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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6권 92 김장혁
2023년 05월 21일 09시 55분  조회:1467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제6권

 

      92. 기사회생(起死回生)

 

어둠의 이불이 서서히 내려 모텔에서 초저녁부터 바람 피우는 벌거숭이들을 가려준다. 

신음소리, 아우성소리, 비명소리, 개 죽을 먹는 쩝쩝 소리,  흐느낌소리 반죽돼 귀를 어리럽게 간음한다.

모텔의 김보스는 젤 안방에서 이상한 비명소리 나는 감을 느꼈다.

(중국 교포아가씨 방 아닌가?)

순간 김보수의 눈 앞에는 금방 숙박비로 동전 한줌을 쥐여 주던 아가씨 초췌한 몰골이 떠올랐다.

(돈도 빡빡 거덜났어? 동전으로 숙박비를 내다니? 눈도 정기 없었어. 혹시 무슨 일 있었나?)

김보스는 그 방 문께에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다른 방에서 어찌나 바람쟁이들이 아우성치고 신음소리 심한지 방 안의 동정을 똑똑히 들을 수 없었다.

“아니, 이게 뭐냐? 피 아닌가!”

방 문쯤으로 씨뻘건 피가 주르르 흘러나오며 비린내 물씬 풍기지 않겠는가. 

김보스는 콩알눈이 데꾼해졌다. 

원래 호텔방 비좁은 바닥은 복도보다 높다보니 피가 문 밖으로까지 흘러나왔던 것이다.

김보스는 깜짝 놀라 문을 꽝꽝 두드렸다.

“아가씨! 아가씨! 웬 일인기여? 문 열어! 아가씨!”

방 안에서 신음소리 날뿐 문은 열리지 않았다.

김보스는 부랴부랴 카운터에 달려나가 열쇠뭉치를 꺼내 가지고 달려왔다. 

그는 황급히 열쇠로 문을 절컥 열고 침실에 뛰여들어갔다.

이게 뭔가?

반라체 아가씨가 침대 피못 속에 반듯이 누워 있는데 팔목에서 씨뻘건 피가 땅바닥에 줄줄 흘러내렸다. 반쯤 걷어올린 불룩한 아랫배도 이리저리 째져 있지 않겠는가.

깨진 술병사리 쪼각이 피 랑자한 침대머리께 땅바닥에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분명 깨진 술병사리쪼각으로 손목을 베고 배를 푹푹 찌르고 가로세로 짼 것 같았다.

“아니, 아가씨, 무슨 짓인기여?”

김보스는 당황망조해 뺑뺑 맴돌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는 파출소와 구호대에  신고했다.

김보스는 아가씨의 팔목을 꽉 잡아 눌러 지혈시키려고 시도했다. 

얼마 안지나 경적소리 요란히 들렸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쏜살같이 달려와 골목에 들어섰다.

경찰들은 모텔에 들어오자마자 먼저 신고자를 찾았다. 그들은 김보스를 따라 아가씨가 쓰러진 모텔방으로 들어갔다. 발들여놓고 돌아설 자리도 없는 비좁은 코구멍방에서 피비린내가 물씬 코를 찔렀다.  

그들은 사건 현지에서 피못 속에 쓰러진 나영의 처참한 광경을 보고 김보스한테 아가씨 신원과 사건경과를 조사하였다. 

그때 음식점의 허보수가 허둥지둥 모텔에 나타났다.

“나영이, 어느 방에 있는가? 아니, 이게 뭐요? 나영이! 음식점에서 자라니께. 엄동설한에 기어이 나가? 참.”

경찰은 허보스한테 아가씨를 어떻게 아는가 물었다.

“아니, 음식점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던 아가씨야.”

“아가씨 이름은 뭔데요?”

“나영이야, 나영.”

경찰들은 목책에 나영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경찰들은 허보수를 카운터에 데리고 나가 조용히 음식점에서 벌어진 일을 조사하였다.

허보스는 뜨물에 빠진 멧돼지 퉁사발눈이 돼가지고 마스크를 벗더니 엇저녁에 있은 사연의 자초지종을 쭉 이야기했다.

“음식점에선 별 다른 일은 없었어유. 요즘 식당에서 나가겠다는 걸 내 로임을 높여주고 붙잡아두려고 했지요. 그런데 나영은 몸이 저래가지고서도 기어이 모텔에 나가 자겠다고 하지 않겠어요. 엄동설한 밤중에 어데 간다고 그러는가고 음식점에서 자고 래일 낮에 가도 된다고 했지요. 그런데도 기어이 엄동설한에 트렁크를 끌고 나가버렸죠. 난 나영이 근심돼 어데로 가는가고 뒤따라 이 모텔까지 왔댔지요. 나영이 모텔에 들자 난 한시름 놓고 음식점에 돌아갔지요. 오늘 일손이 딸려서 나영을 찾아왔는데. 이런 일 있을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요....”

