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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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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    장편소설 황혼(6) 미련 김장혁 댓글:  조회:522  추천:0  2024-07-11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6. 미련     지칠대로 지친 혼은 종호의 머리에 되돌아와 대뇌에 스리슬쩍 들어가 앉았다.퐁퐁 솟는 샘물로 홧홧 달아오른 목을 마음껏 축이고 싶었다.   갑자기 독사가 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모래불에서 기어나와 마라토너의 종아리를 딱 깨문다.   전갈도 점프하면서 집게발로 발목을 집어 문다.   “악!”   마라토너는 모래불 위에 털썩 쓰러진다.   그는 손으로 발목의 전갈을 쳐댄다. 입으로 얼룩독사를 물어뜯는다. 그러나 독사와 전갈은 마라토너 발목을 놓칠 않고 악착스레 물어뜯는다 …   “사람 살려라!”   종호가 비명을 질러댔다.   “아빠, 깨나세요.”   려향은 종호의 머리를 받쳐안고 쓰다듬어주었다.   옆에서 류려평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빠, 정신 차리면 알려라.”   그녀는 춘희 박사한테 다가가 나직이 물었다.   “살아날 가망이 있는가요?”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정신 차릴 거 같아요. 손목의 정맥을 끊었을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요. 빈혈이 심해요. 또 수혈해야겠어요.”   려향이 팔을 걷으며 나섰다.   “제 피를 수혈해요.”   “이미 숱한 피를 수혈했는데 괜찮겠소? 혈고에서 혈장을 가져다 수혈해도 되오.”   려향은 옆의 침대에 누우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저의 피를 수혈하세요. 다른 사람의 피보다 딸의 피를 수혈하는게 젤 좋을 거 같아요. 후유증도 없고…”   춘희 박사는 려향의 효성에 자못 감동됐다.   “심청보다 못잖은 효녀군요.”   그러나 류려평은 종호를 돌아다보며 눈을 흘기었다.   속으로는 욕설을 퍼부었다.   (헌 독이 성한 독을 쳐 마스고 말 작정이구나. 그 잘난 애비를 구하다가 하나 밖에 없는 딸마저 잡아 먹겠다.)   그녀는 딸의 팔 혈관에서 흘러나온 빨간 피가 비닐호스로 해 종호의 손목 혈관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퉁사발눈을 슴벅이며 마음 아프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딸의 옆에 다가앉아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물었다.   “저 양반, 도대체 어떻게 자살하자고 한 거냐?”   려향은 회상하기도 싫은 참사를 어머니한테는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학원에서 셋집에 돌아오니 안으로 문이 걸리어 있지 않겠어요. 내가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아빠를 불러도 문을 열지 않잖겠어요. 그래서 주인집 어른한테 알렸지요. 주인이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야 셋집에 들어가보았지요…”     그때 려향은 셋집 구들에 쓰러진 아버지, 아버지 손 목에서 구들바닥에 줄줄 흐르는 시뻘건 피를 보고 기절할 번 했다.   려향은 아버지를 끌어안고 엉엉 대성통곡쳤다.   “아빠! 왜 이래요? 바보처럼 왜 이레요? 네?!”   집 주인은 꿇어 앉아 손을 종호의 코 앞에 대보고 고함쳤다.   “아직 살아 있어. 이럴 새 없어! 빨리 구급차를 불러야 해.”   집 주인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려향은 긴 치마자락을 쭉 찢어 아빠 손목을 꽉 동이었다. 좀 지혈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요란한 경적소리와 함께 구급차가 달려왔다. 구급대원들이 침대를 들고 콧구멍만한 셋집에 달려 들어왔다…     춘희 박사가 나가고 병실에는 간호원이 남았다.   려향은 어머니 손을 꼭 잡고 눈물을 머금고 애원했다.   “어머니, 한가지 부탁이 있어요.”   류려평은 퉁사발눈을 치뜨며 딸을 내려다 보았다.   “뭔데?”   려향은 간호원이 자리를 잠시 비우자 마음 속에 오래동안 품었던 말을 꺼냈다.   “아빠하고 함께 삽시다.”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이 대번에 희번뜩거리었다.   “되지도 않을 소릴!”   “왜?”   류려평은 외씨처럼 수척해진 딸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똑똑히 말했다.   “네 아빠는 가정 살림살이를 할 사람이 아니야. 누가 저 나그네와 살면 누가 곤경을 당해.”   려향은 어머니 손을 꼭 잡았다.   “딸의 전도를 봐서라도 함께 살면 안 돼요? 아빠는 사회에선 둘도 없는 사업가이죠. 당당한 신문사 부사장이 아닌가요? 우리 민족을 위해 많은 일 해 존경받는 분이죠.”   “지금 그런 책 내는 거 누가 환영하기나 하겠구나. 건데 네 애빈 책 내느라고 하나 밖에 없는 아파트마저 다 팔아먹은 바보야. 지금 누가 책을 봐? 온라인시대에 참. 더 말하기도 싫어.”   “아빠는 효자지요, 살림을 잘 못하면 차차 내 아빠를 고치게 말씀드릴게요. 우리 세 식구 함께 살자요.”   류려평은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관둬. 다신 말도 말아. 우린 쌍방이 자원해서 졸혼한 거야. 각기 자기 삶을 살아왔어. 효녀라면 부모들의 생활질서를 파괴하지 말아야 해. 알만해? 우리 일에 작작 끼어들어라. 좀.”   말을 마치자 류려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리었다.   “어머니! 어머니!”   문께서는 봄날에 차디찬 바람이 휙 불어들어올뿐 려평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려향은 아빠가 불쌍해 엉엉 울었다.   그때 종호는 꿈인지 생신지 금방 모녀 지간에 주고 받는 말을 다 들었다.    뒤이어 그는 넉두리인지. 잠꼬대인지 중얼거리었다.    “귀여운 딸아, 내 유언 들어 봐. 아빠도 저런 불효녀와 함께 살려는 생각 하나도 없어. 어쩐지? 려평을 보면 허연 백골로 보인다. 허연 해골, 쑥 꺼져 들어간 눈확, 악문 이빨... 무섭다. 여악마의 그 몰골. 보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려평과 복혼은 절대 없다. 나는 려평과 졸혼하고 얼마나 날듯이 기뻤는지 몰라. 너도 알지만 난 졸혼하고서야 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했잖아. 그런데 딸이 마음이 아파할가 봐 복혼하라고? 힘들구나. 제발 날 놔 달라. 절대 동정하지 말라. 이젠 나를 가고 싶은데로 가게 놔둬라.” 아빠의 절절한 유언 같았다.   그러나 려향은 대노해 부르짖었다.   “아빠, 난 절대 부모가 갈라서 사는 걸 놔둘 수 없어요. 조강지처를 버리다니오. 으흐흑, 흑흑흑.”   아, 가엽구나, 엄마, 아빠를 억지로라도 함께 살게 하려는 딸의 눈물 겨운 효심.   허황하구나, 바람 따라 허깨비처럼 날려가는 아빠 혼의 끝자락을 잡고 놓치려고 하지 않는 미련의 한숨소리.   아빠 얼굴에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가슴을 어이는 슬픔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아니, 효녀의 효심이 방울방울 피눈물로 맺혀 떨어지며 대성통곡친다.    그 대성통곡 소리는 아빠 엄마를 한 구들에 모시고 살려는 려향의 미련의 한탄소리일지도 모른다.
458    장편소설 황혼(5) 꿈인가 생신가? 김장혁 댓글:  조회:550  추천:0  2024-07-10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5. 꿈인가 생신가?         아, 가엽구나.      책짐 메고 달아다니던      저 사막의 마라토너         눈을 집어 뜯으며       글 쓰던 저 마라토너 작가       뜨거운 심장       사막에서 선인장으로 재생하리.         사막의 마라토너여,       이젠 모든 걸 내려놓으라.       몇십년 벼린 필도       무거운 책짐도       모두 내려놓고       편안히 쉬시라…     화장터에서 정호인가 읽는 추도사인지 시인지 종호의 귓전을 아프게,  쓸쓸하게 때린다.      “개소릴 작작 쳐라. 사막의 마라토넌 네 할애비라고 해라.”    종호는 병상에서 또 잠꼬대를 했다.   (내 모든 걸 내려놓는 이날 기다렸어? 돈과 미녀 밖에 모르는 부패분자! 정호, 네놈 색마 보기도 싫어. 성감옥에 갔다더니 왜 추도식에 바라왔어? 누가 보겠다데? 네놈들한테 내 추한 꼴 보이기 싫어 추도식을 열지 말라고 분부해놨는데. 참.)   김춘희 박사는 외까풀눈으로 려향을 돌아보았다.   “리사장님은 아마 몽유 하는 거 같아요.”   려향이는 아빠의 머리를 따뜻한 수건으로 살살 닦아 주었다.   그녀는 침대머리에 걸어둔 현광판을 쳐다보았다. 심률이 고르롭게 흘러지나가고 있었다.   종호의 혼은 눈 앞을 가리기 힘든 사막으로 날아갔다.   허약한 혼도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사막의 모래산에서 책짐을 메고 마라톤을 하는 종호를 따라 헤매다가 사막에 벌러덩 쓰러졌다. 귀전에는 주산알 딸까닥 딸까닥 튕기는 소리 울린다.    별의별 앙칼진 비아냥거리는 소리 다 사막에서 불어치는 모래바람 속에서 란무한다 -    “당신 책은 피 냄새만 나고 짜릿한 사랑 얘기 하나도 없어요. 그런 책을 누가 보는가요? 우리 출판사 망하겠어요.”   “당신 책 화약 냄새만 나고 너무 예술성이 없어요. 이런 책은 팔리지 않아요. 이런 책 내면 우리 출판사 부도나요.”   (에이,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 사회 효과성은 하나도 보지 않고 남의 책을 비하해? 흥!)   종호는 그런 수전노들한테, 민족의 력사에는 관심도 없는 그런 얼빠진 놈들이 역겨워 침을 뱉었다.   “얼빠진 놈들, 더러워! 저런 수전노들한테 책 내는 문턱을  맡기다니?”   누르스름한 바탕에 벌거스름하게 활활 타번지는 락조가 비낀 무연한 사막, 모래바람이 윙윙 휘물아쳐 사위를 분간하기 힘들었다. 목구멍까지 홧홧 달아오르는 사막에서 한 마라토너는 완강한 의력으로 무거운 책짐을 메고 비틀거리며 걸어나가고 있다.    전갈과 얼룩독사가 모래불에 몸을 모래불에 파묻고 한쪽 눈깔만 내놓고 팬들거리며 마라토너를 노린다.   “바보 같은 놈. 이런 사막에서 누가 네 놈의 책을 산다고 저래?”   전갈은 삐뚤어진 입귀로 조소를 흘리었다.   독사도 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누가 저런 책 본다고 책짐을 메고 사막에까지 와서 돌아다녀? 어디 죽어 봐.”   독사는 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마라토너 종아리를 노리어 본다.   저게 뭔가?   마라토너 허리 벨트 툭 끊어지었다. 괴춤이 훌렁 내리어진다. 책짐이 툭 떨어지며 풀린다. 모래바람에 책들이 훌 날려간다.   마라토너는 괴춤을 춰 입을 새도 없이 책을 쫓아간다.   “아, 저 책을!”   어찌 애 탄 두 발로 바람을 따라가 붙잡을 수 있을까?   저게 뭔가?   꿈인가? 생신가?   하느님이 돕는 걸까?   아니면, 선렬들의 혼이 돕는 건가?   바람에 날려간 책들이 기적처럼 황혼이 붉게 타오르는 무연한 사막의 하늘에 신기루로 나타나지 않았겠는가.   (그래, 아무리 세찬 바람도 책을 빼앗아가지 못해.)   종호의 혼은 황혼이 깃든 사막에서 두 팔을 벌리고 환호하며 달려갔다.   천천히 다가가면서 보니 신기루는 구름을 찌르는 마천루도 아니고 무져놓은 책더미 아니겠는가.   그때 책 신기루는 서서히 뻘겋게 피빛으로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이 비낀 사막에 서서히 내린다. 갑자기 신기루는 책 금자탑으로 우뚝 솟아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건 또 뭔가?    책 금자탑 상공에는 오색령롱한 오로라가 온 누리에 빛 뿌린다.   금자탑 붉게 타오르는 상공에 웬 장군님이 나타났다. 쏘련 홍군의 군모를 입은 장군님, 저 장군님은 항일명장 홍범도 장군님이 아닌가.   책 금자탑 뻘건 상공에는 겨레의 무수한 영혼이 서서히 타나나지 않겠는가.   환각인가?   아니면 종호의 혼이 너무 우리 겨레의 영혼을 너무 그려서 나타났을가?   구름 속에 이등박문을 쏘아눕힌 안중근 의사님, 용정 서전의숙의 창시자 리상설 선생님,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제 적장들을 삼대처럼 쓸어눕힌 윤봉길 의사님, 천왕궁 앞에서 일제 천왕이 앉은 마차에 폭탄을 던진 리봉창 의사님,청산리대첩을 올린 김좌진 장군님,항일명장 리홍광 장군님…   민족영웅들의 늠름한 모습이 동영상처럼 생생하게 나타지 않겠는가.   "돌격!"    적진으로 달려가는 렬사와 영웅들의 고함소리가 귀전을 아프게 때린다.   “광복 만세!”   “인민정권 만세!”    누르스럼한 황혼이 빨갛게 붉게 타오르는 사막의 서쪽 하늘에 영웅들의 넋이 오색찬란한 오로라로 빛 뿌린다.    그 찬란한 빛을 받아서인가?    사막의 책 금자탑 앞에는 뜻밖에도 사랑의 오아시스가 기적적으로 펼쳐진다.    모래바람이 불어치는 사막 복판의 그 오아시스에는 연분홍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 이쁜 얼굴을 반쯤 내밀고 금자탑을 쳐다본다.저쪽에서 한나산 하얀 무궁화도 꽃잎을 활짝 펼치고 생글방글 웃음지으며 두 손들고 달려오며 환호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아시스 한가운데서 옹달샘이 퐁퐁 솟는다.사막에서 옹달샘이 솟다니? 그 기적에 목마른 사람들은 목을 축이며 환락으로 들끓는다.    불시에 맑은 옹달샘물은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의 하늘에 은은한 도라지 노래에 맞춰 분수로 솟아오른다.사막의 모래바람이 멎는다.생명의 분수를 맞은 연분홍 진달래 꽃잎은 씻은듯이 더욱 청초하고 이쁘다.사막에서도 꽃 피는 연분홍진달래가 서글프기만 하다.   연분홍 진달래 꽃잎 새에서 불어치는 신선한 바람에 슬픔이 스치고 지나가며 쓸쓸하게 아리랑을 부른다.   벌거스럼한 황혼 락조가 서서히 져가는 사랑의 오아시스 언덕에서인가, 모래담장 너머 어디에서인가 어린이들이 ㄱ, ㄴ, ㄷ, ㄹ  읽는 낭랑한 소리 구슬프게 은은히 울리어 메마른 사막에 잔잔히 스며든다.    “우리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   종호의 혼은 두팔을 벌리고 미친듯이 환호하며 사막에 유일한 사랑의 오아시스로 달려갔다.
457    장편소설 황혼(4) 나영이 김장혁 댓글:  조회:493  추천:0  2024-07-10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4. 나영이     둥둥, 둥둥둥!   저승사자 황천길을 재촉하는 북소리 요란하건만 삶의 실오리만한 미련의 꼬리가 혼을 육체한테 끄집어 당기어다 넣으려고 모지름을 쓴다.   공포가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염라전의 층계에 도사리고 앉아 하품을 하며 낮잠을 청한다.    황천의 블랙홀에서는 억울하게 시들어간 혼들이 아우성치며 소용돌이에 휘말리어 간다.   허깨비 같은 혼은 용케도 저승의 블랙홀 절벽 틈 사이에 손톱, 발톱을 박으며 한발자욱, 한발자욱 련옥을 지나 이승으로 기어나온다.   아, 그게 단떼의 “신곡”의 지옥과 련옥을 이은 무지개 다리인가? 아니면 베니스성의 “7보한숨” 소리인지 누가 알리오?   혼은 천정에 디룽디룽 매달려 있다가 종호의 육신으로 되돌아와 안착하며 한숨을 호- 내쉰다.   “아빠! 좀 깨나세요. 이젠 보름 동안이나 누어 있었는데요. 좀 일어나세요.”   갑자기 귓구멍이 뻥 뚫린다. 온갖 잡소리 다 들리어온다.   창 밖의 새소리인가?   (아니야, 내 딸의 목멘 부름소리 아닌가?)   종호는 살며시 눈을 뜨려고 애썼다. 그러나 눈까풀은 천근 무게나 되는 것 같아 좀처럼 뜰 수 없었다.   (참, 삶의 의욕이란 고약하구나. 이 놈 세상에서 살기 싫어 왼 손목 핏줄을 끊어 자살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갑자기 점점 정신이 말쑥해지면서 딸을 보고 싶어지지 않는가?)   이때 내 귀에는 분명 려향이 목소리 들리었다.   “나영 언니 아빠를 보려고 왔어요.”   (뭐? 나영이?)   이게 뭐야? 여자 이름 들리자 종호의 눈이 번쩍 뜨인다.   “아빠!”   려향의 걀죽한 얼굴이 흐리마리하게 보이잖겠는가?   그 옆에 웬 하얀 옷들이 빼곡이 둘러 서 있다. 무슨 구경거리 있다고 이래? 남은 다 죽어가는데. 참. 아직도 어수선한 세상이야.    내 입술이 저도 몰래 씰룩거렸다.   “나영인가?”   그러나 나영의 걀죽한 얼굴은 보이지도 않는다.   려향이 내 입에 귀를 바싹 대었다.   “나영이…”   “오- 아빠, 나영 언니 급한 일이 있어 갔어요. 내일 또 올 거예요.”   려향은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았다. 순간 뜨거운 눈물방울이 내 볼에, 눈확에 방울방울 떨어지었다.   려향은 아버지가 혹시 나영이 이름을 부르면 깨나겠는가 해 수를 써 보았던 것이다. 그 수는 진짜 효험을 보았던 것이다.   내 얼굴을 간지르는 나른한 머리카락 사이로 슬픔이 폭포처럼 쏟아져내린다. 눈물 방울 사이로 우는 사랑의 바람소리 귀를 스치며 통곡친다…   며칠 후 나는 나영이 왔다는 소리에 기적적으로 눈을 떴다.   분명 귀여운 딸애 얼굴 옆에 나영의 걀죽한 얼굴을 흐릿하게 볼 수 있었다.   “리선생님, 끝내 깨났군요.”   “기적이오!”   “김춘희 박사님, 감사해요. 유럽 관광을 가기로 했다던데요. 어쩜 여기까지 와서 아빠를 구해주셨어요?”   “감사는 무슨, 감사는 아버지 고중동기 딱친구 리문걸선생님한테 드리오. 리문걸선생님은 입원치료 받는 처지에서도 날 보고 종호  사장님을 꼭 구해달라고 하잖겠어요.”   “네-고마운 분이군요. 이담 꼭 찾아 인사드려야겠어요.”   종호는 흐리터분한 눈길을 려향이와 말을 주고 받는 여성한테 돌리었다. 그저 시허연 벽과 하얀 옷, 흰 모자가 희미하게 허상처럼 보일뿐이다.   (그럼 김춘희 박사가 한국까지 나와서 날 구했단 말인가? 아님, 내가 지금 중국에 돌아왔는가? 여긴 도대체 어디지?)   나는 놀랍게도 무슨 속궁리까지 하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날마다 아빠하고 몇마디 말이라도 주고 받아요. 그럼 정신회복에 도움이 돼요.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오래 하진 마세요.”   “네. 알겠어요.”   이때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이 내 손을 잡는 것이었다.   “리선생님, 좀 괜찮지오?”   종호는 쌍까풀눈을 크게 뜨려고 무등 애썼다.   “누, 누구…?”   그러나 입술이 무거워 온전히 말을 번지지 못했다.   나영은 뜨거운 눈물방울을 종호의 얼굴에 방울방울 떨어뜨리었다.   “리선생님, 저, 나영인데요. 선생님, 왜 이렇게 바보처럼 짧은 생각을 하는가요?”   종호는 눈을 맥없이 스르르 감아버리었다.   나영은 종호의 손을 잡아 매만지면서 흑흑 흐느껴 울면서 말했다.   “흑흑, 선생님, 선생님은 이전에 제가 자살하려고 했다고 이렇게 일깨워주지 않았던가요? ‘왜 죽겠소? 죽을 용기 다 있으면 왜 살 용기 없소? 악을 쓰면서 살아야지.’”   (그래, 아리숭하게 기억나. 그때 나영한테 그런 말 했지.)   나영은 종호의 두 손을 꼭 잡고 간곡히 말했다.   “리선생님, 선생님은 저의 목숨을 구한 구명은인인데요. 이젠 제발 잡생각 마세요. 병마를 훌훌 털어버리고 어서 일어나세요.”   갑자기 종호가 입을 열었다.   “그만 두오. 세상이 더럽소… 보기 싫어…”   “끝내 말하시는군요.”   나영은 너무 기뻐 환성을 지르며 려향을 돌아보았다.   려향도 아빠 손을 맞잡았다.   “뭘요? 뭐가 자꾸 보기 싫어요.”   “암범, 악처, 색마…”   려향은 아빠 손을 활 놓아 버리며 두덜거리었다.   “왜 자꾸 어머니를 그래요?”   종호는 맥없이 머리를 끄덕이었다.   “정호는 감옥에 있는데요. 보이지도 않아요.”   “아니야. 금방 그 놈 내 추, 추모사를…”   “환각인데요. 아빠, 근본 추도대회도 열잖았는데. 어디서 난 부패분자 정호가 추도사를 했다고 그래요? 허깨비 왔다 갔겠어요.”   나영은 너무 한심했다.   그녀는 종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우리 함께 용기 내 삽시다. 세상이 아무리 더러워도 리선생님처럼 정의감이 있고 남을 잘 돕는 착한 마을 가진 선량한 분들도 많찮  아요? 우리 착한 사람들끼리 함께 삽시다.”    종호는 쌍까풀눈을 살며시 떴다. 기대에 찬 미소를 짓는 여인의 얼굴, 걀죽한 우유빛얼굴이 어슴푸레 보인다.    (우리 함께 살자고? 나하구 살겠다고?)   종호는  삶의 의욕이 은은히 생기어 나는 감을 느꼈다.   (사람이란 고약해. 금방 세상이 더러워서 죽어버릴 상 하더니 또 살겠다고 돌아누어?)   그는 손을 들어 눈물을 흘리는 나영의 걀죽한 얼굴을 닦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팔은 바위돌을 처매놓은듯해 들래야 들 수 없었다.   그는 모진 세상풍파를 겪으면서도 의악스레 살아온 걀죽한 여자의 얼굴에서 내비치는 강인한 빛을 보아냈다.   나영은 계속 사랑이 넘치는 말을 했다.   “저의 목숨을 리선생님이 준 거나 다름없어요. 저는 리선생님을 모시고 이 세상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종호는 도리머리를 젓고 싶었다.   “이 놈 세상 보기, 보기 싫어.”   나영은 해쭉 웃어 보이었다.   “그럼 눈 감고 사세요. 저만 보고 사세요.”   “세상 모든게 듣기 싫어.”   “저의 말도?”   종호는 도리머리를 젓고 싶었지만 머리 무거워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럼 귀를 막고 사세요. 려향이와 저의 말만 듣고 살면 되지요. 호호호. 드문드문 전유진이나 정수주의 아름다운 노래소리나 듣고.   호호호.”   종호는 점점 정신을 차리었다.   그는 나영한테 많은 말을 하고 싶었다.   (세상 모든 걸 보지도 않고 듣지 않으면서 살아서 뭘 해? 렬사하고 영웅들의 책도 쓰잖고 살아서 무슨 삶의 가치 있어? 난 죽어야 해.)   그러나 이런 말을 번질 수 없었다. 입술이 점점 말을 듣지 않았다.   “난, 난 실패한 인, 인생이야…”   “아니예요. 리선생님은 신문사 사장 아닌가요? 우리 민족의 렬사와 영웅들의 사적을 숱한 책으로 출판하잖았는가요? 한국 젤 큰 서점에서도 선생님의 책이 팔리던데요. 리선생님은 성공한 인생인데요. 그보다 선생님은 곤경에 빠진 저 같은 여자를 구해준 좋은 사람이죠.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분인데요. ”    나영은 종호의 두 손을 꼭 잡고 발까지 동동 굴렀다.   “리선생님, 어서 병마와 잡생각을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나세요. 흐흐흑, 흑흑.”   그녀는 흐느껴 대성통곡치었다.   정호의 혼은 이번에는 흑흑 흐느끼는 나영의 콧구멍으로 해 심장으로 스리슬쩍 들어가보았다. 그녀가 혹시 가살을 피우지 않는지 속을 들춰보기 싶었던 것이다.    그녀의 심장은 이렇게 흐느끼며 속삭이고 있지 않겠는가.   (리선생님, 어서 일어나세요. 리선생님은 저의 구명은인인데요. 저는 알아요. 선생님은 저를 좋아한다는 걸. 나이 차 때문에 저를 감히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요. 선생님은 저를 잘 몰라요. 저는 선생님이 좋아할 여자 아닌데요. 아니, 죄범인데요. 저는 탐오죄를 범해 한국에 도망쳐 나온 여자인요. 저는 정파답지 못한 패륜여자인데요. 정호와 더럽게 몸과 마음을 섞은 적 있는 화냥년인데요. 일순간 육신의 괘락을 위해 정조를 지키지 않은 불결한 년인데요."    나영의 심장은 자책감에서인지 몹시 떨리고 있었다. 심장의 뜨거운 피는 갑자기 주춤 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제가 이런 나쁜 년인지도 모르고 제가 일하는 음식점에 와서 연길냉면을 잡수시면서 자주 찾아 주었지요. 저는 정호와의 맺은 악과가 배 속에서 뚱뚱하게 부펄어 올라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모텔에서 깨진 유리병 조각으로 배를 찌르고 손목을 베 자살을 시도했지요. 그때 선생님이 선뜻이 나서서 애나게 번 돈으로 저의 구급치료비와 개왕절개 시술비를 다 대주었지요. 지금도 기억나요. 저를 자기 집에서 자게 하려고 엄동설한에 종각 지하철역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새우잠을 자던 리선생님의 그 모습이 눈물겹습니다. 과일구럭을 들고 저의 병문안을 오던 리선생님의 모습을 지금도 방불히 보는 거 같았어요.)    나영은 눈물 코물 흘리며 감등을 먹는 거 같았다. 그녀의 심장의 맑은 피는 진실을 담고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제가 탐오범죄자라는 걸 알아도 저를 좋아하겠는가요? 그래 진정 저를 좋아했나요? 딸 같은 저를 동정한 건가요? 나무리지 않는다면 언제든 저는 선생님을 구하기 위해 모든 걸 줄래요. 마음의 문을 열어 줄거요…어서 깨나세요. 리선생님, 흑흑, 흑흑흑…)    내 혼은 나영의 머리 속으로 엉금엉금 기어들어가 얼빠진채 멍해 나영의 심장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영은 그저 구명은혜에 보답하려는 거겠지. 그걸 바라고 나영을 도운 건 아닌데…)   혼이 나영의 속에서 기어나와 다시 링겔 쇠걸개에 대롱대롱 매달려 나영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나영은 놀란 표정을 짓다가 희죽이 웃는 내 표정을 보고 눈물을 훔치는 것이었다. 뜨거운 눈물 방울이 방울방울 내 얼굴에 떨어지며  뭐라고 속삭이고 있지 않겠는가.    그때 종호는 감히 나영을 쳐다보지 못하고 놀랍게도 손가락으로 려향을 가리켰다.    (뭐야? 시집도 안 가고? 불효녀야! 난 아들도 없어. 세종대왕의 후손인데. 조선을 500년이나 통치한 우리 전주 리씨 집안 대를 끊는  불효자야. 이젠 책도 온전히 내지 못할 바에야 살아서 뭘 하겠느냐?)    눈치 빠른 려향이는 아빠가 지금 자기를 질책한다는 것을 아픈 가슴으로 느꼈다.    “아빠, 제가 불효를 저질렀어요. 이젠 제가 시집 갈게요. 아빠한테 손주 서넛 안겨 줄게요. 아빠를 도와 영어, 일어로 책을 낼 거예요. 책으로 우리 민족에게기념비를 세워 줄테요.”    종호는 웃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얼굴이 새까맣게 질리어 갔다.   “아서라.”   종호는 속으로 딸한테 충고했다.   (아서라, 아들딸을 낳아 기르면서 편안하게 살겠으면 나처럼 책짐을 메고 사막에서 마라톤을 하지 말라. 물 한방울도 차례지지 않는 사막의 외길에 들어서지 말라. 난 그 책더미 때문에 집 다 팔아먹고 네 박사  청춘마저 엄청 허비했다. 절대 아빠 따라 하지 마. 그러나 사회를 위해 정의롭게 살겠으면 … 아, 나도 몰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갑자기 혼이 육신에서 쑥 빠져 산소호흡기를 타고 바라올라가더니 천정으로 훌 날아올라가 찰싹 붙어 버리었다.    “아빠!”   려향은 종호를 부둥켜 안고 대성통곡치었다.   “리선생님, 깨나세요! 네? 절 버리고 제발 혼자 가지 마세요.”   “그만 하세요. 리선생님은 피곤해 쉬는 거예요. ”   김춘희 박사가 황급히 다가와 려향이와 나영을 말리었다.   종호의 허약한 혼은 천정에 디룽디룽 매달리었다가도 너무 피곤해 내 육신에 스며들었다.   천정과 육신 사이에서, 나와 나영이, 려향의 사이에서 지친 혼은 사랑의 자장가를 부르며 날아옌다.   려향과 나영의 혼도 종호의 혼과 함께 참된 신생의 삶으로 서정시를 쓰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트롯미스 전유진의 청아한 노래소리 은은히 들리어온다.
456    장편소설 황혼(3) 한족본처 김장혁 댓글:  조회:621  추천:0  2024-07-09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3. 한족본처           이상해. 분명 자살했는데 혼은 왜 정신이 올똘할까?    육체는 죽어도 혼은 살아 있는가? 육체를 떠난 무형의 혼은 천정에 붙어 있다가도 유령처럼 육체를 따라 다니는게 아닌가? 진짜 유령이 떠다니는게 아닌가?    “괘씸한 년!”   내 혼은 한족본처 류려평을 보자 대번에 소름이 끼쳤다. 육체는 용광로에 들어갈 판인데 저게 뭔가? 암범 같은 저 악처가 또 왜 왔어? 진짜 악연이야. 사람은 본처를 잘 만나야 하는데. 어쩜 저런 여자 복도 그렇게 없어? 숱한 여대생을 두고 어쩜 저런 애 때 공부도 제대로 못한 막돼먹은 여자를, 독살이 센 한족악처를 만났을가? 내 팔자도 기구하지. 참.    혼은 두 발로 염라전 문턱을 딱 뻗치다 못해 장례식장 칠성판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빠!”   제일 먼저 려향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빠, 살아 계셨군요.”   려향이 나를 끌어안고 통곡치지 않겠는가!   려평도 오늘만은 평소의 암범 위풍을 잠시 훌훌 털어버린 척하고 사타구니에 암범의 꼬리를 끼고 퉁사발눈을 희번뜩거리면서 입을 함박만큼 쫙 벌리었다.  평소보다는 완곡하게 말한다는 소리 이러하다.   “여보! 웬 일인가요? 편안히 갈게지. 마지막까지 곁사람들을 혼낼 작정인가?!”   종호는 벌떡 일어나 앉아 려평을 쏘아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더러운 년, 내 죽잖는게 원수냐?”   암범은 퉁사발 같은 쌍까풀눈을 흘기었다.   “당신, 웬 말인가요?”   암범의 말꼬리는 더욱 뜻밖이었다.   “비록 함께 살진 않지만요. 우린 려향이를 낳은 아빠, 엄마 아닌가요? 30년 함께 살아 온 부부 아닌가요?”   “퉤! 더러워. 안팎이 다른 년!”   (그 주제에 그래도 조선말을 해? 서투르기 그지 없어. 그래도 조선족집 며느리느라고? 허위적인 한족녀편네, 네 년이 보기도 싫어.)   웬 일일가?   나는 다시 칠성판에 훌 들어누웠다.   내 혼은 스리슬쩍 류려평의 퉁사발 같은 쌍까풀눈으로 해 머리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내 혼은 무형이어서 어디로 날아 다니든지 어디로 기어들어 가든지 류려평이나 려향이나 다 털끝만치도 눈치채지 못했다.   내 혼은 려평의 어둡고 음흉한 머리를 거쳐 목으로 해 더러운 밸을 앙기작앙기작 걸어 심장 가까이 다가갔다. 려평의 펄떡펄떡 높뛰는 심장을 내다보며 코웃음쳤다. 드디어 혼은 심장에 기어들어갔다. 탐욕스런 피, 돈때 묻은 더러운 피가 쿨쿨 흐르고 있지 않겠는가.    혼은 악처의 아랫배에 들어가 보았다. 구불구불한 밸 아랫쪽에 량쪽으로 뻗어 있는 건 뭔가?    그게 수란관이지.     오, 그 어구지에껀 뭐지?     자궁이야.     오, 그렇구나. 건데 자궁이 왜 한 절반 잘리워 나갔지?     것도 몰라? 암범이 바람 피우다가 매독에 걸려 자궁까지 다 썩어버렸지. 그래서 한 절반 썩은 걸 수술해 버렸지.    와- 세상에, 저렇게 환하게 생긴 여자 그런 일도 다 있어? ㅋㅋ.   뒤이어 심장을 꿰지르고 건너가 류려평의 마음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뭐야?   암범의 음흉한 마음 속이 환히 드러나지 않겠는가.   류려평은 말로는 문안하러 왔다지만 마음 속으로는 악착한 궁리를 하고 있지 않겠는가.   “저게 어째 썩어지지 않니? 지레 목을 끊을 거지. 왜 손목을 벴어? 언제 끝을 보겠니? 꽤나 질기구나.”   내 혼은 깜짝 놀라 고함쳤다.   “뭐라고? 더러운 년! 문안허러 온게 아니었구나. 내 죽기를 그렇게도 바라느냐?”   류려평은 깜짝 놀랐다.   “아니, 내 뭐랬다고 그래요? 아무 말도 안한 착한 안해 보고 뭔 욕설인가요?”   그녀는 허리를 구부정하고 구정물에 뛰어든 돼지 쌍까풀눈으로 병상에 누운 종호의 얼굴을 빤히 돌아보았다.   (분명 병상에 누어 눈을 딱 감고 있는데. 어떻게 내 속궁리를 알까? 이 놈이 혹시 관심법을 써서 내 속을 환히 꿰뚫어 보는 건가?)   류려평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진짜 악연이야. 내 이런 조선족놈한테 시집 온 것부터 악연이야. 대학생이라고 이런 조선족 놈한테 시집 와서 한뉘 고생하지 않는가?)   내 혼도 류려평의 뱃속에서 콧웃음쳤다.   “흥! 나도 시내에 남자고 너 같은 똥되놈한테 장가간게 후회된다.”   “아니?”   류려평은 허리를 펴며 놀랐다.   (분명 내 뱃속에서 종호의 목소리가 들리잖아? 귀신이 장난해?)   분명 종호는 병상에서 희죽이 웃고 있지 않겠는가?   (저 놈이 자는 척 하면서 다 듣고 있는 거 잖아?)   류려평은 너무 이상해 려향을 돌아보았다.   “얘, 금방 아빠 뭐라고 말하는 거 들었니?”   “네?”   려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못 들었는데요. 뭐랍디까?” “아니, 혹시 뭐라던가 해서.” 웬 소리인가? 하얀 벽을 배경으로 숱한 하얀 옷들이 모여와 부동한 내심을 담은 눈길로 나를 들여다본다. 차가운 손가락이 내 눈까풀을 번지는게 아닌가? “괜찮아요. 아마 가짜 죽음(假死)인거 같아요.” “뭐? 그럼 아빠 살아있단 말인가요?” 상해에서 특별히 왕진 온 김춘희 박사가 결론을 내리었다. “그래요. 이제 며칠 있으면 스스로 일어날 거요.” “아이고, 내 아빠, 살아 계시면 얼마나 좋겠어요.” 려향은 기뻐 어쩔줄 모른다. 내 혼이 천정에 붙어 볼라니 그 애는 칠성판을 붙잡고 발을 동동 구르며 훌쩍훌쩍 운다. (이게 웬 일인가? 저 하얀 옷을 입은 녀자, 춘희 박사 아닌가? 쌍까풀눈을 봐. 아니, 춘희 박사는 외까풀눈인데. 아님, 황선희 박사인가? 김박사하구 황박사는 남방에 가지 않았던가? 군철이네 회사 병원에서 일했다던데. 회사 전무 군철한테 제명당하지 않았던가? ) 나는 분명 장례식장 칠성판에 누워 있었잖은가? 이게 화장터 아니고 어디란 말인가? 한어로 쓴 화장터 간판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한글로 “특급구급실”이란 글 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긴 한국인가?) 내 혼은 육체를 떠나 천정에서 둥둥 떠다니다가 링겔 쇠걸개에 사뿐 내려 앉아 매달리지 않겠는가. 나는 혼이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본 적도 친한 적도 없다. 그런데 혼은 내 육체 가까이 다정하게 다가오더니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여긴 화장터 아니고 병원 특급구급실이군요. 아마 되살아날 거 같아요.” 내 육체는 칠성판에서 또 벌떡 일어났다. “뭐? 안돼! 날 제발 살리지 말라!” 그때 누군가 내 귀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리지 않겠는가. “살아 있는 모든 이는 모두 당신의 어머니오. 세파의 바람에 멍든 당긴의 가슴은 지금 너무 우울해 정신 이상에 걸린 거 같소. 당신은 지금 세상만사를 다 팽개치고 평안을 찾으려 하고 있소. 모든 이를 다 미워하고 있는게 진짜 중병이오.” 나는 칠성판에 되들어 누우며 저도 몰래 나직이 두덜거렸다. “개소릴 작작 쳐라. 그래 류려평, 정호, 저 더러운 년놈들을 보기 싫어한게 잘못이란 말인가? 저 년놈들이 어떤 물건짝들인지 아는가? 려평인 시어머니 죽으라고 모든 걸 못 본 척 하면서 돕지 않은 개쌍년이야. 불효녀야. 내 엄마 마지막길을 톺아오르는 거친 숨소리를 들으면서도 주사 한대 놔주지 않은 년이야. 언제 숨이 떨어지겠는가 고대한 년이야. 엄마 인차 숨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뭐랬는지 아는가? ‘아이고, 이 로친이 아직도 죽지 않았어? 이제도 며칠 밤낮 마지막까지애를 먹일 작정인가?’ 한족며느리 저주하는 소릴 듣고 엄마는 한을 품고 눈도 감으시지 못했다. 려향아, 네 에미도 사람이냐? 사람 가죽을 쓴 암범이야, 아니, 녀악마야. 지금 또 내 죽지 않는다고 속으로 저주하고 있어.” 려향이 뾰로통해 두덜거리었다. “아빤 왜 엄마를 욕해요? 좀 없는 소릴 작작 하세요.” “려향아, 내 혼은 녀악마 속으로 들어가 저주하는 소릴 다 들었다. ” 뭐야? 류려평이 말대구 소리 내 귀에 똑똑히 들린다. “그만해요. 내 아버지 덕분에 농촌에서 살던 시어머니와 시동생들을 몽땅 시내 호적에 올려주고 잘 살게 했는데. 배은망덕해? 날 욕해요?” 류려평의 넉두리는 끝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려향이 보기 구차해 그러는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잖겠는가. 그러나 종호는 려평의 뱃속으로, 아니, 마음 속으로 기어들어간 혼 덕분에 그녀의 속알멀치를 다 알고 있어 곧이듣지 않았다. (우리 그때 어디 숨이나 크게 쉬면서 살았는가? 30평방 밖에 안되는 두간 방에서 시어머니, 시동생들까지 해 일곱식구가 살지 않았는가요?” 암범은 남이 들을가 봐 그러는지 좀 목소리를 낮추더니 례의를 갖추면서 말하려고 애쓰는게 알리었다. (밤마다 당신 주책 있었는가요? 미닫이 건너 아래 방에서 숱한 보초군들이 귀를 도사리고 있었는데도 밤마다 달려들었죠. 나는 발로 차버리면서 마구 꼬집어놔도 당신 청춘의 불길과 기갈을 막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숨을 딱 죽이고 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에 맞춰 밀고 당기면서 살지 않았던가요? 그래도 난 한마디 원망소리 없이 시집살이를 하잖았던가요? 진짜 어찌 시집살이 신물이 났으면 난 ‘시’자 들어간 건 다 싫었지요. 시금치도 사먹지 않았지요. 그렇게 좋아하던 짜릿한 애정시도 감상하기 싫어지었지요. 당신은 살림에는 관심이 없고 로임만 타면 절반씩이나 떼내 취재비용으로 썼고 숱한 돈을 팔아 책을 내군 했죠.  가정 살림살이할 돈을 다 책에 처넣고 어떻게 산단 말인가요? 나중에 집까지 다 팔아먹고 허망 나앉지 않았는가요? 책을 내서 남은게 뭔가요? 다 허영심에 차서 ‘리종호’ 이름 석자를 기념비로 새기자는 것 밖에 또 뭣이 있는가요? 당신은 자기 이름 석자 때문에 가정을 말아먹은 나쁜 사람이예요. 퇴직하면 그만 두겠는가 했죠. 그런데 뭔가요? 퇴직하니 고삐 끊은 들말처럼 한국까지 나와 책을 내느라고 미쳐 날뛰지 않았던가요? 그래서 우린 졸혼하고 서로 제 갈 길을 가기로 했지요. 당신은 졸혼해도 책 내는 거 밖에 모르는 본성을 고치지 못했지요. 난 가정살림을 모르는 당신 같은 바보, 그런 바보 나그네 믿고 살 수 없었지요. 이혼하는 길 밖에 없어요…) 종호의 혼도 려평의 뱃속에서 대성질호했다. “관둬! 더러운 년. 넌 악처야. 여악마야.” “난 이 집에서 며느리 못해!” 려평은 내 보기 싫어 장례식장 문을 박차고 훌 나가 버렸다. 숱한 상객들은 문귀에 끼운 암범의 꼬리를 보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려향은 어머니 너무 한다고 속으로 욕했다. 혼이 천정에 매달려 볼라니깐. 숱한 상객들이 려평의 뒤꽁무니에 대고 손삿대질 하더구나. 화장터 철문이 열리는 드르렁 아츠런 소리 들린다. 아마 이젠 내 육신을 태우려고 불아궁이에 쓰르르 미끄러져 가는 거겠지. 악처 류려평이 좋아할 시각이 닥쳐 왔구나. (이젠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저승에서 편안히 보내자.) “아빠, 구급실에서 나가 좋은 병실에 옮겨가니깐요. 근심 말아요.” (뭐라고? 려향아, 날 어디로 밀어가? 날, 응? 제발 가게 놔둬라.) 나는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술이 천근무게나 되는 거 같아 떨어지지 않는다. 내 혼도 바보로 됐는가? 어쩜 천정에 매달려 있다가 링겔 쇠걸개에 매달려 내 육신을 따라 움직이지? (야, 이 놈 혼아, 날 따라 더러운 세상으로 가지 말라. 네 놈은 훌훌 날아서 지상낙원으로 가야 해. 아니, 하늘 나라에 가야 해. 시람의 육신은 죽었는데 혼은 정말 살아 있단 말인가? 분명 나는 손목을 잘라 자살했잖은가. 그런데 려향이 울음소리나 낯도 모를 녀성들이 주고 받는 말소리도 똑똑히 들리지 않는가. 그래 사람은 죽어도 혼이 살아 있어? 그럼 혼은 육신을 떠나지 말아야겠는데. 그래야 살아 있는 건데.) 고약한게 사람의 마음인가 봐. 종호의 혼은 딸 려향이를 보고 삶의 미련의 꼬리를 놓고 싶지 않은가 봐.
