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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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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5) 사냥군 댓글:  조회:455  추천:0  2024-05-19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6장 포수대                                   4. 사냥군           엄동설한은 새끼를 쳐서 대지에 한기를 내리뜨렸다. 그러나 독립군 대원들의 항일에 달아오른 가슴을 얼구지는 못했다.     진달래는 그날 밤에 바우돌을 데리고 불붙이에 있는 경인오빠한테 찾아갔다.    진달래가 밤중에 문을 두드리고 들어서자 경인은 놀랍기만 했다.    “아니, 얘, 어찌 이 추운 겨울에 왔느냐?”     진달래는 경인오빠와 형님 어금에게 인사를 드린 후 정주간에 앉았다.     어금은 부엌에 내려가 칼 모태에 감자를 돔박돔박 썰어 솥에 넣고 장국을 끓였다. 이윽고 솥에서 김이 쌕 빠져나오면서 구수한 감자장국 냄새가 좁은 방에 구수하게 풍기었다.    한참 경인에게서 그간 이야기를 들은 후 진달래는 비로소 경인도 버치를 결을 버들을 베다가 일본 놈들에게 당한 것을 알게 됐다.    진달래는 어금과 함께 제꺽 아침상을 갖춰 놓은 후 바깥의 바우돌도 불러들였다.    진달래는 아침을 들면서 단도직입적으로 경인에게 말했다.    “오빠, 일본 놈들의 성화에 어디 살겠어요? 우리 함께 일본 놈들을 사냥하면 어때요?”    경인은 진달래를 흘끔 내려다보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무슨 힘으로 그 많은 일본 놈들을 사냥한다니?”    섬찍해 난 어금은 숟가락을 들다가 말고 신랑을 건너다보았다.    경인은 색시 어금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도리머리 질 했다.    “삯전을 주지 않지 버치마저 결어 팔지 못하게 하니 어떻게 살겠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살 구멍이 나지겠지.”    “일본 놈들을 몰아내지 않고서야 어찌 마음 편히 잘 살 수 있겠는가요?”    “말이 쉽지. 칼이나 사냥총 몇 자루로 어떻게 일본 놈들을 몰아내겠니? 서뿔리 일본 놈들에게 칼을 휘둘렀다가 부모형제들이 다 잘못되면 어쩌겠니? 아버지 말씀처럼 중용을 지키는 게 이 난리에는 제일이야.”    진달래는 한숨을 호 내쉬었다. 그녀는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는 검술이 출중하잖아요? 그 검술이면 얼마든지 일본 놈들의 목을 칠 수 있지 않아요. 사람마다 일떠나 몇 놈씩 잡으면 일본 놈들을 몽땅 쳐 죽일 수 있어요.”    경인은 손을 들어 손사래를 저었다.    “얘, 언성 좀 낮춰라. 요즘 영팔이랑 우리 집을 기웃거린다.”    그제야 진달래는 더 말해도 경인의 머리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그녀는 감자장국이나 몇 숟가락 뜨네 하며 바우돌이 배불리 먹기를 기다렸다. 진달래는 맛 나는 장국도 맛이 없어 숟가락을 밥상에 달랑 내려놓았다.    진달래는 바우돌을 데리고 경인이네 집 문 밖을 맥없이 나왔다. 그녀는 불붙이를 떠나면서 퍽 실망스러웠다.    성칠은 진달래에게서 조카사위 경인의 말을 듣고 한숨을 후- 쉬더니 진달래를 위안했다.    “사냥꾼들을 묶어세우는 일이 그렇게 식은 죽 먹기겠느냐? 천천히 방법을 대야겠다.”    진달래는 성칠을 믿음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튿날 그들은 기운봉 기슭에서 룡천 중대장과 만났다. 룡천 중대장은 성칠과 진달래에게 우시장부근에서 사냥꾼으로 독립군 포수대를 조직할 임무를 맡기고 독립군 대원들과 함께 백마를 타고 장백산을 바라고 개마고원 쪽으로 출발했다.    성칠은 행동과 은신하는데 편리하게 하려고 진달래를 운주동 최구장의 집으로 가서 묵게 하고 혼자 사냥총을 쥐고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    수림 속에서 성칠은 사냥하면서 어떤 방법으로 사냥꾼들을 묶어세우겠는가고 궁리했다.     토끼 꼬리만한 겨울해가 눈 덮인 서산의 수림 속으로 숨어버리고 영월동 서산에는 어둠의 장막이 내리 드리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굶은 이리들의 울음소리가 무섭게 들리었다.    성칠은 먼저 엄창렬의 집에 가서 상호를 만나려고 해싿. 상호는 명천 공지에서 도망쳐 집에 돌아왔던 것이다.  평소에 엄창렬 일가를 많이 도와왔기에 말하기 쉬울 것 같았다.    성칠은 사냥총을 들고 눈 덮인 사위를 둘러보았다. 숨이 막힐 듯이 고요했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어둠을 밟으면서 성칠은 슬금슬금 바자에 난 삽작문을 살짝 열었다.    문을 노크하려고 할 때 집 동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성칠이 삽작문 뒤에 붙어섰다. 그런데 찬찬히 여겨보니 바로 상호였다.   “상호야.”   “아니, 형님.”    “쉬—”   성칠은 입술에 손가락을 세로대면서 주위를 살폈다.   상호는 성칠의 팔소매를 잡아 집 쪽으로 끌었다.    “다른 식구들을 놀라게 할 게 없다.”    성칠은 상호와 함께 삽작문을 나섰다.   상호는 성칠을 따라 걸으면서 말했다.    “낮에 총소리를 듣고 형님이 근심돼서 아까 가보았소. 때마침 검둥이가 달려와서 꼬리를 휘청휘청 저으면서 끼깅 거리잖겠소. 그래서 큰어머니랑 아주머니랑 모두들 형님이 무사하다고 짐작하고 조금 근심을 덜었소. 그러나 형님 근심이 태산 같소. 형님이 무사하다고 전해야지.”    “먼저 내 말 듣고 가라.”    성칠은 상호의 팔소매를 잡아끌고 집 뒤 산기슭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    “상호야, 왜 공지에서 돌아왔니?”   그러자 상호는 “흥!” 하고 코 방귀부터 뀌었다.   “그따위 공지에서 일해 봤자 삯전도 받지 못하는데. 차라리 집일을 하는 게 낫지.”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잘 돌아왔다. 그러나 공지에서 도망치면 일본 놈들이 영팔이랑 시켜 붙잡아갈 게야.”    “하긴 큰아버지가 안 됐소. 우리 삯전을 주지 않는다고 한길수와 대판 싸우다가 감옥에 갇혔으니 말이오.”   성칠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상호야, 일본 놈들을 믿고 일한다는 건 괜한 짓이다. 내 이런 생각을 해봤다.”   그는 사냥총을 들어 보이면서 뒤 말을 이었다.    “우리 사냥이라도 해야 올해 보릿고개를 넘지 않겠니?”    상호는 어둠 속에서 성칠을 쳐다보면서 근심스레 말했다.    “형님, 사냥한다고 형님을 붙잡아가려고 미쳐 날뛰던데 사냥해 되겠소?”    “일본 놈들도 너무 하잖니? 사냥도 하지 못하면 우린 뭘 먹고 살겠니?”    그러자 상호는 이를 뻑뻑  갈았다.      “그 놈들이 어디 우리 생사를 돌보오?”    성칠은 사냥총을 힘 있게 높이 추켜들고 흔들면서 힘 있게 말했다.     “우리는 사냥총을 들고 짐승을 사냥해 연명해야 해. 사냥총으로 우리 고향에서 일본 놈들을 몰아내야 한다. 그래야 편안히 살 수 있다.”    상호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런데 우리 몇이 그 놈들을 다 몰아낼 수 있겠소? 황차 우리 고향에서 몰아낸다고 해도 인차 우시장이나 다른 곳 일본 놈들이 무리승냥이처럼 다시 쳐들어올게 아니오?”    성칠은 상호의 어깨를 꽉 움켜쥐어 흔들면서 신심 있게 말했다.   “우리 영월동과 운주동, 가마골, 신흥동에서 몽땅 들고 일어나면 우리 고향에서 일본 놈들을 몰아낼 수 있다. 생각해봐라. 우리 가만있으면 몽땅 우리 아버지처럼 붙잡혀 감옥에서 죽고 만다. 우리 조선 백성들이 몽땅 들고 일어나면 그 놈들을 몰아내지 못하겠니?”    성칠의 뜨거운 입김이 엄동설한을 날려 보내면서 상호의 얼굴에까지 풍겨갔다. 한참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뒤이어 상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형님 말이 옳소. 공지에서 도망쳤다고 감옥에 갇히기 전에 사냥총을 들고 일본 놈들을 사냥하다 죽는 게 낫소.”    성칠은 룡천과 진달래 말을 하면서 장백산 항일독립군 말도 해주었다.   상호는 그 말에 힘을 얻었다.   “형님, 사냥총을 들고 형님을 따라 사냥하겠소.”   상호는 머리를 들어 집쪽을 보았다.   “형님, 잠간 집에 들어가서 부모에게 사냥하러 떠난다고 말하고 나올게.”    성칠은 상호의 팔소매를 붙잡았다.   “급히 서둘 필요 없다. 부모들과 하루 밤 더 자면서 잘 말한 후 내일쯤 치마봉 아래로 오너라.”   그러나 상호는 결단성 있게 말했다.    “아니오. 지금 형님은 혼자 위험하오.”     성칠은 더 말리지 않았다. 그는 어둠을 헤치면서 성큼성큼 집 쪽으로 걸어가는 상호의 어두운 뒷모습을 대견하게 지켜보았다.    상호는 집에 들어갔다가 인차 나왔다. 그는 김치 움에 들어가 감춰둔 사냥총을 들고 나왔다. 그는 사위를 둘러보더니 집 뒤 산기슭으로 달려왔다. 성칠과 상호가 김칠백의 집으로 향할 때다.    상호네 집 문이 열리면서 두 그림자가 삽작문을 열고 나왔다.    “상호야, 상호야.”    엄창렬이 허리를 구부정하고 손을 들어 흔들면서 삽작문 안에서 나왔다. 명순이 치마폭을 걷어안고 황급히 뒤따라 달려 나왔다.     상호는 사냥총을 들고 급히 마주 달려갔다.    “아버지, 어머니, 근심하지 마시오. 산짐승을 많이 사냥해야 아버지 기침병도 치료하지.”    명순은 손으로 상호의 얼굴을 만졌다.    “아무튼 몸조심하고 성칠 형님의 말을 잘 들어라.”   성칠은 성큼성큼 뒤따라와 엄창렬 부부에게 인사하고 나서 “근심하지 마오.” 하고 말했다.   엄창렬은 허리를 구부정하고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말했다.   “아무튼 둘 다 몸조심하게. 사냥이야 성칠이 좋은 스승이니까. 시름 놓고 보내겠네.”   상호는 넙적 엎드려 부모께 절을 올리고 성칠을 따라 나섰다.    성칠은 상호와 함께 먼저 강 건너 자기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성칠은 주춤 멈춰서더니 상호한테 귀속 말을 했다.   "우리 집으로 가서 내 무사하다고 기별해라. 만약 뜻밖의 정황이 생기면 서쪽 수림 속으로 달려가라.”    상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사냥총을 성칠에게 맡기고 평소처럼 골짜기바닥의 허연 얼음을 스적스적 건너 성칠의 집으로 다가갔다.    성칠은 강둑 버드나무숲 속에서 눈을 깔고 엎드려 총 가목을 으스러지게 틀어잡고 집 쪽의 동정을 살폈다.   “왕, 왕, 왕!”   갑자기 검둥이가 덮쳐왔다.   “휙~ 휙—”   성칠이 휘파람을 불자 검둥이는 어둠속에서도 주인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끼깅- ”   검둥이는 몸뚱이를 일으키더니 두발을 거인처럼 우뚝 선 성칠의 가슴에 얹고 끼깅거렸다. 성칠은 한손으로 검둥이 머리를 다독여주었다.    땅! 땅! 땅!   이때 집 쪽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성칠은 강뚝에 엎드리면서 총소리 난 쪽으로 사냥총을 겨눴다. 어둠속에서 상호가 집안에서 뛰쳐나오고 집안 전등불이 꺼졌다. 상호 뒤로 검은 그림자 셋이 뛰쳐나왔다. 허나 성칠은 총을 쏠 수 없었다. 일본 놈들인지 집식구들인지 알수 없었다.    땅 땅 땅!   뒤따라 나온 검은 그림자들에게서 불빛이 번쩍였다.   땅!    성칠이 쏜 총에 뒤따라 나오면서 총을 쏜 놈 가운데서 한 놈이 푹 꺼꾸러졌다.    상호는 집 서쪽수림 속으로 도망쳤다. 나머지 두 놈이 상호 쪽으로 쫓아갔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일본 놈들은 성칠이네 집안에 미리 들어가 숨어 있다가 검둥이가 온 것을 보고 성칠이 부근에 있다는 것을 짐작하였던 것이다. 하여 성칠의 어머니와 아내를 바 줄로 묶고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은 후 고방에 가둬놓았다. 놈들은 벽에 붙어 서서 숨을 딱 죽이고 성칠이 집안에 들어서기를 기다렸다. 그때 상호가 들어섰다. 놈들은 성칠인가 오해한 채 붙잡으려고 욱 덮쳤다. 상호는 덮쳐드는 일본 놈들을 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일본 놈들 셋이 뒤쫓아 나왔던 것이다.     땅 땅 땅!    이때 강둑에서 숱한 놈들이 총을 쏴대면서 다가왔다. 성칠의 옆에 있던 검둥이는 검은 그림자들에게 덮쳐나갔다.    “아이유! 이 놈 개새끼!”     영팔의 비명소리 같았다.     성칠은 사냥총으로 상호 뒤로 쫓아가는 두 그림자를 겨눠 또 사격했다.     땅!     한 놈이 푹 꺼꾸러졌다.     땅!    또 한 놈이 명중탄을 맞고 푹 꺼꾸러졌다.    성칠은 사냥꾼의 본능으로 총을 쏜 자리에서 일어나 한길수네 집 쪽으로 달아났다. 뒤에 검은 그림자가 보이지 않자 강을 슬쩍 건너 칠백이네 집 울바자 옆으로 달아났다. 그런 줄도 모르고 왜놈들은 왝왝 소리치면서 강둑에서 눈먼 총질을 해댔다.     그때였다.    총소리를 들은 칠백과 진달래, 칠석이 집안에서 뛰쳐나와 합세했다.    그때 덕성이 뒤따라 나오면서 발을 굴렀다.    “얘들아, 다 가면 난 누굴 믿고 살라니?”    옥녀도 뛰어나와 엉엉 울었다.    “오빠~”    칠백은 성칠의 손에서 사냥총을 받아 쥐고 쳐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아버지, 근심하지 맙소. 만주에서 가서 만나깁소.”    성칠과 진달래는 서쪽 수림 속에서 상호와 회합했다. 모두들 진달래의 주밀하게 계획한 전술대로 수림 속으로 철퇴했다. 수림 속에     서 진작 바우돌을 비롯한 독립군 대원들이 백마들을 잡고 대기하고 있었다. 모두들 진달래의지휘대로 백마를 타고 수림 속으로 전이했다. 성칠은 달리는 백마를 탄 사람들이 많이 불어난 것을 보았다.     칠백과 칠석 형제는 벌목공지에 가서 헛고생을 하고나서야 형 룡천의 말처럼 성칠을 따라 사냥해야 살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들은 일본 놈들이 무서운 물건짝들이지만 결코 그 놈들이 무서워 집에서 굶어 죽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칠백이네 형제가 최동욱과 그런 의향을 말했다.     그러나 동욱은 그들을 따라나서지 않았다. 아내가 앓는 것도 있고 무모하게 일본 놈들이 말리는 사냥을 하다가 일본 놈들에게 붙잡혀 혼날 까봐 그만뒀던 것이다.     칠백이 찾아가서 아무리 동원해도 동욱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쌀은 다른 방도로 구할 수 있겠지만 총칼을 흔드는 일본 놈들의 등살에 하루도 살수 없을 거다.”      별수 없었다.     성칠은 도리머릴 질 했다.     (사냥은 강요할 수 없지.)    성칠 등은 백마를 잡아타고 눈 깜짝할 새에 치마봉 기슭에까지 달려갔다.    그 곳에서 룡천 중대장을 비롯한 2분대 독립군 병사들이 벌써 치마봉 기슭 수림 속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룡천 중대장의 지휘아래 즉시 박달령을 넘어 100여리 밖으로 쏜살같이 전이했다.     눈 덮인 수림 속 여기저기에서 굶주린 이리떼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룡천과 진달래, 성칠은 조용한 곳에 가서 금후 대책을 의논했다.    룡천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여기서 잠시 휴식정돈한 후 내일 밤에 일본 놈들의 림산 작업소를 습격해 저목장을 기습하기오. 목재를 몽땅 불태워 버리기오.”    “글쎄요. 어쨌든 이번 임무를 빨리 완수하고 인차 장백산지구로 철퇴하는 거 상책인 거 같아요. 하루라도 더 끌면 일본 놈들이 덮쳐들 거요.”     진달래가 맞장구를 쳤다.    한참 생각에 잠겼던 성칠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요. 우리는 더 많은 젊은이들을 우리 포수대에 묶어세워야 하오. 먼저 금방 포수대에 들어온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야 하오. 우선 말한 대로 사냥부터 해서 저 젊은이들의 집식구들을 기아에서 구해야 하오. 사냥한 단맛을 봐야 더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포수대에 들어오게 되오.”    룡천은 성칠의 말에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 난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네. 내일 먼저 사냥부터 합세. 모레쯤 사냥물을 마을에 가져갑세. 저놈 저목장을 불태워 버립세.”    성칠은 칠백이랑 있는 데로 돌아왔다.    “우리 삭정이를 가져다가 우등 불을 피우자. 새우잠이라도 자야 내일 사냥하지.”    “형님 말이 옳다. 어디 추워서 견디겠니?”    바우돌이 보초서고  모두들 어둠을 무릅쓰고 삭정이를 주어왔다. 성칠이 부시를 쳐서 불꽃을 일구자 이윽고 수림 속에 우등불이 활활 피여 올랐다. 모두들 추워 우들우들 떨면서 이 밤을 어떻게 보낼까 근심하다가 욱 우등 불에 모여들어 불을 쪼였다.    이때 이리떼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땅!    성칠이 몸을 돌려 쏜 사냥 총알에 우등 불쪽으로 슬금슬금 기어오던 이리 한 놈이 폴싹 꺼꾸러졌다. 모두들 사냥총을 거머쥐고 불똥이 왔다 갔다 하는 수림 속을 노려보았다. 굶주린 이리떼는 자기 동료가 쓰러졌건 말건 물러서지 않았다. 그 놈들은 토론이나 한 듯이 울부짖더니 미친 듯이 덮쳐왔다.     땅 땅 땅!    독립군 대원들과 포수대 사냥꾼들이 일제히 총을 쏘았다.   사냥 경험이 없는 독립군 병사들과 칠백이랑 눈 위에 엎드리거나 무릎을 꿇고 총을 쏘아댔다.    성칠과 진달래만은 나무에 기댄 채 꿋꿋이 서서 총을 쏘아댔다.    “서서 사격해! 승냥이들과 싸울 땐 서서 사격해야 된다. 그래야 승냥이들이 달려들어도 머리나 목 같은 요해처를 물리지 않아!”    성칠의 말에 모두들 일어나 나무 뒤에 기대서서 악을 쓰면서 덮쳐오는 이리떼를 향해 사격했다. 십여 마리 이리가 쓰러지자 이리떼들은 물러갔다.     이튿날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올 돌아보니 아직도 숨이 채 지지 않은 이리들이 바둑거리면서 사람들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성칠은 비수로 바둑거리는 이리의 숨통을 찔러 죽이고 나서 웃으며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첫 사냥물이 꽤나 많군. 허허허.”    칠백은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동을 달았다.    “이거면 우리 집식구들이 한 보름은 실컷 잡숫겠다. 시장에 가서 팔아도 한 달 먹을 쌀은 사겠다.”    칠석이랑 좋아서 싱글벙글 웃었다.    “사냥해야 산다니까.”    “성칠 형님을 따라 사냥에 나선 게 옳아. 사냥해야 살 수 있어.”    “하하하.”    눈 덮인 밀림 속에서는 첫 사냥을 한 기쁨에 겨운 웃음소리가 호탕하게 울려 퍼졌다. 그들은 우등 불에 이리 고기를 구워 실컷 먹고 눈 속에 숨어 굳 잠에 곯아떨어졌다.    해가 다시 지면서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드리우자 그들은 백마에 언 이리를 처매고 다시 명천의 고향을 바라고 말을 달렸다.
435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4) 통나무의 비밀 댓글:  조회:451  추천:0  2024-05-19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6장 포수대           3. 통나무 벌레의 비밀             토끼 꼬리만한 늦겨울의 해는 어느새 수림 속의 엄동설한에 밀리어 맥없이 하얀 산둔덕을 넘어가고 하얀 눈이 뒤덮인 수림에 어둠의 장막이 무섭게 어둑어둑 내리 드리었다.       일본 놈들은 성칠의 사냥총을 빼앗으러 갔다가 독립군의 습격을 받아 동료 몇을 잃었다. 그 놈들은 림산파출소 경찰까지 다 동원해 수림을 서캐 훑듯 했지만 독립군의 그림자도 찾지 못하고 닭 쫓던 개 신세로 됐다. 다만 동서로 갈라진 어지러운 말발자국 밖에 보지 못했다.      일본 놈들은 보병으로 기병을 쫓아 붙잡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놈들은 공포에 찬 어둠이 깃들자 매복습격이라도 받을까봐 황급히 꼬리 빳빳해 림산파출소로 내려왔다.      한편 진달래와 성칠은 독립군 대원들과 함께 백마를 타고 일본 놈들을 수림 속으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역습을 가하려고 했다. 그런데 교활한 일본 놈들이 수림 속에서 철거하는 바람에 성사하지 못했다.     성칠은 진달래를 보고 말했다.     “최 부소대장, 부모형제들이 어떻게 됐는지 영월동에 가 봐야겠네.”     진달래는 어둠 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성칠을 쳐다보면서 나직이 말했다.     “원수는 꼭 갚아야 해요. 그러나 오늘 영월동에 내려가선 안돼요.  위험해오. 놈들은 꼭 오빠네 집에 그물을 치고 뛰어들기를 기다릴 거요.”     진달래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던 성칠은 옆에 앉아있는 검둥이를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그럼 다른 수를 쓰지. 검둥이를 집에 보내겠소. 검둥이가 무사한걸 보면 내가 무사한 걸 짐작할 거요.”     성칠은 무릎을 꺾으면서 쪼그리고 앉더니 검둥이의 대가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중얼거렸다.    “검둥아, 네가 집에 가라.”     검둥이는 알아들었다 듯이 낑낑거리면서 꼬리를 휘휘 내저었다. 검둥이는 눈이 시허옇게 뒤덮인 수림 속으로 사라졌다.     “최 부소대장, 영월동에는 며칠 후에 가기로 하구 운주동에 가 봐야겠소.”    진달래는 성칠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말했다.     “오빠, ‘최 소대장’, ‘최 소대장’ 하지 말고 ‘진달래야’ 하세요. 종전처럼 야, 자 하세요. 운주동엔 뭘 하려고요?”     성칠은 진달래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목소리를 낮췄다.     “ 넌 부소대장이야. 숱한 사람들 앞에서 야, 자, 해서야 되겠니?”    “괜찮아요. 운주동에 있는 동생들과 조카들을 만나려고 그래요?”    성칠은 머리를 끄덕였다.     “아버지를 면회하러 갔을 때 아버지는 기준한테 전하라더라. ‘통나무 옹이나 벌레를 조심하라구.’ 목수인 기준은 그 말귀를 알아들었을 거야.”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오빠, 나도 운주동에 갈래요. 큰아버지도 만나 보고.”     “최구장을 만나러?”    “예, 그집 둘째오빠는 검술에도 능하니까. 우리 독립군에 합세하자고 말해야겠어요.”     “네가 어떻게 가겠니? 그곳은 위험해.”     성칠의 말에 진달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누구도 아녀자가 이런 일을 하는 걸 모를 거요. 우리 오누이 부부처럼 가장하고 밤에 운주동에 들어가면 의심하지 않을 거예요.”     성칠은 그제야 한숨을 후 내쉬었다.     진달래는 독립군 대원들과 함께 말을 타고 어둠을 타 운주동으로 가만히 달려갔다.     독립군 대원들은 말에서 내려 마을 근처 버들방천에 숨어 대기하게 하고 성칠과 진달래가 운주동으로 스적스적 들어갔다.     제일 동쪽어구에 있는 최구장네 집에는 진달래가 대원 한명만 데리고 들어갔다. 거의 동시에 성칠은 서쪽에 자리 잡은 기준네 집 앞에 이르렀다. 성칠은 사위를 둘러보고 나서 독립군 대원을 구새목에서 보초를 서게 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초저녁이지만 성칠이가 사냥총을 들고 웃방에 들어서자 기준은 적이 놀라면서 우쭐 일어나 문안했다.     “형님, 집에 무슨 일이 생겼소?”      제수 최사련이 난지 몇 달 안 되는 상순을 안고 위방에 올라와 인사했다.     성칠은 제수가 올린 술상에 마주 앉자마자 막걸리사발을 들어 마시면서 그간 우시장과 영월동에서 있은 일을 쭉 말했다.    기준은 원래 아버지보다도 성질이 우락부락했다. 그는 맏형의 말을 듣고 펄펄 뛰었다.    “작두날로 찍어 죽일 놈들, 언감 아버지를 가두고서도 형님께도 손을 댄단 말이요? 개놈새끼들이 사냥도 하지 못하게 하면 입에 거미줄을 치라오?”    성칠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지었다.    뒤이어 성칠은 기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엊그저께 면회하러 갔을 때 아버지는 ‘통나무의 옹이나 벌레를 주의해라.’고 하더라잖았니? 감옥이여서 말씀하기 불편해 암시한 말씀 같구나. 넌 목수니까 전번에 내 아버지 말씀 전했는데 뭘 암시했는지 알았지?”     “통나무 옹이나 벌레를 주의하라? 알긴 알았소.”     기준은 담배를 말아 뻑뻑 빨면서 아버지 말씀을 되새기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한참 후 기준은 머리를 들어 성칠을 바라보면서 무겁게 입을 떼였다.     “그 말을 그대로 풀어보면 통나무의 옹이나 벌레를 주의해 경찰국 사무 청사가 무너지지 말게 하라는 말씀인 거 같소. 자칫 탄로나면 아버지처럼 해를 입을 수도 있지.”     “음.”     기준은 마른기침을 하며 뒷말을 이었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가 일본 놈들 사무 청사인지 개나발인지 잘 되기를 바라겠소?”     기준은 형의 귀가에 입을 가까이 대고 귀속 말을 했다.     “이전에 목수 간에서 일할 때두 아버지는 통나무 벌레를 파서 물초롱에 던지면서 늘 이랬소.  ‘이런 벌레 먹은 통나무로 집을 지어서 몇해 가겠는가?’ 이렇게 말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소. 그 말씀을 연계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분명‘통나무 벌레를 기둥에 박아 넣어 일본 놈들 사무 청사가 무너지게 하라.’고 귀띔한 것 같소.”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물었다.    “그럼 옹이는 뭐냐?”    기준은 목수로서 짐작되는바가 있었다.    “옹이 많은 나무를 쓰면 눈에 날게고. 주의는 해야지. 그러나 우리에게 기둥이나 대들보에 옹이 대신 쐐기를 묘하게 박아 넣어 무너지게 하라는 게 같소. 쐐기 하나만 대들보에 박으면 천정무게가 한쪽으로 기울어 몇 해 되지 않으면 아무리 번듯한 청사도 무너질게 아니요?”     성칠은 연신 끄덕이었다.     "오, 거 참 묘수로구나.”      뒤이어 그는 기준의 귀에 대고 뭐라고 쑤군거렸다.     기준은 연신 개탄했다.     “옳소, 옳소, 알았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근심하지 마오.”     "아버지 말씀 알아들었으면 이젠 늦추지 말구 경찰국청사를 와르르 무너지게 만들어라."     "알았소."     일이 이쯤 되자 성칠은 이 추운 겨울에 바깥에 말을 쥐고 서있을 독립군 대원들이 근심돼 바깥에 나갔다.    그는 보초를 서는 대원더러 가서 최 소대장에게 운주하 버들방천에 숨어있는 독립군 대원들을 집에 데려다 자게 하는 게 어떻겠는가고 물어보라고 부탁했다.     성칠이 집에 재차 들어간 후 대원은 곧추 마을 동쪽의 최구장의 집으로 달려갔다.     바깥에는 독립군 대원 바우돌이 망을 보고 있었다.    집 안에서는 진달래가 한창 큰아버지 최구장과 맏오빠 경숙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우돌이 바깥에서 들어와 연통하자 진달래는 바깥에 나갔다.   그는 성칠이 쪽에서 온 독립군 대원의 말을 듣고 좀 생각하다가 말했다.    “성칠 오빠는 쫓기는 몸이어서 동생네 집에 들어가 자긴 틀렸어요. 오히려 여기 우리 큰아버지네 집이 더 편리해요. 내 이제 들어가 큰아버지한테 사냥꾼 친구들이라고 말해보고 여기 와서 하루 밤 묵어 가자요.”     진달래가 집 안에 들어갔다가 인차 나왔다.    “대원들에게 말을 끌고 오라고 하세요.”     “말까지 끌어오면 혹시 일본 헌병 놈들이나 오면 의심을 받지 않겠소?”    “괜찮아요. 큰아버지는 아직 그 놈들 눈에 나지 않았으니까요.”    진달래는 성칠까지 불러다가 독립군 대원들과 함께 최구장의 집에서 하루 밤 묵으면서 푹 쉬었다.    이튿날 장국까지 맛있게 마시고 진달래는 떠나게 됐다.    이른 아침에 최구장은 뒷간에 가다가 총을 잡고 망을 서며 숱한 백마를 지키는 바우돌을 보고 심상치 않은 감을 느꼈다.    최구장은 떠나가려는 진달래를 한쪽으로 조용히 불러 귀속 말로 물었다.    “너희들은 혹시 일본 놈들을 사냥하는 거 아니냐?”    진달래는 한기에 언 철색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최구장은 조카에게 마음먹고 귀띔해주었다.    “옛 성인들이 가로사되 ‘자기를 억제하고 례에 맞게 행동하라.’고 하였느니라. 뭐나 중용을 지키는 게 좋아. 일본 사람들이 무력으로    우리를 짓밟으니 좋으냐? 뭐나 무력으로 해결하자고 말아라. 남의 피를 보면 자기도 피를 흘려야 하느니라. 스물도 넘은 계집애 시집은 가지 않고 엉뚱한 일에 삐칠게 뭐냐?”    진달래는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귀띔에 고마워요. 너무 근심하지 마세요.”    최구장은 백마를 타고 멀어져가는 진달래를 보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달려가는 백마들의 말발굽소리 요란하고 그 뒤로 하얀 눈꽃이 새뽀얗게 흩날렸다. 눈 덮인 기운봉 저쪽으로 백마들이 자그마한 하얀 점들로 아물거렸다.
434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3) 전우를 구출 김장혁 댓글:  조회:594  추천:0  2024-05-10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6장 포수대                             2. 전우를 구출                  성칠은 룡천의 말을 듣고 착잡한 생각에 빠졌다.     한참 후 그는 무슨 마음을 먹은듯이 위방에 올라가 벽에 걸어둔 사냥총을 벗겨 마른 수건으로 쓱쓱 닦고 탄약과 시퍼런 비수를 꺼냈다.    그는 비수를 팔소매에 대고 쓱쓱 닦아 엄지로 날을 쓱쓱 훑어보며 윽별렀다.    (아버지를 감옥에 가둬? 일본 놈새끼들, 가만 놔두는가 봐라.)    하옥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나는 싸우다가 죽어도 괜찮은데. 참, 부모형제를 연루시키면 어쩐단 말인가?)    아내 하옥은 남편이 우시장에 갔다 온 후 행동거지가 이상한 감을 육감적으로 느꼈다. 그녀의 얼굴에는 수심의 그림자가 물결쳤다. 호랑이 같은 남편에게 후대를 낳아주지 못한 죄책감이 늘 앞서군 하였다. 하여 남편과 바깥일을 묻기도 저어했다. 그러나 요즘 시아버지가 한길수의 눈알까지 뽑아버려 감옥에 갇힌 후 면회하러 갔다 와서 남편의 거동이 심상치 않아 묻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려웠다.     그녀는 위방에 올라가 성칠한테 다가가 큰 마음 먹고 남편에게 물었다.     “시아버님은 무사하던가요?”    성칠은 머리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승냥이 굴에 들어간 분이 무사할리 있겠소?"   하옥은 남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한숨을 호 내쉬었다.    “혹시 돈을 좀 팔면 아버지를 모셔 내올 수 없을까요?”    “아버지를 면회하는데도 큰아버지 산삼하구 면회 비까지 냈소. 아버진 무기징역을 받을지도 모르오. 일본 놈들의 앞잡이 눈알을 뽑아 놨으니까.”     성칠은 사냥총을 벽에 걸어놓고 비수를 장단지 각반 속에 쓱 꽂아 넣었다.    “이 일을  어쩌는가요?”    성칠은 아내를 보고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여보, 당신은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 많았소. 난 아마 집을 떠나 큰 사냥을 하러 가야 할 것 같소.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수고하오.”    이전에 성칠은 사냥하러 가도 전혀 작별인사를 한 적이 없었다.    하옥은 이상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사냥을 한 둬달 하면 돌아오겠지요?”   성칠은 도리머리 질을 절레절레 했다.    “한두 달로 될 것 같지 않소. 무리승냥이들을 모조리 잡자면 몇 십 년이 걸릴 수도 있소.”    이때 미닫이문이 스르르 열리면서 어머니가 들어왔다.    “얘, 아까 내캉 말할 때 무심히 들었던 관데. 먼 곳에 사냥하러 가는가 베?”    성칠은 엉거주춤 일어나 엄마께 허리를 굽혀 인사하면서 대답했다.    “예, 엄마, 무사히 있읍소. 일이 있으면 동생들이나 조카들에게 말합소. 엄마, 동생들이 사는 운주동에 이사 가면 좋을 것 같습구마.”    성희는 구부정한 허리를 펴고 맏아들을 바라보다가 앉으라고 손시늉 했다.    “이사 말은 하지도 말어. 이 팔간 집을 어떻게 지은 집이라고 그래? 저 물방아는 어쩌고? 난 이집에서 죽더라도 너 아버지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성칠은 어머니와 아내를  번갈아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이때 바깥에서 검둥이가 짓는 소리가 컹 컹 컹 들리고 문을 탕 탕 탕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히 들렸다.    “문 열엇!” 성칠이 위방 문을 열자 허연 한기와 함께 영팔과 응삼, 수길 등이 집안으로 우르르 쓸어 들어왔다. 뒤에 털 한 모숨과 가메다 등 일본 헌병들도 따라 들어왔다.    영팔이 우쭐해서 성칠을 보고 지껄였다.    “사냥총을 내놓게.”     성칠은 벽 밑에 걸어놓은 사냥총을 벗겨 으스러지게 틀어쥐었다.     “사냥총을 내놓고 뭘 먹고 살라는 거요?”     “이 놈이, 사냥총을 내놓지 못할까?”     “안 된다. 벌목 삯전도 주지 않으면서 사냥총까지 내놓으라고? 사냥총은 우리 사냥군들의 목숨이야.”     “이젠 산짐승도 몽땅 일본 거야. 사냥은 무슨 놈의 사냥? 흥!”   가메다가 으르렁거리자 앞잡이들이 팔을 걷으며 다가섰다.   “얘들아, 사냥총을 빼앗아라!”   영팔의 호령소리에 수길과 응삼이 등 졸개들이 와르르 달려들었다. 그들은 성칠의 손에서 사냥총을 빼앗으려고 몸싸움을 벌렸다.   이때 가메다는 군도를 빼들고 꽥 고함쳤다.    “빠까요로(멍청아), 이 놈을 묶어!”    일본 헌병 놈들이 아예 성칠과 사냥총을 한데 바 줄로 꿍꿍 묶어 문밖으로 떠밀었다.    “여보, 여보!”   하옥이가 따라 나오면서 소리쳤다.    “성칠아! 이 놈들아, 내 맏아들 무슨 죄 있다고 마구 잡아가는 거냐?”    본가집에 놀러왔던 곰순도 정주간에서 뛰어나오면서 소리쳤다.    “오빠!”    성칠은 묶인 채 내리막길로 내려가면서 머리를 돌려 어머니와 여동생 곰순을 돌아보면서 소리쳤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엄마를 잘 모셔라.”    검둥이도 어데 갔다가 주인이 묶여 가는 것을 보고 일본 놈들에게 달려들면서 왕왕 짖어댔다.    땅! 땅! 땅!    일본 놈들이 검둥이에게 사격했다. 검둥이는 날쌔게 피하면서 도망쳤다.    땅! 땅! 땅!    갑자기 물레방아 쪽에서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일본 헌병 두 놈이 눈 바닥에 푹푹 꺼꾸러졌다. 방앗간 뒤에서 몇 사람의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땅! 땅! 땅!    가메다도 권총을 꺼내 맞불질을 했다. 총알이 물레방아 바퀴에 픽픽 박혀 눈꽃을 튕겼다.    영팔과 수길은 성칠을 활 놓고 다리야 날 살리라고 내리막으로 선불 맞은 노루처럼 도망쳤다.    “성칠이, 빨리 산속으로 뛰게나!”   물레방아 바퀴 뒤에서 분명 룡천의 웅글진 목소리가 울렸다.    그제야 제 정신이 펄쩍 든 성칠은 묶인 채 눈 덮인 산기슭 수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검둥이도 끼깅거리면서 성칠을 따라 뛰어갔다.    땅! 땅! 땅!    자지러진 총소리와 함께 성칠의 앞과 뒤에서 눈꽃이 튕기었다. 귀 뻘쭉해 달리는 검둥이 옆의 적송에 총알이 픽픽 박혀 나무껍질이 튕겼다.    성칠은 이리 저리 적송 사이로 몸을 빼면서 팔자 형으로 달려갔다.    헌병놈들은 가메다가 군도를 휘두르자 룡천과 성칠을 추격했다.   갑자기 일본 헌병 한 놈이 “억!” 비명소리와 함께 어데서 날아온 돌멩이에 맞아 이마를 감싸 쥐고 눈 위에 푹 꺼꾸러졌다.   쒹-    쒹-    연속 날아오는 돌멩이에 일본 헌병 몇 놈이 무릎을 안거나 대가리를 붙안고 꺼꾸러졌다.    그 사이 성칠은 수림 속으로 멀리 달아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웬 사람이 원숭이처럼 나무 가지를 쥐고 구르면서 이쪽저쪽 나무로 건너뛰면서 날아왔다.    “오빠!”    성칠은 자기 앞에 귀신처럼 나타난 사람이 진달래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진달래야!”    진달래는 재빨리 허리춤에서 단도를 뽑아 성칠을 묶은 바 줄을 끊었다.    성칠은 손목을 만지면서 진달래를 보고 적이 놀랐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오빠를 마중하러 왔댔어요. 일본 놈들이 쫓아오기 전에 이 고개를 넘어야 해요. 자, 어서 뛰자요.”    성칠은 바줄과 함께 눈 우에 떨어진 사냥총을 쥐고 진달래를 따라 산중턱을 따라 수림 속으로 뛰었다.    “그래 물레방아 간에서 일본 놈들에게 총을 쏜 룡천이랑 아는 사이냐?”     “그래요. 우린 장백산항일독립군 전우지요.”     “장백산 항일독립군?”    “예, 그래요.”    성칠은 듣기만 해도 신기하기만 했다.    그들이 한 골짜기에 들어섰을 때였다.    골짜기에는 진작 몇몇 독립군 대원들이 백마들의 고삐를 잡고 경계하고 있었다. 이윽고 룡천 등도 일본 헌병들을 따돌리고 달려왔다.     성칠은 룡천 등을 보자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고맙네! 자네들이 구원하지 않았더라면 난 아버지처럼 한평생 우시장감옥에 갇힐 번 했소.”    “그 놈들은 진작 당신 부자간을 마음 놓지 못했어. 우린 당신을 만나러 가다가 때마침 당신을 결박해가는 일본 놈들과 마주 띄우게 됐네.”     성칠은 룡천과 진달래를 둘러보면서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나도 장백산 항일독립군에 들겠소. 꼭 아버지와 우리 고향 사람들의 원수를 갚겠네. 나를 받아주오.”    룡천은 성칠의 쩍 벌어진 어깨를 믿음에 찬 손으로 툭툭 쳤다.   “좋네. 당신은 진작 우리와 마음을 같이 했다이. 우리 조선 땅에서 우리 부모형제들이 일본 놈들의 철발굽 아래에서 해탈돼 행복하게 살게 하려면 총칼을 들고 일본 놈들을 우리 고향 땅에서, 아니, 우리 조선 땅에서 몽땅 몰아내야 하네.”    성칠은 룡천의 두 손을 굳게 잡았다.    “고맙소. 나를 구해줘서. 나는 독립군에서 솜씨를 보이겠소.”    룡천은 신임에 찬 눈길로 성칠을 바라보다가 독립군 대원들에게 몸을 돌렸다.    “우린 우시장 일대 사냥꾼들을 묶어세워야네.  일본 놈들이 우리 목재를 실어다가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는 걸 막아야지.”    성칠은 가슴을 쑥 내밀고 대답했다.    “근심하지 마오. 내 나서서 꼭 젊은이들을 묶어세우겠네.”    진달래는 성칠에게 다가와 백마 고삐를 넘겨주었다.    룡천은 백마에 올라타면서 손을 홱 저었다.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갑세. 적들이 꼭 추격해올 거야.”   독립군 대원들은 모두 백마에 올라탔다.   성칠도 백마에 올라탔다. 검둥이도 주인을 따라 달려갔다.   한창 독립군 대원들을 따라 달리다가 성칠이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룡천이, 이 곳에서 할 일이 있네.”    룡천도 멈춰 섰다.   성칠은 입에서 김을 훅훅 풍기면서 말했다.   “한길수를 가만 놔두고 떠날 수 없어.”     “잠시 철퇴하는 거야! 일단 일본 놈들의 추격을 피해야 하이. 전술적인 철퇴를 했다가 다시 기회를 엿봐야 돼.”    룡천이가 전술적인 철퇴라고 했는데도 성칠은 고집을 썼다.    “아니야, 이대로 달아나면 눈에 난 발자국을 따라 인차 추격해올 거야.”   그 말에도 도리 있었다.   “인마를 갈라서 철퇴하자. 기회가 되면 매복습격도 하자.”    룡천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진달래가 룡천에게 말했다.    “김 소대장, 내가 바우돌과 억복을 데리고 성칠 오빠와 함께 남으면 어때요?”    “좋아. 1분대는 진달래 소대장을 따르고 2분대는 날 따르라. 우린 놈들을 각자 따돌리고 사흘 후 치마봉 밑에서 만난다.”    “옛!”    독립군은 두 패로 나뉘어 백마를 타고 수림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윙윙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수림 속으로 사라지는 독립군 용사들의 종적을 지워버렸다.
