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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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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대하소설 卒婚(7) 김장혁 댓글:  조회:1362  추천:0  2022-03-30
                                    대하소설           졸혼(卒婚)제1권                                     김장혁                     16. 색깔바람             정호는 홀로 침대에 누워 우먹눈을 스르르 감았다. 국장자리에 앉아 있을 때 데리고 놀던 숱한 미녀들 얼굴이 피뜩피뜩 스쳐지나갔다. 그때는 따르는 미녀들도 많았고 가무단에 배치해달라고 돈묶음을 가지고 찾아오는 미끈한 예대 미녀들도 많았다. 또 꽃밭 같은 시 가무단에서 한자리 하려고 찾아오는 녀문화정객들도 있었다.  정호는 그런 미녀들에게 직위를 내려주고 애인으로 만들어 즐기며 향수에 푹 빠졌다.      젊은 미녀들은 사과처럼 사박사박하고 비단처럼 부드럽고 초두부처럼 하들하들해 육체미와 육체 향기가 짙었다. 젊은 미녀들과 놀고나면 온 몸의 말초신경까지 짜릿짜릿한 자극을 받았다. 더 없는 만족감에  흥분된 나머지 온 몸이 후련하고 행복감에 푹 잠겼다. 흥분에 뒤이어 온 몸에 엔돌핀이 생성해 점점 젊어지는 것 같았다. 젊은 미녀들을 점유하고나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을 것만 같은 자신감까지 생겼다. 그는 미녀들을 오래동안 데리고 놀려고 국장 직권을 빌어 검은 뭉치돈을 얻어먹고 그 검은 돈을 미녀들에게 쓰면서 거센 색갈바람을 일으키고 향수했다.       그런데 국장자리를 내놓은 다음에는 형편이 확 바뀌었다. 애인 되자는 젊은 미녀는 하나도 없었다. 간혹 한물 지나간 50대 중반 녀성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샘물이 퐁퐁 솟는 옹달샘처럼 시원한 애젋은 미녀들과 놀아난 그는 나먹은 이른바 “성숙된 녀성”은 왼눈으로도 보지 않았다. 아무리 지적이고 성숙돼도 나이만 있으면 어쩐지 왜빠진 오이나 고사리 같아 먹기 싫고 아예 보기도 싫었다. 그는 젊고 외형이 아름다운 육체미가 있는 미녀들만 골라 그녀들의 사랑을 밤알처럼 뽁 빼먹었다. 아니, 이까시로 소라 살을 뽁뽁 빼먹듯이 젊은 아가씨들의 달콤한 육체를 점유하는 재미 젤 좋았다.      순정은 외모는 아름다웠지만 영희보다는 육체미가 모자랐다. 그러나 순정을 선택한 것은 시위 서기를 하는 순정의 아버지를 선택한 것이었다. 밤에 무용실에서 억지로 순정을 꺽은 날 순정의 가슴이 비행장 활주로처럼 뻔뻔한 같은 감을 느꼈다. 순간 영희 그리워났다. 더욱이 그가 처음으로 맛본 녀선생님과 그녀의 녀동생이 떠올라 순정의 활주로처럼 뻔뻔한 가슴에 질리고 권태감까지 하게 됐다. 순정과 약혼하고 영희를 문걸한테 소개해 보내기는 정말 아쉬웠다. 그러나 별수 없었다. 아까운 영희를 친구 문걸한테 보내고 순정의 치마자락을 부여잡고 문화귀족이 돼야 했던 것이다. (문화귀족이 되면 영희 같은 미녀가 없겠어? 흥!) 최정호는 리지적이였다. 권력을 틀어쥐려는 그의 확고한 정치야심은 그로 하여금 모든 "사랑의 손해"를 잊게 했다. 더구나 번대머리에 검정사마귀까지 박혀 있어 무대에 올라 춤을 추기는 다 틀렸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문예귀족이 되는 외나무다리길로 나가야만 했다. 정치전도를 위해서라면 잠시 아쉬운대로 미녀를 놓아보내야만 했다. 그는 순정을 선택했기에 직승비행기를 타고 예술학원 보통무용교원으로부터 문화국 예술과장, 부국장, 국장으로 직상승하였다. 벼슬의 높은 계단으로 올라갈수록 미녀들의 추파가 더 집중됐다.       국장자리를 내놓고 나이도 이젠 50대 말에 이르렀다. 국장자리에서 물러나자 평소에 알락거리면서 뭉치돈을 가져오고  시내에 좋은 구경거리나 즐길 유흥장소가 있으면 젤 먼저 모시던 인사과장이랑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젤 알락거리던 인사과장이 카멜레온일줄은 몰랐다. 보이라공질하던 그자를 인사성이 밝은 것 같아 인사과장으로 발탁했더니 국장자리에서 물러나자 개 닭 보듯 했다. 그는 국장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국급순시원은 내놓지 않았다. 그는 순시원의 직권을 빌어 후임 국장과 말해 인사과장부터 목을 자르게 했다.       "그런 알락개를 곁에 두면 국장도 위험하오."        "알았습니다."       후임국장은 정호가 물러나면서 힘써 우에 천거해 올려놓은 젊은 간부였다. 그는 은공인 로국장의  권고에 머리를 끄덕였다.        "네. 알았습니다. 최국장을 믿고 말하지만. 이전에 그 사람을 인사과장으로 올려놓자 뒤에서 말하는 간부들이 많았습니다. 보이라공을 어떻게 인사과장으로 올려놓는가 말입니다. "      며칠 후 인사과장은 보이라실에 쫓겨났다.      정호는 인사과장하던 자를 불러 조롱했다.      "어떻니? 누구 덕에 인사과장을 한줄도 모르고 너덜거리더니. 흥. 내 한마디만 하면  네 같은 알락개들은 어느 똥무지에 날려가서 처박힐지도  몰라."      그자도 녹녹치 않았다.      "내 입이 터지면 최국장은 어떻게 될지 압니까? 씨!"      정호는 우멍눈을 무섭게 이그러뜨렸다.       "야, 이놈아, 보이라실에도 갈 거 같애?! 또 이전처럼 밤중에 석탄을 훔쳐내가라고? 흥! "       진짜 그날로  국에서 그 자를 단위 당직실에 가서 보초서면서 청소공질을 하라는 인사변동문건이 내렸다. 하루 새에 인사변동이 두번이나 생겼다. 최정호 국 순시원은 어깨 으쓱해 또 인사과장을 찾아갔다. 그는 숱한 사람들 앞에서 떠들썩하면서 훈계했다. "어떠냐? 배은망덕하더니?" 그것이야 말로 닭을 잡아 원숭이들을 훈계하려는 수작이였다. 아직도 자기한테 아첨하지 않으면 어떻다는 걸 대중들 앞에 보여주고 계속 얻어먹으려는 간교한 수작이였다.      그때 인사과장은 정호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조용히 말했다.      "너무 으새대며 떠들지 맙소. 내 입이 터지면 최국장도 편친 못할겝꾸마."     정호는 우멍눈이 데꾼해  그 자를 쏘아보았다.     "이 자식, 파 속처럼 속이 새파랗구나. 언감 누굴 위협해? 청소공밥통마저 잃어버리자고? 흥!"    인사과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난 밥통 떼우겠지만 당신은 감옥으로 가잖으면 목숨 떼울줄 압소. 흥!"     그들은 서로 으르렁거리며 갈라졌다.      그들 둘이 주고 받은 말을 누구도 듣지 못했다.  그후부터  누구도 최정호 국장을 업신여기지 못했다. 심지어 단위에서 위기감이 생긴 어떤 자들은 그를  찾아와 돈을 들이밀면서 신임국장과 잘 말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정호는 예순고개를 바라보지만 아직도 거의 날마다 용암처럼 솟구치는 정욕을 말리려고 노래방이나 안마방에 기여들어 일회용미녀를 위주로 즐겼다. 그러다가도 간혹 지나간 세월 애인들 가운데서 미련이 남아 있는 미녀들을 불러내 맥주나 마시고 돈이나 쥐어주고 구걸하다싶이 즐기기도 했다. (미녀들과 놀아야 젊어지고 건강해진다고 하잖아. 늘그막에 별게 있느냐? 숱한 돈을 둬 뭘 해? 젊은 아가씨들과 놀아야 장수한다는데. 맥이 있을 때 미녀들과 많이 놀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지. 흐흐흐.” 이것이 색갈바람에 놀아난 최정호 국장의  인생철학이다. 그는 숱한 미녀들과 즐기던 과정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순간 순간 관골이 툭 튀어나온 얼굴에 희죽이 웃음을 지었다. 아래배가 찡해나며 신음소리를 냈다. 온몸 말초신경까지 짜릿하던 자극과 흥분을 재삼 느끼는 기분에 잠겨들었다. (아, 그때는 참 행복했지.) 정호의 첫 녀자는 결코 순정이 아니었다. 섹스의 짜릿한 자극을 주고 섹스를 가르쳐준 이는 숫처녀도 아니었다. “무용을 해서 출세하려면 자기를 희생할줄도 알아야 해.” 정호가 순정을 나꿔채려고 한 이 말도 결코 정호가 생각해낸 말이 아니었다. 그 “명언”은 그의 고중 시절 녀무용스승 황금희가 그를 유혹하려고 한 귓속말이다.  그날 무용실에서의 그 첫경험을 정호는 잊을수 없었다.  황금희선생은 무용실에서 정호에게 다리를 이래라 저래라 지령을 떨구었다. “야, 바보야. 그것도 할줄 몰라.” 황금희선생은 정호 다리를 들어 자기 어깨에 올려놓았다. “다릴 이쯤은 높이 올려야 해.” 그런데 자꾸 손으로 허벅다리를 주물렁주물렁 주물렀다. "황선생님, 간지럽습니다." "어디? 여기? 여기?" 황선생은 허벅다리를 올리주물렀다. 그러자 저조 모르게 아래배가 찡해났다. "아, 그만! 그만하세요." “야, 너도 이젠 다 컸구나.” 정호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다리를 내리었다. “괜찮아. 너도 이젠 다 큰 사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어.” 금희선생은 다가오더니 주저없이 손으로 정호의 그걸 툭 다쳤다. “선생님, 누가 보겠습니다.” “괜찮아. 아무도 없어.” 황선생은 문을 잠궈버렸다. 그녀는 정호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예술학원에 가고 싶니?” “네.” 정호는 머리를 숙인 채 끄덕이었다. 황금희선생은 정호를 꺼안고 중얼거렸다. “예술을 하자면 선생한테 자기를 바칠줄도 알아야 해.” "무슨 말입니까?" 황금희선생님은 정색했다. "내 말 명심해라. 나도 대학교 때 스승한테 술 몇병이라도 사갔더라면 이 지경은 안됐을 거야. 눈을 찔끔 감고 하자는대로 들이댔어도 중학교 무용교원만 했겠니? 내 무용실력이면 시 가무단에서 한다하는 무용수로 됐을 거야.  그러나 나는 개도 안 먹는 정조를 지켰지.  전도와도 바꾸지 않은 그 티없이 깨끗한 숫처녀의 정조를 반병신 같은 신랑한테 바쳤지. 그러나 내 숫처녀 티없이 순결한 정조를 가지고 기뻐 야단치던 신랑이 중풍 맞을줄은 몰랐어.  전도를 개척하려면 예술을 지망하는 녀자들은 스승이나 윗사람에게 자기를 헌신해야 해. 만약 전도를 개척할 필요없으면 춘향처럼 정조를 지켜야지." 황선생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면서 힌트했다. "이건 내 피의 교훈이야. 세상에 후회약은 없다. 챤스를 놓치면 한뉘 후회하게 될 거야. 남자들도 마찬가지야. 너도 예술학원에 가기 위해 자기를 바칠 때 됐다." “뭘 어떻게 하랍니까?” 황금희는 일요일이라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정호를 맛보려고 들었다. 40대 초반의 그녀는 남편이 중풍을 맞아 생과부로 산지도 십여년이나 되였다. 녀자들은 30대면 승냥이고 40대면 호랑이라고 하지 않는가.      40대 초반 그녀는 정호를 와락 끌어안아 무용실 널판자바닥에 눕혔다. 정호도 어린애가 아니였다. 황선생이 지금 뭘 하려는 걸 눈치챘다. “선생님, 전 학생인데요.” “괜찮아.” “저의 전도를 망치자고 이럽니까?” 정호는 일어나 앉으며 정색해 물었다. “바보야," 황금희선생은 손가락으로 정호 이마의 검은 사마귀를 폭 질렀다. "내 하라는대로 하면 예숧학원 무용학부에 보내주마.   이담엔 무용교원으로 남게 도와주마.”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래, 사람은 은혜를 보답할줄도 알아야 해.” 황금희선생은 정호의 홍당무우처럼 새빨간 얼굴을 두 손으로 받쳐들었다. “내 하라는대로 하겠니?” 정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황금희는 정호의 볼에 뽁 키스했다. “오케이," 황금희선생은 엄지와 식지를 딱 튕겼다. "예술을 하려면 그래야지. 개방세월에 성해방도 하고…” 그녀는 신음소리를 내며 정호의 하신을 만지며 무용실 강당에 스르르 눕혔다. 그녀는 무대에서 무용수들이 안아눕히는 멋진 포즈를 취하며 날래게 정호를 홀려냈다… 예술학원 무용학부 교수들과 학부장은 황금희선생님의 직계스승들이거나 동창생들이였다. 황금희선생은 약속을 지켰다.  황금희선생의 인맥 덕분에 정호는 예술학원 무용학부에 입학했을뿐만아니라 4년 후에는 진짜 무용교원으로 배치받았다.        정호는 금희선생이 자기를 가진 방법으로 순정을 비롯한 녀제자들을 가졌고 나아가서 사회에서는 예술인으로 발돋음하려는 미녀초보들을 아주 로련하게 점유했다.  그런데 황금희선생님은 정호를 놓아주지 않았다. 신세를 지워놓고 정호 청춘의 정열을 미친듯이 빨아먹었다. 계몽스승님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그랬을가. 정호는 황선생이 부르기만 하면 제정신을 잃고 뛰어갔다. 황금희선생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는  미친듯이 숫처녀를 사냥했다. 어떻게 보면 황금희선생에 대한 보복이라고 할가. 어려서부터 황금희선생한테서 변태적인 성생활을 경험해보아 그런지 일종 변태적인 심리반발이라고나 할가. 그는 자기 눈에 드는 미녀만 보면 꼭 재끼려고 들었다. 그리하여 영희도 순정도 당하였다. 순정이 눈에 든 것도 있었지만 정호는 순정의 아버지 지위를 빌어 출세해보려고 성급히 순정을 재꼈던 것이다. 황금희선생은 정호를 장기간 점유했을뿐만아니라 정호의 종신대사도 크게 생각하는 것처럼 자기 녀동생을 소개해주었다. “정호, 저도 이젠 결혼할 때 됐소. 내 녀동생은 의학원에 다니오. 이담 가정을 이루고 애들을 키울 때 집에 의사 있으면 좋소. 제 앓아도 그렇고.” 정호는 속을로 황선생이 리해되지 않았다. (장차 자기 녀동생과 정말 살게 되면 어쩔라고 저래? 량심상 녀동생한테 미안하지 않을가?) 정호는 순정, 영희 등 미녀제자들을 떠올리면서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러나 스승이 선 중매를 만나보지도 않고 거절할 순 없었다. (황선생 녀동생이면 황선생처럼 이쁘겠지?) 웬 일인지 호기심부터 앞섰다. 황선생네 집에서 처음 만난 처녀는 진짜 예뻤다. 짙은 눈섭 아래 청포도쌍까풀눈은 당장이라도 정호를 퐁당 빠지게 만들 것만 같았다. “황선희라고 불러요.” 새하얀 손도 잡아보니 매끌매끌하고 따뜻했다. “정호요.” 보통키인 선희는 황선생을 닮아 예뻤다. 무용수들인 순정이나 영희처럼 체격은 미끈하지 못했지만 탄탄한 몸매를 보아 가슴도 꽤나 풍만해보였다. 황선생을 알면서 녀자맛을 볼대로 본 정호는 몇번 만나보지도 않고 점유욕부터 앞섰다. 어느날 선희는 물고기통졸임이랑 모태주랑 사 들고 독신교원 숙사로 찾아왔다. 옆칸에는 미술학부 독신교원 영호가 있어 좀 불편해도 괜찮았다. 정호는 술상에 마주 앉아 선희가 부어준 술잔을 들었다. “선희, 선희는 정말 예쁘오.” “호호호. 녀자를 처음 봅니까? 그렇게 눈자리나게 봅니까?” 정호는 술을 쭉 내고 술잔을 내려놓으며 선희 옆으로 다가갔다. “선희, 사랑하오.” “어머, 몇번 안 만나보고 왜 이래요?” 정호가 와락 끌어안자 선희는 두 손으로 밀어냈다. “첫눈에 반했소.” 정호는 선희를 끌어안아 눕혔다. “이러지 마세요.” 선희는 정호를 밀아내며 포도눈을 흘겼다. “최선생님, 우린 아직 약혼도 하지 않은 사이입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몸부터 가지렵니까? 남의 마음은 알지도 못하고. 흥.” 선희가 거절할수록 정호는 더욱 기승을 부리며 덤벼들었다. “이건 뭔가요?” 선희는 정호가 취하는 체위를 보고 의아해했다. “우린 20대 중반의 처녀총각이오. 개방세월에 어째 어린애처럼 노오?” “뭘 어쩐단 말인가요?” “몰라서 묻소?” 선희는 포도눈알이 데꾼해졌다. “이런 남자 처음 봤다. 날 어떻게 보고 이래요?” 정호는 조폭하게 선희를 가지려고 달려들었다. “가만 있어요.” 선희는 정호의 손을 밀어버리며 우쭐 일어나 앉았다. ‘어쩌려는 건가요? 저를 사랑하는가요?” “그래. 사랑하오. 나하구 결혼하기오.” “진짜?” 정호도 일어나 앉아 정색했다. “그래. 결혼해 애를 한타스 낳고 행복하게 살기오.” “네. 저도 최선생님이 마음에 들어요. 저하고 결혼하고 후회하진 않겠죠?” “후회는 왜?” “약속해요.” “약속하지.” 정호는 선희와 깍지걸이를 했다. … 그런데 선희가 숫처녀가 아닐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더러운 년, 도리머리를 젓더니, 수상하다 했더니. 꽤나 경험이 있는 년이였어. 자꾸 날 보고 지휘까지 하더니? 흥! ) “선희는 숫처녀 아닙디다.” 황금희선생은 펄쩍 뛰며 노발대발했다. “아니, 무슨 소리냐? 남의 녀동생을 벌써 다쳤어? 렴치있니?” 정호는 황선생이 량심없다고 생각했다. (어쩜 정조를 잃은 녀동생을 붙여놔?) “나무리지 말라. 넌 숫총각이냐? 피장파장이지.” 정호는 억이 막혔다. 순간 황선생이 가증스러웠다. 선생님이 이 지경으로 허위적일줄은 몰랐다. 그런줄도 모르고 황금희의 말은 억이 막힐 지경이었다. “숫처녀 별 게야? 다 하루 밤 숫처녀지.” “선생님, 숫처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습니다. 누가 남하구 살던 녀자를 데리고 살겠습니까?” 황금희선생은 까만 콩알눈으로 흘겨보았다. “흥! 내 말 알아 못들었니? 숫처녀래도 그래. 하루 밤이 지나가면 모든게 끝이야.” 정호는 머리를 숙인 채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그래도 그렇지. 어찌…?” “숫처녀 밖에 모르는 놈, 정 그렇다면 결혼한 후에도 숫처녀를 만날 기회가 많찮지? 결혼해 편안한 가정을 이루려면 선희 같은 성숙한 의사를 만나는게 좋아.” 황금희는 정호를 한물 건너간 녀동생한테 억지로 붙여놓으려고 철면피하게 나오기까지 했다. 정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황선생님, 녀동생한테 나보다 좋은 남자를 소개해주십시오. 저는 다른 남자들과 살아본 녀자와 결혼하지 못합니다. 숫처녀 아니면 남자관계 복잡할게 아닙니까? 이후에 바람 피우면 어쩝니까? 반금련한테 죽음을 당한 무대랑이 되라고?” 황금희는 정호를 생각하는 것처럼 하면서 한발 물러섰다. “넌 숫총각이냐? 흥, 생각해 의사 녀동생까지 내놓은 것도 모르고. 흥! 정 싫으면 그만둬라. 예술을 하려면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몇번이나 말했니? 지금 개혁개방 세월에  성해방도 해야 해. 그게 자유이고 성평등이고 예술의 전당에 들어가는 지름길이야. 잊지 말라.” 정호는 머리를 숙인 채 황선생님의 집에서 나와버렸다. (쳇, 숫처녀도 아닌 녀동생을 붙여놔? 날 어떻게 보고. 흥! 생각하는 척하면서 판난 녀동생을 내게 팔아먹자고? 위선자, 날 언제까지 남편대용으로 쓰려고 그래?) 정호는 그 후에는 다시 황금희선생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 생각만 해도 역겨웠다. 그후부터 정호는 눈길을 자기가 담임을 맡은 무용학부 녀학생들한테 돌렸다. (우리 학급 녀학생들 속에는 꼭 내 마음에 드는 숫처녀가 있을 거야.) 그는  미녀들이 붐비는 꽃밭에서 순정과 영희한테 눈길을 박았다. 그외에도 놓치기 싫은 녀학생들도 몇이 있었다. (마음에 드는 녀학생 있으면 꼭 먼저 숫처녀인가 살아보고 약혼할 판이지.) 정호는 추억의 옛 돛배를 타고 여기까지 헤매다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순정이냐? 영희냐? 량손에 쥔 떡을 쥐고 고르고 고르다가 전도를 위해 시위 서기 딸인 순정을 골랐지 않은가? 그런데 애도 낳지 못하는 어애일줄이야. 이젠 각방을 쓰며 살 지경이 되다니? 참 한심하지.) 그후 순정과 열련에 빠져 있을 때 우연하게 백화상점 동쪽 큰 길에서 황선희와 딱 마주쳤다. “안녕하십니까? 최선생님,” 황선희가 청포도눈에 웃음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정호는 마지못해 인사나 하고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황금희는 달리 나왔다. “결혼했는가요? 최선생님이야 미녀를 얻어 잘 살겠지요?” “아니, 아직 결혼은…” “어머, 아직도 결혼 안 했습니까?” 선희는 일루의 희망을 품었을가. “최선생님, 오랜만에 만났는데요. 얘기나 좀 할가요?” 정호는 꼬리치는 선희를 힐끔 마주 보았다. 숫처녀가 아닐뿐이지 순정이나 영희보나 속으로부터 익어 톡톡 터져 단즙을 흘리는 참살구 같아 보였다. 한입 똑  떼먹으면 맛있을 것 같았다. “아니, 우린 모든 게 끝났소.” 순간 숫처녀도 아니면서 주제 넘게 노는 선희가 가증스러웠다. “좋은 남자를 만나 잘 사오.” 말을 마치자 자리를 뜨려고 했다. “글쎄 약혼은 못했지만요. 우리 둘이 만났 것도 인연이 아닙니까?” “인연? 쳇, 좋은 인연이구만.” 정호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할 말이 없소. 일이 바빠서. 그만.” 정호는 전도를 위해 리지적으로 맺고 끊으려고 했다. “아니, 약혼하지 못하면 친구로 친하면 안 될까요? 적적하면 저를 찾으세요. 차나 마시면서 한담해도 괜찮아요.” (더러운 년, 그 주제에 누굴 꼬시려고? 흥!) 정호는 꽤나 리지적이었다. 자기 정치전도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만 들면 가차없이  잘라 버렸다. 그러나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이성에 대한 점유욕은 그로 하여금 자기를 배신하고 자기 인생좌우명을 어기고 기로에 들어서게 만들 때도 있었다. 선희는 언니한테서 정호가 아직 약혼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실오리만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언니한테서 힌트도 받았다. “영웅도 미녀관을 넘지 못해. 녀자 맛을 들인 정호는 참지 못해. 하루에 서너번씩 그래도 모자랄 때야. 몸을 번져대면 넘어가지 않는가 두고 보자.” 어느날 정호가 퇴근하려고 할 때였다. 선희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최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선희인데요.” “무슨 일이오?” “저녁에 시간 있는가요? 밥 한끼 살게요.” 정호는 다른 교원들의 눈치를 힐끔 보며 능청을 떨었다. “오- 누님, 오랜만이오. 어디 있소? 알았소. 곧 갈게.” 정호가 선희를 만난 곳은 근사한 음식점이었다. “식사나 하며 천천히 말하지 않겠어요?” 앙굴알굴하게 파마를 지진 선희는 여느 때보다 청포도쌍까풀눈이 예뻐보였다. 우유빛 가는 목도 꽤나 매력이 있었다. 꼬리치는 녀자를 앞에 두고 먹어치우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를 기만한 황금희 녀동생한테 성적인 보복을 하고 싶었다. (한번 버무려 놓은바 하고는 실컷 데리고 놀자. 황차 아직 순정과 영희 가운데 점찍어 놓지도 않았고. 그 애들은 종신대사하고 관계되기에 아무래나 데리고 놀수도 없잖은가. 스승이란 존엄도 지켜야고. 언제 마음대로 데리고 놀겠어. 난 순정하구 영희한텐 위선자야, 위선자.) 선희를 앞에 두고 속궁리를 번개처럼 굴렸다. 이윽고 그는  선희한테 복수의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이오.” 정호는 매끌매끌한 하얀 손을 꽉 잡았다. “아이고.” 선희는 아파났지만 손을 인차 빼지 않고 놔두었다. (이 남자 굶긴 굶었구나.) 선희는 아주 로련하게 정욕을 참지 못하는 정호를 눈치채고 쌔무룩이 웃음지었다. 그녀는 맥주잔을 들어 쟁그랑 부딪쳤다. “자, 우리 우정을 위해 마십시다.” “우리 우정, 다 끝난 얘기인데.” “괜찮아요. 전번에도 말했지만요. 약혼을 못하면 뭐래요? 함께 살지 못하면 그저 친구로 지내도 좋지요.” 정호도 능청스레 맞장구를 쳤다. “좋죠. 글쎄 황선생님의 면목을 봐서라도 소홀히 대하지 못하지. 무슨 곤난한 일이 있으면 말하오. 지금 어디 출근하오?” 선희는 한숨을 호 내쉬었다. “병원에 출근해요.” “약혼은 했소?” “아직은.” 선희는 청포도눈을 치켜뜨며 미소를 지었다. “어디 좋은 총각 있는가요?” “황의사를 따르는 남자들이 많겠는데.” “저는 정조를 잃은 녀자여서 누구도 가지려 하지 않아요.” 선희는 음식점 주위 손님들을 둘러보며 혀를 홀랑 내밀었다. “여기 이런 이야기를 나눌 자리 아니군요. 우리 자리를 옮길가요.” “그러지.” 정호는 꼬리치는 선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직 순정이나 영희나 약혼을 하기 위한 미녀후보였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정욕을 식힐 수 있는 미녀후보는 아니였다. 글쎄 조만간에 숫처녀인가 검증은 해봐야 할 일이지만 어리고 숫된 순정이나 영희를 너무 일찍 꺾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순정과 영희만큼은 진지하게 대했다. 선희는 자전거를 타고 어둑시그레한 골목을 벗어나 버들숲이 우거진 강뚝으로 달렸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차 없어 주로 자전거 행차였지.) “어디로 가오?” 순정이 자전거를 세웠다. “여기 어떤가요?” 어둑시그레한 강가에 버드나무숲이 우거졌다. 강뚝길 옆 수양버드나무가 풀어헤친 아래에 장의자가 누워 있었다. 선희는 장의자에 앉으며 정호를 쳐다보았다. “조용해 좋구만.” 선희는 정호한테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최선생님은 개혁개방 80년대 사람 같잖아요. 어쩜 그렇게 봉건통인가요? 무슨 정조요? 뭐요? 그런가요? 지금 리몽룡이나 춘향이 어디 있는가요? 쳇!” 선희는 뜻밖에도 정호를 나무리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오? 나만큼 개방된 사람 어디 있다고 그러오?” “글쎄 언니한테서 성격이 호방하고 시원시원하다는 말은 들었는데요. 노는 거 보면 딱 19세기 사람 같아요. 머리채를 길게 기른 옛날 사람 같아요. 봉건통이라구야. 호호호.” “아니, 누굴 모욕하오?” 정호는 흐물거리는 선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선희는 몸을 탈며 수다를 떨었다. “숫처녀면 어떻고 정조면 뭐라나요? 다 하루 숫처녀지. 그래도 성숙미 있는 지적인 녀자 제일이지요. 의학을 배운 나만큼 섹시하고 지적인 녀자 몇인가요?” “에이구, 자기 절로 짧은 바지 춰올리면서.” 정호는 선희 볼을 쥐여 살짝 꼬집어놓았다. “아갸갸. 남의 처녀를 왜 이래요? 건달 같은게.” “건달이면 어떻고 숫처녀면 어떠냐?” 선희는 정호를 떠밀어내며 웃었다. “내하구 약혼도 하지 않겠다면서 이게 뭔가요?” 정호는 선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만둔 남자한테 꼬리치는 거 어쩌겠니?” “글쎄, 나도 몰라요. 이게 개방세월이 돼 그렇겠지.” “개방? 그래 선희는 얼마나 개방돼 남을 봉건통이라고 하오?” “이미 최선생님한테 개방하지 않았는가요? 최선생님이라면 언제든지 개방할 수 있지요. 호호호.” “그래?” 그들은 수작을 하며 저도 몰래 서로 끌어안았다.   선희는 희희닥거리면서 종알거렸다. “경험이 꽤나 있군요. 최선생님도 숫총각이 아니군요.” “그런 말 말라.” “ 숫총각 아니면서 누굴 숫처녀 아니라고 나무라는긴. 호호호.” “잔말 말아. 누가 듣겠다.” ...  한번이 있으면 두번 있기 마련이었다. 남자와 녀자를 알만큼 아는 정호와 순정은 정욕을 참지 못할 때면 자주 만나 즐겼다. 그것은 절대 약혼을 념두에 둔 련애가 아니였다. 그러므로 정호는 순정이랑 영희랑 학생들의 눈을 피해 암암리에 놀아야 했다.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 맥이 드는줄도 모르고 망아산 올리막길을 달려올라가 수림 속에 들어가 즐기기도 하였다.   망아산 수림  방공호 속은 정호가 선희와 암암리에 만나 즐기는 곳으로 선정되였다.  소나무숲 속에 70년대에 파놓은 방공호가 수풀 속에 깊숙이 누워 있었다.  이 곳은 정호가 자주 순정이랑 영희랑 데리고 들놀이를 왔던 수림이었다. 아주 익숙하고 정든 곳이었다. 그런데 두루 소나무를 살펴보니 누군가 방공호 옆에 서 있는 한 소나무에 "사랑"이란 글자를 새겨놓지 않았겠는가. 사실 그 "사랑" 글자는 문걸과 영희가 여기 와서 처음으로 사랑을 불사르면서 새겨놓았던 것이다. 이 곳은 암암리에 사랑을 나누는 천혜의 련애장소로 되였다.      우거진 소나무와 수풀이 방공호를 뒤덮고 있어서 방공호 속에 들어가면 머리털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누가 오면 수풀이 우거진 방공호를 통해 깜쪽 같이 소나무숲 속으로 사라질 수 있었다.      정호와 선희는 망아산 수림 속에 힘겹게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 수풀이 우거진  전호 속에 들어갔다.      선희는 정호의 팔베개를 베고 나란히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빨간 앵두입을 열어 종알거렸다. “최선생님, 저 하얀 꽃구름이 흐르는 파란 하늘을 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와 아직 채 식지 않은 열몸을 시원히 목욕시켜주었다. 솔향기와 풀내음이 솔솔 풍겨왔다. 땀에 절은 두 청춘의 향기가 수풀 속으로 서서히 피여올랐다. “어 산바람이 시원해.” “쉿- 누가 듣겠어요.” 선희는 정호 이마의 기미를 식지로 매만지면서 종알거렸다. "아, 이 기미를 보세요. 녀자 복이 있겠다." "그래? 아직은 그런 복 없는데." "녀자복 있기에 오늘도 녀의사하구 혼이 하늘로 날아올라가듯  놀았지. 오늘 기분 좋았지요?" "오, 그래. 기분도 진짜 황홀했소. 선희를 이렇게 안고 죽어도 한이 없을 거 같소.” 선희는 몸을 탈며 반쯤 일어나 앉더니 만족감에 푹 빠진 정호의 우먹눈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서 종알거렸다. “그럼 우리 오늘처럼 살맛나게 함께 살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허허허. 건 안되오. 숫처녀 아닌 걸 알고 살지 못하오.” 선희는 정호의 칼날 같은 코마루를 살짝 꼬집어 비틀어놓았다. 뒤이어 열변을 토했다. “다 거짓말. 보세요. 숫처녀 아니라도 얼마나 기분좋았는가요? 안 그래? 고까짓 숫처녀 딱지 없다고 살지 못한다는 건 없잖아? 난 아직도 처녀의 매력이 있단 말이야. 안 그래?”      그러나 한평생 데리고 살 녀자는 아니였다. “지금 어느 세월인가요? 숫처녀구 뭐고. 살기 좋으면 되는거지.” 정호는 선희를 밀어내며 천천히 수풀 속에서 일어나 앉았다. “림시 노는 건 노는게구. 종신대사는 다른 거지. 지금 이 시각에도 자꾸 선희를 누가 다쳤을가? 자꾸 모를 사내 그림자가 떠오른단 말이야. 자꾸 안개 속에 떠오른 검은 그림자 같소. 어떻게 검은 사내 그림자를 떠올리면서 한뉘 살겠소? ” “에이, 숫처녀가 그렇게 값진가요? 내 숫처녀보다 뭐가 모자래요? 최선생 그 기미 녀자 복이 될 수도 있고 화로 번질수도 있습니다." 선희는 정호를 훌 밀어내고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날 그 놈새끼를 따라간게 죄악이지. 이제 후회한들 어쩌겠소.” 정호도 일어나면서 물었다. “그래 누가 저를 해쳤소?” “묻지 마세요. 그런 놈 하나 있습니다. 그 놈 내 전도를 망쳤어요. 그 놈 때문에 숱한 총각들 최선생처럼 날 만났다가도 숫처녀 아니라고 그만 뒀지요.” 정호는 선희가 자기와 속심의 말을 터놓고 하는 것에 저으기 놀랐다. “그놈  뭘 하는 남자요?” “묻지 말라는데. 그 놈 새끼 생각하면 악이 딱딱 납니다.” “그래 그만 놔뒀소?” “가만 놔두긴. 그 놈새끼 날 병원에 배치해준다면서 해칠줄은 몰랐지요.” “병원 의사요?” “원장 놈.” “그래?” “숫총각이면 괜찮지. 날 다쳐놨다고 물고 늘어지면 함께 살기라도 하지. 늙다리 같은 놈, 색마 같은 놈. 직업을 해결해 주고 숫처녀 몸을 망쳐놓지 않았겠습니까.” “그래. 그 원장 지금도 저네 병원 원장질을 하오?” “네.” “아니, 그런 놈을 가만 놔뒀소? 검찰원 반부패탐오국이나 법원에 소송할게지.” 선희는 눈물을 펑펑 쏟아내면서 말했다. “처음엔 그럴가 했지요. 그런데 언니 말리더군요. 원장은 언니 고중 동창생이래요. 언닌 일이 그렇게 된바하곤 원장을 물어먹어야 내게 생기는게 뭔가 하더군요. 언닌 원장 꼬리를 물고 늘어져 돈도 빨아내고 승급도 하면 좋지 않은가고 했지요. 그 말에 좀 일리 있는 것 같아 놔뒀지요. 소송하면 원장은 끝장날지 몰라도 소문나면 나도 어떻게 머리 들고 살겠는가요?” 후에 정호는 저으기 선희가 불쌍해났다. (선희를 동정해 위안하느라고 그랬는가. 아니야. 둘 다 서로가 수요돼 그랬겠지.) 정호는 선희와의 일을 쭉 회상하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다. 선희는 정호가 젤 오래 데리고 논 녀자였다. 또 잊어지지 않는 녀자였다. 비록 둘 다 이젠 예순고개를 바라보지만 마음 속에, 뼈속에, 뇌리에 들어박힌 녀자였다… 정호는 이제껏 순정을 눈을 피해 암암리에 숱한 녀자들과 바람을 피웠다. 제딴에는 이제껏 순정에게 들키지 않고 한뉘 즐겁게 놀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어느날 바깥에서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해 바람 피우고 집에 들어와 실수했다. 정호는 혹시 전번에 영희가 상해에서 돌아온 날 마중나갔다가 주차장에서 영희하구 그런 걸 눈치챈 것 같아 열정을 보이려고 들었다. 그런데 그날도 바깥에서 술 처마시고 바람 피우고 들어왔던 것이다. 그는 바깥에서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해보이려고 순정한테 달려들었다. (이제껏 애도 못 가지면서 마른 방아를 찧었잖은가.)       정호는 순정에게서 격정이 사라진지도 오랬다. 설상가상으로 순정이 의무적으로 들이대는데다가  콘돔까지 끼우는 바람에 아무리 식은 땀을 흘리며 씩씩거려도 짜릿한 감이 없었다. 정호는 억지로 금방 즐기던 미녀 얼굴과 섹스과정을 회상하면서 미녀들의 기를 빌어 간신히 입내를 내네 했다. “수고했소. 옛소.” 일을 마치자 정호는 습관대로 호주머니에서 백원짜리 한장을 꺼내 내밀었다. “이건 뭔가요?” “팁이오.” “팁?” 순정은 와닥닥 일어나 지전을 홱 채 정호의 우먹눈 앞에 쳐들어 흔들었다. “야, 이 놈아, 내게도 팁 주니? 어디 가 바람피우고 항상 팁 백원씩 줬는 모양이구나. 탄백햇! 아가씨들 몇백명 재꼈니?” “아, 어, 이거… 그런게 아니라니까.” (아차,) 그제야 정호는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다. “남새를 사라고 주는 거야.” “거짓말, 술에 취해 집인줄도 몰랐지? 아가씨하구 그랬는가 했지? 말했! 이놈아!” “됐다, 됐어. 너하고 살지 않았니? 바낕에서 바람 피웠으면 무슨 맥이 있어 너하구 또 그렇게 격렬하게 살았겠니?” “아니야. 넌 항상 우뢰만 울고 비는 오지 않았어. 퉤, 그러고도 신통히 입내를 내? 신음소리까지 내구.” “아니, 계속 의심하겠어? 그럼 리혼하자. 서로 의심하면서 함께 살게 뭐야?” “뭐? 리혼?” 순정은 까만 포도알눈을 부릅떴다. “쩍 하면  보름달이 어떻구, '사랑하는 황후 어떻구' 지껄이더니, 다 파먹은 김치독이라고 헌신짝 차버리듯 해? 량심없는 놈, 배신자! 위선자, 리혼하자면 못할 거 같아? 래일 당장 리혼하자.” "에이, 에이," 이쯤 됐는데도 정호는 헤헤 웃으며 순정을 얼리려고 쇼를 했다. "사랑하는 황후님, 엊저녁 밤잠 제대로 자지 못했나? 왜 아침부터 어린애처럼  서적을 쓰느냐? 헤헤헤." "메스껍다. 황후는 무슨 황후야." "그럼 사랑하는  안해!" "누가 네 안해를 한다 해? 밥 끓여주고 빨래하는 보모 하라고?" "한뉘 애도 못 낳은 주제에, 뭐 모자라 이래?" 순정은 끝내 울분을 토해냈다. “네 놈이 누구 덕에 국장자리까지 올라갔어? 촌뜨기무용교원이 직승비행기 타고 과장 되고. 부국장, 국장까지 됐잖아? 풀밭에 머리를 파묻고 일하던 네 숱한 동생들을 하루 밤 사이에 울 아빠  자동차로 시내에 실어들여 시내 호구까지 올려 줬잖니? 그게 다 누구 덕이냐? 그런데 뭐 모자라  계속 바깥에 나가 바람 피워? 어디 녀자 없어서 처제하구도 그래? 동네 망신스러워서 어떻게 살겠니?” 그녀는 분하고 원통해 이불을 들쓰고 대성통곡쳤다…                    
275    대하소설 졸혼(6) 김장혁 댓글:  조회:1413  추천:0  2022-03-26
                     13. 지하주차장에서 벌어진 희극     비행장 국내도착 출구로 선글라스를 낀 훤칠한 녀성이 긴 외투자락을 날리며 모델처럼 걸어나왔다. 대뜸 숱한 사람들의 눈길이 그녀한테 쏠렸다.      “영희!”      웬 번대머리가 몇카락 안되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며 나가면서 마중했다.       “아저씨.”      그녀는 선글라스를 벗고 조개턱을 쳐들고 반겼다.       “오느라고 수고했다.”        정호는 영희 들가방을 받아 들며 중얼거렸다. “네 앓는다니 퍽 근심했다. 어데 아프다던가?” “가슴이 자꾸 침침해나구 소화 잘 되지 않습니다. 손주들 셋이나 키우느라구 몸이 망가질대로 다 망가졌어요. 이젠 진짜 쪼글쪼글한  할머니 됐어요.” “아니야, 너 비행장에 나타나니 선녀가 비행장에 내린 것 같더라.” “픽! 이젠 다 파 먹은 김치독인데요. 다 늙어빠졌어요. 멀리서 보면 몰라도 가까이에서 보면 쪼글쪼글한 주름투성인데요. 머리도 희고. 몸도 아프지 않은데 없어요. 허리하고 무릎도 아파 애들을 업고 일어나지도 못해요. 상해는 습기차 그런지 아프지 않은 관절이 없어요. 너무 아파 견디기 힘들어요.” “이젠 나이들고 아플 때 돼 그렇겠지. 아프지 말아야겠는데.” “애들도 고향에 돌아가 쉬면서 치료하라고 해 이렇게 훌 떠나왔죠.” “잘 됐다. 애들을 보다가 네가 먼저 죽겠다. 네 고생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 순정이 애를 못 낳는 것도 분복인 거 같아.” 영희는 정호와 나란히 걸으면서 나직이 물었다. “언닌? 언니를 보낼게지. 아저씨 나왔는가요.” 정호는 보마표찌프에 짐을 실으면서 말했다. “코로나 때문에 순정인 자원봉사자로 돼 가도에 나갔다. 요즘 우리 여긴 비상에 걸렸다.” 영희가 뒤좌석에 앉자고 하자 문걸이 말렸다. “앞에 앉아라. 찌프차엔 앞좌석이 안전하다.” “픽, 내 무슨 아저씨 련인인가요? 또 여기저기 만지면 어쩔라구? 제 좋은 궁리 작작하구. 차나 집중해 모세요.” “원래 우리 련인이 아니였댔니? 흥!” “말도 말아요. 자꾸 이러면 택시 타고 갈래요.” 영희는 안전벨트를 매다 말고 차문을 열었다. “알았다. 알아. 어서 앉아라.” 영희는 마지못해 눌러앉았다. 보마찌프는 그들을 싣고 비행장 광장을 떠나 시내로 나는듯이 달렸다. 정호는 반사거울로 영희를 흘끔 들여다보았다. 선글라스를 끼고 파란 바탕에 까지색 무늬가 간 수건을 목에 두른 길죽한 얼굴, 차창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마저 예술적미가 다분했다. 더구나 풍만한 가슴, 섹시한 그 모습 매력적이였다. (언제 봐도 예뻐.) 정호는 영희 같은 미녀를 싣고 천리고 만리고 달려도 곤할 것 같지 않았다. “너네 보고 리혼하지 말라고 말렸는데 기어이 리혼했구나.” 영희 조개턱이 버릇처럼 건뜻 쳐들리더니 한쪽으로 탈렸다. “픽, 그 나그네 말을 하지도 마세요.” 정호는 영희를 힐끔 뒤돌아보았다. “문걸인 배 부른 흥정한다. 이렇게 예쁜 색시를 어떻게 내놓니?” “말 말라는데. 어우, 진짜 짜증난다.” “내 눈이 멀었지. 어쩜 널 두고 순정하구 살았니? 네하구 살았으면 나두 아들딸 줄줄 낳고 손자, 손녀 한 아름 안고 놀겠는데.” “또, 또, 또. 언니 알면 경치자구 자꾸 그래요?" "한뉘 순정하구 살면서 아마 한 동이는 부어넣었을게야. 그런데 어디 애 생기기나 하니?" "그만해요. 처제하구 뭔가요?" "처제? 흐흐.흐. 그래 처제야 처제지. 애들은 잘 있니?" "애들 관심가지지 말래도. 이젠 다시 옛날 말 꺼내봐요. 가만놔두는가? 모든 걸 무덤까지 가지고 갈 궁리는 안하고. 쳇, 자꾸 왜 과거를 꺼내는가요?” 정호는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다 지나간 얘기지만 그저 그렇단 말이다. 그래두 우리 스승과 제자로 지내던 청춘시절이 젤 좋았지.” “그만하라니까. 스증과 제자 얘기도 하지 말아요. 그때 일을 생각하면 난 선생님이란 짐승을 죽여버리고 싶어요.” “알았다. 알아. 네 아저씨로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언니를 다쳐놓구서두 렴치 있습니까? 색마 같은게.” 순정과 영희가 초중을 다닐 때 정호는 무용학생을 신입생을 모집하러 나왔었다. 정호는 업간체조시간에 줄을 쭉쭉 선 녀학생들 속에서 첫눈에 훤칠하고 이쁘게 생긴 순정과 영희가 눈에 들어 무용학생으로 뽑았던 것이다. 보마찌프는 어느 결에 정호네 아빠트단지 지하주차장 입구로 스르르 들어갔다. 보마차는 헤드라이트를 켜고 축구장처럼 넓은 지하주차장에 즐비하게 늘어선 차들을 누비면서 정호네 집 차고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제야 정신이 펄쩍 든 영희가 소리쳤다. “차 돌리세요!” “왜?” “집에 실어다주세요.” “오랜만에 우리 집에 가자.” “아니, 제 집이 제일이지.” “그럼 저녁이라도 먹고 가라.” “아니, 난 지금 가야겠어요.” “비워둔지 오랜 집이 스산해 어떻게 홀로 가 있겠니?” “그래도 제 집에 가는게 좋아요.” 건데 정호가 아무리 발동을 걸려고 해도 걸리지 않았다. 정호가 두리번거리다가 아우성쳤다. “아이구, 봐라. 휘발유 다 떨어졌구나. 급히 나가다나니 주유한다던게 그만 다 잊어먹었구나.” 모든 건 정호가 면밀하게 꾸민 계획대로 척척 돼갔다. “저녁에 언니 오겠지?” “응, 아마 이때면 집에 있을 거야. 애들이 모두 잘 있지? 네 오면 손자들은 누가 보니?” "보모비 주고 왔어요. 상해 보모비 엄청 비싸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영희는 차에서 내려 가방을 들고 차고에서 나오려고 했다. 그때 정호는 영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어마나! 왜 이래요?” “오랜만이야.” “이러지 마세요. 이럼 소리치겠어요.” “쉿- 좀 참아라.” “이제 순정이 오디차를 몰고 들이닥칠 거야. 어쩌자고 이래요?”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그때 때마침 오디차가 지하주차장에 들어섰다. 헤드라이트가 대낮처럼 비추며 다가왔다.  “봐라. 순정이 차 몰고 온다는데도. 이걸 놔!  망신당하자고 이래?” "다른 집 차야. 떠들지 말라."      순정은 이상하게 자기 집 차고 문이 열린 걸 보고 차를 조용히 멈춰세우고 가만히 차고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 보았다.   차고 안에서 자기 눈과 귀를 의심할 한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입 다물어.” “언니, 알면 다 죽을줄 아세요. 아저씨, 제발 이러지 마세요.” “아저씨 처제  말고 스승과 제자 때로 돌아가자. 그때 추억 얼마나 아름답니? 그때  짜릿했던 그 자극 잊혀지지 않지? 요 가슴과 머리, 뼈에 스며 있지? 흐흐흐.” “아, 아니, 이러지 말래도. 언니한테 다 말해버릴 거야. 다 죽을줄 알아! 아, 아, 이 놈 색마, 아이구, 차라리 날, 날 죽여라! 너도 아저씨냐? 죽을 병 걸린 사람을 이게 뭔가요?” “무슨 놈의 병이야, 다 애만 보면서 음양조화 잘 안돼 걸린 병이야. 이 스승 널 치료해주마. 허허허.” “에이즈에 걸렸어요.” “뭐라구? 손주들 보느라고 몸 뺄 새도 없었겠는데 웬 에이즈? 누굴 속이려구? ” “자궁암에 걸렸어요. 그러잖으면 손주들 안 보고 집에 돌아왔겠어요?” “자궁암도 음양조화 잘 되면 낫는다. 으흐흐.” “짐승 같은 놈, 놔라!” 차고 안이 거무칙칙해 차 안은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호와 영희 목소리만은 분명하게 들렸다. “아니, 영희를? 저놈새끼, 저게!” 순정은 생각 같아선 망치로 대갈통을 까고 싶었다. 순정은 자기 오디차 도구상자에서 스빠나를 꺼내들고 보마차에 살금살금 다가갔다. 보마차가 비명을 지르면서 사정없이 요동쳤다. 차 안에서 영희의 비명소리와 반항소리 요란했다. “이 짐승 같은 놈아, 암에 걸린 처제를 이래? 너도 사람이냐?!” 순정은 소리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스빠나를 쳐들었다가 무슨 생각이 피뜩 들어 천천히 내리었다. 드디여 순정은 못 본 것을 본 것처럼 스빠나를 쥔 채 도적고양이처럼 발끝걸음으로 살금살금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오디차가 헤드라이트를 끈 채 조용히 지하주차장을 떠나갔다…               14. 몸부림치는 망아산 로맨스          문걸은 춘희한테 코 떼인 후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화실 안에는 속이 탄 연기가 새뽀얗다. 만금은 재떨이 재를 털어낸 후 차탁 위에 가져다 놓았다. 그때 미녀로봇이 사뿐사뿐 쏘파에 다가와 문걸이 옆에 나란히 앉았다. “무슨 속탄 일이라도 있는가요?” “아니야.” “밤이 깊었는데요. 어서 자지요.” “텔레비죤 좀 보구.” 미녀로봇은 문걸의 다리를 살살 주물러주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미녀로봇은 고독한 문걸의 그림자 같은 친구였고 지기였고 위안이였다. 만금은 문걸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마네킹 같은 비닐미녀 저렇게 좋을 수야. ㅎㅎ.) 미녀로봇은 문걸이 잘 예산이 없자 혼자 침실로 들어가 문을 꼭 닫았다. 집 안이 조용해지자 문걸은 또다시 고요와 고독의 지옥에 갇혔다. (춘희가 그렇게 복잡한 녀자인줄 몰랐어. 눈구덩이에서 그렇게 열렬히 사랑맹세 해놓고 어쩜 해뜩 번져 눕는단 말인가? 딸애 이름을 보면 일본 성이지. 그럼 춘희가 남편 박씨와 갈라진 후 일본에 류학가서 야마구찌 가족한테 재가했단 말인가?) 문걸은 당장 자기 품에 안기리라 여긴 춘희를 따내기 이렇게까지 힘들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너무 힘들었다. 그러자 반감도 생겼다. 흠집도 떠올렸다. “춘희는 가슴이 비행장처럼 빤빤해. 영희 가슴처럼 풍만하지 않아. 흥, 육체미는 영희보다 너무 못해.” 문걸은 저도 몰래 춘희를 영희와 자꾸 대조해보게 되면서 추억의 돛배에 몸을 싣고 영희와의 황홀한 옛날로 되돌아갔다… 만물이 춘흥에 못이겨 취해버리는 봄이였다. 문걸은 친구 영호, 성호와 함께 망아산으로 들놀이를 갔다. 그런데 정호는 자리에 없었다. 웬 일인지 핸드폰도 꺼져 있어 문걸은 더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모닥불에 부글부글 끓는 소천어장국 남비에 둘러 앉아 술을 마셨다. “사람 살려요!” 이때 갑자기 수림 속에서 녀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문걸이랑 술을 마시다 말고 비명소리 나는 나무숲 속을 살폈다. “아니, 저게 뭐야?” 웬 처녀가 풀어헤친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브래지어와 팬티 바람에 두 망나니에게 쫓기워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 놈새끼들아!” 물걸이네는 망나니들을 삼각으로 덮쳐나갔다. 처녀는 뛰여와 문걸의 뒤에 붙어서서 바들바들 떨었다. 파마머리를 한 사자머리가 고함부터 질렀다. “자식들, 죽잖겠으면 싱겁게 끼어들지 말어!” 사자머리도 기신기신 기어 일어나 으르렁거렸다. “꺼지지 못해?! 엉?!” “개자식들!” 싸울줄 모르는 문걸은 황급히 펄펄 끓는 생선국남비를 그 놈의 대가리에 쥐어뿌렸다. “아이쿠!” 사자머리는 낯을 싸쥐고 풀썩 믈읹아 때꿀때굴 구을며 죽는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구레나룻은 이를 악물고 문걸한테 달려들어 비수로 마구 찔렀다. 문걸은 황급히 남비를 들어 날아드는 비수를 막았다. 퍽! 남비가 비수에 찔러 구멍이 펑, 펑 뚫렸다. “앗!” 문걸은 팔이 찔렸다. 구레나룻이 재차 비수를 허공에 쳐들었다가 내리찍는 순간, 성호가 씽 날아나가며 원앙다리를 날래게 날렸다. 비수가 저만치 날아가 떨어졌다. 문걸과 성호는 맥주병을 들고 그 놈들과 단말마적으로 싸웠다. 그런데 영호는 비겁하게 슬슬 수림으로 도망쳤다. 사자머리와 구레나룻은 목숨을 걸고 단말마적으로 덮쳐드는 문걸과 성호를 보고 질겁했다. 그 놈들은 처녀를 놔주고 수림으로 꼬리빳빳해 도망쳤다. 그제야 처녀는 부끄러움을 타면서 두 팔로 가슴을 가리면서 수림으로 되돌아가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었다. 이상하게 옷이 널려 있는 땅바닥에 비닐박막이 펴져 있었고 파란 넥타이가 널려 있었다. 문걸은 화가여서 숱한 미녀모델을 보았지만 영희처럼 육체미가 있는 처녀를 처음 보았다. 빨간 적삼과 까만 짧은 치마를 입은 그녀는 외씨처럼 걀죽한 얼굴에 흙진주처럼 반짝이는 쌍까풀눈, 탄력있고 미끈한 몸매를 가진 참말 선녀처럼 아름다운 처녀였다. “저 때문에 화 당했군요.” 처녀는 손수건으로 문걸의 손과 팔의 상처를 싸매주었다. 순간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마냥 주르르 흘러내렸다. “괜찮소. 어째 혼자 이 수림 속에 왔댔소?” 문걸이 이상해하자 처녀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못하였다. 강도들이 먼 곳에 가고 없엇다. 그제야 영호는 아름다운 처녀를 가까이에서 보려고 슬금슬금 기어나왔다. (야, 정말 이쁘구나.) 영호는 실눈을 해가지고 처녀의 아래 위를 참빗질하면서 마른 침까지 꼴깍 삼켰다. (그런데 조개턱만은 옥에 티라고나 할가.) 성호는 원래 색마미술가 영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 문걸이 자기 동창이라고 데려올 줄은 모그로 이 장소에 왔던 것이다. 요즘 성호는 문걸과 광고설계 때문에 만나군 했다. 영호는 미녀를 보자 생각는 척하며 계집애처럼 수다를 떨었다. “이후엔 이런 수림에 오지 마오. 자기 처녀마저 보호하지도 못하는 사람과는 절대 이런 델 오지 마오.” 성호는 픽 코웃음쳤다. (겁쟁이 같은 놈! 금방 누가 비수를 휘두르는 강도들을 보고 수림 속으로 도망쳤어? 처녀 앞에서 우쭐거리긴?! 흥!) 문걸은 어데선가 처녀를 본 것 같았다. 그러나 안개 속의 미녀처럼 알릴락 말락하게 아리숭하였다. “옳소. 녀자들은 자기를 보호할줄 알아야지.” 처녀는 부끄러워 귀 밑까지 빨갛게 붉히면서 복하게 생긴 이마, 보슴털이 보송보송 난 이마를 곱게 숙였다. 미술가인 영호나 문걸이나 모두 그 처녀의 황홀한 육체미에 정신을 놓고 멍허니 바라보았다. 렴치를 잃고 바라보는 그 세쌍의 따가운 눈길에 처녀는 머리를 숙이고 더 스피드를 내 치마를 주어 입었던 것이다. 문걸이네는 망나니들이 자기 무리를 더 데리고 덮쳐올가 봐 처녀를 데리고 고속도로에까지 내려왔다. 그때 때마침 빈 택시가 달려왔다. 갈라질 때 처녀는 또다시 복스런 이마를 숙이며 인사했다. “구명은정 고마워요. 그대들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끝장날 번했어요.” 그때의 그 처녀가 후에 정호가 문걸에게 중매를 서서 소개해준 미녀무용수  영희일줄이야. 후에 일어난 수많은 일은 이제 뒤에 하나하나 밝히기로 하자.  그때 망아산 기슭 고속도로에서 영희가 택시에 앉아 떠나간 후 택시 한대가 고속도로로 달려와 그들의 옆에서 멈춰섰다. 택시에서 번대머리 정호가 내렸다. “정호야, 어데 갔다가 이제야 오니?” 정호는 번대머리에 돋은 땀을 손등으로 뚝뚝뚝 찍으면서 되물었다. “너넨 여기서 뭘하니?” 문걸은 금방 있은 아짜아짜한 일을 쭉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정호는 속이 섬찍했다. “개새끼들, 시퍼런 대낮에 처녀를 해치려고 사람을 칼로 찔러?!’ 뒤이어 정호는 불쑥 물었다. “그래, 영희는 어떻게 됐니?” “그 처녀 영희라구?” 문걸은 성호랑 둘러보더니 정호한테 눈길을 돌렸다. “아, 아니, 그 처녀 어떻게 됐니? 다친덴 없니?” “무사히 보냈다. 너 아는 처녀냐?” 정호는 황급히 얼버무려댔다. “어, 아, 내 어떻게 그 처녀 알겠느냐? 내 학생 영희두 오늘 친구들이랑 들놀이를 온다고 해서 그래.” 성호는 대뜸 경각성을 높여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그럼 아직도 나머지 처녀들이 수림에 남아 있잖을가? 위험해. 우리 가보자.” 그러자 정호가 횡설수설했다. “이젠 다 도망갔겠지.” … (그날 만난 처녀가 영희일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 정호는 며칠 후에 영희를 나한테 소개해주었지. 그것도 영희가 무대에서 춤 추는 걸 구경시키고 무대 뒤에 가서 무대에서 독무를 추고 갓 내린 영희를 만나게 했지.) 이날 따라 문걸은 영희를 떠올리게 됐다. 춘희와의 열련이 좌절된데다가 영희가 자궁암에 걸렸다고 하니 착잡하게 됐다. 머리가 온통 춘희와 영희로 삼검불처럼 뒤엉켜 버렸다. (춘희는 확실히 괴짜야. 관계가 복잡한 녀자야. 그저 순수한 의사, 박사로만 볼 녀자가 아니야. 술주정배 박선생과 리혼하구 일본에 류학가서 야마구찌 가족의 한 남자와 살아서 딸까지 봤다는게 아닐까. 야마구찌 가족은 일본에서도 력사적으로 한다하는 가족(씨족)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일본에서 세도를 부리는 부자집에서 살지 않고 여기 산골에 와서 의사를 할까?) 문걸은 점점 자오록한 안개 속에 휘감겨들고 말았다. 이윽고 그는 영희를 떠올렸다. 조강지처여서 그럴가. 처음 살을 섞은 녀자여서 그럴가. 아니면 미운 정, 고운 정 30여년을 산 정 때문일가. 문걸은 영희가 불쌍해났다.           문걸은 미술실력은 괜찮았지만 아무런 배경도 없는 그는 시내에 남기 어려웠다. 그때 한 예술학원에서 면목익힌 친구 정호가 팔소매를 걷고 나섰다. 시내에서 자란데다가 무용교원인 정호는 미녀들도 아는게 많았다. 그는 문걸을 보고 먼저 시내 처녀와 약혼하고 그 처녀의 치마자락을 물고 늘어지면 시내에 남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만난 처녀가 바로 가무단의 무용수 영희였다. 영희는 문걸의 가슴츠레한 외까풀눈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간에서 정호가 어찌나 문걸을 춰올리면서 붙여놓은지 차츰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결코 전번에 뜻밖에 망아산에서 문걸이네가 그녀를 구해준 은정에 대한 보답만이 아니였다. 문걸은 확실히 그림을 잘 그렸다. 특별히 인체화를 어찌나 잘 그리는지 미술실력이 뛰여나다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영희는 문걸의 재간을 사랑하게 됐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삶의 희망이 싹트고 걀죽한 얼굴에 졌던 엷은 그늘이 말끔히 가시여지기 시작했다. 아니, 차츰 행복감이 점점 피어오르고 있었다. 문걸은 영희와 함께 망아산 그 어데라 없이 사랑의 발자국을 남기면서 티없이 맑고 깨끗한 순정으로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석양으로 발가우리 물든 망아산의 소나무숲 속에서 영희는 해 넘어가는 것도 잊고 문걸의 팔을 정답게 끼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나무꼬챙이로 땅을 긁다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침묵을 깨뜨렸다. “리동무, 적지 않은 사람들은 예술인들을 정파답지 않다고 꺼리는데요.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원래 언변이 없는 문걸도 영희와 마주 앉으면 이상할 정도로 만도 술술 잘갔다. “건 틀리오. 에술인들이라고 다 정파답지 않겠소? 사람에 달렸지. 서로 리해해주기만 하면 되는데 말이오.” “리동무는 개방적인 성격이군요. 졸업하면 어디에 배치받게 될 거 같은가요?” “시내에 남았으면 좋겠는데 촌뜨기가 어쩌는 수 있소?” “힘내세요. 우린 자기 아름다운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시에 남아야 해요. 좋기는 미술학부 교원으로 남으면 좋겠는데요. 아니면 건축설계원 같은데나 광고공사 설계사로 돼도 좋겠는데요.” 문걸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광고공사에 가면 좋겠는데 될 거 같잖소.” “왜서요?” “우리 학급에 영호라는 동창생이 있는데 벌써 선손을 쳤소. 걔네 아버진 오청룡 국장이랑 잘 아는 모양입데.” “그럼 건축설계원 설계사로 들어가면 어떤가요?” “글쎄, 재간만 보면 들어갈 수도 있겠는데. 지금 다 인맥을 통해 뒤문치기 하는 판에. 에잇, 참.” “저의 큰아버지한테 부탁해보겠어요. 저의 큰아버진 시위 서기인데요.” “오- 고맙소.” 문걸은 시내에 남을 일루의 희망에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그는 영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은희, 우리 시내에 남아 잘 살아보기오. 영희는 모델을 서고 내가 그림 그리면 숱한 돈을 벌 수 있을게오.” “그래요.” 영희는 걀죽한 얼굴을 문걸의 거친 얼굴에 가져다 댔다. 은빛달빛 아래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찰랑거렸다. 그러나 문걸이 숨이 막히게 밀착해올수록 그녀의 얼굴에는 기쁨과 불안한 빛이 반죽돼 어렸다. 어느덧 동녘하늘에 쟁반 같은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라 소나무가지에 걸렸다. 은빛달빛이 소나무숲에도 은싸락을 쏟아부었다. 피끓는 처녀총각은 밤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영희는 오른식지로 은하수를 가리키면서 은방울 굴리는 듯한 목소리로 종알거렸다. “”저 은하수를 보세요. 사람들은 은하수를 어떻구 어떻구 찬미하지만요. 저는 증오해요.” “왜?” 영희는 문걸의 품에서 얼굴을 떼며 종알거렸다. “저 은하수는 해빛과 구름 속에 숨어 있다가도 밤이면 어슬렁어슬렁 기어나와 은빛을 뿌려주는 척하죠. 그런데 기실 은하수는 견우, 직녀를 영영 갈라놓은 나쁜 놈이죠.” “허허. 그래?” 문걸은 영희를 꽉 껴안으며 장담했다. “영희,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은하수는 없을 거요. 내 은희를 한 목숨 다 바쳐 사랑할테니까.” ‘참 잊을 수 없는 밤이군요. 문걸씨, 사랑해요. 우리 사랑이 영원하도록 기도를 드리고 싶어요.” 문걸은 영희를 꼭 껴안고 키스벼락을 안겼다. 이윽고 문걸은 미술가의 독특한 이벤트를 제의했다. “우리 소나무에 우리 영원한 사랑을 기도해 기념으로  ‘사랑’이란 두 글자를 새겨놓기오.” 처녀총각은 은빛달빛 아래에서 손칼로 푸르청청한 소나무에 “사랑”이란 두 글자를 또박또박 새겼다. 피끓는 청춘의 뜨거운 사랑이 푸른 소나무처럼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영원히 변함없으리라는 마음을 담아 한획, 한획 새겨놓았다. 뒤이어 처녀총각은 송진으로 붙여놓은듯이 뜨거운 두 몸을 하나로 융합시켰다.  문걸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홧홧 달아오른 입김을 뿜었다. 뜨거운 키스에 키스를 이어갔다. 문걸은 영희의 풍만한 젖가슴에 손을 넣어 오르내리며 처녀의 최후방선을 마구 허물려고 들었다. 순간 영희의 눈에는 문걸 얼굴 말고 징글서런 번대머리가 떠올랐다.        “호- “        (녀자들 운명이란 왜 이럴가?) 그녀는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처녀총각의 리지의 최후 비밀경계선은 화산폭발 같은 감정의 폭탄에 맞아 산산히 부서졌다. … 문걸은 추억의 돛배를 타고 망아산 열련의 로맨스에까지 이르자 저도 몰래 몸서리쳤다. (청춘시절에 그렇게 열련하던 영희, 조강지처 영희가 날 버리고 떠나가지 않았던가.)  그때 지혜한테서 핸드폰이 걸려왔다. “아버지, 그새 몸 건강한가요? 어머니 자궁암에 걸려 고향에 돌아갔어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 암에 걸리다니? 무슨 암이라니?” “페암이래요.’ “아니, 그럼 의료수준이 높은 상해에서 치료하지 않고 이런 골안에 돌아왔다니?” “말려도 안들어요. 암 말기래요. 죽어도 고향에 돌아가서… 흐흐흑, 흑흑.” “오- 안됐구나.” “아버지, 병문안하러 가세요. 저도 인차 어머니 보러 ” “지금 어디에 있니?” “아마 집에 갔겠지요. 가만. 좀 기다리세요. 제가 확인하고 전화할게요.” 한참 후 기별이 왔다. “아빠, 집에 있는 모양이네요.” “응. 알았다. 내 문안할게.”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리혼했지만  조강지처 아닌가. 아들딸의 어머니, 손주들의 할머닌데 병문안이라도 가야지.) 그때 미녀로봇이 사뿐사뿐 다가와 손을 문걸의 어깨에 얹으면서 물었다. “조강지처 왔는 모양인데요. 절 버리는 건 아니죠?” “오- 그래. 병문안을 갈 뿐이야.” 미녀로봇은 문걸의 팔을 끼고 침실로 들어갔다. 만금은 저쪽에서 비웃음이 실린 눈길로 눈총질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뒤이어 침실에서 미녀로봇의 아양떠는 소리가 들리었다. “기분 나쁠 땐 절 가지면 딱이죠. 모든 스트레스 말끔히 날아날 거예요.” “아니, 오늘 그런 기분 아니야.” “왜 이래요? 한번 실험해보세요. 기분 전환되는가요.” “아,아니, 아파.” 미녀로봇이 한국말로 하는 문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일방적인 행위를 마구 했는 모양이었다. 강압적으로 그럴 때가 많았다. 문걸의 말을 제대로 리해하지 못할 때면 미녀로봇이 제 좋은 동작을 마구 해대군 했다. 그런데 미녀로봇은 말그대로 로봇이기에 기계적인 힘이 아주 셌다. 문걸의 힘으로는 미녀로봇의 기계적인 행동을 제지시키기 힘들 때가 많았다. 문걸이 아무리 밑에서 버둥거리며 짓누르는 미녀로봇을 떠멀이버리려고 해도 어림도 없었다. 미녀로봇은 문걸의 두 팔을 내리누르고 잠옷을 벗기었다. 문걸의 힘으로는 짓누루는 미녀로봇의 손을 치워버릴 힘이 모자랐다. “그만, 그만, 오늘 기분없어.” “좀 좋아 이래? 즐기라고. ㅎㅎㅎ.” 문걸은 오늘 밤에도 미녀로봇에게 당해야만 했다…                 15. 위선자       한편 순정은 오디차를 몰고 부랴부랴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어디라없이 120킬로메터 스피드로 달렸다. 달리고 달려 어느덧 망아산 수림 속으로 달렸다. 산기슭 주차장에 이르러 차머리를 돌려 또 시내로 정신없이 내리달렸다. “정호, 개놈새끼, 어쩜 영희하구 지랄해? 아무리 녀자 없어도 처제마저 놓치지 않어?!” 순정은 이를 옥물었다. 분통이 터졌다. 스빠나로 대갈통을 까놓고 싶었다. 그녀는 억지로 참았다. 그러나 온몸에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를길 없었다. “저런 걸 남편이라고 데리고 살아?” 당장 리혼하고 싶었다. 그러나 순정의 눈에는 이제껏 정호는 정파다운 남편이자 스승으로 남아 있었다. 물론 자기와 련애할 때는 좀 과격하게 놀았지만. (이제껏 바람 피운적 없는데 한번 그랬다고 리혼해? 리혼하면 영희 좋은 노릇을 하지 않을가?) 영희를 떠올리자 악이 났다. “암에 걸려 죽게 돼가지고서도 내 발등을 밟아? 아직도 마음이 죽지 않어? 아빠한테 말해 문걸을 설계원에 넣어주기까지 했건만. 어쩜 그렇게 배은망덕해? 암캐 꼬리치지 않으면 수캐 매달릴 수 있어?” 순간, 순정은 이전에 정호를 두고 영희와 라이벌이 돼 티격태격하던 일을 떠올렸다. 예술학원 무용학부에 입학하자 정호는 순정과 영희의 무용교원이자 담임교원이었다. 정호는 항상 엄격하게 그들에게 무용을 가르쳤지만 생활상에서는 살뜰히 관심해주었다. 그는 때때로 순정과 영희를 근사한 음식점에 청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고 은은한 음악이 흐르는 음악주점에 데리고 가서 시원한 맥주도 마시였다. 술상에는 항상 순정이 좋아하는 오징어, 소라 등 맛있는 해물을 올렸고 영희가 좋아하는 명태볶음은 빠질 때 없이 올랐다. 순정은 미안한 마음부터 앞섰다. “최선생님, 선생님 돈을 너무 많이 써서 미안합니다. 저의 어머니가 돈 푼푼히 줬는데요. 이젠 제가 한턱 내지요.” “아니야, 너희들은 소비자 아니냐? 난 너희들과 마주 앉으면 기분 좋아." 그는 량손에 순정과 영희 손을 덥썩 잡았다. 가늘고 긴 하얀 손가락을 하나 하나 매만지면서 열변을 토했다. "너희들 위해서라면 아낄 거 없어.” 영희도 한마디 했다. “그래도 그렇죠. 오고 가는 정이라고 제자들도 한턱 내야죠. 다음번엔 제가 한턱 내죠.” 순정은 아니꼬운 눈길로 영희를 치켜보았다. “언니 말하는데 나설 건 뭐야? 무직업쟁이인 너네 부모 어데서 돈 나온다고 그래?” “글쎄 시당위 서기 큰아비와 비기진 못해두 한국에 가서 일하잖아? 선생님을 청할 돈만큼은 있다.” “너네 자매간이냐?” “네- 사촌자매간인데요.” 정호는 놀랍다는듯 우먹한 외까풀눈으로 순정과 영희를 번갈아보았다. 여느 때 무용을 가르칠 때 우멍눈에서 뿜기던 엄격한 눈빛은 사라지고 이상한 눈빛이 번뜩였다. “오- 그래? 그러기에 둘 다 이쁘지.” 정호는 순정과 영희한테서 눈길을 떼면서 간장이 묻은 입술을 혀로 감빨았다. “사촌자매라는데 생김새 조금 달라.” “어떻게요?” 순정과 영희는 서로 눈길을 마주치더니 생글방글 웃는 눈길로 젤 따르는 스승을 쳐다보았다. 정호는 자못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순정은 보름달 같이 예쁘고 영희는 참외씨처럼 걀죽해 이쁘다.” 영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죠. 순정 언니 더 이쁘겠죠. 보름달처럼. 참외씨 무슨 그렇게 곱겠습니까? 언니네 아빠는 시당위 서기인데요. 저 로동자가문의 딸이야 무슨 배경이 있는가? 뭘 볼게 있습니까?”      정호는 눈이 데꾼해져 순정을 건너다 보았다. “순정아, 너네 아빠 시당위 서기냐?” “예. 무슨 어려운 일 있으면 저하고 말하세요. 아빠하구 말하면 술술 풀릴 거예요.” “그래?” 순간 정호는 순정의 치마자락을 잡고 가시아버지 덕에 출세해보려고 들었다. 후에 정호는 야망을 끝내 실현하고야 말았다. 그는 가시아버지 덕에 무용교원으로 부터 문화국 인사과장으로, 나중에 문화국 국장으로까지 제발되였던 것이다. (배은망덕한 개놈자식!) 순정은 배신자 정호를 생각만 해도 치떨렸다. 순정은 정호 선생님은 마음이나 인품이나 다 좋았는데 무엇 때문인지 언제부터인가 번대머리와 거슴츠레한 우먹눈이 눈에 거슬렸다. 영희나 그를 볼 때 그 우먹눈은 이상한 눈빛을 발산하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영희에 대한 질투심은 순정으로 하여금 가정배경을 리용해 정호선생님의 총애를 독차지하려고 애쓰게 만들었다. 그런데 뭐야? 언제부터인가. 정호는 순정 몰래 영희만 데리고 백화상점에 가서 파란 원피스를 사 입혔다. 순정은 새 원피스 입고 으시대는 영희가 슬그머니 눈에 거슬렸다. 한편 영희를 편애하는 정호선생이 미워났다. 웬 일일가? 순정은 영희한테서 정호선생님을 떼내고 싶었고 선생님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싶었다. 졸업을 앞두고 영희는 졸업배치를 근심해 자꾸 정호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런데 순정은 아버지를 믿고 가무단에 갈 근심은 하지 않고 무용실에서 밤늦게까지 무용련습을 했다. 어느날 밤에 순정이 무용실에서 무용련습을 할 때였다. 정호가 불쑥 무용실에 나타났다. 그는 이상한 빛이 번쩍이는 눈길로 순정의 몸을 아래위 훑었다. 이전에 자주 보아오던 눈빛이 오늘 밤에 유난히 더 번개치듯 번쩍이었다. 정호는 달걀침을 꼴깍 넘겼다. 탄탄하고 야들야들한 우유빛허벅다리, 깊이 파인 무용복 밑에 드러난 백지장 같은 살결… "그 동작은 이렇게 해야 해." 정호는 순정한테 다가와 초두부처럼 하들하들한 우유빛허벅다리를 매만지며 들었다 놨다 하며 저도 몰래 장탄식했다. “너 몸매 정말 예뻐.” “어머, 선생님, 영희 더 이쁘잖아요?” “아니야. 난 기실 순정을 더 예뻐해.” “거짓말,” “정말이라니까. 네가 더 예뻐. 허허허.” 순정은 쌍까풀눈을 곱게 흘겼다. “건데 왜 영희한테만 수입제명품 치마와 저고리 사 줬습니까?” “영희는 너보다 생활이 가난하지 않고 뭐야?” “오- 그야 그렇지만 나한테 옷 하나도 안 사주고. 말로만 영희보다 더 이쁘다고 해요?.” "영희에 대한 건 동정에 불과해.  다음달 로임 나오면 멋진 원피스 사줄게." "정말? 그래 영희한테 하나 사주면 이후에 한평생 백개, 아니, 천개 만개 사줄게." 정호는 그 약속을 지켰다. 순정이 아버지가 시당위 서기라는 걸 안 다음부터는 순정한테 자주 옷도 사주고 반지도 사주고 지어 금팔찌까지 사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18세 밖에 안된 순정은 사랑이 뭔지 몰랐다. 정호선생님에 대한 감정은 일종 라이벌 영희에 대한 질투, 그리고 스승에 대한 존경뿐이 반죽된 응어리였을 것이다.      정호는 담임교원이기에 전 학급의 녀학생들의 존경을 받았다. 진짜 꽃밭에 들어앉아 꽃들의 존경에 받들려 황제처럼 향수하면서 즐겼다. 그는 순정에 대한 사랑보다 점유욕이 부글부글 끓어번졌다. 그는 순정의 허리자세랑 바로 잡아주는 척 하면서 허리랑 어깨랑 매만지면서 중얼거렸다. “가무단에 가서 전국에 이름난 인기 1급무용수로 되자면 물론 무용실력을 갖춰야지. 허나 그것만으론 퍽 모자라. 예술인은 전도를 개척하려면 무용예술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줄도 알아야 해.” 순정은 정호선생님의 말이라면 다 따랐다. “어떻게 희생해요? 돈이랑 가져다 주고 코밑치성이랑 잘하면 안돼요?” 정호는 천진한 순정에게 렴치잃고 진속을 드러냈다. “스승이나 윗사람에게 몸이랑 바쳐야 전도를 개척할 수 있어. 내 중학교 때 선생님도 예술학원 스승한테 술 몇병 가져다 주었더라면 중학교 무용교원이겠니? 무용실력을 보면 시가무단에 들어가 춤 췄을 거야. 여자들은 전도를 개척하자면 자기 몸까지 희생할줄 알아야 해.” 더러운 인생철학이었다. “어머!’ 순정은 깜짝 놀랐다. “그것도 말이라고 해요? 난 전도를 개척하지 못해도 그런 짓 못하겠어요. 정 안되면 아빠한테 말하더라도 그런 못난 짓은 못해요.” 그러나 정호는 순정한테 바싹 다가들어 와락 끌어안았다. “난 영희보다 널 더 사랑해. 우리 함께 전도를 개척하면서 살자.” 순정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절 사랑한다고 했어요? 영희 말고 날 사랑해요?” “그래.” “영희 나보다 더 이쁜데.” “아니야, 그 조개턱 딱 질색이야.” “내가 어디 이쁘다고 이래요? 영희 이쁘기에 원피스랑 사줬지. 흥!” 정호는 순정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우먹한 외까풀눈으로, 불찌 탁탁 튀는 눈길로 마주 보았다. “보름달 같은 네 얼굴 조개턱보다 더 사랑스럽다. 순정아, 난 널 진정 사랑한다. 목숨까지 다 바쳐사라도.” “최선생님.” 순정은 감동을 입어 온몸을 옹송그리며 전률했다. 정호는 순정을 놓고 문께에 가서 절컥 문을 잠갔다. 그리고 전기마저 꺼버렸다. “선생님, 불 켜요” “쉿- ” “이러지 마세요. 선생님, 이게 뭡니까? 전 학생인데요.” “학생이면 뭐래?” "전 아직 미성년인데요." 순정은 정호를 밀어내며 애원했다. “최선생님은 학생 때 련애하면 퇴학준다고 하잖았어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다 개소리라 해라. 우리 스승과 제가간에 서로 사랑하는데 뭐라니?” “내 전도를 책임지죠?’ “그래. 근심말라. 네 평생을 내가 책임질게. 널 영원히 사랑하면서 가정 이뤄 살련다. ” "다신 영희를 좋아하지 않죠?" '그래. 처제를 내 친구한테 수개해줗게." "이젠 영희 말고 나만 사랑하죠?" "그래. 순정만 사랑할게." "약속 지키죠?" "그래. 약속하마." … 무용실 강당에서 정호가 한창 순정의 숫처녀 모든 것을 짓밟을 때였다.  "꼼짝 말엇!" 갑자기 어둠 속에서 고함소리 울렸다. 두리모자 둘이 뛰여들었다. 무용실 강당의 불이 잘칵 켜졌다.  정호와 순정은 황급히 옷을 주어입었다. 두리모자들을 힐끔 핼끔 곁눈질해보니 경찰들이었다. "제길할, 재수없이. 경찰이 어떻게 알고 왔어?" 누군가 그들의 희극 노는 것을 발견하고 신고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파출소에 끌려갔다. 경찰들은 심문을 거쳐 그들이 사생지간이란 걸 알고 아연실색했다. "아니, 선생님이란 자가 어찌 학생을 강간해?" 정호는 순정과는 련인관계기에 강간하지 않았다고 딱 잡아뗐다. 경찰은 순정한테 눈길을 돌렸다. "맞아요. 우린 서로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이제 제가 졸업하면 당장 결혼할 겁니다." 그러자 경찰들도 더 할 말이 없었다. 위법은 아니고 학교 도덕과 기률을 지키지 않았을뿐이었다. "아무리 련인사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영향이 나쁘게 학교 무용실에서 그따위 짓을 합니까? 숱한 사생들이 보고 신고했단 말입니다. " "죄송합니다. 다신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정호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반성했다. 경철은 머리를 폭 숙인 순정에게 눈길을 돌리더니 한마디 쏘았다. "학생이란게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에이, 참. 썩 나가오."       순정은 그날 밤 2층 무용실에서 정호한테 당했을뿐만 아니라 파출소에 잡혀가 창피까지 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호는 진짜 약속대로 순정과 약혼하고 결혼까지 하였다. 그리고 아쉬운대로 영희마저 문걸한테 소개해 약혼시켰다. (오늘 밤에 영희와  또 그러다니?) 여기까지 생각하자 순정은 저도 몰래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한평생 영희 말고 나만 사랑한다고 했잖아.) 그러나 순정은 정호의 속심을 모르는 일면도 있었다. 정호는 처음 무용실 강당에서 순정을 어두운 밤에 묻어버리고나서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가슴이 빤빤한 비행장 활주로 같지 않겠는가. 진짜 녀자의 치명적인 흠집에 실망했다. 그러나 정호는 전도를 위해 순정의 활주로가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때 정호는 모진 결심을 했다. (전도를 위해선 요까짓게 다 뭐냐?  이제 과장, 국장, 문화귀족으로 되면 어데 가서 풍만한 처녀 하나 점유 못하겠는가?)       순간 정호는 영희 풍만한 젖가슴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그후 정호는 순정을 점유하고서도 영희의 풍만한 젖가슴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순정에게서 잃은 것을 숱한 처녀들에게서 보충하려고  들었다.        순정은 이 시각까지도 정호를 몰라도 너무나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다방에 앉아 밤이 깊도록 제 좋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약속대로 나와 가정을 이루고 내가 애를 못 낳아도 지금까지 살긴 살았다. 건데 지금 와서 날 배신하구 영희하구? 내 애를 낳지 못한다고 그래? 업신여겨도 정도 있지. 내 입이 터지면 넌 머리 들고 살겠구나. 나쁜 놈.) 그러나 영희와 정호의 일을 세상에 홀딱 까밝혀놓으면 자기도 끼어 팔릴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리하여 순정은 차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속을 끙끙 앓게 됐다. 순정은 밤중이 돼서야 간신히 다방에서 나왔다. 커피점 녀보스가 깎듯이 인사했다. “감사해요. 또 오세요.” 순정은 녀보스의 간드러진 한국 말투에 느끼해 피끗 쳐다보았다.      (깜짝이야!)     소문난 인기모델 정희가 아니겠는가.      정희는 문걸이 데리고 다니면서 라체화를 그렸다는  그 녀모델이였다. 정희는 성호네 광고회사 모델을 하다가 부총경리에 재무과장까지 됐는데 광고공사 돈을 가지고 한국에 도망쳤다고 했다. (온 시내에 소문이 자자한 갈보 아닌가.) 순정은 도리머리를 잘래잘래 저으며 오디차에 올라 발동을 걸었다. 근사한 려관에 자리잡을가고 려관으로 향해 달리다가 급정거했다. (아니야, 그 개 같은 놈새끼, 또 어떻게 연극 노는가 보자.) 순정은 핸들을 오른쪽으로 탈아 집으로 달려갔다. 십자길에서 빨간 신호등인줄도 모르고 마구 가로질러 나갔다. 코로나 때문에 온 시내가 봉쇄돼 다행이 방역차 외 달리는 차가 없었다. 사고 나지 않은게 다행이었다. 그러나 교통경찰이 앞을 막아 세웠다. 짜증나게 경찰한테 교통처분을 받고 집으로 들어섰다. “어쩨 이렇게 늦었소?” 집에 들어서자 번대머리가 벌떡 일어나 마중나와 와락 끌어안으려고 했다. (메스꺼운 자식, 작작 연극 놀아.) 순정은 생각 같아서는 귀쌈을 짝 갈겨놓고 싶었다. 허나 억지로 참으며 그저 손으로 밀어버렸다. “부인, 아니, 우리 황후, 왜 이렇게 늦었소?’ 정호는 순정의 손가방을 받아든다, 훌훌 벗는 옷까지 받아 옷궤 안에 가져다 걸어놓는다 하면서 전에 없이 수다를 떨었다. “배고프지 않소?” 정호는 앞치마까지 두르면서 저녁상을 챙기려고 주방에 들어갔다. “그만 두오. 영희는 마중해왔습니까?” “어, 엉? 그래.” 정호는 꺽꺽거렸다. “그래, 암에 걸렸다더니 어떻습디까?” “언제 말할 새 있소? 그저 집에 데려다 주다나니.” 정호는 주방으로 슬슬 피해가며 중얼거렸다. “우리 집 황후님, 아, 온 하루 종일 코로나예방전선에 나가 자원봉사를 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했겠소. 난 부인이 고생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오. 제 좋아하는 왕새우와 소라를 푹 삶아놓았소. 먹고 자오.” “정말 모범난편이구만. 왕새우는 뒀다가 영희를 데려다 함께 먹지요. 영희는 왕새우라면 쌩- 하잖아요? 걔 좋아하는 명태볶음도 해놓으세요.” “영희는 영희구. 그래도 난 마음 속에 여보 당신, 우리 황후 밖에 없소. 순정이란 이름만 보오. 부인님은 얼마나 순정을 내게 몰부었소. 늘그막에야 안해를 믿고 살아야지. 가정이 화목해야 만사가 잘 된다 하지 않소? 부부 간에 화목해야 장수한다오. 우리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백년이고 만년이고 살기오.” (위선자!) 순정은 하마터면 고함칠번했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며 침대에 쓰러졌다. 그러자 번대머리가 침대머리에 다가오더니 와락 달려들었다. “가라, 가! 일하고 곤해. 흥!” “왜 이래?” 정호는 번대머리처럼 뻔뻔하기로 한심했다. “음양조화가 잘 돼야 무병장수한다오. 엔돌핀도 생기고.” “작작 지껄여!” “뭐라고?” “남의 기분은 모르고. 흐흐흑, 흑흑.” 순정은 속을 칼로 저며내는듯이 아파났다. “왜 이래?” 번대머리는 버릇처럼 몇오리 안되는 머리카락을 빗어넘기면서 우멍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혹시 들켰나?) 그러나 인차 대머리를 가로저었다. 정호는 바깥에서 바람을 피우면 집에 들어가 모범남편 탈을 쓰고 연극을 잘 놀군 하였다.  “오늘 어느 코로나환자 괴롭힙데?” 순정은 대꾸도 하지 않고 세면실에 가서 세척체로 손을 씻고 눈물범벅이 된 얼굴도 훌훌 휑구고 헝클엉진 머리카락을 빗으며 거울을 쳐다보았다. 자기 억울한 모습 더없이 불쌍했다.        이튿날 아침에는 정호가 글쎄 앞치마까지 두르고 아침밥까지 짓느라고 덜거덕거렸다. 정호는 남비에 기름 부어넣고 닭알을 깨넣고 지지고 볶았다.  순정이 잘 먹는 명태국까지 부글부글 끓였다. 한참 씩씩거리더니 산해진미로  아침상까지 차려놓고 순정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여보, 우리 집 황후, 황후님께서 좋아하는 산해진미로  조선 왕궁 수라상 차려놨습네다. 어서 일어나 잡수십시오." "픽, 더럽다." 순정은 이불을 푹 쓰고 일어나지 않았다. 진짜 해 서산에서 뜰 지경이었다. (국장이느라고 항상 틀을 차리면서 떽떽거렸잖은가. 누구 덕에 국장자리에 올라갔니? 아버지 아니면 네깐 놈이 국장은커녕 , 흥! 젊었을 땐 애를 못낳는다고 항상 날 '어애'라고 욕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이젠 마른 방아를 찧지 못하겠다면서 몇번이고 리혼까지 하려고 했지. 그런데  저놈새끼 바깥에 나가 바람 피우고는 저렇게 표현이 좋았댔구나. 개 같은 놈, 위선자, 저놈새끼, 이때까지 한달에 서너번씩이나 바람 피웠단 말인가?)       몇번이나 정호가 바깥에서 성병을 묻혀들여 그녀는 창피하게 성병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됐다. 정호는 바깥에 나가 바람 피우고 집에 들어온 날이면 자기를 위장하기 위해 모범남편 탈을 쓰고 연극을 노는 한편 침대에서도 그럴듯하게  연극을 놀았다. 그는 전에 없이 수다를 떨면서 애정공세를 들이댔다. 그러나 별로 애무도 하지 않고 항상 대충 입내를 내군 했다.  진짜 그럴듯하게 연기하는 위선자였다. 그러나 순정은  이날 이때까지 애를 낳지 못한 "죄'로 해 한쪽 눈을 질끈 감고 살아왔다.  순정은 이제껏 위선자한테 속아 놀아난 것이 원통했다. 더구나 짐승처럼 처제 영희마저 놔두지 않자 더욱 분통이 터졌다. 악이 딱딱 났다.       그러나 정호는 순정의  심정은 하나도 모르고 이튿날 아침이면 더욱 수다를 떨어댔다.        "우리 황후 자원봉사를 하느라고 퍽 곤한 모양이구나."        그는 순정이 침실에서  나오지 않자 이번엔 흡진기로 집 안 청소를 하느라고 뚱뚱한 배를 뚱기적거리면서 씩씩거렸다.  그럴수록 순정의 반감과 격분은 반비례해 고조에 치달아올라갔다.        순정은 대머리를 도끼로 팍 찍어놓고 싶었다. 그녀는 이를 옥물었다.         (위선자 같은 놈, 어디 두고 보자. 날 배신하고 어디 좋은 끝장 있는가.)  
