 목이 터지게 고함쳤다. “미희야!” 미희도 고함쳤다. “오빠! 살려줘!” 정호는 철석을 보고 말했다. “빨리 쾌속정을 몰아! 어두운 밤을 타서 쟤들을 구하자.” “안돼. 당장 구해야 돼.”  철석은 녀우두머리를 정호한테 넘겨주고 쾌속정을 씽 몰고 해안가로 달려갔다.  “지금 어떻게 구한다고 그래?” “이 우두머리년하구 미희를 바꾸자.” 정호도 우두머리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망설였다. “미희만 구하자.” “왜? 너거 진짜 의리심이 없구나. 제 고향 여자도 구하지 않을래?” “저년은 검사국장이야. 저 년을 구했다가 또 날 체포당하자고? 저년 살아나면 또 날 체호해가자고 악을 딱딱 쓸 거야.” 그러나 철석은 동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렇긴 해도 어찌 쟤들을 식인악마들한테 두고 가겠는가?” 쾌속정은 하얀 물결꼬리를 달고 파도 세찬 바다로 나는듯이 달려갔다. 녀우두머리는 우쭐렁거리던 평소와는 달리 질겁한 우멍한 눈으로 정호를 쳐다보며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다.  정호는 시퍼런 칼을 쳐들고 희죽이 웃었다. “네년도 오늘 같은 날이 있구나. 허나 네년은 아직 쓸모 있어. 변강쇠는 무인도에서 너 같은 못난 옥녀가 필요해.” 철석은 칼을 내리우며 손으로 녀우두머리 흙빛이 된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죽이진 않을게.” 정호도 마지못해 혜영을 구하기로 생각을 고쳤다. (저년을 사경에서 구해주면 혹시 날 놔주겠는지도 몰라.) 그는 녀우두머리를 보고 해안가에 결박된 채 서 있는 미희와 혜영을 가리키면서 바꾸자는 손시늉을 했다. 녀우두머리 우멍한 눈에서 한가닥 삶의 의욕과 희망의 빛줄기가 어른거렸다. 그녀는 머리를 끄덕였다.  해변가에 이르자 정호는 녀우두머리 보고 식지와 중지를 펴보이더니 미희와 혜영을 가리키며  바꾸는 손시늉을 했다. 녀우두머리가 쾌속정에서 일어나 뭐라고 고함쳤다.  그때 쾌속정에 누워 있던 경호녀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일어나 앉았다.  해변가 야만녀들은 자기네 우두머리와 경호녀 우두머리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혜영과 미희의 결박을 풀어주고 바다물에 떠밀며 쾌속정쪽으로 가라고 손시늉했다. “미희야! 빨리 헤염쳐 오라!” “최검사, 빨리 오오!” 혜영과 미희는 바다물에 풍덩 뛰여들어 이쪽으로 죽기내기로 혜염쳤다. 혜영은 평소에 시간만 나지면 대학 수영장에 가서 헤염치는 걸 배웠었다. 하여 집채 같은 파도가 아무리 사나워도 물고기처럼 헤염쳤다. 풍덩! 철석은 바다물에 뛰여들어 미희한테로 혜염쳐갔다. 어찌나 혜염을 잘 치는지 바다물을 꿰지르며 헤여가는 한마리 상어 같았다. 혜영은 배전에 떡 서 있는 정호를 떠 볼 양으로 소리쳤다. “정호, 최국장 오빠, 어서 날 구해주오. 난 헤염칠줄 잘 몰라.” “저승사자 같은게. 누굴 속여? 수영선수 돼가지고.” “아냐, 난 맥이 다 바졌어.” “어떤 때는 죽이지 못해 그러더니. 이런 땐 최국장이야!” 정호는 생각 같아선 혜영을 바다물에 빠져죽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멀리 이국 타향 바다에서 차마 한 고향 혜영을 죽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음험하기로 이를 데 없는 정호도 이때만은 웬 일인지 착한 인간성과 동정심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기다려.”  정호는 녀우두머리의 결박을 풀어주고 바다물에 뛰여들라고 손시늉했다. 녀우두머리는 그간 변강쇠의 저돌적인 성애에 정이 들었는지 가래짝 같은 흑황색손바닥을 쳐들어 정호 볼을 살살 매만지다가 바다물에 풍덩 뛰여들었다. 녀경호 우두머리도 기적적으로 기여 일어나 바다 물에 뛰여들었다. 정호는 한 손으로 녀우두머리 배를 받들어주며 해얀가로 헤염쳐갔다. 해변가에 거의 이르러 그는 녀우두머리를 힘껏 들쑥날쑥한 바위 쪽으로 떠밀어주었다. 맞은 켠에서 몇몇 경호녀들이 헤여와 녀우두머리를 마중해 해변가로 혜여갔다. 정호와 철석은 각기 혜영과 미희를 물 속에서 받들고 자맥질하며 쾌속정 쪽으로 혜염쳐갔다.  정호는 물 속에서 물결에 날리는 혜영의 싯허연 머리카락과 다 해진 적삼 밑으로 치마 밑으로 드러난 매마른 젖가슴과 불룩한 똥배를 훔쳐보면서 저도 몰래 도리머리질하며 한탄했다. (은영이 꼴이 뭐야? 이게 성호랑 승호랑 숱한 대학생남자들이 그렇게 따르던  대학가 꽃이란 말인가? 세월은 어쩔 수 없어.) 집채 같은 파도가 그들을 삼켰다가도 왈칵 토해냈다. 그들 넷은 안간힘을 다해 간신히 쾌속정에 올라탔다. “오빠!” “미희야!” 철석과 미희 오누이는 부둥켜안고 왕왕 울었다. “됐다. 야만인들의 손아귀를 벗어났잖아. 이젠 괜찮아.” 미희의 복숭아얼굴이 눈물바다로 돼버렸다. 가지색머리카락이 눈물 젖은 볼에 찰싹 달라붙어버렸다. 혜영은 그저 정호와 철석을 바라볼 뿐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객이 돼서 이런가? 아니, 저승사자 돼 이렇게 지독한 랭혈동물인가? 괜히 구해줬잖아.) 정호는 때를 만났다고 횡설수설하면서 혜영을 골려주었다. “저승사자도 내 도움받아 살아남는 이런 날도 있구만. ㅋㅋ. 오늘 우리 아님 최국장은 야만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야.” 혜영은 입귀로 쓴웃음을 흘려보냈다. “이래도 날 붙잡아가겠어? 구명은인도 모르고. 흥!” 그러나 혜영은 대답 대신 콧방귀를 뀌면서 속으로 윽윽 별렀다. (이제 륙지에 오르기만 해 봐라. 당지 령사관이나 인터폴에 련계해 네놈을 납짝 붙잡아가지 않는가!) 그때 해변가에서 야만녀들의 고함소리가 울렸다. 또다시 화살이 빗발치며 날아와 바다물에 꽂혔다.  정호가 바라보니 녀우두머리가 뭐라고 고함치자 화살이 더 날아오지 않았다. 야만녀들은 대창과 시퍼런 칼을 휘두르며 뭐라고 이쪽에 대고 고함쳤다. 부르릉  철석은 쾌속정 핸들을 잡고 시동을 걸었다. 쾌속정은 시퍼런 파도를 헤가르며 쏜살같이 내달렸다. 정호는 점점 멀어져가는 한 많은 녀인도를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후- 내쉬였다. 그때 철석이 유표를 내려다보고 당황해했다. “휘발유 얼마 남지 않았어. 우리 어디로 가야지? ” “뭐라고?” “어선에도 휘발유 얼마 남지 않았을 거야.” “가만 세우라고.” “왜?” 철석은 정호를 되돌아보며 물었다. “우리 어델 갈가를 잘 타산한 후 몰라고. 괜히 휘발유를 랑비하지 말고.” “알았어. 먹을 것도 하나도 없잖아. 어쩌지?” 쾌속정 엔진이 바다 한가운데서 꺼졌다.  쾌속정은 파도에 몸을 싣고 파도에 떠밀려 망망한 바다에서 표류했다. “저 어선이 아깝다. 아까워. 어선에는 고기그물하구 낚시도 있네. 먹다 남은 물고기랑 랭동고에 있는데…” 철석은 해변가에서 파도에 넘실거리는 어선을 멍해 바라보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기회를 보아 어선을 빼앗아냅세.” “오늘 당장 가서 빼앗아내자구. 야만녀들이 대단하지도 않테이.” 철석의 말에 정호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지금 돌아가선 못 빼앗아. 괜히 놀래우지 말자고. 날이 어두워지면 가만히 쾌속정을 몰고 가서 빼앗아냅세.” 그 말에 철석도 머리를 끄덕였다. “국장질 해먹은 사람 궁냥이 낫긴 나은기여. 이러다가 우리 해적무리 되잖겠나? ㅋㅋㅋ.” 정호는 혜영을 돌아보며 희죽이 웃었다. “살기 위해선 별 수 없지. 최국장님, 안 그래유?” 혜영은 허연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아무 대구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두달 남짓 녀인도에 갇혀 있다나니 머리를 염색하지 못해 파뿌리 같은 흰 머리카락이 염색한 까만 머리카락을 떠이고 돋아나고 있었다. “선녀처럼 아름답던 최국장, 이게 뭐요?” 정호는 혜영을 지껄이며 조소하였다. “저승사자 그렇게 하고 싶어? 왜 한사코 나를 물고 놓지 않소? 날 잡으려고 여기까지 쫓아오더니 이게 무슨 꼴이오? 쳇, 하얀 밥 처먹고 할 일도 없긴 없소.” “닥치지 못할가? 숨이 붙어 있는 한 부패분자 네놈을 놓아줄 거 같아? 염라국에 가도 귀신이 돼 네놈을 붙잡아 심판대에 올리고 말 거야.” “진짜 견강한 검사구만. ㅋㅋ. 진짜 악귀 저승사자라고나 해라.” 정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부지중 혜영을 구한 것이 얼마나 후회되는지 몰라했다.  그는 집채 같은 파도가 사납게 파도치는 망망한 바다를 멍해 바라보면서 못된 궁리를 했다.  (이제라도 바다물에 콱 처넣을가? 끝장내고 싶은데. 어쩐다?” 그러나 그는 인차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무슨 죽을 죄를 졌니? 살인죄는 질 거까진 없어.”   쾌속정은 각기 제 좋은 생각을 하는 네 사람을 싣고 망망한 먼 바다로 정처없이 달려나갔다.
341    대하소설 졸혼 제5권 (67) 김장혁 댓글:  조회:1305  추천:0  2023-03-17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77. 자살   몇달 후 나영은 지갑에 현찰 천만원을 넣어가지고 모 대학병원 부산과로 찾아갔다.  락태를 할가고 간호원한테 돈을 찔러주고 시술에 용하다는 의사를 찾았다. 교수급의사는 외까풀눈을 가슴츠레 뜨고 나영을 여겨보더니 물었다. "중국 동포인가요?" "네." "려권 봅시다." "아니, 려권 잃어버렸어요." "려권도 없어? 그럼 어떻게 병을 봐요? 정상의료 아닌군요," 나영은 옆에 한사람도 없는지라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네, 좀 돈을 팔고 락태하려고 그러는데요." “락태?” 륙십대의사는 안경을 춰올리며 경악했다. “어째? 내 밥통 떼우라고 그래요? 누가 마음대로 락태시켜준대요?” 나영은 지갑에서 500만원 지페 한묶음 꺼내 슬그머니 호주머니에 찔러주었다.   의사는 호주머니에서 돈묶음을 꺼내 보더니 도리머리를 저었다. “안돼요. 요따위로 락태? 어림도 없어.” 나영은 한묶음 더 꺼내 내밀었다. 황금이 흑사심이라고 의사는 돈묶음을 만지작거리더니 머리를 들었다. 그는 훌 일어나 문께로 가서 걸개를 절컥 걸었다. “이렇게 하면 어떨가요? 병원에선 락태 불가능하니깐요. 사사로이 락태시켜줄게요.” “돼요. 락태만 시켜주면 어데서든 돼요.” 나영은 흔쾌히 대답했다. 병원에 입원하면 자기 신분이 탈로날가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녀는 중국에서 파견돼 온 비밀경찰, 인터폴이 두려웠던 것이다.  의사는 천만원이나 되는 돈묶음, 나영의 몇달 로임묶음을 들가방에 스리슬쩍 챙겨넣고 명함을 건네주며 목소리를 낮춰 귀속말을 했다. “모텔을 잡으세요. 제가 간호원과 함께 수술장비를 가지고 모텔에 가서 락태시켜 주지요.” “네. 알았어요. 모텔 잡으면 전화 하겠어요.”   화는 눈섭 끝에서 떨어진다고 사달이 생길줄이야. 원래 음식점 한쪽 구들에서 자던 나영이 짐을 챙겨 모텔로 나가려고 하자 허보스는 퉁사발눈을 뚝 부릅떴다. “주방장을 내보냈는데 최아가씨 나가면 음식점은 어떻게 해?” 나영은 보름달 같은 얼굴에 보조개를 옴폭 파면서 살갑게 말했다. “허보스님, 제가 음식점에서 나가려는게 아닌데요.” “로임 낮다고 그러느는 건 아닌기여? 로임 올려주지. 500만원 줄테니께. 최아가씨, 제발 우리 음식점에 있으라고.”  나영은 자기를 최아가씨로 아는 허보수를 보고 볼우물을 파며 웃더니 불룩한 배를 내려다보면서 사정했다. “이보세요. 몸이 말째여서 한달만 쉬려고 그래요?” 그제야 허보스는 나영의 모져가는 배를 보고 놀랐다. “아니, 이때까지 몸이 그래 가지고 일했어. 미안해. 로임에 뽀나스까지 당장 300만원 줄게요.” “아니, 로임 때문이 아닌데요.” 나영은 일도 하지 못하겠으면서 허보수의 그 돈 받을 수 없어 되밀어주었다. 그녀는 그 길로 옷견지를 넣은 트렁크를 끌고 음식점에서 나와버렸다. “한달 후엔 꼭 음식점에 돌아오라구. 아, 이걸 어쩌지?” 허보스는 떠나가는 나영의 뒷모습을 멍해 바라보면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똑, 똑,똑. “누구?” “저예요. 최순영이.” 허보스는 밤중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와들짝 놀랐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아니, 최아가씨 아닌기여?” 허보스는 놀랍고도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문걸개를 절컥 벗기고 문을 활 열었다. “아니, 최아가씨 웬 일인기여? 어서 들어오라고.” 허보스는 너무 기뻐 입이 함박만해 나영의 손에서 트렁크를 받아쥐여 주르르 끌고 음식점 안방으로 들여갔다. “주말이 돼서 그런지요. 모텔방마다 꽉꽉 손님이 차서 되돌아왔어요.” “그래? 내 뭐랬어? 밤에 어델 간다고 그래? 우리 음식점에서 자면서 쉬면 안돼? 숙박료 낼 필요도 없고. 일 안해도 돼.” 허보스는 나영의 불룩한 배를 쓸어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ㅉㅉㅉ, 그 몸을 해가지고 밤중에 어디로 헤매? 우리 음식점에 눌러 있으면서 몸을 춰슬리라고. 일 안해도 돼. 그저 연길랭면하고 탕수육 어떻게 하는가 내한테 가르쳐주면 돼. 로임은 로임대로 줄 거야.” 허보스는 나영이 락태하려고 모텔에 나가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영은 허보스가 모르고 하는 말이라도 고마워 코마루가 시큼해날 지경이였다.  “그러죠. 밤 늦었는데요. 어서 집에 돌아가 쉬세요.” 그런데 그날 따라 허보스는 집에 돌아갈 궁리를 하지 않았다. “최아가씨, 미안합네다만. 고달픈대로 먼저 연길랭면 육수물 뭘로 만드는지 가르쳐 안줄래?” 허보스의 퉁사발눈에 간절함이 번뜩였다.  (령감태기, 고양이도 나무에 바라오르는 재간만은 사촌형 호랑이한테도 배워주지 않았어. 연길랭면 배우고나서 날 잘라버리면 어쩌지?) 나영은 희죽이 웃어보였다. “밤중인데요. 어서 집에 돌아가 쉬세요. 래일도 있잖아요?” 허보스는 한걸음 다가섰다. (이년이 육수물 비법을 알려주지 않고 랠 훌 가버리면 어쩌지?" 허보스는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안돼. 오늘 밤에 꼭 배워달라고.” 나영은 뒤걸음질치며 불길이 활활 타번지는 허보스 퉁사발눈을 쳐다보며 애원했다. “오늘 몸이 말째여서 좀 쉬여야겠어요. 래일 봅시다.” “안돼. 꼭 오늘 배워줘야 해.” 허보스는 와닥닥 달려들어 나영을 끌어안았다. “왜 이래요?” “육수물 안 배워줄텐가?” 허보스는 완전히 힘으로 협박해왔다. 나영은 힘으로는 허보수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허보스는 육수물전수를 떠나 나영의 탄력있는 몸까지 탐내는 것이 불 보듯이 빤했다.  (령감태기 이게 뭐야?) 나영은 자기를 끌어안은 령감태기 아래에서 자기 아랫배를 꾹꾹 찌르는 단단한 걸 발견했다. 아래를 피뜩 내려다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글쎄 칠순도 넘은 령감태기 바지 가랭이 두새에서 자그마한 우산 같은 것이 불끈 솟아오르지 않겠는가! “이걸 놔요. 육수물 비법 가르쳐주죠.” 허보스는 마지못해 나영의 두팔을 맥없이 스르르 풀어주었다. 나영은 주름이 쭉쭉 간 허보스 낯빤대기를 쏘아보며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늙은게 꽤나 정력이 왕성하구나. 색마구나.) 순간 그녀의 머리를 탁 치는 생각.  나영은 허보수를 보고 물었다. “허보수, 왜 이래요? 계속 연길랭면으로 돈 벌겠어요? 아님, 어쩌려는 건 가요? 허보스를 아빠처럼 믿었는데요. 진짜 이럴줄 몰랐어요.” 그제야 허보스는  머리를 숙이며 헤죽이 웃어보였다. (내 너무 했군 그려. 미안해.) 그러나 늦었다. 나영은 이 음식점에서 더는 못해 먹겠다는 걸 느끼고 결연히 트렁크를 잡고 문께로 나갔다. “순영이, 왜 이래?” “래일 보자요.” “엄동설한 밤중에 어델 간다고 그래? 여기서 잘 거지. 에이 참, ㅉㅉㅉ.” 그러나 나영은 트렁크를 끌고 기어이 눈보라 치는 바깥에 나갔다. “가더라도 어데 모텔에 드는지 알려주고 가라고.” “동대문 부근 모텔에 들어요. 한달 후에 꼭 돌아올테니깐요. 근심 말아요.” 나영은 돌아보며 한마디 던져주고는 눈덮인 골목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발길이 가는대로 정처없이 눈보라를 무릅쓰고 헤맸다. 그녀는 그래도 원래 들었던 모텔에 돌아가 김보스한테 사정해 카운터에서라도 자려고 했다. 2호선을 타려고 지하철역으로 맥없이 트렁크를 끌고 층계를 한발자욱한발자욱 내려갔다. 