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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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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29) 댓글:  조회:1249  추천:2  2019-05-30
                                                         54. 열풍        송철과 선희 불륜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광고회사에는 삼복염천의 무더위보다도 더 불꽃 튀는 열풍이 불어쳤다. 원인은 두가지다. 하나는 송철과 선희의 불륜행위를 제때에 제지하지 못한 광고회사 책임자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기광고모델 선희가 사라진 바람에 광고의 경제효과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됐다는 것이다. 때문에 김범송 총경리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제일 먼저 보아낸 올빼미는 굉팔과 승호였다. 굉팔은 기회를 보아 여론을 조성하고 사닥다리를 놓고 줄을 놓아 바라오르려고 악을 딱딱 썼다. 그는 큰 관직은 가진 적이 없었지만 상전을 구슬리는데는 이골이 텄다. 황차 김범수와의 경쟁에 의해 광고회사마저 말아먹고 경리자리마저 떼운 그는 요즘 웃음주머니 흔들흔들했다. 겉은 백설처럼 희지만 속은 시꺼먼 백로 같은 굉팔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티를 내지 않고 퇴근한 후 김범수 경리를 전화로 조용히 불러냈다. “김경리, 무더운데 시원히 맥주나 마시지 않겠습니까?” 굉팔은 김범수가 맥주나 양고기뀀이라면 오금을 쓰지 못하는 위인이라는 걸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김범수 총경리는 상부의 비평을 받은지라 울적한데 시원히 맥주라도 마시면 좋을 것만 같았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그래도 굉팔이야.) 벙어리 말 못하는 벙어리 고통을 안다고 한번 경리직에서 떨어진 적이 있는 굉팔이야 말로 자기 고민을 헤아리는 것 같았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풍성양고기뀀집이였다. 철주와 순희는 반색하면서 그들 둘을 조용한 단칸방에 안내했다. 굉팔은 양고기뀀과 비둘기고기, 소고기를 상다리 부러지게 차렸다. 양고기가 뻘건 숯불에 빠지직빠지직 구워지면서 기름이 뚝뚝 떨어졌다. 굉팔은 김범수 앞의 잔에 맥주를 찰찰 넘치게 따랐다. “자, 무더운데 한잔 듭시다.” “감사하오.” 그들 둘은 시원한 맥주를 서너잔 연속 굽냈다. 그때까지도 굉팔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리경리, 무슨 일이 있소?” “아니, 무슨 일? 시원히 맥주를 마시자고 그러지.” 굉팔은 쉽게  속을 내비치려고 하지 않았다. “다른 일이 없으면 성호를 부를가?” 범수는 굉팔의 눈치를 슬쩍 보면서 성호와의 관계를 파악하려고 들었다. “아니, 경리는 무슨 경리? 떨어진지 오랜데요.” “그럼 두살이나 지하인 저와 예, 예. 하지 마오. 우리 편안하게 서로 양, 양 하면서 어떻소?” “예, 좋습니다.” “또, 또.” “양, 좋소. 난 경상도 치라서 여기 말 잘 못한다우.” “성호를 부를가?” 범수는 또 그 소리였다. “걔를 불러 술축을 낼 건 뭐라우?” “순박한게 얼마나 사람이 좋소.” “순박해? 농민 아들이 돈깨나 벌면 욕심이 더 많다우.” “?” “김 총경리 몰라 물어요?” 굉팔은 범수를 우멍눈으로 살피면서 말했다. “그 자식이, 내 물어온 백화상점 금술광고를 빼앗아가지 않았어요? 그뿐인가?  백화상점 광고를 몽땅 빼앗아갔지 않았어요?” 범수는 백화상점 광고문제는 성호한테서 들은 적이 있어 굉팔의 말과 다르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 “승호를 불러올가?” “아니, 우리 둘이 조용히 마시자요.” 범수는 몇마디 안팎에 굉팔이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는 양고기뀀을 부지런히 구워 먹으면서 기다렸다. 한참 후 빈 맥주병이 술상 옆에 대포탄알깍찌처럼 줄느런히 늘어섰다. 둘 다 얼근히 되자 굉팔은 말문을 열었다. “한가지 충고하지요. 성호나 승호를 너무 믿지 말라우.” “?” 굉팔은 우멍눈으로 범수의 눈치를 흘끔 훔쳐보더니 뒤말을 이었다. “요즘 회사에서 송철과 선희 일이 터지니까요. 그 자식들 다른 궁리하고 있더라우.” “뭘?” 굉팔은 맥주병을 들어 범수의 잔에 또 따랐다. “쪼매한(조꼬마한) 자식들, 김경리 자리 탐내는 것 같더라구요.” “아니, 그럴 리 있소?” 범수는 코웃음쳤다. “내 걔들을 데려왔는데 배은망덕할 수 있소? 당찮은 말이오.” 굉팔은 한사코 범수와 승호, 성호 사이에 쐐기를 박았다. “보라우. 승호는 학생총회 주석에 백화상점공회 주석을 했잖아요? 얼마나 화려한 경력인가요? 자식 야심이 있다우. 김경리를 홀랑 빼놓고 내캉 해연이랑 선희랑 청해 술파티 벌이지 않았시우?” 범수는 양고기를 뽀지직뽀지직 구워 먹으면서 대수로와하지도 않았다. “건 알고 있지. 직원끼리 술파티 연 건 정상이지. 어찌 야심이라고 할 수 있소?” 굉팔은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통 말이 들지 않는구만.” 하더니 한참동안 술만 권하면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성호는 어쨌소?” “에이, 이젠 듣지 않는 말 하지 않을라우. 술이나 마시자우.” 이때 순희가 쟁반에 푹 삶아 구운 큼직큼직한 소 심장을 무드기 담아 들고 들어왔다. “두 분이 찾아오셔서 반갑습니다. 장려로 드리지요. 술 한잔 따라드리죠.” “감사하오.” 굉팔은 순희가 따른 맥주잔을 받으며 입에 침이 튕기면서 인사했다. 순희는 범수한테도 맥주를 따라드렸다. “이 분은 얼굴이 익은데요.” “나를 어디서 보았겠소?” “아, 맞아요. 텔레비죤방송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는가요?” “오~ 그래, 유명가수요.” 굉팔을 희쭉 웃더니 범수를 춰올렸다. “이 분은 우리 광고회사 김경리인데요.” “예~ 김경리 종종 찾아와주세요.” 굉팔은 맥주잔을 쭉 굽을 내더니 불쑥 이런 요구를 들고 나왔다. “보스, 아가씨들이 없시우?” “아니, 양고기뀀집에 아가씨라니요?” “술상에 아가씨들이 섞여야 주흥 돋구잖아요?” “팁 좀 줘야 하는데요.” “근심말라우. 김경리나 나나 다 광고회사에서 한해에 몇만원씩은 번다우.” “알았어요. 맛있게 드세요.” 순희는 성호나 승호를 잘 아는가고 물으려다가 그만 두었다. 혹시 불편한 관계면 찾아오지 않을가봐 자기 집 경영을 념두에 두고 묻지 않았다. 굉팔은 아가씨들까지 끌어들여 범수를 푹 삶은 개다리처럼 문문하고 넌덜넌덜하게 푹 삶을 예산이였다. 범수는 통이 큰 굉팔이 퍽 마음에 들어 입귀가 귀 밑까지 째질 지경이였다. 그는 오래동안 경리를 했지만 굉팔처럼 상대접을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경리 퇴물림이 다르긴 달라.) 그날 범수와 굉팔은 낯선 아가씨들과 함께 희희락락거리면서 맥주를 밤새도록 마셨다. 이튿날 퇴근 전에 성호가 급히 범수를 찾았다. “급한 일 있습니다. 저쪽에 가서 조용히 말합시다.” 성호는 큰 일이나 난듯이 얼굴이 새까맣게 질려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범수는 성호를 따라 복도 굽인돌이에 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오?” “금방 우리 이모부한테서 들었는데.” 성호는 큰 비밀이나 아는듯이 복도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자 범수한테 한 걸음 다가서더니 귀속말을 했다. “굉팔이 지금 김경리를 밀어내고 경리 되자고 올리뛰고 내리뛰고 한답디다.” “픽!” 범수는 코방귀를 뀌였다. “되지도 않을 소리. 내 누구고 굉팔이 누군가?!” 그때 때마침 굉팔이 바깥에 나갔다가 복도로 들어왔다. 성호는 굉팔이 자기 등뒤로 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계속 말했다. “굉팔을 너무 믿지 마십시오. 량면파입니다. 김경리와 좋아하는 척하면서 뒤로 호박씨를 깝니다…” “그만하오.” 범수는 굉팔의 우멍눈을 돌아보며 “어디 갔다가 오오?” 하고 말하면서 성호한테 뒤를 눈짓했다. 성호는 바깥으로 나가면서 굉팔을 흘끔 곁눈질해보았다. 굉팔은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이면서 사무실로 스적스적  걸어갔다. 퇴근한 후 범수는 핸드폰으로 성호를 찾았다. “성호, 저네 이모부 어떻게 돼 우리 단위 일을 알 수 있소?” “우리 이모부는 상부 오청룡와 잘 아는 사인 모양입디다.” “오~ 오청룡을 다 아는구만.” 범수는 “그래도 굉팔은 성호와 승호가 야심이 있다던데.”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괜히  아래사람들간에 갈등을 조성하고 싶지 않았다. 범수는  속으로 뭔가 있구나 하고 낌새를 채고 성호한테 관심조로 부탁했다. “그런 말을 까딱 하지 마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지 않소?” “예, 아무튼 주의하십시오. 세상 일은 예측하기 어려우니까. 김경리가 날  광고회사에 받아주지 않았으면 오늘 내가 있겠습니까? 전 김경리를 은인으로 생각하기에 충고를 드립니다.” “감사하오. 내 근심은 절대 하지 마오. 내 이 광고회사를 어떻게 차렸는데 그런 어중이떠중이들한테 내줄 것 같소? 굉팔은 근본 내 상대가 아니오.” “예, 김경리만 믿겠습니다.” 그런데 사달이 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성호의 말을 듣고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오른 범수는 참지 못했다. (개자식, 안쪽 산골에서 더럽게 구을어먹은 놈이. 뭐 가수? 옛날 송철과 서로 니야 내야 하면서 우리 시내 1호 가수자리다툼을 하더니. 흥! 개 똥을 먹는 개버릇  고칠 수 있어? 노래해서 안되니 가수 때려치우고서도. 흥! 집에 조꼬만 상점이나 차려놓고 녀편네하구 기름떡이나 구워 팔던 놈이, 언감 내 자릴 넘봐? 네놈이 그렇게 경영능력이 있었으면 광고회사를 다 비벼먹고 내 밑으로 기여들었어? 진짜 승냥이를 집에 끌어들였구나.) 그는 엄동설한에 언 뱀을 품  속에 품은 것처럼 섬뜩해났다. “개자식, 가만놔둘 수 없어. 저런 놈인줄 알았으면 왜 받아들였어?) 범수는 더는 참을래야 참을  수 없어 그날 밤으로 굉팔의 집에까지 씽 달려가 핸드폰으로 불러냈다. 굉팔을 만나자마자 다짜고짜로 따지고 들었다. “당신, 들을라니 날 밀어내고 경리를 하자고 뛰여다닌다면서?” “아니, 이건 웬 마른 하늘 생벼락 같은 소린가요?” 범수는 단통 굉팔의 멱살을 틀어쥐여 흔들면서 꽥꽥 고함쳤다. “똑똑히 들었소. 말하오. 당신 그런 야심 있지?!” 굉팔은 목이 막혀 손을 들어 범수의 꺽쇠 같은 손을 풀면서 지껄여댔다. “이걸 놓고 천천히 얘기하기오. 어데서 랭수에 생이 부러질 소리라우? 난 당신 덕분에 이 광고회사에 들어와 밥동냥이나 하는 신센지라. 언감 경리자리 탐낸다우? 개소릴 작작 하라우.” “딱 듣고 하는 말이야. 당신 나와 경쟁하겠으면 내놓고 할게지. 뭔가? 앞에선 술과 아가씨를 들이대고 뒤에선 작두를 들어 뒤통수를 쳐?!” “아니, 누가 말하던가요? 생똥 같은 거짓말.” 범수는 어망간에 곧이곧대로 실토했다. “성호한테서 들었어. 말해. 사실 아닌가?” 굉팔은 호랑이처럼 펄펄 날뛰는 범수를 피해 한발 뒤로 물러섰다. “성호? 진짜 도적이 도적이야군.” “허허허. 그래 당신 내 상대 된다고 보는가? 꿈도 꾸지 말라구. 해보겠으면 어디 해보자! 개새끼, 퉤!” 범수는 건가래를 퉤 뱉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쥉쥉 가버렸다. 등뒤에서 굉팔이 따라오면서 범수를 꽉 붙잡았다. “어디 가서 맥주나 들면서 천천히…” “놔라, 놔!” 범수는 팔소매를 뿌리치고 씩씩거리면서 기어이 자리를 떴다. 그런데 날벼락은 방향을 바꿔 성호한테 떨어질줄이야. 이튿날 사무실에 들어선 굉팔은 눈길이 바늘처럼 꼿꼿해 성호를 쏘아보면서 꽥꽥 고함쳤다. “야, 이 자식, 내 언제 김경리 자릴 엿봤다고 리간질이야?!” 성호는 맞대구를 하지 않았다. “왜 말 못해?!” 굉팔은 괘씸해 삭정이처럼 바싹 마른 손을 쳐들어 성호의 뺨을 챨싹 후려쳤다. 그러나 성호가 번개같이 손을 휘둘러 막았다. “왜 이럽니까?” 굉팔은 비탈린 팔이 너무 아파 오만상을 찡그리면서도 꽥꽥 고함 질렀다. “능청스런 놈새끼! 소궁둥이나 치던 농부 자식이 웬 리간질이나 하면서 돌아다녀?!” “듣고도 모르겠소. 무슨 소릴 하는지?” “야, 엊저녁에 김경리한테서 다 들었어. 그래도 시치미를 딸텐가?!” 성호도 뒤로 물러설 수 없어 맞받아 고함쳤다. “량면파수법을 작작 쓰오. 앞에선 아가씨까지 배치하고 뒤에서 그게 뭔가?! 배은망덕한 놈.” 굉팔은 서너길씩 뛰는 성호를 무력으로 제압하기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고 문을 박차고 바깥으로 휭하니 나가버렸다. “어디 두고 보자.” 이때 뜻밖에도 해연이 사무실에 들어섰다. “괜찮소?” 해연은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제 자리에 가 앉으면서 물었다. “굉팔이 경리 되자고 미쳐날뛴다면서?” “어떻게 알았소?” 성호는 의아해 해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하회를 기다렸다. “김경리한테서 다 들었소.” “음~” 성호는 김경리가 좀 유감스러웠다. (굉팔한테 다 말할 건 뭔가?) 김경리가 말실수를 했지만 성호는 김경리를 견결히 보호하려고 마음을 굳게 다졌다. 그때 해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재무과에 가서 조용히 얘기할가?” “계속 우리 광고회사에 출근하겠소?” “우리 무슨 죄 있소? 다 피해자인데. 김경리 상부에 비난사정을 해서 다시 출근하게 됐소.” “잘 됐소. 우리 함께 손잡고 잘해 보기오.” 성호는 복도에 나가 주위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해연의 뒤를 따라 재무과에 들어갔다. 그새 승호가 재무과에 자기 녀자친구 춘란과 범송의 녀학생 예화를 해연이 대신 재무과에 넣으려고 김경리한테 소개했던 것이다. 해연은 김경리한테서 들어서 다 알게 됐다. 해연의 얼굴에는 아직도 전번에 긁히운 상처자리에 흉터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어두운 그늘이 진 얼굴에 진정을 담으면서 나직이 귀속말을 했다. “성호, 저도 알지만 우린 둘 다 김경리 덕에 이 광괴회사에 들어오지 않았고 뭐요?” 성호는 해연의 맞은 쪽에 앉으면서 대답했다. “그거야 그렇지. 나도 김경리를 보호하자는게요.” 해연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우린 어떻게 하나 김경리를 보호하기오. 만약 굉팔이 경리로 되는 날엔 우린  쫓겨나오.” “그러잖고. 만약 상부에서 조사하러 오면 우린 김경리를 추천하기오.” “맞소.” 해연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뒤말을 이었다. “저 굉팔은 속이 씨꺼먼 놈새끼오. 이전에 우리 나그네와 한 단위에 있을 때 항상 우리 나그네와 고음가수자리를 다투면서 헐뜯었소. 고중도 변변히 졸업하지 못한 주제에 어떻게 중앙음악학원을 졸업한 내 나그네와 경쟁한단 말이오? 우리 나그네는 시골가무단에서 소인배들과 다투기 싫어서 가무단 가수를 때려치우고 사진관을 차렸소. 김경리 덕분에 여기 제작실에 들어오지 않았고 뭐요? 비록 나그네와 리혼했지만 죽마고우 첫사랑만은 잊을 수 없소. 그 첫사랑의 정은 마음 속에, 뼈 속에, 령혼 속에 영원히 맴돌 것 같소. 이번 기회에  남편과 경쟁하던 저 놈을 꺾어버리겠소.” “알았소. 까딱 말을 내지 말고 우리 둘이 그렇게 하기오.” 성호는 해연의 정의감에 저으기 놀랐다. 순간 저도 몰래 그녀에게 동정심이 치솟아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성호는 승호도 역시 김범수 경리가 데려온 사람이기에 당연히 은공을 갚으리라고 예측했다. 역어빠진 승호는 아주 능란하게 정치를 해나갔다. 그는 대체로 아래서 아무리 민의측검을 한다고 해도 그건 형식에 불과하고 상부에서 누구를 임명하려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상부의 의향을 알지 못하는 형편에서 서뿔리 어느 쪽에 줄을 서지 않았다. 성호는 미꾸라지 같은 승호가 눈에 거슬렸다. “어쩜 김경리 덕분에 광고회사에 들어와 가지고 까딱 삐치지 않니? 고만한 의리심도 없느냐? 상부에서 조사하러 내려오면 굉팔이 안된다고 하자. 김경리를 보호해야 회사에 남을 수 있어.” 승호는 사무실이 빈 틈을 타 성호를 말렸다. “작작 삐쳐라. 서뿔리 삐쳤다가 코피 터지겠다.” 성호는 승호의 코에 대고 삿대질했다. “야, 임마, 속이 씨꺼먼 굉팔이 경리를 하는 날엔 우리를 다 쫓아낼  거야.” 성호가 뭐라고 말하려는데 승호는 “광고 때문에 나가봐야겠어.” 하고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광고회사는 도가니 속처럼 부글부글 끓어번지면서 별의별 억측이 다 돌았다. 그때 진짜 상부에서 민의측검하러 내려왔다. 상부의 오청룡이 광고회사 경리실에 직원들을 하나하나 불러갔다. 성호가 들어가보니 번들이마에 통통하게 생긴 오청룡가 쏘파에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 “동무 보건대 리굉팔이 우리 광고회사 경리를하면 어떻소?” “아니, 김범수 경리를 두고 굉팔이라니오?” “이건 상부의 뜻이오. 김범수 말은 꺼내지도 마오. 오늘 우린 경리후보 리굉팔의 민의측검을 하러 온 거요.” “말도 안됩니다. 범수 총경리가 얼마나 군중위신이 높은데 굉팔이라니요?” 오청룡는 성호를 훈계하듯 닦아세웠다. “동무, 몇번 말해야 알겠소? 범수 말은 하지도 마오. 범수는 총경리 후보명단에 없소. 리굉팔선생에 대한 자기 의견만 말하오.” 성호는 돌아가는 형편이 뜻밖인지라 머리가 인차 돌아서지 않았다. 비서가 담화기록을 적고 있었지만 성호는 굉팔에 대한 자기 관점을 제대로 상부에 말해주고 싶었다. “제 보건대 리굉팔은 무능하기에 우리 광고회사 경리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오청룡간부는 사무상에 다가앉으면서 주근깨 더덕더덕한 험상궂은 통통한 얼굴에 정색했다. “된다, 안된다, 한마디로 말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말해 보오. 리굉팔 동무가 무엇 때문에 경리 자격이 없소?” 성호는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굉팔은 광고회사를 다 망쳐먹고 우리 광고회사에 들어왔습니다. 굉팔을 받아준 김경리 잘못이지. 집에 승냥이를 끌어들인 것이 아니고 뭡니까?” 오청룡은 성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굉팔이 경리를 맡으면 성호부터 정리해야 되겠다고 느꼈다. (저런 동무와 어떻게 함께 일해?) 그러나 성호는 오청룡이 무슨 궁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자기 생각을 곧이곧대로 토로했다. “굉팔은 속이 씨꺼멓고 탐욕스럽습니다. 백화상점 술광고는 제가 고생스레 얻어온 것인데 한사코 빼앗아 자기 걸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누가 이런 욕심쟁이 경리 밑에서 일하자고 하겠습니까? 우리 광고회사에서 굉팔을 좋아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됐소, 됐어.” 성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오청룡를 보고 정중히 말했다. “상부에 한마디 충고하겠습니다. 경리를 바꾸지 말고 김범수 경리를 계속 류용할 걸 건의합니다.” “됐소. 동무 경리를 임명하오? 쳇.” 성호는 더 말하고 싶지 않아 자리에서 우쭐 일어났다. 복도 문어귀에서 해연이 차례를 기다리다가 물었다. “어쨌소? 굉팔이 경리자격이 없다고 말했소?” “양, 저도 그렇게 말하오.” 성호가 대답하는데 화장실에서 굉팔이 불쑥 나오면서 우멍눈으로 그들한테 힐끔 눈을 흘기며 쥉쥉 가버렸다. 그는 그 길로 나가자마자 핸드폰으로 김범수 경리를 찾았다. “김경리, 어디 있습니까? 정황이 좋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소?” “예. 오국장이 민의측검하러 왔다는데 김경리는 경리후보에 없습디다. 아예 김경리 말은 꺼내지도 말라고 합디다.” “그래 누굴 조사합데?” “굉팔한테 경리를 시킬 예산인 것 같습니다.” “그래 어쨌소?” “어쨌겠습니까? 경리자격이 없다고 했지. 김경리 계속 해야 한다고 제기했습니다.” 성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핸드폰으로 금방 경리실에서 오청룡과 주고받은 말을 몽땅 얘기해주었다. 김범수는 대뜸 불길한 징조를 느꼈다. “굉팔이 누구고 내가 누구요? 난 우리 광고회사를 개척한 초대경리란 말이오.”  그는 민심이 흔들릴가봐 즉시 짐짓 개의치 않는 척하면서 어조를 좀 부드럽게 낮췄다. “근심하지 마오. 그럴줄 미리 알고 어제 오청룡를 만나 맥주를 마시면서 잘 부탁해놓았소. 가능하게 우리 광고회사에 리굉팔을 추종하는자가 누군가 알아보느라고 그럴게요. 안심하오. 요새 무슨 정황이 있으면 인차 알려주오.” “예, 알았습니다. 어떻게 하나 굉팔이 경리 되는 걸 막아야 합니다. 속이 씨꺼먼 놈이 경리 되는 날엔 내랑 쫓겨날 겁니다. 아이고, 어쩜 일이 이렇게 요지경입니까?” “성호, 근심하지 마오. 내 있는 한 누구도 우리 광고회사 경리자리를 빼앗지 못하오. 굉팔한테 부경리를 시키자고 그러는 것 같소. 내 그렇게 제기했댔소.” “그럼 얼마나 좋겠습니까? 너무 마음놓지 말고 상부 의향을 제때에 알아보십시오. 간에 가 붙고 슬개에 가 붙는 량면파 굉팔이 어떤 사람입니까? 절대 홀시하지 마십시오.” “그만 끊소. 누가 도청하면 어쩌오? 이후엔 만나서 얘기하고 절대 전화로 얘기하지 말기오.” 범수는 핸드폰을 옆구리에 차면서 호랑이처럼 세길네길 뛰였다. “굉팔이, 너 이놈, 언감 내 자리를 엿봐? 개 같은 놈, 네놈이 그렇게 씨꺼먼 줄도  모르고 부경리로 추천까지 했지. 아이고, 내 눈깔이 멀었지.” 범수는 주먹으로 벽을 꽝꽝 치면서 포효했다. 한편 그날 해연이 경리실에 들어가 오청룡의 말을 듣고 김경리는 끝났다는 것을 대뜸 눈치챘다. (김범수 경리 쪽에 줄을 서봤자 먹을 알이 없잖은가? 굉팔이 음흉하고 미운대로  붙어서 돈이나 벌어야지. 간에 가 붙든 슬개에 가 붙든 돈을 벌면서 내 노늣을 하면  돼.) 그녀는 오청룡이 “동무는 리굉팔이 경리로 되는 걸 동의하오?” 하고 묻기 바쁘게 “동의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뜻밖의 말에 오청룡은 비서와 눈길을 맞추더니 반색했다. “어떤 동무들은 굉팔 동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던데 그 동무 말과는 완전히 다르구만. 허허허.” “누가 그럽디까? 리굉팔선생은 경리를 한 경험도 있고 군중위신도 아주 높습니다. 그는 돈을 좀 벌면 항상 우릴 청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군 했지요. 리굉팔선생이 김범수보다 경리를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우린 리경리를 잘 받들겠습니다.” “좋소. 장차 리굉팔 총경리를 잘 받들어 재무관리를 잘하오.” “예, 고맙습니다.” 해연은 자기가 그래야만 광고회사에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나오자 성호가 그녀를 자기 사무실에 불렀다. “어쨌소?” “토론한대로 굉팔은 안된다고 말했소. 탐욕스럽고 무능해서 받들어 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했소.” “잘했소.” 성호는 안팎이 다른 해연의 속심을 보아내지 못하고 계속 말했다. “군중위신이 하나도 없는 굉팔이 어떻게 경리를 하오?” 해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결코 굉팔을 좋아서 오청룡 앞에서 성호와 범수를 배신한 것이 아니였다. 광고회사에 남아서 돈을 벌려면 량심을 어기면서라도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그녀는 그런 현실이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남편을 잃고 가정이 깨진 형편에서 이제 일자리마저 잃고 싶지 않았다. 