274    대하소설 졸혼(5) 김장혁 댓글:  조회:1335  추천:0  2022-03-26
                             11. 미로   소방헬기 엔징소리가 들리는 상 싶었다. “문걸이!” “춘희!”  춘희는 어슴프레 들리는 부름소리에 하늘에 펑 뚫린 협곡 구멍을 맥없이 쳐다보았다. 등산대원들은 눈구덩이 옆에서 노란색 멜가방을 발견했다. “여기 있다!” 누군가 다급히 소리쳤다. 모두들 눈구덩이 속을 내려다 보니 글쎄 춘희가 문걸을 껴안고 앉아 있지 않겠는가! 소방헬기는 불길이 치솟는 눈구덩이 근처에 다가왔다. 소방대원들이 바줄을 타고 미인송림에 주르르 내려왔다. 그들은 소방도기를 들고 황급히 눈구덩이에 달려왔다. “어서 사람 구해주세요.” “저 눈구덩이에 사람이 빠졌어요!” 소방대원들은 소방기를 휘둘러 눈구동이에서 치솟는 불길부터 박멸했다. 눈구덩이에서 치솟은 불길이 미인송림을 덮치지 않고 소방헬기만 불러온 것이 참 다행이었다. 드디여 불길은 꺼지고 하얀 연기마저 천천히 걷히기 시작했다. 소방대원들은 바줄을 눈구덩이 옆에 치솟아 있는 미인송과 소나무에 동이고 눈구덩이 속으로 미끌어져 내려갔다. 드디어 바줄에 먼저 춘희가 끌려올라왔다. 중태에 빠져 있었다. 나중에 끌려올라온 문걸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소방대 대장이 어깨에서 대화기를 떼내 헬기에 대고 고함쳤다. “빨리 담가를 내려보내오!” 헬기 문이 열리더니 담가가 내려왔다. 소방대원들은 춘희와 문걸을 련이어 담가에 실어 헬기에 실었다. 헬기는 미인송림 창공을 누비며 Y시를 향해 날아갔다… 춘희와 문걸은 급진실에 나란히 누워 구급치료를 받았다. 그들의 체온과 혈압이 극치로 내려갔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의 심장만은 가냘프에 벌걱벌걱 뛰고 있지 않겠는가! 한밤중까지 구급해서야 그들의 체온과 혈압이 올라가고 얼었던 얼굴에도 피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사흘 후에야 춘희가 먼저 눈을 살며시 떴다. 온통 하얀 벽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는 눈을 천천히 뜨자마자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간호원을 보고 나직이 물었다. “문, 문걸선생 어떻게 됐소?” “김의사, 리선생님도 무사합니다. 구급됐습니다. 오래잖아 정신 차릴 겁니다.” 춘희는 옆에 나란히 누운 문걸을 보고 안도의 숨을 호 내쉬었다. 만금이 옆에서 문걸의 얼굴로부터 목, 손에이르기까지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남이 보면 문걸의 안해인가 할지도 모를 지경으롤 애잡잘한 장면이였다. 며칠 후에야 춘희와 문걸은 퇴원해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갈라질 때 그들은 모든 사람들 앞인지라 악수나 하고 각기 무거운 발걸음으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춘희는 만금이 문걸을 부축해 돌아가는 것을 보고서야 시름놓고 택시쪽으로 홀로 걸어갔다. 그녀는 그때만큼 고독할 때가 없었다.     문걸은 적막강산 같은 집에 돌아와서도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도처럼 덮쳐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내 지금 춘희하구 재혼하려고 이러나? 어떻게 뛰쳐나온 정신감옥인데 또 되뛰여들어가려고 하는가? 가정은 진짜 즐거우면서도 정신쇠사슬로 얽맨 감옥이지. 그러나 늘그막엔 그래도 서로 의지하면서 살 안해가 더욱 필요하지 않은가? 전번에도 그렇지. 집에 영희가 있었더라면 내 쓰러졌을 때 120구급차라도 불러 병원에 실어가지 않았겠는가. 옆에 사람이 없으면 홀로 죽어도 몰라. 옆집 한족아줌마가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더라면 난 복도에서 홀로 쓰러진 채 죽었을 거야.) 문걸은 오랜만에 권연을 붙여 물었다. 속이 탄 연기가 가슴에서 뿜겨져 나와 천정으로 타래쳐 올랐다. 만금은 바삐 째떨이를 가져다 차탁 우에 놓았다.    (어떻게 춘희와 재혼하면 행복할가? 진짜 황혼의 짜릿한 사랑으로 화학적결합을 할 수 있을가?) 여기까지 생각하는 순간 놀랍게도 춘희와 영희가 겹쳐 떠올랐다. 문걸은 저도 몰래 비해보게 됐다. 사람의 마음은 고약하기 그지 없었다. 아니, 이래서 사랑은 간사한 요술쟁이야. 사귀여본지 얼마 안되는 춘희와 조강지처를 비해보면서 사랑의 선택을 시도하게 하는 것이 알고도 모를 사랑이 아닌가. 문걸은 허무하고 마음이 알알하게 쓰려났다. 그러나 끝내는 저도 몰래 비해보게 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래서 사랑은 요사하다고 하는 걸까. (물찬 제비 같은 체격, 복스러운 이마, 까만 쌍까풀눈, 오똑이 솟은 코마루, 영희는 조형미가 있지. 무용수로서의 형상미가 있어. 진짜 모델로 쓰긴 좋아. 우유빛살결은 부드러워서 손감각이 떨릴 지경으로 좋았지. 아, 그 야들야들한 허벅다리…) 문걸은 온몸을 전률했다. 순간 처음 영희를 만났을 때 인상이 눈앞에 선희 떠올랐다. 그때 문걸은 정호를 따라 무대 옆에 난 문께에서 통보없이 영희, 무용수 그녀를 만났다. 갓 무대에서 내려온 영희는 무대 우에서 봤을 때보다 가까이에서 봐서  그럴가. 얼마나 예쁜지 몰랐다. 그런데 그가 바로 망아산에서 브래지어와 팬티 바람에 허둥지둥 도망치다가 만난 처녀일줄은 몰랐다. (그날 영희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을가?) 그러나 영희 마음 속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 같아 더 캐묻지도 않았다. 영희한테 첫눈에 반해 사랑하기 시작한 이상  자기 입으로 말하기 전에는 이날 이때까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대에서 내린 영희는 그들 앞에 고개를 숙이고 치마자락을 여미고 서서 놀란 쌍까풀눈을 슴벅이었다. 놀라움이 서린 그녀의 모습, 이슬이 맺힌 모란꽃 같고 실버들 같은 허리에 릉라주단, 아니, 청춘이 휘감긴 경국지색이 아닌가. 화가 문걸은 미녀들을 수없이 보아왔지만 골격이나 미모, 살결이 이렇게까지 예술적미가 다분한 미녀는 처음 보았다. 그는 완전히 첫눈에 영희 미모에 반해버렸던 것이다. 정신잃고 뚫어지게 영희 아래우를 참빗질했다. 그래서 영희는 수줍어 머리를 점점 더 숙이지 않았던가. 화실에서, 그것도 대낮에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영희의 라체를 볼 때 문걸은 미칠 지경이였다. 물론 망아산에서 처음 격정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때는 이성에 대한 점유욕에 성급히 허둥대다나니, 어두운 밤장막에 가려져 영희의 아름다운 몸매를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망아산 때보다 여유작작했다. 카텐으로 가려진 화실의 부드러운 연분홍불빛 아래 신이 다듬어놓은 듯한 미녀의 명암이 분명한 얇은 곡선미, 청춘의 열기 넘치는 우유빛 몸매… “아!” 문걸은 저도 몰래 감탄하며 영희의 부드러운 우유빛살결을 살살 어루만지면서 새삼스레 극치에 이른 환희와 자극을 느꼈다. 그는 저도 몰래 미녀의  풍만한 가슴으로부터 예술적으로 다듬어진  배와 허벅다리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훑어보며 냄새까지 만끽하며 심장을 울리는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확실히 형상미 있어.) 문걸은 그때 그 감각과 자극의 추억에 다시한번 온 몸을 전률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이였다. (잘난 척하며 도고하게 쳐든 영희 조개턱은 이젠 보기만 해도 진절머리 나. 항상 잔소리 하는 그 앵두입은 더욱 미워! 더구나 영희는 속은 텅 비였어. 빛갈 고운 개살구야. 아니, 덜돼 먹은 못된 녀자야.) 글쎄 누구나 오래 지내보면 흠집이 드러나기 마련이지. 그러나 영희는 문걸의 눈에 난 여자로 밖에 안됐다. (춘희는 카리스마 넘치는 외까풀눈이 퍽 매력적이야. 속에 든게 많은 박사야. 마음이 비단이야. 날 구급하려고 휄체어에 밀고 달아니고 심지어 자기 피도 수혈해주지 않았던가. 늘그막엔 마음이 좋은 녀자를 만나야 서로 믿고 의지해 살 수 있어. 그런데 춘희가 날 사랑하는가?) 모든 것을 확인해야 한다. (리혼도 하지 않은 춘희가 내하구 재혼하자고 할가? 의사로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환자를 살리려고 애정써비스를 한 건 아닌지? 또 그저 유쾌한 친구로 사교무 추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나 부르면서 즐기자는건지? 눈구덩이에 빠지는 바람에, 생사를 짐작하기 어려운 특수한 환경에서 그렇게 된게 아닐가? 우연하게 발생한 사고 때문에 그렇게 된게 아닐가? ) 문걸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춘희, 말해다오. 사교무나 추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나 부르고 안마방에 가서 마사지나 하고... 그렇게 즐기자는 거요?” 그러나  춘희는 대답이 없을 것 같다. 모든 것이 안개 속처럼 분명하지 않았다. (그럼 내 짝사랑 한 건가?) 문걸은 속이 타 오랜만에 권연을 찾아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찰칵 켜 불을 붙였다. 그는 쏘파에 앉아 담배연기를 가슴에 한껏 빨아들였다가 후 내뿜었다. 속이 탄 연기가 화실에 타래쳐 올라갔다. (아니야, 춘희는 분명 날 사랑한다고 했어.우린 눈구덩이 지하에서 서로 꼭 안고 사랑을 고백하지 않았던가.) (졸혼이야? 재혼이냐?  나이 들면 사랑이 점점 식어가고 사막처럼 말라가지. 그러면 졸혼하고 싶어하지. 그러나 졸혼하고 오래동안 고독하게 산 홀애비나 과부는 또 재혼할가 말가 하지.) 지금 문걸은 그 어려운 문턱에 서서 어느쪽으로 뛰어내릴가 망설이고 있었다. 졸혼과 재혼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문걸의 처지, 춘희와 영희, 미녀로봇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문걸이, 사랑의 미로에 빠진 문걸이 가엽다. 문걸이네 하얀 비둘기가 집 유리창문에 날아와 매달려 집으로 들어오려고 날개를 파닥인다. "왜 또 돌아왔어?" 비둘기가 또 날아와 문걸을 보고 구구거리지 않겠는가. "먹어리를 좀 주세요. 눈이 내려서 이틀이나 굶었어요.” “또 따뜻한 베란다 생각나니?" "그래 또 초롱에 갇히고 싶어? 바보야!" 비둘기는 유리창문을 부리로 똑똑똑 노크하면서 구구거리는 상 싶었어요. "초롱 안에 있을 땐 바깥에 나가 자유롭게 살고 싶었는데요. 정작 바깥에 나오니 주인님 따뜻한 베란다 초롱 안이 생각나요. 더구나 눈풍설에 헤매지 않고 주인님이 주는 영양가 높은 먹거리 생각납디다." “또, 또, 또 그 맥빠진소리냐?”        (참, 가소롭다.)       문걸은 자기 처지와 같은 비둘기를 보고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이 집이 옥신각신 할 때마다 항상 평화를 가져다주던 비둘기가 아닌가.      "비둘기야, 네 처지 불쌍해. 내 마음이 모질어서 널 받아들이지 않는게 아니야. 문걸은 식장에 가서 옥수수알을 한줌 쥐여 종지에 담아들고 베란다에 다가가  창문을 열고 창문 턱에 내놓았다. “어데 가 굶었는 모앙이구나. 널 차마 또다시 초롱 속에 가둬두고 싶지 않구나. 멍청한 생각하지 마. 옥수수알로 요기나 하구 자유를 찾아 날아가라."     비둘기는 종지의 옥수수알을 다 쪼아먹고서도 부리로 창문을 계속 노크하지 않겠는가. 문걸은 비둘기한테 다가가 중얼거렸다. "사랑하는 비둘기야, 좀 힘들더라도 어서 너만의 자유로운 생활을 찾아가라."     비둘기는 실망했을가? 아니면 문걸의 말 뜻을 알아들었을가?     하얀 비둘기는 구구거리더니 푸드득 저멀리 자유와 평화로 파랗게 물든 푸르른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초롱 안 비둘기는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하고 바깥에 나간 비둘기는 초롱 안에 갇히면서라도 따뜻한 주인집 베란다를 그리워 하다니. 아, 참, 주인이 주는 영양가 높은 그 먹거리. ㅎㅎㅎ                 12. 암야에 가려진 마음의 상처      문걸은 외로운 밤이 무서웠다. 적막에 둘러싸인 밤의 공포가 악마처럼 구석구석에서 스물스물 기여들었다.  밤은 예감도 없이 신성한 두려움으로 문걸의 령혼을 감싸안으면서 고독한 마음에 새로운 사랑의 령감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했다. 온갖 분방한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거친 충동은 잠들고 이제는 춘희에 대한 사랑이 움직이게 하고 있지 않겠는가. 이튿날 그는 쏘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랑의 미로에서 헤매지만 말고 모든 것을 밝혀내야만 했다. 때마침 일요일이여서 춘희가 쉴 것 같았다. (참 이상해! 춘희는 왜 가발을 쓰고 외까풀눈과 쌍까풀눈으로 가장해해? 왜  이중삶을 살까? 무슨 죄라도 진 녀자처럼 자꾸 자기를 감추는 걸가? 진짜 알고도 모를 괴짜야.) 문걸은 한편 섬찍해나기도 했다.확인하고 싶었다. “세상에 공개하기 어려운 뭐가 있는가? 왜 남의 눈을 속이면서 등산하러 다니고 사교무청에 드나들어? 모든 걸 밝혀내야 해.”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춘희가 핸드폰을 받았다. “춘희, 안녕? 오늘 쉬오?” “네. 그래요. 몸은 괜찮죠?” “그래. 덕분에 재생했소.” 문걸은 입이 천근무게나 되는 감을 느꼈다. 그는 마른 기침을 깇고 나서 가까스로 입을 무겁게 뗐다. “춘희, 심심한데 춤이나 추러 갈까?” “…” “춘희, 춘희, 내 말 들리오?” “네.” “춤 추러 갈가?” “아니요.” “왜?” “리선생님, 몸도 회복되지 았았겠는데요. 춤은 그만둡시다.” “그럼 시원한 국수나…” “아니, 아직 점심 때도 되지 않았는데요. 코로나도 돌고. 집 문을 나서기 좀 그래요. 이렇게 할까요? “뭐든 말하오.” “우리 집에 놀라 오면 어때요?” “네?!” 문걸은 춘희의 뜻밖의 제안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싫은가요? 그럼 그만두던지.” 문걸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날 사랑하고 있구나.) “아니, 천만에 말씀, 내 곧 갈게. 10분내로 가지. 건데 집이 어데 있던가?” “망아산 기슭 해빛아파트 알지요?” “오- 별장 아니오?” “네. 맞습니다.” “공기도 좋고. 참 좋은 곳에서 사는구만. 곧 갈게.” 문걸이 황급히 문께로 가서 신을 꿰자 만금이 부엌에서 나오면서 물었다. “아침 준비 다 됐는데요. 식사고 안하고 어데 가시렵니까?” “어, 그랬던가? 괜찮소. 급한 일 있어서.” 총망히 문 밖에 나서는 문걸을 보고 만금은 너부죽한 얼굴에 숱한 의문부호를 그렸다. 문걸은 택시를 잡아타고 춘희네 집으로 달려가면서도 속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렸다. 모든 것이 우연이라 해도 문걸은 대수가 아니였다. 그 우연한 사랑도 놓칠 수 없었다. 사랑에 기갈이 든 문걸은 그 희미한 사랑의 실 한오리라도 결코 놓칠 수 없었다. “아니야, 우리 사랑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필연적인 사랑이야. 우리는 생명이 계속하는 한 이질적인 사랑과의 만남의 자극과 풍유로움을 누려야 한다.말초신경까지 짜릿짜릿하게 하는 새로운 자극을 한껏 향수해야 한다. 우리는 갖가지 놀라움과 새로운 자극, 희햔과 향수, 쾌락을 마음껏 느껴야 한다. 어떻게 그런 감정과 자극에 눈을 감을 수 있겠는가.” 화가로서의 문걸의 감각은 나이와 정비례하게 무디여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파탄과 고독한 홀애비 생활과 더불어 더 갈망하고 더 예민해지고 더욱더 섬세해진 것 같았다. 문걸은 부풀어오른 가슴을 안고 번개같이 망아산 기슭으로 달려갔다. 저쪽에 뜻밖에도 춘희가 누런 개를 끌고 마중나와 오도카니 서 있지 않겠는가. 춘희가 개를 좋아할 줄은 생각 밖이였다. (내가 비둘기를 좋아하듯 춘희는 개를 좋아하겠지.) “어서 오세요. 리선생님.” 수수한 옷차림의 춘희가 더 박사답지 않게 소박해보였다. “왕왕왕!” “짓지 말라. 다빈치야, 내 친구야.” 문걸은 다가가 다빈치한테 다가가 머리를 매만지면서 롱담 절반 진담 절반 섞어 했다. “그래, 난 네 주인님의 남편 될 사람이야.” 춘희는 걀죽한 얼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리선생님, 무슨 롱담을 다빈치한테 다 합니까? 어서 집으로 들어갑시다.” “롱담은 무슨 롱담? 난 진솔한 얘기 했는데…” “바깥에서 뭔가요? 남들이 들으면 뭐라고 하겠는가요?” 춘희는 외까풀눈을 곱게 흘기면서 아파트 쪽으로 걸어갔다. “어서 집에 들어갑시다.” “그래, 집안이 좋지.” 문걸은 중얼거리면서 춘희를 따라갔다. 그는 춘희를 뒤따라가면서 자기 좋은 궁리를 했다. (이 녀자 확실히 날 좋아하는구나. 그러잖으면 자기 집에 날 끌어들이겠니? 오늘은 끝장내야겠다.) 집 안에 들어서서 쏘파에 나란히 앉기 바쁘게 문걸은 단도직입으로 본론을 꺼냈다. “우리 재혼하기요.” 그는 갑자기 춘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왜 이래요?” “난 그댈 심장으로 사랑하오. 우린 이젠 한 집에서 함께 살기오.” “가만, 이걸 놓고 천천히 얘기합시다.” “왕왕왕!’ 다빈치는 문걸을 보고 뾰족한 송곳이빨까지 드러내며 무섭게 짖어데며 으르릉거렸다. “다빈치 다 해치려는가 해요. 이걸 놓으세요.” 그러나 문걸은 놓아주긴 고사하고 춘희가 숨이 다 막힐 지경으로 더욱 꽉 끌어안았다. “대답하기 전엔 놓아주지 않겠소.” 순화는 문걸의 뜻밖의 거친 행동에 경악했다. “아니, 리선생이 이럴줄 몰랐습니다. 놓으세요. 놓고 천천히 얘기합시다. 전 아직 사상준비가 되지 않았는데요. 마음정리도 되지 않았어요.” 문걸은 그제야 천천히 춘희를 놓아주었다. “조폭하게 굴어 미안하오. 우린 서로 사랑하지 않소? 믿고 그만…” 문걸은 쏘파에 맥없이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안았다. 춘희는 허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커피를 풀어 커피잔을 들고 왔다. “커피를 들고 진정하세요.” 문걸은 마지못해 커피잔을 받아들어 훌쪽 단모금에 다 마셔버렸다. 춘희는 맞은 쪽에 가서 커피를 호호 불어 홀짝홀짝 마시면서  다른 안목으로 문걸을 여겨보았다. 그때였다. 다빈치가 춘희 무릎에 뛰여올라갔다. 그 놈은 춘희 허벅다리랑 가슴이랑 마구 핥더니 매달려 엉덩이를 덜썩이며 그걸 하는 시늉을 했다. “지개!” 춘희는 혀를 빼물고 헐떡거리는 다빈치 아가리를 피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썩 물러가지 못해!” 그제야 다빈치는 춘희를 놔주고 내려갔다. 춘희는 못 보일 것을 보인듯이 도리머리질하면서 빗자루로 다빈치 엉덩이를 마구 쳐 쫓아보냈다. 문걸이 피뜩 보니 다빈치는 발에 놀랍게도 비단보선을 신고 있지 않겠는가! (개발에 보선이라더니. 뭐야?) 문걸은 카리스마 넘치는 춘희 눈길에 머리를 숙이면서 목구멍으로 기여드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안하오. 내 너무 조폭하게 굴어서.” 그러나 그저 빌고 들 문걸이 아니였다. 벼르고 온 도끼 그저 무딜 수 없었다. “저를 믿고 그랬소. 달리 생각하지 마오.” “괜찮아요. 그러나 그렇게 충동적일줄은 몰랐어요. 몸건강상태가 아주 좋아졌구만요. 힘도 꽤나 세지고요. 호호호.” 문걸은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춘희, 우린 눈구덩이, 그 악몽 같은 지하에서 미인송과 소나무처럼 여생에  사랑하며 살자고 맹세하지 않았소? 그래 그때 약속 다 잊었소?” 춘희는 외까풀눈을 살며시 내리깔며 나직이, 그러나 분명히 말했다. “확실히 사랑한다고 말했죠. 생명이 경각에 이른 환자에게 삶의 희망을 주려고.  건데 누가 한 집에서 살자고 말했는가요?” “그럼 무슨 뜻이오? 날 무릎 우에 앉히고 오래도록 포옹한 걸 후회하오?” 문걸은 외까풀눈으로 가슴츠레 뜨고 치떠보았다. 춘희는 커피잔을 차탁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녀의 철색얼굴은 준엄하게 굳어져갔다. “후회하지 않아요. 심장병이 있는 환자를 구하려고 그랬어요. 체온이 내려가면 심장혈공급이 잘 되지 않아 생명이 위험했어요. 내 체온으로 선생님의 체온을 조금이라도 보존하려고 그랬어요.” “그럼 환자를 구하기 위해 취한 조치에 불과하단 말이오? 재차 목숨을 구해줘서 감사하오.” “아니, 사랑하기 때문에 그랬어요.” 문걸의 얼굴에 웃음기가 띄였다. “사랑한다고? 그럼 뭐가 구애되오? 오늘 모든 걸 확인하기오.” 집 안에는 팽팽한 기운이 가슴까지 침침하게 만들었다. 춘희는 분명하게 말했다. “사랑한다고 해서 꼭 재혼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는가요?” “그럼 그저 친구로, 애인으로 즐기자는 거요?” “리선생님은 절 아직 제대로 료해하지 못했어요.” 문걸은 의아해 춘희를 마주보면서 오리무중에 빠진 채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 춘희는 나직이 말했다. “전 아직 모든게 정리 안됐어요. 마음도 정리되지 못했어요. 나에게는 딸이 있는데요.” “어데 있소? 내 친딸처럼 사랑해줄게.” “일본에 있는데요. 아직 대학공부를 하고 있어요.” “오- 좋은 곳에 있구만. 딸애가 우리 둘 사이 무슨 장애로 될게야 없잖소?” “네. 건데 딸애의 아빠하구 전 리혼하지 않았어요. 전 아주 복잡한 녀자인데요.” “양?” 문걸은 더욱더 오리무중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자오록한 안개 속에 보일락말락하는 춘희의 진면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술주정뱅이 남편과 리혼했다고 하지 않았소?” “네. 마음으로야 진작 천번이고 만년이고 리혼했죠. 그러나 그 나그네 리혼해주지 않아 여직껏 리혼못했어요.” 춘희는 문걸을 외까풀눈으로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저하구 재혼할 생각이면 단념하는게 좋을 거 같아요. 이 녀잔 가정형 녀자가 아닌데요. 저는 첫 결혼에 실패해서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 갇혀 있기 싫어해요. 아마 남편이 싫은 것도 있지만요. 일본에 가서 일본 사람들이 사는 모습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제가 졸혼해서 홀로 내 인생을 조용히 자유롭게 살려니까요. 재혼이란 말두 마세요. 저는 보기보단 남녀관계가 꽤나 복잡한 녀자입니다.” “그런데 왜 눈구덩이에 빠져서는 사랑한다고 말했소. 생명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오해하고 그런 거요?” “그래요. 그땐 가릴게 없었어요. 의사로서 환자를 구하는 건 직업도독에 지나지 않아요. 그러나 지금은 눈구덩이 속에사와는 다르죠. 기나긴 앞날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죠. 한가지만은 분명해요. 리선생님은 제가 만난 숱한 남자들 가운데서 젤 행복지수가 높은 남자예요.” “알았소.” 문걸은 부풀어올랐던 뜨거운 가슴이 바람 빠진 싸늘한 고무풍선처럼 돼버렸다. 뜨거웠던 머리가 식자 모든 것이 천천히 분명해져갔다. (그저 친구로, 애인으로 돼 즐기자는 거구나.) 그러나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좋소. 춘희, 난 춘희 마음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리겠소. 모든 걸 깨끗하게 정리한 후에 나한테 돌아오는 그날까지. 내 얼마 더 살진 몰라도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언제까지든 기다릴게.” 춘희는 쏘파에서 일어나는 문걸을 착잡한 눈길로 어루쓸었다. “기다리지 마세요. 선생님은 생명을 구해준 은인에 대한 감격에  휩싸였을뿐입니다. 저에 대한 사랑이 아닙니다. 저는 리선생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녀자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저를 너무 모르고 있어요.” “천천히 사귀면 차차 알게 되겠지.” 춘희는 모든 것을 개의치 않고 무작정 사랑한다는 문걸이 답답해났다. “저의 딸이 일본에 있는데요…” “아오. 딸이 무슨 장애요?” “아니, 그런게 아니고. 우리 딸이 성명이 뭔지 알아요?” “뭔데?” 문걸은 이상해 외까풀눈을 치뜨며 이상해했다. “야마구찌마끼!” “야마구찌마끼(山口真姬)?” 이름은 진희인데 성은 일본 성이었다. “그럼 일본 야마구찌 가족 딸이오?” “네, 그래요.” 문걸은 뭔가에 머리를 탁 치인듯이 아찔해났다. “남편은 조선족이라고 하지 않았소?” ”네. 그래요.” 춘희는 모든 것을 개의치 않고 술술 주어대는 것이었다. “성이 뭐요?” “박씨죠.” “어데서 일했소?” “체육학교에서 감독하다가 지금 중학교 체육교원을 해요. 걸 알아서 뭘 해요?” “꼭 알아야겠소. 내겐 아주 중요하단 말이오.” 춘희는 쏘파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알아봐 뭘 해요?” “딸애 아빠 박씨인데 왜 일본 성이오?” 춘희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제가 일본에 가서 낳은 딸애죠.” “뭘? 그럼 그 애가 …” 춘희는 머리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래요. 그 앤 일본 애죠. 짜구배.” 문걸은 경악했다. 그때 춘희의 핸드폰이 울렸다. “모시모시(여보세요.)” 핸드폰소리 높기도 해 모든 대화 다 들렸다. “하이, 하하(엄마), 희사시부리데스네(오랜만인데요).”              문걸은 고급일어수준이기에 모녀지간의 대화를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는 머리를 수긴 채 천천히 신을 꿰고 바깥으로 나왔다. 춘희는 전화를 받으면서 문 밖에 나서려고 했다. “필요없소. 택시 타고 가면 되니까.” “그래도 어찌? 바래지요.” “하하(엄마), 이마 다레까 또 렌아이시마센까(지금 누구와 련애하지 않는가요?” “이이에, 도모다찌데스(아니야, 친구야).” 뒤에서 다빈치가 뛰여나오면서 짖어댔다. “왕왕왕!” 다빈치는 문걸을 환영하지 않았다. 아니, 녀주인을 빼앗아갈가봐 저으기 근심하면서 질투하는 것 같았다.  
273    대하소설 졸혼(4) 김장혁 댓글:  조회:1612  추천:1  2022-02-15
                         8. 친구의 충고 기실 문걸이 리혼하려고 하자 군철은 아주 강경하게 나왔다. “아버지 리혼하는 날엔 우리 집 호적에서 영원히 긁어버리겠습니다.” 지예는 욕설을 퍼부었다. “아빠, 제 정신입니까? 당장 죽을지 살지 모르면서도 리혼? 흥! 화실마저 어느 개쌍년 엉덩이에 처넣으려고 그럽니까?” 그러나 문걸은 기어이 리혼했다. 그 정신감옥 같은 가정에서 홀랑 홀몸으로 나오니 얼마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운지 몰랐다. 날마다 아무런 부담도 없어 얼마나 즐거운지 몰랐다. (자식들 하나도 쓸데 없어. 흥!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그 비싼 상해 아빠트까지 사주었지. 퇴직하자마자 늙은 량주 애들까지 길러주지 않았는가. 난 날마다 집을 청소해주고 승용차로 애들을 학교에 데려가고 집에 실어오지 않았던가. 배은망덕한 새끼들이  애비 죽기도 전에 유산상속에 눈이 새빨갛다. 흥! 언제 한번 애비 행복을 생각해본 적 있는가? 이젠 며칠 살지 못해도 자유롭게 내 인생을 살테야.) 그는 고향에서 서남쪽 상해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자손들이 들으라는듯이 중얼거렸다.   “손주들한테 물려줄 유산은 유언 하나뿐이야. 할아버지 교훈을 봐서라도 절대 결혼하지 말라, 결혼해도 자식을 낳을 필요없어. 손주들까지 다 키워주고나면 염라국으로 갈 날이 닥쳐온다.) 이때 베란다에 걸어놓은 초롱에서 하얀 비둘기가 바깥으로 날아나지 못해 구구거렸다. 똑마치 이 놈의 가정에서 해탈되려고 아득바득 리혼하려고 울며불며 덤벼들던 영희 같아 보였다. “내 같은 주인 믿고 산 너도 불쌍해. 내 이번에 급병에 죽었더라면 넌 초롱 속에 갇힌 채 굶어 죽을 번했잖아. 옆집 아줌마 먹이 주잖았으면 큰일 날 번했잖아.이젠 감옥에서 나가라. 자유를 찾아 날아가라!” 문걸이 초롱문과 창문을 열어주자 집비둘기는 좋아라고 베란다 바깥으로 푸드득 날아나갔다. 구구거리며 아빠트 상공을 몇바퀴 돌더니 아무런 미련도 없이 훨훨 멀리멀리 날아가버렸다.      문걸은 서로 의지해 살던 하얀 비둘기가 훨훨 날아 흑점으로 변할 때까지 바라보았다. 며칠 후, 정호가 화실로 찾아와서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세우고 욕했다. “정신 있니? 사형선고를 받고서도 리혼하다니? 홀로 무슨 개고생하자고? 홀로 살다가 급병에 걸리면 그래도 옆에 안해 있어야 해. 늘그막엔 그래도 부부가 서로 의지해 살아야 해. 자식들은 다 먼데 있구. 누가 들여다 봐? 봐라. 이번에도 홀로 있다가 쓰러져 얼마나 위험했니? 옆집 아줌마 아니였더라면 너 병원 문앞에 가지도 못하구...헤이, ” 문걸은 친구한테 자기 고충을 속속들이 털어놓았다. “내라고 어지간하면 조강지처하고 갈라졌겠니? 가정은 즐겁고 행복한 정신감옥이야. 전통관념과 잔소리, 허위와 정신쇠사슬로 얽맨 감방에서 뛰쳐나오려면 쉽지 않아. 허나 자유를 위해선 목숨도 아깝지 않다."        정호는 번대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안해는 있어야 해. 제절로 밥 해먹기 그리 쉬운 거 같아?"        원래 순정과 영희는 다 무용교수 정호의 제자들이였다. 게다가 정호가 영희를  문걸에게  소개해줘 결혼하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러는지 정호는 극구 천방백계로 문걸을 보고 영희와 살아라고 한다.        "너 처제라고 억지로 살아라는 거야?"        그러나 문걸은 심드렁해했다.        "보모가 있잖아. 내 교수급화가여서 한달 로임 8천원도 넘어. 재직 땐 만원도 거의 탔어." "그래두 본댁은 옆에 둬야 해. 보모는 돈 벌려고 순종하는 척하지. 그래두 본댁은 진심이야. 황차 너와 영희는 아들딸이란 공동재산이 있잖니?  이제 얼마 살겠다고 그래? 얼리고 닥치면서라도 영희하구 함께 살아라."   "누구라구 본댁이 좋은 거 몰라? 영희 자꾸 아프다면서 곁을 주지 않아 석삼년이나 녀자 어떤 건지 모르고 살았다. 소변도 바로 보지 못했어. 아파서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전립선염에 다 걸렸더라. 언제 음위가 올지도 몰라.  성을 빼면 부부가 아니야. 그저 진심어린 보모를 두자고 함께 살아. 자유와 행복이 없으면 백년 살아도 산게 아니야. 난 하루를 살아도 아무런 구속도 없이 살고 싶다. 아무런  잔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 만금은 그들이 옥신각신하자 주방에서 설겆이를 하다가 바깥으로 조용히 나가버렸다. “이걸 봐.” 문걸은 침대 이불 밑에서 녀자생식기모형을 들어 보였다. “여태껏 이걸로 대충 에따지우면서 죽지 못해 살았어. 이젠 졸혼이야.” 정호는 번대머리를 쓸어넘기면서 어안이 벙벙해 쳐다보았다. “졸혼이라니?” “이젠 결혼생활 영원히 졸업이야.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난다.” "딱 리혼해야 졸혼이냐? 리혼하지 않고서도 자기만의 생활을 살면 되지." "난 그렇게 허위적으로 살 순 없어. 깨끗하게 리혼해 정리하고 내 삶을 살려고 해." 정호는 머리 몇대 없는 번대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선생님 진짜 불쌍해요.” 이때 안방 문이 살며시 열리더니 섹시한 30대미녀 사뿐사뿐 걸어나왔다. “하긴 잘하는구나. 미녀를 숨겨두고. 흥! 저 미녀한테 반해 리혼했구나.” “미녀를 숨겨두다니요. 전 미녀로봇인데요.” 정호는 그제야 그들의 앞에 다가온 미녀가 어덴가 백화상점 옷매대 앞에 진렬해놓은 마네킥과 같은 감을 느꼈다. “우리 주인님은 2년 전에 일본에까지 와서 저를 사다가 동무했는데요. 우리 주인 참 고독해요. 불쌍해요. 밤이면 저를 꼭 껴안고 얼마간이라도 위안을 느끼군 하는데요. 뭐가 잘못됐다고 그러는가요?” 미녀로봇은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백길 물 속은 알아도 몇촌 사람 속은 모른다고 정호는 문걸이 이 지경으로 괴짜인줄은 여직껏 몰랐다. 한편 미녀로봇과 동무하면서 고독을 말린 문걸이 불쌍하기도 했다. “얘, 바깥세상은 얼마나 오색령롱하냐? 인생이 길면 얼마나 길다고 이렇게 살겠니? 우리 인젠 동서를 벗어나 형제처럼 친구하면서 황혼을 즐기며 살자.” 문걸은 외까풀눈을 치뜨며 정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호는 미녀로봇이 들을가 봐 문걸 귀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혼인소개소에 가면 젊고 예쁜 녀자들이 줄을 서 있어.” “흥!” 문걸은 코방귀를 뀌였다. “조강지처도 뺑덕이에미처럼 홀랑 빠져 달아났잖아. 이제 또 어떤 녀자를 얻어 개고생을 하자고? 설상가상 난 언제 죽을지도 몰라…” 정호는 답답해 손수건으로 번들이마에 돋은 땀을 쓱쓱 닦고나서 뒤말을 이었다. “그럼 딱 재혼하지 않더라도 녀자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어떻게 저런 생식기기계나 미녀로봇을 가지고 살겠느냐?” “뭐라고? 미녀로봇이 어떻단 말인가요?” 미녀로봇이 정호의 턱 밑에까지 다가와 콩알눈이 새똥그래 손삿대질하며 바투 들이댔다. “제가 돈을 달라는가요? 간사한 년들처럼 언제 한번 앙칼진 목소리로 잔소리하고 짜증냈는가요? 저는 언제든 주인이 수요하면 두말 없이 몸과 마음 다 바쳐 만족시켜 줬어요. 남편의 기본욕구마저 만족시켜주지 않는 녀자들이 그래 색시인가요? 사람인가요? 우리 주인 어떻게 그런 녀편네와 살라고 오늘 이래요? 그러고도 친군가요? 형젠가요?” “모모에야, 삐치지 말라.” 문걸은 일어나 미녀로봇 모모에를 안아다 안방에 데려다넣고 스위치를 꺼버렸다. 정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저런 로봇을 믿고 홀애비로 살겠니? 이제 백년을 살아도 허무한 도깨비 인생이야.” 문걸은 정호 앞에서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넌 몰라. 미녀로봇은 진짜 녀자들보다 더 죽여준다. 언제든지 수요되면 순종하지. 아프오, 콘돔 껴라, 윤활유 발라라. 여기저기 애무 더 많이 해달라. 그런 잔소리 하나도 없어. 미녀로봇은 더구나 서비스 최고야. 감각도 진짜 미녀들보다 못잖아. 살결도 따뜻하고 부드럽고 매끌매끌해. 속살  감각도 참 좋아." "그래? 말을 잘 못 들으면 왕청 같은 짓 하진 않고?" "아니야. 난 고급일어 수준이니깐. 일본 미녀로봇에게 지령을 정확히 떨구는덴 장애가 없어."       화가의 모병이라고나 할가. 충동과 격정이 많은 문걸은 정호를 믿고 별 말을 다 했다. "영희는 어쩌는지 아니? 항상 콘돔 끼고서야 산다. 부부간에 콘돔을 끼고 사는게 어디 있니?"  "우리도 콘돔 끼고 산다. 그래서 새 자극과 격정을 찾으려고 젊은 녀자들을 쫓아다닌다."          정호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믿는 친구라도 여지를 두고 싶었다. "부부간에 글쎄 콘돔 끼고 살다니? 그게 뭐야? 뻘꺽뻘꺽 하는게 감각이 령민하지 못해 말짼 건 둘째야. 콘돔 끼라는 건 부부간에 불신의 표현 아니고 뭐야? 바깥에 나가 묻혀온 성병을에 감염될가봐 의심하는게 아니고 뭐냐? 영희 또 어쩌는지 아니? '돼지고기 사다가 구멍 뚫어 줄게. 정 하고 싶으면 돼지고기 구멍에다 해라.' 이런다." "흐흐흐.  쳇!"       정호는 문걸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그러나 나 먹어가는 자기 안해와 살던 일을 생각하니 동감이 갔다. 안해가 자꾸 거기 아프다고 부부 생활을  하기 싫어 해 의약상점에 가서 윤활제를 사왔다. 그 윤활제를 바르고 또 정호가 바깥에서 성병에 걸린 적이 있다고 콘돔도 껴야 생활할 수 있다고 했다. 안해는 젊었을 때보다 무슨 준비가 많아야 했다. 게다가 젊었을 때보다 인차 흥분되지 않아 여기저기 애무도 오래 해주면서 기다리기란 참 지긋지긋하게 질렸다. 안해도 싫어나는데 문걸은 미녀로봇을 장황하게 늘여놓았다. "미녀로봇은 영원히 늙지 않는 처녀야. 나하구 돈 달라니? 밥 달라니? 진짜 아무런 부담도 없는 미녀, 세상에 둘도 없는 살가운 서비스만 하는 처녀야. 이담 양로도 미녀로봇에게 의지할 예산이야. 우리 점점 늙으면 누가 우릴 돌보려고 하니? 후처? 본댁도 뺑덕이 에미처럼 도망가는데. 자식? 너우! 손자? 건 더 너우! 미녀로봇은 돈 주고 고용한 보모보다 나아!"   정호는 성이 나서 씩씩거리면서 문걸을 흘겨보며 뒤말을 이었다. “이 못난 놈아, 어째 정신이 어떻잖니? 사람이 어찌 사람과 살지 않고 로봇과 살아? 세상에 숱한 미녀들을 두고 이래? 글쎄 지금 세월에 남자들이 싫은 녀자들은 개발에 보선을 씌우고 개를 데리구 산다더라. 개는 주인한테 충성하고 재물을 탐내지 않고 주인이 하라는대로 하지. 그래서 어떤 녀자들은 남자 대신 침대에서 개를 안고 잔다더라. 개는 그게 수요될 때면 언제든지 거절하지 않아 마음껏 살 수 있지." 정호의 말에 문걸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변태잖니? 그래도 개하구야 어떻게 살겠니? 인륜을 해치는 짓이야." "미녀로봇과 사는 건 변태 아니겠구나. 인륜을 해치는 미친 짓 아니겠구나. 쯔쯔쯧. 재혼하기 싫으면 결혼등록 하지 말란 말이야. 그저 혼인소개소에서 젊고 섹시한 녀자친구를 얻어 살란 말이야. 마음에 들면 그저 데리고 놀면서 살면 되는 거야. 마음에 안 들면 또 다른 녀자를 데려다 살면 되지. 지금 결혼이나 재혼을 하기 싫어하는 독신녀자들도 쌔고 버렸어.” 문걸은 그저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재혼이란 미명하에 숱한 녀성들을 사기치는 건 생벼락을 맞을 일이야. 난 절대 못해.” 정호는 목석처럼 멍해 덤덤히 앉아 있다가 문걸한테 또 이런 제안을 내놓았다. “얘, 그럼 사교무청에 다니면서 녀자친구나 친해라. 사교무청엔 홀로 고독하게 지내는 녀자들이 많아. 그런 녀자들은 사교무청에 가서 뽕도 딸겸 님도 볼겸한다더라. 이제 그림 그려서 하늘 찌르겠느냐? 가자, 나가 한바탕 놀자.” 문걸은 정호가 어찌나 볶아대는지 마지못해 따라 나갔다. 정호는 택시를 불러 운전수한테 뭐라고 귀속말로 분부했다. 그는 택시에 앉자 버릇처럼 몇오리 안되는 머리카락을 쓸어 번대머리를 덮어놓더니 문걸을 뒤돌아보며 속심의 말을 했다. “얘, 친구니깐 말하지만, 순정도 애 하나 낳지 못한 주제에 짜증내면서 곁을 잘 주지 않아. 이젠 서로 육체도 사랑도 다 늙고 매말랐어. 그럴 때면 당장 리혼하고 싶었어. 그러나 내 어째 참겠느냐? 이담 앓거나 늙으면 누가 뒤바라지를 하겠느냐? 그래서 억지로 가정이라는 허울 밑에서 순정하고 살아.” “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조강지처를 가장보모로 쓰려고 리혼하지 않다니? 허위로 꽉 찬 그 놈 가정의 허울을 쓰고 순정을 기편하면서 바깥에서 이성을 즐겨? 건 리혼하는 것보다 더 못해. 일종 범죄야.” 문걸은 이렇게 툭 쏴주려다가 그만 두었다. 괜히 정호네까지 리혼시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정호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번대머리를 덮으면서 계속 지껄여댔다. “지금 너네 사는 걸 보면 우리 차라리 애를 하나도 낳지 못한게 잘 됐어. 늘그막에 보모질이나 하면서 짜증나게 잔소리밥을 먹으며 살게 있느냐?” 정다운 밤거리는 오색령롱한 네온등불빛이 명멸하며 유혹했다. 정호는 문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계속 횡설수설했다. “마사지방에 가자. 젊고 섹시한 아가씨들이 죽여준다. 고 보들보들하고 매끌매끌한 손으로 허벅다리랑 살살 만져줄 땐 온 몸 말초신경까지 쨍해난다. 난 한주일에 둬번씩 마사지방에 찾아가 즐기군 해. 보통 녀자들은 쉰고개를 넘으면 그게(월경) 훌 가면 점점 나그네를 싫어해. 이제 살면 얼마 살겠다고 그래? 인생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아. 화장터에 들어가기 전에 황혼을 즐기면서 후회없는 인생을 살아 보세. 더 늙어서 음위나 오면 헛되히 보낸 인생 후회막급이야. 흐흐흐.” 문걸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택시를 세워라.” “왜?” 문걸은 정호를 무섭게 쏘아보았다. “혹시 공중변소로 가는 거 아니냐?” 정호는 대머리를 흔들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야, 아니, 이전에 우리 다니던 마사지방이야.” “날 절대 더러운 공중변소에 데려다 처넣지 말라. 건 범죄야.” “근심말라.” 그제야 문걸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택시는 커다란 연분홍네온등간판불빛이 반짝이는 밤거리를 꿰뚫고 달려 근사한 마사지방 앞에 멈춰섰다. 그들이 마사지방에 들어서기 바쁘게 아가씨들의 간을 빼먹을듯 간드러진 목소리가 옆구리를 간질렀다. “어서 오세요.” “오빠, 잘 모셔드릴게요.” 어색한 조선말소리는 느끼할 정도였다. 연분홍불빛 아래 대청에 우유빛허벅다리를 다 드러낸 섹시한 아가씨들이 비단필처럼 줄느런히 둘러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아가씨 둘이 사뿐사뿐 다가와 그들의 팔을 끼고 층계로 올라갔다. 그들은 먼저 시원히 샤와하고 각기 독방에 들어갔다. 연분홍불빛 아래 예쁜 아가씨가 머리부터 꿍꿍 마사지를 해주자 문걸은 피곤이 풀리면서 잠이 소르르 왔다. 합판으로 대충 막은 옆방에서 정호와 아가씨가 희희닥거리는 소리마저 다 들렸다. 이윽고 두런두런 말소리 대신 침대가 삐꺽삐꺽하는 소리가 절주맞게 들렸다. 아가씨의 한숨소리에 뒤이어 간혹 간간한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문걸은 와닥닥 일어나 앉아 옆방에 귀를 기울였다. “왜? 마사지 안받겠는가요?” 아가씨가 눈을 곱게 내리깔며 물었다. 문걸은 대답도 하지 않고 옆방에 귀를 도사렸다. 한참 삐꺼덕거리던 옆방이 물 뿌린듯 조용해지지 않겠는가. (착각인가?) 문걸은 억지로 누워 마사지를 다 받고 일어나 담배를 붙이려고 호주머니를 들췄다. “여기서 흡연하지 못해요. 다른 마사지 더 받지 않겠어요?” 문걸은 아가씨를 치켜보았다. “뭘?” 아가씨는 혀를 홀랑 내밀며 쌔무룩이 웃었다. 뒤이어 짧은 치마를 홀랑 들어 백지장처럼 하얀 엉덩이를 살짝 드러내보였다. 눈까지 찔끔 하며 추파를 보내면서 유혹했다. (쳇, 더러운 년, 누굴 유혹하는 거야.) “급한 일이 있어 인차 가야 해.” 아가씨는 수건이랑 걷어치우면서 도도거렸다. “돈을 무져놓고 향수하지 않다간 이담 후회할 걸.” 문걸은 유혹을 혹독하게 물리치고 옷을 주섬주섬 주어 바꿔 입었다. 돌아오는 길에 정호는 택시에 앉아 횡설수설했다. “어때? 재미 좋지?” 문걸은 매서운 눈길로 정호를 쏘아보았다. “돈 주고 공중변소에서 금전과 성교역을 해? 돈 주고 산 사랑, 길에서 주은 사랑 따윈 너무 너절해.” “픽!” 정호는 코웃음쳤다. “녀자 하나 얻지 못해 꿋꿋한 로본과 사는 주제에. 흥! 사지를 놀릴만할 때 향수해야 해? 아까운 걸 써먹지도 못하고 화장터에 가서 몽땅 타버리면 모든게 끝장나! 후회약도 없어.” 문걸은 옆에 나란히 앉은 정호를 쏘아보며 정색했다. “동물적인 기본욕구나 채우자고 살 거면 개나 돼지나 다를게 뭐냐? 난 하루를 살아도 참된 사랑을 하는 안해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 참된 사랑은 남녀의 사랑으로 펄펄 끓는 심장으로 연주하는 아름다운 령혼의 멜로디야. 육체적인 사랑보다 정신적인 참된 사랑이 더 소중한 거야…” “됐다, 됐어. 네가 정조를 지키면서 참된 사랑을 찾는다고 누가 렬녀비나 홍살문을 세워 줄 거 같니?” 정호는 남이야 듣든 말든 택시 문고리를 쥐고 계속 지지벌거렸다. “네겐 시간이 많지 않아. 언제 참사랑 따위를 추구하고 기다릴 새 있느냐? 사람이 기본욕구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백년 살아도 허망 산 거야.” 문걸은 자기 견해를 고집했다. “글쎄 육체적인 사랑을 버리라는 건 아니야. 그러나 육체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참된 사랑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통일될 때야만이 하루를 살아도 산 보람과 행복이 있는 거야.” 정호는 문걸의 말을 귀등으로 흘려보내며 휑 하니 나가버렸다. 문걸은 떠나가려는 정호를 쏘아보며 경고했다. “야, 임마, 주의해라. 언제 경찰한테 뒤덜미를 잡혀 망신당하겠다.” 정호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황혼에 졸혼하고 바른 길을 걸으면서 살자니 이다지도 힘든가?) 문걸은 집에 돌아와 붓을 찾아 들고 그림을 그리면서도 자꾸 도리머리질 하였다. 며칠 후 밤중. 따르릉, 따르릉. 핸드폰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핸드폰을 들고 보니 정호한테서 오는 전화였다. “얘, 돈 만원 가지고 여기 오라.” “왜? 무슨 일 쳤니?” “이전에 우리 둘이 왔던 마사지방 기억나지? 지금 당장 오라. 경찰들이 기다린다.” “끝내 일을 쳤구나. 내 뭐라 했니?” “얘, 잔말 말고 빨리 오라. 벌금하지 않으면 로동개조하러 보내겠대. 당장 빨리 오라. 나가면 갚아줄게.” “개자식! 더러운 엉덩이를 닦으라고?! 흥!” 문걸은 더 욕하려고 했지만 정호 핸드폰이 덜컥 꺼져버렸다…                                   9. 신비한 눈구덩이 “리선생님, 춤을 추지 않겠어요?” “그러지. 먼저 화실에 오오.” 이윽고 춘희가 처음 화실에 들어섰다. 그는 처음 네 벽에 줄느런히 걸어놓은 인체화를 보고 외씨처럼 걀죽한 얼굴이 홍당무우처럼 돼버린 채 몸둘바를 몰라 서성거렸다. “여기 앉소.” 문걸이 쏘파를 가리켰다. 춘희는 노란 게실모자를 벗고 굽실굽실한 커피색머리를 버릇처럼 어깨 넘어 쓸어넘겼다. “이게 다 리선생님이 그린 그림인가요?” “그렇소. 춘희 초상화를 그려줄게. 이전에 등산 가서 말빚을 진게 있잖소.” “어마나!” 춘희는 처녀들처럼 수줍게 두 손으로 두 볼을 싸쥐였다. “전 못해요. 어떻게 실 한오리도 걸치지 않고,” 문걸은 춘희를 안정시켰다. “아니, 인체화 말고 초상화를 그려줄게. 오래 걸리지 않소. ” 춘희는 벽에 걸린 그림을 둘러보았다. 한복을 곱게 입은 처녀, 순박해보이는 녀성의 그림도 드문드문 보였다. 거의 몽땅 어글어글한 쌍까풀눈 녀자들이였다. 그녀는 문걸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쌍까풀녀자를 좋아하는 모양인데요. 저 쌍까풀눈 미녀그림들을 가지고 국제전시회에 가게 되는가요?” “그 녀자?" 문걸은 본처라고 말하려다가 그만 뒀다. "아니오. 쌍까풀눈 녀자 이젠 질리오. 이번엔 외까풀눈 녀자를 그려 국제인체화전시회에 가지고 가겠소.” “왜서요?” “맨날 쌍까풀녀자만 그려서 그런지. 이젠 보기만 해도 싫증나오. 카리스마 넘치는 외까풀눈이 더 매력적인 것 같소.” 문걸은 춘희를 힐끔 곁눈질하면서 해석했다. “물론 춘희 쌍까푼눈은 볼수록 곱소. 긴 속눈섭이랑 얼마나 매력적이요?” 춘희는 한숨을 호- 내쉬였다. “다행이군요. 리선생님의 외까풀눈이야 말로 카리스마 넘치는 예술인의 눈이여서 매력적이잖아요. 호호호.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돈을 팔아 억지로 쌍겹눈을…” 그녀는 말끝을 흐리우며 혀를 홀랑 내밀었다. 문걸은 카메라를 들고 오다가 주춤 멈춰서 춘희 쌍겹눈을 빤히 쳐다았다. 이윽고 그는 스적스적 다가와 쏘파에 자연스레 앉은 춘희를 촬영하기 시작하였다. 찰칵, 찰칵. 조용한 화실에는 숨고르는 소리와 샷타를 누르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노란 등산복을 벗고 게내복바람에 쏘파에 앉은 춘희는 여간만 순박한 미가 돋보이지 않았다. 풍만하고 탄력 있는 몸매도 꽤나 매력적이였다. 그러나 문걸은 여느 모델들과는 달리 춘희 보고는 옷을 입힌 채 자세만 여러가지로 취하게 하고 촬영하였다. 웬 일일가? 련이어 샷타를 누르는 문걸의 눈에는 춘희와 영희의 얼굴이 겹쳐보여 마음을 괴롭게 톱질하였다. 이 화실에 왔던 수많은 미녀모델들이 떠올라 서글픔을 금치 못하였다. 특히 억지로 웃음짓는 걀죽한 얼굴, 수심에 잠긴 청바위처럼 굳어진 얼굴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수심에 찬 얼굴은 그림을 그릴 때 웃는 얼굴로 바꿔 그리면 되였지만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춘희는 전문모델은 아니지만 꽤나 호응을 잘 하고 자세도 꽤나 잘 취하였다. 그녀 보고 침대에 앉아 하얀 베일로 얼굴을 반쯤 가리우고 몸을 모로 탈라고 하였다. 찰칵, 찰칵! “참 좋소.” 뒤이어 부더러운 채색조명이 화실을 은은히 비추었다. 문걸은 춘희가 한복을 갈아입기를 기다리며 권연을 붙여 물었다. “담배를 피우지 말아요. 흡연은 심혈관질병과 호흡도질병 환자들한텐 금물인데요.” “아, 알았소. 녀자들은 다 담배연기를 싫어하는 걸 모르고.” 문걸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고 춘희한테 꽃너울을 씌워 주었다. 찰칵, 찰칵. “됐소. 야외에서 촬영하거나 그림 그리면 더 자연스럽소. 언제 백설이 뒤덮인 미인송을 배경으로 촬영했으면 좋겠는데.” “언제 미인송삼림으로 등산하러 가지요.” 문걸은 옷을 주어입는 춘희한테 다가갔다. “한가지 궁금한게 있소.” 그는 돌아서는 춘희의 쌍까풀눈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내 앓은 거랑 국제인체화전시회에랑 가게 된 거랑 어떻게 알았소?” “등산하러 다닐 때 핸드폰에 위치공유하지 않았는가요?” “오-” 그제야 조금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들이 사교무청으로 떠나갈 때에야 만금이 집에 들어섰다. 택시에 나란히 앉아 사교무청으로 달려갈 때였다. 문걸은 나직이 물었다. “한가지 궁금한게 더 있소.” 춘희는 문걸을 물끄러미 돌아보았다. “녀자들은 쉰고개 넘으면 다 남자들을 점점 싫어하오?” “호호호.” 춘희는 코를 싸쥐고 허리까지 굽히며 웃었다. “그게 다 정상적인 생리반응이죠. 쉰고개 넘은 녀자들이 보편적으로 남자들을 싫어하긴 하죠. 그러나 그것도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죠. 교수급화가인 선생님 같은 분은 다를 수 있지요. 행복지수가 높으니깐요.” 문걸은 외까풀눈으로춘희를 힐끔 곁눈질해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40대라, 한창 좋은 나이지. 녀자는 30대는 승냥이 같고 40대는 호랑이라는데.) 사교무청에서는 오색령롱한 샨데리야가 깜빡이고 격쾌한 음악이 격조높이 흘렀다. 꽃단장을 남녀무용수들이 부둥켜 안고 금붕어 지느러미 같은 꽃치마자락을 날리며 쌍쌍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문걸과 춘희도 그 희열에 넘치는 물결 속에 휘말려 들어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비록 문걸의 머리는 허옇게 퇴색했지만 사교무만은 아주 생기발랄하고 멋지게 추었다. 그들의 모든 스트레스, 부담, 고민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훌훌 뿌리워나갔다. 적막과 고독을 훌훌 털어내고 생기와 웃음꽃을 되찾아왔다. 기쁨도 빙글빙글 돌아가고 사랑도 뱅글뱅글 돌아가며 무르익고 있었다… 문걸은 뿔룩한 배낭과 긴 렌쯔를 단 사진기까지 둘러메고 관광뻐스 옆에서 춘희를 마중했다.  그런데 문걸은 묵직한 배낭을 받아들고 뻐스에 올려준 후 또 뻐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내려갔다. 춘희는 그저 담배를 피우려니 했다. 그런데 문걸은 자꾸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먼발치를 자꾸 눈빗질하고 있지 않겠는가. 춘희는 이상야릇한 미소를 짓더니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뻐스가 발동을 걸어서야 마지못해 뻐스에 올라서도 자리에 앉지 않고 자꾸 달리는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누굴 기다리는가요?” 문걸은 춘희 옆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전번에 날 구한 녀의사도 가겠다고 했는데, 참.” 춘희는 또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문걸을 보고 한숨을 호- 내쉬였다.   불시에 일이 있어 가지 못해요. 그러나 제가 바람이 되고 눈꽃이 돼 항상 어데든지 리선생님을 따라 다닌다고 생각하세요. 즐거운 등산의 하루 되세요.   문걸은 춘희한테서 온 메시지를 보고서야 한숨을 후- 내쉬였다. 하얀 백설에 뒤덮은 미인송림은 은세계를 방불케 절경을 이루었다. 다른 등산대원들은 뻐스에서 내리자 코스를 따라 희희락락 미인송림을 꿰뚫고 나가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문걸과 춘희는 눈꽃너울을 쓴 미인송을 배경으로 촬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떤 때에는 코스를 벗어나 림해설원에서 여러가지 포즈를 취하면서 촬영하기도 하였다. “야호-” 춘희는 너무 기뻐 소녀처럼 입에 두 손을 모아대고 환성을 질렀다. 찰칵. 춘희는 촬영하는 문걸을 돌아보며 이런 말을 했다. “미인송림을 보니 일본 후지산 사망림 생각이 나는데요.” “일본에 류학 갔댔소?” “아니, 일하러 갔댔어요.” “몇년?” “한 7년 갔댔어요.” 문걸은 머리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교묘하게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일본 부자들은 이상해요.” 춘희는 미인송 사이를 걸으면서 하던 말을 계속 이었다. “향락을 누릴 걸 다 누린 후엔 할 짓이 없어 뭘 하는지 알아요? 오래 살자고  샘물병에 오줌을 받아 들고 다니면서 마셔요.” 문걸은 어이없어 도리머리를 저었다. “진짜 할 짓도 없구만.” “건 아무 것도 아니죠. 일본 부자들은 세상 모든 걸 다 먹어보았는데 똥을 먹어보지 못했다고 심지어 소녀의 똥을 다 먹어요.” “진짜? 하하하.” 문걸은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춘희는 그의 미심해하는 표정을 읽으며 뒤말을 이었다. “일본 일부 부자들은 새로운 자극을 받으려고 진짜 소녀의 똥을 먹어요. 건강한 숫처녀를 숱한 돈 주고 고용한 후 반년 동안 집에 데려다가 영양관리를 해요. 날마다 소녀를 깨끗하게 몸을 씻긴 후 신선한 남새랑 영양가 높은 건과랑 바다 물고기랑 먹이고 신체검사를 하지요. 확실히 영양가 높은 소녀로 가꾼 후 목욕재계시킨 후  컵에 소녀의 똥을 받아 먹지요. 그게 장수약이라고 한대요. 호호호."        "ㅎㅎㅎ. 진짜 변태들이구먼."        문걸은 웃으면서도 그것이 일본 일부 변태적인 부자들의 현실임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일부 부자들은 세상에서 할 짓을 다 해봤는데요. 아무런 자극이 없어 살 멋이 없다고 어쩌는지 알아요? 죽어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됐는지, 죽는 것이 새로운 자극이라고 여기는지, 최후엔 후지산 사망림에 가서 자살해요. 실련했거나 결혼에 실패했거나  패가망신당한 사람들이 해마다 수십명이 사망림에 가서 자살해요. 일본 사람들은 태양신을 믿는데요. 변태적인 사람들은 후지산 사망림에 가서 자살해 태양신으로 승천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대요.”        문걸은 어깨에 떨어진 눈을 툭툭 털며 저도 몰래 중얼거렸다.       “태양신이 된다구? 별 바보들을 다 보겠다. 왜 죽을 용기가 있으면 살 욕망과 의지는 그렇게도 없다오? ” “호호호. 그들이 자살하는 방식도 웃겨요. 먼저 죽을 준비를 다 해놓고 차를 몰고 후지산 기슭 사망림에 가죠. 벌써 사망림 령길에 차가 멈춰서 있으면 사람들은 또 누가 자살하려고 왔겠다고 짐작하죠.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살을 말리려는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수림에 가만히 들어가죠. 그들은 자기가 자살한 후 신원을 찾기 쉽게 하려고 사망림에 들어가자마자 빨간 천띠를 소나무에 매놓지요. 그리고 수림 속에 들어가 자기 성명과 집 주소를 쓴 천띠를 소나무에 매놓고 목을 매거나 독약을 먹고 자살하죠. 그들은 목숨 걸고 진짜 자살이란 어떤가를 체험하죠. ” "별 바보들 다 바보겠다. 자살 다 체험해?" 춘희는 배를 끌어안고 폭소를 터뜨렸다. “이제야 제대로 말했어요. 이전에 어떤 분도 좀 앓는다고 삶을 포기하려고 들었다던데요.” 문걸은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이제야 춘희가 후지산 사망림 말을 꺼낸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우린 어떤 일이 생겨도 삶의 욕망과 의지를 포기해선 안돼요.” 문걸은 춘희를 또 한번 다른 안목으로 보게 되였다. 일본에 가서 그저 막벌이 일이나 하다가 온 보통녀자라고 보기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춘희 말은 얼마나 삶의 욕망을 안겨주는 말인가.) 그들은 촬영하면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나니 다른 등산대원들이 은세계에 사라져버린 것도 다 까맣게  망각하였다. 드디여 그들은 자그마한 눈 덮인 절벽 아래에 이르렀다. 춘희는 눈꽃너울을 쓴 아름드리미인송과 애솔을 보고 환성을 질렀다. “저걸 보세요. 미인송과 애솔이 련인처럼 서로 부둥켜안고 있지 않아요?” 문걸도 머리를 들어보았다. 눈가슴 속에서 들쑥날쑥한 바위를 반쯤 드러낸 절벽 틈에 뿌리 박은 애솔은 눈꽃너울을 쓰고 절벽 옆에서 하늘로 치솟아오른 아름드리미인송에 애교를 부리며 안겨 있는 상 싶었다. 진짜 절경을 이루었다. 수십년 동안 미인송과 애솔은 변함없이 포옹한 채 서로 의지하면서 사랑의 힘으로 갖은 풍상고초를 다 이겨내며 굳세게 살아오지 않았겠는가. (야, 얼마나 의경이 짙은가!) 춘희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에 푹푹 빠지며 미인송과 애솔에 다가가며 환호했다. “야- 진짜 멋있다. 저 미인송과 애솔을 배경으로 사진 찍어주세요.” 문걸은 긴 렌쯔를 조절해 노란 등산복을 입고 귤색털실모자를 쓴 춘희를 담았다. 오늘 따라 백설을 배경으로 그녀의 걀죽한 얼굴,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에 생기가 넘쳐흘렀다. 특별히 긴 속눈섭이 유표하게 무언의 매력을 발산했다. 찰칵! 찰칵! “제가 저 미인송을 안으면 한장 찍어주세요.” 춘희는 눈가슴을 헤치며 그 아름드리 미인송에 다가갔다. 쿵! “어마나!” 비명소리와 함께 갑자기 춘희가 눈구덩이 속에 사라졌다. “춘희! 춘희!” 문걸은 춘희가 사라진 눈구덩이 쪽으로 헤쳐나갔다. 이게 웬 일인가? 함정 같은 깊숙한 눈구덩이 속에 춘희가 빠져들어가 허우적거리지 않겠는가. 고드럼이 가득 달린 눈구덩이 밑바닥에서는 물이 찰랑찰랑 흐르기까지 했다. “춘희, 조급해하지 마오.” 문걸은 황급히 배낭을 내리워놓고 바줄을 꺼내 눈구덩이에 내리드리웠다. 춘희가 바줄을 덥썩 잡기 바쁘게 문걸은 바줄을 있는 힘껏 당겼다. 쿵! 갑자기 눈바닥이 무너지면서 문걸마저 눈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돌연적인 충격에 둘 다 눈구덩이 속에서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걸 어쩌는가요?!” 당황해하는 춘희를 보고 어깨 우에 묻은 눈을 툭툭 털어주면서 위안했다. “괜찮소. 우린 꼭 나갈 수 있소.” 그러나 고드름이 줄줄 매달린 세길은 푼이 될 눈구덩이 벽으로 바라올라갈 방도가 없었다. 눈구덩이로 하늘을 쳐다보니 둥그런 하늘이 흐리멍텅하게 흐리면서 함박눈이 푸실푸실 내리기 시작하였다. 문걸이 둘러보니 그저 눈구덩이 아니였다. 밑바닥에 물이 철철 흐르는 기나긴 계곡이 아니겠는가. 그는 춘희를 물이 없는 바위 우에 세워놓고 폭이 계곡의 웃쪽은 반메터 되나마나하게  벌어졌는데 굳은 눈이 뒤덮여 있어 그들이 발견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사람이 올라서자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 분명하였다. 계곡 밑부분은 서너메터나 되였다. 문걸은 라이타를 켜들고 거머칙칙한 계곡을 따라 아래 쪽으로 내려가면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계곡을 바라올라갈만한 턱은 없었다. 또 어떤 곳은 아예 웃쪽이 밀봉된 지하동굴이였다. 유일하게 지상으로 통한 구멍은 금방 그들이 빠진 눈구멍이였다. 문걸은 춘희 배낭에서 샘물병을 꺼내 바줄끝에 맸다. 뒤이어 샘물병을 눈구멍 우로 힘껏 뿌렸다. 혹시나 샘물병이 나무그루터기에라도 걸릴가 해서였다. 그러나 연신 올리뿌리거 바줄을 쥐여당기면 툭 되떨어져 내려왔다. “가만!” 그들은 두 말 없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나 신호가 전혀 없었다. 위쳇도 전화통화도 안됐다. 이젠 유일한 희망은 등산객들이 찾아오는 시각 뿐이였다. “사람 살려요!” “사람 살리시오!” 한식경이 넘도록 아무리 고함쳐도 찾아오는 등산객은 없었다. 하늘이 무너져내리듯이 함박눈이 푸실푸실 내려 그들의 발자욱이 지워지는 날에는 등산객들이 그들을 찾기 더 어려울 판이였다. 그들은 절망에 빠져 협곡 밑바닥에 덩그러니 들어누운 너럭바위에 물앉고 말았다. 문걸은 서너길 되는 협곡을 쳐다보았다. 그들이 빠져 들어온 구멍으로 함박눈송이가 흩날려 들어왔다. 고드름이 더덕더덕한 얼음바람벽은 진짜 수정관 같아보였다. “절대 포기할 순 없소.” 문걸은 일어나 발길로 고드름을 탁 걷어찼다. 고드름 끝이 박살나 떨어졌다. 춘희가 무릎을 치고 일어났다. “여기 과일칼이 있어요. 얼음벽에 홈을 파고 올라가면 안될가요?” “오-” 문걸은 춘희가 배낭에서 꺼낸 과일칼을 받아 협곡 얼음벽에 홈을 파기 시작하였다. 고드름이 덥덥이 얼어붙은 얼음벽에 생존을 위한 희망의 홈이 하나, 둘, 파져나갔다. “바꿔 팝시다. 앓고난 몸에 무리하지 마세요.” “괜찮소.” 문걸은 내려오지 않고 계속 과일칼로 얼음꼬치를 찍어냈다. 쿵! 갑자기 문걸이 밟은 발밑의 고드름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어디 상하진 않았는가요?” 춘희는 문걸의 손을 당겨 일으켰다. “괜찮소.” 쿵! 그때 협곡 천정에서 또 고드름이 무너져내렸다. 굴 어구가 더 커졌다. 직경이 한메터는 될 것 같았다. 다행히 문걸의 배낭도 묻어 떨어졌다. “아니, 헛수고 했네.” 시간도 퍼그나 흘렀다. 이제 시간을 더 지체하다가 해 넘어가는 날엔 큰 일이였다. 마구 헤덤벼서는 안되였다. 가능성이 있는 대책을 대야 했다. “점심때도 지났는데요. 빵이라도 자시세요.” 춘희는 배낭에서 과일이랑 빵이랑 찰떡이랑 꺼냈다. 그들은 찰떡에 김치를 주어 먹으면서 어떻게 하면 협곡에서 빠져나가겠는가 궁리했다. 문걸은 금방 고드름이 무너져내린 협곡 안을 둘러보다가 환성을 질렀다. “야, 나무 뿌리를 보오. 얼기설기 뒤엉킨게 얼마나 장관이오.” 춘희가 바라보니 곧게 내리뻗은 뿌리에 좀 가는 뿌리가 타래치며 얼기설기 휘감겨 있었다. 문걸은 저도 몰래 중얼거렸다. “필경 우리 사진 찍던 그 미인송과 소나무 뿌리요. 지상에서는 서로 포옹하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지하에서는 뿌리가 저렇게 뒤엉켜 사랑을 나누고 있지 않소? 내 이제 나가기만 하면 이 미인송과 소나무 어우러진 멋진 인체화를 그려야겠소. 저 타래치며 휘감긴 뿌리와 서로 사랑을 속삭이며 포옹하는 미인송과 소나무 형상에 얼기설기 휘감겨 포옹하며 사랑을 속삭이는 숱한 신사와 미녀를 그려넣는단 말이요.” 춘희는 생사선에서 헤매는 시각에도 엉뚱한 구상을 펼치는 문걸을 보고 내심으로 탄복하였다. “우린 여기서 꼭 나가야 하오. 난 마지막으로라도 국제인체화전시회에 꼭 참가해야겠소.” 쿵! 갑자기 뭔가 넘어져 굴 어구를 막아버렸다. 팔뚝만큼한 소나무가 넘어졌다. 아마 함박눈이 내리면서 눈무게를 이기지 못해 소나무가 넘어진 것 같았다. “살았소!” 문걸은 환성을 지르며 배낭을 들췄다. 등산용바줄을 꺼냈다. 샘물벙을 바줄에 달아매더니 굴어구에 가로 누운 소나무에 올리뿌렸다. 몇번 올리뿌려 끝내 바줄을 소나무에 휘감았다. 두 손으로 바줄을 꿍꿍 당겨보니 든든해보였다. “먼저 올라가오.” “아니, 리선생님, 먼저 올라가야 저를 끌어올리지요.” “아니요. 저 소나무 너무 가늘어 내 무게를 감당할 거 같지 않소. 가벼운 제 먼저 올라가오.” 그제야 춘희는 바줄을 잡고 매달렸다. 밑에서 문걸이 춘희의 두 다리를 안아 머리 우까지 춰올렸다. 이젠 춘희 혼자 힘으로 바줄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춘희는 아무리 바줄을 잡고 아득바득 애써도 반메터도 더 올라가지 못하고 주르르 미끌어져내려왔다. “안되겠어요.” 하는 수 없이 문걸이 두 손으로 바줄을 잡고 두 다리로 바줄을 감으면서 바라올라갔다. 