부지중 그녀의 눈에 지하철에 놓인 장의자가 띄였다. 아직 지하철이 들어올 때가 멀었다. 그녀는 맥없이 장의자에 걸터앉아 2호선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오가는 행인들은 이상한 눈길, 조소하는 눈길을 보냈다. 장의자에 걸터앉은 그녀의 눈앞에 피뜩 교보문고로 통한 종각역의 널다란 공간과 자의자가 떠올랐다. (옳다. 거기 가서 눈이나 좀 붙이고 래일 새벽에 모텔로 가자.) 그녀는 락태하자고 교수의사한테 몇달 뼈빠지게 빡빡 끌어모아 천만원이나 주고나니 호주머니사정이 위태로웠다. (2만원이 어디야. 한푼이라도 남아야지.) 그녀는 1호선을 갈아타고 종각역으로 달려가서 내렸다. 지하통로로 교보문고로 쪽으로 트렁크를 끌고 가니 장의자에는 벌써 숱한 로숙자들이 이리저리 삼대처럼 이리저리 쓰러져 있었다. 나영이 다가가자 텁석부리로숙자가 장의자에서 일어나 헤쭉거리면서 지껄여댔다. "아이구메. 새파란 색시 뭐야? 길바닥에 나앉았어?" 그 소리에 잠들었던 로숙자들이 하나 둘 일어났다. 때 덕지덕지한 로숙자들이 눈알이 희번득거렸다. 어떤 로숙자사내의 눈에서는 이상한 빛이 번뜩였다. 텁석부리는 손으로 장의자를 가리키면서 나영한테 손짓했다. "여기 오라구.난 여기 왕초야. 내 곁에서 자라구.누구도 감히 아가씰 건드리지 못해." 텁석부리는 자기 지위를 증명하려는듯이 주먹을 휘두르며 로숙자들을 한고패 빙 둘러보았다. 그러자 진짜 로숙자들은 질겁해 제자리에 들어누웠다. 그자들은 누워서 자는 척 하면서도 얼굴에 손을 얹고 손가락 사이로 말똥말똥 내다보면서 나영한테서 눈을 떼지 앉았다. 나영은 텁석부리 옆에 가지 않고 나무층계에 트렁크를 놓고 물앉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붙안고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내 처지가 왜 이렇게 됐지? 당당한 부관장이 한국에 와서 로숙자로 타락하다니? 진짜 죽기보다 못해.) "왜 내 곁에 안 와? 저기 왕초 장의자에 누워 자라고." 텁석부리가 어슬렁어슬렁 나영의 옆에 와 앉으면서 옆구리를 툭툭 건드렸다. 나영은 그자의 손을 탁 쳐버리면서 버럭 고함쳤다.     "피하지 못해?!" "우메- 성질 왜 써? 생각해 줘도 은정도 몰라?" "시끄러워! 저리 가!" 나영은 트렁크를 끌고 자리를 피했다. 뒤에서 텁석부리 왕초 욕설이 뒤잔등을 때렸다. "여기서 왕초 모르고 하루 밤이라도 잘 거 같아? 흥! 세상 물정도 모르는 년! 길바닥에 나가 얼어 뒤져라!" 나영은 가냘픈 어깨를 들먹이며 트렁크를 끌고 지하철역으로 되돌아갔다.그러나 자정이 넘어서 마지막지하철도 다 놓치고 말았다.  (이젠 모텔에도 가지 못하지. 어쩌지?) 그녀는 마지막지하철이 떠나간 어둠침침한 지하철텐넬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먹칠한듯한 지하철텐넬은 저승사자처럼 아구리를 쩍 벌리고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죽음의 블랙홀이 꼬리치며 그녀를 유린하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나영은 장의자에 맥없이 걸터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였다.갸냘픈 어깨를 들먹였다. 로숙자나 강도가 덮쳐들가봐 그녀는 온 밤 눈도 붙히지 못하고 장의자에 앉아 끄덕끄덕 자불면서 온 밤 팼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새벽 네시 됐다. (이제 두시간 푼히 기다리면 첫차가 올 거야.모텔에 가서 김보스한테 사정해보자.) 그 두시간이 두날, 아니, 두달이 되는 것 같았다. 지루한 시간이 천천히도 흘렀다… 나영은 첫차를 타고 김보스네 모텔로 달려갔다. 김보스는 호박골을 도리머리질하면서 어처구니없어 했다. "너거 중국인들 통 주책머리 없어. 모텔은 주말에 아침부터 방 치우라면 어째?한 열시 후에 오라구." 한국 모텔에선 주말에는 주숙객을 넣기보다 바람둥이들을 받아들여야 돈을 더 벌 수 있었다. 손님을 하나 넣어서야 극상해 2만 내지 3만원 벌었다. 하지만 바람둥이들은 극상해야 모텔방에서 한시간 벅닥거리다가 훌 나가버린다. 하루에 10여쌍 바람둥이를 받아넣으면 한방에서 십여만원을 벌 수 있지 않는가. 나영은 비난사정을 했다. "그럼 트렁크만이라도 먼저 두자요." "그래. 단골이니깐. 봐주는 거야." 김보수는 우멍한 눈으로 나영의 몸을 내리훑어보며 인심을 내는 척했다.그는 나영의 트렁크를 받아 위층 다락방에 올려다 놓았다. 나영이 한숨을 폴 내쉬면서 모텔에서 나가려고 돌아섰을 때였다. "잠간! 카운터를 잠간 서줄래? 나 집에 좀 일 있어 그래. 청소도 좀 하구.숙박비를 할인해줄게." "그러지요."   나영은 쾌히 대답했다. 보스는 새파란 나영이 카운터에 서 있으면 손님을 더 끌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나영은 어쨌든 김보수가 고마웠다. 보수가 간 후 나영은 카운터에 서서 손님들을 받고 나서 모텔 복도로부터 호텔방을 돌아가면서 청소를 말끔히 해놓았다. 바람둥이들이 어지럽혀놓고 간 침대보랑 벗겨 내다가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김보스는 부지런한 나영을 보고 저도 몰래 딱 짜개지는 전복처럼 입이 떡 벌어졌다. "최아가씨, 아예 우리 모텔에서 일하게나. 로임 후하게 줄게. 하루에 6만원씩 줄게." 나영은 코웃음이 나왔다. (허보수는 한달에 300만원이나 줬어.) 그러나 나영은 그절하지 않았다. 모텔에서 밥벌이라도 하면서 의사가 오길 기다리는 것이 나았던 것이다. 나영은 손님이 뜸하자 바깥에 나가 구석진 골목길에 가서 교수의사한테 핸드폰을 쳤다. 그런데 락태해주겠다던 교수의사가 해뜩 나누울줄이야. "비법적인 락태 못해유, 누굴 감옥살이 시키자고 그래?" "아니, 천만원이 드렸는데요. 이제 와서 그럼 어떡해요? 제가 모텔방을 잡았으니깐요. 모텔에 와서 락태시술해주세요. 아무도 모르는데 뭔 감옥 가요?" "안돼.절대 안돼." "그럼 천만원 돌려주세요." "어? 내 언제 천만원 받았어? 생사람 잡지 말라구." "뭐라구요?" 뚜뚜뚜 전화 끊겼다. 이무리 쳐도 받지 않았다.  나영은 그 길로 병원에 찾아갔다. 교수의사 허울을 쓴 그자는 말이빨을 드러내며 사기군의 원형을 드러냈다.  "비법으로 락태시술하면 잡아 가게 할테야. 넌 려권도 없어. 불법체류자야. 안 그럼 중국에서 굴러온 범죄자야. 처음부터 의심했어. 안 그럼 왜 려권을 들이대고 정상적으로 병을 보이지 않어?" 나영은 그 위협에 화들짝 놀랐다. 당장 인터폴들한테 잡혀갈 것만 같았다.그러나 마지막으로 량심에 호소했다. "시술 못해주겠으면 천만원 돌려줘요." "뭐? 당장 경찰에 신고하라는가?" 그제야 나영은 자기가 사기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을 번쩍 차렸다. "네놈은 제 명에 죽지 못해!' 나영은 물컵을 그놈한테 쥐여뿌리고 훌 일어나 도망치다 싶이 나와 달아나버렸다. "이년!이게" "보안! 보안!저년을 잡아요!" 나영이 병원에서 총총걸음쳐 나오는데 뒤에서 사기군의사놈의 고함소리 들렸다. 뒤이어 호르래기 소리 요란하고 발자욱소리 어지러이 다가왔다. 나영은 병원 문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도망쳤다……   똑,똑,똑. "누구세요?" “모텔 보슨데요. 숙박비 땜인데유.” 나영은 침대에서 부시시 일어나 문께로 다가갔다. 그녀는 문꼬리를 잡고 나직이 물었다. “아니, 어제 오늘 숙박료까지 내잖았는가요?” “참, 주말엔 5천원씩 더 내야는데요. 깜빡 잊었나.” “네- 좀 기다려요.” 나영은 호주머니에 단돈 5만원도 없었다. 전날에 청소공 아줌마가 급한 일이 있어 출근하지 못한다고 급보가 왔다. 그때 나영이 샘물 가지러 카운터 쪽으로 나왔다. 보수는 나영을 보고 청소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나영은 모텔 방을 두루 청소해 주고 카운터도 서주고 6만원을 손에 쥐였다. 그 단돈 6만원을 받은 자리에서 보수한테 사흘 숙박로 되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돈이 없어 저녁도 굶고 있었다. 그러나 보스 앞에서 빈 호주머니 사정을 번져보이기 싫었다. 나영은 지갑을 들춰 500원 짜리, 100원 짜리 동전을 주어 겨우 5천원을 모아쥐였다. 그녀는 문을 열고 머리를 수깃한 채 옆전을 보스한테 내밀었다. 보스는 한심해 입을 딱 벌리면서 나영의 초췌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미안해요,” 나영은 한마디 입귀로 쓸쓸히 흘러내며 문을 닫으려고 했다. “잠간!” 보스는 순간 동정심에서인가, 아니면 웬지 스르르 맥없이 닫겨지는 문을 손으로 턱 막았다, “이걸 써요.” 보스는 크게나 인심 쓰는 척하면서 옆전을 되내밀었다. 쿵! 나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을 닫아버렸다. 어둠의 주둥이에서 공포가 튕겨나와 모텔방 구석구석에 돌멩이질을 한다. 굶주림의 여백에 검푸른 절망의 파도가 스물스물 기습해온다. 하영은 침대에 쿵 맥없이 쓰러졌다. 눈 앞에서 불찌가 탁탁 튕겼다. 눈앞이 먹칠한듯이 캄캄했다. 순간, 까막나라로 된 언덕에 희죽거리는 우멍눈이 떠올랐다. 반달 같은 번대머리에 머리카락이 꿋꿋이 살궈 곤두세우며 우멍눈을 부라린다. “더러운 년, 날 배신하고 도망가다니. 퉤, 거지 같은 꼬락서니 보기 좋구나.” “저리 가! 음흉한 놈, 네놈은 제명에 죽지 못해.” “뭐라고? 배은망덕한 년, 내하구 함께 있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이제야 알만 하지? 히히히. 먹을 근심, 주숙근심 할 필요없었지. 허나 넌 지금 저녁도 굶었잖아?” 나영은 몸 위에 달려드는 번대머리를 발길로 차버리면서 반항했다. “음험한 놈, 날 심계국에 고발하지 않았더라면 내 초상집 개 처지 됐겠어? 네놈이 날마다 한동이씩 싸넣지 않았더라면 배때기에 더러운 씨가 꿈틀거리겠어?” “뭐? 뭐? 임신했어? 내 애를 뱃어? 애를 잘 키워라. 건 우리 참사랑의 열매야.” “퉤!” 나영은 건가래를 번대머리에 뱉었다. “구역질나는 소릴 작작 쳐라! 바람둥이를 이 세상에 하나 더 만들라고? 날 사랑했다고? 노리개로  질탕하게 데리고 놀았지? 한많은 죄악의 씨를 가차없이 썩뚝 잘라 버릴테다!” “그러지 마! 어떻게 만든 애냐? 미국 로스안젤레스에서 흑인강도한테서 널 구한 구명은혜를 생각해서라도 그러지 마! 애는 내가 감옥에서 나가면 키울테니!” 그때 웬 애 울음소리 귀전에 들렸다. 나영은 안간힘을 써서 눈을 떴다.  (환각인가?) 더 살고픈 생각이 꼬물만치도 없어진다.  (훌 죽어버리면 모든게 끊날게 아닌가? 날마다 나포될 가봐 살피면서 살 필요없다. 교수의사한테 돈을 찔러주면서 락태할 필요도 없어. 배고픈 배를 채우려고 음식점에 가서 색마보스 눈치를 본면서 릉욕당할 일도 없잖은가! 한국은 우리 조선족이 살 곳이 아니야. 이 세상에 믿을게 하나도 없어. ) 그때 전화벨소리 울렸다. 남편 철석한테서 온 전화였다. 순간 성림이 보고 싶어진다. 마지막으로 성림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초라한 모습으로 남편과 성림을 볼 면목이 없었다. “나는 성림의 엄마로 살 면목이 없어. 성림아, 나는 나쁜 엄마야. 널 버리고 색마한테 미쳐서 가정도 자식도 다 버렸어. 색마한테 사기당해 미국, 일본, 한국까지 따라 다녔어. 여보, 난 나쁜 년이야. 성욕에 눈이 어두워 당신을 배신하고 색마의 씨까지 배에 심었어. 천벌맞아 싼 년이야. 색마는 날 해친 원쑤야. 원쑤놈의 새끼까지 가진 이 년을 절대 용서하지 말라구.” 나영은 침대머리에 놓인 물컵을 들어 쭉 마시고 땅바닥에 메쳤다. 탕! 유리파편이 사처로 튕겼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친구 박지영한테서 온 전화였다. “지영아, 성림아, 모든게 끝났어. 미안해. 래생에 다시 모자간으로, 친구로 보내자.” 나영은 천천히 일어나 핸드폰을 꺼버리고 날카로운 유리쪼각을 주어들었다. 맥없이 희미한 포도눈으로 유리쪼각의 선뜩선뜩한 날을 쳐다보았다.그녀는 주저없이 유리쪼각 날로 손목의 혈관을 썩썩 벴다. 씨뻘건 피가 주르르 흘려내렸다. 그녀는 침대에 스르르 쓸어졌다. 눈앞이 점점 어두워졌다. 포도눈동자는 맥없이 희미해지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눈 앞에는 보기도 싫은 음식점 허보스의 퀭한 퉁사발눈, 사기군의사의 안경낀 외까풀눈이 떠올랐다. 그녀는 보기도 싫어 희미해지는 포도눈을 스르르 감아버렸다. 순간 편안하고 아늑한 염라전으로 훨훨 나래쳐가는 감을 느꼈다. 그때 배에서 발길질을 하는 감이 느껴졌다. (다 네놈 때문이야. 네놈새끼는 죄악의 쓴 열매야. 죽어야 돼.) 나영은 눈을 번쩍 뜨고 유리쪼각을 찾아들었다. 속옷을 스르르 내리우고 유리쪼각으로 불룩한 아랫배를 마구 찌르고 쭉쭉 내리그었다. "앗!" 모텔방에선 비명소리 아츠럽게 울렸다. 신음소리 간간히 들렸다. 나영의 손목과 아랫배에서 시뻘건 피가 줄줄 흘러 침대보를 적시며 비린내를 물씬 풍겼다.  김보스는 이상한 눈길을 나영의 방 쪽으로 보냈다. 그러나 인차 도리머리를 저었다. (사람 일은 몰라.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서 엉덩이로 호박씨를 깐다고 하잖아? 혹시 모텔 방에 군서방을 치워두고 즐기고 있는지 누가 알아?) ...   
340    대하소설 졸혼 제5권 (66)김장혁 댓글:  조회:1241  추천:1  2023-03-16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76. 흐느끼는 포도눈동자 거머칙칙한 호텔방에서 녀인의 애교에찬 간드러진 목소리가 음란하게 추파의 꼬리를 친다. “잠간, 좀 천천히요.“ ”참지 못하겠는 걸, ㅎㅎ. 어떠렇게 해?” 아가씨의 교태를 부리는 소리 메스꺼울 정도였다. “왜 그리 급한가요? 좀 천천히 살뜰하게 굴어요?제가 그렇게 매력 있는가요?” “그래. 이뻐서 죽겠어.” “어데 이쁜가요?" "어데나 다 그냥 이뻐." "호호호.저는 굶은 암탉인데요. 어서 죽여줘요.” “그래. 어디 죽어봐.” 사내의 거친 숨소리가 모텔방의 구석구석을 누빈다. “천천히, 그치. 좀 살뜰하게 잘해 봐요.” “알았다니께. 좀 가만 있으라고. 자꾸 움직이지 말고.” 젊은 녀인의 애교섞인 신음소리, 흐느낌소리 모텔 방 구석구석에 도사린 당나귀 귀청을 때렸다. 나영은 바람둥이 년놈들이 수작을 부리는 소리 듣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에이구, 개쌍년들.) 나영은 시끄러워서 텔레비죤 보름을 높이 틀어놓았다. 좀 덜 듣기는 것 같았지만 의연희 개 죽을 먹는 쩝쩝 소리에 개짖는 소리로, 당나귀 우는 소리로 다 들렸다.   주말인지라 초저녁부터 외박하는 바람둥이들이 모텔에 문턱이 다슬게 쓸어들어왔다. 년놈들은 모텔방을 한칸씩 차지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다른 방의 사람들이 다 듣게 떠들며 난장판을 벌였다. 나영은 시끄러워 이불을 들쓰고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침대 하나 겨우 놓을 비좁은 모텔방에는 공기가 희박했다. 량미간을 꽉 조일만큼 공간의 압박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나영은 돈을 한푼이라도 남으려고 학원이 다닥다닥 들어앉은 골목에서 학원생들이 드는 간이방에 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간고한대로 견디면서 이 쪽방촌 집 같은 찌그러진 방에 두렁허리처럼 몸을 기탁해야만 했다. 그런데 오늘 따라 바람둥이들이 쓸어들어 시끄러워 못견딜 지경이였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처경에 다 이르게 됐지? 전람관에서 법을 지키면서 일반해설원으로 살았더라면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었겠는가? 다 그놈 허영심 때문이야. 다 그 놈의 탐욕 때문이야. 단위 돈을 탐오해서 일전한푼 쓰지도 못하고 단단히 곤혹을 치르고 있짢아? 이럴줄 알았더라면 왜 단위 돈에 손을 댔겠어? 다 그놈 최정호, 그놈 색마 때문이야. 그놈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잖아. 그 놈은 나를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고 구해주는 척 하면서 날 물어먹었잖아? 그놈은 사처로 끌고 다니면서 내 몸만 유린했잖아? 어쩜 능구렁이 같은 그 놈의 까만 속내를 보지 못하고 속혔지? 진짜 사기당했잖아. 오-우- 바보야, 멍청이야.) 나영은 생각하면 할수록 어처구니 없었다. 그녀는 부러오르는 배를 매만지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 죄악의 열매야. 