455    장편소설 황혼(2) 유언 김장혁 댓글:  조회:677  추천:0  2024-07-09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2. 유언      유령은 천장과 용광로 사이를 동동 떠돌아다니었다.    “저, 부패분자!”   내 혼은 유령처럼 나타나 화장터 천정에 매달려 정호를 손가락질하며 대성질호했다.   (네놈, 그래도 국장이노라고 추모사를 읽어? 추도사? 거 뭐야? 격에 맞지도 않게 시를 읊어? 네놈 누구를 큰 별과 등대에 견줘 번쩍 춰 올려? 원래 넌 권력에 아부를 일삼아온 아첨쟁이야. 뭐? 책짐 싫어나르던 쪽배 어쩌구? 저쩌구? 책짐 배 파도에 휘말려 가면 너 그렇게 좋아? 참, 어처구니 없어. 추도사를 하는 척 하면서 뭐 횡설수설해? 추도사는 청렴한 총경리 성호 총경리 읽어야 하는 건데. 왜 그 친구 안 보이지? 참, 내 총망히 염라전에 오면서 깜빡 잊었군. 성호한테 미리 부탁해두는 건데.)        장례식장이란 건 또 뭔가?    이상해. 장례식장 정면에 마땅히 걸려 있어야 할 편액이 보이지 않는다.    뭐, “고 사막의 마라토너 리종호선생(사장) 추도대회”라던가. 그런 글 보통 걸려 있는데 말이야. 대신 뭐 “특급구급실”이란 간판이 걸려 있지 않는가?    참, 살기 싫어 자살한 사람을 구급해 뭐 하는가? 훌 화장해 버리면 그만인데. 그럼 딸도 시름 놓고 직장에서도 시름놓겠는데. 왜 이다지도 사람을 두번 죽게 한단 말인가? 천천히 지루하게 말리워 죽게 만드는가?    (려향아, 어서 아빠 혼을 불러 육체와 함께 훌 태워버려라. 혼이 육체를 떠나 유령처럼 바람에 둥둥 떠돌아다니면 어쩌니? 난 더 고통스럽다. 혼마저 빨리 저세상에 보내달라.)    그러나 이상했다. 혼은 멀쩡한데유. 육체가 죽어서 그런지 입술이 천근 무게 돼 열리지 않는다. 말 한마디도 할 수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유서라도 남겨 놓았을 걸. 참. 후회막급이야. 세상에 후회약이라도 있다면 아마 후회로 만리장성이라도 쌓아놓았을 걸. 그래도 내 혼은 자꾸 하나 밖에 없는 무남독녀한테 뭐라고 자꾸 말하고 싶어지는게 이상하다.    (내 죽으면 비석도 필요없다. 이전에 난 내가 죽으면 골회를 내 부모 산소 옆에 파묻고 자그마한 비석이라도 세워달라고 했지. 죽어서라도 생전에 부모에게 다 하지 못한 효성을 다하고 뼈가루 돼서라도 부모 산소를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다 부질 없는 일이다. 육체가 다 타고 나머지 뼈가루가 어찌 부모를 지키고 효성을 한단 말이냐? 오히려 내 골회를 보면 내 부모가 얼마나 마음이 아파하겠느냐? 그러지 말자. 더는 그런 악착스런 불효를 저지르지 말자.)    내 혼은 좀 궁리하고 계속 려향이한테 부탁했다. 려향이 들을 수 있겠는지도 모르고.    (려향아, 골회함도 필요없다. 공돈을 팔지 말라. 그 돈이면 렬사들의 사적을 쓴 책 몇권이라도 찍어 렬사들의 영 전에 올리겠다. 그저 나를 다 태우면 뼈가루를 보에 싸서 부모 산소와 렬사릉원에 훌훌 뿌려달라. 비록 육신은 다 탔지만 혼은 바람처럼 날아다니면서 부모와 렬사들의 혼을 지키고 싶구나. 선렬들의 피로 바꿔온 이 땅을 영원히 지키고 싶다. 다만 죽어서 렬사들의 사적을 더 쓰지 못하는게 한일 뿐이야.)    려향이 이렇게 묻는 거 같았다.    “아빠, 그럼 왜 자살했는가요? 살아서 계속 렬사들의 사적을 책으로 써내야죠.”    그러나 나는 려향이한테 모든 걸 이실직고할 수 없었다. 내 입을 잘 못 놀렸다가 려향이 전도를 그르칠가 봐.    (려향아, 나는 모든 걸 무덤에 가지고 가련다. 더는 책을 내겠다고 하지 않겠다. 널 보고 “내 책을 한어로 번역해라, 일어와 영어로도 번역해라.”고 하지 않겠다. 너도 시름놓고 박사 공부나 해라. 이젠 내 근심하지도 말라. 책을 내겠다고 아글타글 건축공지에 가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 시름 싹 놔라. 너와 못할 말이지만, 내 공지에서 일하다가 남자의 그거 한쪽 잃어버린 거 너도 알잖니? 물론 안해도 없는 내가 그게 무슨 쓸데 있겠느냐만은.)    혼은 어느덧 옛날 내가 일하던 공지로 헛깨비처럼 훨훨 날아갔다. 공지에서는 귀신이 유령처럼 나타났다고 모두 피해 숨어 버린다.    (난 사람이지 귀신이 아닌데. 왜 저러지?)   헛깨비 같은 내 육체는 돈 한푼이라도 벌어 책을 내려고 철근을 메어 날라다 고층 아프트 건축물 천정 바닥에 펴고 가는 쇠줄로 가로 세로 얽어맨다.    꽈르릉 쾅!   툭!   요란한 굉음과 함께 한창 짓던 건물 천정이 푹 물앉았다. 나의  몸뚱이는 아래 층에 허공 곤두박혔다. 아차, 철근에 불중태로부터 아랫배로 해서 잔등까지 꿰창을 맞은듯이 찔리었다. 나는 이미 혼미상태에 처해 혼이 저승문턱에 간 채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생벼락이 어디 또 있겠는가! 지금 생각해도 온 몸에 소름이 끼친다.   그래도 한국 소방대원들은 목숨을 걸고 페허 속에 파묻힌 나를 구원했지. 먼저 탐지견이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으면서 나를 발견하고 컹컹 짖어댔다. 소방대원들은 페허 속에서 나를 파내 구급차에 실었다.   려향아, 너도 알잖니?   (나는 한국 의료일군들에 의해 한달만에 구급되어 죽음의 고비를 넘기었지. 그러나 내가 왜 자살했는가고? 얘야, 너무 슬퍼하지 말라. 아빠는 건설공지에서 신장과 고환 하나를 잃은 딱 그게 때문이 아니야. 사람 사는게 그게 삶의 전부가 아니야.  그러나 이젠 살고 싶잖다. 더 보고 듣고 살고 싶지 않다. 세상에 오래 사노라면 너무 보지 못할 걸 많이 본다. 네가 시집가지 않고 마흔살 다 돼가는게 가슴 아프다. 로처녀로 한뉘 살 예산이냐? 우리 전주 리씨 네 대에 와서 대 끊어지게 됐다. 아차, 아니야. 다 내 차실이지. 내 아들을 봐야는데. 무남독녀 너 하나만 낳고 말았으니까. 허나 네가 이제라도 시집가면 괜찮아. 지금은 애들이 엄마 성을 타도 된다고 하지 않느냐? 넌 생육년령일 때 꼭 시집가서 손자를 안겨달라. 그땐 구천에 가서도 난 눈을 감을 거 같아. 아들을 낳아도 엄마 성을 타게 하겠다는 남자한테 시집가라. 그래야 이 애비 원을 꺼줄 수 있잖니?...)   내 넉두린지. 유언인지 끝이 없다. 장례식장에서 웬 하소연 그리도 길가?   해는 저물어 가는데 마른 풀잎이 염라전 층계에 쓰러져 제네바행진곡을 연주한다.   처용이 달밤에 나타났는가?    인생도 붉게 타오르는 황혼의 탈을 바꿔쓰고 공포의 블랙홀로 휘말려들어가며 애처로운 죽음의 노래에 맞춰 탈춤을 춘다. 저게 뭐야?   탈을 쓴 허깨비 혼이 염라전에서 요염하게 치장한 무당들과 함께 너울너울 칼춤을 춘다. 입으로는 뭐라고 허무한 인생이 애닲아 중얼중얼 굿을 한다. 대머리가 제상의 바나나를 덥썩 쥐어 발가서 우물우물 씹으며 우멍눈으로 곁눈질하지 않겠는가.     아, 저 암범을 봐라. 나를 빨리 태우라고 려향한테 손삿대질 하고 있지 않는가.     혼은 암범 한족본댁 류려평을 보자 대번에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류려평은 어찌나 독살이 센지 공포 자체였다. 퉁사발눈깔을 희번뜩이면서 고래고래 고함칠 때면 진짜 오뉴월에 장독에 서리 다 칠 지경이었다.    암범의 표독스런 쌍까풀 퉁사발눈이 내 유체를 째려보면서 한쪽 구석에서 두 손을 합장하고 저주하고 있지 않겠는가.    “빨리 가옵소서. 시름 싹 놓고 살게.” 
454    장편소설 황혼 제1권(1) 나의 장례식 김장혁 댓글:  조회:899  추천:0  2024-07-09
   장편소설      황혼       김장혁       1. 나의 장례식     홧홧 타오르는 열기에  잿빛벽돌들이 탁탁 튀어 오르며 죽음의 노래를 부르면서 바람에 팔락이는 실오리만한 혼의 꼬리를 집어삼킨다. 화장터 용광로는 피와 살 냄새를 맡고 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음흉한 실웃음을 짓는다.    인생이 허무하다. 염라전에 오면 영웅호걸도 절세미인도, 더러운 세상을 버린 육체는 뻘건 염라전 불길이 이글거리는 용광로에서  재가루로 돼 하늘로 오를 것이거니.     허나 혼은 "봉황열반"처럼 새로운 봉황으로 태어나 하늘을 훨훨 날아예며 새 세상을 노래할 것이다. 밤중에 끊임없이 우짖는 귀뚜라미처럼 끝없이 우짖으며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남합할 것이리라.    바람 따라 날아가는 사랑의 그림자를 허무하게 뒤쫓아 가다가 지치어 쓰러진 언덕에 하얀 그리움이 무럭무럭 피어난다.    무시무시한 백골들이 쩍 벌린 아가리로 죽음의 공포를 뱉어내고 낮잠을 청한다.    얼룩 독사가 움푹 파인 백골 눈확에서 기어나와  혀를 날름거리며 가냘프게 시들어가는 황혼을 쳐다보며 한숨의 꼬리를 잡고 모래바람이 기승을 부리는 사막의 밤 하늘을  노크한다.    얼빠진 황혼은 비틀거리며 염라전에서 라체무를 추며 허무한 인생의 콧노래를 부르며 어두운 밤의 고독한 악기를 고른다.    장례식장 칠성 판에는 고독하게 이 세상을 누비던 내 혼의 가죽이 파르르 떨며 누어 있다.    “아버지! 왜 이리 멍청한 짓을 해요? 네?”    (그래도 딸이 있어 다행이야. 저승길에 너무 외롭진 않아.)    황혼 인생의 마지막 길에 추모곡은 울리지 않아도 그래도 처량하게 우는 무남독녀의 곡성이 들리지 않는가?   염라전의 문턱에서 지쳐 쓰러진 혼, 식어가는 혼은 화장터로 들어가면서도 희쭉 웃으며 뜨거운 열기를 받아들인다.    “아버지, 이 딸을 두고 어디로 간다고 이래요?”   칠성판에 오른 나의 혼은 딸의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려향아, 슬퍼 말라. 난 그래도 우리 겨레를 위해 뭔가 해놓았다. 이젠 시름놓고 가야겠다. 지금 가면 딱 맞춤해. 존엄도 지키고. 좀 조용히 가게 해달라. 네가 울면 내 황천길이 너무 쓸쓸해진다. 이젠 좀 울음 딱 끄쳐라. 네가 운들 죽은 혼이 되살아나겠느냐? 부질없는 통곡을 제발 멈춰라.)    “아버지, 어쩜 이 세상에 외로운 딸 두고 그렇게 총망히 갈 수 있나요?”   (아니, 이게 웬 일인가? 난 분명 칼로 내 손목 동맥을 잘랐는데. 려향의 울음소리가 들리다니? 분명 자살했는데. 유독 고독한 혼은 이 더러운 세상에 살아 있단 말인가?)   종호의 혼은 세상이 보기 싫어 눈을 딱 감았다. 그런데 보기 싫어할수록 희미하게 보인다.   분명 하나 밖에 없는 려향이 칠성판에 올라와 나를 부둥켜 안고 울고 불고 야단친다.   그런데 다른 젊은 여인의 통곡소리도 애절하게 들리지 않겠는가.   “리사장님, 이게 웬 일인가요? 어쩜 나를 홀로 두고 이렇게 총망히 가는가요? 네, 사장님은 저승 문턱에 간 나를 구해 삶의 용기를 주었는데요. 왜 이렇게 짧은 생각을 다 하는가요?”   말귀를 들어봐서는 나영 같았다. 흐느껴 우는 울음소리도 어쩜 저렇게 쓸쓸할가.   “리사장님이 없이 제가 홀로 어떻게 사는가요? 흐흐흑, 흑흑,”   뒤이어 장송곡이 울리고 웬 남성이 뭘 선독한다.   (뭐? 고 리종호 부사장, 작가 추모식? 세상 웃긴다. 난 이미 이 세상과 하직했는데. 추모식을 해 뭘 해? 그저 기름을 치고 화로불에 태워 하늘에 훌 날궈 버리면 다야. 나는 자유로운 새처럼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바다로, 광야로 훨훨 날아가련다. 저 봐라. 바람이 산의 속살에 날아들어간다. 바다를 다독여 세찬 파도를 일으킨다. 바람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붕붕 날아다니면서 뭔가를 속삭이며 귀띔해주고 있지 않는가. 나는 바람이 되고 싶다. 내 갈 길을 막지 말라.)    종호의 혼은 별스럽게 화장터 칠성판에 올라도 공포를 하나도 느끼지 못하고 별 궁리를 다 했다. 그런데 웬 일일가?   혼이 화장터 천정에 올라가 떡 철싸닥 붙지 않겠는가. 혼은 가련하게 삶의 미련을 타고 천정에 대룽대룽 전등알처럼 매달려 내려다 보고 있다.   려향이 또 숱한 상객들 앞에서 아빠 육체를 부둥켜 안고 대성통곡친다. 빈소의 관리일군이 려향을 말려도 소용없다.   “아버지! 못 가요! 저를 두고 어데 간다고 이래요?”   “넌 시집도 가지 않고 불효를 저저리는데 내 살아 뭘 하겠느냐? 로처녀로 늙어가는 널 보면서 황혼을 재빛으로 태우면서 살라고? 어림도 없다.”   (웬 일인가?)   화장터 천정에 대롱대롱 매달린 혼은 깜짝 놀랐다. 하마트면 천정에서 퉁 떨어질번 했다.   (난 분명 속으로 되뇌였잖은가? 건데 상객들이 다 듣게 소리 나갔잖어? 별 일도 다 있다. 참.)   종호의 혼은 간사스럽게 눈을 살며시 떠보았다. 상객들 속에 놀랍게도 류려평도 와 있지 않겠는가. 저쪽 구석으로 해 나영도 서 있고  또 그 옆에는 정호도 서 있지 않겠는가!   (저 년놈들을 보기도 싫어! 저 년놈들은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과 “졸혼”에도 드문드문 나오던 추악한 인물들이 아닌가? 숱한 혼을 빼간 년놈들. 바람둥이들! 저 년놈들이 보기 싫어 내 자살한게 아닌가!)   종호의 혼은 경악했다.   (날 되살아나라고? 관둬라! 한 많은 이 세상에서 두번 다신 살진 않겠어.)   혼은 천정에서 화로에 퉁 뛰어들어갔다.   뿌지직! 뿌지직!   천도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무시무시한 죽음의 공포를 뱉어낸다. 육신은 씨뻘건 화염에 싸여 타버리며 쓸쓸한 황혼 인생의 찬송가를 부른다. 타버리는 잿빛 황혼은 용광로 속에도 뻘건 빛을 온 누리에 빛뿌린다. 황혼 빛은 어두운 밤을 밝히려고 몸부림치며 어려운 행진곡을 힘겹게 부른다.   웬 일일가?   육신은 다 타서 재가루 됐는데도 얼빠진 황혼의 혼은 계속 콧노래를 부르며 달갑게 공포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지 않는가! 웬 일일가?   말로는 공포의 블랙홀에 휘말려 들어갔다는데 아닌가? 건데 왜엉뚱한 사유는 계속 흐르고 있지 않겠는가?   려향의 울음소리 똑똑히 들리지 않는가? 류려평이 말리는 소리도…    (색마 정호가 내 추모사를 읽어선 안돼. 정의용사 성호가 읽어야는데. 참. 황혼에 이르니 옆에 사람도 없어. 어쩜 번대머리가 추모사 읽는 소리가 계속 들려? 저런 것도 문화국 국장 책상머리 퇴물림이라고, 시도 모르던 놈이 뭐 그것도 시라고 읊어대? 세상 어처구니 없기로서니. 하긴 사슴이 돛대에 올라 해금을 켜는 세월이니. 이상할 것도 아니지.)            황혼은 붉게 타다가 맥없이 져가는데       캄캄한 하늘에서 큰 별이 류성처럼 떨어지니       곡성이 천지를 진동하고      진달래 꽃잎에 맺힌 눈물 방울       바다를 메우며 노호하네.         지지리 어두운 밤에       등대 잃은 저 쪽배를 어찌 할꼬?       키잡이 잃어버린 저 책짐 실은 쪽배      야수처럼 덮쳐드는 세찬 파도를 어찌 할꼬?           …
453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0) 뜻밖의 상봉 김장혁 댓글:  조회:646  추천:0  2024-07-07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권         제7장 포수대           11. 뜻밖의 상봉       사실 병수는 점심 때 우시장에 있는 길수의 집에 가서 은녀를 만나 기름떡을 얻어가지고 장마당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때 은녀는 병수에게서 아버지가 아들딸 근심에 속을 태우다가 기막혀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애고, 우리 아버지,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시름시름 앓더니 이렇게 불쌍하게 돌아가시다니. 아이고, 내 아버지, 불쌍한 내 아버지, 흐 흐 흑, 흑 흑.”    은녀는 대성통곡하면서 “아버지 장례에 가겠어요.” 하고 길수에게 사정했다.   한길수는 소를 잃어버렸는데 은녀마저 달아날까 봐 근심됐다.   “가긴 어디로 가? 네년이 가면 우리 집 밥은 누가 해?”   은녀는 한길수 앞에 꿇어 엎드려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빌었다.   “아버지 마지막 길을 바래드리게 보내 줍소. 제발, 주인님.”   인정머리라곤 꼬물만치도 없는 길수는 건 가래를 떼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토성대문을 나서더니 기생집으로 가버렸다.   아버지 장례에도 가지 못한 은녀는 더는 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날 저녁, 달밤에 그는 저녁도 먹지 못하고 월선의 호령에 못 이겨 물동이를 팔에 끼고 물을 길으러 비칠비칠 걸어갔다.   (아버지 폐병치료에 일전 한 푼 돕지 못하고 장례에도 가지 못할 바엔 아예 죽는 게 낫지. 상호도 종무소식이고 은희마저 한 영감의 영월동 집에 머슴으로 끌려갔다지. 뭘 보고 이 세상에서 산단 말인가?)   철렁!   드레박이 우물에 떨어지면서 죽음의 비명소리를 질렀다.   순간 은녀는 드레박처럼 우물에 철렁 떨어지면 모든 것이 끝장 나겠는 걸 하는 생각이 피뜩 들었다.   은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더니 우물 틀 우에 간신히 올라섰다.   그녀는 얼음 쪼각 같은 눈썹달을 쳐다보며 맥없이 중얼거렸다.   “하느님이시여, 아버지와 엄마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먼저 가는 불효녀를 용서해주옵소서.”   말을 마치자 은녀는 치마폭을 뒤집어쓰고 우물에 뛰어들려고 했다.  그 때다.   순간 뒤에서 꺽쇠 같은 팔이 은녀를 꽉 끌어안아 우물 틀 우에서 내리웠다.   가슴을 할딱이던 은녀는 자기를 안아 내리운 마차몰이군 병수의 거머틱틱한 얼굴이 어슴푸레 보이었다.   병수는 소를 잃어버리자 장마당에서 도망쳐 우시장 경찰국 뒷산 수림 속에 가서 동정을 살피면서 숨어있었다. 그는 뒷산 수림 속에서 똘만이가 자전거를 타고 경찰국 울안에 달려 들어오고 헌병대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눈보라를 흩날리면서 달려 나가는 것을 다 보았다.    한참 후에 경찰국 대문 안에 뚱뚱보와 소가 들어오고 한길수가 똘만이 등 자위대원들과 함께 철규를 끌고 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중에 묶인 뚱뚱보를 때리며 심문하고 철규는 묶이지 않은 것을 보았던 것이다.    (정말 철규 말처럼 소를 빼앗긴 걸까?)   그러나 병수는 소를 잃어버렸기에 악마 같은 한길수에게 죽을지 살지 몰라 영월동에 돌아가지 못했다.   병수는 겨울해가 뉘엿뉘엿 지자 산속에서 슬금슬금 내려왔다. 허기증을 달래려고 우물가에서 서성거리면서 은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가 혹시 은녀 뒤를 밟는 자가 있을까봐 사위를 둘러보고 머리를 우물터에 머리를 돌리는 순간 물을 길으러 온 은녀가 우물에 빠지려고 할 줄은 천만뜻밖이었다. 그가 황급히 달려가 은녀를 안아 내리우지 않았더라면 은녀는 한 많은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길수는 이전에는 득호나 마을사람들을 일을 시키면 품삯을 주는 척 하였지만 지금은 일본 놈들에게서 강도행세를 배워가지고 아예 일전 한푼 주지도 않고 강제로 일을 시켰다. 은녀나 은희나 일전 한푼 받지 못하고 여종으로 뼈가 물러나도록 일했다. 아버지가 병환에 계셨지만 딸로서 일전 한푼 치료비로 보태주지 못한 은녀와 은희의 아픈 마음이야 이루 더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살 바에야 우물에 뛰어들어 죽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병수는 은녀가 우물에 뛰어들려 한 얘기를 듣고 말리였다.   “은녀, 죽어서는 안 돼. 우린 지금 아무것도 없이 힘들게 살지만 이를 악물고 살아나가야 하오.”    은녀는 우물 턱에 기댄 채 맥없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한길수 물이나 긷자구 살라오?”    “집엔 엄마와 은희, 상호가 있지 않소?”   그제야 은녀는 한숨을 땅이 꺼지 후~ 내 쉬었다.   “오빠는 어떻게 돼 여기 왔소?”   병수는 한숨을 내쉬더니 오늘 낮에 장마당에서 있은 이야기를 했다.   “그럼 저녁도 못 잡쉈겠구먼. 내 물을 길어가지고 갔다가 올게.”   병수는 드레박으로 물을 길어 쏟아 붓네 하고 안아 한길수의 집 쪽으로 들어다주었다.   “됐소. 괜히 자위대에 들키겠소. 어서 우물에 가서 기다리오.”   은녀 말에 병수는 은녀의 머리 우에 물동이를 올려놔주고 뒤로 물러섰다. 그는 눈으로 비칠비칠 토성에 난 대문 쪽으로 물동이를 이고 걸어 들어가는 은희의 뒷모습이 불쌍했다.   한참 후 은녀가 물동이를 팔에 끼고 우물터에 나타났다.   은녀는 물동이 안에 주먹밥과 누룽지 그리고 기름떡까지 넣어 왔다. 그것으로도 며칠은 먹을 것 같았다.   “배고프겠는데 어서 잡숫소.”   훤칠하게 생긴 병수는 기름떡을 먹으면서 말했다.   “금방 은녀를 보내고 곰곰이 생각해보았소. 여기서 종살이를 한뉘 할게면 우리 간도로 달아날까?”   뜻밖의 말에 은희는 깜짝 놀랐다.   이윽고 그녀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며 반신반의했다.   “만주로 간다고 잘 살겠소? 엄마와 은희랑 어찌 하고? 들키는 날엔 한길수가 잡아먹자고 할게오.”   병수는 대수롭잖게 말했다.   “우리 달아났다고 어쩔 거 같소? 상호가 달아나도 어쨌소? 은희를 부려 먹으려고 어쩌지 못하오.”   은녀는 숙였던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손에 쥔 게 없이 산 설고 낯선 간도에 갔다가 굶어 죽으면 어쩌겠소. 가지 말기요. 이 추운 겨울에 간도로 갔다가 얼어 죽겠소.”   병수는 은녀의 손을 꼭 잡고 간곡히 말했다.   “나를 믿소. 우린 아직 젊소. 간도에 가서 우리 함께 잘 살아 보기요.”   은녀는 온몸을 바르르 떨면서 희읍스름한 달빛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병수의 길쭉한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오늘 오빠가 아니었으면 난 이미 죽은 사람일 게요. 구명은인 오빠를 따라 이 놈 지옥에서 훌 달아났으면 좋겠소.”   병수는 은녀를 꼭 끌어안고 잔등을 다독여주었다.   “어서 집에 들어가 옷이랑 먹을 걸 물동이에 넣어가지고 나오오.”   “알았소. 내 인차 갔다가 나올게.”   병수는 우물터와 좀 떨어진 으슥한 골목에 들어가 숨어 우물터에 은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한참 후 은녀가 사위를 둘러보면서 눈을 빠드득빠드득 눈을 밟는 소리와 함께 우물터에 나타났다.   병수와 은녀는 골목에 들어가 옷을 보에 싸안고 희읍스름한 달빛이 깔린 골목으로 바람결처럼 사라졌다.   은희는 병수를 따라 눈길로 달아나면서 말했다.   “오빠, 금방 집에 돌아가니까 한영감이 ‘잃어버린 소를 찾았는데 병수를 잃어버려 큰일 났다.’고 하더군요.”   “누가 그 개소리를 믿어. 나를 한뉘 마차몰이꾼으로 부려 먹자는 게지.”   병수는 은녀의 손을 잡고 더 빨리 달으면서 물었다.   “철규는 무사하오?”   은희는 숨이 차 할딱거리면서 대답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물매를 맞았습니다. 영팔이랑 죽여 버리자고 하니까 누가 소를 먹이겠는가 하면서 철규를 잡아두고 덕팔이 삼촌이랑 잡자고 합데.”    병수는 닫다가 주춤 멈춰 섰다.   “아차, 한 가지 잊었다. 이대로 달아나지 말구 한영감 집에 불이라도 콱 싸질러 놓을 거 그랬다.”   은희는 병수의 손을 잡아챘다.   “그만두오. 헌병들이랑 자위대원들이랑 욱실거리는데 붙잡히겠소.”   병수는 우시장 저 멀리 한길수의 집 쪽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은녀의 손을 잡고 다시 달아났다.   은녀는 달아나면서도 속으로 고향마을에 있는 엄마와 은희가 근심됐다.   (엄마랑 무사한지 모르겠다. 빨리 가서 같이 간도로 달아나자고 해야지)   한편 은희는 고향마을 사람들과 함께 아버지를 뒷산 기슭에 장례지낸 후 날마다 악몽 속에서 허덕이었다.   은희는 심란한 김에 이날 밤에도 내일 밥을 지을 물을 더 길으려고 일어나 몸채 부엌간으로 들어갔다. 그는 손 더듬으로 물동이를 더듬어 팔에 끼였다.   “누구야!”  위방 밀창문이 열리면서 한길수가 반쯤 몸뚱이를 일으키고 이쪽을 내려다보는 것이 달빛에 희미하게 보였다.   “은희예요.”   “이 밤중에 뭘 떨꺽거리느냐? 잠을 깨우면서 성가시게. 에이 참.”   “물을 긷자고 그래요.”   “음, 알았다. 내일부턴 우리 잘 때 떨꺽거리자 말아라.”   탁 미닫이문이 닫기는 소리 나고 두덜거리는 소리와 도도고리는 소리가 엇바꿔 들리었다.   은희는 머리채를 뒤로 젖히고 물동이를 팔에 끼고 바깥으로 조심조심 나왔다. 그러나 연 며칠 자위대원을 시켜 은희 뒤를 밟게 해보아도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자 월선이도 심드렁해져 오늘은 미행을 그만두게 했다.   그녀는 희읍스름한 달빛과 눈을 사뿐사뿐 밟으면서 골짜기 막치기에 있는 우물가에 다가갔다. 가을바람에 나무들이 무섭게 비명을 질러 공포를 자아냈다.   우물가에서 동이를 내려놓고 물을 푸려고 바가지를 우물에 넣던 은희는 처량한 반달이 비껴있는 우물을 들여다보다가 문뜩 이런 생각이 났다.   (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도망치지도 못할 바에는 이 우물에 빠져 죽고 말았으면 좋겠다. 그럼 모든 게 끝이겠는데.)   그런데 샘물에 비낀 달 옆에 총총 박힌 뭇별들이 차디찬 샘물에 잠겨 추위에 바르르 떨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였다.   그 순간 몇 해 전 여름에 은녀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우물가에서 성칠 오빠가 은녀의 눈을 두 손으로 싸쥐고 누군가 알아 맞추라던 장면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그때 오빠는 은녀가 떠준 샘물을 두 바가지나 마시고 시원하다고 하면서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지. 호, 오빠, 이젠 다시 볼 것 같지 않소. 성칠 오빠, 상호는 지금 어데 있소?”    어려울 때마다 자기네 일가를 도와 나서던 성칠 오빠가 이 순간 더욱 그리웠다. 기실 성칠과 은희는 열대여섯 살이나 차 있기에 기실 삼촌 벌이 됐지만 어려서부터 성칠이 그렇게 습관을 시켜 은녀나 은희나 다 오빠라고 불렀고 상호는 형님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은희는 착잡한 생각에 잠겨 흑흑 흐느껴 울면서 바가지로 우물속의 달과 별들이 담긴 물을 한 바가지 한 바가지 퍼서 물동이에 담았다. 물동이안의 달과 별들이 점점 물동이 아구리 쪽으로 올라와 차 넘쳤다.    은희가 물동이안의 달과 별들의 우에 바가지를 동동 띄워놓고 물동이를 이려고 할 때였다.    버스럭버스럭 소리가 났다.   은희가 머리를 돌려보니 골짜기에서 난데없는 검둥이가 뛰어나왔다.   “아니, 검둥아, 네가 어떻게 돼 왔니?”   검둥이는 은희의 치맛자락을 물어 당기더니 끼깅거리며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때 뒤에서 휘파람소리가 들리었다.   “이게 은희 아니냐?”    나직한 부름소리가 들리었다.   (아니, 이게 성칠 오빠의 목소리가 아닌가!)   몸을 돌리는 순간 은희는 자기 앞에 두 사내가 달 빛 속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상호!”   은희는 놀라 풀렁 물앉았다.   “쉿~”   상호가 식지를 입에 대면서 은희를 안아 일으키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옆에는 성칠 오빠가 서있지 않는가?   은희는 대번에 상호오빠의 품에 와락 안기면서 흑흑 흐느껴 울었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더니 정말 왔구먼. 이게 꿈이요, 생시요?”   “그래 이건 생시요.”    상호는 은희의 파도치는 어깨를 다독이면서 어떻게 위안했으면 좋을지 몰라 했다.    “샘물터에 오면 너를 만날 거 같아 여기 왔다.”   은희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성칠을 쳐다보았다. 뒤이어 은희는 상호의 품에 안기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마구 쳐댔다.   “어데 갔다 이제야 왔니?”   “사냥하러 갔지.”   은희는 여기저기 살피면서 서있는 성칠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오빠, 오빠가 사라진 후 저 한길수가 오빠네 집을 빼앗아 림산파출소라는 걸 들여앉히고 일본 헌병들이 들어 살고 있소.”   “그랬니? 여긴 얘기하기 위험하니깐. 저쪽 숲 속으로 가자.”   성칠은 물동이를 안고 상호네 오누이를 데리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오빠, 그간 한길수란 놈은 별의별 악독한 짓을 다했소. 흐 흑 흑.”   은희에게서 그간 고향마을에 있은 일들을 죽 들은 성칠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이 원수는 꼭 갚아야 한다.”   성칠은 은희에게서 한길수의 영월동 토성안집의 형편도 묻고 나서 말했다.   “넌 아무 일도 없은 듯이 물동이를 이고 토성 안에 들어가라. 그 다음 철규와 함께 이렇게 해라.”   성칠은 사위를 둘러보더니 은희의 귀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예~ 알았소. 그렇게 할게.”   은희는 물동이에 물을 퍼 담아 이고 허연 눈 위에 깔린 희읍스름한 달빛을 밟으면서 토성 안 집 쪽으로 내려갔다.   이윽고 성칠과 상호가 우물터 옆 소나무숲속에서 보복행동계획대로 손을 쓸 준비를 다그칠 때다.   우물터 아래쪽에서 눈을 빠드득빠드득 밟는 소리가 들리었다.   “쉿!”   소나무숲 속에서 성칠이 입에 식지를 가져다대면서 허리춤에서 모젤권총을 쓱 뺐다. 상호는 시퍼런 비수를 빼들었다.   저쪽에서는 그런 줄도 모르고 이쪽으로 빠드득빠드득 계속 걸어오면서 도란도란 말까지 했다.   “은희는 늘 저녁에 여기로 물 길으러 올게오.”   “글쎄 말이오. 한길수나 영팔이나 이렇게 추운 날에 여기로 오겠소?”   귀에 익은 여자의 목소리.   소나무 뒤에 몸을 숨긴 상호는 성칠에게 다가서면서 “어째 은녀 누나 목소리 같소.” 하고 나직이 말했다.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샘물터에 눈길을 돌렸다.   두 검은 그림자가 샘물터에 가까워 올수록 여자의 목소리는 더 똑똑히 들리었다.   “여기서 은희를 만나면 얼마나 좋겠소?”   남자가 하는 말소리.   “은희를 만나 고향 마을 정황을 안 후 엄마를 만나는 게 옳소.”   분명 은녀의 목소리 아니겠는가.   상호는 성칠에게 “은녀 누나요." 하고 말하고 나서 비수를 허리춤에 꽂아 넣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성칠은 상호의 팔을 걷잡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휴-휴-   소나무가 설레는 소리 밖에 다른 동태가 없었다.   “나가봐라. 옆의 사내를 주의해라.”   상호는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천천히 소나무 숲에서 나가면서 조용히 불렀다.   “누나, 은녀 누나.”   “엇, 누나라니?”   다가오던 남녀가 주춤 멈춰서더니 뒤로 비실비실 물러섰다.   “누나, 상호요.”   “뭐라고? 상호?”   은녀는 품에 안았던 보꾸러미를 툭 떨어뜨리더니 이쪽으로 달려왔다.   은녀와 상호는 달려 나가 와락 끌어안았다. 뒤에 선 사내도 다가왔다.   “누구요?”   그러자 저쪽 사내가 다가오면서 말했다.   “상호야, 난 병수다.”   성칠도 슬금슬금 소나무숲속에서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밟으면서 나갔다.   “저건 누구냐?”   은녀의 물음에 상호가 나직이 대답했다.   “성칠 형님이오.”   “오빠라고? 오빠가 살아 있어?”   “그래, 난 살아있다.”   성칠은 성큼성큼 걸어 나가 은녀와 병수를 일일이 손잡아주었다.   “너희들이 얼마나 고생했니?”   은녀는 너무 기쁨과 설음에 마음이 설레어 떨어뜨린 보꾸러미를 주어 안더니 돌아서서 어깨를 들먹였다.   성칠은 은녀의 어깨를 다독이더니 말했다.   “됐다, 금방 은희도 여기 왔다가 갔다. 다시 오지 않을 거다. 여긴 오래 있을 곳이 못된다. 소나무숲속으로 들어가 이야기하자.”   뜻밖에 상봉한 그들은 소나무숲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간 서로들 있은 이야기를 했다.  성칠은 은녀와 병수  말을 듣고 나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간도로 무턱 대고 어떻게 간다고 그래?”   병수는 초신 감발한 발로 소나무 밑 둥을 탁 걷어차면서 성칠을 보고 물었다.   “간도에 가지 않으면 여기서 어떻게 사오?”   “우리 독립군에 들어가야 산다.”   “독립군에?”   병수는 놀란 나머지 소나무 숲이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쳤다.   성칠이 식지를 입에 대고 사위를 둘러보자 병수가 물었다.   “형님과 상호랑 독립군에 들어갔소?”   “그래. 너희들도 독립군에 들어가 총을 쥐고 일본 놈들과 한길수 같은 개다리들을 이 고향에서 몰아내야 잘 살 수 있다.”   은녀는 소스러치 듯 놀라했다.   “상호야, 너도 독립군이냐?”   상호가 머리를 끄덕이자 생각 밖으로 은녀는 상호의 손으로 잔등을 톡톡 쳤다.   “참 장하다! 우리 철천지원수 한길수를 처단해 우리 원수를 갚아라!”   이윽고 병수는 이렇게 말했다.   “말몰이군도 독립군에서 받아주면 들겠소. 그런데 은녀랑 은희랑은 고향마을에 둘 수 없소. 한뉘 어떻게 한길수의 종살이를 하게 내  버려두겠소? 여자들도 독립군에서 받았으면 좋겠는데.”   성칠은 선뜻이 대답했다.   “독립군에 들어오라. 독립군에도 여자대원이 할 일이 가득하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총도 쏴야지.”   성칠은 은녀에게 물었다.   “독립군 소대장 진달래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니?”    은녀는 머리를 끄덕였다.   “들었소. 그 돌멩이를 잘 뿌리는 처녀장군 말이 아니오?”   “맞다. 지난 번에도 나를 구할 때 돌멩이로 일본 놈과 자위대 놈들을 여럿을 까 눕혔다.”   “나도 진달래 언니처럼 독리군 여대원이 되겠소.”   성칠은 은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좋다. 우리 힘을 합쳐 우리 고향마을에서 한길수와 야마모도 소장 같은 일본 놈들을 몰아내자. 원수를 꼭 갚고야 말자.”    뒤이어 그들은 성칠의 영솔 하에 은희가 알려 준대로 엄창렬의 산소로 떠나갔다. 그들은 눈이 무릎까지 펑펑 빠지는 뒷산 비탈로 올라갔다.   한참 후 아버지 산소에 이르자 상호와 은녀는 아버지 산소에 절을 세 번 올리고 나서 풀쩍 엎드려 엉엉 통곡 쳤다.   성칠이 다가가 은녀와 상호의 어깨를 다독였다.   “여기도 오래 있을 곳이 아니다.”   그들은 다시 눈보라를 무릅쓰고 담대하게도 은녀의 집으로 내려가 삽작문을 열고 들어섰다.   바깥에서는 눈보라가 쌩쌩 휘몰아쳤다.    한길수나 응삼이 지어 야마모도소장도 이 눈보라치는 야밤삼경에 성칠과 상호 그리고 은녀와 병수가 이 마을에 숨어들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긴 반년 넘어 영월동의 성칠과 덕팔, 동욱, 상호네 집에 넓은 그물을 치고 밤낮없이 지켰지만 그들의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놈들은 겨울에 접어들자 몇 달째 경계가 허술해졌던 것이다.    한편 야밤삼경에 명순은 은녀와 이태 남짓이 사라졌던 상호를 꿈결에서처럼 만나자 부둥켜안고 엉엉 운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바깥에서 보초를 서는 성칠은 그들 삼모녀의 통곡소리에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452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9) 어린 장사군과 부자 김장혁 댓글:  조회:443  추천:0  2024-07-07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권                    제7장 포수대                               10. 어린 장사꾼과 부자       어느 날, 한길수가 병수와 철규를 데리고 말을 팔러 우시장 장터로 갔다.   한길수는 번대 머리에 중절모자를 눌러쓰고 개화장까지 척 짚고 자위대 대원까지 끌고 나섰다. 돈주머니를 찼던 옆구리에 권총을 척 찼고 외눈깔박이로 된 것이 이전 한길수의 행차보다 달랐다.   그는 걷기 싫어 자전거를 가져오라고 한 후 자위대원 둘을 떼 두면서 병수와 철규가 모는 소와 말을 잘 지키면서 우시장 장터까지 오라고 했다.   병수와 철규는 자전거를 타고 바람결처럼 달려가는 길수와 자위대원의 뒤꽁무니를 보면서 두덜거렸다.   지어 자위대원들도 볼 부은 소리를 했다.   “쳇. 재수 없어. 우린 걸어서 언제 가겠냐?”   철규가 뒤 덜미를 긁적거리다가 말했다.   “이보시오, 우리도 말과 소라도 타구 갑시다. 아무튼 남에게 팔아야 될 소가 아닙니까?”   자위대원 똘만은 철규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허허, 요놈이. 옳다. 우리라고 다리 아픈데 걸어가겠니?” 하고 말하면서 토성 안 쪽을 돌아다보았다.   “대문이 꼭 닫겼네. 우리 둘이 말을 타고 자네들은 소를 타게.”   똘만의 말대로 자위대원들은 말을 타고 병수와 철규는 소를 타고 우시장으로 떠났다.   그들은 소와 말을 타고 닫다가도 걷고 걷다가도 달았기에 점심 전에 우시장에 이르렀다. 골목마다 이전에 비해 게다짝을 걸고 딸까  닥거리면서 다니는 일본인들이 눈에 뜨이게 많아졌다. 하얀 백의를 입은 조선인들 속에 상시 옷 같은 화복을 입은 일본인들이 섞여있는 골목은 정말로 조밭에 가라지가 섞인 것 같고 꽃밭 속에 쑥대가 섞여 넘실대는 것 같았다.   드디어 그들은 우시장 장터에 이르렀다. 이 도시의 이름을 우시장이라고 단것은 말 그대로 소장마당이 소문났기 때문이다. 소문대로   우시장 소장마당에는 숱한 살이 피둥피둥 진 소들과 말들이 말뚝에 매여져있었고 숱한 장군들이 한창 흥정을 하느라고 야단법석 했다.   어떤 소는 “음메—” 하고 영각소리 울리었다.   덩치 큰 수소는 다른 수소만 보면 앞발로 흙을 긁어 잔등에 퍼 치며 싸움질하자고 뿌리를 곤두세우고 생 지랄이었다. 어떤 수소는 암소가 지나가면 노려보며 덮쳐들다가도 말뚝에 매놓은 고삐에 끌리어 입을 짝 벌리며 대가리를 쳐들고 눈알을 흡떴다. 어떤 둥글소는 암소를 쳐다보다가 아예 매놓은 말뚝에 매달리다가 뿌리로 말뚝을 떵떵 들이받기도 했다.   늦어 가다나니 소와 말을 맬 자리가 없었다. 한참 소와 말 고삐를 잡고 있는데 요행 어떤 소장사군의 소가 팔리면서 말뚝 하나가 나졌다. 하여 눈치 빠른 철규가 제꺽 손에 쥐고 있던 말을 끌어다가 말뚝에 고삐를 매놓았다. 이렇게 한참 싱갱이 질 하며 눈치노름을 하여 겨우 말 두필에 소 한 마리를 말뚝에 매놓았다. 이제 소 두 마리만 말뚝에 고삐를 매놓으면 됐다.   (팔리겠으면 팔리구. 나 하구 무슨 상관인가? 배고픈데 점심도 먹지 못한 판에 말뚝에 매놓고 편안히 앉아 쉬자.)   소나 말을 하나도 팔지 못하였는데 점심때가 돼버렸다. 길수는 불룩해진 배를 어루만지면서 자위대원들을 데리고 점심 먹으러 가면서 병수와 철규에게 부탁했다.   “소와 말을 잘 지켜라. 이 놈의 소장마당은 생사람 눈을 빼먹는 곳이야.”   "네?"  철규는 눈이 데꾼해지었다.  