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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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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 (26) 총도감의 꿈 댓글:  조회:595  추천:0  2024-03-05
              3. 총도감의 꿈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한길수와 류강철이 끼무라 국장의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다.  뜻밖에도 월향이 콤파스처럼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표독한 눈길로 쏘아보지 않겠는가.      한길수는 월향한테 손삿대질하면서 이빨을 악물고 당장 잡아 먹을 상 했다.      “이년, 팬티를 다  내 머리에 씌워?"      월선은 눈에 쌍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더러운 두상, 날 버리고 젊은 년들과 놀아? 오늘 내 죽고 네 죽고 해보자!”     월향은 이를 악물고 걸레대를 마구 휘둘렀다.            “콘칙쇼(닥쳐)!"      끼무라는  한길수 부처간이 고양이와 쥐처럼 싸우는 꼴을 보다 못해 꽥 고함쳤다.      경호원들이 우르르 뛰어들어왔다.      월향은 한길수를 손가락질하며 대성통곡쳤다.      "끼무라 국장님, 저 놈을 박살냅소, 저놈, 오전에 광기를 부리던 저 놈을 잊었습네까?"       끼무라는 엉거주춤 일어서 월향을 손삿대질했다.     "경호원, 저 년을 끌어 내가!”     승냥이가 병아리를 채가듯 경호원들이 월향의 팔을 잡아끌고 나갔다.     그제야 한길수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가 둘러보니 100 평방미터는 실히 될 사무실은 일본 냄새가 물씬 풍겼다. 끼무라 국장이 앉은 정면에는 고약딱지 일본국기와 “무훈영구”라는 글자를 새긴 무사도 기발이 걸려있었고 사무실 양옆 벽 밑에는 사꾸라 꽃이 만발한 그림으로 단장한 병풍이 둘러서 있었다. 그 앞에 좌우로 참대의자가 죽 두 줄로 놓여 있었다.     사무실이 조용해지자 끼무라 국장은 군도를 왼손으로 잡고 거만하게 다가와 한길수의 손을 꽉 잡으면서 아래위를 다시 유심히 살펴보았다.    “한군, 당신의 성선은 잘 알았소이다. 한군, 우린 영원한 친구로 될 수 있네.”    이제껏 우시장에서 누구에게 허리를 한번 굽혀보지 않은 한길수였다. 하건만 일본 사람의 세상이 되고만 우시장 땅에서 이젠 끼무라 국장한테 처음 허리를 굽혔다.     “끼 국장님, 저는 강철통역을 통해 어르신님의 천하에 빛나는 슬기와 뛰어난 무공을 널리 알았습구마. 오늘 또 드넓은 흉금으로 오전에 있은 오해를 일소해버리고 포옹해주니 정말로 자식을 안아주는 친부모처럼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류통역의 통역을 듣고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왼손으로는 한길수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마치 사냥군이 사냥개 대가리를 다독이듯이.     "허허. 별말을. 녀색을 밝히는덴 자네나 나나 피차일반이지. 주색잡기엔 자넨 내 버금은 가겠어."     끼무라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사냥개 앞에서 체모를 잃는 것 같았다.     끼무라 국장이 제자리에 가서 앉아 이렇게 달리 말했다.     "사내대장부란 드문드문 유흥을 즐길 수도 있네. 그러나 한도를 넘어선 안돼."    "네, 네. 그렇습죠."     한길수는 허리를 꿉썩거리며 어깨에서 금덩이 주머니를 끌러서 끼무라의 사무상 위에 올려놓았다.     “끼 국장님, 이건 국장님을 처음 만난 인사입니다. 적은대로 받아주시고 저를 믿어주십시오.”     끼무라는 사무 상에 부딪쳐 묵직한 소리가 나는 주머니를 내려다보면서 눈이 둥그래졌다.     한길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황금빛이 반짝이는 금덩이들을 꺼내 사무상 우에 죽 내놓았다. 황금 쉰 냥은 족히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끼무라 국장의 표정이 대번에 바위돌처럼 굳어졌다.     “이이에(아니),  간상(한군), 난 황금덩이보다 당신의 충성심을 요구하네. 그게 황금보다 더 귀중하네. 알았소이까?"      류 통역이 통역해주자 한길수는 잔등에 식은땀을 쪽 흘리면서 오리무중에 빠졌다. 속으로는 황금덩이보다 더 좋은 것이 뭐가 있어서 이러나고 원망했다.     “끼 국장님, 이 황금덩이는 저의 충성심입니다. 이 금덩이는 내 어떻게 마련한게라구 이럽둥?”     무지한 한길수는 끼무라 국장이라고 하니 성이 끼고 이름이 무라인가고 끼 국장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융통성이 있는 류 통역이 끼무라 국장이라고 다 붙여 통역해주었기에 오해는 사지 않게 됐다.     끼무라 국장은 안경알 너머 한길수를 쏘아보면서 총알을 내뱉듯이 한 마디 한 마디 내쏘았다.     “난 황금보다도 한상이 대일본제국 위해 목숨 바칠 충성심을 더 요구하네.”     류 통역이 통역해주자 한길수는 끼무라 국장의 사무 상 앞에 털썩 꿇어앉아 맹세하듯이 말했다.     “끼 국장님, 저는 목숨을 다 바쳐 대일본젝국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저는 끼 국장님의 한 팔이 돼 이 우시장일대를 대일본제국 끼 국장님의 새 세상으로 만들어 드리겠습구마.”     끼무라는 안경알 밑으로 간사한 웃음을 지으면서 지껄였다.     “요로씨이(좋아), 바로 그거네.”     끼무라 국장은 의자에서 일어나 한길수의 앞에 뚜벅뚜벅 다가왔다. 그는 두 팔로 한길수를 끌어안아 일으키면서 자리를 권하고 그 옆에 나란히 앉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길수는 손수건으로 번들이마에 돋아난 땀방울을 닦으면서 오전에 있은 일을 구구히 설명했다.      끼무라 국장은 말을 질질 늘여놓는 걸 딱 질색했다.      끼무라는 한길수의 잔등을 툭툭 다독여주면서 뇌까렸다.      “괜찮네. 중국 속담에 ‘싸우지 않으면 사귈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우린 첫 만남이 참 우스웠지만 대일본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있는 한 친근한 벗으로 될 수 있네.”     “고맙습니다.”     끼무라 국장이 박수를 툭툭 쳤다.     일본 시녀들이 우르르 나오더니 푸짐한 술상을 차렸다.     “간상이나 내나 다 술을 좋아하지 않소. 자, 한잔 들면서 이야기하기요.”     그들이 댕그랑 술잔을 마주칠 때다.     병풍 뒤에서 화복차림을 한 일본 기생들이 악기랑 들고 게다짝을 짝짝 끌고 사뿐사뿐 걸어 나와 곱게 인사를 드렸다.     끼무라 국장은 한편으로 조선 사람들과 싸우면서도 항상 경찰 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일본 기생집 사꾸라관의 기생들을 데리고 놀았다. 오늘도 우시장에서 처음으로 친일 하려는 조선 사람을 접대하려고 일본 기생년들을 경찰국에까지 불러 왔던 것이다.     일본 전통민요 “사꾸라” 곡이 은은히 울렸다. 일본 기생 년들이 돌아가면서 사꾸라 춤을 곱게 추었다.     피리소리에 맞춰 병풍 뒤에서 게다소리가 딱딱 나고 가늘고 하얀 손들이 병풍우로 올라왔다 내려갔다 한다. 뒤이어 반 라체를 한 일본 기생 년들이 병풍 뒤에서 흘러나와 춤판을 벌렸다.     일본 기생 년들이 추는 춤판을 한참 멍하니 쳐다보는 한길수는 선경에 들어선 것만 같아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한참 후 끼무라는 술상과 기생 년들을 물리고 사무 상에 되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만난 첫날부터 일을 좀 시켜야 하겠소. 지금 이 사무실이 너무 비좁아서 멋있게 3층집으로 지어야 하겠네. 간상이 총도감을 맡게나.  지금부터 목수를 구해 박달령의 적송을 많이 베서 실어 와야 하겠소. 장차 우리 대일본 제국에서 백두산의 적송을 실어가려면 갑산으로 가는 길도 잘 닦아야 되겠네.”      끼무라 국장은 작은 일부터 시켜보고 능력을 보아서 한길수를 써주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 눈치를 챈 한길수는 대뜸 “제가 도맡아서 새 경찰국청사를 짓겠습니다. 목수랑 목재랑 인부랑 근심하지 마십쇼.”라고 선선히 대답했다.      끼무라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술잔을 들어 한길수에게 주었다.     “자, 간상(한군), 간상이 경찰국 청사를 명년에 멋있게 지을 것을 미리 축하하여 한잔 듭세.”     끼무라와 한길수는 술잔을 부딪치고 나서 죽 들이켰다.     “간상, 우리 일본대제국을 위해 일하려면 우리 일본의 선진문명을 받아들여야 하겠네.”     끼무라 국장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한길수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연신 “예, 예.” 하고 대답했다.     끼무라 국장은 강철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강철은 병풍 뒤로 가더니 이발사를 데리고 왔다.      강철은 한길수가를 보고 “끼무라 국장은 어른님을 관심하여 머리를 깎아드리라고 하였습니다.”라고 공손히 말했다. 그제야 제 정신이 든 한길수는 자기 외채머리를 만지면서 끼무라 국장의 희죽이 웃는 낯을 바라보았다.      “부모가 준 머리털이 아까운데..."     "고린내 나는 머리카락마저 아까워?”     끼마라 국장의 위엄에 찬 말을 강철이가 통역해 듣고 별수 없었다. 한길수는 끼무라 국장이 지켜보는데서 둬 자 길이나 되는 머리채를 썩뚝 베 버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한칼, 한칼 발치에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한길수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끼무라는 거울을 손수 들어다 한길수에게 비춰 보이면서 지껄였다.      “보라니깐. 간상, 하이칼라 번대머리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허허. 얼마나 신사다운가? 이제야 진짜 우리 대일본제국의 총도감 같네그려. 흐흐흐.”     끼무라는 손벽을 딱딱 쳤다. 시녀들이 술 두 잔을 쟁반에 들고 다가왔다.     끼무라는 한길수와 잔을 마주치고 굽을 죽 내였다.     한길수는 울분과 함께 그 술을 목구멍에 부어넣었다.     끼무라는 술잔을 놓으면서 명했다.     “한 군, 내일부터 목수와 인부를 징집해 경찰국 청사를 짓게네.”    강철이 옆에서 일일이 번역해주자 한길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 아니, 당장 동삼이 닥쳐오는데 어떻게 집짓기를 합네까?"    "뭐라고? 초겨울이 돼 괜찮아."    그래도 한길수는 어정쩡해 서서 끼무라 정신 있는가 쳐다보았다. 강철이 옆에서 허벅다리를 툭툭 치며 눈짓했다.     그제야 한길수는 마지못해 연신 번들이마를 조아리었다.     “알았습구마. 명령대로 하겠습구마.”     끼무라 국장은 새로 얻은 개 한 마리를 귀여워하듯 한길수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그의 손을 굳게 잡아 흔들었다.     한길수는 어깨 축 처져 경찰국 대문 어귀에서 진작 기다리던 당나귀 차에 올라탔다.     가을해도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하늘의 구름장들에도 불이 달린 듯이 뻘겋게 불타고 있었다.      길수는 당나귀차에 앉아 건들건들 몸을 흔들며 시내거리를 달렸다. 이때 술집 부근에 이르자 큰길 옆에서 진작부터 기다리던 응삼 등이 마중했다.      “일이 어떻게 되였습둥? 아니, 머리채는 어쨌습둥?”     응삼이 긴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묻자 한길수는 언짢은 기분을 감추면서 큰소리부터 쳤다.     “끼무라 국장은 대일본제국의 사람이 되려면 머리채부터 바치라고 해서 바쳤네. 끼 국장은 네 눈깔로 그래도 이 한길수가를 알아보더구나. 날 총도감으로 임명했어.”     “예? 아, 예. 감축드립구마.”     응삼과 영팔, 수길은 모두  숱한 금덩이를 내밀고 고작해야  고까지 총도감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상우남면 파출소 소장도 아니고.      한길수는 제 좋은 꿈을 꾸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총도감을 잘하면 이제 경찰서장을 시키겠는지 누가 아느냐?)      그는 버릇처럼 득호 잔등을 구두발로 툭 찼다.      "어서 가자, 해 넘어가는구나.”     “이라! 쨔!”     득호는 당나귀 엉덩이를 채찍으로 연신 갈겼다.     "주인님, 빨리 가겠으면 날 차지 말고 당나귀를 찹소."    허길수는 단통 우멍눈을 부라리면서 욕했다.     "웬 대꾸질이냐? 널 차면 어째? 당나귀를 차면 말을 알아듣니?"     당나귀는 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차를 끌고 네 굽을 안고 달렸다. 그 뒤로 응삼과 수길, 영팔이 말을 타고 전후좌우로 옹위하고 달렸다.     한길수는 가을바람을 한껏 들이켜니 가슴이 후련하고 뿌듯해났다. 그는 말 이발을 입술 새로 드러내면서 음흉한 낯에 별의별 엉뚱한 궁리를 다 하고 있었다.     (흥, 이제 일본 경찰국장을 등에 업었으니 영월동이겠는가? 아니야, 온 명천일대를 독점해 버릴 테야. 병완이, 네 놈이 나한테 허리를 굽히지 않고 어디 배겨내는가 보자.)      병완을 떠올리자 으쓱해졌던 어깨가 축 처지는 감이 들었다. 이전에 병완을 얼리고 닥쳐보았지만 후려채지 못한 것이 속에 걸리었다.      그러나 끼무라 국장을 떠올리는 순간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끼무라 국장을 등에 업은 이상 병완 같은 시골 놈이 언감 나와 어쩐단 말인가? 은녀랑 되빼앗아와야지. 흥!)      그는 눈을 떡 감았다.      순간 그의 눈앞에는 이런 흐뭇한 장면이 떠올랐다. 자기가 권총과 군도를 척 차고 일본군모를 삐딱하게 눌러쓰고 가죽장화를 척 신고 병완이랑 호령한다. 은녀랑 월향이랑 옥설이랑 숱한 미녀들이 전후좌우로 자기를 옹위하면서 애교를 부린다.     한참 후 우멍 눈을 스르르 떠보니 당나귀 차는 어느덧 운주동강이 감돌아 흐르는 치마봉 기슭을 달리고 있었다. 아래쪽에서는 개울물이 은빛달빛과 구름을 싣고 쏜살 같이 흐르고 있었다.      길수는 술기운이 뻗치는데다가 가을바람을 맞으니 열기를 띤 얼굴이 선선해나고 배가 울렁거렸다. 이제 바야흐로 군도와 권총을 차고 경찰두목질을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뿌듯해나고 별스레 울렁거리었다.      “오─”      “예?”     득호는 주인이 무슨 분부가 있는가 하여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니,  아무 일도 아니야. 빨리 몰게나.”      “예. 짜! 짜!”    당나귀는 채찍을 맞고 대가리를 양쪽으로 떨어대더니 네 굽을 안고 딸까닥 딱까닥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달리는 당나귀 차의 바퀴처럼 길수의 사유도 다급해졌다. 술기운이 도도해지자 혈액순환도 생각도 빨리 굴렀다.    순간 월향에게 오전에 개꼴망신을 당하던 일이며 그 젊고 예쁜 기생 옥설을 가지고 놀지도 못하고 끼무라가 휘두르는 군도를 피해 달아나던 일이며를 생각하니 세상이 더럽게 변했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월향이 원망스러웠다. 이전에 자기가 10여년 다닐 때 언제 한번 자기에게 소홀히 대하였던가. 그런데 지금은 일본 끼무라 경찰국장에게 찰싹 달라붙어 자기를 개 닭 보듯 한단 말이다. 그뿐인가! 끼무라 국장을 등에 업고 나를 업신여겨도 분수가 있지. 숱한 사람들 앞에서 자기 번들 이마를 치고 더러운 속옷을 벗어 내 머리 꼭뒤에 씌우기까지 하다니?     (참 야속해!)    (월향이, 마흔 고개를 쳐다보는 네년이 없으면 데리고 놀 계집이 없을 것 같냐? 얼마든지 있지, 있어. 옥설이, 만금이, 뽕녀. 어허이구, 보름달 같은 그년들이면 네년보다 훨씬 낫고 실컷 놀 수 있다. 퉤!)     해가 뜨자 달이 지듯이 옥설이랑 길수의 눈앞에 나타나자 월향은 매력을 잃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월향에게도 끼무라 국장이 나타나자 건달부자 길수가가 마음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월향은 그날 오후에 끼무라 국장의 사무실에 가서 자기 기생방에 와서 옥설이랑을 끼고 애를 먹이는 한길수를 없애치워 달라고 고발하러 갔던 것이다. 그러나 끼무라 국장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 쫓기어 났던 것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한길수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당나귀 차 우에서 자기 좋은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월향의 기생방에 있는 옥설이랑, 뽕녀랑, 만금이랑 예쁜 기생들을 몽땅 데리고 놀겠는가고 궁리했다.     (아니, 이 세상의 미녀들이란 미녀는 몽땅 데리고 놀고 싶다. 아이고, 세상의 미인들아, 어째 내 애간장을 이다지도 애태우게 하느냐?)     그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오전에 옥설과 뽕녀, 만금을 만나 술을 몇 잔 마셨지만 월향과 10년 동안 논 것보다 기분이 훨씬 좋았다. 그런데 월향을 외면하고 그 애들과 논다는 것은 암 펌의 입안에서 토끼를 빼내는 격이기도 했다. 황차 월향은 일본 경찰국 국장 사무실에도 드나드는 수기생이 아닌가?     (어떻게 한다?)    저 멀리 어슴푸레 마을이 다가온다. 그는 집에 있을 때에는 마을의 고운 계집애들을 데리고 놀고 고을에 가면 옥설과 만금이, 뽕녀와 놀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월향과 함께 기생집에 있던 월선이도 한때는 아주 예뻤다. 그래서 기생집출입을 밥을 먹듯이 하던 길수는 기생집만 가면 월선이 아니면 월향에게 달라붙어 술을 처먹고 녀색을 즐기었다. 월선에게 빠져버려서 그는 어떤 때에는 영월동에서 내려오면 한 보름동안 아예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본댁이 철주를 싸 업고 우시장에 내려와 기생집에 와서 길수를 불러 가기도 한 적이 있었다.     길수는 본댁이 미워서 기생집 주인에게 황금덩이를 쥐어주고 월선을 떼 내 영월동에 데려다 첩으로 들여앉혔다. 그리하여 본댁은 철주를 싸 업고 서울 쪽에 있는 본가 집으로 달아났던 것이다. 길수는 말을 타고 쫓아가 본댁에게 황금덩이를 주면서 로비라도 하라고 했다. 그러나 본댁은 눈물 한 방울 떨구지 않고 그 황금덩이를 한 냥도 받지 않고 가버리었던 것이다.    길수가 월선을 첩으로 데려온 데는 그럴만한 속셈이 있어서였다. 수기생 월선이가 기생집에 들어앉아 있는 한 월향을 비롯한 다른 기생들과 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월선을 집에 데려오니 집에 있을 때에는 월선과 놀고 고을에 가서는 월선의 여동생이자 처제인 월향을 비롯한 더 젊은 개생들과 마음껏 놀 수 있어 아주 좋았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 월선도 월향도 다 늙었어. 고 옥설을 월선 대신 둘째 첩으로 들여앉히고 고을에 가서는 뽕녀와 만금을 데리고 놀았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그 암범 같은 월선이가 가만 있겠는가! 시골의 은녀를 부엌데기로 들여와도 어찌 하나 퉁 사발 눈깔에 쌍불을 켜고 달려드는 게. 에이고.)     순간 그의 눈앞에는 마름 응삼의 색시 춘실의 고운 모습이 피뜩 떠올랐다.     경상북도에서 난 춘실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이모네 집에서 눈치 밥을 먹으면서 자랐다. 그런데 춘실은 이모부가 죽고 이모계부가 들어오자 팔자가 바뀌어 버린 여자였다. 글쎄 이모계부가 쩡하면 달려들어 어린 그녀를 능욕하려고 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모네 집에서 뛰쳐나와 조선 팔도를 헤매다가 우시장 거리에서 밥을 빌어먹으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길수에게서 밥을 몇 때 얻어먹고 이 시골에 따라와 응삼의 처로 됐던 것이다. 그리하여 춘실은 주인어른이라면 응삼보다도 아버지처럼 공대했다.     (아무리 계집이 없어도 내 어찌 굴 어귀 풀을 뜯어 먹으리오?)     이때 그의 눈앞에는 또 새별 같은 깜장 눈에 쌍 머리채를 치렁치렁 땋아 늘인 은녀가 피뜩 떠올랐다. 점점 능금같이 익어가는 그 복성스러운 얼굴이 그의 가슴마저 찡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억대우 같은 병완이 떠올랐다. 설상가상으로 은녀를 좋아한다고 온 마을에 소문난 성칠을 떠올리자 도리머리 질이 나갔다.    “안 된다! 안 돼! 오! 안 된단 말이다!”    “예?”    득호는 주인어른의 말에 당나귀고삐를 쥔 채 몸을 뒤로 돌렸다. 그 바람에 당나귀 고삐를 왼쪽으로 꽉 당기고 말았다. 당나귀가 코 구멍이 아파 왼쪽으로 대가리를 돌리면서 달려 나갔다.    “아이쿠!”    당나귀 차가 길수와 득호를 실은 채 낭떠러지에서 굴러 개울물에 풍떵 떨어졌던 것이다.   “ 빨리 주인어른을 살려라!”    응삼이랑 바삐  개울물에 우르르 쓸어달려 내려갔다. 길수는 다행히 깔려죽지는 않았다.    대신 당나귀차  밑에서 구렁인지 뱀인지 욕지거리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개자식, 어떻게 차를 몰았기에 이 지경 만들어?!” 그런데 이번에는 기어 일어나는 길수의 낯에 당나귀가 걸쭉한 똥물을 찔찔 쏴놓았다.     “에 퉤퉤! 득호, 이 자식 어디 죽어봐라!”    길수는 차밑에서 벌벌 기여 일어났다.    “아니, 주인어른, 죽지 않았습둥? 천만다행입구마.”    “뭐라고? 이 자식!”    길수는 일어나자마자 득호에게 주먹을 턱 안겼다.     득호는 개울물에 벌렁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때 응삼 등이 내려와 당나귀 똥을 낯에 바른 번들이마를 보고 겨우 웃음을 참았다. 그들은 길수를 부축하고 개울물에 똥투성이 머리를 닦아주었다.   “에, 퉤, 퉤!”   수길과 영팔이 양쪽에서 길수를 부축해 둔덕으로 올라갔다.    당나귀차는 또다시 어둠을 타 분주하게 산골 길로 달리었다.
415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 (25) 먹은 소 똥을 눠 댓글:  조회:602  추천:0  2024-03-05
                        2. 먹은 소 똥을 눠        한길수는 고양이에게 쫓기는 쥐처럼 부랴부랴 당나귀 차에 앉아 꼬리 빳빳해 도망갔다. 그는 당나귀차에 앉아 자꾸 뒤돌아 보았다.     콧수염쟁이 군도를 들고 쫓아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제야 그는 한숨을 푸 내쉬었다. 드디어 맥없이 고개를 숙이고 왼손으로 이마를 짚고 착잡한 생각에 잠기었다.      (젠장, 우시장에서 한다하는 한길수가 이게 무슨 꼴이람? 머리에 털이 돋아나서부터 언제 오늘처럼 이렇게 개꼴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는가? 참, 일본 사람들과 놀기 힘든데. 이럴줄 알았더라면 영팔과 응삼을 데리고 왔겠는 걸. 그래두 병완을 꺾자면 참아야는가? 흥! 더러워서, 원? 어떻게 해야 끼무라 국장과 친해질 수 있을까?)      득호는 해도 중천에 걸렸는지라 주인에게 묻지도 않고 당나귀차를 몰고 영월동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섰다.     “에끼, 이 등신 같은 물건짝아, 일본 사람들과 친하기는커녕 개꼴망신을 당하구  어떻게 머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느냐?”     한길수가 꽥꽥거리자 당나귀차는 시내 쪽으로 되달렸다.     한길수는 한 주막집에서 내린 후 득호를 보고 영월동에 가서 응삼과 영팔, 수길을 데려오라고 했다.    득호가 황급히 당나귀차를 몰고 떠나려고 할 때다.    한길수가 불러세웠다.     “잠간! 응삼을 보고 금덩이도 푸짐히 가지고 빨리 오라구 해라!"     그는 호주머니를 쳐들어보였다.     "요걸루 될 거 같잖다."     “예. 주인어른!”    득호는 당나귀 잔등에 채찍을 안기면서 영월동으로 부랴부랴 떠나갔다.    한길수는 주막집에 들어가 조용한 쪽으로 가서 빈 상에 마주앉았다.    그는 주인 보고 개고기를 한 사발 달라고 해 막걸리를 게걸스레 쭉쭉 들이켰다.    한참 막걸리로 답답한 마음을 지지니 그제야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는 상 싶었다. 그는 막걸리를 마시면서 어떻게 하면 일본 사람들과 다리를 놓겠는가고 머리 속에서 궁리가 뱅뱅 맴돌았다.    얼마나 시간이 갔을까. 해가 거의 중천에 걸렸다. 한길수가 답답한 막걸리를 쭉쭉 들이켜고 있을 때다.     바깥으로부터 응삼과 영팔, 수길이 달려 들어왔다.    응삼이 실 돌피 같은 허리를 꿉썩 굽혔다.    “주인어른님, 오래 기다리지 않았습둥?”    “그래, 자, 앉아라. 너희들도 막걸리 들어라.”    한길수는 주인답게 막걸리를 권했다.     막걸리를 한 순배 돌린 후 한길수는 통탄했다.     “야- 이전에 이 우시장에 오면 누가 감히 나와 말대구나 했겠느냐? 그런데 지금 바깥세상은 영 딴 판이구나. 철주 말처럼 우시장도 영 일본 사람들의 세상이 돼버렸구나.”      그는 뒤이어 울분을 이기지 못해 주먹으로 술상을 탕탕 치면서 근심했다.     "이후에 일본 사람들이 내 밭과 삼림을 내놓으라면 어쩌지?"       응삼은 양미간을 찌푸리고 뱁새눈이 실눈이 돼 쑹얼거렸다.      "일본 놈들도 푹 삶아논 개다리 잘 삶아놓으면 근심할게 없습구마. 차마 웃는 낯에 침을 뱉겠습둥? 해해해."     그는 주인에게 막걸리를 따라 올렸다.      “주인어른, 먼저 통역이나 만나 끼무라 국장과 만나게 다리를 놔달라고 해봅시다."      한길수는 응삼한테 손삿대질하면서 명했다.     "당장 일본 놈들 초소에 가보게나."      "옛!"     응삼은 영팔과 함께 일본 헌병이이 지키는 초소 앞에서 경찰국 2층 양옥 쪽을 들여다보면서 군관 같은 놈이나 통역 같으루 한 놈을 눈뿌리 빠지게 기다렸다. 그러나 종시 그런 놈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국장과 강철이 혹시 아짇고 기생집에 있을 수도 있어.)     응삼은 영팔을 데리고 기생집 쪽으로 가 기웃거렸다.     “뭘 해? 가라, 가!”     일본 헌병이 총박죽으로 응삼과 영팔을 떠밀면서 꽥꽥거렸다.     이때 기생집에서 군도를 찬 콧수염쟁이놈과 통역 같으루 한 조선인이 기생 년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혀 꼬부라진 소리로 뭐라고 떠들면서 나왔다.     그런데 그 조선인은 눈에 퍽 익어보였다.     (아니, 저게 서당방 친구 류강철이 아닌가? 살았구나. 살았어. 하느님이 류강철이를 보내주는구나.)     응삼은 끼무라 국장에게 허리를 90도로 꿉썩해보이고 나서 강철을 보고 소리쳤다.     “이보게, 강철이!”    그런데 강철은 응삼을 몰라보았다. 그는 날카로운 눈길로 응삼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물었다.     “누구던가?”     “응삼이, 응삼이네. 우리 운주동에서 최구장의 서당 방에서 천자문을 배우지 않았는가?”     그제야 강철은 아는 척 했다.      “아, 이제야 알기는구먼. 여긴 무슨 일로 찾아왔소?”     응삼은 동문서답했다.     “일본에 유학 갔다더니 높이 솟았구먼."     강철은 안경알을 춰올리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경찰국장의 통역을 해 밥벌이나 하네."    "때마침 잘 됐네."    응삼은 강철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말했다.    "좀 시간을 내오. 긴히 여쭐 말이 있네.”    옆에 서 있던 끼무라 국장은 버릇처럼 깍지를 건 엄지와 식지로 콧수염을 쓸쓸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다레까?(누군가?)”    강철은 일어로 “내 소굽시절의 친구지요.”라고 대답했다.    뒤이어 그는 “점심에 다른 일이 없으면 이 친구하고 만나게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청을 들었다.    “요로씨(좋아.)”    찌프차 한대가 달려와 앞에 멈춰 서자 끼무라 국장은 호위병과 함께 척 앉아 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사라졌다.    강철은 응삼이 이끄는 대로 한길수가 기다리는 술집으로 갔다.     그는 술집에 들어갔다가 한 시간 전에 난동을 피우던 건달의 번들이마를 보고 뒤지참하더니 되나가려고 했다.    “어이, 통역선생. 섭섭히 대하지 않겠으니 가지 마오.”     강철은 문 밖에 나가 뒤따라 나온 응삼에게 물었다.     "저건 씨름판에서랑 생떼질 쓰던 그 건달 아니야?”     응삼은 홱 뒤돌아다보더니 입가에 식지를 댔다.     “쉬- 말조심하게나. 저 양반 이 우시장을 쥐락펴락 하는 대장부야. 내 주인어른이야.”     그제야 강철은 주춤 멈춰섰다.     “그래. 무슨 일이냐?.”     응삼은 뱁새눈으로 술집 주위를 흘끔흘끔 둘러보았다. 뒤이어 호주머니에서 잔등에서 둘러멘 주머니를 끄르더니 금빛이 번쩍번쩍 하는 금덩이 하나 꺼내 스리슬쩍 강철의 손에 쥐어 주었다.     “부탁이네. 우리 저 주인어른을 경찰국장에게 연줄을 달아주게나. 우리 주인어른은 자네 은공을 잊지 않을게요.”     “그 일?”    강철은 서너 냥은 될 금덩이를 놓칠 수 없었다.     (밑져 본전이니까. 한번 나서 보자.)     그는 대번에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금덩이를 호주머니에 슬쩍 주어 넣더니 응삼의 어깨를 툭툭 쳤다.     “동기친구를 봐서라도 한 영감을 한번 도와주지. ”     “고맙네. 우리 어른께 여쭈어서 자넬 꼭 후한 대접을 하게 하겠네.”    그런데 강철이가 상을 찡그리면서 이런 말을 할 줄이야.     “네 주인이 주색에 너무 빠졌더라. 오늘도 대취해 개꼴망신했다. 대일본제국을 위해 일하려면  주색에 너무 빠져선 안 돼. 아까도 끼무라 국장앞에서 그게 뭐야? 쯧쯧."     응삼은 강철한테 바짝 다가섰다.     "꼭 잘 말해주게나. 사내가 어찌 한두번이야 주색에 빠지지 않겠는가? 꼭 잘 말해주게나. 부탁이네."     강철은 짐짓 제빠드해보였다.     "내 말은 해보겠네만은 끼무라 국장님이 한 영감을 받아주겠는지 잘 모르겠어.”    응삼은 강철이 금덩이를 더 받아 먹으려고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불 보듯  꿰뚫어보아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모르는 척 하면서 바싹 달라붙었다.    “이보, 들어가 우리 주인을 보기오. 우리 주인은 인심이 후한 분이야."   강철은 마지못해 응삼에게 끌려들어가듯 술집으로 되들어갔다.    한길수는 우멍눈을 활짝 뜨며 반색하였다. 그는 손으로 버릇처럼 번들이마를 쓱쓱 쓰다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권했다.    “면목 있는 분이구먼. 아까 추태를 보여서 미안하오.”    한길수는 기생집에서 추태를 보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천만에 말씀. 피차일반입구마.”    류강철이 발라 맞추는데 한길수는 응삼에게 눈짓했다.    응삼이 금덩이가 들어찬 주머니를 어깨에서 끈을 끌러 내려놓았다.    한길수는 가래짝 같은 손을 주머니에 쑥 넣더니 단번에 금덩이 두개나 꺼내 류강철의 앞에 척 내놓았다.    “자, 받게나."    강철은 황금덩이를 보고 반색하면서도 사양하는 척 했다.   한길수는 우멍눈으로 강철을 엄엄하게 바라보며 입을 뗐다.   "무거운 부탁을 합세. 나는 대일본제국을 위해 일하고 싶은데. 으흠, 경찰국장님에게 알선해주게나. 이후에 내가 허리를 펴게 되면  자네를 잊지 않을게.”    류강철은 금덩이를 스리슬쩍 받아쥐고 허리를 꿉썩거렸다.     “우시장에서 한 어른의 성선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 압니다. 저는 한 어른을 위해 할 일이 있는 것만도 아주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이 금덩이 없어도 제가 어련히 알아서 해주지 않으리라고 이럽니까?”      한길수는 금덩이를 손수 쥐여 영팔이 손에 쥔 주머니에 넣어 강철에게 건네주었다.      “자, 이거 무거운 부탁을 하기오. 이후에 사노라면 이거겠겠소? 허허허.”     그제야 류강철은 별 수 없다는 듯이 묵직한 금주머니를 받아 챙기었다.     “근심하지 말고 기다립시오. 오늘 오후에 꼭 한 어른을 만나도록 끼무라 국장에게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길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례하면서 술집 바깥까지 바래다주었다.     한길수는 류강철에게 부탁했다.     “좋기는 경찰국청사에서 국장님을 만났으면 좋겠소.”     류강철은 “그게 좋겠습니다. 기별을 기다리십쇼.”라고 한마디 말하고는 자리를 급급히 떴다.     응삼은 밖에 나가 득호를 보고 당나귀 차에 류강철을 모셔다주라고 분부했다.     류강철은 당나귀차에 앉아 떠나가면서 어깨가 으쓱해났다.      (어떤 금덩이야? 이런 거간이야 말로 백번이라도 설 수 있지. 한길수 영감에게 면목을 내고 금덩이도 챙기니 . 헛참, 이거야 말로 꿩 잡고 알도 먹고 둥치를 털어 불을 때는 격이 아니겠는가. 흐흐흐.)      그는 당나귀차를 타고 부랴부랴 집에 가서 금덩이 세 덩이를 아내에게 맡기였다. 그는 점심도 먹지 못하고  당나귀차를 타고 단숨에 우시장경찰국으로 달려갔다.     우시장에서 2층 양옥집은 일본 경찰국 청사 밖에 없었다. 경찰국을 둘러싼 벌건 토성 네 귀의 초소에는 총칼을 비껴든 일본 헌병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자못 경계가 삼엄했다.      강철이 통행증을 내보이자 대문보초병은 들여보냈다. 그는 곧추 끼무라 사무실 앞 복도 걸상에 앉아서 경호원과 함께 이 말 저 말 하면서 끼무라 국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참 후 끼무라 국장은 경호원과 함께 뚜벅뚜벅 2층 복도로 올라왔다. 류강철은 기립하여 서 있다가 끼무라 국장이 다가오자 허리를 구십 도로 꿉썩 굽히며 인사했다.     끼무라 국장은 사무실에 들어가 틀스럽게 군도를 벗어 검 틀에 걸어놓고 의자에 앉았다.     강철은 인차 끼무라 국장의 옆에 다가가 무거운 입을 떼였다.     “국장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이전과는 달리 너무나도 굳어진 류강철의 표정을 보고 “무슨 중대사가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왼쪽앞자리를 권했다.     류강철은 아주 그럴듯하게 말했다.     “이 우시장을 다스리자면 순수한 일본헌병들로만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일본제국을 도와 일할 당지 조선인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끼무라는 류강철의 말에 동감을 표시했다.     “소우데스네(그렇습니다). 나도 그 일 때문에 요즘 류 군과 말하려던 참이요. 좋기는 우시장에서 아니, 온 명천에서 영향력이 있는 자들이면 더욱 좋소. 그런 자들을 우리 옆에 사냥개처럼 길러두면 우리 안보에 좋지.”     끼무라가 의기투합해 하자 류강철은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국장님, 그 적임자가 나졌습니다.”    끼무라는 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어떤 사람이요?”라고 물었다.     “그 어른은 이전부터 이 우시장이고 온 명천까지 쥐고 흔들던 깡패두목입니다.”     류강철의 말에 흥미가 갔던지 끼무라는 벌떡 일어났다.    “빨리 그 자를 내앞에 불러오오. 바로 그거네. 나는 우시장의 한다하는 깡패, 건달들을 묶어세워 우리 대일본제국의 충실한 제2의 헌병대나 다름없는 조선인경찰대를 묶어세우겠네. 지방관리도 몽땅 우리에게 충성하는 자들로 시킬 예산이네. 그게 누군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가?”     그런데 류강철은 그 다음 말을 인차 하지 않고 차물을 마셨다. 그러자 끼무라 국장은 아주 조급해 류강철의 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류강철은 차잔을 놓으면서 천천히 입을 떼였다.     “끼무라 국장님은 그분을 진작 오늘 오전부터 알고 있습니다.”     끼무라는 안경알 안으로 사기 눈을 희번뜩거리더니 책상을 탕 쳤다.    “혹시. 오전에 옥방에서 기생 년을 셋이나 데리구 놀던 그자 말인가?”    류강철은 우쭐 일어나서 끼무라 국장의 옆으로 다가갔다.    “맞습니다. 이전에 이 우시장에서 그분의 이름만 들어도 어린애들도 울음을 다 그칠 정도였습니다. 지금 영월동에 숨어서 살지만 그분의 수하에는 이 우시장이고 명천에고 숱한 주먹치기친구들이 있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의자에 되 주저 앉으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그자는 내 검도를 대여섯 번이나 피했소. 사람이 주먹치기군은 틀림없소. 아주 날랜 사람이지.”     그 말에 강철은 일이 돼 단다고 속으로 쾌자를 불렀다.     그런데 끼무라의 그 다음 말은 아주 실망스러웠다.     “류군은 사람을 잘못 보았네. 그렇게 아침부터 주색에 빠진 자가 어떻게 우리 대일본제국 경찰국장의 한 팔이 되겠는가?”   (쳇, 자기는?)    먹은 소 똥을 싼다고 강철은 거기에서 물러설 인간이 아니었다.    “주색에 빠진다고 다 국장님의 한 팔이 되지 못한다는 법이야 없잖습니까? 문제는 일본제국을 위해 일을 하려는가 하지 않으려는가 하는 마음이, 아니, 충성심이 관건이라고 봅니다. 그는 능력도 있고 주먹도 세고 친구나 부하가 많습니다. 장차 국장님을 위해 큰일을 할 사람이니 한번 기회를 주어 보십시오. 낭패는 없을 겁니다. 또 장차 목숨을 걸고 사람 잡이를 해야 할 사람들이 한가할 때에는 주색에 조금 빠진들 무슨 큰 일입니까?”     끼무라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손가락으로 사무 상을 똑똑 치면서 한참 궁리를 굴리었다.     드디어 그는 버릇처럼 코 수염을 쓸면서 자기 충실한 통역 류강철을 유심히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  먼저 만나봅세.”    “하잇(옛)! 와까리마시다(알았습니다)! 지금 당장 불러오겠습니다.”     류강철은 차렷 자세로 군례를 올린 후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는 사무 청사 마당에 나가 일본 헌병이 모는 삼륜오토바이에 앉아 인차 약속한 술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헐레벌떡거리면서 술집에 뛰어 들어가자마자 한길수에게 구십도 경례를 올렸다.     “한 어르신님, 끼무라 국장께서 지금 당장 한 어른을 만나겠답니다.”    한길수는 번들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응삼에게 눈짓했다.    응삼이 제꺽 눈치채고 또 금덩이 하나를 꺼내 류강철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강철이는 감히 받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러지 맙소. 내가 어디 금덩이를 받자고 나섰습니까? 한 어른은 우리 이 우시장의 영웅호걸인데요. 금더이를 보고 나선게 아닙니다.”     한길수는 더는 굳이 주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강철이가 아주 역은 놈이라고 생각했다.    (네놈이 언감 금덩이에 눈이 어두워 너무 욕심을 쓰면 이담 가만놔들 거 같애? 흥, 이 어른이 장차 칼자루를 쥐면 네놈에게 준 금덩이의 두 배도 더 받아낼지 모르니까.)    “으흠, 가보세.”    한길수는 일어나 떠나려다가 되앉으면서 머뭇거렸다.    “그런데 오전에 일을 쳐놓아서 망신스러워 어떻게 국장님을 만나겠소. 인상이 영 좋지 않겠는데 가서 되겠소?”    류강철은 허리를 굽히면서 여쭈었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국장님께 오전의 오해를 풀리게 잘 해석해드렸으니까 끼무라 국장은 양해하였습구마.”    “그래? 으흐흐. 참 수고 많았네.”    한길수는 용기를 얻고 강철을 따라 술집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 오토바이가 있었지만 한길수는 앉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자기 당나귀 차에 오르려고 했다.     강철은 바삐 말리면서 한길수가를 자기 오토바이 쪽으로 부축해갔다.      한길수는 응삼을 보고 금덩이보자기를 달라고 하여 어깨에 둘러멨다.    “자네들은 저 술집에서 술이나 마시면서 기다리게나.”     분부를 마치자 강철한테 손을 홱 휘둘렀다.     응삼과 영팔, 수길은 오토바이를 타고 쏜살같이 멀어져가는 한길수 잔등에 대고 구십도로 경례를 꿉썩 했다. 발바닥을 핥으라고 해도 핥을 졸개들의 비굴한 상통들...
