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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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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73)
2017년 07월 11일 15시 31분  조회:1559  추천:3  작성자: 김장혁





                              

                                                     
 
                                             민심

오뉴월의 비는 소잔등을 다툰다고 이쪽 산기슭에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맞은 켠 산마루에는 해빛이 비쳤다.  날씨도 변덕스러웠다. 해가 바짝 뜨고 불볕이 쏟아지다가도 먹장구름이 뒤덮이면서 변덕을 부렸다. 대지는 하늘이 부리는 풍운조화에 따라 변덕스럽게 변해갔다.
농사철이 되자 용구와 영호를 비롯한 공안일군들은 대가리를 쳐드는 당지 지주들이 없어 할 일도 크게 없자 자연히 집 농사를 근심하게 되었다.
농민의 아들인 상순도 저도 몰래 함흥 촌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러나 그는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이기에 공안국 새 지도부가 결정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 농사일을 도와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상순은 영호와 용구를 비롯한 일부 공안일군들에게 청가를 주어 집으로 돌아가 농사일을 도와주게 했다.
어느 날, 현 당위 조직부 이계삼 부장과 상급 공안국 부국장 손철구가 영월구공안국 국장과 부국장 후보를 고찰하러 내려 왔다.
그들은 영월구 당위에 먼저 들려 허백호 서기를 만났다.
허백호 서기는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에서 거둔 성적을 충분히 긍정했다. 그는 특히 공안국 준비소조에서 영월구 당위의 영도아래 국민당 반동파 잔여세력과 악질지주 자위대를 숙청했다는 점을 강조해 지적했다.
이계삼은 상순이 사업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둔 것을 보고 아주 기뻐했다. 상순은 그가 소개인을 서서 입당시킨 농촌의 청년간부 출신이었다.
그런데 허 서기의 뒷말을 듣고 이계삼 부장은 인차 흐뭇한 미소를 짓던 얼굴에 그늘이 지나갔다.
“김상순 동문 독단독행하고 안하무인입니다. 조직 관념이 차하고 영도를 존중하지 않는 악습을 고치지 않았습니다.”
이계삼은 허 서기가 헐뜯는 말을 듣다못해 물었다.
“구체적으로 실례를 들어 말하십시오.”
허 서기는 열이 후끈 올랐다.
“조장이 뭐 대단합니까? 큰 관직이나 얻은 것처럼 우쭐해서 공안일군들을 모집할 때도 근본 우리 영월구 당위에 청시하지도 않고 자기 눈에 드는 사람만 뽑았단 말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우리 영월구 당위에 한마디 말도 없이 제 마음대로 과장 넷이나 임명하고 숱한 파출소 소장들까지 임명했단 말입니다."
허백호는 사심없이 말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사촌동생 허영호를 진수해파출소 소장으로 임명한 일까지 꼬쟁이에 꿰들었다.
"허영호는 내 사촌동생이 돼서 내 잘 압니다. 그는 소학교 문도 나오지 못한 농사군입니다. 그런데 허영호를 일약 파출소 소장으로 임명하다니? 쳇, 이게 어디 조직 관념이 있는 사람입니까? 전번에 내 가서 비평하니 근본 접수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이런 동무를 뭘 보고 우리 영월구 공안국에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상급 공안국 손철구 부국장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우린 오늘 상순 동무를 공안국 국장 후보로 선정하고 지방 당위와 공안일군 가운데서 민의측험을 하고 진일보 조사하자고 왔습니다. 그런데 상순 동무가 지방 당위 반영이 좋지 않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계삼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상순 동무는 총명하고 한어를 잘하고 사업에서도 훌륭한 성적을 따낸 훌륭한 공안간부입니다. 그런데 허서기 반영을 들은 후 잘 믿어지지 않을 정도구만. 호되게 비평해야지.”
허 서기는 한입 더 물어댔다.
“말도 마십시오. 여기로 온지 반년이 넘도록 공안국을 세우지도 못했습니다. 전번에 국민당 자위대 숙청전투 총화보고자료를 쓰라고 하니 질질 끌면서 쓰지도 못하였습니다. 박성우 동무가 와서 써서야 상급 당위와 공안국에 회보할 수 있었습니다.”
상급 공안국 손철구 부국장은 한마디 께끼었다.
“난 그래도 상순 동무가 쓴 겐가 했더니. 성우 동무는 일본 유학생이더구먼. 한어에 일어, 영어까지 안다더구먼.”
그러자 허 서기는 스리슬쩍 성우를 치켜세웠다.
“성우 동무는 지식도 많고 조직 관념도 강하고 영도재능이 있는 동무입니다. 아예 성우 동무를 공안국 국장으로 임명하는 게 낫습니다. 난 상순 동무를 국장으로 임명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문화지식도 겨우 고급소학교 수준입니다.”
이계삼은 듣다못해 차마 더 들을 수 없었다.
“허 서기도 소학교문을 겨우 나왔지만 구 당위 서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공안국 치안사업도 지식이 필요하지만 더욱이 정치사상과 지식, 군사재능 등 종합자질이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문무가 겸비돼야 합니다. 하지만 공안국 사업을 잘 하려면 문과 무에서 무예가 더욱 중요합니다. 상순 동무는 공안국 치안사업을 하기 맞춤한 동무라고 보오.”
그쯤 되자 허백호 서기도 더는 헐뜯지 못했다. 허나 이계삼 부장은 더 무서운 말뚝을 꽝 박아 놓았다.
“기실 당무 공작은 무예보다도 문필이 더 중요합니다. 지식수준이 더 높아야 한단 말입니다. 아예 성우동무를 영월구 당위에 배치하면 어떻습니까?”
허 서기는 감히 조개턱을 더 널어놓지 못했다.
"물론 상순 동무에겐 결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해놓은 사업성과는 착오보다 얼마나 더 크오. 상순동무는 주덕해 동지가 이름 찍어 영월구에 보낸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이오. 이번에도 주덕해 동지는 김상순동무를 영월구 공안국 국장으로 임명하라고 우릴 보냈소."
이계삼 부장은 경고하듯이 말했다.
" 허백호 동무는 명심하오. 동무는 삼도만토비숙청 때도 부대를 토비들 사격망에 주둔하게 해 통신원이랑 민주련군 전사들이 희생되게 했소. 그때 김상순 패장이 제때에 최퇀장한테 보고해 안전지대에 전이시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겠소? 동문 최퇀장과 한 고향 사람이기에 민주련군에 가자마자 련장이 되지 않았소?  동문 군사상 무능하기로 짝이 없었소. 정치상에선 동지들과 단합을 잘 하지 못하고 사람잡이만 한단 말이오. 지금도 상순동무를 내리까는데 눈이 씨뻘개 달아다닌단 말이오. 내 말해두지. 계속 이러다간 동무는 영월구위 서기를 못할줄 아오. 안보촌에 내려가 촌서기나 할 준비를 하오. 동무에겐 촌서기도 과분하오.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은 절대 영월구당위 서기 수하가 아니오. 동무는 조직관념이 있소? 없소?"
허백호는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며 머리도 들지 못했다.
"지금 전시 군관제를 실시하기에 현공안국 준비소조 조장, 장차 국장은 영월구 당위 서기보다 한급 더 높다는 걸 명심하오." 
"예, 잘못했습니다."
"내 료해에 의하면, 그래도 상순 동무는 지방당조직과 관계를 잘 처리하기 위해 매사에 허백호 동무와 토론하고 회보하면서 사업했다는 걸 아오. 그런데 동문 민주련군에서 련장질 하면서 기관총반장을 다루듯 상순 동무를 쥐고 흔들려고 했단 말이오. 기실 민주련군에서 상순동무는 허동무와 동급인 지도원을 하지 않았소. 후에 영장임명장까지 내렸댔소. 그러기에 허백호동무 상관이라고 할 수도 있소. 그만큼 상순동무는 국장 자격이 당당한 동무요. 최퇀장이  웬간하면  동무를 두고 상순동무를 영장으로 제발시켰겠소?" 
"정말 잘못했습니다."