그놈 새끼, 날마다 한동이씩 싸넣던게 이게 뭔가? 그 개놈의 새끼가 내 뱃속에서 꿈틀거려?” 이젠 뱃속의 애가 드문드문 꿈틀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뱃속의 죄악에 찬 발버둥질 치는 애를 감지하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애를 지워버리자고 해도 돈이 있어야 지우지. 또 한국에선 마음대로 락태하지 못하잖는가?) 나영은 기실 애를 지울 돈을 벌려고 음식으로 가서 일한 적이 있었다. 음식점 허보스는 뭐나 큼직큼직하고 우둔하게 생긴 70대 령감이였다. 특별히 소머리처럼 머리통이 크고 뜨물에 빠진 돼지눈깔처럼 쌍까풀눈이 퉁사발 같이 컸다.  허보수는 30대 초반의 나영이 음식점에 찾아간 첫날 만면에 춘풍이 돼 즉석에서 받아들였다. 코로나도 심하게 돌아 음식점이 잘 되지 않아 일군 하나 받자 해도 얻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런 코로나 비상시기에 꽃처럼 이쁘고 젊은 녀성이 제발로 음식점에 찾아 오지 않았겠는가. (이게 웬 떡이냐? 호박이 넝쿨채로 떨어지지 않았어?) 허보수는 달걀침을 꼴깍 넘기면서 퉁사발눈으로 퀭해 나영의 탄력있는 풍만한 몸매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나영은 허보수의 게슴츠레한 눈길이 곱진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생존을 위해선 그런 걸 가릴 새 없었다. (늙은 령감이 어쩔라고?) 나영은 늙은 령감이라고 그리 경계를 하지 않았다.  음식점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단골손님들은 코로나 심한 때인데도 손님들이 드문드문 들어왔다.  나영은 웃는 얼굴로 손님을 반갑게 맞았다. “어서 들어오세요. 반갑습니다.” 손님들은 그녀의 말투를 보고 도리머리질했다. “중국인 아닌기여?" "아니, 조선족이예요.” “그래?” 손님들은 허보스한테 엄지를 내두르며 지껄여댔다. “대박, 허보수 어디서 저렇게 이쁘고 새파란 색시 얻어왔어? 밥맛이 참 좋을 거 같애.” 허보스는 어깨 으쓱해 맞장구를 쳤다. “허허허. 그래, 그럼 자주 와서 소주나 들라고.” 손님들은 이쁜 나영한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허보스는 손님들의 눈치를 제꺽 채고 나영을 한쪽으로 불러갔다. “순영이, 손님들한테 소주 한잔씩만 돌리라고. 단골손님들이야. 좀 도와달라고.” 나영은 손님도 별로 없지 해 그만한 건 해야겠다고 여겼다. “네. 알았어요.” 그녀는 보수가 따주는 소주 술병을 들고 손님 상에 다가갔다. “아이구메. 선녀가 왔시우.” 손님들은 나영을 쳐다보며 야단쳤다. “반갑습니다. 우리 음식점에 찾아오셔서 고마워요. 제가 소주 한잔 부어올리죠.” “그래, 그래.” 손님들은 술잔을 쳐들며 머리를 끄덕였다. 나영은 머리를 숙이며 깎듯이 인사하고 소주잔마다 돌아가면서 술을 찰찰 넘치게 부어드렸다. “맛있게 드세요.” 손님들은 나영을 쳐다보며 혀끝을 끌끌 찼다. “서울말씨 좀 서투르긴 해도 말소리 얼마나 부드럽고 이뻐.”  “참 이뻐.” “어, 술맛 좋다.” 손님들은 나영한테도 한잔 부어주고 맛나게 술을 들었다. 이 음식점에 미녀 나졌다는 소문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날따라 늘어났다.  같은 값에 분홍치마라고 이쁜 색시 구경도 하고 선녀 올리는 술맛이 좋았던 것이다. 그러자 허보수는 두툼한 입술이 함박만큼 떡 벌어졌다. 허보스는 나영의 로임을 50만원 올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나영은 내내 술집 아가씨처럼 사내들한테 술이나 따르고 웃음 팔고 미모 팔기 싫었다. 고민 끝에 그녀는 허보수를 찾았다. “보스님, 중국의 溜肉段 하고 연길랭면 해서 손님 상에 올려 볼가요?” 허보스는 커다란 머리통에 온통 의아한 표정이 번져갔다. “뭔데?” “여기서 말하는 탕수육 말인데요. 중국 특색이 나는 료리와 랭면 하면 손님을 끌 거 같은데요?” “그래? 중국 탕수육 할줄 알아?” “네. 제가 锅包肉 좋아해서 집에서도 자주 해 먹었어요. 랭면도 서울 랭면보다 더 맛있게 할 자신이 있어요.” 나영은 주방에 들어가 몸을 감출 예산이였다. 필경 손님들을 맞아야 하는 것이 싫었다. 혹시 중국에서 파견된 비밀경찰 성호나 불쑥 나타날 것 같은 불길한 감이 들었던 것이다. 비록 주방도 손님상에서 환히 들여다보였지만 필경 다른 같이기에  손님들과 등지고 일하기에 상대적으로 얼굴이 덜 들어날 거 같았다.   그런 속내를 모르고 허보수는 나영을 붙잡아두려고 그녀의 의향에 머리를 끄덕였다. “헛일 삼아 해보지.” 나영은 주방에 들어가 팔소매를 걷어부치고 나섰다. 한국 주방장아줌마는 코웃음쳤다. (지가 뭘 먹게 할라고?) 주방장아줌마는 새파란 색시의 기름때도 묻혀보지 않은 것 같은 이쁜 손을 보면서 두고 보자고 흥흥거렸다. “중국 걸배가 이젠 주방까지 차지하려고 들어?” 그러나 나영은 말대구를 하지 않고 주방에서 이것 저것 들춰내 육수물을 맞추고 랭면도 꾹꾹 눌렀다.뒤이어 기름을 가마에 붙고 탕수육도 구워냈다. "아이구메. 저 숱한 기름 아까워 죽겠다." 주방아줌마는 탕수육을 구워내면서 가마에 부어넣은 기름을 보고 소리쳤다. 그러나 나영은 탕수육을 구워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참 후 나영이 탕수육접시와 연길랭면국수 그릇을 들고 나와 밥상에 올렸다. “허보스님, 잡숴보세요.” “그래.” 허보스는 저가락을 들고 탕수육을 한점 집어 너컬뜨린 입에 넣고 씹어보았다. 바삭바삭하고 쫄깃쫄깃해 맛있었다. “아, 맛있어.” 국수를 한저가락 집에 입에 넣고 씹어보니 별 맛이였다. 육수물도 후루룩 마셔보니 시원했다. “손님을 끌 거 같아.” 아니나 다를가.  그날 점심에 첫손님이 들어와 자리에 앉자마자 벽에 새로 건 메뉴판을 쳐다보았다. “이 음식점에서 연길랭면과 탕수육을 하는가요?” “네.” 나영은 주방에서 기대에 찬 눈길로 그 손님을 내다보았다. 피뜩 보니 조선족이 돼 보였다.  (아니, 어데서 딱 보던 같은데. 누구던가?) “연길랭면에 탕수육을 주세요. 오랜만에 고향 랭면을 먹게 됐군.” “네.” 허보수는 기뻐 어쩔줄 몰라 허리까지 꿉썩거렸다. 나영은 먼저 연길랭면을 한그릇 해서 손수 들고 나와 손님상에 올렸다. “맛있게 드세요.” “네. 맛있게 먹겠습니다.” 손님은 나영을 쳐다보다가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입을 딱 벌렸다. “조선족 같구만.”  “네. 그래요.”  “그러게 연길랭면을 다 눌러 내오지. 대림에만 연길랭면이 있는가 했더니 여기서도 하는구만.” 그 손님은 연길랭면을 후룩후룩 맛있게 들었다. 뒤이어 나온 탕수욕접시도 훌딱 비워버렸다. “아,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손님은 허보스와 나영을 보고 연신 치하했다. “오랜만에 고향 음식을 먹으니 얼마나 맛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후에 그 손님은 다른 손님들도 몇몇 데리고 자주 왔다. 나영은 보수와 토론하고 그 단골손님한테 소주 한병을 장려로 올리기로 했다. 나영은 용기를 내 손수 소주병을 들고 나가 그 손님과 데리고 온 손님들한테 한잔씩 돌렸다. “고향 분들을 여기서 보니 기뻐요. 우리 음식점 단골인데요. 소주를 장려로 올립니다. 맛있게 드세요.” “아가씨도 한잔 드세요.” 단골손님은 소주병을 들고 우쭐 일어났다. 나영은 마다하지 않고 소주잔을 내밀었다. “아가씨, 이 음식점에 오면 고향 음식점에 온 거 같아 기분 좋소.” “연길랭면과 탕수육 정말 맛있소.” 나영은 치하에 기분 나서 술잔을 내밀었다. “자, 한잔 드세요. 자주 찾아오세요.” “그래, 찾아오지. 찾아오구 말구. 허허허.” “음식 맛 좋고 기분 좋아.” 손님들은 진짜 단골이 됐다. 후에 알고 보니 단골손님은 모 신문사 기자 종호라고 했다. 그는 조선족항일렬사이야기 책을 낼 출판비용을 벌려고 건설현장에 가서 고된 일을 한다고 하지 않겠는가. 사실, 종호는 어머니 림종 전에 주사 한대마저 놓아주지 않은 불효악처 류려평과 헤어지고 퇴직하자마자 한국에 훌 나와버렸던 것이다. 그는 민족의 얼을 살리려고 항일렬사들의 이야기와 항일영웅들을 두루 취재해 이번엔 두번째 실화집을 내려고 했다. 그는 출판비용을 마련하려고 건설현지에도 가보고 병원에 가서 간병원도 하면서 별의별 고생을 다 하고 있었다.    종호는 나영한테 명함을 주기까지 했다. "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 주오." "네. 고마워요."  날이 갈수록 한국이란 살벌한 세상에서 나영은 오랜 벗을 만난 것처럼 종호한테 친근감을 느끼게 되였다. 한국 손님들도 맛이 독특한 연길랭면과 탕수육을 먹으려고 줄줄이 찾아왔다.  “연길랭면 평양랭면보다 맛이 더 있어.” “그래, 소고기도 얼마나 많이 나와.” 손님들 치하가 대단했다. 나중에 손님들이 어찌나 많이 찾아오는지 손님상이 모자라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판이 됐다. 코로나 세월에 다른 음식점은 손님이 없어 문을 닫을 지경인데 이 음식점은 나영의 연길랭면과 탕수육 때문에 날따라 영업이 흥성해졌다.   허보스는 영업이 안되는 옆집 음식점도 임대맡아 손님을 모실 지경이였다. 허보스는 입이 함박만해 나영의 손을 덥썩 잡았다. “최아가씨, 우리 음식점을 살렸어. 한달에 350만씩 줄테니 우리 음식점 주방장 맡게나.” 나영은 한국 주방장아줌마 눈치를 흘끔 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네. 그러지요.” 한국 주방장 아줌마는 살진 눈둔덕에 질투의 불빛이 번쩍였다.   탕!  쟁그랑!  “나 안해! 굶어죽어도 중국 걸배 밑어서 길 거 같애?!” 한국 주방장 아줌마가 국자를 가마에 둘러메치며 행악질했다. “안하겠으면 말앗!” 허보수도 퉁사발눈을 무섭게 희번뜩이며 으르렁거렸다, “갈라면 가라구!” 한국 주방아줌마는 제쪽에서 더 흥흥거렸다. “중국 년 썼다가 후회하지 말락꼬. 흥!” 나영이 주방에 들어앉자 손님은 점점 늘어만 갔다. 허보스는 일손이 딸려서 50대 중반 한국 아줌마를 하나 더 썼다. 나영은 연길냉면에 탕수육, 두루무침 등 중국 료리와 조선족 특색채를 두루 무쳐냈다. 두루무침은 돼지고기나 소고기에 오이, 당근 등을 썰어 두루 무쳤다고 해 채 이름도 두르무침이라고 불렀다. 손님들은 탕수육에 두루무침 냉채를 먹으니 느끼한 감도 없고 담백해 맛있다고 혀끝이 다슬 지경으로 치하했다. 허보스는 영업액이 하루에도 천만원도 넘어 오르자 밭고랑 같던 주름살이 쫙 펴지고 입이 함박만해졌다. 다 싹아 싯누런 이빨이 다 들어나게 헐헐거리며 나영을 혀끝이 다슬 지경으로 치하했다. 진짜 나영을 비단보에 싸서 업고 다닐 지경이라고나 할가? 그는 나영한테 뽀나스로 100만원이나 더 쥐워주었다. “이제 몇달만 일하면 락태할 돈이야 벌겠지.” 나영은 줄줄이 들어서는 숱한 손님들의 음식을 짓느라고 온몸이 해나른해 질 지경으로 혼자 주방에서 뺑뺑 맴돌아쳤다. 손목이 다 아플 지경이였다. 그런데 허보수 저 너절한 모양 보라. 그는 뒤에서 이상한 빛이 번뜩이는 음충한 눈길로 나영의 펑퍼지만 엉덩이를 쳐다보며 달걀침을 꼴깍 삼켰다. ㅋㅋㅋ
339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 김만석 댓글:  조회:1348  추천:0  2023-02-27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                                김만석                                1         삼꽃거리 정선식당 주인 정선이가 심장병이 도져 또다시 드러누웠다. 벌써 1주일 째다.       식당 복무원 아가씨가 문을 살며시 열고 정선이가 누워있는 복무원 휴식실을 들여다 본다. 정선이는 녀성 치고 키도 크고 몸집도 풍만한 축이였다. 얼굴도 두리 넙죽하고 눈도 커서 얼핏보다도 어리무던한 40대 녀성으로 안겨왔다.   《아줌마》 《엉?》 《정말 별란 사람 다 보겠어요. 》 《어떤 사람? 》 《글쎄 아줌마를 찾아왔다던 사람이 아줌마 앓는다고 하니 도루 가지 않겠습니까. 》 《남자? 여자? 》 《녀잔데 어떤 젊은 총각을 데리구…》 《나이는 얼마나 돼 보이구? 》 《쉰살 될가? 》 《누굴가? 》 정선이는 복무원 아가씨를 내보내고 아예 도리머리를 하면서 더는 다시 생각하지 않기로 작심했다. 외톨이로 살아오는 정선이에게는 그 누가 애잡짤하게 생각하며 찾아줄 사람은 따로 없었던 것이다. 정선이는 커다란 눈을 멍하니 뜨고 천정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애꿎은 눈물만 흘리고 있다. 매번 심장병이 도질 때면 이젠 습관이나 된 듯 저승으로 가신 아버지도 그리웁고 정선이네 오누이를 버리고 떠나간 어머니도 그리웁고 배 다르지만 시집간 혁화언니도 그리웁기만 했다. 아버지는 1952년도에 고향마을의 부농의 딸과 결혼하여 영옥이라는 딸까지 보았다. 그러던 아버니가 연길에 전근하여 입당하게 되면서 당조직의 제의와 동의를 거쳐 부농의 딸인 그 녀성과 합법적인 리혼을 하였던 것이다. 그후 아버지는 가무단 무용 배우와 결혼했는데 그래서 태어난 것이 정선이와 정철이였다. 정선이가 2살 나던 해에 농촌에서 살던 8살에 나는 영옥이가 아버지를 찾아오게 되었다. 정선이 한테는 난데없던 언니가 생기게 된셈이였다. 날마다 공연을 다니는 어머니다 보니 집에 붙어 있는 날이 한달 치고 거퍼 2~3일도 되지 않았다. 이런 형편에서 언니가 나타났으니 경선이는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언니 뒤를 졸졸 따라 다니던 일들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얼마나 즐거운 동년이였던가… 그런데 그런 재미나는 일들을 쓸어내치고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문화대혁명 때 일들이 꿈틀거리며  눈앞에 느닷없이 펼쳐지였다. 대비판 투쟁대회,  11살에 난 정선이는 동생 정철이와 함께 아버지네 직장으로 갔다. 정선이는 자기의 두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앞가슴에 주자파 라는 패쪽을 건 저 사람이, 저 사람이 누구냐 그것은 아버지, 아버지였다. 살벌한 기운이 차고 넘치는 장소, 아츠러운 투쟁구호소리가 소름이 끼치는 장소! 그런데 난데없던 키 자그마한 농촌 녀성이 씽 달려 나가더니 코신짝을 벗어들고 아버지의 뺨을 후려치는것이였다. 《이놈이, 이놈이 이란구 대류망이꾸마! 새끼까지 있어가지구 나를 차버린 놈이꾸마. 이 개같은 자식! 퉤, 더럽다, 더러워! 이런 날이 올 줄을 몰랐지? 》 그녀는 미쳐 날뛰였다. 정선이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 못하고 그저 오돌오돌 떨기만 하였다. 아버지는 바위처럼 끄떡 잖고 우뚝 서서 그 부리부리한 눈에 불길을 펄펄 날리며 그 녀성을 뚫어져라 쏴보기만 하였다. 세상 모르는 정철이는 이를 부드득 갈며 씩씩거렸다. 정선이는 정철이를 꽈악 그러안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 어디선가 새된구호 선창소리가 들렸다. 《주자파 정경호를 타도하자! 》 《대류망 정경호를 타도하자! 》   군중들의 제창소리는 하늘 땅을 진감했다. 그런데 저 구호를 부르는 사람은 또 누군가? 정선이는 된 방망이에 한매 호되게 얻어 맞은 듯 정신이 아찔했다. 도무지 알고도 모를 일이였다. 그것은 17살에 나는 영옥언니였다. 아니 영옥이가 저럴 수가 있을가? 아무리 두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영옥언니가 틀림없었다. 영옥이…영옥이… 오늘 따라 어쩐일인지 그런 언니라도 보고싶은 정선이였다. 너무나 외롭고 너무나 고독하고 너무나 쓸쓸한 정선이였으니깐… 정선이가 40살에 나니 언니두 인제 46살 되였을 것이다. 지금은 그냥 훈춘에서 어떻게 살고있는지?                           2 《따르릉… 》 전화벨 소리가 울리였다. 한번 두 번 세 번… 정선이는 까딱 움직이지 않고 그냥 누운 그대로이다. 정선이는 전화벨 소리를 들었는지 말았는지… 하도 지꿎게 울리는 전화여서 정선이는 마지 못해 송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 《말씀하세요. 》 《저…아재… 》 《아재라니? 》 《저… 조카입니다.》 《조카라니? 》 《훈춘 혁화의 아들, 아니 영옥의 아들…》 《어머나! 》 정선이는 한쪽으로 기우듬히 쓰러졌다. 이게 도대체 웬 일인가? 보지도 못한 조카가 어찌하여 나한테 전화까지 한단 말인가? 뭐 혁화의 아들? 조카? 장장 24년간 꼬물도 소식이 없던 언니가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서 아들까지 내세워 이렇게 전화를 거는걸가? 