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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4권 (49) 김장혁
2022년 10월 14일 12시 00분  조회:1371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
 

         59. 알바생의 피눈물
 
     은행나무 누런 잎이 우스스 지는 소리  처량한 서정시를 읊는다.
     에덴동산의 누런 옷을 갈아입고 맥없이 바람개비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호수물에 은행나무 잎이 톨랑톨랑 뛰여내린다.
      숙명의 눈물 방울을 튕귀며 아무런 미련도 없이 땅바닥에 춤추며 우수수 가냘픈 노래 부르며  은행나무 잎이 날아내린다.  
      상처 입은 누런 입사귀들이 땅바닥에 나뒹굴며 속절없이 흐느끼며 쓰라린 비명을 지른다.
      가을의 처량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은행나무 잎사귀 한겹한겹 덧 쌓여가며 땅과 포옹하고 키스한다. 사명을 다 완수한 은행나무 잎사귀들이  후대들의 새 봄 사랑을 미리 선언하며  상처 입은 넓은 가슴에 문안을 드린다.
       나나네 오누이는 다이로교수 신세를 너무 져 오희려 오시러웠다. 물론 그의 덕분에 마사지방에 취직도 하고 장학금도 타고 세집살이를 면했지만 어쩐지 불안했다.
(준 게 없이 받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안되지.)
나나는 오늘 밤에도 다이로교수의 동생 이찌로네 마사지방에서 마사지알바를 하면서도 내심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이찌로 보스가 오늘 밤에는 느닷없이 마사지방 대청에 나타났다.
“광문이, 여기 오라구.”
1층 마사지방에서도 보스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짜증나게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심심해 못 사는 것 같았다.
“예. 보스님.”
“어제 밤 그거 뭐야?”
“뭘 그래요?”
“어째 손님을 마사지해주지 않고 나왔어? 손님을 가려서 해서야 되는가?  손님을 다 빼우겠어.”
“잘 못했습니다. 다신 안그러죠.”
“이달 로임에서 벌금 만원 떼내겠어.”
광문은 허리를 구십도로 굽히며 잘못을 빌었다.
“옛,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찌로의 네모얼굴 근육과 봉이눈섭은 노기로 푸들푸들 뛰놀았다.
나나는 기분이 상해 걀죽한 얼굴에 대뜸 먹장구름이 흘러지나갔다.
하나꼬는 카운터에서 그 광경을 보고 외까풀눈을 흘기며 종알거렸다.
“아버지, 광문이 불쌍하지 않아요? 한달에 얼마나 번다고 만엔이나 떼내는가요?”
“삐치지 말엇!”
이찌로는 퉁사발눈을 부릅뜨며 성을 벌컥 냈다.
“마스지방 보스는 네가 아니야.”
그는 원래 무남독녀 하나꼬와는 별로 성낸 적이 없었다.
하나꼬는 아버지 지지벌개진 퉁퉁한 네모낯을 보고 곱잖게 눈을 흘겼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면서 걀쭉한 얼굴에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이윽고 그녀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도도거렸다.
“이제 백부한테 일러바치지 않는가 봐요. 백부 보낸 오누이하구 떽떽거린다고.”
그제야 이찌로는 광문을 놓아주었다.
광문은 그때까지 허리를 굽힌 채 까딱하지도 않고 서서 훈계를 받다가 간신히 자리를 떴다.
이찌로는 카운터에 다가가 하나꼬한테 억지로 웃음지어보였다.
“귀여운 것아, 내 이러는게 다 널 위한 거야.”
“쳇,”
하나꼬는 아빠를 외면하면서 콧방귀를 뀌였다.
이찌로는 하나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걀죽한 얼굴과 외까풀눈을 들여다보며 구슬렸다.
“넌 무남독녀 아니고 뭐냐? 아빠 이젠 예순도 넘었으니 돈을 벌어 뭘 하겠느냐? 하나라도 더 벌어서 귀여운 무남독녀한테 넘겨주려는 거지. 아빠 죽으면 이 큰 마사지방을 메고 가겠느냐? 백부도 자식 하나도 없잖니? 우리 형제 건 장차 다 네 거지. 안 그래? 요 귀여운 것아.”