414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24) 친일 주구 김장혁 댓글:  조회:563  추천:0  2024-03-05
                제5장 음모궤계                    1. 친일주구       앞을 가리기 힘들게 눈보라치는 을씨년스러운 겨울. 박달나무가 얼어 탁탁 터지고 여우도 엄동설한에 눈물을 흘리면서 눈 덮인 수림으로 도망간다.     휘몰아치는  친일 주구의 우멍눈이 눈보라 속에 숨어 교활한 눈빛을 번쩍인다. 아첨이 눈발 속에서 해해거리며 거만하게 딸까닥거리는 게다짝에 비굴하게 절을 꾸벅꾸벅한다.      당나귀차가 명천 우시장 큰 거리 돌바닥길을 딸까닥딸까닥 절주 있게 달렸다. 당나귀차에는 중절모자를 쓴 한길수가 개화장을 짚고 앉아 우멍눈을 떡 감고 구두발만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의 집에 마차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빨리 닫는 마차에 앉았다가 사고라도 날가 봐 당나귀차에 앉아 길을 떠났다.          그는 지금 철주가 꼬드긴 대로 우시장에 와서 일본 쪽빨이들 품에 안기러 오는 길이었다. 한길수는 날개가 돋혀 한시급히 일본 사람들이 욱실거리는 명천으로 날아가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다.      (그 놈새끼 말대로 일본 사람들을 등에 업고 병완을 꺾어버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 맏아들 말이 맞아. 이런 세월에 순풍에 돛을 달고 제 노릇이나 하는게 제일이지. 모슨 놈의 만세야?)       그런데 한길수는 일본 말을 통 모르는 것이 참 답답했다. 불시로 배우는 수도 없는 일이어서 먼저 일본말 통역을 찾기로 했다.     득호는 차를 세우고 뒤돌아다보면서 물었다.     “주인어른, 우시장에 다 왔습구마. 어디로 가겠습둥?”     “에이, 듣기도 싫은 함경도 도둑놈 사투리! 흥!”     한길수는 우멍 눈을 번쩍 뜨더니 두덜거리며 등의자에서 몸을 뗐다. 한참 두리번거리던 그는 일본 병사들이 보초를 서는 초소가 있는 쪽을 개화장으로 가리켰다.      “저리 가자.”      득호는 기절초풍한 나머지 고삐를 쥔 채 멍해 주인어른을 뒤돌아다보았다.      "아니, 쪽발이새끼들한테 무슨 경을 치자구 이럽둥?"     한길수는 개화장으로 득호 잔등을 툭 치면서 재촉했다.     "빨리 가잖고 뭘 해?"    득호는 시에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차듯 고삐로 당나귀 잔등을 탁 치면서 중얼거렸다.    “저쪽은 허월향 기생집인데요.”     길수는 발로 득호 엉덩이를 탁 차놓으며 왈칵 성냈다.    “야, 이 놈아, 가라면 갈 게지. 뭘 알아서 꾸물거리느냐?"    득호는 그제야 이 늙은 두상이 또 속이 근질거려나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당나귀 잔등을 쳐 차를 동남쪽으로 빨리 몰았다.     “득호야, 집에 가서 기생집에 갔다는 말 절대 하지 마라. 알만 하냐?”     “예, 목이 떨어지자고 혀바닥을 놀리겠습니둥?”     “음. 우리 집에서 일하자면 입이 무거워야 해. 알만해?”    "네. 주인어른이 기생집에 들린 걸 절대 입 밖에 내지 않겠습구마."    ''에끼, 이 놈아, 차나 잘 몰아라!"     한길수는 이젠 우멍 눈을 크게 뜨고 등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떼고 여기저기 살피면서 득의양양해 코 노래를 흥얼거리었다. 그는 어쩐지 기생 월향의 기생방에 갈 때면 흥이 났던 것이다.     (이래서 사내대장부는 창검 속은 쉽게 지나가도 미인관은 넘어가지 못한다고 하는 거야. 어험.)      한길수는 여편네 월선이 허벅다리를 꼬집어 놓으면서 기생집출입을 하지 말고  해 넘어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라는 말도 귀 등으로 흘려버리고 말았다. 하긴 이 근년에 마흔 고개도 넘은 월선과 밤잠을 억지로 자고 나면 이전에 애교가 찰찰 넘치던 월선이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됐다. 그리하여 흘러간 세월로 하여 마음이 별스럽게 쓸쓸해나기만 했다.      그새 변화가 눈 뜨이게 생겼다. 허월향 기생집 옆에는 양옥으로 일본 기생집 사꾸라관이 일떠섰다. 일본 기생 년들이 게다짝을 짝짝 끌면서 화복을 입고 궁둥이를 비뚤거리며 기생집에서 나와 거리를 나돌아 다녔다.     거리 곳곳마다 초소를 세우고 일본 헌병들이 시퍼런 총창을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몸과 짐을 꼼꼼히 수색했다. 한길수 네가 초소로 다가가자 일본 헌병 둘이나 다가와 총창을 들이대고 내리라고 시늉하면서 뭐라고 씨부렁거렸다.    “에참, 세상이 더럽게도 변했네. 이 우시장에서 누가 언감 내 앞길을 막는 놈이 다 있었던가? 오래 사노라니 원, 별것들을 다 보겠다.”     “고노 빠까새끼(이 바보새끼)!”    한 일본병사가 일어에 조선어를 섞어 고함치면서 총 박죽으로 길수의 턱주가리를 들이갈겼다.    싸움꾼 출신인 길수는 낯을 옆으로 피하면서 날아드는 총 박죽을 왼손으로 비껴 치우면서 두덜거렸다.     “야, 정말 이 새끼들!”    길수는 개화장을 쳐들었다가 치미는 밸을 억지로 꾹 참았다. 그는 바위돌처럼 굳어졌던 박대가리 근육을 풀면서 억지로 웃음지으며 뭐라고 손시늉했다.     그제야 일본 병사들은 한길수를 당나귀 차에서 내려오라고 손짓했다. 그 놈들은 몸부터 수색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당나귀 차까지 이리저리 수색한 후에야 놓아주었다.    길수는 투덜거리면서 기생집 앞에 간신히 이르렀다. 그러자 벌써 문어귀에 서있던 기생 년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와 아양을 떨고 교태를 부리면서 마중했다.     “아유, 오랜만인데요. 영월동의 한 양반!”     “어서 오세요. 당신 생각에 잠도 안 오데요.”     “그래, 그래. 어험.”      그제야 한길수는 금방 당한 굴욕감에서 서서히 풀려나오면서 길죽한 낯에 웃음 구름이 흐르기 시작했다.     두 기생이 한길수의 양팔을 안고 기생집에 들어가 복도의 층계를 올라갔다. 그래도 길수는 어쩐지 이맘 때면 언제나 달려 나와 자기를 마중하던 월향이 보이지 않는 것이 속에 걸리었다.     “월향이 없냐?”     팔을 낀 기생년은 한참이나 아무런 대답도 없이 잠잠하다가 입귀를 배시시 열었다.     “월향 언니는 오늘 귀한 손님이 있어요. 우리와 폭 취토록 술을 마시면 어때요?”    길수는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올라 꽥꽥 고아댔다.      "이 우시장에 날 내놓고 또 누가 있다고 그래? 그년 보고 얼른 나와 마중하라고 햇! ”      이때 옆에서 부축하면서 층계를 오른 기생들이 기겁해 손으로 한길수의 입을 막으면서 월향의 방을 눈짓했다.      한길수는 우멍눈을 가슴츠레 뜨면서 뭔가 눈치 챘다.      (어떤 놈이 왔기에 이 지랄들인가?)     길수는 월향을 찾아와 중대사를 토론하여야 하겠는데 웬 놈이 와서 붙들고 앉아있는 것이 아주 불안했다.     그러나 옆에 꼭 붙어 옥방으로 들어가는 기생 년들이 어찌나 예쁜지 월향이고 일본 놈의 통역이고 만나는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는 점차 색마의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양옆에 예쁘고 살 냄새 풍기는 기생 년을 두고서도 모자라 복도 벽에 줄느런히 걸어놓은 반라체기생년들의 사진을 흘끔흘끔 도적눈을 팔았다. 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리고 두 손으로 반 라체 하신을 가린 기생, 일본 녀인머리처럼 부푼 머리카락을 휘감아 올려 동이고 젖가슴을 살짝 반쯤 드러낸 채 외면한 기생, 그 기생들의 사진을 보는 길수의 눈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아이유, 이 양반도. 우리 뭐가 짝져서 어디에 눈을 팔아요?”      “빨리 우리 방으로 들어 가자요.”     기생들이 뾰로통한 표정을 짓자 한길수는 기생 년들의 야들야들한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구슬렸다.     “그래. 어서 들어가자. 요것아.”    길수는 월향의 방을 그저 건너 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월향의 방에서는 웬 왜놈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알아듣지도 못할 일본 노래를 부르면서 저인지 숟가락인지 술잔인지 사라인지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라리 잘됐다. 이 젊은 기생 년들과 놀면 좀 좋아서. 월향은 월선처럼 이젠 한물 지나간 년이야.)    길수는 복도 마지막까지 나가면서 칸칸의 미닫이문 옆의 벽에 걸린 기생 년들의 사진을 몽땅 점검했다. 그래도 어째 시원치 않았다. 그는 자기 양팔을 안고 있는 기생 년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왼쪽팔을 안은 기생은 얼굴이 걀쭉한 년인데 외까풀 눈으로 생글 웃으면서 애교를 부리는 그 눈이 아주 매혹적이었다.     “이름이 뭐지?”    걀쭉한 기생은 해시시 웃으면서 “뽕녀얘요.”라고 대답하며 몸을 비비 탈았다.    “뽕녀? 좋아. 너와 함께 한판 하면 뽕뽕 가겠구나. 허허허.”    길수는 이번에는 눈길을 돌려 오른팔을 안은 년을 훑어보았다.    반 너머 드러난 풍만한 젖가슴이 백설같이 희고 보름달같이 둥근 우유 빛 얼굴이라든가 진주같이 반짝이는 쌍가풀 눈이라든가 오똑한 코에 키스를 기다리는 빨간 작은 입술이라든가 실로 정이 찰찰 흘러넘치고 그녀의 온몸에서 향기가 그윽하게 풍겼다.     “에라, 오늘 질탕하게 놀아야겠다. 잘 모셔야 돼.”    길수의 욕망에 찬 말에 기생 년들은 호들갑을 떨면서 미닫이문을 열고 길수의 팔을 감싸 안은 채 안방으로 들어갔다.     “에이구, 한 양반. 진짜 황금 한양반을 가지고 왔나 봐.”     “그래. 영월동 한 양반이 그래도 황금 한냥 반이야. 호호호.”     안방에 있던 기생년도 일어나 사뿐사뿐 다가와 길수를 반겨 맞았다.     “안녕하세요?”     한길수는 탐스레 그년의 온몸을 눈으로 쓸어 만졌다.    절반밖에 비단으로 가리지 않은 온몸이 다 익은 감같이 말랑말랑해보였다. 그래서 바삐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복숭아이마에 키스부터 뻑 안겼다.     “넌 이름이 뭐냐?”     “만금이예요. 이뻐해줘요.”     한길수는 양팔에 계집 하나씩 끼고 구들에 들어앉으면서 떠들어댔다.      “그래, 그래. 에이고, 요것들아. 오늘 늘어지게 놀자구나. 누가 소리할 줄 아냐?”      “예. 옥설이가 소리야 잘하지요.”      뽕녀의 말에 옥설은 벽에 기대놓은 가야금을 내려다 술상 저쪽으로 하여 놓았다.     뽕녀와 만금은 바삐 술상을 차려놓고 한길수의 잔과 자기 앞의 잔에 술을 찰찰 넘치게 부었다.     뽕녀와 만금이가 한길수의 양 무릎에 올라앉아 잔을 들었다.     “자, 한잔 드세요. 우리 친애하는 한 양반.”      “오, 그래, 그래. 너희들 남대치 말이 우리 함경도 말보다 참 듣기 좋구나.”     한길수는 한잔 쭉 굽냈다.     “캬- 거, 술맛이 좋다. 옥설아. 유행가 한곡 불러라.”     옥설은 꽃방석 우에 치마를 꽃처럼 동그랗게 씌우면서 들어앉아 가야금을 둥기 당당 탔다. 뒤이어 온방에 둥기 당당 가야금소리에 맞추어 은방울 굴리는 듯 청아한 목소리가 간드러지게 울렸다.         첫사랑에 마음을 적시던 그 날 밤       오동추야 기나긴 정열의 깊은 밤       나는야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내 사랑 멀리멀리 가버린 첫사랑         가야금아 둥기 당당 울려라       강남에 날아갔던 제비는 돌아오고        훈훈한 봄은야 찾아왔건만       언제 돌아오랴  기약없이 떠나간  첫사랑          “그래, 그래. 너의 첫사랑 내가 이렇게 돌아오지 않았느냐? 그런 의미에서 한잔 들자. 오, 요것아. 헤헤.”       길수는 왼팔로 뽕녀를 안고 오른손으로 술잔을 입에 가져가려고 했다.       그런데 만금이 술잔을 앗아 입에 가져갔다.      길수는 양팔에 뽕녀와 만금을 안고 만금이가 입에 부어주는 대로 술을 마셔댔다. 입귀로 술이 흘러 비단적삼을 적셨다.     “어, 술맛 좋구나. 옥설아, 거 쓸쓸한 노래 그만 부르고 여기 와서 술이나 따르라.”     옥설은 가야금을 내려놓고 나비가 날아와 꽃 위에 옮겨 앉듯이 다가와 섬섬옥수로 술병을 들어 놋 잔에 찰찰 넘치게 부어 길수의 앞에 드렸다.     “아이고, 요 손이 어쩌면 이렇게 부드럽고 매끌매끌하냐? 요 손으로 입에 부어넣어라.”     옥설은 두 손으로 잔을 들어 한길수의 침이 발린 입에 술을 부어넣었다.     “어허, 술맛이 참 좋구나. 세상에 이런 재미보다 더 좋은 게 있다더냐?”     한길수는 만금과 뽕녀의 허리를 놓고 술병을 쥐어 두 잔에 술을 찰찰 넘치게 붓더니 한잔은 옥설에게 주고 나머지 잔은 자기 손에 쥐였다.     “옥설아, 너를 만나 정말 기쁘구나. 한잔 들자.”    댕그랑.    한길수와 옥설은 놋 술잔을 마주치고 기분 좋게 죽 들이마셨다. 술이 묻은 옥설의 빨간 입술은 앵두처럼 더욱 빨갛게 물기가 돌았다. 옥설을 쳐다보는 한길수는 말 이발을 드러내며 음탕한 웃음을 술이 발린 입가에 띠웠다. 뒤이어 그는 두 손으로 옥설의 하얀 얼굴을 받쳐 들고 은은한 정이 그윽한 깜장 눈을 들여다보면서 지껄였다.    “야, 요년. 하늘이 어쩜 오늘 나에게 너같이 예쁜 애를 주었을까. 네 고향은 어디냐?’’    옥설은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김해예요.”라고 대답했다.    한길수는 “그래? 김해라. 멀기도 먼 곳에서 왔구나.”라고 하면서 기막힌지 옥설을 놓아주었다.    “얘, 앉아라. 김해가 얼마나 좋은 고장이니 이런 시골에 와 이런 돈을 버느냐?”   옥설의 깜장 눈에는 이슬이 반짝였고 머리는 폭 숙여졌다.   “너 무슨 일이 있었느냐? 말해라. 이 영월동의 한길수는 여기 우시장의 왕이니까 어느 놈이 너를 업신여기거나 못살게 굴면 내가 어디까지라도 쫓아가 그 놈의 대갈통부터 박산내겠다. 겁나 말고 어서 말해라.”    옥설은 고개를 천천히 들고 한길수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눈치 빠른 한길수는 얼른 옥설의 손을 잡고 잔등을 살짝살짝 다독여주면서 지껄여댔다.    “자, 어서 말해봐. 객지에 나와서 고생이 많지? 성씨부터 말해봐. 집에는 누구랑 있냐?”    만금과 뽕녀는 질투의 눈길로 옥설을 쏘아보았다.    옥설은 눈물을 흘리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집은 김해에 있는 김해 김 씨예요. 우리 집에는 우리 오누이밖에 없어요.”    “그래. 네 집이 아주 가난한 모양이지. 이런 일을 하러 이런 시골에 보낸걸 보면.”    한길수가 아무래나 지껄이는 말에 옥설은 화도 내지 않고 묵묵히 하얀 볼에 눈물만 하염없이 줄줄 흘리었다.      그러자 한길수는 가래 같은 손으로 옥설의 볼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울지 마라. 얘, 네가 울면 내 가슴에 칼이 박히는 것 같이 아프다. 네가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필시 무슨 말 못할 연유가 있겠다. 어서 말해 봐.”      이때 말수 적은 옥설이 갑자기 한길수의 손을 뿌리치면서 훌 일어나면서 그릇이 깨지는 듯 악청으로 소리를 질렀다.     “누가 여기 오기 싶어서 고향을 떠나 왔는가 해요? 누가 이런 노리개질을 하고 싶어 하겠어요? 저 일본 놈들이 붙잡아 와서 여기까지 끌려왔지.”     한길수는 펄쩍 놀라 일어났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일본 사람들이 말이 아니구먼. 이런 일이야 어디 강박하면 되는가? 혹시 너 네 집에서 일본사람들에게 빚을 많이 진건 아니야?”     옥설은 문께로 나가면서 “쳇, 우리 집은 김해에서도 한다하는 부자 집인데 바다를 건너온 일본 사람들에게 무슨 빚을 진단 말인가요? 만금과 뽕녀와 술을 천천히 드세요. 난 오늘 기분이 엉망이 돼서 나가봐야 하겠어요. 후에 놀러 오세요.”    “아, 아니. 옥설아, 가지 말라.”    한길수는 보배나 잃은 듯이 허전해 옥설을 따라 막 일어나 나가려고 했다. 그 바람에 중절모자가 벗어지면서 번들 이마가 드러났다. 만금과 뽕녀는 배를 끌어안고 깔깔깔 웃어댔다. 그녀들은 황급히 중절모자를 주어준다 번지진 술잔을 주어다 놓는다 하면서 킬킬거렸다.    원래 이마 벗겨진 사내가 바람기가 세다고 했다. 또 월향의 말대로라면 번들 이마 한길수는 너무 바람을 피워 여인들과 섹스를 하다나니 여인들이 너무 바빠 위의 한길수의 머리를 끄당겨서 머리털이 다 빠져 번들 이마로 됐다고 하기도 했다.    이때 바깥에서 웬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렸다.     “이 년아, 어디로 갔는가 했더니 잘한다. 네가 감히 내 발등을 디뎌? 이년, 이 경칠 년아. 오늘 죽어봐라.”     찰싹!    옥설의 새된 비명소리 들려왔다.    한길수가 나가 보니 개 난장판이 벌어졌던 것이다. 글쎄 월향이가 옥설의 귀를 삐틀어 쥐고 방치로 옥설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월향은 한길수를 발견하자 독살스런 눈길로 그를 쏘아보았다.     “퉤, 더러운 영감태기, 그 우멍 눈깔에도 젊은 계집이 보이는 모양이지. 옛날에 누구 덕에 영월동을 가진 걸 다 잊었어? 배은망덕한 더러운 영감태기!”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찬다고 월향은 옥설의 머리채를 휘감아 쥐더니 마구 끄당겼다.     옥설은 두 손으로 머리를 틀어쥔 월향의 손을 잡고 “애고고.” 하며 휘청거렸다.     그 바람에 나체나 다름없는 옥설의 우유 빛 젖가슴이 반쯤 드러나 출렁거렸다.    여기저기서 문이 열리며 색정광이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들은 큰 구경거리나 생긴듯이 한길수와 월향을 손가락질하면서 웃고 떠들어댔다. 월향은 숱한 사람들 앞에서 한길수를 망신시켜주려고 한손으로 옥설의 머리채를 틀어쥔 채 다른 손으로 불시에 한길수의 귀 쌈을 찰싹 갈겼다. 그 바람에 한길수의 중절모자가 월향의 손에 빗맞아 벗겨지면서 잔등으로 굴러 땅바닥에 뚝 떨어져 나뒹굴었다. 순간 한길수의 번들 이마가 훌렁 드러나 전등불빛아래 번들거렸다. 한길수는 번들 이마의 땀을 뚝뚝 손으로 찍으면서 월향을 콱 밀치고 옥설의 머리채를 틀어쥔 손을 풀려고 모진 애를 썼다.     “옳다! 잘한다. 이 년 놈들이 작당을 해서 나를 때리려고? 아이고, 분해라! 나 죽는다! 아이고, 이 개 쌍년아, 죽여치우겠다!”     월향은 원통해 악을 딱딱 쓰면서 고함치고 옥설을 꼬집고 쥐어뜯어댔다. 갑자기 그녀는 옥설의 머리채를 놓고 번들 이마를 찰싹찰싹 갈겼다.     구경꾼들은 복도가 꽉 차고 떠나갈듯이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이때 어느 방에서 나왔는지 한 주정뱅이가 장단까지 메고 나와서 두드리면서 노래를 불러댔다.     “얼씨구 좋다 둥둥. 절씨구 좋다 둥둥. 잘도 싸우라 둥둥. 무기를 대줄게 둥둥. 죽을 내기로 싸워라, 둥둥. 우리 선수 잘 한다 둥둥. 죽여라, 살려라! 둥둥 당당 둥둥 당당!”     갑자기 월향의 방문이 쭈르르 열리더니 코 수염을 기른 사나이가 허연 훈도시 바람에 튀어나왔다. 주정뱅이들과 색정광들이 죽 비켜섰다.    “콘칙쇼(닥쳐)! 난노 고도까(무슨 일이냐)?”    코 등에 붓으로 점을 똑 찍어놓은 듯 코 수염은 아주 위엄스러웠다. 그 뒤로 갱핏하게 생긴 조선인이 뒤따라와 머리를 조아렸다.    뒤이어 그자는 주정뱅이들에게 위엄스런 눈길을 돌리고 우쭐해서 고함쳤다.     “우리 우시장 일본제국 헌병대 대장이시자 총경찰국 끼무라 국장이시다. 너희들이 언감 여기 와서 끼무라 국장의 주흥을 깨뜨리느냐? 어째 대가리가 목에서 떠나고 싶으냐?”     한길수는 제 정신이 펄쩍 들어 코수염을 바라보았다. 보통 키에 똥똥한 땅딸보 끼무라 국장은 옴몸에서 위엄과 힘이 빛발 쳤다.     끼무라는 한길수를 보더니  꽥 고함쳤다.     “빠까새끼 모노라!”     무지한 길수는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저 양반, 뭐라구 하오? 뭐? ‘바가지새끼 못 놀아? 내가 바가지라고? 원, 참.”    그 말에 통역 강철이는 어처구니없어 손으로 입을 싸쥐고 웃었다.    끼무라는 강철과 길수를 번갈아보더니 더구나 언성을 높여 욕지거리를 했다.     “빠까모노(바보)라! 혼야꾸시데(번역해줘)!”     “뭘? 빠개지게 못 논다고?”     끼무라 국장은 다가오더니 한길수의 귀 쌈을 찰싹찰싹 갈겼다. 그가 뭐라고 꽥꽥 고함치자 통역이 이렇게 번역해주었다.     “온 조선이 일본제국의 땅이 됐으니 이 땅 우의 산이고 강물이고 계집이구 몽땅 우리 황군의 것이야! 네가 함부로 놀라는 계집들이 아냐!”     길수는 얼얼해나는 귀 쌈을 손바닥으로 붙들고 그 말을 들으면서 귀뿌리가 웅 하는 것을 느꼈다.     (별 놈 다 있구나. 네놈들이 오지 않았을 때 이 우시장에서 누가 감히 이 어른의 뺨을 쳤니? 우시장의 계집은 몽땅 내 것이었는데 이 오랑캐들에게 수모를 당하다니? 시비도 없는 일본 놈들과 못 놀겠다.)     밸 같았으면 옆에 보이는 걸레대로 오랑캐 개 대가리를 박살나게 때리고 싶었다. 젊었을 때 같으면 그의 소 발굽 같은 주먹이 진작 코 수염의 면상에로 날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영월동을 독차지하려면 이 모든 것을 참아야 했다.     볼을 싸쥔 길수의 이글거리는 눈길을 보고 끼무라 국장은 기생방에 되들어가 군도를 들고 나왔다.    그때 옥설과 만금이가 끼무라의 양팔에 매달리면서 말리였다.     “류 통역 좀 일본말로 말리세요. 영월동 갑자 한길수 어른이시오.”     옥설의 말에 그제야 제 정신이 펄쩍 든 통역 류강철은 끼무라국장의 귀에 대고 뭐라고 쑹얼거렸다.    끼무라 국장은 한길수의 번들이마를 쏘아보다가 자기 팔을 감싸 안은 하얀 두 팔을 내려다보더니 군도를 든 채 지껄였다.    “고노 빠까 또 난노 간께이까(이 바보와 무슨 관계인가)?”      기생 년들이 끼무라가 뭐라고 지껄이는지 알 턱이 있는가? 그저 머리만 끄덕이면서 군도를 앗아내려고 했다.     화날대로 난 끼무라 국장은 두 기생 년을 활 뿌리치고 서리발치는 군도를 들고 한길수에게 덮쳐들어 내리찍었다. 하도 한길수가 옛날 솜씨가 있어 옆으로 몸을 날리면서 날아드는 군도를 피하였으니 말이지 몸이 진작 두 동강이 나고야 말았을 것이다.     한길수는 일본 국장에게 반격을 가할 수도 없는지라 이리저리 날아드는 군도를 좁은 복도에서 피하다가 다리야 날 살리라고 층계 쪽으로 황급히 달아났다.     이때 월향은 그 꼬락서니가 보기 좋다고 손벽을 쳐댔다. 그녀는 진물로 더러워진 팬티를 쭉 벗어 자기 옆으로 달려 지나가는 한길수의 번들 이마에 꾹 씨워 놓았다.     뒤에서 끼무라가 군도를 휘두르면서 달려왔다.    "사람 살려라!"    한길수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번들 이마에 팬티를 뒤집어 쓴 채 아래층으로 달아났다.    그는 황급히 당나귀 차에 달려가 올라 앉으려고 버둥거렸다. 갑자기 일본 헌병 놈들이 달려들어 허리춤을 꽉 잡아챘다. 그 바람에 바지가 쭉 벗겨지면서 한길수의 함지만한 엉덩이가 훌렁 드러났다.     한길수는 인력거에서 허망 눈길에 떨어져 굴면서도 바지춤만은 춰 입었다. 월향의 팬티를 번들 이마에서 벗겨 던지며 일어섰다. 그는 이쪽에 군도를 쥔 끼무라 국장의 뒤를 따라오는 통역에게 고함쳤다.     “이보게, 국장님께 잘 말해주게나. 사실 저분께 드릴게 있어 왔네.”    통역은 재미나서 구경만 하다나니 또 통역할 것마저 다 잊고 멍해 서있었다.     이때 옥설과 뽕녀가 끼무라 국장의 뒤를 쫓아와 양팔을 안고 군도를 휘두르지 못하게 말리면서 살뜰한 몸짓으로 애교를 부렸다.     끼무라 국장은 통역을 되돌아다보면서 꽥 고함쳤다.     "류상(류군), 하야꾸 혼야꾸(빨리 번역해)!”     강철은 한길수란 건달두목을 알고도 남음이 있는지라 길수에게 좋게 마구 날조해 통역했다.     “저 영월동 한길수령감은 대일본제국 끼무라 국장에게 선물과 함께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이 계집들은 마음속에 끼무라 국장 밖에 없다면서 오늘 밤에 둘이 다 국장님을 잘 모시겠다고 합니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던지 끼무라는 군도를 든 채 두 계집을 차고 월향의 칸으로 되들어갔다.     옥설은 끼무라를 끼고 기생집 문턱을 넘어서면서 당나귀 차에 올라탄 한길수에게 눈을 찔끔 감아보였다. 월향은 길수를 허비고 뜯고 싶었다. 그년은 끼무라가 옥설을 안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끼무라에게 원망에 찬 눈길을 보냈다.    주정뱅이는 모든 일이 끝났는데도 또  뜨르륵 딱딱 둥둥 장단을 치면서 흥타령인지 넉두린지 지지벌거렸다.    “얼씨구 좋다. 둥둥. 절씨구 좋다! 둥둥. 잘도 싸워. 둥둥. 무기를 대줄게, 둥둥. 죽을내기로 싸워라. 둥둥. 우리 선수 잘 한다 둥둥. 죽여라 살려라 둥둥!”