병수는  “예, 예.” 하고 꿉썩거리었다.  그러나 천진한 철규는 핼끔핼끔 길수의 눈치를 보면서 소고삐로 땅바닥을 두드리면서 두덜거렸다.   “배고픈데 소만 지키라고?”   “요놈새끼, 뭐라고? 소만 잃어버려 봐라. 네 놈 목을 쑥 뽑아버리겠다.”   길수는 을러메고 나서 자위대원들을 끌고 가버렸다. 그는 점심도 점심이거니와 우시장 기생집의 옥설과 놀고 싶었던 것이다. 장터에는 병수와 철규만 남아 배를 촐촐 굶으면서 소와 말을 지켰다.   철규는너무 배고파 배를 끌어안고 수척한 얼굴마저 찡그리었다.   병수는 보다 못해 소고삐를 철규에게 주면서 부탁했다.   “내 가서 기름떡을 얻어와야겠다. 소 고삐를 단단히 쥐고 있어라. 소를 잃어버리는 날엔 우린 죽은 목숨이다.”   “예. 알았습구마.”   병수가 떠나간 후 비단솜옷을 입은 한 부자가 다가와 수소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철규에게 물었다.   “얘, 소 주인은 어데 갔냐?”   “점심 먹으러 갔습구마.”   부자는 소를 사지 못해 아쉬운 듯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철규는 배고파 병수가 간 쪽만 바라보면서 부자가 자꾸 묻는 것마저 시끄러워 했다.   그런데도 그 부자는 살진 수소가 욕심나 빙빙 맴돌면서 자꾸 물었다.   “얘, 네 주인이 이 소를 얼마에 판다더냐?”   “한 백 원에 판다던데.”   비싸게 말해 부자를 쫓아 보낼 속셈이었다.   “오, 너무 비싸구나. 주인이 어데 갔냐?”   부자는 주인을 찾아낼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뒤이어 철규 밖에 없는 것을 보고 말뚝의 소고삐를 슬슬 풀었다.   “왜 이럽둥?”   “요 망할 놈 새끼! 입 다물지 못할까?”   부자는 자기 팔에 매달린 철규를 탁 밀쳤다.   “이게 누구 손지 알고 이럽둥?”   “누구 소냐?”   부자는 소고삐를 풀던 손을 주춤 멈추더니 철규 쪽에 살진 낯을 돌렸다.   “우시장 자위대장 한길수네 소입구마.”   “엉?!”   악명 높은 한길수의 소라고 하자 부자는 잔등에 식은땀을 쪽 흘렸다. 그러나 어린 애밖에 없다는 현실에 다시 도둑놈의 침착성을 되찾았다.   “에끼, 이 놈 새끼, 한대장은 내 잘 안다. 겁낼게 뭐냐?”   부자는 살진 머리통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주위를 슬슬 살폈다.   “야, 이 놈아, 주인이 백 원에 판다는데 좀 눅게 팔면 안 되겠니?”   “내 어찌 소를 팝둥?”  철규는 이런 생각이 피뜩 떠올랐다.  (저 놈 소를 제꺽 눅게 팔아 엄마 병을 치료해주었으면 얼마나 좋겠니?)   철규는 발딱 일어났다.   “한 50원에 사겠습둥?”   “그럼 오죽 좋겠느냐? 그런데 서울깍쟁이도 울고 갈 한영감이 그렇게 눅게 팔겠냐?”   “내게 50원 내놓고 소를 풀어 갑소.”   부자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이게 웬 떡이냐?)   부자는 동전을 스무나문 잎 꺼내 대충 세는 척하다가 돈주머니에 넣어 철규에게 주고 소고삐를 풀려고 했다.   철규는 돈주머니를 제꺽 호주머니에 넣고 다급히 소 고삐를 잡았다.   “이보소. 우리 주인 오기 전엔 소를 풀어가지 못합구마.”   “이 자식, 왜 이래?”   “안 됩구마. 못 갑구마.”   숱한 장군들이 이쪽을 눈길을 보냈다.   철규가 소고삐를 놓지 않자 부자는 허리춤에서 비수를 꺼내 철규가 잡은 소고삐를 썩 뚝 잘라 버리고 소를 몰고 달아났다.   철규는 부자를 쫓아가면서 소리쳤다.   “어디로 가?! 우리 주인에게 어디 혼나 봐라!”   철규가 소리 칠수록 부자는 고삐로 소잔등을 쨩쨩 치면서 부랴부랴 장마당을 떠나갔다.   철규는 부자를 쫓아가는척하면서 장마당을 벗어났다. 그는 사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펴도 사람이 보이지 않자 뉘 집 동쪽의 재무지에 덮인 눈 속에 동전을 파묻어 놓았다. 그리고는 황급히 장마당으로 달아 왔다.    그제야 장마당에 병수가 돌아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기름떡 한 장을 내밀면서 황급히 철규에게 물었다.    “수소 한 마리는 어쨌느냐?”   철규는 기름떡을 뜯어먹으면서 병수의 귀에 대고 종알거렸다.   “어떤 부자가 빼앗아가지고 달아났습니다.”   “야, 이놈 새끼, 이걸 어찌니? 우린 목이 날아났다.”  병수는 목을 매만지면서 풀썩 물앉았다.   “겁도 많기도 많습구마.”   철규는 병수의 귀에 대고 쏘근거렸다.   그러나 병수는 질겁해 물앉은 채 와들와들 떨었다.   “개소릴 치지 말라. 그러고도 살아 남을 거 같니? 난 도망갈 테다.”    병수는 진짜 장마당에서 달아나 어디론가 바람결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철규는 말뚝에 매지 않은 나머지 소 한 마리의 고삐와 부자의 비수에 썩 뚝 잘린 소고삐를 한손에 쥐고 한손으로는 눈을 싸쥐고 머리를 숙인 채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한참 후에 기생집에서 실컷 논 한길수가 자위대원들을 데리고 장마당에 나타났다.   그는 철규의 모양을 보고 우스워하면서 소와 말을 세여 보았다.   “아니, 요 놈 새끼야, 소는 어찌 하고 눈을 싸쥐고 앉아 있느냐?”   그제야 철규는 눈을 싸쥔 채 일어나면서 종알거렸다.    “주인님, 생사람 눈을 빼먹는 세상이라기에 눈을 싸쥐고 있습구마.”   “요놈새끼, 소는 어쩌구 빈 소 고삐를 쥐고 있니?"   한길수는 불그락푸르락 해 세길네길 뛰며 고함쳤다.   "소를 어쨌니? 엉? 요놈 새끼, 가죽을 벗겨놓지 않는가 봐라.”   철규는 한길수의 독기서린 외눈깔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그래도 병수 삼촌의 말대로 소고삐를 단단히 쥐고 있었으니 그렇지. 안 그럼 나머지 소도 잃어버릴 줄 압소.”   “에끼, 요 놈 새끼, 주둥이만 까진 놈 새낄 어쩌겠니?”   길수는 철규를 한바탕 욕지거리를 하면서 발길로 걷어찼다.   그때 장군들이 몰려 왔다.   “어떤 뚱뚱한 부자가 와서 소를 빼앗아 갔습구마.”    철규는 발길에 채워 대굴대굴 굴면서도 익살을 피웠다.   “옳습구마. 내 그 뚱뚱보를 말리면서 소고삐를 놓지 않으니 비수로 소고삐를 베 버리구 소를 끌고 달아났습구마. 아이고, 그놈을 쫓아가면서 소를 놔라고 했는뎁슈. 더 따라오면 비수로 찍어죽이겠다고 을러메지 않겠습둥? 난 나머지 마소를 잃어버릴 가봐  장마당에 되달아 왔댔습구마.”    철규는 속으로 병수 삼촌과 함께 달아나지 않은 것을 못내 후회했다.    “요놈새끼야, 병수는 어데 갔니?!”   똘만은 눈을 가슴츠레 뜨고 주위를 살펴보다가 길수에게 의문을 들이댔다.   “혹시 그 놈이 소를 풀어가지고 도망가지 않았는지?”   “엉? 그래, 빨리 자전거를 타고 그 놈을 당장 붙잡아라. 소를 끌고 멀리는 가지 못했을 거야!”   “예!”   한길수는 자위대원들을 보내놓고서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똘만을 불러 세웠다.   “헌병대에 돌아가 넌 오토바이를 타고 큰 길을 따라 쫓아가라.”   “예. 알았습구마.”   땅딸보 똘만은 자전거에 뛰어올라 부랴부랴 우시장 경찰국 사무청사 쪽으로 달려갔다.   철규는 집에 돌아가 혼 낼 궁리를 하면서 길수는 먼저 자위대에 헌병대까지 동원해 수소와 병수부터 찾아내자고 날뛰었다.   한참 후에 똘만과 자위대원이 장마당으로 자전거를 타고 돌아왔다.   “주인님, 소를 찾았습구마.”   길수는 우멍 눈의 주름살이 쫙 펴졌다.   “그래? 병수는?”   똘만은 땀을 훔치면서 도리멀리 질 했다.   “찾지 못했습구마. 명천에 사는 놈이 둥글 소를 끌고 큰길로 돌아가는 걸 헌병대오토바이를 타고 쫓아가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그놈의 말이 어린 애에게서 소를 50원에 사갔다고 합더구마.”    “뭐라고? 그럼 병수가 도둑질 한 게 아니란 말이지?”    순간 길수는 의심에 가득 찬 외눈깔박이로 쪼그리고 앉아 흐느끼는 철규를 내려다보았다.   “요놈새끼, 소를 팔았단 말인가?”   그러자 철규는 핼끔 길수를 쳐다보더니 쿨쩍이며 말했다.    “아무리 어리다고 억울하게 굴지 맙소. 소도적놈이 철부지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것도 모릅둥?”   그때 옆에서 구경하며 장을 보던 사나이가 끼어들었다.   “아까 보니까 확실히 비수로 고삐를 베면서 위협합디다.”   “그러잖고. 어린 애가 비수를 휘두르는 도적놈을 어찌 하겠소?”   길수는 뭔가 짐작됐는지 머리를 끄덕였다.   “좌우간 요 놈 새끼하구 소를 끌고 가던 놈을 경찰국에 가서 삼조대면시키자. 모든 게 드러날게 아니냐? 둥글소를 끌고 간 놈은 어데 있냐?”   똘만은 자전거를 장마당 눈 바닥에 세워놓으면서 말했다.   “가메다 헌병소대장이 둥글 소와 함께 경찰국으로 끌고 갔습니다.”    “음, 잘 됐다.”   길수는 쾌자를 부르다가 무릎을 탁 쳤다.   “아차, 이젠 둥글소는 잃어버렸구나.”    똘만은 중절모자를 벗어 쥐고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는 주인의 번들 이마를 응시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 경찰국 울안에는 소도적보다 더 무서운 날강도들이 득실거리는 걸 모르느냐? 아, 아냐?”   길수는 손바닥으로 입을 막더니 혀끝을 감빨면서 누가 듣지 않았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넌 자위대원 몇을 데리고 나머지 마소들을 집에 몰아가라. 못 팔면 못 팔았지. 일본 사람들에게 몽땅 먹히겠다.”   그제야 대장의 말속의 말을 알았는지 똘만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소고삐를 말뚝에서 풀었다.   “쥐에게 먹혀서는 아깝지만 고양이에게 쌀을 먹여선 아깝지 않다는데 난 쥐에게나 고양이에게나 다 아깝다. 아까워. 내가 어떻게 긁  어모은 재산이냐?”   “예, 안 됐습구마. 꼭 실수 없이 마소를 집에 끌고 가겠습구마.”   “장마당에 왔다가 둥글 소도 잃어먹고 병수까지 잃어버렸다. 그런데 이 놈은 어디로 갔을까?”   길수는 이를 악물고 자위대월들 서넛과 함께 철규를 끌고 경찰국 사무 청사 울 안으로 갔다.   벌건 벽돌토성을 두른 울안에 들어가자 검정 비단솜옷을 입은 뚱뚱한자가 둥글 소와 함께 늙은 느티나무 아래 묶여 있는 것이 우멍 눈에 안겨왔다.   한길수의 눈에 시뻘건 불티가 마구 튕겼다.   “이 놈 새낀가?”   그는 똘만에게 물으면서 뚱뚱한 부자한테로 다가갔다.   “아니, 왜 이럽니까? 난 그 집 소를 샀을 뿐인데.”   부자의 말에 길수는 우멍 눈으로 뒤에 머리를 숙이고 끌려오는 철규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요 놈 새끼, 이 놈 새끼 맞니?”   “예.”   철규는 부자를 보자 머리부터 숙이며 쥐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부자는 철규를 보자 망망한 대해에서 지푸라기라도 만난 듯이 허우적거렸다.   “난 저 애에게 50원을 주고 샀습구마.”   철규는 입이 뽀로통해지더니 도도거렸다.   “난 돈을 받은 적도 없습구마. 자위대 한대장네 소라면서 빼앗아 가지 말라구 했는데  저 부자놈이 비수로 나를 위협하면서 소 고삐까지 잘라놓고 소를 끌고 달아났댔습구마. 어린애라고 깔보구 거짓말 작작 합소.”   부자는 눈을 뚝 부릅뜨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죄꼬만 새끼, 경찰국에서 나가기만 해라. 네놈 대갈통을 잘라버릴테다.”   한길수는 부자의 귀쌈을 찰싹찰싹 갈기면서 욕했다.   “이 죽일 놈 새끼, 네가 감히 내 소를 빼앗아가? 비수로 소고삐를 자르고 어린애라고 업신여겨 비수로 위협까지 했다지? 개를 쳐도 주인을 보고 쳐라. 이놈, 어디 죽어봐라.”   부자는 철규에게서 소를 눅게 사가려다가 헌병대에 잡혀 한길수에게 반 주검이 되게 얻어맞았다.   길수는 도적놈은 붙잡았지만 둥글소를 헌병대에 빼앗기고 말았다. 끼무라 국장이 잃어버렸던 둥글 소를 잃어버린 셈 치고 헌병대에서 잡아먹게 선물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깍쟁이 한길수는 소를 잃고 병수마저 사라져 속을 끙끙 앓았다.
451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8) 머슴 김장혁 댓글:  조회:495  추천:0  2024-07-07
2015년 09월 09일 11시 44분  조회:1629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권                    제7장 흑야                                     9. 머슴       먹장구름이 고향의 하늘을 지지누르면서 을씨년스럽게 기운봉을 핥으며 오만하게 흘러갔다. 산과 들은 먹장구름의 야만적인 억눌림을 받아 침침해 견디기 어력게 돼가고 길 옆의 눈더미에 깔린 진달래는 언 허리를 굽힌 채 쇠 발굽에 밟혀 간간히 신음하고 있었다.     월선은 날이 감에 따라 은희를 더 못 살게 굴었다. 쩍 하면 밥이 설었다, 눅다, 되다, 돌이 씹힌다, 뭐니 뭐니 하면서 허물을 잡고 머리를 잡아 뜯어놓았다.    암범은 늑대가 가만히 은희와 치근거릴까 봐 물을 길으러 가도 자위대원을 따라 보내 감시하게 했다.    어느 날 월선은 입을 앙다물고 아침 설거지를 하는 은희를 들볶아댔다.    “다시 우리 영감과 치근거려 봐라. 가랑이를 찢어놓지 않는가.”    월선은 선처의 맏아들 철주 녀석과 함께 마차에 앉아 우시장으로 본가 집 아버지를 모시러 떠나갔다.    철주는 일본에 유학을 갔었다. 그는 금방 서울로 돌아왔다가 아버지를 보러 고향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딸랑딸랑    구리방울소리 절주 있게 들렸다. 네 필 말은 네 굽을 안고 우시장을 향해 달려갔다.   그만하면 마차 빠른데도 암범은 재촉이 성화 같았다.    “빨리 몰아. 해지기 전에 돌아와야겠어.”   어찌나 재촉하는지 머슴 병수는 연신 닫는 말에 채찍을 쨩쨩 안겼다.    뭇 산들은 하얀 눈옷을 떨쳐입은 채 뒤로 물러갔다. 은세계를 방불케 하는 산들에서 흰 용들이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엎치락뒤치락 싸우는 듯이 눈보라가 무섭게 비명을 지르면서 휘몰아쳤다.    “철주, 저 눈보라 치는 산을 보오. 우린 신선들이 날아다니는 별유천지를 마차 타고 훨훨 날아예는 거 같지 않아요?”    “그런 거 같네요.”    철주는 크림 내 확확 풍기는 월선을 피뜩 곁눈질하면서 비위를 맞추면서 씽긋 웃어 보이었다.    “작은어머니, 짚고 넘어갈 게 한 가지 있는데요. 맏아들과 무슨 ‘이랬어요’, ‘저래요’인가요? ‘야’, ‘자’ 하세요.”    “호호호.”    월선은 입을 싸쥐고 캐득캐득 웃었다.    “맏아들? 그저 맏아들과 같이 꽃마차를 타고 아버지 모시러 가니 기분이 좋아 그래요.”    “또, 또. 에이 참, 어머님도. 원.”    월선은 개의치 않고 철주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철주는 덴겁해 손을 훌 빼갔다.    월선은 취한 듯이 몸을 철주에게 기대면서 나직이 소곤거렸다.     “왜 안 되나? 어머니가 맏아들이 고와서 그래. 호호호.”     철주는 황급히 몸을 피하면서 상을 찡그렸다.     (늙으신 아버님 마음고생 많겠구나.)    순간 월선은 깨 고소해 했다.     (등신 같은 영감태기, 당신은 은희를 좋아하지? 내 당신 맏아들을 좋아한들 뭐래? 흥, 애 나지? 풍이나 맞고 콱 뒤져!)     병수는 마차를 몰면서 뒤에서 연놈들이 하는 수작이 메스꺼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 잔등에 채찍을 안기며 박차를 가했다.     마차는 모자간의 추잡한 희극을 싣고 눈보라 속으로 질풍같이 달렸다.     한편, 한길수는 월선이가 우시장을 간 틈을 타서 은희를 고분고분 말을 듣게 길을 들이고 싶었다.     그는 몸채 마루에 나가 앉더니 호통 쳤다.     “영팔이, 은희를 끌어오게!”     “예!”    영팔은 응삼과 함께 사랑방에 가서 은희의 양팔을 잡아끌고 왔다.    한길수가 독기어린 우멍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더러운 년, 자기를 생각하는 거 모르고 언감 그런 연극을 놀다니? 저 년을 기둥에 달아매라!”     영팔과 응삼은 바 줄로 은희를 기둥에 끌어맸다.     “주인어른, 왜 이랩둥? 난 아무 죄도 없어요. 제발 풀어 줍소.”     “흥, 어디 주인의 비위를 거슬러 봐. 흥, 대가를 톡톡히 치를줄 알어.”    한길수는 기둥에 매놓은 은희의 귀 쌈을 찰싹 찰싹 갈겼다.   은희의 여윈 얼굴에 뻘건 손자리가 났다. 한길수는 손찌검질도 분을 풀기는 모자랐는지 손에 침을 퉤 뱉더니 가죽채찍을 찾아 들고 번들 이마를 번쩍이면서 은희에게 어슬렁어슬렁 다가갔다. 이를 사려 문 한길수의 우멍 눈에는 늑대 독기와 변태의 음충한 눈빛이 서려 있었다.   쨩! 쨩!   한길수는 채찍으로 그 여린 은희의 종아리고 허벅다리고 가슴이고 사정없이 후려쳤다.   “앗, 아가!”   신음소리가 애처롭게 울렸다.   한길수는 채찍질하면서 을러멨다.   “주는 떡을 먹지 않더니 어떠냐? 응? 내 말을 고분고분 듣겠니? 안 듣겠니? 응?!”   은희는 채찍소리 쨩! 쨩! 날 때마다 죽어가는 비명소리를 쳤다. 은희가 머리를 가로 툭 떨어뜨린 채 대답이 없었다. 한길수가 채찍자루로 턱을 쳐들어보니 은희는 눈을 겨우 가늘게 뜨고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경 칠 년, 다시 내 말을 듣지 않아 봐!”   은희는 대답 대신 머리를 툭 떨어뜨리더니 눈을 내리깔며 까무러쳤다. 그녀의 목과 팔, 종아리에 마디진 퍼런 굴뱀이 쭉쭉 갔다.   한길수는 은희가 죽겠으면 죽어라고 모든 것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채찍을 놓자 마루에 앉아 곰방대를 꺼내 담배를 재워 넣었다. 눈치 빠른 아첨쟁이 응삼이가 부시를 척 꺼내 올리었다.   한길수는 응삼의 손을 밀어버리고 호주머니에서 성냥 곽을 꺼내더니 성냥가치를 득 그어 담배 불을 붙여 물었다.   “주인님, 건 뭣입둥?”   응삼과 영팔은 신기해하자 한길수는 어깨 으쓱해 입을 널어댔다.   “이 시골 놈들아, 끼무라 국장님이 나에게 준 성냥이야. 이거면 부시를 백번 치지 않아도 돼.”   한길수는 “에헴.” 하고 마른기침을 하며 안방에 들어갔다. 이윽고  나온 그느 성냥을  졸개 응삼과 영팔, 수길에게 한 통씩 나눠주었다.    “와~ 신기하다.”   응삼은 성냥 곽을 쥐고 이리저리 보면서 야단쳤다.   한길수는 영월동에서 병완을 몰아낸 후 병완의 집에 림산파출소를 세우고 들어앉아있는 야마모도 소장을 등에 업고 마구 칼을 휘둘렀다.   “저년에게 물을 치게.”   영팔은 까무러친 은희를 풀어놓고 부엌에 들어가 바가지로 물을 퍼다 얼굴에 탁 쳤다. 그래도 은희는 깨여나지 못했다. 짐승 같은 놈 들은 초겨울 널마루바닥에 은희를 눕혀놓고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렸다.   한길수는 은희 생사는 관계하지 않고 차디 찬 마루에 내버려둔 채 영팔, 응삼과 자위대 대원들을 끌고 덕팔이네 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개자식, 성칠을 따라 사냥하러 갔지. 몽땅 독립군으로 처단할 테다. 네놈들의 처자들을 몽땅 내 종년을 만들테야. 으흐흐.”    한길수는 득의양양해 덕팔이네 집으로 다가갔다.   눈에 용마루가 짓눌려 푹 꺼진 집 안에서 필순의 쿨룩쿨룩 기침소리 들렸다.   길수가 졸개들을 끌고 기척도 없이 뛰어들자 필순의 아들 철규와 딸 점순이가 화닥닥 일어나면서 공포에 바들바들 떨었다.   “무슨 일입둥?”   한길수는 필순의 창백해진 여윈 얼굴을 쏘아보며 고래고래 을러멨다.    “철규, 넌 오늘부터  우리 집에 가서 말을 먹여야 돼!”     “안 됩구마.”   필순은 손으로 철규를 잔등 뒤에 빼돌렸다.   “나그네가 사냥하러 가구 없는데 이제 열 살 푼한 애마저 머슴으로 끌어가면 어떻게 합둥?”   한길수는 음흉한 우멍 눈으로 겨릅대 같은 필순을 쏘아보면서 을러멨다.   “덕팔은 독립군에 들어갔기에 죽은 목숨이야. 처자들도 다 목을 매 죽여 버려야 한다. 하지만 이 어른이 야마모도 소장과 말해서 살려 줬으니 고마운 줄 알아라. 흥!”   영팔과 응삼은 와락 달려들어 필순을 활 밀어버리고 승냥이 어린 양을 채가듯이 철규를 훌 끌고 바깥으로 나갔다.   “철규야, 철규!”   필순은 따라 나가면서 손을 들어 철규를 불렀다. 마흔이 거의 돼서 어떻게 낳은 외동아들을 빼앗기고만 것이다.   “오빠~ 응, 응~”   점순도 따라 나가면서 통곡 쳤다.   한길수는 음충한 눈길로 점순의 애티 나는 몸을 훑었다.   (너무 애호박이야.)   한길수는 우멍 눈을 점순에게서 떼더니 코를 싸쥐고 퀴퀴한 냄새 나는 집안에서 바람결처럼 나가버렸다.  집 안에서는 필순이 모녀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토끼꼬리 같은 겨울 해가 눈 덮인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때에야 병수가 모는 마차가 토성 안에 들어섰다.   마차 풍을 젖히고 살진 월선의 낯이 쑥 나왔다.   “여보, 아버님이 오셨어요.”   위방 문이 삐꺼덕 열리더니 한길수가 끌신을 짝짝 끌고 바삐 나갔다.   마차 우에서 백발이 성성한 염소수염이 풍막을 젖히고 나타났다.   “가시아버지, 그간 무사했습둥?”   “오, 그래.”   염소수염을 기른 월선의 아버지는 거만하게 거들먹거리면서 병수가 가져다놓은 나무 궤를 딛고 마차에서 내렸다.   헌병 가메다가 마차를 뒤따라 들어왔다. 그자는 한길수를 보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곤방와(안녕하십니까)?"   그자는 월선의 아버지에게도 허리 굽혀 인사했다.    “하이, 오까께 사마데(예, 덕분에).”   한길수는  이젠 제법 섬나라 오랑캐처럼 일본 말로 인사말을 받았다.   이때 저쪽 토성 밑 우사에서 철규는 굽실거리는 한길수를 쓴 오이 보듯 하면서 피씩 쓴 웃음을 지었다.   “철규야, 말을 마구간에 들여다 먹이를 줘라!”   “알았습구마.”   철규는 병수와 함께 말을 풀어 마구간에 들여다 매고 구유에 먹이풀을 주었다.   “에구, 요 어린것까지 붙잡아왔구나. 쯧쯧.”   열세 살 밖에 안 되는 철규는 고된 일에 지쳐 비틀거렸다. 그는 일을 마치고 마구간에서 나오면서 높이 쳐들린 몸채 추녀를 올려다 쏘아보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는 자기에게 차려진 밥그릇을 들고 사랑방에 들어가 누워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은희 앞에 내밀었다.   은희는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네나 먹어라.” 하고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겨우 말했다.   이때 병수도 밥그릇을 들고 사랑방에 들어섰다.   “은희, 이건 네 몫을 가져 온 거야. 어서 억지로라도 먹어라. 이러다간 앓아눕겠다.”   병수는 은희가 이를 옥 물고 간신히 일어나 앉아 밥술을 드는 은희를 보고서야 자기 곁방으로 나갔다.   철규는 채찍 자국이 난 은희 팔을 보고 눈물이 글썽해지더니 이를 옥 물었다. 너무 힘들어 은희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내뱄다.   은희는 숟가락을 드네 마네 하다가 한숨소리에 신음소리를 섞어내더니 철규의 부축을 받으면서야 간신히 자리에 들어 누웠다.   철규는 은희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소곤거렸다.   창고 같은 사랑방에는 남녀 머슴들이 모이어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450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7) 암범과 늑대 김장혁 댓글:  조회:548  추천:0  2024-06-28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권            제7장 흑야                8. 암범과 늑대          싸늘한 달밤에 처량한 달빛이 사랑채 안을 처량하게 비추었다. 무시무시한 공포가 희극처럼 사랑채에 스물스물 기어들어 기웃거린다.      은희는 다 타버린 폐허 같은 길수네 토성 안 사랑채에 들어가 누더기이불을 쓰고 자리에 들었다. 온 여름 불도 때지 않아 습기 찬 구들에 누더기이불마저 축축해 누어있을 수 없었다. 한길수가 마을 사람들을 강제로 끌어다가 연 십여 일 동안 대충 손질한 몸채에 한길수와 월선이 들어있고 줄느런히 들어선 곁채에 영팔과 응삼, 수길이 들어있었다.      은희는  야밤에 짐승보다도 못한 그자들이 더 무서워 종시 잠들 수 없었다.     (아버지 엄마만 아니면 이 놈의 승냥이 굴에서 도망치고 말건데. 그렇게 할 수도 없고.)    은희는 스르르 일어나 밖을 내다보았다.   희읍스름한 달빛이 쓸쓸히 집 안을 비추고 을씨년스런 가을바람이 이영 초리를 와스스 건드리며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 집 안에 공포를 더 몰아온다.    삐꺼덕   대문에 달린 작은 문짝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길수가 응삼을 데리고 대문 안에 들어섰다. 그는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면서 어깨 으쓱해 우멍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성큼성큼 몸채로 들어갔다.   희읍스름한 달빛이 깔린 마당에 허연 무명저고리에 까만 몽당치마를 입은 은희가 물동이를 팔에 끼고 사뿐사뿐 걸어 나왔다.   은희를 보는 순간 한길수는 길쭉한 말상에 말 이발을 드러내며 웃었다.   “응삼이, 오늘 일은 끝났네. 자넨 집으로 들어가게나. 에헴.”   “예.”   응삼은 좋아라고 사랑채 곁방에 들어가 버렸다. 춘실이 맛있는 명태 국을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길수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다가오는 은희의 왼팔을 붙잡았다.   “얘, 주인을 보고 인사할 줄도 몰라?”   “주인님, 무사합둥?”   “오, 그래, 밤중에 동이를 이고 물 길으러 가냐?”   은희는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가는 소리로 “예.” 하고 대답했다.   그녀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길수의 팔을 살짝 뿌리쳤다.   한길수는 고양이 쥐나 생각하듯 말리었다.   “밤중에 무슨 물을 긷는다고 이러니? 내일 길어라.”    “예, 알았습꾸마.”   은희는 길수가 팔을 놓기를 기다려 부엌에 동이를 들여다 내려놓고 나와 사랑채에 들어갔다.   이튿날 아침, 한길수가 음충한 눈길로 물을 길으러 가는 은희의 엉덩이를 우멍 눈으로 힐끔힐끔 곁눈질해보더니 다른 궁리를 했다.    그는 몸채에 월선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자 은희의 뒤를 슬금슬금 밟았다.   은희는 어제 저녁에 자기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푼 주인이 징글스러웠다. 그런데 이른 아침에 물을 길으러 가는 자기 뒤를 따라 오는 것이 여간 상서롭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아침 밥을 지으려고 물을 당장 길어오라고 월선이 소리쳤는지라 물을 길으러 가지 않을수 없었다.   (아무리 하면 시퍼런 대낮에야 어찌 하겠느냐?)   은희가 우물가에 가서 동이를 내려놓고 바가지로 물을 퍼 담는데 길수가 사위를 둘러보더니 마른기침을 하며 다가왔다. 은희는 온몸에 소름이 끼쳐 동이에 물을 빨리 퍼 담았다.   “은희, 헤헤. 너도 눈이 있고 귀 가졌으니 알겠지? 널 얼마나 귀여워하고 아끼는가를.”   은희는 다리에 거머리 매달린 것 같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방망이질하듯이 높뛰는 가슴을 눅잦히면서 물동이를 이쪽으로 돌려놓고 물만 퍼담았다.   한길수는 제꺽 물동이를 빼앗아 내려놓으면서 지껄여댔다.   “은희야, 한뉘 종년이나 하고 살겠니? 이팔청춘이 너무 아깝다, 아까와.”   은희는 고양이 쥐 생각을 하는 것이 메스꺼웠다.   (며칠 전 밤중에 집에 뛰어 들어와 뭐라 했는가? 상호와 성칠 오빠가 독립군에 들어가 의병이 됐다고 호통 치면서 우리 일가를 몽땅 죽일 수도 있다고 위협하지 않았던가?)   음충스레 힐끔거리는 눈길, 살기어린 우멍 눈, 헤헤 웃으면서 드러낸 말 이발…   은희는 온 몸에 소름이 끼쳐 한길수를 외면하면서 살금살금 우물 쪽으로 돌아앉아 물을 한바가지, 한바가지 퍼 담았다.   은희 속내는 모르고 한길수는 계속 지껄여댔다.   “나만 믿어라. 그럼 상호 죄도 눈감아주고 네 일가를 몽땅 잘 살게 해주겠어. 알았지?”  은희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물을 퍼 담다가 무슨 생각에 잠긴 듯이 잠간 멈추자 한길수가 이제 수가 드나 해 속심을 드러냈다.   한길수가 은희의 어깨를 껴안으면서 열변을 토해냈다.   “널 첩으로 들여앉힐게. 그러면 저 토성안 집도 주고 너희들 온 집 식구들도 우리 토성안집에 들어와 평생 먹고 입을 근심 없이 복 방에 앉혀놓을게.”   은희가 몸부림치며 “이걸 놓으세요. 놓아!” 하고 고함칠 때였다.   뒤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골짜기를 꽉 메우며 울려왔다.   “년 놈들! 잘 놀긴 놀아!”   뒤를 돌아보니 암범 같은 월선이가 옆구리에 두 손을 지르고 표독스런 눈길로 쏘아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년, 물은 긷지 않고 웬 서방질이냐?”   월선은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기를 차듯이 영감과는 어쩌지 못하고 덮쳐들어 은희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마구 끌고 당겼다.   은희는 억울하게 머리를 당기우면서도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너무 아파 신음소리를 냈다. 한길수는 그저 머리를 홰홰 내저으면서 어슬렁어슬렁 그 자리를 피해 달아났다.   아침 숟가락을 놓자 한길수가 앵돌아진 월선을 슬슬 구슬리였다.   “여보, 아무렴. 내가 당신을 저버릴까? 당신이야 말로 조강지처나 다름없소.”   “또, 또, 누굴 얼려요?  뭐 세살 짜리 앤가 해요?”   월선은 입귀를 비쭉거리면서 훌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다.   한길수가 일어나 따라 나가면서 월선의 손을 잡아 집안으로 끌어 당겨 물앉혀 놓았다.   “여보, 은희가 이 집에서 부엌데기를 못하겠다고 도망칠 까봐 슬쩍 얼려 발목을 잡은 것뿐이오.”   월선은 피씩 쓴 웃었다.   “당신이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곧이들을 거 같아요? 우물가에서 분명 ‘소실로 들여앉히겠다’는 걸 똑똑히 들었어요. 뭐, 이 토성   안 집을 주겠으니 들어와 살라고?”   “건 그저 얼리느라구 한 거짓말이요.”   “이전에도 나를 그렇게 얼렸지. 본댁을 서울에 두고 얼려 내캉 여기서 살았죠. 이젠 내 나이 드니까 새파랗고 야들야들한 계집애들에게 눈독 들여?”    한길수는 딱 잡아뗐다.    두터운 어둠의 장막이 높은 토성 안에 서서히 두텁게 드리웠다. 허연 달이 뜨면서 달빛이 추녀 끝을 핥으면서 희롱하며 창문턱에까지 내리비치자 길수는 아래배로부터 가슴까지 찡 해나면서 끓어오르는 정욕을 참을 길이 없어 이발을 지그시 깨물었다. 낯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고 입에서는 단김이 푸푸 터져나갔다.    그때 사랑방에서 문을 닫는 덜커덕 소리가 났다.    (그래, 은녀가 설거지를 마치고 들어가는 모양이야. 마침 월선이가 가시아버지를 모시러 우시장에 가고 없지. 이때야. 히히히.)   한길수는 잠옷 바람에 하이칼라 번들 이마를 떡 쳐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몸채를 한 바퀴 빙 돌아가면서 살펴도 인기척이 없자 닭을 훔쳐 먹으러 가는 쪽 제비처럼 슬금슬금 사랑 방 쪽으로 다가갔다. 빠드득빠드득 눈을 밟는 소리보다도 한길수의 거친 숨소리가 더 높았다.   은희가 이튿날 아침밥을 지을 물을 길어놓고 금방 사랑방에 들어갔을 때다.   번들이마가 슬금슬금 다가가 문고리를 당겨보니 집안에서 노끈으로 매놓은 것이었다.   그는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몸채 쪽을 흘끔흘끔 살피더니 문고리를 잡아 당겼다 밀었다 했다. 이윽고 노끈이 풀리면서 사랑방문이 훌러덩 열리였다.    한길수는 도적놈처럼 집안에 들어간 후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까만 방안 벽을 더듬질하면서 구들 쪽으로 올라갔다.     “야밤에 누군가요? 소리치겠습꾸마.”   은희 화닥닥 일어나면서 불을 켜자고 바스락거렸다.   “쉿- 주인이야.”   한길수가 바삐 나직이 말했다.   “불을 켜야지.”   은녀 말에 한길수는 너스레를 떨었다.   “헤헤헤. 두려워 말라. 난 너를 위해서라면 간이라도 빼주겠다. 요 귀여운 것아.”   별스레 키득키득 웃는 소리와 누더기를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었다.   “기쁠 테지. 온 우시장이 내 말이라면 다야. 난 너 같은 종년도 천당 같은데서 살게 할 수도 있고 18층 지옥에 처넣어 뼈다귀도 추리지 못하게 할 수도 있어.”   한길수가 을러메면서 기신기신 구들에 올라왔다.   “찍소리 치지 말고 고분고분 내 말 들어. 이렇게 누추한 방에서 한뉘 물이나 긷고 변소 똥이나 치면서 살게 있니? 내일부터 응삼과 수길을 보고 우리 작은댁 방에 불을 때라고 할 테야.”   한길수가 입에 엿이나 발라 문 것처럼 달달한 말로 구슬리면서 슬슬 기어 올라왔다. 뒤이어 이불안에 손을 쓱 들이밀어 더듬었다.   “요 귀여운 것아, 널 소실로 맞아들이면 몸채를 다 손질하는 날로 들여앉히마.”   “키득키득”   이불 안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한길수는 황망히 손 더듬질 했다.   “요것아, 좋지? 그래,  널 평생 복을 누리게 할 수 있어. 본댁은 이젠 쉰이 다 돼서 날 싫어해. 이젠 여자로 써먹기는 다 틀렸어. 통 정이 떨어져서 못살겠단 말이다. 진작 소실을 들일 때가 된지 오래다. 에구, 넌 참 탄탄하고 몽글몽글 하구나. 너와 백년을 살았으면 오죽 좋겠느냐.”    한길수가 웃통을 와락와락 벗으면서도 스리슬쩍 계속 늘여놓았다.   “네가 소실로 들어오면 네 애비 폐병도 뚝 떼게 돈을 대줄게. 너도 애비에게 효도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애비를 생각해서라도 내 말 고분고분 들어라.”   한길수는 옷을 다 벗자 이불 안에 스리슬쩍 들어가 이불안 여자의 탄력 있고 매끌매끌한 몸을 가로탔다.   그가 막 달려들 때였다. 밑에 깔린 여자가 불시에 두 발로 한길수를 마구 탁탁 차버렸다. 한길수가 채워 여체 위에서 누더기 우에 나뒹굴었다.   “이년이, 감히 누굴 차? 이러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한길수가 벌거숭이 몸뚱이를 일으키면서 마귀의 손을 뻗쳐 은희를 붙잡으려고 손 더듬질 했다.   “하하하, 이 놈 두상이, 하긴 잘한다, 잘해!”   이게 웬 일인가?   집 안에 광솔불이 환하게 켜졌다.   실 한오리도 걸치지 않은 알몸뚱이 월선이가 누더기이불 위에서 허리에 한쪽 손을 지른 채 장승처럼 떡 뻗치고 서서 암범처럼 길길이 날뛰었다.   “뭐? 이젠 나와 통 정이 떨어져서 못 살겠다고? 소실을 들일 때라? 아이유, 분해라.”   월선은 구석에 머리를 숙이고 서있는 은희를 활 밀치었다.   “이 년과 백년을 살았으면 좋겠다던 게 콱 살아봐라!”    월선은 한길수를 표독스레 쏘아보았다. 어두운 집 안에서도 눈에서 불찌가 툭툭 떨어지는 것이 보일 지경이었다.   “더러운 영감, 아이유, 분해라. 누구 덕에 이 골 안에 발붙이고 이 토성안집을 지었기에? 응? 이 토성안집을 저년에게 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 돼!”   “에이유, 에이유. 저년을 얼리느라구 한 농담을 가지고 왜 그래?”   “로망이지 로망, 미쳤어? 저년의 엉덩이가 그렇게 꿀맛일 것 같아? 며칠 전에 내 우물가에서 치근덕거리는걸 보고 싹 다 눈치 챘어. 주책머리 없는 영감태기. 에이유, 아버지~ 저런 못난 놈을 사위라고 서울에서 올라올 때마다 황금덩이를 줬어요? 아버지, 불쌍한 아버지~  내 처지 얼마나  불쌍하오. 에이유, 에이유~ 아버지, 어머니~”   “이보, 왜 이래? 동네에 소문나겠소. 이런 패가망신이라구야, 원, 토성 안에 보초를 서는 숱한 자위대원들이 있소. 그만하지 못할까! 쯧쯧.”   월선은 누더기를 와락 안아 벌거숭이 한길수에게 마구 들씌워 놓았다.   한길수가 주섬주섬 잠옷을 주어 입으면서 은희를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중얼거렸다.   “에이, 막돼먹은 쌍년처럼 계속 떼를 써?! 에헴, 참. 재수 없어.”   한길수는 길쭉한 말상을 절레절레 흔들면서 월선을 죽도록 미워했다. 밸 같았으면 허리춤의 권총을 뽑아 한방에 쏴죽이고 젊고 예쁜 은희를 데리고 살았으면 좋을 것만 같았다.   암범 같은 여편네 앞에서 방귀도 하나 못 뀌고 실컷 개꼴망신당한 늑대 같은 한길수는 괜히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차듯 했다.   그는 괜히 은희를 보고 “후에 두고 보자.” 하고 한마디 내뱉고 나서 능구렁이처럼 슬금슬금 바깥으로 빠져나가버렸다.   한길수가 꼬리를 빼자 월선은 시에미 역정에 개 배깨끼 차듯했다. 그년은 바들바들 떠는 은희의 머리채를 잡아 마구 벽에 쿵쿵 짓 쪼아놓으면서 암범처럼 펄펄 날뛰었다.    아이고, 불쌍해라. 저 맞아대는 은희를 보라. 두 손으로 머리를 틀어쥔 월선의 우악스러운 손을 붙잡고  애원하였다.    “제발 살려주세요.”    허나 월선은 사정없이 매질을 멈추지 않았다.   은희는 머리채를 끗기면서 매만 맞는데 눈물, 코피 흐르고 애원소리 갑갑한 사랑방에 울려 퍼졌다.   월선은 나중에 맥이 모자라 더 때리지 못하고 구들바닥에 물앉아 헐떡거리다가 돼지 멱 따는 소리를 질렀다.   “다시 우리 영감을 넘보았다간 가다리를 찢어 죽여치우겠다. 알겠니?”   그는 표독스러운 눈길로 은희를 쏘아보더니 광솔 불을 훌 불어 끄고 훌쩍 일어나 횡 하니 바깥으로 나갔다.   사실 월선은 우물가에서 한길수가 은희와 치근덕거리는 것을 본 후 며칠 전 한길수가 한 거짓말을 한마디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월선은 본가 집 아버지를 모시러 우시장으로 가는 척 하면서 이날 가만히 은희의 방에 숨어들었던 것이다. 그는 은희를 보고 한쪽구석에 서 있다가 한길수가 들어오면 시키는 대로 이리이리 하라고 했다. 뒤이어 월선은 은희 대신 누더기이불속에 누워 한길수가 하는 짓거리를 다 듣고 키득키득 웃었던 것이다.    은희는 월선의 행악질에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먹칠한 듯이 캄캄한 방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쓸쓸히 어깨를 들먹였다.    (성칠 오빠랑 없으니까 한길수 승냥이처럼 살판 치잖아.  저승  같은 여기에서 어떻게 산단 말인가?)   은희는 생각할수록 살아갈 앞길이 막막했다. 사랑방에서는 그녀가 흑흑 흐느껴 우는 소리가 쓸쓸하게 납덩이같은 밤 정적을 괴롭게 톱질한다.