더는 듣고 싶지가 않은 전화였다. 정선이는 송수화기를 전화기 우에 덜컥 올려 놓았다. 또다시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정선의 눈앞에는 수만개의 의문부호들이 둥둥 떠올랐다. 지꿎게 들려오는 전화벨소리, 정선이는 짜증나서 이마를 찡그리고 송수화기를 다시 들었다. 《아잽니까? 저 영철입니다. 아마 아재는 이 조카를 보지도 못했으니 잘 모르실겁니다…》 《….》 《전화 듣고 계십니까? 아재 제발 빕니다. 》 《그래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아재 옳구만! 아재, 엄마와 난 1주일 전에두 연길에 왔댔슴다. 그 때 아재네 식당을 겨우 찾았댔슴다.》 《우리 식당은 어떻게 알구? 》 《예, 그건 지난번 연변일보에 아재 사적이 났습니다. 자치주 치부모범이라구! 그날 나는 엄마를 모시구 아재네 식당 앞까지 찾아 갔댔슴다. 그런데 아제가 앓는다니… 엄만 빈손으루 어떻게 들어 가냐면서… 그래서 들어 가지 못했슴다. 그 때 아제네 식당 간판에 있는 전화번호를 베껴 가지구 왔슴다. 아재, 지금 듣고 있슴까?》 《…》 《아재, 울엄마 급성당뇨병에 걸려 이젠  막 위급함다. 지금 연변병원 관찰실에 있는데 아재, 정말 미안함다. 엄마가 아재한테 알려선 안된다는 것두… 아재, 난 렴치를 불구하구 이렇게 엄마 몰래 가만히 전화 겁니다. 지번에 올 땐 소를 팔구 이번엔 집까지 팔아가지구 왔는데 그런데두 돈은 판판 부족이니… 흐윽…  아재 제발 울 엄마를  살려줍소…》 정선이는 송수화기를 땅에 탕! 떨어뜨린 채 맥을 버리고 습관대로 두눈을 지긋이 감았다. 어쩌면 이다지도 모진 인간일가? 어떤 때는 형제관계를 칼로 썩뚝 베이버리고 아닌 보살하던 사람이 오늘은 제 아들까지 내세워 아재요 뭐요 하는 영옥이야말로 세상에 더없는 밉살스러운 인간으로 안겨왔다. 정말이였다. 영옥이처럼 매정하고 악착하고 몰염치한 인간은 이 세상에 더는 없을 것이다. 1970년 이른 봄 ‘검은굴’에 갇혀 너무 고생하던 끝에 아버지는 간염으로 중하여 집에 나와 치료하게 되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계급계선을 나눈다면서 언녕 달아난지도 오래였다. 그래서 15살에 나는 정선이가 아버지의 병시중을 도맡아 하는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영옥언니가 웬 낯모를 청년을 데리고 와서 병마에 시달려 몸져누운 아버지 앞에서 행패를 부리는것이였다. 《그래두 이게 아버지인가요? 주자파, 반혁명, 대류망! 이름도 듣기 싫어요. 난 아버지를 반란해요. 난 이 가정을 반란해요.난 내 이름 석자도 반란해요. 난 이제부터 혁화(革花),혁명의 꽃 혁화임다.》 그리고선 아버지한테 더 바싹 다가들며 악청 높이 웨쳐댔다. 《우린 결혼 할텝니다. 이 잘난 반혁명 집에선 전 못 살겠어요. 첫날 옷과 이부자리를 당장 해내요! 》 《이 쌍년아, 네 눈에는 이 죽어가는 애비가 안 보여?》 누워있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벽력같이 소리쳤다. 《흥, 그러면 겁나 할줄 알아요? 우리는 혁명반란파  맹장이에요. 그래, 말해봐요. 해주겠는가, 못해주겠는가? 》 그때 밖에 나갔다가 들어온 정철이는 13살이지만 오가는 말에서 그 기미를 인차 알아채고 대뜸 성난 사자가 되였다. 《나갓! 당장 못 나가겠어?》 정철이는 씽 달려가 식칼을 집어들었다. 정선이는 몸부림치는 동생을 끌어안고 모지름을 썼다. 《반혁명 새끼 따긴 따구나. 야, 그래 누날 죽일테니? 죽이겠음 어디 죽여 봐. 어디서 새끼 반혁명 같은게…》 그러면서도 겁을 집어먹은 영옥이네는 슬슬 뒤걸음을 치다가 문을 차고 꽁무니를 내뺐다. 정철이는 자기를 끌어안은 정선이를 뿌리치고 영옥이네를 따라 나섰다. 그는 돌멩이를 뿌리며 쫓아갔다. 《쌍간나새끼, 죽인다 죽여! 》 아, 너무도 끔찍한 사실, 너무나도 진실한 이야기다! 그러던 혁화가 자기는 차마 말을 못하고 자기의 아들을 내세워 전화에 대고 지금도 뭐라고 씨부렁대고 있다. ‘뭐 나한테 빈다구? 급성당뇨병? 마지막으로 살려달라고?’정선이의 귀에는 영철이가 말하던 중점단어들이 옹골차게 들려왔다. 어쩌면 그런 말들이 아무런 거침없이 목구멍으로 술술 튀여 나올가? 지나간 일들을 잊지 않았다면, 아니 최저 한도로 인간이라면 그 에미에 그 아들이라도 도저히 그럴 수는 없겠는데… 그래도 아재란다. 아니 언니란다. 언니? 그래 언니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같은 피줄을 함께 타고난 자매들끼리 하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혁화는 아버지의 딸이 옳은가? 아버지와 결혼한 그 농촌 녀성이 낳았으니까 아버지의 딸이 옳기는 옳겠지. 그러면 영옥의 몸에도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말이 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더니… 기딱찬 현실이다. 그러니 영옥이는 어쨌든 나의 언니, 정철의 누나다… 정선이는 악몽에서 깨여난 듯 화뜰 놀라기까지 했다. 모질고 모진 인연이 정선이를 끄당긴다. 아버지는 이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달아나고 이제 남은것이란 아버지의 피줄을 이어받은 정철이와 나, 그리고 영옥언니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니 정선의 꽁꽁 얼었던 가슴은 금시 물에 젖은 솜이 되여 버렸다. 어릴 때 자기의 손을 잡고 다니던 언니의 그 부드러운 손이 따뜻이 느끼여 왔다. 정선이는 저도 모르는 사이 윤기간의 정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정선이는 누운대로 팔을 뻗쳐 송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정철의 호출기 번호를 하나씩 꼭 꼭 눌렀다.                 3        정선이는 정철이가 어서 빨리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호출한지 2시간은 좋이 지났건만 정철이는 눈앞에  나타나지를 않았다. 벌써 날은  저물어 창밖은 어둑스레  하다. 정선이는 어딘가 불안하고 허전하고 아니, 외롭기 그지없는 종잡을수 없는 기분에 휩쌓여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시간은 너무나 지루하였다. 이때 층계를 오르는 쿵당쿵당 하는 무거운 구두발소리가 울렸다. 보나마나 그것은 동생의 발자국 소리였다. 《누나!》 설흔살 넘어 이미 애 아버지가 다 된 정철이는 방에 들어서기 바쁘게 철부지 아이처럼 누나부터 찾았다. 《누나 또 아프오?》 《괜찮어. 》 《그런데 호출은? 》 정선이는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사랑도 모르고 자라난 동생을 대견스럽게 바라보았다. 아버지를 닮아 키가 구척 같고 얼굴이 너부죽하고 어글어글한 눈길… 실로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인 동생이였다. 《헤헤헤… 그런걸 난 또 누나 더 앓는가구 했지뭐. 누나 앓음 안되오… 옛소, 이 달두 괜찮게 벌었소.》 정철이는 호주머니에서 백원짜리 한묶음 꺼내 정선의 앞에 밀어 놓았다. 《누나, 이 돈으로 병을 치료하오.》 《아니다. 이 누나 어디 돈 없는 사람이니? 》 사실 정철이는 세월을 잘 만나고 또 누나를 잘 만나 누나가 사준 택시를 몰고 다니는 새시대의 젊은이였다. 이런 정철이는 이 세상 하나 밖에 없는 정선이를 엄마처럼 고이 믿고 살았다. 《정철아》 《양?》 《정철이는 누나 말을 잘 듣지?》 《그래, 누나 말을 안 듣구 누구 말 듣겠소. 헤헤헤… 》 정철이는 어릴 때처럼 정선의 손을 꼬옥 잡고 제딴에 좋아 어쩔줄 몰라 했다. 《정철아…》 《야— 누나두 할 말 있음 얼른 할게지…》 《그래 저… 저 훈춘에 큰누나가…》 《뭐?!》 《큰누나…  혁화언니…》 정철이는 금시 전기줄에 닿은 듯 화뜰 놀라면서 누나의 손을 팽개쳤다. 《누나, 또 그 소리요?》 정철이는 대번에 가파른 언덕을 톺아오르는 황소처럼 씨근 벌떡거렸다. 주먹으로 자기의 손바닥을 땅! 쳤다. 안절부절 못하는 정철이였다.     《정철아, 너 누나 말을 듣는다구서두?》 《다른 말은 다 들어두 그 쌍년 말은 안 듣겠소!》 《얘, 정철아!》 《안 듣는다는데! 》 칼날같은 정철이였다. 정철이는 자리를 차고 발딱 일어났다. 《정철아, 게 앉어! 》 정선이는 간신히 일어나 앉으며 정철이한테 명령했다. 그 소리에 발목이 잡힌 정철이는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정철아, 혁화언니 급성당뇨병이란다…》 《당뇨병이 아니라 암이면 뭐라오?》 《지금 연변병원 관찰실에 와 있다는구나.》 《그런걸 누난 상관할게 없소!》 《정철아, 혁화언니두 사람인게 인제는 자기의 죄를 느끼구 있겠지…》 《죄!? 으하하하…》 정철이는 미친 사람처럼 앙천대소하였다. 정선이로서도 정철의 마음을 돌려 세울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앓는 몸으로 오직 바랄수 있는 사람이란 정철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철이가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나오니 무슨 뽀족한 수가 있겠는가? 정선이는 두눈을 꼬옥 감고 맥없이 자리에 드러 누웠다. 그렇게 모진 정철이도 눈앞에 쓰러지는 누나를 보고 주춤 제 자리에  물앉았다.  《누나, 누나 병부터 먼저 고쳐야 하는거야!》 《야—세상에… 어디 이런 변이 있느냐? 우리 3형제는 어찌되여 이렇게 원쑤처럼 지내야만 하니?》 《그게 어디 누나나 내 탓이오? 우린 3형제가 아니오! 우린 누나하고 나, 이렇게 오누이 둘밖에 없소. 그래 그따위 쌍년도 인간이란 말이오? 누나, 그래 잊었소? 》 《정철아, 그만해!》 《난 못 잊소! 난 죽어두 못 잊겠단 말이오. 누나 정말 머리가 돌지 않았어?》 《아니다. 누나는 머리가 돌지 않았어! 그 때 언니두 오죽했으면 그랬겠니?》 《이것 보지. 그러기에 누나 멍청이야! 누난 세상 둘도 없는 멍청이야, 멍청이야! 》 정철이는 제 가슴을 잡아 뜯으며 좁은 방이 쩌렁쩌렁 울리게 고래고래 소리 찔렀다. 웬일인지 두 사람의 대화는 여기서 동강나고 말았다. 무서울 정도로 괴괴한 침묵이 흘렀다. 둘은 눈물범먹이 된 눈으로 물끄럼 말끄럼 서로 쳐다 보고 있다. 정선이는 떨리는 손을 내밀어 정철의 손을 끄잡아 당겼다. 살뜰한 정이 흘러가고 뜨거운 정이 흘러오고 있었다. 혁화 때문에 성들을 냈지만 오누이의 정은 변함없이 고스란히 흐르고 있었다.                4        정선이는 쿵당쿵당 충계를 내려가는 정철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엉거주춤 일어섰다. 방금 정철이는 《누나, 다시 혁화이야기를 꺼내면 누난 내 누나 아니요!》하고 최후통첩을 내리고 떠나갔다. 정선이는 더는 누워있고 싶지가 않아서 밖으로 나왔다. 밖은 벌써 어두운 밤이였다. 가로등이 환히 켜졌고 전조등을 켠 택시들이 밤거리를 뻔질나게 달리고들 있었다. 정선이는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며 거리길에 섰다. 웬 택시가 정선이의 옆에 와서 스르르 멈춰섰다. 정선이는 마치 택시를 기다린것처럼 택시에 올라 앉았다. 《어디 가시려는지요?》 《예?》 《저 어디까지? 》 《가는데 까지 가자요.》 택시운전수는 정선이를 뒤돌아보고 알겠다는 듯이 부르릉 발동을 걸면서 밤거리를 내달렸다. 가로등도 뒤로 물러서고 택시들도 다가 와선 뒤로 뒤로 뻔질나게 사라지고 《어디가실까요?》 《그냥 가세요.》 정선이는 등받이에 기대여 두눈을 지긋이 감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했다 그러나 정철이가 고래고래 소리치던 그 웅글은목소리가 지금도 귀청을 아프게 때리였다. 그리고 혁화의 그 무서운 얼굴이 눈앞에 서서히 나타났다.  1976년 아버지의 병은 오랜 간염…L에 간암으로 번졌다 그래서 21살에 나는 정선이는 큰 마음을 먹고 훈춘에 시집간 영옥언니를 찾아갔다. 돈은 걱정 말고 정선이와 함께 아버지를 모시고 북경병원에 가자고 말이다. 그런데 언니는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했다.  《그래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어디 했니? 이 계급투쟁 년대에 현행반혁명으로 자식들에게 루를 끼쳤으면 됐지 그것두 모자라서 또…여태 모르는척 하다가 제가 죽게 되니 이 딸을 찾는다니?》 《건 아버지 요구가 아니예요! 건…제 생각에서…》 《그래두 난 못 가!》 혁화는 바로 이런 인간이 아니였던가! 그때 더는 방법이 없어서 정선이가 아버지를 모시고 북경병원에 갔다. 아버지는 병원침대에 누워서 다시는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이 불쌍한것아. 이 아버지에겐 자식이 너 하나밖에 없구나》 《아니, 아니예요. 정철이두…》 《그래 정철이두 있지…》 《아버지 그리구 혁화언니두…》 《그 그만둬! 그 쌍년 이름은 듣기두 싫어, 싫단 말이여!》 아버지도 혁화언니를 자기의 딸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러니 혁화는 나의 언니도 정철의 누나도 아니지 않는가? 그후 아버지는 끝내 북경병원에서 잘못되였다.  《아버지-》 정선이는 아버지를 목놓아 부르며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심장이 툭 멎는것만 같았다. 정선이는 끝내 정신을 잃고 사망된 아버지 옆에 쓰러졌다. 이렇게 아버지의 병시중을 왔다가 정선이는 심장병으로 몸져눕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 북경에서 언니한테 전보를 쳤는데 언니는 감감무소식이였다. 아버지의 골회함을 안고 연길에 왔을 때도 언니는 반쪽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이래도 그래 혁화는 나의 언니란 말인가? 아니다! 과연 정철의 말은 추호도 틀린데가 없다. 혁화는 그때 벌써 우리를 배반한 인간이다! 그래도 혁화는 제 아들을 시켜 나를 이렇게 찾고있다. 마지막으로 살려 달란다. 나 한테 애걸복걸한다 왜서? 혁화가 사람이라면 어디 말해 봐, 말해 보란말이야! 정선이는 속으로 이렇게 목놓아 부르짖었다. 그래 혁화는 무엇 때문에 장장 24년간 소식이 없다가 이렇게 나타났을가? 뭐 《연변일보》에서 내 소식을 알고?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돈, 그래 그 돈을 어떻게 벌었던가? 아버지가 돌아간 후 정선이는 제대군인과 약혼하고 벼락결혼까지 하였다. 정선이는 아버지께서 남겨준 집을 팔고 그 돈으로 식당을 꾸리였다. 그리고 세방살이를 하면서 아글타글 돈을 벌어 지금 이 정도로 되었다. 지금은 큰 식당을 앉히고 몇십만원 저금하고 살게 된것이다.  그런데 오늘 혁화가 손을 내민다. 그 돈으로 입원시켜 달란다. 그래 돈이 없으니 나를 찾은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바로 이것이 답안이다! 그렇게 많은 의문부호들이 금시 사라지고 드디어 종지부호가 크다맣게 찍어졌다. 그러니 정선의 무겁던 가슴은 가든해지고 정선의 몽롱하던 눈앞은 안개가 걷히듯이 점차 맑아졌다. 《기사님, 여기 어디죠?》 《예, 여긴 조양천입니다.》 《조양천?》 《그래요.》 《택시를 돌려주세요.곧장 연변병원으로 몰아요!》                5        연변병원 관찰실 문앞에 이른 정선이는 무춤 서버렸다. 여기까지 찾아오고서도 그래 들어가야 하는가? 아니면 아예 돌아가야 하는가? 정선이는 망설이게 되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발걸음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관찰실 문앞으로 다가갔다. 유리창 너머로 서너명 되는 환자들이 보였다. 정선이는 대뜸 혁화를 알아보았다. 그렇게 고웁던 얼굴이 24년 지난 오늘은 살이 빠지고 쪼골쪼골 주름이 잡혀서 볼모양이 아니였다. 그렇게 생기돌던 두눈도 푹 꺼져 들어가 감겨져 있었다. 앙상한 장작깨비 같은 손등에 꽂은 주사바늘을 통하여 점적주사약이 한방울 두방울 가녀린 몸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어쩐지 측은한 생각이 든 정선이는 관찰실 문을 살며시 열고 환자들에게 눈인사를 하면서 혁화 한테로 다가갔다.  《아재 아니오?》 《누군데?》 스무나문살 되어보이는 청년이 손부터 내밀며 물었다. 그러나 정선이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는것을 보면 혁화의 영철이라는 그 아들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저으기 노(怒)자가 든 정선이는 영철이를 알은체도 하지 않았다. 