"그저 잘못했다고 해선 안되오. 서면으로 조직에 검사서를 써서 바치오."
허백호는 천천히 머리를 들어 뱁새눈으로 이부장을 흘끔 곁눈질해보며 입안소리를 했다.
"예, 꼭 잘못을 고치겠습니다."
이계삼 부장은  일어나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현당위에서는 허백호동무에게 당내 엄중경고처분을 주기로 결정했소. 이후에 착오를 잘 고치지 못하면 안보촌에 내려가게 될 줄 아오."
허백호는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이계삼과손철구는 허 서기가 한사코 상순을 내리까는 것이 이상하여 공안일군들을 찾아가 정황을 요해하기로 했다.
그런데 대부분 공안일군들이 농사일을 도와주려고 집으로 돌아가고 없고 사무실이 텅텅 비어 있었다.
손철구 부국장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정말 조직 관념이 없구먼. 지금 무슨 세월이라고 경각성이 없이 공안일군들을 농사일을 하러 집으로 보낸단 말이오? 이미 거둔 성적에 도취됐군!”
이계삼은 점심시간을 타서 상순을 조용한 곳으로 불러냈다.
그들은 시내를 좀 벗어나 사품 치며 흐르는 강물을 마주 하고 강가에 나란히 앉았다.
“상순이, 아직 전국이 해방되지도 않았는데 공안일군들을 집으로 보내다니? 정신 있소? 동무네 주요 임무는 영월구 치안사업을 하는 것이지 농사를 짓는 게요?”
상순은 뒷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전번 숙청을 한 뒤 지주들이 별 다른 동태가 없기에 집에 가라고 청가를 주었습니다. 지금 보니 잘 못 됐습니다.”
이계삼은 상순의 팔을 잡아당기며 나직이 귀속 말을 했다.
“어째 동무는 지방 당위 영도를 존중하지 않았소? 물론 전시 군관제라 허서기 한급 낮다고 해도 그렇지. 뭐나 지방 당위와 잘 토론하고 해나가오. 남을 존중해야 자기도 존중받을 수 있소. 그에게 자주 청시하오. 사업만 잘해 될 거 같소? 상하 영도와의 관계도 잘 처리해야 되오.”
상순은 이계삼 부장의 말은 다 들었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허 백호 서기가 원칙에 어긋나도 따라야 합니까? 난 절대 원칙을 떠나 그런 영도와 타협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말이오?”
이계삼은 눈초리를 치켰다.
상순은 강변의 조약돌을 쥐어 사품 치며 흐르는 강물에 힘껏 뿌리었다.
출렁!
상순은 조약돌에 맞아 튕겨나는 물 바래를 보더니 입당소개인을 만났는지라 속을 툭 털어놓았다.
“허서기는 삼도만 토비숙청 때 일로 해 나한테 편견이 있습니다.  그때 내 영장을 했더라면 허서기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모를 겁니다. 저도 그래서 영장을 그만두고 지방에 돌아온 것도 있습니다. 허 서기는 그저 나를 내놓고 미워하고 내리깝니다. 여기에 온 후에도 처처에서 나를 꼬챙이에 꿰들고 나무랍니다.”
이계삼은 듣기만 했다.
상순은 입을 연바하고는 속이지 않고 다 말했다.
“허 서기는 사업을 잘 하는가를 보지도 않고 자기한테 아부하는 사람을 간부로 써주려고 합니다. 동무들의 말에 의하면, 허 서기는 성우한테서 송이버섯이랑 술이랑 얻어먹고 국장을 시키려고 한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난 그런 원칙도 없고 조직 관념도 없는 서기를 존중할 수 없습니다.”
이계삼 부장은 상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상순이, 내 말을 명심하오. 낮은 문턱에 머리를 숙일줄도 알아야 하오. 그러잖으면 자기 머리 터지는 법이오. 또 참대처럼 꼿꼿한 것도 좋지만 끊어지기 쉽소. 버들처럼  경우를 봐서 홰친홰친 후러들줄도 알아야 하오. 그래야 대나무처럼 쉽게 끊어지질 않을 수 있소."
"흥!"
상순은 이계삼의 말이라면 다 들었지만 이번만은 아니었다.
"머리 터지고 목이 끊어지더라도 원칙을 지키지 않고 그런 사람들한테 머리를 수그릴 순 없습니다. 사람이 빚을 지고는 살아도 어찌 시비 지고 살 수 있습니까. "
이계삼은 원칙 앞에서 강직한 상순을 속으로 못내 탄복했다. 그러나 상순의 앞날이 근심스러웠다.
"동문 정치사업을 하면서 오랜 세월이 흘러가면 내 말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거요,"
그쯤 하고 이계삼은 하던 말에 되돌아갔다.
"왜 허서기와 토론하지도 않고 과장과 파출소 소장들을 임명했소?”
상순은 세 귀 눈을 똑바로 뜨고 이계삼을 마주 보았다.
“지금은 군관제시기입니다. 전시나 다름없는 시기이기에 우리 공안국은 독립적으로 간부를 모집하고 임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후에 허 서기한테 회보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건 동무 잘못이오. 아직 국장 임명장도 내려오지 않았는데. 아무리 전시라도 허서기하구 먼저 토론하고 임명했어야 하오.”
상순은 납득이 돼 하지 않았다.
“그래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이 과장과 소장도 임명할 권리도 없습니까? 아무 권리도 없이 어떻게 공안국을 세웁니까?”
이계삼은 상순의 어깨를 다독였다.
“상순이, 동문 아직 사업경험이 없어 그러오. 내 말을 듣소. 물론 긴급정황에서 공안국 준비소조장은 과장을 임명하고 공안일군을 독립적으로 모집할 수 있소. 그러나 공안국을 세우는 일도 조직적 절차를 거쳐야 하오. 우리 너무 늦은 것도 있소. 먼저 상급 공안기관과 당위에서 공안국 국장과 부국장을 임명한 후 공안국 국장과 부국장이 토론하고 지방 당위에 통보해 의견을 들은 후에 과장을 임명해야 하오.”
그제야 상순은 머리를 숙이었다.
한참 후에야 상순은 목구멍으로 기어드는 소리로 겨우 한마디 했다.
“잘 못했습니다.”
이계삼은 상순을 타일렀다.
“동무는 아주 훌륭한 지도간부 감이오. 군사재능도 있고. 그런데 허 서기와의 관계를 잘 처리 하지 못해 영향을 받을 거 같소. 물론 허백호 서기가 다 잘했다는 건 아니오. 그러나 우린 먼저 자기 잘못부터 고칠줄 알아야 하오. 이제라도 허 서기를 찾아가 관계를 개선하오. 하급영도라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하오. 동문 허영호를 소장으로 임명해 허백호 서기와 관계를 개선하려고 한 것 같은데. 그걸로만은 모자라오. 사업만 사업이라고 하지 말고 사람과의 관계도 잘 처리하고 공부도 게을리 하지 마오. 큰 짐을 메자면 소학교 지식수준으로 되겠소? 아무리 눈앞의 사업이 다망하더라도 문화지식 공부도 좀 하오.”
“예, 명심하겠습니다.”
상순은 그렇게 대답해 놓고서도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이계삼 부장과 손철구 부국장은 공안국 사무실에 와서 공안일군들 속에서 의견청취를 하기 시작했다. 상순은 내키지 않았지만 이계삼 부장의 포치대로 허백호 서기를 찾아가 잘못을 검사했다.
손철구 부국장이 의견청취를 했다. 그는 먼저 호구를 관리하는 “과장” 만호를 불러 왔다.
이계삼은 국장 후보 고찰의 객관성을 기하려고 나서지 않고 손철구 부국장이 주도하여 고찰하게 했다.
손철구 부국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동무는 군정대학시절부터 김상순 동무와 박성우 동무와 동창생이니까 잘 알리라고 믿소. 동무 보건대 누가 영월구 공안국 국장과 부국장을 하면 좋을 거 같소?”
허만호도 구김 없이 뚝 찍어 말했다.
“김상순 조장이 국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뜻밖의 대답에 손철구 부국장은 의아해졌다.
“무엇 때문입니까?”
만호는 의자등받이에 잔등을 붙이며 자기를 여겨보는 손 부국장을 보았다.
“공안국 치안사업을 지도하자면 무엇보다도 용감한 희생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전번에 국민당 자위대를 숙청할 때 상순 조장은 제일 위험한 오두막에 미끼로 들어가 매복해 적을 유인해 사로잡았습니다. 장단지에 총을 맞아 가지고도 계속 전투를 지휘해 장충국 연장 놈의 허벅다리를 쏘아 사로잡았습니다. 상순 조장은 다리를 상해 가지서도 허영호랑 데리고 눈 가슴에 자전거를 타고 안보 촌에까지 가서 직접 장부귀 놈을 체포했습니다. 모든 작전도 아주 세밀하게 짜서 전투를 승리에로 이끌어냈습니다. 이런 용감성과 희생정신이 없이 공안사업을 할 수 있습니까? 상순 조장처럼 이런 지휘능력이 없는 사람이야 어찌 공안일군들을 이끄는 국장으로 될 수 있겠습니까?”
손 부국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좋소. 성우 동무는 어떻소?”
“우리 공안일군들은 입방아만 찧는 사람을 딱 질색입니다. 글을 잘 쓴다고 해서 공안사업을 잘 지도할 수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성우 동무는 군정대학 때 반장을 했지만 공안국 국장을 하기는 적합하지 않다고 봅니다. 군정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지식이 많으니까 반장도 할 수 있었겠지만 총을 가진 계급의 적들과 싸우는 공안전선에서는 성우 동무가 상순 조장보다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우 동무는 총도 온전히 쏘지 못합니다. 겨릅대처럼 약한데다가 낯이 새하얀게 딱 계집애 같습니다. 힘도 없어 적들과 격투하면 단매에 맞아 죽을 겁니다. 성우는 상순 조장 아래서 문서질이나 하면 합당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이계삼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허나 허 서기는 만호를 보고 눈을 흘기었다.
만호에 뒤이어 창남이 사무실에 불리어 들어 왔다.
손철구 부국장이 묻기 바쁘게 창남은 기관총을 쏘듯이 자기 견해를 쏟아 부었다.
“우리 공안국 국장은 의례히 상순 조장이 해야 합니다. 그는 항일 전쟁 때부터 일본 놈들과 기관총으로 용감히 싸웠습니다. 토비숙청 때도 기관총반 반장으로부터 지도원까지 하면서 기관총패를 지휘해 숱한 적들을 소멸한 실전경험이 있습니다. 그때도 토비들 내부 기의를 일으키게 해 토비숙청에 공훈을 세웠습니다."
"픽!"
허백호는 한쪽에서 어망간에 지뿌둥해 코방귀를 뀌었다. 이부장의 눈길이 가자 머리를 떨구며 혀로 입술을 감빨았다.
창남은 뒷말을 이었다.
       "이번 국민당 자위대를 소탕할 때에도 뛰어난 지휘능력과 용감성을 보여 주었고 우리 영월구 치안사업을 위해 지워 버릴 수 없는 공훈을 세웠습니다. 상순 조장은 무예가 출중합니다. 사격하면 백발백중이고 격투, 씨름, 총창 찌르기 막히는데 없이 출중합니다. 전번 총화보고자료도 상숭 동무가 부른 걸 성우가 베껴낸 겁니다. 이런 종합능력이 있는 국장이 있어야 아래 공안일군들도 마음속으로 존중하고 따르고 지휘를 들을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영월구 치안사업도 잘 할 수 있습니다.”
허 서기는 속에 내키지 않아 마른기침을 했다.
손 부국장은 관건적인 대목을 물어 보기 시작했다.
“동무 보건대 상순 동무는 그 밖에 무슨 우점이 있다고 보오?”
창남은 성미가 급한지라 묻기 바쁘게 대답했다.
“상순 조장은 원칙을 지킵니다. 상급이든 하급이든 원칙에만 어긋나면 복종하지 않고 맞섭니다.”
“구체 실례를 들 수 없소?”
허백호 서기는 바늘방석에 앉은듯하여 “어험.” 하고 마른기침을 했다.
창남은 후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바른 말을 했다.
“사실 허 서기가 자기 사촌동생 허영호를 공안일군으로 모집하지 않았다고 야단칠 때입니다. 상순 조장은 무조건 복종한 게 아니라 원칙을 지켰습니다. 만호와 저를 데리고 집까지 찾아가 직접 공안일군 소질이 있나 고찰한 후 모집해 들여왔습니다.”
“잠간.”
손 부국장이 손을 들더니 물었다.
“어째 영호 동무를 처음에 모집하지 않았소?”
“영호 동무는  키가 작고 약하더구먼요. 그래서 적들과 싸우는 공안사업을 하기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상순 조장은 허 서기 사촌이라고 무조건 봐준 것도 아닙니다. 후에 우리가 가 보고 영호는 씨름 2등을 한적이 있는데다 작은 덩치와는 달리 벼 마대를 양옆구리에 끼고 수레에 척척 싣는 것을 보고 공안일군으로 모집해 들여왔고 과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상순 조장은 원칙을 지켜 숱한 민병 연장과 패장들 속에서 군사훈련을 거치고 군사시험을 쳐서 공안일군을 모집했습니다. 정말 이렇게 원칙을 지키는 좋은 국장감은 없다고 봅니다.”
손 부국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이계삼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다음에는 허영호가 들어왔다.
“동무 허영호오?”
손 부국장은 키가 작은 허영호를 보고 대뜸 짐작했다.
“예, 그렇습니다.”
“자, 앉소.”
손 부국장은 허백호 서기와 이계삼을 번갈아 보며 허영호에게 물었다.
“영호 동무는 상순 조장을 어떻게 봅니까?”
이때 허백호 서기가 연신 “에헴, 에헴!” 마른기침을 깇었다.
영호는 허 서기를 흘끔 곁눈질하더니 입을 열었다.
“김상순 조장은 지휘능력도 대단하고 무예도 뛰어나서 우리에게 사격과 권투, 총창 찌르기 지어 씨름까지 배워 주었습니다. 그러나 혼자 영웅인 척하면서 뭐나 잘 알아보지도 않고 마구 하는 건 나쁩니다.”
“실례를 들어 말하오.”
“내 키 작고 약하다고 업신여겨 공안일군으로 모집하지 않았습니다. 더 중요한 건 전번에 자위대 숙청할 때 그게 뭡니까? 목숨을 내걸고 총을 쥔 놈들과 싸우는데 대체 적들이 얼마나 되는지도 잘 알아보지 않고 전투를 지휘했습니다. 그는 혼자 오두막에 미끼로 들어가 매복해 있었는데 얼마나 위험했습니까? 자위대를 숙청하러 간 용구랑 얼마나 위험했습니까? 그게 혼자 영웅으로 되자는 게지 뭡니까?”
손 부국장과 이계삼은 마주 보며 희죽이 웃었다. 그러나 허백호 서기는 바늘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 못했다.
(에이구, 어쩜 시키는 서방질도 못해? 내리깎는다는 게 되춰주고 말았어. 쯧쯧.)
“동문 성우 동무를 어떻게 보오?”
“에이고, 낯이 백지장 같은 선비가 어떻게 공안국장을 한다고 그럽니까? 상순 조장보다 형편없습니다. 아무리 먹물이 온 몸에 꽉 찼다고 해도 한해에 공안국에서 자료를 쓸 일이 몇 번 있다고 여자 같은 선비를 국장을 시킨다고 그럽니까?”
영호는 사촌형 허백호 서기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생각나는 대로 내쏘았다. 진짜 멈추지 못하는 기관총질이었다.
“성우는 영월구 공안국에 와서 해 놓은 일도 없습니다. 한 식경 품을 들여 전번 회보자료를 쓴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저 허 서기는 국장을 시킨다고 하니 우리 뒤에서 죽은 소대가리 웃다가 꾸러미 터질 일이라고 웃었습니다. 전번에 상급 공안국에 보낸 자료도 기실 상순 조장이 줄줄 말한 내용을 성우 동무가 정리했을 뿐입니다. 성우가 국장이 되면 모두 말을 잘 듣지 않을 겁니다.”
허백호 서기는 도리머리를 홰홰 흔들며 문 밖으로 나가는 영호를 흘겨보았다.
그 다음 차례로 용구가 들어왔다. 그는 손 부국장이 묻기 바쁘게 목이 꽉 메어 말했다.
“상순 조장은 우리 공안국 국장을 해야 합니다. 지휘능력도 강하고 용감하고 군사재능도 있습니다. 그 분은 실전경험도 있는 유능한 지휘자입니다. 그가 우리 영월구 공안국 국장을 하면 우리 영월구 치안사업은 당과 정부에서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손 부국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상순 조장의 우점이 또 있소?”
“예, 많습니다. 그는 우리를 한 사람처럼 단결시켜 치안사업을 하게 했습니다. 례를 들면 성우 동무가 뭐 국장이 된다고 소문이 돌았지만 우리를 보고 누가 국장이 되든지 단결해 받들어 치안사업을 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를 보고 성우는 당교 때 자기에게 글을 배워준 선생이라면서 누구든지 성우 동무의 허물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얼마나 사심 없이 대공무사 합니까? 그는 또 군중들을 아주 관심합니다. 농번기가 되자 우리에게 허가를 주어 집에 돌아가 며칠씩 농사일도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누구 집에 고난이 있으면 상순 조장은 늘 도와주군 하였습니다. 그는 집이 가난해 소학교 대문에도 가보지 못한 것이 한이라면서 우리를 보고 일만 하지 말고 애써 공부를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얼마나 좋은 지도자라고 그, 그럽니까?”
용구는 팔소매로 눈물을 닦으면서 목이 메어 뒷말을 더 잇지 못했다.
이윽고 손철구 부국장은 “상순 동무의 결점은 뭐라고 보오?”라고 했다.
용구는 머리를 숙이고 생각하더니 “난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상순 조장은 이제 사업하면서 글공부만 좀 더 하면 훌륭한 국장으로 될 수 있다는 걸 믿습니다.”
손철구 부국장과 이계삼 부장, 허백호 서기가 30여명 공안일군들을 일일이 불러다 요해했다. 그들은 모두 상순은 훌륭한 간부라고 했다. 지어 박성우마저 상순을 훌륭한 국장 후보라고 하면서 후에 그를 잘 받들어 일하겠다고 했다.
민의조사가 끝나자 이계삼 부장과 손철구 부국장은 상순을 찾았다.
“상순 동무 보건대 영월구 공안국에서 누가 국장을 하고 누가 부국장을 하면 좋겠소?”
손철구 부국장이 묻는 말에 상순은 망설이지도 않았다.
“국장은 박성우 동무가 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부국장은 천용구 동무나 김창남 동무가 하면 좋고.”