433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2) 남도치 김장혁 댓글:  조회:535  추천:0  2024-05-10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6장 포수대                                     1. 남도치         동녘하늘에 싸늘한 햇빛이 몇가닥 비추고 있다. 싸늘한 은빛바늘이 쏙쏙 찔러대자 뭇산들이 눈 이불을 푹 뒤집어 쓴 하얀 잔등을 드러냈다.     금방 잠에서 깨여난 성칠은 어제 가메다에게서 수모를 당한 일이 떠오르자 가슴속에서 불덩이가 오르내리며 금방 툭 튀어나와 폭발할듯했다.     그는 한숨을 후 내쉬면서 억지로 분기를 억눌렀다.     (룡천을 이해하지 못하겠어. 먼저 불을 질러놓고 싸울까 봐 척 막아 나선단 말이야. 쳇!)    성칠은 도리머리 질을 절레절레 했다.    탕, 탕, 탕!    “누군가?”   “문 열어!”    분명 영팔의 목소리였다.    “이른 아침부터 뭔가? 성가시게!”    성칠과 하옥은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이윽고 성칠이  문을 열었다.    삼림파출소 야마모도 소장이 군도를 건들거리면서 들어섰다.    영팔과 통역 류강철이 뒤따라 들어오며 시뿌연 한기를 묻혀 들여왔다.    “오하이요 고자이마스(안녕하십니까?)”    성칠은 뭐라고 말하는지 몰라 그저 머리를 끄덕이면서 자리를 권했다.    다행히 옆에서 류강철이 통역했다.    야마모도는 앉지도 않고 뜻밖에 희죽이 웃어 보이며 말했다.     “김 군, 어제 가메다 너무 했쏘까. 양해하게나. 김군은 명포수라면서? 통나무를 베다니? 참, 오늘부터 황군을 위해 산짐승을 잡아오게나.”    성칠은 머리를 끄덕였다.   야마모도는 “거 사냥총을 봅세나.” 하고 말했다.  성칠은 조금 주저하다가 뒷고방에 들어가 사냥총을 벗겨다 주었다.   야마모도는 한 손에 사냥총을 들고 매만지더니 중얼거렸다.   “참 좋은 사냥총이구먼.”   그는 가재수염을 손끝으로 슬슬 만지다가 술잔을 드는 시늉하면서 뇌까렸다.   “산짐승을 많이 잡아오게나. 저녁에 한잔 마십세.”   야마모도는 선심을 쓰는 척 하더니 돌아서 나가려고 하다가 몸을 되돌렸다.   “깜빡 잊었소. 명포수 당신, 여기 영월동 구장 했쏘까네. 우리 황군 위해 일을 많이많이 했소까.”   성칠은 단마디로 “할 수 없소.” 하고 거절했다.    (고양이 쥐를 생각해?)    야마모도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면서 성칠에게 사냥총을 돌려주었다.    성칠은 넌지시 야마모도 속을 떠보았다.    "어째 한 총 도감을 시키지 않소?”     야마모도는 성칠의 어깨를 다독이며 씨벌였다.    “한 영감은 끼무라 국장 사람이네. 장차 헌병대 아래 자위대가 서면 대장쯤 시킬 예산인 것 같네. 난 당신들 부자와 같은 힘장사가 많이, 많이 필요했쏘까. 와갔다가(알았는가)?”     성칠은 도리머리 질을 절레절레 하였다.    “사냥하러 룡천을 데리고 가도 되겠소?”     야마모도는 머리를 끄덕였다.    “거 가마골에서 왔다는 그 청년 말인가? 데리고 가게. 멧돼지랑 많이많이 잡아오게나.” .   야마모도 등이 우르르 쓸어나가자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우리를 어린애들처럼 우습게 보는구나. 더러운 놈들, 흥!”    성칠은 기준을 찾아가 전날 아버지 감방에서 하던 말을 하고 무슨 뜻인가고 물었다.    기준은 머리를 수깃하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한참 후에야 기준은 머리를 쳐들었다.    “아버지는 분명 통나무 옹이와 벌레를 암시했소. 이제라두 벌목할 때 벌레 먹은 통나무를 아무도 몰래 표시해 두기오.”    성칠은 기준과  불길이 이글거리는 눈길을 맞추면서 머리를 끄덕었다.     “삯전을 주지 않아보지. 벌레 먹은 통나무로 경찰사무청사를 짓게 해서 와르르 무너지게 해놓자."    "그러기오."   한참 후 성칠은 기준과 갈라졌다.   그는 집에 돌아가 사냥총을 둘러메고 검둥이를 데리고 룡천을 찾아갔다. 그들 둘은  눈 덮인 치마봉 기슭을 에돌아 울울창창한 소나무 밭 속으로 들어갔다.    영월동 부근의 기운봉(지금의 칠보산 병풍치기 절벽관광지 옆산)은 벌목 바람에 산짐승들이 거의 다 달아났다. 그리하여 머나먼 치마봉(지금 칠보산 장군봉) 근처에 갔던 것이다.    검둥이가 끼깅거리자 성칠은 사냥군의 특유한 눈길로 사위를 살폈다. 때마침 노루 한마리가 눈이 뒤덮인 수림속에서 그들을 보고    선불맞은것처럼 놀라 꼬리 빳빳해 도망쳤다. 그 놈은 눈우로 퐁퐁 뛰면서 아름드리나무새로 좌우충돌하면서 달아났다. 한다하는 사냥군 성칠도 그 놈을 겨냥해 쏠 수 없었다. 그 놈을 산우로 쫓아올라가게 한후 다시 내리쫓아 잡아보려고 했다. 노루란 놈은 앞다리가 뒷다리보다 짧기에 올리막 보다 내리막을 잘 뛰지 못했다.     노루가 아름드리나무들을 에돌아 이리저리 깡충깡충 뛰어다니다가 대가리를 반쯤 내밀었을 때다. 룡철이 사냥총을 번쩍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노루가 대갈통을 맞고 쓰러져 버둥거렸다. 검둥이가 씽 달려 나가 바둑거리는 노루를 물어뜯더니 컹컹 짖었다.    “깍, 깍”   하늘에서 아름드리나무 끝 초리를 스치면서 까마귀 두 마리가 날아지나갔다.   “오랑캐들이 자기 선조들로 까마귀 국이나 끓여 먹어라!”    탕!    성칠이 쏜 총탄에 떨어지는 까마귀.    탕!    룡천이 쏜 총탄에 도망치던 나머지 까마귀가 저쪽 하늘에서 줄 끊어진 연처럼 곤두박질쳐 떨어졌다.   성칠은 룡천의 사격술에 못내 혀를 끌끌 찼다. 시골사람처럼 아직도 외머리채를 땋아 어깨 너머 늘였지만 침착한 거동과 백발백중하는 사격술은 어딘가 남달랐다.     이날 그들은 반나절도 되나마나 해서 노루와 사슴, 까마귀 두 마리를 잡아 메고 돌아섰다.    그들은 치마봉을 에돌아 양지바른 바위 앞에 이르자 잠간 다리쉼을 하느라고 나란히 앉았다.    그들은 엽초를 굵직이 말아 물었다.    성칠은 부시를 쳐서 불을 붙인후 담배연기를 길게 빨아 후 내뿜더니 룡천에게 담배 대를 넘겨주었다.    “룡천이, 전번에 자네가 말렸으니 놔뒀네. 가메다란 놈을 도끼로 대가리를 찍어 놓았을게오.”    “글케 해선 안 돼.”    성칠은 이해되지 않아 “어째?” 하고 말하면서 룡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룡천은 성칠을 마주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있자노, 가메다 한 놈 쯤은 찍어 죽이자면 쉽네. 그러나 그 놈을 찍어죽이고 뒷일을 생각했어?”    “이것저것 다 걱정하다나면 개처럼 매만 맞을게 아닌가? 어디 참고 살겠는가?”    룡천은 총가목을 으스러지게 틀어쥐면서 말했다.    “원쑤는 꼭 갚아야 해. 그러나 복수 시기와 수단을 잘 궁리해야 되네.”    그들은 둘 다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성칠은 담배를 한모금 길게 빨아 연기를 후 내뿜더니 물었다.    “듣자니 자넨 남쪽에서 왔다던데 남쪽에서도 일본 놈들이 저렇게 행패 질 하는가?”    “더 말할 데 있어? 우리 고향에는 이곳보다도 일본 놈들이 더 욱실거리네. 변소간의 구더기보다도 더 욱실거려. 난 경주 바닥에서 게 다짝을 짝짝 끌고 다니는 일본 놈들이 딱 질색이여.”    룡천은 고향이 있는 저 멀리 남쪽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내  고향은 있자노. 경상도 경주라는 곳이네. 경주는 우리 경주 김씨네 2천여년이나 세세대대로 살아오던 살기 좋은 고장이네. 세상에 천년이나 통치해온 나라가 몇이 있어? 우리 경주 김씨와 박씨, 석씨 세 큰 집안에서 돌아가며 왕질을 하면서 나라를 천년이나 통치해 왔던기여.”    “오, 그런가? 그 나라 이름이 뭔가?”   성칠은 호기심이 나서 룡철의 곁에 다가앉으면서 물었다.   “신라라는 나라네.”   “신라?”   룡천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천년력사를 자랑하는 신라네.”    룡천은 천천히 뒤 말을 이었다.    “내 고향 경주에는 우리 조상들의 뼈와 살이 묻힌 고장이야. 지금도 경주에는 우리 조상 왕들의 산더미 같은 산소가 가득하네. 우리 고향은 여기 함경도보다 날씨가 따스해. 지금도 여기처럼 그리 춥지 않아. 난 여름이면 고향마을에 우거진 참대 숲에서 애들과 함께 숨 박 꼭 질을 놀았제이. 가을이면 집 마당의 감나무에서 빨간 꽃 감을 따서 맛나게 먹었네. 정말 가을이면 고향마을에서는 빨간 꽃 감의 싱그러운 냄새가 풍겼어.”    성칠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춥고 살기 나쁜 함경도로 왔어? 듣는 말에 의하면 우리 함경도는 옛날부터 정배를 보낸 사람들이 와서 살던 곳이라던데.”    “누가 그렇게 살기 좋은 고향에서 떠나고 싶어 떠났겠나? 일본 놈들이 우리 고향에 들어온 다음에는 모든 게 끝장났어. 어지간하면 고향을 떠나 천리도 넘게 떨어진 여기 도둑놈이 욱실거리는 함경도에 입북했겠나? 와보니 함경도라고 다 그런 거 아니데. 자네 집을 보니 인심이 아주 후하데이. 저 동북쪽 웅진 정배살이 하던 곳이라데이,  이 곳은 괜찮아. 그래서 우리 사촌형 칠백이두 여기 와서 살잖나? 그러나 고향  떠나면 고생도 많고 자꾸 고향생각 나데이.”   성칠은 룡천을 따라 한숨을 후 내쉬면서 물었다.   “그래 어째 그 좋은 고향 떠나왔는가?”   “어찌 한마디로 다 말하겠어?”   룡천은 눈물이 글썽해 말했다.   “자넬 믿고 하는 말이네. 우리 아버지는 일본 놈들을 욕하다가 일본 놈이 휘두르는 군도에 잔인하게 살해됐네.”   “오, 그래? 괜히 묻지 않았는지 모르겠네.”   성칠은 남의 아픈 곳을 들춘 것 같아 미안해했다.    “괜찮아. 일본 놈들은 우리 고향에 들어오자마자 그 마을에서 제일 고풍스럽고 좋은 우리 집을 욕심냈네. 얼마 지나지 않아 파출소를 앉히겠다면서 집을 당장 내라고 했네. 그러자 우리 아버지는 내지 않겠다고 딱 잡아뗐네. 일본 놈들은 헌병을 끌고 와서 무력으로 우리 집식구들을 쫓아내고 차지하였지. 그러자 아버지는 마당에 서서 일본파출소 소장 놈을 손가락질하면서 욕설 퍼부었지. ‘이 놈 날강도들아, 남이 세세대대로 살아온 집을 빼앗고 잘 살것 같아 이러노?’  이렇게 욕설 퍼부었댔어. 파출소 소장 놈이 군도를 뽑아 손가락질을 하는 오른팔을 쳤어. 오른팔이 끊어지자 아버지는 왼팔을 쳐들어 손가락질을 하면서 계속 욕했어. 그러자 소장 놈은 나머지 왼팔마저 군도로 사정없이 찍었어. 헤이, 두 팔을 다 잃고 마당이 즐벅하게 피를 수태 흘린 아버지는 일본 놈들에게 원한을 품고 숨을 거두었네. 헤이 참.”    룡천은 너무 슬퍼 아래 말을 잇지 못했다.   수림 속에서는 눈보라가 무섭게 아우성치면서 불어쳤다.   성칠은 벌떡 일어났다.    “자넨 왜 그 좋은 사격술을 가지고 사냥총으로 몇 놈 쏴 눕히지 못했소?”     “내캉 왜 아버지 원수를 갚고 싶잖았겠어?. 몇 놈은 해치우구 글케 도망칠 수 있었어. 하지만 어머님이랑 동생들 우짤라고?”    룡천은 말을 마치자 노루를 둘러메고 떠날 차비 했다.    “일본 놈들은 무리승냥이들이야. 우리 사냥꾼들도 한데 뭉쳐 일본 놈들을 사냥하는 포수대를 무어야네. 알갔어? 그래야 섬나라 강도 놈들을 쓸어버리고 원수도 갚을 수 있는기여.”   “일본놈을 사냥하는 포수대?"   "그래."    성칠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었다.    "거 참, 그럴듯해. 나도 포수대에 들어가 일본 놈들과 통쾌하게 싸워 보고 싶네. 이게 어디 일본 놈들의 등살에 마음 놓고 살겠는가? 에이, 참!"    성칠도 사슴을 둘러메고 사냥총을 왼손에 쥐고 따라나섰다.    룡천은 산기슭으로 내려가면서 나직이 말했다.    “우리 힘으로 우시장일대 사냥꾼들로 포수대를 무읍세. 우리두 뭉쳐야 고향 땅에서 일본 놈들을 몰아내구 편안히 살 수 있네. 자네가 대장을 하구 내가 뒤에서 받들어 줄게.”     “아니, 포수대 대장은 자네 하게나.”    “아니. 우시장 일대에서 자네 가문과 자네 명성이 높네. 자네가 호소해야 사냥꾼들이 모일 수 있네.”    성칠은 불시에 포수대 말이 나오자 조금 주저하기도 했다.    “우리 우시장 일대 사냥꾼들이 몇이나 된다고 그러오? 어찌 무리승냥이 같은 일본 놈들을 다 몰아내겠는가? 또 사냥꾼마다 제 궁리를 하겠는데 다 따라오겠는가?”    룡천은 성칠과 나란히 걸으면서 말했다.    “우리 혼자로만 생각하지 말라고. 지금 장백산 일대에서는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몇 만 명이나 되는 조선 독립군이 일본 놈들을 간담이 서늘케 하고 있네.”    성칠은 귀가 번쩍 뜨였다.    “오, 그래?”   룡천은 성칠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었다.    “일본 놈들은 을사조약을 체결한 후 우리 조선을 통 채로 삼키고 있네. 한일합방을 하면서 조선을 일본제국의 속국도 아닌 일본으로 만들고 있어. 지난해 3월 1일에 서울에서 조선 유지인사들이 모여서 독립선언을 하고 만세운동을 일으켰지. 비록 독립운동은 실패했네. 하지만 온 조선 땅에서 울려 퍼진 ‘조선독립 만세!’ 소리는 망국노로 된 조선 사람들을 뭉쳐 일어서게 깨우쳤어.” 룡천은 걸음을 멈추고 명심해 듣는 성칠을 보고 사위를 둘러 보고나서 천천히 뒷말을 이었다.     “이준 선생은 화란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까지 참가하여 을사조약이 체결된 내막을 전 세계에 까밝히고 국권을 되찾으려고 하였네. 그러나 간악한 일본 놈들이 미국 놈들과 짜고 들어 꿍꿍이를 꾸미는 바람에 회의장에서 떠밀리어 나오게 됐네.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자 그는 회장 밖에서 자기 배를 갈라 일제에 대한 조선 민족의 반항심을 보여줬네. 조선에는 수많은 애국지사들과 유지인사들이 있네. 수많은 사람들은 나라를 구하려고 서당 방에서 계몽운동을 벌리고 있어. 다만 국제 외교 활동을 하거나 ‘3.1’독립운동 때처럼 ‘만세!’만 불러선 나라를 구하지 못해. 총으로 일본 놈들을 몰아내야 해.”     룡천은 성칠이 귀담아듣는 것을 보고 계속 열변을 토했다.    “내캉 간도에 가서 들었는데 말이게. 용드레촌을 중심으로 간도에서도 여기 ‘만세’운동영향을 받아 ‘3.13독립’운동을 벌렸더군. 림민호라는 13세 어린이가 교회당에 올라가 독립운동의 신호 종을 온 용드레촌이 다 들리게 울렸다네. 종소리를 듣자 조선 사람들은 거리에 뛰쳐나가서 시위행진하면서 ‘조선독립 만세!’를 목청껏 불렀다네. 그런데 일본 경찰 놈들이 총을 쏘면서 탄압해 실패로 돌아갔데. 숱한 애국지사들이 총탄에 맞아 희생되거나 붙잡혀 감옥에 갇히고 말았네. 이젠 홍범도장군의 의병대처럼 사냥꾼 포수대를 조직해 총칼을 들고 일본 놈들과 싸워야 할 때네. 일본 놈들을 내 고향에서 몰아내고 내 나라를 되찾아야 편안히 살 수 있네.”    룡천은 한날 한시에 불시에 너무 많이 말한 것 같아 그쯤 해 그만두었다.    성칠은 룡천을 따라 성큼성큼 걸으면서 사냥총을 으스러지게 꽉 쥐면서 속으로 못내 혀를 끌끌 찼다.   (이 양반  아는 것도 많구나. 그러나 우리 몇몇의 힘으로 무리승냥이 같은 일본 놈들을 몽땅 몰아낼 수 있을까?)
432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1) 면회 김장혁 댓글:  조회:569  추천:0  2024-05-10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5장 반항                      9. 면회             성칠은 눈보라를 무릅쓰고 우시장 감옥 부근에 이르렀다.      가시철조망을 늘인 높다란 벽돌담장 정면에 승냥이 아가리처럼 궁형대문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오가는 행인들을 노려보고 있다. 궁형대문 양옆에 일본 헌병 두 놈이 시퍼런 총칼을 비껴 들고  이리 눈깔을 희번뜩거리며 보초 서고 있었다. 일종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아가리를 쩍 벌린 궁형대문에서 불어쳐 온 시내에 살기를 풍겼다.      성칠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왜놈 보초병에게 다가갔다.     철꺽!     왜놈 보초병이 총창 열십자로 딱 막아섰다.     “바까요로(바보 놈)! 무슨 일이야?”      “아버지를 면회하러 왔수다.”      일본헌병은 사냥총부터 빼앗아내고 전화를 걸어 통역을 불렀다.     류강철이 안에서 뛰어나왔다.     “웬 일인가?"    그는 억대우 같은 성칠의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냥총을 들고 감옥에 찾아오다니? 정신 있는가?”    “아버지를 면회하러 왔소. 만나게 해주오.”    “누구요?”    “운주동 김성칠이오. 김병완, 그 분은 내 아버님이오.”    류강철은 한걸음 물러서면서 알은 체 했다.    “아, 힘장사 병완의 맏아들이구먼. 사냥을 잘 한다지? 그런데 소개신이 있어야 면회할 수 있소.”     “아니, 아버지를 만나보는데 무슨 개떡 같은 소개신이요?”     “이보, 말조심하라고. 어디라고 큰소리를 땅땅 쳐? 박 면장을 찾아가서 소개 신을 떼 가지고 오오.”     성칠은 류강철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아버지를 만나려는데 왜 까다롭게 구는가?”     류강철은 일본 헌병 모자를 꾹 눌러쓰면서 딱 잡아뗐다.    “이 양반, 지금 무슨 세월이라고 입술만 나불거리면서 그런 청 들어? 당신 아버진 대역죄인과 같으니까 쉽게 만날 순 없어.”    류강철은 불난 집에서 한턱 얻어먹으려다가 안되니 휭 하니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다가 호랑이 같은 병완 부자를 잘못 건드렸다가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목이 선뜩한 느낌이 들었다. 뒤이어 성칠한테 힐끔 곁눈질해보더니 길 건너쪽을 턱짓했다.     “저길 보오.  박면장이 헌병사무소에 들어가는구먼. 소개 신을 떼 가지고 오게나.”     성칠은 게딱지 같은 간판이 걸린 헌병사무소로 조끼를 입은 양반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달리는 인력거를 피해 길을 달려 건너가 헌병사무소 철창문을 삐꺽 열고 들어갔다.     사무소 복판 사무 상에는 검은 테 안경을 낀 일본 헌병 소대장 나까노라가 앉아 있었고 맞은 켠 걸상에는 금방 들어간 그 조끼 입은 호리호리한 자가 앉아 있었다.     사무 상 옆에는 누런 사냥개 누렁이가 귀를 벌쭉거리며 웅크리고 앉아 이쪽을 쏘아보고 있었다.     성칠은 단도직입으로 박성은 면장에게 청을 들었다.    “저, 아버지를 면회하러 왔는데 소개 신을 떼 줍소.”   “당신은 누군가?”    박성은 면장이 성칠의 아래 위를 훑어보면서 물었다.    성칠은 한걸음 나섰다.    “영월동의 김병완은 저의 아버님입니다. 보초병들이 소개신이 있어야 면회할 수 있답니다.”     박성은 면장은 나까노라 소대장의 눈치를 흘끔 쳐다보더니 성칠에게 낯을 돌렸다.    “당신의 아버진 참말 영웅호걸이오. 만나려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 지 참말 귀찮소. 당신 아버진 중죄범이어서 만날 수 없소. 언감 한길수 총도감의 눈알까지 빼놓다니. 참, 일본 어른들이 펄펄 뛰는데 낸들 어떻게 소개 신을 뗀단 말이요?”     성칠이 뭐라고 자꾸 사정하자 나까노라 소대장은 눈알을 부라리면서 고함쳤다.     “나갓!”     사냥개도 귀를 쫑긋 세우더니 불티가 뚝뚝 떨어지는 눈깔로 성칠을 노려보면서 으르렁거렸다.     성칠은 하는 수 없이 헌병사무소에서 나왔다.     (아버지를 만나는 일도 이렇게 힘들게 됐는가? 완전히 일본사람들의 세상으로 됐구나. 일본 놈들이 대대가릴 끄덕이잖으면 아버지도 만날 수 없게 됐군. 흥!)     그는 맥없이 가게방 기둥에 손을 짚고 기대섰다.     길 건너 저쪽에 철조망을 두른 높다란 토성이 보였다. 저 토성안의 어느 감방에서 아버지는 고문을 당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니 가슴을 칼로 저며 내는 것 같았다. 날개라도 달렸으면 높다란 토성을 훨훨 날아 넘어 들어가 아버지를 만날 수 있으련만.     “얘, 잘 만났다.”     성칠이 머리를 돌려보니 큰아버지 김병권이었다.     “큰아버지가 어떻게 되여 여기 왔습니까?”    병권은 흰 수염을 흩날리면서 성칠을 잡아끌었다.    “먼저 저기 들어가 얘기하자.”     성칠은 큰아버지를 따라 죽 방에 들어갔다. 그들은 죽을 한 사발씩 청해 후루룩후루룩 먹으면서 이야기했다.     “아버지를 만나 봤니?”     성칠이 한숨을 후 내쉬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음. 전번에 관준이하구 함께 동생을 만나자구 왔댔다."    그는 주위를 휘둘러보더니 나직이 귓속말을 했다.     "맨 입으로 말해선 안 돼.”    뒤이어 허리에서 보자기를 풀어내더니 종이 한 장과 산삼 몇 뿌리를 꺼냈다.     “치마봉에서 캔 산삼이야. 헌병사무소 소대장에게 몇 뿌리 가져다가 주었더니 이 소개신을 써주더구나. 이걸 가지고 가서 만나자.”    성칠이 뻘건 도장이 박힌 종이 장을 들여다보니 닭발로 오려놓은 것 같은 일어로 써 놓아서 통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붓글씨로 써놓은 가운데 "中" 자에 들 "野" 자만은 알아 볼 수 있었다. 분명 나까노라이찌로의 친필소개신이였다.     “소개신이면 면회를 시켜주겠지.”     “큰아버지, 가 보깁소.”    병권과 성칠은 양치질할 새도 없이 죽집에서 나왔다.    그들은 총총히 길을 건너 왜놈 보초병들이 지키는 감옥 대문 어귀에 다시 조심스레 다가갔다.      왜놈 보초병들도 면목이 있는지라 처음처럼 떽떽거리지 않았다.     그 놈들은 총창으로 가로 막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쇼까이신!”    성칠은 소개신을 꺼내 건네었다.    보초병 놈은 소개 신을 들여다보았다.    "하이레(들어갓)!"    그 놈들은 총창을 거두고 양옆으로 물러섰다.    병관이네 대문 안에 들어서니 벌건 벽돌로 지은 감옥이 나섰다. 문어귀에서 지키는 보초병 놈들에게 소개 신을 내밀자 받아 보더니 안으로 들어가라고 길을 피해주었다.     복도에 들어서니 옆의 창문으로 안경을 낀 헌병이 오라고 손짓했다. 안경쟁이 헌병은 소개 신을 들여다보더니 뜻밖에 도리머리 질을 하면서 나가라고 손짓했다.     그때 병권이 보자기에서 나머지 인삼 몇 뿌리를 꺼내 안경쟁이에게 들이밀었다.     안경쟁이는 산삼 뿌리를 쥐여 코에 대고 코개처럼 냄새를 맡았다. 대번에 산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 요로씨이, 죠센(조선)산삼!”    그 자는 병권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아니다까?” 하고 물었다.    병권은 “아니라니요. 산삼 맞은데요. 웬 말입둥? 산삼 다니까.” 하고 억울해했다.    “아니다까(형님인가)?”     “산삼이 맞다니까. 이 얀반이, 참.”     그때 통역 류강철이 거들먹거리면서 다가왔다.     “아니, 형내 노할어버지 아닙니까? 헌병선생은 ‘산삼이 아니다’는 게 아니라 ‘형님인가?’고 물었습구마.”     “오,  그런 걸 난 또. 자꾸 ‘아니다까’ 하니까. 오해했지. 당연히 내가 여기 갇힌 동생을 만나러 온 형이지.”    류강철은 일본 헌병과 일본말로 뭐라고 쑤군거리었다.    안경쟁이가 뭐라고 소개신에 쓱쓱 써서 눌러두고 손을 내밀었다.    “면회 비로 3원을 냈쏘까.”    류강철이 옆에서 대신 말했다.    성칠은 옆전을 한줌 쥐여 세여보고 잘라당 사무 상우에 내놓았다. 그러자 안경쟁이는 옆전을 하나하나 세여 사무 상 안에 쓸어 넣고 다른 헌병을 불러 뭐라고 말하더니 병권이와 성칠을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류강철은 병권과 성칠이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 헌병을 따라 갑소. 살림살이나 말하고 다른 말을 하지 맙소. 그러지 않으면 시끄러워집니다.”     류강철은 형내와 함께 상우남면 운주동 최구장의 서당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일본 말을 배워가지고 일본 군을 따라 조선에 돌아와 헌병대 통역을 맡고 있었다.     성칠은 헌병을 따라 자그마한 면회실로 들어갔다.     면회실에는 쇠살창을 단 자그마한 창문이 있었다. 이윽고 건너 방에서 무거운 쇠고랑이 소리가 절그럭절그럭 들리었다. 병권과 성칠은 후닥닥 창문 앞에 마주섰다. 이윽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아래 수척하고 상처투성인 얼굴에 수염이 더부룩한 병완이 나타났다.     “아버지!”     “성칠아!”      병완은 성칠과 병권을 보자 조금 웃음기를 띠면서도 목이 말라서인지 쉬여서인지 온전히 말을 하지 못했다.     “형님도 왔소?”     “응. 고생이 많았겠구나.”     병완은 형을 보고 머리를 끄덕이더니 성칠에게 머리를 돌렸다.     “집 식구들은 무사하냐?”      “예. 근심 맙소.”     “마을은?”     “은녀는 길수네 집에 되들어가고. 벌목한 삯전은 줄 거 같지 않습니다.”     “오, 그래?”     병권은 동생의 손을 잡고 부탁했다.     “동생, 이젠 쉰 고개도 넘었는데 싸움질을 그만 두게나. 한영감과 싸움질해 봤자 먹을 알이 있니?"     그러나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뒤이어 그는 피진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피더니 성칠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말소리를 낮추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기준이 보고 통나무 옹이나 벌레를 조심하라고 해라.”     “통나무 옹이나 벌레?”    병완은 머리를 끄덕였다.    "기준이나 창준은 목수니깐. 알아들을 거야."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아버지는 언제쯤 나오게 됨둥?”     병완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였다.    “강철이가 그러던데 무기징역일수도 있다더구나.”    “이 일을 어쩌는가? 거 한길수의 작간이겠다.”     병권의 말에 바깥에서 엿듣던 일본 앞잡이경찰 똘만이 문을 떼고 들어와 소리쳤다.     “면회 중지!”     통통하게 생긴 똘만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면서 병권과 성칠을 잡아 문 밖으로 끌었다.     성칠은 똘만의 손을 홱 뿌리치면서 병완에게 머리를 돌렸다.     “아버지, 다시 만나는 날까지 편안히 계십소.”     병완은 굵직한 쇠고랑이를 채운 팔을 들어 주먹을 으스러지게 꽉 틀어쥐어 보였다. 성칠도 주먹을 쳐들어 보였다.    병권도 병완을 돌아보고 소리쳤다.    “다신 싸우지 말구 몸 조심하게.”    병권과 성칠은 일각도 만나보지 못하고 면회실에서 쫓겨 나왔다. 감옥 대문을 나오면서야 성칠은 아버지께 대접하려고 보자기에 싸 가지고 간 기름떡을 잊고 주지 못하고 나온 것을 알고 마음이 아팠다. 그때 때마침 강철이가 따라 나오는 것을 보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류강철은 한 고향 사람의 면목을 봐주지 않을 수 없어 마지못해 받았다.     성칠은 류강철에게 후에 인사하겠으니 아버지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병권과 함께 원한을 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어섰다.     성칠은 큰아버지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하늘에 어두운 구름장이 침침하게 덮쳐 오더니 하얀 눈이 깔린 고향의 대지를 지지누른다. 아마 또 허위로 새하얗게 칠한 큰 눈이 내리려는 상 싶었다.
