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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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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78) 댓글:  조회:1515  추천:1  2017-08-26
                                                10. 검은 그림자         해가 서산으로 그물그물 져갈 때 공학과 벽선이 공안일군들의 트럭에 앉아 함흥촌 촌공소에 들어섰다. 상순이 황급히 마주 나가보니 천룡구 국장이 보이지 않고 대신 허영호 과장이 공안일군 대여섯을 데리고 오지 않았겠는가. 상순은 허백호 서기와 관계를 윤활하게 처리하려고 허영호를 현공안국 정철과 과장에 진수해파출소 소장을 겸임시켰던 것이다.  “보고, 김 국장. 명을 받고 달려왔습니다. 전투임무를 맡겨주십시오.” 허영호가 군례를 척 붙였다. 상순은 인차 답례하고 나서 허영호 일행을 데리고 촌공소 안에 들어가 할아버지한테 인사시켰다. 서로 인사를 끝내고 자리에 앉자마자 상순은 영호과장에게 물었다. “어째 천 국장은 오지 않았소?”  “천 국장은 로야령 일대에 또 미제 남조선 특무들이 날아내려 현 공안국의 대부분 공안일군들을 데리고 간다고 알리라고 합디다.” 상순은 허영호의 대답에 머리를 끄덕였다. 이젠 천용구는 오래잖아 국장으로 제발될 것이었다. 상순은 자기가 제발시킨 천용구의 발전에 마음 속으로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상순은 눈길을 옆에 서 있는 공학과 벽선에게 돌렸다. “인차 저 트럭에 앉아 도문과 개산툰 병원에 가라. 요즘 조선에서 병원에 들어온 조선 부상병들에게 용천과 이병수라는 조선인민군 군관이 왔는가 알아보고 오너라.” “용천 대장이 의심스럽습니까?” 떡 서서 자기를 바라보는 공학을 보고 상순은 여럿을 둘러보며 의심되는 몇 가지를 말했다. “용천 대장이 찬 권총은 조선인민군 소련제 권총이 아니고 미제 모젤권총이었다. 그들이 신은 군화는 남조선괴뢰군이나 미군이 신는 군화인 거 같아. 내 소서구에 숨어서 볼라니 그들 둘은 조개덕 뒤 한족묘지에 숨어서 망원경으로 우리 마을을 한참 살피다가 들어왔다.” 그제야 공학은 황급히 바깥에 뛰어나가 트럭에 올라탔다. 바깥에서 트럭이 급히 떠나는 엔징 소리가 요란히 들리더니 점점 멀어져갔다. 이윽고 진수해파출소에서도 공안일군들 넷이 찌프에 앉아 동선의 안내를 받으며 달려왔다. “난 영월구 공안 분국 국장 김상순이오. 마을의 민병들까지 합세하면 이 병력으로 이 부근에 날아 내린 특무들을 붙잡기는 문제없소.” 상순은 자기 작전방안을 내놓았다. “지금 용천과 병수가 특무라는 확실한 증거를 쥐지 못한 형편에서 풀을 건드려 뱀을 놀래지 말아야 하오. 그물을 좀 더 넓게 쳐 큰 고기를 낚아야 하오.” 그 말에 모두들 머리를 끄덕였다. 상순은 좌우를 둘러보며 뒷말을 이었다. “먼저 우리 마을에 뛰어든 불청객들을 면밀히 감시하는 한편 가능하게 바깥에 있을 다른 특무들을 수색해내야 하겠소.” 그는 뒤이어 민경들에게 이리이리 하라고 지시했다. 민경들은 상순의 지시대로 분조를 나눠 어둠이 깔린 산으로 수색하러 올라갔다. 병완은 마을의 흥수와 상진, 보준, 한봉 그리고 외손자들인 동길, 명길까지 불러 민병들을 조직해 전투를 포치했다. 민병들은 분조를 나눠 먼발치에서 용천과 병수가 들어있는 덕성이네 집을 물 샐 틈도 없이 에워싸고 감시했다. 자정이 돼 공학과 벽선이 민경과 함께 트럭에 앉아 웃새집 앞 큰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병완은 어데 갔는지 집에 없었다. 공학과 벽선은 황급히 상순 삼촌의 집으로 뛰어갔다. 그때 상순은 마당의 울바자 안에 숨어서 서쪽 덕성이네 집을 살피고 있었다. “그래, 알아 봤느냐?” “예.” “집에 들어가 얘기하자.” 상순은 어둠이 두텁게 덮인 주위를 둘러보더니 윗방으로 들어갔다. 공학은 목소리를 낮춰 정황을 알렸다. “도문과 개산툰 병원에 가서 알아봤습니다. 그런 군관 온적이 없답니다. 부상병을 호송한 간호사들과 전사들, 심지어 부상병들도 용천과 병수라는 군관은 전혀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합디다.” 상순은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부상병은 간호사들과 병사들이 호송하는 게 상례지. 용천과 같은 군관이 전선에서 싸우지 않고 후방으로 부상병이나 호송할 순 없다. 별로 이상하다 했더니. 흥!” 상순은 무슨 궁리를 하더니 숙였던 머리를 들었다. “할아버지한테 가자.” “노할아버지가 어디로 나가고 계시지 않습디다.” “이 밤중에 어디로 갔을까? 병수도 보이지 않고. 아차, 할아버지가 위험하다.” “웃새집 큰어머닌 소서구 쪽으로 올라갔답디다.” “뭐라고?” “넌 윗집 용천의 동태를 살펴라.” 상순은 공학에게 부탁하고 권총을 빼들고 후닥닥 뛰어나갔다. 그는 쏜살같이 태평강을 건너 천지꽃산 비탈로 오르기 시작했다. 할머니 산소로 거의 올라갈 때 할아버지가 대성통곡 치면서 하는 말소리가 어둠을 타고 울렸다. “여보, 노친~ 내 오래 사니 별 일을 다 보겠소~ 으흑흑, 자식을 앞세우고 내 무슨 멋에 산단 말이오? 황소 같던 맏아들을 조선 전쟁터에서 미군 비행기 폭격에 잃었소. 그 놈이 이 추운 겨울에 어느 산에서 어는지? 승냥이들이 물어갔는지 알 길이 없, 없소~ 저 애비 없는 장손 경수가 불쌍하오.” 상순은 할아버지가 맏아들을 그리며 할머니 산소에서 대성통곡치고 계시는 것을 보고 마음이 칼로 에이는 듯이  아팠다.       그가 산소로 달아가려고 할 때다. 갑자기 나무숲 속에서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순은 멈칫 멈춰서며 허리를 굽히고 어둠속의 나무 숲속을 살피며 귀를 도사렸다. “할아버지!” 나무 숲 속에서 누군가 나오며 소리쳤다. “누구야?” “손자 이병수예요.” “손자?” “그래요. 전 할아버지 손자벌 돼요. 기억나요? 한산섬의 이성군 할아버지 말이예요.” “큰 처남 말인가?” “예. 제가 바로 이성군 할아버지 맏손자예요. 기억나죠. 이전에 제가 할아버지랑 아버지랑 함께 명천 운주동에 갔죠.” “아, 그래. 기억난다. 네가 그럼 큰처남의 손자란 말이냐?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병완은 병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래, 네로구나. 정말 꿈만 같구나.” 병완은 병수를 끌어안고 노친의 산소에 대고 울면서 말했다. “여보, 노친, 보았소? 이게 꿈이오? 생시오? 당신이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본가집 손자 병수가 왔소. 으흐흑, 오래 살아야 할 당신이 가고 내 이렇게 오래 살아 뭘 하오?” 병수는 권총집을 잔등 뒤로 돌려놓고 넓적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할머니, 고향에서 이제야 찾아온 손자의 절을 받으세요. 왕고모할머니― 어허헉, 할아버진 생전에 할머니를 얼마나 찾으셨다고 그래요. 허헉헉, 헉헉.” 상순은 그제야 병수가 바로 이전에 운주동에 와서 자기와 놀던 형님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형님, 나 상순이오.” 상순이 다가가자 병수는 일어나 팔소매로 눈물을 닦으면서 상순을 와락 끌어안았다. “진작 알았어. 네가 바로 성칠 큰아버지가 외우던 공안국 국장 동생인 걸 진작 알았다.” “헌데 왜 이제야 말하오?” 병수는 상순을 끌어안고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뒤이어 그는 병수와 함께 할머니 산소 옆에 나란히 앉았다. 병수는 거짓말 절반 정말 절반 꺼냈다. “성칠 큰아버지는 우리 조선인민군 연대장이죠. 난 저 용천 대장과 함께 성칠 큰아버지네 조선인민군에 입대했지. 그때 성칠 큰아버지는 조선인민군을 영솔해 경남에까지 쳐들어갔어요. 후에 용천 대장은 전선에서 큰아버지 연대의 부연대장을 했고 난 큰아버지가 봐줘서 대대장으로 됐어요. 전 잘 몰랐던 건데요. 왜 용천과 성칠 큰아버지가 진달래 어쩌고 경주와 경수 저쩌고 하면서 고양이와 쥐처럼 싸우는지 영문을 정 몰랐댔는데요.  지금에야 알 것 같아요. 원래 진달래 아주머니 때문이야. 서로 자기 아내라고 아귀다툼한 거지.” 욱 하면 벽도 마구 차고 나가는 성미인지라 상순은 길게 늘여놓는 병수의 말을 중둥무이를 시켰다. “그래 대체 어쨌단 말이오? 성칠 형님은 확실히 미군 폭격기 폭격에 희생됐소?” “바로 그거 때문이야.” 어둠 속인지라 병수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말만은 아주 똑똑했다. 병수는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난 누가 큰아버지를 살해했는가를 알려주자고 이 곳에까지 용천 대장을 따라 온 거예요.” “그래 누가 우리 큰아버지를 살해했소?” “저 용천이란 놈이 죽였어.” “뭐라고?” “내 말 들어요.” 병수는 산소 주위를 둘러보더니 끝내 큰마음을 먹고 무거운 입을 열고야 말았다. “왕고모 돌아가신 걸 알고 모든 걸 무덤에 가지고 가려고 했던기여. 허나 할아버지께서 할머니 산소에서 대성통곡치실 때 내 마음 비길데 없어졌어. 저 용천이 무명고지에서 큰아버지 가슴에 총을 놔서 살해했던게라.” “사실인가?” “그래.” “절대 그럴 수 없어. 큰아버진 어떤 명사수 사냥꾼이라고. 용천에게 다 당해?” “사실이라니께. 무명고지에서 성칠 큰아버진 산 위에서 달려 내려가며 총을 쏘았지. 용천은 산 아래에서 올리쏘았지. 용천은 어깨에 관통상을 맞고 쓰러졌어. 허나 큰아버진 가슴에 총을 맞고 눈 덮인 무명고지에 쓰러졌어. 가슴에서 뻘건 피가 쿨쿨 쏟아져 허연 눈을 뻘겋게 질벅하게 물들였지.” “넌 조카라는 놈이 왜 용천을 죽여 버릴 게지. 놔뒀어?” “개인 원수를 어떻게 갚아? 조선인민군은 강철 같은 기율이 있어요.” “네 놈이 가슴에 피가 흐른다면 친혈육을 살해한 원수를 갚지 않는단 말이냐?” 병수는 자기 멱살을 틀어쥐어 마구 흔드는 병완의 손을 풀면서 중얼거렸다. “그런 형편이 있었어요.” “뭐야?” 상순은 반말이 나갔다. “용천의 힘을 빌려 한국군에 혼입한 친일주구 한철주와 한선주 형제를 처단했던 거야.” “뭐라고?!” “천천히 들어봐.” 병수는 잔등 뒤에 돌려갔던 권총집을 앞으로 끌어 돌려오고 뒷말을 이었다. “용천 연대장은 친일주구를 한없이 증오했어. 서울에서 한철주와 한선주 형제를 발견하자 우린 조선인민군에 입대한 사실을 속이고 한국군에 입대하는 척 하면서 그 놈 형제들의 군부대에 잠입했댔어.” “그래서?” 상순은 대뜸 경각성을 높이며 사위를 둘러보았다. “우리 둘은 기회를 노리다가 눈 내리는 날에 그 놈 형제 뒤를 밟아 쇠파이프로 대갈통을 까서 죽여버렸던 거야. 우린 적정까지 정찰해 가지고 자기 부대로 돌아왔어. 그래서 우린 무명고지와 508고지를 몽땅 점령했어.” “우리 마을에서 간 칠백이랑 최동욱이랑 잘 알겠구만.” “알다뿐이겠어? 다 죽었어. 칠백 대대장은 한국괴뢰군과 육박전을 벌려 여섯 놈이나 찔러 죽이고 장렬히 희생됐어. 용천 연대장은 사촌동생을 잃고 대성통곡쳤지.” 병완은 믿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이야? 용천 대장이 자기 사촌동생 칠백을 죽였다니?” “에이, 처참했어요. 무명고지 백병전에서 용천 연대장이 총창으로 칠백의 총창을 막는 새 다른 한국군 병사가 칠백을 찔러 죽였어요.” “그랬구나.” 병수는 횡설수설 말도 많았다. “난 함흥촌에 와서 할아버지랑 친척들을 찾아보려고 부상병을 호송한 후 여기 왔제이. 용천 연대장은 아마 진달래 아줌마와 경주를 고향에 데려 갈락꼬 왔죠.” 상순은 병수의 그럴듯한 말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병완은 병수의 어깨를 다독였다. “너 잘 왔어. 아무튼 남조선은 가난한 사람이 살 고장이 아니야. 여긴 가난한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이야.” 상순도 병수를 꿰뚫어보면서도 할아버지를 따라 눅잦혔다. “와 보니께 함흥 촌은 확실히 살기 좋아요. 빈부차 없이 모두 평등하게 사는제(지)라.” 병수는 아주 그럴듯하게 엮어댔지만 숱한 의문을 누설했던 것이다. 경주에서 조선 인민군에 입대했다는지, 조선인민군 신분으로 서울에서 한국군 연대장을 하는 한철주와 한선주 형제 뒤를 밟아 쇠파이프로 때려 죽이었다는지, 한국군에 입대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변복하고 뒤를 밟아 권총으로 한철주와 한선주를 죽일 수 있지 않는가? 그런데 하필 우둔하게도 파이프로 때려 죽여? 한국 괴뢰군에 거짓 입대했다는지 용천은 조선인민군이라면서 진달래와 경주를 한국 고향 경주에 데려가려고 왔다는지 하여간 빈틈이 벌집처럼 숭숭했다. 상순은 아직 다른 특무의 꼬리를 밟지 못한 형편에서 소홀히 풀을 건드려 뱀을 놀래지 않으려고 했다. 허나 나라의 적일뿐만 아니라 성칠 큰아버지를 참살한 원수 용천은 처단해야 했다. 상순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형님, 잘 알았소. 큰아버지를 살해한 원수는 용서할 수 없소.” “그래 될까? 당 조직에도 기율이 있잖아?” “전우를 죽인 원수 놈은 죽어 마땅하오. 그 놈은 큰아버지를 살해한 죽을 죄를 졌어.” 병수는 산 아래로 내려가기 전에 왕고모 이성희의 산소에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할머니, 고향을 떠나 이 머나먼 간도 땅에 묻히다니오? 내 어떻게 아버지한테 말해라우? 흑흑, 할머니 왜 우리 가문은 이렇게 사처에 흩어져 살아야만 해요?” 병수의 흐느낌 소리는 병완과 상순의 코마루를 시큼하게 만들었다. 병수는 혈육의 정으로 될 수 있는 한 자기를 은폐하고 보호를 받고 싶어 별로 정도 없는 할머니 산소에 이마가 깨지게 조아리며 절을 꾸벅꾸벅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원래 병수는 용천의 명에 따라 마을 동정을 살피다가 수림 속에 가서 다른 특무들에게 밥을 전해주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병완의 동정을 살피러 갔다가 뒤를 밟아 산소에까지 왔고 뒤에 상순이네가 따르는 인기척을 느끼고 산소에 나왔던 것이다. 그는 언제든지 용천이 큰아버지 성칠 연대장을 살해한 진상을 까밝혀주려고 했지만 자기 정체도 누설될 가봐 주저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렇게 찾던 할머니 산소 앞에서 대성통곡치는 할아버지 병완을 보고는 더는 참을 수 없어 거짓말 절반 진짜 절반 섞어 용천이가 성칠을 살해한 진상을 반이나마 밝히고 말았던 것이다. “얘들야, 돌아가자. 지금 사처에 남조선 특무들이 널려 있어 위험하다.” “예? 특무라니오?” 아닌 보살을 하는 병수를 보고 병완은 코웃음이 나왔다. 그는 상순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가는 병수의 비틀거리는 잔등을 보다가 일부러 뒤로 떨어져 걸었다. “먼저 집으로 내려가라.” 병완은 일부러 한어로 말했다. “내 충국이네 집에 가봐야겠다. 남조선과 대만 특무 놈들은 이 곳 지주들과 내통할 수도 있어.” “아닙니다. 제 가 보겠습니다.”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민경과 함께 병수를 데리고 마을로 내려가고 상순은 충국이네 토성안집으로 다가갔다. 11. 대의멸친(大意灭亲)         자정이 퍽 넘었는지라 골짜기 어귀를 지키며 순라하던 민병들도 집으로 가버리고 없었다. 토성 안은 너무 조용했다. 다만 토성 밖의 벌거숭이비술나무들이 초겨울 바람에 무섭게 윙윙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상순은 권총을 빼들고 슬금슬금 장학산이 든 몸채에 들어갔다. 서쪽에는 지금 마을의 한족집이 들어 살고 있었다. 그는 불시에 동쪽 방문을 떼고 불쑥 들어갔다. “불을 켜!” “이 밤중에 누구요?” 버스럭 바스락 어지러운 소리에 뒤이어 등잔불이 희미하게 켜지면서 남쪽구들에서 장미련이 이불로 가슴을 가리며 놀란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상순은 권총을 빼든 채 북쪽구들에서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는 장학산과 장충국을 쏘아보았다. “무슨 정황이 있으면 알려라! 까딱 대만특무들과 한바지를 입고 춤췄다간 용서 안 할테다!” “형님!” “또, 또. 형님은 무슨 놈의 형님이야!” 충국은 입을 헤 벌리고 상순을 쳐다보았다. “너희들은 우리 할아버지가 담보를 서고 지방 관제를 한다는 거 잊지 말라.” 충국은 피씩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장학산은 김이 빠진 공처럼 주저앉아 중얼중얼 입귀로 이런 말을 흘리었다. “너네 할아버지야 정말 감사하지. 옛날 너희들 집에서 조선에서 올 때 엉덩이를 들여놓을 초가집도 없었고 손바닥만한 땅도 없었지.  우리 집에서 묵으면서 밭도 붙이게 했어. 그 은정을 깡그리 잊지 않고 우리를 감옥에서 꺼내준 게지. 자초에 국민당이 이기지 못할 걸 알았더라면 충국이 뭐 삼도만으로 갔겠니? 토비질 하러 간 건 정말 잘못한 일이지. 허나 우리가 항일유격대를 도와주고 충국도 항일유격대에 들어 너와 함께 일본 놈들과 싸우지 않았느냐? 그 공적은 잊지 말아야지. 너네 할아버진 아주 좋은 공산당원이야. 옛날 배은망덕하지 않는 진짜 땅을 밟고 하늘을 떠인 사내대장부야.” 상순은 권총을 잡고 장학산이 하는 푸념 질을 들으면서도 희미한 등잔불을 빌어 여기 저기 살폈다. 그는 충국이 이불을 이상하게 왼손으로 꽉 누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상순은 구들에 후닥닥 뛰어 올라갔다. “이게 뭐야?”  그는 이불을 홱 젖혔다. 순간 이불 밑에서 인민페 한 묶음이 드러났다. “어데서 난 돈이냐? 로실히 탄백해라!” 상순은 돈을 쳐들고 권총을 충국에게 들이댔다. 충국은 장학산의 눈치를 살폈다. “얘야, 발편잠을 자면서 살자.” 허나 충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 놈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 대만특무들이 왔다 간게 분명해. 너희들이 무보수로 노동개조를 하면서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새 돈이 생길 수 있겠는가?” 상순은 그들 부자가 벴던 베개도 들고 보았으나 총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 저기 살펴보아도 북쪽구들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하여 상순은 남쪽 구들에로 시선을 돌렸다. (이 놈들이 돈을 미처 치우지 못한 걸 보면 금방 누군가 왔다 갔구나.) 상순은 남쪽 구들에 몸을 날려 건너갔다. 장미련은 고의적으로 그때까지 웃옷을 입지 않고 이불로 가슴을 가리며 살 냄새를 풍겼다. 상순은 바들바들 떠는 장미련을 보고 수상해 이불을 활 들어 젖혔다. 미련의 허연 허벅다리로 누르고 있는 담요 밑에서 뻘건 수시 드러났다. 요대기를 활 젖히니 그 밑에서 권총 한 자루가 나왔다. “이게 뭐야?” 상순은 요 밑의 권총을 제꺽 잡고 충국을 겨누었다. 충국은 그때까지 멍해 앉아 있다가 입을 뗐다. “상순아, 대만특무들을 잡게 협조할 게. 제발 목숨만 살려다구.” “이 놈아, 비굴하게 놀지 말고 입공속죄하면 과거를 묻지 않을테야.” 그제야 장충국은 금방 대만 특무들이 왔다간 일을 낱낱이 탄백했다. “삼도만 토비 두목 전 소교는 길림 신개령 전역에서 죽었다. 전소교 동생 전소광이 료심전역 때 영구로 해 대만으로 도망쳤댔다. 이번에 그가 ‘왕발’과 ‘장광우’ 라는 대만특무를 데리고 금방 우리 집에 왔댔어. 그는 우리 부자를 보고 이 부근의 지주들로 유격대를 조직해 장백산 원시림 속에 들어가 유격전을 하자고 했다.” 상순은 저으기 놀랐다. 그러나 그런 내색을 내지 않고 따져 물었다. “그 놈들이 어디로 갔어? 三道弯 小虎한테 갔는가?” "전소광이 삼도만에 갔댔어. 그런데 조소호랑 모두 다 망해빠진 국민당 특무질을 하기 싫어하더란다." "왜  제때에 보고하지 않았어?" “내일 날이 밝으면 너를 찾아가 보고하자고 했다. 그런데 돈묶음이 아까워서. 에헴.” 상순은 세 귀 눈을 굴리면서 적정을 파고들었다. “이제라도 이실직고해라. 전소광이 남조선 특무들은 오지 않았다더냐?” 장충국은 입을 연바하고는 살자고 다 불어댔다. “우리한테 남조선 특무들도  왔으니 신심을 가지고 지주유격대를 조직하라고 하더라.” “어디에 있다더냐?” “이름은 모르겠는데 남조선 특무 셋이 함흥촌에 갔다더라.”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우린 특무 놈들의 정체를 다 알고 있어. 네 놈이 정녕 살고 싶으면 아는 대로 이실직고해라. 뉘네 집에 들었다더냐?” “거 김덕성이네 집에 들거라고 하더라. 너도 알지만 덕성이 조카는 용천대장 아니고 뭐냐? 용천은 이전에 장백산 항일유격대에 있다가 북만으로 가지 않았고 뭐야?” “알았다.” 상순은 미련의 요대기 밑에서 들춰낸 권총 탄창의 탄알을 다 빼내고 빈 탄창을 맞춰 충국에게 뿌려 주었다. “잠시 빌려 줄테니 대만 특무들이 오면 티를 내지 말고 우리한테 기별해라.” “할 수 있느냐?” “그럴게. 꼭 립공속죄할게.” “이번에 대만특무를 잡는데 공을 세우면 너희들도 반혁명 모자를 벗는데 좋을 거야.” 장학산과 장충국은 머리를 끄덕였다. 미련은 그제야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으면서 상순에게 추파를 던졌다. (더러운 년, 미쳐두 한 두 가지 아니야. 내가 누구라고? 공산당원은 강철의 전사라는 것도 모르고 추파를 던져? 쳇!) 상순은 충국에게 물었다. “특무들이 언제 또 오겠다더냐?” “그자들은 먹을 게 없어 이틀 후면 또 오겠다더라.” “미군 비행기는 오지 않는다더냐?” “미군 비행기 한 대가 격추된 후 미군 비행사들이 질겁해 차일피일 미루면서 잘 오지 않아 먹을게 다 떨어졌다더라.” “그 놈들이 무전기가 있는 것 같더냐?” “있는 것 같더라.” “전소광은 삼도만에 재차 가서 당지 지주와 옛 토비들을 긁어모으러 가겠다고 하더라.” "조소호랑 지금도 평강촌에 있다더냐?" "아니야, 그는 지금 삼도만향 소재지에 내려와 산다더군."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후에 상순이 사람을 파견해 조사해봐 안 일이지만, 조소호는 확실히 망해빠진 국민당에 절망을 느꼈기에 두번 다시는 국민당 따라 특무질하지 않으려고 작심하였다. 그는 전소광 등 대만 특무들이 재차 찾아올가봐 삼도만 소재지에서 살다가 어느 산골에 은신해버렸다고 하였다.  한편 상순은 혹시 특무들이 충국이네 집에 들이닥칠 가봐 근심되였다. 그는 충국을 데리고 사랑방에 가서 한족농민 진씨를 시켜 할아버지와 허영호 과장에게 기별해 민경들을 데리고 충국이네 집 주위를 포위하라는 명령을 전달하게 했다. 약 20분 후에 허영호 과장이 민경 셋을 데리고 달려 왔다. 상순은 허영호에게 장충국에게서 들은 적정을 알려준 후 충국이네 집에 특무들이 들어가기를 기다려 포위 습격해 특무들을 생포하라고 했다. 어느 결에 동녘이 희붐히 밝아왔다. 상순은 허영호 과장에게 자기 할머니 산소 부근에 높은 유리한 지형의 나무숲 속에 숨어 장충국이네 집을 감시하게 하고는 함흥 촌으로 내려와 곧추 촌공소로 가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상순은 구들에 올라가자마자 엊저녁에 발견한 일을 알린 후 “할아버지, 용천과 병수를 즉시 체포합시다.”라고 했다. 병완은 한참 궁리하다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지금 시기상조야. 혹시 전소광이랑 삼도만에 가는 척 하고 우리 마을 주변에 숨어 있으면 어찌니? 용천과 병수가 나포된 것을 안다면 그 놈들이 달아날 수도 있어. 될 수 있는 대로 동시에 잡으면 좋아.”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예, 그게 좋겠습니다. 그럼 이틀 후에 충국이네 집에 나타날 놈들을 먼저 나포한 후 총을 쏘아 신호를 보내면 용천을 나포하면 어떻습니까?” “좋을 거 같다. 그 새 아무런 티도 내지 말고 용천과 병수를 잘 감시해야 한다. 좋기는 덕성이를 시키면 좋겠지만 자기 조카라고 그럴 거 같지 않다. 용천이가 그 나그네를 보고 고향 경주에 가자고 해서 붕 들떴더라.” 노련한 할아버지를 감탄하며 상순은 “진달래 아주머니를 시켜 용천을 감독하면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병완은 바깥에 나가면서 “아예 용천을 우리 촌공소에 데려다 얘기를 하면서 감시하자.”라고 했다. “범을 굴에서 끌어내 연금이라도 하려는 겝니까?” 병완은 머리를 끄덕였다. “경수는 내 손자야. 용천이 경수를 해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상순은 “근심하지 마십시오. 내 진달래 아주머니한테 침을 놓겠습니다.”라고 하며 바깥으로 나갔다. 집에 돌아가 대충 아침을 먹은 상순은 윗집으로 씽 하니 곧추 찾아갔다. “용천 대장 있소?” 상순은 경각성을 높이며 권총집에 손을 대고 집안에서 대답도 하기 전에 윗방문을 뚝 떼고 쑥 들어갔다. 그러나 용천은 윗방에 없고 다만 병수가 곤해서 쿨쿨 자다가 손으로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정지를 내다봐도 용천은 보이지도 않았다. "용천 대장은 어디로 갔소?" 덕성은 조왕칸 쪽으로 돌아앉아 설거지를 하며 어물거렸다. “진달래네 집으로 갔어. 경주를 데리고 놀겠다고 하더라.” 상순이 바깥으로 되나가다가 경주 손을 잡고 울바자 안에 들어서는 용천과 딱 마주쳤다. 그들 둘은 모두 반사적으로 권총집에 손이 가다가 멈췄다. “허허, 난 또 누구라고?” 상순은 어색하게 웃는 용천을 보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전쟁터 이야기를 듣자고 촌공소로 오라고 합데다.” “그래? 곧 가지.” 이때 뒤에서 진달래가 경수를 업고 오다가 상순을 쳐다보았다. 상순이 피뜩 보니 어째 진달래의 철색얼굴에 복잡하고 검은 그림자가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용천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경주 손을 잡고 상순을 따라 촌공소로 갔다. 그는 아직도 상순을 몇해전 애숭이로 보았다. (네놈이 공안국장이면 뭐라나? 까짓, 네놈들 몽땅 잡아치워 후환을 없앨테야. 흥!) 용천은 원래 함흥촌에는 병완이나 민병들이나 있는가 하고 들어섰댔다. 그런데 군복차림의 상순이 나타나자 저으기 긴장했다. 그러나 자기들 특무동료들을 생각하자 차츰 침착성을 회복했다. 상순은 용천을 촌공소에 들여보내고 뒤에 떨어졌다. 그는 진달래 아주머니를 불러 집 서쪽모퉁이를 돌아가 나직이 말했다. "용천은 남조선 특무입니다. 용천은 성칠 큰아버지를 살해했답니다." "뭐라고?" 진달래는 그 충격적인 말에 깜짝 놀라했다. 그러나 그는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아니, 용천과 성칠 오빠는 항일전쟁 시기 생사전우인데. 아무리 전쟁판이라도 그렇지. 용천이 차마 전우를 살해까지 했겠느냐? 넌 용천이 성칠을 살해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상순은 병수에게서 들은 진실내막을 쭉 이야기해주었다. "오빠!" 진달래는 풀썩 물앉으면서 경수를 끌어안고 서럽게 울었다. "큰어머니, 우리 함께 큰아버지  원수를 갚읍시다." 진달래는 경수를 놓고 천천히 일어나며 이를 옥물었다. "용천, 그 워수놈 절대 용서할 수 없어!" 그러나 그녀는 경주를 떠올리는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 용천은 불쌍한 아들 경주의 친아버지 아닌가. (경주 아버지를 어찌 내 손으로 죽여야 해?) 그녀는 차마 손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아, 구경 무엇이 항일유격대 전우였던 그들 부부를 원수로 만들어놓았는가. 계급립장문제인가? 용천은 지주 아들, 진달래는 빈고농 사냥군의 딸, 아, 그렇지. 무산계급과 지주계급 투쟁의 산물인 것 같았다.  계급투쟁은 출신이 다른 그들을 다른 길로 갈라놓았다.  또 부동한 향토애는 그들 부부를  남조선 사람과 북조선 사람으로 갈라놓았던 것이다. 몇년 후 남편은 남조선 특무로 등장하였고 안해는 조선인민군 연대장의 안해로 나타나지 않았던가. 남과 북의 전쟁으로 그들은 철천지 원수로 되여 서로 죽이지 않으면 안될 생사결판의 길에,  운명의 관두에 처박히게 만들었다.        진달래는 그 어떤 비장한 결의를 다진듯이 머리를 쓰다듬더니 상순과 갈라져 경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장농에서 그의 탄알- 조약돌을 하나, 둘 꺼내 호주머니에 주어담았다.  그리고 용천을 놀래우지 않으려고 경수는 웃새집에 맡겨두고  경주만 데리고 촌공소로 향하였다.   진달래는 촌공소에 들어가 철색 얼굴에 긴장한 빛을 띠우더니 깜장 눈으로 상순을 빤히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한편 병완은 촌공소에서 용천을 보자 눈에 불이 일었다. 허나 진작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억지로 웃음을 지으면서 맞이했다. “김 연대장, 밤새 무고했소?." "예, 덕분에 대접 잘 받았시우." 용천은 병완에게 눈길도 보내지 않고 경주한테 손을 내밀었다. "에이구, 내 아들 경주 왔구나.” 병완은 애비를 잃은 막내손자를 생각하자 불쌍해 저도 몰래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는 불의 상황에 경주를 보호하려고 들었다. “그래 지금 조선 전쟁형세는 어떻소?” 용천은 진달래 표정을 살피며 대충 대답했다. “지금 대치상태라. 아마 오래잖아 정전협정을 조인할 거 같아요.” 용천도 어제 병수가 나갔다 온 후 이상한 조짐을 얼마간 눈치 챘다. 그는 경주를 꼭 끌어안았다. 그는 병완과 상순을 쏘아눕히고 경주를 방패로 삼아 촌공소에서 빠져나가려고 작심했다. 그는 병완과 상순의 눈치를 흘끔흘끔 살폈다. “그래 언제 부대로 돌아갈 예산이오?” “요 놈 아들애한테 정이 폭 들어 부대로 천천히 돌아갈 예산인데이.” 철없는 경수는 이제 어른들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고사리손으로 아빠 코 밑 흰 수염을  매만지면서 놀았다. 병완은 용천을 마주 보며 권고했다. “그럼 우리 촌공소에 들어와 있소. 어떻게 홀애비 삼촌이 손님 둘이나 치겠소? 우리 마을에서 사람을 내서 밥을 지어 드리게 하지.” “허허허, 김촌장, 감사한데요. 난 그래도 작은 아버지 집이 좋은데이.” “사양하지 마오. 오늘 점심부터 촌공소에서 삼촌까지 데리고 와서 식사하오. 이 널직한 윗방에서 쉬오.” 용천은 자기에게 그물이 서서히 덮씌워져 독안에 든 쥐처럼 연금되고 있음을 느끼었다. 그러나 용빼는 수 없어 병완의 권고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그날 점심부터 덕성과 병수를 데리고 촌공소에 들어와 유숙했다. 그런데 병완은 밤낮 용천의 곁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고 지키는 것이었다. 딱 진절머리 나게 무서웠다. 밥을 짓는 30대 초반의 아줌마가 촌공소에 들어와 밥을 지어줘 먹을 근심은 없었다. 그런데 대문 밖은 민병들이 총을 쥐고 번갈아 보초를 서고 있어서 외계와 련계가 단절된데다가 경주까지 데리고 도망 칠 방법이 없게 됐다. 사실상 강제연금되나 다름없었다. 용천은 자기들이 이젠 꼼짝 달싹 하지 못하게 촌공소 안에 갇히게 됐다는 것을 느꼈다. 진짜 빤질빤질한 독안의 게처럼 갇혔다는 것을 잘 알았다. 진달래는 상순의 부탁대로 경수를 데리고 웃새집으로 간 후 머리도 내밀지 않았다. 다행히 경주만은 제 애비 옆에서 놀게 했다. 이튿날 저녁에 미군 비행기가 오기로 된 날이 돌아왔다. 상순은 종전처럼  촌공소로 일찍이 들어섰다. 그는 술병까지 들고 왔다. 이윽고 진달래도 홀로 들어섰다. “오늘 술이나 한잔 하기요.” 상순은 아침 밥상에 술병까지 척 올려놓았다. “자, 남조선 특무들이 오겠으면 오라지. 우린 여기서 술이나 마시면서 태평성대를 누리기오.” 남조선 특무라는 말에 용천은 적이 속이 띠끔해났다. 그러나 위기일발의 시각에도 용천은 인차 노련하게 냉정한 표정을 지었다.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기여? 온 하루 띵 하겠는제라.” “용천 연대장, 온 하루 경주나 데리고 놀면 되겠는데 뭘 그리 근심하오? 무슨 일이 있소?” “아, 없시우, 없어.” 용천은 황망히 도리머리를 흔들며 손사래를 쳤다. 병완은 술상에 다가와 술병 마개를 열고 용천과 병수 앞의 사발에 소주를 쭈르르 붓고 자기 사발에도 부었다. “자, 들게. 이 난세에 사람의 일은 모르오. 그 먼데서 왔는데 술을 푹 마시고 쉬게나.” 용천은 간도의 술이 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쭉쭉 들이켰다. 병수는 옆에서 할아버지가 오늘은 맏아들의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 채고 별로 마시지 않았다. 용천은 대개 눈치를 챘으면서도 개의치 않았다. (네깐 놈들이 증거 없이 체포해?) 용천은 취하지 않고서도 취한 척 했다. “어, 중국술이 독하긴 독하다. 나 좀 누워야겠당께.” 그는 잠꼬대처럼 중얼거리더니 스르르 드러눕는 것이었다. “허, 사람이. 술을 고거 마시고 취하다니.” 병완은 용천을 쏘아보더니 병수를 보고 분부했다. “저 권총집이나 벗겨 건사하게나. 배겨서 어떻게 자는가.” 병수는 인차 “예.” 하고 용천의 허리에서 권총을 빼내려고 했다. (아니, 이 놈, 친척한테 반변했어?) 그때 쓰러진 척 하던 용천이 와닥닥 일어나면서 권총을 빼들어 병완과 상순을 번갈아 겨눴다. “이 시골 놈들아, 내가 누구야? 항일전쟁 때 일제 놈들과 목숨 걸고 싸우던 김 대장이야. 네깐 놈들이 왜 나를 의심하고 지랄인기여?!” 병수가 불시에 덮쳐들어 용천의 권총을 잡은 손을 꽉 눌렀다. 땅! 총소리와 함께 총알이 술상 위 술 사발을 박산 냈다. 유리쪼각이 사처에 튕겨났다. 그때 상순이 권총을 뽑아 용천의 머리를 겨누었다. “꼼짝 마라!” 허나 용천은 병수를 발길로 걷어차 넘기고 권총으로 머리를 내리까 눕혔다. “퉤! 역적놈!” 병수는 쓰러졌다. 그의 머리에서 뻘건 선지피가 흘러 넘쳤다. 용천은 엉엉 우는 경주를 끌어안아 방패로 삼았다. “애를 내려놔!” 진달래는 새된 소리를 지르며 경주를 빼앗으려고 달려들었다. 상순은 진달래나 경주가 상할 가봐 사격하지 못했다. 용천은 경주를 끌어안고 뒷걸음질 치며 문 밖으로 나가 마루 위에 섰다. “경주야!” 진달래는  통곡하며 따라 나갔다. 경주도 엉엉 울었다. "엄마!" “여보, 애를 내려놔요!” “애를 데리고 가자!” “어디로 간다고 그래요?” “남조선에 가자!” “갈테면 당신이나 가! 경주를 내려놔!” 이때 민경들과 민병들이 토성 문 안으로 총을 들고 달려 들어왔다. 그러나 경주와 진달래 때문에 쏘지 못했다. 이때 진달래가 호주머니에서 돌멩이를 주어 휙 날렸다. 딱! 용천은 머리를 맞고 비칠 했다. 그는 진달래가 돌멩이를 재차 날리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멍해 서서 진달래를 쏘아보았다. "네년, 차마 내캉 돌멩이질 해?!" 용천은 돌멩이를 날리며 덮쳐드는 진달래를 멍해 쏘아보며 권총을 뽑아들었다.  위기일발의 시각에도 진달래는 달려나가 용천의 권총을 쥔 손을 꽉 잡아 내리 눌렀다. 땅! 총알이 진달래 허벅지를 꿰뚫고 나갔다. "아니, 내 당신 쐈어?" 용천은 그 권총으로 성칠도 쏴눕히지 않았던가. 그는 권총을 쥔 자기 손을 내려다 보았다. 그 죄악적인 손으로 사촌동생 칠백도 총창으로 찔러눕혔다. 이젠 자기 사랑하는 아내도 쏘았다. 허나 살기 위해선 아내고 뭐고 쏴눕히고 촌공소에서 도망쳐야 했다. "이걸 놔! 이 가시나새끼!" 용천은 진달래를 발길로 차넘겼다. 그러나 진달래는 용천의 총을 놓지 않았다. “더러운 남조선 특무 놈아! 네 놈은 성칠 오빠를 살해한 원수놈이야, 악당 놈이야!” 부처간이 싸우는 걸 흐리멍텅한 하늘도 멍해 내려다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덕성은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두 팔을 벌리고 말뚝처럼 어정쩡 서 있었다. 위기일발의 시각에 어느 결에 병완이 씽 호랑이 양을 덮치듯이 덮쳐들어 용천의 아랫배를 탁 걷어찼다. 용천은 경주를 탈싹 떨어뜨리고 허리를 굽혔다. 상순이 뛰어 들어오면서 권총으로 용천의 머리를 내리 깠다. 용천은 권총을 절컥 떨어뜨리며 풀썩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상순이 땅바닥의 권총을 주어 들었다. “빨리 이 놈을 촌공소에 끌어들여가오.” 민병들이 달려들어 용천을 촌공소 안에 끌고 들어가 바로 꽁꽁 묶었다. 상순은 할아버지에게 한어로 물었다. “병수는 어쩌겠습둥?” 병완은 눈을 질끈 감고 손을 홱 휘둘렀다. “대의멸친(大意灭亲)!” 상순은 권총을 쥐고 정신을 잃었다가 겨우 깨여나 안간힘을 쓰며 일어나려는 병수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냈다. 뒤따라 온 민병들이 손수 바로 병수를 결박해 꽁꽁 묶었다. 병수는 놀란 눈길로 병완을 쳐다보았다. “할아버지! 왜요?” “너 같은 남조선 특무 손자가 없어!” “빨갱이들이 정말 인정머리도 없어. 육친불인(六亲不认)이군.” 병완은 병수를 쏘아보았다. “우리 공산당원은 강철전사야. 우린 혁명을 위해 대의멸친한다!” “대의멸친? 속았구나. 날 잡아 바치고 현장 벼슬이나 해먹구려.” 병수는 어이없어 촌공소 천정을 쳐다보며 한탄했다.        저 소서구 남산에 묻힌 이성희도 자기 오빠 손자를 잡아묶는 영감을 보고 욕하고 있었다. "몰인정한 영감! 진짜 지독하구려. 어쩜 내 친정집 맏손자도 잡아 먹어요. 그 놈은 오라버니 씨붙이 장손이야. 하늘도 무심하지." 그러나 병완은 노친의 욕설을 념두에 두지도 않았다. 그는속으로  중얼거렸다. (여보, 노친, 널리 양해하오. 나라 안정을 위해선 남조선 특무는 남김없이 붙잡아야 하오.  남조선 특무놈에겐 절대 털끝만한 인정도 베풀어선 안 되오.)  용천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병수를 흘겨보며 이를 뿌드득 갈았다. “비루한 배신자! 배신자 끝장은 그래!” “아버지!” 경주는 결박당해 대들보에 매달린 용천의 다리에 매달리며 대성통곡 쳤다. “얘야, 아빠 원수 잊지 말라. 네 어미가 아빠를 붙잡아 빨갱이들한테 바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용천은 저쪽에 멍해 서 있는 삼촌을 쳐다보며 말했다. "삼촌, 미안하이, 칠백은 내 손으로 죽였소. 난 천번만번 죽어도 마땅한제라. 절대  섭섭해하지 마세요." 덕성은 결박당한 용천한테 한발 다가섰다. "웬 소리냐? 네가 칠백을 죽이다니?" "네,  칠백인줄 모르고 날창으로 찔렀시우, 아이구, 난 동생도 모르고 찔렀어. 이 손으로 찔렀시우." 덕성은 무릎을 꿇더니 아예 펑덩 물앉아 애들처럼 두 다리를 버둥거리며 통곡쳤다. "아이고, 이게 웬 세상인고? 사촌형제끼리 서로 죽이다니? 아이고, 원통해라. 흐흐흑, 흑흑흑..." 진달래는 절룩거리며 다가가 애비 다리를 붙잡고 엉엉 우는 경주를 뜯어내며 팔소매로 뜨거운 눈물을 닦았다. “누가 당신 보고 남조선으로 가라고 했어요? 누가 당신 보고  적군으로 되라고 했어요? 누가 당신 보고 남조선 특무로 되라고 했어요? 누가 당신 보고 성칠 연대장을 살해하라고 했어요?” 그러나 용천은 껄껄 웃었다. “나와 성칠 형님은 깨끗하게 결투를 했어. 내가 형님을 죽이지 않으면 그가 나를 죽였어. 나도 그가 쏜 총에 어깨에 관통상을 입어 한해 반이나 부산 육군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 겨우 살아남았어. 누가 그보고 내 아내를 빼앗아 살아서 경수까지 낳으라고 했어? 당신도 더러운 화냥년이야! 퉤! 다만 경주와 삼촌을 데리고 고향 경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한일 뿐이여. 상순아, 어서 죽여라! 나를 더는 괴롭히지 말라.” 병완과 상순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급변사태에 따라 병완과 상순은 임기응변해 원 작전방안을 포기하고 용천과 병수를 생포했다. “총소리를 듣고 전소광은 충국이네 집으로 오지 않을 거야. 혹시 놈들이 멀리 달아났을 수도 있다.” 병완이 상순을 보고 말하는데 용천은 천정을 쳐다보며 냉소했다. “이제 우리 동료들이 와서 내 원수를 갚을 거야!” 상순은 세 귀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쳤다. “저 놈 주둥아리를 수건으로 틀어막아라!” “옛! 김 국장!” 민병들은 상순의 명령에 따라 용천과 병수의 입을 수건으로 틀어막고 바로 입을 마구 휘감아 동여매놓았다. 용천과 병수는 이젠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게 됐다.       촌공소, 아니, 함흥촌에는 일촉즉발의 팽팽한 기운이 감돌았다.
115    중편과학환상소설 조왕돌의 모험기 김장혁 댓글:  조회:2009  추천:3  2017-08-23
      중편과학환상소설            조왕돌의 모험기                           김장혁                                                                                  1       기원 5019년에 지구촌에서 금이야 옥이야 하는 보배 아들 조왕돌이 태어났어요. 그런데 조왕돌은  부모 기대와는 달리 공부하는데는 빼돌이요, 컴퓨터게임을 노는 데는  악돌이였죠. 그 애는 싯누렇게 싹은 이발을 드러내고 게임을 논다하면 컴퓨터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어요.     조걸 보세요, 조 조왕돌이 게임을 노는 모양을.     조왕돌이 컴퓨터 마우스로 클릭하자 우주비행선로봇이 항공모함에서 하늘로 날아올랐어요.      “야호!”     조왕돌은 사기 나서 로봇우주비행선을 몰고 구름을 뚫고 별들이 반짝이는 태공으로 높이 치솟아 올라만 갔어요.      갑자기 로봇우주비행선 앞에 괴상한 얼룩 뱀 비행물이 나타났어요. “사격!” 조왕돌이 줄포건반을 누르자 줄 포탄이 날아갔어요. 얼룩뱀들은 날아와 조왕돌의 우주비행선을 휘감아 태공에서 내리 뿌리려고 했어요.     조왕돌은 감전건반을 눌렀어요. 순간 로봇우주비행선에서 시퍼런 불티가 번쩍이었어요. 얼룩뱀비행물은 비명을 질렀어요.  그 놈은 태공에서 대기층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려가지 않겠어요.     이번엔 독수리비행선이 날아왔어요. 줄 포탄을 쏘았지만요.  독수리비행선은 교묘하게 피하더니 이쪽에 맞불질을 했어요. 우주비행선에 불이 확 일었어요.    우주비행선이 태공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려갔어요.    “이걸 어쩌지?”                         2       이때 독수리비행선이 날아왔어요. 독수리비행선에서 대머리 서양인이 나타나더니 불이 붙는 우주비행선로봇에서 조왕돌을 빼내 독수리비행선에 싣는 것이 아니겠어요.      “선생님은 누군가요?”      “난 크롱 박사야.”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이딸리아 노르망디 사람이야. 난 클론기술로 숱한 클론바우를 재생시켰던 거야.”      그런데 독수리우주비행선은 코치아 쪽을 벗어나 서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니, 어디로 가는 건가요?”      “가 보면 알아.”     독수리우주비행선에 앉아 몇 시간을 달렸어요. 이젠 파도가 출렁이던 검 푸르른 바다는 보이지 않고 별들이 총총 내려앉은 것 같은 불야성이 보였어요.     독수리우주비행선은 비행장에 서서히 내렸어요. 조왕돌이 우주비행선에서 내리자 노랗고 파란 눈들이 판들거리면서 이상한 눈길을 보냈어요. 허나 그는 공포감을 억지로 털어버리면서 크롱 박사의 마차에 올랐어요.     “어째 승용차를 두고 마차를 타는가요?”     크롱박사는 대머리에 난 땀을 살진 손으로 닦으면서 말했어요.     “환경오염을 줄이려고 그래. 사람마다 승용차를 타지 않으면 그만큼 온실가스가 적게 배출될 거 아니야?”     조왕돌은 일리가 있다고 여겨 머리를 끄덕였어요.     때는 동녘이 희붐히 밝아오는 때어서 딸까닥딸까닥 절주 맞게 달려가는 마차에 앉아서 뾰족하고 높다랗게 치솟은 서양식 건축물이 신화처럼 보였어요. 진짜 잉글랜드 여왕이 탄 금빛마차를 탄 기분이었어요.                              3     한참 후 마차는 별장 같은 집 앞에 가 멈춰 섰어요.    저쪽에서 갑자기 숱한 노랑머리와 깜둥이들이 쓸어 달려왔어요.    “톰, 이후에 이 애와 싸우지 말고 잘 놀아야 해.”    크롱 박사의 말에 제일 꺽다리 깜둥이가 어깨를 으쓱했어요.    “예쓰(예)”    깜둥이는 벌건 입술 속에서 허연 이발이 다 드러나게 씨물 웃어보였어요.    크롱 박사는 한시름을 놓더니 한쪽에 오도카니 서 있는 조왕돌을 데리고 집안에 들어갔어요.     그는 주사기로 조왕돌의 팔에서 뭔가 뽑아가지고 지하실험실로 들어갔어요.     한참 후 손 벽 소리와 함께 글쎄 조왕돌과 심통히 똑 같이 생긴 애가 지하실에서 걸어 나와 조왕돌을 보고 쌔물쌔물 웃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니, 넌 누구냐?”    그 애가 말하기도 전에 크롱박사가 소개했어요.    “이 앤 널 클론기술로 복제해낸 조왕돌 1호야.”    “예?”    조왕돌은 눈이 똥그래졌어요.   그는 그 애 손을 정답게 잡으면서 물었어요.   “그럼 얘는 내 동생인가요?”    “아들도 동생도 아니야, 그저 조왕돌 1호라고 부르자꾸나.”    “조왕돌 1호야!”    조왕돌은 조왕돌 1호를 꼭 껴안았어요.    크롱박사는 조왕돌의 눈과 귀에 미형시청각전자뇌를 장치하고 크롱 박사의 컴퓨터와 무선으로 연결해놓았어요. 그리고 그 전자뇌에 조왕돌의 부모와 학교 사생들의 정황을 상세히 입력해넣었어요.                 4     이른 아침이 되자 크롱 박사와 조왕돌은 조왕돌 1호를 우주비행선로봇에 앉혀 집에 돌려보냈어요. 조왕돌1호에게 장치한 시청각전자뇌를 통해 수시로 감시하고 지령을 보냈어요.     크롱 박사의 집 컴퓨터 현광판에는 조왕돌 1호가 탄 우주비행선로봇이 푸르른 바다 위로 날아 어느 새 조왕돌의 집인 만장굴 앞 우주비행장에 서서히 날아 내리는 것이 보이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직접 자외선방지 우산을 쓰고 우주비행장에 마중 나왔어요.    어머니는 우주비행선로봇에서 내린 조왕돌 1호의 머리 위에 우산을 펼쳐 들어주면서 물었어요.    “얘야, 어디로 갔다가 이제야 돌아왔니?”     조왕돌 1호는 능청스레 아버지를 쳐다보면서 희죽이 웃었어요.    보아하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조왕돌 1호가 조왕돌이 아닌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어요.    조왕돌 1호는 조왕돌을 대신해 숙제를 하기 시작했어요. 옆에서 어머니가 지켜보면서 새물새물 웃고 있었어요.    이튿날 조왕돌 1호는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갔어요. 선영과 보름 등 애들의 부러운 눈길이 머리를 쳐들고 교실로 들어가는 조왕돌 1호를 보고 입을 비쭉거렸어요.    조왕돌 1호가 교실에 들어가 앉자 옆에 앉은 보름은 다른 애들과는 달리 조왕돌을 보는 척도 하지 않고 동화책을 보고 있었어요.    이상했어요. 이전 같으면 조왕돌은 까불면서 보름의 옆구리를 톡톡 치면서 누룽지를 내놓으라 하지 않았겠어요? 허나 오늘 따라 얌전했어요.    보름은 너무나도 이상해 동화책을 보다가 말고 조왕돌을 핼끔 곁눈질 해보았어요.   생각 밖으로 공부시간이 되자 장난도 하지 않고 선생님의 강의도 귀담아 듣고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참, 며칠 보지 못했더니 해가 서산에 두둥실 뜨지 않을까?)   그런데 보름의 속을 어떻게 알았는지 조왕돌이 무슨 쪽지를 건넸어요.      얘, 보름아, 해가 서산에서 뜰 때도 있어. 난 보름달 같은 네 얼굴에 옴폭 패는 보조개가 귀여워!     그 쪽지를 보고 꾸겨 호주머니에 넣는 보름의 홍조가 어린 보름달 같은 얼굴에는 놀라운 기색이 파도치고 있었어요.   조왕돌 1호는 입을 비쭉해 보이었어요.   보름은 머리를 폭 숙였어요. 그의 귀 밑으로 빨간 물감이 칠해 올라가고 있었어요.   한편 서유럽 노르망디 크롱 박사의 집에서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던 조왕돌은 폴짝폴짝 뛰었어요. “참 묘해요. 옆에 앉은 보름도 조왕돌 1호를 나로 여기는 걸 보세요. 이젠 여기서 전자유희를 마음껏 놀아도 되겠죠?” “그럼, 마음껏 놀아라. 근심할게 있니?” “야-호!” 조왕돌은 좋아서 깡충깡충 뛰더니 전자유희를 놀기 시작했어요.                         5     어느 날 사달이 생겼어요.     조왕돌이 한창 재미나게 전자유희를 놀 때었어요. 난데없는 흑인애들이 모여와서 조왕돌을 툭툭 쳐 밀어내고 자기들이 들어앉아 놀았어요.      “이 깜둥이 새끼들, 못 피하겠나?”      조왕돌은 톰을 쾅 밀쳤어요. 덩치뿐인 톰이 허공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손으로 엉덩이를 만지면서 상을 찡그리던 톰이 벌떡 일어나 조왕돌의 귀 쌈을 불이 나게 찰싹 갈겼어요.     조왕돌은 지려하지 않고 톰의 면상에 주먹을 날렸어요. 그때 흑인 애들이 왁 덮쳐들어 조왕돌을 치고 박았어요.    물매를 맞은 조왕돌은 분해 두 다리를 바둑거리면서 엉엉 울었어요.      크롱 박사가 황급히 꽥 소리 쳐서야 톰이랑 도망쳤어요.     “크롱 박사님, 난 형제도 없고 친구도 없어 맞기만 해요. 분해서 어디 살겠어요.”     “근심 말아.”    크롱 박사는 조왕돌의 귀에 대고 뭐라고 수군거렸어요.     “예- 옳아요. 톰, 어디 두고 보자.”     이튿날 큰 일 났어요. 크롱 박사님의 앞마당에서 조왕돌이 뽈을 찰 때었어요. 톰이랑은 자기들의 힘을 믿고 조왕돌의 뽈을 저 멀리 차버리고 조왕돌을 탁 밀쳤어요. 조왕돌은 슬쩍 피하면서 안걸이를 걸었어요. 톰은 제 힘에 앞으로 쿵 넘어졌어요. 성난 흑인 애들은 욱 쓸어와  또 전날처럼 조왕돌을 치고 박았어요.      “꼼짝 말라!”     야무진 소리와 함께 갑자기 조왕돌과 똑같게 생긴 숱한 애들이 덮쳐 나왔어요.     순간 조왕돌이네 애들이 톰이랑 흑인 애들을 포위하고 주먹으로 치고 박고 걷어찼어요. 두 말할게 있나요? 흑인 애들이 엉망진창이 되게 얻어맞았지요. 여기저기서 신음소리와 아우성소리가 처참하게 들렸어요.     이때 경적소리 요란하더니 숱한 경찰차가 달려와 양쪽의 애들을 몽땅 잡아 경찰국에 실어갔어요.    광장 같은 큰 칸에 갇힌 애들은 머리를 푹 떨어뜨리고 섰지요. 털보경찰이 전기곤봉을 휘두르면서 톰과 조왕돌을 보고 고래고래 고함쳤어요.     “어느 녀석이 두목이냐? 썩 나서지 못할까?” 흑인 애들 무리 속에서는 톰이 나섰지요. 그런데 이쪽에서 조왕돌이 나서자 조왕돌 2호, 3호, 4호, 5호… 10여 명이 몽땅 나섰지요. 그런데 그 애들이 다 똑 같게 생겨 분간하기 힘들었어요.    이때 톰이 털보경찰에게 뭐라고 소곤거렸어요. 그러자 털보가 꽥 소리쳤어요.    “난 다 알아. 너희들 두목은 조왕돌이지. 나와!”     “내가 조왕돌이예요.”     “나예요.”     털보경찰은 퉁사발눈이 휘둥그래졌어요. 그는 자기 눈을 의심할 정도였어요. 그는 이제껏 쌍둥이는 보았어도 생김새가 똑같은 애들이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보았던 거예요.     도리머리 질 하던 그는 경찰국에 알려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린 영국의 유명한 정탐가 홈스를 모셔왔어요.     높다란 중절모를 쓴 홈스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조왕돌들을 하나하나 여겨보았어요. 허나 그의 예리한 눈길로도 똑 같이 생긴, 동양의 황색피부에 남북골에 눈 확이 쏙 꺼져 들어간 애들을 분간하지 못했어요.    홈스는 도리머리 질 하더니 털보에게 뭐라고 쑤군거렸어요. 그러자 털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그는 애들을 한바탕 훈계하더니 놓아 주었어요.                               6     조왕돌은 크롱 박사의 클론기술의 위력을 알고  별의별 요구를 다 제기했어요.     “박사님, 빵과 우유가 먹기 싫어요. 클론기술로 클론 입쌀과 바나나를 만들어주세요.”     크롱 박사는 대머리를 만지더니 “되고말고.” 하고 선선히 대답했어요.     이듬해 봄, 크롱 박사는 비행기로 동방과 아메리카 중부에서 실어간 벼와 빠나나 유전자와 세포를 분리해 대 면적 온실에 심었어요.     어느 날 밤, 창밖에서 하얀 싸락눈 같은 것이 쏟아져 내리는게 아니겠어요.     조왕돌이 바깥에 나가 보니 희읍스름한 구름이 낀 하늘에서 싸락눈이 쏟아져 내리는가 했더니요. 저게 뭐예요? 글쎄 하늘에서 새하얀 입쌀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후 크롱 박사는 조왕돌의 요구에 따라 클론호박, 클론도마도, 클론물고기, 클론 양 지어 클론 소, 클론 토끼까지 수태 복제해냈어요.     (클론기술이 있으면 뭐든 요구하면 복제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번은 크롱 박사가  자리를 비운 틈에 가만히 크롱 박사의 실험실에 들어가서 컴퓨터를 열고 떨리는 손으로 건반을 톡톡 쳤어요. 그는 클론기술파일을 전부 복제해 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몽땅 영어여서 보기 힘들었어요.     “에라, 모르겠다. 컴퓨터의 모든 파일을 복제해 내자.”     복제가 끝나자 조왕돌은 클론기술을 익히려고 노르망디를 떠나 영국 켐프리치대학으로 갔어요. 그제야 조왕돌은 공부의 중요성을 알게 된 거죠.    원래 총명한 조왕돌은 하나를 배워주면 둘을 아는 총명 영리한 애여서 인차 영어를 배워냈어요. 그리하여 그는 크롱 박사가 오기 전에 벌써 클론기술을 다 장악했던 것이죠.    “2천 년 전의 기술이 아직도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지.”    조왕돌은 조왕돌 2호랑 10여 명을 데리고 독수리우주비행선에 올라 고향 코치아의 밤하늘로 날아올랐어요.    코치아에 돌아온 조왕돌을 보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주 대견스레 바라보았어요.    내외간은 조왕돌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것을 보고 크롱 박사를 파견해 클론기술을 전수하게 미리 작전을 꾸몄던 것이죠.    조왕돌은 어머니 심정을 알기나 한 듯 기적을 낳기 시작했어요. 클론기술로 클론소와 클론양, 클론입쌀, 클론호박을 생산해냈던 것이죠. 그것도 클론 소랑 어찌나 큰지 옛날 소의 열배씩 컸어요. 클론호박은 어찌나 큰지 집채 같았어요. 집채 같은 호박 속을 파 삶아 먹고서도 맨 껍데기는 집으로 쓸 수도 있었어요.     조왕돌은 클론백마를 생산해 보름에게 선물했어요. 보름은 백마의 볼을 살살 어루만져주면서 조왕돌에게 포도 알 같은 눈을 깜짝해 보였어요.     “조왕돌아, 고마워.”     조왕돌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빈정거렸어요.     “네가 원하면 클론호랑이도 생산해 줄 테야!”     허나 보름은 도리머리를 흔들었어요.      “호랑이는 싫어. 난 백마가 곱다!”     조왕돌은 보름에게 또 클론토끼와 클론암탉을 복제해 한 마리씩 선물했어요.     보름은 입이 뽀로통해졌어요. “싫다! 고작 암탉과 토끼냐?”     조왕돌은 안 됐다 싶어 “네가 원하면 클론코끼리를 줄게.”라고 했어요.     “네가 코끼리까지 만들어?”     “그래. 기다려라.”     조왕돌이 떠나가려고 하자 보름은 다급히 외쳤어요.      “가만!”     조왕돌이 돌아섰어요.    보름은 두 손을 모아 쥐고 머리를 숙이더니 허리를 비꼬며 겨우 말했어요.    “얘, 기린을 만들어줄래?”     “엉? 그래. 내 만들어오지.”     이윽고 조왕돌은 목이 기다란 클론기린을 끌고 왔어요.     “자, 가져라!”    기린은 어찌나 큰지 지붕 위의 대나무 잎을 뜯어 먹는 것이 아니겠어요.    “와! 좋다.”    보름은 기린을 보고 환성을 질렀어요.    조왕돌은 사다리를 가져다 놓고 보름을 데리고 기린의 잔등에 올라가 타고 온 연화시를 돌아다녔어요.                          7     조왕돌이 클론기술로 뭐나 다 만든다는 소문이 퍼지자 코치아의 백성들은 이젠 살 때를 만났다고 야단쳤어요. 그들은 놀고도 이밥에 호박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 손과 발바닥에 털이 날 지경이었어요. 그 특대뉴스가 지구촌에 방송되자 제일 부러워하면서도 속으로 질투한 나라는 이웃에 사는 뱀 섬나라의 나까아멘 왕이었어요. 그는 속으로 당장 코치아를 먹어치우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어요.      조왕돌은 온종일 침대에 누워 먹고 싶은 걸 컴퓨터 건반을 톡톡 쳐서 클론기술로 생산해 마음껏 먹고 자기만 했어요. 그런데 몸을 너무 움직이지 않고 진종일 침대에 누워 날마다 음식 서너 근씩 먹기만 해 사지가 퇴화되기 시작했어요. 팔과 다리가 가늘어지고 배는 기름개구리처럼 똥똥해졌어요.     실로 조왕돌은 해뜩 번져져 네다리를 바둑거리는 거부기 같았어요. 이젠 입도 놀리기 싫어 집에 둔 보모들이 량쪽에서 손으로 턱을 받들어 올렸다 내리었다 해줘야 돼지고기와 밥을 먹을 수 있게 됐어요. 공부도 하지 않고 머리를 쓰지 않아 머리가 주먹만큼 작아졌고 뭐나 보기도 싫어해 눈마저 빈대 눈이 돼버렸어요.      그런데 뱀섬나라 도적들이 뛰어들어 클론기술을 훔쳐가려 하였어요.     조왕돌은 고향 만장굴을 떠나 더 깊숙한 시골 동굴에 숨어 혼자 클론기술을 가지고 잘 살고 싶었어요. 적어도 클론기술을 코치아 백성들이 아닌 뱀 섬나라에 전파되는 것은 싫었던 것이죠.      허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조왕돌의 전도가 근심스러웠어요. 지어 코치아의 미래가 근심스러웠어요.      이게 웬 일인가요?      조왕돌은 시골로 낙향해야 하겠는데요.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힘들어 했어요. 자기 몸을 이기지 못한 거예요. 별 수 없이 조왕돌 1호랑 6호랑 여섯이서 침대 채로 들어 만장굴에서 나가 우주비행장으로 나갔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눈물로 조왕돌과 이별했어요.    “얘야, 아빠 고향에 가면 신체단련에 주의해라.”    조왕돌은 겨우 손을 들어 저었어요.    조왕돌은 우주비행선에 올라가자 조왕돌 1호를 보고 우주비행선을 조종하게 하고 자기는 입으로 지령을 내렸어요.    우주비행선은 간신히 하늘로 솟아올랐어요.    갑자기 반짝이는 별천지 속에서 이상한 비행물이 날아왔어요.    “넌 누구야?”    조왕돌의 물음에 앙칼진 목소리가 확성기에서 들려왔어요.    “우린 크롱 박사 1호와 톰 1호야! 크론 복제기술을 훔쳐간 도적놈아, 어디 미사일 맛을 봐라!”    씽-    뻘건 불줄기가 날아왔어요.    “빨리 피해!”    조왕돌이 명령했어요. 허나 우주비행선은 미처 피하지 못했어요.     꽝!     우주비행선은 한쪽 날개가 날아나 아래로 내리 곤두박질 쳤어요.      “앗-!”     조왕돌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어요. 그런데 그건 게임을 놀다가 걸상에 앉은 채 꾼 꿈이 아니겠어요.     “호- 크론 복제기술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114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77) 댓글:  조회:1538  추천:5  2017-08-16
                                                        8. 수림 속의 통조림깡통        가을바람에 수림의 누런 낙엽이 후루루 날아 떨어지고 드문드문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상순은 함흥 촌에 있는 아버지와 아내가 가을걷이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삐 보내리라 생각되자 근심이 태산 같았다. 어느 날, 그는 부국장 천용구에게 청가를 맡고 함흥 촌으로 돌아왔다. 해가 거의 질 때 집에 들어서니 집에는 맏딸 춘자가 숙제를 하다가 봉자를 데리고 놀고 있었다. “아버지, 엿 사탕을 사왔습니까?” 춘자는 봉자와 함께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오면서 쌍까풀눈을 똑바로 뜨고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상순은 한 아름에 춘자와 봉자를 와락 끌어안고 뽀뽀를 해주었다. 애들을 구들에 내려놓고 진짜 미리 준비한 엿 알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주었다. 애들은 엿 알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기뻐 퐁퐁 뛰었다. “할아버지 엄마 어데 갔니?” 춘자는 엿 알을 넣어 볼이 볼록해 종알거렸다. “저 소서구에 가을 하러 갔습니다.” 상순은 봉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춘자야, 봉자를 데리고 놀아라. 아버지 밭에 가서 할아버지와 엄마를 데리고 올게.”  춘자는 머리를 끄덕였다. 상순은 벽에서 낫을 벗겨가지고 소서구로 줄달음쳐 갔다. 해는 서산으로 맥없이 기울어져 산 그림자가 태평강 가에까지 가로 누워 있었다. 상순은 소서구 막바지에 있는 밭으로 헐금씨금 올라갔다. 그때까지 아버지는 허연 구레나룻을 흩날리면서 강냉이 단을 날라다 쌓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지주 지학사에게 괭이에 찍혀 늑골이 세대나 끊어난 옆구리가 아픈지 기준은 허리를 짚고 서서 만지다가도 계속 일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상순은 불효의 죄책감을 느끼었다. 명옥은 잔등에 난지 서너 달 밖에 안 되는 물 애기 금자를 업고 강냉이 단을 이어다가 무지고 있었다. 둘째딸 금숙은 흰 콧물을 폴락거리면서 그래도 엄마를 돕느라고 강냉이 대를 하나하나 들어 모아 놓았다. “아버지, 그간 얼만 바빴겠습니까?” 상순은 아버지 손에서 강냉이 단을 빼앗아 날라다 쌓았다. “아빠!” 금숙은 포도 알 쌍까풀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팔을 벌리고 달려와 안겼다. 상순은 금숙을 안아 한바퀴 돌려주고 뽀뽀 해주고 내려놓았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엿 알을 꺼내 둘째 딸의 입에 밀어 넣어주었다. “우리 귀여운 둘째딸아, 할아버지와 엄마한테도 먼저 권해라. 응?” “예-” 금숙은 엿 알을 쥐고 할아버지한테 내밀었다. “할아버지, 엿을 잡수세요.” “오, 귀여운 내 손녀야.” 기준은 금숙의 발갛게 상기된 볼을 매만져 주면서 엿 알을 밀어 주었다. “네나 먹어라.” “안됩니다. 잡수시요.” 금숙은 기어이 엿 알을 쥐여 할아버지 입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엄마 입에도 넣어주고서야 자기 입의 엿 알을 오독오독 깨물어 먹는 것이었다. 상순은 금숙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기준은 허리 쉼을 하면서 이상한 눈길로 물었다. “얘, 어째 또 집으로 왔니? 옛날부터 효자는 충신으로 될 수 없다고 했느니라. 네가 공안국장을 하면서 자꾸 집 근심을 하다나면 어찌 사회 일을 잘 하겠니? 집 근심은 하지 말고 국장이나 잘 해라.” 상순은 일어나 강냉이 단을 와락와락 주어 쌓아 놓으면서 말했다. “전선 같으면 내가 목숨을 걸고 싸우겠습니다. 그런데 후방에서 어디 내 재간을 쓸 데 있습니까? 집에 돌아와 아버지나 잘 모시면서 마을의 일을 하는 게 옳지 않은지 모르겠습꾸마. 괜히 아버지와 애 어미만 고생시키기나 했지.” 그 말에 기준은 강냉이 단을 왈 둘러메치면서 버럭 고함쳤다. “얘, 이놈아, 누구나 다 하는 공안국 국장이냐? 집일은 그만두고 당장 공안국에 돌아가라.” 허나 상순은 대수로워 하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공안국 일도 이젠 내 모집한 천용구 부국장이 잘 처리합구마. 근심할게 별로 없습구마." 그는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조선족들이 어떻게 세운 연변조선족자치구입니까? 우리 1만여명이나 되는 조선족렬사들의 피로 바꿔온 조선족자치구입꾸마. 동북해방전쟁 때로부터 제4야전군 백만대군에는 우리 조선족장병들이 15만명이나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북을 해방하고 북경을 해방하고 장강과 황하를 뛰여넘어 해남도까지 해방했습니다. 그때 우리 동북군정대학 선배 조남기동지랑 조선족 백성들을 동원해 동북해방전쟁 할 때 중국인민해방군 제4야전군에 쌀을 만여킬로그람이나 실어갔습니다. 홍학지 장군은 조남기를 자기 부대 후근부 간부로 채용했습니다. 지금 조남기 는 중국인민지원군 후근사령부 교통운송과 과장을 한답디다. 우린 선렬들의 피로 바꿔온 우리 조선족자치구를 목숨으로 지켜야 합꾸마.” 그 말을 듣자 기준은 밭고랑 같은 주름을 조금 폈다. "그런 도리를 잘 알면 계속 공안국 국장을 하는게  우리 연변조선족자치구를 지키는데 낫지 않겠느냐? 뭐나 앞뒤를 잘 고려해라." 상순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잘 생각해보겠습구마. 여기서 미제와 남조선, 국민당특무를 잡는 후방보위공작도 중요합구마. 하지만 전선에 나가 미제를 몰아내야 합꾸마. 그래야 조선도 지키고 우리 연변, 아니, 중국을 지키는데 낫을 거 같습구마. 여기서 특무 오기를 기다리기보다 조선전선에 나가 미제와 남조선 놈들과 판가리싸움을 하고 싶습구마." 이때 패용천산 쪽에서 다급히 고함치는 소리가 쩌렁쩌렁 메아리쳤다. “사람 살려요!” “아이유, 곰이 사람을 물어 죽입니다.” 상순과 기준이 패용천산 쪽을 바라보니 강냉이 밭에서 울리는 애절한 여성의 비명소리였다. 상순과 기준은 낫을 쥐고 그쪽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산비탈 강냉이 밭에서 곰 한 마리가 김창욱이네 처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창욱의 처는 진작 곰한테 엉덩이를 물려 피가 치맛자락 밑의 허벅다리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상순은 “이 놈 곰 새끼!” 하고 고함치며 낫을 휘두르면서 곰에게 달려들었다. 곰은 창욱의 처를 뒤로 빼돌리면서 달려드는 상순을 보자 성이 날대로 났다. 곰은 강냉이 대를 마구 가로 타고 “끼깅!” 무서운 소리를 지르며 상순에게 덮쳐들었다. 곰은 상순이 휘두르는 낫을 잡아 훌 빼앗아 무릎에 대고 뚝 분질러 던졌다. 기준이 뒤에서 달려오면서 창욱의 처가 무를 뽑느라고 쓰던 삽을 쥐여 휘두르며 곰을 막아 나섰다. 곰은 기준의 손에서 삽마저 빼앗아 뚝 분질러 내던졌다. 상순과 기준은 곰을 당할 수 없어 돌멩이를 쥐어 뿌렸다. 그 새 창욱의 처는 저 멀리 산 아래로 달아났다. 상순은 진작 권총을 쏘려다가 그만 두었던 것이다. 괜히 권총을 쏘아 곰 무리를 놀라게 해 몽땅 이쪽으로 덮쳐들어 더 큰 화를 당하게 할 가봐 서였다. “아버지, 됐습니다. 창욱의 처를 구했으니 달아 나깁소.” “응.” 상순과 기준은 곰을 이리저리 피해 강냉이 밭에서 달아났다. 곰도 숱한 사람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강냉이 밭에서 달아나 칼산 쪽 골짜기 수림 속에 우둔한 몸뚱이를 숨겼다. 곰을 쫓고 나니 해가 뉘엿뉘엿 칼산 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어둑어둑 할 때까지 일하고 상순은 저녁에 강냉이 단을 수레에 싣고 아버지와 처자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숟가락을 놓기 바쁘게 상순은 먼저 토성 안 집에 들어가 형님과 아주머니 그리고 여조카 순애를 만나보고 웃새집에 가서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등 웃어른들을 일일이 뵈었다. 특히 사랑방에 가서 조선에서 피신해온 새 큰어머니 진달래와 막내동생 경수와 용천 대장의 아들 경주도 일일이 만나보고 엿 알까지 주었다. 병완은 상순을 데리고 토성 안의 촌공소에 갔다. 그러자 집안 웃어른들과 마을의 숱한 사람들이 낮에 일하고 곤한 것도 잊고 촌공소에 모여왔다. 그들은 조선전쟁터 무명고지에서 성칠이 희생된 일은 아직 모르고 상순의 곁에 모여 앉았다. 병완은 막내손자를 대견스레 바라보았다. “얘야, 요즘 듣자니까. 미군과 장개석 국민당이 우리 연변에 특무를 많이 파견했다가 붙잡혔다고 하더구나. 네가 공안국을 비우고 여기 와서 되겠니?” “괜찮습니다. 이젠 안도현 공안국이 서면서 내 공안국에 모집해 들여온 천용구가 부국장으로 됐습니다. 오래잖아 국장으로 올라갈 겁니다. 미군 특무들도 여기 와서 맥살도 못 추고 하나하나 잡혔습니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진달래는 경주와 경수를 양 무릎에 올려놓고 끌어안으면서 상순에게 물었다. “미군 특무를 붙잡던 이야기를 좀 해 줘요.” “옳소. 얘기해주오.” 그리하여 상순은 그간 연변에서 특무 잡이를 한 주요한 이야기만 하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송강에서 있을 일입니다. 송강여관에 한 ‘지원군’이 숙박하러 와서 둔전개간판사처에서 내준 소개신을 내보이더랍니다. 송강파출소의 민경이 어디로 가는 길인가고 물으니 그자는 송강에서 료동성 무송까지 가는 길이라고 하더랍구마. 민경은 길림에서 무송으로 가자면 기차를 타고 가면 쉽겠는데 이렇게 에돌아 험한 수림 속 산길로 가려 한 것에 도리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자가 수상했습니다. 그래서 문 밖에 보초를 세웠습니다. 이튿날 그 자는 현장을 찾아가겠다고 하더랍니다. 옛날 광복 전에는 안도현 소재지가 송강이었지만 지금은 아니 잖고 뭣입니까. 그래서 민경은 수상하다고 계속 심문을 들이댔습니다. 드센 정치공세에 결국 그자는 미군이 파견한 남조선특무 이군영이라고 탄백했습니다.” 모두들 웅성거렸다. “에이, 허수아비 같은 특무 놈이야.” 이윽고 모두들 상순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계속 재미나게 들었다. 일찍 1952년 6월에 미군과 한국이승만 국군은 비행기로 “문대”로 부르는 5명 무장간첩소조를 로야령에 낙하시켰고 무송에도 “심대”라는 무장간첩소조를 낙하시켰던 것이다. 이군영은 문대와 심대의 특무들의 활동을 감독하고 순찰하라는 명령을 받고 장백산에 비행기를 타고 와서 낙하하였던 것이다. 그해 9월 중순에 그는 먼저 문대를 순찰하고 그 다음 무송에 가서 “심대”를 순찰하러 로야령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갓 일떠선 연변조선족자치구 서기 주덕해와 공안국 책임자 요흔, 무장부 부장 풍립신의 령도 아래 연길현과 화룡현, 안도현 공안국에서는 숱한 병력을 투입하여 산을 봉쇄하고 수색했다. 그 바람에 그는 특무들과의 연계가 끊어진 바람에 송강려관에 들었다가 나포됐던 것이다. 이군영의 탄백에 근거해 공안부문에서는 미군 비행기와 문대, 심대의 연락시간은 하루 건너 기수일이며 연락지점은 로야령과 화라자라는 단서를 잡게 됐다. 안도현 공안국에서는 천용구 부국장의 인솔하에 공안일군들이 삼도백하로부터 로야령으로 수색하고 화룡현에서는 공안국장 강성만이 대오를 인솔해 청산리로부터 로야령 방향으로 수색해나갔으며 연길현에서는 공안국장 이창엽의 인솔하에 와룡골과 갑산을 거쳐 로야령으로 수색해 들어갔다. 주요 연락지점인 로야령과 화라자에 숱한 공안일군들을 매복시켰으며 일부 전사들을 나무꾼처럼 가장시켜 산에 올라가 관찰하게 했다. 나무꾼으로 가장한 전사들이 나무를 하는데 수상한 놈 둘이 산에서 내려와 화라자로 가는 길과 산 아래 정황을 물었다. 그자들이 매복 권에 들어가자 매복했던 전사들은 일제히 사격하여 당장에서 한 놈을 격살하고 문대의 대장 장대문이라는 놈을 생포했다. 천용구 부국장은 공안일군들을 이끌고 장대문을 앞세우고 화라자에 쳐놓은 초막을 기습하여 한창 공급물자를 보내라고 무전을 치던 특무 우송림을 나포했다. 원래 우송림과 두 특무는 밭 전(田)자로 삭정이에 불을 지를 준비를 해놓고 서울에서 날아온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우송림이 나포되자 나머지 두 놈은 수림 속으로 달아났던 것이다. 이윽고 비행기가 날아오자 공안일군들은 네 무지의 삭정이무지에 불을 질렀다. 이윽고 비행기는 낙하산 7개나 투하했다. 낙하산과 함께 떨어진 보따리를 헤쳐 보니 먹을 것과 옷이었고 위조한 돈과 소개신 따위였다. 그 후 달아난 두 특무 중에 한 특무는 도망치는 길에 한 아주머니를 보고 먹을 것을 달라고 빌었다. 그 녀성은 특무에게 먹을 것을 가져오겠으니 기다리라고 한 후 마을에 내려가 민병들을 데리고 와서 나포했다. 다른 한 특무는 너무 배고파 한 개인 집의 김치 움에 들어갔다가 주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이렇게 문대와 심대의 특무들은 몽땅 붙잡히었던 것이다. 연변자치구 공안부문 책임자들인 요흔은 우송림을 설득하여 자기네 특무 본부에 무전으로 비행기를 보내 안도현 삼도구의 벌판에서 이군영을 데려가며 신호는 3발의 신호탄으로 하기로 했다. 동북공안부대 반 사령원이 거느리고 온 고사기관총으로 무장한 한 개 영은 미리 수림 속에 은폐해 미군 간첩비행기를 격추할 만반의 전투준비를 다했다. 원시림에 어둠이 깃들고 약정한 시간이 됐다. 과연 동북쪽으로부터 비행기가 우릉우릉 날아왔다. 우송림은 공안일군들이 시키는 대로 메가폰을 가지고 영어로 비행기에 대고 고도를 낮추라고 고함쳤다. 비행기는 점점 지면에 다가왔다. 이때 반사령이 팔을 홱 저으며 명령했다. “사격!” 고사기관총이 불을 토했다. 비행기는 불길한 징조를 눈치 채고 고도를 높이면서 도망치려고 했다. 허나 때는 늦었다. 고사기관총의 밀집사격에 비행기는 불길을 뒤집어 쓴채 내리 꽂혔다. 꽝!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비행기는 산산 쪼각이 나고 말았다. 미군 비행기조종사 둘은 즉살하고 나머지 도널과 픽터우는 비행기가 폭발되려는 찰나에 자동장치를 눌러 기체 밖으로 튕겨 나왔다. 공안전사들이 덮쳐나가 그들 둘을 생포했다. 그런데 “도널, 픽터우 사건”이 발생한 후 미국 국방장관 델레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격추된 비행기는 상인들의 무역비행기로서 중국 영공 장백산 림해에 잘못 날아들어갔다. 중국정부에서 도널과 픽터우를 즉시 석방해야 한다.”고 억지주장을 했다. “도널과 픽터우는 중국인민군사법정에 의해 이제 우리 나라 영공에 침투한 간첩죄로 무기징역에 언도될 것입니다.” 상순의 말에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설마 했는데. 미국 놈들이 확실히 여기 연변까지 쳐들어올 궁리를 했구나.” 창준도 한숨을 후 내쉬었다. “해방이 나서 좀 잘 살까 하니 그 놈들이 개지랄이구나.” 마을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것을 둘러보고 상순은 손을 내저었다. “여러분, 근심하지 마십시오. 우리 공안일군들이 변방부대 전사들과 함께 미국과 한국, 중국 대만 특무들을 몽땅 잡아치우니까 근심하지 마십시오. 누구나 다 경각성을 높여 인민전쟁의 넓은 특무잡이 그물을 늘여 놓는다면 하늘에서 날아 내린 특무들도 용빼는 수가 없을 겁니다. 혹시 그 놈들이 우리 지방의 지주들이거나 국민당 악질들의 가족들과 악랄한 반 중화인민공화국 음모를 꾸밀지도 모릅니다. 만약 의심스러운 일이 있으면 나한테 알리십시오.” “그래야지.” 병완도 마을 사람들한테 특무들의 행적을 발견하면 촌공소에 보고하라고 일일이 신신당부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상순은 숟가락을 놓기 바쁘게 아버지를 쉬라고 한 후 소 수레를 메워 몰고 명옥과 함께 소서구 밭으로 올라갔다. 이게 웬 일인가? 강냉이 단을 싣다가 보니 강냉이이삭을 거의 다 따가지 않았겠는가! “이걸 보오. 강냉이 이삭이 하나도 보이지 않소.” 명옥도 강냉이 단을 살펴보다가 맥없이 물앉았다. “초겨울이 되도록 제때에 실어가지 못해 이렇게 됐소. 남들처럼 남정이 있는가? 온 산에 뉘 집 곡식 단이 널린 게 있소?” “곰 소행인가? 도둑놈들 소행인가?” 상순은 강냉이 단 옆에 난 발자국을 피뜩 보다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자세히 살펴보았다. 깊이 푹푹 찍힌 구두 발자국을 보자 그는 혹시 특무들의 소행이 아닌가는 생각이 피뜩 들었다. 상순은 하얀 서리 살짝 깔린 옥수수 밭에 난 발자국을 따라 가보았다. “여보, 빈 강냉이 대라도 싣구 가기요. 어디로 가오?” “당신 혼자 싣고 가오.” 상순은 권총집에서 권총을 뽑아들고 어지러운 발자국을 따라 천지꽃산을 넘어 패용천산과 칼산 사이 골짜기를 따라 내려갔다. 아침 해가 뜨자 서리발이 녹으면서 발자국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는 조심스레 가둑나무가 우거진 수림 속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나무숲 속에서 무슨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들리었다. 상순이 허리를 숙이면서 바스락 소리 나는 쪽을 살피었다. 누런 마른 나무 잎 속에서 다람쥐가 뛰어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머리를 돌려 가려다가 주춤 멈춰 섰다. 다람쥐가 노는 누런 마른 나무 잎 무지 옆에 통졸임 깡통과 강냉이 알을 다 뜯어 먹다 남은 강냉이 이삭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삭정이를 주어다 불을 피웠던 것 같은 자리에 재무지가 있었다. 그는 버스락 버스락 마른 나무 잎을 밟으며 다가가 불에 구워진 마른 강냉이 이삭을 쥐어 보았다. 사람이 뜯어 먹다가 버린 것을 다람쥐가 뜯어 먹다 남은 것 같았다. 통졸임 깡통은 영어가 들어박힌 게 아닌가. 기민한 상순은 이 근방에도 미군이 아니면 남조선 특무들이 내려 왔다는 예감이 들었다. (무장간첩?) 상순은 인차 슬금슬금 나무숲을 헤치고 골짜기를 벗어났다. 그는 권총을 허리춤에 차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척 하면서 강냉이 밭에 가서 명옥과 함께 강냉이 단을 소 수레에 싣고 소서구에서 내려왔다. 그는 집 울안에 들어서자 인차 소 수레를 벗겨 놓고 정미소에 가서 할아버지를 찾았다. 병완은 겨 먼지를 툭툭 털면서 상순을 따라 촌공소로 갔다. 상순은 할아버지한테 금방 발견한 일을 죽 이야기했다. “할아버지, 우리 지방에도 특무들이 활동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마을에 소문을 내지 말고 암암리에 민병들을 무장시켜 천지꽃산 주위를 포위해 특무를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밤이면 마을에 보초를 서고 이상한 놈이 있으면 체포해 심문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금방 감방에서 나온 장충국과 장학산 같은 당지 지주들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병완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밤이면 무슨 비행기가 자꾸 서남 쪽으로 날아갔지만 우리 비행기인지 특무들이 침투하는 비행기인지 구별할 수 있어야 어쩌지.” “건 우리 변방부대와 공안부문에서 할 일입니다. 특무들이 하늘에서 얼마 내려오든지 우린 몽땅 체포해야 합니다.” 병완은 막내손자를 대견스레 바라보았다. “넌 공안국에 돌아가렴.” “아닙니다. 여기 특무들을 내 손으로 잡아야겠습니다. 이 일을 인차 천용구 부국장에게 알려 사람을 보내라고 하겠습니다.” 병완은 머리를 끄덕였다. 할아버지 병완과 손자 상순은 한참이나 특무들을 붙잡을 계획을 면밀히 토론했다. 상순은 촌공소에서 나오다가 금방 위생학교에서 돌아온 촌공소 옆집에 있는 큰조카 공학을 만났다. 공학의 옆에는 얼굴이 보름달같이 환한 처녀애가 서서 웃고 떠들다가 생글거리는 눈길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벽선이, 인사하오. 내 삼촌이오. 영월구 공안국 국장을 하오.” 공학은 인사시키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벽선은 허리를 구십도로 굽히면서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삼촌님.” “엉? 오.” 상순이 놀라 하는데 옆에서 너부죽한 공학이 싱글벙글거렸다. “용정위생학교 여동창생 김벽선입니다. 부모와 삼촌의 허락을 받고 약혼식을 할까 해서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 거 참 좋은 일이구나. 먼저 할아버지와 노할아버지께 인사해라.” 그리하여 상우네 부처간과 상순은 촌공소에 들어가 병완에게 벽선을 인사시켰다. 병완은 깎듯이 인사를 올리는 활발한 증손비감을 보고 수염을 어루 쓸었다. “새 애기 올해 나이 어떻게 됐소?” “열여덟 살입니다.” “그래? 음, 맏증손자 공학이 올해 스무 살이니까 나이도 맞구나. 우리 집안에 공학이 의학공부를 하니까 또 의사 증손비가 들어서는구나. 내 오래 사니까 증손비도 다 보는구나. 허허허.” 병완은 반가와 어쩔 줄 모르면서 벽선과 이것저것 물었다. “요즘 의학공부 바쁘지?” 벽선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었다. “맨 공부만 하면 괜찮아요. 조선에서 숱한 부상병들이 들어와서 치료해 주다나니 공부할 새도 별로 없습니다. 우린 요즘엔 도문과 개산툰에 가서 부상병들을 구급합니다.” “그래? 부상병들을 구급하는 게 좋은 의사공부지. 허허허.” 한참 후 상우는 공학과 벽선을 데리고 상순이네 집으로 찾아가 아버지께 인사시켰다. 기준과 명옥이 반가와 한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었다. 상순은 공학을 조용히 불러 천지꽃산에서 발견한 일을 말해주고 나서 벽선을 데리고 유람하는 셈 치고 영월구에 가서 천용구 부국장에게 정황을 알리고 민경들을 데리고 오라고 기별하게 했다. 한편 길림에 기관사 기술을 배우러 갔던 둘째조카 열대여섯 살 밖에 안 되는 동선을 시켜 진수해파출소와 용정 공안국에 가서 함흥 촌 부근의 적정을 알리라고 했다. 특무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상순은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소 수레를 몰고 명옥과 함께 소서구로 강냉이 단을 실으러 느릿느릿 올라갔다.                 9. 함흥 촌에 나타난 용천 대장 초겨울의 싸늘한 해가 중천에 걸렸을 때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진짜 남조선 특무 세놈이  조선인민군 복색을 하고  핳흥촌에 접근해 오고 있었다. 그 놈들이 칼산을 넘어 령길을 타고 천지꽃산 기슭에 이르러 함흥촌에 다가갈 때다. "아니, 함흥촌으로 가 뭘 해요?" 뒤에서 따라오던 뱁새눈이 주춤 멈춰섰다. 용천은 깜짝 놀랐다. (이 놈 뱁새눈이 어떻게 함흥촌을 알지?) 용천이 뒤돌아보니 뱁새눈은 똑 마치 얼음강판에 들어선 황소 눈깔 같이 부릅뜨지 않았겠는가.. 그 뱁새눈에는 당황함과 공포의 그림자가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하긴 똘만은 함흥촌은 살아남기 힘든 사지로 기억됐던 것이다. 항일전쟁시기에 함흥촌 동쪽에 있는 늙은 비술나무 밑에서 밤중에 기준과 딱 마주쳤다. 제딴에는 빨리 반응해 권총으로 기준을 제압했다. 그러나 진달래가 날린 돌멩이에 맞아 권총을 떨어뜨렸다. 뒤이이 날아온 돌멩이에 머리를 맞았다.  그 틈에 기준도 홱 돌아서  무쇠주먹으로 똘만의 대가리를 썩은 호박 치듯 했다. 똘만은 밤중에 들이닥친 홍두깨에 얻어맞고 당장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함흥촌에 들어가는 날엔 기준과 병완이 날 알아볼텐데 살아남을 수 있어? 안간다. 안가.) 뱁새눈은 친일주구 신분이 드러날 위험도 무릅쓰고 생떼질 썼다. "함흥촌에 가지 말깁소." 용천이나 병수나 다시 한번 놀랐다. (이 놈이 황해도 놈이라더니? 함경도 사투리를 써?) 병수는 외까풀눈을 가슴츠레 뜨고 뱁새눈을 쏘아보았다. (점점 더 수상해. 이 놈도 분명 한철주와 한 고향 친일주구인 거 같아.) 병수는 어떻게 처치할가 궁리했다. 그는 용천을 한쪽 구석에 데리고 가서 저쪽에 멀쩡히 서 있는 똘만을 쳐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저 놈 뱁새눈이 분명 한철주가 김연대장을 암살하려고 파견하겠다던 놈인 거 같아요." "그래? 나도 의심했어." 땅! 총소리와 함께 용천이 왼팔을 붙잡고 쓰러졌다. 자기를 의심하는 눈치를 챈 똘만이 선손을 썼다. 용천은 쓰러져서도 번개같이 권총을 꺼내들었다. 그때 병수가 권총을 뽑아 똘만을 쏘았다. 똘만이 손목을 붙잡으며 권총을 툭 떨어뜨렸다.  병수가 재차 쏘려할 때다. "잠간!"  용천이 말렸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권총으로 똘만을 겨누며 다가갔다. "왜 날 쏘았어?" "네놈은 한철주 형제를 암살한 놈이야. 죽어 싸다." "넌 누구냐? 어떻게 함흥촌까지 알어?" 똘만은 뱁새눈을 무섭게 부라렸다. "한사단장 생전 명을 받고 네놈들을 죽이러 따라왔다.  한사단장 형제 원쑤를 갚지 못하고 죽는게 한일 뿐이야," "똘만?" 용천과 병수는 놀라며 서로 눈길을 맞추었다. 크나큰 충격이었다. 그 찰나 똘만은 발길을 날려 용천의 손목을 걷어찼다. 권총이 저만치 날려갔다. 똘만은 어데서 그런 힘이 생겼을가. 머리로 병수를 헤딩해 쓰러넘어 뜨렸다. 그리고는 곤두박질쳐 산골짜기로 데굴데굴 굴러내려갔다. "서랏!" 병수가 똘만을 추격했다. "관둬!" 용천은 병수를 불러세웠다. "왜?" 병수는 의아해했다. "저 놈을 살려뒀다간 우리 당해요." 용천은 똘만이 떨어뜨린 권총을 주어들고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그 놈이 빈손으로 어쩐다고? 흥! 저 놈은 함흥촌 민병들한테 맡기고 우린 함흥촌으로 간다."  용천은 아픔을 참으며 권총을 허리춤에 찼다. "어서 마을에 내려가자구."  "아니, 총소리를 듣고 숱한 놈들이 포위할 텐데." "민병들이 왁작거리며 저 놈을 포위하는 틈에 우린 마을에 내려가 배터지게 밥이나 먹구 봅세." 용천은 병수를 돌아보며 대수롭잖게 말했다. "남조선 특무캉 싸우다 부상당한 조선인민군인데 뭐가 두려워?" "오- 알겠어요." 병수는 로련한 용천한테 머리를 숙이었다. 용천은 진달래와 아들을 만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병수는 또 혼자 삼촌 성칠을 살해한 용천을 처단해버리긴 힘들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격투나 사격이나 다 용천에 비해 열세였기 때문이다. 그는 마을에 내려가면 친척들의 힘을 빌어 용천을 죽이기로 작심하고 용천을 따라 나섰다.  용천은 병수를 데리고 태평강 버들숲속으로 달려가 숨어들어갔다. 뒤이어 번개같이  함흥촌 남쪽에 있는 한족 묘지에 이르러 마른 풀 숲에 숨어서 망원경을 들고 마을 안의 동정을 꼼꼼히 살폈다. 마을 사람들은 마당에서 도리깨질을 하다가 그만두고  종소리나는 토성안 촌공소로 달려갔다. 뒤이어 민병들이  총을 들고 우르르 쓸어나왔다. 그들은 금방 총소리 울린 서쪽 천지꽃 산쪽으로 달려가는 것 같았다. "때가 왔어. 마을엔 무장민병들이 나나가 텅  비었을 거네." 용천은 멜가방에서 붕대를 꺼내 왼팔을 싸매 어깨에 처매었다. 그는 뒤에 엎뎌 있는 병수를 돌아보면서 머리를 끄떡 하더니 마을 어귀로 스적스적 걸어갔다. 원래 용천은 늦가을에 장백산에 날아와 내린 후 인적이 없는 원시림을 이용해 유격대를 확대하고 유격전을 벌리려고 했다. 갓 연변에 날아와 내렸을 때에는 가을이기에 그래도 밭에서 강냉이랑 고구마랑 감자랑 구워 먹으며 기상과 적정을 정찰해 무전으로 무난히 도꾜 미군 본부와 서울의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할 수 있었다. 맥아더 장군은 장백산에서 보낸 군사정보를 도꾜 안방에서 속속들이 보고 받고 나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나 장백산 일대에서 공안부문과 변방부대에 숱한 특무들이 붙잡히고 장백산 일대에 대한 봉쇄와 토벌이 심해지자 더는 장백산 일대에서 활동할 수 없었다. 게다가 서울 본부와 왕복 비행기와의 연계도 잘 되지 않아 압축과자와 동복을 제때에 공중투하해주지 않은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초겨울에 들어서면서 산에서 추워 견딜 수 없었다. 그리하여 용천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절벽 끝 전술을 써서 대담히 삼촌 김덕성과 진달래가 있는 함흥 촌으로 침투해 잠복해 있으면서 정보를 제공하고 삼도만과 왕청 로야령을 거쳐 자기가 활동하던 북만까지 손을 뻗칠 생각을 했다. 그는 먼저 대담히 이병수를 데리고 함흥 촌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던 것이다. 그는 꼬리가 밟힐 것 같으면 삼촌과 진달래와 경주를 데리고 남조선으로 날아가려고 마음먹기까지 했다. 그들은 먼저 곰과 범이 무리를 쳐 다녀 마을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패용천산과 칼산에 숨어 있으면서 진수해와 함흥 촌 일대의 정황을 살폈다. 아무리 망원경으로 살펴 보아도 진수해에 옛날처럼 유격대나 군부대가 들어 있지 않는 것 같았고 함흥 촌에는 집단부락 때거나 토비숙청 때처럼 경계가 삼엄하지 않았다. 이전에 마을에 세웠던 망루도 보이지 않았으며 둘레에 세운 목책은 수레를 몰고 드나들기 편리하게 드문드문 끊어나 있었다. 정말 경각성은 흐지부지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푹 빠져 있는 시골 마을로 보였다. 용천은 네 특무를 데리고 패용천산과 칼산 사이 깊숙한 골짜기에 숨어 낮에는 까딱하지 않고 나무 잎을 들쓰고 숨어 있었다. 밤이면 강냉이 밭에 가서 마른 강냉이를 뜯어다가 삭정이로 불을 피워놓고 구워 우두둑 우두둑 뜯어 먹으면서 주린 배를 달래고 추위를 물리치면서 견디었던 것이다. 불도 너무 오래 피우면 발각될 거 같아 추운 대로 과수원의 농막에 들어가 우둘우둘 떨면서 윤번으로 자거나 나무 숲속에 들어가 나뭇잎을 덮고 새우잠을 자군 했다. 기아와 추위에 허덕이던 나날을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났다. 용천은 마을에 들어가 인차 토성 안 집 앞에 자리 잡은 삼촌 덕성이네 집 마당으로 스적스적 다가갔다. “아니, 이게 누구냐? 용천아...” “쉬-” 용천은 식지를 입술에 대며 아래 위 집을 살피더니 황급히 삼촌의 팔을 잡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집집마다 마당에 수수대바자를 높이 해 세워 그들을 본 것 같지 않아 다행이었다. 윗방 구들에 올라가자마자 용천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삼촌에게 넙적 꿇어 앉아 절을 올렸다. “삼촌, 그간 잘 계셨어요?” “오, 그래, 넌 고향에 갔나? 어떻게 돼 여기까지 왔어?” 용천은 구들에 앉으면서 병수를 인사시켰다. “내 전우예요. 이 대대장 인사하게나. 내 작은아버지야.” 병수도 속으로 살려 주십사하고 넙적 큰절을 올렸다. “어떻게 한 입으로 말하겠어요? 진달래와 경주를 찾아 조선 팔도를 다 돌았어요. 개성에도 가서 돌아보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어요.” 덕성은 용천의 손을 잡고 물었다. “그래, 조선에서 칠백을 만났어?” “만났어요.” 용천은 “칠백은 죽었어요.” 하고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응어리진 마음의 어혈과 함께 겨우 꿀꺽 삼켜버리었다. 그는 작은아버지 갈망에 찬 눈길을 피하며 머리를 툭 숙이었다. “그래 그 자식 지금 어디에 있어?” “우리 조선 인민군은 우리 고향 경주를 점령하고 부산을 향해 마구 밀고 나갔어요. 그때 칠백은 부대를 따라 경주를 거쳐 부산에 나가다가 미군의 폭격에 막혀 북으로 철퇴했지요. 그때 칠백은 산에 갇히었다가 당지 유격대와 함께 경주에까지 철거해왔다가 고향에서 나를 만났던 거예요.” “그래 그 자식 지금 경주에 있어?” “예. 경주에서 작은아버지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이 난장판에 어떻게 그리 먼 곳에 가?” 덕성은 너부죽한 얼굴에 수심의 그림자가 흐르고 있었다. “지금 가지 않으면 3.8선이 가로 막히는 날엔 못 나가. 아무뜨므(아루래도) 이 내 조카 방법을 대 보지라.” “저 뒤 웃새집 성칠 대장을 만났댔어?” 그 말에 용천은 옆에 앉은 병수의 눈치를 힐금 곁눈질해 보았다. “만나지 않고요.” “그래 용천은 다 잘 있나?” “에이, 이 난시 판에 미군 놈들의 폭격에 즉살했어요.” “음, 그랬구나. 그런데도 진달래 조카며느린 성칠 대장이 살고 네가 죽었다고 했어.” “말도 안 돼요. 이렇게 펀펀히 살았구먼요. 진달랜 지금 확실히 함흥 촌에 있어요?” “저 뒤 창준이네 사랑방에 있는 기여.” “경주는 잘 있는기오?” “그래, 진달래캉 잘 있어.” 용천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덕성을 쳐다보았다. “건 왜 삼촌 집에 있지 않고 그리로 갔어?” “너를 기다리다가 죽었다고 성칠 대장한테 재가 가서 경수라는 애까지 낳았어. 자기 시집에 간 거야. 병완 영감은 새 맏며느리를 얼마나 귀해 한다고.” 그 말에 병수는 속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비롯한 친척들이 이 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을 대뜸 알게 됐다. 허나 그런 내색을 내지 않고 덕성 앞에서 연극을 심통하게도 노는 용천을 속으로 웃으며 얄미운 웃음을 지었다. “삼촌, 내캉 왔다는 말 누구한테도 알리지 말라우. 가만히 웃새집에 들어가서 진달래캉(진달래와) 경주만 조용히 데리고 오시라우.” “음, 그래. 뭐 훔친 색시냐? 원래 네 색신 걸.” 덕성은 그 자리로 일어나 웃새집으로 들어갔다. 병수는 따라 가고 싶었지만 용천의 눈치가 무서워 생색을 내지 못했다. 한참 후 진달래가 경주의 손을 쥐고 경주를 업은 채 덕성을 따라 허둥지둥 집안에 들어섰다. “어떻게 된 일이예요? 그렇게 애타게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던 당신이 귀신처럼 나타났어요?” 용천은 진달래를 와락 끌어안으려고 했다. 허나 진달래가 경주를 안겨주면서 밀막았다. “경주야, 아빠야.” "아!" 용천은 왼팔 총상이 아파 상을 찡그리며 경주를 받아안았다. "어머! 팔 다쳤어요?" "오. 남조선 특무캉 싸우다가 다쳤어. 서산에서 총소리 나는 걸 듣지 못했어?" "그래요. 그래 특무놈은 어떻게 됐어요." "그 놈도 손목 다쳤어. 노루보담 더 빨리 도망쳐 버렸어." "그 놈이 도망치면 어데 도망쳐? 상순이 서산에 있는데. 숱한 민병들도 포위하러 갔는데. " 경주는 용천에게 안겨 말똥말똥 쳐다보다가 몸부림치며 진달래한테 되돌아가려고 했다. “얘가 경주지? 맞지?” “어떻게 이름까지 알아요?” 진달래는 철색얼굴에 이상해하는 그림자가 언뜻 비치었다. “성칠이 알려주었지.” “그래 성칠 연대장은 어떻게 됐어요?” 용천은 얼렁뚱땅 얼려넘기려고 엮어댔다. “무명고지에서 미군 폭격기에 폭사했어.” “진짜예요?” 용천은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래, 무명고지에서 처참히 희생됐지라우.” "아니야, 저 놈이 죽였어." 병수는 이렇게 까밝히고 싶었다. 그러나 억지로 참았다. 진달래는 잔등에 업혔던 경수를 내리워 끌어안고 엉엉 대성통곡 쳤다. “경수야, 불쌍한 경수야, 으흐흑, 흑흑.” 진달래는 등에 업었던 경수를 품에 돌려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불쌍해 울었다. 어머니가 울자 경주와 경수도 덩달아 잉잉 울었다. 셈이 없는 경수는 울며 어머니의 얼굴을 고사리 손으로 매만지면서 “엄마, 금방 형님 보고 아빠 왔다 해놓고. 경주 아빠 내 아빠 아냐?” 하고 종알거렸다. 그 말에 진달래는 더욱 슬피 엉엉 울었다. 그때 용천이 경주와 경수를 한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그래, 난 너희들 아빠야. 젬만(어머닌) 아빠를 만나 기뻐 이러는기여. 울지 마.” 병수는 진달래와 용천 그리고 애들을 둘러보며 오리무중에 빠졌다. (도대체 무슨 갈래 판이야? 할아버지를 만나면 진상과 내막을 다 알 수 있겠지.) 진달래는 한참 후에야 울음을 그치고 용천과 마주 앉았다. 경주는 어머니 잔등에 매달려 아버지라는 용천을 말똥말똥 쳐다보고 경수는 어머니 무릎에 앉아 어머니 볼을 고사리 손으로 매만지면서 놀았다. 진달래는 저고리 고름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병수를 곁눈질해 보더니 용천에게 물었다. “그래, 그간 어디 갔댔어요?” 용천은 그제야 꺽꺽거리며 병수에게 찔끔 눈짓했다. “부상병을 함께 데리고 들어온 내 수하 병수야.”  진달래는 병수에게 눈인사를 했다. 그러자 병수는 “사모님, 천천히 얘기하세요.”라고 하고는 권총집을 뒤로 하며 윗방으로 올라가 미닫이문을 꾹 닫고 덕성과 한담했다. 용천은 진달래 손을 덥석 잡았다. “여보, 당신을 찾아 조선 팔도를 다 헤맸어. 여기 있는 줄도 모르고.” 용천은 진달래를 찾아 헤매던 얘기를 죽 했다. 그러자 진달래도 용천을 기다리던 얘기를 죽 이야기하고 나서 울먹이며 뒷말을 이었다. “당신을 기다리다 못해 전 장백산 밀영에서 희생됐다고 여기고 성칠 오빠한테 재가했던 거예요. 용서해요. 그래 성칠 오빠와 한 부대에 있었어요?” “아니야, 난 혹시 당신 경주에라도 올까 해 고향에 갔다가 철퇴하던 조선인민군 속에서 성칠 형을 만났던 거야. 그런데 만난 날이 장날이라고 그간 지난 이야기를 듣다가 그만 미군 폭격기 공습을 받아 무명고지에서 성칠 형이 폭사당한 거야." (아니야, 성칠 삼촌은 저 놈이 죽였어요.) 병수는 방에서 듣다가 몇번이고 성칠 삼촌이 피살된 진상을 까밝히고 싶었다. 진달래와 함께 삼촌을 살해한 원수놈을 당장 척살하고 싶었다. 그러나 둘이선 용천을 당할 것 같지 못해 억지로 꾹 참았다. 용천은 그럴듯하게 엮어나갔다. "지나간 일은 어쩌겠나. 난세에 이런 일이 기수부지니까. 이젠 성칠 히야(형) 잊고 날 따라 가자. 애들을 어떻게 하겠나? 며칠 후 기차에 앉아 가지.” 땅! 갑자기 서산쪽에서 총소리 울렸다. 땅! 땅!  용천은 습관적으로 허리춤에 손이 갔다. "허허. 상순이 특무 잡는 모양이군 그래." 사실 그때 상순이 똘만과 싸우는 시각이 맞았다. 용천은 자꾸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급촉한 발걸음 소리가 나도 자꾸 말을 중단하는 것이었다. 진달래는 유격대 노련한 중대장의 예민한 눈길로 수상한 감을 느꼈다. 그녀는 짐짓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한 척 하면서 물었다. “그래 가면 어디로 가요?” 용천은 진달래의 눈치를 흘금 보다가 중얼거리었다. “부상병 호송임무는 완수했으니까. 시름 놓고 돌아가야제. 지금 전쟁은 한국군, 아니, 남조선 괴뢰군과 조선인민군이 대치상태에 처했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3.8선이 꽉 막히기 전에 고향 경주를 돌아갔으면 좋겠는디. 작은아버지도 모시고 가야제.” 진달래는 도리머리를 보일락 말락 흔들었다. “이 난세에 어디로 가요? 황차 당신의 고향 경주는 남조선인데 우리 같은 빨갱이출신이 어떻게 가요?” 그 말에 용천은 진달래의 손을 놓았다. “우리 모두 이념을 버려야제. 내 고향 경주에는 경주와 경수한테 물려줄 수십 헥타르 땅에 고풍스런 팔간 집 몇 채 있어. 내 고향에 돌아가자.” 진달래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 난세에 여기 함흥 촌에 있다가 전쟁이 끝나자마자 나가면 어때요?” “안된다니까. 전쟁 끝나면 3.8선이 꽉 막혀버려. 지금 한창 정전담판중이야. 지금 같은 난시에 나가지 않으면 못 나가. 이번만 내 말 들으라니께.” 진달래는 마음이 한 곬으로 달리지 못하다가 나중에 틈이 깊숙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렇다. 남북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시절에 그들 부부는 이념의 높은 장벽을 넘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애들을 사이에 놓고 매만지면서 한참이나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했다. 진달래는 권총을 벗어 벽에 걸어놓고 부엌에 내려가 점심을 지었다. 쌀을 가마에 앉혀놓고 부엌에 내려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자 풍무를 웅웅 돌리는 진달래의 내심은 복잡하기로 비길 데 없었다. 그는 부상병호송임무를 맡고 왔다는 용천이 혹시 남조선에서 파견한 특무가 아닌가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허나 경수가 이미 애비를 잃었는데 경주마저 애비를 잃게 할 수는 없었다. 순간 내심에서 화산이 폭발할 듯이 마음이 아프고 머릿속에서는 격렬한 사상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용천과 병수는 오랜만에 진달래가 지은 새하얀 이밥에 따뜻한 장국을 배불리 먹었다. 대뜸 눈이 툭 불거져 나오는 듯 했다. 용천은 나머지 밥이 한 대야나 되는 것을 보고 산골짜기 수림 속에서 우둘우둘 떨며 주린 창자를 달랠 대만 특무들이 생각나 자꾸 바깥을 내다보았다. “언제 돌아가요?” 진달래는 설거지를 하면서 피뜩 용천을 돌아보며 물었다. “한 열흘 후에 가면 어떨 가? 작은아버지 타작이나 다해 낟알을 팔아 가지고 가면 좋을 거 같아. 작은아버진 영월동에서 일본 놈들에게 칠석과 옥녀를 잃었는데 이번에 칠백도 잃었어. 의지가지 없는 작은아버지도 모시고 가야제이.” 용천은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그도 기실 빨갱이 물에 폭 젖은 진달래를 데리고 간다는 것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다만 어린 경주가 가는 뉴대로 돼 높은 장벽 양쪽에 있는 자기와 진달래를 억지로 한데 묶으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더러운 년, 안 갈라면 말라지. 경주만 빼 가면 다야.) 진달래는 경수를 둘 쳐 업더니 물었다. “저 뒤에 성칠 오빠네 아버지를 만나보러 가지 않을래요?”  용천은 가지 않으면 진달래와 병완의 의심을 받을 것 같아 마지못해 우쭐 일어났다. “병수, 함께 성칠 연대장 아버지를 만나보러 갑세.” “예.” 용천은 경주의 손을 잡고 병수와 함께 진달래를 따라 눈에 익은 토성 안 집을 지나 웃새집으로 들어갔다. 그때 뒤에서 귀에 익은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며느리, 보기요.” 용천과 병수가 본능적으로 권총집에 손이 갔다가 내리웠다. 억대우 같은 병완이 토성 안에서 나오며 그들을 이상한 눈길을 보는 것이었다. 병완과 용천은 거의 동시에 놀란 눈길을 보냈다. “할아버지, 그간 무사했어요?” “아니, 이게 몇 해만이오?” 그들 둘은 서로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용천 대장은 금방 서산에서 남조선특무하고 싸우다가 놓쳤대요." 진달래는 시아버지를 보고 금방 들은 말을 쭉 했다. “오, 그래? 왼팔을 그래 다쳤겠구나. 어서 들어가서 천천히 얘기하기요.” 병완은 용천을 데리고 토성 안 촌공소로 들어갔다. 병수는 자기 눈 앞에서 걸어가는 분이 바로 자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렇게 찾던 할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그러나 자기 신분을 밝히기 어려운 형편에서 할아버지를 인사할 수도 없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이때 상순이 소 수레를 몰고  민병들과 함께 토성 안에 들어섰다. 수레 우에는 군복을 입은 자가 실려 있었다.        모두들 놀라운 눈길을 보냈다.        특히 용천과 병수는 상순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마을에 군복을 입은 공안이 마을에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똘만이 끝내 당했구나.)         용천은 가까스로 진정하며 수레에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가. 똘만이 가슴에 피 랑자한 채 쓰러져 있었다.                원래 똘만은 용천과 병수의 마수에서 벗어나 산꼴자기로 굴러내려갔었다. 그는 손목 상처를 붙잡고 천지꽃산을 넘어 소서구 쪽으로 도망쳤다.그런데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칼산 쪽으로 도망치려고 하다가 소서구 골짜기에서 상순과 맞딱드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상순은 총소리를 듣자 명옥과 함께 수수를 싣다가 권총을 빼들고 이쪽으로 달려왔었다. 그가 천지꽃산 중턱에서 볼라니 조선인민군 복색을 한 두 사람은 골짜기에  굴러들어간 자를 추격하다가 말고 태평강 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나무숲 속에 엎드려 소서구 쪽으로 올라오는 자를  기다렸다. 그런데 가까이이 온 걸 보니 역시 조선인민군 복색을 하지 않았겠는가. "헛참, 조선인민군끼리 싸워? 혹시 남조선 특무?" 번개처럼 뇌리를 치는 생각에 상순은 권총을 단단히 틀어쥐고 버스럭거리는 쪽을 주시했다. 한참후 한 자가 손목을 붙잡고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꼼짝 말엇!" "억!" 그 자는 주춤 멈춰섰다. 뱁새눈으로 나무숲 속을 두리번거렸다. "손 들엇!" 똘만은 손을 들었다.  상순이 천천히 나무 숲속에서 나왔다. (에크! 저게 기준이 아닌가!) 그는 기준과 똑같이 생긴 상순을 알리 없었다. "헤헤헤. 장관님, 난 조선인민군입구마. 총을 거둡소." 상순은 총으로 겨누며 물었다. "왜 마을로 내려가지 않고 이런 델 숨어 다니오?" 똘만은 잘도 둘러댔다. "헤헤. 금방 남조선 특무들과 만나 싸웠소. 그 놈들은 둘인지라. 총도 있는데 난 맨손으로 혼자 어떻게 당하오? 부상도 당했지." 상순은 금방 본 정황과 맞아떨어진다고 여겼다. 그가 권총을 거두며 다가갔다. "가이오. 함께 남조선 특무를 붙잡으러 가기오." "그러기오." 똘만은 상순이   경각성을 늦추는 틈을 타 발길을 날려 상순의 아래배를 걷어찼다. "억!" 상순은 허리를 굽혔다. 똘만이 재차 무릎을 쳐들어 턱을 걷어올리려고 할 때다. 땅! 상순은 허리를 굽히며 권총을 뽑아 갈겼다. 똘만은 본능적으로 옆으로 몸을 피했다. 총알이 빗나갔다. 상순은 재차 덤벼드는 똘만을 향해 련발 사격했다. 땅! 땅! 똘만은 아무리 특무훈련을 받았지만 상순의 총알을 피하지 못했다.     몇십년 친일주구로 개처럼 뛰여다니다가 몇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긴 똘만이였지만 끝내 영용한 공안국장 상순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만주 땅에서 개죽움을 명하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수수단을 널린 산기슭에서 민병들이 총을 겨누고 몰려들었다. 그들은 상순의 지휘 아래 특무 똘만의 시체를 수레에 싣고 마을로 내려 왔던 것이다.          병완은 소수레에 와서 시체를 이리저리 보더니 깜짝 놀랐다. "이놈이 우리 고향부터 따라다니던 친일주구 똘만 놈이구나." 용천과 병수는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똘만놈 맞구나.) 병수는 권총을 찬 상순이 뒤따라 들어오는 것을 보자 등곬이 싸늘해 주춤 멈춰 서며 자연히 허리춤에 손이 갔다. 그러자 상순도 멈칫하며 손을 권총집에 가져갔다. 그때 병완이 뒤돌아보며 손짓했다. “상순아, 누가 왔는가 봐라!” “아, 용천 대장!” 상순은 뛰어나가며 환성을 질렀다. 그러나 세귀눈만은 용천의 아래위를 무섭게 살폈다. 금방 특무를 붙잡은 시점에 불쑥 마을에 나타난 불청객이 아닌가.  “아니, 이거 우리 꼬마 유격대원 상순이 아닌가?” 용천은 상순을 와락 끌어안고 아닌 보살을 떨며 잔등을 툭툭 다독였다. “야, 상순이 벌써 이렇게 컸어. 너거 공안국장을 한다더니 왜 여기 함흥 촌에 있어?” “공안국장을 그만두자고 그러오. 이젠 미제와 남조선 괴뢰군 특무들도 다 붙잡았지. 할 노릇이 있습니까? 괜히 아버지께 효성도 하지 못할 거 같아 공안국 국장을 그만둘 예산입니다.” 상순은 박성우가 다른 현 공안국으로 전근돼가 일하기 편리해졌지만 집 근심만은 마음 속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는 잠시 함흥 촌에 돌아와 효성도 하고 사회주의 제2고향 건설 위업에도 힘쓰는 길을 가면 좋다는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또 기회를 보아 조선전선에 나가 제 손으로 미제와 이승만 괴뢰군을 까부시려고 마음 먹었다. 그는 공안국 국장이고 뭐고 자기  벼슬 같은 건 초개같이 여겼다. 오직 제2고향 연변조선족자치구와 새 중국을 보위하는데 낫으면 국장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전선에 나갈 각오가 돼 있었다. 병수는 부리부리한 세귀눈에 예지와 독살이 번쩍이는 삼십대 초반의 이 사내가 성칠이 말하던 공안국장을 하는 상순 형님이라고 단정했다. "어떻게 돼 여기 왔습니까?" "오- 부상병을 호송해 개산툰에 왔댔어." 상순은 용천이 왼팔을 어깨에 처맨 걸 보고 의아해했다. "전선에서 상했습니까? 피가 아직도 흐르네." 용천은 오른 손으로 상순의 어깨를 다독였다. "금방 저 놈과 싸우다가 다쳤어." 그제야 상순은 짚이는 데 있어 머리를 끄덕였다. "금방 저도 서산에서  저 놈하구 싸우는 걸 다 봤어요." 그 말에 용천과 병수는 등곬이 다 싸늘해졌다. 병완은 촌공소에 들어가 자리를 정하고 앉자마자 용천과 진달래 그리고 병수가 있는 것도 관계하지 않고 상순을 꾸짖었다. “어떻게 공안국장 자리까지 올라갔다고 하지 않겠다고 하느냐? 너를 배양한 당 조직에 미안하지 않니? 너를 입당시킨 이계삼 부장과 허영주 서기에게 미안하지도 않니?” 상순은 머리를 수기고 듣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옆구리를 괭이에 찍힌 아버지가 상한 몸으로 늘그막에도 기음을 매는 걸 보니 죄송스럽습디다. 아무데서나 효성을 하면서 혁명을 하면 됩니다. 조직에 몇 번이나 천용구를 국장을 시키라고 했습니다. 천용구를 현공안국 부국장으로 제발시켰는데 아주 전도가 유망합니다. 오래잖아 국장으로 될 겁니다. 현공안국은 근심할게 없습구마. 이제 조선전선에 나가 미제와 남조선 괴뢰군과 생사결판을 내러 갈가 합꾸마.” 병완은 마지막으로 상순에게 나직이 말했다. “예로부터 충신은 효자로 될 수 없다고 했다. 혁명을 하려면 너무 부모한테 뒷다리를 묶이워선 안 된다. 내일 당장 공안국으로 돌아가라.” 상순은 찍 소리 못하고 세 귀 눈으로 용천과 병수를 흘끔 곁눈질했다. 자꾸 눈이 용천과 병수가 땅바닥에 벗어놓은 군화에 갔다. 목이 긴 가죽군화였다. 병완은 허리를 펴고 용천과 병수를 번갈아보면서 물었다. “어떻게 돼 김 대장은 여기까지 오게 됐소?” 용천은 또 한바탕 연극을 놀았다. 병수는 옆에서 웃음을 지으면서 용천의 연기에 속으로 감탄했다. (빨갱이들 속에서 절어 난 놈 다르긴 달라. 어쩜 빨갱이들이 욱실거리는 마당에서 저렇게도 연극을 잘 놀아?) 병완은 성칠이 무명고지에서 미군 날강도비행기 폭격에 비참하게 희생됐다는 대목을 듣자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더니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었다. “끝내 전선에서 영광스럽게 희생됐구나. 충신은 효자가 아니지.” 그는 주름진 두 볼로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이윽고 떨리는 손으로 곰방대에 담배를 재워 넣더니 우쭐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상순은 불쌍한 동생 경주를 안고 대성통곡쳤다. “큰아버지! 큰아버지!” 그때라고 용천은 병수에게 눈짓하더니 스르르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더니 덕성이네 집 쪽으로 걸어갔다. 병수는 측은한 눈길로 토성안집의 진달래와 상순을 되돌아보며 나갔다. 상순은 뒤따라 나가면서 먼발치에서 세귀눈으로 용천과 병수의 허리에 찬 미제 권총을 바라보았다. 또 그들이 발에 건 토색군화를 보며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황차 용천과 병수는 똘만과 똑 같은 군화를 신지 않았겠는가. (이전에 도문이나 개산툰이나 국자가에 들어온 조선인민군 부상병들은 저런 목이 긴 군화를 신은 것을 보지 못했는데..." 상순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개산툰에서 오는 길이라는데 왜 천지꽃산 부근에서 똘만과 총싸움을 벌렸을까?  아무래도 수상해!)