물론 김경리 덕분에 이 광고회사에 들어와 회계를 맡았고 또 상부에서 제명처분을 내렸을 때도 김경리 덕분에 삶의 용기를 얻고 다시 광고회사에도 돌아오게 됐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과거라고 생각됐다. 지금 상부에서 김범수는 경리후보에 이름도 없는 형편에서 그녀는 어떻게 하나 굉팔을 단단히 붙잡고 달라붙고 기면서라도 광고회사에 남고 싶었다. 비굴해도 잘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겼다. (자살까지 하려던 내가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김경리쯤 팔아먹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승호는 오청룡 앞에서 더욱 기동령활하게 표시했다. “굉팔선생이야 말로 경리자격이 제일 있다고 봅니다. 한개 작은 단위라고 해도 경제효과만 따질 것이 아니라 우선 광고회사 내부단결과 불륜행위 같은 걸 엄격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나 뭡니까? 송철과 선희가 뒤구석에서 암암리에 불률행위를 저지른 걸 김범수는 근본 알지도 못했고 다스리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만!” 오청룡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김범수 말은 하지도 마오. 경리후보 리굉팔의 말만 하오.” “예, 알았습니다.” 승호는 상부의 의도를 인차 파악하고 대담히 굉팔을 춰올렸다. “물론 저쪽 광고회사가 망했지만 그건 좋은 교훈입니다. 후에 리굉팔선생이 우리 광고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는 밑거름으로 될 것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닙니까? 리굉팔선생은  앞선 경영 의식과 능력이 있다고 봅니다. 그는 가수로 활약할 때도 집에 상점을 차리고 제과기를 사들여 안해와 함께 과자와 기름떡을 구워 팔았습니다. 또 광고도 누구보다 많이 했습니다. 또 중학교 때부터 악대 대장으로 일했기 때문에 혼란스런 우리 광고회사를 정돈하고 경제효과를 올릴 수 있다고 봅니다.” “좋소.” 오청룡은 아주 흡족해하면서 승호한테는 한마디 더 물었다. “동무는 대학교 때 학생총회 부장에 백화상점 과장, 공회주석까지 했더구만. 우리 광고회사에서 무슨 문제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보오?” 승호는 자기를 나타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꺼리낌없이 말했다. “지금 우리 광고회사 내부단결이 잘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직원들이 리경리 두리에 굳게 뭉쳐야 하는데 리경리를 존중하지 않고 원래 김범수 경리를 쫓아다녀서야 되겠습니까?” 오청룡은 머리를 끄덕였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 것 같소?” 승호는 진지한 표정 속에 독한 속내를 감추며 한마디 올렸다. “김범수 경리 쪽에 줄을 선 직원들을 몽땅 광고회사에서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경리 밑에는 유력한 조수와 충성스러운 직원이 몇몇만 있으면  된다고 봅니다. 광고회사에 경리 둘이나 있어서야 됩니까? 직원들이 두 경리 눈치를 보다나면 언제 마음 편히 일할 수 있겠습니까?” “좋소. 우린 동무 령도재능을 아주 비싸게 사려고 하오. 부경리로 임명하겠소. 리굉팔 경리를 잘 받들어주오.” “예, 감사합니다. 리경리를 잘 받들겠습니다.” “아직 정식 임명이 내리기 전에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오.” “알았습니다.” 승호는 오청룡 앞에서 허리를 굽실거리면서 경리실에서 나왔다. 그는 복도로 해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언제보다 속이 시원해 그런지 오줌도 불구로 된 뇨도로 해서 시원히 쏴- 나가지 않겠는가. 며칠 후 상부에서 리굉팔을 총경리로, 리승호를 부경리로 임명하는 임명장이 내려왔다. 김범수 총경리는 해임되고 자그마한 신문사 광고부 일반직원으로 전근되였다. 승호는 굉팔이 어디로 나간 틈을 타서 떠들어댔다. “아니, 김경리를 전근시키다니? 우리 광고회사는 김경리 개척한 건데. 쯧쯧쯧.” 그는 김범수의 눈치를 흘끔 도적질해보았다. 김경리는 뜻밖의 인사변동에 모든 것이 짐작이 갔다. 그는 꼭 자기를 두둔한 성호가 입덕을 입어 자기를 따라 신문사에 가게 됐고 제일 수준급으로 물어먹은 승호가 덕을 봐서 부경리로 임명됐겠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사건에서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해연까지 자기 뒤통수를 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세상의 풍운조화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치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으리라. 창 밖에서는 함박눈이 푸실푸실 쏟아져내렸다. 깡마른 수수대 같은 굉팔이 우멍눈으로 창 밖을 내다보면서 탐욕스레 지껄여댔다. “허허허. 잘 살라고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내리는구먼. 하늘에서 돈이 저렇게 마구 쏟아져내렸으면 얼마나 좋겠나. 깍쟁이로 가랑잎을 마구 긁어모으듯 돈을 끌어모았으면!” 어느날, 그는 무슨 껌껌한 궁리를 했는지 경리실에 직원들을 하나하나 불러들여 담화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든 가시 같은 성호부터 불러들였다. 굉팔은 제법 경리틀을 차리면서 커다란 보스 의자에 도고히 앉아 잔등을 등받이에 붙혔다. 그는 물에 빠진 개턱처럼 조개턱을 번쩍 쳐들고 우멍눈으로 성호를 쏘아보았다. “낮말은 쥐가 듣고 밤말은 새가 듣는다는 걸 알어?” “건 무슨 소립니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지. 어디…” “닥쳐!” 굉팔은 범죄자나 심무하듯이 책상을 꽝 내리치면서 벌떡 일어나 꽥꽥 고함쳤다. “어디라고 횡설수설인가?! 엉!” 성호는 입귀로 비웃음을 흘리면서 굉팔을 마주 보았다. “이 광고회사에서 하루라도 일하겠으면 내 말을 곰상공삼 들으라우. 안팎이 달라선 절대 안돼. 알았어?” 성호는 아무 대구도 하지 않았다. “넌 아직 세상 물정을 너무나도 몰라. 김범수, 그 애가 경리에서 떨어질줄 몰랐지. 하늘과 땅도 바뀌는 때 있어.” 굉팔은 성호 가까이에 다가와서 주먹으로 가슴을 툭툭 치면서 계속 지껄여댔다. “범수를 글케 따라서 뭐해? 내 입이 터지면 범수는 감옥에 가야 해. 알어?!” 굉팔은 우멍눈 흰자위를 희번뜩이며 떠들어댔다. 그는 제자리에 가서 높은 의자에 거만하게도 삐뚤렁하게 앉아 지껄여댔다. “알아둬. 범수는 낚시에 코 꿰운 놈이야. 자기 새 집을 장식할 때 나보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 4만 7천원이나 달라고 했어. 나한테 그렇게 많은 돈이 어데 있어?  탐욕스런 그 놈의 배때를 채워줄 돈이 없었지. 할 수 없이 약방 광고비를 가져다줬어. 그러자 김범수란 작자가 뒤를 막아주겠다고 했지.” (김경리 그럴 사람이 아닌데.)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치 사람 속은 몰라. 김경리는 해연을 시켜서 약방 광고비를 받지 못했다고 광고명세장에 스리슬쩍 올리게 했어. 얼마나 능란한 솜씬가? 이거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땐 격이라. 좀 좋아? 김경리는 얼마나 탐욕스런 놈이냐? 그런 놈도 당원이냐? 그래서 난 당에 안들어.” 성호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이젠 김경리한테 미련 갖지 말어. 그 놈이 경리 자릴 떼웠지만 어째 찍소리 못하고 신문사에 가버렸어? 꼬리를 밟힌 거지.” 굉팔은 점점 살기등등해 떠들어댔다. “백화상점의 출납 춘란이 돈 1만원 도적질했다가 감옥에 5년 동안이나 들어가지 않았어?  4만 7천원이면 몇해 들어가야 해? 이젠 내 말이나 잘 들으라우. 그게 명지한 선택이야.” 굉팔은 그쯤하면 성호의 믿던 기둥을 무너뜨렸다고 생각하고 칼을 더 들이댔다. “성호, 이전에도 말했지만 백화상점 광고는 내 먼저 련계했어. 이젠 백화상점광고를 내 책임질테니 손을 떼라.” “말도 안되는 소릴. 안경리와 물어보십시오. 리경리와 합작하겠다는가? 괜히 백화상점 광고를 망치지 마십시오.” “그래 백화상점 광고를 내놓을라우? 아니면 우리 광고회사에서 나갈라우? 김경리도 쫓아보냈을라니 네 따위겠어?” 성호는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경리로 올라가자마자 너무 억압하지 마십시오. 총경리  권력을 빌어 내 개척한 광고를 뺏앗는 건 옳지 않습니다. 절대 넘겨줄 수 없습니다.” “허허허.” 굉팔은 너털웃음을 웃었다.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숭이. 상부에선 네가 날 물어먹었다고 김경리와 함께 쫓아내자고 했어. 그래도 내가 널 끌어안고 가겠다고 했어. 내 한마디면 네 같은 건 훌 날려가 어데 처박힐지도 몰라! 알았어?” 성호는 굉팔한테 자존심을 구길 수 없었다. “쳇! 아주 대단하구먼. 이 더러운 광고회사에서 나가면 나갔지. 절대 원칙을 양보하지 못합니다.” 성호는 훌 일어나면서 주먹으로 차탁을 꽝 쳤다. “누구 앞에서 날강도 행위를 합니까? 벌레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굉팔은 가물에 실돌피 같은 목을 빼들고 어리둥절해 박산난 차탁 유리를 흘끔 곁눈질했다. 그의 음흉한 눈길이 경리실에서 활 나가버리는 성호의 뒤잔등을 노려보았다. 성호는 그 길로 범수를 찾아가서 말할가하다가 그만두었다. 어떤 일은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김경리한테 편안할 것 같았다. 굉팔은 뒤이어 승호의 추천으로 예화를 불러왔다. “예화, 참 예쁘구만.” 예화는 수깃했던 머리를 쳐들면서 쫓겨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억지로 샐쭉 웃음을 지었다. “미안해. 해연이 나오지 않으면 저를 계속 출납원으로 쓰겠는데 말이요.” “알았어요.” 예화는 축출령과 같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울적한 기분에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경리실에서 나갔다. “가만,  후에 기회 있으면 우리 광고회사에 와서 모델을 해도 괜찮소.” 그 소리에 예화는 주춤 멈춰서더니 되돌아섰다. “감사해요. 허나 광고모델은 있잖아요? 성호선생의 녀학생 연화 말이예요. 무용대 졸업생이지. 예쁘지. 얼마나 좋아요?” 굉팔은 음충한 눈길로 예화의 탄력있고 풍만한 가슴을 노려보면서 지껄여댔다. “난 예화를 더 예뻐하오. 광고회사에서 광고모델을 하나만 쓰라는 법 없지.  광고마다 연화 얼굴만 나가면 얼마나 단조로와? 난 예술을 하던 유명가수요. 내 말에 일리가 있지?” “예. 정말 그럴 듯한 고견이군요. 감사해요. 고정직업도 없는 절 광고모델로 자주 불러주세요.” 예화는 경리실에서 조용히 물러나오면서도 굉팔의 음충한 눈길에 저도 몰래 오싹 몸서리를 쳤다. 굉팔은 정신타격을 받아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허우적거리며 자기한테 달라붙는 해연이나 림시공인 예화나 연화를 다루기는 밀가루를 반죽하듯이 쉬웠다. 그러나 라이벌로 지목할 수 있는 승호만은 대적하기 조련찮았다. 허나 사나 학생총회 부주석이나 백화상점의 공회 주석으로 구을어먹지 않았는가. (그 놈은 억지로 압력을 가해선 안돼. 얼리고 닥쳐야 해.) 그는 승호를 불러들여 헤벌쭉 웃으면서 치하해주었다. “민의측검 때 좋은 말을 해주어 감사하이. 덕은 쌓은대로 마땅한 보응이 있을 거요.” 승호는 남을 물고 들어섰다. “해연이랑 성호랑 다 리경리 허물을 했습니다. 전 광고는 그래도 굉팔 총경리께서  하셔야 한다고 반영했습니다.” 굉팔은 승호를 한바탕 춰주면서 구슬려 내보냈다. 카멜레온들은 부단히 색다른 새 옷을 갈아으면서 자기를 위장하였다.  그들은 허위적으로 얼렁뚱땅 뭇사람들을 속여가면서 아주 능란하게 챙길 것은  챙기며 간사하게 살아가고 있다.                                                                                55. 흐느끼는 울라지보스또크        한편 연화는 성호와 굉팔과의 관계가 나빠 광고모델을 오래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러나 중학교 무용교원이기에 뒤근심은 없어 그럭저럭 과외로 광고모델로 삐치려고 들었다. 그러나 예화의 사정은 달랐다. 광고모델마저 떼우면 홀로 딸 해선을  공부시키면서 어떻게 산단 말인가? 어느날 그녀는 굉팔의 부름을 받고 광고모델을 서다가 희끔한 정보를 알게  되였다. 모 무역회사에서 로씨야 울라지보스또크 한국 옷공장 로무송출로동자를 모집한다는 것이였다. 당시 시내 옷공장 로동자들은 한달에 극상해야 200여원 받으나마나 했다. 그런데 그 한국 옷공장에서는 2년에 2만원을 벌 수 있다고 했다. 그럼 한달에 800원 좌우 버는게 아닌가. 숱한 젊은 녀성들이 우르르 그 무역회사로 몰려갔다. 예화도 찾아가 신청했다. 무역회사 경리는 자기네 로무송출간판광고 모델을 선 예화를 알아보고 자못 아쉬워했다. “예쁜 광고모델아가씨를 로무송출을 내보내긴 너무 아깝군.” “보내주세요. 홀로 애를 키우자니 너무 힘들어요. 맨 광고모델을 해서야 언제 집을 사고 온전히 살겠어요.” “그럼 가보오. 한 3년 일해 6만원 벌면 80평방메터 되는 새 아빠트야 살 수 있겠지. 그런데 담보금 2천원을 내야 하오.” “담보금이라니요?” 김예복이라고 부르는 서른살 안팎의 녀성이 물었다. “한국 사장을 따라 한국으로 도망치거나 일이랑 바로 하지 않으면 담보금을 돌려주지 않소. 담보금을 내야 고분고분 말을 잘 들을게 아니요?” 예복은 죽는 상했다. “아이고, 전 소학교 교원도 그만두고 가는데 담보금은 너무 하지 않아요?” 예화도 맞장구를 쳤다. “2천원은 너무 많아요. 한 천원이라면 몰라도.” 예복은 쌍까풀눈을 치뜨면서 경리를 쏘아보았다. “천원이라도 내 소학교 교원의 반년 로임인데요.” 경리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가지 말겠으면 그만두오. 로씨야로 나가면 한달이면 알아보겠는데 왜 그러오? 하나는 알아도 둘은 모르는 한치보기들이라구야.” 그 말에 예화나 예복이나 다 한풀 꺾였다. 결국 예화는 로무송출을 간다는 말은 하지 않고 범송한테서 돈을 꿔다가 담보금 2천원을 냈다. 경리는 허리를 뒤로 쭉 펴고 틀을 차리면서 “가지 말겠으면 그만둬.  가려는 녀성 쌔고 버렸어.”라고 하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예화와 예복은 한참 서성거리다가 로무송출신청서를 바쳤다. 경리는 “로씨야에 가서 돈을 많이 버오.” 라고 하면서 뻘건 도장을 꽝 찍어주었다. “감사해요. 제가 이제 돈을 벌면 경리님께 술 한잔 사드리죠.” “양, 가서 고분고분 말을 듣고 일 잘하오.” “예. 정말 고마와요.” 예화는 연신 허리굽혀 인사했다. “돌아오면 한턱 내오.” 경리는 희쭉 웃으면서 음충한 눈길로 예화의 몸을 노려보았다. “예, 집 한채만 벌면 한턱뿐이겠어요?” 예화는 당장 집 한채를 사기나 한 것처럼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고 설레이기만 했다. 그녀가 백화상점에 범송을 찾아가자 눈이 데꾼해졌다.  “얘, 해외로 나갔다가 무슨 변을 당하자고 그래?” 그러나 예화는 고집을 부렸다. “선생님 돈을 갚고도 집 한채 생길 건데요. 한번 모험할만한 것 같아요.” 범송은 막무가내로 예화를 놓아주는 수 밖에 없었다. 예화는 승호를 찾아가 광고모델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승호는 그녀한테 리해득실을 구체적으로 따져주고 싶었다. “얘, 광고모델만 생각하지 말고 너도 직접 광고를 물어들여라. 수고비만 해도 해외에 나가 고된 일을 하기보다 낫을 거야.” 예화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광고회사에서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굉팔인지 나팔인지 하는 놈 밑에서 벌벌 하루라도 더 기고 싶진 않아요.” 승호는 어쩐지 자기 녀자를 하나 빼앗기는 것 같아 마음이 쓰려났다. “눈 앞만 보지 말라. 내 지금 부경리지만 장차 일을 어떻게 아니? 그래 굉팔이 맨날 내 우에서 너덜거릴줄 알어?” 예화는 쓴 웃음을 지었다. “지금 모두 한국에까지 나가 돈을 많이 버는데요. 코 앞에 있는 로씨야에 가지 못하겠어요?” 그녀는 승호한테 아무런 미련을 두지 않고 기어이 로씨야로 떠나갔다. 며칠 후 모닥불도 추워서 품 속에 기여들 엄동설한에 예화와 예복 등 조선족녀성 100여명을 실은 뻐스 3대가 눈길을 누비면서 중로국경을 넘어 온 하루 로씨야 원동의 무인지경을 붕붕 달렸다. 뻐스에서 우연히 광고회사에서 함께 모델을 서던 유명짜한 간판모델 선희를 발견했다. 선희는 눈인사를 살짝 할뿐 말을 섞기싫은지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아마 자기 과거가 드러날가봐 근심스러웠을 것이다. 눈보라가 새하얀 눈이 뒤덮인 들판 가슴에 희망의 키스를 날리며 미친듯이 울부짖었다. 엄동설한이란 무서운 쇠망치는 어데를 때리면 어데가 부서질 것만 같았다. 예화를 비롯한 새파란 젊은녀성들은 눈보라 기승스레 휘몰아치는 엄동설한에 멍이 들고만 무연한 해변가를 바라보면서 벅찬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한 2년 일하면 5~6만원짜리 살림집을 사겠지. 그럼 얼마나 좋겠는가!) 토끼꼬리만한 겨울해가 꼴깍 넘어간 후 어둠 속에 그들을 태운 뻐스들은 로씨야 원동 울라보스또크의 한 한국 옷공장에 들어섰다. 지붕이 뾰족한 서양식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눈덮인 도시는 별유풍경이였다. 이국 타향에 들어선 녀성들은 숨이 한줌만해서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옷공장을 둘러보았다. “모두 침실에 들어가!” 한국 관리일군이 뻐스에 올라오더니 개살구씨보다 더 떫은 소리를 줴쳤다. 그녀들은 찍 소리 못하고 부랴부랴 짐을 챙겨가지고 침실로 들어갔다. 난방설비도 제대로 가설하지 않아 손발이 얼어드는 침실에는 상하로 침대 네개나 놓여 있었다. 비좁기로 단통 가슴이 갑갑해났다. “에이구야, 이런 침실에서 어떻게 겨울 나겠니?” 선희가 웃층 침대에 짐보따리를 털썩 올리뿌리고 침대로 기여올라갔다. 꽈당! 퉁-탕-!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선희가 글쎄  아래 예화의 침대에 퉁 떨어졌다. 침대 가는 가름대가 무게를 당하지 못하고 허망 끊어졌던 것이다. “아이구, 허리 아파 죽겠다.” 예복과 예화가 황급히 선희를 부축했다. “모질 다치지 않았소?” “아니, 좀 있으면 괜찮겠지.” “야, 정말, 이게 어디 침실이냐? 관리원과 말해보자.” 선희는 아픈 허리를 붙잡고 복도에 나가 소리쳤다. “관리원! 관리원!” “왜 떠들어?” 턱이 뾰족한 관리원이 황급히 들어섰다. “이게 어디 침실인가요? 춥지. 침대널이 다 떨어지지.” “오~ 그래?” 그 관리원은 개턱처럼 비쭉한 턱을 쳐들고 쏘아붙혔다. “오자마자 무슨 요구가 그리 높아? 갓 가정 차렸으니까. 기물도 천천히 갖춰야지. 어떻게 단술에 배불러? 일만 잘하면 돼. 흥! 이후엔 관리원이라 말라!” “그럼 뭘로 불러요?” “김부장이라고 불러.” “김부장?” “그래. 부장이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관린지 알어? 이제 차츰 알게 될 거야. 이 김부장을 모르곤 얼마나 살기 힘든가? 흥!” 작달막한 김부장은 허리뒤짐을 지더니 부장 틀을 챙기면서 휑하니 나가버렸다. “에이구~ 개꼬리만한 벼슬아치 우쭐렁거리는 상통 봐라.” 선희가 허리를 붙잡고 끊어진 침대를 쳐다보았다. “내 침대에서 함께 자기요.” “불편하지 않겠소?” “괜찮소. 오늘 밤 지내고 래일 침대를 손질해달라기요.” 그녀들은 추운대로 게내복을 입은채로 다리를 꼬부리고 한 침대에 가지런히 누워 새우잠을 잤다. 이튿날 아침, 예화는 잠자리에서 부시시 털고 일어나 옷을 입은 채로 세면실에 갔다. 때가 덕지덕지 한 세면실의 수도꼭지를 틀어 봐도 물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먹을 물도 없는데 세수물이 어디 있겠니?” “어마나!” 이때 변소에서 새된 비명소리가 들렸다. 예화는 혹시 남녀가 함께 쓰는 변소인데다가 문 걸개도 온전하지 않아 일이나 나지 않았는가 해 황급히 뛰여나가보았다. 그때 선희가 얼굴이 새까매서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변소에서 뛰쳐나왔다. “어째?” 그녀는 변소를 가리키면서 새된 소리를 쳤다. “쥐새끼!” 선희가 그 쪽을 바라보니 토끼만한 쥐들이 무리를 지어 뛰여다니는 것이였다. “에이구, 간 다 떨어지겠다.” 다른 녀성들도 변소를 들여다보고 기절초풍할 지경. “변소라는게 똥무지 우에 널판자 두개를 놓은게야.” “널판자를 대충 대놔서 남자들이 환히 들여다보겠어.” “쯧쯧쯧.” 녀성들이 왁짝 떠들 때였다. “여기 모여 뭘 해?! 일하러들 안 올라가고.” 김부장이 개턱을 잔뜩 쳐들고 꽥꽥 고함쳤다. “변소에 쥐새끼들 천진데요. 무서워 어디?” “똥만 마려워 보라구. 쥐새끼겠나? 호랑이 와도 쌀 건 다 내싸. 흥!”                                               김부장은 나무오리대를 얻어다 침대 가름대를 대충 손질해주었다. “인정은 쌓기에 가지. 이 후에 무슨 일이 있으면 날 찾아와.” “고맙습니다.” “o-k-!” 김부장은 예쁘게 생긴 선희 아래우를 쓸어보면서 헤벌쭉 웃었다. “우~와 진짜 예뻐~” 어쩐지 헤벌쭉거리며 말이빨을 드러내는 김부장의 웃음 게발린 얼굴이 징글스러워보였다. 이튿날 오전에 녀성들이 아침이라고 만두에 죽물을 들이켜고 부랴부랴 3층 생산직장에 올라갔다. 돼지굴 같은 침실과는 달리 잉여가치를 창조하는 곳이기에  난방설비를 잘 가설해놓아서 그런지 훈훈했다. 줄느런히 늘어선 전자동재봉침을 보면서 녀성들은 모두 부지런히 일하면 돈을 많이 탈 희망으로 가슴이 설레였다. 김부장이 조선족녀성과 로씨야 200여명  앞에 나서서 가는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세우면서 고래고래 훈계를 시작했다. “오늘부터 너희들은 관리원들의 말을 꼽싹꼽싹 들어야 해. 생산직장에서 떠들고 웃지 못해. 대화해도 안돼! 기률 어기면 로임 뜯어낼줄 알어!” 녀성들은 모두 순순히 재봉침에 마주 앉아 기술자들이 시키는대로 뜨르륵, 뜨르륵 옷을 짓기 시작했다. 날마다 10여시간씩 천에서 새뽀얗게 흩날리는 화학섬유질먼지 속에서 두 눈이 시리게 일하기 조련찮았다. 어떤 때에는 일손이 딸린다고 어찌나 재촉이 성화 같은지  밤잠도 자지 못하고 련 속 36시간씩이나 침직품이거나 비옷 같은 것을 눈코뜰새 없이 만들어야 했다. 날마다 고되게 재봉침과 씨름하고나면 손이 부르트고 손가락껍질이 다 벗겨졌다. 어떤 녀성들은 근본 고된 체력로동을 해본적이 없어 영양결핍인데다가 일에 지쳐 삐치지 못하고 폭폭 꼬꾸라졌다. 그래도 선희랑 예화랑, 예복이랑 빨깍빨깍하는 딸라를 탈 일욕심에 맥이 드는줄도 모르고 일했다. 그녀들은 무더운 여름이 오자 가슴에 물도랑이 흐를 지경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소나 말처럼 재봉침 앞에서 맴돌아쳤다. 퇴근해서도 마실 물조차 없어 그렇게 하고 싶은 샤와도 한번 시원히 하지 못하면서 대문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일만 했다. 그런데 석달에 한번씩 딸라로 월급을 꼭꼭 준다더니 소식도 없었다. 입이 드센 선희가 자기 옆에 딱 붙어서서 감시하는 관리원을 보고 물었다. “어째 반년이 다 됐는데도 로임을 한푼도 주지 않는가요?” “뭐라고? 어째 쫓겨가고 싶어?” “아니, 로임을 달라는데 잘못인가요?” “이 년이 이게, 쫓겨날라고 환장했어?” “로임을 주지 않은게 잘했는가?” 그들이 옥신각신할 때 김부장이 나타났다. “왜 떠들어?” “이년이 로임이 어쩌고 저쩌고…” “그만둬!” 관리원보다 김부장은 수완이 한 수 높았다. 그는 한국 관리원의 귀에 대고  뭐라고 쑤근거리더니 다른데로 보내버렸다. 그는 선희한테 돌아서더니 싯누런 말이빨을 드러내면서 징글스레 웃었다. “근심말어. 일만 잘하면 로임 주고 말고.” “우리 무슨 세살짜리 앤가요? 로임을 제때에 주지 않으면 일하지 않겠어요.” “알았어, 알았다니까.” 그쯤 얼려놓고 김부장은 어데론가 가버렸다. 예화와 선희는 혹시 사장한테 말해서 로임을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가고 일주일이 지나가도 소식이 없었다. 