정선이는 침대곁에 다가가 혁화의 손을 잡았다. 소학교 다닐 때의 그 보드라운 손이 아니였다. 그때 혁화가 움퍽눈을 가슴츠레 뜨고 정선이를 알아보았다.  《네가 왔구나!》 혁화는 이렇게 말하고는 두눈을 다시 감는것이였다. 정선이는 대답 대신 그저 손을 지긋이 잡았다.  《네가 왔구나. 네가! 고맙구나…》 《아…ㄴ…니…》 《이 죄많은 나를 …그래두…언니라구…그예…찾아 왔구나…》 혁화는 가냘픈 목소리로 그러나 울음 섞인 목소리로 띄엄띄엄 말하는것이였다.  《용서해다구 정선아…》 《….》 정선이는 대답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고개 한번 끄덕잖고 혁화의 입만 뚫어지게 지켜볼뿐이였다. 혁화는 눈물 코물 흘리며 뭐라고 주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선의 귀에는 그것이 통 들리지를 않았다. 혁화가 어찌나 흐느끼며 오래동안 지껄이는지 나중에 정선이는 마지 못해 귀를 기울이였다.   《…내라구 왜 아버지 딸이 아니겠니? 그때 현행반혁명으로 몰리운 아버지 때문에 …나는 남 다 드는 홍위병에두 못들어댔어…군중조직에서는 아버지와 계급계선을 나누어야 …홍위병에 들수 있댔어 홍위병에 들어야 …북경 천안문광장에 가서..모주석의 검열을 받을수 있었던거야…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투쟁했던거야. 아버지를 타도하는 구호를 부르고…그 결과 나는 홍위병에 들고…북경에 가서 모주석의 접견도 받구…반란파표병(본보기)까지 되었지만 …아버지는 타도되고 아버지는 앓아눕구…아버지는 돌아가시구…》 그래도 정선이는 가타부타 말이 없이 귀만 열어놓고 혁화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가고 밭아 듣고만 있었다.  《정선아, 그때 나는 반란파 대장과 련애를 했댔어…그런데 아버지와 계급계선을 나누지 Ÿ鳧만 결혼을 안 한다는거야…그땐 검은 5류분자 자녀는 시집두 못 가는 세상이였어…그래서 나는 결혼하기 위하여 아버지를 반란하고 우리집두 반란하구 이름두 반란하구…형제두 반란하구…아이구 기가 찬 세월이였어…》 그래도 정선이는 아무런 응대도 없었다. 《정선아, 아버지가 앓아 북경간다구 할 때두…아버지가 암으로 세상 떴다 할 때두…난 그때 화선입당을 하느라구 납뜰 때였어. 당에 들자면 립장이 견정해야 한다는거야…그래서 난 얼굴 한번 내밀지 않았던거야…이런 나를 그래 아버지의 딸이라구 할수 있겠니? 내가 죄를 졌지 죄를 졌지 무어야..》 여기까지 듣던 정선이가 갑자기 소리 찔렀다. 《듣기 싫어요!》 《정선아》 《그만 해요!》 계급투쟁 년대에 제 한목숨 살자고 살판치던 한 인간의 때늦은 후회를 더는 듣고싶지가 않았다. 정선이는 입술을 짓깨물었다. 어쩐지 오열이 화끈 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입당? 아버지를 잡아먹은 인간이 그래 만백성을 위해 전심전의로 일할수 있어? 당에서 그래 혁화같은 인간망종을 받아들여? 최저한도의 인간성마저 깡그리 게세 당한 인간! 그래 가지고 혁명은 무슨 뚱딴지 같은 혁명이야! 정선이는 입을 하 벌리고 자기를 멍하니 쳐다보는 혁화를 갈기 갈기 찢어놓고만 싶었다. 이같이 악착한 혁화라는 인간과 인연이 맺어진 것이 한없이 저주로 왔고 또 그런 인간을 언니라고 부르게 된것이 한없이 원통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호사가 들어와서 정선의 어깨를 툭툭 쳤다.  《밖에서 손님이 찾아요.》 《손님?》 정선이는 엉거주춤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는 키가 구척같은 청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 이게 무슨 짓이야! 정말 그냥 이럴 테야?》 그 사람은 정철이였다. 정철이는 다짜고짜 정선의 손을 덥썩 잡고 밖으로 내끌었다. 허둥지둥 끌려 나온 정선이는 정철이 한테 떠밀려 차에 올랐다. 차는 부르릉 앞으로 내달리였다.                   6         그날밤 정선이는 한잠도 자지를 못하였다. 혁화는 얼마나 모질고 영악한 인간인가! 문화대혁명 기간에 죄 지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제 잘못을 느끼고 새사람이 된지도 오랜데 어찌하여 이제 와서야 눈물코물 흘리며 잘못을 느낀다고 할가? 정선이는 두 눈을 껌뻑껌뻑 하면서 혁화 모습을 눈앞에 떠올렸다. 살이 싹 빠져 피골이 상접해 볼모양이 없이 된 혁화, 그래도 없는 눈물을 짜가면서 말하던 혁화…말하는것을 보면 어느 정도 제 잘못을 느끼는것 같기는 하였다. 그렇다면 죄를 느끼는 혁화를 내가 리해하지 못하는 것이란 말인가? 정선이는 머리를 마구 가로 저었다. 도무지 저로서도 가늠이 가지 않았다. 혁화와 나, 나와 혁화, 그 누가 그 누구를 리해하여야 한단 말인가? 아버지가 간암에 걸려 북경으로 함께 가자고 했을 때 혁화는 뭐라고 떠버렸던가?《제가 죽게 되었으니 이 딸을 찾는다》고 악다구니질을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번에 제가 죽게 되었으니 동생이라고 오늘 나를 찾아온것이 아닌가? 가증맞은 인간! 죄를 입어 급살맞을 인간! 죽어 천만번 마땅할 쌍년! 이렇게 욕하여도 혁화는 할 말이 없을것이다. 그래, 없고 말고! 정선이는 미친 사람처럼 악- 소리쳤다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런데 지난날 혁화가 그렇게 미웠는데 오늘 혁화를 미워하는 나는 그래 어떤가?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오늘 내가 죽어가는 혁화를 옆에 두고 손벽치며 잘코사니를 부르면 어떻게 될가? 오십보 백보라구…그래 혁화와 내가 무슨 구별이 있단 말인가? 시대가 변하여 오늘은 경제시대에 진입했다. 혁화는 지난 혁명시대의 력사적인 죄인이다. 그렇다면 오늘 경제시대에 나는 현실적인 죄인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아니다. 절대 나는 혁화와 같은 그런 시대적인 죄인으로는 될 수가 없다.  정선이는 머리를 털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까칠한 손으로 제 가슴을 치면서 울던 혁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혁화는 그래도 뒤늦게나마 자기의 과오를 느끼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혁화가 자기가 저지른 죄를 인정하고 또 그 죄를 내가 용서한다면 남은 것은 하나밖에 없는 언니 혁화뿐이다. 함께 아버지의 피줄을 이어받은 언니다. 언니,어릴 때 나의 손을 잡고 다니던 언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서로 나눈 피! 그 언니를 용서해주자. 하나밖에 없는 우리 언니를 용서, 용서, 용서해주자! 여기까지 힘겨웁게 생각을 굴려오는데 《누나 멍청이야!》하는 정철의 목소리가 대포소리처럼 들려왔다. 두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정철이는 없었다. 환각이였다. 정선이는 흠칫 놀라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정선이는 그런 멍청이가 되고싶은 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7   이튿날 정선이는 남편과 상론하고 《남편이 돈은 내더라도 언니를 만나서는 절대 안된다》는 전제조건을 내건 다음 선불금 4000원을 내고 언니를 연변병원에 입원시켰다.  정선이는 그날부터 매일 정심밥을 차려가지고 언니한테 다녔다. 그 옛날 아버지가 《검은굴》에 갇혔을 때 정철이의 손을 잡고 아버지 한테 밥을 날랐건만 지금은 정선이 홀로 언니한테 밥을 나른다. 어쩐지 정철이와 함께 밥을 나르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정선이였다. 오늘도 정선이는 정심밥을 들고 식당문을 나섰다. 하늘에 먹구름이 낮게 드리웠다. 숨막히는 날씨다 금시 소나기가 퍼부을 잡도리였다. 언니가 시원한걸 먹고싶다고 하기에 오늘은 랭면을 말아서 보자기에 싸가지고 나섰다. 이제 막 택시를 불러 타자고 하는데 지나가던 택시가 휘우듬이 꺾어들더니 정선의 앞길을 막으며 칙 하고 멈춰섰다. 정선이는 하마트면 넘어질번 하였다.  《눈이 없나요?》 부아김에 정선이는 입에서 뱀이 나가는지 구렝이 나가는지 모르고 욕을 퍼부었다. 그때 차창문이 열리더니 어떤 사내의 머리가 불쑥 나왔다. 검으락푸르락 하는 정철의 얼굴이였다.  《누나, 또 어디 가는거야?》 《…》 《또 병원 가지?》 《…》 《걸 보기오, 뭔가?》 정철이는 팔을 쑥 내밀어 정선기가 든 보자기를 나꾸어 챘다. 그 바람에 그릇이 기우뚱거려 간장물이 주르르 흘렀다. 정철이는 그 보자기를 잡아채더니 저쪽 아스팔트길에 팽개쳤다. 금시 꽝! 하는 폭발소리가 터졌다. 육수물을 넣은 보온병이 깨지는 굉장한 폭음이였다. 정철이는 누나의 팔을 끄잡아 당겨 무작정 차에 올려앉혔다.  《누나, 그 잘난 언닌지 뭔지 죽겠으면 죽게 내버려 둘게지. 누나 무슨 배가 아파 이 지랄이야!》 《정철아, 너 너무 그럼 못쓴다. 정철아 너두 지난날의 영옥누나를 얼마나 미워하구 있니? 그런데 지금 너두 지난날의 영옥누나처럼 사람같잖은 그런 행동을 해서 되겠니?》 《뭐라구?》 《혁화는 정치로 아버지를 못살게 굴었는데 너는 지금 죽어가는 혁화를 돈으로 못살게 굴면 되겠니?》 《말이면 다 하는줄 알어? 내가 언제…》 《정철아,난 네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걸 잘 알고 있어. 너두 빈곤호를 돕느라고 2000원 의연금을 냈다구 어제 신문에 났더구나.》 《그렇소. 혁화가 인간이라면 2000원이 아니라 20000원이라두 내겠소. 지금 난 누나땜에 막 미치겠단 말이오!》 《그래두 아버지의 피줄을 이어받은 누님이 아니니?》 《피줄이구 나발이구 이젠 그런 말 집어쳐!》 정철이는 신경질적으로 꽥 소리 찔렀다. 그리고선 부르릉 차를 냅다 몰았다. 번개가 번쩍, 우뢰가 꽈르릉! 대번에 대줄같은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콩알같은 비방울이 사정없이 차창문을 들입다 뚜다린다. 혁화언니가 얼마나 큰 대못을 정철의 가슴에 박아놓았으면 정철이가 이 정도로 미쳐 날뛸가? 정선으로서는 리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정선이는 곧은 직장인 정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정철이는 《이거 물럿!》하면서 정선의 손을 탁 뿌리쳤다.  택시는 억수로 퍼붓는 비속을 뚫고 빵빵 고속도로 달렸다.                  8        언니의 병은 놀랍게도 빨리 호전되였다. 그러나 정선의 병은 되려 악화되여 갔다. 정선이는 연변병원에 입원하라는 의사의 권고도 마다하고 한사코 연길시병원에 입원하였다. 언니의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가 않은 정선이였다.  병이 거의 나아진 영옥언니가 과일구럭을 사들고 오늘 연길시병원을 찾아와서 의지가지 없이 고생스레 혼자 아글타글 살아온 정선이를 문안하고 있다.  《정선아, 언닌 래일 퇴원하는구나. 너의 병이 낫기 전에 내가 먼저 나가게 되어 이 언니 가슴이 정말 아프구나. 고맙다, 정선아… 너 남편두 어제 너 몰래 나를 찾아왔더구나…》 《뭐라구요?》 남편이 전제조건을 어기고 정선이 몰래 혁화언니 방문을 하였단다. 정선이는 남편의 처사가 눈물겹도록 고맙기만 하였다.  《그리구 나 정철이를 보구 싶다만 죄 지은 년이 보자구 할수두 없구…》 《언니…정철이를 리해…》 《알았어 알았다구… 어떻게 하나 너네 오누이 재미있게 잘 지내다구…사람구실을 못한 언니 정말 부끄럽구나…》 언니는 이런 말을 남기고 점적주사를 맞고있는 정선이를 두고 떠나갔다. 정선이는 언니가 나간 출입문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그렇게 밉던 언니를 이렇게 용서해주자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던가! 정치시대에 혁화가 진 빚을 오늘 경제시대에 와서 청산하자니 그렇게 힘들고 그렇게 어려웠던것이다. 지나간 모든 일들이 몽롱한 안개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다. 어지럽던 지난날의 세상사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였다  《탕탕탕…》 누군가가 출입문을 다급히 두드렸다. 문이 벌칵 열리더니만 땀투성이가 된 정철이가 나타났다. 며칠전에 목단강으로 장거리를 뛰고 어제 저녁에 돌아온 정철이는 오늘에야 누나가 연길시병원에 입원한것을 알고 이렇게 드달려온것이였다.  《누나, 왜 이러는거야?》 《내 어쨌니?》 《에씨 또 그 쌍년 때문이야?》 《정철아…》 《그 쌍년이 옛날엔 아버지를 죽이더니 오늘은 누나를 죽이자는게 아니구 뭐야!》 《그렇게 말하는게 아니야》 《듣기 싫소. 급살맞아 뒈지지 않나 두고 보란 말이야!》 《정철아 영옥언닌 그래두 너를 보고싶어하더라.》 《걷어치우오. 옛말이면 듣기나 좋지. 더럽소, 더러워!》 《정철아 영옥언닌 래일 퇴원할거야…》 《퇴원?》 《병이 다 나았다누나》 《뭐? 누날 죽게 하구 자긴 나가구?》 정철이는 침대 옆에 놓인 탁상을 꽝 들입다 쳤다. 탁상 우에 놓였던 혁화가 사온 과일들이 떽데구르르 굴러 떨어졌다.  《퇴원 못해! 죽여 치울거야!》 정신 나간듯 정철이는 고래 고래 소리치며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 나갔다. 와당탕 분노한 발걸음소리가 병원복도를 쩌렁쩌렁 울리였다.                         9         그 이튿날 영옥이가 퇴원하는 날이였다. 퇴원수속을 다 마치고 아들과 함께 병원문을 나서는데 색안경을 건 어떤 사람이 다가왔다.      《요부요 쭤처?(차를 타지 않겠어?)》 《장거리를 뛸수 있습니까?》 《썬마?(뭐라구?)》 아들은 색안경을 건 키 큰 청년을 올리 내리 훑어보았다.  《어머니 한족 사람입니다.》 《한족사람이면 뭐라니, 마침 잘됐다 짐두 많은데…》 이쯤되자 아들은 택시 운전수와 흥정을 걸었다.  《넝부넝취 훈춘?(훈춘으로 갈 수 있나요?)》 《싱(그러지)》 《둬소챈?(값은 얼마인가요?)》 《관타마디 쟈챈 취바(값같은 소리하네 가자구)》 택시운전수는 영옥이네를 택시에 앉히고 도문쪽으로 향하여 차를 냅다 몰았다. 택시가 어찌나 쏜살같이 달리는지 거리 집들이며 차들이며 언뜰언뜰 뒤로 뒤로 물러갔다. 차가 쉴새없이 들추는 바람에 머리가 연신 천정에 맞부딛쳤다.  《쓰지, 쏘우 만이댈마(기사님 좀 천천히 몰아요)》 《메이 쓰잰(시간이 없어)》 택시 기사는 웬일인지 택시를 한결 더 빨리 몰았다. 후미진 내리막길을 뻔질나게 미끌어 내려갔다가 이번엔 빵빵 하늘로 치달아 날아 올랐다. 껑충 언덕에 뛰여 오른 택시는 귀부리 쌩쌩 소리날 정도로 미친듯이 달렸다. 길 량쪽 백양나무들도 쓰러질듯 달려왔다가는 뒤로 뒤로 잦빠지며 물러갔다. 《어머니 기사가 술 마셨잖습니까?》  《모르는 소리. 술 마시구 차를 어떻게 몬다구 그러니..》 그때 차는 급작스레 삐익! 하면서 급정거하였다. 관성 때문에 영옥이네는 앞의자 등받이에 냅다 골받이를 했다.  《쓰지(기사님)》 《뚜이부치(미안해)》 택시기사는 담배 한가치 꺼내 물더니 팍 하고 라이타를 켜댔다. 담배연기를 길게 빨아서는 푸 하고 내뿜었는데 그 연기는 마치 모진 굴뚝에서 나가는 타래치는 연기 같았다.  이윽고 택시기사는 부르릉 하고 차를 다시 몰았다  《애야, 너 정선의 은덕을 잊지 말거라》 《예, 어머니》 그때 택시기사는 급작스레 또 제동기를 꽉 밟았다. 그 바람에 차는 앞으로 꼰졌다. 기사는 웬 일인지 입에 물었던 담배를 퉤!하고 내뱉었다. 영옥이네는 하도 의아쩍어서 서로 쳐다 보았다. 알고도 모를 일이였다. 차는 또다시 달렸다. 침묵이 흘렀다. 한참 후에 영옥이가 침묵을 깨뜨리였다.  《우리 같은 농촌사람들이 어디 돈이 있어 이런 택시를 탈수 있겠니? 어제두 정선아재가 돈 200원을 따로 주면서 집으로 갈 때 꼭 택시를 타라구…택시를 타지 않으면 언니가 아니라구…흐윽..그래서..》 《어머니 또 우시네…》 《그래 인제 안 울게…좋은 아재두 찾았는데 울어선 안되지 …아! 그런데 이 에미 어찌 지독하였으면 정철이 그 애가 글쎄 마흔닷새 되는 동안 한번두 찾아 안 왔겠느냐? 다 내탓이지…》 《그 외삼촌 말입니까?》 《그래, 세상이 뒤죽박죽이 된 그 세월에 사람두 사람나름이였지. 그 험악한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모두다 사람답게 살았는데 이 에민 그러지를 못했구나. 말로는 혁명을 한답시구 했지만 그게 어디 혁명이였니? 제 살 궁리만 하다나니 결국은 아버지두 잡아먹구 동생들두 잃어버리구…너는 절대 이 에미처럼 살아서는 아니된다 안되지!>. 《어머니 알만함다. 인제 그만 말씀하세요>. 그때 차는 또다시 부르릉하고 속도를 내였다. 먼지를 뽀얗게 날리며 앞으로 앞으로 내달리는 택시, 도문을 지나 두만강기슭을 따라 털렁털렁 들추며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였다. 《쓰지 또우라(기사님 다 왔어요)》 《쓰마(그래)》 《둬소챈?(얼마죠?)》 《둬소챈?(얼마죠?)》 기사는 웬일인지 힝 코방구를 뀌며 영옥의 아들의 말을 복창하였다. 그리고서는 빨리 택시에서 내리라고 호통하다싶이 영옥이네를 재촉하였다. 영옥이네가 택시에서 내리자 기사는 택시문을 쾅! 걷어 닫았다. 뒤미처 기사는 가던 방향을 향해 부르릉 차를 몰고 내뺐다 《쓰지- 저 챈…(기사님 이 돈을…》 《군타마디(꺼지라구)》 기사는 웅글은 목소리를 뽀얀 먼지 속에 휘말아 버리면서 머얼리 내달렸다. 그러던 기사는 갑자기 운전대를 주먹으로 빵 치며 소리쳤다.  《혁화, 혁화는 죽었어!》 갑자기 기사는 제동기를 밟으며 차를 급정거 시켰다. 그리고 차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뒤를 돌아다 본다.  《그렇다면 영옥이는…?》 그러나 영옥이는 이 모든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영옥이는 저 택시 기사가 정철이라는것을 끝까지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택시가 보이지 않을 때가지 고마운 저 택시 기사한테 영옥이는 오래 오래 손을 젓고 있었다.    
