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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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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5권 (65) 김장혁
2022년 12월 14일 11시 44분  조회:2452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제5권

           75. 메아리
 
       문걸이 주방에서 처자들의 손때가 묻은 밥상과 걸상을 매만지면서 추억의 돛배에 올라탔을 때다.
       지예가 활짝 웃으면서 유림을 데리고 들어섰다.
       “외할아버지!”
       “오- 유림아! 요 귀염둥이야. 아바이 안아보자.”
      문걸은 외손자를 꼭 껴안고 보슴털이 보시시 난 보동보동한 얼굴에 뽀뽀를 쪽 해주었다.
      지예는 옆에서 생글방글 웃었다.
“아빠, 이젠 아래윗집에서 살게 돼서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 뭐니뭐니 해도 늘그막에 천륜지락을 누리는게 젤 행복하지. 허허허.”
문걸은 딸이 있어 다행이였다. 그는 유림을 안고 쏘파에 앉아 놀면서 지예를 건너다 보았다.
“얘야. 너도 이젠 애를 봐서 복혼하든지 재혼하든지 하면 어떠냐? 새파란 나이에 언제까지 혼자 살겠느냐?”
지예는 외까풀눈을 곱게 흘겼다.
“아빠, 결혼하지 않아도 돼요. 지금은 개방세월이기에  결혼하지도 않고 얼마든지 서로 친구로 지낼 수 있어요. 한동안 동거하다가도 맞갖잖으면 서로 아무런 부담도 없이 헤여지고. 얼마나 자유로운가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아빠 앞인지라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그녀는 한참 후 좀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아빠, 이젠 복혼 말을 하지도 마세요. 졸혼하고 혼자 사니 얼마나 좋아요? 시집 눈치도 보지 않고 애를 봐주지 않는다고 시집과 신경질 쓸 일도 없어 얼마나 자유로운지 모르겠어요. 보모한테 애를 척 맡겨두고 아무런 뒷근심도 없이 출근만 하면 돼요. 아무리 애 때문이라고 해도 복혼할 생각은 절대 없어요. 생각해보세요. 이전에도 엄마한테 애를 맡겨놓고 시집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 했습니까? 아파트도 아빠 그림을 그려 사준게지 시집에서 해준게 뭡니까?”
문걸은 외까풀눈을 흘기며 딸한테 핀잔을 주었다.
“얘야, 시집문제는 시집문제고. 애 아빠야 잘 못이 없잖느냐? 사위 남녀관계문제만 없으면 복혼해라.”
지예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또, 또. 아들이라면 부모와 안해 중간에서 잘 처신해야죠. 뭐나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뉴대작용을 잘 해야죠. 시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리 세대는 혼인과 가정, 인생에 대한 가치관념이 아버지 세대와는 판판 달라요. 지금 결혼하지 않는 독신이 얼마나 많은가요? 결혼을 후회하고 졸혼을 얼마나 선호하는지 아는가요? 졸혼하고 아무런 가정 부담도 없이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자기만의 삶을 사는 것이 저의 꿈인데요.”
문걸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졸혼은 선호할게 아니야. 너네 엄마를 봐라. 생전에 무슨 졸혼하고 자기만의 인생을 자유롭게 살겠다고 하더니 어떻게 됐니? 몇십년이나 날 속이고 살고서도  가정을 다 깨고…넌 절대 엄마처럼 살지 말라.”
“엄마 말을 그만 하세요. 졸혼하고 고만이라도 자유롭게 자기 삶을 살았죠.”
지예는 엄마 생각에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러나 문걸은 딸에게 계속 피의 교훈을 토설했다.
     “졸혼은 가정을 깨는 이이들 불장난이야. 가정을 가지고 애들 불장난쳐서야 되니? 사랑하지 않으면 갈라져야지. 그 점에서 네가 사위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끊고 맺듯이 리혼한게 맞는다. 왜 졸혼하고 바람을 피운단 말이냐? 법적으로도 졸혼은 합법적인 간통이나 중혼을 유발할 수 있다. 졸혼은 완전히 범죄행위야. 졸혼은 비도덕적이고 비량심적인 혼인관이야."
      지예는 묵묵히 아버지 말을 듣기만 했다.