점심식사시간에 옷공장 식당에서 중국 조선족녀성들은 불만이 부글부글 끓어번졌다. “로임을 주지 않으면 파공하자!” 선희의 말에 모두들 찬동해나섰다. “옳다!” “파공하자!” 그들은 한결같이 떠들면서 침실에 들어가 앉아 있었다. 한국 관리원은 침실마다 돌아다니면서 “일하러 나가!” 하고 돼지 멱따는 소리를 쳤다. 그러나 누구도 침대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어떤 녀성들은 관리원을 흘끔흘끔 흘겨보았다. “요것들이 일하러 나가지 못해?!” 관리원이 고래고래 고함치자 선희는 그 자의 코에 대고 손가락질하면서 따지고들었다. “우린 소나 말처럼 뼈빠지게 일했는데요. 왜 계약대로 로임을 주지 않습니까? 로임을 주지 않으면 일하러 올라가지 않을줄 아세요.” “계약에는 석달에 한번씩 로임을 주고 반년이 지나면 로임을 올려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계약돼로 하지 않으면 우린 일하지 않겠습니다.” “옳다. 일하지 않아!” “몽땅 중국에 쫓아보낼라?” “그래도 일하지 않겠어!” 여기저기서 격한 반항의 목소리가 터졌다. 바빠 맞은 관리원은 황급히 사무실에 가서 김부장과 사장한테 파공이 일어났다고 알렸다. 한국의 사장은 김부장을 데리고 중국 조선족녀성들 앞에 나섰다. “아가씨들, 한가지 미처 설명드리지 못한게 있어요. 아가씨들 로임을 여기 로씨야 우리 회사에서 직접 주는게 아니죠.” 녀성들은 그 말을 들을수록 리해되지 않았다. “그래 우리 로임을 어디서 줍니까?” 김부장은 제일 앞장서 떠드는 선희를 흘겨보았다. 한국 사장은 점잖은 척하면서 뒤말을 이었다. “우리 회사에서 이미 아가씨들 로임을 중국에 있는 로무송출무역회사에 보냈습니다. 아가씨들은 근심하지 마세요. 우리 여기서 일을 잘해 점수를 잘 맞으면 로임은 에누리없이 받을 수 있어요. 만약 이렇게 떠들고 파공까지 하면 감점받습니다. 감점받으면 중국 무역회사에 저금된 아가씨들 로임에서 뜯어내게 되는데요. 보증금마저 뜯기우지 않으려거든 모두 어서 빨리 일하러 올라가세요.” 그런 감언리설에 얼려넘어갈 녀성들이 아니였다. 예화랑 숱한 빚을 지고 부모와 남편, 애들을 집에 두고 이국 타향땅에 왔던 것이다. 심지어 예복과 같은 어떤 녀성들은 교원이나 기업소 로동자 같은 직업마저 버리고 왔는데 돌아설 곳조차 없이 허망 나앉게 됐다. 로임을 보지 못하고서는 헛고생을 더는 할 수 없었다. 대부분 녀성들이 울고 불며 일하러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자 한국 사장은 중국에 있는 로무송출무역회사와 한국 본사에 전화를 쳐 정황을 알리고 지원을 요청했다. 며칠 후 중국 무역회사 대표가 로씨야 원동의 이 소도시에 자리잡은 옷공장 식당에 나타났다.  조선족녀성들은 이국 타향에서 자기들의 리익을 대표해 말할 아버지를 만난 것처럼 기뻐 우르르 식당에 올라갔다. 그녀들은 중국측 대표가 연설하려고 나서자 기대에 넘쳐 손바닥이 터지게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쳤다.  “여러분, 우리는 동무들을 전선에 내보낸 우리 집 식구들처럼 생각합니다. 때문에 동무들은 한국 회사를 자기 집처럼 생각하고 아껴야 합니다. 랑비는 수치입니다. 수도물과 전기를 절약해 써야 합니다. 더구나 파공하면 회사에 얼마나 큰 손해를 줍니까? 동무들도 며칠동안 일하지 못했기에 그만큼 벌지 못할게 아닙니까? 언제까지 파공할 예산입니까? 회사나 동무들이나 다 손해 보는데. 동무들은 힘들어도 끝까지 견지해나가야 합니다.” 그 대표는 그녀들의 기대와는 달리 한국 회사 사장이 하지 못한 말을 대신해 지껄여댔다. “저게 한국 사장의 앞잡이야!” “옳다! 계속 파공하자.” 뒤에서 떠들어대자 그 대표는 고래고래 고함쳤다.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중국에 돌아가 법으로 다스릴 것이요!” 한국 사장과 김부장은 옆에 앉아 흐뭇해 구경했다. “로임을 달라는데 무슨 잘못인가?” “남을 그저 착취해 먹는게 옳은가!” 중국 조선족녀성들은 더는 그자의 말을 듣기도 싫어 식당에서 우르르 일어났다. 한국 관리원들은 그녀들이 모두 직장에 올라가는가 해 중국측 대표가 수완이 좋다고 치하하면서 악수까지 나누었다. 녀성들이 한결같이 몽땅 침실로 되돌아가 뻗히기를 하자 한국 사장과 김부장 등은 당황해났다. 중국측 대표는 자기 말이 서지 않자 중국에 돌아가 녀성들한테 승풀이를 하려고 윽별렀다. 그는 똘똘 뭉친 중국 녀성로동자들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자 그날로  울라지보스또크를 떠났다. 한국 사장은 고민 끝에 닭을 잡아 원숭이를 길들이기술책을 쓰기로 했다. 그는 김부장을 시켜 제일 앞장서 파공을 선동한 녀성을 데려오라고 했다. 김부장은 곧추 침실로 뛰여가서 선희를 불러내 사장 사무실로 데려갔다. 한국 사장은 선희의 균형잡히고 탄력있는 몸매와 예쁜 얼굴을 보자 대뜸 생각을 고쳐먹었다. “재봉침 앞에 앉히긴 너무 아까운 아까씨구먼.” 그는 끓어오르는 정욕을 가까스로 내리누르면서 사무상에 가까이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더니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지껄여댔다. “이럼 어떨가? 아가씬 꽤나 선동력이 있는 거 같구더구만요. 파공도 주도할라니 파공을 그만두자고 여론조성을 하지 못하겠어요? 파공을 끝내면 대가로 매달 50딸라씩 더 주고 관리원을 시키지. 관리원이 돼서 중국 조선족녀성들을 관리만 잘 하면 돼.” 선희는 눈이 데꾼해졌다. “이젠 재봉침 앞에 앉아 눈뿌리 빠지게 일하지 않아도 되는가요?” “물론이지. 내 말만 잘 들으면 그보다 엄청 많은 대우를 받을 수도 있지. 히히히.  알만해?” 선희의 대답은 기대와는 판판 달랐다. “그만두십시오. 저를 어떻게 보고 하는 말인가요? 내 한 사람은 그만하면 매수할 수 있지만 저 숱한 중국 조선족녀성들은 매수할 수 없어요. 그들한테 로임을 주지 않는 한 누구도 그녀들을 일하러 올라가게 동원할 수 없어요. 제가 손오공이라고 해도 그런 재간은 없어요. 다른 궁리하지 말고 로임을 제때에 주세요. 그럼 모두 일하러 올라갈게요.” “꽤나 로실해 좋구만요. 난 이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녀성들을 더 좋아한다니깐. 허허허.” 한국 사장은 배포유하게 웃으면서 지껄여댔다. “전번에도 말했지만 아가씨들의 로임은 몽땅 중국측 회사에 갔어요. 아가씨들의 이름으로 저금해둔거나 다름없으니까. 이담 돌아가서 가지면 돼요.” “어떻게 믿어요?” “중국 사람들이 중국 회사를 믿지 못하면 어떻게 하죠?” 한국 사장은 좋은 말로 얼려선 안되자 으름장을 놓았다. “래일부터 일하지 않는 직원은 제명하고 강제축출하겠어. 여기가 어디 로숙자들을 기르는 곳인가?!” “좋아요. 전 래일이라도 집에 돌아가면 갔지. 감옥 같은 여기서 더는 삐치지 못하겠어요.” 선희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사장실에서 나와버렸다. 그녀는 이튿날이면 돌아갈 수 있으려니 하고 이불짐이랑 다 꾸려놓고 침실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딴 마음을 먹은 사장은 그녀를 중국에 보낼 궁리가 없었다. 그는 진작 자기 딸보다도 더 어린 녀성을 데리고 와서 살림집까지 따로 잡아놓고 살고  있었다. 그는 선희를 보는 순간 그녀의 온몸에서 다른 매력을 느끼고 유혹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김부장이 침실을 돌아다니면서 20명씩 관리하는 체육위원녀성 넷을 불러갔다. 그는 부장실에 그녀들을 앉혀놓고 훈계했다. “너희들한테 왜 50딸라씩 더 줬어?” “건 생활비 아닌가요?” “파공 막으라고 준 거야.” “로임을 주지 않고서야 무슨 수로 막아요?” “중국에 가면 준다고 했잖아?” 그 말에 관리원녀성 넷은 귀가 솔깃해졌다. 그녀들이 돌아다니면서 말해서 겨우 2, 30명이 생산직장에 올라가 재봉침 앞에 마주 앉아 일하기 시작했다. 녀성들이 일하면서 김부장을 보고 “로임을 달라.”고 했다. 그때마다 김부장은 손을 그런 녀성들 귀에 가져다대고 나직이 “돈을 벌겠으면 밤에 내 침실에 와서 데이트를 해!” 하고 귀속말을 했다. 그는 쉽게 넘어가서 밤에 침실에 찾아온 녀성을 한두번 놀고는 자기 부하들한테 넘겨주었다. “재미 수술해. 제꺽 몸을 내주는 로씨야년들이나 매한가지야. 재미없어.” 그는 선희나 예화를 꺾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선희는 사장이 욕심내는터라 감히 건드리지 못하고 밤에 예화를 불러냈다. “예화씨, 참 예쁜데요.” 예화는 머리를 수깃하면서 그 자의  속심을 대뜸 알아맞췄다. “절 뭐로 보고 이래요?” “네 남편 바람 피운 걸 다 아는데 너도 보복하고 싶지 않아?” 예화는 쓴 외 보듯하면서 코웃음쳤다. “전 남편이 없어요. 죽은지 얼마라고 거짓말 함부로 해요?” “오~ 그래? 거 봐, 남편 바람 피우다가 죽었지. 중국 무역회사 통해 진작 죄다 알고 있어. 넌 광고회사에서도 이름난 간판모델이라더군. 선희도 그렇고.” 예화는 깜짝 놀랐다. 김부장은 말이빨을 드러내놓고 헤쭉 웃으면서 지껄여댔다. “귀신은  속여도 내 천리혜안은  속이지 못해. 히히히. 난 중국에 왔다가 너거들 사는 시내에 처음 갔을 때 백화상점에  걸린 커다란 간판에서 너네들 보았어. 얼마나 예쁘던지. 내 손아귀에 예쁜 모델이 굴러들어올줄은 몰랐어.” 예화가 놀란 가슴을 달랠 새도 없이 그자는 예화를 와락 끌어안더니 하신을 밀착해왔다. “어때? 고달프게 재봉침만 돌려서야 몇푼 벌겠어? 애인 해주면 돈도 푹푹 쥐여줄테니까. 재미도 보고 돈도 벌고 좀 좋아?…” “이러지 마세요. 소리치겠요. 어째…” 색마는 예화를 쏘파에 쓰러뜨리고 야성을 드러냈다. 예화는 로임을 타지 못하는 것만도 억울한데 한국 색마한테 당할 수는 없었다. “이 망할 놈새끼, 중국 조선족녀성들을 어떻게 보고 이래니?!” 예화는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을가? 그녀는 자기를 깔아눕히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덮쳐든 그 놈 색마를 활  떠밀어버렸다. “중국에 쫓겨날줄 알아!” “더럽다, 더러워! 중국에 돌아가도 네놈들의 수하에서 노예처럼 일하면서 성노리개로 되기보다 낫다!” 예화는 옷매무새를 바로잡을 새도 없이 부장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복도에서 사장실 앞을 지나다가 귀에 익은 녀성의 아양을 떠는 소리를 들었다. “사장님, 전 로씨야 원동의 몇번째 현지처로 되는 건가요?” “무슨 놈의 몇번째야. 제일 사랑스런 애인이지.” “그럼 절 한국에 보내주는거죠?” “그래, 내 여기 있는 기간 잘 모시면 한국에 보내주기만 하겠어? 한국에 간 다음에도 돈을 푹푹 쥐여주고 제주도도 유람시키지.” “에이구, 나도 팔자를 고칠 날이 있구먼요. 전 광고모델이나 하던 년인지라. 재봉침만 봐도 신물이 나요.” “그래. 넌 이제부터 밤마다 내만 잘 모시면 돈도 있고 빵도 있어. 알았어? 내 현지처 되면 당장 로씨야 원동에 살림집 한채를 차려줄테야. 허허허허.” “실말인가요?” “오~ 그래, 요것아, 이젠 침실로 갈만하지?” “예, 그래요. 인기모델의 모든 걸 다 줄게요. 호호호호.” “으흐흐흐.” 년놈들이 수작을 부리다가 문을 벌컥 열고 복도로 나왔다. 그들은 그때까지 멍해 서있다가 자리를 뜨는 예화를 보고 주춤 멈춰섰다. 그래도 사장이 아주 기동령활했다. “얘, 예화라던가? 돈 벌겠으면 데이트를 해. 거 김부장을 잘 모시라고. 돈방석에 앉을 수 있어. 허허허.” “호호호호.” “퉤!”  예화는 선희 쪽에 대고 침을 퉥 뱉었다. (더러운 년, 개 똥을 먹는 버릇을 고칠수 있어?) 진짜 녀자들의 정조는 한번 풀리기만 하면 고삐 풀린 들말과도 같아 걷잡을 수 없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였다. 예화는 침실에 돌아와 서럽게 엉엉 울었다. 선희가 불쌍한것보다도 자기 팔자가 사나워서 서럽게 울었다. 이튿날 그녀는 중국 조선족녀성들의 절개를 지키려는 40여명 녀성들과 함께 뻐스를 타고 높은 토성 안의 지옥 같은 한국 옷공장을 벗어나 결연히 귀국길에 올랐다. 로씨야 원동의 이 소도시는 떠나가는 그녀들과 높은 토성 안에 남은 녀성들을 동정이나 하는듯이 흐느끼며 우는 상 싶었다…  조선족녀성들은 해관에서 울긋불긋 단풍이 든 조국의 산천을 배경으로 푸르른 가을하늘에서 휘날리는 오성붉은기를 바라보는 순간 “색마굴에서 벗어나 이젠 살았구나.” 하고 한숨들을 호~ 내쉬였다. 예화가 집에 보짐을 이고 지고 들어서자 본가집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얘, 너 2~3년 있는다더니 어떻게 돼 돌아왔니? 무슨 일은 없었니?” 예화는 대답 대신 어머니와 딸애 해선을 안고 엉엉 서럽게 대성통곡쳤다. 이튿날 예화를 비롯한 40여명 녀성들은 녀성들의 자존심과 피눈물 값이라도 받으려고 무역공사를 찾아갔다. 판공실에는 로씨야 울라지보스또크 한국 옷공장의 정체를 모르고 그 곳에 가려고 신청하는 녀성들이 있어 눈물겨웠다. “가지 마세요. 뼈빠지게 일해도 로임을 제때에 주지 않소.” “한국 색마들이 밤잠을 자지 못하게 구오.” 예화랑 말에 무역공사 경리 당황해났다. 그는 황소눈깔을 부라리면서 사무상까지 꽝꽝 쳐대며 호통쳤다. “그만하지 못해?! 너희들 도망쳐서 그렇지 누가 로임을 주지 않는다고 이러겠는가?!" 예화는 한발작도 물러서지 않고 바투들이댔다. “반년 로임 천딸라를 주세요.” “천딸라 같은 소릴 하지도 마오. 동무네는 계약을 어기고 기한 전에 도망쳐오지 않았소. 게다가 파공까지 감행했고…” “로임을 제때에 줬으면 파공까지 했겠습니까?” 경리는 황급히 “신청하러 온 동무들은 잠시 나가서 기다리오.” 하고 손짓했다. 딸라를 두툼히 번다는 유혹에 미혹돼 신청하러 온 녀성들이 진상을 아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어째 겁납니까? 저 동무들도 사건진상을 알아야 합니다.” “입 다물지 못해? 그 따위로 놀면 천딸라는커녕 500딸라도 주는가 봐라. 보증금도 안줘!” 예복은 경리의 코에 삿대질하면서 따지고들었다.  “뭐라구요? 계약을 위반한 건 무역회사죠. 무역회사에서 위약금으로 2천원을 더 내야 합니다.” “흥! 어디 법원에 가서 해봐라. 당찮은 개소릴!” 예화도 떠들었다. “이 건 돈 500딸라 문제가 아니예요. 우리 중국 조선족녀성들의 자존심문제예요. 우린 눈이 시리게 일했어요. 천대받고 기시받은 자존심 값과 피눈물 값을 받아내야 하겠습니다.” 녀성들은 왁작 떠들어댔다. “당신들은 중국조선족이 아닌가요? 왜 한국 기업쪽에 서서 불쌍한 우리 로임을 떼먹으렵니까?” “한국 기업과 잘 말해서 로동보수야 주는게 도리 아닙니까?” “더 할 말이 없소. 동무들은 2년 계약기한도 차지 않았는데 파공하고 돌아왔소. 때문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오. 로임도 절반 밖에 주지 못하오. 500딸라라도 재무과에 가서 타가오. 만약 억울하면 법정에 가서 시비를 따져보기오. 이제 우리 회사에 와서 자꾸 떠들면서 사업을 방해하면 그 500딸라도 받는가 어디 두고 보오.” 무역회사 경리는 보안일군들을 불러 그녀들을 몰아내고 신청하러 온 녀성들을 들여보내라고 했다. 예복과 예화는 보안경찰들한테 끌려나가면서경리를 손가락질을 하면서 단말마적으로 고함쳤다. “야, 이 개새끼들아, 우리 돈  뜯어먹고 잘 살 거 같으냐?!” “하늘이 두렵지 않은가?!” “생벼락을 맞지 않는가 봐라!” 예복과 예화 등 40여명 녀성들은 눈 앞이 캄캄 해났다. 예복은 교장과 남편이 그렇게 말리는 것도 교원직마저 다 버리고 로씨야 원동 땅에  건너갔었다. 그런데 보증금 2,000원을 떼운데다가 반년 로임을 500딸라 밖에 타지 못하게 됐다. 떼운 보증금을 제하고나면 1,500원에 교원직을 떼우고만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화는 범송의 피나는 1년 로임과 맞먹는 돈 2,000원을 꿔서 보증금을 냈는데 떼우고 말았다. (선생님의 빚은 어떻게 물지? 무슨 면목으로 선생님 앞에 나서겠는가? 사모님이 돈을 떼운 걸 알면 가정불화가 생길게 아닌가?) 예화는 변호사사무소에 일루희 희망을 품고 찾아가보았다. “우린 억울해요. 한국 사장들은 우릴 사람취급을 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변호사 앞에서 로씨야 울라지보스또크에 가서 당한 억울한 사건경과를 죽 이야기했다. 골똘히 듣던 변호사는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더니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동무들은 아무리 억울해도 해결받기 힘드오. 동무들이 로씨야 원동에 가서 한국 관리원들한테서 억울함을 당한 건 동정이 가오. 법은 증거를 중시하오. 무역회사와의 불합리한 계약서에 서명한 이상 계약을 어긴데다가 파공까지 했으면 보증즘을 찾기 힘드오. 로임도 더 받을 거 같지 못하오.” “예?” 예화는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눈 앞이 아찔해나서 까무러치고 말았다. “예화, 예화!” 변호사는 황급히 그녀를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린 예화는 비틀거리면서 변호사사무소를 나왔다. 코대를 쳐들고 뻔뻔스레 도고히 서 있는 무역회사청사를 바라보는 순간 악이 나 이를 뽁뽁  갈았다. 그녀는 아직도 로씨야 울라지보스또크의 지옥 같은 한국 옷공장에서 갖은 천대와 모욕을 받으면서 흐느끼고 있는 자매들을 생각하자 마음이 아팠다…
215    동화 호랑이와 고양이 댓글:  조회:1251  추천:0  2019-05-27
동화 호랑이와 고양이 김장혁        어느날 호랑이는 수림을 산보하다가 한창 쥐사냥을 하는 고양이를 발견했어요.       “매옹~”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은 들쥐들은 풀숲에 숨어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었어요. 고양이는 풀숲에 덮쳐나가 발톺을 빼들고 앞발로 들쥐를 탁 쳐 내리누르고 입으로 꽉 깨물어 잡지 않겠어요. “허허. 고 놈 작아도 쥐 잡는 재간만은 대단하군.” 호랑이는 남몰래 탄복하였어요. 그는 코수염을 쓱쓱 쓰다듬으며 량미간을 찌프리다가 무릎을 탁 쳤어요. “그래, 조 놈한테서 사냥재간을 배워야지.” 호랑이를 보자 고양이는 홀짝홀짝 뛰여 달아났지요. “야, 고양이야, 우리 친구하자.” 고양이는 달아나다가 되돌아보며 코웃음쳤어요. “뭐? 친구해? 호호호. 삶아놓은 소대가리 웃다가 꾸러미 터지겠다. 날 잡아먹으려고 사기치는 거 모를 거 같아? 흥!’ 호랑이는 입을 헤벌리고 헤헤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가며 말투를 한껏 부드럽게  가다듬어 구슬렸어요. “내가 왜 널 잡아먹겠느냐? 우린 모두 고양이과에 속하는 한 집안 종친인데. 헤헤헤.” “너와 종친이라고? 그럼 왜 난 이리 작고 넌 그리 커?” “건 너네 부모한테 물어봐. 우린 몸집은 차이 있지만 생김새를 봐라. 똑같지 않니? 우리 친구하자. 산중대왕인 나하구 친구 해 나쁜 일 있니? 어느 놈이 감히 널 지껄이면 내 당장 죽여치우겠어.” 고양이는 귀가 솔깃해졌어요. (만약 호랑이 대왕을 등에 업으면 안보는 근심하지 않고 살게 아닌가?) 고양이 속내를 꿰뚫어 본 호랑이는 고양이를 슬슬 춰주면서 안심시켰어요. “또 네처럼 쪼꼬만 고양이를 잡아먹어봐야 내 이 큰 배를 채울 수 있냐? 비린내 난다. 비린내 나. 퉤. 우리 호랑이도 동족을 잡아먹지 않아.” 그제야 고양이는 안심하고 풀숲에 엉뎅이를 대고 호랑이 대왕의 “왕(王)”자 박힌 너부죽한 이마빼기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어요. “그래, 친구하자.” 호랑이는 고양이한테 다가가 방망이 같은 꼬리를 사타구니에 끼고 앉았어요. “이 놈 세월에 공짜가 어디 있느냐? 너 나와 친하겠으면 뭔가 대왕께 줘여 될 거 아냐?” “뭘 달라느냐? 금방 잡은 쥐를?” “아냐. 좀 사냥재간을 배워줄 수 없느냐?” “되구 말구. 그러나 너도 날 스승이라고 불러야 해.” “뭐? 스승?” 호랑이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양이를 노려보았어요. 그러다가 마지 못해 커다란 대가리를 끄덕였어요. “그래, 그래, 스승님, 금방 쥐를 잡는 걸 보니 스승님은 진짜 사냥재간이 높은 고수더군요. 눈이 있어도 태산을 알아보지 못해 미안합니다. 스승님, 사냥재간을 좀 배워 줘요.” 고양이는 흐뭇해 호랑이에게 재간을 배워주기 시작했어요. “먼저 고함을 꽥 치란 말이야. 고함소리에 숱한 짐승들이 놀라 혼이 날아날 거 아니냐?” “그래. 내 목소리 하나만은 높지.” 호랑이는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얼룩덜룩한 목을 하늘공중에 빼들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고함쳤어요. “따웅-” 호랑이 고함소리에 꽃사슴이랑 줄말이랑 깜짝 놀라 수림과 초지에서 부들부들 떨며 도망쳤어요. “그 담엔?” 고양이는 속이지 않고 재간을 낱낱이 가르쳐주기 시작했어요. “앞발로 덮쳐 꽉 잡아누르란 말이요.” “오- 그래.” 호랑이는 발톱을 빼들고 앞발로 꽃사슴을 덮썩 덮쳐 꽉 잡아누르는 시늉을 해봤어요. “그 다음엔 무슨 재간 있느냐?” 호랑이는 고양이한테 물었어요. 고양이는 곧이곧대로 가르쳐 주었어요. “입으로 숨통을 물어뜯으란 말이야.” “오- 그래. 이럼 사냥이야 끝이지.” 호랑이는 뻘건 혀로 비수처럼 서슬푸르고 뾰족한 이발을 다시며 물었어요. “또 다른 재간 있느냐?” 고양이는 호랑이 눈치를 살피면서 가르쳐주었어요. “금방 배워준 고함치고 덮치고 깨무는 세가지 재간을 다 써도 안될 땐 마지막으로 이 재간을 쓰면 되오.” “무슨 재간?” “덮쳐 누르지 못했을 땐 뒤에 있는 사냥물을 그 방망이 같은 꼬리로 후려치란 말이오.” “오- 그래, 내 꼬리에 얻어맞으면야 웬간한 짐승은 얼이 빠지지.” 호랑이는 이발을 사려물고 고양이한테 다가서면서 물었어요. “고양이 스승님, 배워줄 재간이 또 있느냐?” 그런데 호랑이 눈길이 왜서인지 살기가 오른 것 같지 않겠어요. (안되겠어. 다 사냥재간을 다 배워줬다간 죽을 수도 있어. 돌도리도 두드려가며 건너라고 아무리 믿는 친구라도 뭐나 여지를 둬야지.) 이렇게 생각한 고양이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이젠 배워줄 재간이 없소.” 호랑이는 음흉한 표정을 지으면서 혀를 널름거렸어요. “허허. 네 사냥재간을 다 배웠으니 이젠 필요없어. 널 잡아먹어야 내가 이 수림에서 최고사냥군이 되지.” 호랑이는 고양이가 배워준 재간대로 수림이 떠나가게 “따웅-” 고함치며 비수같은 발톱을 빼들고 고양이에게 덮쳐들었어요. 호랑이 재간을 속속들이 아는 고양이는 몸을 깡충 날려 피했어요. 호랑이는 고양이를 문짝 같은 아가리로 깨물려고 덮쳐들었어요. 고양이는 호랑이를 살짝 피해 나무 우로 쫑드르르 바라올라갔어요. 호랑이는 마지막 수로 고양이를 치려고 방망이 같은 꼬리를 휘둘러댔어요.  그러나 나무 허리에 가서 땅땅 맞혀 꼬리만 아파났어요. “내라고 나무에 올라가지 못할 거 같애?” “따웅-” 호랑이는사납게 고함치며 나무에 덮쳐갔어요. 허나 둬발 올라가다가 퉁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그루터기에 찔린 엉덩이에서는 뻘건 피까지 흘렀어요. “해해해. 잘코사니야! 매옹- 쌍통맹통 꼬부랭통, 령감로친 담배통. 매옹-” 호랑이는 너무 아파 오만상을 찡그리며 나무 꼭대기에서 놀려대는 고양이를 쏘아보았어요. 호랑이는 악을 먹고 일어나 쩔뚝거리며 몇번이고 펄쩍펄쩍 뛰여봤지만 나무우에 바라올라가지 못하고 말았어요. 그제야 호랑이는 억지로 상냥한 표정을 짓더니 나무 꼭대기를 쳐다보면서 헤헤 웃으며 고양이를 얼리기 시작했어요. “얘, 너 정말 재간이 많구나. 어쩜 단숨에 그 높은 나무에 바라올라갈 수 있느냐? 헤헤헤, 넌 왜 나무에 올라가는 재간을 나한테 배워주지 않았느냐? 이제라도 좀 배워주렴.” 그러나 고양이는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뛰며 호랑이를 골려주었어요. “얘, 의리도 없는 배은망덕한 호랑이 놈아, 내 죽자고 네 놈한테 나무에 올라가는 재간까지 다 배워 줘? 이젠 네놈의 흉악한 본질을 다 알았어.” 호랑이는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올랐지만 별수 없어 억지로 참으면서 요행을 바라고 고양이를 쳐다보면서 간청했어요. “얘, 귀여운 고양이야, 우린 종친형제이자 친구 아니고 뭐냐? 내 어찌 의리심도 없이 널 잡아먹겠느냐? 금방 네한테서 배운 재간을 련습한 것 뿐이야. 절대 오해하지 말고 나무에 올라가는 재간을 좀 배워달라.’ “량심도 없는 호랑이 놈, 어림도 없어? 넌 영원히 나무에 올라가는 재간을 배울 수 없어.” 말을 마치자 고양이는 나무가지를 한들한들 굴러 다른 나무에 훌 날아가더니 바람결처럼 수림 속으로 사라져버렸어요.       호랑이는 나무 가지에서 사라지는 고양이를 쳐다보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았어요.