“허허허. 무엇 때문이오?”
손 국장은 이계삼과 눈을 맞추며 웃었다.
“평화 년대에 공안국은 지식과 견식이 있는 국장이 영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허 서기가 성우 동무를 높이 평가하는 걸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허나 요즘 생각해보니 도리 있는 것 같습니다. 허나 한 점만은 짚고 넘어 가야겠습니다. 공안사업은 계급의 적들과 무력으로 싸워야 하는 특수사업입니다. 아무리 평화 년대라고 해도 맨 선비들로만 공안국을 채운다면 실제 공안사업에서 힘들게 됩니다. 때문에 천용구 동무와 김창남 두 동무를 부국장으로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용구 동무는 씨름 1등이고 용감하고 공안사업을 할 큰 재목감입니다. 전번 국민당 자위대 놈들을 숙청할 때도 아주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김창남 동무는 군정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글도 있고 무예가 뛰어납니다. 만약 박성우 반장과 김창남, 천용구 동무가 국장과 부국장을 한다면 문무가 겸비된 지도부로 구성돼 우리 현공안국 치안사업을 아주 잘 지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만약 부국장을 두 동무 더 둔다면 누구를 시키면 좋겠소?”
손 부국장의 물음에 상순은 머리를 숙이고 한참 궁리하더니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허영호를 시키면 됩니다. 이 동문 가정성분이 좋고 씨름재간도 있고 무예도 출중합니다…”
“그만!”
손 부국장은 손사래를 쳐댔다.
“상순 동무! 그게 공안사업을 책임져 하는 말이오? 허영호 동문 진수해파출소 소장으로 임명하지 않았소? 그리구 박성우 동문 지식이 있을뿐 무예가 안되고 영월구 공안국에 갓 와서 해놓은 일도 없지 않고 뭐요?”
“?”
상순은 세귀눈을 키겨뜨며 손부국장과 이계삼 부장을 번갈아 보았다.
이계삼 부장은 손부국장에게 손사래를 치더니 상순에게 물었다.
“그래 동무는 뭘 하면 좋을 거 같소?”
“당 조직과 상급 공안국의 배치에 복종하겠습니다. 천용구 과장네 치안과에 가서 글공부를 하면서 백의종군하겠습니다.”
손 부국장은 걸상에 앉은 상순에게 다가와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연변전원공서 주덕해동지께서 무엇 때문에 동무를 영월구에 파견했겠소?”
손부국장은 얼굴에 얇은 웃음을 짓더니 금후의 요구를 제기해주었다.
“동무는 영월구에 온 후 공안사업을 아주 잘 했소. 영도능력도 있고 정치이론과 공안실무 수준이 아주 높고 실전경험과 무예도 뛰어난 훌륭한 공안간부요. 후에 지방 당위의 영도를 존중하고 인간관계를 잘 처리하고 뭐나 사전에 전면적으로 조사한 뒤 지휘하고 문화지식 공부에 힘쓰오.”
상순은 일어나 군례를 척 올렸다.
“예, 꼭 명심하겠습니다.”
뒤이어 손 부국장과 이계삼 부장은 성우도 찾아 담화하고 나중에 허백호 서기를 찾아 의견을 교환한 후 저녁이 다 돼서야 기차를 타고 돌아갔다.
기차가 칙칙폭폭 달려가며 뒤에 남겨둔 영월구 산골짜기에는 연분홍 낙조가 비끼기 시작했다.
                                 