얼마 안돼 당장 굴어구에 가로 누운 소나무대를 잡을가말가 할 때였다.    뚜두둑! 마른 소나무가지가 무게를 담당하지 못하고 툭 끊어져버렸다. 문걸은 끊어진 소나무와 함께 허망 퉁 떨어졌다. 그 바람에 쳐다보던 춘희도 소나무에 깔리였다. 문걸이 소나무를 치우면서 볼라니 썩박소나무였다. 모든 희망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10. 지하에서 맺은 사랑   그들은 묵묵히 너럭바위에 마주 앉아 협곡 안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협곡에는 납덩이 같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다만 밑바닥에 샘물이 찰랑찰랑 흐르며 공포를 몰아올 뿐이였다. 한참 후 문걸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죄송하오. 괜히 등산하러 오자고 해서 이런 구렁텅이에 빠져서.” 춘희는 굽실굽실한 커피색머리카락을 버릇처럼 어깨 넘어 쓸어넘겼다. “아니예요. 이것도 운명이겠죠.” 문걸은 춘희의 가녀린 손을 잡고 진정으로 말했다. “나는 몇달 살지 모르는 암환자니깐 괜찮은데. 전도 창창한 춘희가 여기를 나가지 못하는 날엔 어쩌오?” 춘희도 문걸의 손을 꼭 잡았다. “리선생님,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제가 좋아서 등산하러 왔는데요. 우린 절대 여기서 삶을 포기할 순 없어요. ” 순간 그녀의 쌍까풀눈에는 강한 삶의 의지가 반짝였다. 문걸은 머리를 숙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춘희의사 오지 않기를 잘했지. 다만 춘희의사 구명은혜를 갚지 못하는게 한일 뿐이지.” 춘희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한숨을 호- 내쉬였다. “혹시 그녀를 좋아하는가요?” 문걸은 진정을 토로했다. “춘희 살아나가면 전해주오. 내 몸 속에는 한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는 춘희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춘희는 너무나도 감동됐다. “진짜 그녀를 사랑하는 거 아닌가요?” 문걸은 춘희 손을 놓고 도리머리를 저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내가 무슨 자격으로 박사의사를 사랑한단 말이요?” 춘희는 문걸을 빤히 마주 보며 물었다. “아니예요. 누군들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는가요? 조만간의 차이죠. 사랑은 생명이 길고 짧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봐요. 시간과 공간을 훌쩍 넘어 한 순간이라도 참다운 사랑만 한다면 그만한 사랑과 행복은 없다고 봐요. 리선생님은 서로 사랑하면 꼭 재혼하고 새 가정을 이뤄야 한다고 보는지요?” 문걸은 피씩 허구푼 웃음을 웃었다. (조강지처도 날 버리고 가버렸는데 또 재혼해 가정을 차리겠소? 혹시 40대 중반인 춘희는 남자를 싫어하지 않을지 모르겠소만.) 문걸은 이렇게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리고 땅바닥에 널린 소나무껍질을 쥐여들고 보면서 중얼거렸다. “난 저를 만나면 항상 즐거웠소. 노래를 부르고 사교무를 추고 마사지를 하고나면 모든 스트레스가 다 풀렸소. 참 사는 맛이 났소.” 춘희도 중얼거렸다. “저는 항상 고독할 때면 리선생님하구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 즐겁고 좋았어요. 짜증나던 일도 깡그리 잊어버리고 속이 후련했어요.” “남편은 뭘 하오?” “맨날 술이나 처먹고 지랄하는 것도 남편인가요? 미국에서 돌아와 술중독에 걸렸는데 몇달 전에 한국에 가고 없어요. 혼자 사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문걸은 정색해 물었다. “40대 한창 나인데 남편을 싫어하오?” 춘희도 정색해 말했다. “저도 이젠 쉰고개를 바라보는데요. 우리 년령대에 남자를 좋아할 녀자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질려요. 지긋지긋해요. 그저 딸애의 아빠여서 버리지 못하고 억지로 살 뿐인데요.” 문걸은 놀랐다. (40대 한창 나이 춘희마저 남자를 싫어하다니?!) 춘희 말에 의하면 남편은 대학교 시절의 동창생이라고 한다. 그때만 해도 남편은 학교 축구팀 선수로 활약하는 씩씩한 총각이였다. 그러나 결혼해서야 남편은 술주정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였다. 더우기 그녀가 딸애를 본가집에 맡기고 일본으로 간 7년 동안에 숱한 외간 녀자들과 바람을 피웠다고 한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성병까지 묻혀 들여온 것이였다. 일본 의학박사인 그녀를 속일 순 없었다. 병원에 가서 남편의 병력서류를 열어보니 화험단에 더러운 성병력사가 똑똑히 기록돼 있었다. 그녀는 동료들이 눈치챌가 봐 얼마나 겁나고 창피한지 몰랐다고 한다. “전 우리 나그네라면 딱 질색이예요. 술을 먹지, 담배를 피우지. 그 알콜중독에 걸려 아무 구실도 못하는 신세에 녀편네 구들을 좀 닦으라면 잔소리한다고 야단치죠. 가정이라면 부부 간에 서로 돕고 살아야죠. 잔소리 좀 했다고 짜증난다고 야단치죠. 좀 도량이 있는 남편이라면 안해 잔소리 하기 전에 뭐나 척척 해야죠. 안해 잔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어야죠. 이 세상에 잔소릴 한다고 짜증내는 남편과 살 녀자 몇이 있는가요? 아직 약혼도 못한 딸애가 이담 혼사말을 할 때 부모 리혼했다는 말을 듣게 할가 봐 억지로 사는 거죠. 알콜중독에 쓰러지면 저한테 얼마나 부담이 돼요. 누굴 한뉘 고생시키자고 술을 하루에도 세때 처먹어요.” 춘희 말을 들으면서 문걸은 고개가 숙여졌다. (세상 녀자들은 모두 잔소리 하기 좋아하는구나.) 춘희는 문걸의 눈치도 살피잖고 계속 넉두리를 해댔다. “알콜중독나그네하고 하지 못하는 말을 리선생님한테 하는데요. 널리 량해하세요. 어쩐지 바깥에 나와서 리선생님하고 모든 걸 말하고나면 집에서 답답하던 속이 활 풀려요. 남자들은 안해 잔소리를 자장가처럼 여기면 되는 거죠. 그런 도량 있는 남자 몇이나 돼요? 그래서 일본의 적지 않은 독신녀자들은 남자들과 살기 싫어 개하고 산다고 하잖아요. 개는 주인한테 충성하죠. 돈을 달라고 하지도 않지요. 남자가 그리우면 개하고 그것까지 하면서 산대요. 남자가 필요하면 그저 친구로 지내면 좋죠. 결혼은 하지 말고 그저 친구로, 애인으로 보내는 것이 제일이죠. 서로 부담거리로 되지 않아 좋지요.” 문걸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였다. “제 딸애한테도 결혼하지 말고 독신으로 살라고 말할 수 있겠소?” 춘희는 머리를 숙여 협곡바닥에 흐르는 물에 눈길을 돌리며 한숨을 쉬였다. “거야 딸애 생각에 맡겨야죠. 전 이젠 졸혼했어요. 래세가 있다면 다신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래요.” 그녀는 머리를 들더니 불쑥 이런 말도 했다. “리선생님 같은 분이면 달라요. 지적인 남자고 행복지수가 아주 높은 분이니깐요.” 문걸은 춘희를 빤히 쳐다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나도 졸혼이요. 이젠 진짜 재혼하고픈 마음 꼬물만치도 없소. 이제 며칠 살겠는지, 아니면 여기서 죽을 지조 모르오. 나머지 시간을 그저 즐겁게 보내다가 눈 감으면 되오.” 춘희는 문걸한테 삶의 용기를 불어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기서 꼭 살아나가 춘희의사를 만날 수 있어요. 여기서 나가면 춘희의사하고 친구로 되고 애인이 돼서 날마다 즐겁게 지네세요. 신심을 가지세요. 이젠 해도 거의 넘어가니깐요. 등산대원들이 찾아올거예요.” 그러나 문걸은 어두워지는 협곡 어구 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만약 래세가 있다면 춘희의사 구명은혜도 갚고 날마다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소.” 춘희는 문걸의 손을 잡았다. “래세가 어디 있어요? 금세의 일은 금세에 다 해야 후회없는 인생이죠.”   “갱년기에 들어선 녀자들은 남자들이라면 딱 질색이예요. 결혼은 진짜 사랑의 무덤이죠. 그래서 일본의 적지 않은 독신녀자들은 남자들과 가정을 꾸리고 살기 싫어하죠. 가정은 얼마나 즐거우면서도 사람들을 정신쇠사슬로 꽁꽁 묶어놓는 감옥인가요? 그래서 일본 독신녀자들은 개하고 산다고 하잖아요. 개는 주인한테 충성하죠. 돈을 달라고 하지도 않지요. 남자가 그리우면 개하고 그것까지 하면서 산대요. 남자가 필요하면 그저 친구나 애인으로 지내면 좋죠. 그러나 리선생님 같은 분이면 달라요. 지적인 남자고 행복지수가 아주 높은 분이니깐요. 리선생님이 자기 친구방에 올린 퇴직증을 보니 교수급 설계사더군요.” 문걸은 춘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강지처도 버리고 갔는데 고통지수 밖에 남은게 없소. 남자로서의 기본욕구도 만족을 보지도 못하고 억지로 참으면서 살아야 하오. 이게 바로 예순고개를 넘은 나그네들의 운명이고 숨은 고통이요. 난 아직도 춘희처럼 예쁜 녀자를 보면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참된 사랑도 하고 싶고 즐겁게 살고 싶소.” 춘희는 삶의 용기를 불어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서 꼭 살아나갈 수 있어요. 신심을 가지세요. 이젠 해도 거의 넘어가니깐요. 이제 등산팀이 찾아올거예요.” 문걸은 중얼거렸다. “내가 만약 여기서 죽어도 화가로서의 예술생명은 내 작품과 함께 영생할 것이오. ” 춘희도 감동을 먹고 머리를 끄덕였다. 문걸은 춘희 두 손을 꽉 잡았다. “이제껏 한가지 궁금한게 있었는데 물어도 괜찮겠소?” “예. 이런 곤경에 빠졌는데 무엇인들 말하지 못하겠어요?” “혹시 춘희의사 아닌지?” “네?” 춘희는 놀랍게 문걸을 마주 보다가 씨무룩이 웃었다. “저는 쌍까풀눈이고 춘희의사는 외까풀눈에 안경까지 걸지 않았는가요? 머리도 전 긴 커피색머리고 춘희의사는 단발머린데요.” 문걸은 확신에 차서 춘희의 두 손을 잡고 말했다. “화가인 내 눈을 속이지 못하오. 얼마나 찬찬히 관찰했다고. 제 쌍까풀눈과 긴 속눈섭은 모두 해넣은 것 맞지?” “호호호. 제가 변장술이라도 있는가요? 아니면 요술쟁인가요?” 문걸도 소탈하게 웃었다. “이젠 속일게 없소.” 그제야 춘희는 커피색가발을 홀랑 벗었다. 헉, 글쎄 단발머리 아닌가. 뒤이어 속눈섭을 떼내고 쌍까풀눈을 내리쓸자 요술이나 부리듯이 외까풀눈으로 변했다. “춘희의사!” 문걸은 춘희를 꽉 끌어안았다. “우리 어떻게 하나 꼭 살아나가기오.” 춘희는 문걸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 힘차게 끄덕였다. 뒤이어 누가 먼저라고 하기 힘들게 서로 볼을 매만지고 비비다가 뜨거운 키스를 나누었다. 생사선에서 헤매는 시각에 백열화된 사랑의 불길은 그들의 육체를, 혼을 뜨겁게 달구었다. 삶의 욕망과 사랑의 불길은 점점 세차게 흘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문걸은 어두워진 하늘 구멍을 쳐다보더니 품 속의 춘희를 내려놓고 벌떡 일어났다. 그는 배낭을 털어내고 협곡의 졻디졻은 하늘구멍으로 힘껏 올리뿌렸다. 등산대원들이 그 가방을 발견하면 그들을 찾아낼 것이 아닌가. 삶을 향한 그들의 악전고투는 그에 그치지 않았다. 춘희의 아이디어에 따라 문걸은 협곡에 끊어져 떨어진 썩박소나무를 토막토막 끊어 무져놓고 자기 등산복 팔소매를 끊어 라이터로 우등불을 지폈다. 송진이 발린 소나무토막에 불이 확 달렸다. 세차게 타오르는 우등불빛은 협곡 벽에얼기설기 타래쳐 올라간 미인송과 소나무 뿌리를 서글프게 비추었다. 문걸의 눈에는 서울 국제인체화전시회에 전시될 “사랑의 불길” 명인체화를 방불히 보는 상 싶었다. 숱한 남녀의 인체로 칡넝쿨처럼 얼기설기 얽혀 아츠랗게 타래쳐 올라간 미인송과 소나무의 뿌리와 몸뚱이, 어두운 협곡에 세차게 타오르는 삶의 욕망과 사랑의 우등불… “아, 인체명화가 생사의 협곡에서 태여났다!” 협곡에 실성한듯한 문걸의 환호성이 터졌다. 춘희의 귀에는 소방헬기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는 상 싶었다.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이 협곡 구멍을 뚫고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그 우등불은 삶의 욕망의 불길이였다. 아니, 협곡에서 용암처럼 부글거리며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걸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도처럼 덮쳐오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문걸이 춘희하구 재혼하면 행복할가? 진짜 황혼의 짜릿한 사랑으로 화학적결합할 수 있을가? 리혼도 하지 않은 춘희가 문걸과 재혼하자고 할가? 그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환자를 살리려고 애정써비스를 한 건 아닌지? 또 그저 유쾌한 친구로 즐기자는건지? 사교무나 추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나 부르고 안마방에 가서 마사지나 하고... 그렇게 즐기자는 걸가?  모든게 분명하지 않다. 그럼 문걸이 짝사랑을 한 건가?        졸혼이야? 재혼이냐?  나이 들어 사랑이 점점 식어가고 사막처럼 말라가면 졸혼하고 싶어하지. 그러나 졸혼하고 오래동안 고독하게 산 홀애비나 과부는 또 재혼할가 말가 하지. 지금 문걸은 그 어려운 문턱에 서서 어느쪽으로 뛰어내릴가 망설이고 있는 건 아닌가?  졸혼과 재혼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문걸의 처지 근심스럽다. 춘희와 영희, 미녀로봇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문걸이 더욱 가엽다.       어디선가 그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상 싶었다...      이윽고 구조헬기 엔징소리가 들리는 상 싶었다. 문걸과 춘희는 이젠 살았다고 두 손 모아쥐고 하늘로 펑 뚫린 협곡 구멍을 쳐다보았다...       문걸이네 하얀 비둘기가 집 유리창문에 날아와 매달려 집으로 들어오려고 날개를 파닥인다. "왜 또 돌아왔어?" "바깥이 너무 추워요." "그래 또 초롱에 갇히고 싶어? 자유롭게 살라고 초롱 안에서 놔주었더니. 바보, 흥!" 비둘기는 유리창문을 부리로 똑똑똑 노크하면서 구구거리는 상 싶었어요. "초롱 안에 있을 땐 바깥에 나가 자유롭게 살고 싶었는데요. 정작 바깥에 나오니 주인님 따뜻한 베란다 초롱 안이 생각나요. 더구나 눈풍설에 헤매지 않고 주인이 주는 영양가 높은 먹거리 생각납디다."        (착각인가? 어허, 세상 우습다.)       문걸은 자기 처지와 같은 비둘기를 보고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이 집이 옥신각신 할 때마다 항상 평화를 가져다주던 비둘기가 아닌가.      "비둘기야, 네 처지 불쌍해. 내 마음이 독해 널 받아들이지 않는게 아니야. 널 차마 또다시 초롱 속에 가둬두고 싶지 않구나. 멍청한 생각하지 마."     그는 부리로 창문을 계속 노크하는 비둘기한테 다가가 중얼거렸다. "사랑하는 비둘기야, 좀 힘들더라도 어서 너만의 자유로운 생활을 찾아 날아가라." 비둘기는 실망했을가? 아니면 문걸의 말 뜻을 알아들었을가? 하얀 비둘기는 푸드득 저멀리 자유와 평화로 파랗게 물든 푸르른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초롱 안 비둘기는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하고 바깥에 나간 비둘기는 초롱 안에 갇히면서라도 따뜻한 주인집 베란다를 그리워 하다니. 아, 참, 주인이 주는 영양가 높은 그 먹거리.ㅎㅎㅎ...  
272    대하소설 졸혼(3) 김장혁 댓글:  조회:1284  추천:0  2022-02-15
                      5.  생사를 가로탄 절벽 문걸은 등산을 갔다가 이상하게 잔등에 춘희를 업고 바위 틈에 손가락을 박으며 먹칠한 듯한 하늘에 눌려 있는 절벽을 아득바득 바라오르고 있었다. 꽈르릉 꽝! 꽝! 갑자기 불뱀이 절벽허리를 툭 치며 우뢰가 절벽을 들었다 놓았다. 광풍이 휙 휘몰아치며 춘희를 휘감아 절벽 아래로 내동댕이쳤다. “춘희!” “춘희!” 그때 춘희는 먹장구름 속에 휘말려들어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귀전에 춘희의 부드러운 대답소리가 똑똑히 들릴 뿐이다. “어서 일어나세요. 춘희, 여기 있어요.” “뭐지?” 문걸은 눈을 천천히 떴다. 눈에는 먹장구름은 어데로 사라지고 사위가 온통 새하얗게 안겨왔다. 흐리터분한 눈에 하얀 옷을 입은 걀죽한 얼굴이 자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끝내 깨났군요.” 문걸의 입술이 옴지작거렸다. 그러자 춘희의사가 그의 입가에 귀를 가져갔다. “춘, 춘희는?” “꿈을 꾸셨나 봐요.” 그제야 문걸은 안도의 숨을 후- 내쉬더니 또 눈을 감았다. 한참 후 문걸의 귀전에는 영희와 군철이 주고 받는 말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이 핸드폰을 봐라. 춘희라는 녀자 누군데. 맨날 숱한 위쳇 대화를 했다. 앓는 사이는 좀 즘즉하더니 오늘부터 또 메시지를 보냈잖아.” “뭐?” 군철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이런 구절이 떠 있지 않겠는가.   왜 죽을 용기가 있으면 살 용기는 없어요. 힘내세요. 당신의 곁에는 항상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빨리 일어나세요.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해 저와 함께 등산하자요. 이제 봄이 오면 장백산 원시림에 가서 미인송 밑에서 저한테 초상화를 그려주겠다 해놓고 잊으셨나요?   “호호호. 아주 죽자살자하는 사이 아니고 뭐냐? 어떤 년인지, 낯짝도 내밀지 않으면서 죽어가는 나그네를 아직도 유혹해? 아이, 참, 원.” 군철은 아버지 머리가에 핸드폰을 놔주고 어머니한테 눈을 흘겼다. “엄마, 왜 항상 아버지를 의심합니까? 위쳇 메시지 온게 무슨 죄라고 의심하면서. 흥, 참. 엄마도 한심합니다. 어쩜 생명이 경각을 다투는 아버지를 앞에 놓고. 쯧쯧.” 그러건 말건 영희는 또 핸드폰을 주어들고 들여다보았다. “이건 또 뭐냐? ‘서울 국제인체화전시회 요청서’? 에이구, 모두 정신 있니? 사람이 다 죽어가는데 문안은커녕 무슨 전시회?” 그 말에 숨을 죽이고 듣던 문걸은 저도 몰래 앓음소리를 냈다. 이쪽으로 발자욱소리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대장종양인지 뭔지 병리분석결과 나왔다더냐?” “쉿- 아버지 듣겠습니다.” 발자욱소리들 한쪽 구석으로 멀어진다. 드디여 군철의 나직한 말소리 들린다. “암이랍디다.” “암이라고? 아이고, 이걸 어쩌냐?” “왜 소리칩니까?” “내 손주 셋이나 봐야는데. 누가 림종간호를 하겠느냐?” “어머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 몇달이라도 더 사는게 그리 싫습니까? 어디 봅시다. 엄마라고 앓을 때 없겠습니까?” “얘, 엄마 쓰러질 지경으로 밤낮 너네 오누이 애 셋이나 봐줬건만 어째 엄마 살편은 꼬물만치도 생각하지 않느냐? 아이고, 어떻게 살겠느냐?” 문걸은 똑똑히 다 들었다. 눈을 살며시 뜨고 살펴보니 다행히 춘희의사와 간병원은 없는 것 같았다. 순간 문걸은 천길나락으로 떨어져내려가는 감이 들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눈 앞이 캄캄해났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아, 어떻게 돼 죽지 못하고 또 살아났을가. 저 듣기 싫은 소릴 듣자고 또 살아났어?) 문걸의 눈언저리에는 저도 몰래 쓰라린 눈물이 고였다가 주르르 흘러 볼을 타고 귀 밑으로 흘러내려갔다. 영희는 간병원이 들어오자 문걸의 핸드폰을 쳐들고 물었다. “혹시 춘희라고 불러요?” “아니예요. 전 만금이라고 불러요.” “고향 어딘가요?” “왕청 시골 농촌마을에서 살아요.” “네, 간병비를 미리 후하게 줄테니깐요. 잘 부탁해요.” “예, 알았습니다.” 영희는 나그네 핸드폰을 꾹꾹 눌러 위쳇으로 만금한테 송금했다. 군철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렸다. “어머니, 어제 아빠가 짧은 생각하고 글쎄 링겔관을 끊어버려 출혈이 심했습니다. 급히 수혈해야는데 혈장이 없어서 혼났어요. 다행히 녀의사가 글쎄 자기 피를 뽑아 수혈했기에 아버지를 구해냈습니다.” “뭐라고? 녀의사 참 대단하구나.” 그때 문 여닫는 소리가 나더니 춘희의사의 목소리가 나직이 들렸다. “환자의 안해인가요?” “예, 그래요. 어제 수혈해줘 감사해요. 이건 감사빈데요. 받으세요.” “아닙니다. 환자 생명을 구하는 건 우리 직책인데요. 사례비는 그만두세요.” “아니, 그래도 어찌 은혜에 보답하지 않을 수 있어요.” “이건 절대 받지 못합니다. 환자 정서가 온정될 때까지 환자를 명심해 잘 간호해주세요. 대장암이지만요. 레이자빛수술로 종양을 수술해 버리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어요. 기적적으로 완쾌될 수도 있어요. 수술하는데 동의되면 여기에 서명해요.” “이제 수술해 뭘 하겠어요? 오히려 수술을 하면 인차 사망할 수도 있다는 말도 있던데요. 황차 자꾸 자해하는 사람을 고통스레 수술까지… 흐흑, 흑흑.” (오, 춘희의사!) 문걸은 자기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영희가 울고 있어?) 드디여 그는 눈을 살며시 뜨고 병실을 두리번거렸다. 산소호흡기에 막혀 왼눈으로 밖에 살필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보였다. 영희가 문선에 기대 어깨를 들먹이고 있지 않겠는가. (자꾸 갈라지자더니. 관건적인 시각엔 그래도 조강지처? 등산대 춘희는 왜 소식이 없을가?) 그는 무심결에 침대 우에 놓인 핸드폰에 눈길이 갔다. 주어들고 보니 놀랍게도 춘희가 위쳇으로 사진 몇장 보내지 않았겠는가. 미인송을 배경으로 찍은 춘희 사진, 그 사진은 장백산 원시림에 등산 가서 자기가 찍어준 사진이 아닌가. 꽃다지옷을 입힌 큼직한 커피색개를 안고 찍은 사진도 있었다. 개는 보선까지 신은 두발을 춘희 허벅다리에 올려놓고 퍼더버리고 앉아 혀를 한발이나 내밀고 춘희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날 따라 순박한 춘희 걀죽한 얼굴은 더 예뻐보였다. 커피색머리아래 예지로 빛나는 어글어글한 쌍까풀 눈, 상큼한 코… (얼마나 순박하고 사랑스러운 녀인인가. 춘희한테 장백산 원시림에 가서 미인송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말빚을 지지 않았던가.) 춘희는 모델은 아니였다. 하지만 순박하고 예지로 빛나는 그 쌍까풀눈은 문걸의 혼을 몽땅 빼앗아다가 빠뜨리는 매력적인 눈이였다. 핸드폰에는 서울 인체화전시회 요청서도 들어와 있지 않겠는가. 순간 문걸은 삶의 의욕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의사의 피를 내 몸에서 헛되히 죽게 할 순 없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라도 서울 국제인체화전시회에 참가해야지.) 진짜 반전이 일어났다. “간병원.” 만금은 황급히 침대 옆에 다가갔다. “아버지!” 군철이 아버지를 부르며 다가갔다. 영희도 다가가 물었다. “깨났군요. 무슨 분부가 있는가요?” “의, 의사를.” “네. 곧 불러오죠.” 영희가 침대머리 별을 누르자 춘희의사와 간호원이 황급히 달려왔다. 춘희의사는 다가와 혈압부터 검사했다. 문걸은 나직이 말했다. “의, 의사, 수, 수술 하, 합시다.” “네, 알았어요. 레이자수술은 옛날 수술칼로 하는 수술과 달리 안전해요. 이제 건강정황을 봐가며 수술날자를 정하지요.” 드디여 간호원이 수술계약서를 들고 달려왔다. 문걸은 백지장 같은 손으로 간신히 수술계약서에 서명했다. 순간 그는 병실 창문에 비껴드는 해살마저 가슴에 비껴드는 한가닥의 희망의 빛으로 여겨졌다. 따사로운 해살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이제 저 해살을 몇번이나 볼 수 있을가?) 문걸은 막연한 생각에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영희는 놀라움을 금치 못해 쌍까풀눈이 다 데꾼해졌다. 몇번이고 죽겠다고 자해하던 남편이 며칠이라도 더 살겠다는 걸 말릴 수는 없었다. 순간 그녀는 자기와 함께 그림을 그려 팔려고 동분서주하며 버둑질하던 남편이 불쌍해났다. 하여 남편의 손을 잡고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이윽고 그녀는 아들과 함께 천천히 남편의 속내복을 벗기고 따뜻한 물에 하신을 말끔히 닦아주었다. 부부는 하루 밤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필경 30여년이나 함께 살며 아들딸을 낳고 손주 셋이나 본 부부가 아닌가.                           6. 명모델       영희는 흐리터분한 하늘에서 무너져내리는 함박눈을 밟으며 화실에 발길을 돌렸다.    그 화실은 그녀 부부의 꿈과 인생흔적이 살아숨쉬는 요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화실에서 한 야망의 화가와 녀무용수모델은 하나 또 하나의 현대무용의 조형예술과 미술로 예술의 극치를 창작해나갔다. 이 화실에서 열련으로 사랑의 혼을 달구었고 용암 같은 사랑의 결실- 오누이도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영희는 화실 병풍 앞에 누운 하얀 침대에 편 하얀 침대보를 손으로 살살 어루쓸었다. 그 침대에서 베일에 가린 인체화를 마음껏 그리라고 그녀가, 처녀무용수가 20여년 해빛도 보이지 않던 청춘의 육체와 혼을 다 바치지 않았던가. 널다란 화실 복판에는 아직도 고급촬영기가 긴 렌즈를 빼들고 서 있었고 벽에는 차마 눈 뜨고 보기도 민망한 미녀들의 라체화가 줄느런히 걸려 있었다. 실 한오리 걸치지 않고 침대 우에 모로 누워있는 처녀의 라체화, 강변에서 한쪽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물동이를 어깨우로 들어 우유빛 몸에 물을 끼얹는 처녀의 라체화, 백설처럼 하얀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하면서 쏘파에 엎드려 있는 라체처녀… 미녀들의 라체화는 살아 움직이는 처녀들과 흡사해 보기도 끔찍했다. 영희는 침대에 누워 있는 쌍까풀 녀성의 몸에 눈길을 멈췄다. 문걸은 특별히 쌍까풀눈 녀성을 보기만 하면 외까풀눈을 가슴츠레 뜨고 넋을 잃고 뚫어지게 바라보군 하였다. 돈을 주든지 어떤 수를 쓰든지 쌍까풀눈 녀성을 이 화실에 끌어들여 라체화를 그리고야 말군 하였다. 영희가 정호와 순정의 소개로 문걸을 만난지 얼마 안됐을 때에도 그녀를 여기 데리고 왔었다. 문걸은 실눈을 가슴츠레 뜨고 영희를 바라보면서 두툼한 입술을 뗐다. “그림 한장 그려줄가?” 영희는 수줍음을 타면서 머리를 다소곳이 숙였다. “아니, 전 모델도 아닌데요.” 문걸은 열변을 토했다. “모델 이상인데요. 무대에서 독무를 추는 아름다운 모습은 여러번 보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깐. 더 예쁘오.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이라던가, 상큼한 코라던가. 진짜 우리 조선민족의 전통적인 녀성미가 다분한 미녀요.” “어마나, 기장밥을 해드려야겠네요.” “기장밥은 뒀다 먹고 그림이나 그릴가?” “고마워요.” 그날엔 화실의 한복을 입고 장고춤을 추는 영희의 예쁜 모습을 그렸다. “아니, 진짜 재간 있는데요. 실물보다 퍽 곱게 그렸군요.”    영희의 말에 정호가 중얼거렸다. “그림은 실물보다 못하오. 동무는 원래 무용수인데다가 개방형 성격이니까. 아무 모델을 서도 전통미에 섹시미가 돋보일 거 같소. 아니, 진선미가 빛발치오.” 잔뜩 춰주는 미사려구에 영희는 가슴이 설레였다. 문걸은 영희 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열변을 토했다. “무용과 미술은 다 예술이요. 우린 예술로 공통점이 많소. 내 하라는대로 모델로 서주면 세상에서 제일 멋진 그림을 그릴 거 같소. 저는 세계 명모델로 될 진선미아가씨요. 저를 보는 순간 막 미술령감이 떠오르오.” 영희는 쑥스러워 인차 대답하지 않았다. (이건 련애인지? 모델초빙인지? 모델과 화가의 만남인지? 원, 참.) 몇달 동안 열련을 하던 어느날 영희는 또 문걸의 요청에 의해 화실에서 만났다. 영희는 라체화들에 매혹돼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문걸은 가슴츠레한 실눈을 크게 뜨면서 한껏 열변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미술도 지고무상의 예술이요. 무용예술을 사랑하는 영희는 리해하리라 믿소. 세계를 들썽하는 명모델아가씨로 떠오르자면 예술을 위한 희생정신이 필요하오.” 영희는 쑥스러워 머리를 천천히 숙였다. “이번엔 어떤 예술적인 구상을 했는가요? 시키는대로 할테니까요.” 용기를 얻은 문걸은 대담히 자기 착상을 내놓았다. “요즘 아주 엉뚱하고 멋들어진 착상을 했소. 제목은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이요. 어떻소?” “우-와- 참 멋진데요.” “영희는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는 아름다운 장미꽃이오. 이 주제를 예술적인 극치로 승화시키려면 침대에 누운 옥기둥 같은 처녀의 몸에 타오르는 불길을 그려야 한단 말이요.” “어마나!” 영희는 대뜸 두 손으로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가리였다. “영희는 세계미스로, 명미녀모델로 떠오를 수 있소. 그 길이 어디 그리 쉬운가 하오? 예술을 위한 헌신정신이 필요하단 말이오.” 문걸은 영희의 팔을 끼고 병풍 앞에 놓인 침대로 걸어가면서 열변을 토했다. 문걸은 영희를 침대에 앉혀놓고 계속 세치 혀끝을 날름거렸다. “영희, 큰 마음 먹소. 예술의 극치를 위해 헌신할 때 됐소.” 영희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더니 섬섬옥수로 침대보를 만지작거렸다. “우린 남남이 아니고 련인이 아니고 뭐요? 뭘 주저하오?” 이윽고 영희는 머리를 천천히 들더니 용기를 내 “어떻게 하라는가요?” 하고 물었다. “아, 아니, 이 조용한 화실에는 영희를 세계미스로 떠오르게 하려는 한 화가와 세계명모델로, 아니, 월드미스로 될 푸른 야망을 품은 영희 밖에 없단 말이요. 용기를 내오.”     영희는 인차 옷을 벗지 않았다.    “한가지 약속해요. 사진과 라체화를 본 지방에 팔거나 걸어선 안돼요.”    “그렇구말구. 남방이나 국외에 가지고 가서 세계명화전시회에 전시하려오.”    그제야 영희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며 끄덕였다.    문걸은 사기가 부쩍 올랐다.   “영희, 옷을 하나, 하나 벗소. 먼저 부동한 각도에서 촬영하겠소. 그 다음에 불타오르는 ‘사랑의 불길’을 그리겠소.”    영희는 큰 마음을 먹고 문걸이 시키는대로 하얀 보를 편 침대에서 베일로 얼굴과 몸을 가리고 천천히 옷을 하나, 하나 벗으면서 멋진 포즈를 취하였다.    먼저 적삼을 벗고 하얀 우유빛 잔등을 내놓았다. 섬괌등이 번쩍! 그녀가 부래지어까지 풀어 네모상자 아래에 스르르 흘려내렸다. 번쩍! 영희는 부끄러워 머리를 숙이면서 베일로 가리며 두 손으로 가슴을 안고 돌아앉지 않았다. 베일에 가린 얼굴을 반쯤 드러내며 돌아앉은 순간. 번쩍! 베일에 가린 새하얀 옥기둥 같은 미녀의 우유빛 몸매가 황홀하게 보일락말락하게 나타났다. 문걸은 넋을 잃고 촬영하는 것마저 잃은 채 가슴츠레 한 외까풀 실눈으로 멍해 그녀의 라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적잖은 라체모델을 상대하여 인체화를 그려왔다. 하지만 영희의 몸처럼 예술적으로 잘 다듬어진 매혹적인 처녀의 라체는 처음 보았다. 그는 넋을 잃고 숨을 딱 죽인채 한참이나 실눈을 크게 뜨고 영희의 우유빛살결을 쳐다보고 또 보고 아래우로 훑어보고 또 보면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의 S라인곡선미가 연분홍 불빛에 빛나고 있었다. 문걸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조용한 화실 안이 터지게 한숨을 후- 몰아쉬였다.    영희가 머리를 모로 돌려 뒤돌아보자 그제야 제정신이 든 문걸은 번쩍, 번쩍 샷타를 눌렀다. “영희, 돌아서서 두 손을 머리우로 들어올려 맞잡고 허벅다리는 좀 모로 타오. 옳소. 참 매력적이요. 그대로 한 반시간쯤 서 있어야 되겠소.” 뒤이어 문걸은 비디오촬영기 샷타를 눌러놓고 침대에 누은 영희한테 다가가 붓에 노란 칠과 빨간 칠을 묻혀서 하얀 우유빛허벅다리로부터 올리 세차게 타오르는 불길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영희는 부끄럽고 간지러워 허벅다리를 모아 배배 탈면서 두눈을 살풋이 내리감았다. 그러건 말건 문걸은 매우 빠른 솜씨로 그녀의 옥 같은 몸에 활활 타오르는 뻘건 불길을 그려냈다. 문걸은 청춘의 불길이 타오르는 그녀의 몸을 번쩍번쩍 촬영했다. 기실 그쯤 하면 모든 미술과 촬영은 끊난 셈이다. 그러나 문걸은 아닌 보살을 떨었다. “참, 미흡한데 많은데. 어떻게 빠리세계명화전시회에 내놓는단 말인가?” 머리를 절레절레 젓던 그는 화실 구석에서 물동이를 들고 와서 건넸다. “이 물동이로 어깨 넘어 물을 붓는 동작을 하오.” 무용수 영희는 인차 를 들어 어깨 넘어 물을 붓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문걸은 붓을 다시 잡고 영희의 알몸에 맑은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빨간 불줄기가 타래쳐 오르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문걸은 불시에 영희한테 덮치더니 침대 우에 깔아눕혔다… 한참 후에 문걸은 빨간 매화꽃이 꽃핀 침대보를 하늘공중에 높이 펼쳐들고 미친듯이 환성을 질렀다. “세계명화 탄생! ‘불타오르는 사랑의 불길’! 사랑의 불꽃 세차게 타오른다!” 영희는 갑자기 당한 일에 줄 끊어진 구슬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며 구슬피 흐느끼며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었다. 순식간에 당한 일이였다. 그녀는 거기까지는 사상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제 쑤어놓은 죽이 밥이 되랴. 그후 얼마 안돼 영희는 몸이 부러오는 감을 너꼈다. 그녀는 드디어 문걸한테 시집왔다. 아니, 화가네 집에 모델로 들어온 셈이라고나 할가. 여기까지 회상하자 영희의 흐릿한 눈 앞에 벽에  걸린 라체화들이 희미하게 안겨왔다. 침대 우에 모로 누운 처녀, 물동이로 어깨 넘어 알몸에 물을 끼얹는 처녀, 쏘파에 마구 엎드린 라체처녀… 그 속에는 자기도 들어 있었다. 다만 얼굴을 바꿨을뿐... 다른 처녀들도 모두 이 화실에 와서 자기처럼 라체모델이 되고 “예술을 위해 헌신”하였으리라고 생각되자 저으기 격분했다. 이제 만약 문걸이 되살아나면 또 어떤 예쁜 처녀가 색마의 눈에 걸려들어 이 화실에 와서 자기처럼 라체모델이 되고 간음당할지 누가 알랴! 영희의 눈에는 문걸이 더는 명화가 아니라 항상 가슴츠레한 실눈으로 음충하게 처녀들만 노려보는 색마로, 아니, 악마로 보였다. 이젠 그 가슴츠레한 외까풀눈만 봐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실물이 날 정도로 염오스러웠다.     영희는 정신없이 화실 문을 박차고 부랴부랴 도망쳤다.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피눈물의 새하얀 추억으로 마구 쏟아져내렸다.                                                                      7. 신비한 그녀        물론 춘희의사의 말에 의하면 수술도 잘 됐다고 하지만 언제 암세포가 퍼져 태평방에 건너갈지 모를 일이였다. 그러나 이상했다. 그럴수록 삶의 의욕이 더 강해졌고 하루라도 더 살고 싶었다. 그리하여 문걸의 병세는 놀랍게 호전돼 두달도 안돼 퇴원까지 하였다. 문걸은 자기에게 차례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영희한테 더는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았다. 문걸은 아침 숟가락을 놓기 바쁘게 정중히 말했다. “리혼하기오.” “네?” 영희는 저으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 살려놓으니 리혼하겠다고? 이제 얼마나 살겠는지도 모를 형편인데. 계속 리혼하자고 해도 거절하더니 광기를 부리긴? 조강지처를 버리고 잘 될 거 같아?) 그러나 입으로는 부드러운 말을 했다. “여보, 주책 있소? 늘그막에 무슨 리혼인가요?” “안해는 영원히 남편의 안해이자 련인과 애인으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소? 최저한도로 늘그막까지 성동반자라도 해주면 내 어찌 조강지처와 리혼하러 가자고 하겠소?” 그러나 문걸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속으로 피눈물과 함께 삼키면서 영희를 끌고 민정국으로 갔다. (웬 일일가? 그렇게 끈질기게 리혼하자던 영희가 오히려 반대해나서더니? 아마 다 죽어가는 남편을 혹독하게 리혼이란 쓰라린 고통을 맞보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가.) 그러나 문걸이 어찌나 조르는지 영희는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마지 못해 리혼서에 싸인하였다. 그들은 랭면집에 가서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랭면 한그릇씩 눈물에 말아서 먹었다. 문걸은 영희의 어글어글하고 생기 넘치던 쌍까풀눈에 실망을 안겨줘 죄송하였다. 쌍까풀눈 눈귀에 잔주름이 늘고 귀밑에 흰 머리카락이 드리운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문걸은 랭면집 문을 나서자 흐리멍텅한 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이젠 진짜 졸혼이구만.” (졸혼?) 영희는 이상해 멍해 쳐다보았다. 문걸은 영희를 돌아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젠 결혼생활 영영 졸업했소. 모든 시름 활 놓고 제 갈길을 가기오. 저는 사교무교수와 재혼해 마작을 떵떵 놀고 춤이나 실컷 추며 즐겁게 사오.” 문걸은 외까풀눈귀에 랭소를 흘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쥉쥉 가버렸다. 영희는 상해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핸드폰을 들어 문걸한테 이런 메시지를 보내려고 썼다.   젊고 섹시한 미녀모델을 얻어 인체화도 마음껏 그리고 새 사랑도 실컷 맛보세요. 호랑이 같은 40대녀성이랑. ㅎㅎㅎ. 당신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라면 리혼 뿐이겠어요? 뭐든 참고 감내할 수 있어요. 아이 셋을 가진 할망구가 사랑이 뭐고 재혼이 뭔가요? 걔들을 다 키우고 나면 죽을 날이 닥쳐오는게 황혼비극인데요…   그러나 그녀는 인차 도리머리를 저으며 지워버렸다. 기실 문걸도 복잡한 심정은 마찬가지였다. 영희한테 더는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리혼하지 못해 발광하는 영희 소원을 꺼주고 싶었다. 세상에 마지막으로 강직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문걸은 달랑 화실만 갖고 집에서 나왔다. 그 화실은 그가 미술대학생 시절부터 세를 맡은 것이였다. 그 화실은 그의 예술생명의 요람이나 다름없었다. 설령 육체 생명은 다한다 해도 화가로서의 예술생명은 자기 인체화예술작품과 함께 영생한다고 생각되였던 것이다. 그는 리혼하자 아주 홀가분한 감이 들었다. 이젠 가마를 긁듯이 아츠런 잔소리 하는 사람도 없고 인체화를 그린다고 감시하는 사람도 없다. 얼마나 자유로운지 몰랐다. 내심으로는 점점 새 세상이 열리는 감이 들었다. 원래 건축설계가 그의 주업이였고 그림그리기는 과외애호였지만 퇴직한 후에는 달랐다. 단위에서 건축설계 때문에 시끄럽게 찾지 않아 거의 날마다 화실에 붙박혀 자기 하고 싶은 그림그리기를 할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그는 먼저 어떻게 국제인체화전시회에 전시할 인체화를 어떻게 그릴가고 골몰하였다. 미녀모델들이 거진 출국한 형편에서 이전의 모델들을 두루 상상하며 새로운 착상을 해보았다. 이젠 외까풀눈을 가진 미녀모델들을 상상만 해도 권태감이 들었다. 하여 이젠 외까풀눈 미녀들을 그리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구상해도 좀처럼 령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건강상황 괜찮은가요? 갓 수술하고 나서 끼니를 대충 에따우지 마세요. 채랑 제때에 해 잡수세요. 묵은 채나 밥을 절대 잡숫지 말아요. 뜬 쌀도 잡숫지 마세요. 원래 위장이 좋지 않은데요. 또  염증이 올 수 있어요. 좋기는 가정보모를 두세요. 교수급설계사니깐요. 그만한 소비야 담당할 수 있겠지요.   춘희는 때때로 위쳇으로 문자병문안도 보내왔다.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어떻게 죄다 알지? 얼굴은 내밀지 않고 문자병문안만 자꾸 하다니. 참.) 문걸은 춘희 충고를 듣고 입원했을 때 간병원 만금을 가정보모로 썼다. 이제 얼마 살겠는지 모를 판에 편안히 살고 볼 판이였다. 만금이 어찌나 세간살이를 기름이 돌게 하는지 모든 걱정거리가 사라졌다. 문걸이 식사할 때 슬며시 물어보았더니, 만금은 남편과 사별하고 애 둘이나 본가집 엄마한테 맡겨놓고 가정보모를 하러 왔다고 했다. “몇짐 안되는 밭을 믿고서야 어떻게 살아요?” “어째 출국하지 않았소?” “무릎관절병이 심한 로모한테 애 둘이나 떼놓고 출국하기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요. 이렇게 보모질하면 자주 찾아가 볼 수 있어 시름 좀 놓여요.” (헤이, 모두 각골하게 사는구나.) 문걸은 쏘파에 앉아 외까풀눈을 가슴츠레 뜨고 손걸레로 구들을 닦으며 흔들어대는 만금의 펑퍼짐한 뒤태를 훔쳐보면서 불현듯 잠재욕구가 꿋꿋이 머리를 쳐드는 감을 느꼈다. (고분고분 순종만 하는 저 만금을 데리고 살면 어떨가? 농촌녀자지만 순박하고 진정이지. 중요한 건 40대 중반 한창 나이여서 나를 싫어하지 않을 거야.) 그러나 인차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만금은 보모비 받고 마지못해 순종할 뿐이야. 정작 정실부인으로 되면 어느 녀자 잔소리 없겠는가.) 어느 일요일, 급촉한 전화벨소리 울렸다. 핸드폰을 들어보니 춘희 전화였다. “등산하러 가지 않겠어요?” 문걸은 창 밖을 피뜩 내다보았다. “눈이 올 것 같구만.” “그럼 노래방에나 갈가요?” “글쎄, 별 일도 없는데. 그럼 이전에 갔던 노래방에 가기요.” 그들은 단둘이 노래방에서 만났다. 다시는 보고 죽을 것 같지 않던 춘희를 보는 순간 재생의 기쁨을 느꼈다. 빨간 등산복을 입은 춘희는 굽실굽실한 커피색머리를 버릇처럼 어깨 넘어 쓸어넘기며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으로 문걸의 아래우를 훑어보며 인사했다. “아니, 이게 몇달만인가요? 몸은 괜찮은가요? 문안하러 가지 못해 미안해요.” 문걸은 춘희의 손을 잡으며 인사했다. “다시 보기만 해도 기쁘오.” 문걸은 쏘파에 나란히 앉아 노래를 선택하면서 아무리 뜯어봐도 별로 김춘희의사 같은 감을 육감적으로 느꼈다. 목소리도 딱 춘희 목소리 같았다. 다만 쌍까풀눈만은 확실히 달랐다. 춘희는 이상해 “왜 그리 자꾸 쳐다만 봐요? 노래나 부르세요.” 하고 마이크를 건넸다. “제 어째 딱 내 입원했던 병원의 담당의사 같아서 그러오.” “어마나!” 춘희는 쌍까풀눈을 곱게 흘겼다. “세상에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얼마나 많다고 그래요. 자, 노래나 즐겁게 부릅시다.” 오색령롱한 불빛이 깜빡이며 돌아가고 은은한 음악이 흘렀다. 문걸은 춘희한테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 이전에 장백산에 등산갔을 때 부른 노래 ‘찰랑찰랑’ 참 듣기 좋았소. 그 노래 부르오.” “어마나, 그래요?” 춘희는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찰랑찰랑 찰랑 대네 잔에 담긴 위스키처럼 그 모습이 찰랑대네 사랑이란 한잔 술이런가   춘희가 마이크를 넘겨주자 문걸이 그 뒤를 불렀다.   오- 그대는 나를 취하게 하는 사람 가까이에서 이 마음을 자꾸 흔들었어 촉촉이 젖은 눈빛 하나로 이 마음을 적셔주었어 … 그들은 노래로 무언의 애틋한 감정을 주고 받았다. 즐거운 노래소리는 한곡 또 한곡 이어졌다. 세상 행복을 독차지한듯한 격정과 함께 안고 빙글빙글 돌아갔다. 모든 스트레스, 짜증, 잔소리, 고민이 산산히 부서져 훌훌 날려갔다. 그들은 마이크를 놓기 아쉬운대로 노래방에서 나왔다. 문걸은 숫구멍을 비추는 겨울 해를 쳐다보며 제의했다. “랭면집에 가서 맥주나 마실가?” 춘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금방 퇴원했잖아요. 리선생님은 위장과 심장이 좋지 않기에 술이나 찬 음식을 드시지 말아야 해요. 오늘 병문안 삼아 제가 몽땅 책임질테니깐요. 하자는대로 해야 해요. 마사지하러 갑시다.” “아니, 가게를 오래동안 비워둬서 되오?” “일요일인데요. 괜찮아요.” 그리하여 그들 둘은 부근의 근사한 안마원으로 들어갔다. 연분홍전등불빛이 쏘파에 줄느런히 둘러앉은 이쁜 아가씨들을 비추었다. 그들은 샤와를 하고 단독마사지방에 들어가 마사지복을 갈아입고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이윽고 이쁜 아가씨와 청수하게 생긴 총각이 들어와 그들의 머리부터 씨원하게 마사지를 해주었다. 눈을 스르르 감으니 모든 피로가 스르르 풀렸다. 정호와 함께 마사지받을 때만은 달리 아주 편안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춘희와 함께 조용히 누워 새로운 생활의 운치를 만끽하고 싶었다. 아가씨와 총각이 마사지를 마치고 조용히 나가버리자 춘희는 문걸쪽으로 모로 돌아누우웠다. “사람 한평생이 길면 얼마나 길다고 그래요? 인생을 마음껏 즐기면서 삽시다.” 순간 하얀 마사지복을 입은 춘희는 어쩜 춘희의사를 똑 떼닮지 않았겠는가. “왜 그렇게 빤히 쳐다만 보는가요?” “전 날 구해준 춘희의사를 너무나 닮아서 그러오. 목소리도 똑 같단 말이요. 다만 그 녀의사는 다만 단발머리에 외까풀눈이여서 좀 다를 뿐이요.” 춘희는 그저 피씩 웃었다. “여보세요. 자영업을 하는 춘희를 눕혀놓고 녀자의사를 자꾸 말해서야 되는가요?” “그 의사는 내 구명은인이요. 이번에 다 죽은 나를 휄체어로 구급실에 밀고 달려갔고 자기 피까지 수혈해 날 구급했소. 치료비 선불금도 냈단 말이요. 이 세상에 그런 의사 몇이나 있소?” 춘희는 저도 몰래 중얼거렸다. “그거야 의사 천직이지요.” 문걸은 화제를 돌려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오늘 난 즐거웠는데. 그 집 남편 알면 야단나겠소.” 춘희는 호- 한숨을 쉬였다. “미국에 가고 없어요. 우린 졸혼한지도 오래 돼요. 맨날 남편이느라고 틀을 차리고 주정이나 하는 그런 남편은 없기만도 못해요.” 문걸은 춘희도 말하기 어려운 일이 많으리라는 짐작이 들었다. 즐거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고속도로 흘러 아주 잠간 사이란 감을 주었다. 그들은 해가 져서야 아쉬운대로 갈라졌다. 춘희는 택시에 문걸을 화실 앞에까지 모셔다주고서야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이젠 얼굴에도 피색이 많이 도는군요.” “덕분에 오늘 즐거웠소.” “즐거우면 건강회복에 좋아요. 다시 만나자요.” 문걸은 어둠 속으로 미끌어져가는 택시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춘희의 배려에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271    대하소설 졸혼(2) 김장혁 댓글:  조회:1458  추천:0  2022-02-15
                                                     3. "아빠, 미리 유서를 써놓으세요."       며칠 후 문걸의 병세는 놀랍게 급호전돼갔다. 백지장 같던 얼굴에도 벌거스름하게 피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식사할 수 없고 대변을 보지 못했으며 링겔에 의해 버텨냈다. 운남 “백약”을 먹을 때에야 비로소 찬물이라도 몇모금 마실 수 있었다. 위혈관이 확장되면 또 위출혈을 할가봐 따가운 물을 마시지 말라고 해 찬 샘물을 마셔서 위통증이 심해 참고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삶의 희망이 샘솟는 것 같았다. 간호원이 들어와 손등에 꽂은 링겔주사바늘들을 쏙쏙 빼버리고 산소호흡기를 떼냈다. 뒤이어 김춘희의사와 간호원, 간병원이 안간힘을 다해 문걸을 안아 휄체어에 앉히고 밀고 병실을 나갔다. (어디로 갈가? 태평방에?) 문걸은 질겁했다. 그는 자기가 죽음 앞에서 뜻밖에도 가물의 실돌피처럼 취약할 줄은 몰랐다. 다행히 휄체어는 문 앞을 지나갔다. 태평방은 병실에서 십여메터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하건만 그때만큼 가까우면서도 멀어보이기는 진짜 이상하였다. 춘희의사는 문걸을 피뜩 보고 위안의 말을 몇마디 하였다. 문걸이 아무리 찬찬히 뜯어봐도 안경을 건 춘희의사의 눈은 쌍까풀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등산대 김춘희 아니란 말인가? 말소리는 비슷한데. 아니야, 등산대 춘희의 눈은 분명 쌍까풀눈이야. 머리도 어깨 넘어 굽실굽실 파도 치는 커피색머리였어. 등산대 춘희는 자영업을 해서 아주 자유롭다고 한 적이 있지 않았는가.)       춘희의사는 당직의사여서 다른 급진환자들의 병실에 총망히 들어갔다. 문걸은 춘희의사의 하얀 뒤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확실히 커피색머리 아니라 까만 단발머리였다. 그는 속절없이 등산대 춘희기를 바라는 가련한 자기를 발견하였다. 등산대 춘희는 등산대를 따라 장백산에 등산하러 갔다가 만난 녀자친구였다. 그날, 그들은 등산을 마치고 원시림 속에 자리잡은 호텔에서 술상을 차려 알찌근하게 마시고 노래방기계를 틀어놓고 마음껏 노래하며 춤판을 벌렸다. 나중에 일어난 춘희는 마이크를 잡더니 청아한 목소리로 “찰랑찰랑”이란 노래를 아주 경쾌하게 불렀다. 문걸은 체면을 잃고 일어나서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그날 밤에 문걸은 경쾌한 노래에 맞춰 그녀와 손에 손잡고 안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즐겁게 사교무를 추었다. 그때부터 문걸은 춘희를 “찰랑찰랑”이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다. “찰랑찰랑, 오늘 등산대그룹에서 훈춘 경신 부근 두만강변으로 간다는데 가지 않겠소?” “화가선생님께서 부르면 무조건 가야죠. 훈춘은 저의 고향인데요. 호호호.” 영희와 별거한 후 춘희는 적막강산에서 헤매는 문걸에게는 얼마나 크나큰 정신위안으로 되였는지 모른다. 춘희를 떠올리는 순간, 그녀가 부른 “찰랑찰랑” 노래소리가 귀전을 때리는 상 싶었다…  간병원과 간호원이 문걸을 밀고 승강기에 앉아 2층으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환자복을 입은 환자들이 줄느런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간호원이 서찰에서 뭔가 꺼내 문걸한테 보이면서 나직이 말했다. “오늘 위장경을 해보면 병인이 확진될 거예요.” 그제야 문걸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급진구급환자였기에 먼저 위장경진료실에 밀려들어갔다. 의사들과 간호원들이 문걸을 진료침대에 눕혀놓고 둔부에 마취주사를 놓았다. 잠시 후에 문걸은 마취돼 굳잠에 빠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문걸이 깨났을 때는 급진실의 간호원이 자기를 휄체어에 싣고 복도로 밀고 나가고 있었다. 마취된 미열에 아직도 머리가 흐리터분하였다. 대기실에서 정호와 순정, 간병원이 마중했다. “위장경검사결과 어떤가요?” 간호원은 그저 담담히 대답했다. “괜찮아요. 대장에 종양이 여러개 있더래요. 종양모양을 봐서 악성 종양은 아닌 거 같아요. 이제 래일 쯤에 병리분석결과 나오면 알게 돼요.” 문걸은 그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차라리 암에 걸렸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는게 얼마나 피곤한가. 훌 죽어버리면 얼마나 편안하겠는가. 모든게 끝나겠는데…) 래일이면 사형선고를 받을지도 모를 판이였다. 병실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워서도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간호원이 산소호흡기를 달아놓고 나갔다. 그날 깊은 밤에야 정호와 순정이 돌아갔다. 문걸이 살펴보니 간병원이 침대 옆에서 걸상에 앉아 끄떡끄떡 자불고 있었다. 문걸은 간병원의 눈치를 흘끔흘끔 훔쳐보면서 주사바늘을 쏙 뽑아버리고 산소호흡기마저 훌훌 떼버렸다. 때마침 간병원이 눈을 떴다. “왜 이래요?” 그녀는 황망히 병실에서 달려나갔다. 이윽고 복도에서 급촉한 발걸음소리들이 가까와졌다. 춘희의사와 간호원이 황급히 달려 들어왔다. 춘희의사는 문걸이 이렇게 나올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그녀들은 부랴부랴 산소호흡기를 달고 주사바늘을 손등에 꽃으려고 애썼다. 문걸은 손을 마구 휘두르며 협조하지 않았다. 춘희의사가 엄숙하게 말했다. “왜 이래요? 이렇게 합작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중병을 치료해요? 겨우 구급해놓으니 왜 이래요?” 문걸은 춘희의사가 사무럽게 나올줄은 몰랐다. 춘희의사와 간병원 만금이 문걸의 두 손을 꽉 누르고서야 간호원은 억지로 손등에 주사바늘을 꽂을 수 있었다. 급보를 받고 정호와 순정이 달려왔다. 정호는 춘희의사한테 핸드폰을 들어보였다. “뭔가요?” “얘네 화장실입니다.” 춘희의사가 핸드폰의 동영상을 들여다보며 경악했다. 핸드폰 화면에는 피범벅이 된 변기와 위생실 땅바닥이 나타났다. 한심한 것은 화장실로부터 출입문까지 피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춘희의사는 정호와 순정을 복도에 데리고 나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본인은 세번 설사한 거 같다고 하지만요. 혈변을 본게 확실해요. 구급실에 5분만 늦어 갔어도 생명이 위험했어요. 혈변이 너무 심해 자칫 구급해도 뇌혈공급이 부족해 뇌세포가 죽어요. 그럼 살아나도 식물인이 되죠. 진짜 기적이예요.” 정호는 버릇처럼 몇오리 안되는 긴 머리카락을 쓸어 번대머리를 덮어놓으면서 한숨을 후- 내쉬였다. 춘희의사는 다시 병실에 들어가 문걸한테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위장경을 했는데요. 초보적으로 진단할 수 있어요. 밤중에 공복에 아스피린을 잡쉈기에 혈변을 본 거 같아요. 대장 종양이 터지면서 혈변을 볼 수도 있는데요. 지금 종양 모양을 봐서 악성 종양 같잖고 대장종양이 혈변원인일 가능성은 적어요. 병세는 날마다 기적적으로 호전되고 있어요. 안심하고 병치료에 잘 협조해 주세요.” 춘희의사와 간호원이 나간 후 정호가 말렸다. “문걸아, 못난 짓 하지 말라. 완강한 정신과 신심으로 병마를 이겨내야 해. 죽을 용기가 있으면 왜 무슨 짓인들 못하겠느냐? 왜 살려는 의지는 없는 거야. 죽은 정승보다 산 개가 낫다잖니? 벌벌 기여서라도 살아나야 해.” 문걸은 그 말이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내겐 이젠 아무 것도 없어. 세상에 믿을만한 처자도 없다. 누굴 믿고 이 세상에서 고통스레 살아야 하는가.) 문걸은 한편으로 아직도 자기가 처자들한테 기대고 싶어하는 간사한 마음에 놀랐다. (아니야, 절대 처자들과 걸버무리지 말아야 해. 난 살아도 혼자 살아야 해. 하루라도 자유롭게 살아야 해. 이제 와서 돌아설 수 없어. 절대 물러설 수 없어.) 점심이 거의 돼 딸 지예한테서 핸드폰 화상통화벨이 자지러지게 울렸다. 아마 정호와 순정이 알린 것 같았다. 문걸은 핸드폰을 받지도 않았다. 그러자 단신이 오지 않았겠는가.   아빠, 몹시 편찮은가요? 진작 알리지 않고 뭔가요? 제가 이제 단위에 청가 맡고 곧바로 아빠한테 날아갈테요. 엄마한테도 알렸는데요. 병원에 갔다고 하던데요. 아빠, 딸의 말 듣고 절대 엄마하고 갈라지지 말아요. 이럴 땐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고 하잖아요. 아빠, 딸이 갈 때까지 꼭 도정신해 건강하게 계셔요.                                             아빠가 사랑하는 딸 지예.   딸애의 단신을 보고 문걸은 저도 몰래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뒤이어 떨리는 손으로 단신을 보냈다.          지예야, 고맙다. 회사 일 바쁘겠는데 절대 오지 말라.   문걸은 죽으면서 애들의 가슴에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았다. 핸드폰에 메시지를 썼다가 지워버렸다. (지예야, 넌 에미를 몰라도 너무나도 모르는구나.) 래일이면 사형선고를 받을 위기를 앞두고 그는 끝없는 상념에 잠겼다. 언제 저승사자가 들이닥칠지 모를 상황이 아닌가. 창문 밖에서는 염라전에 흩날리는 지전 같은 함박눈이 펑펑 흩날려내린다. 그는 절망 밖에 쏟아지지 않는 것 같은 그 창문을 내다보며 별의별 생각을 다하였다. (에잇, 저 창문으로 훌쩍 뛰여내리면 모든 것이 끝나겠는데. 에잇, 침대에서 일어날 맥이 있어야지. 사는게 정말 귀찮아. 진짜 생사피로야.) 그는 래일 사형선고를 받기 전에 한평생을 피뜩피뜩 돌이켜보니 마음이 아팠다.        (이제껏 얼마나 살자고 애를 썼던가. 뉘 창고자리에 구들을 놓은 세집에 첫날 이불을 펼 때 속으로 피눈물인들 얼마나 흘렸던가. 코구멍만한 세집에서도 구들농사만은 잘해서 아들 낳고 또 딸까지 낳았지. 아침에 일어나면 물독이 떵떵 어는 세집에서 살면서도 사랑만은 뜨거웠지. 그 사랑의 힘으로 추위를 이겨내고 꿈과 현실의 차이를 좁히려고 바둑거렸고 인생의 허무함을 억지로 달래지 않았던가. 새도 둥지 있는데 어찌 사람이 집도 없이 살겠는가. 아들딸 데리고 세집을 벗어나 자기 벽돌집에서 살려고 얼마나 기를 썼던가. 단위의 번중한 건축설계임무를 완수하고 과외로 광고설계도 하고 건축공사에 돌아다니면서 아빠트재건축설계를 맡아다가 밤늦게까지 설계해 돈을 벌었댔지. 가만가만 미녀모델들을 모집해 루드인체화도 그려 팔아 목돈을 벌어들였지. 우린 끝내 시내 복판에 우리 둥지를 마련했지. 집들이에 앞서 택일을 해서 옥수수 이삭 몇개를 가지고 우리 새 아빠트에 가서 먹으면서 한평생 그 새 집에서 깨알이 쏟아지게 살자고 맹세까지 하지 않았던가. 우리 둘만이 새 집에서 사랑의 장작더미를 활활 불태우면서 랑만적인 하루 밤을 지새우지 않았던가. 아,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때 힘들게 살았지만 제일 행복했지.) 여기까지 돌이키는 순간 저도 몰래줄 끊어진 구슬처럼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우리도 젊어서 한때는 재미나고 행복하게 산 적도 있었지. 그때 영희는 얼마나 아름다웠고 고마웠는가.)    가무단에서 한다하는 무용수였지만 뉘 창고자리 세집에서 살면서도, 예술인의 자존심에 허락되지 않아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겉으로는 언제 한번 툴툴거린 적이 없었다. 농촌의 앓는 부모를 모시고 산다고 허물한 적이 없었고 뇌출혈한 시아버지 뒤바라지를 하면서도 언제 한번 상을 찡그린 적이 없었다. 숱한 이쁜 녀모델들을 묻혀가지고 다니며 루드 인체화를 그려도 언제 한번 얼굴을 붉힌 적이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영희는 나를 싫어했다. 아, 그래. 퇴직을 앞두고 눈에 뜨이게 신경질이 많아졌지. 맨날 시부모와 시형, 시누이들이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다는지, 주는 건 없고 끌어가기만 한다는지. 녀성의 활력소나 다름없는 그것이 간 후부터 웬 영문인지 남편이 싫다는지 하면서 잠자리도 갈랐지. 한 이불에 들자고 하면 활활 밀어놓으면서 이불을 안고 다른 침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두덜거렸지. ‘이젠 예순이 다 된 령감이 아직도 그 지랄하려고 승냥이처럼 달려들긴! 흥!’. 젊어서 그렇게 부드럽던 목소리도 악청으로 변해 앙칼졌다. 갱년기종합증인지 녀모델을 데리고 인적이 드문 수림 속에 가서 루드유화를 그리는 것도 못하게 했지. 그래서 몇번이고 국제인체화전시회에도 참가할 기회마저 잃어버리지 않았던가.) 문걸은 밑도 끝도 없는 씨꺼먼 수렁으로 빠져들어가는 상 싶어 가슴이 숨막힐 듯이 갑갑하고 고통스러웠다. (나의 예술생명을 위해 부끄러움도 잊고 미녀모델들 대신 직접 모델을 서주던 영희 같잖았어. 이젠 사랑도 전도도 다 망쳐먹는 장애물로 돼버리지 않았는가. 명색이 안해지만 갈라 산지도 천날 하고도 꼬리 붙지 않는가. 나이 들어 육체는 늙어가고 사랑은 메말라가고 서로 염오하면서 더 살 멋이 있겠는가. 물론 부모가 갈라지거나 내가 자살하면 아들딸한테는 큰 타격이 될 거야. 그러나 자식의 위신을 보거나 사회 체면을 봐서 억지로 산다는 건 없잖은가? 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한 지붕을 쓰고 사는 건 무리야. 비도덕적이야. 아니, 범죄야.) 밤중에 핸드폰에서 위쳇 신호가 들렸다. 열가 말가 하다가 혹시 춘희 단신이 아닐가는 미련에 핸드폰을 들었다. 뜻밖에도 지예의 단신이 또 떴다.          아빠,        딸이 가지 못한다고 욕하지 마세요. 래일 단위 년말총화문예야회에서 사회를 맡게 됐어요.       아빠, 절대 짧은 생각을 하지 말고 완강한 의력으로 살아야 해요.        아빠는 아들딸을 시집장가 다 보내고 집도 다 장만해 주고 아무런 부담도 없이 재미나게 살 한창 년세인데요.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세요.        한가지 부탁드립시다. 절대 리혼하지 마세요. 엄마 아빠 다 재혼하면 이담 유산 누구 좋은 노릇하겠어요? 아빠가 화실마저 뉘네 개쌍년 밑구멍에 처넣으면 어떻게 해요? 귀여운 딸한테 맨물도 남기지 못할 거 아닌가요?        좋기는 미리 딸한테 화실을 넘겨준다고 유서라도 작성해 놓으세요. 이담 오빠하고 티격태격 송사놀음을 하지 말게 말이죠. ㅎㅎㅎ.        아빠가 제일 사랑하는 딸 지예 재삼 부탁드려요…        문걸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어 억이 꽉 막혔다.      (얼마나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키운 딸앤가. 참, 지금 애들은 곱게 자라서 자사자리해. 모든 건 자기 중심이야. 에잇, 훌 죽어버리면 다야. 애들한테 부담도 주잖고…)      한밤중까지 문걸은 끝없이 고민하였다.       (에이, 지금 애비는 생사선에서 헤매는데 새끼들이 유산분쟁을 시작하지 않는가. 훌 죽어버리면 다야. 보지 않으면 약이야. 아예 래일 사형선고를 받았으면 좋겠어. 훌 죽어버리면 모든 생사피로에서 홀가분하게 해탈될게 아닌가.)       간병원마저 곤해 옆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그 틈을 타서 문걸은 산소호흡기를 슬쩍 떼내고 링겔줄을 입으로 물어 끊어버렸다. 안간힘을 다해 모로 누워 침대 아래 쪽으로 손을 드리웠다.  뻘건 피가 링겔줄을 따라 주르르 땅바닥에 흐르기 시작하였다…                                                                           4. 미녀로봇 “아니, 이게 웬 일인가요! 사람 살려요!” 간병원이 황급히 고함치며 복도로 달려나갔다. 급촉한 발걸음소리들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간호원이 문걸의 손등에서 링겔주사바늘을 뽑아버렸다. 병실 하얀 타일을 붙인 땅바닥에 뻘건 피가 랑자하였다. 춘희의사가 산소호흡기를 코에 달아놓았다. 뒤이어 그녀는 문걸의 눈시울을 번지고 손전지를 비춰 보았다. 간병원은 너무 놀라 두 손을 맞잡고 발을 동동 굴렀다. “혈압을 재이오.” 춘희의사 지령에 따라 간호원은 혈압기를 가져다 재이고 간병원은 옆에서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섬섬거리다가 장대걸레를 가져다가 땅바닥의 피를 닦았다. “혈압 60대 69!” “빨리 수혈해야겠소.” “B형 혈장이 얼마 없는 것 같아요.” 춘희의사는 주저없이 자기 팔소매를 걷어 올렸다. “내 피를 수혈하기오. 내 혈형이 B형이요.” 간호원은 주저하다가 황급히 간호원실로 달려가 수혈주사를 들고 달려왔다. 