449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6) 사내 자존심 김장혁 댓글:  조회:612  추천:0  2024-06-28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권             제7장 흑야         7. 사내 자존심        거무칙칙한 밤하늘에서 고기비늘구름떼가 총망히 흘러가고 간혹 하현달이 구름 사이를 비집고 얼굴을 내밀어 대지의 쓸쓸한 산과 들에 여기저기 널린 오두막들을 비추며 뭐라고 중얼거리다가도 뭣이 그렇게 두려운지 구름 속으로 사라지군 했다.    일본 놈들은 기운봉 기슭 뭇 산들에 꽉 들어선 수림을 눈독들였다.  목재를 실어내가기 위해 우시장으로부터 영월동과 운주동을 거쳐 명천과 경성에까지 통하는 길을 닦기 시작한지도 이젠 몇 해 잘됐다.    일본 놈들은 자기 야욕을 채우려고 농사꾼들을 강제로 인부로 끌어다가 운주동 북산과 영월동 서산 부근의 아름드리 원목을 난벌해 길옆에 실어내려 저목장에 쌓아두었다. 그 놈들은 저목장의 아름드리 원목을 마차와 자동차에 실어 우시장 역에 실어갔다. 거기서 기차에 원목을 꽉 박아 싣고 남으로, 남으로 달려 서울에 가고 부산에 갔다. 또 일부 원목은 부산에서 기선에 실어 일본 본토에까지 실어다가 목조건축물을 짓는데 썼다.    일본 놈들의 야만적인 난벌로 해 영월동 서산과 운주동 북산은 오래지 않아 벌거숭이로 돼갔다. 총을 멘 일본 헌병들은 야마모도 소장의 지시대로 밤낮 저목장에 우등 불을 피워놓고 지켰다. 거무칙칙한 산등성이에까지도 우등불빛이 어려 붉게 물들어있었다. 영월동 병완의 집 굴뚝에도 게딱지 같은 고약딱지기발이 꽂혀 펄럭이고 있었다.    며칠 전에 야마모도와 한길수가 헌병들과 영팔 등 졸개들을 끌고 영월동 병완의 집에 뛰어들었다.    야마모도는 거만스럽게 군도자루를 잡고 병완의 집구들에 올라서서 대들보를 기웃기웃 올려다 살피더니 마른기침을 했다.   “에헴, 오늘 내로 이 집을 내란 말이야. 여기에 우리 림산파출소를 앉히겠어.”   류강철의 통역을 들은 병완은 기막혀 야마모도를 부릅뜬 눈으로 쏘아보았다.   “아니, 정신 나갔는가? 제 집에서 내쫓으면 어데서 살란 말인가?”   한길수는 옆에서 깨 고소해 말 이발을 드러내고 헤벌쭉거렸다.   야마모도는 군도로 구들바닥을 쿡 찔러 짚고 서서 호령했다.   “어데서 살든 관계없어. 조선이 통 채로 우리 대일본 제국 거로 됐네. 우리 황군이 어데 군사시설을 앉히려면 자네 집이 아니라 군청이나 서울이라도 내놔야 해. 알만 해?!”   병완은 아무리 말해도 쓸데없다는 것을 알았다. 헌병들은 농짝이랑 파출소에 쓸데없는 가정기물을 마구 내던졌다.   병완은 한마디 말도 해보지 못하고 일본 헌병 놈들의 총창에 떠밀리어 울며 겨자 먹기로 자기 집에서 쫓기어났다. 끼무라 국장과 야  마모도 소장은 병완이 길닦이공지 총 도감도 그만둔 데다 종무소식인 성칠을 잡는 미끼로도 써먹을 수 없다고 인정하고 집을 빼앗은 것이었다.   병완은 자존심을 꺾고 솔가해 영월동을 떠나 운주동에 가서 맏아들 창준의 집에 한데 들 수밖에 없었다.   기준은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개놈 새끼들, 남의 집을 마구 빼앗다니? 내 아무 때든 그 놈들을 도끼로 대갈통을 찍어놓고 말지 않는가 봐라.”   창준은 도리머리 질 하면서 울뚝밸이 센 동생을 말렸다.   “그러지 말라. 무리승냥이 같은 일본 놈 새끼들을 다쳤다가 어떻게 산다고 그러니? 온 집안이 몰살을 당하자고 그러니? 아버지 말씀대로 만주에 가면 다야. 똥이 무서워 피하니? 더러워서 피하지.”   병완은 두 아들의 말을 묵묵히 들으면서 앉아 있다가 한숨을 구들바닥이 꺼지게 내쉬었다. 뒤이어 그는 기준을 따라 바깥으로 나갔다.   병완은 기준을 불러 세웠다.   “얘야, 울뚝밸을 쓰지 말고 꾹 참아라. 항상 네 울뚝밸이 근심된다. 내라고 밸이 없어 그 놈들에게 집을 빼앗기고 쫓기어 난 거 같니? 임시 자존심을 꺾고 원수를 갚을 기회를 기다리자.”   기준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황소숨을 푸푸 몰아쉬었다.   병완은 기준의 어깨를 다독였다.   기준은 머리를 숙이고 툴툴거리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병완은 두 아들 집 자손들을 데리고 올해 새로 개간한 바위돌밭으로 메밀을 거두러 운주동 뒷산으로 갔다.   “아버지, 영월동 서산에는 가보지 않겠습니까?”   기준의 물음에 병완은 바위돌 틈 새로 해 산으로 올라가면서 “며칠 후에 가보자. 한영감이 불에 탄 집을 손질한다더라. 그놈새끼 보기 싫다.” 하고 말했다.   “쉬파리 무서워서 장을 담그지 못하겠습니까?”   그들이 이런 말을 주고받으면서 소잔등 같은 너럭바위가 소 무리처럼 누워있는 바위돌밭에 갔다. 바위 돌 틈새에 재를 펴놓고 심은 메밀은 끝 초리가 꼿꼿이 쳐들고 있었다.   “좋은 밭을 두고 이게 뭐냐? 우린 뭘 먹고 살아야 하느냐?”   병완이 답답해하자 기준은 “이젠 여기서 일본 놈들의 수하에서 못 삽니다. 만주로 들어갑시다.” 하고 말했다.   병완은 말라버린 메밀을 베면서 말했다.   “정작 고향을 떠나자니까 고향 모든 게 아깝구나. 김려생 할아버지께서 명천에 입북한 후 4백여 년이나 대대로 살아온 우리 고향이 아니냐? 어쩌면 우리 고향이 이렇게 됐느냐? 참 안타깝다.”    기준과 창준은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들은 4헥타르나 되는 바위 틈새의 메밀을 베였지만 몇 십 단이 되지 않았다.   며칠간 온 집 식구들이 메밀을 거둬들여 마당에서 도리깨로 두드려 낟알을 마대에 담고 보니 대여섯 마대 밖에 안 됐다.   아낙네들이 메밀을 껍데기채로 절구통에 넣고 찧어 죽물이라고 끓였다.   모두들 밥상에 둘러앉아 천정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메밀죽물도 아주 맛있게 후룩후룩 마시였다. 그런데 목에 꺼슬꺼슬한 까만 메밀 겨가 걸려 자꾸 물을 마셔야만 했다. 그래도 쌀알이 들어간 죽물이라도 마실 수 있어 모두들 다행으로 생각했다.   한편 영월동에서 병완을 몰아낸 한길수는 삼년 앓던 이빨을 뺀 것 같았다.   그는 개 잡은 포수처럼 어깨 으쓱해 쏘다니면서 곁을 쳐서 복판을 울리는 수를 써서 병완을 따르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못살게 굴었다.   (독불장군이라고 제 아무리 천하장사 병완과 성칠이라고 해도 용빼는 수가 있겠는가?)   그는 권총까지 차고 거들먹거리면서 희미한 등잔불이 창문으로 내비치는 엄창렬의 집으로 다가갔다.   늑대를 만난 개울가의 버드나무 초리들이 초겨울 바람을 얻어맞아 아츠러운 비명소리를 질렀다.   징검다리를 건너가다가 한길수는 졸지에 매끄러운 돌을 빗디뎌 핸들 넘어가 엉덩방아를 쿵 찧었다.   “아이쿠!”   개울물에 물앉은 한길수는 어찌나 아팠던지 어슴푸레 뜬 달빛아래 오만상을 다 찡그리며 말 이발이 다 드러났다.   “아니, 주인님, 어떻게 하면 이리 좁은 개울물에 다 빠졌습니까?”   한길수는 너무 아파 왜가리 목을 배배 틀며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엉덩이를 만졌다.   “이놈아, 남은 아파 죽을 지경인데 무슨 개소리냐?! 얼른 부착하지 않고!”   수길은 길수를 부축해 일으켰다.   “주인님, 내 등에 업히시오.”   “에끼 이 놈아, 토끼가 어찌 호랑이를 업느냐?”   길수는 이젠 덜 아픈지 입씨름 질을 하면서도 수길의 등에 업혀 타다 남은 토성안집으로 되돌아갔다.   이윽고 옷을 갈아입은 한길수는 다시 수길의 부축을 받으면서 창렬의 집으로 발걸음을 쩔룩쩔룩 옮겼다.   저쪽 오두막 같은 집 쪽에서는 반딧불만한 등잔불빛이 가물거리고 있었다.   수길은 옆에서 한길수를 부축하며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주인님, 우시장에 기와집을 여러 채나 두고 어째 이런 두메산골 다 탄 집을 수리하자고 합니까?”   “이 놈아, 이 두메산골을 보잘 것 없는 것이라고만 보지 말라. 여긴 병완과 내가 사내대장부의 자존심을 내걸고 싸운 산골짜기야. 그  놈을 고향에서 몰아내고 그 놈들이 보란 듯이 번듯하게 살아야 해.”   “오, 참 고명합구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이라구야. 토끼도 굴이 여러 개느니라. 시내와 산골에 집을 두고 사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참 좋지요.”   “종년들을 가득 두고 사는 재미 또 얼마나 꿀맛인지 아는가?. 하하하, 네편네도 보지 못하는 골 안에서 말이야. 하하하. 알만해?”   “오, 건 몰랐구먼요.”   그제야 수길은 주인이 이 두메산골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까닭을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   이젠 귀못이 박힐 지경인 그 말에는 수길도 속으로  웃음이 피씩 났다.   (건 끼무라 국장이 당신에게 늘 하는 말이 아닌가요? 배운 게 고작인가요? 우리에게 그 말을 고대로 써먹으면서. 쳇.)   창렬의 집 삽작문을 열고 들어선 길수는 건 가래를 떼면서 틀스레 고래고래 소리쳤다.   “창렬이 있어?!”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길수는 수길에게 들어가자고 머리 짓을 하더니 안에서 들어오라는 말도 하기 전에 건 가래를 떼면서 다짜고짜로 문을 뚝 떼고 들어섰다.   그는 말 이발을 드러내놓고 헤헤 웃으면서 등불을 빌어 은희를 힐끔힐끔 곁눈질했다.   은희는 등 곬에 소름이 쪽 끼쳐 누더기로 얼굴을 반쯤 가리면서 돌아앉았다. 창렬은 누더기를 덮고 누어 있다가 몸을 겨우 반쯤 일으켰다. 그는 길수가 또 무슨 수작을 피울지 몰라 뒤숭숭하고 겁이 났다.   “밤중에 웬 일이오?”   창렬이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일어났다.   “에헴, 놀랄게 없네.”   한길수는 거만하게 신을 신은 채 구들에 올라섰다. 그런데 무슨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길수는 호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코를 싸쥐었다.   “음, 웬 썩은 냄새야, 딱 개굴 같군.”   한길수는 단도직입했다.   “이 집에서 내게 진 빚을 물자면 이제도 삼대가 대대로 물어도 다 갚지 못하네.”   창렬과 명순은 몸 둘 바를 몰랐다.   “밭에다 곡식도 심지 못하게 해서 죽물도 먹지 못하는데 뭘 어찌 하라는 말이요?”   길수는 옆구리에 찬 권총집을 앞으로 당겨다 끌어안고 앉으면서 은희를 힐끔 건너다보며 호통쳤다.   “내일부터 우리 집에 가서 탄 집을 손질하는 일이나 하게나.”   명순이 말렸다.   “어이구, 우리 나그네 폐병에 오늘일가 내일일가 하는데 어떻게 일한다고 그럽둥?”   수길이 끼어들었다.   “허허, 병완이 밖에 모르는 놈들, 참 잘 됐소. 보오. 우리 마을에서 쫓겨난 병완을 믿고 살 수 있소? 우리 주인은 이젠 일본 자위대 대장이 됐단 말이오. 우리 주인 말을 잘 들으란 말이오.”   한길수는 득의양양해 이번엔 수길을 번쩍 춰 올렸다.   “수길은 이젠 영월동 구장으로 됐어. 이후부터 병완의 말을 듣지 말고 이구장 말을 꼽싹꼽싹 들으라구.”   창렬이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사정했다.   “구장인지 돼지 구신지, 제발 사람 좀 들볶지 마오."   "뭐라고? 감히 구장님을 놀려? 엉?"   "은녀가 이젠 일곱 해나 부엌더기로 살았는데 다 죽게 된 나까지 이럴게 있소?”   한길수는 이때라고 은희를 힐끔 건너다보면서 본심을 드러냈다.   “그럼 저 은희를 우리 집에 부엌데기로 들여보내오.”   “양?”   창렬 내외는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은희는 질겁해 누더기를 쓰고 온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안 되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은희를 데려가지 못하오.”   “허허허, 정신이 있는가?”   한길수가 너털웃음을 하더니 위협하기 시작했다.   “똑똑히 들어. 상호가 성칠의 포수대를 따라 독립군에 들어갔어. 이 집식구들을 몽땅 죽여도 속이 시원치 않아. 알만 해!?”   옆에서 수길도 맞장구를 치며 으르렁거렸다.   “이게 어디 장마당인가 해? 누구와 흥정을 하는 건가?”   창렬은 입을 딱 벌린 채 멍하니 집 한쪽 구석을 쏘아 볼뿐이었다.   “장마당처럼 흥정할 셈인가? 하도 내가 고향 사람들이라고 끼무라 경찰국장에게 숱한 돈을 팔면서 잘 말했기에 오늘까지 살아 있는 줄 알게나. 독립군 가족은 몽땅 죽일 수도 있어. 노비로 되려가는 건 생각해준 거야.”   수길이 주인을 도와 짜개진 나무에 쐐기를 깊숙이 박았다.   “이젠 우리 한대장의 말을 잘 듣게나. 너희 일가를 살려 준 우리 주인님이 은희를 첩으로 삼은들 무방하지 않는가. 안 그래? 흥!”   온 집안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한길수는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권총집을 뒤로 홱 젖히면서 을러멨다.   “밤이 깊었어. 은희를 데리고 가자.”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있던 은희는 그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와~” 하고 울음보를 터뜨리면서 어머니 잔등 뒤에 숨으려고 했다.   “가자, 이년. 어시를 살리겠니? 어찔래?”   수길은 달려들어 은희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아이고, 엄마, 아버지~”   그러나 수길이 잡아끌고 뒤에서 한길수가 잔등을 떠미는데 나약한 은희가 어찌는 수가 있겠는가?   뒤에서는 울음소리를 반주하여 쿨룩쿨룩 기침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저걸 보소, 은희와 그녀 부모의 가긍한 처지를. 자기 자녀마저 한밤중에 도살장 같은 한길수네 집에 부엌데기로 끌려가도 구할 수 없는 어시의 마음인들 오죽 아프겠는가?   집 밖에서는 을씨년스러운 초겨울 바람이 휴, 휴 무서운 비명을 지르면서 스쳐 지나갔다.
448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5) 뿌리 김장혁 댓글:  조회:529  추천:0  2024-06-28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권           제7장 흑야              6. 뿌리          최구장이 운주동에 차린 서당방은 요즘 또 일본 헌병 놈들 때문에 살벌한 위기를 겪게 됐다. 응삼과 영팔, 수길은 스승 최구장을 도울 대신 배은망덕하고 최구장이 서당방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염탐해 나까노라 소대장에게 다 고발했다. 나까노라 소대장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면 인차 끼무라 국장에게 보고했다.    교활한 헌병대와 개다리 응삼의 감시 밑에 최구장은 운주동 서당을 진지로 민족주의 전통교양을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오전, 최구장은 아침 숟가락을 놓은 후 바깥 날씨가 유난히 따뜻해 마루에 앉아 대통을 길게 뻑뻑 빨아 들이켰다가 담배 연기를 후 내뿜었다.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일본 놈들은 우리를 점점 살기 어렵게 만든다. 목을 조이다 못 해 이젠 조선말을 하지 못하고 조선 글을 가르치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름도 일본 놈들의 이름처럼 창씨개명을 하라고? 개놈들, 우리가 어찌 네 놈들의 섬나라 오랑캐 같은 대화민족으로 된단 말이냐? 흥!)     최구장은 생각할수록 가슴이 갑갑해났다. 운주동 서당이 위기를 겪고 조선 사람들의 대화민족으로 동화될 것을 강요하는 일본 놈들의 성화에 견디기 어려웠다. 설상가사상으로 요즘 며느리를 잃은 아픈 마음의 상처에마저 소금을 맞은 듯 했다.     그는 담배대통으로 마루턱을 툭툭 치더니 담배연기를 푸~ 푸~ 내뿜었다.      “응삼과 영팔은 사람새끼 아니야. 자기들이 배운 서당 방을 지켜줄 대신 뭐야? 배은망덕하게도 섬나라 오랑캐들 밀정질을 하면서 고발까지 하다니? 에잇, 길러준 개 주인의 발뒤축을 문다고, 에잇, 참, 개만도 못한 놈 새끼들! 개라면 주인을 보면 꼬리나 치지. 퉤! 개새끼면 잡아먹지. 흥!”    그는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올라 벌떡 일어났다. 그는 대통을 옆구리에 찌르고 은빛구레나룻을 흩날리며 글방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선후하여 봉인과 봉순, 봉문이 어시들과 함께 들어왔다.   최구장은 오늘 따라 손자들을 일일이 둘러보면서 어시들이 다 온지라 자못 엄숙하게 말했다.   “모두 바쁘더라도 거기 앉소. 긴히 할 말이 있소.”   경숙과 어금이 그리고 셋째며느리가 앉았다. 좌석을 다 정하고 앉자 최구장은 앞자리에 좌정하더니 아주 엄숙하고도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 손자들에게 이름을 지어줘야 하겠소. 명심들 하오.”   경숙이가 최구장에게 물었다.   “이름이라니요? 우리 앤 봉인이 아닙둥?”   어금도 의아해 했다.   “혹시 시아버님도 일본 사람들의 말대로 창씨개명을 하려는 게 아닙둥?”   셋째며느리는 묵묵히 시아버지의 눈치만 살펴보고 있었다.   최구장은 건 가래를 떼더니 한마디, 한마디 똑똑히 말했다.   “무슨 놈의 생벼락을 맞을 창씨개명이야. 일본 놈들이 창씨개명을 하라는 바람에 급급히 우리 조선 이름을 똑바로 지어주겠다는 말이요.”   그제야 아들며느리들은 머리를 끄덕였다.   최구장은 정중하게 말했다.   “이제껏 저 애들이 부른 이름은 모두 어린애 때 부르는 애명이었소. 그러니 정식이름을 지어주겠소. 봉인은 근형, 봉순은 근덕, 봉문은 근활이라고 지었소. ‘근’ 자는 뿌리라는 ’근’ 자요. 저 애들이 이담 커서 우리 개성 최 씨네 뿌리, 나아가서 우리 조선민족의 뿌리를 잊지 말라는 뜻에서 뿌리 ‘근’ 자 돌림으로 지은 게요. 이담 손자를 몇을 낳든지 모두 뿌리를, 근본을 잊지 말도록 ‘근’ 자 돌림으로 짓도록 하라.”   “예-”   모두들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어시들은 이젠 집으로 가도 된다. 근형과 근덕, 근활아,”   “예!”   “이제 마을 애들이 오면 함께 조선 글을 공부하자.”   “야~ 좋다.”   손자들은 어려운 천자문을 배우다가 천자문보다 조금 쉬운 조선 글을 배운다니 좋아서 환성을 질렀다.   최구장은 애들이 오기 전에 흑판에 석회덩이로 백두산과 천지를 그려놓고 백두산이라고 큼직하게 써놓았다.   드디어 애들이 삼삼오오 어른들의 손을 잡고 서당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럼 오늘 공부를 시작하겠다. 여기 흑판에 써놓은 글자를 어떻게 읽느냐?”   그때 아래 방에서 웬 애가 “백두산!” 하는 소리가 울렸다.   애들이 머리를 돌려 아래 방 쪽을 보니 문에 난 옹이구멍으로 들여다보던 명옥이 문까지 빠금히 열고 소리쳤던 것이다.   “거 계집애가 웬 소리냐? 얼른 문 닫지 못할까? 삼실이나 뽑을 게지.”   최구장이 고함치면서 옆구리에서 대통을 빼들자 질겁한 명옥은 입을 빼쭉 하더니 문을 닫고 아래 방으로 내려갔다.   상순은 허연 코 물을 풀쩍거리면서 히히 웃었다.   “가시나가 무슨 공부야. 삼실이나 뽑을 게지. 흥!”   우쭐하는 상순을 보고 최구장은 눈을 무섭게 흘기었다.   “상순아, 그럼 못 써. 계집애라고 깔보면 안 돼. 에헴.”   상순은 머리를 폭 숙이었다.   “계속 배우자. 따라 읽어라. 백두산!”   “백두산!”   애들이 따라 읽는 낭랑한 소리가 서당에 차고 넘쳤다.   뒤이어 최구장은 “‘백두산’이란 글자를 읽으면서 모래판에 열 번씩 써라.”   “예~”   “뭐? 백두산?! 이놈들이 정신 나갔어?”   이때 서당 밖에서 새된 소리가 울렸다.   모두들 머리를 돌려 밖을 내다보았다.   나까노라 소대장이 군도를 잡고 응삼과 영팔, 류강철을 앞세우고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응삼은 들어서자마자 삿대질하며 가물에 실 돌피 같은 목에 지렁이 같은 피 줄을 세우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백두산은 무슨 백두산이야? 장백산이야. 아니, 후지산이라고 해야 해. 알았어?"   최구장은 씨무룩이 웃으며 대구했다.   "이보쇼. 지리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만요. 백두산을 어떻게 장백산이라고 하는가? 더구나 백두산을 일본의 후지산이라는 건 너무 하잖은가?!"    류강철이 통역해주자 나까노라는 퉁사발눈깔을 희번뜩이며 버럭 고함치었다.   "뭐라고? 이 놈 영감! 후지산이라면 후지산이랄거지. 웬 잔소린가?!" 그러나 최구장은 한발작도 물러서지 않고 따지고 들었다.   "장백산은 산맥 이름이고 장백산 최고봉은 백두산이 아니고 뭔가? 백두산을 어찌 후지산이라고 해?"   나까노라는 최구장의 일리 있는 말에는 더 어쩌지 못하고 딴전을 부리었다.   최구장, 왜 또 조선 글을 가르쳐?”   최구장은 앉은 자리에서 응삼을 손가락질하면서 질책했다.   “너 정말 점점 말이 아니구나.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라고. 누구 보고 삿대질하며 반말이냐?”   나까노라 소대장은 군도 자루를 잡으면서 거들먹거렸다.   “최군 목에 개패를 걸어!”   류강철이 따라 들어와 통역하자 응삼과 영팔이 줄이 달린 패쪽을 들고 들어와 주춤주춤 하다가 최구장의 목에 걸어놓았다.   “무슨 짓이냐?”   나까노라는 말해주라고 영팔에게 손짓했다.   영팔은 개다리질을 곧잘 했다. 차렷 자세까지 취하고 목에 핏줄을 세우면서 고아댔다.   “이젠 조선 말을 하지 못해. 대일본 제국 법을 어긴 죄인놈에겐 이런 패쪽을 걸어준다.”   최구장은 천천히 일어나더니 나까노라와 영팔을 쏘아보면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갔다.   “왜 이래?”   영팔은 기가 눌리어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찰나 최구장은 목의 패쪽을 벗겨 제꺽 영팔의 목에 걸어놓았다.   영팔은 개패를 벗어 쥐고 최구장에게 달려들었다.   “이건 영감에게 건 거야.”   최구장은 무섭게 영팔과 응삼을 손가락질하며 욕했다.   “이 섬나라 오랑캐 발바리놈들아, 너넨 조선 사람이 아니냐? 너희들이야 말로  민족의 역적들이야.  일본 놈의 개놈들게게 개패를 걸어야 해! 개놈새끼들!”   영팔은 개패를 들고 최구장과 나까노라 소대장을 번갈아보면서 머리를 숙였다.   나까노라 소장이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코밑 가재수염을 쓰다듬더니 “허허허.” 하고 허무한 웃음을 웃었다.   “이 영감이 미쳤나? 허허, 단단히 경을 치러야 하겠구먼.”   그래도 최구장은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무슨 개 뼈다귀 같은 개 소리야! 우리 조선 사람들이 조선말을 하지 않고 그래 섬나라 오랑캐들의 개소리를 치라는 거야? 너희들 죄꼬만 섬나라 오랑캐들 개소리를 우린 모른다.”   최구장이 고함치자 류강철은 옛스승인지라 그대로 통역할 수 없어 우물거리었다.    그러나 나까노라는 최구장의 퍼러덩덩한 얼굴 표정을 보고 격한 어조를 듣고 눈치챘다. 그는 군도 자루를 거머쥐어 군도를 뽑으려다가 도로 뒤로 밀어재끼었다.    “최구장, 당신은 이 부근에서 제일 유식한 양반이 아니고 뭐요? 당신은 앞장서 대일본 제국의 말을 배우고 일어를 애들에게 가르치란 말이요. 우린 당신이 우리 대일본 제국에 공로를 세우면 서당을 계속 꾸리게 하겠네. 잘하면 서당 방이 아니라 이 마을에 커다란 벽돌학교를 지어주겠소이다. 알겠소까?”   나까노라는 이쯤 말하고 나서 옆에 선 류강철을 보고 통역해주라고 눈치 했다.   통역을 듣고 난 최구장은 피씩 쓴 웃음을 지었다.   “안 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그런 일은 없다. 안 된다, 안 돼, 절대 안 되지.”   류강철이 그 말을 통역해주자 나까노라는 군도를 쑥 뽑아들더니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 영감두상을 붙잡아가!”   “하이!”   영팔과 응삼은 최구장의 양팔을 붙잡고 류강철은 뒤에서 마구 밖으로 떠밀었다. 뒤에서 나까노라는 빼들었던 군도로 통나무흑판을 탁 내리찍었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발길로 흑판과 석회 덩이 통을 탁 차 넘기고 밖으로 나왔다.   뒤늦게 소문을 듣고 달려온 경숙과 경민 등이 영팔의 손을 붙잡고 사정했다. 그러나 사정을 봐주기는커녕 나까노라 소대장의 안전에서 최구장의 두 팔을 바 줄로 꽁꽁 묶어 문 밖으로 마구 떠밀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근형과 근덕, 근활 그리고 명옥까지 달려와 끌려가는 할아버지 다리를 붙잡고 꿇어앉아 엉엉 울었다. 나까노라는 사정없이 애들을 마구 뜯어 내쳤다.   최구장은 애들을 내려다보면서 힘주어 말했다.   “할아버지가 없어도 너희들은 우리 조선 사람의 뿌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꼭 조선어를 배우고 조선말을 해야 한다. 알겠느냐?” 애들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주먹 밑으로 할아버지를 붙잡아가는 일본 놈과 영팔 등을 쏘아보았다.   최구장은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머리를 들어 먹장구름이 뒤덮인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그는 가슴을 쭉 뻗치고 은발을 흩날리면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저 멀리 먹장구름 밑에서 불뱀이 뻘건 혀를 날름거리어 기운봉 산허리를 내리치더니 먹장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뒤이어 대지에는 창대 같은 소낙비가 새뽀얗게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골물이 요란스레 협곡에 뭐라고 고함치며 덮쳐내려가더니 실폭포가 쏴쏴 쏟아졌다.
447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4) 어미 없는 설음 김장혁 댓글:  조회:526  추천:0  2024-06-28
    2015년 08월 31일 16시 23분  조회:1465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권                                      제7장 흑야                                                          5. 어미 없는 설음        네댓 살에 어머니를 여읜 봉인과 명옥은 날개 부러진 제비 새끼 같았다. 그들 오누이는 어려서부터 눈치밥을 먹으면서 자랐다. 그들 오누이는 밥값이라도 하느라고 베실을 뽑고 나물을 캐오고 다른 일도 시키는 대로 부지런히 했다. 어느 날 애들이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숱한 애들이 손을 잡고 둥그렇게 서서 돌아가면서 소리를 먹인다.         여우야, 여우야!       나와 놀자         둥그런 원 안에서 두 손으로 눈을 막고 쪼그리고 앉은 오니(귀신)로 된 애가 화답한다.         밥 먹는 중이다        애들이 손을 잡고 오니애를 안에 넣고 둥그렇게 돌아가며  또 묻는다.             반찬은 무엇이냐?        원 안의 오니애가 화답한다.         산 뱀이다!         원 안에 앉아있던 오니(귀신)애가 손을 눈에서 떼면서 애들을 쫓아간다. 애들은 “으악!” 소리치면서 종 주먹을 쥐고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그러다가 오니(귀신)로 된 애가 그중의 어느 애를 잡으면 그 애가 대신 오니(귀신)로 되여 애들이 손잡고 돌아가는 원 안으로 들어가 두 손으로 눈을 막고 쪼그리고 앉는다. 봉인은 애들과 놀고 싶어 가만히 명옥을 데리고 애들 속에 가서 손을 잡았다. 그때 할아버지 최구장이 헐금씨금 와서 곰방대로 봉인과 명옥의 이마를 똑똑 때렸다.      “이 놈 새끼들아, 일 하지 않고 누가 밥을 주니? 어서 석마간으로 가서 좁쌀알을 주워 모으지 못해?!” 봉인과 명옥은 아파서 눈물을 찔끔찔끔 쏟으면서 석마간으로 갔다.    네댓 살 되는 오누이는 다른 집 애들처럼 놀지도 못하고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운주동 석마 칸에 가서 겨 속의 쌀알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눈이 시리게 먼지가 새뽀얗게 이는 석마간 겨 무지에서 좁쌀알을 한 알 한 알 주었지만 한바가지를 채운다는 것은 실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온종일 주어 한바가지를 채울라 할 때다.     주인이 나와서  힐끔 바가지를 들여다보더니 바가지를 쥐여 마구 흔들어놓는 것이 아니겠는가. 진짜 얄밉게 놀기도 했다. 바가지 안에서 쌀알들이 훌렁 꺼져 내려가서 다시 채우자니 아름찼다.    애나게 주어 겨우 한바가지를 채워 바치자 주인은 먼저 성냥가치만한 나무꼬챙이를 한 개를 내주었다. 그렇게 다섯 바가지를 주어 나무꼬챙이 다섯 개를 채우면 구리돈 1전을 주었다.    온종일 둘이서 애나게 겨 무지 속에서 좁쌀알 다섯 바가지를 주어야 1전을 벌수 있었다. 3전이면 커다란 고마이 한 마리를 살 수 있었다.    봉인과 명옥이가 서너 날 겨 무지에서 좁쌀알을 한 알 한 알 주어 구리돈 2전이나 3전을 가져오면 할머니 성단은 오누이의 머리를 두 손으로 정겹게 쓰다듬어 주군 했다.     “에이유, 요 귀한 내 새끼들아, 얼마나 장하냐? 쯧쯧.”    경숙도 어미 잃은 자식들이 귀하고 불쌍해 얼굴을 매만지면서 뽀뽀까지 해주군 했다.   오누이는 어머니를 잃고도 뜻밖에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일도 잘하면서 강하고도 건실하게 자랐다.    군일이 있을 때면 봉인과 명옥은 어머니를 잃은 섧음을 가슴 아프게 느끼곤 했다.    다른 애들은 다 어머니들이 불러내다가 떡이랑 고기국이랑 먹이는가 하면 엿사탕이랑 먹였다.    봉인과 명옥은 언제면 자기들을 부르겠는가고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위방에 누워서 머리를 들고 정지를 내려다보군 했다. 그러나 해가 지고 달이 떠도 어머니가 없다보니 부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봉문아, 여기 나오너라.”    봉문은 넷째 삼촌댁 성단이 벌써 두 번째 불러내다가 돼지고기 점을 입에 넣어줬다.    봉문이 입에 돼지고기 살점을 물고 와서 고의로 봉인과 명옥이가 부럽게 하느라고 손으로 살코기 실을 쪽쪽 찢어서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으면서 짹짹거렸다.    “양, 양, 맛있다. 오래오래 맛있다.”    봉인과 명옥은 어린 사촌동생이 먹는 살 고기가 너무나도 먹고 싶어 목구멍에서 군침을 꼴깍 삼켰다. 어찌나 배고팠는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까지 자꾸 났다.    이때 아래 방에서 위방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나자 명옥은 머리를 들고 아래방 쪽을 내려다보았다.    “봉순아, 여기 오너라.”    이번에는 둘째삼촌댁 김어금이 위방 미닫이를 쭈르륵 열고 들어섰다. 손에는 돼지갈비뼈가 쥐여져있었다. 그는 자기 아들 봉순에게 주려다가 주춤 멈췄다.    “아니, 너네 오누이도 여기 있구나. 아직 아무 것도 먹지 못하잖았냐?”    “예, 삼촌댁.”    봉인은 코마루가 시큼해 울먹울먹하면서 대답했다.    어금은 갈비뼈를 손으로 뚝 비탈아 끊더니 명옥과 봉인을 나눠 주었다.     그러자 봉순이 칭얼거렸다.   “아냐, 엄마, 날  달라. 응~응~”    봉인은 서너 살 지하인 동생이 불쌍하다고 자기에게 차려진 갈비를 주었다. 그래서 명옥은 자기에게 차려진 갈비를 오빠와 엇바꿔가면서 나눠 먹었다.     어금이 나가 할머니 성단에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한참 후 할머니 성단이가 떡과 국물을 들고 와서 봉인과 명옥도 저녁을 먹었다.     할머니는 어미 없는 그들 오누이가 불쌍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뒤이어 할머니는 며느리들을 시켜 애들에게 몽땅 저녁을 먹이게 했다.    그후부터 할머니 성단은 연년생들인 자기 막내딸 계순과 똑같이 봉인, 명옥 오누이를  보살폈다.    물은 에우기에 가고 애들은 거둬 주는 데를 따라 간다고 어머니를 일찍이 여읜 봉인과 명옥은 자기들을 어머니처럼 아끼고 고와하고 보살펴주는 할머니를 어머니처럼 따르면서 할머니 말씀이라면 아주 잘 들었다.     가을이 오자 할머니는 애들을 데리고 산속에 가서 다 파간 감자밭을 돌아다니면서 파가지 못한 감자를 팠다.     삽자루만큼도 안 되는 봉인은 사내애노라고 삽을 둘러메고 달아 다니면서 감자가 있을 만한 데는 폭폭 팠다.    “할머니, 감자!”    “오, 그래, 에이고, 우리 봉인이 용하다. 제 얼굴만 한 감자를 다 파내고.”    성단은 봉인이가 파낸 큼직한 감자를 쥐여 흙을 싹싹 닦아 광주리에 담고 나서 봉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봉인은 할머니의 칭찬을 받고 좋아서 외까풀 눈이 실눈으로 되고 입이 귀밑까지 쭉 째질 지경이었다.    그 모양을 보고 봉인보다 한살 이상인 계순이 시샘이 나 도도거렸다.     “어머니는 그저 봉인 밖에 모르면서. 나와 명옥은 칭찬 한마디 하지 않으면서. 원, 분해 죽겠다.”     성단은 허리를 펴고 일어나 수건으로 땀을 닦고 나서 초롱초롱한 쌍까풀눈을 흘기는 계순의 얼굴을 만져주었다.    “에이구. 내 딸아, 우리 막내딸을 누가 미워하겠냐? 응? 난 우리 딸이 영 곱다.”     성단이가 쪼그리고 앉으면서 이마에 이마를 대고 “도글도글” 하면서 얼렸다. 그제야 계순은 배시시 웃었다.    계순과 명옥은 할머니를 따라다니다가 “여기 감자가 있는 것 같다.” 하고 말하면서 할머니가 호미로 파려고 하면 “할머니, 놔 둡소.       우리 파 보게.” 하고 바삐 소리치고는 손으로 파보군 했다.    닭 알만한 감자알이 흙속에서 드러나자 애들은 환성을 올렸다.    “할머니, 감자 나왔습니다.”    성단은 계순과 명옥이 고사리 손으로 파는 흙속에 드러난 감자알을 보고 대견해했다.    “오, 그래? 계집애들도 장하다.”    계순과 명옥이 손으로 파는데 저쪽에 갔던 봉인이가 뛰어왔다.    “물러나라. 삽으로 파자.”    “안 돼, 이건 우리 파낸 거야.”    그러나 봉인은 계순을 활 밀어내고 삽으로 푹 팠다. 그런데 바삐 삽질하다나니 감자가 한쪽이 쓱 잘리어나갔다.     “봐라, 감자알이 찍혔어. 어머니, 얘를 보시요.”     성단은 눈을 흘기는 계순을 말리였다.     “응, 알았다. 이미 그렇게 된 걸 어찌 하겠니? 싸우지 말라.”     그래도 계순은 도도도 거렸다.      “항상 자기 더 잘 하는 척 하긴.”     봉인도 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 어떻게 너네 계집애들과 비하겠니? 할아버지 말씀하던데. 난 이 집안의 14대 장손이란다. 넌 뭐냐?”      성단은 우쭐해서 삽자루를 왼손에 쥐고 허리에 오른손을 찌르고 선 봉인을 보면서 우스워 코를 싸쥐고 웃었다.     계순은 눈이 동그래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14대 장손이란 건 뭣입둥?”     “그래, 우리 봉인은 우리 개성 최씨네 집안 열네 번째로 대를 이은 기둥손자란 말이다. 집으로 말하면 기둥과 같지. 기둥이 없으면 집이 무너지고 말지.”     명옥은 두 손의 흙을 털면서 봉인을 쳐다보면서 “와~ 오빠 정말 대단하구나. 우리 집의 기둥이라고 하지 않니?” 하고 감탄했다.    계순은 앵두입술을 옥물더니 뾰로통해 했다.     “쟤가 우리 집 기둥이라고? 쟤가 없는 날엔 우리 집안이 무너지겠구나. 흥! 누가 그 말을 곧이듣는다더니? 픽!”     그래도 봉인은 옆구리에 손을 찌르고 턱을 바짝 쳐들고 외까풀 눈으로 계순과 명옥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반나절을 헤매 성단은 애들을 데리고 감자를 반 광주리나 파서 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덕대 위에서 감자갈이를 내려다가 감자를 갈기 시작했다.    계순이 “어머니, 내 갈아 보깁소.” 하고 응석을 부렸다.     “그래라.”     성단은 함지 안에 놓은 감자갈이를 훌 넘겨주면서 주의를 주었다.     “이 양철 판 뾰족뾰족한데 손이 맞히면 베져. 주의해.”     “양.”     성단은 밖에 나가 땔나무를 안아 들여다 놓고 저녁준비를 했다.    계순은 어머니가 그렇게 주의를 주었건만 끝내 감자갈이 판에 애고사리 손을 스치고 말았다.     “아, 아파라.”     “어디 보자.”    성단이 부엌에서 솥을 부시다가 솔을 놓고 와서 손을 쥐고 보니 무명지등에 빨간 피가 돋아 나오고 있었다. 성단은 입으로 피를 뽁 빨고는 헝겊을 주어다가 싸매주었다. 대신 명옥이가 나머지 감자 몇 알을 싹싹 갈았다.    해가 질 무렵이 되자 솥에서 구수한 감자떡 냄새가 났다. 둘째, 셋째, 넷째까지 세간나고 다섯째마저 갑산으로 감자농사 하러 가다나니 집에는 최구장 내외에 경숙과 계순, 봉인이네 오누이만 남았다.    반나절 역사 질 해 발간 장물 콩을 딱딱 박아놓고 시루 가마에 얹어 쪄낸 감자떡은 여섯 식구가 먹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성단은 감자떡을 그릇에 담아 운주동 한마을에 있는 셋째아들과 넷째아들네 집으로 가져갔다.    서걱서걱 해도 감자떡은 별 맛이었다.    계순과 봉인은 감자떡을 먹으면서 너무 맛이 있어 노래 부르듯 종알거리었다.    "양, 양, 맛있다. 오래 오래 맛있다.” 하고  했다.    봉인은 쩍 하면 한살 이상인 작은 고모와 말다툼을 하다가도 손찌검 질을 하면서 싸우기도 했다.   오늘 저녁에는 떡을 먹으면서 봉인이가 먼저 말썽을 일으켰다.    “내 계순보다 감자를 더 많이 팠어!”   계순은 봉인을 손가락질하면서 피씩 웃었다.    “우스워라. 삽으로 푹 판 게 감자가 잘리어나가지 않았니?”    “너희들이 파지 못한 걸 내 삽으로 팠지?”    “아까운 감자를 네가 찍어 버렸기에 절반이나 잃어버렸다.”    “아니야!”    “옳아!”    “아니야!”    “옳다!”    봉인과 계순이 마주서서 입씨름을 하자 최구장은 저로 밥상을 탕 치면서 고함쳤다.    “그만하지 못해?!”    그래도 봉인은 입이 뾰족해 중얼거렸다.   “이 놈새끼들이! 어디 맞겠냐?”   최구장이 곰방대를 뽑아 치려고 하자 봉인은 달아났다. 그러나 명옥과 계순은 달아나지 않고 앉아 있다나니 최구장이 치는 곰방대에 머리를 딱딱 맞았다.   계순은 성단의 품에 안기면서 울고 명옥은 머리를 싸쥐고 울었다.    “엄마~ 엄마~”   성단은 명옥이 불쌍해 계순과 함께 품에 껴안고 영감을 흘겨보았다.   “어미 없는 애를 왜 쳐요?”   성단이 애들을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최구장은 안 되였던지 쳐들었던 곰방대를 내리워 담배를 채워 부시를 쳐 물고 빨며 “에헴, 에헴.” 하고 마른기침을 하며 훌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그도 어미 없는 오누이의 설음을 느꼈으리라.    쓸쓸한 팔간집 마당에는 벌거스름한 낙조가 삐겨들어 오누이의 설음을 더 짙게 만들었다. 오누이의 쓰라린 설음이 지가난 자리에 피눈물이 휘뿌려지어 한이 맺혀 뾰족뾰족 고개를 쳐든다.