413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23) 읽기 힘든 경 김장혁 댓글:  조회:676  추천:0  2024-03-05
                                      6. 읽기 힘든 경          자오록한 안개 카텐이  서서히 걷히며 하루 서막을 멋지게 열어놓는다. 보이지 않는 화가가 파란 하늘 도화지에  꽃구름도 둥실 띠워 놓고 자취를 감춘다. 아침 햇살이 은침, 금침으로 이영납새를 송곳질하며 콧노래를 부르며 기지개를 켠다.     병완은 마루에 앉아 대통을 뻑뻑 빨면서 먹장구름이 몰려오는 하늘을, 변화 무쌍한 하늘을 내다보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안돼. 우리 집 대 끊기게 할 순 없어. 첩을 들여앉혀서라도 성칠한테 떡돌 같은 손자를 안겨 줘야지.)        마당 백약나무 가지에 난데 없는 까치 날아와 꽁지를 달싹이며 까깍, 까깍 울었다.        (오늘 무슨  기쁜 소식이 있다고? 흥, 누가 오겠는가? 옛날부터 여자가 애를 낳지 못하는 건 칠거지악중의 으뜸가는 죄악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하옥은 시집 온지 10년이 넘도록 애를 하나 낳지 못하지 않는가.)      집집마다 읽기 힘든 경이 있다고 병완은 하옥이 애를 낳지 못해 속이 다 대통 속 불처럼 빠직빠직 타들어갔다. 대통을 마룻바닥에 탁 털어버리며 중얼거렸다.       “이러다간 장손을 안아보지 못하구 말겠다. 그만 기다렸으면 잘 기다렸지. 흥!”      그는 지난해 가을 달밤에 성칠과 은녀가 한길수네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방둑 버드나무아래에서 이야기 하는 것을 본 후에는 착잡한 생각에 빠지곤 했다.      (은녀 영월 엄 씨만 아니어도 진작 새 며느리로 맞아들여 왔을 걸.)      성칠의 일에 골머리가 아픈데 설상가상으로 막내딸 곰순마저 운주동의 전주 김씨네 맏며느리로 범석에게 시집 간지 석삼년이 지나가도록 태기가 보이지 않아 큰 근심거리였다.      단오명절에 병완의 4대 스물일여덟이나 되는 식구들이 몽땅 영월동에 다시 모여 명절을 쇠게 됐다. 그런데 이튿날에 운주동의 최구장이 사촌동생 최구철과 조카 진달래, 맞아들 경숙과 둘째아들 경인을 데리고 영월동으로 찾아왔다.     병완의 온 집안 식구들이 몽땅 나가서 마중하여 인사를 나눴다.     특히 성칠은 구철의 앞에 넙죽 엎드려 큰절까지 올렸다.     그때 얼굴이 가맣게 탄 진달래가 나와서 성칠의 손을 잡고 생글방글 웃으며 반기었다.      "오빠, 그간 잘보냈는가요?"     하옥은 먼 발치에서 두 손을 앞섶에 모아쥐고  멍해 서있었다. 성칠은 아내 하옥을 보기 민망하여 뒤를 흘끔 돌아보면서 인차 손을 뺐다.       모두들 집안에 들어와 좌석을 정하자 최구장이 염소수염을 슬슬 어루만지더니 말했다.       “지난해 이 집 맏아드님 신세에 감자농사도 지켜내고 멧돼지고기도 잘 먹었어요. 참말로 감사해요.”     “천만의 말씀을. 우리 두 집안이야 진작 서로 사돈이 아닌가요. 내 막내며느리 최사련이는 개성 최 씨 아닙니까? 그 집과 한집안 사람들이 아니고 뭣이요.”      한참 족보를 따지더니 최구장은 최사련이 자기 집안 누이벌이 된다는 것을 인차 확인했다.      작달막한 막내며느리 최사련은 임신한 몸으로 최구장과 최구철에게 인사를 올린 후 부엌에 내려가 동서들과 함께 점심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한참 후 병완은 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또 인사를 올렸다.      “어느 해 가을에 내 맏아들 성칠이 백두산까지 갔다가 최구철 영감의 신세를 많이 졌더구먼. 정말 감사하오.”       최구장과는 달리 억대우같은 최구철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단마디로 뚝 찍어 말했다.       “우리 사냥꾼들이야 세상을 다 자기 집으로 여기죠. 수림 속에서 서로 만나면 형제처럼 생각하지요.”      진달래는 성칠의 처 하옥만 자꾸 쳐다보았다.     사실 최구장이 이번에 진달래까지 데리고 온 것은 진달래의 청에 못 이겨 성칠의 집안형편 특히 성칠의 아내가 있는가 없는가를 확인하려는 것도 있었다.     최구장은 확실히 성칠에게 예쁜 아내가 있는 것을 보고 진달래의 혼사말은 접어두기로 했다.     이때 최구철이 형님에게 눈짓했다.     최구장은 뜻밖의 혼사 말을 꺼냈다.     “김 영감, 우리 두 집안은 세세대대로 피를 나눈 형제처럼 보냅시다. 하긴 이번 걸음에 우리 집 둘째아들 경인과 이 집 맏손녀와의 혼사 말을 하러 왔소이다.”    병완은 놀랍기도 하고 기뻐서 바로 앉으면서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저, 칼을 잘 쓰던 총각과 말이요?”     최구장은 “예, 그렇소이다.”라고 대답했다.     병완은 경인을 마주 보면서 거듭 치하했다.     "전번에 청명절에 굿 구경을 하다가 보니 칼도 잘 쓰고 날래더구먼.”      경인은 제꺽 일어나서 허리를 굽히며 겸손하게 답례했다.     “재간 없는 놈을 치하해주어 고맙습니다.”    병완은 인사를 받고나서 기준을 돌아보았다.     “ 좋은 일이오. 그러잖아도 맏손녀가 이젠 시집갈 나이도 돼서 신랑감을 찾아주자고 하였소이다. 이제껏 혼사 말이 많이 들어도 마땅한 자리가 없었는데 잘 됐소이다. 어금이 애비는 어떻소?”     기준은 경인을 다시 여겨보더니 시원하게 한마디로 뚝 찍어 말했다.     “아버지 의향을 따르겠습구마. 아버지께서 결정을 내립소.”      “이 일만은 아비가 결정하오.”     그때 부엌에서 어머니와 함께 부엌일을 하던 어금은 부끄러워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병완은 원래 불같이 급한 성미인지라 이 혼사 말을 응낙했다.     “좋소이다. 귀 댁 둘째아들을 둘째 손녀 신랑으로 맞아들이겠습구마.”     “감사하옵니다. 경인아, 이젠 가시조부모부터 인사를 올려라.”     최구장이 부탁하자 경인은 가시집 어른들에게 순서대로 일일이 큰절을 올렸다.     병완은  성희를 보고  술상을 차리게 했다. 이윽고 뜨거운 사돈의 정을 나누는 술판이 벌어졌다.      운주동에 돌아온 최구장은 둘째며느리를 삼게 되여 속이 흐뭇하기로 더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정작 사돈보기를 하고 결혼잔치를 치르자니 돈이 없어 한숨만 땅이 꺼지게 나갔다.      집집마다 읽기 힘든 경이 있다고 최구장의 집에도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다섯째아들 경석은 막내라고 응석받이로 자랐다. 그는 장가를 든 지 몇 해 되건만 어찌나 약 담배를 피웠는지 집 안에 큰 경을 칠 지경이었다.     경석은 최구장의 집 앞 몇 집 건너 세간나서 살았다.     최구장은 경석이 서당방을 나온 후 형내 할아버지 관준에게 보내 형내와 함께 한의를 배우게 했다.     경석은 게을러 공부나 일이나 다 하기 싫어 했다. 그는 관준 스승한테서 귀동냥이나 해 침도 놓고 한의 처방도 좀 뗄줄 알게 됐다.  그런데 량혜자한테 장가를 들어 세간 난 후부터 가장이노라고 병이나 봅네 하면서 집 일에는 손가락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그후 우연히 약 담배에 맛을 들인 후부터 집구석에 들어 누어 약 담배만 풀썩풀썩 피웠다.     혜자는 게으름뱅이 남편을 믿고 살기 힘들다고 내내 시아버지한테 찾아와서 고청을 들이군 했다.     어느날 혜자는 경석이 시아버지 질책했건만 계속 집구석에 들어누워 약담배를 풀썩풀썩 피우는 것을 보고 눈이 퉁퉁 붓게 대성통곡쳤다.  나중에 그녀는 애 띠를 들고 뒤 산으로 스적스적 올라갔다. 그녀는 이를 옥물더니 정말 나무에 올가미를 매놓고 목을 턱 걸고 매달리고 말았다.     경숙이 소문을 듣고 부랴부랴 뒷산에 뒤쫓아올라갔다. 제수는 글쎄 나무 가지에 애 띠로 목을 매 둥둥 달려 있지 않겠는가.     경숙은 황급히 축 늘어진 제수 몸을 무릎으로 받치고 왼손으로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 목을 맨 띠를 풀었다.    그는 지체할세라 제수를 들쳐 업고 집으로 달려왔다.    제수 몸이 축 처져서 자꾸 내려가 춰 업느라고 엉덩이에 두 손이 가닿았다. 그러자 혜자의 몸이 옴찔 움직이지 않겠는가.    “부끄러운 걸 아는 거 보니 살아났구나.”    경숙은 중얼거리면서 제수를 업고 집에까지 돌아왔다.    시어머니 성단은 작은며느리를 경숙의 잔등에서 받아 함께 가마 목에 눕혔다.    성단과 옥실은 혜자의 손을 주물러 준다, 수건을 젖혀 이마를 닦아준다 하면서 분주히 서둘렀다.    소문을 들은 형내가 달려와서 발바닥과 코에 침을 몇 대 놓았다.     한참 후 혜자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젠 살았구나. 아가야, 물을 받아넘겨라.”      혜자는 시어머니가 숟가락으로 떠 넣는 물을 받아 겨우 넘기었다.      그녀의 눈귀로부터 눈물이 주르르 흘러 양 볼을 적시면서 베개 잇에 뚝뚝 방울져 떨어졌다.      최구장은 며느리 옆에 다가앉아 달래였다.      “아가야, 내 경석이, 그 놈을 톡톡히 혼내 줄 테야. 다신 멍청이 짓 하지 말라우."      혜자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간신히 띠염띠염 말했다.     "아,아버님, 어, 어떻게 저런 나, 나그네를 믿고 살아-요. 죽, 죽기보다 못 해-유. 흐흐흑, 흑흑.”      “쯧쯧쯧,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새파란 나이에 이를 악물고라도 살아야지.”     최구장은 답답해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집 안에서는 여인의 흐느껴 대성통곡 소리가 동네 떠나가게 끊임없이 울렸다. 애닲은 울음소리 사람들의 마음을 칼로 에이며 깊숙이 파고 들었다. 딱 마치 초상난 집 같아 스산하기 그지없다.      집 앞의 살구나무에 웬 비둘기가 앉아 날개를 파닥이며 하옥의 처지 불쌍해 굿이나 하듯 섧게 꾸- 꾸- 울고 있다…
412    아동소설 꿈 많은 향화 김장혁 댓글:  조회:697  추천:0  2024-02-23
       아동소설       꿈 많은 향화                      김장혁                                     1     향화, 참말 이름처럼 어여쁜 애지요. 외씨같이 걀쭉한 얼굴에 예지로 반짝이는 새별눈, 항상 응석을 부리는 작은 앵두입, 실로 비너스 버금으로 곱게 생겼다고 할 수 있겠지요.    옥에 티라고나할까요. 그 걀쭉한 얼굴 왼쪽볼에는 좁쌀만한 기미가 괘씸하게 나 있었어요. 말도 말아요. 그 기미 때문에 우리 귀여운 향화가 닭똥 같은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알아요?    향화는 원래 계산문제풀이는 번개불이 번쩍나게 풀어 학급에서 엄지손가락으로 꼽히였고 “패뜩골”이란 별명까지 딱 들어붙었어요. 그런데 요즘 그는 영희랑 무용써클실에서 디스코와 발레무용을 배워 신나게 추는 것을 흠모의 눈길로 바라보았지요. 그 후부터 그는 어쩐지 응용문제풀이가 딱 싫어졌어요. 공부하기보다 춤추는 것이야 말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고상하다고 생각됐던 것이지요.   어느 날, 향화는 영희를 앞세우고 무용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저를 무용써클에 받아주겠어요?”   향화는 간절한 눈길로 무용선생님을 바라보며 애원했어요.  무용선생님은 향화의 얼굴로부터 발끝까지 참빗질했어요. 그런데 무용선생님의 눈길이 향화의 볼에 피뜩 멎더니 도리머리질했어요. “돌아가 공부나 잘 하세요.” “녜? 요 기미 때문인가요?” 향화의 손이 기미에 가 멎었어요. “동문 무용하긴 좀 그래요.”   향화는 무용교연실에서 나온 후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허나 패뜩골인 그의 머리에는 패뜩 한 가지 꾀가 떠올랐어요. 그는 침대에서 바시시 일어나서 어머니 화장품통을 들춰 가지고 거울에 마주 섰어요. 뒤이어 눈물이 가랑가랑 맺혔던 눈언저리를 싹 닦고 그 얄미운 까만 기미에 새하얀 분을 발랐어요. 그러나 청어름에 서리 내린듯해 괘씸한 기미 형체를 감출 길 없었어요.    애탄 나머지 그는 아예 분세수를 하다시피했어요. 거울을 들여다보니 실로 온 얼굴은 밀가루주머니에 빠졌다 나온 것 같지 않겠어요. 눈섭은 서리를 맞은 것 같았고 오똑한 코마루 량옆의 물기어린 깜장눈만 가려볼 수 있었어요.     순간 향화는 입술을 꼭 깨물었어요. 량볼 우로는 줄 끊어진 구술처럼 눈물이 주르르 흘렀어요. 이튿날 아침, 향화는 세수를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머리카락을 훔치다가 걀쭉한 얼굴에 웃움기가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어요. 어여쁘게 생긴 얼굴과 몸매를 보고 자신감이 생겨났어요.    (무대와 열대여섯미터 밖에 있는 관중들이 어찌 화장하고 뺑뺑 돌아치는 요 작은 기미를 보아낸단 말인가! 우리 어머니 주근깨 다닥다닥해도 열다섯미터 밖에서 보면 미인이여서 “열댓미터 밖 미인” 아닌가. 나도 이제, 호호호.)     그는 축 처졌던 어깨가 당금 으쓱해졌어요. 무용수로 될 꿈이 새록새록 다시 싹 텄어요. 하여 그는 새 희망을 품고 재차 무용선생님을 찾아가 울먹울먹해서 기미 있어도 괜찮다고 실토정하면서 애원했어요.    그러나 무용선생님의 말씀은 이러했어요.   “향화, 꿈은 좋은데요. 누구나 춤추고 싶으면 다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딱 기미 때문만이 아닌데요. 향화는 예쁘긴 한데요. 키가 좀 작아서 무용하기는 좀 그래요.”    원래 무용선생님은 처음에는 향화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 같아 완곡하게 거절했지요. 그러나 한 학생의 전도와 관계되기에 이 자리에서는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을 수 없었어요.    향화는 어깨가 맥없이 축 늘어졌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기보다 한뼘씩이나 더 큰 무용써클 애들이 춤을 추며 골리는듯한 눈길로 힐끔거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향화는 그만 위축감이 들어 엉엉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어요.  그는 책상다리라도 발 밑에 이어놓고 싶은 애절한 심정이었어요. “울지 마세요. 정 무용을 배우고 싶다면 오후부터 배우세요.” “예? 정말입니까? 야, 좋아라!”     향화는 언제 울었는가 싶게 눈물을 싹싹 닦고 무용선생님의 손을 잡고 퐁퐁 뛰다가 와락 안겼어요. 오후부터 향화는 영희네와 함께 아름답고 경쾌한 선률에 맞춰 무용을 배웠어요. 얼마나 신났는지 몰랐어요.    요즘 그는 벌써 명무용수로 돼 오색찬연한 무대에 올라 선녀처럼 날씬한 몸매를 놀리면서 장고를 둥기당당 치며 장고춤을 추는 꿈을 몇 번이나 꾸었는지 몰라요.    그러나 무용배우기도 향화의 생각처럼 순풍에 돛을 단 격이 아니었어요. 아니, 하늘의 별따기처럼 느껴졌어요. 날마다 무용선생님의 장고를 치는 박자에 맞춰 반시간씩 련속 팔다리를 놀리면서 기본동작을 익히느라면 온몸이 해나른해졌어요. 좀 고달프긴 했지만요. 향화는 한학기 배운 후 어지간한 춤은 출 수 있어 고달픔을 어지간히 참아낼 수 있었어요. 한창 자랄 나이여서 그런지 그새 문턱에 올라 키를 재여보니 둬센치미터는 더 자란 것이 아니겠어요.    (그럼 그렇지. 이제 반년 지나 솜옷을 입을 땐 더 크겠지. 등산복도 언니 것만큼 큰 걸로 사야지.)    그런데 뜻밖의 시련을 겪게 됐어요.    무용선생님은 발레무용 기본동작을 배워주기 시작했어요. 발끝으로 서기를 배울 때 실로 참기 어려운 아픔을 참아내야 했어요. 향화는 열개를 셀 때까지도 서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물앉고 말았어요. 향화는 발가락이 바늘로 쑤시는듯이 아파 널장판에 물앉아 두 손으로 발가락을 붙잡고 만지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어요.    “울긴? 어서 서요. 이번엔 열다섯개 셀 때까지 서야 돼요.”   “선생님, 발가락이 아파서 못 서겠어요.”   향화는 집에서 부모한테 응석을 부리듯이 어깨마저 흔들며 칭얼거렸어요.    무용선생님은 향화의 발을 매만지면서 차근차근 일깨워줬어요.     “향화, 무용써클에 올 때 그 강렬하던 욕망은 어디 갔어요? 왜 요만한 아픔도 참지 못하고 물앉아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려면 몇분씩 서야 하는데요. 몇초 밖에 서지 못하고서야 어찌 무대에 오를 수 있겠어요? 자, 강자가 돼야죠. 견지하면 아픔이란 놈도 달아나요.” 향화는 마지 못해 일어나서 또 연습했어요. 그러나 나흘도 못돼 발가락이 부어오르더니 이젠 발목까지 팅팅 부어올랐어요. 발가락 뼈가 땅바닥에 닿기만 하면 뼈 속까지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아 눈물을 찔끔찔끔 짰어요. 게다가 발가락 끝은 이젠 걷기만 해도 아파났어요.    고통에 모대기는 향화의 내심을 꿰뚤어본듯이 무용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충고했어요.    “꼭 견지해야 해요. 이 고비만 넘기면 썩살이 생겨 괜찮아요.”    (흥! 남은 아파서 이가 다 쫓기는데. 춤? 무슨 놈의 뚱딴지 같은 바레무용이야!)   향화는 무용선생님의 충고를 들을 염도 하지 않았어요. 게사니무리 속의 병아리처럼 키 큰 영희랑 애들 속에서 춤을 출라니 얼마나 위축감이 들었는지 몰라요. 향화는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았는지 분이 콱 치밀었어요.    그 후 영희가 와서 무용실로 가자고 잡아끌었어요. 그러나 향화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면서 다시는 무용실로 가지 않았어요.                                         2       한편 무용실에 발길을 끊으니 진절머리나게 매서운 무용선생님의 엄한 눈길을 받지 않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어요.     어느 날, 청신한 아침 공기에 답답한 마음을 말끔히 씻으려고 향화는 운동장에 나갔어요. 자오록한 안개 속에서 어디에선가 둥기당당 가야금을 타는 은은한 선률에 맞춰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소리가 향화를 확 잡아 끌었어요.     천천히 다가가 보니 안개 속에 명암이 분명하게 실실이 내리드리운 수양버들가지 아래에서 이웃집 은희가 쪽걸상에 앉아 가야금을 둥기당당 타고 있지 않겠어요.     (호- 저렇게 걸상에 착 앉아 가야금을 타니 얼마나 편안해. 뼈마디 아프게 발레무용을 출게 뭐야?)    향화는 또 패뜩골이 패뜩, 꿈도 패뜩 바뀌었어요.   그는 은희와 지청구를 들이대 그날 오전에 가야금선생님을 만나보게 됐어요.   “오- 아주 곱게 생겼구먼.”   가야금선생님은 향화의 량손을 쥐어 손가락을 찬찬히 뜯어보더니 말했어요.    “손가락도 길죽하니 실로 가야금타기에는 훌륭한 싹인 것 같아요.” 가야금선생님은 향화를 끌어당겨 맞은켠에 앉히면서 당부했어요.   “가야금타기도 이를 악물고 배우지 않으면 발레무용공부처럼 중도낭패하게 되오. 견지할만 하오?”   “예! 어떤 곤난이 있어도 꼭 견지하겠어요.”    한참만에야 향화는 해말쑥한 얼굴을 귀 밑까지 붉히면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어요.   (무용선생님이 벌써 뭐라고 쑥덕거렸는가?)     가야금선생님의 짙은 눈섭 아래 맑은 눈은 무용선생님의 엄한 눈과는 달리 상냥해 보이었어요. 향화는 머리를 푹 떨구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생각할수록 별로 무용선생님이 자기를 무용써클에 받기 싫어서 마지 못해 받고서는 고의적으로 발이 아프게 굴어 저절로 물앉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됐어요.    사실 무용선생님은 향화를 잘 배워주라고 가야금선생한테 주탁했는데도 말이지요.   향화가 뾰로통해 침대에 걸터 앉아 있을 때었어요.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가 들가방에 뭘 들고 들어왔어요.   “향화, 월병!”   “야, 내 좋아하는 월병!”    향화는 어느결에 들가방을 채다가 월병을 량손에 쥐고 게걸스레 먹어댔어요.    “어머니, 가야금을 사줘요? 예?”   “얘, 얹히겠다. 천천히 먹어라.” 향화는 월병을 량볼이 볼록하게 넣고 오물거리다 콜록콜록 기침을 깇었어요. 그는 어머니 품에 안겨 칭얼거렸어요.    “어머니- 가야금을. 예?”   어머니는 향화 잔등을 다독여주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어요.   “춤을 추는데 가야금을 해선 뭘 하느냐?”   향화는 입이 뾰로통해졌어요.   “어머니, 발가락이 아파 발레무용을 추지 못하겠어요. 이젠 가야금써클에 갈래요.”   “그래?”   어머니는 한참 뭔가 생각하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어요.   “얘야, 한창 꿈이 많을 때지만 자꾸 꿈을 바꿔서 되겠니? 뭐 하나 한 가지를 꾸준히 해야지. 우물을 파도 한 곳을 파라고 하잖았니?”   향화는 발을 들어 속살까지 파난 발가락을 보이면서 불평을 털어놓았어요. “보세요. 발가락이 끊어질 지경인데요. 그래도 계속 발레무용을 춰야 하는가요?”    어머니는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어요.   “아이고, 이게 웬 일이냐? 아프겠구나.” 어머니는 입으로 호호 발가락을 불어주면서 중얼거렸어요. “아프면 가지 말아야지. 괜히 발가락을 다 잃어먹겠다. 내 가슴이 막 미여지는 것 같아. 가야금을 사줄게. 가야금타기는 앉아서 하는 거니깐. 아프잖겠지.” “가야금을 사주겠다는 말씀이죠?” “그래, 우리 요 무남독녀를 사주고 말고.” “야- 좋아라.” 향화는 기뻐 퐁퐁 뛰었어요.    그때 아버지가 들어왔어요.    사연을 안 아버지는 입에 빗장을 지르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날 밤 향화는 꿈을 꾸었어요.   은하수가 거꾸로 쏟아지는 듯한 새하얀 백두폭포가 청석옥석을 부시면서 천길만길 하늘가에서 쏟아져내리고 단풍이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무대배경 앞에서 향화가 걸상에 편안히 앉아 칠색단색동저고리 옷고름을 날리면서 송학이 나래치듯 둥기당당 가야금을 타는데요. 박수갈채가 장내가 떠다갈듯했어요.   “아갸갸!”   비명소리와 함께 향화는 발딱 뛰쳐 일어났어요. 꿈이었어요.   무용선생님이 억지로 무대에 끌어내가는 바람에 향화는 발레무용을 추게 됐어요. 그런데 얼마 추지 못하고 무대에서 뾰족한 못을 꽉 밟고 말았어요.     실로 진저리나는 춤이 그의 황홀한 미몽을 깨뜨렸어요. 그 후 향화는 가야금선생님의 상냥한 눈길을 받으면서 쪽걸상에 편안히 앉아 어머니가 사준 새 가야금을 재미나게 튕겼어요. 무용써클에 가서 은희랑 함께 달타령 곡조에 맞춰 걸상에 착 앉아 가야금타기를 배우는 것이 발레무용배우기보다 식은 죽 먹기로 느껴졌어요.    그러나 오선보 우에 다닥다닥 들어붙은 콩나물대가리를 익히기는 실로 머리가 아픈 일이었어요. 성급한 향화는 그 놈의 콩나물대가리를 쟁개비에 기름을 달이다가 볶아 먹으면 머리에 곡조가 막 떠올랐으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럼 얼마나 쉽고도 신나게 가야금을 타겠어요.    가야금선생님은 향화의 곁에 다가와서 차근차근 타일렀어요.    “향화, 어찌 단숨에 배를 불리겠소.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워야지.”    뒤이어 식보지식을 개별보도까지 해주었어요.    향화는 울며 겨자먹기로 도레미 콩나물대가리를 익히기 시작했어요.     오선보 악보에 따라 가야금을 타자고 하니 이번엔 두 손이 착착 배합되지 않았어요. 은희랑 다른 애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둥기당당 신나게 탔어요.    그런데 향화가 타는 소리는 애처로운 외마디 비명소리에 달가닥거리며 가야금줄을 받쳐 든 나무 조각이 공명밑판을 두드려 듣기도 역정 났어요.     애탄 향화는 가야금줄을 마구 쥐어뜯다가 꽝 밀어버렸어요. 심지어 어떤 때에는 신경질적으로 가야금을 마구 발로 차버렸어요.    그때 가야금선생님의 말씀이 귀전을 아프게 때렸어요.    “이를 악물고 배우지 않으면 춤배우기처럼 중간낭패를 하게 되오.”    향화는 눈물을 훔치고 마지못해 다시 가야금을 탔어요.    련 며칠 가야금을 탔기에 오른손 식지와 중지 끝에는 콩알만한 물집이 생겼어요. 가야금줄을 튕길 때면 손가락으로부터 팔을 타고 심장마저 바늘로 찌르는듯 찡찡 아파났어요.   “선생님, 이걸 보세요.”   “오-”  선생님은 다가와 향화의 손가락을 쥐고 여겨보더니 책상 서랍에서 성냥곽을 들고 왔어요. “터치기오.” “어마나, 아프지 않습니까?” 향화는 새별눈에 겁기를 꽉 싣더니 손을 뒤로 움츠려뜨렸어요. “겁쟁이야, 우리도 몇 번씩 터치우고 이젠 아프잖아.” “호호호!” 은희랑 코까지 싸쥐고 웃었어요. 선생님은 억지로 향화의 손을 쥐어다가 식지 물집 우에 성냥가치 꼬투리를 대고 화약껍데기를 쪽 문질러 딱총을 놓았어요. 피씩- “아이고머니! 선생님, 살랑살랑!”     향화가 엄살을 부리는 사이에 피씩- 소리와 함께 딱총을 맞은 물집이 데여 터지면서 진물이 주르르 흘렀어요.   “엄살쟁이야, 이제도 두개 더 터치워야 해.” 은희랑 떠들었어요. 피씩- 피씩- 향화는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줄줄 흘렸어요. 집에 돌아온 후에도 손가락으로부터 가슴까지 찡찡 아려났어요. “아이유, 아파라. 아이고-” “뭐? 어째?”    향화가 문을 떼고 들어서면서 싸맨 손을 쥐고 죽는 상을 했어요.     어머니는 물기어린 눈으로 향화의 싸맨 손을 보더니 호호 불어줬어요. 뒤이어 어머니는 향화를 집에 데리고 들어가 밥상을 마주 앉혔어요. 손수 어린애처럼 밥과 국을 입에 한술한술 떠넣어주기까지 했어요.   말수 적은 아버지는 못마땅한 눈길을 보내더니 건가래를 뗐어요. “그렇게 어린애처럼 키우니깐. 의력이 없지.” 향화는 아버지가 얄미워 새별눈을 곱게 흘겼어요.     이튿날 향화는 손가락을 싸맨채 가야금써클실에 갔어요. “싸맨 걸 풀고 가야금을 타오.” “예?”    순간 향화는 새별눈이 화등잔처럼 휘둥그래졌어요. 상냥해보이던 가야금선생님의 눈길이 무용선생님의 엄한 눈길로 변해 겹쳐보이었어요.    그는 흐릿한 눈길로 가야금줄을 내려다보다가 곡조고 뭐고 마구 쥐어뜯었어요. 물집이 터진 손가락에서 피고름이 흘러내려 가야금줄을 타고 눈물이 흥건한 향화의 얼굴에 마구 튕겼어요. 손가락, 팔, 가슴, 머리에까지 줄이 뻗치며 바늘로 찌르는듯이 아파났어요. 가야금줄은 신경질적으로 비명을 질렀어요.    향화는 가야금을 활 팽개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쿵 쓰러졌어요. 두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섧게 엉엉 울었어요.                       3      이젠 당장 초중입학시험을 쳐야 하는데요. 향화는 응용문제풀기는 싫고 발레무용 꿈도 가야금 꿈도 다 수포로 돌아갔어요.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어느 날 저녁, 향화는 텔레비죤에서 이런 장면을 보았어요. 그물 우로 쉭- 솟으면서 강타를 안기는 랑평, 지도원으로 된 랑평, 열렬한 박수소리 속에 수상대에 올라 금메달을 받는 중국여자배구팀 여자선수들.     웬 일일가요?    향화의 눈 앞이 흐릿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게 뭐지요? 향화는 수상대 선수들 속에 서 있는 자기를 발견했어요. 관중석에서 부러운 눈길로 하염없이 자기를 바라보는 영희, 은희. 숱한 동창생들의 눈길이 따가웠어요.    향화는 가슴이 부풀어올라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운동장으로 나왔어요. 실실이 늘어진 수양버들가지들이 넘실넘실 춤추는 사이로 보름달이 두둥실 걸려 은빛이 부서졌어요. 그 선경 같은 경치 아래에서 노랑저고리에 연분홍치마를 입은 은희가 가야금을 둥기당당 타고 있었어요. 그 선률에 맞춰 칠색단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은 영희가 선녀처럼 장고춤을 나풀나풀 추는 것이 아니겠어요.    무용선생님과 가야금선생님이 웃음을 지으며 팔을 홱 휘둘렀어요.    저건 웬 일인가요?    은희와 영희는 가야금을 타고 춤을 추면서 오선보 같은 오색령롱한 칠색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고향의 산마루를 훨훨 날아넘더니 예술학원으로 날아가지 않겠어요.    학교 여자축구팀 말괄량이 경자 등 녀학생선수들은 축구공을 탕! 차더니 하늘로 날아오르는 축구공에 매달려 날아올라 체육학원으로 날아갔어요.    숱한 동창생들은 제마끔 입학시험지를 두 손에 들고 하늘로 쌩쌩 날아오르더니 자기 꿈대로 학교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함께 가자! 영희야, 은희야-”    향화는 두 손을 입에 모아대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목놓아 소리쳤어요.    이때 쏴- 소리와 함께 난데없이 산더미 같은 쓰나미가 덮쳐왔어요. 선생님들이 주는 가야금과 장고를 급급히 받아쥐고 타기도 하고 두드려도 보았어요. 하지만 가야금타기와 장고춤 실력이 차해 한키쯤 몸이 솟다가 되떨어져 내려오군 했어요.     “향화, 뽈을 받소!”    졸지에 체육선생님이 툭 친 배구공이 씽- 날아왔어요.    (옳지. 배구명장으로 돼 내 꿈을 실현해야지.)    향화는 황급히 받아치려고 손을 내밀었어요. 그런데 배구공이 소녀의 가슴에 쨩 맞았어요. 숨이 컥 막히게 찡 아파났어요. 가야금줄을 튕길 때 생긴 물집보다 더 아파났어요.    “에잇, 배구도 못할 노릇이구나.”     이때 쓰나미가 당장 학교 담장을 박차고 들이닥칠 판이었어요.    향화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엉엉 울었어요.    저게 뭐지요?    갑자기 사나운 파도 속에서 고무풍선 세개나 불쑥 솟아올랐어요. 고무풍선 세개에는 각각 가야금, 장고, 배구공이 새겨져 있지 않겠어요.    향화는 머리 우에 둥둥 뜬 그 고무풍선 끈을 황급히 붙잡고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어요. 이젠 고향의 산도 저 먼발치의 모래무지처럼   아득히 내려다보이었어요.    그런데 고무풍선은 영희와 은희가 간 예술학원이거나 경자가 간 체육학원 쪽으로도 날아가지 않았어요. 고무풍선은 아득히 높고 푸른 하늘 우의 먹장구름 속으로 날아들어갔어요. 그 먹장구름 속에 글쎄 올림픽 배구장이 있지 않겠어요. 향화가 구름과 고무풍선을 타고 바야흐로 배구장에 내리려는 순간이었어요.    펑! 퍼펑!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고무풍선이 몽땅 터졌어요.   “앗!”   향화는 비명소리와 함께 끊어진 풍선 끈을 잡은채 두 다리를 바둥거리면서 떨어졌어요.   귀뿌리에서 윙윙- 소리났어요. 하늘 아래로 곤두박질쳐 내려갔어요.    “어머니!”      향화는 두 손에 식은 땀을 쥐고 고함쳤어요. 그는 몸부림치다가 그만 침대에서 방바닥에 뚝 떨어졌어요. 그제야 향화는 자기가 이제껏 황홀하면서도 무시무시한 꿈, 고무풍선 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오- 꿈많은 향화가 이제 또 무슨 꿈을 꾸겠는지요?     아무리 패뜩골이라고 해도 자꾸 패뜩패뜩 꿈을 바꿔서야 되겠어요?   