                              고향 행차


      동녘 하늘이 희읍스름하게 밝아 오자 영월구의 삼라만상이 잔등을 드러냈다. 어둠에 짓눌려 있던 산등성이가 먼저 윤곽을 드러냈다. 뒤이어 골짜기에 길게 늘어앉은 영월구 시내에 천천히 안정된 모습이 나타났다.
상순은 아침 일찍이 조용히 일어나 물 초롱을 들고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다 숙사 식당 물덕에 꼴딱꼴딱 채워 놓았다. 창남과 만호도 옆 칸에서 일어나 도끼를 휘둘러 땔나무를 팡팡 패 무져놓았다. 용구는 장작을 안아다가 부엌에 불을 때 아침밥을 손수 지었다.
상순은 아침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여러 공안일군들을 둘러 보고나서 나중에 길쭉한 박성우의 얼굴에 눈길을 돌리었다.
“박 반장, 내 집에 한번 갔다 와야겠소. 그간 모두 수고하오.”
성우는 황송해 하면서 손사래를 저었다.
       "반장? 김 조장은 우리 공안국 책임자인데 내가어찌 계속 반장 틀을 차리겠소?” 

상순은 정색했다.
“박 반장은 영원히 나의 동창생이자 문화과 스승이고 반장이오. 내 조장 따위가 무슨 지도자요? 이후에 스스럼없이 보내기요. 동무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용구 과장하구 창남 과장하구 많이 토론해서 처리하오.”
용구와 영호는 코를 벌름거리며 이쪽을 건네다 보다가 성우의 눈길이 가자 밥사발을 들어 막으며 숟가락질을 하는 척했다.
성우는 상순이 고마워 영월구 역에까지 따라 나와 바래였다. 용구와 창남이랑 멀리 뒤따라오면서 성우를 흘겨보며 뒤통수에 손가락질을 해댔다.
“뒤에서는 헐뜯다가 앞에선 제일 가까운 척하는 거 봐.”
“누가 보자 해 기차역까지 따라 나와?”
“그러게! 오징어처럼 배때기에 먹물이 꽉 차면 전투도 잘 한답데? 흥!”
상순은 용구와 창남을 흘겨보았다.
“쯧쯧, 사내들이란 입이 무거워야 해.”
혀를 홀랑 내미는 창남과 용구를 보고 상순은 “무슨 일이 있으면 함흥 촌에 와서 알리오.”라고 당부했다.
용구는 눈물이 글썽해났다.
“김 조장, 일찍이 돌아오십시오.”
창남은 상순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관건적인 시각에 집으로 돌아가서 뭘 하오?”