"졸혼이란 그저 가정을 파괴하고 애들한테 죄를 짓는 도깨비 장난이야. 넌 절대 졸혼이란 말을 다시 하지도 말라. 이젠 가정을 깨는 도깨비 장난을 작작 해라. 군철이네도 봐라. 별 일도 없어가지고 서로 졸혼하더니 가정을 깨고 애들한테 금발후에미를 다 데려다주고. 그게 뭐냐? 애리싸는 유부남이고 경제간첩이라던가. 너네 오누이 애리싸한테 경각성을 높이고 살아야 해. 졸혼이 잘 한게 뭐냐? 우리 세 가정을 몽땅 파탄에 몰아넣지 않았느냐?”
지예는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오빠 근심은 하지도 마세요. 년금이 2백만원이나 되는 전무로 됐는데요. 숱한 숫처녀들이 침을 질질 흘리면서 줄을 서서 따라다닙니다. ㅎㅎㅎ.”
“무슨 소리냐? 애 둘이나 있는 군철을 따르는 바보도 다 있다더냐?”
지예는 외씨처럼 하얗고 걀죽한 얼굴에 정색했다.
“하나랑 경희랑 은희랑 왜 30대 중반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고 있는지 아세요? 다 오빠 리혼하자마자   어떨꿍해 이제껏 기회를 노려보고 있는데요. ㅋㅋ.”
문걸은 억이 막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애비에 그 아들이구나. 싸리 긁에서 싸리 자라지. 참대 자라나겠느냐?)
지예는 필경 엄마 피라도 나눈 오빠라고 은근히 될수록 군철의 험담을 하지 않고 아버지와 화해시키려고 애썼다.
     "아빠, 오빠 섭섭하게 굴었다고 노녀워하지 마세요. 보쇼. 그래도 이 비싼 상해 아파트까지 아빠한테 주지 않았는가요? 오빠는 그래도 량심이 있습니다."
군철도 동감을 표시했다.
     "그래. 군철은 그래도 인간성 있는 효자야. 길러준 정을 잊지 았았구나.  친애비하고는 판판 달라. 얼마나 청렴한 당간부냐? 자기 리속에만 눈이 어두운게 아니라 항상 국가와 회사, 직원들의 리익을 첫자리에 품고 일하잖느냐? 지금 경제시대에 군철 같은 청렴한 당간부는 참 대단해."
    지예도 동을 달았다.
"오빠는 이제 전국 당대표대회에 다 참가한다잖아요?"   
지예는 자기 신상의 말을 또 꺼낼가 봐 화제를 제꺽 아버지한테 돌렸다.
“아버지는 춘희박사와 어쩔 예산입니까? 이젠 그만 지내봤으면 빨리 매듭 지으면 어때요?”
    문걸은 머리를 끄덕이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이튿날 문걸은 춘희를 만났다.
    강남 하늘에 어쩌다 구름 한점 없이 해빛이 찬란해 기분이 좋았다.
그들은 소주에서 제일 으리으리한 고층건물- 동방의 문에 자리잡은 고층커피숍에서 만났다.
     커피숍 창가에 마주 앉으니 푸르른 파도가 출렁이는 가없는 호수가 안겨왔다.
     호수에는 하얀 돛배가 하얀 물갈퀴를 일구며 쏜살같이 미끄러져 나간다. 구름 한점 없는 맑고 푸른 하늘에는 커다란 한쌍의 원앙새연이 봄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나래치고 있었다.

     강남은 언제 겨울이 왔는가 싶이 이젠 봄기운이 완연하였다. 거피숍의 방마다 푸르른 참대 숲으로 둘러 있어서 록색대자연에 들어선듯한 감이 들었다. 좌석에 앉으니 춘희와 넓다란 파초 잎과 월계화 꽃송이가 반겨 맞아 기분이 한결 상쾌했다.
     그들은 은은한 음악이 흐르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돋구는 커피숍에서 마주 앉아 진한 커피를 호호 불며 마시였다. 인생살이 진한 맛을 음미하는 행복한 순간이였다.
     한참 후 문걸은 춘희 수척해진 얼굴을 마주 바라보며 무거운 입을 뗐다.
     “또 한해 지나갔구만. 요즘 리혼과 졸혼, 재혼에 대해 퍽 고민해 보았소.”
     춘희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요. 저도 저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련며칠 졸혼을 생각해보았어요.”
문걸은 자못 정색했다.
“그럼 오늘 서로 솔직히 말해보기오.”
춘희 외까풀눈에 뭔가 굳은 빛이 어려 있었다. 그녀도 단단히 잡도리를 하고 온 것 같았다.