338    문예평론 심리 갈등과 변화로 인물형상을 부각 김장혁 댓글:  조회:1047  추천:0  2023-02-21
      문예평론                 심리 갈등과 변화로          인물형상을 예술적으로 부각한 소설                                        -김만석교수의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를 읽고                                                        김장혁                1.들어가는 말       김만석교수는 국내외에 이름있는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리론가, 교수이다. 그는 수많은 아동문학 평론과 리론저서를 써서 우리 조선족아동문학을 리드해나간 분이다. 그는 평론을 썼을뿐만 아니라 아동문학 모든 쟌르의 견본과도 같은 아동소설, 동화, 우화, 동요동시 등 예술적인 아동문학작품집을 수두룩이 펴냈다. 김만석교수는  저명한 평론가일뿐만 아니라 작가이며 시인이다. 그는 성인소설집 “멍청이 누나”도 펼쳐냈다. 김만석교수의 성인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민족의 각 시기 형상적인 력사를 읽는 감이 들어 감동을 받았다.     특히 그중 대표작-중편소설 “멍청이누나”는 주목할만한 예술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이 소설에서 김만석교수는 소설을 어떻게 창작해야 하는가를 잘 리드해 보여주었다.                                 2. 독특한 예술기량을 보여준 소설        김만석교수의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는 정치시대의 인간관계는 적대관게이고 경제시대의 인간관게는 인정관계라는 엄청나고 값진 주제를 설정하고 정선의 형상을 창조한 소설이다.     소설창작의 목적은 인물형상 창조에 있다. 이런 인물은 생활론리에 맞고 인물성격론리에 맞는 슈제트구성을 통하여 인물형상이 부각된다.     김만석교수의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의 슈재트 구성은 복잡하고 긴장되고 첨예한 심리갈등으로 이루어졌다.저자는 독특하게 주인공의 심리 갈등과 변화로 정선이란 개성이 독특한 인물형상을  아주 예술적으로 창조해났다. 혈육의 정도, 인정미도, 인간성도 없는 언니 영옥을 치료비를 대줘 구하는가, 구하지 않는가는 문제를 둘러싸고 주인공 정선과 동생 정철의 심리 갈등과 변화로 주인공 “멍청이 누나”, 혈육의 인정 많고 드넓은 관용과 흉금을 가진 주인공 정선이란 인물형상을  독특한 예술창작기법으로 부각해냈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아주 독특한 예술기량을 보여준 소설이라고 본다.      프랑스 대작가 발자끄는 장편소설 “우제니 그랑데”에서 인물의 깍쟁이 성격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핍진한 환경세부묘사와 작중 그랑데의 옹졸한 이야기들로 아주 성공적으로 옹졸하고 린색하고 탐욕스러운 벼락부자 그랑데란 인물형상을 예술적으로 창조해냈다.      발자끄는 장편소설 “고리오령감”에서도 환경묘사와 인물의 성격특징을 틀어쥐고 옹졸하고 배금주의자 고리오령감의 전형형상을 예술적으로 창조했다.     김만석교수는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에서 심리 갈등과 변화로 주인공 정선이란 인물형상을 예술적으로 창조한 독특한 예술기량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아주 많은 편폭으로 인물의 심리 갈등과 변화를 보여주면서 혈육의 정과 인정미도 없고 인간성마저 없는 언니 영옥을 드넓은 흉금과 관용으로 용서하고 치료비를 대줘 구해내는 “멍청이 누나” 정선이란 인물형상을 아주 성공적으로 부각해 혈육의 정과 인간애를 아주 성공적으로 돌출하게 보여주었다.                 3. 심리 갈등과 변화로 인물형상을 부각한 독특한 소설       그럼 김만석교수의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평론하기로 하자.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에서 작자는 혈육의 정도, 인정미도, 인간성도 없는 언니 영옥의 치료비를 대주는가, 대주지 않는가는 문제를 둘러싸고 주인공 정선과 남동생 정철의 심리 갈등과 변화를 파고들어 인물들의 인간성을 깊이 파헤쳤다.그리하여 혈육의 정도 많고 드넓은 관용과 흉금을 가진 주인공 정선이란 형상을 아주 예술적으로, 성공적으로  부각해냈다.     영옥은 그 시대 좌적인 인물, 인간성도 없는 반면인물이다.  문화대혁명이란 극좌적시대 제약성으로 인해 부농가정출신 녀성의 딸로 자란 영옥은 자기 정치적으로 기를 펴고 살지 못했다. 영옥은  사람처럼 기를 펴고 살려고 이름마저 "혁화(혁명의 꽃)라고 고치고 주자파 아버지와 “계선을 똑똑히 나누고”  앞장서 구호를 부르며 투쟁한다. 심지어 입당하기 위해 간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아버지 아니라고 하면서 병문안 한번 가지도 않았다.     영옥은 20여년 동안이나 배다른  녀동생 정선과 남동생 정철을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찾아도 보지도 않았으며 거래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가 당뇨병에 걸려 치료비 없으니 식당을 차려 돈깨나 번 부자라고 정선을 동생이라고 식당에 찾아온다.     주인공 정선은 그런 인간성도 없는 영옥의 치료비를 대주는가, 아버지 대신 복수를 해  모르는 척 하는가는 격렬한 내심갈등을 겪는다. 소설의 슈제트로 말하면 여기서 사건의 발단이라고 볼 수 있다.         ㄱ, 발단단계에서 정선의 심리갈등       처음 24년이나 련계도 없던 언니 영옥(혁화)가 아들과 함께 정선식당에 나타나고 아들을 내세워 전화를 걸었을 때 정선의 첫 심리반응은 경악함과 함께 고통스러워 한다. 정선은 영옥이 문화대혁명 때 17세 셈이 들 나이에 아버지 직장에서 아버지를 주자파라고 투쟁할 때 아버지를 “주자파!” “류망”이라고 욕하던 일을 회상했다.     (어쩌면 이다지도 모진 인간일가? 어떤 때는 형제관계를 칼로 썩뚝 베여버리고 아닌 보살하던 사람이 오늘은 제 아들까지 내세워 아재요 뭐요 하는가?    영옥이야말로 세상에 더없는 밉살스러운 인간으로 안겨왔다. 정말이였다. 영옥이처럼 매정하고 악착하고 몰염치한 인간은 이 세상에 더는 없을 것이다.   ㄴ,발전 첫단계 정선의 심리갈등       정선은 외조카 영철한테서 언니 영옥이 급성당뇨병에 걸려 연변병원 관찰실에 있다는 말을 듣자 불쌍해났다. 모진 심리갈등 끝에 영옥을 친혈육 "언니"로 인정하려는 심리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래도 아재란다. 아니, 언니란다. 언니? 그래 언니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같은 피줄을 함께 타고난 자매들끼리 하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혁화는 아버지의 딸이 옳은가? 아버지와 결혼한 그 농촌 녀성이 낳았으니까 아버지의 딸이 옳기는 옳겠지. 그러면 영옥의 몸에도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말이 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더니… 기딱찬 현실이다. 그러니 영옥이는 어쨌든 나의 언니, 정철의 누나다… 정선이는 악몽에서 깨여난 듯 화뜰 놀라기까지 했다. 모질고 모진 인연이 정선이를 끄당긴다.     아버지는 이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달아나고 이제 남은것이란 아버지의 피줄을 이어받은 정철이와 나, 그리고 영옥언니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니 정선의 꽁꽁 얼었던 가슴은 금시 물에 젖은 솜이 되여 버렸다. 어릴 때 자기의 손을 잡고 다니던 언니의 그 부드러운 손이 따뜻이 느끼여 왔다. 정선이는 저도 모르는 사이 윤기간의 정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ㄷ. 발전 두번째단계 정선의 심리갈등.       정선은 아버지도 아버지로 보지 않고 혈육도 모르는 인정머리도 없던 영옥의 과거를 회상하자 복수심이 재차 끓어번져 복잡하고 굴곡적인 심리갈등을 반복하게 된다.     정선은 1972년 훈춘에 영옥을 찾아가 간암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북경에 치료하러 가자고 했다. 그때 영옥은 주자파 아버지가 자식들을 련루시켰다고 욕했하면서 아버지 병문안하러 가지도 않았다.    정선이가 혼자 아버지의 골회함을 안고 북경에서 연길에 왔을 때도 언니 영옥(혁화)은 반쪽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정선은 심한 심리갈등을 겪게 된다.      (이래도 그래 혁화는 나의 언니란 말인가? 아니다! 과연 정철의 말은 추호도 틀린데가 없다. 혁화는 그때 벌써 우리를 배반한 인간이다! 그래도 혁화는 제 아들을 시켜 나를 이렇게 찾고있다. 마지막으로 살려 달란다. 나 한테 애걸복걸한다. 왜서? 혁화가 사람이라면 어디 말해 봐, 말해 보란말이야!)        정선은 모진 심리갈등을 겪으면서도 저도 몰래 혈육의 정에 끌려 병원에 가서 언니 영옥(혁화)을 만나본다. 영옥은 홍위병에 들고 결혼하고 입당하기 위해 아버지와 계선을 나누고 주자파라고 앞장서 투쟁하고 때리고 병치료 하러 북경에도 가지 않고 사망해도 장례에도 낯을 내밀지 않았다고 용서를 빈다. 그때 정선은 이런 심리반응을 보였다.     계급투쟁 년대에 제 한목숨 살자고 살판치던 한 인간의 때늦은 후회를 더는 듣고 싶지가 않았다. 정선이는 입술을 짓깨물었다. 어쩐지 오열이 화끈 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입당? 아버지를 잡아먹은 인간이 그래 만백성을 위해 전심전의로 일할수 있어? 당에서 그래 혁화 같은 인간망종을 받아들여? 최저한도의 인간성마저 깡그리 게세당한 인간! 그래 가지고 혁명은 무슨 뚱딴지 같은 혁명이야!)     정선은 입을 하 벌리고 자기를 멍하니 쳐다보는 혁화를 갈기 갈기 찢어놓고만 싶었다. 이같이 악착한 혁화라는 인간과 인연이 맺어진 것이 한없이 저주로 왔고 또 그런 인간을 언니라고 부르게 된 것이 한없이 원통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ㄹ. 크라이막스 단계에서 정선의 심리갈등        입원해 생사를 다투는 언니,  자기 과거 잘못을 뉘우치는 언니를 보고 집에 돌아온 정선의 심리갈등은 최고조에 치달아오른다. 정선은 영옥의 과거를 생각하자 격분해한다. 그러나 정선은 끝내 혈육의 정과 드넓은 흉금과 관용으로 언니 영옥의 비인간적인 과거를 용서해주기로 한다.그러나 동생 정철은 영옥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정선과 격렬한 갈등을 겪는다. 뒤이어 정선의 모순된 심리갈등도 더욱 격렬해지면서 최고조에 이른다. 소설은 여기서 크라이막스에 이르기 시작한다.   ( 죄를 느끼는 혁화를 내가 리해하지 못하는 것이란 말인가?)      정선은 머리를 마구 가로 저었다. 도무지 저로서도 가늠이 가지 않았다.     (혁화와 나, 나와 혁화, 그 누가 그 누구를 리해하여야 한단 말인가? 아버지가 간암에 걸려 북경으로 함께 가자고 했을 때 혁화는 뭐라고 떠버렸던가? 《제가 죽게 되었으니 이 딸을 찾는다》고 악다구니질을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번에 제가 죽게 되었으니 동생이라고 오늘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닌가? 가증맞은 인간! 죄를 입어 급살맞을 인간! 죽어 천만번 마땅할 쌍년! 이렇게 욕하여도 혁화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래, 없고 말고!)     정선이는 미친 사람처럼 악- 소리쳤다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런데 지난날 혁화가 그렇게 미웠는데 오늘 혁화를 미워하는 나는 그래 어떤가?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오늘 내가 죽어가는 혁화를 옆에 두고 손벽치며 잘코사니를 부르면 어떻게 될가? 오십보 백보라구…그래 혁화와 내가 무슨 구별이 있단 말인가? 시대가 변하여 오늘은 경제시대에 진입했다. 혁화는 지난 혁명시대의 력사적인 죄인이다. 그렇다면 오늘 경제시대에 나는 현실적인 죄인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아다. 절대 나는 혁화와 같은 그런 시대적인 죄인으로는 될 수가 없다.    함께 아버지의 피줄을 이어받은 언니다. 언니, 어릴 때 나의 손을 잡고 다니던 언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서로 나눈 피! 그 언니를 용서해주자. 하나 밖에 없는 우리 언니를 용서, 용서, 용서해주자!)      그러나 동생 정철은 아버지도 동생들에 대한 혈육의 정도 없이 논 영옥을 용서해주려고 하지 않고 도리여 정선을 "멍청이 누나"라고 하면서 "바보짓을 작작하라."한다. 여기서 영옥에 대한 정선과 정철의 부동한 심리갈등은 최정점에 이른다.      소설에서는 크라이막스단계에 이른 정선과 동생 정철의 심리갈등도 아주 예술적으로 섬세하게 보여주었다. 정철은 아버지 앓을 때나 림종 때에도 찾아보지도 않은 인정미도 없는 큰누나 영옥(혁화)를 누나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정철은 정선이 앓는 영옥한테 치료비를 대줘 구하자고 하자 처음에는  바보 짓을 하지 말자면서 정선의 말을 듣지도 않고 심리반응을 보인다. 저자는 정철의 언행으로 복수심에 격분한 정철의 내심갈등을 보여주었다.      정철이는 대번에 가파른 언덕을 톺아오르는 황소처럼 씨근 벌떡거렸다. 주먹으로 자기의 손바닥을 땅! 쳤다. 안절부절 못하는 정철이였다.     정철이는 《누나, 다시 혁화이야기를 꺼내면 누난 내 누나 아니요!》하고 최후통첩을 내리고 떠나갔다.      정철은 인정미도 없는 영옥의 밥을 나르며 병시중을 든다고 정선의 손에서 밥곽마저 빼앗아 땅바닥에 마구 주어 메친다.            ㅁ,해결단계에서 정선과 정철의 심리변화       정선은 끝내 마음의 상처ㅡ 언니의 비인간성, 과거의 잘못을 넓은 혁육의 정과 관용으로 용서하고  치료비 4천원을 선대해주어 입원치료받게 해 구한다. 이는 혈육의 정과 인간성을 가진 인도주의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정철은 둘째누나 정선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등 인정미 넘치는 말에   나중에 영옥이 퇴원하는 날에 택시비도 받지 않고 마지못해 훈춘 머나먼 집까지 실어다주기까지 한다.     