상순은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기차에 올랐다.
공안국을 고생스레 세워놓은 상순이라고 국장을 임명하는 이때가 관건적인 시각인줄을 몰랐겠는가?
허나 그는 벼슬을 초개같이 여기고 그간 반년 넘어 부모형제를 찾아보지 못한 불효가 너무나도 속에 걸리었던 것이다.
상순이 땡볕을 맞으면서 패랑천산 앞에 이르렀을 때다. 아름드리버드나무가 꽉 들어선 들판에서 숱한 사람들이 물도랑을 판다, 버드나무뿌리를 파낸다 하면서 왁작 떠들며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상순은 삽질에 괭이질 하는 새하얀 옷차림의 사람들 속에서 한창 괭이질하는 할아버지를 찾아냈다.
그는 권총집을 뒤로 젖혀 한손으로 누르며 그리로 달려갔다.
“할아버지!”
“오, 상순이 왔구나.”
병완은 괭이를 짚고 서서 놀라했다.
“무슨 일로 불시에 왔니?”
상순은 할아버지 괭이를 받아 버드나무뿌리를 찍어냈다.
“집으로 와 본지 오랩니다. 모두 무사히 계셨습니까?”
“오, 그래.”
병완은 마을 사람들을 돌아보며 “한 쉼 쉬기요.” 하고 소리쳤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상순의 옆으로 다가왔다.
병완은 하얀 머리수건으로 목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권총을 차고 괭이질하는 막내손자를 대견스레 바라보았다.
“그래, 영월구 치안은 잘 됐니? 국민당 놈들이 또 나타났니?”
상순은 버드나무뿌리를 두 손으로 뽑아내며 말했다.
“이젠 전국이 해방됐습니다. 허나 장개석 국민당 반동파들은 대만에 달아나서 의연히 대륙에 기여들 꿈을 꾸고 있습니다. 평화 년대라고 해도 경각성을 늦추어선 안 됩니다. 여기 지주들도 새로운 동향이 없습디까?”
“없다. 장학산과 장충국이 붙잡혀 감옥에 간 후 여기 지주들은 대가리를 쳐들지도 못한다. 장학산의 집을 청산하는 게 옳잖은지 모르겠다.”
상순은 괭이를 놓고 구덩이에서 몸을 날려 뛰어 올라왔다.
“할아버지, 저쪽으로 가서 얘기합시다.”
조손 두 사람은 아름드리버드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나무숲 속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 생각이 맞습니다. 우리가 만약 장학산과 장충국이 항일 유공자라고 해 집을 청산해 빈농들에게 나눠 주지 않으면 개인 인정에 얽매여 철저히 지주를 청산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장학산과 장충국의 지금 정치표현을 보면 착취계급의 본질을 고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권총과 빚 문서를 숨겨둔 건 국민당이 쳐들어오면 기회를 타 복벽을 꿈꾸고 인민들을 계속 착취하자는 게 아니고 뭡니까? 그들 부자는 겉으로는 인민정권에 복종하는 척했지만 웃음 속에 칼을 품은 적입니다. 원수입니다. 그 놈 부자 놈들은 우리에게 밭을 청산 맞은 걸 속에 원한을 품고 있으면서 시퍼런 칼을 갈아왔습니다. 이런 안팎이 다른 놈들이 더 무서운 놈들입니다.”
상순이 삼도만에 공안일군을 파견해 조사해보니 조소호가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조소호는 토비숙청 때 기실 자기 안해을 릉욕하고 집까지 빼앗은 전보흥 소교한테 원한을 품고 원쑤를 갚자고 기의를 일으켰던 것이다. 그는 토비숙청이 끝나면 공산당군이 토비 문서질을 한 자기를 총살할가봐 도망쳤다. 그런데 장학산과 기의한 숱한 토비들이 총살당하지 않고 마을에서 편안히 사는 것을 보고 마을에 되돌아왔던 것이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인민정권은 기의를 일으킨 그의 공훈을 표창하였으며 토비과거를 묻지 않고 관대하게 처리했던 것이다. 그는 말을 기르면서 가족과 함께 편안히 살고 있었다.
“그럼 아예 네가 왔을 때 장학산의 집을 청산해버리자.”
할아버지 제의에 상순은 과단성있게 결단을 내렸다.
“예, 그렇게 합시다.”
병완은 수척해진 막내손자를 보더니 손을 잡고 마을 사람들 쪽으로 되걸어왔다.
“너 애비하구 처를 빨리 찾아봐라. 오늘 손비하구 함께 소서구에 김매러 가는 거 같더라. 너 애비는 지학사에게 찍히운 옆구리 아파 물도랑을 파는 일에도 나오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살겠다고 호미를 들고 며느리를 따라 나섰다. 막내손비는 딸애 셋을 데리고 집일을 도맡아 하느라고 허리를 펼 새 없이 맴돈다. 그러나 집 근심을 하지 말고 공안사업을 잘 해라. 넌 우리 집안의 기둥이다.”
상순은 “예, 명심하겠습니다.”라고 하며 물도랑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렇게 긴 도랑을 파서 뭘 합둥?”
병완은 상순의 손을 놓았다.
“여기에 논을 풀려고 그런다. 장차 저 아래 지학사의 지개틀이고 이펑거의 습개 구덩이를 메우고 논을 풀자면 물이 많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미리 저 멍지뫼산 앞으로부터 칼산 앞으로 해서 여기까지 큰 물도랑을 판다. 소서구나 패랑천산 비탈이나 계수동 쪽도 거의 다 밭을 일구었다. 장차 버드나무가 들어선 이 들판에 논을 풀어야 우리 마을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살 거 같다.”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예- 정말 원견이 있는 계획입구마."
마을 사람들은 모두 모여와 상순을 대견스레 바라보았다.
“여러분, 두 번째 고향을 건설하느라고 수고 많습구마. 영월구에 가다나니 힘을 보태주지 못해 미안합구마. 정말 연세 계신 할아버지께서 아직도 힘든 일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불효를 저지른 죄송한 마음이 앞섭니다. 이제 당장 위대한 중국 공산당이 영도하는 강대한 나라가 이 땅에 우뚝 일떠설 것입니다. 우리 이 지구의 치안이 안정되면 두 번째 고향에 돌아와 조부모와 부친께 효성을 하면서 여러분들과 함께 두 번째 고향을 멋지게 건설해 볼 예산입니다.”
그 말에 병완과 마을 사람들은 놀라했다.
“권총을 찬 공안일군이 얼마 좋다고 저래?”
사람들은 술렁거리었다.
상순은 집을 인차 들리어 보고 돌아가려고 바삐 칼산과 패랑천산 사이 골 안으로 줄달음쳐 소서구 밭으로 갔다.
저 멀리 밭에서 불볕을 맞으면서 아버지와 명옥이 긴 밭고랑을 타고 기음을 매고 있었다. 명옥은 복자를 업고 순자와 금순은 앞뒤에서 풀을 뽑으면서 나가고 있었다. 밭에는 범이 새끼를 칠 지경으로 풀이 들어섰다.
“아무리 혁명을 하더라도 부모처자를 고생시키면서 불효를 저지르는 건 자식이 된 도리가 아니야. 어떻게 조부모와 부모에게 효도를 하면서 사업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때부터 상순은 효성과 사업을 다 잘 할 수 있는 길을 궁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순자 위로 영자, 영돌과 선돌을 잃은 후 명옥은 낳으라는 아들은 낳지 못하고 순자 아래로 금순과 복자를 줄줄 낳았다.
큰딸 순자의 태몽은 이상했다. 명옥은 어데서 생겼는지도 모르고 금가락지를 손가락에 낀 태몽을 꾸고 광복 전해에 순자를 낳았다고 한다.
둘째딸 금순의 태몽은 이러하다. 명옥이 회의하러 촌 사무소에 갔다가 모범이 돼 상품을 타서 두 손에 꼭 쥐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금비녀가 아니겠는가. 그 태몽을 꾼 뒤에 둘째딸 금순을 낳았다.
셋째딸 복자를 임신하기 전에 웃새집 큰 시어머니는 “작은집 각시, 이번에는 무슨 태몽을 꾸었소?” 하고 물었다.
명옥은 부끄러움을 겨우 참으면서 대답했다.
“큰 시어머니, 이번에는 숱한 말들 가운데 특별히 새하얀 백마가 어찌나 고운지 백마 목을 꼭 껴안고 집에 왔습꾸마.”
“음, 그럼 이번에는 딸은 딸인데 고운 딸이겠구나.”
웃새집 큰 시어머니 설명처럼 백마 혼을 탔는지 살색이 새하얀 고운 딸을 낳았다.
상순은 이, 삼년에 하나씩 딸 셋을 줄줄 낳자 기막혔다. 그는 셋째 딸 뒤에는 아들을 낳으라고 셋째 딸의 이름을 복자로 지었다.
상순은 앞에서 기음을 매느라고 땀벌창이 된 아버지한테 다가갔다.
“아버지, 집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둥? 줍소. 내 맵시다.”
그는 호미를 빼앗아 쥐고 풀을 왕왕 매며 나갔다.
 “아빠!”
순자와 금순은 풀을 쥔 두 손을 높이 쳐들고 달려 왔다.
상순은 호미를 놓고 코 범벅이 된 순자와 금순을 한품에 끌어안았다.
“에이, 요것들아, 이 더운데 풀을 뽑았니?”
“예, 엄마 밭고랑에 풀이 영 많습니다.”
상순은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순자와 금순의 코에서 풀럭거리는 콧물을 닦아주었다.
명옥은 다가와 “영월구에서 고생하지 않았소?” 하고 인사했다.
“양, 괜찮소. 애들을 데리고 고생했소.”
땀벌창이 된 명옥의 잔등에서 복자는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상순은 “더위를 타겠소.”
그는 손바닥으로 애 얼굴을 비추는 햇볕을 가리면서 새하얀 볼을 들여다보며 매만지었다.
상순은 온 오전 기음을 매고 점심에야 집으로 내려갔다. 그는 소서구 어구를 지나가면서 높다란 토성 안 장학산의 덩실한 집을 들여다보았다.
그때 양산을 든 장미련이 토성 안에서 나오다가 상순을 보고 해시시 웃으면서 지분거렸다.
“오빠, 언제 왔소? 권총까지 척 차니 세상 멋지구먼요.”
“오빠? 쳇,”
상순은 누가 듣지나 않았나 사위를 두리번거린 후 욕설을 퍼부었다.
“누구를 오빠라고 해. 다시 오빠란 소리를 쳤다간 주둥이를 막 막아 쳐 놓겠다.”
그 소리에 노처녀 미련은 입을 싸쥐고 토성 안으로 되들어가 버리었다.
“저 집을 청산하면 누구를 주면 좋을까?”
그러자 기준은 “우리 가지자. 집에 비새서 말이 아니다.” 라고 했다.
허나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아버지를 말리었다.
“아버지, 할아버지나 내나 당원이기에 그렇게 못합니다. 앞장서 자기 욕심만 차려서야 됩둥? 군중들이 뭐라겠습둥?”
상순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집을 빙빙 돌아가면서 살펴보았다. 확실히 이영을 제때에 잇지 못해 간장 물 같은 것이 벽을 타고 줄줄 내린 흔적이 보이었다.
생활이 너무 궁핍해 상순과 명옥은 딸을 많이 해 쓸 데 없다고 밤이면 남에게 줄 토론도 했다.
“큰딸은 남을 주지 못하오.”
“그렇다고 셋째 딸을 남에게 주겠소?”
밤에 또 그 토론을 하는데 상순은 새하얗게 생긴 복자를 특별히 고와하기에 남에게 주지 못한다고 잡아뗐다.
“그럼 저 둘째를 줄가?”
“글쎄. 허나 제 새끼를 정작 남에게 주자니 속이 좋잖소.”
“나도.”
숨을 죽이고 그 말을 듣던 애들은 이불을 쓰고 눈물을 흘리면서 흑흑 흐느꼈다.
우는 애들을 우연하게 발견한 후 상순과 명옥은 다시는 남에게 줄 궁리를 하지 못했다.
상순은 집이 아무리 궁핍해도 자기 욕심을 차릴 수 없었다. 공산당원은 언제나 군중의 이익을 첫 자리에 놓아야 하고 고생은 앞장서 하고 향수 앞에서는 뒤로 물러서야 했던 것이다.
점심 숟가락을 놓자마자 상순은 호미를 들고 먼저 촌 사무소에 가 기다리었다.
할아버지가 촌 사무소에  들어섰다.
“할아버지, 장학산의 집을 청산해서 소서구에 있는 김대동과 주현경을 주면 어떻습니까? 해방됐지만 대동과 현경은 아직도 옛날 조선에서 들어와 살던 그 오두막에서 살고 있습니다.” 
상순의 말에 병완은 인차 대답했다,
“좋다.”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러나 좀 생각하더니 뒷말을 달았다.
“대동과 현경은 가난한 빈고농이 맞다. 그런데 맨 조선족 빈고농민에게만 주면 한족들이 또 공산당 간부들은 한족지주의 재산을 빼앗아 조선족에게만 준다고 하지 않겠니?”
“예~ 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병완은 곰방대에 담배를 쑤셔 넣고 불을 붙여 물고 빨며 말했다.
“내 생각엔 그 큰 집을 두 사람에게 주지 말고 사랑채까지 세 사람에게 주면 좋을 거 같다. 몸채를 주현경과 산동에서 온 한족농민 위수해에게 주자.”
“예, 그게 좋겠습니다. 헌데 이 다음 장학산과 장충국이 개조를 잘 해 돌아오면 어데서 살게 하겠습니까?”
“사랑채에서 살게 하면 되지. 뭐. 그 놈들이 공산당 천하에서 이전처럼 주인 행세를 하면서 살게 하겠니? 동서 사랑채도 쉰 평방씩이나 되는데 그들이 살긴 문제없다.”
“그렇게 합시다.”
그날 점심으로 병완과 상순은 흥수랑 민병들을 데리고 소서구로 장학산의 집을 청산하러 갔다.
그때 춘실은 자기 집에 와서 남편을 데려 내가는 상순을 보고 입을 비쭉거리었다.
“공안국에 가서 권총을 차더니 남의 나그넬 종 다르듯 해? 저 나그네를, 남한테 끌려 다니긴? 한족지주를 청산해 우리한테 개뿔이나 차례진다고 그래? 괜히 세상이 뒤바뀌면 한족지주들에게 목이 날아나자고? 흥!”
흥수는 춘실에게 눈을 흘기었다.
“중국이 몽땅 해방됐는데 무슨 떡 대가리 같은 국민당 소릴 치오?”
흥수는 장총을 둘러메고 상순과 민병들을 따라 나섰다.
토성 안에 총을 비껴든 민병들이 상순과 병완을 따라 들어서자 미련은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상순은 집안에 들어가 질겁해 집구석에 쫑그리고 앉은 미련에게 호통쳤다.
“미련아, 들어라. 장학산과 장충국은 공산당과 한사코 맞서 국민당 반동파와 손잡고 복벽을 꿈꿨다. 너네 집을 청산해 가난한 백성 주현경과 김대동, 위수해에게 나눠준다. 넌 짐을 싸들고 서쪽 사랑채에 나가라. 이 몸채는 주현경과 위수해에게 나눠주고 동쪽 사랑채는 김대동에게 나눠준다.”
그러자 미련은 눈물을 똑똑 떨어뜨리면서 “그럼 우린 어데서 살라오?” 라고 하며 발버둥질까지 쳐대였다.
병완은 털끝만치도 양보 없었다.
“이 집도 우리 지은 집이다. 너 일가는 일을 하지도 않고 소서구의 우리 집과 김대동, 주현경, 위수해네를 착취해 이런 집을 짓고 호의호식하면서 살았다. 가난한 백성들을 착취해 얻은 지주의 재물은 몽땅 임자인 가난한 백성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당장 집을 내고 나가!”
미련은 눈물방울을 똑똑 떨어뜨렸다.
그날로 오두막에서 살다가 토성 안의 덩실한 집을 분배받은 주현경과 위수해, 김대동은 기뻐 벙실벙실 웃으면서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오후에 상순은 소서구 밭에서 기음을 매다가 천지꽃산 아래 상우지에서 상우 형님과 아주머니와 함께 기음을 매는 공학을 발견했다.
“저 자식이 공부는 하지 않고 기음을 매고 있어?”
쉼에 상순은 상우지 밭머리에 가서 공학의 곁에 가 앉았다.
“삼촌, 어째 공안국으로 가지 않습니까?”
“이영이나 이어주고 갈 예산이다.”
상순은 공학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맏조카를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공학아, 공부를 명심해 해라. 나를 봐라. 집이 가난해 어려서부터 너 엄마 앞에서 풀이나 뽑고 열세 살부터 가대기질을 하다나니 학교 문에도 가보지 못했다. 사회에서 나와 사업하자니 막히는데 많구나. 연말에 사업총화를 쓰라고 해도 쓰지 못하지 사업계획을 세우라고 해도 세우지 못하지. 그래서 전번에도 목숨을 걸고 국민당 자위대 놈들을 숙청하고서도 치하를 받기는커녕 내 해놓은 일을 남이 총결해 가져가는 꼴이 됐다. 장차 평화 년대에는 글이 없으면 큰 노릇을 못한다.”
그때 상순의 아주머니는 세 귀 눈을 흘기며 입귀로 이런 말을 흘리었다.
“별 우리 일을 시켜 공부를 못한 상 한다.”
상순은 아주머니 본 병을 아는지라 풀을 뽑는 조카 순애를 희구해 보다가 머리를 숙이고 뭔가 궁리하는 공학을 돌아보았다.
“용정에 되돌아가 의학을 배워라. 이전에 증조부께서 말씀하시지 않던? 네 고조부는 이씨 왕조 어의야. 큰집 형내네만 의술을 물려받아서야 죽음의 변두리에서 왔다 갔다 하는 숱한 환자를 구할 수 있겠느냐? 네가 의사로 되었다면 영자랑 영돌이랑 선돌이랑 죽었겠니?”
공학은 머리를 들면서 “삼촌, 내 꼭 의학을 배워 의사로 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동선은 어디로 갔니?”
“그 자식은 농업중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척 하면서 조선으로 길림으로 장사를 다닙니다.”
“설복인 농업중학교에서 공부를 하지?”
“예, 그 애는 시랑 아주 잘 써서 학교에 소문이 자자하답구마.”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난 몇 해 후에 의사 맏조카를 기다리겠다.”
“예, 기다려 줍소.”
상순은 맏조카를 미더운 눈길로 보면서 자기 집 밭에 돌아와 기음을 왕왕 매 재끼었다.
상순과 명옥이 기준과 함께 한창 잔등이 물 자루 되게 땀을 줄줄 흘리며 기음을 맬 때다.
“김 국장! 김 국장!”
산비탈 아래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었다. 모두들 허리를 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창남과 용구가 주먹을 쥐고 비탈 밭으로 헐금씨금 달려올라 오고 있었다.
“김 국장, 빨리 공안국으로 돌아갑시다.”
상순은 호미를 쥔 채 어안이 벙벙해 서 있었다.
용구가 답답한 듯 발을 탕탕 굴렀다.
“현 당위와 상급 공안국에서 국장 임명장이 내려 왔습니다.”
상순은 “농담을 하지 마오. 우리 박 반장을 두고 나를 국장을 시키겠소?”라고 했다.
창남은 “성우 동무는 부국장을 해도 과분하지. 흥!” 하고 콧방귀까지 뀌었다.
옆에서 용구가 창남의 옆구리를 툭 치고 나서 상순의 눈치를 흘끔 쳐다보았다.
“박 반장 허물을 절대 하지 말라는데.”
기준은 기뻐 상순의 손을 잡고 “축하한다.”라고 하며 얼싸 안아 주고 나서 창남과 용구에게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얼굴을 돌리었다.
“고맙네. 이 산골에까지 찾아오다니.”
“별 말씀을요.”
창남과 용구는 기준과 명옥의 손에서 호미를 빼앗아 상순과 함께 매던 밭을 다 매주었다.