이찌이로는 손수건을 꺼내 하나꼬의 걀죽한 얼굴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 손수건 있어요. 땀냄새 나.”
하나꼬는 아빠의 손수건을 밀어버리며 자기 손수건을 꺼내 닦았다.
“이후에는 오누이를 작작 욕하세요. 어려서 부모를 여읜 오누이 불쌍하지도 않아요?”
“오- 그래. 알았어.”
이찌로는 하나꼬를 구슬려놓고서도 어제 오누이 행동거지가 속에 내려가지 않았다.
 (어제 온 손님과 무슨 원쑤라도 졌는가? 광문이마저 마사지방에 들어갔잖아?)
이찌로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후에도 이찌로는 쩍하면 광문의 흠집을 들춰내 로임에서 돈을 자꾸 뜯어냈다. 물론 하나꼬 몰래 이른바 마사지방의 규칙을 집행한다고 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기 마련이였다.
며칠 안돼 또 조선족 손님이 광문을 찾아왔다. 손님은 예순 좌우 돼 보였다. 그런데 광문은 그 손님을 딱 떼닮지 않았겠는가.
후에 알고 보니 광문의 작은할어버지 성호라고 했다.
그날 광문은 다른 손님방에서 마사지를 해주다가 성호가 찾자 황급히 달려나가 끌어안고 엉엉 울었댔다.
나나도 무슨 일인가고 그리로 달려갔다가 작은할아버지를 보고 붙안고 대성통곡쳤다.
그때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땅에서 솟아났는가?
이찌로가 마사지방에 나타나 손을 홱 저으며 꽥 고함쳤다.
“이게 뭔가? 마사지방이 상가집 갔네. 마사지는 하지 않고  울긴 왜 울어?”
그제야 그들 셋은 울음을 끄쳤다.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보스님, 작은할아버지를 오랜만에 보고 그만.”
“주책머리 있는가? 영업집에 와서 면회하면 어떡해? 오늘 영업 또 끝장났군.”
그러자 성호는 지갑을 꺼내 5만엔을 꺼내더니 카운터에 가서 하나꼬한테 건넸다.
“미안해요. 오랜만에 만나다나니 그만, 이걸 받으세요.”
하나꼬는 이찌로와 오누이를 번갈아보면서 받지 않았다.”
이찌로는 성을 발칵 내며 성호 손에서 지페를 홱 채갔다.
“남의 영업을 파괴했으면 이만이야 내야지. 흥!”
뒤이어 그는 광문이랑 나나랑 데리고 조용한 보스실로 들어갔다. 
“하나꼬야, 여기 와서 말하자. 괜히 손님들을 다 빼우겠다.”
성호는 이찌로 뒤더수기를 쏘아보면서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고 부르르 떨었다. 밸 같아선 이찌로를 한대 갈겨 주고 싶었다. 주먹이 윙윙 울고 있었다. 그러나 복화(나나)와 광문의 처지를 생각하고 억지로 참으며 주먹을 천천히 풀었다.
하나꼬는 억이 막혀 도리머리질을 하다가 외까풀눈을 흘겼다.
“아빠, 왜 이래요? 아빠는 친척도 없고 인정도 없는가요?”
이찌로는 오히려 제쪽에서 노발대발했다.
“무슨 허튼 소리냐? 네처럼 인정을 베풀다간 마사지방이 다 망하겠다.”
이찌로는 광문과 나나를 손가락질하면서 나나한테 눈을 흘겼다.
“넌 절대 이런 애들과 한데 뒹굴면서 놀지 말라. 네가 정 광문을 동정하면 광문한테 시집보낼 거야.”
그때 나나가 뜻밖에 뭐라는지 아는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몽땅 깜짝 놀라게 하였다.
“아빠, 광문한테 시집가라면 못 갈 거 같애? 아빠 자꾸 광문이랑 업신여기면 진짜 광문과 확 결혼해버리잖는가 봐라!”
“미친 소리!”
이찌로는 눈앞이 새까매졌다.
그는 머리 아찔해나 부둥켜안았다.
“얘, 정신나갔잖았니?”
그는 하나꼬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머리도 뜨겁지 않고 정신도 올똘똘한데.”