춘희의사는 간병원과 함께 옆의 침대를 끌어다가 문걸이 누운 침대 옆에 거의 붙이다 싶이 했다. 그녀는 그 침대에 누워 팔을 내밀었다. 간호원은 춘희의 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빨간 피가 수혈호스를 따라 문걸의 몸으로 천천히 흘러들어갔다. 춘희의사의 피를 800그람도 넘게 수혈해서야 문걸의 혈압이 60에 80으로 온정되였다. 그새 간호원은 혈장고에 련계해 B형혈장을 가져왔다. 그제야 춘희의사의 몸에서 피를 더 뽑지 않고 혈장고에서 가져온 피를 수혈하기 시작하였다. 거의 2000그람이나 수혈해서야 문걸은 간신히 사선에서 구급되였다. 정호와 순정이 급보를 받고 밤중에 황급히 뛰여왔다. 이윽고 영희와 아들 군철도 들어섰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곧추 병원으로 달려왔다. 정호가 인사불성이 된 문걸을 내려다보며 기막혀 중얼거렸다. “아니, 못난 놈이라구야.” 옆에서 순정이 정호의 팔을 툭 쳤다. 군철은 그저 아버지 하얀 손을 잡고 바보처럼 멍해 볼뿐이였다. 뜻밖에도 영희는 문걸의 팔을 잡고 흔들며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에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여보, 내 뭐랬는가요? 갈라 살면 절대 안된다고. 기어이 갈라살더니 이게 뭔가요? 열흘 동안이나 생사선을 오갔는데 옆에 녀편네도 없이, 남보기에도 이게 뭔가요? 괜히 날 인정도 없는 녀편네로 만들 건 뭔가요? 흑, 흑, 흑.”    나이 들어 사랑이 식어가고 티격태격 싸웠지만 필경은 생사고락을 함께 한 부부가 아닌가. 그녀는 생사선에서 헤매는 남편이 저도 몰래 저으기 불쌍해났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창문께로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며 어깨를 가늘게 들먹였다. 한참 후 그녀는 춘희의사를 돌아보고 물었다. “병세가 어떤가요?” 춘희의사는 문걸의 팔을 걷고 다시 혈압을 재여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생명위험은 없어요. 그러나 대뇌혈공급이 부족했기에 뇌세포가 위험해요. 뇌세포가 얼마간 죽으면 식물인은 몰라도 사유와 행동에 불편할 수도 있어요.” “아이구, 그럼 어쩌오?” 갑자기 영희는 풍덩 물앉더니 무릎을 치며 대성통곡쳤다. “아이고, 내 팔자야.” 딱마치 이제까지 죽어가는 남편이 불쌍해서 울었다기보다도 앞으로 자기한테 부담이 될가봐, 자기 앞날이 근심돼 우는 것 같았다. 춘희의사는 분내, 향기내 물물 풍기는 영희를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훤칠한 체격이라든가,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이라던가 젊어서 인물체격자랑은 할만한 50대 중반의 멎쟁이 녀성이였다. 그런데 건뜩 쳐든 조개턱만은 곱게 보이지 않았다. 춘희의사는 조용히 병실에서 물러나갔다. (저런 것도 녀편넨가?) 정호가 따라나오면서 춘희의사한테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김의사, 숱한 피까지 수혈해주다니요. 정말 뭐라고 감사를 드렸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별 말씀을요. 죽어가는 환자를 구하는 건 우리 의사들의 천직이예요.”        춘희의사는 담담히 말하고는 간호원의 부축을 받으면서 천천히 의사실로 돌아갔다. 영희는 집에 돌아와서도 뜬눈으로 지새우나 다름없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영희는 병원에서 밤을 지새운 아들한테 밥을 가져가려고 신을 신었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보니 순정이 오지 않았겠는가. “얘, 어제 그게 뭐냐?” 순정은 신을 벗기 바쁘게 핀잔부터 했다. 영희는 조개턱을 쳐들고 쌍까풀눈을 무섭게 흘겼다. 순정은 성깔이 사나운 년년생인 사촌녀동생한테 항상 져 주었지만 이번만은 아니였다. “그게 뭐냐? 숱한 사람 앞에서 그게 뭐냐? 죽는다 산다 하는 나그넬 앞에 두고 팔자타령하니?” 영희는 코방귀를 뀌더니 도시락을 내려놓고 쏘파에 와서 순정과 마주 앉았다. “리혼하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한줄 알아라.” 순정은 영희를 욕했다. “그게 뭐냐? 그래도 그 나그네 그림 그린 덕분에 오누이한테 그 비싼 상해 집도 사주지 않았느냐? 이젠 다 우려먹은 김치독이라고 버릴 예산이냐?” 영희는 쌍까풀눈을 치뜨며 순정을 쏘아보았다. “내막을 잘 모르면서 작작 삐쳐라. 그 나그네 내 없이 루드그림을 한장이라도 그렸을 거 같애?” “무슨 소리냐? 그럼 네가 그림 그렸니?” “흥!” 영희는 도고하게 턱을 쳐들더니 코방귀를 뀌였다. 그들 부부는 성호 부부의 소개로 화가와 녀모델로 만나 첫눈에 정이 든 부부였다. 화가와 무용수였지만 신성한 예술에 초점을 맞추자 공동점이 생겼다. 영희가 아무리 가무단 무대에 올라 춤을 춰도 몇푼 생기는게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문걸마저 과외시간에 산수화를 그려도 그림 한장 팔리지 않았다. 고육지계로 문걸은 대담히 인체화 예술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루드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밤이면 애들을 재워놓고 영희를 보고 라체모델을 서게 하고 인체화를 그렸다. 얼굴만 살짝 다른 녀인의 얼굴을 그려넣어 팔았다. 루드인체화는 국내외인체화전시회에서도 여러차례 상을 받았고 국외 시장에서도 높은 가격에 잘 팔랐다. 문걸은 루드유화를 그리던데로부터 나중에는 영희의 라체를 촬영해 컴퓨터로 다른 녀인의 얼굴을 살짝 바꿔 합성해 가만가만 암시장에서 팔았다. 어떤 때에는 라체화를 팔다가 경찰들한테 꼬리를 밟혀 치안구류된 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하여 벌금을 엄청 내고서야 풀려나오군 했다. “얘, 그때 네가 널직한 아빠트에 고급승용차까지 갖춰야 딸을 낳아주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나그네 그런 길을 걸었겠느냐?” 순정의 핀잔에 영희는 버들잎 같은 눈섭 꼬리를 치켜올리면서 쌍까풀눈을 흘겼다. “언니는 몰라. 희신염구(喜新厌旧)라구, 내 나이들자 내 라체를 보아도 창작 령감과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면서 뭉치돈을 찔러주고 젊고 섹시한 미녀들을 숱해 화실에 끌어들였어. 그때 기분이 어떤지 알아? 숱한 미녀라체모델을 묻혀가지고 다니다가 무슨 일인들 칠지 누가 알겠어?” “쯧쯧.” 순정은 억이 막혀 혀를 끌끌 찼다. “그래서 나그네 핸드폰에 위치공유앱을 설치해놓았구나. 너  3년 동안 아들딸집에 가 있으면서도 감시했구나. 진짜 갱년기합병증이야. 나그네 널 늙었다고 싫어하니? 아니면 네가 나그네 싫어졌니? 도대체 어째 리혼하겠다는 거냐?” 영희는 순정의 날카로운 눈길을 피하며 도도거렸다. “이젠 저 나그네 싫어. 우리 년령대 녀자들은 그게 간 후엔 남자들이 필요없어. 어쩐지 이상하게 아프기만 하고 아무 쾌감도 없어.” 영희는 머리를 천천히 들더니 순정한테 물었다. “언닌 아직도 나그네 좋니? ” 순정은 할 말을 잃었다. 자기도 확실히 그게 간 후부터 남편이 달려드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남편이 외도라도 할가 봐 마지못해 기계적으로 수긍할 때가 많았다. 그것도 외박이 많은 정호가 성병이라도 묻혀올가봐 콘돔을 끼우고 마지못해 응대하는 때가 많았다. (녀자들은 50대 중반만 넘기면 거의 다 남편이 싫은 모양이지?) 그러나 순정은 속심대로 말할 수 없었다. 괜히 행복한 녀동생의 가정을 파괴하고 싶지 않았다. “난 아직도 나그네 좋아. 어떤 땐 내가 주동적으로 한 이불에 든다. 넌 진짜 성욕감퇴병에 걸렸구나. 나이 들어도 부부금술이 좋아야 녀성 호르몬과 엔돌핀 분비도 잘 되고 건강에도 좋아.” 영희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이젠 다 손주 셋이나 본 할망구 됐는데 아직도 무슨 사랑이 있느냐? 그저 밥먹듯이 자꾸 그 지랄해 봐야 그저 그렇지. 무슨 새로운 자극이 있느냐? 격정이 있느냐?” 순정은 진심으로 타일렀다. “이전에 엄마 그러던데. 남자들은 팔순이 넘어도 그런 욕구가 있다더라. 우리 아빠는 팔십셋에 세상뜨기 전 한달 전까지도 밤이면 엄마 옆에 오느라고 애쓰더란다. 나그네 옆에 오는 걸 싫어해선 안돼. 그럼 나그넨 바깥 녀자들한테 가는 거야.” 영희는 놀라와하는 눈길로 꽤나 경험이 있어보이는 언니를 보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차라리 딴 년한테 갔으면 좋겠다. 숱한 미녀모델들을 달고 다니던게 녀자 없어 근심할 나그넨 아니야.” 순정은 아무리 궁리해도 영희가 의문스럽고 리해되지 않았다. “혹시 네 나그네 모델들과 바람을 피우진 않았어?” 영희는 도리머리를 살래살래 저었다. “언니하고만 말하지만, 저 나그넬 감시하느라고 위치공유도 했지. 집과 화실에도 미형몰카를 장치해놓았다. 그런데 바깥 계집들을 끌어들인 건 보지 못했어.” “진짜 특무정치구나.” 영희가 침실 거울 귀에 달린 조그마한 유리단추못을 뽁 뽑자 가는 련결선이 따라나왔다. 정교하게 만든 유리단추못형 미형몰카였다.  “나그네 바람을 피우지도 않았는데 갈라질 리유는 없잖아. 딱 잠자리 싫은 건 리유로 되지 못해.” 영희는 오만상을 다 찡그렸다. 어글어글한 쌍까풀눈과 상큼한 코 사이에 주름살이 퍼졌다. 영희는 허물없는 년년생언닌지라 툭 털어놓고 하소연하기 시작하였다. “언닌 몰라. 저 나그네 예순이 돼도 잠자리에선 갈범처럼 달려들었소. 한달에 한두번이면 모르겠다. 이건 아직도 한주일에도 몇번씩이나 죽여줘. 아들딸 집에 갔을 땐 애들 눈치도 봐야는데. 난 애들을 보고 밤이면 곤해 죽겠는데 자꾸 달려든단 말이야. 숨을 딱 죽이고 목석처럼 누워 응부하는 것도 귀찮은데 아파서 진절머리 나는데 말이야." "나이 들면 그게 점점 말라들어서 아픈 거야. 의약상점에 가서 윤활유를 사서 바르고 살면 아프지 않아. ." "그래도 그렇지. 저 나그네 좋아서 헤벌쭉거리면서 갈범처럼 소리까지 지르는 걸 보면 딱 짐승 같아. 씨원히 갈라졌으면 시름 싹 놓겠어. 늘그막에 나그넬 해서 뭘 해? 우리 또래친구들이 다 그래. 밥이나 해주고 빨래나 해주자고 나그네와 살겠는가고 말이야? 흥! 딱 싫단 말이야. 내 상해로 가면서 울며 불며 갈라지자고 야단쳤잖아. 저 나그네 그때 대답만 해도 진작 갈라진 건데. 진짜 이젠 나그네 보기만 해도 염오스럽단 말이야. 아무리 갈라지자고 발버둥질 쳐도 저 나그네 리혼하러 가지 않는단 말이요. 참 코막고 답답하오.” 순정은 아직도 욕구가 강한 정호를 련상하면서 영희가 조금 리해됐다. 그러나 자기 부부가 혼사말을 해준 이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았고  녀동생을 젊은 생과부로 만들 수 없었다. “얘, 뭐냐? 다 죽어가는 나그네를 두고 리혼은 무슨 리혼이야?” 순정은 영희를 툭 쏴주었다. 그녀는 내심으로는 생사선에서 헤매는 문걸이 저으기 불쌍해났다. “네 나그네 말 들어보니깐, 날마다 밤이면 네가 침대머리에 꿇어앉아 ‘저 바람둥이 나그넬 데려가라.’고 기도를 드렸다면서?” 영희는 어안이 벙벙해했다. “나그네새끼, 리혼하자고 해도 리혼하지 않고서도 뒤에선 별 생똥 같은 소릴 다 했구나. 어째 녀편네한테 리혼당하면 자존심이 깎이우는 모양이지. 흥! 인체화가? 흥, 색갈화가 아니구? 내 팔릴가 봐 더러워서 말하지 않아 그렇지. 내 입이 터지면 저 나그넨…” 영희는 말끝을 흐리우더니 화제를 돌렸다. “에이, 됐다, 됐어. 우리 일에 작작 삐쳐라. 형부나 잘 건사해라. 형부네 나이 되면 나그네들이 다 최후발악하는 같아. 주의해야 해.” 순정은 누구 말을 믿었으면 좋겠는지 몰랐다. (문걸과 영희 사랑은 이미 식을대로 식었구나. 죽자 살자 하던 부부가 나이 들어 이게 뭔가? 참 답답해. 어떻게 갈라지지 말게 말릴가? 영희가  말을 듣잖는데. 대사는 대사야.) 순정은 량미간을 쪼프리고 한참 궁리하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얘, 영희야, 우리 엄마 말하는게 우리 아빠 늘그막에 그게 잘 안돼 몇해 안되니 세상떴단다.” 영희도 동을 달았다. “우리 엄마도 그런 말은 하더라.” 그때라고 순정은 충고했다. “성도 건강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 어떻게 죽어가는 남편의 기를 살리고 사랑의 힘으로 살려내라.” 영희는 한숨을 호- 땅이 꺼지게 내쉴 뿐이였다. “언니, 우린 이젠 늙었어. 저 나그네 날 모델로도 쓰지 않은지 오래 돼. 화가들도 창작 흥이 나자면 젊고 섹시한 미녀모델들을 얻어놔야 해. 우린 이젠 틀렸어. 할머니 다 돼가지고 무슨 사랑이고 뭐고 있느냐? 나그네들은 30, 40대 젊고 예쁜 녀자들을 보기만 해도 개처럼 느침을 줄줄 흘리면서 따라다녀. 녀자는 30댄 승냥이 같고 40댄 호랑기 같다고 하잖느냐? 우리 50대는 다 쉐빠졌어.” 영희는 침실을 두리번거리다가 침대 머리궤 우에 놓인 녀성성기의기랑 보고 깜짝 놀랐다. 옷궤 안에는 웬 미녀가 서 있지 않겠는가. “어마나!” 영희나 순정이나 모두 깜짝 놀랐다. “이건 뭐야?” 그러자 미녀가 걸어나오더니 종알거리지 않겠는가. “미녀로봇 아사꼬야." "뭘? 사고라구? 사고 칠 년!" "당신은 누군가요? 왜 초면에 욕부터 해?” 영희는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아 입을 함박만큼이나 쫙 벌렸다. “봐. 얼마나 변태인가?” 미녀로봇의 말대답질은 더구나 어처구니 없었다. “누가 변탠가요? 주인 몰래 주인의 미녀를 건드린 당신이 변태죠. 변태, 바람둥이! ” 그러나 순정은 될수록 문걸을 감싸려고 들었다. “아마 적적하니깐. 저걸로 욕구를 달랬겠지.” 그녀는 영희의 찡그린 오만상을 곁눈질해보며 달랬다. “그래도 동네 집 계집들하구 바람피우기만은 낫잖아. 저런 걸로 욕구를 해결했으니깐. 호호호.” 영희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미술을 해서 그런지. 어쨌든간에 괴짜야, 변태야. 어디 망신스러워 살겠어? 이젠  하루도 함께 못 살아. 우리 녀자들이라고 어디 나그네들의 정욕배설도구냐?” 순정은 너무 억이 막혀 할 말을 못 찾고 한참이나 묵묵히 앉아 영희를 멍해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때 미녀로봇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짹짹거리지 않겠는가. “우리 주인이 없는 틈을 타 동성련애라도 하자고 그래요? 안 돼! 이 변태야. 꺼지지 못해?! 이제 주인 돌아오면 다 고발하지 않는가 봐요.” 영희는 억이 막혀 코웃음쳤다. “흥! 훈련 잘 시켰구나. 세상에 별 일 다 보는구나. 어떻게 살아?” 미녀로봇은 손을 들어 삿대질했다. “못 살겠으면 말아요. 누가 억지로 살아라 해요? 리선생님은 홀로 외롭게 살면서 고독할 때면 저를 꼭 껴안고 못하는 말 없이 다 하면서 고독을 말렸지요. 선생님은 밤이면 고독이 젤 무섭다고 했어요. 저하곤 아주 궁합이 척척 맞는데요. 안해라면 나그네 언제 수요하면 고분고분 순종해야지. 웬 군소리 그리도 많은가요?” 영희는 신을 주어 신으며 아우성쳤어요. “못산다. 못 살아!” 뒤에서는 미녀로봇이 계속 종알거렸어요. “잘 가세요. 다신 오지 마세요. 성가셔요…”  
270    대하소설 졸혼 제1권(1) 김장혁 댓글:  조회:1865  추천:1  2022-02-14
                        대하소설                                                                  졸혼(卒婚)                                                                    제1권                                                                                                               김장혁                                                                               1. 생명의 끝자락에서      문걸의 머리 속에 몇가닥의 해빛이 비껴드는 것 같더니 먹장구름이 마구 깨지며 불에 활활 타는 상 싶었다. 황혼이 벌거스름하게 가물거린다. 귀에서 바람 스치고 지나가는 듯하더니 귀구멍이 뻥 열린다. “깨났어요!” 웬 녀인의 급촉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문걸의 흐리마리한 눈에 하얀 모자를 쓴 걀죽한 녀인의 얼굴 허상이 천천히 들어왔다. 뒤이어 숱한 발자국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기적인데요.” “진짜 살 가망이 없는가 했는데.” 느닷없는 침대머리에 둘러선 숱한 하얀 모자들의 경탄소리. 문걸은 맥없이 눈을 스르르 떴다. “여, 여긴 어, 어딥니까?” “병원 구급실이예요.” 문걸은 뭐라고 말하려고 피기 없이 허연 입술을 옴지작거리다가 말고 맥없이 눈을 스르르 감았다. 몇시간 후에 문걸이 다시 눈을 떴다. 흐리마리한 눈에 디룽디룽 매달린 링게르 병이 안겨왔다. 입과 코에는 산소호흡기가 덮씌워 있었다. “정신이 들어요?” 하얀 모자를 쓴 걀죽한 얼굴이 다가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그러나 문걸은 대답할 맥도 없어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일주일만에 깨여났어요.” (누구지? 영희? 춘희? 목소리가 틀리는데.) 사위를 천천히 둘러봐도 흰벽과 하얀 모자들뿐이였다. 사위가 온통 새하얗게만 보였다.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어떻게 되여 여길 왔지?) 문걸은 온통 새하얀 세상에서 까마아득한 기억을 더듬으려고 애썼다. 아무런 기억도 없었다. 완전히 필림이 끊어졌다. 한참 후에야 머리에서 이상하게 토막토막 끊어진 허상이 마구 떠올랐다. 웬 일인지 머리가 천근무게 되는 것 같아 일어설 수 없었다. 누가 뒤통수를 탁 친 것 같았다. 입술이 마구 비뚤어지는 것 같았다. 누가 뒤에서 어깨를 꽉 짓누르는 것 같았다. 눈앞이 마구 캄캄해났다. 그래도 일어서려고 악을 썼다. 쿵! … “빨리! 휄체어를 가져오오!” “빨리 구급실로!” 휄체어에 실려 달렸다. 새하얀 모자를 쓴 녀성 둘이 휄체어를 밀고 복도를 달린다. 복도가 진절머리 나게 길기도 길었다. 놀란 표정들이 옆으로 피하며 스치고 지나간다.   “빨리, 혈압!” “50 대 62!” “지혈제!” “혈형?!” “B형!” “수혈합시다!”   … 문걸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머리 속이 새하얗다. 딱 마치 인간세상을 떠나 온통 새하얀 다른 세상에 갔다 온 것 같았다. 이튿날에야 문걸은 좀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이때 걀죽한 얼굴에 부드러운 웃음을 짓는 간호원이 다가왔다. “괜찮아요?” 문걸은 머리를 끄덕이며 나직이 물었다. “무슨 병, 병입니까?” 간호원은 대뜸 얼굴이 굳어졌다. “혈변이 심했어요.” (오- 화장실에서 대변을 봤지. 불을 켜지 않아 혈변을 본 건 몰랐지? 그저 설사를 했는가 했지.) 이때 담당 녀의사가 들어왔다. 하얀 위생모를 쓴데다가 안경 밑까지 마스크를 딱 끼여 얼굴모양은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외까풀눈 눈귀를 보아 한 40대 중반은 돼보였다. “이제 위경과 대장경을 해봐야 진단이 나옵니다.” 녀의사는 말을 마치자 문걸의 눈까풀을 뒤집으며 동공을 들여다보았다. 딱 구급실에서 그랬다. 동공이 퍼지면 죽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녀의사 말소리가 이상하게 좀 귀에 익어보였다. (구급실에서 듣던 목소리?) “지혈이 돼서 위험기는 넘겼어요. 그러나 절대 방심해선 안돼요. 침대에서 힘스레 돌아눕지도 마세요.” (난 돌아눕기는커녕 입도 놀리기 힘든데.) “요즘 혹시 무슨 약을 잡숫진 않았는가요?” 문걸은 한참 기억을 더듬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아스피린…” “아스피린?” 문걸은 머리도 끄덕이기 힘들어 눈까풀을 끔쩍이였다. 눈치 빠른 녀의사는 척 알아보았다. “왜요?” “심장이 좋지 않아서…” 녀의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병원에 오기 전 날엔 아스피린을 대개 몇시에 잡쉈는가요?” 문걸은 겨우 기억을 더듬어 띄염띄염 대답했다. “아마 밤 9시 반 쯤에…” 그제야 녀의사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만해요.” 문걸은 잔등이 결려 견디기 어려웠다. “누가 여, 여길 데려왔습니까?” 녀의사 대답에 놀랐다. “120구급차에 실려왔어요.”  (집에 누구도 없었는데. 누가 알렸을가?) 문걸은 녀의사의 왼쪽 가슴에 단 명찰을 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명찰을 번져놔 이름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링겔병을 쳐다보더니 비닐관을 톡톡 쳐 공기를 뺐다. “됐어요. 쉬세요.” 녀의사는 조용히 나갔다. 간호원의 걀죽한 얼굴이 문걸의 얼굴 가까이에 다가왔다. 숨소리마저 들릴 지경이였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문걸네 옆집 아주머니가 복도에 쓰러진 문걸을 발견하고 120에 알렸다고 했다. 그제야 그는 자기가 그날 대변을 보다가 쓰러진 일로, 아침에야 정신이 들어 다시 일어나려고 해도 일어날 수 없었던 일로, 살겠다고 최후발악을 하며 벌벌 기여 문을 간신히 열고 복도에 나간 일을 간신히 떠올렸다. “다행이예요. 120구급차에 실려 병원 구급실에 왔을 때는 완전히 혼미상태였죠. 휄체어에 싣고 달릴 때는 혈압이 엄청 떨어져 쑈크가 올 직전이였어요.” “휄체어, 누가?” 간호원은 문께를 눈짓했다. “저분 의사와 제가 휄체어에 싣고 구급실에 달렸지요. 그때 우린 다 사망했는가 했어요. 그러나 심장맥박이 가늘게 뛰더군요. 진짜 생사선에서 구급됐어요.” “오-” (왜 집에서 쓰러졌을 때 핸드폰으로 120에 알릴 궁리를 하지 못했을가?) 아마 출혈이 심해 아무런 궁리도 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저 한발자욱이라도 바깥에 나가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었다. “안해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 문걸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내한테도 안해가 있는가?) 그는 아픈 마음을 쓸어내리고 한참 만에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미, 미국에 가, 가서 오지 못합니다.” 간호원의 걀죽한 얼굴과 초롱초롱한 깜장눈에는 놀라움과 더불어 동정의 잔물결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간호원은 허리를 굽히더니 문걸을 안아 모로 눕혀 주었다. 결리던 잔등이 들리자 살 것 같았다. “자녀들은요?” 순간 문걸은 그때만큼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가 없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하여 한참이나 눈을 감고 묵묵히 누워 있었다. 간호원은 기대에 찬 눈길로 문걸의 입을 바라보았다. 문걸의 입에서 한참만에 이런 말이 간신히 새여나올줄이야. “아무도 없습니다.” “네?” 간호원은 너무도 놀라 뒤로 물러섰다. “미안해요.” 그녀는 다가와 문걸의 손도 주물러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구급환자이기에 옆에서 간호할 집식구가 있어야 하는데요. 조카나 친구라도 좋아요.” 문걸은 친인처럼 살뜰히 간호하는 간호원의 걀죽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순간 코마루가 시큰해나며 저도 몰래 뜨거운 눈물을 눈귀로 주르르 흘려 베개잇을 적셨다. (글쎄, 정호한테 알리면 올 수도 있지.) 문걸과 정호는 죽자살자하는 한 고향 친구이자 사촌동서간이였다. 문걸은 정호를 내놓고도 도와준 친구와 동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나 동료들한테 손을 내밀기 싫었다. (아들딸한테도 알리지 못하면서 친구한테 알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먹어라, 쓰라 할 땐 좋지만 아플 때 알리면 부담을 주게 될게 아닌가? 더구나 퇴직한 후엔 단위 동료들도 하나, 둘 떠나가지 않았는가.) 문걸이 간호원한테 눈길을 돌리며 간신히 부탁했다. “간, 간병원 찾, 찾아주세요.” 마스크 낀이 툭 풀리면서 간호원의 외씨처럼 걀죽한 얼굴이 다 드러났다. 그녀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유빛얼굴에 짙은 눈섭, 어글어글한 쌍까풀 깜장눈이 이뻤다. 그러나 쌍까풀 깜장눈에는 의아한 물결이 세차게 흘렀다. “간병비 엄청 비싸요. 하루 24시간에 250원 내지 300원이래요.” “간병비 근, 근심마십시오.” “치료비도 금방 나간 의사가 먼저 댔는데요.” “네? 명함은?” “김춘희의사, 일본 도꾜의과대학 박사예요.” “김춘희?!” 문걸은 너무도 놀라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좀처럼 몸을 까딱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이럼 안돼요. 내장에서 출혈할 수도 있어요.” 간호원은 그를 안아 되눕혔다. “김춘희의사를 알아요?” 문걸은 머리를 가늘게 가로 저었다. (세, 세상엔 같은 이, 이름도 많으니깐.) “아차, 깜빡 잊었네요. 명함과 출생 년, 월, 일 어떻게 돼요?” 문걸은 목구멍으로 기여드는 목소리로 겨우 띄염띄염 말하였다. “리문걸, 60세…” 간호원은 병지에 일일이 받아 쓰며 물었다. “단위는요?” 문걸은 “건축설계원” 하고 대답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퇴직한 후엔 단위에 손을 내밀기 싫었다. 더구나 단위에서 알고 영희한테 알리면 더 큰 일이였다. 간호원은 더 묻지 않고 병실에서 나갔다. 점심에 간호원은 중년녀성을 데리고 병실에 들어섰다. 간병원이였다. 그제야 문걸은 안도의 한숨을 후- 길게 내쉬였다.                                                 2. 짜증나는 잔소리     문걸은 눈을 붙이기 힘들었다. 혹시 눈을 감으면 다시는 이 세상을 보지 못할가 봐. 구급해 구사일생으로 되살아나지 않았던가. 그날 아침에 옆집 한족아줌마가 복도에 쓰러진 것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다시 눈을 떴겠는가. 춘희의사와 간호원이 휄체어에 밀고 달아다니면서 제때에 구급하지 않았더라면 진작 몇발자욱 옆에 있는 태평방에 옮겨졌다가 화장터에 실려 가지 않았겠는가. 문걸은 간호원이 침대머리에 둔 핸드폰을 간신히 들었다. 위쳇에 정호의 메시지가 제일 많았다. 쓰러져 구급실에 실려온 그날부터 줄곧 메시지가 오지 않았겠는가.   무슨 일 있느냐? 왜 대답 안해?   그런데 일주일 전에 함께 등산하러 가자고 약속한 등산대 녀친구 춘희한테서는 메시지가 하나도 오지 않았다. (웬 일일가?) … 이튿날 아침, 담당의사 김춘희와 간호원 등이 병실에 들어섰다. “어떤가요?” 김춘희의사가 다가와 하는 살뜰한 문안에 문걸은 일어나려고 애썼다. “움직이면 안돼요.” 간호원이 황급히 말렸다. 그녀는 문걸을 돌려 눕히고 이불깃을 꽁꽁 여며주었다. “구, 구해줘서 감, 감사합니다.” 김춘희의사는 조용히 물었다. “몇번 혈변을 봤는지 기억나세요?” 문걸은 눈을 감고 까마아득한 기억을 한참이나 더듬었다. 그러나 머리 속은 텅 빈 채 새까맣다. 한참 후 문걸은 간신이 띄염띄염 입을 뗐다. “혈, 혈변인진 모, 모르겠습니다. 밤에 설, 설사를 서너번 본 거 같, 같습니다.” 김춘희의사는 의아해했다. “변기를 보지 않았는가요?” “위생실 전, 전등이 고장나…”  김춘희의사는 머리를 끄덕였다. 목소리를 보나 걀죽한 얼굴이나 탄력있는 풍만한 몸매를 보나 딱 등산대 녀자친구 김춘희 같았다. 화가인 그의 눈은 틀림없었다. 아무리 안경을 걸고 마스크를 끼여도 너무나도 비슷해 궁금해났다. 다만 등산대 춘희는 쌍까풀인데 찬찬히 여겨보니 김춘희의사는 외까풀인데다가 안경을 낀 것이 미흡할 뿐이였다. “치, 치료비 얼마 들었는지? 받으세요.” 문걸이 핸드폰을 쥐자 말렸다. “후에 봅시다. 빈혈이 심한데요. 푹 쉬세요.” 그제야 문걸은 핸드폰을 쥔 자기 손이 피기가 하나도 없이 백지장같은 것을 발견하였다. “혹시 등산대 춘희…” “아니예요. 건강회복이 급선무예요. 푹 쉬세요.” 김춘희의사가 나간 후 간병원이 나직이 부탁했다. “혹시 대소변을 볼 일이 있으면 사양말고 알리세요. 온 밤 소변 한번 보지 못했는데요.” 뒤이어 간호원은 문걸한테 알려주었다.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잡숫지 못하고 링겔로 버텼기에 대소변을 보지 못해요.” 간병원은 이번 환자는 림종간호를 해야 한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대소변도 보지 못한다는 말을 듣자 저으기 놀랐다. 간호원이 또 알려주었다. “아직 신장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기에 잠시 소변보지 못했어요. 큰 문젠 없어요. 이제 신장기능이 회복되면 괜찮아요.” 그제야 문걸은 병이 중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루 24시간 간호원들이 련이어 단번에 링겔 두병씩 바꿔 달고 량손에 링겔바늘을 찔렀다. 이젠 손등의 혈관이 다 파나 링겔주사바늘을 찌를 혈관도 마땅찮았다. 문걸이 핸드폰을 들어 자기 모양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며 들여다보니 얼굴에도 피기 하나도 없이 백지장 같지 않겠는가. 입술마저 피기 없었다.  옆침대 환자도 온 밤 구급받다가 새벽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담당의사가 황급히 달려들어와 청진기를 가슴에 대보고 눈까풀을 뒤집고 동공을 들여다보더니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간호원들이 산소호흡기를 떼내고 침대채로 밀고 태평방으로 나갔다. 쉰도 안되는 한창 나이 젊은이가 이 세상을 맥없이 떠나가는 비극이 벌어졌다. 가족들이 손으로 입을 막고 따라 나가면서 통곡쳤다. 구급실에서 몇발자욱가지 않으면 태평방이였다. 녀인네들의 통곡소리가 처량하게 들리였다. 문걸은 옆침대 있던 환자의 처지가 남의 처지 같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 누워 까딱할 수조차 없어 눈을 맥없이 내리깔았다. 언제 저승사자가 자기를 불러갈지 모를 판이였다. 눈을 뜨고 창밖을 내다보니 눈이 푸실푸실 내렸다. 그때만큼 네모난 차창 밖으로 마냥 보이는 흐리멍텅한 하늘 그리고 쏟아지는 함박눈마저도 그렇게도 희귀해 보일 때가 없었다. 아니, 창 밖에서는 피눈물에 젖은 새하얀 절망이 마구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이제 며칠 저 창문에 비낀 네모난 하늘을 바라볼 수 있을가?) 똑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문을 떼고 들어온 이는 뜻밖에도 정호와 순정이 아니겠는가. “이게 웬 일이냐?” 정호는 침대머리에 달려와서 문걸의 손을 잡고 놀라했다. “자식, 이런 일이 있으면 알려야지.” 문걸은 그저 눈을 끔뻑이며 억지로 웃어보였다. 정호는 일주일 동안이나 핸드폰은 울리는데 련계 안되자 문걸네 집으로 찾아갔던 것이다. 옆집 아줌마한테 물어서야 사연을 알고 안해 순정과 함께 병원 구급실을 허둥지둥 찾아왔던 것이다. “영희한테 알려야지.” 순정이 핸드폰을 입에 올리자 문걸이 손사래를 치며 제지시켰다. 문걸은 산소호흡기가 달려 있어 말할 수 없었다. 아니, 한입으로 그 리유를 다 말할 맥조차 없었다. 문걸은 기실 간병원과 간호원이 어찌나 살뜰히 간호하는지 영희를 알리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도 않았다. (에이, 영희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 나.) 그는 몇번이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도리머리질 했다. 영희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살 것만 같았다. 날마다 영희는 아침부터 잔소리는 끝이 없었다. 구들을 닦아라, 설거지를 해라. 침대밑을 싹싹 닦아라. 사발과 쟁개비를 쳐들고 쌍까풀눈깔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사발 밑굽까지 싹싹 닦아라”, “기름때는 세척제를 묻혀 빡빡 닦아라.” 맨날 짜증내면서 야단치지 않았던가. 둘이 사는게 사내느라고 틀을 차리고 돕지 않겠는가 해서 팔을 걷고 나섰건만 그놈의 앙칼진 잔소리에 여름날에도 온 집안에 서리 칠 지경이였다. 진짜 스트레스였다. 짜증났다. 그래서 로씨야 저명한 작가 레브. 똘쓰또이는 황혼에 로친의 잔소리 진절머리나서 집을 뛰쳐나가 엄동설한에 헤매다가 씨비리 산골의 한 기차역에서 얼어죽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어진간했으면 역무일군이 로친한테 알리려고 하자 똘쓰또이는 "얼어죽는게 로친 잔소리 듣는 것보나 낫소. 절대 로친한테 알리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겠는가.  고놈의 오똑한 칼날코는 매고양이 코보다도 냄새에 더 령민했다. 영희는 항상 냄새, 냄새 하면서 씩씩 칼날코를 발름거리며 냄새를 맡아대고 잔소리를 쳐댔다. “좀 샤워하고 침대에 오르세요.” “목욕하곤 털이랑 때랑 널린 걸 깨끗하게 청소해놓으세요.” “위생실을 좀 깨끗이 쓰세요.” 상해에 아들딸 집에 갔을 때는 잔소리군들이 더 늘어나 진짜 하루 살기조차 구차해졌다. 아들딸이 퇴근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문걸은  좀 쉬라고 설거지를 도맡다 싶이 하였다. 머리 시허연 령감이 기름이 덕지덕지한 그릇을 까실 때였다. 영희는 애 둘이나 안고 앉아 있고 아들과 며느리는 핸들 들어누워 텔레비죤을 보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판이다. 딸도 매한가지였다. 괜히 한집 건너 아래층에 집을 사줘서 딸년은 쩍하면 본가집에 기여들어와 실컷 파먹고 핸들 들어누워 애 궁둥이나 톡톡 두드리면서 엄마와 합세해 늙은 아버지를 보고 잔소리만 한다. 진짜 온집 식구들은 머리와 수염이 시허연 령감이 청소하고 설거지 하면 돕기는 커녕 몽땅 검사원이 돼 이 구석 저 구석 샅샅이 검사한다.  고놈의 입술들을 나풀거리면서 별의별 잔소리만 끝없이 쏟아져나온다. 딸 지예는 외까풀눈을 가슴츠레 뜨고 전기밥가마를 쳐들어보이며 잔소리했다. “요 구석에 납짝 들어붙은 밥알도 싹싹 닦으십시오.” “장대걸레 물을 좀 잘 빼고 닦으세요. 온 집 구들에 물칠하겠습니다.” “요걸 보세요. 침대 밑에 먼지가 그대로 있습니다. 닦았는둥 마는둥 합다. 흐흐흐.” “사발에 기름때 덕지덕지해 어디 더러워 밥을 떠먹겠는가요?” “세척제를 좀 작작 쓰세요. 일년에 세척제를 몇병씩 먹겠어요.” 진짜 잔소리에 짜증났다. 온집 식구들 몽땅 머리 시허연 령감한테 잔소리하고 일을 시켜먹고 명령하고 검사독촉하는 최고지도자들이였다. 퇴직하고 늘그막에 제일 까다로운 잔소리대장들을, 피해 전근해갈 수도 없는 종신 지도자들을 만났다. 진짜 한국에 가 남의 집 시종을 하면 어디 이런 로임도 없는 머슴이 있겠는가. 문걸은 혼자 주방에서 설거지하면서 한탄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세상이 바뀌였어. 잘못 돌아가고 있어. 이젠 우리 경상도 전통가정관념이 몽땅 무너졌어. 이젠 아들며느리 시부모 모시는게 아니라 시부모 아들며느리를 모시는 판이야. 모든 건 아들며느리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하지 않는가.) 외손자놈의 눈에도 보기 구차한지 어머니를 보고 종알거렸다. “어머니, 어째 할아버지 혼자 일하구 엄마랑 아빠랑 다 놉니까? 할아버지 깨끗하게 닦았는데 왜 자꾸 욕합니까?” 죄꼬만 애한테서 장훈을 받은 며느리는 그저 시아버지를 핼끔 곁눈질할 뿐이였다. 역어빠진 며느리는 직접 시아버지한테 잔소릴 하지 않고 베개버리송사를 하군 하였다. 진짜 간사한 우회적 잔소리 끝이 없었다. 아들놈이 잔소리를 하는 날이면 십중팔구는 또 며느리 베개머리 송사로 인한 잔소리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맏손자놈은 할아버지 불쌍했는지 걸레를 찾아들고 아빠가 먼지 있다고 잔소리하는 구들구석을 쓱쓱 닦았다. “얘, 더러워. 누가 널 그런 일 다 하라느냐?” 며느리가 짜증냈다. 문걸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내 고생하는 것 쯤은 괜찮아. 그런데 장차 내 뒤를 이어 녀편네와 자식놈들한테서 세상 잔소리를 다 들으면서 고생할 아들과 손자들을 생각을 하니 불쌍했다.) 괜히 애들한테 잘못된 풍속을 물려주는 것 같아 당장 상해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애 셋을 보느라고 고생한다고 안해를 도와 청소하고 설겆이하고 애도 봐주는 것 쯤은 괜찮았다. 그러나 안해가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 것만은 진짜 고통스러웠다. 요행 어쩌다가 안해 옆에 누우면 발로 침대에서 차 밀어내고 지랄발광할 때가 많았다. “애를 보고 곤해 죽겠는데 늙은게 주책 있소? 할아버지 다 된게 아직도 그 지랄하고 싶은가?” 어떤 땐 아예 문걸이 자기 곁에 다가들지 못하게 객실에서 손자들을 양팔에 안고 잤다. 그때만큼 고통스러울 때가 없었다. 청소하고 잔소리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괜찮았다. 그래도 꾹 참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기본욕구마저 만족보지 못할 때만큼 고통스러울 때가 없었다. 머리 뗑해나고 마구 미칠 것만 같았다. (이건 숱한 미녀모델에 대한 질투인가? 성복수인가?) 가슴이 갑갑해 당장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문걸은 끌신을 끌고 상해 시내 거리에 나가 한참씩 돌았다. 그러고서야 한숨을 길게 쉬며 집으로 들어와 뜬눈으로 보낸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는 끝내 속병이 나고야 말았다. 병치료를 받으려고 상해 포동비행장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순간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그 놈의 짜증나는 아들집을 떠나 잔소리를 듣지 않으니 숨이 활 나왔다. 영희는 고향에 있을 때에는 집일은 꼬물만치도 하지 않고 날마다 짙게 화장하고 명품 복장과 가방 등으로 전신무장하고 사교무청에 가서 사교무교수들과 빙글빙글 돌아가지 않으면 어중이 떠중이들과 마작놀러 다녔고 교수들과 등산하러 다니지 않으면 유람하러 다녔다. 원래 1급무용수 인물체격에 화려하게 치장하고 나서자 느춤을 겔겔 흘리면서 나는 교수요. 나는 고급공정사요 하며 따라다니는 놈들도 많았다. 그래서 그릇과 녀자는 내돌구면 못쓰게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영희는 남편을 의심하고 깐깐히 살피는 일에는 게을리하지 않았다. 진짜 의심병이 심했다. 문걸이 정호랑 한잔 하고 밤에 좀 늦어 집으로 들어오면 칼날코를 발름거리며 입으로부터 목, 가슴, 지어 거기까지 냄새를 맡아본다. 쌍까풀눈에 의심이 꽉 차 날카롭게 쳐다본다. “웬 분내야? 어데 가서 색깔 했지?” “아니, 웬 헛소리야. 생사람 작작 잡아라.” 문걸은 영희를 훌 밀어놓으면서 침실로 들어갔다. 영희는 따라 들어오면서 심문했다. “오늘 누구랑 어데서 술 마셨어?” 문걸은 대수롭잖게 두덜거렸다. “정호랑 술 마셨어. 뒤조사라도 할 예산이야?” 영희는 침실에서 문걸을 마구 떠밀어내며 호통쳤다. “왜 묻는 말 대답 안해? 어데서 마셨어? 옆에 녀잔 없고? 또 미녀모델하고 마셨지?” 문걸은 곧이곧대로 실토정했다. “정호랑 술 먹고 노래방에 갔댔어.” “헐, 참 잘하는구만. 안해 보고 밤중까지 기다리게 하고 자기는 나가서 웬 계집들 껴안고 돌아가고. 흥!” “나쁜 짓 하지 않으면 됐지. 왜 이리 의심해.” 문걸은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샤와실에 들어가버렸다. 기실 정호랑 함께 노래방에서 나와 안마방에 가서 마사지 받고 샤와까지 하고 왔다. 허나 고놈의 칼날코는 무슨 고양이 코인지 냄새를 잘도 맡아내지 않았는가. 문걸은 샤와를 틀어놓고 머리부터 씨원히 쌰와하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언제까지 저렇게 의심 받고 밥먹듯 잔소리 들으면서 살아야 할가?) … 정호는 거의 날마다 순정을 데리고 문걸의 병문안을 와서 뒤바라지도 거들었다. 어느날, 정호는 순정이 자리를 비웠을 때 나직이 물었다. “기어이 영희하구 갈라져 살겠느냐? 봐라, 이럴 때라도 영희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문걸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였다. “의심병에 걸린 영희를 보기만 해도 진절머리 나. 술 한잔 해두 집에 가면 외깐 녀자하구 술 마시고 바람 피웠는가 의심해.” 문걸은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산소호흡기 때문에 한마디도 말할 수 없었다. 입술을 뗄 맥마저 없었다. 아니, 영희 말을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싫고 염오감이 나는데야. 정호는 순정이 자리를 비운 틈에 또 물어보았다. “앓을 땐 옆에 사람이 있어야 해. 영희한테 알릴까?” 정호가 핸드폰을 들자 문걸은 정호의 손을 잡아 끌어당기더니 손바닥에 뭐라고 쓰는 것이였다. 정호가 찬찬히 여겨보았다.   절대 영희한테 알리지 말라   “왜? 그래? 다 죽게 됐는데. 생존이 급선무야.” 정호는 애탔다. 문걸이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핸드폰 건판을 눌렀다.         영희는 날마나 밤이면 침대머리에 꿇어앉아 기도해. 날 바람피우다가 썩어지라고. 하느님이 어서 데려가라고. 날마다 울고 불고 하면서 기도드려. 그 통곡소리 기절난다. 이젠 함께 살지 못해.   정호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럼 애들한테 알리자.” 문걸은 산소호흡기를 마구 떼고 고함쳤다. “관둬! 다 쓸데 없어!” 정호와 순정은 눈길을 마주치더니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소릴 치는 걸 보니 이젠 살아났구나.” 침대머리에 앉은 간병원도 놀라 눈이 데꾼해졌다가 얼굴 근육이 천천히 풀렸다. “이러면 안돼요.”  간호원이 황급히 뛰어들어와 산소호흡기를 달아주었다.  
269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창작후기 김장혁 댓글:  조회:833  추천:0  2022-01-29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창작 후기         반만년의 핏줄을 이어온 우리 조선민족은 찬란한 력사와 문화가 있다. 우리 조선족은 지난 세기 초 일제의 핍박에 못이겨 정든 고향을 떠나 쪽박 차고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중국 동북지역에 들어왔다. 우리 조선족들이 이 땅에 첫 괭이를 박아서부터 해를 지고 나가 달을 지고 돌아오면서 황무지를 개간했고 이 땅을 보호하기 위해 형제민족들과 함께 목숨걸고 피어린 항일투쟁을 하였다. 한반도와 만주에는 홍범도, 김좌진, 안중근 등 항일 장군령들과 항일투사들의 혼이 살아숨쉬고 있다. 우리 조선족들은 당의 현명한 민족정책 아래 이 땅에 두번째 고향을 건설하였으며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일떠세우고 나라의 주인이 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대학시절에 리기영의 장편소설 "두만강"을 읽은 후 지난 세기 초부터 말기까지 아우르는 조선족 백년 력사 한페지를 보여준 장편소설을 써서 조선족 조상들에게 자그마한 기념비라도 세워주고 싶은 강한 충동을 받았다. 파란곡절 끝에 나는 평생 정력을 다해 끝내 350여만자, 총 7권으로 된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을 써냈다.      나의 평생 정력이 깃든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이 대한민국 교문사 이완표 회장님과 편집선생님들의 지성어린 사랑에 의해 세상에 고고성을 올리고 조글로에 련재한 후 국내외에서 반향이 아주 컸다. 선후하여 한국의 네이버, 다음, 중국의 조글로와 모이자에 출간소식과 함께 련재되여 수많은 국내외 네티즌들이 열람하였다. 요즘엔 위챗-온로인세상이라 숱한 애독자들이 나의 소설을 보고 감상이나 따끔한 지적도 해주고 있다. 이는 중국 조선민족에게 자그마한 기념비라도 세우려고 외로운 문학사막에서 마라톤에 나선 나에게는 더 없는 위안과 고무가 아닐 수 없다. 이 대하소설의 창작과 출판을 지지해준 한국 교문사, 국내외 수많은 유지인사들, 그리고 이 대하소설을 열람한 독자, 네티즌들께 충심으로 되는 경의를 드린다. 또 이 대하소설에 흠집이 있다면 드넓은 민족심으로 널리 량해할 것을 바란다.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창작과 출판과정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은 내 평생에 걸쳐 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시골마을에서 태여나 고중을 졸업한 후 소 궁둥이를 치는 목동도 해 보았으며 농사일이란 농사일은 가리지 않고 다 해보았다. 교원, 기자, 택시 업주도 해보았으며 종합간행물 주필과 광고 사업도 해보았다. 물론 자주 일터를 바꾸다나니 항상 모든 것을 령으로부터 시작해야 했기에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여러가지 사업을 하면서 문학창작을 위해 우리 민족의 피눈물나는 력사와 사회 생활을 널리 료해하고 체험할 수 있은 기회를 가진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내 한생에 시내 주급 간부의 귀공주로, 국장의 셋째딸로, 부총편의 막내딸로 38명이나 되는 부동한 신분의 처녀들도 수두룩이 만나 련애도 많이 해보았다. 부주장의 귀공주와 결혼했더라면 내 인생이 그렇게 고달프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나는 시내 으리으리한 고위급간부네 고중졸업생처녀한테 장가들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자기 리상의 돛을 부주장이나 국장네 딸의 치마폭에 매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자기 지식과 노력으로 문화단위에 들어가 문학창작을 하고 작가의 꿈을 실현하고 싶었다. 자기 노력으로 오늘 정교수급 편심으로 된 것만 해도 나는 만족이다. 아마 여러가지 사회 생활을 풍부히 체험했고 부동한 신분의 수많은 사람들을 료해했기에 사실주의 창작방법으로 대하소설 속의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인물들을 비교적 핍진하게 그려낼 수 있지 않았겠는가고 생각한다.      대학시절에 나는 문화대혁명시기(10년동란시기) 중학생들의 비참한 학습과 로동 생활을 보여준 장편소설 "려명의 전야"를 썼다. 허룡구 교수와 최문식 선생은 읽어보고 좋은 정평을 냈다. 룡정에서 교편을 잡을 때 나는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고 단통 “장백산 천지”라는 4권으로 된 대장편소설을 쓰려고 달려들었다. 엉뚱한 창작계획을 들은 김재권 관장과 리태수선생님은 희죽이 웃으면서 “장편부터 써서 성공한 작가도 있다.”고 하면서 나의 “엉뚱한 창작계획”을 지지해주었다. 힘을 얻은 나는 2권까지 50여만자를 썼다가 필을 접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때 두부모만한 단편소설도 발표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대장편을 발표하겠는가고 저울질하다가 결국 자기절로 주저않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보는 대하소설 "울고 웃은 고향"은 그때 쓴 것이였는데 지금 읽어봐도 젊은 시절에 쓴 대목이 더 형상적이고 환경과 인물 묘샤도 생동하고 재미 있다고 본다. 그때 필을 놓은 것이 자못 후회된다. 당시나 지금도 확실히 일부 편집들은 저자의 문단서렬이나 창작성과를 저울질하면서 작품을 편집하는 페단이 있다. 때문에 단편소설도 몇편 발표하지 못한 초보인 내가 숱한 중견작가들을 놔두고 장편을 발표한다는 것은 실로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였다.      나는 방송국과 출판사에 전근한 후 창작환경은 좋아졌만 스스로 당시 편집계통의 페단에 위축돼 문단서렬만 따지고 출판가능성을 저울질 하면서 대하소설을 계속 창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원 창작계획대로 써놓아도 몇백만자에 달하는 대하소설을 국내에서 내자면 엄청 많은 출판자금이 수요됐고 국내에서의 출판여부도 미지수였다. 또 대하소설을 낼만한 넓은 흉금과 부담을 가질만한 책내는 곳도 별로 보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결국 개혁개방과 한국 출판업계가 나의 대하소설 창작을 고무해주었고 용기를 주었고 대하소설 출판을 성공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에도 김재권 선생이 자주 찾아와 대하소설 창작을 독촉했다.        "문단서렬과 출판가능성을 저울질해서야 언제 대작을 써내겠소? 우둔한게 범을 잡는다고 대담히 대작을 계속 쓰오. 문단서렬을 타파하고 우리 문단에 ‘원자탄'을 터뜨리고 '위성'을  쏘아올리지 못하겠소?"      여러 선생님들과 조남기 장군, 그리고 조룡호, 김영만 등 중국 조선족 로지도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는 민족의 사명감과 의무감으로 필승의 신념을 안고 또다시 글감옥 적막강산에, 사막에 들어가 필을 들고 마라톤창작을 견지했다.  문학창작이란 실로 뼈를 깎아내는 작업이었다. 나는 항상 손바닥만한 노트를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다가도 령감이 떠오르면 노트에 간단히 적어놓군 하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에 마주 앉아 소설 한대목으로 엮어나갔다. 출장가도 나는 원고지거나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소설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한번은 인청공항에서 도정신해 글을 쓰다다니 항공편을 놓칠번한 적도 있다. 나는 밤중이고 새벽이고 출근시간 전이고 날마다 엉덩이가 배기게 소설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한번은 소설을 쓰다가 출근시간이 돼 그만 짝짝 신을 신고 단위에 출근해 동료들을 웃긴 적도 있다. 또 한번은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쓰고 하다나니 시계가 잔줄도 몰라 그만 대학교 동창생네 손자 돌생일잔치가 끝난 뒤에야 달려가는 실수도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내 문학창작을 하는 황금시기였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친구나 무슨 행사가 있는 것이 딱 질색이였다. 내 창작시간을 잡아가기 때문이었다. 날마다 종합잡지 편집을 하고나서 퇴근해서도 몇시간씩(토요일과 일요일엔 10여시간씩) 컴퓨터에 맞우 앉아 책 보고 글을 쓰다나니 체중이 90킬로그람으로 올라가도 혈당, 혈압이 올라갔다. 심지어 너무 피곤해 단위 식당에서 동료들 앞에서 밥 먹다가 코피를 한사발씩이나 흘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눈도 너무 피곤해 피지다 못해 고기가 동공 부근에까지 뒤덮여 눈 수술을 두번이나 했다. 수술칼이 내 눈으로 들어올 때 그 공포도 감내하면서도 필을 멈추지 못했다. 민족과 조상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 했다. 밤중까지 몰입해 소설을 쓰다가 곤해 잠즐면 꿈에서도 항일투사들과 작중 주인공들이 무시로 나타나 일본 놈들과 싸우지 않겠는가. 심지어 그들이 나와 웃고 떠들며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마저 귀에서 들리는듯 하였다. 그러면 와닥닥 깨나선 소설을 구상하고나서 슬그머니 일어나 안해를 깨울세라 컴퓨터를 가지고 주방에 가서 대목을 가지고 건판을 두드리군 하였다. 나는 사명감과 의무감은 나를 장장 20여년 동안 글감방에 갇혀 문학창작에 몰두하게 하였다. 이렇게 간고하게 글감방에서 자아와 싸우면서 나는  끝내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을 창작해냈다. 최초에는 4권으로 된 대장편을 창작하려고 했고 제목도 “백두산 천지”라고 달았었다. 후에 출판사에 온 후 어벌이 커져서 제목을 “울고 웃는 고향”으로 고치고 400여만자 써서 소설을 12권으로 묶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자금도 문제고 너무 덩치 커서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출판하기 어려운 형편이고 각 력사시기 내용의 균형을 유지해야 했다. 그리하여 현시대 사랑과 련애, 혼인, 가정 제재는 두번째 대하소설 "진달래소야곡"에 넣기로 마음을 고쳐 먹고 300여만자, 7권으로 끝냈다.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의 출판도 진짜 사막에서 마라톤을 하는 계속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의 이민사를 다룬 대하소설을 국내에서 출판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허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문단에서 대하소설을 낼만큼한 서렬의 작가가 아니었다. 또 이미 나의 저서를 여러권 내준 사랑하는 국내 출판사에, 힘겹게 운영해나가는 국내 출판사에 막대한 경제적부담을 지게 하기도 미안한 일이였다. 이런 저런 원인으로 하여 부득불 이 대하소설을 한국에서 출판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 얼마나 많은, 전도 창창한 작가들이 사막에서 달리다가 우물을 지키는 관문 문지기들의  편견과 시기, 유기로 해 중도에서 사막의 모래바람에 매몰되였던가. 사막에서 누가 물을 주려니 하고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물 한방울 없는 사막에서 마라톤을 하려면 자기 절로 우물을 파야 했다. 샘물을 찾지 못하면 락타처럼 자기 몸의 물이라도 피눈물과 함께 삼키면서라도 계속 앞으로 달려야 했다.    그런데 최초에 처자들은 애나게 택시업을 해서 번 숱한 돈을 밀어넣으면서 저서를 내는 것을 반대했다. 문학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처자들의 태도에 안타까웠다. 몇몇 녀성문우들과 “그대가 만약 내 안해라고 할 때 돈을 내고 저서를 내는 것을 동의할 수 있겠는가”라고 자문했다. 그러자 녀류 작가, 시인들도 “집 한채를 쓸어넣고 저서를 내는 건 동의할 것 같잖아요. 돈을 내지 않고 신문이나 잡지 그리고 인터넷이나 위쳇에 얼마든지 작품을 낼 수 있는데요. 왜 하필 돈을 내고 작품을 내야 하는가요?”라고 했다. 심지어 일부 친구들은 바보 짓을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물론 인터넷 시대에 친구들의 말에도 도리가 있었다. 그러나 어찌 사이버문학과 전통문학을 혼돈해 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고 보면 내 처자를 나무랄 일도 아니였다. 나는 친구들과 처자들의 고마운 충고를 뒤로 하고 그예 가람을 건넜고 그런 "바보"로 달갑게 되였다.     나는 “아파트 한채를 더 장만하기보다 우리 민족의 정신기둥을, 기념비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 민족 후손들에게 정신재부를 남겨주는 것이 더 보람차다”고 생각하였다. 나의 설득을 받은 처자들도 더는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한국 출장에 보태라고 꼬깃꼬깃 치워뒀던 한화를 내놓았다. 그래도 과외로 택시업을 한데다가 연변인민방송국과 연변인민출판사 지도부의 지지와 관심아래 다년간 기자와 주필로 사업하면서 광고사업을 겸해 한 덕분에 출판자금을 넉넉히 마련할 수 있었다. 연변인민방송국과 연변인민출판사 지도부에 삼가 감사를 드린다. 국내 사막을 벗어나 한국 사막 마라톤에 당돌하게 나섰지만 그래도 처자들까지 지지해 출판자금이 넉넉히 있어 마음이 든든했다.     40여년 문학창작을 하면서 나는 애나게 택시업과 광고를 해 번 돈을, 진짜 아빠트 한채를 쓸어넣고 문학작품을 22권이나 써냈다. 진짜 물 한 모금 없는 사막에 물을 통채로 부어넣은 격이다. 그러나 나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사막에서 힘겹게 마라톤을 하는 조선족마라토너한테 높은 문턱을 지키는 전갈들, 물 한모금도 주지 않고 외면해버린 그랑데들, 송곳이를 사려물고 사막의 우물을 지키는 호랑이들, 흉금이 비좁은 관문 문지기들, 주산알만 딸깍딸깍 튕기며 민족의 정신기둥을 세우는 사업에는 꼬물만치도 관심이 없는 수전노들이 가소롭고 안타깝기만 하다.     나는 이른바 문단서렬이나 출판서렬을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김재권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 문단서렬과 출판서렬을 타파하기 위해 새로 도전하고 싶었다. 김재권 선생님의 기대처럼 문단에 “위성을 쏘아올리고” “원자탄을 꽝 터뜨리고” 싶었다. 우물 안에서 뛰쳐나가 한국 문단으로 진출해 나의 작품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 그 강렬한 욕망이, 지하에서 부글거리는 시뻘건 용암이 사막에서 끝내 폭발하였다. 황홀하고 푸른 문학 꿈을 위해서라면 집 한채겠는가? 혁명선렬들은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목숨마저 바쳤는데 아낄 것이 그 무엇인가!     그러나 한국 사막에서 도서출판의 마라톤도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나는 최초에 눈보라를 무릅쓰고 두툼한 원고와 유판을 가지고 한국 파주출판단지에 가서 면목도 모르는 이 출판사 저 출판사를 돌아다니면서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출판을 주문하였다. 한국의 어떤 출판사 사장은 어이없다는듯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출판을 단마디로 거절했다.     “중국 조선족이민사 소설이 우리 한국과 무슨 관계 있어요? 이리 긴 대하소설을 잘못 냈다가 판매 안되면 우리 출판사 부도나요.”    이전에 내 중단편소설집을 출판한 적이 있는 한 출판사 사장은 꽤나 동정하면서도 의아해했다. “왜 중국 조선족이민사를 좋은 자기 출판사에서 출판하지 않고 한국에서 출판하려고 해요? 돈도 많이 들고 출판될 가능성도 아주 희박한데요.”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났다.      물론 국내 출판사에서 내면 한국에서보다 인맥도 있고 출판환경도 순리여서 쉬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지껏 리성권 사장과 김철환 선생 등 지인들의 방조하에 우리 연변인민출판사에서만 해도  국내 조선족문단의 첫 장편과학환상소설로 불리우는 나의 소설 "야망의 바다", 문학작품집 "사랑은 요술쟁이야", 수필집 "리별",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 장편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등 숱한 문학도서를 내주었다. 진짜 문학사막에서 외롭게 달리는 나에게 단비를 뿌려주어 목을 추기고 용기를 얻어 계속 문학작품을 창작하게 여린 등을 밀어주군 하였다. 진짜 한평생 잊지 못할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출판사에 더 손을 내밀어 엄청 부담을 주면서 신세를 지기도 미안한 일이였다. 그리하여 내가 한국 출판시장이란 사막에 와서 마라톤을 힘겹게 하고 있지 않는가! 나는 기어이 이 한국 사막에서 부딪혀 뒹굴고 쓰러지더라도 한국 문단에서 밝은 해가 쨍하고 뜨는 날을, 모래바람이 불지 않는 푸르른 하늘을 보고 싶었다.      출판자유를 부르짖는 한국에서도 90년대까지도 문학작품에 대한 이데올로기심사제도가 엄했다고 한다. 특히 북방사회주의 프로레타리아 사상경향을 가진 국내 유명작가 작품에 대해서도 출판을 견제(통제)했다고 한다. 또 출판한 후에도 재심사를 하고 작가를 호출해 처분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정황이 많이 달라지긴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출판사 사장들은  그 이데올로기 영향이 있어 "돈을 엄청 내서 빨갱이들을 선전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하여 그들은 수고스럽게 내 소설을 다 읽어본 후 내 소설작품을 도끼질하려고 들었다. 중국공산당의 령도아래 토지개혁을 하고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을 한 내용을 보여준 5권부터 7권까지 찍어버리고 항일전쟁시기 유격대 항일투쟁과 조선족이민사를 보여준 1권부터 4권까지만 내자고 한 출판사도 있었다. 그래도 대하소설은 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작가로서 자존심을 지켰다. 못 내면 못냈지 내 작품을 두동강 낼순 없었다.      한국이라는 랭혹한 출판 사막에서 외롭게 달리는 마라토너의 처참한 모습은 눈물겹기만 했다. 혹시 국내에서 마라톤을 계속 했더라면 한국의 모래바람이 매섭게 이는 사막에서 달리기보다 훨씬 나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가. 나는 한국과 국내 사막의 갈림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고달프게 망설이면서 허덕이게 되였다.     바빠맞은 나는 심양에 있는 절친한테 손을 내밀었다. 그 친구는 중앙번역국과 료녕출판사 조문편집실 주임과 "새마을"잡지 주필도 한 빛나는 경력이 있었고 문단에서 소설가로 두각을 내밀고 있었다. 그는 심양시 경제문화교류유한회사를 차리고 한국과 중국 조선족사회에서도 이름난 출판통 엘리트로서 숱한 도서를 한국과 중국에서 출판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인맥을 통해 여러 출판사에 연줄을 달고 한국 작가들한테도 부탁해 사막에서 퐁퐁 솟는 샘물을 찾아내 나한테 주려고 물심량면으로 아낌없는 노력을 다하였다. 일찍 그는 한국 조정래 작가와도 안면이 있었고 그에게서 선물받은 대하소설 "아리랑"도 나보고 참고하라고 부쳐보내주었다. 후에 나의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도 그 친구가 연줄을 달아 료녕민족출판사에서 출판하게 도와주었다. 몇달 후 그 친구한테서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한국의 한 출판사에서 몇몇 한국의 저명한 작가들을 보고 나의 소설원고를 심열하게 했는데 작품은 좋은 정평이 나왔고 발행까지 점검했는데 만부매출이 가능해 출판 가능성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때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런데 후에 그 한국 모 출판사에서는 중국 조선족이민사를 다룬 대하소설이 한국 독자들을 끌수 있겠는가, 만부 판매되겠는가고 재차 고려하게 되였다. 나의 친구는 만부는 팔릴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랭혹한 한국 도서시장에 우리 조선족이민사를 다룬 대하소설은 발을 붙히기는 힘들었다. 그 한국 출판사 발행일군들의 세밀한 도서시장조사를 거쳐 만부 발행이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한국 출판상들의 머리 속에서 나의 대하소설은 진짜 문학으로가 아니라 상업으로 번져졌다. 비록 소설출판엔 성공하진 못했지만 나는 물심량면으로 내 소설 출판을 진심으로 지원한 친구가 마음 속으로 감사했다. 또 친구를 헛수고시킨 것이 못내 미안했다.     나는 절망에 빠져 한국 출판사막에 홀로 물앉고 말았다.  눈보라는 끝도 보이지 않는 사막의 모래폭풍으로 불어치며 눈과 얼굴, 온몸을 무섭게 때렸다. (그래 한국의 만여개나 되는 출판사 중에 우리 조선족의 눈물겨운 이민사를 낼만한 출판사가 하나도 없단 말인가?  이 넓은 세상에 드넓은 흉금을 가진 선지선각 유지인사가 없단 말인가?!) 