113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76) 댓글:  조회:1655  추천:1  2017-08-07
                                                           6. 동족상잔        공포에 휩싸인 어두운 장막이 포화에 그은 해를 서서히 삼키더니 무서운 비명을 지르는 하늘에 아기별을 하나, 둘 낳기 시작했다. 천진란만한 아기별들은 동족끼리 피를 말리는 결투를 벌리는 전장을 내려다보고 깜짝 놀라 공포에 바르르 떨며 피로 얼룩진 먹장구름 속으로 숨어버렸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무명고지에서는 우리 민족의 전통민요 멜로디에 뒤이어 성칠 연대장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산악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어리석은 괴뢰군 장병들아, 난 영용한 조선인민군 연대장 김성칠이다. 당신들의 연대장 김용천은 일찍 간도에서 나와 어깨 겯고 일본 놈들과 싸우던 전우이다. 그도 우리와 똑같은 빨갱이었다. 그래 그에게 속아 우리와 싸워 볼 테냐? 우린 다 같은 피가 흐르는 동족이다. 진정 평화를 희망하는 정의적인 사람들은 동족의 피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 총부리를 동족에게 겨누겠는가? 총부리를 당신들을 대포 밥으로 내몬 미제 놈들에게 돌려라! 남조선 인민들을 식민지 노예로 만들려는 미제 양키놈들과 싸우라!” 성칠의 말소리를 확인한 이병수는 망원경으로 무명고지를 올려다보았다. 조명탄을 대낮같이 밝힌 환한 무명고지 절벽아래 지휘소에 확실히 성칠 삼촌이 고음확성기 옆에서 고함치는 모습이 보였다. 두번 다시 보아도 김성칠 삼촌이 틀림없었다. 이병수 대대장은 권총을 쥔 채 용천 연대장한테 돌아왔다. “김 연대장, 성칠이 508고지에 있다더니 진짜 저게 뭔가요? 진짜 삼촌과 총을 맞대고 죽기내기로 싸워야 해요?” 그 말을 들은 병사들은 어리둥절해 용천 연대장과 병수 대대장을 번갈아 쳐다보며 한걸음도 전진하려고 하지 않았다. “흥! 빨갱이 놈들의 이간책이 참 고명하구나. 대대장까지 전의를 상실하다니. 이걸 어쩌노(어쩌지)?” 용천 연대장은 병수 대대장과 웅성거리며 몰려오는 병사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도 몰라, 왜 이북과 싸워야는지.)      용천은 자기 피 묻은 손을 들어 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이 악독한 손으로 하나 밖에 없는 사촌동생 칠백의 옆구리에 총칼을 박았다. 한철주 놈이 동생 가슴에 총을 쏘는 걸 뻔히 보면서도 난 멍청히 서 있었다. 동생한테 총을 쏜 경호원을 아직도 내 곁에 살려두었다. 나도 사람인가?)       그는 무명고지를 바라보며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이제 또 성칠 형과 총칼을 싸워야 하는가?  성칠 형은 내가 명천에서 유격대에 끌어들인 항일유격대 전우가 아닌가. "      이렇게 중얼거리는 용천의 눈 앞에는 눈보라치는 장백산 기슭 원시림에서 성칠과 함께 일제와 최후격전을 벌리던 정경이 떠올랐다. 그때 그들은 어깨겯고 장백산 협곡 근처 갱도에서 일제와 싸우다가 포위됐다. 그들은 두개 소조로 나뉘여 갱도에서 포위를 돌파해나갔다. 그후 서로 생사를 모르고 갈라졌다. (건데 5년 만에 총칼을 맞대고 전쟁터에서 만나다니? 금방 이 더러운 손으로 사촌동생을 죽였는데 또 친형제와 같은 전우마저 죽여야 한단 말인가? 아, 전쟁이란 무엇인가? 그래 성칠은 진짜 죽어야 할 대적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는 이대로 성칠한테 장병들이 흔들려서는 목숨도 건지기 힘들다는 것을 직감했다. 살기 위해선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됐다. 용천도 할수 없이 고음확성기를 들고 무명고지를 향해 목청을 가다듬어 고함쳤다. “성칠아, 나 용천이야. 이 빨갱이 놈아, 입방아를 그만 찧고 군인답게 한번 통쾌하게 붙어보자! 우리 한 개 사단과 세계 최강군 미군의 공군과 탱크대대가 이제 무명고지와 508고지를 불바다로 만들 거야. 우린 이제 마천령을 넘어 두만강까지 돌진할 테야. 어서 투항들 하지 못해?!” 고지에서도 성칠 연대장의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우리 항일유격대 출신 조선인민군은 일당백의 용사들이다! 네놈들이 정 미제 양키놈들의 강박에 못 이겨 강제로 전장에 끌리어 나온 걸 다 안다. 불쌍하구나. 허허허. 싸우겠으면 어디 덤벼봐라! 죽음이 네 놈들을 기다릴 뿐이야.” 기침소리가 좀 나더니 또 성칠의 걸걸한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용천아, 우린 네가 죽었는가 했어. 오랜 만에 만나 기쁘구나. 허나 총을 맞대고 죽기내기로 싸우려고 전장에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진달래가 네 아들 경주를 데리고 간도 함흥촌에 피신했다. 난 진달래와 재혼해 아들 경수까지 보았다. 절대 오해하지 말라. 네가 죽은 줄 알고 그렇게 됐어. 이것도 운명의 조화야. 우리 둘 중 누가 살아남든 간에 진달래와 경수, 경주는 근심할 게 없다.” “뭐라고? 진짜 내 아내를 빼앗아 살았어? 더러운 놈!” 무명고지에서 고함소리가 울렸다. “용천아, 오해하지 말라. 내 진달래를 빼앗은 건 아니야. 네 죽은 줄 알고 그렇게 됐어.” (뭐? 내 죽은줄 알고 그렇게 됐다고? 흥! 거짓말. 작작 구실을 대. 가령 내 죽어도 그치. 어찌 그럴 수 있어? 어찌 제수 데리고 살아 애까지 낳아? 내 눈 펀히 뜨고 살아 있는데. 내 얼마나 진달래를 찾았는데.  발바닥이 다 다슬어 떨어지게 조선 팔도 서캐훑듯 찾아 헤맸는데. 헛참, 기막혀!) 용천은 온 몸의 피와 분노가 꼭뒤에 치솟았다. 그는 확성기를 들어 고래고래 고함쳤다. “개소릴 작작 쳐. 내 없는 틈에 남의 아내를 빼앗아? 양심 없는 승냥이놈아! 도적놈은 살려줘도 내 안해 빼앗은 놈, 형제 신의를 저버린 놈은 살려둘 수 없어!" 용천은 한참 모르고 있었다. 진달래의 첫사랑이 성칠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네 죽든 내 죽든 생사결투하자. 대갈통을 콩가루 내줄테야!”     옹천은 격분해 거친 황소숨을 씩씩 내쉬며 무명고지 지휘부를 노려보았다.    (내 손으로 짐승보다 못한 배신자를 처치할 테야. 저 놈이 죽으면 진달래가 나한테 돌아올 거야.) 용천은 돌아서서 권총을 빼들고 고함쳤다. “돌격!” 허나 병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수군거리면서 전진할 궁리를 하지 않았다. 분명 성칠 연대장이 쓴 심리전술이 효과를 본 것이었다. 황차 이병수 대대장은 자기 오촌숙과 싸울 생각이 없었다. (제밀할, 성칠 삼촌이 무명고지에 없다더니. 나를 고의로 삼촌과 싸우라는 건가?) “이 대대장! 뭐라고 꾸물거려? 빨리 무명고지로 전진하라!” 허나 병수는 권총마저 권총집에 찔러 넣으면서 용천을 쏘아보는 것이었다. “당신은 빨갱이들이 보낸 간첩 아냐? 돌격? 흥!” 용천은 성칠의 이간책에 놀아나는 병수가 답답했다. 이때 고음확성기에서 허 사단장의 명령이 울렸다. “용천 연대장! 뭘 꾸물거려? 빨리 무명고지를 점령하지 못해? 이제 더 질질 끌면 총살할테다!” "옛! 곧 진공하겠습니다." (성칠 놈을 죽여야제이!) 용천 연대장은 권총을 휘두르며 제일 앞장서 돌격했다. “자랑찬 나의 장병들이여, 돌격!” 장병들은 우왕좌왕하다가 권총을 들고 돌격하는 용천을 따라 “와!” 고함치며 무명고지를 향해 돌격했다. 절벽에서 쏘아대는 기관총 소리와 함께 남조선 병사들은 산비탈에서 무리로 쓰러졌다.        남조선 괴뢰군 장병들은 진짜 쓰러진 동료들의 시체를 밟고 넘어 산마루로 전진했다. 진짜 피어린 발자욱마다 동족상잔의 참극이 밟히고 있었다.       조명탄이 하늘로 날아올라가 불길이 내뿜는 산비탈을 대낮같이 환하게 비추었다. 조명탄아래 무명고지에서 번쩍번쩍 번쩍이는 섬광이 몇이 되지 않는 것이 보이었다. 용천은 인민군이 몇 십 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무명고지에서는 조선인민군 여전사의 노래 소리가 폭탄이 작렬하는 굉음 속에서 들릴가 말가 하면서도 용케도 간간히 가냘프게 울려 퍼지었다. 때마침 미군 전투기들이 편대를 지어 날아와 무명고지를 향해 맹렬히 폭격했다. 탱크들도 미친 듯이 무명고지를 향해 포격하며 덮쳐 올라갔다. 꽝꽝! 쿵! 쾅! 절벽이 쿵 무너져 내렸다. 돌과 흙덩이들이 무너져 내려 지휘소를 덮어버렸다. 여 전사 순희와 고음확성기도 파묻혀 버렸다. 다시는 여전사의 노래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순희!” 조철호는 흙덩이들을 마구 파헤치며 여 전사를 애타게 불렀다. “순희! 순희!” 그가 순희를 흙더미 속에서 파냈을 때 그녀는 머리에서 뻘건 피에 흥건히 젖은 머리를 들지도 못하고 마지막 숨을 할딱할딱 몰아쉬고 있었다. “우린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야 해.” “오빠, 고, 고향은 어, 어디?” “영월구 차조촌이오. 동무 고향은?” “안, 안보촌.” “우린 한 고향 전우구만.” “예~” 여전사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결, 결혼했소?” “결혼한 지 반년이오.” “새, 색시 이름 ...?” “김옥선-” “오~ 이, 이름 고, 곱구나.” "동문 결혼했소?" 여전사는 피를 머금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도리머리를 천천히 힘겹게 저었다. 그들은 피로 물든 손을 맞잡고 서로의 고향과 이름을 되뇌었다. 전쟁판에서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화에서 이런 일이 종종 있었다. 혹시 누가 살아남으면 고향에 소식이라도 전하게 하려는 불쌍한 바램이었다. 꽈르릉 꽝꽝! 절벽이 탱크의 포격에 와그르르 무너져 내렸다. 조철호는 자기 몸으로 떨어지는 암석을 막으며 쓰러졌다. 여전사 순희를 구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무정한 바위돌은 순희마저 사정없이 파묻어버렸다. 성칠은 산비탈로 둔중한 엔징 소리를 내며 아득바득 덮쳐 올라오는 탱크를 쏘아보며 주먹으로 전호 벽을 꽝 쳤다. 이때 억복이 수류탄묶음을 안고 전호에서 뛰쳐나갔다. 뒤이어 데굴데굴 뒹굴어 달려오는 탱크 앞으로 덮쳐갔다. 꽝! 수류탄 폭발굉음이 하늘을 찔렀다. 제일 앞장서 달리던 탱크가 화염 속에 멈춰 섰다. 탱크 웃뚜껑이 열렸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몇몇 미군 탱크병사들이 뛰어내리는 것이 보였다. 희생된 줄 알았던 억복이 어둠 속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탱크 병사들에게 반자동보총을 휘둘렀다. 뚜르륵 뚜르륵 억복이 한 배짐을 풀자 숱한 미군 탱크병사들이 쓰러졌다. 땅! 이병수 대대장이 쏜 총탄에 억복이 푹 꺼꾸러졌다. 땅! 용천의 경호원이 쓰러졌다가 기여 일어나려는 억복에게 재차 권총을 쏘아 끝장을 내줬다. 미제의 전투기들이 산등성이 뒤로 날아 가버리자 무명고지에서 탄알이 빗발치듯이 산비탈로 날아왔다. 괴뢰군은 공군의 우세를 빌어 철갑모를 번쩍이며 산마루를 향해 슬금슬금 기어 올라갔다. “우리 저 놈들을 죽이지 않으면 저 놈들이 우릴 죽인다! 형제들, 돌격!” "죽여라!" 용천이 돌격해 올라가면서 뒤돌아보며 총을 휘둘렀다.  이병수 대대장도 뒤따라오는 것이  피뜩 보이었다. (그래. 따라오지 않을 수 있어?! 군법에 의해 총살해버릴 테야.) 허나 이병수는 다른 궁리를 하면서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망원경으로 절벽 밑의 지휘소 자리를 자꾸 살폈다. 성칠이 한창 권총을 휘두르며 전투를 지휘하는 모습이 보였다. 인민군 전사들은 목숨을 내걸고 결사적으로 고지를 사수하며 맹사격을 가했다. 갑자기 산 위에서 총소리가 뜸해졌다. “김 연대장! 탄알이 떨어졌습니다.” “돌멩이로 까라!” “옛!” 산 위에서 총소리 대신 소 대가리만큼 한 돌멩이가 마구 날아 내려왔다. 몇몇 괴뢰군 병사들이 돌멩이에 철갑모와 어깨, 다리를 맞고 비명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 이때라고 용천 연대장은 고함쳤다. “놈들이 탄알이 떨어졌어. 돌격!” “돌격!” 남조선 군 장병들은 사기를 높여 산마루 절벽 밑에까지 돌격해 올라갔다. 이때 성칠 연대장이 권총으로 몇 놈을 쏘아 눕히며 고함쳤다. “육박전! 고지를 사수하라!” 성칠 연대장이 쓰러진 괴뢰군 병사의 손에서 총창을 빼앗아들고 전호 속에서 제일 먼저 맹호와 같이 뛰어 나갔다. 인민군 장병들은 그를 뒤따라 조명탄 불빛과 활활 타오르는 불빛에 서슬푸른 총창을 번뜩이며 돌격해 내려갔다. 산마루에서는 일대 혼전이 벌어졌다. 총소리와 아우성이 뒤섞여 어지럽게 울렸다. 여기저기에서 죽음의 비명소리도 울렸다. 용천은 앞장서 총창으로 연신 몇몇 병사들을 찔러 눕히며 달아내려오는 성칠을 똑똑히 보았다. 용천은 이를 옥물고 권총을 들어 성칠을 겨누었다. 성칠이 총창으로 용천의 가슴을 푹 찔렀다. 땅! 총소리와 함께 쓰러진 것은 성칠이 아니라 용천이었다. 용천은 황급히 뒤로 벌렁 드러누우면서 총을 쏘았다. 땅! 땅! 뒤따라오던 병수가 용천의 손목을 쏘았다. 그 바람에 성칠은 어깨에 흉탄을 빗맞았다. 성칠이 총창으로 재차 들누운 용천을 찌르려고 할 때다. 용천의 경호원이 뛰어나가면서 성칠을 쏘았다. 땅! 총소리와 함께 배에 흉탄을 맞은 성칠은 총창을 툭 떨구더니 산비탈에 푹 꺼꾸러졌다. 그때 용천이 황급히 경호원을 보고 고함쳤다. “누가 죽이라 했어? 저 놈은 생포해야 해!” 용천은 권총을 주어들고 산비탈로 올라가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성칠, 이 놈, 내 아내를 빼앗은 날강도야! 내 손에 죽여야제!” 성칠은 쓰러져 선지피가 쿨룩쿨룩 솟구치는 가슴을 높뛰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허나 용천이가 권총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순간 스르르 기어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그의 권총이 천천히 쳐들리었다. “죽어라!” 땅!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둘 다 눈 덮인 산비탈에 쓰러졌다. 성칠과 장 꼬마가 용천을 쏘았고 용천이 성칠을 쏘았다. 눈보라치는 장백산 밀림 속에서 어깨 겯고 일본 놈들과 싸우던 항일유격대 두 전우, 그들 둘은 총부리를 맞대고 싸우다 동족의 피로 얼룩진 눈 덮인 산비탈에 쓰러졌다. 장꼬마도 따발총으로 마지막 끝까지 싸우다가 몸을 휘청하더니 총을 툭 떨어뜨리며 푹 꺼꾸러졌다. 무명고지를 사수하던 영용한 조선인민군 전사들은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총창으로 싸우다가 하나하나 쓰러졌다. 임호는 날창으로 찌르고 치고 하며 혼자 남아 고지에서 싸웠다. 그가 어찌나 힘껏 총창으로 찔렀는지 총창이 괴뢰군 병사의 늑골 사이에서 빠지지 않았다. 발로 병사의 시체를 탁 차서야 겨우 빠졌다. 그새 한 병사가 총창으로 임호의 가슴을 찔렀다. 임호는 날아드는 총창을 옆으로 피하면서 총창으로 찔러 눕혔다. 뒤에 쫓아온 두 병사가 총창을 채 빼지 못한 임호의 양옆구리를 푹 찔렀다. 임호는 슬쩍 피하면서 두 총창을 양손에 쥐여 홱 나꿔채 옆으로 휘둘렀다. 두 병사가 거꾸로 박히며 곰 같은 임호의 괴력에 질겁해 뒤로 비실비실 엉덩이걸음을 쳤다. 임호는 일어나려는 두 병사의 목덜미를 쥐여 대가리를 맞쪼아 놓았다. 두 병사는 서로 머리를 맞부딪혀 쓰러졌다. 열이 부쩍 오른 한국 병사들은 셋이 동시에 덮쳐나가면서 적수공권의 임호를 총창으로 찔렀다. 배와 옆구리, 허리를 총창에 찔리운 임호는 비칠거리다가 피로 뻘겋게 묻은 눈 위에 쓰러졌다. 악이 날대로 난 괴뢰군 병사들은 총창으로 임호의 가슴을 벌집처럼 찔러댔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처절한 참경이었다. 무명고지는 언제 총포소리가 우레 울듯 했는가 싶게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무명고지 절벽 위에는 성조기와 태극기가 펄펄 휘날렸다. 미군 탱크 병사들은 무명고지를 발로 쾅쾅 구르다가 절벽 밑 돌무지에서 조철호와 바위돌의 시체 밑에서 여전사 순희를 발견했다. 그녀는 아직도 숨이 붙어있어 간간히 신음소리를 냈다. “오케이(OK)!" 미군 병사들은 희죽거리며 달려들어 순희의 옷섶으로 털이 부스스한 손을 넣어 젖가슴을 어루만지었다. 한 양키 놈은 순희의 바지를 벗기고 짐승처럼 죽어가는 순희를 강간하려고 들었다. 땅! 쓰러졌던 용천이 왼손으로 총을 들어 쏘았다. 한 미군 놈이 팔을 맞고 뒤로 벌렁 엉덩방아를 찧었다. 미군 탱크병사들이 총을 꼬나 들고 뒤로 물러섰다. 그 놈들은 눈깔을 희번뜩거리며  용천을  겨누었다. 땅! 용천은 총을 쏘아 고통스레 신음하는 순희의 숨을 거둬주었다. 그제야 양키 놈들은 상을 찡그리면서 부상당한 놈의 상처를 싸매주고 산비탈 중턱의 탱크 쪽으로 내려갔다. 경호원과 병사들이 용천 연대장을 끌어안아 일으키었다. 용천 연대장은 손목과 어깨에 관통상을 당하였었다. 그는 피못 속에 쓰러진 성칠을 보더니 주먹으로 뜨거운 눈물을 훔치었다. 그는 경호원과 병수를 돌아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잘 묻어줘.” 그는 뒤이어 바지가 벗겨진 여전사 순희를 보더니 외면하며 명했다. “인민군 여전사 바지를 입혀 주고 잘 묻어줘라.” 병사들은  인민군 여전사에게 피 묻은 바지를 춰입혀주고 공병삽으로 구덩이를 대충 파고 여전사를 절벽 밑에 묻어주었다. 병수는 피눈물을 흘리며 경호원과 함께 성칠을 묻을 구덩이를 팠다. 용천은 자기 총에 맞은 성칠의 가슴에서 아직도 시뻘건 피가 쿨쿨 솟구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중얼거리었다.   “히야(형), 용서해. 내 살아 남으려니께, 내 팔간 집과 처자를 지키려니께. 히야(형)도 죽여야 했어. 친일주구 한철주 형제는 내 손에 뒈졌어. 시름 놓고 잘 가. 구천에 가면 우리 진짜 친형제처럼 살제(살지).” 화광 속에서 성칠은 하늘 어디 한 곳을 쏘아보며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개마고원에서 맨 주먹으로 호랑이마저 때려 잡은 천하장사, 장백산 림해설원에서 일본 놈들과 영용히 싸우던 김성칠 대장, 그는 동족상잔 전쟁터에서전우의 손에 처참히 희생되였다. 그것도 총탄이 빗발치는 항일전쟁 때 그를 항일빨찌산에 이끌어준 전우- 용천의 흉탄에 맞아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 이런 동족상쟁, 형제와 전우 상잔의 비극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참말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온 겨레가 통탄할 일이 아닌가! 용천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성칠의 뚝 부릅뜬 눈을 피 묻은 손으로 스르르 쓸어 감겨주었다. 그는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기 차기하듯 경호원을 닦아세웠다. "개자식! 어데다 총질이냐? 이 놈을 심문해 알아볼 거 많고도 많아!" 용천은 성칠을 붙들고 진달래와 자기 아들의 신상을  묻고 또 묻고 싶었다.  왜 자기한테 진달래를 붙여놓고 자리를 몇해 비운 틈에 빼앗아갔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성칠이 죽는 바람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순간 경호원을 죽여치우고 싶었다.       경호원은 용천이 허리춤에 손이 가는 것을 힐끔 곁눈질하였다. 그는 머리를 뚝 떨어뜨리며 너무 당황해 발끝으로 땅바닥을 긁으며 어쩔줄 몰라했다. 뒤이어 용천은 눈물이 글썽한 눈길로 성칠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희야(형아), 아무리 형제라도 글치(그렇지). 색시와 돈은 분명해야 해.” 용천은 그런 말로 전우, 형을 잃은 공허함을 스스로 위로하려고 드는 것 같았다. "용천이, 진달래의 첫사랑은 나야! 내란 말이야. 내가 언제 자네 색시를 빼앗았어? 난 진달래 첫사랑을 돌려준 것 뿐이야!" 웬 일인가? (어데서 울리는 우렁우렁한 소리야?) 용천은 성칠의 시체를 내려다 보았다. 어둠컴컴한 하늘 어느 한 곳을 쏘아보는 쌍까풀눈, 그 쌍까풀눈에는 원망과 원한, 쓸쓸한 기운이 얼기설기 어리어 있었다.  성칠의 가슴에서는 아직도 뻘건 선지피가 쿨쿨 솟구치고 있지 않는가? 용천은 먹구름이 지지누르는 하늘을 둘러보며 아픈 가슴을 꽝꽝 쳐댔다.      이병수 대대장이 권총으로 용천을 겨누었다. “개새끼, 너거(네가) 내 삼촌 죽였어. 씹할!” 용천의 경호원이 덮쳐들어 이병수의 권총을 빼앗아냈다. 이병수의 경호원이 용천의 경호원을 탁 밀쳤다. “누구한테 손을 대?!” 병수는 꿇어앉아 아직도 온기 있는 성칠의 몸을 끌어안고 대성통곡 쳤다. “삼촌, 만나자마자 생이별, 이거 웬 말이우? 어~ 헉헉, 헉헉.” 처량한 울음소리가 산마루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괴뢰군 장병들은 인민군 장교를 끌어안고 대성통곡치는 이 대대장이 제 정신인가 해 눈이 휘 동그래 흘겨보며 쑤군거렸다. “묻어줘.” 용천의 말에 정신이 펄쩍 든 병수는 손으로 피 즐벅한 돌을 마구 파내기 시작했다. 호위병과 용천도 거들었다. 구덩이라고 파놓고 대충 성칠의 피가 랑자한 시체를 눕히고 돌을 들어다 덮어주었다. “삼촌, 잘 가!” 병수는 피눈물로 삼촌을 무명고지 돌무지에 묻어놓고 목 놓아 대성통곡쳤다. 그 통곡소리 무명고지 절벽에 부딪쳐 슬픔으로 부서지며 오래도록 메아리치며 흐느꼈다. 그 처참한 정경을 보는 용천의 마음도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이 때다. 참모장 겸 대대장 김인삼의 지휘아래 산아래 개활지대에서 매복습격전을 벌리던 조선인민군 한 개 대대 용사들이 동족의 피로 뻘겋게 물든 무명고지로 돌격해 올라왔다. 용사들은 산비탈의 괴뢰군의 뒤통수를 호되게 쳤다.  또 피비린 일대 혼전이 벌어졌다. 치열한 공방전은 엎치락뒤치락 하며 새벽까지 벌어졌다. 인민군의 세배나 되는 괴뢰군은 미군의 전투기와 탱크의 엄호를 받으면서 무명고지와 508고지를 재탈환했다. 태양이 포화에 그은 어둠을 서서히 삼키며 동녘이 희붐히 밝아 올 때다. 중국인민지원군이 피로 물든 무명고지와 508고지에 앞사람이 쓰러지면 뒷사람이 이어나가면서 덮쳐들었다. 평안북도에서 중국인민지원군에 혼쌀 난 미군은 질겁해 괴뢰군을 떨궈놓고 꼬리빳빳해 도망쳤다. 한 시간 좌우 치열한 공방전 끝에 고지에는 진 붉은 오성붉은기가 훨훨 휘날렸다. 하루 밤 사이에 무명고지와 508고지는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뀐 셈이었다. 인삼 참모장이 나머지 병력을 점검해보니 성칠 연대장을 비롯하여 최동욱 대대장과 억복 중대장, 임호 중대장, 조철호 소대장, 바위돌 소대장, 장꼬마, 여아나운서 김순희 등 300여명 장병들이 희생됐던 것이다. 용천 연대장은 찌프에 누워 후퇴할 때에야 이병수 대대장에게서 한개 대대 병력을 손실보고 미군이 탱크 세대나 손실 보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용천 연대장은 머리를 돌려 옆에서 자기를 지키는 병수에게 나직이 말했다. “내캉(나와) 성칠 대장은 항일전쟁 때 친형제와 같은 전우였네. 우린 이번에 사내답고도 군인답게 결투를 벌였어. 자넨 날 욕하지 말게. 서로 자기 살작코(살자고)  벌린 결투였네. 바꿔놓고 내 너거 색시 뺏앗아 살면 닌도(너도) 날 죽이자고 달려들었을 거야. 맞지?” 병수는 머리를 숙인 채 한숨을 후 내쉬며 중얼거리었다. “내 살작코(살자고) 전우끼리 원수로 돼 생사결판으로 싸워야 되나요? 형제캉(형제와) 숙질 간도 적이 돼. 도리어 친일주구캉 전우로 되다니요? 이 놈 세상 대체 어떻게 된기우?” “난세에 무슨 수 있어? 헤이,” 용천 연대장은 병수를 쳐다보면서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만난 성칠 히야캉(형과) 할 말도 많았는데. 만나자마자 총질해 죽이다니? 어참," 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쌍까풀눈을 딱 감았다. "성칠 연대장의 시체는 잘 묻었지?” “인민군이 가져간 거 같시우.” “그랬어?” 순간 용천 연대장은 머리를 끄덕이며 들썩이는 찌프에 맥없이 드러눕더니 두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의 눈귀에서는 뜨거운 맑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 귀밑으로 두르르 굴러 들어갔다…                        7. 장백산 원시림에 공중낙하 어느덧 전쟁의 포화에 그은 봄도 가고 무더운 여름도 흘러 지나갔다. 선들선들한 가을 바람이 창문으로 불어 들어와 육군병원 창문발이 흐느적이었다. 어깨에 관통상을 입은 용천은 다행히 부산 육군병원에서 일년 반 남짓이 치료한 덕에 팔과 다리 상처도 완전히 치료됐고 다리와 팔, 어깨에까지도 다소 힘이 오기 시작하는 감각이 왔다. 용천은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포탄에 잿더미로 된 주둔지는 볼품 없었지만 부산 육군병원에서는 전방처럼 귀청을 째는 폭음을 들을 수 없었다. 드문드문 전투기들이 북으로 날아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용천은 아직도 전방은 전투가 아주 치열하겠다고 추측했다. 용천은 상한 왼쪽 팔에 힘을 주어 주먹을 휘둘러보았다. 괜찮았다.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내리웠다 해보아도 괜찮았다. (전쟁터에 나가야 해. 북으로 쳐들어가 마천령을 넘고 두만강을 건너 함흥 촌에 가서 내 처자를 찾아와야 해.) 그의 귀전에는 무명고지에서 울리던 성칠의 목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네가 죽은 줄 알았어. 그래서 내가 진달래와 재혼해 아들 경수까지 보았다. 우리 둘 중 누가 살아남든 간에 진달래와 경수, 경주는 근심할 게 없어.” “용천아, 네 아내를 빼앗은 게 아니야. 네가 죽은 줄로 알고 그렇게 된 게야. 이게 다 운명의 조화야!” 용천은 주먹으로 벽을 꽝꽝 치며 노호했다. “아니야, 아니. 절대 아니야.” 그가 미친 듯이 고함칠 때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허군호 사단장과 경호원이 병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용천 연대장, 새 전투임무 내려왔네.” 용천은 허연 회가루가 묻은 주먹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졌다. “허 사단장, 난 마천령을 넘고 두만강을 건너 곧추 간도에까지 쳐들어가겠어요. 꼭 내 처자를 데려와야 하겠어요.” “좋아.” 허 사단장은 용천의 어깨를 다독여 침대에 앉혀놓고 침대 옆의 걸상에 앉아 용천을 응시했다. “육군을 영솔해 쳐들어가서야 언제 마천령을 넘어 두만강을 건너겠는가? 아직도 항일유격대 사유를 해?” 그 말에 용천은 허군호 사단장의 네모진 얼굴을 마주 보았다. 허군호 사단장은 기대에 찬 눈길로 용천을 마주보며 두툼한 입술을 열었다. “전번 전투에 성칠 연대장을 비롯한 숱한 빨갱이들을 소멸한 공훈을 세웠어. 때문에 자네와 병수 대대장이 한철주 형제를 암살한 죄를 용서해달라고 상부에 보고했네. 계속 입공속죄하게나.” 용천과 병수는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그들의 살기 띤 얼굴에는 얇은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용천은 벌떡 일어나면서 두 손을 펼쳐 보이며 떠들었다. “친일주구 놈은 죽어 마땅해요. 허나 우리 죽인 건 절대 아니랑께.” “됐네. 변명 필요 없네. 별동대를 데리고 간도로 가게나. 자넨 장백산 밀림의 지형이나 사람들을 잘 알지 않나. 그 곳에 가서 두만강 변경의 기상을 관측해 수시로 무전기로 보고하게나. 그럼 미군 공군은 자네가 제공한 기상정황에 근거해 두만강 지역 후방에 날아가 폭격할걸세.” “기상자료를 제공하는 일 같은 건 여자들을 보내도 될 건데요.” “잔말 말고 듣게나. 지금 전선은 대치상태에 들어갔네. 중공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파괴하고 차단해야 우린 조선반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네. 후방공급을 차단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전투임무네.” 용천은 그제야 벌떡 일어나 군례를 붙였다. “꼭 전투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허 사단장은 용천을 앉으라고 손짓했다. “또 있네. 멀쩡히 기상만 관측하지 말고 자넨 간도, 아니, 연변의 지주들로 유격대를 조직해 적들의 후방인심을 교란시키고 후방병원과 후방공급을 파괴하게나. 유격대를 잘 조직해 연변, 나아가서 길림과 장춘, 심양에까지 손을 뻗치란 말일세.” 그 말이 용천의 마음에 쏙 들었다. “좋아요. 사내대장부가 그쯤은 싸워야제이, 걸케(그렇게) 해야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보람이 있죠.” 허 사단장은 가까이 다가와 용천의 어깨를 다독였다. “자넨 일제의 철 발굽 아래에서도 장백산 일대 독립군으로부터 항일유격대를 조직했잖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보네.” 용천은 허리를 펴고 가슴을 내보내며 길게 숨을 들이 그었다. “자신 있어요. 헌데 그 곳까지 가려면 이북을 경과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이북은 빨갱이들 점령구이죠. 자칫 두만강을 넘기도 전에 체포될 수도 있잖아요?” “근심 말게나.” 허 사단장은 제자리에 가서 앉으면서 용천의 쪽에 얼굴을 돌렸다. “미 공군이 자네들 싣고 밤중에 안전하게 장백산 원시림에 날아가 내려놓는다네.” “예- 알았어요.” 용천은 당장 처자를 만날 것 같아 만면춘풍이 됐다. “언제 출발해요?” “오늘 밤일세. 병수 대대장도 함께 가게나."  그 말에 용천은 상을 찡그렸다. (병수는 성칠과 5촌 숙질간이 아닌가. 함흥촌에 가서 혹시 병수가 병완과 상순 앞에서 딴전을 부리면 어떡하노?) 여기까지 생각하자 용천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병수 대대장은 여기서 싸우는게 나아요. 간도를 잘 모르는 병수를 데리고 가면 되려 짐이 돼요." 그러나 허 사단장은 함경도 말투로 무뚝뚝하게 딱 잡아뗐다. "안되오. 데리고 가라면 가야 해. 이건 상부의 명령이야." 용천은 자기네를 간도 죽음의 구렁텅이에 보낸다고 여기면서도 찍 소리 못했다. 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젓다가 문뜩 멈췄다. (혹시 병수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우릴 은페할 수도 있잖을까? 병수를 잘 이용해 병완과 상순 따위들을 스리슬쩍 얼려넘겨야제. 흥!) 여기까지 생각하자 극구 병수를 따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허 사단장은 용천의 속내를 꿰뚫어본 듯이 계속 뒷말을 이었다.  "간도에 가면 자네들 인맥을 잘 이용해야 하네. 진달래라던가, 당신 아내 말이야. 글구 병수네 친척들 말이야. 이게 얼마나 큰 인맥 재산인가." 그는  계속 말했다.  "이전에 간 특무들은 모두 대만 국민당 특무 아니면 동북지구에서 도망친 국민당세력이었지. 건데 그 곳에 뿌리를 내리기는커녕 임무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고 빨갱이들에게 체포됐네. 이번에 자네한테 병수 대대장이하 특수훈련을 받은 꼴꼴한 특공인원 3명을 함께 보내겠네.”      조선전쟁이 터지자 장개석은 중국 대륙을 반격해들어갈 좋은 챤스라고 여기고 국민당군을 조선반도에 파견해 중국인민지원군과 싸우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백악관에서는 장개석의 참전청구를 반대했다. 그러나 암암리에 국민당특무들을 대륙 장백산 지역에 파견해 후방을 파괴하고 교란하게 하였다.  국민당군 특무들은 대거 파조선반도 전선에도 기여들어 중국인민지원군에 대한 회유악선전도 감행하였다. 당시 일본 군국주의자들도 조선반도에 기여들어 참전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엔 남조선 이승만 괴뢰대통령이 반대해나섰다. 그는 조선반도에 일본 제국주의 욱일기가 재차 휘날리는 것을 보기 싫었고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용천은 머리를 끄덕이다가 멈추었다. “장백산 원시림에 들어가면 은폐하긴 좋은데 먹을 양곡이 제일 문제죠.” “우린 자네들이 무전기로 연락하면 며칠에 한 번씩 비행기로 먹을 걸 공중 투하할 예산이네. 오늘 밤 날씨도 좋으니까 당장 출발하게나.” “충성!” 용천은 일어나 두 발뒤꿈치를 척 붙이고 군례를 붙였다. “승리의 희소식을 기다리겠네.” 허군호 사단장은 용천과 병수의 두 손을 굳게 잡았다. 그는 장백산 원시림의 낙엽이 지기 전에 용촌 일행을 보내야 은페하기 좋을 것  같다는 미군 8군단 사령부와 대한민국 백선엽 장군의 의도에 따라 급히 서둘렀다.      상부에서는 조선 함경도 출신 백골부대 장병들보다도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하면서 장백산 일대 지리를 잘 알고 인맥이 있는 용천과 똘만이 등을 파견하기로 했던 것이다. 특히 용천은 만주에서 항일할 때 이른바 "빨갱이"들과 휩쓸렸다는 전과를 감안해 그의 천적이었던 일제 특무출신 똘만이를 파견해 감시하게 하였다. 한편 허사단장은 친일주구 똘만이를 만주에 보내 용천과 병수 손에 죽게 만들려고 들었다. 그도 용천과 똘만이네가 만주에 가면 불귀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친일주구를 눈에 든 가시처럼 생각하는 허군호 사단장도 이번이야 말로 똘만 같은 친일주구를 처단할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던 것이다.      똘만은 친일주구 한철주가 허사단장한테 별동대에 추천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똘만은 일제가 망하자 부랴부랴 만주에서 도망쳐 곧추 명천을 거쳐 서울에 도망쳐왔었다. 그는 서울바닥에서 권총으로 강도질하면서 돌아다니다가  한선주네 파출소 경찰로 돼 사울 바닥을  횡행하던 건달이오, 꺼먼 경찰놈이었다. 특수임무를 맡은 똘만은 이번 기회에 철천지 원수 용천을 없애버리기로 작심했다.  허 사단장의 명을 받은 용천은 환자복을 활활 벗어 침대에 던지고 병수가 주는 군복을 갈아입었다. 그는 자기 신변에 검은 그림자가 따라붙는 것도 모르고 성큼성큼 복도로 나갔다.  용천과 병수가 병원에서 나가자 바깥에는 찌프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둘은 허군호 사단장에게 마지막 군례를 척 올리고 찌프에 앉아았다. 그런데 뒤좌석엔 캡을 딱 눌러쓴 뱁새눈이 앉아 있었다. 용천은 똘만을 몰라보았다. 그러나 병수는 자주 병영에 찾아와 한선주를 만나던 똘만을 알아보고 저으기 놀랐다.  (이자는 어째 왔지?) 병수는 똘만의 과거를 잘 몰랐다. 그러나 한선주네 파출소에서 경찰을 했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었다. 찌프는 먼지를 뽀얗게 일구며 쏜살같이 비행장으로 달려갔다. 허군호 사단장은 이제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그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군인은 총살당하기보다 전쟁터에서 용감히 죽는 것이 낫지.) 용천 일행은 부산비행장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갔다. 한 시간도 되나마나 해 내린 곳은 중국 연변 장백산이 아니라 일본 오끼나와 미 공군기지였다. 그들 둘이 비행기에서 내리자 선글라스를 낀 코 큰이 미군 장교 서넛이 마중 나왔다. 미군 장교는 그들에게 군례를 척 붙이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서툰 한국말로 인사하며 악수했다. “환영해요. 미스터 킴, 미스터 이. 나는 클라크대좌.” 용천과 병수도 군례를 올리고 그들의 손을 굳게 잡았다. 클라크를 비롯한 미군 장교들은 그들 둘을 다시 밀봉군용자동차에 태운 후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갔다. 한참 달린 후 자동차에서 내려 보니 사면이 바다인 무인도이었다. 섬에는 철조망 속에 자그마한 판자 집 몇 채 있고 경계가 삼엄했다. 순간 용천과 병수는 서로 공포에 질린 눈길을 주고받았다. (혹시…?) 우두커니 서서 사위를 둘러보는 그들 둘을 보더니 미군 장교 클라크 대좌는 판자 집에서 나오는 동양인들을 가리키면서 한국말로 지껄였다. “대만에서 온 당신들의 교관들이오. 이제부터 당신들은 이 무인도에서 특무훈련을 받아야 하네.” “교관?” 그제야 용천과 병수는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며 서로 미소가 담긴 눈길을 마주쳤다. 그날로부터 한 달 동안 용천과 병수는 대만에서 온 중국 동북적 특무들과 함께 기상과 지형지리 관측, 비행과 낙하 상식, 격투, 무전기 사용 등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격투연습을 할 때다. 교관은 용천과 똘만을 불러냈다. 맞대결을 시켰다. 용천은 처음에는 작달막하고 똥똥한 똘만을 업신여겼다. 용천은 주먹을 쳐들고 팔자를 그리며 날아들어가며 똘만의 머리를 노리고 주먹을 연신 날렸다. 똘만은 이리저리 머리 숙여 옆으로 피했다. 그는 틈새를 노리다가 발길을 날려 용천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억!" 용천이 허리를 굽히는 순간 똘만이 무릎으로 재차 턱을 걷어올렸다. 꺽다리 용천은 맥없이 뒤로 쓰러졌다. 입귀에서 피 터져 흘렀다.똘만은 덮쳐들어가며 용천의 머리를 걷어찼다. 용천은 홱 몸을 움츠리더니 발길로 달려드는 똘만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똘만은 허공 넘어갔다. 용천이 훌쩍 뛰여일어나며 발길로 똘만의 배를 걷어찼다.    "스톱(그만)!"   교관은 용천과 똘만에게 엄지를 내 휘둘렀다.    사격연습을 할 때다. 똘만은 용천한테 뒤지고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하긴 똘만은 일제 수하에서 특무질하면서 격투는 많이 배웠기에 용천을 당할 수 있었지만 사격은 근본 용천의 적수가 아니었다.      그들은 교관에게서 먼저 파견한 숱한 특무소조가 실패해 체포된 경험과 교훈도 상세히 들었다. 아마 하루속히 장백산 원시림에 잠복해야 된다고 판단된 것 같았다. 미군 특무조직에서는 단기 훈련을 끝내고 용천과 병수에게 대만 특무 셋을 주어 급급히 비행기로 중국 장백산 지구에 잠입시키기로 결정했다. 미군 특무기지 장교 클라크 대좌는 용천을 단독으로 만났다. “미스터 킴, 우린 당신을 믿네. 당신은 일찍 2차 대전 때 장백산 원시림을 중심으로 동북 만주벌에서 유격대 대장으로 일본 놈들과 유격전을 벌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곳 지형과 사람들을 잘 아는데다가 능숙한 한어회화능력 참 좋아요.” “아니, 과찬에 황송하구먼. 전 북만에서 위주로 싸웠는데요.” 용천의 말에 클라크 대좌는 어깨를 으쓱하며 두 팔을 펴보이었다. “NO, NO! 당신 장백산 일대 파견 O-K! 당신들은 제때에 연변과 두만강 지역의 기상과 적정을 우리들에게 제공하시오. 우리 미 공군은 이제 당신들이 제공한 기상 정황과 적정에 근거해 두만강 연안 중공군의 후방을 여지없이 폭격해 군사물자공급을 차단할 것입니다.” 용천은 허군호 사단장에게서 다 듣던 말인지라 지루한 감을 느꼈다. 그 눈치를 차리고 클라크 대좌는 될 수 있는 한 짧게 말하려고 애썼다. “김 조장은 유격대 대장이고 유격전 전문가라고 들었네. 연변에 가면 그 곳 지주들로 유격대를 조직하고 중공 간부들을 암살하십시오. 당신이 유격대를 연변뿐만 아니라 전 동북에 확장해 중공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파괴한다면 우리 미군과 이승만 대통령은 당신의 공훈을 잊지 않을 거네.” “충성!” 용천은 발뒤꿈치를 딱 붙이며 군례를 척 붙이었다. 클라크대좌 일행은 용천 일행과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용천은 무전기와 건량과, 통졸임, 권총을 차고 그들과 작별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먹칠한 듯한 어둠 속에서 고공비행하면서도 용천은 다른 궁리를 굴리고 있었다. (유격전이고 낫자루고 난 몰라. 비행기가 왔다 갔다 할 수만 있다면 진달래와 경주를 싣고 돌아와야지. 될 수 있다면 삼촌도 싣고 와야지. 칠백을 잃은 거 알면 삼촌이 얼마나 슬프고 마음 아파하겠는가?) 비행기를 타고 어둠이 끝없이 두껍게 뒤덮인 하늘로 날아올라 북상하면서도 용천은 계속 속궁리를 굴렸다. (경수는 어쩌지? 그 놈의 할배한테 떼놓아야지. 성칠을 내가 쏘아 죽였다는 거 알면 병완 영감이 날 용서할까?) 용천은 기실 장백산 유격대 조직이나 기상관측이나 적정수집이나 모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는 미군이나 허군호 사단장이나 모두 자기를 총살하지 못해 이용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육군 연대장을 특무소조 조장으로 내리쓰는 짓을 봐도 그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였던 것이다. 어둠 속을 고공비행하여 그들은 어느덧 장백산 원시림 상공에까지 날아왔다. 저 멀리 밭 전자로 우등 불이 피어오르는 것이 내려다 보이었다. 미군 비행사는 중공군에 격추될까봐 겁나 비행고도를 낮추지도 못하고 용천이네를 보고 낙하하라고 명령했다. 비행고도가 높을수록 낙하특무들은 중공군에 발각될 위험이 컸던 것이다. 용천은 조수자리에 앉아 자기네를 돌아보는 미군 장교를 보고 고도를 낮추라고 손시늉 했다. 허나 미군은 뛰어내리라고 손시늉 했다. 용천은 권총을 뽑아 미군 비행사를 겨누었다. “비행고도를 낮춰!” 그제야 비행기는 천천히 고도를 낮춰 우등 불 근처로 날아가 선회했다. 땅땅땅! 꽝! 꽝! 꽝! 원시림에서 숱한 불줄기가 날아왔다. 비행기 날래 좌우에서 포탄이 작렬했다. 고사기관총알이 날개에 와 맞으면서 무서운 죽음의 노래를 불렀다.      당시 길림성 공안총대에서는 벌써 장백산 원시림에 기관포부대를 매복시켜 특무들을 대기하고 있던 중이었다.      자지러진 기관포 소리에 특무들은 깜짝 놀라 기내에서 두 손으로 대갈통을 싸쥐고 목을 움츠려뜨렸다. 용천은 병수 등 특무들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낙하!” 세 대만특무들이 먼저 뛰어내렸다. 용천과 병수는 군수물자를 투하한 후 마지막에 뛰어내렸다. 미군 비행기는 질겁해 동북 쪽으로 고공비행해 꽁무니를 빼다가 일본해에로 날아갔다. 용천 등이 낙하하자 지상에 있던 한국 백골부대 특무가 황급히 용천 네를 마중했다. 백골부대는 대부분 함경도 혹은 동북에서 남조선으로 도망친 지주나 불량배들로 정치보복을 하려고 조직된 부대로서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대단히 악질들이었다. “보고!” “멍청한 놈! 왜가리 목을 달았어? 목소리를 낮춰! 주위에 중공군이 있으면 어떡해?” “옛.” “당장 우등 불부터 꺼버려!” “예.” 특무들은 밭전자로 피운 우등 불부터 꺼버렸다. 용천은 낙하산을 잘 개여 큰 멜 가방에 넣어 둘러멨다. 용천이 허리를 굽히고 떠나려고 할 때다. 뱁새눈이 등뒤에서 허리춤의 권총을 빼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뭘 해?" "네? 에, 헤헤헤." 똘만은 뱁새눈에 간사한 눈빛이 어리었다.  그는 권총을 허리춤에 되찼다. (개자식, 아무때건 내 총에 죽을줄 알아라. 흥!) 땅딸보 똘만은 원래 서울 한 거리의 경찰서에서 서장을 하는 한선주와 극진한 사이었다.  친일주구 한철주 형제와 그는 거의 주일마다 만나 기생집을 나들면서 술판을 벌리고 사향의 정을 나누군 하였다. 항일시기 철천지 원수, 항일유격대 대장 용천이 서울에 있다는 것을 안 후 친일주구 한철주 형제와 똘만은 처음에는 용천을 서울에서 제거하려고 꿍꿍이를 꾸몄다. 그러나 친일주구 한철주와 한선주 형제가 암살당하자 똘만은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기도 언젠가는 친일주구라고 처단당할 것을 직감하였다.  그는 한선주와 한철주 형제의 사전 거천에 의해 천재일우의 기회를 붙잡고 장백산 지역에 파견될 특무조직에 기어들었다. 그는 한선주 형제의 부탁대로 만주에 기여드는 특무조직에 가입해 만주에 들어오는 기회에 용천을 암살하기로 작심하였던 것이다.      그는 금방 용천이 락하산을 거두는 기회에 손을 쓰려고 하였다. 그러나 용천이 경계심을 늦추지 않자 발톱을 감추었던 것이다. “빨리 이 곳에서 떠나야 해.” “옛.” 대답소리는 높았지만 특무들은 모두 동상이몽이었다. 용천은 만주에 들어와 진달래와 아들을 데려가려는 일념 밖에 없었다. 다급해진 그의 속은 뿌지직뿌지직 애타기만 했다. 그는 똘만의 신분을 몰랐기에 자기 신변에 위협이 어둠 속의 이새끼츠럼 스물스물 기어와 붙어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병수는 왕고모 할머니 일가(성칠 일가)를 만나뵙고 싶었고 성칠 삼촌을 살해한 원수 용천을 이번 기회에 제거하려고 작심했다. 그러나 친일주구와 딱 붙어다니던 뱁새눈한테 용천이 잘 못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병수도 똘만이 일찍 만주를 휩쓸고 다니던 친일주구, 특무 출신이라는 것까지는 몰랐다. 하긴 똘만과 이름이 뭔가고 물을 때마다 "똘만"이라고 제대로 안대고 "허극호"라고 주어대고 고향이 어덴가 하니 황해도라고 얼렁뚱땅 속여넘긴데야. 그러나 병수는 어쩐지 요놈 땅딸보의 음침한 뱁새눈에 음흉한 눈빛이 어리어 있는 것을 보아냈다. 그리하여 줄곧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한편 용천은 어둠침침한 수림을 누벼보며 자기 좋은 생각을 했다.  (진달래, 내 왔어. 이제 너거(너)와 아들놈을 만날 때 왔어. 흐흐, 너거 모자를 얼마나 찾았는데. 이번에 꼭 데려갈 거야.)  용천은 특무들을 끌고 재빨리 낙하지점에서 어둠 속에 쏴쏴 몸부림치는 원시림 속으로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낙엽이 우수수 지면서 장백산 원시림은 무시무시한 공포에 떨고 있었다. 주먹으로 낯을 쥐여쳐도 보지 못할 어둠은 허둥지둥 잠복하는 용천 등 남조선과 대만 특무들을 삼켜버렸다. 
112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75) 댓글:  조회:1681  추천:2  2017-08-01
                                   4. 서울에서 친일주구를 처단   맑고 파란 가을 하늘을 본지도 오래다. 어느덧 낙엽이 우수수 지는 늦가을은 흘러 지나가고 전쟁의 포화에 그은 먹장구름이 몰려오더니 벌거숭이 산발에 눈을 펑펑 내리 쏟아 부었다. 남으로 진격해 나가던 성칠의 연대는 508고지와 무명고지를 사수하다가 이북의 어디로인가 가뭇없이 철퇴하여갔다. 허군호 사단장과 한철주 부사단장이 영솔하는 괴뢰군은 페허로 된 서울 교외에 철퇴해 휴식정돈하면서 북진을 준비하게 됐다.       용천은 지난번 전투에서 5년만에 만난 칠백을 잃은 것으로 해 마음이 아파 지휘소 침실에서 연 며칠 고민에 빠졌다.       (전쟁이 뭐관대? 오래만에 만난 사촌형제 서로 총창을 비껴들고 찔러 죽여야 했는가? 이제 무슨 낯짝으로 작은아버질 보지? 뭐라고 말해야지? )      그는 눈보라 휘몰아치는 북녘 산발을 멍해 바라보며 숱한 물음표를 떠올렸다.      (칠백과 난 형제이자 전우 아닌가. 명천 산꼴에서부터 만주에서 한 전호에서 어깨 겯고 일본 놈들과 싸우던 생사전우가 아닌가? 그런데 우린 왜 미군의 손아귀에 쥐워 놀아나 형제간에 서로 참살해야 했는가.)    용천은 여기까지 생각하자 당장 군복을 벗어버리고 만주로 도망치고 싶었다. 만주에 가서 처자와 작은아버지를 남에 있는 고향 경주에 모시어오고 싶었다. 고향에서 농사짓고 감이나 따먹으면서 편안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군영을 도망치는 시각부터 도주병으로 간주돼 총살당할 수도 있었다. 진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신세였다. 아니, 전쟁은 자기 운명을 자기절로 장악해 운전해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용천은 아직도 전번 전투 때 사촌동생 칠백과 날창을 비껴들고 맞부닥쳤던 참극이 눈앞에 선했다.          조선인민군 꺽다리군관 칠백이 용천 연대장 앞에서 뒤로 물러서는 1대대 대대장을 푹 찔러 눕히고 발로 시체를 차며 총창을 빼냈다. 순간,  용천 연대장이 총창으로 꺽다리 옆구리를 푹 찔렀다. 허나 그 꺽다리 군관은 재빨리 옆구리를 탈아 용천의 총창을 피하며 총창으로 용천을 찔렀다. 용천이 총창으로 찔러 들어오는 총창을 탁 쳤다. 쟁강! 총창과 총창이 마주쳐 불찌가 튕기며 무서운 저승사자 쇠소리를 냈다. "개새끼, 죽어 봐!' 꺽다리가 용천을 찔렀다. 용천이 비껴쳤다. 허나 날창은 허벅다리를 빗찔러나갔다. 용천도 꺽다리를 푹 찔렀다. 꺽다리 날창으로 올리 쳤다. 허나 창끝이 꺽다리 가슴을 빗 찔렀다. “아차!” “이거 누구야?!” 갑자기 서로 이를 악문 상대방 낯을 쳐다보는 순간 총창 질을 멈췄다. “칠백아!” “용천 히야(형님)!” 그 틈에 용천의 경호원이 권총을 휘둘러 칠백을 쏘았다.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칠백은 가슴에 흉탄을 맞고 총창을 진창에 툭 떨어뜨렸다. “닥쳐!” 땅! 땅! 뒤따라온 한철주도 총을 쏘았다. 칠백은 가슴을 붙안고 빙그르 몸을 비틀더니 밑 둥이 잘린 썩박나무 넘어가듯 풀썩 쓰러졌다. 한철주가 다시 권총으로 쓰러진 칠백을 겨눌 때다. “관둬!” 용천은 총창으로 한철주와 경호원의 권총을 탁탁 쳤다. 그는 다급히 물앉으며 칠백을 끌어안았다. “아우야! 이게 어쩐 일이여?” 한철주와 경호원은 눈이 휘 동그래져 권총을 쥐고 비실비실 뒷걸음질 치다가 총창을 꼬나들고 덮쳐드는 다른 인민군 전사를 쏘았다. 칠백의 가슴에서 선지피가 쿨쿨 솟구쳐 뻘건 빗물과 함께 땅바닥을 뻘겋게 물들이며 흘렀다...        용천은  피뜩 칠백이 피 흐르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마지막으로 하던 말이 떠올랐다.                 “형, 형님, 쿨룩, 진, 진달래캉 경, 경주는 함흥 촌에 갔소.” “칠백아!” 칠백은 감겨지는 실눈을 겨우 뜨고 손으로 자기 뒤를 가리키었다. “성, 성칠캉 재혼했어. 저, 저 뒤에 성칠이…” “아우야! 칠백아!” 용천은 칠백을 끌어안고 흔들며 대성통곡 쳤다. 허나 칠백은 빗물이 흐르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눈을 스르르 감았다. 다시는 형님의 피타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아, 아니야. 아우야!” 용천은 칠백을 끌어안고 풍덩 물앉아 얼굴에 얼굴을 미친 듯이 비벼댔다...        여기까지 생각한 용천은 칠백이 마지막 말이 뇌리에서 아프게 메아리쳤다.       " “형, 형님, 쿨룩, 진, 진달래캉 경, 경주는 함흥 촌에 갔소.”        “성, 성칠캉 재혼했어. 저, 저 뒤에 성칠이…”             "뭣이?"     용천은 주먹으로 사무상을 꽝 쳤다. 물주전자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순간 뜨거운 물이 사무상에서 주르륵 흘렀다. 전화기마저 놀라 김이 물물 나는 뜨거운 물에서 뒹굴었다. "재혼했어? 성칠캉(성칠과)?" 용천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성칠아, 닌도 히야까(너도 형인가)?! 아우 색시마저 빼앗아?!" 용천은 진달래와 성칠의 애틋한 사랑을 모르고 복수심으로 피 끓어번졌다. "꼭 함흥촌까지 쳐들어가 진달래를 찾아와야지." 용천이 어찌 진달래의 첫사랑이 성칠이란 걸 알았겠는가! 그저 한마을 남녀라고만 이해하고 있었을뿐이다.         어느 날, 군사훈련이 끝난 후 용천은 예전처럼 지휘소에 들어와 맥없이 털썩 주저앉아 상념에 잠겼다. 그때 이병수 대대장이 지휘소에 찾아왔다. 병수는 우울해 있는 용천을 보고 “산에 나가 산보나 하지 않을래요?” 라고 했다. “그래?” 경호원이 따라 나서려고 하자 병수는 “우리 잠간 나갔다 오겠어. 푹 쉬게나.”라고 했다. 경호원은 용천 연대장을 쳐다보았다. “글케 하라고.” 용천 연대장은 사촌동생 칠백을 잃은 후 경호원을 보기도 싫었다. 경호원이 바로 칠백을 쏴죽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경호원은 상관을 보호하려고 날창으로 찌르는 칠백을 쏘았지만 연대장을 볼 면목이 없게 됐다.  바깥세상에는 하얀 눈이 뒤덮이고 여기 저기 벌집처럼 폭탄 구덩이가 파인 허연 산발에 눈보라가 휘몰아치며 기승을 부렸다. 귀신의 무서운 저주소리가 울리듯이 윙-윙- 무섭게 울부짖기까지 했다. 사위를 둘러보아도 낯익은 병사들이 보이지 않고 낯모를 군인들이 이동하는 대열이 보일뿐이었다. 병수는 용천한테 얼굴을 돌렸다. “김 연대장, 누구도 없으니께 하는 말이지만요. 전번 전장에 이북의 삼촌이 왔더래요.” 용천의 철색얼굴에는 삽시에 놀라움이 감돌았다. “뭐라고? 삼촌?” “얘. 전번에 알고 보니 성칠 연대장은 저 고종 오촌숙인 기여.” 병수는 포로됐을 때 정형을 죽 이야기했다. “그래? 성칠도 왔어? 음-” 용천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뒤짐을 짓고 왔다갔다 하면서 구레나룻을 슬슬 어루만지었다. “얘. 성칠은 김 연대장을 잘 안다는 기여.” 병수의 말에 용천은 사색을 주춤 멈추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알다 뿐이겠나? 우린 어깨 겯고 일본 놈들과 싸웠더랬지. 장백산 밀림에서 한철주 부사단장과도  싸웠던기여. 잠간!” 용천은 의아한 눈길로 병수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너거(넌) 어더래 걸케 잘 아노?” “난도(나도) 귀동냥을 했는지라. 저 한철주 부사단장은 친일주구라던데요.” “닌도 알어?” 용천은 병수를 의심하기보다 성칠의 등장에 더 신경이 갔다. “우린 성칠 대장의 유인술과 매복습격전으로 저 한씨 친일주구 놈의 한 개 연대나 되는 일본 놈들을 일망타진했던게라.” 이병수는 “그랬군요.” 하고 감탄하며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세월이 어떻게 돼 이렇게 됐는지 몰라. 나라를 찾으려고 어깨 겯고 섬 오랑캐놈들과 싸우던 전우와 형제들이 총칼을 서로 맞대고 싸우고 죽여야 하니 말이여. 한선주 그 놈이 내 사촌동생을 쏴 죽였어. 이놈 동족상잔전쟁이 언제 끝날까?” “글케 말인기여(그러기에 말이요). 다 미국과 소련 짓인기여. 일본 놈들을 몰아내 줬으면 됐지. 남의 나라 허리를 분질러 이북은 소련이 영지처럼 가져가고 이남은 미군이 지배하니 어디 말인기여?” 이병수가 치를 떨자 용천도 속심을 털어놓았다. “모두 자기 고향을 보호 할락꼬 그래. 전우와 형제도 죽여야 하는지라. 허참, 가슴 아프게 됐어.” 병수가 중얼거렸다. “성칠 삼촌 말 들어보니께.  공산군은 사람마다 평등하고 똑같이 벌어 똑같이 나눠 먹으면서 똑같이 잘 산다는기여. 압박과 착취가 없고 이젠 지주도 없다고 해.” “에끼, 이 놈, 공산군에 포로되더니 빨갱이 물에 폭 물들었어?” “그렇찮은기여? 우리 가난한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이구면도.” “너거(넌) 당장 총 놓고 네 동생 꼬리 잡고 빨지산에 가지 그래?” 눈보라가 어찌나 기승스레 부는지 그들 둘은 숨이 헉헉 막혀 더는 산기슭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용천은 한참 후에야 무거운 입을 열었다. “3.8선이 무너진 기회에 이북으로 쳐들어가 처자를 찾으려고 했어. 건데 씨팔(씹할), 한 전호 속에서 어깨 겯고 일제와 싸우던 전우들캉(전우들과) 싸울 줄은 몰랐어. 그들은 한국군이 전에 쓰지 않던 전술에 혼났을 거야. 먼 곳에서 걔들이 오느라고 지쳤지. 508고지와 무명고지에 발을 붙이기도 전에 들이 쳤지 뭐야. 또 그들이 퇴각해 산골짜기 마을에서 피곤해 자려고 할 때 숨 돌릴 새도 없이 신새벽에 기습해 일망타진했는기여. 헌데 결국 내 사촌동생 칠백을 죽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동생이 숨지기 전에 내 처자가 간도 함흥 촌에 있다는 기여.” “그 멀리로 어떻게 가요? 성칠 삼촌도 함흥촌을 잘 아는기여?” “알다 뿐이겠나? 너거 고모할머니 할배 다 거게 있어. 아차, 잊을 번했어. 칠백이 숨지기 전에 ‘성칠형님이’ 하고 겨우 말하면서 피 묻은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 뒤를 가리키더라. 아마 전번에 싸울 때 성칠 형님도 왔다는 네 말 맞아. 단정할 수 있어. 그때 우리 무명고지를 진공할 때 우리 배후를 우회해 들이 친 거 있잖노? 딱 성칠 형님이 이전에 일제를 유인해 매복습격을 하던 그 전술이었으니까. 그 부대는 성칠이 이끌던 장백산 유격대로 된 부대인 거 같아. 저 놈들은 유격전술과 매복전술에 능한데. 허나 난 기어이 508고지와 무명고지를 넘어 마천루를 타고 명천을 넘어갈 거야. 이제 간도까지 쳐들어가 처자를 찾아야겠어. 경주도 이젠 일여덟살 됐겠는데. 참, 애비가 이건 뭐야?” 허나 이병수는 발로 길가의 눈을 툭 차면서 맥 빠진 소리를 했다. “부대를 끌고야 언제 성칠 연대장이 이끄는 부대를 넘어 간도까지 쳐들어가요?” 용천은 무서운 눈길로 병수를 돌아보았다. “우리 한국군이 쳐들어가지 못하면 내 혼자라도 간도에 가서 진달래와 아들을 꼭 찾아오겠어.” 병수는 머리를 끄덕이다가 화제를 바꾸었다. “한철주 형제는 다 친일주구라는데요. 개 턱처럼 쳐들고 뻔뻔스레 장교를 해먹네요.” “우리 한국에는 전쟁경험이 있는 군인이 없잖아? 그래 그런 친일주구 장교나 경찰서장도 우리 한국군 장교로 된 거야. 난 일제와 싸우는 것도 아니고 미군과 한바지를 입고 춤추면서 이북 겨레들과 싸우기 싫어. 허군호 사단장이 그때 연대장을 할 때 교관을 해달라는 것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왔던 기여. 그런데 인민군 장갑차가 우리 경주까지 쳐들어와 횡행하는 걸 보았을 때 부득불 총을 들게 됐어. 3.8선이 무너진 틈을 타서 명천에 북진해 이북에 두고 온 처자를 찾으려고 한 기여. 허나 싸우다나니 처자를 찾을 새 어디 있어.” 용천은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 놈 친일주구 형제를 볼 때마다 뒤에서 쏴 죽이고 싶어. 전번 전투에 내 사촌동생까지 죽였어. 저 놈들 음흉한 눈길을 보았지. 친일주구 형제들이 우리 독립군 출신 허군호 사단장이나 항일유격대 출신 장교인 나를 죽이려고 벼를지도 몰라.” 그때라고 병수는 주위를 살피더니 용천대장 옆에 바짝 다가서며 나직이 말했다. “연대장, 그 놈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칼을 뽑기 전에 선손을 쓰면 어때요?” “선손?” 용천 연대장이 머리를 끄덕이는 병수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상관을 죽인 죄로 총살당할 거야. 전번에도 네가 한철주를 쏘았지?” 병수는 속이지 않고 머리를 끄덕였다. “예,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우면 누가 알아요?” 용천 연대장은 자기 귀에 손을 대고 나직이 하는 병수의 귀속 말을 들으면서 윙윙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산발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눈보라는 산발을 타고 산정에까지 달려 올라가서는 저 멀리 어디론가 허둥지둥 도망치고 있었다. “그래, 그 놈들이 간도에 갔던 옥설이 차린 술집을 드나든단 말이지?” “예.” “알았어.” 용천은 권연을 꺼내 권연지갑에 툭툭 쳐 붙여 물었다. 그의 입에서는 쌔 뽀얀 연기가 뿜겨 나와 눈보라에 흩날려 갔다. 어느 날, 해질 무렵에 한철주 부사단장은 동생 한선주 연대장과 함께 군용 찌프에 앉아 오랜만에 용산 부근의 자그마한 술집으로 발길을 돌리었다. 전쟁으로 형편없이 됐어도 조선 인민군이 서울에서 철퇴하자 피난민들이 하나, 둘 되돌아왔다. 전쟁의 포화에 잿더미로 된 서울에서 술집들도 문을 다시 열기 시작했다. 가열처철한 전쟁판에 그래도 술집이 제일 잘 됐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던 군인들이 술집에 젤 자주 찾아왔다. 그것도 내노라는 한철주 형제 같은 장교들이 단골이었다. 술집이 마주 서있는데 주인들은 서로 자기 집에 들어오라고 허리를 구십 도로 굽히면서 아양을 떨었다. “아니, 장교님들, 어서 들어와요. 우리 집에 새로 온 야드르르 한 예쁜 아가씨들도 많아요.” 그러자 맞은쪽에서는 아예 하얀 살이 드러난 옷을 걸치고 짤막한 치마를 입은 아가씨들을 내 보내 팔을 마구 끼고 들어갔다. “장교님들, 잘 모셔드리겠어요.” “우리 빨 심이 죽여 줘요.” “그래, 딱 조이면 죽여 주겠구나. 핫하하하. 오늘 어디 한번 죽어보자.” 한철주는 이쪽 집에 아가씨들에게 끌리다 싶게 들어가면서도 맞은 켠 문어귀에 서 있는 야드르르 한 아가씨들에게서 아쉬운 눈을 떼지 못했다. (다음엔 저 집에 가서 저 아가씨들을 몽땅 재껴버려야지.) 아들 영호가 이젠 장가까지 들었건만 한철주의 색마 본성은 퇴색하지 않았다. 한철주와 한선주는 애비에게서 물려받은 주색재간을 피우러 술집에 부랴부랴 들어갔다. 길 하나를 더 가면 한선주의 처 남복금이 차린 기생집이 있었다. 그들에게 들통 나는 날이면 집안 불화가 생길 것은 빤한 일이었다. 광복 전에 선주는 자기 관할 구역에 복금에게 술집을 차려주어 돈을 무더기로 벌었었다. 허나 전쟁의 포화에 주색영업이 잘 되지 않았다. 한철주는 간도에서 장백산 밀림에서 성칠과 용천을 매복습격하려고 갔다가 도리어 호되게 포위습격을 받았던 것이다. 광복이 되자 그는 도망하는 일본 놈들을 따라 조선에 도망친 후 명천의 고향 영월동에 피뜩 들렸다. 그러나 일본 놈들이 달아나면서 불을 질러 놓아 잿더미로 된 토성 안 집을 보고 그는 그 이튿날로 남으로 서울을 바라고 도망쳤던 것이다. 다행히 동생 한선주가 서울에서 파출소 경찰을 하면서 자기 관할구역 뒷골목에 기생집을 차린 덕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숨을 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후에 한선주가 허군호 연대장에게 줄을 놓아 한철주를 항일유격대에서 부연대장을 했다고 거짓말로 속이고 한국군에 혼입시켰던 것이다. 헌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뜻밖에도 용천이 우연하게 선주를 만났던 것이다. 그때 한선주는 급히 형에게 알렸다. 한철주는 등곬이 싸늘해져 동생을 시켜 용천을 암살해버리자고 했다. 허나 용천이 스스로 친일주구들과 한 부대에 있으면서 한가마 밥을 먹기 싫어 부대의 교관을 하라는 당시 허군호 연대장의 요청을 거절하고 고향 경주로 돌아갔던 것이다. 황차 용천은 한철주가 그 부대에 있는줄도 모르고 한선주만 보았다. 그런 연고로 한선주는 두루뭉실하게 용천이 사람을 잘못 본 것으로 얼리어 넘겼다. 허나 용천이 뜻밖에도 5년 만에 경주에서 되돌아왔다. 그는 곧추 갓 사단장으로 승급한 허군호를 찾아갔다. 한선주는 허군호 사단장을 보고 기어이 용천이가 나이 많다는 구실로 따돌리려고 들었다. 허군호 사단장은 실전경험과 지휘능력이 있는데다가 무예가 출중한 용천을 기어이 군부대에 받아들여 연대장 겸 교관을 시켰던 것이다. 용천은 독립군 출신인 허군호 사단장한테 한철주와 한선주는 친일주구였다고 계속 검거했다. 특히 간도에서 장백산 항일유격대를 포위 토벌하고 흥기촌에서 감행한 대학살 등 만행을 일일이 검거했다. 허군호 사단장도 용호쟁투를 말릴 수 없었다. “한 집에 용과 호랑이를 둘 순 없는데.” 허군호 사단장은 조용히 혼자 남으면 항상 권연을 꺼내 피우면서 고민에 빠지곤 했다. 허나 6.25전쟁이 발생한 후 허군호 사단장은 한철주 형제와 용천을 각각 불러 내리 눌렀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는데 개인의 원수를 잊으라. 우리 적은 조선인민군이야. 우린 일심단결해 인민군을 막아야 해.” 허군호 사단장은 용천을 불러 타일렀다. “자네나 내나 다 독립군 출신이네. 항일전쟁 때는 확실히 저 한철주 형제가 우리 적이었네. 허나 일본 놈을 몰아내고 나라를 찾은 후에는 빨갱이들이 주적이네.” 용천은 대뜸 얼굴을 붉히었다. “그 말에 도리 있긴 있시우. 빨갱이들은 간도에서 토지개혁을 할 때 우리 같은 부자, 지주를 몽땅 총살하고 집과 땅을 가난뱅이들에게 나눠 줬어요.  허나 친일주구도 적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 그 놈들은 독립군 출신인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요.”        허군호 사단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이 사람들 진짜 한 굴에 두기 어려워!)      허나 전시라 별수 없어 한선주와 용천 두 연대장을 따로 한 개 연대씩 맡겼던 것이다. 한철주나 한선주나 다 일맥상통한 친일주구이었다. 그들은 항일유격대 출신인 용천 연대장을 계속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모해하려고 꿍꿍이를 꾸몄다. 이날도 그들 형제는 용천을 암해할 꿍꿍이를 꾸미려고 술집에 기신기신 기어들었던 것이다. 그들 형제가 아가씨들의 옹위를 받으면서 근사한 방으로 들어섰다. 축음기에서 은은한 노래 소리가 귀맛을 돋우었다. 전쟁으로 뻣뻣하던 신경이 느슨하게 풀리는 순간이었다. 한철주와 한선주는 아가씨들을 끼고 한창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한철주가 아가씨들을 둘러보면서 우멍한 눈을 찔끔 했다. “얘들아, 우리 형제 조용히 할 말이 있으니까. 너희들은 좀 나갔다가 부르면 오너라.” “얘-” “얘가 뭐야? 어른들을 얘라니?” 한철주의 말에 아가씨들은 입귀를 비쭉 하더니 입을 싸쥐고 웃으며 나갔다. 뒤에 나가는 살맛나는 아가씨는 허벅다리와 엉덩이를 배틀거리면서 코를 싸쥐고 나갔다. “함경도 도둑놈들이 왔어.” “그래. 촌스러운 놈들, 우리 서울 아가씨들의 부드러운 말이 통 귓구멍에 들어가지 않는가베.” “호호호.” 아가씨들은 웃고 떠들었다. 한철주는 술잔을 내려놓고 안경을 벗어 닦아 끼더니 정색해 말을 꺼냈다. “김용천 놈을 우리가 선손을 써서 제거하지 않으면 안돼. 저 놈이 우리 형제를 허군호 사단장한테 고발하는 걸 여러번 엿들었어.” 한선주는 이를 악물었다. “까짓거 내 수하의 건달들을 시켜 때려죽이면 단걸.” “안돼. 일단 발각되면 우린 군법에 목이 댕강 날아나.” 한선주는 김이 빠진 공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었다. “그럼 무슨 수로 해치우겠소?” 한철주는 미닫이문을 꼭 닫고 안경을 건 우멍한 눈에 음흉한 빛을 띠며 나직이 귓속말을 했다. “군부에 말해 용천을 간도로 보낼까 한다.” “양?” 한선주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지금 중공군이 한반도에 쳐나왔어. 군부에서 장백산 일대에 우리 유격대를 파견해 중공군 적정을 정찰하고 후방을 교란하고 파괴할 예산인 거 같애. 군부에서는 꼭 장백산 일대 정황을 잘 아는 용천이나 나를 보내자고 할 게야. 내야 부사단장이니깐 당연히 수하인 용천을 보낼게 아니야?” “오. 참 묘하구만.” 선주는 형의 묘책에 연신 혀를 내둘렀다. “중공군의 칼을 빌어 용천을 없애 버린다. 거 참 묘수요, 묘수!” “무인지경 장백산 일대는 천연지형이 복잡하다. 이전에 일본 통치 때에도 장백산 밀림에 포위 토벌하러 간 일본 별동대와 우리 관동군이 전멸당하다 싶게 됐다. 지금 중공에서 동만 지구를 해방한 5년 사이에 막강한 군사방어체계를 구성했을 게다. 개미 한 마리 장백산 일대에 얼신해도 손금 보듯 할 거야. 그럼 용천이 아무리 유격대 출신이라고 하지만 영락없이 중공군에 나포될 거야.” “허허허. 형님, 참 묘수오. 허허허." 한철주는 한술 더 떴다. "전번에 허사단장한테 똘만이를 용천한테 딸려 보내라고 추천했어." "네? 가 형님이 우리 파출소에 알선해준 그 똘만 말이지?" "그래, 똘만이 칼을 빌어 용천의 목을 썩뚝!" 한철주는 손을 펴 손날로 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흐흐흐. 어때?" "참 묘하오. 남의 칼을 빌어 용천을 제거한다. 허허허." 한선주는 맞장구를 치며 술잔을 쳐들었다. "자, 용천의 승천할 날을 기대하면서 술이나 마시기오.” “허허허. 이 일을 늦출 수 없다. 전번에 허사단장과 말해 놨는데 군부에서 비준했는지 모르겠어..” “용천이 아무리 날고 뛰여도 이젠 죽었어. 핫하하..” 선주는 기분이 도도해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아가씨, 어서 오라니까.” “얘-” 뒤이어 복도에서 신을 짝짝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가씨 둘이 호들갑을 떨면서 들어왔다. 그들 형제는 예쁜 아가씨들을 끌어안고 용천을 암해할 궁리를 익히면서 기분 좋게 술을 마시었다. 그들은 해가 넘어 가는 줄도 모르고 폭 취토록 마시고 또 마시었다. “너희들, 아까 뭐 꽉 조이는 힘이 죽여준다고 했지?” “얘- 한번 맛볼래요?” “그래, 조선인민군과 밤낮 싸우다나니 서울 아가씨를 맛본지도 오래. 난 그 중간다리만은 힘이 세. 금방 시들었다가도 또 머리를 쳐들거든. 히히히.” “그럼 좀 좋아서요.” “호호호.” 아가씨들은 두 사내를 갈라 모시고 나갔다. 방 안에서 아양을 떠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어서 시작해요. 꽉 조여 죽여 줄 터이니깐요.” “그래?” “허허허.” 그들 형제가 일을 끝내고 나와 또 술잔을 기울였다. 그들이 게트림을 하면서 바깥에 나왔을 때는 바깥이 어둠에 두텁게 감싸여 있었다. 어둑씨그레한 골목길에는 행인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 형제가 타고 온 찌프를 버린 채 비틀거리며 작은 골목에 굽어들려고 할 때다. 맞은 켠 술집에서 어두운 그림자 둘이 나왔다.  검은 그림자 둘이 눈 덮인 골목길을 비틀거리며 그들 형제를 슬금슬금 따라 갔다. 그들 형제가 길을 건너 한선주네 술집을 바라고 비척비척 걸어 갈 때었다. 뒤따라가던 검은 그림자들이 쇠파이프를 휘둘러 한철주의 뒤대가리를 여지없이 내리깠다. 딱! 딱! “앗!” 비명소리와 함께 한철주는 쓰러졌다. “형님, 이 놈들이!” 한선주는 권총을 뽑아들고 자기 형을 때려눕힌 검은 그림자를 쏘았다. 탕! 검은 그림자는 슬쩍 허리를 굽혔다. 다른 검은 그림자가 뒤로 덮쳐들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한선주는 대가리를 싸쥐고 몸을 비틀며 빙그르 돌면서도 방아쇠를 당겼다. 땅! 총알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투닥! 투닥! 검은 그림자들은 쓰러진 한철주 형제의 대가리를 연신 개 패듯 했다. 이때 술집에서 누군가 얼음이 진 골목길에 뛰어 나와 소리쳤다. “강도야!” “사람 살려라!” 탕! 탕! 타당! 탕! 골목 가게들에서 사람들이 뛰어 나와 구경했다. 검은 그림자들은 아랑곳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쓰러진 그들 형제를 놓치지 않고 쇠파이프로 연신 내리쳤다. 뒈지는 비명소리가 점점 가늘어지다가 잠잠해졌다. “뒈졌어!” “뛰자!” 그들은 어두운 골목길을 꺾어들어 도망치었다. 호각소리에 뒤이어 경찰들이 뛰어왔다. 허나 바람결처럼 사라진 검은 그림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한선주 여편네가 술집에서 뛰어나와 피투성이 된 남편을 안아 일으켰다. 한선주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여보, 웬 술에 취해 이렇게 당해? 어~허헉, 흑흑흑. 여보~” 더러운 술 냄새를 풍기면서 옆에 쓰러진 한철주의 피투성이 된 머리도 된서리 맞고 짓밟힌 호박대가리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친일주구 형제들은 서울에서 물매를 맞아 뒈지고 말았다. 어둑시그레한 골목에는 더러운 피자국들을 지우려는 듯이 함박눈이 푸실푸실 쏟아져 내렸다. 눈송이들은 춤추며 날아내려 싸늘해진 친일주구 형제 시체를 뒤덮었다. 귀신이 곡 하듯 한 여편네가 피투성이 된 시체를 붙안고 장송곡을 애처롭게 불렀다.                      5. 고지쟁탈전         눈풍설이 일면서 친일주구 형제가 맞아 죽으면서 흘린 피자욱을 새하얗게 덮어버렸다. 친일주구 시체는 찌프에 실려 갔다. 허나 한선주의 여편네 복금은 찌프에 앉아 군부에까지 찾아가 울고 불고 야단쳤다. 한철주의 어미 월선은 두 아들이 하루 한시에 맞아 죽은 골목에서 깨진 안경알을 더듬어 쥐고 대성통곡쳤다. 그때 용천과 병수는 옥설이네 술집에 스며들어갔다. “왔어요?” “음, 그래.” 용천과 병수는 금방 친일주구 철주와 선주 형제를 때려죽인 쇠파이프를 쓰레기무지에 버리고 맨 손으로 술집에 들어섰던 것이다. 옥설은 그들 두 사람을 안방에 모셨다. 사실 옥설은 만금과 함께 고향 김해로 돌아갔었다. 만금은 고향 명천에 돌아갔지만 부모형제가 다 일본 놈들의 가혹한 압박과 착취 밑에 어디로 살길을 찾아 갔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명천 바닥에서 창기를 하다가 종군위안부로 끌려 간 것을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눈길이 곱지 않았고 뒤통수에 손가락질이 심했다. 그녀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고향을 떠나 옥설을 따라 김해로 나갔다. 그런데 옥설의 부모형제도 만금의 부모형제처럼 어디로 살길을 찾아 갔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옥설은 만금과 함께 부산에서 잡일을 하다가 용천을 만난 후 그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던 것이다. 용천이 가게를 차리라고 돈을 대줬더니 옥설은 사내들의 돈을 벌려고 여기에 술집을 차렸던 것이다. 며칠 전에 병수는 철주와 선주가 휴식일이면 부대 숙영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옥설이네 술집에 자주 드나든다는 것을 정찰해냈던 것이다. 용천은 옥설을 보고 한철주나 한선주가 술집에 오면 알리라고 했다. 사건이 발생한 날 오후에 옥설에게서 친일주구 한철주와 한선주가 맞은 켠 만금이네가 차린 술집에 왔다는 기별을 받았다. 용천과 병수는 옥설이네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기다리다가 만금에게서 그자들이 술집에서 나갔다는 기별을 듣자마자 바깥으로 뒤쫓아나가 쇠파이프로 때려 죽였던 것이다. 맞은 켠 술집에서 만금이도 건너 왔다. 그러다나니 용천과 병수는 두 술집의 여 보스들인 옥설과 만금과 함께 제일 조용한 안방에서 술자리를 같이 했다. 옥설은 미닫이문을 꼭 닫더니 술병을 들어 용천과 병수의 술잔에 찰찰 넘칠 정도로 술을 부었다. “자, 원수를 갚았으니 시름 놓고 한잔 들어요.” “통쾌하게 마시자. 허허허.” 만금도 술잔을 들었다. “한길성 영감은 일본 놈들을 등에 업고 이전에 우리를 어디 사람취급 했소? 개놈들, 씨, 잘 없애 버렸습니다.” “허허허. 만금인 아직도 그 함경도 말투구나.” “호호호.” 그들 넷은 속이 시원해 술을 들었다. “자, 후에 다시 마시기로 하고 오늘 돌아가야겠어.” 용천은 일어나기 전에 신신당부했다. “오늘 일을 입 밖에 내선 안 돼!” “알았어요.” 옥설과 만금은 머리를 끄덕였다. 용천과 병수는 다른 골목에 세워놓은 찌프를 타고 부대로 급급히 돌아갔다. 군부대에서는 한철주 부사단장과 한선주 연대장 형제가 서울 골목길에서 맞아 죽자 인차 헌병들을 파견해 현지수사를 했다. 그들은 두개골이 마사지고 뇌장이 흘러나온 한씨 형제의 시체를 보고 둔기에 맞아 죽었다고 판정했다. 게다가 피해자의 호주머니에서 지갑도 빼가지 않은 것을 보아 재물을 탐낸 강도들의 행위가 아니라 원수를 진 자들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살해했다고 인정했다. 헌병들은 눈 덮인 사건현지 골목과 부근 가게를 발칵 뒤졌다. 그들은 부근의 쓰레기 무지에서 한씨 형제를 때려죽일 때 쓴 흉기로 보이는 피 묻은 쇠파이프와 범행 당시에 입은 것 같은 검은 가죽 옷 두벌을 들춰냈다. 허군호 사단장은 대뜸 한씨 형제에게 원한을 품은 용천을 의심했다. 황차 사건발생 당일에 용천과 병수가 서울 시내에 들어가서 술을 밤중까지 마시고 돌아오지 않았던가! 허사단장은 짐작됐지만 고민 끝에 눈을 감아버리기로 작심했다. (어차피 실전경험이 있는 한철주가 죽었는데 이제 용천 연대장마저 처벌받으면 내 양팔이 다 떨어지게 돼. 그럼 어떻게 대부대작전 경험이 많고 유격전술과 매복습격 전에 능한데다가 용감하기로 무쌍한 인민군을 대적한단 말인가!) 여기까지 생각한 허군호 사단장은 용천 연대장을 지휘부에 불러들이었다. 용천 연대장은 여느 때처럼 태연자약하게 지휘소에 들어서자마자 군례를 붙였다. “충성! 사단장님! 새 전투임무 떨어졌어요?” 허군호는 아닌 보살하는 용천이 우스웠다. “있어. 앉게나.” 허군호는 사무상에 앉아 함구무언하고 용천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치 용천의 속내를 꿰뚫어 보려는 듯이 책망하는 눈길로 유심히 보는 것이었다. 한참 후에야 허사단장은 천천히 무거운 입을 열었다. “사람도 원, 큰 그릇이 아니구먼.” 용천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내 눈이 멀었어. 항일유격대에서 대장 했다니까 큰 재목인가 했지. 그저 개인 원수나 갚는 옹졸한 졸장부.” 용천은 한보도 물러서지 않고 떳떳이 나왔다. “허 사단장, 한씨 형제의 죽음 내캉(나와) 관계없어요. 허나 친일주구 한씨 형제는 죽어 마땅해요.” 꽝! 허군호 사단장은 사무상을 꽝 치며 벌떡 일어났다. “아직도 시치미를 딸 예산인가!” 허나 용천은 머리를 쳐들고 허사단장을 노려보았다. 이제 용천 연대장은 무슨 일을 벌릴지 모를 형편이 됐다. “됐어, 됐어! 이 일 이만해서 덮어두겠네. 중공군과 조선인민군이 코앞에까지 덮쳐오고 있어. 우린 일심협력해 주적을 막아야 해. 과거 원수청산에 다리를 묶이어 대적을 막지 못한다면 비극이 아니겠어?” 용천도 내심을 실토했다. “사람이 사는 거요. 앞만 보고 살순 없어요. 민족도 마찬가지죠. 과거 친일주구 한철주 형제 놈들은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었죠. 일본 관동군 장교와 경찰 질을 해먹으면서 우리 독립군과 인민을 얼마나 참혹하게 학살했는가요? 그런 놈들 살려 둘 순 없시우.” “그만 해!” 허군호 사단장은 꼿꼿한 눈초리로 용천을 쏘아보았다.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나라를 찾은 후에는 친일주구고 뭐고 다 똘똘 뭉쳐 조선인민군을 대적해야 하네. 빨갱이들이 고향을 짓밟는 거 차마 눈 뜨고 볼만 해?!” 용천은 바깥을 내다보면서 허무한 웃음을 지었다. “허 사단장은 빨갱이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그 놈들은 지주를 청산해 집과 땅을 가난뱅이들한테 나눠주는기여. 한씨 형제가 먼저 우리 유격대 출신이라고 암해하려고 짜고 들었는지라.” 허군호 사단장은 언성을 좀 낮췄다. “무슨 근거로?” “만금과 옥설이 술집에서 그 놈들이 꿍꿍이를 꾸미는 거 다 들었대요.” 허군호 사단장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뒤이어 그는 용천의 옆에 다가와 어깨를 다독였다. “용천 연대장, 자네와 난 다 조선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들과 친일주구들과 싸워왔네. 다 빨갱이들을 증오하네. 이 점은 털끝만치도 의심하지 않네. 이젠 모든 것이 끝났네. 빨리 북진해 밀물처럼 덮쳐오는 빨갱이들을 막을 준비나 하게나.” 허군호 사단장은 제 자리로 스적스적 돌아갔다. “백의종군해 입공속죄하게나. 아무리 궁리해도 자넨 아까운 군사지휘관이야. 군법에 의해 네놈에게 깜장콩알 한 알을 먹이기보다 무명고지와 508고지를 찾아와야지. 전번에 무명고지에까지 내려왔던 인민군이 지금 무명고지와 508고지를 점령하였네. 인민군은 중공 지원군의 지원하는 파죽지세로 우리 군을 모래성처럼 무찌르고 남으로 덮쳐오고 있네. 우리 사단은 북으로 진군해 그 놈들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았네. 자넨 병수 대대장과 함께 선봉을 서서 무명고지와 508고지를 빼앗고 장차 마천령을 넘어 함경도에 진군할 준비를 하게나.” “충성!” 용천은 두발을 척 모으면서 군례를 올렸다. 허군호 사단장은 용천의 뒷모습을 믿음에 찬 눈길로 전송했다. 그는 조선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 등을 따라 일본 놈들과 시병년 싸우면서 수많은 장병을 다뤄왔지만 용천과 같이 영용무쌍한 수하장관은 처음 보았다.  용천은 연대지휘부로 돌아오자 장병들을 이끌고 눈보라를 무릅쓰고 508고지를 향해 진군했다. (이번 전투에서 아예 성칠 놈을 죽여버려야 해. 그 놈을 살려두곤 진달래를 완전히 차지할 수 없어.) 성칠은 한 전호 속에서 함께 일본 놈들과 싸우던 생사 형제, 전우라는데 미치는 순간, 용천은 주춤 멈춰섰다. 그러나 성칠과 재혼한  진달래를 떠올리자 인차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허리춤의 권총에 손이 갔다.       "쳇! 히야(형이)고 전우고 몰라. 진달래를 빼앗아간 놈은 내 손에 죽여야 해!"      용천은 여기까지 생각하자  무명고지 앞에 이르러 표독스런 눈길로 절벽 아래 조선인민군 지휘부를 쏘아보았다. 그는 손을 쳐들어 대오를 멈춰 세웠다. (혹시 저 절벽아래 성칠놈이 있을 수도 있어. 내 손에 죽었다. 네놈, 남의 색시 빼앗고도 살기를 바라? 흥!) 용천은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며 이를 뿌드득 갈았다. 토끼꼬리만한 겨울 해는 얼음 쪼각마냥 싸늘한 빛을 뿌리다가 서산에서 마지막으로 벌겋게 불타오르며 서서히 지고 눈보라가 윙윙 기승스레 휘몰아쳤다. 용천 연대장은 땅땅 얼어붙은 강 건너 무명고지를 망원경으로 살피며 번개같이 속궁리를 돌렸다. (만약 저 인민군이 확실히 성칠이 이끄는 부대라면 꼭 유인 술과 매복 습격 전을 위주로 전술을 쓸 거야. 그렇다면 동쪽의 저 무명고지와 북쪽의 508고지와 마천령, 저기 서쪽의 미군과 마주 선 랑아산은 범의 아구리와 같아. 저 복판 개활지대에 들어서는 날엔 성칠의 매복습격을 받게 될 거야.) 이때 무선전 전화가 왔다. “허 사단장 전화예요.” 용천이 송수화기를 들자 허사단장의 욕설이 귀청을 때렸다. “왜 진군을 멈췄는가? 글케 꾸물거리고서야 언제 마천령을 넘어?!” 허나 용천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허사단장님! 빨갱이들의 유인 술과 매복습격을 당해 보지 못해 그래요?” “빨갱이 소릴 작작 쳐. 우린 빨갱이출신이 아니야?! 어둡기 전에 무명고지를 뽑아버려! 내일 508고지를 빼앗아내고 모레는 마천령을 넘어야 해!” “옛! 조선인민군이 전화를 도청하기에 구체적으로 보고하지 못하겠는데요. 저를 믿으세요.” 저쪽에서 수화기를 덜컥 놓아버렸다. 용천은 병수 대대장을 불렀다. “우리가 정면으로 치는 척 해 인민군을 이쪽으로 끌어올 때 이대대장은 어둠을 타서 한 개 중대 병력을 데리고 무명고지 북쪽으로 우회해 놈들의 뒤통수를 치게. 난 직접 한 개 대대를 거느리고 508고지 뒤로 우회해 가서 성칠 연대장의 뒤통수를 치겠네.” 삽시에 병수는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꽉 차 흘렀다. “왜 중공군과 싸우지 않고 우리 삼촌과 싸워요? 뭐 칼 쥔 원수인가 베?” “난 나라를 위해 작은집 사촌동생마저 죽였어. 이 놈 전쟁은 원래 애초부터 동족상잔의 전쟁이야. 빨갱이들이 쳐 들어와 우리 지주들을 총살하고 집과 땅을 빼앗아 가난뱅이들에게 나눠 주는 꼴을 보겠는가? 대의멸친해야 돼.” “부자 놈들이 평소에 가난한 사람들이야 굶어 죽든지 얼어 죽든지 관계하지 않고 자기 욕심만 차리지 않았어요? 그 놈들 보고 가난한 백성들을 돌봐주라고 자선 사업을 하라고 해도 어디 일전 한 푼 내놓았어요? 그런 놈들은 총살하고 집과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 주는 게 옳아요. 세상 사람들이 다 같이 땅을 나눠가지고 다 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눠 먹고 똑같이 살면 얼마나 좋아요?” “얘, 이놈, 며칠 빨갱이들 속에 갔다 오더니 속까지 빨갛게 물들었어?” 용천 연대장은 이병수의 멱살을 틀어쥐고 나직이 귀속 말로 훈계했다. 병수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난 내 삼촌과 싸울 자신이 없어요.” 그러자 용천 연대장은 병수 대대장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근심 말게. 무명고지에는 성칠이 없네. 508고지에 있을 거야. 우린 무명고지와 508고지를 빼앗아 와야 살아남을 수 있어. 군법이 우릴 용서하지 않네.” 병수는 꼿꼿한 눈초리를 치켜 올렸다. “어떻게 알아요?” “성칠 대장은 항상 자기가 제일 큰 미끼로 되어 유인 술을 써왔네.” “무명고지가 미낀지 508고지가 미낀지 어떻게 알아요?” “난 직감적으로 508고지가 제일 큰 미끼라고 보네. 508고지에 유인해야 범의 아래 윗 이발 같은 무명고지와 랑아산 사이에 우릴 끌어들여 포위섬멸하지.” “참 그럴듯해요.” “충성!” 병수는 군례를 척 붙이고 군사를 거느리고 출발하려고 했다. “잠간!” 병수는 돌아서면서 이상해 철갑모를 춰올리며 용천 연대장을 쳐다보았다. “이 대대장, 날이 어둡길 기다려 출발하게나. 지금 진공해서 저 놈들의 주의력을 이쪽으로 끈 후 배후로 우회해도 백설 우의 콩알처럼 다 보일 거네.” “알았어요.” 총공격이 시작됐다. 미군의 전투기가 떼를 지어 무명고지와 508고지에 덮쳐들었다. 전투기들은 전에 없이 어둡기 전에 개활지대를 따라 날아오다가 무명고지와 508고지를 스칠 듯이 낮게 덮쳐들어 기관총 소사를 하고 폭탄을 투하하고는 기수를 들어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날새와도 같은 전투기들은 겨끔내기로 반시간 동안이나 맹폭격했다. 공군에 배합하여 탱크 10여대도 포아구리를 열고 불을 토했다. 쿵! 쾅! 꽈르릉 꽝꽝! 무명고지와 508고지는 삽시에 화염에 휩싸였다. 돌과 흙덩이들이 마구 난무하며 날아올랐다가 산마루를 뒤덮었다. 눈 덮인 산비탈 여기저기에서 화광이 끊임없이 번쩍였다. 나무들은 뭉청뭉청 끊어져 날아났다. 산마루가 낮아질 지경으로 맹폭격과 포격을 가했다. “돌격!” 탱크들이 맹렬히 포격하며 산비탈을 향해 돌진하고 그 뒤에 한국 괴뢰군 장병들이 딱 붙어 사격하며 돌격했다. 전투기 편대가 폭탄을 투하한 후 어디론가 사라지자 무명고지와 508고지의 조선 인민군 장병들은 전호에서 잔등의 흙을 털고 일어나 전투준비를 했다. 괴뢰군이 산중턱에까지 돌격해 올라갔을 때다. 꽝! 제일 앞에서 돌격해 올라가던 탱크가 요란한 폭음과 함께 무한궤도가 툭 끊어져 쯔르륵 멈춰 섰다. 뒤에서 돌격해 올라가던 탱크들은 질겁해 더 올라 갈 염을 하지 못하고 선 자리에서 맴돌면서 포격하고 있었다. 보병들이 산마루에서 50미터 가까이에 덮쳐들었다. 그제야 인민군은 맹렬한 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산마루에서 수류탄 폭발음과 총성이 콩 볶듯 했다. 이병수 대대장은 인민군의 주의력이 정면으로 왔겠다고 생각되자 한 개 중대를 거느리고 어둠을 타 슬금슬금 무명고지 뒤로 우회하여 들어갔다. 동시에 용천 연대장도 두 개 중대 병력을 영솔해 508고지 뒤로 우회해갔다. 그런데 이게 뭐야? 그들이 산 뒤로 우회해 채 가지도 못했을 때다. 개활 지대 눈 속에 매복해 있던 인민군 전사들이 불쑥불쑥 나타나 맹렬하게 사격하는 것이었다. “이 놈들아!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래다!” 뚜르륵 뚜르륵! “젠장! 빨갱이들이 진짜 신출귀몰하는구나!” 이병수 대대장은 깜짝 놀라 병사들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겁나 말아! 포위를 돌파하라!” 한국 괴뢰군과 조선 인민군은 개활 지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렸다. 개활지대 정황을 알게 된 용천 연대장은 우회작전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유인 술과 매복습격 전략전술을 서로 잘 알기에 수가 잘 통하지 않는구나. 저 놈들의 유인 술과 매복습격전술에 대비해 내가 우회작전을 펼치리라는 걸 알고 성칠 대장은 미리 방비하였구나.) 조선인민군은 괴뢰군이 후퇴하는 것을 보고 맹사격을 퍼부으면서 추격하다가 멈춰 섰다. 이때 난데없는 고음확성기에서 조선인민군 여전사의 유유한 노래 소리가 화광이 충천하는 눈 덮인 산과 들에 울려 퍼졌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뒤이어 조선인민군 여전사의 대적공작방송이 시작됐다.   “괴뢰군 장병 여러분, 우리는 반만년 피 줄을 이어온 백의겨레입니다. 우리는 간악한 일본 놈들의 식민통치 밑에서 망국노의 설음을 안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온 동포입니다. 우리는 어깨 겯고 싸워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를 뒤엎고 나라를 되찾아 왔습니다. 허나 오늘 또 남조선 인민들이 미제 침략자들의 식민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더는 승냥이 같은 미제 침략자들과 이승만 괴뢰도당의 탄알받이로 되지 마십시오. 무기를 놓고 우리 조선인민군에 항복하십시오. 투항하면 살 길이 있을 것입니다…”   괴뢰군 속에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용천 연대장이 권총을 하늘 공중에 쏘며 고함쳤다. “빨갱이들의 적화선전을 듣지 말라!” 수하 병사들이 모두 용천 연대장을 쳐다보며 모여들었다. “우린 저 눈앞의 무명고지와 508고지를 점령하고 마천루를 넘어 압록강 변에 우리 태극기를 꼽아야 해!” 그제야 겨우 뒤숭숭해 하던 병사들이 내렸던 총을 들고 용천 연대장의 명령을 기다렸다. 용천 연대장은 눈알을 데굴거리며 속궁리를 번개같이 굴렸다. (저 놈들은 내가 반 유인책과 반 매복전술을 쓰리라는 것을 알고 미리 우리 우회작전을 타파할 작전을 꾸몄어. 성칠은 꼭 508고지에 있을 거야. 허나 우회작전에 많은 병력을 포치하고 고지에 놈들이 많지 않을 수 있어. 으흠, 이 놈아, 죽어봐라!) 용천은 무전 수에게 다가가 송수화기를 빼앗아 쥐고 고함쳤다. “허 사단장, 미군 공군과 탱크부대에 증원을 요청해요. 우린 날이 밝기 전에 무명고지와 508고지를 점령하겠시우. 형제 연대에서 협력해 주게 명하세요.” 허 사단장의 느릿한 목소리가 들렸다. “좀 시간이 걸릴 거 같아.” 용천은 화났다. “제기랄, 교활한 양키 놈들, 번마다 최전선엔 우리 국군을 내몰고 뺑소니 칠 땐 젤 앞장서면서 비행기캉(하구) 탱크마저 제때에 못 보내 줘?! 흥! 망한 놈의 미국 놈들 믿고 어떻게 작전해?” 뒤이어 용천 연대장은 권총을 빼들고 병사들에게 고함쳤다. “나의 용감한 장병들이여, 승리는 눈앞에 보인다. 이제 미군 공군과 탱크부대가 우릴 지원한다. 재빨리 앞길을 막는 적들을 족치고 저 무명고지와 508고지를 점령하라!” 이때 미군 전투기가 밤하늘을 헤가르며 동남쪽에서 날아왔다. 제일 먼저 날아온 전투기가 무명고지와 508고지를 스쳐 지나가며 조명탄을 줄줄이 투하하여 하늘에 대낮같이 걸어놓았다. 고지의 인민군 전사들이 분주히 탄알과 수류탄을 나르다가 전호에 납작 엎드리는 것이 보였다. 뒤에서 귀청을 째며 날아온 전투기들이 무명고지와 508고지에 맹렬하게 폭격했다. 무명고지와 508고지는 우레와 같은 폭음이 진동하고 화광이 충천했다. 40여대의 탱크들이 우르릉 우르릉 무명고지와 508고지를 향해 포사격을 하며 파죽지세로 진군했다. 이때 용천 연대장은 권총을 뽑아들고 병사들에게 고함쳤다. “영웅적인 국군 장병들, 저 놈들이 개활 지대에서 매복 습격 전을 펼치느라고 고지에 병력이 얼마 없다. 곧추 고지를 향해 돌격!” 병사들은 총창을 들고 용감히 앞으로 전진했다. 전투기들이 날아지나가자 또 고음확성기에서 조선인민군 여전사의 노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태백산에 눈 내린다 총을 메어라 출진이다 눈보라는 밀림에 우나 가슴 속엔 피 끓는다 … 나가자 나가자 싸우러 나가자 용감한 기세로 어서 빨리 나가자 … 용진용진 나가며 기승스럽게 억 천만번 죽더라도 원수를 치자   …   화광이 충천하고 전운이 감도는 전쟁 분위기와는  달리 고지에서  조선인민군 여전사의 격앙된 노래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귀맛좋게 노래를 부르는 여 전사에게 총부리를 돌려대고 고지로 향해 돌격해야 하는 괴뢰군 장병들의 마음은 비길 데 없었다.