이찌로는 하나꼬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정신 나가잖았으면 왜 그런 미친 소릴 칠 수 있느냐? 일순간 성이 나 한 소리지?”
하나꼬는 측은한 눈길로 광문을 바라보다가 그의 손을 잡고 보스실에서 나가며 도도거렸다.
“어째 다 같은 일해도 광문의 로임은 항상 적게 줘요? 그게 어디 공평한가요?”
“얘, 그 손 놓지 못하겠느냐?”
그러자 하나꼬는 광문의 팔까지 끼면서 기를 채웠다.
“또 광문일 욕해보지. 래일 당장 얘하구 결혼식 올리잖는가 봐.”
“광문아, 내 딸 손 놔라! 이 놈, 언감 금이야, 옥이야 하는 공주 손을 마구 잡아? 어서 놓지 못할가?!”
광문은 덴겁해 하나꼬의 손을 풀려고 했다.
그러나 나나는 대수로워 하지 않았다. 그녀가 내뱉은 말은 더 충격적이였다.
“괜찮아. 난 네가 마음이 고와서 사랑하고 있어. 일본 남자들은 다 바람둥이야. 아빠처럼 모두 안팎이 달리 독해. 겉으로는 웃으면서 깎듯이 인사해도 돌아서면 잔등에 칼을 박는 음흉한 자들이야. 난 성실한 조선인 광문이 제일 좋아.”
이찌로는 울상이 돼 보스실에서 나가며 애원했다.
“아이구, 우리 집안 망했구나. 하나꼬야. 죠센진(조선인)과는 절대 안돼. 광문아, 그 더러운 손 놔라. 제발 놔라! 하나꼬야!”
하나꼬는 기를 채우려는지 아빠를 돌아다보지도 않고 콧바귀를 “흥” 뀌였다.
성호는 자기 때문에 광문이네 오누이를 욕보이는 거 같아 저으기 미안했다.
그는 보수실 앞에 가서 허리굽혀 낮은 문턱에 들어갔다.
“보스님, 스미마센(미안합니다). 제가 그만 오랜만에 손자손녀들을 만나서 기쁜 김에 떠들썩해 미안해요.”
이찌로는 거들떠도보지 않으면서 두덜거렸다.
“젊은게 할아버진가? 그 할애비에 그 손군들이구먼. 어쩜 모두 조용히 할줄 몰라도 한창 몰라? 죳도 시즈까데 꾸다싸이(좀 조용해 주세요).”
성호도 일본인들이 특별히 “시즈(静)까“를 선호하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조용한 것은 일본인들뿐만이 아니라 독일 사람들 그리고 한국인들 어느 나라 인들이 좋아하지 않겠는가. 유독 대륙 사람들은 식당에 가나 어디로 가나 목주래를 빼들고 떠들기를 좋아하지.
섬나라 사람들은 “조용한” 걸 좋아하고 뭐나 겉에 드러내지 않고 참는 인내성이 강하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젤 음험한 뭔가를 온양하는 무서운 독종들이였다. 아무리 욕해도, 귀뺨을 얻어맞으면서도 상전 앞에서 “하이”, “하이” 하고 참는다. 그러나 인내성이 한계를 넘으면 비수를 뽑아 상전이고 부모고 뒤잔등에 찌르고 자기도 할복해 자살하는 독한 스찔이 있다.
성호와 광문, 나나, 그들의 극적인 만남과 환희는  “시즈까”라는 리성의 방뚝을 허물고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찌로는 가히 량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찌로는 인내성이 한계에 이르러 세길네길 뛰였다.
그는 보스실에서 나가더니 광문을 한쪽으로 나지막하게 불렀다.
“이리 와.”
목소리는 낮아도 보스의 위엄이 있었다.
하나꼬는 아빠를 흘겨보았다.
“뭐하려고 또 불러요. 좀 약자를 너무 업신여기지 말아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힘들게 사는 오누이를 작작 괴롭혀요.”
이찌로는 하나꼬가 뭐라든 개의치 않았다.
“너, 오늘부터 마사지방에 들어가지 말라. 울안이나 쓸어라.”