411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22) 운주동 검객 김장혁 댓글:  조회:834  추천:0  2024-02-18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5. 운주동 검객            해빛도 따사로운 새 봄이 왔다. 치마봉과 기운봉 기슭에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온 산이 연분홍으로 파랗게 물들었다. 뻐꾹새들이 수림 속에서 뻐꾹뻐꾹 울고 들에는 종달새가 지종지종 울며 밭갈이를 재촉하고 있었다.      운주동 마을 옆의 운주하 개울물이 구름 싣고  파란 하늘을 싣고 조잘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마을 동구 밖의 기운봉 협곡을 흐르는 맑은 벽계수는  조약돌과 민들레꽃과  뭐라고 조잘조잘 속삭이고는 누구를 또 만나 봄날의 사랑을 속삭이려는지 갈 길을 재촉하며 무거운 이별을 한다.          운주동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기운봉은 누르스름한 바위와 토색 흙으로 단장한 뭇 산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기운봉의 들쑥날쑥한 갈색바위절벽은 사시장철 구름 속에 안개 속에 잠겨있었다. 안개처럼 물기어린 구름들이 절벽을 씻어 올리다가도 풀렸다. 구름이 천천히 걷히면서 가파른 절벽이  드러나기도 하고 다시 모려오는 구름 속에 자취를 감추기도 하면서 절경을 이루었다.        천태만상의 구름송이는 기운봉의 허리에 감겨 한참씩 쉬다가는 갈 길이 바쁜지 어디론가 총망히 사라져버렸다. 기운봉과 치마봉에 먹장구름이 감돌고 번개가 산허리를 번쩍 칠 때는 꼭 얼마 안 있어 소낙비가 쏟아지군 했다.     비온 뒤면 기운봉과 치마봉 사이 산골짜기에서 쿨쿨 솟는 샘물과 비 물이 갈색바위를 부시며 쏟아져 쏜살같이 흘러 운주동 골짜기를 휩쓸며 흘러 신흥동 쪽으로 내달아간다.     운주하를 따라 내려가면서 몇 백미터씩 내려가면서 드문드문 통나무집들이 스산하게 널려있었다. 그 통나무집들은 대부분 기와나 벼 짚이거나 조 짚 대신 널판자를 기와처럼 지붕에 얹고 못으로 고정시킨 “널기와 집”이였다. 다만 서당을 차린 최구장의 집만은 청기와를 얹은 목조 팔간 집이었다.      어느 날, 병완은 자식들을 몽땅 안방에 불렀다. 쉰 고개에 오른 병완의 머리에 서리가 새하얗게 내리였다。      병완은 대통에 담배를 꿍꿍 쑤셔 넣고 붙여 물고 뻑뻑 빨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옛말에 팔촌이 한 구들이라고 우리 집은 커서 사대가 한 구들에서 살아도 된다. 요즘 한길수가 얼리고 닥치고 하는 수작을 봐라. 묵밭마저 더 일구지 못하게 하는데 어떻게 살겠느냐? 스물두 넘는 식구들이 한 구들에서 손바닥만 한 돌밭을 믿고선 입에 풀칠도 하지 못한다.”      병완은 눈 굽에 눈물마저 픽 돌았다.      그는 비장한 결심을 내린 듯이 뒷말을 이었다.     “이젠 별수 없구나. 난 맏이 성칠과 함께 여기서 살 테니까 창준과 기준은 운주동에 세간나 살아라.”      기준은 근심스러워 했다.      “우리 다 가면 저 길수가 아버지 네를 업신여기지 않겠습둥?”      병완은 대수로워하지도 않았다.      “까짓놈들, 흥!"      성칠이 옆에서 위안했다.     "나두 있으니까. 근심할게 없다.”     그리하여 며칠 후 창준과 기준 형제는 상우남면 운주동에 세간나갔다.      운주동에는 키 넘는 새가 들어 누워 있어 새골이라고도 불렀다. 새밭이 무연하게 펼쳐진 골 안에 창준은 아버지와 함께 집을 짓고 들었다. 그때로부터 창준네 집안은 웃새집이라고 불리웠다.    기준 네는 운주동 웃새집에서 한 300미터 떨어진 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때로부터 기준네 집은 성남집이라고 불리웠다.      기준은 맏아들 상우와 맏딸 어금이, 그리고 임신한 아내 사련을 데리고 봄에 누런 잔디가 말라붙은 바위틈새에 듬성듬성 난 묵은 풀에 불을 달아 태워 버리었다. 잔 나무들을 도끼로 찍어낸 후 소대가리 같은 나무뿌리들을 괭이로 파내고 도끼로 패서 집에 날라 갔다.    기준은 해뜨기만 하면 온 집 식구들을 데리고 바위 틈 사이에 재를 펴 놓고 나무로 구멍을 뚫고 기밀을 심었고 운주하 강변에 일군 황무지 밭에는 감자를 심었다.     어느 날, 어금은 사철 맑은 운주하 개울물에 빨래하러 나갔다.     빨래터 개울물이 어찌나 맑은지 조약돌이 다 들여다보였고 물고기 몇 마리가 조약돌 틈새에서 지느러미를 하느작거리는 것이 다 들여다보였다.     어금이 한창 개울물에 빨래를 휑구어 납작한 빨래 돌에 올려놓고 방치로 쨩쨩 칠 때다.     애래 쪽 개울가 백사장에 머 태가 치렁치렁한 한 총각이 나타났다. 어금은 누군지 똑똑히 볼 새 없이 빨래를 방치로 땅땅 두드려 개울물에 활활 휑궈 버드나무가지에 널어 말리었다.     그녀는 피뜩 아래쪽을 바라보다가 한 총각이 검술을 익히는 멋진 모습을 보았다.    “어덴가 퍽 눈 익은데?”     그 총각은 시퍼런 검로 몸 주위를 휘감으면서 휘두르는데 서리발이 사처로 빛발쳤다. 총각은 훌 뛰어 날면서 칼로 내리찍었다. 두 다리를 앞뒤로 모래바닥에 쭉 펴고 앉았다가도 훌쩍 뛰어 일어나면서 턱을 발로 차는 동시에 옆으로 칼로 가로 찔렀다.      총각이 검술을 연습하는 장면은 정말 신출귀몰해 보기 장관이었다. 마치 호랑이가 앞발을 쳐들고 구름 속의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졌다가도 구름 속에서 날아 내려오면서 꼬리로 땅을 치는듯하고 닭이 외발로 선후 원숭이가 왼팔을 이마 위에 얹고 해를 가리고 먼 곳을 보는 듯 했다. 꿈틀거리는 용이 대가리를 쳐들고 영용무쌍하게 앞으로 무찔러 나가는 듯이 검을 춤추면서 앞으로 찔러나갔다.       그 날랜 검술장면을 보다나니 어금은 그만 손에 쥐였던 빨래를 모래바닥에 뚝 떨어뜨렸다.        “어마나!”       어금은 화뜰 놀라면서 혀를 홀랑 내밀었다. 그녀는 인차 모래가 다닥다닥 매달린 빨래를 들고 개울물가에 가서 훌훌 씻어 버두나무 숲에 널어 말리었다.     이때 허옥실이 봉인을 업은 채 빨래함지를 이고 사뿐사뿐 빨래터에 다가왔다.     “아니, 언니, 참 오랜만이요.”     어금은 방치를 놓고 옥실한테로 다가가 빨래함지를 받아 내려놓고 어린애의 볼에 뽀뽀를 했다.     “아이유, 애기 곱다야, 봉인아, 뽀뽀하자.”     옥실은 빨래 돌을 바로잡아 놓으면서 “봉인이 이름을 우리 시아버지가 근형이라고 고쳤소. 봉인이라는 이름은 애명이라오. 그래서      우리 요 14대 장손부터는 뿌리 근자 돌림으로 애들의 이름을 짓는다오.”라고 했다.     “근형이, 그 이름 좋다. 최구장어른이야 훈장이기에 아무튼 이름도 잘 지을 분이죠.”     그들이 한창 빨래를 하는데 징검다리로 한 총각이 검을 들고 건너왔다.     어금과 옥실이 여겨보니 칼을 둘러멘 총각은 다름 아닌 옥실의 시동생인 경인이었다. 어금이가 바라보니 아까 저기에서 검술을 익히던 그 총각 같았다. 그리하여 어금은 대뜸 머리를 숙이는데 넙죽한 얼굴이 귀밑까지 홍당무가 돼버렸다.     “아주머니, 아직 빨래하자면 물이 차갑겠는데 어째 애까지 업고 나왔소?”     훤칠하게 생긴 경인은 성큼성큼 빨래터에 다가왔다.     “일없소. 시동생, 검술을 익혔소?”     옥실은 미소를 지으면서 시동생을 바라보며 빨래를 했다. 그런데 어금은 경인이가 다가오자 머리를 점점 더 수굿하고 몸을 외로 탈면서 빨래를 했다. 어금은 웬 일인지 경인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쾅쿵쾅 높뛰는 것을 느끼었다.    그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 챈 옥실은 어금의 어깨를 톡 밀었다.    “얘, 우리 시동생이야. 은인을 보고서도 모르는 척 해서야 되니?”    어금은 경인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쥐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간 잘 지냈소?”    경인은 검을 뒤로 가져가면서 인사를 받았다.    “양, 그쪽에서도 잘 보냈소.”    그는 서리발치는 칼을 모래바닥에 놓고 개울물에 근육이 울뚝 뿔뚝 한 팔부터 썩썩 씻더니 푸푸 물을 불면서 세수하는 것이었다.     “어, 시원하다.”    옥실이 자기 머리 수건을 벗어주려다가 어금의 옆구리를 톡 건드렸다.     어금은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눈을 곱게 흘기며 옥실을 바라보았다.      옥실은 어금의 옆구리를 더 세게 서너 번이나 톡톡톡 다쳤다.      어금은 그제야 별수 없다는 듯이 머리 수건을 벗어 경인에게 내밀었다.      “옜소. 수건으로 얼굴을 닦소.”     경인은 인차 그 수건을 받지 못하고 옥실을 건너다보았다.    옥실은 눈을 찔끔해보였다.     “아주머니, 이래도 되오?”     “별소리를 다한다. 초면도 아닌 오랍누이 같은 사이에."     옥실은 말을 마치자 어금의 눈치를 살피었다.        어금은 그 자리에 앉아있기 어색해 빨래를 대충 휑구어 꽉꽉 짜더니 함지에 담아 이고 일어났다. 그녀는 몽당치마를 걷어 안은 채 바람이 일게 버드나무숲에 가서 그 곳의 빨래도 걷어 함지에 담아 이더니 머리를 이쪽에 돌렸다.     “언니, 먼저 집에 가겠소.”     “응, 그래라.”     어금은 경인에게 눈인사를 곱게 하고는 머리를 돌려 사락사락 모래를 밟으면서 동네 쪽으로 멀어져갔다.     옥실과 경인은 토론이나 한 듯이 엉거주춤 일어나서 동네 쪽으로 빨래함지를 이고 몽당치마자락을 휘날리면서 가는 어금의 뒤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한참 후 옥실은 빨래를 물에 활활 휑구면서 옆에 앉아 칼자루를 매만지는 경인을 보고 넌짓이 말했다.    “시동생, 저 어금은 예쁜데다가 마음씨 또 착한 애요. 저 애를 내 둘째동서로 삶았으면 좋겠는데 아주버니 생각에는 어떻소?”     경인은 외까풀 눈을 끔뻑했다.     “그럼 오죽 좋겠소? 그런데 명천의 울뚝이라고 소문난 기준이라는 양반이 맏딸을 쉽게 줄까?”     그러자 옥실은 정색하여 경인을 바라보면서 힘 주어 말했다.     “걱정하지 마오. 시부모와 말해볼게.”     경인은 신심이 한 가슴 뿌듯이 생겨났다.     “글쎄 우리 아버지와 병완 영감은 아주 가까운 사이 돼서 아버지가 나서면 설득시킬 것 같기도 하오만.”    청명절이 다가왔다. 사람들은 모두 한복차림에 지지고 볶은 제물을 갖춰가지고 조상의 산소로들 갔다.     운주동 뒤 산에는 성처럼 돌담을 쌓은 옛성이 있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옛 성은 고구려 옛성이라고도 했다. 최구장은 그 성안을 명당자리라고 했다. 그 바람에 운주동과 영월동, 신흥동의 사람들은 그 성안 평평한 산중턱에 앞 다투어 산소를 썼다.      청명이 되자 사람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조상들의 산소에 와서 가토를 하고 제주를 올리고 절을 올렸다. 성안 평평한 산중턱에서는 무당들이 한창 굿을 하느라고 야단법석이었다.     사람들은 제사를 끝내자 이 곳에 모여들어 무당들이 굿을 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요염하게 치장한 무당이 무대에 올라서서 굿을 했다.     “천지신명이시여, 천하의 악귀들을 몰아내고 천하의 어진이들을 잘살게 도와주옵소서. 남자귀신이면 지고 나가고 여자귀신이면 이고 가주옵소서. 조상신들이여, 이 불쌍한 후손들을 도와주옵소서. 병마를 몰아내고 오곡이 풍성하게 복을 내리옵소서.”     무당의 굿이 끝나자 사람들은 제사상에 올렸던 통돼지를 칼로 저며 내 간장에 찍어 먹었다. 그래야 굿이 잘 든다고 했다.    뒤이어 악귀를 몰아내는 검술표현이 있었다.    그때 산소에 갔던 병완이 일가도 굿 구경을 하러 사람들 틈에 끼여 있었다. 검객 경인이 나서서 머리태를 휘날리며 훌 날아오르면서 앞으로 검으로 내찔렀다. 그는 땅바닥에 앞뒤다리를 펴서 대고 앉았다가도 하늘로 훌쩍 뛰어 오르면서 옆으로 찍었다.  발로 턱 차기를 하고 뱀이 굴속에서 나오듯이 앞으로 검을 찌르면서 나가다가도  뒷발질을 하며 몸을 홱 돌려 뒤를 찌르기도 했다.     그 날랜 장면을 보고 모두들 혀를 끌끌 찼다.        어금도 아버지 기준의 옆에서 경인오빠의 서리발치는 날랜 검술표현을 보고 박수를 연신 치였다.      “잘한다!”     기준도 그 놀란 검술표현에 고함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장내 숱한 사람들은 경인의 검술솜씨에 연신 찬탄을 금치 못했다.     병완이 기준을 보고 검객을 손가락질하며 물었다.    "눈에 익은데. 누군지 모르겠냐?”      기준은 아버지를 보고 조용히 말했다.      "최구장네 둘째아들이 아닙니까? 전번에 최구장 네 맏아들이 큰잔치를 할 때 신랑의 말고삐를 잡았던 그 총각 말입구마.”        병완은 검술재주를 피우는 경인을 보고 머리를 끄덕였다. 경인은 곤두박질재주를 부리며 칼을 휘두르기도 하고 서리발치는 칼로 악귀를 찍어 토막 내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410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21) 꿍꿍이 김장혁 댓글:  조회:698  추천:0  2024-02-18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4. 꿍꿍이                 바깥에서는 아직도 눈보라가 윙윙 사납게 휘몰아쳐 게딱지 같은 초가집들이 날려 갈 것만 같았다. 엄동설한에 여우가 눈물을 다 흘리고 박달나무가 얼어서 탁탁 터질 지경이었다. 허나 높다란 토성 안에 자리 잡은 한길수의 집 안에는 불을 어찌나 땠는지 봄날처럼 후끈후끈했다.     본 채에서 응삼은 한길수와 마주 앉아 음흉한 꿍꿍이를 꾸미고 있었다.    그는 뱁새눈이 실눈이 돼가지고 길쭉한 말상을 찌푸리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병완이 우리 집 도감을 하지 않을 거 같소이다.”      길수는 반쯤 모로 돌아앉으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건 무슨 소리야? 먹은 소 똥을 눈다고 은덩이까지 받았지. 은녀까지 찾아갔는데 안해?”     그는 속으로 응삼이 괜히 병완이가 들어와 자기 위에 앉는 것을 시샘한다고 여겼다.     한길수의 속내를 모르는 응삼은 뱁새눈을 콩알처럼 동그랗게 뜨고 정색해 말했다.     “옛날에 토끼새끼가 용왕을 속여 넘긴 이야기 기억나지 않습둥? 토끼는 거부기 등에 앉아 바다에서 빠져나가 뭍으로 오르자마자 간이고 뭐고 하나도 주지 않고 달아나지 않았고 뭡둥?”     길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건 다 옛말이지. 병완이 그렇게 쉽게 신의를 저버릴 사람은 아니야. 내가 그렇게 잘 대해주는데 언감 변심한단 말이요?”     그래도 응삼은 계속 쏭알거렸다.    “은덩이는 주더라도 은녀는 인질처럼 붙잡아둘 걸 그랬소이다.”     월선은 길수 옆에 앉아 며느리와 함께 밥상을 손수 거두다가 신경질을 썼다.      “뭐 어째? 그년을 내보낸 건 잘된 일이야. 그 굼뜬 년을 내보내고 이제 나이도 듬직하고 역빠른 여자를 들여와야네.”     월선은 밥상을 거두면서 속으로 두덜거렸다.    (저 나그네 곰의 열을 먹더니 그게 놀랍게 세졌단 말이야. 항상 은녀 몸을 흘끔흘끔 훔쳐보군 하던데 언제 일을 칠지 몰라. 은녀를 첩으로라도 들여앉히기 전에 내보낸 건 잘된 일이야.)    “닥치지 못할까!”    한길수가 밥상을 탁 치는 바람에 국물그릇들이 왱그랑 절그랑 부딪쳐 국물이 주르르 구들에 흘러 떨어졌다.    “제길 할, 은녀를 빼가고도 들어오지 않아만 봐라. 내 살려두는가!”     길수는 퉁방울눈알을 부라리었다. 번들이마의 피줄마저 노기에 지렁이처럼 살아나 풀떡풀떡 뛰었다.     뜻밖에도 이튿날에 병완이 또 찾아왔다.     그는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을 짓고 길수의 집에 들어와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이 물었다.      “오늘 무슨 할 일이 없소?”     한길수는 응삼을 흘겨보았다.     (봐, 내 말 맞지? 신의를 저버릴 병완이 아니지? 흥!)     길수는 병완을 돌아보며 알은체 했다.     “오, 왔는가? 병완이, 자넨 낯만 보이면 되네.”     병완은 허리에서 보자기를 풀어내더니 길수 앞에 쓱 밀어주는 것이었다.     “이건 뭐요?”     한길수는 우멍눈이 휘둥그래났다.     “은녀를 내갔으면 됐지. 친구지간에 은덩이는? 어련히 한 주인의 도감이 되지 않을라고.”     병완의 말에 길수는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했다. 은덩이를 도로 받자니 자존심에 허락되지 않았고 도로 줘 보내자니 병완이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백설같이 반짝이는 은덩이가 아깝기도 했다.      그때 응삼이 뽀족한 턱을 쳐들고 끼여들었다.       “주인어른, 정 받지 않겠다면 먼저 받아 둡소.”     길수는 짐짓 “에끼, 이 사람아, 내 어찌 줬던 걸 도로 받는단 말인가!” 하고 능청스레 아닌 보살을 떨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는 은덩이를 싼 보자기를 스리슬쩍 응삼의 앞에 밀어 보냈다.    주인의 눈치를 챈 응삼은 제꺽 그 보자기를 받아 쥐었다.    “이후에 수고비로 드려도 늦지 않을 것 같소.”    철주는 병완이 빈 손으로 문 밖을 나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자기 꾀가 드는 것 같아 속으로 흐뭇해했다.     한길수는 응삼과 철주를 불러놓고 다음 일을 상논 했다.     “얘들아, 아무리 봐도 성칠에게 속힌 것 같다. 창렬 네 빚 대신 그 곰의 열을 받아 먹은 게 영 속에 내려가지 않는단 말이야.”      응삼은 뱁새눈을 간사하게 뜨며 끼어들었다.     “이젠 병완이 우리 사람이 됐으니 창렬이 누굴 믿고 빚을 갚지 않는단 말입니까? 이번 기회에 창렬을 보고 은녀를 되돌려 보내라고 하든지, 아니면 빚 문서를 다시 꾸며 돈을 내라고 하든지 합세다.”     길수는 조왕 쪽의 월선과 며느리 눈치를 힐끔 보면서 중얼거렸다.     “에이고, 빚 문서를 다시 꾸며서야 언제 그 가난뱅이한테서 받아내겠소? 아예 다시 은녀를 붙잡아 오는 게 상책이야.”     “안돼! 그년을 데려다 첩년이라도 시킬 예산인가요? 이제 내보낸 지 며칠이라고 그년을 또 끌어들인단 말이요? 그저 은녀, 은녀 하면서. 원,  더러운 꼬락서니를 못 보겠어.”     월선은 구들에서 일어나 호랑이 궁둥이를 흔들면서 발까지 탕탕 구르며 야단쳤다.     그때 철주가 나서서 난처한 기분을 돌려세웠다.     “엄마 말에도 도리 있습니다. 이제 은녀를 들여다 앉히려면 병완이가 또 은녀 역세를 들 수도 있습니다. 그 일은 덮어놓고 있다가 우리 빚 문서에 그대로 적어두었다가 아무 때 건 병완이 눈을 감아주게 한 후 받아내면 됩니다. 문제는 병완이 이 마을 가난뱅이들의 역세를 들기에 우리 집에서 빚을 받아내기 어려운 것입니다.”     응삼은 그러지 않아도 그 놈 우직한 병완이 자기 우에 와서 누르고 앉는 것이 속에 걸렸는데  한술 더 떴다.    “아예 저 병완 놈을 없애치우면 우리가 이 마을에서 쥐락펴락 하면서 살겠는데.”    그러자 철주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누가 듣겠습니다. 이 일은 천천히 의논해봅시다. 그래도 병완이 우리 집에 들어와 도감을 하겠다고 하니 천만다행입니다. 이후에는 창렬의 빚을 받아도 아버지가 나설게 없습니다.”     “그럼 누굴 내세우겠니?”     “병완을 내세우십시오. 빚도 받아내고 병완과 창렬을 리간 놀면 일거량득이 아니겠습니까? 흐흐흐.”     철주 말에 길수는 번들이마를 끄덕였다.     며칠 후 길수는 병완을 불렀다.     병완이 길수네 으리으리한 울안에 들어서니 길수가 번들 이마에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 집 도감이 왔소? 오늘 내 요긴한 일이 있어 자네를 불렀네. 자, 안에 들어가 의논합세.”    길수는 병완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가 마주 앉았다.     “이런 일이오. 저, 전번에도 말이 있었지만 그 곰의 열이 되면 몇 원이나 되겠소? 그러니 자네가 응삼과 함께 창렬의 집에 가서 빚으로 한 십 원이라도 받아오게나.”    병완은 건 가래를 떼더니 도리머리질했다.    “이보,  너무 염치없이 놀지 마오. 그 곰의 열은 우리 성칠이 창렬의 폐병을 떼라고 준 게요. 그걸 가져다 먹고 빚을 받지 않겠다구 했으면 다지. 이제 와서 또 번져 누우면 이후에 영월동의 몇 백 집에서 누가 자네의 말을 믿겠소. 난 그런 일을 돕지 못하겠네.”     병완은 아예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려고 했다. 길수는 어이없다는 듯이 멍해 앉아서 떠나가는 병완의 떡돌같이 넓은 뒤 잔등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듯 했다.     길수는 어린 아들 철주의 말을 들어 병완에게 놀림을 당한 듯 하는 감이 들었다. “제길 할, 병완에게 도감을 맡기니 이 집안 일이 더 시끄러워!” 그 말에 철주의 색시 단춘이 정주에서 입귀를 비쭉했다.     안방에서 철주는 아버지를 일깨워 주려고 들었다.     “아버지, 지금 서울이고 어디고 일본 사람들이 게다짝을 딸까닥거리면서 욱실거리고 있습니다. 전번 3월 1일에 조선 사람들이 서울에서 독립하겠다고 ‘만세’를 부르면서 야단쳤습니다. 여기서는 아무도 ‘만세’를 부르지 않았습니까?”     길수는 우습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내 명천과 우시장에 내려가니까 몇몇 조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만세!’ 하고 외치더라. ‘만세!’ 하고 소리쳐 뭘 한다니? 쪽발이들이 만세소릴 듣고 도망간다더니?”      철주는 답답하다는 듯이 머리를 홰홰 돌렸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 나라를 빼앗았기에 장차 살기 더 힘들게 될 것입니다. 맨 우리 조선 사람들만 살아도 손바닥만 한 땅에서 살기 힘든데 일본 사람들까지 들어와 빼앗아 먹으니 말입구마.”      한철주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뒷말을 이었다.     “사실 나도 3.1운동 때 서울 광화문 앞에서 시위행진을 했다가 일본 놈들한테 쫓겨 고향으로 피신해 왔습구마. 이다음 이 골 안에도 일본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을 거 같습니까? 지금 우리는 이 마을의 인심을 틀어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눈앞의 이익을 너무 차리지 말구 인심을 내야 합니다. 병완 같은 힘장사들도 도감자리를 주어서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것이 옳습니다. 이거야 말로 눈앞의 작은 이익을 버리고 이 골 안의 큰 이익을 통 채로 챙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뭡니까? 인심이 천심이라고 이 골 안에서 병완에게 인심이 쏠렸기에 자칫하면 이 골 안의 실제 주인은 병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자가 일본사람들과 먼저 손을 잡는 날엔 우리 땅이고 뭐고 다 빼앗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엄중한가? 그런데 네가 일본 사람들과 등을 졌으니 큰일이고나.”     철주는 개의치 않았다.     “근심 마십시오. 일본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 수 없을 겁니다.”     아들의 말에 길수는 번들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씃더니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었다.     한참 후 길수는 선수를 치려고 들었다.    “그럼 우리가 먼저 명천 고을에 가서 일본 사람들을 친해 놓는 게 옳지 않는가?"     철주는 입을 함박만큼 딱 벌리었다.      “아닙니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 나라를 통 채로 먹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자들이 삼림이 우거진 우리 이 골 안을 와서 보면 놔 둘 것 같습니까?”     “그럼 어찐단 말이냐?”    아버지가 난감해 상을 찡그리자 한철주는 마른기침을 하더니 뒷말을 이었다.     “당면에 이 골 안의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빚을 받지 못할 까봐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기실 일본 사람들을 더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내 말은 일본 사람들을 친해놓자는 게다.”     그 말에 응삼이가 말대가리를 흔들면서 찬동했다.     “주인어른의 말씀이 옳습구마. 일본 사람들도 사람이겠지요. 우리가 그자들을 잘 친해놓으면 등에 업고 병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 골 안을 쥐락펴락할 수 있습지요.”     “음.”    길수는 번들이마를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우멍 눈을 흡떴다가 떼룩거리면서 속궁리를 굴리고 있었다.    응삼이 길쭉한 말대가리를 길수의 귀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리자 길수는 말 이발을 드러내면서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음, 그렇지, 그래. 음, 그 수가 참 좋아. 눈앞에 이익만 볼게 아니구나. 음, 그래, 그거야 말로 돼지들에게 겨를 주고 통째로 잡아 돼지고기를 먹는 격이지. 허허허.”     토성 안 집에서는 해 질 때까지 간사한 웃음소리,  음흉한 꿍꿍이 끊이지 않았다.    토성 밖에서는 밤  늦게까지 음산한 눈보라가 온 마을에 공포와 날벼락을 휘몰아 오고 있었다. 공포에 얻어 맞은 벌거숭이 나무와 초가집들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409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20) 부엌녀 은녀 김장혁 댓글:  조회:789  추천:0  2024-02-18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3. 부억녀 은녀          토끼꼬리만한 겨울 해가 눈보라 속에서 뒹굴다가 서산으로 그물그물 넘어가고 있었다. 겨울의 차디찬 황혼 빛도 꽤나 날카롭게 언 대지를 찔러놓고 지평선에서 사라져갔다. 참 이상했다. 황혼빛이 톱날 같은 서산마루를 치솔질할 수록 샛하얗게 되지 않고 누렇게 물들어갔다. 땅거미는 황혼빛을 한술한술 파먹고 먹물을 토해내 어둠의 장막으로 대지를 슬슬 뒤덮어놓는다.             성칠은 사냥에 나섰다가 경성 산골마을 여인숙에서 날강도 삼형제를 만나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번했다. 그는 살아 집으로 돌아온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성칠은 마을에 들어서자  한길수의 우멍눈을 떠올리자 잔등에 소름이 끼쳤다.       눈 덮인 마을 구석구석에 공포가 허연 눈을 베고 누워 저승사자 눈깔을 부릅뜨고 죽음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성칠을 노려 보고 있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은녀가 되 붙잡혀 한길수 집에 부엌 여로 되들어가지 않았겠는가!      한길수는 성칠이 준 웅담을 다 달여 먹었지만 신기를 돕지 못했다고 하면서 가짜 웅담에 속았다고 생떼를 썼다. 그는 은녀가 이제도 3년은 부엌 여를 해야 빚을 물수 있다고 강다짐으로 은녀를 끌어갔던 것이다.     성칠은 분이 꼭두까지 치밀어올랐다. 그는 한길수를 찾아가 한바탕 따져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찌나 말리는지 그 자리에 물앉았다.    밖에서 눈보라가 윙 윙 휘몰아치는 초겨울의 어느 날 달밤이었다.    검둥이가 요란스럽게 “왕, 왕, 왕.” 요란하게 짖어댔다.    기준이 문을 열고 내다보니 아닌 밤중에 상판이 길쭉한 응삼이 한길수를 부축해 개울을 건너 헐금씨금 올라오고 있었다.    기준은 집에 들어가 아버지한테 알렸다.     병완은 황급히 문밖에 나가 마중했다.     “이거 어떻게 돼 이 밤에 우리 집에 다 오오?”    한길수는 개화장으로 눈 덮인 땅바닥을 쿡쿡 찌르면서 거들먹거렸다.    "에헴, 그래 그간 잘 지냈는가?"    어조마저 전에 없는 친절을 보였다.    “양, 어서 집안에 들어가기요.”    병완은 팔을 들어 집 쪽으로 안내했다.     한길수와 응삼은 아주 거만스레 집에 들어가 틀스레 타리대를 치고 앉았다.     창준은 길수에게 인사하고 나서 무슨 일로 찾아 왔나 궁금해 눈치를 살폈다.     응삼은 산더미 같은 병완을 마주 바라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런 우직스러운 놈은 아들과 며느리 말처럼 얼리고 닥쳐야지. 맨 힘으로는 꺾을 수 없어.)    “에헴, 병완이, 우린 몇 십 년 전에 씨름판에서 익힌 친구지.”    병완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내밀 듯 하는 그 한마디 말에 한길수를 흘끔 쳐다보았다.     “땅을 밟고 하늘을 떠인 사내대장부들이 친구 사이에 목숨을 내놓고 아까울 게 있는가? 이게 사내대장부의 의리심이란 말이요. 당신이 이 골 안에 나를 믿고 왔는데 잘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네.”      선심을 쓰는 그 말에 병완은 해가 서산에서 뜨나 자기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정주에 앉아 두 어른의 말을 듣던 성칠과 창준을 비롯한 온 집식구들도 서로 마주 바라보면서 이상야릇해 했다.     병완은 가타부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담배 물 주리에 담배를 꿍꿍 쑤셔놓으면서 한길수의 뒷말을 기다렸다.     이때 길수는 번들이마에 돋는 식은땀을 뚝뚝 찍더니 응삼에게 눈짓했다.     응삼은 보자기에 싼 묵직한 무엇을 척 병완의 앞에 내놓았다.     “헤헤, 병완 어른, 받소. 이건 우리 주인어른이 겨울나이 쌀이나 사라고 주는 약소한 선물이오.”      응삼은 그 자리에서 보자기를 헤쳐 보였다.      백설같이 번쩍이는 흰 은덩이는 피뜩 보아도 스무 냥은 실히 되는 것 같았다. 은덩이는 등불 빛에 반사돼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한길수 마름질을 십 여 년이나 해온 응삼도 이렇게 많은 은덩이를 선물로 가진 적이 없었다.     “이건 무슨 은덩이요?”     한길수는 담배대통을 길게 빨아 퍼런 연기를 후 내뿜더니 말했다.      “사내대장부끼리 에둘러서 말하지 않겠소. 자네가 우리 집 도감이 돼 주게나. 응삼은 장부나 관리하고 동생이 도감이 돼 날 도와 모든 걸 관리하면 오죽 좋겠나. 년 말에 땅값에서 이렇게 줄게.”      한길수는 두 손을 펴대더니 엄지손가락 하나를 꼽아 보였다. 뜻인즉 열 분의 하나를 주겠다는 뜻이었다.     참말로 돼지에게 겨를 주고 살점을 먹으려는 심보였다. 병완을 앞잡이로 내세워 영월동의 가난한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면서 콩물주머니를 쥐여 짜듯 해보려는 심보가 아닌가!    “이 은전 받을 수 없소.”    병완은 은보자기를 길수의 앞으로 쓱 밀어주었다.    “이 사람아, 난 아주 좋은 뜻으로 주는 게거늘 뭔가?”     길수는 다시 은보자기를 병완의 앞에 밀어주었다.     “내가 그만하면 자네를 봐주는 건데 뭐가 모자라나? 이 영월동에서 일인지하 천인지상 자리에 올려 세우겠다는데도.”     대뜸 길수는 낯에 주름살이 쫙 퍼지더니 병완의 너부죽한 얼굴을 흘금거렸다.      담배만 뻑뻑 빨던 병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당신네 집에 가서 머슴을 살지 못하겠소.”     그러자 길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근심하지 마오. 자네를 보고 우리 집에 와 있으라는 게 아니요. 그저 며칠에 한 번씩 일이 있을 때마다 와서 도와주면 되네.”     병완은 그저 묵묵히 앉아 애꿎은 담배물주리만 뻑뻑 빨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응삼이 혀를 날름거렸다.    “헤헤, 우리 주인어른은 넓은 마음을 먹고 선심을 쓰는데 이 은덩이를 받아주오. 세상에 후회 약은 없으니까.”     병완은 응삼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응삼이는 혀를 홀랑 내밀더니 얇은 입을 꼭 다물어버렸다.     병완의 얼굴에는 근심에 찬 검은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집안에는 쥐 죽은 듯이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한참 후 병완이가 담배 물 주리를 담배 재떨이에 툭툭 털어 짓눌러 꺼버리고는 쇠 덩이를 콘크리트바닥에 굴리는 듯 하는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음, 먼저 요구가 있는데 들어주겠는가?”     길수는 병완의 앞으로 다가앉았다.     “어디 말해보게나. 내 어련히 들어주지 않을라고.”    “은녀를 돌려보내주게나.”    길수의 눈에는 은녀의 풍만한 젖가슴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아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째? 은녀를 며느리로라도 삼으려는가? 듣자니 이 집 맏아들과 은녀가 눈이 맞아 돈다던데.”    병완은 똑바로 한길수를 보면서 정색했다.     “자넨 생떼 질을 작작 쓰게나. 창렬이 페병에 먹으려던 곰의 열을 주고 빚을 다 물었는데도 약효가 없다고? 당장 은녀를 돌려보내주게나.”     길수는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길수는 병완을 끌어당기려면 그 요구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응삼이 옆에서 설설 기면서 슬그머니 길수의 무릎을 톡톡 치면서 뱁새눈을 질끈 감아보였다. 그러자 길수는 마음이 아픈 대로 대답해버렸다.     “그렇게 합세. 또 무슨 요구가 있는가?”     “없네. 이 은전은 가져가게. 이게 없어도 난 살만하네. 또 이담에 이자에 이자를 받으려고 들면 난 줄 은덩이가 없네.”      “아니, 이 길수가 언제 그렇게 옹졸했다고? 이건 선물로 주는 거네. 누가 빚 문서에 올렸는가? 에참, 그럼 이렇게 결정하구 난 가겠네.”     병완은 말리지 않았다.     응삼의 감아버린 듯 하는 뱁새눈에는 간사한 웃음이 어리어 있었다.    한길수가 은덩이를 두고 가버리자 성칠은 중간 방에서 안방으로 올라와 병완이 앞에 와 앉았다.     “아버지, 정말로 그 쥐새끼 같은 한길수네 집에 들어갈 예산입둥?”     병완은 담배 물 주리를 두고도 손 담배를 말아 불을 붙여 물었다.    “내 뭘 그 자식에게 허리를 굽힐 것 같으냐? 한길수는 나를 얼리려고 잔꾀를 쓰는 것 같아. 흥정은 붙이고 말은 하기에 달렸다구. 먼저 임기응변해 은녀를 빼 내오고 보자.”     그제야 성칠이 한숨을 후 내쉬었다.     부자지간에 하는 말을 성희와 하옥도 정지에서 듣고 한시름을 놓았다. 그녀들의 얼굴에서 감돌던 검은 구름이 점차 가시어졌다.     이튿날 은녀는 새 초롱 속에서 놓여나온 새처럼 겨울바람이 불어오듯 사뿐사뿐 개울물가에 난 길로 하여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에구, 내 딸아, 고생이 많았겠구나.”     창렬은 마루에 서 있다가 지팡이를 버리고 은녀를 와락 끌어안고 볼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은녀는 몇 달 동안이지만 남의 집 종살이를 하여 양기가 죽었고 눈길에도 정기가 없었다. 때 이르게 은녀의 얼굴에는 잔주름이 이마를 타고 건너갔다.     뒤따라 나와 딸을 붙안은 명순도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눈물을 질금 질금 쏟았다. 곁에서 지켜보던 성칠과 병완도 묵묵히 서로 붙안은 그들 세 식구를 바라보았다.     창렬의 세 식구는 한참이나 붙안고 울다가 병완 부자에게로 돌아서더니 일제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정말 감사하오. 자네 부자간은 참말 우리 일가의 은인이오.”     병완은 창렬의 휘어 든 잔등을 툭툭 치면서 위안했다.     “별말을 다 하오. 우리 집안과 당신네 엄씨네는 세세대대로 형제처럼 지낸 한집안이 아니고 뭐요?”      엄창렬은 병이 다 나은듯 기침도 멎었다. 지팡이를 버리고 허리를 쭉 펴고 가슴을 쑥 내밀었다. 그는 병완의 부자간에게 안주를 끓여 막걸리라도 대접하려고 장작을 와락와락 안아 부엌에 들여갔다.      “이러지 말게나. 난 길수네 집에 볼 일이 있으니까 가봐야 하겠네.”     병완은 말을 마치자 발길을 돌렸다.     성칠은 허리춤에서 백설 같은 은덩이를 하나 꺼내 창렬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걸로 겨울나이 쌀을 사서 잡숬소.”     “아니, 자네 이럴 변이라고.”     창렬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성칠은 입에 손가락을 댔다.      “쉬, 말씀 말고 씁소.”      그는 은녀를 되돌아보며 눈을 찔끔해보이고는 성큼성큼 개울가로 내려갔다.      은녀는 문설주를 잡고  믿음직한 성칠의 뒤잔등을 바라보다가 동전으로 눈굽을 찍으며 돌아섰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가늘게 들먹이고 있었다.       가녀린 어깨 너머 슬픔이 처절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횡설수설 하는 눈발 속에 첫 사랑이 숨어 울고 있지 않는가! 
408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9) 날강도 삼형제 김장혁 댓글:  조회:799  추천:0  2024-02-18
              2. 날강도 삼형제     성칠이 눈이 뒤덮인 수림에서 사냥하면서 한 심심산골 마을의 앞산에 이르렀다. 적토마도 하루 동안이나 눈 덮인 산을 달리면서 풀 한줌 먹지 못하여 지칠 대로 지쳤다.       성칠은 열기라고는 없는 겨울해가 느릿느릿 져 가는지라 산 아래 바라보이는 마을로 내려갔다. 깎아지른 절벽아래 눈 덮인 마을 어귀에  고래등처럼 덩실한 토성 안 집 한 채가 있었다.       성칠은 마을 어귀에 있는 그 첫 집 대문을 쾅쾅쾅 두드렸다.       대문이 벌컥 열리더니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곱사등이 중년사내가 마주 나왔다. 얼굴은 아주 시끄러워 하는 표정으로 바위돌처럼 퍼러덩덩하게 굳어 있었다.      “웬 일인가?”      성칠은 말 잔등에서 뛰어내리면서 대답했다.      “주인님, 말먹이 벼짚이라도 한 단 있으면 좀 주겠습둥. 말이 온 하루 굶어서 더 갈수 없구만.”       곱사등이 사내는 적토마를 아래 위 훑어보더니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아이고, 참 좋은 말이구먼. 말먹이 있고 말구요. 자, 저기 마구간으로 끌고 들어가 매 놓으라구. 말먹이를 내다주리다.”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적토마를 마구간에 매놓았다. 이윽고 빠드득빠드득 눈을 밟는 소리 마구간쪽으로 다가갔다. 곱사등이 말먹이를 소쿠리에 담아다가  마구간 구유에 쏟아놓았다.     성칠은 곱사등에게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했다.     “고맙소이다. 주인어른, 훗날 내가 사냥을 하게 되면 꼭 그 은공을 갚아드리오리다.”     곱사등은 퉁퉁하게 생긴 생김새보다는 다르게 아주 해박하고 싹싹하게 놀았다.     그는 허리를 굽신거리면서개여올렸다.      “천만의 말씀을요. 지나가던 길손에게도 떡을 대접할 함경북도 인심에 요까지 거야 무슨.”     곱사등은 성칠의 손을 뜨겁게 잡아 집안으로 끌었다.     “자, 루추한 우리 집에 왔으니 막걸리라도 한잔 마셔야지요.”    그들이 집안으로 들어가자 검둥이는 밖에서 망을 보듯이 엉덩이를 땅바닥에 붙이고 귀가 뻘쭉해 꼿꼿이 세우고 사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성칠이 집안에 들어가 보니 아낙네도 없는 집안이 아주 으리으리했다. 이윽고 성칠이 곱사등과 함께 한창 막걸리를 마실 때였다.     밖에서 빠드득빠드득 눈을 밟는 어지러운 소리와 함께 검둥이가 짖어대는 소리가 “왕 왕 왕” 났고 말이 “오 호 홍” 하고 호용하는 소리가 났다.     불길한 느낌이 든 성칠은 벌떡 일어나 벽에 기대놓은 사냥총을 집어 들고 뛰쳐나갔다.     그가 문 밖으로 한발 내디뎠을 때였다. 뒤에서 쉭 바람소리가 났다. 성칠은 휙 몸을 돌려 돌아보았다. 허나 늦었다. 곱사등이 씽 달려나오면서 방망이로 성칠의 뒤통수를 딱 내리쳤다.     딱! 딱!    방망이가 이마를 아찔하게 내리쳤다. 순간 성칠은 눈에서 불찌가 일고 몸이 휘청거리었다.    곱사등은 입술을 깨물고 방망이로 재차 치려고 했다.      그때 검둥이가 아가리를 짝 벌리고 곱사등에게 다려들었다. 검둥이는 날카로운 톱이로 곱사등이 손목을 물어뜯었다.       "아이구! 이 놈 개새끼!"      곱사등은 방망이를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검둥이가 짖어대는 소리에 성칠은 정신을 차렸다. 성칠은 뒤 골을 손으로 만지더니 간신히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면서 버티고 섰다.       그는 눈앞에 검둥이와 싱갱이 질 하는 곱사등을 보자 눈에서 복수의 불길이 타올랐다. 마구간에서 마적과도 같은 괴물의 사내가 둘이나 비수를 뽑아들고 뛰쳐나왔다.       마구간에서 적토마가 “오 호 홍!” 하고 고함치면서 뒤 발질로 키꺽다리를 차 넘겼다.     성칠은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고 정면으로 달려드는 난쟁이를 소발 통 같은 주먹으로 쳐 눕히었다.     그는 오른발을 들어 장단지에서 비수를 뽑아들었다.     말에 채워 쓰러졌던 꺽따리가 일어나면서 비수를 들고 허공 날아 나오면서 성칠의 목을 겨누고 찔렀다.      성칠은 옆으로 홱 피하면서 발길로 비수를 잡은 그자의 손목을 탁 찼다.       쒹-      비수가 마구간 천정에 날아가 꼽히면서 부르르 비명을 지르면서 떨었다.      성칠은 그자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그자는 배를 끌어안고 “억!” 소리와 함께 앞으로 푹 쓰러졌다.      성칠은 키꺽다리 허벅다리에 비수를 콱 박았다.     동료가 쓰러지자 질겁한 난쟁이는 마구간 뒤 문을 박차고 삼십육계 줄행랑이 제일이라고 꼬리 빳빳해 줄행랑을 놓았다. 그러자 검둥이한테 귀를 물리어 떨어진 곱사등은 귀를 싸쥐고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했다.      “제발 살려주오.”      성칠은 한발을 날려 곱사등의 아래 배를 걷어찼다.      “아이쿠!”     곱사등은 아래 배를 붙안고 앞으로 쿵 무릎을 꿇었다.     성칠은 쪼그리고 앉아 비수로 곱사등의 턱을 쳐들고 위엄 있게 고함쳤다.      “봐라. 내가 누군가! 명천에서도 한다하는 씨름꾼 김병완의 맏아들이다. 네까짓 세 놈이 아니라 열 놈이라도 달려들어 봐라. 한주먹에 다 때려 죽여 버릴 테다.”      “아이고, 병완 장수의 선성은 들은 지 오래오. 제발 살려 주오. 저 적토마가 욕심나서 그랬지 장사를 살해하자는 생각은 없었소.”      성칠은 비수에 묻은 피를 곱사등의 팔소매에 쓱 닦은 후 장 단지 칼집에 찔러 넣고 을러멨다.     “네놈이름이 뭐냐?”     곱사등은 구레나룻을 어루만지었다. 그는 성칠이 자기를 죽이지 않을 눈치를 보자 삶의 용기가 났다. 그는 상을 찡그리며 아래 배를 붙안은 채 일어나 앉으면서 쥐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난 경성군 주을면 백승만이요.”      성칠은 머리를 돌려 마구간에 쓰러진 키꺽다리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저건 누구냐?”     “내 동생 승핵이오. 야, 승핵아, 일어나 형님께 살려달라고 절을 해라. ”    “아파 일어두 나지 못하겠는데 무슨 놈의 절이요. 형님, 살려줍소.”       성칠은 또 따지고 들었다.      “달아난 난쟁이새끼는?”      “내 막내 동생 승철이오. 이 주을면에서는 우리 삼형제만 나서면 울던 애들도 울음을 그쳤소. 그런데 오늘 적토마를 훔치려고 그만 형님을 몰라보고 건드렸는데 제발 목숨만 살려주오.”       성칠은 그제야 이마가 아파 손으로 만져보았다. 끈적끈적한 무엇이 만지었다. 손을 내리워 보니 손에는 검붉은 피가 즐벅했다.      “아이고, 장사, 제발 살려주오."      "누가 니 형님이야?"     "난 아직도 장가도 들어보지 못했소. 우에는 칠순에 나는 늙은 엄마가 있소. 내가 죽으면 누가 우리 엄마를 먹여 살리겠소?"      눈에서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리던 성칠은 피씩 하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가소로운 놈들, 너희들 노모를 생각해 목숨은 살려주겠다. 대신 집에 있는 금은붙이를 몽땅 꺼내 보자기에 싸놓아라. 네놈들이 훔친 금은붙이로 가난한 백성들을 구해야 하겠다.”      “살았구나.”     승만은 간사한 웃음을 흘리면서 집에 들어가 반들반들한 농궤에서 금빛이 번쩍번쩍하는 금덩이 몇 덩이와 새하얀 은 몇 덩이를 보자기에 싸서 성칠에게 건네주었다.     이때 밖에서 또 검둥이가 짖는 소리와 적토마의 호용수리가 들리었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칠은 사냥총과 금은보자기를 들고 밖에 나섰다. 마을 사람들이 먼발치에 서서 웅성거리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자 성칠은 마루에 올라서서 고함쳤다.      “이건 승만이 삼형제가 마을사람들과 길손들을 털어 모은 검은 금은붙이입니다. 마을에서 누가 곤난하면 썩 나서시오. 이 금은붙이를 가져다가 쓰시오. 자, 가져 가시오.”      그러나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옆에서 승만이 쏘아보는데 누가 감히 그 금은붙이를 가져간단 말인가?     눈치챈 성칠은 이렇게 말했다.     “알았소. 여기 이 도적놈 승만이 삼형제가 무서워 가져가지 못한단 말이지. 그럼 좋소. 이후에 가만히 명천군 상우남면 영월동에 있는 이 성칠의 집에 와서 금은붙이를 가져다가 써도 됩구마.”      이때 승만의 키꺽다리동생 승핵이 벌벌 기여마당에 나왔다.     원래 성칠은 승핵의 요해처를 찌르지 않고 허벅지를 찍어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쓰러 눕히기만 했던 것이다.      성칠은 적토마도 배불리 먹은 것을 보고 마구간에 가서 말 고비를 벗겨가지고 나왔다. 그는 사냥총으로 곱사등이 승만의 구레나룻을 가리키면서 다시 으름장을 놓았다.      “네 놈 삼형제 다시 무고한 길손을 해치기만 해봐라. 내 언제든지 달려와 주리를 틀어놓을 테다.”     승만은 기가 꺾여 허리를 굽신거리면서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예, 예. 다신 안 그러겠소.”     성칠은 적토마에 뛰어올라 검둥이를 앞세우고 눈길을 달려 그 마을을 떠났다.     적토마가 뛰어가는 뒤에서는 눈보라가 무서운 비명소리를 질렀다. 공포가 사납게 덮쳐들어 절벽아래 눈 덮인 마을을 단숨에 집어 삼킬 것만 같았다. 눈보라 속에 삼형제 꿍꿍이는 삼라만상을 감추고 말았다.            