431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40) 대결 김장혁 댓글:  조회:528  추천:0  2024-05-10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웃는 고향                                       제5장 반항                                              8. 대결                 우시장 경찰국 청사를 짓는 공지에서는 아직도 숱한 인부들이 삯전에 미련을 가지고 일하느라고 개미처럼 바글거렸다.    병완은 한창 목수 간에서 대패질하면서 속으로 윽윽 별렀다.     (길수, 개놈새끼 오기만 해 봐라. 숱한 인부들의 삯전을 주지도 않고 네놈이 견딜 거 같아?)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찾아온다고 한길수가 일본 헌병대의 오토바이에 앉아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둔덕우로 달려왔다. 그는 오토바이에서 내리자마자 개화장을 휘두르며 거들먹거리면서 졸개들과 뭐라고 떽떽거렸다.      그는 높이 세워진 기둥들과 문짝을 두루 살펴보고 나서 목수 간으로 다가왔다.     “어허, 병완이, 수고 많네.”    병완은 대패질하던 손을 멈추고 허리를 펴더니 길수를 쏘아보았다.     “자위대 부대장을 하더니 한 마을 사람도 잊었소?”    “왜 아침부터 걸고드는 말툰가? 바가 야로!”    “집식구들이 내일 먹을 쌀이 없는 판에 말투가 고울 수 있는가?!”    “살림살이를 어떻게 했으면 한다하는 목수가 굶어죽게 됐는가? 빠까야로! 흥!”   “자넨 언제부터 섬나라 오랑캐로 됐는가? ‘바가’, ‘바가’,  뭐라구? 박으란 말인가? 자네 골로 박기를 잘하더니만 쩍 하면 ‘바가’, ‘바가’야?”    길수는 우멍눈을 부라리었다.    “자네 정말 대일본제국의 철퇴 맛을 봐야 알겠는가?”    병완은 대패질하던 나무를 땅바닥에 내려놓으면서 조금 부드러운 말투로 바꿔 말했다.    “한 대장, 자네 끼무라 국장과 말해서 인부들의 삯전을 주게나. 창렬은 상호 품삯으로 병 치료도 하고 쌀도 사먹어야 할 형편이오. 온 마을에서 자네 말을 믿고 동원돼서 경찰국을 지으러 왔잖소?  품삯을 주지 않으면 온 마을 사람들이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사오?”     한길수는 중절모자를 벗더니 번들 이마에 송골송골 내밴 땀을 수건으로 뚝뚝 찍으면서 코 방귀를 뀌었다.    “흥! 그따위 신용을 지키자고 내 집 기둥을 뽑아 삯전 줘?”    그 말에 병완은 눈을 뚝 부릅뜨고 한길수를 쏘아보았다.    “그것두 말이라고 하오? 그래 품삯을 주겠소? 안 주겠소?”    “안 주면 어째? 대일본제국 경찰국을 짓는데 무슨 놈의 삭전이야?”    한길수는 끼무라한테서 배운대로 지껄이지 않겠는가.    병완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야, 이 놈, 일본 오랑캐 개다리야, 그것도 말이라고 하느냐? 네놈이 품삯을 준다고 하니 내 숱한 사람들을 동원해 왔지 않았느냐? 그런데 지금 와서 해뜩 번져 눕겠니?”     한길수는 숱한 인부들의 앞인지라 자존심에 허락되지 않아 억지로 틀을 차렸다.    “이 놈, 언감 자위대 대장 앞에서 큰소리를 치겠는가? 얘들아, 저 놈을 잡아 묶어 헌병대에 압송해라.”     병완도 서슬이 퍼래 펄펄 날뛰었다. 그는 제일 먼저 바줄을 쥐고 달려오는 졸개를 어깨 넘어 옷을 거머쥐어 바람개비처럼 휘둘러 뒤따라오는 졸개를 쳐 눕혔다.    졸개들은 그 근력에 겁을 집어먹고 뒷걸음질 쳤다.    병완은 오른손에 쥐였던 졸개를 서너 발 앞에 내동댕이치면서 호랑이처럼 쩌렁쩌렁 고함쳤다.    “이 개놈새끼야, 담이 있으면 시끄럽게 졸개들을 내세우지 말고 한판 붙어보자!”   한길수는 숱한 인부들과 졸개들 앞인지라 물러설 수 없었다.    “좋다. 네놈의 그 울뚝밸을 뽑아 땅바닥에 왈왈 널어놓지 않는가 봐라!”    한길수는 개화장을 땅바닥에 홱 팽개쳤다.    그는 중절모자를 벗어 영팔에게 넘겨주더니 공지에서 훤한 곳으로 썩 나갔다. 그는 단단히 잡도리를 하느라고 대가리를 돌려 목을 놀린다, 손으로 머리카락이 몇 대 없는 번대 머리를 쓱쓱 쓰다듬는다 하면서 예비 동작을 했다.    “이 명천 울뚝밸아, 어디 덤벼봐라!”    병완은 대패질하던 가래짝 같은 손을 툭툭 마주쳐 먼지를 털면서 부릅뜬 눈으로 한길수를 쏘아보며 마주 나갔다.    몇 십 년 후에 다시 주먹을 쥐고 마주선 그들은 정말 룡과 범 같은 적수였다.   병완이 제대로 자리 잡고 마주서기도 전에 한길수는 씽 덮쳐들며 주먹을 휘둘러 선제공격을 들이댔다.    병완은 준비가 없은건 아니였다. 하지만 한길수의 주먹에 얼굴을 몇 매 얻어맞았다. 뒤로 비칠거리며 물러서는 병완을 보고 졸개들은 굳어졌던 낯을 풀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기준과 창준은 연세 있는 아버지가 욕볼 까봐 조마조마해 손에 비지땀을 그러쥐었다.    병완은 한길수가 골박이를 잘 한다는 것을 알고 머리만 중시했다. 그런데 오늘 한길수는 번번히 대머리를 뒤로 젖혔다가 박는 시늉을 하다가도 발로 걷어차지 않으면 주먹을 날렸다.    한길수는 한매 치고는 슬쩍 피하면서 득의양양해했다. 한길수의 징그런 상판대기 역겨웠다. 한길수는 우쭐해서 병완을 치고 차면서 공지 적송과 잣나무 같은 통나무를 세워놓은 곳에 몰고 갔다. 불 보듯 빤한 짓거리였다.    한길수의 주먹이 휙 날아들 때 씨름재간이 있는 병완은 날아드는 주먹을 잡아 비틀면서 한길수를 보기 좋게 태를 쳤다.    한길수도 만만치 않았다. 내 동댕이치는 그대로 바람개비처럼 몸을 날려 서너 발자국 밖에 가서 척 섰다. 태권도 6단의 날랜 솜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길수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 침을 퉤 뱉었다.    병완이 두 번째 반응을 하기도 전에 한길수는 통나무 무지 앞에 서있는 병완에게 호랑이처럼 씽 덮쳐들었다. 한길수는 이번에는 주먹을 날리는척하다가 최후일격을 가했다. 그는 번들 이마를 뒤로 젖혔다가 병완의 너부죽한 얼굴에 미친 듯이 골 박이를 떵 했다.    “골받이!”    기준은 황급히 소리쳤다.    병완은 몸을 살짝 낮추며 머리를 왼쪽으로 슬쩍 피하면서 길수의 허리를 잡아 어깨 넘어 내동댕이쳤다.    “앗!”    날아들어 오던 한길수는 그만 나무 무지에 번대머리가 꽝 박혔다. 그자는 피 흐르는 낯을 싸쥐고 쿵 쓰러졌다.   병완이 다가가 보았다. 한길수의 왼쪽 우멍 눈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병완이 한길수의 번대머리가 박힌 나무무지를 살펴보니 피가 질벅한 나무옹이에 피 묻은 눈알이 한개 꽂혀 있지 않겠는가.   분명 한길수가 골박이를 하다가 병완이 피하는 바람에 허망 나무옹이를 들이받아 왼쪽눈알이 박혀 뿍 빠져 나왔던 것이 틀림 없었다.     땅! 땅!    영팔은 자기 상전이 상한 것을 보고 허공에 권총을 쏘았다.    그는 총으로 병완을 겨냥하면서 고함쳤다.    “이 놈! 언감 우리 대장을 다치게 해? 살아 남을 거 같애? 얘들아, 이 놈을 묶어라!”    졸개들은 바 줄을 쥐고 떡 버티고 선 병완을 보고 감히 덮쳐나가지 못하고 주춤주춤 했다.    땅! 땅!   영팔이 또 총을 쏘았다.   병완이 왼팔을 붙잡으면서 상을 찡그리었다.   “이 놈들아! 누구한테 총질이냐?”   기준이 도끼를 쳐들고 덤벼들었다. 인부들도 괭이와 도끼를 쳐들고 영팔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땅! 땅!    영팔은 허공중에 총을 쏘았다.    “반란이다! 반란!”    병완이 썩 나서면서 말했다.    “잡겠으면 나를 잡아가라. 인부들관 아무 관계없다.”    창준과 기준이 나서면서 말리였다.    “아버지, 아버지께 무슨 죄 있습둥?”    “한대장이 덮쳐들다가 자기절로 적송나무가지에 박힌 건데!”     그러나 병완은 인부들이 상할까봐 가래 같은 두 손을 내밀어 스스로 바줄에 묶이었다.    “아버지!”    “아버지!!    병완은 온몸이 거미줄처럼 묶인 채 끌려가면서도 아들들과 인부들을 돌아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근심하지 말라, 내 무슨 죄가 있느냐? 난 한대장하구 공평한 결투를 했을뿐인데.”   인부들은 경찰국 사무 청사 둔덕 아래로 끌려내려가는 병완의 안전이 근심돼 웅성거리였다.   영팔은 한길수를 오토바이에 앉힌 후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꼬리 빳빳해 꽁무니를 뺐다.      
430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9) 고향의 버들 김장혁 댓글:  조회:750  추천:0  2024-04-05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5장       7. 고향의 버들     엄동설한에  눈 덮인 대지에 차가운 빛가루가 뿌려지고 있다. 윙-윙- 눈보라가 사납게 울부짖으며 눈 덮인 시골개천바닥을 휩쓸며 휘몰아친다.     경인과 어금은 불 붙이에 세간나 이럭저럭 근근득식하면서 살았다. 경인은  베옷바람에 초신 감발하고 윙윙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무릅쓰고 버들방천의 버들을 베러 발기를 끌고 나갔다. 소 버치를 결어 팔아 차좁쌀이라도 사 살림에 보태려는 것이였다.     눈보라가 어찌나 세찬지 날아오는 모래알 같은 눈가루에 얼굴을 맞아대는 듯하였다. 숨이 헉헉 막혀 발기를 끌기 힘들었다. 설상가상 맵짠 한기가 뼈 속까지 스며 들어 아래위이발이 더덕더덕 맞쪼길 지경이었다. 그래도 경인은 용케도 쓸만한 버들을 얻어만 보면 낫질 해 발기에 담았다.     “야, 이 놈새끼, 버드나무를 마구 베?!”    눈보라치는 겨울에 이게 무슨 마른 하늘 생벼락인가?    경인은 낫을 쥔 채 머리를 돌렸다. 소리임자를 보니 말을 타고 군도 찬 일본 사람이었다.    경인은 일본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발기를 끌고 나가면서 계속 버들을 베였다.     쒹- 쒹-    가죽채찍이 날아와 경인의 잔등을 핥아 쨌다.    옷이 째지며 살갗이 드러났다. 드디여 살캋에 시뻘건 굴 뱀이 죽죽 졌다.    “아니, 왜 이래?”    “빠까 모노(바보 같은 자식)!”    일본 놈이 고래고래 고함치며 채찍을 휘둘렀다.    경인이 날아드는 채찍을 덥석 감아쥐어 홱 챘다.    일본 놈이 말잔등에서 휘청거리며 하마트면 떨어질 번했다.    이때 등뒤에서 말발굽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총을 든 일본 경찰 대여섯이 말 타고 달려왔다.    먼저 온자가 뭐라고 고래고래 고함치자 일본 경찰들은 경인을 붙잡아 묶었다. 그 놈들은 경인을 붙잡아끌고 개 잡은 포수들처럼 우쭐렁거리며 상우남면에 자리잡은 림산파출소로 끌고 갔다.    파출소에는 조선인 통역이 있었다.    통역은 사무상에 거만하게 앉아 있는 일본 사람을 가리키면서 조선말로 말하였다.    “이분은 림산파출소 야마모도소장이네. 당신 정신 있소? 감히 버들방천의 버들을 베다니?”    그제야 경인은 자기가 잡혀온 영문을 조금 알게 되였다.   잠간 후 그는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일본 사람들이 정신있소? 내가 나서 자란 고향에서 버들을 벴는데 무슨 죄 있단 말이오?”    경인의 뒤 말만 통역하자 야마모도 소장이 호통쳤다.    “뭐 어쩌고 어째? 법도 모르는 시골 놈들, 한일합방 후 조선은 일본에 귀속됐어. 조선의 땅과 물에서 자란 모든 게 일본 거란 말이야. 넌 일본 삼림법을 어겼기에 중대 범죄자야.”    경인은 억이 막혀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우리가 세세대대로 살아온 고향이 일본 거란 말이요?”    통역은 조용히 말했다.    “이보. 말해보았자 쓸데없소.벌금이나 하구 집에 가게 내 말해줄테니. 작작 떠드오.”   "벌금? 무슨 말이오?"   "감옥살이 대신 돈이나 내란 거요."    경인은 머리를 무겁게 툭 떨어뜨렸다.    (일본 사람들이 들어온 후 처음 듣는 소리야, 제기랄 벌금! 당장 먹을 쌀을 살 돈도 없는데 벌금 하라는 거야? )    경인이 속으로 두덜거리는데 일본 헌병 소대장 나까노라이찌로가 파출소에 들어왔다.     그는 야마모도 소장 곁으로 다가가 거적눈을 내리깔면서 뭐라고 쑹얼거렸다.     야마모도 소장은 경인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끄덕이더니 권연 한대를 꺼내 가재수염아래에 꼬나물었다.    나까노라의 거적눈은 실눈으로 한데 붙더니 피어오르는 연기를 꿰뚫고 경인을 여겨보면서 무슨 속궁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윽고 야마모도 소장은 희죽이 웃으며 씨부렸다.     “자넨 운주동 최구장네 둘째아들이라면서?”    경인은 머리를 들어 야마모도 소장을 쳐다보았다.    야마모도 소장은 가재수염을 슬슬 쓸더니 교활한 웃음을 지었다.    “여기 벌금서에 이름 석 자를 써넣고 돈을 가지고 오게나.”    경인은 번쩍 머리를 쳐들었다.     “아니, 보릿고개를 넘을 쌀을 살 돈도 없는데 무슨 벌금을 내라는 게요?”     야마모도소장은 통역이 번역해주자 책상을 꽝 쳤다.     “제기랄! 최구장 낯을 봐주는 건데도 모르는가? 어째 감옥살이를 하고 싶은가?”     경인은 억울한 대로 그렇게 하겠다고 벌금 서에 자기 이름 석 자를 써넣고 파출소에서 나왔다.     그는 앙알한 마음으로 발기를 끌고 운주동에서 서쪽으로 오리나 떨어져있는 불붙이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어금에게서 기별을 받고 최구장과 경숙이 달려왔다. 그들은 경인의 째진 옷 속에 드러난 잔등의 채찍자리를 보고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자기 고장의 버들을 벴는데 채찍으로 이다지도 때려?”    경숙이 경인의 상처를 보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계십둥?”   이때 밖에서 성칠이 사냥총을 쥐고 불쑥 들어섰다.    눈보라가 살창문을 투르륵 두드린다.    “사돈어른 오셨구먼. 우리 조카사위가 일본 놈들에게 다쳤다더니 어떻소?”    성칠이 문안하러 오자 경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유, 목재 일에 바쁜데 찾아 왔습니까?”    경인은 일어나 절을 올렸다. 그러자 성칠은 바삐 마주 앉으면서 답례했다.    “에이, 아픈데 무슨 절까지. 에이고, 어깨랑 다쳤구먼. 다른 덴 상하지 않았소?”    “괜찮습니다.”    어금은 눈물이 글썽해 두 손을 맞잡고 앉아 큰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성칠은 어금을 건너다보면서 당부했다.    "이후에는 일본 놈들의 눈을 피해 버들을 베오.”    경인은 피발이 선 눈을 뚝 부릅뜨고 바깥을 내다보면서 이를 북북 갈았다.    “에이유, 그 놈들의 성화에 어디 살겠습둥? 버치라도 결어서 쌀이나 사자 했더니. 그것마저 안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삽둥? 전번에 경찰국공지의 삯전도 주지 않은 게 목재 일을 해도 주겠습둥? 살 길이 막막합구마.”     성칠은 여러분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일본 놈들을 우리 고향에서 몰아내기 전에는 발편잠을 잘 수 없습구마.”    최구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총칼을 쥔 일본 놈들을 어쩌겠수?”    성칠은 사냥총을 들어 보이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도 사냥총 들고 싸워야 합구마. 경인 조카사위는 검을 잘 쓰지 않소?”    그 소리에 모두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최구장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우리 힘으로 언제 그 놈들과 싸워 이기겠소? 500년이나 이 나라를 통치해온 이씨 조선의 관군들도 어쩌지 못하고 나라를 다 빼앗기고 말았는데. 괜히 검을 휘두르다가 괜히 목숨이나 잃겠소.”      최구장은 앉아 김빠진 말만 했다. 성칠은 공자 왈 맹자 왈 밖에 모르는 선비들과 무력을 쓰자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나도 주저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선비들이야 무슨 담에 총칼을 든 일본 놈들과 싸우겠는가?)     성칠은 장소나 사람을 봐가면서 말해야 되겠다는 것을 느끼고 다른 화제를 꺼냈다.     “사돈어른의 서당 방은 어떻게 돼갑둥?”     최구장은 머리를 홰홰 가로저었다.     “요즘부터 일본 사람들이 조선 글이나 한어를 가르치지 말구 일어를 배워서 가르치라고 해서 난리네.”    주름살이 밭고랑처럼 패이고 흰 수염이 더부룩하게 자란 최구장의 얼굴에는 수심의 그늘이 꽉 끼였다.    성칠은 세파에 모대기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최구장에게 존경이 갔다.     “최구장은 서당 방을 차려서 우리 후대들의 눈을 틔워주는 게 민족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겝지유.”     “우린 아무리 가난해도 허리띠를 조이고서라도 자식들을 공부시켜야지.”     그쯤 되자 성칠은 후에 경인과 조용히 말해보기로 하고 문안 몇 마디 더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칠은 사돈들과 인사하고는 집에 나와 성큼성큼 앞장대로 치달아 올랐다.     눈보라가 쌩쌩 나무초리를 스치며 무서운 비명소리를 쳐댔다. 일본 놈들의 세상으로 뒤바뀐 조선의 대지에는 와가의 콧노래가 장송곡을 부른다.     저승사자가 염라전 화로불 옆에서 이빨을 다시며 기지개를 켜더니 하품을 하며 낮잠을 청한다.                        
429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8) 조선의 원시림 김장혁 댓글:  조회:627  추천:0  2024-04-05
                         김장혁 작 울고 웃는 고향 제5장                   6. 조선의 원시림          나무가지들에는 시허연 눈이 더부룩이 쌓여 있다. 박달나무도 탁탁 얼어터질 엄동설한이 다가왔다. 여우도 추워 눈물방울을 똑똑 떨어뜨리면서 발을 동동 구를 맵짠 추위가 덮쳐왔다. 화로불도 품 속으로 기여들 지경으로 매섭게 추웠다.     마을 사람들은 길수가 경찰국청사공지 삯전을 주지 않아 아침을 먹으면 저녁쌀이 없어 근심하면서 하루를 삼추와 같이 어렵게 살았다. 그러나 길수는 집에 일본 경찰국장과 기생 년들까지 불러다가 흔전만전 먹고 마시고 큰 잔치를 벌렸다.     마을 사람들은 뒤에서 모두 욕설을 퍼부었다.     "저 우멍눈을 까마귀 파먹었으면."      "어서 썩어질게지."      길수는 영팔과 수길 등 졸개들을 데리고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벌목에 나오라고 을러멨다. 그의 말대로라면 통나무를 벌목해 우시장에까지 실어가면 꼭 삯전을 준다고 했다.     성칠은 크게 희망을 걸지 않으면서도 사냥도 하지 못하게 하는 판에 칠백과 덕성, 최동욱 등과 함께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산으로  벌목하러 올라갔다.     요즘 삼림분주소 야마모도 소장은 사냥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낮에는 삽살개처럼 졸개들을 데리고 산에서 벌목공들을 감시할 뿐만 아니라 누가 사냥을 하나 살피였다. 밤에는 마을로 싸다니면서 어느 집에서 혹시 산짐승을 사냥해 끓여 먹나 집집이 기웃거리면서 가마뚜껑까지 일일이 열어보았다.        스르륵 스르륵 톱질소리에 턱턱 도끼질소리에 조용하던 원시림이 시끌어워졌다.      “넘어간다!”       여기저기서 아름드리나무가 쿵 쿵 넘어갔다.      사기 나서 “넘어간다!”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었다. 넘어가는 나무에 사람이 다칠 까봐 소리치는 소리였다.      마을 사람들은 넘어간 통나무를 집짓기에 좋을 만큼 토막 내 소 발기에 실어 산 아래에 끌어내려갔다. 거기서 다시 마차나 소수레에 실어 우시장 경찰서 사무청사 공지에 실어갔다.     산골마을 영월동은 벌목 일에 끌려온 사람들로 붐비었다. 집집마다 다른 마을사람들이 몇몇씩 들었다. 저기 버치 골에는 저목장이 들어앉아 아름드리 통나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겨우내 몇 달 벌목하니 아름드리나무들이 하늘을 가리며 우중충하게 서있던 원시림은 거의 벌거숭이로 돼버렸다. 산도 옷을 홀랑 벗은 까까머리처럼 민둥산으로 보기 싫게 변해갔다.     “제길 할, 나라에서 몇 십 년이고 몇 백 년이고 부동림이라고 법령을 내리더니 결국 섬나라 오랑캐들이 좋은 노릇을 했네그려."      성칠이 볼 부은 소리를 했다.      “쉿-”     칠백이 턱으로 산기슭 쪽을 가리켰다.     야마모도소장이 가죽채찍을 감아쥐고 졸개들과 함께 눈에 푹푹 빠지며 이쪽을 흘끔흘끔 살피면서 다가왔다.     설겅설겅     성칠과 칠백은 마주 앉아 톱질했다.     “요로씨이(좋아)”      야마모도는 원숭이 엉덩이 같은 낯에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깍- 깍-”    야마모도의 멋들어진 모자에 까마귀 똥 꽃이 허옇게 피었다.    성칠이 하늘을 쳐다보니 까마귀 한마리가 날아지나가면서 똥을 내리쏜 것이 틀림없었다.    “바까(바보) 새끼!”    야마모도 소장은 하늘 저 멀리 날아가는 까마귀를 쳐다보면서 욕지거리를 해댔다. 그는 모자를 벗어보고 까마귀 똥을 옆에 선 나무에 대고 문질렀다. 똥이 벗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넓게 똥칠이 돼버렸다.    “제길 할!”    야마모도 소장은 모자를 홱 팽개치더니 뒤따라 온 졸개의 모자를 벗겨 쓰고 가버렸다.    졸개는 귀를 싸쥐었다가 옆에 선 졸개와 칠백이를 흘끔흘끔 쳐다보다가 칠백의 털모자를 빼앗아 쓰고 가버렸다.    김칠백은 수림 속으로 사라져가는 야마모도와 졸개들을 노려보다가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였다.    “개자식들, 아무 때건 도끼로 대갈통 찍어놓지 않는가 봐.”    칠백은 도끼자루에 침을 퉤 뱉어 틀어쥐더니 통나무를 탁탁 내리찍었다. 도끼밥들이 사처로 튕겨 눈 위에 툭툭 떨어졌다.    “일본 사람들은 이젠 기운봉이나 치마봉 수림의 주인행세를 하는구나. 경찰국 청사를 짓는 데 무슨 나무를 이렇게 많이 쓴다니?”    성칠의 말에 칠백은 투덜거렸다.     “내 사촌형 룡천이가 말하던데 철길과 길 닦는데도 쓴다더이.”    칠백의 말꼬리에는 경상도 사투리 줄줄 묻어나왔다.    “개자식들, 우리를 생각해 철도를 놓는 척 해도 자기네 좋은 노릇을 하려는 게 아니고 뭐냐?"    “글쎄 말인기여.”    “가만.”    성칠은  톱질을 하다가 손을 멈추고 칠백에게 물었다.    “네 사촌형은 뭘 하는 사람이냐?”    그러자 칠백은 사위를 둘러보더니 성칠의 귀에 대고 귀속 말을 했다.    “룡천은 경주 큰아버지네 맏아들인기여. 내 죄를 짓고 이 마을로 도망쳐 온 후 소식이 끊어졌댔어. 몇해 전 어느 날 밤중에 나를 찾아오지 않았겠어.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장백산에 다니면서 사냥한다던데 친구들도 꽤 많은 것 같더이.”    “음, 언제 만났으면 좋겠다. 함께 사냥도 하고. 이게 어디 지긋지긋해 일본 사람들의 수하에서 살겠냐?”    “그러지. 이제 형이 오면 만나게나.”    그들은 말을 마치자 톱질을 슬슬 해댔다.    이윽고 아름드리통나무가 흔들거렸다.    성칠과 칠백은 엉거주춤 일어났다.    “넘어간다!”    산악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아름드리통나무가 다른 나무 가지들을 내리깔며 꽈당 쿵 넘어졌다.   이때 통나무를 살피던 칠백이 소리쳤다.   “아니, 이거 벌레 먹은 통나무 아냐!”    성칠이 여겨보니 톱으로 벤 나무 밑둥 여기저기에 손가락만큼 한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손가락으로 구멍을 우비니 톱밥 같은 나무가루가 나왔다. 이윽고 까만 대가리에 누런 색을 띤 손가락만큼 굵은 벌레가 묻어 나왔다.   “아니, 이 흐물흐물한 벌레가 이 큰 아름드리통나무를 파먹었단 말인가?”    성칠이 놀라자 칠백이 성칠의 귀에 대고 쑤군거렸다.    “이런 나무로 경찰국 청사를 어떻게 짓는대? 쾅 무너져뿌려!”    성칠은 피뜩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벌레를 벌레구멍에 되 넣고 나무가루로 잘 막아주었다.    “왜?”    의아한 칠백의 눈길에 성칠은 귀속 말로 "쉬-" 하고 식지를 입에 대고 사위를 살폈다.     “장차 알 도리가 있을 거야.”    그는 도끼로 나무가지를 툭툭 쳤다.     칠백도 알았다는 듯이 벌레구멍난 자리를 피해 도끼질했다.    “그런데 말이야. 벌레가 얼어 죽지 않을까?”    “아니야. 이 벌레는 춘하추동 나무구멍에서 살아온 끈질긴 놈이야. 우리 도끼나 톱에 죽지 않으면 얼마든지 겨울을 살아 나갈 수 있어.”     “오, 그래? 잘 됐어.”     “쉿-”    성칠은 입가에 식지를 댔다.    칠백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 둘은 무슨 묘책이나 생각해낸 듯이 시름놓고 다른 나무를 찾아가 밑 둥에 대고 톱질만 부지런히 슬슬 했다.    한참 후 칠백이가 이렇게 넌지시 물었다.    “자네가 사냥하러 간 틈을 타서 길수가 은녀를 부엌데기로 들여갔잖아. 그런데 전번에 득호와 짜고 들어 응삼을 몽둥이로 쳐 눕혔다고 해. 득호와 은녀는 한바탕 두들겨 맞고 한평생 종살이를 해야 한다데이.”    “그게 될 말인가?”    성칠은 성나서 씩씩거렸다.    칠백은 톱질을 멈추고 산기슭을 내려다보았다.    소가 엄청나게 큰 통나무를 수레에 싣고 내리막을 받지 못하는지 덕성과 덕팔, 상호, 백룡 등 십여 명 장년들이 통나무를 멜대목도로 메고 산기슭으로 내려갔다. 덕성이 첫소리를 먹이면 모두들 소리를 받으면서 발을 맞춰 힘겹게 내려가고 있었다.      백년 묵은 통나무라    허기영차    썩둑 잘라 죽였어    허기영차    산 것보다 무거워라    허기영차    고향 떠나기 싫은가?    허기영차    가기 싫어 뻗치는가?    허기영차    무겁기도 무겁다    허기영차      고향 땅 떠나가면    허기영차    오랑캐 섬나라서 썩으리라    허기영차    오호 서럽다    허기영차    이제 가면 언제 오냐?    허기영차    얼씨구 서럽다   허기영차   절씨구 서럽구나   허기영차      목도소리를 듣고 성칠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 내쉬었다.    이때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을 헤치면서 웬 장년이 다가오더니 칠백에게 인사했다.    “동생, 벌목해?”   칠백은 반가워 그 사내를 와락  끌어안았다.   “히야(형),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더니.”   칠백은 몸을 돌리더니 성칠에게 인사시켰다.   “인사해. 우리 마을 힘장사 성칠 형이야.”   “내캉 한 고향 마을에 살던 사촌형 룡천이야.”    성칠은 룡천과 악수를 나누었다.     “나니까(뭐야)?”    그들이 머리를 돌려보니  헌병 가메다가 영팔과 수길을 꼬리에 달고 다가오고 있었다.    가메다는 별나게 볼때기에 검은 사마귀에 털 한 모숨이 나 있었다. 하여 사람들은 그 놈을 털 한모숨이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다.    칠백은 턱으로 털 한 모숨을 가리키면서 룡천에게 도끼를 쥐어 주었다.    “저 가메다는 대단히 교활한 놈이야. 일하는 척 해.”     칠백의 귀속말 뜻을 알아챈 룡천은 도끼로 나무 가지를 툭툭 치는 시늉을 했다.    가메다는 채찍을 쥐고 거들먹거리면서 세 사람과 통나무를 번갈아보았다.     “야, 이 놈들아, 아까부터 겨우 나무 한대를 벴냐? 엉?”    털 한 모숨은 다짜고짜로 채찍을 휘둘러 성칠의 잔등을 내리쳤다. 날아드는 채찍을 받아 거머쥔 성칠의 눈에는 분노의 불길이 무섭게 이글거렸다.    그때 뒤따라온 영팔이가 발길을 날려 성칠의 아래 배를 걷어찼다. 성칠은 날아드는 발을 받아 쥐어 내동댕이쳤다. 영팔은 바람개비처럼 저쪽에 날려가 눈속에 머리를 보기좋게 처박혔다.    “엉, 이 놈들, 언감 도감께 손을 대?”   수길이 눈깔에 불길이 이글거렸다.    룡천이 도끼를 놓고 두 팔을 벌리고 나서며 말리였다.    “다들 왜 이래? 우리 부지런히 일하면 끝 난 거 아뇨?”     수길은 주먹을 내리우더니 의아한 눈길로 룡천을 쏘아보았다.    “넌 어느 마을에서 온 놈이야?”    “저 뒤쪽 가마골에서 왔소.”    “오, 그래?”    수길은 도끼를 거머쥔 성칠과 칠백의 눈길에 이글거리는 불길을 보고 바삐 그 자리를 떴다.    “부지런히 일하게나.”    영팔은 눈구덩이에서 일어나 눈을 부릅뜨고 성칠에게 주먹을 쳐들고 흔들어 보이면서 꼬리 빳빳해 달아났다.
428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7) 함정 김장혁 댓글:  조회:762  추천:0  2024-04-05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5장                                                              5. 함정                 길수는 마지못해 절구통 같은 월선의 옆에 들어 누었다. 그러나 그는  옆방에서 풍겨오는 속살 향기, 아양 떠는 소리에 잠 못 이루고 끼무라 국장이 월향을 안고 노는 징글스런 모습을 떠올렸다.      순간 속으로 말하지 못할 무엇이 목구멍까지 울컥 치밀어올랐다. 맛있는 비게덩이를 개한테 빼앗긴 한이랄까, 자기 여동생이 왜놈에게 강간당한 치욕감이랄까, 날강도에 대한 증오심이라고 할까. 착잡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꼭뒤까지 치밀어 올랐다.      미닫이문을 하나 사이 두고 앞방에서 거친 숨소리와 신음소리가 높아갈수록 길수는 속이 비길 데 없었다.      “음, 여보, 냉수를 좀 주오.”     월선은 뭐라고 두덜거리면서 비단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정지로 나갔다.       어둠 속에서는 황소 숨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아, 아하, 으흐, 아우~”     월향의 신음소리가 집안 어둠속의 정적을 산산 박살냈다.     뒤이어 끼무라의 긴 한숨 소리가 방안을 메웠다. 속살이 째지는 월향의 아픈 신음소리도 잠잠해졌다.      길수는 월선이가 가져다준 냉수를 한 그릇을 꿀꺽꿀꺽 다 마시고나서 바가지를 월선에게 주었다.      이윽고 길수는 배를 끌어안으면서 상을 찡그리었다.      “아이고, 배 아파라. 내 뒷간에 갔다 와야겠소.”      길수가 엄살을 부리면서 털조끼를 껴입고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월선은 말리지 않았다. 그만큼 속으로는 어떻게 더러운 영감에게 보복할까 속궁리를 했다.     길수는 마루에 나가자 뒷간으로 가는 척 하면서 슬슬 뒤로 돌아가다가 슬금슬금 사랑채 쪽으로 다가갔다. 그 안에서는 옥설과 뽕녀, 만금 등 여러 기생 년들이 살 냄새를 풍기면서 자고 있었다.     이때 덜커덕 중대문이 여닫는 소리가 났다. 길수는 사랑채벽에 찰거머리처럼 딱 들어붙어 동정을 살폈다. 풀풀 눈가루가 흩날리는 눈발 속에 은녀가 물동이를 이고 맥없이 중대문안으로 들어왔다. 이때 웬 작은 그림자가 불쑥 나타나더니 은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어마나! ”     “히히히, 은녀,  항상 귀여워.”     “이걸 놓으라니까. 물독을 깨겠소.”     은녀가 머리우의 물동이를 붙잡으며 손을 뿌리쳤다.     자그마한 그림자는 놓으려고 하지 않고 호주머니에서 뭔가 꺼내 내밀었다.     “내 말을 들으면 이 돈을 가지고 머슴도 살지 않아도 돼. 내가 주인어른께 말해줄게.”     길수가 찬찬히 여겨보니 눈에 익은 자였다.    (아니, 저 놈, 응삼이, 저 눔두 은녀에게 눈독을 들였어? 내 맛도 보기 전에 은녀한테 치근거려?)    길수는 속에서 뜨거운 무엇이 욱 치밀어 머리꼭대기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사랑채 벽에 붙어 섰다. 손에 괭이자루가 만지웠다. 그는 괭이자루를 오른손에 단단히 틀어쥐고 왼손으로 벽을 스치면서 슬금슬금 중문가까이로 다가갔다.     이때 가물에 실 돌피 같은 응삼이 은녀에게 치근거리면서 다가왔다. 은녀는 응삼을 한손으로 밀어버리면서 머리 우의 물동이를 한손으로 붙잡고 부엌으로 발뼘발뼘 다가갔다.     응삼이 은녀에게서 조금 떨어져 사랑채 쪽으로 머리를 돌리더니 중대문으로 가려는 순간이다.    길수가가 괭이자루로 응삼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딱!     “억!”      외마디소리와 함께 응삼이 눈 바닥에 썩박나무 넘어가듯이 쓰러졌다.      이윽고 은녀가 물동이를 안고 나오다가 눈 바닥에 쓰러진 응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앗!”     은녀는 식지를 깨물면서 못 박힌 듯이 눈 바닥에 서있었다. 그때 문 뒤에 키꺽다리가 까딱하지 않고 붙어 서있었다. 여기저기에서   문을 배시시 열고 검은 그림자들이 머리를 불쑥불쑥 내밀었다. 뒤이어 바깥의 일을 눈치 채지 못하였는지 덜컥덜컥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었다.     은녀는 제 정신을 가다듬고 물동이를 이고 몸채로 들어갔다. 그는 월선에게 알리려고 하다가 응삼이 치근거리던 것이 생각난 데다 괜히 무슨 때라도 들쓸까봐 될 대로 되라고 그만두었다.     길수는 응삼의 손에서 돈이라던 걸 빼앗아냈다. 번쩍번쩍하는 은전 세잎이었다.     “개자식, 은전으로 은녀를 꼬시려고?”     그는 말이발을 사려 물고 은전을 부서지게 꽉 틀어 쥐였다. 이윽고 그는 홱 돌아서서 주위의 동정을 살피었다. 뒤이어  득호가 든 방 앞에 슬금슬금 다가가 은전을 처마 밑에 쑤셔 넣었다. 잠간 후 우멍 눈으로 사위를 둘러보고 쓰러진 응삼의 곁에 버려진 괭이를 쥐여 괭이자루로 응삼의 머리에서 눈 바닥에 흘러내린 뻘건 피를 문질러 발랐다. 그는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눈을 빠드득빠드득 밟으면서 득호가 든 방 앞에 괭이를 슬쩍 내려놓고 사랑채 큰 방 앞에 슬슬 다가가 멈춰 섰다. 방안에서는 술에 취한 젊은 일본 기생 년들이 쌔근쌔근 잠들어있었다.     길수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안 돼, 일본 기생들을 다쳤다간 끼무라 국장에게 잘못 보일수도 있어. 아무리 내가 색마라도 상전의 계집을 다칠 순 없어.)     길수는 사랑방안의 분내 나는 기생 년들을 먹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 듯이 벽을 손으로 만지다가 피뜩 응삼의 사랑채에 눈길을 돌렸다.     “그래, 그 주제에 은녀를 지껄여?. 네놈의 여편네를 데리고 놀아주마.”    춘실은 응삼이 잠자리에서 나간 지 이슥해도 돌아오지 않아 이상해하며  기다렸다.    삐꺼덕    문 여는 소리 났다.    “이제 왔어요?”    “음.”    웬 그림자가 들어오더니 이불 안으로 쑥 들어왔다.    “으, 차가워. 왜 이렇게 얼면서 밖에 있었는가요?”    검은 그림자는 대답 대신 춘실의 몸에 와락 덮쳐들었다. 땀내와 술내가 메스껍게 확 풍겨왔다.    “아야, 찬 몸으로 왜 이리 성급해?”     허나 춘실은 인차 자기 남편보다 더 무거운 억대우라는 걸 알고 이상해했다. 머리를 만져보니 번대머리 아니겠는가.    “아니, 주인어른?!”    “쉿!"”    “양반어른이? 소리지를래!”    길수는 황망히 넉가래손으로 춘실의 입을 틀어막았다.     “소리 질러 봐라. 응삼이 아는 날엔 네년 살아남겠구나. 난 응삼을 우리 집에서 쫓아내면 그만이야."    그 소리에 춘실의 입이 꽁꽁 닫혀버렸다.    길수는 시름놓고 춘실의 속옷을 와락 벗겨버렸다.    "고분고분 말 들어. 길거리에서 굶어죽는 걸 데려다 키워줬으면 은혜를 보답할줄도 알아야지. 안 그래? 더러워질대로 다 더러워진 년한테 누가 열녀비라도 세워줄 거 같아?”    춘실은 팔다리를 바둥거리며 발악하다가 맥을 버리고 구슬픈 눈물을 볼에 주르르 흘렸다. 하신에 불에 단 절구공이 같은 것이 아프게 들어왔다. 뒤이어 쨍 아파나게 들쑤시는 것이었다. 춘실은 두 손으로 길수의 털이 부숭부숭한 몸뚱아리를 마구 올리 떠밀다가 손을 활 놓았다. 아프더니 점차 진짜 사내 맛이 저리게 부딪쳐 왔던 것이다.    “아우, 아, 아~”    어두운 방 안에는 춘실의 신음소리와 감탄소리가 끝이 없었다…    한참 후 길수는 흐느끼면서 섧게 우는 춘실의 손에 은전 몇 닢을 쥐여 주고 어슬렁어슬렁 나갔다. 문을 덜컥 닫자 춘실은 이불을 들쓰고 더 섧게 울었다. 즐거움은 잠시뿐 서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던 것이다.    (천하 사내들이란 다 개 같은 물건 짝이구나. 이모부, 길거리 건달들, 한길수. 다 색마야!)    쟁그랑!    춘실은 길수가 준 더러운 은전을 문 쪽에 홱 던졌다.   (내 어디 기생 년인가? 뭐.)   바깥에서는 눈이 펑펑 쏟아졌다. 그때까지 물동이를 안고 정주간에서 안절부절 하지 못하면서 서있던 은녀는 마루에 올라서는 길수를 보았고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춘실의 구슬픈 울음소리도 들었다.    “에헴, 물동이를 안고 서 있냐? 일찍이 들어가 자거라. 참, 일을 시켜도 분수가 있지.”    길수는 생각는 척 했다.   은녀는 물동이에서 흐르는 물방울을 손바닥으로 쓸어버리면서 길수의 지나친 관심에 몸 둘 바를 모르면서 뒷방에 들어가는 길수의 잔등을 바라보았다.   은녀는 물독마다 물이 꼴딱꼴딱 찬 것을 보고 곁방으로 나가려고 했다.    이때 빠금히 열린 미닫이 틈으로 등불 빛과 함께 두런두런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데 갔댔소? 몸이 이리 차오?”    “예. 저녁에 먹은 게 속탈이 뒷간에 가 앉아있었어요.”    “그래? 나도 속이 좋지 않아서 뒷간에 갔는데. 아니, 저.”    “호호호.”   그들 둘은 서로 거짓말을 한 걸 눈치 챘다. 뒷간은 하나인데 둘 다 이제껏 뒷간에 가 앉아 있었다는 것이 어디 말이나 될 소린가?    은녀는 코를 싸쥐고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참으면서 정주간을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길수가 제꺽 화제를 바꿨다.    “은녀란 년이 웬 사내와 사통하려다가 들키게 되니 그 사내와 함께 마름을 쳐 눕히지 않겠소. 그 사내가 허리가 구부정한걸 보니 득호 같더라니까.”    “저런, 세상에.”    미닫이 쫙 열리더니 번들 이마와 함지 엉덩이가 정주간에 뛰쳐나왔다.    “고년이 금방 물독을 안고 여기 서있더니 어디로 갔어? 저기 나가는구나.”    “이년 거기 섯거라!”    길수는 독이 어린 우멍 사기눈을 부릅떴다. 그는 말이발을 사려 물고 씽 달려가 은녀의 치렁치렁한 머리채를 틀어쥐고 내동댕이쳤다. 은녀는 단통 마루에 나가 쓰러졌다.    길수는 끼무라를 깨울까 봐 높이 고함치지는 못하고 발길질만 했다. 암범 같은 월선은 은녀의 머리채를 쥐여 휘둘렀다.    “웬 일입둥?”    처량한 비명소리가 울리는데 영팔이 곁방에서 뛰쳐나왔다.    “저기 쓰러진 응삼을 봐라.”    길수는 물매질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손가락으로 눈 바닥에 쓰러진 음삼을 가리켰다.    영팔은 달려가 응삼을 끌어안아 일으켰다.    “마름, 마름!”   그제야 제정신이 들었는지 응삼은 맥없이 눈을 떴다.   “깨났어?”    허위적인 길수는 맨발바람으로 응삼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 일으키고 부축해 마루우로 올라왔다.    “분명 은녀가 어떤 사내와 함께 자넬 치는 걸 내 이 눈으로 보았어. 맞지?”     길수는 자기 쳐 넘기고서도 생사람한테 죄를 들씌워 잡아먹을 작정이었다. 참말로 열매는 자기가 먹고 가시로 남을 찌르는 격이었다.     응삼은 피가 낭자한 머리를 만지면서 중얼거리었다.    “글쎄. 이년을 저기 중문어귀에서 보고 몇 마디 말하는 새에 맞았습니다.”    길수는 영팔을 보고 고래고래 호령했다.     "흉수를 사출해! 꼭 발자국을 남겼을 거야.”     영팔은 순사처럼 응삼이 쓰러졌던 자리로부터 난 발자국들을 살펴보았다.    “금방 우리가 밟은 발자국 위에는 싸락눈이 덮일 수 없지. 다만 흉수의 발자국 위에만 싸락눈이 살짝 덮여 있을 거야.”    길수는 마루에서 신을 찾아 신고 내려와 그럴듯하게 인도해갔다.    “여기, 여기!”    길수는 싸락눈이 살짝 덮인 발자국을 가리켰다. 그 발자국을 따라 가면서 보니 몽둥이 같은 것을 질질 끌고 간 자리가 득호의 방문 앞으로 났다. 확실히 방문 앞에 자루에 피가 질벅하게 묻은 괭이가 있지 않겠는가.    “피 묻은 괭이자루! 분명, 득호 녀석이 응삼을 쳐 눕힌 거야!”    길수는 음흉한 눈길로 영팔을 보면서 쑤군거렸다. 영팔은 납작코를 벌름거리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길수는 득호 방문 앞으로 다가가 이영의 지푸라기가 부스러진 것을 손가락질했다.     "이 지푸라기 봐라."    영팔이 처마 밑을 살피다가 처마 밑에 움쭉 들린 틈새를 발견했다.    그는 손을 쑥 들이밀어 더듬더니 고함쳤다.    “이게 뭐냐?!”   영팔은 뭘 쑥 뽑아냈다.    “은전!”    은전이 등불에 백설같이 빛 뿌렸다.    영팔은 더 지체하지 않고 득호네 방문을 열어 재꼈다. 득호는 바깥에서 떠들썩한 영문을 모르고 주섬주섬 옷을 주어 입다가 영팔의 납작 코와 부딪쳤다.    “너 이놈, 마름을 몽둥이로 쳐 눕혔지?!”   영팔이 득호 팔을 붙잡고 을러멨다.   득호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했다.    “난 나무를 패구 곤해서 쓰러져 쿨쿨 잤소. 건데 누구를 몽둥이로 쳐눕혔다구 그러오? 생똥 같은 소리를 좀 작작 하오.”    득호는 몸채 앞에까지 끌려나왔다.   길수는 득호 코 앞에 대고 삿대질했다.   “난 네놈이 응삼을 쳐 눕히는 걸 똑똑히 보았다. 거 괭이하구 은전을 여기 가져오너라.”    영팔이 피 묻은 괭이와 은전을 가져왔다.    “응삼이, 이 은전을 보게나. 이게 자네 게 맞는가?”    응삼은 머리를 싸쥐고 은전을 여겨보더니 머리를 끄덕이면서 득호를 노려보았다.    영팔은 응삼에게서 눈길을 득호에게 돌렸다.    “그래도 승인하지 않겠는가? 물증이 나왔는데. 응삼의 은전 세잎이 어떻게 돼 자네 처마 밑에 감춰졌어? 이 피 묻은 괭이도 네 방 앞에 있지 않았어? 발자국두 분명 네 방 앞으로  났구.”    득호는 억울하여 눈이 풀풀 흩날리는 하늘만 쳐다보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억울해 죽겠다. 씨, 곤해 잤는데 왜 생똥 같은 죄를 들씌움둥?”    “분명 저 허리구부정한 놈이 몽둥이로 우리 집 마름을 쳐 눕히는 걸 보았다. 은녀, 말해봐. 저 놈과 짜고 들었지?”    은녀는 월선에게 머리채를 틀어 쥐인 채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    “난 물을 긷고 돌아오면서 마름을 보았지 득호 오빠는 본적두 없습구마.”    찰싹!    영팔은 은녀의 볼에 한대 안기고 은녀와 득호에게 삿대질하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어째, 매우 맞아봐야 실토정하겠냐?"   길수는 영팔과 수길의 귀에 번갈아대고 끼무라 국장을 깨울까봐 득호와 은녀를 대문밖에 끌고나가 매우 치라고 귀속 말로 쑤군거리었다.    죄 없는 득호와 은녀는 대문 밖에 끌리어나가 언 눈 바닥에 엎드려 억울한 매를 맞았다. 세상에 이런 무함이 어디 있는가? 죄는 누가 짓고 매는 누가 맞는단 말인가?   매를 맞던 득호는 옆에서 방망이에 볼기짝을 맞는 은녀가 불쌍해 손을 쳐들며 고함쳤다.    “그만! 내 혼자 마름을 쳤소. 은녀하구는 관계없소.”    영팔과 수길은 매를 멈추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 진작 죄를 실토정할게지.”     “매나 덜 맞지. 흥!”    영팔과 수길은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면서 득호와 은녀를 끌고 집으로 들어왔다.   하늘에서는 아직도 어둠 속으로 눈을 펑펑 내리쏟아부었다. 어둠은 백설같이 흰 대지를 어둡게 감싸 안으려고 억지를 부렸다.