“아드님이 아파트까지 줬다던데요. 이젠 만년에 상해에서 살 예산인가요?”
문걸은 상해 거주문제를 두고 내심 갈등을 한창 겪고 있었다.
“상해에서 살면 애들과 천륜지락을 누리는 건 좋은데. 이전에 습기 차서 온몸 관절통에 혼났소. 꽤나 겁나오.”
그는 언제나 여지를 두고 말하였다.
“춘희는 상해에서 딸과 함께 살 예산이오?”
춘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 당장은 딸과 함께 자그마한 위생소에서 일할 생각이 없어요. 위생소에는 지금 코로나 PCR검사 밖에 할 일이 없는데요. 황박사가 가은이랑 복화랑 데리고 하면  돼요.  저는 먼저 고향 병원에 돌아가야겠어요.이제  최군철 전무가 정식으로 제약공장을 차릴 때 다시 고려해 보지요.”
문걸은 인차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는 졸혼이란 건 가정을 깨는 도깨비 장난이라고 보오. 졸혼은 철부지 애들의 불장난이오. 그 놈의 졸혼 때문에 나와 영희 가정이 깨지고 아들 딸도 가정이 다 깨지고 말았소. 손군들이 애비와 에미를 찾으면서 대성통곡칠 때면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소.”
춘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는 졸혼을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아요. 졸혼은  허위로 꽉 찬 억지가정을 깨버리고 참사랑에 토대한 새 가정을 이루게 하는 징검다리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정색해 똑바로 문걸을 마주 바라보았다.
“저를 보세요. 졸혼 때문에 다이로교수 성학대를 피신해 고향에서 숨을 돌릴 수 있었죠. 졸혼은 저의 피난처였고 안식처였습니다. 졸혼은 결코 나쁜 신생혼인풍속도 아닙니다. 시대 조류에 순응하는 혁신적인 혼인풍속도라고 봐요.”
그러나 문걸은 외까풀눈에 실망의 빛을 띠우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혼인사가 다른 사람들은 졸혼에 대한 견해도 각기 다를 수 있소. 난 졸혼은 늙거나 앓는 남편 부담을 덜려는 아낙네들의 방편이라고 생각하오. 지금 아낙네들은 남편을 쓸모 없는 부담거리로 보기 일쑤요. 졸혼은 또 바람 피우기 위한 비도덕적인 구실이라고 보오. 사랑하지 않으면 갈라져야지. 리혼도 하지 않고 자기만의 삶을 산다? 서로 상대방의 생활을 간섭하지 않는다는가? 다 거짓이오.”
그는 커피잔을 들어 한모금 마시고 뒷말을 이었다.
 “이런 실례도 다 있소. 한 부부가  서로 상대방의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기로 
졸혼각서까지 쓰고 따로 집을 잡고 살았다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안해는 남편이  다른 녀성과 바람 피우는 걸 발견하고  남편을 중혼죄로 법정에 소송했다오. 보오. 졸혼하고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삶을 살 수 있소? 절대 안되오. 건 허위에 찬 결혼생활의 시작이오.”
문걸은 영희와 결혼해 속히워 산 일 때문에 재처럼 타는 속을 다 털어놓았다.
“이 세상에 어디 참사랑이라는 것이 있소? 허위와 배신 밖에 뭐가 더 있소?”
춘희는 외까풀눈으로 눈물이 글썽한 문걸의 맑은 눈을 바라보았다.
“참사랑은 있지요. 저는 본댁에 대한 리선생님의 사랑이야 말로 세상을 놀래우는 참사랑이였다고 보는데요.”
문걸은 언성을 높이며 손사래를 쳤다.
“영희 말은 하지도 마오.”
“아니죠.”
춘희는 뒷말을 이었다.
“리선생님은 생사선에서 헤매는 본댁을 살리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가요? 화실까지 팔고 수상상금까지 다 내놓고도 모자라 한국 건축현장에서 막일을 해 치료비용을 대주었지요. 그게 안해한테 주는 참사랑이 아니고 뭡니까?”
문걸은 머리를 홰홰 저었다.
“다 사기당한 짝사랑인데. 자꾸 말해 뭘 하오?”
그러나 춘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때 저는 안해 영희 무용수에 대한 리선생님의 참사랑에 감동됐는데요.”
“무슨 쓸데 있소?”
문걸도 도리머리를 저었다.