407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8) 경성 힘장사 김장혁 댓글:  조회:728  추천:0  2024-02-18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3장 운주동                          1. 경성 힘장사              어느 날 하늘에서는 거위털 같은 함박눈이 푸실푸실 내렸다. 사냥하기 젤 나쁜 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칠은 생계를 유지하려고 말을 타고 눈길을 헤치면서 사냥 길에 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의 앞길에 무슨 공포 뭉텅이가 퉁 떨어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사냥길이었다.     글쎄 운이 좋으면 꽃사슴이나 잡을 수도 있으련만. 성칠의 눈 앞에서는 희망이 아물거리며 유혹했다.       "쨔!"       성칠은 채찍으로 말 잔등을 탁 치고 달려나갔다.       저 뒤 마을 동구 밖에서 하옥과 은녀가 오도카니 서서 푸실푸실 쏟아지는 눈발 속을 헤집고 멀어져가는 성칠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가련하게 서 있었다.       검둥이는 여느 때처럼 앞에서 코로 킹킹 냄새를 맡으면서 달려 나갔다.      성칠은 재수 없어 명천군 산골에서 박달령까지 넘으면서 고생했건만 토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성칠은 한길수가 은녀를 빼앗아 갈 예산을 하는 눈치가 보이는지라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그럭저럭 꿩 사냥이나 하면서 들어 가다나니 명천의 원시림도 벗어나고 경성군 주을면의 어떤 눈 덮인 산기슭에 이르렀다. 명천의 산보다는 달리 잔나무가 우거졌을 뿐이었다.      그때 웬 중년사나이가 애들 둘을 데리고 무릎이 펑펑 빠지는 산기슭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사냥군인가?)      산에서 젤 두려운게  야수보다도 사람을, 특히 사냥군을 만나는 것이다.      순간 성칠은 총가목을 으스러지게 쥐고 경계의 눈초리 꼿꼿해졌다. 그런데 중년사나이와 애들은 손에는 총도 없이 빈 손이 아닌가?      (그럼 나무군인가?)     그런데 손에 낫도 도끼도 들지 않고 맨 바 줄만 어깨에 메고 터벅터벅 올라오고 있지 않는가.     그 사내는 산 속의 나무들을 둘러보더니 어깨의 바줄을 벗어 애들에게 건네주었다. 뒤이어 그 사내는 팔뚝만하고 대여섯 길만큼 한 나무를 손으로 잡고 “윽!” 하고 어깨로 떠밀어서 툭 끊는 것이었다.      애들이 나무를 척척 모아 놓고 바 줄로 꿍꿍 묶어놓는 것이었다.       (정말 괴력을 가진 힘장사구나.)      칠성은 말에서 내려 말고삐를 잡고 스적스적 다가가면서 인사를 건네었다.      “여보시오. 과연 힘장사구먼. 도끼도 쓰지 않고 이 실한 나무를 어깨로 툭툭 끊다니. 쯧쯧쯧.”      성칠은 혀를 끌끌 찼다.      그 사내는 손을 마주 툭툭 쳐서 눈을 털면서 성칠과 적토마를 엇갈아보면서 말했다.        “어데서 온 양반인지는 모르겠소만. 우린 대대로 이 지방에서 살면서 도끼를 쓸 줄 모르고 땔나무를 했다오.”       성칠은 그 사내를 우러러보며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알고 지내기오. 난 명천군 상우남면 운주동의 사냥꾼 김성칠이오.”       그 사내는 통쾌하게 대답했다.       “경성군 주을면 용천동 리원삼이오. 이 애들은 내 맏이 장활과 둘째 장은이오. 얘들아, 어서 인사해라.”       애들은 낯선 성칠을 힐끔 쳐다보더니 어색하게 그저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리원삼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시골에서 자란 애들이라서 수줍음을 많이 타 인사할 줄을 잘 모르오.”      성칠은 저 산 아래 바라보이는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여기 멧돼지나 호랑이 같은 큰 야수들이 출몰하지 않소?”      리원삼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으면서 넉두리처럼 중얼거렸다.      “여긴 멧돼지랑 호랑이랑 많소. 여름과 가을 한철에는 그 놈의 멧돼지하구 곰 성화로 감자농사와 옥수수농사를 망쳐먹는 때가 많소. 그런데 온 마을에 사냥총 한 자루 없으니 그 놈들을 어디 당해내겠소?”      성칠은 머리를 끄덕였다.      이때 원삼은 성칠의 아래위를 살펴보더니 뒤말을 이었다.      “이보시요. 먼 곳에서 왔는데. 자, 누추한 대로 우리 집으로 가서 토장국이나 먹고 사냥을 하오.”      성칠은 그러지 않아도 언 주먹밥을 먹고 눈보라를 무릅쓰고 헤매느라고 시장기가 들었다. 그리하여 리원삼의 집에 가서 잠간 쉬고 싶었다. 황차 황소처럼 우람지게 생긴 리원삼이가 사내대장부 같아 마음에 들었다.      “그러기요.”       리원삼은 어깨로 사발 밑굽 같은 나무 몇 대를 더 떠밀어 툭툭 끊어 큰애의 손에서 바 줄을 받아쥐어 대여섯 대씩 묶어 두 단을 만들었다.      이때 둘째 장은이가 손에 눈덩이를 쥐여 형 장활에게 뿌렸다. 면바로 장활의 낯에 맞아 눈만 팬들거렸다.     “이 새끼, 어디 덤벼봐라.”       맏이는 동생에게 연속 눈을 쥐여 뿌렸다.       “그만두지 못하겠니?”       원삼이 눈을 뚝 부릅뜨자 애들은 그제야 머리를 수굿하면서 손에 쥐였던 눈을 버리고 손을 톡톡 털었다. 그리고 땔나무 하나씩 골라잡고 산 아래로 끌고 내려갈 잡도리를 하는 것이었다.       성칠은 원삼에게 권고했다.       “나무 단을 말 잔등에 싣고 가기요.”      그러나 원삼은 사양했다.       “아니, 그만두오. 산에서 말보다 내 어깨가 낫소.”      성칠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때 원삼은 긴 머리 태를 목에 몇 번 감고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어 비볐다. 뒤이어  그 큰 나무 단을 두개나 “엇차!” 소리와 함께 단번에 오른쪽 어깨에 척 둘러메고 산 아래로 발길을 돌렸다.     “가기오.”     성칠은 입이 함박만큼 딱 벌어졌다.     “아니, 그러지 말고 내 말 배때에 한단씩 달아매면 되오. 저 죄꼬만 애들이 어떻게 나무를 끌고 간다고 그러오.”     원삼은 머리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일없소. 그 애들도 어려서부터 나무를 끌고 내려가 놔서 괜찮소.”     원삼은 나무단을 두 단이나 메고 눈 덮인 산비탈에서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성칠도 힘을 꽤나 썼지만 원삼의 로지심 같은 괴력에 저으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나무단을 메고 눈 덮인 산비탈을 평지를 걷듯 내려가는 원삼의 억대우 같은 뒤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애들이 끌고 내려가는 나무 두대를 바로 묶어 말안장에 매여 끌고 원삼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갔다. 검둥이는 버릇처럼 성칠의 앞에서 귀 벌쭉해서 달려 나갔다.      원삼은 중도에서 한 번도 숨도 돌리지 않고 산기슭까지 내려가 한 헐고 낮은 초가집 울안에 들어가 나무단을 쾅 메쳤다.       그는 뒤에서 말에 나무 두 대를 매 끌고 오는 성칠과 두 아들을 돌아보았다.         “에이, 사람도 끝내 말로 끌고 오네.”        성칠이 울안에 들어섰을 때 집안에서 키가 작달막한 중년여인이 나왔다.       “인사하오. 명천군 영월동에서 온 사냥꾼 김성칠이오.”       “반갑습구마.”       원삼의 아내는 허리를 굽혀 함경도 말로 인사하고는 집안에 들어가더니 부엌에 내려가 불을 일구고 솥을 부시였다.       성칠은 적토마 배때에 걸어놓았던 그물주머니에서 꿩 두 마리를 꺼내 들여갔다.      “자, 사냥을 많이 하지 못하였소. 이걸 끓여 먹기오.”      “야, 양양 맛있다. 꿩고기 맛있다.”      “양양 맛있다. 오래오래 맛있다.”      애들은 알락달락한 꿩을 보자 퐁퐁 뛰면서 노래를 불렀다.      “아니, 이 눈 덮인 산속에서 헤매면서 잡은걸 주다니. 참, 자넨 빈손으로 집에 가겠소?”       “근심하지 마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사냥하면 될게 아니겠소.”       원삼은 마지못해 꿩 두 마리를 받아 아내한테 주었다.       그러자 묵직한 꿩 두 마리를 받은 원삼의 아내는 “아니, 두 마리나!” 하고 여간 감탄해마지 않았다.        성칠은 사냥총을 들고 집안에 들어가 벽에 기대 세워놓고 원삼과 마주 좌석을 정해 앉았다.       원삼이가 털모자를 벗자 고슬고슬한 양머리가 드러났다. 원삼의 양머리라든가 툭 튀어나온 이마아래 쑥 꺼져 들어간 눈이 사내내장부의 매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나이에 비해 때 이르게 이마에 패인 밭고랑 같은 주름살이 지지 않았겠는가. 그 주름살은 풍상고초를 겪으면서 살아온 원삼의 흘러간 인생길을 보여주는 상 싶었다.        원삼의 아내가 꿩 깃털을 한대씩 뽑아주자 애들은 좋다고 깃털을 기발처럼 쳐들고 밖으로 뛰어나가 깡충깡충 뛰놀았다.       성칠이 집안을 둘러보니 서발막대기를 휘둘러도 걸칠 것이 없었다. 덕 우에 놓인 함지와 조왕 쪽에 반지르르한 쌀독 몇 개, 벽 쪽에 놓인 농짝 두개밖에 눈에 뜨이는 것이 없었다. 까래는 따닥따닥 기워 볼품없었다.      “이 마을에 모두 몇 호 살고 있소?”        성칠의 물음에 원삼은 곰방대에 담배를 쑤셔 넣고 불을 붙이면서 대답했다.       “한 십여 호 사오. 내 춘삼 맏형님과 인삼 둘째형님, 무삼 동생도 이 마을에서 사오. 우리 집안은 몇 대를 이어 이 골 안에서 살아왔소. 그런데 죽물이나 겨우 먹는 신세요.”        성칠은 집안 살림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아까 들으니 강냉이농사나 감자 농사를 믿고 사는 거 같은데 곰과 멧돼지 성화에 어떻게 살겠소?”      원삼은 가래짝 같은 손으로 무릎 우에 떨어진 담배 재를 털면서 한숨부터 내 쉬었다.      “살기 어렵소. 황무지를 일궈 강냉이하구 감자를 심어먹고 몇 십리 동쪽으로 나가서 동해바다에서 물고기나 잡아 먹고 살지. 그런데 여름과 가을에는 정말 그 놈 곰 멧돼지 성황에 강냉이 밭과 감자밭이 절단 난단 말이오. 하도 산에 나무가 많아서 땔나무걱정은 하지 않지만 이 골안에서 살기 힘드오..”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술이 서너 순배 돌자 원삼은 우묵한 눈을 슴벅이면서 성칠을 보고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초면강산이지만 부탁 하나 해도 되겠소?”      “무슨 부탁이 있으면 말하오.”       원삼은 이런 말을 꺼냈다.       “명년 여름이나 가을에 우리 여기 와서 멧돼지하구 곰 사냥을 해주오. 그 놈의 멧돼지하구 곰 성화에 어디 감자하구 강냉이 농사를 해먹고 살겠소?”       성칠은 두 말 않고 서슴없이 대답했다.       "알았소. 꼭 오지."       원삼은 희쭉 웃으면서 술잔을 쳐들었다.       "감사하오. 자, 한잔 쭉 들기오."      성칠은 한장 굽내고 술잔을 밥상에 놓았다.      원삼은 껌정눈을 슴벅이면서 성칠한테 물었다.      “손님네 명천은 그래도 우리 여기보다는 살기 괜찮지 않소?”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우리 거기도 한가지오. 밭이 몇 무 안되는데 그것도 한길수라는 지주네 땅을 붙이는 게요. 소작료를 내고나면 멀건 죽물도 마시기 힘드오. 그래서 나는 일년 사지장철 사냥을 하느라고 산에서 헤매오. 사냥을 하는 게 농사를 짓는 것만 퍽 나으니까.”        그들은 살림살이 말을 하다나니 마주 앉아 한숨만 푸푸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성칠은 부엌의 솥에서 쌕 김이 쌕 뿜겨 나오는 것을 보자 배를 굶어온 적토마와 검둥이가 생각났다.      “아차, 깜짝 잊었구먼. 집에 말먹이풀이 좀 없소? 벼 짚이라도 좋소.”      그러자 원삼은 구척 같은 몸을 움쭐 일으켰다.      “있소. 사냥꾼이 말을 굶겨서야 안 되지.”       성칠은 원삼을 따라 나가 벼짚을 한 아름 안아다가 작두에 썩썩 썰어서 외양간의 암소와 함께 말을 먹였다.       뒤이어 그들이 되들어왔을 때에는 구들복판에 꿩고기국과 막걸리동이 한동이 더 올랐다…      그날 성칠은 원삼과 함께 꿩고기를 안주하여 권커니 작커니 하면서 막걸리를 두 동이나 마시였다. 원삼 일가도 성칠의 덕에 꿩국을 실컷 먹었다.      점심상을 물리자 성칠은 원삼이부부가 말리는 것도 마다하고 말을 타고 사냥 길에 다시 올랐다.       하늘이 무너졌는지, 함박눈이 앞을 가리지 못할 지경으로 수림에 무너져내렸다. 검둥이는 킹킹 거리면서 앞에서 달렸다.
406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7) 결혼 김장혁 댓글:  조회:877  추천:0  2024-01-29
        김장혁 작 대하소설 제1권                                        8. 결혼            가없이 맑고 푸른 가을의 하늘은 푸르기만 했다. 강물도 어찌나 맑은지 지느러미를 하느작거리며 조약돌에 키스하면서 유유히 노니는 붕어도 다 들여다보일 지경이였다.       고향의 강가에서 빨래하는옥실의 눈앞에는 뱀을 잡아주고도 아무 말 없이 산으로 나무하러 성큼성큼 떠나가던 경숙의 모습이 떠올랐다.      옥실은 빨래를 훨훨 휑구어 함지에 담아 이고 집에 돌아갔다.    그녀는 이번에는 물동이를 이고 샘물터에로 사뿐사뿐 다가갔다. 그녀가 바가지로 샘물을 푸려고 샘물을 들여다보는 순간 경숙의 길쭉한 얼굴이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웬 일이지?)      옥실은 한숨을 호 내쉬면서 바가지로 잔잔한 샘물을 저어 경숙의 모습을 지워버렸다. 그녀가 쪼그리고 앉아 두 손을 무릎에 얹고 샘물을 들여다보니 고요해진 물에 또 경숙의 상반신이 떠올랐다.      옥실은 누가 볼까 봐 황급히 바가지로 샘물을 물동이에 퍼 담아 이고 샘물터를 떠나갔다.     열다섯 살의 이팔청춘 옥실은 그때로부터 저도 모르게 경숙에 대한 사랑의 싹이 트는 것을 가슴 속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하루. 옥실은 빨래터에 가서 빨래를 했다. 넙죽한 돌에 빨래를 놓고 방치로 탁탁 쳐서는 조약돌이 환히 다 들여다보이는 운주하 개울물에 빨래를 불렀다가 왈왈 헹궈 꾹 꾹 짰다. 그리고는 빨래를 버드나무가지에 훌훌 널어 말렸다.     그런데 흐르는 개울물에도 경숙의 모습이 떠오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우람진 체격에 길쭉한 얼굴, 짙은 눈썹에 두부모같이 두꺼운 입술, 항상 말수 적은 그 입은 철문처럼 꾹 닫겨져 있었다.     “아니, 이게 웬 일일까?”     옥실이 중얼거리는데 개울물에 떠오른 그 그림자는 자기 쪽으로 움직여 오는 것이었다. 이상한 것은 거울같이 맑은 개울물 안에 서있는 경숙은 자기 앞에 쪼그리고 앉는 것이었다.     옥실은 조약돌을 주어 물에다 힘껏 뿌렸다.     출렁!     순간 물방울이 옥실의 얼굴과 저고리에 뿌리우면서 경숙과 자기 그림자도 지워졌다.     화뜰 놀란 옥실이가 너무나도 이상해 옷을 털면서 일어나 돌아다보니 경숙이가 실로 말없이 앉아 자기를 보고 있었다.     “아니, 경숙오빠!”     “허허허.”     “남은 물을 맞고 깜짝 놀라 죽겠는데 너털웃음을 웃소? 흥!”    옥실은 경숙을 고운 눈길로 흘겨보면서 동전을 감아쥐며 돌아섰다. 순간 옥실의 하얀 볼이 귀밑까지 홍당무로 돼버렸다.    “누가 보겠소.”     옥실은 빨래와 방치를 와락와락 대야에 담아 이고 버들강변을 떠나버렸다.     뒤에서 경숙은 멀어져가는 옥실의 잔등을 보면서 너털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허허허. 누가 보면 뭐라오?”     이윽고 최구장 어른이 호미를 들고 버들강변으로 다가왔다.     “경숙아, 옛말에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했다.”     그러자 경숙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장가들 나이가 되여도 처녀애들과 말도 못합둥?”     그 말에 최구장은 경숙의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중얼거렸다.      “오- 그래, 내가 잊었구나. 너도 장가 이젠 들 나이가 되였지.”      최구장은 쪼그리고 앉아 호미를 개울물에 씻으면서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한참 후 허리를 펴면서 일어섰다.      “그래 저 옥실이 네 마음에 드니?”     경숙은 그저 히죽이 웃으면서도 아무 말도 못했다.     “좋단 말이지. 알았다. 내 혼사말군을 허도이사한테 보내 혼사 말을 해야겠다.”     최구장은 신흥동의 만춘집 김 구장에게 부탁해 맏아들 경숙의 혼사 말을 신흥동의 옥실의 아버지 허득필에게 했던 것이다.    허득필은 술이라면 오금을 못 쓰고 농사일이라면 뒷전이어서 살림이 형편없었다. 딸 옥실과 명실의 중간에 아들 명철이 있었다.    “주인집 영감 있소?”    김 구장이 집 울안에 들어서자 그때까지 막걸리를 마시던 허득필은 바삐 막걸리사발을 내려놓고 마루에 나가 맞이했다.     “아니, 어떻게 돼 이 구차한 우리 집에 찾아왔소? 허허. 어서 올라와 한잔 같이 하기요.”     김 구장은 고무신을 벗고 머리 태를 어깨 너머 뒤로 척 돌려가더니 집안에 들어가 사양하지 않고 술상에 마주 앉았다. 원래 김 구장도 술을 반가와 하여 허 씨 와는 알맞춤한 술친구였다.      이때 허씨 처자들이 모두 나와 곱도록 인사를 올렸다. 김 구장은 피뜩 옥실에게 눈길을 멈추었다가 허득필에게 돌렸다.      허득필은 막걸리를 부어 주면서 지껄였다.      “아니, 신흥동에서 한다하는 만춘집 구장 어른이 어떻게 돼 서발막대기를 휘둘러도 걸칠게 없는 우리 집에 찾아왔소? 자, 좌우간 반갑소. 어서 드오.”      김구장은 막걸리를 한 사발 죽 마신 후 건가래를 뗐다. “에헴, 이 집에 내 혼사 말을 하러 왔소.”      그 말에 조왕 쪽에 있던 옥실은 두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었다. 그는 마음 속에 경숙이 있는데 김 구장이 자기 집 아들에게 혼사말을 하면 어찌 하겠는가고 저으기 근심했다.     그때 허득필은 싹아 떨어진 이발이 다 들여다보이게 입을 하 벌리고 김 구장을 쳐다보다가 막걸리동이에 바가지를 넣어 막걸리를 퍼 김 구장 앞의 사발에 부으면서 정색해 물었다.      “그래, 김 구장 어느 아들과 혼사 말을 하러 왔소?”     그러자 김 구장은 손을 들어 살래살래 흔들었다.      “아니오. 아니. 참. 에헴."     허득필은 막걸리를 붓던 사발을 밥상에 달랑 놓으며 다가앉았다.     "그럼 뉘네 집하구?"     "저 강 건너 운주동 최구장네 맏아들과 혼사 말을 하러 왔네.”      허득필은 옥실을 힐끔 내려다보더니 다시 김 구장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때 옥실은 부끄러워서 뒷문을 열고 뒷마당에 나가 추녀 밑에 서서 집안에서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을 엿들었다.     허득필은 김 구장과 맞 잔을 하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 최구장어른이 김구장을 보냈소?”      “그러잖구. 최구장 집은 사방 십리 안에 이름 있는 유식한 가문이 아니고 뭐요? 이 집 맏딸을 그 집에 맏며느리로 보낸다면 얼마나 좋겠소?”       허득필은 귀가 솔깃해졌다.      “김 구장이 중매를 서니깐. 길게 말해 뭘 하겠소. 내 맏딸을 최구장 집에 주기로 하겠소.”      옥실은 뒤 벽에 기대 문틈으로 그 말을 엿듣고 부끄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옥실은 기도나 드리듯이 두 손을 맞잡아 가슴에 대고 북녘하늘을 바라보더니 잠간 눈을 딱 감았다. 이윽고 뒤울안에서 구새 목 쪽으로 살금살금 달아났다.      김구장은 막걸레를 죽 들이마시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매듭을 지었다.     “그럼, 혼사 말이 성사 된 걸로 최구장에게 전하겠소."     “가만!”     아주 시원하게 대답하던 득필이 김 구장을 따라 일어나면서 꼬리를 달았다.     “그런데 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옥실을 시집보내고 이 집 농사는 누가 짓겠소. 한 3년 있다가 시집보내야 될 것 같소이다.”     김 구장은 어이없다는 듯이 조개턱을 흔들면서 허득필의 낯에 대고 삿대질을 했다.     “에끼, 이 사람아, 그래 다 큰 딸을 시집보내지 않고 영영 붙들어두고 자네 대신 농사 질을 시키겠는가!”      “아니, 그런 말은 아니요.”     “그래, 딸을 준 대신 막걸리 값이라도 달라는 건가?”      허득필은 씨무룩이 웃었다.      “알만하오. 곤난한 살림살이에 기둥같이 믿던 맏딸을 그럴 수도 있지. 내 알아서 최구장에게 말해주지.”      최구장은 김 구장에게서 혼사말을 갔다 온 과정이야기를 죽 듣고 나서 그 이튿날로 둘째아들 경인을 시켜 송아지 한 마리를 사돈 허득필에게 보내주었다.     두 사돈집에서는 그해 섣달 초하루에 경숙과 옥실의 결혼을 올리기로 했다.     최구장 일가는 경사가 났다.     최구장의 아내 성단은 임신한 몸이 돼가지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돋을 지경으로 바삐 돌았다. 그녀는 감자떡이나 빚어놓고 녹두 길금이나 깨 기름에 볶고 두부와 닭 알 지짐을 지쳐 상우에 올리고 닭이나 잡아 큰상에 올려놓았다. 막걸리를 많이 겨를 수 없어 성단은 경인과 경민을 전날 우시장 고을에 가서 막걸리나 몇 동이 사서 수레에 사서 실어오게 했다.      원래 옛날 남부와 중부 조선에서는 결혼잔치를 사흘이나 했다. 결혼잔치 첫날에는 신랑이 백마를 타고 신부네 집에 가서 큰상을 받고 신부네 집에서 하루 밤 자고 이튿날에야 신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신부에게 큰상을 받게 한다. 그리고 사흘에는 신랑이 다시 신부를 데리고 신부네 집에 가서 가시부모에게 인사를 올려야 했다.      그런데 함경북도에 들어온 후 살림살이도 힘들기에 많은 사람들은 결혼잔치를 간단히 하루에 다 치르는 것이 새로운 습관으로 돼버렸다.     최구장과 허득필은 토론하고 여기 함경북도 새로운 습관대로 결혼식을 간단히 치르기로 했다.     신랑 경숙은 백마를 타고 삼촌 최구철과 동생 경인을 비롯한 상빈들의 옹위를 받으면서 운주하 개울물을 지나 앞마을 신흥동의 허득필의 집에 이르렀다.     마을 아낙네들은 울바자 박에 모여서서 손가락을 입귀에 물고  신랑이 허 씨 네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소곤거렸다. 신랑이 키도 훤칠한데다가 매부리코라던가 사내답다고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말고삐를 잡은 총각 경인이도 아주 잘났다고 혀를 둘렀다.     양태머리를 무릎아래까지 내리 드리운 경인은 키도 경숙보다 더 크고 몸도 탄탄하고 날렵해보였다. 게다가 경인은 고을에 가서 태권도와 무술을 배워서 명절이거나 굿을 하는 날에는 칼춤을 아주 날래게 추어 운주동과 신흥동에는 물론 영월동에까지 인기 있는 총각이었다.     경숙은 버선발로 가시집 마루를 딛고 안방에 들어가 큰상을 점잖게 받았다. 백두산 원시림에서 내려온 최구철은 경인 등 상빈들을 데리고 아주 틀스레 곁방에 들어가 상빈 상을 받았다. 경인은 수시로 앞뒤로 달아 다니면서 오촌 숙 최구철과 형님 경숙이 사이에 말을 전했다.     점심때가 거의 될 무렵에야 신랑 경숙은 큰상을 물리고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옥실과 함께 가시부모인 허득필 부부를 비롯한 가시집안 어른들에게 절을 올렸다.     옥실이 고운 한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면서 가마에 오를 때 허득필은 서운해 멍해 서 있다가 바가지로 막걸리를 퍼서 죽 들이켰다.  그의 처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얼굴을 돌리었다.     경숙은 백마에 올라타고 고삐를 잡은 경인과 함께 앞서고 그 뒤로 사인교를 탄 신부 허옥실이 뒤따랐다. 상빈들인 최구철은 적토마를 타고 그 뒤에서 옹위하면서 따랐다. 백마를 탄 신랑 경숙은 다른 때보다도 더 늠름해 보였다.     앞마을에서 신랑신부의 행렬이 운주동에 나타나자 최구장을 비롯한 시집 식구들은 마을 어귀까지 달려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반겨 맞았다. 은녀는 육촌 오빠 경숙이가 결혼한다고 하자 아버지와 함께 며칠 전에 백두산 기슭에서 말을 타고 최구장 큰아버지 집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그는 육촌오빠 경숙이 장수처럼 백마를 타고 가마에 탄 신부를 데리고 늠름하게 오는 것을 보고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성칠은 최구철과 진달래가 왔다는 기별을 받고 마을 타고 백두산에서 잔치 집에까지 찾아 달려왔다. 최구철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진달래와 함께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가마에서 신부가 나오자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신부에게 쏠렸다.     “와- 정말 곱다.”     “신흥동에 저렇게 고운 색시가 있었니?”     “글쎄 말이야."     "경숙이 색시 고와서 온 밤 자지 못하겠다.”     바자굽과 구새 목에서 아낙네들이 수군거리는데 마을 처녀들은 부러운 눈길로 새 색시 옥실을 바라보았다.     새 색시가 큰상을 받자 최구장은 한시름을 푹 놓았다…     이듬해 음력 2월 2일에 옥실은 옥동자 봉인을 낳았다. 옥동자는 외까풀 눈에 얼굴은 자그마 해도 귀엽기만 했다.     옥실은 포대기에 싼 봉인을 남편 경숙에게 안겨주었다.     봉인을 안고 경숙은 너무 좋아서 매부리코를 실룩거렸다.        “어허, 그 놈이 보채기도 보챈다.”      그는 애를 안고 서성거리다가 아버지에게 안겨주었다.      최구장은 맏손자를 안고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는 애 볼에 뽀뽀를 해주면서 중얼거렸다.      “봉인아, 이 놈아, 네 놈은 우리 개성 최씨 가문의 기둥 같은 14대장손이다. 어이구, 우리 14대 장손어른이 대단히 역빠르겠는데. 허허허.”       맏손자를 본 최구장은 이마의 밭고랑 같은 주름살이 단번에 쪽 펴지면서 내 천 자가 이전에 비해 얕아진듯했다.      봉인이라는 이름은 최구장이 임시 지어 부른 애명이었다. 후에 최구장은 뿌리 근자 돌림으로 손자들의 이름을 짓기로 하고 봉인의 이름을 근형이라고 지었다.      마당의 앙상한 나무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 꼬리를 달싹거리며 근형이 태어난 것을 세상에 알리기라도 하듯이 깍, 깍, 깍 노래하고 있었다. 뻐꾸기가 화답이나 하듯 눈덮은 수림에서 뻐꾹뻐꾹 울었다.       까치와 뻐꾸기는 화음으로 봉인의 길고 긴 인생의 꿈을 미리 연주하고 있는가?      그 울음소리 특별히 애처롭고 비장하지 않겠는가?