446    평론"야망의 바다"에는 무엇이 묻혀있나?김룡운 댓글:  조회:756  추천:3  2024-06-16
2013년 11월 23일 11시 30분  조회:1308  추천:1  작성자: 김장혁         평론       에는  무엇이 묻혀있나?                          -김장혁작가의  장편과학환상소설 에 들어가 본다                      김룡운                                     1. 세우는 글          김장혁은 성인문학과 아동문학 모두에서 재기를 펼쳐보이는 중국조선족문단의 기둥작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편실화  “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유도” , 장편실화소설 “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 , 아동작폼집““호랑이와 사냥군” , 실화자품집 “빨간 장미꽃 함정”, 문학작품집 “사랑환상곡”, 등 가치있는 작품들을 창출했다. 자난해에은 제5회 [옹달샘] 문하상의 계관을   쓰기도 했다. 서울련합뉴스는 한국아동문학회 김완기 부위원장의 말을 인용해 “김작가는 소설, 동화, 수필, 논픽션 등 다양한 쟝르를 통해 문학의 반경을 넓혀왔다. 특히 조선족문단에서 처음으로 공상과학소재를  쓴  는 창작기법이 독특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크게 긍정해주고있다.      김장혁은 자신의 풍만한 창작성취를 인정받아 선후로 “백두컵문학상”,“아리랑문학상”,“ 전국소수민족아동문학창작우수상” , “ 동북삼성도서우수상”, “ 한중동심컵아동문학상”,등 상들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리 문단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는  색다른 작품이나 충격적인 작품이 창출되면 비평문학이 인차 상응한 조명이 따라가야 하는데  우리 비평문학의 안일성으로 하여 그런 작업이 지체되거나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 야망의 바다”는 우리 조선족문단에서 처음으로 되는 장편과학환상소설이라는 데서 언녕 가치평가를 받아야 했었지만 그렇지 못해 유감이였다.   오늘 좀 늦은감이 없진 않지만  유감을 얼마간 털어버리려는 생각으로 “ 야망의 바다”를 화두에 올려본다.      “야망의 바다”는 장편과학환상소설이 없던 중국조선족문단의 력사에 영영 종지부를 찍었다는데서 문학사적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작품이다.      작품은 금별꼬마대통령, 클론바우꼬마대통령, 무빈총사령관 등 지구를 보위하려는 정의적인 용사들과 죤슨대통령,톰사령관, 마이클총참모장 등 지구를 파괴하고 독점하고 인류를 훼손시키려는 “악마 ”들과의 치렬한 겨룸을 주선으로 하여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의 위해성, 무절제한 자연개발로 초래된 인류의 생존위기 등 여러가지 현상을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로 다루고있다. 특히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인물들의 운명을 환상이라는 에술적매개를 통해 자유자재로 그린데서 자칫하면 개념화에로 흐를수 있는 과학제재작품의 한계를 멋스레  타개하고있다.     “야망의 바다”는 그 독특한 풍격과 커다란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해에 제5회 “옹달샘”문학상 월계관을 쓰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 옹달샘 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수상리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있다. “는 흔히 볼수 있는 생활소설이 아닌, 이라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가장 환상적인 꿈을 가지고 성장하는 시기이기때문에 작가는 이런 독자의 심리를 알고 재미있게 작품을 구상, 진전시키고있다. (제5회 [옹달샘]문학상 심사워원장 김완기)     중국조선족문단에 [환상소설]은 드믄드믄 얼굴을 내민적은 있지만 장편과학환상소설은 종래로 있어본적이 없다. 과학환상소설이 일반 환상소설에 비해 난도가 있는 까닭은 바로 [과학]이라는  관문을 지나야 하기때문이다. 고로 연박한 과학지식의 축적이 없이는  명실공히한  과학환상소설의 창출이 어렵다. 헌데 김장혁은 용케도 [과학]의 관문을 뚫고 “야망의 바다 ”를 구축함으로써 자기의 [야망]을 실현하고있다.          2. 신화적인 신비한 인물창조         “야망의 바다”는 청소년들의 눈높이를 견주고 씌여진 작품이다. 그 눈높이가 높지도 낮지도 않게 안성맞춤하여 청소년들의 상상이나 환상의 세계에 아주 맛있게 멋스레 먹혀들어가고있다. 아니, 비단 청서년들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례외가 아니다. 우선 인물의  탄생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매우 신비한 사연들을 담고있어 그 신비성이 독자군을 흡인하기에 족하다.    고금중외의 영웅사시를 보면 거개가 탄생에서부터 일반인과는 다른 기상천외의 신기성을 띠고있다. 주몽은 웅녀한테서 태여났고 신라 경순왕은 금빛찬란한 알속에서 태여났다.“야망의 바다”의 경우도 영웅인물들의 출생이 그런 모식을 갖추고있다.     금별과 금붕어의 경우 아버지 김지학이 꿈에  소나무우에 걸려있는 금망치와 금밥주걱을 보며 어머니 수혜박사는 꿈에 룡궁에 이르른데 룡왕이 그녀를 보고 “바다를 보위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해온 공덕을 기리여 아주 총명한 쌍둥이 오누이를 점지해준다 ”고 말한다. 태몽이 과연 현실과 맞아떨어져  수혜박사가 아주 범상치 않은 아기 금별과 금붕어를 낳고 이들이 장차 인류를 위해 경천위지의 업적을 쌓는다.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의 출생비밀은 너무나 신기하고 희한하여 환상이되 환상을 초월한다. 소설은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의   아버지 맥슨 박사의 입을 빌어 출생의 비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있다.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은  천여년전인 2958년 5월 7일 뉴욕시 부근 바다에서 고래어머니배속에서 태여난다. 아버지 맥슨 박사는 20세기말의 클론(克隆)기술로 자기의 유전자세포와 우주지리천문학자이며 아시아형통인 유리박사의 유전자세포를 분리하여 제1대 클론바우를 낳는다. 그다음 제1대 클론바우의 유전자세포를 분리해내여 선후하여 사자와 코끼리, 고래 등의 유전자세포와 결합시켜 클론바우를 복제해낸다.  제17대 복제클론바우는 고래새끼처럼 너무 클것을 예상해서 고래어머니배속에 수정란을 넣어 낳게 한다. 그러니깐 제1대 클론바우의 부모는 맥슨박사와 유리박사다.  사자와 코끼리, 고래의 유전자와 결합되였기에 꼬마클론바우의 생김생김은 머리는 사자대갈 같이 생겼고 코는 코끼리코고 귀는 파초같고 눈은 퉁사발눈이며 덩지가 엄청나게 크고 잔등에는 커다란 날개가 달렸다. 이런 모습은 독자들에게 무한한 신비성과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작자는 독자들에게 민족자긍심과 자강심을 심어줄 의도로 클론바우의 어머니를 한반도혈통의 녀인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달나라와 싸워이기고 지구를 총돌하려는 소혜성을 핵로케트로 폭파하여 지구를 보위한 36세기의 절세의 영웅 무빈총사령관과 그 어머니 다혜박사도 한국인으로 되고있다.     랭동관에서 천년을 잠잤다는 클론바우대통령의 이야기와 랭동관에서 5백년 잠잤다는 무빈총사령관의 황당한 이야기도 독자들의 흥미를 끄는데서 큰 구실을 하고있다.     이외 중국  옛신화에 나오는 녀와와 예도 등장하여 환상이  더욱 환상다와지고 신비가  더욱 신비스러워진다.  .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이 어머니 유리박사의 권고를 듣고 원자탄으로 오존층에 구멍을 냈을 때 녀와는 곤륜산의 바위돌을 녹여 구멍난 하늘을 깁는데 나중이 안되니 자기의 가냘픈 몸으로 하늘의 구멍을 막는다. 너무나 감동적인 희생정신이다.    톰 총사령관과  마이클 총참모장이 클론바우 꼬마대통령을 생포하려 할 때 녀와가  달려들어 팔소매를 휘둘러 아카시아해병들을 바다에 처넣으며 클로바우꼬마대통령이 그물에 걸려 사경에 처한 위기일발의  시각에  해를 아홉개나 쏘아떨군 중국고대신화속의 명궁수 예가 나타나 화살로 해병들을 쏘아죽이고 클론꼬마대통령을 구한다.  이들 두 인물은 정의를 보위하고 사악을 징벌하는 영웅으로 부각되여 독자들에게 통쾌감을 안겨주고 정의감을 심어준다.         3. 과학성으로 획득되는 가독성        “야망의 바다”는 광대한 독자들에게 심오한 현대과학지식을 전수하고있다는데서도 자기의 특기를 갖고있다. 일반 소설이 삶의 도리를 천명하고자 하는데 반해 과학환상소설은 그것도 포함하면서도 한가지 더 과학지식전수도 념두에 둔다는데서 차이점이 있다. 따라서 과학환상소설을  쓰려면 풍부한 과학지식의 뒤받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들은데 의하면 김장혁은 소재축적에서 길림대학 지구물리학과를 전공한 아들의 [전문가적]도움이 컸다고 한다. 김장혁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환상소설이라 하지만  과학환상이라는 규정성과 한계 때문에 전문적인 과학지식상식이 필요하다. 또한 비과학적이고 미신적인 색채로 청소년독자들을 오도해서는 안되며 어디까지나 환상적이면서도 합리적인 내용으로 써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관련과학지식을 극력 섭렵했으며 과학성과 환상성도 중요하지만 우선 소설이 돼야 한다는 대명제를 위해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캐릭터와 플롯을 설정하고 스토리를 엮어가느라 투혼을 불태운 밤이 많았다.”      그 수많은 투혼의 밤이 마침내 야망의 탑으로 일어선것이 “야망의 바다”것 같다.     소설에서 과학성이 집약된 부분을 일부 선택하여 절록해본다.       1.꿀벌은 몸에 방향을 판단하는 미형자기판 같은 것이 있다. 그런데 핸드폰의 전자파가 습격하면 자기판에 번개가 치듯 전자파가 투과되는 바람에 꿀벌은 무리로 죽게 된다…실험이 증명하다싶히 전저파가 셀수록 더 넓은 범위에서 꿀벌이 죽게 된다. 아카시이에서는 그런 원리를 리용해  비행장의  새들을   쫓거나 무리로 죽였다….하나의 핸드폰전자파발사안테나는 하나의 원자탄보다 못하지 않게 큰 살상력을 갖고있다.  다만 보이지 않게 천천히 살상할뿐이다.    2.림성호부장이 언젠가 K-SARZ(핵복융합)이라는 새 에네르기를 말한적이 있었다. 또 이산화탄소가 없어 오존층을 보호할수 있는 바이오지젤이란 새 에네르기를 말하넉이 있었다.       3.아프리카 선인장국의 놈들이 글쎄 가짜 딸라를 가득 찍고 거기에다 아프리키에서 제일 전염성과 독성이 강한 DKX 바이러스를 발라놓았어…사람들은 딸라에 전염병바이러스가 붙어있는줄도 모르고 손에 침을 뱉어 세다보니 몽땅 전염병에 걸리고말았자. 반시간도 지나지 않아 입술이 붓기더니 입과 볼이 썩어떨어지고 눈이 멀고 목이 썩어떨어지고…       4.온실가스로 하여 지구의 기온은 그 동안에 7.4도씩 높아여 지구온난화를 초래하였을뿐 아니라 오존층의 여러군데에 구멍이 뚫어지게 하였다. 그래서 북극과 남극ㅇ ㅢ빙설이 녹아내리고 빠미르고원의 빙하, 히말라야산맥과 천산산맥의 빙하가 녹아내렸다. 오존층에 구멍을 뚫으면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위력이 된다.       5.소혜성의 속도가 소리속도의 90배, 소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날에는 지구의 모든 생명이 얼어붙는다. 6천5백만년전, 큰 혜성이 아메리카중부 메히꼬에 떨어져 지구륙지의 모든 생명이 멸종되였다.         이외도 과학지식이 침투된 설명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있다. 작자가 집필전에 작품과 우관된 과학지식들을 여러모로 섭럽하였기에 이와 같이 과학성이 치밀하게 체현된 과학환상소설을 쓸수있었다고 생각된다. 하기에  “야망의  바다 ”는 한편의 소설이면서 동시에 과학지식전수[교과서]로서의 구실도 착실하게  수행하고있다. 과학성이 풍부한 이런 책은 비단 청소년들에게 유익할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유익하다. 하기에 우리는 소설을 통해 정의감, 평화, 인류애 등 소중한것들을 되새기는 한편 풍부한 과학지식도 습득할수 있어 말 그대로 일거량득이라고 할만 하다.             4. 팽팽하고 긴장한 갈등선        소설창작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어려운 것이 갈등선이다. 갈등선(혹은 대립구조)가 없으면 소설로서의 자격이 없다. 일반적으로 단편소설은 갈등선이 간단하고 복잡하지 않지만 장편소설은 적어도 갈등선이 3개 이상이며 대립구조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중편소설은 그 중간이다.      소설의 갈등은 긴장하면 긴장할수록,치렬하면 치렬할수록 좋다. 가독성과  흡인력은 주로  이 갈등선의 긴장여부와 치렬여부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 드라마의 매력 역시  갈등의   첨예성과 치렬성, 긴장에서 생기게 된다.      소설에서 대결쌍방은  코치아 대 아카시아, 아카시아 대 아리빠빠, 아카시아대 노르망디이지만 가장 치렬한 싸움은 코치아와 아카시이사이에서 벌어지게 된다.     코치아와 아카시이의 첫번째 대결은 꿀벌의 죽음이 도화선이 된다. 아카시아는 코치아에 대량의 핸드폰발사안테나를 수출하는데 그 목적은 꿀벌을 전멸시켜 량곡생산을 차단하고 백혈병이나 암을 유발시키고 저능아를 낳게 하고 나아가서 모든 사람들이 천천히 죽게 하자는데 있다.한마디로 지구촌에서 코치아란 나라를 없애자는데 있다.  아카시아의 음모를 간파한 코치아는 그에 대한 보복으로 아카시아의 지구통알기념탑을 폭파해버리고 대방은 또 그 보복으로 코치아의 핵발전소를 전부 폭파해버린다. 코치아에서는 악은 악으로 갚으려고 달나라에 있는 아카시아의 헬륨-3의 핵바전소를 파괴하려고 하는데  쌍방간의 대결이 시종 팽팽하게 전개되여 긴장감이 흐르게 한다.     두번째 갈등은 아리빠빠 대 아카시이의 대결에서 비롯되는데 원인은 에네르기쟁탈전이다. 노르망디에서 아리빠빠의 석유를 눅거리로 략탈해가자 아카시아가 아리빠빠를 침략하고 전복한다.     세번째 갈등은 노르망디와 아카아사이에서 생긴다. 아카시아에서 노르망디의 시추탑을 폭격하여 노르망디가 불바다로 변해버린다. 노르망디에서도 아카시아의 시추탑과 송유관을 폭파한다. 악에 바친 아카시이에서는폭격기들을 파견하여 지중해연안으로부터 이리빠빠사막에 이르는 노르망디의 송유관을 폭파해버리고 핵잠수함을 파견하여 노르망디의 핵발전소를 폭파한다. 노르망데도 뒤질세라 아카시이의 본토와 북극을 핵로케트로 공격한다. 이러한 보복이 련속되는 가운데 두 나라는 대재난에 직면한다.     소설에서 가장 치렬하고 가장 규모가 큰  대결이 코치아와 아카시아의 전쟁이다.아카시아에서 평화의 신 클론바우꼬마대통령을 살해하자 평화를제창하던 코치아도  더는 참지 못하고 맞대결한다, 헬륨-3을 쟁탈하는 싸움에서 코치아는 실패하고 아코대전에서는 코치아가 대승한다. 아카시아에서는 코치아의 수중시추탑과 송유관을 폭파한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코치아가 승리하고 아카시아의 톰사령관이 체포된다. 서해에서 실패한 아카시아는 마이클총참모장을 동해에 파견하여 시추탑과 송유관을 습격한다. 이 싸움에서 코치아도 피해를 입지만 이 전투에서 아카시아는 참패를 당한다. 련속 실패의 쓴 맛을 본 죤슨 대통령은 최후의 수단으로 달나라를 폭파해 지구촌의  하늘을  덮어버리려 하다다 금별꼬마대통령이 쏜ㅣ핵유도탄에 의해 바다귀신이 된다.     우에 렬거한 여러 갈래의 달등선들이 저마다 타당한 리류를안고 긴박함과 치렬성을 동반하면서 긴장감과 팽팽감을 고지시키며 따라서 가독성 획득에 크게 기여하고있다. 소설창작에서 갈등과  대결의  설정과 진행, 해결의 과정이 무척이나 어려운 고난도작업인데 김장혁은 이 어려운 작업에서, 특히 과학환상소설이라는 극히 제한된 틀임에도 불구하고 고난도작업을 깨끗이 마무리함으로써 소설적재능을 과시하고있다.            5. 오늘에 던져주는 강력한 메시지        “야망의 바다”는 선과 악, 정의와 비정의 ,전쟁과 평화,생태파괴와 지구온난화, 핵무기개발, 독재자의 야망 등 여러가지 문제를 다루면서 오늘의 인간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주고있다.      작자는 1900년 후의 인간들의 이야기를 환상의  패러다임으로 펼쳐보이고있지만 그 기저에는 오늘의  인간들에 대한 강력한 충고와 엄중한 경고가 무겁게 깔려있다. 사실 작자는 미래를 빌어 오늘의 이야기를 하고있는것이다. 오늘 인간들의   무분별한 야망으로 지구촌의 생태환경이 엄중히  파괴되여 지구온난화가 초래되고있으며 그 업보로  태풍, 해일, 사막화. 폭설, 폭우. 지진 등 각종 재난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고있다. 지구온난화로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히말라야산, 천산, 알프스산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지구온도가 상승하고있다. 중국사천성에 대지진이 일어나 십여만명이 죽었고 인도네시아에 해일이 일어나 수만명이 죽었고 수많은 호수들이 고갈상태에 빠져 물고기들이 때죽음을 당하고 음료수도 큰 위기를 맞고있다. 최근에 일본 후쿠시마에 전례없던 끔찍한 쓰나미가 들이닥쳐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있다. 미국에서는 토네도가 발생하여 인간들과 차량들을 휘감아 하늘로 올리는 옛말 같은 참상이 벌어졌다. 이 모든것은 인간의 과분한 욕심의 대가로 생겨난 것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야망과  오만함에 대항하는 자연의 자세는 너무나 확고하고 무자비하다. 인간이 자연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날 인간들이 겪고있는 재앙은 인간이  빚어낸 자작지얼(自作之孽)로서 자연이 무정하다고 원망할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반성하고 참회하여야 한다.  지구온난화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핵개발에 대해서도 속죄하여야 한다.      오늘 적지 않은 나라들에서 다른 나라를 제압하려는 야망 그리고 자기의 통치지반을 굳히려는 욕심으로 하여 핵개발에 광분하고있다. 재난중에서도 가장 무서운것이 방사성오염이다. 인류는 이미 2차세계대전때 원폭피해의 비극을 겪었다. 1980년대 우크라이나에서 방출된 방사성원소로 하여 지금까지도 여러가지 피해를 보고있다. 최근에는 일본 후꾸야마 원전사고로 방사성 원소가  대량 방출되여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있다. 쓰나미나 지진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방사상오염이다. 그런데도 인류는 악을 쓰고 핵개발을 하고있다. 이런 나라들에 대해 세계여론이 아무리 지탄하여도 유엔안보리에서 수없이 경고하고 제재를 가하여도 마이동풍, 핵개발진군을 멈출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고있다. 한 개인의 영구한 통치를 위해 백성들이 무수히 굶어죽는데도 전혀 아랑곳없이 핵무기제조에 박차를 가하고있는 무모한 통치자들에게 “야망의 바다”를 한번 읽어보라고 권고하고싶다.      야망과 욕심을 버리라, 지구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라 !      이것이 “야망의 바다”가 인류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이상으로 “야망의 바다”에 묻혀있는 이야기들을 대략적으로  알아보았다. 결론적으로 “야망의 바다”는 예술기법이 독특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제재가 신선하고 내용이 심오한   장편과학환상소설이라고 긍정하고 싶다.          주: 저명한 평론가 김룡운선생님의 이 평론은 "문화시대"잡지에 실렸다. 나는 김룡운선생님의 이 평론과 김만석교수의 평론의 고무를 받고 창작신심을 북돋아 "야망의 바다"의 속편 장편과학환상소설 "욕망의 천지"와 장편과학환상소설 "황천의 유령"을 련속 창작해 3부작 대하과학환상소설을 완수해냈다.       김룡운선생님과 함께 연변인민방송국 문예프로 생방송실에 가서  저의 장편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를 두고 이 평론 내용으로 좌담하던 일이 어제 일 같건만 벌써 어언간 11년이나 흘러 지나갔다.      저명한 평론가 김룡운선생님의 서거는 우리 문단의 커다란 손실이다.  김룡운선생님의 총망한 별세에 비통한 마음 비할데 없다.                           - 김장혁                                   2024. 6. 17.
   2022년 12월 01일 11시 08분  조회:977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민족혼의 대 서사시          ㅡ김장혁론,  대하장편소설 «울고 웃는 고향»을 중심으로                                            김몽            1.   김장혁은 다산작가이다.        김장혁은 우리 조선족문단에서 정평이 나 있는 다산작가이다. 그는 성인작가이면서 아동작가며 소설을 쓰면서도 실화작품과  수필도 쓰며 사실주의소설도 쓰면서도 랑만적인 과학환상소설도 쓴다.         주요 저서를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울고 웃는 고향 »(총 7권,2014년 한국 교문사 출판) 장편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2008년 연변인민 출판사 출판)속편 장편과학환상소설  «야망의 천지 »,(2013년 한국 교문사) 속편 장편과학환상소설 «황천의 유령»,(2015년 한국 교문사) 이 3부작 장편과학환상소설은 하나로 관통되여 백여만자에 달하는 대하과학환성소설을 이룬다.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운던 나날에 » (합작,1991년 연변인민출판사)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중문,1995년 연변인민 출판사), 장편정탐실화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2000년도 연변인민출판사 잡지사 련재,2009년 연변인민출판사 집지사 련재) ,수필집 «리별» (2010년 연변인민출판사 ),  아동문학작품집 «호랑이와 사냥군»(2002년 흑룡강민족출판사), 실화작품집 «빨간 장미꽃 함정»(2003년 흑룡강민족출판사), 문학작품집 «사랑환상곡»(2006년 한국학술정보),  문학작품집 «사랑은 요술쟁이야 » (2017년 연변인민출판사), 대하소설 «진달래소야곡» (총4권, 2019년 료녕민족출판사). 최근에는 또 새로운 혼인풍속도를 보여준 그의 네번째 대하소설 «졸혼»(총 6권, 한국 한민족신문, 조글로, "문학사랑"잡지 련재)을 창작하여 인기를 모으고 있다.       상술한 작품중에서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은 조선족문단에사 편폭이 가장 긴 장편소설이며 하나로 일관된 장편과학환상 소설 «야망의 바다», 장편과학환상소설», 장편과학환상소설 «황천의 유령»은 우리 조선족문단에서 처음으로 되는 대하과학환상소설이다.  .     김장혁은 혁혁한 창작성과로 하여 한중동심아동문학상, 한중옹달샘아동문학상, 한국대전매일수필문학상, 웰빙아동문학상, 백두문학상, 아리랑문학상, 전국소수민족아동문학작품우수상, 두만강수필문학상, 동북3성우수도서상 등 30여개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몇몇 작품들을 알아보기로 한다.    ㄱ)장편«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          세월은 류수와도 같이 빨리 흘러 어느덧 이 땅에는 기원 3948년 봄이 깃들었다..     500년 전에 소혜성 하나가 지구를 충돌할 수 있는 궤도에 들어 서서 지구에로 날아 왔댔다.. 그때 무빈 총사령관을 비롯한 지구촌의 군사들은 과학자들과 군민들과 함께 리철학 총사령관을 괴수로 한 달나라 군사들을 제압하고 지구를 충돌하려는 소혜성을 핵미사일로 까부시고 지구를 보위하였다..     그러나 500년이 지난 후 사람들은 또다시 욕심을 부려 판도를 넓히고 자원을 쟁탈하려고 아웅다웅 하였다. 지어 이 땅덩어리의 풍부한 자원을 독점하려고 미쳐 날뛰면서 전쟁을 벌렸다..      이런 란세에 아시아주의 코치아라는 나라의 유명한 지질학자 김지학박사와 해양수산물학자 박수혜박사의 가정에서 괴상한 남북골남자애 금별이와 복숭아 같은 녀자애 금붕어 오누이쌍둥이가 태여났다..     푸르른 야망의 바다에 인류생존의 룡꿈을 가진 남북골과 금붕어가 수중층집을 짓는다. 아카시아 죤슨 대통령은 코치아를 누르고 지구를 통일해 통채로 먹어치우려는 야심을 품고 해군 총사령 톰장군을 보고 잠수함대를 이끌고 코치아 류역 바다에 가서 중동에서 코치아로 돌아오는 유조선을 폭파시켜 코치아 앞바다를 오염시킨다. 금별과 금붕어가 지휘하는 코치아의 룡과 독사, 고래 배들이 악마와 지구보위해전을 펼친다. 거북선이 불을 토하고 문어가 악마새끼들을 바다물에 집어 처넣는다. 하늘에 구멍을 뚫었던 괴물 클론바우 꼬마대통령마저 천년 굳잠에서 깨여나 지구촌의 평화와 생태환경을 보호하려고 악마들이 쏜 핵유도탄을 공중에서 받아안고 방향을 돌려 악마에게로 덮쳐든다. 남북골은 핵로케트로 지구를 충격하려고 날아오는 소혜성을 박산낸다. 욕심쟁이 죤슨  악마는 지구촌을 독점하려고 전쟁의 불길로 지구촌을 불태워버리고 하늘과 땅, 바다마저 시꺼멓고 찐득찐득한 기름칠을 하려고 미쳐 날뛴다. 예는 화살로 악당들을 족치고 녀와는 가냘픈 몸으로 펑펑 구멍난 하늘을 다시 기우려고 왼심을 쓴다. 금별의 어머니 박수화 부장은 해전에서 자살식잠수함을 몰고 톰의 잠수함을 충돌해 침몰시키고 장렬하게 희생된다. 금별과 금붕어가 령도하는 해군은 거북선과 오징어선을 지휘해 톰을 나포하며 죤슨 대통령을 해전에서 격살하고 항공모함을 격침한다. 그러나 렬강들의 략탈적인 개발과 에네르기쟁탈전으로 하여 지구촌은 날따라 엉망진창이 되여가고 수중층집마저 신기루처럼 무너진다.  그러나 금별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바다에서도 살기 어렵게 된 인류, 인류는 어데서 살아야 하는가?       “야망의 바다” 작자는 언제부터인가 별들이 깜빡이는 하늘이 무너질가봐 근심하였다. 잠수함 같은 고래가 윙크하는 바다가 마를가봐 밤중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지구촌 사랑의 오아시스가 재더미로 돼버릴가봐 두려워났다. 지어 별이 날아와 지구를 충돌할가봐 공포에 떨었다.     우주에서 누군가 작자를  꾸짖는 것이 아니겠는가?     미친 놈이 별 근심을 다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지 않는가? 왜 하늘에 구멍이 펑펑 뚫릴가봐 정신나간 놈처럼 한숨만 쉬는거냐? 별이 지구를 부딪치겠으면 부딪치라지. 눈깜짝할 새에 함께 죽으면 다 아닌가? 지구가 뜨거워나고 이 큰 땅이 꺼질가봐 근심할게 뭔가? 전쟁과 방서성오염으로 푸르른 들판이 사라지면 사람들이 어데서 살겠는가고 개탄할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그러나 작자는 태산 같은 근심을 안고 환상의 나래를 펼쳐 야망으로 차넘치는 바다로 훨훨 날아갔다.   환상으로 출렁거리는 장편과학환상소설 는 이렇게   창작되였다.         ㄴ)장편과학환상소설 “욕망의 천지”.      장편과학환상소설 «욕망의 천지»는  장편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의 속편이다.       “야망의 바다”에서 등장한 쌍둥이 오누이 금별과 금붕어는 “욕망의 천지”에서는 어느덧 당당한 청년 대통령과 총리로 부상한다.  기원 3978년, 지금으로부터 약1956년후의 시대를 그 배경으로 하였다. 그런 시대는 어떨가? 제10차 핵전쟁으로 하여 지구촌은 방사능으로 엉망진창이 되게 오염되고 가스온난화로 남북극 빙하가 녹아내려 수많은 세계 대도시가 바다물에 잠기는 그런 처참한 환경이였다.     이런 환경에서 오염된 생태환경을 복구하기 위한 위대한 변혁이 이 소설의 발단으로 된다.     소설은 코치아와 뱀섬나라지간의 모순충돌을 주선으로 하면서 엄청난 환상적인 이야기를 진격적으로 전개시키면서 소설의 발전부분을 장식하여 독자들을 현혹하게 만들고있다.     코치아에서는 금별 대통령이 과학으로 지구생태환경을 보호하고 뱀섬나라를 전승하려고 아들 조왕돌을 구라파 노르망디에 보내여 크롱박사에게서 크롱복제기술을 배워 수많은 조왕돌을 복제해낸다.    코치아 여성총리 금붕어는 방사성오염이 심한 지구촌에서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인종을 개량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괴물 클론바우 16세와 결혼하여 체외수정과 복제기술로 숱한 클론바우를 복제해낸다.    한편 뱀섬나라 나까아맨은 령토확장을 위하여 인면수신의 뱀인, 핵무기, 화학무기, 독가스, 독바이러스를 생산하여 코치아나라를 치려고한다. 그 다음부터 코치아와 뱀섬나라지간의 복잡한 모순충돌은 놀라울 정도의 기복을 이루면서 진격적으로 사건을 발전시킨다.     나까아맨은 남해해전을 빚어내여 에네지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조왕돌과 클론18세부대에 의하여 참패당한다. 나까아맨은 코치아의 금별대통령과 금붕어 총리지간의 리간을 도발하다가 실패한다. 나까아맨은 딸라에 독바이러스를 묻혀 코치아 백성을 해치려다가 조왕돌이 연구한 해독약 “k3바이러스”에 의하여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나까애맨은 수많은 위성에 장치한 핵반사경으로 코치아 대통령부를 비춰 금별대통령을 암살하려다가 조왕돌에 의하여 감측되여 실패한다. 나까아맨은 기원 4000년에 지구종말론을 들고나오고 지구촌 령토평균재분배를 시도하면서 코치아와 대국들을 이간질해 대국들을 동원하여 코치아를 치려다가 실패한다. 이렇게 코치아와 뱀섬나라지간의 모순충돌의 결과로 작품은 크라이막스에 치달아오른다.      금별대통령은 지구에 날아오는 소혜성을 폭파하기 위하여 장렬하게 희생된다. 나까아맨은 지구생태한경을 보호하자면 과학가를 몽땅 소멸하여야 한다고 날뛴다. 결과 뱀섬나라 뱀왕의 령도하에 뱀인들이 떨쳐나 나까아맨을 처단한다. 유라시아대륙판과 태평양대륙판의 충돌로 뱀섬나라는 침몰되고 야스쿠니 신사도 바다물에 떠간다.     나중에 작자는 소설의 결말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있다. 새로운 일대 조왕돌, 보름, 허선영 등은 새로운 결론을 내린다.  아무리 생태환경을 복원하여도 인간의 무절제한 욕심을 통제하지 않고서는 지구촌의 생태환경을 영원히 보호할수 없다. 인류는 지구 생태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탐색해야 한다.      이같이 변화무쌍한 이야기는 과학적원리에 의하여 안받침되여있기에 일반 이야기와 전혀 다른 과학적이며 환상적인 이야기로 승화되면서 지구생태환경을 보호하구 인류생존을 보호하자는 주제를 돌출하게 표현하였다.       ㄷ)장편과학환상소설 “황천의 유령”         장편과학환상소설 “황천의 유령” 은 “욕망의 천지”의 속편이다.    기원 4009년, 제11차 핵전쟁 시기 섬나라 나까아멘이 달을 폭파해버려 일그러진 반쪼각달이 하늘에 떠 있었다. 핵전쟁으로 인해 숱한 기형아가 생기고 인류는 날따라 삶의 터전이 적어졌다..     코치아에서 정치피난을 해 섬나라에 온 우성 대통령은 섬나라인과 결혼한지 수년만에 글쎄 한 몸에 머리 두개 달린 쌍두머리련체기형쌍둥이를 낳았다..    섬나라 뱀왕은 뱀의 몸뚱이에 사람의 머리를 갖춘 인면수신의 뱀인을 개발한 뒤를 이어 핵오염에 견딜 수 있는 새 인종을 개발하려고 들었다.. 그래서 섬나라 밴새 소장을 비롯한 과학가들은 선후하여 사람과 개, 멧돼지 유전자를 리용해 크롱복제기술로 사냥개인과 멧좨지인을 개발했다..     그러자 코치아의 금별 대통령의 아들 조왕돌 부장은 허선영과 보름 등과 함께 화과산 원숭이들을 데려다 유전자를 채취해 원숭이인을 복제하는데 성공했다..     아카시아제국의 클론바우 18세 대통령은 지구촌의 패권을 쥐려고 노르망디제국과 손을 잡고 신흥과학기술국가인 코치아를 내리누르려고 했다. 그들은 표면으로는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뒤로는 섬나라와도 손을 잡고 암거래를 하고 있었다.     섬나라에서는 시시각각 코리아에 앙갚음을 하려고 칼을 갈고 있었다. 그런데도 코리아 내부에서는 정변이 일어났다. 허수아 총리는   금별 대통령을 뒤엎고 대통령이 되려고 했다. 그때 조왕돌 부장이 원숭이인부대를 거느리고 허수아 총리 사무실과 국회의사당을 포위했다. 황급해난 허수아 총리는 코치아 동남부 임해로 도망쳐 임해독립왕국을 선포했다.. 조왕돌은 즉시 코치아 대군을 지휘해 남으로 진격해 임해와 전쟁을 선언했다.     호시탐탐 노려보던 섬나라 나까아버새 왕은 분단된 코치아 남북에 전쟁이 일어난 틈에 어부지리를 하려고 들었지요. 그는 밴새 소장을 보고 복제기술로 숱한 미녀들을 복제해내게 했다. 그는 미녀들 하신에 에이즈보다 더 전염성과 위해성이 강한 성병균을 발라놓게 했다. 밤중에 섬나라 공군이 코치아와 임해 국경 사이 전호에 숱한 성병에 걸린 미녀들을 공중투하했다.. 코치아와 임해 장병들은 이게 웬 떡이냐고, 전호에 눈송이처럼 날아내린 미녀들을 빼앗아 놀다가 그만 성병에 걸려 당장에서 하신이 마구 썩어다.     섬나라 나까아버새 왕은 또 전염병 독성과 핵오염물질이 박힌 보석목걸이를 코치아와 임해에 투하했다. 아침이 돼 숱한 보석목걸이를 본 사람들은 빼앗을내기하면서 주어 목에 걸었지요. 그 바람에 숱한 사람들이 목이 부러지고 말았다.    섬나라 나까아베 왕은 또 밴새 소장을 보고 핵오염물질이 든 항아리만큼한 우박을 코치아에 쏟아지게 했다.. 거대한 우박은 코치아 도시와 농촌 아빠트를 콩가루로 되게 짓부셨다.. 나중에 우박 안에서 괴상하게 파란 빛이 반짝였지요. 숱한 사람들은 메로 우박을 깨고 파란 불이 반짝이는 보석 목걸이랑 팔지랑 꺼내 가졌다. 그런데 그들의 목과 팔이 썩어떨어졌다. 섬나라에서는 과학기술로 만든 목걸이와 우박으로 코치아를 깜쪽같이 타격했다. 조왕돌 부장이 섬나라가 한 짓임을 밝혀내자 나까아밴새 왕은 짐짓 자연우박이라고 하면서 책임을 회피했다.      조왕돌 부장은 금붕어 고모가 말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임해와 핵전쟁을 벌려 허수아 총리를 사살했다. 그 틈을 타서 섬나라 나까아밴새 왕은 군대를 파견해 코치아를 역습해 금별 대통령과 부인을 나포해 갔다. 결이난 조왕돌은 원숭이인 부대와 로봇부대를 이끌어 섬나라를 쳐들어가 나까아버새 왕을 사살하며 금별 대통령과 어머니를 구해낸다..     금별 대통령은 대통령 자리를 조왕돌에게 내주고 태평양 심해로 잠수함을 타고 잠적해버린다. 아메리칸제국의 안나 녀대통령은 아카시아제국을 정복하려고 우선 클론바우 18세 꼬마대통령의 근거지 열대우림을 기계화부대에 로봇부대까지 쳐들어가게 했다. 그런데 클론바우 꼬마대통령은 힘으로 안나 대통령의 군대를 물리치려고 하다가 실패한다.. 그러자 클론바우 꼬마대통령 16세는 핵유도탄으로 아메리칸제국의 천정이나 다름없는 오존층을 폭파해버린다. 비록 아메리칸제국을 전승했지만 오존층이 구멍난 지구촌은 인류가 살기 힘들게 됐다.      우성 대통령은 쌍두기형아쌍둥이를 데리고 배를 타고 섬나라 뱀 왕의 터전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뱀인들은 거개가 핵전쟁에 껍질만 남기고 죽어버렸다. 쌍두기형아쌍둥이는 뱀인들의 시체가 쌓인 바다가 절벽에 후세인들은 절대 핵전쟁을 하지 말고 지구의 오존층을 파괴하지 말라는 우성 대통령의 유언을 정으로 새기기 시작했다. 클론바우 꼬마대통령은 불타는 지구촌을 돌아보다가 핵폭발에 직면한 바다가 절벽에서 정으로 글을 새기는 쌍두기형아쌍둥이를 안고 날아갔다.. 그들은 황천의 유령으로 지구촌 상공을 떠돌았다.. 대하소설을 방불케 하는 3부작 장편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와 속편들인 “욕망의 천지”와 “황천의 유령”에서는 굴곡적인 과학환상이야기 속에서 괴상한 환상적인 인물형상을 부각했으며 무절제한 욕망을 가진 환상적인 인물들지간의 굴곡적인 갈등을 통해 3편의 장편소설에 관통된 하나의 주제를 표현했다.     즉 “인류는 무절제한 욕망을 버리고 평화의 기치를 들고 핵전쟁을 하지 말며 인류의 유일한 생존터인 지구의 생태환경을 보호하라고 형상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ㄹ)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공저)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는 가렬처절한 항미원조전쟁의 나날에 주인공 리해식이 최전선 통역원으로부터  지원군 총부 문예부 비서과 간부, 38선 대적공작대 간부로 성정하는 과정을 주선으로 엮은 실화소설이다. 료녕성 신변현 농민가정에서 태여난 리해식은 심양주둔부대 심양역 보초병으로 근무하다가 자원해 항미원조 최전선에 나간다. 항미원조전쟁의 특수성으로 해 조직의 배치에 따라 리해식은 통역원으로 되며 야밤행군할 때 우리 군이 처음으로 나포한 남조선특무를 심문해 그 놈의 특무행적과 군사목적을 밝혀낸다.      소설에서는 항미원조 전쟁의 나날에 리해식 소속부대에서 보잘것 없는 장비로 전례없는 간난신고를 이겨나가면서 발끝까지 현대화무기로 무장한 미제 침략군과 리승만괴뢰군을 무찌른 가렬처절한 전투화폭도 생동하고 화약냄새나게 그려냈다.     리해식은 지원군 총부 정전담판대표단의 문예부 비서과 간부로 되여 보고 들은 생동한 이야기도 소설화해 보여주었다. 특히 미국측 정전담판대표들이란 자들이 판문점에서 열린 담판석상에서 휘파람을 불고 생떼질을 쓰면서 평화담판을 파괴하고 지연시키던 가증한 몰골, 포로교환할 때 미제는 국제공약을 어기고 우리측 전쟁포로들에게 온갖 박해와 학대를 가한 미군과 리승만괴뢰군의 만행, 그리고 녀자포로들에 대한 그자들의 비인간적 학대, 강간 범죄행각, 우리측 전쟁포로들이 교환돼올 때의 가슴을 허비던 피눈물의 장면, 미군과 우리 군, 그리고 우리 군 포로들의 갈등을 주선으로 아주 생동하게 소설화해 보여주었다.      소설은 정전된 후 주인공 리해식이 38선 비무장지대에서 대적사업간부로 돼 기타 동료들과 함께 용감하고 슬기롭게 미군과 리승만괴뢰군과 싸운 장면을 형상적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비무장지대에서 남조선 특무들의 대북침투, 남조선 특무를 나포, 남조선 괴뢰군을 공작해 북조선에 의거해오게 한 이야기들은 아주 생동하게 소설화해 보여주었다.       ㅁ)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는 전국 “모범 법관 록도유”의 성격특징을 틀어쥐고 그의 빛나는 생애와 사적을 진실하고 형상적으로 보여주었다.    록도유는 생전에 왕청현인민법원 심판감독정 정장이였다. 그는 너무 피로하게 사업한데다가 간경화복수가 악화돼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42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사망하기 전까지 초유록처럼 간병을 무릅쓰고 계속 법관사업을 견지하였다.    그는 아주 청렴한 법관이였다. 그는 심판감독정 정장으로 사업하면서 선후하여 사건 74건을 법에 따라 개판(고쳐판결)하였는데 이런 사건에 관계되는 당사자는 82명이나 된다. 그중 10명 당사자는 감형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록도유는 감형판결을 받은 당사자들한테서 점심 한때 대접받지 않았으며 돈 일전한푼, 돼지고기 한근 받아먹은 적이 없다. 정장급 법관이였지만 그는 섬유장판 두장을 놓을만한 구들에 주방이 달린 20평방짜리 낮다란 집에서 살았다. 나중에 그는 병치료를 위해 그 자그마한 집도 팔지 않으면 안되였다. 림종 때 그는 집도 없어 세집에서 사망했다.    청렴한 법관 록도유는 시장경제시대 사법기관사업일군들의 모범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종래로 개인의 득실을 따지지 않고 법에 따라 모든 사건을 판결하였다. 그는 부지런히 일하는 “황소 같은 법관”이였다. 그는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도 법관사업을 놓지 않고 견지해 사업해나갔다. 그는 자기가 루적한 숱한 법률지식도서를 마지막당비로 당조직에 바쳤다.   록도유는 선후하여 여러차례 성, 주와 현 법원계통 “선진사업일군”의 영예칭호를 받았으며 1등공과 이등공을 세웠으며 그가 책임진 심판감동정은 련속 7년 전주 법원계통 업종평의에서 1등을 차지했다. 전국 최고인민법원과 성고급법원 및 주와 왕청현당위에서는 선후하여 록도유동지에게 “우수공산당원”, “모범법관”의 영예칭호를 수여하였다.       ㅂ) 김장혁의 두번째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           김장혁작가의 두번째 대하소설 “진달래소야곡”(총 4권,료녕민족출판사 1919년 년 7월 )이   요녕민족출판사에 의해 출판되였다.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은 개혁개방시기부터 민족대이동의 현시대를 배경으로 사회 최소 세포인 가정을 해부하여 사랑과 혼인, 가정에 비낀 희비극적인 희로애락을 보여주었으며 삶의 뼈아픈 교훈을 따끔하게 짚어내고 가정문제를 헤쳐나갈 앞길을 긴 여운으로 남기려고 모지름을 썼다.     이  대하소설은개혁개방 초기로부터 조선족 대이동의 격변시대를 배경으로 주인공 리성호를 둘러싸고 리승호, 리종수, 엄정희, 최은영, 해연, 선희, 예화, 연화 등 인물들의부동한 사랑관과 가정관, 가치관의 갈등 속에서 현시대 조선족들의 가정에 비낀 희노애락을 반영하였다. 또 이런 작중 인물들과 리성호 형제자매의 피눈물 나는 울고 웃는 가정생활 이야기, 특히 고부 사이의 갈등을 통해 침통한 교훈을 남겨주고 효성 그리고 가정문제를 헤쳐나갈 앞길을 긴 여운으로 남기려고 시도하였다.     주인공 리성호는 농민가정출신 대학졸업생으로서 전통적인 순결한 사랑과 련애와 혼인관을 고집하며 화목한 가정생활을 추구하며 교수의 딸 엄정희의 순결한 사랑을 얻어 결혼까지 한다. 그는 공안국에 들어가려던 꿈마저 산산이 부서지자자기 실력으로 선후하여 목축업, 소장사, 택시업, 광고업을 하여 부모를 시내에 모셔다 효성을 하면서 화목한 가정을 꾸리려고 모지름을 쓰면서 곡절적인 인생행로를 걷는다.     교수의 딸 엄정희는 농촌의 시부모한테 효성을 하려는 성호와 갈등을 빚게 되며 다단계판매에 휘말려들어 옥살이를 하며 집마저 팔고 허망 나앉게 된다. 그후 선후하여 한국과 미국에 밀입국했지만 미국에서 또 주식에 번 돈을 다 처넣고 알거지로 되는 되는 비극을 맞게 된다.     소설에서 반면인물 리승호는 련애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처녀들의 정조를 유린하며 바람둥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처처에서 장벽에 부딪친다. 나중에 그는 에이즈병에 걸려 처참한 인생종지부를 찍게 된다.    소설에서는 이밖에도 성호와 애매한 련정을 품었다가 퇴짜를 맞고 남편한테 배신을 당해 비극을 겪는 해연, 간에 가 붙고 슬개에 붙으면서 웃음 팔고 몸을 팔아 사는 정희, 사회 최하층에서 구을며 로무송출, 가정교사, 광고모델로 헤매며 별의별 수모와 릉욕을 다 당하는 연화, 권리를 리용해 부패타락한 향락을 누리며 부정재물을 챙기는 오간부, 광고회사 경리 리굉팔 등 인물형상도 생동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10여년 동안 번 피나는 돈과 고향집마저 판 돈을 몽땅 털어 두 아들며느리한테 집과 차까지 갖춰주고서도 불효한 아들며느리들한테 박대를 받다못해 쫓겨나 눈물을 흘리면서 고향으로 돌아간 성호의 막내누나 성숙, 림종을 앞둔 시어머니를 어서 죽으라고 주사마저 놔주지 않는 “쥐며느리” 류려평의 형상도 생동하게 부각하였다…      김장혁작가의 두번째대하소설인 “진달래 소야곡”은 현시대 조선족들의 짙은 생활정취를 보여준 이 소설은 독특한 매력으로 독자들을 흡인할 것이다.       