소설 제일 마지막에 이렇게 쓰고 있다.       갑자기 기사는 운전대를 주먹으로 빵 치며 소리쳤다.     “혁화, 혁화는 죽었어!”     갑자기 기사는 제동기를 밟으며 차를 급정거 시켰다. 그리고 차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뒤를 돌아다 본다.     “그렇다면 영옥이는…?”       저자는 여기서 그렇게 강경하던 정철의 심리변화를 암시하면서 독자들에게 예술적인 여운을 남겨주면서 소설을 마무리했다.          소설은 주로 급성당뇨병에 걸린 언니- 영옥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둘러싸고 많은 편폭을 들여 주인공 정선의 내심갈등과 변화를 아주 굴곡적이고도 성공적으로 파고들며 세부묘사해 정선의 인간성을 파헤쳤다. 소설은 복잡한 사건으로 슈제트를 구성하지 않고 정선과 언니 인정의 변화와 갈등을 주선으로 혈육ㅡ언니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  인도주의적인 인간성을 가진 정선의 형상을 성공적으로 부각해냈다.                    4.  맺는 말       총적으로 김만석교수의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는 우선, 예술적으로 주렁진 성과를 거둔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에서는  굴곡적인 심리 갈등과 변화를 주선으로 혈육의 정도 없고 인간성마저 일은  언니를 용서해주는 정선, 혈육에 대한 인정미와 인간성이 깊고 포용성이 있는 정선이란 인물을 예술적으로 전형화된 인물형상으로  부각했다. 이것이 이 소설의 독특한 예술특징이며 이 소설이 거둔 아주 독특한 예술적인 성과라고 본다.     일반적인 생활론리로 말하면, 영옥과 같은 혈육의 정도 모르고 인간성도 없는 언니를 아무리 형제라도 용서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저자는 주인공 정선을 처음부터 혈육의 인정미도 많은 인물로 고정적으로 내세우지 않고 복잡하고 굴곡적인 심리 갈등과 변화로 인물의  성격변화를 보여주었다. 소설을 다 읽고나면 소설의 제목과는 달리 주인공 정선은 “멍청이 누나”가 아니라 혈육의 정과 인정미도 많고 흉금이 넓으며 인간성을 다분히 가진 참된 인물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주인공 정선의 드넓은 흉금과 혈육의 정으로 영옥의 과거를 용서하는 것을 통해 계급투쟁시대로부터 개혁객방 시대에 들어선 격변기 시대에 계급성으로부터 점차 인간성으로 돌아서는 조선족들의 인정세태를 아주 굴곡적이고도 형상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은 프랑스 작가 유고의 장편소설 "레미제라불"에서 주인공 쟌 발쟝을 창조한 것과 같은 랑만적인 예술성과를 거두었다고 본다.     저자는 소설에서 영옥이란 정형인물도  아주 형상적으로 창조했다. 계급투쟁이 격렬하던 그 시대에는 아버지도 친혈육도 안중에 두지 않고 계급투쟁에 혈안이 돼 미쳐날뛰던 영옥, 자기 전도를 위해선, 자기 살기 위해선 혈육의 정도 인정미도 없이, 인간성마저 잃고 살아온 영옥이다. 영옥의 형상은 "문화대혁명"이란 시대가 낳은 반면인물이다. 영옥은 비극적인 참혹한 계급투쟁시대 산물로서 결코 우연한 인물은 아니다.      소설에서 누나의 설복에 의해 점차 혈육의 정과 인정미가 돌아서기 시작하는 인간성을 회복하기 시작한 정철의 형상도 영옥과의 심리갈등 속에서 아주 성공적으로 창조했다. 정철의 형상에서 저자는 아무리 어떤 원한이 있더라도 인정관계, 인간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표현하였다.       다음, 김만석교수의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는 내용상으로도  아주 성공한 예술작품이다. 이 소설은 정치풍파를 거친 우리 조선족들이 정치시대에 적대관계로 된 인간관계가 경제시대에 와서 점차 다시 새 인간관계로 회복되는 과정을 실사구시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총적으로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는 내용과 예술 면에서 주렁진 성과를 거둔   인정세태소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 조선족문학사에서 문학적 의의가 있다고 본다. 이렇게 훌륭한 소설이 80년대 창작되자마자 진작 발표됐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얼마나 문단을 진동했을가? 이런 아쉬운 생각도 든다.                                                                                                 2023년 1월 26일             주: 이 문예평론은 2023년 2월 19일 연길에서 열린 “김만석교수 성인소설좌담회”에서 발표했음.
337    대하소설 졸혼 제5권 (65) 김장혁 댓글:  조회:2439  추천:0  2022-12-14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5. 메아리          문걸이 주방에서 처자들의 손때가 묻은 밥상과 걸상을 매만지면서 추억의 돛배에 올라탔을 때다.        지예가 활짝 웃으면서 유림을 데리고 들어섰다.        “외할아버지!”        “오- 유림아! 요 귀염둥이야. 아바이 안아보자.”       문걸은 외손자를 꼭 껴안고 보슴털이 보시시 난 보동보동한 얼굴에 뽀뽀를 쪽 해주었다.       지예는 옆에서 생글방글 웃었다. “아빠, 이젠 아래윗집에서 살게 돼서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 뭐니뭐니 해도 늘그막에 천륜지락을 누리는게 젤 행복하지. 허허허.” 문걸은 딸이 있어 다행이였다. 그는 유림을 안고 쏘파에 앉아 놀면서 지예를 건너다 보았다. “얘야. 너도 이젠 애를 봐서 복혼하든지 재혼하든지 하면 어떠냐? 새파란 나이에 언제까지 혼자 살겠느냐?” 지예는 외까풀눈을 곱게 흘겼다. “아빠, 결혼하지 않아도 돼요. 지금은 개방세월이기에  결혼하지도 않고 얼마든지 서로 친구로 지낼 수 있어요. 한동안 동거하다가도 맞갖잖으면 서로 아무런 부담도 없이 헤여지고. 얼마나 자유로운가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아빠 앞인지라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그녀는 한참 후 좀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아빠, 이젠 복혼 말을 하지도 마세요. 졸혼하고 혼자 사니 얼마나 좋아요? 시집 눈치도 보지 않고 애를 봐주지 않는다고 시집과 신경질 쓸 일도 없어 얼마나 자유로운지 모르겠어요. 보모한테 애를 척 맡겨두고 아무런 뒷근심도 없이 출근만 하면 돼요. 아무리 애 때문이라고 해도 복혼할 생각은 절대 없어요. 생각해보세요. 이전에도 엄마한테 애를 맡겨놓고 시집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 했습니까? 아파트도 아빠 그림을 그려 사준게지 시집에서 해준게 뭡니까?” 문걸은 외까풀눈을 흘기며 딸한테 핀잔을 주었다. “얘야, 시집문제는 시집문제고. 애 아빠야 잘 못이 없잖느냐? 사위 남녀관계문제만 없으면 복혼해라.” 지예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또, 또. 아들이라면 부모와 안해 중간에서 잘 처신해야죠. 뭐나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뉴대작용을 잘 해야죠. 시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리 세대는 혼인과 가정, 인생에 대한 가치관념이 아버지 세대와는 판판 달라요. 지금 결혼하지 않는 독신이 얼마나 많은가요? 결혼을 후회하고 졸혼을 얼마나 선호하는지 아는가요? 졸혼하고 아무런 가정 부담도 없이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자기만의 삶을 사는 것이 저의 꿈인데요.” 문걸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졸혼은 선호할게 아니야. 너네 엄마를 봐라. 생전에 무슨 졸혼하고 자기만의 인생을 자유롭게 살겠다고 하더니 어떻게 됐니? 몇십년이나 날 속이고 살고서도  가정을 다 깨고…넌 절대 엄마처럼 살지 말라.” “엄마 말을 그만 하세요. 졸혼하고 고만이라도 자유롭게 자기 삶을 살았죠.” 지예는 엄마 생각에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러나 문걸은 딸에게 계속 피의 교훈을 토설했다.      “졸혼은 가정을 깨는 이이들 불장난이야. 가정을 가지고 애들 불장난쳐서야 되니? 사랑하지 않으면 갈라져야지. 그 점에서 네가 사위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끊고 맺듯이 리혼한게 맞는다. 왜 졸혼하고 바람을 피운단 말이냐? 법적으로도 졸혼은 합법적인 간통이나 중혼을 유발할 수 있다. 졸혼은 완전히 범죄행위야. 졸혼은 비도덕적이고 비량심적인 혼인관이야."       지예는 묵묵히 아버지 말을 듣기만 했다. "졸혼이란 그저 가정을 파괴하고 애들한테 죄를 짓는 도깨비 장난이야. 넌 절대 졸혼이란 말을 다시 하지도 말라. 이젠 가정을 깨는 도깨비 장난을 작작 해라. 군철이네도 봐라. 별 일도 없어가지고 서로 졸혼하더니 가정을 깨고 애들한테 금발후에미를 다 데려다주고. 그게 뭐냐? 애리싸는 유부남이고 경제간첩이라던가. 너네 오누이 애리싸한테 경각성을 높이고 살아야 해. 졸혼이 잘 한게 뭐냐? 우리 세 가정을 몽땅 파탄에 몰아넣지 않았느냐?” 지예는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오빠 근심은 하지도 마세요. 년금이 2백만원이나 되는 전무로 됐는데요. 숱한 숫처녀들이 침을 질질 흘리면서 줄을 서서 따라다닙니다. ㅎㅎㅎ.” “무슨 소리냐? 애 둘이나 있는 군철을 따르는 바보도 다 있다더냐?” 지예는 외씨처럼 하얗고 걀죽한 얼굴에 정색했다. “하나랑 경희랑 은희랑 왜 30대 중반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고 있는지 아세요? 다 오빠 리혼하자마자   어떨꿍해 이제껏 기회를 노려보고 있는데요. ㅋㅋ.” 문걸은 억이 막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애비에 그 아들이구나. 싸리 긁에서 싸리 자라지. 참대 자라나겠느냐?) 지예는 필경 엄마 피라도 나눈 오빠라고 은근히 될수록 군철의 험담을 하지 않고 아버지와 화해시키려고 애썼다.      "아빠, 오빠 섭섭하게 굴었다고 노녀워하지 마세요. 보쇼. 그래도 이 비싼 상해 아파트까지 아빠한테 주지 않았는가요? 오빠는 그래도 량심이 있습니다." 군철도 동감을 표시했다.      "그래. 군철은 그래도 인간성 있는 효자야. 길러준 정을 잊지 았았구나.  친애비하고는 판판 달라. 얼마나 청렴한 당간부냐? 자기 리속에만 눈이 어두운게 아니라 항상 국가와 회사, 직원들의 리익을 첫자리에 품고 일하잖느냐? 지금 경제시대에 군철 같은 청렴한 당간부는 참 대단해."     지예도 동을 달았다. "오빠는 이제 전국 당대표대회에 다 참가한다잖아요?"    지예는 자기 신상의 말을 또 꺼낼가 봐 화제를 제꺽 아버지한테 돌렸다. “아버지는 춘희박사와 어쩔 예산입니까? 이젠 그만 지내봤으면 빨리 매듭 지으면 어때요?”     문걸은 머리를 끄덕이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이튿날 문걸은 춘희를 만났다.     강남 하늘에 어쩌다 구름 한점 없이 해빛이 찬란해 기분이 좋았다. 그들은 소주에서 제일 으리으리한 고층건물- 동방의 문에 자리잡은 고층커피숍에서 만났다.      커피숍 창가에 마주 앉으니 푸르른 파도가 출렁이는 가없는 호수가 안겨왔다.      호수에는 하얀 돛배가 하얀 물갈퀴를 일구며 쏜살같이 미끄러져 나간다. 구름 한점 없는 맑고 푸른 하늘에는 커다란 한쌍의 원앙새연이 봄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나래치고 있었다.      강남은 언제 겨울이 왔는가 싶이 이젠 봄기운이 완연하였다. 거피숍의 방마다 푸르른 참대 숲으로 둘러 있어서 록색대자연에 들어선듯한 감이 들었다. 좌석에 앉으니 춘희와 넓다란 파초 잎과 월계화 꽃송이가 반겨 맞아 기분이 한결 상쾌했다.      그들은 은은한 음악이 흐르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돋구는 커피숍에서 마주 앉아 진한 커피를 호호 불며 마시였다. 인생살이 진한 맛을 음미하는 행복한 순간이였다.      한참 후 문걸은 춘희 수척해진 얼굴을 마주 바라보며 무거운 입을 뗐다.      “또 한해 지나갔구만. 요즘 리혼과 졸혼, 재혼에 대해 퍽 고민해 보았소.”      춘희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요. 저도 저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련며칠 졸혼을 생각해보았어요.” 문걸은 자못 정색했다. “그럼 오늘 서로 솔직히 말해보기오.” 춘희 외까풀눈에 뭔가 굳은 빛이 어려 있었다. 그녀도 단단히 잡도리를 하고 온 것 같았다. “아드님이 아파트까지 줬다던데요. 이젠 만년에 상해에서 살 예산인가요?” 문걸은 상해 거주문제를 두고 내심 갈등을 한창 겪고 있었다. “상해에서 살면 애들과 천륜지락을 누리는 건 좋은데. 이전에 습기 차서 온몸 관절통에 혼났소. 꽤나 겁나오.” 그는 언제나 여지를 두고 말하였다. “춘희는 상해에서 딸과 함께 살 예산이오?” 춘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 당장은 딸과 함께 자그마한 위생소에서 일할 생각이 없어요. 위생소에는 지금 코로나 PCR검사 밖에 할 일이 없는데요. 황박사가 가은이랑 복화랑 데리고 하면  돼요.  저는 먼저 고향 병원에 돌아가야겠어요.이제  최군철 전무가 정식으로 제약공장을 차릴 때 다시 고려해 보지요.” 문걸은 인차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는 졸혼이란 건 가정을 깨는 도깨비 장난이라고 보오. 졸혼은 철부지 애들의 불장난이오. 그 놈의 졸혼 때문에 나와 영희 가정이 깨지고 아들 딸도 가정이 다 깨지고 말았소. 손군들이 애비와 에미를 찾으면서 대성통곡칠 때면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소.” 춘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는 졸혼을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아요. 졸혼은  허위로 꽉 찬 억지가정을 깨버리고 참사랑에 토대한 새 가정을 이루게 하는 징검다리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정색해 똑바로 문걸을 마주 바라보았다. “저를 보세요. 졸혼 때문에 다이로교수 성학대를 피신해 고향에서 숨을 돌릴 수 있었죠. 졸혼은 저의 피난처였고 안식처였습니다. 졸혼은 결코 나쁜 신생혼인풍속도 아닙니다. 시대 조류에 순응하는 혁신적인 혼인풍속도라고 봐요.” 그러나 문걸은 외까풀눈에 실망의 빛을 띠우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혼인사가 다른 사람들은 졸혼에 대한 견해도 각기 다를 수 있소. 난 졸혼은 늙거나 앓는 남편 부담을 덜려는 아낙네들의 방편이라고 생각하오. 지금 아낙네들은 남편을 쓸모 없는 부담거리로 보기 일쑤요. 졸혼은 또 바람 피우기 위한 비도덕적인 구실이라고 보오. 사랑하지 않으면 갈라져야지. 리혼도 하지 않고 자기만의 삶을 산다? 서로 상대방의 생활을 간섭하지 않는다는가? 다 거짓이오.” 그는 커피잔을 들어 한모금 마시고 뒷말을 이었다.  “이런 실례도 다 있소. 한 부부가  서로 상대방의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기로 졸혼각서까지 쓰고 따로 집을 잡고 살았다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안해는 남편이  다른 녀성과 바람 피우는 걸 발견하고  남편을 중혼죄로 법정에 소송했다오. 보오. 졸혼하고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삶을 살 수 있소? 절대 안되오. 건 허위에 찬 결혼생활의 시작이오.” 문걸은 영희와 결혼해 속히워 산 일 때문에 재처럼 타는 속을 다 털어놓았다. “이 세상에 어디 참사랑이라는 것이 있소? 허위와 배신 밖에 뭐가 더 있소?” 