“남자나 녀자나 첫 대상을 잘 만나야 하오. 거짓말을 할줄 모르는 참된 사람 말이오. 영희 같은 그런 참사랑 사기군녀자를 만나면 한뉘 개고생하게 되지.”
춘희도 동을 달았다.
“녀자도 첫신랑을 잘 만나야죠. 그런데 전 주정뱅이를 만나지 않으면 성변태를 만나 개고생을 다 했죠. 아마 그것도 제가 타고 난 팔자이고 운명이겠죠.”
그녀는 생각 밖으로 이런 말을 했다.
“지금 현시대 청년들의 실험결혼도 좀 도리 있다고 봐요. 무턱대고 결혼해 애까지 낳은 다음에 리혼하면 애는 어쩌는가요? 그렇다고 잘못 만난 남자와 억지로 산다는 것도 말은 아니죠. 세상에 어디 마음에 딱 드는 참사랑을 찾기 그리 쉽겠어요?”
문걸은 동을 달았다.
“춘희박사의 사랑이야 말로 나에 대한 참사랑이라고 보오. 날 살리려고 자기 뜨거운 피까지 수혈하지 않았소?  내 몸에는 지금도 춘희박사의 인간애가 넘치는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소.”
“건 환자에 대한 의사의 인도주의 정신일뿐입니다.”
문걸은 춘희 두 손을 덥썩 잡았다.
“아니오. 자꾸 덮어감추려고 하지 마오. 사랑이란 두 심장이 연주하는 티없이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오. 나는 춘희를 여직껏 사랑해왔소? 우리 이젠 모든 욕심과 고민을 다 버리고 참다운 사랑을 엮어나가면서 살면 어떻소?”
춘희는 손을 빼가면서 말했다.
“저는 결코 좋은 녀자 아닙니다. 탐욕스런 녀자입니다. 보세요. 다이로교수의 유산을 탐내 무슨 짓을 했는가요? 황차 저는 아직 마음의 상처가 채 가셔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저도 몰라요.”
“또 그 소리오? 춘희박사는 다이로교수 유산을 버리고 결단코 내 신변으로 돌아오지 않았소?”
문걸은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두고 완곡하게 에둘렀다.
“춘희박사는 다이로교수를 떼나 귀국하지 않았소?”
순간, 막연한 희망의 한줄기 빛이 방불히 망망한 검푸른 대해에서 등대마냥 손짓해 부르는 것이 보이는듯 하였다.
문걸은 용기를 내 물었다.
“춘희박사는 도대체 나를 사랑하오? 사랑하지 않소?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도 더 할 말이 없소.”
춘희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선생님은 진짜 행복지수가 높은 화가입니다. 선생님은 참말로  사랑할만한 분입니다.)
그러나 춘희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리선생님, 널리 량해해주세요. 저의 대답이 선생님한테 실망을 줄지도 모르겠지만은요. 오늘은 솔직히  말씀드려야겠어요.”
춘희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리선생님은 왜 재혼에 그다지도 집착하는가요?  저는 아직 졸혼 상태에서 조용히 혼자 살고 싶어요. 한동안 편안히 쉬고 싶어요. 다이로교수한테서 몸은 빠져나왔지만 아직 리혼수속도 하지 못했어요. 생각만 해도 피곤해요."
문걸은 흠칫 놀랐다.
(그럼 아직도 다이로 유산에 미련을 두고 있어? 참, 알고도 모를 이상한 녀자야.)
춘희는 확실히 후지산에서 다이로교수가 남긴 유서를  아직도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 유서는 다이로교수 유산상속에 관한 친필유서 아닌가!
문걸은 아직도 춘희 속내를 잘  모르고 있었다.
춘희는 스스럼없이 뒷말을 이었다.
"참.솔직히 말해, 저는 두번이나 혼인에  실패했습니다. 다이로한테서 갖은 성학대를 다 받았습니다. 때문에 재혼과 부부 생활에 염오감을 느낍니다. 겁납니다. 그저 선생님과 깨끗한 친구로 보내고 싶습니다. 일정한 시간과 공간의 여지를 두고 친구로 지내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재혼해 뭘 합니까? 각기 자기 애들도 있고 두 가정이 물리적으로 합하면 꼭 삼검불처럼 복잡하게 얽힐 거예요. 지금 숱한 가정의 화목하던 부부들도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각방을 쓰고 삽니다. 나이들수록 부부간에도 자기만의 공간이 더 필요해요. 재혼해 뭘 해요? 남남끼리 늘그막에 한 가정 좁은 공간에 갇혀 비비닥거리면 꼭 삐꺽거릴 겁니다.”