111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74) 댓글:  조회:1799  추천:7  2017-07-25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5권                                   제22장 전우와 원수 그리고 형제 1. 첫 전투 먹장구름이 덮쳐 오더니 번개가 뱀의 혀처럼 구름층을 꿰뚫고 절벽에 내리 뻗쳐 휘감아 내동댕이쳤다. 화광이 번쩍 하며 절벽이 무너지는 상 싶었다. 우르릉 꽝꽝! 대줄기 같은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었다. 하늘땅을 들었다 놓는 우레 소리와 포성이 38선을 삼켜버렸다. 산과 들에는 포성이 울리고 화광이 충천했으며 전운이 침침하게 휘몰아쳤다. 성칠은 부대를 따라 함경도에서 출발해야 했다. 그는 아침 숟가락을 놓기 바쁘게 설거지를 하는 진달래를 불렀다. 진달래는 행주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구들에 올라왔다. 성칠은 경주와 경수의 머리를 매만지며 진달래를 정색해 마주 바라보았다. “여보, 당신은 오빠와 애들을 데리고 함흥촌에 들어가오. 온 조선이 불바다로 될 마당에 안전하지 못하오.” 진달래는 철색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어져 버리었다. “이제 마음 놓고 함께 살자 하니까요…” 성칠은 도도거리는 진달래를 보고 핀잔을 주었다. “어째 유격대 중대장답지 않은 소릴 하오?” 진달래는 경수에게 옷을 입혀 주면서 뾰로통해 했다. “뭐가 두려워서 함흥 촌으로 들어가야 하는가요?” “전쟁이란 건 어떻게 될지 모르오. 미국 놈들이 인천으로 등륙했소. 우리 조선 어디나 후방이 없게 되기 쉽소. 모두 전쟁터로 될 각오를 해야 하오.” “나도 당신과 함께 부대를 따라 전쟁에 참가하고 싶어요. 미국 놈들을 몰아내지 않콘 편안한 날이 있겠어요?” 성칠은 경주에게 가방을 메워주면서 진달래를 건너다보았다. “당신 이젠 어린애 둘을 가진 40대 초반 여성이오. 두말 하지 말고 애들을 데리고 함흥 촌에 가서 동생네 집에 피신해 있소. 함흥촌의 막내조카 상순은 영월구 공안국 국장으로 됐다오.” 진달래는 놀랐다. “그래요? 상순 조카는 항일전쟁 때도 우리 유격대를 도와 숱한 쌀을 보내오더니. 당신한테서 사격과 격투를 배운 덕이 있구먼요.”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 애비를 닮아 욱 하는 불같은 성미 흠이지. 숱한 조카들 중 다른 놈이야. 어쨌든 아이 때부터 역빠르던 애들이 다르다니까.” 진달래는 경주와 경수를 곁눈질했다. “애들이 상순 조카를 닮았으면 좋겠어요.” “설마 경주까지 상순을 닮기야 하겠소?” 그 말에 진달래는 뾰로통해서 앵돌아졌다. “또, 또. 쪽을 놔요? 경수나 경주나 다 우리 자식이 아닌가요?” “그래, 그래. 다 우리 자식이지.” 그제야 성칠은 실수했다는 것을 알고 화제를 돌리었다. “용천 대장은 살아 있다는데 아마 남조선에 나간 거 같소. 연변에나 우리 조선에 있으면 왜 오지 않겠소?” “글쎄? 모두 다 운명이겠지요. 우리는 중국에서 나오면서 부대채로 재편성되지 못해 사처에 흩어지는 바람에 용천 대장이 찾기 힘들었겠지요.” 경주가 경수를 데리고 마당에 나가 퐁퐁 뛰며 뛰놀았다. 진달래는 애들을 희귀해 내다보면서 말했다. “이번에 전쟁 나서 잘 됐어요. 38선이 무너지면 혹시 경주 아빠를 만나겠는지 알아요?” “그래 찾으면 용천 대장한테 가겠소?” 성난 성칠의 얼굴을 보며 진달래는 혀를 홀랑 내밀었다. 그녀는 일어나 성칠을 끌어안으면서 몸을 흔들거리었다. “근심 말아요. 내가 어떻게 얻은 성칠 연대장인데 은녀한테 빼앗기자고?” “어린 애같이 놀지 마오. 쯧쯧. 명천에 가서 은녀와 경수도 데리고 연변에 들어가오.” 성칠은 권총집을 바로 잡더니 바깥으로 훌 나갔다. “알았어요. 한 고향 여동생을 떼놓을 수 있어요?” 진달래는 연변으로 들어갈 짐을 챙기느라고 궤짝을 번지고 난장판을 벌리었다. 경주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어머니한테 캐고 들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어데 갑니까?” “몰라도 돼.” “왜 전쟁 하면 경주 아버지를 만나겠는지 했어?” 진달래는 놀라 궤짝을 뒤지던 손을 멈추었다. “경주야, 너하고 경수 아버진 우리 집에 있어. 이제 전쟁 나면 언제 만나겠는가는 말이야.” “아니야. 내 이젠 여러 번 들었어. 경수 아버지, 경주 아버지 하는 말을.” 진달래는 경주를 안아주면서 타일렀다. “얘가 정말, 이후엔 다시 그런 말 하면 못써. 알아?” 경주는 입이 뾰로통해 억지로 머리를 가늘게 까딱이었다. 훈련장에는 벌써 전신 무장한 장병들이 집합해 대열을 짓느라고 구령소리 요란했다. 진달래는 보따리를 이더니 경수를 업고 경주의 손을 잡아끌고 훈련장으로 나갔다. 성칠은 다가와 진달래의 잔등에 업힌 경수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손바닥과 손등이 다르다더니 제 새끼만 뽀뽀해?) 진달래의 그런 속마음을 읽은 듯이 성칠은 진달래의 손을 쥔 경주의 볼을 매만지었다. “경주야, 엄마 함께 연변에 가 잘 있어라.” 경주는 머리를 끄덕였다. “예. 아빠.” “그래, 경주와 경수, 엄마 말 잘 들어야 해.” “예.” 애들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성칠은 진달래의 손을 잡아주었다. “애들을 데리고 어떻게 고생하겠소? 상순이 국장을 하는 영월구 공안국에 가오.” “알았어요. 함흥촌에 가든지 하겠어요. 우리 근심하지 말고 몸 조심해요.” “양, 전쟁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설마 무슨 일이 있겠소? 근심하지 말고 애들이나 잘 키우오. 전쟁이 언제 끝나겠는지 그때 고향에 데리러 갈게.” “전쟁터에서 미제 공중 날강도를 주의하세요.”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진달래가 철색얼굴을 찡그리며 뽀로통해 중얼거렸다. "항일전쟁이 끝난지 이제 5년 밖에 안되는데 왜 또 전쟁 한대요?" 성칠은 자못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장군의 영명한 령도아래 정의전쟁으로 미제침략자를 조선반도에서 몰아내야 하오. 미제 침략자 괴수 맥아더는 인천에 상륙한 후 무슨 서울에서 아침을 먹고 평양에서 점심을 먹고 압록강에서 저녁을 먹겠다고 했소. 미국 놈들의 침략야심이 만천하에 드러났소.  미제는 남조선을 식민지 통치를 하면서도 모자라 우리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사회주의 조국을 먹어치우고 나아가서 사회주의 대후방인 중국을 치려고 미쳐날뛰고 있소. 우린 미체 침략자들의 콧대를 꺾어놔야 하오. 이 기회에 미제 승냥이들의 철발굽 밑에서 신임하는 남조선을 해방해야 하오." 진달래는 그제야 머리를 끄덕였다.  "미국 놈들이 염치없어요. 태평양 건너 놈들, 제놈들이 뭐간디 남조선을 통치하고 우리 조선을 먹어치려고 해요?" 이때 칠백이 걸어와 진달래의 손을 잡은 경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경주야, 삼촌이 올 때까지 잘 있어라.” “예.” 칠백은 경주를 와락 끌어안고 얼굴을 맛 비비었다. “아야, 삼촌, 수염이 꺼슬꺼슬 해. 아프다.” 경주는 칠백이 얼굴을 두 손으로 떠밀었다. 칠백은 경주를 내려놓고 진달래의 잔등에 업힌 경수의 볼을 매만지었다. “아주머니, 어떻게 고생하겠소. 혹시 전투마당에서 용천 형님을 찾을 수도…” 칠백은 성칠을 흘끔 보며 뒤 말을 삼켜버렸다. 진달래는 성칠과 칠백을 번갈아 보더니 역으로 나가면서 애처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심심산골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스리 살살 애간장을 다 녹인다.   진달래는 경수를 업고 경주의 손을 잡고 보꾸러미를 이고 비틀비틀 업동역으로 걸어갔다. 성칠은 진달래의 처량한 뒷모습을 보고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저쪽에 은녀가 애를 데리고 오도카니 서서 진달래를 기다리는 모습이 눈 시리게 보이었다.  이때 장병들은 대렬을 지어서서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우렁차게 불르고 있었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 우에            력력히 비춰주는 거룩한 자욱            아- 그 이름도 빛나는 우리의 장군            아 -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 장군 노래 끝나자 칠백 대대장이 성칠이네 쪽으로 걸어왔다. “김 연대장, 출발준비가 다 됐습니다.” 성칠은 장병들의 대오를 돌아보았다. "동지들, 우린 위대한 김일성 장군의 영명한 령도아래 일제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이 땅에 우리 위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설하였습니다. 가난한 인민들은 진정 나라의 주인이 돼 사회주의 조국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미제 전쟁미치광이들은 우리 사회주의 조국을 침략해 우리 나라 인민들의 안정하고 행복한 생활을 빼앗아가려고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우린  위대한 령수 김일성 장군의 령도아래 미제 침략자들과 이승만 괴뢰군을 꼭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우리 정의의 전쟁은 꼭 승리할 것입니다. 동지들 신심이 있습니까?“ 전체 장병들은 총을 쳐들고 우레처럼 고함쳤다. "있습니다!" 성칠 연대장은 손을 남쪽으로 홱 휘둘렀다. "출발!” 전투대오는 남으로 진군하였다.  그들의 뒤로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동부전선 상급부대 박송천 수장의 명령에 따라 성칠이 거느린 연대는 산을 넘고 령을 넘어 남쪽으로 진군했다. 동부전선 진군 길에서 조선인민군 부상병들을 실은 자동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북으로 들어오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낮에는 미군 전투기가 두려워 행군하지 못하고 수림 속에 숨어 있다가도 밤이면 령 길을 타고 행군했다. 전선과 가까워질수록 포성이 더 요란했다. 어두운 밤 하늘에 드문드문 뻘건 화광이 번쩍이었다. 성칠이 거느린 연대는 밤중 어둠을 타서 자그마한 강을 사이에 두고 깎아지른 산봉우리에 포진해 한국군과 대치해했다. 연대지휘부는 산봉오리 깎아지른 절벽에 쑥 들어간 홈채기를 의지해 세워졌다.  성칠은 망원경을 들고 엄페호에서 희미한 달빛을 빌어 맞은켠 산에 웅크리고 있는 적진을 세심히 살폈다.  싸늘한 별이 바르르 떨고 눈썹달이 가을 밤바람에 포화에 그은 구름과 함께 동으로 밀려가면서 쓸쓸하게 산마루를 비추고 있었다. 전운에 그은 달빛이 사나운 들말 같은 먹구름을 몰고 달려지나갔다. 대지는 공포스러운 달빛에 몸살을 앓으며 흐느끼고 있었다. 쿵쿵- 쿵쿵 씩- 쾅! 꽈르릉 꽝! 삽시에 포탄이 날아와 산마루에서 연달아 폭발했다. 바위돌이 부서져 매섭게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사처에 튕겨났다. “엎드렷!” 성칠은 연대 지휘부로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를 듣고 고함쳤다. 칠백 대대장과 성칠 연대장은 장막 밖에 달려 나가 나무 밑에 엎드렸다. 포탄 파편에 나무 허리가 뭉텅 끊어져 그들의 잔등 우에 마구 떨어졌다. “제길! 저 놈들이 우리 지휘부를 정찰한 듯이 포격한단 말이야!” 성칠과 칠백이 두덜거리며 금방 허리를 펴며 머리를 들었을 때다. “보고!” 통신원이 기어와 고함쳤다. “적들이 돌격해 오고 있습니다.” 성칠이 먹칠한듯이 깜깜한 산 아래를 아무리 내려다보아도 대체 한국군 병력이 얼마나 습격해 오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만 탱크의 엔진소리와 무한궤도가 접히는 요란한 소리가 산 아래에서 들릴 뿐이었다. “괴뢰군은 야밤전투를 하기 싫어한다더니. 웬 일이야? 야밤전투와 유격전쟁에 이골이 튼 우리 영용한 조선인민군과 감히 야밤에 싸워 볼 예산인가?” 칠백은 두덜거리었다. “우리 발을 붙이기 전에 진공하는 개수작이야.” “흥, 어림도 없어!” 성칠은 코웃음 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통신원!” “옛!” “임호 중대장을 불러오라!” 이윽고 로지심 같은 임호가 달려왔다. “임 중대장은 폭파소조를 무어 적군의 탱크를 까부시라!” “옛!” 성칠은 로흑산에서 일본 보루를 까부신 전공을 세운 임호를 관건적인 전투시각에 또 내세웠다. 임호가 떠나가자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며 칠백을 돌아보았다. “1 대대장은 저 산 아래로 우회해 내려가 저 놈들의 뒤통수를 쳐라!” “옛!” 칠백 대대장은 숱한 지휘관들 앞이라 엄숙하게 군례를 척 붙이고 즉시 자기 대대로 달려갔다. “최동욱과 김인삼 대대장은 우리를 습격하는 적들을 막아라!” “옛!” 대대장들이 떠나가자 성칠은 끊어진 나무 밑에 엎드려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미군이 코밑에까지 기어 올라왔다.희미한 달빛아래 철갑모와 총칼이 번뜩이었다. 땅! 땅! 미군이 쏜 총알이 쓰러진 나무에 박히며 나무껍질이 마구 튕기었다. “사격!” 성칠은 권총을 산 아래로 휘둘렀다. 따르륵 따르륵! 기관총 소리와 함께 한국군 병사들이 무리로 쓰러졌다. 꽈르릉! 요란한 폭파굉음과 함께 화광이 충천했다. 삼단같이 치솟는 불길 속에서 탱크 위 뚜껑이 열렸다. 온 몸에 불이 달린 몇몇 병사들이 뛰어 내려 때굴때굴 뒹굴었다. 허나 그들의 몸에 달린 불이 꺼질 줄 몰랐다. 미군은 악을 쓰고 산 위에 사격하며 덮쳐들었다. 성칠의 전사들도 산우에서 비명을 지르며 무리로 쓰러졌다. 이때 산우로 덮쳐오던 미군 장병들의 뒤에서 사격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칠백이네 해냈군!” 성칠은 주먹으로 땅바닥을 꽝 치며 벌떡 일어났다. 땅! 난데없는 총알이 날아와 성칠의 왼팔을 꿰뚫고 나갔다. “아이쿠!” 성칠은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한쪽으로 휘뚱거리더니 푹 꼬꾸라졌다. “김 연대장!” 호위병이 급히 성칠을 끌어안았다. 이때 미군 병사가 바위 뒤에서 머리를 내밀더니 또 사격했다. 땅! 성칠의 옆에 섰던 통신원이 가슴을 움켜잡고 쓰러졌다. 땅! 호위병이 쏜 총에 미군 병사의 머리가 박살났다. 뻘건 피가 바위에 마구 튕기었다. “군의! 김 연대장이 부상당했소!” 이윽고 군의가 달려왔다. 성칠의 왼팔은 관통상을 받아 군복에 뻘건 피가 질벅했다. 군의는 호위병이 비추는 전지 불을 빌어 성칠의 왼쪽팔의 상처를 붕대로 감았다. 드디어 나뭇가지를 꺾어 팔꿈치로부터 손목 밑에까지 대고 붕대로 동이고 어깨 넘어 붕대로 처매주었다. “철퇴!” 산 아래에서 소리치는 확성기소리가 산정에까지 울려 왔다. 미군은 숱한 시체를 남기고 산 아래로 퇴각했다. 조선인민군도 산우에 숱한 시체를 남기었다. 그들은 군의 자존심을 걸고 각기 자기 진지에서 짧은 삽으로 전호를 파고 다음 전투를 초조히 대기했다. 포화에 그은 구름이 걷히며 잠시나마 눈썹달이 대지를 내리 비추었다. 산비탈 여기 저기에서 포탄과 수류탄 파편에 잘려나간 나무 밑 둥에 불이 활활 타 번지고 있었다. 조선인민군 장병들은 먼 산길을 행군해 오면서 퍽 곤했다. 총소리가 멎고 엎드릴만한 전호를 파자마자 전호 안에 쪼크리고 앉아 코를 드렁드렁 고는 병사들도 있었다. 성칠도 임시 연대 지휘부를 절벽 밑에 판 전호로 옮긴 후 왼팔의 통증을 느끼며 눈을 스르르 감았다. (대체 적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는 해가 뜨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통신원!” 옆에서 호위병 장꼬마가 알렸다. “통신원은 희생됐습니다.” “아, 그랬지. 장 꼬마, 정찰소대 바위돌 소대장을 불러오오.” “옛!” 이윽고 바위돌 소대장이 뛰어왔다. “보고!” “석 소대장, 정찰병 둘을 데리고 가서 혀를 잡아 오오.” 씩- 쿵! 포탄 폭파 굉음과 함께 바위돌은 두 정찰병을 데리고 전호를 뛰어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적들이 또 진공합니다.” “전투 준비!” 분명 이번에는 한국군이 진공해왔다. 그들은 미군과 함께 겨끔내기로 진공하면서 조선인민군이 쉬지 못하게 피로전술을 쓰고 있었다. 이때 하늘에 조명탄이 날아올랐다. 산마루와 산비탈을 대낮같이 비추었다. 남쪽 하늘에서 비행기 몇 대까지 쌩- 쌩- 날아왔다. 드디어 산마루에 폭탄이 눈송이처럼 떨어졌다. 조선인민군들은 악이 나 경기관총으로 전투기를 갈겼다. 전투기들은 전투편대를 지어 저공비행을 하지 못하고 일정한 고도로 골짜기를 따라 날아오다가도 기수를 쳐들면서 소사하고는 꽁무니를 뺐다. 전투기들은 겨끔내기로 20여분 동안이나 소사하고 소이탄을 내리 떨어뜨리더니 어디론가 날아갔다. 고지는 불바다로 돼 버렸다. 사처에서 인민군 장병들의 주검이 나뒹굴고 여기저기에서 비명소리가 들리었다. 괴뢰군은 미군 탱크들이 포신을 고지에 돌려 대고 맹사격을 하자 진공을 개시했다. 포성이 하늘땅을 진동치며 화광이 번쩍이는 어둠 속에서 산 아래로부터 진공해 올라오는 괴뢰군의 아우성 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괴뢰군들이 철갑모를 번뜩이며 탱크 뒤에 딱 붙어 고함치며 고지를 진공해왔다. "빨갱이들을 모조리 소멸하라!”  이번에는 임호 중대장도 더는 탱크를 폭파할 수 없었다. 수류탄이 다 떨어졌던 것이다. 탱크는 맹포격을 가하면서 밋밋한 쪽의 산비탈을 타고 무서운 엔진소리를 내면서 고지를 향해 돌진해 왔다. 성칠은 코 밑에까지 기어오는 괴뢰군을 보고 “철퇴!” 하고 고함치더니 머리를 돌려 경호원 장 꼬마에게 명령했다. “각 대대에 철퇴 명령을 전하오! 빨리!” “옛!” 전 연대는 임호 중대장이 한 개 중대 병력으로 엄호하고 철퇴하기 시작했다. 성칠 연대장이 영솔한 장병들은 하루 밤도 뻗치지 못하고 무명고지를 내주고 철퇴하고 말았다. 괴뢰군은 무명고지를 점령하고 인민군 장병들의 시체를 전호에서 내 버리고 전호를 깊이 파서 정비한 후 인차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무명고지에는 핏빛으로 그은 화염이 하늘을 찔렀다. 이따금 눈먼 포탄이 날아왔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돌멩이와 시체 쪼각이 자주빛 화염과 함께 하늘로 솟아올랐다가 사처로 흩어져 떨어졌다.   2. 혀를 생포 숱한 희생을 내고 무명고지를 빼앗긴 성칠은 5리나 철퇴해 진을 치고 복수의 칼을 갈았다. 성칠은 풍막 안에서 왔다 갔다 하며 이를 뻑뻑 갈았다. 김칠백 대대장은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두덜거렸다. “항일전쟁 때와는 달리 그 놈의 전투기가 문제요. 고지에 기어 올라오는 놈들과 싸우자 하면 그 놈의 전투기가 날아와 우리 꼭뒤를 누른단 말이요.” 성칠은 대대장들에게 귀띔했다. “이번 전쟁은 세계에서 제일 강대하느라고 우쭐렁거리는 미군과 싸우는 거요. 우린  지상의 적들과 공중을 동시에 대적해야 하오.  미군 인천등륙 후 적군의 사기는 전례없이 높소. 이제 바위돌 소대장이 혀를 잡아 오면 적정을 알아낸 후 새 자전계획을 세우기오. 기어이 무명고지를 빼앗아 내야지. 미제와 괴뢰군이 절대 우리 잔등을 밟고 우리 고향 명천에까지 쳐들어가게 할 순 없어. 이제 오래지 않아 중국인민지원군까지 우리를 지원해 용맹히 싸우고 있소. 승리는 우리 것이오.” 최동욱 대대장이 근육이 울뚝불뚝한 팔을 휘둘렀다. “무명고지에서 십리도 더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지.” 바깥에서는 가을비가 구질구질 내렸다. 허연 번개가 귀신처럼 풍막 안에까지 날아 들어왔다가 나가면서 천지가 맞붙을 듯이 우레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대살 같은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 화광이 충천하던 무명고지의 불이 소낙비에 꺼졌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공포의 어둠이 더 두껍게 깔리었다. 바위돌은 정찰병 조철호와 신기출을 데리고 허리를 구부정하고 어둠의 장막을 헤치며 살금살금 한국군이 점령한 무명고지로 다가갔다. 장대 같은 소낙비가 쏟아지는 소리는 그들의 발자국 소리와 나무숲을 헤치는 소리를 감싸 감춰주었다. 씩- 씩- 하늘에 조명탄이 날아오르더니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무명고지를 대낮같이 환하게 비추었다. 절벽 아래 뭉텅뭉텅 끊어진 나무들과 여기 저기 쳐놓은 장막 그리고 돌각 담 같은 전호도 드문드문 윤곽을 드러냈다. 여기저기 보초를 서고 있는 철갑모들이 조명등 불빛에 번뜩거리었다. 조명등이 꺼지는 순간 엎드려 기던 바위돌 네는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히고 재빨리 무명고지로 살금살금 접근했다. 또 조명등이 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 산마루와 골짜기 그리고 산비탈에 게딱지처럼 들어앉은 장막들이 재차 잔등을 드러냈다. 바위돌은 조철호와 신기출에게 손을 홱 휘둘렀다. 그들은 일제히 질척질척한 산비탈에 납작 엎드렸다. 초가을 소낙비가 쏟아져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어려운 밤이지만 조명등을 빌어 무명고지 중턱에 반자동보총을 쥔 보초병이 왔다 갔다 하고 전호에 친 숱한 장막이 지척에 보이었다. 산마루 절벽 아래 연대 지휘부로 쓰던 자리에 특별히 철조망을 촘촘히 늘인 것을 보아 괴뢰군 지휘부가 설치돼 있는 것 같았다.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지만 군용비옷을 입었기에 괜찮았다. 조명등이 비추어도 군용외투가 검회색이어서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황차 공교롭게도 괴뢰군의 풍막과 바위돌 네가 입은 군용비옷의 색깔이 비슷했다. 바위돌은 소낙비를 맞으면서 어떻게 하면 괴뢰군 지휘부로 접근해 장교를 잡아 갈 것인가를 궁리했다. 그는 조철호와 신기철을 툭툭 치더니 귓속말을 했다. “이제 조명등이 꺼지면 먼저 보초병을 해치우고 지휘부로 잠입해 장교를 잡기요.” 철호와 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이때 조명등이 꺼졌다. 바위돌이 팔을 홱 휘두르자 조철호가 보초병이 왔다 갔다 하는 밑에까지 기어갔다. 보초병이 소나무 밑으로 왔다가 돌아설 때다. 철호가 벌떡 일어나 보초병의 목을 끌어안고 비수를 번쩍 휘둘렀다. 뒤이어 철호는 보초병의 철갑모를 벗겨 쓰고 반자동보총을 주어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보초를 서는 시늉을 했다. 바위돌과 신기철은 폭탄 파편에 허리가 뭉텅뭉텅 끊어진 소나무 사이로 허리를 구부정하고 연대 지휘소로 보이는 절벽 밑의 장막으로 다가갔다. 갑자기 장막 안에서 장교가 우산을 들고 불쑥 나왔다. 바위돌과 신기철은 끊어진 소나무 뒤에 몸을 살짝 숨기었다. 장교는 소낙비 쏟아지는 사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자동보총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조철호를 보고 보초병으로 알고 시름을 놓았는지 절벽 쪽에 돌아서더니 괴춤을 까고 오줌을 내싸는 것이었다. 바위돌은 신기철을 돌아보며 머리를 앞으로 휘저었다. 신기철은 원 작전대로 슬금슬금 장막으로 다가가 망을 보았다. 동시에 바위돌은 비수를 뽑아들고 그 장교의 뒤에 살금살금 발끝걸음으로 다가갔다. 장교는 소낙비소리에 동정을 알지도 못하고 오줌을 누면서 추운지 우들우들 떨어댔다. 철호가 불시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면서 시퍼런 비수를 목에 댔다. “꼼짝 말라! 까딱 하면 죽인다!” “엇! 어, 어.” 장교는 깜짝 놀라 우산을 떨어뜨리었다. 바위돌은 장교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쑥 뽑아냈다. 장교는 어깨를 툭 떨어뜨리더니 바지춤을 춰 입었다. “우릴 따라 순순히 가자!” 이때 불시에 조명등이 하늘 공중에 씩씩 솟아오르더니 대낮같이 환히 비추었다. 그제야 침착성을 찾은 장교는 손을 천천히 들면서 몸을 돌리더니 비수를 자기 목에 댄 바위돌을 쳐다보았다. 그는 억수로 쏟아지는 대줄기 같은 빗발 속에 총을 들고 이쪽을 흘끔거리는 조철호를 힐끔 곁눈질했다. (저 놈이 보초를 어떻게 서는고?) “에헴!” 장교는 보초 서는 철호가 자기 편 보초병인가고 들으라고 마른기침을 했다. “잔꾀를 부리지 마라! 걸어!” 바위돌은 장교의 잔등을 떠밀었다. 장교는 발에 뿌리가 내린 듯이 걷지 않으려고 뻗치었다. 그때 갑자기 이동 순라 병들이 억수로 쏟아지는 소낙비를 무릅쓰고 전호 속에서 척척 걸어 나와 절벽 밑으로 다가왔다. “인민군이야!” 장교가 바위돌을 뒤발로 차며 고함쳤다. 보초병들은 총을 벗어들고 이쪽에 겨누었다. 바위돌은 손으로 장교의 목덜미를 탁 쳤다. 꼬꾸라지는 장교를 제꺽 끌어안고 전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땅! 땅! 땅! 한국군 순라 병들이 쏜 총알이 전호 벽에 박히면서 흙꼬치 튕기었다. 이때 조철호가 순라 병들에게 한 배짐 갈기었다. 장막 안에서 괴뢰군 둘이 뛰어 나오다가 쓰러졌다. 그 틈을 타 바위돌은 장교를 둘러메고 전호 속에서 뛰쳐나갔다. 뒤이어 괴뢰군 장교를 끌어안고 산비탈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 내려갔다. 산기슭에 내려가자 그는 벌떡 일어나 장교를 둘러메고 산 아래로 냅다 뛰었다. 뒤에서 조철호와 신기철은 무리로 덮쳐드는 한국군 장병들에게 맹사격을 가하면서 엄호했다. 따르륵 따르륵 기관총 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렸다. “앗!” 신기철이 가슴을 붙안고 몸을 한쪽으로 틀더니 푹 꼬꾸라졌다. “기철이! 기철이!” 조철호는 쓰러진 기철을 흔들었다. 기철은 피가 질벅한 가슴을 붙안은 채 철호를 가라고 손짓했다. “빨, 빨리 가오. 난 글, 글렀소.” 허나 조철호는 괴뢰군에게 사격하면서 기철을 끌어안아 일으켜 업으려고 했다. “다 죽어! 어서 가, 가!” 기철은 안간힘을 다해 철호를 밀어냈다. 그는 간신히 몸 밑에서 돌격총을  빼내 괴뢰군에게 사격했다. 픽! 총소리와 함께 기철은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조철호가 머리를 만져보니 비참하게도 두개골이 반쪽이나 날아나 버린 채 피 범벅이 됐던 것이다. “기철이!” 조철호는 이를 악물고 소낙비 속에서 악착스럽게 덮쳐오는 괴뢰군에게 사격하면서 퇴각했다. 이때 바위돌이 개선하는 신호탄을 하늘 공중에 쏘았다. 쿵! 쿵! 쿵! 포탄이 씽씽 날아와 무명고지에 떨어졌다. 꽝! 꽝! 꽈르릉! 소나무들이 뭉텅뭉텅 날아나고 주먹만큼 한 돌멩이들이 소낙비 속에 사처로 날아났다. 숱한 한국군 장병들이 포탄 파편에 맞아 쓰러졌다. 괴뢰군은 인민군의 맹렬한 포화 속에 황급히 철퇴하여 전호 속에 뛰어 들어갔다. 그제야 조철호는 허리를 구부정하고 쏜살같이 달려 바위돌을 따라잡았다. “소대장! 내 업읍시다.” 바위돌은 장교를 내리워 놓았다. 철호가 업으려는데 장교가 정신을 차리고 장대기처럼 꿋꿋이 섰다. “이 놈! 떼질 쓰지 말고 고분고분 말 들어! 우리 인민군은 포로를 우대한다!” “걸어!” 장교는 주위를 둘러보아도 동료들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절벽 밑 장막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짜기에 들어선 것을 보고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그제야 그는 순순히 바위돌과 조철호의 중간에 서서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기철은?” “희생됐습니다. 다 이 놈 탓입니다.” 철호는 자동보총으로 장교의 엉덩이를 툭 쳤다. “포로를 이렇게 우대해?!” “개소릴 작작 쳐!” 그들의 뒤에서는 아직도 포탄이 폭파굉음이 요란하고 화광이 충천했다. 바위돌과 조철호는 장교를 압송해 두 시간도 안 돼 연대 지휘소 풍막 안으로 돌아왔다. 성칠 연대장은 뒤에 기철이 안 보이자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기철 동무는?” 바위돌은 머리를 푹 떨어뜨렸다. “장렬하게 희생됐습니다.” 조철호는 장교를 발길로 차면서 통곡했다. “다 이 놈 탓입니다. 으흐흑.” 성칠 연대장은 남포등불빛을 빌어 장교를 쏘아보다가 걸상을 괴뢰군 포로에게 주었다. “앉아.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을 솔직히 대답해!” 허나 괴뢰군 장교는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난 당당한 괴뢰군 대대장이다. 빨갱이 놈들, 더 능욕하지 말고 어서 죽여라!” 성칠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우린 포로를 우대하네. 노실이 탄백하면 절대 죽이지 않아.” 그래도 장교는 머리를 홰홰 흔들었다. “네 놈은 이름이 뭐냐?” “이병수야.” “이병수?” 이상하게 성칠은 되물었다. “맞아. 난 한국 땅을 밟고 하늘을 떠인 사내대장부여. 절대 이름 안 속여.” 턱을 쳐들고 풍막천정을 쳐다보는 이병수를 보고 성칠은 코웃음을 쳤다. “네 고향은 어디냐?” “그 따위 물어 뭘 해?”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일본 수군을 족치던 한산 섬이야. 네 놈들은 아무리 발악해도 내 고향 한산섬까지 점령하진 못해. 아니, 한산 섬은커녕 서천군 한산면도 넘어가지 못해. 우리 슬기로운 한국군 백호부대는 미군과 함께 압록강에까지 쳐들어 갈 거야. 백골부대 장병들은 고향 함경도까지 쳐들어갈 거야. 이 놈들아, 내 입에서 한마디도 들으려니 말고 어서 한방에 죽여!” 성칠은 책상을 꽝 치며 고함쳤다. “주둥이를 다물지 못해! 여긴 담판석이 아니야. 우리 영용무쌍한 조선인민군은 부산을 치고 한삼 섬과 제주도까지 쳐나가 해방할 수 있다!” 이병수는 코웃음을 쳤다. 성칠은 장 꼬마와 바위돌을 돌아보더니 몽땅 나가라고 분부했다. 이젠 성칠은 이병수와 단둘이 풍막 안에 남았다. “고향은 한산, 이름은 뭐 이병수라 했느냐?” 성칠의 부드러워진 어조에 이병수는 이상한 눈길로 성칠을 쳐다보았다. “왜?” “무슨 이씨인가?” “불시에 남의 족보를 따져 뭐해?” “글쎄 알아볼 게 있어.” “난 한산 이씨야. 그 집도 이 씨인가? 이조 500년을 통치한 그 왕족 전주 이 씨인가?” “한산 이씨라?” 성칠은 중얼거리면서 이병수의 두부모 같이 네모진 얼굴과 부리부리한 눈을 훑어보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적스적 이병수한테 다가오더니 나직이 물었다. “혹시 네 고향 한산에서 이성군이나 이명호라는 사람을 아는가? 그 분들도 한산 이 씨라고 했는데.” “뭐라?” 이병수도 놀란 눈길로 성칠을 쳐다보았다. “당신 한산 이 씨지? 당신 누구여?” “아니야. 난 김 씨네.” “뭐라? 그럼 자넨 누구야?” “묻는 말이나 해라. 한산 이씨 이성군과 이명호라는 사람 아는가?” “몰라. 그 사람 찾아 뭘 해?” “네가 한 고향이라니 그래. 외삼촌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한산 섬까지 우리 군이 쳐들어간 것도 아닌데. 어디로 갔을까?” 성칠이 뒤지개를 짚고 거닐면서 나직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이병수도 일어났다. “금방 뭐라고 했어? 외삼촌을 찾는다고 했어?” 성칠은 머리를 들어 이병수를 바라보았다. “그래. 내 외삼촌을 20여 년 전에 보고 일본 놈들에게 쫓기다나니 다신 보지 못했네. 우리 군이 지난 여름 기세로 낙동강을 건넜더라면 한산 섬에까지 나가 외삼촌을 찾아봤겠는데 말이야.” “외삼촌이란 분이 이성군인가 베?” “그래, 내 외삼촌이야. 우리 엄마는 생전에 오라비와 조카 명호 그리고 손자 이병수와 이영수를 얼마나 외웠는지 모르네. 3.8선에 가로 막혀 찾지 못했어. 3.8선이 무너진 마당에 찾을 거 같아 그러는데. 난 자네가 이병수라고 하니 혹시나 해 그러네. 후- 한산에 계시지 않는다니 별 수 없군 그려.” 이병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점점 다가오니 불시에 무릎을 꿇고 풍덩 물앉았다. “이보시오. 이성군은 울 할아버지고 이명호는 아버지고요 이병수는 내라고요.” “아니, 네가 정말 이병수냐?” 성칠도 쭈그리고 앉으며 이병수를 와락 끌어안았다. “삼촌! 흑, 흑.” 병수도 성칠의 넓적한 잔등을 끌어안았다. 총을 맞대고 싸우던 적이라는 높고 두꺼운 장벽은 와그르르 무너지고 그 페허를 넘어 혈육의 피가 서로 합류했다. 장 꼬마는 풍막 문 귀를 슬며시 들고 그 장면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성칠도 눈치를 챘지만 그치지 않았다. “너를 이런 전쟁터에서 만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참 후 성칠은 두 손으로 병수의 양어깨를 쥐고 너부죽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장탄식했다. “엄마가 널 봤더라면 얼마나 반가와 했겠니?” 병수도 친 혈육의 정이 온 몸에 흘러넘쳐나는 감을 어찌할 수 없었다. “삼촌, 할머님의 막내손자 상순이라고 있었죠?” “그래, 그 앤 지금 간도 영월구 공안국 국장으로 됐어.” “오- 잘 됐구나. 승급하면 작은 삼촌이랑 잘 모시겠제이. 아들이 국장이면 작은 삼촌을 모셔다 호강시키겠제라. 지금쯤 농사도 짓지 않고 시가지에 모셔갔제이?” “넌 몰라.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대공무사하다. 직권을 빌어 농사꾼을 시내 공호로 고칠 수 없다. 상순은 아버지를 농촌에 모시고 있다.” 병수는 삼촌을 따라 일어나면서 도리머리 질 했다. “쯧쯧, 아버지도 온전히 모시지 못하면서 국장을 해 뭐 해요?” 성칠은 병수와 나란히 앉아 어깨를 끌어안고 나직이 물었다. “그래 외삼촌은 잘 계시냐?” 병수는 울먹울먹해 하며 목구멍에 뭣이 걸린 듯이 겨우 나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할아버지는 20여 년 전에 아버지와 나를 데리고 두 번째로 명천에 갔다가 할머니와 삼촌들이 간도에 가셨다는 말을 듣고 무너진 집터를 보고 대성통곡하였어요. 할아버진 내내 할머니캉 삼촌들을 외우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도 우리캉 언젠가는 38선이 무너지면 꼭 간도에 가서 할머니를 찾아보시라고 하셨어요. 흐흑, 흑흑흑.” 성칠도 코마루가 시큼해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그래 아버지는 무사히 계시냐?” “예. 아버진 항상 성칠 삼촌이 어떻게나 힘이 센지 곰도 부자간이 맨 주먹으로 때려잡은 적도 있다고 했어요. 아버진 또 고모부가 목수재간이 대단하고 힘도 대단해 명천바닥에 천하장사시었다고 하던데요. 할아버진 무고하셔요?” “응, 그래. 지금 마을 당 지부 서기에 촌장 일을 한다.” “그럼 할아버지도 빨갱이예요?” “그렇게 말하지 말라. 울 아버진 함흥촌의 촌장이자 서기야.” “빨갱이 해 뭘 해요? 부자를 털고 죽이고 빼앗아 나눠 가진다던데요. 빨갱이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을 밥 먹듯 한다던데요.” 성칠은 성난 눈길로 병수를 바라보았다. “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우린 가난한 사람들을 혹독하게 억압하고 착취하는 지주들을 청산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과 땅을 나눠 주었다. 이 세상에서 압박과 착취가 없이 모든 사람이 다 자기 밭에서 일하고 똑 같이 나눠 먹으면서 모두 행복하게 사는 새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이상이다.” “아, 그래요. 참 좋은 일하누먼. 우리 한국에도 남로당이 거느린 빨찌산들이 그런 세상 만든다고 지리산에서 싸운다던데요. 되겠어요?” 병수는 머리를 홰홰 내저었다. “너도 남조선에 있는 조선인민군이 영도하는 빨찌산에 들어라.” “글잖아도 동생 영수가 남로당인가 뭔가 하는데 들어서 지금 지리산 일대에서 싸우고 있제이. 이게 무슨 꼴이지? 형제간에. 난 빨갱이들캉, 아니, 공산군과 싸우는데 그 자식은 빨갱이들캉, 아니, 유격대에 들어 우리 한국 국군 뒤통수를 치고 있잖노?” 성칠은 병수의 귀에 말이 잘 들어가지 않을 걸 알고 그쯤하고 화제를 돌렸다. “넌 그래 어떻게 돼 입대했냐? 아버지를 도와 물고기를 잡지 않고.” 병수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물고기 잡이도 어선이 있어야 하죠. 파도가 어찌나 센지 쪽배를 가지고 무슨 고기를 잡아요? 그런데다가 전쟁이 일어나 인민군이 부산까지 거의 쳐들어온다니까. 나는 동생과 함께 유격대를 따라 지리산에 들어가려고 했어요. 그때 용천 연대장이 군대 모집하러 부산으로부터 우리 고장까지 배를 타고 건너오지 않았겠어요? 뭐, 빨갱이군은 남한 사람들을 몰살시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한국군에 붙잡혀 강박으로 한국군에 입대했지요.” “가만, 뭐? 용천이?” “알아요?” 병수는 성칠을 흘끔 쳐다보다가 무릎을 탁 쳤다. “맞아. 거 김용천 연대장은 광복 전에 간도에서 유격대 대장이었다지? 혹시 알아요?” 성칠은 자기 귀를 의심하며 도리머리 질 했다. “혹시 고향이 경주라더냐?” “예, 맞아요. 고향이 경주라던데요.”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 보통 미군과 한국군은 낮에 싸우기 좋아하는데 이상하다 했지. 괴뢰군이 야전에 능하다니. 쳇." 성칠은 병수에게 나직이 “이제부터 삼촌, 조카란 말을 하지 말자.” 라고 했다. “왜?” “묻는 말만 대답해라.” “쳇.” 전쟁 말이 나오자 그들 사이에는 냉전의 분위기가 혈육의 정을 서서히 갈라놓으려고 아득바득 기를 쓰고 있었다.                                         3. 형제   풍막 안은 다시 화약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성칠과 병수 숙질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번개가 번쩍이고 들리지 않는 우레가 울렸다. “장 꼬마, 물!” “옛!” 장꼬마가 부랴부랴 달려 들어와 컵에 냉수를 부어 주었다. “말해! 너희들 부대는 어느 소속인가?” 성칠은 냉수를 마시면서 을러멨다. “우리 천하무적의 백호부대는 미군 인천등륙의 기세를 몰아 이제 무명고지를 깔아뭉개고 두만강과 압록강에까지 쳐들어갈 거야.” “포로 된 주제에 큰 소리를 땅땅 쳐? 흥!” 성칠 연대장은 참다못해 컵의 물을 병수의 낯에 탁 쳤다. 금방 친 혈육의 정으로 화기애애하던 풍막 안 같지 않았다.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으면 총살해 버리겠어!” 성칠 연대장은 권총을 뽑아 절컥 격발 기를 당겨 책상 우에 탕 놓더니 세 귀 눈으로 병수를 쏘아보았다. “말해! 저 아래 들판에 병력이 얼마 있어?” 그제야 병수는 머리를 숙이었다. “한개 사단.” “무명고지 아래에는?” “한개 연대.” “연대장 이름 뭐야?” “한선주 연대장인데요.” “한선주?” “예.” 성칠은 자기 귀를 의심하며 다시 물었다. “한철주 아니고?” “아니. 우리 한철주 부사단장은 한선주 연대장의 히아(형)인데요.” “뭣이? 한철주가 부사단장이야?” “예.” 성칠 연대장은 또다시 자기 귀를 의심했다. “장 꼬마, 바위돌 소대장과 권 대대장을 불러 오라.” “옛!” 장 꼬마가 뛰어나갔다. 이윽고 바위돌 소대장과 권칠백 대대장이 급히 들어왔다. “통신원!” 장 꼬마가 뛰어 들어왔다. “통신원은 희생됐습니다.” “아, 그랬지.” 성칠은 장꼬마의 귀에 대고 나직이 “인삼 참모장과 최 대대장도 데려오오.”라고 했다. “옛!” 이윽고 인삼과 최동욱 대대장이 풍막 안에 들어왔다. 성칠은 그들을 손짓해 옆에 앉게 한 후 심문을 계속했다. “한철주 부사단장은 혹시 간도로 들어간 적이 없는가?” “있어요.” 이병수는 이상해 눈초리마저 치뜨며 성칠 연대장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걸 알아요?” “알고말고. 그 놈은 일제 개다리 부연대장이었어.” 인삼과 동욱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었다. “장관은 혹시 항일 유격대 대장 출신인가요?” “묻는 말이나 대답해. 너희들 부대에는 또 간도에 갔던 장교가 없는가?” “있제이. 북만 항일 유격대 대장 출신 연대장도 있는지라.” “이름이 뭐야?” “무명고지의 김용천 연대장인제라.” “뭐라고?” 성칠 대장은 놀라 걸상에서 일어나며 칠백을 건너다보았다. “다시 말해! 누군가?” 칠백은 펄쩍 뛰어 일어나 병수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말해! 연대장이 누구야?!” “김용천 연대장이여.” 병수는 손을 들어 멱살을 틀어쥔 칠백의 손을 풀며 눈을 흘기었다. “빨갱이 놈 새끼들, 걸게 우리 한철주 부사단장이 빨갱이라면 쌍불을 켰제이. 흥!” 성칠 연대장은 장꼬마가 떠주는 냉수를 받아 꿀꺽꿀꺽 굽을 냈다. “산 아래에 미군은 없는가?” “서남쪽으로 한 십리 가면 탱크부대 있제이.” “이 놈을 끌어 내가!” “죽이는 기여?” 병수는 겁기 띤 눈길로 성칠을 되돌아보았다. 허나 성칠 연대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머리를 숙인 채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뒤에서 칠백이가 병수를 잡아먹을 상하며 씩씩거렸다. 바깥에서 번개가 번쩍 하더니 집안까지 환하게 비추었다. 꽈르릉 꽝꽝! 우레 소리가 풍막을 날려 보낼 듯이 울렸다. 성칠은 풍막 천을 들고 때 아닌 가을에 소낙비가 쏟아지는 을씨년스러운 바깥을 내다보았다. 어느덧 대줄기 같은 소낙비가 쏟아지는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오고 있었다. 산줄기들이 소낙비 속에서 윤곽을 천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소나무가 우거진 산골짜기를 마주한 산비탈의 게딱지같은 초가집들이 천천히 어둠을 벗어버리며 어슴푸레 초라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초가집들에 성칠의 부하들이 곤하게 자고 있었던 것이다. 성칠은 인삼 참모장을 돌아다보았다. “그 놈들이 별스레 우리 전술을 알고 야밤작전을 한다 했더니. 원래 한철주 놈과 용천 대장이구먼.” 그러자 인삼 참모장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정말, 양키 놈들과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일전쟁시기 전우와 싸워야 한단 말이오? 그것도 한 전호 속에서 어깨 겯고 일본 놈들과 싸우던 용천 대장과 말이오.” 칠백은 머리를 점점 더 숙이면서 씩씩거렸다. 이윽고 머리를 번쩍 들더니 주먹을 휘둘러대며 고함쳤다. “우리 군인은 특수 재료로 만들어진 강철전사들이오!  최전선에 나가면 용천 형님부터 죽여치우겠다! 씹할!”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용천보다도 친일 주구 한철주 형제가  더 문제오. 한철주 놈을 백두산에서 처단하지 못했는데 잘 됐소.” “우리 보다 세배나 더 되는 놈들 속에 들어박힌 한철주 놈을 어떻게 잡아치우겠소?” 인삼 참모장이 한숨을 후 내쉬었다. 성칠은 인삼 참모장에게 나직이 뭐라고 귀속 말을 했다. “양~ 거 참, 묘하오. 헌데 그 자가 말을 듣겠소?” 인삼의 말에 성칠은 풍막 안을 뚜벅뚜벅 거닐었다. “수는 쓰기에 가지. 한번 저 놈과 용천 대장을 믿어 보기요.” “그렇게 해보지. 전쟁판에서 잃어졌던 용천 형을 만나다니. 참, …”  성미 급한 칠백은 주먹으로 손바닥을 툭툭 치며 장막 안을 거닐었다. “새 날이 밝아오는구먼. 눈을 잠간 붙이기요.” 동욱이 곤해 하품을 하며 잠기에 푹 퍼진 소리를 할 때다. 땅! 따르륵 땅땅! “뭐요?!” 바깥에서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리었다. “보고!” “웬 총소린가!” 장 꼬마가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적들이 포위했습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뭐라고?!” 성칠의 이마에 지렁이 같은 퍼런 정맥이 살아났다. “칠백은 한 개 중대 병력으로 엄호하라! 나머지 병력은 즉시 포위를 돌파하라!” “옛!” 성칠은 칠백의 어깨를 두드렸다. “5리 밖의 508고지에서 만나자!” “옛!” 칠백은 성칠에게 군례를 척 붙였다. 그는 풍막을 홱 젖히고 권총을 빼들더니 풍막 밖에서 기다리던 경위원과 함께 자기 대대 쪽으로 절벅절벅 뛰어갔다. 성칠은 소낙비 속으로 사라지는 칠백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장 꼬마한테 머리를 홱 돌렸다. “당장 포로를 데려오라!” “옛!” 장꼬마가 나가자 성칠은 인삼 참모장과 동욱 대대장을 돌아보았다. “먼저 포위를 돌파하고 508고지로 가오.” “김 연대장은?” “포로에게 특수임무를 주겠소.” “그 놈이 말을 듣겠소?” “괴뢰군 놈들에게 심리전을 써 보겠소. 빨리 포위를 돌파하오.” “양. 인차 따라 오오.” 성칠은 풍막 안에서 떠나가는 동욱과 인삼에게 머리를 끄덕였다. 이윽고 장 꼬마가 옆 풍막에서 병수를 데려왔다. 병수는 굳어졌던 네모진 얼굴을 느슨히 풀면서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지나가는 성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성칠은 장 꼬마를 나가라고 손짓했다. 장 꼬마가 나간 후 성칠은 부드러운 어조로 나직이 말했다. “널 놔줄 터이니 부탁하자.” “뭘?” 성칠은 동그래진 병수의 두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그 공포에 찬 눈에는 그윽한 혈육의 정이 엿보이었다. “한철주는 친일 주구야. 그 놈은 간도에서 일본군 부연대장을 한 악질 친일주구야. 용천과 말해 그 놈들을 처단할 수 없겠니?” 병수는 간절한 눈빛을 뿌리는 성칠의 눈길을 피해 발끝에 눈길을 떨어뜨렸다. “정신 나갔어? 삼촌, 한철주는 우리 부사단장인데요.” “그 놈은 네 큰어머니를 살해한 원수야.” “진짜?” 성칠은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래, 눈 덮인 백두산 밀림에서 그 놈이 쏜 기관총 흉탄에 네 큰어머니가 살해됐어. 큰어머닌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처참하게 희생됐어. 그 놈을 죽여라.” 따르륵 따르륵 풍막에 구멍이 펑펑 뚫렸다. “적들이 코앞까지 왔습니다!” 장 꼬마가 풍막을 젖히고 내다보다가 황급히 소리쳤다. 허나 성칠은 아주 태연자약하게 책상 안에서 미제 모젤권총을 꺼내 병수에게 돌려주었다. “부탁이다! 빨리 우리한테 헛총질을 하면서 뛰어나가라.” 병수는 좋아라고 권총을 받아 쥐고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서라! 서!” 성칠은 뒤따라 나가면서 공중에 헛총을 쏘았다. 병수는 억수로 쏟아지는 대줄기 같은 소낙비 속으로 달아나면서 풍막 쪽 허공에 대고 총을 쏘았다. 이윽고 그는 소나무 밭에 뛰어 들어가 소낙비 속에 몸을 숨겼다. 성칠은 장 꼬마의 엄호를 받으며 풍막 뒤로 빠져 나가 산골짜기에 뛰어 들었다. 병수와 한국 괴뢰군은 사격하며 왝왝 고함쳤다. 한편 야습을 당한 한국 괴뢰군은 한철주 부사단장의 명령에 따라 용천 연대장과 한선주 연대장의 영솔 밑에 새벽의 어둠을 타 불시에 기습했던 것이다. 용천 연대장은 연대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풍막에 수류탄을 뿌려라!” 병수와 병사들은 풍막에 수류탄을 연신 뿌렸다. 꽝! 꽈르릉 꽝! 풍막이 하늘로 날아났다. 풍막 천 조각이 허리가 잘린 소나무 숲속에 떨어졌다. 풍막자리에는 널판자가 어지러이 널려 있을 뿐 시체 하나 없었다. 이때 산등성이에서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었다. “원수놈들에게 복수의 불벼락을 안겨라!” 한패의 영용무쌍한 조선인민군이 산등성이 바위 뒤에 숨어 이쪽에 맹렬히 사격하는 것이었다. 빗발 속에 섬광이 번쩍였다. “돌격!” 용천 연대장은 소나무 뒤에 숨어 권총으로 산꼭대기에 대고 휘둘렀다. 한국군 장병들은 산꼭대기를 향해 소낙비 속에서 용감히 진공했다. 땅, 땅! 총알이 저승사자와마냥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날아왔다. 푱!푱! 용천이 몸을 기댄 소나무에 총알이 꼽히며 소나무껍질이 마구 튕겼다. 그가 대줄기 같은 소낙비 속을 꿰뚫고 여겨보니 숱한 병사들이 산꼭대기에 올라가다가 맹렬한 사격에 삼대 쓰러지듯 했다. 그는 주먹으로 소나무를 꽝꽝 쳐댔다. “한개 대대가 한 개 중대 빨갱이 놈들을 못 이겨!” 그는 뒤에 대고 고함쳤다. “1대대 철퇴!” 용천 연대장은 병수 대대장을 돌아보면서 명령했다. “2대대 진공!” “옛!” 병수 대대장이 장병들을 영솔해 산마루로 돌격해 올라갔다. 허나 한 개 중대가 엄호하는 새에 성칠의 대부대는 몽땅 포위를 돌파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소낙비가 쏟아지는 소나무숲 속으로 묘연하게 사라졌다. 철거해 내려오는 1대대 부상병들을 보며 용천은 욕설을 퍼부었다. “흥! 무골충 같은 놈 새끼들!” 대대장은 용천 연대장 앞에 와서 뒷머리를 긁적거리었다. “원체 저 놈들이 항전 때부터 큰 전장을 쏘다니던 놈들이라…” “개소릴 작작 쳐! 뒤나 잘 엄호해!” “옛!” 1대대 패잔병들은 산비탈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산마루를 향해 맹사격을 했다. 따르륵 따르륵 용천 연대장은 산마루 쪽으로 뛰어 나가며 고함쳤다. “박격포 사격!” 쿵! 쿵! 씩- 씩- 꽝꽝! 꽈르릉 꽝꽝! 맹렬한 박격포사격과 기관총소사에 산마루의 사격하는 총소리가 드물어졌다. 산마루에서 피에 물든 뻘건 빗물이 좔좔 흘러내렸다. “돌격!” 용천 연대장은 고함치며 자기도 경호원과 함께 산마루로 진격해 올라갔다. 허나 산마루에서는 총소리가 잠잠했다. 칠백 대대장이 영솔해 엄호하던 최동훈 중대는 탄알과 수류탄이 떨어졌던 것이다. 용천이 권총을 산쪽으로 홱 휘두르며 고함쳤다. “공산군 놈들 탄알이 떨어졌어! 총공격!” “빨갱이들을 사로잡아라!” 그때다. 소낙비가 쏟아지는 산마루에 시퍼런 총창들이 삐쭉 삐죽 나타났다. “용사들! 돌격!” 꺽다리 칠백이 제일 먼저 뛰어 내려오면서 괴뢰군 병사 몇을 연신 찔러 넘겼다. 산마루에서 숱한 서슬 푸른 총창들이 덮쳐 내려오면서  괴뢰군과 일당백의 기세로 육박전을 벌렸다. 임호 중대장은 날창으로 벌써 두 놈이나 찔러눕혔다. 날창이 적의 갈비대에 걸려 뽑히지 않자 활 버리고 맨 주먹과 머리로 적들을 치고 박으며 박투했다. 그는 호랑이처럼 날뛰며 날아드는 날창을 비껴 받아안고 휘둘러 괴뢰군 놈을 쓰러뜨리고 무쇠주먹을 안겼다. 어떤 전사들은 총깨묵이 부서지자 공병삽으로 괴뢰군의 목을 쳤다.  소낙비가 쏟아지는 산비탈에서는 “싸(죽여라)!” “싸(죽여라)!” 고함소리와 아우성소리, 비명소리, 신음소리가 처량하게 들리었다. 한국 괴뢰군은 총을 쏠 새 없이 총창과 공병삽에 찔려 쓰러졌다. 간혹 괴뢰군 병사들이 쏜 총에 인민군 전사들이 총창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가슴을 붙안고 쓰러지기도 했다. 괴뢰군은 점차 인민군의 기세에 눌려 산 아래로 밀려 내려왔다. “제길!” 용천 연대장은 권총으로 코앞에까지 돌격해 내려온 인민군 병사를 쏘아 눕혔다. “돌격!” 용천 연대장은 쓰러진 인민군 전사의 손에서 총창을 주어들고 제일 앞에서 연신 숱한 국군을 찌르며 짓쳐 내려오는 그 꺽다리 군관을 쏘아보며 덮쳐나갔다. 조선인민군 꺽다리군관 칠백이 용천 연대장 앞에서 뒤로 물러서는 1대대 대대장을 푹 찔러 눕히고 발로 시체를 차며 총창을 빼냈다. 순간,  용천 연대장이 총창으로 꺽다리 옆구리를 푹 찔렀다. 허나 그 꺽다리 군관은 재빨리 옆구리를 탈아 용천의 총창을 피하며 총창으로 용천을 찔렀다. 용천이 총창으로 찔러 들어오는 총창을 탁 쳤다. 쟁강! 총창과 총창이 마주쳐 불찌가 튕기며 무서운 저승사자 쇠소리를 냈다. "개새끼, 죽어 봐!' 꺽다리가 용천을 찔렀다. 용천이 비껴쳤다. 허나 날창은 허벅다리를 빗찔러나갔다. 용천도 꺽다리를 푹 찔렀다. 꺽다리 날창으로 올리 쳤다. 허나 창끝이 꺽다리 가슴을 빗 찔렀다. “아차!” “이거 누구야?!” 갑자기 서로 이를 악문 상대방 낯을 쳐다보는 순간 총창 질을 멈췄다. “칠백아!” “용천 히야(형님)!” 그 틈에 용천의 경호원이 권총을 휘둘러 칠백을 쏘았다.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칠백은 가슴에 흉탄을 맞고 총창을 진창에 툭 떨어뜨렸다. “닥쳐!” 땅! 땅! 뒤따라온 한철주도 총을 쏘았다. 칠백은 가슴을 붙안고 빙그르 몸을 비틀더니 밑 둥이 잘린 썩박나무 넘어가듯 풀썩 쓰러졌다. 한철주가 다시 권총으로 쓰러진 칠백을 겨눌 때다. “관둬!” 용천은 총창으로 한철주와 경호원의 권총을 탁탁 쳤다. 그는 다급히 물앉으며 칠백을 끌어안았다. “아우야! 이게 어쩐 일이여?” 한철주와 경호원은 눈이 휘 동그래져 권총을 쥐고 비실비실 뒷걸음질 치다가 총창을 꼬나들고 덮쳐드는 다른 인민군 전사를 쏘았다. 칠백의 가슴에서 선지피가 쿨쿨 솟구쳐 뻘건 빗물과 함께 땅바닥을 뻘겋게 물들이며 흘렀다. “형, 형님, 쿨룩, 진, 진달래캉 경, 경주는 함흥 촌에 갔소.” “칠백아!” 칠백은 감겨지는 실눈을 겨우 뜨고 손으로 자기 뒤를 가리키었다. “성, 성칠캉 재혼했어. 저, 저 뒤에 성칠이…” “아우야! 칠백아!” 용천은 칠백을 끌어안고 흔들며 대성통곡 쳤다. 허나 칠백은 빗물이 흐르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눈을 스르르 감았다. 다시는 형님의 피타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아, 아니야. 아우야!” 용천은 칠백을 끌어안고 풍덩 물앉아 얼굴에 얼굴을 미친 듯이 비벼댔다. 한참 후 경호원이 저벅저벅 진창을 밟으며 옆에 다가와 머리를 숙였다. “연대장! 고지를 점령했어요.” “뭐라고?! 이 놈, 네 놈이 하나 밖에 없는 내 사촌동생을 죽였어.” 용천은 칠백을 천천히 내려놓고 경호원을 노려보며 권총을 뽑아들었다. “미쳤어?!” 한철주가 용천의 손목을 꽉 틀어쥐더니 권총을 빼앗아냈다. 용천이 머리를 돌려 한철주 부사단장을 노려보았다. “이 친일 주구 놈아, 네깐 놈이 내 사촌동생을 죽여?!” 한철주는 우멍한 눈을 부릅뜨더니 싹은 이발을 사려 물었다. “자네 경호원이 먼저 쐈어! 아직도 빨갱이를 붙안고 있어? 빨리 적군을 추격해야지. 명령을 어기면 군법으로 처단할 테야!” 용천은 주먹으로 한철주의 면상을 한 대 갈겼다. “친일주구 놈아, 내 네놈 동생을 쏴 죽여도 이럴 끼여?!” “네 놈이 감히 상관에게 주먹을 휘둘러? 총살해 버리겠어!” 한철주는 이를 악물며 권총을 빼들었다. 땅!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한철주가 왼팔을 붙안고 풀썩 꿇어앉았다. 소나무숲 속에서 병수가 쏜 총탄이었다. 땅! 땅! 경호원들이 소나무숲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병수가 인민군 전사의 시체에 총을 쏜 후 교묘하게 둘러댔다. “이 놈이 한 사단장을 쏘았네.” 경호원들은 인민군 전사의 시체에 대고 총을 몇 방 더 쏘았다. 병수와 경호원들이 소나무 숲 속에서 나오자 한철주는 오만상을 찡그리었다. “병수 대대장이 아니었더라면 죽을 번했군!” 병수는 용천 연대장한테 곁눈질하더니 한숨을 후 내쉬었다.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져 앞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발 밑에서는 괴뢰군과 조선인민군 장병들의 피로 뻘겋게 물든 빗물이 산비탈을 타고 요란하게 흘러 내려갔다. 가을장마 도깨비가 여울 건너는 소리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명고지로 철퇴!” 한철주는 을씨년스런 날씨에 더 싸우기 싫었다. 한시급히 시가지에 있는 옥설이네 기생방에 가 비단처럼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기생들의 속살에 풍덩 빠지고 싶었다. 한선주는 의아해 한철주의 우묵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형님, 왜 철퇴해? 이 기세 몰아쳐 진군하지 않고.”  한철주는 소나무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으시댔다. “넌 몰라. 빨갱이들은 유격전에 능해. 쩍 하면 유인술과 매복습격 전 해 뒤통수를 쳐. 이전에 백두산에서 저 놈들의 그 유인술과 매복습견전에 걸려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번했어. 조선인민군 한 개 중대를 전멸시켰으니 승전고를 울리면서 개선할 만도 해.” 그제야 선주 연대장은 머리를 끄덕이며 부대를 이끌고 따라 나섰다. 용천은 휘몰아치는 빗발 속에 싸늘하게 식어가는 칠백의 시체를 꼭 끌어안은 채 물앉아 엉엉 대성통곡치며 엉덩이를 뗄 염을 하지 않았다. “저 놈을 끌고 가자!” 한철주의 경호원들이 우르르 쓸어와 용천의 양팔을 억지로 껴들고 마구 끌어갔다. “칠백아! 너한테 죽을 죄를 졌구나. 흑흑. 흑흑.” 용천은 끌려가면서도 빗물 속에 쓰러진 칠백이 쪽에 대고 팔을 휘두르면서 흐느끼며 대성통곡쳤다. "칠백아! 칠백아!" 먹장구름이 가을바람에 동남쪽으로 밀려가더니 빗발이 점점 가늘어졌다. 괴뢰군은 철갑모를 번뜩이며 무명고지로 후퇴했다.
110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73) 댓글:  조회:1558  추천:3  2017-07-11
                                                                                                                                    민심 오뉴월의 비는 소잔등을 다툰다고 이쪽 산기슭에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맞은 켠 산마루에는 해빛이 비쳤다.  날씨도 변덕스러웠다. 해가 바짝 뜨고 불볕이 쏟아지다가도 먹장구름이 뒤덮이면서 변덕을 부렸다. 대지는 하늘이 부리는 풍운조화에 따라 변덕스럽게 변해갔다. 농사철이 되자 용구와 영호를 비롯한 공안일군들은 대가리를 쳐드는 당지 지주들이 없어 할 일도 크게 없자 자연히 집 농사를 근심하게 되었다. 농민의 아들인 상순도 저도 몰래 함흥 촌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러나 그는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이기에 공안국 새 지도부가 결정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 농사일을 도와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상순은 영호와 용구를 비롯한 일부 공안일군들에게 청가를 주어 집으로 돌아가 농사일을 도와주게 했다. 어느 날, 현 당위 조직부 이계삼 부장과 상급 공안국 부국장 손철구가 영월구공안국 국장과 부국장 후보를 고찰하러 내려 왔다. 그들은 영월구 당위에 먼저 들려 허백호 서기를 만났다. 허백호 서기는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에서 거둔 성적을 충분히 긍정했다. 그는 특히 공안국 준비소조에서 영월구 당위의 영도아래 국민당 반동파 잔여세력과 악질지주 자위대를 숙청했다는 점을 강조해 지적했다. 이계삼은 상순이 사업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둔 것을 보고 아주 기뻐했다. 상순은 그가 소개인을 서서 입당시킨 농촌의 청년간부 출신이었다. 그런데 허 서기의 뒷말을 듣고 이계삼 부장은 인차 흐뭇한 미소를 짓던 얼굴에 그늘이 지나갔다. “김상순 동문 독단독행하고 안하무인입니다. 조직 관념이 차하고 영도를 존중하지 않는 악습을 고치지 않았습니다.” 이계삼은 허 서기가 헐뜯는 말을 듣다못해 물었다. “구체적으로 실례를 들어 말하십시오.” 허 서기는 열이 후끈 올랐다. “조장이 뭐 대단합니까? 큰 관직이나 얻은 것처럼 우쭐해서 공안일군들을 모집할 때도 근본 우리 영월구 당위에 청시하지도 않고 자기 눈에 드는 사람만 뽑았단 말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우리 영월구 당위에 한마디 말도 없이 제 마음대로 과장 넷이나 임명하고 숱한 파출소 소장들까지 임명했단 말입니다." 허백호는 사심없이 말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사촌동생 허영호를 진수해파출소 소장으로 임명한 일까지 꼬쟁이에 꿰들었다. "허영호는 내 사촌동생이 돼서 내 잘 압니다. 그는 소학교 문도 나오지 못한 농사군입니다. 그런데 허영호를 일약 파출소 소장으로 임명하다니? 쳇, 이게 어디 조직 관념이 있는 사람입니까? 전번에 내 가서 비평하니 근본 접수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이런 동무를 뭘 보고 우리 영월구 공안국에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상급 공안국 손철구 부국장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우린 오늘 상순 동무를 공안국 국장 후보로 선정하고 지방 당위와 공안일군 가운데서 민의측험을 하고 진일보 조사하자고 왔습니다. 그런데 상순 동무가 지방 당위 반영이 좋지 않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계삼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상순 동무는 총명하고 한어를 잘하고 사업에서도 훌륭한 성적을 따낸 훌륭한 공안간부입니다. 그런데 허서기 반영을 들은 후 잘 믿어지지 않을 정도구만. 호되게 비평해야지.” 허 서기는 한입 더 물어댔다. “말도 마십시오. 여기로 온지 반년이 넘도록 공안국을 세우지도 못했습니다. 전번에 국민당 자위대 숙청전투 총화보고자료를 쓰라고 하니 질질 끌면서 쓰지도 못하였습니다. 박성우 동무가 와서 써서야 상급 당위와 공안국에 회보할 수 있었습니다.” 상급 공안국 손철구 부국장은 한마디 께끼었다. “난 그래도 상순 동무가 쓴 겐가 했더니. 성우 동무는 일본 유학생이더구먼. 한어에 일어, 영어까지 안다더구먼.” 그러자 허 서기는 스리슬쩍 성우를 치켜세웠다. “성우 동무는 지식도 많고 조직 관념도 강하고 영도재능이 있는 동무입니다. 아예 성우 동무를 공안국 국장으로 임명하는 게 낫습니다. 난 상순 동무를 국장으로 임명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문화지식도 겨우 고급소학교 수준입니다.” 이계삼은 듣다못해 차마 더 들을 수 없었다. “허 서기도 소학교문을 겨우 나왔지만 구 당위 서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공안국 치안사업도 지식이 필요하지만 더욱이 정치사상과 지식, 군사재능 등 종합자질이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문무가 겸비돼야 합니다. 하지만 공안국 사업을 잘 하려면 문과 무에서 무예가 더욱 중요합니다. 상순 동무는 공안국 치안사업을 하기 맞춤한 동무라고 보오.” 그쯤 되자 허백호 서기도 더는 헐뜯지 못했다. 허나 이계삼 부장은 더 무서운 말뚝을 꽝 박아 놓았다. “기실 당무 공작은 무예보다도 문필이 더 중요합니다. 지식수준이 더 높아야 한단 말입니다. 아예 성우동무를 영월구 당위에 배치하면 어떻습니까?” 허 서기는 감히 조개턱을 더 널어놓지 못했다. "물론 상순 동무에겐 결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해놓은 사업성과는 착오보다 얼마나 더 크오. 상순동무는 주덕해 동지가 이름 찍어 영월구에 보낸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이오. 이번에도 주덕해 동지는 김상순동무를 영월구 공안국 국장으로 임명하라고 우릴 보냈소." 이계삼 부장은 경고하듯이 말했다. " 허백호 동무는 명심하오. 동무는 삼도만토비숙청 때도 부대를 토비들 사격망에 주둔하게 해 통신원이랑 민주련군 전사들이 희생되게 했소. 그때 김상순 패장이 제때에 최퇀장한테 보고해 안전지대에 전이시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겠소? 동문 최퇀장과 한 고향 사람이기에 민주련군에 가자마자 련장이 되지 않았소?  동문 군사상 무능하기로 짝이 없었소. 정치상에선 동지들과 단합을 잘 하지 못하고 사람잡이만 한단 말이오. 지금도 상순동무를 내리까는데 눈이 씨뻘개 달아다닌단 말이오. 내 말해두지. 계속 이러다간 동무는 영월구위 서기를 못할줄 아오. 안보촌에 내려가 촌서기나 할 준비를 하오. 동무에겐 촌서기도 과분하오.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은 절대 영월구당위 서기 수하가 아니오. 동무는 조직관념이 있소? 없소?" 허백호는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며 머리도 들지 못했다. "지금 전시 군관제를 실시하기에 현공안국 준비소조 조장, 장차 국장은 영월구 당위 서기보다 한급 더 높다는 걸 명심하오."  "예, 잘못했습니다." "내 료해에 의하면, 그래도 상순 동무는 지방당조직과 관계를 잘 처리하기 위해 매사에 허백호 동무와 토론하고 회보하면서 사업했다는 걸 아오. 그런데 동문 민주련군에서 련장질 하면서 기관총반장을 다루듯 상순 동무를 쥐고 흔들려고 했단 말이오. 기실 민주련군에서 상순동무는 허동무와 동급인 지도원을 하지 않았소. 후에 영장임명장까지 내렸댔소. 그러기에 허백호동무 상관이라고 할 수도 있소. 그만큼 상순동무는 국장 자격이 당당한 동무요. 최퇀장이  웬간하면  동무를 두고 상순동무를 영장으로 제발시켰겠소?"  "정말 잘못했습니다." "그저 잘못했다고 해선 안되오. 서면으로 조직에 검사서를 써서 바치오." 허백호는 천천히 머리를 들어 뱁새눈으로 이부장을 흘끔 곁눈질해보며 입안소리를 했다. "예, 꼭 잘못을 고치겠습니다." 이계삼 부장은  일어나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현당위에서는 허백호동무에게 당내 엄중경고처분을 주기로 결정했소. 이후에 착오를 잘 고치지 못하면 안보촌에 내려가게 될 줄 아오." 허백호는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이계삼과손철구는 허 서기가 한사코 상순을 내리까는 것이 이상하여 공안일군들을 찾아가 정황을 요해하기로 했다. 그런데 대부분 공안일군들이 농사일을 도와주려고 집으로 돌아가고 없고 사무실이 텅텅 비어 있었다. 손철구 부국장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정말 조직 관념이 없구먼. 지금 무슨 세월이라고 경각성이 없이 공안일군들을 농사일을 하러 집으로 보낸단 말이오? 이미 거둔 성적에 도취됐군!” 이계삼은 점심시간을 타서 상순을 조용한 곳으로 불러냈다. 그들은 시내를 좀 벗어나 사품 치며 흐르는 강물을 마주 하고 강가에 나란히 앉았다. “상순이, 아직 전국이 해방되지도 않았는데 공안일군들을 집으로 보내다니? 정신 있소? 동무네 주요 임무는 영월구 치안사업을 하는 것이지 농사를 짓는 게요?” 상순은 뒷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전번 숙청을 한 뒤 지주들이 별 다른 동태가 없기에 집에 가라고 청가를 주었습니다. 지금 보니 잘 못 됐습니다.” 이계삼은 상순의 팔을 잡아당기며 나직이 귀속 말을 했다. “어째 동무는 지방 당위 영도를 존중하지 않았소? 물론 전시 군관제라 허서기 한급 낮다고 해도 그렇지. 뭐나 지방 당위와 잘 토론하고 해나가오. 남을 존중해야 자기도 존중받을 수 있소. 그에게 자주 청시하오. 사업만 잘해 될 거 같소? 상하 영도와의 관계도 잘 처리해야 되오.” 상순은 이계삼 부장의 말은 다 들었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허 백호 서기가 원칙에 어긋나도 따라야 합니까? 난 절대 원칙을 떠나 그런 영도와 타협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말이오?” 이계삼은 눈초리를 치켰다. 상순은 강변의 조약돌을 쥐어 사품 치며 흐르는 강물에 힘껏 뿌리었다. 출렁! 상순은 조약돌에 맞아 튕겨나는 물 바래를 보더니 입당소개인을 만났는지라 속을 툭 털어놓았다. “허서기는 삼도만 토비숙청 때 일로 해 나한테 편견이 있습니다.  그때 내 영장을 했더라면 허서기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모를 겁니다. 저도 그래서 영장을 그만두고 지방에 돌아온 것도 있습니다. 허 서기는 그저 나를 내놓고 미워하고 내리깝니다. 여기에 온 후에도 처처에서 나를 꼬챙이에 꿰들고 나무랍니다.” 이계삼은 듣기만 했다. 상순은 입을 연바하고는 속이지 않고 다 말했다. “허 서기는 사업을 잘 하는가를 보지도 않고 자기한테 아부하는 사람을 간부로 써주려고 합니다. 동무들의 말에 의하면, 허 서기는 성우한테서 송이버섯이랑 술이랑 얻어먹고 국장을 시키려고 한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난 그런 원칙도 없고 조직 관념도 없는 서기를 존중할 수 없습니다.” 이계삼 부장은 상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상순이, 내 말을 명심하오. 낮은 문턱에 머리를 숙일줄도 알아야 하오. 그러잖으면 자기 머리 터지는 법이오. 또 참대처럼 꼿꼿한 것도 좋지만 끊어지기 쉽소. 버들처럼  경우를 봐서 홰친홰친 후러들줄도 알아야 하오. 그래야 대나무처럼 쉽게 끊어지질 않을 수 있소." "흥!" 상순은 이계삼의 말이라면 다 들었지만 이번만은 아니었다. "머리 터지고 목이 끊어지더라도 원칙을 지키지 않고 그런 사람들한테 머리를 수그릴 순 없습니다. 사람이 빚을 지고는 살아도 어찌 시비 지고 살 수 있습니까. " 이계삼은 원칙 앞에서 강직한 상순을 속으로 못내 탄복했다. 그러나 상순의 앞날이 근심스러웠다. "동문 정치사업을 하면서 오랜 세월이 흘러가면 내 말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거요," 그쯤 하고 이계삼은 하던 말에 되돌아갔다. "왜 허서기와 토론하지도 않고 과장과 파출소 소장들을 임명했소?” 상순은 세 귀 눈을 똑바로 뜨고 이계삼을 마주 보았다. “지금은 군관제시기입니다. 전시나 다름없는 시기이기에 우리 공안국은 독립적으로 간부를 모집하고 임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후에 허 서기한테 회보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건 동무 잘못이오. 아직 국장 임명장도 내려오지 않았는데. 아무리 전시라도 허서기하구 먼저 토론하고 임명했어야 하오.” 상순은 납득이 돼 하지 않았다. “그래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이 과장과 소장도 임명할 권리도 없습니까? 아무 권리도 없이 어떻게 공안국을 세웁니까?” 이계삼은 상순의 어깨를 다독였다. “상순이, 동문 아직 사업경험이 없어 그러오. 내 말을 듣소. 물론 긴급정황에서 공안국 준비소조장은 과장을 임명하고 공안일군을 독립적으로 모집할 수 있소. 그러나 공안국을 세우는 일도 조직적 절차를 거쳐야 하오. 우리 너무 늦은 것도 있소. 먼저 상급 공안기관과 당위에서 공안국 국장과 부국장을 임명한 후 공안국 국장과 부국장이 토론하고 지방 당위에 통보해 의견을 들은 후에 과장을 임명해야 하오.” 그제야 상순은 머리를 숙이었다. 한참 후에야 상순은 목구멍으로 기어드는 소리로 겨우 한마디 했다. “잘 못했습니다.” 이계삼은 상순을 타일렀다. “동무는 아주 훌륭한 지도간부 감이오. 군사재능도 있고. 그런데 허 서기와의 관계를 잘 처리 하지 못해 영향을 받을 거 같소. 물론 허백호 서기가 다 잘했다는 건 아니오. 그러나 우린 먼저 자기 잘못부터 고칠줄 알아야 하오. 이제라도 허 서기를 찾아가 관계를 개선하오. 하급영도라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하오. 동문 허영호를 소장으로 임명해 허백호 서기와 관계를 개선하려고 한 것 같은데. 그걸로만은 모자라오. 사업만 사업이라고 하지 말고 사람과의 관계도 잘 처리하고 공부도 게을리 하지 마오. 큰 짐을 메자면 소학교 지식수준으로 되겠소? 아무리 눈앞의 사업이 다망하더라도 문화지식 공부도 좀 하오.” “예, 명심하겠습니다.” 상순은 그렇게 대답해 놓고서도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이계삼 부장과 손철구 부국장은 공안국 사무실에 와서 공안일군들 속에서 의견청취를 하기 시작했다. 상순은 내키지 않았지만 이계삼 부장의 포치대로 허백호 서기를 찾아가 잘못을 검사했다. 손철구 부국장이 의견청취를 했다. 그는 먼저 호구를 관리하는 “과장” 만호를 불러 왔다. 이계삼은 국장 후보 고찰의 객관성을 기하려고 나서지 않고 손철구 부국장이 주도하여 고찰하게 했다. 손철구 부국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동무는 군정대학시절부터 김상순 동무와 박성우 동무와 동창생이니까 잘 알리라고 믿소. 동무 보건대 누가 영월구 공안국 국장과 부국장을 하면 좋을 거 같소?” 허만호도 구김 없이 뚝 찍어 말했다. “김상순 조장이 국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뜻밖의 대답에 손철구 부국장은 의아해졌다. “무엇 때문입니까?” 만호는 의자등받이에 잔등을 붙이며 자기를 여겨보는 손 부국장을 보았다. “공안국 치안사업을 지도하자면 무엇보다도 용감한 희생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전번에 국민당 자위대를 숙청할 때 상순 조장은 제일 위험한 오두막에 미끼로 들어가 매복해 적을 유인해 사로잡았습니다. 장단지에 총을 맞아 가지고도 계속 전투를 지휘해 장충국 연장 놈의 허벅다리를 쏘아 사로잡았습니다. 상순 조장은 다리를 상해 가지서도 허영호랑 데리고 눈 가슴에 자전거를 타고 안보 촌에까지 가서 직접 장부귀 놈을 체포했습니다. 모든 작전도 아주 세밀하게 짜서 전투를 승리에로 이끌어냈습니다. 이런 용감성과 희생정신이 없이 공안사업을 할 수 있습니까? 상순 조장처럼 이런 지휘능력이 없는 사람이야 어찌 공안일군들을 이끄는 국장으로 될 수 있겠습니까?” 손 부국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좋소. 성우 동무는 어떻소?” “우리 공안일군들은 입방아만 찧는 사람을 딱 질색입니다. 글을 잘 쓴다고 해서 공안사업을 잘 지도할 수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성우 동무는 군정대학 때 반장을 했지만 공안국 국장을 하기는 적합하지 않다고 봅니다. 군정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지식이 많으니까 반장도 할 수 있었겠지만 총을 가진 계급의 적들과 싸우는 공안전선에서는 성우 동무가 상순 조장보다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우 동무는 총도 온전히 쏘지 못합니다. 겨릅대처럼 약한데다가 낯이 새하얀게 딱 계집애 같습니다. 힘도 없어 적들과 격투하면 단매에 맞아 죽을 겁니다. 성우는 상순 조장 아래서 문서질이나 하면 합당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이계삼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허나 허 서기는 만호를 보고 눈을 흘기었다. 만호에 뒤이어 창남이 사무실에 불리어 들어 왔다. 손철구 부국장이 묻기 바쁘게 창남은 기관총을 쏘듯이 자기 견해를 쏟아 부었다. “우리 공안국 국장은 의례히 상순 조장이 해야 합니다. 그는 항일 전쟁 때부터 일본 놈들과 기관총으로 용감히 싸웠습니다. 토비숙청 때도 기관총반 반장으로부터 지도원까지 하면서 기관총패를 지휘해 숱한 적들을 소멸한 실전경험이 있습니다. 그때도 토비들 내부 기의를 일으키게 해 토비숙청에 공훈을 세웠습니다." "픽!" 허백호는 한쪽에서 어망간에 지뿌둥해 코방귀를 뀌었다. 이부장의 눈길이 가자 머리를 떨구며 혀로 입술을 감빨았다. 창남은 뒷말을 이었다.        "이번 국민당 자위대를 소탕할 때에도 뛰어난 지휘능력과 용감성을 보여 주었고 우리 영월구 치안사업을 위해 지워 버릴 수 없는 공훈을 세웠습니다. 상순 조장은 무예가 출중합니다. 사격하면 백발백중이고 격투, 씨름, 총창 찌르기 막히는데 없이 출중합니다. 전번 총화보고자료도 상숭 동무가 부른 걸 성우가 베껴낸 겁니다. 이런 종합능력이 있는 국장이 있어야 아래 공안일군들도 마음속으로 존중하고 따르고 지휘를 들을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영월구 치안사업도 잘 할 수 있습니다.” 허 서기는 속에 내키지 않아 마른기침을 했다. 손 부국장은 관건적인 대목을 물어 보기 시작했다. “동무 보건대 상순 동무는 그 밖에 무슨 우점이 있다고 보오?” 창남은 성미가 급한지라 묻기 바쁘게 대답했다. “상순 조장은 원칙을 지킵니다. 상급이든 하급이든 원칙에만 어긋나면 복종하지 않고 맞섭니다.” “구체 실례를 들 수 없소?” 허백호 서기는 바늘방석에 앉은듯하여 “어험.” 하고 마른기침을 했다. 창남은 후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바른 말을 했다. “사실 허 서기가 자기 사촌동생 허영호를 공안일군으로 모집하지 않았다고 야단칠 때입니다. 상순 조장은 무조건 복종한 게 아니라 원칙을 지켰습니다. 만호와 저를 데리고 집까지 찾아가 직접 공안일군 소질이 있나 고찰한 후 모집해 들여왔습니다.” “잠간.” 손 부국장이 손을 들더니 물었다. “어째 영호 동무를 처음에 모집하지 않았소?” “영호 동무는  키가 작고 약하더구먼요. 그래서 적들과 싸우는 공안사업을 하기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상순 조장은 허 서기 사촌이라고 무조건 봐준 것도 아닙니다. 후에 우리가 가 보고 영호는 씨름 2등을 한적이 있는데다 작은 덩치와는 달리 벼 마대를 양옆구리에 끼고 수레에 척척 싣는 것을 보고 공안일군으로 모집해 들여왔고 과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상순 조장은 원칙을 지켜 숱한 민병 연장과 패장들 속에서 군사훈련을 거치고 군사시험을 쳐서 공안일군을 모집했습니다. 정말 이렇게 원칙을 지키는 좋은 국장감은 없다고 봅니다.” 손 부국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이계삼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다음에는 허영호가 들어왔다. “동무 허영호오?” 손 부국장은 키가 작은 허영호를 보고 대뜸 짐작했다. “예, 그렇습니다.” “자, 앉소.” 손 부국장은 허백호 서기와 이계삼을 번갈아 보며 허영호에게 물었다. “영호 동무는 상순 조장을 어떻게 봅니까?” 이때 허백호 서기가 연신 “에헴, 에헴!” 마른기침을 깇었다. 영호는 허 서기를 흘끔 곁눈질하더니 입을 열었다. “김상순 조장은 지휘능력도 대단하고 무예도 뛰어나서 우리에게 사격과 권투, 총창 찌르기 지어 씨름까지 배워 주었습니다. 그러나 혼자 영웅인 척하면서 뭐나 잘 알아보지도 않고 마구 하는 건 나쁩니다.” “실례를 들어 말하오.” “내 키 작고 약하다고 업신여겨 공안일군으로 모집하지 않았습니다. 더 중요한 건 전번에 자위대 숙청할 때 그게 뭡니까? 목숨을 내걸고 총을 쥔 놈들과 싸우는데 대체 적들이 얼마나 되는지도 잘 알아보지 않고 전투를 지휘했습니다. 그는 혼자 오두막에 미끼로 들어가 매복해 있었는데 얼마나 위험했습니까? 자위대를 숙청하러 간 용구랑 얼마나 위험했습니까? 그게 혼자 영웅으로 되자는 게지 뭡니까?” 손 부국장과 이계삼은 마주 보며 희죽이 웃었다. 그러나 허백호 서기는 바늘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 못했다. (에이구, 어쩜 시키는 서방질도 못해? 내리깎는다는 게 되춰주고 말았어. 쯧쯧.) “동문 성우 동무를 어떻게 보오?” “에이고, 낯이 백지장 같은 선비가 어떻게 공안국장을 한다고 그럽니까? 상순 조장보다 형편없습니다. 아무리 먹물이 온 몸에 꽉 찼다고 해도 한해에 공안국에서 자료를 쓸 일이 몇 번 있다고 여자 같은 선비를 국장을 시킨다고 그럽니까?” 영호는 사촌형 허백호 서기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생각나는 대로 내쏘았다. 진짜 멈추지 못하는 기관총질이었다. “성우는 영월구 공안국에 와서 해 놓은 일도 없습니다. 한 식경 품을 들여 전번 회보자료를 쓴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저 허 서기는 국장을 시킨다고 하니 우리 뒤에서 죽은 소대가리 웃다가 꾸러미 터질 일이라고 웃었습니다. 전번에 상급 공안국에 보낸 자료도 기실 상순 조장이 줄줄 말한 내용을 성우 동무가 정리했을 뿐입니다. 성우가 국장이 되면 모두 말을 잘 듣지 않을 겁니다.” 허백호 서기는 도리머리를 홰홰 흔들며 문 밖으로 나가는 영호를 흘겨보았다. 그 다음 차례로 용구가 들어왔다. 그는 손 부국장이 묻기 바쁘게 목이 꽉 메어 말했다. “상순 조장은 우리 공안국 국장을 해야 합니다. 지휘능력도 강하고 용감하고 군사재능도 있습니다. 그 분은 실전경험도 있는 유능한 지휘자입니다. 그가 우리 영월구 공안국 국장을 하면 우리 영월구 치안사업은 당과 정부에서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손 부국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상순 조장의 우점이 또 있소?” “예, 많습니다. 그는 우리를 한 사람처럼 단결시켜 치안사업을 하게 했습니다. 례를 들면 성우 동무가 뭐 국장이 된다고 소문이 돌았지만 우리를 보고 누가 국장이 되든지 단결해 받들어 치안사업을 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를 보고 성우는 당교 때 자기에게 글을 배워준 선생이라면서 누구든지 성우 동무의 허물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얼마나 사심 없이 대공무사 합니까? 그는 또 군중들을 아주 관심합니다. 농번기가 되자 우리에게 허가를 주어 집에 돌아가 며칠씩 농사일도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누구 집에 고난이 있으면 상순 조장은 늘 도와주군 하였습니다. 그는 집이 가난해 소학교 대문에도 가보지 못한 것이 한이라면서 우리를 보고 일만 하지 말고 애써 공부를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얼마나 좋은 지도자라고 그, 그럽니까?” 용구는 팔소매로 눈물을 닦으면서 목이 메어 뒷말을 더 잇지 못했다. 이윽고 손철구 부국장은 “상순 동무의 결점은 뭐라고 보오?”라고 했다. 용구는 머리를 숙이고 생각하더니 “난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상순 조장은 이제 사업하면서 글공부만 좀 더 하면 훌륭한 국장으로 될 수 있다는 걸 믿습니다.” 손철구 부국장과 이계삼 부장, 허백호 서기가 30여명 공안일군들을 일일이 불러다 요해했다. 그들은 모두 상순은 훌륭한 간부라고 했다. 지어 박성우마저 상순을 훌륭한 국장 후보라고 하면서 후에 그를 잘 받들어 일하겠다고 했다. 민의조사가 끝나자 이계삼 부장과 손철구 부국장은 상순을 찾았다. “상순 동무 보건대 영월구 공안국에서 누가 국장을 하고 누가 부국장을 하면 좋겠소?” 손철구 부국장이 묻는 말에 상순은 망설이지도 않았다. “국장은 박성우 동무가 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부국장은 천용구 동무나 김창남 동무가 하면 좋고.” “허허허. 무엇 때문이오?” 손 국장은 이계삼과 눈을 맞추며 웃었다. “평화 년대에 공안국은 지식과 견식이 있는 국장이 영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허 서기가 성우 동무를 높이 평가하는 걸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허나 요즘 생각해보니 도리 있는 것 같습니다. 허나 한 점만은 짚고 넘어 가야겠습니다. 공안사업은 계급의 적들과 무력으로 싸워야 하는 특수사업입니다. 아무리 평화 년대라고 해도 맨 선비들로만 공안국을 채운다면 실제 공안사업에서 힘들게 됩니다. 때문에 천용구 동무와 김창남 두 동무를 부국장으로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용구 동무는 씨름 1등이고 용감하고 공안사업을 할 큰 재목감입니다. 전번 국민당 자위대 놈들을 숙청할 때도 아주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김창남 동무는 군정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글도 있고 무예가 뛰어납니다. 만약 박성우 반장과 김창남, 천용구 동무가 국장과 부국장을 한다면 문무가 겸비된 지도부로 구성돼 우리 현공안국 치안사업을 아주 잘 지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만약 부국장을 두 동무 더 둔다면 누구를 시키면 좋겠소?” 손 부국장의 물음에 상순은 머리를 숙이고 한참 궁리하더니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허영호를 시키면 됩니다. 이 동문 가정성분이 좋고 씨름재간도 있고 무예도 출중합니다…” “그만!” 손 부국장은 손사래를 쳐댔다. “상순 동무! 그게 공안사업을 책임져 하는 말이오? 허영호 동문 진수해파출소 소장으로 임명하지 않았소? 그리구 박성우 동문 지식이 있을뿐 무예가 안되고 영월구 공안국에 갓 와서 해놓은 일도 없지 않고 뭐요?” “?” 상순은 세귀눈을 키겨뜨며 손부국장과 이계삼 부장을 번갈아 보았다. 이계삼 부장은 손부국장에게 손사래를 치더니 상순에게 물었다. “그래 동무는 뭘 하면 좋을 거 같소?” “당 조직과 상급 공안국의 배치에 복종하겠습니다. 천용구 과장네 치안과에 가서 글공부를 하면서 백의종군하겠습니다.” 손 부국장은 걸상에 앉은 상순에게 다가와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연변전원공서 주덕해동지께서 무엇 때문에 동무를 영월구에 파견했겠소?” 손부국장은 얼굴에 얇은 웃음을 짓더니 금후의 요구를 제기해주었다. “동무는 영월구에 온 후 공안사업을 아주 잘 했소. 영도능력도 있고 정치이론과 공안실무 수준이 아주 높고 실전경험과 무예도 뛰어난 훌륭한 공안간부요. 후에 지방 당위의 영도를 존중하고 인간관계를 잘 처리하고 뭐나 사전에 전면적으로 조사한 뒤 지휘하고 문화지식 공부에 힘쓰오.” 상순은 일어나 군례를 척 올렸다. “예, 꼭 명심하겠습니다.” 뒤이어 손 부국장과 이계삼 부장은 성우도 찾아 담화하고 나중에 허백호 서기를 찾아 의견을 교환한 후 저녁이 다 돼서야 기차를 타고 돌아갔다. 기차가 칙칙폭폭 달려가며 뒤에 남겨둔 영월구 산골짜기에는 연분홍 낙조가 비끼기 시작했다.                                                                 고향 행차       동녘 하늘이 희읍스름하게 밝아 오자 영월구의 삼라만상이 잔등을 드러냈다. 어둠에 짓눌려 있던 산등성이가 먼저 윤곽을 드러냈다. 뒤이어 골짜기에 길게 늘어앉은 영월구 시내에 천천히 안정된 모습이 나타났다. 상순은 아침 일찍이 조용히 일어나 물 초롱을 들고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다 숙사 식당 물덕에 꼴딱꼴딱 채워 놓았다. 창남과 만호도 옆 칸에서 일어나 도끼를 휘둘러 땔나무를 팡팡 패 무져놓았다. 용구는 장작을 안아다가 부엌에 불을 때 아침밥을 손수 지었다. 상순은 아침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여러 공안일군들을 둘러 보고나서 나중에 길쭉한 박성우의 얼굴에 눈길을 돌리었다. “박 반장, 내 집에 한번 갔다 와야겠소. 그간 모두 수고하오.” 성우는 황송해 하면서 손사래를 저었다.        "반장? 김 조장은 우리 공안국 책임자인데 내가어찌 계속 반장 틀을 차리겠소?”  상순은 정색했다. “박 반장은 영원히 나의 동창생이자 문화과 스승이고 반장이오. 내 조장 따위가 무슨 지도자요? 이후에 스스럼없이 보내기요. 동무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용구 과장하구 창남 과장하구 많이 토론해서 처리하오.” 용구와 영호는 코를 벌름거리며 이쪽을 건네다 보다가 성우의 눈길이 가자 밥사발을 들어 막으며 숟가락질을 하는 척했다. 성우는 상순이 고마워 영월구 역에까지 따라 나와 바래였다. 용구와 창남이랑 멀리 뒤따라오면서 성우를 흘겨보며 뒤통수에 손가락질을 해댔다. “뒤에서는 헐뜯다가 앞에선 제일 가까운 척하는 거 봐.” “누가 보자 해 기차역까지 따라 나와?” “그러게! 오징어처럼 배때기에 먹물이 꽉 차면 전투도 잘 한답데? 흥!” 상순은 용구와 창남을 흘겨보았다. “쯧쯧, 사내들이란 입이 무거워야 해.” 혀를 홀랑 내미는 창남과 용구를 보고 상순은 “무슨 일이 있으면 함흥 촌에 와서 알리오.”라고 당부했다. 용구는 눈물이 글썽해났다. “김 조장, 일찍이 돌아오십시오.” 창남은 상순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관건적인 시각에 집으로 돌아가서 뭘 하오?” 상순은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기차에 올랐다. 공안국을 고생스레 세워놓은 상순이라고 국장을 임명하는 이때가 관건적인 시각인줄을 몰랐겠는가? 허나 그는 벼슬을 초개같이 여기고 그간 반년 넘어 부모형제를 찾아보지 못한 불효가 너무나도 속에 걸리었던 것이다. 상순이 땡볕을 맞으면서 패랑천산 앞에 이르렀을 때다. 아름드리버드나무가 꽉 들어선 들판에서 숱한 사람들이 물도랑을 판다, 버드나무뿌리를 파낸다 하면서 왁작 떠들며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상순은 삽질에 괭이질 하는 새하얀 옷차림의 사람들 속에서 한창 괭이질하는 할아버지를 찾아냈다. 그는 권총집을 뒤로 젖혀 한손으로 누르며 그리로 달려갔다. “할아버지!” “오, 상순이 왔구나.” 병완은 괭이를 짚고 서서 놀라했다. “무슨 일로 불시에 왔니?” 상순은 할아버지 괭이를 받아 버드나무뿌리를 찍어냈다. “집으로 와 본지 오랩니다. 모두 무사히 계셨습니까?” “오, 그래.” 병완은 마을 사람들을 돌아보며 “한 쉼 쉬기요.” 하고 소리쳤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상순의 옆으로 다가왔다. 병완은 하얀 머리수건으로 목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권총을 차고 괭이질하는 막내손자를 대견스레 바라보았다. “그래, 영월구 치안은 잘 됐니? 국민당 놈들이 또 나타났니?” 상순은 버드나무뿌리를 두 손으로 뽑아내며 말했다. “이젠 전국이 해방됐습니다. 허나 장개석 국민당 반동파들은 대만에 달아나서 의연히 대륙에 기여들 꿈을 꾸고 있습니다. 평화 년대라고 해도 경각성을 늦추어선 안 됩니다. 여기 지주들도 새로운 동향이 없습디까?” “없다. 장학산과 장충국이 붙잡혀 감옥에 간 후 여기 지주들은 대가리를 쳐들지도 못한다. 장학산의 집을 청산하는 게 옳잖은지 모르겠다.” 상순은 괭이를 놓고 구덩이에서 몸을 날려 뛰어 올라왔다. “할아버지, 저쪽으로 가서 얘기합시다.” 조손 두 사람은 아름드리버드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나무숲 속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 생각이 맞습니다. 우리가 만약 장학산과 장충국이 항일 유공자라고 해 집을 청산해 빈농들에게 나눠 주지 않으면 개인 인정에 얽매여 철저히 지주를 청산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장학산과 장충국의 지금 정치표현을 보면 착취계급의 본질을 고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권총과 빚 문서를 숨겨둔 건 국민당이 쳐들어오면 기회를 타 복벽을 꿈꾸고 인민들을 계속 착취하자는 게 아니고 뭡니까? 그들 부자는 겉으로는 인민정권에 복종하는 척했지만 웃음 속에 칼을 품은 적입니다. 원수입니다. 그 놈 부자 놈들은 우리에게 밭을 청산 맞은 걸 속에 원한을 품고 있으면서 시퍼런 칼을 갈아왔습니다. 이런 안팎이 다른 놈들이 더 무서운 놈들입니다.” 상순이 삼도만에 공안일군을 파견해 조사해보니 조소호가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조소호는 토비숙청 때 기실 자기 안해을 릉욕하고 집까지 빼앗은 전보흥 소교한테 원한을 품고 원쑤를 갚자고 기의를 일으켰던 것이다. 그는 토비숙청이 끝나면 공산당군이 토비 문서질을 한 자기를 총살할가봐 도망쳤다. 그런데 장학산과 기의한 숱한 토비들이 총살당하지 않고 마을에서 편안히 사는 것을 보고 마을에 되돌아왔던 것이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인민정권은 기의를 일으킨 그의 공훈을 표창하였으며 토비과거를 묻지 않고 관대하게 처리했던 것이다. 그는 말을 기르면서 가족과 함께 편안히 살고 있었다. “그럼 아예 네가 왔을 때 장학산의 집을 청산해버리자.” 할아버지 제의에 상순은 과단성있게 결단을 내렸다. “예, 그렇게 합시다.” 병완은 수척해진 막내손자를 보더니 손을 잡고 마을 사람들 쪽으로 되걸어왔다. “너 애비하구 처를 빨리 찾아봐라. 오늘 손비하구 함께 소서구에 김매러 가는 거 같더라. 너 애비는 지학사에게 찍히운 옆구리 아파 물도랑을 파는 일에도 나오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살겠다고 호미를 들고 며느리를 따라 나섰다. 막내손비는 딸애 셋을 데리고 집일을 도맡아 하느라고 허리를 펼 새 없이 맴돈다. 그러나 집 근심을 하지 말고 공안사업을 잘 해라. 넌 우리 집안의 기둥이다.” 상순은 “예, 명심하겠습니다.”라고 하며 물도랑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렇게 긴 도랑을 파서 뭘 합둥?” 병완은 상순의 손을 놓았다. “여기에 논을 풀려고 그런다. 장차 저 아래 지학사의 지개틀이고 이펑거의 습개 구덩이를 메우고 논을 풀자면 물이 많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미리 저 멍지뫼산 앞으로부터 칼산 앞으로 해서 여기까지 큰 물도랑을 판다. 소서구나 패랑천산 비탈이나 계수동 쪽도 거의 다 밭을 일구었다. 장차 버드나무가 들어선 이 들판에 논을 풀어야 우리 마을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살 거 같다.”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예- 정말 원견이 있는 계획입구마." 마을 사람들은 모두 모여와 상순을 대견스레 바라보았다. “여러분, 두 번째 고향을 건설하느라고 수고 많습구마. 영월구에 가다나니 힘을 보태주지 못해 미안합구마. 정말 연세 계신 할아버지께서 아직도 힘든 일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불효를 저지른 죄송한 마음이 앞섭니다. 이제 당장 위대한 중국 공산당이 영도하는 강대한 나라가 이 땅에 우뚝 일떠설 것입니다. 우리 이 지구의 치안이 안정되면 두 번째 고향에 돌아와 조부모와 부친께 효성을 하면서 여러분들과 함께 두 번째 고향을 멋지게 건설해 볼 예산입니다.” 그 말에 병완과 마을 사람들은 놀라했다. “권총을 찬 공안일군이 얼마 좋다고 저래?” 사람들은 술렁거리었다. 상순은 집을 인차 들리어 보고 돌아가려고 바삐 칼산과 패랑천산 사이 골 안으로 줄달음쳐 소서구 밭으로 갔다. 저 멀리 밭에서 불볕을 맞으면서 아버지와 명옥이 긴 밭고랑을 타고 기음을 매고 있었다. 명옥은 복자를 업고 순자와 금순은 앞뒤에서 풀을 뽑으면서 나가고 있었다. 밭에는 범이 새끼를 칠 지경으로 풀이 들어섰다. “아무리 혁명을 하더라도 부모처자를 고생시키면서 불효를 저지르는 건 자식이 된 도리가 아니야. 어떻게 조부모와 부모에게 효도를 하면서 사업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때부터 상순은 효성과 사업을 다 잘 할 수 있는 길을 궁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순자 위로 영자, 영돌과 선돌을 잃은 후 명옥은 낳으라는 아들은 낳지 못하고 순자 아래로 금순과 복자를 줄줄 낳았다. 큰딸 순자의 태몽은 이상했다. 명옥은 어데서 생겼는지도 모르고 금가락지를 손가락에 낀 태몽을 꾸고 광복 전해에 순자를 낳았다고 한다. 둘째딸 금순의 태몽은 이러하다. 명옥이 회의하러 촌 사무소에 갔다가 모범이 돼 상품을 타서 두 손에 꼭 쥐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금비녀가 아니겠는가. 그 태몽을 꾼 뒤에 둘째딸 금순을 낳았다. 셋째딸 복자를 임신하기 전에 웃새집 큰 시어머니는 “작은집 각시, 이번에는 무슨 태몽을 꾸었소?” 하고 물었다. 명옥은 부끄러움을 겨우 참으면서 대답했다. “큰 시어머니, 이번에는 숱한 말들 가운데 특별히 새하얀 백마가 어찌나 고운지 백마 목을 꼭 껴안고 집에 왔습꾸마.” “음, 그럼 이번에는 딸은 딸인데 고운 딸이겠구나.” 웃새집 큰 시어머니 설명처럼 백마 혼을 탔는지 살색이 새하얀 고운 딸을 낳았다. 상순은 이, 삼년에 하나씩 딸 셋을 줄줄 낳자 기막혔다. 그는 셋째 딸 뒤에는 아들을 낳으라고 셋째 딸의 이름을 복자로 지었다. 상순은 앞에서 기음을 매느라고 땀벌창이 된 아버지한테 다가갔다. “아버지, 집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둥? 줍소. 내 맵시다.” 그는 호미를 빼앗아 쥐고 풀을 왕왕 매며 나갔다.  “아빠!” 순자와 금순은 풀을 쥔 두 손을 높이 쳐들고 달려 왔다. 상순은 호미를 놓고 코 범벅이 된 순자와 금순을 한품에 끌어안았다. “에이, 요것들아, 이 더운데 풀을 뽑았니?” “예, 엄마 밭고랑에 풀이 영 많습니다.” 상순은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순자와 금순의 코에서 풀럭거리는 콧물을 닦아주었다. 명옥은 다가와 “영월구에서 고생하지 않았소?” 하고 인사했다. “양, 괜찮소. 애들을 데리고 고생했소.” 땀벌창이 된 명옥의 잔등에서 복자는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상순은 “더위를 타겠소.” 그는 손바닥으로 애 얼굴을 비추는 햇볕을 가리면서 새하얀 볼을 들여다보며 매만지었다. 상순은 온 오전 기음을 매고 점심에야 집으로 내려갔다. 그는 소서구 어구를 지나가면서 높다란 토성 안 장학산의 덩실한 집을 들여다보았다. 그때 양산을 든 장미련이 토성 안에서 나오다가 상순을 보고 해시시 웃으면서 지분거렸다. “오빠, 언제 왔소? 권총까지 척 차니 세상 멋지구먼요.” “오빠? 쳇,” 상순은 누가 듣지나 않았나 사위를 두리번거린 후 욕설을 퍼부었다. “누구를 오빠라고 해. 다시 오빠란 소리를 쳤다간 주둥이를 막 막아 쳐 놓겠다.” 그 소리에 노처녀 미련은 입을 싸쥐고 토성 안으로 되들어가 버리었다. “저 집을 청산하면 누구를 주면 좋을까?” 그러자 기준은 “우리 가지자. 집에 비새서 말이 아니다.” 라고 했다. 허나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아버지를 말리었다. “아버지, 할아버지나 내나 당원이기에 그렇게 못합니다. 앞장서 자기 욕심만 차려서야 됩둥? 군중들이 뭐라겠습둥?” 상순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집을 빙빙 돌아가면서 살펴보았다. 확실히 이영을 제때에 잇지 못해 간장 물 같은 것이 벽을 타고 줄줄 내린 흔적이 보이었다. 생활이 너무 궁핍해 상순과 명옥은 딸을 많이 해 쓸 데 없다고 밤이면 남에게 줄 토론도 했다. “큰딸은 남을 주지 못하오.” “그렇다고 셋째 딸을 남에게 주겠소?” 밤에 또 그 토론을 하는데 상순은 새하얗게 생긴 복자를 특별히 고와하기에 남에게 주지 못한다고 잡아뗐다. “그럼 저 둘째를 줄가?” “글쎄. 허나 제 새끼를 정작 남에게 주자니 속이 좋잖소.” “나도.” 숨을 죽이고 그 말을 듣던 애들은 이불을 쓰고 눈물을 흘리면서 흑흑 흐느꼈다. 우는 애들을 우연하게 발견한 후 상순과 명옥은 다시는 남에게 줄 궁리를 하지 못했다. 상순은 집이 아무리 궁핍해도 자기 욕심을 차릴 수 없었다. 공산당원은 언제나 군중의 이익을 첫 자리에 놓아야 하고 고생은 앞장서 하고 향수 앞에서는 뒤로 물러서야 했던 것이다. 점심 숟가락을 놓자마자 상순은 호미를 들고 먼저 촌 사무소에 가 기다리었다. 할아버지가 촌 사무소에  들어섰다. “할아버지, 장학산의 집을 청산해서 소서구에 있는 김대동과 주현경을 주면 어떻습니까? 해방됐지만 대동과 현경은 아직도 옛날 조선에서 들어와 살던 그 오두막에서 살고 있습니다.”  상순의 말에 병완은 인차 대답했다, “좋다.”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러나 좀 생각하더니 뒷말을 달았다. “대동과 현경은 가난한 빈고농이 맞다. 그런데 맨 조선족 빈고농민에게만 주면 한족들이 또 공산당 간부들은 한족지주의 재산을 빼앗아 조선족에게만 준다고 하지 않겠니?” “예~ 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병완은 곰방대에 담배를 쑤셔 넣고 불을 붙여 물고 빨며 말했다. “내 생각엔 그 큰 집을 두 사람에게 주지 말고 사랑채까지 세 사람에게 주면 좋을 거 같다. 몸채를 주현경과 산동에서 온 한족농민 위수해에게 주자.” “예, 그게 좋겠습니다. 헌데 이 다음 장학산과 장충국이 개조를 잘 해 돌아오면 어데서 살게 하겠습니까?” “사랑채에서 살게 하면 되지. 뭐. 그 놈들이 공산당 천하에서 이전처럼 주인 행세를 하면서 살게 하겠니? 동서 사랑채도 쉰 평방씩이나 되는데 그들이 살긴 문제없다.” “그렇게 합시다.” 그날 점심으로 병완과 상순은 흥수랑 민병들을 데리고 소서구로 장학산의 집을 청산하러 갔다. 그때 춘실은 자기 집에 와서 남편을 데려 내가는 상순을 보고 입을 비쭉거리었다. “공안국에 가서 권총을 차더니 남의 나그넬 종 다르듯 해? 저 나그네를, 남한테 끌려 다니긴? 한족지주를 청산해 우리한테 개뿔이나 차례진다고 그래? 괜히 세상이 뒤바뀌면 한족지주들에게 목이 날아나자고? 흥!” 흥수는 춘실에게 눈을 흘기었다. “중국이 몽땅 해방됐는데 무슨 떡 대가리 같은 국민당 소릴 치오?” 흥수는 장총을 둘러메고 상순과 민병들을 따라 나섰다. 토성 안에 총을 비껴든 민병들이 상순과 병완을 따라 들어서자 미련은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상순은 집안에 들어가 질겁해 집구석에 쫑그리고 앉은 미련에게 호통쳤다. “미련아, 들어라. 장학산과 장충국은 공산당과 한사코 맞서 국민당 반동파와 손잡고 복벽을 꿈꿨다. 너네 집을 청산해 가난한 백성 주현경과 김대동, 위수해에게 나눠준다. 넌 짐을 싸들고 서쪽 사랑채에 나가라. 이 몸채는 주현경과 위수해에게 나눠주고 동쪽 사랑채는 김대동에게 나눠준다.” 그러자 미련은 눈물을 똑똑 떨어뜨리면서 “그럼 우린 어데서 살라오?” 라고 하며 발버둥질까지 쳐대였다. 병완은 털끝만치도 양보 없었다. “이 집도 우리 지은 집이다. 너 일가는 일을 하지도 않고 소서구의 우리 집과 김대동, 주현경, 위수해네를 착취해 이런 집을 짓고 호의호식하면서 살았다. 가난한 백성들을 착취해 얻은 지주의 재물은 몽땅 임자인 가난한 백성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당장 집을 내고 나가!” 미련은 눈물방울을 똑똑 떨어뜨렸다. 그날로 오두막에서 살다가 토성 안의 덩실한 집을 분배받은 주현경과 위수해, 김대동은 기뻐 벙실벙실 웃으면서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오후에 상순은 소서구 밭에서 기음을 매다가 천지꽃산 아래 상우지에서 상우 형님과 아주머니와 함께 기음을 매는 공학을 발견했다. “저 자식이 공부는 하지 않고 기음을 매고 있어?” 쉼에 상순은 상우지 밭머리에 가서 공학의 곁에 가 앉았다. “삼촌, 어째 공안국으로 가지 않습니까?” “이영이나 이어주고 갈 예산이다.” 상순은 공학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맏조카를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공학아, 공부를 명심해 해라. 나를 봐라. 집이 가난해 어려서부터 너 엄마 앞에서 풀이나 뽑고 열세 살부터 가대기질을 하다나니 학교 문에도 가보지 못했다. 사회에서 나와 사업하자니 막히는데 많구나. 연말에 사업총화를 쓰라고 해도 쓰지 못하지 사업계획을 세우라고 해도 세우지 못하지. 그래서 전번에도 목숨을 걸고 국민당 자위대 놈들을 숙청하고서도 치하를 받기는커녕 내 해놓은 일을 남이 총결해 가져가는 꼴이 됐다. 장차 평화 년대에는 글이 없으면 큰 노릇을 못한다.” 그때 상순의 아주머니는 세 귀 눈을 흘기며 입귀로 이런 말을 흘리었다. “별 우리 일을 시켜 공부를 못한 상 한다.” 상순은 아주머니 본 병을 아는지라 풀을 뽑는 조카 순애를 희구해 보다가 머리를 숙이고 뭔가 궁리하는 공학을 돌아보았다. “용정에 되돌아가 의학을 배워라. 이전에 증조부께서 말씀하시지 않던? 네 고조부는 이씨 왕조 어의야. 큰집 형내네만 의술을 물려받아서야 죽음의 변두리에서 왔다 갔다 하는 숱한 환자를 구할 수 있겠느냐? 네가 의사로 되었다면 영자랑 영돌이랑 선돌이랑 죽었겠니?” 공학은 머리를 들면서 “삼촌, 내 꼭 의학을 배워 의사로 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동선은 어디로 갔니?” “그 자식은 농업중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척 하면서 조선으로 길림으로 장사를 다닙니다.” “설복인 농업중학교에서 공부를 하지?” “예, 그 애는 시랑 아주 잘 써서 학교에 소문이 자자하답구마.”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난 몇 해 후에 의사 맏조카를 기다리겠다.” “예, 기다려 줍소.” 상순은 맏조카를 미더운 눈길로 보면서 자기 집 밭에 돌아와 기음을 왕왕 매 재끼었다. 상순과 명옥이 기준과 함께 한창 잔등이 물 자루 되게 땀을 줄줄 흘리며 기음을 맬 때다. “김 국장! 김 국장!” 산비탈 아래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었다. 모두들 허리를 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창남과 용구가 주먹을 쥐고 비탈 밭으로 헐금씨금 달려올라 오고 있었다. “김 국장, 빨리 공안국으로 돌아갑시다.” 상순은 호미를 쥔 채 어안이 벙벙해 서 있었다. 용구가 답답한 듯 발을 탕탕 굴렀다. “현 당위와 상급 공안국에서 국장 임명장이 내려 왔습니다.” 상순은 “농담을 하지 마오. 우리 박 반장을 두고 나를 국장을 시키겠소?”라고 했다. 창남은 “성우 동무는 부국장을 해도 과분하지. 흥!” 하고 콧방귀까지 뀌었다. 옆에서 용구가 창남의 옆구리를 툭 치고 나서 상순의 눈치를 흘끔 쳐다보았다. “박 반장 허물을 절대 하지 말라는데.” 기준은 기뻐 상순의 손을 잡고 “축하한다.”라고 하며 얼싸 안아 주고 나서 창남과 용구에게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얼굴을 돌리었다. “고맙네. 이 산골에까지 찾아오다니.” “별 말씀을요.” 창남과 용구는 기준과 명옥의 손에서 호미를 빼앗아 상순과 함께 매던 밭을 다 매주었다.                                                      석별의 정 햇볕이 숫구멍을 쟁글쟁글 쪼이었다. 기준과 명옥은 창남과 용구가 호미를 빼앗아 기음을 매자 습관처럼 낫을 들고 골짜기에 내려가 쑥대랑 다부제기랑 땔나무를 해 지고 이는 것이었다. 상순은 황급히 호미를 창남에게 주고 달려가 아버지 진 땔나무를 빼앗아 지었다. “상한 옆구리로 어떻게 이 무거운 땔나무 짐을 진다고 그럽니까? 아직 쑥대랑 젖어서 무척 무겁습니다.” 기준은 아픈 허리를 상을 찡그리며 펴면서 말했다. “예로부터 충신은 효자가 없었다고 했느니라. 집 근심을 너무 하고서야 어찌 공안국 국장을 잘 하겠느냐? 집 근심을 하지 말고 공안국 국장이나 잘 해라. 우리 집안에 네처럼 국장급을 가진 양반도 드물다.” 아버지의 그 말씀에 상순은 코마루가 시큼 해났다. 용구는 호미를 창남에게 주고 뛰어가 “아주머니, 주오.” 라고 하며 명옥의 머리 우에서 나무 단을 내리워 둘러메었다. 기준은 뒤에서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난 널 공부 시키지 못한 게 한이다.” 상순은 나무 짐을 지고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님,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맙소. 가난이 죄입지. 다 내 탓입니다. 장사를 해서 숱한 돈을 벌었을 때 공부를 했더라면 얼마나 좋겠습둥? 이제 공작을 하면서 짬짬이 공부를 하면 됩꾸마.” “에이고, 일이 바쁘겠는데 언제 공부를 하겠니? 쯧쯧쯧.” 기준은 뒤에서 혀를 끌끌 찼다. 상순과 창남 그리고 용구는 점심을 숟가락을 놓자마자 기차를 놓칠세라 떠나야만 했다. 상순은 간장 같은 빗물이 줄줄 흐르는 이영 밑과 얼기설기 갈라터진 바람벽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영을 이어 놓고 가자고 했는데 또 잇지 못하고 가는구나.” 기준은 바깥에 나와 상순을 마구 밀어 떠내 보냈다. “작작 근심하고 가라. 내 잇지 않으리라구.” “아버지 옆구리 아파 어떻게 잇겠습니까?” “근심 말래도 그러니?” 명옥은 복자를 업고 순자와 금순을 양손에 쥐고 바래었다. 상순은 쪼그리고 앉더니 순자와 금순을 한품에 꼭 안고 뽀뽀를 해 주었다. “아빠, 이 담 올 때 엿 사탕을 사줍소. 예?” 금순이 입을 쫑긋거리자 순자가 말리었다. “아빠, 돈이 없다. 그러지 마.” “아니다. 이 담 꼭 사다줄게.” 상순은 코마루가 시큼해 남을 금치 못하고 우쭐 일어나 “아버지, 무사히 계십시오. 여보, 애들을 데리고 수고하오.” 라고 하고는 몸을 돌려 울안을 나섰다. 그때 상순의 사촌여동생 봉선이네 맏아들 성환이 순자와 함께 오후에 함흥학교로 가자고 찾아왔다. 상순은 조카들의 머리도 일일이 어루만져 주면서 “공부를 잘 해라.”라고 했다. “예. 큰아버지.” 성환은 외탁을 해서 둥글 넙적한 얼굴에 조개턱이었다. 그의 아버지 김한봉은 함흥 촌소학교 교원을 하고 있었다. 어떤 때에는 농업중학교 교원도 해 처조카인 설복을 가르치기도 했다. 함흥 촌에서 한봉의 아버지 김영진 구장으로부터 한봉까지 글이 제일 많은 선비라고 모두 떠받들었다. 한참 후에야 상순은 머리를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창남과 용구를 따라잡았다. 창남과 용구도 자기들의 국장이 기분이 상해하는 것을 보고 묵묵히 발걸음만 다그쳤다. 그들은 어느새 나무숲이 우거진 패랑천산 앞에 이르렀다. 하늘을 찌르며 우뚝 솟은 절벽위로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산새들이 자유로이 날아예고 있었다. 창남은 절벽 밑과 버드나무숲을 둘러보더니 권총집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리었다. “야, 이런 곳에 범이라도 나타나면 어쩌겠니?” “야, 산에 와서 범 말을 하지 마오. 범이 제 흉을 하면 온다고 하잖소.” 그 말에 창남은 입을 꾹 다물고 버드나무숲과 산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상순은 할아버님을 찾아보려고 패랑천산 앞의 버드나무숲 속에서 물도랑을 파는 마을 사람들 쪽으로 달려갔다. 그때다. “사람 살려라!” “범이야!” “곰이야!” 상순이네가 달려가다가 깜짝 놀랐다. 마을 사람들은 물도랑을 파다가 구덩이에 서 있었다. 버드나무숲속에서 숱한 범들이 물도랑 우의 흙 둔덕에서 왔다 갔다 하며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땅! 상순은 권총을 범 무리에 쏘며 명령했다. “마을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범을 쏘라!” 창남과 용구도 용감하게 달려 나가면서 범 무리에 총을 쏘았다. 그들 셋이 총을 쏘자 범들은 질겁해 사람들의 머리 위로 물도랑을 뛰어 넘어 꼬리 빳빳해 도망쳤다. 사람들은 그 놈 범들을 삽으로 치려고 휘둘렀다. 땅! 범 한 마리가 상순이 쏜 총에 엉덩이를 맞고 흙무지에서 깊숙한 물도랑에 뛰어들었다. “쳐라!” 병완은 삽을 둘러메고 물도랑 안에서 날치는 범에게 덮쳐들었다. 총에 맞은 범은 성이 나 날뛰며 병완에게 덮쳐들었다. 범이 씽 날아 덮쳐올 때 병완은 몸을 도랑벽에 피하며 삽날을 쳐들어 범의 아가리를 찔렀다. 퍽! 삽날이 짝 벌린 범의 아가리를 짜갰다. 상순은 권총을 더 쏠 수 없어 권총집에 넣고 물도랑 안에 뛰어들었다. 용구과 창남도 물도랑 안에 뛰어들었다. 상순은 태연의 삽을 빼앗아 돌아서며 꼬리몽둥이를 휘두르는 범에게 덮쳐들어 마구 찍어댔다. 범은 숱한 사람들이 덮쳐들자 겁을 먹고 한 키도 넘게 깊은 물도랑에서 뛰어 나가려고 몸을 날렸다. 허나 몸이 도랑벽에 걸린 채 네 발통을 버둥거렸다. 그때 병완과 용구가 범의 뒤다리를 잡아 확 당겼다. 범은 무서운 소리를 지르면서 물도랑 바닥에 떨어졌다. 병완과 용구는 놀라운 완력으로 범의 뒷다리가 불러지게 비틀어댔다. 그때 상순과 창남이 삽으로 범의 대가리를 탁탁 내리찍었다. 삽자루가 끊어지자 상순과 창남은 범의 목을 끌어안고 내리 누르며 무쇠주먹으로 대가리를 쳐댔다. 숱한 마을 사람들이 욱 몰려들어 돌멩이와 삽, 괭이로 범을 만신창이 되게 때려 끝내 범을 잡았다. “그만! 그만!” 병완은 그제야 끊어지다 싶게 너덜거리는 범의 뒷다리를 놓으면서 소리쳤다.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지 않소. 너무 두드리면 범의 가죽을 벗겨 팔아먹지 못하겠소.” 마을 사람들은 물도랑 바닥에 쭉 늘어진 범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떠들어댔다. “에이고, 범이 한 무리씩 출몰하는데서 어떻게 벼농사를 짓겠소?” “글쎄 말이오. 국민당과 악질지주가 다 없어지니 이젠 또 범과 곰의 성화에 어디 농사를 짓고 살겠소?” 태연은 끊어진 삽자루와 삽날을 양손에 쥐고 어이없어 머리를 홰홰 돌리었다. “우리 황무지를 개간할수록 범들이 우리와 터 싸움을 한단 말인제라.” 흥수도 한숨을 푸 내쉬며 중얼거렸다. 병완은 어지러워지는 민심을 수습하려고 들었다. “범을 잡아 가죽을 팔고 범의 고기까지 먹으면 좀 좋아 그러오? 그까짓 범과 곰, 승냥이들이 올 테면 오라지. 안 그렇소?” 상순도 나섰다. “여러분, 총을 든 일본 놈들과 국민당 토비 놈들도 우리 살 앞길을 막지 못했습니다. 오늘 보지 못했습니까? 우리가 힘을 합치면 범 한 마리 아니라 한 무리라도 겁날게 없습니다. 후에 이 나무숲 속의 벌판에 일하러 다닐 땐 혼자 다니지 말고 꼭 여럿이 짝을 지어 다니십시오. 내 진수해 허영주 서기와 말해 민병들에게 준 총을 잠시 거둬가지 말게 하겠습니다. 범이나 곰을 만나면 총으로 사냥하십시오.” “우리 김 국장 말씀이 옳습니다. 그대로 하십시오.” 창남의 말에 모두들 머리를 들고 두리번거렸다. “김 국장이라니?" "누가?” 용구가 상순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분은 우리 영월구 공안국의 국장으로 됐습니다.” “와!” 모두들 상순에게 엄지를 내두르며 축하했다. 병완은 놀랍고도 반가와 상순을 꽉 끌어안고 너부죽한 잔등을 다독여 주었다. “장하다! 장해! 넌 우리 집안과 마을 사람들의 영광이다!” 마을 사람들은 손을 맞잡아 팔로 만든 가마에 상순을 앉히고 물도랑 안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웃고 떠들며 축하해주었다. 병완은 너무 기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얼씨구, 좋고 좋다!” 태연도 상진도 흥수도 춤판을 벌렸다. 상순은 손가마에서 내렸다. “할아버지, 야수들이 자주 출몰하는 이 곳에 어째 논을 풀자고 그럽둥? 조개덕 앞에다 풀면 마을도 가깝고 좋겠는데 말입니다.” 그 말에 병완은 상순의 손을 잡고 “여긴 네 애비가 논물 때문에 지학사의 괭이에 맞아 옆구리를 상한 곳이 아니냐? 우리 새 세상이 왔는데 난 기어이 여기 지학사의 지개틀을 빼앗아 논을 풀고 살 예산이다.”라고 했다. 그제야 상순은 할아버지가 여기에 논을 푸는 깊은 뜻을 알게 됐다. 그는 물도랑 옆의 흙무지 우에 올라서서 마을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난 여러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영월구와 진수해 일대의 치안을 잘해 여러분들이 마음 놓고 두 번째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행복하게 살게 하겠습니다. 이제 영월구에 돌아가 치안사업을 하고 틈이 있으면 돌아와 국민당 토비들과 악질지주를 숙청하듯이 패랑천산과 칼산, 멍지뫼산, 천지꽃산, 계동 일대에서 야수들이 얼씬하지 못하게 쫓아버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너무 근심하지 말고 우리 할아버지를 따라 이 벌판에 논을 풀어 풍작을 안아와 풍족하게 살 것을 바랍니다.” 마을 사람들은 머리를 끄덕이며 안도의 숨을 내쉬더니 물도랑을 파기 시작했다. 병완은 막내손자에게 “마을 근심 하지 말고 공안국 일을 잘 해라.”라고 했다. “할아버지, 무사히 계십시오.” 상순은 할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떠났다. 창남과 용구는 상순을 따라 성큼성큼 칼산 쪽으로 걸어갔다. 어느 결에 그들의 그림자가 물도랑을 파는 마을 사람들한테까지 길게 늘어났다. 병완은 범이 덮쳐든 사건이 있은 후 상순의 말처럼 악질지주를 잡아내듯이 산에서 범과 곰을 잡아내야 하겠다고 작심했다. 병완과 마을 사람들이 물도랑을 파고 범을 수레에 싣고 마을로 돌아 올 때 해가 이미 서산에 기울어졌다. 벌겋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은 환성을 지르며 태양을 맞이했다. 지개틀과 이펑거지를 품은 아름드리버드나무숲은 바람에 흐느적이었다. 패랑천산과 칼산에서는 이리떼와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무섭게 울렸다. 그런데 마을 동구 밖에서 뜻밖에도 빨래를 이고 방치를 쥐고 태평강으로 가는 춘실과 딱 마주쳤다. “국장 어르신이 되더니 못 본 척 하오?” 춘실은 걀쭉한 얼굴에 얇은 미소를 지었다. “오, 그간 잘 있었소?” 상순은 알은체를 하며 지나가려고 했다. “이보, 내 할 말이 있소.” 춘실이 빨래를 인 채 멈춰 섰다.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의 입귀에 숱한 사연이 아른거리는 상 싶었다. 상순은 창남과 용구를 보고 먼저 가라 하고 춘실의 옆에 다가갔다. “무슨 일이요?” 춘실은 대답 대신 굳어진 표정으로 빨래함지를 내리워 두 손으로 안고 태평강 가로 걸어갔다. “무슨 일이오? 난 공안국 일이 바빠 영월구로 빨리 돌아가야겠소.” 상순은 춘실의 손에서 빨래함지를 빼앗아 들고 강가로 가서 빨래 돌을 찾느라고 서성거렸다. 그때 춘실은 뒤따라 가다가 불시에 방치로 상순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쉭 소리를 듣고 상순은 빨래함지를 들어 날아드는 방치를 막았다. “왜 이래?” “너도 사람 새끼야?!” 춘실은 방치로 마구 패댔다. 상순은 함지를 들어 막다가 함지를 내려놓았다. 그는 손을 뻗쳐 날아드는 방치를 빼앗아 빨래 함지에 내던졌다. “어째 이러니?” “너도 사람 새끼야? 을준이 학교로 가게 됐다. 제 새끼를 싸지르고 한 번도 찾아보지도 않니?” 상순은 저쪽 강 건너에서 기다리는 창남과 용구를 두리번거리며 소리를 죽여 말했다. “좀 작작 떠들어라. 저 동무들이 들으면 어쩌니?” “야, 들으면 어째? 네 같은 나쁜 놈을 온 세상 사람이 다 알게 해야 해. 눈이 멀었지. 네 같이 건방진 건달을 공안국 국장을 다 시키다니? 국장이면 다 사람인줄 아니?” 상순은 강 건너 쪽을 흘끔거리다가 창남과 용구가 패랑천산 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나직이 말했다. “야, 을준인지 뭔지 하는 애는 너와 흥수가 난 애가 아니고 뭐니? 나와 무슨 관계있느냐?” 춘실은 어이없어 머리를 홰홰 저으며 외까풀 깜장 눈으로 표독스럽게 쏘아보며 대들었다. “뭐라고? 이 뻔뻔한 새끼야. 이 태평강과 버드나무숲이 다 웃는다. 네 놈이 여기버드나무숲 속에서 그 애를 싸질러 만들어놓고 지금 와선 나눕겠니?” “떠들지 말래도. 너 정신 나갔니?” “떠들면 어째? 온 세상 사람들이 네 놈 새끼는 세상에 둘도 없는 바람둥이란 걸 알게 해얀다!” “다른 일 없으면 난 가겠다.” 상순은 발뺌을 하려고 들었다. 춘실은 상순의 팔소매를 붙잡고 이를 앙다물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그래 기어이 제 새끼를 한 번도 찾아보지 않을 예산이야?” 상순은 춘실의 손을 홱 뿌리치며 “흥수 찾아보면 됐지. 바쁜 사람을 붙들고 왜 이래?!” 하고 세귀눈을 부라리었다. “내 이제 영월구를 찾아가 네 놈을 온 시내에서 다 알게 떠들겠다.” 상순은 주춤 멈춰 서서 춘실을 독기서린 눈길로 쏘아보았다. “내 앞길을 막았다간 가만 놔둘 거 같아?” “그래 권총으로 쏘기라도 하겠단 말이냐? 아예 여기서 죽여라! 죽여!” 춘실은 머리카락을 날리면서 머리를 상순의 옆구리에 대고 마구 들이 받으면서 왕왕 울음보를 터뜨렸다. “춘실아, 이러지 말라. 네가 이러면 나도 가슴이 터지는 거 같다. 우리 일은 내 싫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니지 않고 뭐냐? 다 우리 아버지 결정한 일이니 나도 별 수 없었다. 너도 흥수한테 시집가서 범순이랑 낳았으면 재미있게 살아라. 우린 이젠 다 가정이 있고 자식들이 있으니까 서로 잊고 살자. 을준이, 을준이 하는데 낸들 어쩌라니? 네가 백과부한테 준 게 잘 못이지. 너나 자주 찾아가 봐라. 낸들 어쩌겠니?” “군정대학인지 무슨 대학인지 다니더니 말재간이 꽤 늘었구나. 호호호.” 상순은 강 건너를 보면서 말하다가 입을 싸쥐고 웃는 춘실에게 이상한 눈길을 보냈다. “네 놈을 죽이고 내가 죽으려 했는데 말재간 덕에 네 놈을 살려줘야겠구나.” 춘실은 품 속에서 시퍼런 식칼을 꺼내 칼끝을 두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다가 빨래함지에 훌 던졌다. 상순은 춘실을 꼭 껴안아 주었다. “춘실아, 자기 뜻대로 다 되지 않는 게 세상사가 아니더냐? 이제 와서 자꾸 떠들어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니? 네가 자꾸 이러면 나도 죽을 것 같이 괴롭구나.” 춘실은 주먹으로 상순의 넓은 가슴을 마구 두드리며 어깨를 들먹이고 코를 풀쩍거렸다. “이 나쁜 놈아, 무능한 놈아, 무골충아, 아버지를 이기지 못해 나를 버리니?” 상순은 춘실을 떠밀어내었다. “흥수와 잘 살아라.” 상순도 눈물범벅이 된 춘실을 보고 코마루가 시큼해나고 눈에 뜨겁고 맑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치마폭을 들어 눈물을 닦으며 흑흑 흐느끼는 춘실을 외면하며 돌아서서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태평강 징검다리를 건너선 후 머리를 돌려 강 건너 쪽을 피뜩 되돌아보았다. 그때까지 춘실은 반쯤 몸을 탈고 서서 치마폭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어깨를 들먹이고 있었다. 상순이 패랑천산 쪽으로 발걸음을 뗄 때다. 뒤에서 느닷없이 춘실의 애절한 노래 소리가 귀전을 아프게 때리고 가슴을 긁어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 … 춘실이 부르는 애타는 노래소리는 패랑천산의 절벽에 부딪쳐 길게 길게 고패치며 메아리쳐갔다.  상순은 그 쓸쓸한 노래소리를 들으며 걷다가 저도 몰래 몸을 돌려 뒤돌아보았다. 그때까지 저 멀리 버드나무 우거진 강뚝에서 춘실이 두 손을 맞잡고 서서 이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쓸쓸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   상순은 코마루가 시큼해나 주먹으로 길 옆의 아름드리비술나무를 꽝꽝 쳐댔다. 저쪽 버드나무 제방뚝에서 남북골 흥수가 버드나무 밑에서 우멍눈으로 상순과 춘실을 번갈아 훔쳐보며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며 거친 황소숨을 씩씩 몰아쉰다...       필자 주: 여러분은 지금까지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4권까지 감상하셨습니다. 이제껏 홍색문학의 향연을 음미한 여러분께 경의를 드립니다.       뒤이어 제5권이 펼쳐집니다. 조선반도에 일어난 침략전쟁과 정의의 반격전쟁, 동족상잔의 전쟁에서 형제도, 전우도, 부부도 서로 원쑤로 돼 참살하는 비극, 진달래를 두고 용천과 성칠의 사랑과 원한, 생사결투도 보게 될 것입니다.         항미원조전쟁에서 보여준 중국인민과 중국인민지원군의  대공무사한 국제주의 정신과 애국주의 정신, 슬기롭고 영용무쌍한 투쟁정신을 다시 돌이켜보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서 평화란 얼마나 보귀한가를 깊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    
109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72) 댓글:  조회:1493  추천:0  2017-07-03
                      8. 그리운 고향 산천 먹장구름이 걷히고 하늘의 꽃구름도 따뜻한 봄날의 햇빛을 받아 방실방실 웃었다. 며칠 후 병완은 촌 사무소 옆방에 있는 키 넘는 맏증손자 공학을 보다가 불렀다. “할아버지, 벌써 촌 사무소에 나왔습니까?” “오, 그래. 네 동생 설복과 동선을 불러오너라.” “예. 갔다 오겠습니다.” 병완은 쌍까풀에 너부죽하게 생긴 맏증손자가 얼마나 장한지 몰랐다. 그는 공학의 너부죽한 잔등을 대견스레 보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이윽고 공학이 동생들인 설복과 동선을 데리고 왔다. “할아버지, 편안히 계셨습니까?” “오- 그래. 어서 올라와 앉아라.” 병완은 키 넘어가는 증손자들 셋을 반겨 맞았다. 이윽고 그는 증손자들을 둘러보며 입을 뗐다. “이젠 너희들도 다 컸으니 뭔가 해야 될 때가 됐구나. 요즘 내 너희들 때문에 곰곰이 생각해보았느니라. 너희들 고조부할아버님은 궁정어의였느니라. 그런데 내 아버지는 의서를 내 맏형님한테만 물려주고 둘째인 나에게는 의학공부를 시키지 않고 목수질만 시켰다. 그래서 형님네 집은 대대로 의사를 물려받았지만 우린 목수를 물려받았다. 봐라, 큰집 식구들은 의사 질 해 얼마나 잘 사느냐? 너희들 대에 와서는 어떻게 그루를 바꿔 의사를 했으면 좋겠다. ” 그러자 그들 셋은 모두 머리를 숙이고 한참 궁리했다. 제일 먼저 동선이 외까풀 눈을 치뜨며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 형님이나 의사를 하고 난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에이, 큰 노릇을 못할 놈.” 병완이 나무라자 동선은 혀를 홀랑 내밀었다. “증조부님, 난 기차를 몰았으면 좋겠습니다. 진수해역에 가서 보면 그 큰 기차를 모는 사람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음, 건 장사하기보다는 좀 낫다. 어째 내 말대로 의학공부를 하지 않고 장사나 기관사로 되려는 거야?” 동선은 눈을 깜빡이더니 “삼형제가 다 의사로 되면 서로 환자 빼앗기를 하면서 다투지 않겠습니까?”하고 증조부의 눈치를 살폈다. “바로 그거야. 내 아버님도 형제간에 같은 의사 재간을 배우면 다툴 가봐 의서를 맏이인 내 형님에게만 물려주고 나한테는 물려주지 않았다. 허나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일도 없어.” “예?” 을혁과 공학의 눈에 의아한 빛이 서려 올랐다. “내 전번에도 용정에 있는 의과전문학교에 가보았는데 숱한 학생들이 정성문의 아들 정규상한테서 의학을 배우더라. 정규상은 장춘에 가서, 음, 이전의 신경에 가서 일제 때 의과대학을 다닌 적이 있다. 그런데 정규상한테서 의학을 배운 숱한 학생들이 지금 제4야전군 병원에서 의사와 위생원 노릇을 한다. 그래 그 숱한 학생들이 똑같은 의학을 배워 모두 환자를 보아도 다투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 형제들 셋이 같은 선생에게서 의학을 배운들 다툴 일은 더욱 없을게 아니야?” 공학은 무겁게 머리를 끄덕이었다. “할아버지, 의학을 배우겠습니다. 용정 정규상 선생한테 연줄을 달아줍소.” “그러지.” 병완은 잠자코 앉아 있는 얼굴이 길쭉한 설복한테로 눈길을 돌렸다. “넌 뭘 하겠느냐?” “난 문학공부를 해서 장차 문학교원이 돼 시도 쓰고 싶습니다.” “에이고, 증손들 다 뜻이 다르구나.” 병완은 별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너희들 뜻대로 해라. 공학은 오늘 용정으로 가자.” 그러자 설복과 동선은 부러워 왁작 떠들었다. “야, 형님은 좋겠다. 용정에 가서 공부하는 게.” “에끼, 이 놈들, 너희들도 공부하고 싶으면 해라. 내 너희들 어시들과 말해 공부를 시키게 할게.” 증손자들은 환성을 지르며 자기 부모의 허락을 받으러 흩어져 갔다. 그날로 병완은 공학을 데리고 용정 의학전문학교 교무처 주임으로 일하는 정규상을 찾아 갔다. 초봄 날씨가 싸늘한데 난로에 불도 온전히 피우지 못해 사무실 안은 꽤나 싸늘했다. 정규상은 아주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병완이 찾아오게 된 의향을 말하자 그는 당장에서 학교에 받아들였다. 병완은 한시름을 턱 놓고 다른 교원들이 시간 보러 갔는지 사무실이 조용한지라 정규상에게 물었다. “어째 초봄인데 벌써 난로에 불을 때지 않소?” 정규상은 한숨부터 후 내쉬었다. “말도 마십시오. 지금은 그래도 군정대학 의학학교로 됐기에 우에서 경비가 좀 내려와 괜찮습니다. 학교가 갓 섰을 때에는 땔나무가 없어서 그 추운 초겨울에 학생들을 데리고 저 해란강 강물에 뛰어들어 다리기둥을 다 뽑아다 땐 적이 있습니다.” 정규상은 한참 의학학교를 어렵게 세우던 이야기를 하고나서 이렇게 뒷말을 달았다. "우리 학교 졸업생들은 동북에서 관내로 쳐나간 제4야전군 후근병원에서 숱한 부상자들을 구해내 빛나는 전공을 세우고 있습니다. 지금 동북 제4야전군 백만대군에서 조선족 장병이 10만명도 넘습니다. 군의와 간호사는 대부분 우리 룡정 위생학교에서 입대한 조선족졸업생들입니다." 병완은 정규상 등 선생들이 중국의 해방을 위해 큰 공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정규상은 부모형제를 따라 조선 고향에 나가지도 않고 중국 용정에 남아 민족의 철저한 해방과 중국의 해방 사업을 위해 힘쓰고 있는 것에 적이 감동됐다. 정규상은 교무처 주임사업에 바쁘면서도 그들에게 점심까지 대접했다… 며칠 후 병완은 봄밭갈이 준비를 하느라고 가대기랑 꺼내 손질했다. 그때 진수해에서 맏손녀 어금이 찾아왔다. “할아버지, 시아버님이 위태로워요.”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가는 어금의 얼굴을 보자 대뜸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병완은 기준과 창준까지 데리고 맏손녀를 따라 부랴부랴 진수해로 주먹을 불끈 쥐고 줄달음쳐 갔다. 사실 최구장은 조선 고향을 떠나 간도에 갓 발을 들여 놓은 후 맏사위 석은과 맏딸 죽순이네가 사는 함흥 촌에 왔었다. 허나 맏손녀 명옥이 상순과 결혼한 후 변소와 사돈집과는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 좋다면서 진수해에 있는 둘째아들 경인네 집에 내려가 살았다. 최구장의 맏아들 경숙은 조개덕 조덕림의 밭까지 청산받아 가졌지만 부모 옆에서 조석으로 모실 생각으로 진수해로 내려가 진수해 남산에 밭을 일구고 살았다. 셋째아들 경민은 조개덕에 밭이 얼마간 있었지만 한 팔을 잃었기에 농사를 짓기 힘들었다. 넷째며느리는 아들 근호를 데리고 국자가로 내려가 시내에서 잡일을 하면서 힘겹게 살았다. 경인의 맏아들 근덕은 조선에서 최구장의 가르침을 받아 일어와 천자문을 익힌 덕에 진수해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결혼까지 하여 맏아들 길운을 보기까지 했다. 그러다나니 경인네 집에서는 근덕의 교원 로임에 경인과 어금이 삯일을 해 번 돈으로 4대가 살다나니 쌀 고생도 모질 했다. 최구장의 노친은 터 밭도 없는 마당에 식칼로 땅을 파고 옥수수 알을 심어 몇 이삭이라도 거두려고 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어려운 형편에서도 경인과 어금은 삯일을 해 푼돈을 모아 부모를 조석으로 잘 모셨다. 병완이네가 어금을 따라 경인네 집에 황급히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최구장은 자식들이 둘러싼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마중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사돈 어른, 일어나지 맙소.” 병완은 바삐 최구장의 손을 잡아주었다. 최구장은 맥없는 눈길로 그들을 둘러보며 가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사돈, 앞길이 멀지 않은 거 같으니 고향, 개, 개성이 그리워요. 개성에는 내 조부, 증조부, 산소까지 있어요. 아, 개성은 조상들께서 대대로 살아온 고향이죠.” 최구장은 눈귀로 맑고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그러자 경숙과 경인, 근덕도 입귀를 씰룩이며 눈물로 두 볼을 적시었다. 어금이랑 명옥이랑 해옥이랑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어깨를 들먹이었다. “개성은 38선을 그을 때 한국에 들어 갔다는구먼. 그 놈 미국 놈들이 천년 력사가 살아 숨쉬는 개성을 남조선에 그어넣자고 생떼질을 썼다는구만. 쏘련도 동맹국인 미국을 어쩌지 못하고 내줬다는구만. 이젠 얘들도 개성에 있는 조상의 산소를 가 볼 수 없게 됐어요. 하, 어쩌다가 조선이 이 지경이 됐나요?” 병완은 최구장의 손을 잡고 위안했다. “사돈어른, 근심 말고 치료 잘 하십시오. 이 다음 개성이 또 북조선에 돌아오겠는지 어떻게 압니까? 아무데서나 배불리 먹고 잘 살면 다 고향입니다. 우린 여기에서 두 번째 고향을 건설하고 악착스레 살아나가야 합니다.” 최구장은 맥없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자손들을 눈 빗질 했다. 경숙은 바삐 “아버지, 우리 여기 있습니다.”라고 하며 다가가 아버지 손을 잡았다. 최구장은 왼손을 힘없이 들어 바깥을 자꾸 가리켰다. 경인과 경숙은 아버지를 부축해 일으켜 마루에 나가 안고 앉았다. 최구장은 남쪽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더니 입술을 실룩실룩하더니 겨우 말했다. “너희들의 고향, 명, 명천에나마 갈 수 있어 다, 다행이다. 너, 너희들 될 수 있으면 조선 고향에 돌아가 살아라. 내 죽으면 아버지와 어, 어머니 산소 옆에 묻, 묻어다오.” “아버님!” “할아버님!” 최구장은 경인과 경숙의 품에 안긴 채 눈물이 글썽한 두 눈을 스르르 감으니 영영 다시 뜨지 못했다. 며칠 후 진수해 남산의 쓸쓸한 산비탈 황야에는 옛 무덤의 아래에 새 무덤 하나가 생겼다. 생전에 조선의 고향을 지키면서 어떻게 하나 고향에서 살려고 아득바득 하던 시골 선비 최구장, 고향에 부모를 두고 떠날 수 없어 유골을 파 모시고 간도까지 들어온 최구장,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고 자손들과 마을의 애들에게 “가,나, 다, 라”에 하늘 천, 따지, 감을 현, 누른 황을 배워주며 애쓰던 한 애국선비가 타향 땅에서 영영 잠들었다. 그렇게 고향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던 한 영혼이 쓸쓸히 구름을 타고 두만강을 넘고 대동강을 날아 넘어 저 멀리 남쪽 고향 산천으로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9.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 봄 아가씨가 날마다 산과 들을 더 푸르게 칠을 하고 있었다. 부르하통하가 굽이굽이 흘러가는 개울가에 푸른 칠을 슬슬 해 올라가더니 영월산에 연분홍 천지꽃밭을 척 그려 놓았다. 봄비를 맞은 나무 잎사귀들이 더욱 파랗게 윤기들 났다. 비단결로 얼굴을 만지는 듯한 부드러운 봄바람이 들판과 산들을 품에 안고 다독이자 영월구에는 따뜻한 봄기운으로 차 넘치고 할미꽃과 천지꽃 갖가지 꽃들이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노래하고 하늘하늘 춤을 췄다. 겨우내 잠들었던 삼라만상은 더는 참을 수 없어 봄 마당에 뛰어 나와 봄 아가씨와 어울리어 노닐었다. 상순은 창남과 만호와 함께 지주 집들을 수사하면서 새로운 동향이 없는가를 살폈다. 영월구에서 전번에 국민당 잔여세력과 악질지주들을 대거 검거하여 처단하고 감옥에 처넣었지만 지방에 남은 지주들 때문에 한시도 시름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점심때가 다 돼 그들은 사무실로 돌아왔다. “바삐 보내는구먼.” 뜻밖에도 군정대학 때 반장 박성우가 상순의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났다. “반장! 어떻게 돼 여기 왔소?” 그들 둘은 서로 끌어안고 잔등을 두드렸다. 박성우는 상순을 놓고 마주 바라보았다. “영월구는 내 고향이 아니고 뭐요? 부모형제들이 다 여기 있는데 왕청으로 가서 어떻게 시름 놓고 일하겠소? 난 조직에 말해 영월구 공안국으로 전근돼 왔소.” “양?!  잘 됐구먼.” 상순은 입이 함박만 해 걸상을 자기 책상 옆에 끌어당겨 놓았다. “앉소. 그러잖아도 현과 구에서 이번 국민당 잔여세력을 숙청한 보고 자료를 쓰라고 하는데 골치 아프오. 내나 창남이나 만호나 글을 쓰라면 얼음 강판에 나선 황소처럼 눈깔을 뒤집힐 지경이오. 이젠 일본 유학생 반장이 왔으니까. 한시름 턱 놓게 됐소.” 성우는 상순과 창남, 만호를 둘러보더니 “허허허, 난 또 동무들과 반대로 총을 쏘고 권투를 하라면 등곬에 식은 땀이 줄줄 흐른다오. 그래, 동무들은 나를 문서로 쓸 예산이오? 임무가 과중한데. 허허허.” 라고 하며 사람 좋게 웃었다. 상순은 성미가 불덩이 같고 급한지라 성우를 재촉했다. “아예 내 사업정황을 말하면 받아쓰오.” 성우는 마지못해 연필과 필기장을 꺼내 들었다.  “이 사람, 정말 우물에 가서 숭늉 달라 할 지경이구먼. 금방 온 사람 숨 돌릴 새도 없이 부려먹네.” 상순은 습관처럼 세 귀 눈을 지그시 감고 그간 국민당 잔여세력과 악질지주들을 숙청한 경과를 상세하게 죽 이야기했다. 성우는 연신 감탄하면서 상순이 말하는 대로 한어로 줄줄 적어 내려갔다.  상순은 만호와 창남을 보고 “보충할 게 없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없소.” 라고 했다. 자료가 다 정리되자 박성우는 다시 한 번 소리 내 읽었다. 상순은 성우의 문필능력에 저도 몰래 감탄이 나갔다. “야, 어쩜 내 말 대로 다 적었소? 그 글재간이 정말 부럽구먼.” 그러자 성우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난 금방 한번 읽어보고 자네 기억력과 논리성에 탄복이 가네. 어쩜 자네 말한 대로 적었는데 참 판에 박은 듯 아주 훌륭헌 서면총화보고자료로 됐단 말이오.” 상순과 박성우가 영월구 허백호 서기한테 자료를 가지고 가서 보이자 혀를 끌끌 찼다. “성우 동무가 오더니 공안국 준비소조 사업이 척척 돼가는구먼. 상순 동무를 보고 총화 보고 자료를 쓰라고 말한 지 일주일이 됐지만 한글자도 쓰지 못 했소. 그런데 성우 동무가 와서 반나절도 안 돼 벌써 자료가 내 손에 들어오다니. 성우 동무는 정말 얻기 힘든 인재요.” “아니, 상순 동무가 있는데 제가 어찌 승리의 과실을 빼앗듯이 국장자리를 바라겠습니까? 이 성우는 고향 영월구에 와서 부모형제를 보살피고 문서나 하면 만족합니다.” 성우는 허백호 서기가 국장자리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귀머거리 자기 좋은 소리를 하듯이 횡설수설 늘어놓았다. 상순은 그저 머리를 숙일 뿐이었다. 허나 허백호 서기는 책임일군 답지 않게 입을 잔뜩 널어놓았다. “상순 동무는 국민당이나 일본 놈들과 싸우는 건 잘 하오. 그러나 공안공작이란 총만 잘 쏴서 되는 게 아니오. 이젠 전국이 거의 해방됐는데 평화 년대에는 싸움을 잘하지만 자료 하나 쓰지 못하고 이후에 어떻게 영월구 공안국 사업을 통솔해 나가겠소?” 성우는 바늘방석에 앉은 듯이 안절부절 못했다. “저는 유학을 갔다 와서 한어나 조선어나 일어, 지어 영어까지 문제없습니다. 허나 공안국 사업은 반동파들을 잡아내고 진압하는 것이 중점사업이기에 저는 안 됩니다. 권총 하나 방정히 쏘지 못하는 선비입니다.” “됐소. 동무들과 인사문제를 토론하는 게 아니오. 모든 건 내 머리에 딱 들어섰으니 더 의논하지 마오.” 상순은 기분이 상해 공안국 준비소조 사무실로 돌아왔다. 뒤에서는 창남과 만호가 씩씩거리면서 뒤따라 왔다. 창남은 사무실에 들어오자 문을 절컥 닫아걸고 두덜거렸다. “일은 누가 했는데 연필을 한식경 밖에 놀리지 않은 선비를 공안국 국장으로 추천하겠다고 말하지 않소? 제길할.” “공안국 국장을 시킬 거 염두에 두고 현위에 말해 성우를 전근시켰다고 하지 않겠소.” 상순은 세귀눈을 지그시 감고 한참 궁리하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동무들, 누가 공안국 국장이 되든 괜찮소. 우린 영월구 치안을 위해 계속 부지런히 사업하면 되오.” “그래도 이건 아니잖소?” “허백호 서기는 사람을 너무 억울하게 구오.” 창남과 만호는 한참이나 두덜거렸다. “박씨는 얼굴마저 백지장 같은 게 여자애 얼굴 같아.” “먹물 냄새나 풍겼지 적들이 덤벼들면 어디 싸울 거 같니? 흥!” “전번에 가져 온 송이버섯을 잘 먹었다고 하는 걸 보면 허 서기는 박 반장한테서 얻어먹고 춰주는 거 같다니까.” 상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하오. 우린 한 마음으로 뭉쳐 원수 놈들과 싸워야 하오. 이후부터 조직의 결정에 복종하고 단결에 불리한 말을 절대 하지 마오.” 그제야 그들 둘은 다발 서너 개나 걸듯 한 입을 억지로 다물어 버리었다. “술이나 한잔 할까?” 뜻밖의 말에 만호나 창남이나 놀란 눈길로 상순을 쳐다보았다. “가기요. 내 한턱 내지. 성우를 데리고 올 테니 가서 용구와 영호도 데리고 가기요.” 상순이 우쭐 일어나더니 바깥으로 나갔다. 만호는 뒤따라 나가면서 “왜 박 반장도 데리고 가오?” 하고 물었다. 상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박 반장이 왔는데 한 잔 나눠야지.”라고 했다. 그런데 상순이 성우를 데리러 갔을 때다. 허 서기가 한창 성우와 조직담화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서 성우의 목소리가 나직이 들리었다. “상순은 무식해서 국장 감이 아닙니다. 저한테 국장을 맡기면 허 서기를 모시고 일을 잘 하겠습니다. 점심에 제가 술을 한잔 사지요.” “그래? 술 좋지. 성우 동무는 전도 있는 동무요. 사람관계를 처리하는 거랑 보면 국장감이 옳소. 허허허. 상순에 비하면 어른이거든. 허허허.” “천만에 말씀을. 하급으로서 웃어른을 잘 모시는 건 의례 예절이고 상식이지 않습니까?” 상순은 허구픈 웃음을 짓더니 발길을 돌려 사무실로 되돌아왔다. 창남은 혼자 돌아온 상순에게 물었다. “어째 그 백지장선비는 오지 않았소?” “성우는 허 서기와 한잔 하러 간다네.” 상순은 묵묵히 사무실에서 나가 시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윽고 그들은 밥상을 네 개 밖에 놓지 못하는 자그마한 음식점에 가서 둘러앉았다. 상순은 개고기와 소고기, 돼지고기에 물고기 각각 한 접시씩 청해 술상에 올리게 했다. “그간 거의 한해 동안 동무들은 이 조장을 따라 고생했소. 자, 오늘 통쾌하게 마셔 보기요.” 모두들 술잔을 쥔 채 마시지 않고 근심스러운 눈길로 잔을 비우는 상순을 쳐다보았다. 상순은 빈 잔을 밥상 위에 달랑 놓았다. “어서, 마시오. 그간 동무들이 술을 마시자고 해도 내가 마시지 못하게 했는데 미안해. 오늘 통쾌하게 마시자고.” 그제야 모두들 한 숨을 후 내쉬며 술잔을 비웠다. 서너 순배 술이 돌아가자 상순은 용구를 마주 보며 말했다. “용구, 자넨 정말 용감하게 잘 싸웠소. 네가 진극신을 검거했기에 우린 영월구 국민당 반동파 잔여세력을 일거에 소탕할 수 있었네. 이후에 계속 골간이 돼 영월구 치안을 잘 하기를 바라네.” 상순은 용구의 손을 잡았다. 용구는 눈물이 글썽해 울먹거리었다. “김 조장, 가르침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번엔 영호의 손을 잡고 뒷말을 이었다. “영호, 자네가 장부귀를 검거했기에 이번 국민당 잔여세력 숙청이 멋진 막을 내리게 됐네. 허나 자넬 제때에 발견해내지 못해 내내 속에 걸리었네.” 영호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김 조장, 오늘 무슨 말씀을 이렇게 합니까? 김 조장이 우리 집까지 와서 나를 찾아보고 써주지 않았습니까? 이후에 치안사업을 잘 하겠습니다.” “아, 아니야. 동무들은 우리 공안국의 골간들이오. 헌데 내가 동무들을 사업만 시키고 너무 관심해주지 못해 미안하오. 동무들은 장차 국장으로 될 박성우 동지를 잘 받들어 일해야 하오. 그는 우리 군정대학교 때 반장이고 일본 유학생이오. 그는 조선어는 물론 한어, 일어, 뭐 영어라든가? 다 안다오. 그는 군정대학교 때 내 선생이나 다름없었네. 영월구 공안국은 그와 같이 먹물이 고인 대학생이 영도해야 날따라 발전하는 국내외 정세에 맞게 공안국을 이끌어 치안사업을 잘 할 수 있네.” 상순은 취하지 않았다. 복무원을 보고 술을 한병 더 가져오라고 해 일일이 손수 한잔씩 부어주고 나서 정중하게 말했다. “동무들에게 부탁하오. 다 함께 박성우 국장을 받들어 치안사업을 잘 하오.” “픽!” 용구가 코웃음을 쳤다. “박성우가 뭐 국장이요? 우리 국장이야 김 조장이지.” “김 조장이야 말로 당당한 국장이지. 군사실력이나 연설실력이나 사업실적이나 당할 자가 누구란 말이오?” 술상이 웅성웅성 했다. “자, 자, 또 그 말이오? 단결에 불리한 말을 하지 말래도.” 상순은 더 마시면 단결에 불리한 말이 길어질 거 같아 따뜻한 개장국을 한 사발씩 청해 식사를 청했다. 이튿날 아침 상순은 사무실에 나가자마자 창남과 만호와 토론하고 새로운 결정을 내렸다. 공안국 준비소조의 십여 명 공안일군을 크게 네 개 과로 나누어 배치하고 창남과 만호, 용구와 만호를 각각 과장으로 임명했다. 상순은 차렷 자세로 서 있는 네 과장들의 손을 일일이 꽉 잡아들 주었다. “동무들은 우리 영월구 공안국의 골간들이오. 명심하오. 사업만 사업이라고 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글을 배워야 하오. 허 서기 말처럼 전쟁 때는 목숨을 내걸고 용감하게 싸우는 용사가 필요하지만 전쟁을 하지 않는 평화시대에는 먹물이 꽉 배긴 선비를 요구한단 말이오. 명심해 공부를 하오. 난 집이 가난해 어려서 공부를 하지 못한 게 후회될 뿐이오.” 상순은 문 밖에 박성우가 얼른거리는 것을 보았지만 계속 하던 말을 했다. “이후에 어떤 변동이 생기더라도 동무들은 공안사업에 충성하고 나라와 인민을 위해 치안사업을 잘 하오. 이후에 권력이 커져도 항상 마음 속에 인민을 품고 인민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오. 절대 사심을 챙기지 말고 단결을 파괴하지 말고 창끝을 원수들에게 돌려야 하오. 내가 조장을 담임한 기간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당부도 이것 밖에 없소.” “명심하겠습니다. 김 조장!” 용구는 머리를 숙이고 팔소매로 눈물을 닦기까지 했다. “용구, 씨름 일등을 한 천하장사답지 않게 웬 눈물을? 쯧쯧.” 상순은 용구의 어깨를 툭툭 다독여주며 “일을 잘 하오.” 라고 하고나서 그들 넷을 일일이 믿음에 찬 눈길로 바라보며 한숨을 후 내쉬었다. 성우는 상순이 준비소조 조장의 직권을 행사하는 것을 눈을 뻔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불이 나게 구 당위 사무실로 달아갔다. “허 서기, 상순 동무는 구 당위 비준도 없이 사사로이 공안국 과장들을 임명하고 있습니다.” 그때 금방 출근한 허 서기는 성우의 보고를 듣자마자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노발대발했다. 그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어 책상을 꽝 치었다. “보자보자 하니 안하무인이구만! 가기요!” 허 백호 서기는 박성우를 데리고 곧추 공안국 준비소조로 화살같이 뛰어갔다. 허 백호 서기는 준비소조 사무실 문을 쾅 박차고 들어가면서 목에 지렁이 같은 피 줄을 세웠다. “야! 상순아, 삼도만 토비숙청 때도 안하무인이더니 계속 지랄하겠는가?!” “뭘 잘 못했습니까?” “야, 이게. 누구 앞이라고! 내 비준도 없이 마음대로 과장을 임명하오?!” 상순은 결코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허 서기! 난 지위 지도자의 파견을 받고 영월구 공안국을 세우러 온 준비소조 조장입니다. 난 영월구 공안국 중층간부를 임명할 권한이 있습니다.” “지위에서 동무를 보고 지방 당위의 영도를 이탈하라고 했는가?! 당이 총을 지휘하지 총이 당을 지휘하는가?” 상순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 공안국은 공산당의 한 개 조직이 아니고 국민당 조직입니까? 당위만 당이고 공안국 당 조직은 당 조직이 아닙니까? 지금은 전쟁시기여서 군관제라는 걸 명심하십시오. 난 군정대학을 졸업한 당당한 중공 당원이고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입니다. 나는 공안국을 건립하고 과장을 임명할 인사권이 있습니다.” “참 그럴듯한 공산당원이구나. 조직 관념이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없구먼.” “내 임명결과를 허 서기한테 회보하려고 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이 네 동무는 우리 영월구 공안국의 골간들입니다. 그들 넷은 모두 당당한 과장들입니다. 과장으로 임명한데는 잘 못이 하나도 없습니다.” “쳇, 고까짓 토끼 꼬리만한 조장을 시키니 우쭐해서 안하무인이구만. 삼도만 토비숙청 때도 기관총 반장을 하면서 최낙현 퇀장한테 나를 고자질 하고 부 연장을 하려고 들더니? 이번에 콧대를 꺾여 봐야 알겠는가?” 상순은 책상을 꽝 치며 일어났다. “허 서기! 생사람을 잡지 마십시오! 그때 그래 빤빤한 산비탈에 숱한 병사들을 세워 놓은 게 옳았습니까? 통신원도 바로 허 연장 때문에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거기 세워 놓았더라면 우리 연의 숱한 동무들이 희생됐을 게 아닙니까! 마땅히 군법에 의해 허 연장을 처분해야 합니다.” “이 동무, 이게! 배은망덕한 놈이로구나. 기관총 사격을 잘 한다고 반장으로 승급시켰더니 오히려 길러준 개 발 뒤축을 무는구먼!” “시비 없고 원칙에 어긋난다면 상전이든 부하든 가차 없이 시비할 것입니다!” “쳇, 기고만장하기로서니! 조직원칙이 있소? 없소? 사전에 구 당위와 토론도 없이 먼저 간부를 임명해놓고 회보하다니?!” 허백호 서기는 생각 밖으로 맞서는 상순 앞에서 용빼는 수가 없었다. “어째 유능한 박성우 동무는 아무 관직도 임명하지 않았소?” “허 서기는 박 반장을 국장으로 추천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상순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째 자기절로 자기를 국장으로 임명하지 않았소?” “난 용구 과장이 맡은 과에서 일반 공안일군으로 일할 각오가 돼 있습니다.” 허 서기는 물론 성우나 용구 모두들 깜짝 놀라 했다. 허 서기는 꼿꼿한 눈초리로 상순을 노려보았다. “아마 그럴 각오를 해야 될 거야. 어디 두고 보자.” 상순은 사무실을 맥없이 나가는 허 서기의 잔등에 대고 코웃음을 쳤다. “난 허 서기한테 송이버섯도 줄게 없고 다만 원칙을 내세우고 시비만 할 예산 밖에 없습니다.” 용구와 창남 지어 허영호까지 허 서기 뒤에 대고 두덜거리었다. 허 서기가 사라지자 그들의 눈길은 대뜸 박성우한테 돌려졌다. 박성우는 그 숱한 증오의 눈길을 받아 당하기 어려워 바깥으로 훌 나가 버렸다. 공안국 준비소조 사무실에는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기분이 휩싸이고 있었다.