214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28) 댓글:  조회:1238  추천:1  2019-05-14
                                         52. 사랑의 무덤        연보라빛 라이라크가 곱게 피여 거리에 그윽한 꽃향기가 차넘치고 꽃나비가 춘흥에 못이겨 나풀거리며 꽃봉오리와 키스를 하고 있었다. 굉팔은 승호와 함께 회사에서 그래도 반반하게 생긴 해연과 선희를 데리고  시내에서 제일 높은 회전음식점에 갔다. 그들은 커다란 창문유리 옆에 자리를 잡고 봄맞이 파티를 가졌다. 유독 한 회사의 김범수 경리와  성호, 진희를 뽁 빼놓고 연 파티이기에 해연과 선희는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이상야릇한 분위기를 느꼈다. 사실 굉팔과 승호는 각기 다른 목적이 있었다. 굉팔은 우선 출납원 해연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다. 승호는 해연과 선희를 미끼로 굉팔을 끌어당겨 성호를 배격하고 자기 위치를 찾으려고 했다. 광고를 물어들이는 일보다 우선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이른바 정치를 하기에 급급했다. 그는 백화상점에 있을 때 조홍수를 묻어다니며 술놀이 흥청망청 하면서 해연과 선희를 안지 오랬다. 지금도 선희가 자기 무릎 우에 올라앉았을 때 억지로 참았던 일을 잊을  수 없었다. (불구자 정체가 드러날가봐 그랬지.) 순간 선희도 승호가 자기를 무릎 우에서 내려놓으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는 저도 몰래 입귀에 가는 비웃음을 흘렸다. 젊은 남녀들이 마주 앉아 봄향기 그윽한 시내를 내려다보며 술을 마시노라니 기분이 여간 상쾌하지 않았다. 주흥이 도도한 파티에서는 얘기도 퍽 흥미진진했다. 승호는 술잔을 높이 추켜들고 해사하게 시를 읊듯 말했다.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고 꽃향기 그윽한 봄날, 우리 다정다감한 친구들, 봄날의 우정을 위하여!” “위하여!” 그들은 모두 시원하게 맥주잔을 굽냈다. 서너순배 돌아가자 별 말이 다 오갔다. 선희는 마른기침을 깇더니 이런 화제를 꺼냈다. “남자들은 별났지? 어째 고운 색시를 두고서도 남의 색시를 넘볼가?” 해연이 제꺽 받았다. “강냉이는 자기 집 강냉이 더 커보이고 안해는 남의 안해 더 고와보인다고 하지 않아?” 선희가 동을 달았다. “세상에 별 일도 다 있지. 사진을 잘 찍은 허씨라는 선생이 있었다오. 그 단위  리씨 처녀가 허선생의 사진재간을 배우려고 졸졸 묻어다녔다오. 한번은 글쎄 허선생 안해가 외지로 출장하게 됐다오. 그때 리씨 처녀가 허선생이 밥을 짓기 어려워할 것 같아서 글쎄 허선생네 집에 가서 밥도 지어주고 빨래도 해주었다오.” “저런, 자원해서 보모로 들어갔구나.” 해연이 마른 명태를 쪽 찢어 오물오물 씹으며 장단을 쳤다. 선희는 걀죽한 얼굴에 웃음을 지으면서 계속 입방아를 찧었다. “리씨처녀는 허선생이 아예 자기 집에서 자라고 하자 글쎄 그 집 정지에서 미닫이를 닫고 애들과 함께 잤다오. 밤중에 애들이 다 굳잠에 빠진 후 허선생은 미닫이를 스르르 열고 도적고양이처럼 웃방에서 스리슬쩍 나와서 처녀 옆에 기여들어 치근거렸다오.” “저런!” “리씨처녀는 옆에 누운 애들이 깰가봐 글쎄 짹 소리도 치지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오.” 그때 경상도치 굉팔이 끼여들었다. “암캐가 꼬릴 치지 않았으면 그랬겠어?” 선희는 큰 비밀이나 밝힌듯이 계속 입술을 나불거렸다. “허씨네 안해두 얼굴이 반반하게 생긴 값을 하느라고 그랬는지 그 단위 숱한 남자들과 살았다오. 그래서 기실 그번에 나그네 입을 틀어막느라고 출장가면서 고의로 리씨처녀를 보고 자기 집에 가서 밥을 해주라고 했다오.” “진짜 남편한테 붙여놨구만.” “에이, 별 녀자를 다 보겠어. 자기 나그네 옆을 내주고 입을 틀어막다니?” 선희가 계속 헐뜯어댔다. “글쎄 말이오. 한 단위에서 어떻게 산단 말이오?” 해연이 술잔을 들면서 끼여들었다. “그런 일은 모르면 약이오. 지금 개방세월에 보지 못했으면 약이지. 자, 술이나 마시기오.” 모두들 순잔을 쭉 굽 내고 안주를 짚었다. 해연은 훤칠한 체격에 탄탄한 몸매, 섹시하게 생긴데다가 시원시원한 개방형 성격을 가진 30대 중반 녀성이다. 대학교 식당에서 하던 일을 팽개치고 한국나들이도 한적이 있어 한국물도 푹 들었다. 한국에 가서 같잖은 음식점 사장들한테서 스트레스를 받다못해 보따리를 꿍져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학교의 유명교수인 아버지 덕에 그녀는 운수 좋게도 광고회사 출납원으로 들어앉았다. 승호나 굉팔은 해연과 성호의 로맨스를 모르고 게침을 질질 흘리며 엿보면서도 해연은 굴어귀 풀이라고 뜯어먹지 못하고 있었다. 선희가 정색해 해연한테 당돌한 질문을 들이댔다. “언니, 만약 언니네 나그네 바람을 피워도 보지 못했으면 약이라고 참을 수 있겠소?” 해연은 한숨을 호~ 내쉬였다. “아주 심각한 문젠데. 한번쯤은 량해할것 같소. 모르면 약이니까.” 승호는 담배연기를 후- 내뿜으면서 빈정거렸다. “아무리 모르게 바람을 피웠다고 해도 일단 자기 모에 띠워보오. 용서하지 않을 걸.  너무 큰소리를 치지 마오.” 굉팔은 선희를  건너다보며 물었다. “저는 한국에 간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걸 알면 가만놔두겠소?” 선희는 해연을 마주 바라보면서 물었다. “에이구, 한국에서 바람을 피우는지, 안 피우는지 누가 아오? 해연 언니 말처럼 모르면 약이지. 안 그렇소?” “그래. 모르면 약이오.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어머니가 철부지 아들을 용서하듯이 아주 너그럽게 용서하겠소.” 해연은 성명을 발표한 후 맥주잔을 들어 쭉 굽을 냈다. 승호는 아주 새 아메리카대륙이나 발견한듯이 두 눈을 크게 떴다가 슴벅이면서 입을 쫙 벌렸다. 굉팔은 일어나 해연의 잔에 맥주를 따라주고나서 제의했다. “자, 그럼 그런 의미에서 한잔 들기오.” 승호도 잔을 쥐고 일어섰다. “옳소. 므르면 약이오. 바람을 피운 남편들을 용서한다는 의미에서 한 잔 들기오.” 해연과 선희도 일어나서 잔을 마주치고 굽을 냈다. 선희는 저가락으로 물고기를 번져놓으면서 해연의 말에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난 바람을 피운 남편을 용서하지 못하겠소. 당장 리혼하면 했지. 사랑이란 자사적이니까.” 해연은 승호의 권연을 받아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켜댔다. 그녀는 담배연기를 길게 빨아들였다가 후- 내뿜더니 계속 자기 견해를 고집했다. “모르면 약이오. 알면 또 어쩌겠소? 애를 봐서라도 한두번 쯤은 용서해야지.” 선희는 올챙이 입을 딱 벌리며 비꼬았다. “어마나!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용서하겠다고? 야- 내 남자라면 언니 같은 녀자와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어?” 해연은 아주 정색해 자기 견해를 고집했다. “어쩌다가 한번 바람을 피운 걸 가지고 리혼한다면 평생에 몇번 리혼해야 하겠소? 지금 개방세월에 사랑이거나 가정이거나 부부관계나 순결한게 몇이 있소? 고만한 일이야 량해하고 서로 모르는 척하면서 살아야지. 말은 이렇게 해도 정작 남편이 바람 피운 거 알면 얼마나 기막히겠어?” 선희는 동감인지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 좌우간 그날 모두 맥주도 시원히 마시고 지저분한 얘기도 적잖게 나눴다. 그들은  노래방에까지 가서 목청이 터지게 노래를 부르고 번갈아 쌍쌍이 서로 꼭 끌어안고  돌아갔다. 이튿날 광고회사에는 뜻밖에 폭발적인 뉴스가 자자하게 퍼졌다. 해연의 남편 송철이 선희를 일년 반이나 데리고 살았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인군자 같던 놈이 선희 남편이 한국으로 간 틈을 타서 야욕을 채웠군!” “선희 꼬리를 치지 않았으면 송철이 그랬겠소?” “글쎄 말이요. 아양을 떨기 좋아하는 선희가 촬영할 때 광고제작실의 송철을 유혹했겠지.” “그렇잖구. 그런줄도 모르고 저 바보 같은 해연은 나그네와 선희 간판광고를 제작할 때면 선희가 곱게 찍혀나오라고 자기 한복을 입히고 화장까지 해줬다오.” “에이구, 송철이네 부부에 선희까지 셋이 얼마나 붙어다니면서 좋아했소. 이제 꼴보기 좋게 됐군.” “두 가정이 풍비박산나겠군.” 광고회사에 인원이 많이 증가되면서 말썽도 많았다. 진희랑 아낙네들이 뒤에서 쑤근거렸다. 승호가 색시들 속에 끼여들었다. “해연은 어제 우리와 술을 마시면서 남편이 바람을 써도 모르면 약이라고 했소. 자기 한 말대로 한두번 쯤은 애를 봐서라도 량해하겠지.” “어머! 그럼 해연네 가정이 깨질 위험은 없구만.” “괴벽한 해연이?” “미쳤지. 어째 놀고 비디오촬영까지 해두었다오?” “글쎄 말이오. 구경하면서 다른 재미를 보지. 호호호.” “진짜 미쳤소.” “제일 멋진 간판광고를 제작했구만.” “선희네 나그네도 바보지. 그 비디오테프를 김경리한테 가져다줄 건 뭐요?” 승호가 또 말참견을 했다. “법원에 가도 근거로 되지 않고 뭐요?” 사실 한국에 간지 몇해 된 영철은 온다는 말도 없이 돌아와 선희가 출근한 후 집으로 슬쩍 들어갔던 것이다. 그는 선희를 의심한 나머지 그간 청백했는가 알아보려고 온 집 안을 활딱 뒤번졌다. 허나 아무런 이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선희, 미안하오. 당신을 의심한 내가 개자식이오. 자기는 한국에 가서 청량리요, 미아리요, 어데라 없이 다 돌아다니면서 오입을 하고서도 청백한 당신을 의심한 내가 개놈이오.” 영철은 중얼거리더니 한시름 턱 놓고 쏘파에 앉았다. 그는 얼결에 텔레비죤 옆에 놓여있는 비디오테프가 눈에 띄였다. “심심하니까 비디오를 봤는 모양이지.” 영철은 그 비디오테프를 비디오에 집어넣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은은한 음악이 흐르면서 빨간 장미꽃과 백합 꽃송이 나타났다. 뒤이어 적라라하고 음탕한 서양인들의 음란한 장면이 나타났다. “쳇, 그간 퍽 성기갈이 들었던 모양이지. 저런 루추한 걸 다 보구. 저게 뭐냐?” 화면에는 선희가 옷을 활활 벗는데 웬 남자가 덮쳐들어 키스를 하고 뒤이어… “아니, 저런!” 영철은 자기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그는 분김에 그 비디오테프를 몇장 쾌속 록화하였다. 그는 전화를 들었다. “선희, 내 돌아왔다. 집에 오라.” 선희는 깜짝 놀랐다. “저걸 어쩌나. 어제 저녁에 송철과 놀면서 록화한 테프를 치웠던가? 보자, 한번 구경하고 또 그러다나니, 아니, 큰 일 났구나.” 그녀는 속이 꿈틀했다. 순간 잔등에 식은땀을 쪽 흘렸다. 심장은 밖으로 튀여나올듯이 콩콩 높뛴다. “안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송철한테 급보부터 알렸다. “여보세요. 큰 일 났어요. 영철이 돌아왔어요.” “양? 그래, 그 자식이 온단 말도 하지 않고 불쑥 나타났단 말이오?” “예, 어제 밤에 테프를 구경하고 치우지 않은 것 같애요.” “저런! 누가 그 자식이 불시에 나타나리라고 어디 생각이나 했소?” “이럴 때 아니죠. 봄빛다방에서 만나자요.” “그러기오.” 선희와 송철은 이런 대응책을 꾸몄다. 그런데 이쪽에서는 불 같은 성미를 가진 영철이 선희와 송철을 한각 분질러놓으려고 윽별렀다. 한식경이 흘러가도 돌아오지 않았다. 열이 후끈 오른 영철은 집 안의 널찍한 응접실에서 성난 사자처럼 씩씩거리며 왔다갔다 했다. 원래 영철과 선희는 대학교 때 동창생이다. 시내에서 곱게 자란 선희는 훤칠한 체격에 해말쑥하고 예쁘게 생겨 대학생총각들의 눈총을 받았다. 쌔물쌔물 웃을 때에는 꽉 깨물어놓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였다. 그리하여 모두 그녀를 대학교 마당에 피여난 나리꽃이라고 하였다. 지어 녀학생들은 질투의 눈길을 보낼 지경이였다. 대학교 공연무대에서 인기를 한 몸에 안은 그녀는 일약 대형패션전시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때부터 시내 광고회사들에서는 예술적인 기질이 있는데다가  섹시한 그녀를 광고모델로 썼고 패션회사와 일부 기업소들에서는 형상모델로 초빙하러 왔었다. 담이 큰 부자집 도련님들과 대학교 울안의 대학생 총각들이 그녀를 가까이 하려고 갖은 수단을 다하였다. 그후 해연을 통해 조과장과 승호를 알게 돼 한동안 술집녀인처럼 술을 퍼마시고 더러운 돈을 받아 흥청망청 퍼쓰며 놀러 돌아다녔다. 그때 영철은 그런 선희 내막을 모르고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대학교 동창생 가운데의 하나로 됐다. 선희는 영철보다 웃학년을 다닌 적이 있는 연구생총각을 더 좋아하였다. 그런 눈치를 채고도 영철은 열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고 여기고 지꿎게 따라다녔다. 심지어 연구생총각과 몇번이고 결투까지 하려고 하였다. 졸업한 후 선희는 시내에서 잘 나가고 있는 김경리네 광고회사 형상모델로 초빙돼 독신세집에 들어 있었다. 연구생총각이 오면 문을 열어주고 영철이 오면 열어주지 않았다. 어느 날, 그녀가 연구생총각과 세집에서 련애할 때다. 느닷없이 문을 꽝꽝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집 안의 남녀가 부스럭거리다가 자취를 감췄다. 영철은 돌멩이로 창문을 까부시고 걸개를 벗기고 성큼 들어섰다. “이 개쌍놈새끼야! 감히 시퍼런 대낮에 내 녀자를 짓거리니?! 어디 죽어봐라!” 영철은 신을 신은채 씽 구들에 달려올라가 연구생총각의 멱살을 틀어쥐더니 다짜고짜로 골받이를 떵 해놓았다. “너, 이놈새끼, 연구생이면 선비답게 책이나 붙들고 앉아 있을게지. 계집사냥만 다니는 거냐? 다리갱이 부러져야 알겠어?!” 영철은 발로 피투성이 된 연구생총각의 얼굴을 걷어찼다. 연구생총각도 그저 당할순 없어 흐르는 코피를 손으로 쓱 닦고 일어나면서 무릎으로 영철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앗!” 영철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아래배를 붙안고 뺑뺑 맴돌았다. 만만찮은 상대를 만난 영철은 발길에 연신 걷어채이면서도 입만은 살아있어 꽥꽥  고함쳤다. “네놈 알아둬라! 난 진작 선희와 백번도 더 했어. 몇번 류산까지 시켰는지 아니?” 연구생총각은 발길질을 멈추고 선희와 영철을 번갈아보았다. “아니, 생사람을 잡아도, 사람을 웃기지 않는가? 이거 동네 부끄러워 어디 살겠니?” 선희는 억울해 영철을 흘겨보면서 고함쳤다. “나가지 못해?! 경찰을 부를테야.” 선희가 아무리 꽥꽥 고함쳐도 영철은 물러가지 않았다. 그녀가 입이 열개나 돼 변명해도 연구생총각이 믿을 수 있겠는가? 그녀는 진작 숫처녀가 아니였던 것이다. “더러운 년!” 연구생총각은 침을 퉤 뱉더니 휑하니 나가버렸다. 그후 그는 두번 다시 선희를 찾지 않았다. 더러운 소문이 쫙 퍼지자 선희는 영철과 결혼하지 않고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죽어라고 따르는 동창생을 두고 어찌 더 좋은데로 시집가겠다고 물덤벙 술덤벙 해?” 선희는 영철과 번개식결혼을 올렸다. 그런데 선희가 숫처녀가 아닌데다가 승호랑 조홍수 과장이랑 동네 뭇사내들과 붙어다니면서 술이나 처먹은 것을 알고 영철은 선희를 두고 한국에 가면서도 시름놓을 수 없었다. 이번에 송철과 놀아난 록화테프까지 보자 영철은 마음을 깨끗이 정리하지 않으면 안됐다. “처녀 때부터 연구생새끼와 좋아하더니 결혼해서까지 어중이떠중이들을 집에까지 끌어들여? 더러운 년, 이젠 끝이야!” 지독한 마음을 먹은 영철은 그 길로 선희네 광고회사에 가서 그 음탕한 비디오테프를 김범수와 해연에게 주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선희와 송철의 추잡한  특대뉴스가 광고회사에 지진이 일어나게 했다. 경제적효과성과 대우가 아주 좋은 이 광고회사 문턱을 넘어서려면 아주 힘들었다. 이 회사 문턱을 넘어선 직원들은 늘 긍지감에 넘쳐 코노래가 절로 나올 지경이였다. 그런데 인기광고모델 선희한테 이런 불미한 일이 생기자 김경리는 골치 아팠다. (선희 정신타격을 받으면 광고모델을 누가 하겠는가.) 또 송철과 선희의 추문이 세상에 파다히 퍼질가봐 겁났고 또 후폭풍도 질겁하게 만들었다. 김범수 경리는 선희와 송철을 차례로 불러다가 정황을 알아보고 대책을 대기로 하였다. 사무실에 들어선 선희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여들어가고 싶었다. 그녀는 김경리 시선을 피해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더니 발끝으로 콩크리트바닥을 싹싹 허비였다. 김경리는 노기 띤 눈길로 선희를 한참 쏘아보다가 책상까지 꽝 쳤다. “통 말이 아니구만. 밤중까지 광고를 제작하는가 했더니 그게 무슨 짓이오?" 선희는 김경리 호통질에 겁나하지도 않았다. 전날에 해연이 “이런 일은 모르면 약이오.” 라고 하지 않았던가. 또 “만약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어머니가 아들자식을 량해하듯이 너그럽게 량해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녀의 머리 속에는 어떻게 발뺌하겠는가는 속궁리가 팽이처럼 뱅글뱅글 돌아갔다. 이때 김경리는 조금 격분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물었다. “선희, 사실대로 말하오. 속담에 ‘암캐가 꼬리를 치지 않으면 수캐가 매달리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소? 남편이 한국에 가고 없으니까 송철을 집에 끌어들인 것 아니오?” 선희는 억울한듯 걀죽한 얼굴에 올챙이 입을 짝 벌렸다. “어마나- 사람이 어디 억울해 살겠습니까? 사실 송철에게 강간당했습니다. “쳇, 여기 비디오테프까지 있는데도 생떼를 쓰겠소?” “처음에는 강간당한 것이 사실인데요.” “구체적으로 말해보오.” 기회를 얻은 선희는 나오지 않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그럴듯하게 억울함을 변명하였다. “나와 송철은 밤늦게까지 광고를 제작할 때가 많았습니다. 어느 날 밤중까지 광고모델을 서고나니 곤해서 하품을 짝짝 하는데 말이죠. 송철이 글쎄 조형동작을 촬영하면서 저의 동작을 교정하는 척하면서 내 옆에 다가와서 팔을 쥐여 이리저리 들었다놨다 했습니다. 그러다가 불시에 뒤로 달려들어 나를 꽉 껴안더니 책상 우에 깔아눕히지 않겠습니까. 소문이 날가봐 나는 짹 소리도 못 치고 그 놈한테 당했습니다. 정말 억울해 죽겠습니다. 흑흑흑. 김경리, 제발 억울한 저를 불쌍히 여겨 회사에 남겨주십시오. 네?” 김경리는 인심을 낼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음, 나도 선희 억울하다는 거 아오.” 김경리는 선희의 걀죽한 얼굴에 창피와 후회의 물결이 일기 시작하는 것을 찬찬히 뜯어보더니 뒤말을 이었다. “그게 뭐요? 한때는 백화상점 조과장한테 달라붙어 놀아대더니 이젠 한 단위 송철과 놀아대다니? 요즘 굉팔이나 승호한테 찰싹 붙어서 돌아다니는 걸 모르는가 하오? 토끼도 굴어귀 풀을 뜯어먹지 않는다고 했소. 흥!” 김경리는 파랗게 질린 선희의 걀죽한 얼굴에 굳어가는 표정을 흘끔 곁눈질해보더니 어조를 바꿨다. “음, 나도 순희가 억울하다는 걸 알고 있소. 송철이란 녀석을 이제 단단히 훈계해야겠소.” 선희는 귀밑까지 붉히더니 그윽한 눈길로 김경리를 힐끔 훔쳐보더니 아양을 떨었다. “그 은정에 어찌 다 보답하리오?" 김경리는 음충한 눈길로 선희를 쓸어보면서 얼리고 닥쳐 그녀의 마음을 먼저 어루쓸기도 하고 괴롭히기도 하다가 내보냈다. 그는 전화로 송철을 불렀다. 송철은 머리를 수깃하고 들어오자마자 “김경리, 날 살려주십시오.” 하고 땅바닥에 털썩 꿇어앉았다. “자네 뭔가? 광고제작이나 잘할게지. 우리 인기모델을 짓밟다니? 그 죄 얼마나 큰지 아는가? 광고모델을 강간해? 진짜 우리 회사 기둥을 찍어버리는 짓이 아니고 뭔가?!” 뒤덜미를 긁적거리던 송철은 억울한듯이 상을 찡그리기까지 하면서 자기 발명을 했다. “아니, 강간이라니오? 당찮은 소립니다. 김경리…” “뭐라고? 밤중에 광고모델을 책상 우에 쓸어눕히고 강간하고서도 모자라서  음탕한 황색비디오까지 촬영해?! 선희가 다 고발했어. 그래도 떼질쓸텐가? 징역살이를 면할거 같애?! 흥!” 김범수 경리는 송철에게 날카로운 눈총을 쏘았다. 이전에 송철은 돈만 생기면 김경리와 리경리에게 코밑치성을 했다.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비누물처럼 매끌매끌하고 침처럼 짜릿짜릿한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안마청에 모시고 가서 아가씨들의 섬세한 봉사도 향수하게 하였다. 오늘 김범수 경리가 바위돌 같은 표정에 찌를 듯한 눈총으로 대할줄은 참말 뜻밖이다. 송철은 림기응변하는 수밖에 없었다. “경리, 저녁에 조용한데로 가서 얘기하면 어떻습니까? 헤헤헤.” 김경리는 대뜸 어조가 좀 누그러들었다. “사람이, 놀고 비디오촬영까지 하다니? 법률은 증거를 우선시한단 말이야. 꼬리 밟히면 입이 열개라도 안돼. 참, 어째 소보다도 더 우둔하오? 한심하오, 한심해. 자네 같은 놈하고 어디로 다니기도 겁나오.” 뒤이어 김경리는 아주 관심하는 말투로 바꾸어 말했다. “비디오테프는 강간한 증거로 될 수 있소. 그래 강간하지 않았다는 리유라도   있소?” 송철은 선희와는 달리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뻔뻔스레 자랑하듯이 늘여놓았다. “저 선희는 나그네 한국에 간 후 굶기는 굶었습디다. 간판광고를 제작할 때면 항상 내게 추파를 보내면서 오늘은 랭면이요, 래일은 개장이요 하면서 나꿉디다." “헛소리! 내 술을 마시러 가자고 해도 잘 가지 않던데 그럴 리야 있소? 분명 선희를 꼬였겠지.” 송철은 손사래까지 쳤다. “아니, 절대 아닙니다. 어느 날 밤중까지 간판광고에 쓸 모델사진을 찍을 땝니다. 초점을 맞출라 하면 선희가 나를 유혹하느라고 부래지어가 다 드러나게 와이셔츠를 들었다놨다하면서 적삼깃으로 부채질하는가 하면 허벅지가 다 드러나게 치마까지 들었다놨다 하지 않겠습니까?” “듣기도 싫소. 그래 강간했단 말이지?” “아닙니다. 난 정말 억울합니다. 기실 강간당한 건 냅니다. 나그네 없는 선희  고독을 가셔줬는데 강간당했다는 건 말도 안됩니다.” “닥쳐! 어데 가서 그런 말이나 해라. 창피한줄도 모르고. 나가! 보기도 싫어!” 송철은 울상을 지으면서 머리를 싸쥐고 땅바닥에 물앉았다. 그는 쓴 외를 씹은듯이 상을 찡그리면서 나가는 김경리를 보고 모든 것을 눈치챘다. 회사에서 쫓아내려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럼 그렇겠지. 먹은 소 똥을 눈다고. 흐흐흐.” 송철은 득의양양해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면서 뒤따라나갔다. 김경리는 원래 사람을 해치지 않는 좋은 사람이였다. 그는 이번에도 해연이나 송철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니깐 머리 아팠다. 성호는 선희가 그런 일을 쳐서 나오지 못하자 자기 학생 연화를 데려다가 광고모델로 촬영했다. “야~ 답답하다. 성호, 이런 일은 나하구 청시해야지. 제 눈엔 경리도 없소?” 성호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그래 언제까지 선희 나오길 기다리랍니까?” 김경리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마구 치면서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세웠다.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쓰는 문제는 나도 마구 주장하지 못하오. 