문걸은 그녀의 말에 하도 기막혀 장탄식만 하였다.
(그래 날 보고 이전처럼 그대와 친구로 돼 사교무나 추면서 세월을 허송하란 말인가?)
갑자기 바깥 하늘에 먹장구름이 뭉게뭉게 몰려온다.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천지를 진동친다. 커피숍도 불시에 어둠침침해져갔다.
문걸은 인내성있게 참으며 억지로 부드럽게 뒷말을 이었다.
“내 친구 성호 부부를 보오. 그 놈의 돈 때문에 20여년이나 엄정희하구 견우, 직녀처럼 갈라져 살았소. 명색이 부부지 어디 부부처럼 살았소? 다 돈욕심이 그렇게 만들었소. 사람이 과욕만 버리고 차례진 떡만 먹으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소.”
춘희는 문걸이 뭘 말한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녀도 다이로교수의 유산에 눈이 어두워 10여년이나 청춘을 허비하지 않았던가. 마끼도 그 놈의 유산을 독차지 하려고 친구 복화를 팔아먹지 않았던가.
그러나 춘희는 그런 내심은 드러내지 않고 하던 말을 계속 했다.
“우리 둘이 딱 재혼해야 합니까? 우린 다 각기 딸애를 가지고 있어요. 이제 두 가정이 물리적으로 합한다고 해도  화목하게 지낼 수는 없어요. 재혼하는 남녀가 화학적으로 융합돼 새로운 참된 사랑을 잉태해야 행복할 수 있죠.  재혼하지 않고서도 재미나게 보내는 친구로, 지기로 보낼 순 없는가요? 우리 너무 조급하게 서둘지 맙시다. 졸혼이란 새 혼인풍속도를 더 탐구해보면 어떨가요? 졸혼은 자기만의 삶의 부두이고 안식처인데요. ”
문걸은 막연한 생각이 들어 커피잔만 애꿎게 기울였다.
“우리 언제까지 숨박곡질하면서 평행선을 달려야 하겠소?”
그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만 두고 이렇게  말했다.
"졸혼은 가정을 깨는 시한폭탄이오. 졸혼은 바람 피우는 사람들의 방패에 불과하오. 정호랑 보오. 졸혼하고 뭘 했소? 졸혼이란 방패를 내들고 뭇사람들의 눈을 피해 숱한 녀자들과 바람을 피우지 않았소?"
문걸은 춘희가 아직도 졸혼에 미련을 두는 것을 리해할 수 없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아, 이게 내가 몇해동안 추구해온 사랑의 비극적인 결말이란 말인가? 춘희가 어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 세상에 도대체 참사랑이란 것이 있는가? 춘희는 귀향해 졸혼을 만끽하면서 애완견 다빈치하고 짝꿍해 살 예산인가?)
     춘희는 문걸과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이며 바람결처럼 커피숍에서 사라졌다.
     (참사랑을 찾는 고행이 그리 쉬운가 해요? 10년 걸릴지, 20년 걸릴지 누가 알아요? 그렇게 오래 기다려도  참사랑을 맺을 수만 있다면야 다 괜찮지요.)
     문걸은 춘희 그런 속심을 꿰뚫어보았는가.
     그의 눈 앞에는 피뜩 아사꼬가 떠올랐다.
(아사꼬는 이 시각에도 가짜 춘희로 돼 다이로교수를 달래고 있을가? 아사꼬가 퍽 그립구나.)
     그러나 인차 도리머리를 저었다.
     (안돼. 난 더는 아사꼬하고 살 수 없어. 수영장에 가서 뉘 려염집 색시들이나 구경하면서 살 순 없어. 정호는 날 금욕주의자라고 비웃었지. 허나 나도 칠정육욕이 있어. 나는 짐승 같은 정호처럼 저렬하게 정욕을 채우려고 미쳐날뛰지 않는다. 나는 티없이 깨끗한 두 심장으로 연주하는 아름다운 참사랑 멜롤디를 찾아 헤맬뿐이다. 10년이고 20년이고 고독해도 좋다. 기어이 참사랑을 찾고야 말 거야.)
     문걸은 비장한 마음을 다시한번 다지였다.