108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71) 댓글:  조회:1410  추천:0  2017-06-26
                                                                     6. 오두막의 부자간과 처녀애 이튿날부터 상순은 천용구와 허영호 등 여러 촌에서 새로 모집해온 30여명 신입공안일군들을 일렬횡대로 세워놓고 포치했다. “동무들은 고찰을 거쳐 우리 공안국 준비소조에 들어온 훌륭한 동무들입니다. 오늘부터 각 마을로 내려가 군중들을 발동해 친일주구와 국민당 특무, 악질지주들을 검거해 내십시오. 일단 정황이 있으면 즉시 공안국 준비소조에 돌아와 보고하십시오.” “옛!” 허영호는 안보 촌으로 내려가고 천용구는 흥기 촌으로 내려갔다. 다른 동무들도 모두 자기가 있던 마을로 파견돼 내려가 조사사업을 벌렸다. 상순은 또 10여명 공안일군을 진수해구, 영월구 등 전 현 각 구에 파견해 파출소 건립준비를 하게 포치하였다. 파출소 공안일군을 모집하고 사무실을 마련하는 일은 직접 상순이 책임지고 채바퀴 돌듯 돌아다녔다. 어느 날, 상순이 금방 영월구 시내에 내려가 파출소 건립준비정황을 검사하고 공안국 준비소조 사무실에 돌아왔을 때다. 천용구가 헐떡거리면서 사무실에 급급히 뛰어 들어왔다. “보고, 김 조장, 긴급정황입니다.” “무슨 일이오?” 상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 마을에서 한 십여 리 떨어진 골 안에 수상한 놈이 있습니다. 이전에 마을 사람들이 나무 하러 그 골 안에 갔다가 땅굴 같은 오두막에서 열대여섯 살 난 여자애와 함께 사는 한 마흔 살 푼한 한족사내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 아들을 데려온 후 그 여자애를 며느리로 삼았답니다. 나무꾼들이 그 원두막에 들어가서 몸을 녹이다가 보니 이불 밑에 비수랑 보이더랍니다.” “그래?” 상순은 세 귀 눈을 떼룩거리더니 벌떡 일어났다. “창남이, 가 보기요.”  상순은 벽에서 개털 모자를 벗겨 쓰고 천용구를 따라 나섰다. 그들은 눈보라를 무릅쓰고 곧추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는 산골 안에 있는 그 오두막으로 뛰어갔다. 그들이 오두막에 거의 뛰어갈 때었다. 때마침 눈보라 속에 웬 사람이 오두막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저 자입니다.” 상순은 “서라!”고 고함쳤다. 그 자는 이쪽을 내려다보더니 주먹을 불끈 쥐고 산등성이 쪽 수림으로 달아났다. 상순과 창남은 권총을 뽑아들고 쫓아가면서 고함쳤다. “서라!" "서지 않으면 쏜다!” 그러나 그 자는 죽을둥 살둥 모르고 계속 달아났다. 상순은 오두막 안을 들여다보고나서 창남과 용구를 돌아보았다. “저 자들을 잘 지키오. 내 저 놈을 붙잡을 게.” 말을 마치자 상순은 그 놈을 추격해 갔다. 그런데 용구도 뒤따라 왔다. “어째 왔소? 빨리 돌아가오!” “창남이 혼자 그 놈들을 지킬 수 있답디다.” 상순은 앞에서 도망치던 자가 계속 달아나는 것을 보고 공중에 총을 한방 갈겼다. “계속 달아나면 쏜다!” 그 놈은 수림 속에 주춤 멈춰 섰다가 또 꼬리 빳빳해 도망쳤다. 그때 천용구가 주먹만한 돌멩이를 쥐고 쫓아가다가 뿌렸다. 씽- 날아간 돌멩이가 그 놈의 종아리를 딱 깠다. “아이야!” 그 놈이 눈 우에 푹 꼬꾸라졌다. 그 놈은 다시 일어나 쩔뚝거리면서 또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때 천용구가 뛰어가 뒤에서 와락 덮쳐들어 안걸이를 걸어 메치고 오른 팔을 비틀어 대가리를 꽉 내리 눌렀다. 비틀린 그 자의 오른 손에는 시퍼런 비수가 쥐어 있었다. “꼼짝 말엇!” 상순은 쫓아가 그 자의 대갈통에 권총을 겨누고 비수를 빼앗아냈다. 천용구는 그 자의 팔을 비틀며 일어났다. 상순은 그자의 가죽 띠를 풀어내 두 팔목을 뒤로 제껴 꽁꽁 묶었다. 천용구는 그 자의 목덜미와 묶은 팔을 비틀어 쥐고 산 아래 오두막으로 내려 왔다. 오두막에 들어가 보니 만삭이 된 어린 여자애와 청년이 이미 창남에게 결박된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상순은 오두막 안을 여기 저기 뒤번지다가 이불 밑에서 시퍼런 비수를 또 한 자루 들춰냈다. 상순은 비수를 중년 사나이에게 들이대면서 물었다. “뭐 하려고 비수를 감췄어?” 그 자는 부들부들 떨면서 상순과 창남의 권총 구멍을 흘끔거리며 떠듬떠듬 말했다. “난 살 길이 없어 여기로 와서 사는 불쌍한 류랑민이요.” “고향은 어딘가?” “산동이오.” “왜 비수는 차고 다니는가?” “산골에서 강도를 만날가 봐 그러오.” 상순은 창남을 돌아보며 조선말로 말했다. “이 놈이 흘끔거리는 걸 보오. 참 수상한 놈이오. 세 사람을 따로 따로 신문하기요.” 상순은 중년사내를 끌고 바깥으로 나가 오두막 서쪽으로 가서 심문하였다. 창남은 청년을 데리고 오두막 동쪽으로 가서 심문하고 용구는 오두막 안에서 여자애를 심문했다. 상순은 한참 심문해도 중년사나이에게서 오두막 안에 있던 청년은 그의 아들이고 여자애는 며느리라는 것 밖에 더 알아내지 못 했다. 창남도 그 이상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용구는 여자애한테서 다른 정황을 알아냈다. 여자애는 진사괴라는 그 중년사내에게 납치당한 후 산동으로부터 이 산골에까지 끌려와 갖은 능욕을 다 당했다고 했다. 그 여자애가 임신해 배가 불러오자 자기 아들 진극신을 데려다가 남들이 물어보면 며느리라고 꾸며 대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년사내는 낮이면 항상 비수를 차고 산골짜기 밀림 속에 가서 숨어 있고 밤이면 우두막에 돌아와 부자간이 자기를 윤간했다고 했다. 상순은 용구를 보고 중년사내와 청년을 지키게 하고 창남과 함께 여자애를 돌파구로 삼아 따로 심문했다. 그때 진사괴는 여자애를 쏘아보며 위협했다. “더러운 년, 주둥이를 조심해라.” 힘장사 천용구는 두 작자를 한손에 한 놈씩 마구 끌고 바깥으로 나갔다. 상순은 배가 뚱뚱한 여자애를 먼저 안심시켰다. “두려워하지 말고 말해라. 우린 공안일군들이다. 너를 고향의 부모에게 돌려보내 주겠다. 저 작자는 뭘 하는 사람이냐?” “딱 뭐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허나 저 부뚜막 앞을 파면 권총이 있을 겁니다.” 그 여자애는 부뚜막에 내려가 손으로 검불을 치우고 널 쪼각을 뜯어냈다. 땅 밑에 파묻은 자그마한 상자 안에서 권총이 나왔다. 그때 바깥에서 우당탕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천용구의 고함소리도 들렸다. "감히 덤벼?!" 상순은 인차 창남을 데리고 와닥닥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웬 일인가! 사실 용구가 바깥에서 진사괴와 진극신을 지킬 때다. 진사괴는 적수공권인 용구가 혼자 지키는 것을 보고 불시에 와닥닥 달려들어 머리로 들이 받았다. 그러자 진사괴는 발길로 용구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용구는 아픔을 참고 누워서 발길로 진사괴의 불 중태를 걷어차며 벌떡 뛰어 일어났다. 손을 뒤로 묶인 진사괴와 진극신은 용구를 걷어차고 머리로 받으며 협공했다. 천용구는 씨름재간이 있는지라 먼저 진극신을 안걸이를 걸어 땅바닥에 메쳐 놓고 무쇠 같은 주먹으로 때려 눕혔다. 그런데 진극신은 용구의 팔을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아버지, 빨리 도망쳐라!” 그 틈을 타 진사괴는 용구의 엉덩이를 탁 걷어차 눕히고 와닥닥 산골짜기로 달아났다. 상순과 창남은 달아나는 진사괴를 쫓아가며 권총을 뽑아 들었다. “꼼짝 말엇!” “계속 뛰면 쏜다!” 진사괴는 붙잡히면 죽을 것을 알고 계속 수림 쪽으로 엄벙덤벙 달아났다. 땅! 상순은 권총으로 진사괴를 쏘았다. 30여메터 달아났던 진사괴는 종아리를 붙잡고 풀썩 꼬꾸라졌다. 그제야 질겁한 진극신은 대가리를 뚝 떨어뜨렸다. 상순과 창남은 천용구와 함께 진사괴와 진극신을 압송해 영월구로 내려 왔다. 돌아오는 길에 진사괴와 진극신에게 들춰낸 권총을 보이면서 탄백하라고 하였지만 입에 빗장을 지른 채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진사괴의 고향에 알아본 결과 진사괴는 무순시에 주둔한 국민당군의 영장이였는데 심양이 해방될 때 도망쳐 온 놈이었다. 상순은 영월구 당위 허백호 서기를 찾아가 진사괴를 더 심문하여 당지 배후에 동당이 없는가 파보자고 했다. “그 놈은 국민당 도주병일 따름이오. 무슨 배후가 있겠소?” “그래도 잘 심문해 보아야 합니다.” “그럼 그러오. 감옥도 온전한 게 없으니까 그 놈들을 잘 지키게나.” 상순은 “예.” 하고 공안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진사괴와 진극신을 따로 가둬놓고 주야로 심문을 들이댔다. 허나 진사괴와 진극신은 주둥이에 빗장을 지르고 한마디도 토설하지 않았다. 상순은 또 만삭이 된 여자애를 데려다 물었다. “진사괴를 찾아다닌 놈들이 몇이 있다던데 알만 하니? 네가 우리 묻는 말에 잘 대답하면 고향으로 돌려 보내주겠다. 진사괴와 진극신은 총살당할 놈이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이실직고해라.” 그러자 여자애는 로실히 말했다. “있습니다. 장가란 사람이 여러 번 왔댔습니다.” “그래? 그 놈들이 무슨 토론을 하더냐?” 여자애는 상순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면서 이실직고했다. “영월구에 파출소가 선다던데 없애치우자고 했습니다.” “그래? 언제쯤 손을 쓰자고 했니?” “건 진사괴와 장씨가 바깥에 나가 쑤군거려서 잘 모릅니다.” “그 외에 수상한 자가 더 없느냐?” “장씨 외에도 둘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음, 알았다.” 그리하여 상순은 창남과 토론하여 대책을 세웠다. 상순은 먼저 상급 부문과 연계하여 그 여자애에게 로비를 주어 료녕성 무순의 고향에 돌려보냈다. 진사괴와 진극신은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 감옥에 가둬 놓았다. 상순은 국민당 잔여세력을 숙청하는 한차례 전투에서 용감히 싸운 천용구를 정식으로 공안일군으로 받아들이었다. 허백호 서기도 다른 말이 없이 공을 세운 천용구를 공안일군으로 받아들이는데 동의했다. 상순은 장씨 놈을 나포하기 위해 창남과 만호 그리고 천용구까지 데리고 오두막 주위에 가서 매복 진을 쳤다. 상순은 직접 미끼로 되어 오두막 안에 들어가 숨고 창남과 만호는 오두막 주위에 눈구덩이를 파고 주위 동정을 살폈다. 허나 낮에는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밤중이 되자 수림 속에서 무슨 두런두런 말소리가 점점 가까이에서 들리었다. 바깥의 창남이네는 그 검은 그림자들이 진사괴와 련계 있는 국민당군 비도들이 옳은지 확인할 수 없어 총을 쏘지 못하고 있었다. 상순은 오두막 문 뒤에 숨어 권총을 빼들었다. 허나 그도 적을 확인하기 전에는 사격할 수 없었다. 검은 그림자 대여섯이 희희닥거리면서 눈을 빠드득빠드득 밟으며 오두막으로 다가왔다. “장 연장, 우리가 여기서 유격전을 할 줄이야 공산군이 어찌 알겠습니까?” “그래, 알 수 없지. 나도 이전에 영월구에 온 상순 놈과 함께 이 지대에서 일본 놈들과 유격전을 한 적이 있네. 난 바로 그때 항일유격대식 유격전술을 써서 장백산 일대에서 공산군과 유격전을 하겠네. 자네들은 날 믿게나. 우리 뒤에는 국자가에 있는 왕련락원이 있다는 걸 알게나. 그가 한마디만 하면 이제 국민당군 한 개 영이나 하늘에서 락하산을 타고 장백산 일대에 내릴 걸세. 그때면 상순이네 몇몇 민병들쯤이야 개미떼처럼 짓밟아 없앨 수 있어. 허허허.” 상순은 귀에 익은 목소리에 놀랐다. (혹시 충국이? 설마?) 상순은 권총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었다. 문을 여는 삐꺼덕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들어왔다. “진영장, 불을 켜오. 장충국 연장이 왔소.” 땅! 순간 상순이 먼저 들어서는 놈에게 총을 쏘았다. 총소리와 함께 바깥 눈구덩이에 매복했던 창남과 만호, 용구가 사격했다. 세 놈이 쓰러졌다. 다른 세 놈이 살아남아 수림 쪽으로 달아났다. 상순은 오두막에서 나와 그 놈을 추격하며 고함쳤다. “충국아, 상순이 여기서 네놈을 기다린 지 오래다! 서라!” “상순이? 허허허. 잘 만났어. 이발도 나지 않은 놈이 국군 연장을 잡으려고? 내 인정을 봐서 살려주니까 더 쫓지 말라!” 땅! 총소리와 함께 상순이 종아리에 총을 맡고 쓰러졌다. “김 조장!” 용구가 달려와 자기 바지 자락을 찢어 상순의 상처를 싸매주었다. 수림 속에서 충국의 너털웃음소리가 들리었다. “허허허! 한방 맞았지. 옛정을 봐서 쫓아오지 못하게 종아리를 쏘았다. 이제 더 쫓으면 대갈통에 구멍을 내 줄 테야!” 상순은 눈 우에 쓰러진 채 달아나는 허연 눈 우의 검은 그림자를 노려보더니 총을 쏘았다. 땅! “앗!” 상순의 총소리와 함께 충국이 허벅지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땅! 용구가 방아쇠를 당기자 또 한 놈이 쓰러졌다. 살아남은 다른 한 놈은 다리야 날 살리라고 수림 속으로 도망쳤다. 상순은 눈 우에 누운 채 허연 눈 우로 달아나는 검은 그림자를 향해 쏘았다. 땅! “앗!” 창남과 만호도 그 놈을 쫓아 수림 속으로 들어가며 총을 쏘았다. 땅! 땅! 장충국도 쓰러진 채 덮쳐가는 창남과 만호에게 총을 쏘았다. 땅! 땅! 땅! 절컥 절컥 충국은 총알이 떨어졌다. 그때 용구가 백두산의 맹호마냥 충국을 덮쳤다. 충국은 자살하려고 권총으로 자기 대가리를 마구 쳐대다가 용구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용구는 충국의 팔을 비틀고 권총을 빼앗아냈다. 만호와 창남은 눈가슴을 헤치며 도망친 놈을 추격했다. 허나 한참 뒤쫓다가 그 놈을 찾지 못해 되돌아 왔다. 상순은 용구에게 업힌 채 만호와 창남을 보고 충국을 압송해 오두막 안에 들어가라고 했다. 상순은 바깥에서 바지를 내리우고 오줌을 누면서 손으로 오줌을 종아리 상처에 발랐다. 상순은 등잔불을 밝힌 후 충국을 보고 오줌으로 허벅지 상처를 처치해주자고 했다. 그러자 충국은 “아무튼 죽을 목숨이니 처치할 필요 없다. 어서 한방에 죽여라.”라고 했다. 허나 상순은 용구더러 충국의 피 흐르는 허벅지에 오줌을 받아 처치하고 싸매주게 했다. 뒤이어 상순은 용구를 바깥에 보초를 서게 하고 창만과 만호를 보고 격살된 놈들의 총을 걷어 들이라고 명령한 후 충국을 단독으로 심문했다. “총을 맞대고 너를 다시 만날 줄은 몰랐다. 모두 몇 명이 왔느냐?” 충국은 등잔불 밑에서 냉소했다. “쳇, 나를 욕보이지 말고 어서 한방에 죽여라!” “내 뭐라던가? 고까짓 밭 몇무 때문에 또 국민당군에 들어가다니? 넌 삼도만에서 기의를 일으켰기에 관대처분을 받을 수 있었은데 왜  호박을 쓰고 돼지굴에 또 뛰여들었어? ” “흥! 우리 둘은 계급 이익이 달라서 한 하늘을 쓰고 살 수 없다. 너는 조선에서 건너 온 가난뱅이들의 이익을 위해 싸우지 않느냐? 나도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아오면서 물려온 우리 땅을 지키려고 싸웠을 뿐이야. 승패는 병가지상사이니 용감히 싸우다가 졌으니까 이젠 죽어도 후회 없어! 의형제의 옛정을 봐서 더 고통을 주지 말고 여기서 단방에 죽여달라! 우리 아버지에게 내 여기서 영용히 희생됐다는 말을 절대 하지 말라!" 충국은 토비들의 대세가 기운 것을 보고 마지못해 기의를 일으켰지만 야마꼬 모자를 상순에게 부탁하고는 시름놓고 수하들을 데리고 도망쳐 장춘의 국민당군을 찾아갔던 것이다. 전보흥 소교한테 기의한 일을 들키웠기에 전소교를 따라 길림에 가지 않고 장춘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상순은 랭소했다. "이 마당에 아비 근심돼?" "응. 난 효자야. 량심있는 사람이야. 한가지 묻자." "뭔데?" "우리 부모형제와 야마꼬 모자 무사하냐?" "허허허. 네 아버진 근심말라. 야마꼬는 일본에 보냈어." "뭐라고?" 충국은 상순에게서 야마꼬 사연을 듣고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기실 충국은 지학사가 죽었기에 야마꼬를 자기 데리고 살 궁리를 했다. 그런데 자기 애비때문에 야마꼬를 놓친 것을 아쉬워했다. "미안하지만 상순아, 내 아버지를 너에게 부탁하자. 그는 공산군에 미안한 일을 한 게 없잖니?” 상순은 한마디로 맺고 끊 듯했다. “네 아버지는 근심하지 말라! 항일전쟁시기 유격대가 제일 어려울 때 쌀을 대주었지. 다른 지주와는 달리 총살도 하지 않았고 밭도 남겨주고 안전하게 살게 됐다. 허나 내 개인 인정으로 널 살려둘 순 없다. 넌 장춘에서 이미 숱한 인민들의 피를 손에 묻혔기에 인민정권의 재판을 받아야 한다.” 충국은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허나 난 네 다리를 쏘았을 뿐. 삼도만과 길림, 장춘, 심양 그리고 여기에서 한 사람도 죽인 적이 없다.” “총 한방 쏘지 않고 연장까지 됐겠구나.” “장춘이 포위되자 진사괴 영장은 패장인 날 보고 련장을 하라고 했다. 대부대 전투를 해보지 못한 너 같은 시골 놈은 잘 모를 거야. 장춘전투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쓸 데 없는 말을 하지 말고 달아난 놈이 누군가를 말해라. 진사괴도 이미 체포돼 너까지 다 불었다.” 허나 충국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도리머리 질 했다. 마을에 내려갔던 용구가 둬 식경 후에 수레를 몰고 왔다. 상순과 충국은 한 수레에 앉아 산 아래 안보 촌을 거쳐 영월구로 내려가게 됐다. 충국은 안보 촌을 지날 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상순아, 이전에 너와 형내와 함께 장백산에 약을 가지고 가다가 이 마을에서 일본군을 만났던 건데.” “그게 다 옛날 일이지. 그때처럼 공산당을 따라 계속 싸웠더라면 무슨 오늘과 같은 일이 있겠는가? 삼도만에서 기의한 후 집에 돌아갔어두 이런 일 없지. 흥!” 충국은 머리를 툭 떨어뜨리더니 한숨을 후 내쉬었다. “앞날이 멀잖기에 너에게만 말하마. 나는 장춘에서 빠져나온 후 진영장을 따라 심양 부근까지 갔어. 심양이 함락될 때 나와 진영장은 영구로 달아나는 대오에서 빠져 여기에 나왔어. 부모형제와 고향을 버리고 군함에 앉아 대만으로 가긴 싫었어. 장백산 원시림에 숨어 유격전을 하려고 했어. 이렇게 네한테 붙잡힐 줄은 몰랐군.” 묻지도 않는 말을 하자 상순은 한마디 물었다. “수림 속으로 달아난 놈은 누군가?” “말할 수 없어. 다 나를 따라 온 불쌍한 애들이니까.” “그럼 자네 아버지 생사를 담보하지 못해.” 충국은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눈보라가 눈앞을 분간하기 어렵게 윙윙 기승스레 휘몰아쳤다.                   7. 자위대를 숙청 며칠 후 안보 촌에서 조사하던 허영호가 공안국 준비소조 사무실에 헐금씨금 뛰어 들어왔다. “김 조장, 마을 애들이 한 집 이영 밑에서 새 둥지를 들추다가 권총 한 자루를 발견했습니다.” “뭐라고?” 상순은 벌떡 일어나더니 물었다. “그래 한족 집이던가?” “아니, 조선족집입니다.” “그래?” “권총은 회수하고 그 집 식구들을 조사하는 중입니다.” 영호는 권총을 꺼내 상순의 책상 우에 놓았다. 상순은 권총을 주어들고 찬찬히 보았다. “진사괴의 권총과 똑같은 미제 모젤권총이구먼. 틀림없이 진사괴와 한 무리일 거야.” “집주인은 한족이오? 조선족이오?” “한족입니다.” “수상한 점이 없는가?” “요즘 그 집 주인 장부귀란 사람은 낮이면 쿨쿨 자기만 하고 밤이면 어디엔가 자주 나다녔습니다.” “어데 상한 데는 없었소?” “손을 붕대로 동여맸는데 말로는 땔나무를 패다가 도끼에 찍혔답니다.” 상순은 대뜸 세귀 눈을 치켜떴다. “그래? 오른손? 왼손?” “아마 오른손인 거 같은데.” 영호는 머리를 갸우뚱 했다. “가기요!” 상순은 노획한 모젤권총도 허리에 찌르더니 일어서다가 상을 찡그렸다. 용구는 바삐 상순을 부축하며 말렸다. “김 조장, 다리를 상해 어떻게 갑니까? 우리 가서 잡아 오겠습니다.” 그리하여 용구와 영호가 자전거를 타고 안보 촌으로 달려갔다. 영월 구에서는 괜찮았는데 시내를 벗어나자 눈길이 나지 않아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여간만 힘들지 않았다. 그들은 몇 번이고 내려 안간힘을 다해 자전거를 밀기도 하면서 간신히 안보 촌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안보 촌에 도착하자 다짜고짜로 그 집에 뛰어 들어가 집 주인을 체포했다. 공안국 준비소조 사무실에서 상순은 세귀 눈을 부릅뜨고 쏘아보며 심문했다. “이름이 뭔가?” “장부귀오.” “고향은 어딘가?” “료녕성 영구.” 장부귀는 뻔뻔스레 머리를 쳐들고 대들었다.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오?” 상순은 권총을 꺼내 책상 우에 꽝 놓았다. “이건 뭔가?!” 장부귀는 대수럽잖게 권총을 보더니 억울하다는 듯이 웃었다. “아, 애들이 우리 집에서 들춰낸 걸 가지고. 난 그 집에 이사해온지 오래지도 않소. 누가 우리 집 이영에 권총을 치웠는지 내 어떻게 아오?” 상순이 찬찬히 여겨보니 장부귀의 피로 얼룩진 오른 손이 무릎 우에서 바르르 떨고 있었다. “오른손은 어떻게 된 일인가?” “땔나무를 패다가 도끼에 찍혔소.” 상순은 책상을 꽝 치며 벌떡 일어났다. “이 놈, 아직도 이실직고하지 않겠는가? 오른 손 붕대를 풀어!” 상순의 명령이 떨어지자 용구가 장부귀의 오른 손의 붕대를 풀었다. 상순이 다가가 찬찬히 여겨보니 손바닥에 난 상처는 절대 도끼에 찍힌 일자로 된 상처가 아니었다. 찬찬히 여겨보니 분명 총알구멍이었다. 상순은 장부귀의 오른 손을 비틀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 놈! 네 놈이 며칠 전 수림 속에서 총에 맞은 상처라는 걸 모를 거 같애? 살겠거든 탄백해라. 진사괴와 장충국도 우리한테 몽땅 생포돼 다 탄백했다. 네 놈도 고향에 끌고 가면 모든 게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 거야.” 장부귀는 아파 바스러지는 듯이 비명을 지르면서도 요행을 바라고 입에 빗장을 지른 채 한마디도 탄백하지 않았다. 상순은 용구에게 “그 놈을 따로 가둬라.”라고 했다. 사실 상순은 진사괴와 진극신, 장충국을 각각 다른 감방에 격리해 가두었던 것이다. 놈들은 서로 탄백했는지 죽었는지 하나도 알지 못하게 됐고 서로 내통하지 못하게 됐던 것이다. 상순은 용구와 영호에게 “진사괴를 끌어오오.”라고 했다. “옛!” 진사괴는 끌려오자 왕청 같은 소리를 했다. “난 국민당 군 영장이야. 네놈들과 싸우다가 포로 됐다. 듣는 말에 의하면 공산군은 포로를 환대한다던데. 넌 무슨 계급의 놈이건대 본 영장한테 매를 들이대는 거야!” 상순은 책상을 꽝 치며 호통 쳤다. “포로? 네놈은 투항한 게 아니야. 우리한테 총을 맞고 나포된 거야.” 용구가 옆에서 상순을 가리키며 끼어들었다. “저분은 우리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이다! 네놈이 탄백하지 않았다간 총살해 버릴 수도 있는 분이다.” “조장? 허허허!” 진사괴는 허무해 허구한 너털웃음을 웃었다. “조장 따위가 국민당 정규군 영장을 심문해? 자격 없어!” “이 놈, 여긴 공안국이야. 생포된 주제에 빈정거리긴?! 꿇어 앉혓!” 상순은 세귀눈을 부릅뜨고 진사괴를 쏘아보며 심문했다. “우리 공산당 정책을 알지? 로실히 탄백하면 관대하게 처리하고 항거하면 호되게 징벌한다. 말해! 네 놈들의 이른바 장백산 원시림 유격전의 구체계획이 뭔가?!” 진사괴는 코웃음 쳤다. “이 놈아, 탄백해도 죽고 탄백하지 않아도 죽을 건 뻔해! 더 괴롭히지 말고 단방에 죽여라!” 상순은 세귀눈을 치켜떴다. “정말 죽기 전엔 말하지 않겠는가?!” “두 말하면 잔소리지. 어서 총살해라!” 상순은 진사괴를 무섭게 쏘아보았다. “악질 국민당 놈! 당장 끌어내다 총살해!” 상순은 용구와 만호를 시켜 진사괴를 끌고 나가게 하고 다른 공안일군들을 시켜 장충국과 진극신, 장부귀를 간격을 두고 끌고 진사괴가 끌려간 뒷산으로 끌고 가게 했다. 산에서는 앙상한 나무를 스치며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소리가 사납게 들릴 뿐이었다. 상순은 그간 장단지에 오줌으로 찜질을 했기에 총상이 많이 나아 지팡이를 짚고 자체로 걸을 수 있었다. 충국도 상순이 억지로 오줌으로 찜질하여 많이 상처가 나았다. 허나 걷기 힘들다고 상순은 수레를 메워 가지고 충국과 함께 앉아 뒷산으로 갔다. 산기슭에 이르자 상순은 손을 들었다. “멈춰라!” 상순은 진사괴를 꿇어앉히고 쏘아보면서 호통 쳤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네 놈들의 계획을 탄백해라!” “나는 군인이다. 능욕하지 말고 어서 죽여라!” 진사괴는 상순을 마주 쏘아보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상순은 장충국과 진극신, 장부귀를 보란듯이 권총으로 진사괴의 뒤통수를 겨누었다. “인민정권과 맞서 로실히 탄백하지 않는 자들은 이런 끝장 밖에 없다!” 진사괴가 반동구호를 부를 때 총소리가 울렸다. 진사괴의 뇌장이 허연 눈 우에 튕기었다. 인민의 철천지 원수 진사괴는 푹 꼬꾸라졌다. “아버지!” 진극신은 고함치더니 상순을 쏘아보았다. 상순은 총구멍을 진극신의 머리에 돌렸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네놈들의 행동계획을 탄백해라! 로실히 탄백하면 살려준다!” 진극신은 단말마적을 몸부림치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몰라! 내 살아남기만 하면 아버지를 죽인 네 놈들을 한 놈도 살려두지 않을 테다!” 땅! 상순의 권총에서 연기가 폴싹 내 쏘았다. 진극신도 피못 속에 대갈통이 박살난 채 쓰러졌다. 상순은 악이 날대로 나서 이번엔 권총 구멍을 장부귀의 눈에 들이댔다. “네 놈에게 마지막으로 묻겠다. 탄백하겠느냐? 않겠느냐? 로실히 탄백하면 관대히 처리하고 항거하면 당장에서 총살한다!” 장부귀는 풀썩 꿇어앉더니 머리를 푹 떨어뜨렸다. “장관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난 국민당 군 패장입니다. 심양보위전에서 패하자 우린 영구로 달아나지 않고 장충국 연장을 따라 장백산 원시림에 와서 유격전을 하자고 했습니다.” 충국은 장부귀를 쏘아보면서 “네 이 놈, 정녕 반역자로 되겠는가?”라고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상순은 장부귀를 노려보면서 “좋다! 돌아가서 탄백해라.”라고 하면서 용구와 만호에게 손을 홱 휘둘렀다. 용구와 만호는 장부귀와 장충국을 격리해 끌고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 사무실로 돌아왔다. 상순은 장부귀를 다시 심문했다. “탄백해라.” 장부귀는 상순의 무서운 눈길을 피하면서 탄백하기 시작했다. “장충국 련장은 진사귀 영장과 토론하고 고향에 돌아와 장백산 원시림에서 유격전을 벌리자고 하였습니다.” “건 다 알아! 네 놈들의 구체적 행동계획을 토설하지 못하겠는가?” 장부귀는 “예, 예. 다 탄백하겠습니다.”라고 하더니 무릎을 꿇고 풀썩 꿇어앉더니 술술 탄백했다. “장관,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난 진영장과 한 고향 사람입니다. 이번에 우린 장충국 연장을 따라 이 곳에 와서 당지 지주들을 조직하여 반공자위대를 건립하고 동만 해방구건설을 교란하고 국민당군의 반공을 협조하려고 하였습니다. 우선 길림, 장춘과 동만을 연결한 군사요충지 영월구 공안국이 서기 전에 없애치우자고 했습니다. ” 그제야 굳어졌던 상순의 얼굴의 근육이 조금 느슨해지며 용구와 창남, 만호와 영호를 건너다보았다. “그럼 네 놈들의 반공자위대에 든 지주들은 몇 명이나 되는가? 이름을 일일이 대라!” 장부귀는 머리를 들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난 다른 마을 정황을 모릅니다. 건 장충국 연장과 진사귀 영장이 압니다. 그들은 모두 단선연계를 취하더나니 난 정말 모릅니다. 장연장은 이제 국자가의 왕련락원이 무전기로 련계하면 국민당군이 비행기로 무기랑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안보촌의 자위대원 몇놈을 발전시켰는가?” “둘 밖에 없습니다. 옛날 유격대에게 살해된 십가장어른의 아들과 지게군으로 위장한 일제간첩의 아들입니다. 안보촌은 조선 마을이여서 조선 지주는 우리 말을 듣지 않아 더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상순은 장부귀를 쏘아보며 계속 물었다. “우리에게 격살된 네 놈은 무슨 놈들인가?” 장부귀는 질겁해 꺼멓게 질린 낯으로 상순을 쳐다보며 이실직고했다. “우린 모두 부대에 있을 때 진사괴 영장의 수하입니다.” “그 놈들이 자위대원 몇을 발전시켰는가?” “건 모릅니다. 단선연계를 취하다나니 정말 모릅니다. 단 하나만은 알만합니다. 우린 한 사람이 최저로 셋씩 발전시킬 임무를 맡았습니다. 내가 둘 밖에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진영장이 나를 욕한 적이 있습니다.” “또 다른 정황을 아는 게 없는가?” “진영장은 한족지주를 위주로 발전시키라고 공작방향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조선족은 빨갱이들의 물을 많이 먹어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목이 마른데 물을 한 사발만 주십시오.” 장부귀는 영호가 떠온 물을 한사발이나 꿀꺽꿀꺽 마시고 나서 팔소매로 입귀를 쓱 닦았다. “아, 이제 떠오른 게 있습니다. 장충국은 자기 고향에 가서 한족지주들을 조직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 상순은 옆에 앉은 창남과 만호와 눈길을 맞추더니 물었다. “장충국이 진수해 일대에 갔댔는가? 혹시 소서구나 조개덕이거나 패용천 촌을 말하던가?” “예. 자기 고향에 한족지주들과 그 자식들이 많기에 한 개 패도 조직할만하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누구 누구란 말은 한 적이 없는가?” 장부귀는 “이펑거라던가? 지괴호라던가? 있다더구만.” 상순은 눈썹을 치키며 물었다. “또 더 없는가?” 장부귀는 도리머리 질 했다.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더 아는 거 없는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상순은 절룩거리며 다가와 엄숙하게 말했다. “오늘 표현 좋다. 이제 감방에 돌아가 잘 생각해 보라.” “예, 예. 이젠 살려 줍니까?” “이제도 너의 표현에 달려 있다! 영월 구 국민당자위대를 짓부시는데 공을 세우면 살려 줄 수 있다.” “아직도?” 상순의 표정은 퍼런 바위처럼 무표정하게 굳어져 있었다. 상순은 장부귀가 나간 후 두 눈을 스르르 감고 한참이나 생각에 잠겼다. 한참 후 상순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만호를 보고 “가서 장충국을 데려오오. 내 단독으로 그 놈을 심문해야 하겠소.”라고 말했다. 이윽고 만호가 장충국을 데리고 사무실에 들어오고 다른 공안일군들은 다 문 밖에 나갔다. 상순은 충국을 보자 책상에서 일어나 정중히 자리를 권했다. “앉소. 요즘 허벅지 상처 좀 괜찮은가?” “의제 덕분에 많이 났소. 거 오줌약이 확실히 명약은 명약이야.” “의제? 허허허.” 상순은 충국을 마주 바라보았다. “의제? 흥!” 문 밖에서 창남과 만호가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그래, 넌 내 의제가 아니냐? 전번에도 말했지만 너한테 내 아버지를 부탁하자. 아버진 맏아들을 잃게 됐다. 아버지가 불쌍하구나.” 상순은 충국한테 가까이 다가가 나직이 말했다. “아버지를 나한테 부탁하겠으면 영월 구 국민당자위대 조직구성을 탄백해라. 넌 이전에 항일유격대를 도와 쌀과 약을 가져가고 일본 놈들과 목숨을 걸고 싸운 용사였다. 이제라도 로실히 탄백하면 살려주지.” 허나 장충국은 도리머리 질 했다. “누굴 속이려고 그래? 전번에 넌 내 손에 피가 너무 많이 묻었다고 하지 않았니? 흥!” 상순은 장충국의 가슴을 주먹으로 탕탕 치며 고함쳤다. “그 착취계급의 본성을 고치란 말이야. 어째 혼자 그 숱한 땅을 차지하고 배때 터지게 살 궁리냐?” “그만 둬라!” 장충국은 목에 지렁이 같은 퍼런 피 줄을 세우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우린 한 길로 갈 수 없다. 내가 살아 나간다면 또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물려준 땅을 되찾으려고 너희들과 싸울 거야. 그러기에 나한테 아무런 미련을 두지 말고 죽여라! 나도 이젠 지쳤다. 괴롭다. 막 죽고 싶다. 다만 너와 총을 맞대고 싸움 같은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하고 이렇게 죽는 게 한일뿐이다. 하하하.” 상순은 충국의 귀 쌈을 쨩 갈겼다. “이 놈, 권하는 술은 마시지 않고 벌주를 마시겠니? 네 놈이 탄백하지 않으면 소서구에 끌고 가서 네놈 애비 어미 앞에서 총살할 테다! 네 놈 일가식솔을 한 놈도 남겨두지 않고 총살해 버릴 테다! 네 애비가 밤중에 토성을 구멍 내고 도망쳐서 일성 촌 부근에서 네 놈과 내통해 함흥 촌 일대 정보를 네놈한테 제공한 걸 모른가 하는가? 네 놈을 잡기 위해 네 애비를 미끼로 남겨 두었을 뿐이다. 이제 네 놈을 잡았으니 더 이상 살려 둘 필요 없다.” 순간 충국의 정신 기둥은 와그르르 무너졌다. 이윽고 그는 머리를 툭 떨어뜨리었다. 상순은 충국의 표정변화를 놓치지 않고 계속 드센 공세를 들이댔다. “네 놈이 탄백하면 네 애비와 너를 살려 줄 수도 있다. 허나 네 놈이 제 부모형제의 목숨과 자위대 놈들의 목숨을 바꾸겠다면 별 수 없다.” 한참 후 장충국은 가련하게 상순에게 빌었다. “살려 달라. 다 탄백하겠다.” “그래, 진작 그렇게 나와야지.” 상순은 문 밖에 대고 소리쳤다. “만호, 창남이, 들어와 기록하오.” 만호와 창남이 들어와 상순의 옆 책상에 마주 앉아 필기준비를 했다. 용구와 영호는 들어와 충국의 뒤에 서서 경계했다. 상순은 따뜻한 물 한 컵을 떠다 충국에게 주었다. “각 마을에 발전시킨 자위대원들의 명단을 다 탄백하오.” 장충국은 따가운 물을 후후 불며 궁리하더니 입을 무겁게 열었다. “패용천촌의 지학사네 아들 지괴호와 이펑거네 아들 이와해, 조개덕의 제지주네 아들 제해산이네. 여긴 내 직접 발전시킨 게 없고 전날 죽은 국민당 군 영장과 당지 지주들이 모두 8명을 발전시켰네. 자위대는 모두 17명이네. 다 진사귀와 단선연계를 가지고 나는 명단만 장악했을 뿐이오.” 상순은 바투 들이댔다. "국자가에 있는 국민당군 동만 특파련락원 왕씨 거처를 말해라." "단선 련계돼서 모르오. 진영장이 혼자 알 뿐이야." "이전에 삼도만에 있을 때부터 네놈들이 왕 특파원과 무전으로 련락한 거 다 장악했어. 지금은 뭐로 련계해?" "장춘에 있을 땐 무전기로 련락했어. 그후 무전기 없어 진영장과 단선련계 한 거 같아. 무전기 소린 못 들었어. 왕 특파원은 아마 무전으로 관내로 도망간 국민당군 사령부와 련계 있은 거 같아. 그쪽에서도 진영장한테 지령이 자꾸 왔댔어."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는 인차 연변전원공서와 강신태 사령관에게 긴급정황을 회보하였다. 연변전원공서 군관위원회와 공안국에서는 세밀한 수사를 거쳐 국자가 아래개방지에서 수상하게 자주 치는 무전기 전파를 수색해냈다. 그리하여 무전기전파를 따라 수색해 끝내 국민당군 동만 특파련락원 왕씨를 나포했다. 그 자는 두 녀동생들의 집에 번갈아 거처해 있으면서 김치움에 무전기를 가설해 놓고 국민당군 사령부 본부와 연락하면서 지방 지주무장들과 국민당 패잔병들을 긁어모아 국민당자위대를 건립해 새로 탄생한 동만인민민주정권을 전복하려고 창궐하게 시도했던 것이다.  국민당군 동만 특파원 왕씨는 길림감옥에 압송돼 수감돼 있다가 1958년도에  인민정권에 의해 총살됐다. 상순은 연변전원공서 상부의 지시에 따라 장충국의 탄백에 근거하여 그날부터 즉시 공안일군들을 여러 마을에 파견하여 국민당 잔당들의 이른바 자위대원들을 몽땅 체포하고 비수와 검, 사냥총 등을 몰수했다. 영월구인민정권은 상부의 판결에 따라 자위대에 든 악질지주들을 정상에 따라 총살해 버리거나 감옥에 처넣었다. 며칠 후 상순은 창남과 용구, 만호, 영호 등 공안일군들과 함께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장충국을 압송하여 기차를 타고 함흥 촌에 돌아갔다. 충국은 함흥 촌에 들어서기 전에 슬며시 상순에게 물었다. “난 탄백할 거 다 했는데 기어이 총살할 테냐?” “아니. 우린 신용을 지킨다. 너희들을 따르던 이 곳의 무리들을 체포해야겠어. 널 보여줘야 지주들이 더는 미쳐 날뛰지 못하지.” “흥! 진짜 닭을 잡아 원숭이들을 훈계할 작정이군.” 상순은 소탈하게 웃었다. “허허허. 넌 제대로 말하지 못했어. 이건 원숭이를 잡아 닭들을 훈계하는 게야. 알았어?” 병완은 촌공소에서 막내 손자를 만나자 대견해 얼싸 안았다. “참말 장하다. 충국까지 잡아가지고 오다니. 허허허.” 기준과 명옥도 소문을 듣고 숙자와 금숙의 손을 잡고 달려왔다. 촌공소 옆에 있던 상우와 조카 공학과 동선도 뛰어 나와 반긴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상순은 먼저 창남과 용구 등 공안일군들을 영솔해 조개덕과 패용천 촌에 가서 지괴호와 제해산, 이와해 등 지주 아들들을 체포하고 소서구 장학산 일가도 데려왔다. 장학산은 비술나무에 결박당한 충국을 보자 울음보를 터뜨렸다. “아들아, 멀리 도망쳤는가 했더니 이게 웬 일이냐?” “아버지!” 민병들은 그들 부자간을 마구 떼 놓았다. 병완이 비술나무에 매단 종을 호미로 치자 온 마을 사람들이 촌공소에 모였다. 상순과 병완은 마루 우에 높직이 올라섰다. 상순은 마을 사람들과 지주들의 자제들을 둘러보면서 연설했다. “여러분, 보십시오. 국민당 반동파 잔여세력과 지주들은 우리 가난한 백성들이 잘 사는 세상이 온 것을 눈에 든 가시처럼 생각하고 배 아파합니다. 국민당 반동파와 악질지주 놈들은 실패를 달가워하지 않고 항상 기회를 엿보아 우리 인민민주정권을 뒤엎으려고 합니다. 허나 일체 반동파들은 우리 위대한 중국 공산당이 영도하는 인민민주정권과 인민무장력량의 일망타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중국인민해방군은 이제 곧 황하와 장강을 뛰어 넘어 전국을 해방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승리에 자만하지 말고 시시각각 경각성을 높여 우리 인민정권을 보위하고 우리 마을을 보위하여야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마을 사람들 속에서 지춘실은 상순의 늠늠한 풍채를 보고 귀밑까지 자주 빛으로 붉히며 한숨을 호 내쉬었다. 허나 옆에 선 지군선은 이상한 눈빛이 번뜩이었다. 뒤이어 상순은 소리높이 명령했다. “국민당 반동파 자위대 놈들을 인민정권의 판결에 의해 자위대활동을 미친 듯이 한 제해산과 이펑거를 사형에 처한다! 자위대의 졸개 지괴호는 그 죄상에 따라 유기징역 15년에 처한다. 장충국 부자는 항일전쟁 유공자이고 이번 자위대 숙청에 공을 세웠기 때문에 잠시 총살하지 않고 감옥에 가둬 노동개조를 시킨다. 만약 그 어떤 지주와 부농들이거나를 막론하고 계속 착취계급의 본성과 사상을 개조하지 않고 완고하게 인민정권과 맞서려고 한다면 인민정권의 호된 처단을 면치 못할 것이다!” 병완은 민병들을 영솔해 태평강 가에 자위대 놈들을 끌고 나갔다. 공안일군들이 그 놈들을 한 놈, 한 놈 총살해버렸다. 숱한 까마귀들이 앙상한 아름드리버드나무 가지에 날아와 앉아 시체를 널려고 내려다 보며 까욱까욱 울어댔다. 봄날의 기운은 두 번째 고향 땅에 그물그물 피어올랐다. 훈훈한 봄 아가씨는 들로 벌로 사뿐사뿐 다가오고 동장군은 산으로 뒷걸음질 쳐 물러갔다. 허나 소서구와 천지꽃산에는 아직도 겨우내 땅바닥에 악착스레 얼어붙었던 얼음과 잔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병완은 곰방대를 뻑뻑 빨며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장학산이랑 충국이랑 숙청당했지만 조개덕의 조덕림과 제지주, 패용천 촌의 손호표지주의 가족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알 수 없다.) 그는 상순과 토론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마을의 흥수랑 불러 민병들 10명을 세 개 조로 나누어 지주들의 집을 불시에 돌연습격해 수색했다. 병완은 흥수와 학수를 데리고 장학산네 집으로 갔다. 장학산의 처 충씨와 장리국, 장미련은 질겁해 낯이 새파랗게 질렸다. 병완은 다짜고짜로 그들을 쏘아보며 호령했다. “말해! 장학산이 집에다 뭘 숨겨뒀다던데 어데 숨겨뒀는가?” 충씨는 고개를 조금 들며 병완의 붉으락푸르락하는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얼굴을 슬며시 곁눈질했다. “뭘 말이오?” “시치미를 떼겠어? 들춰내는 날엔 네년들도 감옥으로 들어가야 해.” 충씨는 오히려 제 쪽에서 노발대발했다. “참 억울하오. 내 남편과 아들을 가두고 우리 땅을 다 빼앗아 가고서도 모자라는가? 우리 집마저 빼앗아가자고 그래?”   병완은 충씨의 반발에 흔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그러지 않아도 이 집을 청산해 가난한 백성들한테 나눠주지 않았다고 의견이 많다. 우리가 옛 주인을 너무 많이 봐준다고. 탄백하겠는가?” 허나 충씨는 마음대로 해라는 듯이 입을 꼭 다물고 눈치만 할끔할끔 살피었다. “수색하라!” 민병들은 우르르 달려들어 집 안 밖을 발칵 뒤집었다. 지붕 추녀 밑과 닭장, 개굴까지 다 들춰도 아무 것도 들춰내지 못했다. 집안도 부엌과 쌀독, 장독 궤짝 지어 까래 밑까지 다 들춰도 없었다. 흥수는 방바닥을 파보고 지어 구들장까지 뜯고 꼬챙이로 푹푹 찍어 보았다. 허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장리국은 흘끔거리더니 “흥!” 하고 콧방귀까지 뀌었다. 병완은 구들에 걸터앉아 충씨와 미련을 살피다가 집안을 두리번거리었다. 그는 종이를 바른 바람벽으로부터 천정을 살피다가 별스레 천정의 누런 종이 우에 새로 덧댄 허연 종이에 눈이 멎었다. 눈을 슬며시 아래로 내리 뜨며 충씨 모녀와 장리국을 흘끔 곁눈질 해보았다. 충씨는 천정을 곁눈질하다가 병완을 흘끔거리더니 제꺽 눈을 내리 까는 것이었다. (수상해!) 병완은 바깥에 나가 사다리를 들고 들어와 벽에 기대 세워놓고 올라가려고 했다. “내 올라가 보지요.” 학수가 새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병완과 흥수는 새다리를 붙들었다. “그 허연 종이를 붙인 데를 뜯어보오.” “예.” 학수는 천정에 덧댄 허연 종이를 쫙쫙 뜯어냈다. 기름종이에 싼 묵직한 봉지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손바닥만 한 물건은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무거운 쇠붙이소리를 냈다. 병완은 경각성을 높여 사다리를 놓고 제꺽 기름종이봉지를 주어 풀어보았다. 봉지를 찢고 보니 미제모젤권총이 나왔다. “봐라! 이 놈들이 웃음 속에 칼을 품고 있었다.” 병완은 권총을 충씨 코끝에 들이대고 호통 쳤다. “이건 뭐냐?!” 장리국과 충씨 모녀는 무릎을 꿇고 물앉더니 두 손을 발이 되게 싹싹 비비었다. “어르신님, 제발 목숨을 살려 주오. 조선에서 왔을 때 이 집에 재워준 사람 누구요? 그 은정을 봐서라도 우리 모녀 봐주오.” “흥! 진작 탄백했더라면 관대하게 처리하겠지만 늦었어!” 병완은 대뜸 호령했다. “천정종이를 몽땅 뜯어리!” 모두들 달려들어 천정종이를 다 뜯어냈지만 무엇을 더 발견하지 못했다. “벽지를 몽땅 뜯어라!” 병완의 호령소리에 이번에는 벽지를 몽땅 뜯어냈다. 부엌 쪽의 벽지를 뜯어내니 벽에서 서랍만한 구멍이 드러났다. 구멍 안에는 누런 필기장과 노랗고 번쩍번쩍하는 권총 탄알이 몇 십 발이나 나왔다. 병완은 버럭 고함쳤다. “몽땅 끌어내라!” 미련은 병완의 팔을 붙들고 발을 동동 구르며 대성통곡 쳤다. “할아버지, 난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르오. 제발 날 잡아가지 마오. 흐, 흐, 흑.” “안 돼!” 병완은 쌀 주머니를 들어 구들에 쌀을 왈 쏟아놓고 주머니에 탄알과 권총 그리고 빚 문서를 주어 넣다가 남쪽 구들 궤우에 얹어놓은 비단이불에 눈길이 멎었다. 그가 다가가 왼손으로 비단이불을 훌 쥐어 들었다. 시퍼런 비수가 땅바닥에 툭 떨어졌다. “이건 뭐야?” 리국이 고개를 들며 변명했다. “밤에 날강도를 무서워서…” “개소릴 작작 쳐! 웃음 속에 칼을 품은 놈들.” 병완은 흥수와 학수 형제를 보고 “끌고 갓!” 하고 명령했다. 병완은 충씨와 미련을 촌공소 창고에 가둬 넣고 그 기세를 몰아 민병들을 거느리고 조개덕과 패용천 촌에 덮쳐갔다. 그들이 달리는 곳에 총창이 서슬 푸르게 번뜩이었다… 그들은 세 마을의 숱한 지주들의 집을 돌연 습격해 숱한 비수와 검, 사냥총을 수색해냈다. 병완은 투쟁대회를 열고 군중들을 동원하여 지주들을 투쟁했다. 장학산의 처 충씨와 아들 장리국, 딸 장미련도 지주들과 함께 군중들이 앞에 두 손을 쳐들고 섰다. 투쟁대회 집행 주석 대에는 진수해 허영주서기와 현 당위 조직부 부장 이계삼 그리고 병완 촌장이 앉아 있었다. 군중들은 지주들의 집에서 들춰낸 권총과 탄알, 시퍼런 비수, 검, 빚 문서들을 둘러보고 이를 갈며 투쟁에 목청을 높였다. 나중에 병완 촌장이 나서더니 목소리를 가다듬어 연설했다. “빈농 여러분, 보십시오. 악질지주들은 우리 빈고농민들이 자기 집과 땅을 청산해 나눠 가진 것을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면서 웃음 속에 칼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 놈들은 언젠가는 자기들의 천당을 찾고 우리 빈고농민들에게서 빚을 받아내려고 빚 문서까지 감춰 놓고 칼을 갈아 왔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한시도 경각성을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인민민주정권의 재판에 의해 장학산의 여편네 충씨와 아들 장리국을 감옥에 보내 노동개조를 시킨다. 장학산의 딸 장미련은 권총을 치워놓은 진상을 몰랐기에 집에 남겨 금후의 태도와 표현을 고찰하기로 한다. 시퍼런 검과 비수를 숨겨둔 지주들은 몽땅 감옥에 보내며 그 가속들은 지방 관제한다.” “국민당 잔여세력을 타도하자!” 허영주서기가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고 구호를 부르자 촌공소 마당의 군중들은 따라 목청껏 구호를 불렀다. “악질지주들을 타도하자!” “계급 원쑤를 영원히 잊지 말자!” “계급투쟁을 끝까지 진행하자!” 군중들은 병완과 함께 지주들의 빚 문서 무지에 불을 콱 질렀다. 싯누런 빚 문서 무지가 타면서 삼단 같은 불길이 활활 치솟아 올랐다. 가난한 빈농들은 타버리는 지주들의 빚 문서를 보면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민병들은 지주들을 바로 묶어 진수해로 압송했다. 미련은 민병들에게 압송돼가는 장리국과 충씨를 보고 팔을 뻗치며 “엄마! 엄마!” 하고 목 놓아 울었다. 흥수는 달려들어 미련을 마구 떠밀어 떼놓고 장리국과 충씨를 마구 끌고 갔다. 춘실은 흥수를 보고 눈을 흘겼다. “우쭐거리긴? 언제 지주들한테 보복당하자고 그래?” 허나 흥수는 빈정거리는 춘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까마귀 한마리가  눈풍설이 이는 하얀 서산으로 날아넘어가며 눈가루를 흩날려보냈다.  
107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70) 댓글:  조회:1595  추천:0  2017-06-15
                           4. 동북군정대학 대학생       햇볕이 쨍쨍 내리쪼이는 삼복염천에도 상순은 근본 집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당장 교하에까지 쳐들어올 국민당 군을 무찌를 후비군양성에만 열성을 올렸다.        상순은 각 촌에 민병련을 건립한 토대 위에서 진수해구 민병 련장, 패장 골간훈련반을 열었다. 훈련반에서는 군사과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정치형세교육, 마레주의 모택동사상, 사회주의 리론 등 정치과도 가르쳤다. 교원은 물론 상순이 직접 맡았다. 그는 군정대학에서 배운 그대로 골간들에게 가르쳤다. 상순은 진수해에서 배양된 민병 골간들을 부단히 해방전쟁 전선으로 내보냈다.         군사과를 가르칠 때 그는 육박전, 보총과 기관총 사격, 수류탄뿌리기 등을 가르친 외에도 탱크폭파특별과도 설치하였다. 당시 국민당군과의 전쟁에서 우리 인민해방군에는 탱크가 적거나 없다싶이 했기에 주로 국민당군의 탱크를 폭파를 가르쳐주었다. 우둔한 놈이 범을 잡는다고 상순은 기발한 궁리를 했다. 당시 국자가 비행장 서쪽 7킬로메터 떨어진 곳에  일본군 비행장 기름창고가 있었다. 상순은 자동차를 몰고 기름창고에 가서 희수, 태수와 함께 지하기름창고 덮개를 열고 휘발유를  초롱에 퍼내 휘발유통에 몇통 담아 싣고 삼도만으로 달려갔다. 그는 토비숙청 때 삼도만으로부터 평강촌으로 토비를 추격하다가 휘발유 없어 버려진 탱크(땅크)를 시골길 가에서 찾아냈다. 탱크를 두루 살펴보니 어데 마사진 곳은 보이지 않았다. 시골 사람들은 괴물 같은 탱크를 감히 만지지도 못했다. 상순은 탱크 기름통 덮개를 열고 휘발유를 부어넎고 운전석에 들어가 발동을 걸어보았다.       따따땅, 따따땅, 부릉부릉      탱크 발동이 걸렸다.        "살았어."       상순은 희수와 태수를 싣고 당년에 토비를 추격하듯이 사기나 탱크를 몰고 진수해에 돌아왔다.      그날부터 그는 군사골간들에게 탱크 폭파기술도 가르쳤다. 자동차운전기술이 있는 희수와 육박전능수 병수, 명사수  태수한테는 특별히 탱크운전도 배워주었다.       상순은 이른 아침부터 민병골간들을 진수해 토성 안 마당에 불러다 훈련시켰다. 상순은 어떤 때 자기가 다망할 때면 육박전은 병수를 보고 가르치게 하였고 사격은 명사수 태수를 보고 가르치게 하였다., “앞으로 찔러!” 민병들은 상순의 명령에 따라 총창으로 앞으로 찔렀다. “싸(杀)!)” “옆으로 비껴 찔러!” “싸(杀)!)” 한창 훈련할 때다. 현당위 조직부로 올라간 이계삼이 구위서기로 올라간 허영주와 함께 마을로 찾아왔다. 그는 몇 십 명 민병들을 훈련시키는 상순을 보고 머리를 끄덕이더니 허영주 서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상순은 당의 참 훌륭한 재목이요. 잘 배양하면 큰 짐을 질 수 있소.” 허영주 서기도 “그렇습니다. 머리도 총명하고 민병들을 통솔하는 능력이나 무기를 다루는 재간이나 다 대단하지요.”라고 칭찬했다. 상순은 이계삼 서기와 허영주 서기를 보자 훈련을 그만두고 민병들을 보고 “해산!” 하고 명령했다. 민병들은 땀을 훔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상순은 뛰어와 “안녕하십니까?” 하고 군례를 척 붙였다. 이계삼 서기는 “요긴한 일이 있어 왔소. 할아버지 있소?” 하고 물었다. “예. 촌공소에 계십니다.” 상순의 대답에 이계삼 서기는 “촌공소에 가서 이야기를 하기요.”라고 했다. “옛! 알았습니다." 이계삼 서기는 허영주 서기와 함께 촌공소에 들어가 병완을 만났다. 그들은 그간 마을 형편을 이것저것 묻고 나서 기준과 상순이 들어서자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사람마다 뜻이 다르고 갈 길이 다릅니다. 상순은 농사나 짓고 살 사람이 아닙니다.” 하고 엄숙하게 말했다. 기준은 한심해 뭐라고 말하려는데 병완이 앞질렀다. “상순은 총이나 다루면서 살면 좋을 겁니다.” 기준은 억지로 입을 다물었다. 이계삼 서기는 병완 삼대 부자를 둘러보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상순 동무는 전도가 유망한 간부 감입니다. 구당위와 현당위에서는 상순동무를 군정대학에 보내 학습시킬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상순은 어찌나 놀랍고도 기쁜지 몰랐다. “감사합니다. 이서기, 허서기.” 그가 어찌 기쁘지 않으랴. 어려서부터 얼마나 공부하고 싶었던가. 그런데 소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자기를 당조직에서는 군정대학에 보낸다고 하지 않겠는가!        후에 중국인민해방군 총후근부 부장, 상장을 지낸 조남기 장군, 선후하여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을 지낸 조룡호 동지도 일찍  동북군정대학에서 학습하였었다. 그 동북군정대학에 상순이 학습하러 가게 됐다. 이런 경사가 또 어디 있겠는가! 허영주는 상순을 높이 칭찬했다. “상순동무는 총명해 한어도 잘하는데다가 군사재능도 대단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형세에서 큰 짐을 지려면 정치와 문화 지식을 학습해야 합니다. 지식만 갖추면 상순동무는 큰 짐을 얼마든지 질수 있는 지도자로 될 수 있습니다.” 병완은 이계삼의 손을 잡고 인사했다. “고맙소. 이 서기, 허 서기, 우리 상순을 꼭 훌륭한 간부로 배양해 주오.” 기준도 기뻐 손'벽까지 쳤다. “내 아비 구실을 제대로 못했소. 어찌 가난했으면 저 애가 그렇게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소학교 문 앞에도 보내지 못하고 여덟 살부터 일을 시켰겠소. 공산당 덕분에 대학에 보낸다니 아들이 과거에 급제한 것보다 정말 더 기쁘오.” 그때 허영주가 기준을 보면서 말했다. “당신은 농망기에는 맏아들 상우를 보고 좀 도와달라고 하오.” 기준은 농사말이 나오자 그저 한숨만 후 내쉬었다. 병완은 기준과 상순을 보고 말했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예로부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식을 공부시켰다. 지어 자식 공부를 위해 목숨 같은 부림소마저 팔았느니라. 우린 농사일과 살림살이가 아무리 바빠도 상순을 꼭 군정대학에 보내 공부를 시켜야 한다.” 상순은 아버지와 할아버지께 꿇어앉았다. “감사합니다. 내 공부하고 돌아오면 꼭 아버지와 할아버지께 효성을 하고 당조직과 마을 사람들을 위해 일을 잘 하겠습니다.” 병완과 기준은 상순을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우리 집에 어쩜 군정대학 대학생이 다 나왔느냐?” 이계삼 서기는 상순의 손을 굳게 잡고 부탁했다. “군정대학에 가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론과 군사지식을 잘 학습하오. 중국에서 무슨 사업을 하든지 한어공부를 잘 해야 하오. 상순동무는 한어 통역능력이 대단하기에 잘 배울 수 있을게요.” 상순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꼭 이 서기와 허 서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학습을 잘하겠습니다.” 이계삼 서기와 허영주 서기는 병완과 상순과 함께 마을의 목책과 갱도, 지어 전호까지 쭉 돌아보고 돌아갔다. 이튿날 동녘하늘이 푸름이 밝아왔다. 상순은 일찍이 일어나 우물에 가서 드레박을 왕왕 잣아 올려 우물을 두 초롱에 담아 들고 씨엉씨엉 집 부엌으로 들어왔다. 명옥은 몸이 남산만한 해 가지고 돌이 지난 둘째딸 금숙을 업고 밥을 짓다가 물독에 물을 붓는 상순을 보고 말렸다. “여보, 가는 날까지 물을 긷겠소? 내 천천히 긷지 않을라고.” 상순은 무던한 아내 명옥을 건너다보면서 “이렇게 가면 언제 올지 모르오? 이제껏 집 안 일을 하지 않아 아버지와 당신 고생 많았소.”라고 했다. 명옥은 바가지로 남편이 길어온 물을 퍼서 가마에 쏟아 넣었다. 가마 안에서 김이 확 풍겨 오르며 “챙―” 하고 소리 났다. 그녀는 바가지에 장을 떠 놓고 주물럭주물럭 주물러 물에 풀어 가마 안에 부었다. 그리고 칼 모태에 감자를 돔박돔박 썰어 넣고 감자장을 보글보글 끓였다. 군정대학으로 가는 남편에게 오랜 만에 감자장을 끓여 대접하려는 것이었다. 명옥이 밥을 짓는 새 상순은 물독에 물을 길어다 꼴딱 채워 놓고 장작도 가득 패 쌓아놓았다. 아침밥상에 마주 앉은 상순은 아버지를 보고 무거운 입을 뗐다. “아버지께 무거운 농사일을 다 떠밀어 놓아서 미안합니다. 이제 공부를 다 하면 마을에 돌아와 효성을 다 해 모시겠습니다.”라고 했다. 기준은 “집 근심은 하지 말고 공부나 잘해라.”라고 단마디로 말했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상순은 위방 앞에서 낫을 가는 아버지에게 인사한 후 이불 짐을 둘러메고 마을을 떠났다. 명옥은 금숙을 업고 숙자의 손을 잡고 함흥 촌 동구 밖에까지 따라 나와 바래였다. 상순은 숙자와 금숙의 얼굴에 뽀뽀 해주고 진수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명옥은 돌아서며 저고리 동전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명옥이 텅빈 집에 돌아오니 이학수가 돌도 안 된 주봉을 안고 동냥젖을 먹이러 왔다. “주봉아, 어서 오라. 배고팠니?” 명옥은 두 말 없이 주봉을 받아 안아 젖을 물리었다. “에구, 어미 없는 주봉이 숙자 엄마 아니면 굶어 죽겠소.” 명옥은 금숙과 주봉을 한쪽 젖에 하나씩 물리고 젖을 오물오물 빨아 꼴깍꼴깍 넘기는 주봉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주봉의 아버지, 근심하지 마오. 주봉이 우리 금숙과 함께 한쪽 젖씩 먹으면 되오.” 학수는 두 손을 비비면서 속심의 말을 했다. “아예 주봉을 양아들로 삼아 주오. 혹시 이 집에 아들이 없으면 양아들이라도 있으면 든든하지 않소?” 명옥은 주봉을 내려다보면서 “그러면야 얼마나 좋겠소?”라고 했다. “그렇게 하오. 이제부터 주봉은 이 집 숙자 엄마 양아들이오.” 학수는 그래야 젖을 먹이기 시름이 놓이는 것 같았던 모양이었다. 명옥은 주봉을 쓰다듬어주면서 “그래지 않아도 내가 어련히 젖을 먹여주지 않으리라고 그러오? 어미 잃은 얘가 얼마나 불쌍하다고. 내 양아들 주봉을 친아들처럼 젖을 먹여 잘 키워줍지. 근심 하지 마오.”라고 했다. 그제야 학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한편 군정대학 개학식 날이었다. 각지 당 조직에서 추천돼 온 백여 명 청년들이 학교 마당에 앉았다. 주석 대 위에는 주보중 장군과 주덕해 동지 그리고 군정대학교 책임자가 앉아 있었다. 먼저 주보중 장군이 연설했다. “동지들, 동지들은 연변 각지에서 온 우수한 학원들입니다. 동지들은 오늘부터 군정대학에서 군사를 배울 뿐만 아니라 맑스-레닌주의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론을 학습하여야 합니다. 맑스- 레닌주의와 모택동 사상으로 자기 두뇌를 무장하고 군사이론도 학습해 우리 당과 중국 인민해방군의 골간으로 돼야 합니다… 동지들은 국민당반동파를 물리치고 우리 해방구와 고향을 지킬 신성한 사명감과 의무감을 가지고 각종 학습임무를 원만히 완수해야 합니다. 동지들, 신심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학원들의 우렁찬 대답소리는 장내를 떠나갈듯이 우레와 같이 울렸다. 뒤이어 연변전원 공서 주덕해동지가 연설했다. 캡을 쓴 그는 연설에서 먼저 국민당과 공산당 양당 관계와 해방전쟁 형세를 이야기 하고나서 군정대학의 학원들은 우리 중국공산당의 골간으로서 중대한 역사 사명을 짊어지고 우리 당의 사업을 한몫씩 감당해나가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다른 학원들은 모두 목책에 적는데 상순은 한자를 모르다나니 머리에 기억해두는 수밖에 없었다. 상순이네 반장 박우성은 영월구에서 온 학원이였는데 한어를 꽤나 잘했다. 그는 개학식이 끝나자 상순을 조용히 찾아 말했다. “상순동무는 어째 장군과 지도자의 연설을 필기하지 않소? 필기장도 없지 않소?” 그러자 상순은 덜미를 긁적거리면서 “급급히 오다나니 필기장과 연필을 준비하지 못했소. 난 이 머릿속에 다 기억해 두었소.”라고 대답했다. 박우성은 희죽이 웃으면서 “머리가 아무리 총명해도 어떻게 다 기억해 두겠소. 이후엔 꼭 명심해 중점을 적어두오.”라고 하더니 호주머니에서 필기장과 연필 한 대를 주었다. “옛소. 이걸 쓰오.” “아니, 인차 시내에 나가서 사겠소.” 허나 박우성은 “공산주의를 위해 분투하는 혁명동지들은 네 것 내 것 따지지 말아야 하오. 쓰라니까.”라고 하며 밀어주었다. 상순은 “감사하오.”라고 했다. 상순은 군사과에서는 사격이나 투탄이나 실력이 뛰여났다.    맑스-레닌주의의 사회주의 이론을 학습하는 시간이면 상순은 대머리를 수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고 도정신해 들었다. 그러나 선생은 교탁 앞에 서서 눈을 감고 있는 그를 보고 “상순동무, 동무는 왜 시간이면 잠을 자오?”라고 지적했다. “예?!” 상순은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나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자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강의를 다 들었습니다.” 숱한 학생들은 모두 상순을 돌아다보았다. “왜 필기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었소?” 상순은 진심으로 “도정신해 듣느라고 눈을 감고 있었지 자느라고 감은 게 아닙니다.”라고 했다. 선생은 자기 지적을 듣지 않고 딱딱 들이대는 것에 불쾌하여 상순을 버릇을 떼려고 들었다. “상순동무, 오늘 강의한 사회주의 이론을 한번 얘기해 보오.” 그러자 상순은 그 시간에 들은 사회주의 이론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중이 염불하듯이 줄줄 이야기했다. 학원들은 선생의 강의를 또다시 한번 쭉 듣는 것 같아 입을 딱 벌렸다. 선생은 상순의 “강의”에 흠잡을 데 없는 것을 보고 머리를 끄덕였다. 여기저기에서 혀를 끌끌 차며 웅성거렸다. "기억력이 대단해!" "대단히 총명해!" “조용하십시오.” 선생은 손으로 교탁을 두드렸다. “상순동무, 몰라 봐서 죄송하오.” 선생은 먼저 자세를 낮추더니 상순을 꼬챙이에 꿰여 쳐들었다. “허나 상순동무는 이렇게 중요한 이론,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맑스 -레닌주의 진리를 필기장에 적어두지 않았다는 것이 참말로 유감스럽습니다. 이후에는 꼭 명심해 적도록 하시오.” 상순은 대머리를 숙이면서 나직이 “예.” 하고 대답하고 자리에 앉았다. 사실 말해 그는 소학교 문에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근근이 서당 방에서 천자문에 언문을 배우네 마네 한 그가 선생님이 강의하는 것을 조선어로도 따라 적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난생처음 듣는 숱한 정치경제학 술어를 기억할 수도 따라 적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필기하느라고 하면 강의내용을 기억할 수 없었고 강의내용을 이해하고 기억하노라면 필기를 따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아예 필기는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눈을 감고 골똘히 들으면서 기억해 두려고 했던 것이다. 선생의 비평을 받은 후 상순은 애써 필기하느라고 식은땀을 흘리며 공을 들였다. 그러나 따라 기록하지 못하고 대충 중요한 부분만 띄여가면서 단어식으로 적고 동그라미와 밑줄을 쳐놓았다. 그러다나니 시간에 뭘 들었던지 아리송했다. 상순은 그 날 강의가 끝나자 선생을 찾아가 자기 고충을 말했다. 그러자 선생은 도리머리 질 했다. “진수해구 당위와 현 당위에서는 어떻게 소학교 대문도 나오지 못한 동무를 추천한단 말이오? 맑스- 레닌주의 이론과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론은 최저한도로 베껴 두었다가 잘 복습해야 하오. 헌데 동무는 필기를 하지 못하니 이 다음 기층에 내려가서 어떻게 사회주의 이론을 선전하겠소?” 상순은 불쑥 한마디 했다. “이 다음 기층에 가서 꼭 선생님이 강의한대로 선전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재료를 남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선비 티 나는 선생은 대뜸 기분이 상해했다. “동무는 아직도 그 소리요? 어떻게 하나 명심해 필기를 하오. 이제부터라도 조선어와 한어를 잘 배우오. 그래야 이담 사업할 때 자료도 쓰고 연설문도 써가지고 사업하지.” “예, 알았습니다. 명심해 한어와 조선어를 배워 필기하겠습니다.” 선생은 멀쑥하게 생기긴 하였지만 문화지식이 차한 상순이가 답답하여 도리머리 질 했다. 상순은 숙사에 돌아와서 옆에 있는 반장 박우성과 자기 고충을 말했다. 그러자 박우성은 상순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말했다. “너무 근심하지 마오. 동무는 선생의 강의내용을 머리에 다 기억하지 않았고 뭐요? 오늘 시간에 우린 몽땅 놀랐소. 그 놀라운 기억력에 감탄하였소. 정말 총명하더구먼. 필기야 어떻게 불시에 따라 하겠소? 시간에 계속 동무가 기억하기 좋은 방법대로 머리에 기억하오. 그리고 필기는 차차 조선어와 한어를 잘 배운 후에 하오.” 상순은 너부죽하게 생긴 박우성 반장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헌데 선생님은 노여워하던데. 시간마다 어떻게 선생님의 지적을 받으면서 공부하겠소?” 하고 근심했다. “근심하지 마오. 선생과는 내 말할게. 다신 시간에 동무를 지적하지 말고 눈을 감아달라고. 선생님도 동무의 문화수준을 안 후에는 다른 동무들처럼 높은 요구를 제기하지 않을 거요. 지금은 강의시간에 먼저 머리에 기억해 두는 것을 중점에 두오. 그리고 필기는 중점이라고 생각되는 내용이거나 새로운 중점단아를 적어두오. 그리고 숙사에 돌아와서 내 필기장을 보고 다시 베껴 넣으란 말이오.” 그 말에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게 그럴 듯 하구만.”      그날부터 상순은 정치이론 선생님의 강의시간이면 눈을 지그시 감고 듣다가도 중점단어나 구절을 필기장에 적어 넣었다. 그러자 선생님도 별로 상순을 눈에 거슬려 하지 않았고 상순은 강의내용을 기억도 제대로 하고 필기능역도 눈에 뜨이게 늘어 갔다. 상순은 사회공작을 하려니 자기가 공부를 못한 것을 통탄할 때가 많았다. 그리하여 모를 정치경제학 새 술어를 적어두었다가도 하학하여 시간만 있으면 박우성에게 묻거나 선생을 찾아가 물었다. 그리고 숙사에서 박우성에게서 짬짬이 한어와 조선어를 익혀나갔다. 그리하여 상순의 문화지식과 정치이론 수준은 눈에 뜨이게 높아 갔다. 상순은 다른 학원들에 비하여 한어회화수준이 높았기에 우세도 있었다. 사실 말해 당시 조선에서 이주해왔거나 조선마을에서 살아온 대부분 학원들은 한어수준이 낮았다. 허나 상순은 즉석에서 조선말 연설을 듣고 한어로 통역하고 한어 연설을 듣고 즉석에서 조선말로 통역할 수 있어 군정대학에서 소문이 높았다. 군정대학에서 시험 칠 때 상순은 과목마다 만점을 맞았다. 선생은 다른 학원들과는 달리 서면시험을 친 것이 아니라 따로 불러놓고 구두로 시험을 쳤다. 선생은 상순을 교무실에 불러다 구두로 맑스- 레닌주의와 사회주의 이론을 시험 쳤다. 그런데 상순은 선생의 질문에 얼음 우에 바가지를 밀듯이 줄줄 대답했다. 똑 마치 선생님이 강의하는 것 같았다. 숱한 이론 선생님들은 총명한 상순에게 감탄의 눈길을 보내며 혀를 끌끌 찼다. 담당 이론 선생님은 상순의 이론학습필기장을 가져오라고 번져보더니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좋소. 그간 애썼구먼. 명심하오. 동무가 아무리 총명해도 사람의 기억력은 제한돼 있소. 세월이 지나면 많은 혁명이론은 잊어진단 말이오. 이렇게 필기장에 중점이라도 적어두면 금후 기층사업을 할 때 기억나지 않으면 다시 들춰보고 써먹을 수 있소. 이후에도 시간을 타서 꼭 한어와 조선어 공부를 잘 하오. 그래야 훌륭한 지도일군으로 될 수 있소.” 상순은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나서 엄숙하게 결심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교육이 없었더라면 전 문화지식 공부를 소홀히 할 번 하였습니다. 꼭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명심하고 한어와 조선어를 힘써 공부하겠습니다.” 교무주임과 선생님들은 상순이 교무실에서 나간 후 칭찬이 자자했다. “상순동무는 참말 총명하고 유망한 학원이오.” “한어통역도 잘하고 언변도 좋지. 훌륭한 지도일군 재목이오.” 후에 군정대학에서 대회를 열고 지도자들이 한어로 연설할 때면 상순을 내세워 당장에서 조선족학원들한테 조선말로 통역해주게 했다.       상순은 우수한 성적으로 군정대학을 졸업했다. 상순은 군정대학에서 공부를 할 때가 진짜 전쟁터에서 기관총을 쥐고 일본 놈들이나 국민당 토비들과 싸울 때보다도 더 힘들었던 것이다. 허나 그는 학습을 마치고 나니 눈앞이 환해지는 감이 났다. 앞으로 빈부차이가 없이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사는 사회주의 나라, 압박과 착취가 없고 모든 사람들이 땅을 똑같이 나눠가지고 있는 힘껏 일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하는 살기 좋은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전 세계에서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할 목표가 뚜렷하게 안겨 왔다.               5.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 군정대학 졸업식 때 연변전원공서 전원 주덕해동지가 연설했다. “동지들, 지금 우리 동북민주연군은 이미 인민해방군에 편성됐습니다. 영용한 중국인민해방군은 교하의 적을 격퇴하고 길림을 해방했으며 장춘과 심양, 할빈의 몇 십만 대군을 독 안에 든 쥐처럼 포위하고 있습니다. 오래지 않아 동북이 해방되고 전 중국이 해방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모주석의 지시대로 동북에 공고한 근거지를 건립해야 합니다. 지금 전쟁은 가장 관건적인 형세에 직면하였습니다. 우리는 시시각각 경각성을 높여 해방전쟁의 승리 열매를 보호해야 합니다…” 뒤이어 주덕해 동지는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동지들은 군정대학에서 맑스-레닌주의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론 그리고 군사지식을 배웠습니다. 이제 동무들은 당이 가장 수요되는 지방에 가서 기층해방구 토지개혁사업과 치안사업을 잘 해야 하겠습니다. 동무들은 우리 당의 골간이기에 당에서 맡겨준 사업을 훌륭히 하리라고 우리 당에서는 믿습니다…” 주덕해동지의 연설은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졸업식이 끝난 후 상순은 교무장의 부름을 받고 교무실로 갔다. 교무주임은 캡을 쓰고 앉아 있는 분을 소개했다. “상순동무, 인사하오. 연변전원공서 전원 주덕해동지오.” 상순은 허리를 굽히면서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드렸다. 주덕해는 상순과 악수를 나누면서 “앉소.”라고 하더니 상순의 아래 우를 훑어보더니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들과 교무주임한테서 동무 말을 들었소. 동무는 어려서부터 항일유격대에서 일제 놈들과 싸웠고 민주연군 기관총 반 반장으로부터 련 지도원까지 담임해 토비숙청에서도 용감히 싸웠지. 지방당조직의 수요에 의해 민주련군 영장도 그만두고 진수해구 민병영 영장을 했다는데 대단하오. 벼슬도 따지지 않는 당원의 고상한 품격이 고귀하오. 이번 군정대학 학습을 거쳐 동무는 높은 이론수준도 갖췄소. 연변전원공서에서는 동무를 영월구에 보내 현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을 맡기기로 결정하였소. 영월구는 장춘과 길림, 교하를 거쳐 우리 연변에 들어오는 군사요충지요. 영월구에는 국민당 특무들이 창궐하게 지하활동을 하는 곳이요. 영월구의 치안사업은 우리 전 연변의 안전에 아주 중요하오. 때문에 현 공안국을 군사요충지인 영월구에 세우기로 하였소.  동무 의견은 어떻소?” 상순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조금 주저했다. “당 조직의 신임에 감사합니다. 다만 제가 소학교 문도 못 나왔고 치안사업을 해 본적이 없어 잘 할 수 있겠는가는 것이 근심될 뿐입니다.” 주덕해 동지는 소탈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동무는 잘 할 수 있소. 뭐나 어찌 처음부터 경험이 있겠소. 사업실천가운데서 배우고 경험을 쌓으면서 일해 나가야 하오. 또 서면지식만 지식인가 하오? 동무 머리는 마레주의 모택동 사상으로 잘 무장됐다는 걸 아오. 허허허.” 이전에 최낙현 퇀장이 하던 말씀과 똑같은 말씀이었다. 상순은 이전에 최낙현 퇀장이 자기를 보고 영장을 하라면서 그렇게 간곡히 부탁한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하여 이번에는 그런 유감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상순은 똑바로 서서 “당 조직에서 맡긴 치안사업임무를 꼭 잘 완수하겠습니다.”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좋소.” 교무장은 그 자리에서 영월구 당위에 보내는 소개 신을 써서 상순에게 주었다. “이 소개신을 가지고 영월구 당위에 가오. 상순동무를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으로 파견하니까.  공안일군을 모집해 공안국을 세우고 국민당 특무들을 몽땅 숙청해버리오. 두 동무를 조수로 보내는데 데리고 가오. 허만호동무는 용정에서 온 당원이고 김창남동무는 태평구에서 온 당원이요. 두 동무 다 민병 연 연장을 하던 동무들인데 공안사업을 잘 할 수 있는 동무들이오. 허만호동무는 대성중학교를 졸업한 동무요.” “예, 알았습니다.” 주덕해동지는 일어나 상순의 손을 굳게 잡아주면서 신신당부했다. “현공안국과 영월구당위는 평단위오. 그러나 가서 꼭 영월구 당위의 책임자들과 관계를 잘 처리하고 모든 사업을 당지 당위와 잘 토론하여 하오. 수고하겠소.” 상순은 두발꿈치를 딱 붙이고 오른 손을 들어 군례를 척 붙였다. “예, 수장동지, 꼭 노력하겠습니다.” 상순은 가슴이 한껏 부푼 채 소개신을 깊이 간직하고 숙사에 돌아오자 이불 짐을 지고 떠나가려고 서둘렀다. 그러자 박우성은 상순에게 “어디에 배치 받아 가오?” 하고 물었다. 상순은 별로 개의치 않고 “영월구에 공안국을 세우러 가오.” 라고 대답했다. “그래? 내가 가려고 해도 보내지 않고 왕청 같은 데로 보내더니.” 상순이가 보니 박우성의 눈빛이 이상했다. “영월구가 그렇게 좋소? 그럼 우에 가서 말해 반장과 나를 바꾸면 되지 않을까?” 박우성은 손사래를 치면서 “아니, 아니오. 우린 조직의 결정에 복종해야 하오. 내 고향이 영월구여서 하는 말이오.”라고 했다. 박우성은 원래 제정 때 일본 나고야에 유학까지 갔다 와서 일어와 한어, 영어까지 아는 먹물이 꽉 찬 진짜 선비였다. 그러나 군사에 대해선 문외한이여서 상순의 상대가 아니였다.  상순은 말수가 적은 편이였다. 그는 자기에게 한어를 배워준 작은 선생이나 다름없는 박우성이 뭐라 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길을 떠났다. 그는 속으로 박우성 반장이 영월구에 가면 고향 형편을 잘 알아서 좋을 것을 그랬다고 생각됐다. 허나 조직의 결정은 어찌 할 수 없었다. 상순이 만호와 창남을 데리고 기차에 앉아 영월구역에 도착하자마자 숨도 돌릴 새 없이 영월구 당위 사무실로 찾아갔다. 당위 사무실은 옛날 일제 때 일본 파출소 자리 옆에 새로 지은 이층집에 있었다. 이층에 올라가 당위 서기 사무실을 노크하고 들어갔다. 사무실에는 뜻밖에 토비숙청 때 허백호 연장이 있지 않겠는가! “허 연장! 그간 안녕하십니까? 전선에 나가지 않고 여기 계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허백호 연장도 몇 해만에 만난 수하를 보고 기뻐했다. “아니, 우리 기관총반장, 반갑소.” 허백호는 상순을 아니꼬운 눈길로 흘끔 곁눈질하더니 한마디 툭 내쏘았다. "상순동무, 동문 여기 아서두 삼도만 때 상을 하지 마오. 아래 위도 없이 상관 앞에서 너덜대고, 제 설 자리도 모르고 납뜨지 말란 말이오. 난 여기 영월구 취고지도자 당위 서기란 말이오. 상순은 당년의 허연장이 영월구 당위 서기라는 것을 알고 실례했음을 느꼈다. “허 서기, 서긴줄 몰라서 그만, 미안합니다. 방조를 많이 받아야 하겠습니다.” 상순은 소개신을 꺼내 보였다. 허백혼느 소개신을 대충 보네하고 사무상 한쪽에 훌 쥐여뿌렸다. 상순은 뒤에 선 만호와 창남을 인사시켰다. “허 서기, 이 두 동무들은 모두 민병연 연장을 하던 동무들입니다. 공안국 사업을 잘 하리라고 믿습니다.” “오, 그래. 환영하오. 자, 자리에 앉소.” 때는 겨울인데 당위 서기 사무실은 난로를 피운 것도 꽤 싸늘했다. 상순은 장작을 난로에 몇 개 더 넣었다. 허 서기는 상순을 보면서 평급인 것도 상관이 수하를 대하듯 했다. “ 동무들은 알아야 하오. 우리 영월구 시내에는 조선족이 위주로 살고 주변 삼림 속에는 산동과 하북 지구에서 들어온 한족들이 많이 살고 있소. 그 한족들 속에는 관내에서나 기타 지역에서 도망쳐온 친일지주거나 국민당 군이 파견해온 특무들도 혼입해 있을 수 있소. 그 놈들을 샅샅이 수사해내 숙청해 버려야 하오. 동무들의 어깨가 아주 무겁소.”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데 만호와 창남은 일어나기까지 했다. “꼭 적들을 몽땅 숙청해 버리겠습니다!” 허 서기는 그들을 앉으라고 손짓하고 사무상에 앉더니 뒷말을 이었다. “지위에서 훌륭한 동무들을 보내겠다더니 상순동무를 보낼줄은 몰랐소. 그러나 저러나 이젠 시름 놓겠소.” 뒤이어 그는 그들 셋을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구 당위의 동지들에게 일일이 인사시키고 나서 바깥으로 나가 옆의 일제 때 파출소 자리 앞으로 갔다. 그는 상순이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 벽돌집은 옛날 일제 때 파출소 자리오. 이 집에 공안국을 차리고 사업하오.” “예.” 상순은 허 서기와 악수를 하고 갈라진 후 인차 창남과 만호 두 동무를 데리고 공안국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들은 온 하루 사무실부터 정리하고 난로를 놓고 장작을 해다 패 난로에 불을 피워 놓았다. 상순은 한참 저물어 간 창밖을 내다보며 이튿날 해야 할 사업을 궁리하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하늘에서 눈사태가 무너져 내리듯이 큰 눈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상순은 만호와 창남과 함께 빵 쪼각이나 먹네 하고는 밤이 깊도록 공안일군 모집과 국민당 잔여세력과 악질지주들을 청산할 문제, 치안사업 계획을 토론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이 상순은 영월구 당위 서기 사무실로 찾아갔다. 허백호 서기는 희죽이 웃으면서 사무상 앞의 자리를 가리켰다. “일찌기 왔구먼. 그래 사업계획이 나왔소?”   “예. 초보적으로 계획이 나왔는데 구 당위에서 많이 지도하고 도와주십시오.” 상순의 말에 허 서기는 옆에 와서 나란히 앉았다. 상순은 단도직입적으로 계획을 말했다. “현 당위에서는 우리를 영월구에 보내 공안국을 세우고 치안사업을 하라고 파견하였습니다. 먼저 공안일군들을 모집해야 하겠습니다. 제 생각엔 전 현 민병 패장과 연장들을 조직해 군사훈련을 하면서 골라내야 할 거 같습니다. 친일주구와 국민당 잔여세력, 악질지주들을 숙청하려면 군중들을 발동하여 그런 놈들을 검거, 적발하는 군중운동을 일으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허 서기는 머리를 끄덕였다. “음, 참 좋소. 동무 사업계획대로 하오. 내일 우리 구 민병 패장과 연장을 다 불러 오지." "감사합니다." 상순도 자기 생각을 말했다. "제가 이계삼 서기와 허영주 서기를 통해 진수해 등 전 현 민병련장을 군사훈련에 보내달라고 하겠습니다. 진수해구는 제가 있던 곳이기에 민병련장들도 잘 압니다." 허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 눈이 와서 어떻게 군사훈련을 하겠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악렬한 환경에서 사람을 더 잘 고찰할 수 있습니다.” 이윽고 허 서기는 상순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 “상순동무는 계획 있게 사업하는데 좋소. 이후에는 뭐나 구두로만 사업토론을 하지 말고 서면계획서를 작성한 후 사업하기를 바라오.” 그 말에 상순은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예, 알았습니다. 지금 돌아가서 재료를 작성하겠습니다.” 허백호 서기는 사무실에서 나가는 상순을 보고 희죽이 웃는 것이었다. 상순은 돌아오자마자 만호와 창남에게서 글자를 물어가면서 필기장에 연필로 한어와 조선어를 섞어 사업계획을 몇 줄 작성했다. 상순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오전이 다 가서야 사업계획을 다 작성해 허 서기에게 가져다 바쳤다. 허 서기는 상순이 삐뚤삐뚤하게 쓴 크고 작은 글씨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됐소. 처음부터 어떻게 다 잘 하겠소. 차차 일하면서 배우면 되오.” 상순은 허 서기가 별로 만족해하는 것 같지 않아 사무실에서 나오면서도 속이 거뿐하지 못했다. 이튿날 전 현 민병연장 70여명이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 사무실 앞에 모였다. 상순은 창만과 만호를 시켜 그들을 네 줄로 줄을 서게 했다. 허 서기는 그들의 반열 앞에 나서서 상순과 만호네를 돌아보며 우렁차게 말했다. “오늘 나는 기쁜 심정으로 동무들에게 우리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 동지들을 소개하겠소.” 그는 상순의 손을 쥐어 들면서 소개했다. “이 동지는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 김상순 동지입니다. 김상순 동지는 동무들과 마찬가지로 민병 연장 출신입니다. 일찍 삼도만 토비 숙청전투 때 우리 련 기관총 반 반장입니다. 그때 난 상순 조장의 상관 련장이였습니다.” 민병 간부들은 머리를 끄덕이며 웅성거렸다. "허서기 수하구만." "허서기 대단하오." 뒤이어 허 서기는 만호와 창남도 소개했다. “만호동무와 창남동무도 민병연장 출신입니다. 이들은 모두 용정 은진중학교와 동북군정대학 졸업생들로서 지식이 많고 이론수준이 아주 높습니다.” 민병 간부들은 여기저기서 또 웅성거렸다. 그때 창남이 한발 나섰다. "허서기, 민병연장 여러분, 한가지 보충하겠습니다." 그는 상순을 가리키며 뒷말을 이었다. "우리 김상순 조장은 민주련군 때 기관총반 반장으로부터 패장, 련 지도원을 했습니다. 영장을 하라는 걸 그만두고 진수해구 민병영 영장을 한 분입니다. 김상순 조장은 기관총 명사수일뿐만아니라 자동차, 탱크도 몰줄 압니다.  군사실력이 대단한 분입니다. 그는 탱크를 몰고 토비들을 족친 실전경험도 아주 풍부한 분입니다. " 그러자 연장들은 혀를 끌끌 찼다. "참 대단해!" "땅크까지 몰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두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쳤다. 허 서기는 창남을 아니꼬운 눈길로 쏘아보았다. 만호가 웨쳤다. "아래에 김상순 조장으로부터 군사훈련 동원을 하겠습니다." 민병 간부들은 열렬한 박수로 환영했다. 상순은 민병간부들의 앞에 나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동지들, 우리 민주연군은 길림과 장춘과 심양을 이제 곧 해방할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온 우리 연장들은 영월구 후방 군사골간들입니다. 우리 영월구는 연변을 지키는 중요한 관문입니다. 이 관문을 든든히 지키자면 이 곳의 친일주구와 국민당 잔여세력, 악질지주들을 몽땅 숙청해 치안사업을 잘 해야 합니다. 영월구의 치안사업을 위해 오늘부터 동무들은 군사훈련을 하게 됐습니다. 눈이 쏟아지고 날씨가 추운데 동무들은 훈련을 잘 할 신심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상순은 그들의 대답을 듣고 가슴을 쑥 내밀고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이켜고 나서 말했다. “우리는 이제껏 민병들을 지휘해온 동무들이 꼭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군사훈련을 잘 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군사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뒤이어 상순은 민병 골간들을 지휘해 대열연습으로부터 시작해 사격, 격투 등 훈련을 했다. 연 며칠 도시락을 싸가지고 군사훈련을 하면서 상순은 몇몇 골간들을 집중적으로 고찰하기 시작했다. 영월구 천용구라는 청년이 날래고 군사실력이 있고 뭐나 시키면 땡 소리 나게 완수하는 것이었다. 보름 동안의 군사훈련을 거쳐 상순은 준비소조의 만호와 창남과 내부로 토론한 후 70여명 민병골간 가운데서 천용구 등 10여명 민병골간을 남겨 계속 고찰한 후 최종 공안일군으로 확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상순이 허 서기한테 명단을 작성해 가지고 가니 대뜸 이마의 정맥마저 퍼렇게 번져 지며 펄쩍 뛰었다. “상순동무, 동무는 너무 독단독행하는구먼. 어찌 공안일군을 구당위 서기와 토론도 하지 않고 정한단 말이오. 동무는 무슨 일이나 후과를 고려하지 않고 급급히 해재끼더니 공안국을 세우는 일은 왜 그렇게 느리오? 보름동안 지내 봤으면 됐지 질질 끌어서야 언제 공안국을 세운단 말인가?! 저 안보촌의 허영호 연장도 공안일군을 하기 적합한 동문데 어째 빠졌소?” 상순은 옛 상관이건만 그 호랑이 같은 호령소리에도 얼굴색 한 점 흐트러짐이 말했다. “지금 허 서기와 토론하러 온 게 아닙니까? 허 서기 명단을 본 후 비준하십시오. 허 서기 추천한 허영호동무를 다시 조사해 보겠습니다. 군사훈련만 해서야 어찌 공안사업을 할 동무들을 제대로 골라낸다고 그럽니까?” 허백호 서기는 호랑이처럼 펄쩍 뛰며 씩씩거렸다. “동무, 지금 누구와 대꾸질이오? 허영호를 넣으라면 넣을 게지.” 상순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공안국과 구당위는 평급 단위입니다. 군관제를 실시하는 당전 전시에는 현 공안국이 구지방당조직보다 반급 높다는 걸 아십시오. 그래 저는 자기 견해도 말하지 못합니까? 허 서기는 당의 민주 집중 제 조직원칙도 모릅니까?” 그 말에 허 서기는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책상을 꽝 쳤다. “동무, 감히 나를 뜨겠소? 보자보자 하니 버릇없이 노는구먼. 이전에 삼도만 토비숙청전투 때도 최 퇀장한테 나를 고자질해서 꼴을 먹게 했지. 그 덕에 난 최 퇀장한테 잘 못 보여서 장춘해방전투에도 참가하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이렇게 다리 부러진 노루처럼 지방에 물앉았단 말이야. 동무 뭐 당장 공안국 국장이라도 된 거요? 그까짓 조장 돼가지고 우쭐거리긴? 흥, 주의하라고. 사람이 옛 상관을 존중할 줄도 모르면 어떤 끝장을 보게 되는 줄도 알아야지. 흥!” 상순은 날을 세우려다가 말았다. 그의 귀전에는 주덕해 동지와 교무주임이  떠나기 전에 영월구 당위와 관계를 잘 처리하라던 말이 귀선을 때렸던 것이다. 그는 억지로 참으면서 부드러운 말로 말했다. “허 서기, 미안합니다. 제가 공작경험이 없다보니 이렇게 됐는데 이후에는 주의하겠습니다.” 이만하면 울뚝밸이 있는 상순으로서는 많이 양보한 것이었다. 허나 허 서기는 스스로도 속을 너무 번져 보이는 것 같아 어조를 좀 바꿨을 뿐 계속 잔소리를 했다. “자네가 영월구 정황을 더 잘 알겠는가? 영월구에 탯줄을 묻은 내 말을 좀 들으라고.” 목에 지렁이 같은 피 줄을 세우는 허 서기를 보고 상순은 머리를 숙이며 당위 사무실에서 훌 나갔다. 상순은 공안국 준비소조 사무실에 돌아왔다. 그의 뒤로 차가운 바깥바람이 김처럼 서리서리 쓸어 들어왔다. 그는 눈보라치는 바깥을 내다보면서 성이 나 씩씩거리며 욱 치미는 밸을 겨우 참아냈다. 이윽고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창남과 만호를 데리고 안보 촌으로 가서 민병연장 허영호를 찾았다. “김 조장이 어떻게 돼 왔습니까?” 인사를 하는 허영호는 작달막한 키가 첫눈에 마음이 들지 않았다. 허나 허백호 서기가 추천한 사람이기에 소홀히 대할 수 없었다. 집에 들어가 보니 허영호의 집은 서발막대를 휘둘러도 걸칠 것이 없이 가난했다. 아버지는 일본 놈들의 포위토벌 때 비참하게 살해됐고 어머니는 다리를 살짝살짝 절고 있었다. 허영호의 출신은 빈고농이여서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힘도 쓸 것 같이 못해 마음에 걸렸다. (조 작달막한 게 어떻게 민병 연장으로 됐을까?) 상순은 영호네 집에서 나와 촌장을 찾아가 허영호를 조사해보았다. 박위훈이라고 부르는 촌장은 상순에게 “허영호는 품질이 좋소. 일본 놈들에게 아버지를 잃은 애기에 애증이 분명하고 공산당을 열애하고 충성할 것이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치안사업을 하자면 힘깨나 써야 하겠는데 덩치가 작아서 근심됩니다.”라고 하자 박 촌장은 도리머리 질 했다. “영호는 덩치는 작아도 보기와는 다릅네. 전번에 영월구 씨름대회에서 우리 마을을 대표해 나가서 2등을 한 적도 있다오. 흥기촌의 천도깨비네 맏아들 천용구가 일등을 하고.” 그래도 상순이 미더워하지 않는 눈치여서 촌장은 목소리를 낮춰 “허영호는 허백호 서기의 사촌동생이오.”라고 한마디 덧보탰다.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만호와 창남과 눈길을 맞추고 촌장네 집에서 나왔다. 그들은 토론하고 일단 먼저 허영호를 영월구에 데려다 고찰해 보기로 하고 다시 허영호네 집으로 찾아 갔다. 그들은 집 울안에 들어서다가 때마침 집안에서 벼 마대를 안아내다가 수레에 싣는 허영호와 마주 띄웠다. (아니, 저 작달막한 양반이 보기와는 다르게 힘꼴을 쓰는데.) 상순은 다가가면서 수레에 벼 마대를 쾅 내려놓는 허영호의 가슴과 팔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면서 혀를 끌끌 찼다. “키는 작아도 힘꼴을 꽤나 쓰는구먼.” 그러자 안에서 머리 하얀 어머니가 나오면서 말했다. “금방 벼 마대를 양옆구리에 하나씩 끼고 나가는 걸 내가 말렸소. 힘을 믿고 그러다가 상하면 어쩌자고.” “어디 한두 번 그랬다고 그럽니까?” 허영호가 하는 말에 상순은 마침 잘 됐다고 힘을 떠보기 싶어졌다. “그래, 정말 양옆구리에 벼 마대를 안아 내 올만 하오?” “예, 김 조장.” 어머니가 말리는데도 허영호는 집안에 들어가더니 벼 마대 두 개를 양 옆구리에 끼고 그 좁은 문을 비비닥거리며 나오는 것이었다. 상순과 만호는 황급히 양쪽에서 벼 마대를 하나씩 받아 수레에 올리려고 했다. 허나 허영호는 기어이 혼자 수레에 척 올려놓았다. 별로 얼굴이 붉어지지도 않았고 숨도 차서 헐떡거리지도 않았다. 영호는 숨도 돌리지 않고 벼 마대를 대여섯 마대를 실은 수레를 소처럼 끌고 정미소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영호 어머니는 수레 뒤에서 따라오면서 “에이유, 난 저 애가 힘을 믿고 어찌나 날치는지 허리라도 상할 까봐 맨날 근심이라오. 저 애를 믿고 사는데 상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살겠소?”라고 했다. 그날 오전 상순이네는 영호를 도와 정미소에서 벼를 찧어 집에 실어다 주고 허영호를 데리고 영월구로 돌아오려고 했다. 그런데 영호가 생각 밖으로 사양할 줄은 천만뜻밖이었다. “내 영월구에 가면 우리 엄마는 누가 모십니까? 난 안보 촌에 있으면서 민병들을 영솔해 토지개혁을 하겠습니다. 어디서나 엄마를 잘 모시면서 혁명을 하면 한 가지 아닙니까? 딱 공안일군이 돼야 혁명을 합니까?” 상순과 창남이 아무리 설복하려고 해도 허영호는 듣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상순과 창남, 만호는 할 수 없이 영월구로 돌아왔다. 상순은 허백호 서기를 찾아가 안보 촌에 갔던 정황을 회보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허 서기, 미안합니다. 작달막한 허영호 연장이 씨름 2등까지 한 힘장사인 줄 몰라 봐줘 정말 미안합니다. 우린 공안일군으로 채용하려고 하는데 허 연장이 오지 않으려고 합디다.” 허백호 서기는 희죽이 웃더니 “그 앤 김조장이 키 작다고 자기를 깔본다고 삐진 거 같소. 내 가서 설복해보지. 허허허.”라고 했다. 정말 오후에 허백호 서기가 가더니 영호를 데리고 와서 상순에게 인사시켰다. “김상순 조장의 밑에서 일을 잘 해라.” “옛!” 영호는 상순에게 군례를 척 올렸다. “김 조장,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허 서기는 영호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말했다. “이후에 숱한 사람이 모인 데서 절대 형님이라고 하지 말라. 남들이 우리 관계를 다 알면 이후에 네 발전에 불편해진다. 알만 하니?” 영호는 납득되지 않아 “형님을 형님이라는데 어쨌단 말이오?”라고 하며 시끄러워 했다. 상순은 못 들은 척했다.  