춘희는 외까풀눈으로 눈물이 글썽한 문걸의 맑은 눈을 바라보았다. “참사랑은 있지요. 저는 본댁에 대한 리선생님의 사랑이야 말로 세상을 놀래우는 참사랑이였다고 보는데요.” 문걸은 언성을 높이며 손사래를 쳤다. “영희 말은 하지도 마오.” “아니죠.” 춘희는 뒷말을 이었다. “리선생님은 생사선에서 헤매는 본댁을 살리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가요? 화실까지 팔고 수상상금까지 다 내놓고도 모자라 한국 건축현장에서 막일을 해 치료비용을 대주었지요. 그게 안해한테 주는 참사랑이 아니고 뭡니까?” 문걸은 머리를 홰홰 저었다. “다 사기당한 짝사랑인데. 자꾸 말해 뭘 하오?” 그러나 춘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때 저는 안해 영희 무용수에 대한 리선생님의 참사랑에 감동됐는데요.” “무슨 쓸데 있소?” 문걸도 도리머리를 저었다. “남자나 녀자나 첫 대상을 잘 만나야 하오. 거짓말을 할줄 모르는 참된 사람 말이오. 영희 같은 그런 참사랑 사기군녀자를 만나면 한뉘 개고생하게 되지.” 춘희도 동을 달았다. “녀자도 첫신랑을 잘 만나야죠. 그런데 전 주정뱅이를 만나지 않으면 성변태를 만나 개고생을 다 했죠. 아마 그것도 제가 타고 난 팔자이고 운명이겠죠.” 그녀는 생각 밖으로 이런 말을 했다. “지금 현시대 청년들의 실험결혼도 좀 도리 있다고 봐요. 무턱대고 결혼해 애까지 낳은 다음에 리혼하면 애는 어쩌는가요? 그렇다고 잘못 만난 남자와 억지로 산다는 것도 말은 아니죠. 세상에 어디 마음에 딱 드는 참사랑을 찾기 그리 쉽겠어요?” 문걸은 동을 달았다. “춘희박사의 사랑이야 말로 나에 대한 참사랑이라고 보오. 날 살리려고 자기 뜨거운 피까지 수혈하지 않았소?  내 몸에는 지금도 춘희박사의 인간애가 넘치는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소.” “건 환자에 대한 의사의 인도주의 정신일뿐입니다.” 문걸은 춘희 두 손을 덥썩 잡았다. “아니오. 자꾸 덮어감추려고 하지 마오. 사랑이란 두 심장이 연주하는 티없이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오. 나는 춘희를 여직껏 사랑해왔소? 우리 이젠 모든 욕심과 고민을 다 버리고 참다운 사랑을 엮어나가면서 살면 어떻소?” 춘희는 손을 빼가면서 말했다. “저는 결코 좋은 녀자 아닙니다. 탐욕스런 녀자입니다. 보세요. 다이로교수의 유산을 탐내 무슨 짓을 했는가요? 황차 저는 아직 마음의 상처가 채 가셔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저도 몰라요.” “또 그 소리오? 춘희박사는 다이로교수 유산을 버리고 결단코 내 신변으로 돌아오지 않았소?” 문걸은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두고 완곡하게 에둘렀다. “춘희박사는 다이로교수를 떼나 귀국하지 않았소?” 순간, 막연한 희망의 한줄기 빛이 방불히 망망한 검푸른 대해에서 등대마냥 손짓해 부르는 것이 보이는듯 하였다. 문걸은 용기를 내 물었다. “춘희박사는 도대체 나를 사랑하오? 사랑하지 않소?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도 더 할 말이 없소.” 춘희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선생님은 진짜 행복지수가 높은 화가입니다. 선생님은 참말로  사랑할만한 분입니다.) 그러나 춘희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리선생님, 널리 량해해주세요. 저의 대답이 선생님한테 실망을 줄지도 모르겠지만은요. 오늘은 솔직히  말씀드려야겠어요.” 춘희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리선생님은 왜 재혼에 그다지도 집착하는가요?  저는 아직 졸혼 상태에서 조용히 혼자 살고 싶어요. 한동안 편안히 쉬고 싶어요. 다이로교수한테서 몸은 빠져나왔지만 아직 리혼수속도 하지 못했어요. 생각만 해도 피곤해요." 문걸은 흠칫 놀랐다. (그럼 아직도 다이로 유산에 미련을 두고 있어? 참, 알고도 모를 이상한 녀자야.) 춘희는 확실히 후지산에서 다이로교수가 남긴 유서를  아직도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 유서는 다이로교수 유산상속에 관한 친필유서 아닌가! 문걸은 아직도 춘희 속내를 잘  모르고 있었다. 춘희는 스스럼없이 뒷말을 이었다. "참.솔직히 말해, 저는 두번이나 혼인에  실패했습니다. 다이로한테서 갖은 성학대를 다 받았습니다. 때문에 재혼과 부부 생활에 염오감을 느낍니다. 겁납니다. 그저 선생님과 깨끗한 친구로 보내고 싶습니다. 일정한 시간과 공간의 여지를 두고 친구로 지내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재혼해 뭘 합니까? 각기 자기 애들도 있고 두 가정이 물리적으로 합하면 꼭 삼검불처럼 복잡하게 얽힐 거예요. 지금 숱한 가정의 화목하던 부부들도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각방을 쓰고 삽니다. 나이들수록 부부간에도 자기만의 공간이 더 필요해요. 재혼해 뭘 해요? 남남끼리 늘그막에 한 가정 좁은 공간에 갇혀 비비닥거리면 꼭 삐꺽거릴 겁니다.” 문걸은 그녀의 말에 하도 기막혀 장탄식만 하였다. (그래 날 보고 이전처럼 그대와 친구로 돼 사교무나 추면서 세월을 허송하란 말인가?) 갑자기 바깥 하늘에 먹장구름이 뭉게뭉게 몰려온다.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천지를 진동친다. 커피숍도 불시에 어둠침침해져갔다. 문걸은 인내성있게 참으며 억지로 부드럽게 뒷말을 이었다. “내 친구 성호 부부를 보오. 그 놈의 돈 때문에 20여년이나 엄정희하구 견우, 직녀처럼 갈라져 살았소. 명색이 부부지 어디 부부처럼 살았소? 다 돈욕심이 그렇게 만들었소. 사람이 과욕만 버리고 차례진 떡만 먹으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소.” 춘희는 문걸이 뭘 말한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녀도 다이로교수의 유산에 눈이 어두워 10여년이나 청춘을 허비하지 않았던가. 마끼도 그 놈의 유산을 독차지 하려고 친구 복화를 팔아먹지 않았던가. 그러나 춘희는 그런 내심은 드러내지 않고 하던 말을 계속 했다. “우리 둘이 딱 재혼해야 합니까? 우린 다 각기 딸애를 가지고 있어요. 이제 두 가정이 물리적으로 합한다고 해도  화목하게 지낼 수는 없어요. 재혼하는 남녀가 화학적으로 융합돼 새로운 참된 사랑을 잉태해야 행복할 수 있죠.  재혼하지 않고서도 재미나게 보내는 친구로, 지기로 보낼 순 없는가요? 우리 너무 조급하게 서둘지 맙시다. 졸혼이란 새 혼인풍속도를 더 탐구해보면 어떨가요? 졸혼은 자기만의 삶의 부두이고 안식처인데요. ” 문걸은 막연한 생각이 들어 커피잔만 애꿎게 기울였다. “우리 언제까지 숨박곡질하면서 평행선을 달려야 하겠소?” 그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만 두고 이렇게  말했다. "졸혼은 가정을 깨는 시한폭탄이오. 졸혼은 바람 피우는 사람들의 방패에 불과하오. 정호랑 보오. 졸혼하고 뭘 했소? 졸혼이란 방패를 내들고 뭇사람들의 눈을 피해 숱한 녀자들과 바람을 피우지 않았소?" 문걸은 춘희가 아직도 졸혼에 미련을 두는 것을 리해할 수 없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아, 이게 내가 몇해동안 추구해온 사랑의 비극적인 결말이란 말인가? 춘희가 어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 세상에 도대체 참사랑이란 것이 있는가? 춘희는 귀향해 졸혼을 만끽하면서 애완견 다빈치하고 짝꿍해 살 예산인가?)      춘희는 문걸과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이며 바람결처럼 커피숍에서 사라졌다.      (참사랑을 찾는 고행이 그리 쉬운가 해요? 10년 걸릴지, 20년 걸릴지 누가 알아요? 그렇게 오래 기다려도  참사랑을 맺을 수만 있다면야 다 괜찮지요.)      문걸은 춘희 그런 속심을 꿰뚫어보았는가.      그의 눈 앞에는 피뜩 아사꼬가 떠올랐다. (아사꼬는 이 시각에도 가짜 춘희로 돼 다이로교수를 달래고 있을가? 아사꼬가 퍽 그립구나.)      그러나 인차 도리머리를 저었다.      (안돼. 난 더는 아사꼬하고 살 수 없어. 수영장에 가서 뉘 려염집 색시들이나 구경하면서 살 순 없어. 정호는 날 금욕주의자라고 비웃었지. 허나 나도 칠정육욕이 있어. 나는 짐승 같은 정호처럼 저렬하게 정욕을 채우려고 미쳐날뛰지 않는다. 나는 티없이 깨끗한 두 심장으로 연주하는 아름다운 참사랑 멜롤디를 찾아 헤맬뿐이다. 10년이고 20년이고 고독해도 좋다. 기어이 참사랑을 찾고야 말 거야.)      문걸은 비장한 마음을 다시한번 다지였다.      (고향으로 돌아가 화가의 고독한 예술창작의 길을 걸으면서 살가? 군철이 준 상해 집을 팔면 한 600여만원 받을 거야. 집 팔아 고향에 화실도 그럴듯한 걸 사놓고 서화학원도 차릴가? …)     춘희 랭랭한 얼굴이 떠나가버린 자리에는 랭랭한 커피잔만이 차탁 위에 달랑 고독하게 놓여 있었다.       커피숍에 스물스물 몰려드는 고민과 적막강산, 푸른 참대마저 고독을 입에 물고 문걸을 묵묵히 키켜보며 조롱하는 상 싶었다. 영희 허위적인 사랑에 사기당한 자기를 비웃는 상 싶었다. 물욕에 눈이 어두운 춘희한테 끌려다닌 자기를 꾸짖는 상 싶기도 했다.        (아,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참된 녀성을 만나 단 한순간이라도 참사랑을 향수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참사랑을 이렇게도 갈망하면서 추구하던 내가 아닌가. 그런데 춘희가 어찌 이다지도 혹독하게 나를 대한단 말인가! )       순간, 문걸은 춘희가 이중생활을 하던 이상한 외까풀눈과 쌍겹눈이 눈 앞에 겹쳐 떠올랐다. 병원에서 박사의사로 병을 볼 때는 외까풀눈, 등산할 때는 쌍겹눈...      (아, 춘희는 무서운 인간박사야. 간첩처럼 갼특한 탐욕주의자?)     번개치는 추리가 여기까지 이르자 문걸은 허무맹랑하기 그지 없었다.    "아, 이게 내가 그다지도 추구한 참사랑의 쓴 열매인가!"     그는 춘희가 바람결처럼 가뭇없이 사라진 문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독한 이 순간, 그는 고향 뒤동산의 연분홍진달래꽃이 무척 보고 싶어졌다. 만금이 지은 고들고들한 이밥이 그리워졌다. 고향 집을 나간 비둘기가  퍽 그리워났다.  그러나 비둘기 대신 강남의 갈매기가 훨훨 날아와 커피숍 창턱에 내려앉아 구구거리며 몰려오는 먹장구름을 쳐다보며 하품한다.       먹장구름에서 탁구공만한 우박이 쏟아지며 돌멩이질한다. 참사랑이 박살나 호수물에 마구 곤두박힌다.     저 멀리에서 푸르른 파도가 기세 사납게 덮쳐왔다가 처절썩 호수가 방파벽을 부신다. 하얀 물보라가 신음하며 흩날린다. 푸르른 하늘에서 봄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예던 연이 줄이 툭  끊어져 호수 물에 곤두박힌다. 희망의 돛배도 호수물에 넘어져 허우적거린다.       한번 가면 다시 안 오는 인생, 참사랑을 찾는 고행 왜 이다지도 복잡할가?       진정 황혼에 졸혼이 젤 행복한가?       졸혼이란 새로운 혼인풍속도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어디에 정답이 있는가?        하늘 땅도 대답이 없다. 다만 먹장구름 속에서 불뱀이 커피숍에 혀를 홀락거리며 번쩍일 뿐이다. 우뢰가 하늘땅을 진감한다.       커피숍의 은은한 멜로디를 짓누르며 졸혼의 쓰라린 메아리가 쓸쓸하게 가슴을 울리며 아프게 허빈다.      문걸은 불시에 눈 앞이 아찔해나며 불찌가 튕겼다. 귀전에는 영희 아츠런 잔소리 쟁쟁하게 울린다. 어둠을 손더듬하며 도적고양이처럼 발뼙발뼘 화장실로 가던 오시러움이 머리 속에서 곤두박질친다. 색마가 그물을 쳐서 영희를 도적질해 끌어간다. 영희 비명소리 처량하게 들린다.      순간, 춘희와 등산하러 갔을 때 생사를 다투게 한 눈구덩이 피뜩피뜩 떠오른다. 협곡에서 춘희와 서로 꽉 껴안고 고백하던 참사랑의 메아리가 염라전을 방불케 하던 어둠침침한 협곡에 울려퍼진다. 허위로 색바래진 참사랑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쁠랙홀에 빨려들어간다. 영희와 춘희가 한데 뒤엉켜  비명을 지르며 눈구덩이에 훌러덩 빠져들어간다. 아니, 허위에 찬 사랑의 쁠랙홀에 훌러덩 빨려들어간다...       순간,  참사랑을 그렇게도 열렬히 추구하던 피 끓던 심장이 툭 튀여나왔다. 펄떡펄떡 높뛰는 심장이 커피숍 창문을 박차고 안개 자오록한 호수에 씽- 날아가 출러덩 처박힌다. 지친 심장이 참사랑 오솔길을 따라 골고다언덕을 기여올라가다가 무정한 우박의 돌총질에 얻어맞아 검푸른 졸혼의 호수 밑바닥에 처참하게 천천히 가라앉아버린다.      참사랑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번져 호수에 김이 무럭무럭 피여오르고 무수한 기포가 호수면에 솟구쳐 오른다. 수십겹 파문이 돌풍을 일으키며 쓰나미로 호수면을 덮치고 지나간다. 몇백길 분수가 먹칠한듯한 하늘로 치솟아오른다.       태호의 숱한  왕게들이 허겁지겁 기여가  집게팔로 그 허무맹랑한 심장을 건져 잔등에 업고 호수 수면에 서서히 떠오른다.       우둔한 꽃게들마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중얼거렸다.       "이 더러운 세상에 무슨 참사랑이란게 있다고 이래? 흥!"       "춘향과 리몽룡의 일편단심 참사랑이 사라진지도 언제라고. 이다지도 심장까지 애태울게 있는가?"      "괜히 심장까지 더럽힐게 있어?"       "그래요. 인간세상에 무슨 참사랑이 있다고 그래요?"       미녀로봇마저 호수에 날아와 종알거리며 충고했다.      "당신은 미녀로봇의 참사랑을 향수하며 살 팔자예요. 나하고 살자요. 내 사랑이야 말로 일편단심 참사랑이죠. 호호호."      그러나 참사랑에 전 심장은 참사랑을 이루지 못한 모든 죄를 혼자 떠메고 고행의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간다. 그 참사랑의 뻘건 심장은 재생의 꼬리로 졸혼의 로맨틱한 서정서사시를 다시 고쳐 쓰려고 몸부림친다. 우박이 창창 떨어져 불쌍한 심장을 마구 들부셔도 그대의 앞길을 막지는 못한다.       저게 뭔가?       펄떡펄떡 뛰는 심장은 골고다 언덕에서 두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먹장구름 속으로 씽 날아올라가더니 참사랑신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참사랑신의 심장은 갑자기 반짝이는 별로 돼 한줄기 눈부신 참사랑의 빛을 발산한다. 그 한줄기 밝은 빛은  먹장구름을 산산히 부신다. 어둠침침한 하늘에서 밝은 빛을 맞아 우박이 쏟아져내린다. 번대머리 가발이 흩날려 떨어진다. 섬나라 오랑캐변태의 콧수염이 흩날려 내린다.  실험관 애기, 복제애기 발버둥질치며 호수에 퉁퉁 떨어진다. 허위적인 사랑파편들, 저렬한 성애쪼박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호수에 처박힌다.                참사랑신의 밝은 빛이 지나간 하늘에는 어둠이 산산히 부서지며 맑고 푸른 하늘선이 눈시리게 아물거린다. 동녘하늘에 칠색무지개가 서서히 다리를 놓고 그대들을 손짓해 맑은 하늘로 부른다.       먹장구름을 부시며 사투를 벌이는 참사랑신의 심장, 참사랑신의 심장불덩어리가 가엽다.  빨간 빛에 흩어졌던 먹장구름은 다시 몰려들어 빨간 불덩어리를 두터운 어둠으로 덮어 가려놓는다. 참사랑신의 한줄기 빛으로 먹장구름이 뒤덮인 어둠침침한 하늘을 몽땅 빨갛게 물들이고 파란 하늘로 밝히기는 너무나도 환상적이다. 매지구름장은 파란 하늘을 간음하고 이빨 새에 끼인 어둠을 뱉어낸다.       피끓는 심장으로 연주하는 참사랑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파르르 떠는 별을 감돌며 어둠컴컴한 우주에서 가냘프게 울러퍼진다. 애처러운 졸혼의 메아리가 참사랑신의 혼을 부르며 흐리멍텅한 하늘에서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며 훨훨 나붓긴다. 기나긴 여운의 날개가  휘파람을 불며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안개 자욱한 호수에서 유유히 나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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