                                    

                석별의 정

햇볕이 숫구멍을 쟁글쟁글 쪼이었다.

기준과 명옥은 창남과 용구가 호미를 빼앗아 기음을 매자 습관처럼 낫을 들고 골짜기에 내려가 쑥대랑 다부제기랑 땔나무를 해 지고 이는 것이었다.

상순은 황급히 호미를 창남에게 주고 달려가 아버지 진 땔나무를 빼앗아 지었다.

“상한 옆구리로 어떻게 이 무거운 땔나무 짐을 진다고 그럽니까? 아직 쑥대랑 젖어서 무척 무겁습니다.”

기준은 아픈 허리를 상을 찡그리며 펴면서 말했다.

“예로부터 충신은 효자가 없었다고 했느니라. 집 근심을 너무 하고서야 어찌 공안국 국장을 잘 하겠느냐? 집 근심을 하지 말고 공안국 국장이나 잘 해라. 우리 집안에 네처럼 국장급을 가진 양반도 드물다.”

아버지의 그 말씀에 상순은 코마루가 시큼 해났다.

용구는 호미를 창남에게 주고 뛰어가 “아주머니, 주오.” 라고 하며 명옥의 머리 우에서 나무 단을 내리워 둘러메었다.

기준은 뒤에서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난 널 공부 시키지 못한 게 한이다.”

상순은 나무 짐을 지고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님,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맙소. 가난이 죄입지. 다 내 탓입니다. 장사를 해서 숱한 돈을 벌었을 때 공부를 했더라면 얼마나 좋겠습둥? 이제 공작을 하면서 짬짬이 공부를 하면 됩꾸마.”

“에이고, 일이 바쁘겠는데 언제 공부를 하겠니? 쯧쯧쯧.”

기준은 뒤에서 혀를 끌끌 찼다.

상순과 창남 그리고 용구는 점심을 숟가락을 놓자마자 기차를 놓칠세라 떠나야만 했다.