사막에서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한국의 민족심과 동포애가 깊고 흉금도 드넓은 유지인사들이 신화처럼 나타나 사랑의 손길을 뻗쳤다. 한국 새천년민주당 전임 당대표 서영훈 어르신님, 한국 이웃사랑협회 이정호 회장님과 한국 경기도교육삼락회 채순목 회장님 등 유지인사들은 이 대하소설출판을 위해 나섰다. 이정호 회장과 당뇨병합병증으로 병환에 계신 채순목 회장님은 몸소 나를 데리고 수원시에 있는 교문사 이완표 회장님 사무실을 찾아가 민족심으로 이 대하소설을 내줄 것을 간청했다. 이완표 회장님은 시간을 짜내 내 대하소설을 몽땅 깐깐히 읽어보고 나서 나의 “하늘을 찌르는 민족애와 불굴의 창작정신에 감동됐다”면서 이 대하소설을 출판하기로 결정하였다. 교문사의 출판속도는 국내에서는 상상조차 어렵게 놀라울 정도로 쾌속적이였다. 편집선생님들은 반년도 완돼 편집과 인쇄까지 끝냈다. 이완표 회장님께서 대하소설이 출판됐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나는 꿈인가, 생시인가,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의  력사반영 예술수법       나는 우리 조선족의 백년력사를 보여준 장편소설을 쓰려고 리기영의 "두만강", 천세봉의 "고난의 세월", 조경래의 "아리랑"과 "태백산맥", 박경리의 "토지", 리근전의 "고난의 년대", 라관중의 "삼국연의", 시내암의 "수호전" 등 수많은 력사소설을 열독하고 이런 력사소설에서 력사반영의 예술특징을 연구하고 학습하였다. 나는 이 소설을 창작할 때 사회주의 사실주의 창작원칙을 위주로 국내외 작가들의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답습해 력사진실과 예술의 진실을 구현하면서 지난 세기부터 본세기 초 격변기에 이르는 조선족의 백년 력사를 보여주려고 시도하였다.            어떤 문학평론가들은 나의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은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상 리기영의 "두만강"과 비습한 감이 난다고 했다. 사실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은 리기영의 "두만강"을 읽으면서 많이 답습했다. 일찍 대학시절에 몇번이고 "두만강"을 읽었고 졸업론문도 "리기영의 '두만강'에서 력사반영의 예술특징'을 썼다. 하문섭교수는 나의 론문을 보고 "일정한 연구 성과가 보인다."고 고무해주었다. 재직기간에는 리근전의 " '고난의 년대'에서 력사반영의 예술특징"이란 론문도 써서 "문화시대"에 발표하였다. 나는 확실히 리기영과 리근전의 소설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많이 참고해 이 소설 창작을 했다.        나는 우선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에서 전형형상창조수법으로 특정된 지난 세기 초부터 말까지 이르는 기나긴 력사시기 전형환경에서의 주인공 병완, 상순, 덕돌을 비롯해 부동한 력사시기 각계 각층 수많은 전형인물을 창조해 조선족의 백년 력사시기를 보여주려고 시도했다.     전형자연환경도 중국 만주에 국한 시키지 않고 조선반도와 동북을 아울러 배경으 조선 함경북도 명천군 영월동과 중국 동만 영월동을 축도로 설정했다.     조선 북부 명천군 영월동은 우시장이라는 허구된 곳으로 설정하고 당시 일제 철발굽에서 신음하는 조선반도, 그에 반항하는 항일의병들의 의거활동, 핍박에 의해 정든 고향을 떠나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만주에 들어온 대이주 축도를 보여주려고 시도하였다. 중국 조선족들의 력사에서 조선에서 중국에 이주해 들어오게 된 계기, 력사를 빼놓을 수 없었다.      영월동에 이어 중국 동만의 축도로 함흥촌을 설정했다. 함흥촌은 당시 중국 조선족들이 처한 삶의 자연환경의 축도였다. 함흥촌에서 김병완, 김상순을 비롯한 조선족들이 항일투쟁, 당지 지주들과의 투쟁, 국민당 토비들과의 전투, 토지개혁, 인민공사, 대약진, 반우파투쟁,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격변기 등 력사사건을 겪는다.      항일투쟁의 전형자연환경은 민족의 성산 장백산 밀림을 중심으로 한 함흥촌으로, 항미원조 전쟁의 전형환경은 무명고지로 설정했다.      인물이 처한 환경 설정과 활동경력도 력사반영의 수요에 의해 설정해놓았다.      례하면, 항일전쟁과 6.25 한반도 동족상잔전쟁을 보여주기 위해 제1권에서 미리 이남 경주 출신 김용천을 이북 명천군에 와서 항일활동하는 복선을 미리 쳐놓았다.      항일전쟁시기 김용천은 김성칠, 사촌동생 칠백 등을 이끌어 조선반도에서부터 어깨겯고 일제들과 싸웠고 두만강을 건너 장백산 밀림 숙영지에 전이한 후 일본놈들을 눈함정에 유인해 빠지게 하며 매복습격해 첩보를 올린다. 그들은 일본 놈들의 포위를 구사일생으로 뚫고 나오는 피눈물겹고 처절한 항일투쟁사를 엮는다. 그러나 항미원조 전쟁 시기 무명고지에서 전우들인 김용천은 남조선괴뢰군을 이끌고 조선인민군 련대장 김성칠이 이끈 조선인민군과 총칼을 맞대고 결사전을 벌린다. 김용천은 사촌동생 권칠백과 총칼을 맞대고 육박전을 벌리면서 서로 옆구리를 찌른다. 전쟁은 무정했다. 용천은 사촌동생마저 죽이고 만다. 또 뒤이어 무명고지에서 항일전쟁시기 전우 김성칠을 격살한다. 동족상전의 전쟁은 전우와 동생도 살해하게 하였다.     항미원조전쟁시기 남조선특무를 나포하는 전투에서도 주인공 병완은 상순과 함께 대의멸친해 친처남의 손자, 남조선 특무 이병수를 나포한다. 주인공 병완의 대공무사하고 대의멸친하는 형상을 부각하기 위해 제1권에서 벌써 병완의 처남이 아들 이명호(이병수의 아버지)를 데리고 고향 충청도 서천군에서 명천 영월동 병완의 집에 놀러 오는 복선을 쳐놓았었다. 또 후에 항미원조시기 상순이 충청도 서천군 따발령에서의 격전을 보여주기 위해 이병수의 아버지 명호와 상순이 함께 뛰노는 장면을 미리 복선으로 쳐놓았다. 이밖에도 소설에서는 이남출신 중국인민지원군 반장 리흥수와 남조선 괴뢰군 영장 동생이 따발령 격전에서 극적으로 날창을 맞잡고 적대적으로 싸우면서 만나게 되는 장면, 상봉 몇시간도 못돼 동생의 죽음을 맞이한 흥수의 비극도 예술적으로 그려넣었다.     이처럼 인물형상 부각과 력사반영을 하기 위해 모든 인물과 자연환경을 미리 설정하고 복선을 쳐놓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전형환경에서의 개성이 독특한 인물들의 갈등과 행동로선을 통해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을 보여주고 평화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여운으로 남겨주려고 시도했다. 같은 전쟁제재 소설이라도 작가의 창작의도가 다름에 따라  전쟁도 다르게 묘사되기 마련이다. 나는 항미원조전쟁도 단지 치렬한 전투를 렵기적으로 보여주려고 필묵을 들이지 않았고 전투를 통해 동족상잔의 참혹성을 보여주고 평화를 극구 선양하는데 필묵과 예술기교를 아끼지 않았다.     성칠은 수하들이 잡아온 혀가 바로 어머니가 생전에 그렇게 외우던 친정오빠네 손자, 자기 5촌조카 이병수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이병수를 통해 무명고지 상대편 괴뢰군부대는 몇년동안 그렇게 찾던 전우 김용천의 련대라는 것도 안다. 용천은 또 무명고지격전에서 확성기로 대화해 진달래가 성칠한테 재가해 애까지 낳았다는 것을 알고 결투를 벌리듯 무명고지를 쳐서 원쑤(사랑라이벌) 성칠을 참살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 독자들은 전쟁은 항전시기 전우끼리도 서로 참살하게 한 장본인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며 또 전쟁의 참혹성과 분단의 아픔, 평화의 소중함을 깊이 느끼게 될 것이다.              이 대하소설을 창작하면서 주인공 설정에서도 부딪친 난제도 있었다. 대하소설이라면 보통 한 주인공으로 한시기 력사시기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틀이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는 리기영의 "두만강", 리근전의 "고난의 년대" 등 소설에서 앞세대 주인공을 뒤세대가 이어받았다는 것을 보고 그 답안을 찾아냈다.             리근전의 장편소설 "고난의 년대"에서는 늙은 세대 주인공으로 박천수를 설정하였다. 작자는 이상의 늙은세대 인물형상을 통해 주요하게 19세기말부터 20세기 10년대말의 력사와 그제반특성 및 각 계층 특성들을 반영하였다.     다음, 소설에서 이런 늙은세대에 의해 보여준 미적리상과 인민투쟁력사의 계승자로서 슬기롭고 용감하며 심중하고 강직한 당원 박윤민을 개성적으로 부각하면서 부정인물 오창수, 오창덕 및 일제놈들과의 갈등과 투쟁을 통해 1919년 5.4운동이후로부터 1945년 8.15해방이전 력사시기 당의 령도아래 조한 형제민족 인민들이 단결하여 진행한 반제, 반봉건 투쟁력사를 예술적으로 반영하였다.     작품 결말에 제3세대 인물인 귀섭이 형상을 등장시킴으로써 조선족인민들의 투쟁력사는 계속됨을 암시해주고있다.     이런 3세대에 걸친 수많은 인물형상체계의 중심에는 박천수와 박윤민이 련이어 서서 끌고나가고있으며 이들과 기타 인물들의 혈연적, 사회적, 계급적 련결과 갈등속에서 인물성격을 발전시키고 해당 시기 력사를 예술적으로 반영하고있다. 때문에 매개 력사사건은 동떨어진감이 없이 련결되여 독자들로 하여금 형상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매 시기 력사정형을 리해하게 하였다.             나는 리기영 작가와 리근전 작가가 3세대  주인공을 설정해 부동한 력사시기글 보여준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답습하여  대담히 주인공을 병완으로부터 상순, 나중엔 덕돌이 대를 이이받는 새로운 기법으로 대담히 력사소설을 창작하였다.     작중 주인공 병완은 지난세기 이주민족인 중국 조선족을 대표하는 보통공산당원의 형상이다.     병완은 개성도 독특한 인물이다. 나는 병완을 순박한 농민으로만 부각한 것이 아니다. 소설 제1권을 펼쳐들면 병완은 림꺾정 비슷한 인물로 부각한 것을 볼 수 있다. 목수 출신인 병완은 목수재간이 있을뿐만 아니라 힘도 엄청 세고 이름난 씨름군으로 소문났다. 한길수의 집을 지을 때 넷이 목도를 해 메기 힘들어하는 주추돌을 혼자 둘러메다가 쿵 놓는다. 또 씨름재간도 있어 한길수를 몇번이고 둘러메치고 집에 찾아온 한길성을 창문 밖으로 내동댕이친다.     병완은 힘장수일뿐만 아니라 슬기로운 일면도 있었다. 그는 통나무에 벌레를 집어넣고 땜질해 놓아 벌레가 통나무를 파먹게 해 경찰국 청사와 다리가 몽땅 무너지게 한다.     병완은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끼무라 국장이 그를 얼리도 닥쳐도 일제에 굴종하지 않고 한길수와 판가리 싸움해 눈깔까지 빼놓는다. 나중에 병완은 일제놈들의 핍박에 못이겨 가족을 데리고 쪽박 차고 조선 고향을 떠나 두만강을 건너 함흥촌에 도망쳐 들어온다.     병완은 대공무사한 농촌기층 조선족농민당원의 형상이다. 그는 함흥촌을 거점으로 자손들과 마을 농민들을 조직해 성칠과 용천의 항일유격대에 량곡을 비밀리에 대준다. 토지개혁 때엔 지하당조직에 가입하며 마을 농민들을 령도해 토비숙청, 항미원조를 지원했으며 대약진, 인민공사, 반우파투쟁, 문화대혁명의 시련도 껶으면서 두번째 고향을 건설하는데 이바지한다.     소설 후반기 주인공으로 등장한 상순도 개성이 독특하며 강직하고 대공무사하고 벼슬도 초개같이 여긴 청렴한 농촌 보통당원간부의 형상이다.     그는 최초에 성깔이 사납고 강직했다. 그는 지주 지학사가 눈꼴사납게 놀자 작두로 소궁둥이를 찍어놓는다. 그는 아버지 기준을 괭이로 찍은 지주 지학사한데 굴복하지 않고 16세 어린 나이에 비수를 휘두르면서 지학사을 보필하려는 지주를 위협하며 일제 시기 파출소에 소송해 끝내 승소해 악패지주 지학사에게서 상해배상금 30원을 받아낸다. 당시 30원이면 소 한마리를 샀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는 "사람은 빚을 지고 살아도 시비 지고 못산다."는 것을 인생 좌우명으로 삼고 항상 그 어떤 권세에도 굴종하지 않고 원칙을 견지하고 시비에 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대약진 시기 공사 허백호 서기가 한헥타르에 5만근 내라고 하자 그 허황한 지시에 맞서 시비를 따지면서 싸운다. 그는  병완과 함께 허백호의 지시대로 딱 한짐 시험지에 둼을 한자 두께로 펴고 그 위에 옥수수를 심어 백근도 내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해낸다. 그리고 대약진시기 "한헥타르에 5만근을 내라."는 상부의 지시는 허황하다는 것을 농사실천으로 증명하고 심갱밀식의 불타당성을 호소한다.     상순은 청소년시절부터 유격대에 들어가 싸운 나어린 항일투사였다.     그는 할아버지 병완과 아버지 기준의 지시대로 장백산 항일유격대에 비밀리에 쌀을 날라가며 항일유격대 대장 성칠(큰아버지) 영향하에 항일구국의 혁명도리를 알게 되며 권술을 배워 마을 청년들을 훈련해 항일투쟁에 투신한다. 그는 장백산 밀림 매복전에서 기관총을 들고 일제 놈들에게 맹사격하면서 영용하게 싸웠다.     상순은 지하당조직 책임자 리계삼과 허영주의 소개로 청년시절에 지하당조직에 입당하며 마을 청년들을 조직해 토지개혁과 토비숙청에서 전공을 세운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당조직의 사업수요에 복종했으며 벼슬을 초개같이 여긴 대공무사한 공산당원의 형상이다.       그는 삼도만 등지 토비숙청을 할 때도 퇀장이 그를 보고 부련장을 하라고 했지만 능력이 모자란다고 겸손하게 담당하지 않았다. 또 토비숙청이 끝난후 영장으로 제발시켰지만 접수하지 않고 함흥촌에 돌아와 민병련장을 하면서 할아버지 사업을 도와나선다.     상순은 동북군정대학을 졸업하고 당조직의 포치에 따라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으로 돼 영월구 공안국을 세우며 당지 국민당 잔여세력을 숙청하고 항미원조시기에는 남조선특무들과 대만 국민당특무들을 나포하는데 공훈을 세운다. 국내에 잠시 평화가 깃들었지만 항미원조전쟁이 끝나지 않은 형세에서 그는 영월구 공안분국 국장마저 사직하고 결연히 조선전쟁터에 나간다.      그는 이처럼 혁명과 당조직의 수요라면 개인의 벼슬과 안위는 초개처럼 여겼다.      상순은  양키놈들을 본때나게 족치려고 조선에 나왔지만 부대에서 군복공장 공장장으로 임명했을 때 미제 양키놈들과 결사전해보려던 욕망을 참고 조직의 사업수요에 복종한다.     상순은 아주 용감하고 능란한 전투지휘원이였다. 그는 조선 최전선 따발령에서 포위해 쳐들어온 미제 양키놈들과 공병삽으로 용감히 육박전해 두놈이나 죽이며 전우들과 함께 로획한 탱크를 몰고 미제 탱크들 속에서 좌충우돌하면서 용감히 싸워 짓부셔버리며 군복운송임무를 승리적으로 완수한다.      상순은 계속 최전선에서 양키놈들과 맞서 싸우려고 했지만 부대에서 통역이 급히 수요되자 영장마저 그만두고 사단 비서과 과장으로 부임한다.     상순은 효성이 지극한 효자였다. 그는 퇴대한 후 향 파출소 소장이거나 향 합작판매상점 책임자로 부임하라고 했지만 벼슬을 초개같이 여기고 함흥촌에 돌아와 촌당지부 서기로 돼 그의 말대로 "농촌 건설사업도 잘하고 부모에게 조석으로 효성을 하는 효자", 농촌보통당원으로 된다.     상순은 언제나 백성들과 집체를 먼저 생각했고 고생은 앞서 하고 향수는 뒤로 했으며 청렴하고 대공무사하게 처사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살게 하려고 집에 이영을 제대로 잇지 않아 간장물 같은 비물이 천정과 벽을 타고 줄줄 흐르는 것도 마다하고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두만강변 평두산에 가서 황무지를 일궈 감자와 수수 농사를 짓는다. 또 사원들을 이끌어 부르하통하 물길을 돌려 놓고 모래밭을 논으로 풀며 생산대대에 벽돌공장을 지어 대대사무실과 사원들의 집을 벽돌로 짓고 인삼장을 차리고 병완의 설계에 따라 과수원도 가꾼다. 그는 집체 일을 하면서 제 집 일은 할 새도 없었다. 그는 중풍에 걸려 누워 림종을 다투면서도 로군인, 영장 무휼금을 오보호나 렬사유가족에게 나눠준다.     상순은 한평생 당에 충성한 보통당원이였다. 그는 림종시 기자로 된 외아들 덕돌을 보고 "대를 이어 영원히 중국공산당에 충성하고 당을 따라 나가며" "당과 인민을 위해 글을 많이 쓰라."고 당부한다. 그는 한평생 청렴하고 소박한 당원의 고상한 품격을 지켰다.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6권과 제7권에서는 개혁개방시기 새 시대 주인공으로 덕돌의 전형형상이 부각되였다. 덕돌의 형상은 농촌환경을 떠나 진수해중학교와 도시 문화소를 배경으로 비교적 개성적으로, 독특한 경력으로 전형화하였다. 덕돌의 형상을 통해 개혁개방 이후 격변기의 시대상을 폭넓게 보여주고 있다. 개핵개방부터 현시대를 보여준 소재를 다 제대로 쓰자니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을 4권 좌우 더 써나가야 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편폭상 력사시대 균형을 이루기 힘들었다. 이쯤하면 덕돌의 형상을 제대로 부각한 것 같아 개혁개방 후 격변기 현시대 조선족들의 시대상과 희노애락을 보여준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을 따로 쓰기로 하고 소설을 마무리했다.      병완과 상순, 덕돌의 형상을 통해 지난 세기 각 력사시기 우리 중국 수많은 조선족백성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조선족 이민사, 살아온 이야기를 자연히 돌이켜 볼수 있을 것이다. 또 덕돌의 형상을 통해 개혁개방 격변기에 교육과 문화 계통 인테리어들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나아가서 개혁개방시기 일련의 조선족들의 삶의 력사를 찾아볼 수 있게 하려고 시도했다.     작중에는 주인공 병완과 상순 외에도 김성칠, 김용천, 김인삼, 김기준, 최구장, 진달래, 최구형, 은녀, 칠백, 최동욱, 정규상 그리고 반면인물들인 끼무라, 친일주구 한길수와 한철주 부자, 똘만, 스즈끼, 또 당내 반면인물들인 리흥수, 황종연, 황승연, 박영발 등 전형환경에서의 부동한 계층 전형인물들을 수많이 창조해 당시 각계 각층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냈으며 부동한 력사시기 부동한 계층의 모습과 력사를 반영했다.      조정래 작가는  대하소설 "아리랑"에서 깡깡 마른 직설적인 력사사건 서술을 피면하고 형상적으로 수많은 전형인물을 부각해 자연히 그 인물에 따른 력사를 보여주었다. 례하면 항전시기 미국 하와이에서의 리승만의 형상을 아주 생동하게 부각해 하와이에서의 리승만과 조선족 유지인사들의 항일투쟁사 형상적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전형인물을 형상적으로 부각하면서 력사사실을 반영한 한국 조정래 작가의 력사반영 예술수법을 답습하여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을 창작하였다.      인물의 갈등도 이데올로기갈등 외에도 사랑 갈등 등 여러가지로 원인으로 설정했다.     특히 전우였던 김용천과 김성칠의 갈등은 단지 남조선군 련대장과 조선인민군 련대장과의 적대관계뿐만이나라 사랑의 라이벌이라는데서 고조에 이르게 했다. 이 소설의 제1권부터 장백산 밀림 오두막에서 진달래는 처음으로 사냥하러 온 성칠을 우연하게 만나게 된다. 성칠은 유부남인데 진달래의 첫사랑으로 됐다. 그런데 성칠은 장백산 밀림 항일유격대 숙영지에서 본처 하옥을 두고 첩을 둘 수 없어, 진달래를 사랑하면서도 사랑할 수 없어 용천한테 중매를 서서 번개식결혼을 하게 한다. 진달래는 용천의 애까지 임신했는데 장백산 밀림 매복전에서 사라진 용천의 생사를 알 수 없게 된다.  진달래는 용천을 기다리다가 용천의 아들 경주를 데리고 성칠을 따라 조선에 나가며 본댁을 잃은 성칠과 재혼해 아들 경수까지 낳게 된다. 용천은 그런 줄도 모르고 그새 진달래를 찾아 조선 팔도를 헤매다가 남조선 괴뢰군에 입대해 련대장까지 된다. 그는 무명고지 격전에서 조선인민군 성칠의 련대에 혀로 잡혀갔던 수하 대대장 이병수를 통해 성칠이 진달래와 재혼한 사실을 알고 판가리싸움을 해 항일전쟁시기 전우, 형제와 같던 성칠을 격살한다.    소설에서 용천과 성칠, 진달래,그리고 하옥, 은녀,  사이 벌어진 삼각련애, 다각련애와 기나긴 세월의 굴곡적인 사랑갈등은 독자들에게 긴 여운을 주면서 소설을 재미나게 읽게 하였다. 더욱이는 자연히 이데올로기 의식이 있을뿐만아니라  피와 살이 있고 사랑도 있는 전형인물, 개성이 독특한 전형인물형상을 부각해  한반도 처참한 동족상잔 전쟁력사를 알게 한 면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예술작용을 했다고 생각한다.      작중에서 상순과 첫사랑 지춘실, 그리고 명옥의 사랑갈등도 비교적 예술적으로 상순의 형상을 부각하는데 일정한 예술적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런 주요인물들의 복잡한 사랑갈등은 독자들이 아주 재미나게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형상에 감복하면서 당시 력사환경도 알게 하는데 일정하게 예술적 매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작중 인물의 설정과 인물의 신분, 활동경력, 인물이 처한 사회와 자연환경 등은 모두 인물의 성격을 부각하고 생활론리에 맞으면서도 력사를 반영하기 위한데 복종시켰다.       다음, 작중인물들의 대화 속에 력사이야기를 삼입해 력사를 반영하는 예술수법을 썼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광복후로부터 6. 25 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분단이후 여순반란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한국 태백산맥을 따라 남으로 나가면서 지리산구를 근거지로 삼고 남로당(박헌영의 령도하에 있은 남조선 주재 조선로동당의 약칭임.) 유격대의 유격투쟁활동과 한국 계엄사령본부와 경찰대, 토벌대가 지리신지역 남로당유격대를 진압한 과정의 력사이야기를 폭넓게 보여주었다.        이 소설에서 작가 조정래는 “실화소설” 같은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당시  염상진대장, 안창민대장, 하대치 등 유격대 두목과 골간들의 투쟁이야기를 주선으로 소설로서의 진실한 인물화폭을 그리면서 진실한 력사를 반영하는 예술수법을 쓰고있다. 진짜 력사와 예술의 혼연일치를 보여준 걸작이라고 할수 있다.      작가는 실존한 력사인물들을 피도 있고 살도 있는 아주 전형화된 인물로 형상적이고도 생동하게 형상화해 유격대 투쟁과 정부군, 토벌대의 진압의 력사이야기를 반영했다. 작중에는 보성군 유격대 대장 염상진과 보성군당위원장 겸 후임 대장 안창민을 비롯한 하대치, 오판돌, 강동식, 이해룡, 고두만, 손승호, 강동기, 김임일, 이영생 그리고 계엄사령관 심재모, 신임사령관 백남식, 보성경찰서장 남인태, 토벌대장 임만수, 검찰총장 권승렬, 중부경찰서장 윤기병 등 실존한 전형인물들을 아주 성공적으로 부각하였다.      “태백산맥”에서 조정래 작가는 인물형상 창조외에 작중 인물의 대화를 통해 력사이야기를 보여주는 예술수법을 적지 않게 썼다. 례하면 작중인물  손승호와 김범우의 대화를 통해 백범 김구가 암살당한 력사사건을 보여주었다.   나는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과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읽은 후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에서 전형인물형상을 창조해 력사를 반영한 외에 허구된 인물의 대화 속에 력사사건을 보여주거나 작자 서술로 된 력사환경을 삽입하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당시 력사를 보여주려고 시도하였다.      례하면, 작중 허구된 인물 김용천이 눈보라치는 밀림에서 숙영할 때 성칠한테 이야기한 형식을 빌어 리상설이 만국대회에 참가해 조선을 합병한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고 조선을 되돌려달라고 호소하면서 비수로 할복한 력사이야기를 보여주었다.       명동촌 교회당에서 김하규가 김기준 등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선바위 부근에서 항일유격대원들이 일제 13만원 탈취한 력사사건을 보여주었다.      김성칠이 함흥촌에 돌아왔다가 유격대 숙영지로 돌아가는 길에 상길과 상순한테  하는 이야기 형식으로 항일의사들인 안중근, 윤봉길 등의 의거를 보여주었다.            나는 인물의 대화 속에 력사이야기를 보여주는 형식을 될 수 있는 한 적게 보여주려고 모지름을 썼다. 대화 속에 력사이야기를 삽입하는 수법을 너무 많이 쓰면 소설의 문학성을 흐리우고 자칫하면 력사소설이 아니라 축소된 력사책을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력사소설은 어디까지나 력사소설의 쟝르특징을 살려야 하며 될수 있는 한  전형환경에서의 전형인물형상을 부각해, 인물형상을 통해 자연히 당시 력사시기를 알게 하여야 한다.               우리 문단의 일부 력사제재소설은 인물의 대화 속에 력사이야기를 너무 많이 삽입하거나 아예 적지 않은 편폭에 력사이야기를 작가가 직설적으로 서술한데서 소설이라기보다 력사책을 읽는 감이 든다. 그렇다면 력사소설을 쓰기보다 력사이야기책을 써내는게 편폭도 절약하고 독자들이 읽기도 간편할 것이 아닌가 싶다.             다음, 프랑스 대작가 발자끄는 90여부나 되는 소설로 된 "인간극장"에서 부동한 소설에 부동한 전형환경에 동일한 인물을 재현시킴으로써 인물형상을 심도있게 부각하고 해당 시기 프랑스 전반 력사를 폭넓게 보여주었다. 이를 참고해 나는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에서 주인공이 직접 력사사건을 참가시켜 사건을 발전시키면서 당시 력사를 펼쳐보였다.       례하면, 상순을 직접 삼도만, 묘령, 천교령, 로흑산 등지 토비숙청전투에 직접 참가하는 예술수법으로 연변의 토비숙청력사를 반영하였다.     나는  당시 삼도만토비숙청에 참가했던 로병사들에게서 삼도만 등지의 토비숙청을 전면적으롤 료해한 외에도 당시 토비들이 둥지를 틀고 있던 삼도만과 평강촌의 지리적 환경을 상세히 알려고 1979년 음력설을 앞두고 백여리 떨어진 심심산골 삼도만에 취재하러 갔댔다. 삼도만공사당위의 협조하에 당시 토비두목 전소흥의 문서(비서)질을 한 토비로인을 마구간에 가서 만나 함께 말먹이를 썰고 말을 먹이면서 당시 토비내부정황과 토비숙청전투정황 등을 상세히 취재했고 토비문서로인과 함께 삼도만 현지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당시 토비들이 둥지틀었던 지리적위치도  알아보았다. 그리고 삼도만에서 30리나 떨어진 심심산골 평강촌에도 가서 지리적환경과 김지도원이 생매장당한 골안 등지를 일일이 답사하고 마을 사람들한테서 토비숙청전투 정형도 상세히 알아보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뻐스를 놓히고 말았다. 함박눈이 쏟아지자 원래 오후에 돌아가는 뻐스가 점심전에 삼도만으로 되돌아갔던 것이다. 당시 마을엔 상점도 없었기에 나는 점심도 먹지 못하고 오후에 발목까지 푹푹 빠지니는 시골길을 걸어서 삼도만에 돌아가야 했다. 나는 목이 마르고 배고프면 길가의 눈을 한웅큼씩 쥐여 입에 넣고 녹여 먹으면서 걷고 또 걸어 밤중에야 삼도만으로 비칠거리면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때 그렇게 간고하게 취재했기에 나는 이 소설에서 삼도만토비숙청을 아주 상세히 써낼 수 있었다.        김성칠, 김인삼, 김용천, 진달래, 최구장, 김상순, 한길성, 한철주, 똘만 등 부동한 인물들을 장백산 항일전투, 항미원조전쟁에 직접 참가시키고 력사이야기를 이끌고 나가게 하는 예술수법으로 그 당시 부동한 력사를 반영하려고 시도하였다.        력사소설 창작에서 허구된 인물의 허구된 사건을 창작할 때 전형력사환경의 력사 진실성과 예술의 진실성을 지키려고 나는 조선반도와 동북 항일전쟁과 항미원조전쟁 력사책도 많이 읽고 당시 력사환경을 참고하였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은 조선반도와 중국, 로씨야(구쏘련),  태평양 미국의 하와이, 지어 싸이판과 괌, 동남아세아, 일본까지 배경으로 해 20세기 초엽으로부터 1945년 광복까지 력사시에 일제의 폭압에 맞서는 우리 민족의 피어린 항일투쟁과 민족의 이민사, 끈질긴 생존과 투쟁을 다룬 민족의 대서사시이다.      조정래 작가는 지삼출, 대근, 송수익, 신세호, 방영근, 남용석, 감골댁, 보름, 수국, 정분, 김창봉, 정재규, 장칠문, 장덕풍, 김봉구, 방태수, 무주대, 임덕구, 주성춘, 손판식, 기생 옥향; 백종두, 주재소장 하야가와, 요시다, 쓰지무라 등 허구된 수많은 전형인물들을 부각하여 반세기나 되는 그 시대 력사화폭을 형상적으로 보여주었다.     또 허구된 인물의 허구된 이야기와 력사적으로 실존한 리승만, 김구, 의병장 임병서, 최익현, 임병찬 등의 진실한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이 시기 민족의 력사를 아주 넓은 화폭으로 예술적으로 반영하였다.     일부 력사이야기는 작중 허구된 인물의 대화속에서 예술적으로 삽입해 보여주었다. 례하면 작중의 방영근과 남용석의 대화에서 당시 하와이에서의 반일단체와 이승만의 항일투쟁사를 정면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조정래 작가의 력사반영 예술수법을 참고해 허구된 인물의 허구된 이야기와 력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의 진실한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엮어나가면서 당시 력사를 반영하려고 시도하였다.      례하면 작중 허구된 인물 상순과 력사적으로 실재한 안도현공안국 국장 천용구가 함께 장백산 지구 밀림에 공중낙하한 남조선 특무들과 대만 특무들을 나포하는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묘술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당시 력사사건을 완정하게 보여주었다. 이 대목을 읽으면 어느 것이 력사사실이고 어느 것이 허구된 이야기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기적으로 완정하게 반영하였다고 생각된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광복후로부터 6. 25 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분단이후 여순반란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한국 태백산맥을 따라 남으로 나가면서 지리산구를 근거지로 삼고 남로당(박헌영의 령도하에 있은 남조선 주재 조선로동당의 약칭임.) 유격대의 유격투쟁활동과 한국 계엄사령본부와 경찰대, 토벌대가 지리신지역 남로당유격대를 진압한 과정의 력사이야기를 폭넓게 보여주었다.        이 소설에서 작가 조정래는 “실화소설” 같은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당시  염상진대장, 안창민대장, 하대치 등 유격대 두목과 골간들의 투쟁이야기를 주선으로 소설로서의 진실한 인물화폭을 그리면서 진실한 력사를 반영하는 예술수법을 쓰고있다. 진짜 력사와 예술의 혼연일치를 보여준 걸작이라고 할수 있다.        우선 작가는 실존한 력사인물들을 피도 있고 살도 있는 아주 전형화된 인물로 형상적이고도 생동하게 형상화해 유격대 투쟁과 정부군, 토벌대의 진압의 력사이야기를 반영했다. 작중에는 보성군 유격대 대장 염상진과 보성군당위원장 겸 후임 대장 안창민을 비롯한 하대치, 오판돌, 강동식, 이해룡, 고두만, 손승호, 강동기, 김임일, 이영생 그리고 계엄사령관 심재모, 신임사령관 백남식, 보성경찰서장 남인태, 토벌대장 임만수, 검찰총장 권승렬, 중부경찰서장 윤기병 등 실존한 전형인물들을 아주 성공적으로 부각하였다.      “태백산맥”에서도 조정래 작가는 작중 인물의 대화를 통해 력사이야기를 보여주는 예술수법을 적지 않게 썼다. 례하면 작중인물  손승호와 김범우의 대화를 통해 백범 김구가 암살당한 력사사건을 보여주었다.         조정래 작가는 “태밴산맥”에서 허구된 인물의 허구된 에피소드를 양념처럼 많이 삽입해 독자들을 력사이야기를 감염력있께 읽게 흡인하는  예술수법을 보조적으로 썼다. 례하면, 염상구에게 강동기 안해가 장기적으로 강간당해 임신까지 한 에피소드, 허출세에게 외서댁이 강간당한 에피소드, 그외에도 작중 인물의 진한 사랑과 치정  에피소드 등을 들수 있다.      나는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 "태백산맥", 리기영의 "두만강" 등 장편력사소설을 여러번 통독하고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분석하고 학습해 나의 대하력사소설 "울고 웃는 고향"에서 전형인물창조해 력사를 반영하는 예술수법, 인물의 대화 속에 력사사건을 삼입하는 예술수법,  허구된 인물과 실재한 인물의 유기적인 련계 속에 동일한 인물을 부동한 력사사건에 참가시켜 이이끌고 나가게 하는 예술수법, 부동한 인물을 부동한 력사사건에 참여시키는 예술수법 등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중국 조선족 백년력사를 보여주려고 시도하였다.        력사제재소설, 특히 300여만자에 달하는 대하소설에서 백년이나 되는 기나긴 력사를 반영하려면 그에 상응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다양하게 써야 된다. 그러나 나의 수준제한으로 해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상 미흡한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후에 소설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더 연구한다면 력사제재소설을 쓰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이 남긴 메아리    단숨에 한국에 날아간 나는 이완표 회장님께 기념으로 대하소설책을 드리고나서 채순목 회장님께도 드리려고 했다.그런데 이완표 회장님은 뜻밖에도 비감에 잠긴 채 “채순목 회장님은 전번달에 사망했어요.” 라고 전하였다.채순목 회장님은 사망하기 전에도 이완표 회장님에게 여러번 전화해 나의 대하소설을 꼭 하루속히 내달라고 부탁했다고 하지 않겠는가.     아, 한달만 더 계셔도 채순목 회장님도 이 소설책을 보실 수 있었겠는데. 슬픔과 아쉬움으로 콧마루가 시큼해나고 눈물이 울컥 했다.     나는 한국이라는 출판 사막에서 끝내 "울고 웃는 고향"을 꽃피워냈다. 그 기쁨 이를데 없었다. 나는 트렁크에 갓 출판한 소설책을 메지게 넣어 가지고 수원에서 지하철을 타고 귀로에 올랐다. 신도림지하철 역이던가. 지하철을 갈아타려고 무거운 책짐을 안고 층계를 오르가다가 그만 혁띠가 툭 끊어졌다. 아마 배에다 힘을 너무 준 것 같았다. 괴춤이 내려가 책짐을 어쩌는 수 없어 멍해 서 있을 때였다. 낯도 모를 웬 녀대생이 보기 안타깝던지 다가와 "아저씨, 제가 도와드릴게요." 하고 트렁크 한쪽을 들었다. 나는 괴춤을 쥐고 짐을 들 수 없어 황망히 그 녀대생 보고 짐을 좀 봐달라고 부탁한 후 황급히 지하철에 벌려놓은 매대에 가서 가죽 혁때를 사 띠고 책짐을 다시 안고 층계를 올랐다.     나는 그렇게 애나게 메고 온 나의 두툼한 대하소설책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한부한부 선물하였다. 그 성공의 기쁨은 이를데 없었다. 한편 그렇게 애나게 쓰고 출판해 비행기에 실어온 소설책을 드렸는데 보지도 않고 한쪽 구석에 꽂아둔채로 있거나 전근해가면서, 퇴직하면서 챙겨가지도 않는 걸 보았을 때 내 마음은 비길데 없었다. 어쩜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이 대하소설을 창작하는데는 수많은 조상들과 스승들의 정성과 숨결이 깃들어있다. 나의 부모와 가시부모를 비롯한 수많은 조선족로인들은 나한테 일제의 철발굽 아래 신음하면서 어렵게 살아온 눈물겨운 가정사를 천하루날의 이야기처럼 들려주었다. 나는 소설을 쓰다가도 해방전 일제 때 창시개명 등 대목에 걸리면 아흔고개를 넘은 고령의 어머니와 묻군 하여 풀어나갔다. 부모들께서는 이 대하소설이 출판되기 몇해 전에 모두 나를 홀로 이 세상에 남겨두고 너무나도 총망히 떠나가셨다. 나는 대하소설 묶음을 부모님의 산소 앞에 놓고 안타까와 꺼이꺼이 대성통곡치면서 말씀드렸다.      “아버님, 어머님, 우리 민족의 조상님들이여, 그대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쓴 저의 대하소설이 끝내 볕을 보게 됐습니다. 몇해만 더 계셔도 이 소설책을 보셨겠는데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김재권, 김설봉, 김철환, 김진산 등 계몽 스승들은 이 대하소설 창작정황을 수시로 알아보고 수많은 가르침과 조언을 주었으며 이 대하소설의 출판을 고대하였다. 그러나 김재권 선생님과 김철환 선생님은 이 대하소설 출판을 보지도 못하고 별세하였다. 참말 안타깝다. 그이들이 계시지 않는 세상은 쓸쓸하기 그지 없다.     당시 룡정시로인협회 부회장 리운학선생과 함께 병문안 갔을 때까지만 해도 김재권선생님은 간신히 일어나서 문선을 짚고 마중하셨다.나는 위문금과 과일을 드리고나서 김재권선생님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할 일도 많은 선생님이신데 하루속히 몹쓸 병을 치료하고 오래오래 앉으십시오. 그래야 이 제자가 쓴 대하소설이 출판되는 것을 보지요.”     그때 김재권선생님은 환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진심어린 가르침을 하셨다.      "장혁이, 우리 민족을 위해 장한 일을 했소. 꼭 성공하오. 대작이 출판된 걸 보겠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축하하오. 절대 만족하지 말고 계속해 두번째 대하소설을 쓰오. 절대 똥별을 달고 거들먹거리는 문예정객이 되지 마오. 명예욕과 권세욕을 버리고 글 한편을 쓰더라도 민성이란 필명처럼 민족과 백성의 목소리를 대변해 쓰오.”     나의 필명 민성은 원로시인 조룡남과 저명한 실화작가 리성권사장 그리고 김재권 선생이 내가 작가협회에 가입할 때 지어준 필명이다. 그때 그이들은 나를 보고 백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가로 되라고 필명을 민성으로 지어주셨다. 그런데 나는 지금 머리 숙여진다. 그이들의 기대에 걸맞는 그렇다할 작품을, 진정 백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품을 써내지 못했다.      그렇다. 김재권 선생님은 지위나 명예를 따지지 않은 명작가였다. 10권이나 되는 "황구연전집"을 비롯해 50여권의 저서를 낸 명작가이지만 문단에서의 지위나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항상 보통작가로 겸손하게 처신하면서 문학창작에만 정진하셨다. 진짜 참답고 훌륭한 본보기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작품으로 말한다. 문단에서 니야 내야, 시야 비야, 티각태각 하고  스스로 문단의 제일이노라고 불어대고 스스로 자기 머리끄댕이를 잡아 춰올린다고 위상이 하늘만큼  날아올라갈 순 없다. 작품 몇개 써내지 못하고서도, 저서 한권도 내지 못하고서도 똥별이나 달고 창작보다는 문예정치에 눈이 새빨개지는 얼뜨기 문예정객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내가 출판된 소설책을 한묶음 들고 룡정시 문화관 리광평 관장과 함께 김재권 선생님을 다시 찾아갔을 때 김재권선생님도 리운학선생님도 계시지 않았다.악착스런 암병은 나의 스승님을 무정하게 빼앗아갔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소설책을 김재권선생님의 아드님 김문혁씨한테 드리고 눈물을 머금은 채 귀로에 올라야 했다.     (아, 만약 김재권선생님께서 고무해주고 독촉하지 않으셨더라면 내가 대하소설을 끝까지 써냈겠는가? 김재권선생님과  리운학선생님께서 몇달씩만 더 계셔도 8월에 출판된 내 대하소설을 보셨겠는데…)     나는 차를 몰고 모아산고개를 넘어오면서도 눈물을 금할 수 없어 차를 멈추고 한참이나 큰 길 옆에 서서 룡정 쪽을 멍해 바라보면서 가슴을 치며 통곡쳤다.     함박눈이 푸실푸실 내리는 날에 김철환 선생님의 소개로 조양공사 문화소에서 처음 만난 김재권 선생님의 상냥한 얼굴을 지금도 보는 것처럼 삼삼히 떠오른다.     그날 김재권선생님께서 하신 의미 심장한 부탁의 말씀이 아직도 귀전을 때린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오. 젊은이, 장차 우리 민족과 백성을 위해 열심히 글을 쓰는 작가로 되오.”     그때로부터 선생님께서는 늘 자전거를 타고 10대 애숭이를 찾아 집에도 오시고 밭머리까지도 찾아와 내가 쓴 습작품을 펼쳐들고 까근히 가르쳤다. 어떤 때에는 내가 소를 모는 고향의 칼산에까지 찾아와 문학을 가르쳤고 인생을 가르쳤다. 매 한편의 졸작이 볕을 볼 때마다 스승님은 아주 기뻐하면서 제일 먼저 축하해주군 하였다. 인생길에서 곡적을 겪을 때마다 항상 삶의 용기를 북돋아주시고 앞길을 비춰주는 망망대해의 등대, 모래바람이 살벌하게 불어치는 사막의 우물로 되셨던 은사님이 아니신가.     (아, 존경하는 김재권 선생님, 스승님께서 계시지 않는 세상은 너무나도 텅 비고 쓸쓸하기만 합니다…)    수많은 조상들과 지도자들, 은사님들, 지인들, 부모형제들, 친구들의 기대하던 저의 소설이 지금 온라인과 인터넷을 타고 국내외 수많은 독자들한테 문학의 향연을 드리고 민족의 과거와 현재를 돌이켜보게 하고 기나긴 메아리로 여운을 남겨줄 수만 있다면 위안될 것 같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소소리 높은 희말라야산 쵸몰랑마봉으로 되려고 하지 않는다. 장백의 아들로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백두산의 깊고 깊은 협곡에 숨어 살고 싶다.       나는 요란한 니까라과폭포로 되려고 하지 않는다. 금강산의 수풀로 가려진 계곡에서 촐랑촐랑 노래하면서 흐르는 벽계수, 맑디 맑고 이발 시리게 차거운 샘물로 되고 싶다.    나는 기세 사나운 황하로 되려고 하지 않는다. 항상 낮은 곳으로 잔잔히 흘러가는 티없이 맑은 한라산 벽계수로 되고 싶다.    때로는 세인들이 보지도 못하는 지하수로 소리없이 흐르다가도 사람들이 가뭄에 허덕이는 사막에 한줄기 생명수로 퐁퐁 솟아올라 삶의 오아시스를 가꾸고 진달래꽃을 활짝 꽃피우고 싶다.    내 령혼의 영원한 안식처는 문학창작에 있다. 사막에서 문학창작의 마라톤을 힘겹게 하던 나의 외로운 령혼이 둥둥 떠돌아다니며 사막에 감로수가 퐁퐁 솟는 오아시스를 가꾸어가면 백두산의 만병초와 진달래가 방실방실 웃으며 반길 것이다. 아리랑 열두 사막고개를 골고다고개처럼 외롭게 날아넘어간 나의 외로운 령혼을 수려한 금강산의 모란꽃과 한라산의 무궁화도 반겨맞으면서 아리랑을 부르며 나풀나풀 춤을 추리라.                                                  저자 김장혁                                                      2018년 8월 23일                                                         중국 연길에서
268    중편동화 아가하마의 꿈 김장혁 댓글:  조회:994  추천:0  2022-01-17
                        중편동화        아가하마의 꿈               김장혁                                          1 시누런 흙탕강이 푸르른 초원을 핥으며 거세차게 흐르고 있었어요. 그 시누런 흙탕강에서 어미하마가 귀여운 아가하마를 데리고 힘들게 살고 있었어요. 어미하마가 새끼하마를 “아가하마”라고 부른데는 그럴만한 리유가 있었지요. 새끼하마는 무서운 라이벌 악어를 보기만 하면 물리지 않았는데도 “아가!” 하고 고함치며 도망갔지요. 흙탕강 부근의 기린이랑 코끼리랑도 새끼하마를 엄살쟁이라고 “아가하마”라고 별명을 삼아 불렀어요. 초원이 날따라 사막화되여 줄말들과 물소들의 수도 점점 줄어들었어요. 그리하여 이 흙탕강 나들목 흙탕물을 건너 초원에 가는 줄말과 물소들이 점점 눈에 뜨이게 줄어들었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흙탕물에는 하마 모자의 라이벌인 악어가 호시탐탐 하마 모자를 노려보며 먹이를 쟁탈하고 심지어 이 흙탕강물에서 쫓아내려고까지 했어요. 한번은 물소무리가 오랜만에 이 흙탕강에 들어서자 저 욕심쟁이 악어를 보세요. 대문짝 같은 아가리를 쩍 벌리고 톱날이발을 맞쪼으며 하마모자한테 덮쳐들었어요. 아가하마는 “아가!” 하고 고함치면서 도망쳤어요. 아가하마는 악어의 톱날 같은 이발은 보기만 해도 치떨렸지요. 어미하마는 아가하마가 악어한테 다칠가 봐 별수 없이 나들목을 지나가는 물소무리를 놔주고 유일한 사냥장인 나들목에서 물러나야만 했어요. “그럼 그렇겠지. 물소는 내 혼자 거야! OK!” 악어는 떠나가는 하마모자를 보고 쾌자를 불렀어요. 뒤이어 악어는 터덜터덜한 몸뚱이를 홱 돌리더니 시누런 흙탕물 우에 음흉한 퉁방울눈깔을 번쩍이며 물소무리에 접근해갔어요… 하마모자는 굶어서 배에서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다 날 지경이였어요. 어미하마는 기실 악어와 상대해 맞대결할만한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였어요. 그러나 마음씨 착한 어미하마는 똥이 더러워 피하지 무서워 피하는 건 아니라는 격이였어요. 그는 아가하마한테 화를 입힐가봐 항상 싸우지 않고 악어를 피하기만 했던 거죠. 그 바람에 악어는 날이 갈수록 하마모자를 업신여기고 괴롭혔어요. 오늘도 그 놈 악어는 터덜터덜한 몸뚱이로 건방지게 팔자를 그리며 엉금엉금 뭍에 기여올라와 해볕을 쪼이면서 빈정거렸어요. “야, 아가하마야, 어미를 잘 못 만나 또 굶게 생겼구나.” 어미하마는 아가하마를 데리고 악어를 피해 흙탕물에 풀러덩 들어가며 코방귀를 뀌였어요. “고양이 쥐 생각한다고 해라. 흥!” 그러자 악어는 갖은 욕설을 다 퍼부었어요. “에이, 저 뻔뻔스런 하마를 봐. 얼마나 속알멀치가 뻔뻔스러웠으면 저 가죽이 다 저렇게 뻔뻔하겠어. 저 뻔뻔한 잔등에서 원숭이들이 배구시합을 해도 되겠다. 허허허.” 하루강아지가 범 무서운줄 모른다고 아가하마는 듣다 못해 맞받아 놀려댔어요. “오줌을 싸놓고 네 상통을 들여다 봐라. 퉁방울눈깔이 얼마나 음흉한가. 속알멀치 어떻게 욕심 많고 음흉했으면 터덜터덜한 낯가죽에 가시 다 돋았겠어?” “뭐라고?! 요놈새끼!” 악어는 몸뚱이를 홱 돌리며 당장 물어메칠 상했어요. 그러나 용케도 인차 참아냈어요. 다른 안속이 있기 때문이였죠. 어느날 해가 서산에서 뜰 일이 다 생겼어요. 욕심 많던 악어가 글쎄 물소고기를 한 아가리나 물고 와서 하마모자한테 훌 뿌려 주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가야, 배 고픈데 먹어라!” “야- 좋아라! ” “허허허.” 악어는 제법 호탕하게 웃으면서 아가하마한테 엉금엉금 기여왔어요. “아가야, 조심해!” 어미하마는 경계하는 눈길로 악어를 쏘아보며 아가하마를 한쪽으로 데리고 갔어요. “누가 싸우자는가? 흥!” 악어는 터덜터덜한 낯가죽에 웃음기를 바르며 억지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어요. “이웃사촌이라고 우린 이제부터 이 흙탕강에서 먹이를 가지고 으르릉거리며 싸우지 말고 형제처럼 서로 도우면서 의좋게 살자구나.” 그러나 어미하마는 아가하마를 한쪽으로 주둥이로 밀어 치워놓고 경계심을 놓치지 않고 악어를 쏘아보았어요. 악어는 주춤 멈춰 섰어요. 악어는 어미하마를 힐끔 곁눈질해보더니 물소고기를 뜯어먹으려는 아가하마를 슬슬 구슬리기 시작했어요. “아가야, 항상 배고파하는 널 보고 이 악어삼촌도 속이 아프더라. 그래서 너네 모자가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는 최신정보를 알려주자고 찾아왔어.” 어미하마는 코방귀를 뀌였어요. “흥! 네 말은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을 거 같애? 그렇게 좋은 정보 있으면 어째 네나 배불리 먹고 살게지. 고양이 쥐 생각한다고 해라.” 악어는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에이, 별수 없군. ‘아-’ 하고 아가리를 쩍 벌리고면 잉어구 바나나구 마구 날아들어오겠는데. 참.” 아가하마는 들을수록 귀 솔깃해졌어요. 악어는 아가하마를 힐끔 곁눈질하더니 몸뚱이를 돌리면서 중얼거렸어요. “원래 ‘사라’, ‘사라’ 하면 더 사지 않는게 인지상정이지. 에참, 형제 의를 봐서 배불리 먹고 살게 해주려건만, 쳇, 남의 호의를 알아봐주지도 않으니. 별수 없지.” 아가하마는 악어 앞으로 뛰여가 앞발을 벌려 막았어요. “잠간만! 악어삼촌, 진짜 입을 ‘아-’ 하고 벌리면 뭐나 다 한 아가리씩 마구 날아들어오는 곳이 있는가요?” 악어는 아가하마가 미끼를 무는 것을 보고 어미하마를 찔끔 곁눈질해보며 지껄여댔어요. “있구 말구. 나도 오늘에야 알았어.” 어미하마는 아가하마가 다칠가봐 쫓아와 한쪽으로 밀어놓으며 악어를 투박하게 면박주었어요. “흥! 아가야, 가자. 저 놈 말 믿지 말라. 세상에 어디 ‘아-’ 하고 입만 벌리면 입 안에 공 먹을게 날아드는 일도 있겠느냐?” 아가하마는 어미하마한테 밀려가면서도 머리를 돌려 악어를 보고 소리쳤어요. “악어삼촌, 그 좋은 곳 어데 있는가요?” 악어는 헛일 삼아 소리쳐 볼 판이였죠. “저쪽 수림 속 원숭이네 호수동물공원에 있어. 거기 가면 진짜 ‘아-’ 하면 먹을게 입 안에 날아들어!” 아가하마는 저도 몰래 귀 솔깃해졌어요. “엄마, 어서 호수동물공원에 가보자요. 네? 엄마, 응~” “아가야, 악어 말을 믿지도 말라. 넌 공부를 잘해 배불리 먹고 살 준비나 해라. 동물병원 의사한테서 복제기술을 배워라.” “복제기술을 배우면 먹이 거저 생긴대요?” 아가하마는 기어이 호수동물공원으로 가려고 떼를 썼어요. 아가하마가 어찌나 조르는지 어미하마는 할수 없이 한번 가 보기로 하였어요. 그는 악어 몰래 아가하마를 데리고 흙탕강을 타고 나들목 아래목으로 슬슬 헤염쳐 갔어요. 악어는 흙탕물에서 헤염치며 모자하마의 동태를 살피다가 잘코사니를 불렀어요. “끝내 미끼를 물었군. 흐흐흐.” 한편 하마모자가 흙탕물을 타고 한참 헤염쳐 굽인돌이를 돌자 진짜 수림 속에 커다란 호수동물공원이 나타났어요. 황홀한 호수동물공원 안에는 흙탕강 굽인돌이와 통하는 둥그렇고 깊숙한 호수가 누워 있지 않겠어요. 초원에서 맑은 물이 호수에 흘러들어 호수 물은 흙탕강물과는 달리 밑바닥이 다 들여다보일 지경으로 아주 맑았어요. 파란 거울 같은 호수 물에 금쟁반 같은 달이 비껴 있어 호수는 별유천지로 보였어요. 호수 주위에는 나무로 란간을 대고 유람객들이 돌아다닐 유람길도 만들어 놓지 않았겠어요. 흙탕강과 호수 사이에 나무 살창을 촘촘히 대놓았기에 뚱뚱한 어미하마는 호수동물공원 안에 들어갈 수 없었어요. 그러나 아가하마는 손쉽게 나무살창 안에 헤염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와- 진짜 물도 맑고 경치도 참 좋구나!” 아가하마는 하늘에 대고 입을 쫙 벌리고 고함쳤어요. “야-호-” “얘, 아가야! 소릴 작작 쳐! 원숭이가 널 붙잡아 가두겠다. 어서 나오너라.” 그러나 아가하마는 주위를 흘끔흘끔 둘러보며 나오려고 하지 않았어요. “아니, 안 돌아갈래. 흙탕강에 돌아가도 먹을게 없잖아요. 여기서 놀다가 입을 ‘아-’ 벌리고 원숭이랑 사람들이랑 뿌려주는 바나나랑 잉어랑 받아 배불리 먹을래요.” 아가하마는 몸뚱이를 빙빙 탈며 헤염치면서 돌아갈 념을 하지 않았어요. 어미하마는 슬슬 구슬렸어요. “얘, 밤에 유람객들도 없는데 누가 먹이를 뿌려준다고 그래? 엄마 말 좀 들어라. 그 욕심쟁이 악어란 놈이 무슨 심보로 우릴 여기에 얼려 보내려고 하는지 아니? 우릴 공원에 가둬두고 흙탕강을 혼자 차지하고 물소고기랑 혼자 배때기 터지게 먹고 살려는 거야.” 아가하마 귀에는 어머니 말이 좀처럼 들어가지 않았어요. “듣기 싫어요. ‘아-’ 하면 입에 먹을게 날아들어오는 판에 무슨 의심이 그리도 많은가요? 이리 좋은 동물지상락원을 다 알려줬는데요.” 어미하마는 천진한 아가하마의 말에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얘, 어미 말을 들어라. 혹시 악어란 놈이 원숭이와 짜고 들어 우리 모자를 이 호수동물공원에 가둬두고 돈 벌자고 그러는지 어떻게 알아?” 그러나 아가하마는 호수에서 자맥질하며 놀면서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요. “그만해요. 이젠 원숭이마저 의심해요?”                2 때는 이른아침이였어요. 아침해살이 맑은 호수물에 은빛송곳질을 하고 있었어요. 아가하마는 황홀한 꿈이 피여오르는 호수동물공원 맑은 물에서 헤염치며 즐겁게 놀았지요. 그때 벌써 공원에는 동물구경을 온 유람객들로 붐비기 시작하였어요. 아가하마는 악어가 분부한대로 맑은 물에 머리만 내놓고 “아-” 하고 되창문만한 입을 쫙 벌렸지요. 이윽고 공원 주인 원숭이가 나무 가지를 가로타고 앉아 바나나를 훌 뿌렸어요. 면바로 눈을 감고 쫙 벌리고 있던 아가하마 입 안에 날아들어갔어요. “이게 웬 떡이냐?” 아가하마는 제꺽 받아 오물오물 씹어 꿀꺽 삼켰어요. 난생처음 먹어보지 못한 달달한 바나나를 받아 먹었지요. 이번엔 기린이 긴 목을 빼들고 주둥이로 나무 잎을 뜯어 아가하마 입에 넣어주었어요. “에-퉤!” 아가하마는 기린을 보고 쌍까풀눈을 흘겨보였어요. 뒤이어 아가하마는 또 눈을 감고 “아-” 하고 입을 짝 벌렸어요. 이윽고 흙탕강 저쪽에서 물소고기덩이가 씽 날아오지 않겠어요. “헤헤. 오늘 생일 쇠게 됐구나.” 아가하마는 “냠냠 맛있다. 오래오래 맛있다!” 하고 코노래를 부르며 물소고기를 맛나게 먹었어요. 아가하마가 물소고기를 냠냠 먹으면서 퉁사발눈으로 도리반거리며 여겨보니 분명 흙탕물에서 악어가 던져준 물소고기인 것 같았어요. 지나가던 유람객들도 사탕이랑 과자랑 사과랑 마구 뿌려던져 주지 않겠어요. 진짜 악어 말처럼 “아-” 하고 입만 벌리자 입 안에 별의별 맛있는 먹이가 다 날아들어오지 않았겠어요. “헤헤- 이거야 말로 일하지도 않고 입만 쫙 벌리면 배불리 먹을 수 있구만요. 진짜  별유천지구만요.” 한 어린애가 사탕을 쥐여뿌리려고 할 때였어요. 애 어머니가 말렸어요. “얘, 아까운 사탕을 왜 뿌려?!” 어린애는 대수로와하지도 않았어요. “사탕 먹으면 이발이 싹아빠지지 않아요? 이 잘난 사탕 해 뭘 해요. 아가하마나 먹게 줘버립시다.” “오, 그래. 이발이 실하고 든든한 하마는 괜찮겠지.” “네-” “잠간!’ 어머니가 또 불러 세웠어요. “왜 또?” “껍질을 벗겨 던져 줘라. 통채로 어떻게 먹겠느냐?” “예- 알았어요.” 어린애는 사탕껍질을 벗겨 던져주었어요. 아가하마는 사탕알을 넙적 받아 물었어요. 순간 혀바닥부터 목구멍으로 달달한 물이 쪽 들어오지 않겠어요. 이때 어미하마가 나무살창 밖에서 새된 소릴 쳤어요. “얘, 아가야! 사탕 먹지 말라! 이발이 싹어빠지겠다!’ “너무나 달달한게 맛있구만요. 흥!” 아가하마는 어머니 말리는 말을 귀등으로 흘려보내고 어린애 던져주는 대로 사탕알을 납짝납짝 받아 까드득까드득 씹어 꼴깍꼴깍 삼켰어요. “얘, 이젠 나오너라!” 아가하마는 어머니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요. 아가하마는 유람객들이 던져준 별의별 먹이를 다 넙적넙적 받아먹고 나서 배를 슬슬 매만지면서 흙탕강에는 돌아갈 념도 하지 않았어요. “아가야- 이젠 어서 나오너라. 흙탕강에 돌아가자.” 어미하마 소리에 아가하마는 귀찮아했어요. “어머니, 어째 자꾸 그 진절머리 나는 흙탕물에 돌아가자고 그래요? 여기 얼마나 살기 좋아요? 호수 물이 맑지. 경치도 아름답지. 입만 쫙 벌리면 먹을게 다 생기는데요. 왜 굳이 흙탕물에서 악어와 물소고기를 빼앗을내기하면서 힘들게 살자고 그래요.” 어미하마는 발을 동동 굴렀어요. “얘, 아가야, 그러다가 원숭이주인이 호수출입구에 나무살창을 더 촘촘히 박는 날엔 영영 어머니 곁으로 나오지 못해.” 그제야 아가하마는 더럭 겁을 집어먹었어요. 그는 쫙 벌렸던 입을 꼭 닫고 눈을 번쩍 뜨고 호수 주변을 두리번거렸어요. 진짜 호수공원 주인 원숭이가 나무 가지를 가로타고 앉아 자기를 보면서 히쭉거리고 있지 않겠어요. 아가하마는 부랴부랴 호수동물공원 나무살창출입구로 헤여왔어요. 그는 틈이 제일 넓은 나무살창 사이로 빠져나오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찌나 배불리 먹었던지 똥똥한 배가 글쎄 나무살창에 딱 끼여버렸어요. 아무리 안간힘을 해 바둑거려도 좀체로 빠져나올 수 없지 않겠어요. “아가, 아가! 어머니! 빨리, 빨리 빼내 주세요!” 어미하마가 황급히 주둥이로 나무살창살을 물어 힘껏 바깥으로 당겼어요. 순간 “뜨드득” 소리와 함께 나무살창살이 쭉 벌어졌어요. 그 틈에 아가하마는 겨우 호수동물공원에서 빠져나왔어요.                                      3 이튿날 아침해가 두둥실 뜨자마자 아가하마는 또 호수동물공원에 가자고 졸라댔어요. 어미하마는 또 말리기 시작했어요. “얘, 아가야, 호수동물공원에 가지 말자. 좀 힘들더라도 어머니와 함께 흙탕물에서 생신한 물고기도 잡아먹고 운수 좋으면 물소고기도 먹으면서 살자. 우리 흙탕강물의 물고기는 야생물고기여서 호수나 어장에서 기른 물고기보다 더 생신해. 괜히 호수동물공원에 갔다가 악어와 원숭이 짜고 들어 무슨 꿍꿍이를 치면 어쩌느냐?” “원숭인 어제 나한테 바나나를 뿌려줬는데요. 뭘 어쨌다고 의심해요?” “나무창살 대신 쇠창살을 바꿔 촘촘히 박아놓는 날엔 다시 자유로운 흙탕강물에 돌아오지도 못하겠다…” 아가하마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어요. “관둬요. 나무살창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왜 나올 수 없겠어요? 꿈에서처럼 너무 배 뚱뚱하게 먹지 않으면 되지요. 언제든지 나올 수 있을 거예요.” “얘, 아가야, 옛날부터 돌다리도 두드려 보면서 건너라고 했어…” 아가하마는 어미하마의 말을 들을 념도 하지 않고 떼를 썼어요. “어머니, 잉~잉~ 빨리 호수동물공원으로 가자요. 잉~ 잉~ 이젠 시누런 흙탕물을 보기만 해도 진절머리 나요.” 그때 악어가 스리슬쩍 헤염쳐 다가왔어요. “그렇게 의심이 많고서야 어찌 아가를 배불리 먹이면서 키우겠소. 쯧쯧.” 악어는 어두운 그늘이 비낀 퉁사발눈을 띠룩 굴리더니 뒤말을 이었어요. “누가 량심 없이 호수동물공원 나무살창을 쇠살창으로 바꾼다고 했어? 이런 사막에 어데 가서 쇠살창을 가져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들이라구야. 원, 쯧쯧쯧.” 아가하마가 어찌나 떼를 쓰는지 어미하마는 할수 없이 아가하마를 데리고 호수동물공원으로 헤염쳐갔어요. 악어도 퉁사발눈깔을 데굴데굴 굴리며 스르르 헤염쳐 뒤따라왔어요. 물소들이 건너는 흙탕강 나들목을 지나 굽인돌이를 돌자 아래목에 호수동물공원의 나무살창이 나타났어요. “야- 호-” 아가하마는 다짜고짜 나무살창 안으로 쏙 빠져들어갔어요. 어미하마는 나무살창이 근심돼 다가가 나무살창을 이리저리 매만져보며 살펴보았어요. “더 촘촘히 박진 않았구나. 호-” 그제야 어미하마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어요. 뒤이어 호수동물공원 호수에 들어가 빙빙 헤염치며 도는 아가하마를 살펴보았어요. 오늘도 호수동물공원 호수 주위에는 벌써 숱한 유람객들이 왁작 떠들고 있었어요. 여기저기 사슴, 호랑이, 곰이 재롱을 부리며 뛰놀고 있었어요. 이때 확성기에서 호수동물공원 주인 원숭이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어요. “유람객 여러분, 동물 여러분, 우리 호수동물공원을 찾아온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 호수동물공원 호수에 새로 귀염둥이 아가하마가 들어왔어요. 아가하마의 재롱을 구경할 분들은 어서 먹이를 아가하마 입에 뿌려넣으세요.” 그 소리를 듣고 아가하마는 호수를 한고패 빙 돌더니 호수가 란간과 아주 가까운 곳에 다가가 머리를 쳐들고 “아-” 소리와 함께 되창문만한 입을 쫙 벌렸어요. “저게 뭐야? 재롱도 부리지 않고 먹이부터 달라고? 흥!” “아가리를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기만 하면 하늘에서 먹이 뚝 떨어지는가 해?” 이게 웬 일인가요? 어제와는 달리 유람객들은 아무런 먹이도 던져주지 않았어요. 아가하마는 이젠 너무 오래 입을 벌리고 있어서 아가미마저 다 아파났어요. 그러나 입 안에 물고기 한마리도 날아들어오지 않았어요. 공원주인 원숭이가 보다못해 다시 확성기를 들고 유람객들 속으로 돌아다니면서 애원하다싶이 소리쳤어요. “여러분, 어서 저 아가하마 입에 먹이를 뿌려주세요. 여러분, 아가하마 재롱을 잘 구경하겠으면 어서 먹이를 아가하마 입에 뿌려주세요. “아무 재롱도 부리지 않는데 무슨 먹이부터 뿌리라고? 렴치없어!” 아가하마는 입을 짝 벌리고 있어도 먹이가 날아들어오지 않자 조급해났어요. “제가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뭐 노래를?!” “하마 노래를 부른다는 말은 난생처음 듣는데.” 유람객들은 미심한 눈길을 아가하마한테 모았어요. 그때라고 아가하마는 입을 쫙 벌리고 목청껏 노래라고 불렀어요. “뚜뚜- 푸-” 괴상한 소리, 튕겨나는 물보라! 유람객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었어요. “세상 듣기 싫어!” 어떤 유람객들은 손으로 두 귀를 막으면서 외면했어요. 그런데도 아가하마는 먹이를 얻어먹으려고 계속 푸푸 거리며 돼지 멱따는 고함을 계속 질렀어요. 바빠맞은 원숭이 주인이 확성기를 쥐고 나섰어요. “아가하마가 이번엔 춤을 추겠대요.” 유람객들이 아가하마 쪽으로 되돌아서며 눈길을 돌렸어요. 아가하마는 짤막한 꼬리를 물 우로 휘둘러대며 엉덩이까지 흔들었어요. “하하하!” “깔깔깔!” 유람객들은 웃다가 죽을 지경이였어요. 어떤 유람객은 너무 우스워 눈물까지 훔쳤어요. “저것도 춤이야?!” “토끼 꼬리만한 꼬리만 흔들면 춤인가!” “살진 엉덩이를 흔드는 거 봐라! 느끼해!” “저렇게 춤 추고 먹이를 달라고?!” “어림도 없어!” “누가 먹이를 준대?!” 유람객들은 먹이를 주려고 하지 않았어요. 바빠맞은 어미하마도 보다 못해 나무살창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어요. 그러나 나무살창이 너무 좁아 뚱뚱한 배 떡 걸려 아무리 버둑거려도 들어갈 수 없었어요. “아가야!” “아가-!” 원숭이는 황급히 살창 안으로 들어가려고 버둑거리는 어미하마를 보고 핼끔 눈짓하며 소리쳤어요. “이제 중량급 어미하마마저 재간을 피우겠답니다.” 어미하마는 아가를 배불리 먹이려고 흙탕강물을 입 안에 가득 들이켰다가 푸- 내뿜었어요. 순간 커다란 흙탕물줄기가 흘탕강으로부터 공중에서 반원을 그리며 아가하마의 입 안으로 날아가 떨어졌어요. 아가하마는 그 흙탕물을 먹거리인가고 꿀꺽꿀꺽 받아 삼켰어요. 아가하마는 인차 먹이 아닌 것을 발견하고 더는 삼키지 못하고 입을 쫙 벌리고 흙탕물을 받아 물었다가 공중에 내뿜었어요. “야- 멋있다.” 그제야 유람객들은 박수갈채를 보냈어요. 그때라고 아가하마는 “아-” 하고 되창문입을 쫙 벌렸어요. 그러자 유람객들은 바나나며 망과며 사탕이며 과자며 마구 아가하마의 벌린 입에 뿌려주었어요. “그럼 그렇겠지.” 아가하마는 유람객들이 뿌려준 먹이를 맛있게 먹었어요. 아가하마는 먹이를 던져줄 유람객들을 끌려고 입을 쩝쩝 다시며 노래까지 불렀어요.   냠냠 맛있다 오래오래 맛있다   아가야 아가야 아가리 쫙쫙 벌려라   냠냠 맛있다 오래오래 맛있다   아가야 아가야 먹일 훌훌 뿌려줄게   “야- 짱이야! 짱!” “아가하마 노래짱!” “대식가 짱!” 아가하마의 노래소리를 들은 유람객들은 엄지를 내휘둘렀어요. 그들은 재간둥이 아가하마가 “아-” 하고 입을 벌리기 바쁘게 사탕이랑 무우랑 쵸콜리랑 무더기로 훌훌 뿌려주었어요. 호수동물공원 밖 흙탕물에서 살펴보던 어미하마도 “아- ” 하고 대문짝 같은 입을 쫙 벌렸어요. “그래! 어미하마도 빼놓을 수 없지.” “자! 물을 뿜느라고 수고했는데 먹어라!” 사람들은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어미하마가 쫙 벌린 입 안에도 먹이를 무더기로 뿌려주었어요. 어미하마도 맛나게 먹었어요. 악어는 톱날이발까지 드러내며 제 자랑을 한발이나 늘여놓았어요. “히히, 아가하마야, 봐라, 봐. 내 거짓말 했어? 이젠 내 말 믿겠지?” 어미하마는 헤벌쭉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였어요. 그런데 아가하마는 어쩐지 입 안이 시쿨고 달고 쓰겁고 맵고 견디기 힘들었어요. “혹시 사탕을 먹었잖아? 이발이 상하겠어.” 어미하마는 호수동물공원 호수 안을 살폈어요. 아가는 한창 입을 쫙 벌리고 입 안에 들어온 먹이를 게걸스레 먹어대고 있었어요. “아가야! 이젠 그만 먹어! 괜히 배 뚱뚱해 나무살창에서 나오지 못하겠다.” “나가선 뭘 해요? 여기선 ‘아’ 하고 입만 벌리면 먹을게 생기는데요. 호호호.” “얘, 아가야, 이젠 해지겠다. 어서 돌아가자.” 악몽 말이 나오자 아가하마는 하늘을 향해 벌렸던 입을 닫았어요. 그는 쌍까풀눈으로 서서히 져가는 해를 여겨보더니 아쉬운대로 나무살창 쪽으로 헤염쳐 왔어요. 그는 엊저녁 꿈에서처럼 똥똥한 배가 나무살창에 걸릴가봐 저으기 근심됐어요. 그런데 량쪽 나무살창을 두리번거리며 슬슬 무난히 헤염쳐나왔어요. “껄-” 아가하마는 똥똥한 배를 슬슬 만지더니 게트림까지 하며 어머니를 따라 흙탕강물로 돌아왔어요. 아가하마는 호수동물 공원에서 돌아 온 것을 아주 아쉬워했어요.                6 “빨리 호수동물공원으로 가자요.” 아가하마는 이른 아침에 깨나기 바쁘게 졸라댔어요. 