427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6) 눈물 겨운 머슴살이 김장혁 댓글:  조회:612  추천:0  2024-04-05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5장                 4. 눈물겨운 머슴살이           푸실푸실 내리는 눈발 속에 토성 안 집 춤판이 어수선하게 끝났다. 콧수염쟁이도 일본 기생년들이 모두 녹작지근해 춤판에서 비틀거리며 물러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북장고소리가 멎고 대나무피리 소리도 잠을 잤다. 울안에는 광솔불이 활활 타오르며 주정배들의 떠들썩하던 미친 소리 빈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월선은 펑퍼짐한 엉덩이를 비뚤거리며 마루에 나가 앙칼진 목소리로 고래고래 고함쳤다.      “득호! ”     “예꾸마!”    득호가 허리를 구부정하고 마루 앞에 뛰어와 딱 멈춰 섰다.    “넌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니? 마당을 어떻게 쓸었으면 일본 귀빈이 미끄러져 넘어졌겠느냐? 일본 어른이 래일 일어나지 못하는 날엔 네 목이 날아나지 않는가 봐라.”     "아이쿠!"     득호는 뒤덜미를 긁적거리면서 두덜거렸다.     “아니, 술에 취해 자기절로 미끄러졌구만두.  흥, 하나 밖에 없는 목을 치면 어떻게 합둥?”    월선은 빗자루를 들고 버선발 바람으로 마루에서 뛰여내려와 득호를 마구 때렸다.     “이 놈, 네놈 믿다간 한지에 방아를 걸겠다.”     득호는 머리를 싸쥐고 피했다.     “아니, 가마니를 쪽 깐 마당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게 누구 탓입둥? 막걸리를 배때 터지게 처먹고 너덜대다가 넘어갔는데두 내 탓입둥?”     월선은 득호를 따라가면서 조겨댔다.     “이 놈아, 이 놈, 전번엔 마차를 운주하에 처박더니. 흥! 이번엔 일본 어른신님을 넘어지게 하잖았나? 엉? 이 놈아, 일본 어르신님이 상하는 날엔 널 놔둘 것 같니? 엉? 엉? ”     월선은 숨이 차 헐떡거리면서 빗자루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빨리 마당을 말끔히 치워라. 눈 내린다.”     월선은 은녀가 부엌에서 부엌녀와 함께 설거지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불러냈다.     “은녀야, 여기 나오나.”     “얘-”     은녀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달려 나오자 월선은 책망부터 앞섰다.     “‘얘’는 무슨 얘나? 말버릇부터 고치라는데도.”     은녀는 혀를 홀랑 내밀면서 머리를 수깃했다.     “내일 아침 물을 물 독에 꼴딱 길어라. 이 집에 들어온 지 이젠 몇달 되는데 아직도 뭘 시켜야 하겠니? 자기절로 척척 해야지.”     “알았습구마.”    은녀는 두말없이 물동이를 안고 풀풀 흩날리는 눈을 밟으면서 대문 쪽으로 나갔다.    등뒤에서 월선의 귀 째질듯한 고함소리가 이어졌다.    “물독을 깨겠다. 주의해.”     “예.”    (먹을 땐 개 닭 보듯하다가도 저녁도 먹지 못한 은녀를 밤중에 물을 긷게 하다니? 한심한 년이라구야.)   득호는 마당에 깐 멍석을 왈왈 거두면서 속으로 월선을 욕했다. 그는 널린 종이까지 걷어 낸 후 눈을 빠득빠득 밟으면서 마당의 눈을 쓱쓱 쓸었다.    아무리 밤중까지 눈을 쓸고 또 쓸어도 하늘에서 푸실푸실 쏟아져내리는 눈을 어찌는 수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득호는 빗자루를 쥐어뿌리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에 은녀 어떻게 물을 긷겠니?)    득호가 뒤따라 가보니 저쪽 우물가에서 드레박을 잣는 소리가 삐꺼덕 삐꺼덕 들리었다. 뒤이어 드레박의 물을 물동이에 쪽 붓는 소리가 들리고 허연 그림자우에 꺼먼 물동이를 올려놓는 것이 보였다. 득호는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은녀가 비칠거리다가 우물가의 얼음에 미끄러져 넘어갈 번했다.    득호는 바삐 은녀를 부축하면서 물동이를 붙잡았다. 그는 은녀의 머리 우에 놓인 물동이를 내리워 안고 앞에서 씨엉씨엉 집 쪽으로 걸어갔다.    “오빠, 괜히 암펌이 보면 욕 먹겠소.”    은녀는 치마폭을 걷어안고 득호를 뒤따라 부랴부랴 대문 안에 들어섰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몸채에서 나온 월선은 은녀의 물동이를 안고 대문 안에 들어서는 득호와 그 뒤를 따르는 은녀를 보고 앙칼진 목소리로 고함쳤다.    “아니, 득호, 마당을 쓸어라 하였지. 물을 길으라고 하였나? 꼴 보기 좋다. 그래 계집애를 뒤쫓아 다닌다고 바보가 장가갈 것 같냐?”    은녀는 바삐 득호의 손에서 물동이를 빼앗아 이고 부랴부랴 정주간으로 들어갔다.    득호는 뒤따라가면서 월선이쪽에 대고 입을 비쭉거렸다.    “패놓은 장작이 산더미 같은데 또 패라고? 암펌 같은게. 씨, 주둥이만 벌리면 마당을 쓸어라, 장작을 패라, 잔소리 끝이 없네. 이거 못 살겠다.”     월선은 득호의 잔등에 대고 삿대질하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뭣이 어찌구 어째? 꼽싹 꼽싹 들을 거지, 뭣이 어쩌고 어째? 그래 두지 같은 배에 공밥을 채우겠냐?”     그래도 뭐라고 투덜거리는 득호를 보고 월선은 곁방에 대고 소리쳤다.     “영팔아, 영팔씨!”    영팔이 바지멀춤을 쥐고 달려나와 가달두새를 긁적거렸다.    “왜 그랩둥?”   “초저녁부터 벌써 기생 년을 끼고 자겠나? 저 득호를 호되게 족쳐라!”     영팔은 득호를 노려보다가 월선을 보고 헤벌쭉 웃었다.    “숱한 손님들이 왔는데 방망이찜질까지 할 필요 있습둥? 집이 조용할 때 다시 버릇을 가르쳐주면 어떤가요?”    월선은 살기등등해 고함쳤다.    “너를 곱다고 숱한 돈을 먹여 길렀냐? 저런 놈을 매우 치지 못할가?”     영팔은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기를 차는 격으로 사랑방에 달려가 방망이를 들고 씽 달아나왔다. 그는 다짜고짜로 득호를 땅바닥에 개구리 메치듯 메쳐놓고 사정없이 방망이찜질을 해댔다. 투닥 투닥 방망이로 득호를 패는 소리 과부 집 떵메질 소리 같고 빨래터의 방치 질 소리 같기도 하다. 아니, 방망이로 다듬이돌우의 이불등을 다듬는 소리 같았다.     은녀가 물동이를 팔에 끼고 나오다가 그 광경을 차마 볼수 없어 "앗!" 비명소리를 내며 입술 속에 손가락을 넣고 깨물었다.     “요년, 넌 물을 긷지 않고 뭘 해?”    월선은 득호를 자기 손으로 때리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운지 은녀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휘두르면서 살진 손을 날려 귀썀을 챨싹 갈겼다. 머리채를 놓고 또 귀썀을 힘껏 쳤다. 은녀가 주춤하다가 뒤로 살짝 물러섰다. 월선은 지나치게 힘을 쓴 바람에 휘청거리다가 그만 마루에서 반 고패를 돌다가 마루 아래로 뚝 떨어졌다. 언 땅에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신짝마저 저 멀리 뿌리어 나가 상통이 가소롭기를 그지없었다.     떠들썩하는 소리에 구경나왔던 일본과 조선 기생 년들이 코를 싸쥐고 웃어댔다.     “바까 새끼, 다렝아 고찌라데 다까꾸 사껜다까?(누가 여기서 고래고래 고함쳐?)”    끼무라가 취해 뻐드려져 있다가 벌떡 일어나 비틀거리면서 마루에 나왔다. 그는 콧수염을 슬슬 매만지면서 사위를 둘러보더니 이상한 빛이 번쩍이는 눈알을 무섭게 부라리면서 꽥 고함쳤다.    한길수는 깜짝 놀라 아래방에서 마루에 뛰쳐 나왔다. 그는 끼무라의 무서운 눈길과 은녀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행악질하며 물앉아 있는 월선이를 번갈아보다가 월선에게 다가가 타일렀다.    “여보, 숱한 일본 손님들 앞에서 이게 뭐요? 집안 허물내메. 흥!”    월선은 은녀의 머리채를 더 힘껏 내동댕이치더니 어린애처럼 발버둥질 쳤다.    “년놈들, 잘도 놀아댄다. 이젠 숱한 사람들앞에서 요년의 역성까지 들어? 내 섧어서 어떻게 살아? 어, 헝.”    끼무라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추운지 고개를 돌려 들어가면서 대가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길수는 끼무라를 따라 윗방에 들어가 바깥을 가리키면서 막걸리를 마시는 시늉을 하고 손으로 너무 많이 마셨다고 배를 가리키면서 손시늉을 했다.     그런데 눈치 빠른 끼무라는 자기를 많이 마셨다고 말한다고 피씩 웃었다.     한길수는 다시 마루아래 쓰러진 은녀 앞에 다가가 볼품없이 헝클어진 은녀 머리를 쓸어올려주며 나직이 말했다.     “밤도 깊었는데 이젠 물을 그만 길어라. 좀 있다가 끼무라 발이나 씻어드려라.”     그때까지 옆에 물앉아 발버둥질치며 엉엉 울던 월선은 은녀를 쏘아보면서 을러멨다.    “물 길으러 가지 못하겠냐?”    그런데 한길수의 고함소리 하늘땅을 진감했다.     “발을 씻어줘라!”     은녀는 두 손을 모아 쥐고 입에 대고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길수와 월선을 번갈아보았다.    길수는 월선을 쏘아보며 고함쳤다.    “옳다, 은녀는 물 길으러 가구. 당신이나 끼무라 발을 씻어주오.”     월선은 억이 막혀 입을 쫙 벌리었다가 천천히 다물더니 길수의 번대 머리에 대고 삿대질했다.    “옳다, 여편네라두 종처럼 팔아서 일본 졸개나 해 처먹어라. 원, 못난 영감이라구야. 쳇!”    길수는 황급히 웃방과 사랑방을 둘러보다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끼 국장님이 알아듣지 못하는 게 다행이다. 에구, 이년을 어쩌겠냐?”     길수는 어린애 달래듯이 월선의 두 손을 잡아 끌어당기며 일으켰다. 월선은 영감을 못이기는 척하면서 아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월선은 아래방문을 활 열고 머리를 내밀더니 방망이를 쥐고 떡 서있는 영팔에게 고래고래 고함쳤다.     “거기서 뭘해? 득호 그놈을 매우 치지 못하구.”     그제야 영팔은 꿈에서 깨여난듯이 방망이로 득호를 때리는 시늉했다. 월선이가 들어가자 영팔은 방망이를 홱 팽개치고 두덜거렸다.     “밤중까지 이 놈 종노릇을 못해먹겠다.”     영팔이 득호를 놓아주고 기생 뽕녀가 기다리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득호는 눈을 털고 일어나 외딴 사랑채로 들어갔다. 은녀는 득호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물동이를 정주방으로 들여갔다.      그는 사랑채 제일 작은 칸으로 들어가 누더기 이불을 쿡 쓰고 드러누워 흑흑 흐느껴 울었다. 순간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립고 멀리 사라진 성칠 오빠가 그리워났고 남동생 상호가 그리워났다. 그럴수록 더욱 슬프게 흑흑 흐느끼면서 울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입귀에 흘러내렸다가 베개잇을 적셨다. 칠칠야밤에 어두컴컴한 사랑방에서는 은녀의 섧게 우는 소리와 흐느낌소리가 가냘프게 들릴 뿐이었다. 은녀는 울면서 짜개바람이 불어 손가락을 주물렀다.     벙어리 속은 벙어리가 안다고 득호는 은녀 처지에 마음이 미여지는 것 같았다. 그는 은녀를 어떻게 위안하였으면 좋을지 몰라 벽을 하나 사이 두고 서성거리면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했다.     이때 은녀가 우는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문고락지 다치는 소리 떨꺼덩 들렸다.     “누구요?”      은녀는 황급히 어두운 방에 들어선 검은 그림자에게 물었다.     “영팔이다.”     “한밤중에 무슨 일이요? 나가오.”     “먹을 거 가져왔다.”     “필요 없소. 나가오.”    “이건 주인영감이 보낸 거야. 배 든든하게 먹어라.”    영팔은 구들 목에 뭔가 내려놓고 나가면서 두덜거렸다.     “언 감자 같은 년을 첩으로 들여앉힐 예산인가? 한밤중에 자지도 못하게 나까지 심부름시켜? 흥!”     영팔이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였다. 뒤이어 눈을 빠드득빠드득 밟는 소리가 멀어져갔다. 은녀는 한숨을 호 내쉬었다.      이윽고 은녀는 누더기 이불속에서 나와 영팔이 가져온 것이 뭔가 기여가 손 더듬질 해보았다. 구수한 냄새와 함께 맞 덮은 그릇이 몇 개 만지었다.      점심부터 먹지 못한 은녀는 숟가락을 쥐고 몇숟가락 퍼먹다가 속으로 먹어서는 빚을 진 것 같아 안 되겠다 싶어서 숟가락을 내리어놓았다.     “은녀야, 여기 나오너라.”     월선이 부르는 소리.     월선은 하루 종일 눈을 감기 전에는 함지 같은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 심부름을 시키는 앙칼진 소리 온 울안에 우박 치듯 쏟아졌다.       은녀는 간신히 일어나다가 눈앞이 아찔해나면서 불티가 반짝였다. 하긴 수십명의 음식을 마련하느라고 쓴 물을 혼자 추운 겨울에 한 동이 한 동이 길었으니 소 힘이라도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은녀는 안간힘을 다해 방바닥 쪽으로 벌벌 기여가 짚신을 찾아 신고 문설주를 잡고 간신히 일어나 비실비실 문 밖으로 나섰다.      밤송이 같은 눈송이가 성미도 급하게 펑펑 쏟아져 내렸다. 울 안에 쓸쓸하게 한 많은 세상을 뒤덮어버릴듯 하얀 눈이 한겹한겹 하얀 이불을 깔리고 있었다.      은녀가 정주간에 들어서니 등불 아래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인 월선이가 옆구리에 두손을 지른 월선이 콤파스처럼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서 있었다.     “부른지 언젠데 왜 이제야 나와? 얼른 윗방에 들어가 끼무라 국장님의 발을 씻어드려라.”     “예?”     “얼른, 왜 그리 꾸물거려?”     은녀는 설거지를 하는 부엌여를 힐끔 곁눈질해보았다. 부엌여는 별수 없으니 어서 가라고 머리를 끄덕여보이며 눈짓했다. 은녀는 할 수 없이 풍로에 끓여두었던 물을 함지에 퍼들고 윗방으로 올라갔다.    은녀가 미닫이문을 사르르 열고 윗방 안에 들어서니 끼무라와 월향이 껴안고 코를 드렁드렁 구르고 있었다. 치마 바람에 드러누운 월향의 새하얀 허벅다리가 흘러내린 치마 밑으로 드러났다.     은녀가 물함지를 끼무라의 발치에 내려놓고 조심스레 각반을 풀기 시작했다.      “바까(바보)!”      갑자기 끼무라가 고함치면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벽에 기대여 세워놓았던 군도를 쥐였다. 그는 은녀를 가슴츠레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은녀는 화뜰 놀라 뒤로 물앉으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끼무라는 세수 대야와 은녀의 수척한 얼굴을 번갈아보더니 군도를 스르르 놓았다.      흉악한 눈길이 차츰 음충스런 눈길로 변하면서 은녀의 탄탄한 몸을 노려보았다. 청춘의 싱싱한 매력을 풍기는  봉긋한 점 가슴, 누더기 치마에 가려진 허벅다리...      "오, 우쯔꾸씨이 무스메(예쁜 처녀구나.)"    끼무라는 싹아 떨어진 이발 새로 금 이발을 드러내며 은녀의 손을 잡으면서 색마의 본성을 드러냈다.    “놓읍소. 발을 씻어 드리겠습구마.”     은녀는 움추린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손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     “뭘 놓으라?”     이때 길수가 윗방 문을 쭉 열고 들어왔다.     끼무라는 이젠 제법 조선말도 섞어 지껄였다.     “헤헤헤, 발을 씻으라고, 시켰소까.”     끼무라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코 수염 밑에 웃음을 지었으나 눈에는 아직도 아쉬움이 미친 듯이 스치고 있었다.    “난 또, 이년이 혹시 국장님을 해치려나 해서. 에헴, 헴.”    끼무라는 뭐라는지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요로씨이, 요로씨이.” 하고 연신 헛 대답을 했다.     길수는 은녀에게 머리를 돌리더니 당부했다.    “끼국장님이 곤할 텐데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발을 씻어주고 나가라.”     “얘.”     은녀는 길수 영감이 요때 방에 들어온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바삐 끼무라의 각반을 풀고 양말을 벗긴 후 살진 발을 대야에 넣고 씻어주었다.    끼무라는 눈을 지그시 감고 연신 “요로씨이, 요로씨이.” 하고 감탄했다.    은녀는 발을 다 씻은 후 물 함지를 들고 부엌간으로 나갔다.     그때까지 은녀의 봉긋한 젖가슴이며 펑퍼짐한 엉덩이에 눈 뿌리를 박고 있던 끼무라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입을 헤벌리더니 닭알 침을 꿀꺽 삼키면서 입마저 다시였다.    끼무라는 그때까지 옆에 우두커니 서있던 길수를 쳐다보면서 “저건 웬 새애기냐?” 하고 넌지시 물었다.    “예, 우리 집 부엌데기 은녀라는 계집앱죠.”    “오.”    끼무라는 색마의 눈알을 희번뜩거리더니 길수를 게슴츠레 바라보며 헤벌쭉 웃었다.    "내, 당신 사위하면 어떻소?“     "네?"    끼무라의 정신나간 소리에 한길수는 우멍눈이 다 튀여나올 지경이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때 월향이 깨여나면서 도도도 거리었다.     “밤중에 무슨 뉘네 사위한다고 이래요? 호호호. 촌수 개판이구먼. ㅎㅎㅎ. 소 웃다가 꾸러미 터질 일인데요. 국장이란 녀석이 우리 집 머슴여를 욕심내 사위 하겠다잖아? 호호호.”     길수도 월향의 말에 코를 싸쥐고 우멍 눈에 간교한 웃음을 지었다.     길수와 월향을 힐끔힐끔 번갈아보던 끼무라 국장은 취김에 그런 실수를 하고 너무나 창피해 비단요우에 스르르 너부러지더니 자는척했다.     집 안에는 살진 돼지 콧수염쟁이 코고는 소리 드렁드렁 구들 고래를 다 훑어가며 요란했다.     드르릉, 드르릉…
426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5) 큰 잔치 김장혁 댓글:  조회:766  추천:0  2024-03-27
         김장혁 작 울고 웃는 고향         3. 토성안집의 큰 잔치             갓 서른을 넘은 떠꺼머리 노총각 득호는 새끼로 질끈 동여맨 허리를 구부정하고 일만 수걱수걱 해 그런지 쉰 고개도 훨씬 넘어보였다.      길수네 집에서 머슴살이를 허리 부러지게 하였건만 오막살이집 한 채도 생기지 않았고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들지 못했다.      “득호야, 거 당나귀차를 헛간에 끌어다 넣어라. 당나귀 차 눈을 폭 맞아서야 쓰겠냐?”      “알았습구마.”    요염하게 화장한 월선은 버들잎눈섭꼬리 휘도록 표독스런 암펌의 눈길을 내쏘면서 끝임 없이 독사처럼 혀를 날름거렸다.    “얼른 말과 당나귀도 먹여. 일본 손님들이 술을 마시고 마당에서 춤마당을 펼친단다. 마당에 거적을 펴라.”     “예꾸마-”    득호는 월선의 끝없는 잔소리에 신물났다.    “은녀야!”     “얘—”    은녀는 절구를 꽝꽝 찧다가 부랴부랴 몸채 마루 아래로 달려 나왔다.     “‘얘’가 뭐냐? 에이, 계집애가 뭐야? 전라도 깍쟁이말도 아니고 함경도 도적놈의 사투리도 아니고.”     은녀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몸둘바를 모르며 머리마저 숙였다.     “얼른 풍로를 피워라. 일본 손님들이 발 씻을 물 끓여놓아라.”    “알았습구마.”    “아, 깜빡 잊었구나. 설거지 할 물도 미리 길어오라.”    그런데 부엌으로 들어가는 은녀의 등 뒤를 보다가 무슨 생각이 또 났던지 곁채를 향해 소리쳤다.     “춘실아,  얼른 몸채로 들어와! 응삼 마름도 오라고 해라. 얼른!”     “예, 갑네다. 에이 취!”     월선은 마루에서 정주간으로 들어가려다가 되돌아서 곁채를 내다보면서 소리쳤다.     “아니, 주인이 말하는데 ‘에이 취’가 뭐냐?”     춘실이 황급히 조끼를 껴입으면서 곁방에서 달려 나왔다.     “재채기를 했어요. 감기에 걸린 거 같어요.”     춘실은 암범 같은 월선을 뒤따라 몸채로 들어가면서 또 연신 재채기를 했다.      득호가 당나귀차를 끌어 헛간에 넣고 마당을 쓸고 나서 손의 먼지를 툭툭 터는데 은녀가 풍로를 들고 나온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뭉게뭉게 풍겨 오르는 연기에 은녀는 눈도 바로 뜨지 못하면서 상을 찡그리었다.      “은녀, 좀 빨랑빨랑 불 피워라!”      “알았습구마.”     은녀는 월선의 눈치를 흘끔흘끔 곁눈질하며 조심스레 풍로를 바람맞이에 내려놓았다.     마루 우에서 월선의 목소리가 우레 소리처럼 지동쳤다.     “은녀, 게서 뭘 해?! 얼른 물도 길어오라!”     “얘-”     은녀는 속으로 두덜거렸다.     (어느 일부터 먼저 하라오? 풍로를 피워라. 물을 길어라. 물을 끓여놔라. 원, 참. 손이 열개라도 다 못하겠다. 흥!)    “득호, 좀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나무를 패! 시키길 기다리지 말고 좀 제절로 척척 찾아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월선은 득호와 은녀를 하루 종일 오금에 불이 일도록 부려먹고서도 모자라는지 질책소리 끝없었다.     “땔나무가 산더미 같구먼. 씨! ”     득호는 낮은 소리로 투덜거리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월선은 유들유들하게 기름이 번지르르하고 살진 낯살에 표독스런 표정을 드러내면서 득호의 코가 맞힐 정도로 삿대질했다.     “뭐라구 투덜거려? 엉? 패라면 얼른 팰 거지. 언제 셈이 들겠냐? 저러니깐 서른 고개 넘어도 장가도 못가지. 그 주제에 계집애 궁둥이를 쫓아다녀?”      그 말이 어찌나 구역질나게 들렸던지 은녀는 마땅찮은 눈길로 쳐다보다가 월선의 표독스러운 눈길과 마주치자 머리를 숙였다.      은녀는 풍로 불을 피워놓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풍로에 올려놓은 후 정주간에 들어가 물동이를 오른 팔에 껴안고 나왔다.     득호는 은녀를 보고 마른기침을 했다. 그러자 은녀는 동이를 안고 다가갔다.     득호는 몸채의 동정을 두루 살피더니 은녀를 보고 나직이 귀띔해 주었다.     "오늘 저녁에 특별히 조심해라. 일본사람들은 몽땅 색마들이여서 계집애들을 보기만 하면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은녀는 몸을 옹송그리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은녀가 떠나가자 득호는 사랑채 앞에서 도끼를 휘둘러 땔나무를 힘겹게 팡팡 팼다.     하늘에서는 거위 털 같은 흰 눈이 풀풀 흩날려 내리였다. 영월동은 하얀 소복단장을 해갔다.    겨울 해는 코끼 꼬리처럼 어찌나 짧은지 어느새 서산으로 꼴깍 넘어가고 허연 눈이 덮인 대지에는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내리 드리워 어스름한 황혼을 수림 속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사면을 높다란 토성으로 두른 길수네 토성안집 울안은 오늘 따라 경사가 난 듯이 광솔 불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놓았다.     병풍을 두른 몸채 위방에서는 끼무라 국장과 상우남면 면장이 상좌에 앉아 기생 둘씩이나 끼고  술을 마시였다. 큰상에는 다리 부러지게 진수성찬을 차려 놓았다.  한길수와 월선이가 그들을  접대하느라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옆 상에 앉은 통역 류강철과 영팔 그리고 호위병은 끼무라 국장 덕분에 입귀에 개기름이 번지르르하게 게걸스레 먹어주고 있었다.     영팔은 닭다리를 쥐고 질근질근 씹으며 막걸리 잔을 기울이다가 위상을 힐끔 건너다보았다. 그는 끼무라 국장의 숟가락과 저가 어디로 많이 가나 살피다가 정지로 내려갔다.     영팔은 부엌에서 채를 볶아내느라고 땀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는 부엌 여를 보고 재촉했다.     “빨리 모두부를 더 올려라. 일본 손님들은 조선의 모두부를 특별히 맛나게 잡숫는다.”      은녀는 부엌여가 사발에 떠주는 야들야들한 우유 빛 두부를 들고 위방 미닫이를 사르르 열고 들어갔다.      끼무라 국장은 두부모를 들고 들어와 큰상에 놓는 은녀를 힐끔 쳐다보더니 눈길을 떼지 못했다.     은녀가 나가자 끼무라 국장은 지껄였다.      “스빠라씨이데스네(이쁘구나). 사꾸라만 보다가 여기 조선의 무궁화를 보니 별나게 예뻐 보이는구먼. 사람이 어찌 모두부나 돼지고기만 먹겠는가? 조선의 고사리 채도 먹어봐야지. 고사리 채 참 맛이 좋지.”     강철의 통역을 듣고 길수는 인차 말귀를 알아들었다.     "예, 예, 밤에 먹는게, 아니, 잡숫는게 더 맛있죠."     호색한이 호색한의 속궁리를 젤 잘 알아주었다.     (쳇, 벌써 그게 근질근질해나니? 개놈새끼, 조선 계집들 그게 뭐 별나다고. 흥! 내 계집들을 다치려구? 양심없는 놈. 계집을 놀아두 친구 계집은 다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두 몰라?"    그러나 그런 별스런 기분을 억지로 눅잦히였다. 그러나 어쩐지 속이 볶이우면서 알알해났다.       (쳇, 나도 맛보지 못한 꽃을? 내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성칠에게서 빼앗아온 계집애이라고. 은녀만은 안 돼.)     한길수는 짐짓 화제를 바꿔 아래 정주간을 돌아보면서 소리쳤다.      “은녀야, 거 고사리 채를 볶아오라.”     “한군, 우리 대일본제국은 목재, 석탄이 많이, 많이 필요하네. 우시장으로부터 회령까지 통하는 철길과 큰길을 빼야겠네. 우시장으로부터 여기 영월동과 저 앞의 운주동이나 어느 마을이나 쭉쭉 사통팔달한 길을 닦아야 되겠어.”     길수는 류강철이 통역하자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아직 경찰국 사무 청사도 채 짓지 못했는데 길을 닦을 사람이 어데 있다구 그럽니까?”     그러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 강철은 그대로 통역하지 않았다. 그대로 통역했다가 한길수가 혼쌀날게 아닌가.     “한군은 경찰국 사무 청사도 잘 짓고 길도 잘 닦겠다고 합니다.”     “그래? 허허허. 한도감이야 말로 우리 대일본제국의 충실한 개, 아니, 충신이야. 흐흐흐.”    끼무라는 길수를 가슴츠레 건너다보면서 금이발을 번쩍이며 계속 지껄여댔다.     “한군의 표정은 이상한데. 경찰국 사무 청사를 잘 짓고 길만 잘 닦으면 한자리 주겠네.”     길수는 그 말에는 귀가 솔깃해졌다.      “예. 알았습니다. 그런데 철길이나 큰길을 불시에 빼서 뭘 합니까?”      끼무라는 기생의 손에서 닭다리를 받아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입에 넣고 질근질근 씹으면서 거만하게 말했다.     “한군, 길을 잘 빼야 다니기도 좋고 돈도 벌기 쉽소. 우리 대일본제국은 철길을 잘 빼서 영월동의 목재하구 개마고원의 석탄이랑 황금이랑 몽땅 실어가야겠네. 그러자면 큰길과 철도를 잘 빼야 되지. 알만하오?”     길수는 그제야 끼무라 뒤에 숨은 탐욕스러운 날강도들의 그림자들이 얼른거리고 있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보는 상 싶었다.     “그런데 두만강변의 회령은 조선의 끝간 시골인데 거기까지 철길을 뺄 필요야 있습니까?”     끼무라는 막걸리를 한잔 쭉 내고 닭고기를 게걸스레 뜯어먹더니 허리를 쭉 펴면서 말했다.      “우리 대일본제국은 조선을 잘 건설하고 나아가서 만주국에 있는 천황의 황민들을 보호하러 들어갈 거요. 아, 그 넓은 만주벌이 그저 황무지로 되는 것이 얼마나 아깝소? 우리 조선의 황민들이 그 넓은 옥토 벌에 밭을 일구고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치면서 산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요. 안 그렇소? 한 군.”     한길수는 우멍눈이 환해지면서  시야가 확 트이는 것만 같았다.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희 번뜩 번졌다가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는 연신 번들번들한 대머리를 조아리면서 끄덕였다.     “이제야 좀 알겠습니다.”     “그때면 한 군은 지금의 총 도감이겠소? 아마 무슨 대장 자리쯤은 차려질 거요. 허허허.”     한길수는 짧은 가랭이를 춰주는 줄도 모르고 기뻐 입귀가 귀밑에까지 찢어질 지경으로 입이 함박만 해졌다.      “고맙습니다. 끼 국장님.”      “에, 또 끼 국장인가? 끼무라 국장이지.”      한길수는 황급히 아픈 허리를 굽히면서 대머리를 조아렸다.     “시골의 제가 너무 모르는 게 많아서 죄송합니다. 꼭 사무 청사와 길닦기 공지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흡족한 듯이 번들 이마를 건너다보면서 씨불였다.      “자넨 우시장으부터터 회령까지 통하는 철길을 닦으라는 말이 아니네. 이 뒤 마을 부근 길닦이와 경찰국 청사만 맡으면 되네.”      “예, 알았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한길수에게 끝없이 불어넣었다.     “이번에 경찰국 사무 청사 공지에 인부를 데려온 일로, 오늘 우릴 접대한 걸로 두루 보니 한 군은 정말 이 산골에 파묻혀있기는 아까운 인재네. 잘 하게나. 우리 일본제국은 잊지 않을 거야.”    “예, 고맙습니다.”    한길수는 숱한 사람들 앞에서 보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일본 경찰국장에게 머리를 조아려댔다.    월선은 일본 사람에게 너무 굽석거리는 영감을 보고 속으로 치미는    불길을 참느라고 속이 부글부글 괴여 번졌다. 그러나 겉으로는 기쁜 듯이 끼무라 국장에게 나오지 않는 웃음을 팔았다.      술이 거나하게 되자 끼무라는 색정광의 본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젠 일본 기생 년들을 물리고 우시장 조선기생 옥설을 데려오게나. 오늘을 다른 맛을 봐야겠네.”     “알았습니다.”     영팔이 나가서 이윽고 간드러진 웃음소리를 앞세우고 연지 꼰지 찍고 발끝에까지 분가루가 흩날리게 바른 옥설과 만금, 뽕녀가 들어왔다.     끼무라는 실눈이 대뜸 화등잔이 되여 옥설을 껴안았다.     옥설은 끼무라 국장의 무릎 우에 올라앉아 실버들 같은 허리를 이리 곰실 저리 곰실 배배 탈면서 갖은 애교를 다 부리였다.      한길수는 옥설을 뚫어지게 건너다보면서도 옆에 앉은 월선의 눈치가 보여 어찌 하는 수가 없었다.      한길수가 불편해 하는 것을 눈치 채고 끼무라는 월선을 보고 꼬부랑소리를 했다.     “여보세요. 곤하겠는데요. 나가 쉬세요. 나와 한 군 은밀히 할 말이 많이 있소이다.”     류강철이 통역하자 월선은 일어나 펑퍼짐한 엉덩이를 삐뚤거리며 나가면서 입귀를 비쭉거렸다.     뒤늦게 들어온 월향은 아저씨 한길수를 보고 머리를 까딱 하면서 살짝 웃음을 흘리었다.      끼무라는 월향을 보고 자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탕탕 치면서 와서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순간 한길수는 속에서 질투의 불길이 훅 치밀었다. 그러건 말건 끼무라는 옆에 앉은 월향의 볼을 살살 만지면서 놀아댔다.      만금과 뽕녀도 끼무라 국장 옆에 붙어 앉았으면 큰 떡이 생길 것 같았지만 별수 없이 한길수의 옆에 와 물앉았다.     월향은 평소에 길수가가 우시장에 오기만 하면 자기 몰래 옥설을 찾아 술잔을 기울이던 일이 괘씸해 보복하려고 들었다. 일부러 한길수의 애가 마르게 모두부랑 숟가락에 떠서 끼무라의 입에 넣어주고 아양을 떨어댔다.     끼무라는 막걸리 잔을 들어 옆에서 희희닥거리는 옥설을 끌어안고 빨간 앵두 입에 억지로 부어넣었다. 옥설은 얼굴을 돌리면서 도리머리 질 하다가 별수 없이 막걸리를 삼키였다.     그녀는 섬섬옥수로 막걸리단지를 들어 끼무라와 한길수의 잔에 쪼르륵 쪼르륵 부어 올렸다.     기생들의 애교를 부리는 간드러진 웃음소리를 안주로 위방에서는 술을 한잔 또 한잔 기울였다.      주흥이 도도해지자 끼무라는 일어나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인차 눈치를 챈 한길수는 손벽을 짝짝 치더니 기생들에게 당부했다.     “끼 국장이 즐겁게 어서 춤판을 벌려라.”     월향은 “추워서 바깥에서 어떻게 춤을 춰요?” 하고 몸을 옹송그렸다.     그러나 한길수가 눈을 굴리자 마지못해 일어나 나갔다.      드디어 마당에서는 북장단이 둥당 둥당 울리고 기생 년들이 비단치마자락을 날리며 학이 나래를 파닥이듯이 팔을 하느작거리면서 춤판을 벌렸다. 대낮 같은 대뜰아래 춤판이 한창인데 거위 털 같은 눈송이가 하늘하늘 쏟아져 기생들 춤사위 두새에 내려 앉았다.      끼무라는 마루 위에서 월향과 옥설의 가는 목에 팔을 얹고 몸을 기댄 채 춤판을 구경하다가 비칠거리면서 팔자걸음으로 땅바닥에 내려갔다.      “조선 춤이 멋이 없다. 우리 대일본제국의 사꾸라 춤을 췄쏘까?”     끼무라는 “사꾸라, 사꾸라.”하면서 일본 기생들과 함께 왼발 내딛고 손 벽을 짝 치고 오른손 쳐들고 왼손 펴고 오른발 내딛고 손 벽을 짝 치며 사꾸라 춤을 췄다. 기생들은 제법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췄다. 그들은 조선기생들과 한데 어울려 일본에 둔 고향과 부모들의 생각에 눈물까지 흘리면서도 잘들 돌아갔다.       “아이쿠!”      한창 흥이 나서 모두들 춤을 추다가 복판에 쓰러진 끼무라에게 놀란 눈길을 모았다.      끼무라가 엉덩방아를 찧고 오만상을 찡그렸다.     “빨리, 부축해라.”     한길수가 황급히 고함쳤다.     그는 영팔과 함께 달려가 양쪽에서 부축하였다. 끼무라가 그들의 귀 쌈을 찰싹 찰싹 갈겼다.     “바까(바보)! 콘칙쑈(관둬)!”    기생 년들은 발바리 상을 하던 길수가가 맞는 것을 보고 너무 우스워 입을 싸쥐고 돌아서서 키드득 키드득 했다.     기생 년들은 뺨을 감싸쥔 한길수의 독살스런 우멍 눈을 훔쳐보고 곁방으로 몸을 숨기였다.     춤판은 깨지고 월향과 옥설이 끼무라를 부축해 윗방으로 들어갔다.     끼무라는 방 문턱을 넘어서면서 마른 날에 우박이 쏟아지듯이 울컥울컥 토했다. 막걸리며 닭고기며 버섯이며 고사리며 쏟아져 구들에 떨어졌다.     개들이 이게 웬 떡이냐며 끼무라의 가다리 두 새로, 엉덩이 밑으로 대가리를 들이밀고 쩝쩝 먹어댄다.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지경. ㅋㅋㅋ     한길수와 영팔, 순사들이 짖어대며 먹어대는 개들을 쫓아내느라고 위방이 떠들썩했다.