ㅅ)대하소설 "졸혼"(총 6권)         현재 창작중이다. 거의 끝나가고 있다.    문걸은 아스피린을 공복에 먹고 혈변을 세번이나 쏘고 쓰러진다. 옆집 한족아줌마가 구급차를 불러 병원 구급실에 실어간다. 춘희는  휄체어에 문걸을 싣고 달아다니면서 문걸을 구급하는데 나선다. 문걸은 일주일만에 혼미에서 깨나자 상해 아들과 딸집에 갔을 때 손자들을 돌보면서  설거지까지 하면서도 짜증나는 잔소리를 듣고 부부 성생활을 한번도 하지 못하던 일을 회상하게 된다. 설상가상  아들과 딸도 사선에서 헤매는 아버지를 병문안하기에 앞서 유산을 빼앗을내기하면서 유산을 자기한테만 달라고 유서까지 작성해놔라고 한다. 게다가 본댁 영희가 자꾸 리혼하자고 졸라댔다. 문걸은 여기까지 회상하자 삶의 용기를 잃고  자살하려고 손등에 꽂아놓은 링겔주사바늘을 빼버려 류혈사태를 초래한다. 춘희의사는 심지어 자기 피를 문걸한테 수혈해 구해낸다. 문걸은 대장암에까지 걸렸지만 춘희 의사의 수술받고 사선에서 살아난다.     영희와 순정은 50대 중반에 이른 녀성들은 생리가 간 후 성생활이 싫어졌으며 남편도 필요없다고 한다.  문걸은 살아나 퇴원하자 첫번째 일로 영희와 리혼수속을 했다. 문걸은 아까운대로 영희를 놔주면서 졸혼하고 자기만의 삶을 살라고 한다.        문걸은 등산대 녀친 춘희와 의사 춘희가 일인이 아닌가고 의심한다. 한번은 등산하러 갔다가 춘희가 그만 눈구덩이에 빠진다. 그녀를 구하려다가 문걸도 눈구덩이에 빠진다. 눈구덩은 쁠랙홀처럼 찬 물이 흐르고 절벽 같은 얼음벽이  서 있는 협곡이였다. 문걸과 춘희는 아무리 애써도 협곡에서 기여나오지 못한다. 그들은 나중에 가지고 간 배낭을 구덩이 밖에 내던지고 나무가지를 주어다가 불을 피운다. 문걸은 심장병이 도져 사선에서 헤매고 춘희도 협곡에서 살아나가게 될지 모를 곤경에 처한다. 사선을 헤매게 되면서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삼림에 화재가 난 것을 보고 구조헬기가  날아와 진화하고 춘희와 문걸을 협곡 구덩이에서 구해낸다. 그러나 문걸은 춘희는 일본에 딸과 남편이 있는 유부남이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된다. 문걸의 동서이자 친구 정호는 문걸을 보고 금욕주의 관념을 버리고 오색령롱한 밤생활을 즐기라고 권고한다. 정호는 문걸을 데리고 마사지방에 가서 아가씨를 즐기라고 귀띔한다. 그러나 문걸은 참사랑을 주장하면서 더러운 공중변소에서 빠져나간다.       풍류남아 정호는 암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오는 영희를 마중하러 공항에 나간다. 그는 영희를 마중해 지하주차장에 들어간 후 릉욕하려고 하다가  안해 순정한테 발각된다. 게다가 코로나와 암에 걸려  사망하기 전에 영희는 정호의 위선적인 허울을 홀랑 벗겨버리고  정호가 30년 동안 자기를 간음한 만행을 유서로 작성해 핸드폰에 남긴다. 순정은 영희 아들 군철은 정호를 똑 떼닮았다고 의심하게 된다. 나중에 순정은 DNA검사를 의뢰해  이제껏 문걸과 영희 아들이라던 군철은 정호와 영희 아들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다. 그리하여 순정은 나중에는 정호와 리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정호의 재물을 빼앗아내기 위해 가짜리혼으로까지만 간다.      정호는 문화국 국장이란 권세를 빌어 불의지재를 긁어모으고 숱한 미녀들을 애인으로 만들어버리고 흥청망청 놀아댄다.     30년전 대학교 무용교원인 정호는 학생모집하러 갔다가 첫눈에 영희와 순정이 마음에 들어 학생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영희와 순정을 모두 사랑해 쩍하면 해물관에 데리고 가서 그녀들이 맛있어하는 소라랑 조개랑 오징어볶음이랑 먹인다. 그는 밤에 선후해 순정과 영희를 불러내 무용강당에서 무용을 배워주는 척하면서 간음한다. 그러나 정호는 무용교원으로부터  문화귀족이 되기 위해 사랑하는 영희를 버리고 시당위 서기 딸인 순정을 선택해 약혼하고 결혼한다. 정호는 문화국 인사과장, 부국장, 국장을 하면서 선후하여 영희, 정희, 나영, 하영 등 숱한 애인을 두고 색다른 녀성들의 매력을 즐긴다. 그는 심지어  애인들로 방미친선문예공연팀을 무어가지고 해외 공연을 하며 밤이면 애인들을  불러내 성자유와 성해방을 맘껏 즐긴다. 그러나 정호가 아무리 위선적으로 놀면서 은페하려고 했지만 정호의  더러운 정체가 드러나고 만다.     순정은  진짜리혼은 하지 않고 가짜리혼하고 졸혼을 선언하고나서 음악술집과 양로원을 차리고 자기 홀로만의 삶을 산다.    리혼당한 후 정호는 굴레를 벗은 들말처럼 나영과 하영을 데리고 색다른 성을 즐긴다. 그러나 최혜영 국장 등 검사들의 추적수사를 받아 불의지래를 긁어모으고 숱한 녀성들과 불정당한 남녀관계를 벌린 죄행이 드러난다. 정호는 수사를 피해 나영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하게 된다.     문걸은 춘희와 함께 해외려행을 떠나게 된다. 그는 관광중에 춘희한테는 야마구찌 마끼라는 딸과 남편 야마구찌 다이로교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소설에서는 탐욕스러운 부패분자, 색마 정호 형상과 외모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청렴하고 정파답고 대공무사한 당간부 군철의 형상을 아주 형상적으로 대조적으로 부각하였다. 군철은 소설 앞부분에서는 문걸과 영희의 아들로 알려진다. 그러나  후에  DNA검사를 통해 정호와 영희의 친아들로 확인된다. 군철은 모시 모 한국기업의 부총경리였지만 처처에서 직원들의 리익을 위해 대공무사하게 처사하며 본처 리나와 리혼한 후 따르는 마끼와 미국 녀자 애리싸 등 새파란 녀자 많았지만 부정당한 관계를 벌리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그외에도 한국인 박문 총경리와 김미라 부부의 중국에서의 졸혼생활, 일본인 야마구찌 다이로교수 등의 졸혼생활도 굴곡적인 이야기로 그려냈다.     소설에서 김장혁 작가는 결혼, 리혼, 재혼 등 다양하고 굴곡적인 이야기를 엮으면서 졸혼이란 새로운 혼인풍속도를 보여주었으며 부부간에 원활한 성애는 애정의 핵심이라는 것을 측면으로 그려내려고 시도했다.          2.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내용소개            작가 김장혁은 가슴에 뜨거운 민족애를 지닌 사람이다. 그러한 민족애가 있었기에 긴긴 20여년간 심혈을 몰부어 마침내 대작을 빚어냈던 것이다. 대하소설 «을고 웃는 고향»은 전편에 걸쳐 따스한 민족애가 잔잔히 관통되고 있다, 대하소설 «을고 웃는 고향»은 민족혼을 천착한 광도에  심도에서 그리고 예술성과에서 볼 때 중국조족 소설에서 하나의 커다란 봉오리로 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본  소설의 농후한 민족성을 념두에 두고 졸평의 표제를 «민족혼의 대서사시»라고 달았다. 이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갘다. 지난 세기  20년대 초에 조선 함경도 명천군 상우남면의 한 시골에서 힘장수 김병완과 건달 한길수가 항상 싸웠다. 한길수는 군씨름대회에서 우승한 병완의 집까지 찾아와 씨름을 걸었지만 몇번이고 진다. 그러자 마을에서 몰아내려고 갖은 획책을 다 했지만 촌심이 병완한테 기울어져 실패한다.    그후 일제가 명천군 시골에까지 손을 뻗치자 한길수는 일본 놈들의 힘을 빌어 병완을 꺾으려고 든다. 한길수는 명천군 자위대 대대장으로 전락해 건달들을 끌어모아 가지고 병완을 보고 우시장경찰국 청사를 지으라고 못살게 군다. 한길수는 병완과 단독으로 결투를 벌리다가 못박힌 이깔나무를 헤딩해 왼쪽눈깔까지 못에 찔리고 만다. 끼무라 헌병대대장은 병완을 경찰국 청사를 지을 때 공지 총도감을 시키면서 자기 손에 넣으려고 한다. 그러나 병완은 그 기회를 빌어 아들 기준과 창준 그리고 그외도 다른  목수들과 함께 짜고들어 경찰국청사 대들보와 기둥에  나무벌레를 걷어넣고 지어 무너지게 한다.    일본 놈들은 병완을 비롯한 명천 시골 농군들을 보고 터밭에까지 이깔나무를 심으라고 강요한다. 밭을 빼앗긴 병완은 가만히 수림에 황무지를 개간해 보리를 심었는데 한길수한테 발각된다.     일본놈들과 한길수 등 일본 개다리놈들에게 밭도 빼앗기고 황무지도 개간하지 못하게 되자 병완과 기준, 창준 등은 야반도주해 만주 소시거우로 들어오게 된다. 후에 그들은 수많은 조선인들과 함께 소설에서 만주 농촌 축영이라고 할 수 있는 함흥촌에 발을 붙이게 된다.    병완의 맏아들 성칠은 일본 놈들이 사냥도 하지 못하게 하자 명천 시골마을 사냥군들을 데리고 김용천과 진달래가 이끄는 항일의병에 가입해 일제군과 일제의 개다리 한길수의 아들을   여지업시 족친다. 진달래 여중대장은 명천에서 한길수를 나포해 처단한다. 후에 그들은 만주에 들어와   항일유격대에 편입돼 장백산지구에서 일제와 간고한 유격전을 벌린다. 병완과 기준, 상순은 용정과 국자가 등  일제 강점구에 드나들면서 일제 정보를 유격대에 제공하며   청년들을 이끌어 마을 친일촌장 지학사 등과 지혜롭게 싸우면서 농사를 지어 항일유격대에 쌀을 지원한다.    김성칠과 김용천, 진달래 등은 항일유격대를 이끌고 장백산 원시림지역으로 일본 놈들을 유인해 들여 포위섬멸전을 벌린다. 그들은 쏘련 홍군과 함께 일제 최후보루를 까부시고 함흥촌과 진수해, 용정을 해방하고 김일성의 부름을 받고 유격대를 거느리고 조선에 나간다.    병완과 막내손자 상순은 지하당조직의 령도아래 친일주구들을 처단하고 지하당조직에 가입해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토지개혁을 진행한다. 상순은 마을 청년들을 조직해 민주연군에 참가하며 기관총반 반장으로 돼 삼도만, 묘령, 대흥구, 천교령 등지 토비숙청전투에서 빛나는 공훈을 세우며 부련장으로 제발된다.     상순은 해방전쟁시기 주덕해 파견을 받고 영월구에 현공안국을 세우고 초대국장으로 되며 항미원조전쟁기간에 장백산지구와 현 경내에 잠입한 국민당 특무조직을 여지없이 숙청한다.   상순은 현공안국 국장 벼슬도 초개같이 여기고 중국인민지원군 모부  연장으로 돼 항미원조전쟁에 참전하며 선후하여 지원군 후근총부 군복공장 공장장, 영장으로 제발돼 후근보장을 하며 최전선에 나가 미제 양키놈들과 생사결판으로 육박전을 벌리고 탱크와  군용자동를 격파하고 적들을 대량 소멸한다. 그후 그는 사단 비서과 과장으로 돼 평양 등지를 드나들면서 싸운다.  소설에서는 항미원조 전쟁 마당에서, 항일유격대 전우였던 김용천대장-남조선 괴뢰군 련대장과 김성칠 대장- 조선인민군 련대장이 무명고지에서 서로 적으로 만나 전우끼리 결투하며 결사적으로 싸우는 처절한 동족상잔전도 보여주었다. 또 사촌형제간인 김칠백과 김용천이 날창을 맞대고 육박전을 벌리는 비극도 보여주었다.   용천과 결혼했던 진달래가 용천이 죽은 줄로 알고 애를 데리고 성칠과 재혼해 애까지 낳는다. 그런데 용천은 남조선 괴뢰군 특무로 돼 함흥촌에 기여들었다가 진달래와 아들 경주를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러나 계급립장이 다른 진달래는 남조선 특무 용천한테 돌팔매를 날려 병완과 상순이 나포하게 한다.    제대한 상순은 촌 당지부 서기로 돼 할아버지 병완과 함께 함흥촌에서 호조조, 인민공사를 건설하고 제2고향으로 건설하는데 이바지한다. 그는 반우파투쟁, 문화대혁명 기간에 억울한 루명을 썼지만 병완과 함께 견결히 극좌적로선과 싸우며 진리를 견지하였다.    조왕돌은 개혁개방시기 청년대학생으로서 김병완과 김상순의 뒤를 이어  후계자로 등장한다. 그의 곡절적인 교원생활과 문화사업을 통해  개혁개방시기로부터 민족의 대이동기간의 현실생활의 축도를 보여준다. 조왕돌은 날따라 무너져가는 고향, 돼지굴로 돼버린 모교 교실 등을 보고 개탄한다. 특히 고국에 나가 조상들이 살아온 고향을 돌아보면서 무한한 소외감을 느끼며 조상들과 민족이 겪은 고난의 이민사와 조상들이 겪은 비극에 마음이 쓰려한다.    «을고 웃는 고향»은 비판적요소가 다분해 문학유파로 분류하면 비판적사실주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김병완일가의 백년사를 다루고 있을뿐 아니라 우리 민족이 걸어온 백년사도 함께 담고임다, 즉 백여년의 가족사이자 백여년의 민족사이다. 우리 조선족의 백년역사는 일제와 영용히 싸운 비장한 투쟁의 역사이며 눈물겨운 창업의 역사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지도아래 토비를 숙청하고 새 중국을 건설하는데 기여한 역사이며 사회주의 중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일체를 바친 영광스러운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구태여 증국조선족이 걸어온 백녀역사를 공부하지 않더라도 7권으로 된 대하소설  «을고 웃는 고향»을 읽어보면 중국조선족이 걸어온 역사를 똑똑히 알 수 있다. 백년간의 가족사를 통해 민족의 백년사를 보여주고 있다는 데서 이  소설은 큰 역사적의미를 갖는다.      3.«울고 웃는 고향»은  비판적 사실주의 소설이다.      유파로 분류하면 «울고 웃는 고향»은 비판적사실주의  유파에 속한다. 그러므로 아 직품에는 웃음보다 울음의  성분이   농휴하며 찬양보다 비판적 요소가 더 다분하다. 이 부분에서는 주로 «을고 웃는 고향»이 안고 있는 비판적사실주의 요소들에 대해  살펴보게 된다.      우선 반우파시기의 한장면을 보자. 상급에서는 한 핵타르에서 5만근을 내라고 명령한다. 김병완은 어불성설 이라고 견결히 반박하지만 허백호서기는 공사서기가 5만근을 내라면 내야지 무슨 잔소리내고 성을 낸다. 원문을 따오면 아래와 같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 우에도 꽃이 피는 법이요. 우리 공산당원들은 특수재료로 만든 강철 사람들입니다. 치열한 항일전쟁 년대에 목숨까지 내걸고 일본놈들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그런대 대자연과 싸워 1핵타르에서 5만근도 내지 못하겟습니까?"    이때 학생들을 데리고 일하던 함흥소학교의 여교원 오옥선이 비쭉거렸다.   ”당원도 그거 해서 남자의 정자가 여자의 난자가 합해 만들어진    사람이겠지? 강철로 만들었겠소? "    "호호호!”   사람들은 코를 싸쥐고 웃었다.허백호 서기는 닭을 잡아 원숭이를 훈계하듯이 오옥선을 투쟁해 반우파투쟁의 불길을 지펴 한 핵타르에서 5만근을 내지 못한다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 했다. 허백호는 금방 오옥선이 공산당을 모욕한 사실을 대충 말하고 오옥선에게 우파모자를 씌워 투쟁한다는 결정을 선포했다.    허백호 서기의 명령이 떨어지자 민병들이 오옥선을 사람들 속에저 잡아내 앞에 끌어냈다. 허백호 서기는 붉으락푸르락 해서 이른바  우파분자 오옥선의 죄행을 공포했다.    "금방 오옥선은 우리 위대한 공산당을 상욕으로 모독했습니다."    그때 오옥선이 반박했다.    "그게 사실이 아닙니까? 당원도 그 걸 해서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합해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특수재료로 만들어졌다 해도 납이나 강철로 만들었겠습니까?”    또 폭소가 쏟아졌다.    허백호 서기는 오옥선의 콧대를  삿대질하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보십시요. 이 악질 잔당 우파분자가 얼마나 완고하고 노골적이고 악질인가를! 저런 더러운 상욕으로 공산당을 모욕했습니다!”    허백호 서기가 목청을 돋우어 구호를 불렀다.    "반당 우파분자 오옥선을 타도하자!"    그러자 숱한 사원들 속에서 따라 부르느 구호소리가 소서구 골짜기에 울려퍼졌다.     오옥선은 그날 오후부터 날마다 우파분자라는 고갈모자를 쓰고 쉼마다 투쟁을 받고 노동개조를 햇다.( 283ㅡ285)      지금 같으면 너무나 한심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였다.. 다른 예를 더  들지 않더라고 위의 한가지 일만으로도 우리는 변태적인 반우파투쟁의 참상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헌데 아이니컬하게도 앞장에 서서 무고한 오옥선을 투쟁했던 허백호 서기가  문화혁명 때는 반당분자로 몰려 그도  역시 투쟁을 받는다.    다음으로 문화대혁명과 연관되는 폭로와 비판성이 강한 이야기 두   토막을  알아보자. 영수와 연분은 청년 부부간인데 반혁명분자로 몰려 노동개조를 한다. 감시가 삼엄한데다가 두 사람이 여자방 남자방에서 제각기  자다보니 둘이 단독으로 만날 기회가 없다. 어느 날 밤 그들은 요행 기회를 엿보다가   변소에서 가만히 성생활을 한다. 원문은 이러하다.      연분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면서 바가지를 든채 변소로 다가가 문고리를 쥐여 당기였다.   영수는 물앉아  벌써 바지를 내리였다. 연분은 변소 문고리를 단단히 쥐고 바지를 재빨리 내리웠다.   그들 부부는 그 비좁고 구린내 나는  변소애서 오랜만에 끓어오르는 청춘의 욕정을 불태웠다. 누가 들을까봐 거친 숨소리도 크게 쉬지 못하면서도 그들의 사랑은  기름을 친 마른 장작더미에 붙은 불처럼 열렬하고 강렬하게 활활 타번졌다. 계급투쟁을 기본 고리로 하는 세월에 가혹한 정치몽둥이에 얻어맞으면서도 날마다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인간의  기본 욕정만은 머리를  숙일줄 몰랐다. 부드러운 비단이불 속이 아니여도 폭신폭신한 침대위가 아니여도 좋았다. 그들 부부는 구린내 나는 변소에서도 그다지도 달콤하게 사랑을 나누눈 것이 아닌가!( 6권 178ㅡ179쪽)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문화대혁명의 잔인성과 가혹성과 더불어 사랑의 강렬한 힘도 보아낼 수 있다. 아래의 이야기는 반당분자로  몰려 로동개조를 마치고 돌아온 영발의 말인데 그의 말은 문화대혁명 당시의 보편적 정황을  알기에 족하다.    옥수수떡 한쪼각이거나 천정이 다 들여다보이는 멀건 강냉이죽물을 대충 먹고 낮에 쇠물을 녹이는 곧된 일을 해야 했다. 어떤 때에는 멀건 배추장물을 먹다가 쥐새끼마저 장물 그릇에 있어 먹다 말 때도 있었다. 허나 배고파 그런 장물도 쥐새기를 퍼 버리고 먹지 않으면 안 됐다. 배고파 고된 일을 삐치기 힘들었던 것이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강철생산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 날이면 또 노리개를 쳤다고 투쟁받거나 고문당하거나 지어 작은 감방에 갇혀 반성해야 했다. 생산임무를 완성했어도 날마다 밤이면 감방에서 끌리여 나가 감옥 회의실에 가서 숱한 앞에서 손을 들고 투쟁 받으면서 모택동 주석의 저작을 암기하고 사상을 검토해야 했다.    방중이면 너무 배 고파 배를 그러안고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어던 때에는 진짜 기여가는 쥐며느리를 다 잡아 입에 넣고 씹어먹기까지 했다. 허나 그래도 하루 노동개조와 사상개조가 끝나 감방 잠자리에 들면 제일 좋았다.    살창 너머 흘러드는 쓸쓸한 달빛을 볼 때면 고향에 있는 처자들이 생각이 나 고통스러웠던 것이다.,,,(6권 181쪽) 문화대혁명이 인간에게 가져다 준 참혹한 사실을 너무나 생동하게 그려 보이고 있다.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박영발처럼 억을하게 보황파나 반당반사회주의 분자라는 모자를 쓰고 곤욕을 당했는지 모른다.    다음으로 오늘의 상황을 이야가해 보자.   재난의 세월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고 개혁개방의  봄이 도래하지 온 나라에   전대미문의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사회는 평온하고 사람들은 잘 살기 시작했다. 우리 조선족 사회도 부를 창조하는 작업에 일떠섰으며 이전에 비해 삶이 많이 유족해졌다. 그러나 부를 얻은 반면에 병페도 생겼다. 유독 조선족사회만이 안고있는 일인데 부와 함께 위기도 생겼다.     수많은 조선족인들이 돈벌이를 위해 연해지구와 한국으로 대량 진출하다본니 조선족농촌마을은 황페해졌고 농촌학교들이 다 없어졌다. 너무나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돌비맹진하는 시대의 조류여서 막을래야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두고 우리 조선족사회의 공통체는 많이 고민하고 대책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작품은 조왕돌의 눈을 빌어 오늘의 현황을 다음과 같이 서럽고 안타깝게 진술하고 있다.       이전에 애들과 함께 뛰놀던 학교 운동장에는 소를 가닥 매놓아 풀을 뜯게 하는데 소동이 여기저기 절려 조심조심 발을 옮겨놓지 않으면 안 됐다. 참문과 문이 너덜거리는 옛날 자기 학급 교실 자리를 들여다보니 벽에 비물이 흘러 간장물 같은 것이 발려있어 꼴불견이였다. 돼지들이 우글거리며 주둥이로 돼지똥이 물렁거리는 땅바닥을 뒤집고 있었고 역한 돼지똥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른 교실자리를 들여다 보니 소똥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황소들이 영각하는가 하면 닭이 풍겨오르고 거위와 오리가 꽥꽥 거렸다.    마을에는 조선족청년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구나 조선족색시와 처녀들은 찾아 볼 길이 없었고 골목에서 뛰노는 애들을 구경할 수 없었다. 조선족들은 밭을 버리고 모두 한국에 나가 막벌이를 하고 있었다. …    마을에는 다만 한족 애들이 뛰노는 것은 드믄드믄 보였다. 마을에는 조왕돌으이 둘째매형 영만과 대대 당지부 서기 겸 촌주임을 하는 승길을 내놓고는 조선족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 수많은 사람들이 연해지구거나 한국에 나가 일하고 있었고  돈을 벌어 가지고 오면 연갈이거나 용정, 진수해에 새 집을 사고 살고 있는 실정이였다. 그러다나니 마을은 지괴호와 장학산 등 지주 자제들이 조선족 집을 사서 허물고 새로운 장원을 차리고 점령해버렸던 것이다. 일부 조선족들이 시내에서 살기 어려워 마을로 돌아오려고 해도  이젠 집을 지을 손바닥만한 땅마저 없어 돌아올 길이 전혀 없었다.(7권 328ㅡ329쪽)     이렇듯 오늘의 현실은 부끄럽기도 하고 처참하기도 하고 막막가하기도 하지만 현실은 어다끼지나 현실이여서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도 없고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다. 우리 조선족사회이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4.«울고 웃는고향»의 인물혁상에 대하여        «울고 웃는고향»은 7권으로 된 방대한 량의 대하소설이지만 조금도 지루한 감이 나지 않는데 여기에는 작품의 스토리, 길항구조, 여러가지 수사기법 등 다양한 요소들의 유기적인 작용도 있겠지만 인물형상도 아주 중요한 몫을 담당한다. 작품의 주제가 아무리 가치가 있다손치더라도 등장하는 인물의 형상이 미미하면 소설읽기가 재미없어진다. 우리가 «삼국지» 하면 관운장이나 ,장비, 조운, 제갈량을  떠올리고 «수호전» 하면 로지심이나 리규,무송을 떠올리는것은 사실은 인물형상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소설이 훌륭할수록 인물형상이 두드러지고 생생하다. 김장혁작가는 인물형상부각에서 남다른 재기를 보여주어 대소설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그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인물들은 긍정인물이든 부정인물이든 모두 한폭의 그림을  보듯이 선명하고  실감이 나 독자들의 구미를 돋구고 있다. 아래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들을 몇몇 알아보기로 한다.    ㄱ)   김병완의 인물형상:    김병완은 목수이며 천하장사이며 함흥촌 당지부 서기이다. 천하장사 김병완은 씨름을 잘 하고 목수재간  또한 대단하다. 고향에 있을 때 그는 친일지구,자위대대 대대장 한길수와 1:1로 싸워 눈깔을 하나 빼놓으며 목수  총도감을 맡은 후 둘째 아들 창준과 셋째아들 기준과 함께 스즈끼국장의 눈을 피해 목재에 구멍을 둟고 나무벌레를 집어넣어 우시장 경찰국 사무청사와 숱한 군사도로의 다리가 무너지게 한다. 핍박에 못이겨 간도 소서구에 도망하여 들어와 황무지를 억척스레 개간하고 농사를 지어 항일유격대에 쌀을 지원하며 맏아들, 항일유격대 대장 김성칠을 도와  자손들과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지학사 촌장을 비롯한 당지 친일주구들을 처단하고 가열처절한 항일투쟁을 직접 도와 나선다. 그는 또 당지 중국인 지주들을 포함한 한족들과 형제관계를 윤활하게 맺으면서 안거락업하려고 한다.    광북 후 조선 명청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 운주동과 영월동,가마골, 신흥동을 돌아보았지만 일본놈들이 산과 들의 황무지, 지어 밭이나 터밭에 몽땅 이깔나무를 심게 하여 밭이 하나도 없고 수림으로 돼 버린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한다. 게다가 고향사람들한테서 소외감을 느낀 그는 중국으로 돌아온다. 중국에서 지주를 청산하여 토지를 나눠주고 집을 지어준다. 그는 자손들을 이끌어 함흥촌을 두번째 고향으로 건설하려고   발 벗고 나선다. 그는 선후하여 함흥촌 촌장, 당지부 서기를 맡으며 어떻게 하나 마을사람들이 배불리 먹으면서 잘 살게 하려고 황무지도 일구고 경작법도 개진하면서 무진 애를 쓴다. 그는 의리가 있고 동정심이 많으며 백성들을 관심하고 진리를 견지하며 불의와 과감히 맞서  싸운다. 허나 반우파투쟁과 문화대혁명 등 정치운동 때마다 생산만 틀어쥐고 혁명을 하지 않았다는지 조선특무라든지, 일본놈 시대의 공사 총도감이였다는지 별의별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쟁을 받으며 눈물겨운 삶을 살다가 비참하게 운명한다.      ㄴ)김상순의 인물형상:    김상순은 김병완의 손자이다. 그는 항일투사이며 함흥촌 민병대장이며 민주련군 기관총 반 반장이며 주제2기 당교졸업생이며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과 창설자이며부국장이며 중국인민지원군 연장이며 군복공장 공장장이며 사단 비서과 과장 겸 사단장 통역이며 후임 함흥촌 촌장 당지부서기, 생산대 정치대장이다.    광복 후 이계삼과 김병완의 영도아래 토지개혁에 발 벗고 나서서 지학사 등 중국 지주 청산에 한몫을 하며 토비숙청, 해방전쟁, 6.25전쟁에도 참가한다. 혁혁한 공훈을 세운 그는 당 간부로 양성되며 공안국 부국장까지 된다. 그러나 효성심과 초심에 의해 부모를 모시고 고향을 건설하려고  함흥촌에 돌아와 당지부 서기 김병완 할아버지를 도와 에 힘쓰며 대약진 시기 어떻게 하면 마을 사람들을 잘 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황무지를 개간하고 논을 풀지만 결국 황종연과 이흥수 따위들의 훼방으로 군중들의 생활난을 해결하지 못하며 되려 문화혁명시기 황무지를 개간한 것은 자본주의 싹을 키운것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쟁을 받는다. 투쟁의 앞장에는 언제나 이흥수가 있다. 개혁개방시대에 함흥춘 후임 당지부 서기를 맡은 그는 도거리책임제에 대한 인식이 결핌하여  자본주의 구 사회를 복벽하지 않나 오해한다. 나중에는 자신도 치부해보려고 애쓴다. 그는  아들의 성장에서 자신의 부활을 꿈꾸며 쓸쓸한 간도의 향야에서 조상들의 산소가 묻힌 고향을 한없이 그린다. 상순에게도 한단락의 간단한 사랑에피쇼트가 있다. 총각시절 그는 한 마을에 있는 춘실이라는 처녀를 열렬히 사랑해 임신까지 하게 되지만 아버지 김기준이 이미 결정해 놓은 명옥이라는 처녀가 있어 마음 내키지 않지만  춘실과 갈라지고 만다. 지원군 연장으로 조선에 가서 군복공장 공장장질을 할 때 식당의 주임으로 있는 조선처녀 허영희가 상순을 사모한다. 영희는 상순을 꾀여 김치움에 들어가 애정을 무르익이려 한다. 상순도 마음에 없지는 않았으나 조강지처를 생각하고 겨우 자신을 억제한다.그래도 백영희는 단념하지 않고 유머적으로 김치생각이 나면  김치움으로 오라고 말한다.        ㄷ)힌길수의 인물형상:    한길수는 작품에 등장하는 부정인물이다. 필자는 적지 않은 소설들을 보아왔지만 한길수와 같은 악한 인물은 본적이 기본상 없다. 그는 독자들이 한없이  증오하는 극악무도한 인물로 나오고 있다. 한길수는 청년시절 때부터 서당에는 다니지 않고 못된 짓만 하기 시작했다.  나무장사군들의 나무단에 불을 지르지 않으면 나무꼬챙이로 어린애들의 언 귀를 짱짱 쳤다. 뒷간 옹이구멍으로 여인들의 엉뎅이를 훔쳐보지 않으면 똥구덩이에 돌멩이를 들이뜨려 똥벼락을 맞게 하기도 하였다. 막내로 자란 그는 점차 돼지 심술을 꽉 묶어놓고 만든 고약한 심술쟁이로 변해갔다. 똥 누는 애를 물앉혀 놓기도 하고 방아호박에 똥오줌을 싸 넣기도 하였으며 되는 호박에 말뚝을 박지 않으면 칼로 호박껍질을  동르랗게 도려내고 호박속을 파낸 후 똥을 싸 넣고 호박껍질  덮게를 살짝 덮어놓기도 하였다.    일본 놈들이 명천에 온후부타는 파출소 소장 스즈끼의 개다리로 되여 고향사람들을 못 살게 굴었다. 그는 힘이 세고  선동력이 강한 김병완을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 하려고 별의별 수단을 다 부리지만 김병완이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자 갖은 방법을 다 하여 김병환을 해치려 한다. 그는 또 무서운 색마여서 수시로 기생들을 끼고 멋대로 즐기는가 하면 빚값 대신 은녀를 부엌데기로 데려다 놓고 간음하려다거  실패한다, 한길수는 김병완과 싸우다가 한쪽 눈을 잃는다. 대 악질분자 한길수는  진달래, 용천 등 반일 독립군에 의해 처형당한다.     ㄹ)김용천의 인물형상:    김용천은 작품에 그리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의 최후는 한 인간의 인성에 대해 적지 않은 계시를 준다. 작자는 원쑤라고 하여 모두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의 몸에 남아있는 한 가닥의 인간성만은 인정해 주고 동정해 주고 있다. 그는 비록 이념은 다르지만 진달래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일제를 한없이 증오한다. 특히 용천이라는 인물은 이 소설에서 동족상쟁을 폭로하는 면에서도 큰 몫을 감당하고 있다.     김용천은 경상남도 경주시의 대 지주 아들이며 조선독립군 중대장, 북만항일유격대 대장, 한국군 연대장, 장백산 락하산특무소조 조장, 등 여러가가  직무를 가진 인물이다. 동북에서 항일하던 중 일본이 패망하자 3.8선을 넘어가 국군에 참가하여 연대장이 된다. 서울에서 우연히 일제주구 한길수의 두 아들 한철주와 한선주를 발견하고 비밀리에 뒤를 쫓아 한 기생집에서 파이프로 두 친일주구를 때려죽인다. 한 무명고지 전투에서 미군이 부상당한 조선인민군 여전사을 강간하려고 할 때 용천이 미군 병사를 쏜다. 용천은 여전사가 고통을 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여전사를 쏴 죽인다. 이 전투에서 우연히  항일당시 친밀한 전우였던 두 사람  성칠과 용천이 조선인민군 연대장과  한국군 연대장 신분으로 만난다.   격투 중 용천은 성칠의 총에 맞아 어깨에 부상을 입고 성칠은 용천의 총에 희생된다. 그 때 용천은 ” 형,용서해. 내 살아남으려니까 형을 죽여야 했어. 내 나라와 고향을 지키고 내 팔간 집을 청산 받지 않으려니가 형을 죽여야만 했소. 잘 가. 구천에 가면 우리 진짜 친형제처럼 살자. 허나 아무리 형제라도 색시와 돈은 분명히 하자고." (울고 웃는 고향 5권71쪽) 그리고는 곁에 있는 병수에게 또 이렇게 말한다. "나와 성칠대장은 항일 전쟁 때 친형제와도 같은 전우였네. 우린 이번에 사내답고 군인답게 결투를 벌렸네. 자넨 날 욕하지 말게. 서로 자기 살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동족상잔의 결투였네. " (5권 72쪽)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숨을 거둔 성칠의 눈을 피 묻은 손으로 감겨준다. 용천은 국군의 명령을 받고 비행기를 타고 장백산에 침투하여 함흥촌에서 정찰하던 중에 체포된다. 그는 이 기회에 행방불명이 되였던 진달래를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되려 대의멸친하는 진달래에  의해 그는 체포된다. 그는  신념과 이념이 다르기에 죽음을  당하게 된다. 김용천은 결박당한채 사형장에 끌려가면서도 머리를 쳐들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남쪽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그는 사형직전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경주를 보우해 달라 !삼촌, 진달래" (울고 웃는 고향 5권 131쪽)하고  웨친다. 경주는 그의 아들이다. 작자는 용천을 죽이면서도 그의 인간성에는 어느정도의 따스한 손길을 보내주고 있다.       ㅁ)이흥수의 인물형상:    이흥수는 중국인민지원군의 패장이였고 함흥촌 강지부 선전위원이고 치보주임이이다. 간음죄와 살인죄로 총살당한다. 그는 반우파투쟁과 문화대혁 때 숱한 죄악을 저지른 극악무도한 인간이다. 소설의 갈등과 모순에서 이흥수는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이흥수는 황종연과 단짝이 되여 노간부들인 이계삼과 허영주,,심지어 자기를 입당시킨 허백호마저 억울하게 우파분자로 몰아 비인간적으로 혹독하게 비판하고 투쟁하고 해친다. 당시 공사 서기였던 허백호가 김송선을 강간하려고 덤비는 황종연을 돌멩이로 까부신다. 강간행위를 제지시키고서도 허백호는 황종연과 이흥수에 의해 억울하게 살인혐의를 쓰고 5년동안 옥살이를 한다. 박성근이 실사구시하게 몇마디 했다고 우파모자를 씌워 한뉘 고통속에서 시달리다가 사망한다. 반란파 두목인 이흥수는 청백한 노간부와 사원들에게 반혁명분자,우파분자 모자를 마구 들씌워 투쟁하고 박해한다. 황종연과 이흥수는 투기적으로 입당한 정치야심가들이다. 이들은 정치투기를 일삼으면서 야합해  천방백계로 대대 당지부서기이며 항일 노간부인 김병완을  박해한다. 이흥수는 일파인 반란파 두목 모원신의 수하이며 악질반란파 두목이다. 이흥수는 노간부들을 박해하고 무리싸움을 주도했으며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때리고 공공재산을 짓부셨다. 이흥수는 남녀 작품도 문란하다. 하향간부 박윤희를 여러차레 위생소에서 강간했으며 김송선이 자기 야욕을 거절한다고 위생소에서 몰아내고 중노동을 시킨다. 이흥수는 지주의 딸 장미련을 장시기 강간 간음한다. 그는 유명한 색마이다. 이흥수의 딸 미선이마저도 여러 사람 앞에서 이렇게 소리친다. "우리 아버지는 늙어도 거시기가 대단해! 누가 당해? 저기 미련 아주머니를 거의 날마다 했다. !허허허, 우리 아빠 정말 대단한 숫컷이야 히히히" (울고 웃는 고향7권 663쪽) 흥수는 또 후안무치하게도  지주, 국민당 토비, 특무인 장충국을 끌여들여 자기 딸 미선과 살게 해 애까지 낳게 한다. 그는 변태적인 인간이다. 자기가 솔선하여 장충국을 자기 딸한테 붙혀 놓고서도 후과가 두려워 장충국을 살해하고 면도칼로 장충국의 불알을 떼여먹는다. 장미련이 임신한것을 알고는 남의 눈이 무서워 칼로 미련의 배를 가르고 애를 꺼내 던져버린다. 이흥수는 결국 간음죄 살인죄로 총살당한다.       5.적재적소에 놓인 환경묘사       소설에서 환경묘사를 사용하는 이유는 소설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소설의 주제를 암시하는데 있다.  «울고 웃는 고향 »은 거의 매권마다 환경묘사들을 적제작소에 앉혀놓음으로써 지루한 기술을 피하고 주제를 에둘러 보여주며 가독성을 높혀준다. 김장혁 작가는  환경묘사를 아주 능란하게 다를줄 아는 사람이다. 성칠이가 곰을 잡아와 온 마을이 잔치를 벌리는데 그 즐겁고 흥겨운 장면을 다음과 같은 묘사로 개괄하고 있다.    달빛이 깔린 시골마을에 맑고 부드러운 피리소리가 북장구에 맞춰 곱게 울리였다. 그 은은한 피리소리와 가락 맞게 울리는 북장구소리가  밤 정적을 조용히 깨우며 오래도록 메이리쳐갔다. 물레방아쪽으로 벽계수가 달빛과 구름을 싣고 피리소리에 맞춰 촐랑촐랑 노래하면서 흘러갔다. 마당 한가운데 피여놓은 우등불도 흥겨워 가을미풍에 너울너울 춤을 추고 은빛 달님도 마당에 내려와 색시들과 함께 아름다운 선률에 도췌돼 예쁜 얼굴로 웃음짓고 있었다.( 1권 26쪽)    끼무라국장은 공사장에 온 인부들의 삯전도 제대로 주지 않고 집에도 못 가게 한다. 인부들은 월급도 못 받은데 집에 밭에 멧돼지들이 들이닥쳐 곡식을 해칠까바근심이 태산같다. 그들의 이러한 여러가지 근심을 다음과 같은 환경묘사가 대신해주고 있다.      퍼렇게 딩딩한 가을 하늘이 이 땅덩어리를 칭칭  둘러감았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공지의 가을하늘은 넓었지만 끼무라의 서슬푸른 군도 아래 찜통 속처럼 숨이 막힐 듯이 좁고 갑갑했다.      을씨년스럽게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덜어졌다, 멀리 바라보이는 산봉우리들은 변덕스러운 조화를 부리는 비구름 속에 숨박꼭질을 하듯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는 다시 나타나군 하였다… 하늘에서 날아지나는 기러기 떼들의 애초로운 울음소리가 쓸쓸하게 들리어왔다.  마치 기러기들도  인부들의 가긍한 신세를 동정이나 하는듯이 구슬프게 울면서 줄지어 쓸쓸히 날아지나갔다.( 386ㅡ387쪽)    중국은 한때 극좌로선의 영향으로 인민공사,대약진 반우파투쟁이라는 정치폭풍이 불면서 전대미문의 고통을 겼게 된다. 작자는 인민공사,대약진, 반우파투쟁이 도래했음을 다음과 같은 환경묘사로 대체하고 있다.      중국의 대지에는 서북풍이 먹장구름을 몰아왔다. 산과 들판을 휍쓸다가 야수무리처럼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며 마을에 덮쳐온 서북폭풍은 조용하던 마을의 초가집 이영을 홀딱 벗겨갔고 굴뚝모서리에서 휘파람을 불면서 창문을 두드리고 창문마저 핦아갔다. 천지를 뒤엎을 듯이 으르렁대는 무서운 퓩풍이 산과 들을 휩쓴다. 칼날같은 퓩풍은 사람들을 못살게 굴더니 비구름을 몰아왔다. 뻘건 불뱀이 먹장구름이 뒤덮힌 하늘을 짜개며 전쟁마당의 포화의 파편 속 같은 매지구름 속에서 대지를 향해 채찍질 했다. (5권 257쪽)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이 묘사는 정치혼란의 위험성과 비극성을 극대화로 집약하고 있다.    문화대혁명과 유관된 환경묘사로는 아래와 같다.    감때사납게 불어치던 눈보라가  동장군과 함께 물러가 사람들이 좀 살기를 펴고 살아갈까 했다. 그러나 하늘에 먹장구름이 뒤덮혀 오며 마을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농사꾼들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밭으로 나가는데 그놈의 하늘은 변화가 무쌍하고 심술궂었다. 맑은 하늘에서 불비를 퍼부어 대지를 불태우며 곡식을 시들어 죽게 하다가도 변덕스레 먹장구름을 몰고 와서 일하는 농사군들에게 생벼락을 내리치고  우박을 퍼붓고 소낙비를 퍼부었다. 농사군들은 그저 일방으로 변덕스런 하늘에 당하기만 하면서 하늘을 원망하며 살아야 했다.(6권 40쪽)    숱한 반란파들의 얻어맞았는지 마을 상공의 먹장그름에 구멍이 펑펑 뚫렸다. 저쪽 패용천산과 칼산 쪽에는 벌써 먹장구름에 뒤덮혀 어듬이 슬금슬금 기여들어와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기막히고 침침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하늘이였다. ( 6권 49쪽>      위의 문장들  중 환경묘사들에서 나오는 과 은 모두 은근하게 문화대혁명을 빗대고 한 소리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김장혁 작가가 사용하는 환경묘사들은 모두 하늘과 바람들에 의거한다는 점이다. 김장혁의 소설에서 은 과  함께 짝을 지으면서 본의 그 자체를 뛰여넘어 시대상을 대변하고 있다.  이렇게 잘 된 묘사들은 직설을  하기보다 문학성이 한결 높아지고 음미의 여지가 있고 전반 문장을 이해하는데 기여하고 가독성도 획득된다.         6.작품에서 보이는 일부 문제점       «울고 웃는 고향»은 7권이나 되는 대하소설이다 . 이런 방대한 편폭에서 완전을 기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다. 소설에는 일부 미흡한  점들이 약간 보인다.     우선, 년호(年號)에 대한 문제이다.    «울고 웃는 고향»제5권 75쪽에 다음과 같은  판결서가 나온다.      본  분주소에서 조사한 결과 패용천사촌 지학사는 민국 24년 4월 25일에 패용천산 앞에서 괭이로 함흥촌의 김경칠을 찍어 륵골 서너대 부러뜨렸다. 이 사실을 송학정이 증인으로 나서 증명했다. 지학사는 사흘 내에 김경칠에게 치료비로 40원을 줘야 한다.           해동분주소               민국 24년 5월 7일((«울고 웃는 고향»5권 75쪽)        장개석의 국민당정부에서는 연호를 민국이라고 부르고 만주국에서는 년호를 1932년부터 1933년까지는 대동(大同)이라 불렀고 1934년부터는 강덕(康德)이라고 불렀다. 혹은 일본천황의 년호를 따서 소화 몇년이라고 불렀다. 민국 24년 5월 7일이면 기원 1935년이며 위만주국 년호로는 응당 강덕 2년이 되어야 야다.     다음으로는 무속과 불교에 대한 혼동이다.    소설에 무당한테 가서 굿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무당집을 찾아가는것을 사찰에 간다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 사찰은 불교의 건물을 의미한다. 또 무당이 굿을 하는 장면을 보면 불교언어와 무당언어가 한데 섞여 나온다.      “태극천상 원이하니 사방이여, 사바, 사바, 사방이여, 어쩜 나비라도 내려앉을 꽃 같은 나이에 저렇게 몹쓸 병을 어린 창생에게 누었나아까.화음청주 나미아불타불,관세음보살 굽어 살피옵소서. 불쌍한 저 창생을 해치지 말고 살려 주옵소서.관세음보살이시여,남자귀신이면 지고 가고  여자귀신이면 이고 가옵소서.나무아비타불,관세음보살. 여린 창생을 보좌해 주옵소서. 화음청주, 화음청주…»(«울고 웃는 고향»2권 14쪽)      다음으로 항일유격대에 관한 이야긴데 당시 상황과는 좀 모순이 되는듯 싶다.    이런 구절이 있다.      대일본 장병 여러분: 저의 관할구역 일성촌의 장충국과 감호, 김형내는 전선에서 유격대와 싸우는 대일본 제국 장병들의 노고와 부상병들을 헤아려 특히 약과 소금을 가지고 위문하러 갑니다. 이에 많이 도와 줄 것을 바랍니다.                                   용드레분주소 소장 스즈끼희로시마                                        1944년 12월 24일(«울고 웃는 고향»4권 73쪽)       이 소개신을 쓴 날자는 1944년도 12월 24일이다. 독쏘 전쟁이 폭발하자 1939년부터 동북에 있던  항일유격대는 거의 다가 쏘련으로 건너가 독일군과 싸웠고 사실상 동북에는 항일유격대가 없었다.     무려 7권이나 되는 장편대하소설에서 이런 미흡한 점은 옥에 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여기에서 졸고평론에 마침표를 찍으려고 한다. 졸고평론에 미흡한 점이 많으리라고 생각하며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우리 조선민족에게 훌륭한 선물을 준 장편대하소설 작가 김장혁선생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2022년 8월 12일 연길에서 김몽이 쓰다.        (주:저명한 평론가 김룡운선생님은 심한 요추간판탈출로 몇번이고 연길시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으러 다니면서도, 허리 아파 오래 앉아 있기 어려운 형편에서도 김장혁작가의 22권이나 되는 장편소설을 몽땅  몇번씩이나 메모하면서 읽은 후 이 문예평론을 써냈다.     김룡운선생님은 이 장편평론을  2022년 9월에 연길에서 열린 "김장혁소설연구세미나"에서  선독했으며  "송화강" 잡지 2022년 제6호에 발표했다.     나는 김룡운선생님의 평론가로서의 감동적인 지극정성과 책임감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며  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소설을 계속 창작해 나갈 것이다.)