어미하마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얘, 아가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호수동물공원에 가지 않는게 옳은 거 같아.” “왜?” 아가하마는 어안이 벙벙해졌어요. “세상에 공짜 어디 있느냐? 호수동물공원에 가도 누가 공짜로 주자고 하더냐? 어제 봐라. 우리 모자 물을 뿜으며 재롱을 피우지 않았더라면 누가 먹이를 줬겠느냐?” “그게 무슨 그리 힘든다고 그래요?” 어머니는 참을성있게 타일렀어요. “우린 힘들더라도 이 흙탕강 나들목에서 자기 힘으로 잡은 생신한 물고기랑 물소 고기랑 먹으면서 살자. 뭐나 생신한 걸로 먹어야 배탈도 나지 않고 좋아. 호수동물공원에서 유람객들이 던져 주는 변질한 물고기랑 바나나랑 먹으면 위와 밸에 염증이 생기면 어쩌느냐?” 그러나 아가하마는 어머니 말을 마이동풍으로 여겼어요. “어머닌 진짜 배부른 흥정을 다 합니다.” 어미하마는 계속 말렸어요. “호수동물공원은 동물락원이 아니야. 진짜 동물감옥이야. 거기에 들어가면 나오지 못해. 코끼리랑 곰이랑 사자랑 호랑이랑 모두 호수동물공원에서 나오지 못해 애나해. 그런데 왜 한사코 동물감옥에 들어가려고 애를 바득바득 쓰냐? 엉?” 아가하마는 아가리를 쫙 벌리고 쌍까풀눈을 흘겼어요. “어머니, 잔소릴 하다못해 이젠 아침부터 고양이 방정을 떨겠어요. 아들이 동물락원으로 들어가려는데 작작 고양이 방정을 떨어요. 흥!” 세상물정을 너무나도 모르는 아가를 보고 어미하마는 안달이났어요. “물론 어제 쉽게 얻어먹긴 했어. 그런데 어쩐지 어제 유람객들이 뿌려준 거 먹었더니 속이 별로 좋지 않아. 넌 괜찮니?” 그제야 아가하마는 어제 저녁에 배에서 꾸르륵 소리 나더니 꺼먼 똥물이 나가던 것이 떠올랐어요. 그러나 호수동물공원에 가서 얻어먹으려고 거짓말을 주어댔어요. “어머니, 배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래? 이상해.” 어머하마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어제 유람객들이 우리한테 뿌려 준 건 다 좋은 먹이 아니야. 사람들이 생신한 바나나면 어째 자기들이 먹지 않고 우릴 줬겠느냐? 바나나랑 과자랑…” “또또또, 어머닌 진짜 의심도 많아요.” 아가하마는 짜증내며 호수동물공원 쪽으로 부랴부랴 헤염쳐 갔어요. 어미하마는 뒤따라 가면서 계속 타일렀어요. “사탕이랑 쵸콜리랑 자꾸 먹으면 이발이 싹아 떨어진다. 달달하다고 다 받아 먹느냐?” “또, 또 잔소릴. 너무나 달달한게 맛있구만요.” “얘, 아가야, 유람객들이 준 사탕을 넙적넙적 받아먹어선 안돼.” “알았어요. 건데 언제 사탕을 골라내고 먹을 새 있어요. 입만 벌리면 여러가지 먹이 마구 입 안에 날아드는 판에. 흥!” “그래도 변질한 먹인 골라내 버리고 먹어라!” “아이고, 어머니, 이젠 그만 잔소릴 해요! 진짜 끝이 없군요. 흥!” 아가하마는 짜증났어요. 그는 어머니가 생각해서 하는 말을 잔소리쟁이 잔소리로만 여기고 귀등으로 흘려보냈어요. 기실 어머하마는 흙탕강물에서 오래동안 살면서 풍부한 생활경험과 교훈을 쌓아왔지요. 아가하마가 어머니 말을 들어서는 랑패될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어미하마는 아가를 한시도 시름놓을 수 없어 황급히 뒤따라 헤염쳐갔어요. 한편 악어는 호수동물공원 쪽으로 멀어져가는 하마 모자를 보고 웃음주머니 흔들거렸어요. “으흐흐. 잘 됐어! 이젠 저것들을 얼려 보냈으니깐. 나들목을 혼자 차지하고 물소고기랑 배 터지게 먹을 판이구나. 하하하.” 악어는 흙탕물살 우에 톱날 같은 이발을 다 드러내놓고 징글스레 웃었어요. 이때 물소들이랑 줄말들이랑 한창 나들목에서 흙탕강을 건너고 있었어요. 악어는 속으로 “이게 웬 떡이냐?”며 부랴부랴 그리로 헤염쳐 갔어요. 호수동물공원에 이르자 아가하마는 급급히 나무살창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어요. “잠간만!” 아가하마는 주춤 멈춰서며 귀찮아 어머니한테 눈을 흘기까지 했어요. “어머니, 왜 또?” 어미하마는 나무살창을 앞발로 재여보았어요. “응, 나무살창을 좁히진 않았구나.” “어이구, 어머닌 걱정두 태산이오. 어째 하늘이 무너질가 봐 근심하진 않아요? 네? 흥!” 아가하마는 코방귀를 뀌더니 아주 숙련된 수영동작으로 나무살창 안으로 살짝 빠져 들어갔어요. “얘, 아가야, 오늘 너무 많이 먹지 말라. 괜히 배때 뚱뚱해 살창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겠다.” “네-“ “아가야, 생신한 먹이만 골라 먹구 변질한 건 뱉아버려라.” “아이구, 어머니, 이젠 그만 해요. 그저 입만 벌리면 잔소린가요.” 아가하마는 쌍까풀눈이 새똥구래졌어요. “다 널 생각해 하는 말이야.” “아이고, 잔소리쟁이 어머니, 이젠 잔소리 딱 질색인데요. 좀 작작 잔소릴 해요.” 어머니도 듣지 않을 때 말해선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로파심에 찬 입을 다물고 말았어요. 아가하마가 이른 아침에 호수동물공원 호수에 들어서자 유람객들이 구경하자고 또 우르르 모여들었어요. 아가하마는 배가 촐촐한지라 하늘을 향해 또 “아-” 하고 되창문입부터 쫙 벌렸어요. “허, 그 놈, 날마다 입만 벌리면 먹이 생기는가 하는 모양이지.” “재간을 피우지 않고서야 누가 먹이를 준대?” “세상에 공짜 어디 있어?” 유람객들은 각박하게 먹이를 하나도 뿌려주지 않았어요. 아가하마는 똥똥한 몸뚱이를 핸들 번져 누우며 어머니 쪽에 대고 눈을 흘겼어요. ‘다 어머니 탓이야. 이른 아침부터 고양이 방정을 떨더니 하나도 얻어 먹지 못하잖아. 흥!’ 이때 유람객들 속에서 이러루한 말소리가 들렸어요. “흥, 번져눕기만 해서야 누가 공짜로 먹이를 주겠소?” 보다못해 어미하마가 또 흙탕물을 아가하마한테 뿜어댔어요. 아가하마는 그 물을 받아 물었다가 호수 중간에 뿜어댔어요. 그러나 유람객들의 반응은 각이했어요. “야-진짜 누런 분수야!” “아가하마는 참 재간 있어!” “또 어제 하던 걸 하는군!” “좋은 노래도 세번 듣기 싫다고 누가 내내 구경하던 걸 구경해?! 흥!” 아가하마가 아무리 입을 “아-” 하고 벌리고 있어도 먹이가 날아들어오지 않았어요. 공원주인 원숭이가 나무가지에 걸터앉아 보다못해 뒤더수기를 긁적거렸어요. “안되겠어. 내 먼저 먹이를 던져줘야 유람객들이 따라 던지겠는지.” 원숭이주인은 먹다 남은 바나나 껍질채로 아가하마 입에 던졌어요. 아가하마는 넙적 받아 물었어요. 그러나 씹어보니 바나나 껍질이 씹히지 않겠어요. “엣, 퉤!” 아가하마는 어머니 말대로 뱉어버리려고 했어요. ‘안돼. 그러다간 누구도 먹이를 던져주지 않을 거야.” 아가하마는 바나나를 껍질채로 먹는 척하다가 이마에 쓰고 있었어요. “호호호. 옛날 임금이 황관을 쓴 거 같애.” 녀자애들이 아가하마의 모양을 보고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어요. 씽- 복숭아가 날아왔어요. 원숭이주인의 예견대로 한 사람이 먹이를 뿌려주기 시작하자 저게 웬 일인가요? 씽- 씽- 아가하마가 벌린 입 안에 복숭아랑 바나나랑 닭고기랑 돼지고기랑 마구 날아왔어요. 아가하마는 너무 기뻐 호수 물에서 껑충 뛰면서 먹이를 받아먹었어요. “와- 진짜 멋있어!” “어떻게 저 똥똥한 배로 뛰면서 받아먹을가?” 유람객들 속에서 환성이 터졌어요. 먹이가 폭포처럼 입 안에 쏟아졌어요. 아가하마는 미처 받아먹기도 힘들었어요. ‘먹이 많아서야 문제 될게 없지. 물 속에 저장해 뒀다가 래일 먹으면 좀 좋아서.’ 아가하마는 자기 배 부르자 피뜩 어머니 생각이 났어요. 그가 두리번거리며 나무살창 밖에서 헤염치며 구경하는 어머니를 찾아냈어요. “어머니, 입만 ‘아’ 벌리면 먹이 생기는 생 떡판입니다. 어머니도 들어오세요.” 그때 어머니가 새된 소릴 쳤어요. “얘, 아가야, 저 피를!” 아가하마가 여기저기 둘러보니 자기 엉덩이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나오고 있지 않겠어요. 분명 어제 변질한 먹이를 먹었기에 배탈이 난 거죠. 피를 본 아가하마는 또 버릇처럼 “아가-” 하고 울려고 하다가 그만 두었어요. 오히려 아가하마는 억지로 태연자약한 척하였어요. “피 몇방울 나온 거 가지고 왜 그래요? 어머니 말처럼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요. 요만한 피 몇방울 흘리지 않고 그래 벼락맞은 소고기처럼 먹이가 하늘에서 공짜로 떨어지겠는가요?” 어미하마는 새된 소리를 질렀어요. “얘, 아가야, 어서 흙탕물에 돌아오너라. 뭐라던, 뭐나 생신한 걸 먹어야 한다는데도. 어서 나오너라!” “또, 또, 잔소릴!” 아가하마는 쌍까풀눈을 흘겼어요. “어머니, 내 한창 잘 나갈 때 왜 그래요? 이젠 먹이근심할 필요없어요. 이제 난 호수동물공원의 명스타로 될 거예요. 온 세상에 이름난 명스스타로! 호호호.” 어미하마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얘, 정신 차려라! 명스타 되는게 그리 쉬울 거 같애? 숱한 사람들도 고놈의 명스타 되려다가 좌절한게 얼마나 되는지 알기나 해? 그저 허영심이 꼴똑 차가지고. 이제 위와 밸에 큰 병이 생기면 어쩔라고 그래? 유람객들이 주는 먹인 진짜 나빠!” 아가하마는 들을 념도 하지 않았어요. “어머니, 지금 바빠요. 이 산더미 같은 먹이를 저장해둬야니깐요. 그런 잔소릴 들을 새 어디 있어요?” 어미하마는 끊지 않았어요. “얘, 네 몰라 그렇지. 사람들이 뿌려준 걸 다 먹을게 아니야. 어서 버려라!” 아가하마는 눈이 휘둥그래졌어요. “네? 먹어보니 변질한 건 아니던데요. 왜 요 아까운 돼지고기랑 버려요? 버리면 어머니 주어다 먹으려고?” 아가의 오해를 뻔히 알면서도 어미하마는 아가의 앞날을 위해 계속 타일렀어요. “아니야. 어머니 충고를 들어라. 사람들은 소랑 닭이랑 옛날처럼 들판에 풀어놓고 풀이랑 먹여 기르는게 아니야. 사양장에 가둬놓고 사료를 먹여 기르지. 그런데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빨리 크게 길러 팔아먹으려고 호르몬사료를 먹인단다. 그 호르몬사료로 기른 소나 돼지, 닭의 고길 먹으면 너도 이제 뚱뚱하게 배 뿔어나 이 살창 밖으로 나오지 못할 거야.” 아가하마는 유람객들이 던져준 돼지고기랑 소고기랑 물어다 살창 밖 어머니한테 주었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입에 받아물었다가 사품치는 흙탕물에 훌 던졌어요. “아니, 어머니, 잡숫기 싫으면 날 줄게지. 왜 아까운 걸 던져요? 어떻게 얻어온 고기라고. 다신 주는가 봐요.” 아가하마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대성통곡치면서 호수 안으로 헤염쳐 갔어요. “어서 나오너라. 이제라도 날 따라 흙탕강에 돌아가자.” 어미하마가 애원했지만요. 아가하마는 앵돌아져 호수 안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고함쳤어요. “안 가! 이젠 호수동물공원에서 한발자욱도 안 나갈래!” “아가야, 어서 나오너라!” 그러나 아가하마는 좀체로 나올 예산이 없었어요. 그는 호수동물공원 호수에서 물장구치며 놀았어요.                             4 아가하마는 어머니가 날마다 호수동물공원 나무살창 밖에 와서 흙탕강으로 돌아가자고 해도 좀체로 말을 듣지 않았어요. 아가하마는 이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 ‘픽! 안 가! 싯누런 흙탕강물에 돌아가 뭘 해? 잡아먹자고 호시탐탐 노려보는 악어를 어쩌고? 음흉한 악어 퉁사발눈을 보기만 해도 몸서리쳐. 흥! 언제 그 놈의 톱날이발에 물려 죽자고? 안 가! 여기 고이 놀면서 입만 ‘아’ 벌리면 먹이 한 아구리씩 차례지는 판에. 흥! 좀 좋아 가? 안 가! 절대 안 가!’ 이날도 아가하마는 호수동물공원 호수에서 입을 짝 벌리고 먹이가 날아오기를 기다렸어요. 그러나 한식경이나 기다려도 유람객들은 먹이를 뿌리지 않았어요. 대신 이러루한 말이 쏟아졌어요. “오늘은 어째 아무 것도 표현하지 않고 입부터 쫙 벌리고 있니?” “아마 먹이를 줄가 해 그러겠지.” “누가 아무 표현도 하지 않는데 먹이를 뿌려줘? 흥!” 아가하마는 울상이 돼 입을 다물며 머리를 들어 호수 주변 란간에 늘어선 유람객들한테 간절한 빛이 넘치는 눈길을 보냈어요. 이때 어미하마가 보다못해 소리를 질렀어요. “아가야! 네 장끼가 뭐냐?” “소화의 음악!” “그걸 표현해라!” “알았어요!” 대답소리와 함께 아가하마는 물 속에 가라앉았어요. “뭘 표현하려나?” 유람객들은 기대에 찬 눈길을 둥그런 파문이 이는 호수면에 보냈지요. 그때 호수에 파문이 거세게 일더니 살진 아가하마의 엉덩이가 불끈 솟아올랐어요. “저게 뭐야?” 그때 엉덩이가 각도를 조절하더니 유람객들을 묘준하였어요. “뿡-!” 요란한 소리와 함께 우뢰와 같은 방귀가 터졌어요. 방귀는 유람객들을 저멀리 우르르 쓸어 날려보냈어요. 원숭이 주인만은 나무가지를 꽉 붙잡았기에 다행히 방귀에 날려가지 않았어요. “아이구머니!” 유람객들은 저쪽에 날아가 떨어졌지요. 오만상을 찡그리면서도 감탄소리 높았어요. “고놈이 방귀만은 잘 뀌는구나!” “방귀 어쩜 이리 세찬가!” 유람객들은 아픈 신음소리 속에서도 난생처음 그렇게 센 방귀를 보고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그때라고 원숭이주인이 소리쳤어요. “여러분, 방귀 구경 잘 했지요? 먹이를 힘껏 뿌려주세요!” “그래야죠.” “그러구 말구.” 유람객들은 너도나도 호수가로 돌아와 마른 명태랑 잉어랑 뿌려주었어요. 아가하마는 입을 쫙 벌리고 있다가 넙쩍넙쩍 받아먹었어요. 그는 미처 다 받아먹지 못해 호숭에 떨어진 잉어를 물어다 살창 밖의 어머니한테 물어다 주었어요. 어미하마는 아가하마를 보고 자꾸 “흙탕물로 나오라. 어머니 말 들어 랑패없어.”라고 했어요. “날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얻어먹구 사는게 그리 쉬운가 하냐? 어서 나와서 엄마 함께 흙탕물에서 살자.” 그러나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가하마는 곧이듣지 않았어요. “왜 자꾸 그래요? 방귀만 뀌여도 먹을게 마구 날아들어드는데.” 어미하마는 너무 답답해 살진 머리를 마구 가로 흔들었어요. “얘, 날마다 방귀 끼기 그리 쉬운가 하냐? 유람객들이 날마다 네 방귀에 맞아 쓰러지면서 먹을 거 줄 거 같애? 입만 쫙 벌리면 먹을게 생기던 흥타령이나 하며 세월을 보내라. 흥!” “실로 별 근심도 팔자요.” 호수 주인 원숭이는 어미하마가 날마다 아가하마를 빼가려고 하자 나무가지에 걸터앉아 고민에 빠졌어요. “아가하마가 가버리면 어쩌지? 아가하마를 보려고 요즘 유람객들이 더 오는데.” 원숭이주인은 량미간을 쪼프리고 한참이나 궁리했어요. ‘다른 공원처럼 고래를 호수 안에 들여오면 어떨가? 그런데 멀고 먼 바다 고래를 어떻게 얼려 여기까지 데려온담? 또 다른 공원 고래처럼 누가 훈련시켜?” 원숭이주인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안 돼. 무슨 방법을 대서라도 조 놈 아가를 붙잡아 둬야지. 건데 어미하마가 통 문제야.” 원숭이주인은 고개를 갸웃하고 며칠이고 나무 우에 두둥실 뜬 은쟁반 같은 둥근달을 쳐다보면서 궁리하고 또 궁리했어요. 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엔가 원숭이주인은 피뜩 떠오르는 뭔가 있어 무릎을 탁 치고 나무에서 깡충 뛰여내렸어요. 원숭이주인은 어둠의 장막이 내리드리우기를 기다렸어요. 그는 호수동물공원의 곰아저씨랑 코끼리아저씨랑 시켜서 어미하마 몰래 호수와 흙탕물 사이에 박은 나무살창 사이에 쇠말뚝을 더 촘촘히 박아놓았어요. “이젠 어미하마가 무슨 수로 도망쳐?” 원숭이주인은 그제야 한시름 놓고 나무가지에 올라가 코를 드렁드렁 곯았어요. 아가하마는 최초에는 원숭이주인이 자기를 영영 가둬두려고 하면 이발로 나무살창을 물어뜯어버리고 도망칠 궁리를 했댔지요. 그러나 촘촘하고 든든하게 박은 쇠말뚝을 돌아보고 오히려 좋아했어요. “이젠 어머니 잔소릴 영영 듣지 않고 여기서 입만 ‘아-’ 벌리면 먹이 생기겠구나. 호호호.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동물락원이 어데 더 있어?” 아가하마는 코노래를 부르며 어깨춤까지 추었어요.   얼씨구야 좋구좋다 동물공원 좋구좋아   절씨구야 좋구좋다 지상락원 좋구좋네   이튿날 어미하마가 와서 쇠말뚝을 보고 대성통곡치며 행패를 부렸어요. 그는 나무가지를 가로타고 앉은 원숭이주인한테 시누런 흙탕물을 쭉 뿜어댔어요. “아니, 저 놈, 저게.” 원숭이는 이 나무가지 저 나무가지에 옮겨뛰며 어미하마를 손가락질하며 욕했어요. 어미하마는 대문짝 같은 아가리를 벌리고 비수처럼 날카로운 이발을 빼물고 을러멨어요. “교활한 원숭이놈, 어째 우리 아들을 얼려다 이런 개구렁텅이에 가둬놓느냐?” 원숭이는 나무가지에 매달려 오른손을 펴들어 해빛을 가리우고나서 앞발명하기 시작했어요. “아니, 얼려다 가뒀다고? 악어한테 밀려서 저희들 모자가 스스로 여기 찾아와 가지고. 참, 생사람 작작 잡아. 쇠기둥을 박아서 당신 보배 아들을 악어한테 물려가지 않게 보호해주는 것도 모르고. 내 억울해서. 원, 진짜 길러준 개 발뒤축을 물잖아. 지금.” “뭐? 길러준 개? 아이구, 조놈 원숭이, 조고!” 어미하마는 악이 받쳐 아가리를 쩝쩝 다셨어요. “누가 누굴 길러줘? 우리 아들 때문에 너네 호수동물공원에서 돈 엄청 벌면서도. 내 아들 네놈 길러줬는데도 네놈이 내 아들 길러준다고?” 원숭이주인도 열이 후끈 올라 맞받아 욕설을 퍼부었어요. “작작 떠들어? 이제 우리 공원 언저리에 나타나기만 해보지. 네놈마저 호수 안에 가둬놓을테야!” 이때 조 아가하마 어떻게 노는가 보세요. “어머니, 원숭이주인님을 억울하게 굴지 마세요. 주인님 말씀이 천만지당해요.” 어미하마는 억이 막혔어요. “아이구, 뭐라고? 아가야, 이전에 엄마 뭐라던? 원숭이 놈이 이럴줄 알고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아이구, 아이구. 이젠 어쩌느냐? 영영 함께 못 살게 됐구나.” 아가하마는 어미하마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종알거렸어요. “에이, 저 잔소릴 듣지 않았으면 살이 지겠다. 어이유, 딱 질색이야.” 어미하마는 아가의 볼멘 소리에 억이 막혔어요. “아니, 네가 어미 마음 모르고 그게 무슨 소리냐?” 아가하마는 빈정거리까지 했어요. “아니, 우리 원숭이주인이 나무살창 대신 쇠기둥을 든든하게 박아놓아서 얼마나 좋아요? 이젠 악어놈한테 기습당할 위험도 없잖아요. 어머닌 이젠 와서 지킬 필요 없어요. 아들 근심걱정 하지 말고 이젠 흙탕강에서 악어놈과 으르릉거리며 싸우면서 생신한 물소고기나 잡숫고 잘 사세요.” 어미하마는 너무나도 억이 막혀 더 말이 나가지 않아 입을 쫙 벌리고 말았어요. 한참 후에야 어미하마는 숨을 돌리고 겨우 한마디 했어요. “왜 어미 말을 잔소리로만 여기느냐?” “아이구, 저 잔소리쟁이, 이젠 잔소릴 작작 하고 돌아가세요. 제발 영업 방해하지 말고 어서 돌아가세요.” 어미하마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넌 꼭 후회할 날이 있을 거야.” 하고 한마디 말을 남기고는 눈물을 휘뿌리며 흙탕물 속으로 사라졌어요.                                 5 아가하마는 날마다 잔재주를 부리면서 유람객들의 손에서 먹이를 얻어먹었어요. 그는 호수 안을 혜염치다가도 입을 쫙 벌렸어요. 유람객들이 먹이를 주지 않으면  물 우에 껑충 뛰여오르고 입으로 물을 분수처럼 뿜어대는 “재롱”을 피웠지요. 그리고는 “아-” 하고 입을 벌리고 있다가도 입에 날아드는 먹이를 받아 먹고 근근득식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저걸 어떻게 해요? 어느 하루 아가하마는 한 양머리유람객이 뿌려준 붕어를 먹다가 그만 가시뼈가 목에 꽂혔어요. 아가하마는 나무살창 밖에서 서성거리는 어미하마를 내다보면서 엄살을 부렸어요. “아가- 아파 죽겠다. 엄마, 가시뼈 목에 걸렸습니다. 빨리 빼주세요.” 어미하마는 인차 앞발을 휘저으며 말했어요. “아가야, 빨리 이쪽으로 오너라.” 아가하마는 부랴부랴 나무살창 쪽으로 헤염쳐갔어요. 어미하마는 아가하마 량 볼을 두 앞발로 잡고 입 안을 들여다보았어요. 아니, 글쎄 반뼘이나 되는 가시뼈가 목에 박혀 있지 않겠어요. “내 뭐라고 했느냐? 절대 아무거나 받아 먹지 말라는데도. 아니, 이게 뭐냐?” “아가, 아이구, 남은 아파 죽겠는데 웬 잔소리 그리 다사합니까? 빨리 가시뼈나 빼주세요.” 아가하마는 아파 죽는 상했어요. 어미하마인들 무슨 수가 있었겠어요. 입으로 가시를 물어 빼려고 해도 입이 아가하마의 목 구멍으로 들어갈 수 없잖아요. “어째 떠들썩하는가요?” 이때 원숭이주인이 황급히 나무가지에서 뚝 뛰여내려 달려왔어요. “아가하마 목에 가시뼈 박혔어요.” “아가, 아가- 엉엉-” 원숭이는 “아-” 하고 벌린 아가하마 입 안을 들여다보았어요. 목구멍에 확실히 가시뼈가 박혀 입 천정에까지 나오지 않았겠어요. “내 뽑아보지.” 원숭이주인은 사무실로 깡충깡충 뛰여가더니 커다란 집게를 들고 뛰여왔어요. 그는 아가하마를 보고 “아-” 하고 입을 벌리게 한 후 집게로 가시뼈를 집어 쏙 뺐어요. “아가!” “또, 또, 엄살은?” 원숭이주인은 가시뼈를 빼버리고나서 성취감이나 어깨가 으쓱해졌어요. “이젠 괜찮아. 침을 뱉아 봐!” 아가하마가 침을 뱉으니 침에 피가 섞여 나왔어요. “침을 넘겨봐!” 아가하마가 침을 삼켜보니 아프지 않았어요. “감사합니다. 주인님.” “이후엔 주의해라. 가시뼈 있는 건 뱉어버리고 먹지 말라.” “네- 알았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나 아가하마는 그때뿐이였어요.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도 모른다고 아가하마는 입만 “아-” 하고 벌리기만 하고 사탕이랑 변질한 과일이랑 고기랑 넙적넙적 받아 먹더니 이번엔 이발이 아파나 못견뎠어요. “아가- 아가- 이발이 아파 죽겠다. 아가, 아가-” 아가하마는 너무 아파 연신 신음소리를 냈어요. 순간 어머니 생각이 사무치게 났어요. 그는 쇠살창 밖을 살펴보았어요. 어머니가 쇠살창 밖에서 근심돼 들여다보고 있지 않겠어요. 아가하마는 어머니 한테로 헤여가서 “어머니, 이발이 아파 아무 것도 씹지 못하겠어요.” 하고 서적스레 말했어요. “아- 입을 벌려라.” 아가하마는 어머니 말대로 입을 “아-” 하고 벌렸어요. 어미하마는 아가의 입 안을 근심어린 눈길로 이리저리 살펴보았어요. 아니, 글쎄 이발이 싯누렇게 싹지 않았으면 시꺼멓게 죽어가고 있지 않았겠어요. 그뿐이 아니였어요. 심지어 어떤 이발은 싹아서 떨어졌고 어떤 이발은 흔들거리면서 이몸에서 피까지 줄줄 흘렀어요. 어머니는 도리머리질하였어요. “이발이 말이 아니구나. 이 지경이 되다니!” “네-?” 아가하마는 쌍까풀눈이 데꾼해졌어요. “입을 ‘아-’ 벌리고 주는 먹이만 납짝납짝 받아먹지 말고 새들이 이발 두새에 걸 쪼아먹게 해라.” 아가하마는 새침해 앵돌아졌어요. “왜요? 어떻게 얻은 먹이라고. 흥! 아까운 먹이를 왜 새 쪼아먹게 하겠어요?” 어미하마는 참을성 있게 타일렀어요. “새둘이 이발 두새 잡질을 쪼아먹으면 이발이 청소되는 거야.” “새들이 이발청소를 한다구요? 새들이 겁나 내 이발에 날아오겠어요?” “날아온다. 한번 실험해봐라.” 아가하마는 호수에 돌아가 재미로 입을 “아-” 하고 벌리고 있었어요. 이윽고 진짜 어머니 말대로 물새들이 날아와 이발 두새에 끼운 잡질을 쪼아먹지 않겠어요. “아가!” 갑자기 아가하마가 새된 소릴 질렀어요. 물새들이 이껌을 쪼아놨어요. 아가하마는 너무 아파 입을 꽉 다물었어요. 포로롱 포로롱 놀란 물새들이 날아났어요. 그런데 물새 한마리가 그만 꽁지털이 아가하마의 송곳이 두새에 딱 끼워 날아나지 못했어요. 어미하마가 새된 소리를 질렀어요. “얘, 물새를 놔줘라!” “내 이몸을 쪼아놨는데도? 괘씸해서, 원!” 아가하마는 꽉 물려고 했어요. “안돼!” 어미하마는 말렸어요. “절대 물지 말라. 물새들이 다치면 다신 이발청소 하러 오지 않아!” 그러나 아가하마는 어미니 말을 귀등으로 흘려보냈어요. 그는 입을 벌렸다가 꽉 깨물었어요. 아가하마가 입을 벌리는 순간 물새는 포로롱 날아나버렸어요. 그러나 제일 처음에 물린 꽁지털은 아가하마 입귀에 그대로 삐죽이 물려 있었어요. 그때부터 물새들은 다시는 하마 모자의 이빨청소를 하러 오지 않았어요. 시간이 흐르자 이발청소를 하지 않은 아가하마 이빨은 싹기 시작하였죠. 이몸에는 염증이 생겨 아파 죽을 지경 됐어요. 어미하마는 야단쳤어요. “아이구, 이걸 어쩌냐? 뭐라던? 물새를 물지 말라는데도. 헤이, 사탕이랑 변질한 음식이랑 먹지 말라고 얼마나 당부했느냐?” “아이유, 또 잔소리. 귀에 못이 배기겠어요. 흥!” “다 아는 척하면서. 왜 사탕을 주는대로 넙적넙적 받아먹어?!” “또, 또, 잔소릴! 듣기도 싫어요.” 그때 하늘에서 물새들이 악어 이발 두새 잡질을 쪼아먹으면서 짹짹 조롱하였어요. “봐라. 우릴 물더니. 쌍통했지. 짹, 짹.” “쌍통맹통 꼬부랑통, 령감로친 담배통, 우전국의 전화통.” “호호호.” “해해해.” “깔깔깔.” 어미하마는 조롱하는 물새들을 흘겨보더니 아가하마를 계속 타일렀어요. “물새를 물지 말라는데. 날마다 입을 쫙 벌리구 새들이 이발 두새에 낀 잡질을 쪼아먹게 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이발청소를 제때에 하지 않아 이게 뭐냐? 이제 이발이 다 싹아떨어지면 큰 일이야. 아무 고기도 먹지 못해!...” 아가하마는 짜증냈어요. “됐습니다. 됐어! 진짜 하루라도 잔소릴 하지 않으면 못 삽니까? ” 아가하마는 똥똥한 몸뚱이를 홱 돌려 호수 복판으로 헤염쳐가면서 두덜거렸어요. “에이, 남은 아파 죽겠는데. 또 고양이방정을 떨면서. 보기도 싫어. 흥!” 그래도 어머니는 쇠살창 밖에서 오가며 계속 타일렀어요. “얘, 아가야, 원숭이주인과 말해 동물병원에 가봐라! 제때에 치료하지 않다간 큰 일 나겠다.” 그러나 아가하마는 들었는둥 말았는둥 또 입만 물 우에 내놓고 “아-” 하고 벌리고 먹이를 뿌려주기를 기다렸어요. 그때 원숭이주인이 나무가지에 걸터앉아 그네를 뛰며 구경하다가 호수에 피는 피발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찬찬히 보니 아가하마가 쫙 벌린 입 안으로부터 피가 흘러 퍼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니, 저게 뭐냐?” 원숭이주인은 깜짝 놀라 나무가지에서 깡충 뛰여내려왔어요. 그는 호수가에 뛰여가 란간에 뛰여올라 새된 소리를 쳤어요. “아가하마야, 입에서 피 흐른다. 이쪽으로 오라!” 아가하마는 주인이 부르는지라 호수가로 헤여왔어요. “왜 그래요? 한창 맛있게 받아먹는데요. 수털일 하면서. 쯧쯧.” 원숭이주인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안되겠어. 동물병원에 가서 이발을 검사해야겠어.” 그는 인차 코끼리를 불렀어요. 코끼리는 원숭이주인의 분부대로 길다란 코로 아가하마의 뒤다리를 딜딜 감아 기중기처럼 끌어올려 구급차에 실었어요. 구급차가 싸이렌을 울리며 흙탕강변 길을 따라 급급히 동물병원으로 달려갔어요. 동물병원 의사는 침대에 아가하마를 눕혀놓았어요. “아-” 아가하마는 입을 쫙 벌리며 왕청 같은 말을 횡설수설했어요. “여기서도 먹이를 주는가요? 세상 좋은 병원이구만요.” 의사는 어이없어 껄껄 웃다 말고 커다란 확대경을 들고 이리저리 아가하마 입 안을 살펴보았어요. “아이구, 이발이 다 싹아떨어졌구만요. 사탕이랑 변질한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이게 뭔가요? 어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이발청소랑 제대로 하지 않았는가요?” 원숭이주인은 도리머리질했어요. “아가하마는 게으름뱅입니다. 우리 말을 전혀 듣지 않습니다. 그저 먹는데만 악돌이고 이발청소에는 빼돌입니다.” 의사는 안경을 춰올리며 원숭이주인을 나무람했어요. “그래도 주인이 강제로라도 이발청소를 시켜야지요.” “이발청소를 하게 호수가에 와서 입을 벌리라면 전혀 말을 듣지 않아요. 그 시간이면 하나라도 더 먹겠다고.” 원숭이주인은 아가하마의 허물을 하면서도 이발건강이 근심됐어요. “헤이, 어떻게 얻어온 하마라구요. 이제라도 이발을 살려내는 방법은 없는가요?” 의사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더니 두 팔을 벌려보였어요. “이발을 살려낼 순 없습니다. 이젠 싹은 이발을 쑥쑥 빼버리고 사기이발이라도 해넣는 수밖에. 그래도 어머니 만들어준 이발이 젤 좋지. 사기이발은 대용품일 뿐입니다. 이발건강에 주의하지 않으면 언제 이몸에 염증이 다시 생길지도 몰라요.” “아무것도 씹어먹지 못하면 큰 일인데요.” “그래요. 영양이 따라가지 못하면 아가하마 수명이 그만큼 줄게 아닌가요?” 의사는 아가하마의 싹아빠진 이발을 보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그는 집게랑 전기찐들이랑 가져오면서 원숭이주인한테 말했어요. “아가하마 이빨이 이 지경이 된데는 아가하마한테만 책임이 없는게 아닙니다. 주인님도 호수동물공원을 잘 관리하지 못한 책임이 있습니다.” 원숭이주인은 우멍눈이 데꾼해졌어요. “무슨 말씀인가요?” 의사는 쫙 벌린 아가하마 아래웃턱을 벌려 바줄로 동이면서 말하였어요 “유람객들이 아가한테랑 호랑이한테랑 변질한 먹이를 뿌려주지 못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그럼 아가 변질한 음식을 먹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원숭이주인은 머리를 끄덕였어요. “네- 그 말씀에 도리 있습니다.” “아가!: 아가하마는 엄살을 부리며 질겁해 똥똥한 몸뚱이를 바들바들 떨었어요. (아이구, 이건 날 잡자는 건가?) 의사는 그러건말건 쇠집게로 아가하마의 거들거리는 송곳이부터 집어 흔들다가 쑥쑥 뽑았어요. “아, 아가!” 아가하마는 너무 아파 비명을 질렀어요. 원숭이주인이 옆에서 보다가 빈정거렸어요. “또, 또, 엄살은?! 그래서 별명도 ‘아가!’라지. 아프더라도 좀 참으라구.” “아가!” “아가!” 의사가 이발을 한대, 한대 뽑을 때마다 아가하마는 새된 비명을 질렀어요. 드디여 의사는 마치와 끌을 가지고 왔어요. 딱! 딱! 딱! 의사는 채빼지 못한 이발 뿌리를 마치질하면서 끌로 파냈어요. 이발 뿌리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통증이 났어요. 아가하마는 너무 아파 연신 “아가! 아가!” 비명을 지르다 못해 까무러쳤어요. 한참 후에야 아가하마가 깨여났어요. 의사가 아직도 분망히 뭘 하고 있었어요. 뜨르륵 뜨르륵 쇠찐들로 이몸에 뭘 파고. 쯔르륵쯔르륵 전동숫돌로 뭘 갈았어요. 해가 질녘에야 의사는 마스크를 벗고 이마의 땀을 훔쳤어요. “이젠 사탕이랑 변질한 걸 먹지 말게나. 그리구 제때에 이발청소를 해라.” 아가하마는 너무 아파 오만상을 쪼프리며 겨우 일어났어요. 입을 하 벌리고 거울을 비춰보니 피로 얼룩진 이몸에 촘촘히 박혔던 이발이 몇대 남아 있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가하마는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금방 이발을 할 때 모든 고통을 깜깜히 잊어버렸어요. 생이발이 썩어떨어질 때 고통, 이발을 뺄 때 고통을 몽땅 잊어버렸던 거죠. 더구나 아가하마는 어머니 만들어준 이발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하나도 몰랐어요. 그는 언제 철이 들가요? 원숭이주인은 의사 말씀에서 계발받고 호수동물공원 호수가에 다음과 같은 글이 박힌 패쪽을 여기저기 박아놓았어요.   “유람객 여러분, 변질한 먹이를 아가하마한테 마음대로 뿌려주지 마십시오. 아가하마가 변질한 먹이를 받아먹고 이발이 다 싹아 빠지고 다른 질병을 앓을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유람객은 머물렀던 자리와 행위도 아름답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협조에 감사합니다.”   그후부터 대부분 유람객들은 어린 나이에 이빨이 홀랑 빠진 아가하마가 불쌍해 변질한 돼지고기랑 아가하마한테 마구 뿌리지 않았지요. 그러나 일부 개명치 못한 유람객들은 의연히 원숭이 관리원들의 눈을 피해 가만히 먹다 나머지 쉰 돼지고기, 곰팡이 낀 양고기랑 아가하마가 “아” 하고 쫙 벌린 입에 뿌려던졌어요. 아가하마는 의사 말을 안 듣고 이전처럼 계속 유람객들이 뿌려주는 대로 아무 먹이나 마구 게걸스레 먹어댔어요. 한 둬달 지나자 이게 뭔가요? 아가하마는 소뼈다귀를 받아 뜯어먹다가 또 이발이 껄떡거리며 노는 것을 발견하였어요. 까드득까드득 게걸스레 소뼈다귀에 말라붙은 소고기를 꽉 물어뜯다가 그만 이발이 똑 부러지고 말았어요. “아가!” 아가하마는 새된 소리를 질렀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래동안 썩은 먹이를 먹은 때문에 이몸에서 뻘건 피고름이 줄줄 흘러나왔어요. 이몸에 염증이 도져 통증도 아주 심했어요. 아가하마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호수 가로 가서 입을 붙들고 울었어요. “아가-” “아가!” 이때 나무가지에 걸터앉아 있던 원숭이가 황급히 뛰여내려 달려왔어요. “또 어디 아프냐?” “이발이 아파 죽겠어요.” 원숭이 주인은 신음하는 아가하마를 보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의사 말을 잘 듣잖더니, 이게 뭐냐? 이제도 병원을 몇번 가야 되겠느냐?” 원숭이주인은 속으로 언짢아했어요. (진짜 애보다 배꼽이 더 크구나.) 그래요. 병원으로 자꾸 가도 아가하마가 의사의 분부를 잘 듣지 않고서야 의사인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어요? 저쪽 흙탕강 나들목 흙탕물에서 악어는 톱날이발까지 다 드러내고 아가리를 쫙 벌리며 너털웃음을 웃었어요. “어, 씨원하다, 씨원해. 저놈들 이발이 홀라당 빠지면 뭘로 나하구 물고 뜯으며 싸워? 이젠 시름 싹 놓구 편안하게 살게 됐군. 허허허.” 악어의 퉁사발눈깔에 음흉한 빛이 서렸어요. “나들목의 진짜 주인은 악어야, 나야! 나!!!”                           6 며칠 후, 호수동물공원에 또 일이 생겼어요. 불시에 아가하마의 배가 남산만큼 뚱뚱 뿔어나고 항문에서 피똥이 밀밀 나왔어요. 아가하마는 너무 배 아파 호수 물 속에서 땔땔 구을었어요. “아가!” “아가!” 원숭이주인은 시끄러워 짜증부터 냈어요. “‘아가’는 무슨 ‘아가!’ 네 별명이 ‘아가’인줄 모를가봐 쩍하면 ‘아가, 아가!’냐? 흥!” 그러나 원숭이주인은 인차 고쳐 생각했어요. “아가하마 잘못되면 뭘로 돈 벌어?” 원숭이주인은 코끼리아저씨를 시켜 또 아가하마를 동물병원에 데려가라고 했어요. 코끼리아저씨는 길다란 코를 늘여뜨려 호수 안의 똥똥한 아가하마를 감아 기중기처럼 들어올려 구급차에 실었어요. “아니, 저 놈이 저게. 우리 아가를 어데로 들어가?” 어데서 나타났는지 어미하마가 흙탕물 우에 퉁사발눈을 드러내고 중얼거렸어요. 원숭이주인은 모든 것을 눈치채고서도 못 본 척했어요. ‘잘 됐어. 따라 오기만 해봐라. 가둬놔야지.’ 더 없는 모성애는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어미하마는 아가하마 근심돼 흙탕물로 해 먼발치에서 따라가면서 코끼리와 원숭이주인이 아가를 어데로 가져가는가고 살폈어요. 구급차는 “앵-앵-” 다급한 소리를 지르며 동물병원으로 달려갔어요. 동물병원 의사는 청진기를 들고 아가하마의 똥똥한 배에 여기저기 대보기도 하고 쌍까풀을 번지고 눈알을 들여다보기도 하였어요. 뒤이어 의사는 굵은 레이자미형촬영기가 달린 길다란 고무호스 같은 걸 가지고 오더니 아가하마 항문에 넣는 것이였어요. “아이구! 엉덩이야! 이건 무슨 장난입니까?” 의사는 고무호스를 꽂아넣다가 잠간 멈추었어요. “위장경을 해봐야겠네. 고무호스를 박고 미형레이자촬영기로 위장과 밸을 상세히 검사해봐야겠네. 좀 참으라고.” 고무호스가 꾸불꾸불한 밸로 들어갈 때마다 밸이 끊어지는 것처럼 아파났어요. “에이, 저걸 보세요.” 컴퓨터 현광막에 아가하마 밸 속이 환히 드러나지 않았겠어요. 미형촬영기가 들어가면서 밸 안에 살아난 고기덩이가 아가하마의 눈에도 보였어요. “큰 일 났구만요. 밸 안에 저렇게 큰 혹이 자라났어요. 저 혹에 밸이 막히면 먹은 걸 하나도 소화하지 못합니다. 대변도 잘 배설하지 못합니다. 그럼 생명마저 위험합니다.” 원숭이주인은 깜짝 놀랐어요. 그는 아가하마를 흘끔 내려다보면서 의사한테 입에 식지를 대보였어요. (에이, 주책머리 없기도. 참, 어쩜 아가환자 앞에서 병세를 횡설수설한단 말인가? 환자심리학을 어떻게 배웠어?) 의사는 아가하마의 항문에서 줄줄 흐르는 피똥마저 하얀 쟁반에 담아들고 나무꼬챙이로 이리저리 번져도 보고 코에 대고 냄새를 맡기도 하였어요. 위경을 할 때는 어쩌겠어요. 목구멍으로 고무호수를 꽂아넣자 아가하마는 구역질이 나 견디기 힘들었어요. 왝-왝- 아가하마는 마구 토하고 싶었어요. 원숭이주인은 아가하마를 애기 달래듯했어요. “좀 참으라구. 내 위경할 땐 이리 좋은 의기가 없어서 코구멍으로 고무호스를 꽂아넣었댔어. 그게 입으로 넣기보다 퍽 힘들어. 그래도 난 아프단 소릴 한마디도 안 쳤어. 아가야, 참아라, 참아.” 이때 어미하마는 흙탕강 시누런 흙탕물에서 아가하마 병세를 몰라 애타다못해 속이 재가루로 될 지경이였어요. 의사는 또 뭐라고 말하려고 했어요. 원숭이주인은 제꺽 의사의 팔소매를 잡아끌고 한쪽에 데리고 갔어요. 의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아 마는 저대로 놔두면 오래 살 거 같지 못합니다.”“아니, 도대체 무슨 병에 걸렸습니까?” 원숭이주인은 깜짝 놀라 우멍눈이 흰자위만 남고 데꾼해졌어요. 의사는 번듯이 누워 있는 아가하마를 힐끔 돌아보더니 나직이 말하였어요. “보나마나 위장염에 걸린 거 같습니다.” “네?” 원숭이주인은 깜짝 놀랐어요. 의사는 계속 뒤말을 이었습니다. “기적이지요. 위에도 숱한 혹이 자라났습니다. 이제 위와 밸의 혹을 떼서 병리분석을 하면 확진이 나옵니다.” “네?” 아가하마는 위장염이란 무슨 병인지 몰랐어요. 그러나 원숭이주인이 깜짝 놀라 우멍눈이 데꾼해지는 것을 보고 중병에 걸렸다는 것을 직감했어요. ‘이걸 어쩐다?’ 한참 후에야 제 정신이 든 원숭이주인은 아가하마를 돌아보더니 아쉬운 표정을 지었어요. 그는 의사를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물었지요. “어쩜 이런 병에 다 걸릴 수 있습니까? 원인은 뭡니까?” 의사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였어요. “에이, 오래동안 변질한 먹이를 먹은 탓입니다.” “아무리 변질한 먹이를 먹어도 어떻게 단통 이런 병에 걸릴 수 있습니까? 우리 호수동물공원에 숱한 동물이 있어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의사는 안경을 벗어 해면으로 닦아 걸고 말했어요. “변질한 고기랑 자꾸 먹으면 먼저 위장에 염증과 혹이 생깁니다. 혹을 현대의학에서 종양이라고도 부르지요. 종양에는 양성종양도 있고 음성 종양도 있습니다. 악성 종양이면 큰 일입니다.” 원숭이주인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허참, 어린 아가하마가 어찌 이런 병에 걸리다니? 제발 악성 종양이 아니였으면 좋겠는데.” 의사는 한숨을 후- 내쉬였어요. “위장염이나 위장혹을 오래 치료하지 않으면 암증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가하마는 위장염에 걸린지 퍽 오랜 거 같습니다.” 의사는 아가하마한테 돌아와 물었어요. “혹시 이전에도 항문에서 피를 흘린 적은 없었는가요?” “네. 있어요. 호수동물공원에 들어온 이튿날에 항문에서 뻘건 피가 흘러나왔어요.” 의사는 머리를 끄덕였어요. 원숭이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똥똥하니깐요. 배불리 먹어서 몸이 든든한가 했는데요. 이렇게 앓을줄은 몰랐는지요. 허참.” 의사는 원숭이 팔을 잡고 한쪽 구석으로 가서 말했어요. “공원에서 사람들이 아가하마한테 뿌려준 소고기랑 닭다리랑 돼지고기랑 다 좋은 먹이 아닌데요. 사람들은 소랑 닭이랑 옛날처럼 들에 풀어놓고 풀먹이랑 먹여 기르는게 아니라 지금은 사양장에 가둬놓고 사료를 먹여 기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빨리 크게 길러 팔아먹으려고 호르몬사료를 먹여 기릅니다. 호르몬사료로 기른 소나 돼지 고길 먹었기에 아가하마 배 저렇게 뚱뚱하게 뿔어난 거죠.” 아가하마가 가만히 들을라니 의사 말은 이전에 어데서 듣던 말 같았어요. 그는 쌍까풀눈을 때룩때룩 굴리며 기억을 더듬었어요. (아, 옳지. 어머니가 하던 말이구나. 왜 어머니 말을 명심해 듣지 않았지? 아이, 참.) 아가하마는 앓게 되니깐요. 후회되는 일도 많았어요. 한편 원숭이주인은 의사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아가하마는 우리 공원에 오기 전부터 원래 배 뚱뚱했습니다.” “원래 뚱뚱한 건 사실입니다. 허나 갑자기 배 엄청 커지고 뚱뚱한 건 주로 호르몬사료를 먹여 기른 돼지고기랑 먹은 탓입니다.” “됐습니다. 돼!” 원숭이주인은 아가하마 쪽을 힐끔 곁눈질하더니 제꺽 화제를 바꾸었어요. “이제라도 무슨 치료방법은 없습니까?” 의사는 안경알을 닦아 다시 끼더니 김빠진 소리를 했어요. “위장염은 치료해 나을 수 있습니다. 혹을 수술해 떼내면 먹은 걸 소화할 수 있으니깐요.” “알았어요. 치료비도 엄청 많이 들겠지요?” “네- 그거야 이를데 있습니까? 아가하마가 벌어들인 돈을 다 써도 될 거 같잖아요.” “음- 잘 알았어요. 우리 아가하마가 며칠이라도 더 살 수 있다면 이제라도  수술해주세요. 치료비용은 근심하지 마세요.” 원숭이주인은 코마루가 시큼해났어요. 아가하마는 병상에 누워 의사와 원숭이주인이 주고 받는 말을 다 들었어요. 이 시각 아가하마는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웠어요. 흙탕강의 시누런 흙탕물이 너무너무 그리웠어요. 물론 악어의 살벌한 톱날이발은 보기도 싫었지만요. 그래도 시누런 흙탕물에서 잉어랑 잡아먹던 아름다운 추억이 그리웠어요. 아가하마는 의사한테서 혹제거수술을 받게 됐어요.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요? 아무런 감각도 없지 않겠어요.              7 수술대에서 환각이 왔는가요? 아가하마는 의사와 원숭이주인이 저쪽 구석에 간 틈을 타서 몽유증에 걸린 것처럼 병상에서 가만히 일어나 동물병원 뒤문으로 빠져나가 흙탕강 쪽으로 달아났어요. “어데로 도망쳐?!” “흙탕강에 가면 악어한테 물린다!” 의사와 원숭이주인이 뒤쫓아오며 고함쳤어요. 얭- 얭- 구급차도 경보기를 울리며 뒤쫓아왔어요. 숱한 원숭이 관리원들이 걸이대랑 바줄이랑 들고 뒤쫓아왔어요. 각일각 아가하마는 원숭이 관리원들한테 붙잡히게 됐어요. 그런데 저게 뭔가요? “아가야! 이걸 타고 오라!” 어미하마가 공중에 대고 물줄기를 뿜었어요. 물줄기는 반달형으로 공중에서 휘날렸어요. “아가야! 앞발을 벌려라! 빨리!” 아가하마가 앞발을 쫙 벌렸어요. 저게 뭔가요? 아가하마는 글쎄 반달형 물줄기를 타고 헤염치더니 물새처럼 하늘로 씽-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겠어요. 기이한 일은 그뿐이 아니였어요. 갑자기 맑게 개인 푸르른 하늘에서 글쎄 칠색무지개가 걸렸어요. 그 칠색무지개 한쪽 뿌리가 호수공원 호수에 박히지 않겠어요. “무지개 타고 달아나라!” 어머니 고함소리에 아가하마는 날개를 쫙 펴고 몸을 날려 무지개를 타고 창공으로 훨훨 달아났어요. 원숭이 주인이랑 숱한 원숭이들도 몽둥이를 휘두르며 몸을 날려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쫓아올라가지 않겠어요. 저걸 어쩌나? “이놈들!’ 그때 어미하마가 황급히 물줄기를 뿜어댔어요. 저걸 보세요. 글쎄 칠색무지개가 물줄기에 맞아 토막토막 끊어나지 않겠어요. 원숭이들은 하늘에서 호수에 퉁퉁 떨어지면서 하얀 물기둥이 솟구쳤어요. 원숭이들은 호수에서 허우적거리며 하늘로 씽-씽- 날아올라가는 아가하마를 보고 닭 쫓던 개 격이 되고 말았어요. 흙탕강의 사품치는 시누런 흙탕물에서 어미하마가 앞발을 벌리며 목메여 애타게 불렀어요. “아가야!” “어머니!” 아가하마는 눈물을 쏟으며 흙탕물로 풍덩 뛰여들어 어머니 품에 와락 안겼어요. “어머니, 잘못했어요. 이제부터 어머니 말씀을 잘 들을래요.” 아가하마는 어머니와 할 말이 너무나도 많았어요. “어머니, 이젠 다신 호수동물공원에 가서 입만 ‘아-’ 벌리고 공짜를 얻어먹으려고 하잖겠어요. 절대 사람들이 주는 변질한 음식을 공짜라고 주는대로 다 받아먹지 않을래요. 이젠 어머니와 함께 흙탕강물에서 생신한 야생물고기를 잡아먹으면서 살래요.” 어미하마는 아가가 너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오- 그래. 진작 그래야지.” 이때 악어가 톱날 같은 이발을 빼물고 덮쳐오지 않겠어요. “왜 호수동물공원에 돌아가지 않고 시끄럽게 굴어? 나들목의 줄말과 물소는 몽땅 내 거야!” “뭐라고?!” 어미하마는 한발자욱도 물러서지 않았어요. 그는 대문짝 같은 아가리를 쫙 벌리고 소뿔 같은 이빨을 빼물고 악어와 대판 싸웠어요. 질겁한 아가하마는 어머니 뒤에 숨으면서 고함쳤어요. “어머니! 무서워!” “아가야, 엄마와 합세해 싸우자!” “네-” 아가하마는 그제야 제 정신을 차리고 아가리를 쫙 벌리고 천적인 악어한테 덤벼들었어요.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요? 아무리 악어를 물어도 터덜터덜한 가죽에 이발자국 하나 나지 않았어요. “성한 이발 한대도 없어가지고 감히 덤벼?!” 악어가 아가하마를 랭소하며 어미하마를 물어메쳤어요. “어머니!” 아가하마는 어머니를 도와 싸울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며 울었어요. 그는 의사를 돌아보고 고함쳤어요. “빨리 틀이를 맞춰 주세요.” 아가하마는 씽 날아 의사 앞에 가 내렸어요. 동물병원 의사는 제꺽 그 자리에서 사기틀이를 해넣어 줬어요. 아가하마는 황급히 물 우로 씽 날아가 악어의 터덜터덜한 잔등을 가로타고 앉아 앞발로 대가리를 누르고 되창문 같은 아가리를 쫙 벌려 악어의 터덜터덜한 목주래를 꽉 깨물었어요.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악어는 물레방아처럼 몸을 옆으로 빙글빙글 탈며 돌아갔어요. 그건 악어가 사냥물을 잡아먹을 때 쓰는 최후공격수단이였어요. 아가하마는 소용돌이치는 흙탕물에 쿵 처박혔어요. 아가하마는 생사관두에 처했어요. 어미하마는 황급히 아가하마와 합세하며 악어를 협공했어요. 아가하마는 틀이를 빼물고 악어 목을 노리고 덮쳤어요. 악어가 톱날이를 빼물고 맞밪아 덮쳐들어 아가하마의 쫙 벌린 되창문아가리를 꽉 깨물었어요. 까드득! 모진 소리와 함께 글쎄 악어 쇠기둥 같은 이발에 부딪쳐 아가하마 틀이가 깨졌어요. 아가하마는 어머니를 도와 악어와 싸우려고 해도 이발이 깨져 속수무책이 돼버렸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건 또 뭔가요? 숱한 원숭이 관리원들이 뛰여왔어요. “아가야, 빨리 하늘로 날아올라가라!’ 어미하마가 새된 소리로 고함쳤어요. 아가하마는 황급히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네 다리를 쫙 벌렸어요. 그런데 웬 일인지 뚱뚱한 몸뚱이가 하늘로 솟아오르지 못하지 않겠어요. 이때 원숭이 관리원들이 뛰여와 바줄로 아가하마 네 다리를 꽁꽁 묶었어요. 그들은 걸이대로 아가하마를 걸어 호수동물공원 호수물 쪽으로 줄줄 끌어가지 않겠어요. 이젠 아가하마는 호수동물공원 쇠살창 안으로 끌려들어갈 위기가 닥쳐왔어요. “아가! 안돼! 다신 호수동물공원에 안 들어가!” 아가하마가 아무리 소리치고 발버둥질치고 몸부림쳐도 쓸데 없었어요. 각일각 점점 쇠살창 안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순간 아가하마의 다리는 한발이나 늘어났어요. 네각이 다 서너발씩이나 빠져나가면서 아파 죽을 지경이였어요. “아가! 아가!” 아가하마가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원숭이관리원들은 놔주지 않고 계속 끌어당겼어요. 설상가상으로 아가하마 배가 어찌나 남산처럼 뚱뚱 뿔어났는지 쇠살창 사이에 떡 끼워 네각을 바둑거렸어요. “아가! 놔라! 이 놈들!” 숱한 원숭이 관리원들도 바줄당기기나 하듯 끌어당겨도 쇠살창에 끼운 아가하마를 호수에 끌어들여가지는 못했어요. “아가!” 아가하마는 새된 비명을 질렀어요. 어머니를 돌아보니 악어와 피어린 생존싸움을 하고 있었어요. “아가- 어머니! 빨리 살려주세요.” “봐라, 어머니 말대로 복제기술을 잘 배워 배불리 먹고 살자는데.” “복제기술을 배우면 먹이 나오는가요?” “나오고 말고.” 저게 뭔가요? 시퍼런 하늘 꽃구름 속에서 동물병원의 의사 나오더니 이렇게 말하지 않겠어요. “생신한 잉어도 복제해낼 수 있지.” “잉어를 복제해낸다면 누가 믿겠어요.” 그런데 저게 뭐예요. 의사가 무슨 요술이나 부리는 것처럼 칠색무지개에서 잉어가 눈송이처럼 우르르 쏟아져 내리지 않겠어요. 잉어들은 동물공원 호수에 대살처럼 창창 떨어졌어요. “와-싸!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어?!” 아가하마가 여겨보니 진짜 잉어들이 살아 무리지어 호수에서 하느적하느적 지느러미를 흔들면서 유유히 헤염치며 노는 것이 아니겠어요.   “됐습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수술이 아주 잘 됐습니다.” 의사 목소리가 어슴푸레 들렸어요. 아가하마는 그제야 악몽을 꾸었다는 것을 알게 되였어요. 그는 병상에 누워 점점 제정신이 들었어요. 아가하마는 어머니가 자주 뀌띰해주던 말을 잔소리로만 여기고 잘 듣지 않은 것이 못내 후회됐어요. 어머니 말씀은 잔소리가 아니라 참말로 오래동안 생활 경험과 교훈에서 얻어낸 도리 있는 말씀이였죠. 그 말씀은 마디마다 아가하마에 대한 더없는 모성애였고 충고였지요. 아가하마는 점차 어머니 충고를 귀등으로 흘려보낸 자기 잘못을 뉘우치기 시작하였어요. 그 뉘우침은 너무나도 뒤늦은 후회였어요. 아가하마는 병상에 누운 채 의사와 원숭이주인 몰래 자기 귀를 만져보았어요. 그런데 진짜 원숭이주인의 뻘쭉귀보다 훨씬 작지 않겠어요. 그 귀가 그렇게 작아서  어머니 말씀을 잘 듣지 않았을가요? 아가하마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중얼거렸어요. “아, 세상에 후회약이 있다면 후회약으로 만리장성이라도 쌓을 수 있으련만.”                                8  아가하마는 환각 속의 꿈에서 깨나자 금방 있은 황홀한 이야기를 했어요. “어머니, 금방 아주 별난 꿈을 꿨어요.” “그래? 어떤 꿈?” 어머니는 호기심에 차하며 아가하마를 휄체어에 밀고 병실에 나갔어요. “어머니, 하늘에서, 아니, 채색무지개에서 숱한 잉어들이 마구 날아내리지 않겠어요.” “오- 그래? 세상에 어디 그리 좋은 일도 다 있다니?” “정말인데요.” 아가하마는 눈을 퉁사발만큼 떴어요. “내 말 믿으세요. 진짜 산 잉어들이 하늘에서 마구 우박처럼 창창 호수에 떨어져 뛰놀지 않겠어요.” “그래 실컷 잉어 고기를 먹었겠구나.” ”아니, 먹지 못했어요. 엄마, 날 깨우는 바람에.” 아가하마는 아주 아쉬워 했어요. ”쯧쯧쯧.” “네가 너무 잉어고기를 먹고 싶어해서 그런 꿈을 꾼 거야.” 아가하마는 엄마를 쳐다보면서 중얼거렸어요. “|꿈에 의사선생이 꽃구름을 헤치고 나와서 복제기술을 배우면 생신한 잉어를 복제할 수 있다고 하지 않겠어요.” “그래. 진짜야. 내 이전에 뭐라던? 의사선생님한테서 복제기술을 배우라고 하지 않았니?” “네. 어머니,” 아가하마는 어미하마를 쳐다보면서 말했어요. “어머니, 의사선생님한테서 이제라도 복제기술을 배울래요.” 아가하마의 퉁사발눈에는 간절한 빛까지 반짝였어요. “그래? 참 좋아.” “의사선생님한테 잘 부탁해주세요.” “그래.” 아가하마는 의문도 많았어요. “어머니,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정말 잉어를 복제하는 재간이 있는가요?” “있고 말고.” 어미하마는 아가하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말했어요. “얘야, 의사선생님은 유럽에 류학가서 세계 최첨단복제기술을 배워 왔단다. 우리 동물공원의 코끼리랑 원숭이랑 기린이랑 몽땅 의사선생님이 복제해낸 복제동물들이야.” “그래요?” 아가하마는 들을수록 신기했어요. “그래, 의사선생님은 악아도 복제해낼 수 있을가요?” “물론 복제할 수 있지.” 그때 어느새 나타났는지 의사선생님이 병실에 들어섰어요. 아가하마는 의사선생님의 손을 잡고 간절히 부탁했어요. “의사선생님, 악어도 의사선생님이 복제해냈는가요? 절대 악어는 복제해내지 마세요.” “왜?” “그 음흉한 악어 한마리라도 우린 무서워 살기 힘든데요. 숱한 악어무리가 생겨나는 날엔 우리 어떻게 살아나요?” “허허허.” 의사선생님은 호탕하게 웃었어요. “그래. 악독한 악어를 복제하지 말아야지.” 아가하마는 의사선생님의 손을 놓지 않고 졸라댔어요. “의사선생님, 나에게 복제기술을 배워주세요. 네?” “그래, 배워주지.” “의사선생님, 소고기 먹고 싶은데 복제해줄 수 있는가요?” “그래, 있구 말구.” 의사선생님은 실험실에서 주사를 가지고 호수동물원에 가더니 한창 파란 풀을 뜯어먹는 황소 엉덩이에서 뭔가 채취해가지고 지하실험실에 되들어갔어요.    한참후 쟁반에 뭔가 들고 나왔어요.    아가하마가 찬찬히 여겨보니 진짜 소고기 아니겠어요. 아가하마가 먹어보니 진짜 소고기 맛이였어요.    아가하마는 이번엔 이런 요구를 제기했어요. “선생님, 나 같은 하마를 복제해낼 수 있는가요?” “있구 말구.” 의사는 주사기로 아가하마의 팔에서 뭔가 빼내가더니 지하실험실로 들어갔어요. 서서시간후 지하실험실로부터 아가하마와 |똑 같은 하마들이 셋이나 줄줄 걸어나오지 않겠어요.    “아이구, 이걸 어쩌나?”    “어째?” 아가하마는 퉁사발눈이 데꾼해졌어요. ”내 먹을 것두 모자라는데. 어쩐담?”    “근심하지 말라. 복제기술을 배우면 먹을 게 근심없다.”    그때였어요. 생각 밖의 일이 벌어졌어요. “엄마!” “엄마!” “엄마!”     글쎄 복제하마들이 서로 어머하마한테 안기면서 서적을 부리지 않겠어요.     엄마도 어느 것이 진짜 아가하마인지 분간하기 힘들었어요.     (이걸 어쩌나?)     “누가 아가하마냐?”     “내야!” “내 아가하마야!” “아니야.” 다른 하마가 다른 두 하마를 밀치면서 야단쳤어요. “내 진짜 아가하마야!” 그러자 애난 건 아가하마였어요. “아니야. 진짜. 내가 우리 어머니 아들이란 말이야. 난 지금 의사선생한테서 복제기술을 배우자고 그러는데.”     그제야 어머니는 아가하마를 알아보았어요. 아가하마는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아 걷지도 못했어요. 며칠 후 건강이 회복되자 아가하마는 지하실험실에 들어가 의사선생님을 모시고 복제기술을 하나하나 참답게 배웠어요. 몇해가 지났어요. 아가하마는 복제기술로 숱한 잉어를 복제해냈어요. 동물공원 호수에는 복제잉어떼들이 무리지어 헤염쳐다녔어요. 그때부터 아가하마는 악어와 별로 싸우지 않고 생신한 잉어를 먹을 수 있게 됐어요. 그러자 악아는 호수공원에 기여들어 아가하마와 복제하마의 잉어를 빼앗아 먹었어요. 아가하마는 의사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어떻게 악어를 흙탕강물에 몰아낼 방도가 없는가요?” “있지.” 의사선생님은 아가마 사기이빨에 뭔가 장착해주었어요. 어느 하루 악어가 또 동물공원 호수에 나타나 행악질 했어요. 아가하마는 이빨에 장착한 위치추적기에서 나는 경보를 듣고 인차 악어가 나타난 것을 알고 그리로 맞받아나갔어요. 악어를 발견하자 아가하마는 의사선생님이 알려준대로 아가리를 쫙 벌렸어요. 순간 파란 빛줄기가 악어에게 날아갔어요. “앗!” 악어는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도망쳤어요. “와싸! 악어를 이겼어!” 아가하마는 환성을 질렀어요. “선생님, 이빨에서 나간 빛은 무슨 빛인가요? 저 흉악한 악어도 겁나 달아나는가요?” 의사는 희죽이 웃었어요. “레이자빛전기에 감전된 거야!” “네-” 그후 아가하마는 의사선생님한테서 배운 복제기술로 잉어랑 소고기랑 양고기랑 돼지고기랑 별의별 걸 수태 복제해냈어요. 그래서 어미하마와 아가하마 그리고 복제하마들까지 생신한 잉어와 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게 됐어요. 그러자 동물공원의 원숭이랑 기린이랑 코끼리랑 아가하마를 찾아왔어요. 기린은 길다란 목을 빼들고 호수에서 물장구를 치며 노는 아가하마를 굽어보면서 간절히 말했어요. “아가하마야, 우린 친구 아니고 뭐니? 동물공원 안에 무져놓은 풀이 이젠 딱 질색이야.” 코끼도 간절히 요청했어요. “ 어떻게 생신한 풀은 만들어낼 수 없니?” “있구 말구. 생신한 풀을 복제해줄게.” 이윽고 호수물에서 나온 아가하마는 지하실험실에 들어가 주사기를 들고 나오더니 공원 밖에 나가 생신한 풀을 찾아 주사기로 뭔가 뽑아들고 엉금엉금 지하실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저게 뭔가요? 하, 글쎄 지하실험실 문으로 생신한 풀이 마구 풍겨나왔어요. 각일각 생신한 풀은 공원안에 산더미처럼 쌓였어요. “와싸! 이게 웬 풀이냐?!” 기린과 코끼리랑 풀더미에 뛰여가 파란 풀을 맛나게 먹어댔어요. 어미하마의 부탁대로 복제잉어를 악어한테도 나눠줘 먹게 했어요. 원숭이 주인도 헛일 삼아 말했어요. “얘, 아가하마야, 나한텐 생신한 복숭아를 만들어줄 수 없느냐?” “있구 말구. 좀 기다려.” 아가하마는 이번에도 주사기로 복숭아에서 뭔가 채취해가지고 지하실험실로 들어갔어요. 그는 의사선생님의 지도 아래 숱한 맛있고 생신한 복숭아를 복제해냈어요. 원숭이는 발가우리한 복숭아 산더미를 보고 환성을 질렀어요. 원숭이는 생신한 복숭아를 한입 뚝 떼먹고 우멍눈으로 실눈을 지으면서 입을 쫙 벌리며 감탄했어요. “야- 진짜 맛있구나! 아가하마는 참 재간둥이야!” 악어는 저 멀리 흙탕물에서 이쪽을 바라보면서도  아가하마한테로 다가와 요구 같은 걸 말할 체면이 없었어요. 어미하마는 아가하마를 달래였어요. “아가야, 저 악어한테도 생신한 잉어하구 물소고기를 복제해 줘라!” “안돼요.” 아가하마는 도리머리를 저었어요. “악어는 우릴 흙탕물에서 몰아낸 천적인데요.” 복제하마들도 맞장구를 쳤어요. “맞다. 원쑤한테 뭘 줘?” “물소고기를 복제해주지 말라.” 어미하마는 아가하마를 타일렀어요. “얘야, 악어는 흙탕강물에 날따라 먹이가 적어지니깐. 우릴 쫓아내려고 했어. 허나 지금 우린 물소고기를 얼마든지 복제할 수 있잖니? 악어한테도 물소고기를 복제해줘봐라. 꼭 우리와 싸우지 않을 거야.” “그래요.” 악어는 렴치를 불구하고 떠들어댔어요. “먹거리 많으면야 왜 아가하마하고 싸우겠어요. 물소고기만 하늘만큼 주면 싸우지 않을게.” 아가하마는 어미하마의 설복을 받고 마지못해 악어한테도 생신한 잉어와 물소고기를 수태 복제해 줬어요. 악어는 물소고기랑 잉어랑 받아먹고나서 기적적으로 다시는 어미하마와 아가하마와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겠어요.         복제기술 덕분에 악어와 아가하마는 서로 싸우지 않고 먹을 근심없이 배불리 먹고 살게 되였지요.                                                                      
267    동화 함박꽃 김장혁 댓글:  조회:961  추천:0  2021-12-25
                       동화                                                                   함박꽃                                                                    김장혁     어느날 바다가 외딴 어민가에서 소녀의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들렸어요.     칠성이 이 마을을 지나가다가 소녀의 울음소리를 따라 찾아가보니 한 소녀가 어머니한테 안겨 섧게 울고 있지 않겠어요. 칠성이 다가가서 사연을 물었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이런 기막힌 사연을 말했어요. 이제 래일면 귀여운 딸을 가마에  앉혀 마을 북망산에 있는 산신당 신령에게 바칠 차례가 됐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산신당 신령한테 가져간 딸애들이 살아돌아온 적이 한번도 없다고 했어요. “왜 딸애를 산신당에 메가는가요?” “3년에 한번씩 산신당에 이 마을에서 제일 고운 딸애를 바쳐야 이 마을이 태평무사하다고 하오.” “오- 그런 일이였구만요.” 칠성은 량미간을 쪼프렸어요. “근심하지 말아요. 내 구해줄테니깐요.” 그는 모녀한테 이리이리 하자고 했어요. 모녀간은 칠성의 말을 듣고 눈물을 닦더니 머리를 끄덕였어요. 이튿날 마을 사람들은 가마를 메고 이 집에 찾아와 곱게 차려입은 딸을 가마에 실어 허기영차허기영차 하며 산신당에 메갔어요. 그들은 산신당에 딸을 가마에서 부리워놓고 주먹만큼한 자물쇠까지 덜컥 채워놓았어요. 그런데 산신당 안에 들어간 건 이 집 딸이 아니라 칠성이였지요. 밤이 깊어가자 바깥에서 음산한 바람이 불어치면서 기와장이 마구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어요. 칠성은 비수를 뽑아 들고 천정을 쏘아보았어요. 어둠 속에서 기와장이 번져지는 소리와 함께 뭔가 육중한 놈이 기둥을 타고 스르르 기여내려왔어요. “허허. 또 예쁜 아가씨를 잡아먹게 됐군. 쩝쩝쩝.” 그 놈은 혀까지 쩝쩝 다셨어요. “이크!” 칠성은 어둠 속을 헤집고 찬찬히 그 놈을 여겨보았어요. 아니, 그 얼룩덜룩한 놈은 네발 가진 커다란 황룡이 아니겠어요. 호랑이에게 물리워도 정신을 차리면 산다고 칠성은 도정신해 그 놈이 슬슬 기여오기를 기다렸어요. 그 놈이 대문짝 같은 아가리를 쩍 벌리는 순간, 칠성은 시퍼런 비수로 아가리 밑을 푹푹 찔르고 가로 세로 마구 베버렸어요. 그 놈 황룡은 목에 칼을 맞고도 몸뚱이로 똬리를 틀면서 칠성의 몸을 숨이 막히게 조였어요. 그 바람에 칠성은 그만 정신을 잃고 까무러치고 말았지요. 사흩날 이른 아침, 마을 사람들은 산신당의 신령한테서 딸애가 살아 남았는가고 자물쇠를 열고 들여다보았어요. 아니, 저게 뭔가요? 산신당에 네발 가진 커다란 황룡이 피못에 쓰러져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황룡이 튼 똬리 속에 낯 모를 소년이 까무러친 채 누워 있지 않겠어요. 마을 사람들은 그제야 자기들이 이제껏 모신 신령이라는 놈이 황룡이였다는 것을 알고 잘못을 깨닫게 됐어요. 그들은 마을의 철천지 원쑤 황룡을 잡은 영웅 칠성을 흔들어깨워 가마에 모시고 마을로 돌아왔어요. 칠성은 모녀의 부름과 울음 소리에 점심 때에야 간신히 깨났어요. 어머니는 딸애를 구한 칠성을 구명은인이라고 자기 집에서 함께 살자고 했어요. 그러나 칠성은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황룡을 잡았다고 시름놓을 순 없어요. 이제 먼 바다에서 흑룡이 자기 짝을 잃었다고 원쑤 갚으러 올 겁니다. 그 놈마저 잡아치워야 이 마을에서 무사히 살 수 있어요.” 말을 마치자 칠성은 비수를 품고 흑룡을 잡으러 먼바다로 떠나려고 하였어요. 그때 소녀는 고방에 들어가 박씨를 하나 꺼내 칠성에게 주었어요. “오빠, 이 박씨를 가지고 가요. 저의 성은 함씨이고 이름은 박꽃이예요. 이 박씨를 보면 저를 본 거나 같은데요. 이 박씨가 꼭 도움을 줄 거예요. 오빠, 꼭 살아서 돌아와 우리 모녀와 함께 살자요.” 칠성은 머리를 끄덕였어요. “고마워.” 뒤이어 그는 허리춤에서 칠성비수를 꺼내 박꽃에게 주었어요. “이 비수를 보면 내가 살았는가 죽었는가 알 수 있어. 내가 살았으면 비수가 반짝반짝 빛나고 내가 죽었으면 비수가 시꺼멓게 빛이 죽어.” 박꽃은 칠성비수를 받아쥐고 마을 뒤산 꼭대기로 올라가 멀어져가는 칠성을 바래였어요. 칠성비수를 보니 서슬푸른 칼날에서 빛이 반짝이였어요. 그러자 박꽃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였어요. 한편 칠성은 흑룡을 찾아 쪽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갔어요. 갑자기 먹장구름이 몰려오더니 구름 속에서 시꺼만 흑룡이 나타났어요. “죄꼬만 놈아, 감히 내 안해 황룡을 죽여?! 오늘 원쑤를 갚겠다.” 흑룡이 휙 날아지나가면서 네발로 쪽배를 건뜩 들어 파도치는 바다에 꽝 메쳤어요. 순간 쪽배는 산산히 부서지고 칠성은 깊은 파도 속에 종적을 감췄어요. 그때 뒤산 산꼭대기에서 비수를 뚫어지게 보던 박꽃은 절망에 빠졌어요. 비수가 빛을 잃고 시꺼멓게 번지지 않았겠어요. “박씨를 써요. 오빠!” 그러나 칠성비수는 의연히 시꺼먼 채 반짝반짝 빛나지 못하였어요. 박꽃은 빛 잃은 칠성비수를 매만지다가 먼 바다를 보고 중얼거렸어요. “오빠가 돌아오지 못하면 내 혼자 어떻게 살겠어요.” 박꽃은 가슴에 칠성비수를 푹 찔렀어요. 그의 하얀 저고리에서는 빨간 피가 즐벅이 슴배여나왔어요. 한편 흑룡에게 당해 바다물에 갈아앉던 칠성은 갑자기 “박씨를 써요. 오빠!” 하는 박꽃의 소리가 귀전을 때렸어요. 정신을 바짝 차린 칠성은 호주머니에서 박씨를 꺼냈어요. 순간 박씨가 글쎄 쭉쭉 늘어나 커다란 쪽배로 되지 않겠어요. 칠성은 제꺽 그 박씨쪽배에 올라 탔어요. 흑룡은 칠성을 바다물에 처박아 원쑤를 갚았다고 생각하고 교만하게 바다물에서 흐느적흐느적 물장구를 치면서 장난치고 있었어요. 칠성은 쪽배를 저어 흑룡의 뒤로 접근해갔어요. 그는 흑룡이 대가리를 물 우에 내밀며 돌아서려는 순간 비수로 눈깔을 푹 찔렀어요. “앗!” 흑룡이 눈통을 싸쥐고 땔땔 구을었어요. 바다물방이 허연 눈사태처럼 무너지면서 사처로 튕겼어요. 그때 칠성은 흑룡을 가로타고 앉아 련속 흑룡의 목에 칼질했어요. 흑룡은 바다물에서 마구 요동치며 먼 바다로 달아나려고 했어요. 칠성이 비수로 흑룡의 배때기에 칼을 대고 쭉 그으면서 밑으로 빠져나갔어요. 흑룡의 배때기가 쩍 갈라지면서 더러운 밸이 뻘건 피와 함께 바다물에 흘러내렸어요. 흑룡을 잡은 칠성은 박꽃이 기다릴 것 같아 박씨쪽배에 올라 부랴부랴 바다가로 저어갔어요. 그가 마을 뒤산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였어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박꽃은 가슴에 비수를 박은 채 피못 속에 쓰러져 있지 않겠어요. “박꽃아! 이게 웬 일이냐?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흑흑, 이게 무슨 짓이냐?” 칠성은 박꽃이 없이 혼자 살기 싫었어요. 절망에 빠진 칠성은 박꽃을 부르며 비수로 목숨을 끊었어요. 딸과 칠성을 찾아헤매던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은 마을 뒤산 꼭대기에서 피못 속에 쓰러져 있는 그들 둘을 찾아냈어요. 그들은 칠성과 박꽃을 뒤산 양지바른 둔덕에 묻어주었어요.         이듬해 봄부터 그들의 무덤에서 그들의 피를 머금은 듯한 꽃이, 이파리가 큼직큼직한 연분홍 꽃이 피였어요.         마을 사람들은 칠성과 박꽃의 혼이 그들의 피를 머금고 그 고운 꽃으로 피여났다고 하면서 그 꽃의 이름을 함박꽃이라고 불렀어요.    