425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4) 불운한 아이들 댓글:  조회:600  추천:0  2024-03-27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2. 불운한 애들        기운봉은 은세계를 방불케 온통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늙은이의 은발을 날리듯이 하얀 눈가루를 바람에 흩날리면서 하늘을 찌르며 서 있었다.      운주동은 하얀 이불을 들써 은빛세계를  방불케 했다. 초가집마다 하얀 꽃노을을 지붕 위에 쓰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딱 뭔가 살기 힘든 하소연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병완과 기준이 운주동에 돌아와보니 뜻밖에도 고방에서 사련이가 해산 앓음을 하고 있었다. 하옥이 고방에서 나오면서 반겨 맞았다.      “돌아왔어요?”      “오, 그래. 작은 며느리는 어찌된 일인가?"      병완은 물으면서 위방에 들어가 앉았다.      "아직 해산날이 멀잖소?”       하옥은 아랫방에서 걀쭉한 얼굴을 다소곳이 숙이고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나직이 대답했다.     “좀 앞당긴 거 같아요. 가을에 감자를 팔 때 삐치지 말렸지요. 그런데도 감자를 눈 밑에 파묻으면 어쩌겠는가면서 저 몸으로 삐치더니.”      “쯧쯧쯧. 조산 모는 왔느냐?”      “예, 진작 고방에 와 있어요.”     병완은 어두커니 서 있는 기준을 올려다보았다.     “너무 근심말아라. 네번째 애니까. 순산하겠지.”     뒤이어 그는 아랫방의 하옥한테 머리를 돌렸다.     “그래, 거 성칠은 어디로 갔느냐?”      “꿩 사냥하러 산으로 들어갔어요. 제수한테 꿩탕을 대접해야겠다더군요.”     하옥은  대야에 물을 떠가지고 고방에 들어갔다.     병완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에이구, 막내동생은 이젠 맏사위를 삼고 오래지 않으면 손자를 보겠는데 저 큰놈은 아직도 자식 하나 보지 못하였으니 어쩌는가?”     하옥은 고방에서 그 말을 듣고 칼로 에이는 듯이 가슴이 아팠다.     병완은 윗방에서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하는 기준을 보고 물었다.     “올해 1919년도지?”     “예.”      “그래. 올해는 특별한 해지. 서울에서 부른 ‘독립 만세!’소리가 우리 여기 이 산골에까지 다 울려 퍼졌지.”     병완은 바깥을 내다보면서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머리를 이쪽으로 돌리면서 물었다.     “오늘 몇 월 며칠이냐?”     기준은 머리를 들고 조금 생각하더니 “음력 10월 18일입구마.” 하고 대답했다.    “응, 참 좋은 날이구나.”    그때 고방에서 갓난 애기의 울음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렸다.     “응아, 응아, 응아.”     병완은 기준을 마주보면서 반가워 희죽이 웃었다.     "허, 그 놈이 울음소리 센걸 보니 혹시 사내애가 아닌지 모르겠군. 어서 알아봐라.”     기준은 황급히 정주간으로 내려갔다.      “조산모, 무슨 애요?”      “고추 달린 놈입구마."     "아들이란 말이오?”     "예. 아들입구마."    조산모의 말에 기준은 뒤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에이구, 아침을 먹으면 저녁쌀이 걱정되는 세월에 아들이면 뭘 하겠습둥? 입이 하나 불었으니 근심이 태산같구먼.”     조산모가 고방에 들어가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갓난애를 누더기에 싸서 안고나와 기준에게 안겨주었다.      기준은 갓난애를 안고 들여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에이고, 길쭉하게 생긴 놈이 딱 할아버지를 닮았구나. 쯧쯧.”      기준은 먼저 고방으로 들어가 사련을 보고 인사말을 아끼지 않았다.     “여보, 둘째아들을 낳느라고 수고했소.”     사련은 자애로운 얼굴표정으로 갓난애를 올려다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제야 기준은 애를 안고 고방에서 나와 윗방으로 올라갔다.    병완은 기준의 손에서 갓난애를 받아 안고 들여다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에이, 그 놈, 뭐나 길쭉한 게 시원하게 생겼구나. 애비를 닮아서 밸 때기 사나우면 어쩌지?”    기준은 뒷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아버님두, 조손 삼대 다 성격이 강하잖습둥? 이 애만은 어진 애여야겠는데.”     병완은 넷째손자를 안고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멀어서 닮지 않겠느냐? 아버지 대는 종 자 돌림이구. 내 대는 병 자 돌림이지. 너희들은 준 자 돌림이구 .얘들 대는 상 자 돌림이라. 상자에 무슨 글자를 달아준다?”     기준은 갓난애를 보면서 아버지한테 물었다.     “큰집 병권 큰아버님이나 관준 형님께 물어보고 이름을 지으면 어떻습둥?"    병완은 뜻밖에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아니야, 우리 부자간이 먼저 이름을 지어 놓고 물어보자.”    집 안에 한참 납덩이 같은 침묵이 흘렀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다 들릴 지경이었다.     한참 후 병완이 빙긋이 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요 놈을 숭상할 ‘상’ 자에 순임금이란 ‘순’ 자를 달아서 상순이라고 지으면 어떠냐? 뜻인 즉 ‘순임금을 숭상한다는 말’이다.”    기준은 아버지와 애를 번갈아 보더니 무릎을 탁 쳤다.    “예, 그 이름이 좋습구마.”    기준은 병완의 손에서 갓난애를 받아 안으면서 중얼거렸다.     "우리 상순아, 할아버진 널 상순이란 좋은 이름 지어주었다. 어디 보자. 에구, 이 봉이 눈을 봐라. 세 귀 눈인 게 사납게 생겼구나. 넌 커서 장차 순임금처럼 나라의 백성들을, 응, 우리 고향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알았지? 응?”       병완은 기준을 보고 일렀다.    "상순을 애 에미에게 가져다 젖이나 먹여라. 너무 차게 굴면 못쓴다.”    “예꾸마, 상순아, 엄마한테 가자.”      뒤이어 고방에서 기준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리었다.      “여보, 아버님께서 우리 둘째를 상순이라고 이름을 졌소. 상순아, 엄마한테 가자, 응.”     “오, 상순이, 이름이 참 좋소. 상순아, 젖을 먹어라.”     병완은 기준이 부부가 고방에서 주고받는 말을 윗방에서 듣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담배물주리에 담배를 꿍꿍 쑤셔 넣었다.     하옥이 따뜻한 미역국을 사발에 떠들고 고방에 들어갔다.     기준이네가 둘째아들을 보았다는 소문이 온 운주동 마을에 퍼지자 이 집 갓난애를 보러 오는 사람들로 문턱이 다슬 지경이었다.     어금은 혹시 어머니와 막내동생이 찬바람이라도 맞을까봐 바람간호를 하느라고 무척 왼 심을 썼다.     한 마을에 있는 최구장 내외간도 사돈집에 인사하러 왔다.     인사수작이 끝나자 모두들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병완은 담배물주리를 뻑뻑 빨면서 답답한 소리부터 했다.     “이제 이틀만 있으면 잔치를 해야겠는데 우린 아무 준비도 없습구마. 삯전을 주지 않아서 통말이 아닙구마.”     최구장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나도 경인에게서 들었습구마. 한달 동안 일해도 삯전을 주지 않으니 어쩌는가요? 저 경인은 삯전도 주잖는다고 슬그머니 빠져 집으로 돌아왔습디다.”     병완은 머리를 끄덕였다.     “ 내 숱한 사람들을 겨울나이 쌀이나 벌겠나 해서 공지로 가자고 동원했는데. 삯전을 주지 않아서 큰 일 났습구마.”     최구장은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우리 부자간은 마가을에 버들로 버치를 결어 팔아 잔치준비를 대충 했습니다. 우리도 준비한 게 없습니다. 산나물에 감자 떡이나 갖춰 놓고 결혼식이라고 올리면 됩지. 없는 살림살이에 별게 있습니까?”     “예, 구차한 세월에 간단히 대사를 치르깁소.”     병완과 기준도 한시름을 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의 흐름은 청산유수라 또 이틀이 흘러지나갔다.       운주동의 최구장의 둘째아들 경인과 기준의 맏딸 어금의 결혼잔치는 간소하게 치렀다.      병완은 잔치에 온 창렬과 덕성, 동욱 등 마을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괜히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공지에 가게 했구나. 삯전을 주지 않는 날엔 한길수를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다.)      병완은 잔치 날에도 속으로 윽별렀다. 그런데 한길수는 잔치 날에 낯짝도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오지 않길 잘했다. 괜히 잔치 날에 주먹이 날아나가면 어쩌니?)      백두산에 숨어 사는 최구철과 진달래가 위험을 무릅쓰고 잔치를 보러 왔다. 최구철이 백두산에서 사냥한 사슴고기를 가지고와서 모두들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잔치날에 최구장은 동생을 집아래목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일렀다.     “너네두 백두산에서 외롭게 살지 말고 여기 운주동에 내려와 살렴.”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최구철은 가죽장화로 하얀 눈을 밟아 문지르면서 도리머리질을 했다.      “서울에서 독립만세를 부른 후 보오. 일본 놈들이 우리를 어디 살게 하겠어요? 게다가 나는 고향에서 일본 놈들을 몇을 죽였으니까. 여기 와서 편안히 살 수 있겠어요? 괜히 붙잡히자고.”     최구장은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글쎄 말이야. 형제간에 한마을에서 살면 얼마나 좋겠냐? 그런데 일본 놈들 때문에 형제간에 이렇게 천리를 떨어져서 살아야 되니 얼마나 가슴이 아픈 일이냐?”     최구철의 코와 입에서 하얀 김이 거세게 뿜겨 나왔다. 마치 성난 사자가 노기를 토하는 듯 했다.     이때 경인의 막내 동생 경석이가 심부름을 하다가 약담배인이 올라 생야단이 일어났다.      최구장은 최구철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맏이 경숙을 시켜 막내 경석을 남들이 보지 않는 집 뒤에 끌어다가 붙잡아두게 했다.     “에이유, 저 꼬락서니를 어쩌니? 동네 창피해 어디 살겠느냐?”     최구장은 답답하여 가슴을 탕탕 쳤다.     최구장은 윗방에서 곰방대를 뻑뻑 빨다가 머리를 수깃하고 무슨 궁리를 하는 경숙에게 물었다.     “경숙아, 그래 공지에 또 갈 예산이냐? ”     “예? 품삯도 안 주는데 또 가겠습둥?”      “맞아, 갈 필요 없어.”      최구장은 곰방대의 재를 재떨이에 툭툭 털었다.     경숙은 허리를 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가지 말았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하더니 나지막이 근심을 털어놓았다.     “저 응삼이란 자식이 일본 헌병들을 데리고 가마골로 가서 사람들을 공지로 강제로 끌어갔답니다.”      최구장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응삼이 고놈새끼, 아이 때부터 교활하게 놀더니 일본 사람들한테 찰싹 들어붙어서 이젠 앞잡이질 하는구나.”      경숙은 볼 부은 소리를 했다.     “고놈새끼 말에 홀딱 넘어가서 공지로 가지 않았고 뭡니까?”    부자간은 윗방에 앉아서 한숨만 푸푸 내쉬었다.       기준이 둘째아들 상순을 본 해도 막가는 음력 동지섣달에 소대가리도 얼어 터질 듯 한 엄동설한이 들이닥쳐 살을 어이는 북풍이 윙- 윙- 불어쳤다. 모래알 같은 눈 쌀들이 날아와 창호지를 무섭게 두드렸다.      최구장네 집에는 언 감자도 이젠 거의 거덜이 날 지경이었다. 일본 놈들이 우시장에 경찰서를 짓고 우시장으로부터 두만강변의 회룡까지 철길과 큰길을 닦으면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김치움에 파묻어둔 감자, 생명줄 같은 얼마 안되는 감자마저 들춰내 다 빼앗아갔다.      엉망진창이 된 살벌한 세월에 최구장의 맏며느리 허옥실은 해산하려고 고방에서 해산앓음을 했다.      “에구, 이 야박한 세상에 나와서 어떻게 살려고 꿈틀거려?”     옥실은 배속에서 꿈틀거리는 아가를 만지면서 중얼거렸다.     이때 최구장의 로친 성단이 고방에 들어와 앉아 며느리 손을 잡고 위안했다.     “아가야, 하늘이 무너져두 솟아날 구멍이 있다구 근심말게나.”     세파에 부대끼여 성단은 쉰고개를 갓 넘어선 나이에 비해 얼굴에 잔주름이 죽죽 건너갔다.     “내 경숙이랑 산에 가서 버섯을 캐오라구 했는데 오는가 마중나가보겠소. 조산모가 옆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구 몸조심하게나.”      시어머니가 나가자 옥실은 수척한 얼굴에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정기없는 두눈은 섦음에 찬 샘구멍인가. 눈물이 하염없이 줄줄 흘러내려 입귀로 흘러들다가는 턱을 타고 어린 근형의 복숭아얼굴에 똑똑 방울져 떨어졌다.     옥실은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옥물고 해산진통을 참느라고 모진 애를 썼다.     성단이 아들마중을 갔다가 돌아왔을 때였다.    고방에서 갓난애의 울음소리가 “응아, 응아.” 하고 자지러지게 들렸다.    최구장은 웃방에서 곰방대를 들어 재떨이에 툭툭 털면서 로친을 나무랐다.    “에참, 주책없는 노친도. 맏며느리 애를 낳는데 아들마중을 가다니? 쯧쯧쯧.”    성단이 고방에 달아 들어 가더니 환성을 올렸다.     “며느리, 용하구나. 계집애를 낳았구만.”    초신감발을 하고 흰옷을 입은 경숙은 돌 버섯을 캔 바구니를 정주간 바닥에 내려놓고 희죽이 웃었다.     “큰사람, 딸을 안아보게나.”     성단은 갓난애를 포대기에 싸안고 나와 경숙에게 보였다.     경숙은 갓난애를 안고 서성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에구, 살기 바쁜 세월에 나서 어찌 하겠습니까? 입이나 하나 불었지.”     경숙은 아들 근형을 본지 1년 만에 음력 동지섣달에 연연 생으로 딸을 보았다.     최구장은 맏손녀를 안고 한참 궁리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몇 월 몇 일인가?”    경숙이 손을 꼽았다 폈다 하면서 한참 생각하더니    “음력으로 12월 5일입구마.” 하고 대답하자    최구장이 좀 궁리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 애 이름을 밝을 ‘명’ 자에 옥 ‘옥’ 자를 달아서 최명옥이라고 짓자.”     경숙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말이라면 다 따랐다.     “명옥이? 밝은 옥이라. 참 좋은 이름입니다.”     최구장은 덧붙였다.     “칠흑 같은 세월이 밝아오기를 기다려 잘 살라고 밝을 ‘명’자를 단 게다. 옥 ‘옥’ 자는 애 어미 이름에서 따왔다.”      “예—참 좋습니다.”     경숙과 성단은 서로 마주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성단은 바삐 부엌에 내려가 멱국을 끓여 고방에 들여갔다. 뒤이어 다시 부엌에 내려가 경숙이 기운봉에서 따온 돌 버섯을 함지에 씻어 가마에 얹고 부엌에 내려가 불을 땠다.      경인과 어금도 소문을 듣고 불붙이에서 달려내려와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경인과 어금은 잔치를 해서 얼마 안 돼 운주동에서 서쪽으로 한 3리 떨어진 불붙이라는 골 안에 가서 남의 사랑방을 빌어 들고 세간났던 것이다.    “아, 그, 우리 개성 최 씨네 어쩌다가 계집애를 봤소? 아 그, 쯧쯧쯧.”     경인은 조카 명옥을 안고 반가와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때 명옥과 년년생인 근형이 앙기장 아기장 걸어와 갓난애 명옥이 곱다고 고사리 손으로 어루만지었다.     최구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식들을 둘러보았다.     최구장의 집안에는 경사가 났지만 저녁에 가마에 얹을 쌀도 없어 최구장의 아내 성단은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긴긴 겨울과 보리 고개는 어떻게 넘는단 말인가?)     최구장이 마루에 나가 거위 털 같은 눈송이가 쏟아지는 벌판을 바라보면서 대통을 뻑뻑 빨며 근심했다.      그때 천만뜻밖에도 영월동의 성칠이 어깨에 사슴 한 마리를 메고 사립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다.      “사돈어른, 편안히 보냈습둥?”     “아니, 영월동의 사돈이 어떻게 돼서 여기로 왔소?”     성칠은 마당에 사슴을 훌 내려놓았다.     “전번에 장백산 밀림으로 들어갔다가 잡아 온 겁니다. 잡수라고 가져왔습구마.”    최구장이 바삐 성칠의 옷에 묻은 먼지와 눈을 털어주면서 위방으로 안내했다. 온 집안 식구들이 인사수작이 끝나자 어금이 큰아버지에게 손을 씻으라고 뜨거운 물을 대야에 담아 들여왔다.    성칠은 눈섭과 코수염에 낀 서리도 물에 씻어버렸다.     최구장은 성칠을 쳐다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우리 집에 가져오고 사돈네는 뭘 잡수시겠수?”      “전번 사냥에 멧돼지와 사슴을 여러 마리 잡았습구마. 사돈이 한 집안이라고 사양하지 맙소.”     최구장은 허리를 약간 앞으로 굽히면서 사의를 표시하고 나서 뒷말을 이었다.     “병완 사돈어른은 편안히 계신기우?”      성칠은 성단이가 들여보낸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후 답답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삯전두 주지 않는데 기어이 공지로 갔습구마. 숱한 사람들의 삯전을 받아 내고야 말겠답더구마.”     삯전 말이 나오자 최구장은 곰방대에 담배를 재워 넣으면서 말했다.     “거 영월동의 길수란 자가 무슨 사람입니까? 삯전을 주겠다고 했으면 줘야지. 남을 속여 먹으면 됩니까?”      성칠은 아주 분개해 말했다.     “길수도 문제지만 일본 놈들이 더 문제입구마. 경찰국 지으면서 삯전을 내놓지 않았단 말입구마.”     최구장은 부시를 쳐서 곰방대에 불을 붙여 뻑뻑 빨면서 말했다.      “응삼은 서당 제자인데 말이 아니더구먼. 한길수한테 붙어 살더니 이젠 일본 사람들의 졸개로 돼서 스승마저 등 쳐 먹는 망할 놈으로 돼버렸수다.”     성칠은 한길수에게 생각이 미치자 악이 났다.     최구장은 담배대통을 뻑뻑 빨며 한탄했다.     “옛말에 부자 한 놈이면 온 마을이 망한다는 말이 맞아요.”    성칠도 동을 달았다.     “요즘엔 한길수는 일본 사람들을 영월동에까지 끌어들여 큰 잔치를 벌리면서 개지랄을 합더구마.”     “개 같은 놈!”     집 안에서는 한길수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와 한숨소리가 뒤섞여 오고 갔다.     고방에서는 갓 난애 명옥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바깥에서는 풍설이 창호지를 치며 무섭게 윙윙- 울부짖었다.     어른들은 이 살벌한 세상에 태어난 애의 운명을 근심하면서 한숨만 후~ 후~ 쉬었다.
424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3) 삯전 김장혁 댓글:  조회:646  추천:0  2024-03-27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5장 반항                               1. 삯전          끼무라는 한길수의 입방아질에 오뉴월에도 장독에 서리칠 지경이었다. 그들은  짜고 들어 인부들의 품삯을 주지 않았다.      병완은 한길수가 신용을 저버리고 마을 사람들의 품삯을 주지 않는 것이 괘씸했다. 아무리 힘들게 대패질을 하고 톱질을 하여도 좁쌀 한 되도 차례지지 않았다.    (진짜 강물을 건너자 다리를 뜯어버리구나. 개 놈새끼.)    당장 맏손녀 어금을 시집보내야 하겠는데 손에 한 푼도 쥔 게 없어 근심이 태산 같았다.    결혼 날자는 하루하루 눈앞에 다가와 근심이 태산 같았다.     기준과 병완이 대패질을 쓱 쓱 할 때다.    한길수가가 응삼과 영팔 등을 데리고 목수 간으로 들어와 개화장을 휘두르며 거들먹거렸다.    “저, 김 도감, 대패질만 하지 말구 동네 민공들이 제대로 일하는가 좀 살피게나.”   병완은 거들먹거리는 길수가 눈에 거슬리어 부르튼 소리를 하었다.   “한도감, 난 부지런히 일만 하지 남을 살피는 일은 못하네. 품삯도 못 받는 도감인지 도깨빈지 못하겠네.”    그는 응삼을 건너다보며 뒷말을 이었다.     어떨꿍이 사람을 죽인다고 응삼은 벼슬욕에 실눈을 가슴츠레 뜨고 길수의 눈치를 핼끔거렸다.     그러나 길수는 속에 전혀 예산도 없었다.     “흥. 응삼을 어찌 자네한테 비길 수 있단 말이오? 자넨 내 의형제 아니요? 자네 말이라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듣지 않는가!”    병완은 이럴 때다고 제꺽 바쁜 일부터 들이댔다.    “여보게, 맏손녀를 시집보내야겠는데 손에 일전 한 푼 쥔 게 없어 근심이 태산 같네. 삯전이나 제때에 주오.”    삯전 말이 나오자 한길수는 대뜸 낯색이 어두워지며 퍼란 바위돌처럼 굳어졌다.    “나도 중간에서 진짜 시집살이네. 일본 사람들이 자초보다 다르게 노는 거 어쩌오? 삯전을 인차 줄  거 같지 않네.”     “그게 무슨 소리오?”    병완은 대패질하던 손을 멈추고 허리를 펴면서 한길수를 쏘아보며 따지고 들었다.    "자네 삯전을 딱딱 준다고 했잖은가? 그래 숱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데리고 왔는데. 지금 와서 핸들 나누우면 마을 사람들은 굶어죽으라는겐가?"    한길수는 말이 빗나갔음을 느끼고 중절모자를 벗어 쥐고 마른 기침을 깇더니 번들이마를 슬슬 어루만지면서 제꺽 말을 바꾸었다.    “근심하지 말게. 어떻게 하나 끼무라 국장님과 말해 설전에는 삯전을 주겠네.”    기준과 덕성을 비롯한 목수들은 품삯을 차일피일 미루는 한길수를 못 미더워하는 눈길로 쏘았다. 그들은 모두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한길수에게 아니꼬운 눈총을 쏘았다.     “아니, 모두 가을걷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공지로 왔는데 삯전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 누가 여기서 일하겠소?”     너부죽하게 생긴 덕성은 자귀로 깎던 목재를 들어 던지면서 노호했다.     “품삯을 안 주면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겠소. 감자랑 눈에 다 덮여버리면 어쩌오? 하다못해 산에 가서 사냥이라도 해야 살지. 쳇,”    바빠 맞은 길수는 병완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쑤군거렸다.     “자넨, 도감이 아닌가? 자네 삯전을 주지 않을까봐 그러오? 근심하지 말게나.”    병완은 누구나 다 들으라고 언성을 높였다.     “아니, 온 마을 사람들한테 삯전을 딱딱 준다고 불러왔는데 내 무슨 낯으로 그들을 대한단 말이요? 안되오. 달마다 꼭꼭 삯전을 계산해 주오.”    길수도 안 되겠다싶었든지 살짝 말을 바꿨다.     “그렇긴 하구만. 자넨 맏손녀를 시집보내야 한다니 내 오늘 끼무라 국장에게 말해서 먼저 주겠네.”    “안 되오. 온 마을 사람들의 삯전을 다 …”    한길수는 마을 사람들을 건너다보며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떠들지 말라는데도 왜 이래?”    “떠들지 않게 됐소?”     길수는 병완을 마구 끌다시피 해 목수 간에서 나왔다.    그는 병완의 귀에 대고 목소리를 낮춰 쑤군거렸다.     “내 말 듣소. 내일 목수 간의 삯전만 먼저 줄게.”     “안 되네. 온 마을 사람들 삯전을 몽땅 달란 말이오.”    한길수는 고집불통인 병완과 말해보았자 쓸데없는지라 또 다른 말을 꺼냈다.     “그래, 주지. 온 마을 사람들의 삯전을 다 주지.”    그제야 병완은 씩씩 거친 숨소리를 죽이면서 목수 간으로 되들어갔다.     이튿날 정말 한길수는 병완을 공지 총도감실에 불러갔다.    병완은 삯전을 주겠지 하고 총도감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총도감실에는 한길수와 응삼, 영팔, 수길 등 사람 외에도 끼무라 국장과 야마모도 소장, 털 한 모숨이 가메다까지 살기등등해 앉아있지 않겠는가.    가메다는 볼에 난 털 한 모숨 났다고 해 털한모숨이란 별명이 따라다녔다. 그는 볼의 털을 슬슬 어루만지며 눈을 버릇처럼 찔끔거리면서 키가 구척이나 되는 병완을 살기 찬 눈길로 노려보았다.    길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들이 삯전을 달라고 너무 떠드는 바람에 이게 뭔가? 끼무라 국장과 삼림파출소 야마모도 소장이 직접 자네를 만나러 왔네.”    야마모도 소장이란 자는 안경알 밑으로 구척 같은 병완의 아래위를 훑어보고 있었고 끼무라는 아주 반가운듯이 걸상에서 일어나 병완과 악수까지 청했다.    “요로씨이(좋아), 자네가 병완인가?”   류강철이 조선말로 통역해주자 병완은 끼무라의 손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말했다.    “그렇소이다. 삯전이나 줍소. 우린 지금 죽물도 먹기 힘드오.”    류강철이 통역해주자 끼무라는 피씩 쓰거운 웃음을 지었다.    “그래? 돈밖에 모르는 놈들. 우리 대일본제국에 충성하는 양민이 되고 싶지 않은가? 우리 대일본제국은 그대들의 충성심을 요구하네. 그럼 돈뿐이겠는가? 쌀이랑 미녀랑 많이 주지.”    끼무라는 세 살 짜리 애에게 사탕을 주고 얼리듯이 구슬렸다.    “아니, 미녀고 뭐고 싹 그만두고 삯전이나 주오.”    “주지. 간상, 자네가 어떻게 공지를 다스렸으면 이 놈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키자고 들겠는가?”    한길수는 잔등에 식은 땀을 쫙 흘리었다.    그는 병완을 쏘아보면서 나무랐다.    “주겠다는데 왜 나까지 욕을 먹이는가?”    병완은 그저 삯전을 주기만 기다리면서 입에 빗장을 지르고 말뚝처럼 떡 뻗치고 서 있었다.    상전 앞에서 바빠 맞은 한길수는 호주머니에서 동전 몇 잎을 꺼내 병완의 손에 척 쥐어주었다.    “얻소. 가져다 맏손녀를 시집보내게나.”   끼무라 국장은 입귀에 금이발을 드러내며 피씩 냉소했다.   “그깟 놈들이 대일본제국의 일을 하지 않으면 몽땅 죽여 버려! 또 인부들을 붙잡아오면 돼. 쳇, 대일본제국을 위해 일하는데 무슨 놈의 삯전? 우둔한 놈들, 정말 정신 나갔군. 흥!”     병완은 길수에게서 동전 몇 푼 받아 낸데다가 공지 모든 인부들의 삯전을 주겠다는 말을 듣고서야 총도감실을 나섰다.    그때 등 뒤에서 끼무라 국장이 야마모도소장을 돌아보면서 지껄여대는 소리가 들렸다.    “장승같은 놈, 힘깨나 쓸 거 같군. 우리 개로 길러볼만한 놈이네.”    “쳇, 딱 도깨비 같구먼.”    목수칸으로 돌아온 병완은 길수에게서 가진 동전 몇 잎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대패 틀 위에 잘그락 놓았다.     덕성은 눈이 동그래 물었다. “건 어데서 나온 거요?” 병완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길수 영감이 선심을 썼네. 날 보고 동전 몇 잎 받고 인부들의 입을 틀어막아 달라네.” 그러자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 한 영감은 정말 삯전을 주지 않을 작정인가?” “그러게 말이요. 괜히 여기 와서 뼈 빠지게 일한 것 같네.” “두 달째 삯전을 주지 않으니 코앞에 닥쳐온 양력설은 어떻게 쇤단 말이요.” “양력설? 쳇, 난 가을에 감자를 파오지 못하고 여기 끌려오다나니 눈 밑에 몽땅 파묻었소. 이 기나긴 겨울에 뭘 먹고 산단 말이요.”      “최구장네 경인처럼 버치나 틀었더라면 우시장에 가져다가 팔아 겨울나이 쌀이나 장만했지.” 그런 말을 들으면서 병완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 동전을 가져다 바쁜 목에 쓰게나.” 병완이 대패 틀 우에 놓은 동전 몇 잎을 건너다보면서도 서로 눈치를 볼뿐 누구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병완은 동전을 싹 쓸어 쥐더니 덕성이랑 몇몇 목수들에게 일일이 둬 잎씩 나눠주었다. 이때 기준도 나무에 묻은 대패 밥을 손으로 쓱쓱 털어버리면서 답답해 말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네. 맏딸을 대엿새 후에 시집보내야지. 아내가 막달인데 당장 몸을 풀어야 하오. 그런데 손에 쥔 게 어디 있소?”      덕성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동전을 기준에게 내밀었다.      “이걸 부조 삼아 가져다가 맏딸의 결혼에 쓰게나."       “싫소.”      기준의 말에 병완도 손을 내저으면서 사절했다.       “절대 그러지 마오. 양력설에 어떻게 빈손으로 가겠는가? 난 마을 사람들 앞에서 머리도 못 들고 다니겠네.”        덕성은 동전을 쥐고 병완과 기준이 그리고 다른 목수들을 돌아보다가 한 잎 만 기준에게 주었다.        “그럼 이 한 잎은 맏딸의 결혼잔치 부조인 셈 치고 받네. 나머지는 자네들이 꼭 받아야 하네. 사양하면 우리도 한 잎도 가지지 않겠네.”      기준은 기어이 사양했다.      “아니요. 우리도 제 몫을 가졌으니까. 이러지 말게나.”      덕성은 두툼하고 터실터실한 손으로 동전잎을 기어이 기준의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에이, 사람이. 부조도 받지 않는 법이 어데 있는가.”     기준은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병완은 기준을 보고 “덕성이, 성의는 이미 받았으니까 그만두게. 먼저 바쁜 목을 열고 보기요. 우린 감자떡이랑 빚어 놓고 결혼잔치를 하면 되네.”라고 했다.     덕성과 기준은 동전 한 잎을 가지고 주려거니 받지 않으려고 하거니 했다.     이때 한길수가 영팔과 응삼을 데리고 목수 간으로 우르르 쓸어 들어섰다.    그제야 덕성과 기준은 그만뒀다. 덕성은 할 수 없이 동전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아니, 자네들은 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미세 당기 세를 하오? 에헴.”     한길수는 건 가래를 떼면서 병완의 눈치를 흘끔 살폈다.     병완은 길수를 똑바로 마주보면서 말했다.      “총 도감, 모두들 삯전을 주지 않으면 계속 일하지 못하오. 감자랑 채 파지도 못하고 여길 오다나니 몽땅 눈 밑에 쓸어 넣었단 말이요. 동삼에 쌀을 살 삯전도 주지 않아 집식구들의 입에 거미줄을 치겠소.”      (아, 이 영감이 금방 입을 틀어막으라고 동전을 주었구만 오히려 인부들 쪽에 서서 대포를 쏜단 말이야. 흥!)      한길수는 속으로 좋지 않았다.      “그래도 공지에 왔기에 당신들의 입만은 집에서 근심하지 않게 되지 않았소? 너무 좋아서 그러오?”     그 말에 덕성은 팔을 걷어 올리더니 한길수의 코에 대고 삿대질하면서 따지고 들었다.      “아니, 그것도 말이라구 해? 우리 공지에 오지 않으면 사냥이라도 해서 쌀값을 장만할수 있어. 당장 삯전을 줘. 그러지 않으면 당장 그만두겠어.”     “옳소. 우린 그만두고 사냥하든지 삯일을 하든지 하겠소.”      “아니, 이것들이 누구 앞에서!”     영팔이 가죽채찍을 휘두르며 뛰쳐나왔다.     “닥쳐!”      한길수가 다급히 소리쳤다.     그는 영팔을 질책했다.     “에이, 못난 놈. 한마을 사람들에게 무슨 짓이냐?”     한길수는 나오지 않는 웃음을 억지로 낯에 게바르면서 구슬렸다.      “우린 한 마을 사람들이 아니고 뭐요?  좀 서로 사정을 봐 줄내기.  흐흐흐. 나도 일본 경찰국 끼무라 국장과 말해서 꼭 자네들의 삯전을 주게 하겠네. 근심 말고 일하게나. 나도 중간에서 정말 시집살이네.”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 한다. 그 말을 어떻게 믿으란 말이오?”     한길수는 중절모를 쓴 대머리를 건뜻 쳐들고 우멍 눈으로 천정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천하의 한길수가 그래 고만한 돈 주지 않으리라구 그러오?”     모두 길게 한탄하면서 대패질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한길수는 병완을 돌아보면서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더니 목수 간을 나섰다.     그날 일을 마치자 병완과 기준 부자는 한길수와 말하고 어금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운주동으로 돌아갔다.