상순은 간장 같은 빗물이 줄줄 흐르는 이영 밑과 얼기설기 갈라터진 바람벽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영을 이어 놓고 가자고 했는데 또 잇지 못하고 가는구나.”

기준은 바깥에 나와 상순을 마구 밀어 떠내 보냈다.

“작작 근심하고 가라. 내 잇지 않으리라구.”
“아버지 옆구리 아파 어떻게 잇겠습니까?”

“근심 말래도 그러니?”

명옥은 복자를 업고 순자와 금순을 양손에 쥐고 바래었다.

상순은 쪼그리고 앉더니 순자와 금순을 한품에 꼭 안고 뽀뽀를 해 주었다.

“아빠, 이 담 올 때 엿 사탕을 사줍소. 예?”

금순이 입을 쫑긋거리자 순자가 말리었다.

“아빠, 돈이 없다. 그러지 마.”

“아니다. 이 담 꼭 사다줄게.”

상순은 코마루가 시큼해 남을 금치 못하고 우쭐 일어나 “아버지, 무사히 계십시오. 여보, 애들을 데리고 수고하오.” 라고 하고는 몸을 돌려 울안을 나섰다.

그때 상순의 사촌여동생 봉선이네 맏아들 성환이 순자와 함께 오후에 함흥학교로 가자고 찾아왔다.

상순은 조카들의 머리도 일일이 어루만져 주면서 “공부를 잘 해라.”라고 했다.

“예. 큰아버지.”

성환은 외탁을 해서 둥글 넙적한 얼굴에 조개턱이었다. 그의 아버지 김한봉은 함흥 촌소학교 교원을 하고 있었다. 어떤 때에는 농업중학교 교원도 해 처조카인 설복을 가르치기도 했다. 함흥 촌에서 한봉의 아버지 김영진 구장으로부터 한봉까지 글이 제일 많은 선비라고 모두 떠받들었다.

한참 후에야 상순은 머리를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창남과 용구를 따라잡았다. 창남과 용구도 자기들의 국장이 기분이 상해하는 것을 보고 묵묵히 발걸음만 다그쳤다.

그들은 어느새 나무숲이 우거진 패랑천산 앞에 이르렀다.

하늘을 찌르며 우뚝 솟은 절벽위로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산새들이 자유로이 날아예고 있었다.

창남은 절벽 밑과 버드나무숲을 둘러보더니 권총집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리었다.

“야, 이런 곳에 범이라도 나타나면 어쩌겠니?”

“야, 산에 와서 범 말을 하지 마오. 범이 제 흉을 하면 온다고 하잖소.”

그 말에 창남은 입을 꾹 다물고 버드나무숲과 산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상순은 할아버님을 찾아보려고 패랑천산 앞의 버드나무숲 속에서 물도랑을 파는 마을 사람들 쪽으로 달려갔다.

그때다.

“사람 살려라!”

“범이야!”

“곰이야!”

상순이네가 달려가다가 깜짝 놀랐다. 마을 사람들은 물도랑을 파다가 구덩이에 서 있었다. 버드나무숲속에서 숱한 범들이 물도랑 우의 흙 둔덕에서 왔다 갔다 하며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땅!

상순은 권총을 범 무리에 쏘며 명령했다.

“마을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범을 쏘라!”

창남과 용구도 용감하게 달려 나가면서 범 무리에 총을 쏘았다. 그들 셋이 총을 쏘자 범들은 질겁해 사람들의 머리 위로 물도랑을 뛰어 넘어 꼬리 빳빳해 도망쳤다. 사람들은 그 놈 범들을 삽으로 치려고 휘둘렀다.

땅!

범 한 마리가 상순이 쏜 총에 엉덩이를 맞고 흙무지에서 깊숙한 물도랑에 뛰어들었다.

“쳐라!”

병완은 삽을 둘러메고 물도랑 안에서 날치는 범에게 덮쳐들었다. 총에 맞은 범은 성이 나 날뛰며 병완에게 덮쳐들었다. 범이 씽 날아 덮쳐올 때 병완은 몸을 도랑벽에 피하며 삽날을 쳐들어 범의 아가리를 찔렀다.

퍽!

삽날이 짝 벌린 범의 아가리를 짜갰다.

상순은 권총을 더 쏠 수 없어 권총집에 넣고 물도랑 안에 뛰어들었다. 용구과 창남도 물도랑 안에 뛰어들었다. 상순은 태연의 삽을 빼앗아 돌아서며 꼬리몽둥이를 휘두르는 범에게 덮쳐들어 마구 찍어댔다. 범은 숱한 사람들이 덮쳐들자 겁을 먹고 한 키도 넘게 깊은 물도랑에서 뛰어 나가려고 몸을 날렸다. 허나 몸이 도랑벽에 걸린 채 네 발통을 버둥거렸다. 그때 병완과 용구가 범의 뒤다리를 잡아 확 당겼다. 범은 무서운 소리를 지르면서 물도랑 바닥에 떨어졌다. 병완과 용구는 놀라운 완력으로 범의 뒷다리가 불러지게 비틀어댔다. 그때 상순과 창남이 삽으로 범의 대가리를 탁탁 내리찍었다. 삽자루가 끊어지자 상순과 창남은 범의 목을 끌어안고 내리 누르며 무쇠주먹으로 대가리를 쳐댔다. 숱한 마을 사람들이 욱 몰려들어 돌멩이와 삽, 괭이로 범을 만신창이 되게 때려 끝내 범을 잡았다.

“그만! 그만!”

병완은 그제야 끊어지다 싶게 너덜거리는 범의 뒷다리를 놓으면서 소리쳤다.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지 않소. 너무 두드리면 범의 가죽을 벗겨 팔아먹지 못하겠소.”

마을 사람들은 물도랑 바닥에 쭉 늘어진 범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떠들어댔다.

“에이고, 범이 한 무리씩 출몰하는데서 어떻게 벼농사를 짓겠소?”

“글쎄 말이오. 국민당과 악질지주가 다 없어지니 이젠 또 범과 곰의 성화에 어디 농사를 짓고 살겠소?”

태연은 끊어진 삽자루와 삽날을 양손에 쥐고 어이없어 머리를 홰홰 돌리었다.

“우리 황무지를 개간할수록 범들이 우리와 터 싸움을 한단 말인제라.”

흥수도 한숨을 푸 내쉬며 중얼거렸다.

병완은 어지러워지는 민심을 수습하려고 들었다.

“범을 잡아 가죽을 팔고 범의 고기까지 먹으면 좀 좋아 그러오? 그까짓 범과 곰, 승냥이들이 올 테면 오라지. 안 그렇소?”

상순도 나섰다.

“여러분, 총을 든 일본 놈들과 국민당 토비 놈들도 우리 살 앞길을 막지 못했습니다. 오늘 보지 못했습니까? 우리가 힘을 합치면 범 한 마리 아니라 한 무리라도 겁날게 없습니다. 후에 이 나무숲 속의 벌판에 일하러 다닐 땐 혼자 다니지 말고 꼭 여럿이 짝을 지어 다니십시오. 내 진수해 허영주 서기와 말해 민병들에게 준 총을 잠시 거둬가지 말게 하겠습니다. 범이나 곰을 만나면 총으로 사냥하십시오.”

“우리 김 국장 말씀이 옳습니다. 그대로 하십시오.”

창남의 말에 모두들 머리를 들고 두리번거렸다.

“김 국장이라니?"

"누가?”

용구가 상순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분은 우리 영월구 공안국의 국장으로 됐습니다.”

“와!”

모두들 상순에게 엄지를 내두르며 축하했다.

병완은 놀랍고도 반가와 상순을 꽉 끌어안고 너부죽한 잔등을 다독여 주었다.

“장하다! 장해! 넌 우리 집안과 마을 사람들의 영광이다!”

마을 사람들은 손을 맞잡아 팔로 만든 가마에 상순을 앉히고 물도랑 안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웃고 떠들며 축하해주었다. 병완은 너무 기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얼씨구, 좋고 좋다!”

태연도 상진도 흥수도 춤판을 벌렸다.

상순은 손가마에서 내렸다.

“할아버지, 야수들이 자주 출몰하는 이 곳에 어째 논을 풀자고 그럽둥? 조개덕 앞에다 풀면 마을도 가깝고 좋겠는데 말입니다.”

그 말에 병완은 상순의 손을 잡고 “여긴 네 애비가 논물 때문에 지학사의 괭이에 맞아 옆구리를 상한 곳이 아니냐? 우리 새 세상이 왔는데 난 기어이 여기 지학사의 지개틀을 빼앗아 논을 풀고 살 예산이다.”라고 했다.

그제야 상순은 할아버지가 여기에 논을 푸는 깊은 뜻을 알게 됐다.

그는 물도랑 옆의 흙무지 우에 올라서서 마을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난 여러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영월구와 진수해 일대의 치안을 잘해 여러분들이 마음 놓고 두 번째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행복하게 살게 하겠습니다. 이제 영월구에 돌아가 치안사업을 하고 틈이 있으면 돌아와 국민당 토비들과 악질지주를 숙청하듯이 패랑천산과 칼산, 멍지뫼산, 천지꽃산, 계동 일대에서 야수들이 얼씬하지 못하게 쫓아버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너무 근심하지 말고 우리 할아버지를 따라 이 벌판에 논을 풀어 풍작을 안아와 풍족하게 살 것을 바랍니다.”