405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6) 수림에서 맺은 인연 김장혁 댓글:  조회:812  추천:0  2024-01-29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1권              7. 수림에서 맺은 연분                     녹음이 짙은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기운봉 기슭의 수림은 비온 뒤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타나자 더욱 청초하고 수려하였다.  개암나무들이 듬성듬성 난 풀숲 속에 빨간 나리꽃송이 활짝 피어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방불케 했다. 수림 속에 스며드는 부채살 같은 해살 속에 하느적거리는 나리꽃, 도라지꽃은 방실방실 웃음꽃을 피우면서 옥실을 반겨 맞았다.       양천 허씨 네 큰 딸 옥실은 이름과 같이 살결이 백설처럼 희였고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한데다가 호리호리하게 생긴 처녀애였다.     옥실은 어린 남동생 명철과 함께 버드나무바구니를 끼고 머루를 따러 기운봉 기슭으로 올라갔다.     “야- 저 나리꽃!”    옥실은 환성을 지르면서 두 손을 활짝 벌리고 치마자락을 휘날리며 달려나갔다.     그때 나무꼬챙이를 쥐고 뒤따르던 명철이가 고함쳤다     “누나! 조심해, 여긴 뱀이 많은 곳이야!”     옥실은 그런 말에 신경을 쓸 새 없이 달려가 나리꽃을 몇 송이 꺾어 뾰족코에 대고 흠흠 꽃향기를 맡았다. 까만 반점이 박힌 빨간 나리꽃은 곱기도 하고 향기로웠다. 그런데 빨간 나리꽃의 노란 화분이 하얀 얼굴에 묻어 노란 분칠을 한 것 같아 자연미를 한껏 돋구어주었다.      옥실은 노란 장미꽃, 빨간 장미꽃을 꺾는다, 하얗고 파란 나팔꽃을 줄기채로 훑어낸다 하더니 꽃다발을 틀어 머리 우에 얹었다. 참말로 꽃 같은 얼굴에 꽃다발을 얹고 수림 속에서 달아 다니는 옥실의 그 모습이 비할 데 없이 예쁘기도 했다.      명철은 몽둥이를 쳐들고 누나 뒤를 따라 다니면서 어데 뱀이 기어 나오면 당장 때려죽일 듯이 의심스러운 풀숲을 돌아가며 헤치면서 살폈다. 그런데 명철은 누나의 머리에서 나리꽃잎을 하나 뚝 뜯어 내 입에 넣고 씹었다.     옥실은 눈을 곱게 흘기면서 종알거렸다.    “야, 애도 남의 고운 꽃다발의 꽃 이파리를 뜯어먹다니?”    명철은 또 꽃 이파리를 하나 뜯어먹으면서 빈정거렸다.    “산속에서 뛰어 다녔더니 이 어른이 좀 시장하단 말이야.”    옥실은 명철이 또 꽃 이파리를 뜯어 낼까봐 꽃다발을 벗어 손에 쥐고 봇나무 수림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야, 이 머루를 봐라.”     명철은 봇 나무 숲속에 멈춰선 누나를 보고 뒤따라 뛰어갔다.     그들의 눈앞에는 황홀경이 나타났다. 허리만큼 실한 봇 나무에 바를 걸친 듯이 얼기설기 내리 드린 머루넝쿨에 까만 머루송치가 데룽데룽 매달려있었다.     파랗고 넙죽한 머루 이파리 속에 매달린 까만 눈동자처럼 초롱초롱 윤기 나는 머루 알은 탐스럽기만 했다.     옥실은 가늘고 하얀 식지와 중지로 머루 한 알을 뜯어 입안에 넣고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었다.     “아이고, 시큼해라.”     옥실은 대번에 외까풀 눈을 한일자로 감아버리면서 오만상을 찌프리었다. 명철은 다다가 머루 한 송치를 뜯어 입에 포도 알을 넣고 질근질근 씹었다. 뒤이어 그는  누나와 함께 포도송치를 부지런히 따서 옥실이 든 버드나무바구니에 넣었다. 어느새 바구니에는 까만 머루송치가 무룩하게 쌓였다.     이때 저쪽에서도 영월동의 상우와 그의 큰 누나 어금이 산나물을 캐면서 이쪽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얼굴이 너부죽하고 곱게 생긴 어금은  벌써 처녀티가 완연했다. 자지 색 나리꽃을 입에 문 어금은 숲속에 내린 나리꽃같이 예뻤다. 그녀의 남동생 상우는 중등 키에 실하게 생긴 편이었다.      옥실은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눈인사를 하였다. 그녀는 청석바위 우에 뻗어 올라간 머루줄기 밑에 까만 머루송치가 다닥다닥 달려 있는 것을 보고 그리로 와삭와삭 풀숲을 헤치면서 다가갔다.      그녀가 탐스러운 머루송치를 뜯어 바구니에 담자고 하얀 손을 뻗칠 때다. 하얀 바탕에 새까만 점이 얼룩덜룩 박힌 터덜터덜한 독사가 머루넝쿨에서 혀를 날름거리면서 노려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앗! 뱀이야!”     그 비명소리에 명철은 반사적으로 왼쪽어깨에 둘러멨던 몽둥이를 오른손에 바꿔 쥐였다.     “에이크!”     명철은 몽둥이를 휘둘러 독사를 내리쳤다. 그런데 독사가 그만 몽둥이에 맞아 옥실이 든 바구니에 툭 떨어졌다.      “에구머니!”      옥실은 바삐 바구니를 달랑 떨어뜨렸다.     설상가상으로 독사 한 무리가 바위 밑 풀숲에서 기어 나와 대가리를 쳐들고 그들을 공격해왔다. 분명 굴 독사들은 이 불청객의 침입을 그저 볼 수만 없었던 모양이다.     이 나무 저 나무 가지들에서 독사들이 데룽데룽 매달려있다가도 땅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그 놈들은 대가리를 쳐들고 그들에게로 맹공격해왔다.      “피해!”      위기일발의 시각에 경숙과 경인이 고함치며 낫을 들고 뛰어왔다.      그들은 낫을 휘둘러 고사리 숲처럼 대가리를 쳐들고 옥실한테 달려드는 독사무리 목을 쳐댔다. 상우도 달려와 명철과 함께 몽둥이로 나무 가지에 데룽데룽 매달린 독사들을 때려잡았다.      옥실과 어금은 봇 나무 뒤에 숨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오른 식지를 입에 물고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면서 총각 애들이 독사를 잡는 것을 보고 있었다.     총각애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와 낫에 맞아 뱀의 대가리와 피가 사처로 날렸다.      “이 놈들아! 다 덤벼들어라!”     사기난 명철도 고함치면서 몽둥이를 휘둘러 독사들을 때려 죽였다.     대가리가 낫에 맞아 날아난 뱀들은 의연히 꼬리가 꿈틀거렸다.     옥실과 어금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점점 뒤로 비실비실 물러서며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했다.     호리호리한 총각 경인은 뒤돌아보면서 다급히 소리쳤다.      “삼십육계에 줄행랑이 제일이오. 어서 빨리 달아나오. 우리 독사무리를 막을 테니.”     그제야 정신차린 옥실과 어금은 걸음아 날 살리라고 바구니고 뭐고 다 던져버리고 머루 덩굴 숲속에서 달아났다.      한참 후에 명철과 경인이 뻘건 피 묻은 낫과 몽둥이를 들고 숲속에서 뛰어나왔다. 경숙은 머루를 담은 바구니를 들고 와서 옥실에게 내밀었다.     “자, 이 좋은 머루를 가지고 가오.”     옥실은 머루바구니를 받으면서 귀밑까지 발갛게 붉혔다.     “고맙소. 여러분이 아니었더라면 큰 경을 쳤을 번했소.”     그녀는 고마운 눈매로 키 큰 경숙을 쳐다보았다.     명철은 옆에 서 있다가 자기 누나에게 경숙과 경인을 인사시켰다.    “누나, 이제 금방 알았는데 이 형님은 운주동 최훈장네 형님들이라오.”     옥실이 나서면서 경숙과 경인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러나 원래 말수가 적은 경숙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둘째 경인은 앞에 나서면서 인사를 받았다.      “일이 생기지 않았으니 됐소. 이후에는 이 근방에 와서 머루를 따지 마오. 독사에게 물리면 큰일이 아니오?”     이때 상우가 나서 알은체 했다.     “알고 보니 큰아버지 전번에 외우던 최 훈장 어른 네 형님들이구만. 우린 영월동의 김병완 할아버지의 작은 집 손자 맏손자 상우와 맏손녀 어금이오."      경숙과 경인이도 전번에 수림 속 감자밭에서 만났던 성칠을 떠올리면서 아주 반갑게 대했다.      어금은 최사련 할머니와 성칠 큰아버지에게서 최구장과 최구철 두 어른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 초면이었지만 이젠 구면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키는 크지만 말수가 적은 경숙보다 중등 키에 해박해 보이는 경인에게 눈길이 더 갔다.       그는 버들바구니를 왼팔에 낀 채 가리마를 쪽 낸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인사를 드렸다.       “정말 고맙소. 두 분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무슨 사고가 생겼겠는지 모르겠소.”       경숙보다도 키가 더 큰 경인은 시무룩이 웃으면서 어금을 바라보며 화답했다.      “천만의 말씀을. 우린 령을 사이 두고 영월동과 운주동에 사는 형제와 같은 사람들이오. 이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도우면서 살기요.”      명철이 넓은 가슴을 치며 말했다.      “옳소. 우리는 한마을에서 사는 형제들이오. 이후에는 한집안의 형제들처럼 재미나게 보내기요.”      허옥실은 수집어서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경숙을 훔쳐보았다.     경숙은 가타부타 말없이 낫을 들고 나무하러 기운봉 기슭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뒤에서 옥실은 멀어져가는 경숙을 지켜보면서 서 있었다.      경인과 상우, 명철, 어금 등은 수림 속에서 웃고 떠들면서 놀다가 점심때가 다 돼서야 각기 자기 고향마을로 내려갔다.      울울창창한 수림에서 부채살 같은 해빛이 처녀총각들의 뒤를 따라 걸어왔다. 드문드문 그들이 주고 받는 말 틈새에도 해빛은 옥구슬을 끼워주기도 했다.
404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5) 운주동서당방 김장혁 댓글:  조회:763  추천:0  2024-01-29
           김장혁 작 대하소설 제1권                                6. 운주동 서당방            먹장구름 틈새로 한줄기 빛이 희미하게 내리비추다가 맥없이 한숨을 쉬면서 어디론가 서서히 사라진다. 어둠이 신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이리떼처럼 기를 쓰고 대지에 기여들어 초가집을 우악스레 감싸안아버린다.       최구장은 마루에 앉아 담배대통을 뻑뻑 빨며 급변하는 하늘의 풍운조화를 바라보다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머리를 돌려 조왕간에서 바삐 돌아치는 큰며느리 허옥실을 보고 성칠이 준 멧돼지 고기를 푹 끓이라고 했다.      최구장 일가가 사는 명천군 상우남면 운주동은 함경북도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심심산골이었다. 정말 그가 살던 고향 개성이란 옛 고려의 수도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곳이었다.      지금도 최구장은 눈을 스르르 감으면 자기 고향 개성이 눈앞에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가군 했다. 자기가 어려서부터 공부하던 서당이며, 고려 충신 정몽주가 철퇴에 맞아죽은 선죽교며, 고려의 옛 궁전터전이며, 어려서부터 드레 박으로 샘물을 길어다 마시던 큰 길옆의 우물터며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함경북도라고 하면 원래 이씨 왕조 때 죄를 지은 자들을 정배를 보내던 곳이었다. 그렇게 사람이 못살 산골이어서 범죄자들이나 정배를 보내 고생을 시킬 곳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개성에 들어온 후 서당 글을 가르치던 최구장 영감도 계속 마음 놓고 글을 가르칠 수 없었다. 일본 사람들은 자기들의 일본글을 가르쳐야 하지 한자나 조선 글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제껏 대대로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른 황이나 익혀온 최구장 네를 보고 알지도 못하는 일본 말을 가르치라고 하는 일본 사람들의 심사는 이를 데 없이 괘씸했다. 그것이야 말로 최구장의 명줄과 같은 서당 훈장 밥통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작은 집의 사촌동생 최구철마저 일본 놈 몇을 총을 놓아 죽였기에 최구장 일가는 일본 놈들의 요시찰 인물로 점 찍혀 살기 어렵게 됐다. 그리하여 최구장은 정든 고향을 떠나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은 명천 우시장에서도 멀리 떨어진 심심산골에 들어와 수림 속에 밭이나 일구어 감자농사를 지어 먹으면서 살게 됐던 것이다. 비록 심심산골이고 고향 개성처럼 환한 고을은 아니지만 일본 사람들이 없어 기를 펴고 살 수 있고 시골 애들에게 마음 놓고 서당에서 글을 다시 가르칠 수 있어 좋았다.       운주동 서쪽에 누르스름한 뭇 산우에 기운봉이 우뚝 솟아있었다. 기운봉의 들쑥날쑥한 갈색바위는 사시절 구름 속에 안개 속에 잠겨있었다. 그 구름 모양은 천태만상이었다. 피어올랐다 풀렸다 하는 구름송이, 안개처럼 물기어린 구름송이, 햇솜같이 새하얀 구름송이, 고기비늘처럼 무늬를 정연하게 돋친 구름송이로 정말 아름답기만 했다. 구름송이들도 기운봉의 허리에 감겨 한참씩 쉬고서는 어디론가 가뭇없이 사라지군 했다. 하여 멀리서 보면 기운봉은 마치 구름바다의 섬을 방불케 했다.        기운봉의 청석옥석 사이로 샘물이 쿨쿨 쏟아져서는 갈색바위를 부시며 철철 흘러내려 운주동과 신흥동 마을로 달려갔다. 운주동은 서쪽의 기운봉 기슭으로부터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운주하 개울물을 따라 한 5, 6리나 되게 죽 뻗은 산골짜기에 한두 집씩 게딱지처럼 여기저기 스산하게 널려 있었다. 개울물 남쪽에는 운주동 마을에 집들이 죽 늘어서 있었고 개울물 북쪽에는 신흥동 마을이 산을 등지고 죽 늘어서있었다. 기운봉 동쪽 기슭에 있는 운주동 뒷산꼭대기는 좀 평평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곳이 명당자리라고 하는 최구장의 제의에 따라 산소를 쓰고 그 주위에 돌로 토성을 높다랗게 쌓아 놓았다. 그리하여 성과도 같은 그 토성안의 산소로 하여 운주동의 일부 집들을 성남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운주동의 이런 시골 집들은 통나무집들이었다. 대부분 아름드리나무들을 톱으로 썩썩 켜 통나무채로 쌓은 후 나무못으로 고정시켜놓고 그 우에 지붕틀을 올리고 널판자를 기와처럼 얹은 통나무집이다. 집집마다 잡나무를 베다가 울바자를 집 둘레에 높다랗게 세웠다. 진짜 산골 마을의 풍경이었다.       최구장은 어려서 고향 개성에서 서당공부를 하여 천자문, 논어, 대학, 중용을 다 배웠다. 또 풍수지리마저 익혀서 집을 어떤 데 지어야 좋고 어디다 산소를 써야 명당자리라는 것을 환히 꿰뚫었다. 기운봉 기슭의 성은 바로 그의 제의에 따라 개척한 명당산소자리였다.      게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최구장은 몽땅 해리하고 푸는 방법을 정확하게 깨우쳐 주군 했다. 그리하여 개성으로부터 운주동에 이사해 온 후에도 마을 사람들은 그를 유식한 서당훈장으로 모시였고 애들을 그의 서당에 보내 공부시켰다.      또 사람들은 그를 해리장으로 높이 모시고 무슨 일이 생기면 그를 찾아 해결방도를 물었고 결혼하거나 장례를 치르면 은전을 가지고 와서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최구장이 아침 밥술을 놓기 바쁘게 마을의 병욱이가 아들 시준의 손목을 잡고 최구장의 팔간 집 울안에 들어섰다.       “최 훈장님, 아침을 잡수셨습둥?”       그러자 최구장은 버릇처럼 왼손으로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움찔 일어나 마중했다.      “김 영감, 오늘 일찍 하오다. 어서 오너라. 시준이 요즘 공부를 잘하더라.”      시준은 인차 구십도 경례를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최 선생님!”      최구장은 인차 시준의 손목을 잡아 마루에 끌어올렸다.     “에이, 시준도 이젠 열 둬 살 먹더니 철들었네. 이리 올라와. 오늘도 제일 먼저 서당에 왔구나.”     시준은 다른 애들보다는 달랐다. 말수가 적은데다가 눈만 뜨면 책만 들여다보고 중얼거렸다. 그 애는 서당에 들어서자마자 책보를 풀어놓고 마루에 손가락으로 글을 오리면서 중얼거렸다.      “내 뭐랬소? 책을 익혀 살 놈은 어릴 때부터 다르다니까.”     그는 윗방에 들어가 그때까지 일어도 나지 않은 장손 봉인의 엉덩이를 커다란 손바닥으로 짝짝 쳤다.      “이 자식, 일어나라. 해 궁둥이를 다 비춘지도 오래다.”      둬 살 밖에 안 되는 봉인은 일어나 앉으면서 두 손으로 눈을 비벼댔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봉인은 할아버지 품에 와락 안기였다.       “할아버지!”       “오, 그래. 요 놈이 우리 집안의 기둥과도 같은 14대 장손이지! 요 놈도 공부를 잘해야겠는데.”       이때 최구장의 딸 죽순이 앙기작앙기작 걸어와 봉인을 밀어냈다.       “가. 내 아버지야!”       여자애는 볼에 볼우물을 옴폭 파며 흘겨보았다.       “그래, 아빠는 장손도 고와하지만 하나 밖에 없는 우리 딸을 정말 고와하지.”       최구장이 딸과 손자를 안고 노는 재미나는 모습을 보고 병욱은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최구장의 맏아들 경숙이도 옆에서 히죽이 웃었다. 허옥실도 부엌에서 아침상을 거두면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방실 웃었다.       이때 마을 애들이 다 와서 최구장은 제일 윗방에 들어가 애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시준이랑 병권의 맏손자 형내랑 천자문을 따라 외우는 낭낭한 글소리가 이 시골에 울려 퍼졌다.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를 황!”     최구장의 막내아들 경석은 공부하기 싫어 천자문을 외우는 척 하면서도 바깥을 흘금흘금 곁눈질 했다.     (에이, 씨, 바깥에 나가 놀았으면 얼마나 좋겠니? 운주하에 나가서 목욕도 하고 모래에 물도랑을 파면서 놀겠는데. 날마다 하늘 천, 따 지야?)     막내아들의 그런 속내를 꿰뚫어본 듯이 최구장은 대통으로 경석의 머리를 한 대 딱 쳐놓았다.      “아가!”      비명소리에 애들이 모두 손으로 머리를 만지는 경석에게 머리를 돌려 보고 캐득거렸다.      “공부에 집중해! 왜 자꾸 바깥을 흘금거리면서 정신을 팔아? 그러고서야 입으로 아무리 외운들 글자가 머리 속에 들어가나? 못된 놈 새끼! 다시 공부에 집중하지 않아 봐! 회초리로 종아리를 칠 테야! 어험.”      경석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버지가 무서워 눈치를 흘금 거리며 하늘 천, 따 지를 외웠다.      최구장은 철 없는 경석을 보고 골치 아파 했다.      맏아들 경숙은 자기 대신 이젠 가문의 농사일을 담당했기에 공부를 할 새 없어 시키지 못하고 둘째 경인은 천자문을 떼고 무예를 익히느라고 검을 들고 달아 다녔다. 셋째 경민은 허약한데다가 넷째 경욱과 함께 공부에는 뜻이 없고 약 담배 장사에 흥취가 박혔다.     (헤이, 생각만 해도 가운이 답답하다.)     최구장은 생각다 못해 총명한 막내 경석에게 희망을 두고 어려서부터 공부를 시키는 판이었다. 장차 형내네 할아버지 관준한테 보내서 한의공부를 시킬 예산이었다. 서당 훈장질을 이어받아서야 살기조차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막내아들은 삶의 그루를 바꿔 심어 의사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속셈으로 관준의 손자 형내에게서 서당 공부 학비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경석은 놀음에 탐해 정신을 집중해 공부를 잘 하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한참 후에야 경석과 애들은 금방 일을 잊은 듯 했다.       서당에서는 애들의 글 읽는 소리가 랑랑하게 울려 퍼졌다.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를 황‧‧‧”       바깥이 불시에 어두워지더니 먹장구름이 뒤덮여 왔다. 먹장구름 속에서 시뻘건 불구렁이 기운봉을 번쩍 덮쳤다. 그 놈은 숱한 불혀로 기운봉을 감싸핥아버리고는 먹장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우르릉 꽝꽝       우레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번개가 번쩍였다.       뒤이어 추녀 끝에서 숱한 실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그제야 경석은 바깥에 나가 놀 궁리를 접고 정신을 집중해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하늘이 도운 셈이었다.      최구장은 그제야 한숨을 후 내쉬며 저쪽 마루로 나갔다.      그는 대통에 담배를 쑤셔 넣고 부시를 쳐 불을 달아 물고 뻑뻑 빨았다. 그는 몰려 오는 비구름을 바라보며 세상의 풍운조화를 예측하기라도 하는듯이 손을 꼽았다 폈다 하면서 무슨 궁리를 하고 있었다.
403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4) 치마봉 전설 김장혁 댓글:  조회:902  추천:0  2024-01-11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장                 5. 치마봉 전설              높은 가을하늘에서 보름달이 구름을 뚫고 얼굴을 내밀고 나와 조약돌을 치고 박으며 흐르는 버치 꼴 개울물에 은파를 뿌렸다. 저기 치마봉 양지쪽에도 은빛이 희끄무레 깔려있었다. 호랑이의 울부짖음 소리가 먼 수림 속에서 들려왔다.     성칠은 은녀를 데리고 개울 물가를 걸었다.      “은녀, 우리 여기서 좀 쉬어 갈까?”      은녀는 별빛이 반짝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성칠을 쳐다보았다.     “오빠, 사냥을 갔다가 와서 곤하지는 않소?”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버들잎을 주르르 훑어 버렸다. 그는 적토마를 버드나무가지에 매놓고 은녀에게 물었다.     “일없다. 치마봉 전설을 들어 보겠니?”     은녀는 어린애처럼 환성을 올렸다.      “난 오빠 얘기를 듣기 좋아하오. 어서 얘기해주오.”      그리하여 그들은 돌돌돌 흐르는 개울물을 마주하여 버드나무아래 제방 둑에 나란히 앉았다.     성칠은 마른기침을 몇 번 하더니 제법 옛말을 할 잡도리였다. 은녀는 두 무릎 우에 턱을 고이고 손가락으로 모래에 줄을 족족 그으면서 하회를 기다렸다.     “저 치마봉을 봐라. 얼마나 치마폭 같이 생겼냐?”       그들은 한참이나 말없이 저 멀리 치마봉을 바라보았다. 치마봉은 정말 치마폭처럼 아래는 퍼지고 우는 짤룩하고 치마 주름처럼 내리 발로 바위돌이 들쑥날쑥 박혔다. 뭇별이 총총한 하늘에서 별찌가 치마봉 상공에 쭉 긴 꼬리를 늘이며 떨어져내려왔다. 숫처녀의 가슴에도 뜨거운 별찌가 찌르르 불티를 튕기었다.       은녀는 초롱초롱한 포도눈으로 치마봉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머리를 가볍게 끄덕였다.      “치마봉은 정말 치마폭처럼 아름답소.”      성칠은 담배쌈지를 꺼내 담배를 말기 시작했다. 은녀가 담배쌈지를 빼앗다 시피 채갔다.      “내 말아 줄게.”      은녀가 담배 대를 자기 입에 대고 침을 쪽 발라 종이를 말아 꼭 싼 후 성칠의 입에 쏙 밀어 넣어주었다. 성칠은 은녀의 침이 붙은 따뜻한 담배를 붙여 길게 빨아들였다. 특별히 담배 맛 있었다.      "고맙다."     “고맙긴? 난 오빠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될지 모르겠소.”     “에이, 그게 무슨 소리냐? 그래 오빠라는 게 여동생이 승냥이 입에 들어가는 걸 뻔히 보고만 있어서야 되니?”      은녀는 성칠의 팔을 두 손으로 꼭 껴안았다. 그때 버들방축에서 버스럭버스럭 소리가 들렸다.     “음. 저기 짐승이 온 모양이구나. 사냥총을 한방 놓을까?"     은녀는 황급히 말렸다.     “아니, 그러다가 누가 상하면 어쩔 라고 그러오?"     더욱 요란하게 버스럭버스럭 소리가 나더니 검둥이가 뛰어가자 그 인기척이 멀리 사라지고 조용해졌다. 이상한건 그쪽으로 뛰어간 검둥이가 한 번도 짓지 않고 꼬리를 흔들흔들 흔들면서 이쪽으로 뛰어온 것이다.      성칠은 십중팔구 누구라는 것을 짐작하고 바로 앉았다.      그는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았다가 후 내 뿜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은녀는 세운 한쪽무릎을 두 손으로 잡고 앉아 성칠의 옛말을 귀담아 들었다.       뒷산 수림 속에서는 뻐꾸기 "뻐꾹 뻐꾹" 애처롭게 우는 소리 귀청을 처량하게 간질렀다.       “멀고먼 옛날에 이 버치꼴에는 소를 모는 목동이 살았단다.”      목동은 어찌나 피리를 잘 부는지 그 구성진 피리소리를 듣고 새들마저 날아와서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그런데 목동은 나이가 들도록 이 심심산골에 시집오려는 처녀가 없어서 장가를 들지 못한 노총각으로 되었다.     어느 하루 목동은 소를 몰다가 너무 더워 이 개울물에 와서 목욕이나 하려고 버드나무를 헤치면서 다가왔다. 그런데 글쎄 그때 하늘에서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선녀가 둘이나 너울너울 춤추면서 내려왔다. 너무 황홀해 그 선녀들을 쳐다보는데 선녀들은 너무 더워서 주위를 대충 살펴보고서는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를 훌훌 벗어버리더니 개울물에 뛰어들어 목욕하기 시작했다.       처음 눈같이 하얀 선녀들의 몸을 훔쳐본 목동은 목구멍에서 쿵쿵 소리가 날 지경으로 심장이 높뛰었다. 선녀들은 옥같이 흰 살을 드러내놓고 두 손으로 물을 서로 끼얹으면서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때 목동이 모는 소 무리에서 늙은 암소 한마리가 나서더니 이렇게 귀띔했다.      “주인님, 저 선녀들 속에서 더 고운 선녀의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를 숨겨두면 주인님의 천생배필은 문제될게 없소이다.”      그 말에 어진 목동이었지만 장가들 생각으로 슬그머니 다가가서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를 훔쳐 산 둔덕의 숲속에 숨겨두었다.     하늘에서 벼락이 치는 듯 옥황상제의 심부름꾼이 선녀들을 궁전에 돌아오라는 령을 내렸다.     다른 선녀들은 저고리와 치마를 입자 하늘로 날아올랐건만 한 선녀는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가 없어져 하늘로 날아오를 수 없었다. 목동은 선녀를 보고 자기와 천년배필을 무을 것을 약속하면 치마를 내주겠다고 했다. 선녀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목동의 까만 얼굴을 바라보더니 마지못해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로부터 선녀는 저 버치 꼴에 삼을 심어 삼베로 베천을 짜고 버들을 베 광주리와 버치를 틀면서 목동과 함께 잘 살았다고 한다.      그들이 한창 깨알이 쏟아지게 살 때 선녀가 인간 세상에 숨어서 사는 것을 알고 옥황상제는 심부름꾼들에게 잡아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심부름꾼은 하늘에서 내려오자마자 선녀의 머리채를 잡아 쥐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목동이 아무리 소리치고 선녀가 아무리 발버둥 질 쳐도 소용없었다.      이때 늙은 암소가 목동을 보고 자기 등을 타고 풀썩 솟아오르라고 했다. 목동이 정말 그렇게 하였더니 몸이 하늘로 씽씽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거의 따라 잡으려고 할 때였다. 심부름꾼은 다시는 선녀를 날지 못하게 선녀의 연분홍치마를 벗겨 내리 던졌다. 그런데 뒤따라 날던 목동의 몸이 그 연분홍치마에 감기여 더 날지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때 땅에 떨어진 선녀의 연분홍치마가 굳어져 저 치마 봉으로 됐단다.”       성칠의 말에 은녀는 다가앉으면서 물었다.      “그럼 그 목동은 저 치마봉에 깔리어있단 말이오?”      “그래, 그러나 목동은 행복하게 눈을 감았지. 죽어서도 사랑하는 선녀의 치마폭에 싸여 묻혔으니 말이다.”     “호- 어쩜 저 치마봉에는 그런 눈물어린 전설도 있어요.”     개울물이 돌돌 흐르는 버치 꼴 개울물가에는 나그네와 처녀의 한숨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한참 납덩이같은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성칠은 은녀의 따뜻한 손을 더듬어 잡고 나서 조용히 말했다.      “은녀, 난 너를 고와한다.”      “어마나!”      은녀는 외마디소리를 가늘게 질렀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돌아앉았다.      “어째? 넌 나를 좋아하지 않지?”       성칠의 물음에 은녀는 손을 성칠에게 맡긴 채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녀는 홧홧 달아오르는 얼굴을 두 무릎 사이에 숨기면서 나직이 말했다.       "누가 좋아하지 않는다 했소? ”      성칠은 은녀의 허리를 끌어당겨 꼭 안고 은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달빛을 빌어 은녀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버드나무 그림자에 희미하게 가려진 은녀의 얼굴이 그렇게도 예쁠 줄은 몰랐다.      “넌 처녀이구 난 아내가 있는 나그네야. 그런데 나는 아들도 딸도 없을 놈이야. 우린 저 치마봉 전설의 목동과 선녀처럼 함께 살수 없는 게지?”      성칠의 애탄 목소리에 은녀에게서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나그네면 어떻고. 처녀면 어떻대? 아들딸만 많이 낳고 잘 살면 좀 좋아서.”      성칠은 화들짝 놀랐다.       “은녀야!”      성칠은 은녀를 꼭 껴안았다. 은녀의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그러나 성칠은 맥없이 팔을 풀었다.      은녀는 성칠의 품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어 성칠의 구레나룻수염이 짙은 성칠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오빠, 우리 둘이 좋아하는데 또 뭣이 두렵소?”      성칠은 몸을 돌려 바로 앉았다.     “안 된다, 안돼. 우리는 함께 살 수 없어. 내 큰아버지는 우리 영월 김 씨 집안과 너네 영월 엄 씨네는 통혼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은녀는  돌아앉아 어깨를 들먹이었다.     "왜? 우리 두 집안이 전생에 무슨 원쑤라도 맺았다오?"    애탄 건 성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치며 한탄했다.      "아니야. 우리 두 집안은 친형제하구 같단다. 그러나 통혼은 안된단다."     "왜?"     은녀는 종주먹으로 성칠의 가슴을 쾅쾅 치며 물었다.     "500년 전에 우리 집안 김려생할아버지하구 너네 조상 엄흥도 할아버지가 목숨걸고 리조 단종왕을 보호했지. 그 두분 충신할아버지들이 우리 두 집안은 친형제 같다면서 그때부터 서로 통혼하지 않기로 했단다."     "그때면 그때지. 500년 후에도 그 언약 따를 건 뭔가요?"     "우린 대대로 조상들의 언약을 무조건 지켰단다. 지금도 절대 못 고쳐."     성칠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면서 말없이 은빛달빛이 깔린 한 많은 치마봉을 바라보았다.     오- 사랑하면서도 사랑할 수 없는 고통, 그 고통이야 이루다 말할 수 있으랴?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고 밸이 끊어지는 것만 같을 것이였으리라.     달도 차마 눈 뜨고 보기 구슬펐던지 구름 속으로 외면했고 개울물이 구슬프게 돌돌돌 흐느끼면서 흐르고 있었다. 적토마는 배가 고팠던지 성칠과 은녀의 잔등에 대고 투루루 뜨거운 입김을 뿜었다. 검둥이도 뛰어와 끼깅거리면서 길을 재촉했다.     성칠은 흐느끼는 은녀를 데리고 버치꼴 막바지로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올라갔다. 그 발자욱마다 애잡짤한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그 피눈물로 그들의 어울리지 않은 사랑의 애탄 가슴을 잠시나마 식여줄 수 있을가?
402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13) 빚문서 김장혁 댓글:  조회:817  추천:0  2024-01-11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장                            4. 빚문서           어둠침침한 어둠이 해를 몰아내고 도고한 토성에 타리대를 치고 앉아 다리쉼을 하고 있었다. 저 멀리 공포가 깨난 수림 속에서 승냥이가 주린 배를 신음하면서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성칠은 적토마 잔등에 멧돼지를 싣고 한길수의 토성 안 집 대문 안에 들어섰다.       그때 한길수는 마루바닥에서 응삼과 마주 앉아 한창 뭐라고 쑤군거리면서 담배를 뻑뻑 빨고 있었다.       “아니, 어디서 난 적토마야?”       응삼의 말에 한길수는 기둥에 기대앉은 채 건 가래를 뗐다.       “에헴, 해 다 졌는데 웬 일인가?”      성칠은 곧추 마루 밑에까지 말을 몰고 다가섰다.      “빚을 갚자고 왔소.”      응삼은 씽 드르르 달려 내려와 말 잔등에 건 멧돼지고기를 말대가리를 기우뚱거리면서 여겨보았다.     그때 부엌에서 은녀가 문선을 잡고 성칠을 내다보고 반겨 맞았다.      “오빠!”      성칠의 곁으로 다가온 은녀는 화들짝 놀랐다.      “아니, 이 가슴의 피는? 어데 상하지는 않았소?”      성칠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한길수 쪽으로 몸을 돌리고 쇠덩이 굴리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멧돼지를 가지고 은녀를 내놓읍소."      "쳇!"     한길수는 담배대통을 마루에 탁 쳐 털어버리면서 벌떡 일어나 고함쳤다.     “무슨 소릴? 요까짓 멧돼지 고기 120원이나 가?”      성칠은 반문했다.     “한 250근은 되는데 안 된다니?”     응삼은 길쭉한 박대가리를 홰홰 내저었다.     “안 될 소릴 작작 하라구. 돼지고기 한 근에 50전씩이나 치겠다고? 흥!”     한길수는 발로 마루를 구르면서 꽥꽥 고함쳤다.     “걸 장마당에 가져다 팔아 은전을 가져 오게나! 120원에서 한 푼이라도 골아봐라! 은녀를 문밖으로 한 발자국이나 데려 내가겠구나! 흥!”     응삼은 옆에서 붓는 불에 키질을 했다.     “주인어른님, 소 한 마리에 30원 밖에 하지 않는데 멧돼지 한마리에 20원에서 더 하겠습둥? 우릴 바보 취급한다니까!”     “그래, 그래. 요까짓 걸로 어림도 없어. 우릴 뭘로 보는 거냐?”     한길수는 돌아서서 잔등을 보이더니 또 대통에 담배를 담아 꿍꿍 다졌다.     성칠은 품속에서 뭔가 꺼내보였다.     “자, 이건 백두산에서 자란 곰의 열이오. 이 열을 잡수면 허리 병이고 내장 병이고 다 떨어지구마.”    한길수는 귀가 솔깃해 몸을 홱 돌렸다. 그는 점점 성칠이 쥔 웅담쪽으로 낯을 가까이 하면서 눈이 사발만해졌다.    “이걸 잡수면 또 그 아래게 힘을 쓰오.”    “그래?”    한길수는 제꺽 성칠의 손에서 웅담을 뺏다시피 채갔다.     “그럼 이걸 두고 은녀를 데려가게.”    성칠은 한 발자국 다가섰다.    "문서를 내다 줍소."     그때 응삼이 나서면서 새된 소리를 쳤다.     “가만! 그까지 웅담이 백 원이나 된단 말인가? 고까짓 걸로 누굴 속이려고? 저 함박꽃 같은 은녀를 데려가? 안 될 소릴! 흥.”     월선도 위방 문선을 잡고 내다보다가 혼자말로 욕지거리를 했다.      "잘 하긴 잘 해. 저 쌍놈 영감태기 웅담을 먹고 동네 간나새끼들 엉덩이를 들쑤시려고? 은녀를 내보내면 누굴 부려먹어? 흥!"     나그네 귀 석자라고 한길수는 응삼과 월선의 푸념질에 웅담을 쳐들고 은녀와 번갈아보았다. 그러나 이윽고 우멍한 눈에 이상한 눈빛이 번쩍였다.     “저깟 계집년이야 없으면 말라지. 건강장수야 말로 돈을 주고도 못 바꾸는 게야. 이걸 먹고 오래 살면 다야.”     응삼은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야단쳤다.    “주인어른, 어쩌면 만 가지 일을 다 냉정하게 처리하다가도 이 일은 저 놈의 말을 딱 곧이듣고 이럽니까? 진짜 웅담인지 속아 넘어가지 맙소.”     그러자 한길수는 웅담을 쭉 감빨아보았다. 당장 상을 찡그렸다.      “아, 쓰다. 진짜 웅담이야.”     응삼은 어이없다는 듯이 뱁새눈을 한일자로 감아버리면서 길쭉한 상판을 가로저었다.     “이이고, 주인영감도. 정신 나갔나.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네.”     찰싹!    어느 결에 한길수가 그의 귀 쌈을 얼얼하게 갈겼다.    “어디서 개 주둥아리 질이냐?”      응삼이 한대 맞고 뱁새눈을 떴을 때에는 노기등등한 한길수가 눈깔을 부라리면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이윽고 한길수는 웅담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가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뒤로 홱 저으면서 고함쳤다.      “개자식, 누가 정신 나갔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얼빠진 놈이라고. 어서 빚 문서를 내다주고 멧돼지고기나 부엌에 들여가!”     월선은 별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홰홰 저면서 살진 엉덩이를 흔들거리며 영감을 따라 집안에 들어갔다. 응삼은 얼얼해나는 볼을 매만지면서 옆채에 들어갔다.     성칠은 멧돼지고기를 부엌에 메 들여 다주고 은녀의 손목을 잡고 나왔다. 은녀는 성칠의 옆구리에 바싹 다가가 붙었다. 평소에 그렇게 으르렁거리면서 우쭐하던 응삼은 한풀 꺾인 채 빚 문서를 꺼내다 성칠에게 건네주었다. 성칠은 빚 문서를 갈기갈기 찢어 활 팽개치고 은녀를 데리고 적토마를 끌고 대문 밖을 나섰다.     등 뒤에서는 응삼의  개 짖는듯 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짜 웅담을 먹고 우리 주인 영감 그게 맥을 쓰지 못하는 날엔 가만 놔두는가 봐라. 흥! 제길 할, 재수 없을러니 별 일을 다 본다. 쳇!”     그 욕지거리에 대꾸하는 듯이 검둥이가 돌아서서 “왕, 왕, 왕!” 무섭게 짖어댔다.