광문은 나지막하게 “예.” 하고 대답하고 빗자루를 가지러 창고 쪽으로 갔다.
하나꼬는 아빠 손을 잡고 애원했다.
“아빠, 진짜 이럼 난 광문과 결혼해버릴 거야.”
이찌로는 멍해 하나꼬를 돌아보더니 변명했다.
“은행나무 잎이 널려 손님들이 게으름뱅이네 마사지방이라고 하잖겠니?”
하나꼬는 아빠한테 다가서며 외까풀눈을 치켜뜨면서 바투 들이댔다.
“그럼 마당을 다 쓸면 광문이를 계속 마사지를 시키는 거죠?”
이찌로는 툭 튀여나온 퉁사발눈을 띠룩 굴렸다.
“오, 그래. 마사지 시키지.”
광문은 빗자루를 찾아들고 마당에 널린 은행나무 잎을 썩썩 쓸기 시작했다. 그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도 쓸고 서러움도 썩썩 쓸었다. 쓰레받기에 피눈물과 함께 쓰라린 알바도 쓸어담았다.
나나는 보다 못해 돌아서서 어깨를 들먹였다. 동생이 불쌍해 차마 보기도 눈물겨웠다.
(무슨 로동개조라도 시키는 건가? 이 놈 집에서 알바 못하겠다,)
옆에서 보는 성호는 속이 더 쓰라렸다. 10여년만에 일본까지 와서 감격적인 상봉을 했건만 못 볼 것을 본 것 같아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얼마나 고생스레 살아왔겠는가.  어쩜 얘들을 이렇게도 못살게 군단 말인가?)
이찌로는 나나를 손가락질하면서 호통쳤다.
“울긴 왜 울어? 마사지방을 초상집으로 만들 예산이냐? 어서 손님 방에 들어가지 못해?”
이찌로는 보스실에 들어가면서 지지벌거렸다.
“저 오누이 때문에 영업 다 망쳐 먹게 생겼어. 형님은 왜 저런 애들을 보냈어?”
그는 보스실 문을 닫고 두덜거렸다.
“뭘 보고 형님은 쟤들을 나꿔? 나나 반반한 얼굴 보고? 흥!”
성호는 밸 같아선 당장 나나와 광문을 훌 끌고 이 놈의 마사지방에서 나가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나 눈치를 보고 그만 두었다.
하나꼬는 보스실에까지 따라들어와 푸념질했다.
“아빠, 작작 오누이를 섧게 굴어요. 오누이 가면 우리 마사지방이 망가져요. 걔들 얼마나 성실하고 부지런히 일했어요? 오누이 찾는 단골부부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흥!”
이찌로는 하나꼬의 말에 오히려 밸을 왈칵 썼다.
“넌 걔들하구 휩쓸리지 말아. 광문과 친하지 말라. 정 그럼 오누이 둘 다 쫓아내겠어.”
“뭐라고? 쫓겠다고?”
“못 쫓아낼 거 같아?”
하나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빠, 순박한 농민 감정 어디로 갔어요. 시내에 와서 많이 변했어요. 광문이를 쫓아내면 난 광문과 도망가지 않는가 봐요.”
이찌로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하나꼬! 제정신 있니? 도망간다고?”
“그럼 도망가 결혼하지 못할 거 같애?”
그제야 이찌로는 누그러들었다.
“그러지 말라. 아빠 잘 못했어. 넌 내 무남독녀야. 넌 내 생명의 모든 게야. 넌 형님과 나의 생명 연속의 전부야. 네가 도망가면 아빠 죽어.”
“그럼 광문을 잘 대하세요.”
이찌로는 보스실에서 달려나가 하나꼬의 손을 다잡고 거듭 머리까지 조아리면서 다짐했다.
“그래. 알았어. 잘 대할게.”
그러나 속으로는 이빨을 악물고 못된 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리고 있었다.
(집 안에 도둑놈을 기를 순 없어. 광문을 쫓아내지 않다간 귀여운 딸애마저 두둑맞히겠다.)
그렇다. 대개 일본 사람들은 속으로는 굴하지 않지만 컽으로는 꼽싹꼽싹 허리 굽히며 “하이”, “하이” 하는 습관이 있었다.