    김장혁작가 동화아동소설선집    “괴물 클론바우 모험기”를 출간                                       민성        일전에 김장혁작가는 동화아동소설선집 “괴물 클론바우 모험기”를 출간하였다. 이 책자는 그가 세상에 서른번째로 내놓은 제30권 문학저서이다.      김장혁은 일찍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대하소설 “진달래 소약곡”, 3부작 대하장편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 “욕망의 천지”, "황천의 유령",대하소설 “졸혼” 등 장편소설만 22권을 창작해 세상에 내놓았다.      그중 3부작  대하장편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 “욕망의 천지”, “황천의 유령” 등 소설은 출판된 후 다음, 네이버, 조글로와 모이자 등 블로그에 널리 연재돼 수많은 네티즌들이 열람했다. 또 이 소설은 한국 “서울문학”과 “아동문학세상”에도 소개되었고 연변인민방송국에서 드라마 “지구보위전”으로 각색해 연이어 방송했으며 “옹달샘컵  중한아동문학상”, “동심컵 중한아동문학상”을 받았다. 그 수상소식은 한국 연합뉴스에도 보도되었다.        저명한 아동문학평론가 김만석교수는 문예평론 “욕망의 과학환상소설”에서 “김장혁은 우리 중국조선족문단에서 둘도 없는 과학환상소설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문예평론 “2001년-2015년 중국조선족아동문학”에서 “우리 조선족문단에서 보면 김장혁이 바로 과학환상소설의 개척자로 나서서 2000년에 과학환상소설 “조왕돌이 모험기”를 발표하면서부터 륙속 중편과학환상소설 “지구보위전”, “괴물 클론바우 꼬마대통령 모험기”, 대하장편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욕마의 바다”, “황천의 유령” 등을 써낸 다산작가로 이름 나고있다.”고 했다.      저명한 평론가 김룡운선생은 평론 “김장혁의 “야망의 바다”에는 무엇이 묻혀 있나?”에서 “‘야망의 바다’는 장편과학환상소설이 없던 중국조선족문단의 력사에 영영 종지부를 찍은  데서 문학사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작품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평론 “김장혁론”에서 “김장혁은 중국 조선족문학사에서 제일 처음으로 대하과학환상소설을 쓴 작가이다.”고 하였다.       한국 아동문학학회 회장 김완기 시인은 “옹달샘컵 중한아동문학상” 심사평에서 “김장혁작가의 ‘야망의 바다’에 등장하는 각종 가상인물의 변화무쌍한 활동모습은 한 편의 환상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야망의 바다’는 작가의 풍부한 작품 구상력과 상상력을 보인 과학판타지소설이다.”고 평론했다.      김장혁 작가는 자기 창작의 길을 돌이켜보면서 감개무량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40년 전 내가 룡정에서 교편을 잡고 코흘리개들을 애나게 가르치면서도 괴외시간에 코구멍만한 세집에 밥상을 놓고 머리를 싸매고 문학창작을 하겠다고 모지름을 쓰던 일, 모진  질투와 비난을 물리치고 아동문학창작을 하려고 공원을 돌아다니며 원숭이와 곰, 호랑이 등 동물을 관찰하면서 동화를 구상하던 일, 남의 신세를 지기 싫어 자체로  자기 아동문학작품집 삽화를 그리던 일, 책을 내겠다고 한국에 나가 눈보라를 무릅쓰고 낯선 파주 출판단지에서 돌아다니던 고달픈 나날, 책짐을 메고  서울 신도림지하철역에서 층계를 오르다가 허리띠가 툭 끊어져 민망해 얼굴이 붉어지던 일도 다 헛된 일이 아니였다. 아니, 아주 보람찬 사업이였다는  것을 느낀다."       김장혁은 홧홧 달아오르는 사막과도 같은 문단 올리막길에서 끈질기게도 40년 동안 마라톤을 하면서 곡절을 겪을 때마다 상처를 매만지면서 이를 옥물고 한편, 또 한편의 작품을 써냈다. 숱한 국내외 출판사 문턱들을 넘나들며 자체 힘으로 한권, 또 한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김장혁은 저서를 출간한 자기 뜻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다.      "우리 조선민족을 위해 정신기념비를 하나라도 세워주고 우리 조선족 어린이들에게 한편의 동화, 소설이라도 선물하는 것만큼 성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나는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 문학창작이란 사막의 올리막길을 닫고 싶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위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세상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      그는 이번 동화소설선집을 내놓게 된데 대해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어떤 친인이나 지인들은 이젠 글을 그만 쓰고 두 손자의 할아버지로 천륜지락이나 누려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필을 멈출 수 없다. 비록 대하장편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 “욕망의 천지”, 황천의 유령”, 아동문학작품집 “호랑이와 사냥군”, 동화소설집 “멋쟁이 매옹이와 찍찍의 겨룸” 등 아동문학저서 다섯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어쩐지 우리 사랑스런 어린이들을 위해 낸 나의   아동문학저서가 적다고 생각됐다. 하여 나는 아동문학 작가의 위기감과 사명감으로 동화아동소설집  “괴물 클론바우 모험기”를 세상에 부랴부랴 내놓게 되었다."     김장혁의 동화아동소설선집 "괴물 클론바우 모험기"에는 그가 지난 세기 80년대 중반부터 창작한 가운데서 동화 7편, 아동소설  9편, 평론 1편(그외 김장혁 과학환상소설과 과학동화에 대한 김만석교수 평론 2편, 김룡운 평론가 평론 1편)을 엄선해 실었다.     김장혁 작가는 "동화나 소설을 좀 낭만적이고 환상적으로 쓰려고 시도했지만  흠집이 많으리라 믿는다. 우리 어린이들이 이 동화소설집을 즐겨 본다면 다행으로 생각하겠다."고 하였다.                                                                                             2024. 3. 26.  
422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32) 인부 모집 댓글:  조회:587  추천:0  2024-03-22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9. 인부모집              먹장구름이 뒤덮여 오더니 풍운조화를 헤아리기 어렵게 을씨년스럽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잔잔히 흐르던 조용한 개울물에 어디서 미꾸라지 한마리 기어나왔는지, 간사하게 꼬리치며 물을 흐리우기 시작했다.          최구장은 서당방이 쉬는 날이 돼서 마루에 앉아 맏손자 근형(봉인)을 안고 한가히 놀면서 담배를 풀썩풀썩 피웠다.    응삼은 끼무라와 한길수 명을 받은지라 운주동으로 가자마자  옛날 서당방 은사 최구장을 찾아갔다.     응삼은 온 낯에 나오지 않는 웃음을 지으면서 최구장을 보고 다가가 인사부터 올렸다.     “선생님, 그간 무고합둥? 몸이랑 괜찮습둥? 해해해.”    최구장은 피끗 응삼을 내려다보더니 마지못해 대구했다.    “오, 그래. 십여년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더니 무슨 일로 불쑥 찾아왔는가?"    최구장은 재수없이 턱이 뾰족하고 뱁새눈을 팬들거리는 응삼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할 때면 자기가 먼저 남의 뒤 골을 톡 쳐놓고서는 질책하면 다른 애를 먼저 쳤다고 물고 늘어지기가 일쑤였다.    (이 자식이 무슨 바람이 불어 찾아 왔을까?)    응삼은 제 좋은 소리를 쳤다.    “선생님, 이런 일이 있습구마. 지금 일본 사람들이 우시장에 큼직한 집을 짓는뎁쇼...”   최구장은 담배재를 재떨이에 툭툭 털더니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그래, 이 늙은이가 일본 사람들 집짓기에 가라는 건가?”    “아, 아니, 아닙니다. 은사님. 어, 은사님의 손자 놈이 정말 귀엽구먼요.”    응삼은 마루에 기어 올라가 최구장 옆에 찰싹 들어붙어 앉아 근형의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머리까지 조아리면서 말했다.     “은사님, 일본 사람들은 신용을 지키는 사람들입구마. 꼭꼭 달 말이면 삯전을 주니까요. 운주동 사람들이 가서 부업이라도 하면 좀 좋아서.”     최구장은 먼 산을 바라보면서 한참 궁리하다가 담배를 길게 빨아 후— 내쉬었다.      “그래 일본 사람들이 삯전을 얼마씩이나 준다던가?”     응삼은 최구장의 턱 밑에 기어들어 말상을 갸우뚱거리면서 약사발을 올렸다.     “날마다 쌀 둬근 값은 줍꾸마. 저 영월동의 병완 영감은 목수 일을 해서 삯전으로 쌀 한 되 값은 받았습구마. 그 집 둘째아들과 셋째아들도다 공지에 갔습구마.”     “그래?”     응삼은 일 돼갈 거 같아 빈대눈을 팬들거리면서 한술 더 떴다.     “영월동의 한길수 어른이 직접 공지 총도감을 맡고 삯전을 내주고 있는데유. 틀림 있겠습둥?”     “다시 묻겠네. 우리 사돈영감이 확실히 우시장에 갔어?”     응삼은 말상을 조아렸다.     “예, 가구말구요. 병완 영감은 목수 일을 해서 맏손녀를 시집보낼 준비를 한다던데요. 정 믿어지지 않으면 가 봅소. 창준과 기준이 가지 않았는가.”     최구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이때 때마침 최구장의 맏아들 경숙과 둘째아들 경인이 마당에 들어섰다.    응삼은 그들을 보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고, 이 집의 끌끌한 일군들이 들어서는구먼.”   응삼은 최구장을 돌아다보면서 뾰족한 턱까지 흔들어대면서 말했다.   “은사님, 저 아드님들을 공지에 보냅소. 삯전이나 벌면 오죽 좋겠습니까? 황차 둘째아드님이 장가도 들어야 한다면서요?”  경인은 조금 부끄러운 듯이 귀밑까지 붉혔다.    “경인이, 자네 가시아버지 기준이도 공지에 갔네. 공지에 가서 돈을 벌어서 혼수나 준비하게나.”    경인은 응삼의 실눈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내 가시아버님께서도 갔소?”     “응, 그래. 지금 목수 도감을 하오. 한길수 영감이 총도감을 하는데 하루 일하면 쌀 반 되 값은 주오. 부지런히 일하면 쌀 한 되는 버오.”    경인은 퍽 호기심이 들어 했다. 그러나 경숙은 반신반의하면서 주춤거렸다.     응삼이는 최구장의 턱 밑에까지 다가들었다.     “은사님, 저 끌끌한 아드님들을 일하러 보냅소. 삯전은 근심하지 맙소. 정 받지 못할 것 같으면 한길수 어른이 있잖습둥?”    “쳇, 한길수를 믿어?”     최구장은 한길수가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우시장의 어떤 깍쟁이라고? 부채 아까워 얼굴을 부채에 대고 흔드는 영감. 린색하고 옹졸하기 그지 없어. 흥!)    응삼은 혀를 홀랑 내밀더니 인차 말머리를 돌렸다.    “삯전을 받지 못하면 한길수와 달라고 하란 말입구마. 옛날에 부자 집이 넘어가도 석삼년은 걸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한영감이 그 숱한 재산을 가지고 달아나겠습니까?”    그러자 경인이가 나섰다.   “그 말에는 조금 도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공지에 가본다?”   뒤이어 반신반의하는 경숙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형님, 형수가 오래잖아 해산하겠는데 쌀독을 빡빡 긁지 말구 우리 둘이 공지에 가서 일하기요. 내 가시아버지와 가시할아버지도 거기 가서 일한다구 하잖소. 갔다가 맞갖잖으면 돌아오기오.”    경숙은 동생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머리를 끄덕였다.    마루 우에서 지켜보던 응삼은 일이 돼가는 걸 보고 속으로 너털 웃음을 웃으면서 자리를 떴다.     “은사님, 편안히 계십소. 선생님이 이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공지에 보내면 덕을 쌓는 겁구마. 보릿고개를 넘을 쌀이나 마련하게 하면 좀 좋아서?”    응삼은 오늘 따라 지나치게 해해거리면서 허리를 굽혔다.    최구장은 담배 물주리를 뻑뻑 빨다가 연기를 후 불어내더니 재떨이에 털었다.   “그러지. 일감을 알려줘서 고맙네.”    응삼은 울바자 밖으로 나가면서도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해해해. 은사님이 이전에 하늘 천, 따 지를 가르쳐주시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한데요. 제가 어찌 은사님의 은공을 잊겠습둥? 좋은 일이 있으면 은사님 댁에 먼저 알려얍죠.”   응삼이 대문 밖으로 나가자 시끄럽던 집 울안이 조용해졌다.   경숙은 대문 밖으로 빠져나가는 응삼의 궁둥이를 보고 돌아섰다.    “저 응삼의 말을 믿을 만 합둥? 더구나  우시장에서 이름난 난봉군 한영감을 믿다간 한지에 방아를 걸겠습구마. 얼마나 떼질군이라구. 흥! ”    최구장은 엉거주춤 일어섰다.    “글쎄 한길수야 소문난 깍쟁이란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알지. 허나 일본 사람들은 혹시 삯전을 쥐겠는지, 한번 가볼만한 거 같아. 사돈영감들두 갔다구 하지 않니?”    경숙은 량미간을 찌프리었다.    “아버지, 일본 놈들을 믿습둥? 그 놈들은 조선을 통채로 먹어버린 엉큼한 도둑놈들입구마."    경인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형님, 먼저 며칠 가 일해보기오. 삯전을 주지 않으면 내 가만놔두지 않겠소.”   그러자 최구장이 정색해서 말했다.    “너, 경인은 절대 공지에 검을 절대 가지고 가지 말라. 무슨 사단을 일으킬라고. 쯧쯧.”    경인은 뒤덜미를 긁적거렸다.    “옳다. 너 오래지 않으면 장가가겠는데 무사해야 해.”    경숙의 말에 경인은 형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알았소, 형님, 절대 말썽을 일으키지 않을 테니. 근심하지 마오.”     최구장은 맏아들과 둘째아들을 내려다보면서 담배 물주리를 재떨이에 툭툭 털면서 물었다.    “거 넷째하구 막내는 뭘 하니? 걔들도 데리고 가렴.”    경숙은 아버지의 눈치를 흘끔 보면서 머리를 떨어뜨리며 경인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 있니?”   최구장의 얼굴에는 근심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흘러 지나갔다.   경인은 속이지 않고 낱낱이 말했다.   “넷째동생 경욱은 경석과 함께 또 약 담배 장사하러 우시장으로 갔습구마.”    최구장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이, 고놈새끼들, 언제 고약한 버릇을 뗄까? 너희들과는 달리 고 놈들은 부지런히 일해 살 예산이 없고 전문 약 담배 장사가 아니면 약 담배를 피운다. 어쩌겠니?”    최구장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더니 엉거주춤 일어났다.    “너희들이 우시장에 가면 고놈새끼들을 붙잡아서 공지에 데리고 가라. 약 담배 장사를 하다가 언제 순사 놈들에게 잡혀서 혼나지 못해서. 쯧쯧쯧.”    한편 최구장네 집에서 나온 응삼은 온 운주동을 돌아다니면서 최구장네 아들들이 몽땅 공지로 일하러 간다며 마을 사람들을 일하러 가라고 동원했다. 최구장이라면 운주동에서 한다하는 서당 방 선생인데 그가 아들들을 공지에 보낸다고 하자 모두들 공지로 가려고 나섰다.     응삼은 운주동에서 십여 명의 끌끌한 인부를 모집한 후 운주하를 건너 신흥동으로 갔다.    응삼은 신흥동에서 한다하는 김종국 구장을 먼저 찾아갔다. 그런데 김 구장이 일본사람의 앞잡이로 된 응삼을 거들떠보지 않을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응삼은 김 구장네 집 울안에 들어가 마주 나오는 김 구장을 보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댔다.   “김구장, 무사합둥? 우시장에 좋은 일감이 생겨서…”    응삼의 말이 채끝나지도 않았는데 김 구장이 빈정거렸다.    “아니, 자넨 우시장에 가서 한자리 했다더구먼. 무슨 일로 이 누추한 시골에 찾아왔는가?”    응삼은 속으로는 괘씸하였지만 일을 그르칠 까봐 꾹 참았다.    “사실 에헴, 김 구장, 저기 우시장에 일본사람들이 큰 집을 짓는데 좋은 일감이 생겼습구마…”    “응삼이, 좋은 일이 있으면 자네나 할 게지. 날 찾아와 뭘 하오? 난 허리 아파서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못하네.”     김종국은 조개턱을 건뜻 쳐들고 먼 산을 쳐다보면서 대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응삼은 뒤따라가면서 김 구장의 팔소매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아니, 김 구장, 내 말을 다 들어 봅소. 김구장, 저기, 저…”    “이 사람이, 왜 이래? 이 팔소매를 놓으라니까. 급히 가 볼 데 있는데 허리를 놔라, 놔. 이 사람이 정말 찰거머리 같다.”     김 구장은 팔을 휘둘러 뿌리치면서 대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응삼은 닭 쫓던 개 지붕을 쳐다보는 격이 되고말았다.     응삼은 뾰족한 턱을 살래살래 저으면서 가마골로 향했다.     가마골의 구장은 림호라는 사람이었다.    림호는 이 마을에서 힘깨나 꽤 쓰는 힘장사이었다. 이름 그대로 수풀 속에서 뛰쳐나온 호랑이같이 생긴 그는 더부룩한 구레나룻에 나비수염까지 길러서 딱 수호전의 리규 같았다.     한번은 한 마을의 석수, 용기 등이 기운봉으로 사냥하러 갔다가 간 날이 장날이라고 그만 호랑이를 만났다. 그들이 사냥총을 쏘아대면서 쫓아가자 호랑이는 겁을 먹고 절벽아래 나무숲속에 난 범의 석굴 안으로 달아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범이 굴 안에서 나오기를 기다려 잡자고 하였지만 림호 만은 담대하게 혼자 범의 굴로 뒤쫓아 들어갔다.     때마침 암펌이 새끼 둘을 입에 물고 굴 밖으로 나오다가 굴 어구에서 림호와 딱 마주쳤다.     “이 놈의 범 새끼, 어디로 도망치려고?”    림호는 범의 굴 안으로 고래고래 고함치면서 뒤쫓아 들어가 뛰어나가는 호랑이의 꼬리를 꽉 틀어잡았다.    화닥닥 놀란 호랑이는 똥물을 내갈기더니 굴 밖으로 뛰어나가면서 뒤발로 림호를 걷어찼다.    “이 놈 범새끼, 뒤 발 질까지 해? 어디 죽어 봐라.”    호랑이는 굴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림호는 범을 놓칠 까봐 꼬리를 단단히 잡고 발로 땅바닥을 긁으면서 뻗쳤다. 그렇게 호랑이와 림호가 반나절이나 싱갱이 질 하다나니 범이고 림호이고 다 기진맥진했다. 나중에 호랑이는 꼬리 껍질이 다 우악한 림호 손에 쭉 벗겨졌다. 그 놈 호랑이는 죽기내기로 굴 밖으로 나가려고 버둑거리다가 똥물을 열댓발 찔 갈기더니 풍덩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물앉고 말았다. 이때 바깥에 있던 석수랑 몽땅 뛰여 들어와 함께 호랑이를 비수로 찔러 죽였다.     사후에 석수가 “무슨 담에 범의 꼬리를 붙잡고 놓지 않았어?” 하고 묻자 림호는 범의 발톱에 긁힌 얼굴에 묻은 피를 손으로 쓱쓱 닦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허허, 내 머리 속에는 범의 꼬리는 단단히 쥐고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밖에 없었네.”     림호는 맨 손으로 호랑이를 잡을 정도로 힘은 셌지만 머리는 단순하고 우직한 사람이었다. 그러다나니 꾀 망둥이 응삼이가 운주동의 최구장과 신흥동의 김구장이랑 다 자식들과 마을사람들을 공지에 보낸다는 말을 그럴듯하게 하자 인차 공지에 가겠다고 나섰다. 림호 구장은 당장에서 석수와 용기, 길수를 불러왔다.     “우리 이 사람을 따라 우시장에 가보자. 감자농사두 잘 되지 않았는데 얼기 전에 동삼에 먹을 쌀이라도 벌어오자.”    림호 말이라면 하느님 말처럼 따라온 용기와 길수, 석수는 두말없이 따라나섰다.     응삼은 아주 쉽게 운주동과 가마골에서 만 하여도 서른대여섯이나 데리고 우시장으로 가게 됐다.     그는 신흥동에서 김 구장한테 코를 떼울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 놈 영감이, 어디 황군에게 혼나봐라.”     응삼은 신흥동쪽을 손가락질하면서 욕질하더니 마을을 떠났다.     응삼은 숱한 인부들을 데리고 우시장으로 돌아가자마자 한길수를 찾아갔다.     한길수는 인부들과 응삼을 번갈아보더니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수고했네. 끼무라 국장은 자네를 꼭 중용할거요.”     응삼은 신흥동의 김 구장에게 당한 수모가 내려가지 않아 길수에게 있는 말 없는 말 다 보태 물어먹었다.     “그 놈 김 구장을 혼내줍소. 내 찾아가니 개 닭 보듯 하면서 일본 놈들 집짓기엔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하지 않겠습둥?”    “그 놈이 언감? 경 칠 놈, 흥!”    “헌병들을 데리고 김 구장을 혼드검 내줘야겠네. 개배때기를 차도 주인을 보고 차라고. 주리를 틀어놓지 않는가 보자.”     한길수도 분이 나서 우멍 눈을 부라리면서 이를 쁙쁙 갈았다.     그는 그 길로 끼무라 국장에게 말해 헌병 몇을 데리고 말을 타고 신흥동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둬 식경 달려 운주하를 건너 신흥동에 이르렀다.     길수는 일단 일본 헌병들을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혼자 마을에 들어갔다.     어느 한집 돼지우리에서 둼을 쳐내는 한 늙은이가 눈에 띄었다.     “저게 김 구장이 아닌지?”    그 늙은이에게 다가가서 묻자고 하니 돼지 똥 구린내가 역겨워 다가가기 싫었다.     하여 멀찍이 서서 그 늙은이에게 소리쳤다.     “이보게, 여기 김 구장 집이 어느 겐가?”      그 늙은이는 돼지 똥을 쳐내다가 머리를 들어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는 일본 헌병들과 낯선 한길수의 번들이마를 번갈아 보더니 대구도 하지 않고 계속 돼지 똥을 쳐냈다.     "영감, 사람 소리 들리지 않는가?"     "?"     "김구장 집이 어디 있는가?"     “몇 집 건너 저 우에 있네.”     한길수는 그 늙은이가 가리키는 대로 몇집 건너 갔다. 아낙네가 집 마당에서 한창 절구에 낟알을 찧고 있었다.    그는 아낙네에게 다가가 물었다.    “김 구장네 집이 어느 겐가?”     아낙네는 절구 공이를 놓고 한길수의 낯선 얼굴과 마을 어귀에 들어선 일본 헌병들을 의아한 눈길로 번갈아 바라보다가 다시 절구꽁이를 딱딱 찧어댔다.     “아니, 묻는 말을 못 들었가? 이 마을 년놈들 다 귀 먹어린가? 참 이상할 정도얘. 이년, 어느 게 김 구장네 집인가? 왜 묻는 말 답하잖아? 엉?”     아낙네는 절구꽁이로 낟알을 계속 찧으면서 반문하지 않겠는가.    “댁은 뉘신지요? 김 구장을 찾아 뭘 해요?”    한길수는 아직도 나를 모르는 아낙네들도 있나 싶어 보란 듯이 번들이마를 쳐들고 을러멨다.    “이년, 이 어른도 몰라. 이 어른은 우시장공지 총도감이야. 묻는 말이나 대답해. 어느 집이 김 구장 집인가?”    아낙네는 머리를 들어 몇 집 건너 동쪽 집 돼지굴을 치는 령감을 흘끔흘끔 곁눈질하는 것이었다.    눈치챈 길수는 우멍눈으로 아래쪽을 돌아버더니 아낙게네한테 발작 다가서면서 물었다.    “저기 돼지 똥을 치는 영감이 김 구장인가?”    그러나 아낙네는 대답도 하지 않고 절구질만 했다.    “맞지? 저 영감두상이 김 구장이지?”    한길수는 돼지 똥을 치던 영감이 김 구장인 걸 알아차렸다.    한길수는 마을 아래쪽으로 되 내려가면서 욕지거리를 했다.    “더러운 영감, 분명 자기를 찾는데 이 어르신님을 이렇게 두벌걸음을 걷게 해? 어디 혼나 봐라.”    한길수는 일본 헌병들한테로 돌아가 돼지 똥을 쳐내는 김 구장을 손가락질을 하면서 가서 붙잡으라는 손시늉을 했다.    일본 헌병들은 말에 올라 곧추 김 구장네 집으로 짓쳐 들어갔다. 그자들은 말에서 뛰어내리자마자 돼지우리에 뛰어들어 돼지 똥을 쳐내던 김 구장을 끌어냈다.     “김 구장, 당신은 목이 몇 개 돼 감히 이 한길수 어른이 묻는 말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가? 이 어른을 두벌 걸음을 시키다니?”     김 구장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 허리를 꿋꿋이 폈다.     “난 일본사람들의 그늘 밑에서 구장 질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지 오래오. 구장도 아닌 나를 찾아 뭘 하오?”    한길수는 김 구장의 멱살을 틀어쥐고 호통 쳤다.    “어째 죽고 싶은가? 네깐 놈 감히 대일본제국의 경찰국 청사를 짓는 일을 방애한단 말인가?”    그러나 김 구장은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백발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난 자기 집 돼지우리도 제대로 짓지 못했는데 언제 일본사람들의 집을 짓는데 갈 새 있겠소? 그럴 새 있으면 내 돼지 굴이나 짓겠네.”     "뭐? 뭐?"    한길수는 김 구장의 멱살을 마구 흔들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그래 대일본 제국의 경찰국을 짓는게 중하냐? 너네 돼지굴이 더 중하냐? 이 놈. 당장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공지라 가라! ”    김 구장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릴? 한창 가을철이 돼서 마을 사람들은 감자랑 강냉이랑 걷어 들이느라고 어디 갈 새 있소?”    한길수는 김종국 구장의 멱살을 스르르 놓으면서 조금 치미는 분노를 눅잦히면서 말했다.    “가을걷이를 못해도 경찰국 집짓기를 하면 살수 있단 말이야. 공지에 가서 일하면 삯전을 준단 말이다. 그 삯전이면 겨울을 날수 있다.”     “허, 그 영감, 진짜 삶은 소대가리 다 웃다가 꾸러미 터질 소릴 다 한다. 겨울을 나고 나면 입에 거미줄을 칠 지경인데. 어떻게 보리고개를 넘으란 말이요?”    약이 오른 한길수는 꽥 고함쳤다.     “이 놈, 내 명을 거역할텐가? 어디 죽어봐라.”     한길수는 일본헌병들에게 김 구장을 바줄로 묶으라고 손시늉했다.     뒤이어 그는 두 팔을 뒤로 탈아 꽁꽁 묶은 김 구장을 끌고 마을 복판에 자리 잡은 널찍한 마당으로 갔다. 일본 헌병들은 김 구장을 마당 한복판에 있는 늙은 비술나무에 꽁꽁 묶어놓았다.    한길수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몽땅 이 마당에 모여라. 마당에 나오지 않는 날엔 일본제국의 총칼 맛을 보일테다!”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비술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일 밭에 나가고 어린애들까지 다 해도 마을 사람들은 20여명 밖에 모이지 않았다.    한길수는 번대머리에 돋은 땀방울을 생강 같은 손바닥으로 뚝뚝 찍어  닦으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난 우시장 일본경찰국 사무 청사 공지 총 도감 한길수야!”     그러자 마을 사람들 속에서 웅성거렸다.     누군가 “저 영감이 고개 넘어 영월동의 난봉쟁이 한길수가 아니냐?” 하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 속에서 쑤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이어졌다.      "저 소문난 건달놈이 일본 놈 덕분에 승급했구먼."     "저게 일본 놈들을 등에 업고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는 즛살을 어떻게 보겠니?"     "흥! 세상이 점점 더럽게 변해가는구먼."      허나 길수의 고함질은 계속 울렸다.     “김 구장은 대일본제국의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는 공지에 나가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방애하기까지 했다. 그 죄는 하늘에 사무치는 용서하지 못할 대역죄다. 오늘 마을사람들 앞에서 처벌한다. 이후에 누구든지 자기 집일을 하면서 대일본제국의 일을 하러 공지에 가지 않는 날엔 이 영감처럼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한길수는 숱한 마을 사람들 앞에서 말채찍을 휘둘러 김 구장의 가슴이고 다리고 사정없이 쨩 쨩 후려쳤다.     김 구장은 한길수가 휘두르는 채찍에 맞아 베옷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살갗이 채찍에 묻어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닥치오!”    이때 훤칠하게 생긴 중년사나이가 마을 사람들 속에서 뛰쳐나왔다.    한길수가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마을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밭에서 하나둘 마을로 돌아와 비술나무마당에 모여들었다.    “네 놈은 누구냐?”    한길수는 휘두르던 채찍을 들어 그 중년사나이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난 이 늙은이 맏아들 영진이오.”    중년사나이는 가슴을 쑥 내밀고 따지고 들었다.    “왜 죄 없는 우리 아버님을 이렇게 모질게 치는 거요?”    한길수는 억이 막힌 듯이 번들이마를 쳐들고 대가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그 애비에 딱 그 아들놈이구나. 네 애비 대일본제국의 사무 청사를 짓는데 가지 않은 건 둘째고 뒤에서 마을 사람들이 가지 못하게 방애했다. 그래도 죄 없어?! 대역죄야, 목을 쳐도 과하지 않아.”     한길수 우멍눈에서 무서운 불빛이 번쩍였다.      “이 놈, 죽어봐라! 이 놈!”    한길수는 이를 악물고채찍을 휘둘러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런데 영진은 왼팔을 들어 날아드는 채찍을 받아 꽉 틀어쥐어 홱 챘다. 채찍을 빼앗긴 한길수는 일본 헌병의 손에서 군도를 빼앗아 들고 휘둘렀다. 질겁한 애들이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만두오!”    이때 비술나무에 묶인 김 구장이 피가 낭자한 얼굴을 겨우 들면서 고함쳤다.    “한도감, 우리가 역사에 나가면 그만이 아니요? 무고한 사람을 자꾸 치지 마오.”     한길수는 군도를 내리우면서 살기등등했던 낯에 간교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기다렸던 말이었던 것이다.     “그래, 이제야 박바가지 같은 대가리 제대로 돌아섰군. 삯전도 주는데 왜 공지에 나가지 않아?  일본제국의 총칼 맛을 볼 게 있는가!”     한길수는 득의양양해 마을 사람들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쳤다.     “들어! 무릇 열여섯 살 이상 되는 사내들은 몽땅 내일부터 우시장에 가서 공지 일을 해야 해. 가지 않는 자가 발각되는 날엔 대일본제국의 법에 의해 엄벌을 가할 거야. 알겠는가?!”     그러자 마을사람들은 못마땅해 웅성거렸다.      “그래 저 밭의 감자랑 강냉이랑 제때에 걷어 들이지 않으면 어쩌오?”     “곡식이 눈 밑에 들어가면 뭘 먹고 산다오?”     “멧돼지 성화에 밭에 묻어둔 감자 아까워 죽겠는데."     “별 영감을 다 보겠네. 어째 조선 사람이라는 게 일본 사람 편에 서서 말하오?”     지어 이런 말소리마저 들리었다.     “우린 조선 사람들인데 일본 사람들의 일을 하지 않는다고 일본법에 의해 처형해? 이거 참, 원.”     “글쎄 말이요. 그래 답답하다는 게오.”     한길수는 마을사람들을 노려보다가 세길 네길 펄쩍 뛰며 꽥 고함쳤다.     “헛소리를 작작 쳐라. 이젠 일본과 조선은 하나로 됐다. 우린 대일본제국의 법을 따라야 한다. 내일 나를 따라 몽땅 우시장으로 가자. 가지 않는 놈은 몽땅 김 구장처럼 엄벌할테야."   그는 발로 탕탕 땅을 구르며 땅방울같이 을러멨다.    "일하러 가지 말자고 선동하는 자가 있으면 이 일본 군도로  목을 치겠어! 알았어?! 엉?”     한길수는 마을사람들을 위협하려고 일본 헌병의 허리에서 군도를 쓱 빼들어  늙은 비술나무를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군도로 내리찍었다. 비술나무껍질이 군도에 찍혀 한 뼘이나 벗겨져 누런 살이 드러났다.     한길수는 한 고향 사람들을 다 잡아서라도 경찰서를 지으려고 미쳐 날뛰었다. 경찰서를 빨리 지어 바쳐야 끼무라한테 잘 보여 바라오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길수는 말을 타고 우시장으로 돌아가면서 엉큼한 궁리를 다 굴렸다.    (흥, 온 명천 간나새끼들 다 일본 콧수염쟁이한테 팔아 먹지 않는가 봐라. 대가루 경찰서장 쯤 얻어 해야겠는데. 으흠, 건데 마을 놈들 반발이 심해 식은 죽 먹긴 아냐.)    이튿날 마을사람들은 핍박에 못 이겨 이불 짐을 꿍져 지고 한길수와 일본 헌병들을 따라 우시장으로 떠났다.    신흥동에서 20여명의 끌끌한 인부들을 끌고 가게 됐다. 한길수는 한 고향 영월동에서도 숱한 사람들을 강제로 공지로 끌고 갔다.     인부들을 끌고 우시장으로 가는 길에 한길수는 개 잡은 포수처럼 어깨가 으쓱해져 더 못된 궁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명천 땅에서 누가 감히 이 어른 말을 거역해? 목이 날아나지 못해? 허허허. 인부들에게 삯전도 줄 필요없어. 내 돈은 뭐 벼락 맞은 소고기라더냐? 네깐 놈들이 감히 어쩐단 말인가? 으흐흐. 흐흐.)     옛 말에 마을에 부자 한 놈 있으면 온 마을 사람들 다 잡아먹는다고 했다. 바로 한길수 같은 놈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421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31)콧수염쟁이와 뜨개소 댓글:  조회:754  추천:0  2024-03-22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8. 콧수염쟁이와 뜨개소        품삯이 일루 희망의 꼬리를 쳐 숱한 농사군들을 유혹해 공지로 모여들게 했다. 돈의 마력은 고달픈 한숨을 쉬는 가난한 백성들을 고난일지 복일지 모를 쁠랙홀에 엉큼하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상호는 병완을 따라 공지에 와서 첫날부터 목재를 메 나르는 일을 했다.     (부지런히 일하면 품삯이야 벌겠지. 아버지 치료비라도 벌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빚을 다 물고 둘째누나까지 데려 내왔으면 더좋구.)    상호는 이런 일루의 희망을 품고 목재를 메고 병완 등이 일하는 목수 간으로 들어갔다.    한편 그는 한길수가 품삯을 선대해준다니 믿음이 가지도 않았다.   (그 영감은 고뿔도 남을 안 줄 깍쟁이 아닌가! 어쩌다 선심을 쓸가?)      대패질하던 병완이 상호를 보고 히죽이 웃었다.     “첫날에 너무 무리하게 메지 말고 천천히 해라.”    “예, 많이 나르면 삯전이랑 많이 주겠지유? 그 깍쟁이 영감이, 정말 해 서산에서 뜨잖습둥?”     “글쎄, 그 깍쟁이 웬 영문인지 삯전도 푼푼히 주더라.”     상호가 허리 굽혀 인사하고 나가는데 기준이 목재를 메고 들어섰다.     “아버지, 쉬엄쉬엄 일합소.”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나무를 들어 왼눈을 지긋이 감고 곧게 대패질했는가 보았다.     “에이구, 이런 목재로 어떻게 층집을 짓는다고 이래?”    기준이 볼라니 대패질한 나무에 나무벌레가 먹어 들어 간 자리가 있었다. 저쪽 나무통에 보니 톱질하다가 잡아낸 나무벌레가 몇이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아니, 저 벌레가 나무를 파 먹으면 집 기둥도 다 끊어나지 않겠습둥?”    기준의 눈이 다 휘동그래졌다.    병완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런 나무로야 기둥이나 대들보를 못하지. 몇 해 가지 않으면 요 놈의 나무 벌레 때문에 대들보가 끊어지고 말겠다.”     병완과 기준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이런 나무야 마루나 깔았지. 별수 있습둥? 쯧쯧쯧.”    기준의 맥 빠진 말이다.    병완은 대패질한 나무를 훌 쥐어 뿌리였다.    “마루에도 어디 쓰겠니? 마루도 몇 참 못가서 꺼지겠다. 한 영감은 이런 목재를 주구서도 어찌나 재촉하는지 어디 쉴 새 있느냐? 이제 금방 기초를 쌓아놓았는데 올 가을 전에 3층짜리 목조건물을 다 지으란다. 그 것도 본 적도 없는 일본식 건물로. 헤이.”    병완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더니 계속 대패질을 했다. 두 팔이 힘을 쓸 때마다 두 팔에 근육이 불뚝불뚝 살아났다. 마치 성난 용 두 마리가 꿈틀거리는 상 싶었다.     