444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3) 무당의 굿 김장혁 댓글:  조회:1186  추천:1  2024-06-05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권         제7장 흑야              4. 무당의 굿       맏아들 경숙이가 하늘과 땅에 비는 불쌍한 정경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던 최구장은 무당을 청해 천지신명에게 빌기로 했다.   (며느리야, 내가 너를 위해 할수 있는 일이란 이것 밖에 없구나. 자고로 인생 팔자나 목숨이나 모든 것이 하늘이 정해준 것이오니 하늘의 명에 기탁할 수 밖에 없다.)    “여보, 당신 무당을 청해오오. 우리 무당을 청해 며느리를 위해 최후노력을 해보기오.”   노친 리성단은 이제껏 영감의 말이라면 오직 순종만 해왔지만 이번만은 자기 생각을 말하고 싶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끝내 목구멍을 열고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여보, 무당을 청하기보다 신설동의 관준 사돈어른을 청해 저 팅팅 부어오른 머리의 어혈을 뽑아볼까요? 관준 어른은 이 부근에 이름난 의원이 아니고 뭐예요?”   충청남도 서현에서 놀러 왔던 성단의 남동생 리병호도 충고했다.   “옳아요. 매형, 그깟 무당을 청해 뭘 해요? 의원을 청해 병을 보이는 게 낫을 거 같아요.”   최구장의 처조카 리철근도 말리였다.   “아까운 돈을 무당을 줄게면 병 치료나 하세요.”   “관둬!”   최구장은 기어코 그들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너희들이 뭘 알아서 끼어드나? 사람의 목숨은 하늘이 정해준 거야. 무당을 청해 하늘에 비는 수밖에 없다.”   성단이나 남동생은 모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최구장은 노친 성단을 보고 재삼 부탁했다.   “어서 사찰에 가서 무당을 청해 오오.”   누구의 명이라고 거절하겠는가.   리성단은 은전을 몇 개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맏아들 경숙과 함께 무당을 청하러 떠났다.   최구장은 경인과 경민이 등을 시켜 집안의 돈을 다 모아가지고 소 한 마리를 사다 잡게 했다. 그 다음 바깥에 대국가마를 걸고 소고기를 저며 앉히고 불을 때 끓이게 했다.    한편 허리 꼬부장한 성단과 눈물범벅이 된 경숙이 사찰로 가는 도중에 별 희한한 변을 당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들은 운주동을 벗어나 마을동쪽의 산기슭 길 굽인 돌이를 지나려는 때였다. 헌병소대장 나까노라가 지휘도를 거들거리며 검정가죽장화를 번쩍거리며 거들먹거리면서 통역 류강철과 함께 오다가 딱 마주쳤다.    “쏘까, 나니에 이꾸(어데로 가)?”   최구장 댁과 경숙이 주춤 멈춰 섰다.   “에이, 노친, 어디로 가?”   나까노라의 말을 통역해 주자 경숙은 머리를 숙였지만 리성단은 성을 냈다.   “네 이놈, 넌 어미도 없이 자랐니? 제 어미 같은 사람보고 노친이라니? 내가 그래 네 여편네라도 돼?”   “뭣이? 어째? 감히 황군한테 대들 텐가?”   리성단은 손으로 삿대질하면서 류강철을 욕했다.   “너 이 버릇없는 놈 봐라. 네놈이 우리 영감한테서 천자문을 배우던 때가 어제 같은데 스승 댁과 반말을 쓰다니? 배은망덕한 놈 같은 게 잘 되는가 봐라.”   “나니(뭣이)? 나니(뭣이)?”   “예. 이 노친은 내가 자기를 욕했다고 성을 냅니다.”   류강철의 일본어로 하는 말에 나까노라는 머리를 끄덕였지만 성단과 경숙은 뭐라고 지껄이는지 알아듣지 못하고 갈 길을 가려고 앞을 막아선 그자들을 에돌아 가려고 했다.    "빠까(바보), 아이사쯔오 시나싸이(인사말을 하게나)."   드디어 최구장 댁 모자가 허리를 굽혀 인사하자 나까노라는 또 자기들이 만들어낸 면례 말을 암송하라고 강요했다.   면례 말이란 일본 놈들을 만나면 해야 되는 인사말 비슷한 것이었다.    “인사했으면 됐지. 면롄지 뭔지 우린 모른다. 맏며느리가 아파 사찰에 급히 갔다 와야겠는데 앞길을 막지 말구 피해라.”    그러나 류강철은 피할 염을 하지 않고 오히려 앞길을 막으면서 을러멨다.    “면례 말을 암송하지 못하면 소대장이 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럼 자네 배워주게나. 빨리 가게 말이야.”   류강철은 최구장 댁 앞에서 허리를 굽히며 “예, 예.” 하고나서 정식으로 배워주려고 들었다.   “고꼬노 진민노 이찌 와레라와 닛뽄노 덴노노 진민니 나리(이곳 백성의 하나인 우리는 일본 천황의 백성으로 된다).”   그 면례 말은 진짜 우리 조선 사람들을 일본의 망국노로 만드는 식민지교육의 한 단락이었다.   최구장댁은 굽은 허리를 꿋꿋이 펴고 물었다.   “죽으라는지 살라는지 모를 소릴. 어떻게 암송해? 엉? 집에 앓는 사람을 눕혀놔서 갈 길이 바빠. 듣고도 모를 소릴 할 새 있냐?”   “바 새끼, 못 간다, 못 가!”    나까노라는 벌컥 성 내면서 기어이 암송시키라고 류강철을 보고 을러멨다.   그러자 류강철은 일본 상전 앞에 허리를 굽히더니 최구장 댁한테로 홱 돌아섰다.    “지금 어느 때라고 아직도 면례 말도 모르고 어디로 간다고 그럽니까? 내 말을 들으시오. 한일합방 후 조선은 이미 일본에 속했단 말입니다. 그러니 일본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면례 말을 암송하라면 암송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이담 길도 못 다닙니다.”    최구장 댁은 억이 막혀 하얀 머리를 홰홰 돌리다가 “그래 면례 말이 무슨 뜻이냐?” 하고 물었다.   류강철은 배를 쓱 내밀었다.   “이런 말이요. ‘여기 백성의 하나인 우리는 일본의 이곳 백성으로 된다.’는 말입니다. 알만 합둥?”   최구장 댁은 류강철을 마구 밀면서 사정했다.   “어이구, 죽어가는 며느리를 두고 하루 새에 일본 백성이 되라니, 될 수 있냐? 원, 이담 암송할 테니 이번엔 보내다오.”    경숙도 나서 빌었다.   “자네 이전에 아버지 제자인 옛정을 봐서라도 일본 사람과 말해주게나. 어떻게 알아듣지 못하는 면례 말을 이 자리에서 암송하겠나?”   그러나 류강철은 도리머리 질 했다.   “안 되오. 꼭 암송하구야 갈수 있소. 벌금 10원을 내거나 귀 쌈을 피나도록 맞지 않고선 못 가오.”   “어이구, 이 일을 어쩌느냐?”   최구장 댁은 무릎을 꿇고 물앉더니 한참 후에 일어나 외워보겠다고 일어섰다.   “음, 좋소. 암송하오.”   최구장 댁은 마른 침을 꼴깍 넘기더니 나까노라와 류강철을 엇갈아 훔쳐보더니 입을 열었다.   “꼬꼬댁 꼬꼬. 개 똥 같은 지지미가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 미운 사람이나 콱 채워라. 자, 다 외웠으니 자네 통역을 잘해주게나. 우리 가게 말이야.”    류강철은 어처구니없어 입을 딱 벌리면서 웃었다.   그는 나까노라의 눈치를 흘끔 쳐다보고는 손으로 입을 꽉 싸쥐었다.   옆에서 듣던 나까노라는 류강철의 배때를 툭툭 치면서 "나니까(뭐야)?" 하고 물었다.   류강철은 너무 우스워서 눈물이 글썽해졌고 코 물까지 흘러내려 손수건을 꺼내 닦고 나서 말했다.   “참, 묘한 조선말로 암송하였지요.”   “소우까(그래?). 요로씨이(좋아).”   그들이 웃고 나서 돌아보았을 때에는 최구장 댁은 벌써 베치마를 팔락이면서 저 멀리 굽인 돌을 돌고 있었다. 그 뒤로 경숙도 종아리에 바람이 일게 가 버리고 있었다.   이튿날 사찰에서 온 요염하게 생긴 무당이 최구장 댁 모자의 안내 하에 운주동 최구장의 집에 나타났다.   신선인 듯이 하얀 비단으로 아래위를 감고 누런 비단으로 머리카락을 질끈 동인 무당, 요염하게 화장한당이 나타났다.   뚱뚱한 얼굴, 분을 너무 처 발라 하얗고 살진 얼굴, 복숭아얼굴에 짙은 버들 잎 눈썹, 큼직한 쌍까풀눈, 축 늘어진 두 볼의 살은 꽤나 요염하면서도 위엄스러워 보였다.   최구장이 마중 나가 허리 굽혀 인사했다.   “무당 마나님, 먼 곳에서 오시느라고 수고 많았습니다.”   무당은 왼손을 가슴에 대고 허리 굽혀 인사를 받더니 오른 손에 허리춤의 칼 자루를 잡고 하얀 치마 자락을 날리면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살펴보더니 물었다.   “환자는 어데 있어요?”    최구장 댁과 둘째며느리 어금이 무당을 안내해 정주간에 들어갔다.   무당은 합장하고 환자 옥실의 관상을 여기저기 살펴보더니 염불하듯 중얼거렸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여. 그대의 귀여운 딸이 몹쓸 병에 걸렸나니 부디 구해주옵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뒤이어 무당은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한참 꽹과리를 챵챵 두드려대면서 퐁퐁 뛰며 춤을 마구 춰댔다. 뒤이어 무당은 허리춤에서 서리발 치는 칼 두자루를 쑥 빼들어 휙휙 휘두르며 칼춤을 추었다. 무당이 휘두르는 칼날에서 서리발친다. 두 칼날이 마주 치며 불꽃이 튕긴다.   " 귀신들아, 칼을  받아라! 남자귀신, 여자귀신 다 칼에 잘려 날아나라! 남자귀신이면 지고 가고 여자 귀신이면 이고 가라! "   무당은 정점 목소리를 높여 굿을 했다.    “창생이여, 화음청주, 일어나. 화음청주, 이런 몹쓸 병에 걸리다니. 화음청주, 귀여운 이 딸은 너무 젊습니다. 화음청주, 아직 천당으로 갈 때는 아닌뎁쇼. 화음청주, 화음청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화음청주, 화음청주.”   무당의 굿은 무속인의 굿에다가 중놈의 염불을 섞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 진가를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무당은 옥실을 마주하여 합장하고 허리 굽혀 인사한 후 사뿐사뿐 걸어 나와 미리 무어놓은 나무 대에 올라가 남쪽을 향해 똑바로 섰다. 최구장 내외를 비롯한 온 집 식구들은 모두들 남쪽을 향해 꿇어 엎드렸다.   요염하게 치장한 무당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북채를 거머쥐더니 둥둥 당 둥둥 당 북을 절주 있게 쳐댔다. 그러자 부근의 숱한 구경꾼들이 몰려와 무당이 굿을 하는 것을 구경했다.   이날 따라 하늘이 유난히 맑고 구름 한 점 없었다. 저 멀리에 까마귀 떼가 날아와 백양나무 위에 앉아 까욱, 까욱 처량하게 울어댔다.   무당은 북치기를 멈추더니 머리를 풀어헤치고 남쪽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휘젓더니 합장배례하더니 두 눈을 내리깔고 소리높이 굿을 하기 시작했다.   “태극천상 워니 하니 사방이여, 어쩜 나비들도 내려앉을 꽃 같은 나인데 저렇게 몹쓸 병을 여린 창생에게 주었나이까. 화음청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굽어 살피옵소서. 불쌍한 저 창생을 해치지 말고 살려주옵소서. 관세음보살이여, 남자 귀신이면 지고 가고 여자 귀신이면 이고 가옵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여린 창생을 보좌해주옵소서. 화음청주, 화음청주…”   무당은 한참 굿을 하다가 북을 둥둥 당 둥둥 당당 당 당 당 치었다. 무당은 북치기를 멈추더니 삶은 소고기점을 여기 저기 쥐어뿌리면서 뭐라고 중얼거렸다.   마을의 애들은 소고기를 주어가느라고 야단쳤다.   무당은 회초리로 애들을 찌를 상하며 가리키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저 불충스런 못된 놈 새끼들에게 천벌을 내리옵소서. 제물을 더럽히는 이단자들에게 날벼락을 내리옵소서.”   웬 일인가?   좀 전까지만 해도 맑던 하늘에 먹장구름이 뒤덮여오더니 번개가 번쩍이고 날벼락이 마구 쳤다.   어른들은 자기 집 애들에게 내리는 천벌이라고 여겼던지 소고기를 줏지 못하게 말려가지고 집으로 바삐 달아났다.   최구장은 무당이 아주 영험하다고 믿었다. 그는 맏며느리가 살 것 같아 무당에게인지 남쪽하늘에인지 꾸벅꾸벅 연신 절을 올렸다. 그러자 온 집 식구들이 장대처럼 쏟아지는 소낙비를 무릅쓰고 모두 최구장을 따라 절을 꾸벅꾸벅 올렸다.    무당은 염불이 영험한 것 같아 소낙비를 무릅쓰고 나무 대에 풍덩 꿇어앉아 눈을 딱 감고 합장배례 한 채 점점 소리 높여 염불하면서 치성을 드렸다.    뒤이어 무당은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비바람을 무릅쓰고 한참 꽹과리를 챵챵 두드려대며 퐁퐁 뛰며 춤을 마구 춰댔다. 뒤이어 무당은 허리춤에서 서리발 치는 칼 두자루를 쑥 빼들어 휙휙 휘두르며 칼춤을 추었다. 무당이 휘두르는 칼날에서 서리발친다. 두 칼날이 간혹 맏부딪치며 댓살 같은 소낙비 빗방울사이에서 불꽃을 튕긴다.   " 귀신들아, 칼을  받아라! 남자귀신, 여자귀신 다 칼에 잘려 날아나라! 남자귀신이면 지고 가고 여자 귀신이면 이고 가라! "    최구장과 경숙이가 바삐 기름종이를 바른 우산을 들고 올라가 무당을 비바람 속에서 가리어주었다.   한참 후 무당은 천천히 일어나 소고기점 칼로 저며 내 여기저기에 쥐어뿌렸다. 그리고 소고기점을 저며 간장에 찍어 먹으면서 집식구들도 굿을 한 제물을 먹으라고 주었다. 최구장과 경숙은 먹을 생각이 없었지만 굿이 영험하지 못할까봐 억지로 조그만 소고기점을 눈물과 함께 삼키였다.    무당이 비바람도 무릅쓰고 정성을 다해 굿을 했다고 최구장은 무당에게 병완이가 부조로 가져온 금덩이에서 큰 것을 골라 주었다.    최구장네 일가는 무당도 청해 정성을 다해 하늘에 굿을 하면서 빌었고 경숙은 관준의 귀띔대로 행여나 하고 오줌을 받아 끓여 옥실의 머리를 씻어주고 닦아주었다. 하건만 그들의 정성과는 달리 옥실의 머리는 조금 내린 것 같았지만 온 몸이 팅팅 붓기기 시작하고 살에서 찐득찐득한 땀인지 물인지 내배였다.    한 열흘이 지나도 옥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로 저고리도 입히지 못할 정도로 온 몸이 팅팅 부어올랐다. 경숙은 하루 삼시로 대    소변을 받아 냈다. 피가 섞였는지 벌건 소변을 받아내는 경숙은 요강에 눈물 방울을 뚝뚝 떨어뜨렸다.   경숙은 날마다 못해가는 옥실을 보고 구들에 물앉아 한숨을 구들 고래 꺼지게 후~ 내쉬었다. 옥실은 어떤 때에는 정신이 드는지 간혹 눈물을 흘리었다. 친인들을 두고 떠나가기 싫어 흘리는 생이별의 피눈물이었다.   그럴 때면 경숙은 다가가 앉아 옥실의 손을 쥐여 흔들면서 “여보, 일어나오. 정신 차리오.” 하고 넉두리를 하듯 말했다.   어린 오누이 봉인과 명옥은 엄마의 한 팔씩 쥐어당기면서 “이차, 이차. 엄마, 일어나시오. 엄마~” 하고 울었다.   불쌍한 애들이 하는 모양을 보고 최구장 내외는 주글주글 주름살이 진 눈 확에 눈물이 글썽해 안질이 희미해졌다.   “엄마, 일어나, 응? 일어나!”   봉인은 엄마 손을 잡고 당기면서 울었다. 그러나 셈이 들지 못한 명옥은 엄마가 살아났다고 좋아 퐁퐁 뛰면서 놀았다.   옥실은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관준을 청해 맥을 보이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최구장을 조용히 한쪽구석에 불러다가 나직이 말했다.   “해지기 전까지 넘길 것 같지 못합니다. 빨리 후사를 준비하시오.”   그러자 최구장은 돌아서서 어깨를 들먹였고 경숙은 손으로 구들을 치면서 울었다. 그러나 숨이 지지 않은 옥실이 놀랄까봐 소리치지 못하고 흑흑흑 흐느껴 울었다.   모두 후사준비에 바삐 돌아쳤다.   바깥에 어둠의 장막이 내리 드리고 번개가 번쩍이더니 우뢰가 꽈르릉 꽝꽝 울렸다. 뒤이어 바깥에서 소낙비가 우르르 쏟아지는 소리, 추녀에서 장대 같은 비 물이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옥실은 모진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숨을 조용히 거두었다. 볼품없이 팅팅 부은 얼굴과 손, 네댓 살 밖에 안 되는 오누이를 다 키우지도 못하고 저세상으로 떠나가는 옥실은 정말 천하에 둘도 없이 불쌍했다. 온집 식구들은 곡성을 높여 옥실의 사망에 애도를 드렸다. 다섯 살 밖에 안 되는 봉인은 엄마가 세상 떴다고 “엄마, 엄마!” 하고 구들에서 발버둥질 치면서 울었다.     그러나 연년생인 네 살짜리 명옥은 셈이 들지 못해 엄마가 세상뜬것도 몰랐다. 철부지 명옥은 이제 엄마가 저세상으로 가면 다시 되돌아오지 못 한다는 것도 모르고 장례 집에 몰려든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좋다고 방구석에 세워놓은 조주머니에 올라갔다가는 뚝 뛰어내리면서 놀았다. 그것이 그의 한생에 얼마나 후회되는 일인지도 모르고 철부지처럼 외발로 뚝뚝 뛰면서 뛰놀았다.     그들 오누이는 네댓 살 난 어린 나이에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어머니를 여의였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없는 세상에서 갖은 시련과 굴욕, 천대, 시기를 다 겪어야만 했다. 그들 오누의 앞날은 어두운 장막이 뒤덮인 이 세상에서 더 참담하고 암흑하고 막막했다.     사흘 후 옥실의 장례를 치르게 됐다.   최구장의 제의대로 조상의 성산이 모셔져있는 성남의 양지바른 곳에 묘지를 썼다. 비록 먼저 떠나간 맏며느리였지만 14대 장손을    낳은 맏며느리기에 최구장의 아버님을 모신 성남 성안에 모셨던 것이다.    장례식 날에 경숙은 사랑하는 아내를 차마 비 물이 고이는 차가운 땅에, 무덤에 묻지 못해 떨리는 손으로 첫 삽을 떠 흙을 관 네 귀에 스르르 쏟아놓았다. 그의 줄 끊어진 구슬처럼 흐르는 눈물도 누런 흙과 함께 관위에 쏟아져 들어갔다. 옥실의 부모와 남동생 허성룡도 무두 흑흑 흐느껴 울었다. 처량한 통곡소리 남산둔덕을 메아리쳤다…   장례를 다 치르고 경숙이가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와 보니 봉인이 명옥의 손을 잡고 그때까지도 “엄마~ 엄마!” 하고 대성통곡 치고 있었다.    경숙은 어린 오누이가 불쌍해 한품에 끌어안고 꺼이꺼이 울었다.    “어미 없는 애들을 어찌 하오. 어, 허, 헉, 흐~으~흑, 흑. 어째 내게 이런 일이 생기오. 당신이 없이 어떻게 살라오? 이 오누이는 어찌 하라오? 으흐흑, 흑, 흑, 하늘도 무심하지. 아~ 하~”   최구장이 위방에서 나와 경숙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위로해주었다.   “어찌겠니? 갈 사람이 돼서 간 걸. 애들을 굳건히 잘 키워라.”   경숙은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치며 먹장구름이 뒤덮인 하늘을 쳐다보면서 쓰라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443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2) 오누이 김장혁 댓글:  조회:756  추천:1  2024-06-05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7장 흑야         3. 오누이        흐릿한 하늘이 운주동을 지지 누르고 있었다. 비도 내리지 않고 갑갑하게 대지를 덮고 있는 먹장구름이 밉살스러울 지경이었다.    어느날 명옥은 봉인 오빠랑 공부하는 서당 방 문 뒤에 달려갔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붓으로 쭉 그어놓은 듯 짙은 버들잎 눈썹아래 엄한 눈길로 나가라고 눈짓했다.   최구장은 은빛수염을 슬슬 쓸며 못 마땅한 눈길로 명옥을 쏘아보았다.   할아버지가 겁나 명옥은 아래 방으로 해서 정주간으로 달아났다.   그는 엄마의 품에 안기면서 칭얼거렸다.   “엄마, 나두 오빠랑 함께 공부할래. 응~응.”   옥실은 철없는 어린 딸이 불쌍해 명옥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에 얼굴을 대고 상냥한 어조로 달래였다.   “얘야, 옛날부터 여자애들은 공부를 하지 못한단다. 여자애들은 베실을 뽑고 밥을 지어야 해.”   명옥은 머리를 도리도리 하면서 떼를 썼다.    “난 베실 뽑기 싫습니다. 나도 오빠처럼 공부하겠소. 엉~엉, 흐흑.”   옥실은 눈물줄기가 쏟아지는 명옥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달래였다.    “응, 할아버지한테서 배우지 못하면 오빠 먼저 배운 다음에 오빠한테서 배우자. 그만 그쳐라. 할아버지가 듣고 위방에서 나와 또 곰방대로 이마를 치겠다. 딱 그쳐라.”     명옥은 흑흑 흐느끼면서 울음을 그치더니 옥실의 품에 안겼다.    한참 칭얼거리던 명옥은 옥실의 품에 안긴 채 조용히 잠들어버렸다.   옥실은 쌔근쌔근 잠자는 딸을 꼭 껴안고 다독이면서 한숨을 호~ 내쉬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명옥은 쌔근쌔근 자면서도 흑흑 흐느끼곤 했다. 옥실은 명옥이를 구들에 내려놓고 베개를 베워주고 누더기이불을 덮어주었다.   뒤이어 그녀는 헛간에 나가 사다리를 가져다가 천정 대들보에 기대여 놓고 올라가 메주덩이를 뜯어 북데기를 펴놓은 바닥에 내리 떨어뜨렸다.    마지막에 손이 닿을락 말락 하는 메주덩이가 천정에 매달린 채 남아있었다. 아무리 손을 뻗쳐도 손가라 끝도 닿지 않아 이마에 콩알 같은 땅방울이 송골송골 내돋았다.   드디어 그녀는 눈앞이 아찔해나며 무수한 별빛이 반짝거리며 두 다리가 덜덜 떨렸다.   그녀가 마지막 메주덩이를 달아맨 새끼에 손을 뻗쳐 뜯으려는 순간 졸지에 바깥에서 나까노라 소대장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뭘 해?!”   옥실이 바깥으로 머리를 돌리면서 내다보다가 몸이 기우뚱하며 사다리에서 허공 퉁 떨어졌다.   “앗!”    그 모진 소리에 미닫이문이 쫘르륵 열리면서 서당에서 어른들이 무슨 일인가고 부엌간 쪽으로 달려 내려왔다.   옥실은 메주덩이가 널린 북데기 위에 떨어지면서 그만 땅바닥에 머리를 탕 부딪치고 말았던 것이다.   “엄마!”   명옥도 깨나서 방바닥에 떨어져 쓰러져 있는 엄마를 보고 달려가 흔들며 울었다.   경숙과 경민은 부랴부랴 옥실을 안아다가 가마 목에 눕혔다.   “여보, 이게 웬 일이요? 어이구, 이 일을 어쩌오?”   뒤늦게 정주간에 내려온 최구장은 정주칸 바닥에 널린 메주덩이를 둘러보고 경숙을 나무랐다.   “너 메주를 뜯어 줄 게지 이게 뭐냐? 아녀자가 저렇게 높은 대들보의 메주를 뜯다가 잘못되다니. 엉? 이런 일이 또 어데 있냐?”   경숙은 수건으로 옥실의 얼굴의 먼지를 닦아주면서 중얼거렸다.   “메주를 뜯겠으면 말할 게지. 이게 뭐요? 저 높은 대들보에 올라가다니? 흑, 흑.”   옥실은 정신을 잃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을 꼭 감고 조용히 누워있었다. 다행이 북데기 위에 떨어져 어데 피가 터진 곳은 없었다.   한식경이 지나자 옥실의 얼굴이 점점 팅팅 부어올랐다. 눈언저리는 까맣게 번지어 갔다. 거품을 문 입술은 창백하다 못해 백지장 같았다.   “어이구, 여보, 깨나오. 일어나오. 저 오누이를 두고 누워있으면 어쩌오? 어이구.”  경숙은 울상이 되여 구들을 치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푸푸 몰아쉬었다.  봉인과 명옥은 옥실의 양손을 쥐고 흔들면서 “엄마~”, “엄마~” 하고 대성통곡 쳤다.   “엄마, 일어나.”   “엄마~ 깨나~”   이때 형내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와 쪼그리고 앉아 옥실을 들여다보다가 일어나면서 최구장에게 말했다.    “스승님, 저 높은 데서 떨어졌는데 머리 터진데 없급꾸마.  피 안터졌지만  내상은 더 위험합니다. 오히려 나쁜 피가 밖으로 터져 나왔다면 덜 위험한데요. 어혈이 머리 안에 있기에 더 나쁩니다. 부중이 와서 머리가 붓긴 걸 보시오. 목숨이 위험합니다. 빨리 우리 할   아버지한테 보입소.”   그러나 최구장은 피씩 입귀로 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뭘 알아 그래? 분명 가난이 덮씌운 이 집안에 병 귀신이 덮친 게다. 이건 의학이나 약으로 치료해 살릴 수 있는 병이 아니야.”   최구장은 의학보다 신을 믿었던 것이다. 그도 옥실의 상처는 약으로 치료해 될 게 아니다. 하느님과 신께 맡겨야 될 것 같았던 모양이다. 그는 맏며느리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노력을 하고 싶었다.    옥실을 둘러본 마을사람들과 학부모들은 모두 혀를 끌끌 차더니 집으로 돌아가 쌀독에서 좁쌀 한바가지, 감자 한 대야라도 들고 와    옥실을 구하는데 보태 쓰라고 했다. 뒤늦게 병완은 불붙이에서 사는 맏손녀 어금에게서 최구장 맏며느리의 불행한 소문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와 금덩이 몇 덩이를 내놓았다.   “맏며느리 이렇게 상해 안 됐소. 이걸로 사돈며느리 치료를 해줍소.”   “이건 어데서 난 금덩어리들이오?”   “이건 이전에 성칠이 웅진의 날강도 백승만의 걸 빼앗은 거요. 근심하지 말고 쓰오.”   최구장은 병완에게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고는 사돈어른의 금덩이를 받아 경숙에게 넘겨주었다.   이때 창준과 기준 두 집 식구들도 소문을 듣고 각기 동전을 가지고 와서 보태 쓰라면서 문안을 여쭈었다.   최구장은 문안하러 온 동네어른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면서 며느리가 불쌍하여 중얼거렸다.   “요즘 쌀독을 빡빡 긁더니 분명 죽물도 모자란다고 애 어미 제대로 잡숫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 굶은 며느리가 저 높은 대들보에서    메주를 뜯다가 어지름 증에 떨어진 거다.”   최구장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니 마루에 나가 까마귀가 우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장탄식을 하며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치였다.   “천지신명이시여, 우린 대대로 양심 어긴 적 없소이다. 하늘과 땅에 미안한 일을 한 적이 없고 남을 해친 일은 더욱 없소이다. 그런데 우리 집에 이 웬 날벼락인고. 아이고~”    최구장이 마루에 물앉아 대성통곡치자 자녀들이 달려가 아버지를 부축해 위방에 모셨다.   봉인과 명옥이 할머니 품에 안기면서 서럽게 울었다.   최구장 댁 성단은 동전으로 눈물을 훔치더니 봉인과 명옥을 며느리에게 먹이려고 부엌 칸에 내려가 좁쌀을 씻어 솥에 얹었다. 그러자 둘째며느리 어금이 부엌에 내려가 불을 때였다.   이때 관준이 침통이랑 가지고 들어섰다.   “사돈어른, 큰며느리 상해 얼마나 비통하겠습니까? 봅시다. 어디를 상했는가?”   최구장은 멀찍이 서서 관준 영감이 옥실의 맥을 보고 팅팅 부어오르는 얼굴의 상처를 보는 것을 별로 희망을 두지 않고 볼 뿐이었다.   “어떻소?”   경숙의 물음에 관준 영감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비끼었다.   “약을 많이 써야 될 것 같소.”   뒤이어 관준은 경숙의 귀에 대고 뭐라고 여쭈었다.   경숙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아내 손을 만지면서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처량한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렸는지 옥실이 입술을 옴직거리더니 눈귀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 귀밑으로 줄줄 떨어졌다.   “여보, 정신을 차리오. 양? 새파란 나이에 애들을 두고 이게 무슨 일이요? 여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   경숙의 울부짖음 소리에 온 집 식구들은 흑흑 흐느껴 울었다. 그러나 나까노라는 서당을 감시하러 왔다가 옥실을 문안하기는커녕 개 닭 보듯 하더니 그 자리에서 꼬리를 빼는 것이었다.    경숙은 아내를 살려달라고 하늘에 빌고 땅에 빌고 신에게 빌었다.    “오, 청청 하늘이여, 부디 어질고 불쌍한 옥실을 굽어 살펴 살려주옵소서. 부지런하고 곱살하게 생긴 옥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다지도 일찍이 서른 살도 안 된 꽃나이에 데려가려고 하는가? 아직 철도 들지 못한 다섯 살짜리 아들애 봉인과 네 살 밖에 안 되는 딸애 명옥을 두고 어떻게 갈수 있단 말인가? 그 귀한 오누이를 당신이 기르지 않고 떠나가면 어떻게 하는가?”    그는 하늘과 땅에 빌다 못해 이번에는 옥황상제와 염라대왕에게 빌고 또 빌었다.    “염라대왕이여, 불쌍한 오누이를 생각해서라도 옥실을 살려주옵소서. 당신도 눈이 있고 귀가 있잖은가? 염라대왕님이여, 이 딱하고 어려운 옥실의 사정을 봐서라도 살려 주옵소서. 제발 살려 주옵소서.”    허나 어린 오누이는 뜻밖의 사고로 끝내 어머니를 여의는 불운한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옥실은 숨이 붙어 있었지만 의식을 잃은 채 각일각 경각을 다투고 있었다. 그녀는 불쌍한 어린 오누이를 두고 이미 세상을 뜨나 다름이 없었다.  세상에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게 될 오누이 불쌍하기만 했다.