106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9) 댓글:  조회:1659  추천:2  2017-06-06
                    2. 첫사랑 전운이 개여 유난히 맑은 하늘에 구리바라 같은 보름달이 두둥실 걸려 있다. 어디에서인가 뻐꾹새가 짝을 찾아 뻐꾹뻐꾹 애절하게 울고 있다. 진달래는 단잠에 빠진 경주를 꼭 끌어안고 창 밖에 걸린 달을 바라보며 한숨을 호 내쉬었다. (경주 아빠는 정말 희생됐단 말인가?) 경호는 밤만 오면 등잔불 밑에서 창 밖을 내다보며 한숨을 호호 내쉬는 진달래가 가엾어 늘 위안했다. “얘야, 용천 대장은 아마 희생됐는가 봐. 전번 아버지 산소 찾아 갔을 때 혹여나 해 용천 대장이 포위를 돌파한 동굴 어귀를 몇 자 깊이로 파 보았잖아. 그래도 없잖아? 살았으면 찾아오지 않았겠나?” 진달래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휘영청 밝은 달밤에 쿵쿵 발자국 소리 울리기만 해도 경주 아빠가 올 것만 같아 내다보군 해요. 허나 한 달 기다리고 두 달 기다려도 안 왔죠. 또 한 해 기다리고 두 해 기다렸는데도 종무소식이예요. 경주가 이렇게 커서 막 달아 다니는데도요. 속이 곪아 터지지 않겠어요.” 경호는 진달래 손을 잡고 위안했다. “분명 잘못 된 거 같아. 어쩌겠나? 간 사람은 가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않겠어?” 진달래는 어깨를 가늘게 들먹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어째 슬프지 않으랴. 그녀가 성칠 오빠와의 애틋한 첫사랑을 생이별하는 애 터지는 마음을 억지로 삼키며 다가간 용천 대장이 아니었던가. 번개식 결혼에 귀여운 아들을 본 마당에 시체도 찾을 수 없게 되지 않았는가! 첫사랑 성칠 오빠에게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누명을 들씌우지 않게 하려고 만난 신랑, 그 신랑은 폭파소리와 함께 종무소식이니 속이 재 가루로 되지 않겠는가! 진달래는 경주를 오빠에게 안겨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이래?” 경호는 놀란 나머지 경주를 되 안겨주면서 말리었다. 진달래는 “오빠, 금심하지 마. 나가 바람을 좀 쏘이다가 올래요.”라고 했다. 그래도 등잔불 밑에 비낀 경호의 얼굴에는 근심에 찬 어두운 그림자가 비치었다. “짧은 생각 하지 마. 아무튼 죽은 사람과는 정이 멀어지기 마련이야. 이젠 경주를 봐서라도 마음을 굳게 먹어야 돼.”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였다. “오빠, 피뜩 성칠 오빠를 만나보고 올게요.” 그제야 경호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이며 바깥으로 나갔다. 가을 밤 하늘은 유난히 밝은 달빛으로 환했다. 진달래는 은빛 달빛을 사뿐사뿐 밟으며 성칠 대장이 든 숙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달래가 성칠의 숙사 마당에 들어서 문 꼬리를 잡았을 때다. 집 안에서 주고 받는 성칠의 걸걸한 목소리와 한 여인의 가냘픈 목소리가 들렸다. 진달래는 제꺽 문에서 손을 떼고 주춤 멈춰 섰다. “은녀야, 너와 나는 한 고향에서 살아온 오누이나 다름없다. 난 너를 내 친 여동생 곱순이나 다름없이 생각한다. 네가 남편을 잃고 경수를 업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가슴에는 피눈물이 흘렀다.” 그 말에 진달래는 문 옆에 김빠진 공처럼 물앉았다. 성칠의 격앙된 말소리는 계속 들렸다. “난 희생된 병수 열사가 불쌍하고 하옥이가 가엾다. 게다가 용천 대장마저 돌아오지 못하지 않느냐? 나는 희생된 열사들을 생각하면 아무 생각도 더 하지 못한다. 아직 가정을 차릴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 너나 내나 진달래나 다 아직 새 살림을 꾸릴 때는 아니야. 금방 3년제가 지나자마자 이게 뭐냐? 병수나 하옥 그리고 용천 대장에게 너무 미안하다.” “오빠, 내 잘 못이요. 흑흑흑, 허나 오빠, 내 마음만은 알아주오. 난 오빠를 어려서부터 사랑해왔소. 오빠는 한 소녀의 첫사랑을 소중히 생각하기를 바라오. 흑흑흑.” “울음을 그쳐라. 경수 깨나겠다. 이럼 나도 마음이 괴롭다. ” “경수 아빠가 희생된 후 나는 의지가지없이 됐소. 부모가 돌아가셨고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 상호도 참살됐소. 내 누굴 믿고 살아야 하오? 흐, 흐, 흑, 흑흑.” 진달래는 더 들어 내려 갈 수 없었다. 그녀는 겨우 바람벽을 잡고 일어나 휘청거리며 마당을 나섰다. 이때 뒤에서 문이 열리는 삐꺼덕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신을 짝짝 끄는 소리가 급촉하게 들렸다. “은녀, 내 데려다 줄게. 너에게 빚을 너무 많이 졌구나. 병수나 너의 부모 그리고 상호까지 다 내 죽였구나.” 진달래는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황급히 담장 굽이를 돌아 동쪽에 있는 자기 숙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마른 기침소리가 높이 들리더니 뒤이어 은녀와 성칠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서쪽에 있는 은녀의 숙사로 걸어가는 것이 달빛아래 희미하게 보였다… 이튿날, 뜻밖에도 성칠이 진달래를 찾아왔다. 경호는 인사하고 무슨 일을 보려고 나가는 척 하면서 자리를 피해 주었다. 성칠은 진달래의 부은 눈을 바라보면서 구들에 올라와 앉았다. 진달래는 경주를 안고 눈길을 내리깔며 성칠의 눈길을 피했다. “너 할 말이 있지?” “예, 어제 속이 답답해 찾아 갔댔어요. 허나 집 안에 은녀가 있더군요. 그래서…” 성칠은 진작 알았다는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진달래는 피뜩 성칠을 쳐다보더니 수집은 듯이 머리를 숙이었다. 허나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용케 인차 삼켜 버리었다.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용천 대장 소식이 없어 정말 답답하구나. 경주가 불쌍하구나.” 성칠은 진달래 품 속에서 경주를 받아 안고 놀았다. 경주는 성칠의 검은 구레나룻을 살살 매만지면서 잘 놀았다. “이 놈이, 애비를 닮아 얼마나 용감하게 생겼느냐?” 진달래는 성칠과 경주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아빠가 없는 경주가 불쌍해요.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하기만 해요.” 그때 성칠은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난 세월이 흐를수록 용천 대장에게 미안한 감이 드는구나.” 진달래가 깜짝 놀란 듯이 다급히 물어 보았다. “뭘?” 진달래의 깜장 눈에 이상한 빛이 반짝였다. 성칠은 경주를 진달래에게 안겨주면서 천천히 무거운 입을 떼었다. “그때 갱도에서 포위를 돌파할 때 내가 먼저 갱도에서 돌격해 나갔더라면 용천 대장이 살아남았겠는데. 그가 먼저 수류탄을 갱도 어귀 놈들한테 뿌린 바람에 일본 놈들은 용천 대장 쪽으로 모여 갔다. 참, 난 살아남고 용천 대장은 희생되지 않았느냐? 난 용천 대장에게 목숨 빚을 졌단 말이다.” 허나 진달래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라요. 절대 아니라요. 그때 두 개 소조로 나뉘어 포위를 돌파하지 않았으면 갱도 안에서 몽땅 잘 못 됐을 거예요.” 진달래는 경주를 구들에서 놀게 놔두고 말했다. “저도 형님한테 미안해요. 형님을 제가 잘 보호하지 못했어요. 오빠는 이젠 용천 대장에게 미안한 마음을 버리세요.” 둘 다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용천 대장이 시체라도 있으면 3년제라도 지내 줄 텐데 시체마저 없으니 이 일을 어쩌겠느냐? 누가 희생됐다고 믿을 수 있느냐? 난 지금도 용천 대장이 어디엔가 살아서 너와 경주를 찾고 있는 거 같아.” 그러나 진달래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오빠, 용천 대장은 이미 희생됐어요. 살아 있으면 2년 사이에 왜 명천 우시장과 불과 50리도 안 되는 이 업동에 찾아오지 않았겠어요?” 진달래는 말을 꺼낸 바 하고는 한 술 더 떴다. “이젠 더는 망설이지 마세요. 제 마음은 이미 알지 않아요. 혹시 은녀한테 마음을 둔 걸 제가 너무 다그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성칠은 진달래 말을 막았다. “됐다, 그만 해라. 은녀는 한 마을에서 자란 누이동생이야. 얼마나 불쌍한 앤데.” 진달래는 한숨을 호- 내쉬었다. “오빠의 마음을 알만 해요. 허나 미안해 할 거 없어요. 이제 경주를 잘 키워 주면 구천에 간 용천 대장도 감사하게 생각할 거예요. 헌데 뭣 때문에 질질 끄는 건가요?” 성칠은 손사래를 쳤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용천 대장을 좀 기다려 보자. 또 지금 우리 부대가 조선인민군으로 편성된 후 부대건설과 지방건설에 머리를 써야 한다.” 진달래는 한시름을 놓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성칠은 진달래의 손을 잡고 진정을 토로했다. “나도 사람이다. 허나 생각해 봐라. 지금 함흥 촌에는 아버지와 동생들을 비롯한 숱한 항일 유격대 가속들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중국 동만으로 국민당 반동파들이 수시로 쳐나올 위험이 있다. 그 놈들은 이미 길림까지 점령하고 교하를 넘보고 있다. 전운이 감도는 함흥 촌에 부모형제들을 두고 왔는데 고향으로 돌아 올 차비도 해주지 못하고 우리 둘의 일을 급급히 서두를 겨를이 있니?” 진달래는 피씩 웃었다. “오빠, 우리 둘의 일을 다그친들 함흥 촌의 일을 그르친다는 법은 없잖아요? 자꾸 미루지 말아요.” “또, 또.” 성칠은 눈을 흘기며 진달래의 손을 놓아버렸다. 진달래는 혀를 홀랑 내밀었다. “알았어요.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겠어요.” 성칠은 진달래를 보면서 희죽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은녀의 장래가 근심된다. 애를 가지고 부대에서 계속 일한다는 것도 말은 아니다. 요즘 궁리하다가 명천 우시장에 내려가 고향 운주동을 비롯한 가마골, 신흥동, 영월동 지방의 부녀위원회 사업을 하면 어떻겠는가고도 생각해보았다.” 허나 진달래는 도리머리질 했다. “은녀를 그렇게 먼 곳으로 보내지 말아요. 여기 업동 부근에 남겨 저와 함께 부녀위원회 사업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어차피 저도 이젠 애를 가지고 군부대의 일을 하기 바쁜데요.” 성칠은 한참 궁리하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다. 너와 내가 옆에서 은녀를 잘 보살펴야지.” 그제야 진달래의 철색 얼굴에 진짜 진달래꽃 같은 웃음꽃이 활짝 꽃폈다. 성칠은 우쭐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진달래는 성칠의 팔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오늘 저녁부터 잠자리를 여기로 옮기세요. 제가 오늘 저녁부터 따뜻한 밥을 지어드리겠어요.” 성칠은 진달래를 꽉 끌어안아 주었다. 경주가 달려와 진달래 치맛자락을 잡고 매달리면서 “엄마, 나도 따뜻한 밥을 먹겠소.”라고 응석을 부렸다. 성칠은 진달래를 놓고 경주를 번쩍 들어 안고 “허허허.” 웃더니 뽀뽀를 해주었다. “에이유, 귀염둥이야.” 진달래는 오랜만에 “호호호.” 하고 웃으며 성칠과 경주를 한데 껴안았다. 성칠은 경주를 목매 태워가지고 바깥에 나왔다. 진달래가 뒤에서 따라 나오면서 행복에 겨워 깔깔깔 웃었다. 그들의 서쪽 집 마당에서 은녀가 경수의 손을 잡고 이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어깨를 들먹이면서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옥설과 만금을 따라 김해로 훌 가버렸겠는 걸.) 가을 하늘에 기러기들이 줄을 지어 코 기러기를 따라 북으로 날아예며 끼룩끼룩 울고 있었다. 3. 서울 군영에서 만난 친일주구 서울의 길거리에는 미군 자동차가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며 씽씽 달려 지나갔다. 올망졸망한 기와집들이 게딱지처럼 들어앉은 골목은 오불꼬불하여 꼴불견이었다. 허나 일제의 통지 하에 신음하던 서울은 나라를 찾은 기쁨으로 하여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쁨의 꽃물결이 출렁이고 있었다. 용천은 자그마한 음식점에 들어가 육개장이나 한 그릇 달라고 하여 대충 점심을 먹네 하고 골목에 나섰다. (내 잘 못 본기여? 틀림없어. 그 음흉한 우멍눈이 틀림없어. 분명 한철주야.) 용천은 간도로부터 이태 전에 한국에까지 차고 나온 권총을 매만지면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친일주구 한철주 놈을 살려 둘 수 없어.” 용천은 사위를 둘러보면서 작은 골목을 벗어나 미군과 국군이 군사연습을 하는 한 군영 훈련장으로 걸어갔다. 사실, 용천은 3년 전에 간도 함흥 촌을 떠나 진달래와 경주를 찾아 먼저 진수해에 계시는 최구장의 집에 들렸다. 그러나 최구장도 그때 진달래가 따라간 성칠이네 부대가 조선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용천은 기차를 타고 곧추 조선으로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성칠 대장과 진달래가 있음직한 명천과 우시장으로 다 돌아가며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 곳에는 유격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원래 그때 성칠 대장이 이끈 유격대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함흥 쪽으로 나갔던 것이다. 허나 용천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밥을 빌어먹으면서 상우남면에서 운주동과 신흥동, 가마골, 영월동 그리고 지어 삼림에까지 다 돌아다니면서 수소문하였지만 헛수고를 하고 말았다. 끝내 진달래와 아들 경주를 찾지 못했다. 그래도 맥을 놓지 않고 업동으로 가보았다. 그러나 그 곳에 주둔한 부대는 간도에서 나온 부대가 아니었다. “어디 있을까? 혹시 진달래가 오빠와 함께 제대해 고향 개성으로 나가지 않았을까? 진달래는 북만과 함흥 촌에서 나를 더 기다리지 않고 성칠을 따라 조선에 나왔어. 걸 보면 내가 죽은 거로 아는 거 같아. 왜 걸케 생각하지?” 여기까지 생각하자 용천은 한없이 쓸쓸했다. 용천은 행여나 하고 아주 내심하게 반년 명천과 우시장 일대를 돌다가 3.8선에 묶이어 다시 고향으로 나가지 못할까봐 혹시나 해 눈보라를 무릅쓰고 개성으로 나갔다. 그때 성칠과 진달래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조선인민군에 편입된 후 다시 업동으로 되들어왔던 것이다. 진짜 용천을 골리기라도 하듯이 진달래네는 용천과 숨박곡질 놀았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용천은 개성에서 진달래 네를 찾기 시작했다. 그 넓은 개성 땅에서 어느 골짜기가 진달래 고향인지 어떻게 알수 있겠는가. (가시아버지가 사냥을 하다가 장백산으로 도망쳐 들어갔다는 거 보면 들판에서 산건 아니야. 하마 어느 골 안에서 살았지?) 용천은 또 반달 너머 개성에서 이 골짜기 저 골짜기 헤매면서 진달래와 경호 네를 찾았지만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그럼 진달래와 경호는 대체 어디에로 갔단 말인가?) 그는 개성 시내에 혹시 있을 가 하여 돌아다니면서 찾아보았다. 개성에는 개성 최씨가 한 두 집이 아니었다. 개성 최씨 최구철네 딸을 찾는다고 하니 개성 최씨 집들에서는 족보를 꺼내 들고 찾아보고 그런 사람은 자기 몇 촌이 된다고 할뿐 어디에서 사는지 몰랐다. 더욱이 최구장의 딸이 간도에 갔다가 어디에 와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산 사람이 살아서야 만나겠지.) 용천은 개성 뒷산에 올라가 시내를 굽어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고려 옛도읍이었던 개성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크게 상하지 않고 옛집이랑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정몽주가 태조 이방원 패거리들한테 쇠퇴를 맞고 쓰러진 다리도 그대로 쓸쓸히 누워 있었다. 고려 왕궁 옛터는 기초돌만 처량하게 덩그러니 드러나 있어 꼴불견이였다.        용천의 입에서 풍겨 나온 입김이 겨울바람에 사처로 흩어져 날아갔다. 용천은 허망 헤맬 수도 없어 후에 북으로 다시 건너가 찾아보기로 하고 먼저 고향 경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그는 맥없이 서울에 올라가 경부선 기차를 타고 급급히 고향 경주로 내려갔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들, 온 집안 식구들이 몽땅 일본 놈들에게 살해된 고향은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허나 고향 마을 사람들은 용천을 붙잡고 울고 웃고 떠들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일본 놈들에게 빼앗겨 파출소로 됐던 고향 집은 높다란 토성으로 둘러져 있었고 집 안은 사무실로 마구 꾸며 놓아서 옛날 목조 팔간기와집 모습을 하나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개 같은 강도 놈들, 남의 집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 용천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마을에 있는 종친들의 도움으로 고향 옛집을 대충 손질해 놓고 들어 있으니 쓸쓸하고 갑갑해 죽을 지경이었다. 옛집에서 홀로 살면서 마당에 나서면 일본 놈들의 낯빤대기에 대고 손가락질 하며 ‘날강도 놈들아!’ 하고 욕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마당 앞의 감나무를 바라보니 동생들과 한가위에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 먹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용천은 부모형제들이 그리워 가슴을 쿵쿵 치며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리 이장이 찾아왔다.  “용천이, 나라에서 국군을 모집한다니께. 있제이, 너거 유격대 대장이니께 군사 지휘 잘 하자노. 한자리 하라니께.” 허나 용천은 국군 입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혹시 진달래가 고향 경주에까지 어느 날 자기를 찾아 올 거 같아 고향에 한동안 물러 앉아 있기로 했다. 그리하여 고향 마을에서 친척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태동안이나 농사를 지으며 물앉아 있었다. 언젠가는 철색얼굴에 환한 함박꽃 웃음을 지으며 진달래가 경주의 손을 잡고 자기를 찾아 고향 마을에 나타나는 날을 기다렸다. 그래도 기다리고 기다리는 처자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3.8선을 점점 넘기 힘들게 되자 용천은 버쩍 안달이 났다. “안되겠어. 3.8선이 영영 막히면 진달래와 경주는 영원히 만나지 못할 수도 있어. 영영 막히기 전에 북으로 들어가 처자를 데려 와야지.” 용천은 로비를 마련해 가지고 고향 마을을 떠나 기차를 타고 급급히 서울로 올라 왔던 것이다. 그가 광화문 앞의 큰 길을 따라 나가다가 청계천 부근에 이르렀을 때다. 한 패의 국군들이 미군을 따라 줄을 지어 어디에로 가고 있었다. 한 군관이 행렬 옆에서 미군 장교와 뭐라고 영어로 지껄이며 지나다나니 용천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갔다. 용천은 피뜩 쳐다보다가 어디에선가 보던 우멍눈이다고 도리머리 질 하며 지나가려고 할 때다. 그 군관이 허리를 굽신하며 “미안하오. 말하다나니 그만 실례했소.”라고 하는 것이었다. (듣기도 싫은 함경도 도둑놈의 말투!) 용천은 우멍눈에게 “괜찮아요.”라고 하고는 떠나가려고 했다. 그때 상대방도 가다가 용천을 돌아보다가 가버렸다. 용천은 우멍눈을 어디에서 보았던가고 생각하다가 피뜩 떠오르는 낯이 있어 주춤 멈춰 섰다. “혹시 저 놈이 한철주 놈인가?” 순간 용천의 눈앞에는 명천에서 일본 군복을 입고 간도로 진출하자고 마을과 공지로 돌아다니면서 연설을 퍼지르던 한철주 중대장, 간도에서 애비 원수를 갚자고 일본 놈들을 끌고 눈보라 치는 장백산 밀림 유격대 밀영을 쳐들어오던 한철주 부연대장 놈의 몰골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그래, 한철주 놈은 쓰러진 일본 기관총사수의 손에서 기관총을 빼앗아 성칠 대장과 하옥 아주머니에게 사격하며 고래고래 고함쳤지.) 용천은 그 국군행렬을 따라 한 군영 훈련장에까지 갔다. 그런데 군사훈련을 하면서 백성들이 군영 훈련장 가까이에 얼씬하지 못하게 했다. 게다가 점심때라 군사훈련도 그만두고 국군들이 모두 식사하러 들어가는 것이었다. 용천은 훈련장을 떠나 자그마한 음식점에 들어갔다. 그가 다시 군영 훈련장으로 갔을 때는 병사들이 훈련장에서 웃고 떠들며 휴식하고 있었다. 용천이 훈련장 철조망 밖에서 군영과 훈련장을 기웃기웃 할 때다. 한 병사가 훈련장 바깥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었다. 용천은 그 병사를 마주 가면서 말을 건네었다. “여보게, 하나 물어도 되겠소?” 그 병사는 “뭔 일인데요?” 하고 무뚝뚝하게 반문했다. 용천은 그 병사한테 한 발자국 더 다가가며 나직이 물었다. “여기 혹시 한철주 군관 있소?” 그 병사는 용천의 아래 우를 훑어보더니 “건 왜 물어요?”라고 이상해 하는 눈치였다. “한 고향 사람인데 할 말이 있어 그러네." 용천은 고의적으로 함경도 말투를 썼다. 허나 그 병사는 자기 상전을 무턱 대고 낯선 사람한테 말할 수 없었다. “왜 대답하지 않겠나.철주군관이 알면 한 고향 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했다고 자네를 욕할 거네.” “제가 대준 걸 아무한테도 말해선 안 돼요.” “그래, 말하지 않을게.” “저기요. 한중대장 맞아요.” “고향이 함경도 명천 맞지?” “어딘지는 몰라도 함경도 말투 쓴다고 모두들 함경도치라고 하죠.” 그 병사는 말을 시작하니 꽤나 헤펐다. “나 갈라요.” “응, 그래.” 용천은 가라고 손시늉 했다. 그는 들었던 손으로 무릎을 탁 치며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는 훈련장 옆에 있는 아파트 토성 구석에 가서 호주머니에 넣었던 권총을 꺼내 장탄하고 안전띠를 풀었다. “개 같은 친일주구 놈, 네놈이 다 우리 국군 장교가 다 됐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네 놈의 깝질을 쫄딱 벗기어 놓아도 속이지 못해.” 용천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권총을 호주머니에 넣고 훈련장 가까이 다가가 한철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그는 서울 복판에서 친일주구 한철주를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바깥에 나갔던 병사도 군영 안으로 돌아갔다. 그 병사는 복수심으로 이글거리는 용천의 표정에 놀란 듯이 아무 말도 건네지 않고 황급히 군영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참 후 군영에서 숱한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오후에는 군사연습을 하지 않는지 병사들은 대문 바깥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철주의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이자야!” “붙잡아!” 바깥으로 나왔던 병사들이 우르르 덮쳐들어 용천의 두 팔을 뒤로 비틀어 땅바닥에 쓰러뜨렸다. 뒤이어 호주머니에 넣은 권총마저 빼앗겼다. “이상하다 했더니 진짜 권총마저 있군 그려.” 병사들은 용천을 바로 꽁꽁 결박 지어 군영으로 끌고 들어갔다. 잠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놔라! 이 놈들아, 죄 없는 사람을 왜 이러는 거야!” “보아하니, 이 놈이 우리 한중대장에게 적의를 품은 거 같아!” “심문하면 참대 통에서 콩알 쏟아지듯 할 거 아냐?” “그래, 그래. 저기 한 중대장이 온다.” 용천이 결박당한 채 머리를 들고 바라보니 우멍눈 한철주가 다가오며 쏘아보는 것이었다. “넌 누구냐? 나에겐 너 같은 한 고향 친구가 없어.” 용천은 어이없어 “하하하. 참말로 그럴듯한 국군 중대장이구나.”라고 비웃었다. “누굴 조롱하니. 넌 누구야?” 용천은 한철주의 우먹눈에 침을 뱉었다. “이 놈, 친일주구 한철주 놈아, 네 놈이 다 남으로 도망쳐 국군 장교까지 됐어? 세상에, 네 놈을 장백산에서 죽이지 못한 거 천추의 한이야.” 한철주는 깜짝 놀라면서 뒤로 물러섰다. 병사들은 한철주와 용천을 번갈아 보며 용천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용천은 권총을 뽑는 한씨 놈을 보고 국군 병사들에게 고함쳤다. “저 놈은 일본 관동군 부연대장인기여. 난 장백산 유격대 대장 김용천이야. 빨리 저 놈을 붙잡아라!” 병사들은 더욱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한씨는 “허허허.” 너털웃음을 치며 너덜거렸다. “네 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미친 듯하구나. 난 동만 항일유격대 당당한 중대장 한선주다. 네 놈이 사람을 잘 못 본 게 아니야? 생사람을 작작 물어먹어!” 허나 용천은 몸부림치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네 놈의 껍질을 쫄딱 벗겨 놔도 내 눈을 속이진 못해. 네놈은 분명 일본에 유학 갔다가 돌아와 함경도 명천에서 일본 관동군에 입대해 중대장, 부연대장을 한 한철주 놈이다. 네놈은 우리 숱한 항일유격대에 피 빚을 졌어!” 뒤이어 용천은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나를 풀어 놔! 친일주구를 당장 결박하라!” 한씨가 권총으로 용천을 쏘려고 할 때었다. “잠간! 웬 일이여?” 군영 안에서 한 장교가 채찍을 들고 나오더니 한씨와 용천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그러자 용천은 장교를 보고 억울해 말했다. “난 북만 항일유격대 대장 김용천이예요. 저 한철주 놈은 친일주구인데요. 일본 관동군 부연대장도 했어요. 저 놈의 두 손에는 우리 항일유격대에 피 빚이 질벅해요.” “그래?” 한씨도 녹녹치 않았다. “저 놈에게서 빼앗은 권총입니다.” 병사들이 권총을 장교에게 넘겨주었다. 장교는 권총을 손바닥에 대고 탁탁 치며 용천의 아래 우를 훑어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유격대 대장? 진짜 수상한 놈이구나. 빨갱이 물이 푹 스미었겠군. 좌우간 대장이라니 이렇게 예절 없이 대해서야 쓰나? 어서 결박을 풀어줘!” “예, 허 연대장님!” 병사들은 포승을 풀어 주었다. 용천과 한씨는 서로 황소눈을 부릅뜨고 마주 쏘아보았다. 허 연대장은 당장 서로 뜰 것 같은 뜨개소들마냥 으르렁거리는 그들 둘을 보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허허허, 보아하니 무슨 원수를 진 것 같은데 천천히 말해 보게.” 그리하여 그들 둘은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장교를 따라 군영 안으로 들어갔다. 군영 안은 꽤나 널찍했다. 벽에는 태극기가 정중히 걸려 있었다. 허 연대장은 태극기 아래 사무 상 앞에 가 앉더니 그들 둘을 좌우에 갈라 앉히고 병사들을 뒤에서 둘씩 붙어 지키게 했다. “먼저 유격대 대장에게 묻겠네. 이름이 뭔가?” “김용천입네다.” “김용천 대장이라? 고향은 어딘가?” “경주.” “경주? 헌데 광복 전에 그 먼 간도까지 가 유격대 대장을 했다?" “그래요. 저 한철주 놈은 일제 관동군 부연대장을 했어요. 즉시 처단하세요.” 허나 허 연대장은 피씩 코웃음 치는 것이었다. “사람 잘 못 본거 같네. 저 한중대장은 한철주가 아니라 한선주네. 한중대장은 일찍 일본 군사학교에 유학 갔다가 돌아 왔어. 친일주구면 뭐라게? 한중대장은 우리 서울에서 일본 파출소에서 줄곧 일했네. 언제 간도로 간적도 없어. 오해네, 오해.” 그 말에 용천은 어이없다는 듯이 자기를 쏘아보는 한선주를 다시 여겨 보았다. 아무리 다시 보아도 한철주와 신통히도 같은 자였다. 용천이 또 입을 열려고 하는데 허 연대장은 손사래를 쳤다. “이젠 그만하게나. 괜히 한 중대장을 억울하게 굴지 말게. 한 가지 묻겠네.” 허 연대장은 용천에게 다가왔다. “자넨 유격대 대장이라며? 왜 한국에 왔어? 이북은 빨갱이들 천하인데 한자리 하지 못하고.” 용천은 허 연대장을 쳐다보며 “고향을 찾아온 사람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지 마세요.”하고 말했다. “보아하니 빨갱이들에게 밀린 거 같군. 고향이 뭐간데 고향 하나 바라보고 대장 직을 버리고 이남으로 왔어?” 용천은 버선목이라고 번져 보이지 못하는 것이 답답해 말도 나가지 않았다. 한참 후 용천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난 처자를 데리러 북에 갔다 와야 하겠어요. 말씨름 할 새 없어요.” “그래? 흥!” 허 연대장은 사무 상 앞에 돌아가 척 앉더니 용천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리 쉽게 보내주지 않을 걸. 당신 권총을 품고 다니면서 우리 한 중대장을 죽이려 한 혐의가 있어.” 그 말에 용천은 주저앉으면서 애원했다. “허 연대장, 사람을 잘못 보고 오해한 것뿐인데요. 왜 이래요? 3.8선이 꽉 막히기 전에 이북에 가서 처자를 데려오게 해 주세요. 전 일본 놈들에게 부모형제들을 다 잃고 간도에서 얻어 본 색시와 아들애 경주 밖에 없어요. 제발 저를 이북에 보내주세요.” “답답한 친구라구.” 허 연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대장, 3.8선은 이젠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하게 됐네. 당신 가고프면 가는 곳인가 하는가?” “예?” “황차 자넨 살인협의가 있네. 우린 경주에까지 가서 자네 내력을 철저히 조사한 후에야 결론을 내릴 수 있네.” “그럼 다그쳐 주세요.” “그래? 그러지.” 허 연대장은 다가와 용천의 손을 잡아 일으킨 후 한선주 중대장 앞으로 데리고 갔다. “악수나 나누고 화해하게나.” 한선주 중대장은 시큰둥해 하는데 용천은 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한 중대장, 죄송해. 당신 정말 친일주구 한철주와 신통히도 닮았단 말이야.” “쳇, 꽤나 싱거운 사람이군 그래. 난 한뉘 서울에서 경찰로 살았네.” “허나 일본 파출소 경찰이면 친일주구는 맞지?” “이 사람, 계속 지분거려?” “됐네, 됐어. 먼저 김 대장의 권총 솜씨를 봐야겠네. 진짜 대장 맞나 봐야겠어.” 허 연대장은 둘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 사격장으로 갔다. 과녁과 한 오십 미터 떨어진 앞에서 허 연대장은 권총을 꺼내 절컥 장탄한 후 용천의 앞에 내밀었다. “자, 쏴 보게나.” 용천은 권총을 받아 쥐고 과녁을 피뜩 보더니 허 연대장을 돌아보았다. “제가 다섯 발을 다 명중하면 이북으로 보내겠어요?” “잔말 말고 먼저 쏘라고!” 용천은 머리를 돌리더니 권총을 들어 쏘았다. 땅! 권총으로 그렇게 먼 과녁을 쏘아 맞혔다. 땅! 땅! 땅! 땅! 연이어 네발을 연발로 쏘았다. 병사들은 모두 입을 딱 벌리며 박수갈채까지 보냈다. 한 병사가 달려가 나무판과녁을 뽑아가지고 달려왔다. 과녁을 보고 허 연대장이나 한선주는 눈이 동그래졌다. 총구멍이 세 개 밖에 나지 않았던 것이다. “세 발 밖에 명중하지 못했네.” 한선주가 말하자 허 연대장이 도리머리 질 했다. “아니야. 이걸 보게 이 구멍이 더 크지 않은가?” 허 연대장의 말에 한선주와 용천이 여겨보니 확실히 두 총구멍 보다 한 구멍은 총알이 세 개 나간 흔적이 알리게 컸다. “명사수구먼. 안 되겠어. 자넨 북으로 다 갔네.” “약속하지 않았나요? 다 명중하면 보내 주겠다고.” “허허허, 내 언제 약속했나. 먼저 쏘아보라고 했지.” 허 연대장은 소탈하게 웃으면서 뒷말을 이었다. “우린 지금 일제 때 경찰이고 유격대 대장이고 가릴 새 없네. 나도 독립군 출신이야. 김좌진 장군을 따라 간도에서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도 참가했네.” 그러자 용천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난도 처음에는 독립군이었어요. 후에 독립군이 소련으로 사라지자 유격대에 들어갔어요.” “그래? 그럼 우린 통하는 데가 있군. 자넨 북으로 가지 말고 우리 연대에서 사격술 교관을 해야 하겠네.” 용천은 어이없어 너부죽한 얼굴에 그늘이 비꼈다. “허 연대장, 그럼 이렇게 하자요. 북에 가서 처자를 데리고 온 후 다시  허 연대장을 찾아오지요.” “안 돼, 건 우리가 결정할 나름이야. 자네 가려면 가고 있자면 있는 거 아냐. 자넬 아직 믿지 못해. 자네를 철저히 조사해야 돼.” 용천은 머리를 푹 숙이었다. “그래 언제까지 날 붙잡아 둘 예산인가요?” 허나 허 연대장은 벌써 저만치 가고 있었다. 그러자 용천은 옆에서 걷는 한선주의 손을 잡고 사정했다. “자네 좀 허 연대장과 말해주게나. 나 좀 이북에 가서 처자를 데려오게.” “이럴 땐 친일주구가 필요한 가 베? 흥!” “퉤! 더러운 자식, 내 네놈이 괘씸해 여기 있을란다. 어디 두고 보자.” 그 말에 한선주는 대수로워 하지도 않으면서 병사들에게 용천을 가리키며 “밀영에 압송하라!” 하고 호통을 쳤다. 용천은 먹장구름이 둥둥 떠 흘러가는 북녘 하늘을 쳐다보았다. (여보, 진달래, 내 언제 당신 모자를 만나지?) 용천은 밀영에 압송돼가면서 눈앞이 까마아득해 났다.  
105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8) 댓글:  조회:1659  추천:1  2017-05-22
             8. 추격        민주연군은 휴식정돈을 한 후 호호탕탕하게 묘령에로 추격했다. 상순과 성수, 태수는 기관총을 메고 부대를 따라 묘령으로 강행군했다. 민주연군 선두부대가 묘령 동쪽과 서쪽 산을 점령하자 묘령에 둥지를 틀고 있던 토비들은 혼비백산해 전투준비를 하느라고 전호를 따라 올리 뛰고 내리 뛰며 들볶아댔다. 한 군관 놈이 권총을 빼들고 뭐라고 꽥꽥 고함치는 모습도 보였다. 상순은 기관총반을 령솔해 높은 둔덕에 급히 은페호를 파고 기관총 여섯정이나 걸어놓았다. 그런데 허백호 련장은 뒤에서 두덜거렸다. "김지도원은 뭐야? 사상공작이나 할게지. 항상  련장 앞에서 기관총반을 이래라 저래라 한다니까." 상순은 못들은척 했다. 적정이 긴급한데 네냐 내냐  따질새 없었다.     갑자기 말 발자국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난데 없는 수십명 기병이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달려왔다. 철갑모를 쓰고 록색군복을  입고 돌격총으로 무장한 것을 보아 검정솜옷에 개털모자를 쓴 토비는 아니었다. "우린 쏘련홍군이야!" 통역인듯한 쏘련 홍군이 고함쳤다.     당시 묘령에는 한개 영이나 되는 쏘련 홍군이 주둔해 있던 쏘련 홍군 기병이 토비들과 민주련군 사이에 달려왔던 것이다.     뒤이어 뚱뚱하고 엄청 훤칠한 꺽다리장교가 통역관과 몇몇 경호원을 데리고 민주련군 진지에 다가왔다.     자지러진 말 호용소리와 함께 통역관은 민주련군 진지 앞에서 말을 멈춰세우고 말에서 내렸다. "누가 최고장교인가?" 최퇀장이 진지에서 나가려고 했다. '"잠간!" 지도원 상순이 나서 막았다. "최퇀장, 위험합니다. 토비들이 총구를 겨누고 있습니다. 제가 나가 보겠습니다." "또또또, 퇀장 할 일에 앞서기를? 쯧쯧쯧," 허백호 련장이 눈을 흘겼다. "어째 사람이 앉을 자리 설 자리도 모르고 헤덤비오." 최퇀장은 진지에서 나가려다가 주춤 멈춰서더니 상순한테 머리를 돌렸다. 상순은 최퇀장한테 다가왔다. "저 뚜뚜마위치란 쏘련 홍군 장교 면목 있습니다. 항일전쟁 때 일제 거점을 칠 때부터 룡정해방때까지 쭉 친분이 있습니다." "그래?" "제 가보겠습니다." "좋소. 가보오." 상순은 경호원도 부르지 않고 단독으로 쏘련 홍군 장교한테 다가갔다. "쩨뜨라스뜨워이체(안녕하십니까)? 뚜뚜마위치 상교님.)" 상순이 군례를 올리며 서투른 로어로 인사했다. 그러자 홍군 장교는 뜻밖에 자기를 알아보고 로어인사를 하자 어깨를 어쓱하며 반색했다. "하라쇼(좋아 )!" 통역은 상순을 데리고 장교 앞에 다가갔다. 상순은 한어로 인사했다. "뚜뚜마위치 상교님, 안녕하십니까?" 통역이 통역하자 뚜뚜마위치 상교는 상순의 아래 위를 훑어보더니  "오첸 하라쇼(很好)! 에따 킴(이게 김씨구만)!" 뚜뚜마위치 상교는 반색하며 말에서 뛰여내러 두 팔을 벌리더니 사순을 와락  포옹했다. 그는 상순의 손을 잡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당신들 뭔가? 항일전쟁도 끝났는데 중국 사람들끼리 싸우다니? 우린 내전을 반대해!" 상순은 토비들의 만행을 말하면서 내심하게 민주련군의 전투 정당상을 설명했다. "뚜뚜마위치 상교, 우린 항일전쟁 때부터 전우입니다. 우리 일본 놈들과 싸울 때 저놈들은 낯짝도 내밀지 않고 우리 백성들을 해치고 항일전쟁 승리과일을 따먹으려고 합니다. " "건 그래. 저 토비놈들 산에 둥지를 틀고 들어앉아 우릴 도와 총 한방도 쏘지 않았어. 괘씸한 것들." 그라나 뚜뚜마위치는 두 팔을 쫙 벌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우린 중립이야. 량군은 서로 싸우지 말라. 우린 전투를 말리러 왔어!" 그러자 상순은 쐐기를 콱 박았다. "우릴 도와 저 놈들을 투항하게 해주십시오. 그럼 우린 싸울 필요없습니다. 저놈들이 우리 백성들을 살해하고 략탈하며 못 살게 굴기에 싸우게 됐습니다."  "그래? 하라쇼(좋아). 량군이 담판하게나." "저놈들을 투항하라고 압박해주십시오." 뚜뚜마위치는 상순의 어깨를 툭 쳤다. "알았어." "하라쇼(좋습니다). 쓰빠시바(감사합니다)." 상순 항전시기 쏘련 홍군과 함께 북만으로부터 용정까지 쳐나간 기나긴 로정에 로어 통역에게서 배운 보리로어를 꽤나 잘 써먹었다. 그의 보리로어인사말이 아마 뚜뚜마위치와의 거리도 쭉 줄일 수 있은 것 같았다. "담판하러 오게나!" "예. 투항하겠다면 가지." "다스비따냐(다시 만납세)!" "다스비따냐(다시 만납시다).)" 뚜뚜마위치는 상순과 작별인사를 한 후 말을 타고 기병대를 이끌고 토비 진지로 달려갔다. 그는 기병대 장병들을 데리고 토비무리와 민주연군 사이에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서로 싸우지 말라고 재삼 말리었다. 그는 일본 놈들을 몰아낸 후 민주연군과 토비들이 싸우는 것에 반감을 가진 나머지 양 군이 담판하여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      .뚜뚜마위치 상교의 노력 밑에 끝내 민주련군  간부와 토비 두목의 담판이 열리게 되였다. 량군은 쏘련 홍군의 감독하에 원 진지에서 2리씩 철거하고 담판하기로 하였다. 물론 량군 중간에는 쏘련 홍군이 막아섰다. 담판에는 민주련군 방락권 퇀장과 최낙련 퇀장, 그리고 김상순 지도원이 참가하였고 토비쪽에서는 두목 셋이 참가하였다. 쌍방은 모두 쏘련 홍군의 규정에 따라 무기는 휴대하지 못하였지만 담판 석상에서 서로 잡아먹을듯 눈을 뚝 부릅뜨고 서로 쏘아보며 씩씩거렸다.      담판석상에서 뚜뚜마위치 상교는 책상을 꽝 치더니 량군에 명령하듯 을러멨다.      "우린 중국 내전을 반대한다. 량군은 전투를 그만두고 화해하라."      그러자 토비두목은 코방귀를 뀌였다.      뚜뚜마위치는 토비두목을 쏘아보았다.      "누가 불복해 계속 싸우면  쏘련 홍군이 가만놔두지 않을 거야!"      최낙현 퇀장은 토비두목들을 보고 투항하라고 권고했다. "투항하라. 투항하면 살려준다." 뚜뚜마위치도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옳아. 토비들은 민주련군에 력량대비도 안되니깐. 너희 토비들 투항하는 게 상책이야. " 그는 엄지를 내둘렀다. "그럼 전투 안하고 평화야, 평화!"  그러나 토비 두목은 순순히 투항하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 묘령과 아주 가까운 천교령에 800여명 토비 있어. 그들이 이제 지원하러 올건데." 방락권 퇀장은 책상을 치며 위협했다. "우리 민주연군 2천여 명이 묘령을 물샘틈없이 포위했다. 네놈들은 독안에 든 쥐야." 뚜뚜마위치 상교가 벌떡 일어나 권총을 빼들고 을러멨다.  "어서 투항해라! 투항하지 않으면 우리 쏘련홍군이 네놈들 천당에 보낼테야!" 깡굴깡굴한 양머리 밑에서 데굴데굴 부라리는 새파란 눈알에서 불꽃이 튕겼다. 당장 토비두목들을 잡아먹을 상이었다. 그제야 토비 두목들은 목을 움츠러뜨리며 입장을 바꿨다. 토비 두목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뚜뚜마위치 상교 앞에 가서 굽신거리며  말했다. "우린 즉시 무장기의를 일으키겠습니다." 뚜뚜마위치 상교는  권총을 허리에 차더니 토비 두목의 낯을 쥐여 비틀며 지껄였다. "하라쇼(좋아)! 이제야 대가리 제대로 돌아가는구만. 당신들 살았어, 살아. 허허허." 그때 상순이 최퇀장한테 귀속말을 하더니 토비두목을 보고 물었다. "전보흥과 조학구 너희들 소굴에 갔지?" "누굴 그러오?" "시치미를 따지 말고 먼저 두 놈부터 내놔라. 그래야 기의성의를 보이는 거야." 토비두목은 난처해했다. "기의하면 살려준다고 해놓고 이러면 어쩝니까?" "당신들은 살려줄 수 있소. 그러나 전보흥과 지학구는 우리 김지도원과 10여명 전사들을 살해한 놈이기에 살려둘 수 없다." 토비두목은 나머지 두 놈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러자 두 놈은 벌떡 일어나 결단했다. "그 놈들을 우리 손으로 결박해오겠수다." "히라쇼(좋아). 당신들 기의를 환영하네."  뚜뚜마위치는 량군 수장들이 서로 악수하게까지 하였다. 뒤이어 투비도목을 돌아보았다. "따스비따냐(안녕히). 허허허." 그 말에 토비두목은 깜짝 놀라 무릎을 털썩 꿇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금방 기의하면 살려준다고 해놓고 때려죽이겠다고 하면 어쩝니까?" 통역의 말을 듣고 뚜뚜마위치는 험상궂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었다. "뭐라고?!" 토비두목은 뚜뚜마위치 상교를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중얼거렸다. "금방 장군께선  뭐? 死吧死吧(쓰바씨바.), 打死必打你啊( 따쓰비따니아)하던데..." 통역은 그 장마도깨비 너을 건너가는 소리 같은 말을 듣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핫하하.” 로어를 모르는 토비두목들은 뚜뚜마위치 상교의 말을 오해했던 것이다. 통역은 토비두목에게 일일이 해석해주었다. "'쓰빠씨바'는 '감사하다'는 말이지 '죽어라'거나 '죽이겠다'는 말이 아니네.  '따쓰비따냐'는 '안녕히'라는 말이지 "때려죽이겠다'거나 '널 꼭 때리겠다.'는 말이 아니네." 통역은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한마디 덧보탰다. "오해말게. 뚜뚜마위치 상교는 작별인사를 한 거네."       그제야 투비두목은 천천히 일어나면서 굳어졌던 낯을 풀었다. "오- 알았소. 우린 꼭 기의하겠습니다." 토비 두목은 자기 대오로 돌아가자 토비들을 몽땅 데리고 무장기의를 일으켰다. 토비 두목들은 총상을 입어 다리를 쩔뚝거리는 지학구를 결박해 끌고 왔다. 지학구는 상순을 보자 애걸복걸했다. "상순이, 자넨 알잖나? 난 충국이랑 데리고 기의했는데. 장관과 말해 제발 살려주게나."  상순이 세귀눈을 부릅떴다. "이놈 가짜로 기의한 끝장이 뭔지 아는가?" 최낙현 퇀장이 다가와 호통쳤다. "네놈은 우리 민주련군 대부대에 겁 먹고 가짜로 기의했고 전보흥을 따라 토비굴에 재차 들어간 놈이야. 네놈은 일제 때도 해동파출소 소장질한 친일주구야. 네놈은 우리 김지도원과 10여명 전사들을 악독하게 살해한 놈이야. 천만번 죽어도 마땅하다." 지학구는 대가리를 툭 떨어뜨렸다. 그는 상순을 쳐다보며 애걸했다. "상순이, 난 그래도 사촌형 지학사가 네 할아버지 괭이로 찍어놨다고 300원을 배상하게 하잖았는가. 그 은공을 봐서라도 살려주게나." 상순은 지학구를 보자 눈에 복수의 불길이 일었다. 그러나 억지로 눅잦히며 물었다. "충국은 어디 있어?" "충국은 나와 함께 기의를 일으켰다가 마룡이란 자가 전소교한테 고발하는 바람에 들켰네. 충국은 당장에서 마룡을 쏘아죽였네. 뒤이어 그는  나와 함께 전소교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하자  어디로 도망쳤는지 몰라. 이만하면 날 살려줄만 하지?"  "퉤!" 상순은 지학구의 낯빤대기에 침을 퉥 뱉었다. "더러운 친일주구놈, 살기를 바라느냐! 네놈은 가짜기의해 목숨을 부지했다가 재차 전소흥을 따라 묘령 토비소굴에 도망쳐 반변했다." 최낙연 퇀장은 상순에게 손을 홱 휘둘렀다. "끌어내가 총살해라!" "옛!" 상순 지도원은 전사들에게 손을 홱 휘둘렀다. 전사들은 지학구를 진지에서 끌고 산꼴짜기로 나갔다. 상순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들고 고래고래 고함다. "김지도원과 전사들의 원쑤를 갚는다. 인민을 대표해 친일주구 네놈을 처단한다!" 땅!땅! 땅! 총소리와 함께 친일주구, 토비 패장  지학구는 산꼴짜기로 굴러내려갔다. 전사들이 달려내려가 생사를 확인하었다.  토비들은 지학구가 총살당하는 걸 보고 와들와들 떨며 수군거렸다. 상순은 토비들을 보고 지학구의 가짜투항한 것과 그의 죄악을 렬거하면서 진심으로 기의한 자들을 죽이지 않기에 겁나하지 말라고  하였다. 최낙현 퇀장은 토비두목을 보고 물었다. "전보흥놈은?" "그 놈, 눈치 빠릅니다. 우리 담판한다는 걸 알고 우리 셋이 없는 틈에 지학구를 쏘고 경호반 놈들을 데리고 천교령 쪽으로 도망쳤습디다." "음," 최낙현 퇀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또 놓쳤군." 상순이 토비두목에게 물었다. "그 놈이 무전기도 가지고 달아났는가?" "예."그랬습니다." 최퇀장이 다그쳐 물었다. "그 놈이 무전기로 누구와 련계하던가?" "뭐, 왕특파원이란 자와 자주 무전기로 련계하는 거 같습디다." "왕특파원? 그놈 어디 있는 놈인가?" "국자가에 있다던가?" 최퇀장과 방락권 퇀장은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상순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극악무도한 전보흥 놈은 놓쳤지만 묘령 토비숙청은 쏘련 홍군의 방조를 받아 간단히 담판을 통해 승리적으로 끝났다. 민주연군은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초봄이 돼 잔설이 깔린 길을 따라 천교령의 토비를 숙청하려고 진군했다. 상순이랑 성수랑 기관총을 마차에 싣고 천교령으로 들어가는 태평령에 이르렀을 때었다. 골짜기에서 피물로 벌겋게 물든 눈썩임물이 주절주절 흘러 내렸다. 길옆 여기저기잔설 속에 부서진 박격포와 포탄 깍지 그리고 유골들이 가득 널려 있었다. 이쪽 산비탈에는 왜소한 뼈가 널려 있었는데 그것은 일본 놈들의 유골이었다. 저쪽 산비탈의 잔설 속에는 좀 키 큰 뼈가 널려있었는데 그것은 소련 홍군의 유골인 것 같았다. 상순이랑 마차를 몰고 부대를 따라 태평령 요자구에 이르렀을 때다. 천교령의 토비 두목 류무경이 졸개를 보내 우리 민주연군 최낙현 퇀장을 찾아 왔다. 그 놈은 “우린 투항하겠소.”라고 말하면서 흘끔흘끔 여기저기 살피는 것이었다. 최 퇀장은 대뜸 이 놈이 아군의 무기정황을 정탐하려고 왔다는 것을 간파했다. “기의하겠으면 자네들의 류무경 두목이 마중 나와서 우리 잠자리나 마련해 줘야지. 날이 어두워지는데 말만 하면 되는가?” 상순도 한마디 했다. "전보흥이란 놈을 생포해 오라. 그럼 너희들 기의를 믿을 수 있다."      그 놈은 자기 두목의 음모를 들여다 본 것 같아 “예, 예. 돌아가 전하겠습니다.”라고 하며 황급히 돌아갔다. 최 퇀장은 부대에 명령을 내렸다. “적들은 기의에 성의가 없습니다. 저 놈들은 가능하게 오늘 저녁에 야습하러 올 것입니다. 요자구에 주둔하되 모두 옷을 입고 신을 신은 채로 시시각각 전투준비를 하시오.” “옛!” 부대 장병들은 모두 옷을 입은 채 요자구 개인 집들에 들어가 쪽잠을 잤다. 아니나 다를까! 밤 11시 쯤 되자 천여 명이나 되는 토비들이 대포산(포대산)에 진을 치고 요자구 마을에 포를 쏘며 기관총으로 소사했다. 쿵! 쿵! 쾅! 쾅! 따르륵! 따르륵! 포탄이 작렬하고 자지러진 총소리가 들리자 민주연군 장병들은 재빨리 마을에서 뛰어나가 산 둔덕에 진을 쳤다. 민주연군 전사들은 박격포를 걸어놓고 대포산을 향해 맹렬히 쏘았다. “딱!” “쿵!” 쾅! 쾅! 쾅!      포탄이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적진으로 날아갔다. 뒤이어 적진에서 검붉은 버섯불길이 무수히 피요오르고 화광이 하늘을 :찔렀다.맹렬한 포화에 토비들은 무리로 쓰러졌다. 상순 지도원은 이성수와 이태수 등 기관총사수들을 영솔해 산 둔덕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불길이 마을 쪽으로 번쩍번쩍 날아오는 곳의 적들을 향해 맹렬한 사격을 가했다. 무수한 빨간 불줄기가 적진으로 보기좋게 날아가 꽂혔다.  적들은 비명을 지르며 삼대 쓰러지듯 뒈지었다. 적들은 민주연군이 마을에서 잠을 자려니 오산하였었다. 그런데 민주연군 장병들이 신속히 산 둔덕에서 박격포와 기관총 소사를 하며 반격하자 질겁하여 싸울 마음조차 없어지었다. 박격포 탄알이 씽씽 날아와 쾅쾅 작렬하는데다가 기관총알이 비발 치듯이 날아와 숱한 토비들이 싸워도 보지 못하고 삼대 쓰러지듯 했다. 토비들은 병력이나 무기나 모든 것이 열세에 처한 것을 직감하고 밤도와 어둠 속에서 도망쳐 버렸다.       전보흥은  무전기로 왕특파원에게 천교령항거가 실패했다는 것을 회보하고는 전소광 등을 데리고 도망쳤다. 그는 그 길로 령길을 타고 돈화와 교하를 거쳐 길림에 도망쳤다. 후에 그는 신개령전투에서 중국인민해방군에 저격되였다. 그가 가지고 달아난 무전기를 로획하지 못하고 국민당 정규군 손에 들어가는 바람에 국자가에 있는 왕특파원이란 자의 단서가 잠시 끊어나  그 놈을 잠시 나포하지 못하였다.       전보흥의 동생 전소광은 패잔병을 따라 장춘을 거쳐 심양으로 도망쳤다.       천교령의 토비 패잔병놈들은 그 길로 흑룡강성 녕안현에 도망쳐 마희산을 두목으로 한 토비무리에 가담한 후 목단강을 거쳐 해림 쪽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민주연군 부대는 그 기세로 왕청현 로흑산 토비들을 소멸하러 출발했다. 로흑산은 라자구와 중소 국경선과 각각 150리나 떨어진 심심산골이었다. 민주연군이 영길을 타고 쏜살같이 쳐들어갔다. 그러자 300여명 토비 놈들은 싸울 념도 하지 못했다. 아마 토비 놈들은 삼도만과 묘령, 천교령 일대의 토비들이 몽땅 숙청당한 소식을 듣고 혼비백산한 것 같았다. 그 놈들은 일본 놈들에게서 빼앗은 십 여대의 자동차에 시루 속의 콩나물 대가리처럼 꽉 박아 앉아 녕안과 동녕 쪽으로 부릉부릉 엔징 소리를 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상순은 최 퇀장의 명령에 따라 기관총 반을 영솔하여 로흑산 산마루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맹사격을 가했다. “사격!” 뚜르륵 뚜르륵! 태수랑 성수랑 병수랑 기관총으로 자동차를 타고 도망치는 토비들을 향해 몰사격을 가했다. 기관총알은 비발 치듯 하며 날아가 자동차를 타고 달아나는 적들을 보기 좋게 쓰러 눕혔다. 순간 도주하는 자동차 우에서 토비들의 아우성소리와 비명소리가 하늘땅을 뒤흔들 지경이었다. 맹렬한기관총 소사에 자동차 한 대가 휘발유통에 불이 확 달렸다. 토비 놈들이 자동차에서 비명을 지르며 뛰어 내리었다. 그 놈들은 태수랑의 기관총 소사에 삼대 쓰러지듯 뒈지었다. 꽝! 불을 달고 달려가던 자동차가 삽시에 요란한 폭발굉음과 함께 폭파되었다. 숱한 토비 놈들이 하늘로 날아났다. 자동차 잔해에는 삼단 같은 불길이 활활 타 번졌다. 살아남은 몇몇 놈들이 몸에 불이 달린 채 자동차 우에서 뛰어내려 꽥꽥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다가 뒈졌다. 상순은 성수와 태수를 돌아보며 “제일 앞의 자동차 휘발유통을 조준해 사격!”하고 고함쳤다. “알았소!” 그들 셋은 기관총으로 제일 앞의 자동차 휘발유통을 조준해 맹렬히 사격했다. 뚜르륵 뚜르륵 쾅! 요란한 폭발굉음과 함께 제일 앞의 자동차에 불이 활 달렸다. 토비 놈들의 아우성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었다. 어떤 놈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불이 달린 채 달리는 자동차에서 뛰어내려 개죽음을 당했다. 어떤 놈들은 미처 뛰어내리지 못하고 자동차 폭발의 굉음과 함께 하늘로 날아나고 말았다. 뒤의 자동차 놈들은 앞의 자동차가 길을 막아 도망치지 못해 아우성쳤다. 이때 상순은 “1조는 두 번째 자동차를 갈겨라!‘ “예!” “2조와 3조는 젤 뒤 자동차를 사격하라!” “옛!” 기관총반의 여섯 정의 기관총은 몽땅 그 자리에서 부릉부릉 맴도는 토비들의 자동차를 조준해 사격을 가했다. 어떤 토비 놈들은 자동차에서 뛰어내려 길옆에 엎드려 이쪽에 대고 사격했다. 어떤 놈들은 자동차에서 뛰어내려 산비탈로 달아나다가 민주연군의 사격에 즉살했다. 이때 최퇀장의 명령에 따라 민주연군 박격포도 입을 열었다. “딱!” “쿵!” “쾅!” 박격포 탄알과 기관총알이 자동차의 토비들을 향해 우박 치듯 날아갔다. 토비들은 화가마 우에 오른 개미들처럼 맴 돌아치다가 염라대왕을 보러 떠나갔다. 그런데 두 번째 자동차가 불이 달린 채 제일 앞의 자동차 잔해를 마구 떠밀어 길옆에 처박고 꼬리 빳빳해 도망쳤다. 그러나 얼마 달아나지 못하고 “꽝” 하는 요란한 폭파 굉음과 함께 하늘로 날아났다. 민주연군 장병들은 통쾌해 환성을 질렀다. 토비 놈들은 숱한 주검을 남기고 서너 대 자동차 밖에 도망치지 못했다. 전투가 끝난 후 최낙현 퇀장은 상순을 불렀다. 상순이 기관총을 메고 통신원을 따라 스적스적 최 퇀장이 있는 절벽 밑으로 다가갔다. 최 퇀장은 상순의 어깨에서 기관총을 받아 내리워 놓고 말했다. “김지도원, 아주 잘 싸웠소. 전번에도 말했지만 동무는 영장을 해야겠소.” 그러나 상순은 덜미를 긁적거리면서 사양했다. “전 아직도 실전경험이 부족합니다. 지휘재간도 없는데 지도원도 너무 과분합니다. 이제 전투지휘와 대포쏘기재간을 배운 후 다시 봅시다.” 최 퇀장은 이해되지 않아 했다. “또 그 말이군. 김지도원은 이미 훌륭한 지휘재능을 발휘했소. 전쟁 속에서 전쟁을 배우라는데 왜 자꾸 그러오?” 상순은 속심의 말을 했다. “전 영장을 할 재간도 없습니다. 이젠 토비숙청도 다 했는데 부대에서 뭘 하겠습니까? 진수해 구위 서기 이계삼 동지는 저를 보고 동만의 토비를 다 몰아낸 후 함흥 촌에 돌아와 지방 사업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지방 당 조직에 한 약속을 어길 수 없습니다. 마을에 돌아가 농사를 지으면서 지방 당 조직을 도와 민병공작을 할 예산입니다.” 최 퇀장은 상순을 쉽게 놓지 않았다. “상순 동무, 아직 국민당과의 전쟁은 시작에 불과하오. 삼도만의 전보흥도 나포하지 못했잖소? 지금 장개석 국민당 반동파들은 동북의 대도시를 거의 다 점령하였소. 그 놈들은 당장 교하를 친후 할바령을 넘어 우리 동만으로 쳐나올 망년된 꿈을 꾸고 있소. 중국에서 국민당 반동파를 철저히 소멸하기 전에는 우린 절대 발편잠을 잘 수 없소. 우린 계속 국민당 반동파와 싸워야 하오. 우리 부대에는 상순동무와 같은 전투지휘능력이 있는 군사인재가 필요하오.” 그러나 상순은 기어이 부대를 떠날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만약 국민당 반동파들이 교하를 넘어 우리 동만으로 쳐나올 때면 다르죠. 그때 다시 부대로 돌아와 본때 나게 싸우겠습니다.” 최 퇀장은 도리머리 질 했다. “참 답답하오. 동무는 후에 꼭 후회할 거요.” 그래도 상순은 자기 생각을 고집했다. 민주연군 부대는 라자구를 거쳐 왕청에 돌아와 휴식정돈하게 되었다. 상순은 최 퇀장의 비준을 받고 함흥 촌으로 돌아가게 됐다. 최퇀장은 소개신과 상부 영장임명장을 상순한테 주면서 말했다. "지방당조직에 바치오." "이건?" "꼭 바쳐야 하오. 동무는 지방에 가서도 이 직급의 사업을 해야 하오."  상순은 정이 폭 밴 기관총을 매만지면서  메고 떠나나가려고 청을 들었다. 최 퇀장은 상순이 기관총을 애지중지하는 마음을 읽은 듯이 기관총을 되 상순의 어깨에 메워 주면서 말했다. “김지도원, 지방에 아직도 국민당 잔여특무들이 있소. 이 기관총은 동무가 입대할 때 가지고 온 거니까 가지고 가오. 마을에 돌아가서 기관총사수를 많이 양성해 우리 부대에 보내주오.” 상순은 입이 함박만 해 싱글벙글 웃으면서 군례를 척 붙였다. “감사합니다. 최퇀장, 꼭 기관총사수를 수태 양성해 부대에 데리고 오겠습니다.” 최퇀장과 허련장은 아쉬운 대로 상순을 보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이때 한 마을의 성수도 나섰다. “최퇀장, 나도 상순 반장과 함께 함흥 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최퇀장은 도리머리 질 했다. “이거 우리 퇀의 기관총사수들이 다 마을로 돌아가면 어쩌지. 성수동무는 기관총을 두고 가야겠소.” “옛!” 성수는 기관총을 내려놓고 상순을 따라 나섰다. 그러나 이태수는 최 퇀장의 눈치만 보면서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태수만은 계속 부대에 남아 있게 됐다. 상순은 승리의 희열에 넘쳐 기관총을 메고 성수와 함께 영길에 올라 함흥 촌으로 떠났다.                 제21장 두번째 고향 1. 첫봄 기다리고 기다리던 새 봄이 왔다.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은 첫 봄이 왔다. 하늘에는 종달새가 지종지종 노래하며 날아옌다. 산과 들의 밭에는 땅의 주인이 된 농민들이 흥겹게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있었다.      상순은 마을에서 참군한 용사들을 데리고 마을에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왁짝거리며 집에서 뛰여나와 그들을 반겨맞았다. 그런데 상순이 야마꼬와 어린애까지 데리고 온 것을 보고 아낙네들이 쑤군거렸다.  "아니, 친일주구 일본첩년을 데려오다니?" "저런 애까지?" "정신 있소?" 상순의 무서운 세귀눈과 마주친 아낙네들은 입을 딱 다물어버렸다. "야마꼬를 들먹이지 마오. 야마꼬도 일제 침략전쟁과 지주들의 피해자오. 그를 기시해선 절대 안되오." "기생년 아니오?" "무슨 소리오? 일제 놈들한테 끌려온 일본군 위안부오. 일본 놈들의 피해자라니깐. 야마꼬는 의지가지 없는 불쌍한 여자오.절대 놀리지 말어야 하오. 언닌 토비놈들한테 참혹하게 살해됐소. 오빠 야마가와는 우리 민주련군을 도와 탱크를 몰고 삼도만토비소굴에 진공해 숱한 토비들을 소멸하고 장렬하게 희생되였소. 언니 요시꼬와 오빠 야마가와는 모두 토비들의 손에 희생돼 삼도만에 묻혔소."  그제야 마을 아낙네들은 측은한 눈길로 야마꼬를 바라보았다. 야마꼬는 돌아서서 애를 안고 어깨를 가늘게 들먹이며 눈물을 훔쳤다. 상순은 야마꼬를 충국의 부탁대로 지학사네 집에 보내지 않고 장학산네 집에 보냈다. 지학사 첩이지만 친일주구네 집에 가면 기를 펴고 살 것  같지 못했다. 그런 점을 고려해 상순이 아량있게 처리한 것이다.       그런데 상순이 야마꼬를 데리고 장학산네 토성안 집에 들어서자 장리국과 장미란이 야마꼬한테 아니꼬운 눈길을 보냈다. 상순과 장학산이 친척아주머닌데다가 의지가지 없는 여자라고 설득해서야 그들의 눈길이 겨우 좀 달라졌다. 기실 장학산이나 장충국이나 만나서 토론한 적은 없었지만 똑같이 엉뚱한 궁리를 하고 있었다. 충국은 상순을 보고 야마꼬를 자기 집에 뎌려가 기다리게 했다가 돌아가면 데리고 살 궁리를 하고 있었다. 너무 하얀 얼굴이 마음에 걸렸지만 화복치마 밑에서 비뚤거리는 터질듯이 펑퍼짐한 엉덩이가 퍽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장학산은 더욱 엉큼한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 충국은 어데 있느냐?" 장학산의 물음에 상순은 대뜸 장학산이 진작 충국이 토비에 들어간 걸 알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상순은 대답하기 아주 난처한데도 별수없이 곧이곧대로 쭉 알려주었다. "평강촌에서 기의해 전보홍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한 후 어디로 도망쳤는지 모르겠습니다. 충국은 삼도만 토비숙청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젠 토비들이 다 숙청됐으니깐. 언제든지 마을로 돌아와도 되오."       뒤이어 상순은 장학산에게 경고했다. "당신도 이젠 구사회를 꿈꾸지 말고 로동개조에 잘 참가해 사상을 개조해야 하오. 그러잖고 다른 꿈을 꾸면 안되오."       장학산은 상순에게서 그간 충국의 이왕지사를 다 들었기에  머리를 끄덕이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상순이 떠나가자 야마꼬는 장학산 일가의 눈치를 할끔할끔 보면서 불편해하였다. 그러자 장학산은  탄련있고 풍만한 야마꼬의 가슴을 노려보면서 마른 군침을 꿀꺽 삼켰다. "충국이 서른이 거의 되도록 장가도 못갔는데 일본 년이라도 마주세워야지. 흐흐흐. 좌우간 지학사는 죽었으니 우리 집안에 들어온 일본 여자를 우리 마음대지. 허허허." 그는 희죽이 웃으면서 요시꼬를 서쪽 방에 데리고 갔다. "자넨 오늘부터 우리 집 식구야. 아무 근심도 하지 말고 여기 서쪽 방에서 살게나." 야마꼬는 외씨 같은 얼굴에 희색을 띠우며  자그마한 앵두입을 쫑긋했다. "요씨!" "요씨(要死)라니? 뭐, 죽겠다고?" 장학산은 일어를 모르다나니 의아해했다. "남은 우리 집에서 잘 살라고 했는데 죽겠다니?" "호호호. 好(좋아)" 아니, 절대 죽어선 안돼. 우리 아들 오면 함께 살아. 알았어?" 야마꼬는 뜻밖의 말에 애를 안고 입을 하 벌리며 우스워했다. 그러나 그녀가 무슨 수가 있겠는가. 이젠 모자가 장학산에게 매운 목숨인데야. “아링아도 고자이마쓰(감사해요)." 장학산은 더욱더 오리무중에 빠졌다. "뭘? 이번엔.马死야? 허, 이거라구? '요쓰', '요쓰' 하더니, 자꾸 马死, 마쓰하면 어쩌느냐? 우리 집엔 말도 없는데. 흐흐흐.” 장학산은 음충한 눈길로 야마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다가섰다. 그는 칡넝쿨 같이 메마른 손을 능구렁이처럼 뻗쳐 야마꼬의 허리를 슬쩍 건드리며 지껄여댔다. "넌 죽어선 안돼. 내겐 보배야." 장학산은 더는 참지 못하고 그 탐나는 요시꼬의 살진 엉덩이를 스리슬쩍 만졌다. "아이, 야라나이데 꾸다싸이(이러지 마세요)!" 야마꼬는 엉덩이를 비틀며 우는 애를 돌려대 장학산을 밀막았다. "하긴 잘해! 불여우 같은 년!" 그때 충씨와 장미란이 나타나 허연눈깔을 표독스레 희번뜩였다. "어디서 꼬리쳐!" "아니예요." 야마꼬는 어깨를 들먹이면서도 입이 열개라도 사실대로 까밝힐 수 없었다...      한편, 병완은 가래짝 같은 손으로 돌을 주어들더니 촌공소 마당 늙은 비술나무에 걸어 놓은 종을 댕, 댕, 댕 두드렸다. 함흥 촌 사람들은 촌공소의 종이 울리기만 하면 또 병완 촌장이 또 회의를 부른다는 것을 알고 모여 들곤 했다. 병완은 마루 위에 서서 마을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 우리는 일본 놈들의 핍박에 의해 고향을 떠나 간도에 왔습니다. 이젠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나라도 되찾았습니다. 우리 고향에서도 일본 놈들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허나 일본 놈들의 수십 년 동안 약탈적인 통치에 의해 우리 고향은 사람이 살 수 없고 밭을 개간하기 힘든 수림으로 돼버렸습니다. 그 수림을 몇 십 년 후에 채벌해 쓴다면 나라의 훌륭한 재목으로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번째 고향을 건설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제 고향을 두고 돌아가서 살지 못하고 어떻게 여기다 고향을 건설한다고 그러오?” “그러게 말이오. 여기 간도 함흥 촌이 어디 고향이오?” “두 번째 고향이란 말은 듣다 첫소리요.” 병완은 손을 들어 흔들고 연설을 계속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고향을 잊으라거나 돌아가지 말라는 건 아니오. 돌아 갈 사람들은 돌아가오. 성칠과 통사정을 하면 한두 집이 돌아갈 순 있을 거요. 허나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돌아가 살겠습니까? 우리는 다 함께 돌아가지 못할 바엔 조선에 나간 성칠이나 칠백을 비롯한 자식들과 나라에 부담을 주지 말고 함흥 촌에 정을 붙이고 삽시다. 정이 들면 아무데나 고향입니다. 우린 여기를 우리 두 번째 고향으로 생각하고 발을 붙이고 살자는 겁니다. 우리가 여기 와서 어떻게 일군 저 밭입니까? 우린 피땀을 흘려 일군 저 밭을 절대 버리고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린 지주를 청산하여 집과 밭을 나눠 가지고 잘 사는 날을 맞이했습니다. 이 땅을 보호하기 위해 피를 흘리며 삼도만 등지의 토비들을 몽땅 숙청해버렸습니다. 우린 위대한 중국 공산당의 령도 아래 새 중국에서 소작료도 내지 않는 진정한 이 나라 땅의 주인이 됐습니다.” 그 말에는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러자 병완의 연설은 점점 격정으로 차 넘쳤다. “우리는 공산당을 따라 나라와 지역이란 비좁은 마음에서 벗어나 온 세상에서 지주와 자본가들을 때려 엎고 압박과 착취가 없는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하오. 그런데 무슨 내 고향 네 고향 할 게 있소? 우린 이 땅에 정을 붙이면서 뿌리를 박고 두 번째 고향을 건설하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세상을 건설해야 하오.”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면서 웅성거렸다. “빨리 사회주의를 건설했으면 좋겠소.” “그렇게 좋은 세상에서 하루라도 살았으면 좋겠다이.” “어느 날엔가 그런 날이 오겠지.” 병완은 마지막으로 힘주어 연설을 마무리했다. “사회주의는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요. 우리가 힘써 여기에 두 번째 고향을 건설해야 사회주의 앞날을 앞당길 수 있소. 우리 모두 이 두 번째 고향에서 힘써 황무지를 개간하고 양곡을 많이 거둬야 배불리 먹으면서 잘 살 수 있소. 우리는 농사를 잘 지어 국민당군과 싸우는 인민해방군에 군량을 푼푼히 지원해야 하오. 국민당군을 물리쳐야 우리 이 땅을 지킬 수 있소. 절대 다시 지주놈들한테 이 땅을 빼앗겨선 안 되오!” 모두들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듣다 듣다 그래도 배불리 먹고 잘 살수 있다는 말이 제일 좋소.” 모두들 집에 돌아가 괭이를 메고 황무지를 개간하러 떠나갔다. 사람들은 한 무라도 자기 땅을 만드느라고 씨뿌리기 보다 황무지 개간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이젠 지주가 없다나니 누가 어느 황무지를 개간하든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어떤 때에는 황무지를 서로 빼앗을 내기 하다가 말썽이 생겼고 지어 주먹다짐도 생겼다. 병완은 황무지분쟁을 막으려고 회의를 열고 모두들 자기가 붙이던 밭 옆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밭을 만들라고 했다. 그래도 분쟁이 생기면 병완은 촌공소에 분쟁 쌍방을 불러다 정황을 알아보고 조해를 시켰다. 병완은 마을 사람들이 황무지 분쟁 없이 황무지를 개간하게 하려고 한데 몰려 황무지를 개간하지 말고 장개골안과 조개덕, 패용천산 칼산 주위 산비탈과 들판에 마을 사람들을 골고루 배치해 황무지를 개간하게 했다. 하여 무질서한 황무지개간으로 하여 생긴 분쟁이 없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토지분쟁을 막고 제일 개간하기 힘든 패용천산 비탈 중턱 황무지를 개간하는 병완을 두고 엄지를 내둘렀다. “공산당 영감이 다르긴 다르오. 경사도가 높은 저 산비탈에 황무지를 개간하고 어떻게 곡식을 실어들이겠다고 저러오?” 득호의 말에 태연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러게 말이오. 김 촌장은 다루기 좋은 황무지는 우리한테 주고 다루기 힘든 황무지를 개간하니 말이오.” 장학산은 병완이 자손들을 데리고 자기 황무지 자리를 마구 개간하는 것을 멀찍이 서서 보면서 배 아파 도리머리 질 했다. “어떻게 하다나니 세상이 이렇게 뒤바뀌었단 말인가? 저 놈들에게 내 땅을 다 빼앗기겠다.” 장학산은 염치를 불구하고 괭이를 메고 병완을 찾아갔다. “김 촌장, 나도 황무지를 개간하면 안 되오?” 병완은 괭이를 짚고 장학산을 내려다보면서 “되오.”라고 했다. 그러자 장학산은 괭이를 짚고 두루 천지꽃산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여긴 자네들이 다 개간하는데 난 어디를 개간해야 되오?” 그 당돌한 물음에 병완이나 창준이나 모두 괭이를 짚고 서서 장학산을 쏘아보았다. 그런데도 장학산은 별 능청을 다 떨었다. “나도 사람이 아니오? 당신들이 조선에서 와서 내 땅을 다 빼앗아가니 난 밭이 없어 어디에 뭘 심어 먹고 살겠소?” 병완은 참다가 언성을 높였다. “이 지주 영감이, 옛정을 봐서 집을 청산하지 않고 놔둔 건 모르고 아무 소리나 다 하겠는가?” 장학산은 병완을 믿는 턱에 지분거렸다. “고래 등 같은 집만 있어 뭘 하오? 밭이 없어 입에 풀칠도 하지 못하겠는데.” 장학산은 희죽이 웃기까지 하면서 계속 지분거렸다. “나도 별나게 지주로 된 게 아니오. 아껴 먹고 돈만 있으면 땅을 샀지. 지금 자네들이 내 황무지를 빼앗아 숱한 밭을 일구는데 거꾸로 자네가 새 지주로 되겠어. 이전에 상순이 우리 충국이 하구 조선과 길림, 교하로 다니면서 약 담배 장사를 해서 몇 천원 번 걸로 땅을 샀더라면 당신도 영낙없이 지주로 됐을 거요. 허허허.” 병완은 그 소리에 억이 막혀 코웃음이 나갔다. “이보게나. 근심하지 말게나. 난 자네처럼 소작농사군을 하나도 두지 않고 소작료를 받아 살지 않을 거요. 우린 제 두 손으로 황무지를 개간했소. 밭이 아무리 많아도 제 손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살 거네. 자네도 이제부터 자기 손으로 황무지를 개간해 농사를 지으면서 살게나.” 장학산은 눈에 이상한 빛이 번쩍이더니 물었다. “그럼 나도 자네처럼 농사를 지으면서 살면 지주가 아니지?” 병완은 도리머리 질 했다. “장 지주, 당신은 전생에 우리 집 식구와 주현경 네를 착취했기에 영원히 지주라는 모자를 벗지 못하네. 남을 착취했기에 영원히 죄를 진 지주요. 허나 이제부터 노실하게 노동개조를 잘 하면 당신은 유격대를 도와준 적이 있기에 좀 다르게 처리해줄 순 있네.” 장학산은 맥이 풀려 김이 빠진 괭이자루를 안고 황무지 마른 풀 위에 풀썩 물앉았다. 병완과 창준이 자손들과 함께 괭이로 나무뿌리를 찍어내는데 장학산은 괭이자루를 쥐고 개여 올리는 말을 하면서 자리를 떴다. “에이구, 그래도 내 전생에 어쩌다 김 촌장한테 황무지를 줘서 밭을 일궈 살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찮았더라면 집도 빼앗기고 총살 당했겠는데.” 병완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틀렸네. 당신 전생에 유격대가 제일 어려울 때 양식을 대준 일이 당신을 살린 거네. 지금도 노실하게 노동개조를 하고 국민당을 돕는 일을 하지 마오. 집에 돌아가 곰곰이 생각해 보오. 우리한테 무슨 미안한 일 없었는가? 우린 손금 보듯 다 알고 있으니깐. 속일 궁리는 하지도 말게.” 그 말에 장학산은 속이 섬찍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괭이를 둘러메고 비틀거리면서 허둥지둥 토성 안 집으로 내려갔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야마꼬가 애를 안고 부랴부랴 상순네 집으로 찾아왔다. "웬 일이오? 야마꼬." 야마꼬는 애를 안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울고 불며 야단쳤다. "저 장학산네 집에서 하루도 못 살겠어요." "엉?" 상순은 야마꼬를 보고 구들에 올라오라고 했다. 그러나 야마꼬는  바닥에 선채로 장학산을 공소했다. "장학산의 처자들은 나를 밥도 온전히 안줘요. 령감태기는, 흐흑흑, 흑흑. 밤이면 내 자는 방에 뛰여들어 못살게 굴어요." 사태의 엄중성을 느낀 상순은 야마꼬를 보고 구들에 올라오라고 해 밥부터 먹으라고 했다. 꽤나 수척해진 야마꼬는 명옥의 눈치를 보면서 밥사발을 받아 게눈 감추듯 했다. (얼마나 굶었으면 저 지경이겠는가.) 상순은 야마꼬를 계속 장학산네 집에 두지 못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야마꼬가 식사를 마치자 상순은 그녀 모자를 데리고 촌공소로 나갔다. 때마침 병완이 나와 있었다. "할아버지, 내 진수해에 한반 가봐야겠습구마." "어째?" "구위 리계삼 서기랑 찾아보구 조직증명서도 바치고 야마꼬 때문에 겸사겸사해 가봐야겠습구마." 병완은 상순한테서 사연을 들은 후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가봐라." 상순은 급급히 진수해에 내려가 구위정부로 찾아갔다. "허, 우리 전투영웅이 왔구만. 들을라니 상순 동문 참 잘 싸웠더구만." 그는  리계삼 서기와 허영주 구장을 만나 최퇀장이 보낸 소개신을 꺼내 주었다. 리계삼 서기는  소개신을 받아보고 의아한 눈길로 상순을 쳐다보았다. "임명장은 어쨌소?" 상순은 뒤더수기를 긁적거리었다. "상부의 임명장도 바쳐야 하오. 이건 조직기률이오." "지방에 돌아왔는데 뭐 필요합니까?" "아니오. 이건 다 조직서류에 들어가오." 그제야 상순은 마지못해 임명장을 바쳤다. 리계삼은 임명장을 받아보더니 허영주 구장한테 넘겨주었다. 그들 둘은 상순을 대견하게 보며 환담을 했다. "보라니깐. 우리 상순동문 아주 전도 유망한 간부요." 리계삼 서기는 상순의 두 손을 잡고 말했다. "상순 동무, 우린 상부로부터 상순동무가 아주 지혜롭고 용감하게 토비숙청전투에서 수많은 공훈을 세웠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오. 상급 당위의 비준을 받고 상순 동무를 우리 구정부 민병영 영장으로 임명하오." 상순은 자기 어깨가 무거운 감을 온 몸으로 느꼈다. "조직의 신임은 감사합니다. 그러나 전 영장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또, 또, 또." 허영주 구장이 혀끝을 찼다. "민주련군 영장이 민병영장도 못하겠소? 해방전쟁은 시작에 불과하오. " 리서기도 동을 달았다. "동만의 토비는 숙청했지만 도처에 국민당 특무들이 욱실거리고 국민당군이 언제든지 할바령을 넘어 우리 동만을 쳐들어올 수도 있소. 그 놈들이 지금 교하 라법까지 쳐들어왔소. 악패 지주들은 항상 복벽을 꿈꾸오. 아차, 알려줄게 하나 있소. 김영장이 정규상한테 구해달라고 부탁한 삼도만 토비 문서 조소호 있잖소?" "예. 그가 살아났습니까?" 허영주 구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양, 그런데 그 자는 구해주자마자 어디론가 도망쳤소.도망치면서 쪽지를 남겼소. '기의한 지학구를 죽인 걸  다 안다. 어깨에 총을 맞고 쓰러져서 죽은 척하면서 그를 죽이려는 걸 다 들었다. 나라고 민주련군에서 죽이지 않겠는가. 날 찾지 말라. 난 반동도 하지 않겠다. 내 가족을 살려달라.' 이런 쪽지를 병원에 남기고 달아났소. 얼마나 인심은 난측이오?" 상순은 어이없어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도망치다니? 그는 기의했기에 관대처분 받겠는데. 참." 리계삼 서기가 뒷말을 이었다. "지주나 토비들은 국민당군이 쳐들어오기만 하면 또 들고 일어날 수도 있소. 지금 전시상태에서 후방의 민병공작도 아주 중요한 공작이오. 상순동무는 너무 겸손하지 말고 조직의 신임을 저버리지 말고  우리 구 민병건설을 잘 하오." 상순은 별 수 없이 군례를 척 붙이면서 우렁차게 대답했다. "옛! 꼭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뒤이어 상순은 야마꼬 모자의 불행한 처지를 말하고나서 해결방법이 없는가고 문의하였다. 리계삼 서기는 창밖을 한참 내다보더니 상순한테 머리를 돌렸다. "여기에 야마꼬를 두는 게 장원한 방법이 아닌 거 같소. 이제라도 일본에 보내는게 옳은 거 같소." "예? 돌아가면 좋겠는데.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 "되오. 지금 조선반도 북쪽엔 쏘련 홍군이 점령해 있고 남쪽에는 미군이 점령해 있소. 건데 일본 인들을 몽땅 일본에 보내주고 있소." "그럼 잘 됐습니다." 허영주 구장이 보충했다. "우린 야마꼬 모자를 조선 인민군 측에 호송해보내면 그들의 방조을 받아 일본에 보낼 수 있소." 상순은 피뜩 성칠 큰아버지가 떠올랐다. "저의 큰아버지를 찾아가면 어떨까요?" 리계삼 서기는 희죽이 웃었다.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리 쉽겠소. 조선인민군에 위탁하면 되오. 야마꼬 오빠는 토비숙청을 위해 희생된 렬사오. 그의 일가는 모두 일제 침략전쟁의 피해자오 꼭 책임지고 일본에 보내줘야 하오." "예, 제가 꼭 책임지고 호송하겠습니다." 그러나 리계삼은 머리를 저었다. "안되오. 우리 구정부에서 무장일군을 파견하겠소. 동무는 민병영 건설을 하는게 급선무요." "옛! 알겠습니다." 이렇게 되여 야마꼬는 안전하게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였다.       쉼에 기준이 온 몸이 땀벌창이 되어 소서구 북쪽 산비탈에 있는 아버지한테로 찾아 와 볼 부은 소리를 했다. “아버지, 저 상순이 저게, 제 노릇을 하구 살 거 같지 않습꾸마. 민병 영장 해서 밥이 나옵둥? 집에 엉치를 붙힐 새 없습구마. 날마다 '싸,싸(杀,杀)해서 밥이 생깁둥? 그럴 게면 부대를 따라 국민당 군을 무찌르러 가지. 집에 노동력이 없어 죽겠는데 집일에는 근본 관심도 없습니다. 봄비에 집에 간장 물 같은 게 줄줄 흘러내리는데도 이영을 이을 궁리도 없습니다. ”       학실히 상순은 구에 민병영을 세운 후 함흥촌, 일성촌, 해동촌 등 구내 여러 촌을 돌아다니면서 민병련을 세우고 강화하고 민병들을 훈련시키느라고 집 일을 돌볼 새 없이 채바퀴 돌듯 맴돌았다.  병완은 손을 탁탁 털면서 셋째아들에게 말했다. “우리 이 지방의 토비들은 거의 숙청됐다. 허나 지금 장개석 국민당 반동파들은 8백만 대군으로 우리 공산군 해방구를 진공하고 동북에도 백만 대군이 쳐들어왔다. 그 놈들은 할빈과 심양, 장춘, 길림 등 대중도시를 거의 다 점령했다. 이제 길림의 국민당 군이 교하를 치고 할바령을 넘어 동만으로 쳐나올 위험도 있다. 우리 동만은 후비군양성기지나 다름없다. 동만을 보위하고 우리 마을을 보위하려면 상순처럼 민병들을 훈련시켜 전선에 우리 아들딸들을 많이 내보내야 한다. 한족 형제들과 함께 어깨 겯고 국민당 군을 깡그리 소멸해야 우리가 시름 놓고 살 수 있다. 그러니 네가 좀 바쁘더라도 상순을 민병훈련을 시키게 놔둬라.” 기준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면서 두덜거렸다. “언제 전쟁이 끝나겠소. 일본 놈들을 몰아내구 토지개혁을 해서 지주를 청산하고 땅을 나눠가졌으면 잘 살겠는가 했더니. 그 많은 국민당 군을 언제 다 소멸하겠습니까?” 병완은 그간 당의 교육을 받았기에 셋째아들을 교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건설할 때까지 계속 혁명해야 한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우리에게 땅과 집을 빼앗긴 지주들과 그들의 처자들이 살아 있다. 그 놈들은 국민당 군이 쳐들어오기를 기다리면서 호시탐탐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절대 시름 놓을 수 없지. 금방 장학산이 왔다 갔는데 우리가 자기네 밭을 빼앗아 새 지주로 되겠다고 집적거리더라. 그들은 토지개혁을 달가워하지 않고 언제든지 자기들의 세상을 복벽하려고 한다. 우린 항상 그 놈들에게 경각성을 높이고 살아야 한다.” 기준은 아버지 손을 쥐고 매만지면서 간곡히 말했다. “아버지, 아예 조선에 나가면 어떻습니까? 우리 할아버지 산소랑 어쩝니까? 여기에 엄마 산소를 두고 조선에 나간다는 것도 말은 아니지만. 국민당과 몇 해 싸워야 하겠는지 조선에 나가면 싸울 필요도 없잖습니까?” 그 말에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내 전번에 너를 데리고 아버지와 엄마, 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제를 지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금 중국이나 조선이나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하기에 형제나라여서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지 않고 뭐냐? 장차 해마다 고향에 돌아가 부모 산소를 정성껏 모시고 제를 지낼 수도 있다.” 기준은 그 말에 머리를 숙이었다. “너네 봐라, 우린 여기 황무지를 마음대로 개간하면 아마 밭이 거의 백여 무는 나올 거 같다. 우리 여기 와서 20여 년 동안 황무지를 개간했는데 훌 던지고 가겠느냐? 고향에 돌아가서 그 수림을 채벌하고 이만한 밭을 개간하자면 또 몇 십 년이 걸리겠느냐?” 창준은 아버지 말에 동감을 표시했다. “아버지 말씀이 옳습니다. 아무데서나 배불리 먹고 살면 되지.” 상우도 동을 달았다. “내 어떻게 20여년 일군 상우지를 버리고 간다고 그럽니까?” 상길도 머리를 끄덕였다. “소서구는 이젠 장학산이 게 아니고 우리 땅이 됐는데 여기서 삽시다.” 병완은 자손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옳다. 우린 20여 년 동안 피땀으로 일군 황무지를 개간해 일군 이 땅을 버리고 갈 수 없다. 우린 여기서 두 번째 고향을 개척하고 건설하자.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살아 온 걸 보면 다 그랬다. 신라 마지막왕 경순대왕 김부 할아버지도 천년 동안 살아온 경주를 떠나 개성에 왔댔고 김려생 할아버지도 단종을 보호한 죄를 쓰고 명천에 도망쳐 와서 살았다. 우리도 함흥 촌에 와서 정을 붙이고 살면 그 후대부터는 여기가 고향이 되는 게다. 전번에 기준과 함께 고향에 가서 부모와 조부모 산소에 제를 지낼 때 난 조상님들께 말씀 드렸다. 이제 불효자식은 가능하게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간도의 귀신이 될 것 같다고. 허나 해마다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뵙겠다고 했다. 너희들은 이후에 조선에 나가면 꼭 조상들의 산소를 찾아가 보고 제를 지내라.” 병완의 그 말에 자손들은 “예.” 하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면서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병완은 마을의 들뜬 인심을 안정시키려면 집안부터 다져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성칠한테서도 기별이 없다. 그 애도 정황이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설사 그 애가 우리 고향 명천 우시장에서 한자리 한다고 해도 우리가 성칠을 믿고 사리사욕부터 채워서야 되겠니? 그럼 성칠한테도 불편하게 될 게 아니야?” 병완의 말에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기준은 좋다, 나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훌 일어나 머리를 숙인 채 상우와 함께 천지꽃산 쪽으로 일 하러 떠나갔다. 상훈과 상길도 아버지를 따라 일어나 괭이를 쥐고 나무뿌리를 파 재꼈다. 병완은 침울해진 자손들을 돌아보면서 속으로 고함쳤다. (이 놈 자식들아, 내라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겠느냐? 허나 돌아갈 형편이 되지 못하는 걸 어쩌겠느냐? 우린 여기를 두 번째 고향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알만하냐?) 병완이가 남쪽을 내다보았다. 기준과 상우가 일하는 남산 천지꽃산에 첫봄을 맞아 연분홍 진달래가 활짝 피여 온 산을 연보라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맑은 하늘에는 까치와 제비들이 날아예고 까치들이 마른 나무 잎사귀를 물어다가 백양나무 가지 사이에 알을 낳을 둥지를 틀기에 여념이 없었다.  