마을 사람들은 머리를 끄덕이며 안도의 숨을 내쉬더니 물도랑을 파기 시작했다.

병완은 막내손자에게 “마을 근심 하지 말고 공안국 일을 잘 해라.”라고 했다.

“할아버지, 무사히 계십시오.”

상순은 할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떠났다. 창남과 용구는 상순을 따라 성큼성큼 칼산 쪽으로 걸어갔다.

어느 결에 그들의 그림자가 물도랑을 파는 마을 사람들한테까지 길게 늘어났다.

병완은 범이 덮쳐든 사건이 있은 후 상순의 말처럼 악질지주를 잡아내듯이 산에서 범과 곰을 잡아내야 하겠다고 작심했다.

병완과 마을 사람들이 물도랑을 파고 범을 수레에 싣고 마을로 돌아 올 때 해가 이미 서산에 기울어졌다. 벌겋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은 환성을 지르며 태양을 맞이했다.

지개틀과 이펑거지를 품은 아름드리버드나무숲은 바람에 흐느적이었다. 패랑천산과 칼산에서는 이리떼와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무섭게 울렸다.

그런데 마을 동구 밖에서 뜻밖에도 빨래를 이고 방치를 쥐고 태평강으로 가는 춘실과 딱 마주쳤다.

“국장 어르신이 되더니 못 본 척 하오?”

춘실은 걀쭉한 얼굴에 얇은 미소를 지었다.

“오, 그간 잘 있었소?”

상순은 알은체를 하며 지나가려고 했다.

“이보, 내 할 말이 있소.”

춘실이 빨래를 인 채 멈춰 섰다.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의 입귀에 숱한 사연이 아른거리는 상 싶었다.

상순은 창남과 용구를 보고 먼저 가라 하고 춘실의 옆에 다가갔다.

“무슨 일이요?”

춘실은 대답 대신 굳어진 표정으로 빨래함지를 내리워 두 손으로 안고 태평강 가로 걸어갔다.

“무슨 일이오? 난 공안국 일이 바빠 영월구로 빨리 돌아가야겠소.”

상순은 춘실의 손에서 빨래함지를 빼앗아 들고 강가로 가서 빨래 돌을 찾느라고 서성거렸다.

그때 춘실은 뒤따라 가다가 불시에 방치로 상순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쉭 소리를 듣고 상순은 빨래함지를 들어 날아드는 방치를 막았다.

“왜 이래?”

“너도 사람 새끼야?!”

춘실은 방치로 마구 패댔다. 상순은 함지를 들어 막다가 함지를 내려놓았다. 그는 손을 뻗쳐 날아드는 방치를 빼앗아 빨래 함지에 내던졌다.

“어째 이러니?”

“너도 사람 새끼야? 을준이 학교로 가게 됐다. 제 새끼를 싸지르고 한 번도 찾아보지도 않니?”

상순은 저쪽 강 건너에서 기다리는 창남과 용구를 두리번거리며 소리를 죽여 말했다.

“좀 작작 떠들어라. 저 동무들이 들으면 어쩌니?”

“야, 들으면 어째? 네 같은 나쁜 놈을 온 세상 사람이 다 알게 해야 해. 눈이 멀었지. 네 같이 건방진 건달을 공안국 국장을 다 시키다니? 국장이면 다 사람인줄 아니?”

상순은 강 건너 쪽을 흘끔거리다가 창남과 용구가 패랑천산 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나직이 말했다.

“야, 을준인지 뭔지 하는 애는 너와 흥수가 난 애가 아니고 뭐니? 나와 무슨 관계있느냐?”

춘실은 어이없어 머리를 홰홰 저으며 외까풀 깜장 눈으로 표독스럽게 쏘아보며 대들었다.

“뭐라고? 이 뻔뻔한 새끼야. 이 태평강과 버드나무숲이 다 웃는다. 네 놈이 여기버드나무숲 속에서 그 애를 싸질러 만들어놓고 지금 와선 나눕겠니?”

“떠들지 말래도. 너 정신 나갔니?”

“떠들면 어째? 온 세상 사람들이 네 놈 새끼는 세상에 둘도 없는 바람둥이란 걸 알게 해얀다!”

“다른 일 없으면 난 가겠다.”

상순은 발뺌을 하려고 들었다.

춘실은 상순의 팔소매를 붙잡고 이를 앙다물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그래 기어이 제 새끼를 한 번도 찾아보지 않을 예산이야?”

상순은 춘실의 손을 홱 뿌리치며 “흥수 찾아보면 됐지. 바쁜 사람을 붙들고 왜 이래?!” 하고 세귀눈을 부라리었다.

“내 이제 영월구를 찾아가 네 놈을 온 시내에서 다 알게 떠들겠다.”

상순은 주춤 멈춰 서서 춘실을 독기서린 눈길로 쏘아보았다.

“내 앞길을 막았다간 가만 놔둘 거 같아?”

“그래 권총으로 쏘기라도 하겠단 말이냐? 아예 여기서 죽여라! 죽여!”

춘실은 머리카락을 날리면서 머리를 상순의 옆구리에 대고 마구 들이 받으면서 왕왕 울음보를 터뜨렸다.

“춘실아, 이러지 말라. 네가 이러면 나도 가슴이 터지는 거 같다. 우리 일은 내 싫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니지 않고 뭐냐? 다 우리 아버지 결정한 일이니 나도 별 수 없었다. 너도 흥수한테 시집가서 범순이랑 낳았으면 재미있게 살아라. 우린 이젠 다 가정이 있고 자식들이 있으니까 서로 잊고 살자. 을준이, 을준이 하는데 낸들 어쩌라니? 네가 백과부한테 준 게 잘 못이지. 너나 자주 찾아가 봐라. 낸들 어쩌겠니?”

“군정대학인지 무슨 대학인지 다니더니 말재간이 꽤 늘었구나. 호호호.”

상순은 강 건너를 보면서 말하다가 입을 싸쥐고 웃는 춘실에게 이상한 눈길을 보냈다.

“네 놈을 죽이고 내가 죽으려 했는데 말재간 덕에 네 놈을 살려줘야겠구나.”

춘실은 품 속에서 시퍼런 식칼을 꺼내 칼끝을 두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다가 빨래함지에 훌 던졌다.

상순은 춘실을 꼭 껴안아 주었다.

“춘실아, 자기 뜻대로 다 되지 않는 게 세상사가 아니더냐? 이제 와서 자꾸 떠들어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니? 네가 자꾸 이러면 나도 죽을 것 같이 괴롭구나.”

춘실은 주먹으로 상순의 넓은 가슴을 마구 두드리며 어깨를 들먹이고 코를 풀쩍거렸다.

“이 나쁜 놈아, 무능한 놈아, 무골충아, 아버지를 이기지 못해 나를 버리니?”

상순은 춘실을 떠밀어내었다.

“흥수와 잘 살아라.”

상순도 눈물범벅이 된 춘실을 보고 코마루가 시큼해나고 눈에 뜨겁고 맑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치마폭을 들어 눈물을 닦으며 흑흑 흐느끼는 춘실을 외면하며 돌아서서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태평강 징검다리를 건너선 후 머리를 돌려 강 건너 쪽을 피뜩 되돌아보았다. 그때까지 춘실은 반쯤 몸을 탈고 서서 치마폭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어깨를 들먹이고 있었다.

상순이 패랑천산 쪽으로 발걸음을 뗄 때다. 뒤에서 느닷없이 춘실의 애절한 노래 소리가 귀전을 아프게 때리고 가슴을 긁어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 …

춘실이 부르는 애타는 노래소리는 패랑천산의 절벽에 부딪쳐 길게 길게 고패치며 메아리쳐갔다.
 상순은 그 쓸쓸한 노래소리를 들으며 걷다가 저도 몰래 몸을 돌려 뒤돌아보았다. 그때까지 저 멀리 버드나무 우거진 강뚝에서 춘실이 두 손을 맞잡고 서서 이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쓸쓸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
 

상순은 코마루가 시큼해나 주먹으로 길 옆의 아름드리비술나무를 꽝꽝 쳐댔다. 저쪽 버드나무 제방뚝에서 남북골 흥수가 버드나무 밑에서 우멍눈으로 상순과 춘실을 번갈아 훔쳐보며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며 거친 황소숨을 씩씩 몰아쉰다...


      필자 주: 여러분은 지금까지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4권까지 감상하셨습니다. 이제껏 홍색문학의 향연을 음미한 여러분께 경의를 드립니다.
      뒤이어 제5권이 펼쳐집니다. 조선반도에 일어난 침략전쟁과 정의의 반격전쟁, 동족상잔의 전쟁에서 형제도, 전우도, 부부도 서로 원쑤로 돼 참살하는 비극, 진달래를 두고 용천과 성칠의 사랑과 원한, 생사결투도 보게 될 것입니다.   
     항미원조전쟁에서 보여준 중국인민과 중국인민지원군의  대공무사한 국제주의 정신과 애국주의 정신, 슬기롭고 영용무쌍한 투쟁정신을 다시 돌이켜보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서 평화란 얼마나 보귀한가를 깊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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