하나꼬는 음흉한 아빠의 퉁사발눈을 꿰뚫어보고 앙심을 먹은 아빠의 심보를 꿰뚫어보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녀는 아빠 손을 잡아 끌고 보스실로 되들어갔다.
“이찌로선생, 귀를 까시고 명심해 들으세요.”
그녀는 아빠 손아귀에서 손을 핵 뿌리치면서 외까풀눈을 흘기며 위협조로 호통쳤다.
“이제 광문을 쫓아내는 날엔 난 진짜 광문과 함께 도망친다는 걸 아세요.”
이찌로는 겁기 띈 퉁사발눈으로 하나고를 바라보며 애원했다.
“그러지 마. 제발 그러지 말라. 내 애간장을 태우는 거 보려고 이래? 엉? 아빠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사랑하면 명심해두세요.”
하나꼬는 아빠의 약점을 딱 틀어쥐고 다짐을 단단히 땄다.
“첫째, 광문을 쫓지 못해요.”
“그래, 그래. 네만 도망치지 않으면 백가지라도 대답하마.”
하나꼬는 손꼽아가면서 다짐을 땄다.
“둘째, 다른 일본인 안마사만큼 보수를 줘야 해요. 일전한푼 골아도 안돼요.”
“그래. 그래.”
“광문이네 오누이 주숙할 방을 하나 무료로 내줘야 합니다.”
이찌로는 억이 막혀 입을 버치처럼 쫙 벌렸다.
“얘, 형님이 나나넬 세집 마련해줬다던데 왜 여기다 또 방을 마련해야 해?”
“오누이 쓸데 없는 교통비 팔면서 한밤중에 집으로 가려면 힘들잖아요?”
이찌로는 기막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일본인 안마사들보다도 우대하는데. 이 집 보스는 너냐? 내지.”
하나꼬는 외까풀눈을 곱게 흘기며 아빠를 얼리고 닥치고 했다.
“딸의 말 안 듣겠으면 말아요. 아빤 왜 어려서 부모 잃고 의지가지 없이 사는 오누이를 그렇게 괴롭히는가요? 아빠도 딸 가진 분 아닌가요? 상처도 많은 오누이한테 왜 새 마음의 상처를 주는가요? 바꿔 놓고 당신 딸이 남의 집에 가서 일하면서 상처받으면 좋겠는가요?”
“어느 놈이 감히 내 따님을, 흥! 가만놔둘 거 같애?”
이찌로는 딸의 말에 끌려들어 한바탕 열변을 내쏘고나니 딸한테 진 것 같아 하나꼬한테 허구픈 웃음을 지어보였다.
“쟤들은 쟤들이고 넌 네야. 넌 달라. 내 귀공주야. 알아?”
하나꼬는 아빠한테 눈을 흘기더니 정색했다.  
“이젠 더 길게 말할 필요없어요. 랠 당장 광문과 함께 달아나 살겠다니깐.”
“얘, 제발 그러지 마.  내 귀여운 딸아. 다 들어주마.”
하나꼬는 아빠를 끌어안고 네모번듯한 지지벌건 얼굴에 뽀뽀를 뽁 해주었다.
하나꼬가 보스실에서 나와 광문이네를 찾았다.
그런데 바깥 울안에서 처량한 울음소리 들리지 않겠는가.
“엄마-“
“아버지-“
오누이가 글쎄 오누이와 할아버지 서로 부둥켜 끌어안고 엉엉 대성통곡치지 않겠는가.
하나꼬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광문아, 울지 마. 네가 울면 난 죽을만큼 괴로워. 울지 말아요.”
그들 넷은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쳤다.
이찌로는 광문이랑 꽉 껴안고 우는 하나꼬를 먼발치를 내다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생에 가진게 많은 자의 게트름소리 꼬리치며 운명의 음흉한 칼질을 하고 있다.
       처랑햔 울음소리에 맞춰 속절없이 은행나무 략엽이 지는 소리 더 쓸쓸해진다.
        전생에 무슨 죄라도 지었소?
       땅바닥에 나뒹구는 은행나무 락엽처럼 알바생 오누이 피눈물나는 고행 눈물겹기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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