104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7) 댓글:  조회:1858  추천:1  2017-05-08
                                                                   6. 담판 흐릿한 하늘이 걷히면서 하늘에 차디찬 해가 대지를 비추었다. 드디어 맵짠 겨울바람이 마을을 엄습했다. 상순은 지난 밤에 토비들이 마을을 습격해 불을 지르고 무차별사격을 가한 일을 생각하자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 쉬였다. “삼도만 토비들을 몽땅 숙청해 버리기 전엔 마을 사람들이 시름놓고 살 수 없어. 마을을 지키기만 해선 안돼. 언제 그 놈들의 습격을 받을지 몰라.”       그는 마을 청년들을 동원해 함께 민주련군에 참군해 삼도만 토비들을 몽땅 소멸하기로 작심하였다.  그는 마을에 나가 성수와 태수 등을 데리고 조개덕과 소서구, 패용천 촌을 돌아다니면서 조선족과 한족 청년들을 찾아가 참군하자고 동원했다. 그런데 장발래와 제해풍 한족청년들은 모두 도리머리 질 했다. “다 참군하고 우리 집 농사는 누가 짓겠소? 황차 우리 마을 청년들이 다 참군하면 우리 마을과 우리 집은 누가 지켜?” 자기 집 울타리만 지키려는 장발래랑 보고 상순은 어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럼 좋아, 너희들은 마을과 집을 잘 지켜라.” 그제야 장발래 등은 만면에 춘풍이 돼 엄지를 내둘렀다. 상순은 집에 돌아와 숙자를 업은 명옥을 보고 “내 부대에 갔다 오겠으니 아버지를 잘 모시오.”라고 했다. 명옥은 임신한 지 몇 달 됐다. “여보, 내 간 후 수고 많이 하오. 토비들을 모조리 소멸하면 우리 마을 사람들이 편안히 살 수 있을 거요.” 명옥은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전쟁터에 남편을 보내기 아쉬웠지만 속으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겉으로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토비를 숙청하고 무사히 갔다 오오.” 명옥은 숙자를 상순에게 안겨 주었다. 상순은 숙자를 안고 뽀뽀를 해주었다. “숙자, 에이고, 내 귀여운 딸아, 아버지한테 뽀뽀 해 달라.” 명옥은 “뽀뽀 해.”라고 했다. 숙자는 아버지의 볼에 난 구레나룻을 어루만지다가 쪽 뽀뽀했다. 이윽고 상순은 성수랑 병수랑 태수랑 마을의 끌끌한 청년들 30명을 데리고 기관총 두정을 가지고 촌공소 앞에서 부대로 떠나게 되었다. 병완과 기준 그리고 명옥과 금옥 등이 모두 바래러 나왔다. 명옥은 숙자를 업고 상순이네를 바래며 눈물을 줄줄 흘리더니 팔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금옥은 칠군을 업고 최학섭과 함께 나와 바래였다. “오빠, 무사히 갔다 오오.” 상순은 칠군의 볼을 매만지면서 “그래, 근심하지 말라.”라고 했다. 상순은 이계삼과 허영주, 병완 등에게 군례를 척 올리고는  마을 민병 30여명이나 영솔해 성큼성큼 진수해 쪽으로 떠나갔다. 병완은 옆구리에 권총 두자루나 차고 기관총을 둘러메고 민병들을 영솔해떠나는 상순을 대견하게 목송했다.  마을 사람들은 자기 아들들을 전쟁터에 내보내면서 눈물을 흘리었다. 여기저기에서 흐느낌소리로 울음소리로 웅성거렸다… 상순은 권총 두자루나 차고 30여명 민병들을 영솔해 기관총 두 정까지 가지고 진수해에 가서 동북 민주연군 길동군구 제19퇀에 입대하였다. 최낙현 퇀장은  이계삼 서기의 소개신을 받아 읽어보고 상순을 패장을 시키면서 기관총반까지 이끌라고 했다. 그러나 련장 허백호는 기관총반을 자기 마을에서 온 민병을 보고 령솔하게 하려고 고집했다.  19퇀이 영월구에 가서 훈련할 때다.  기관총을 다룰 줄 아는 군인은 온 퇀에 상순 밖에 없었다. 기관총반 반장도 기관총을 쏠 줄은 알았지만 기관총을 분해했다가 되조립할줄을 몰랐다. 그런데 상순은 기관총 명사수일뿐만 아니라  기관총을 분해했다가 척척 조립하는  능숙한 기술자였다. 게다가 그는 항일유격대를 따라 실전에 여러번 참가한 실전경험이 있었다. 이런 정황을 알게 된 최낙현 퇀장은 상순을 보고 기관총반도 이끌라고  하였고 이성수와 이학수, 최병수, 이태수  등 한 마을의 민병출신들을 기관총반에 귀속시켜 주었다. 그 일로 해 허백호 련장은 상순을 아니꼽게 생각하였다.  눈치챈 상순은 휴대하던 권총 한자루는 최퇀장한테 바치고 한자루는 허련장한테 드렸다. 허백호 련장은 모젤권총을 쥐고 이리저리 보며 흐뭇해했다. "어디서 얻은 권총인가?" 상순은 곧이곧대로 말했다. "최퇀장한테 바친 권총은  항일전쟁 때 일본 놈의 걸 로획한 것이고 이 권총은 함흥촌토비숙청전에서 로획한 거요."  "그래? 감사하다이." 허백호는 권총을 허리춤에 차며 다른 눈길로 상순의 세귀눈을 훔쳐보았다. (이 자식, 웬간한 놈 아니구나.)  부대에서는 삼도만토비들을 어떻게 칠 것인가는 토론회를 퇀지휘부에서 열었다. 패장 이상 간부들이 참가하였다. 1련 지도원 김명호는 선참으로 나서 호언장담했다. "저에게 한개 반을 주십시오. 그까짓 삼도만 토비들과 담판해 투항하게 만들겠습니다." 그러나 1련 허백호 련장은 반대해나섰다. "안될 소릴. 그 놈들이 몇마디 말에 무기를 놓고 투항하겠소? 담판 갔다가 괜히 목숨을 잃겠소." 김명호 지도원은 가슴까지 탕탕 생고집했다. "에이구, 백명도 안되는 고까짓 토비놈들이 뭘 대단해서. 흥! 천명이나 되는 우리 퇀이 치러 간다는 말만 들어도 벌벌 떨면서 투항할 놈들입니다. 개미굴을 치러 가는데 작두를 쓸 필요 있습니까?" 최낙현 퇀장은 한참 궁리하다가 무거운 입을 뗐다. "싸우지도 않고 투항하게 하면 좋은 일이지. 건데 누가 감히 토비굴로 담판하러 가겠소?" "제가 가겠습니다. 한개 반만 주십시오. 긍정코 그놈들을 투항하게 하겠습니다." "좋소." 그때 상순이 나섰다. "제가 비밀리에 토비놈들 소굴에 잠입해 그 놈들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하겠습니다." "김패장! 여기 어디라고 나서는가?!" 허백호 련장은 코웃음쳤다. "담판도 지금 성사되겠는지 모르겠는데. 그 놈들을 반란하게 해? 어림도 없는 소릴. 흥!" 상순은 세귀눈으로 허련장을 힐끔 쳐다보았다. 뒤이어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며 자리에 되앉았다. "아니요." 최퇀장이 손사래를 치며 상순한테 눈길을 돌렸다. "1패장의 말을 다 들어보기오." 상순은 재차 일어났다. "삼도만 토비무리에는 우리 마을에서 도망간 장충국이란 자가 있습니다. 충국은 일찍 저와 함께 항일유격대에 쌀도 나르고 항일전투에도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자를  이용해 내부반란을 일으킬가 합니다." "쳇, 꿈이면 듣기나 좋지." 허백호 련장이 비양거리자 최퇀장이 또 손사래쳤다. "상순 패장, 그 자가 지독한 전보홍을 설복할 수 있겠소?" "전보홍을 설복시키긴 힘들지만 우리 치러 갈 때 내응하게 하면 어떻습니까?" 최퇀장마저 미심쩍어하며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충국이라던가?" "예." "그자는 혹시 반변해올지 모르겠소. 그런데 그 자 혼자 독불장군이지." "아닙니다. 삼도만토비 중에는 지학구라는 자도 있습니다. 그자는 충국의 5촌외삼촌벌 되는데 일찍 일제 때 해동파출소 소장질을 했습니다. 지학구까지 기의하게 하면 그 주위 놈들 십여명은 따라 행동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최퇀장은 뒤지개를 짚고 지휘부를 왔다갔다하며 상순의 말을 들으며 궁리했다.  그는 주춤 멈춰서더니 페회를 선포했다. 모두들 헤여져 돌아갔다. 김지도원은 담판하러 떠나려고 나갔다. "상순 패장, 잠간 남소." "옛1" 최퇀장은 상순에게서 충국과 지학구란 자와 상순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알아본 후 오래도록 상순과 구체작전계획을 토론하고나서 이리이리 하라고 지시했다. "옛, 꼭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최퇀장은 사무궤에서 권총을 꺼내 상순한테 주었다. 그 권총은 상순이 전번에 바친 것이였다. "자, 김패장, 이걸 차고 가게나." "이 권총은 제가 바친 건데..." "동문 패장이 아니오? 패장은 권총을 찰 자격이 있소. 황차  이번엔 특수임무를 수행하기에 권총이 더 필요하오." "넷, 목숨바쳐 꼭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아니오. 임무를 완수하고 꼭 살아돌아와야 하오." "넷!" 상순은 군례를 척 붙히고 퇀지휘부를 나왔다. 한편 김명호 지도원은 일본 놈들에게서 로획한 자동차에 10여명 전사들을 싣고 영월구를 떠나 호박길을 덜커덕 거리며 산을 넘고 영을 넘어 삼도만 평강촌에 이르렀다. 보초병한테서 민주연군이 한자동차 왔다는 말을 듣고 전소교는 충국에게 암암리에 이리이리 하라고 명령했다. 김명호 지도원은 토비들의 소굴을 둘러싼 목책 대문에서 한 300메터 떨어진 곳에 자동차를 세워 놓고 입에 손을 모아대고 고함쳤다. “삼도만 토비들은 들으라. 우린 민주연군이다. 네놈들과 단판을 하러 왔다. 우리 2천여 명 병력이 당장 네놈들을 숙청할 것이다. 네 놈들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전보흥 소교는 사합원지휘부에서 보고받고 악이 나 입술을 깨물었다. “투항하라고? 좋아, 마을에 들어와 담판하자고 햇!” "옛!" 충국이 한개 반을 데리고 목책 대문 밖으로 나왔다. "들어와 담판합시다." 그러자 김명호 지도원은 운전수를 보고 목책 안으로 자동차를 몰라고 했다. 토비들은 목책 대문을 활짝 열어 재끼었다. 운전수는 옆 좌석에 앉은 김 지도원을 보고 말렸다. “들어가지 맙시다. 놈들이 다른 마음 먹었으면 어쩝니까?” 허나 김명호 지도원은 개의치 않았다. “산골 놈들이 감히 우릴 어찌겠는가? 차를 대문 안으로 몰라. 이건 명령이야." 그들이 탄 자동차가 목책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대문이 삐꺼덕 닫기였다. 김 지도원 등은 무슨 판국인지도 알기도 전에 30여개 총구멍이 그들을 겨누었다. 장충국은 총을 휘두르면서 호통쳤다. “몽땅 총을 내려놓아!” “우린 담판하러 왔소. 무기를 해제하다니?” 충국은 김명호 지도원의 반발에 어느 결에 운전석 문을 열고 김 지도원의 옆구리에서 권총을 빼앗아냈다. “담판하러 온 놈들이 권총을 차고 와?” 뒤이어 토비들은 전후좌우에서 차 바곤에 총칼을 들이대고 민주연군 전사들의 총을 빼앗아냈다. 그때 눈덮인 수림에서 난데없는 뻐꾸기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뻐꾹, 뻑뻑꾹. 충국은 수하토비들을 보고 김지도원이랑 토비지휘부에 압송해가게 하고 소변 보는 척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겨울에 웬 뻐꾸기야?) 그는 뻐꾸기 울음소리 나는 수림속을 눈빗질하였다. (혹시 상순이?) 그때 저 멀리 하얀 눈 덮인 수림에서 하얀 그림자가 언뜰했다. 뒤이어 뻐꾸기 울음소리 났다. 항전 때부터 상순은 충국이나 춘실을 비밀리에 만날 때마다 뻐꾸기 울음소리를 암호로 썼던 것이다. 뻐꾸기 울음소리는 또 항일유격대의 암하이기도 하였다. "개자식," 충국은 욕을 하면서도 흘끔흘끔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총을 겨누어들고 하얀 그림자가 언뜻 움직인 곳으로 잠입해갔다. "충국아!" 충국은 깜짝 놀라 돌아서며 총을 겨눴다. 아름드리나무 뒤에서 하얀 천을 뒤집어 쓴 상순이 희죽이 웃으며 나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놈새끼!" 충국은 방아쇠에 손을 댔다가 맨 손인 상순을 보고서야 총구를 내리웠다. 금방 뒤에 선 상순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으면 맨 손으로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는 것을 충국은 잘 알고 있었다. "어째 여길 왔어. 난 네놈을 죽일 수도 있어." 그러나 상순은 충국의 손을 잡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내 말 들어. 이제 몇천명 민주련군이 여길 쳐서 재가루를 만들 거야. 이제라도 늦지 않아. 기의해라." 그 말에 충국은 질겁해 목을 움추려뜨렸다.  "몇천명이나 온다구?" "그래. 네놈들 몇십명이 살아남을 거 같아?" "기의한다고 살려 주느냐? 난 전번에두 지학구하구 너네 마을 쳤어." "기의만 하면 살려주고 말고. 너네 부모형제를 생각해서라도 기의해라." 충국은 상순이란 이 마지막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우리 부모 무사하냐?" "그래. 우리 공산당은 너희 일가 항일유격대에 쌀을 대준 공훈을 생각해 다룬 지학사 같은 친일지주들과는 다르게 대하잖니?" 상순은 당의 정책으로 드센 정치공세를 들이댔다. 그러고나서 뒷말을 달았다. "지학구하구 말해라. 이제라도 기의하면 과거는 묻지 않는다고." 그러자 충국은 머리를 끄덕였다. "지학구하구 토론해 우리 민주련군이 들이칠 때 기의해라. 그러고 김지도원이 위험하면 구해달라." "지학사네 일본첩과 애도 살려줄 수 있느냐?" "살려주구 말구. 그 일본 여인도 일제침략전쟁의 피해자야. 지학사는 친일주구여서 총살했지만 처자는 갈라 관대하게 처리해주지 않았어? 너희들 잘못 빼돌렸지.  네가 기의하면 확실하게 살려주지." "지시룡만 살려주면 지학구 외삼촌을 설득해 기의할게."  상순은 충국의 귀에 대고 이리이리 하라고 하였다. 충국은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 "시간이 퍽 지났어. 어서 가라." "응." 충국은 황급히 장총을 주어들고 대문쪽으로 달아났다. 한편 전 소교는 토비지휘부에 끌려온  김 지도원을 노려보며 호통 쳤다. “몽땅 결박햇!” 김 지도원은 전 소교를 보고  물었다. “자네 전소교인가? 담판하러 온 우리와 왜 이러는거야?” "흥!" 전 소교는 코 방귀를 뀌더니 빈정거렸다. “담판? 하하하,  아직도 주둥이만은 여물었구나.” 김 지도원은 기둥에 결박당해 가지고서도 머리를 숙이지 않고 고함쳤다. “네놈들은 고작 5, 60명 밖에 안 된다. 우리 민주연군 2천여 명이 이제 토비 소굴을 들이칠 것이다. 지금이라도 무기를 놓고 투항하면 살려준다.” 허나 전 소교는 일어나더니 김 지도원의 귀 쌈을 찰싹 갈겼다. “우린 조선 빨갱이들과 한 하늘을 쓰고 살 수 없어. 우리 수는 적지만 네놈들을 두려워 할 것 같은가? 2천명이 아니라 2만 명이라도 오라고 해라. 우린 험산을 이용해 네놈들을 한 놈도 남겨두지 않고 이 산골짜기에 소멸해 버리겠다. 네놈이나 투항해라. 투항하지 않으면 네놈부터 생매장해버리겠다.” 그러나 김 지도원은 굴복하지 않고 계속 전 소교를 보고 투항하라고 권고했다. 전 소교는 이를 악물더니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몽땅 총살해라!” 김 지도원은 끌려 나가면서도 전 소교를 보고 고함쳤다. “네놈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가 후회할게다. 우리 민주연군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전 소교는 악이 날대로 났다. 그는 시퍼런 군도를 쓱 빼들었다. “잠간!” 충국이 손사래를 치며 나섰다. "전소교, 량군이 싸워도 찾아온 사자는 죽이지 않는 법이오. 이 자를 인질로 붙잡아 두면 어떻소?" 분명 상순의 부탁을 듣고 나선 것이였다. "픽! 이 놈이 뭐 사자냐?" 전소교는 바깥으로 나가더니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지패장, 이 빨갱이 두목을 생매장해라! 다른 놈들은 몽땅 총살하고 두 놈만은 쫄딱 벗겨 놔줘라! 그 놈들이 돌아가서 우리 말을 전달하게 해라!‘ “옛!” 지학구 패장은 한무리 토비들을 이끌고 김명호 지도원을 평강 촌 뒤 골짜기로 통한 길 옆의 자그마한 둔덕 아래에 끌고 갔다.        상순은 아름드리나무 뒤에 숨어 그 긴급정황을 보고 황급히 태수를 데리고 수림으로 해 뒤쫓아갔다. 토비들은 불을 피우고 언 땅을 녹인 후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그때 충국이 또 찾아와 지학구 귀에 대고 뭐라고 쑹얼거렸다. "닥쳐! 이 놈을 살려줬다가 우리 죽으라고?! 흥!"    토비들은 끝내 김지도원을 구덩이에 밀어넣고 생매장하기 시작했다.   김명호 지도원은  계속 고함쳤다.   “네 놈들은 꼭 후회하게 될 것이다. 우리 민주연군은 네 놈들을 이제 한 놈도 남겨두지 않고 몽땅 소멸할 것이다!” 상순은 김지도원 등을 구하려고 권총을 빼들었다. "김패장은 혹시 김지도원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 경거망동하지 마오...." 그때 최퇀장이 하던 말소리가 상순의 귀전을 때렸다.  상순은 태수의 총을 내리눌러놓고 권총을 허리춤에 되찼다.     김지도원은 생명의 마지막순간에도 구호를 높이 외쳤다. “국민당 토비들을 타도하자!” “중국 공산당 만세!” “민주연군 만세!”. 다른 민주연군 전사들도 모두 김명호 지도원을 생매장한 구덩이 옆에서 장렬히 희생됐다. 전 소교는 고의적으로 해가 지기를 기다려 민주연군 두 전사를 옷을 쫄딱 벗긴 후 호통 쳤다. “얼어 썩어지지 않으면 돌아가서 너네 빨갱이 두목에게 전해라! 우린 절대 투항하지 않는다. 네 놈들이 오기를 기다려 민주연군 놈들이 쳐들어오면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소멸할 테다! 김 지도원의 끝장은 바로 네놈들의 끝장이다!” 전소교가 손을 홱 휘젓자 충국은 토비 둘을 데리고 여우도 얼어 죽을 맵짠 겨울밤에 두 전사를 끌고 바깥에 나갔다. “가라!" 토비들은 홀딱 벗긴 두 전사의 엉덩이를 발길로 차놓으며 을러멨다. 그들이 김지도원 등이 몰고 온 자동차 바퀴자욱을 따라 토비소굴 대문에서 몇백메터 떨어진 눈덮인 수림 속 령길에 들어섰을 때였다. 뻐꾹, 뻐꾹. 그때 충국이 별스레 뻐꾸기 울음소리를 냈다. 뻐꾹, 뻑뻑꾹. 토비 둘이 의아해 장총을 내리워 비껴들었다. 땅! 령길에서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토비놈이 푹 꺼꾸러졌다.  충국이 선손을 썼다. 나머지 놈이 충국을 겨눴다. 땅! 상순이 수림 속에서 뛰여나오면서 토비놈을 쏘았다. 토비놈은 푹 꼬꾸라졌다. 충국은 토비의 털옷을 벗겼다. "빨리, 이 놈들 옷을 벗겨 입혀가지고 달아나라!" "넌 탄로났어. 함께 가자." "아니야. 꼭 기의할게. 근심말고 어서 가라!" 상순은 충국의 어깨를 잡고 귀속말로 부탁했다, "토비지휘부 위치와 화력배치를 지도로 그려달라." "언제 오겠니?" "래일 여기 올게." "알았다. 지학구는 전소교와 권력다툼 한다. 그러나 너무 믿지 말라." 충국은 김지도원을 생매장하러 갈 때 지학구를 보고 김지도원을 구해가지고 민주련군에 도망치자고 했다. 그러나 지학구는 시기상조라며 일찌기 폭로되면 대사를 그르친다고 했다. 지학구는 기의보다는 전소교를 죽여버리고 토비두목이 되면 다라고 궁리하면서 제 안속을 챙기려 하고 있었다. "그외에 더 쟁취할만한 사람 없니?" " 조소호란 모사가 있어. 그는 전소교가 자기 집을 쥐휘부로 만들고 자기 녀편네마저 릉욕했다고  전소교하구 원쑤로 됐어. 통신병 마룡은 지학사 일본첩을 탐내 죽자 살자 해. 그들도 모두 전소교를 죽이고 일본 여인을 차지하자고 벼른다. 그들 모두 쟁취해 볼게."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며 량미간을 찌푸렸다. "그외 지학구와 네 수하들도 더 쟁취해라. 우리 치러 오면 너희들 기의해 내응해라. 넌 전소교 어디 있는가를 잘 살펴 나한테 흰수건을 흔들어 가리켜달라." "알았다." 땅! 충국은 권총으로 자기 왼팔을 쏘았다. "앗!" 그는 권총을 툭 떨어뜨리고 왼팔을 붙잡고 토비소굴 대문 쪽으로 달아났다. 상순은 충국이 재잠입하려고 고육계를 쓰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장충국이 달려가는 뒤에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상순은 멀어져가는 충국을 바라보며  기의가 성공하기를 빌었다. 상순은 태수와 함께 두 전사에게 토비 옷을 벗겨 입히고 권총과 장총 두자루까지 가지고 무릎까지 펑펑 빠지는 령마루 길에 올라섰다.      그때 토비소굴 쪽에서 총소리가 수림을 아츠럽게 울렸다. 분명 한무리 검은 그림자들이 추격해 오고 있었다. 상순은 두 전사를 보고 말했다. "이 총으로 호신하면서 먼저 달아나오." 그러자 두 전사는 떠날 념을 하지 않았다. "우리도 남아 함께 싸우고 싶소." "옳소. 죽어도 원쑤를 갚겠소." "빨리 퇀부에 돌아가 담판정황을 알려야 하오. 어서 가오. 이건 명령이오." 상순은 호주머니에서 언 주먹밥덩어리 몇개를 꺼내  전사에게 주었다. 태수도 언 주먹밥을 거내 주었다. "빨리 가오." "옛! 김패장!" 상순은 두 전사가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태수에게 손을 홱 저었다. 그들은 번개같이 길 옆 수림 속에 들어가 놈들을 저격할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놈들은 토비놈들이 뒈진 자리에 달려와 시체를 보자 더럭 겁나 주춤거리며 더 추격하지 못했다.      "죽은 놈들 총 다 걷어갔군. 몇놈이 왔댔어? "     "전소교, 두 놈이 왔댔소. 여길 보오. 밀림에서 둘이 총을 쏘며 달려나온 발자국이 있잖소?"    충국의 말소리가 들렸다. "바보 같은 놈, 세놈이 두놈도 이기지 못해? 흥!" 전소교는 눈보라 휘몰아치는 수림 속을 둘러보더니 명령했다. "돌아가자!" 충국은 고의로 지껄였다. "추격해 죽여치웁시다. 내 팔 상하게 한 원쑤를 갚겠소." "관둬! 놈들이 한둘이 온 거 같잖아. 날도 어두운데  저 형제들 시체나 메고 돌아가자." "옛!" 상순 일행은 온 밤 달려 영월구로 돌아갔다. 영월구에 돌아갔을 때 벌거숭이 됐던 두 전사는 손과 발, 귀 다 얼었다. 전사 둘은 퇀 지휘소에 찾아가 최낙현 퇀장에게 담판정황을 알리고서도 토비들에게 당한 모욕감에 눈물을 흘리면서 울분을 토로했다. 최 퇀장은 성이 날대로 나서 책상을 탕 치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개 같은 토비 놈 새끼들, 감히 우리 김명호 지도원을 살해 해? 당장 출병해 토비 놈들을 몽땅 소멸해 버려야 한다!” 영월구의 눈 덮인 밀림은 어둠속에서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함께 노호했다. 상순에게서 충국과 평강촌 토비 정황을 듣고 최낙현 퇀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충국은 실제행동으로 기의할 진심을 보여줬소." 최퇀장은 눈보라 휘몰아치는 창 밖을 내다보며 무겁게 뒷말을 이었다. "그러나 돌다리는 두드려보면서 건너야 하오. 지학구 그 사람은 권력다툼이기에 기의할 사람은 아니오. 자칫 충국이 기의하려는 의향이 탄로나면 위험하오." 그는 상순한테 몸을 돌렸다. "임무를 초보적으로 잘 완수했소. 대부대가 평강촌 토비를 습격하기 전에 즉시 한개 반을 데리고 평강촌에 가서  충국과 련계를 달고 림기응변해 대처해야 하오." "옛!" 상순은 군례를 척 붙이고 퇀지후부에서 나왔다. 그는 밤잠을 자지도 않고 자기 패에 돌아가 끌끌한 전사들을 뽑아 기관총 두 정까지 메고 평강촌을 바라고 떠났다.                      7. 토비 소굴을 일망타진      1946년 1월 26일,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아침에 19퇀은 영월구에서 삼도만 토비숙청 전투동원대회를 열었다. 최낙현 퇀장은 높은 둔덕에 올라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동원했다. “동지들, 극악무도한 삼도만 토비들은 김명호 지도원 등 10명을 살해하고 끝까지 인민정권과 최후발악을 하려고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이젠 삼도만 토비들과 담판이란 없습니다. 오직 우리 민주연군의 무장 력량으로 최후발악을 하는 토비들을 모조리 소멸해야 우리 인민들은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삼도만 평강촌의 적들은 5, 60명 밖에 안 됩니다. 우린 한 개 퇀의 천여 명 무력으로 평강 촌 토비들의 소굴을 잿더미로 만들고 토비들을 깡그리 소멸합시다. 동지들, 토비를 모조리 소멸할 신심이 있습니까?!” 최 퇀장의 물음에 모두들 장내가 떠나 갈듯이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있습니다!” 연설을 마치자 최 퇀장은 손을 홱 저으면서 명령했다. “출발!” 민주연군 19퇀은 눈보라를 무릅쓰고 산등성이를 넘어 해지기 전에 삼도만에서도 30여리 떨어진 평강 촌 토비소굴 서쪽산에 이르러 바삐 허연 눈 뒤덮인 수림 속 산마루에 포진하였다.    그때 수림 속에 미리 매복해 있던 상순이  뛰쳐나왔다. "보고, 허련장, 1패장 김상순 이하 15명 여기서 대기중..." "1패장, 퇀부에 가보오. 최퇀장이 기다리오." "옛!" 상순은 허련장이 가리키는 퇀부 쪽으로 달려갔다.  토비 놈들은 천여 명이나 되는 민주연군 대부대가 덮쳐온 것을 보자 화로 우에 올라앉은 개미들처럼 바글거렸다. 놈들은 전소교의 지휘 아래 황급히 반격준비를 하느라고 뺑뺑 맴돌았다. 최 퇀장은 바위 뒤에 숨어서 망원경으로 평강촌 토비소굴을 내려다 보면서 적정을 살피고 있었다. "보고, 최퇀장, 1패장 김상순입니다." 상순은 차렷자세로 군례를 올렸다. "좋소." 최낙현 퇀장도 답례를 하고 상순의 손을 잡았다. "적정에 변화 있소?" "네," 상순은 웃호주머니에서 종이쪽지를 꺼냈다. "충국이 보낸 지도입니다. 토비지휘부와 화력배치가 있습니다. 건데 오늘 아침에 전소교놈이 지휘부를 문서네 집으로부터 자동차 운전석에 옮겼답니다." 최퇀장은 도리머리질 했다. "그놈 환장했군." 그는 인차 지도를 보면서 망원경을 들어 평강촌 적진을 일일이 살폈다. "누굴 속이려고? 저 놈들이 지휘부란 자동차 텅 비였소. 건데 저건 뭐지? 웬 놈이 자동차 안에서 흰 수건을 흔드오." 상순이 보니 충국인 것 같았다. 충국은 수건을 일자로 틀어 북쪽 산골짜기를 가리켰다. "충국이 신호를 보냅니다. 토비 지휘부가 북쪽 산꼴짜기에 있다고 가리키는 것입니다." "알았소. 전보흥, 네놈이 아무리 교활해도 여래불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해."       최낙현 퇀장은 전투명령을 내렸다. “1련, 북쪽 산마루를 점령하고 토비지휘부에 적탄통을 쏘라! 기관총반에서는 엄호준비를 하라!” 명령에 따라 1련에서는 번개같이 동쪽산마루와 삼도만으로 통한 길을 점령해 토비들의 퇴로를 차단했다. 뒤이어 허백호 련장은 몇십문 적탄통(소포)을 걸어놓았다. 허백호 련장이 고함쳤다. "동지들, 김지도원의 원쑤를 갚을 때 왔습니다. 적진에 맹렬히 쐇!"  "가만! 허련장!" 갑자기 상순이 손사래를 쳤다. "뭐야?!" 허련장은 손을 허리춤에 가져가더니 권총을 뽑았다. 상순은 말렸다. "맹탕 쏘지 맙시다. 여긴 놈들의 사격거리에 들어있습니다. 먼저 은페하기 좋은 지형에 부대를 잘 은페시킨후  토비지휘부를 조준해 쏩시다." "비겁쟁이, 숨을 궁리부터 해? 어느게 지휘분지 어떻게 아는가? 먼저 한바탕 쏴서 토비놈들의 기염을 꺾어놓아야 해." "쐇!"  "가만!" 상순이 재차 손을 쳐들고 막아나섰다. "이제 내응하는 충국이 정확히 지휘부 위치를 가리켜줄 겁니다." "언제 파악도 없는 그 놈을 기다려? 명령이야. 1패장은 기관총으로 적진을 소사하라. 적탄통을 쏘는데 작작 삐쳣!" 허련장은 결이나 우멍눈을 희번뜩 부라렸다. "항명하면 이거야!" 그는 권총으로 상순을 겨누기까지 했다. 상순은 별수 없이 1패에 돌아가 기관총반을 거느리고 적진에 맹령히 사격했다. "쐇!" 허퇀장이 거느린 대부대에서도 적진에 맹렬한 적탄통 사격을 가했다. “탕!” “쿵!” “탕!” “쿵!” 적탄통은 적들의 진지에 날아가 보기 좋게 폭발했다. 굉음과 함께 적들의 진지에 자주빛이 섞인 검은 화염이 삼단처럼 솟구쳤다. 토비들의 시체조각들이 하늘로 날아올라 사처로 흩어져 떨어졌다.       토비들은 질겁해 개인 집에 뛰여들어가 창문을 열고 총질했다.        그때 충국이 전호를 따라 북쪽 산꼴짜기로 뛰여왔다. 그는 흰수건으로 산꼴자기 중턱에 구불구불한 전호를 가리켰다. 상순은 인차 그리로 조준해 기관총소사를 하라고 명령하였다. 태수와 병수, 흥수 등은 그리로 기관총을 돌려 멩렬히 사격했다. 전보흥 소교는 바삐 전호에 뛰어 들어 권총을 휘두르며 반격을 명령했다. 충국이 헐레벌떡거리며 전호로 뛰여왔다. 전보흥은 눈깔을 부라렸다. "자넨 내 안해들을 지키라는데 어째 여기 왔어?" "장관님 안전이 근심돼 왔소." 기실 충국은 혼란한 틈에 조소호네 집 김치움에 숨겨놓은 요시꼬와 야마꼬랑 토비소굴 대문 밖으로 빼돌려 상순한테 넘겨주고 싶었다. 그러나 충국은 전소교네 지휘부를 가리켜주는 것이 더 긴급한 임무라고 생각했다. 황차 아녀자들과 애를 데리고 대문 밖을 뛰쳐나간다고 해도 토비들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몰삭격에 벌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푱푱푱! 총알이 충국의 머리 위로 날아와 전호 벽에 꽂혔다. 흙덩이와 자갈이 마구 튕겨올랐다. "흥, 지휘부 탄로난 거 같아." 교활한 전보흥은 허리를 구부정하고 전호를 따라 마을 쪽으로 도망쳤다. 그때 뒤에서 지학구가 권총을 빼들고 흘끔흘끔 사위를 살피며 뒤따랐다. 그는 전보흥 뒤대가리에 한방 갈기고 싶었다. 그러나 경호반이 뒤따라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상순은 한창 기관총 반 전사들을 거느리고 네 대의 기관총을 걸어놓고 충국이 가리킨 전호에 대고 맹렬히 소사했다. 적들은 전호에서 머리도 들지 못했다. “탕!” “쿵!” “탕!” “쿵!” 적탄통이 연신 날아가 토비무리 속에 날아가 폭발하면서 토비들이 보기 좋게 쓰러졌다. 통신원 오병선은 산등성이에서 허백호 련장과 나란히 서서 적탄통이 날아가 폭발하는 것을 구경하며 쾌자를 불렀다. “어허, 잘 폭발한다!” “하하, 또 세 놈이 뒈졌다!” 상순이 고함쳤다. “병선아, 위험해. 엎드렷!”  “앗!” 갑자기 통신원 병선이 비명소리와 함께 가슴을 붙안고 핑그르르 돌더니 푹 쓰러졌다. 열여덟 살 밖에 안 되는 통신원 오병선은 적탄에 가슴을 맞고 즉사했다. 금방까지 앞뒤로 뛰어다니다가 쾌자를 부르던 생기발랄한 통신원 오병선이 쓰러졌다. 상순은 기관총을 쏘다가 말고 달려가 끌어안고 애타게 불렀다. “병선아, 병선아, 눈을 떠라! 야, 이게 무슨 일이냐?” 병선의 가슴에서는 뻘건 선지피가 쿨쿨 흘러내리었다. 허나 열여덟 살 밖에 안 되는 오병선은 입귀에서까지 피를 주르르 흘릴 뿐 다신 눈을 뜨지 못했다. “병선아! 병선아!” 상순은 병선을 두 팔로 감싸 안고 총알이 덜 날아오는 바위 뒤에 끌고 갔다. 한 마을에서 토비숙청부대에 참가한 병선은 조개덕에 갓 이사해온 오국권의 외동아들이었다. 병선이 참군할 때에도 상순은 그가 외동아들이라고 동의하지 않았다. 허나 오병선은 아버지와 상순이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토비를 숙청해야 편안하게 산다면서 기어이 참군했던 것이다. 그에게는 형제란 진수해중학교를 다니는 나 어린 여동생 오옥선 밖에 없었다. 상순은 집에 돌아가 병선의 아버지를 무슨 낯으로 보겠는가고 마음이 아파했다. 상순은 눈물을 쓱 닦더니 병선을 내려놓고 허 연장한테로 달려갔다. “허 연장, 여긴 적들에게 사격당하기 쉬운 곳입니다. 빨리 적들의 사격을 피해 유리한 지형 쪽에 숨읍시다.”        허 연장은 상순의 아래 우를 훑어보더니 대수로워하지도 않았다.         “네가 뭘 알아서 피하라고 하는가? 퇀장은 우리를 보고 여기서 토비들을 도망치지 못하게 차단하고 총돌격명령을 기다리라고 했다." 그는 권총을 휘두르며 명령했다. "넌 기관총사격이나 해라!” 그러나 상순은 계속 허 련장에게 권고했다. “빨리 전이합시다. 최 퇀장이 어찌 우릴 적탄에 맞을 자리에 서있으라고 했겠습니까?” 허 련장도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두덜거렸다.     “그 놈이 기관총수 재간 있다고 패장까지 시켰더니 이젠 련장도 눈에 안 보여?” 그래도 상순은 물러서지 않았다. "숱한 전사들의 목숨과 관계되니 하는 말입니다.” 허련장도 그 말에 일리가 있는지라 생각을 고쳤다. “그럼 네가 퇀장한테 가봐라. 퇀장이 뭐라고 하는가?” “옛!” 상순은 군례를 붙이고 나서 기관총 반에 계속 기관총소사를 하라고 명령하고는 황급히 최 퇀장을 찾아 고지로 달려 올라갔다. 최퇀장은 적탄통과 기관총에 맞아 무너지는 적진을 망원경으로 살피고 있었다. 상순은 달려가서 보고했다. “보고, 최퇀장," "김패장, 무슨 일이오?" 상순은 헐떡거리며 이마의 땀을 팔소매로 닦으며 보고했다.      "우리 련이 서 있는 곳은 적들의 눈에 환히 드러난 곳이어서 적탄에 맞기 쉬운 곳입니다. 은폐하기 유리한 지형에 피해 적들에게 사격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련 통신원이랑 몇몇 전사들이 이미 적탄에 맞아 희생되었습니다. 그런데 허 련장은 피하자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퇀장이 여기서 돌격명령을 기다리라고 했다면서 고집을 씁니다.” 최퇀장은 그 보고를 듣고 도리머리 질 했다. “내 언제 적탄이 날아오는 곳에 서 있으라고 하였소? 허백호 련장은 말이 아니군. 기동영활하지 못하게 숱한 전사들을 불리한 지형에 세워 두다니? 빨리 가서 그 자리를 피해 유리한 지형에 숨으라고 하오!” “옛!” 상순은 군례를 붙이고 총알이 비발 치는 고지를 쏜살같이 달려 내려왔다. 연장은 헐레벌떡 뛰어 온 상순을 보고 다급히 물었다. "퇀장이 뭐라고 하던가?” 상순은 숨도 돌리지 못하고 회보했다. “우리 련을 빨리 안전한 산 둔덕 뒤에 전이해 숨으라고 했습니다.” 바빠 맞은 허 련장은 인차 명령을 내렸다. “산 뒤로 철퇴!” 전사들은 몽땅 우박 치듯 하는 탄우를 무릅쓰고 안전한 산 둔덕 뒤에 철퇴해 은폐했다. 상순은 기관총 반을 영솔하여 기관총으로 적진에 소사하면서 전사들의 철퇴를 엄호했다. 상순의 덕분에 한차례 대량 사상을 피했다. 상순은 기관총으로 사격하면서 성수와 태수에게 명령했다. “기관총을 연발로 쏘지 말아! 적들을 조준해 서너 발씩 갈겨라!” “옛!” 뚜르륵 뚜르륵 기관총 반에서는 여섯 정의 기관총으로 연발사격으로부터 조준하여 사격하기 시작했다. 푱! 푱! 푱! 푱! 총알이 전호에서 총질하는 토비들에게 날아가 불꽃을 튕기며 토비들을 염라왕국에 보냈다. 하여 토비들은 목책 안의 전호에서 머리도 들지 못했다. 머리만 들면 묘준 사격하여 쓰러뜨렸다. 허나 무리하게 돌격했다가는 많은 사상자를 내기 마련이었다. 교활한 토비들은 고의적으로 평강촌 주위 산비탈의 나무들을 반반하게 잘라버리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시퍼런 대낮에 비발 치는 탄우 속을 꿰뚫고 하얀 눈이 덮인 반반한 산비탈 아래로 돌격해 내려간다는 것은 천만 위험한 일이었다. 평강촌 산골짜기와 산비탈에는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전사들은 저녁밥을 든든히 먹고 야밤 습격을 준비했다. 밤장막이 드리우자 최락현 퇀장은 명령을 내렸다. “돌격!” 돌격 나팔소리가 온 산골짜기에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민주연군 전사들은 “돌격!”, “싸(杀)!” 고함치며 산비탈 아래 적진으로 돌격해 내려갔다. 적들은 또치까와 전호에서 전보흥 소교의 지휘아래 최후발악을 하며 맹사격했다. 교활한 전소교는 은페된 또치까와 갱도 토비들을 잠잠히 있다가 민주련군이 총돌격하자 또치까와 갱도의 총구를 열고 기관총으로 반격하라고 명령했다. 민주연군 전사들은 뜻밖에 또치까와 갱도에서 맹사격하는 바람에 새하얀 눈이 깔린 산비탈에 숱한 희생자를 냈다. 산비탈의 허연 눈은 전사들의 피로 벌겋게 물들여갔다. 허나 서너길 씩 나무 장재를 세운 토비들의 소굴에 근본 접근도 하지 못했다. 최 퇀장은 사상자가 더 나기 전에 명령을 내렸다. “철퇴! 철퇴하라!” 철퇴 나팔소리가 맥없이 울렸다. 민주연군 장병들은 숱한 사상자를 내고 평강툰을 점령하지도 못하고 영월구로 철거했다. 영월구에서 열린 련 이상급 간부들이 참가한 전투총결회의에서 최 퇀장은 허백호 련장이 유리한 지형에 부대를 매복시키지 않아 통신원을 비롯한 숱한 사상자를 냈다고 비평하였다. 그는 상순이 제때에 보고했기에 숱한 사상자를 낼 번한 것을 방지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고나서 상순이 충국이란 토비를 포섭해 적정을 정찰해 제때에 보고 했기에 적 지휘부와 화력망을 조준해  파괴했다고 하면서 능란한 우리 군 지휘자 후보라고 하면서 마땅히 제발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허백호 련장은 반대해나섰다. "상순은 패장을 해도 과합니다. 정찰을 잘 했으면 우리 군이 수태 살상됐겠습니까? 은페된 또치까와 화력망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최퇀장도 충국이 보낸 지도에 평강촌 동쪽 산 기슭에 은페된 또치까 몇개 빠졌다는 것을 후에야 발견했다.  그 바람에 숱한 사상자를 냈다는 것도 안다.기실 내심 사상모순이 있는 충국은 이 기회에 도대체 민주련군이 토비들을 이기는가 보려고 몇개 은페된 또치까 위치를 지도에 그려넣지 않고 상순한테 넘겼던 것이다. 후에 상순은 직접 자기 눈으로 적진과 화력배치를 확인하지도 않고 충국의 지도를 소홀히 믿은 잘못을 최퇀장을 찾아가 검사하였다. 그러나 최퇀장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상순의 경솔함을 확대해 비판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상순한테는 교훈을 섭취하라고 엄숙히 비평교육했기 때문에 재차 처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건 충국의 문제지 상순한테 책임지울 수는 없지 않는가?" 최낙현 퇀장을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쳇, 상순 동무는 혀련장보다 못잖소." 그러자 허백호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 절 철직하고 상순한테 련장을 시키시오." 최낙현 퇀장은 책상을 탕 치며 일어났다. "시키라면 못 시킬 거 같소?" "아니, 그래, 패장을 시킨지 한달도 안돼 제발시킨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또 충국이랑 토비들 기의를 일으켜 내응하게 한다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 최퇀장은 숱한 간부들의 앞인지라 언성을 좀 낮추었다. "허련장, 허허허. 절대 질투하지 마오. 동무넨 모두 같은 민병련장출신이오." 그는  허백호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뒷말을 이었다. "허련장, 조급해 하지 마오. 전번엔 기의를 일으키지 못했지만 내심하게 기다리오. 전번에 충국이 적지휘부를 수시로 흰수건으로 가리켜줬기에 전보흥을 추격사격해 대가리도 들지 못하게 하지 않았소. 이제 꼭 내응할 기회가 있을게요. 또 동무도 민병련장 출신인데 오자마자 련장을 하지 않았소? 상순동무도 민병련장 출신이오. 이번 전투를 통해 그의 전투지휘능력을 충분히 보여주었소. 허련장,  조수로 임명하겠으니 잔말 말고 잘 합작하오." 허백호는 더는 말을 못하고 반쯤 외면하며 돌아앉았다. 그날 저녁에 최 퇀장은 통신원을 시켜 상순을 퇀부에 불러갔다. 최 퇀장은 패기 있는 상순의 아래 우를 대견스레 여겨보면서 단마디에  홍두깨 내밀듯 했다. “동무를 1련 지도원으로 제발하겠소.” 뜻밖의 말에 상순은 깜짝 놀랐다. “전 김명호 지도원보다 못합니다. 전 항일전쟁 때 유격대에서 몇 차례 유격전에 참가했을 뿐입니다. 아직 전투를 지휘해본 적도 없습니다.” 최퇀장은 눈이 휘둥그래 무릎을 탁 쳤다. “무슨 소리를 하오? 동무는 지도원을 잘 할 지휘인재요. 그날 동무의 판단과 보고가 숱한 전사들을 살려 냈소. 동무가 충국을 통해 수시로 적정을 알아냈기에 아군의 공격이 아주 효과적이였소.” 허나 상순은 의연히 손사래를 치며 사양하였다. “지도원을 못하겠습니다. 이제 제가 대포 쏘기와 지휘재간을 제대로 배운 후 하겠습니다.” 그러자 최 퇀장은 내심하게 말했다.       “동무는 너무 겸손하오. 겸손한 건 좋지만 자기를 너무 과소평가해도 나쁘오. 조직에서 수요할 때 척척 무거운 짐을 메고 나가야 하오." 상순은 머리를 숙였다. 최퇀장은 상순의 어깨를 다독였다.        "상순이, 전쟁 속에서 전쟁을 배워야 하오. 언제 뭐나 다 배운 후 지휘관이 되겠소? 이계삼 서기 소개신을 보니 동문 벌써 항일전쟁과 함흥촌토비숙청 전투 때 기관총사수로 잘 싸웠더구만. 민병 련장을 하면서 100여명 민병들을 지휘해 조덕산 국민당 정규군과도 아주 잘 싸웠더군. 동문 우리 민주연군에서 당당히 지도원을 맡을 수 있는 인재요.” 상순은 허백호 련장의 발등을 밟는 것 같아 극구 사양했다. "허백호 련장의 잘못이 없습니다. 그는..." "알았소. 1련 지도원하기 불편하면 2련 지도원과 바꾸면 되오." 최 퇀장은 더부룩한 구레나룻을 매만지며 도리머리질 했다. “참 너무 겸손하고 연약하구만. 한뉘에 제발될 기회 몇 번 있다고 그러오? 동무는 지금 하지 않으면 꼭 후회할거요.” 상순은 마지못해 군례를 올리며 우렁차게 말했다. "조직의 수요에 복종하겠습니다." 최퇀장은 상순의 두 손을 굳게 잡았다. "김지도원, 허련장을 잘 협조하오." "옛! 잘해보겠습니다." 최퇀장은 밤이 깊도록 토비 내부기의를 책동하게 할 방안을 상순과 토란하고 새로운 임무룰 포치하였다...       한편, 민주연군이 영월구로 퇴각해 간 후 토비 놈들은 승전이나 한 듯이 환성을 질렀다. 전보흥 소교는 우쭐해 길죽한 상통을 비틀며 술상에 침을 더럽게 튕기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형제들, 우린 60여명이 천여 명 빨갱이들의 토벌을 막아냈다. 우리 국민당군 형제들은 진짜 일당백의 용사들이야. 우리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전보흥은 시퍼런 군도를 뽑아 술상에 콱 박아놓고 술사발을 높이 쳐들었다. "자, 마음껏 마시고 내일 삼도만으로 쳐내려가자!” “와-!” 토비들은 문서 조소호네 사합원 집에 설치한 지휘소 마당에 큰 술상들을 차려 놓고 돼지를 잡고 이른바 대승리를 경축하여 술을 퍼 마시었다.  요시꼬와 야마꼬는 전보흥의 양 옆에 붙어 앉아 아양을 떨며 술을 따른다, 멧돼지 고기점을 집어 전보흥의 입에 넣어준다하면서 부산하게 놀았다.        조소호는 그 가면에 찬 장면을 보고 침을 택 뱉더니 이를 쁙쁙 갈았다. 조소호는 자기 집을 차지하고 자기 안해를 릉욕한 전보흥을 보면 치떨렸다.        그날 전보흥은 그를 보고 삼도만에 가서 술을 떠오라고 해놓고 집이 빈 틈에 그의 안해를 릉욕했던 것이다. 그 일로 해 그의 안해는 뒷울안 살구나무에 올라가 바줄로 목을 매기까지 했다. 다행히 그가 제때에 돌아왔기에 살구나무에 목을 맨 안해를 풀어내 겨우 구해냈다. 후에 애들한테서 모든 사연을 알게 됐다.       충국이나 조소호는 손을 쓰자고 했지만 지학구가 시기상조라고 해 지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마룡은 천명이나 되는 민주련군이 평강촌을 어쩌지 못하고 퇴각한 걸 보고 생각이 바뀌였다. (기의했다가 국민당군을 이기지 못하면 어쩌지? 난 그저 야마꼬를 데리고 놀면 다야.) 그리하여 마룡은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리며 갈팡질팡했다.        이튿날 기고만장해진 토비들은 전보흥 소교의 명령에 따라 삼도만에 쳐 내려갔다. 그들은 삼도만 둘레에 서너길 되는 통나무로 장재를 둘러세우고 또치까를 구축하였다.  지어 삼도만과 평강 촌에 통하는 전화까지 가설했다. 놈들은 일단 어느 쪽에 위험사태가 생기면 서로 접응하려고 했다. 토비들은 삼도만과 평강 촌을 철통같이 지켰다. 이때 돈화의 토비 두목 마대포가 100여명 토비들을 데리고 삼도만 토비무리에 가담했다. 삼도만 주위 한족들이 대거 토비군에 가담하는 바람에 삼도만과 평강촌의 토비 무리는 무려 300여명으로 늘어났다. 며칠 후 최퇀장은 상순, 태수, 병수 등 정찰소조를 파견해 적정을 손금 보듯 정찰해오게 했다. 상순은 충국과 내통해 인차 적정을 정찰해 영월구에 돌아와 최퇀장에게 회보하였다.    평강촌의 대부분 토비들은 전소교를 따라 삼도만에 내려가고 평강촌에는 지학구와 모사 조소호 그리고 마룡 등이 지킨다는 것이였다.      변화된 적정을 회보받은 최퇀장은 무릎을 탁 치였다. "평강촌 토비들을 소멸할 절호의 기회요."   그때 민주연군 18퇀은 박락권의 지휘아래 국자가(연길) 떠나 팔도로부터 일본 놈들에게서 노획한 탱크까지 앞세우고 삼도만으로 진군했다. 탱크는 투항한 일본포로 야마가와가 직접 몰았다. 그는 민주련군 탱크 운전수를 둘이나 배양했지만 직접 탱크를 몰겠다고 나섰다. 직접 탱크를 몰고가 요시꼬와 야마꼬를  구해낼 생각이었다.  박락권 퇀장은 비준하엿다. 그리하여 민주련군 두 운전수는 조수로 돼 기관포와 기관총을 각각 잡았다.      민주연군 19퇀은 최낙현 퇀장의 지휘아래 다시 영월구를 떠나 산등성이를 넘어 평강 촌으로 진군했다. 천명이나 되는 민주연군 장병들은 량쪽으로 협공해  평강촌과 삼도만 토비들을 포위하며 조여들어갔다.      최퇀장은 평강촌 서쪽 산마루에 이르자 부대를 산등성이 뒤에 은페시키고 먼저 상순을 불렀다. "김지도원, 정찰소조를 데리고 가서 충국과 련계해 기의를 일으키게 하오," "예." 상순은 날랜 병수와 명사수 태수를 데리고 토비소굴 대문 밖에 접근해 뻐꾸기 울음소리를 냈다. 뻐꾹, 뻑꾹. 그러자 대문 안에서 뻐꾸기 울음소리 들렸다. 뻐꾹, 뻐꾹. 뻑뻑꾹. 뒤이어 대문이 삐-꺼-덕- 소리내며 천천히 열렸다. 충국이 조소호와 함께 나왔다. 충국이 다가와 조소호한테 상순을 소개했다. "조문서, 민주련군 김패장이오." "아니, 김지도원이오." 옆에서 태수가 말했다. 그러자 조소호는 상순의 두 손을 굳게 잡았다. "김지도원, 민주련군을 환영하오." 상순도 조소호와 충국의 손을 꽉 잡아 흔들었다. "당신들의 기의를 환영하오. 기의만이 당신들의 명지한 선택이고 유일한 출로요." 조소호는 그래도 시름놓이지 않는지 상순을 보고 물었다. "기의하면 내 지주라고 우리 집이랑 빼앗지 않을 수 있소?" "있구 말구. 우린 충국의 집도 빼앗지 않고 부모도 보호해주고 있소." "오-확실히 민주련군은 전소교랑 국민당군 말과 다르구만." 조소호는 상순을 보고 확신에 차 말했다. "대부대를 데리고 근심하지 말고 마을로 들어오오. 우리 기의를 반대하는 토비들을 몽땅 없애치우겠소." "알았소." 그때 대문 안에서 마룡이 언뜰 나타났다가 지휘부 쪽으로 사라졌다. 상순은 조소호랑 갈라져 퇀지휘부에 돌아가 최퇀장에게 정황을 보고하였다. "좋소." 그는 즉시 대부대를 지휘해 평강촌 대문 쪽으로 진군하였다. 충국이 몇몇 졸병들을 데리고 대문을 활짝 열어재꼈다. 총소리 한방 울리지 않고 민주련군 대부대가 대문 안으로 쳐들어갔다. 땅! 땅! 땅! "민주련군이 쳐들어왔다!" 십여명 토비들이 아군을 발견하고 총질하며 전호로 해 지휘부 쪽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지휘부 안에서 지학구와  조문서가 경호반을 령솔해 사격하며 덮쳐나왔다. 그 놈들은 몽땅 뒈지고 말았다. 이때 지휘부 북쪽 둔덕의 또치까에서 기관총이 불을 토했다. 지학구가 지휘부 대문에서 뛰쳐나가 권총을 휘두르며 고함쳤다.  "형제들, 우린 기의했다. 민주련군은 우릴 보호하러 왔다. 살려주니깐 모두 무기를 놓고 기의에 참가하라. 누가 거역하면 몽땅 총살한다." 그 고함소리에 또치까에서 기관총소리가 뚝 멎었다.  민주련군 대부대가 새까맣게 마을에 쳐들어온 것을 보고 대세가 이미 기울었다고 여긴 토비들은 또치까에서 기여 나와 무기를 내려놓고 두 손을 들었다. 마을 여기저기서 토비들이 나와 투항했다. 전소교한테 미혹돼 토비무리에 가담했던 마을 한족농민들은 무기를 버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김치움이나 수수대무지를 헤집고 들어가 숨었다.       민주련군 전사들은 토비들의 무기를 몰수하고 한쪽에 줄을 세워놓았다.        지학구와 조소호는 헤벌쭉 웃으며 상순의 안내하에 지휘부 쪽으로 오는 최탄장 일행을 마중했다. "환영합니다. 장관님!" 충국이 최탄장한테 그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최퇀장은 마주 나가 지학구 일행을 일일이 손잡아주었다. "당신들 기의를 환영하오. " 그는 포로들을 둘러보며 우렁차게 말했다. "민주련군에 투항하고 기의하는 것만이 당신들의 유일한 출로요. 우린 포로들을 환대하오." 조소호가 중얼거렸다. "우린 포로 아닌데. 기의했는데." "네, 기의군은 아군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러나 반항하는 토비는 좋은 끝장 없습니다." 지학구는 포로라는 말에 섬찍해났다. 더욱이는 민주련군 속에  권총을 차고 서 있는 상순의 무서운 세귀눈을 보는 순간  뒤잔등에 소름이 쭉 끼쳤다. "저놈이 날 살려주겠는가?" 그는 자기는 지학사처럼 친일주구이기에 총살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에 번쩍했다. 그는 한참 무슨 궁리하더니 웃으며 최퇀장한테 다가가 말했다. "장관님, 전소교랑 몽땅 삼도만에 도망쳤습니다. 빨리 삼도만을 치십시오. 우리 평강촌을 지키다가 전소교가 여길 도망쳐오면  생포해 바치겠습니다. 그 놈 일본 여편네들이 여기 있어 꼭 여기 올겁니다."   최퇀장은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합시다. 기의한 일을 비밀로 부치겠습니다. 꼭 전보흥이 여기 도망쳐오면 생포하십시오." 말을 마치자 최퇀장은 대부대를 거느리고 삼도만을 향해 진군하였다. 그는 일부 장병을 평강촌에 남겨 지키게 할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괜히 지학구네 불신을 살 것 같고 혹시 기의한 일이 탄로나 전보흥을 생포하는데 불리할까봐서였다.      "잠간만!" 지학구가 최퇀장네를 불러세웠다. 그는 충국을 돌아보고 말했다. "야마꼬와 시룡일 상순에게 맡겨라." 그는 그것만이 그들 모자를 구하는 유일한 출로라고 여겼던 것이다. "알았소. 외삼촌." 충국은 조소호네 김치움 문을 열고 껌껌한 안에 대고 소리쳤다. "외삼촌댁, 어서 나오오." 김치움에서 일본 여인 둘이 나왔다. 야마꼬는 우는 지시룡을 안고 나왔다. 요시꼬는 만삭이 된 배를 이기지 못해 충국이 손을 잡아 끌어서야 겨우 김치움에서 올라왔다. 일본 여인들은 낯선 민주련군 장병들을 보고 바들바들 떨었다. "겁나 마오. 우린 전쟁피해자인 일본 여인들을 보호해 일본 고향에 보내줄거요." "고향에 돌아갈 수 있나요?" 야마꼬는 공포에 찬 얼굴에 일시 활기를 띄었다. 옆에서 요시꼬가 그녀의 옆구리를 툭 치며 못미더운 눈길로 최퇀장을 힐끔 훔쳐보았다.      지학구는 야마꼬한테 다가가 부드럽게 말했다.     "아주머니, 민주련군은 인자한 군대오. 믿고 가오. 그래야 시룡일 구할 수 있소." 뒤이어 지학구는 지시룡을 안고 뽀뽀 하더니 상순한테 다가갔다. "상순이, 이들 모자를 부탁하오." 상순은 최퇀장의 눈치를 살폈다. "김지도원, 이들 모자를 어떻게 하나 보호하오." 최퇀장의 말을 듣자 지학구는 요시꼬를 보고도 권고했다. "사돈도 함께 가오. 함흥촌에 가면 살수 있소. 만약 기회 있으면 고향에 돌아갈 수도 있소." 그러나 요시꼬는 남산만한 배를 매만지며 망설였다. "전소교를 기다리지 마오. 그 놈은 당신을 놀이개로 데리고 놀지. 아내로 보지 않소. 언제든지 버릴수 있소."   충국이 끼여들었다. 요시꼬는 전보흥을 원쑤로 여겼지만 민주련군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황차 그녀의 배 속에는  토비두목의 애가 있는데 살려줄가는 의혹이 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조소호를 힐끔 곁눈질해보았다. 솔직이 그녀는 조소호와 함께 있고 싶었다.       한편, 삼도만 토비들은 산골에서 보지도 못한 괴물 같은 탱크가 덮쳐오자 황급히 아우성치며 전호에 뛰여들어가 숨었다. "형제들, 겁내지 말라! 수류탄을 뿌려!" 전보흥이 군도를 빼들고 탱크를 향해 고함쳤다. 몇놈이 수류탄을 뿌리고 총을 쏘았다. 그러나 탱크는 끄떡도 하지 않고 목책 대문을 꽝 부딪쳐 깔아 짓뭉개더니 짓쳐 들어갔다. 토비들은 질겁한 나머지 아우성치며 전호에서 기여나나와 개인 집으로 도망쳐 숨는 자도 있었다.       그런데 탱크가 그만 대문을 벋치어 놓았던 원목을 타고 넘어가다가 가로 타고 말았다. 두 바퀴가 건뜻 들려 엔징 소리만 우르릉우르릉 울릴 뿐 빈 무한궤도만 빙방 돌아가면서 한발작도  더 전진하지 못했다. 그래도 두 조선인 운전수는 시뻘건 불을 토하는 적의 또치까를 향해 기관포를 쏘았다. 야마가와는 여동생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너무 호위보병들과 동떨어져 너무 빨리 탱크를 몰고 진격하다나니 탱크는 고립무원에 빠지고 말았다. 야마가와는 탱크 윗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윗문 열지 마오." 그러나 야마가와는 들을념을 하지 않고 윗문을 열어재꼈다. "여동생을 구해야겠어! 요시꼬! 야마꼬! 오빠 너넬 구하러 왔다." 그가 탱크 웃문을 열고 나갔을 때였다. 그때 몇몇 토비들이 욱 달려들었다. 야마가와는 권총을 휘둘러 몇놈을 쏘아눕혔다. 두 운전수들은 기관포와 기관총을 쏘며 야마가와를 엄호했다. 그러나 야수 같은 토비들은 총탄이 떨어진 야마가와를 걸이대로 찌르고 도끼로 찍어 비참하게 살해했다. 사기 난 토비들은 성에 붙어 탱크를 따라 돌격하던 민주연군 전사들에게 몰 사격을 가했다. 그 바람에 숱한 민주연군 전사들이 살상되었다. 정황은 아주 위급했다. 아군의 시체가 사처에 널리고 피가 눈 덮인 길바닥을 적시었다. 18퇀은 몇시간 숱한 희생을 내면서 공격했지만 토비소굴로 쳐들어가지 못했다. 이때 서북쪽에서 19퇀이 덮쳐왔다. 두개 퇀은 양쪽으로 협공하기 시작했다.  최퇀장의 명령에 따라 상순은 기관총 반을 이끌고 강 둔덕 뒤에 기관총 여섯 대나 걸어 놓고 적진을 향해 맹렬하게 사격했다. 그들의 맹사격은 돌격하는 전우들을 유력하게 엄호했고 후퇴를 엄호했다. 이때 최 퇀장은 상순에게 다가와 명령했다. “한 곳에서만 사격하지 말고 동산과 서산, 북산 산기슭에 올라가 적들의 배후에 대고 교차 사격하라!” 상순은 기관총 반을 세 개 조로 나눠 한 개 조에 두정의 기관총을 가지고 동산과 서산, 북산으로 올라가 높은 산등성이에서 토성과 전호에서 사격하는 적들의 잔등에 대고 맹렬하게 사격했다. 뚜르륵 뚜르륵 세 곳에서 교차 기관총으로 맹사격을 하는데다가 산등성이에서 삼도만 적들의 목책안의 소굴에 대고 적탄통까지 갈겨 댔다. 그러자 토비 놈들이 보기 좋게 쓰러졌다. 그 틈을 타서 영용한 민주연군 전사들은 방락권 퇀장과 최낙현 퇀장의 명령에 따라 드센 진공을 시작했다. 민주연군 전사들이 맹호와도 같이 무너진 목책 대문 안으로 진군해 들어갔다. 뚝 터진 홍수마냥 짓쳐들어오는 민주연군 전사들을 본 30여명 토비들은 전보흥을 따라 말을 잡아타고 뒤문을 열고 서산 쪽으로 빠져 평강 촌 쪽으로 도망쳐갔다. 나머지 적들은 개인 집에 숨어들어가 평민으로 가장하고 아낙네들의 이불 속에 들어가 대가리를 파묻고 숨었다. 어떤 놈은 돼지 굴에 뛰어들어 숨고 어떤 놈은 마구간에 뛰어 들어가 말구유에 숨어 말먹이를 들쓰고 누워 있었다. 실로 대가리는 가리었으나 엉덩이는 드러나 꼴불견이었다. 아군은 함성도 드높이 삼도만 토비소굴에 뛰어 들어가 발악하는 토비를 숙청하고 여기 저기 숨은 놈들을 붙잡아냈다. 그들은 적들이 숨을 돌릴 새도 주지 않고 평강 촌 쪽으로 추격해갔다. 그런데 말을 타고 도망치는 토비들을 어쩌는 수 없었다. 그때 상순이 대문 어귀에 멈춰선 탱크를 보고 피뜩 번개치는 것이 있었다. 그는 허백호 련장과 말했다. "탱크를 몰고 추격합시다." 허백호 련장은 탱크 위문 우에 기관총을 부여잡고 쓰러져 있는 운전수를 보고 코방귀룰 뀌였다. "또, 또, 또. 되지도 않을 소릴. 흥!" "내 탱크를 몰게!" "김지도원이 탱크를 몬다구? 듣다 첫소린데. 동네집 수렐 모는겐가 하오?" 상순은 가슴을 퉁퉁 치며 장담했다. "이전에 야마가와가 탱크를 손질할 때 운전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허련장은 도리머리질 했다. "통마무를 깔고 넘어가 끄떡 못하는 탱트를 어쩐단 말이오?" 상순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대문 어귀에 널린 통나무에 눈길을 멈췄다. 그는 전사들에게 손을 홱 저었다. "빨리 통나무를 들어다 탱크 바퀴를 받치오." 태수랑 병수랑 희수랑 왁 모여가 통나무를 들어다 양쪽 바퀴를 받쳤다. 상순은 윗문에 쓰러져 머리에 피가 랑자한 운전수를 치우고 윗문을 열고 탱크 안에 들어가며 명령했다. "태수는 기관총을, 희수는 기관포를 쏠 준비해라. " 태수와 희수는 탱크에 뛰어올랐다. 상순은 기관포를 안고 쓰러진 민주련군 조선인운전수를 보자 희수를 돌아보았다. "빨리 위생원을 부르오. 숨이 붙어 있는 거 같소." 희수와 태수는 운전수를 들어 내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부르릉 부르릉 요란한 발동이 걸렸다. 그 요란한 엔징소리에 운전수가 눈을 스르르 떴다. "내 운, 운전해야..." 상순은 숨이 가들가들하는 운전수를 보고 말렸다. "안되오. 그 머리를 보오. 어서 구급해야 하오." "내 방조할게." 상순은 조급했지만 텡크가 제자리에서 부릉거리며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유, 유문을 콱 밟소." 상순이 유문을 콱 밟자 엔징소리가 더 요란해지며 탱크가 기적적으로 통나무를 타고 앞으로 쭉 나갔다.  "운전수를 내보내도 되오." 희수와 태수는 윗문을 열고 정신 잃은 운전수를 들어 내보냈다. 밖에서 위생원 등이 황급히 뛰여와 머리에 중상을 입은 운전수를 받았다.  상순은 탱크를 몰고 대문을 빠져나와 쏜살같이 북쪽으로 향한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토비들을 추격해갔다.   그들이 탱크롤 몰고 한참 추격해가니 말을 타고 도망치는 토비무리 꼬리가 보였다. "사격!" 뚜르륵 뚜르륵 명사수 태수는 토비들을 겨누고 기관총을 갈겼다.  몇몇 토비들이 보기좋게 말에서 퉁퉁 떨어졌다. 그런데 희수는 기관포를 어떻게 쏘는지 잘 몰라 포탄을 재우고 여기저기 마구 눌러댔다. 상순이 다급히 고함쳤다. "희수, 단추를 눌러!" 꽝! 포탄이 토비무리 옆에 날아가 폭발했다. 허연 버섯구름이 치솟아올랐다. 언 흙덩이가 마구 튕겨올랐다가 허연 눈길에 어지럽게 떨어졌다.      교활한 토비들은 탱크가 축겨하자 눈길을 버리고 산기슭을 타고 도망쳤다. 상순은 탱크를 몰고 계속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추격하였다. 태수는 기관총을 산기슭에 돌려대고 쏘았다. 그러나 탱크가 덜컥거리는데다가 교활한 토비들이 산에서 이리저리 구불구불 뱡향을 바꾸며 도망치는 바람에 명중탄을 안길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탱크가 맥없이 멈춰서며 발동이 꺼졌다. 휘발유가 다 떨어졌던 것이다. 상순은 조종간을 놓고 기관포로 도망치는 산 위의 적들을 겨누고 단추를 눌렀다. 꽝! 희수는 또 포탄을 재웠다. 꽝! 또 몇놈이 보기 좋게 쓰러졌다. 토비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상순 등은 탱크 안에서 나왔다. 그들은 죽은 토비들의 말을 잡아 타고 쏜살같이 평강촌 쪽으로 추격해갔다. 전 소교는 마대포, 동생 전소광 등 20여명  잔여토비를 데리고 범에게 쫓기는 개처럼평강 촌 목책 안으로 도망쳐들어갔다. 그는 목책 대문을 꽉 닫아걸게 하고 지휘소에 뛰어 들어갔다. 만삭이 된 요시꼬가 전 소교를 반겨 맞았다. “여보, 승전했어요? 빨갱이들을 물리치고 왔지요?” 전 소교는 아양을 떠는 일본 여인이 도리어 미워났다. “우린 망했어.” 요시꼬는 뚱뚱한 배를 뚱기적거리며 대뜸 걀쭉한 낯에 당황한 기색을 띠우며 야단쳤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요? 빨리 도망쳐야죠.” 전 소교는 만삭이 된 요시꼬를 데리고 달아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군도를 쓱 뽑아 들었다. 그는 시퍼런 군도를 요시꼬의 목에 대며 지껄였다. “널 가지지 못할 바엔 죽여버리겠다. 절대 빨갱이들한테 넘겨줄 순 없어!"” 요시꼬는 질겁해 하며 마지막으로 애원했다. “여보, 제발 목숨을 살려 주세요. 내 배속에는 당장 세상에 나올 당신의 자식이 있어요. 애를 봐서라도 나를 데리고 도망쳐요. 예?” "여보? 네 놈이 조개놈과 좋아하는 걸 다 알았어. 마룡이 다 고발했어." 악마와 같은 전 소교는 이를 악물더니 군도 자루에 침을 뱉아 단단히 쥐었다. "닥쳣!" 갑자기 조소호가 뛰여들어오며 권총을 쏘았다. 땅! 전보흥이 군도를 툭 떨어뜨리고 왼팔을 부여잡았다. "네놈이 감히?" 조소호는 전보흥을 무섭게 쏘아보며 을러멨다. "네놈은 내 집과  아내를 강탈한 원쑤야. 오늘 원쑤를 갚겠다." 그때 한무리 경호원들이 뛰여들어왔다. 땅! 그때 지학구가 들어오면서 조소호를 쏘았다.  조소호는 쓰러지며 중얼거렸다. "네놈이...?"  "이놈과 충국이랑 기의를 획책했습니다." 마룡이 뛰여들어와 고발했다. "아니야. 충국은 기의하지 않았어." 충국은 지휘소에 들어오다가 마룡의 고발소리를 듣고 권총을 뽑아들었다. 땅! 총소리와 함께 마룡의 대갈통이 박살났다. 경호원들은 총을 뽑아들었지만 어쟀으면 좋을지 몰라 전소교의 눈치만 살폈다. "충국, 네놈이? 왜 마룡을 쐈어?" "이놈과 조문서가 장관님 애첩들을 릉욕했소." 충국은 말을 마치자 황급히 문 밖으로 도망쳤다. 지학구는 내친 김에 전보흥을 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전소교 주위에 둘러선 경호반 놈들을 보고 억지로 참았다. "뭐라고?"  전보흥이 권총을 뽑아들었다. 그때 지학구가 권총을 뽑아든 전보흥을 막아나섰다. "충국의 말을 믿소. 나도 직접 보았소. 저 년놈들이 노는 걸." "그래? 건데 마룡이 죽었으니 누가 무전기로 국자가 왕특파원과 련계하지?" 전보흥은 턱주가리 상처 흉터를 매만지었다. 그는 경호원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빨리 김치움에 들어가 무전기를 가져와." "옛!" 경호원이 바깥으로 뛰여나간 후 전보흥은 바들바들 떠는 요시꼬를 쏘아보았다. 그새 충국은.눈덮인 수림 속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전보흥은  군도를 주어들더니 말이빨을 악물고 요시꼬한테 다가갔다. "더러운 년! 야마꼬는 어디 갔어?" "공산군이 랍치해갔어요." "그래? 네년은 왜 랍치해가지 않았어? 엉?!" 전보흥은 살인마귀처럼 을러메면서 군도를 쳐들었다. 그는 군도로 꿇어앉아 바들바들 떠는 요시꼬의 배를 푹 찔렀다. “억!” 요시꼬는 배를 끌어안고 피못속에 쓰러졌다. 극악무도한 전 소교는 군도로 요시꼬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빼 목을 쥐여 쳐들고 미친 듯이 너털웃음 쳤다. “하하하, 이게 내 자식이야! 내 자식!” 전 소교는 태아를 땅바닥에 메친 후 시퍼런 군도로 땅바닥에서 배를 끌어안고 신음소리를 내는 요시꼬의 목을 쳤다. 그 처참한 장면을 보는 마대포와 그의 동생 전 소광마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외면했다. “가자! 빨리 천교령 마희산 무리 쪽으로 달아나자!” 전보흥 소교는 군도를 줴뿌리고 지휘소에 불을 콱 질러 놓았다. 뒤이어 마대포와  전소광 등 20여명 토비들을 데리고 천교령을 바라고 도망쳤다. 이윽고 민주연군이 쳐들어왔다. 상순 등은 평강 촌 토비소굴 지휘부에서 피못속에 쓰러진 조소호와 요시꼬를 발견하였다. 문어귀에 쓰러져 어느 곳을 뚫어지게 쏘아보는  마룡의 시체도 발격하였다.  상순이 찬찬히 여겨보니 조소호는 오른 쪽 어깨에 총탄을 맞았었다. 목에 손을 대보니 아직도 맥이 가늘게 뛰고 있었다. 코에 손을 대보니  가는 숨이 붙어 있었다. "위생원!" "옛!" 위생원이 황급히 달려왔다. "빨리 조문서를 구하오." "옛!" 위생원은 급히 조소호의 상처를 닦아내고 지혈제도 바르고 처치했다. 뒤이어 들어선 최퇀장은 지휘부 마당에 세우놓은 자동차에 조소호를 실어  룡정병원에 보내 구급하게 하였다.  상순은 자동차 운전수에게 당부했다. "룡정에 가면 위생학교 정규상선생을 찾아가 내 조문서를 꼭 구해달라고 하더라고 전하오." "알았소. 꼭 그렇게 하지." 상순은 창걸을 시켜 한개 반 전사들을 데리고 자동차에 올라가 조문서를 룡정에 호송하라고 명령하였다.  뒤이어 상순은 지휘부에 들어와 전사들을 보고 요시꼬의 시체를 잘 거둬 잘 묻어주라고 하였다. "일본 여자구먼." 한 전사가 두덜거렸다. 그러자 상순은 그 전사를 보고 내심하게 타일렀다. "이 일본 여자도 일제 침략전쟁과 토비놈들의 희생자오. 잘 묻어주오." 그제야 전사들은 납득됐는지 더 말하지 않고 시체를 거두어 수레에 실어 뒷산에 실어다가 묻어주었다.  민주련군 전사들은 개인 집에 숨어 발악하는 토비들을 한 놈 한 놈 붙잡아내 처단했다. 삼도만과 평강 촌에는 토비 한 놈도 없이 숙청됐다. 토비숙청전투는 우리 민주연군의 대승리로 끝났다. 민주연군 전사들은 총을 추켜들고 승리를 경축하며 환성을 질렀다.      상순은 최퇀장과 1영장 박경수, 허백호 련장 등을 데리고 김명호 지도원 등이 장렬히 희생된 골짜기 어귀로 갔다. 그들은 생매장당한 김지도원의 언 시체를 파내 관작에 넣어 양지바른 산기슭에 매장하였다. 뒤이어 전사들의 시체도 여기저기서 찾아내 관작에 넣어 김지도원 산소 옆에 나란히 묻어주었다.     최퇀장 일행은 김지도원의 묘소 앞에서 모자를 벗고 울먹이며 말했다. "김지도원, 우리 너무 늦어 왔소. 우린 그대들의 원쑤를 꼭 갚을 것이오. 고이 고이 잠드오." 허백호 련장과 김상순 지도원 등 장병들은 모두 모자를 벗고 머리를 숙이며 어깨를 들먹였다.      땅! 땅! 땅!    조총소리가 눈덮인 화약냄새나는 산골짜기에 울려퍼졌다.    흐리멍텅한 하늘에 까마귀들이 까욱까욱 슬프게 울며 빙빙 맴돌며 날아다녔다. 
103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6) 댓글:  조회:1409  추천:0  2017-04-24
                            4. 토성 개구멍의 비밀        늦가을이 돌아오더니 며칠 새 이른 아침이면 하얀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매서운 겨울이 이제 곧 다가올 것을 미리 알리는 상 싶었다.        병완은 마을 사람들이 타작까지 다 하자 사위 범호를 시켜 정미소에서 쌀을 찧게 했다. 벼를 마대채로 정미기 아궁이에 왈왈 쏟아 넣기만 하면 이으고 새하얀 입쌀이 쏟아져 나왔다. 마을 아낙네들은 팔이 아프게 절구꽁이 질 하던 고역에서 풀려나 만면에 춘풍이 감돌았다. 상순이 토성 안 촌공소로 들어가 보니 할아버지가 벌써 와서 곰방대를 뿍뿍 빨며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 식사를 하셨습둥?” “응.” 병완은 구들에 올라와 앉는 막내손자를 대견스레 바라보면서 분부했다. “이계삼 서기는 이젠 마을의 일을 나한테 맡기고 완전히 진수해구위로 올라갔다. 넌 참군하기 전에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집과 집, 촌공소와 주변의 집들과 통하는 갱도를 파라. 일단 토비들이 쳐들어오면 갱도를 이용해 마을을 지켜야 한다. 네가 참군해도 마을 보위에 빈 구석이 없게 하고 민병도 잘 훈련시켜라.” 병완은 그러고도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장학산을 잘 살피니?” “예, 민병들을 시켜 밤낮 윤번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병완은 상순에게 당부했다. “장학산을 놓치는 날엔 그 놈이 우리 마을 정황을 토비들에게 알릴게다. 충국도 우리 마을 주변에 기여 들어 정찰할 수도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라.” “예. 알았습니다. 인삼 아즈바이 낯을 봐서 전번에 장학산을 놔뒀습니다. 이제 다시 국민당을 돕는 날엔 당장 총살해 버리겠습니다.” 상순은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러 떠나가려고 했다. “잠간!” 병완의 부름소리에 상순은 주춤 멈춰 섰다. 병완은 상순의 어깨를 다독이었다. “얘야, 장학산은 항일전쟁 때 우리 유격대에 양식을 대줬기에 밭만 청산하고 살려 준 게야. 장학산은 항일에 공훈이 있는 애국적인 지주이기에 현재 표현을 봐서 다른 지주와 달리 대해야 한다. 만약 그가 공산당을 옹호하고 우리 토지개혁을 파괴하지 않으면 놔둬야 한다. 만약 이제부터 우리 공산당과 적대시하면서 국민당을 등에 업고 토비를 돕는 날엔 처단해 버려야 한다.” 상순은 허리를 굽히면서 “할아버지 말씀을 명기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나서 밖으로 나갔다.       그날부터 땅이 얼기 전에 상순은 할아버지 지시대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갱도를 파고 마을 주변에 아름드리 버드나무와 비술나무를 베다가 두 장 높이로 든든한 방어바자를 세웠다. 마을 네귀에는 높은 망루를 세워 놓고 민병들에게 보초를 서게 하였고 토성 안 촌공소 마당에도 높은 망루를 세워 전투지휘소를 차려 놓았다. 병완은 높다란 방어바자와 망루 그리고 갱도를 일일이 돌아보고 만족해했다. “내 용정에 한번 가봐야겠다. 정규상과 원삼이네 형제들과 자식들도 두루 찾아봐야겠다.  마을을 잘 지켜라.” 할아버지 말씀에 상순은 “예. 근심하지 마시고 무사히 갔다가 오십시요.”라고 하며 바래주었다. 상순이 촌공소 마당에 세워놓은 지휘소 우에 올라가는데 성수가 촌공소 마당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김 련장, 큰 일 났소.” “무슨 일이요?” 성수는 헐레벌떡 지휘소우에 뛰어 올라왔다. “장학산이 달아났소.” “아니, 내 이패장 보고 잘 지키라고 하지 않았소?” 성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우린 토성대문을 윤번으로 밤낮 지켰소. 헌데 장학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더구먼.” "제미랄! 무슨 보초를 그렇게 섰소?” 상순은 성수를 책망하더니 지휘소에서 내려갔다. “가 보기오!” 상순은 성수, 학수, 창걸, 흥수 등 민병들을 데리고 쏜살 같이 소서구 어귀 토성 안으로 달려 가보았다. 그들은 다짜고짜로 장학산의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안 남쪽구들에는 장학산의 딸 미련 밖에 없었다. 상순을 보자 미련은 이불을 들쓰고 사시나무 떨듯 했다. “애비는 어디 있어?” 상순은 권총을 뽑아 들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미련은 겁이 나 낯이 새파랗게 질린 채 도리머리 질 했다. “모르겠소. 내 자구 일어나니 아버지와 엄마가 보이지 않았소.” 상순은 동쪽 방을 발칵 뒤져보았다. 하지만 장학산과 여편네 충씨는 그림자도 보이지도 않았다. 상순이 민병들을 데리고 서쪽 방에도 올라가 여기저기 들춰보았다.  집안에 어디에로 기여 들어간 흔적도 하나도 찾아낼 수 없었다. “어허, 참,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인데.) 상순은 민병들을 보고 미련을 지키게 하고 혼자 바깥으로 나와 토성 안을 구석구석 돌아보았다. “이게 뭐냐?” 집 뒤 토성 구석에 자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 놈들이 분명 이 개구멍으로 도망쳤구나.” 상순은 권총을 허리에 차고 쪼그리고 앉아 구멍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뒤에는 장학산 부부가 일하기 싫어 채 베지 않은 마른 강냉이대가 꽉 들어선 강냉이 밭이 내다보였다. 장학산 년 놈들이 이 구멍으로 소리치며 나가 강냉이 밭으로 하여 도망친 것이 분명했다. (대문만 지키니까 여기로 도망치는 거 몰랐지. 에이 참,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상순은 상서롭지 못함을 느꼈다. 장학산네 집 안으로 돌아오는 상순의 뇌리에서는 숱한 궁리가 번개처럼 번쩍이었다. (옳다. 이렇게 된바하고는 적들에게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꾸미고 미련을 볼모로 잡아두고 큰 그물을 늘이어 고기를 잡아야지.) 상순은 미련을 보자 따지고 들었다. “네 애비 어미가 집 뒤 토성 구멍으로 도망친 걸 다 안다! 그래도 어디로 간 걸 말하지 않겠느냐?” 그러자 미련은 구들에 머리를 마구 쪼아대면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빌었다. “오빠, 난 정말 아무 것도 모르오.” “오빠라구 부르지 말라!” 미련은 머리를 끄덕이고 뒤 말을 이었다. “평소에 아버지가 지학사 삼촌처럼 총살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했소. 이젠 인삼 오빠마저 떠나갔으니 이 집이랑 다 빼앗길 게 빤하다고 했소. 허나 나를 두고 사라질 줄은 정말 몰랐소. 이전에 한 집안처럼 살던 정을 봐서라도 제발 용서해주오.” 장미련은 새파랗게 질린 두 볼에 눈물을 줄줄 흘리었다. 상순은 구들에 털썩 걸터앉아 한참 궁리했다. 이윽고 그는 바깥에 나가 성수를 보고 몇몇 민병들을 데리고 집 안팎에서 미련을 지키라고 하고는 함흥 촌 쪽으로 씨엉씨엉 내려갔다. 이튿날 상순이 답답해 뒤통수를 툭툭 치면서 토성 안 촌공소에 곧추 들어갔다. 촌공소에는 허영주와 할아버지가 마주 앉아 한창 뭘 토론하고 있었다. 상순은 집안으로 들어가면서 “할아버지, 언제 돌아왔습둥?” 하고 인사부터 한 후 물었다. “죤슨과 정성문 삼촌 찾아봤습둥?” 병완은 호랑이 같은 막내손자를 대견하게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죤슨 신부는 확실히 영국으로 돌아갔더구나. 정성문과 알아보니 그는 원래 영국에서 동양에 파견해 간도 일본 놈들을 살피러 온 정탐군이였더라. 정성문은 내가 만난 날에 면바로 고향 조선 원산 쪽으로 떠나느라고 야단이더라.” 상순은 구들에 올라가 앉으면서 다급히 물었다. “정규상도 조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까?” 병완은 상순을 마주 보면서 대답했다. “정규상은 장춘(신경)에서 국비생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용정 일본병원에 와서 일하다가 지금 위생학교를 차려놓고 의사와 간호사들을 양성하더라. 그는 아버지를 따라 고향에 가지 않고 위생일군들을 많이 양성해 민주연군에 보낼 예산이더라. 앞으로 공산당 민주연군이 국민당 군과 싸우려면 의사와 간호사가 많이 필요하다면서 고향마저 돌아가지 않았더구나.” 병완은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이번에 원삼이네 둘째아들 장은과 넷째아들 종호가 사는 평란촌에 가 보았다. 그 마을에서도 한창 토지개혁을 해서 지주 박주호와 김경화를 청산해 종호와 장은이네도 밭을 분배받았더구나. 이젠 살 때를 만났다고 좋아 야단이더라. 종호는 그 마을 정득현 영감의 딸 정옥분이란 처녀와 결혼까지 했구. 초가삼간을 짓고 살림살이를 하더라. 종호네 가시아버지는 종호가 힘꼴을 쓰는 걸 보고 마음에 들어 사위로 삼았다더구나. 장은과 종호는 널 놀러 오라고 하더라.” “에이구, 언제 놀러 갈 새 있습둥?” 상순은 할아버지와 영주한테 다가앉으면서 나직이 말했다. “일이 생겼습구마.” “무슨 일?” 상순은 장학산이 달아난 일을 말했다. 병완은 주먹으로 구들을 쿵 치며 말했다. “큰 일 났구나. 그 놈이 삼도만으로 달아나는 날엔 위험해. 토비 놈들이 유격대가 떠나간 걸 알고 우리 마을을 습격하러 올게 아니야?” 상순은 머리를 숙이었다. “할아버지, 다 내 잘못입니다. 민병들은 밤낮으로 토성 대문을 지키면 되리라 생각했습디다." 병완은 상순을 정색해 보면서 타일렀다. “이후에 무슨 일을 하든지 좀 빈틈없이 해라.” 상순은 머리를 조아렸다. “예.” 까까머리를 한 허영주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조용히 말했다. “이미 놓친 거 어쩌겠소? 이젠 토비들의 습격을 대처할 준비를 합시다.” 병완은 상순을 뚫어지게 보면서 말했다. “넌 잠시 참군을 미루구 토비들의 콧대를 꺾어놔라.” “예, 아버지두 자꾸 말리는 바람에 어쩔까 궁리하던 참입니다.” 함흥 촌 당지부 서기이자 촌장인 병완은 허영주와  토비습격을 막을 대책을 한참이나 토론했다. 뒤이어 그들은 촌공소에서 나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갱도와 목책을 돌아보았다. 나중에 망루에 올라가 마을 주변을 둘러보면서 구체적으로 대책을 토론했다. 하늘에서는 거위 털 같은 눈송이가 푸실푸실 흩날려 내렸다. 초겨울이 성큼 다가오자 을씨년스러운 날씨는 점점 추워졌다. 허나 광복을 맞은 함흥 촌은 풍족한 생활로 하여 온 마을에 기쁨과 행복으로 들끓었다. 마을 이 집 저 집에서 떡을 치는 소리가 났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애들이 엿을 먹으면서 소리쳤다. “얭, 얭 맛있다. 오래 오래 맛있다.” 상순은 할아버지와 영주와 토론한 대로 마을 호위에 빈틈이 없는가고 민병들을 데리고 순찰했다. 그는 함흥촌에만 민병들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할아버지와 토론하고 패용천 촌의 지학사의 토성 안 집 자리와 소서구의 토성 안 장학산네 집 자리, 조개덕의 토성 안 조덕림의 집 자리에도 민병들을 주둔시켜 지키게 했다. 그리고 집집마다 울바자 대신 목책을 세우고 목책 문을 꽁꽁 닫아걸어 토비들이 난입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병완은 마을의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도끼나 식칼, 낫을 갖춰 놓고 토비들이 들어오면 싸울 수 있게 만단의 전투준비를 시켰다. 상순이 한창 망루에 올라 권총을 두자루나 찬 허리에 두 손을 지르고 서서 마을 주변을 둘러보는데 성수 패장이 헐레벌떡 달려 왔다. 성수 패장은 헐떡거리면서 보고했다. “보고, 김련장, 장학산과 여편네가 돌아왔소.” “엉?” 성수는 망루 우에 올라와 소서구 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장 지주와 여편네가 글쎄 땔나무를 해 지고 돌아오지 않았겠소? 그 것도 토성 밑구멍으로 아니라 토성 대문 쪽으로 해 들어오지 않겠소.” 상순은 이상해 물었다. “어디로 갔는가 물어 보았소?” “땔나무가 다 떨어져서 땔나무 하러 갔다고 합데.” 상순은 한참 궁리하더니 손을 홱 휘둘렀다. “가 보기오!” 상순을 따라 성수와 몇몇 민병들이 소서구 쪽으로 달려갔다. 학수 등이 장총을 메고 토성 대문을 지키고 있었다. 학수도 상순을 따라 장학산네 집 안에 들어갔다. 장학산은 상순을 보자 뜻밖에도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 높은 구들 턱에서 뛰어 내리며 마중했다. “김 련장 왔소?” 상순은 인사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따지고 들었다. “어디로 갔댔소?” “땔나무 하러 갔댔소. 겨울이 닥쳐오는데 땔나무가 없어 어쩌오? 어우, 추워라. 얼어 죽겠다.” 장학산은 미리 대답할 말을 준비나 해놓은 듯이 상순이 묻자마자 술술 주어 댔다. 상순은 허리에 찬 권총을 매만지면서 집안을 둘러보다가 또 한마디 물었다. “왜 대문으로 나가지 않고 토성 밑에 개구멍을 내고 가만히 나갔는가?” 그 물음에도 장학산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나를 이 토성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지키는데 어쩌겠소?” 상순이 마당에 나가 보니 장작을 패서 가려 놓은 것도 가득했다. (개놈새끼, 땔나무가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분명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구나.) 상순은 집 안으로 되들어갔다. “장 지주, 왜 미련은 데리구 가지 않았는가?” 장학산은 여편네와 힐끔 눈을 맞추더니 입을 뗐다. “달아나지 않겠는데 딸애까지 데리고 가서 뭘 하겠소.” 상순은 장학산이 치밀하게 궁리한 후 토성 밑에 구멍을 내고 나갔다는 것을 봐냈다. 허나 그는 짐짓 모르는 척 했다. “이후에는 나무 하러 가겠으면 민병들과 말하고 가오. 알았소?” 장학산은 “예, 예. 알았소.”라고 하며 여편네와 미련을 흘끔 건너다보는 것이었다. (네 딴에는 아주 쉽게 속여 넘겼다고 여기겠지? 흥!) 상순은 그쯤 해놓고 성수랑 데리고 집안에서 나왔다. 그는 토성 밖으로 나오자마자 토성 안쪽을 흘끔 들여다보면서 성수에게 말했다. “뭔가 있어. 숱한 땔나무를 두고 밤중에 불시에 땔나무를 해?” “미련을 두고 간 걸 봐서 도망치자는 건 아닌 거 같소.” 성수의 말에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옳소. 그 놈은 땔나무를 하러 나간 척 하면서 우리 마을의 정보를 삼도만 쪽에 보낸 거 같소.” 그러자 성수는 눈이 동그래 도리머리 질 했다. “그 놈이 전날 저녁에도 집에 있었는데 날개라도 있어 삼도만까지 날아갔다가 이튿날 점심 전에 돌아온단 말이오?” 상순은 성수의 어깨를 다독였다. “성수, 생각해보오. 딱 지학사가 삼도만으로 가야만 전할 수 있겠소?” “그럼 웬 놈이 마중하러 왔단 말이오?”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토비들이 왔다 갔을 수 있소. 대문으로부터 눈 우에 찍힌 장학산의 발자국을 따라 가만히 가 보기요.” “그게 옳소.” 상순은 민병들을 돌아보았다. “장학산의 집 서쪽 방에 들어가 있으면서 잘 지키오.” 창걸은 “알았소. 건데 토성 바깥에 토비들이 오는 가 살피지 않고?” 하고 의아해 했다. “토성 대문 안에서 지키오. 장학산네 집을 지키지 않는 척 하자는 거요.” 상순의 말에 창걸이랑 토성 안에서 대문과 여기저기 보초를 서고 장학산네 집에 들어가 지키었다. 상순은 성수와 함께 장학산과 여편네가 돌아온 발자국을 따라 가보았다. 처음에 발자국은 천지꽃산 쪽으로 났다가 소서구 막바지 쪽으로 굽으러들더니 북쪽으로 향했다. 북으로 한참 걸어가니 일성 촌 부근 산마루 수림에까지 가서 발자국이 어지럽게 많아진 것이 보였다. 허나 눈이 내려 발자국이 몇 사람의 발자국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됐다. 상순은 숱한 발자국을 일일이 여겨보더니 성수에게 말했다. “보오. 여기서 웬 놈과 만나 우리 마을 정황을 알렸을 거요. 적들은 우리 마을에 유격대가 떠나가고 민병들 밖에 없는 걸 안다면 꼭 요즘 쳐들어 올 것 같소. 정황은 아주 위급하오. 즉시 전투준비를 해야 하겠소.” 성수는 상순의 분석에 머리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상순은 일성 촌 부근을 둘러보며 속궁리를 했다. “토비들이 여기서 장학산과 만난 걸 보면 이번엔 저 동쪽의 계수동으로 멀리 돌아 오지 않을 것 같은데…” 성수는 상순의 총명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상순은 성수에게 전투준비를 이리 이리 하라고 시켰다. 성수는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오- 참 좋소. 그럼 토비 놈들을 혼쭐 낼 수 있을 거요.” 사실 상순의 짐작은 비슷하게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장학산은 땔나무를 하는 척 하면서 여편네를 데리고 밤도와 가만히 괭이로 토성 밑에 구멍을 내고 나갔던 것이다. 그들은 자는 미련을 깨워 데리고 달아나려다가 괜히 민병들에게 붙잡히면 미련까지 죽일 가봐 겁나 놔두고 자기들만 삼도만을 바라고 떠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일성 촌 부근에서 뜻밖에도 토비무리를 만났는데 그 속에는 충국도 있었다. 원래 충국은 전보흥 소교의 파견을 받고 토비 대여섯을 데리고 함흥 촌과 진수해와 팔도, 태양 등 지의 민주연군 정황을 정찰하려고 나왔던 것이다. 충국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자 무릎을 꿇고 엎디어 왕왕 울었다. “아버지, 어머니, 살아 계셨구먼.” 장학산은 충국의 머리를 끌어안고 대성통곡쳤다. “이게 꿈이냐? 흑흑, 생시냐? 난 다신 너를 보지 못 하는가 했다. 이 놈아, 우릴 버리고 혼자 어디에로 갔니? 흑흑, 흑.” 장학산의 여편네 충씨는 충국을 끌어안고 욕했다. “내 뭐라더니? 국민당군이구 빨갱이군이구 까딱 삐치지 말라는데도. 유격대를 그렇게 도와주었건만 빨갱이들은 우리 일가 밭을 다 빼앗아 갔다. 이 못난 놈아! 이젠 집으로 돌아가자.” 허나 충국은 일어나면서 도리머리 질 했다. “안 되오. 이젠 빨갱이들은 우릴 용서하지 않소.” 장학산이 오히려 충국을 말리었다. “빨갱이들이나 유격대나 모두 애증이 분명하게 처리했다. 그들은 이전에 우리 유격대에 쌀을 지원해 준 일과 네가 유격대와 함께 일본 놈들을 족친 공훈을 봐서 우릴 총살도 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이 어시들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자.” 충국은 옆의 토비들의 눈치 보여 부모를 끌고 한쪽으로 가서 나직이 말했다. “늦었수. 그때는 인삼의 낯을 봐준 거오. 인삼이 갔기에 누구도 우릴 봐주지 않을 거요. 게다가 전번에 내가 함흥 촌 정황을 조덕산에게 알려주고 앞장서 들이쳤기에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걸. 그 놈들이 용서한다고 쳐도 우리 밭과 집을 다 빼앗기고 어떻게 살겠소? 이젠 그 놈들을 몽땅 쓸어버려야만 우리 집과 밭을 찾아낼 수 있소. 우리 조상들이 세세대대로 몇 천 년 살아온 우리 땅을 무슨 이유로 조선에서 굴러 온 거지 놈들이 빼앗아 가야 한단 말이오? 그 놈들이야 말로 날강도가 아니고 뭣이오?” 장학산은 집과 밭 말이 나오자 이를 쁙쁙 갈았다. “빨갱이 놈들이 괘씸하긴 괘씸하다. 그런데 꼬리빵즈들이 몽땅 빨갱이 편이다. 그 놈들을 이길 수 있겠느냐?” 장충국은 목청을 돋궈 호언장담했다. “근심하지 맙소. 여기 몇 개 마을에 꼬리빵즈빨갱이들이 많지만 삼도만과 묘령, 천교령 일대에는 우리 국민당 군이 우글거리오. 황차 관내에서 이미 우리 국민당 대부대가 장춘과 길림을 점령하고 이제 오래잖아 교하를 치고 신개령과 할바령을 넘어 동만에도 쳐나올 게오. 그때면 저 산 아래 빨갱이 놈들을 몽땅 없애치우고 우리 집과 밭을 찾아 내얍죠.” 충국은 부모를 데리고 보초를 서는 토비들 쪽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밤이 깊었으니 일성촌에 들어가 쉬고 가깁소.” 장학산은 도리머리질 했다. “안 돼. 집에 미련을 두고 왔다. 우리 혼자 살겠다고 걔를 두고 달아나겠니? 집에 가 가만히 있으면 적어도 상순이랑 우리를 죽이진 않는다. 상순은 적어도 너의 의형제 아니야?” "픽!" 충국은 코 방귀를 뀌었다. “아버지, 아직도 병완 일가에 미련을 두오? 절대 믿지 마오. 그 놈들은 빨갱이들을 믿구 우리 밭을 청산한 놈들이오. 얼마나 좋소. 소작료도 내지 않고. 흥!” 그는 주먹으로 소나무를 꽝 쳤다. 그 바람에 눈가루가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지금은 그 놈들이 자기 세상이라고 우쭐거려도 며칠 후에 그 놈들을 싹 쓸어버리지 않는가!” 충국은 큰소리를 땅땅 치더니 마을의 정황을 일일이 물었다. 마을의 정황을 알아낸 후 충국은 허연 눈이 뒤덮인 수림을 둘러보더니 어둠속에서 부모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병완을 믿지 말고 이 길로 삼도만으로 들어 가깁소. 리국과 미련이야 집에 놔두면 죽이진 않겠지.” 장학산은 도리머리 질 했다. “죽으면 죽었지. 조상들이 물려준 집과 밭을 두고 소서구를 떠날 수 없어. 죽어도 제 집에서 죽고 고향 땅에 묻히겠다. 너를 봤으면 됐다. 네나 무사히 살아 집으로 돌아오너라.” 장학산이 돌아가려고 발길을 돌려 몇 발자국 뗐을 때였다. “잠간만!” 충국이 불러 세웠다. “아버지, 밤도 깊었으니 우리와 함께 일성 촌에서 쉬고 내일 아침에 일찍이 떠나오.” 그리하여 장학산과 여편네는 충국을 따라 갔다. 충국은 토비들을 끌고 일성촌의 토성안의 지주네 집 자리에 쳐들어갔다.      가난한 집 식구들은 밤중에 들이닥친 토비들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른들이 이 집에서 하루 밤 자고 가야 하겠다. 우린 삼도만 토비들이다. 짹 소리 치면 몽땅 죽여치우겠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오.‘ 집 주인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빌었다. 장학산은 비수를 쳐든 아들의 손을 잡아 내리웠다. “얘야, 살생은 하지 말라. 하루 밤 자고 가면 된다.” 허나 장충국은 팔을 홱 뿌리쳤다. “아버지, 이 놈들을 살려주면 내일 우릴 상순에게 고발할 거오.” “고발하겠으면 하라지. 우리 떠나가면 다야.” 그래도 충국은 고집을 썼다. “이 놈을 살려 주면 아버지가 내일 마을로 돌아 갈수 있소? 우리 만난 것도 다 들통 날 턴데. 흥!” 장학산이 더 말릴 새 없이 어둠속에서 충국과 토비들이 비수로 온 집식구들을 몽땅 푹푹 찔러 살해했다. 뒤이어 그 놈들은 시체를 바닥에 끌어 내려 가고 옷을 입은 채 구들에 들어 누워 한잠 잤다. 장학산과 충씨는 무서워 치를 덜덜 떨었다. 동녘하늘에 초겨울 해가 떠서 싸늘한 빛을 뿌렸다.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충국은 졸개들을 시켜 밥까지 지어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자그마한 땔나무 단을 꿍꿍 묶어 아버지에게 메워 주었다. “땔나무를 하러 갔다고 민병들을 속이오. 수상하게 토성 밑의 구멍으로 들어가지 말고 대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가오. 미련을 두고 왔으니 도망쳤다고는 보지 않을 거요.” 부모를 보낸 후 충국은 졸개들을 데리고 곧추 삼도만을 바라고 떠나갔다. 일성촌의 토성안집 지주 집을 분배받아 살던 가난한 농민 일가가 몽땅 살해된 사건은 오후에야 일성촌 민병 패장 태수가 발견하고 달려와 상순 련장에게 보고했다. 상순은 장학산이 전날 잃어진 것과 눈 우에 찍힌 장학산의 발자국이 일성촌 부근에까지 뻗어있었다는 성수의 보고를 연계시켜 본 후 분명 토비들이 왔다 갔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상순은 일성촌 태수의 귀 쌈을 챨싹 갈기었다. “보초를 어떻게 섰으면 자기 마을에서 한 집 식구들을 몽땅 살해하는 것도 몰랐는가? 이제 다시 보초를 허술하게 서는 날엔 용서 안 해!” “옛! 김 연장!” 상순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퉁방울눈을 부라리면서 황소숨을 씩씩 몰아쉬었다.                        5. 허장성세        을씨년스러운 눈보라가 산골짜기를 메울 듯이 윙- 윙- 휘몰아쳤다. 눈보라 속에 산골짜기에 촘촘히 꽉 박아세운 통나무 목책이 한 눈에 안겨 왔다.        충국이 토비들과 함께 이튿날 해 질녘에야 기진맥진해 삼도만 평강촌 토비소굴에 들어섰다. 때마침 삼도만의 전 소교가 마을 복판에 있는 토비 지휘소에 일본 여편네 요시꼬까지 데리고 와 있었다. 전 소교의 여편네 요시꼬는 원래 일본군을 따라 조선 명천에 들어온 일본군 위안부였든데 꽤나 아직도 예쁘고 젊었다. 삼도만 삼림경찰소 소장은 진수해 위안소에 내려와 요시꼬와 하루 밤 데리고 놀았는데 두고 가기 아쉬웠다. 소장 놈은 묵직한 돈뭉치를 내놓고 요시꼬를 사서 삼도만에 데리고 들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 놈들이 소련 홍군에게 쫓길 때 전 소교가 도망치던 일본 삼림파출소 소장 놈을 도끼로 찍어 죽이고 그 놈의 마누라 요시꼬를 빼앗아 강제로 데리고 살았던 것이다.        요시꼬는 지금도 전보흥한테 남편 고모리가 도끼산장을 당하던 일을 생각하면 끔찍해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날 고모리는 황급히 집에 들어와 요시꼬를 보고 도망치자고 했다. "여보, 우리 고향 나가사끼가 원자탄에 맞아 없어졌소. 우리 대일본제국은 전쟁에서 졌소. 어서 도망치기오." "고향이 없어졌는데 어디로 도망쳐요?" "여기 있으면 중국사람들한테 맞아죽어." "그럼 패용천촌에 보낸 야마꼬도 데리고 도망치자요." "안돼. 지학사 촌장한테 야마꼬를 주면 보호를 받겠는가 했는데. 안돼. 지촌장도 우릴 보호하기는커녕 자기 목숨도 부지하기 힘들어." 고모리는 당장  요시꼬 손을 잡고 다짜고짜로 집문을 나서자 울창한 수림에 들어섰다.        "서랏!"        갑자기 고함소리와 함께 꺽다리 괴한이 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그 뒤에는 총을 든 토비들이 나타났다.        고모리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았다.       땅!      수림 속에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토비가 쏜 총에 고모리는 총을 툭 떨어뜨리고 오른팔을 붙잡았다.        "썩어져라!"       꺽다리괴한은 도끼를 휘둘렀다. 고모리의 어깨가 찍혀나갔다. "악!" 비명소리와 함께 고모리의 머리가 두 쪼각 났다. "앗!" 야마꼬가 기절해 쓰러졌다... 그녀가 깨났을 때는 실 한오리도 걸치지 않은채 꺽다리괴한의 옆에 누워 있었다. 턱주가리에 칼자욱이 난 흉측한 그 꺽다리괴한이 바로 토비두목 전보흥이였다.     요시꼬는 원쑤 놈을 보는 순간 눈에 불이 일었다. 그녀는 구들에서 부시시 일어나 앉았다. 그녀의 눈에 턱주가리에 칼 흉터가 들어왔다. 목에 칼을 깊숙이 박고 싶었다. 남편의 원쑤를 갚고 싶었다.  위안부로 짐승처럼 짓밟히며 죽지 못해 살다가 고모리를 만나 사람처럼 살게 됐다. 그 남편을 믿고 기대며 이 산골에서 살았다. 그런데 일본 고향에 돌아가려는 그 남편을 이 놈이 죽였다. 그것도 도기로 찍어 처참하게 죽였다. 그녀의 희망은 완전히 파멸되였다.       그녀는 속에서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그러나  손에 쇠붙이 하나 없는 연약학 아녀자 몸으로 어쩌는 수 없었다선.     "허허허. 깨났어."     전보흥은 말이발을 드러내며 징글스레 웃으며 다가왔다. 뒤이어 다짜고짜로 요시꼬를 구들에 깔아 눕혔다. 또 짐승처럼 깔고 들어앉아 그 짓을 하려고 들었다. 요시꼬가 아무리 발버둥질치며 반항해도 도깨비처럼 둔중한 그 놈을 어쩌는 수 없었다. 요시꼬는 강간당하면서 들쑤시는 아픔을 참으며 외씨처럼 걀죽하고 창백한 얼굴에 증오에 찬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날부터 그녀는 원쑤에게 깔려 처참하게 짓밟혀야만 했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이를 옥물고 복수의 기회만 기다려야 했다....       한편 야마꼬는 통신병과 함께 삼도만에 들어온 후 형부한테 말해서 통신병을 혼내주라고  하자고 했다. 그런데 요시꼬가 뜻밖에도 일본 삼림경찰소 소장이 아닌 전 소교와 사는 것을 보고 저으기 놀랐다. 더우기 야마꼬는 몸이 남산만한 자기를 오자마자 그날 밤부터 깔고 들어 앉아 그 짓을 하는데 역겹고 혐오스러웠다. 전보흥 놈이 강간하는 바람에 하신에서 숱한 피를 흘리고 조산까지 했던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전보흥이 자기가 낳은 아들애를 지학사의 씨라고 내다버리라고 하였다. 그때 지학구 패장이 나서서 말렸다. 사실 지학사의 아들이자 자기 조카였기 때문이였다.        알고 보니 전소교는 야마꼬도 데리고 살려고 요시꼬부고 삼도만에 들어오라는 쪽지를 쓰게 강요했던 것이다.  요시꼬한테서 형부가 전보흥 소교한테 살해된 전후 사연까지 다 들어 알게 됐다.         야마꼬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그녀는 그날 밤부터 언니와 함께 겉으로는 아양을 떨며 전소교한테 몸을 맡기는 척 하고 속으로는 기회를 봐서 전소교를 죽여치우려고 이를 쁙쁙 갈았다. 그러나  연약한 아녀자들인 자매는 시종 손을 쓰지 못했다. 그리하여 요시꼬와 야마꼬 자매는 전소교가 자리를 비운 틈이면 암암리에 통신병 마씨와 전소교의 문서 조씨한테 추파를 보냈다. 그녀들은 마씨와 조씨를 미인계로 나꾸어 그들의 손을 빌어 전소교를 죽이려고 들었다.      그런줄도 모르는 전소교는 량팔에 요시꼬와 야마꼬를 껴안고 희희닥거리었다. 장충국이 들어서자 전소교는 길쭉한 낯을 기우뚱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하면서 충국을 맞이했다. “장 반장 돌아왔는가? 그래 길에서 고생하지 않았어?” 충국은 비틀거리다가 지휘소 구들에 풀썩 물앉았다. “모든 걸 정찰했습니다. 전 소교, 먹을 걸 주십시오.” “얘들아, 밥 한 대야 가져오라.” “옛!” 전 소교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토비들이 수수밥 한 대야에 멧돼지 고기를 섞어 볶은 배추 채를 한 대야 들여왔다. 충국과 몇몇 토비들은 이리떼처럼 욱 모여들어 밥 한 대야나 게 눈 감추듯 했다. 허나 밥에 체해 그들은 몽땅 스르르 쓰러졌다. 전 소교는 충국한테서 정황을 알아보려고 마구 쥐여 흔들었다. 허나 충국 등 몇몇 토비 놈들은 술에 취한 놈들처럼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고 뻐드러진 채 쿨쿨 잤다. 이튿날 아침에야 충국 등은 지휘소 구들에서 부스스 일어나 두 손으로 눈통을 비비었다. 전소교는 충국에게서 유격대가 확실히 마을을 떠났고 마을에는 민병들뿐이라는 것을 알고 즉시 지학구를 불렀다. 지학구는 지학사의 사촌동생인데 해동파출소 소장을 하던 자였다. “지 패장,   함흥 촌 일대 지형을 잘 알지 않는가. 즉시 20여명 형제들을 데리고 내려가 함흥 촌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려라.” 지학구는 개 턱 같은 뾰족한 턱을 쳐들고 도리머리 질 했다. “20여명으로 어떻게 함흥 촌 일대 놈들을 칩니까? 자칫했다가 전번 개꼴이 되겠습니다. 함흥 촌 일대 민병들은 오합지졸이지만 진수해 민주연군한테 걸려들면 목이 댕강 잘립니다. 빨갱이들은 원체 매복습격전과 유격전에 능한 놈들이라서…” 그러자 전 소교는 독살이 오를 대로 오른 눈깔로 지학구 패장을 쏘아보았다. “나무 잎이 다 떨어졌는데 그 놈들이 어데 매복한단 말이냐? 치는 척 해서 그 놈들의 반응을 보란 말이야.” “오, 전 소교님의 의도를 이제야 알 거 같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원수를 갚을 때 됐어. 내 그 놈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일 테다!” 충국은 호통치더니 지학구를 따라 나갔다. 전 소교는 평강촌 토비지휘소를 떠나는 토비들을 보고 제법 장교답게 한마디 호통쳤다. “나의 병사들이여, 우리 국민당 군의 본때를 보여주라!” 지학구 등 토비들은 총을 쳐들며 고함쳤다. "옛!" 전 소교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출발하라고 손을 홱 저었다. 지학구 패장은 충국 반장과 함께 20여명 토비들을 데리고 그 길로 산을 넘고 령을 지나 온 하루 함흥 촌을 바라고 강행군을 했다. 그들은 밤중에야 일성 촌 부근에 이르렀다. 충국은 산등성이 길에 주춤 멈춰서면서 지학구를 보고 제의했다. “지 패장, 일성 촌에 내려가서 하루 밤 쉬고 내일 밤에 칩시다!” 그러자 지학구는 계속 걸으면서 반대했다. “안돼, 내일까지 멀쩡하게 기다리다가 빨갱이들에게 잡히자고. 군사행동은 신속해야 하네.” 충국은 지학구를 따라가면서 지꿎게 들이댔다. “병사들이 다 지쳐서 어떻게 싸웁니까?” 그 말에 지학구는 어둠속의 일성 촌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어쩐지 일성 촌이 범의 아가리처럼 무시무시하고 으쓸한 느낌이 들었다. “장 반장, 전날에 일성 촌 토성 안 집 사람들을 도륙 냈다면서? 빨갱이들은 꼭 이 마을의 보초를 강화하였을 거야.” 그제야 충국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어데서 쉬겠습니까?” 지학구는 충국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물었다. “자네 집에서 자면 어떨 가?” “정신 있습니까? 안됩니다." "왜?" "외삼촌, 놈들이 지금쯤 우리 집을 철통같이 지킬 거요.” “어떤 땐 등잔불 밑이 어두운 법인데.” “아닙니다. 외삼촌, 요즘 그 놈들은 버쩍 신경을 곤두세울 겁니다. 아예 우린 산등성이에서 나무이파리를 덥고 잡시다.” 허나 지학구는 결단을 내렸다. “조카, 이 추운데 어데서 잔다고 그러는가? 아예 좀 곤한 대로 병사들을 내몰아 함흥 촌을 치는 척 하자.”        “어떻게 그렇게야. 온바 하고는 빨갱이 놈들을 몇 놈이라도 죽이고 갑시다." “그럼 이렇게 결정하자.” 교활한 지학구는 전날 충국이 밟은 함흥 촌 서쪽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지 않고 길을 바꿔 함흥 촌 동쪽 계수동으로 하여 함흥 촌에 접근했다. 지학구는 어쩐지 전날 충국이 일성 촌에서 사람까지 죽이면서 왔다간 서쪽 령길이 상서롭지 못한 감을 느끼었던 것이다. 그들은 동산 계수동 폐허에 조심스레 기어들어 벌벌 기여 산마루에 올라 함흥 촌을 내려다보았다. 계수동 쪽에는 어쩐지 보초를 서는 민병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지학구는 충국의 옆에 엉금엉금 기여와 나직이 말했다. “조카는 저 골짜기를 따라 마을에 접근해 마을 서쪽에 서 있는 망루를 까부시게. 놈들이 서쪽으로 몰려 갈 때 내가 동쪽에서 목책을 폭파해버리고 촌공소를 습격하겠네. 일이 끝나면 소서구 골짜기를 따라 철거하게. 내일 삼도만에서 승리의 축배를 들자.” “알았습니다.” 충국은 필경 유격대에서 싸워본 적이 있어 담대했다. 그는 토비 대여섯을 데리고 골짜기를 따라 벌판에 내려간 후 무덤을 지나 함흥 촌 서쪽에 접근했다. 민병들이 순라를 하면서 지나가기 바쁘게 충국은 졸개들을 시켜 수류탄을 준비하게 했다. 그때 뜻밖에 개들이 왕왕 짖어대면서 이쪽으로 덮쳐왔다. 이윽고 마을 토성안집 쪽에서 종을 댕, 댕, 댕 치는 소리가 들리었다. 망루 우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푱! 푱! 푱! 토비 두 놈이 쓰러졌다. “수류탄을 뿌려!” 충국의 고함소리에 토비들은 마을 서쪽 망루에 수류탄을 뿌렸다. 그런데 수류탄이 망루를 맞히지 못하고 빗날아갔다. 이때 마을 밖에서 함성소리가 요란히 들렸다. 버드나무숲 속에서 숱한 민병들이 덮쳐오면서 맹사격을 가했다. 황급해난 충국은 제일 앞 서쪽에 있는 상진이네 집과 학수네 집에 수류탄을 마구 뿌리었다. 대뜸 집에 불이 달렸다. 한편 지학구는 전번에 조덕산을 따라와 함흥 촌을 진공하다가 혼난 적이 있었기에 근본 마을을 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는 충국을 이용해 마을을 치는척하다가 도망칠 예산 밖에 없었다. 이때 상순의 포치를 받은 조개덕에 매복해 있던 병수랑 총소리를 듣자 민병들을 이끌고 함흥 촌 토비들 쪽으로 맹사격하며 돌격해 왔다. 토비 놈들은 어둠속에서 허연 눈 우에 숱한 민병들이 덮쳐 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또 매복습격전에 걸렸구나!) 지학구는 황급히 10여명 토비들을 끌고 소서구 쪽으로 도망쳤다. 그 때였다. “토비 놈들아, 상순 연장이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래다! 어디로 도망쳐?!” 뚜르륵 뚜르륵 눈덮인 겨울인지라 소서구 토성 안 장충국이네 집에 매복해 있던 상순은 태평강을 건너 도망쳐 오는 토비들을 향해 기관총소사를 해댔다. 바빠 맞은 지학구는 몇몇 주검을 남기고 살얼음이 간 태평강 바닥을 따라 북으로 일성 촌을 바라고 도망쳤다. (상순 연장? 분명 지학사형님을 송사를 건 못된 놈이야!) 순간 지학구는 독살스러운 세 귀 눈을 가진 청년이 눈앞에 떠오르며 온 몸이 오싹 해났다. 지학구가 나머지 십여 명 패잔병들을 데리고 일성 촌에 거의 달아났을 때였다. 총소리를 들은 일성촌의 민병들은 사전 상순의 포치에 따라 마을을 순라하다가 몽땅 마을 어귀에 엎디어 남쪽을 주시했다. 이윽고 마을 남쪽으로 검은 그림자들이 뿔뿔이 도망쳐 오는 것이 보였다. “사격!” 태수 패장이 명령하자 일성 촌 민병들은 토비들에게 명중탄을 안겼다. 토비들은 또 몇몇 주검을 남기고 동쪽으로 도망쳤다. “토비 놈들아! 어디로 도망쳐?!” 민병들은 토비 놈들이 멀리 도망쳐 흑점으로 보일 때까지 사격했다. 지학구와 충국은 일여덟 주검을 남겨둔 채 겨우 목숨을 건져가지고 삼도만으로 도망쳤다. 지학구는 도망치는 길에서 충국과 전 소교에게 거짓보고를 하기로 하고 졸개들에게 입단속을 단단히 했다. 그들은 이튿날 해질 녘에야 삼도만에 들어섰다. 전 소교는 돼지를 잡아 놓고 기다리다가 보초를 서던 졸개들에게서 그들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평강촌 마을 밖에까지 나가 마중했다. “장하네.” 전 소교는 지학구의 어깨를 툭툭 치며 지휘소로 데리고 들어오며 물었다. “그래 습격하러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는가?” 지학구는 충국을 흘끔 보더니 전 소교 앞에서 거짓말을 퍼부었다. “장관, 우린 적은 병력으로 마을을 기습해 쑥대밭을 만들어놨습니다. 수류탄으로 망루를 까부시고 빨갱이들의 집에 몽땅 불을 질러 놓았습니다. 그 놈들은 올 겨울에 얼어 죽지 않는가 보십시오.” 전 소교는 지학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말하게나.” 충국이 대답했다. “우린 두 개 소조로 나뉘어 수류탄으로 두 개 망루에 집 십여 채를 불태워 버리고 꼬빨갱이들을 아마 2, 30명 죽여 버렸습니다.” 전 소교는 충국과 지학구를 번갈아 보았다. “지패장, 사실인가?” 지학구는 속이 뜨끔해났지만 짐짓 웃음까지 지어보였다. “옛, 틀림없습니다. 우린 장관님의 포치대로 우리 국민당군의 사기를 올리고 빨갱이들에게 본때를 보여줬습니다.” “지 패장, 장 반장, 수고했네.” 그는 푹 삶은 돼지고기로 연회를 베풀고 토비들을 몽땅 불러다 이른바 승리를 경축했다. 함흥 촌 습격 전에 출전했던 토비들은 웃고 떠들면서 술을 실컷 마셨다. 술이 거나하게 되자 전 소교는 술잔을 들고 호언장담했다. “형제들, 우리 국민당군은 800만 대군에 미국의 대포, 탱크, 비행기까지 있네. 빨갱이들은 비행기 한 대도 없네. 여기 동만의 민주연군 빨갱이들은 대포 하나도 없네. 이번에 우리 지 패장은 20명을 거느리고 가서 몇 백 명 민병들과 용감히 싸워 8명이란 적은 대가로 30명이나 죽여 버렸네. 지 패장과 장 반장은 우리 군의 사기를 대단히 높였네.” 전 소교는 흥미진진해 듣는 토비들을 향해 술잔을 들었다. “자, 함흥 촌 기습작전 승리를 축하해 실컷 마시자!” “마시자!” 토비들은 게걸스레 돼지고기를 뜯어먹으면서 술잔을 들었다. 전 소교는 또 술잔을 들고 고함쳤다. “우린 목숨을 걸고 빨갱이들과 싸워 우리 마을을 지켜야 하네! 함흥 촌과 조개덕을 보지 못했는가? 장반장네 아버지처럼 빨갱이들에게 집과 땅을 빼앗긴다! 자칫하면 처까지 몽땅 빼앗기게 된다! 알만한가?!” “빨갱이들에게 천하를 빼앗기면 안 된다.” “그 놈들을 소멸하자!” 토비들은 여기저기서 고함쳤다. 산골짜기 토비들은 참말로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산골 안에서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취 김에 호언장담하며 떠들어댔다. 한쪽 구석에서 통신병 마씨는 어떻게 하면 예쁜 야마꼬를 계속 데리고 놀가 궁리하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문서 조씨도 마씨와 똑 같은 궁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저놈 전씨를 죽여치우고 요시꼬를 손에 넣을가? 흐흐흐.) 야마꼬와 요시꼬는 마씨와 조씨의 속내를 환히 들여다보고 날따라 살내를 풍기였다. 어느 하루, 요시꼬가 아들 지시룡의 기저귀를 갈아채우는데  지학구가 찾아왔다. "전소교 있소?" 지학구는 집에 들어오며 두리번거렸다. "없어요. 삼도만에 간다고 했어요." 지학구가 모를리 있겠소만 짐짓 모르는 척했다. 그는 지시룡을 안아 뽀뽀해주며 덕담을 했다. "에이, 우리 조카 잘 생겼네. 요놈, 우리 지씨 뿌리를 이어야지." 순간 야마꼬는 피뜩 번개치는 생각이 있었다. (지패장을 등에 업으면 이 마귀 소굴을 벗어날 수 없을가?) 야마꼬는 지학구한테 추파를 보내며 아양을 떨었다. "지패장, 시룡일 보호해줘 고마워요. 제가 지패장께 뭘 해드리면 좋을가요? 분부만  하면 뭐든 다 해드릴게요." 지학구는 피끗 야마꼬를 돌아보며 달걀침을 꼴깍 삼키었다. 야마꼬는 이때라고 몸을 바싹 지학구한테 기대였다. "이 마귀소굴에서 지패장 밖에 믿을 사람이 없어요. 우리 모자간을 이 놈 마귀소굴에서 구해주세요. 이 몸은 지패장 거예요." 그러나 지학구는 품에 안겨드는 야마꼬를 밀어내며 시룡을 되안겨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찌 형님의 여자를 차지하겠소. 다른 궁리 말고 전소교를 잘 모시라구, 그 길만이 너네 모자와 언니를 구하는 길이야." 지학구는 말을 마치자 휭 하니 바깥으로 나가 버렸다. "흥! 여자에 굶은 주제에 배부른 타령은!" "포기하지 말라." 옆방에서 요시꼬가 부풀어오른 배를 뚱기적거리며 들어왔다. "사내들을 몰라 그래? 지패장은 분명 네가 욕심나지만 전소교가 무서워 그래."    야마꼬는 걀죽한 얼굴을 찌푸리며 성나 코방귀를 연신 뀌었다. "언니, 요즘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마귀소굴을 벗어만 나면 우리 아무 문제 없이 살 같아." 요시꼬는 버들 눈섭 아래 외까풀눈을 치떴다.  "건 무슨 소리야." "패용천촌에 가서 살아도 이 마귀 소굴보다 나아." "공산군이 지촌장마저 죽이잖았나?" 야마꼬는 시룡을 안고 흔들거리며 말했다. "지촌장은 친일주구라고 죽였지만 우리 모자간은 놔두지 않았어? 그들은 처자들은 반동을 하지 않으면 갈라서 대하는 거야." "뭔 소리?' 요시꼬는 눈을 흘겼다. "우린 이 소굴을 벗어나 어떻게 하나 일본으로 돌아 가야 해. 그게 유일한 출로야." 야마꼬도 한숨을 호-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전소교 있소?" 이때 문서 조씨가 들어왔다. "아니, 전소교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호호호." 요시꼬는 아양을 떨며 조씨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조씨를 데리고 자기 방에 들어가며 야마꼬를 되돌아보며 외까풀눈을 찔끔 끔쩍이었다. "바깥에 개 오지 않는가 좀 지켜라." 야마꼬는 실웃음을 흘리며 문께로 돌아섰다. 이윽고 요시꼬 방에서는 여인의 아양 떠는 소리에 뒤이어 신음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아이유, 좀 살살, 애 눌리워 울겠어요." "그래. 알았어.' "전소교 있소?" 이때 바깥에서 개 짓는 소리가 또 들리고 마씨가 울안에 들어섰다. 야마꼬는 애를 안고 짐짓 눈을 곱게 흘기며 아양을 떨었다. "아이유, 전소교 없으니 동네 개들이 다 모여드는구나." "동네 개라니? 보호은인도 모르고. 흥!" 통신병 마씨는 눈깔을 희뻔뜩거리며 야마꼬를 집안으로 떠밀었다. "잔말 말고 전소교 오기전에 빨리, 빨리." "거 누구냐?!" 집안에서 울리는 소리에 마씨는 허리춤에서 권총까지 빼들고 바깥으로 달려나가려고 했다. "호호호. 겁쟁이라구." "엉? 전소교 아닌가?" 마씨가 되돌아섰다. "겁내지 말아요. 언니 친군데요." 야마꼬는 마씨를 데리고 자기 방에 들어갔다. 이어 우는 어린애를 달래는 소리에 뒤이어 여인의 신음소리, 아양떠는 소리 들렸다. "우리 모자를 지켜주지?" "내 있는 한 근심 말라구." "우리 자맬 이 마귀 소굴에서 구해주죠?" "그래, 이 어른만 잘 모시면 목숨이라도 바쳐 구해주지." "당신 정말 담짝도 커요. 진짜 사내대장부야. 호호호." 이때 갑자기 문을 쾅 차고 누군다 뛰여들었다. "어마나!" 두 여인이 비명을 지른다. "이 놈들, 잘한다!" 뜻밖에 뛰여든 자는 전소교가 아니라 지학구였다. "죽을 죄를 졌소." "제발 살려주오." 마씨와 조씨는 괴춤을 재대로 춰슬리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꿀러내려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했다. "이 놈들아, 전소교가 말을 타고 반시간이면 삼도만에서 여기까지 온다. 담짝도 크구나." 마씨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빌었다. "이 일 덮어주면 뭐든 지패장 하라는대로 할 거요." "제발 살려주오." "네놈들 목숨은 내 손에 쥐웠다는 걸 알아!" "아이고!" "지패장, 제발 살려주오." 이때 요시꼬마저 사정했다. "지패장, 조문서를 살려줘요. 이 마귀소굴의 2인자나 다름 없는 조문서 없으면 시룡과 우리 자매를 누가 보호해주겠어요." 그러나 지학구는 짐짓 아닌 보살을 떨었다. "상전의 안해를 다쳤는데 살려 줄 순 없어. 량심없는 놈들" 그러자 야마꼬는 우는 지시룡을 안고 서쪽방아에 건너왔다. "그럼 나와 애를 죽이고 마룡을 죽이세요!" 야마꼬도 통사정을 들이댔다. "마룡도 살려 주세요. 지씨네 피줄을 지켜줄 사람은 마씨뿐인데요." "허허허." 그제야  지학구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본색을 드러냈다. "네 놈들 꼭 이들 자매와 시룡일 보호할 수 있겠냐?" "네. 살려만 주면 꼭 목숨 걸고 이 녀자들 보호할게." 조소호와 마룡은 대가리를 땅바닥에 쫗았다. "은혜 백골난망이오." "지패장, 구명은인입니다.' 그쯤 하면 됐다고 생각한 지학구는 뒤짐을 짓고 문을 박차고 바깥으로 나갔다. " 전소교 오겠어." "예. 감사하오." 마룡과 조소호는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그들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문밖에 가만히 나가 보았다. 그런데 지학구는  망을 봐주는지 삼도만쪽으로 통한 길 어귀에서 서성거리며 기웃거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씨와 조씨는 서로 눈길을 마주치더니 집안에 씽 달려들어와 문까지 걸어놓은 후 시름놓고 일본 여인들을 데리고 놀았다...