구급대원들은 먼저 아가씨 팔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시키고 담가에 담아 구급차에 실어 병원으로 쏜살 같이 달려갔다.

김보스가 제때에 발견하고 신고했기에 다행이였다. 구급차에 실려가는 나영은 아직 숨이 가늘게 붙어 있었다. 

그러나 병원 구급실에서도 의연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경찰들은 병원 구급실 복도에서 나영을 지키면서 신원을 밝혀내는데 전력했다. 그들이 나영의 방에 있는 소지품들을 다 들춰보아도 려권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경찰들의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그들은 먼저 나영의 핸드폰부터 열어보고 친척이나 지인을 찾으려고 서둘렀다. 중국에 친 전화 외에 젤 전화를 많이 친 전화는 최정호와 박지영의 한국 전화번호였다.

정호한테 아무리 전화를 쳐도 뚜뚜 소리만 날뿐이였다. 경찰들은 경찰청 서류실에 련계해서야 정호와 나영은 모두 인터폴 공개수배범, 도주범이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정호는 체포중 도망쳤다고 했다. 

경찰들은 일단 병원에서 나영을 지키면서 구급되기를 기다려 체포해 구금하기로 했다.

경찰은 먼저  박지영한테 전화를 쳤다.

“여보세요. 박지영씨인가요? 우린 경찰인데요.  네? 네. 나영씨 친척인가요? 네? 친구라구요? 네. 다른 일 아니고 나영씨 지금 병원에 사고로 입원했는데요. 네. 인차 병원에 올 수 있는가요? 네. 병원에서 구급하고 있는데요. 나영의 신변에 친인척이 하나도 없어 그래요. 네.  여긴 XX대병원인데요. 네. 인차 올 수 있는가요? 네, 협조해 줘 감사해요. 병원에서 기다리겠어요.”

십분도 안돼 박지영이 눈이 황황해 병원 구급실 복도에 나타났다.

“아니, 나영아, 무슨 일이냐?”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가와  경찰들을 만났다.

“경찰아저씨, 제가 박지영인데요.”

경찰은 마주 인사했다.

“생각보다 퍽 빨리 왔는데요.”

“네. 제가 이 병원에서 간병하고 있는데요.”

“그래요?”

경찰들은 파란 색 간호사 복을 벗지도 않고 달려온 박지영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반색했다. 

 “참 잘됐어요.”

박지영은 경찰들한테서 대개 사건경과를 들었다.

“에이, 애도 죽긴 왜 죽어?”

지영은 친구의 불행에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녀는 구급실에서 나온 의사한테 물었다.

“생명에는 지장 없는가요?”

“피를 많이 흘려 모진 빈혈이 왔어요. 제때에 수혈해 구급했기에 모자가 다 생명에는 지장 없어요. 며칠 보양하면 정신차길 거 같애요.”

박지영은 포도눈이 데꾼해졌다.

“애라니요?”

의사는 지영의 놀란 포도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환자분은 임신 다섯달이나 됐는데요. 유리쪼각으로 아랫배를 여러 곳 찌른 걸로 압니다. 아랫배 상처를 수술해 유리쪼각을 다 주어내고 째진 배도 꿰매놓았는데요. 수술이 아주 성공적으로 잘 됐어요. 넘 근심 마세요.”

지영은 머리를 끄덕이며 한숨을 호- 몰아내쉬였다.

(임신한 건 이제껏 내한테도 속였구나. 정호를 따라다니더니 임신까지 했구나.)

여기까지 생각하자 지영은 나영의 처지가 불쌍했다.

나영은 그래도 친구가 있어 다행이였다. 지영은 죽마고우 나영의 치료비를 먼저 척 선대해주었다. 

며칠 후 나영은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였다.

머리에서는 제3차 대전을 하고 있었다.

모텔인지 음식점인지 어둑시그레 한 곳이다. 

정호인지 음식점 허보수인지 뒤로 달려들어 나영을 와락 끌어안는다.

“왜 이래요?”

“인생이 얼마라고 내캉 놀자.”

경상도 말 하는 걸 보면 허보수 같았다.

“메스꺼워. 이걸 놔!”

허나 그자는 나영을 놓지 않고 침대에 쓰러눕힌다.

나영은 손으로 그 자의 턱을 치받쳐올리고 발버둥질치며 아우성쳤다.

“몸이 이런데 어째 사정도 안 봐주고 짐승처럼 마구 달려드는가요?”

“괜찮아. 살살 다룰터니.”