기준은 아버지 옆에 다가서서 근심어린 말을 올렸다.     “아버지, 이 많은 목수 일을 어떻게 아버지와 몇 사람이 다하겠습둥? 나도 하랍둥?”    병완은 기준한테 근심어린 눈길을 보냈다.    “글쎄, 넌 여편네가 막달이 돼서 몇 날이나 하겠니? 예산날이 언제쯤이라던?”      “아마 음력으로 시월 중순 쯤 이랍더구마.”     “음, 그럼 한달 푼히 있구나. 한영감하구 말해보고 그렇게 하자.”     창준도 한발 나섰다.     창준은 아버지를 닮아 훤칠하게 생긴 동생 기준과는 달리 보통 키에 호리호리하게 생겼다. 성격도 아버지를 닮은 동생 기준은 시원시원하게 툭툭 내쏘았지만 창준은 선비의 틀이 좀 난데다가 침착했다.     “아버지, 나도 목수 일을 배워서 하면 안 되겠습둥?”    병완은 대패질을 하다 말고 창준을 정색해 바라보면서 말리였다.     “얘, 넌 몸이 약해서 이렇게 힘든 목수일은 못한다. 삼부자가 다 목수 일을 하면 남들이 뭐라겠니? 저 놈들이 삯전을 많이 타자고 목수 일을 한다 할 게 아니냐? 기준은 어금의 결혼잔치준비를 해야 하지 않니? 그래 기준은 돈이 바쁜 것도 있다. 그러나 넌 급히 쓸 돈도 없는데 계속 잡일이나 해서 먹을 벌이나 해라.”    아버지 성미를 잘 아는 창준은 더 말해보았자 쓸 데 없다는 것을 알고 자리를 떴다.    이때 때마침 한길수가 중절모를 비뚤랑하게 쓰고 개화장을 휘두르면서 일본경찰국 국장 끼무라와 함께 목수 간에 들어섰다.    끼무라는 경찰국장에 헌병대 대장까지 겸하고 있어 우시장에서는 최고로 세도를 부리는 자였다. 사무실에 들어앉으면 국장사무를 보고 어디에 사고가 생기면 헌병대를 불러 출마하면서 헌병대 대장질을 했다. 이걸 두고 한길수가 아첨하는 말을 빈다면 "말을 타면 천군만마를 호령하고 말에서 내리면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 끼무라는 "낮에는 조선의 백성들을 못 살게 굴고 밤이면 미녀들을 껴안고 허리 불러지게 해대는 색마"였다.     끼무라는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병완의 가까이에 다가섰다.     그러나 병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패질을 계속 했다.     한길수가 중절모를 벗어 바로 쓰면서 끼무라 국장에게 병완을 소개했다.     “끼 국장님, 아니, 에헴, 끼무라 국장님, 이 목수는 우리 공지 목수 일을 책임진 김 도감입니다.”     통역 류강철이 통역해주었다.     끼무라 국장은 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병완의 우람진 체구와 근육이 불뚝불뚝 살아난 팔뚝을 보았다.     그는 하얀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긴상(김군), 하지메마스데(처음 보는데). 도조 요로씨꾸(잘 부탁하오).”      "뭐 하지마. 마슨다구?" 병완은 코수염쟁이를 피득 쳐다보고는 손을 잡지 않았다. 일어로 지껄이는 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것도 있지만 일본 사람의 손을 잡기도 싫었다. 그는 대패질을 계속 하면서 먼지 묻은 왼손을 쳐들어 손가락을 폈다 꾸부렸다 했다. 뜻인즉 손에 먼지가 묻어 악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핑계였다.      끼무라는 자존심이 상한대로 손을 되돌려가면서 대패질한 나무판자를 쥐여 어루만지었다.     “요로씨이(좋아)!”    끼무라는 엄지를 내밀었다.    류강철은 옆에서 한길수와 병완에게 통역해주었다.    “대패질을 잘했다고 치하하네. 감사를 드리게나.”    병완은 끼무라의 코 수염과 한길수의 번대머리를 번갈아보다가 대패질을 계속했다.    “빈 입만 놀리지 말고 삯전이나 푼푼히 달라고 하게나.”    류강철은 그 당돌한 말을 듣고 입을 딱 벌렸다. 한길수도 황급해났다.    그런 줄도 모르고 끼무라는 그저 빙그레 웃으면서 류강철을 돌아다보았다.    한길수가 제꺽 받아넘겼다.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통역하게나.”   그러자 류강철은 “고노 히도와 ‘간샤시마시다’ 또 이이마시다.( 이 사람은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하고 되는대로 통역해 주고나서 한숨을 푸- 내쉬였다.    “요로씨이, 요로씨이(좇지, 좋아)!”    목수 간을 나서자 끼무라는 한길수를 돌아보고 말했다.    “금방 본 그자는 이름이 뭔가?”    “김병완이라고 부릅니다. 목수이름을 알아 뭘 합니까?”    끼무라는 도리머리 질을 했다.    “아니야, 그자는 장수같이 생겼어. 그런데 눈길이 곱지 않더란 말이야.”    한길수는 끼무라의 속심이 뭔지 몰라 우선은 병완이를 헐뜯어놓고 볼 판이었다.    “그 놈은 힘이 무 짐작이지만 우직하기로 뜨개 소 같은 놈입니다. 그래서 그 놈을 도감으로 시킨 겁니다.”    유심히 듣던 끼무라는 한길수를 정색해서 보면서 말했다.   “저런 우직한 놈은 소처럼 잘 얼려서 부려먹어야 하네. 자칫하면 뜨개 소처럼 뜰 게 아닌가?”    한길수는 끼무라 앞에서 연신 허리를 굽씬거리었다.    “예, 알았습니다. 끼 국장님, 아니, 끼무라 국장님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뜨개소가 뜨기만 하면 가차 없이 메로 대가리를 까 부셔 뿌리를 뽑아버리겠습니다. 헤헤헤.”     “아니요. 내 말은 뜨개소가 뜨지 말게 잘 얼리라는 게요. 잘 얼려서 우리 황군의 경찰국 사무 청사를 잘 짓게 하란 말이요?”    “에- 예, 예, 알았습니다.”    자기까지는 아주 일본상전의 뜻을 잘 이해한 것 같았는데 틀릴 줄이야.    “예, 예, 먹을 풀을 푼푼히 줘서 뜨개소를 잘 얼립죠. 저 놈이고야 저 많은 인부들을 이끌고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지을 수 있으니까.”    끼무라는 몸을 한길수에게 돌리면서 물었다.    “저자가 인부들의 우두머린가?”    “아니, 내놓고 그런 건 아니지만 인부들이 저 놈의 말을 잘 듣지요.”      한길수는 병완을 헐뜯는다는 것이 그만 말이 빗나간 것을 알고 혀를 홀랑 내밀었다가 감빨았다.      끼무라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면서 목수 간 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김병완이라? 알았네.”    끼무라는 나무를 나른다, 톱질을 해 원목을 끊는다하면서 들끓는 공지를 돌아 보고 나서 한길수가 이 많은 인부를 데려다가 일을 해재낀다고 일본말로 연신 치하했다.    그는 코수염을 매만지면서 한길수의 번들 이마와 우멍 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한상은 정말 능력이 있는 놈이야, 이번 일만 잘하면 자위대 대장쯤은 시켜야겠어.)    한길수는 상전의 치하에 어깨가 으쓱해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렸다.    끼무라는 한길수의 어깨를 다독여주면서 분부했다.    “한상, 이제 가을 전에 2층집을 다 지어야겠네.”    “품삯만 푼푼히 주면 저 놈들이 문제없이 지을 겁니다.”    강철이 통역해주자 끼무라는 히죽이 웃더니 한길수의 가슴을 주먹으로 퉁퉁 치면서 말했다.    “대일본제국의 경찰국을 짓는데 무슨 놈의 삯전이야?”    통역을 들은 한길수는 낯으로부터 번들이마까지 뻘겋게 번져갔다.    “난 이미 숱한 삯전을 주었소이다. 이젠 재물이 거덜 날 지경입니다.”    한길수가 손수건을 꺼내 번들 이마에 송골송골 돋은 식은땀을 뚝뚝 찍으면서 말했다.    끼무라는 군도자루를 바른 손에 바로 잡아 쥐더니 눈알을 부라리면서 한길수를 쏘아보았다.     “한영감, 대일본제국을 위해 죽으면 어떤가?"     한길수는 두 손을 쳐들고 손사래를 쳤다.     "아니, 건 아니구. 저."     끼무라는 한길수를 쏘아보며 지껄여댔다.    "그까짓 몇 푼 안 되는 재물 그렇게 아깝소이까?”    한길수는 무릎이 다 나른해져 비칠거렸다.    그는  끼무라가 간을 빼가는듯 배 아팠다. 그러나 그는 발바리로서 머리도 빙글빙글 잘도 돌아갔다.    그는 용케도 발라맞췄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내 집을 팔아서라도 경찰국을 져야 하죠.”     그제야 끼무라는 한길수를 웃음기 담긴 눈길로 보면서 어조를 낮췄다.    “한상, 이제야 대일본제국의 충신답네그려. 껄껄껄.”    끼무라는 몇 대 안 되는 코 수염을 슬슬 쓰다듬었다.    “한상 가을 전에 집을 다 짓자면 이 인부들로는 안 되네. 더 모집해오게나.”    “예, 응삼을 운주동과 신흥동, 가마골에 보냈습니다. 근심하지 마시오.”    “응, 요로씨이(좋아), 우린 한상만 믿겠네. 올 가을에는 새 경찰국 사무 청사에서 사무를 봐야 하겠네.”    한길수는 끼무라 앞에서 연신 중절모를 벗어 쥐고 아픈 허리를 굽혔다.   한길수의 비굴한 모양을 목수 간에서 내다보고 병완은 건 가래를 퉤 내뱉었다.    “퉤! 언제부터 저렇게 구역질나게 번졌어?”    덕팔도 손바닥에 침을 뱉어 톱자루를 잡고 쓰르륵쓰르륵 톱질하면서 코웃음쳤다.    “흥! 더러워서. 보아하니 일본 경찰서나 파출소를 짓는 모양이오.”    최동욱은 자귀질하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지었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 고장에 들어와서 이렇게 큼직한 집까지 져 들고 안방주인행세를 할 예산이구만.”    “글쎄 말이네. 정말 삯전이 아니면 일본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싶지 않네.”    그들이 이렇게 말을 주고받으면서 삯전을 벌 일루의 희망을 품고 목수 일을 하다나니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판이다.      가을 하늘은 높고 프르러 다 올려다보였건만 일제 철발굽 아래 인간세상의 풍운조화는 예측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420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 (30) 일루의 희망 댓글:  조회:584  추천:0  2024-03-22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7.일루의 희망     병완은 영월동에 돌아오자마자 먼저 덕팔의 집부터 들렸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삯전이라도 좀 벌어 바쁜 목이라도 열게 하려고 일루의 희망을 품고 마을 사람들을 공지에 불러가려고 서둘렀다.     덕팔이네 낮다란 초가삼간은 목수네 집 같지 않게 지붕 중간이 푹 꺼져 있었다. 그만큼 안주인이 시시콜콜 앓는 이 집의 푹 꺼진 살림형편을 보여 주는 상 싶었다.     덕팔은 어찌나 살림형편이 구차하였으면 서른 살이 퍽 넘어서야 마대치기장가를 다 들었겠는가.     어느 날 밤에 덕팔은 병완과 함께 가마 골에 가서 자기보다 열다섯 살이나 어린 과부네 집에 뛰어 들어가 딸 필순을 마대 안에 넣어 메다가 장가들었던 것이다. 후에 필순의 본가집 엄마가 알고 찾아왔을 때에는 필순이가 배가 남산만할 때였다. 그리하여 필순의 본가 집에서는 필순을 데리러 왔다가 덕팔이가 사람이 좋은데다가 기왕 쑤어놓은 죽을 밥으로 짓는 수가 없는지라 별수 없이 그만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고는 집으로 돌아 가버렸다.     병완이 삽작문을 열고 들어서자 점순과 철규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큰아버지!”     “오, 그래. 엄마는 더 앓지 않았니? 에이고, 이젠 점순이도 처녀티 나는구나.”    병완은 점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열네살인 점순은 정말 마치 시골에 방실 피어나는 물기 머금은 민들레 같았다.    병완은 마른기침을 깇으면서 윗방으로 들어갔다.     “아주버님 오셨소? 쿨룩쿨룩.”    아래 방에서 머리에 흰 수건을 동인 필순이 겨우 일어나 앉으면서  인사했다.    병완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일어나지 마오."    그는 괴춤에서 1원 20전을 꺼내 철규의 손에 쥐어주면서 아내에게 주라고 아랫방 쪽으로 손시늉했다.    "이건 어디서 난 돈입둥?"    필순은 철규가 받는 엽전을 보고 반색했다.    "한길수 영감이 미리 삯전을 줘서 가지고 왔소이다."    필순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이고, 그 구두쇠 어쩌다가 인심을 다 쓴다우?”    필순은 삯전을 보자 주름진 얼굴에 웃음기를 띠였다.      “전번에두 말했잖소? 우리 신설집 병관 형님을 찾아가서 병을 보이라는데. 어째? 치료비 모자라면 내 병관형님과 말할 테니까. 어서 가 병 보이오.”    병완의 말에 필순은 흰 수건을 동인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떻게 인정빚까지 지고 살겠습둥? 쿨룩쿨룩, 에헴. 차라리 내가 빨리 죽고 말아야지. 헌데 죽어지지 않는단 말입구마. 쿨룩쿨룩.”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이제 초겨울에 집짓기 끝나면 덕팔이하구 같이 우리 형님을 찾아가 보이기오.”    한참 후 그는 우쭐 일어났다.     “아무튼 우리 돌아올 때까지 몸조리를 잘하오. 철규야, 밭일을 그만 두구 오후에 한 영감네 마차에 앉아 우시장에 가거라. 날씨가 싸늘하니까 꼭 아버지하구 네 이부자리를 가지고 가라.”     “예. 그러잖아두 강냉이랑 뜯어 들여오면 아버지랑 일하는 공지루 찾아가보자 했습구마.”    철규가 뒤더수기를 긁적이면서 씨물씨물 웃었다.   아랫방에서 필순은 넉두리를 해댔다.    “에이고, 그 강냉이를 집에 들여올게 얼마나 남았다구 그러냐? 한 영감한테 가져 가구나면 온 한해 농사를 지은 게 남는 게 있다구 그러우? 아예 우시장에 가서 한날에 쌀 서너근씩 버는 게 낫지.”     병완은 기대에 찬 눈으로 점순을 바라보면서 문 밖으로 나와 짚신을 신었다. 그는 덕팔이네 앞날이 근심스러워서 땅바닥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어쩌면 마흔살을 갓 넘긴 아낙네 저렇게 못쓸 페병에 걸려 쿨룩거린단 말인가? 에이, 내  돌아오면 꼭 형님네 집에 데려다가 병을 보여야지.)     그는 점순과 철규의 배웅을 받으면서 최동욱의 집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최동욱의 아내 박경돈은 마흔이 넘었건만 의연히 옛날 고왔던 모습이 엿보였다. 그녀는 애를 낳지 못했기에 맨 날 큰 죄나 지은 것처럼 쪼그리고 앉아 살았다. 자식이 없어서 적은 집식구들의 입을 건사하기 쉬울 것 같았지만 최동욱의 집은 살림이 피지 못했다. 그만큼 동욱은 집으로 들어오면 아내와 신경질을 썼고 술만 마시면 도깨비장물을 먹은 사람처럼 경돈을 때리곤 했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병완이한테 혼 난적이 있었다. 정말 경돈은 이름처럼 돼지마냥 동욱에게 매를 맞고 욕을 먹고 살았다. 그래서 경돈은 앓지 말라고 본가 집 아버지가 돼지라고 이름을 지은 것마저 탓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타고난 팔자라고 생각하자 모든 것을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두고 되는대로 살고 있었다.     병완은 동욱의 아내 박경돈의 처지가 불쌍해 한숨을 푸푸 쉬면서 개울을 건너 둔덕으로 올라갔다.     경돈이 마당에서 뭘 주섬주섬 주어 돌려놓다가 인사를 했다.     병완은  삽작문 밖에서 경돈한테 삯전을 건네주었다.     “이 돈 1원 20전은 이 집 나그네 엿새 일한 삯전이오. 이부자리나 저 한 영감 집에 가져다주오.”    경돈은 병완의 믿음직한 태산 같은 뒷잔등을 바라보며  뒤에서 푸념질했다.    “에이고, 이 놈의 집에 돈을 서 말이나 쌓아 놓은들 무엇에 쓴담?”     병완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개울물을 건너 창렬의 집에 터벅터벅 올라갔다.    (집집마다 읽기 어려운 경이 있다더니 이 마을에 어느 집엔들 답답한 일이 없겠는가. 덕팔은 아내가 앓고, 동욱은 자식이 없어 대사고, 창렬은 집기둥 같은 창렬이 폐병을 앓아서 근심이 태산 같지 않은가. 쯧쯧. 세월이 더러워서, 원.)     병완은 이번 걸음에 상호를 공지에 데리고 가려고 마음먹고 올리막을 성큼성큼 걸어올라갔다.     상호는 집울안에서 마른 나무장작을 팡팡 패고 있었다. 그는 나무장작을 주어 땔나무무지에 쌓다가  병완을 발견하고 허리를 펴고 환성을 질렀다.    “큰아버지, 우시장에 갔다가 언제 왔습둥?”   병완은 삽작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문안부터 했다.    “아버지랑 무사하냐?”  상호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아버지는 병이 괜찮습구마. 큰아버님이 준 은덩이를 가지고 신설집에 가서 약을 져다 대접하였더니 많이 낫습구마.”   이때 창렬과 명순이 웃으면서 바깥으로 나왔다.   “그래, 공지에서 벌이가 되던가?”   창렬이 묻는 말에 병완은 창렬의 어깨를 다독이며 선선히 대답했다.   “밥벌이는 될 거 같네. 하루에 쌀 서너 근 품삯은 주더구먼. 한길수 어쩌다가 인심을 써서 제 돈으로 품삯전을 푼푼히 주더구먼.”   병완은 마루에 걸터앉아 두리번두리번 집안을 들여다보더니 물었다.    “어째, 은녀는 보이지 않소?”    창렬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다시 한길수가네 집으로 들어갔소.”    금방까지도 벙긋거리던 창렬의 얼굴에 수심의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병완은 그 모양을 보고 이상한 감이 들었다.    “그새 무슨 일이 있었는가?”   병완의 물음에 창렬은 그저 머리만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명순이 문설주에 기대여 옷고름으로 눈시울을 닦으면서 어깨를 들먹이는 것이 피뜩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소?”    그러나 창렬은 병완을 믿는 터라 넉두리를 했다.    “은녀는 부엌데기로 들어가고 가을에 감자랑 강냉이랑 다 한길수를 주고나니 새해 보릿고개를 넘길 것 같지 못하오.”    병완은 창렬의 손을 잡고 상호를 바라보며 간곡히 말했다.    “그럼 상호를 공지로 보내오. 삯전이라두 얼가간 벌면 살림에 보탬이 되겠는데."    창렬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시원한 대답은 없었다.    상호는 도끼를 놓고 땀을 씻으면서 아버지를 보고 간청했다.   “나를 공지에 보내줍소. 겨울 죽벌이는 되겠는뎁쇼.”   창렬은 마지못해 머리를 끄덕였다.  “어서 큰아버지를 따라 갈 차비나 해라.”   상호는 허리를 꿉썩 굽혔다.   "예. 알았습구마."   병완은 점심때가 된지라 엉덩이를 우쭐 들었다. 그러자 창렬이 손을 덥석 잡았다.   “이보게. 점심이나 잡숫고 가게나.”   “아니, 나도 집에 가서 점심 전에 이불 짐을 챙겨서 한 영감네 집에 가져가야 하네. 상호는 근심하지 마오. 내가 있으니까.”   병완은 창렬의 생강처럼 메마른 손을 놓고 삽작문 밖으로 나왔다. 뒤에서 창렬은 병완의 등 뒤를 믿음에 찬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창렬이네 빚을 물고 은녀를 데려 내 오려는 일루의 희망을 품고 상호 등 숱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데리고 공지로 가는 길을 떠났다.      병완은 위망이 높아 우시장 부근에서는 병완의 말이라면 누구나 다 따랐다.  숱한  마을 사람들은 품삯을 준다는 말에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는 공지에 개미떼처럼 몰려갔다.
419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29)똥벼락을 맞은 번대머리 댓글:  조회:733  추천:0  2024-03-05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6. 똥벼락을 맞은 번대머리               친일 주구 한길수의 야망을 실은 마차가  일본 경찰서를 멀리하고  황홀한 꿈의 절주에 맞춰 귀딸까닥딸까닥 귀맛좋게 달린다.       마차가 보름달을 품에 안은 색마를 싣고 시골길로 한참 달릴 때다.      색마 한길수가 마차 위에서 무릎을 탁 쳤다.      “아차, 깜빡 잊었구나."     그는 응삼을 돌아보며 물었다.     "자네 최구장의 서당방에 가서 공부한 적이 있지 않은가?”     “예.”      한길수는 응삼의 어깨를 탁 쳤다.    “하늘이 나를 돕는구먼. 자네는 이 길로 먼저 최구장을 찾아가서 운주동 사람들을 동원해 달라고 하게나. 끼무라 국장이 다그치라고 하던데.”     응삼은 뱁새눈이 실눈이 돼 상을 찡그리었다.    "좀 살살 칩소. 간 다 떨어지겠습구마."     “잔말 말구 어서 운주동하구 신흥동, 가마골에두 돌아다니면서 인부를 모집하라구. 한 백명 있어야 돼. 알겠는가?!"    “백명이나?"    "백명이면 백명이지. 뭐 잔말이 그렇게두 많아?"    "예, 알았습구마.”    응삼은 땅방울같이 을러메는 길수 앞에서 잡소리 집어삼켰다.    마차는 둬 시간 달려서 운주동과 영월동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 갈림길에 들어섰다.    병수가 마차를 세우자 응삼이가 마차에서 노루새끼처럼 폴짝 뛰어내렸다.    응삼은 떠나가는 마차에 대고 실 돌피 같은 허리를 꿉썩거렸다.    마차는 또다시 한참 제방둑길로 달렸다.     그때 병완이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마차를 세워. 병완이, 웬 일인가?”    한길수가 이상해했다.    득호가 말고삐를 채 달리는 마차를 세웠다.    병완은 제방둑길 옆으로 내려갔다.    “저 산등성이에 있는 감자밭에 좀 가봐야겠네. 제때에 거둬들이지 못해 멧돼지들이 파먹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네.”    “음, 알았네. 자네도 마을사람들을 많이 동원해보게나.”    “그러지.”    병완은 허리를 구부정하고 산등성이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마차는 계속 어두워져가는 강둑길로 달려갔다. 저 멀리 어슴푸레 마을이 다가왔다.    한길수는 고을에 기생년을 가득 두고서도 영월동에도 놀이개계집을 둘 예산으로 은녀를 한사코 자기 집에 끌어다 넣었던 것이다.   (성칠이, 그 새끼, 사냥해서 엄창렬의 빚을 문다고? 사냥하기 어디 그리 식은 죽 먹긴가? 쳇!)    순간 길수는 눈앞에 머리채를 치렁치렁 땋아 늘인 풍만하고 생생한 은녀의 반달 같은 얼굴이 떠올랐다.    (은녀는 정말 우리 산골 치고는 이뻐. 토스래기 감자처럼 복실복실 하구 사과처럼 사박사박한게. 고 계집 정말 통 채로 먹어도 비린내 나지 않을 거야. 으흐흐.)    그는 본처를 맏아들 철주와 함께 서울로 보내고 월선을 들여앉힌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월선은 어려서는 순수한 계집으로 써먹기는 좋았다. 그런데 마흔 고개가 가까워 가면서 우악스러워져 쩍 하면 한길수가 어데 가서 다른 계집을 데리고 노나 눈만 밝히고 심술을 부리는 것이었다.    (에참, 월선이 눈치가 보여서 어디 은녀를 데려와도 챌 틈이 있는가? 흥! 참 재수 없어. 처녀라면 눈독을 들이는 줄 알고 눈깔이 화등잔이 돼서 살핀단 말이야.)    순간 그의 눈앞에는 마름의 색시 춘실의 모습이 피뜩 떠올랐다.    (그래, 은녀를 삼키지 못하면 춘실이라도 데리고 놀았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오늘 응삼이를 가마골에까지 가보라고 해놨으니 이 틈에 스리슬쩍. 으 흐, 흥.)    춘실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이모네 집에서 자랐다. 이모부가 세상 뜨면서 이모계부가 들어왔는데 그자는 색정광이었다. 이모가 없기만 하면 춘실에게 슬금슬금 다가들어 손을 잡고 지분거렸다. 춘실은 능구렁이 같은 이모계부의 능욕에 신물이 나서 도망쳐 나왔다. 그녀는 우시장의 거리를 헤매다가 그만 건달 놈들에게 걸려들어 혼난 적이 있다. 그 후 춘실은 건달들과 휩쓸려 다니면서 마구 굴렀다. 하여 이모네는 춘실이 열다섯 살 나던 해에 스물다섯 살이나 연상인 응삼에게 시집보냈던 것이다.    (춘실이, 그년이 걀쭉한 게 예쁜 거야. 으흐흐, 오늘밤에 놀아 볼가? 춘실을 건사하느라고 응삼이가 야단치라지. 이 어른 앞에서는 안 될 걸. 흥!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춘실이구, 은녀구 다 한가마에 삶아 먹을 거야. 으흐흐흐.)    그는 눈을 지긋이 감고 걀쭉한 춘실을 끌어안고 풍만한 젖무덤을 주물렁 주물렁 주무르는 꿈도 꾸었다. 그런데 불시에 그의 눈앞에 춘실의 몸에 휘감긴 숱한 사내들이 떠올랐다. 순간 역겨운 반감이 목구멍까지 울컥 치밀었다.    (춘실의 몸뚱이는 기생년들보다 더 더러워. 안 돼, 그년은 한물 지나간 년이야. 에- 퉤, 퉤!)     그는 다시 머리채를 치렁치렁 땋아 늘인 은녀를 떠올렸다.     (오, 은녀, 그 년 터질 것만 같은 하얀 젖무덤, 펑퍼짐한 엉덩이, 아이고 생각만해도 죽을 거 같애.그래, 춘실이 같은 건 열개 주고서도 못 바꾸지.)    은녀 하얀 허벅다리와 엉덩이를 련상하자 한길수는 그게 불끈 일어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성욕으로 온 몸이 찡 전률했다.    "오홍!"    그가 고양이 불알 앓는 소리로 신음소리를 뱉어냈다.    “아이쿠!”   마차가 제방둑길 굽인 돌에서 그만 운주하 강바닥에 쿵 굴러떨어졌다. 하도 강둑의 팔뚝만큼 한 버드나무들이 굴러 떨어지는 마차를 조금 막아주었으니 말이지. 무슨 사고가 났을지 몰랐다.    마차가 굴러떨어지는 순간,  득호는 훌쩍 뛰어내렸다. 하지만 한길수는 마차와 함께 그만 사품 치는 차디찬 가을강물에 빠지고 말았다. 마차 밑에 깔린 길수는 강물에서 허우적거렸다. 다행히도 가을이여서 강물이 얕았으니 말이지. 여름철 같았으면 길수는 영낙없이 물에 빠져 죽었을 것이다.    득호는 제방둑아래로 느릿느릿 내려가면서 물었다.    “주인님, 괜찮습둥?”   한길수는 물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상을 찡그린 채 호통쳤다.   “야, 이 놈아, 아이고, 번마다 사고내니?! 아이고.”   득호는 이를 쁘드득 갈았다.   (개새끼, 항상 내 머리를 개화장으로 딱딱 치던 놈. 이번에도 썩어지지 않았구나. 내 네놈을 죽이지 못한 게 한이야.)   “빨리 내 다리를 빼내라. 애고고, 아파 죽겠다. 사람을 살려라. 아이고, 나 죽는다, 죽어.”   득호가 느릿느릿 내려가 안간힘을 다해 마차 한쪽을 들었다.  그제야 길수는 마차 밑에 깔린 다리를 빼내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뭐야?   물에서 벌떡 일어난 말이 똥물을 쫙 내갈겼다. 그 통에 한길수의 번대머리는 말똥물벼락을 맞고 말았다.    “에퉤, 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 등을 깬다더니, 에퉤, 퉤. 번마다 똥물 벼락이야. 이게 무슨 꼴이람?”   한길수는 양손으로 낯에 뛴 말 똥물을 쓱쓱 닦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개자식, 마차를 어떻게 몰았으면 이 넓은 길에서 강바닥에 처박힌단 말이냐? 에, 퉤, 퉤, 더러워라. 이전에도 딱 여기서 당나귀차를 번지더니. 이제 집에 가봐라. 네놈을 가만 놔두는가. 개 놈 새끼!”   득호는 손바닥에 물을 담아 길수의 번대머리를 빡빡 닦어주면서 중얼거렸다.   “죽었는가 했는데. 죽지 않았으면 다행입지.”   길수는 아픈데 약을 올려 주는 것 같아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 개놈아, 내 죽기를 그리두 바랐느냐? 개자식! 말하는 거 보면 고의로 차를 번지지 않았어?!”   길수는 부아가 터져 똥물이 다 씻어진 번대머리로 득호의 면상을 들이받았다.   떵 소리와 함께 득호는 면상이 쥐가 밟아놓은 장마당이 돼서 강물 속에 썩박나무처럼 쓰러졌다.   “아이고, 주인님도, 살려주니까. 뜨개소처럼 뜨긴?”   길수는 강물에서 절버덕절버덕 걸어 제방둑으로 나가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개자식, 집에서 쫓아내지 않는가 봐라.”   길수는 제방 둑에 올라서서 발을 탕탕 구르면서 운주하강반이 다 떠나가게 고래고래 고함쳤다.   “저 물에 빠진 마차를 어쩌느냐? 엉?”   득호는 마차에서 말을 벗겨내면서 대구했다.   “말이나 가져가고 마차는 내일 사람들을 데려다가 끌어 올려가지.”   한길수는 야단쳤다.   “마차를 잃어버리는 날엔 네놈의 목을 썩 베서 마차에 제사를 지내겠다.”   득호는 말을 제방 둑에 끌어올려가면서 계속 맞대구를 했다.   “무슨 장사가 있어서 마차를 강바닥에서 끌어다가 가져간다고? 해가 다 졌는데 내일 와서 끌어가지.”   “무슨 일이오?”  그들이 강바닥에 떨어진 마차를 내려다보면서 한참 찧고 박고 할 때다.  생각지도 않은 병완이 돌아왔다.   “저걸 어쩌느냐? 이 놈 새끼, 마차를 어떻게 몰았으면 강바닥에 처박혔다니까. 난 마차에 깔려 하마터면 죽을 번했네.”   병완은 강바닥에 절벅절벅 내려가 마차를 들여다보더니 소리쳤다.   “득호, 마차에 말을 메우게나. 내 뒤에서 밀게.”   득호는 제방 둑에 떡 서서 두덜거렸다.    “아무리 힘이 세도 말도 못 끌어올리는 마차를 어떻게 건지겠소? 내일 마을 사람들을 데려다가 끌어올리기오.”    길수가 발을 탕 구르면서 득호의 뺨을 찰싹 갈겼다.   “냉큼 말을 메우지 못할까?”    득호는 병완이 마차를 바로 잡아 세워놓기를 기다려 말을 마차에 메웠다. 말이 앞에서 끌고 병완이 뒤에서 끙끙거리면서 힘써 떠밀자 마차는 힘겹게 한발자국한발자국 제방 둑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원래 경사도가 급하여 말이 그만 무릎을 꿇었다.    “말을 채찍으로 치게!”    병완의 고함소리에 득호는 말 잔등을 채찍으로 짱 내리쳤다. 놀란 말이 벌떡 뛰어 일어나면서 우로 껑충 뛰어올라갔다.    그때 병완은 마차 뒤끝을 번쩍 들어 둔덕 우로 떠밀었다. 마차는 제방 둑으로 올라갔다.    병완은 손에 묻은 모래먼지를 툭툭 털었다.   길수는 병완의 소 같은 힘에 혀를 끌끌 찼다.   “아직도 힘이 무짐작이군.”   길수는 분질러진 개화장을 들어 득호의 어깨를 탕 치면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개놈새끼, 네놈은 한뉘 머슴질이나 하다가 썩어질 놈이야. 죽을 번 한걸 생각하면 네 각을 다 뜯어 버려도 원수를 다 하지 못하겠다.”   “아이고, 주인님, 왜 이렇게 모질게 치오? 내일부터 내 마차를 몰지 못하면 누구 마차를 타고 명천에 갑둥?”   득호가 익살을 부리자 길수는 뺨을 찰싹 갈겼다.   “다시 마차를 몰 거 같아? 병수를 몰게 하면 했지. 네놈한테 마차를 맡겼다간 언제 깔려 죽겠는지 몰라. 흥, 가서 마구간이나 쳐내라.”     마차는 다시 어둠을 밟으면서 느릿느릿 달려 끝내 영월동에 이르렀다.   높다란 토성 앞에서 한길수는 개화장을 짚고 쩔뚝거리면서 오만상을 찡그리었다.   한길수는 집대문 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엄살을 부렸다.    “여보, 아이고, 나 죽소.”   월선이 버선 바람으로 황급히 마루 아래로 뛰어내려 암범처럼 달려 나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영감, 어찌된 일이예요? 어데 아파요?”   월선은 한길수의 팔을 부축하다가 상을 찡그렸다.    “으, 차가와! 아니, 옷도 폭 젖었구먼요. 어떻게 된 거요? 또 허리 뚝 부러지게 기생년들하구 놀았는가요? 풍류를 즐기구 아픈 건 괜찮지요?”    한길수는 월선의 살진 팔에 몸을 기대면서 오만상을 다 찌푸렸다.   “마차 번졌어. 아이고, 허리, 다리 다 아파 죽겠소. 아니, 팔만 부축해 되오?”    그러자 월선은 팔마저 활 놓아버리면서 발까지 동동 굴렀다.    “어데 가서 오입을 하다가 혼나고 집에 돌아와 여편네하구 생 지랄이야!”   길수는 절뚝거리면서 겨우 다리를 옮겨 디뎠다.   “그런 일 없어!”   그때 응삼의 집 방문이 배시시 열리였다.   응삼의 처 춘실이 걀쭉한 낯을 반쯤 드러내며 바깥동정을 살폈다. 은녀도 물동이를 이고 대문 안에 들어섰다.    한길수는 여자들을 보자 더 죽는 소리를 냈다.    “이 쌍년들아, 제 집 주인이 아파 죽어도 대갈도 내밀지 않느냐? 저런 못된 계집들이라고야. 아이고, 나 죽는다, 나 죽어.”   그제야 춘실은 끌신을 작작 끌며 달려 나와 한길수의 한쪽 팔을 부축했다.   “아니, 주인어른, 어쩌다가 이렇게 모질게 다쳤어요?”    길수는 침방울을 튕기면서 고양이 불알을 앓는 소리를 쳤다.    “아이고, 저 득호란 녀석이 마차를 운주하에 처박았댔어. 아이고.”     “저런! 우둔한 놈. 그래 마차는 마사지지 않았어요?”    월선이 마차를 벗기는 득호를 흘겨보면서 묻는 말에 길수는 월선을 활 밀치면서 버럭 화를 냈다.    “저리 비켜! 내 상한 게 중요하냐? 그따위 마차가 중요해?”    그제야 월선은 혀를 홀랑 내밀었다.    “당연히 우리 주인님이 중요하지요. 해해해.”    월선은 부엌 문선을 잡고 서있는 은녀가 눈에 뜨이자 호통 쳤다.    “이년아, 멀쩡히 서서 뭘 해?! 주인어른을 부축하지 못하고.”    월선은 참말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차는 격이라고나 할까.    은녀는 머리를 숙이고 바삐 춘실과 함께 한길수를 거들어 마루에 올랐다.   한길수는 겨우 걷네 마네 하면서 호통 쳤다.    “저리, 피하란 데도! 보기도 싫다.”    월선은 눈을 흘리기면서 영감의 팔을 활 놓아 버렸다.    (에구, 어째, 어떤 땐 내 궁둥이를 졸졸 묻어다니다가, 흥! 이젠 다 파먹은 김치 독이라고 헌신짝 버리듯 하려고? 흥, 바람둥이 개 버릇을 개를 떼 주겠어? 양태머리 체네 보니 또 싱숭생숭해나나 보지.)     방안에 들어가자마자 한길수는 앓음 소리를 내며 쿵 쓰러졌다.    “아이고, 나 죽는다. 아이고, 내 다리야, 허리야! 여보, 젖은 옷을 벗기고 새 걸로 바꿔 입혀주오. 허리에 요도 깔아주오. 아이고, 저기 냉수도 한 사발 떠오오.”     월선은 밀창을 활 열고 들어와 두덜거렸다.    “어떤 땐 ‘저리 피켜!’라고 호통질치더니, 흥! 어떤 땐 시중이 끝이 없어? 쳇!”    월선은 영감의 젖은 옷을 와락와락 벗겼다.    한길수는 황급히 사타구니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월선은 춘실과 은녀를 올려다보면서 호령햇다.    “잠간만 나갔다가 들어오너라.”    춘실과 은녀가 나가면서 미닫이를 닫아버렸다.    월선은 사타구니에 걸친 젖은 것마저 벗기고 고리궤짝 안에서 새것으로 꺼내 바꿔 입혔다. 그리고 고리궤짝 우에 얹어놓은 요를 와락와락 내리워 길수의 허리 밑에 펴주면서 두덜거렸다.    “에구, 한 둬달은 편안히 자게 됐구먼.”     한길수는 신음소리를 연신 내면서 요를 깔고 들어 누우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아이고, 남은 아파 죽겠는데 계속 악다구니질이야.”    월선은 젖은 옷을 훌 안아 미당이를 열고 활 내던졌다.    “은녀야, 그걸 씻어 말리어라. 이 바쁜 양반이 래일 입고 가야지.”    은녀가 젖은 옷을 들어 부엌 쪽으로 내려갈 때였다.    “아이고, 나 죽는다. 춘실아, 들어오너라. 은녀도. 얼른!”    한길수는 미닫이를 열고 들어오는 춘실을 보더니 우멍 눈에서 한 가닥의 이상한 빛이 번쩍였다.    “춘실아, 여기 다리를 좀 주물러라. 아파 죽겠다.”   춘실은 감히 손을 척 대지 못하고 월선의 눈치를 올려다보았다.   월선은 또 빈정거렸다.    “주물러 줘라. 젊은 년의 손길이 더 좋은 모양이야.”    월선은 아예 안방에서 훌 나가더니만 미닫이를 쾅 닫아버렸다.    (허리와 다리를 상한 놈이 설마 일을 치겠어? 흥!)   월선은 안방에 대고 소리쳤다.    “은녀야, 넌 부엌에 내려와서 저녁상이나 차려라.”    “예.”    은녀는 위방에서 나와 부엌에 내려가 젖은 옷을 함지에 불러놓고 저녁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것부터 먼저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위방에서 색정광 한길수가 수작을 피우는 소리가 역겹게 들리었다.    “아이고, 좀 우로 올라가면서 꽝꽝 주물러라. 오, 오호, 그래, 어 시원하다.”    춘실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리었다.    “주인어른, 우리 집 사람은 함께 오지 않았어요? 아니면 우시장 공지에 있어요? 좀 우리 집사람을 많이 봐주세요.”    “그래, 근심하지 말라. 오늘 신흥동에 인부들을 모집하라고 보냈다. 에구, 아픈 데를 그렇게 주무르면 어찌나? 살살 만져라. 응, 응, 오호, 그래, 그렇게 살살. 그래. 아, 참 좋아.”    월선은 아래 방에서 위방에 대고 입귀를 비쭉거렸다.    (에구, 연놈들이 한창 논다. 음특한 놈, 허리 분질러져 가지고도 또 거기 근질거리는 모양이지.)    이때 안방에서 길수의 소리가 울렸다.    “거게 은녀 있냐? 춘실이 힘들어하니까. 이젠 네가 올라와 문질러라.”    월선은 듣다못해 위방을 향해 소리쳤다.    “아니, 저녁밥상을 차리는 애를 불러 가면 저녁은 언제 들겠어요?”     “안 먹어도 돼. 아파죽겠는데 저녁은 무슨 놈의 저녁. 아픈 데부터 만져야지. 으 흐, 시원하다.”     월선은 두덜거리면서도 은녀를 올라가라고 눈짓했다.    은녀는 행주에 손을 닦고 나서 위방 미닫이를 주르륵 열고 들어갔다. 이윽고 위방에서 한길수의 만족한 말소리가 들렸다.     “어, 시원하다, 시원해. 에구, 젊은 년의 손이 다르긴 달라. 보들보들한 게, 어, 시원하다. 시원해.”    “퉤!”     아랫방에서 월선은 위 방에 대고 하고 침을 뱉더니 입귀를 비쭉거리었다.    유흥을 즐기는 색마의 걸걸한 콧노래와 질투에 찬 아낙네 눈길이 반공중에서 부딪힌다. 보이지 않는 번개가 번쩍이더니 무수한 별찌가 마룻바닥에 쏟아져 내린다.