102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5) 댓글:  조회:1629  추천:0  2017-03-23
                              3. 정 들면 고향      서늘한 가을 날씨가 서서히 다가왔지만 함흥 촌은 기쁨의 열기로 들끓었다. 지주를 청산해 집과 밭을 가졌으니 농사꾼들이 어찌 기쁘지 않으랴. 올해 가을부터는 낟알들 털어 지주에게 소작료를 한알도 바치지 않아도 됐다. 농사꾼들은 밭에서 낟알을 걷어 들여 도리깨로 털어 절구에 찧느라고 땀을 뻘뻘 흘렸다.       창준과 범호는 토성 서쪽에 정미소를 짓느라고 마치로 못을 땅땅 박는다, 대패질을 한다 하며 뺑뺑 맴돌았다. 용천은 함흥 촌에 오자마자 손호표를 총살하고 지주의 집과 밭을 청산해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보고 속이 꿈틀했다.     (만약 여기가 경주라면 이 사람들은 우리 집도 청산해 아버지를 죽이고 집과 밭을 나눠 가질 거 아닌 기여? 빨갱이무리에 들지 않길 잘한 기여.)      그는 진달래와 경주를 기다릴 일이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남으로 떠나가고 싶었다. 허나 당분간은 함흥 촌에 눌러 있어야 했다. 그에게는 하루를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기로 삼추와 같았다. (경호와 진달래가 한 열흘이면 장백산으로 갔다가 오겠지. 열흘만 꾹 참고 기다리자.) 어느 하루 용천이 작은아버지 집에서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상순이 밥그릇을 담은 보자기를 들고 들어왔다. “얘, 뭘 또 가지고 왔어?” 상순은 희죽이 웃었다. “내 아내 달걀비빔밥을 지었습니다.” “잘 먹겠네. 자네도 여기서 아침을 먹고 가게나.” “아침 대충 먹고 왔습니다. 인차 촌공소에 가봐야 하겠습니다. ” 상순은 인차 자리를 떴다. 용천은 아침 숟가락을 놓자마자 촌공소로 들어갔다. 이계삼은 금방 촌공소에 들어선 용천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김 대장, 삼도만 토비들이 대체 모두 몇 명이나 되오? 그 놈들의 정항을 좀 알려주오.” 용천 대장은 두 말 없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삼도만 토비들은 기실 당지 한족지주들과 한족농민 60여명으로 조직된 오합지졸이랑께. 그자들은 순전히 국민당 소교 전보흥이란 자의 민족이간질에 미혹돼 국민당 토비로 된 놈들인 기여. 전보흥 소교는 원래 국민당 정예군의 소교데이."     상순은 궁금한 걸 물었다.     "전보흥 소교 생김새 어떤 특징이 없습니까?"      용천은 좀 생각하더니 인차 대답했다. "오, 그래. 그 놈 생김새를 알아야 생포하든지 생사를 확인하지. 전소교 턱주가리에 칼자국 같은 흉터가 있더구만." "키는 큽디까?" "응. 꽤나 훤칠한 키였어. 항상 일본 놈처럼 일본 군도를 차고 다니면서 행패를 부렸어." 병완과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용천이 뒷말을 이었다. " 그 자는 국민당군 조덕산 영장의 파견을 받고 삼도만 평강 촌에 기어들었다데이. 그 놈은  한족농민들에게 별의별 선동을 다 하데이. ‘공산당 민주연군의 꼬리빵즈(高丽帮子:조선인) 빨갱이들이 지금 우리 한족들을 죽이고 집과 밭을 청산해 빼앗자고 한다.’. 하, 그 놈 선동 진상 잘 모르는 당지 한족들한테 먹혔지 뭐야. 그 놈은 함흥촌에서 조덕산과 조덕림을 총살하고 가옥과 밭을 가난한 농민들한테 나눠준 사실을 들어가면서 대대적으로 선전했다이." 이계삼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에끼, 이 사람아, 거짓말을 해도 유분수지. 자네 이 마을에 돌아온 후에 조씨랑 총살했는데 전보흥이 아는지 모르는지 자네 어떻게 알아?" 용천은 살을 붙여 엄중하게 말하다가 꼬리를 밟혔다. 그러나 그래도 대부분은 진실한 정황이었다. "글세 그 놈이 글케 선동했다니께. 지어 그 놈은 이렇게 군중들을 미혹시켰데이. ‘빨갱이들이 공산공처(共产共妻)를 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한족들 처자들까지 빼앗자고 삼도만을 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지, ‘우리 한족들은 무기를 들고 조선 빨갱이들을 맞받아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는지, 그 놈 주둥이 다 삐뚫어지게 돌아다니며 선동했데이. 그러니까 당지 한족들은 전 소교의 민족이간 질에 놀아나서 집과 땅, 처자까지 빼앗기지 않을락꼬 모두 토비로 돼 무기를 들고 민주연군을 막으려고 나섰어. 그 속에는 진수해 부근에서 달아난 지주들이나 위만 경찰들이나 친일주구들도 많데이. 이 마을에서 달아난 장충국이나 해동분주소 소장 지학구도 있데이. 더구나 이 마을에서 도망친 장축국이란 자의 선동역이 대단했어. 그 놈은 전 소교의 문서와 함께 한족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함흥 촌에서 토지개혁 때 지학사와 조덕림, 제지주랑 숱한 한족지주들을 총살하고 집과 밭을 빼앗아 조선 빨갱이들한테 몽땅 나눠줬다고 떠벌였지. 게다가 지학구 소장 놈도 풍을 치는 바람에 산골 안에서 세상을 보지도 못한 한족 농사꾼들은 진상을 잘 모르고 미혹돼 분분히 국민당 토비무리에 쓸어 들어갔지.” 이계삼과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며 한숨을 후 내쉬었다. 상순은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그 놈들의 주요 무기는 어데서 얻은 거요?” 이때 허영주도 촌공소로 들어와 용천과 인사를 나누고 구들에 올라와 앉았다. 용천은 아주 흥미진진해 뒤 말을 이었다. “그 놈들은 전 소교가 국민당 군에서 가지고 온 기관총 서너 정에 장총이 위주이지. 그 외에도 지학구 소장과 같은 위만 경찰 놈들이 파출소나 분주소에서 가지고 간 권총도 몇자루 있지. 그 놈들은 삼도만 일본 삼림경찰 놈들이 도망칠 때 수림 속에서 도끼나 세 가닥 창으로 찍어 죽이고 보총을 빼앗은 것도 있지.”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국민당 정예군 놈들도 토비들과 함께 우리 마을에 쳐들어 왔다가 무리죽음을 당했습니다. 고까짓 산골 오합지졸 놈들이 무슨 대단해서.” 그러나 용천은 도리머리 질 했다. “상순아, 절대 그 놈들을 얕잡아 봐선 안 돼. 그 놈들은 대부대작전을 지휘하던 전보흥 소교 놈의 지휘아래 살아 남을락꼬 악을 딱 쓰고 군사훈련을 했어. 그 놈들은 아마 여기 민병들 못잖게 전투력이 있어. 게다가 그 놈들은 마을 주변에 한 장 길이나 되는 원목으로 장재를 몇 겹으로 두르고 그 바깥에 둬 자씩 되는 뾰족한 나무가시를 촘촘히 박아놓았어. 그리고 목책 안에 또치까를 쌓고 전호를 파서 그런 또치까 사이를 연결해 놓았데이. 집집마다 토성에 총구멍을 냈고 마을 복판에는 사처를 둘러보면서 전투를 지휘할 망루도 통나무로 높게 세웠어. 그 놈들의 말처럼 평강 촌에 들어가는 안도 쪽의 령길과 팔도와 삼도만 소재지로 올라가는 골짜기 길만 막으면 몇 백 명도 평강 촌을 공략하기 힘들어. 토비 놈들은 깎아지른 절벽의 천험을 끼고 있는데다가 평강 촌과 삼십 여리 떨어진 삼도만 소재지의 놈들이 수시로 전화로 연계하면서 서로 접응할 수 있어. 토비들을 소멸하기 그리 쉬울 거 같잖아.” 이계삼과 허영주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상순은 자신만만해 호언장담했다. “우리 국자가와 명월구에 민주연군이 몇 천 명이나 있는데 그까짓 놈들을 소멸하지 못하겠소?” 용천은 상순의 호언장담에 냉수를 퍼부었다. “담력과 용기만으로는 승리할 순 없어. 전술상에선 놈들을 중시해야 해.” 상순은 용천의 그 말을 가슴 속 깊이 명기했다. 그는 민병 연장인 자기 어깨가 무거워지는 감을 느꼈다. 이계삼은 허영주와 상순을 불러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상순의 손을 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각기 자기 마을씩 보위해선 절대 보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토비를 소멸할 수 없네. 상순인 태수랑, 성수랑 마을의 꼴꼴한 청년들을 데리고 민주연군에 입대하오. 민주연군 대부대에서 오래잖아 삼도만 토비들을 비롯한 동만의 토비들을 소멸하게 되오. 참군해서 토비들을 몽땅 숙청해 버려라. 그 담 마을에 돌아와 지방건설을 하면 어떠오?” 상순은 아무런 고려도 없이 대답했다. “당 조직에서 수요하면 난 입당할 때 맹세한대로 참군해 목숨을 내걸고 토비들과 싸우겠습니다. 내 이제 마을 청년들을 동원하겠습니다.” 이계삼은 상순의 손을 굳게 잡아 흔들었다. “당 조직에서는 김 연장을 믿소. 꼭 참군해 토비들을 깡그리 소멸하오!” 상순은 차렷 자세로 군례까지 올렸다. “옛! 이 서기, 근심하지 마십시오.” 이계삼과 허영주는 신임과 기대에 찬 눈길로 상순을 바라보며 두 손을 꽉 잡고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이계삼은 상순에게 조용히 말했다. “가기 전에 장학산을 잘 살피오. 혹시 장충국이란 놈이 우리 유격대가 떠났는가 정탐하러 올 수도 있소. 지금 삼도만 토비들은 우리 마을에 보복하려고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을 수도 있소.” “예. 내가 가더라도 마을의 나머지 민병들에게 잘 포치하겠습니다. 그 놈이 이제 까딱하기만 하면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상순의 말에 이계삼과 허영주는 머리를 끄덕였다. 상순은 토성 동남쪽에 있는 자기 초가삼간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조선에 가고 집에는 아내 명옥이 앓는 맏딸 숙자를 안고 있었다. “난 참군해야겠소. 토비 놈들을 소멸해버리지 않고서야 어찌 마을 사람들이 시름 놓고 살겠소?” 허나 명옥은 한숨을 지으면서 말리었다. “여보, 애를 셋이나 죽인 이 집에 일꾼은 당신 밖에 없소. 당신 전쟁터에 가면 생사를 기약할 수 없잖소?” 허나 상순은 고집을 썼다. “건 여자들이나 할 말이야. 토비들이 당장 우리 마을을 들이치자고 노려보는데 사내대장부가 죽음을 겁내 집구석에 들어박혀서 여편네 궁둥이만 쳐다봐서야 될 말인가? 토비들을 소멸하고 숱한 군중들을 지킬 수만 있다면 난 죽어도 후회 없소.” 상순은 마을 청년들을 동원하려고 집에서 나갔다. 그때 웬 사내가 홀로 마을에 들어서서 움푹한 눈을 판들거리면서 돌아다녔다. 상순은 경각성을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여보게!" "왜?" 그 사내는 흠칫 놀라 주춤 멈춰서더니 상순을 되돌아보았다. "왜 동넬 돌아다니면서 기웃거려?" 그 사내는 억지로 웃어보이면서 상순한테 다가와 통사정하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서 살 수 있겠나 해서 그래요." "당신 누구요?" "나 이흥수제이. 내 고향은 전라도라우. 일전에 두만강 건널 때 최구장 어른이 함흥촌에 찾아오라고 해서 왔는디." "이흥수? 오, 그때 두만강 버들강변에서 본..." "네 맞아요. 바로 접니다. 면목 좀 있는디." 상순은 제꺽 흥수의 두 손을 맞잡았다. "헌데 어떻게 돼 이제야 왔소?" 흥수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사실 난 두만강을 건너다가 일본놈들한테 붙잡혀 강제로 징병돼 할빈까지 끌려갔어. 일본 놈들이 망해 도망치자 이제야 나온기여. 여기도 우리 조선 사람들이 많이 사는구먼. 함께 살면 안되는기우?" 상순은 일본군에 있었다는 말을 듣고 삼도만토비숙청에 써먹을가고 궁리하면서도 소홀히 받아주지 않았다. "헌데 당신 왜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여기 남으려고 하오?" 흥수는 어깨에 멨던 보짐을 내리우면서 중얼거렸다. "고향에 돌아가도 일점혈육이 없시우. 부모는 일본놈들한테 끌려가 바다로 고기잡이 나갔다가 사망했지라우. 하루 사이에 아버지를 잃은 엄마는 파도 사나운 바다에 치마 뒤집어쓰고 자결했지 않았겠시우. 형제들은 염병에 걸려 사망하잖으면 뿔뿔히 흩어져 살길을 헤매고 있시우." 상순은 들을수록 흥수가 불쌍해 흥수의 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그럼 우리 마을에서 함께 살기오. 이제 형제들 찾으면 우리 마을에 데려오오." "고마우이. 이후에 뭐든 시키면 다 할라우." 상순은 피뜩 뭔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먼저 흥수를 자기 집에 데리고 갔다. 며칠 후 녀동생 금옥을 시켜 뒷집 로처녀 춘실한테 흥수를 중매를 서주었다. 춘실은 상순과 비할바도 안되는 흥수가 눈에 차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를 류랑객 같은 흥수한테 붙여놓는 상순이 얄미웠다. 하지만 애까지 낳은 몸인지라 마음을 독하게 먹고 억지로 흥수와 살게 되었다. 명옥은 숙자의 따끈따끈한 머리를 짚어 보더니 업고 정신없이 바깥으로 나갔다. “안되겠다. 의사를 보여야지.” 명옥은 이번에는 상순의 허가도 없이 떠났다가 또 이전에 영자를 업고 진수해 의사네 집으로 갈 때처럼 봉변을 당할 까봐 이번에는 방향을 바꿔 동불사 쪽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그 나그네 말대로 병원에 가지 않으면 숙자두 죽이고 말겠다. 숙자는 절대 그렇게 가마 목에서 죽여 내갈 순 없다.) 그녀가 애를 업고 차가운 부르하통하 강물을 허둥지둥 건널 때다. 숱한 사람들은 영문 모르고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저 여자 정신 나갔지 않았니?” 그러건 말건 명옥은 숨이 턱에 닿도록 동불사 의사네 집으로 달리어 갔다. 동불사의 개인 의사를 보이고 한약을 몇 첩 져 가지고 바삐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풍로를 피우고 약을 달일 때 상순이가 성수랑 태수랑과 함께 돌아왔다. 상순은 풍로 불을 보고 이상해 했다. “당신 뭐 하오?” “숙자를 먹이자고 약을 달이오.” “약을? 애가 무슨 병에 걸렸소?” “감긴지 전염병인지 걸렸다고 하오. 이번엔 내 말대로 약을 쓰기요.” 명옥은 또 상순이가 애를 의사한테 보여 헛돈을 팔았다고 화를 내면서 약 담배를 풀어 먹일 가봐 더럭 겁이 났다. 허나 상순의 말은 판판 달랐다. “잘했소. 내 부대에 간 다음 앓으면 어쩌겠소?” 흥수는 한마디 했다. “아줌마, 우리 토비 치는 새에 아내들끼리 서로 들다보면서 살라니께요.” 명옥은 한숨을 호- 내쉬었다. “남편들이 다 부대에 가면 새해 농사는 누가 짓소?” 태수는 일성 촌에서 이사해 왔는데 동생 둘이나 있었다. 그는 웃으면서 “우린 정호하구 정수까지 셋이나 몽땅 부대로 가기로 하였소. 그래도 우리 엄마는 잘했다고 하오.”라고 대수롭잖게 말했다. 성수는 가슴을 치며 나섰다.  “우리도 학수 형님까지 참군하기로 하였소. 아주머니 근심하지 마오. 우리 삼도만 토비를 새 해 농사짓기 전에 깡그리 소멸해야겠소.” 명옥은 나그네들을 보고 “이제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네 조선 고향에서 돌아오면 고향에 돌아가 버리면 다지. 여기서 딱 토비들과 싸울 필요 있소?” 하고 말하며 못 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이때 병완과 기준이 송국과 함께 헐금씨금 돌아왔다. “할아버지, 아버지!” 상순은 마주 달려 나갔다. “그래 조선 고향 형편은 어떻습둥?” 허나 병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병완은 집안에 태수와 성수가 있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먼저 창준이네 집으로 들어갔다. 태수와 성수는 상순과 함께 기준을 따라 웃방에 들어갔다. 상순은 아버지가 자리를 정하고 앉자마자 물었다. “아버지, 고향 형편은 어떻습디까?” 기준은 명옥이 들여온 냉수그릇을 받아 꿀꺽꿀꺽 마시더니 무거운 입을 뗐다. “고향은 말이 아니더라. 옛날 일본 놈들이 산이고 들이고 지어 터 밭에까지 나무를 심으라고 하잖았니? 20여년 지나서 지금 온통 무인지경 수림이 돼버렸더라. 영월동이고 운주동이고 마을자리를 찾아 볼 수 없을 지경이더라. 원시림 같은 게 범이 새끼를 칠 지경으로 무시무시하더라.” “마을이 없어졌단 말니까?” 성수의 물음에 기준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어데 밭을 일굴 데도 없더라.” 그 말에 모두들 마음이 무거워져 한숨만 푸푸 내쉬었다. “우리 고향 가마골이랑 저 한봉이네 고향 신흥동이랑 나무 밭이 됐습디까?” 태수의 물음에 기준은 머리를 끄덕였다. “농사를 짓고 살만한 땅이 없더라.” 그 말에 상순은 “그럼 여기 와서 황무지를 개간해 밭을 일군 것처럼 나무를 찍어내고 밭을 일구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기준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너도 알잖니? 우리 고향이라야 어디 밭이라는 게 밭 같으냐? 이전에 우리 집에서는 소잔등 같은 너럭바위가 더덕더덕 누워 있는 산비탈에 바위 돌 틈 사이에 재를 오줌에 적시어 쑤셔 넣고 나무꼬챙이로 구멍을 뚫고 메밀 알을 쑤셔 넣고 심어 겨우 먹고 살잖았니? 글쎄 지금은 조선에서 일본 놈들을 몽땅 몰아냈고 친일 주구들과 지주들은 몽땅 남쪽으로 달아났더라. 그리고 북에는 소련 홍군이 차지하구 이남에는 미군이 들어와서 차지했더라. 뭐 남조선과 북조선 사이에 3.8선이라는 게 생겨서 언제든지 서로 마음대로 건너다니지 못할 것 같다더라." 그 말에 용천과 흥수는 놀라 입을 딱 벌렸다. "한 개 나라에 두 개 나라가 섰으니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아무리 봐도 여기보다 못한 거 같더라. 우리 여기 와서 20여년이나 황무지를 어떻게 일군 밭들이냐? 저 밭들을 아까워 어떻게 가겠니?” 상순은 듣다가 “아버지, 할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하고 물었다. “응.” 아버지 말에 상순은 고개를 기우뚱하면서 궁리하다가 머리를 들었다. “아버지, 딱 고향이 아니라도 조선 아무 데나 가서 살면 안 되겠습니까?” 기준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말이 쉽지. 세상 인심이 어디 그렇니? 누가 자기 밭을 나눠주면서 한 마을에서 함께 살자고 우릴 넙적 받아주자니? 그러잖아도 우린 경성하구 무삼이네 마을에 가서 어떨가고 이사해 오면 받겠는가고 두루 물어 보았다. 허나 무삼부터 자기 집 밭을 나눠 붙이자고 할가봐 선뜻이 대답하지 않더라. 온 마을 사람들은 ‘별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뺄' 궁리를 한다는 지. 별 소리를 다 하더라.” 그 말에 성수랑 태수랑 어이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 수 없구먼. 삼도만 토비나 숙청해버리고 간도에 눌러 앉아 사는 수밖에.” 상순도 일어나면서 동을 달았다. “당분간 그 길 밖에 없소. 아버지, 난 토비를 숙청하자고 참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자 기준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얘, 네가 가면 우리 집 농사는 어쩌느냐? 마을은 또 누가 지키겠느냐? 좀 자기 집 살림살이도 돌보면서 일해라.” 성수는 태수와 함께 촌공소로 떠나갔다. 병완은 기준한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을은 우리가 민병들을 데리고 지키면 된다. 마을을 장구하게 지키자면 상순이랑 민주연군에 참군해 토비들의 소굴을 몽땅 짓부셔 버려야 한다. 마을에 앉아서 방비만 해서야 되니? 마을 사람들은 항상 토비들의 습격을 받을 위험이 있어. 어떻게 마음 놓고 사니?” 아버지 말을 듣고서도 기준은 납득되지 않았다. 정지에서 명옥은 약을 짜서 숙자에게 먹이면서 도리머리 질 했다. 이때 금옥이 돌도 안 된 맏아들 칠군을 업고 찾아왔다. 그녀는 상순을 보고 충고했다.“오빠, 참군하지 마오. 오빠 없이 이 집 살림은 어쩌오? 잘 생각해 보오.” 병완은 금옥을 흘겨보면서 마구 우격다짐했다. “계집애 뭘 안다고 끼어들어? 삼도만 토비를 놔두고 마음 놓고 살 수 있니? 이젠 조선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하게 됐다. 이부어미 자식처럼 소외당하면서 어떻게 서러워 사니? 우린 오직 여기서 토비를 숙청하고 국민당반동파들이 동만에 쳐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편안히 살 수 있어!” 명옥은 숙자를 차가운 구들에 눕혀놓으면 감기에 더 걸릴 가봐 꼭 끌어안고 배우에 올려놓았다 무릎에 올려놓았다 하다가 나중에 안고 부엌에 내려가 저녁밥을 지었다. 병완은 상순을 데리고 촌공소로 갔다. 촌공소에서 이계삼과 허영주가 용천 대장과 함께 앉아서 삼도만 토비 말을 하다가 일어나 병완이네를 마중했다. 병완은 용천을 보고 놀라하며 두 손을 덥썩 잡았다. “자네 살아 있구만. 우린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오.” 그는 용천에게서 여기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듣고 나서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시름 놓았소. 진달래 사돈이랑 성칠이랑 얼마나 근심했다고 그러오?” 이계삼은 병완의 손을 잡으면서 “조선 고향 형편은 어떻습디까?” 라고 물었다. 병완은 자리를 정하고 앉자 조선 고향에 갔다가 황무지 수림으로 변해버린 고향과 각박해진 인심 그리고 소외감으로 하여 몹시 섭섭하더란 말을 했다. 허나 그의 말 속에는 소외감을 동력으로 함흥 촌을 두 번째 고향으로 건설하려는 무궁무진한 힘이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 용천은 병완에게 “성칠 대장과 유격대는 모두 어데로 갔어요?”하고 물었다. 병완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습관처럼 곰방대를 꺼내 담배를 재워 넣고 성냥을 켜 대더니 뿍뿍 빨고 나서 대답했다. “성칠이 네는 곧추 명천 쪽으로 나갔소. 그 애는 수림으로 돼버린 고향 형편을 돌아보더니 우리를 보고 함흥 촌에 돌아가서 살라고 했소. 지금 쯤엔 아마 김 장군의 명령에 따라 함흥을 거쳐 평양 쪽으로 나갔을 게요. 군사비밀이라면서 더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후에 김 장군의 명령에 따라 다시 함흥이나 청진 쪽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고 했소. 성칠은 부대를 따라 어디에로 갈지 모른다고 하면서 그때 다시 조선으로 나가는 일을 보자고 했소. 이젠 내 맏아들이 큰 벼슬을 하면 그 덕분에 조선에 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소. 어느 마을에선들 자기 밭을 나눠 주자면 이사 호를 받자고 하겠소?” “진달래는 못 봤어요?” 그것이 용천의 최대관심사였다. “보지 못했소.” “고향 부근에서 한철주 놈 일가는 보지 못했어요?” 병완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한길수네 여편네 월선이고 한철주고 그림자도 보지 못했소. 그 역은 놈이 고향에 눌러 있겠소? 남으로 도망쳤을 수도 있지. 영월동은 사람이 살았던 마을 같지 않았소. 집들이 흔적도 보이지 않고 나무가 범이 새끼를 칠 지경으로 꽉 들어섰더군. 다만 우리 집 자리와 토성 안의 한길수네 집 자리가 조금 알리던데 몽땅 불에 타 잿더미로 됐더구먼. 토성도 다 무너져 물앉고. 아마 일본 놈들과 한철주네 도망치면서 불을 지른 거 같소. 물레방아랑 쇠로 만든 축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소. 그것도 녹이 다 쓸어서 싹아 떨어질 지경이었소.” 덕성은 용천을 보고 무릎을 치면서까지 한탄했다. “우리 집 자리는 가둑나무가 꽉 들어서서 살풍경이지 않노. 이젠 여기 정이 들어 그런지 여기 보다 못한 거 같아. 경주는 어떤지 몰라. 경주를 가든지 어디 가든지 차차 볼지라. 그 놈의 3.8선이 큰 코 다칠라. 이제 하마 고향 경주에도 마음대로 다니지 못 할라.” 병완은 이마에 퍼런 핏줄을 일구며 격분해 했다. “그 놈의 3.8선은 미군과 소련군이 만든 게라오. 그 사람들은 일본 놈들을 몰아 낸 공으로 염치도 없이 우리 조선을 점령지로 나눠 가졌다오.” 모두들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병완은 한숨을 돌리고 나서 말했다. “성칠의 말에 의하면, 북조선의 지주들과 부자들은 몽땅 남으로 달아났다고 했소. 한철주나 월선도 일본 놈들을 따라 남으로 달아난 거 같소. 월선의 친아들 한선주라는 애가 형 한철주하구 함께 일본에 유학 갔다가 서울에 돌아와 뭐 한다더니 그리로 갔을 수도 있다오. 영월동 토성안집과 우리 집 자리도 몽땅 불타 버렸더군.” 용천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한철주도 가능하게 서울에 달아났을 수도 있어요.” 뒤이어 그는 병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물었다. “은녀는 어디로 갔어요? 고향에 남았어요?”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우리도 발을 붙이지 못했는데 은녀라고 살 데 있겠소? 은녀는 경수를 업고 부모 산소에 제를 올리고는 성칠을 따라 부대를 따라 갔소. 부대에서는 어느 지방 여성간부로 임명하겠는지 아오?” 병완은 한숨을 내쉬면서 용천을 건너다보더니 어두운 그림자가 스치어 지나갔다. “아니, 진달래하구 경호 사돈이 장백산 아버지 산소에 간다더니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소?” 용천은 도리머리 질 하더니 벌떡 일어났다. “장백산으로 간지 보름이나 되는데 왜 돌아오지 않아요? 무슨 일이 꼭 일어난 거 같아요.” 그는 옆구리의 권총집을 바로 잡더니 “안 되겠어요. 장백산에 가 봐야겠어요. 애를 업고 고생하면 우쩔라고? ”라고 말하더니 촌공소에서 나갔다. 병완과 상순을 비롯한 촌공소 안의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여보게 밥이나 먹고 떠나게나.” 병완의 말에 용천은 손사래를 쳤다. “미안해요. 토비숙청을 돕고 가려고 했는데 먼저 가야겠어요. 모두 토비를 숙청하고 여기서 두 번째 고향을 잘 꾸려 행복하게 사세요. 이제 진달래를 찾으면 후에 찾아와 뵙겠어요.” 병완은 바깥에 나와 용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제야 피뜩 생각나는데 진수해에 있는 진달래네 큰아버지 최구장네 자손들이 살고 있네. 혹시 진달래 오누이가 그 집에 들지 않았는가 들러 보오.” “예. 알았어요. 최구장 집에 들려 보지요.” 용천은 마을을 떠나기 전에 작은아버지 덕성의 집에 들었다. 칠백의 아버지는 온 얼굴의 주름살이 다 퍼지게 반겨 맞았다. “큰조카 왔구나. 어서 올라 와.” 용천은 우방에 올라가 앉자마자 울먹이며 말했다.       “작은아버지, 조선 고향에 나가 봐야 하겠어요. 고향도 광복을 맞은 지 몇 달이나 되는데 집도 돌아 봐야 하겠어요. 그간 20여년이나 일본 놈들이 우리 집을 차지해 분주소를 세우고 들어 있었잖아요. 일본 놈들이 도망쳤으니까 자칫하면 임자 없는 집으로 처리될 거 아닌가요?” “응, 그래.” 덕성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뒤이어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칠백이 보고 고향 경주로 가자고 하니 부대에서 마음대로 떨어지지 못한다고 하데이. 명천 영월동이랑 어떤 형편인가 보고 기별하겠다고 했어. 병완 영감이 고향에 나가 봤다잖아. 헌데 거기서 살 형편도 아니랑께.” 용천은 작은아버지 손을 잡고 간곡히 말했다. “작은아버지, 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 가자요. 여긴 살기 틀렸어요. 토비들이 항상 습격할 위험이 있어요. 장차 토비들을 소멸한다고 해도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겠는지 누가 알아요? 명천에서도 살기 힘든데요. 아예 고향 경주로 돌아 가자요. 고향이 좀 좋아 그래요? 이제 남북이 갈라졌으니 길이 완전히 막히면 고향에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가지 못할 거예요. 여기 쌀을 다 팔아 동전 몇 잎을 달랑 가지고라도 고향으로 훌 돌아 가자요.” 덕성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글쎄 돌아가면 좋겠는데 말이야. 칠백이 가면서 천천히 보자고 했어. 그 애를 데리고 가야지. 내 훌 가버리면 그 애 어디에 가서 나를 찾겠나?” 용천은 덕성의 두 팔을 붙잡고 간청했다. “작은아버지, 아예 내캉 가서 칠백을 찾아 데리고 고향으로 가자요.” 그러나 덕성은 도리머리 질 했다. “그 넓은 조선에 가서 그 애를 어떻게 찾는다고 그래?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그 애가 찾아오기 쉽제이.” 용천은 자신만만해 했다. “부대 사람은 찾기는 쉬워요. 부대마다 찾아가면 인차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덕성은 한사코 도리머리 질 했다. “안 돼. 글케 서로 찾다나면 아무도 못 찾아.” 용천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작은아버지 손을 꼭 잡고 신신당부했다. “작은아버지, 조카 먼저 고향으로 돌아가겠어요. 고향에 작은 아버지 일가 살 자리를 마련해 놓겠어요. 이제 칠백을 만나면 꼭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세요.” 용천은 일어나 덕성에게 작별의 큰절을 올리었다. “작은아버지, 다시 만나는 날까지 무사히, 편안히 계셔요. 꼭 국민당 토비 놈들의 습격을 주의하세요.” 덕성은 엉거주춤 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바래였다. 그는 용천의 손을 잡고 “이렇게 갈라지면 언제 또 만나겠느냐?”라고 하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용천도 눈물을 흘리며 작은아버지를 끌어안고 흑흑 흐느끼며 어깨를 들먹이었다. “어서 가 보아라. 난도 칠백이 오면 데리고 고향에 가련다. 너 작은어머니도 없지. 뭘 보고 여기 있어.” 용천은 바깥에서 자기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병완을 보자 또 석별의 정을 참지 못해 눈물을 줄줄 흘리었다. “성칠의 아버지, 작은아버지, 무사히 계셔요.” 작별인사를 마치자 그는 급급히 진수해 쪽으로 줄달음쳐 갔다. 병완과 덕성은 용천이 버드나무숲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동구 밖에 우두커니 서서 바래였다. 덕성은 버드나무숲속으로 사라지는 용천 대장의 뒤 잔등을 바라보면서 불쌍해 도리머리 질 했다. 이튿날 오전, 병완은 이계삼과 허영주와 토론하고 군중대회를 열었다. 그는 대회에서 조선 고향에 갔다 온 형편을 말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우렁차게 말했다. “우리는 유서 깊은 이 땅에서 중국 공산당의 영도아래 두 번째 고향을 건설하고 새 중국의 혜택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삽시다.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 아들딸들을 민주연군에 참군시켜야 합니다.  장개석 국민당 토비 놈들을 숙청하고 인민민주정권을 보위해야 합니다. 우리 집과 토지, 행복을 보위합시다. 오직 이 길만이 우리가 새 중국에서 행복하게 살아 나갈 수 있는 길입니다…” 옛날 같으면 병완의 말이라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들었다. 하건만 이번 대회에서만은 모두 김빠진 공처럼 한숨을 푸푸 내쉴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고향의 기쁜 소식을 기다렸건만 기대와는 달리 전운이 감도는 중국에 남아 살 생각을 하니 속이 탔고 뒤 근심이 컸던 것이다.        그들은 머리를 숙이고 어깨가 축 처진 채 침울한 표정으로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101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4) 댓글:  조회:1853  추천:0  2017-03-09
                                                                             제20장 토비 숙청                                        1. 갈림길 함흥 촌 동산에서 붉은 태양이 불끈 솟아올랐다. 이른 아침의 태양은 핏빛으로 빛나며 광복을 갓 맞은 산과 들을 비추었다. 지주를 청산하고 토지를 분배 받은 중조 인민들의 산과 들에는 황금물결이 출렁인다. 유서 깊은 이 땅에서 일본 놈들을 몰아낸 천백만 중국 인민들과 조선의 인민들은 새 삶을 찾은 기쁨에 흥겨워 가을걷이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병완은 토성 안 촌공소에서 한창 성칠과 앞으로 일을 의논했다. “이젠 조선도 해방됐는데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어떠냐? 우리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더냐?” 성칠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도 짓고 사냥도 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허나 고향이라고 소홀히 갈 게 아닙니다. 내 먼저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조선에 나가 정황을 살펴보겠습니다. 기회가 있으면 고향에 가 본 후 고향으로 가는 일을 결정하는 게 어떻습니까?”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하긴 여기 밭도 어디 쉽게 얻었느냐? 조선에서 들어와 어떻게 일군 황무지 밭이냐? 허나 조부모와 부모 산소가 계시는 고향을 돌아가지 않고 여기서 배불리 먹고 산들 속에 걸릴 게 아니야?” 아버지 말씀에 성칠은 한참 궁리하더니 천천히 입을 떼였다. “우리는 김일성 장군의 명령에 따라 즉시 조선에 나가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허나 토비가 욱실거리는 이 곳에 아버지와 동생들, 유격대 가속들을 두고 간다는 것도 말은 아닙니다. 삼도만이나 왕청 일대 토비를 몽땅 숙청해 버리고 나갔으면 좋겠지만 조선의 형세는 우리가 시급히 나갈 것을 수요합니다.” 성질이 급한 병완은 곰방대 담뱃재를 재떨이에 툭툭 털면서 바투 들이댔다. “네가 나가면 언제 돌아 올 새 있겠니?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겠느냐?” 일단 마음을 정하면 벽이라도 차고 나가는 아버지 성격을 아는지라 성칠도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럼 아버지하구 기준 동생만 먼저 고향에 가서 정황을 알아보면 어떻습니까? 창준이랑 상순이랑 여기 있으면서 가을을 하게 합시다. 더구나 마을에서 기둥같이 여기는 아버지께서 가시는데다가 상순까지 가면 토비들을 누가 막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이 왁 쓸어 조선에 나가면 이 함흥 촌은 잃어버릴 거 같습니다. 이 마을을 아버지와 유격대 가속들이 어떻게 일떠세운 마을입니까?” 병완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자구나. 까딱 소문을 내지 않고 고향을 돌아보고 올게.” 이때 김칠백 중대장과 그의 아버지 덕성 그리고 철규 분대장과 그의 아버지 덕팔, 은녀, 룡철과 룡구와 그들의 아버지 송국, 막동이와 갓난이의 아버지 백룡이랑 줄줄이 촌공소에 찾아왔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토비들이 욱실거리는 간도에서 어떻게 살겠는가?” “아예 고향으로 돌아가자.” 병완은 조용히 떠나가려고 하다가 속 시원히 말했다. “고향이라고 소홀히 갈 게 아니요. 우리 몇이 조선에 나가 고향 형편을 돌아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을 결정하기요. 우리 어떻게 일떠세운 함흥 촌이오? 어떻게 일군 밭이오? 피땀으로 바꿔온 이 마을과 밭을 훌 내주고 갈수 있소?” 그 말에 여럿은 머리를 끄덕였다. 병완은 여러분들을 둘러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여러분들은 소식을 기다리면서 가을이나 잘 하오. 상순이가 민병들을 데리고 마을을 지킬 테니까 토비를 너무 근심들 하지 마오.” 그러나 덕팔이 도리머리 질 했다. “저 칠백이랑 성칠이랑 유격대를 데리고 가면 그 무리토비들을 어떻게 상순이랑 민병 서른이 당하겠소? 아예 일본 놈들이 망했는데 조선 고향에 돌아가는 게 나을 거 같소. 여기 중국은 가만 보면 싸움이 끝이 날 거 같지 않소.” 그때 칠백 중대장이 말했다. “아버지, 지금 동만에는 길동 군구 민주연군 18퇀과 19퇀에 근 2천여명이나 되는 병력이 있습구마. 무기도 기관총에 탱크까지 있습니다. 그까짓 산골짜기 국민당 토비 몇 백 명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놈들이 감히 이 마을로 내려 올 새 있습니까? 근심하지 마시요.” 송국이랑 백룡이랑 머리를 끄덕였다. 병완은 칼로 썩뚝 자르듯이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기오. 내 기준과 송국을 데리고 먼저 고향에 돌아가 돌아보구 올게. 형편이 좋으면 모두 고향에 돌아가기요.” 송국은 동의해나섰다. “그게 좋겠소. 덧 대구 나갔다가 거기서 살지도 못하고 여기서도 못 살게 되면 어쩌오?” 덕팔은 칠백과 성칠을 번갈아 보았다. “용천이 살아 있었으면 고향 경주로 가겠는데 종무소식이니 귀향길이 멀어졌어.” 은녀는 경수를 안고 젖을 먹이면서 성칠을 보고 물었다. “오빠, 나와 진달래 언니는 애를 업고 유격대를 따라 가는 게 옳잖소?” 성칠은 은녀를 보고 머리를 끄덕였다. “애를 업고 싸우기 불편하겠지만 너희들은 부대를 따라 조선으로 가자.” 이때 진달래도 경주를 안고 경호 오빠와 함께 촌공소에 들어섰다. “나도 부대를 따라 조선에 나간다. 은녀도 나와 함께 가자.” 은녀는 질달래 중대장을 보면서 인사했다. “언니,고맙소.” 그때 경호는 진달래를 보고 물었다. “네가 언제 부대를 따라 가겠나? 내캉 아버지 산소를 가봐야지 않나?”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요. 오빠와 함께 조선에 나가기 전에 아버님 산소를 찾아가 인사하고 가야죠.” 모두들 병완의 말대로 먼저 가을걷이를 하면서 기다리기로 하고 돌아갔다. 성칠은 조선으로 나가기 전에 아버지와 동생들과 함께 천지꽃산 동쪽 산비탈에 묻힌 어머니 산소를 찾아 올라갔다. 성칠은 마른 풀이 뒤덮인 어머니 산소 앞으로 가자 손수 기준의 손에서 낫을 받아 쥐여 벌초했다. 그 사이 제수들은 제사상을 차려 놓았다. 병완과 후노친은 성희의 산소에 제주를 붓고 큰절을 올리었다. 병완은 두 손을 맞잡고 정색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여보, 광복이 나면 당신을 데리고 조선 고향으로 가려고 하였는데 당신은 여기 누워 있고 나 홀로 먼저 고향에 돌아가게 됐소. 그간 잘 기다리오. 이제 고향에 돌아가게 되면 우리 당신을 꼭 고향에 데리고 가겠소.” 아버지에 뒤이어 성칠은 어머니 산소에 제주를 붓고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리며 서럽게 울었다. “어머님, 조선과 중국이 광복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기다리던 광복입니까? 일본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면 아버님과 어머님을 고향에 모셔가려고 이날 이때까지 유격대를 영솔해 싸우다나니. 흑흑흑,  그간 어머님께 얼마나 불효를 저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 부자간이 조선 고향에 나가 형편을 살펴보고 돌아와 어머님을 조선 고향에 모시겠습니다. 어머님께서 그렇게 돌아가 고 싶어하던  충남 서현에 모시겠습니다.” 창준과 기준, 곱순 부부도 차례로 제주를 올리고 큰 절을 올리었다. 상순을 비롯한 손자들은 모두 병완의 분부대로 가을하러 나가고 오지 못하였었다. 병완은 노친 산 앞에서 술을 마시면서 성칠에게 말했다. “얘야, 이젠 그만큼 불효를 저지르고 후처를 해서 이 애비한테 손자를 안겨주면 안되니?” 성칠은 머리를 숙였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맏아들로서 제 구실을 못해 참말 미안합니다. 하옥이 3년제도 지내지 못했는데 내 어찌?” “야, 결혼은 후에 하더라도 혼처만은 미리 구해 놓아라.” 병완은 뒤 말을 이었다. “이전에 네가 은녀를 좋아하지 않았니? 지금 은녀 남편이 희생됐으니 불쌍한 은녀를 맏며느리로 삼으면 어떠냐?” 성칠은 천천히 대답했다. “후처 문제는 제가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황차 그때 폭파된 갱도어귀에서 용천 대장의 시체를 찾아보지도 못했습니다. 살아 있으면 진작 찾아왔겠는데 말입니다.” 그 말에 모두들 성칠은 은녀 보다 진달래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모두들 제사상을 거두고 내려 갈 때었다. 진달래가 경주를 업고 경호와 함께 산으로 올라왔다. 그녀는 병완과 여러 사돈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곧추 성칠 앞으로 다가갔다. “오빠, 조용히 보자요.” 성칠은 주춤 멈춰 섰다. 모두들 자리를 피해주었다. 경호는 주위를 경계하면서 천지꽃산 마루 쪽으로 스적스적 올라갔다. 진달래 중대장은 경주를 안고 성칠을 보면서 말했다. “오빠, 난 경호오빠와 함께 장백산 밀림에 가서 아버지를 찾아보고 조선으로 나가겠어요. 헌데 오빠랑 부대가 어디로 가겠는지 찾지 못 할 가 봐 근심돼요.” 성칠은 진달래가 안은 경주의 볼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이 놈, 귀하긴 귀해.” “오빠도 아직 이런 떡돌 같은 아들애를 볼 수 있는 기회 있어요. 허나 오빠는 번마다 조강지처와 형제의 의리를 앞세우면서 기회를 포기하군 했어요. 오빠나 저나 다 마음에 없는 일을 너무 많이 했어요. 오히려 그게 양심에 걸려요. 이젠 오빠와 전 서로 마음을 속이지 말고 진실하게 살 때가 된 거 같아요. 이젠 우리도 불혹의 나이를 넘어 좋은 세상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어요. 이제 더 거짓으로 살다간 땅속에 묻혀서도 눈을 감지 못하게 후회막급일 거예요.” 진달래는 정색해 성칠을 빤히 바라보았다. 허나 성칠은 못 들은 척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백두산에 가면 언제 오겠니? 부대는 오늘로 떠나갈 예산이다.” “어디로 가나요?” “아마 청진 아니면 함흥에 나갈 거 같다. 평양 쪽에는 소련에서 건너간 빨찌산 부대가 김일성 장군을 따라 곧추 들어갈 거 같다.” 진달래는 머리를 들어 먼 남쪽을 바라보았다. “애를 업고 이젠 전쟁터에 나가기 힘들 거 같아요.” 성칠은 머리를 끄덕였다. 진달래는 열기가 넘치는 열변을 계속 토했다. “허나 난 오빠가 어디로 가든지 세상 끝까지 꼭 찾아 갈 거예요. 오빠 어디로 가든지 오빠 옆에는 제가 있을 거예요.” “경호는 어디로 갈 생각이더냐?” 진달래는 구김 없이 대답했다. “고향 개성으로 나가겠다고 하더군요.” 성칠은 진달래에게 말했다. “그럼 너도 개성으로 가라. 거기서 용천대장이 돌아가기를 기다려라.” “그런 말 말아요.” 진달래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니 외면하면서 진정을 토로했다. “경주 아빠는 분명 희생됐어요. 살았으면 진작 왔을 거예요. 경주를 보고 싶어서라도.” 진달래는 묵묵히 서있는 성칠에게 경주를 안겨주었다. “이번에 오빠와 함께 장백산에 가면 밀림 밀영자리에 가서 경주 아빠가 포위를 돌파하려던 갱도어귀를 파 보면서라도 경주 아빠의 시체를 찾아야 하겠어요. 모든 것이 확인되면 오빠도 더는 다른 생각을 하지 말아요.” 성칠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무튼 잘 갔다가 은녀를 데리고 조선으로 나오너라.” “은녀?” 진달래는 이름 못할 눈빛이 반짝이였다. “그래. 함흥 촌에 남게 되는 은녀를 데리고 나오너라. 그 애는 얼마나 불쌍한 애냐. 난 그 애를 친녀동생으로 생각한다.” “알았어요. 허나 오빠가 갈 때 데리고 가요. 우린 모두 장백산에 가면 언제 갈지 모르잖아요?” “그럼, 그렇게 하자. 네가 오해하지 않으면 된다. 잘 갔다 오너라.” 성칠은 경주를 진달래에게 안겨주며 진달래를 꼭 껴안아 주었다. “오빠에게 오늘에야 말하지만 용천 대장은 우리와 한길로 갈 분이 아니죠.” “건 무슨 말이냐?” 성칠은 진달래를 품속에서 놔주었다. 진달래는 마른 옥수수 이파리가 파르르 가을바람에 떠는 옥수수 밭을 쓸어보더니 말했다. “오빠, 날 욕하지 말아요. 또 달리 생각 말아요.” 성칠은 진달래를 정색해 바라보았다. “용천 대장은 공산당에 들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진달래는 성칠에게 머리를 돌리더니 말했다. “그는 우리가 지주를 청산하고 지주를 총살하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북만으로 간 거예요. 말로는 지역감정이 있어서 남대치인 자기를 함경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백산 항일유격대 보다 경상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북만으로 간다고 했지만요. 기실 유격대의 공산당조직이 싫어 떠났던 거예요. 결혼한 후에야 저한테 진속을 털어놨던 거예요. 이전에 늘 나한테 광복이 돼도 나와 애를 데리고 고향 경주에 갈 말을 했어요.” 성칠은 진달래를 욕했다. “네가 무슨 험한 말을 하는 거야? 용천 대장은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는 나의 훌륭한 스승이자 전우이고 훌륭한 유격대 대장이다!” 성칠은 꿇어 앉아 주먹으로 땅바닥을 꽝꽝 쳤다. “용천 대장은 절대 그런 사람일 수 없다!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진달래는 성칠을 따라 땅바닥에 물앉았다. “그의 부친은 경주의 대지주예요. 지주의 아들이면 그런 사상과 입장을 가질 수 있잖아요? 제 말을 믿으세요.” “듣기도 싫다!” 성칠의 고함소리에 어머니와 싸우는가 하여 경주가 “엉엉” 울었다. 진달래도 성칠도 모두 입을 다물었다. 선들선들한 가을바람에 애기를 업은 옥수수들이 몸부림치며 설레고 낙엽이 우수수 지었다. 2. 닭을 잡아 원숭이를 훈계      쪽빛가을 하늘이 까맣게 물들어 가더니 캄캄한 어둠 밤이 대지에 성큼 다가왔다. 함흥 촌 동산에 가는 눈썹달이 떠서 가을바람에 스쳐 바르르 떨고 있었다.       유격대는 밤중에 대여섯 패로 나뉘어 함흥 촌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떠나가기 시작했다. 병완은 기준과 송국을 데리고 유격대 대오 속에 숨어 조선으로 떠나려고 어둠을 밟으면서 조용히 토성 안 마당에 나섰다. 성칠은 토성 안에서 떠나가기 전에 이계삼과 허영주 그리고 창준과 상순을 보고 부탁했다. “토비들이 욱실거리는데 마을 사람들을 잘 보호하오.” “예, 근심하지 마십시오. 우리 든든한 민주연군이 이미 진수해에 들어와 진주해 있으니까.” 이계삼은 상순을 가리키면서 뒷말을 이었다. “저 패기 있고 용감한 김상순 련장이 있으니까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구위 서기로 올라가니까 병완 동지를 당 지부 서기로 선거했습니다. 병완 서기가 조선에 갔다가 돌아오면 방어공사도 구축하고 민병들을 조직해 군사훈련도 해야겠습니다.” 병완은 그저 머리만 끄덕이었다. 상순은 성칠 대장을 보고 대담히 손을 내밀었다.  “큰아버지, 미제 무기로 무장한 토비들을 막아 싸우자면 기관총 몇 정은 있어야 됩니다. 기관총 세정과 탄알을 푼푼히 남겨두고 가십시오.” 성칠 대장은 흔쾌히 대답하고 동욱 중대장을 불러 기관총과 탄알을 넘겨주게 했다. 상순은 성칠 큰아버지와 이계삼 서기 앞에서 가슴을 쭉 뻗치고 우렁차게 말했다. “김 대장과 이 서기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우리 민병들이 살아 있는 한 토비 놈들이 우리 마을을 끄떡 건드리지 못하게 지킬 것입니다.” "허허허." 이계삼 서기는 상순을 바라보며 통쾌하게 웃었다. 성칠 대장은 창준과 상순의 손을 굳게 잡고 “이서기의 영도아래 마을을 잘 지켜라. 자기 마을만 지키지 말고 이 땅덩어리에서 국민당 반동파와 토비들을 몽땅 소멸해야 마을을 철저히 지킬 수 있다. 민주연군에 참군하여라."라고 부탁했다. 상순은 인차 대답하지 못하고 “내 잘 생각해 보고 참군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성칠은 이계삼 서기와 허영주 구장 등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조선을 바라고 떠났다. 덕성은 칠백의 팔을 붙잡고 “가을걷이를 하고는 조선에 나갈 터이니 영월동에서 우리를 찾아라. 혹시 찾지 못하면 경주거나 함흥 촌에서 찾아라.”라고 했다. “아버지, 토비들이 싸다니는데 몸 조심하면서 편안히 계십소.” 덕성은 송국과 철규를 바라보면서 “저렇게 부자간이 다 가니 얼마나 좋겠느냐?”라고 하며 부러워했다. 북만에서 온 유격대원들 가운데는 경상도나 강원도나 전라도 아니면 충청도가 고향인 대원들이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부대를 따라 조선에 나가 일본 놈들을 몰아낸 후에 정황을 보아 북만에 있는 부모형제들을 데리고 고향에 돌아가려고 했다. 은녀는 원래 속으로 진달래가 성칠을 따라 조선에 나가면 나가지 않고 고향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함흥 촌에 잠시 남아 있다가 다시 마을 사람들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는 진달래가 경호오빠와 함께 진수해의 최구장네 집에 들었다가 장백산 아버지 산소를 돌아본 후 조선에 직접 나가든지 함흥 촌에 남아 용천 대장을 기다릴 소리도 한다는 말을 듣고 조선으로 가기로 했던 것이다. 고향에는 부모와 상호, 은희의 산소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은녀는 종군위안부 옥설과 만금을 데리고 동욱 중대장이 영솔한 중대 대원들 속에 끼어 떠나갔다. 덕팔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은녀를 보고 부탁했다. “조선에 갔다가 형편이 좋지 않으면 경수를 업고 다시 돌아오라.” 은녀는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인삼 중대장은 토성 안을 둘러보더니 마을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후 성칠 중대장과 함께 길을 떠났다. 은녀는 함흥 촌을 떠나 한참 걷다가 옥설과 만금이가 인 불룩한 보따리를 보고 물었다. “건 뭐요?” 옥설은 주위를 흘끔거리더니 은녀에게 나직이 귀속 말을 했다. “부끄럽지만요. 이건 우리가 간도에 와서 피땀을 흘리면서 번 돈이죠.” 옆에서 만금은 더 말하지 말라고 옥설의 옆구리를 톡톡 쳤다. 은녀는 주춤 멈춰서더니 양손으로 옥설과 만금의 손목을 잡고 대오 속에서 나와 뒤떨어지었다. 그녀는 유격대 대오 맨 뒤에 떨어져 나직이 말했다. “원세개 대가리 돈이지?” “그래요.” “그 돈은 몽땅 폐지로 됐소. 어디다 쓴다고 그 폐지를 가지고 조선에 나가오?” “예? 그럼 우리를 근 20여년이나 릉욕할대로 한 일본 놈들이 준 돈이 몽땅 폐지로 됐단 말인가요?” “그렇소. 조선에 가져가면 어디다 쓴다고 그러오?” 만금은 맥이 풀려 풍덩 물앉아버렸다. 허나 옥설은 한 가닥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난 고향 김해에 나가겠는데. 혹시 그 돈 쓰겠는지 알아?” 드디여 그녀는  만금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어떻게 피눈물로 바꾼 돈인데 여기다 버릴 순 없소. 명천에 가지고 가 봐야지.”       만금은 겨우 일어나 은녀와 옥설을 따라 비실비실 걸었다… 마을 사람들은 유격대가 떠나가자 숨을 죽이고 살았다.        상순은 이계삼 서기를 찾아 갔다. 이계삼은 진수해 구위 서기를 맡았지만 병완이가 조선에 나간 형편에서 아직 함흥 촌촌공소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상순을 자리에 권하면서 물었다. “김 련장, 무슨 일이요?” 상순은 자리에 앉자마자 단독직입으로 말했다. “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마을 사람들의 투지를 불러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이러다간 인심이 황황해지고 말 것 같습니다.” 이계삼은 상순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소. 그래 김 련장은 어떻게 할 예산이오?” 상순은 “손호표를 청산하고 처단합시다.”라고 제안했다. “손 지주는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붙잡혔던가?” “예. 지금 우리 집 김치 움에 가둬 뒀습니다.” “허허허, 그 놈이 배고프면 김 련장네 김치를 다 훔쳐 먹지 않겠소? 그 놈을 누가 지키오?” 상순은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내 매부 최학섭이 지킵니다. 사실 아직 김치를 넣지 않아 괜찮습니다. 그 놈을 처단해 지주들의 처자들이 다시는 토비들과 휩쓸리지 못하게 훈계해야 하겠습니다.” “좋소. 닭을 잡아 원숭이들을 훈계해야지.” 그 날로 태평강 가에서 공개재판대회가 열렸다. 상순은 민병련 1패 패장 이태수와 2패 패장 최병수를 시켜 민병들을 데리고 가서 조덕림, 지학사, 손호표, 제지주 등 지주들의 처자들을 몽땅 공개심판장에 끌고 왔다. 장학산과 그의 처자들만은 공개재판장에 와서 회의에 참가하라고 일렀다. 장학산과 여편네 충씨 그리고 딸 장미련은 굿이나 보려고 공개심판장에 내려 왔다. 상순은 3패 패장 성수를 시켜 자기 집 김치 움에 가둬 둔 손호표 지주를 끌어 오게 했다. 마을 사람들은 가을도 끝이 났는지라 모두 공개재판대회장에 나왔기에 마을 사람들이 까맣게 모였다. 이때 손호표 지주가 성수와 최학섭에게 끌리어 공개재판대회장에 들어섰다. 손호표 지주가 결박당한 채 쩔룩거리며 공개재판대회장에 끌리어 왔다. "여보!" "아버지!" 손호표 처자들은 야단쳤다. 민병들은 총을 겨누며 처자들을 울지 못하게 했다. 이번 공개재판대회는 상순이가 집행했다. 그는 아름드리버드나무가 꽉 들어선 태평강 가 둔덕 우에 서서 먼저 한어로 말하고 뒤에 조선말로 말하면서 회의를 집행했다. “아래에 진수해구위 이계삼 서기로부터 손호표 지주를 청산하고 처단할데 대한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박수를 쳤다. 이계삼은 둔덕 우에 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연설했다. 옆에서 상순이 즉석에서 이계삼이 몇 마디 하면 따라 조선말로 통역해주었다. “손호표 지주는 평소에도 김기준 일가와 패용천촌의 가난한 백성들을 가혹하게 착취했다. 특히 김기준네 저 놈의 소를 쓸 때다. 친일지주 지학사 놈과 짜고 들어 소구유에 재물을 풀어 넣어 소를 죽였다. 또 소를 죽인 죄를 기준 일가에 덮어 씌웠다. 사건 진상은 후에 지학사를 심문하는 가운데서 밝혀졌다. 그 후 손호표 지주는 김기준 일가에게서 소 값을 이자의 이자까지 물게 핍박하였고 소작료로 그해 벼농사를 지은 것을 몽땅 빼앗아갔다. 세상에 소작료로 10할이나 가져간 지주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때 사람들 속에서 야단났다. 상순이가 웬 일인가고 내려다보고 자기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글쎄 용천 대장이 공개재판대회장에 나타나지 않았겠는가! 마을 사람들은 용천 대장을 알아보고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상순은 내려가지도 않고 고함쳤다. “회의질서를 유지합시다!” 이계삼은 계속 연설했다. “특히 손호표 지주는 우리 중국 공산당의 영도하에 있는 함흥 촌 인민정권에 이를 갈면서 국민당 토비두목 조덕산 영장을 괴수로 하는 국민당 토비무리에 들어 혈안이 되어 지난번 함흥 촌을 미친 듯이 습격했다. 그 죄는 천만번 죽어도 마땅하다.” “손호표 지주를 타도하자!” 머리를 빡빡 깎은 허영주가 군중들 속에서 구호를 부르자 격분한 군중들은 따라 구호를 불렀다. “국민당 토비 놈들을 타도하자!" "우리 마을을 우리 손으로 보위하자!‘ “보위하자!” 그때 함흥촌을 찾아 허둥지둥 오던 용천은 그 장면을 보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계삼은 계속해 선포했다. “국민당 토비 악질지주 손호표는 인민들에게 하늘에 사무치는 죽을죄를 졌으므로 사형에 처한다! 또 그의 집과 밭을 몰수해 몽땅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준다!” “손호표를 청산하자!” “저 놈의 집과 밭을 나눠 가지자!” 이번에는 한족군중들이 구호를 불렀다. 군중들은 기뻐 박수를 치고 웃고 떠들었다. 손호표 처자들은 사시나무 떨듯하며 어깨를 들먹이면서도 감히 큰 소리를 내 울지 못하고 눈치를 흘끔흘끔 보았다. 이계삼은 손을 들어 흔들더니 마지막으로 지주들에게 경고했다. “지금 삼도만 국민당 반동파들과 지주, 토비들은 우리 공산당의 영도하에 있는 함흥 촌을 호시탐탐 노리면서 다른 마을의 촌간부들을 약탈하고 살인하고 방화를 일삼고 있다. 허나 조만간에 우리 민주연군은 강대한 인민무력으로 그 놈들을 깡그리 소멸할 것이다. 일체 국민당 토비들을 돕거나 미쳐 날뛰는 자들은 오늘 손호표와 똑 같은 더러운 끝장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토비숙청에 공을 세우면 우리는 그런 지주들은 공을 따져 용서해줄 것이다.” 이계삼이 연설을 마치자 상순은 둔덕 우에서 명령했다. “국민당 토비 악질지주 손호표를 즉시 처단하라! 공개심판이 끝난 후 저 놈의 집과 재산을 몰수해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 준다! 올해 농민들은 자기 밭에서 난 곡식을 어느 지주한테도 바칠 필요 없이 몽땅 자기 집에서 먹어도 된다. 다만 이담 민주연군이 먹을 양식만 자원으로 얼마간만 내면 된다.” 그러자 군중들은 좋아 야단쳤다. “공산당이 좋기는 좋소. 소작료도 없이 농사지은 거 몽땅 가지라오.” “우리 행복을 보위하는 우리 민주연군에 쌀을 지원해야 하지.” “그럼요. 우리 군대한테 쌀을 대줘야 하오.” 흥수와 학수 형제가 손호표를 사전에 파 놓은 구덩이 앞에 끌고 나가 꿇어 앉혔다. 손호표는 처자들을 둘러보더니 대가리를 푹 수그렸다. 허나 인차 대가리를 쳐들더니 마지막으로 단말마적으로 몸부림치며 발악했다. “이제 삼도만 전보흥 소교가 우리 지주 형제들을 데리고 와서 내 원수를 갚아 줄 거야! 자손들은 오늘 이 원수를 똑똑히 기억…” 땅! 땅! 성수와 병수가 총을 쏘았다. 손호표 지주 놈은 악다구니질을 채 못하고 대갈통이 박산나 뇌장이 자갈밭에 튕기었다. 더러운 시체는 구덩이에 뒹굴어 처박히었다. 숱한 군중들이 조약돌을 쥐여 구덩이 안에 마구 뿌렸다. 한참 후 손호표 악질지주는 조약돌에 깔리어 더러운 시체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용천은 또 도리머리 질 했다. 공개심판대회가 끝나서야 상순은 달려가 용천 대장과 악수했다. “어떻게 돼 이제야 왔습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힘들어.” 용천은 상순을 보고 그간 있은 이왕지사를 간단히 말했다. “그때 내 갱도에서 포위를 돌파해 나가자마자 적들이 뿌린 수류탄묶음이 폭파했네. 그러나 나는 수류탄 연기 속에서 용케도 적들을 빼돌리고 수림 속에 숨어 들어갔던기여. 처음에는 남만으로 갔다가 그 곳에서 당지 유격대와 함께 일본 패잔병들과 싸웠당께. 북만으로 부대를 찾아 갔을 땐 부대가 벌써 떠난 지도 오랬던기야. 마을 사람들캉 물어 보니 진달래가 경주를 데리고 기다리다가 함흥 촌으로 나갔다고 하더랑께. 헌데 있자노. 함흥 촌으로 오다가 그만 삼도만 부근에서 국민당 토비들에게 붙잡히고 말았잖아. 하, 세상에 없는 고생을 다 했당께.” 상순은 이계삼 서기와 허영주에게 용천 대장을 인사시켰다. 이계삼은 경각성을 높이며 용천 대장에게 물었다. “그래 어떻게 토비 소굴에서 빠져 나왔소?” 용천 대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말하자면 긴데 간단히 말하죠. 그 놈들은 내 몸에 권총이 있는 걸 보고 빨갱이라고 총살할락꼬 했데이. 헌데 있자노, 난 살자고 그 놈들한테 말했당께. 나두 조선 지주의 아들이락꼬. 유격대에서 대장노릇 했는데 고향에도 가지 못하고 죽는 거 참 애닲다고 했는 기여. 그랬더니 전보흥이라던가. 그 자  놔주는 기여. 그 놈들은 날 보고 자기들 토비무리에 들어라 하잖겠나. 함께 빨갱이들과 싸우자는기여. 내가 조선 고향에 가겠다니까. 있자노. 같은 지주 출신을 봐서 놔주겠으니까. 기어이 삼도만에 남아 장교하라는기여. 난 거짓 항복했던기여. 도망칠 기회를 보다가 졸개들을 데리고 쌀 얻으러 나왔다가 도망쳐 버린기여. 허허허.” 그제야 이계삼과 허영주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혹시 삼도만서 일본 녀성들 보았소?" 허영주의 물음에 용천은 머리를 끄덕였다. "있었제이. 자매간이라던데 둘 다 전 소교 데리고 사는 같데이. 애도 있더구먼." 허영주와 이계삼은 눈길을 마주쳤다. 용천은 함흥 촌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아버지 김덕성을 찾아갔다. 덕성은 용천을 보자 와락 끌어안았다. “야, 큰조카 살아 있었어? 얼마나 기다렸다고 그래?” 그는 그간 용천이 여기까지 찾아온 경과를 듣고 눈물까지 흘리었다. 오후에 상순이 민병들을 영솔해 손호표네 집과 밭을 청산하자고 농민들을 데리고 자와 말뚝을 가지고 촌공소를 나가자 용천은 구경하러 따라 나섰다. 그는 상순에게서 그간 유격대에서 토비들의 습격을 물리친 일로, 진달래와 경호가 함흥 촌에서 자기를 기다리다 못해 조선에 나가기 전에 장백산에 아버지 산소로 간 일로 다 알게 되였다. 하여 그는 잠시 함흥 촌에 남아 진달래와 경호를 기다리기로 했다.  
100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3) 댓글:  조회:1829  추천:0  2017-02-22
                                                                           7. 매복습격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산과 들에 내리 드리웠다. 무시무시한 정적이 함흥촌을 감싸고 돌았다. 무엇인가 폭발하기 전 공포적인 정적이였다.        성칠 대장은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해동분주소를 덮쳐갔다. 그런데 어둠 속에 잠긴 분주소 안에 지학사의 사촌동생 지소장 놈과 일본 순사놈들의 꼬리도 보이지 않고 텅텅 비었다.        “개놈새끼들, 몽땅 달아났구나."        인삼 중대장의 말에 성칠 대장은 명령했다.        "진수해로 쳐나자.”        유격대원들은 곧추 해동다리를 건너 토성 안 진수해파출소로 쳐들어갔다. 적들은 불시에 기습당해 혼비백산했다.       조선 강제병사들은 토성 안에 갇힌 일본 경찰들과 개다리들에게 일어로 고함쳤다.       “투항해라! 투항하면 살려준다.”       “총을 놓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그러나 일본 놈들은 견고한 토성을 믿고 총을 쏘며 완고하게 반격했다.      “네놈들은 포위됐다! 5분후에 투항하지 않으면 몽땅 소멸해 버릴 테다!”       그래도 놈들은 대문 쪽에 대고 기관총을 갈기며 반항했다.       성칠 대장은 손을 홱 휘두르며 명령했다.      “1소대는 토성 안에 수류탄을 뿌려! 2소대는 기관총 사격! 3소대는 토성을 폭파하라!”      1소대가 수류탄을 연신 토성 안 파출소에 뿌렸다.     꽝! 꽝! 꽈르릉! 꽝꽝!     토성 안에서 수류탄 폭파소리에 아우성 소리가 요란했다.     2소대가 기관총을 뚜루룩 뚜루룩 쏘아댔다. 일본 놈들은 토성 밖으로 한 놈도 달아나오지 못했다.     이때 파출소 안에서 고함소리가 들리었다.     “계속 공격하면 우린 조선 위안부들을 살해할 테다!”     꽈르릉! 꽝꽝!     우뢰와 같은 폭음과 함께 토성이 네 곳이나 뭉청 무너져버렸다. 임호 소대장이 폭파소조를 거느리고 또 해냈던 것이다.    “돌격!”    오병선이 돌격나팔을 불었다. 돌격나팔소리가 우렁차게 울리자 유격대원들은 "돌격!' 고함소리 우렁차게 돌격개나갔다.    “싸(杀)!”    “죽여라!” 유격대원들은 고함치며 사면으로 덮쳐 나가며 수류탄을 파출소 안에 뿌렸다. 일본 놈들은 파출소 안에서 무리로 쓰러졌다. 뚜루룩 뚜루룩. 갑자기 기관총 소사에 돌격하던 유격대원들이 삼대처럼 쓰러졌다. 이때 갑자기 화염 속에서 요란한 엔진소리와 함께 토성안에서 괴물이 덮쳐나왔다. "탱크!" "엎드렷!" 성칠이 고함쳤다. 유격대원들은 땅바닥에 납짝납짝 엎드렸다. 그들은 탱크를 처음 보았다. 일부 유격대원들은 겁나 부들부들 떨었다. 성칠은  무너진 토성에 엎드려 탱크(땅크)를 쏘아보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임소대장!" "옛!" "폭파소조를 내보냇!" "예!" 탱크가 덮쳐나오며 불을 토했다. 임호 소대장이 손을 홱 젓자 폭파소조가 무너진 토성 밑에서 폭파약을 끌어안고 기여나갔다. "기관총 엄호!" "사격!" 기관총들이 불을 토했다. 폭파소조가 탱크에 거의 접근해갔다. 뒤따라 나오던 일본 놈들이 몰사격을 가했다. 유격대원들이 폭파약을 끌어안고 벌떡벌떡 일어나 탱크를 향해 돌격해나갔다. 그러나 하나, 둘 흉탄을 맞고 쓰러졌다. "개놈새끼들! 죽어봐라!" 임호 소대장이 주먹으로 벽돌을 탕 쳤다. 벽돌이 박살났다. 임호는 벌떡 일어나 달려나갔다. 그는 탱크 앞에 쓰러진 폭파대원의 손에서 폭파약을 주어 끌어안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푱푱푱! 총알이 그의 발부리에 날아와 박히며 흙똥이 사처로 튕겨 올랐다. 임호는  곤부박질쳤다. "아차!" 성칠은 주먹으로 토성 벽을 쳤다. 그때 임호가 옆으로 몇바퀴 굴렀다. 탱크가 그의 앞에 다가왔다. 임호는 도화선을 입으로 물어당기고 폭파약꾸러미를 탱크  바귀 밑에 밀어넣었다.     꽈르릉!     요란한 굉음과 함께 탱크 무한궤도가 쭈르륵 벗겨졌다. 탱크는 페철무지로 되였다.     "돌격!" 성칠 대장이 명령했다. 오병선이 돌격나팔을 불었다. 띠띠띠- 따따-따다- 돌격나팔소리가 재차 울리자 유격대원들은 "돌격!" 고함소리도 높이 돌격해나갔다. 탱크 웃덮개가 열리더니 자그마한 흰 천쪼각이  천천히 나왔다. 분명 투항신호였다. "손들엇!" 희생됐는가 한 임호 소대장이 무쇠기둥처럼 벌떡 일어나 탱크 위에 뛰여올라가 돌격총을 탱크 웃구멍에 들이댔다.  탱크 안에서 일본 놈 탱크운전사가 손을 들고 나왔다. 뒤이어 몇놈이 손을 들고 나왔다. 임호 소대장은 그 놈들을 압송해 탱크에서 내렸다. 성칠 대장은 그 놈들을 뒤에 따라온 유격대원들한테 넘겨주게 하였다.         나머지 놈들은 조선 위안부들을 앞에 내세우며 고함쳤다.    “우린 투항하겠다. 군대를 뒤로 물려라!”     성칠은 손을 들어 돌격을 멈추게 했다. “잠간! 우리 조선 여성들을 상하게 해선 안 돼.” 조선 강제병사 출신 유격대원들이 일본 놈들에게 성칠의 말대로 고함쳤다. “네 놈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한 놈 한 놈씩 나오라. 우린 포로를 죽이지 않는다!” 살아남은 일본 경찰 놈들 셋이 두 위안부여성의 뒤로 어정어정 따라 나오더니 총을 땅바닥에 놓았다. “손 들고 나와!” 일본 경찰 놈들은 손을 들고 허둥지둥 걸어 나왔다. 유격대원들은 뭉청 무너진 파출소와 위안소 안으로 덮쳐들어갔다. 안에는 부상당한 일본 경찰과 헌병 몇 놈이 쓰러진 채 신음소리를 냈다. 유격대원은 그 놈의 손에서 총을 빼앗아내고 끌어냈다. 가슴팍에 총탄을 맞은 그 놈은 숨이 거의 넘어가고 있었다. 한 놈은 기관총 옆에 대갈통이 박살난 채 쓰러져 있고 그 옆에는 무너진 벽에 깔려 죽은 놈의 다리가 드러나 있었다. 여기 저기 썩어진 일본 경찰 놈들의 시체가 피 못 속에 나뒹굴었다. 유격대원들은 전장을 수습하면서 무기를 거둬 메고 나왔다. “조선 독립 만세!” “동북 해방 만세!” 유격대원들은 환성을 높이 질렀다. 성칠은 위안부 여성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고향이 어디오?” 얼굴이 복숭아처럼 둥근 40대 초반 여성이 머리를 숙이며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옥설이라고 부르는데요." "고향은 어디오?" "김해예요.” 그녀는 옆의 걀죽하게 생긴 중년 여성을 가리켰다. “얜 만금이라고 하는데요. 고향이 명천이예요.” 성칠은 그들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오. 우린 조선 항일유격댄데 나도 고향이 명천이오. 우리를 따라 함께 조선에 나가기요.” "네. 고맙습구마.우린 한철주 놈한테 붙잡혀 여길 되나왔습구마. 억울한 녀자들입구마."      성칠은  한철주 말이 나오자 다가서며 물었다. "여기 한철주 왔댔소?" "네. 며칠 전에 우릴 끌고 여기 왔다가 똘만놈하구 도망쳤어요.“ "음- 또 놓쳤군."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이상한 감이 들었다. (용정을 칠 때도 탱크가 없었다. 그런데 요 쪼꼬만 진수해 파출소에 탱크가 있는데다가 한철주 놈도 왔다갔지 않았는가?) 그는 먼저 만금, 옥설 등을 위안했다. 만금은 성칠 대장에게 말했다. “장교님, 우린 원래 넷입구마. 뽕녀란 애는 고향이 부산입구마." 성칠은 상순과 지군선의 딸 지춘실한테서 두루 들은 생각이 나서 물었다. "여기에 은실이라고 부르는 처녀애도 있었다던데. 행방을 모르오?" 옥설이 눈물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은실하구 뽕녀는 길림에서 봉천으루 간후 행방불명이 됐어요. 그 애도 여기 진수해에 왔더라면 구원됐겠는데요." 만금도 동을 달았다. "위안부라는 건 정말 개나 돼지보다 못한 짐승 같습구마.” 옥설과 만금은 어깨를 들먹이며 흑흑 흐느껴 울었다. 그녀들은 눈물을 훔치고 일본 경찰 놈들을 보자 악이 나 고무신을 벗어 쥐고 다가가더니 낯빤대기를 쨩쨩 후려갈기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놈, 이 놈들아, 또 우리를 짐승 개처럼 굴어봐라. 이놈, 이놈!” “이 놈들아, 네 놈들도 맞아 봐라!” 일본 경찰 놈들은 어둠 속에서 두 손으로 낯빤대기를 감싸 안고 옥설과 만금을 쏘아보았다. “아직두 대가리를 쳐들겐?!” 옥설은 고무신으로 일본 경찰 놈의 낯빤대기를 사정없이 후려 갈겼다. 경찰 놈이 손으로 날아드는 고무신을 막자 발길로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일본 경찰 놈은 사타구니를 싸안고 나뒹굴었다. “앗! 이다이 시누(아파 죽겠다)!” 조선 강제병사 출신 유격대원들은 분개해 일본 경찰들을 마구 걷어차고 총 박죽으로 때렸다. 성칠은 손을 들어 말렸다. “포로를 학대하지 마오. 무기를 내려놨았기에 용서해줘야 하오.” 그제야 모두들 손을 멈추었다. 성칠은 만금을 데리고 탱크 안에서 나온 놈들한테로 갔다. "혹시 여기 높은 장교 놈이 있는지 알만 하오?" "요놈이 장교 놈입니다." 장교 놈은 질겁해 목을 움츠렸다. 그때 최동욱이 다가와 그 놈을 여겨보았다. "아니! 네 놈이 여기 있었구나." "누군데?" 최동욱은 그 장교 놈의 멱살을 틀어쥐고 흔들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가메다! 네놈도 오늘이 있구나." 최동욱은 자기 안해를 릉욕한 원쑤를 만나자 주먹으로 치며 대성통곡쳤다. 원쑤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가메다?!' 성칠도 고함치며 손이 허리춤에 갔다.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가메다 놈이  다리를 맞고 무릎을 털썩 꿇었다.  대가리를 뚝 떨어뜨렸다. 성칠이 쏜 총에 맞았던 것이다. 가메다 놈은 고향 히로시마가 미군이 뿌린 원자탄을 맞고 훼멸됐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 남아 최후발악을 하다가 포로됐던 것이다. "이 놈을 쉽게 죽일순 없소." 최동욱은 허리춤에서 시퍼런 비수를 빼들고 가메다 놈한테 한발자욱 한발자욱 다가갔다. "공산군은 포로를 죽이지 않는다던데. 제발 살려주오." 성칠 대장이 고함쳤다. "이 놈, 네놈의 손엔 우리 중조인민과 유격대원들의 피가 즐벅하다. 희생된 유격대원들을 대표해 네놈을 총살한다." 최동욱은 비수를 날려 가메다 놈의 두 팔을 찍어냈다. 비수로 가슴을 짜개고 심장을 도려냈다.  나중에 목을 쳤다. 최동욱은 가메다를 비수로 연신 찍어대며 대성통곡쳤다. "여보! 오늘 당신 원쑤를 갚았소. 여보- 구천에서 눈을 감소. 흐흐흑, 흑흑! 이놈, 썩어져라! 어떻게 하면 원쑤를 다 갚겠니."  나머지 일본 놈들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우린 강제로 끌려온 강제병들입니다." " 제발 살려주십시오." 탱크운전.사는 무릎걸음을 걸으며 나오더니 탱크를 가리키며 서툰 한어로 싹싹 빌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날 살려주면 이 탱크를 수리해 당신들 도와 싸우겠소. 나도 일본에서 가난한 백성이오. 내 녀동생 둘도 이 놈들한테 붙잡혀 강제로 위안소에 왔는데요. 삼도만림업분조소 소장놈한테 붙잡혀간 후 행방불명입니다." 성칠은 금방 탱크 안의 놈들한테 희생된 폭파소조 대원들을 생각하면 기관총으로 몽땅 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포로정책이 있어 탱크 운전사 등을 살려주었다.    탱크 운전사 야마가와는 성칠한테 다가와 물었다. "나도 나가사끼에서 강제병으로 왔는데. 여기 진수해 위안소에 온 요시꼬라는 녀동생을 찾아 여기까지 왔댔습니다. 녀동생을 찾아가지고 고향에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가사끼도 미군 원자탄을 맞고 없어졌다고 합디다. 녀동생들도 찾지 못하고 일본에 돌아간들 뭐 해요? 저의 녀동생들을 찾아주세요. 요시꼬와 야마꼬를 일본 장교가 데려 갔다던데 꼭 이 부근에 있을 겁니다. 좀 찾아주십시오. 장관님." 그는 뒤에 따라오는 옥설과 만금 등 조선인위안부들을 돌아보며 뒷말을 이었다. "저 위안부들도 명천에서 왔기에 요시꼬 어디 간 거 알 거 같은데. 내 일본군이라고 알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장관님, 어떻게 내 녀동생을 알아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성칠은 유격대원들을 둘러보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명령했다. “우린 즉시 함흥 촌으로 되돌아간다.” “옛!” 유격대원들은 포로들을 압송해가지고 다급히 해동다리를 건너 곧추 함흥 촌 쪽으로 출발했다. 성칠은 야마가와의 녀동생도 위안부였다는 말에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뒤에서 따라오는 만금을 불렀다. "여기 위안소에 요시꼬라는 일본 녀성을 모르오?" "네- 알아요." "지금 어데 갔는지 모르오?" 만금은 이상해 했다. " 일본 간나새끼를 찾아 뭘 합둥?" 성칠은 옆에 선 야마가와를 가리켰다.  "이 사람은 요시꼬 오빠오." 만금은 힐끔 가로보았다. " 탱크를 수리해가지고 우리를 도와 싸우겠다오." 성칠은 만금과 내심하게 말했다. "요시꼬도 저네처럼 다 일본 침략군 놈들의 피해자요. 어데 갔는지 알려주오." 만금은 마지못해 대충 대답했다. "요시꼬도 무한으로 간다더니 여기 도망쳐 왔댔는데 뭐 어디라던가." "삼도만!" 옥설의 말에 만금이 손벽까지 쳤다. "맞아! 삼도만림업분주소, 거기 소장놈이 숱한 돈 내고 요시꼬 자매를 데려내갔습구마." "삼도만에 갔다고?" 야마가와는 성칠한테서 만금의 말을 한어로 번역해듣고 대성통곡쳤다. "요시꼬야- 엉엉, 내 꼭 널 구해낼게." 후에 있은 일이지만, 야마가와는 함흥촌에 온 뒤 병완한테서 작은 녀동생 야마꼬도 지학사 지주의 첩으로 있다가 삼도만으로 들어갔는데 요시꼬와 함께 토비 두목의 첩이 됐다는 말을 들었다. 야마가와는 또 민주련군이 삼도만토비를 치러 갈 준비를 하는 것도 보았다. 야마가와는 오직 삼도만토비를 쳐 없애야 토비두목에게서 두 녀동생을 구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야마가와는 두 녀동생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그날부터 상순과 오병선의 압송하에 진수해 토성안 파출소에 가서 탱크의 무한궤도를 수리하였다.       한편 유격대 대부대가 진수해파출소를 공격하는 폭음이 들리자 조덕산은 소서구 기준이네 집 자리에서 서서 어깨를 으쓱했다. “유격대는 확실히 진수해파출소를 치러 가고 없다. 지금 함흥 촌에는 유격대 부상병과 민병 밖에 없다.” 왕부관은 담뱃불을 붙여 조덕산에게 주면서 간언했다. “조 단장, 그래도 섣불리 들이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장백산 항일유격대는 일본 놈들과 싸울 때도 아주 교활하게 유격전과 매복습격 전을 잘 했습니다. 그놈들이 뭣 때문에 우리가 이 일대에서 활동하며 철거하지 않은 걸 뻔히 알면서도 진수해로 간단 말입니까? 여기에 문제 있는 게 아닙니까?” 그러나 조덕산은 큰소리를 땅땅 쳤다. “장학산이 말하지 않던가? 대부대가 확실히 떠나갔다고.” 이때 장충국이 헐레벌떡거리며 달려 왔다. “조 단장, 해지기 전에 인삼이가 우리 집에 왔댔습니다. 유격대는 모두 조선으로 간다고 말합디다. 금방 함흥 촌에 가 보았는데 확실히 유격대는 보이지 않고 상순이 민병들을 데리고 순라할 뿐입디다.” 조덕산은 어깨가 으쓱해 당지 지주무장대오와 국군대오를 둘러보며 을러멨다. “여러분, 이젠 가난뱅이들에게 빼앗기었던 집과 밭을 찾을 때가 돌아 왔다. 여러분은 목숨 걸고 촌공소를 습격하고 공산군을 따르던 조선 가난뱅이들을 몽땅 살해해버리라. 자신 있는가?” 손호표랑 제지주랑 이구동성으로 고함쳤다. “있습니다!” 조덕산은 “부관!” 하고 불렀다. “옛!” 왕부관은 차렷 자세로 발뒤꿈치를 척 붙였다. 조덕산은 권총을 꺼내 들고 추상같이 호령했다. “왕부관은 지주무장 대오를 데리고 즉시 촌공소를 점령하라!” “옛!” “난 가능하게 있을 유격대의 매복습격을 대비해 국군을 데리고 뒤에서 엄호하고 접응하겠다. 부관은 뒷근심을 하지 말고 촌공소를 점령하라! 만약 촌공소를 점령하지 못하면 네놈의 대가리를 박살내겠다!” “옛! 꼭 촌공소를 점령하겠습니다!” 부관이 지주 무장 대오를 향해 손을 홱 저었다. “출발!” 장충국과 장리국, 손호표, 제지주와 일부 국민당에게 미혹된 지주무장 50여명이 부관의 뒤를 따라 함흥 촌을 향해 달려 내려갔다. 조덕산은 뒤에서 충국을 불렀다. 충국이 뛰어 오자 교활한 조덕산은 재차 물어보았다. “이전에 유격대 놈들이 토성 밑에 갱도를 팠다던데 진공하다가 일이 없을까?” 그러자 충국은 선선히 대답했다. “이전에 판 갱도는 일본 놈들의 포위토벌 때 작탄에 맞아 다 무너졌습니다. 요새 갱도를 파는 거 보지 못했는데. 그저 토성 밖에 전호를 파는 걸 보았습니다.” 조덕산은 충국을 인질로 붙잡아 둘 궁리를 했다. “자넨 나를 인도해 함흥 촌으로 들어 갑세.” “옛!” 충국은 조덕산의 옆에 섰다. 조덕산은 국군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출발!” 부관은 지주 무장 대오를 끌고 태평강을 넘어 아름드리 버드나무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 유격대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너무 조용한 적막이 오히려 조덕산과 부관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교활한 조덕산은 국민당 군을 끌고 버드나무숲을 흘끔흘끔 살피면서 어슬렁어슬렁 토성 안 촌공소로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전투경험이 없는 당지 지주들은 우쭐해서 소리까지 치면서 곧추 토성안집을 향해 뛰어 갔다. “가난뱅이 놈들아, 네 놈들의 제삿날이 왔다!” “죽어 봐라!” “이 놈들아! 우리 집과 밭을 내놔라!” 부관은 권총을 휘두르며 “토성 안으로 돌격!” 하고 명령했다. 지주들은 악을 쓰며 토성 안에 서 있는 유격대원들한테 총을 쏘며 덮쳐들어갔다. 부관은 총에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옥수수단을 보고 주춤 멈춰 섰다. “아차! 속았구나!” 촌공소안에는 옷을 입혀놓은 옥수수단만 서 있을 뿐 텅텅 비어있었다. 부관은 돌아서 되 달아 나가려고 했다. 그때는 늦었다. “사격!” “몽땅 죽여라!” 칠백 중대장과 동욱 중대장의 명령과 함께 토성 밑의 갱도 화구에서 섬광이 번쩍이며 총알이 빗발치듯 날아 나왔다. 지주들은 총을 쥔 채 무리로 쓰러졌다. 이때 대문마저 삐꺼덕 닫혀버렸다. 손호표는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개목을 다는 소리를 쳤다. 손호표의 머슴이 손호표를 훌쩍 업고 부랴부랴 도망쳤다. 부관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엉금엉금 기여 대문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벌떡 일어나 대문을 어깨로 떠밀어 열어 재끼었다. “빨리 후퇴!” 나머지 제지주랑 토성 밑에 총을 난발하면서 대문 밖으로 도망쳤다. 뚜르륵 뚜르륵 상순의 기관총 소사에 부관 놈이 즉살했다. 또 민병들의 사격에 대문 밖으로 도망치던 지주들은 무리로 쓰러졌다. 제지주도 상순이 쏜 기관총에 흉부를 맞고 쓰러졌다. 그때 조덕산이 끌고 온 국민당 정예군이 대문 밖으로 뛰어 나온 지주들을 엄호하며 접응하려고 다가들었다. 장충국은 “리국아! 빨리 뛰어 나오너라!” 하고 고함쳤다. 리국은 겨우 기어 토성 밖으로 나와 형과 함께 수림 속으로 도망쳐 목숨을 구했다. 그때였다. 난데없이 아름드리나무들 우에서 우박이 쏟아져 내리듯이 총알이 날아왔다. 원래 진달래 중대장이랑 이끈 유격대원들이 농사군 옷을 갈아입고 아름드리 비술나무숲 속 에 스며들어 나무 우에 올라가 매복해 있었던 것이다. 진달래와 훈련받은 유격대원들은 나뭇가지를 구르면서 이 나무 저 나무 가지를 구르면서 평지를 달리듯이 날아다니면서 국민당 정예군에게 맹사격을 가했다. 지상의 민병들과 나무 우의 유격대원들의 교차사격에 국민당군은 머리도 들지 못하고 무리로 쓰러졌다. 바빠 맞은 조덕산은 뒤에서 “철퇴!”하고 고함쳤다. 적들은 매복에 걸린 것을 알고 함흥 촌 동산 쪽으로 철퇴하기 시작했다. 두 개 소대나 되는 유격대원들은 칠백과 동욱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 갱도에서 전호로 뛰쳐나와 당지 지주와 토비들을 소멸하고 조덕산 국민당 군을 추격했다. 교활한 조덕산은 함흥 촌 동쪽의 산골짜기를 따라 령을 넘어 계수동 골안에 들어섰다. 그때다! “죽여라!” 난 데 없이 복병이 뛰쳐나오면서 포위 습격했다. 원래 성칠 대장은 1중대 2소대와 3소대를 진수해로 가지 말고 벌판의 버드나무숲 속에 매복해 있게 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계수동 동쪽 산등성이에 매복해 있었다. 조덕산은 옆에 따라온 충국을 보고 고함쳤다. “이놈, 유격대 몽땅 진수해로 갔다더니 이게 웬 일인가?!” 장충국은 당황해났다. “조단장!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확실히 함흥 촌에 유격대가 없었습니다. 이게 웬 일이지?  아마 진수해로 갔던 대부대가 되돌아 온 거 같습니다.” “개나발을 작작 불어! 그 놈들이 나는 재간이 있다고 진수해파출소를 치고 번개처럼 여기까지 온단 말인가?” 조덕산은 권총을 들어 충국을 겨누며 을러멨다. “이 놈, 빨리 앞장서 포위를 돌파해! 포위를 돌파하지 못하는 날엔 네 놈부터 총살할 테다!” “옛!” 장축국은 옆에 선 국민당 놈에게서 기관총을 빼앗아 들더니 제일 앞에서 달려 나가면서 유격대를 향해 뚜르륵 뚜르륵 몰 사격을 가했다. 뒤따라 국민당군은 포위를 뚫고 나가려고 서둘렀다. 그때 성칠 대장의 우렁우렁한 한어 고함소리가 어둠이 뒤덮인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렸다. “조덕산! 네 놈들은 몽땅 포위됐다. 장충국은 국민당 토비들을 위해 목숨을 팔지 말고 투항해라!” 그러나 장충국은 엎드려 고함쳤다. “네 놈들을 따라 일본 놈들을 쳤건만 네 놈들은 우리 밭을 빼앗아 네 애비와 형제들에게 나눠주지 않았느냐? 죽어도 네놈들과 한 하늘 아래에서 살지 못한다! 네 놈이나 총을 놓고 투항해라!” 고함질을 마치자 장충국은 기관총을 뚜르륵 뚜르륵 갈겨댔다. 그제야 조덕산은 충국을 재차 신임하고 기여가 나직이 말했다. “충국아, 나를 따라 삼도만으로 가자!” “옛!” 조덕산은 충국이 대신 다른 놈에게 기관총을 주면서 엄호사격하라고 했다. 뚜르륵 뚜르륵 국민당 패잔병들이 몰사격하는 틈을 타 조덕산과 충국은 몇몇 놈들을 데리고 어둠속에 계수동 골짜기 아래로 사라졌다. 그 놈들이 계수동 막치기에 있는 도가 집 부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 놈들아! 인삼 중대장이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래다!” 땅! 땅! 땅! 총소리와 함께 몇 놈이 쓰러졌다. 이때 한 개 분대는 될 유격대원들이 조덕산과 충국을 향해 덮쳐왔다. “인삼아, 오늘 내 죽든지 네 죽든지 싸워 보자!” 충국은 인삼의 소리가 난 쪽에 권총을 쏘았다. 땅! 인삼은 권총을 내리우고 소리쳤다. “충국아, 조덕산 놈을 붙잡아 바쳐라. 그 길만이 네가 살아남는 유일한 선택이다. 양아버지를 생각해 하는 마지막충고야.” “양아버지란 말을 하지도 말라! 우리 부자간이 창고 쌀을 대주고 네놈들과 어깨 겯고 싸웠건만 우리 밭을 몽땅 빼앗겼다. 네 놈들과 절대 한 하늘을 쓰고 살지 못한다. 잔말 말구 죽기내기로 싸워 보자!” 충국은 권총을 이쪽에 대고 쏘았다. 땅! 총소리와 함께 인삼은 왼쪽어깨에 총탄을 맞고 푹 꺼꾸러졌다. 땅! 조덕산이 권총을 쏘면서 고함쳤다. “충국아, 빨리 달아나자!” 또 다른 유격대원이 놈들에게 덮쳐 나가다가 총에 맞아 장렬히 희생됐다. 인삼은 아픔을 참으면서 권총을 뽑아 들었다. “사격!” 유격대원들은 도가 집 쪽으로 도망치는 조덕산과 충국을 향해 몰사격하며 추격했다. 땅! 땅! 산등성이 쪽으로 도망치던 조덕산이 허벅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푹 꼬꾸라졌다. “조 단장, 빨리 업히시오!” 조덕산은 쓰러진 채 충국을 밀어 버렸다. “난 틀렸네. 어서 삼도만으로 도망쳐 가서 전보흥 소교한테 이 곳 정황을 알리게!” 충국은 조덕산에게 등을 돌리며 고함쳤다. “빨리 업히시오! 죽어도 함께 죽어야지!” “빨리 달아나라니까! 이건 명령이야. 듣지 않으면 내 총에 죽는다.” 충국은 그래도 조덕산을 껴안아 일으켰다. 조덕산은 권총을 충국에게 들이댔다. “빨리 가라! 이 정황을 알리지 않으면 삼도만 숱한 형제들도 준비 없어 죽게 돼! 빨리 가!” 충국은 몸을 돌려 도망치다가 되돌아보며 고함쳤다. “조 단장!” 조덕산은 쓰러져서도 권총으로 유격대에게 총질하며 충국을 도망치게 엄호했다. 땅! 땅! 절컥! 절컥! 인삼은 고함쳤다. “조덕산 놈이 탄알이 떨어졌다! 생포해라!” 조덕산은 자살하려고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절컥! 조덕산은 탄알이 떨어지자 권총박죽으로 자기 대가리를 마구 땅, 땅 조겨댔다. 그때 인삼과 유격대원들이 덮쳐나가 일거에 조덕산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아냈다. “꼼짝 말앗!” 조덕산은 권총으로 자기 대가리를 조겨대다가 붙잡혔다. 유격대원들은 각반을 풀어 대가리가 피투성이 된 조덕산을 꽁꽁 결박해 가지고 함흥 촌 촌공소로 내려왔다. 몇몇 유격대원들이 남아 국민당 비적들의 시체에서 총을 거둬 가지고 뒤따라 내려왔다.                                                          8. 지주무장 두목을 총살 조덕산은 유격대원들에게 압송돼 토성 대문 안에 들어서면서도 고래고래 고함쳤다. “나는 군인이다. 목숨 걸고 용감히 싸우다가 탄알이 다 떨어져 포로로 됐을 뿐이다. 나를 능욕하지 말고 한방에 죽여라!” 인삼은 조덕산을 촌공소 앞의 늙은 비술나무에 결박해 놓으라고 지시했다. 상순은 성수랑 함께 마른 장작을 마당에 안아다 쌓아 놓고 불을 피웠다. 장작불이 활활 타올라 토성 안 마당을 대낮같이 환히 비추었다. 이때 성칠 대장과 진달래 중대장도 유격대원을 데리고 회합하여 대문 안에 들어섰다. 칠백 중대장도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갱도와 전호 속에서 나와 회합했다. 병완과 상순은 마을의 민병들을 데리고 마당에 들어왔다.  “만세!” “만세!” 모두들 승리를 환호하여 하늘땅을 진동하게를 높이 웨쳤다. 상순이 거느린 민병들은 유격대원들을 따라 혁명노래를 불렀다.            나가자 나가자 싸우러 나가자            용감한 기세로 어서 빨리 나가자            땅 없는 농민은 식칼 들고 나오고            집 없는 로동자  망치 들고 나오라             나가자 나가자 싸우러 나가자            용감한 기세로 어서 빨리 나가자 성칠 대장은 손을 들어 노래를 그만 부르게 하고 마루 위에 뛰어 올라가 우렁찬 목소리로 연설했다. “여러분, 우린 일본 놈들을 이 강산에서 몰아내고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또 오늘 우리 행복한 새 생활을 파괴하고 약탈하려는 국민당 군 토비들을 일망타진했습니다.” 토성 안에서는 또 구호소리가 우레 소리같이 울려 퍼졌다. 성칠 대장은 손을 흔들더니 계속 연설했다. “우리 함흥 촌 인민들은 공산당의 영도아래 무기를 들고 우리 마을을 지키고 우리 피로 바꿔온 이 역사의 비밀이 숨어 있는 땅을 지켜 싸워야 합니다. 아직도 삼도만과 돈화 등지에는 국민당 토비들이 욱실거리고 있습니다. 국자가와 천수해, 영월구에도 국민당 지하조직이 창궐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왕청현 춘양과 녕안 동경성 일대에는 마희산 토비가 출몰하고 목단강과 해림 일대에는 아직도 독수리와 허몽둥이 토비들이 욱실거리고 있습니다. 국민당 토비들은 호시탐탐 공산당 영도아래에 있는 마을들에 쳐들어와 강탈하고 살인할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우린 공산당을 따라 민주연군에 들어 이런 토비들을 몽땅 소멸하고 우리 행복한 지상낙원을 꾸려야 합니다. 여러분 신심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이계삼과 허영주가 군중들 속에서 구호를 불렀다. “공산당 만세!” “국민당 토비들을 소멸하자!” 토성 안 마당은 구호소리가 하늘을 진감했다. 성칠 대장은 당 지부에서도 지하활동을 할 필요 없이 공개적으로 일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이계삼과 허영주 그리고 아버지와 조카 상순을 마루 우에 오르게 했다. “이제부터 여러분께 우리 함흥 촌 당 지부 성원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는 이계삼과 허영주를 소개했다. “이분은 조선의용군 제3지대에서 파견해 온 우리 함흥 촌 당 지부 서기 이계삼동지입니다. 허영주 동지도 역시 3지대에서 파견한 우리 함흥 촌 당 지부 조직위원입니다.” 뒤이어 그는 아버지와 상순을 돌아보며 소개했다. “여러 분들도 다 알겠지만 저의 부친은 지하당원이며 함흥촌 촌장입니다. 조카 상순은 당지부 선전위원 겸 민병 련 련장으로 이번에 임명됐습니다. 이후에 여러분들은 이 네 분의 주위에 굳게 뭉쳐 우리 마을을 든든히 지켜야 합니다. 신심이 있습니까?” "있습구마!" 군중들은 이구동성으로 화답하며 박수를 쳤다. 상순이 성칠 대장의 연설을 즉석에서 한어로 통역해 주자 지어 가난한 한족 농민 장풍이랑 장발래랑 제해풍이랑 장용객이랑 모두 좋다고 웃고 떠들었다. 조덕산은 피투성이 된 대갈을 툭 떨구며 중얼거리었다. (저 지하당원 놈들부터 참살해야 했었는데 그랬어.) 상순은 품속에 이제껏 숨겨 뒀던 권총을 꺼내 큰아버지에게 바쳤다. “이 권총은 큰어머님이 생전에 쓰던 권총입니다.” 성칠 대장은 권총을 받아 매만지더니 상순에게 내밀었다. “민병련 련장 상순은 민병련을 령솔해 이 권총으로 이 마을을 보위하고 토비 놈들을 족쳐라!” 상순은 권총을 받아 옆구리에 차고 차렷 하고 군례를 올렸다. “옛! 꼭 우리 인민민주정권과 마을을 보위하고 토비들을 숙청해버리겠습니다!” 민병들은 모두 부러운 눈길로 상순을 바라보며 우렁차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때부터 상순은 허리춤에 권총 두 자루나 찬 민병 대장으로 소문 높게 되였다. 성칠 대장은 비술나무에 묶인 조덕산의 앞으로 걸어가 우렁차게 을러멨다. “미국 신식무기로 무장했다고 떠들던 네 놈들도 그저 그렇구나. 큰소리나 쳤지 어찌 일본제국주의도 무찌른 우리 일당백의 유격대를 당하겠는가?” “흥!” 조덕산은 불복했다. “너희들은 오늘 보니 한 개 영의 병력은 실히 되는구나. 잔꾀를 부려 진수해를 치는 척 하면서 말머리를 돌려 창으로 찌를 줄은 몰랐어.” 성칠은 조덕산의 코에 대고 삿대질하면서 비난했다. “단장이라는 놈이, 퉤!" 성칠은 침을 내뱉았다. " 아름드리나무숲과 갱도에 우리 복병이 매복 습격 전을 벌리리라는 것쯤은 짐작해야 할 게 아니냐? 너희 국민당 비적들은 신사복차림에 무기 자랑이나 하면서 거들먹거리기나 했지. 전술 같은 건 근본 모르는구나. 이런 밥통 같은 놈도 상좌 단장이라니 삶은 소대가리 웃다가 꾸러미 터지겠다.” “하하하” “허허허!” 유격대원들과 마을 사람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조덕산은 피투성이 된 대갈을 쳐들고 하늘을 쳐다보더니 중얼거렸다. “모욕하지 말고 어서 한방에 죽여라! 나는 군인답게 죽겠다!” 성칠 대장은 엄숙하게 말했다. “네 놈은 내일 공개재판대회를 열고 진수해 부근의 숱한 군중들 앞에서 총살할 테다!” “좋다! 빨리 죽여 달라! 허나 한마디만 묻겠다. 난 너희들과 싸우다가 붙잡힌 포로다. 포로를 우대한다던데 포로를 총살하는가?” 성칠은 조덕산의 가련하고 비굴한 꼬락서니에 코웃음이 나왔다. “허, 그 놈 비굴하게 목숨 따위를 구걸할 셈이냐? 네 놈은 포로가 아니라 당지 지주무장을 조직해 우리 항일유격대를 여러 명 살해한 악질 토비 놈이다. 마땅히 총살해야 한다.” 조덕산은 마지막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네 놈의 간계에 넘어가 죽는 게 한이다!” 성칠은 조덕산의 코에 대고 삿대질하며 우렁차게 고함쳤다. “인민과 적대시하면서 인민을 못 살게 구는 네 놈들은 백번 죽여도 마땅하다!” 성칠은 말을 마치자 소대장 임호를 불러 한쪽구석으로 가서 조용히 명령했다. “소대를 이끌고 밤도와 선바위 부근의 물레박골로 가서 악질지주 이영룡을 사로잡아 오오.” “옛!” 그때 병완이 듣고 성칠에게 다가왔다. “얘야, 내 임호 소대장을 데리구 물레박골 갈게.” 성칠 대장은 그 자리에서 말리였다. “연세가 계시는 아버님을 어떻게 보냅니까?" 그는 상순한테 눈길을 돌렸다. "상순도 물레박골을 알지?” 그때 옆에 서있던 상순이 제꺽 가슴을 뻗치며 나섰다. “예, 큰아버지, 내 임호 소대장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응, 그 놈을 해뜨기 전에 여기까지 끌고 오라.” 성칠은 또 인삼을 불러 명령했다. “즉시 소서구로 가서 악질지주 장학산을 잡아오라!” 그러자 인삼은 성칠을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조용히 말했다. “장학산은 이전에 항일유격대에 쌀이랑 대주었고 충국도 필경은 우리 유격대와 어깨 겯고 일본 놈들과 싸우지 않았소? 그들 부자간은 달리 처리하면 어떻소?” 그러나 성칠은 엄숙하게 말했다. “인삼 중대장은 철저하게 혁명을 하게나. 양아버지라고 인정에 얽매우지 마오.” 그는 붕대를 감은 인삼의 어깨 상처를 가리키면서 정색했다. “이 상처가 모든 걸 말해주지 않소? 그들 부자가 확실히 지난날 우리 유격대를 도왔고 일본 놈들과 싸운 건 사실이오. 허나 오늘 국민당 반동파에게 넘어가 우리에게 총부리를 돌려댄 이상 그 놈들을 놔둬선 안 되오. 즉시 가서 장학산을 붙잡아 오오.” 성칠 대장은 칠백 중대장을 불렀다. “칠백 중대장이 가서 장학산 놈을 붙잡아 오오. 그 놈들 부자는 우리 마을 정황을 정탐해 국민당 토비들에게 보냈소. 그 놈들을 총살해 후환을 없애 버려야겠소.” “옛!” 인삼 중대장은 하늘을 우러러 보더니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윽고 칠백 중대장이 유격대원들과 함께 장학산과 여편네, 딸 장미련까지 결박해 왔다. 장학산은 마당에 우두커니 서있는 인삼을 보자 욕했다. “얘, 인삼아, 네한테 미안하게 대한 게 뭐냐? 이 토성 안 집도 내 친아들에게도 주지 않고 널 주었지. 쌀을 빡빡 긁어 너 유격대에 대주었지. 이번에도 조덕산 저 놈이 준 권총을 주면서 오늘 밤에 이 마을을 친다는 정보까지 제공해 주었는데 이게 웬 일이냐?” 조덕산은 장학산 쪽에 대고 피가래를 뱉었다. “더러운 자식, 죽어도 꿋꿋하게 죽어라! 공산군의 개가 되더니 싼 통 했다.” 이때 조덕림과 물레박골 리영룡도 결박당한 채 임호가 이끈 유격대원들과 상순에게 끌려 왔다. 조덕림은 토성 안에 들어서자마자 비술나무에 묶인 동생을 보자 아우성쳤다. “아우야! 이게 웬 일이냐? 아이고, 쫄딱 망했구나. 큰소리를 땅땅 치는 네 말을 믿고 날치지 않았더라면 난 목숨은 건졌겠는데 이게 웬 일이냐? 우리 조개 집안이 쫄딱 망했구나.” 조덕산은 다른 비술나무에 묶인 조덕림을 보고 목청껏 소리쳤다. “형님! 우린 죽어도 떳떳하게 죽기요. 절대 꼬리빵즈 가난뱅이들 앞에서 비굴하게 목숨 따위를 구걸하지 말기오.” 조덕림은 끝없이 아우성 쳤다. “에이고, 죽고 보면 모든 게 끝인데 비굴하면 어떻고, 떳떳하면 어떻냐? 누가 영웅비석이라도 세워 준다더니? 에이고, 국민당군두 그저 그래? 저런 토박이 팔로 빨갱이들도 당하지 못하다니? 에이고, 저런 멍청이들을 믿고 밭을 찾자고 너덜거린 게 머저리지. 죽어 싸지.” 이영룡은 비술나무에 묶여 꽥꽥 고함쳤다. “너희들, 장관을 불러 오라! 내 무슨 국민당과 한통속인가? 일본 놈들과 한 물건 짝인가? 어쨌다고 여기까지 붙잡아 왔는가? 난 조선 고향으로 가겠단 말이야!” 그때 병완과 성칠 대장과 기준이 촌공소에서 나왔다. 병완과 기준을 보자 이영룡은 섬찍해 부들부들 떨었다. 병완은 이영룡의 귀 쌈을 쨩 갈겼다. “이 악질 지주 놈아! 오늘까지도 자기 죄를 모르는가? 네 놈은 일본 놈들과 결탁해 우리 원삼 조카를 가혹하게 착취하였다. 그를 죽인 장본인이다. 네 놈은 일본 놈들에게 쌀을 대주었고 밀정질을 하여 우리 무고한 백성들을 수많이 밀고해 용정 통감부 간도파출소에 붙잡혀 가 죽게 만들었다. 네 놈은 총살해 마땅하다!” 리영룡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대가리를 툭 떨어뜨리고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었다. 토성안 마당에 있던 군중들은 돌멩이를 비술나무에 결박해 매 놓은 조덕산과 조덕림, 이영룡에게 뿌렸다. 그러나 모두 장학산만은 때리지 않고 불쌍하다고 했다. 성칠은 그 세세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여겨보다가 군중들을 제지시켰다. “여러분, 그만 돌을 뿌리십시오. 내일 저 놈들을 숱한 군중 앞에서 공개재판한 후 처단합시다!” 그 말에 군중들은 돌멩이질을 멈추었다. 가을바람에 아름드리 비술나무와 버드나무가 무섭게 쏴 쏴 소리를 내며 설레였다. 이튿날 태평강 가에 진수해 부근의 숱한 군중들이 모여 왔다. 김병완 촌장과 이계삼 서기, 성칠 대장과 유격대 중대장들이 임시로 만든 주석 대 위 걸상에 앉았다. 사형장 부근에는 유격대원들과 민병들이 둘러서서 삼엄하게 보초를 섰다. 이계삼이 공개재판대회를 사회했다. “지금으로부터 공개재판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국민당군 영장이며 토비 단장 조덕산을 비롯한 국민당 토비두목들을 끌어내라!” 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민병 련장 상순이 유격대원들을 영솔해 고깔모자를 씌운 조덕산, 조덕림, 장학산, 이영룡을 끌어다 구덩이 앞에 꿇어 앉혔다. 조덕산은 죽어라고 꿇어앉으려고 하지 않으며 반항했다. “난 국민당 장관이야. 난 너희들의 포로야.” 상순이 장총박죽으로 종아리를 콱 내리치면서 발로 종아리를 꽉 밟아서야 겨우 억지로 꿇어 앉혔다. 이계삼은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아래 함흥 촌 촌장 김병완 동지로부터 조덕산 등 국민당 군관과 악질지주들의 주요 죄장을 공소하겠습니다.” 김병완은 주석 대에서 일어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공소했다. “국민당 군 영장 조덕산은 고향에 기여 들어 조덕림 등 지주들을 긁어 모아 70여명이나 되는 국민당반동파와 지주 무장 대오, 토비무리를 건립했다. 한족과 조선족 간의 민족 이간을 도발했다. 뭐? '조선족가난뱅이들이 한족들을 죽이고 밭을 빼앗자고 한다'구?  한족군중들을 미혹하여 국민당반동파 지주무장대오에 끌어들였다. 이 놈은 지주무장대오로 토비를 조직해 갓 광복을 맞은 우리 함흥 촌 공산당조직과 북만에서 온 조선의용군과 유격대 그리고 민주연군 전사들을 소멸하고 중국 공산당의 토지개혁을 파괴하려고 망상했다. 이 놈은 지주무장과 토비들 그리고 국민당 정예군 한 개패를 끌고 우리 마을을 습격해 수많은 민주연군과 유격대 전사들을 살해했다. 조덕산, 이 토비두목 놈의 하늘에 사무치는 죄는 백번 죽여도 마땅하다.” 상순이 주석대에 서서 즉석에서 한어로 통역했다. 숱한 한족군중들도 조덕산을 “죽여라!”라고 고함쳤다. 병완은 계속해 조덕림의 죄상을 공소했다. “악질지주 조덕림은 우리 함흥 촌 민병들이 자기 토지와 집을 청상하여 마을 가난한 한족백성들에게 나눠 주자 조덕산이 준 권총으로 상순을 사격했다. 또 동생인 조덕산 토비두목을 협조하여 우리 진수해 부근에서 지주 무장 대오를 세운 죄가 있다. 마땅히 총살해 후환을 없애야 하며 가난한 백성들의 원한을 갚아야 한다. 재산을 몽땅 가난한 한족과 조선 농민들에게 나눠줘야 한다!” 한족군중들은 기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조덕림을 청산하자!” “조덕림을 총살해라!” “조덕림의 밭을 나눠가지자!” 병완은 계속해 이영룡의 죄상을 밝혔다. “친일주구 악질지주 이영룡 놈은 일본 놈들과 결탁해 우리 고향의 이원삼 조카를 가혹하게 착취하였으며 그를 화나서 죽게 만든 장본인이다. 게다가 이 놈은 일본 놈들에게 쌀을 대주었고 일본 놈들의 밀정으로 돼 우리 무고한 백성들을 수많이 밀고해 용정 통감부 간도파출소에 붙잡혀 가 살해당하게 했다. 이 놈은 총살해 마땅하다! 지주 이영룡의 집과 밭을 몰수해 이원삼의 다섯 자식을 비롯한 물레박골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준다!” 이제 장학산이 혼자 남았다. 병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주 장학산은 우리 일가를 가혹하게 착취했다. 이번에도 장학산은 조덕산의 꼬임에 들었고 권총으로 유격대 간부를 위협했다. 또 그의 맏아들 장충국과 둘째아들 장리국은 무기를 들고 국민당 토비들과 함께 우리 유격대와 민병들을 습격했다. 특히 장충국은 우리 마을 군사정보를 조덕산에게 제공하였고 우리 인삼 중대장을 어깨에 중상을 입히고 삼도만 토비 굴로 도망쳐갔다. 그러나 장학산은 조선에서 의지 가지 없이 살길을 찾아온 우리 일가와 주현경에게 황무지를 개간하게 주었고 쌀이 없으면 쌀을 대주었다. 간고한 항일전쟁시기에 유격대에 쌀을 대주었고 아들 충국을 시켜 항일유격대와 함께 일본 놈들과 싸우게 했다. 그리고 이번 지주들의 무장대오가 어제 밤에 치러 온다는 중요한 정보를 양아들 인삼 중대장에게 알려 주었다. 장학산은 죄도 있고 공로도 있다." 병완은 군중들을 둘러보며 계속 말했다.       "우리 중국 공산당은 애증이 분명하고 법이 밝다. 장학산은 항일과 반토비전투에서 세운 공훈이 크기에 즉시 석방하며 집에서 노동개조를 하게 하면서 후일을 경계한다. 만약 다시 국민당 반동파들과 단짝이 된다면 호되게 처벌한다. 그러나 항일에 공로가 있는 맏아들 장충국을 이제라도 설복해 토비들과 한 무리로 되지 않고 고향에 돌아오게 한다면 과거의 죄를 묻지 않고 금후 태도를 위주로 보아 관대하게 처리하려고 한다.” 민병들은 즉시 장학산과 일가족의 결박을 몽땅 풀고 석방했다. 장학산은 주석대 앞으로 와 무릎을 꿇더니 두 손을 맞잡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감사하오. 공산군 장관 여러분. 꼭 충국더러 총을 놓고 돌아오게 하리다.” 인삼은 주석대에서 내려와 직접 양아버지를 부축해 일으켰다. “양아버지, 어서 집으로 돌아가십시요. 많이 놀랐겠습니다.” 조덕산은 핏발이 선 눈깔로 장학산을 쏘아보며 욕했다. “더러운 놈, 빨갱이 놈들한테 우리를 팔아먹고 제만 살아 남겠다구. 흥! 내 귀신이 돼서라두 네 놈부터 목줄을 물어 끊어놓지 않는가 봐라! 더러운 반역자 놈!” 성칠 대장은 장학산을 교육하고 장충국을 설복하게 하려고 고육지책을 썼던 것이다. 이때 이계삼이 목청을 가다듬어 고함쳤다. “아래 김성칠 대장으로부터 사형명령을 내리겠습니다.” 그러자 상순은 또 이계삼의 말을 즉석에서 조선말로 소리 높이 통역했다. 성칠 대장은 주석 대에서 일어나 우레 소리와 같은 목소리로 사형명령을 선포했다. “국민당 영장, 토비두목 조덕산과 토비두목 악질지주 조덕림, 친일주구 악질지주 이영룡을 사형에 처한다. 즉시 처단하라!” 한족과 조선족 군중들은 모두 박수를 치며 웅성거렸다. 상순은 장총으로 조덕산을 꿇어앉게 했다. 조덕산은 피투성이 된 대가리를 들고 주석 대 위에 있는 성칠을 쳐다보더니 고함쳤다. “난 국민당 영장이지 토비두목이 아니다. 군인답게 죽게 해 달라.” 성칠이 주석대에서 내려갔다. “말해봐라!” “난 걸상에 앉아 죽겠다. 마지막으로 담배를 한 대 줄 수 없는가?” 성칠은 통쾌하게 대답했다. “걸상을 가져 주라!” 조덕산은 걸상에 앉더니 고래고래 고함쳤다. “오늘은 내가 죽지만 이제 오래지 않아 삼도만 우리 형제들이 와서 네 놈들을 몽땅 천당에 보낼 게다!” 상순은 자갈을 쥐여 조덕산의 주둥이에 처넣었다. 성칠이 말리면서 손수 담배를 말아 조덕산의 입에 밀어 넣어 주었다. 그리고 조덕림의 죄꼬만 아들애를 시켜 조덕산의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여주게 했다. 악질 국민당군 영장, 토비단장 조덕산은 걸상 앞의 구덩이를 내려다보다가 머리를 들어 맑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더니 담배를 풀썩풀썩 빨아 연기를 토해냈다. 이윽고 담뱃대를 퉥 뱉더니 중얼거렸다. “됐다! 나를 마주 보면서 총을 쏴라! 난 군인이다. 절대 죽음을 두려워하는 비겁한 놈이 아니다! 형님, 내 먼저 가오. 우린 황천에 가서도 훌륭한 형제요!” 인삼 중대장이 옆에서 총을 든 유격대원들에게 “사격!” 하고 명령했다. 땅! 땅! 땅! 유격대원들은 조덕산의 뒤통수에 대고 총을 놓았다. 연신 세발을 맞은 국민당 군 토비 두목 조덕산은 대갈통이 박살났다. 시체만 멀건 물이 고인 구덩이에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조덕림은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면서도 고함쳤다. “아우야! 나도 따라간다!” 땅! 조덕림은 뭐라고 욕지거리를 하려다가 대갈통이 박살나 구덩이에 굴러 들어갔다. 조덕림의 처자들은 울고불고 했다. 성칠 대장은 지시했다. “조덕림의 처자들은 조덕림과 계선을 나누어 처리하는바 즉시 석방하라!” 그는 조덕림의 처자들을 보고 호통쳤다. “네 놈들도 조덕림과 조덕산처럼 인민정부와 적대시하면서 토비들을 돕는다면 그땐 저런 끝장을 보게 될 것이다!” 애들은 질겁해 달아나는데 조덕림의 여편네는 시체를 치우자고 재판대회장에 서 있었다. 병완과 상순이 총을 들고 주석대에서 내려왔다. “네놈에게 물리어 죽은 원삼을 비롯한 물레박골 수많은 무고한 백성들의 원수를 갚는다.” 말을 마치자 병완과 상순은 이영룡의 앞에서 대갈통을 조준해 사격했다. 땅! 땅! 악패지주 이영룡도 대갈통이 박살나고 허파에 구멍이 뚫렸다. 병완은 발길을 날려 악질지주 이영룡의 시체를 툭 걷어차 구덩이에 처넣었다. 상순은 구덩이에 대고 침을 뱉었다. 병완이 지주들의 빚 문서를 한 아름 안아다가 쌓아놓고 명령했다. “지주들의 빚 문서를 몽땅 불태우라!” 성수랑 상순이랑 숱한 지주들의 누런 빚 문서 무지에 기름을 치고 불을 질렀다. 순간 시뻘건 불이 확 달려 삼단 같은 시꺼먼 연기가 하늘을 찌르며 뭉게뭉게 솟구쳐 올랐다. 병완은 주먹을 불끈 쥐고 고함쳤다. “여러분, 이제부터 우리 가난한 백성들은 지주들에게 진 빚이 한 푼도 없습니다. 우리는 진정 이 나라 땅의 주인이 됐습니다!”  가난한 농민들은 기뻐 야단쳤다. 그들은 허영주를 따라 구호를 불렀다. “인민정권 만세!” 이계삼이 마지막으로 연설했다. “여러분, 우리 중국 공산당은 지주를 청산하여 민족을 가리지 않고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 줍니다. 때문에 국민당의 민족리간 음모에 미혹되지 말고 모두 공산당을 따라 우리 마을과 인민민주정권을 지키고 토지개혁을 끝까지 해나가야 합니다.” 백성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들은 병완을 따라 한어와 조선어로 구호를 높이 불렀다. “중국 공산당 만세!” “영원히 중국 공산당을 따라 혁명하자!” 저쪽 버들강변에서는 까마귀 몇 마리가 날아와 앉아 깍깍 하고 울어댔다.        