     (고향으로 돌아가 화가의 고독한 예술창작의 길을 걸으면서 살가? 군철이 준 상해 집을 팔면 한 600여만원 받을 거야. 집 팔아 고향에 화실도 그럴듯한 걸 사놓고 서화학원도 차릴가? …)
    춘희 랭랭한 얼굴이 떠나가버린 자리에는 랭랭한 커피잔만이 차탁 위에 달랑 고독하게 놓여 있었다.
      커피숍에 스물스물 몰려드는 고민과 적막강산, 푸른 참대마저 고독을 입에 물고 문걸을 묵묵히 키켜보며 조롱하는 상 싶었다. 영희 허위적인 사랑에 사기당한 자기를 비웃는 상 싶었다. 물욕에 눈이 어두운 춘희한테 끌려다닌 자기를 꾸짖는 상 싶기도 했다. 
      (아,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참된 녀성을 만나 단 한순간이라도 참사랑을 향수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참사랑을 이렇게도 갈망하면서 추구하던 내가 아닌가. 그런데 춘희가 어찌 이다지도 혹독하게 나를 대한단 말인가! )
      순간, 문걸은 춘희가 이중생활을 하던 이상한 외까풀눈과 쌍겹눈이 눈 앞에 겹쳐 떠올랐다. 병원에서 박사의사로 병을 볼 때는 외까풀눈, 등산할 때는 쌍겹눈... 
    (아, 춘희는 무서운 인간박사야. 간첩처럼 갼특한 탐욕주의자?)
    번개치는 추리가 여기까지 이르자 문걸은 허무맹랑하기 그지 없었다.
   "아, 이게 내가 그다지도 추구한 참사랑의 쓴 열매인가!"
    그는 춘희가 바람결처럼 가뭇없이 사라진 문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독한 이 순간, 그는 고향 뒤동산의 연분홍진달래꽃이 무척 보고 싶어졌다. 만금이 지은 고들고들한 이밥이 그리워졌다. 고향 집을 나간 비둘기가  퍽 그리워났다.  그러나 비둘기 대신 강남의 갈매기가 훨훨 날아와 커피숍 창턱에 내려앉아 구구거리며 몰려오는 먹장구름을 쳐다보며 하품한다. 

     먹장구름에서 탁구공만한 우박이 쏟아지며 돌멩이질한다. 참사랑이 박살나 호수물에 마구 곤두박힌다.
    저 멀리에서 푸르른 파도가 기세 사납게 덮쳐왔다가 처절썩 호수가 방파벽을 부신다. 하얀 물보라가 신음하며 흩날린다. 푸르른 하늘에서 봄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예던 연이 줄이 툭  끊어져 호수 물에 곤두박힌다. 희망의 돛배도 호수물에 넘어져 허우적거린다.
      한번 가면 다시 안 오는 인생, 참사랑을 찾는 고행 왜 이다지도 복잡할가?
      진정 황혼에 졸혼이 젤 행복한가?
      졸혼이란 새로운 혼인풍속도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어디에 정답이 있는가? 
      하늘 땅도 대답이 없다. 다만 먹장구름 속에서 불뱀이 커피숍에 혀를 홀락거리며 번쩍일 뿐이다. 우뢰가 하늘땅을 진감한다.
      커피숍의 은은한 멜로디를 짓누르며 졸혼의 쓰라린 메아리가 쓸쓸하게 가슴을 울리며 아프게 허빈다.
     문걸은 불시에 눈 앞이 아찔해나며 불찌가 튕겼다. 귀전에는 영희 아츠런 잔소리 쟁쟁하게 울린다. 어둠을 손더듬하며 도적고양이처럼 발뼙발뼘 화장실로 가던 오시러움이 머리 속에서 곤두박질친다. 색마가 그물을 쳐서 영희를 도적질해 끌어간다. 영희 비명소리 처량하게 들린다.
     순간, 춘희와 등산하러 갔을 때 생사를 다투게 한 눈구덩이 피뜩피뜩 떠오른다. 협곡에서 춘희와 서로 꽉 껴안고 고백하던 참사랑의 메아리가 염라전을 방불케 하던 어둠침침한 협곡에 울려퍼진다. 허위로 색바래진 참사랑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쁠랙홀에 빨려들어간다. 영희와 춘희가 한데 뒤엉켜  비명을 지르며 눈구덩이에 훌러덩 빠져들어간다. 아니, 허위에 찬 사랑의 쁠랙홀에 훌러덩 빨려들어간다... 