401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2) 호랑이와의 박투 김장혁 댓글:  조회:901  추천:0  2024-01-11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장                 3. 호랑이와의 박투             이튿날 창렬은 성칠이 준 곰의 열을 내놓으면서 명순에게 분부했다.       “여보, 이제 늙은 게 더 살아 뭘 하겠소. 이걸 팔아서 빚을 갚고 은녀를 데려 내오오.”       때마침 성칠이가 문안하려고 집안에 들어서다가 창렬이 하는 말을 들었다.       “은녀 아버지, 곰의 열은 얻기 힘든 귀중한 약잽구마. 곰의 열을 잡숫고 페병을 치료합소. 내 오늘부터 사냥해서 그 빚을 꼭 갚아드리겠습니다. 그 곰의 열은 꼭 잡수시오.”      창렬은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꼬장꼬장 마른 곰의 열을 들고 쳐다보였다.      “이걸 먹기보다 이걸로 은녀를 데려 내오면 얼마나 좋겠소. 쿨룩, 자네가 황소 네 마리 값에 맞먹는 쿨룩, 쿨룩 빚을 어떻게 갚는다고 그러오?”       그러나 성칠은 억대우 같은 몸을 일으키면서 고집썼다.       “은녀 아버지, 곰의 열을 달여 잡숫고 몸조리를 잘 하시오.”     성칠은 밖에 나가 적토마에 훌쩍 뛰어올랐다.     은희는 바깥에 나와 바랬다.    “오빠, 잘 다녀오세요.”       “응, 잘 있어라.”     성칠은 은희와 상호를 돌아보며 명순에게 다시 인사하고 말을 달려 산으로 올라갔다.     명순은 은희와 함께 낫과 새끼를 들고 버치 골 쪽으로 내려갔다. 동네 집 성칠이가 사냥해서 자기 집 빚을 무는 것을 눈을 펀히 뜨고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버들을 베다가 버치라도 틀어 팔아서 보태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마가을이었건만 참나무가지는 봄기운을 잃지 않은 듯이 물빛이 어려 있었다. 줄기에만 버드나무 잎이 몇 개씩 매달려있는 앙상한      버드나무가지들이 한길수에게 은녀까지 빼앗기면서 당하고 있는 명순 일가의 처지와 같아 가엽게만 생각됐다.    그들은 물기가 파란 버드나무가지들을 한 줌 한 줌 베여 땅바닥에 모아놓았다.    한참 낫질을 하다가 명순은 허리를 펴고 팔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이런 생각을 다했다.     “호- 성칠에게도 아들이나 하나 생겼으면 얼마나 좋겠니? 하옥은 어쩜 애도 하나 못 낳아?”      그녀는 너무 싱거운 걱정을 하는 것 같아 도리머리를 흔들더니 다시 허리를 굽히고 낫질을 하여댔다.     한편 사냥을 나선 성칠은 노루와 꽃사슴을 보고도 범이나 곰을 놀랠 까봐 총을 놓지 않았다.     그는 곧추 령을 몇 개 넘어 한 달전에 암 콤을 잡은 그 낭떠러지 위로 말을 타고 올라갔다.     한참 달리다가 그는 나무에 말고삐를 슬쩍 매놓은 후 바위 위에 앉아 한식경이나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곰이 얼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검둥이가 귀를 곤두세우더니 벌떡 일어나 사위를 쳐다보면서 끼깅거렸다. 뒤이어 노린내가 코를 찔렀다. 성칠은 서늘한 가을바람에 실려 오는 노린내를 맡자 호랑이가 부근에 왔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인차 총에 장탄한 후 바위 옆의 큰 나무 우에 올라가 주위를 신경을 도사려 살폈다.     “따 웅!”     얼룩호랑이 낭떠러지 아래로 성큼 뛰어 내렸다. 분명 주린 호랑이가 사람 냄새를 맡고 달려왔다.     검둥이가 낭떠러지 아래에서 왕왕 짖으면서 호랑이의 시선을 자기 쪽으로 유인해갔다.     호랑이도 그리 쉽게 얼리지 않았다. 호랑이는 검둥이를 덮쳐드는 척 쫓아버리고는 곧추 성칠이 바라 올라간 나무 밑에 어슬렁어슬렁 기어오더니 사발 눈으로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호랑이는 나무 우에 걸터앉아 총을 겨냥하고 자기를 노려보는 성칠을 발견하자 “따 웅— ” 하고 울부짖었다.     땅!     성칠은 선제공격했다. 철알에 빗맞은 호랑이는 성난 사자마냥 픽 돌아섰다. 사발 눈에서 불이 이글거렸다. 호랑이는 저쪽으로 달아갔다가 다시 이쪽으로 덮쳐왔다. 그 놈은 아가리를 쩍 벌리고 나무에 올라탄 성칠의 발밑에까지 뛰어올랐다. 그러나 성칠의 발밑을 스치면서 바위 저쪽에 풍덩 뛰어넘어갔다. 이렇게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뛰어 풍덩 떨어지고 저쪽에서 이쪽으로 날뛰어 풍덩 떨어지군 했다. 세 번 덮쳐 아가리로 물지 못하자 날아지나가면서 쇠꼬리 같은 꼬리를 휘둘러 성칠을 땅 쳤다. 다행이 꼬리가 먼저 나무줄기에 맞은 후 성칠의 얼굴을 때렸다. 성칠은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대번에 눈앞에서 번개치는 듯 하더니 코앞에서 따뜻한 무엇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호랑이는 저쪽 낭떠러지아래까지 달아나서 사발 눈을 슴벅이면서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성칠은 사냥총을 겨냥했다.       땅!     호랑이는 또 빗맞고 꼬리 빳빳해 달아났다. 호랑이가 날린 꼬리에 맞아 성칠은 눈에 별찌가 일어나 제대로 조준하지 못했던 것이다.     성칠은 팔소매로 뻘건 코피를 닦으면서 두덜거렸다.     “참 재수 없군. 끝내 놓쳐버렸군.”     그는 나무에서 주르르 미끄러지어 내리었다. 검둥이가 달려와서 꼬리를 휘청거리면서 문안이라도 하는 듯이 피 묻은 코앞을 핥았다.     “검둥아, 일없다. 어서 이곳을 떠나가자.”     성칠은 말고삐를 풀고 말 잔등에 올라 검둥이와 함께 아름드리나무속을 살피면서 수림 속을 빠져나왔다. 가을하늘도 높아진 듯이 명랑해졌다. 저 건너 쪽에 나무가 없는 곳에 감자밭이 보였다.     “옳지, 놀란 호랑이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 바에는 해 지기 전에 멧돼지라도 잡아가야지. 전번에 덫을 놓은 게 걸렸는가도 가보자.”     그는 말에서 내려 검둥이 뒤통수를 다독이고 나서 감자밭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먼발치에서 볼라니 덫에 거먼 무엇이 걸린 것 같았다.     “그럼 그렇겠지. 아무튼 빈손으로야 돌아갈 수 없지.”     성칠이가 다가가 보니 검둥이만한 중멧돼지 한마리가 덫에 걸려있었다. 성칠이가 그 놈을 덫에서 풀어내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사각사각 감자를 갉아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크!”     성칠은 저쪽에서 삐죽한 주둥이로 땅을 뒤지면서 감자를 파먹는 송아지만큼 한 암 멧돼지를 보고 황급히 감자밭에서 허리를 구부정하고 적송나무밭 쪽으로 뛰어갔다.     멧돼지도 이쪽 인기척을 느끼자 감자를 파먹다 말고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이쪽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이상하게도 멧돼지의 잔등에 애솔나무가 자라나있었다. 분명 멧돼지는 사냥꾼들의 총알이 싫어서 소나무밭에 가서 송진에 대고 몸뚱이를 비비다가 모래밭에 가서 딜딜 굴렀던 것이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면 멧돼지의 온몸은 송진과 모래알이 들어붙어 철갑을 두른듯하게 됐다. 그 놈 멧돼지는 솔 씨가 송진과 함께 잔등에 들어가 박혀 애솔나무가 자랐던 것이다.     성칠은 멧돼지가 자기를 완전히 발견하지 못하고 다시 감자를 파먹는 틈을 타서 뒤로 살금살금 달려갔다.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멧돼지 배때기에서 파란 불티가 일었다. 그러나 모래 철갑 때문에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총소리에 놀란 멧돼지는 몸뚱이를 홱 돌렸다. 화약 냄새를 맡은 그 놈은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고 성칠에게 덮쳐왔다. 성칠은 미처 장탄을 할 새 없어 총을 버리고 장딴지에 찬 비수를 쑥 뽑아들었다. 멧돼지가 곧게 덮쳐들자 성칠은 옆으로 살짝 피했다가 비수로 멧돼지 배때기를 푹 찍었다. 철갑 같은 모래철갑을 꿰뚫고 멧돼지 배때기에 비수가 박혔다. 그러나 비수를 되빼기 전에 멧돼지는 홱 돌아서 재차 공격하여왔다. 이때 검둥이가 멧돼지 뒤 다리를 물어뜯고 적토마가 뒤 발질로 멧돼지를 차댔다. 그 틈을 타 성칠은 재차 습격해오는 멧돼지를 피했다. 그는 인차 사냥총을 집어 들고 나무 밭으로 달아났다. 그는 적송나무를 안고 빙빙 돌면서 장탄했다. 멧돼지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송곳니를 드러내고 덮쳐드는 찰나였다.     땅!     성칠은 멧돼지의 아가리 안에 사냥총을 넣을 지경으로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멧돼지가 송곳니로 깨무는 바람에 총대는 부러지고 멧돼지는 맥없이 성칠의 앞에 털썩 쓰러졌다. 성칠도 멧돼지 앞에 맥없이 쓰러졌다. 검둥이는 멧돼지가 숨을 쉬는 것을 보고 목을 깨물어 완전히 숨통을 끊어놓았다.      한참 후 성칠은 멧돼지 배에 꼽힌 비수를 뽑아 배를 가르고 염통과 간, 폐를 꺼내 검둥이에게 줘 먹이고 몸뚱이를 반쪽씩 갈라 말 잔등 양쪽에 척 걸었다.      그가 말고삐를 잡고 감자밭을 떠나려고 할 때다.      “그 놈 멧돼지들이 감자밭을 도륙냈구나.”     백발이 성성한 한 영감이 호미를 쥐고 거의 절단 난 감자밭을 돌아보며 하는 말이다.     성칠이 머리를 돌려보니 백발영감 뒤에 젊은이 대여섯이 호미와 괭이를 쥐고 걸어오고 있었다.     “감자밭을 밟아 못쓰게 만들어 미안합구마.”     작달막한 영감은 말에 처맨 멧돼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오. 멧돼지들을 잡아서 감사하오."     성칠은 중멧돼지를 말 잔등에서 내리워 놓았다.     “이 멧돼지들은 이 감자밭을 파먹고 자란 멧돼지입니다. 가져갑소.”     그러나 영감은 받지 않았다.     “피를 흘리면서 잡은 멧돼지를 가지고 가오.”     성칠은 “원래 다 드려야 하겠지만요. 남에게 진 빚이 있어 이 작은 멧돼지만 드립니다. 꼭 받아주시오.”라고 했다.     “보아하니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성칠은 한길수네 빚 대신 부엌 여로 들어간 은녀를 빼내오려고 사냥하게 된 경과를 죽 이야기했다.     백발영감이 한숨을 후- 내쉬면서 멧돼지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성칠이 억지로 밀어주었다.      백발영감은 마지못해 멧돼지고기 반쪽을 받으면서 물었다.     “젊은이, 고향이 어딘가?”     “이 산 너머 영월동입니다.”     “오, 그렇구먼.”    백발영감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인사했다.    “난 운주동 최구장이오. 얘들은 다 내 아들들이요.”    성칠은 말고삐를 놓고 넙적 엎드려 절을 올렸다.    “아니, 젊은이, 이게 웬 일이가?”     최구장이 바삐 성칠을 붙잡아 일으켰다.    성칠은 일어나며 “혹시 최구철이라고 압니까?”    최구장과 아들들이 놀라운 기색을 띠었다.     “그래. 내 동생이지. 어데서 본적이 있소?”     성칠은 최구장의 두 손을 잡았다.    “이전에 구철 삼촌의 신세를 많이 졌습구마.”    그는 백두산에 갔을 때 있은 일을 죽 이야기했다.    최구장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정말 넓고도 좁은 게 세상인가 보오. 일본 놈들에게 쫓긴 동생이 백두산까지 들어가 숨은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소. 내게 연루될 까봐 찾아오지 않은 모양이요.”     최구장은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북녘하늘을 바라보면서 눈시울에 맑은 눈물이 글썽해졌다.     성칠은 최구장과 갈라지면서 인사했다.     “삼촌으로 모시겠습니다. 후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최구장은 성칠의 두 손을 잡고 반가와 했다.     "후에 다시 구철을 보면 놀러 오라고 전해주오."     "예."     성칠은 최구장 일행과 갈라져 말고삐를 잡고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최구장의 맏아들 경숙은 메 부리 코를 쓱 문지르면서 “그 형님이 인심도 후하오. 멧돼지고기 반쪽이나 주다니.”라고 했다.     둘째아들 경인이 맞장구를 쳤다.     “함경북도 사람들이 원래 인심은 후한 거야.”     한편 성칠은 검둥이와 적토마를 이끌고 하늘이 올려다 보이지 않는 수림 속을 걷고 걸어 어느덧 샘물터에까지 왔다.     그제 날에는 이 샘물터에서 은녀가 떠주는 시원한 샘물을 마시면서 갈증을 풀었는데 오늘 샘물에는 낙엽이 둥둥 떠 있을뿐이었다.      은녀가 없는 텅 빈 우물을 내려다보노라니 성칠은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했다.     검둥이는 은녀의 체취를 맡아 보려는 듯이 킹킹거리면서 은녀가 앉아 샘물을 퍼주던 샘물터의 납작한 바위돌이며 흐르는 샘물가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 보는 것이었다.     성칠은 말고삐를 쥐고 샘물가에 와서 적토마에게 먼저 시원한 샘물을 실컷 들이켜게 한 후 자기도 두 손으로 샘물을 퍼서 둬 모금 들이켰다.     그는 손으로 입술을 쓱 닦으면서 저 아래쪽의 한길수의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내려다보노라니 이가 갈렸다.     그는 적토마와 검둥이를 끌고 곧추 엄창렬의 집으로 향했다.     그때 마루에서 명순이 치마폭으로 무릎을 덮고 창렬과 마주 앉아 버치를 틀고 있었다.     서산 버치골 쪽을 바라보니 가을비가 구질구질 내리기 시작했다.     “여보, 성칠이 우리 은녀를 좋아하는 거 같소.”     “그럼 어떻소?”     “우리 은녀를 내오면 성칠의 작은댁으로 들여보내면 어떻소?”     창렬의 말에 명순은 덴겁해서 도리머리질 했다.     “우리 아무리 못 살아도 본댁이 새파래 살아있는데 첩으로야 못 주지요. 법이 없이도 살 병완 영감도 차마 우리 은녀를 아들의 첩으로 삼자고는 하지 않을 거예요.”    창렬은 고집했다.    “쳇, 모르는 소리. 지금 맏며느리 하옥이가 십여년이 넘도록 애를 낳지 못해 속이 타 죽는데 작은며느리를 두지 않고 되겠소. 은녀를 지킬 사람은 성칠 밖에 없소.”    명순은 영감을 외까풀 눈을 곱게 흘기면서 입귀를 비쭉했다.    “당신네 영월 엄씨와 영월 김 씨는 옛날부터 통혼하지 않는 한 집안 같은 사람들이라면서?”    그 말에 창렬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가 버치 골짜기 쪽으로 해 치마 봉을 올려다보니 벌써 치마봉 위의 구름송이에 불이 달린 듯이 저녁노을이 곱게 피고 있었다.     “성칠은 언제 오겠냐? 후- 쿨루쿨룩.”     그때였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성칠이 적토마 고삐를 잡고 마당에 들어섰다.     창렬의 내외간은 동시에 환성을 질렀다.    명순이 먼저 버들가지를 놓고 치마폭을 한손으로 걷어쥐고 마루에서 황급히 내려왔다. 창렬은 그제야 버들가지를 쥔 채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마당에 내려섰다.     “잘 있었습둥?”     창렬은 가냘픈 가슴에 성칠을 안고 떡판 같은 잔등을 어루만지였다.     “그래, 그래. 고생이 많았겠구먼. 이 가슴에 묻은 피는 웬 일인가?”     “호랑이를 잡지도 못하고 꼬리에 빗맞아 코피를 흘린 것이니 일없습니다.”     “에이, 안전에 주의하게나.”     “예.”     성칠이 말 잔등에서 멧돼지고기를 부리는데 옆에서 구경만 하면서 힘을 보태주지 못하는 창렬은 안타깝기만 했다.     갑자기 그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던 모양이였다.      “가만, 성칠이. 여기다 멧돼지고기를 부리지 말고 아예 실은 채로 한 영감네 집으로 가져가고 은녀를 데려 내오게나.”     성칠은 도리가 있는 듯 해 부리던 멧돼지고기에서 손을 뗐다. 한참 궁리하다가 그는 중 멧돼지고기 반쪽을 부리어 부엌에 들여갔다.     “이건 잡수시오. 한영감이 멧돼지 한마리만 받고 은녀를 내놓겠습니까?”     그러나 창렬은 숨이 차 헐헐거리면서 고집을 거두지 않았다.     “아니어. 쿨룩쿨룩, 저 전번에 나를 준 곰의 열까지 다 가지고 가서 통사정해보게나. 난 곰의 열을 먹기보다 은녀를 데려 내왔으면 심병이 뚝 떨어질 것 같네. 금이야, 옥이야 하던 딸을 빼앗기니 가슴이 답답해 죽겠네.”      성칠은 생각을 고쳤다.     “곰의 열만은 그만 둡소. 한영감이 내놓지 않으면 내 이제 사냥을 더 해서 한 달 안에는 은녀를 꼭 데려 내오겠습니다.    명순도 부엌에 들어가 함지에 물을 퍼들고 나왔다.    “성칠이, 은녀 아버지 말을 듣소. 은녀만 데려 내오면 저영감의 병이 나을게요. 곰의 열을 가지고 가게나.”    성칠은 함지 물에 손의 피를 썩썩 씻으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성칠이 한 영감의 집으로 떠난 후 명순은 멧돼지고기를 베여 함지에 담아 이고 개울 건너 병완이네 집으로 떠나갔다.
400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11) 부억녀 댓글:  조회:880  추천:0  2024-01-11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장                                                       2. 부엌녀                  가을바람이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의 하현달을 스쳤다. 처량한 달빛이 영월동을 희끄무레 비추었다. 창렬의 집 지붕이 달빛에 앙상하게 드러났다.       집 문이 열리면서 은녀가 나왔다.       집 안에서 쿨룩쿨룩 기침소리와 함께 “은녀야, 이 달밤에 어디로 가냐? 그 집에는 못 간다.”라고 하는 창렬의 목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뒤이어 창렬의 처 명순이 뒤따라 나오면서 은녀의 손목을 잡았다.      “어디로 가는 거냐? 한씨 댁에 못 들어간다. 어서 집에 들어가자.”      어머니가 손목을 잡아 마구 끌었다.      은녀는 어머니의 손을 마구 뿌리쳤다.      “엄마, 내가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 집 기둥을 빼주겠습니까?”      명순도 더는 말릴 힘이 없어 못이 박힌 듯 우두커니 서서 은녀가 개울가로 내려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명순은 두 볼로 흐르는 눈물을 삼키면서 개울가에까지 따라 나왔다.      “얘야, 아무튼 몸을 주의해라. 그 색마 같은 한길수를 주의해라.”      “나도 다 컸으니 근심하지 맙소.”      은녀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저고리 동전을 들어 닦으면서 개울물을 따라 허둥지둥 걸어 내려갔다.      달빛을 싣고 졸졸 흐르는 개울물, 은녀는 그 개울물에 놓인 징검다리를 보자 둔덕 저쪽에 있는 칠성 오빠네 집 쪽에 눈길을 보냈다.          성칠 오빠 집의 등잔불빛이 눈물이 고인 은녀의 눈에 희미하게 알른거리면서 뜨였다.      은녀는 한숨을 호- 내쉬면서 맥없이 개울가에 쪼그리고 앉았다.     은녀의 귀전에는 성칠 오빠가 말고삐를 잡으면서 자기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알려라.”라고 하던 말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왔다.     (어쩐담? 믿을만한 사람은 성칠 오빠 밖에 없다. 알릴까?)     은녀는 엉거주춤 일어서다가 되 물앉았다.     “안돼. 내가 들어가서 고생할지언정 성칠 오빠까지 부담시킬 수는 없지.”     왕 왕 왕!     성칠네 집 쪽에서 검둥이가 짖어댔다.      은녀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들어 피뜩 성칠네 집 쪽을 바라보았다. 등불 빛에 키가 후리후리한 검은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그 그림자는 마당에서 장작개비를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오빠, 난 어쩌면 좋아? 흑흑흑,”      은녀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흐느껴 울다 말고 양태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럴 수는 없어. 이 몸이 더 고달프면 고달팠지.”      은녀는 독한 마음을 먹고 개울 아래쪽으로 걸어갔다.      이때 갑자기 버스럭 소리가 개울가에서 들려왔다. 은녀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몸을 옹송그리고 소리나는 쪽을 살폈다.      킹!      버드나무숲 속에서 버스럭 버스럭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검둥이가 뛰어나왔다.      “검둥이야, 네가 웬 일이냐?”       검둥이는 뛰어와서 은녀의 치마 밑으로 발등과 장딴지를 핥을 상을 했다. 따뜻한 코김이 발등을 간지럽혔다.      은녀는 쪼그리고 앉아 검둥이의 뒤통수를 매만지다가 다독여주었다. 검둥이는 은녀의 품에 안기면서 끼깅거렸다. 검둥이는 성칠을 따라다니면서 자기 주인과 은녀의 각별히 친한 사이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검둥이도 마치 은녀의 가련한 처지를 불쌍해하는 것 같았다.      이때 징검다리 쪽에서 인기척소리가 났다.     은녀가 검둥이 잔등을 쓸어주다가 머리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니 달빛아래 후리후리한 사나이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담배불빛이 희끄무레 밝아지더니 성칠의 덩실한 코 마루와 입이 보였다.      “오빠, 으흐흑.”      은녀가 뛰어가서 성칠의 품 안에 안기면서 어깨를 들먹였다. 쓸쓸한 하현달빛을 빌어 은녀의 눈에서 줄줄 흐르는 눈물을 볼수 있었다.     “은녀, 웬 일이냐?”     성칠은 은녀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는 검둥이가 개울 쪽에 대고 왕 왕 왕 짖어대자 사냥꾼의 민감한 감각으로 개울가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상해 검둥이를 따라 집에서 내려왔던 것이다.     “은녀야, 어서 말해라. 너 무슨 일이 있구나.”      은녀는 어깨를 들먹이면서 성칠의 품에서 스르르 나왔다. 처량한 하현달빛에 그녀의 눈에 고인 눈물이 쓸쓸하게 반짝였다.      이윽고 은녀는 목안으로 들어가는 소리로 말하였다.      “한영감이 나를 부엌여로 들여갈 예산이오.”      성칠은 은녀의 두 팔에서 손을 떼면서 한길수가네 집 쪽에 침을 퉤 뱉었다.      “그 놈 새끼! 언감 네한테 손을 댄단 말이냐? 들어가지 말라. 그 놈이 감히 어쩌는가 두고 보자.”      성칠은 열이 올라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안 되오. 내가 가지 않으면 길수 놈이 빚 대신 우리 집 기둥을 뽑아가겠다고 했소.”     “쳇, 그러기만 해보지. 가만 놔두지 않겠다. 가자, 집으로 돌아가자.”      성칠은 은녀의 손목을 잡고 마구 집 쪽으로 끌다시피 했다.      은녀는 끌려가면서 통사정했다.      “이러지 마오. 내 이 밤에 가지 않으면 그 번들 이마가 내일 개다리들을 끌고 와서 집을 허물어갈게요.”     그러건 말건 성칠은 은녀를 다짜고짜 끌고 은녀네 집 쪽으로 향했다.     “일없다. 내 방법을 댈게. 너를 그 쌍놈 영감태기네 집에 들여보낼 순 없다.”     “빚을 졌으니 무슨 용빼는 수 있소?”     그 말에 성칠이도 은희를 마구 끌고 가다가 손을 스르르 놓았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담배쌈지를 꺼내 담배를 말아 부시를 쳐서 불을 붙여 물면서 개울가 모래바닥에 물앉았다.      개울물이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면서 파란 가을 하늘과 달빛을 싣고 졸졸 흐르고 있었다.      은녀도 성칠의 옆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은녀는 조약돌을 쥐여 애꿎은 모래바닥에 줄을 쪽쪽 그었다.     이윽고 성칠의 입에서 콘크리트바닥에 쇠공을 굴리는 듯 목소리가 울렸다.     “은녀야, 한영감의 빚을 물어주면 그만이야. 너는 저 개울가의 버들을 베서 버치를 틀고 나는 사냥을 해서 그 놈의 빚을 말끔히 물어  주고 네 아버지 폐병도 치료해주자.”    “오빠, 오빠의 마음은 고맙소만 형님과 오빠네 일가에 미안하오.”     “그런 소리를 하면 못써.”     하현달이 치마봉을 희미하게 비추었다. 남쪽산등성이는 희끄무레 하고 산 음달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누워있었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 그들의 뺨을 시원히 적셔주었다. 어디에서인가 짝을 잃은 외기러기가 구슬프게 끼룩끼룩 울고 있었다.     이튿날,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오자 성칠은 동생 창준과 기준을 데리고 창렬의 집으로 갔다.     성칠은 집안에 들어서자 벽에 기대여 겨우 앉아있는 창렬이를 보고 말하였다.     “은녀 아버지 근심하지 맙소.”      창렬은 그저 기침을 쿨룩쿨룩 했다.     성칠이 바닥에 서서 구들에 올라가지도 않고 뒤 말을 이었다.     “내가 사냥을 해서라도 한 씨 댁의 빚을 물어줄 테니 아예 근심하지 마시오.”     “고맙네. 쿨룩쿨룩. 자네 신세를 쿨룩, 너무 져서. 쿨쿨, 쿨룩쿨룩. 아,”     창렬은 일어서려고 하였다.     “천만의 말씀, 이웃사촌이라고 서로 도우면서 살아얍지.”     성칠은 성큼 구들에 올라가서 일어서려는 창렬을 만류하며 도로 앉혔다. 조왕간 쪽으로 하여 앉은 은녀 어머니와 은녀 그리고 은희까지 맑은 웃음을 지었다.     창준과 기준은 형을 따라 밖에 나와 지붕에 올라갔다. 흩날리고 남은 이영을 고루고루 펴놓고 그 우에 새 단을 올려 이영을 잇기 시작하였다. 이때 은녀와 창준의 맏아들 상훈과 둘째아들 상길마저 달려와 새 단을 걸이 대에 걸어 지붕에 올렸다. 상호는 마당에 널린 새를 비로 쓸어 모았다. 기준의 맏아들 상우도 와서 마당에서 새로 새끼를 꼬았다. 여럿이 반나절을 역사 질 한 끝에 새 이영으로 탈바꿈했다.       명순과 은희, 은녀는 집안 부엌에서 점심차비에 바삐 돌아쳤다. 은녀는 성칠 오빠가 준 장 꿩 깃털을 한대 뽑아 사랑방 천정에 꽂아놓았다. 명순은 그 장 꿩을 뜨거운 물에 튀를 해 곰의 고기와 함께 칼 모태에 놓고 돔박돔박 칼로 썰어 큰 가마에 얹었다.       은녀가 부엌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불을 지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마에서 쌕김이 쌕 소리와 함께 뿜겨 나왔다.      창렬은 지팡이를 짚고 마당에 서서 기침을 쿨룩쿨룩 하면서 지붕우의 성칠 네를 쳐다보았다.      “수고들 했네. 사닥다리를 주의해 내려들 오게나.”     성칠 네가 금방 사닥다리에서 마당에 내려서기 바쁘게 한길수가 응삼과 수길 등 하인들을 데리고 마당에 쓸어들었다.     “에헴, 하긴 잘하는구먼. 은녀는 들여보내지 않고.”     번들이마에 중절모자를 삐뚤게 쓰고 거들먹거리는 길수를 보고 기준의 얼굴에서는 언짢은 기색이 유표하게 흘렀다.     은녀는 벌써 겁을 집어먹고 명순의 뒤에 숨어 두 손을 가슴 위에 맞잡고 서 있었다.     성칠은 아주 너그럽게 한 씨 댁의 앞에 다가갔다.     “한영감, 여기는 뭘 하러 행차했소?”    한길수는 말이발을 앙다물고 투덜거렸다.    “자네 삐칠 일이 아니네. 병 치료에 남의 돈을 잘 썼으면 갚을 줄도 알아야지. 양심이 있는가? 이젠 석삼년이 되도록 본전도 한 잎 갚지 않았단 말이오.”     그때 실 돌피 같은 응삼이 우쭐해서 은녀 쪽으로 다가갔다.      “은녀야, 어서 우릴 따라 가자. 괜히 집 기둥이 뽑히겠다.”     그때 옆에 서있던 기준이가 어깨로 응삼을 콱 밀쳤다.     “누가 감히 이 집 기둥을 뽑아간다던가?”     “내다!”     한길수는 호랑이처럼 고함치며 발길로 짚 기둥을 탁 찼다. 그 바람에 천정에서 흙 부스러기가 우수수 흩날려 떨어졌다. 주먹으로 벽을 꽝 치자 주먹만큼 벽이 우멍하게 패여 들어갔다.     “어느 놈이 빚을 갚지 않고 내 앞에서 큰소릴 친단 말인가! 엉?!”    기준이 한발 앞으로 나서는 것을 성칠이 막으면서 웃는 얼굴로 나서며 비아냥거렸다.     “한 씨 주먹이라면 이 명천 바닥에서 누가 모르겠소? 손가락을 빼  빚을 갚겠소?”    한길수는 목을 옆으로 삐뚤면서 귀를 기울였다.     “무슨 말인가?”     성칠은 한영감에게 다가서 나직이 말했다.      “한 달만 말미를 줍소. 내 사냥해서 대신 갚아주지.”      “또 기다려? 안 돼! 오늘 은녀를 데려가야겠네!”     한길수가 으르렁거리는데 응삼이 옆에서 길쭉한 박대가리를 가로저으면서 풍을 쳐댔다.    “그렇지요. 오늘 안으로 저 은녀를 데려가야 하겠네. 데려가구 말구. 흥!”    응삼은 창렬 쪽으로 박대가리를 돌리더니 뱁새눈을 부라리었다.     “나으리 벼락 같은 성미를 모르는가? 날래 은녀를 보내라구.”    그때 기준이 썩 나서면서 들이 댔다.    “한영감, 대체 빚을 얼마나 졌다고 은녀가 들어가야 합둥?”    한령감은 개화장으로 땅바닥을 콕 찌르면서 고함쳤다.    “빚을 진지 석삼년이 되니 이자에 이자까지 120원이네. 30원이면 소 한마리야. 아니, 자네들은 뭔가? 더운밥을 먹고 괜히 식은 걱정하다가 다치지 말게.”    길수는 머리를 돌리더니 고함쳤다.    “얘들아, 뭣들 해? 어서 저 은녀를 데리구 가자.”     하인들이 우르르 쓸어가서 은녀의 양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러자 기준이 힘줄이 꿈틀거리는 팔을 휘둘러 하인의 귀쌈을 짝 갈기면서 땅방울같이 고함쳤다.     “썩 피키지 못할까? 백주에 감히 남의 양가집 고운 딸을 빼앗아간단 말인가! 엉?”     한영감은 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는 자기나 뺨을 맞은 모욕감이 들었다.     “아니, 저 놈이 개배때기를 차도 주인을 보고 차라고. 네가 감이 내 하인을 쳐? 이 놈아!”     어지간한 사람이면 한 영감이 을러메기만 해도 질겁해 진작 달아났으련만 기준은 떡 뻗치고 서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길수가 덮쳐 와서 개화장으로 탁 내리쳤다. 기준은 개화장을 떡 받아 쥐고 비틀었다. 한영감은 준비 없이 개화장을 휘둘렀다가 뜻밖의 반격을 받아 개화장을 빼앗겼다. 한길수는 중절모자가 땅바닥에 떨어져 굴면서 박 같은 번대 머리가 드러나고 말았다.      “에끼, 이 놈, 언감 대들어?!”     길수는 숱한 마을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고 말았다. 그는 체면을 세우려고 이번에 왼손으로 치는 척하다가 오른 주먹으로 기준의 얼굴을 내질렀다. 이번에도 기준이가 날아드는 주먹을 몸을 낮추면서 왼손으로 탁 쳐올려 막으면서 피했다. 뒤이어 날아드는 왼손을 턱 받아 쥐고 비틀었다.     “애개개, 이 놈이, 울뚝이놈. 애비 같은 사람과 정 버르장머리 없이 노는구나.”     이때 응삼이 뒤에서  영팔, 수길 등 하인들에게 고함쳤다.     “자네들은 뭘 하는가? 주인어른이 당하는데.”      영팔과 수길은 동네방네에 소문난 한다하는 싸움군이였다. 그들은 대판 팔을 걷고 싸움판에 뛰어들었다.      “기준아, 그만해라!”     성칠이 말렸다.     이때 은녀가 고함치면서 앞에 썩 나섰다.     “이러지들 맙소. 내 부엌데기로 들어가면 모든 게 끝이 아니겠소.”     기준도 한길수도 모두 손을 놓았다. 한길수는 오른손목이 아파 왼손으로 부여잡고 오만상을 찌푸리었다.      “그래, 진작 그래야지. 에이, 팔목껍질이 다 벗겨졌군.”       한영감은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기를 찬다고 기준이랑은 감히 업신여기지 못하고 창렬의 목덜미를 잡아 활 밀쳤다.      “이게 다 네 놈 탓이야! 죽여치울 놈, 빚을 갚지 않고 저 놈들을 믿고 우쭐대?”     창렬은 엉덩방아를 찧고 땅바닥에 쓰러진 채  가슴을 부여잡고 기침을 쿨룩쿨룩 했다.     그새 응삼이가 땅바닥에 떨어진  중절모를 주어 한길수의 번대머리에 삐뚤게 씌워주었다.      뒤이어 하인들은 은녀를 붙잡다 싶이 하여 앞세우고 개울 아래쪽으로 향해 발걸음을 뗐다. 창렬과 명순은 저쪽으로 가면서 이쪽을 되돌아보는 은녀를 보고 땅을 치면서 울었다.     성칠은 보다가 안 되여 한길수에게 통사정을 하였다.     “은녀를 제발 데려가지 맙소. 내 사냥을 해서 꼭 빚을 물겠습구마.”     “은녀를 먼저 데려갈 테니까. 자네가 사냥을 해서 빚을 물면 그때 다시 내오게나.”    성칠은 별수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기준만은 울뚝 밸을 못 이겨 눈에서 불길이 이글거렸다.     “사람을 업신여겨도 유분수지. 아무리 빚을 졌다고 남의 딸을 빼앗아가다니. 이 집에서는 어떻게 농사를 짓고 산단 말이요?”     한길수는 개화장을 휘둘러 기준이를 가리키면서 빈정거렸다.     “아하, 아직도 은희와 상호가 있지 않는가? 저 울뚝밸이 정말 귀찮게 논다니까? 이 담에도 오늘처럼 그렇게 버릇없이 놀다가는 내 버릇을 단단히 가르쳐줄테다.”    한길수는 개를 잡은 포수처럼 우쭐해 어깨를 으쓱하면서 응삼과 수길 등 하인들을 데리고 개울 쪽으로 내려갔다.     저 불쌍한 은녀를 보라. 하인들에게 납치되다 시피 해 개울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 창렬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가슴을 치면서 울음보를 터뜨렸다.     “다 내 잘못이지. 내 빨리 죽었더라면 빚을 지지 않고 살았겠는데. 은녀를 언제 찾아내오겠느냐? 어이구. 내 딸아. 쿨룩, 쿨룩.”     명순은 남편을 부축하여 딸이 랍치돼 가 텅 빈부엌으로, 괴로움만 남은 쓸쓸한 부엌으로 들어갔다. 적막감의 꼬리를 붙잡고 부자집으로부터 오는 공포가 하품 하며 스물스물 기어 들어온다.     둘째딸 은희는 저고리 동전으로 눈물이 글썽한 눈 굽을 찍었다.     상호가 엄마를 달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엄마, 울지 마! 응? 울지 마. 흑, 흑, 흑.”     그 광경을 보고 모두들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성칠과 기준은 격분해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399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샘물터에서 만난 처녀(10) 김장혁 댓글:  조회:882  추천:0  2024-01-11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              제2장 고향 마을의 사람들                        1.샘물터에서 만난 처녀                   서리발 나는 해볕이 개마고원 원시림의 숫구멍을 내리쪼이기 시작하였다. 개마고원에는 마가을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별유천지였다.     성칠은 적토마 배를 툭 차 박차를 가하면서 령길을 벗어나 적송이 우거진 산비탈을 내리달렸다.     한참 달리다가 저 멀리 고향 마을이 내려다보이자 목이 말라 마른 침을 꼴깍 넘겼다. 말배에 처맨 조롱박을 풀어 쳐드니 물방울이 몇 방울이 마른 입술에 떨어졌다. 성칠은 입술의 물방울을 혀로 감빨다 말고 저 멀리 보이는 샘물터에 눈길을 박았다.     “샘물을 실컷 마셔야 하지.”     좁다란 골짜기 막바지 샘물터에서 웬 처녀가 바가지로 샘물을 한 바가지 한 바가지 물동이에 퍼담고 있는 것이었다. 하얀 무명저고리로 감싼 가녀린 어깨 위로 외태머리를 치렁치렁 드리운 처녀, 깜장치마를 입은 처녀의 동실한 뒷모습이 그렇게도 아름다울 수야 있겠는가.      (은년가? 은흰가?)       검둥이가 앞서 달려가려는 것을 성칠이 “휙!” 휘파람을 불어 불렀다.        그는 말을 달리다가 살짝 뛰어내려 살금살금 샘물터로 다가갔다.        (뒷모습은 은녀와 똑 같은데.)        성칠이 샘물터의 처녀 뒤까지 살금살금 다가갔는데도 처녀는 아직도 자취를 모르고 있었다. 성칠은 뒤로 다가가 두 손으로 처녀의 두 눈을 꽉 막았다.        “왁!”     “어마나!”     후닥닥 놀란 그 처녀는 두 손으로 성칠의 두 손을 잡고 손가락을 하나 꼭 잡아 푸느라고 안간힘을 다 썼다.     "누구야? 놔, 놔라니깐!"     성칠은 손가락에 힘을 더 주면서 걸걸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누구겠꽁?”     “이걸 놔봐!”     “맞추고야 놓을 테야.”      “성칠 오빠겠꽁.”       “아니다. 은녀야.”       “그럼? 아냐. 성칠 오빠 맞다. 응응. 이걸 놔.”      성칠이 아무리 목소리를 숨기려고 하였지만 은녀의 귀를 속일 수는 없었다.      성칠이 두 손을 활 놓자 은녀는 그의 두 손을 잡은 채 돌아앉으면서 쌍까풀눈을 똥그라니 떴다.      “오빠 맞구나! 나쁜 놈!”      은녀는 성칠의 넓은 가슴에 주먹을 안기다가 성칠의 가슴을 활 밀어놓았다. 성칠은 준비 없어 벌러덩 엉덩방아를 찧었다.      “얘야, 목이 말라 째지는 것 같다. 물 한바가지를 주렴.”      “그래요.”      은녀는 강원도 영월군에서 이사해 와서 남대치 말을 곧잘 했다.      그녀는 물바가지로 샘물을 한 바가지 푹 퍼서 손바닥으로 바가지 밑에 흐르는 물을 쓱 닦았다.      "자요."      그녀는 두 손으로 물바가지를 쑥 내밀었다.      성칠이 급히 받아 마시려고 하자 은녀가 물바가지를 도로 가져갔다.      “야, 목이 말라 죽겠는데 무슨 장난이야.”      “아니. 급히 마시지 말아요.”     은녀는 물바가지에 풀잎을 하나 뜯어 띄워 놓은 후 다시 내밀었다.     “자, 드세요.”     성칠은 물을 마시려다가 풀잎을 보고 상을 찡그렸다.     “물바가지 안에 웬 풀잎이냐?”     은녀는 생글방글 웃으면서 종알거렸다.     “오빠가 바쁜 걸음을 달려온 후 물을 급히 마시다가 얹힐 가봐 그래요.”     “오, 그래?”     은녀는 옥 같은 이를 드러내며 쌔물쌔물 웃으면서 성칠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성칠은 물바가지 물에 뜬 풀잎을 후후 불면서 샘물을 꿀꺽꿀꺽 마시었다.       “어, 시원하다. 이제야 살 것 같다. 자, 한바가지 더 주렴.”      성칠이 물바가지를 내밀자 은녀는 샘물을 또 한바가지 폭 퍼 주면서 종알거렸다.       “자, 드세요. 땅 밑에 샘물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실컷 드세요.”      “그래, 은녀 샘물이 특별이 시원하구나.”     성칠은 시원한 샘물을 연속 두 바가지나 마셨다.     “호호호, 괜히 물배만 채우겠소.”     은녀는 또 한바가지 퍼서 두 손으로 내밀었다.     성칠은 그 한 바가지마저 다 마시고서야 뒤에 따라온 검둥이 대가리를 쓰다듬었다. 검둥이도 성칠과 은녀를 번갈아보면서 꼬리를 흔들거렸다.     성칠은 말배에 건 주머니에서 큼직한 곰의 고기덩이를 꺼내서 은녀에게 내밀었다.     “이건 뭐예요?”     "사냥한 거야. 집에 가져다 앓는 아버지한테 대접해라. 이 장꿩 꼬리털 하나만은 기념으로 잘 건사해.”    성칠이 정색해 말하자 은녀는 귀밑까지 발갛게 상기됐다.    “오빠, 은희 언니가 알면 괜히 오해하겠어요.”    “뭘, 오해한다는 거야. 오빠 너한테 주는 건데.  언제 셈평이 들겠니? 또 널 고와하면 뭐라니?”      “아이고, 부끄러워라. 호호호.”     은녀는 물바가지를 떨어뜨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외면했다.     가리마를 낸 귀밑에 칠색무지개가 더 곱게 피였다. 이팔청춘의 은녀는 실로 산속 숲속에 피어난 한 송이 함박꽃 같았다. 함치르르한 머리카락아래 짙은 눈썹아래 긴 속눈썹에 어울리게 새별처럼 반짝이며 새물대는 눈, 옥 같은 이, 구김살 하나 없는 빨간 입술, 빨갛게 달아오른 두 볼에 귀밑머리 몇 오리가 흘러내려 가을 산바람에 하느작거렸다.      “보기는?”       “보는데 고운 얼굴이 축나니?”      성칠은 은녀을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그 넓은 품에 안겼던 은녀는 덴 겁을 한 듯이 바삐 뒤로 물러섰다.     “놔요. 저기 누가 온다는데도.”      짐짓 골짜기아래 저쪽으로 눈치하자 성칠은 그 곳을 내려다보면서 손을 놓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에이, 요게 어디서.”     “호호호, 아저씨가 이러면 되는가요?”     “그런가? 내 너무 한 겐가? 에크, 저게 네 엄마가 오는구나. 그럼 내 먼저 내려가겠다.이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알려라."      성칠은 적토마 잔등에 훌쩍 뛰어올라 검둥이를 앞세우고 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굽이진 골짜기 아래로 사라졌다.       은녀는 촉촉한 눈길로 멀어져가는 성칠 오빠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골짜기 저 아래에서 한손으로 치마 자락을 걷어안고 올라오는 어머니를 보자 제정신이 펄쩍 들어 물동이를 이고 장 꿩과 곰 고기를 들고 아래로 치마자락이 휘날리게 내리 걸었다.        은녀가 인 물동이에서 바가지 물동이에 부딪치는 소리가 동 동 동 절주 있게 들려왔다.        은녀는 금방 있은 분간하기 어려운 일에 생글 웃다가 무거운 그림자가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햇님도 처녀 총각의 이런 연극을 많이 보았으련만 숫처녀의 웃음에 화답이나 하듯이 씨물 웃었다. 시원하고 맑은 가을 샘물은 여전히  뭘 조잘조잘 속삭이면서 흐르고 흘러 성칠이 네 집 앞을 굽이굽이 흘러내려갔다.       은녀는 물동이에서 얼굴에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손으로 닦으면서 어머니를 따라 집 안에 들어섰다. 그런데 응삼의 자그마한 주먹 낯을 보자 불길한 예감이 들어 주춤 멈춰 섰다.      “오, 은녀가 돌아왔구먼. 마침 잘됐다.”     응삼의 이지러진 애호박 같은 낯에 간사한 웃음이 흘러지나갔다. 은녀가 왼손에 쥔 장 꿩에 눈길이 닿자 주름살이 죽죽 간 그의 길쭉한 낯에 음흉한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은녀가 집안에 천천히 들어가 장 꿩을 부엌에 내리어 놓고 물동이를 내리어 물독에 쏴- 부었다. 그녀가 동이를 안고 다시 샘물터로 가려고 문 밖에 나섰다.      그때 집 안에서 쿨룩쿨룩 기침소리와 함께 엄창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 은녀야, 가지 말고 들어오라.”     은녀가 집 안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쑥 꺼져 들어간 가슴을 손으로 두드리면서 쿨룩 거렸다.     은녀는 바삐 물동이를 구들에 내려놓고 구들에 올라가 아버지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창렬은 응삼을 내려다보면서 말하였다.      “작은 나리,  딱한 사정을 들어주오. 은녀를 데려가지 못하오. 내 병이 나으면 꼭 그 집에 들어가서 일해 빚을 갚아주겠소. 쿨룩쿨룩.”      은녀는 깜짝 놀라 발딱 일어나더니 이글이글 불타는 눈총을 응삼에게 쏘았다.      응삼은 개의치 않고 엄창렬에게 호통쳤다.      “애햄, 그래 자네가 언제 병이 나아서 3년 전에 진 빚을 갚는단 말이요? 약을 쓰겠다고 해서 뀌워줬더니. 참 량심없게 놀아? 은녀가 이젠 저렇게 컸으니 딸 신세라도 져야지 않겠소?”       부엌 쪽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창렬의 처 명순이 두 손을 마주잡고 통사정하였다.      “조금만 말미를 줍소. 애 아버지가 저렇게 앓는데 은녀까지 들어가고 나면 이 집 농사는 누가 짛겠소? 딱한 사정을 좀 봐줍소.”      “그것도 말이라고 해?”     응삼이 발딱 일어나면서 뾰족한 참새 입을  짹짹거렸다.      “염치 있소? 신세를 졌으면 갚을 줄도 알아야지. 딸년들이 저렇게 컸는데 일도 시키지 않는가? 그래 요리 간에 보낼 예산인가? 은녀 안 되면  은희를 가져가야겠소.”      납덩이 같은 침묵이 집안에 흘렀다.      한참 후 응삼이 일어나면서 구렁이 같은 말 한마디 내뱉었다.      “정 딸년들을 못 들여보내겠으면 처라도 들여보내오.”      응삼이 엉덩이를 툭 털면서 바닥에 내려가 신을 신었다. 응삼은 문을 박차고 나가면서도 우멍 눈은 은희의 하얗고 말쑥한 얼굴과 풍만한 젖가슴을 흘끔 곁눈질했다.      그때까지 아버지 잔등을 두드리던 은녀가 쌍까풀눈을 들어 응삼을 바라보았다.      “나리,  내 들어갈테니 엄마는 놔 두세요.”       응삼은 실 돌피 같은 몸을 돌려 창렬과 은녀, 은희를 번갈아보면서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오, 그래 참 심청 같은 효녀로구나. 내일 인차 우리 집에 들어오라.”      창렬이 은녀를 밀치면서 일어나 손을 내저었다.     “저, 나리, 은녀는 죽어도 못 들여보내겠소. 내 눈에 곰팡이가 끼기 전에는 안 되오.”     응삼은 머리 뒤로 담배연기를 흩날리면서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독살스레 을러멨다.     “내일 보내게나. 오지 않으면 이 놈의 집을 허물어 갈 줄 알아라. 퉤! 배은망덕한 놈들.”     응삼이 삽짝문을 열고 나가자 창렬은 은녀와 은희를 붙안고 잔등을 어루만지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은녀야, 안 된다, 안 돼. 내가 죽으면 죽었지 너희들을 남의  부엌데기로 들여보내지 못한다. 안 된다, 안 돼.”      은녀는 아버지 잔등을 두드려주면서 하얀 얼굴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뒤이어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헌 까래 위에 눕혀놓았다. 앓는 아버지 초췌한 얼굴을 내려다보는 은녀의 가슴은 한 오리 한 오리 저며 내는 것만 같았다. 눈물과 땀방울이 흘러내려 은희의 양 볼에 눈물범벅이 된 귀밑머리 몇 오리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이때 바깥이 어두워지더니 돌개바람이 사납게 불어쳤다. 순식간에 돌개바람에 창렬의 집 이영이 흩날려 하늘높이 날아났다. 앙상한 연목가지가 퍼런 하늘아래 덩그렇게 드러났다.  먹장구름이 덮쳐오더니 가을비 구질구질 쏟아져 내렸다. 을씨년스러운 하늘아래       집 안에서는 쿨룩쿨룩 기침소리에, 천정에서 새 떨어지는 물을 받느라고 분주한 소리, 명순과 은녀, 은희의 흐느낌소리가 반죽돼 상가집처럼 처량하게 귀를 아프게 했다.     은녀의 남동생 상호는 사내노라고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고 눈을 부릅뜨고 씩씩 거렸다.     땅거미가 질 무렵에 먹장구름이 흘러가고 가을비 멎자 기러기 몇 마리 끼룩끼룩 슬프게 울면서 날아 지나가고 있었다.