상급에 물어봐야지. ” “아니, 그저 광고사진을 한번 찍는데 무슨 수속이 그렇게 복잡합니까? 이러고서야 광고를 언제 내겠습니까?” 성호도 물러서지 않고 도리를 따졌다. “글쎄 사전에 청시하지 않은 건 잘못입니다. 김경리는 항상 광고주는 우리 황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술공장의 광고주 공장장은 하루 빨리 광고를 내달라고 하는데 이렇게 꾸물거리고서야 좋아하겠습니까?” 김경리가 듣고보니 그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래, 그 처녀는 누구요?” “제가 실습할 때 녀학생 연화라고 하는데 예술학원 무용학부를 졸업했습니다.” “인물체격은 괜찮은 것 같습데.” “예. 물찬 제비 같은데다 춤도 아주 수준급입니다.” “알았소. 선희 나오기 전에 림시로 광고모델로 쓰오.” “예, 고맙습니다.” 한편 송철은 김경리한테 조사를 받은 후 코노래를 부르면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참말 인간관계도 생산력이란 말이 맞아. 평소에 김경리를 잘 대접하면서 구슬려놓았더니 회사에서 쫓겨날 근심은 할 필요없을 거 같군. 이제 해연을 얼렁뚱땅  얼려넘기고 선희가 더 떠들지 않게 만들어야지. 영철이, 그 새끼 참 교활해.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만히 자기 술에 기여든 바람에 일이 생긴  거야. 선희도 까근한 것 같은데 흥분되면 술덤벙물덤벙이란 말이야. 우리 둘이 극비밀리에 두고 보다가 무덤에 가지고 가야 할 테프를 어찌 아무데나 놔둔단 말인가? 김경리가 뭘 그리 대단해서 겁을 집어먹고 날 강간했다고 물어먹어? 어제 금방 다방에서 절대 승인하지 말자고 공수동맹을 맺아가지고 다 불어댄단 말이야.) 그는 집 층계를 올라가면서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래, 선희야, 네 말대로 강간이라 하자. 내가 1년 반이나 강간할 때 넌 어째 공안기관에 신고하지 않았어? 화냥년. 네년이 조과장과 승호한테 찰싹 들어붙어서 좋아한 걸 모르는가 해? 어디 두고보자.) 송철은 착잡한 생각을 굴리면서 자물쇠를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까지 해연이 어디로 갔는지 오지 않았다. 그는 단위 김경리와 금방 부딪쳤으니 빨리 해연과도 부딪쳐보고 될대로 되라고 팔편잠을 자고 싶었다. “아니, 이년이 어떻게 된 판이냐? 혹시 자살하면 어쩌지?” 송철은 황급히 해연의 핸드폰을 쳤다. 허나 핸드폰마저 꺼져버렸다. 그는 부랴부랴 해연을 찾아나가 허둥지둥 택시를 잡아탔다. 그의 로파심과는 달리 쾌활한 성격을 가진 해연은 자살까지 할 녀성은 같지 않았다. 전날까지 “모르면 약”이라던 그녀가 아닌가? 해연은 정작 송철이 다른 녀성과, 그것도 다른 녀성도 아니고 한 단위의 선희와 미친듯이 지랄발광한 것을 알고 참을래야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악이 딱딱 치밀어올라 걀쭉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눈초리마저 약간 쳐들려 바르르 떨렸다. 머루알처럼 초롱초롱한 깜장눈에 불꽃이 막 튕겼다. 뒤이어 태양혈이 쿵쿵 떡메질하는 것 같아 길바닥에 까무러치고 말았다. 광고 때문에 술공장으로 가던 성호가 길바닥에 쓰러진 해연을 발견하고 숱한 사람들 속을 비집고 들어가 안아 일으킨 다음 택시를 불러 병원에 황급히 호송해갔다. 정신타격을 받은 해연에게 무슨 약이 필요했겠는가. 한참 병원 복도의자에서 성호의 어깨에 기대 눈을 딱 감고 앉아 있다가 해연은 좀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전날에 “모르면 약”이라고 한 자기 말이 아주 엄청나게 틀렸다는 것을 가슴 아프게 느끼기 시작했다. “어쩜 개 같은 놈이 선희를 데리고 놀았어? 그런줄도 모르고 이 멍청이는 간판광고에 잘 나가라고 한복까지 빌려줘 입히고 화장까지 해줬어. 어이구, 원통해라. 분해라.” 해연은 머리를 마구 주먹으로 마구 쳐댔다. 그러자 성호가 옆에서 말렸다. 해연은 격분해 치를 떨었다. “고 능청스런 년이 어제 남이 바람을 쓴 얘기를 하는 거 봐라. 검정개 돼지 흉을 본 게지.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한두번은 량해하겠다고 했다고 날보고 ‘한번두 아니고 두번씩이나 용서해? 남자라면 언니 같은 녀자와 살았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어?’ 하고 비웃었어.아이고, 원통해라. 그년을 절대 용서하지 못해. 더러운 개쌍년, 화냥년!” 해연은 성호의 팔을 뿌리치고 와닥닥 일어났다. 성호는 해연을 붙잡아  걸상에 앉히고나서 마음을 풀어주려고 애썼다. “해연이, 참소. 어제 술상에서 말했다는 것처럼 신랑과 선희를 용서하오.” “닥치지 못해? 어째, 너도 날 비웃는 거냐? 너한테 헌신짝처럼 채운 계집이라고?” 해연의 눈에서는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그녀는 발까지 탕탕 구르면서 갈범같이 온 복도가 다 쩌렁쩌렁 울리게 고함쳤다. 그러자 의사들과 간호원들 그리고 환자들마저 웬 일인가고 이쪽에 눈길을 모았다. 해연은 성호의 팔을 뿌리치고 씩씩거리면서 병원 복도를 빠져나갔다. 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뿐 더 말리지 못하고 그저 두 팔을 벌리면서 어깨를 으쓱하였다.  해연은 분이 상투밑까지 치밀어올라 곧추 선희의 핸드폰을 쳤다. 그러나 핸드폰을 끄지 않고서도 받지 않았다. “개 같은 년, 네년을 찾지 못할거 같애. 오늘 생사결판을 내보자.” 해연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물새다리같이 가늘고 긴 다리를 놀려 선희네 집을 향해 살같이 달아갔다. 성이 꼭뒤까지 치민 그녀는 선희 머리를 몽땅 뽑아놓으려고 윽윽 별렀다. 혼자 힘으로는 안될것 같아 핸드폰을 꺼냈다가 그만두었다. (괜히 오빠랑 그년을 쳐죽이기라도 하면 큰 일이야.) 그녀가 선희네 집 층계로 올라가는데 집 안에서 옥식각신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옳지. 잘한다, 잘해.” 해연은 주먹으로 선희네 집문을 쾅쾅쾅 두드렸다. 집 안에서 싸우는 소리가 멎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뜻밖에 영철이 머리를 쑥 내밀고 누군가 내다보는 것이였다. “우린 둘 다 피해자예요. 선희를 봅시다.” 영철은 문도 닫지 않고 씽- 집 안으로 들어갔다. 드디여 선희 머리채를 잡아 문 밖으로 내동댕이치더니 문을 쾅 닫아버렸다. “나가! 릉지처참해도 원쑤를 다 갚지 못해!” 해연은 표독스런 포도알눈으로 선희를 쏘아보면서 입에서 불뱀을 토했다. “이 화냥년아, 아무리 남자 게걸이 들어도 그렇지. 어쩜 남의 나그네를 2년이나 데리고 살아? 너 대학교 때도 이것 저것 맛을 봤다더니 그 개버릇 개를 떼주겠니?” 선희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욕만 먹어주었다. 그녀는 속으로 이게 어제까지도 모르면 약이라던 해연인가 의심했다. “언니, 어제 말한것처럼 너그러운 어머니가 철부지 딸을 량해하듯이 량해해.” “량해? 이 개쌍년아, 아유~ 정말 기를 톡톡 채워죽이는구나.” 해연은 어깨 넘는 선희 긴 머리를 마구 뜯어놓으면서 야단쳤다. 온 동네가 떠들썩한 소리에 놀라 여기저기서 문을 벌컥벌컥 열고 구경하다가 혀를 끌끌 찼다. “어마나, 저렇게 얌전하고 온천한 각시도 밑구멍으로 호박씨를 까오. 양?” “여자는 겉만 봐선 모르오.” “반반한 인물값을 하느라고 그러겠지.” “저 집에 드나드는 사내들이 어디 한둘이오?” “쯧쯧쯧, 맞아 싸오, 싸.” 해연과 선희는 뒤엉켜 서로 머리를 잡아뜯으면서 황소들처럼 싸웠다. 이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영철이 씽- 달려나왔다. 그는 독수리가 병아리 채가듯이 선희를 홱 나꿔채 집 안에 끌어들여갔다. 집 안에서는 벽인지 땅바닥인지 쿵쿵 울렸고 숨이 넘어가는 듯한 선희의 비명이 들렸다. 해연은 깨고소해하며 줄욕을 한바탕 퍼붓고 층계를 내려갔다. “네년은 나그네한테 맞아죽어도 싸다, 싸!”  속이 좀 풀린 해연은 그 길로 음식점에 가서 개장국까지 실컷 먹고 단위에 나갔다. 그런데 단위에 승호가 웬 녀성을 데리고 경리실로 들어가는 것이였다. 사실 송철과 선희가 일을 쳐서 나오지 못하는 기회를 빌어 승호는 백화상점 출납을 하다가 절도죄로 밀려나온 춘란을 광고회사에 받아달라고 김경리한테 청을 들었던 것이다. (개자식들, 남의 집에 불 난 틈에 도적질해? 성호는 선희년 대신 자기 녀학생을 모델로 쓰고 네놈은 나를 차내고 자기 정부를 데려오려고? 흥! 네놈새끼 조 경리랑 선희랑 붙어다닌 걸 모르는가 해? 네놈새끼를 그저…) 그녀는 승호가 괘씸했지만 그 일을 입에 번질 수 없었다. 하긴 그녀도 선희와 함께 조과장을 따라 술을 처먹고 지랄발광하지 않았던가? 오후 1시 반만에 해연의 사무실에 일남일녀가 조용히 들어섰다. “해연이 있는가요?” “예, 전데요. 광고하러 왔습니까?” 일남일녀는 아무 말도 없이 스적스적 해연의 옆에 다가오더니 불시에 달려들었다. 남성은 해연의 두 팔을 뒤로 비탈아쥐고 머리를 마구 끄당겼다. 녀성은 낫날만큼 무시무시하게 큰 가위로 해연의 머리카락을 썩뚝썩뚝 잘랐다. “사람 살려요!” 청천벽력 같이 생긴 사변에 성호가 제일 먼저 뛰여왔다. 그는 낯선 남성을 뜯어 말리면서 소리쳤다. “왜 남의 사무실에 와서 이럽니까?” “삐치지 마십시오. 이년이 내 녀동생을 때려 코뼈가 다 절골됐습니다.” 남성의 눈에서는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말리지 마십시오. 우리 선희는 나그네한테 맞아서 반주검이 됐어요.” 녀성도 가위를 휘두르면서 행악질을 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녀성은 선희의 언니라고 했다. 선희 언니도 선희보다 못지 않게 예쁘게 생겼지만 아주 악마처럼 악을 썼다. 선희 오빠와 언니는 단말마적으로 덮쳐들어 해연을 피못이 되게 만들었다. 성호와 승호가 말렸으니 말이지 하마트면 맞아죽을번했다. 해연은 비록 맞아죽지는 않았지만 머리마저 썩뚝썩뚝 잘리여 꼴불견이였다. 승호은 황급히 송철한테 핸드폰을 쳤다. 선희의 언니와 오빠는 그때까지도 해연을 놓아주지 않고 잡아뜯고 치고 박았다. “어느 년놈들이냐?” 고함소리와 함께 송철이 동생과 처남 둘을 데리고 뛰여들어왔다. “야- 개새끼들아!” 사무실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쑤들처럼 혈투를 벌리는 남녀들로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김범수 경리와 굉팔마저 달려와서 말렸지만 피를 말리는 황소싸움과 같아 좀처럼 뜯어말릴 수 없었다. 결국 해연을 때린 선희의 언니와 오빠는 반주검이 되게 얻어맞고 말았다. 송철네 패거리들은 눈에 쌍불을 켜고 땅바닥에 쓰러져 벌벌 기는 선희 오빠와 언니한테 물매를 안겼다. 성호는 황급히 파출소에 전화를 쳤다. 이윽고 경찰들이 달려와 송철네 패거리와  선희내 패거리를 몽땅 파출소에 련행해서야 비참한 혈투가 끝났다. 해연은 머리카락을 뭉텅뭉텅 잘리운데다가 얼굴을 뜯기워 피투성이 되고 말았다. 진짜 딱 귀신같이 돼버렸다. 기실 이번 희비극에서 혼나야 할 장본인들은 송철과 선희였다. 해연은 이 돌개바람의 피해녀였다. 그녀는 송철과 선희에게 당한 것만 해도 분통이 터지는데 복수하다가 육체적인 상처도 처참하게 입고 말았다. 실로 마음의 상처에 소금을 맞은 격이였다. 그녀는 책상에 엎드려 섧게 울고 또 울었다. 참말 그녀의 운명은 왜 이다지도 쓸쓸하고 기구한지?                                                53. 세상에 참사랑이 있는가요?        광고회사에서는 작풍이 단정하지 못한 송철과 선희를 제명해버렸다. 리유라면 그런 바람쟁이들을 단위에 두면 회사의 명성이 더럽혀지고 광고주들 속에서 회사의 신임도가 낮아져 광고수입에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김범수 경리는 평소에 송철한테서 술이나 얻어마셨지만 그를 제명하지 않으면 직원들을 단속하기 어려웠다. 그는 해연은 피해녀이기에 남겨두기로 하고 승호가 소개한 춘란은 감옥살이를 한 적이  있었기에 받지 않기로 했다.  그 일로 해 승호는 김범수 경리를 찾아가 한바탕 해냈다. “아니, 받지 않겠으면 아예 받지 않겠다고 말할 거지. 그게 뭡니까? 받을 상해   술상까지 차리게 해놓고. 중간에서 소개한 사람이 얼마나 난처합니까?” 김경리는 승호를 다른 안광으로 보았다. “절도죄를 범한 녀자를 소개하다니? 정신 있소? 오히려 제쪽에서 행악질이요?” 승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휑하니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김범수 경리는 해연에게 한 둬달 쉬면서 얼굴의 상처를 치료도 하고 미용도 하라고 휴가를 내주었다. 김범수 경리는 성호를 보고 연화라는 대학졸업생을 데려오라고 해 면담한 후 인차 수속해 해연의 자리에 앉혔다. 기실 해연도 얼굴의 흉터로 해 창피해 회사에 나오기 싫었다. 역기로 소문난 해연은 단위 형편이 돌아가는 눈치를 채고 속이 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며칠 후 영철과 선희는 끝내 리혼하고 말았다. 선희는 집을 팔아 나눠가진 돈 10만원에 저금한 돈까지 찾아가지고 어디론가 바람결처럼 가뭇없이 사라졌다.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고 뜻밖에 직업을 떼운 송철은 단위에 찾아가 행악질을 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송철은 원래 중앙음악학원을 졸업하고 수도 북경 모 가무단에 배치받은   가수다. 해연에게는 고중 죽마고우, 동창생이자 첫사랑이다. 해연이 대학에 가지 못하자 송철은 한동안 망설이였다. 그때 해연은 송철한테 경고하려고 성호한테 련애를  걸었고 얼굴이 따가운 것도 마다하고 성호의 아버지를 찾아가 “이 집 며느리 되면 어떤가요?” 하고 당돌하게 나선 적도  있었다. 나중에 송철은 맞갖은 대상이 없어 끝내 그녀와 결혼하였다. 그는 해연을 북경에 전근시키기 어렵게 되자 아예 고향에 돌아와 사진관이나 경영하면서 살았다. 후에  광고회사 규모가 확대되면서 해연의 소개로 광고제작실 주임으로 들어왔다. 그는 해연과 결혼해 아들 문호를 낳았지만 술만 마시면 늘 해연 때문에 골안으로 돌아와 가수 꿈을 망쳤다고 술주정을 부렸다. 그는 평소에도 틀을 차리면서 아무 가무 일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점심에도 해연이 집에 돌아가 밥상을 다 차려줘야 숟가락을 드는 그런 대남자주의 남편이다. 남편한테서 항상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사는 해연은 답답하면 재무실에 드나드는 사람이 없으면 담배까지 피웠다. 또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조과장과 승호를 따라다니면서 술도 퍼마셨다. 그녀는 송철이 선희와 좋아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충격이 컸다. 그녀는 너무나도 절망에 빠져 병원에 가서 상처를 대충 처치하고 아예 집에 돌아가지 않고 아는 의사를 통해 입원수속하고 병실에 들어 누어 있었다. 그녀는 병실의 침대에 누워 천정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자기를 배신한 송철이 역겨웠고 염오스러웠다. 또 자기를 짓밟은 선희가 괘씸해났다. 구치소에 들어간 오빠와 남동생이 근심스러웠고 병원까지 찾아와 엉엉 울던 나어린 문호가 불쌍했다. 그녀는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사랑의 무덤에서, 천길나락 같은 고통의 심연에서 헤여나올 길이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영영 보지 않았으면 좋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들애 문호가 불쌍해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녀의 눈 앞에는 어제 병원에까지 찾아와 품에 안기면서 “어머니!” 하고 부르며 엉엉 울던 문호의 불쌍한 모습이 삼삼해 눈물로 두 볼을 적셨다. 그렇다고 아들애를 보고 배신한 송철과 살 멋도 꼬물만치도 없었다. (결혼은 실로 사랑의 무덤인가? 한 고향 죽마고우로서 맹세하며 맺은 해연과 송철의 사랑에도 금이 실린단 말인가?) 해연은 지금도 출렁이며 흐르는 가야하강변 버드나무숲  속에서 자기를 끌어안고 영원히 변치 않고 사랑하겠다던 송철의 맹세소리가 귀에 쟁쟁 했다. 그녀는 송철의 음식재촉과 잔소리에 귀못이 박혔고 습관돼 벌벌 기다 싶이 해왔다. 이제껏 남편과 아들에게 진지한 사랑과 정성을 고스란히 바쳤다. 참말로 그녀는 현시대  현처량모였다. 송철은 저렬한 애인바람에 물젖어 안해를 배신하고 선희와 추잡한 인간희극을 놀았다. “진짜 량심도 없는 놈, 배은망덕한 놈, 네놈은 꼭 좋은 끝장 없어!” 그녀는 온종일 송철을 욕하다가도 땅이 꺼지게 한숨을 풀풀 쉬며 착잡한 생각에 잠기군 하였다. 며칠 후 송철은 구치소에서 나오자마자 그 길로 수소문해 병실에 찾아왔다. 해연은 송철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벽쪽으로 돌아누웠다. 한참 후 해연은 조용히 일어나 뭉청뭉청 잘린 머리를 감추려고 간호원의 흰 모자를 빌려쓰고 밖으로 나갔다. 송철도 뒤따라나갔다. 열살도 안되는 문호도 아빠 엄마 꼬리를 따라나왔다. 병원 울 안에는 배꽃이 하얗게 떨어져 널려 회오리바람에 쓰레기와 함께 여기저기 휩쓸려 다녔다. 진짜 그녀의 상처 입은 사랑의 흔적이 마구 나딩구는 것만 같았다. 해연은 정기를 잃은 이슬맺힌 눈으로 송철을 쏘아보면서 날카롭게 물었다. “당신, 무슨 짓을 했어요? 량심은 개를 떼주었는가요? 하늘이 무섭지도 않는가?” 송철은 틀을 차리던 이전 남편의 모습을 꼬물만치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해연이, 우리 죽마고우 첫사랑을 생각해서라도 하번만 용서해주오. 우리 문호를 봐서라도…” “닥치지 못해?!” 찰싹! 해연은 송철의 철면피한 낯짝을 한대 갈겼다. “너도 사람이냐? 네편네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서도 재미 좋지?! 엉?!” 송철은 몸둘바를 몰랐다. “엄마~ 싸우지 말라~ 어엉~ 엉엉~” 문호가 울면서 어머니 다리를 부여잡고 흔들었다. 해연은 흐린 가을하늘을 쳐다보다가 문호를 붙안고 서럽게 울었다. 그때라고 송철은 빌어댔다. “통쾌하게 때리오. 분만 풀린다면. 대신 문호를 봐서라도 한번만 기회를 주오.” 해연은 배신당해 서러웠고 송철과의 첫사랑이 깨져 가슴이 아팠다. 선희한테 짓밟힌 것이 분했고 이 돌개바람에 가정이 산산히 날려간 것이 안타까웠다. 그녀는 자기 다리를 붙안고 엉엉 우는 아들애를 붙안고 구슬피 울었다. 병원 울 안에 산보하러 나왔던 숱한 환자들의 의아한 눈길이 그들 셋에게 쏠렸다. 해연은 창피해서 그쯤 해서 그만두었다. 한달 후 해연은 흉터가 아물자 병원에서 나갔다. 그녀는 바람쟁이 남편이 들어있는 집으로 다시는 돌아가기 싫어 누구도 몰래 호텔에 가서 독방을 차지하고 들었다. 그녀는 문호만 없으면 아예 먼 화산이나 무당산에 가서 녀보살이라도 되고 싶었다. 악귀 같은 색마들의 더럽고 세찬 돌개바람에 휘말려 해연과 영철의 두 가정이 풍비박산났다. 해연은 정신상 육체상 심한 타격을 받은 나머지 첫사랑이고 뭐고 다 생각할 겨를이 없게 됐다. 그녀는 이 세상이 싫어 조용히 호텔 독방에 한달이고 두달이고 누워있고 싶었다. 밤 9시쯤 되였을 때다. 핸드폰 벨이 울렸다. 받지 않고 꺼버리려는데 김범수 경리의 핸드폰 번호가 눈에 띄였다. “해연이, 그간 심신고통이 좀 나아졌소?” “…” “해연이, 오해하지 마오. 연화라는 대학졸업생은 예술학원 무용학부 출신인데 인물도 괜찮아 모델로 쓸만한 것 같습데. 저도 나오지 않지. 선희도 나갔지. 우리 회사가 이게 뭐요?” “저와 무슨 상관인가요? 내 자리에 연화라는 이쁜 대학생을 들여앉혔으면 됐지.  전화 끊으세요.” “가만, 가만! 왜 남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이러오?” 해연은 마지못해 핸드폰을 끊지 않았다. “해연이, 너무 외나무다리를  걸으면서 좁게 생각하지 마오. 인생에 어찌 좌절이 없겠소? 우린 그 좌절을 의지력으로 삼아 용감히 만난을 이겨나가야 하오. 송철이, 이젠 직업도 없는 그 자식을 널리 량해하오.” 해연은 쓴 웃음이 쏟아져나왔다. “그 색마가 화해하라던가요? 끊어요. 제 앞에서 다신 그 더러운 놈을 외우지도  마세요.” “해연이, 우리 만나 얘기할가? 자꾸 전화를 끊자고 해서 어디 제대로 말하겠소? 지금 어디 있소? 고통스럽고 적적할 땐 말동무라도 있으면 좋지 않고 뭐요?” “전 혼자 조용히 있고 파요.” “해연이, 세상에 어찌 외나무다리 같은 사랑만 있겠소? 송철이, 그 량심 없는 놈을 내놓고 해연을 사랑하는 남자가 어째 없겠소? 들을라니 제 집체호에 갔을 때 성호를 따랐다던데…” “그만해요.” “비록 한가마 밥을 먹지 못할지라도 말이요.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많던데. 말하자면 조홍수 과장이나 승호나 굉팔이나 다 좋은 술친구 아니고 뭐요? 그런데 유감스러운 건 해연이나 선희나 나를 찾은 적은 없단 말이요? 너무 녀직원들의 생활을 관심해주지 않아서 미안하오…” 금방 미친듯이 불어치던 돌개바람이 잠잠해질가 하는데 김경리가 또 새 돌개바람을 일굴 예산인가. “해연이, 송철한테 당한 봉창을 해보지 않겠소? 남편이 바람을 피울 때 그 불을 끄자면 맞불을 피우는 것이 제일이요. 기실 해연은 선희한테 한 주먹 안겼지만 이번 사건의 주범은 송철이오. 그 더러운 자식은 지금도 빈둥거리면서 또 새로운 사냥물을 노린단 말이요.” “어쩌겠단 말인가요?” “해연이, 어째 해연을 생각하는 내 살뜰한 마음을 그렇게도 모르오? 내 어째 고중생인 저한테 출납원을 시켰소? 우리 조용히 만나서 얘기할가?” “쳇!” 해연은 더 들어내려갈 수 없어 핸드폰을 꺼버렸다. 적막한 밤은 깊어가고 그녀의 머리 속에는 끝없는 의문부호가 맴돌아쳤다. “세상의 사내들이란 다 저렇게 속이 씨꺼먼가? 기회만 있으면 더러운 욕정이나 채우려고 미쳐날뛰는 색마들인가? 이 놈 세상에 정말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참사랑이 없단 말인가? 가정이란 참말로 애정의 무덤인가? 결혼만 하면 몇해 지나지 않아 사랑은 향기를 잃고 끝나는 것인가?” 그녀는 중얼거리면서 일어나 창문으로 을씨년스럽고 흐리터분한 가을하늘을 내다보았다. 이 밤에 구질구질 내리는 가을비는 창문에 슬픔을 뿌리고 갔다. 쓰라린 슬픔이 가을비물로 흩어져 줄줄 흘러내리며 그녀를 흐느끼게 했다. 그녀는 가을비가 흩날리는 어두운 창 밖을 내다보면서 상념에 빠졌다. 순간 숱한 대문짝 같은 의문부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허위로 포장된 가정을 해 뭘 하는가? 부부란 결혼해 아이를 낳고 부모를 모시고 또 서로 눈치를 보면서 “성자유”를 단속하는 대상인가? 짜릿한 혼외련을 하려고 가정까지 버려야 하는가? 사랑과 가정, 어느 걸 선택해야 하는가? 사랑을 위해 가정을 버려야 하는가? 가정을 위해, 문호를 생각해 참사랑을 찾지 말아야 하는가? 가정도 참사랑도 다 지킬 수 있는 그런 사랑의 오아시스와 같은 가정을 정말 이 세상에선 차릴 수 없단 말인가? 참말 사람이란 딱 원시적인 군혼 때처럼 동물적인 “성해방”을 하고 이것저것 여럿과 살을 섞어봐야 만족을 가질 수 있고 행복한 건가? …)      그녀는 량볼에 쓰라린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호~ 토해냈다.      “아, 이 세상에 참말로 백년해로 할 참사랑이 없단 말인가?”  