442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1) 운주동서당방 김장혁 댓글:  조회:555  추천:0  2024-06-05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권                             제7장 흑야         2. 운주동 서당방         가지 많은 나무 바람에 잘 새 없다고 최구장은 점점 많이 늘어난 자손들의 막막한 앞날 근심이 태산 같았다.    최구장은 곰방대를 뻑뻑 빨면서 네 살 밖에 안 되는 명옥이 베실을 삼다가 까딱까딱 자부는 것을 보고 곰방대로 이마를 딱 쳤다.     “아가!”    “요년 가시나, 초저녁부터 자고 언제 밥값을 하겠냐?”    자불다가 명옥은 너무 아파 눈물을 똑똑 떨어뜨리었다. 그 애는 눈을 비비더니 베실을 삼아 모대기에 감았다. 허나 14대 장손 봉인은 정주간에서 단잠에 빠져 코를 다랑다랑 골고 있었다.   명옥은 잠기 가득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저녁 늦게까지 베실을 뽑아내 감고 또 감았다.   최구장은 자불면서 베실을 뽑는 조그만 손녀가 불쌍해났다.   “명옥아, 너도 자고 내일 일찍이 일어나 베실을 뽑아라. 가시나, 밥값을 해야 죽이라도 먹지.”   “예, 내일 베실을 많이 뽑겠습꾸마.”   명옥은 좋아라고 일어나 베실을 감아치우고 봉인의 곁에 가서 두 다리를 꼬부리고 굳 잠에 빠져버렸다.   최구장은 집 안에서 갑갑하여 바깥으로 나가 검은 구름 속에 어슴푸레 보이는 달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검은 하늘에서 보슬비가 보슬보슬 떨어졌다. 최구장은 가슴이 옥죄여 드는 것 같아 마루에 내려 보슬비를 온몸으로 맞았다. 차라리 비를 흠뻑 맞아 온몸의 근심을 씻어버리기라도 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는 이일 저일 생각하니 당장 숨이 넘어 갈 것만 같았다.    “이젠 묵밭도 마음대로 일구지 못한다지. 밭에다 나무를 심어야 한다지. 사냥도 하지 못하고 버드나무를 베지도 못한다지. 뭘 먹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래 이 땅이 일본 놈의 땅으로 됐단 말인가? 아, 나라가 망하더니 망국노 신세로구나. 이게 바로 망국노 설음이구나.)    최구장은 바쁠 때일수록 병완과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다.   (그러나 난 이 고향 땅을 쉽게 버리고 만주로 들어갈 수 없어. 지식으로 이 땅에서 일본 놈들과 싸워보자. 일본 놈들은 메이찌 유신 후에 세계 선진 지식과 기술을 끌어들여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그 놈들은 우리보다 먼저 세상 아는 것이 많고 힘이 있기에 우리 나라를 먹어치우고 우리 땅에 발을 붙인 게 아닌가? 무지몽매는 오랑캐 놈들에게 짓밟히는 제일 큰 원인인 거야. 우리 후손들을 더는 무식해 오랑캐 놈들에게 억눌리면서 살게 할 수는 없다.)   그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고 부르르 떨었다. 지루한 어둠속에 흩날리는 보기 좋던 은빛구레나룻도 원형을 잃고 말았다.   (이 지루한 밤이 언제면 개일까?)   최구장은 한숨을 길게 쉬면서 마루에 올라가 갓을 벗어 비 물을 툭툭 털어 마루기둥에 걸어 놓았고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이른 아침 먹장구름이 뒤덮인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왔다. 얼음조각 같은 해라도 조금 떠서 비췄으면 좋으련만 좀처럼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아침술이 떨어지기 바쁘게 최구장은 맏아들 경숙을 보고 흑판을 만들라고 했다. 아버지 뜻을 안 경숙은 아버지와 함께 구새 목에 몇 해 놔두었던 통나무 몇 개를 맞들어 마당에 가져왔다. 그는 큰 자귀로 통나무를 풍풍 찍어낸 후 대패로 빤빤하게 밀어 다듬었다. 이윽고 나무판자를 대고 숯 검댕이 칠을 하니 제법 자그마한 흑판이 됐다.   한동안 일본헌병들이 서당에서 조선 글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여 최구장은 흑판마저 없애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백절불굴하고 제일 위방에 흑판을 다시 만들어 세웠다.   그날부터 그는 서너살 밖에 안 되는 손자들인 봉인과 봉순, 봉문을 흑판 앞에 앉혀놓고 글을 가르쳤다.   며칠 지나자 소문을 듣고 마을의 사돈 기준이 아들 상우와 상순을 데리고 왔고 신설동의 열서너 살 되는 형내도 다시 서당에 왔다.   “얘들아, 글을 배워야 한다. 글을 모르면 남들에게 짓밟히게 되느니라. 성현들의 글에는 우리가 모르는 지혜와 새 세상이 있느니라.” 학부모들인 기준과 상철이 등도 모두 개학하는 날에 모여와 애들과 함께 공부했다.   “오늘부터 천자문을 가르치겠다. 처음 글자는 ‘천’이라고 읽는다. ‘천’ 자는 하늘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따라 읽어보자. 하늘 ‘천’.”   “하늘 ‘천’!”   서당에는 최구장을 따라 애들이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왔다. 그 낭랑한 글 읽는 소리는 절에서 중이 염불하는 소리처럼 느릿느릿하면서도 노래 소리처럼 절주 있게 들려왔다.    “하늘 천, 따 지, 누를 ‘황’, 가물 ‘현’.”    “참 잘 읽었다. 그럼 한 글자 한 글자 읽으면서 써 봐라.”    애들은 종이나 붓이 없는지라 미리 준비해가지고 온 모래판에 나무꼬챙이나 손가락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읽으면서 써내려갔다. 애들이 제대로 쓰지 못하면 최구장이 돌아가면서 손을 잡고 한 획 한 획 쓰는 연습을 했다.    형내는 몇 해 전에 배운 적이 있어 작은 선생이 되여 옆에 앉은 애들의 손을 잡고 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좀 큰 애들은 괜찮았는데     봉문이랑은 세 살 밖에 안 되는지라 제대로 따라 쓰지 못했다.    이때 아래방에서 “잉잉” 여자애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웬 일이냐?”   모두들 아래 방을 내려다보았다. 네 살 밖에 안 되는 명옥이 두 손으로 눈을 비비면서 서당 문어귀에 서있었다. 최구장이 성난 눈길로 명옥을 보면서 물었다.    “저 년 가시나, 어째 떠드느냐?”   명옥은 어머니의 손에서 빠져나와 서당에 뛰어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할아버지, 나도 공부하겠습구마.”   그러자 최구장은 명옥을 쫓아내면서 꾸짖었다.   “이 년 가시나, 계집애가 공부를 해 뭘 해? 넌 가서 베실이나 뽑아라.”   그러나 명옥은 몸을 뱅뱅 탈면서 떼를 썼다.   “싫습니다. 나도 봉인 오빠처럼 공부를 하겠다 ~ ”   “이 가시나, 나가지 못 할까?!”   순간, 상순이가 코를 풀쩍거리면서 “명옥아, 여기 내 옆에 앉아 공부해라.”라고 하면서 엉덩이를 옆으로 움직여 앉을 자리를 내놓았다.    기준은 상순의 말에 어이없어 희죽이 웃기만 했다.   경숙이 보다 못해 달려와 칭얼거리는 명옥을 안아 정지로 내려갔다.   그는 명옥을 옥실에게 안겨주면서 책망했다.   “애를 보지 못 하고 뭘 하오?”   옥실은 손으로 눈을 비비면서 우는 명옥을 받아 안으면서 남편에게 눈을 흘기었다.   “계집애는 공부를 하면 못씁둥?”   “가시나가 공부를 해 뭘 해? 베실이나 뽑고 빨래나 하고 밥이나 지으면 되는 거지. 쯧쯧. 아버지가 화를 내면 어쩌자고. 다신 그런 소릴 하지 마오.”    옥실은 명옥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도도 거렸다.   “공부는 뭘 사내들만 하라고 날 때부터 써 놓았다오?”   “그만 하오. 숱한 사람이 듣는데.”   경숙은 위방을 올려다보면서 눈까지 끔쩍해보이었다.   그러자 옥실은 입을 다물고 명옥을 안고 달래였다.   “일 없어. 오빠가 먼저 글을 배우면 오빠한테서 배우면 된다. 울지 말라. 이젠 끝여라.”   그래도 명옥은 흑흑 흐느껴 울었다.   위방에서는 문을 꼭 닫았는데 최구장이 글을 설명하는 소리만이 들리었다.   “‘천지황현’이란 뜻은 이러하느니라. 옛날에 하늘땅이 가물고 몽땅 누르러 갔다는 뜻이니라. 생각해봐라. 이런 하늘아래 누런 땅에서 가물어 곡식이 여물 수 있겠느냐?”   “없습구마.”   형내는 배운 적이 있어 제꺽 대답했다. 옆에서 듣던 상철과 기준은 머리를 끄덕였다.   최구장은 마른기침을 하며 애들에게 말했다.   “아래에 하늘 ‘천’자에 깃든 ‘녀아의 전설’을 이야기해주겠다.”   “와우, 좋다.”   애들이고 어른이고 귀를 가시고 들었다.   “먼 옛날 태고 적에 하늘에 구멍이 펑 뚫렸지. 그래서 하늘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땅에는 가뭄이 형편없이 들어 곡식이 다 쓰러졌단다. 그래서 녀아는 중국 곤륜이란 산에 가서 바위 돌을 깨서 불에 녹여서 파 난 하늘을 기웠단다.”   “와~ 대단한 여자야.”   애들이 감탄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한사람이 드나들 만큼 기울 녹인 용암이 모자랐단다. 그래서 녀아는 사람들을 살게 하려고 자기 몸으로 나머지 하늘 구멍을 막았단다. 그때부터 하늘 구멍이 막혀 사람들이 곡식을 심어도 잘 자라서 잘 살게 되였단다.”    “와~ 정말 대단한 녀아로구나.”    “그래, 참말 대단해.”   최구장은 눈을 지그시 감고 애들의 감탄소리를 들으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공부는 이만하자.”   애들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옛말을 들으니 재미있다고들 했다.   며칠 후 최구장은 애들이 배운 것을 다 익히자 그다음 글자를 배워주었다.   “오늘 배울 첫 글자는 영글 측자이다. 먼저 따라 읽기를 하자. 영글 ‘측’!”   “영글 ‘측’!”   몇 번 따라 읽기를 한후 애들은 한 획 한 획 따라 “측” 자를 써나갔다.   최구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애들 속을 왔다 갔다 하면서 애들이 모래판에 글씨를 쓰는 것을 돌아보았다.   (영팔과 응삼이랑 다 얘들처럼 배워주었건만 우리 조선 사람을 도울 대신 일본 놈들의 개다리로 돼버렸단 말이야. 무식도 죄지만 유  식해도 지식을 누굴 위해 쓰는가는 것이 더 중요한 거야.)   최구장은 응삼이랑 떠올리자 마음이 아프고 자기 노력이 결과가 빗나와 서글펐다.   한참 후 최구장은 책상을 똑똑 쳤다.   “그만, 그만 쓰고 오늘 배운 영글 ‘측’자의 뜻을 알도록 하자.”   애들은 모두 똑바로 앉아 초롱초롱한 눈을 한 번도 깜짝하지 않고 최구장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하회를 기다렸다.   최구장은 미리 마련해놓은 둥근 채 바퀴를 두 손으로 쥐여 안으로 힘껏 우겼다. 그러자 채 바퀴는 타원형으로 이그러져 버렸다.   “봐라. 이렇게 된 걸 이그러졌다고 한다. 영글 측자는 바로 이그러진다는 뜻이느니라.”   그러자 애들은 “오~” 하고 알았다는 듯이 감탄소리를 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 형내가 손을 들었다.   “뭐냐? 말해라.”   형내는 이런 요구를 제기했다.   “선생님, 땅에 깃든 얘기도 들려줍소.”   그러자 애들은 좋다고 박수까지 쳤다.   “그래, 그렇게 하자. 에헴, 따 ‘지’라. 땅이란 원래 울퉁불퉁하게 생겼지. 높이 우뚝 솟은 건 산이요, 깊이 패인 건 골짜기지. 우리 사는 명천 여기서부터 몇 백리 떨어진 북쪽에는 백두산이란 높은 산이 우뚝 솟아있다.”    최구장은 흑판에 석회 돌로 백두산을 그려놓고 백두산을 일일이 설명하고 뒤이어 백두산에 깃든 전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에헴, 최구장, 안녕하오?”   이때 나까노라이찌로 헌병 소대장이 서당에 불쑥 들어섰다.   불청객이 들어오자 최구장은 백두산 그림 아래에 썼던 백두산이란 글을 지우고 후지산이라고 써놓았다.   “오, 후지산, 우리 대일본 제국의 아주 아름다운 산이야.”   나까노라이찌로 소대장은 손으로 턱을 고인 채 흑판을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는 코 수염을 쓱 닦더니 거들먹거렸다.   “좋소까. 계속 얘기했소까.”   최구장은 계속 백두산 전설을 얘기했다. 그러나 나까노라이찌로 소대장은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겠는지라 서당에서 나가버렸다.    그는 떠나가면서 조선말을 알아듣는 영팔과 수길과 같은 조선 앞잡이들을 데리고 와야 제대로 감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구장은 애들이 흥미진진하게 듣자 다른 얘기도 들려주었다. 애들을 데리러 일찍 왔던 학부모들도 최구장의 얘기가 재미있어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명옥은 오빠 봉인이랑 공부하는 것이 너무 부러워 꼭 닫긴 문에 난 옹이구멍으로 들여다보면서 귀를 강구고 듣고는 애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손바닥에 글자를 써보면서 하늘 천, 따지를 귀동냥해 익혀나갔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봉인오빠한테 들킬 때가 있었다. 못된 봉인이가 손가락으로 옹이구멍으로 쏙 내지르면 눈이 찔렸다. 설상가상으로 할아버지 최구장은 명옥이 옹이구멍으로 들여다보는데다가 애들이 옹이구멍에 대고 손가락질하면서 작난 친다고 나무꼬챙이를 깎아 옹이구멍에 박아넣어 꽁꽁 막아버렸다.    옹이구멍까지 딱 막히자 명옥의 글공부는 꽉 막혀버렸다.   서당에는 날이 갈수록 신흥동과 영월동, 가마골, 신설동의 숱한 애들이 모여와 흥성흥성해져 가고 있었다.   최구장은 아예 팔간 집 제일 서쪽 간에 “운주동 서당방”이란 편액까지 내 건 후 서당방 학생들을 널리 모집했다. 그러자 운주동 주위의 신흥동, 가마골, 신설동, 불붙이 부모들이 애들을 데리고 운주동서당방에 하나, 둘 모이어 왔다.   운주동서당방에서는 날따라 하늘 천, 따 지 읽는 낭랑한 소리 드높아만 갔다.   최구장은 장차 ㄱ, ㄴ, ㄷ, ㄹ 가 칼이 되어 섬나라 오랑캐들의 숨통을 찌르리라 생각하니 늙은 가슴에도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었다.
441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0) 수림 속 바위돌밭 김장혁 댓글:  조회:637  추천:0  2024-06-05
   2015년 08월 28일 16시 43분  조회:2159  추천:1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제2권)                                                    김장혁 저                                                                     제7장 흑야           1. 수림 속 바위돌밭       먹물을 뿌려 놓은듯 한 칠칠흑야, 서쪽 밤하늘에 걸려 있는 가냘픈 눈섭달이 봄바람에 스쳐 바르르 떨고 있었다. 한줄기 달빛은 먹장구름을 아득바득 밀어내려고 애를 쓰건만 온 누리의 어둠을 밀어내기는 힘겨웠다.    잔설이 뒤덮인 아득히 먼 기운봉 아래 뭇산들은 검은 장막 속에 파묻혀 거뭇거뭇한 몸뚱이를 웅크린 채 취한 듯이 굳잠에 빠져 있었다. 늦잠을 자던 기운봉 기슭의 산발들이 무섭게 내리누르는 어둠을 털어버리고 창공을 떠받고 일어서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둠의 장막은 걷힐줄 모르고 점점 더 어둡게 고향의 산발들을 감쌌다. 어찌나 어두컴컴한 밤인지 주먹으로 불시에 얼굴을 들이쳐도 눈치 채지 못할 캄캄하고 갑갑한 흑야였다.     어둠에 짓눌린 방안에서 병완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가담, 가담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겨우내 길닦이를 하지 않은 동안이나마 집에서 조용히 잠자리에 들 수 있었지만 근심스러운 일은 태산 같았다.      끼무라는 그가 총 도감이라고 영월동이나 운주동에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였고 그의 아내 성희나 며느리 하옥을 옥에서 풀어주었다. 그 “덕분”에 지지리 지루한 이태 사이에 그는 집에서 잠시나마  한집 식구들과 함께 살 수 있었다. 그는  이태나 인부들을 데리고 경성으로 통하는 큰길 닦기에 나섰다. 하지만 끼무라가 인부들의 삯전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제대로 주지 않아 골치 아팠다.     (삯전을 주지 않으면 인부들이 뭘 먹고 산단 말인가? 원삼이네 삼형제가 길닦이 공지에서 빠져 집으로 잘 달아났지. 일본 놈들을 믿다간 한지에 방아를 걸 지경이야. 언제 삯전을 줄지 알 턱이 있느냐? 쳇, 일본 놈들은 이젠 사냥도 하지 못한다지 않는가. 성칠과 숱한 사냥꾼들을 체포하려고 미쳐 날뛰지! 성칠은 어데 가서 헤매는지? 그 놈이 무사해야 되겠는데. 자식, 이태 동안이나 종무소식이니 속이 타서 이거 원 어디 살겠는가? 자식이 상호와 동욱이랑 숱한 마을 청년들을 데리고 갔잖은가. 기별이라도 할 게지. 원, 서른도 넘은 놈이 이젠 부모들 심정도좀 알아야겠는데. 참, 애를 낳아 길러 보지 못한 놈이 돼서 저럴까. 쯧쯧.)     병완은 너무 답답해 자리에서 일어나 성희를 깨울세라 조심조심 담배통을 당겨다놓고 담배를 한 대 말아 물었다. 부시까지 손더듬질해 찾아 쥔 그는 부시를 척척 켜서 겨우 담배를 붙였다.     속이 탄 그는 담배를 길게 빨았다 후- 내뿜었다.    (일본 놈들의 경찰국 사무 청사는 무너지지도 않고 아직도 보기 싫게 서있지 않는가. 나무벌레들이 몇 해 지붕틀과 대들보, 기둥이랑 구멍을 뚫어 무너지게 만들까? 확실히 나무벌레가 기둥뿌리를 파먹는 소리가 까닥까닥 났는데. 언제 쾅 무너지겠냐?)    후~ 병완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일본 놈들이 이 고향에 있는 한 배불리 먹고 살 날은 없어. 그런데 무슨 힘으로 일본 놈들을 몰아낸단 말인가!)    병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요즘엔 황무지에 일군 밭에마저 나무를 심어라고 지랄이지 않는가? 어떻게 일군 밭이라고 그래. 이건 굶어 죽으라는 게 아니고 뭔가?)    병완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고 살 길이 막막했다. 온밤 잠을 설치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자리에 누워 눈을 조금 붙였다. 동녘이 푸름해지자 그는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바깥에 나가 지게에 재를 퍼 담아 메고 산기슭으로 올라갔다.     그는 지게의 재를 쏟아 바위와 바위 사이에 가면서 삽으로 펴놓았다.     싸늘한 해가 뜨자 성희가 문을 열고 나와 재를 버리려다가 삽으로 재를 지게에 퍼 담는 병완을 발견했다.    “여보, 신 새벽부터 어쩌자고 이래요?”    병완은 삽으로 재를 지게에 퍼 담으면서 볼 부은 소리를 했다.   “밭에 나무를 심으라는데 어디 입에 풀칠이나 하겠소? 바위 돌 틈에라도 재를 펴놓고 메밀이라도 심어야겠소.”    성희는 함지의 재를 버리려다가 말고 땅바닥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바위돌 틈새에 메밀을 심어서야 몇 알 거둔다고 그래요?”    “그래도 어쩌겠소. 한 마대라도 거두면 얼마나 좋겠소?”    그때 하옥이도 밥을 지어놓고 나와 시부모를 따라 함지에 재를 담아 이여다가 바위돌 틈새에 폈다.     병완은 십여 일 동안 낮에는 마을 앞에 가서 길을 닦는 일을 감독하고 이른 아침이면 재를 지게에 져다가 바위돌 틈새에 펴놓았다.      그 덕에 한헥타르나 되는 새 “바위돌 밭”을 일구었다.    한달 푼히 지나니 기운봉 기슭의 뭇 산에 드문드문 뒤덮였던 잔설이 녹고 봄바람이 훈훈히 불어왔다.    서산의 수림 속 어디선가 뻐꾸기가 “뻐꾹" "뻐꾹” 봄소식을 알리고 하늘에서는 종달새가 지종지종 제창 좋은 파종 계절이 왔다고 기별을 전했다.    봄은 농사꾼들에게는 희망의 계절이었다. 봄에 씨앗을 많이 뿌리면 올해는 풍작을 거둬들여 배불리 먹고 살리라는 희망이 가슴을  부풀게 했다. 그러나 일제 놈들에게 짓밟힌 가을에는 농사군들의 봄에 싹튼 희망과는 달리 실망을 안겨 주군 하였다.    (올해는 어떨지?)    병완 일가는 몽땅 동원돼 바위 돌 틈새에 재를 펴고 나무꼬챙이로 재를 찔러 구멍을 낸 후 메밀 씨를 뿌려 넣고 잘 파묻어놓았다.   병완은 쉼에 나무꼬챙이를 너럭바위에 놓고 셋째 며느리 잔등에서 넷째 손자 상순을 뽑아 높이 쳐들었다가 품에 꼭 끌어안고 볼을 자기 얼굴에 대고 비볐다.    “낯이 길쭉한 게 제 애비를 똑 떼 닮았구나. 이 쌍까풀눈을 봐라.”    기준은 옆에서 허리 쉼을 하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거 세 귀 눈을 보시오. 딱 아버지 안질 같지 않은가.”   그 말에 병완은 밭고랑 같은 주름살을 쫙 펴고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래? 어디 보자. 이 놈이 정말 세 귀 눈이구나. 허허허. 한대 건너 날 닮았구나. 이 놈이. 정말 고와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겠다.”   “할아버지, 앵~코, 앵~코 하자.”   “그래, 그래. 앵~코 하자.”   병완은 상순을 안고 너럭바위에 누워 발우에 상순을 올려놓고 “앵~코-” “앵코-” 하면서 다리를 올렸다 내리웠다 했다.   상순은 좋다고 야단쳤다.   그 모습을 보고 기준과 사련은 마주 바라보며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한참 후 병완은 상순을 안고 일어났다.   사련이 상순을 안아갔다.   병완은 기준과 창준을 불렀다.   “얘들아, 너희들도 운주동 산기슭 바위돌 틈에 재를 펴고 메밀을 심어라.”   기준은 볼 부은 소리로 말했다.   “이런 바위틈에 메밀을 심어 몇 알 거두겠습둥?”   병완은 눈을 흘겼다.   “한 마대라도 거둬 보리고개를 넘는데 보태야지. 새해부터 일본 놈 새끼들이 밭에 나무를 심으라는데 뭘 먹구 살겠냐?”   기준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거 일본 놈들 성화에 어디 견디겠습니까? 일본 놈들을 몰아내지 못할 바에야 아버지 말씀대로 만주에 가면 어떻습둥?”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글쎄 말이다. 헌데 한평생 살아온 고향을 버리고 어떻게 만주로 간단 말이냐? 려생 할아버지 대부터 조상들의 산소가 모두 여기 명천에 모셔졌는데 어떻게 버리고 가? 불효자식이라고야.”   그때 성희가 끼어들었다.   “난 안가. 남쪽 충청도 한산면에 둔 고향을 떠나 입북한 것만 해도 그런데 또 두 번째 고향 같은 명천을 버리고 만주로 가? 안가, 난 안가!”    그 말에 병완은 눈을 흘기었다.    “또, 또 그 말이야. 그러지 않으면 애들이 당신 한산 리씬 걸 몰라 줄까 봐 그러오? 쳇, 지금 충청도나 서울엔 여기보다 일본 놈들이 더 욱실거린다오. 거기 가 살겠으면 살아보우.”    성희는 독기어린 영감의 눈길을 피하더니 굽은 허리를 쭉 펴면서 기준과 창준에게 손으로 삿대질 했다.   “너거(너네),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엔 다신 만주로 간단 말 하지 마! 만주에 가 아내를 되놈들에게 빼앗기려고 기래? 애들도 몽땅 되놈 색시 얻으려고 기래? 안 된다. 안 돼!”    무두들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였다.   한참 납덩이처럼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거 총 도감이 아닌가? 길닦이는 하잖고 여기서 뭘 하는가?”   바위돌 틈새에서 기어 나왔나. 능구렁이 같은 한길수가 야마모도 소장과 함께 일본 헌병들과 자위대 놈들을 끌고 이 깊은 야산에까지 나타날 줄이야.   “여기서 뭘 해?”   병완은 너럭바위에서 일어나 손바닥의 먼지를 툭툭 쳤다.   “입에 풀칠이나 하자고 메밀을 심네.”   야마모도 소장이 안경을 벗어 안경알을 수건으로 닦아 다시 눈에 걸었다.   “으흠, 조선 사람 말이 아냐. 산에 나무를 심지 않고 자꾸 곡식 심어?”   뒤이어 야마모도는 손사래를 쳐댔다.   “안 돼, 안 돼. 몽땅 나무를 심어야 돼!”   그러자 괭이자루를 꽉 틀어쥔 병완의 소발쪽 같은 손이 부르르 떨렸다. 생각 같아서는 괭이로 야마모도 놈을 콱 찍어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애들의 장래를 봐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용케도 참아 냈다.   “당신 말대로 밭에 나무를 다 심구 그래 우리 굶어 죽으래? 되지도 않을 소릴 하지도 말라.”   기준은 옆에서 황소숨을 몰아쉬더니 참지 못하고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여긴 내 고향이야. 네깐 일본 놈들이 뭔데 내 고향 땅에 메밀마저 심지 못하게 하느냐?!”   류강철이 그 말을 통역해주자 야마모도는 군도를 뽑아들고 기준한테 달려들었다.   “바새끼! 죽어, 죽었소까!”   기준은 병완의 손에서 괭이를 빼앗아 쥐고 날아드는 군도를 막아냈다.   “그만 둿!”   이때 등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모두 머리를 돌려보니 끼무라가 경찰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기준과 야마모도는 괭이와 군도를 거두었다.   끼무라는 군도자루를 잡고 헐금씨금 병완의 앞에 다가왔다.   “총도감, 근심하지 말게나. 여기에 메밀을 심어 먹었소. 길만 잘 닦으면 돼.”   그러나 병완은 오히려 오만상을 찡그렸다.   (내 굶어 죽어도 네 놈들 쌀을 먹을 것 같으냐?)   교활한 끼무라는 야마모도 소장을 책망하는 척 했다.   “자넨, 림장이나 잘 지키라고. 하필 총도감이 묵밭을 일구는 걸 가지고 시비할건 뭔가? 빨랑빨랑 림장에 가.”   이번엔 몸뚱이를 한길수에게 돌렸다.   “한 대장, 자꾸 총도감과 이러지 말게나. 둘이 힘을 합쳐 대일본 제국의 일을 많이많이 도우란 말이야.”   “하이!”   한길수가 일본 말로 대답하면서 군례까지 척 붙이었다.   병완은 구역질이 나 침을 “퉤!” 뱉었다.   “원, 더러워서 못살겠어.”   병완은 떠나가 버리는 일본 놈들과 발발이 같은 한길수 뒤에 대고 줄 욕을 퍼부었다.   “흥! 나를 우습게 보는구나. 총 도감? 길만 다 닦으면 헌 신짝 버리듯 할 게 뻔하다. 쳇, 저 놈들이 보기 싫어서 만주국에 가버려야겠다.”   성희는 병완을 말리였다.   “만주에 간다고 잘 살 것 같아요? 전번에 본가 집에 가보니 서울이나 충청도 한산은 몽땅 일본 놈들의 세상으로 됐더구먼요. 오랍동생이 말하던데요. 우리 고향 마을에서 만주로 간 사람들이 그러더라나요. 만주에선 만족과 되놈 강도들이 여편네를 마구 빼앗아 간다던데요. 괜히 만주로 가서…”    병원은 단마디로 노친의 말을 잘라버리었다.   “됐소, 됐어. 물론 여기서 저 놈들의 비위를 맞춰 주면 그럭저럭 살 수는 있소. 그러나 만주의 개나 돼지처럼 살지언정 일본 놈들의 총 도감이나 하면서 살진 못하겠소.”   병완은 얼굴을 기준에게 돌리었다.   “기준아, 내 먼저 만주로 들어가 어떤가 두루 돌아보고 오마.”   기준은 말려 나섰다.   “아버지, 내 들어가 보겠습꾸마. 아무래도 여기 고향에서 살 것 같지 못합꾸마. 아버지가 한길수를 외눈깔을 만들어놨지. 이태 전에 내 또 영팔과 승만을 때려눕히지 않았습둥? 저 놈들은 우릴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자꾸 걸고들어 못살게 굴게 뻔합꾸마.”   병완은 한참 먼 남산을 쳐다보면서 묵묵히 고민하더니 머리를 힘없이 끄덕였다.   갑자기 성희는 바위 돌 사이에 폴싹 물앉더니 엉엉 대성통곡 쳤다.   “만주에라고 일본 놈들이 없겠느냐? 전번에 고향에 갔다가 들었는데 간도 용드레촌에도 일본 놈들이 득실거린다더라.”   그래도 병완은 고집을 부렸다.     “일본 놈들이 만주 산골에까지 갔겠소? 일본 놈들이 없는 산골에 가서 땅굴을 파고 살면 그 놈들인들 어쩐대?”    말이 쉽지 고향 땅을 버리고 이국의 낯선 타향에 가서 어떻게 살겠는지 기약이 없었다.   모두들 맥이 풀려 더 일하지 못하고 성희를 부축해 괭이를 메고 메밀 씨 함지랑 이고 안고 집으로 내려갔다.     소 잔등 같은 바위돌들만이 엉거주춤들 물러 앉아 한숨을 풀풀 쉬면서, 멀어져가는 불쌍한 주인들을 바래고 있었다. 바위돌들은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뭐라고 두덜거리었다. 농사군들의 배불리 먹으려는 그 소박한 소망마저 짓밟는 오랑캐들을 증오해 하늘을 쳐다보며 공소하고 있는 건가?
440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9) 힘장사 삼형제 댓글:  조회:622  추천:0  2024-05-27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1권  제6장 포수대                     8. 힘장사 삼형제           일제의 쇠발굽 아래에서 신음하는 땅에도 봄은 찾아왔다.      겨우내 모진 추위를 이겨낸 풀싹들이 파릇파릇 움텄다. 강인한 진달래는 가혹한 눈풍설에도 뼈 아픈 인내력으로 엄동설한을 벋텨냈다.  연분홍 진달래는 잔설이 뒤덮인 바위 틈새로  어여쁜 연분홍 얼굴을 반쯤 내밀고 혹시 섬나라 오랑캐들이 오지나 않았나 해 여기저기 눈치를 살핀다. 진달래 꽃잎새로 무지막지한 바람에 슬픔이 스치고 지나가며 애처로운 아리랑을 부른다.     경찰국 사무청사 공지에서 인부들은 기둥을 세울 원목을 목도로 메여 날라 왔다. 그때 한 아름이나 되는 원목은 누구도 목도를 하려고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때 키가 훤칠하고 어깨가 떡 벌어진 한 중년사나이가 나섰다.     “원삼아, 우리 삼형제 메자.”     “양, 형님.”     모두 어깨가 떡 벌어진 사내들이였다.     “기준아, 우리도 함께 메자.”    그때 병완도 기준을 불렀다.     원삼이라는 사내대장부가 웃통을 벗어버리고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이 울뚝불뚝한 팔로 한 아름이나 되는 원목 한쪽머리를 건뜻 쳐들었다.     “와- 천하에 둘도 없는 힘장사로구나.”     모두들 저도 몰래 감탄했다.     병완과 기준, 창준이 장대기로 들린 원목 대가리를 떠받쳤다. 그러자 나머지 사내들이 목도를 틈 사이에 제꺽 들이밀어 넣었다. 뒤이어 그들 여섯이 세 곳에서 그 한 아름이나 되는 원목을 목도를 해 기초돌 쪽으로 “허기영차” “허기영차” 절주 맞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메여갔다.     그들은 한번도 허리 쉼을 하지 않고 “허기영차” “허기영차” 단숨에 메여갔다.     장사들의 모습에 끼무라마저 입을 딱 벌렸다.    원삼이라는 사나이가 목도채를 내려놓으면서  병완에게 물었다.    “우리 알고 지내깁소. 들을나니 총도감은 영월동에서 왔다던데 혹시 성칠 힘장사의 아버지가 아닙둥?”    병완은 그들과 일일이 악수하면서 물었다.    “맞소. 당신들은 어데서 왔소?”    원삼은 병완의 손을 굳게 잡아 흔들면서 일일이 소개했다.    “우린 경성군 주을 면에서 온 삼형젭니다.”    그는 나이 제일 많은 사나이를 가리키면서 “이분은 내 큰형님 리춘삼입니다.” 하고 이쪽 키 좀 작은 사나이를 가리켰다.    “이분은 둘째형 리인삼입니다. 난 셋째 리원삼이고 막내 무삼은 집에 있습니다.”    병완은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후 창준과 기준을 불러 일일이 인사시켰다.    병완은 원삼의 삼형제를 둘러보면서 인사말을 했다.    “이전에 성칠이 사냥하러 갔다가 신세 진 얘기를 합데. 성칠의 은인들을 이렇게 만날 줄은 정말 몰랐소. 우리 생사고락을 함께 하기요.”     원삼은 사람 좋게 웃었다.     “호한은 천하를 자기 집으로 생각한다는데 고만한 거야 뭐.”     병완은 “사람이 어려울 때 밥 한술이라도 도와 준 게 잊어지지 않지.” 하고 말했다.    원삼은 병완과 함께 원목 위에 나란히 앉아 궁금한 것을 물었다.    “성칠 형님은 어째 공지에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병완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더니 성칠에게 그간 있은 일을 죽 이야기했다.    이때 끼무라 국장이 군도자루를 잡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니, 원목 한 개를 메 오고 한식경이나 앉아 쉬는가? 언제 사무 청사를 다 짓겠는가?”    “에이유, 저 놈들이 보기 싫어서 어디 살겠소?”    원삼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면서 어깨를 들썩거리며 저목장 쪽으로 떠나갔다.    끼무라 국장은 한길수를 데리고 와서 인부들을 쉴 새도 없이 공지에 마구 내몰았다.     끼무라는 인부들의 밭이 묵어가고 농사가 망가지는 것은 뒷전이고 경찰국 사무청사 건축에만 신경을 쓰면서 날마다 밤낮 숱한 헌병들을 파견해 공지를 지키게 해놓고서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공지에 나와 직접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차질이 없는가를 살폈다.    “총 도감, 가을 전에 사무 청사를 다 지을 수 있소?”    병완은 한발 나서면서  대답했다.    “가을이면 새 청사에 들도록 하겠습니다. 이젠 지붕틀까지 다 짜 놓아서 너무 근심할 필요 없습구마.”      끼무라 국장은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코 수염을 슬슬 어루만지었다.    끼무라 눈치를 슬슬 살펴보던 병완은 슬쩍 이런 말을 꺼냈다.    “이젠 목수들의 일만 남았소다. 농번기에 인부들을 더러 집으로 돌려보내 밭갈이도 하게 돌려보내도 됩니다.”    끼무라 국장은 병완에게 낯을 돌리면서 “그래도 되겠는가?” 하고 물었다.    “예.”   그때 한길수가 외눈깔을 부라리면서 꽥 소리쳤다.    “관둬. 어떻게 데려온 인부들인데 돌려보내?!”   병완은 자기 얼굴에 대고 삿대질하는 한길수의 손을 탁 쳐버리면서 맞고함을 쳤다.    “인부들을 내 데려왔지. 네가 데려왔냐?!”    “가마골 인부들은 나와 영팔이 억지로 끌어온 거야.”    병완은 한길수의 외눈깔통에 대고 손가락질하면서 고함쳤다.    “그럼 가마골의 인부들만 여기에 남기고. 나머지 인부들은 집에 보내면 돼.”    한길수는 외눈깔을 무섭게 부릅떴다.    “그래, 네 아들놈부터 집에 보내 농사짓게 해라. 안 그래도 네놈들 삼부자가 눈에 거슬린다.”    병완은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공지 총도감은 내야. 니 가라면 가구 가지 말라면 가지 않을 거 같은가?”    옆에서 류강철의 통역을 들은 끼무라 국장이 하얀 장갑을 낀 손을 흔들며 말리였다.    “에이, 됐네, 됐어. 분공대로 공지 일은 병완 총도감이 하라는 대로 하게. 한 대장은 공지보호만 잘하면 돼. 병완 총도감, 조용히 할 말이 있네.”    한길수는 병완을 흘겨보고는 영팔이랑 데리고 저쪽으로 휭- 하니 가버렸다.    끼무라 국장은 기둥을 세울 기초 돌을 둘러보면서 병완에게 물었다.    “총도감, 이젠 기둥을 세우고 지붕틀을 올려야 되겠구먼.”    병완은 솔직하게 말했다.   “예, 그래야 합지. 지붕틀을 올리려면 기준이나 원삼이네 사형제 같은 힘장사들만 남기고 나머지 웅진에서 온 약골 백승만이랑 쓸데 없습니다. 품삯이 아깝지 않습둥?”    끼무라 국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군. 그러나 백승만이만은 여기에 남겨둬야 하겠네. 저 사람은 웅진 부근의 한다하는 우두머리네.”    (우리 짐작이 맞았구나. 승만 놈은 확실히 끼무라 놈이 박아놓은 밀정이야. 개놈새끼.)    병완은 끼무라를 뒤따라 뚜벅뚜벅 걸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난 일본식으로 지은 적이 없어 근심됩구마. 아마 조선식으로 지어야 할 것 같습구마.”    “어험, 거 말인가?”    끼무라는 병완을 힐끔 곁눈질해 보더니 너스레를 떨었다.    “건 이 땅에 우리 대일본 제국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거네. 꼭 일본식으로 지어야네.”   (개놈들, 내 고향에 뭐 네 놈들의 자존심을 세워? 흥, 내 그 놈의 자존심을 개 좆대가리 부러지듯 꺽어놓아야지.)    병완은 일본식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는데 파악이 없어 기초 돌에 앉아 왼손으로 머리를 붙안고 고민했다.    기준은 옆에 와 털썩 주저앉으면서 귀속 말을 두런두런 했다.    “아버지, 잘 됐습구마. 오래 견디는 조선식 방틀 집을 지을게 있습둥? 일본식으로 아무래나 져 놓고 가버립시다. 쾅 무너졌으면 속이 시원하겠습구마. 흥!”     병완은 주위를 두루 살펴본 후 기준에게 머리를 돌렸다.    “아냐. 우리 만주로 떠나가기 전까지는 이놈 청사가 서 있어야 돼.”     기준은 긴 한숨을 후- 내쉬었다.    한참 후 기준은 흙을 한줌 쥐여 줴뿌리면서 말했다.    “일본식이든 조선식이든 간에 무슨 관계있습둥? 저놈들이 지으라는 대로 아무래나 꽝 무너지게 지어놓고 가깁소.”    병완은 기준의 훤한 이마를 마주 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이때 끼무라가 군도자루를 잡고 웬 얄팍하게 생긴 자를 데리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 바람에 병완은 기준에게 일어나 가라고 고개 짓을 했다.    “에헴, 총도감 수고하네. 이젠 근심하지 않아도 되겠소.”    그는 몸을 돌려 뒤따라온 말라꽹이를 돌아보더니 뒤 말을 이었다.    “자, 소개해주지. 일본식 건축 설계사오.”   병완이 인사하자 그 자는 손을 내밀었다. 병완은 억지로 손을 내밀었다가 말라꽹이의 차가운 손이 싫어 인차 놓아버렸다.    끼무라 국장은 그자를 보고 가방 안에서 커다란 종이 한 장 꺼내놓게 했다.     “이보게, 이건 경찰국 사무청사 설계도요. 이대로 지으면 되오.”     보아하니 2층으로 된 집이였다.     “끼 국장님, 난 이제껏 단층집을 지었지 2층짜리 집을 지은 적이 없습니다.”    류강철이 통역하자 끼무라는 도리머리 질 했다.    “당신은 그저 이대로 지으면 되오. 설계사는 총 도감에게 설계도를 설명해주게나.”    일본 설계사는 반나절이나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짓는 방법까지 일일이 알려주었다.     이튿날부터 병완은 기준이네 형제와 원삼이네 사형제를 불렀다.     “우리 여기서 만난 것두 운명인 것 같소. 우리 의형제로 지내는 게 어떻소?”      병완의 말에 원삼은 천근 무게도 들듯이 힘줄이 불뚝불뚝한 팔을 휘휘 저으면서 병완을 따라 성큼성큼 걸었다.     “좋습구마. 성칠 장사의 아버지는 우리 윗벌이니까 양아버지처럼 모시고 우리 사형제와 성칠 형님, 그리고 기준형님과 의형제로 보내깁소.”     병완은 믿음에 차 원삼의 어깨를 툭툭 쳤다.     원삼은 병완을 바라보며 말했다.     “총도감을 처음 봤을 때 힘깨나 쓰니까. 혹시 성칠 양반의 아버지가 아닌가 했습구마.”    병완은 원삼의 시원시원한 성격이 마음에 들어 어깨를 툭툭 쳤다.    "자네들은 무슨 리씬가? 혹시 리씨왕조 전주 리씨 아닌가?"    “아니, 우린 공주 리씹구마."    "그래? 공주 리씨들은 무두 힘깨나 쓴다더니 정말이구먼. 어떻게 돼 이 먼데까지 인부로 왔소?”    그 물음에 원삼은 황소숨을 몰아쉬었다.    “별수 있습둥? 산골에서 사냥이나 하구 살았는데 일본 사람들은 이젠 사냥도 하지 못한다꾸마. 게다가 지주는 소작료를 8할씩이나 받아먹지. 그런 소작농사두 밭이 있어야 해먹지. 일본사람들이 밭에다 적송을 심으랍꾸마. 이젠 뭘 먹고 삽둥? 그런데 저 승만이란 놈이 우리 고향까지 와서 삯전을 푼푼히 준다면서 인부를 모집하지 않겠습둥.”     “음, 어디나 다 한가지구먼.”    병완은 속으로 승만이 정말 일본 놈을 단단히 등에 업은 밀정 놈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어느날, 경찰국 사무 청사 기틀이 선 것을 보자 끼무라 국장은 기뻐서 입이 함박만큼 벌어졌다. 그는 원삼이네 3형제한테 엄지를 내둘렀다.     한길수는 끼무라 국장을 보고 두덜거렸다.     “쳇, 끼 국장님께선 그래 정말 병완 놈을 나보다도 더 믿구 중용하겠니까? 그것도 모자라서 원삼까지 넘보는 겁니까? 그 놈들은 속에 비수를 품은 자들입니다요.”     끼무라는 코 수염을 어루만지면서 간사한 웃음 띤 눈길로 한길수를 쏘아보았다.      “한 대장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 그래 병완을 믿는다고 봐? 흥, 이 놈아, 저 놈들이 경찰국 사무 청사만 다 지으면 후환을 없애야겠다. 저 놈은 이 지방을 쥐락펴락할 놈이야. 성칠을 붙잡는 날이면 일거에 저 악당들을 몽땅 처단해버려야지. 내버려둬선 절대 안 돼. 우리 대일본제국이 이 지방에 뿌리를 박는데 큰 후환거리로 될 거야.”      그제야 한길수는 실눈을 지은 외눈깔에 배시시 웃음기가 새어났다.     온 몸에 힘을 얻은 한길수는 피 눈이 돼 병완의 꼬리를 밟으려고 미쳐 날뛰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한길수는 영팔을 데리고 갓 세워놓은 기둥들과 가름대로 갓 얹어놓은 대들보를 일일이 검사했다.       그때로부터 또 두 달이 지났다. 경찰국 사무청사가 일떠섰다. 1층은 조선식 방틀집이고 2층은 일본식 판자집으로 돼 진짜 짜구배 집 같았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서늘한 가을에 갓 들어섰다. 우시장과 명천을 둘러선 치마봉과 기운봉에 울긋불긋 단풍이 들었다.   경찰국 사무 청사는 보기에는 그럴듯했다. 건뜻 쳐들린 추녀, 아름드리 기둥과 대들보, 초대형지붕틀…     끼무라 국장은 2층으로 된 새 경찰국 사무 청사를 보면서 입이 함박만 해졌다. 그는 군도자루를 잡고 나까노라 헌병소대장과 림산파출소 소장에 갓 복직시킨 야마모도소장, 야마다 면장, 헌병 분대장 가메다, 그리고 조선 졸개들인 자위대장 한길수, 자위대 중대장 영팔과 수길, 경찰 허꺽쇠, 똘만 등을 거느리고 새 경찰국 사무 청사에 들어갔다. 서른 간도 넘는 경찰국 사무 청사를 일일이 돌아본 끼무라 국장 일행은 2층에 올라 우시장시내를 내려다보다 멀리 보이는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 시작한 남산을 쳐다보더니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한길수는 이 경사로운 새집들이잔치에 끼무라 국장이 병완과 삼부자와 원삼 삼형제를 부르지 않은 것을 보고 깨고소했다.     (그럼 그렇겠지. 아무렴 우리 끼무라 국장님이 저 놈들을 더 믿어? 어림도 없지. 흐흐흐.)    끼무라는 2층 난간에 뚱뚱한 배를 대고 옆에 선 한길수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병완이를 우시장으로부터 회령까지 통하는 길닦이공지 우시장 구역 총 도감으로 내몰게나.”    그 말에 한길수는 외눈깔이 뒤로 번져 질 지경이었다.    “또 총도감입둥?”    끼무라 국장은 눈귀로 한길수를 내리 흘겨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아직 성칠을 잡지 못하였네. 알만한가?”    “예~ 허허허. 그물을 넓게 쳐서 큰 고기를 잡아야죠. 거 참 묘한 수입니다. 또 하마터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를 번했습니다.”    한길수는 우멍한 외눈깔을 데굴거리면서 손으로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병완은 진작 끼무라 국장 놈의 속심을 빤히 들여다 본데다가 일본 놈들의 믿음 따위나 칭찬 따위를 바라지 않았으므로 별로 개의치 않았다. 다만 한 달 채 주지 않은 인부들의 삯전이 근심스러웠고 개 코처럼 우뚝 솟은 경찰국 사무 청사가 계획대로 나무벌레들에게 무너지지 않을까봐 손바닥에 땀을 그러쥐고 근심할 뿐이었다.     이때 한길수가 2층에서 내려오더니 외눈깔에 득의양양한 빛을 띤 채 다가왔다.    “병완이, 내일부터 인부들을 데리고 길닦이에 나가게나. 끼 국장께서 자넬 길닦이 총 도감으로 중용한다네. 참, 좋겠다. 에헴.”     그러자 병완은 침을 탁 뱉었다.     “가서 전하게나. 한 달 삯전을 빨리 내달라고. 삯전을 주기 전엔 길닦이에 나가지 않겠네.”    “닥쳐!”    끼무라 국장이 군도자루를 잡고 2층에서 내려와 인부들 앞에 오더니 군도를 쓱 뽑아들고 돼지 멱따는 소리로 고함쳤다.     “대일본 제국의 길을 닦으라는데 무슨 삯전소릴?! 누가 감이 안 나가?! 몽땅 죽여치우겠다!”    병완 삼부자와 원삼 삼형제는 끼무라 국장이 빼든 서슬 푸른 군도를 쏘아보면서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고 부르르 떨었다.    여기저기에서 땅이 꺼질 듯 한숨소리가 났다.    퍼렇게 딩딩한 가을하늘이 둥근 천정처럼 이 땅덩어리를 칭칭 둘러 감았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공지의 가을하늘은 넓었지만 끼무라의 서슬 푸른 군도아래 찜통 속처럼 숨이 막힐 듯이 좁고 갑갑했다.     을씨년스럽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 멀리 바라보이는 산 봉오리들은 변덕스러운 조화를 부리는 비구름 속에 숨박꼭질을 하듯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는 다시 나타나군 했다. 길닦이에 끌려 나갈 원삼 삼형제를 비롯한 인부들은 머리를 숙이고 투덜거리면서 긴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고향 산골에 심어 놓은 감자가 멧돼지들이 다 파먹겠는데 어쩌는가? 길닦이에 발목을 잡혀서. 원 일본 놈들의 성화에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원삼은 어둑어둑해지는 저 멀리 동북쪽의 고향 쪽의 검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날아지나가는 기러기 떼들의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쓸쓸하게 들리어왔다. 기러기들도 인부들의 가긍한 신세를 동정이나 하는듯이 구슬프게 울면서 줄지어 날아 지나갔다.           저자의 말:              이제까지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1권을 마지막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제2권을 실어드리도록 약속하겠습니다.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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