     순간,  참사랑을 그렇게도 열렬히 추구하던 피 끓던 심장이 툭 튀여나왔다. 펄떡펄떡 높뛰는 심장이 커피숍 창문을 박차고 안개 자오록한 호수에 씽- 날아가 출러덩 처박힌다. 지친 심장이 참사랑 오솔길을 따라 골고다언덕을 기여올라가다가 무정한 우박의 돌총질에 얻어맞아 검푸른 졸혼의 호수 밑바닥에 처참하게 천천히 가라앉아버린다.
     참사랑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번져 호수에 김이 무럭무럭 피여오르고 무수한 기포가 호수면에 솟구쳐 오른다. 수십겹 파문이 돌풍을 일으키며 쓰나미로 호수면을 덮치고 지나간다. 몇백길 분수가 먹칠한듯한 하늘로 치솟아오른다. 
     태호의 숱한  왕게들이 허겁지겁 기여가  집게팔로 그 허무맹랑한 심장을 건져 잔등에 업고 호수 수면에 서서히 떠오른다.
      우둔한 꽃게들마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중얼거렸다.
      "이 더러운 세상에 무슨 참사랑이란게 있다고 이래? 흥!"
      "춘향과 리몽룡의 일편단심 참사랑이 사라진지도 언제라고. 이다지도 심장까지 애태울게 있는가?"

     "괜히 심장까지 더럽힐게 있어?"
      "그래요. 인간세상에 무슨 참사랑이 있다고 그래요?"
      미녀로봇마저 호수에 날아와 종알거리며 충고했다.
     "
당신은 미녀로봇의 참사랑을 향수하며 살 팔자예요. 나하고 살자요. 내 사랑이야 말로 일편단심 참사랑이죠. 호호호."
     그러나 참사랑에 전 심장은 참사랑을 이루지 못한 모든 죄를 혼자 떠메고 고행의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간다. 그 참사랑의 뻘건 심장은 재생의 꼬리로 졸혼의 로맨틱한 서정서사시를 다시 고쳐 쓰려고 몸부림친다. 우박이 창창 떨어져 불쌍한 심장을 마구 들부셔도 그대의 앞길을 막지는 못한다.
      저게 뭔가?
      펄떡펄떡 뛰는 심장은 골고다 언덕에서 두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먹장구름 속으로 씽 날아올라가더니 참사랑신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참사랑신의 심장은 
갑자기 반짝이는 별로 돼 한줄기 눈부신 참사랑의 빛을 발산한다. 그 한줄기 밝은 빛은  먹장구름을 산산히 부신다. 어둠침침한 하늘에서 밝은 빛을 맞아 우박이 쏟아져내린다. 번대머리 가발이 흩날려 떨어진다. 섬나라 오랑캐변태의 콧수염이 흩날려 내린다.  실험관 애기, 복제애기 발버둥질치며 호수에 퉁퉁 떨어진다. 허위적인 사랑파편들, 저렬한 성애쪼박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호수에 처박힌다.
        
      참사랑신의 밝은 빛이 지나간 하늘에는 어둠이 산산히 부서지며 맑고 푸른 하늘선이 눈시리게 아물거린다. 동녘하늘에 칠색무지개가 서서히 다리를 놓고 그대들을 손짓해 맑은 하늘로 부른다.

      먹장구름을 부시며 사투를 벌이는 참사랑신의 심장, 참사랑신의 심장불덩어리가 가엽다.  빨간 빛에 흩어졌던 먹장구름은 다시 몰려들어 빨간 불덩어리를 두터운 어둠으로 덮어 가려놓는다. 참사랑신의 한줄기 빛으로 먹장구름이 뒤덮인 어둠침침한 하늘을 몽땅 빨갛게 물들이고 파란 하늘로 밝히기는 너무나도 환상적이다. 매지구름장은 파란 하늘을 간음하고 이빨 새에 끼인 어둠을 뱉어낸다.
      피끓는 심장으로 연주하는 참사랑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파르르 떠는 별을 감돌며 어둠컴컴한 우주에서 가냘프게 울러퍼진다. 애처러운 졸혼의 메아리가 참사랑신의 혼을 부르며 흐리멍텅한 하늘에서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며 훨훨 나붓긴다. 기나긴 여운의 날개가  휘파람을 불며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안개 자욱한 호수에서 유유히 나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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