213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27) 댓글:  조회:1221  추천:0  2019-05-03
                              50. 한 기자의 일기        여우도 추워서 눈물을 흘리는 맵짠 엄동설한이였다. 하늘도 땅도 천지 만물도 몽땅 꽁꽁 얼어붙어 입을 꼭 다물고 까딱 움직이지 않는다.         종수는 일요일에 취재가방을 메고 바닥에 내려가 신을 신었다.        “또 어디로 가요? 쉬는 날이면 좀 구들이랑 닦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려평이 또 잔소리를 늘여놓는다.       “삼도만에 갔다와야겠소.”       “그 두메산골엔 왜 가?” “토비숙청 력사자료를 취재해야겠소.” “아이고, 지금 우리 집과 삼도만토비 무슨 관계 있나요? 왜 쓸데없는데 관심이 그리 많은가요? 가정은 내버려두고 그런 거 취재해 뭐 해요?” “지금 취재해두지 않으면 우리 조선족들이 피를 흘려 중국혁명에 한 공훈이  사라지게 되오.” 류려평은 혀를 끌끌 찼다. “우리 집에 명기자가 나타나겠군요. 어쩜, 쯧쯧쯧.” 어머니가 보다못해 한마디 핀잔을 주었다. “길 떠나는 사람한테 무슨 말이 그리 많소?” “어머닌 왜 아들편만 듭니까? 저 나그네 장판 한번 닦 은적이 있습니까?” “내 닦을게.” 어머니가 걸레를 찾아들고 나섰다. “어머니를 닦으랍니까? 저 나그네를 시켰는데.” 또 시작이다. 종수는 려평의 잔소리가 딱 질색이다. 그는 아무 말대꾸도 하지 않고 바깥으로 훌 나갔다. 뒤에서는 려평의 잔소리를 반주해 딸애 영희의 목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아빠, 돌아올 때 맛있는 과자 사주세요.” “오- 그래.” 종수는 고중 밖에 다니지 못한 려평이 자기 사업을 리해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맨 소식보도나 인물통신이나 쓰기보다 중국혁명력사에 한 조선민족의 력사적공훈을 보여줄수 있는 력사자료와 조선족이민사들을 발굴하고 취재하는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먼저 정부 서류국에 가서 문사자료를 찾아본 뒤 삼도만으로 취재하러 떠났다. 가는 길에서 우연히 성호를 만났다. “이 추운데 어디로 가니?” “삼도만으로 취재하러 가.” “오- 그래? 내 아버지도 삼도만토비숙청전투에 참가했어.” 종수는 반색했다. “잘 됐어. 너 무슨 다른 일 없으면 함께 너네 집으로 가자.” “아니. 우리 아버진 지금 중풍에 걸려서 말도 온전히 못해.” “뭐라구? 그럼 병문안이라도 가야지.” “그만둬라.” 성호는 종수를 말리면서 좋은 생각을 내놓았다. “이전에 아버지한테서 삼도만토비숙청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정리해둔게 있다. 언제 가져다 줄게.” “좋다.” 종수는 기자의 직업병처럼 성호 팔소매를 잡고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었다. “광고회사에 잘 갔어. 돈 많이 벌었지?’ 성호는 “뭐 별로 번게 없어.” 하고 떠나려고 했다. “은영을 찾아가 보았어?” “걔가 어디 있어?” 성호는 오토바이를 길 옆에 세워놓았다. “소식이 령통하지? 걘 지금 시검찰원에 왔어.” “그래? 정신이 괜찮더냐?” “응. 고의로 정신이 나간 척한 거 같아. 복수하려는 일념에서 연극을 논게지.”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걘 시검찰원에 전근했더라.” 성호는 종수의 말에 희죽이 웃었다. “그래? 잘 됐구나.” “건데 이름을 고쳤더라.” 성호는 어안이 벙벙했다. “최혜영.” “오- 최혜영검사! 참 그럴듯하구나.” 종수는 허구픈 웃음을 짓더니 흩날리는 눈발 속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질풍같이 사라지는 성호의 뒤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하늘에서는 밀가루 같은 눈가루가 푸실푸실 흩날렸다. (요만한 눈에야 뻐스가 통하겠지.) 종수는 전쟁년대 종군기자나 된 듯한 기분에 휩싸여 찌뿌둥한 날씨도 무릅쓰고 취재길에 나섰다. (우리 민족의 력사자료를 정리하는 건 우리 기자들의 신성한 사명이야.) 뻐스정류소에 가보니 다행히 삼도만으로 뻐스가 통했다. 하루에 오전과 오후 두번 통했다. 그는 뻐스를 타고 굽이굽이 산골짜기를 따라 덜커덩거리면서 150여리를 달려  점심이 다 돼서야 삼도만에 난생처음 도착했다. 점심을 먹을 새도 없이 삼도만향인민정부에 들어가 기자증을 보이고 취재의향을 말했다. 향정부 책임자는 문화소에 데리고 가서 소개해주고나서 취재를 협조해주라고 분부했다. 문화소의 한족책임자는 종수를 데리고 삼도만향 소재지에 있는 한 마구간에 찾아가서 작두로 말먹이를 썰고 있는 한 한족로인을 소개해주었다. 그는 종수를 가리키면서 “이분은 신문사 기자네. 삼도만토비숙청전투에 대해 좀 자세히 얘기해주게나.” 하고 분부했다. 한족로인은 개털모자까지 벗어쥐고 “예, 예. 제가 아는만큼 얘기하죠.”라고 공손히 대답하면서 종수를 흘끔 쳐다보았다. 로인의 이마에서는 어찌나 땀이 뻘뻘 흘렀는지 김이 실실이 피여올랐다. 문화소 책임자가 가자 종수는 무릎을 꿇고 작두로 말먹이를 써는 한족로인한테 물었다. “먼저 토비정황에 대해 말해주겠습니까?” “토비? 누가 토비란 말이오?” 로인은 귀찮은듯이 입에 빗장을 지르고 한손으로 작두를 누르고 한손으로 벼짚을 먹이면서 말먹이만 썩썩 썰었다. (일이 바빠 죽겠는데 무슨 놈의 취재야? 이거 아닌가?) 종수는 취재할 때 취재대상을 봐가지고 취재예술을 발휘해야 한다던 김택수 주임의 가르침이 문뜩 떠올랐다. 그는 좀 특수한 취재대상을 만난 것을 보고 필기장과 원주필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손에 침을 뱉어 썩썩 비비더니 작두를 꾹꾹 딛여 말먹이를 썩썩 썰어주었다. 한식경이나 일해도 로인은 벼짚을 작두날 밑에 먹이면서도 좀처럼 입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와주면서 감동시키면 언젠가는 입을 열겠지.) 종수도 온 오전 로인을 도와 말먹이만 썰었다. 작두 옆에 썰어놓은 말먹이가 너무 많이 쌓이자 그는 두말 없이 말먹이를 안아다 말먹이창고에 날라들여갔다. 점심 때가 지난 후에야 로인은 땀을 뻘뻘 흘리는 종수를 보고 끝내 입에 찔렀던 빗장을 뽑았다. “여보게, 기자선생, 말먹이만 썰고 돌아갈순 없잖는가. 점심 때도 다 됐으니까.  간단히 말해주지.” 종수는 가죽모자를 벗어쥐고 땀을 쓱 닦고나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먼지가 가득 들어간 호주머니에서 필기장과 원주필을 꺼냈다. 로인은 그를 데리고 사양실에 들어가 앉았다. “기실 그때 대부분 토비들은 국민당 놈들의 반공선전과 민족리간질에 미혹된 일부 한족백성들이였네. 그래서 우리 마을 일부 한족들은 ‘토비’라는 말만 하면 좋아하지 않네.” 종수는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국민당들이 뭐라고 반공선전과 민족리간질을 했습니까?” 로인은 담배물주리를 입에 물더니 뻑뻑 빨며 회상에 잠기더니 천천히 뒤말을 이었다. “그게 그러니깐. 일제가 항복한 후 우리 여기 삼도만에 국민당 전소흥이란 소교가 기여들었네. 그 자는 우리 한족백성들을 보고 이렇게 선동했지. ‘지금 팔도와 연길, 명월구에 중공이 령도하는 조선족빨갱이군대가 욱실거리고 있네. 그들은 우리 한족들을 쳐죽이려고 군사훈련을 하고 있어. 우리 한족들도 총을 들고 우리 한족마을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이 산골 한족백성들은 그 놈의 반공선전과 민족리간질에 속혀서 모두 마을을 지키려고 도망치는 일본 삼림경찰들을 도끼나 작두로 찍어죽이고 총을 빼앗아 무장했지. 우린 그때 저도 몰래 국민당 토비로 전락됐네.” “오- 그랬구만요. 그때 로인도 토비에 가담했댔습니까?” 로인은 담배물주리를 길게 빨아 연기와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뿜었다. “그랬지. 난 전소교의 문서질을 했네. 지금 보면 비서나 다름없었지.” 종수는 그제야 로인이 인차 입을 열지 못한 원인을 알 것 같았다. “당시 토비는 얼마나 됐습니까?” “처음에는 이 삼도만에 한 150여명 있었네. 그런데 전소흥 소교는 팔도에서 중공군이 쳐들어올 기미를 보이자 우리를 데리고 평강촌으로 도망쳤댔지.” “평강촌?” 로인은 머리를 끄덕였다. “여기서 얼마나 먼가요?” “한 30여리 되네.” “거기서 토비숙청전투가 벌어졌습니까?” “제1차 토비숙청전투는 평강촌에서 벌어졌댔구. 제2차 전투는 여기 삼도만에서 벌어졌네.” “그때 전투상황을 좀 얘기해줍소.” 로인은 깊은 회상에 잠기더니 천천히 얘기했다. “그때 명월구에서 김 지도원이 이끈 민주련군 담판단이 자동차에 앉아 령길을 넘어 우리 평강촌에 찾아왔네. 김지도원은 한개 반 전사들을 데리고 왔댔지. 그런데  담판단은 대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무장부터 해제당했네. 김지도원은 기 꺾이지 않고 전소교한테 투항하라고 권고했네. ‘지금 팔도와 연길, 명월구에 2천명도 넘는 우리 민주련군이 있다. 이제 민주련군이 삼도만을 쳐들어올 거야. 100여명 밖에 안되는 네놈들이 어찌 2000명도 넘는 우리 민주련군을 당할 수 있겠는가? 무기를 놓고 투항하는 것만이 살길이다.’ 전소교는 김 지도원과 다른 전사 둘을 평강촌 뒤 길 옆에 생매장했네. 김 지도원은 생매장당하면서도 전소교를 질책하면서 투항하라고 했고 ‘공산당 만세!’를 높이 웨쳤네. 나중에 전소교는 그와 두 전사의 목을 쳐 땅에 묻어버렸네.” 종수는 필기장에 적으면서 원주필이 떨려 바로 적지 못하고 비뚤비뚤 적었다. “그후 어떻게 됐습니까?” 로인은 담배물주리 담배재를 툭툭 털어버리더니 뒤이야기를 계속 했다. “지독한 전소교는 두 전사만 내놓고 한개 반 전사들을 몽땅 총살했네. 살아남은 두 전사의 옷을 몽땅 벗긴 후 ‘민주련군에 돌아가 우린 절대 투항하지 않는다는 걸 알려라.’고 했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두 전사는 실 한오리 걸치지 못한 채 엄동설한에 동상을 입으면서 눈덮인 산을 넘어 명월구에 돌아가 그대로 정황을 회보했지. 그 후 약 천명이나 되는 민주련군이 령길을 넘어 쳐들어왔지. 그런데 평강촌에 돌아가면서 세길도 넘는 통나무바자를 세우고 그  밑에 전호를 그물처럼 파놓아서 민주련군에게 대단히 불리했지. 토비들은 울바자밑 전호에 은페해 산에서 내려오는 민주련군을 향해 맹사격을 가했네. 민주련군은 숱한 사상자를 내고 철퇴했네.” 로인은 입을 열자 줄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기난 전보흥 소교는 토비들을 데리고 삼도만으로 되나갔지. 그때 돈화에서 민주련군에 쫓긴 마대포네 토비무리까지 삼도만에 찾아와 합세하다나니 토비는 200여명으로 불어났지. 그후 민주련군은 명월구와 팔도에서 량쪽으로 삼도만 토비들을 협공했어. 삼도만 강판에는 민주련군 전사들의 피로 뻘겋게 물들었네. 그러나 민주련군은 땅크까지  앞세우고 쳐들어왔어. 산골 안에서 그런 거물을  본적이 없는 토비들은 질겁했네. 아무리 총을 쏴도 땅크는 끄떡하지 않고 쳐들와 그 커다란 통나무대문을 꽝 깔아뭉갰지. 설상가상으로 산등성이에서 네대의 중기관총이 몰사격을 하는 바람에 토비들은 개인집으로 도망치지 않으면 뒤문을 빠져나와 평강촌을 바라고 도망쳤네. 그런데 공교롭게도 땅크가 그만 대문을 받쳐놓았던 통나무를 가로타고 올라가 오도 가도 못하고 빈 무한궤도만 돌아갔네. 그때 웃뚜껑이 열리면서 땅크 운전수가 나왔네. 토비들은 욱 몰려가 도끼로 땅크 운전수를 찍어 죽였지. 전소교는 마대포랑 20여명 토비를 데리고 평강촌에 도망쳤지. 그런데 만삭이 된 일본 안해를 보자 야수보다 더 지독한 전소교는 군도로 안해의 만삭이 된 배를 쩍 가르고 애를 꺼내 찔러죽인 후 안해마저 란도질해 죽여버렸네. 그후 그는 토비 잔여세력을 데리고 장춘으로 도망쳤던 거야.” 종수는 로인의 신변이 궁금해 물었다. 로인은 한참 궁리하다가 뒤말을 이었다. “난 전소교를 따라 돈화하구 길림을 거쳐 장춘으로 도망쳤댔네. 후에 장춘이 해방되면서 우리는 심양 쪽으로 도망쳤지. 그런데 심양도 함락되자 전소교는 우리를 데리고 국민당 패잔군을 따라 영구로 도망쳤네. 그들은 영구에서 군함을 타고 대만으로 도망치자고 했네. 난 삼도만에 부모를 두고 대만으로 도망칠 수 없어 삼도만으로 돌아와 자수했네.” 종수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개털모자 털 밑에 밭고랑 같은 주름이 잡인 그 토비출신 로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넨 로실하고 참 좋은 사람이야. 기자지만 틀이 없고 딱 농사군 같애. 그러찮으면 난 말하지 않았을 거야.” “맞습니다. 난 농민의 아들입니다.” “기자선생이 숱한 말먹이를 썰어주었는데 말해주지 않으면 량심에  걸릴 거 같더라구.” 종수는 그 로인과 갈라져 삼도만 초대소에 돌아가 점심을 먹었다. 이튿날 아침 하늘에서는 눈가루가 푸실푸실 흩날렸다. 그러나 평강촌에 김지도원이 묻힌 지점도 가보지도 않고 가렬처절했던 토비숙청전투를 쓴다는 것은 혁명선렬들한테 미안한 감이 들었다. 때마침 뻐스가 오는지라 종수는 무작정 삼도만에서 평강촌으로 가는 뻐스에 올라탔다. 한참 산골짜기에 난 길을 따라 구불구불 달리니 평강촌이 나타났다. 종수는 눈덮인 평강촌의 주위를 무심히 둘러볼 수 없었다. (김지도원이 어데 묻혔을가?) 그는 길 옆에서 한담하는 마을 한족사람들한테로 다가가면서 물었다. “난 신문사 기자인데 옛날 토비들이 김지도원을 생매장한 곳을 알려줄 수 없습니까?” 마을의 한족들은 아주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면서 아예 말도  건네지 않았다. 종수는 대뜸 삼도만 말먹이를 하던 토비출신 로인이 이 곳 일부 사람들은 토비 말을 하면 좋아하지 않는다던 말이 떠올랐다.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마을 뒤쪽 길 옆에 김지도원을 생매장했다던  그 말먹이를 하던 토비로인의 말이 피뜩 떠올랐다. 그는 마을 뒤쪽으로 가서 제일 마지막 집 앞에 있는 한족로인한테 용기를 내서 물었다. “옛날 민주련군 담판단 김지도원을 생매장한 일을 기억합니까?” 로인은 밭고랑처럼 패인 주름살에 내린 눈가루를 털면서 종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뒤쪽을 가리켰다. “저기 길 옆에 자그마한 골짜기가 있네. 그 어귀에 파묻었네.” “지금도 시체가 그 곳에 있습니까?” “아니, 민주련군이 파갔네.” 종수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그 로인을 따라 경건한 마음을 안고 북쪽으로  걸어갔다. 진짜 얼마 가지 않아 서쪽으로 뻗은 자그마한 골짜기 어귀에 평평한 곳이  있었다. 그 로인의 말대로라면 이 곳에서 김 지도원과 두 전사가 생매장당했다고 했다. 종수는 이 산골짜기 어귀를 무심히 보고 지나칠 수 없었다. 순간 그는 코마루가 찡해났다. 그는 그 곳에 풀썩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세번 올렸다. “김지도원님, 렬사님들, 우리는 영원히 중국혁명을 위해 희생된 렬사님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제야 그는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고 삼도만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점심 때가 퍽 지났지만 밥 얻어먹을 곳이 없었다. 두메산골에는 음식점도 상점도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이것 저것 마을을 돌면서 보충취재하느라고 오전에 돌아가는 뻐스마저 놓쳐버렸다. 하늘에서는 거위털 같은 눈이 펑펑 쏟아졌다. 그 함박눈 때문에 점심 때가 퍽 지났지만 오후뻐스가 통하지 않았다. 통나무실이를 하는 목재운송자동차도 보이지 않았다. 종수는 핍박에 의해 량산에 오르듯이 30여리 떨어진 삼도만으로 걸어서 돌아가기로 했다. “옛날 민주련군은 백여근씩 되는 무장과 쌀, 이불짐을 메고서도 행군하고 전투를 했어. 빈 몸에 30리를 걷지 못하겠는가.” 그는 비장한 결심을 내리고 삼도만을 바라고 무인지경 원시림 속 눈길을 걷기 시작했다. 흐린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하듯이 거위털 같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산골짜기 눈길을 걷기란 여간만 힘들지 않았다. 게다가 점심을 먹지 못해 시장기가 들어 입에서 겨뿔내가 나고 왼쪽 배가 쌀살해나기까지 했다. 부득불 길 옆의 눈을 한웅큼 한웅큼 입에 쥐여넣고 씹고 녹여 먹으면서 걷고 또  걸었다. 걷고 또  걸어도 무인지경인 산골짜기에는 삼도만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젠 해도 져서 사위가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여기저기 눈덮인 원시림에서 불티가 왔다갔다 하더니 승냥이 울음소리가 울렸다. (불시에 승냥이무리 뛰쳐나오면 어쩌지? 범에게 물려도 정신만 올똘히 챙기면 살아남을 수 있어.) 종수는 눈길 옆의 벼랑에서 주먹만큼한 돌멩이를 둬개 주어들고 혼자 마음 속으로 부르짖었다. (승냥이 덮쳐들면 생사결판을 내야지. 여기 쓰러지면 승냥이 밥이 되지 않으면 얼어 죽을 거야. 배고프고 힘들어도 절대 물앉지 말자. 서지 말고 이를 악물고 계속 한 걸음한 걸음  걸어나가야 해.) 그는 한참 걷다가도 또  속으로 부르짖었다. (옛날 삼도만토비숙청전투 때 민주련군 선렬들은 총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전쟁터에서도 돌격해나갔다. 지금 그래도 총탄은 날아오지 않잖는가.) 인적이 없는 무인지경의 원시림 속의 산골짜기 길을  걸으면서 몇번이고  속으로 되뇌였다. (꼭 살아서 삼도만에 가야 해. 삼도만토비숙청전투 력사자료를 정리해내야 해.) 그는 이를 악물고 걷고 또  걸었다. 밤중에야 산골짜기 저 멀리 전등불빛이 보였다. “살았어. 난 끝내 삼도만에 돌아왔어.” 종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살았다는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시장기가 들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계속 도정신해  걸었다. 삼도만 초대소에 도착한 그는 터벅터벅 자기 방에 힘겹게  걸어갔다. 복무원이 문을 두드리더니 들어와 “저녁을 들지 못하잖았습니까? 뭘 가져오랍니까?” 하고 물었다. 산골의 인심이 훈훈했다. 종수는 구들마루에 걸터앉아 간신히 신을 벗어버리면서 “뭘 했는지 둬 그릇 주십시오.”라고 했다. “칼면을 해서 가져오랍니까?” “예. 감사합니다.” 종수는 구들에 올라가자 이불 우에 쿵 쓰러졌다. 한참 후에 복무원이 문을 두드리더니 칼면을 두 사발이나 들여왔다. 장국도 한사발 들여오고. “잡숫고 곤하겠는데 그릇을 이대로 두고 쉬십시오.” “감사합니다.” 종수는 복무원이 나가자 칼면을 몇 저가락에 후루룩후루룩 게눈 감추듯 했다. 배고픈 김에 너무 급하게 칼면 두 사발에 장국 한사발을 훌딱 다 먹어버렸다. 그 바람에 음식에 취해 그는 밥상을 한쪽으로 밀어버리고는 내복을 입은채 이불 우에 푹 꼬꾸라지고 말았다.                            51. 련꽃의 눈물        거위털 같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을씨년스럽던 엄동설한도 봄아가씨가 사뿐사뿐 다가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비단결같이 부드러운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자 기승을 부리던 눈보라도 천천히 물러가고 만물이 소생하는 화창한 봄날이 서서히 찾아왔다. 성호가 사무실에서 나가려 할 때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예? 누굴 찾아요? 예.” 진희가 전화기를 들고 성호를 바라보았다. “리선생을 찾습니다.” 성호는 누굴가고 황급히 다가가 전화기를 들었다. “전화 바꿨습니다.” “안녕하세요? 전 연화입니다. 오래동안 찾아뵙지 못해 미안합니다.” “뭐? 연화?” 성호는 입귀를 비쭉하는 진희를 외면하면서 물었다. “지금 어데 있소?” “백화상점에서 공중전화를 치는데요.” “오, 알았소. 그럼 거기서 기다리요.” 성호는 전화기를 절컥 놓고 황급히 사무실에서 나가 오토바이를 타고 백화상점으로 달려갔다. (에이, 단위 일에 아버지 병간호에 바빠 죽겠는데. 또 무슨 일이 생겼는가?) 한달반 동안 실습할 때 녀학생이지만동정심이 많은 성호는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성호가 백화상점 대문어귀에 이르자 연화가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리선생님.” “대학은 졸업했겠지?” “예, 시내 중학교에 배치받았어요.” “오, 잘 됐소. 이게 몇년만이오? ” 성호는 연화의 손을 살짝 잡았다가 놓으면서 연화의  아래우를 쭉 훑었다. 연화는 진짜 이름처럼 련못의 아름다운 한떨기의 련꽃 같았다. 짧은 미색스카트치마를 입은 그녀의 우유빛얼굴이 퍽 매력적이였다. 그녀의 좀 수척해보이는 보름달얼굴에 쌍까풀눈만은 예전한데 어딘가 어두운 그림자가 흐르는 것 같았다. 짤막한 말똥떼쌍태머리는 온데간데 없고 시체를 따라 살짝 짧은 머리에 파마를 강굴강굴하게 지지지 않았겠는가. 요즘 파마를 지지고 다니는 것이 류행이였다.  시집간 색시인지 처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판이다. “가기오.” 성호는 연화를 데리고 조용한 다방으로 갔다. 희미한 전등불빛 아래 은은한 음악이 침묵 속에서 부드럽게 흐르는 다방에서 연화는 성호를 어색하게 마주 바라보았다. “선생님, 전 어쩜 좋아요?” 성호는 어두운 그림자가 쏜살같이 흘러가는 연화를 찬찬히 뜯어보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소?” 연화는 단통 성호한테 와락 안기면서 “실련했어요. 막 죽을 거 같아요.” 하고 고통을 호소했다. 성호는 연화의 첫마디를 듣는 순간부터 괴로워났다. 그는 연화의 잔등을 다독여주면서 “쳇, 실련 때문에 죽으라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이 몇이오. 바보 같은 소릴 작작 하오. 억세게 살아나가야지.” 하고 위로했다. 연화는 파마머리를 숙이고 가녀린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감정문제가 어디 그리 쉬운가요? 사랑하던 련인에게서 버림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요? 막 죽고 싶어요.” 연화는 보름달 같은 얼굴에 줄 끊어진 구슬처럼 눈물을 줄줄 흘렸다. “어떤 남자기에?” 연화는 들가방에서 사진 한장을 꺼내 보였다. “진짜 서양놈처럼 생긴 놈이구만.” 우멍눈과 메부리코, 두툼한 입술, 진짜 양키 같았다. “아주 잘 생겼죠? 키도 훤칠하고.” “잘 생기기만 하면 다요? 사람이 수양이 있어야지. 그래 이 남잔 대학생이오?” “네. 한 학급 동창생인데요.” “그래? 왜 우리 귀여운 연화를 버려?” “다른 녀자한테 반해버렸죠.” “누군데?” “한 학급의 동창생이죠. 우린 아주 친한 친구 사이였죠.” 성호는 듣고보니 한심한 판. “그래 그 녀자친구가 우리 연화만 더 잘났는가?” 연화는 핸드빽에서 또 사진 한장을 꺼냈다. 연화와 함께 사진이였는데 꽤나 해말쑥하게 생긴 처녀였다. 어디를 보아도 연화보다 더 예쁜 걸 모를 처녀다. “우리 연화 더 예쁘구만.” 연화는 손수 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남자들이란 다 개 같단 말입니다. 그 놈은 나와 3년이나 사귀면서 지내볼만큼 다 지내보고서 날 버릴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그래 어떤 정황이오?” 연화는 성호를 피끗 바라보더니 머리를 숙이였다. “지난해 초겨울에 그는 저의 집에 왔댔어요. 말로는 부모 허락을 받겠다고 했지요. 지금 보면 저를 가지려고 꾸민 음모죠. 그런줄도 모르고 승냥이 같은 그 놈을 우리 집에 끌어들여 모든 걸 주었어요. 아니, 마음마저 빼앗기고 짓밟히고 말았어요. 어쩜 좋아요? 으흐흐흑, 흑흑흑.” “나쁜 놈새끼. 그 놈새끼 어데 있소?” 연화는 어깨를 세차게 들먹이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예요. 연구생에 합격돼 대학교에 남아 공부하는데요.” “그래? 진짜 감정사기군이구나. 난 세상에서 허위적이고 사기를 치는 놈들을 제일 미워해.” 성호는 중얼거리면서 어떻게 하면 연화를 위안할가 궁리했다. “그래, 그때까지도 눈치채지 못했단 말이오?” “예, 녀자친구를 믿고 나와 그 놈의 일을 다 꼬치꼬치 주어바쳤죠.” 성호는 연화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물었다. “녀자친구는 연화가 그 놈새끼와 함께 집에까지 왔다간 걸 알겠구만.” “예, 알죠. 제가 그런 말까지 멍청하게 다 했으니까요. 그 년은 나한테서 련애정보를 손금보듯 장악한 후 기회를 엿보다가 그 놈을 얼려넘겼지요.” “그 녀자앤 지금 어디 있소?” “함께 대학에 남아서 연구생공부를 해요.” “오~”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이제야 그 남자의 타산을 알 것 같았다. 연화는 본과생으로 끝났지만 함께 연구생공부를 하게 된 그 녀자가 더 매력적이고 전도를 개 척하는데도 도움이 될 길동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한심하구나. 인물을 보면 연화가 낫지만 연구생이라고 미쳤을가? 어찌3년이나  동거한 련인을 헌신짝 차버리듯 할 수 있단 말인가?) “개놈새끼군, 우리 시내에 있었으면 가만놔두지 않을텐데.” 성호는 연화를 어떻게 위안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연화, 너무 실망하지 마오. 이제 그 놈새끼보다 더 멋진 미남자를 소개해줄게.” “싫어요. 이젠 시집가지 않을래요. 남자들은 다 개 같애요.” 그러나 성호의 말은 더  걸작이였다. “처녀 시집가지 않겠다는 건 다 거짓말이라는 걸 세상 삼척동자도 다 아오.” “아니예요. 진짜 시집가지 않겠어요. 이젠 두번이나 실련당했어요.” 성호는 연화 손을 잡고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었다. 그는 절망의 심연에서 허우적거리는 연화를 구하려고 마음심처에 묻어버렸던 상처를 헤쳐보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나도 이전에 실련한 적이  있었소. 그러나 지금 더 예쁘고 현숙한 처녀하구 결혼해 딸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소?” “예? 선생님도 실련한 적이 있어요?” 연화는 너무 울어 팅팅 부어오른 쌍까풀눈이 데꾼해졌다. 성호는 머리를 가볍게 끄덕이고 나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아래학급 녀동창생을 짝사랑했던거요. 우리는 겨울이면 학교 빙장에서 숱한 동창생들의 부러움의 눈길을 한 몸에 받으면서 빙장에서 쌍은제비처럼 쌍무를 추었고 눈덮인 산기슭 스키장에 가서 스키도 씽씽 탔지. 그런데 그녀는 우리 학급의 내 딱친구를 암암리에 사랑했어. 나는 그녀한테 사랑의 츄피터화살을 날렸지. 그러나 그녀는 장난이나 치듯이 사랑의 화살을 살짝 피해 내 딱친구한테 포로롱 날아가버렸어. 난 한동안 고민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렸어.” “선생님도 그렇게 마음아픈 경과가  있었구만요. 그래 지금 사모님은 뭘 하는 분인가요?” 연화는 무척 성호의 안해에 대해 관심이 가 물었다. “녀동창생이야. 지금 교원이야. 그녀는 대학교 교수의 귀공주 같은 무남독녀였어.” “오~ 정희선생님 아닌가요??” “그래.” “정말 로맨틱한 이야기군요.”