그자는 나영의 치마를 와락와락 쳐들고 덮쳐들었다.

나영의 백지장 같은 허벅다리 훌렁 드러났다.

나영은 단말마적으로 저항하며 고함쳤다.

“아, 아, 이러지 말라. 경찰에 신고할테야!”

그 놈은 싯누런 승냥이 톱이를 드러내며 씨벌였다. 

“나영이, 그대를 사랑해.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걸 누가 체포해간대? 안 잡아간다는기여. 히히히.”

...

그놈은 끝내 그걸 한동이나 싸넣고 뿍 빠져나가 철써덕 쓰러졌다. 

 환각인가?

배가 불시에 둥둥 불어나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임신시켰어? 그 놈 정자는 뭔데 단통 임신해? 변강쇠게 돼 그런가? 이걸 어쩌나?)
      나영은 속이 한줌만해져 둥기배를 끌어안고 근심이 태산 같았다. 

그런데 그 놈이 숨을 돌리자 또 달려들었다.

“이 개놈새끼, 물러가지 못해?!”

나영은 마구 몸부림치며 고함쳤다.

“나영아, 왜 이래? 꿈을 꿨니?”

(누군가?)

갑자기 귀에 익은 녀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영이 눈을 스르르 떠보았다. 눈까풀이 천근무게나 돼 조금도 뜨기 힘들었다. 그러나 쌍겹눈은 기적적으로 천천히 틈이 생겼다.

사면이 온통 새하얗고 파란 간호사복을 입은 낯익은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나영아, 끝내 살아났구나.”

(누군가?)

“나영아, 날 알아보겠니? 나 지영이야.”

(지영이?)

나영은 그제야 시름놓고 눈을 다시 감아버렸다.

온통 새까만 천길나락으로 다시 서서히 빠져들어갔다. 

저승사자들이 들 것을 들고 길목을 지키다가 안되겠다 싶어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더니 사라져버렸다. 뺀질뺀질한 번대머리, 희죽거리는 우멍눈, 게슴츠레한 퉁방울눈, 보기도 싫다하니 피뜩피뜩 나타났다.

며칠 후 허보스가 구급실 복도에 나타났다.

허보스는 울상이 돼 경찰한테 물었다.

“나영이 없어 냉면 한그릇도 못해유.  나영이, 어떤가요? ”

“괜찮아요. 이제 곧 정신 차릴 거요.” 

허보스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쾌자를 불렀다.

“살았어. 우리 음식점 살았어.”

경찰은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나영은 병세가 호전되면 체포해가야 되는데요. 달리 방도를 구하세요.”

허보스는 혼비백산했다.

“지금 뭐라고? 달리 방도를 구하락꼬? 안될 소리. 우리 음식점은 나영 같은 주방장이  없인 안돼.”

경찰은 나직이 말했다.

“나영은 인터폴 공개수배범인데요. 꼭 체포해가야는데요.”

허보수는 아연실색했다.

“뭐라고? 저렇게 곱게 생긴 아가씨 웬 공개수배범인기여? 배 뚱뚱해가지고 무슨 못된 짓 해?”

경찰은 더 해석하지 않았다.

“달리 주방장을 구해요.”

허보스는 발길을 돌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음식점 다 망해빠지게 생겼네그려.”

그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묶음을 만지작거렸다.

(세상 일은 실로 짐작키 어려워. 하마터면 공돈을 치료비로 내놓을번 했잖아?)

허보스는 원래 나영의 치료비를 선대해주려고 돈 500만원이나 가지고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돈을 지금 남아가지고 가게 돼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한편 허보스는 속으로 나영이 없을 음식점 주방에 생각이 미치자 속이 재가루로 돼버렸다. 

그는 엘레베이터에서 나영의 불룩한 배와 당장 젖폭포가 터질듯한 풍만한 젖가슴이 떠올랐다. 순간 괴춤 속에서 그게 머리를 천천히 쳐들고 아랫배개 찡해나면서 정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참 아쉽구나. 입에 다 들어온 비게덩이를 놓치다니.)

그는 은근히 부풀어올랐던 정욕도 맥없이 쓰러지는 감을 쓸쓸하게 느꼈다. 

저승사자가 죽음을 재촉하는 북소리 귀가를 아프게 때렸다. 

사선에서 헤매던 혼이 염라전 재빛 토성 넘어 구리문을 두드린다.
        백골이 시끄럽다고 입을 쩝쩝 다시더니 하품을 하며 낮잠을 청한다. 
         빨간 나리꽃이 염라전에서 시들지 않고 기사회생하오니 염라전 썩은 문턱에 자란 잡초가 하느적거리며 작별인사를 하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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