418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28) 고양이 쥐 생각 댓글:  조회:703  추천:0  2024-03-05
                   5. 고양이 쥐 생각              길수와 응삼은 웃음주머니 흔들거렸다. 둥글소 같은 병완이 모르쇠를 댈까 봐 은근히 근심했댔는데 일이 술술 풀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도 못 했다.      길수는 막걸리 기운이 점점 피자  한시름을 턱 놓고 목침을 베고 그 자리에 스르르 쓰러져 굳잠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숱한 미녀들을 끼고 황제처럼 놀아대는 황홀한 꿈 속에서 자맥질하기 시작했다.     응삼은 몸채에서 나오자 사랑채로 나갔다.     문소리 들리자 춘선이 도도거리기 시작했다. 그 잔소리 오뉴월에 장독에 서리 낄 지경. ㅋㅋ    “병완이 뭐 그리 대단해 주인은 하느님처럼 모신대요? 흥, 제 애비라도 그렇게 모시지 않을 거야.”    “쉿-”    응삼이 뾰족한 턱으로 몸채를 가리키었다.    춘선은 눈을 흘기며 혀를 날름거리며 계속 도도도거리었다.    “듣겠으면 들으라지. 뭐? 당신 사사건건 얼마나 고생했는데 왜 독집 한 채도 주지 않는대요? 병완이 뭘 했다고 도감에다가 은덩이까지  얹어 준대요? 이른 아침부터 불러다가 상빈대접하면서. 흥.”     응삼은 여윈 주먹을 춘선의 머리 위에 쳐들었다.     “야, 이년아,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들어. 작작 떠들어라. 입이 성해있는 게 원수냐?”     춘선은 주먹을 피해 저쪽으로 드텨 앉으면서 계속 종알거렸다.     “에이고, 바보 같은 나그네. 여편네와나 우쭐거렸지. 한뉘 꿉씬거려도 차례진 게 뭔가요? 맨 함경도 머저리들이 산골에 처박혀서 노는 꼬락서니 보기도 싫어, 진절머리 나! 흥!”     춘선의 콧방귀에 응삼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었다.     “빌어먹을 년, 너네 남대치는 뭘 그리 잘 났냐? 굶어 죽는 거 주인이 데려다가 걷어 주고 이렇게 유식한 나그네한테 시집보내주니 어째 배때 쑤셔나니? 응?”    춘실은  “빌어먹을 년”이란 말이 제일 귀에 거슬리었다. 그건 길거리에서 빌어 먹으면서 여기까지 왔다가 한길수를 따라 응삼에게 시집왔기 때문이었다. 응삼이 금방 “빌어먹을 년”이라고 했다고 그녀는 가마뚜껑을 들었다 쟁강 놓으며 가마뚜껑을 끌어안고 엉엉 울어댔다.      “에이, 빌어먹을 년.”      꼴보기 싫어 응삼은 길죽한 말대가리를 흔들면서 바깥에 나가 버렸다.     한편 집으로 돌아온 병완은 집 식구들에게 금방 한길수에게서 들은 말을 죽 했다.     성칠은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 저었다.     “아버지, 좀 심중하게 고려하시오. 한 영감이 무슨 일로 선심을 다 쓰겠습니까?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난 믿어지지 않습구마.”     그러나 병완은 자기 주견을 세웠다.     “밑져 본 전이라구 삯전만 주면 해 볼만 해. 어금의 혼수도 마련하구. 마을 사람들도 몇 푼 되지 않는 밭을 믿고 어떻게 명년 보리 고개를 넘기겠니? 이 좋은 기회에 좀 벌어서 쌀이나 사서 보태면 좀 좋아?"     성칠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러다가 한길수 삯전을 안 주면 어쩝둥?"    "삯전을 주지 않는 날부커 일하지 않지. 뭐.”    병완은 벽이라도 차고 나가는 불 같은 성미였다. 그 성미를 알고 있는 성칠은 더 말리지 못했다.    병완은 마른기침을 하며 우쭐 일어났다.     “난 우시장 갈 차비를 하겠다. 너희들은 밭에 가서 감자나 파오너라.”     병완은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성칠을 되돌아보면서 부탁했다.     “며칠 사냥을 못하더라도 밭일을 해라.”    “예, 아무튼 우시장에 가서 몸조심 합소.”    성칠도 우쭐 일어나 바깥에 나갔다.    그는 외양간에 들어가 소를 풀어내다가 소 수레에 메웠다. 그는 어머니와 아내를 수레에 앉히고  감자밭으로 떠나갔다.          한참 후 응삼이 영팔을 데리고 헐레벌떡거리면서 올리막으로 올라왔다.     “김 도감, 주인어른께서 허리 아파서 오시지 못하고 분부를 전하라고 하시여 왔습네다. 헤헤헤.”     병완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면서 세 귀 눈으로 응삼을 건너다보았다.     “금방 다 말했는데 또 무슨 잔소리 그리 많느냐?”     이번에는 영팔이 썩 나서면서 대답했다.     “저, 주인어른은 김도감이 혼자 우시장에 가지 말구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가랍디다.”     병완은 목수도구를 넣은 멜 통을 메고 둔덕 아래로 내려가면서 대답했다.     “알았네. 내 저기 덕성과 덕팔이, 창렬이, 동훈이랑 다 데리고 가지.”    응삼과 영팔은 기뻐서 병완의 앞에서 춤이라도 출 듯 껑충껑충 뛰어 개울물 쪽으로 달려갔다.     영팔은 징검다리를 단숨에 달아 건너갔다. 그런데 응삼은 징검다리를 토끼새끼처럼 뛰어 건너가다가 그만 돌을 빗 디뎌 그만 개울물에 풀러덩  빠지면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물병아리를 방불케 하는 응삼은 실 돌피 같은 몸을 겨우 일으켰다. 이윽고 그는 저 멀리 뛰어간 영팔에게 손을 휘저으면서 토성 안으로 오소리처럼 쫑드르르 달려갔다.     병완은 그 우스운 모양을 보고 피씩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먼저 덕팔네 집을 찾아갔다. 평소에 말수가 적은 덕팔은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시름시름 앓는 노친으로 하여 속을 여간만 태우지 않았다. 며칠 전에 병완은 덕팔에게 둬 냥짜리 은덩이를 가져다주면서 노친을 데리고 운주동에 있는 신설 집 자기의 관준 형님을 찾아가보라고 했다.    병완의 형님 병관의 맏손자 관준은 이조말년 궁정의 어의였던 할아버지 김승중의 한의술을 물려받아서 어진간한 병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서도 척척 진단해 처방을 떼였는데 약이 병에 말을 참 잘 들었다. 그리하여 병완이가 한번 관준 손자를 찾아가보라고 하는데도 고지식한 덕팔은 말을 들을 염을 하지도 않았다. 하긴 덕팔은 천생 남의 빚을 지거나 공짜를 얻어먹으면서 살지 않으려는 외고집쟁이였다. 그는 병완이 공짜로 주는 은덩이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고 관준 의사를 찾아가 볼 엄두도 내지 않았다.     (어떻게 하나 이번에 덕팔도 돈을 벌어 노친의 병을 치료하게 해야겠는데.)     병완은 이런 생각을 구을리면서 개울 건너편에 있는 덕팔의 낮다란 초가집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때 때마침 덕팔이 넓은 어깨에 통나무를 메고 뒤울 안에서 앞마당으로 나왔다.     병완은 삽작문을 열고 울안에 들어서면서 덕팔의 어깨 우에서 통나무를 받아 내려놓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시장에 좋은 부업거리 생겼네. 우리 함께 가 보기오. 한두 해 일하면 노친의 치료비두 벌게 아닌가?”     덕팔은 통나무를 턱 깔고 앉더니 숨을 헐떡거리면서 자세히 물었다.     “무슨 일이기에? 가을걷이도 하지 않고 우시장 한끝으로 가겠소?”    병완은 덕팔의 옆에 나란히 앉으면서 담배물주리를 꺼내 담배를 꿍꿍 다져넣고 붙여 물었다.    “한길수가 우시장에 가서 층집짓기를 맡아 왔다오.”    덕팔은 네모 번듯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쳇, 한길수를 믿고 돈 벌자구?  한길수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못하겠소. 죽게 일해서 그 놈이 좋은 노릇을 하자고? 쳇!”    “길수는 달마다 품삯을 딱딱 주겠다고 했소. 한마을 사람들인데 선전을 줄 수도 있다고 하더구먼. 품삯을 주지 않으면 돌아오면 되지. 뭐?”    병완의 말에 덕팔도 담배를 붙여 물더니 담배연기를 후 길게 내뿜었다.    “그럼 한번 가 본다? 가을은 철규와 점순에게 맡기지.”    이렇게 돼 병완은 덕팔을 데리고 떠나게 됐다.     병완과 덕팔이 목수도구상자를 메고 개울을 건너 둔덕에 올라서는데 창렬이 허리를 구부정하고 나왔다.     “형님네는 어디로 가오?”    병완은 걸음을 멈추었다.    “우시장에 집짓기부업을 하러 가는 길일세. 그런데 몸은 어떤가?”    덕팔도 시시콜콜 앓는 창렬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창렬은 삽작문을 열고 나와 기침을 쿨룩쿨룩 깇으면서 간신히 말했다.    “그래도 병완 형님이 준 은덩이로 약을 지어다가 먹었더니 많이 낫소.”    그는 덕팔한테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혹시 흙짐이나 멜게 있으면 나도 좀 부르오.”    병완은 생강처럼 바짝 마른 창렬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동생, 이 몸으로 어데 가서 일을 한다고 그러오. 집에서 병 치료나 잘하게나.”    창렬은 바깥으로 나오면서 부탁했다.   “저 상호라도 좀 데리고 가면 좋겠는데.”    은녀와 상호가 삽작문을 나서더니 허리를 굽히면서 이구동성으로 곱게 인사했다.     병완은 상호를 대견스레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얘들, 이젠 어른이 다 됐구나.”     창렬은 집안형편이 가난하여 겨우 늦장가라도 들어서 얻은 은녀와 상호를 바라보면서 희죽이 웃음을 지었다.     순간 그의 이마에 난 밭고랑 같던 주름살이 쭉 펴졌다.     “우리 먼저 가서 품삯을 제대로 받게 되면 상호도 데리고 가지.”         병완과 덕팔은 곧장 토성 안에 있는 길수네 팔간대청으로 들어갔다.     그때 대문 앞에 진작 한길수와 응삼, 영팔이 진작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병완은 걸어 나가 문안부터 했다.한 영감,  밤새 허리 아파 고생이 많았겠소.”      한길수는 반색을하였다.    “자네가 일하러 가겠다니 허리 병이 뚝 떨어 기는 것 같네. 흐흐흐.”    뒤이어 그는 개화장으로 땅을 짚고 서서 말했다.    “아무튼 우시장에 가서 응삼과 합작해 일군들을 잘 관리해서 집짓기를 잘하게나. 내 여기서 마을사람들을 더 동원해가지구 며칠 후에 따라가겠네. 그럼 어서 길을 다그치오. 난 집에 들어가 좀 누워야겠소.”     병완은 덕팔, 최동욱과 함께 병수가 모는 마차에 앉아 우시장으로 떠났다.     개화장을 짚고 대문어귀에 선 한길수의 우멍 눈에는 살기에 찬 음흉한 눈빛이 서려있었다.     (은녀를 당장 빼앗아 와야지. 아니야, 괜히 병완과 성칠이 펄쩍 날뛰겠다. 그러면 집짓기가 끝장나고 내 창창한 앞길이 막힐게 아닌가? 안되지. 꾹 참아야지. 내가 이 영월동과 운주동을, 아니야, 온 상우남면 나가서 우시장까지 쥐락펴락 할 때는 은녀 하나뿐이겠는가? 온 우시장의 계집들을 몽땅 내 집에 잡아와야지. 으흠!)     한길수는 제 좋은 궁리를 하면서 대문어귀에서 떠나 집울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병완이네는 경찰국 대문 앞에서 총창을 비껴든 일본 헌병들에게 몸수색부터 당했다. 병완은 머리가 썩둑 잘리어 나간 것 같은 일본 놈 군모 밑의 짧은 머리를 보니 사람 같지 않아 보이었다.    응삼이 무슨 종이장을 꺼내 일본놈 한테 건네고나서 뭐라고 손방아를 찧어댔다. 헌병은 종이장과 응삼이네와 병완이네를 번갈아 훑어보더니 응삼을  2층집 대문 안에 들어가게 했다.    한참 후 응삼이 강철을 데리고 나왔다. 강철은 병완을 보고 아는 척 했다.    “아니, 이거 퍽 눈익은 분이구먼."    응삼은 실돌피 같은 허리를 쭉 펴고 병완을 춰 올렸다.    "이 분은 씨름장수 김병완 어르신님이네."    "오- 글쎄 면목 있다니까."    강철은 병완의 두툼한 손을 잡아 흔들었다.    "장사님, 반갑습니다.”    수다스러운 그 인사수작에 병완은 그저 눈인사를 할 뿐이었다.      응삼이 어색한 기분을 깨려고 병완과 강철의 앞에서 실 돌피 같은 허리를 꼽싹거렸다.      “김령감, 이 양반은 내 동창생 류강철입구마. 이전에 운주동의 최구장에게서 천자문이랑 함께 배운 동창생이오. 류 선생은 일본까지 유학갔다가 와서 우시장에서 아주 갑부로 됐지요. 그래서 이번에 3층집을 짓게 됐소.”      강철은 없는 배를 쓱 내밀고 어깨가 으쓱하여 부자인 척하면서 거들먹거렸다.      “집만 잘 지읍시우. 삯전은 근심하지 맙소.”     사실  일본 경찰국을 짓는 일이라면 병완이랑 목수를 그만 둘 것은 불 보듯 빤했다.  그래서 응삼과 한길수는강철의 집을 짓는다고 거짓을 꾸며댔던 것이다.     병완은 그 놈들의 수다에 시끄러워 묵묵부답하고 돌부처처럼 덤덤히 앉아 있었다.     그는 류강철이 일본 헌병군복을 입은 것을 보고 눈에 거슬렸다.     (이 놈도 일본 사람들의 덕분에 갑부로 된 게 아닌가?)     류강철과 응삼은 병완 등을 마차에 싣고 경찰국에서도 한 1리쯤 떨어진 뒤 산 쪽으로 달려갔다.      둔덕진 곳으로 올라가 한참 걸으니 평평한 땅이 나졌다.      류강철은 모자를 벗어 땀을 씻으면서 가죽장화를 신은 발까지 탕탕 구르며 지껄여댔다.     “바로 이곳이네. 풍수쟁이를 청해 우시장 주변산수를 답사시켰지. 풍수쟁이는 이곳이 바로 우시장에서 집을 지을 천하제일 명당자리라더구먼.      병완이 그 곳을 둘러보니 참말로 명당자리인 것 같았다.       동쪽과 북쪽에는 기운봉에서 뻗어 내려 온 깎아지른 듯 험산준령이 병풍처럼 둘러서있었다. 서쪽에는 남대성하 지류가 흘러 지나가고 있었으며 둔덕아래 남쪽으로는 우시장 시내가 한눈에 안겨왔다. 참말로 우시장 시내에서 개미새끼가 기어가도 손금 보듯이 환히 살필 수 있는 천혜의 군사요충지였다.      병완은 류강철을 피뜩 곁눈질해보며 속궁리했다.      ( 저눔이 갑부는 갑분 모양이지. 무슨 돈으로 3층집이나 짓는단 말인가?)      병완은 류강철에게 “그래 집 도본은 어디 있소?” 하고 물었다.      류강철은 없는 배를 쑥 내밀고 날카로운 낯을 이쪽에 돌렸다.       “도본이라니?”    그는 의아해 병완이를 돌아다보다가 깨달은 것이 있는지 머리를 꺼떡거렸다.    “아, 설계도를 그러겠구먼. 근심하지 마시오. 이제 일본 설계사가 설계도를 가지고 올겝구마.  오늘은 공지나 돌아보고 푹 쉽소. 요 사람들로야 어떻게 일을 시작하겠습둥?”    그러나 병완은 조급해났다.     “이보,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우린 밭에 강냉이하구 감자를 걷어 들이지 못하고 널어 놓은 채 하루 품삯이라도 더 벌려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요.”    대뜸 붉으락푸르락해 지는 병완을 보자 강철이 쪽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눈알을 굴리면서 떽떽거렸다.    “이 영감이, 어느 안 전이라고 함부로 고함질인가? 품삯은 무슨 엿 먹을 품삯이란 말인가? 일하기 전부터 품삯을 달라고? 흥!”     응삼은 실눈으로 병완의 노한 얼굴을 살피더니 손으로 강철의 허벅다리를 스리슬쩍 툭 치며 뱁새눈을 찔끔해보였다.     “김 도감, 노여워하지 마오. 오늘 놀아도 삯전은 우리 한 어른께서 다 주오. 삯전 근심은 하지 마오. 오늘은  이제 일군들이 오면 그들을 지휘해 먼저 토성을 파면 되오.”    덕팔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오른 강철과 병완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그의 너부죽한 얼굴에는 근심에 찬 그림자가 얼굴에 흘러지나갔다.    강철은 분을 이기지 못하여 씨근덕거리다가 발로 돌 쪼각을 탁 차버리고 “흥!” 하고 코 방귀를 뀌더니 저 멀리로 가버렸다.     바빠 맞은 응삼은 강철을 따라가 팔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나무람했다.     “자네 어째 일을 망치자고 이래? 지금 일손을 하나 얻어 온다는 게 하늘에 별 따기인 걸 모르는가? 우리 주인어른이 손이 발로 되게 빌어서 데려온 일군들이네. 우리 주인어른은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품삯을 주기로 했네.”        강철은 침까지 퉤 내뱉었다.     “대일본제국의 경찰국을 짓는데 무슨 놈의 삯전인가?”    “언성을 좀 낮추게나. 저 영감들이 듣겠네. 성질이 불 같아. 벽이라도 마구 박차고 나갈 령감이야.”    응삼은 뱁새눈으로 힐끔 저쪽 병완을 훔쳐보았다. 다행히도 병완과 덕팔도 뭐라고 쑤근거리면서 이쪽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때 덕팔은 병완에게 근심을 털어놓았다.    “저 일본 군복을 입은 치머리가 삯전을 정말 주지 않으면 어쩌겠소?"    "삯전을 주잖으면 그만 둘판이지.뭐."     "저 말하는 거 보오. 무슨 경찰국을 짓는다고 하지 않소?”    병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잘못 들었겠지. 우시장에 경찰국이 있는데 또 무슨 경찰국을 짓는다고 그러오? 우리 처음 들렸을 때 일본 헌병이 총창을 꼬나들고 보초를 서던 대문 안 집이 바로 일본경찰국이라던데.”    그러나 덕팔은 계속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살림집터가 이렇게 엄청나게 클 수 있소?”   병완도 반신반의했다.    “글쎄 일본 사람을 초과하는 부자가 우시장에 있을 수 있소?  이제  도본이 오면 대개 알 수 있겠지.”     “삯전을 주기만 하면 뭘 짓던지 관계는 없지.”     덕팔은 더부룩한 구레나룻을 매만지면서  땅바닥에 누워있는 너럭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품삯을 주지 않으면 돌아가 한 영감과 따지겠소.”     병완의 그 말에 덕팔과 동욱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때 응삼과 강철은 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달려가 버렸다.      한참 후 류강철과 응삼이 일본 군복을 입은 자와 함께 마차에 앉아 달려왔다.     마차에서 내린 일본 사람이 누런 종이 장을 꺼내들고 여기저기 가리키면서 뭐라고 말하자 류강철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윽고 응삼이 병완과 덕팔을 불렀다.      그들은 일본 설계사의 설계도대로 먼저 동서가 한 150미터, 남북이 한 100여미터 되게 말뚝을 박고 하얀 실을 쭉쭉 쳐 놓았다.      한참 역사를 하고나니 해가 중천에 둥실 걸렸다.      응삼이 우시장에 내려가더니 뭔가 한보자기를 사들고 왔다.     “자, 풍찬노숙하면서 우리 동창의 집을 짓느라고 고생들이 많소. 오늘은 이걸로 점심과 저녁이라고 먹소.”     응삼이 보자기를 풀자 누런 강냉이떡에 마늘짠지였다. 병완이네는 집을 떠난 이상 별수 없이 그들은 강냉이떡도 맛있게 먹었다.     덕팔은 강냉이떡을 한입 뚝 떼여 씹으면서 또 근심을 털어놓았다.      “이제 해가 저물면 밤에 어데서 자오?”     응삼은 뱁새눈을 한껏 크게 뜨면서 대답했다.     “옳소. 오후에는 저기 가져온 재목으로 기둥을 세우고 초막을 짓소.”     병완 등은 점심식사가 끝나기 바쁘게 먼저 토성을 쌓기로 한 북쪽에 인부들이  들 수 있는 움막을 짓기 시작했다.     해질 때까지 경사진 둔덕을 파고 반토굴 움막을 대충 지어놓았다.       엿새 후에 한길수가 직접 마차를 타고 공지로 찾아왔다. 그는 개화장을 짚고 다 지어놓은 인부가 들 움막을 둘러보더니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병완이, 수고 많았네. 먼저 엿새 품삯을 주겠소.”     보통 하루품삯이 8전이나 10전이면 대단했는데 한길수는 한마을의 사람들이라면서 20전씩 주는 것이었다.     병완은 한길수를 보고 “허리는 괜찮소?” 하고 문안부터 했다.     한길수는 허리를 만지면서 상을 찡그렸다.     “아직도 조금만 힘써도 아프오.”     병완은 대통을 꺼내 담배를 쑤셔 넣으면서 넌지시 물었다.     “좌우간 품삯을 주니 고맙소. 그런데 어째 류 통역이 삯전을 주지 않고 한영감이 주오?”     한길수는 그들이 든 움막 구들에 걸터앉더니 둘러댔다.     “류 통역이 돈이 바빠서 그러는데 좀 기다리오. 그건 그만두고 병완이, 자네는 아직 목수 일을 할 게 없으니까 토성을 쌓는 일에서 손을 떼게나. 우리 마을 일군들로는 근본 이 집을 명년까지 다 짓지 못하오. 운주동과 신흥동, 가마골로 나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일군들을 더 모집해 와야겠네. 자네 아들과 손자들까지 다 데려오오.”      한길수는 우멍눈으로 묵묵히 앉아있는 병완의 눈치를 힐끔 살피였다.     거부하는 눈치가 보이지 않자 뒷말을 이었다.     “거 최구장이 아들이 여럿이 되던데. 사돈인 자네가 나서서 좀 동원해보게나.”     병완은 귀가 솔깃해하겠는가 하였는데 병완이 벌컥 성을 낼 줄은 천만뜻밖이었다.      “한영감은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얕잡아보기 시작했소? 내가 그까짓 도감을 바라고 여기로 왔는가 하오? 삯전이라도 벌어서 맏손녀 혼수 감이나 마련할 까고 온 게지.”     한길수는 번들 이마에 송골송골 돋아난 땀방울을 팔소매로 뚝뚝 찍었다.     “허허허, 김 영감, 내 말을 잘못해 미안하오. 품삯은 꼭 줄 테니 좀 동원해주오. 하루에 쌀 너 근씩 버는데 좀 좋아서 그러오? 한 일 년 일하면 농사 질을 하기보다 훨씬 낫게 벌게 아니오?”     “에헴!”     병완은 마른 기침을  하더니 뒷말을 이었다.      “품삯만 주면 누군들 일하러 오지 않겠소?  동원해 보지.”      “알았네."    한길수는 개화장을 짚고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이유, 요 허리가 아파서.”라고 하면서      한길수는 움막 앞에서 우뚝 멈춰서더니  병완을 되돌아보았다.     “내 마차에 앉아 집에 갔다가 오오.”      병완은 덕팔과 동훈을 되돌아보면서 작별을 고했다.     “내 집에 갔다올테니까. 마가을 추위에 몸 주의하게나.”     덕팔은 “형님, 잘 갔다가 오오. 우리 집사람과는 무사하다고 잘 전해주오.” 라고 말했다.     그는 삯전 1원 20전을 병완한테 건네주면서 부탁했다.     “내 노친한테 전해주오. 삯전을 버는데 철규도 오라고 전해주오.”      그러나 최동훈은 자식을 하나도 보지 못해 그저 삯전만 병완의 손바닥에 달랑 올려놓았다.      “이거나 우리 집 사람에게 주오.”     병완은 품삯을 잘 건사한 후 한길수와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서산을 바라보니 해가 어느새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서 땅에 얼굴을 비빌 지경이었다. 마차는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며 산둔덕을 내려 영월동을 바라고 달려간다. 비굴한 친일 아첨군들의 아부가 마차 뒤를 쫓아가며 뽀얀 먼지를 일구면서 코노래를 흥얼흥얼 부른다.
417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27) 꼬임수 댓글:  조회:705  추천:0  2024-03-05
                   4. 꼬임 수        한길수는 오른손으로 옆구리를 짚고 응삼의 부축을 받으면서 간신히 비틀비틀 집에 들어섰다.    월선과 후처의 아들 선주는 마중 나왔다가  무슨 큰 봉변을 당하기나 한 것처럼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번대머리 뒤에 둬자나 되던 머리채가 보이지 않찮는가.     “아니, 영감, 그 몇 대 안 되던 머리털마저 어쨌어요? 홀랑 벗어진 게 무슨 꼴인가요?”    월선의 말에 한길수는 손을 내저으면서 돌려 맞췄다.     “모르는 소리를 작작 해. 이 어른은 일본 선진문명을 받아들이구 총도감을 바꿔 온 거야. 이후에 누구든지 머리채를 자르고 하이칼란지 하이딸인지 해야 된돼.”     생벼락 같은 소리에 월선과 선주는 입을 함박만큼 쫙 벌렸다. 그들은 머리채를 감싸쥐고 덴덥해 눈마저 휘둥그래졌다.     “철주넨 왜 보이지 않느냐?”     월선은 어둠 속에서 눈을 흘기면서 선처 아들을 헐뜯었다.     “서울로 떠났어요. 뭐 일본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합디다.”     “그래? 그래도 그 녀석이 장차 큰일 할 놈이야. 지금 세월에 일본말을 배워 두는 게 낭패 없어. 이 골짜기 둼 무지에 박혀서 애비 벌어 놓은 걸 받아먹겠어? 그 녀석 둘째 놈보다 썩 나아!”    그 소리에 월선은 두덜거렸다.    “영감도, 정말 손바닥과 손등이 다르다고 어쩌면 내 난 새끼를 그렇게 낮잡아 말해?”     한길수는 허리를 만지며 상을 찡그리면서도 끼무라 국장의 위엄스러운 목소리가 귀전에 들리는 상 싶었다.     “내일부터 목수와 인부를 구해서 경찰국청사를 짓는 일을 시작해야겠네.”    길수는 방에 들어가 누웠다가 앓음 소리를 내면서 간신히 기여 일어났다.    “게 응삼이 있는가? 고새도 참지 못해 여편네 궁둥이를 쫓아갔는가?”    온 울안을 울리는 그 고함소리에 누가 태만하겠는가.    응삼은 끌신을 작작 끌고 부랴부랴 본채에 들어왔다.    “주인님, 찾았습둥?”   응삼이 다급히 마루에 올라왔다.   “앉게. 긴히 의논할 일이 있네.”    길수는 등잔불 밑에 베개로 왼쪽옆구리를 받치고 비스듬히 기대 누워 우멍눈으로 응삼을 마주보며 말했다.   “끼무라 국장은 내일부터 목수와 인부를 끌어다가 경찰국청사를 지으라고 하였네. 그런데 내 아무리 생각해봐도 목수는 저 병완을 초과할 사람이 없는데. 그 뜨개소 같은 놈이 고분고분 말 듣겠는가? 숱한 인부를 며칠 새에 어떻게 끌어간단 말인가? 여기 영월동의 열대엿 살 이상 되는 사람을 몽땅 끌어가도 3층집을 짓기에는 엄청나게 모자랄 텐데 말이야. 아이고, 이 일을 어쩐단 말이냐?”    한길수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응삼은 옆에서 길쭉한 박대가리를 기웃거리더니 한참 후에야 얍슬한 입술을 나불거렸다.   “병완은 억지로 우격다집해선 안됩구마. 우시장에 절대 끌어가지 못합구마. 얼려 데려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삯전을 주겠다 했습둥?"    “삯전 같은 소리를 다하네. 남의 나라두 통 채로 빼앗아간 그 도적놈들이 삯전을 주자겠는가?"   응삼은 한숨을 푸 내쉬었다.     “이후에는 일본 사람들을 욕하지 마옵소. 말말 간에 그런 말이 불쑥불쑥 나가면 큰 야단이 나겠습구마.”     “그래, 그건 네 말이 옳아.”    길수가 혀로 입술을 감빨면서 수긍했다.    응삼은 뒤이어 이런 수를 내놓았다.   “이렇게 하깁소. 좋은 청부업거리가 생겼는데 삯전도 푼푼히 준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살기 바쁜 가난뱅이들이 좋다고 왁 쓸어 갈 겁니다.”     그제야 한길수는 일어나 상을 찡그리면서 허리를 붙잡았다.    “그래도 자네 그 박대가리에서 잔꾀가 잘 나오네그려. 허허. 아이고, 허리야.”      응삼은 바삐 길수를 부축해 눕혔다.     “근심맙소. 이 응삼이 있는 한 경찰국청사 아니라 온 우시장을 다시 지으라고 해도 근심할게 없습구마. 인부가 모자란다는 구실로 주인어른은 운주동과 신흥동, 가마골까지 온 상우남면을 다 관할하게 해달라 하깁소.  인부도 채우고 장차 일이 잘 되면 면장이나 군수로 승진하는데 길을 닦아놓는게 아입둥?  이거야 말로 일거양득이지요. 헤헤헤.”     한길수는 응삼의 말에 귀맛이 당겼다.    “그래? 그래. 내가 면장이나 군수가 되면 자넨 꼭 아전이  될 수 있어. 허허허.”    이튿날 기운봉 쪽에 해가 두둥실 뜨기 바쁘게 응삼은 영팔을 데리고 병완을 부르러 떠나갔다.     그들은 여우들처럼 징검다리를 홀짝홀짝 뛰어넘어 개울물을 건너 둔덕우로 올라가면서 보니까. 식전아침부터 뭘 찧는지 물레방아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병완은 마당에서 도끼로 나무를 팡팡 패다가 응삼과 영팔이 다가오자 패놓은 나무토막들을 한쪽에 주어 쌓아놓았다.     “영감, 주인어른이 도감어른과 긴히 상론할 일이 있다고 모셔오라 합더구마.”    “또 무슨 일로? 혹시 은녀를 데려 가려는 건 아니겠지?”    응삼은 허리를 꼽싹거리었다.     “예, 아닙니다. 가보면 알겁꾸마. 좋은 청부업거리가 생겼습꾸마. 어서 가시죠.”    그는 가슴츠레한 뱁새눈으로 병완의 눈치를 살폈다.    “좋은 청부업거리면야 자네들이나 가서 할 게지. 당장 감자도 파구 강냉이도 뜯어 들여야겠는데 바쁜 사람을 찾아와 뭘 하오?”    응삼은 진작 병완이 이렇게 나오리라고 진작 짐작했었다.     그는 웃음을 낯에 게 바르면서 지껄였다.    “김도감어른, 우리 주인어른은 도감어른하구 서로 도우며 화목하게 살자고 은덩이도 드리고 은녀도 내보내 주었소. 지금 주인어른이 허리를 상해서 오지 못했는데 한번 가보면 어떻습둥?”    병완은 너무 한감이 들어 도끼를 스르르 놓았다.    “그래, 주인어른이 모질 상했는가?”    “예. 당나귀차 운주하에 떨어져 허리를 모질 상했소.”    응삼의 말에 병완은 나무토막을 모아놓고 일어서면서 “가봅세.”라고 했다.   성칠이가 집에서 나오면서 물었다.   “아버님, 어데로 갑니까?”    병완은 되돌아보면서 대수롭잖게 말했다.    “한 영감이 허리를 상했다는데 피뜩 가보고 오겠다."    물레방아를 찧던 성희와 하옥은 떡가루가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면서 둔덕 아래로 내려가는 병완의 뒤 잔등을 바라보면서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병완이 토성 안 대문에 들어서자 한길수는 우멍눈으로 쏘아보며 속으로 윽별렀다.   (저 놈을 그저 방망이로 뒤대가리를 쳐 죽였으면!)     그러나 그는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짐짓 마루에까지 나가 마중하며 아닌 보살을 떨었다.     “김 도감, 어서 오오. 아이유, 내 허리 아파서 땅바닥까지 나가 마중하지는 못하겠소. 어서 올라오오.”    병완은 마루에 성큼 올라서며 문안부터 했다.     "허리를 모질 상했다던데. 어떻소?”      길수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병완의 손을 잡고 비틀비틀 웃방으로 들어갔다.    “김 도감을 보니 허리 병이 낫는 것 같네. 허허허. 아이유.”     한길수는 입술에 게발린 소리를 하다가 앉으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응삼이 달려들어 와 한길수를 부축하여 앉혔다.     병완은 앉자마자 머리채를 싹둑 잘린 번대 머리를 마주보면서 놀라 했다.     “아니, 머리채는 어쨌소?”    한길수는 번대 머리를 손으로 쓱 씻어 올리면서 지껼였다.    “시원한 게 너무나 좋아서? 우시장에 갔다가 일본 사람들 신식을 따라서 머리채를 잘라버렸소.”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체 무슨 청부업거리가 생겼기에 이른 아침부터 나를 불렀소? 난 할 일이 많으니까 얼른 말하오.”    그러나 길수는 정지를 내다보면서 소리쳤다.     “여보, 김 도감이 왔는데 술상이나 차려 가져오오.”    병완은 넉가래 같은 손을 저으면서 사양했다.     “이러지 마오. 한 영감, 난 가을이 돼서 일이 바쁘오. 어서 할 말이나 하오.”     그럴수록 한길수는 늦장을 피웠다.     어느 결에 월선이와 둘째며느리 남복금이가 술상을 맞들어 들여왔다.       “아무리 농번기라도 술이야 한잔 마시면서 얘기하기요. 자, 한잔 받소.”     한길수가 놋 술잔에 막걸리를 부어 권하자 병완은 어찌는 수가 없어 받고 길수 앞에 놓인 놋 술잔에 한잔 따랐다.     길수는 술잔을 들고 수작을 피웠다.      "병완이, 우린 씨름판에서 싸움 끝에 정 든  형제간이 아니고 뭐요?  자, 한잔 들기요.”    병완은 마지못해 놋 술잔을 들어 댕그랑 마주 치고 굽을 쭉 냈다. 길수는 곁의 응삼에게도 한 잔 부어주었다.     응삼은 속으로 슬그머니  병완을 질투하였다.    (네깐 놈이 주인어른을 도와 뭐 해준 일이 있느냐? 상대접을 받아? 흥!)    그는 한뉘 슬슬 기면서 고생한 자기를 푸대접하는 주인어른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쓸개가 다 쓰려났다. 그는 그런 질투와 원망을 놋 술잔에 담아 단숨에 쭉 들이켰다.     막걸리가 서너 순배 돈후에야 한길수는 무거운 입을 떼였다.     “이보게, 김 도감, 이번에 내 좋은 청부업거리를 얻어놨으니까. 우리 마을 사람들을 잘 살게 만들 예산이네.”     병완은 세 귀 눈에 의아한 눈빛을 띠우면서 턱밑에 바투 들이댔다.    "툭 까 놓고 말하오. 무슨 청부업거리오?”     길수도 더는 질질 끌고 싶지 않았다.    “어제 우시장에 가서 3층집 짓는 일을 맡아 놨네. 자네 좀 목수 일을 맡아주게. 그리고 마을사람들을 이 좋은 청부업에 동원해주게나. 삯전을 딱딱 주는 일이니까. 참 좋은 돈벌이기회네.”     병완은 닭다리를 하나 쥐여 한입 뚝 떼여 씹으면서 완곡하게 거절했다.     "숱한 감자와 강냉이는 누가 걷어 들이겠소? 맏손녀 어금이가 추석이 지나면 당장 결혼해야 하겠는데 혼수 감을 장만해야겠는데.”      길수와 응삼은 개의치도 않았다. 병완은 십중팔구는 그렇게 나오리라고 미리 짐작했기 때문이다.     응삼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는 주인을 보자 팔을 걷도 나섰다. 그는 바가지로 오지독안의 막걸리를 푹 퍼서 병완의 앞에 놓인 놋 술잔과 길수의 앞에 놓인 놋 술잔에 찰찰 넘치게 따랐다.     “김도감, 집일이야 성칠이나 안분들이 하면 되지. 이런 청부업거리 어데 가 얻소? 우리 주인어른이 얻지."    병완은 눈을 떡 감고 묵무부답하고 목석처럼 떡 앉아 있었다.    응삼은 한길수한테 뱁새눈을 찔끔해보이고나서 뒤를 이었다.    "한번 우리 주인을 돕는 셈 치고 나서줍소. 그러면 우리 주인어른께서 그 감자와 강냉이를 판 돈만큼 벌게 하지 않으리라고 그럽둥? 거저 김 도감에게 은덩이를 수무 냥이나 줄라니 고만한 게야 어련히 봐주지 않으리라고 그럽둥?”     응삼의 말은 실로 그럴듯했다.     “그런데 우시장에 무슨 부자가 있어서  3층집을 다 짓는다오?”     병완이 묻는 말에 응삼이가 제꺽 “그거야…” 하고 입을 열려는데 길수가가 손으로 슬쩍 그의 허벅다리를 꼬집어놓았다.     “양, 저, 우시장에 그런 대부자 있소. 삯전은 근심하지 마오. 내 달마다 딱딱 주겠소. 한마을에서 살면서 내 거짓말을 하겠소? 자네 정 믿지 못하면 선전을 줄 수도 있소.”     그제야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막걸리 잔을 또 들었다.     “글쎄, 돈을 벌수만 있다면 가서 목수 일을 할 수도 있지.”     한길수는 대번에 찌푸렸던 낯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말끔히 걷으면서 놋 술잔을 높이 쳐들었다.     “자, 김 도감, 오늘 통쾌하게 한잔 듭세."     병완은 한길수 잔과 마주치고 막걸리잔을 굽냈다.      길수는 사기나 너스레를 떨어댔다.     "자네 도감까지 맡소. 영월동 사람들을 집짓기에 동원해주오. 영월동에서 자네 말이라면 누가 듣지 않겠수?"    병완은 생각 밖으로 손사래를 치며 사양할줄이야.    "아니, 도감은 그만 두오. 무슨 일인지 모르구 어찌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겠소?"    한길수는 소발굽 같은 주먹으로 병완의 어깨를 툭 쳤다.    "야따, 목수하구 도감 삯전은 따로 한몫씩 줄 테니. 근심하지 말게나. 하하,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을 때는 격이라 일거양득이 아니겠소? 자, 한잔 들기오.”    그제야 병완은 웃으면서 통쾌하게 한 잔 냈다.    일이 돼가는 걸 보고 응삼도 따라 막걸리를 한 사발을 죽 굽을 낸 후 병완을 쳐다보면서 간사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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