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첫사랑이나 다름없는 련인한테서 실련의 고배를 마신 후 보라구. 시간이 지나니 멀쩡하게 살아있지 않아? 원래 련인보다 더 예쁘고 사랑스런 녀동창생 정희한테 장가가서 귀여운 딸애를 보았어. 이젠 소학교를 다니면서 파랑새처럼 짹짹거려.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 성호는 연화의 손을 힘주어 잡아주면서 삶의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연화, 힘내오. 그까짓 배신자를 깡그리 잊으라고. 이제 그 놈새끼보다 더 멋진 백마왕자가 찾아올 거요.” “정조를 잃은 녀자인데요. 누가 데려가겠어요. 두번이나 실련당했어요. 이젠 남자들만 봐도 싫어요. 마음씨 착한 선생님만은 믿음이 가서 마지막으로 찾아와 실련의 고통을 털어놓고 싶었어요.” “고맙소. 새파란 나이에 두번이나 실련당했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소?” 연화는 무겁게 머리를 끄덕였다. “대학에 가기 전에 있은 일인데요. 걔는 중학교 때 우리 웃학년 선배였죠. 말하자면 길어요.” 연화는 뼈 속같이 아픈 이왕지사를 쭉 이야기했다. 그녀의 두볼에는 쓰라린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하염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순간 눈물어린 눈 앞에는 처녀의 마음을 독차지했던 첫사랑, 그 멋진 스타일의 대학생청년이 우련하게 떠올라 마음을 아프게 했다. 성호는 그녀의 쓰라린 과거사를 들으면 들을 수록 연화한테 동정이 갔다… 꿈 많은 중학교시절에 연화는 실습교원인 성호의 지도를 받아 문장도 잘 썼고 꽤나 예쁜데다 춤을 잘 추고 달리기도 잘해 뭇 남학생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아안을만큼 인기가 많았다. 그리하여 진짜 그녀, 소녀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그 설레는 소녀의 가슴에 멍이 들게 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루는 그녀가 하학해 집에 들어서니 아버지가 대뜸 화를 내면서 웬 편지를 척 내는 것이였다. “봐라! 어떤 놈이 련애편지를 써보냈어. 암캐가 꼬리를 치지 않고서야 수캐들이 달려들겠냐? 이년아,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아새끼들과 작작 싸돌아다녀라.” 연화는 청천벽력 같은 그 말에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버지, 난 련애한적이 없어요.” “개소릴 작작 쳐라! 내 이 편지를 담임선생님한테 바쳐야겠어!” 아버지는 농민의 울뚝밸을 쓰면서 연화의 귀뺨을 찰싹 갈겼다. 그녀의 눈 앞에서는 무수한 별찌가 반짝였다. 연화는 얼얼한 얼굴을 만지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편지를 가지고 나가는 아버지 팔을 붙잡고 애원했다. “아버지! 제발 담임선생님한테 바치지 마세요. 그러는 날엔 머리를 들고 학교로 다니지 못합니다. 제발, 아버지! 엉~엉~” 그 말에 딸을 그렇게 예뻐하던 아버지는 문설주를 짚고서서 그녀를 되돌아보았다. 이윽고 아버지는 라이타를 찰칵 켜더니 편지에 가져다댔다. 그녀가 보지도 못한 편지, 웬 놈이 보낸 연애편지가 불길  속에 사라져갔다. 순간 그녀는 시한폭탄이나 제거한듯이 한숨을 호~ 길게 내쉬였다.  연화는 그날 밤에 책을 들었으나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느 놈이 저런 편지를 써보내 애먹일가 남자애들을 쭉 더듬어보았다. 허나 비슷한 애가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 후 하학해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에 들어섰는데 뜻밖에 연화의 웃학년을 다니는 학생회 체육부장이란 애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 애는 한메터 팔십도 넘는 훤칠한 키에 어글어글한 눈이 퍽 매력적이였다. “얘, 좀 보자.” 희죽이 웃는 그를 보자 때뜸 뭔가 짐작이 갔다. “무슨 일이냐?” “글쎄 저쪽에 가서 얘기하자.” 연화는 그 애가 그렇게 두럽지도 않았고 밉지도 않았다. 그녀는 동창생들의 눈을 피해 그를 따라 조용한 골목길에 굽어들어섰다. “난 2학년 3반의 장철이야. 우리 서로 알고 사귀면 어때?” “안돼.” 장철은 담대하게도 연화의 손을 덥썩 잡았다. 연화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황급히 손을 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본 애들이 없었다. 장철은 뒤덜미를 긁적거리면서 물었다. “전번에 보낸 편지를 읽어봤니?” “무슨 편지?” “너를 좋아한다고 써보냈는데.” “싹 걷어치워. 우린 고중생이야. 전번에 그 놈의 편지 때문에 아버지께 들키워 혼줄났어. 다신 날  건드리지 말아라.” 연화는 인차 그 신물나는 자리를 떴다. 굽인돌이를 돌면서 피뜩 돌아보니 장철은 그때까지도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들이 마주 서있는 것을 창수가 보았을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그 바람에 그들은 엉망진창이 되게 곤경을 치렀다. 남자애들은 연화가 지나가면 “련애대장”이라는지 “아무개 각시”라는지 별의별 입에 담지 못할 소리로 놀려댔다. 장철은 다행히 키도 크고 힘도 세서  앞에서 놀리는 애들은 없었지만 벽에 그 애를 놀리는 락서와 만화가 어지럽게 그려졌다. 장철은 예전처럼 학교 운동대회 때 사자머리를 흩날리면서 준마처럼 쏜살같이 달렸다. 그 장한 모습을 보고 영웅처럼 돋보였다. 연화의 마음 속은 폭설을 맞은 파 속처럼 새파랗게 되살아났다. 웬 일일가? 그번 운동대회가 끝난 후 장철은 온다간다는 말도 없이 학교에서 가뭇없이 사라졌다. 연화는 큰 짐을 부리운듯 마음이 홀가분한 반면에 이상야릇하게도 저도 몰래 허전해졌다. 썩 후에 연화는 현고중 마당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버릇처럼 뒤더수기를 긁적걱렸다. “따라와!” 이전과 달리 연화는 궁금했던 그 애가 꿈과도 같이 불쑥 나타나자 이상할만치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그 애를 따라 조용한 골목길에 들어섰다. 그는 또 버릇처럼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이전에 안됐어. 나때문에 네가 곤경을 당하게 해서.” “아니야, 지나간 일인데 괜찮아. 편지를 쓸게 있니? 할 말이 있으면 메일을 보내거나 만나서 말해도 실컷 될 건데.” 연화는 불쑥 나간 자기 말에 황급히 손으로 입을 가렸다. 연화는 커피잔을 들어 홀짝 마시더니 뒤말을 이었다. “그때 무슨 용기가 나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 애는 ‘누가 또 볼가봐 겁나는구나. 후에 보자.’ 하더니 부랴부랴 자리를 떠났어요. 떠나가는 그 애의 넓죽한 잔등을 보면서 피씩 웃어버렸어요. 그 애도 이전에 혼줄나긴 났던 모양이죠.” 성호는 쓰디쓴 커피를 후후 불어 마시면서 연화의 과거사를 한마디도 빼놓을세라 들어주었다. 그후 연화와 장철은 애들의 눈을 피해 버드나무가 우거진 해란강둑이거나 검은 철교부근에 가서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밝은 달을 바라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웠고 대학의 꿈도 무르익혔다. 그들의 첫사랑은 처음부터 시련  속에서 엄동설한의 피 속처럼 새파랗게 싹트기 시작했다. 눈섭 끝에서 화가 떨어진다고 항상 곤드레만드레 취해 다니던 연화의 아버지가 글쎄 교통사고로 반신불수로 될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치료비를 마련하느라고 어머니는 집까지 팔아 들이대야 했고 남동생은 이모네 집에 가서 얹혀 살아야 했다. 연화는 학비를 댈 돈마저 없는 판에 무슨 돈이 있어 계속 단독으로 세집을 맡고 공부할 수 있단 말인가. 연화는 어머니를 도와 아버지 병간호를 하면서 아버지 불쌍하고 자기  앞길이 막막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느 하루, 하늘에서 떨어진듯이 장철이 병원에 찾아와 800원을 연화의 손에 억지로 쥐워주었다. 후에 알고보니 그 돈은 장철이 역에 나가 먼지를 새뽀얗게 들쓰면서 세멘트랑 부리우면서 번 돈, 학비를 내려던 돈이 아니겠는가. 장철은 연화가 돈을 되밀어주자 둘러댔다. “얘, 넌 나보다 공부를 잘하니까 꼭 대학에 가야 해. 이 돈은 우리 부모가 준 돈이야.” 연화는 그 선의적인 거짓말에 넘어가 그 피땀이 슴밴 돈을 고맙게 받았다. “이담 꼭 갚을게.” 그의 뜨거운 손길에 끌려 연화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러나 연화의 세집값도  장철의 학교 숙사비를 내자고 하니 엄청 모자랐다. 나중에 장철의 제의를 받아들여 핍박에 의해 량산에 오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날부터 그들은 손바닥만한 세집에 합숙하기로 하였다. 드디여 장철이 이불짐을 지고 연화가 들었던 세집에 들어왔다. 비좁은 세집에서 한 밥상의 밥을 먹고 머리를 맞대고 공부할 때는 괜찮았다. 그러나 사춘기를 갓 넘어선 그들은 동쪽벽과 서쪽벽에 갈라져 누웠지만 이리궁싯 저리궁싯 하면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어떤 때에는 장철이 가마목쪽으로 물을 먹으러 가는 척하다가 다가와 구들이 따뜻한가 보자면서 이불 밑에 손을 쑥 들이밀어넣고 연화의 몸을 여기저기 더듬었다. 그런데 연화는 그만 그의 손을 쳐내지 못하고 말았다… 꼬리가 길면 밟히기 마련이였다. 그들이 한 세집에 든 일이 서너달 후에 담임교원한테 탄로날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연화가 여기까지 말하는데 불시에 왁짝 떠드는 소리로 다방이 떠나갈듯이 복잡해졌다. 바깥에서 별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승호와 선희의 목소리인 것 같았다. 성호는 계속 연화의 말을 들었다. “언제 있은 일이요?” “부끄러운 말인데요. 선생님 실습을 마치고 간 썩 후의 일인데요.” 연화는 부끄러워 머리를 들지 못한채 뒤말을 이었다. 세집 주인할머니는 서너달 집세를 받지 못하자 연화의 담임교원을 찾아가 집세를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오누이라니?) 담임교원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연화한텐 오빠 없는데.) 담임교원은 너무나도 이상하여 주인할머니를 따라 곧추 세집을 찾아갔다. 담임교원은 청년교원인데 아주 개명한 분이였다. 그는 대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눈치채고 먼저 자기 호주머니를 들춰 집세를 준 후 연화를 조용한  곳으로 불러갔다. “학교에서 알면 무조건 퇴학이요. 오래잖아 대학입학시험을 치겠는데 이게 뭐요? 그러나 전도를 고려해서 비밀에 붙이겠소. 절대 더 동거하지 마오. 학생은 학생기률을 지켜야지. 참, 답답하구만.” 연화는 창피해서 머리도 들지 못하고 발끝으로 땅바닥을 허비였다. 장철은 하는 수 없이 세집에서 나갔다. 그해에 장철은 간고하게 세방살이를 하면서도 끝내 중점대학에 입학하였다. 이듬해에 연화도 장철을 따라 그 시내 일반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런데 연화는 장기환자인 아버지 치료 때문에 학비가 문제로 됐다. 장철과 함께 세집에 동거해 주숙은 해결됐지만 학비만은 담보가 없었다. 장철도 엄청난 학비로 해 골머리를 앓는데야. 연화는 대학에 가서까지 더는 장철의 신세에 공부할 수 없었다. 그녀는 궁리 끝에 학비를 몇푼이라도 보태려고 해볕이 쨍쨍 내리쬐는 땡볕을 무릅쓰고 레이저광장 서쪽끝에 “가정교사”라는 패쪽을 발치에 놓고 서성거렸다. 련 이틀 얼굴이 그을도록 서 있어도 가정교사를 쓰자는 사람은 그림자도 얼신 하지 않았다. 해질 무렵에 패쪽을 주어들고 자리를 떠나려고 할 때였다. 양복을 척 입은 신사  한분이 오더니 연화의 얼굴부터 몸까지 참빗질하더니 그녀가 손에 쥔 패쪽에 눈길을 멈췄다. “영어를 가르치오?” “예.” “수학도 가르칠만 하오?” “예.” “그럼 우리 애를 좀 가르쳐주오.” 신사는 애 정황을 자세히 말해주겠다면서 연화를 데리고 랭면집에 가더니 랭면과 채 서너접시에 맥주까지 시켰다. 그는 연화한테 맥주를 권하더니 애정황을 죽 얘기하고나서 잘 가르치면 가정교사비는 푼푼히 주겠다고 장담까지 했다. “난 시내에서 한다하는 서일철 경리란 말이요.” 그는 명함장까지 척 꺼내 주었다. 이튿날 연화는 처음 서경리네 집에 들어섰다가 눈부시게 황홀한 궁전 같은 집 안을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우린 온전한 단칸방도 없는데. 세상은 너무나도 불공평해!) 서경리네 뚱뚱한 도련님은 놀고 먹는데는 악돌이고 공부는 빼돌이여서 가르치기 여간 힘들지 않았다. 연화의 끈질긴 노력으로 해 몇달 공부를 가르쳤더니 학습에 열중하기 시작하였고 성적이 점차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서경리는 기뻐 어쩔줄 모르면서 그달 가정교사비 200원을 주고나서 한턱 내겠다고 했다. 서경리는 연화가 극구 사양하는 것도 마다하고 도요다표자가용에 연화를 싣고 근사한 음식점으로 달려갔다. 그는 한상 푸짐히 차려놓고 맥주를 한컵씩 따라 마주치고나서 쭉 들이켜더니 웃호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연화의 손에 쥐워주었다. “자, 받소. 600원이요.” “이 건 뭔가요?” “수고비요. 그간 애썼소.” 연화는 돈봉투를 되밀어주면서 “200원이면 족해요.” 황송해하는 연화를 보고 서경리는 가녀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독였다. “사양말고 받소. 돈이 바쁠 땐 말하오. 제같이 예쁜 대학생아가씨에게 돈을 쓰는게 아깝지 않소. 아니, 아주 즐겁소.” 연화는 당장 집세와 동생 학비가 딸리는지라 별 수 없이 받아넣었다. “감사합니다. 자제분을 잘 가르쳐드리겠어요.” “허허허. 그래, 진작 받아야지.” 그날 서경리는 얼근히 취해 연화를 데리고 노래방에까지 가서 노래를 부르고 춤추면서 놀고서야 택시에 앉혀 보내주었다. 연화는 세집에 돌아와 그때까지 자기를 기다리면서 텔레비죤을 보고 있는 장철을 보고서야 제 정신이 펄쩍 들었다. (왜 서경리를 따라 노래방에까지 갔지? 못난 년.) 그녀는 장철을 보기 미안해 옷을 활활 벗어버리고 살갑게 장철의 품 속에 안겼다. 장철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연화를 빼앗기기라도 할가봐 꼭 끌어안았다. 그후 서경리는 연화에게 핸드폰까지 사주면서 아들의 가정교사라는 걸 떠나서 자기가 저녁에 부르면 술동무나 해주면 돈 백원 내지 200원을 주겠다고 했다. 처음에 연화는 가기 싫었지만 당장 다음 학기 학비가 딸리는 형편에서 돈의 유혹에 빠져 핸드폰이 울리기만 하면 세집에서 빠져나가 서경리 승용차에 탔다. “얘, 밤중마다 어디로 자꾸 나가니?” 장철은 못 마땅한 눈길로 연화를 바라보았다. “잠간 나갔다 올게. 근심하지 말라. 절대 나쁜 짓 하고 돌아다니지 않으니까.” “얘, 우린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절대 더러운 돈은 벌지 말아야 해.” “왜 그렇게 생각하니? 난 술동무를 할뿐 몸을 팔진 않아. 남을 억울하게 굴지 말라.” “내 뭘 하던? 남의 돈을 받으면 입이 물러진다고 받지 말라는데도. 서경리한테  코 꿰여 다니는게 아니고 뭐야?” “범에게 물려도 정신만 올똘히 차리면 살아남아. 근심하지 마.” 연화는 첫사랑 장철에게 미안해 그의 얼굴에 살짝 키스까지 해주고 문 밖으로 나섰다. 벌써 저쪽  가르등 밑에 서경리의 도요다표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서경리는 연화를 싣고 한 산기슭의 닭곰집에 갔다. 별장 같은 그 집 안에는 복도로 죽 들어가면서 단칸방이 줄느런히 늘어서 있었다. 단칸방에 들어가 미닫이를 꼭 닫으니 아주 조용하고 아늑하였다. 서경리는 닭곰 한단지나 청하고 여러가지 료리를 푸짐히 차려놓고 연화를 보고 마음놓고 먹으라고 했다. 닭곰에 맥주를 들면서 연화는 어쩐지 저도 몰래 가정교사인지 아가씨인지 가리기 아리숭해지는 것이 우스웠다. 술이 서너잔 들어가자 서경리는 자기 인생철학을 횡설수설 늘여놓기 시작했다. “지금은 개방세월이기에 대학생들이 너무 가감승제에 네모꼴만 들여다봐선 시세를 따르지 못하오. 사람이 한뉘 행복하게 살면 다지. 뭐 아글타글 할게 있소?” 연화는 어떻게 하나 촌에서 벗어나려고 아득바득 애쓰고 있지 않는가. “너넨 새 세기 대학생들이야. 연애, 혼인, 가정 관념이 시대에  앞섰어. 그렇찮고서야 어찌 결혼도 하지 않고 세집 잡고 동거까지 할 수 있어?” 서경리는 연화가 못 마땅한 눈치를 보내자 인차 말끝을 얼버무렸다. 그는 기름기 도는 노란 닭다리를 집어 연화 접시에 놓아주었다. 연화는 맥주를 마신 바람에 자주 화장실로 나갔다. 그런데 제자리에 돌아와 서경리가 권하는 마지막 맥주잔을 마신 후 일이 생겼다. 당금 눈까풀이 무거워지더니 눈 앞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녀가 화장실에 간 후 맥주잔에 수면제를 타놓았다. 연화는 서경리가 자기를 안아 눕히면서 희죽이 웃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러나 사지가 나른해 반항할 수 없었다… 한참 후 잠을 깨고보니 서경리의 팔을 베고 누워있지 않겠는가. 그녀는 와뜰 놀라 와닥닥 일어났다. 창 밖을 내다보니 문발 새로 아침해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연화는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것을 발견하고 모든 것을 짐작했다. 허나 모든 것은 쥐도 새도 모르게 끝난 뒤였다. 연화는 서경리 뺨을 찰싹 갈기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우며 서럽게 대성통곡쳤다. 서경리는 시물시물 웃으면서 연화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어린애를 얼리듯이 어루쓸었다. “울긴 왜 울어? 숫처녀도 아니더구만. 인생이 길면 얼마나 길겠소? 가난한 선비 장철을 따라다녀서야 세방살이에 고생문 밖에 있어? 내 비록 마흔이 넘었지만 연화를 평생 행복하게 해줄 수 있소.” “듣기도 싫어!” 연화는 문을 박차고 한 많은 닭곰집에서 나가버렸다. 서경리는 따라나와서 비틀거리는 연화를 승용차에 억지로 밀어넣고 시동을  걸었다. 뒤이어 승용차가 닭곰집 울 안에서 서서히 미끄러져나갔다. “나도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아. 너도 장씨와 갈라질 필요없어. 남녀관계는 가정 울타리 안에서 끝나는게 아니지.” 서경리는 차를 쏜살같이 몰면서도 계속 지껄였다. “가정울타리, 그 행복하면서도 자유를 구속하는 정신쇠사슬로 얽힌 감옥에서 해탈되면 얼마나 즐거워? 우리 계속 이렇게 재미나게 보내면 어때? 항상 장씨와 비좁은 세집에만 갇혀있지 말고? 으하하하, 장씨 품  속에서 드문드문 벗어나면 얼마나 즐거워? 자유만세!” “싹 걷어치워. 남의 첫사랑을 짓밟고서도 무슨 행복? 관둬!” 연화는 더러운 서경리의 인생철학에 침을 뱉었다. “차를 세워라.” “아직 먼데?” “구역질이 나서 더 앉아 있지 못하겠다.” 서경리는 뚱뚱한 배를 씨근거리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욕정의 불찌가 뚝뚝 떨어지는 눈길로 연화를 노려보면서 차를 세웠다. (더러운 놈, 개구리가 고니 고기를 먹으려고? 더러운 놈의 심보! 나보고 네 놈의 첩이나 되라는게 아니고 뭔가?) 연화는 승용차문을 쾅 닫고 길바닥에 나섰다. 서경리는 승용차를 몰고 씽 달아났다. 차 밖에 나오니 차디찬 산공기가 그렇게도 청신하였다. 그러나 택시를 갈아타고 세집에 이른 연화는 마음 속으로부터 장철을 보기 미안했다. 비록 내가 원해서 그렇게 된것은 아니였 건만 첫사랑 장철한테 너무너무 미안했다. 그녀는 세집에 들어가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샤와를 하면서 더러워진 몸을 씻고 닦고 또 씻었다. 몸에 때는 씻어졌지만 마음 속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장철한테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죄책감에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차라리 장철이 호되게 때렸으면 죄책감이 좀 줄어들고 마음이 조금 내려갈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를 무섭게 쏘아보는 장철한테  속사정을 얘기할 수도 없었다. 장철의 머리   속에서는  착잡한 추측과 상념이 뭉게뭉게 타래치며 피여오르는 구름처럼 복잡하게 뒤엉켜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구태여 묻기도 무서웠다. 그럴 수록 연화는 가책되고 미안하고 죄송스럽고 가슴이 미여질듯이 아팠다. 며칠 후 남동생이 찾아와 학비와 숙사비가 딸린다면서 연화한테 손을 내밀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연화는 장철한테 미안한 마음이 색바래지고 돈을 벌어 동생의 학잡비를 대려는 일념이 미안하던 마음의 구석구석을 꽉 채우면서 머리를 쳐들었다. 그녀는 이번만, 이번만 하며 마음이 조금조금 열려 서경리가 준 핸드폰을 꺼내 다시 켜놓고 전화벨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장철도 어쩌겠는가! 그의 어머니도 신염으로 앓아누워 자기 학비도 내기 어려워 연화가 집세마저 낸 형편이였으니. 연화를 흘겨본들 어쩌겠는가! 그날 밤, 때마침 서경리가 준 핸드폰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연화는 한숨을 호~ 내쉬면서 일어섰다. 장철이  앞을 딱 막아나섰다. “또 밤을 샐 예산이야? 못 간다, 못 가! 내 아버지께 말해 방법을 대보자.” “내 어찌 내내 너네 집 신세만 지겠니? 날 믿어라. 깨끗한 몸으로 돌아올게.” 연화는 깜짝 놀랐다. (내 입에서 그런 거짓말이 나오다니?) 당장 돈을 척 내놓지 못하는 장철은 주먹으로 벽을 꽝꽝 치며 안타까운 눈물을 찔끔찔끔 짰다. 아무리 키 서발막대만큼 크고 힘이 세도 돈이 없으니 자기 첫사랑마저 지키지 못하는 자기 신세 가련했던 것이다. 그러는 장철을 두고 문 밖에 나서는 연화의 마음인들 오죽하랴. 대학마저 다니기 싫었다. 대학을 다니자니 첫사랑마저 지키기 어렵고 첫사랑을 지키자니 대학공부를 포기해야 할 판이였다. 그녀는 대학도 다니고 첫사랑도 지키는 길은 오직 몸 건사를 잘하면서 서경리한테서 돈을 얼려내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한편 자기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기에 첫사랑 장철을 배반한것이 아니라고 생각됐다. 그녀는 모진 마음을 먹고 가로등 밑에 가서 서경리의 도요다표 승용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 뜻밖에 장철이 세집에서 불쑥 뛰쳐나오더니 돌멩이를 주어 승용차에 뿌리면서 뭐라고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승용차는 그런 장철을 뒤에 떨궈놓고 쏜살같이 도망쳤다. 헤드라이트는 밤길을 누비면서 어느덧 사내를 벗어나 산골에 자리잡은 서양식  별장에 이르렀다. 서경리는 미리 전화로 술상을 예약해놓고 술도 별로 마시지 않고 연화를 노려보면서 치근거렸다. 그때라고 생각한 연화는 동생이 학비 때문에 찾아왔는데 바쁜 목을 열어줄 수 없는가고 통사정을 들이댔다. 서경리는 그런 말을 기다렸다는듯이 헤벌쭉거리면서 두툼한 돈봉투를 내밀었다. “자, 받소. 나는 연화가 수요되고 연화는 돈이 수요되지. 서로 돕는 셈 치고 합작을 잘 해보기오. 어, 허허허.” 연화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서경리는 또 열장을 쑥 뽑아주었다. “자, 천원이오.” 그제야 연화는 서슴없이 그 돈마저 챙겨넣었다. (네놈이 탐오하지 않고 회뢰하지 않고서야 이 많은 돈이 어데서 오겠니? 네놈의 불의지재를 얼려내 우리 오누이 대학공부를 하는 정의로운 사업에 쓸 판이야.) 서경리는 돈을 챙겨넣고 치마자락을 내리는 연화한테 와락 덮쳐들었다. 연화는 각오하지 못한 건 아니였지만 반사적으로 콱 밀치며 발악했다. “왜 이래? 돈을 받았으면 순종해야지.” “술동무 하러 왔지. 몸 팔러 오진 않았어요. 난 가정교사지 아가씨 아닌데요.” 서경리는 서글픈 웃음을 웃더니 손삿대질을 하면서 빈정거렸다. “야, 요년이 사기치잖아? 네깐 년이 아가씨가 아니면 뭐냐? 청백한  척하지 말라. 전번에 벌써 넌 나한테 당했어. 황하에 뛰여들어도 그 더러운 때를 씻지 못해. 알만해? 하하하.” 뒤이어 서경리는 연화를 와락 끌어안아 쓰러뜨렸다. “이 걸 놔요. 놓지 않으면 소리치겠어요.” “소리치겠으면 한바탕 고함쳐봐라! 처녀인 네가 더 부끄럽지 내 부끄러울 것 같아?” 서경리는 연화의 적삼을 벗기는 손을 더 빨리 놀렸다. “이 걸 놔요. 못 놓겠어요? 강간죄로 공안국에 신고하겠어요.” “고발해. 네 매음죄마저 고발해.” 그 색마가 부래지어를 올리는 순간 연화는 발버둥질치다가 술상의 맥주병을 쥐여 색마의 뒤통수를 탕 쳤다. “앗!” 비명과 함께 색마는 보리주머니처럼 맥없이 한옆으로 쓰러졌다. 뒤이어 뒤통수에서 뻘건 선지피가 줄줄 흘러내려 연화의 얼굴과 가슴에까지 떨어졌다. 연화는 색마를 콱 밀어버리고 부랴부랴 그 자리를 떠났다. 며칠 후 서경리는 핸드폰으로 연화를 세상 더러운 년이라고 욕지거리를 하고는 다시 더 찾지 않았다. 그러나 장철은 그날 밤부터 세집에서 나간 후 다시는 머리도 내밀지 않았다… “저는 경제난을 해결하려다가 첫사랑마저 잃고 말았지요. 간혹 그가 다니는 대학교에 가볼가고도 생각했지만요.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죠. 그런 일이 있는줄도 모르고 한 학급의 동창생이 나를 따랐지요. 그런데 녀자친구한테 장철과 서경리 말까지 다하는 바람에 결국 나는 두번째 사랑도 잃고 말았어요. 으흐흐흐, 흑흑흑…”  건너방에서 확실히 승호와 선희가 희희닥닥거리는 잡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성호는 그런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연화의 쓰라린 소설 같은 인생사를 듣고 마음이 쓰라렸다. 성호는 연화를 어떻게 위로하면 좋을가 한참 궁리하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동정심이 많고 마음씨 착해 그런가? 어째 성호한테는 맨 마음 아픈 일만 찾아올가? (아, 어쩜 생기 넘치던 연화한테 저런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단 말인가? 서경리, 짐승 같은 놈, 용서할 수 없어. 세상은 왜 이다지도 험악한가? 그래 가난이 죄란 말인가? 고난에 시달리는 연화 오누이를 노리던 색마한테 예술학원 무용수의 전도를 망치게 하다니? 이런 끔찍한 일도 세상에 다 있단 말인가?) 그는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나 볼수 있는 비극이 자기 주변에서 일어난 것이 섬찍했다. “서경리, 승호, 모두 색마야, 악마야.” 성호 앞에는 또 무섭게 무거운 일거리가 생겼다. (어떻게 하면 연화를 구할 수 있을가?)  