266    수필 륙십청춘 닐리리 김장혁 댓글:  조회:1039  추천:1  2021-11-09
                                                         수필                 륙십청춘 닐리리                                                  김장혁       대학을 졸업하고 새파란 청춘으로 사회의 대문에 첫발자욱을 들여놓은 일이 어제 같다. 어느덧 40년 세월이 청산류수처럼 흘러 예순고개를 넘어 앞으로 나가노라니  여느 때보다 감회가 깊다.       파란만장한 인생행로에 선후하여 교원, 방송국 기자 사업을 하다가 리성권 전임사장의 방조하에 1997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 전근된 후부터 나의  인생이 바뀌였다. 특히 2002년부터 나는 편집부에서 17년 동안 편집사업을 하면서부터 사업과 문학창작에서 황금기를 맞이했다. 때문에 나는 22년 동안 몸을 담그고 사업해온 사랑하는 연변인민출판사에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군 한다.       연변인민출판사 지도부와 전국각지 조선족로인협회 지도일군들의 지극한 관심 그리고 력임 주필, 편집발행일군들의 다함없는 노력으로 하여1997년 1월에 창간된    《로년세계》는 중국조선족로인들의 정다운 《길동무》, 친근한 벗으로 되였으며 중국조선족로인협회친목회의 기관지로, 중국조선문잡지 가운데서 최고발행량을 자랑하는 잡지로 되였다. 나는《로년세계》주필로 10여년 동안 혼신을 다한 것으로 하여 긍지감을 느낀다. 나는《로년세계》를 로령화시대의 요구에 따라 로년군체를 리드해나갈 잡지로 꾸리기 위해 국내의 수많은 한문간행물과 전문도서를 구독한 외에 거의 해마다 자비로 한국에 나가 교보문고 등 서점에 붙박혀 우리 로인들에게 유익한 양생보건, 조선 력사 등에 관계되는 전문도서를 한 트렁크씩 구입해들여왔다. 어떤 때에는 30권을 넘어 중국 공항해관의 세금징수관을 넘느라고 여간 애를 떼지 않았다. 나는 편집들과 함께 수많은 전문도서를 읽은 후 로령화시대, 장수시대의 진입과 더불어 로인들에 제기된 양로방식문제, 복지문제, 의료위생보건문제, 주택문제, 소비문제, 재산상속권문제, 자녀문제, 재혼문제, 로인권익문제, 복장과 미용 문제, 오락관광문제, 교통문제 등 일련의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유익한 내용을 선제하여 잡지에 실었다. 또  60여명 장년과 로인 문인들로 특약저자대오를 조직하고 지방원고를 널리 편집해 잡지에 실었다. 한편 나는 직접 필을 들어 방문기, 론설문, 재담, 소품, 유모아, 수필, 수기 등 로인들이 즐겨보는 다양한 쟝르의 글을 써서 잡지내용을 실용적이고도 다채롭게 하였으며 로인독자들의 정신문화생활을 풍부히 하였다. 나는 아직도 아직도 17년 전인 2004년에 단동시에서 열린  《로년세계》발행회의를 잊을 수 없다. 유유히 흐르는 유서 깊은 압록강변에서 열린 회의에는 전국각지 조선족로인협회의 100여명 회장님들이 참가했다. 그번  《로년세계》발행회의와 문예오락은 단동지구 조선족들의 큰 잔치나 다름없이 일대 성황을 이루었다. 로인들은 자손들과 함께  한복을 떨쳐입고 발행회의에 오셨고 단동지구의 동항시, 관전현, 본계시 등지  조선족로인협회에서는 다채로운 문예공연을 하였다. 주필인 나는 편집부를 대표해 편집사업보고를 하였고 어르신들께 “황금마차” 노래를 한곡 선물하고나서 “《로년세계》는 저 유유히 흐르는 압록강처럼 영원히 어르신들의 다정한 길동무로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2004년《로년세계》발행량은 1만 5천 247부로 껑충 뛰여올랐다. 2006년 발행위원회 주임 윤진주, 부주임 전성자, 판공실 주임 박증범 등 동지들의 노력으로 발행량은 1만 6천 302부라는 최고기록을 창조하였다.  나는《로년세계》편집사업을 하면서 제일 힘들게 보낸 2004년과 2005년을 잊을 수 없다. 그때 나는 20대 중반 처녀실습생과 로편집 도합  2명을 이끌고  《로년세계》잡지 외에도 《농가》잡지까지 두개 잡지를 꾸렸다. 일손이 딸리는 형편에서 나는 《로년세계》와 《농가》 두 잡지의 주필이자 편집, 광고업무원으로 밤낮이 따로 없이 뛰였다. 어떤 때에는 정신을 잃고 달아다니다나니 짝짝신을 신고 단위로 뛰여가서 동료들이 웃음보를 터뜨릴 때도 있었다. 그때 진짜 밤  12시전에 자본 적이 없이 편집사업과 원고심열을 하면서 눈코뜰새 없이 보냈다. 장시기 날마다 밤낮 10여시간씩 책을 읽으면서 선제하거나 원고를 심열하고 편집사업을 하면서 활동량이 적어 체중이 180근으로 올라갔으며 고혈압, 고혈지, 고혈당 증상까지 나타났다. 너무 피곤해 눈에 항상 피지고 고기가 동공에까지 씌워 두번이나 눈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항상 너무 곤하고 혈소판이 갑작스레 내려가면서 단위 식당에서 코피를 줄줄 흘린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년세가 계시는 발행일군들이 출장가기 힘들어하는 형편에서 목단강시, 교하시 등지 발행회의에 달려가서 발행선전도 협조해주었으며 심양, 영구, 길림, 할빈, 청도 등지에 취재하러 갔다가 밤차로 달려와 집에도 들리지 않고 출근해 편집사업을 하였다. 어떤 때에는 된감기에 걸려 안해 보고 단위에 와서 점적주사를 놔달라고 부탁하고 점적주사바늘을 꽂은 채 편집사업을 견지했다. 길림신문사에서 수필문학상을 타게 됐는데도 나는 잡지를 제때에 내보내기 위해 시상식에도 참가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 보고 대신 타오게 한 적도 있다. 나의 머리 속에는 오직 잡지 편집의 사명감과 의무감 밖에 없었다.       나는《로년세계》주필사업을 하면서 항상 편집이 적은 사람고생을 많이 하였고 잡지를 제때에 출간하려고 시간에 딸리고 원고가 딸리는 고생을 많이 하였다.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 않으며《로년세계》편집사업을 한 것을 보람차게 생각한다.      《로년세계》잡지는 20년 동안 바로 이같은 력임편집발행일군들의 눈물겨운 지극정성에 의해 민족성과 지식성, 지방성, 실용성, 취미성이 있게 꾸려졌으며 해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조선족중로년들의 길동무로 친근하게 다가갔다.        나는 십여년 동안 《로년세계》광고사업을 직접 틀어쥐여 적지 않은 광고수입도 창조해 민족문화출판사업에 기여하였다. 모두 다 알다싶이 시장경제시대에 공익성문화사업단위에서의 광고사업은 아주 중요한 사업이며 또한 아주 간고한 경제사업이다. 나는 당시 《로년세계》주필 김철환선생과 발행위원회 주임 류옥철선생에게 제의해 갓 출간된《로년세계》광고를 개척하였으며 부지런히 광고도 얻어다 제공했다. 내가 갓 주필을 맡았을 때만 해도 림시공한테 광고를 맡긴데다가  광고에 대한 관리가 따라가지 못해 광고경제효과가 좋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대담히 출판사 지도부에 광고개혁을 할 것을 제기하고 림시공을 내보낸 후 직접 광고를 책임졌다. 광고사업은 여러 매체의 경쟁이 아주 심한 업종이였다. 또 락후한 특정경제환경에서 광고는 결코 마가을 길거리에 널린 가랑잎처럼 흔해 빠진 것이 아니였다. 편집사업에 눈코 뜰새 없이 보내면서도 나는 비가 오거나 눈풍설이 불어치거나 항상 잡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낯선 기업소와 병원을 찾아가서 총경리실과 원장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주필의 체면도 잃고 우리 잡지에 광고를 실으라고  동원하면서 바다에서 바늘을 건지듯이 광고를 하나, 하나 개척해나갔다. 달마다 수십명 의사들의 수십개 광고수개요구를 일일이 적어두었다가 빈틈없이 락착하였다. 또 감정투자를 아끼지 않고 광고주들의 생일, 결혼, 장례 등 대소사에 참가하면서 그들과 끈끈한 감정토대와 믿음을 쌓아왔다. 그리하여《로년세계》광고는 해마다 증가됐는바 2016년에는 60여개 광고주와 광고계약을 맺고 최고경제효과를 거두었다.      나는 《로년세계》가 진정 전국각지 조선족로인협회와 조선족로인들 속에 뿌리를 깊이 내린 한 발전전도는 영원히 찬란하리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      나는《로년세계》편집사업에 드바삐 보내면서도 우리 위대한 조선민족에게 자그마한 력사적 기념비라도 세워주고 조선족들 삶의 희로애락을 형상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민족의 사명감으로 필승의 신념을 안고 문학창작을 견지해왔다.      나는 어디로 출장 가든지 핸드 컴퓨터거나 필기장과 필을 가지고 다니면서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한번은 인천공항에서 글 쓰기에 도 정신 하다나니 그만 항공편을 놓칠 번 한 적도 있었다. 제일 한심한 것은 그렇게 밤낮 애타게 창작한 파일이 컴퓨터 50만자나 없어졌을 때 나는 너무나도 애나고 실망한채 맥이 풀려 한주일이나 다시 컴퓨터에 마주 앉지 못했다. 나도 칠정육욕이 있는 사람이다. 남들처럼 술도 마음껏 마시고 장기도 놀고 싶고 아내와 함께 명승고적을 유람하기도 싶었다. 허나 항상 “놀 걸 다 놀고 언제 글을 쓰겠는가고 자기한테 채찍질하면서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놀고 싶은 야마를 정복하고 기나긴 “글 감방”에 갇혀 글을 쓰고 또 썼다. 나는 40여 년 기나긴 세월 “글감옥”에 갇혀 우리 조선민족을 위해 뭔가 자그마한 기념비라도 끝내 만들어 냈다는 긍지감으로 해  인생행로에서 아주 보람차게 살았다고 가슴깊이 느낀다.       나는 40년 동안 문학창작을 해 선후해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대하소설 “진달래소야곡”, 3부작 대장편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와 “욕망의 천지”, “황천의 유령” 그리고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 수필집 “리별” 등 도합 20여권, 약 800여만자에 달하는 문학작품을 써냈다.       2018년 퇴직한 후 예순고개를 넘어도 나는 필을 멈추지 않고 두번째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을 창작했고 심양시 고려경제문화교류유한회사 전정환 총경리와 료녕민족출판사 권춘철 사장님의  지성어린 방조하에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과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을 잘 수정하고 보충해 위챗에 올렸다. 심지어 어떤 장절은 재창착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의 조글로와 위챗에 올렸는데 하여 국내외 수많은 독자들이 감상하고 댓글도 아주 많이 달아주면서 나를 고무해주었다. 이는 나의 창작에 대한 편달과 격려가 아닐 수 없다 . 근년에 나는 수많은 동화, 아동소설을 창작해 잡지와 "아동문학" 총서 , 한국 등 국내외 간행물에 발표했다. 김장혁 동화아동소설선집, 
265    중편아동소설 무지개를 쫓는 남북골 김장혁 댓글:  조회:1175  추천:0  2021-09-19
         중편아동소설       무지개를 쫓는 남북골                 김장혁                                                      1    훤칠한 키에 길죽한 얼굴, 짙은 눈섭 아래 카리스마 빛발치는 세귀군, 우리 주인공 애는 참 괴상하게 생겼지요. 특별히 이마와 뒤골이 앞뒤로 톡 튀여나왔다고 애들한테 “남북골”이라고 놀림을 당했어요. 엄마는 남북골이라고 놀려대는 애들만 보면 비자루를 쥐고 쫓아다니면서 두더거렸어요. “남북골이 어째? 머린 더 총명해. 우리 아들 너네보다 공부를 더 잘하지 않는가 두고 봐라!” 아빠와 엄마는 장차 아들애가 공부를 잘해 부모처럼 한뉘 시골에서 땅을 뚜지지 말고 출세하라고 이름도 글 "문문(文)"자에 빛날 "빈(斌)”자를 달아 문빈이라고 지었지요.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아주 총명했지요.한번은 엄마가 금방 접시에 담아놓은 앵도가 몽땅 없어진 걸 보고 “앵도를 벌써 다 먹었니?” 하고  물으니 남북골은 “앵두가 내 배 속에 줄을 쪽 섰어요.” 하고 엉뚱한 대답을 했지요.  그때 아빠와 엄마는 혀를 끌끌 찼죠. “문빈은 총명해서 장차 크면 공부를 잘할 거야.” 그런데 문빈은 자라면서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점점 개구쟁이로 번졌어요.그는 놀고 텔레비로 동화를 보는 데는 악돌이고 공부 하는 데는 배돌이였어요.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숙제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책가방을 훌 벗어 구들에 던지고는 방구석에 들어앉아 일본 동화 “오춰맨”을 보았어요. 조 남북골의 모양을 보세요. 세귀눈이 똥그래 싹은 이빨을  다 드러내고 웃고 떠들면서 텔레비를 들여다보는 조 모양, 앞이가 빠져 보기도 구차한 모양, 진짜 동화 속의 개구쟁이 모양새죠. “아니, 숙제를 하지도 않고 이게 뭐야? 맨날 동화만 봐?” 어머니는 일밭에서 돌아와 남북골의 그 꼴을 보고 책망하면서 다짜고짜 텔레비를 끄려고 들었어요. 남북골은 발딱 일어나 두팔을 쫙 벌리고 어머니 앞을 가로 막으면서 울상을 지었어요. “엄마, 요 보던 오춰맨만 보구 숙제 꼭 하겠습니다.” “안돼. 숙제부터 해야 해.” 오춰맨이 화면에서 훌 없어졌어요. "그저 숙제 밖에 모르면서.흥,텔레비에 숙제보다 더 볼게 많습니다." "뭐라니?" "난 오춰맨처럼 훨훨 날고 싶은데요." 어머니는 억이 막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쓸데도 없는 꿈을 작작 꿔라. 얼른 숙제를 하지 못하겠느냐?!"  오춰맨팬 남북골은 엄마한테 우멍한 세귀눈을 흘기며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고방으로 홀짝 들어가 미닫이를 쾅 닫아버렸어요. 개구쟁이 남북골은 어렸을 때 세상 웃기는 유치한 짓거리도 한 적이 한두번도 아니였어요.  유치원에 다닐 때 일인데요. 문빈은 글쎄 집 터밭에 들어가 뾰족뽀족 돋아난 옥수수 묘를 두줌이나 쏙쏙 뽑아가지고 들어와 어머니 앞에 쑥 내밀었어요. “엄마, 이걸로 채를 해주세요.” 어머니는 너무 억이 막혀 입을 딱 벌렸어요. “아이유, 얘를 어쩌겠니? 이건 옥수수묘야, 채를 해먹지  못해.” 어머니는 문빈의 남북골을 매만지면서 타일렀어요. “요렇게 옥수수묘를 쏙쏙 뽑아놓으면 이 옥수수는 죽어. 다신 뽑지 말라.” 그제야 문빈은 옥수수묘를 쳐들고 초롱초롱한 세귀눈으로 쳐다보았어요. “다시 밭에 심어놓으면 안됩니까?” “뿌리 없어 못 살아.” “사람들은 어째 뿌리 없어도 삽니까?” 문빈은 믿어지지 않아 옥수수묘를 쥐고 터밭에 나가 뽑았던 자리에 손으로 홈을 파고 되심어놓았어요. 그러나 며칠 후 땡볕을 맞아 옥수수묘는 시들어죽고 말았어요. 문빈은 남북골 뒤더수기를 긁적거렸어요.    소학교 1학년을 다닐 때 일이예요.  어느날 남북골은 학교에서 돌아와 집문을 뚝 떼고 들어서기 바쁘게 고함쳤어요.    “엄마!” “어째?”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는가 해 남북골의 우멍눈을 돌아보았어요.  “엄마, 오늘 달리기시합에서 내 몇등 했는지 압니까?” “그래 몇등 했느냐?” 남북골은 아주 자랑스레 말했어요. “2등 했어요!” “2등? 그래 몇이 달렸느냐?” “둘이 달렸습니다!” 어머니는 어이없어 아빠와 눈길을 마주치며 물었어요. “그래 진짜 둘이 달아서 2등 했니?” “예!” 아빠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어요. “둘이 달아 2등 했으면 꼴찌 아니냐? 어쩜 꼴찌를 다해?” 그러자 남북골은 사기 떨어져 코를 풀쩍거리며 엉엉 울었어요. 어머니는 아빠한테 눈을 흘기면서 남북골을 와락 끌어안았어요. “우리 2등 선수 문빈이, 어머니 응원하러 안 가도 참 잘 달렸어!” 아빠도 문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어요. “우리 문빈이 누구라고? 이후엔 꼭 수돌이랑 이기고 1등 할  거야! 그렇지?” 문빈은 남북골을 끄덕였어요. 그후 남북골은 거의 일요일마다 아침이면 아빠를 따라 바깥에 나가 달리기요령도 배우고 줄뛰기와 달리기도 꾸준히 했지요. 그의 달리기 속도는 눈에 뜨이게 빨라졌어요. 그래서 이듬해 학교 운동대회 때는 진짜 수돌이랑 이기고 1등을 하지 않았겠어요. 그후 남북골은 텔레비에서 오춰맨을 만나게 됐지요. 그런데 그는 완전히 오춰맨팬이 돼버려 밥술을 놓기 바쁘게 텔레비를 켜서 아빠와 어머니한테 책망을 받군 했지요.  2 남북골은 오춰맨을 본 다음부터 모험을 하기 좋아했어요. 여름방학이 되자 그는 고향의 깎아지른 검 같은 칼산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어요.  (저 칼산 꼭대기는 어떻게 생겼을가? 저 아츠란 꼭대기에 올라가면 참 멋있을 거야.) 그는 먼저 아빠를 졸라 몇번이나 칼산에 가서 등산기본공을 배워냈어요.  “아빠, 저 꼭대기에 올라갑시다.” 그러나 아빠는 단마디에 거절했어요. “안돼, 절벽이 너무 가파로워 위험해.” “나도 이젠 등산재간을 배워냈는데요.” “그래도 안돼. 아직 멀었어. 이담 큰 담 다시 보자.” 남복골은 아빠가 아니꼬운 세귀눈을 흘기면서 뒤더수기를 긁적거렸어요. 며칠 후 남북골은 고개를 갸우뚱하였어요.  “아빠를 믿고서야 언제 칼산 꼭대기에 올라가겠니?” 그는 수돌이랑 순희랑 은숙이랑 데리고 고향에서 한 1킬로메터 떨어진 서쪽의 칼산으로 갔어요. 칼산은 이름 그대로 칼날을 세로 꽂아놓은 것처럼 절벽을 깎아세운 산이였어요. 남북골은 수돌이랑 돌아보았어요. “오늘부터 우리 등산련습을 하자.” “무슨 소리야. 산에 와서 그저 놀자더니. 참.” 수돌은 아츠란 절벽을 쳐다보면서 도리머리를 잘래잘래 저었어요.  “저 절벽을 봐라. 얼마나 가파로운가.” 순희도 맞장구를 쳤다. “그만두자. 다리 바들바들 떨린다. 쟤, 무슨 도깨비 짓을 하자고 조래?” 남북골은 우멍한 세귀눈을 흘기면서 순희를 쏘아보았어요. “겁쟁이 같은 계집애라구야.” 뒤이어 그는 수돌을 돌아보면서 아버지가 가르쳐준 말로 뒤말을 이었어요. “저 산꼭대기에 보물이 있을지 누가 아니? 우린 어려서부터 대풍랑 속에서 단련해야 해. 겁나면 오늘 칼산에 온바하곤 절벽에서 올라가지 말고 숨박곡질이나 놀다가 가자.” 그러자 수돌이와 순희는 마주 눈길을 마주 치더니 머리를 끄덕였어요.  남북골은 고의로 돌틈에 난 나무가지를 붙잡고 세로 누운 절벽에 한발작한발작 올라가 숨었어요. 수돌은 그래도 남북골을 찾으려고 따라 올라오는데 순희랑 올라올 념을 하지 않고 아직도 산기슭에서 놀고 있었어요. 바빠맞은 남북골은 산기슭으로 내려갔어요. 그는 은숙이랑한테 다가가 아빠가 자기를 가르친대로 먼저  등산요령과 주의사항을 말했어요. “얘들아, 등산요령을 알면 절벽도 차차 무섭지 않아. 뭐나 단술에 배부를 순 없어.” 남북골은 절벽에 엎디여 바라오르면서 시범을 보였어요. “내 아빠 말한대로 등산하면 돼. 절벽에 오를 때 먼저 앞의 절벽으로 올라갈 수 있겠는가 잘 올려다 보고 올라가야 해.  만약 절벽이 가파로와 못 올가갈 거 같으면 미리 다른 곳으로 가서 올라가야 해.” 그러자 녀자애들은 모두 자기 앞을 쳐다보았어요. “붙잡고 올라갈 나무가지랑 돌틈이랑 있는가도 잘 살펴봐라.” 남북골은 아빠처럼 차근차근 설명해주었어요. “절대 돌멩이나 콩알만한 싸락돌을 밟지 말아야 해.” “왜?” 남북골은 의아해하는 애들을 돌아보고 설명했어요. “돌멩이나 싸락돌을 밟으면 발이 미끌어서 위험해!” “오-” 녀자애들은 머리를 끄덕였어요. “또 우에 애가 돌을 밟아 굴러내려가면 뒤에서 오르던 애들이 위험해. 만약 돌을 밟아 아래로 굴러내려가면 ‘돌이 굴러내려간다!’고 고함쳐야 해. 그래야 아래 애들이 돌을 피하지.” 녀자애들은 연신 머리를 끄덕였어요. “신바닥을 이렇게 바위에 딱 붙이고 나무나 돌틈을 꽉 부여잡고 한걸음, 한걸음 기여오르면 안전해. 산 아래를 보지 말라. 그럼 겁나지 않아.” 순희는 문빈의 말대로 해보고 머리를 끄덕였어요.  그러나 순희는 보름달 같은 얼굴에 볼우물을 옴폭 파면서 종알거렸어요. “그런데 문빈아, 넌 너무 엉뚱한 짓을 하는게 흠이야! 언제 큰 일 칠지 몰라.” 은숙도 외씨 같은 걀죽한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종알거렸어요. “맞아. 걔는 전문 무서운 일만 골라 하는 모험가야. 무슨 일을 칠지 몰라.” 이때 절벽에서 내려가다가 수돌이 불시에 새된 소리를 질렀어요. “뱀이야! 저 뱀 봐라!” 남북골이 달려가 보았어요.  글쎄 얼룩덜룩 무뉘 간 독사가 바위틈에서 쪼르르 기여나왔어요. 그 놈은  대가리를 뻣뻣이 쳐들고 새빨간 혀를 날름거리면서 애들한테 달려들었어요.  “어마나!” 은숙이랑 녀자애들은 질겁해 손으로 입을 감싸쥐고 뒤로 물러섰어요. “때려죽여라!”  “죽여!” 남북골이 돌멩이를 들어 독사한테 뿌렸어요. 수돌이도 합세해 돌멩이질했어요. 독사는 질겁해 황급히 바위틈으로  기여들어가버렸어요. 수돌은 녀자애들 앞에서 턱을 쳐들고 우쭐거렸어요. “우리 독사를 잡아 구워 먹자!” 그는 나무꼬챙이를 찾아들고 독사가 들어간 바위돌 틈을 마구 뚜졌어요. 남북골이 말렸어요. “얘, 뚜지지 말라. 괜히 물리겠다.” 은숙은 기겁해 재촉했지요. “옳다. 빨리 산에서 내려가자.” 수돌은 계속 뚜지면서 내려갈 념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남북골은 수돌의 손에서 나무꼬챙이를 빼앗아 훌 던지고 억지로 수돌의 손을 꼭 잡아끌면서 산에서 내렸어요. 그후 남북골은 온 마을의 애들을 몽땅 데리고 매일이다 싶이 칼산에 와서 숨박꼭질을 놀았지요. 그리하여 은숙이랑 순희랑 녀자애들마저 경사도가 60도는 되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도 나무가지나 바위돌틈을 붙잡고 한걸음한걸음 기여오를 수 있게 됐어요.  남북골은 끝내 오랜 꿈대로 칼산의 절벽 꼭대기에 올라갔어요. 그는 시원한 산공기를 가슴 한껏 마시면서 고향의 산천을 내려다보았어요. 일망무제하게 파도치는 록색의 벼바다,싱그러운 향기를 풍기는 과수원… 남북골의 어린 가슴이 탁 트이면서 한껏 부풀어올랐어요. 그의 가슴 속에서는 또 새로운 꿈이 머리를 탁탁 쳤어요.  3 칼산 중턱 절벽에는  움푹하게 들어간 곳이 있었어요. 애들은 일여덟평방되는 움푹한 그 곳을 “절벽집”이라고 불렀지요. “절벽집” 우에는 너럭바위가 추녀처럼 건뜻 들려 있어 따가운 해볕과 을씨년스러운 비바람까지 막아주었지요. 애들은 절벽에서 내려오면서 “절벽집”에 들어가 한쉼 쉬였는데요. 그때면 남북골은 어른들한테서 들은 옛말을 구수하게 해주었지요. 그보다 두세살씩 더 큰 애들도 코를 풀쩍거리면서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던 멀고 먼 옛날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군 하였어요. 그런데 저게 뭐예요. 애들이 금방 절벽에서 내려오려는데요. 갑자기 맑은 하늘에 먹장구름이 야수들처럼 칼산에 몰려왔어요. 먹장구름 속에서 커다란 불뱀이 뻘건 혀로 칼산을 덮쳤어요. 꽈르릉 꽝! 꽝! 하늘땅을 진동하며 우뢰가 절벽을 들었다 놨다 했어요. 뒤이어 호두알만한 비방울이 허연 절벽에 후두둑후두둑 떨어졌어요. 애들은 부랴부랴 절벽 밑에 “절벽집”에 오구구 모여들어  해비를 피했어요. 드디여 추녀 같은 절벽천정에서 실폭포들이 쏟아져 발 밑의 아찔한 절벽 아래로 흘러내려갔어요. 웬 일일가요? 먹장구름이 동쪽으로 밀려가더니 한참 내리던 해비가 뚝 멎었어요. 서쪽 하늘에는 언제 흐렸던가 싶이 밝은 해가 얼굴을 내밀었어요. “야! 무지개!” 수돌이 소리치면서 일어나 두팔을 활짝 펼쳤어요.    애들이 동녘하늘을 보니 진짜 아름다운 칠색무지개가 멋있게 걸려 있지 않겠어요.  신선화백이 그림을 그려놓은 듯한 칠색무지개는 북쪽뿌리를 고향의 태평강에 밖고 남쪽뿌리를 저 멀리 남쪽벌 부르하통하에 밖고 반공중에 반달처럼 걸려 있지 않겠어요. 그때 애들은 처음 그렇게 아름다운 칠색무지개를 가까이에서 보았어요. “야, 멋지구나!” 애들은 칼산에서 환성을 질렀어요. 그런데 칠색무지개가 점점 동쪽으로 움직여갔어요. “칠색무지개 저멀리 동쪽으로 달아나버리면 보지 못하겠다.” 은숙이 근심하였어요. 량미간을 쪼프리던 남북골이 발딱 일어나면서 옆구리에 찼던 권총을 빼들고 고함쳤어요. “우리 저 무지개를 쫓아가 보자!” “옳다! 우리 무지개 가까이에 가 보자!” 애들은 고함치며 엉덩이걸음으로 절벽 아래로 내려갔어요. 애들은 길에 나서자마자 남북골을 따라 무지개를 쫓아 달리기 시작하였어요. 닫다가 진흙탕에 넘어지면 일어나 계속 쫓아갔어요. 그러나 아무리 쫓아가도 무지개가 점점 멀리 달아나 지척에 두고서도 붙잡을 수 없었어요.  그러나 아름다운 칠색무지개는 졸지에 신기루처럼 사라졌어요. 그제야 애들은 모두 실망한 얼굴로 물앉아 할딱거렸어요. "야, 날개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겠니?" "글세, 말이야." "훨훨 날아가 무지개를 쫓아가보면 얼마나 좋겠니?" 애들은 날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면서 계속 무지개를 쫓아갔어요. 진짜 꿈도 많은 개구쟁이들의 꿈은 얼마나 황홀한가요?                                 4    남북골 문빈은 아직도 무슨 엉뚱한 꿈을 꿀지 몰라요.   엄마는 남북골한테서 무지개를 쫓던 이야기를 듣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타일렀어요.     “문빈아, 등산도 하고 무지개도 쫓고 달도 쫓아라. 그런 모험이랑 꿈이랑 필요해. 훌륭한 과학자로 될 꿈을 실현하려면 맨날 허황한 모험을 하기보다 먼저 공부부터 잘해야 해.” 그때부터 문빈은 방학숙제도 제때에 하고 의문나는 우주의 비밀은 아빠나 어머니한테서 가르침을 받았어요. 어느날 달 밝은 밤에 남북골은 공부를 하다가 창문가에 다가가 턱을 고이고 하늘에 걸린 달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어요. 갑자기 그는 바깥으로 쌩드르르 달려나가더니 마른 해바라기대로 달을 찔러 따 보려고 마구 휘둘러댔어요. 해바라기대로 별도 푹푹 찔러 보았어요.  그는 키 모자란다고 돼지우리 꼭대기에 올라가 발뒤꿈치를 쳐들고 해바라기대로 달에 대고 날창질을 푹푹 해댔어요. 그 모양을 보고 아빠가 새된 소리를 질렀어요. “얘! 떨어지겠다. 어서 내려와!” “아빠 도와주겠습니까? 달과 별을 찔러 따려고 그러는데요. 아빠 목마 타고 찌르면 달을 딸 수 있겠는데요.” 아빠는 너무 어이없어 입을 딱 벌렸어요. “해바라기대로 어떻게 달과 별을 딴다고 그래? 어림도 없어. 어서 내려와.” 그러나 남북골은 계속 해바라기대로 밤하늘에 대고 날창질을 했어요. 한참 역사질해도 안되자 남북골은 도리머리질하면서 돼지우리에서 내렸어요. 남북골은 그날 저녁에 잠자리에 들었어도 요리뒤척 저리뒤척 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이튿날 달밤이였어요. 밤하늘에는 구리쟁반 같은 보름달이 두둥실 떠서 대낮처럼 환히 비추었어요 남북골은 글쎄 해바라기대를 노끈으로 허리에 질끈 매더니 마을 복판에 있는 늙은 비술나무에 바라올라갔어요.  그는 비술나무 꼭대기에 올라가자 허리에서 해바라기대를 끌러내 달밤 하늘의 달을 겨누고 콕콕 찔러댔어요. 그런데 아무리 찔러도 달은 떨어지지 않았어요. 몇번 더 콕콕 찔러보더니 뒤더수기를 긁적거렸어요. “어째 안될가? 달이 해바라기대 끝에 콕콕 맞히는데. 에잇, 참.” “얘, 해바라기대 어떻게 달에까지 닿는다고 그래? 어서 내려오라.” 어느 결에 아빠가 비술나무 아래에 나타났어요. 남북골은 실망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젓더니 해바라기대를 훌 내리던지고 비술나무에서 내려왔어요. 아빠는 문빈을 데리고 집으로 오면서 차근차근 말해 줬어요. “문빈아, 달나라에 가고 달을 따려면 우주과학지식을 많이 배워야 해. 달은 아마 여기서 칼산까지 가는 거리  몇억배나 더 높이 떠 있을 거야. 해바라기대로 어떻게 저리 높이 걸린 달을 떨어드뜨린다고 그래?” 남북골은 해바라기대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만 폴폴 내쉬였어요.그러나 그는 아빠 말을 곧이듣지 않고 절대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내 꼭 달을 따다가 우리 마을 하늘에 척 걸어놓지 않는가 보십시오." "달이 원래 하늘에 걸려있는데 우리 마을 하늘에 걸어서 뭘 해?" "아버진 모릅니다. 우리 마을 하늘에 저 달을 걸어보십시오. 얼마나 온 마을이 환한가?" 며칠 후 달 밝은 밤에 남북골은 또 수돌을 데리고 칼산 꼭대기에 올라갔어요.  그는 칼산 꼭대기 너럭바위 우에서  수돌의 어깨에 목마를 타고 올라가 해바라기대로 달과 별에 대고 날창질을 폭폭 해댔어요. 그러나 달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어요. 수돌이 황급히 소리쳤어요. “아이구. 맥이 없다. 어서 내려!” 남북골은 수돌의 목에서 스르르 내렸어요. 그는 맥이 풀려 너럭바위에 물앉으며 말했어요. “달이 너무 커서 안떨어지는 거 같아." 남북골과 수돌은 맥없이 너럭바위에 핸들 드러누워 달과 별을 말똥말똥 쳐다보았어요. “어떻게 하면 달을 따다가 우리 마을 하늘에 척 걸어놓을가?” 수덜은 도리머리를 저으며 한바탕 웃어댔어요. "호호호." 집에 돌아온 후 문빈은 아빠와 어머니를 보고 엉뚱한 말을 했어요. “아빠, 달과 별이 확실히 하늘에 높이 걸렸더구만요.” “그래, 일본 동화 오춰맨에서 보지 못했느냐? 괴물은 달보다도 더 먼 외계 별에서 오지 않았고 뭐냐?” 문빈은 외까풀눈을 깜빡거리며 물었어요. “그럼 달보다 별이 더 멀리 있는가요?” “그래. 하늘만큼 멀리 있어서 작아 보이지. 빛도 희미할 뿐이구. 별은 달보다 몇천만배나 더 커.” 남북골은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며 당차게 말했어요. “칼산에 올라가 안되면 말라지. 내 크면 꼭 우주비행사 돼 오춰맨처럼 우주에 씽씽 날아올라가 꼭 달을 따오지 않는가 보세요." 어머니는 그때라고 문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말했어요. “그래. 우주비행사로 되려면 몸도 튼튼히 단련해야 하고 우주과학지식을 많이 배워야 해.” 남북골은 머리를 끄덕였어요. 그후부터 그는 학교에 가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선생님과 자꾸 하늘나라 해랑 달이랑 별이랑 요것 조것 자꾸 캐물었어요.그리고 하학해 집에 돌아오면 선생님과 엄마의 말씀대로 텔레비랑 덜 보고 숙제부터 척 해놓고  우주과학지식책을 골똘히 보기 시작했어요. 그는 달 밝은 밤이면 창문가에 다가가 두 손으로 턱을 고이고 뭇별이 총총하고 달도 밝은 하늘을 쳐다보며 황홀한 꿈을 꾸었어요. (아, 저 뭇별이 총총한 하늘나라는 도대체 어떤 세상일가? 오춰맨처럼 날개라도 있었으면 저 하늘나라에 훨훨 날아올라갔으면 얼마나 좋을가?)        5 봄바람도 세찬 봄날에 남북골은 또 황홀한 꿈을 꾸었어요.  파란 하늘에 뛰운 연에 동동 매달려 하늘을 훨훨 날아가고 싶었어요.  수돌은 남북골이 손에 쥔 조꼬만 연을 보고 도리머리질했어요. “얘, 고 죄꼬만 연에 매달려 어떻게 하늘로 날아올라간다고 그래?” 그러나 남북골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뭐나 처음부터 다 되겠느냐? 자꾸 해보느라면 언젠가는 꼭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 거야.” 문빈은 빳빳한 연줄을 잡아당기다가 바람이 셀 때 연줄에 매달려 보았어요. 툭! 연줄이 툭 끊어지면서 연이 곤두박질치더니 땅바닥에 쿵 처박혔어요. 저쪽에서 구경하던 아빠가 코를 싸쥐고 허구푼 웃음을 웃었어요. “어이구, 방귀를 타고 서울로 간다고나 해라!” 그러나 엄마는 말렸어요. “비웃지 마세요.” 남북골은 다 망가진 연을 내동댕이쳤어요. 이번에는 엄마를 보고 용돈을 달라고 했어요. “뭘 하려고?” 남북골은 갈망에 찬 눈길로 엄마를 쳐다보았어요. “고무풍선을 사려고 그래요.” “그래?” 엄마는 아들이 뭘 엉뚱한 걸 하려고 시도해도 절대 막지 않았어요. 남북골은 엄마한테서 용돈을 받아쥐자 수돌을 데리고 시내 백화상점에 가서 커다란 고무풍선을 사가지고 칼산을 바라고 줄달음쳐 갔어요. “얘, 또 뭘 하려는 거야?” 수돌이 뒤따라 달려가며 궁금해 물었어요. “고무풍선에 매달려 칼산에 올라가보자.” “에이구, 너네 아빠 또 방귀를 타고 서울로 간다고 하겠다.” 수돌은 제자리에 주춤 멈춰서더니 할딱거렸어요. 남북골은 돌아서더니 나무라는 눈길을 날렸어요. “얘, 날아도 보지 않고 왜 그래? 칼산에 날아올라가면 달나라에 날아갈 푸른 꿈도 성공할지도 몰라.” 수돌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어요. “꿈도 꾸지 말라. 그 죄꼬만 고무풍선에 매달려 어떻게 칼산에 오른다고 그래? 달나라에까지 날아간다는 건 꿈도 꾸지 말라. 커다란 드론이나 우주비행선이면 몰라도. 흥.” 그러나 남북골은 우멍한 세귀눈에 확신에 찬 빛이 어렸어요. “텔레비에서 보지 못했어? 숱한 사람들이 커다란 고무풍선에 매달려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걸.” 수돌은 말렸어요. “안돼. 텔레비에 난 고무풍선은 아주 큰 거야. 우리 요 죄꼬만 고무풍선은 어림도 없어.” 남북골은 고집을 쓰면서 수돌을 마구 끌고 칼산에 달려갔어요. 칼산의 푸른 이끼 낀 절벽 밑에 이르자 남북골은 고무풍선을 꺼내 공기주입꼭지에 입을 대고 “푸- 푸-” 뿔구기 시작했어요. 한참 후에 고무풍선은 항아리만큼 크게 뚱뚱 뿔어났어요. 남북골은 고무풍선 아구리를 맨 끈을 꼭 잡고 고무풍선을 활 놓았어요. 고무풍선은 둥둥 떠올라갔어요. “와-싸-” 남북골은 끈을 꽉 잡고 폴짝 뛰면서 고무풍선에 매달렸어요. 탕! 고무풍선은 땅바닥에 떨어져 풍비박산이 났어요. 그 바람에 남북골은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어요. 남북골의 꿈도 산산이 깨졌어요. 그제야 남북골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어요. “이담 커다란 고무풍선을 타고 칼산 상공에 올라가 보자.” 수돌은 싹아빠진 남북골의 앞이를 들여다보며 머리를 끄덕였어요. 남북골과 수돌은 고무풍선을 타고 칼산에 오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어요. 며칠 후 어느 하루 저녁, 남북골은 창문가에 가서 턱을 고이고 칼산의 톱날 같은 절벽에 두둥실 걸려 있는 은쟁반 같은 달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또 꿈에 잠겼어요. 한참 후 그는 아빠한테 남북골을 돌리더니 엉뚱하게 물었어요. “아빠, 우리도 새처럼 날개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응? 또 엉뚱한 꿈을 꿔?” 남북골은 초롱초롱한 세귀눈으로 아빠를 바라보았어요. “날개만 있으면 나도 칼산에 훨훨 날아오르고 달나라에도 훨훨 날아갈 수 있겠는데요.” 아빠는 남북골을 쓰다듬어 주었어요. “에이구, 요 남북골아, 사람은 날개 없어도 하늘을 날 수 있어.” 남북골은 궁금한 눈길로 아빠를 쳐다보았어요. “텔레비에서 보지 못했어? 우주비행선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갈 수 있잖아?” 남북골은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아빠는 놀음감우주비행선도 사주지 못하면서. 흥, 언제 나한테 우주비행선이 차례지겠어요.” 그는 창턱에 두 팔꿈치를 짚고 턱을 고이더니 막연한 눈길로 밝은 달을 쳐다보며 종얼거렸어요. “일본 판타지의 오춰맨처럼 하늘을 마구 날아다닐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어머니는 문빈의 막연한 꿈을 깨고 싶지 않았어요.   “문빈아, 공부를 잘해서 크론복제기술을 배워내면 네 겨드랑이에도 날개를 달수 있을 거야.” “크론복제기술?” 남북골은 호기심에 차 초롱초롱한 세귀눈으로 어머니 얼굴을  말똥말똥 쳐다보았어요. 어머니는 머리를 끄덕였어요. “그래. 복제기술을 배워서 날개 달린 사람을 복제해낼 수 있어.” 남북골은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며 반신반의했어요. “엄만 혹시 판타지에서 나오는 얘기를 하지 않아요? 건 환상에 지나지 않는 거 같은데요.” 그러나 어머니는 확신에 찬 말을 했어요. “아니야, 환상이 아니야.과학환상이야. 크론복제기술은 유럽에서 먼저 발견했어. 크론복제기술로 나는 사람도 복제해내고 독수리 날개도 복제해 사람들한테 달 수 있어.” 남북골의 판들거리는 포도눈에는 호기심이 차넘쳤어요. “네- 참말 신기한 클론기술이군요.” 그때라고 엄마는 더 높은 요구를 제기했어요. “이제부터 영어공부랑 잘해라. 그래야 이담 유럽에 류학가서 크론복제기술을 배워오지.” 남북골은 발딱 일어났어요. “네, 이제부터 영어공부 잘해 이담 꼭 유럽에 가서 크론복제기술을 배워내야지.” 남북골은 싹은 이빨이 다 들여다보이게 입을 함박만큼 벌리고 어머니와 손바닥을 힘차게 탁 마주쳤어요. 그날 밤 문빈은 창문으로 집안을 환히 비추며 들어온 달을 꼭 끌어안고 요리궁싯 조리궁싯 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그는 달나라로 날아오를 황홀한 꿈을 꾸고 또 꾸었어요. “언제면 달나라로 날아가 달을 따다가 우리 마을 하늘에 걸어놓을가?”                                                            6    은빛달빛도 밝은 달밤에 문빈은 수돌을 데리고 칼산 절벽을 한발자욱한발자욱 톺아 올라갔지요.  칼산 꼭대기에 올라서서 절벽 아래를 바라보니 은빛달빛이 깔린 고향 산천은  얼마나 신비했는지 몰랐어요. 남북골과 수돌은 입에 손을 모아대고 높이 웨쳤어요. “야- 호-” 그들의 웨침소리는 절벽에 메아리치며 길게 메아리쳤어요. 남북골은 아빠한테서 배운대로 두 팔을 벌리며 날개질하는 시늉을 했어요. 이게 웬 일인가요? 문빈이 두 팔로 날개질하자 몸이 건뜻 들리며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겠어요. 너무 이상해 두 팔을 여겨보았어요. 두 팔이 날개로 변하지 않았겠어요. “이젠 나도 새처럼 날 수 있어!" "야-호-” 문빈은 세차게 날개질해 절벽 아래로 씽씽- 날아내려갔어요. 수돌이 칼산꼭대기에 서서 입에 두 손을 모아대고 소리쳤어요. “문빈아, 나도 날아보자!” “오- 그래. 너도 크론기술을 배우면 날 수 있어-!” “응- 어서 날개를 달라.” 문빈은 힘껏 날개짓을 해 절벽 꼭대기에 있는 너럭바위 우로 날아갔어요. 그는 수돌을 껴안고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하늘로 솟아올랐어요. 문빈이 껴안았던 두 팔을 살며시 풀었어요. 순간 수돌은 오춰맨처럼 두 팔을 쫙 벌리고 훨훨 하늘을 자유롭게 날지 않겠어요. “야-호-” “우린 자유로운 오춰맨이야!” 그들은 환성을 지르며 커다란 독수리마냥 칼산 꼭대기를 자유롭게 나래쳤어요. 문빈과 수돌은 눈깜짝할 사이에 칼산에서 날아내려 고향 마을로 훨훨 날아갔어요. “어머니!” “아빠!” 그들의 부름소리를 듣고 아빠와 엄마는 놀란 눈길로 달빛 밝은 하늘을 쳐다보았어요. “얘들아, 떨어지겠다. 주의해라!” “근심말아요. 우리 달나라에 날아갔다 오겠어요.” 남북골과 수돌은 날개를 힘차게 파닥이며 금쟁반 같은 달을 향해 훨훨 날아갔어요. 귀에서는 씽- 씽- 칼바람소리가 무섭게 스치고 지나갔어요. 갑자기 거세찬 돌개바람이 소용돌이쳤어요. 칼산 꼭대기 소나무도 너럭바위도 글쎄 하늘로 마구 휘말려 날아올라가지 않겠어요. 돌개바람은 한창 날고 있는 문빈과 수돌이 쪽으로 덮쳐왔어요. 문빈과 수돌이 아무리 날개질을 힘차게 해도 돌개바람을 피하지 못했어요. 씽-씽- 돌개바람은 문빈과 수돌을 채색구름 속에 휘말아 들여갔지요 쓍-쓍- 채색구름은 애들을 휘말아 안고 하늘 높이 올라가며 소용돌이쳤지요. 꽃구름도 빙글빙글 돌았어요. 금빛 해살도 빙글빙글 돌아갔어요. 저게 뭔가요? 꽃구름 속에 신기루 우뚝 솟았는가요? 숱한 뾰족뽀족한 유럽식 고층건물이 구름 속에 안개 속에 우중충한 수림처럼 우뚝우뚝 솟아 있지 않겠어요. 문빈과 수돌은 거리에 살짝살짝 내렸어요. 노란 머리, 하얀 머리가 길거리에서 흩날렸어요. 파란 눈, 노란 눈들이 판들거리며 이상한 눈길을 보냈어요. 동방에서는 들어보기 힘든 말로 지껄이는 것이였어요. 번들이마 늙은이가 안경을 춰슬리고 문빈과 수돌을 보고 엄지를 척 내들었어요. “당신은 누군가요?” 문빈의 물음에 번들이마는 프랑스어로 말했어요. “크론박사의 제자 마이컬박사야.” 문빈과 수돌은 프랑스어를 배운 적이 없어 마이컬박사 말을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마이컬박사가 영어로 말해서야 남북골은 평소에 영어를 배워둬서 간신히 두루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마이컬? 마이컬 쵸단은 롱구선순데요.” 마이컬 박사는 엄지를 척 내들었어요. “O-K-! 바로 나야. 난 나이 많아 롱구 치지 않고 크론박사를 따라 크론복제기술을 전공했지. ” 문빈과 수돌은 기뻐 어쩔줄 몰랐어요. “마이컬박사님, 우리한테 크론복제기술을 배워주세요.” “걸 배워 뭘해?” 문빈은 남북골을 쳐들더니 유럽 거리가 떠나가게 우렁차게 말했어요. “우린 크론복제기술을 배워 날개를 달고 달나라에 날아갈래요.” 수돌도 가슴을 쑥 내밀고 씩씩하게 말했어요. “날개 있는 사람 수태 만들어 달나라랑 우주랑 정복할테예요.” 마이컬박사는 남북골을 매만져주면서 타일렀어요. “너희들은 이미 날개도 있고 하늘로 씽씽 날지 않았느냐? 크론복제기술을 배워 뭘해?” 문빈이 너덜거리는 날개를 펴보이며 어처구니 없어 말했어요. “이런 날개로 어떻게 달나라에 가요?” 수돌도 한마디 보태어요. “별나라에 가긴 어림도 없어요. 대기층을 벗어나기 전에 날개가 다 다슬겠어요.” 마이컬박사는 번들이마에 돋은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말했어요. “O-K-! 그래, 너희들 날개로는 우주로 날아가지 못해. 지구 대기층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날개가 다 타버릴 거야.” 문빈과 수돌의 까만 포도눈들에는 실망의 빛이 어렸어요. 문빈은 맥이 빠져 두 날개마저 축 처졌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늘로 날아갈 수 있는가요? 크론복제기술을 배우면 안되는가요?” 마이컬박사는 문빈과 수돌을 데리고 자기 크론복제기술지하연구실에 데리고 들어갔어요. “봐라. 우주를 정복하자면 여러가지 지식을 배워야 해. 이제부터 모험만 탐내지 말고 영어랑 프랑스어랑 생물학이랑 우주천문학이랑 로케트기술이랑 잘 배워야 해. 알만해?” “예.” 문빈과 수돌은 마이컬박사의 말을 완전히 리해할 수는 없었어요. 그러나 대답만은 우렁찼어요. 동녘 하늘에는 칠색무지개가 곱게 걸렸어요. 그런데 찬찬히 여겨보니 이전에 쫓아가던 고향의 칠색무지개 아니겠어요. (웬 일이지? 벌써 고향에 돌아왔어?) 검푸른 칼산 절벽이 발아래 뭉게뭉케 피여나는 먹장구름 속에 우뚝 솟아 있지 않겠어요. 우르릉 꽝, 꽝! 갑자기 우뢰가 지동치고 번개가 번쩍였어요. 돌개바람이 사납게 불어쳤어요. 채색구름이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어요. 유럽 시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어요.. 마이클 박사는 번들이마의 땀을 닦더니 날개를 퍼덕여 칠색무직개를 타고 하늘로 씽-날아올라가지 않겠어요. “우리도 무지개를 타고 날아올라가자!” 저게 뭔가요? 남북골과 수돌이 아무리 두 팔을 퍼덕여도 더 날지도 못했어요. 아니, 글쎄 무지개미끄럼대를 타고 쭉 미끌어져 칼산에 마구 떨어져 내려갔어요 갑자기 별나라에서 엄청 세찬 돌개바람이 휙-휙- 불어쳤어요.남북골과 수돌은 돌개바람에 휘말려 밤하늘에 날려올라가버리기 시작했어요. 저게 뭔가요? 엄청난 칼산도 소용돌이에 휘말려 훌 올라가버렸어요 달과 별들도 마구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새까만 함정으로 빨려들어가지 않겠어요.  “마이컬박사님!” “빨리 우릴 구해주세요!” 마이컬박사는 밥하늘에 휘말려 올라가는 남북골과 수돌을 보고 발을 동동 굴렀어요. "아차, 이걸 어쩌나? 블랙홀에 휘감겨들었구나!" “빨리 날개 달아주세요!”  … “어서 일어나라.” “얘, 또 꿈을 꿨는 모양이구나.” 엄마가 문빈을 깨웠어요. 문빈은 식은 땀이 송골송골 내돋은 남북골을 긁적거리면서 금방 꾼 꿈이야기를 했어요. 참말 우습고도 허황한 꿈에 지나지 않았지요. 그러나 환상과 모험적인 꿈이 있는 남북골은 참말 멋있었어요. 모험적인 꿈이 있고 시도하는 것이 있는 남북골은 그만큼 장차 이루는 것도 많게 될 것이죠. 엄마는 남북골을 쓰다듬어주면서 말했어요. “문빈아, 네 꿈이 허황한 꿈일지도 몰라. 허나 꿈마저 없는 애는 불행한 애야. 전도없는 애야. 엉뚱한 꿈대로 무지개도 쫓고 달나라에도 날아올라가라.” 남북골은 머리를 끄덕였어요. 그는 어머니 손을 잡고 달밝은 밤하늘에 하염없이 쳐다보면서 종알거렸어요. “어머니,장차 꼭 꿈대로 크론복제기술로 복제한 오춰맨과 함께 우주비행선을 타고 달나라 별나라로 날아가보고야 말겠습니다.” 
264    중편동화 게으름뱅이 차차 김장혁 댓글:  조회:1127  추천:0  2021-08-27
                                    중편동화                게으름뱅이 차차                                                                                                       김장혁                                               1      아름드리통나무들이 꽃구름을 찌르는 원시림이예요. 울창한 수림 나무잎 새로 아침해살이 부채살처럼 비껴 들어왔어요. 곰이랑 다람쥐랑 모두 월동준비를 하느라고 분주한데요. 차차라는 토끼만은 얕다란 굴에서 늦잠을 콜콜 자고 있었어요. 다람쥐가 도토리를 물고 나무 우로 쪼르르 올라가 둥지에 내려놓은 후 얕다란 토끼 굴을 내려다 보고 도리머리를 살래살래 저었어요. 당장 겨울이 닥쳐오겠는데요. 아직도 늦잠을 자는 차차를 보다못해 다람쥐는 바락 고함쳤어요. “얘, 차차야, 해 엉덩이를 다 비춘다. 어서 일어나!” 차차는 눈도 뜨지 않고 돌아누으면서 도도거렸어요. “아유, 시끄러워! 왜 아침부터 남의 별명을 부르면서 단잠을 깨워?” 토끼 차차가 어떻게 돼 “차차”라는 별명을 달게 됐을가요? 원래 이런 사연이 있어요. 토끼가 어찌나 뭐나 “차차 하지”, “차차 보지” 했으면 다람쥐랑 곰아저씨랑 “차차”란 별명까지 지어 불렀겠어요. 그런데도 차차는 뭐나 “차차”, “차차” 하며 차일피일 미루는 고질병을 고치지 못했어요. 다람쥐는 나무에서 쪼르르 내려와 차차 굴어구에 와서 앞발로 삿대질하며 말했어요. “얘, 차차야, 어서 일어나 먹을 것도 푼푼히 마련하고 미리 굴도 여러개 파놓으렴.” 차차는 핸들 돌아눕더니 굴 밖을 핼끔 내다보며 얹짢은 소리를 줴쳤어요. “야, 네나 할게지. 왜 시끄럽게 굴어.” 다람쥐는 도리머리를 살래살래 저었어요. “얘, 이웃사촌이라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땐 일깨워 줘야지. 당장 큰 눈이 오겠는데 먹을게 모자라면 어쩌느냐?” 차차는 “큰 눈”소리를 듣자 뒤지개를 하더니 일어나 밖으로 나왔어요. “아직 한창 가을인데 웬 큰 눈이냐? 차자 먹이를 마련해도 돼.” 다람쥐는 충고를 귀등으로 흘려보내는 차차가 얄미웠어요. “또 차차? 남은 생각해서 말하는데 그게 뭐냐?” 다람쥐는 언짢아했어요. “됐다, 됐어. 굶어죽어도 네 도토리 꿔다 먹지 않아.” 다람쥐는 바투 들이댔어요. “어째 숱한 동물들이 널 ‘차차’라고 별명을 지어 부르느냐? 뭐나 너처럼 ‘차차’ 해서야 되겠느냐? 좀 미리, 미리 하는 습관을 키워라.” 차차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뒤더수기만 긁적거렸어요. “에이구, 더운 밥 먹고 식은 걱정 좀 작작 해라.” 그러나 다람쥐는 토끼 굴을 들여다보더니 손가락질하면서 계속 충고하였어요. “이 굴을 봐라. 이렇게 굴 안이 환히 들여다보이서야 되겠느냐? 얼마나 위험하냐? 불여우나 승냥이나 오면 피할데도 없어 어쩌느냐? 굴을 미리 여러개  파놓는게 옳아.” 차차는 불여우와 승냥이 말이 나오자 온몸에 소름이 쪽 끼쳤어요. “불여우랑 승냥이랑 말 좀 작작해라. 자꾸 고양이 방정을 떨다가 진짜 승냥이랑 오면 어쩌니?” 뒤이어 묻어나오는 차차의 뒤말은 어수선하기로 짝이 없었어요. “아직 겨울이 멀잖아. 괜찮아. 소털 같은 날에 차차 굴을 파면 돼.” 다람쥐는 어이 없었어요. “또, 또, 차차냐? 아이고, 게으름뱅이 차차야, 언제 그 놈의 차차를 떼버리겠느냐? 그 놈의 차차에 망하지 않는가 봐라. 충고한다, 충고해. 제정신을 좀 차려라. 쯧쯧쯧.” “뭐라고?!” 차차는 바락 화를 냈어요. “이젠 그따위 충고인지 애고인지 개코 같은 소릴 작작 쳐라! 아무리 좋은 노래도 두번 들으면 듣기 싫어!” 다람쥐는 어이없어  도토리를 주으러 쪼르르 가버렸어요.                                2 차차는 한낮이 다 돼서야 겨우 일어났어요. 그는 앞발과 뒤발을 쫙 벌리며 기지개를 쭉 하였어요. “배 촐촐한데.” 그는 풀을 뜯어먹으러 깡충깡충 수림 속으로 뛰여갔어요. 이젠 마가을에 접어들면서 수림 속의 풀잎은 누렇게 마르기 시작해 파란 풀을 찾기 그리 쉽지 않았어요. “진짜 다람쥐 말처럼 큰 눈이나 풍풍 쏟아지면 먹을 풀이 없어 고생하지 않을가?” 그러나 그때 뿐이였어요. 차차는 몇포기 파란 능쟁이를 뜯어먹자 인차 원래 생각으로 돌아가버렸지요. “에라, 모르겠다. 눈 앞에 풀이나 배불리 먹고 굴은 차차 파지.” 차차가 한창 파란 풀을 찾아 헤매다가 아름드리통나무들이 우중충 솟아 있는 산중턱 수림에 이르렀어요. 그의 빨간 눈에 구새먹은 통나무가 들어왔어요. 순간 피뜩 떠오르는 생각이 뇌리를 번개치며 스쳐지나갔어요. “다람쥐 말처럼 굴도 얕은데 저 구새통 안에 들어가 겨울을 나면 어떨까?” 차차는 두 귀를 빨쭉 쳐들고 궁리하다가 무릎을 탁 쳤어요. “그럼 그렇지. 힘들게 굴을 팔 필요없어. 불여우나 승냥이 와도 구새통에 살짝 피해 달려들어가면 물릴 근심도 없지. 이거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때는 격이지. 호호호.” 차차는 너무 기뻐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어깨춤까지 당실당실 추었어요. 뒤이어 코노래를 부르며 구새통을 얼싸 안고 돌아가며 구새통을 찬찬히 여겨보았어요. 그런데 구새통 아구리가 둬메터나 높은 곳에 있어 키 작은 자기가 드나들 수 없을 거 같았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찬찬히 여겨보니 구새목에 웬 커다란 발톱에 긁히운 자리가 다닥다닥 나 있었어요. (벌써 웬 놈이 먼저 차지했잖았는가? 한발 늦었구나. 참, 재수 없어!) 이때 산둔덕 아래 바위돌 밑에서 웬 씩씩거리는 소리가 났어요. 차차는 인차 풀숲에 뛰여들어가 두 귀를 빨쭉 일궈세우고 경각성 높이 아래 쪽을 살폈어요. 저게 뭔가요? 글쎄 곰아저씨가 새끼들을 데리고 바위 밑에 굴을 파고 있지 않겠어요. 차차는 한숨을 호- 몰아쉬였어요. (곰아저씨 저기에 굴을 파는 걸 보면 이 구새통은 곰의 굴은 아니겠구나. 그럼 그렇지. 구새통은 내 굴이야. 흐흐흐.) 차차는 다시 생기를 띠기 시작했어요. 그는 시꺼먼 아구리를 쩍 벌리고 있는 구새통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구새통에 드나들 수만 있으면 참 좋은 굴인데. 어떻게 드나들지?” 차차는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구새통에 걸쳐 있는 마른 나무가지를 보았어요. “옳지. 다람쥐처럼 저걸 타고 올라가면 되겠지.” 차차는 용기를 내서 마른 나무가지를 타고 살금살금 구새통 아구리로 한발자욱한발자욱 기여올라갔어요. “에헴! 누구냐?!’ 갑자기 수림 속에서 인기척이 들렸어요. 차차는 깜짝 놀라 그만 아래로 퉁 떨어졌어요. “아이고!” 차차는 엉덩이를 매만지며 오만상을 쫑그렸어요. 이윽고 어마어마하게 큰 곰아저씨가 새끼들을 데리고 산꼴짜기에서 올라오지 않겠어요. “어, 차차 아니냐?” 곰은 뒤따라 올라오는 새끼들을 돌아보며 빈정거렸어요. “이게 해 서산에서 돋지 않겠느냐? 어떻게 돼 우리 굴에 다 찾아왔어? 허허허.” 차차는 아파 엄살을 부리면서 마지못해 알은 체했어요. “곰아저씨, 안녕하세요?” “오냐, 그래. 월동준비는 다 됐느냐?” “차차 하면 되죠.” “또, 또, 차차냐? 흥!” 곰아저씨는 토끼 아래우를 훑어보며 물었어요. “응, 그래, 나무가지에서 떨어져 상하진 않았느냐? 건데 우리 구새통굴에 올라가서 뭘 하느냐?” 차차는 눈알이 새똥그래났어요. “뭐라구요? 이게 어디 곰아저씨네 굴인가요? 저 아래 굴을 파면서도. 욕심이 너무 과하잖아요?” 곰아저시는 억이 막혔어요. “어째 여지껏 몰랐느냐? 저기 구새통 아구리에 난 발톱자국을 봐라. 우리 곰 발톱자국이 아닌가?” 차차는 실망에 빠져 고개를 숙였다가 일루의 희망을 품고 한마디 해보았지요. “곰아저씨네는 바위 밑에 굴을 파더군요. 이 구새통굴이 이젠 필요없잖아요?” “허허허.” 곰아저씨는 너털웃음을 쳤어요. “오- 대개 알만해. 혹시 이 구새통에서 살가 해서 그러잖느냐?” 차차는 곰아저씨가 화를 낼가 봐 망설이다가 겨우 목구멍에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종알거렸어요. “네. 그래요. 얕은 흙굴보다 이 구새통이 더 든든해 안전할 거 같아 그래요.” 그는 곰아저씨 앞에 깡충깡충 뛰여가 목멘 소리로 애원했어요. “곰아저씨, 아저씬 힘도 세서 불여우랑 승냥이랑 대수롭잖고 뭔가요? 요 약자 토끼를 좀 도와주십시오. 난 불여우나 승냥이한테 물려 죽을가 봐 날마다 발편잠을 자지 못해요. 꿈만 꾸면 그놈들한테 목을 물려 바둑거리는 악몽을 꿔요. 아저씨, 불쌍한 저를 구해주십시오.” 그러나 곰은 뿔룩한 배때기를 내밀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구새통을 내놓고 추운 겨울에 우린 어떻게 살라고 그러느냐?” 차차는 아니꼬와 빨간 눈을 흘기면서 앞발로 산꼴짜기 바위를 가리켰어요. “곰아저씬 항상 이웃사촌이라더니요. 헛소리군요. 아저씨네는 저게 파는 흙굴에서 살면 안돼요? 보자보자 하니 있는 놈일수록 더 욕심쓰는구만요.” 새끼곰들은 어처구니없어했어요. “얘, 차차야, 건 우리 예비굴이야.”  “진짜 굴러온 돌이 배긴 돌을 뺄 작정이군.” 새끼곰들은 우르르 쓸어와 차차를 몰아내려고 했어요. “얘들아, 그만 둬!” 곰아저씨가 말려서야 새끼곰들은 공격을 멈췄어요. 곰아저씨는 차차에게 차근차근 설명했어요. “며칠 전에 웬 사냥군한테 이 구새통이 발견됐어. 사냥군은 이 구새통을 꽤나 욕심내는 거 같더라. 품으로 안아보며 둘레를 재여보기도 하고 구새통 아구리에 자기 키를 대보면서 높이도 재여보는 거 같더라.” 차차는 빨쭉귀를 곤두세우더니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곰아저씨, 사냥군이 구새통을 해서 뭘 할가요? 속이 텅 비여서 재목으로 쓰긴 틀렸는데요. 혹시 구새통 안에서 사는 곰아저씨네를 잡자고 그러지나 않을가요?” “글쎄 말이야.” 곰아저씨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어요. “아마 구새통을 베여다가 집에 구새를 세우자고 그러는 거 같기도 하더라. 우린 국가 보호동물이니깐. 사냥군이 감히 손이야 대겠니?” “그래도 경각성을 높여야죠.” 곰은 머리를 끄덕였어요. “음, 그래 혹시나 해서 저 아래 바위돌 밑에 예비굴을 판다. 뭐나 여지를 두고 미리 해놔야지. 코밑에 가서 굴을 얻자고 하다가 한지에 방아를 걸가 봐.” 이윽고 차차는 무슨 령감이 떠올랐는던지 하얀 얼굴에 생기를 띠였어요. “그럼 곰아저씨네는 아예 저 예비굴에 가서 사세요. 이젠 당장 겨울이 닥쳐오겠는데요. 내 언제 새 굴을 파겠어요. 이 구새통에서 살게 줘요.” 곰은 억이 막혔어요. “차차야, 뭐나 여지를 두고 미리 해놔야 해. 이 구새통은 널 준대도 사냥군한테 들키워서 장원하지 못해.” 차차는 대수로워하지도 않았어요. “아저씬 근심말고 예비굴에 이사나 하세요. 내 인차 여기 이사와서 살게요.” 곰은 저으기 근심됐지만요. 당장 겨울이 닥쳐오는데 변변한 굴도 없는 차차가 불쌍했어요. “정 살겠다면 말리진 않겠다. 이웃사촌이라고 구새통을 줄게.” 차차는 너무 좋아서 깡충깡충 뛰였어요. 곰아저씨는 “사냥군이랑 승냥이랑 불여우랑 주의해라.” 하고 한마디 하고는 새끼곰들을 데리고 당장 구새통 안에서 먹이랑 꺼내 메고 바위돌 아래 예비굴로 이사해갔어요.                                       3 차차는 구새통 밑에서 코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낮잠을 잤어요. 쿵! 산골짜기 아래 나무에서 육중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어요. (사냥군이 오지 않았는가?) 차차는 화닥닥 놀라 발딱 일어나 풀숲을 헤치고 내려다 보았어요. 아니, 저게 뭔가요? 글쎄 곰들이 나무에 바라올라갔다가는 아래로 퉁퉁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안되겠다. 어서 더 사냥해 먹어라!” “호호호.” 차차는 너무 우스워 코를 싸쥐고 웃었어요. “호호호. 배부르니 할 노릇도 없군. 저라다가 상하면 어쩌자고 저래? 흥!” 그는 보다못해 너무나도 이상해 산골짜기로 깡충깡충 뛰여내려갔어요. “곰아저씨, 뭐, 군사훈련이라도 하는 겁니까?” 곰아저씨는 차차를 돌아보며 량 앞다리를 벌려보이면서 희죽이 웃었어요. “아니야. 우린 월동준비를 하는 거야.” 차차는 어안이 벙벙해 빨간 눈알마저 새똥그래졌어요. “월동준비?” “살이 어느만큼 졌는가 시험해보는 거야. 떨어져서 엉덩이 아프면 아직 월동할 수 있으리만큼 살이 지지 않았다고 보지. 그럼 우린 나무에서 떨어져서 아프지 않을 때까지 살이 지게 사냥해 미리 더 먹는 거야.” “호호호.” “우둔한게 범 잡는다고 별의별 우둔한 놈들을 다 보겠어유. 우둔한 도깨비 같은게 누굴 훈계해? 제 새끼들이나 나무에서 떨어져 죽지 말게 잘 건사하라고나 해라.” 차차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곰을 노엽힐가 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꼴깍 삼켰어요. 그러나 한참 지나자 참지 못하고 끝내 한마디 말했어요. “아니, 아직 겨울도 먼데 차차 먹어도 되겠는데요. 왜 지금부터 그렇게 많이 먹어요? 한꺼번에 폭식했다가 소화불량에 걸리겠어요.” 곰은 헤쭉 웃었어요. “넌 아직 몰라. 우리 곰들은 뭐나 차차 하는 네하구 달라. 우린 동면에 들어가기 전에 월동준비로 온 겨울 먹을 걸 다 미리 먹어 살을 지워둔다. 우린 겨울에 아무 것두 안 먹고 잠만 자지. 그래도 미리 먹어둔게 있어서 배고픈 줄 몰라. 그래서 월동준비로 미리 사냥두 많이 해 배터지게 먹는다. 그 다음 살이 졌는가 나무에 올라가 떨어져 보지. 그래 엉덩이 아프면 아직 살이 제대로 지지 않았다는 걸 알지. 그럼 또 사냥해서 더 먹지.” “네- ” 그제야 차차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렸어요. 곰은 겨울나이먹이도 준비하지 않고 항상 낮잠만 콜콜 자는 게으름뱅이 차차 근심돼 귀띔해주었어요. “얘, 차차야, 일어나. 뭐나 여지를 두고 살아야 해. 뭐나 차차 할 생각해선 안돼. 너도 낮잠만 자지 말고 미리 월동준비를 해놔라. 큰 눈이 뒤덮기 전에 풀도 푼푼히 마련해놓구. 땅이 얼기 전에 미리 예비굴도 파놔라.” “됐어요, 돼! 차차 알아서 하지 않으리라고, 흥! 어쩜 다람쥐하구 똑 같습니까! 모두 잔소리대장이구만요. 잔소리를 하루라도 하지 못하면 못 삽니까? 픽!” 차차는 픽픽거리며 곰과 다람쥐 귀띰해주는 말을 귀등으로 흘려보냈어요. 그는 겨울이 닥쳐오기 전에 파란 풀을 하나라도 더 먹느라고 눈알마저 새빨개 헤맸어요. 그러나 이젠 파란 풀은 쌀에 뉘처럼 찾기 힘들었어요. 차차는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부는 구새통 그늘 밑에서 네발로 타리대를 치고 들어누워 낮잠만 콜콜 잤어요. 어쩌다가 깨나 높다란 구새통 아구리를 쳐다보다가 거기에 다리를 놓을가고 궁리하다가도 “에이, 차차 하지.” 하고 또 코를 다랑다랑 굴렀어요. 똘랑! “아가갸!” 뭔가 낮잠을 자는 차차의 이마에 떨어졌어요. 깨나보니 도토리 떨어지지 않았겠어요. 차차가 두 빨쭉귀를 빨쭉하고 도리반거리며 나무 가지를 살펴보니 다람쥐란 놈이 구새통에 놓으려던 마른 나무가지에 올라가다가 되내려 오지 않겠어요. “차차야, 미안해. 금방 도토리를 주어가다가 떨어뜨렸어.” 차차는 볼멘 소리를 했어요. “이후엔 주의해라. 재수없이 남의 낮잠 깨우면서.” 그런데 다람쥐는 도토리를 물고 가지 않고 주춤 물앉더니 이런 말을 꺼냈어요. “얘, 낮잠만 자지 말고 먹이풀이랑 미리 푼푼히 장만해둬라…” “큰 눈이 내리면 어쩌겠니?” 차차는 발딱 일어나면서 뒤말을 외워대지 않겠어요. “차차 하지 않으리라고 자꾸 잔소리냐? 귀못이 박히겠다. 흥!” 다람쥐는 차차 발름거리는 코를 쥐여 흔들었어요. “에이고, 도리는 잘 아는구나. 날마다 자기나 하고 언제 굴이랑 파겠느냐?” 차차는 다람쥐를 훌 밀어놓으면서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어요. “얘, 근심두 팔자다. 나두 이젠 땅굴에 이 구새통까지 굴이 두개나 있잖느냐?” 뒤이어 도토리를 주어 볼록하게 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른 나무 잎을 바스락바스락 밟으며 사라졌어요. 차차는 둥지로 쪼르르 올라가는 다람쥐를 쳐다보았어요. “얘, 다람쥐야, 검정개 돼지 흉 하지 말라. 고 쪼꼬만 둥지에 도토리를 장만한댔자 몇알이나 장만하겠느냐? 고걸로 겨울 나겠느냐?” 다람쥐는 도토리를 앞발로 들어 둥지에 쌓아놓으면서 대답했어요. “이건 지금 먹을 게구. 겨울에 먹을 건 따로 땅굴 파고 수태 장만해 둘 예산이야.” “오- ” 차차는 감탄할뿐이였어요. 그러나 미리 굴을 파고 먹이를 장만할 예산은 꼬물만치도 없었어요.                         4 이젠 원시림에 락엽이 우수수 지기 시작하였어요. 다람쥐와 곰들은 월동준비에 걸음이 더 바빠졌어요. 그러나 차차는 미리 먹이풀을 장만해 두지 않아 하루살이처럼 그날 그날 풀을 뜯어먹군 했지요. 이날도 차차는 먹이풀을 얻으려고 굴 밖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되물앉았어요. 그의 눈에는 굴어구에 내리드리운 파란 능쟁이 잎이 띠였어요. 차차는 앞발로 굴어구 풀 한대를 후려쥐고 입으로 풀잎을 뜯어 오물오물 맛있게 먹기 시작했어요. “잠간만!” 이때 다람쥐가 새된 소리를 질렀어요. 흠칫 놀란 차차토끼는 이깔나무 우의 둥지를 보고서야 안심됐어요. “얘, 좀 작작 소리쳐! 간 떨어져.” 다람쥐는 둥지에서 이깔대를 타고 쪼르르 내려와 능쟁이를 빼앗아냈어요. “얘, 굴어구 풀을 먹어선 절대 안돼.” 차차는 새빨간 눈을 새똥그랗게 치켜떴어요. “왜? 내 굴어구 풀을 내 먹는데도 안돼? ” 다람쥐는 내심하게 타일렀어요. “생각해 하는 말이야. 굴어구 풀을 다 뜯어먹으면 굴이 빤이 드러날게 아니냐?” 차차는 의아해했어요. “어째? 굴에 습기 차 찐찐한데 해볓도 잘 들어오고 좀 좋아?” 다람쥐는 타일렀어요. “승냥이랑 불여우랑 굴어구를 쉽게 발견하면 목숨이 위험해.” 그제야 차차는 다람쥐한테서 능쟁이를 빼앗아 먹으려다가 그만 뒀어요. “죄꼬만게 아는 척도 하긴? 좀 작작 승냥이 말 해라. 범도 자기 흉을 하면 온다는 말이 있잖아. 괜히 자꾸 방정을 떨어서 승냥이를 불러 오겠다. 흥!” 다람쥐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엄숙하게 충고했어요. “명심해라. 속담에도 토끼는 굴어구 풀을 먹지 않는다고 했잖아. 굴어구 풀을 먹어선 절대 안돼.” 차차는 다람쥐를 항상 “죄꼬만게 뭘 알아 그래?” 하고 비웃었지만 속으로는 철리가 담긴 속담까지 인용하는 다람쥐가 이 시각처럼 커보인 적은 없었어요. 다람쥐가 간 후 차차는 굴 안에 누워 바깥을 내다보았어요. 그만 꽃구름과 통나무들을 배경으로 굴어구에 내리 드리운 능쟁이를 보는 순간 군침이 꼴깍 넘어갔어요. 배에서는 꼬르륵, 꼬르륵 소리까지 났어요. 그는 살금살금 굴어구에 기여가 능쟁이를 헤치고 이깔나무 우의 다람쥐 둥지를 살펴보았어요. 다람쥐는 어데로 갔는지 아무런 동정도 없었어요. (에라, 모르겠다. 배고파 못 견디겠어.) 차차는 다람쥐 충고를 귀등으로 흘려보냈어요. 그는 더는 참지 못하고 앞발로 굴어구 능쟁이를 후리고 들어앉아 파란 잎을 오물오물 뜯어먹었어요. 순식간에 굴어구 능쟁이가 거덜났어요. 앙상한 가지만 내놓고 이파리는 다 뜯어먹었지요. 이젠 차차의 굴어구에 풀이 없어져 굴이 환히 드러났어요. 다람쥐는 새된 소리를 질렀어요. “얘, 무슨 짓을 했니? 이젠 목을 승냥이한테 내놓은 짓이야.!” “작작 승냥이 말을 해라. 고양이 방정을 떨다가 진짜 승냥이 오겠다. 쳇!” 차차는 뭐라고 또 입을 벌리려는 다람쥐를 마구 떠밀어 쫓아보냈어요.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한참 욕하다가 네다리를 쭉 뻗고 해볕을 쪼이며 낮잠을 콜콜 잤어요. 어느날, 차차는 굴에서 낮잠을 한창 자고 있었어요. 웬 일인가요? 낮잠을 자던 차차는 굴어구에 나와 기지개를 하자 어깨에 나래라도 돋힌듯이 온몸이 하늘로 둥둥 떠올라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는 씽씽 날아 강남의 한 원시우림에 이르렀지요. 북방과는 달리 강남의 원시우림은 사시장철 여름처럼 따뜻했고 락엽이 질줄을 몰랐어요. 잔나무 수림 속에는 초겨울인데도 차차가 제일 먹기 좋아하는 능쟁이랑 풀숲을 이룬 채 파릇파릇 키돋음하고 있었어요. “호호호. 세상에 이렇게 좋은 곳도 다 있어. 다람쥐랑 자꾸 근심하는 눈이 내리지 않지, 풀이 사시장철 마르지 않고 파랗게 살아 있지. 얼마나 좋은가! 이젠 그 아쓸한 북방 원시림에서 살지 말고 여기서 살자꾸나.” 그런데 강남의 원시우림에는 승냥이가 있는지 없는지 몰라 저으기 근심되였어요. 그가 배터지게 파란 풀을 뜯어먹고 낮잠을 자는에요. 이상하게 풀숲을 버스락버스락 밟는 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차차는 발딱 일어나 굴어구에 엎뎌 빨간 눈을 딱 부릅뜨고 바깥 동정을 살폈어요. “아이구머니!’ 불여우가 아니겠어요. 그 놈은 어슬렁어슬렁 굴어구에 다가왔어요. 차차는 깜짝 놀라 굴 안에 들어가 숨어버렸어요. 그러나 굴이 어찌나 얕은지 불여우놈이 삐죽한 주둥이를 쑥 들이밀자 차차는 피할래 피할 데조차 없었어요. 불여우놈은 차차를 발견하고 헤벌쭉 랭소하였어요. 그 놈은 앞발로 굴을 마구 파헤쳤어요. 이젠 삐죽한 주둥이를 굴에 쑥 들이밀고 차차 토끼를 당장 물려고 덮쳐들었어요. “살려주세요!” 차차는 고함치며 벌떡 일어났어요. 그런데 그것은 열대원시우림에서 꾼 한낱 악몽이였어요. “아이고, 깜짝이야!” 차차는 금방 꿈을 생각만 해도 잔등에 소름이 쪽 끼쳤어요. 그는 악몽이 어쩐지 꿈 같지 않았어요. 그리하여 다람쥐랑 곰아저씨랑 충고대로 굴을 더 깊이 파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한뼘이나 더 파나 마나 해 할딱할딱하며 힘들어서 그만 뒀어요. “에라, 모르겠다. 꿈이잖아. 낮잠이나 자고 보자.” 차차는 굴에 핸들 들어누워 빨간 눈을 사르르 감아버렸어요.  씩씩- 갑자기 빨쭉귀에 웬 놈이 냄새를 씩씩 맡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또 꿈인가 했는데요. 차차가 빨간 두 눈을 반짝 떴어요. 아니, 글쎄 이번엔 불여우가 아니라 승냥이란 놈이 주둥이를 굴 안에 쑥 들이밀고 냄새를 맡지 않겠어요. “아이고!” 차차는 비명을 지르며 굴 안으로 물러앉아 놀란 가슴을 할딱거렸어요. (다람쥐 고양이 방정을 떨더니 진짜 승냥이를 불러 왔구나. 어쩌지?) “요놈 토끼야, 어델 도망쳐?!” 승냥이놈은 아가리를 쫙 벌리고 앞발로 마구 토끼 굴을 파재꼈어요. 토끼는 굴이 얕아서 이젠 뒤로 물러설 자리도 없었어요. 승냥이놈은 삐죽한 주둥이를 쑥 들이밀더니 굴막장에 숨어 가슴을 할딱거리는 차차리를 발견했어요. “으악!” 승냥이놈은 삐죽한 아가리를 쫙 벌려 톱날 같은 이로 차차를 깨물려고 미쳐날뛰였어요. “앗!” 차차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홱 탈며 피했어요. 다행히 몸은 물리지 않았지만요. 대신 꼬리를 물려 뭉텅 끊어져나갔어요. 이 위기일발의 시각에 둥지 우에 숨었던 다람쥐가 다급히 찍찍거리며 소리쳤어요. “승냥이 왔어요!” “차차를 구해주세요!” 굴 밖에서 곰아저씨의 우렁찬 고함소리가 들렸어요. “이 놈 승냥이!” 승냥이는 주춤 물러서며 나무숲을 힐끔거리다가 수림 속으로 도망쳐 버렸어요. 그 틈을 타 차차는 황급히 굴에서 빠져나가 수림 속으로 도망갔어요. 그러자 승냥이는 도망치는가 했더니 몸을 홱 돌리더니 차차를 쏜살같이 뒤쫓아갔어요. “곰아저씨, 살려줘요!” “아니, 저 놈 승냥이! 차차를 놓지 못하겠니?!’ 곰아저씨가 헐금씨금 뒤쫓아갔어요. 당장 승냥이가 토끼를 거의 뒤쫓아 꼬리를 물 지경이였어요. 곰아저씨는 뒤쫓아가면서 고함쳤어요. “차차야, 빨리 구새통에 뛰여들어가라!” 그제야 토끼는 앞에 보이는 구새통 쪽으로 도망쳤어요. 드디여 구새통에 놓은  나무가지를 타고 깡충깡충 뛰여올라갔어요. 그런데 나무가지를 미처 구새통 아구리에 받쳐놓지 않아 아구리 중턱까지 밖에 올라가지 못했어요. (아이구, 이걸 어쩌나?!) 토끼가 주춤 멈춰선 순간 승냥이가 씽 날아가면서 토끼를 앞발로 탁 쳤어요. 토끼는 허망 땅바닥에 날려가 떨어졌어요. 차차의 생사관두에 곰아저씨가 날래게 덮쳐와 승냥이를 주먹으로 탁 쳤어요. “아이쿠!” 승냥이는 저만치 날려가 처박혔어요. 깨갱거리던 승냥이는 사타구니에 꼬리를 끼고 수림 속으로 도망쳤어요. 차차는 피 줄줄 흐르는 몽당꼬리를 사타구니에 끼고 바들바들 떨면서 다가왔어요. “에구머니, 이 피!” 다람쥐가 새된 소리를 질렀어요. 그제야 곰아저씨는 승냥이한테 물려 차차 꼬리가 몽탕 끊어진 것을 발견했어요. 곰아저씨는 차차의 꼬리 상처를 풀잎으로 동여매주면서 말했어요. “내 뭐라 했냐? 미리 예비굴을 파놔라는데. 그리 얕은 굴에 숨었다가 하마트면 죽을 번했잖았느냐? 에이구, 빨쭉귀 이리 큰데 왜 통말이 안 들어가느냐?” 뒤이어 곰아저씨는 거의 다 파헤쳐진 토끼 굴을 내려다보면서 뒤말을 이었어요. “굴이 이렇게 얕고서야 어떻게 승냥이를 피할 수 있겠느냐? 출구도 하나 밖에 없지. ” 그때라고 다람쥐도 끼여들었어요. “우리 뭐라 했느냐? 굴어구 풀을 뜯어먹지 말라는데. 뭐냐?” 토끼는 그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후회했어요. 다람쥐는 뒤말을 이었어요. “미리 굴을 깊게 파놓으라는데. 항상 차차 하지, 차차 하지 하면서 질질 끌더니. 오늘 얼마나 위험했느냐?” 차차는 다람쥐를 작작 잔소리 해라고 핀잔을 주려다가 뒤더수기만 긁적거렸어요.                                         5 차차는 승냥이한테 혼빵난 다음에야 이른 아침부터 양지바른 언덕 아래에 새 굴을 파기 시작했어요. “에이, 굴을 파야지. 살아 남겠으면 굴을 파야지. 출구도 여러개 빼야지.” 차차는 진짜 아가리를 쫙 벌리고 톱날 같은 이발을 드러낸 채 앞발로 자기 굴을 파헤치던 승냥이 상통만 생각해도 온몸에 소름이 끼쳤어요. 곰아저씨는 말을 꺼낸바 하고는 침을 한대 더 놨어요. “봐라. 저 구새통 아구리에 올라갈 다리두 미리 놓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전번에 다리 없어서 구새통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죽을 번했잖았느냐?” “네- 곰아저씨.” 곰아저씨는 사냥하러 떠나가면서 신신당부했어요. “땅이 땅땅 얼기 전에 어떻게 하나 굴 몇개 파놔라.” “네- 근심하지 말고 어서 사냥하러 가세요.” 차차는 속으로 곰아저씨가 로파심이 너무 많다고 여기며 건성으로 대답하고 굴을 팠어요. 그런데 땅이 좀 얼어서 굴을 파기 여간 힘들지 않았어요. 아무리 앞발 발톱이 다슬게 허비고 긁어대도 좀체로 축이 나지 않았어요. 차차는 맥없이 락엽더미 우에 핸들 드러누워 버렸어요. 그는 새빨간 눈알을 대굴대굴 굴리면서 어떻게 더 쉬운 방법이 없을가고 궁리했어요. 그의 시선에 아름드리 구새통 아구리가 들어왔어요. “옳지. 굴은 차차 파구 먼저 구새통 아구리에 다리나 놓자.” 차차는 낑낑거리면서 팔뚝만한 나무가지를 구새통 아구리까지 올려놓으려고 빠둑거렸어요. 그러나 그의 가냘픈 힘으로 다리를 놓는다는 건 아름찬 일이였어요. “에라, 모르겠다.” 차차는 또 물러앉고 말았어요. 그는 구새통 아구리 밑에 핸들 누워 두귀를 빨쭉거리며 량미간을 쪼프렸어요. 그는 한참 궁리하다가 도리머리를 살래살래 저었어요. “안돼. 구새통에 나무다리를 놔도 쓸데 없어. 내 나무다리를 타고 구새통 안에 달려들어가면 승냥이도 그 나무다리를 타고 뛰여들어올게 아닌가?” 한참 궁리를 굴리고 굴리던 차차는 무릎을 착 치고 발딱 일어났어요. “옳지. 가느다란 마른 나무가지로 다리를 놔야지. 승냥이놈이 밟으면 툭 부러지게.” 이때 다람쥐가 쪼르르 달려왔어요. “잘하는구나. 굴을 파지 않고 뭘 하니?” 차차는 자기 궁리를 말했어요. 그러자 다람쥐가 팔을 걷고 나섰어요. “함께 다리를 놓자.” 다람쥐는 구새통 아구리에 쪼르르 올라가더니 가는 마른 나무 한쪽 끝을 묶은 끈을 앞발로 힘껏 당겼어요. 차차는 뒤에서 한쪽 끝을 물어 떠미느라고 낑낑거렸어요. 그러나 어찌나 무거운지 다람쥐와 차차 힘으로는 끄덕도 하지 않았어요. 이때 때마침 곰아저씨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이 정경을 보고 나섰어요. 곰아저씨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나무가지를 들어 구새통 아구리에 다리를 놔주었어요. “곰아저씨, 감사해요.” 곰아저씨는 아직도 시름놓이지 않는지 한마디 더 하고야 떠나갔어요. “차차야, 이후엔 나만 쳐다보면서 또 차차 하는 고질병이 도져선 안돼.” 차차는 “네-” 하고 곱도록 대답하고 구새통 아구리에 놓은 마른 나무가지 다리를 보고 한숨을 호- 내쉬였어요.                                     6 며칠 후 큰 일 났어요. 사냥군이 한키나 되는 커다란 톱을 메고 구새통 밑에 나타나지 않았겠어요. “뭘 하려고 저럴까?” 차차는 구새통 아구리에 납작 엎드려 두뀌를 빨쭉하고 숨까지 딱 죽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사냥군의 거동을 면밀히 살폈어요. 저게 뭔가요? 사냥군은 글쎄 톱으로 구새통 밑을 쓰르륵쓰르륵 켜지 않겠어요. 다람쥐가 보다못해 새된 소리를 쳤어요. “아니, 이보세요, 왜 함부로 남의 집을 켜는가요?” 사냥군은 피끗 다람쥐 둥지를 쳐다보더니 톱질을 멈추지도 않았어요. “연통감으로 쓰자고 그래. 네하고 무슨 상관이냐?” 차차는 눈 앞이 캄캄해났어요.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린 차차도 어디서 그런 용기 났는지 목청을 다해 소리질렀어요. “아니, 렴치 있는가요? 남의 집을 베가면 이 추운 겨울에 난 어떻게 살라는가요?” 사냥군은 어처구니 없어 너털웃음을 웃었어요. “허허허. 고놈들이 진짜 웃긴다.” 다람쥐와 차차가 아무리 사정하고 말려도 사냥군은 듣는 척도 하지 않고 계속 톱질을 슬겅슬겅 했어요. 그때 곰아저씨가 저쪽 바위 밑 굴에서 이쪽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것이였어요. 차차는 바다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만난듯이 곰아저씨한테 소리쳤어요. “곰아저씨, 이놈 사냥군을 쫓아버려 주세요.” 그런데 곰아저씨는 도리머리질하더니 인차 굴 속으로 숨어버렸어요. 불법 사냥군에게 쫓기워다니는 처지에 곰아저씨인들 불법사냥군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어쩌는 수 있는가요. 차차는 어쩔 수 없이 구새통에서 나와 마른가지 나무를 타고 깡충깡충 뛰여 도망쳤어요. 눈이 뒤덮인 수림 속에서 그는 어데로 가야 할지 몰랐어요. 쿵! 반나절이나 지나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엄청난 구새통이 맥없이 눈덮인 수림에 쓰러졌어요. 차차가 그렇게 믿던 구새통집이 절망과 함께 무너졌어요. (이젠 굴도 없어 어데서 살지?) 그제야 차차는 후회됐어요. 다람쥐와 곰아저씨가 땅이 얼기 전에 미리 예비굴을 여러개 파놓으라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못내 후회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진짜 후회막급이였어요. 차차는 꼬르륵 꼬르륵 소리나는 배를 붙안고 눈덮인 수림 속에서 먹이풀을 찾아 헤맸어요. 그런데 한키도 넘는 눈이 온 수림을 덮어버려서 마른 풀을 찾기도 힘들었어요. 그제야 차차는 뭐나 “차차 하지.” 하면서 다람쥐와 곰아저씨가 눈이 내리기 전에 먹이풀이랑 푼푼히 갖춰놓으라던 충고를 듣지 않은 것도 후회됐어요. 그러나 이 세상에 어디 후회약이 있는가요? 차차는 눈을 파헤치면서 겨우 마른 풀을 허비여 먹으며 요기했어요. 그런데 토끼 꼬리만한 겨울해가 지자 잘 굴이 없었어요.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고 이제라도 굴을 파야 했어요. 그때 차차는 기발한 생각이 뇌리를 쳤어요. (눈굴을 파고 자면 어떨까?)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난 그는 금방 마른 풀을 뜯어먹은 자리로부터 눈굴을 파기 시작했어요. 한참 앞발이 다슬 지경으로 역사질하니 눈보라 소리도 별로 들리지 않는 깊숙한 눈굴이 마련됐어요. 이때 다람쥐가 쪼르르 눈굴에 달려왔어요. “아이유, 이전에 뭐라 했니? 땅이 얼기 전에 굴을 파놓으라는데.” 다람쥐는 도토리 알을 딱딱 깨물어 깨서 차차한테 내밀었어요. 배고픈 차차는 체면을 가릴 새 없이 도토리알이라도 받아 오물오물 씹어 먹었어요. “내 뭐라던? 눈이 오기 전에…” “먹이풀을 푼푼히 갖추라는데. 맞지? 이젠 귀에 못이 박힌다.” 차차는 발끈 성냈어요. 이윽고 다람쥐는 눈굴을 이리저리 살표보더니 이런 제의를 내놓았어요. “얘야, 눈굴에서 자지 말고 내 굴에 가서 잘가? 눈굴이 든든하지 못해 승냥이나 불여우가 오면 위험할 거 같애…” 차차는 시끄러워했어요. “또, 또. 방정 떤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이제 진짜 불여우 오겠다.” 차차는 말을 그렇게 하고서도 섬찍한 다람쥐 귀띔에 도리 있다고 여겼어요. 그는 다람쥐를 따라 눈굴에서 나갔어요. 다람쥐가 이깔나무 그루터기에 싸인 눈을 싹싹 헤치자 그루터기 밑에 파놓은 땅굴 굴어구가 드러났어요. 다람쥐는 예비땅굴에 쏙 들어갔는데요. 토끼는 다람쥐보다 커서 아무리 들어가려고 몸을 비비닥거려 보아도 전혀 들어갈 수 없었어요. 그들이 실망해 도리머리를 흔들 때였어요. 갑자기 꼬리 기다란 불여우가 어데서 나타났는지 씽 덮쳐들지 않겠어요. “아이구머니!” 다람쥐는 황망히 눈굴 옆 이깔나무에 쪼르르 바라올라갔어요. 차차는 몸을 홱 돌려 눈굴 속으로 뛰여들어갔어요. 그는 눈굴 막장까지 뛰여가 놀란 가슴을 할딱거리며 숨을 딱 죽이고 빨쭉귀를 빨쭉 곤두세우고 굴어구 동정에 귀를 기울였어요. 불여우놈은 눈굴 어구를 앞발로 마구 파헤치다가 삐죽한 주둥이를 쑥 들이밀고 냄새를 씩씩 맡는 것이 아니겠어요. “요놈 고기 숨었구나. 어디로 도망가?” 그 놈은 이젠 눈굴을 파헤치지도 않고 눈 우에서 냄새를 씩씩 맡으며 막장에 있는 차차 쪽으로 덮쳐왔어요. 차차는 후회하며 애탄했어요. (아이구, 이걸 어쩌나?) 차차가 미리 땅속 깊이 예비굴을 파놨더라면 무슨 이런 일이 생겼겠는가요. 빠드득빠드득. 눈굴 우에서 여우놈이 굳은 눈을 밟으며 다가오는 발자욱소리가 점점 가까워졌어요. (아이구, 끝장이구나. 하느님이여, 제발 날 살려주세요.) 차차는 질겁해 오들오들 떨며 눈을 딱 감고 두 손 모아 빌고 또 빌었어요. 탁! 불여우놈은 앞발로 면바로 차차를 탁 내리쳤어요. 불여우놈의 발이 눈굴로 쑥 들어오는 순간이였어요. 차차는 화닥닥 피해 눈굴어구로 도망쳤어요. 헛물을 켠 불여우놈은 차차를 따라오면서 앞발로 연신 눈굴 속을 탁탁 내리쳤어요. 그 바람에 차차는 불여우 발에 치워 빨쭉귀가 여러군데 피가 흘렀어요. 이 위기일발의 시각이였어요. “곰아저씨, 빨리 차차를 구해주세요!” 분명 이깔나무 둥지에서 다람쥐가 고함치는 목소리였지요. 총명령리한 다람쥐는 잔꾀를 부렸어요. “저걸 봐라! 곰아저씨 온다. 잘 됐어, 잘 돼! 여우놈 이젠 어디로 도망칠 테냐!” 깜짝 놀란 불여우는 몸을 홱 돌려 여기저기 눈에 뒤덮인 수림 속을 살폈어요. 아름드리나무 뒤에서 진짜 곰아저씨가 헐금씨금 뛰여왔어요. “에크!” 불여우놈은 뒤쫓던 차차를 놔버리고 부랴부랴 수림 속으로 도망쳤어요. 그 틈을 타 차차는 다리야 날 살려라고 곰아저씨 쪽으로 달아났지요. 다람쥐와 곰아저씨가 이젠 더 충고하지 않아도 차차는 망그라진 눈굴을 보며 피의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지요. “가자, 우리 굴에 가자!” 곰아저씨가 차차 손을 잡아 끌었어요. 차차는 맥없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7 이듬해 이른 봄이였요. 원시림을 뒤덮었던 하얀 눈이 녹기 시작하였어요. 차차는 형체도 없이 녹아버리는 눈굴을 돌아보면서 끝없는 참회에 잠겼어요. (저런 눈굴을 믿고 살겠다고? 저 눈굴에 들어갔다가 불여우놈한테 물려 하마트면 죽을 번하지 않았는가.) 그는 지난 해 자기가 얼마나 한지에 방아를 걸었는가 돌이켜생각하면서 허구픈 웃음을 지었어요. 그때 승냥이한테 물려 끊어진 몽당꼬리랑 불여우 앞발에 치워 긁히운 귀랑 매만지면서 다시한번 뼈저린 교훈을 느꼈어요. 이젠 차차는 뭐나 “차차 하지.”, “차차 보지.” 하던 고질병을 떼버렸어요. 그는 이른 봄부터 일찌기 손을 써서 곰아저씨 땅굴 옆 잔 나무숲이 우거진 든든한 바위돌 밑에 굴을 여러개 파놓았어요. 한번은 출구를 파다가 굴 어구 옆에 파란 능쟁이 잎들이 하늘하늘 춤을 추는 것을 발견하였어요. 차차는 이슬방울이 맺혀 해빛을 반짝이는 능쟁이 이파리를 매만지면서 군침을 꼴딱 넘겼어요. “토끼는 굴 어구 풀을 절대 먹어선 안돼!” 갑자기 다람쥐 목소리가 귀전을 아프게 때렸어요. 차차는 먹음직한 능쟁이 이파리를 매만지다가 용케도 그 유혹을 물리치고 스르르 놔주었어요. 다람쥐가 이깔나무 둥지 우에서 차차의 그 모습을 보고 찬탄을 보냈어요. “참 잘했어. 굴 어구 풀은 절대 먹어선 안돼.” “승냥이한테 죽자고 먹겠느냐.” 차차는 파란 능쟁이를 떠나 굴 안에 들어가더니 계속 굴을 파재꼈어요. 차차는 곰아저씨네 굴 옆에 굴을 팠기에 수시로 곰아저씨 보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요.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려고 궁리 끝에 굴마다 출구도 미리 여러개씩 더 파놓았어요. 일단 전번처럼 승냥이랑 불여우랑 이쪽 굴어구를 파헤치면서 덮쳐오면 저쪽 출구로 도망칠 예산이였죠. 그뿐이 아니죠. 차차는 그때부터 뭐나 여지를 두고 미리, 미리 해놓았지요. 그는 다람쥐 충고대로 굴어구 풀은 절대 다치지 않았어요. 먹이풀도 미리 푼푼히 뜯어다가 굴마다에 차곡차곡 쌓아놓았지요. 뭐나 여지를 두고 미리 하는 좋은 습관을 키우기 시작했기에 차차는 산과 들에서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살 수 있게 되였지요. 어느날, 고질병을 떼버리고 탈바꿈한 토끼를 보고 다람쥐와 곰아저씨는 너무 기뻐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토끼는 이른 아침 일찌기 부지런히 풀을 굴에 물어들이였어요. 다람쥐는 나무둥지에서 쪼르르 내려와 토끼를 불러세웠어요. “얘, 차차야, 이젠 뭐나 ‘차차 하지’, ‘차차 보지.’ 하던 나쁜 습관관을 뚝 떼버렸구나.” 차차는 지난 세월의 자기를 돌이켜보고 부끄러웠던지 그저 뒤더수기만 긁적거렸어요. 곰아저씨도 기뻐 어쩔줄 모르며 앞발로 삿대질하며 한마디 했어요. “고질병을 뚝 떼니 딴 토끼로 됐구나. 허허허.” 차차는 고개를 숙이고 발끝으로 땅을 허비였어요. “다 곰아저씨와 다람쥐 충고해준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다람쥐는 앞발을 살래살래 저었어요. “아니야, 이제부터 명심해서 고질병이 도지지 말아야 해.” 차차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다람쥐는 곰아저씨를 돌아보며 이런 말을 꺼냈어요. “곰아저씨, 이젠 조 차차가 뭐나 ‘차차’, ‘차차” 하던 고질병을 뗐는데요. ‘차차’란 별명도 떼버릴 때 된 거 같아요.” “오- 그래.” 곰아저씨는 앞발로 량미간을 짚으며 고개를 기우뚱하였어요. “새 별명 뭐라고 지으면 될까?” 총명령리한 다람쥐가 뭐나 빨랐어요. “’미리’라고 지으면 어때요.” 곰아저씨가 의아해 물었어요. “미리? 건 무슨 뜻이냐?” 차차도 빨쭉귀가 빨쭉해졌어요. 다람쥐가 붓 같은 실한 꼬리를 봄하늘에 휘날려대며 ‘미리’라는 글자를 써가면서 차근차근 설명했어요. “토끼는 이젠 뭐나 미리, 미리 하지 않고 뭡니까. 그래서 ‘미리’라는 새 별명을 지어주면 좋을 거 같아요.” 곰아저씨는 퉁사발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너털웃음을 웃었어요. “허허허. ‘미리’, ‘미리’. 참 좋아.” 그는 가슴을 쭉 내밀고 앞발을 휘두르며 뒤말을 이었어요. “나도 토끼한테 새 별명을 지어주지.” 다람쥐는 박수끼지 쳤어요. “좋아요!’ 곰아저씨는 한참 궁리하고나서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여지’! 차차는 이젠 뭐나 여지를 두고 미리 하잖고 뭐냐? 그러니깐 ‘여지’라고 지은 거야.” 다람쥐는 또 수림이 떠나가게 깔깔깔 웃어댔어요. “얘, 미리야!” 곰아저씨도 껄껄껄 웃었어요. “얘, 여지야!” 차차는 그저 머리만 숙였어요.                                      8 차차는 아직도 승냥이를 시름놓고 살지 못했어요. “헤이, 아무리 굴을 여러개 미리 파놓아도 승냥이 덮쳐오는 걸 미리 발견하지 못하면 굴에 달아들어가기 전에 죽잖아. 전번에도 봐. 곰아저씨가 제때에 오지 않았으면 승냥이나 불여우 밥이 될번 했잖아. 곰아저씨도 항상 내 곁에서 승냥이를 방비할 순 없고...” 고민에 빠진 차차가 아무리 고개를 갸우뚱하고 궁리해도 뾰족한 수 떠오르지 않았어요. 이때 다람쥐가 나무둥지에서 쪼르르 내려왔어요. “얘, 혼자 머리를 썩이지 말고 사냥군아저씨한테서 가르침을 받아라.” “오, 그래. 만물의 령장인 사냥군은 무슨 묘수가 있을 거야.” 곰아저씨가 말렸어요. “사냥군한테 잡혀도 죽어.” 차차는 주춤 멈춰 섰어요. 다람쥐가 도리머리질했어요. “지금 국가동물보호법이 나와서 사냥군은 우릴 잡지 않아. 승냥이를 잡지.” “그 말이 맞아.” 이때 수림 속에서 사냥군아저씨가 나타났어요. “에크!” 곰아저씨는 질겁해 황급히 수림 속에 몸을 숨겨버렸어요. “겁내지 말아. 난 이 수림에서 너희들을 해치는 불법사냥군들과 승냥이들을 살피는 중이야.” 그제야 차차는 시름놓고 사냥군아저씨한테 다가가 물었어요. “아저씨, 듣는 말에 의하면 인간세상에는 크롱복제기술이 있다던데요. 내 몸뚱이를 승냥이보다 더 크게 만들면 어떨가요?” 그러자 사냥군아저씨는 렵총을 둘러메면서 말했어요. “안돼, 몽뚱이 크면 승냥이가 더 잡아먹자고 미쳐 날뛸게 아니야?” “곰아저씨만큼 몸뚱이 뚱뚱하면 승냥이가 겁나 덤벼들지 못하잖을가요?” “코끼리만큼 크면 몰라도…” 차차가 지꿎게 달라붙어 통사정을 하자 사냥군아저씨는차차의 꿈대로 한번 시험해보기로 했어요. 차차는 사냥군아저씨의 가르침대로 주사기로 곰아저씨 앞다리에서DNA를 축출해냈어요. 뒤이어 수림에서 덩치 제일 큰 벨지끄토끼를 불러다가 주사기로   뒤다리에서DNA를 축출해냈어요.  뒤이어 차차는 사냥군아저씨의 가르침을 일일이 받으면서 크롱기술로 몸뚱이 엄청 큰 곰토끼를 만들어냈어요. 어느날, 수림 속에 승냥이가 어슬렁어슬렁 나타났어요. “승냥이! 승냥이 왔다!” 다람쥐가 나무가지 우에서 소스라쳐 고함쳤어요. 승냥이는 수림을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에크! 저게 뭐냐?” 수림 속에서 커다란 곰처럼 생긴 놈이 풀쩍풀쩍 뛰노는 것이 아니겠어요. 승냥이는 수림에 납짝 엎드려 대가리만 쳐들고 그 괴물 같은 놈을 살펴 보았어요. 몽뚱이는 곰처럼 펑퍼짐하고 머리는 곰머리 같았는데 뒤다리가 길고 앞다리가 짧았어요. 이상한 건 곰처럼 고기를 뜯어먹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풀을 뜯어먹는 것이 아니겠어요. 또 곰처럼 엉기정엉기정 네발로 걷거나 두 발로 걷는 것이 아니라 네발로 토끼처럼 풀쩍풀쩍 뛰는 것이 아니겠어요. (몸뚱이는 커도 곰처럼 힘차고 날랠 건 같잖아. 혹시 저 놈이 곰가죽을 쓴 뭐가 아닐가?” 승냥이는 괴물을 떠보려고 어슬렁어슬렁 다가가 마른 기침을 깇어보았어요. 뜻밖에 그 놈은 오히려 질겁해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지 않겠어요. 담대해진 승냥이는 아가리를 쩍 벌리며 조심스레 몇발자국 덮쳐들어 보았어요. 갑자기 그 놈 괴물은 땅바닥에 힌들 들어눕더니 네발로 덮쳐드는 승냥이를 탁탁 올리차는 것이 아니겠어요. 승냥이는 황급히 몇발자국 뒤로 물러섰어요. (딱 어디서 보던 동작인데.) 이윽고 승냥이는 피뜩 떠오르는 뭔가 있었어요. 하늘에서 덮치는 독수리를 핸들 누워 네발로 차던 토끼 동작이 떠올랐지요. (혹시 이 놈이 토끼 아닌가? 건데 이제껏 보지도 못한 너무 큰 괴물이잖아.) 승냥이는 도리머리질하다가 재차 덤벼들었어요. 괴물은 또 힌들 눕더니 네발로 탁탁탁 올리차는 것이였어요. (오호, 곰은 무슨 놈의 곰, 흥! 올리 차는 재간 밖에 없는 토끼등속이구나.) 승냥이는 이빨을 빼물고 차차한테 덮쳐들었어요. 땅! “사냥군이 온다!” 총소리, 고함소리를 듣고 승냥이는 차차를 놔두고 황망히 수림 속으로 도망쳤어요. 이윽고 곰아저씨와 사냥군 아저씨가 달려왔어요. 사냥군아저씨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차차를 위안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어요. “몸뚱이만 커서야 어찌 자기를 보호할 수 있겠느냐?” 차차는 도리머리를 저었어요. “곰토끼는 어쩜 곰의 용맹한 성격은 하나도 닮지 못했을가요?” 사냥군아저씨는 차차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위안해주었어요. “괜찮아. 아마 곰 유전자보다 토끼 유전자가 더 복제돼 그런 모양이야. 이제 곰 유전자를 더 복제하면 될 거야. 곰처럼 덩치나 용맹성보다도 더 중요한게 있어. 이젠 야수들도 날따라 현대과학기술로 무장하는 새 시대에 현대과학기술로 무장해 승냥이를 대처해야 해.” 사냥군아저씨 말씀은 참 새 시대에 걸맞는, 원견 있는 말씀이였어요. 차차가 커다란 몸뚱이를 숨기려고 커다랗고 깊은 동굴을 여러개 파놓고 굴어귀에 나무도 심어 가려놓았지만 별 쓸모없었어요. 교활한 승냥이는 전자상점에서 훔쳐온  지뢰탐측기 같기도 하고 정구채 같기도 한 최첨단 냄새추적기를 주둥이에 물고 수림 속이랑 동굴이랑 돌아다니면서 차차 같은 약자동물들의 냄새를 탐지해내 덮쳐들군 했어요. 전번에도 다행히 다람쥐가 보초를 서다가 미리 기별해주었으니 말이지 하마트면 봉변을 당할 번하였어요. 어떤 때에는 사냥군아저씨랑 곰아저씨랑 제때에 쫓아와 으름장을 놨으니 말이지 목숨도 보존하기 힘들었지요. 차차는 동굴에 숨어 숨을 헐떡거리면서 속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렸어요. “괜히 덩치를 부풀려서 과녁만 더 커지고 미리 파놓은 동굴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됐잖아. 수림에 숨어도 쉽게 드러나고. 에이, 참.”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차차는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어요. “옳지. 그래야지.” 차차는 사냥군아저씨를 찾아가 자기 생각을 말했어요. 그리고 사냥군아저씨 도움을 받아 전자상점에 가서 최첨단위치추적기와 9G핸드폰을 샀어요. 그는 최첨단위치추적기를 동둘 옆의 나무가지에 장치해놓고 원격조종 전자톱날덫을 사다가 새로 파놓은 커다란 굴어귀마다 일일이 장치해놓았어요. 어느날, 차차가 동굴에서 핸드폰 위치추적기를 들여다보다가 승냥이가 또 정구채 같은 냄새추적기를 물고 수림 속에 나타난 것을 발견하였어요. 승냥이는 어슬렁어슬렁 벨지끄토끼가 숨은 동굴어귀로 기여들었어요. 차차는 원격조정기 단추를 꼭꼭 눌렀어요. “철꺽!” 승냥이는 커다란 전자톱날덫에 주둥이를 치워 버둑거리며 깨갱거렸어요. “이놈! 너도 이런 날이 있구나.” 현대첨단과학무기로 무장한 차차는 슬기롭게 승냥이를 나포하고 이제부터 수림 속에서 곰아저씨랑 다람쥐랑 함께 편안하게 살게 됐지요. 사냥군아저씨는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껄껄 웃었어요. “차차는 별명도 많구나. 뭐나 ‘차차” 하지 하며 게으름 피웠을 땐 ‘차차’.” 다람쥐도 나무 우에서 쪼르르 바라내려와 곰아저씨 어깨에 폴짝 뛰여내리며 종알거렸어요. “뭐나 여지 두고 미리, 미리 할 때는 ‘여지’, ‘미리’!” 곰아저씨도 수림이 떠나가게 고함쳤어요. “이젠 ‘곰토끼’!” “아니야! 이젠 ‘총명한 벨지끄토끼’!” 차차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며 게을렀던 과거에 참회의 고개를 숙였어요.            