99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2) 댓글:  조회:1920  추천:0  2017-02-16
                                  5. 지주를 청산       동산에 구리바라 같은 아침 해가 두둥실 떴다. 찬연한 가을 햇빛이 아름드리 버드나무와 비술나무가 들어선 들에 숱한 금침, 은침을  내리뿌렸다.        병완은 촌공소에서 일어나 마당에 나왔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불어왔다. 병완은 두 팔을 양쪽으로 벌리면서 시원한 가을 아침 공기를 한 가슴 뿌듯이 마음껏 들이 마시었다. 촌공소 위 칸에 사는 학수와 상우가 마당에 나오다가 반겨 맞았다. “할아버지,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오, 그래. 광복 맞아서 그런가. 온 몸에 힘이 나는구나.” 학수도 인사했다. “김 촌장 덕분에 우리 집에서 생각 밖으로 이리 좋은 집에서 살게 됐습니다.” 병완은 인사를 받았다.      “이게 다 항일유격대 덕분이오." 병완은 인삼이 바깥에 나오자 다가가 나직이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제 밤 지주 놈들 움직임이 심상찮네. 먼저 손을 쓰는 게 좋을 거 같네.” 인삼은 마당을 둘러보다가 병완에게 말했다. “안에 들어가 토론합시다.” 집 안에 있던 성칠 대장과 상순이 우쭐 일어나 할아버지한테 자리를 내주었다. 병완은 자리에 앉자마자 성칠한테 말했다. “어제 밤 상순이 정찰한 정황은 아주 중요해. 위험한 징조야. 선손 써서 그 놈들을 몽땅 없애 버리는 게 상책이다. 이제 유격대가 조선에 나가면 상순이네 민병패로써는 그 놈들을 당하기 어려울 게 아니냐?” 성칠은 과단성 있게 말했다. “옳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가기 전에 후환을 없애 버리어야겠습니다. 그 놈들은 지금 지주 무장을 조직해 가지고 우리가 간 다음 손을 쓸 수 있습니다.” 그는 인삼을 돌아보았다. “그 놈들을 일망타진해야겠소. 먼저 조덕산이란 놈을 나포하기오. 그 놈들은 밤에 활동하지 않소? 또 활동장소도 자꾸 움직이고 있소. 조덕림이네 집에 모이지 않고 도가 집에 모이는 걸 보오. 그 놈들이 도망칠 가능성두 있소. 우린 오늘 저녁부터 그 놈들을 기습해 버리기요.” 인삼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내 먼저 장학산을 찾아가 눈치를 살펴야겠소.” "그렇게 하오." 인삼은 성칠의 지시대로 유격대원 일여덟 데리고 소서구 어귀 장학산의 집으로 떠나갔다. 성칠은 막내조카 상순에게 머리를 돌렸다. “상순은 민병들을 데리고 조덕림의 집에 가서 집을 청산하구 밭을 가난한 한족 백성들에게 나눠 줘라. 조덕림이네 집 눈치를 살펴 봐라. 다른 동향이 없는가.” “나도 가겠다.” 병완도 나섰다. 그러나 성칠은 말렸다. "아버진 년세 계신데. 토성 안 집에서 상순의 승리소식을 기다립소." 성칠은 칠백과 동욱을 불렀다. “조덕산 놈은 우리가 떠나야 손을 쓸 수 있소. 우린 부대를 데리고 함흥 촌을 떠나는 척 하기요. 그럼 그 놈이 지주무장들을 몽땅 데리고 뛰쳐나올 게 아니오?” 그들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호랑이를 굴에서 끌어 내와야지.” 뒤이어 그들은 성칠 대장이 나직이 하는 말을 듣고 머리를 끄덕이더니 희죽이 웃었다. 성칠의 포치대로 유격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격대원들은 토성 안 갱도에 두 개 소대나 들어가 숨고 나머지 유격대원들은 일본 포로들마저 압송해가지고 몽땅 줄을 서서 대문 밖으로 씩씩하게 행군해 나갔다. 성칠 대장이 거느린 유격대 행렬은 함흥 촌을 벗어나고 조개덕을 지나 해동과 진수해쪽으로 행군해갔다. 조덕림은 금방 대문을 빠져나오다가 떠나가는 유격대 속에 늠름한 성칠이랑 있는 것을 보고 동생이 말한 대로 함흥 촌을 들이 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조덕림이 대문에서 몇 발작 떼지 못하였을 때 병완과 상순이네와 딱 마주 띄웠다. 병완은 시름이 놓이지 않아 성칠이 몰래 친히 손쓰러 왔던 것이다. 병완은 조덕림이 자그마한 상자를 든 것을 보고 꽥 고함치었다. “어데로 가?!” “아, 김 촌장, 무슨 일로?” 조덕림은 상자를 잔등에 숨기면서 꺽꺽거리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병완은 조덕림의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지주를 청산하러 왔다.” 조덕림은 상자를 안고 냅다 뛰었다. 상순은 민병들에게 손을 홱 저었다. “사로잡아라!” 조덕림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들어 돌아서며 쏘았다. 땅! 총알이 상순의 귀전을 스치고 앵-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날아갔다. 상순은 총창을 비껴들고 덮쳐가며 총을 쥔 조덕림의 오른 손을 탁 쳤다. 조덕림의 손에서 권총이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땅바닥에 뚝 떨어졌다. 조덕림이 권총을 주어드는 순간, 민병들이 왁 덮쳐들어 조덕림의 총을 빼앗았다. 땅! 땅! 조덕림은 권총을 빼앗기면서도 연속 방아쇠를 당기었다. 허나 총알은 공중으로 날아올라갔다. 민병들은 그 놈의 권총을 빼앗고 바로 꽁꽁 결박했다. 조덕림은 결박당해서도 고래고래 고함쳤다. “나를 청산해? 이제 내 동생이 빨갱이 놈들을 몽땅 없애버릴게다. 빨갱이 놈들아! 썩어질 날이 오래잖다.” 그 놈은 나무상자를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상순이 자그마한 나무상자를 빼앗아 훌 열었다.  금목걸이로, 보석걸이로, 귀걸이로, 팔찌로 상자에 꽉 차 있었다. 상순은 조덕림을 집 마당에 있는 늙은 비술나무에 묶어놓고 병선을 보고 지키게 하고는 민병들을 이끌고 할아버지와 함께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안에는 혼비백산한 조덕림네 처자들이 이불을 들쓰고 엎디어 있었다. 그는 총칼로 이불을 활활 걷어 올리었다. 조덕림의 여편네가 바들바들 떨면서 두 손을 싹싹 비비였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오.” 상순은 총칼을 들이대고 물었다. “조덕산이 어데 숨었느냐?” 조덕림의 여편네는 사시나무 떨듯하면서 중얼거리었다. “요즘엔 온 적두 없소. 빨갱이들이, 저, 아니, 공산군이 온 후부터 우리 집에 얼씬도 하지 않았소.” 상순이 손을 홱 휘두르며 “수색해라!” 하고 소리쳤다. 민병들은 그 큰 집 서쪽 방과 동쪽 방을 구석구석 들춰 보았지만 조덕산의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상순은 조덕림의 집식구들을 몽땅 끌고 나와 마당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 흥수와 학수를 시켜 대문 밖을 경계하게 하고 병선과 태수를 시켜 조덕림을 지키게 했다. 병완은 민병들을 시켜 조개덕의 가난한 한족과 조선족 군중들을 불러 왔다. 마당에는 숱한 한족과 조선족 빈고농민들이 몰려 왔다. 그들은 평소에 자기 동생을 믿고 우쭐거리던 조덕림이 나무에 결박당한 것을 보고 깨고소해 했다. 병완은 먼저 한어로 말했다. “오늘 지주 조덕림을 청산하겠소. 조덕림의 서쪽 방을 집도 없이 사는 장발래에게 주겠소.” 장발래는 좋아서 입이 함박만 해졌다. “김 촌장, 감사하오. 집도 없이 살던 내가 이런 토성 안의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게 됐구먼. 허허허.” 장발래는 조덕림의 눈치를 힐끔 곁눈질해보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조덕림은 눈깔을 희번뜩거리면서 장발래 잔등을 쏘아보았다. 그때 제해봉이 소리쳤다. “동쪽방은 나를 주오.” 조덕림은 아연실색했다. “아니, 네 놈이 감히 내 집을 가져?” 조덕림은 계속 꽥꽥 고함쳤다. “네놈이 뭐가 돼서 내 집을 가난뱅이들에게 나눠주니? 제해봉, 네 놈 새끼 두고 보자. 내 집을 빼앗아 어디 잘 사는가?” 병완은 꽥 소리쳤다. “조덕림, 이놈, 주둥이를 다물지 못할까? 이게 어디 네 집이냐? 네 놈이 국민당을 믿고 우쭐거렸다간 동쪽 방도 몽땅 청산해 버리겠다.” 병완 촌장은 상순을 보고 “그 놈을 끌고 조개네 밭으로 가자.”라고 했다. 상순은 조덕림을 끌고 조덕림의 집 뒤로 갔다. 병완은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식구 여섯이나 되는 제해봉한테 조덕림네 밭을 여섯 짐 청산해준다.”라고 선포했다. 그러고 나서 나무자로 여섯 짐을 재여 말뚝을 박아 주었다. 제해봉은 밭에 꿇어 앉아 두손으로 검은 흙을 움켜쥐어 냄새를 맡았다. 드디어 그는 머리를 들고 병완과 민병들을 올려다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게 내 땅이요?" 그때 조덕림이 소리쳤다. “어디 네 땅이냐? 내 땅이야! 감히 내 땅을 다치겠니?” 병완 촌장은 조덕림을 손가락질하며 고함쳤다. “이건 우리 함흥 촌에서 당의 토지개혁정책에 따라 제해봉에게 준 밭이다. 이제부터 조덕림, 이 밭은 네놈의 밭이 아니라 제해봉의 밭이다.” 제해봉은 좋아서 야단쳤다. “김 촌장, 만세!” 그러자 병완은 제해봉을 말렸다. “내 만세를 부르다니? 유격대와 공산당에 감사를 드리게나.” “공산당 만세!” 제해봉은 구호를 불렀다. “저 조덕림이 공산당과 유격대가 공산공처를 한다면서 나쁘다더니 공산당이 너무 좋구나. 난 공산당과 유격대 덕분에 밭을 여섯 짐이나 가졌소. 이제부턴 공산당과 김 촌장의 말을 듣겠소. 뭘 시켜도 다 할 테요.” 병완은 장용객에게도 조덕림의 밭을 청산해 다섯 무나 주었다. 그리고 조덕림의 밭을 소작맡았던 최경숙에게는 소작을 맡았던 밭을 주고도 세 무를 더 나눠주었고 경민과 경석에게도 네 무씩 분배해주었다. 경숙은 동생들과 함께 밭을 분배받은 기쁨을 나누면서 아쉬워했다. “아버지하구 경인이네두 함흥 촌에서 진수해로 내려가지 않았더라면 밭을 나눠가졌겠는데 그랬다.” 병완은 그 외에도 조덕림에게서 빼앗은 상자안의 금은보화를 꺼내 유격대 군비로 쓸 만큼 남기고 조선족과 한족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주었다. 집과 밭 지어 금은붙이까지 나눠가진 가난한 조선족과 한족 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구호를 불렀다. “공산당 만세!” “항일유격대 만세!” 병완은 성칠의 포치대로 조덕림을 보고 을러멨다. “네 놈이 이제 다시 가난한 농민들에게서 집과 밭을 되빼앗아내는 날엔 나머지 동쪽 방과 나머지 밭을 몽땅 청산해 버릴 테다!” 상순은 조덕림을 풀어주고 함흥 촌으로 돌아오면서 조용히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조덕림이 국민당 조덕산 영장과 한통속인 게 뻔한데 왜 놔줍니까? 그놈이 우리에게 총까지 쏘았는데요.” 병완은 상순을 데리고 촌공소로 들어가 나직이 말했다. “그물을 널리 쳐서 큰 고기를 잡으려는 거야.” 그제야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병완은 상순을 보고 나직이 귀속 말로 분부했다. “오늘 저녁에 성칠의 말대로 가능하게 조덕산이랑 토비들을 끌고 우리 함흔촌을 칠 수도 있다. 난 마을사람들을 동원해 마을 외곽의 목책과 토성 그리구 갱도도 잘 손질해놓을게. 마을 사람들을 여러 마을의 토성 안에 피신시키자.  넌 민병들을 데리고 마을 주변 산봉우리에 올라가 잘 순라해라. 일단 토비들 동정이 있으면 칼산과 계수동 서산에 봉화를 피워 신호를 보내라.   다른 마을의 민병들이 인차 봉화가 피어 오른 마을을 포위해 토비들을 협공하기로 하자.” “예. 할아버지.” 상순이 떠나가려고 할 때다. “잠간!” “예!” 병완은 상순을 보고 나직이 분부했다. “토비들을 포위 습격할 때 우리 민병들끼리 서로 사격하지 말도록 왼팔에 허연 수건을 동여매게 하자.” “예! 알았습니다.” 상순은 할아버지의 명에 따라 마당에 나가 민병들을 두 개 소조로 나눠 행동을 시작했다. 한 개 소조는 여러 마을 사람들을 재빨리 토성 안에 피신시키고 다른 한개 소조는 소서구와 계수동 쪽으로 나뉘어 순라를 하러 떠나갔다.                          6. 충고        한편 소서구로 간 인삼은 장충국의 토성 안 집으로 곧추 들어갔다. 장충국은 바깥에서 땔나무를 패는척 하면서 망을 보았다. 인삼이 유격대원 일여덟을 데리고 들어서자 장충국은 도끼를 쥔 채 그들을 쏘아보았다. “동생!” 충국은 유격대원들을 아니꼽게 바라보다가 굳어진 얼굴을 좀 느슨히 풀었다. “형님, 왔소?” 인삼은 충국의 잔등을 툭툭 다독이였다. “양아버지 있느냐?” 충국은 집안에서 들으라고 언성을 높였다.  “형님, 좀 양심 있게 노오. 우리 집에서 형님을 미안하게 대한 게 뭐요?” 인삼은 집안에 꼭 장학산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자식!) 인삼은 유격대원들을 바깥에서 보초를 서게 하고 혼자 집안으로 들어갔다. 충국이 마당 안팎에 흩어지는 유격대원들을 둘러보고 인삼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인삼이 집안으로 들어가자 장학산은 권총을 허리춤에서 꺼내 들었다. 장리국은 식칼을 들고 인삼을 쏘아 보았다. 다만 장학산의 처 충씨와 딸 미련만은 궤 안에서 뭘 꺼내 챙기다가 손을 떼며 인삼을 바라보더니 바들바들 떨었다. 인삼이 혼자 들어선 것을 보고서도 장학산은 권총을 거두지 않고 물었다. “그래, 양애비를 청산할테냐?” 인삼은 구들 턱에 걸터앉았다. “양아버지, 나를 어째 믿지 못합니까?” 그제야 장학산은 총을 허리춤에 질러 넣으면서 두덜거렸다. “우리 집은 대대로 이 땅에서 양심적으로 살아왔다. 일본 놈들이 쳐들어오자 난 목숨 걸고 너네 유격대에 쌀을 가만히 실어다 주었다. 허나 일본 놈을 몰아내자 너희 공산당이 한 노릇이 뭐냐? 나를 믿게 하느냐? 우리 밭을 조선에서 온 가난뱅이들한테 나눠주고 이제 또 우리 집도 청산하러 온 게 아니냐?” 인삼이 장학산의 두 손을 잡았다. “양아버지,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전번에도 말했지만 그런게 …" 장학산은 인삼의 손을 홱 뿌리쳤다. “놔라, 놔. 너를 도와준 결과가 이런 거냐?” 그러나 인삼은 나직이 말했다. “양아버지,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양아버지를 다른 중국 지주들만은 다르게 대합니다. 아버지는 항일애국자기 때문에 집과 밭을 보류하게 하지 않았고 뭣입니까?” “보류? 지금 병완은 네 눈치를 봐서 잠시 놔둔 거야. 이제 네 떠나가면 이 집도 조만간에 빼앗고 말게다.” 인삼은 고의적으로 말을 흘렸다. “글쎄 나도 이제 대부대를 따라 떠날 예산이오. 그래서 가기 전에 양아버지를 찾아와 충고합니다. 절대 국민당군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괜히 그 놈들의 얼림수에 걸려 이 집도 목숨도 건지지 못하겠습니다.” 장학산은 인삼에게 다가 앉으면서 나직이 물었다. “그래, 너 오늘 정말 떠나가니?” “예. 건 왜 물어요?” “어, 아, 아니야. 네가 가면 우린 어떻게 살겠니? 저 가난뱅이들이 내 집을 빼앗고 죽일게 아니야?” 장학산은 무슨 궁리를 하더니 인차 볼 부은 소리를 했다. “우리를 데리고 가렴? 대체 어디로 가자고 그러니?” 인삼은 별로 고려도 하지 않은 듯이 말했다. “난 저기 온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오늘 떠난 대부대를 따라 진수해를 거쳐서 조선으로 나가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런데 양아버지를 만나보고 떠나려고 왔습니다. 이제 이렇게 가면 언제 또 만나겠습니까?” 장학산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정말 큰일이다. 네까지 가고 고만한 밭으로 어떻게 사니? 우린 충국도 농사 지을줄 모른다. 소작료나 받아먹고 살던 우리를 농사를 지으라고? 흥!” 충국도 끼어들었다. “형님, 나도 형님네 유격대와 함께 일본 놈들과 싸운 걸 알잖고 뭐요? 일본 놈들을 몰아낸 후 이게 어디 우리 세상이 됐소? 조선가난뱅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지. 꼬리빵즈들은 참 양심이 없어. 조선에서 밥을 얻어먹으러 온 주제에 남의 땅에서 주인행세를 한단 말이오.” 인삼은 억이 막혔다. “보아하니 양아버지나 동생들이나 국민당군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거 같구먼.” 그는 장학산의 허리춤을 보며 엄숙하게 물었다. “양아버지, 그 권총을 내놓소. 어데서 난 권총이오?” 장학산은 권총을 두손으로 붙잡으면서 벌떡 일어났다. “안 돼! 네까지 가는데 누가 보호해 준다더니?” 인삼은 짐짓 바깥을 내다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양아버지,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권총 한자루로 어떻게 목숨을 지킨다고 그럽니까? 날 줍소.” “안 돼! 네가 정말 이 양애비 은정을 잊지 않는다면 내게 권총이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충국도 끼어들었다. “형님, 한번만 봐주오.” 인삼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양아버지, 참 답답합니다. 내 부자지간의 정의를 생각해서 권총을 못 본 걸로 하겠소. 난 조선에 나가면 다입니다. 양아버지 은정을 잊지 못해 충고합니다. 총을 버리고 공산당과 유격대 편에 서시오. 이래야 아버지 일가 목숨을 구할수 있습니다. 지금 동만은 공상당 수중에 장악됐습니다. 절대 조덕산 같은 국민당군의 선동을 듣지 마시오. 국민당군이 여기 오기전에 민주연군에 몽땅 뒈지지 않는가 두고 보십시오.” 인삼의 말에 장학산은 궁리하더니 권총을 인삼에게 주었다. “네 말을 따를게.” 인삼은 권총을 받으면서 “잘 생각했습니다.”라고 했다. 충국은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삼은 장학산의 마음이 변한 것을 틀어쥐고 물었다. “양아버지, 내한테 할 말은 없습니까?” 장학산은 인삼과 충국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무거운 입을 뗐다. “난 세상일에 삐치지 않으련다.” 인삼은 장학산의 손을 잡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충고하지만 절대 남의 충동에 놀지 마십소. 일이 있으면 말하십시오.” 그러나 장학산은 손을 빼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없다, 없다니깐. 잘 가라. 나도 너한테 충고하마. 조선에 가면 다신 절대 이 마을에 돌아오지 말라. 그게 너를 구하는 길이다.” 인삼은 장학산의 그 말을 듣고 그 말의 무게와 함의를 대개 짐작했다. 장학산은 인삼에게 한참 뭐라고 말했다. 인삼도 뭐라고 양아버지에게 충고를 하고 갈라졌다. “양아버지, 이 못난 양아들을 마지막까지 염려해 주어 고맙습니다.” 인삼은 문을 나서며 장학산을 돌아보면서 눈물까지 주르르 흘렸다. 장학산도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충국은 인삼을 따라 나오면서 팔소매를 잡아당기였다. “형님, 조선에 가기 전에 병완 촌장과 말하오.저 아래 토성 안 집을 내게 돌려주라고 말이오. 나도 이젠 나이 있는데 장가를 가서 그 집에서 살아야겠소.” 인삼은 충국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이 답답한 놈아, 넌 그 착취계급의 사상을 싹 씻어버려라. 혼자 욕심스레 그 큰 집을 쓰고 살아서야 되니? 가난한 사람과 고루고루 나눠 다 같이 살아야 한다. 집을 가지려니 하지도 말아라.” “알았소, 알아. 그게 공산당의 토지개혁정책이 아니오? 흥!” 충국은 인삼을 대문 밖에까지 바래주었다. “형님, 잘 가오. 이 난세에 강냉이 밭에서 이파리가 흔드는 소리가 나도 주의하오. 조선에 갔다가 생각대로 안 되면 다시 오오.” “응.” 인삼은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태평강으로 내려갔다. 인삼은 아름드리버드나무숲에 들어서자 몸을 돌리더니 소서구 어귀를 돌아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아름드리버드나무숲이 가을바람에 쏴쏴 무섭게 설레였다. 먹구름이 천지꽃산으로부터 뭉게뭉게 몰려왔다. 때 아닌 가을에 웬 소낙비가 오려는가? 먹장구름 속에서 번개가 대지를 번쩍 찌르더니 우뢰가 꽈르릉 천지를 진동했다. 인삼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버드나무숲속에 바람결처럼 사라졌다. 아름드리 버드나무숲속에서 난 데 없는 뻐꾹뻐꾹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었다. 이윽고 상순이 몇몇 민병들을 데리고 순라하면서 버드나무숲 속으로 들어갔다. 한편 병완이 촌공소 마루에 나가 짚신을 신을 때었다. 애를 업은 진달래 중대장이 경위원과 여성유격대원을 데리고 토성 안에 들어섰다. “사돈어른, 그간 무사했어요?” 병완이 마주 나가 인사했다. “아니, 사돈색시 왔구만. 우리 맏이두 기다리다가 오늘 진수해로 떠났소.” “예?” 진달래 중대장은 저으기 놀랐다. “여기에 용천 대장은 오지 않았어요?” 병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지 않았소. 북만에 가지 않았던가?” 그 말에 진달래중대장은 어깨를 툭 떨어뜨리더니 눈물을 줄줄 흘렸다. “예. 아무리 기다려도 경주 아버진 오지 않았어요.”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진달래네 일행 셋을 촌공소안으로 안내해 들어갔다. “애까지 업구 길에서 얼마나 고생했겠소.” 병완은 진달래중대장을 촌공소 사무실 안방에 데리고 들어갔다. 진달래는 이슬이 맺힌 눈을 목수건으로 닦고 나서 함흥 촌에서 있은 일을 병완에게서 들었다. 진달래 중대장은 경주를 여성유격대원에게 맡기고 일어섰다. “은녀를 여기에 데려와야지. 상순사돈네 집에 둬선 위험할 거 같아요.” 그러자 병완이 말렸다. “지금 움직이지 마오. 괜히 적들이 눈치를 채겠소. 놈들이 어데서 우리 촌공소를 감시하고 있을 줄도 모르오.” 그러자 진달래는 구들에 들어앉았다. “그럼 이제 날이 어두워지면 데려 오지오. 먼저 누굴 보내 기별하는 거 좋을 거 같아요.” “옳소.” 병완은 말을 마치자 바깥으로 나가 학수를 불러 당부했다. 병완은 집안에 들어오자 진달래를 보고 말했다. “아차, 깜빡 잊었군. 진달래 중대장, 큰오빠가 여기 갱도에 있소.” “예? 큰오빠가 살아 있어요?” “내  불러올게.” 그때 때마침 상순이 마을을 순찰하다가 촌공소에 들어섰다. “최 중대장이 왔구먼. 용천대장은?” 병완은 상순을 보고 말했다.  “빨리 갱도 안에 내려가 경호 사돈을 불러 오라.” 진달래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 갱도에서 한 사람이라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아요. 제가 내려 가 오빠를 보겠어요.” 그때 경주가 “엄마, 맘마.” 하면서 앵앵 울었다. “옳다. 너도 큰아버지 보러 가자.” 진달래는 경주를 안고 상순이 쌀독을 치우자 갱도 안으로 내려갔다. 시꺼먼 갱도 안에서 유격대원들은 등잔불 밑에서 저녁밥을 든든히 먹으면서 전투준비를 한창 하고 있었다. 진달래는 갱도바닥에 내려서기 바쁘게 고함쳤다. “오빠, 멧돼지 왔어요. 오빠!” “멧돼지야!” 유격대 속에서 경호가 마구 엎어질듯이 달려 나왔다. 그들 오누이는 갱도 안에서 경주를 사이에 두고 붙안고 대성통곡 쳤다. 그 바람에 경주도 “엄마! 맘마!” 하고 울었다. “경주야, 울지 마라. 큰아버지야!” 경호는 조카를 받아 안고 “경주라고? 아버지도 살아계시면 외손자를 보고 얼마나 반가와 하겠나?” “글쎄 말이예요." 이때 칠백도 진달래를 보고 다가왔다  “아주머니, 무사히 왔구먼. 형님은 오지 않았제이?”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또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어깨를 들먹였다. “아주머니, 근심하지 말라니께. 우리 형님은 꼭 살아 있을 거라우. 난도 이제 일본 놈들을 잡아 치우면서 고향으로 나가겠다이.  (희야)형님이랑 경주에 가면 만날 수도 있제이.” 그때 동욱이가 다가와 말했다. “다 산산이 흩어져 자기 고향으로 돌아 가버리면 유격대는 어찌겠소?” 칠백은 대수로워 하지도 않았다. “일본 놈들이 다 망하면 유격대를 해서 뭘 하겠소?” 동욱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난 아직 내 안해 원쑤를 갚지 못했소. 고향에 돌아가 꼭 원쑤를 갚고 안해 산소에 가서 알려야겠소." "에이구, 그 놈들이 달아난지도 오래겠소. 보오. 룡정의 스쯔이로랑 몽땅 섬나라로 도망치지 않았소?" “됐어요. 고향 말은 후에 하세요. 여기 국민당 토비들이 당장 이 마을로 쳐들어올 판인데요. 우리 전투준비를 하자요.” 그리하여 진달래중대장과 칠백중대장, 동욱중대장은 셋이 두 개 소대 병력을 세개로 나눴다. 칠백 중대장과 동욱 중대장은 유격대원들을 령솔해 가만히 갱도를 통해 토성 밑 갱도로 나가 총구멍을 열어놓고 토성 밖을 내다보며 적정을 살피었다. 진달래중대장은 한 개 분대 병력을 데리고 촌공소 안으로 되나와 병완과 함께 적들 야습에 대처할 작전을 꾸미였다. 이윽고 상순이 나가더니 민병들을 데리고 가서 농사군들의 옷을 여나문벌 가지고 왔다. 진달래 중대장은 경주를 여성 유격대원에게 업혀 놓고 농촌 아낙네 차림을 하였다. 유격대원들도 몽땅 유격대 옷을 벗어 놓고 농사군들의 옷으로 바꿔 입었다. 그들은 강냉이단을 가득 가져다가 그우에 유격대 옷을 입혀 마당에 파놓은 전호와  집 안에도 구석구석 세워 놓았다. 뒤이어 진달래중대장과 병완은 유격대원들을 령솔해 상순이가 이끌고 들어온 민병들 속에 섞여 토성 안에서 나갔다. 진달래는 상순이네 집에 가서 은녀까지 데리고 유격대원들이 숨은 버드나무 숲속에 숨었다.        상순은 진달래를 비롯한 유격대원들을 버드나무숲 속에 남겨두고 마을을 돌며 순라했다. 인삼은 토성안 촌공소에 돌아와서도 양아버지 장학산이 근심스러워 한숨을 내쉬었다.  
98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1) 댓글:  조회:2066  추천:0  2017-01-25
                                         3. 토지개혁        이튿날 이른 아침에 쏘련홍군과 항일유격대 대부대가 도착하였다. 성칠은 항일유격대를 령솔해 쏘련홍군과 함께 일제 동만통지중심인 룡정으로 쳐나갔다. 그들은 순식간에 용정 영사관을 점령하고 쏘련홍군과 항일유격대 진붉은 기발을 영사관 꼭대기에 꽂아놓았다. 뒤이어 지하감방 대문을 까부시고 항일투사들을 구해냈으며 일제가 도망치면서 버린 무기창고에서 탄약과 폭파약, 총기들을 거둬내고 일일이 등록하였다. 이로써 일제가 동만에 대한 반세기 넘은 통지는 종말을 고했다.       용정은 해방했다. 하지만 성칠 대장은 친일주구 한철주와 똘만이 놈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최동욱 중대장은 안해를 릉욕한 가메다 놈을 간도에서 줄곧 찾았지만 끝내  놓치고 만 것이 줄곧 가슴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혹시나 해 성칠 대장과 최동욱 중대장은  유격대를 거느리고 용정통감부 간도파출소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스쯔이로 소장놈을 괴수로 한 일제 경찰들은 꼬리빳빳해 도망친지도 오랬다. 평소에 중조 인민들 앞에서 군도를 차고 거들먹거리던 일본 순사놈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혹시 용정이 목표가 커 위험하다고 이 놈들이 진수해로 도망쳐 숨지 않았을가? 진수해에 숨으면 살 거 같은가?)     성칠은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기준은 몇몇 유격대원들과 함께 문화거리에 있는 교회당으로 가 보았다. 그러나 이전에 기준을 여러 모로 도왔던 죤슨 신부는 귀국한지 오래였다. 교회당은 일본 놈들의 봉쇄로 하여 문설주에 거미줄이 얼기설기 늘여져 있었다.        중조인민들은 룡정거리에 뛰쳐나가 환호했다. 그 속에는 중년애국자 림민호 외에도 정규성, 박규찬, 정일권, 최윤갑  등 대성중학교와 은진중학교, 명신녀자중학교, 도흥중학교 남녀학생들도 끼여 있었다. 그들은 목이 터지게 구호흘 불렀다.       "민족해방 만세!"       "동북해방 만세!"       "중국 공산당 만세!"       "민족독립 만세!"        거리는 횐희로 세차게 파도쳤다.       얼마나  기다리던 민족의 광복인가! 얼마나 많은 각 민족 선렬들의 선혈로 바꿔온 해방인가!         성칠은 쏘련홍군과 항일유격대가 룡정에서 해방기념대회와 악패 한간과 지주를 처단하고 대오를 휴식정돈하는 틈을 타서 소분대를 거느리고 다시 함흥촌에 되돌아왔다.      그는 창준과 기준 두 동생과 누이동생 곰순 그리고 조카들과 함께 천지꽃산 동쪽 양지바른 산중턱에 모신 두 어머니 산소를 찾아갔다. 그는 어머니 산소 앞에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더니 대성통곡쳤다. “어머니-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옵소서. 어머니 돌아가실 때에도 찾아오지 못했습니다. 어억억, 헉헉헉." 창준과 기준 그리고 곰순 등 식솔들도 모두 꿇어 엎드려 대성통곡을 쳤다. 성칠 대장은 울면서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생전에 어머니는 그렇게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건만 이 불효자식은 어머니 생전에 모셔 가지 못했습니다. 하루 속히 일본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어머니를 고향에 모셔 가려고 했건만 이제야 어머니를 찾아 왔습니다. 아직도 우리 원수 일본 놈들과 한철주 같은 친일주구들을 다 처단하지 못했습니다. 일본 놈들은 수많은 우리 조선의 아들딸들의 목숨을 빼앗아 갔습니다. 당신네 맏며느리도 일본 놈들과 영용하게 싸우다가 장백산 밀림에서 장렬히 희생됐습니다. 이제 이 맏아들은 조선 고향에까지 쫓아가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한 하늘을 쓰고 살 수 없는 원수 친일주구들을 싹 쓸어버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고향 땅에 모셔 가겠습니다." 그 말에 창준과 기준은 서로 마주 쳐다보았다. 사련과 수월은 며느리들을 데리고 제사상을 차렸다. 모두들 성칠의 뒤를 이어 제주를 붓고 큰 절을 올리었다. 저쪽 천지꽃산과 소서구 북쪽 산에서 장 꼬마와 유격대원들이 총칼을 쥐고 보초를 서고 있었다. 이때 병완이 상순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 왔다. 그는 성칠을 불러 한쪽으로 가서 조용히 말했다. “어제 저녁에 말할 새 없어 토론하지 못했다. 우리 모두 유격대를 따라 조선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자.”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아버지에게 정중하게 권고했다. “아버지, 고향이라고 무턱 대구 갈게 아닙구마. 먼저 제가 고향에 가 정황을 잘 알아 본 후 집 식구들을 데리고 나옵소.” 병완은 성칠에게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여기 있으면 아직도 장학산이나 조덕림 같은 중국 지주들과 죽기내기로 싸워야 할 거 같아. 그 놈들이 땅과 집을 순순히 내놓자 하겠니? 고향에 돌아가 자기 땅이나 찾아 농사를 짓고 조상들의 산소를 잘 모시면서 살자.” 성칠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함흥 촌에서 총을 들고 국민당 군과 중국 지주놈들과 싸워야 합니다. 이계삼과 허영주는 지방에 남아서 함흥 촌과 부근 마을에 인민민주정권을 세우고 군중들로 인민무장 대오를 건립해 국민당군과 맞서 싸우면서 군중들을 보호하게 됩니다. 절대 지주 무장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병완은 시름을 놓지 못했다. “그럼 네 먼저 나가 봐라. 난 여기 가을이나 다 해놓고 나가 보겠다.” 성칠은 아버지 두 손을 꽉 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예. 그렇게 합시다.” 뒤이어 성칠은 총을 들고 사위를 살피던 상순을 불렀다. 그는 상순과 아버지를 바라보며 정중히 말했다. “아버지와 상순은 먼저 중국 공산당조직에 들어서 이계삼과 허영주를 협조해 여기 토지개혁부터 잘 하십시오. 지주들을 청산해 집과 땅,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 주십시오. 아버지와 상순은 인차 입당해야 합니다.” 상순은 인차 “예, 중국 공산당에 들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병완은 좀 주저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공산당에 들겠느냐? 아무 일도 해 놓은 게 없는데.” 성칠은 아버지와 상순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확신에 차 말했다. “아버지와 상순 조카는 이미 항일전쟁 때부터 중국 공산당과 유격대를 위해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입당조건이 진작 구비됐습니다.” 이때 이계삼과 허영주가 올라 왔다. “동무들이 마침 잘 왔소. 마을로 내려가기요.” 성칠 대장은 다시 어머님들의 산소에 제주를 붓고 큰절을 올리고 나서 묵묵히 산소에 머리를 숙이었다.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이계삼과 허영주와 먼저 산으로 내려가면서 아버지와 상순의 입당문제를 제기했다. 이계삼과 허영주는 마을에 내려와 병완과 상순을 촌공소에 불러갔다. 그는 병완과 상순을 번갈아 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혁명의 수요에 의해 김병완 동지와 김상순 동지를 중국 공산당조직에 가입시키려고 합니다. 두 분은 중국 공산당조직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려고 합니까?" 병완은 “중국 공산당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소. 그러나 난 중국 공산당을 위해 해 놓은 일이 없소. 오히려 막내손자 상순이 더 많은 일을 했소.” 인삼 중대장은 정중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두 분은 벌써 몇 해 전부터 당을 위해 많은 일을 했습니다. 우리 유격대에 통나무집을 지어 주었고 적후에서 농사를 짓구 장사를 해 유격대에 쌀을 지원했습니다. 이번 지학사를 나포할 때에도 두 분은 목숨을 내걸고 용감히 싸웠습니다. 당에서는 함흥 촌의 민심의 중심에 선 김병완 동지와 김상순 동지가 수요됩니다. 당을 따라 한평생 혁명하려는 하나의 진 붉은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상순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공산당은 우리 가난한 백성들에게 땅을 주고 집을 주었는데 우리 어찌 당을 따라 혁명하지 않겠습니까? 난 당을 따라 한평생 목숨을 걸고 싸우겠습니다.” “좋소. 김병완동지도 말합소.” 병완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당을 따라 한평생 싸우고 싶소. 허나 솔직히 말해 난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소. 조선에 가면 자네들 중국 공산당을 위해 일할 거 같지 못하오. 입당한 후 자네들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면 양심상 미안할 거 같소.” 이계삼은 반색하며 병완의 두 손을 잡았다. “근심하지 맙소. 일제를 몰아내구 국민당을 쳐 엎고 중국을 해방하는 사업을 하다가 가히 조선에 나가 조선 혁명을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됐네.” 병완은 이계삼과 허영주의 두 손을 굳게 잡고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난 조선에서 일본 놈들의 경찰국을 무너지게 만들고 피신해 쪽박을 차구 중국에 왔네. 이국 타향에서 손바닥만 한 땅도 없이 우리 일가는 진짜 중국 지주들의 눈치를 보면서 굶어 죽을 번 하면서 살아 왔네. 허나 이젠 공산당에서 집도 주구 밭도 주는데 내가 왜 공산당을 위해 일하지 않겠는가? 난 목숨을 걸고 당신들을 따라 혁명하겠네.” 이계삼과 허영주는 병완과 상순의 손을 굳게 잡았다. “우린 두 분을 믿고 당 조직에 받아들이겠습니다.” 이계삼과 허영주는 병완과 상순에게 중국 공산당 조직의 규약을 구두로 말해주고 그들의 문화수준을 고려해 구두로 신청을 받은 후 입당수록을 한 후 서류를 작성해 두었다. 뒤이어 병완과 상순은 진붉은 당기 앞에서 이계삼 서기와 허영주 조직위원과 인삼 중대장을 따라 입당선서를 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종신토록 분투하겠습니다.” 선서가 끝나자 이계삼은 자리에 앉으면서 자못 엄숙하게 말했다. “우린 오늘 아주 출중하게 능력 있고 훌륭한 두 분으로 당조직에 신선한 혈액을 보충했습니다. 이젠 함흥 촌에 당원이 넷으로 발전했기에 한개 당 지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당 지부 서기를 맡고 허영주동지가 조직위원을 맡고 김상순 동지가 선전위원을 맡기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상순은 이계삼에게 “할아버지에게 선전위원을 맡깁소.”라고 한마디 했다. 이계삼은 “이건 조직의 결정이오. 김병완 동지에게는 더욱 무거운 짐을 메게 할까 하는데 함흥 촌의 촌장을 맡아 줍소.”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김병완은 저으기 놀란 듯이 움찔하더니 바로 앉으면서 손사래를 저었다. “아니오. 난 촌장을 할 재목이 아니오.” 허영주가 옆에서 해석했다. “우리 당 지부는 한동안 지하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비밀을 누설해선 안 됩니다. 때문에 이서기와 나 그리고 김병완 촌장과 민병소대장 상순동지가 중공 당원이라는 걸 그 누구에게도 누설되지 않도록 명심하십시오. 우린 특별하게 긴급정황이 없이는 한 동안 공개장소에서 만나지 말고 밤에 태평강가에서 조용히 만납시다.” 이계삼이 계속 말했다. “이 마을 인심은 김 촌장에게 달렸습니다. 함흥 촌에서 제일 영향력이 있고 말이 섭니다. 우리 당 지부에서는 김병완 동지가 함흥 촌의 촌장을 충분히 잘 할 수 있습니다.” 이계삼은 상순의 손을 잡고 뒷말을 이었다. “상순 동지는 민병 패장을 맡고 청년들뿐만 아니라 마을의 장년들까지 조직해 인민무장 대오를 건립하고 군사훈련을 시작해야 하겠소. 장차 함흥 촌의 민병패가 아니라 함흥 촌을 중심으로 패용천촌과 조개덕, 일성촌의 조선족과 한족 청장년들로 백여 명 되는 민병련 쯤은 조직하고 련장을 맡을 준비를 하오. 우린 지금부터 중국의 새로운 정치형세 변화를 면밀히 주시하면서 당지 국민당 반동파들과 중국 지주들의 창궐한 활동에 근거해 무장투쟁을 할 준비를 하고 마을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겠소. 중국과 조선 지주들은 순순히 집과 땅을 내놓지 않을 것이고 꼭 우리에게 보복하려고 할 것입니다. 우린 강대한 무장력으로 국민당 반동파와 지주들의 무장을 막아 싸워야 하겠소.”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과단성 있게 말했다. “그럼 촌장을 해 보겠소.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르오.” “예. 곤난한 점이 있으면 얘기하십시오. 있는 힘껏 지지하겠습니다.” 이계삼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뒷말을 이었다. “요즘에는 장학산과 조덕림의 일거일동을 감시하면서 토지개혁을 철저히 합시다. 지주들을 청산해 집과 땅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 줍시다.” 병완은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면서 말했다. “장학산의 밭은 어떻게 처리하겠소?” 허영주가 말했다. “원칙은 황무지를 누가 개간했으면 누구에게 줘야 합니다. 올해 가을걷이도 눈앞에 닥쳐왔는데 다른 사람에게 주면 불만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타당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장학산의 황무지 가운데서 김 촌장이 개간한 밭은 김 촌장 집에 나눠주고 기준이네 개간한건 기준이네를 나눠 주란 말입니다. 상우지 같은 걸 상우가 개간한 거 다른 농민에게 주면 꼭 상우가 좋아하지 않을 거 아니오? 이런 방법으로 다른 지주의 밭을 나누란 말입니다. 혹시 면적이 너무 많은 건 인구비례에 따라 알맞게 평균 조절하면 됩니다. 우리 당원들은 이익 앞에서 군중들에게 양보할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군중들이 당원들을 따를 게 아닙니까?”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알았소. 그렇게 하면 합리할 거 같소. 그런데 우리 밭이 너무 많은 거 같소. 아무래도 우리가 새 지주로 되지 않겠소?” 병완이 근심하자 이계삼이 말했다. “우린 나눠준 밭을 자체로 경작하고 머슴을 쓰지 않으면 정책상 지주라고 하지 않소.” 그래도 병완은 시름을 놓지 못했다. “난 그 많은 밭을 혼자 가지지 않겠소. 주현경이네 노동력이 없어 황무지를 많이 개간하지 못해 밭이 적은데 좀 나눠 줘야 하겠소.” 허영주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김촌장이 잘 생각했습니다. 우리 공산당원들은 대공무사 해야 합니다.” 상순도 “우리두 밭을 더러 가난한 학수 네를 주겠습니다.” 하고 태도표시를 했다. 김병완은 또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조선에서 왔을 때 장학산지주의 신세를 지어서 소서구에서 발을 붙이고 근근득식 하면서 살았소. 그런데 장학산의 밭을 나눠 가지자니 인정상 의리상 어쩐지 속에 걸리는구먼. 장학산에게도 먹고 살만큼 밭을 줘야 하지 않겠소? 그는 그래도 항일유격대에 쌀이랑 대주던 지주라 다른 지주들과 다르니까. 좀 다르게 처리해야 할 거 같소.” 상순도 머리를 끄덕이었다. “내 생각엔 장학산의 밭은 다른 지주보다 다르게 처리하는 게 옳은 거 같습니다.” 이계삼이 말했다. “그럼 좋소. 장학산의 밭은 우리가 책임지고 당의 정책을 설명하고 분배하기로 하기요. 토지를 분배할 때 토지개혁의 평균분배정책을 제대로 집행해야 하오. 인구와 토지 질에 따라 평균분배를 해야 하겠습니다. 인정이거나 의리를 따져서는 절대 안 됩니다.” 상순은 이구동성으로 “알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계삼은 한마디 덧붙이었다. “지금 국민당반동파들이 민족 이간을 놓는 정황에서 우린 민족 단결에 주의를 돌려야 하오. 특히 가난한 한족농민들에게도 똑같이 밭을 나눠줘야 하오. 그러지 않으면 진짜 국민당 반동파들의 말처럼 조선의 가난한 농민들이 중국 한족지주들의 땅을 빼앗아가진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소. 이런 걸 주의하오.” 병완은 “꼭 토지개혁 정책대로 지주들의 토지와 재산을 청산해 민족을 가리지 않고 가난한 군중들에게 분배해 주겠소. 조덕림의 밭은 장발래와 제해풍, 장룡객 그리구 최경숙에게 나눠 주기요.”라고 대답하고 나서 뒤 말을 이었다. “함흥 촌의 백성들이 내가 촌장을 하는 걸 동의하는지 의견을 들어 보았으면 좋겠소.” 이계삼은 흔연히 동의했다. “좋습니다. 인삼 중대장한테 위탁해 군중대회에서 의견을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재삼 강조할 것은 아직 전국이 해방되지 않은 정황에서 우리가 당원이라는 걸 절대 루설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었다. 이튿날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왔다. 가을 하늘에는 먹장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상순이 호미를 마주 두드리며 돌아다니면서 회의통지를 했다. "토성안집 촌공소 마당에서 함흥 촌 군중대회를 여오. 어서 토성안집 마당에 모이오-" 이윽고 촌민들이 삼삼오오 토성안집 촌공소 마당에 모여들었다. 인삼 중대장이 마루에 올라가 선포했다. “마을 여러분, 지금부터 함흥 촌 인민정권 성립대회를 열겠습니다. 함흥 촌 촌장에 김병완을 시키는 게 어떻습니까? 동의하는 분들은 손을 드십시오.” 상순은 마루바닥에 올라가 인삼의 말을 한족군중들에게 한어로 즉석통역을 해 주었다. 여기저기에서 “김 촌장이 좋습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환호하며 손을 들었다. 숱한 손들이 시루 속의 콩나물대가리처럼 쳐들었다. “반대하는 분은 손을 드십시오.” 그러나 반대해 손을 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들 서로 둘러보고 “그럼 그렇겠지.” 하고 머리를 끄덕이었다. 인삼은 목청을 돋우어 선포했다. “반대하는 분이 한분도 없습니다. 그럼 김병완 어른을 함흥 촌 촌장으로 만장일치로 통과합니다. 오늘부터 함흥 촌 여러분들은 촌장 김병완 어른과 민병 패장 김상순의 영도아래 지주를 청산하고 집과 토지, 재산을 나눠 가지고 나라의 떳떳한 주인으로 살아갈 것을 축원합니다.” 김병완 촌장은 열렬한 박수소리 속에 마루 바닥에 올라가 목청껏 말했다. “우리는 광복을 맞았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이 나라 이 땅의 주인이 됐습니다. 이제부터 지주 눈치 밥을 더는 먹지 않고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잘 살게 됐습니다.” 군중들 속에서 누군가 먼저 구호를 부르자 “인민정권 만세!” 하고 구호소리가 하늘땅을 진감하며 울렸다. 병완은 계속 말했다. “우리에게 집과 땅을 청산 받은 지주들은 꼭 우리에게 보복하려고 들겝구마. 우리는 우리 두 손으로 우리 행복한 가정과 밭을 보호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함께 우리 땅을 또다시 지주들에게 빼앗기지 않을 신심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병완은 주먹을 들고 말했다. “우리 뒤에는 항일유격대가 있구 소련 홍군이 있습니다. 절대 지주무장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이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촌공소에 와서 나를 찾소.” 모두들 머리를 끄덕였다. 상순은 그때까지 통역한 후 마루 복판에 나섰다. “여러분은 무기를 두 손에 들고 우리 땅을 빼앗아 가려는 지주 무장과 싸울 신심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좋습니다. 내일부터 전 촌 청장년들은 식전마다 이 촌공소 마당에서 군사훈련을 한 시간씩 하겠습니다. 종을 두드리면 모두 이 마당에 오십시오.” “민병 패장이 부르면 오겠습니다.” “그럼 오늘 먼저 청년민병들의 군사훈련 시범을 하겠습니다.” 상순이 구령을 불렀다. “민병들은 앞으로!” 진짜 총칼을 든 30여명 민병들이 군중들 앞으로 달려 나와 평소에 상순의 지휘아래 훈련한대로 횡대로 네 줄 벌려 섰다. “차렷!” “쉬엇!” “차렷!” “군사훈연대열로 전개!” 상순의 구령에 따라 민병들은 훈연대열로 넓게 벌려 섰다. “총 들어!” 민병들은 총을 들었다. “앞으로 찔러!” 민병들은 “싸(죽엿!)”하고 고함치며 총칼로 찌르는 동작을 했다. “옆으로 찔러!” 민병들은 제법 상순의 구령에 따라 총칼로 옆으로 척 막고 찌르는 동작을 했다. 뒤이어 총칼로 아래로 찌르는 동작으로, 총박죽으로 대가리를 올리 치는 동작으로 척척 했다. 나중에 둘씩 마주 서서 빈손으로 총칼을 쥔 적과 싸우는 육박전 동작도 시범했다. 병완과 성칠은 주석대에 앉아 민병들을 지휘하는 상순을 대견스레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이계삼과 허영주는 군중들 속에 앉아 흐뭇한 표정을 지었고 기준과 사련은 막내아들을 놀랍게 바라보았다. 상우는 부모들의 옆에 서서 엄지를 내둘렀다. 공학과 을혁은 명옥의 잔등에 업힌 숙자를 건드리다가 민병들의 유도동작을 본따 했다. 지새금은 순애를 업고 시동생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토성안 마당에는 “싸! 싸!” 고함치는 소리가 드높았다.        숱한 사람들 속에 오병선도 끼여 박수를 치며 고함쳤다.       "잘한다! 잘해!"       올해 17세 밖에 안되는 오병선은 상순의 앞집 애였다. 그는 진수해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주말이 돼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는 민병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고 못내 흡모하였다.       민병들의 표연성 군사훈련이 끝나자 오병선은 상순한테로 달려나갔다. "뒷집 형님, 나도 민병에 들겠소. 받아주오." 상순은 오병선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그러나 오병선이 키도 작달막한데다 허약해보여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안돼." "왜?" 오병선은 몸까지 흔들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날 받아주오. 형님!"  그러나 상순은 계속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넌 외동아들아 아니냐? 공부나 잘해라!" 오병선은 꽤나 끈질겼다. "형님, 외동아들은 민병하지 못한단 도리 어디 있소. 황차 집엔 녀동생이 있잖소?" "넌 몸도 약해 안돼. 육박전 붙으면 괜히 목숨 잃을 수도 있어." "형님, 난 몸은 약해도 학교 악대에 들었기에 나팔을 잘 부오." "민병대엔 총칼을 잘 쓰고 힘도 센 민병이 필요해. 나팔을 불어 뭘 해?" 상순은 그쯤 하고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오병선은 상순의 손을 잡고 물러서지 않았다. "형님, 민병에도 나팔수가 필요하오. 돌격할 때 형님이 '돌격!' 하고 명령하면 내 나팔을 불면 얼마나 기세 사납겠소." "그래?" 상순은  주춤 멈춰 섰다. 그러나 인차 또 발걸음을 뗐다. "네 부모 절대 동의할 수 없어." "내 설복시킬게." "외동아들을 전쟁터에 보낼 거 같으냐?" "걱정마오. 우리 부모 꼭 동의할 거요." 상순은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자리를 떴다. 후에 있은 일이지만 오병선은 끝내 억지로부모의 동의를  받아내고 민병대오에 가입했다.       토성 대문으로 임호 소대장이 말을 타고 달려 들어왔다. 그는 대문어귀에서 말에서 내려 성칠 대장 앞으로 달려가 보고했다. “칠백중대장과 최동욱 중대장이 이끈 유격대 대부대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좋소.” 성칠 대장은 조용히 주석대에서 내려 대문 밖으로 나갔다. 이윽고 유격대 후속부대가 경기관총에 박격포까지 메고 일본 놈 포로들까지 압송해 가지고 씩씩하게 마을에 들어섰다. 성칠 대장과 칠백 중대장, 최동욱 중대장이 대문 안에 들어섰다. 그때 때마침 상순의 지휘하에 민병들의 군사훈련 시범도 끝났다. 인삼 중대장은 성칠 대장의 명령대로 “함흥 촌 인민정권 성립대회를 이것으로 끝마칩니다!”라고 선포했다. 군중들은 씩씩한 유격대들을 보자 환호했다. “항일유격대 만세!” “항일유격대를 환영한다!” 군중들은 허영주를 따라 구호를 불렀다. 성칠 대장은 아버지와 인삼 중대장과 토론한 후 먼 곳에서 온 유격대원들을 한 집에 5명씩 배치해 휴식하게 했다. 성칠 대장과 인삼 중대장, 칠백 중대장과 동욱 중대장은 토성안 촌공소에서 당지 정황을 분석했다. 동녘 하늘에 구리바라 같은 보름달이 두둥실 뜨자 이계삼과 허영주가 달빛을 밟으면서 토성안에 가만히 들어와 회의에 참가했다.                                           4. 도가집에서의 음모       함흥 촌에 유격대가 들어 온 날 밤이었다.   삼도만 토비 괴수 전소흥 소교는 조덕산 퇀장에게 토비통신병을 보내 쪽지를 건네게 했다.       조덕산이 쪽지를 펴보니 총살당한 지학사의 일본 첩을 삼도만에 빼돌려보내달라는 내용이였다. 특히 자기 처제이기에 안전하게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자식, 당국의 리익을 위해 어떻게 공산군을 대처하겠는가를 궁리하는게 아니라, 헤이, 참, 원. 일본 처제부터 걱정해?"       그러나 조덕산은 자기가 파견한 수하 소교 전소흥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수하 경위병을 시켜 밤중에 토비통신병을 데리고 패용천촌에 가서 지학사의 일본 첩년을 빼돌리게 하였다.      경위병과 토비통신병이 도적고양이처럼 지학사네 토성안 집 안에 들어서자 삽시에 수라장판이 되였다.     지학사의 처자들과 일본 첩년은 유격대가 붙잡으러 또 왔는가 해 이불을 들쓰고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었다.     그때 토비통신병이 나직이 말했다. "등불을 켜지 마오. 난 삼도만 전소교가 보낸 통신원이오. 지촌장네 일본 첩이 어느 분이오?" 그제야 일본 첩년이 이불 속에서 외쪽지 같은 머리를 살며시 내밀었다. 그녀는 이젠 중국 말을 꽤나 알아들었다. 하여 놀라 휘둥그래진 눈으로 토비와 국민당군 경위원을 번갈아 두리번거렸다.     토비통신병은 호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일본 첩년한테 건넸다. 일어로 쓴   쪽지였다.     쪽지를 펴본  일본 첩년은 통곡쳤다. 쪽지는 그녀의 언니가 쓴 것이였는데 통신원과 함께 삼도만에 들어오라고 하였다. "아네(언니)-" "울음 그치오. 빨리 떠나기오. 유격대 오면 어쩌오?" 일본 첩년은 그제야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일어나 주섬주섬 손짐을 챙겼다. "장관님, 우리도 데려가 주오." 이때 지학사의 녀편네가 무릎을 땅바닥에 꿇고 애원했다. "안되오. 전소교는 일본 처제만 데리고 오라고 했소." "우린 여기 있으면 다 죽소. 데려가주오." "안돼. 사람 많으면 들킬 수 있어." 토비통신병은 일본 첩년의 팔을 잡아 끌고 바깥으로 나갔다. 일본 첩년은 측은한 눈길로 지학사의 처자들을 돌아보았다. 그간 질투도 많이 받았지만 어쨌든 한 가마밥을 먹으면서 한 구들에서 지학사의 까래질을 하지 않았던가.       지학사의 녀편네가 막 따라 나가려고 하자 조덕산의 경위병이 팔을 잡아당기며 나직하지만 위엄있게 말했다. "멈추지 못할가! 누가 친일주구 가족까지 구한다더냐?" "아니, 그럼 왜 일본 첩년은 구해요? 우린 중국 사람인데두 구하지 않고." "잔말 말고 처박혀 있지 못하겠는가?!" 조덕산의 경위병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들기까지 했다. "명령 어기면 총살할테야!" 그제야 지학사의 처는 말뚝처럼 오똑  멈춰섰다. 경위병 놈은 너무 한 것 같았는지 되돌아섰다. "우리가 있는 한 겁나 말라. 언제든지 우리 국민당군은 우리 군민인 너희들도 구해낼 거야." 그제야 지학사 처자들은 한숨을 내쉬며 구들에 물앉아 멍해 떠나가는 일본 첩년과 토비를 쳐다보았다. "게다짝을 벗어!" 일본 첩년이 의아한 눈길로 토비를 쳐다보았다. "나무게다짝을 신고 어떻게 산길로 달아나겠어?" 그제야 일본 첩년은 게다짝을 훌 벗어버리고 중국 헝겁신을 꿰고 따라 나섰다. "그 일본 놈의 옷도 벗어! 우리 중국 옷을 입어. 일본 년인 걸 들키면 중국 사람들한테 맞아죽어." 일본 첩년이 어안이 벙벙해 서 있었다. 경위병이 손사래를 쳤다. "밤중이 돼서 괜찮다구. 어서 떠나라구. 유격대 오겠다." 그제야 토비는 일본 첩년의 손을 잡아 바깥으로 끌었다. 조덕산의 경위병이 먼저 문 밖에 나가 대문 밖 동정을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그는 토성 바깥에 나가 두루 살피다가 손벽을 딱딱 쳤다. 그러자 토비통신원은 일본 첩년을 데리고 기신기신 집문을 나서 두리번거리다가 대문 밖으로 나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토비통신병은 일본 첩년을 데리고 패용천촌 마을을 벗어나 민병들의 보초도 인적도 없는 칼산과 천지꽃 사이 골짜기로 해 소서구 쪽으로 치달아올라갔다. 위험구를 벗어나자 토비통신병은 긴장이 탁 풀렸다. 그는 일본 첩년의 손을 놓고 외쪽지처럼 걀죽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꽤나 이뻤다. 부지중 아래배로부터 찡 하고 줄이 뻗어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는 전기에 덴듯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흠-" 토비는 신음소리를 냈다. 이윽고 야욕이 꿈틀거려 일본 첩년을 와락 껴안았다. 일본 첩년은 반사적으로 토비 두 팔을 떠밀었다. "어째? 목숨 걸고 널 구해냈는데. 은공 갚아야지. 흥!" 일본 첩년은 머리를 수깃하며 종알거렸다. "형부 알면 큰일날줄 아세요. 겁도 안나요?" "지촌장 죽었잖아. 넌 임자 없는 첩년이야. 흐흐흐." 토비는 손더듬질을 멈추지 않았다. 첩년을 와락 끌어안고 볼부터 개처럼 핥아댔다. "이러지 마세요. 이 배를 보세요. 애를 어쩌자고 이래요?" 그러나 토비는 배 남산만한 첩년을 아랑곳하지 않고 부풀어오른 풍만한 젖가슴을 마구 주물렁거렸다. "하늘과 땅, 너와 내 알뿐이야. 네년이 입 꽉 다물면 다야!" "아니야, 아니! 이러지 마세요." 일본 첩년은 토비를 마구 밀어내려 했지만 어디 당할 수 있겠는가.  토비는 일본 첩년을 꽉 끌어아 눌러 힌들 땅바닥에 눕히고 눌렀다. 일본 첩년이 발버둗질치며 발악해도 토비는 어느새 일본 첩년의 화복 치마를 걷어올리고 속옷까지 와락 벗겨 훌 버렸다. 토비놈이 황소처럼 씩씩거리며 일본 첩년을 깔고 들어앉았다. "배 속 애를 죽이겠다. 배를 누르지 말고 좀 살살..." "알았다, 알았어!" "아야, 아이고, 배 아파!" " 좀 참아, 소리치지 마! 억, 억. 억, 유격대 오면 어쩌니? 억, 억, 억, 어, 씨원하다. 허허허." 일본 첩년은 밑에서 허리를 요리곰실 저리곰실 탈면서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쳤다. "아, 아, 알, 알았어요. 빨, 빨리 끝, 아, 아, 악, 빨리 끝, 끝내세요, 아, 아이유, 죽여준다. 아, 아,  앗!" ...         한편 조덕산 단장은 국자가에 잠복한 국민당군 왕영 특파원의 무전지시를 받았다.                " 즉시 반공무장대오를 조직하고 수시로 정황을 회보하라."               유격대가 함흥촌에 진주한 형편에서 조덕산은 지주무장대오를 건립하고 대응책을 토론하려고 계수동 뒤산 도가 집 부근에로 장학산과 손호표지주, 제지주 등을 긴급하게 불러 갔다. 상순이 영솔한 민병들의 눈에 띌까봐 이번엔 장소를 옮겨 조덕림의 집이 아니라 도가 집으로 옮겨 꿍꿍이를 꾸미기로 한 것이었다. 조덕산은 제지주를 시켜 가병 서넛을 데리고 바깥에서 동서남북에 보초를 서게 하고 다른 지주들을 데리고 도가 집으로 들어갔다. 조덕산은 석유등잔불을 켜놓고 희미한 등잔불빛을 빌어 지주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보오. 이전에 내 말한 대로 되지 않았는가? 지학사 촌장이 총살당했고 집과 땅 모든 재산을 다 저 조선 가난뱅이들이 공산당을 등에 업고 빼앗아 갔단 말이오. 그저 이렇게 꼬리빵즈(高丽棒子)들한테 맞아죽기를 기다리겠는가?” 조덕림이 악이 나 고래고래 소리쳤다. “꼬리빵즈 새끼들과 결사적으로 싸우자!” “옳소!” 지주들은 이구동성으로 호응했다. 조덕림은 흐뭇해하면서 말했다. “조급해 하지 마오. 지금 함흥 촌에 유격대 대부대가 주둔해 있소. 그 놈들은 조만간에 두만강을 건너 조선으로 나갈 거요. 그때를 기다려 손 쓰기요.” 지주들은 여기저기서 두덜거렸다. “그전에 죽지 않으면 다행이오. 오늘 밤에 토성 안으로 쳐들어가 김병완 촌장 놈이랑 죽여 버리고 달아나기요.” “옳소. 우린 지학사처럼 죽을 순 없소.” “우리 땅을 조선 놈새끼들에게 빼앗길 수 없소. 싸우기요!” 조덕산은 손사래를 쳤다. “높이 떠들지 마오. 우리 주위에 유격대가 있을 수도 있소.” 그는 두팔을 벌려 흔들며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뒤이어 그는 격동돼 하는 지주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지금 우리 국민당 군이 이미 동북으로 진군해 대도시를 점령하고 있소. 이미 우리 800만 대군이 전국에서 빨갱이들을 대거진공하고 있소. 이제 우리 국민당군은 장춘과 길림으로부터 할바령을 넘어 동만으로 쳐나올 것이오. 지금 국자가, 천수해, 삼도만과 묘령, 천교령, 라자구 로흑산 일대에 우리 국군 무장대오가 활동하고 있소. 그들은 일본 놈들이 패망해 달아날 때 버리고 간 무기거나 도망치는 일본 놈들의 손에서 총과 탄약을 빼앗아 대오를 무장했소. 그들은 지금 사처에서 꼬리빵즈 간부와 공산군을 습격하고 있소. 우린 국군 대부대가 오기 전에 이 곳의 지주 무장 대오를 조직해 빨갱이들과 유격전을 벌려야 하오. 그러다가 우리 국군 대부대를 영접해 빨갱이들을 일거에 소멸해야 하오. 유격대가 가고 나면 그까짓 상순이란 놈이 훈련시킨 민병 한개 패쯤은 아무 것도 아니요. 난 이번에 우리 부관을 보고 국군 정규군 한개 패나 데리고 나왔소. 모두들 싸워 이길 신심이 있소?” “조영장, 아니, 조단장이 정규군까지 데리고 왔다면야 그까짓 빨갱이들이 무서울 게 없지.” 조덕산은 도가 집 바깥에 나가더니 박수를 짝짝 쳤다. 국민당 군 장교와 두 졸개가 나무상자를 맞들고 들어왔다. 조덕산은 그 장교를 가리키며 너스레를 떨었다. “여러분께 소개하지. 내 부관 왕호요. 이번에 이 지방 공산군과 싸우려고 왔소.” 뒤이어 조덕산은 “상자를 열게.”라고 했다. 졸개가 상자를 열자 번쩍번쩍하는 권총과 반자동보총이 그득 들어있었다. 조덕산은 반자동보총을 꺼내 들고 너덜거렸다. “이건 국민당 군 상부에서 보낸 미제무기요. 미군의 무기는 지금 세계에서 제일 신식무기네. 이제부터 당신들은 사냥총 대신 미군 무기로 가병들을 무장시켜 공산당군과 싸우게 됐소.”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며 웅성거렸다. 조덕산은 손수 권총과 반자동보총을 나눠 주었다. 도가집 안의 지주들에게 나눠주고 나니 상자 안이 텅텅 비었다. “요걸로 어떻게 유격대하구 싸워 이기겠니? 전번에 보니 유격대는 대단히 육중한 대포랑 총이 있더라.” 조덕림이 두덜거렸다. 조덕산은 대수롭잖게 말했다. “형님, 근심하지 마오. 내 상부에 말해 숱한 무기를 가져왔소. 허나 장춘과 길림이 거리가 멀어서 숱한 우리 무장대오에 다 돌아 갈 거 같지 못하오. 우린 도망치는 일본 놈들을 죽이고 총과 수류탄, 작탄을 빼앗아 우리를 무장해야 하오. 내 이미 지학구를 시켜 파출소의 경찰들을 우리 쪽으로 끌어왔소. 공산군들은 위만 경찰들을 다 죽일 거요. 그래서 그들도 몽땅 우리와 함께 공산군들과 싸우기로 하였소. 유격대들이 가져 온 게 아마 경기관총일 거요. 이제 우리 국민당 군 대부대가 쳐들어올 때 보오. 우리 국민당 군은 비행기와 탱크에 별의별 대포가 다 있소. 포탄 직경 12센치미터, 길이 90 센치미터 짜리도 있소. 한방이면 토성안집 촌공소는 박산난단 말이오.” 조덕산은 가재수염을 슬슬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유격대 코밑에서 오래 말할 시간이 없소. 이렇게 하기오. 이제 여기 계속 있다간 지학사처럼 죽고 마오. 잠시 삼도만 쪽으로 피신하기오.” 그 말에 지주들은 아우성을 질렀다. “그럼 우리 집과 땅은 어쩌오?” “처자들은 어쩌오?” “빨갱이들이 다 죽이지 않겠소?” “빨갱이 놈들이 지주들을 돌아가며 청산한다면서 집을 빼앗고 재산을 털어 가난뱅이들에게 나눠 주는데. 쫄딱 망했구나.” 조덕림은 아예 풀썩 물앉았다. “아이고, 그 숱한 밭은 어찌 하고. 몇 년 지은 토성 안 팔간대청이 아까워 죽겠다.” 그러자 조덕산이 말했다. “청산을 남겨 두고 땔나무 걱정을 하랴. 너무 아까와 하지 마오. 우리가 살아 있으면 아무 때건 빨갱이들 손에서 집과 땅을 빼앗아낼 수 있소.” 그래도 지주들이 가기 싫어하자 조덕산은 궁리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기요. 행동계획을 좀 고치기요. 오늘 집을 떠나지 말고 먼저 돌아가 금음보화를 몽땅 챙기오. 내일 이때 여기서 만나서 삼도만 쪽으로 떠나기요. 거기서 전흥 소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소. 그들은 벌써 거기서 한족 지주와 가난뱅이들까지 무장시켜 가지고 삼도만과 평강촌에 목책을 짓고 토성을 쌓아놓고 빨갱이들을 막을 예산이요. 그들은 이젠 삼도만으로 통한 천혜의 지형을 이용해 공산군을 막을 준비가 다 됐소.” 장학산이 끼어들었다. "삼도만 전소교와 우리 인맥이 있네." "건?" 등잔불 밑에 어린 조덕산의 낯에 의아한 빛이 비꼈다. " 전소교네 처와 지학사 일본 첩은 자매간이라오." "오- 그래?" 장학산이 머리를 끄덕였다. "일본 첩년들인데. 전소교가 삼도만 림업분주소 일본 소장놈을 도끼로 대갈통을 찍어 죽이고 일본 처를 빼앗아 첩으로 삼았다오. 전번에 지학사가 총살당한 기별을 받고 전소교는 인편에 지학사 일본 첩년한테 삼도만에 들어오라고 했답데." 조덕산은 조덕림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형님은 아주머니와 조카들을 집에 두오. 여러분들도 처자들은 두고 가기요.” 지주들은 웅성거리었다. “아니, 빨갱이들에게 처자를 두고 가다니? 그 놈들이 어떤 놈들이라고?” “그 놈들은 공산공처(共产共妻)한다는데 처를 빨갱이들에게 빼앗기면 어쩌오?” 조덕산이 손사래를 치면서 안심시켰다. “건 공산군의 토지개혁정책을 몰라 그러는 거요. 빨갱이들은 지금 우리 중국 지주들의 땅과 재산을 가난뱅이들한테 주고 인심을 얻자는 게요. 마치 자기들이 인민의 이익을 대표한 인민군인척 하면서 가난뱅이들을 얼려 군대를 확충하고 있소. 허나 빨갱이 놈들은 지주만 죽이지 처자들은 다치지 않소. 지학사네를 보오. 지학사를 죽였지 처자들을 다치던가? 근심 말고 처자들을 두고 가기요. 처자들을 달고 다니면서 어떻게 싸운단 말이오?” 조덕림은 머리를 끄덕이었지만 손호표는 의연히 중얼거리었다. “지학사를 죽이는 걸 보니 빨갱이들은 사람을 죽이고서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던데. 어떻게 빨갱이들에게 처자를 두고 간단 말이오?” “그들을 가만히 빼 삼도만에 데려가면 되오.” 조덕산은 눈알을 부라리었다. “이건 명령이야! 모두 처자들을 두고 금은보화를 챙겨가지고 내일 밤 여기에 집합하게나. 명령을 듣지 않는 자는 군법에 따라 총살할거야!” 모두들 두덜거리면서도 겁을 집어먹고 머리를 수긴 채 도가집을 떠나갔다. 조덕산은 도가 집을 나가려는 장학산의 팔소매를 잡아당겼다. “노형, 조용히 할 말이 있소.” 조덕산은 도가집 안의 등잔불을 훅 불어 꺼버리고 장학산을 데리고 계수동 골 안 쪽으로 걸었다. “장형, 장형은 유격대를 도와 항일에 전공을 세운데다가 양아들이 있지 않는가? 빨갱이들은 인삼 중대장의 낯을 봐서라도 장형을 죽이지 않을 거요.” 장학산은 픽 쓴웃음을 지었다. “옛말이면 듣기나 좋지. 어제 소서구 내 땅을 병완이네 아들딸들에 주현경이네루 학수한테 나눠 주었네. 내라고 놔둘 거 같은가?” 조덕산은 깨고소해 하면서도 은근히 동정하는 척 했다. “거 안됐군. 그래도 집은 빼앗지 않았잖소?” “건 병완 촌장이 내가 항일유격대에 쌀이랑 대준걸 본데다가 아마 인삼의 낯을 좀 봐준 거 같소. 그는 우리에게도 심어 먹을 밭을 줘야 한다면서 자기에게 차례진 밭을 나에게 가만히 돌려주는 게 아니겠소.” 조덕산은 뒤에서 따라 오는 졸개들을 보고 주위를 경계하게 하고 장학산에게 나직이 말했다. “그래 하는 말이오. 병완은 그저 가난뱅이 토박이 촌장이라구 볼 놈이 아니구먼. 얼마나 교묘하게 미움개두 사지 않으면서 슬슬 장형의 땅을 빼앗아가고 있소? 장형은 죽을 염려도 없소.” “글쎄, 말이오. 그 놈들이 조선에서 왔을 때 거지 같은 놈들을 우리 집에 받아서 걷어 줬는데 내 발뒤축을 물어서야 되오? 그래서야 양심이 없는 게지. 인삼이 계속 여기 함흥 촌에 있으면 괜찮겠는데 말이오.” “인삼 네가 언제 조선으로 간답데?” “말하진 않았으나 일본 놈들을 추격해 조선까지 나간다더구먼.” 조덕산은 우뚝 멈춰 섰다. “장형,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장형은 삼도만으로 오지 말구 함흥 촌에 남아 있는 게 어떻소? 이제 조선 유격대 대부대가 조선으로 가버리면 우린 다시 여기로 돌아 올 거요.” 장학산도 멈춰 서더니 물었다. “그런데 내 여기 혼자 남아 뭘 하겠는가? 그 놈 꼬리빵즈 가난뱅이들이 노는 꼬락서니를 보기만 해두 눈에 불이 이는데.” 조덕산이 장학산의 귀에 대고 쑤근거리었다. “여기 있으면서 병완과 상순과의 특수관계를 이용해 그 놈들의 내부 정황을 속속들이 우리한테 알려 달란 말이오.” “음, 알았소. 내 밭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겠소.” 조덕산은 장학산의 어깨를 도닥이면서 뭐라고 귀속말로 지껄이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장학산은 주춤 멈춰 섰다. “그랬다가 그 놈들이 충국이를 해치지 않을까?” 조덕산도 멈춰 서더니 지껄여댔다. “절대 근심하지 마오. 충국인 성칠 대장의 양동생이자 상순의 양형이 아니오? 전번에두 상순이랑 함께 장백산에 가서 항일열사들의 시체를 묻어 주었다더구만.” 그래도 장학산은 근심했다. “거야 그렇지만. 지학사를 죽이는 거 보니 사정없소.  빨갱이들이 진짜 무섭소.” 조덕산은 옆구리의 권총을 툭툭 치면서 호언장담했다. “당신 털끝 하나 다치는 날엔 이 조영장이 놔두지 않겠소.” “그럼 조영장을 믿구 남아 있겠소.” 장학산은 한숨을 후 길게 내쉬고는 소서구 쪽 산비탈로 발길을 돌리었다. 조덕산은 달빛을 밟으면서 저벅저벅 멀어져 가는 장학산의 뒤모습을 바라보면서 어깨를 들썩이었다. (병완 놈아, 어디 두고 보자. 네 이기는가? 내 이기는가? 잠시는 유격대 등을 믿고 너덜거린다만 며칠 가겠느냐? 성칠이랑 인삼이랑 다 가고나면 네 따위가 막내손자를 믿구 며칠 견뎌? 흥!)  
97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0) 댓글:  조회:2044  추천:0  2017-01-12
            제19장 광복의 나날에              1. 일제 거점을 점령 하늘에는 아직도 햇솜뭉치구름 사이에 드문드문 먹장구름이 섞여 떠있고 산과 들은 신록이 짙었다. 북만 중쏘 변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수림 속 령 길을 따라 소련 홍군과 함께 성칠 대장이 거느린 동만 장백산 유격대와 용천이 거느렸던 북만 유격대는 대담하게 대낮에 동만으로 강행군 했다. 원래 성칠은 장백산 밀림 갱도에서 용천과 귀속말로 약속했다. "일본 놈들의 포위를 돌파한 후 북만 항일유격대 근거지에서 만나자." 그러나 갱도에서 포위를 돌파한후 성칠과 진달래 등이 아무리 기다려도 용천은 오지 않았다.      그때 정찰병들의 보고가 들어왔다. 한철주를 괴수로 하는 한패의 일본 패잔병놈들이 동만으로 통하는 중쏘변경 군사요충지 지하거점에 숨어 있다고 하였다. 일본 놈들의 그 거점에는 일제 놈들의 강제징병에 끌려간 조선인강제징병들도 끼여 있다는 것이였다. 불쌍한 조선인강제징병들도 구하고 친일주구 한철주 놈을 처단하려고 유격대원들은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고 윽윽 별렀다.         성칠은 즉시  유격대를 거느리고 소련 홍군과 함께 먼저 동만으로 진군하고 진달래는 갓 낳은 경주를 데리고 북만 항일유격대 근거지에 남아 용천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들이 한 산마루에 이르러 맞은 켠 산마루에 망루가 나타났다. 산비탈 중턱에 또치까와 갱도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모두들 수림 속에 엎드려 성칠 대장한테서 전투명령이 떨어지길 초조히 기다렸다.       갑자기 하늘에서 쏘련 공군 비행기가 우르릉 우르릉 날아오더니 일본 거점을 맹렬히 폭격했다.       쿵! 꽝! 꽝꽝!      폭탄이 작렬하는 맹렬한 굉음과 함께 일본 놈들의 망루가 박산 났다. 망루 위에서 보초를 서던 일본 놈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산골짜기 아래로 떨어졌다. 또치까의 흙 마대도 폭탄에 작렬해 사처로 흙과 돌멩이가 날아났다. 용감한 소련 홍군은 “우라(만세)!” 함성도 높이 산비탈을 덮으며 일본 놈들의 거점으로 돌격했다. 성칠이 권총을 휘두르자 유격대는 소련 홍군을 배합해 맞은 켠 산비탈로 돌격해 올라갔다. 또치까와 갱도 어귀에서 일본 놈들은 경기관총까지 걸어 놓고 뚜루룩 뚜루룩 사격하며 최후발악을 했다. “샤게끼(사격)!” 자지러진 총소리와 폭음 속에 일본 놈의 장교가 군도를 휘두르며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소련 홍군과 유격대는 적들의 몰사격에 산비탈에 하나, 둘 쓰러졌다. 허나 거점은 점령하지 못했다. 성칠 대장은 즉시 “엎드려!” 하고 명령했다. 유격대원들은 몽땅 산비탈에 납작 엎드리었다. 그들은 바위 뒤거나 나무 뒤에 붙어 엎드리었다. 그들의 머리우로, 귀전으로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탄알이 비발 치듯이 날아 지나갔다. 소련 홍군은 비발 치는 탄우를 무릅쓰고 계속 돌격해 숱한 희생을 냈다. 그러나 보루와의 거리는 줄이지 못했다. 성칠 대장은 엎드린 채 인삼 중대장과 칠백중대장, 최동욱 중대장을 불렀다. 그들은 바위돌 뒤에 엎드린 채 적정을 분석한 후 작전계획을 토론했다. “적들의 또치까를 없애버리지 않고선 소련 홍군과 우린 희생을 많이 내게 되오. 또치까를 없앨 묘책이 없소?” 성칠 대장이 중대장들을 둘러 보며 묻자 인삼 중대장이 말했다. “결사대를 무어 적들의 또치까를 까 부시기오.” 성칠 대장은 유격대원들을 둘러 보며 “결사대에 들 대원들은 손을 들라!” 하고 고함쳤다. 대원들은 서로 앞 다퉈 결사대에 들겠다고 손을 들며 고함쳤다. 성칠 대장은 과단성 있게 선포했다. “임호 소대장!” “옛!” “결사대 대장을 맡고 반시간 안에 적들의 또치까를 폭파하라!” “옛!” “결사대 제1폭파소조에 리억복, 철규, 룡구로 구성한다. 조장에 억복 부소대장. 제2폭파소조에 용기, 석수로 구성한다. 조장에 바위돌 분대장. 엄호소조에 기관총사수에 정형만, 철석, 상순으로 구성한다. 조장에 정형만 분대장. 나머지 전체 대원들은 여기서 적들에게 사격하면서 또치까가 폭발되기를 기다려 돌격한다.” 성칠 대장은 결사대 임호 대장과 악수를 나누었다. “임 대장, 시간은 생명이오. 지금 숱한 소련 홍군이 쓰러지고 있소. 제 시간 내에 폭파해 버리오. 우린 승리의 희소식을 기다리겠소.” “옛! 꼭 제 시간 내에 폭파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좋소.” 성칠 대장은 손으로 임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우린 임대장을 믿소." 임호는 고향에서 굴로 들어가는 범의 꼬리를 잡고 껍질이 벗겨질 지경으로 줴당기면서  뻗치기를 하였다. 어찌나 힘을 썼는지 그의 두 발이  땅바닥을 마구 파고 들어갔다. 임호는 범의 꼬리 끊어지게 굴에서 끌어내 무쇠주먹으로 때려죽였다. 성칠은 범도 맨 주먹으로 때려 죽인 임호를 믿었다. 그에게 정찰이나 육박전이나 모든 전투임무를 맡기면 시름놓을 수 있었다.       성칠은 임호와 악수하고 손을 놓은 뒤 폭파소조 전체 대원들과도 굳게 악수했다.       그는 제일 마지막에 상순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부탁했다.       “또치까 적들을 조준 사격해라.  폭파소조를 잘 엄호해라!” “옛!” 상순은 한손에 경기관총을 쥐고 군례를 올리었다. 상순은 이젠 한다하는 명기관총사수로 되였다. 명중률도 유격대에서 첫손 꼽히였다. 임호가 손을 홱 휘둘렀다. “출발!” 결사대는 폭파약과 수류탄묶음을 안고 허리를 구부정하고 출발했다. 그들은 미친듯이 불을 토하고 있는 적들의 또치까 정면 산마루를 피해 옆으로 에돌아 나무 숲속으로 해 적들의 또치까 뒤로 살금살금 접근해 갔다. 상순과 철석은 정형만의 포치대로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바위돌 뒤에 숨어 경기관총을 걸어 놓고 또치까를 향해 조준사격을 가했다. 상순의 사격에 적의 또치까 기관총수가 푹 꺼꾸러졌다. 적들의 화력은 인차 그들 셋에게 집중됐다. 그 기회를 타 폭파소조에서는 또치까 뒤에 접근해 갔다. 전체 대원들도 적들에게 맹렬히 사격하면서 결사대 폭파소조의 접근을 엄호했다. 그 기회를 타 정형만 조장의 명령대로 상순과 철석은 십여발식 쏘고는 자주 엄페물을 옮겨가며 적의 또치까에 명중탄을 맹사격했다. 폭파소조는 거의 적들의 또치까 뒤와 옆에 접근해 갔다. 성칠 대장은 망원경으로 결사대 폭파소조가 또치까에서 30메터 가까이 접근해 가는 것을 보며 손에 비지땀을 그러쥐었다. 소련 홍군은 또 진공을 개시했다. 이때 소련 홍군 장교가 권총을 뽑아 들고 성칠 대장에게 달려와 성난 눈길로 쏘아 보며 뭐라고 떽떽거리었다. 소련 홍군 통역이 한어로 통역했다. “우리 소련 홍군은 숱한 희생을 내면서 돌격하는데 왜 진공하지 않는가?” 성칠은 손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먼저 또치까를 까부시지 않고 마구 ‘우라!’ 하고 진공하면  숱한 희생자를 냅니다.” 그는 망원경을 장교에게 넘겨주며 또치까를 가리키었다. “결사대 오래잖아 또치까를 폭파할 겁니다. 그때 ‘우라!’ 하고 진공합시다.”         또치까는 네가나 되였다. 적들은 그때까지 결사대가 또치까에 접근한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격하는 소련 홍군과 기관총으로 사격을 하는 상순이네 쪽에 사격하고 있었다. 또치까에서 20여메터 근처에까지 접근한 후 임호가 손을 홱 저었다. 그러자 유격대원들이 수류탄을 일제히 또치까에 뿌렸다. 꽝! 꽝! 꽝꽝!! 수류탄 폭파 소리와 함께 또치까 주위는 삼단 같은 화염에 잠기었고 기관총 사격 소리가 멎었다. 그때 임호가 손을 홱 휘젓더니 제일 먼저 연기 속을 꿰뚫고 또치까에 덮쳐 들어갔다. 그는 수류탄 심지를 뽑고 수류탄묶음을 또치까 화구에 던지어 넣었다. 사격하던 적들은 꽥꽥 고함치며 수류탄묶음을 다시 화구 밖에 내 던지었다. 그 위기일발의 시각에 임호는 날아 나오는 수류탄묶음을 받아 쥐어 화구에 되 던져 넣었다. 꽈르릉! 요란한 폭발굉음과 함께 또치까가 하늘로 날아났다. 총소리가 잠잠해졌다. 그제야 다른 또치까의 적들이 뒤에서 접근한 유격대 결사대를 발견하고 꽥꽥 뒈지는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억복이가 슈류탄묶음 심지를 빼고 육탄이 되어 그 옆의 또치까에 덮쳐 들어가 화구에 던졌다. 꽝!! 폭파 굉음과 함께 연속 두개 또치까나 날아났다. 나머지 두개 또치까의 적들은 또치까에서 결사대를 교차로 사격하며 전진을 막았다. 그때 바위돌은 왼쪽어깨에 부상당하며 푹 꺼꾸러졌다. 상순은 경기관총으로 또치까 화구를 향해 조준해 몰 사격을 가했다. 뚜르륵 뚜르륵 적 기관총수가 대갈통이 박산 났다. 그때 바위돌은 폭탄을 안고 벌떡 일어나 또치까 화구에 덮쳐 들어가 던져 넣고 산비탈 아래로 뒹굴었다. 꽈르릉! 폭탄이 폭발하는 굉음과 함께 또치까가 하늘로 날아나고 재무더기로 돼버리었다. 사처에 적들의 더러운 시체가 나딩굴었다. 바빠 맞은 나머지 일본 놈들은 또치까를 버리고 갱도 어귀에 뿔뿔이 도망쳤다. 그 놈들은 갱도 어귀에 걸어 놓은 기관총 두정으로 최후발악을 했다. “우라!” 소련 홍군 장교가 권총을 빼들고 고함치었다. “돌격!” 성칠도 벌떡 일어나며 권총을 휘둘렀다. 총돌격 나팔소리가 산골짜기에 료량하게 울려 퍼지었다. “죽여라!” 소련 홍군과 유격대원들은 적들의 갱도를 향해 돌격해 올라갔다. 정형만과 상순, 철석은 경기관총으로 맹 사격해 갱도어귀를 봉쇄해버리었다. 적들은 독안에 든 쥐 신세로 돼 버리었다. 푱! 푱! 난데 없는 죄악의 총소리와 함께 정형만이 경기관총을 꼭 부여잡은 채 피투성이 된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뚜루룩 뚜루룩 분명 나머지 또치까에서 몇 놈이 사격하고 있었다. 성칠 대장은 황급히 달려와 정형만의 손에서 기관총을 받아 들고 고함치며 사격했다. “형만의 원수를 갚자!” 그때 용기와 석수가 덮쳐들어 수류탄을 또치까 화구에 던져 넣었다. 꽝! 꽝! 요란한 굉음과 함께 또치까 안의 적들이 뒈지는 비명소리 요란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화구에서 총소리가 울리었다. 그때 쓰러졌던 임호 소대장이 벌떡 일어나 찌그러든 또치까 뒷문을 벌칵 열고 뛰어들었다. 또치까 안에 살아남았던 두 놈은 시꺼멓게 화염에 그은 저승사자 같은 임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래도 그 놈들은 총창을 비껴들고 임호에게 달려들었다. 임호는 그 놈들이 찌르는 총창을 옆으로 슬쩍 피하더니 한손에 하나씩 틀어잡아 휘두르며 발길을 날려 한 놈의 아랫배를 차 눕혔다. 이때 철석이 뛰어들어 수류탄으로 나머지 놈의 대갈통을 까부시었다. 임호는 무쇠주먹으로 쓰러진 놈의 대갈통을 연속 강타했다. 그 놈의 철갑모고 대갈통이고 서리를 맞은 호박처럼 오그라들고 말았다. 성칠 대장과 상순, 철석도 마지막 또치까에 들어왔다. 성칠 대장은 임호의 손을 덮썩 잡으면서 “임 소대장, 폭파임무를 훌륭히 완수했네.”라고 치하했다. 그는 수류탄 파편에 찢긴 임호 소대장의 얼굴과 어깨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것을 보고 손수 붕대를 꺼내 싸매 주었다. “또치까를 청리하고 경기관총으로 갱도 어귀를 봉쇄하라!” 상순과 철석 그리고 바위돌이 경기관총 세대를 걸어 놓고 사격할 때다. 임호가 벌떡 일어나 고함쳤다.  “갱도도 폭파해 저 놈들을 생매장해버립시다!” 그러나 성칠 대장은 손사래쳤다. “안 되오. 갱도 깊어서 저 놈들은 언제까지도 최후발악할 거요. 저 놈들을 가둬 놓고 투항하라고 정치공세를 들이 대기요. 만약 투항하지 않으면 그때 갱도를 폭파해 버리기요.” 뚜르륵 뚜르륵 또치까에서 사격한 총탄이 갱도어귀에 우박처럼 날아가 픽픽 박혔다. 적들은 갱도 어귀에서도 배겨 내지 못하고 갱도 안으로 달아나 버리었다. 성칠 대장은 경위원 장꼬마를 데리고 인삼 중대장과 함께 소련 홍군 장교와 통역을 찾아갔다. “쓰빠시바(감사하오).” 소련 홍군 장교는 임호의 피가 랑자한 어깨를 두루 살펴보더니 새까만 얼굴 앞에 엄지를 내둘렀다. 임호 소대장은 쌔까맣게 그은 깜장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소련 홍군들에게 엄지를 내둘렀다. 성칠 대장은 소련 홍군 장교에게 말했다. “갱도 안에 대고 투항하라고 외치는 게 어떻습니까?” 소련 홍군 장교는 통역을 받자 어깨를 으쓱하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그러라고 명령했다. 소련 홍군 통역이 일어로 갱도에 대고 고함치었다. “일본 장병들은 들어라! 네놈들은 몽땅 포위됐다! 투항하라! 10분후에 투항하지 않으면 갱도를 폭파해 몽땅 소멸해 버리겠다. 투항하면 살려 준다! 투항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갱도 안에서 저항사격이 멎고 잠잠해졌다. 통역은 계속 고함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우리 소련과 프랑스, 영국, 중국의 승리로 이미 끝났다. 네 놈들의 일본은 전패했다. 전쟁은 이미 끝났다. 투항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이제 5분 밖에 남지 않았다.” 소련 홍군 장교는 손을 홱 젓더니 “폭파 준비!” 하고 명령했다. 소련 홍군들이 갱도 어귀에 작탄 대여섯 상자를 메어다 매설해 놓았다. 땅! 땅! 땅! 갱도 안에서 총을 내쏘았다. 뒤이어 갱도 안에서 일어로 지르는 고함소리가 울리었다. “우린 죽어도 투항하지 않는다!” 땅! 땅! 땅! 갱도 안에서 조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리었다. “우린 강제로 끌려 온 조선 강제징병 병졸들이요." 성칠이 갱도에 대고 고함쳤다. "한철주 놈도 있는가?" "도망친지 오랩니다." "우리 갱도 안에서 일본 놈들을 족치겠으니 쳐들어오세요.” 뒤이어 갱도 안에서 자지러진 총소리가 들리었다. 성칠은 즉시 명령했다. “갱도에 돌격!” 유격대 대원들은 칠백 중대장과 임호 소대장을 따라 용감하게 쳐 들어가며 수류탄을 갱도 안에 뿌리었다. 앞뒤로 협공을 받게 된 적들은 독안에 든 쥐처럼 오도 가도 못하고 한 놈, 한 놈 쓰러졌다. 소련 홍군들은 유격대 용사들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갱도를 작탄으로 폭파하면서 들어갔다. “우린 투항하겠다! 군대를 갱도 어귀에서 한 50미터 뒤로 물려라!” 갱도 안의 총소리가 멎었다. 통역을 듣자 소련 홍군 장교가 코웃음 치었다. “돼지 같은 놈들, 잔꾀를 부리지 말라! 투항하지 않으면 폭파해 버려!” 통역이 일어로 갱도 안에 그대로 소리치었다. 성칠 대장은 소련 홍군 장교에게 손사래쳤다. “잠간만! 갱도 안에는 강제로 징병돼 간 우리 조선 병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안에서 지금 일본 놈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뒤이어 그는 갱도 안에 대고 조선 말로 고함치었다. “조선 병졸들은 들으라. 난 항일 유격대 김성칠 대장이오. 갱도 안에 일본 놈들이 지금 얼마나 있소?” 그러자 갱도 안에서 고함소리가 들리었다. “한개 소대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조선 강제병은 얼마나 되오?” “20여명이 됩니다. 놈들은 지금 우리에게 포위됐습니다.” “그 놈들에게 이제라도 투항하면 살려 준다고 하라.” 안에서 일어로 주고받는 말이 들리더니 고함소리가 또 들리었다. “이 놈들이 투항하겠답니다.” “놈들이 모두 몇 명인가 확정하게 알아 볼 수 없소?” “세여 보죠.” 한참 후 대답이 나왔다. “모두 34명입니다.” “무기를 머리 우에 들고 나오라. 한 놈만 반항하면 몰살시키겠다.” “조선 강제병은 일본 놈들을 압송해 나오십시오.” “옛. 기다리십시오.” 성칠과 소련 장관의 명령에 따라 유격대와 소련 홍군들은 만일을 대비해 기관총으로 갱도 어귀에 걸어 놓고 사격 준비를 했다. 일본 놈들은 두 손으로 흰 적삼을 머리 우에 쳐들고 갱도 어귀로 나왔다. 어떤 놈들은 벌거숭이로 된 채 두 손을 쳐들고 사시나무 떨듯하며 나왔다. 조선 강제병졸들이 일본 놈들을 압송해 갱도 어귀로 나왔다. 그들은 갱도 어귀에 나와서 어깨에 멨던 총을 내리어 놓았다. 성칠 대장은 강제병졸들에게 물었다. “조선인장교는 없는가?” 그러자 강제병졸들이 권총을 찬 철색얼굴의 사나이를 가리켰다. “저게 최 소대장입니다. 장교님.” 그러자 성칠 대장은 다가가 최 소대장의 두 손을 굳게 잡았다. “고생이 많았겠소. 이번 전투에서 당신들은 마멸할 수 없는 공헌을 했소.” 옆에서 인삼 중대장이 소개했다. “이분은 우리 항일유격대 김성칠 대장이오.” 그러자 최 소대장도 자기소개를 했다. “전 최경호라고 불러요.” “최경호?” 성칠 대장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고향은 어데오?” “개성이예요.” “혹시 최진달래를 아오?” “진달래라니? 나에겐 그런 누이동생 없어요.” 성칠 대장은 눈위 휘둥그래진 경호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아, 잊었소. 진달래는 내 지어준 이름이오. 진달래 원 이름은 최 멧돼지요?” “예. 멧돼지는 내 누이동생인데요. 그 애가 지금 살아 있어요? 아버지와 그 애는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경호는 성칠 대장의 손을 잡고 다급히 물었다. 하여 성칠은 그간 있은 일을 경호에게 이야기했다. 경호는 땅을 치면서 대성통곡쳤다. “아버지! 아버지!” 성칠 대장과 인삼 중대장을 비롯한 유격대원들은 머리를 수그리었다. 성칠 대장은 경호의 손을 잡고 “진달래가 오빠를 만나면 얼마나 좋아할까?”라고 했다. 경호는 눈물을 손으로 쓱쓱 닦더니 “멧돼지는 지금 어데 있어요?” 하고 물었다. 성칠은 경호의 어깨를 다독였다. “용천 대장을 기다리느라고 북만 항일유격대 근거지에 있는데 조만간에 함흥 촌으로 올 거요. 거기에는 진달래네 오촌큰아버지 최구장도 있소.” “큰아버지도 간도에 들어왔군요. 안 되겠어요. 난 진달래를 찾아가야 하겠어요.” 그때 성칠 대장은 말리었다. “진달래는 용천 대장을 데리고 함흥 촌에 오기로 했소. 자넨 여기서 우리와 함께 할 일이 있소. 강제병졸들을 지휘해 일본 포로들을 압송해 가지고 진수해 쪽으로 나가야겠소.” 그제야 경호는 성칠 대장의 위엄스런 말에 머리를 끄덕이였다. 성칠은 경호한테 나직이 물었다. "한철주 놈이 언제 도망쳤소?" 경호는 이맛살을 찌프리며 말했다. "한철주는밀림에서 패배하자 나머지 일본 놈들을 끌고 한 일주일 전에 우리 갱도에 도망쳐 왔댔습니다. 그런데 갱도 안에 먹을게 모자라는데다가 쏘련홍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을 듣고 어제 저녁에 수하 몇을 데리고 어데론가 도망쳤습니다." "오- 똘만이란 놈은 없었소?" "똘만이? 아, 그 놈 한철주 따라 도망갔어유. 그 놈, 평소에두 한대대장을 등에 업고 우리캉 우쭐랑거렸는데요." 성칠은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쳤다. "에이참,  또 그 놈들을 놓쳤군." 경호는 강제병졸들한테로 다가갔다. 이때 소련 홍군들이 경호와 함께 일본 놈들을 세여 보았다. 딱 두 놈이 나오지 않았다. “두 놈은 어째 나오지 않았소?” 성칠 대장이 묻자 경호가 대답했다. “아끼다 중대장과 이또 부중대장은 금방 할복해 자살했어요.” 소련 홍군과 유격대원들은 갱도 안에 들어가 일일이 확인한 후 숱한 탄약과 무기를 운반해 내왔다. 중소 변경 산골짜기에서의 공격전은 승리로 끝났다. 소련 홍군과 유격대 장병들은 갱도 어귀에서 얼싸 안고 목청껏 외치었다. "우라!" "만세!" “조선 독립 만세!” “중국 해방 만세!” “조선 광복 만세!” 성칠은 손수 정형만열사의 시체를 수습해 하얀 봇 나무껍질로 쌌다. 유격대원들은 눈물과 함께 전우를 간도 황야에 묻었다. 최경호는 서로 기대며 의지하던 사촌매형 정형만의 무덤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성칠은 눈물을 머금고 간단히 추도사를  했다. “정형만 분대장은 일본 놈들의 핍박에 물막이를 나간 후 처자를 잃고 비분에 잠겨 일본 야마다 면장 놈을 죽이고 우리 유격대를 찾아 몇 천리도 멀다하지 않고 임호 소대장과 용기, 석수 동지와 함께 간도로 들어왔다. 그는 생명의 최후순간까지도 기관총소조를 거느리고 일제의 또치까와 갱도에 맹렬히 사격하며 영용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희생됐다. 조선과 중국의 광복을 당장 맞게 된 마당에 희생된 정형만 분대장의 희생이 우리는 눈물겹도록 아쉽다. 정형만 분대장이여, 당신이 지켜 싸워 온 간도에 고이 잠드시라.” 임호와 용기, 석수는 성칠 대장과 함께 제일 마지막으로 정형만열사의 묘지에 군례를 드리며 어깨를 들먹이었다. 유격대원들은 성칠 대장의 명령에 따라 포로들을 압송해 가지고 출발했다. 그들은 도망치는 일본 놈들을 추격하며 동만으로 진군했다.                                       2. 친일촌장을 처단       성칠 대장은 막내조카 상순에게서 친일주구 지학사 촌장 등 지주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들었다. 게다가 철천지 원수, 친일주구 한철주 놈이 동만쪽으로 도망친 정황이 포착되였다.       (혹시 철주 놈이 용정으로 도망쳤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성칠 대장은 인삼 중대장과 토론한 후 함께 백마기병 소대를 이끌고 소련 홍군과 유격대를 앞질러 밤도와 함흥 촌에 진주했다.       그는 밤중에 먼저 함흥 촌에 물 샐 틈 없이 포위망을 구축하고 소분대를 직접 이끌고 토성 안 집 촌공소로 접근해 토성 밖을 포위했다. 상순은 큰아버지에게 “토성 안에 동굴이 있습니다.” 하고 알려주었다. 성칠 대장은 높다란 토성을 둘러보면서 인삼에게 머리를 돌리었다. “어쩌면 좋겠는가?” 인삼 중대장이 과단성 있게 말했다. “토성 안 정황을 잘 정찰한 후 들이 치는 게 좋을 거 같소. 이 전에도 우물 안에 출구가 있어 드레박 줄을 타고 업복이랑 달아난적이 있소. 허나 저 놈들이 다른 출구를 파 놓았는지도 모르오.” 성칠 대장은 “먼저 지학사가 촌공소 안에 있는가를 잘 정찰해 보고 놀라게 하지 말고 들어가야 하겠소.”라고 했다. 그가 권총을 찬 허리에 손을 지르고 왔다 갔다 하며 궁리할 때다. 한참 후에 인삼이 나섰다. “내 소서구에 가서 양아버지를 데리고 올게.” “지학사하구 한 통속인데 말을 듣겠소?” 인삼 중대장은 성칠 대장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성칠 대장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그럼 가 보오.”라고 했다. 인삼 중대장과 억복 부소대장이 유격대원 둘을 데리고 말을 타고 소서구 어구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성칠 대장은 토성을 포위한 유격대원들에게 뒤로 좀 물러서서 비밀리에 토성 안의 동정을 살피라고 포치한 후 은녀를 불렀다. 은녀는 갓난애를 업고 성칠 대장한테로 다가왔다. 성칠 대장은 은녀 잔등의 애를 들여다보았다. 병수가 희생된 후 성칠은 은녀 모자를 보살펴야 했다. “쌔근쌔근 잘 자는구나. 넌 상순이네 집에 가 우리 막내조카댁과 함께 있어라. 내 작은조카댁은 마음씨가 참 착한 분이다.” “오빠, 고맙소.” “상순이네 집은 헐지만 이 토성 안 집과 가까워서 내가 들여다보기 쉬울 것 같다.” 은녀는 오빠의 지극한 관심에 머리를 숙이며 어깨를 들먹이었다. 상순이 은녀를 데리고 간 후 성칠 대장은 장 꼬마와 함께 먼저 창준이네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와 집 식솔들을 만났다. 서로 인사를 마치자 성칠은 마을 형편부터 물어 보았다. 병완은 맏아들을 보자 아주 반가와 손을 덥썩 잡고 말했다. “요즘 지학사랑 장학산이랑 일본 놈들이 망하게 됐다면서 쩍하면 밤에 싸다니더라.”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우리 집에는 찾아 온 적이 없습니까?” “왔더라.” 병완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그 놈들은 장학산을 앞세워 인삼이랑 함께 국민당 군에 들어오라고 하더라. 어떻게 지학사 지주와 한 무리에 들겠느냐. 저기 이계삼과 허영주는 나를 찾아 와서 겉으론 국민당을 따르는 척 하면서 국민당군의 활동을 감시하라고 하지 않겠느냐?” 성칠은 솔직하게 말해줬다. “이계삼과 허영주는 우리 공산당 지하당원입니다. 그들의 지시대로 해서 낭패 없습니다.” 병완도 아들 앞인지라 오래동안 궁리한대로 말했다.  “그렇잖고. 중국 공산당이야 말로 우리 가난한 백성들을 생각하는 당이지. 저 국민당 군은 온통 중국 지주 무장으로 된 군대더구나.” 이때 상순이 이계삼과 허영주를 데리고 들어섰다. “김 대장, 끝내 왔구먼.” 그들은 성칠과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이계삼은 그간 마을 형편을 성칠 대장에게 일일이 회보하고 나서 뒷말을 이었다. “우리는 줄곧 촌공소 지학사 촌장 놈의 일거일동을 감시해 왔습니다. 그 놈들은 늘 밤이면 조덕림네 집에 모여 대가리를 맞대고 쑤군덕거렸습니다.” “그래 오늘 밤엔 토성 안에 있소?” 성칠의 물음에 허영주가 대답했다.  “나온 적이 없습니다.” “좋소. 우린 오늘 밤에 지학사를 체포하기오.” 그때 병완이 성칠 대장을 불러 손을 잡아끌고 고방에 들어가 물었다. “얘, 조선에서도 일본 놈들이 망했겠지?” “이제 김일성 장군의 지시에 따라 우리 유격대는 소련 홍군과 함께 진수해와 용정을 해방하고 조선 반도까지 쳐 나가 일본 놈들을 모조리 몰아내야 합니다. 한철주 놈이 혹시 여기로 도망칠지도 모릅니다. 상순이랑 민병들을 시켜 잘 감시해줍소. ” 그러자 병완은 전등불 아래에서 성칠을 정색해 보면서 말했다. “그럼 우린 조선 고향으로 돌아가야겠구나. 그런데 하필 지학사랑 건드려 뭘 하니? 내 버리어 두고 조선 고향으로 가면 다지.” 성칠 대장은 아버지에게 내심하게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아버지,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나라 계선이 없이 가난한 인민들을 대표해 일본 놈들과 친일주구들과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여기 친일주구 지학사를 절대 놔둬선 안 됩니다. 우리 중국에서나 조선에서나 세상 그 어디서나 일제 놈들과 친일주구들을 몽땅 소멸해야 우리 조선과 중국의 가난한 백성들은 시름 놓고 허리를 펴고 살 수 있습니다.” 그제야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나도 오늘 지학사 놈을 체포하는데 가겠다.” “아버진, 집에서 쉽소. 그러나 병완은 기어이 창준과 상훈이, 상길을 데리고 도끼와 자귀, 식칼을 들고 따라 나섰다. 상순이 일러 기준과 상우도 삽과 괭이를 들고 나섰다. 상순은 기관총을 장꼬마한테 맡기고 허리에 권총을 찬 채  집으로 갔다. 그는 중천정에서 기름종이에 싼 권총을 내리워 허리에 차고 나왔다.       그는 할아버지한테 다가와 권총을 내밀었다. "할아버지, 이걸로 놈들을 족치세요." 그러나 병완은 빙그레 웃었다. "그깟 지학사놈을 잡는데 총까지 필요없다." 병완은 소발쪽 같은 주먹을 쳐들어 보였다. "이게 한대면 끝장나!" "예-" 상순은 힘장사 할아버지를 아는지라 권총을 도로 거두었다. 그들이 성칠 대장 쪽으로 다가와 유격대원들과 서로 인사할 때다. 인삼이가 백마에 장학산을 태워 가지고 어둠속에 토성 대문 앞에 나타났다. 상순이 “저게 장학산입니다.”라고 하며 마중 나가려고 하자 성칠 대장은 상순의 팔을 잡아당기었다. “상순아, 놔둬라. 인삼 중대장이 장학산을 데리고 먼저 들어가면 우린 일거에 토성 안으로 쳐들어가야 한다.” 이때 인삼과 억복이, 바위돌이 장학산과 함께 말에서 내리었다. 장학산이 다가와 토성 안 집 대문을 두드리었다. 토성 안에서 “이 밤중에 누구요?” 하는 소리가 들리었다. “난 장학산이다. 문을 열어라.” “무슨 급한 일이 있어 밤중에 왔소? 문을 열어 줘라.” 안에서 지학사가 하품을 하는 소리가 들리었다. 대문 안에서 신짝을 짝짝 끄는 소리가 들리어 오더니 대문이 삐꺽 하고 무서운 소리를 내며 열리었다. 인삼과 억복은 장학산을 양쪽에서 끼고 대문 안에 들어섰다. 이때 뜻밖의 일이 벌어지었다. 장학산이 자기를 붙잡은 인삼의 팔을 뿌리치고 촌공소 안으로 달아 들어갔다. “유격대 왔다. 빨리 도망쳐라!” 억복은 총을 들어 장학산에게 한방 갈기었다. 장학산은 “어이쿠!” 비명소리와 함께 종아리를 부둥켜안고 꺼꾸러졌다. 마중 나오던 지학사는 대문 안에 숱한 총칼이 번뜩이며 달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악!" 지학사는 비명소리를 지르며 집 안으로 도망치었다. 성칠 대장이 손을 홱 휘젓자 토성을 포위했던 유격대원들과 병완 등이 쏜살같이 대문 안에 뛰어 들어갔다. “서라!” 그때 기준이 도끼를 휘두르려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지학사는 베개 밑에서 권총을 꺼내 쏘았다. 땅! 총소리와 함께 기준이 도끼를 툭 떨어뜨렸다. 성칠 대장은 앞질러 나가며 권총을 쳐든 지학사에게 한방 안기었다.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지학사가 총을 툭 떨어뜨리며 손목을 그러쥐었다. “아야 마야(아이구머니)! 목숨 살려줍사!” 지학사 안해가 아우성쳤다. 그년은 무릎을 꿇고 애걸하는 첩년을 가리키며 한어로 소리쳤다. "죽이겠으면 이 첩년을 죽이오. 이 년은 일본 년..." "닥쳣!" 지학사가 결박된 채 우멍눈을 부라렸다. "그런다고 살려줄 거 같애?" 일본첩년은 배 남산만해 무릎을 꿇고 앉아 벙어리 허울을 홀랑 벗고 일어로  애걸했다. "살려주세요." 그녀는 두리번거리다가 위엄있게 권총을 들고 허리에 손을 지르고  서 있는 성칠을 보고 장교라고 생각됐는지 그의 바지가랭이에 매달리며 애걸복걸했다. " 다스께데 꾸다싸이(도와주십시오.)" 지학사가 첩년을 발길로 걷어찼다. "닥쳣! 비굴하게 빌지 말라!" "아이야!" 첩년이 둥기배를 붙안고 땔땔 구을었다. 그때 병완이 씽 덮쳐나가 무쇠주먹으로 지학사의 대가리를 내리쳤다. 지학사는 대가리를 붙들고 푹 꺼꾸러지었다. 병완이 또 주먹을 쳐들었을 때었다. “아버지, 생포합시다. 이 놈에게서 알아낼 게 많습니다.” 성칠 대장 고함소리에 병완은 주먹을 쳐 들었다가 아쉬운대로 천천히 내리웠다. 억복과 기준이 덮쳐들어 바줄로 지학사를 꽁꽁 결박해 놓았다. 지학사의 가병들은 사랑방에서 자다가 총소리에 놀라 깨났다. 그 놈들은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벽에 걸어 둔 총을 벗겨 들고 기신거리면서 하나둘 나왔다. 그때 상순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두개나 빼들고 한방에 한 놈씩 쓰러눕혔다. 그때 놈들이 우르르 뛰여나와 총을 쏘며 저항했다. 성칠과 억복, 인삼 중대장이 이쪽으로 덮쳐오며 상순과 합세해 사격했다.  "이 놈들아, 죽어 봐라!" 상순은  권총을 허리춤에 차더니 기관총을 들었다. 뚜르륵 뚜르륵 한 배짐 갈기자 숱한 놈들이 사랑방 앞에 쓰러졌다. 숱한 친일주구들은 꿈도 깨지 못하고 더러운 끝장을 보고 말았다. 유격대원들이 뛰어 들어가 살아남은 놈들의 벌거숭이 몸뚱이에 총창을 들이댔다. 이때 창고 지붕과 망루에 숨어서 보초를 서던 놈이 상순에게 총을 쏘았다. 땅! 상순은 왼팔에 부상을 입고 기관총을 떨어뜨렸다. 그가 경기관총을 재차 들어 반격하려고 했지만 왼팔이 말을 듣지 않아 총을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상순은 황급히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 땅! "앗!" 그 놈은  비명소리와 함께 보기 좋게 총을 뚝 떨어뜨리더니 지붕 우에서 거꾸로 떨어지었다. 땅! 성칠 대장이 권총을 휘두르자 망루의 놈도 장총을 떨어뜨리며 푹 꼬그러졌다.  " 토성 울안과 집안을 수색하라!" 성칠은 유격대원들게 명령하고 나서 붕대를 꺼내 막내동생과 막내조카 팔의 상처를 싸매 주었다. 인삼은 물독을 들고 지하갱도를 손전지로 비추었다. 억복과 바우돌 등 유격대원들이 안으로 총을 들고 들어갔다. 뒤이어 숱한 총과 탄약이 나왔다.       10분도 안 돼 촌공소 안의 일본 주구들을 숙청하는 전투는 끝났다. 유격대원들은 토성 안을 말끔히 정돈하고 가능하게 일본 놈들과 국민당군의 지휘 아래에 있는 당지 중국 지주무장대오가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토성 안팎에 전호를 파고 토성 밑으로 갱도를 파 토성 밖의 전호와 연결시켜 놓았다. 그들은 전호에 흙 마대를 쌓아 방어시설을 구축해 놓고 삼엄한 경계를 하기 시작했다. 인삼이 장학산한테 다가가자 장학산은 욕설부터 퍼부었다. “배은망덕한 놈 새끼, 길러 준 개 발뒤축을 문다고 이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인삼은 장학산의 종아리 상처를 붕대로 싸매주며 내심하게 말했다. “양아버지, 양해하쇼. 절대 양아버지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양아버지를 해치자는 게 아닙니다.” “흥! 내게 총을 쐈는데도? 옛말이면 듣기나 좋겠다. 금방 우리 집에서 국민당 군에 들겠다고 나를 얼려 놓고. 대문을 열자는 건데 속았지, 속았어!” 인삼은 피 묻은 장학산의 바지를 손수 닦아 주면서 말했다. “양아버지, 우리 유격대에서는 양아버지가 유격대에 쌀을 대준 공훈도 잊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양아버지는 조덕림이나 조덕산의 꾀임에 들어 국민당 군에 들어가자고 하다니. 어리석은 짓입니다. 장차 중국의 주인은 중국 공산당과 가난한 인민입니다. 공산당과 인민의 적이 된다면 그땐 이 양아들도 어쩌는 수 없습니다.” 장학산은 인삼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이 토성안집은 인민정부의 촌 사무실로 쓰겠습니다.” “안 돼. 이건 내 너한테 지어 준 집이야.” 인삼은 장학산을 업어다 말에 태우면서 말했다. “우리 공산당은 지주들의 재산을 몰수해 인민정부에 돌리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 줄 겁니다.”     장학산은 옆에 숱한 유격대원들이 있는 것을 보고서도 가슴을 탕탕 치기만 하고 아무 말도 못했다. 그들이 금방 토성 밖으로 나갔을 때었다. 장충국과 장리국이 달려 왔다. “아버지!” 장충국은 양형님을 아니꼬운 눈길로 쏘아보았다. “동생, 아버지를 모셔가라.” 충국은 인삼을 올려다보며 두덜거리었다. “아니, 아버지를 밤중에 불러내다 이게 뭐요?” 장리국도 뿌루퉁해 했다. “형님도 정말 너무 하오. 우리 집에서 형님을 섭섭하게 대한 게 뭐요?” 인삼은 대답 대신 충국과 리국의 어깨를 다독여 주면서 “전쟁을 하다 보면 총알에 빗맞는 때도 있다. 집에 돌아가면 아버지 다리를 오줌 물에 불구라.”라고 했다. 장충국은 인삼의 손에서 말고삐를 받아 쥐면서 두덜거리었다. “유격대에 숱한 약을 두구 양아버지께 오줌이나 처바르라고? 그 것도 말이냐?” 인삼은 더 말하지 않았다.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 왔다. 함흥 촌을 지지리 짓누르던 어둠이 개이기 시작했다. 찬연한 햇빛이 온 마을을 내리 비추었다. 병완은 집에 갔다가 성칠을 보고 할 말이 있어 토성 안으로 찾아 왔다. 촌공소 구들에서 성칠은 한창 이계삼과 허영주, 김인삼 등과 함께 뭔가 토론하고 있었다. 성칠은 아버지가 들어오자 “아버지, 무슨 일입니까?” 하고 물으면서 일어났다. 병완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아예 장학산이랑 조덕림이랑 몽땅 한꺼번에 후환을 없애 버리자. 그 놈들을 놔뒀다간 후환이 클 게다.” 성칠 대장은 일어나 아버지께 자리를 권하면서 내심하게 말했다. “국민당과 합작해 금방 항일 전쟁이 승리하자마자 그 자들을 처단하면 국공합작과 평화를 파괴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중국의 새로운 형세가 돌아가는 걸 보고 손을 써도 늦지 않습니다.” 이때 상순이가 숱한 민병들을 이끌고 토성 안으로 들어 왔다. 상순은 윗방에 들어오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큰아버지, 우리 함흥 촌 민병들에게 총을 줍소. 그래야 이 마을을 지키죠.” 성칠 대장은 이번 전투를 거쳐 성숙된 상순을 대견스레 바라보며 말했다. “좋다. 아무튼 우리 항일유격대가 조선으로 나가면 함흥 촌은 네가 이 마을 민병들을 영솔해 지켜야 한다.” “알았습니다. 큰아버지.” 성칠 대장은 그 자리에서 촌공소 갱도에서 들춰 낸 장총 30여 자루와 탄약을 상순과 민병들에게 발급했다. 민병들은 제법 상순의 구령에 따라 토성 안 마당에 줄을 지어 서서 장총과 탄알을 발급받고 기뻐 입이 함박만 해졌다. 그런데 흥수만은 남북골을 기우뚱하고 숙이면서 우먹눈을 부라렸다. "상순 형, 권총 하나 줘. 혼자 두개씩이나 허리에 차고, 씹할!" "뭐라고? 욕하긴?' 상순은 훙수의 어깨를 다독였다. "장총이라도 잘 쏘기만 하면 얼마든지 적을 잡을 수 있어." "아니야! 고까짓 민병 대장 뭐락꼬, 권총 혼자 두개씩이나 가져?!" "이건 내가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일제 놈들과 싸워 로획한 거야. 너도 이담 놈들과 싸워 자체로 권총 로획해라." 그제야 흥수는 두덜거리면서도 권총 달라는 말을 더 하지 못하였다. 날이 훤히 밝아 왔다. 마을 사람들은 밤중에 총소리 몇 방 울린 건 알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몰랐다. 그저 이전처럼 지학사의 가병들이 사격연습을 하는가 하였을 뿐이었다. 병완이 토성 동쪽 늙은 비술나무에 매단 종을 호미로 댕 댕 댕 두드리며 목청껏 소리치었다. “친일주구 지학사를 청산하는 대회를 엽니다! 촌공소 마당에 모이시오-” 상순은 온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소리치었다. “뭐 지학사 촌장 놈을 청산한다고?” “글쎄 말이오. 어제까지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더니 꼬락서니 보기 좋게 됐구먼.”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의논하면서 토성 안으로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성칠 대장의 포치대로 마을의 경계가 삼엄해지었다. 동산마루와 서산 천지꽃산 마루에 유격대원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고 패용천촌 지학사의 집으로 통한 길과 일성촌으로 통한 북쪽 산골짜기에도 유격대원들이 겹겹이 보초를 섰다. 그리고 마을 안에서는 민병 패장 상순이 민병 30여명을 이끌고 유동보초를 서고 있었다. 토성 안 마당에는 유격대원들이 결박당한 지학사를 사랑방에서 압송하여 몸채 마루 바닥 앞에 꿇려 앉히었다. 드디어 성칠 대장이 마루바닥에 나섰다. 인삼 중대장이 성칠 대장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분은 우리 장백산 항일 유격대 김성칠 대장입니다. 김 대장으로부터 연설하겠습니다.” 모두들 그제야 인삼이 유격대 중대장인 것을 알고 적이 놀랐다. “저 양반이 그저 장지주네 양아들인가 했더니 유격대 군관이구먼.” 사람들은 성칠 대장의 늠름한 풍채를 바라보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지학사에게 침을 뱉었다. 성칠은 허리의 권총을 바로 잡아 놓더니 앞으로 나섰다. “여러분,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항일전쟁은 승리했습니다. 반백년을 우리 중국 인민과 조선인민을 압박하고 착취하던 일본 놈들은 철저히 망해 도망치고 있습니다. 우리 중국 인민과 조선 인민은 이제부터 허리를 펴고 나라의 주인으로 떳떳하게 살게 됐습니다. 우리 두 손으로 황무지를 일궈 개척해 놓은 이 땅에서 나라의 주인으로, 땅의 주인으로 살게 됐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지학사와 같은 친일주구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처단하고 인민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중국 공산당의 영도아래 이 땅에 인민정권을 세우고 인민무장 대오를 건립해 무기를 들고 인민정권을 지켜야 합니다.” 인삼 중대장이 옆에서 구호를 불렀다. “위대한 항일유격대 만세!” 사람들은 이계삼과 허영주처럼 주먹을 쳐들고 휘두르며 인삼이가 부르는 구호대로 따라 외쳤다. “인민민주정권 만세!” “친일지주들을 타도하자!” 성칠 대장은 뒤이어 연설을 계속 했다. “우리는 함흥 촌에 가난한 사람들이 주인으로 된 인민 촌 정부를 성립하고 토지개혁을 철저히 진행함으로써 지주를 청산해 집과 재산, 밭을 몰수하어 가난한 빈고농민들에게 나눠 줄 것입니다. 우리는 중국 공산당의 영도아래 이제부터 진정 가난한 사람들이 나라와 땅의 주인이 된 새 사회 인민정권을 건립할 것입니다.” 토성 안 마당에서는 천지를 진감하는 구호소리가 울려 퍼졌다. “인민민주정권을 옹호한다!” “항일유격대 만세!” “중국 공산당 만세!” 김성칠 대장은 계속 말했다. “이제부터 친일주구 지학사를 공개 심판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지학사 놈의 죄악을 공소하십시오.”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병완이가 나섰다. 그는 앞으로 씨엉씨엉 걸어 나가더니 가래짝 같은 손으로 지학사의 귀 쌈을 쨩 갈기었다. “네 이놈, 내 참고 참았다가 오늘에야 한매 친다.” 지학사는 눈깔을 힐끔거리며 병완을 흘겨보았다. “네놈이 오늘도 감히 나를 흘겨보는 거냐? 이젠 세상이 뒤바뀌었다. 네 놈이 우쭐거리던 세상은 뒤엎어졌다. 이젠 우리가 나라와 땅의 주인이 된 새 세상이 왔다. 네놈은 우리가 조선에서 쪽박을 차고 살 길을 찾아 여기 왔다고 거지취급을 하면서 우리 집 식구들을 처처에서 못 살게 굴었다. 네 놈은 자기가 배추밭에 논물을 대 놓고서도 내 셋째아들 기준이가 물을 댔다고 덮어씌우면서 괭이로 옆구리를 찍어 갈비뼈 세대나 분질러 놓았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 집에 껍질이 없는 전선줄을 늘여 놓아 우리 막내손비 명옥이가 빨래를 널다가 붙어 죽을 번 했다. 내 지금도 네놈을 의심한다. 우리 소구유에 네놈이 독약을 풀었지?” 병완은 지학사의 코앞에 손가락질하며 따지고 들었다. 바위돌이 총칼을 지학사놈에게 들이대며 물었다. “노실히 탄백해라. 그랬는가?” 이때 조덕림과 장학산이 어슬렁어슬렁 토성 밖에서 맴돌았다. 억복이랑 그자들의 몸을 수색하고 대회장 안에 들여보냈다. “난 그런 적이 없다.” “우린 네놈이 다른 지주들과 소구유에 양재물을 풀어 넣었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러자 손호표 지주는 자기네 소를 죽였다는 말을 듣고 눈깔을 부라리며 지학사를 쏘아보았다. “네 이 놈, 지학사야, 오늘까지도 우리 집 소를 죽인 일을 로실히 탄백하지 않겠는가? 이제 생각해 보니 저 지학사 놈이 조덕림하구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소.” 손호표가 이렇게 나오자 조덕림이 바빠 났다. 이때 상순이가 팔을 걷고 나섰다. 그는 지학사를 손가락질하면서 선뜩선뜩한 말로 따지고 들었다.  “지학사, 이 놈, 네놈이 오늘 같은 날이 올 줄을 몰랐지? 일본 놈들을 등에 업구 똥개 질을 하더니 네놈이 썩어질 날이 끝내 왔구나. 네놈이 손호표 소를 양재물을 타 먹여 죽게 만들고 우리 집과 싸우게 한 게 아니고 뭐냐?”        상순은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며 지학사에게 주먹으로 삿대질하며 그 놈의 하늘에 사무치는 죄악을 공소했다. “여러분, 이 지학사 놈은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진 친일주구입니다. 백번 죽여도 원수를 하지 못할 놈입니다. 이 놈은 위만주국 친일 촌장 질을 하면서 우리 항일유격대를 잡아 치우지 못해 혈안이 돼 미쳐날뛰였고 우리 마을 사람들을 감시해 왔습니다. 이 놈은 일본 놈을 등에 업고 외사촌형인 장학산의 양아들 이 토성 안 집을 빼앗아 일제의 총공소로 만들었고 자기가 들어 주인 행세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위만주국 친일 촌장을 하면서 인삼 중대장이 손수 판 우물마저 자물쇠를 채워 놓고 마을 사람들이 길어다 먹지 못하게 하어 우리 마을 사람들이 부득불 토성 서쪽에 우물을 파지 않으면 안됐습니다. 또 우리에게서 소작료를 8할씩이나 걷어 간 친일 악패 지주입니다. 이 놈은 우리 지역 중국과 조선 인민들이 다 망하라고 갈산 꼭대기에 일본 놈들을 끌고가 쇠말뚝을 박은 놈입니다." 그러자 한족 군중들과 심지어 한족 지주들까지 지학사를 망종이라고 욕했다. 이때 군중들 속에서 지군선이 주먹을 쥐고 나와 지학사를 한대 갈겼다. "이 놈아, 우리 은실을 내놔라! 네 놈이 우리 은실을 일본놈들한테 팔아먹지 않았느냐?" 해금도 뛰쳐나오며 "은실을 어쨌느냐? 일본놈들이 우리 은실을 어데로 끌고 갔느냐? 엉?"  "말햇!" 병완이 무쇠주먹을 들이대고 을러메자 지학사는 질겁해 대가리를 툭 떨어드리더니 쥐구멍으로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그 놈들이 은실을 일본군위안소에 끌고 갔을게요." "어느 위안소로 끌고 갔어?", "진수해위안소로 끌고 갔다가 길림으로 해서 신경, 봉천으로 해 아마 관내로 들어간 거 같소." 해금은 "은실아!" 하고 고함치다가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까무러쳤다.  "어머니!" 춘실이 애를 안고 달려나와 어머니를 부축하며 대성통곡쳤다. 지군선은 군중들을 향애 목청껏 고함쳤다. "우리 집안에 사람빚을 진 이 놈을 처단해야 합니다! 우리 은실을 찾아줍소! 아하이고, 내 귀여운 딸  은실아-" 병완이 고함쳐쳤다. "일본 놈들의 앞잡이촌장 지학사 놈을 처단해 인민들의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지학사 놈을 처단하자!” 그러자 이계삼과 허영주가 군중들 속에서 연이어 구호를 불렀다. “친일지주 지학사놈을 처단하자!” “칠일 촌장 지학사 놈을 청산하자!” “지학사 놈의 땅과 재산을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 주자!” 마을 사람들은 땅과 재산을 나눠 준다는 말에 구호를 목청껏 불렀다. “저 놈을 처단하라!” 이계삼과 허영주는 앞으로 지하당조직의 사업의 수요에 의하여 토지개혁의 정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군중들을 조직하여 구호를 불렀다. 농민들은 돌멩이를 쥐어 지학사 놈에게 뿌리었다. 지학사는 돌멩이에 대가리를 맞아 피투성이로 됐다. 장학산이랑 측은한 눈길로 지학사를 바라보았다. (봐라! 내 말대로 양아들 집을 빼앗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있겠는가? 사람이 욕심을 써도 한정 있지.) 인삼중 대장은 성칠과 김병완과 뭐라고 토론하더니 다음과 같이 공포했다. “친일주구이며 악패 지주 지학사 놈을 즉시 처단하라! 집과 땅, 재산을 몽땅 빈고농민들에게 나눠 준다!” 억복이랑 바위돌이랑 유격대원들은 지학사를 끌고 태평강 가에 갔다. 지학사는 죽기 전에 사람들 속에서 장학산과 조덕림, 처첩들을 눈빗질을 해 찾아보고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이제 오래지 않아 국민당 군이 나를 위해 복수할 게다. 네놈 가난뱅이 놈들, 빨갱이 놈들이 무리죽음을 날이 오래지 않다. 원쑤를 갚아달라…” 바위돌 분대장은 지학사 놈의 주둥이에 자갈을 마구 처넣고 바로 마구 밀막아 묶어 놓았다. 그러자 지학사는 꿱꿱거릴 뿐 아무 개소리도 온전히 치지 못했다. 억복 부소대장은 권총을 꺼내 들고 우렁차게 말했다. “나는 인민을 대표해 친일주구 네놈을 처단한다!” 땅! 수십 년 동안 함흥 촌 빈고농민들을 못 살게 굴던 친일주구, 악패지주 놈은 처단됐다. 빈고농민들은 지학사의 시체에 대고 돌팔매를 했다. 숱한 돌멩이가 날아가 대갈통이 박살난 지학사 시체를 까부시며 뒤덮었다. 병완은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이고 어데서 북을 얻어왔는지 둥둥 치며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광복이 왔다! 마음껏 춤을 추자! 이젠 우리 가난한 사람들의 세상이다!” 그러자 토성 안 마당에는 광복을 맞은 중조 가난한 백성들의 춤판이 벌어졌다. 덕팔이도 넓은 잔등이 땀에 흠뻑 젖도록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덕성과 송죽도 상우도 사람들 속에서 마음껏 댄스를 추었고 아낙네들도 도라지를 너울너울 추며 돌아갔다. 가난한 한족백성들은 흥겹게 양걸춤을 추며 돌아갔다. 그들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들은 광복의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마음껏 춤을 추고 노래하자! 그날로 이계삼과 허영주는 김병완과 상순, 성수, 학수 등과 함께 나무자를 만들어가지고 지학사의 밭을 몽땅 가난한 한족과 조선족 빈고농민들에게 나눠 주었다. 유격대에서는 촌공소 자리 집을 빼앗아 인삼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나 인삼은 자기 집을 촌인민정부로 쓰라고 내놓았고 사랑을 집이 없어 고생하는 학수와 기준이네를 주었다. 그러나 상순은 자기는 집을 지어 살면 된다면서 소서구에서 타다 남은 집에서 사는 형님 상우에게 넘겨주었다. 이계삼과 허영주는 상순의 아량 있는 처사에 찬탄하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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