398    《욕망의 천지>> 아동문학계 들썽 리련화기자 댓글:  조회:294  추천:0  2024-01-01
                          “욕망의 천지” 아동문학소설계 들썽                                                                 - 소설가 김장혁씨 제3회 웰빙아동문학상 금상 수상          2015년 09월 11일 15시 04분  조회:460  추천:2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5월4일 09시12분 조회:93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지난 3월에 펼쳐진 제3회 웰빙아동문학상 시상식에서 김장혁이 장편과학환상소설 “욕망의 천지”로 금상을 수상했다.     과학환상소설은 현실을 초월한 환상적인 환경에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환상적인 인물형상을 창조한다는것이 일반소설과 다른 독특한 특징으로 된다. 김장혁은 몇해전 펴낸 “야망의 바다”에 이어 속편 “욕망의 천지”를 펴내며 우리 중국조선족문단에서 여직 미개척지로 남아있던 과학환상소설분야에 본격적인 입성을 알렸다.      김장혁작가는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졸업하고 일찍 교원, 기자 사업에 종사한 경력이 있으며 현재는 연변인민출판사 《로년세계》잡지사에 몸잠그고있다. 그가 아동문학에 손을 대게 된건 그의 말을 빌자면 처음에는 “환경의 핍박”에 의해서였다. 일찍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 장편정탐실화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실화집 “빨간 장미꽃 함정” 등 실화창작에 심혈을 기울이던 그는 출판사에 전근한후 사업의 요구에 의해 아동문학창작에 손을 대게 되였다.       그는 과학환상소설을 창작하기 위해 과학지식과 정보를 수집, 정리하면서 일찍 2000년대초에 중편과학환상소설 “지구촌보위전”, “클롱바우꼬마대통령모험기” 등을 펴냈다.       김장혁의 아동문학작품들이 전국소수민족아동문학작품 우수상, “동심”컵 중한아동문학상, “옹달샘”중한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하면서 저자는 문학계 및 여러 문학지성인들의 편달과 지지에 창작용기를 얻고 계속하여 아동문학창작에 매진, “욕망의 천지”를 펴냈다고 한다.       오늘 지구촌은 끝없이 욕심을 부리는 인류에 의해 모진 몸살을 앓고있다. 인류의 절제없는 욕망아래 끝없는 산업개발과 더불어 지구생태환경은 여지없이 파괴되여가고있다. 김장혁작가는 이러한 현실에서 지구생태환경보호라는 중대한 공정과 황홀한 꿈이 자신을 불렀다고 말한다.       이번에 펴낸 “욕망의 천지”는 방대한 슈제트구성의 환상이야기로 기원 3978년을 배경으로 한다. 제10차 핵전쟁으로 하여 지구촌은 방사능으로 오염되고 가스온난화로 남북극빙하가 녹아내려 수많은 대도시가 물에 잠긴다. 이런 환경에서 오염된 생태환경을 복구하기 위한 위대한 변혁이 이 소설의 발단으로 된다.      연변조선족아동문학연구회 김만석회장은 “소설속 변화무쌍한 이야기는 과학적원리에 의하여 안받침되여있어 과학적이며 환상적인 이야기로 승화되였고 인물형상창조에서 기적인 인간, 환상적인 인물 형상을 부각했다”, “우리 문단에 둘도 없는 과학환상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했다.      저자 김장혁은 아동문학외에도 수필집 《리별》, 문학작품집 《사랑환상곡》, 《사랑은 요술쟁이야》를 펴냈고 중단편소설과 수필, 실화, 동화 등 300여편을 발표했다. 김장혁은 출판문화환경이 어려운 현실속에서도 작가의 사명감과 의무감으로 끊임없이 자유분방한 창작의 필을 날릴것이며 필생의 정력을 대가로 영양가 있는 문학작품을 써내는데 심혈을 기울일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연변일보 문예부 리련화 주임기자
397    사막의 마라토너 김장혁 댓글:  조회:784  추천:1  2023-12-29
                          사막의 마라토너                                     김장혁     나는 사막과도 같은 문학권에서 장장 50년 동안 파란만장한 문학창작의 외나무다리 길에 들어서서 상처도 많이 입었고 곡절도 많이 겪었다. 또 그만큼 한도 많았다. 그래 정녕 가슴에 한이 맺혀야 글을 쓸 수 있는가?     나는 한 맺힌 가슴의 상처를 매만지면서 사막의 모래바람을 무릅쓰고 한편, 또 한편의 글을 쓰면서 외롭게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앞으로, 앞으로 걸어나갔다.     원래 나는 일찍 조선 궁정어의를 지낸 고조부와 증조부의 의술을 물려받아 아픈 사람의 병을 치료해주고 죽는 사람을 구하는 착한 의사로 되려는 꿈을 꾸었다. 대학시험을 치기 전까지도 지망을 연변의학원에 썼지만 불행하게도 색망이여서 어린 시절의 의사 꿈을 접고 청년시절의 꿈인 문학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나는 문학의 사막에서 매냥 마라톤을 해야만 한 숙명적인 리상개변을 후회하지 않는다. 비록 문학이란 사막에 들어서서 별의별 고생을 다 했지만 오히려 민족을 위해, 인류의 정신세계를 개조하고 정신재부를 창조하는 문학창작사업에 한생을 바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더욱 보람찼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중에 입학한 후 김재권, 김설봉, 김철환, 김진산, 리광평 등 계몽은사님들의 가르침을 받아 점차 기자와 작가로 되려는 푸른 꿈을 꾸게 되였다. 대학에서 문학개론을 공부하면서 김만석교수님의 아동문학강의도 귀동냥해 들은 후부터 나는 곡절도 많았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고 장편아동소설을 쓰려는 강한 충동을 받았다. 그리하여 나는 대학교 시절에 나는 장편아동소설 "려명전야의 샛별"를 쓴 적이 있다. 그때 허룡구교수와 최문식 교수는 내 습작소설을 읽어보고 잘 다듬으면 성공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힘을 북돋아주었다. 그러나 출판사에서는 1979년도 그때까지 전례없는 장편아동소설을 한 문학애숭이에 의해 출판하긴 이르다고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나는 그  미발표작 장편아동소설 원고를 버리지 않고 35년 동안이나 보관해두었다가 대하소설 "제 6권과 제 7권에 나눠 삽입하여 끝내 발표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부터 외람되게 외나무 다리를 건너 사막에서 작가의 수업을 시작하게 됐다.      나는 문학창작의 길이 어려운 사막에서의 외로운 마라톤인줄은 몰랐다.     나는 풍파도 많고 곡절적인 인생길에 질투와 무함, 상처를 받을 때마다 이를 악물고 상처를 매만지면서 교훈을 섭취하고 아픔을 원동력으로 삼아 한편, 또 한편의 글을 써냈다.     고중시절에 당시 조양공사 당위 선전위원으로 계신 김철환선생님과 방송소 소장으로 계신 리광평선생님 그리고 고중 어문교원 김진산선생님을 모시고 신문과 방송에 두부모만한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일로 해 “글을 써서 이름을 날리려는 야심가”라는지, “독서벼슬론”의 류독이 깊은 학생이라는지 별의별 모자를 다 쓰고 억울하게 고중을 졸업할 때까지 질투와 무함에 의해 입단도 하지 못하였다.    1976년에 억울함을 한 가슴 품은 채 귀향한 후 나는 당시 조양공사 문화소 소장으로 계신 김재권선생님을 문학스승으로 모시고 수많은 소설책을 읽고 문학에 어섯눈을 뜨기 시작하였고 민담정리와 소설창작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밭에 나가 일할 때도 김재권선생과 김철환, 김설봉 등 선생님들이 빌려준 누런 소설책을 호주머니에 넣고 가서 가물에 물을 만난 사람처럼 쉼시간이면 웃고 떠드는 농사군들을 피해 물도랑이거나 눈두렁에 숨어 책을 읽었다. 나는 소몰이군으로 산야를 달아다니면서도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가물에 물을 만난 사람처럼 소설책을 읽었다. 일부 무식한 사람들은 나를 두고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잘 받지 않는다는지, 빈농의 아들인데 농촌에 뿌리박고 새 농촌을 건설하려 하지 않는다는지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헐뜯어댔다. 그러건 말건 나는 고된 농사일에 지쳐도 밤이면 독서와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대학입시가 회복돼도 입시복습마저 마음놓고 할 수 없어 저수지공지에서 도망쳐 외지 큰누나네 집에 가서 숨어 공부하지 않으면 안됐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현문화관에 들어가려던 최저한도의 희망마저 물거품이 되여 중학교에 가서 코흘리개들을 마주 했을 때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룡정시 문련 주석으로 계신 김재권선생님은 나를 불러놓고 힘을 실어주었다.     “딱 문화관에 들어가야만 문학창작을 할 수 있느냐? 교원사업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문학창작을 할 수 있다.”     그 말씀에 삶의 용기를 얻고 절망에서 간신히 헤쳐나온 나는 그때부터 룡정시 문화관 원로작가들인 김재권, 리태수, 황병락 등 선생님들을 모시고 “보름회”라는 문학단체에 다니면서 문학창작수업을 하였다.그런데 소속 중학교 일부 책임자들은 “교수연구를 하지 않으면서 자기 글만 쓴다.”고 비평하면서 글을 쓰지 못한다고 제한했다. 이는 작가를 꿈꾸는 나의 문학생명을 짓밟는 조폭한 간섭과 더러운 수작이 아니고 뭔가? 비록 생물로서의 목숨은 붙어 있어도 작가로서의 령혼과 생명은 죽고 말것이 아닌가. 문학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없는 세상은 곧 지옥에서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그제야 알것 같았다, 창작자유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니, 민주와 자유가 없으면 얼마나 암담한가를!     나는 물 한모금도 없고 불볕이 홧홧 달아오는 사막에서 마라톤 달리기를 잠간 멈추고 애어린 문학생명을 살려내려고 무등 모지름을 쓰지 않으면 안됐다. 교편을 잡고 합법적으로 문학창작을 해나기 위해 나는 담임교원 사업에 눈코뜰새 없으면서도 초중과외작문써클 지도교원을 주동적으로 맡고 수많은 학생작문을 지도해 신문과 잡지에 발표하였다. 학생들은 주와 성, 전국급 여러가지 작문콩쿠르에서 우수중학생작문상을 수두룩이 안아왔다. 그때 학생들 속에서 수많은 대학생들이 배출됐으며 그들 속에는 오늘날의 대학교 학원 원장, 교수, 박사, 이름난 가수, 성악교수도 있으며 중국조선족문단의 어마어마한 작가도 있다. 나는 그들의 지명도가 너무 높아서 줄곧 내 입으로 학생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마치 그들의 지명도를 빌어 후광을 보려고 하는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언제나 나를 스승이라고 널리 외우고 있다. 인간수양을 제대로 닦은 그들이 장하기만 하다. 당시 나도 수차 교육잡지사와 전주 교육론문발표회에서 우수작문지도교원상과 우수작문지도론문상을 탔으며 학교에서 우수담임교원상도 탔다. 짤막한 소설도 신문과 잡지에 륙속 발표했다. 학교 책임자들과 교원들은 전교 교원성과전시회 때 전시된 나의 수두룩한 작품과 전주 우수교연론문상 그리고 학생들의 작문과 상장들을 둘러보고 나의 작문지도교수사업을 충분히 긍정했다. 나는 그때라고 나는 “교원이 글을 잘 써야 학생작문을 잘 지도할 수 있다.”, “글짓기에서 사로개척의 예술수법” 등 교수론문을 써서 여론조성을 했다. 기실 “교원이 글을 잘 써야 학생작문을 더 잘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은 어문교원으로서의 간단한 상식이지 그 무슨 철리가 아니다. 더욱이는 대서특필할 론문거리도 아니였다. 그러나 나는 아주 힘들게 따낸 작문지도 성과로 그 간단한 상식적인 도리를 증명하고 내가 과외로 문학창작을 하는 것을 합법화해야만 하였다. 나중에 학교에서는 나를 보고 전주교수연구론문회의에서 우수상을 탄 교수론문을 전교 년말총화회의에서교류하게 하였다.     그후부터 학교와 조선어문교연실에서 더는 나의 과외창작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후에 부임돼온 주천을 교장과 유재환 교장은 나에게 고중교수와 전교 작문써글 지도교원을 맡기고 나의 문학창작을 지지해주었으며 어문교연실 교원들에게 문학창작활동을 폭넓게 벌릴 것을 호소하였다. 문학창작 연성환경을 마련한 후 나는 다시 용기를 얻고 퇴근한 후 세집에서 밥상을 놓고 곤한 눈을 집어뜯으면서 한편, 또 한편의 글을 써냈다. 그러나 작품은 써놓아도 발표하기는 아주 힘들었다. 중편련정소설 “사랑환상곡"은 지금 다시 읽어봐도 괜찮은 예술작품인 것 같다. 나는 소설원고를 가지고 숱한 잡시사를 찾아다녔고 편집들이 제기한 수개요구대로 16번이나 수개했다. 진짜 그 두툼하고 부동한 내용으로 된 수개원고로 전람회라도 열만 하였다. 하지만 그 중편소설은 국내에서 끝내 발표되지 못했다. 20년이 지난 후 나의 그 소설은 중단편소설수필집 "사랑환상곡"에 수록돼 한국에서 출판돼 한국에서도 제일 큰 서점인 교보문고에서 버젓이 팔렸다. 지금도 컴퓨터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나의 그 소설집 판매광고를 찾아볼 수 있다.    몇십년이 지난 후 결과가 보여주다싶이 작품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소설이 당시 편집들의 눈에 들지 못한 것 밖에 없다. 내 작품이 명작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한점만은 짚어놓고 지나가고 싶다. 편집은 명작가를 키울 수도 있고 명작을 죽일 수도 있다. 편집은 편집 도덕과 량심을 지켜야 한다. 작자의 문단서렬이나 권세와 면목을 보고 작품을 살생하면 한 작가에게, 아니,  문학사에 죄를 짓게 된다.      그 소설을 국내 편집부에서 퇴고를 맞은 그날 나는 뻐스를 타고 모아산 고개를 넘어 룡정에 돌아오면서 절망에 빠졌다. 필을 꺾으려고까지 했다. 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면서 발표되지 못한 그 소설 원고를 한장 한장 찢어 차창 밖으로 날려 보냈다. 이런 일은 기수부지이다. 35년 전 교원시절에 발표하지 못했던 문예평론 “리근전의 소설 ‘고난의 년대’에서 력사반영의 예술특징”은 한글자도 고치지 않았지만 그 잡지사 편집과 주필이 바뀌자 딱 그 잡지에 발표됐다. 그때 편집권세의 문턱이 얼마나 높은가를 실감했으며 편집이라면 문학초보를 살려내기 위해서 어떻게 원고를 처리해야 하겠가하는, 편집의 직업도덕과 좌우명, 원칙도 깨닫게 되였다.     당시 나는 작품 발표가 좌절될 때마나 너무 애나 몇번이고 필을 꺽으려고 했다. 그때마다 김재권 선생님과 리태수 선생님이 계속 창작용기를 북돋아 주군 하였다. 그 덕분에 나는 완강한 의지로 문학창작에 달라붙었다. 지난 세기 80년대 초 교원시절에 나는 당시 "천지"잡지사 부총편 조성희, 료녕성 "새마을"잡지사 주필 전정환, 연변일보사 문예부 주임 리임원과 허봉남선생, "별나라" 편집부 주임 최문섭과 허호범, 허춘희, 리태학 등  편집선생님들, "청년생활"편집부 황기철주필과 김철환 부주필 등 선생님들의 방조하에 단편소설 “의심병 후유증”, “재수령감”, “꿈많은 향화”, 실화"참된 삶", 실화 "백만장자의 길" 등 수두룩한 작품을  “천지”, “연변일보”, “별나라” , "청년생활". "새 마을" 등 잡지와 신문에 발표하였다.     나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훌륭한 문학창작 환경을 마련하려고 무려 15년 동안이나 또 전근마라톤을 해야 했다.  나는 천방백계로 노력해 연길시병원에 안해를 먼저 전근시키고 김철환, 김재권선생님의 방조하에 끝내 모아산 열두 아리랑고개를 넘어 연길에 들어와 청소년 시절의 꿈대로 연변인민방송국 당당한 기자로 되여 맹활약하게 됐다.     1988년부터 1996년까지 연변인민방송국 기자로 활약하는 한편  당시 연변인민출판사 부총편 리성권선생의 방조하에 연변인민출판사 특약편집으로 되여 아리랑에 실화 "중국조선족의학교육의 창시자 정규창교수"를 비롯한 실화 10여편을 문예총서 "아리랑"에 발표했다. 또 조성희 부총편, 장경숙  부총편과 허영순부총편 등의 방조하에 "천지"와 "연변녀성" 등 잡지에 단편소설이나 수필, 실화 같은 문장을 수두룩이 발표하였다. 그중 실화 "한 골과의사의 길"은 "아리랑문학상"을, 실화 "동북아황금삼각주-훈춘"은 "백두컵문학상"을 받았다. 또 리성권선생과 "천지"잡지사 소설편집부 김창석주임의 방조하에 실화 "동북아황금삼각주- 경신"을 천지에 발표하였다. 그후 신심을 가진 나는 연변인민출판사 김철환 주임의 배려하에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를 펴냈고 당시 연변인민출판사 문예부총편 리성권선생의 배려하에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를 펴냈다. 나는 지금도 리성권 부총편은 눈보라치는 엄동설한에 사업이 그렇게 다망하면서도 나를 데리고 왕청에 가서 왕청현법원 록도유 취재를 지도해주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사비를 털어 려비에 보태라고 200원을 내 손에 쥐워주기까지 하면서 나의 취재를 지지해주었다.  80년대말 당시 200원은 한달로임이나 되는 목돈이였다. 그는 심장병으로 불행하게 입원해사선을 헤매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자마자 문안을 간 나에게 첫마디로 "네 실화를 내준다던게 하마트면 못낼 번했구나. 그 책을 낼 때도 됐다."하고 말했다. 출원한 후 그는 진설홍 선생한테 위탁해 나의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를 한문으로 번역해 출판해 연변중급인민법원과 왕청현당위 선전부의 지지하에 연변주 각급 인민법원과 왕청현 각 향진에 도합 6천부나 발행했다.     방송국에 있을 때 나는 또 연변인민출판사 김철환 주임의 방조하에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를 냈었다. 림금산 부총편은 이 소설을 "료녕조선문보"에 련재되였으며 문예부 석화 주임은 이 소설을 연변인민방송국에서 2년 동안 련속랑독하게 하였다.     9년 후에 리성권 사장과 최일균 사장의 방조하에 나는 연변인민출판사에 전근해 편집사업을 하게 하였다. 그때로부터 22년 동안 나는 본격적으로 문학창작을 하였으며 창작과 본직사업에서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물론 사업의 수요로 줄곧 그렇게 하고 싶었던 문예편집을 하지 못해 유감스럽지만 나는 종합간행물 "로년세계", "농가" 등 잡지 주필과 광고사업 그리고 신입편집들 양성 등 과중한 사업을 하면서도 여가에도 부지런히 문학작품을 창작해 창작과 사업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일부 아동문학작가들은 소년아동들을 대상한 종합간행물 편집으로 갓 나선 나를 두고 “성인문학작가이기에 아동문학을 창작할 줄 모른다.”, "출판사에 온지 1년도 안돼 부주필을 시켜? 뭘 안다고?" 하고 헐뜯었다. 하긴  그 로편집은 나를 헐뜯을만도 했다.  한뉘 편집해도 소조장도 못했으니까.     나는 “성인문학작가인 나도 아동문학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본때를 보이려고 아동소설 창작에 몰입하였다. 나는 공원에 가서 잰내비랑 호랑이랑 노는 걸 구경하면서 어떻게 인간세상의 소설감을 동물로 이인화하여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령감에 따라 한편 또 한편의 동화를 써냈다.     그러나 동화 "꼬리 긴 토끼"는  한 로편집에 의해 총살당할 줄이야.     알고 보니 그 로편집은 나를 뒤에서 늘 헐뜯고 있었다.      "네놈이 무슨 아동문학을 안다고 한뉘 아동문학을 한 이 전문가 머리 위에 앉아 주임 행세를 해? 주임이면 다냐? 동화는 그래도 내가 전문가지. 네 놈의 작품을 안내주면 네가 아무리 주임인들 어쩔테야?"    그 로편집은 소인배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배심을 먹고 내가 애나게 쓴 동화를 깔아둔게 뻔했다.        나는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그럴수록 나는 상처 자국을 매만지면서 한편 또 한편의 동화를 써나갔다. 또 교원사업을 할 때 관찰해두었던 학생들을 모델로 애들의 눈높이로 한편 또 한편의 아동소설을 창작해냈다. 총살맞았던 동화 "꼬리 긴 토끼"는 20여년이 지나 김선화 주필(현재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아동문학창작위원회 주임)의 손을 거쳐 잡지에 실렸다.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꽃동산"잡지사 주필 리영옥녀사와 "은하수"잡지사 주필 김성우 선생의 지극한 방조에 의해 나는 끝내 2002년에 첫 포로 아동문학작품집 “호랑이와 사냥군”을 출판했다. 그 작품집에는 그 편집이 깔아놓았던 동화 "꼬리 긴 토끼"도 번듯하게 실렸다.     지난해에는 단편과학환상아동소설 "조왕돌 모험기"를 한문으로 번역해 한문잡지 《小小说天池》에 발표하였다. 편집부에서는 나의 과학환상아동소설을 한족 어린이들도 아주 즐겨 본다면서 반응이 꽤나 좋다고 하였다.    나는 민족의 사명감과 의무감을 안고 우리 민족에게 자그마한 기념비라도 세워줘야 하겠다는 의욕 밑에 필승의 신념으로 밤중까지 소설창작에 혼신을 불태웠다. 어떤 때에는 새벽부터 도정신해 글을 쓰다나니 시계를 올려다보고 출근 시간이 돼 짝짝 신을 다 신고 단위로 달려가서 편집들의 웃음거리를 만든 적도 있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휴식일이면 하루에 열 몇 시간씩 컴퓨터에 마주 앉아 까딱하지 않고 글을 수개하다나니 엉덩이에 썩 살이 배기고 부스럼과 종기까지 나서 너무 아파 엉덩이를 들고 쪼그리고 앉거나 가슴에 베개를 받치고 엎드려 글을 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창작에 너무 열을 올리다나니 눈이 너무 피곤해 피가 지고 고기가 동공에 씌우기 시작해 수술까지 했다. 그래도 나는 어디로 출장 가든지 핸드 컴퓨터거나 필기장과 필을 가지고 다니면서 소설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한번은 인천공항에서 글 쓰기에 도정신 하다나니 그만 항공편을 놓칠 번 한 적도 있었다. 한번은 길림신문사에서 수필문학상시상식이 있었는데 나는 시간이 아까워 수상하러도 가지 못했다.  또 한번은 길림신문사 로인수기상 평심위원으로 돼 50여편의 수기를 다 평심했지만 시간이 아까와 시상식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시간을 짜내  "로년세계" 편집사업을 하면서 소설창작에 몰두하였다. 제일 한심한 것은 그렇게 밤낮 애타게 창작한 파일이 컴퓨터 건판을 하나 잘 못 눌러 50만자나 없어진 사고이다. 그때 나는 컴퓨터기술이 차해 되돌리기를 할줄 몰라 파일을 원래대로 복원하지 못했다. 나는 너무나도 애나고 실망하고 맥이 풀려 한 주일이나 다시 컴퓨터에 마주 앉아 글을 쓰지 못했다.       나도 칠정육욕이 있는 사람이다. 남들처럼 술도 마음껏 마시고 장기도 놀고 싶고 아내와 함께 명승고적을 유람하기도 싶었다. 허나    항상 “놀 걸 다 놀고 언제 글을 쓰냐?”라고 하던 김재권 은사님의 가르치심을 되새기면서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놀고 싶은 야마를 정복하고 기나긴 “글 감방”에 갇혀 글을 쓰고 또 썼다.     리성권 사장과 한국 교문사 리완주 사장님, 김만석 교수님 등의 지극한 배려하에 중국조선족문단에서 첫 3부작 대하과학환상소설 (약 100만자) “야망의 바다”, “욕망의 천지”, “황천의 유령”을 창작해내 각각 연변인민출판사와 한국 교문사에서  출판하였다. 이런 아동소설은 한국 “아동문학세상”과 “서울문학”에도 소개되였고 “네이버”, “다음”, “모이자”, “조글로” 등 인터넷 블로그에도 널리 소개되였으며 15집 련속드라마로 각색돼 연변인민방송국에서 련속 방송되였다. 나는 선후하여 “웰빙아동문학상”, “동심컵 한중아동문학상”, “전국소년아동문학우수상” 등 국내외에서 10여개 아동문학상을 비롯한 30여개 문학상을 받아안았다.    일부 문우들은 내가 아파트 한채는 실히 쓸어넣고 소설책 20여권이나 냈다고 "바보"라고 했다. 경제시대에 아까운 돈을 팔아 보지도 않는 책을 냈다고 비웃는 것이였다. 하긴 한 수필가는 "작가는 돈을 받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글을 쓸수록 돈이 엄청 들어갔다. 나는 문화사막에 돈을 처넣으면서 책을 하나 또 하나 낸 그런 바보-마라토너작가이다.   나는 진승의 명언으로 나를 바보라는 사람들한테 화답하고 싶다.        "참새가 어찌 고니의 큰 뜻을 알리오?"  나는 이전에 대하소설 (총 7권)을 한국에서 애나게 내서 국내로 반입할 때 겪은 고행을 생각하면 몸서리칠 지경이다. 20여 상자나 되는 책을 한국 우정국에 가져다 부치니 우편료만 해도 200여만원(한화)이나 들었다. 거기에 출판비용까지 하면 진짜 자그마한 집 한채는 들어갔다.    나는 우편료를 하나라도 남으려고 책을 꽉 채워넣은 배낭을 메고 책트렁크를 끌고 귀국의 길에 올랐다. 그런데 신도림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려고 책트렁크를 안고 낑낑거리며 높은 층계를 올라가다가 그만 허리띠가 툭 끊어지는 바람에 괴춤마저 훌 내려가고 말았다. 숱한 사람들 앞에서 참, 창피하기로서니. 그때 한국의 착한 한 녀대생이 책짐을 봐주어서 지하철매대에 가서 허리띠를 사서 띠고서야 간신히 책짐을 메고 끌고 공항까지 나갔다.     그렇게 애나게 책짐을 메고 끌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비행기를 타고 귀국해 가져온 책을 동료들과 문우들한테 나눠주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먼지 새뽀얗게 끼도록 한페지도 펼쳐보지 않았다. 그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 내 심정인들 어떻겠는가. 참 안타깝다. 또 어떤 이는 책을 드리려고 하니 짐이 된다면서, 서재에 그 책을 둘 공간마저 없다면서 받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로실해서 좋긴한데 난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어 가슴이 미여지는 것만 같았다.        그때 그 일들을 생각하면 다신 책을 인쇄해 낼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내가 짧은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온라인시대에 조글로 작가 블로그나 핸드폰 위챗그룹에 올리면 복잡한 심열과정도 필요없고 출판비용도 들 필요없이 국계를 벗어나 숱한 독자들이 직접 소설을 볼 수 있지 않는가. 그런데 왜 하필 돈 팔아 책을 내고 그렇게 책짐을 메고 돌아다니며 고생하면서 수모를 당해야 하겠는가.그러나 나는 그런 간단한 도리도 모르고 시대의 무거운 책짐을 메고 다녔다.     나는 나를 질투하고 무함하고 나의 창작자유를 박탈한 분들한테도 감사를 드리고 싶다. 터덜터덜하고 거친 숫돌을 만나야 칼은 더 날카롭고 서슬푸르게 날이 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허허허. 그들이 아니였더라면 내가 어찌 창작자유가 얼마나 귀중한가를 알았겠는가! 그들이 아니였더라면 어찌 강한 문학창작의 의지를 련마했겠는가! 그들이 아니였더라면 내가 어찌 물 한 모금도 마시기 힘든 문학사막에서 상처를 매만지면서 아픔을 딛고 한편 또 한편의 문학작품을 창작해낼 수 있었겠는가!    나는 아파트 한채를 쓸어넣고 소설책 20여권 낸 바보, 무거운 책짐을 메고 사막의 외나무다리를 달리는 사막의 바보.     나는 그런 바보가 좋다.  난 사는 날까지 사막의 마로토너로 뛸 거야. 물 한방울 없는 사막의 한방울 단비로 될 거야. 책에 민족의 혼을 불어넣어 사막에 기어이 옹달샘물이 퐁퐁 솟게 할 거야.  진달래 만발하는 오아시스를 눈 앞에 그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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