263    수필 친구 김장혁 댓글:  조회:1441  추천:0  2021-03-10
                                           수필                                                           친구                                                                        김장혁         한번은 백산호텔연회청에서 여느 생일보다도 굉장히 쇠였다. 다른 해 생일에는 국외에 나간 형제들을 빼고나면 극상해야 형제자매와 조카들, 친구들까지 합해서 고작 세상이면 다였다. 그러나 이번 생일에는 손님이 전례없이 여섯상이나 되였다. 그럼 형제자매와 조카들을 빼고 나머지 숱한 손님들이 몽땅 내 친구란 말인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 속에는 사회관계로 찾아온 손님이 대부분이고 중소학교와 대학교 동창생들도 있었다.  생일 손님은 많아졌지만 친구가 많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속에 진정한 친구는 몇몇 밖에 없었다. 그럼 왜 생일상은 많아졌지만 징정한 친구는 늘어나지 않았는가? 한마디로 진정한 친구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시련을 겪고 시간과 공간, 리해득실, 의리의 고험을 거친 그런 진정한 친구는 드물다. 20몇년 전 일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평소에 내가 형님으로 높이 모시고 따르던 형님은 “착오”를 지고 학교에 남아 아래학급생들과 함께 숙사에 들어 있어야 했다. 나는 정신상, 경제상 어려운 처지에 처한 형님이 어찌나 불쌍하였던지 자주 찾아가 술대접을 하면서 독한 술로 마음속의 고통을 위안해주었고 달마다 로임 45원을 타면 반을 나눠 그 형님에게 주군 하였다. 그런데 형님은 몇십년이 지나도록 그 일을 두고 동창생들을 만나기만 하면 외우군 하였다. 그러나 나는 형님이 나를 도와준 은덕에 비하면 형님에게 해준 것이 너무나도 보잘 것 없다고 본다. 형님은 여섯살이나 지하인 철부지 나에게 삶의 도리와 의리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었고 내가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항상 친형님처럼 처처에서 나를 도와주군 하였다. 스물다섯 돼도 약혼 하나 못한 것을 보고 숱한 녀대생들을 소개해주었고 졸업배치 때에도 발벗고 나서서 밤중까지 달아다녔었지. 형님은 지금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내가 어찌 형님의 은정을 잊겠는가. 하기에 사업관계로 천리 떨어져있을 때에도 형님과 나는 늘 지척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자주 만나지 못하고 생일상에는 서로 다니지 못하였지만 한해에 한두번, 아니 몇해에 한두번 만나도 우리는 그렇게 기쁘고 마음이 통하였다. 나는 형님을 알면서부터 남자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였고 형님을 알면서부터 형제의 정과 친구의 의리를 알게 되였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어려울 때에는 간도 다 빼줄 상을 하면서 도와달라고 애원한다. 딱 연극배우 같다. 그러나 일단 강을 건느면 다리를 뜯어버린다. 강을 건늘 때 다리의 은정을 다 잊어버린다. 한 고중동창생은 과수원을 다루는데 돈이 딸려 뀌워달라고 비난사정을 다하였다. 나도 새 집을 샀기에 장식을 해야겠기에 돈이 딸렸다. 그러나 그 친구의 과수농사를 망칠가봐 심사숙고 끝에 10여년 전 돈으로 만원을 뀌워주었다. 후에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한테서도 만원씩 꾸어 차를 사서 타고 돌아다니였다. 그 친구는 돈을 꿔서 차를 산 신세에 동창생들을 만나면 어깨 으쓱해 한해에 과수수입이 15만원씩이나 된다고 한바탕 불어댔다. 그러나 10여년이 되도록 친구들에게서 꾼 돈을 갚지도 않았다. 흥청망청 유흥놀이에 돈을 마구 쓰다나니 나중에 과수원마저 다 말아먹고 한국으로 훌 달아나버렸다. 10여년이 되여서도 친구들의 돈을 돌려주지도 않고 오히려 자기 쪽에서 “친구라는게 무정하게 빚재촉을 한다”면서 친구관계를 끊겠다고 횡설수설하였다. 이렇게 실용을 앞세우고 리해득실만 따져가면서 허위적으로 친하는 그런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니다. 그래서 성인께서는 “친구간에 절대 돈거래를 하지 말라. 돈거래하면 언젠가는 친구가 벌어진다”고 하시였는 모양이다.  어떤 사람들은 평소에는 제일 가까운 친구인것처럼 하지만 관건적인 시각에는 나는 몰라라 하고 발뺌을 한다. 한번은 장기를 놀다가 말썽이 생겼다. 청년애들은 장기에 지고나서 승풀이를 하려고 핸드폰으로 친구들을 불렀다. 그러자 평소에는 친구라고 그림자처럼 묻어다니면서 맥주나 얻어먹던자가  그 자리에서 바람결처럼 사라져버렸다. 다행히 한단위의 동료가 파출소에 전화를 쳐서야 처참한 물매질이 끝났다. 그후부터 나는 그자를 친구로도 상종하지 않았을뿐만아니라 사람으로도  보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평소에는 “친구”, “형님” 하지만 일단 자기가 나가는 앞길에 걸림돌이 되기만 하면 가차없이 잘라버리거나 팔아먹는다. 그런자들은 자기에게 리득이 될만하다고 생각하면 친구라고 찾아다니지만 기회만 있으면 형제도 팔아먹고 민족도 팔아먹고 나라도 팔아먹을수 있는자들이다. 평소에 먹어라, 써라 하는 “친구”는 술친구에 지나지 않는다. 날마다 코를 맞대고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면서 술이나 먹고 노래방이나 다니고 안마나 받고 해서 딱친구인것이 아니다. 평소에 아주 친한것처럼 생일에나 다니고 술친구를 하지만 관건적인 시각에, 어려운 시각에 나는 몰라라 하고 발뺌을 하는 “친구”는 친구가 아니다.  리해득실을 따져가면서 실용적으로 친하고 불리할 때는 친구를 팔아먹는 “친구”는 친구가 아니라 “역적”이고 간신배이다. 부은 살은 자기 살이 아니다. 리해득실을 토대로 하여 맺어진 “친구”는 리해득실에 의해 갈라지고만다. 물렁물렁한 논두렁에 아무리 흙을 퍼올려도 사람이 밟으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만다. 세상에 정말 자기 마음에 드는 진짜 믿을만한 친구는 몇이 없다. 세상만물이 모두 상대적인것만큼 절대적친구란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 절대적인 친구를 추구하면 자기와 똑같이 생기고 성질도 같고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움직이는 친구—자기 그림자밖에 없게 되고만다. 그렇게 되면 점점 친구는 줄어들고 고독해지고 우울해지게 된다. 하기에 상대적으로 마음에 드는  친구, 이러저러한 여러 류형의 친구를 사귀게 되는것이다. 장기친구, 트럼프친구, 술친구, 문학친구,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고 비밀이 없을 정도로 가장 절친한 죽마고우, 숙명처럼 물과 고기의 삶을 한 수어지교(水漁之交)의 친구, 무쇠와 돌처럼 견고한 철석지교(铁石之交)의 친구, 서로 의기가 모여 편안한 막역지교(莫逆之交)의 친구, 허물이 없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친구, 목숨 내걸고 맺은 신의(信義)의 친구,  문경지우(刎頸之友)… 어떠한 친구라도 한명쯤 곁에 두고 산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수 있다. 진실한 감정과 의리에 토대하여 정을 쌓아가고 곡절과 시련을 겪어야만 진정한 친구로 될수 있으리라. 환히 드러난 지상에서 잎사귀만 맞대고 사귈것이 아니라 남들이 보이지 않는 지하에서 뿌리와 뿌리가 잇닿고 사귄것처럼 사귄 친구야 말로 진정한 친구이다. 관건적인 시각에, 어려운 시각에 걱정해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주면서 도와나서는 그런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지척에 있는것처럼 느껴지며  아무리 한해에 한두번 만나도 마음속에 와닿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다. 아무런 대가도 조건부도 필요없는 친구, 인생의 동반자와도 같이 희로애락을 같이 하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다. 그 어떤 시련과 곡절을 겪더라도 끄떡하지 않고 변함이 없는 친구, 인간적이고 량심적인 친구, 아무런 리해득실도 따지지 않고 의리심이 강한 그런 친구가 진정한 친구가 아니겠는가!              
262    동화 어비 김장혁 댓글:  조회:1363  추천:0  2021-03-02
                    동화                                            “어비”                                                                   김장혁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더니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내렸어요. 호랑이는 시골마을 외딴 집에 살진 말을 잡아먹으려고 산에서 어슬렁어슬렁 내려왔어요. 호랑이는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런 동정이 없자 말을 매둔 헛간 문을 열고 어슬렁 기여들었어요. “응아, 응아-” 갑자기 집의 어린애가 자지러지게 울었어요. 어머니는 어린애를 달랬어요. “얘, 울지 말라. 자꾸 울면 호랑이 온다.” 호랑이는 깜짝 놀랐어요. 호랑이는 대가리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퉁사발눈을 떼룩 굴리며 중얼거렸어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어떻게 돼 내 온 걸 안담? 오늘 밤엔 각별히 조심조심해야겠군.’ 호랑이는 어슬렁거리며 구유 쪽으로 가서 말고삐를 물어 끊으려고 했어요. “응아, 응아-” 애가 자지러지게 계속 울자 이번에는 이렇게 달래는 소리가 들렸어요. “왜 자꾸 우니? 자꾸 울면 이젠 어비(어베) 온다.” 그러자 어린애가 울음을 딱 그치는 것이 아니겠어요. 호랑이는 무서워졌어요. ‘저 아줌마가 내 온다고 해선 계속 울던 어린애가 어비 온다니 무서워서 울음을 딱 그치지 않는가. 어비란 거 진짜 무서운 놈인 모양이지.’  호랑이가 중얼거리면서 놀라서 투레질하는 말을 슬슬 매만져 달래며 고삐를 풀려고 했어요. 삐꺼덕.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뭔가 헛간에 들어서지 않겠어요. 그러자 몸채에서 어머니가 어린애를 달랬어요. “봐라. 자꾸 울던게 헛간에 어비 왔다.” 호랑이는 깜짝 놀랐어요. ‘어비?!’ 호랑이는 깜짝 놀라 말고삐를 놓고 한쪽 구석에 가서 숨어 어비란 놈의 동정을 살폈어요. 어비는 살금살금 어둠 속을 더듬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이구, 이걸 어쩌는가?’ 호랑이는 숨을 딱 죽이고 까딱하지 못하고 서 있었어요. 어비는 먼저 말을 매만져보다가 그만두고 이쪽 구석으로 다가와 호랑이 배를 슬슬 매만졌어요. 어비는 살진 호랑이 배며 잔등이며 매만져보았어요. “이 놈이 더 살졌구나.”  어비란 놈은 중얼거리더니 훌쩍 호랑이 잔등에 올라탔어요. 깜짝 놀란 호랑이는 “어비야!” 하고 고함치면서 헛간 문을 박차고 바깥으로 훌쩍 뛰여나갔어요. 어비는 잔등에서 고삐를 찾자고 손으로 더듬었지만요. 헛수고였어요. 호랑이는 잔등에 어비가 매달려 있는지라 너무 놀라 똥물을 쫠쫠 내쏘면서 단숨에 수림 속을 30리나 도망쳤어요. 기실 어비란 놈은 열댓살난 꼬맹이 꾀보였어요. 날이 푸름해 오자 꾀보는 자기가 타고 나온 것이 살진 말이 아니라 얼룩 호랑이라는 것을 발견했어요. ‘이걸 어쩌나?’ 꾀보는 한참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것인가를 궁리하다가 호주머니를 뒤적거렸어요. 호주머니에 전날 신을 기울 때 쓰던 송곳이 만지웠어요. ‘됐어.’ 꾀보는 송곳을 꺼내 틀어쥐고 호랑이 잔등을 쿡쿡 찔렀어요. “아이구, 아파라. 어비님, 왜 이럽니까? 제발 살려 주십시오.” “어비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나 하느냐?” “예, 예. 금방 그 집 어린애가 내 온다고 해선 계속 울더니 어베님이 온다고 하니 울음을 딱 끄치지 않겠습니까? 그걸 봐도 어비님은 산중대왕인 나보다 훨씬 무서운 놈, 아니, 아니, 무서운 님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됐습니다.” 꾀보는 송곳으로 호랑이 잔등을 푹푹 찔렀어요. 호랑이 잔등엔 피가 즐벅했어요. 호랑이는 너무 아파 애원했어요. “아이구, 그저 말하십시오. 왜 짜꾸 찍습니까?” 꾀보는 송곳으로 자꾸 찌르면서 호통쳤어요. “이건 새끼손가락으로 찌른 거야. 뒤만 올려다보면 이렇다. 알았어?” “아이구, 아파 죽겠습니다. 군자는 말로 하지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비님은 산중대왕보다 더 센 걸 보면 군자겠는데 그저 입으로 말하고 자꾸 찌르지 마십시오.” 그러나 꾀보는 계속 송곳질을 하면서 다짐을 땄어요. “이제 말을 고분곤분 듣지 않으면 이렇게 새끼손가락으로 찌르는게 아니라.엄지로 쿵 찍어 죽여버릴테야.” “아이구, 제발 엄지로 찌르지 마십시오. 제가 뭐든 다 들어줄테니까.” 꾀보는 저 앞 수림 속에 큰 구새통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다짐을 땄어요. “저 고새통나무 앞에 가서 내가 내릴테야. 눈깔을 딱 감고 까딱 말고 서 있어라. 내가 됐다고 하기 전에 눈을 뜨기만 하면 엄지로 찍어 죽여벌테야. 알만해?” “아가, 아파라, 예, 예. 분부대로 눈을 딱 감고 가만 있겠습니다. 어비님,” “이제부터 눈을 딱 감아라.” “네, 네.” 꾀보는 호랑이가 눈을 딱 감은 것을 보고 호랑이 잔등에서 사르르 내려 구새통 안으로 쫑드르르 달려들어갔어요. 그런데 음흉한 호랑이는 어째 잔등에서 내리는 어비가 하도 작은 것 같아 가만히 실눈을 해가지고 발자욱 소리를 따라 가만히 되돌아 보았어요. 그런데 구새통으로 들어가는 어비 발뒤축 밖에 보지 못하였어요. “어째 어린애 발뒤축 같은데.” 순간 호랑이는 복수심이 욱 치밀었어요. 그러나 어베가 을러메던 일을 생각하고 호랑이는 구새통을 멍해 보다가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에이, 괜히 어비를 잘 못 건드렸다가 엄지에 찔려 죽으면 어떡해? 새끼손가락으로 찔러놓은 것도 아파 주겠는데. 그만두자.” 호랑이는 맥없이 수림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곰을 만났어요. 곰은 머리를 수깃뜨리고 꼬리를 늘여뜨리고 마주 오는 호랑이를 보고 이상해 물었어요. “너 어째 기분 썩 좋지 않은 거 같구나. 아무 것도 사냥하지 못해 굶은 게 아니냐?” 호랑이는 머리를 수깃하고 “오늘 참 재수 없어.” 하고 오늘 어비한테 당한 일을 쭉 얘기 했어요. 그러자 곰은 무릎을 탁 쳤어요. “어비는 무슨 놈의 어비야. 오늘 아무 것도 잡지 못했는데 그 놈을 우리 잡아먹자.” 호랑이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그만둬라. 산중대왕인 나도 어쩌지 못했는데. 네라구 무슨 용 빼는 수가 있겠느냐? 괜히 엄지손가락에 찍혀 죽지 못해서.” 그러나 곰은 호언장담했어요. “겁쟁이라구. 이제껏 우리 산중에 우릴 당할자가 그 누구였느냐? 어비란 놈이 그렇게 세단 말은 듣다 첫소리야. 그 놈이 얼마 센가 우리 둘이 힘을 합쳐 한번 해보자.” 곰의 말에 호랑이는 마지못해 따라나섰지요. 시꺼먼 아가리를 쩍 벌린 구새통아구리를 보고 호랑이는 어비가 당장 뛰쳐나와 엄지손가락으로 찌를가봐 겁이 났어요. 량미간을 찌프리던 호랑이는 곰에게 이런 제의를 했어요. “얘, 넌 날지 못하니까. 이 구새통 어귀를 지켜라. 내 구새통 우에 날아올라가 그 놈을 사로잡을게.” 곰은 다른 생각이 없이 “그러마.” 하고 선선히 대답하고는 두 팔을 쩍 벌리고 구새통을 떡 막아 끌어안고 서 있었어요. 호랑이는 그때라고 구새통 우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당장 어비를 잡아먹을 상했어요. 한편 꾀보는 구새통 안에 갇혀 꼼짝달싹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어요. “이걸 어쩐다? 호랑이와 곰이 련합공격을 하면 죽을게 뻔한데.” 호랑이에게 물려도 정신을 바짝 차리면 살아날 수 있다고 꾀보는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가를 궁리를 굴리고 또 굴렸어요. 그는 구새통 아구리를 두팔로 안고 떡 버티고 서 있는 곰의 배를 송곳으로 푹푹 찔렀어요. 곰은 너무 아파 뒤로 벌렁 나자빠지면서 고함쳤어요. “어비!  날 죽인다!” 호랑이는 구새통 우에서 뛰여내리면서 피가 랑자한 곰의 배를 보고 물었어요. “어비한테 찔렸지?!” 그때라고 꾀보는 호통쳤어요. “네놈들, 이제 엄지손가락으로 찔러 죽여버릴테다?!” “어이쿠!” “어비야!’ 호랑이와 곰은 질겁해 수림 속으로 줄행랑을 놓았어요. 한참 후 꾀보는 호랑이와 곰이 자취를 감춘 것을 확인하고 구새통에서 살그머니 나왔어요. “허허, 제 방귀에 놀라 도망친 우둔한 놈들이라구야. 힘만 세면 산중대왕질을 하는가 하느냐? 흥!” 호랑이와 곰이 그렇게 겁나 하던 어비-꾀보는 송곳을 쳐들고 피씩 웃더니 살금살금 수림 속으로 사라졌어요.
261    동화 호랑이와 궁바우 김장혁 댓글:  조회:1949  추천:0  2021-02-22
                           동화                                                      호랑이와 궁바우                                                                                                       김장혁         궁바우는 활을 잘 쏘아 유명한 사냥군 세가 궁씨 가문에서 태여났지요. 보세요. 성마저 활이라는 궁씨 아닌가요.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는 수림 속에 사냥하러 갔다가 불행하게도 산중대왕 호랑이한테 물려 어린 궁바우를 남겨두고 너무나도 총망히 세상을 떠나갔어요. 그때부터 어머니는 아버지 원쑤를 갚으려고 날마다 어린 궁바우에게 사냥기술을 가르쳐주었지요. 어머니는 궁바우를 창문과 마주 앉혀놓고 차근차근 가르쳤어요. “얘야, 저 창문살을 계속 봐라.” 궁바우는 의아해했어요. “창문살을 봐서 뭘 해요? 빨리 활쏘기나 배워주세요.” 어머니는 내심하게 타일렀어요. “얘야, 활을 잘 쏘려면 먼저 과녁부터 똑똑히 봐야 한다. 그래야 면바로 맞힐 수 있어. 잔말 말고 창문살을 오래오래 똑똑히 봐. 뭐가 보이는가?” 궁바우가 한참 창호지를 바른 창문살을 봐도 그게 그게였어요. “그저 네모난 창문살이군요.” 궁바우는 기지개를 켜면서 “어머니, 지루해 못 보겠어요.” 하고 눈을 부비였어요. 어머니는 “아직 제대로 보지 못했어. 창문살을 자세히 살펴봐라. 어떤가?” 하고 부탁했어요. 그제야 궁바우는 창문살을 찬찬히 뜯어보았어요. “아, 창문살에 무늬가 갔군요.” “그래, 무늬가 갔지.” 어머니는 궁바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부탁했어요. “날마다 더 찬찬히 창문살을 봐라.” 그때부터 궁바우는 아침을 먹고 숟가락을 놓기 바쁘게 날마다 한참씩이나 창문살을 살폈어요. 이젠 창문살이 기둥만큼이나 돼 보였고 창문살에 앉은 파리도 메돼지만큼 돼 똑똑히 보였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궁바우에게 날마다 활을 쏘는 재간을 배워주었어요. 궁바우는 오른손 식지가 활줄에 다슬어 피가 터져도 이를 옥물고 계속 활을 쏘고 또 쏘았어요. 어느날 어머니는 물동이를 이고 샘물터로 가면서 궁바우를 보고 부탁했어요. “내가 물동이를 이고 올 터이니 활로 물동이에 얹은 바가지를 쏴라.” 궁바우는 눈이 휘둥그래졌어요. “아니, 그러다가 어머니를 쏘면 어떻게 해요.” 어머니 마음은 무거워졌어요. “대담히 쏴라. 그런 용기하구 재간도 없이야 어떻게 아버지 원쑤를 갚으러 간다고 그러느냐? 너네 아버진 물동이 우의 바가지를 백발백중했어. 그래도 산중 대왕 호랑이를 잡지 못하고 목숨마저 잃었다.” 어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동이를 이더니 바가지를 쥐고 샘물터에 갔어요. 이윽고 진짜 물을 꼴똑 퍼담은 물동이에 바가지를 얹어 이고 이쪽으로 걸어왔어요. “궁바우야, 어서 쏴라!” 궁바우는 활을 들어 묘준했지만 손이 부르르 떨려 쏠 수 없었어요. 어머니를 쏠가봐 겁났기 때문이죠. “어서 쏴! 물동이 우의 바가지를 맞히지 못하면 영영 아버지 원쑤를 갚으러 가지 못할줄 알아라!” 궁바우는 마지못해 활을 들었어요. 그는 왼쪽 눈을 지긋이 감고 물동이 우에서 찰랑거리는 바가지를 뚫어지게 쏘아보았어요. 물동이 아래 웃는 어머니 상냥한 얼굴도 보였어요. 또 손이 바들바들 떨렸어요. “그렇게 떠는 새면 진작 호랑이한테 물려 죽겠다. 어머니를 보지 말고 바가지만 보고 쏴라!” 그제야 궁바우는 바가지만 뚫어지게 쏘아보았어요. 찰랑거리는 바가지가 물항아리만큼 보였어요. 바가지 주위에 나비가 하늘하늘 춤추며 날아예는 것도 보였어요. 궁바우는 이를 옥물었어요. 씽- 깍지를 떼자 화살이 날아가 어머니가 인 물동이 우에서 찰랑거리던 바가지를 꿰뚫어 박산냈어요. 물동이 물이 튕겨 어머니 얼굴과 몸에 물벼락을 안겼어요. 어머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동이를 인채 다가오면서 여간 기뻐하지 않았어요. “장하다! 우리 궁바우. 우리 가문에 또 명사수 탄생했구나.” 어머니는 물동이를 내려놓고 궁바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나서 어깨를 꼭 껴안고 의미심장하게 말했어요. “얘, 궁바우야, 명심해라. 호랑이에게 물리워도 정신을 올똘하게 차리면 살 수 있다. 호랑이 꼬리는 놓치지 말아야 살아.” “네, 어머니, 꼭 명심하겠어요.” 이튿날 궁바우는 활을 메고 아버지 원쑤를 갚으려고 산중 대왕 호랑이를 찾아 떠나게 됐어요. 어머니는 품 속에서 시퍼런 비수를 하나 꺼내 주었어요. “얘야, 이건 아버지 남긴 비수야. 꼭 아버지 원쑤를 갚고 돌아오너라.” “예, 어머니. 꼭 살아서 돌아와 어머니께 효성하면서 행복하게 살겠어요.” 궁바우는 말을 마치자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와 헤여져 산 속 수림으로 들어갔어요. 해가 꼴깍 넘어가자 여기저기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난생 처음 수림 속에 들어온 궁바우는 질겁했어요. 한참후 호랑이무리가 나타났어요. 호랑이들은 마을에 내려가 돼지며 염소며 망아지랑 물고 수림 속으로 돌아오고 있었어요. 처음 수림 속에서 그렇게 많은 호랑이를 보는 순간 궁바우는 질겁해 바들바들 떨기만 했어요. 그때 어머니 말소리가 들리는 상 싶었어요. “얘야, 호랑이한테 물려도 정신만 올똘하게 차리면 살 수 있어.” 그제야 정신을 바짝 차린 궁바우는 활을 꺼내 호랑이를 묘준해 한대 쏘았어요. 씽- 날아간 화살은 수림 속에서 얼른거리던 퍼러스름한 불똥에 꽂혔어요. “아이구! 엄마!” 새끼호랑이가 아우성쳤어요. 산중 대왕 호랑이는 새끼호랑이 눈에 박힌 화살을 빼면서 중얼거렸어요. “아니, 이 야심한 밤에 웬 놈이 활을 쏴?!” 산중 대왕 호랑이는 두리번거리더니 아름드리나무 아래에서 활을 쏘려는 궁바우를 발견했어요. “저 놈새낄 잡아오너라.” “옛!” 새끼호랑이 두마리나 눈에 뻘건 불을 켜고 덮쳐왔어요. 궁바우는 얼른거리는 퍼런 불들을 겨눠 단번에 화살 두대나 쏘았어요. “아이쿠!” “눈이야!” “엄마, 날 살려주오!” “아니, 저 놈, 명사수로구나.” 산중 대왕 호랑이는 질겁해 굴로 도망쳐 들어가려고 했어요. “호랑이 꼬리는 놓치지 말아야 살아.” 또 어머니 목소리가 울려퍼졌어요. 궁바우는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산중 대왕 호랑이 꼬리를 꽉 잡고 뒤로 당겼어요. 산중 대왕 호랑이는 얼룩덜룩한 꼬리를 휘저으면서 굴 안에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다 썼어요. 뒤에서는 숱한 호랑이 새끼들이 몰려 왔어요. 그러나 궁바우는 그 꼬리를 놓치면 죽을가봐 단단히 잡고 뒤로 뻗쳤어요. 어찌나 세게 뻗쳤는지 호랑이 꼬리 껍질이 쭉 뻣겨졌어요. 궁바우의 발이 흙 속으로 마구 빠져들어갈 지경이였어요. 산중 대왕 호랑이는 음흉하게 몸을 홱 돌려 대문짝 같은 아가리를 쩍 벌려 궁바우를 꿀꺽 삼켜버렸어요. 궁바우는 한참 시꺼먼 굴로 들어가더니 둥글넙쩍한 방 같은데 퉁 떨어졌어요. 구린내를 무릅쓰고 눈을 부비고 보니 이게 웬 일인가요? 아, 글쎄 호랑이 배 속에 들어가 갇힌 것이 아니겠어요. 호랑이 배 천정에는 뻘건 간이 디룽디룽 걸려 있었는가 하면, 가마뚜껑만한 심장이 풀떡풀떡 뛰고 있지 않겠어요. 궁바우는 배고픈지라 허리춤에서 어머니가 준 시퍼런 비수를 뽑아 먼저 커다란 령지초처럼 생긴 간을 썩뚝 베내 씹었어요. 쫄깃쫄깃한 것이 아주 맛있어요. “아이구, 너희들이 무슨 놈의 독종을 잡아다 어미한테 먹였느냐? 간이 왜 이렇게 아프냐?” 작은 호랑이들은 속으로 코방귀를 뀌였어요. ‘흥! 혼자 돼지처럼 먹더니. 우릴 탓하긴.’ “아이구, 간이야!” 산중 대왕 호랑이는 간이 너무 아파 굴 밖에 뛰쳐나가 배를 끌어안고 땔땔 구을었어요. 그는 새끼들을 무섭게 쏘아보면서 고함쳤어요. “얼른 가서 간에 좋은 약초를 캐 오너라! 아이구, 간이야!” 그러나 새끼들은 엉거주춤 멈춰선 채 두덜거렸어요. “사냥군을 통채로 삼켜서 그런데. 어데 가서 불시에 약초를 캐온다고 그래요?” “뭐라고 이놈들, 다 죽어봐라!” 산중 대왕 호랑이는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 올라 새끼호랑이들을 마구 물어죽였어요. 궁바우는 산중  대왕 호랑이 배속에서 이번에는 비수로 펄떡펄떡 뛰는 심장을 도려냈어요. 산중 대왕 호랑이는 “앗!” 비명 한마디 지르더니 푹 쓰러져 죽고 말았지요. 궁바우는 비수로 호랑이 배를 가르고 또 가르고 나중에 머리부터 밖으로 쏙 빠져나왔어요. 어두운 수림 속에는 산중 대왕 호랑이한테 물려 죽은 숱한 새끼호랑이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어요. 아버지를 살해한 산중 대왕 호랑이는 씨뻘건 혀를 가로 물고 쓸러져 있었어요. 궁바우는 산중 대왕 호랑이를 쏘아보면서 중얼거렸어요. “어머니, 어머니 말씀이 천만지당해요. ‘호랑이한테 물려도 정신만 올똘하게 차리니  살아서’ 끝내 아버지 원쑤를 갚았어요.”      
260    수필 생과 사를 가로 탄 용기 김장혁 댓글:  조회:530  추천:0  2021-01-29
                                     수필                            생과 사를 가로 탄 용기                                                                                                                                                                                                               김장혁        텔레비죤을 보니 한국에서 며칠 사이에 실련하였거나 실업당한 청년 넷이 삶의 용기를 잃은 나머지 연탄가스를 먹고 집단자살했다고 하였다. 일본 후지산에 유람 갔을 때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해마다 수십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후지산 기슭 유령삼림에 와서 자살한다고 하였다. 자살한 사람들 가운데는 삶의 재미를 잃었거나  실련하였거나 실업당했거나 사업에서 실패한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자살이란 새로운 자극을 찾으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기실 삶의 용기를 잃은 사람들이 후지산 기슭 유령살림에 가서자살한다고 하였다. 이러루한 비극적인 소식을 볼 때마다 자살하려고 한 적이 있는 나는감회가 남다르다.       열여섯살 때 초중을 졸업하면서 아래학년의 한 녀학생에게 어설프게 "련애쪽지"(기실 지금 보면 그저 그 녀자애와 함께 학습도 경쟁하고 이담 대학에 함께 가서 공부를 하자는 내용뿐이였다. 그런데 당시에는 련애편지로 각인됐다.)를 썼다가 들키운 일이 있었다. 이름도 밝히지 않았댔는데 스파이와도 같은 담임교원이 사건진상을 해명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녀자애가 글쎄 그 련애쪽지를 받고 겁나 어머니한테 보였는데 어머니가 선생님한테 바치라고 해 바쳤다고 하였다. 그 때문에 나의 천진란만한 첫사랑이 처참하게 짓밟힌 것은 놔두고 애들에게 놀리움을 당해  머리도 들고 학교를 다닐수 없게 되였다. 그 녀자애 손 한번 쥐여도 보지 못하고, 조용히 말 한마디 해보지도 못하고 에덴 동산의 과일을 훔쳐 먹은듯이 애들한테 봉변을 당해야만 하였다. 그 일로 하여 날마다 집에서는 책가방을 메고 떠나갔지만 학교로 가지 못하고 고향 서쪽에 있는 칼산에 가서 소설책이나 읽다가도 집으로 돌아오군 하였다. 비가 오면 군용갱도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 어떤 때에는 점심에 돼도 련애쪽지 사건이 탄로났을가 봐, 아버지 부릅뜬 세귀눈을 보는 것만 같아 감히 집에 밥 먹으러 가지도 못했다. 배고프면 산 아래에 내려가 자기 집 남새밭에 가서 오이나 가지를 뜯어먹고 갱도에서 소설책이나 보면서 진짜 “백모녀처럼 살았다.” 몇달이 지나 나중에 담임교원까지 찾아와서 부모님께 내가 몇달 동안 학교로 가지 않았다고 고충을 들이대는 바람에 모든 것이 탄로나고 말았다. 성이 꼭두까지 치민 아버님께서는 너무나도 실망한 나머지 나를 물매질하다가 집에서 쫓아내기까지 하셨다. 엄동설한에 맨발바람으로 집에서 쫓겨난 나는 어데로 갈데 없었다. 다행히 막내누나가 가져다준 신을 신고 큰집에 들리여 사촌누나 옷이라도 주어입고 조양천역 대합실에까지 도망쳤다. 그런데 “뽕—” 하는 렬차의 경적소리에 머리를 쳐들고 허연 연기를 뭉게뭉게 피여올리면서 달리는 기차를 보자 피뜩 기차길에 뛰여들어 자살할 생각이 머리를 탁 쳤다. 그런데 화물처 대문으로 하여 플래트홈에 들어가다가 당직원에게 붙잡혀 대문 밖에 밀리워나왔다. 그 바람에 자살하지 못하고 말았다.  역에서 나오면서 나는 내가 죽으면 또 숱한 애들이 나를 비웃을 것을 생각하니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너네 보라고 내 공부를 잘해 대학에 꼭 갈거야! 장차 그 녀자애를 꼭 각시로 데려다가 잘 살고야 말겠다.) 그후 사회에 나온 후 문화단위로 전근이 리상적으로 되지 못할 때 또 자살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현문화관에 들어가려던 최저한도의 희망마저 물거품이 되여 중학교에 가서 코흘리개들을 마주 했을 때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룡정시 문련 주석으로 계신 김재권선생님은 나를 불러놓고 힘을 실어주었다.       “딱 문화관에 들어가야만 문학창작을 할 수 있느냐? 교원사업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문학창작을 할 수 있다.”       그의 말씀에 삶의 용기를 얻고 절망에서 간신히 헤쳐나온 나는 그때부터 룡정시 문화관 원로작가들인 김재권, 리태수, 황병락 등 선생님들을 모시고 “보름회”라는 문학단체에 다니면서 문학창작수업을 하였다.그런데 소속 중학교 일부 책임자들은 “교수연구를 하지 않으면서 자기 글만 쓴다.”고 비평하면서 글을 쓰지 못한다고 제한했다. 이는 작가를 꿈꾸는 나의 문학생명을 짓밟는 조폭한 간섭과 더러운 수작이 아니고 뭔가? 비록 생물로서의 목숨은 붙어 있어도 작가로서의 령혼과 생명은 죽고 말것이 아닌가. 문학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없는 세상은 곧 죽음이 아닌가! 나는 그제야 알것 같았다, 창작자유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니, 민주와 자유가 없으면 얼마나 암담한가를!       나는 물 한모금도 없고 불볕이 홧홧 달아오는 문단사막에서 마라톤 달리기를 잠간 멈추고 애어린 문학생명을 살려내려고 무등 모지름을 쓰지 않으면 안됐다. 교편을 잡고 합법적으로 문학창작을 해나기 위해 나는 담임교원 사업에 눈코뜰새 없으면서도 초중과외작문써클 지도교원을 주동적으로 맡고 수많은 학생작문을 지도해 신문과 잡지에 발표하였다. 학생들은 주와 성, 전국급 여러가지 작문콩쿠르에서 우수중학생작문상을 수두룩이 안아왔다. 그때 학생들 속에서 수많은 대학생들이 배출됐으며 그들 속에는 오늘날의 대학교 학원 원장, 교수, 박사도 있고 국내외에서 활약하는 유명가수, 성악교수도 있으며 중국 조선족문단과 한국 문단에서 활약하는  어마어마한 작가, 시인도 있다. 나는 그들의 지명도가 너무 높아서 줄곧 내 입으로 누구, 누구는  나의  학생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마치 그들의 지명도를 빌어 후광을 보려고 하는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나를 계몽스승이라고 널리 외우고 있다. 인간수양을 제대로 닦은 그들이 장하기만 하다. 당시 나도 수차 교육잡지사와 전주 교육론문발표회에서 우수작문지도교원상과 우수작문지도론문상을 탔으며 학교에서 우수담임교원상도 탔다. 학교 책임자들과 교원들은 전교 교원성과전시회 때 전시된 나의 수두룩한 작품과 전주 우수교연론문상 그리고 학생들의 작문과 상장들을 둘러보고 나의 작문지도교수사업을 충분히 긍정했다. 나는 그때라고 나는 “교원이 글을 잘 써야 학생작문을 잘 지도할 수 있다.”, “글감고르기에서 사로개척의 예술적인 비결” 등 교수론문을 써서 여론조성을 했다. 기실 “교원이 글을 잘 써야 학생작문을 더 잘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은 어문교원으로서의 간단한 상식이지 그 무슨 철리가 아니다. 더욱이는 대서특필할 론문거리도 아니였다. 그러나 나는 아주 힘들게 따낸 작문지도 성과로 그 간단한 상식적인 도리를 증명하고 내가 과외로 문학창작을 하는 것을 합법화해야만 하였다. 나중에 학교에서는 나를 보고 중국조선족교육잡지에 발표된(주와 현 조선어문교수론문회의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문지도교수론문을 전교 년말총화회의에서 교류하게 하였다.        그후부터 학교와 조선어문교연실에서 더는 나의 과외창작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후에 부임돼온 주천을 교장과 유재환 교장은 나에게 고중교수와 전교 작문써글 지도교원을 맡기고 나의 문학창작을 지지해주었으며 어문교연실 교원들에게 문학창작활동을 폭넓게 벌릴 것을 호소하였다. 문학창작 연성환경을 마련한 후 나는 다시 용기를 얻고 퇴근한 후 세집에서 밥상을 놓고 곤한 눈을 집어뜯으면서 한편, 또 한편의 글을 써냈다. 그러나 작품은 써놓아도 발표하기는 아주 힘들었다. 중편련정소설 “사랑환상곡"은 지금 다시 읽어봐도 괜찮은 예술작품인 것 같다. 나는 소설원고를 가지고 숱한 잡시사를 찾아다녔고 편집들이 제기한 수개요구대로 16번이나 수개했다. 진짜 그 두툼하고 부동한 내용으로 된 수개원고로 전람회라도 열만 하였다. 하지만 그 중편소설은 국내에서 끝내 발표되지 못했다. 20년이 지난 후 나의 그 소설은 중단편소설수필집 "사랑환상곡"에 수록돼 한국에서 출판돼 한국에서도 제일 큰 서점인 교보문고에서 버젓이 팔렸다. 지금도 컴퓨터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나의 그 소설집 판매광고를 찾아볼 수 있다.    몇십년이 지난 후 결과가 보여주다싶이 작품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소설이 당시 편집들의 눈에 들지 못한 것 밖에 없다.       그 소설을 국내 편집부에서 퇴고를 맞은 그날 나는 뻐스를 타고 모아산 고개를 넘어 룡정에 돌아오면서 절망에 빠졌다. 필을 꺾으려고까지 했다. 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면서 발표되지 못한 그 소설 원고를 한장 한장 찢어 차창 밖으로 날려 보냈다 날마다 교편을 잡고 코흘리개애들과 씨름하면서 너무나도 힘든데다가 리상대로 마음놓고 문학창작을 할 수도 없었고 혹시 아글타글 쓴 작품도 발표발표하기 아주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뜻대로 문화단위로 전근해가지 못해 사는 것이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머리 허연 부모에게 마지막하직인사를 하러 갔다가 외동아들인 내가 죽으면 누가 늙으신 부모를 모시겠는가는 생각이 피뜩 들었다. 그리하여 두번째에도 끝내 죽지 못하였다. 뒤따라 참을 “인”자 석자면 살인도 피한다고 모든 곤난과 시련이 닥칠 때마다 한발작  물러서 랭정하게 사고하고 대응하니 바다와도 같이 넓은 세상이 보였다. 룡정에서 교편을 잡다가 스승들과 지인들의 방조하에 끝내 모아산 열두 아리랑고개를 넘어 연변인민방송국에 전근해왔고 나중에 연변인민출판사에 전근해들어왔다. 훌륭한 창작환경을 만난 나는 마음껏 글을 쓸 수 있게 되여 리상의 창작세계로 한발자욱한발자욱 걸어나갈 수 있었다.       지금 회상하면 자살하려고 한 일이 얼마나 유치하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렇게 짧고도 졻은 바보 같은 생각을 하였을가? 나는 실련하고 자살하려는 녀학생을 내 경험교훈으로 구해준 적도 있다. 교수실습하러 갔을 때 녀학생이였는데 고중동창생과 2년 동안 열련하였는데 대학에 가면서 배신했다는 것이였다. 녀학생은 삶의 용기를 잃은 나머지 살 생각이 없다면서 자살까지 하겠다고 하였다. 그때 나는 녀학생에게 내가 두번이나 자살하려던 과거를 얘기해주고나서 여러 모로 삶의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과거 내가 두번이나 자살하려 한 것은 얼마나 유치하고 짧은 생각이였는가. 그때 자살하지  않았기에 나는 초중때 그 녀자애보다 더 어리고 예쁜 안해를 얻어 행복하게 살게 되지 않았는가.” “또 배신자를 잃은 것으로 해 자살하려는 건 너무 무지한 선택이다. 배신한 자를 사랑할 가치가 없다. 하루 빨리 배신자 동창생을 잊으라. 이제 배신자보다 더 멋진 총각이 너를 기다릴 거야.” 그리하여 그 녀학생은 삶의 용기를 얻고 실련의 고통에서 벗어나 이듬해에 대학에 진학하였고  대학졸업한 후 류학생총각과 결혼해 연길에서 교편을 잡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용기는 생과 사를 다 가로 타고 있다. 용기를 잘못 가지면 순식간에 자살하게 된다.   자살까지 하려는 용기가 있는 청년이라면 고만한 곤난도 이겨낼 용기가 없겠는가? 죽기를 각오하였던 청년은 삶의 용기와 의력이 더 강해지고 생명력도 더 강해지는 법이다. 자살할 용기까지 있다면 무엇 때문에 난관을 물리치면서 살 용기가 없겠는가! 
259    동화 노랑쥐 총경리 김장혁 댓글:  조회:1844  추천:0  2021-01-15
                                  동화                       노랑쥐 총경리                                            김장혁                                                   취임하던 날          새 해 봄에 코끼리는 노랑쥐에게 농사와 쌀창고를 총관하는 총경리로 임명했어요. 멍멍이랑 매옹이랑 꿀꿀이랑 모두 너무 어처구니없어 입을 딱 벌렸어요. 멍멍이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으면서 왕왕 짖어댔어요. “도적놈한테 창고를 맡기다니! 흥!” 그러자 코끼리는 퉁사발눈을 부라리며 흥 하고 코방귀를 뀌였어요. 그 바람에 노랑쥐랑 매옹이랑 저만치 날아가 퉁 떨어졌어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들이라구. 노랑쥐는 여태껏 놀고 먹으면서도 매옹이나 멍멍이한테 잡혀 죽지 않았잖은가. 그만큼 노랑쥐가 총명하다는 걸 말해. 잔말 말고 노랑쥐 총경리 령도아래 농사를 잘 지으라구. 누가 감히 거역하면 용서하지 않을테야!” 정식으로 취임할 때 잔등에 노란 줄이 쪽 건너간 노랑쥐 총경리는 가는 꼬리를 사타구니에 감추고 감언리설로 취임연설을 그럴듯하게 해재꼈어요. “애햄, 본 총경리는 사심을 다 버리고 코끼리 대왕의 지시대로 모든 식구들의 리익을 위해 일하겠어요. 년말분배 때 모든 분들에게 상금을 지난해 두배 내지 세배씩 나눠 주겠어요. 황소한텐 풀이 아니라 찰떡을 쳐 먹이고 꿀꿀이한텐 이밥을 지어 먹이겠어요.” “야- 좋다야. 내한테도 이밥이 차려지겠구나. 노랑쥐를 총경리를 시킨게 옳아. 허허허.” 꿀꿀이는 당장 이밥을 먹게 된 것처럼 불룩한 배를 어루만지면서 기뻐했어요. 노랑쥐 총경리 연설은 계속 되였어요. “코끼리 대왕님한텐 기름진 풀과 산더미 같은 알곡무지를 선사하고요. 멍멍이들과  매옹이들은 조상 때부터 우리 쥐들을 잡아 먹었지만요. 절대 원수치부를 하지 않겠어요. 오히려 추운 겨울에 바깥에서 쥐사냥을 하지 않아도 하루 세끼 고기를 대접하겠어요.” “야호, 매옹-“ 매옹이가 기뻐 폴짝폴짝 뛰였어요. “호호호. 우리 매옹이들은 조상 때부터 엄동설한에도 바깥에서 헤매면서 쥐를 잡아 먹고 살았는데요. 이젠 식습관, 아니, 팔자를 고치게 됐군요. 별게 없지요. 집식구들을 배불리 먹고 살게 하는 분이 젤 좋은 총경리죠. 노랑쥐 총경리, 기대해요.” 코끼리는 눈 앞에 산더미 같은 알곡무지를 방불히 보는 것 같아 기다란 코를 슬슬 매만지면서 코노래를 불렀어요.                             노랑쥐 총경리와 매옹이          농사철이 돌아오자 노랑쥐 총경리는 식구들을 몽땅 일하라고 내몰았어요. 황소와 멍멍이는 부지런히 거름을 밭에 내고 꿀꿀이는 주둥이로 뚜지면서 밭갈이를 하였어요. 그러나 노랑쥐 총경리는 매옹이와 나란히 가마목에 누워 꼬리를 하느적거리면서 낮잠을 잤어요. 멍멍이는 노랑쥐와 매옹이 눈에 거슬려 코끼리 대왕을 보고 툴툴거렸어요. “농망기면 일손이 딸려 고양이 발도 빌어쓴다고 하지 않아? 건데 저 노랑쥐를  보세요. 총경리라는게 일은 까딱 하지 않고…” 노랑쥐도 반격을 가했어요. “저 우둔한 개놈새끼야, 어데서 총경리 일하는 걸 봤니? 기실 네놈처럼 둔한 놈들을 령도하느라고 머리를 쓰는 총경리 더 바빠. 임마!” 멍멍이가 또 입을 열려고 하자 코끼리가 중도무이했어요. “또, 또. 잔말 말고 노랑쥐 총경리 하라는대로 해라!” 한참 후 노랑쥐는 구새목에 엎드려 쥐구멍을 지키는 매옹이를 찾아갔어요. 그는 노란 마른 명태를 쪽 찢어 매옹이 코 밑에 가져다 댔어요. “자, 매옹이 경찰,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하루 세끼 고기를 먹을 수 있어.” 매옹이는 고소한 명태 냄새의 유혹을 이길 수 없어 넙적 받아 냠냠 맛있게 씹어 먹었어요. “어떻게?” “내 뭘하던 눈을 딱 감으란 말이야. 그럼 고기뿐이겠느냐? 노래방에 모시고 가고 안마원에 가서 시원하게 안마도 받게 해줄게.” 매옹이는 귀가 솔깃한 나머지 자못 흥분됐어요. “그래? 알만해. 눈을 딱 감아줄게. 히히히. 매옹-” “애해해, 찍찍찍.” 노랑쥐와 매옹이는 단짝이 됐어요. 그들은 점심밥을 들춰 배터지게 몽땅 먹어버렸어요. 밤이면 노랑쥐는 매옹이와 함께 가마목에 고이 누워 마른 명태를 먹으면서 매옹이가 눈을 감게 하였어요. 그 틈을 타서 노랑쥐는 숱한 쥐들을 시켜 벼밭과 콩밭 머리에, 심지어 주인집 기둥 밑에까지 쥐굴을 숭숭 뚫게 했어요. 황소랑 꿀꿀이랑 밭에서 돌아와 눈이 데꾼해졌어요. “우리 점심밥은?” 노랑쥐는 시치미를 따고 주산알만 딸깍딸깍 튕겼어요.                                                    허수아비        만풍년이 들어 황금파도가 출렁이였어요. 황소는 땀을 흘려 농사를 지은 덕에 찰떡을 먹게 됐다고 영각하였고 꿀꿀이는 이밥을 먹게 됐다고 꿀꿀거렸어요. 허나 노랑쥐 총경리는 두툼한 령수증을 내놓고 주산알을 딸깍딸깍 튕기면서 코방귀를 뀌였어요. “화학비료하구 새농사기술인입에 다 쓰구나니 남는게 하나도 없어. 흥, 떡 주자는 놈은 없는데 국물부터 찾아?” 성이 난 멍멍이는 구들에 후닥닥 뛰여올라가 몸을 부르르 떨었어요. 그 바람에 가마목과 노랑쥐 낯에까지 진흙이 가득 튕겼지요. 노랑쥐는 진흙을 털면서 눈에 불꽃을 튕겼어요. “이 개놈새끼, 령도도 모르는구나. 어디라고 언감!” 먼 발치에서 그 장면을 목격한 코끼리도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 길다란 코를 휘두르면서 뛰여왔어요. “이 개놈새끼, 일은 하지 않고 감히 총경리를 건드려?!” 노랑쥐은 잘코사니를 부르더니 코끼리 귀에 대고 뭐라고 쏭알거렸어요. 코끼리는 멍멍이를 코에 감아 들고 밭에 가더니 나무십자가에 네각을 꽁꽁 묶어놓았어요. 멍멍이는 눈물이 글썽해 코끼리한테 물었어요. “대왕님, 어째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이럽니까? 눈을 번쩍 뜨고 잘 살펴봅소서. 저 노랑쥐는 도적놈입니다.” 코끼리는 멍멍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허수아비 돼가지고 아직도 아가릴 다물지 못해? 네놈은 노랑쥐 총경리 말대로 허수아비로 만들어놔야 세상이 태평무사해. 밭에 날아드는 참새두 말리구. 이런 걸 두고 꿩 먹고 알 먹는 격이라고 해. 알만해? 허허허.” 멍멍이는 멀어져가는 코끼리의 펑퍼짐한 몸뚱이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어요. 멍멍이마저 허수아비로 되자 노랑쥐는 대단히 편리하게 됐어요. 고 놈은 이젠 낮에도 시름놓고 담대하게 쥐부대를 시켜 벼알과 콩알을 쥐굴에 물어들여갔어요. 멍멍이는 그 만행을 빤히 보면서도 용빼는 수가 없었어요. 량볼이 뽈록하게 콩을 문 숱한 쥐들이 콩밭머리로 쪼르르 나왔어요. 매옹이는 본능으로 쥐 한 놈을 앞발로 탁 쳐 꽉 눌렀어요. “자, 잊었어?” 이 찰나에 어느새 뛰여왔는지 노랑쥐가 매옹이의 옆구리에 마른 낙지와 명태를   찔러주었어요. “어, 오- 호호호.” 매옹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발을 들어 쥐를 놓아 주었어요. 심지어 매옹이는 경찰이란 것도 잊고 노랑쥐 앞에서 풀숲을 헤쳐 앞길을 내주고 눈을 부라리는 멍멍이허수아비 꼭뒤에 뛰여올라가 코끼리 대왕이 오는가고 망까지 봐주었어요. 노랑쥐는 쥐들을 시켜 벼와 콩을 쥐구멍에 산더미처럼 물어들여갔어요. 한 보름이 지나자 콩밭으로부터 쥐굴까지 다슬고 다슨 쥐들의 오솔길이 오불꼬불 수태 나지 않았겠어요. 달밤이였어요. 노랑쥐는 일부러 멍멍이 정수리에 바라올라가 발톱으로 이마빼기를 허벼놓으면서 빈정거렸어요. “요 허수아비야, 네놈이 날 어쩌겠냐? 바보 코끼리한테 고발해봐라. 고발한들 어쩌겠냐? 매옹이처럼 눈이나 감을게지. 똥이라도 차려질지 알아? 해해해.” 허수아비 신세로 된 멍멍이는 괘씸해도 당하기만 했을뿐 용빼는 수가 없었어요. (흥, 더러운 도적놈, 아무 때나 한 입에 물어죽이지 않는가 봐라! ) 노랑쥐는 멍멍이 꼭두에 올라서서 오줌까지 싸놓고도 성차지 않아 뾰족한 주둥이로 꼼짝달싹 못하는 멍멍이 배를 꽉 깨물어놓고서야 달빛 속으로 사라졌어요.                                                           후회막급       날이 희붐히 밝아오자 코끼리 대왕은 노랑쥐 총경리 덕분에 풍작을 안아왔다고 기뻐 길다란 코를 휘둘러 춤추면서 밭에 나갔어요. 그런데 논밭엔 벼이삭이 보이지 않고 벼짚만 까칠하게 서 있었고 콩밭에는 콩깍지만 보이지 않겠어요. “아하이구, 이게 웬 일이냐?” 코끼리 대왕은 밭에 풀썩 물앉았어요. 그는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 올라 옆에서 모르는 척하는 매옹이 뒤덜미를 코로 걸어 콩밭에 내동댕이쳤어요. “가마목만 지킨 매옹이새끼, 경찰이란 네놈이 밭을 잘 지켰으면 이 지경이 됐겠어?” 그때 노랑쥐가 나서서 황소를 가리키면서 둘러댔어요. “주인님, 저 놈이 한 짓이예요. 저렇게 배 크고 뚱뚱한 놈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 큰 밭의 콩을 다 먹겠어요?” 황소가 변명하려고 했으나 때는 늦었어요. 코끼리는 길다란 코로 황소 목을 휙 감아 나꿔채더니 상아로 이마를 푹 찔렀어요. 황소는 이마에서 뻘건 선지피를 흘리며 풍덩 쓰러졌어요. 해마다 코끼리 대왕이 시키는대로 수걱수걱 뼈빠지게 둼을 내고 밭을 갈고 싣걱질하던 황소, 그 황소는 간사한 노랑쥐의 혀놀림으로 해 코끼리의 무지막지한 상아에 찔려 쓰러졌어요. 질겁한 매옹이는 냉큼 뛰여와 코끼리 대왕님의 잔등에 뛰여올라가 파초귀에 대고 뭐라고 쏭알거렸어요. 얻어먹은 명태가 걸려 사실 진상은 말하지 못하고 멍멍이를 풀어주면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 거라고 했어요. 코끼리 대왕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그 말을 쫓았어요. “왕왕왕!’ 멍멍이는 사납게 짖어대며 콩밭으로 쏜살같이 뛰여갔어요. 멍멍이가 콩밭머리 사처에 숭숭 뚫린 쥐구멍을 앞발로 파헤치자 쥐굴마다 쥐들이 오글거렸고 노란 콩알과 벼알이 꼴딱꼴딱 들어차지 않았겠어요. 그제야 코끼리 대왕은 장탄식했어요. “아하이구, 눈이 멀었지. 고 도적놈 노랑쥐한테 속아 총경리를 맡기다니!” 허나 후회 막급이였어요. 노랑쥐는 어느새 집기둥 밑의 깊숙한 쥐굴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어요. 코끼리 대왕은 코로 집기둥을 칭칭 휘감아 빼려다가 그만 뒀어요. 괜히 쥐굴을 파 노랑쥐를 잡자다가 집이 통채로 쿵 무너질가봐 겁났던 거죠. 하여 집기둥 밑에 숭숭 뚫린 쥐구멍을 멍청히 바라볼뿐이였어요. 꿀꿀이는 눈물을 비오듯 흘리면서 두덜거렸어요. “고 놈의 노랑쥐, 봄에 뭐 온 가족에게 두배 내지 세배 알곡을 주겠다고 떠들더니 저네 쥐가족의 배만 채웠구나. 뼈빠지게 일한 황소형님은 찰떡은커녕 불쌍하게 피못 속에 쓰러졌구나. 꿀꿀, 이밥은커녕 벼겨도 차례질게 없구나. 꿀꿀.” 멍멍이는 무지한 코끼리 우두머리를 원망해 왕왕 짖었고 빈털털이로 된 처지가 눈물겨워 컹컹 짖었어요.                                편자 주: 본 동화는 2002년 4월 흑룡강민족출판사에서 출판한                         김장혁 아동문학작품집
258    수필집 리별 머리말 김장혁 댓글:  조회:476  추천:0  2020-12-21
                                                                                             수필집 “리별” 머리말                                                                          김장혁        그대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매혹적이고 사랑스러울가? 나는 청춘시절부터 절벽 우에 피여난 아름다운 꽃송이 같은 그대를 짝사랑하지 않았던가. 실련의 쓴 맛을 볼대로 본 나는 그대를 잊지 못해 별들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한숨인들 얼마나 쉬였던가. 그 애탄 한숨에 모아산마저 날아날 지경이 아니였던가. 새벽 잠을 설치고 뛰여 일어나 그대를 그리여 열변을 토한 적이 어찌 한두번이였겠는가. 그대에게 티없이 맑고 깨끗한 사랑의 메아리를 연주해주고 피끓는 청춘의 심장마저 다 바쳐 사랑하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던가. 허나 그대는 그저 담담한 표정만 지으면서 침묵을 지켰을뿐 내 절절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대는 내 사랑이 소중한 것을 알기 시작한 것 같았다. 실련의 아픔을 씻어버리고 한발자욱한발자욱 그대에게 다가가는 나를, 사회의 용광로 속에서 까만 먼지를 들쓰면서도 끊임없이 탈바꿈하며 일편단심 그대만을 사랑하는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대는 까만 머리에 서리가 어설프게 내린 선비를 뒤늦게나마 끝내 인정해주었다. 그대는 항상 솔직하고 숨길줄 몰라 사랑스러웠다. 그대는 세속에서 허우적대면서 몸부림치는 이 나그네의 사랑을 차츰차츰  받아들이였다.       때로는 애절한 리별의 아픔도 쓸쓸히 받아들이면서 그대의 순진한 마음에 기대여 흐느껴 울었다. 때로는 절절한 사랑도 호소하고 이루지 못한 첫사랑도 애닲아 정자나무 아래에서 그대와 함께 밤새도록 목메여 울었다. 그때마다 그대는 내 심장과 함께 울고 흐느끼고 대성통곡쳤다. 때로는 그대에게 애틋한 사랑이야기로 한 수의 아름다운 사랑의 서정시로 멜로디를 연주해주다가도 화산폭발 같은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그대는 나와 함께 사랑환상곡을 부르면서 오색령롱한 샨데리야 아래에서 사교무를 추면서 빙글빙글 돌아갔다.       참말로 그대는 나와 함께 울고 웃고 통곡치고 노래하는 친구였다. 때로는 정의의 기발을 들고 바른 총질을 하고 도전의 돌격나팔도 불었다.       나는 그대와 함께 밤을 패가면서 이야기 속의 자그마한 인생철리를 발견해내고서도 마치 신기루나 발견한듯이 환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나의 그림자 같은 그대와 함께 제주도와 한나선, 묘향산을 유람하면서 금수강산을 목청껏 노래하였다. 조상들이 몇천년 살아온 경주와 영월, 명천을 돌아다니면서 조상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한탄하였다…       아, 사랑스러운 그대여. 그대는 내 생활의 씩씩한 발자취이며 살을 에이는 아픔이고 진심에 찬 목소리이여라.        반백이 지난 오늘에야 나는 사랑스러운 그대들로 첫수필집을 세상에 내놓노라.                                                                                                      저자 김장혁                                                                                                                  2010년 2월 6일                                                    
257    아동문학작가 박영옥 자서전 "비운의 마로토너"를 출판 댓글:  조회:389  추천:0  2020-11-29
                           아동문학작가 박영옥                       자서전 "비운의 마라토너"를 출판       숨막히고 가슴 찢는 생활의 역경 속에서 오히려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땀 흘리며 달려온 박영옥이  “비운의 마라토너”란 제목으로 써낸 눈물겨운면서도 긍정적 에네지를 주는 자서잔이 요즘 출판되였다.     무려 4백페지로 거의 되는 이 책에는 모두 18장으로 되였는데  73개의 눈길을 확 끄는 소제목들로 묶어졌다.     네살때 소아마비증에 걸린 그때로부터 어릴 때는 동학들에게 놀림을 받았고 학교를 졸업한후에는 일자리 해결이 되지 않아 여간 고생스럽지 않은데다 잘못된  결혼 때문에 리혼의 고배도 마셨고   마흔두살에 첫 임신이였지만 엄마로 될 자격마자 잃게 된 아픔은 정말 눈물겨운 이야기도 있다.다.     그러나  작자는  인생이란 무대에서  비극이 닥쳤다면 재미있고 즐거운 희극을 만들기 위해 모지름을 써야 한다고 말했고 또 그렇게 만들어냈다. 그래서 어릴 때는 눈물과 한탄 밖에 몰랐던 작자는 오늘날 사람들의 흠모를 자아내는 어엿한 작가로 성장했다.     박영옥작가는 자기의  시고 떫고 짜고 매운 굴곡적인 인생경력을 씀으로서 독자들한테    인생이란 결국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치는 일이란 것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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