212    수필 한국 모범택시 운전수아가씨 김장혁 댓글:  조회:687  추천:0  2019-04-26
                                   수필                            한국 모범택시 운전수아가씨                                                         김장혁         지난해 한국 경기도 안양시에 갔다가 별난 택시 운전수아가씨를 만난 적이 있다.         그날 서울에서 지하철1호선을 타고 안양역에 내리자 폭우가 쏟아져 앞길을 막았다. 나는 7년만에 매형과 누님을 만나려고 그들이 오라고 하는 덕천시장 입구로 가려고 앞뒤를 가릴 새 없이 우산을 들고 묵직한 짐을 끌고 가까이에 있는 택시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안양역 앞에는 그날따라 몽땅 모범택시였다. 나는 그런 것을 가릴 새 없이 한 모범택시 뒤문을 열고 짐을 올려놓고 한국 택시문화를 지켜 점잖게 운전수 옆의 문을 열고 앉으려고 하였다. 보통 보스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운전수 뒤좌석 오른쪽에 앉고 손님이나 친구, 련인들은 운전수 옆에 앉는 것이 한국 택시문화의 례절이였다. 그런데 내가 앉기 바쁘게 아츠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아니, 저 젖은 짐! 보아하니 중국 교포 같구만요.” 그 목소리에는 분명 중국조선족을 멸시하는 감정이 다분하였다. 나는 택시에서 되내려 짐을 좌석에서 바닥에 내리워놓고 다시 택시운전수아가씨 옆에 앉았다. “중국 교포는 택시에 앉으면 안됩니까?” “택시에 앉아도 알고 앉으세요. 이건 모범택시예요.” “모범택시에 앉으면 안돼요?” “모범택시는 택시료금이 엄청나게 더 비싼걸요. 보통 개인택시 기본료금은 3천원, 모범택시는 4천 500원이예요. 그래도 앉을래요?” “모범택시료금을 알고 있어요. 아무리 중국조선족이라고 하여도 택시료금도 가지고 다니지 앉는가 합니까? 자, 갑시다, 덕천시장 입구로.” 한국 택시운전수아가씨는 택시를 휭하니 몰았다. 입에서는 계속 뭐라고 도도거렸다. “중국 교포들 참 살기 어려운 모양이지요? 지하철을 타도 표를 사지 않고 개찰구 란간을 뛰여넘어 도마뱀처럼 빠져나가죠. 돈을 남으려면 모범택시보다 개인택시를 타는게 낫죠.” 나는 이 한국 택시운전수아가씨를 그대로 두고 스쳐지나갈 수 없었다. 중국조선족의 위신을 봐서 반격을 가해야만 하였다. “아마 운전수아가씨는 중국에 가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예?” “하긴 요 죄꼬만 안양에서 택시를 몰고 밤낮 뺑뺑 맴돌아치다나니 그 넓은 중국에 가볼 새나 있었겠습니까? 그러니 한다는 말이 전탕 우물 안의 개구리 소리지.” “아니, 이런 중국 교포 첨 본다니까. 보통 중국 교포들은 더러운 일, 힘든 일, 위험한 일 다 하잖아요? 남에게 당해도 불법체류라고 신고할가 봐 쩔쩔 매면서 찍소리도 못하더구만요. 손님은 큰 소리만 빵빵 치면서 정 별론데요.” “이보세요. 중국 조선족이라고 너무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난 관광하러 왔지 불법체류하러 온게 아닙니다. 중국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기 어려운가 합니까? 난 중국에서 편집기자를 하면서 과외로 택시업도 하는 보스입니다. 살기 어려운 편이 아닙니다. 그러나 난 아가씨처럼 잘 산다고, 보스노라고 손님들과 잘난 척하면서 큰소리 쳐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남편이 벌어서 산다던데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 택시를 몰고 달아다닌는 걸 보면 아마 운전수아가씨는 퍽 살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전 중국에서 택시업을 해도 운전수를 고용해 몰게 하지 내가 택시를 운전한 적이 없습니다.” “쳇!” “여기 한국에서는 소고기 한킬로에 15딸라도 넘지만 중국에서는 10딸라도 안해요. 여기선 소갈비국도 변변히 못 먹지만 우리 중국에선 일반 로동자도 한대야씩 사먹을 수 있습니다. 여기 물가가 비싸기에 실제 생활순준은 중국보다 별로 높은게 없습니다.” “그런데 왜 중국 교포들이 예 와서 글케 더러운 일을 해요?” “여기는 로임이 높고 중국은 물가가 낮습니다. 여기 돈을 벌어서 중국에 가서 살면 좋으니까. 여기 와서 더러운 일이고 힘든 일이고 위험한 일이고 다 하는 겁니다. 지금 중국은 눈뜨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살기도 그렇게 어려운게 아니라 풍요롭게 살고 있습니다. 언제 한번 중국에 놀러 오십시요. 웅위로운 백두산도 구경하고 우리 연변에 오면 제가 소갈비국을 한대야 대접하겠습니다.” 그제야 한국 택시운전수아가씨는 아무 말도 없이 잠잠해졌다. 어느덧 덕천시장 입구에 닿았다. 우리 말도 자연히 끝났다. 짐을 들고 택시에서 내리면서 여겨보니 그렇게도 오만하던 한국 택시 운전수아가씨의 표정은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국 택시운전수아가씨의 택시가 비 내리는 안양시 덕천시장에서 멀어져갔어도 착잡한 생각을 걷잡을 수 없었다. 살다가 보면 한국 택시아가씨처럼 세상물정을 모르면서도, 자기 본신은 별나지도 않으면서도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렁거리며 남을 깔보는 그런 인간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중국 조선족가운데서 한다하는 문인이 한국 서울에 갔을 때 일이라고 한다. 서울의 한 교수는 그 문인에게 양복 세벌을 가져다주면서 “몇번 입지 않은 양복인데 중국에 가 입으세요.”라고 하면서 주더라는 것이였다. 그 문인은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어 그 자리에서 양복을 되돌려주면서 “우리 중국이 이 지경으로 가난하지는 않습니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서울의 그 교수는 악의적으로 모욕하느라고 그렇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이 양복을 주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는 중국 인테리들의 생활형편을 모르고 선의적인 의미에서 주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중국 조선족문인이 양복을 받지 않는다고 어안이 벙벙해하였다는 그 서울 교수의 무지한 모습에서 우리는 뭔가 보이지 않은가! 세상물정도 모르는 사람들의 초라한 모습을 엿볼수 있지 않는가! 서울에서 한다하는 교수가 어쩌면 중국 조선족들의 생활형편을 어진간히 몰랐으면 양복도 없이 사는가 하고 입던 양복을 선물하였을가! 또 입던 양복을 선물한 교수의 품위가 얼마나 낮은가! 그 교수는 중국 조선족문인이 모욕감을 느끼리라는 것을 짐작도 못하였을가! 하긴 우물 안의 개구리가 쳐다본 하늘은 둥글기만 하니까. 한국 택시아가씨나 서울 교수의 색안경을 낀 눈에는 중국 사람들이 모범택시료금도 못내고 양복도 변변히 입지 못하는 가난뱅이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이 자기 견해가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 하늘을 쳐다본 편견이라는 것을 아주 모르고 있다. 우물 안에서 조금만 폴짝폴짝 뛰여나오면 높고 푸른 하늘과 꽃구름이 두둥실 뜬 하늘, 그리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돌돌 흐르는 시내물도 볼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우물 안에 앉아서 하늘을 둥글다고 여기듯이 한국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중국 조선족들을 가난뱅이라고 업신여기는 것이 참 가증스럽고 저주롭다. 한국 모범택시 운전수아가씨와 서울 교수를 욕하고나니 가슴이 후련할 대신 우리 주변에도 이런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 많은 것에 련상이 가자 가슴이 아프다. 중국 조선족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동포들을 업신여기지 않았는가! 한 나라 한 지역이라고 하여도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았는가! 그들에게 사람대접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친척이라도 친척대접을 제대로 하는가! 그보다도 우리 주위에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자아도취되여 자기만 위대하고 지고무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없는가! 이런 우물 안의 개구리들은 많고도 많다. 실로 자기절로 자기 머리를 틀어쥐여 억지로 하늘로 끌어올리여 키를 높이려는 페단, 이런 어처구니 없는 페단을 삼가하였으면 좋겠다. 이런 행위는 남을 해치고 자기를 해치는 결과 밖에 있을 수 없다. 여문 곡식일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혹시 이런 말을 하는 내 본인도 우물 안의 개구리일 수도 있고 “50보가 100보를 웃는 격”이 될지도 모르겠다. 옛날부터 “문인은 서로 깔본다.”고 하였지만 남을 존중하는 것이 자기를 존중하는 것이라는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쳐든 머리 보다 숙인 머리가 더 멋질 수도 있다. 항상 개턱처럼 쳐들고 다니는 것만큼 꼴불견이 없다.  한국 모범택시 운전수아가씨나 서울 교수처럼 남을 웃기는 초라한 “우물 안의 개구리”로 되지 말았으면 얼마나 좋을가!                     
211    동화 꾀보와 불여우의 겨룸 김장혁 댓글:  조회:1296  추천:0  2019-04-19
동화 불여우와 꾀보의 겨룸                   김장혁              기름떡 다섯개      톱날 같은 칼바위산마루 우에 쟁반 같은 둥근달이 두둥실 떴어요. 은빛달빛이 깔린 불여우아가씨네 집 마당에서 꾀보 원숭이 노래 부르는듯이 불렀어요. “불여우야, 불여우야, 나와 놀자.” 불여우아가씨는 기름떡을 구으면서 귀찮아했어요. “밥 먹는 중이야! 안 놀아!” (꾀보 같은 놈, 기름떡 얻어먹으려고? 흥!) 허나 꾀보는 좀처럼 떠나갈 예산이 없고 자꾸 물었어요. “뭘 굽느냐? 고소한 내 몰몰 풍기는구나.” “연기 내야. 흥, 귀찮게 굴어.” “반찬은 무엇이냐?” 고개를 갸우뚱하던 불여우아가씨는 맛있는 반찬이라고 하면 게걸스런 꾀보가 집 안에 뛰여들어 떡을 빼앗아라도 먹을가봐 더럭 겁났어요. 불여우아가씨는 제꺽 꾀보가 제일 무서워하는 걸로 주어댔어요. “반찬은 뱀의 꼬랑댕이다!” 그런데도 꾀보는 겁나하기는커녕 지꿎게도 물었어요. “산 뱀이냐? 죽은 뱀이냐?” 불여우아가씨는 청포도알눈알을 때룩거리다가 부엌의 구불구불한 바줄을 창문을 활 열고 내던졌어요. “산 뱀이다!” “아이구머니!” 꾀보는 진짜 산 뱀인가 해 깜짝 놀라 도망쳤어요. “해해해.” 불여우아가씨는 간사하게 웃으며 기름떡을 먹으려고 했어요. “혼자 뭘 맛있는 걸 먹어?” 집으로 갔는가했던 꾀보가 집 안에까지 들어왔어요. 불여우는 마구 쫓아낼수도 없어 기름떡을 딱 다섯개만 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렸어요. 꾀보 원숭이는 우멍눈알을 떼룩거리면서 어떻게 기름떡을 더 먹을가 속궁리를 팽글팽글 굴렸어요. “불여우아가씨, 꾀가 많다는데 좀 가르쳐주렴.” “무슨 소릴? 내 아무리 꾀가 많은들 어찌 만물의 령장이신 인류 버금인 원숭이보다 꾀가 더 많겠니?” “겸손한 척하지 말라. 자, 기름떡을 먹으면서 꾀를 배워달라.” “그럼 여기 기름떡 다섯개 있는데 어떻게 더 많이 먹는가부터 가르쳐주지.” 불여우아가씨는 저가락으로 노란 기름떡 하나를 꿰여 빨리 오물오물 씹어먹기 시작하였어요. (흥, 그 재간에 나보다 더 많이 먹는 재간이 있다구?) 꾀보는 저가락을 들어 단꺼번에 기름떡을 두개나 꿰여 게걸스레 먹어대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제 쟁반 우에 남은 기름떡 두개를 하나씩 나눠먹으면 원숭이는 세개나 먹을게 아닌가요. 그러나 불여우아가씨는 피씩 코웃음쳤어요. (쳇, 잰내비새끼, 이 아가씨가 누구라고 내 앞에서 잔꾀를 부려? ) 불여우아가씨는 기름떡 하나를 게눈감추듯 제꺽 먹어치웠어요. 그러고나서 저가락으로 나머지 기름떡 두개를 단번에 꿰여 뚝뚝 떼먹기 시작하였어요. 결국 세개를 먹자던 꾀보는 두개 밖에 먹지 못하고 벙어리 랭가슴 앓듯하였어요. (실로 뛰는 놈 우에 나는 놈이 있구나. 요 불여우년은 이 꾀보어른을 찜쪄먹을 지경이구나.) 불여우아가씨는 그러는 꾀보의 속을 꿰뚫어나 본듯이 기름이 게발린 뾰족주둥이를 흰수건으로 싹싹 문지르면서 까불어댔어요. “그 재간에 그래도 기름떡 두개를 잘 얻어먹었잖아? 학비도 내잖고 기름떡 한개라도 더 얻어먹는 재간도 배웠지. 밑져 본전이잖아. 해해해. 빠이, 빠이!” 불여우아가씨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어요. 그는 긴 꼬리를 살래살래 저으면서 축객령을 내리더니 코노래까지 흥얼흥얼 부르며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였어요.                          고소한 메돼지고기 꾀보 원숭이는 전번에 기름떡을 더 많이 먹을내기에서 코를 떼우고 어떻게 불여우년을 혼빵낼가고 묘수를 짜고 또 짰어요. 한참 후 꾀보는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어요. 그는 메돼지고기를 큼직큼직하게 썰어서 기름과 소금물에 부글부글 쌂아놓고 전번 기름떡을 잘 먹은 답례를 하겠다면서 불여우아가씨를 청했어요. 불여우아가씨가 집안에 들어서자 꾀보는 부글부글 끓는 커다란 메돼지고기를 딱 다섯점 건져 밥상에 올렸어요. 불여우아가씨는 김이 몰몰 피여오르는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메돼지고기점을 보고 닭알침을 꼴깍 삼켰어요.  (잰내비새끼, 너도 딱 다섯점 올렸느냐? 누가 더 먹는가 어디 보자. 이번엔 선손을 써야지.) 불여우아가씨는 속으로 약은 수를 썼어요. 꾀보가 저가락을 가지러 부엌에 가는 틈을 타 제꺽 그 따가운 메돼지고기를 쥐여 입 안에 걷어넣고 우물우물 씹었어요. “아야! 따가라! 음, 음-” 불여우아가씨는 그만 입 안이 홀딱 데고 말았어요. 그때 꾀보가 저가락을 쥐고 들어섰어요. “웬 일이냐?” “음음, 아니야, 아무 일도 아냐.” 꾀보 앞인지라 불여우아가씨는 따가운 메돼지고기를 뱉어버리지도 못했어요. 천정만 쳐다보면서 드바삐 혀긑으로 메돼지고기점을 이볼저볼로 옮기면서 오물오물 씹었어요. 꾀보는 그 우수운 모양을 보고 겨우 터져나오는 웃음보를 참았어요. “얘, 왜 아무 말도 없이 천정만 쳐다보면서 오물거려?” 바빠맞은 여우아가씨는 천정을 쳐다보며 입을 하 벌려 따가운 김을 호- 빼면서 오물거렸어요. “호호, 이 집 대들보 좋긴 좋다. 어데서 베온 나무야?” 꾀보는 제꺽 놀려주었어요. “불여우아가씨네 덴 하느라지에서 베왔어.” 눌리건 말건 불여우아가씨는 횡설수설 하면서 메돼지고기를 바삐바삐 씹으며 김을 뺐어요. “그래? 이 집은 어느 해에 졌니?” “게걸스런 불여우년에 졌어.” 게걸스런 그 모양을 보고 꾀보는 더 로골적으로 골려줬어요. 그 소리에 밸이 울컥 치민 불여우아가씨는 그만 따가운 메돼지고기를 꿀꺽 삼키고 말았어요. 순간 그 따가운 메돼지고기점이 글쎄 목구멍으로부터 배에까지 쪽 내려가면서 따가운 금을 쪽 내리그었어요. 어찌나 따가왔던지 불여우아가씨는 걸상에서 일어나 퐁퐁 뛰였어요. “얘, 불시에 퐁퐁 뛰긴?” 불여우아가씨는 따가와 죽겠는데 놀리는 꾀보 괘씸했지만 별수 없었어요. “당장 고소한 메돼지고기 많이 먹게 돼 기뻐서 춤추는 거야.” “그래, 기뻐? 호호호. 자, 많이 먹어라.” 꾀보가 고소한 메돼지고기쟁반을 불여우아가씨 앞에 내밀었어요. 그런데 불여우아가씨는 하느라지가 데여 더 먹을 념도 하지 못하고 핑게를 대고 입을 싸쥐더니 자리를 뜨고야 말았어요. 꾀보는 집 앞의 아름드리 나무에 바라올라 두볼을 싸쥐고 멀어져가는 불여우아가씨의 뒤모습을 바라보면서 캐드득캐드득 웃었어요. 그러나 꾀보나 불여우아가씨나 누구도 한가지만 알았지만요. 두가지는 몰았어요, 서로 잔꾀를 부려 겨루면서 남을 이기면 일시 좋은 것 같아도 나중에는 중 팔리고 절 팔린다는 것을.                            
210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26) 댓글:  조회:1396  추천:0  2019-04-07
                      49. 고군분투.        곰도 맵짠 추위가 싫어 통나무 속으로 숨어버린 엄동설한이다. 박달나무도 얼어서 탁탁 갈라터지고 모닥불도 추워서 이불 안으로 마구 기어들 지경이다. 그러나 엄동설한에도 봄아가씨는 봄노래를 흥얼거리며 동장군을 밀어낼 기운을 키우면서 태동하고 있었다. 성호는 요즘 광고회사가 돌아가는 형편이 상서롭지 못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어느날 그는 선녀음식점에 갔다가 이상한 장면을 발견했다. 우연히 카텐 틈으로 들여다보니 김범수 경리가 굉팔과 마주 앉아 뭔가 은밀히 의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윽해 승호도 찾아왔다. 성호는 선화를 찾아가 결산하고 슬그머니 나와버렸다. 그후부터 성호는 김범수를 다른 눈길로 보게 됐다.        (안팎이 다르게 노는구나!) 그의 예감은 맞았다.         (세상에 믿을게 없구나.) 며칠 후 광고회사에 굉팔과 승호가 들어섰다. 김범수가 그들을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인사시켰다. “성호, 굉팔 경리와 승호가 우리 회사에 들어오게 됐소. 이후에 잘 합작하오.” (진짜 이변!) 굉팔은 성호를 쓴 외 보듯했다. 기실 굉팔네 광고회사는 김범수네 광고회사와 경쟁하다가 망했다. 상급에서는 불필요한 경쟁을 피면하기 위해 굉팔네 광고회사를 없애고 굉팔과 승호를 김범수네 광고회사에 전근시켰다. 굉팔은 수치스러운대로 머리를 숙이고 일반직원으로 들어왔다. 성호는 또다시 광고회사가 싫어졌다. 그는 뗐던 담배까지 풀썩풀썩 피웠다. 정희는 조용히 다가앉으면서 물었다. “단위에 무슨 일이 있어요?” “승호와 굉팔이 광고회사에 들어왔어.” “파리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하겠어요? 딴 생각 말고 광고회사에 지긋이 뿌리를 박고 일하세요. 돈도 벌고 얼마나 좋은 단윈가요?” 성호는 그저 묵묵부답하며 담배만 풀썩풀썩 피웠다. 이때 한나가 기침을 콜록콜록 깇었다. “담배를 그만 피우세요.” 성호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우쭐 일어났다. 정희는 성호를 붙잡고 신신당부했다. “또 현실을 도피할 생각을 하지 마세요. 시아버님도 현실을 도피해서 국장을 다 내놓고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는가요? 그 바람에 칠순고개 넘도록 시골에서  고생하지 않고 뭔가요.” “누가 광고회사를 떠난다고 했어?!” 정희는 해시시 웃었다. “돈 많이 벌어야 당신도 아들 보죠?” 성호는 정희를 꽉 안더니 웃음이 남실거리는 걀죽한 얼굴에 키스를 뻑뻑 안겨주었다. 그는 바깥에 나와 담배를 붙여물고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저도 몰래 택시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또 머리를 쳐들었다. 이모사촌처남이 하는   택시영업을 알아보았는데 적지 않은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데 손에 쥔 돈이 없었다. (10만원이나 하는 택시를 어떻게 사? 모험성도 너무 커. 택시를 강도들한테 빼앗기는 날엔 집을 다 팔고 허망 나앉겠는가?) 실로 어지간한 담량으로는 엄두도 못낼 모험적인 영업이였다. 성호는 택시영업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 그때 뜻밖의 불행한 일이 생겼다. 고향 마을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성호가 전화를 드니 고향 마을에 사는 셋째누나 은숙의 목소리였다. “얘, 성호야, 아버지 글쎄, 중풍 맞은 것 같애.” “야~ 어쩌다 그런 일이 다 생겼소?” 성호는 오토바이를 타고 정신없이 고향 마을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성호는 정희와 한나까지 뒤에 태우고 눈길에 몇번이고 쓰레미를 맞아 나동그라질 번했다. 하지만 성호는 핸들을 꽉 부여잡고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성호가 초가집 안에 뛰어들어가 보니 아버지는 정신이 말쑥한데 꼼짝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아버지, 어떻습니까?” 상진은 아들며느리와 손녀까지 온 것을 보고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아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가만 누워계셔요. 자꾸 움직이면 나빠요.” 정희는 시아버지를 부축해 제자리에 눕히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할아버지-” 한나가 할아버지한테 달려가 안겼다. 성호는 한나를 아버지 품에서 떼내면서 아버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째 왼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오른쪽입귀가 좀 올라간 것 같았다. 그는 마음 속으로 아버지한테 못내 미안했다. 칠순이 넘도록 소를 기르게 한 불효를 저지른 것이 죄송스럽고 후회됐다. 영옥은 성호를 보고 자초지종을 말했다. “어제 오후까지도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일어나 소변 보러 나가다가 쾅 넘어지는 소리 나더라. 전등불을 켜고 보니 저 령감이 쓰러졌더라. 일어나려고 자꾸 애를 쓰던데 왼다리와 팔이 말을 듣지 못해 자꾸 왼쪽으로 쓰러지더라. ” 은숙은 성호를 보고 “어서 병원에 모셔가자.”라고 했다. 셋째매형 경만은 가시아버지 이불을 여며주면서 중얼거렸다. “차 있어야 모셔가지. 내 뭐라고 했습둥. 밭이랑 내놓으라니까. 말을 듣잖더니.  쯧쯧쯧.” 은숙은 남편의 허벅지를 꼬집어놓으면서 눈을 흘겼다. “빈정거리긴? 아버질 노엽게 굴어 병이 더 하면 어쩌자고?” 웃마을에서 백호와 맏손자 일복, 둘째손자 정국까지 줄줄 들어섰다. “아버지, 어떻습둥?” 백호는 들어서자마자 아버지께 문안드리고 성호한테 이것 저것 물었다. 맏며느리 명희도 달아들어오면서 “시아버지, 다 맏며느리 잘 모시지 못한 탓입구마.”하고 대성통곡쳤다. 명희는 말머리 무거운 시아버지를 마음 속으로 존경했다. 그녀는 큰집에 아들이 없어서 큰집 앞까지 선 남편과 함께 명희는 큰시부모를 모시느라고 여간 고생하지 않았다. 백호와 명희는 손자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아버지가 중풍에 걸린 것 같아 못내 죄송스러웠다. 백호와 명희가 아버지께 세수를 시켜주는 새에 정희는 본가집 이모사촌오빠한테 핸드폰을 쳤다. “오빠, 차를 몰고 우리 시집마을에 올 수 있소? 양? 양, 우리 시아버지 중풍에  걸린 거 같소. 병원에 모셔가자고 그러오. 양. 수고하겠소.” “에이고, 감사하긴 한데. 눈이 쏟아지는데 어떻게 오겠소?” 영옥이 막내며느리 일이 감사하면서도 미안해 두 손을 마주 비볐다. 정희는 눈물을 닦으면서 “괜찮아요. 하루 택시를 못하더라도 시아버지를 모셔갸야죠.”라고 하더니 시아버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주물러주었다. “우리 택시비를 줄테니 근심하지 맙소.” 상진은 아들며느리 소행에 주름진 눈시울에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성호는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처음 보았다. 성호가 눈물을 흘리자 상진은 나지막하게 나무랐다. “사, 사내자식이, 누, 눈물이 헤퍼서야 쓰니?” 아버지는 성호를 보고 이전에도 나무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사내자식이 말이 달고서야 쓰니? 뜨는 소는 끙 소리 없이 뜬다. 빈 퉁재(초롱)일 수록 소리가 더 나느니라.”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는 바깥에서는 거위털 같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그 쓰라리게 흩날리는 눈발이 서글프기만 했다. 한시간 거의 지나 경철이 빨간 택시를 몰고 도착했다. “사돈어른 어떻소?” 경철은 매형을 보고 문안했다. “괜찮아. 사람을 알아본다.” 정희는 동생을 보고 “수고해라. 중풍환자기에 차를 덜렁거리지 말게 천천히 몰아라.”라고 당부했다. “알았소.” 성호는 아버지를 업어 택시에 모셨다. 영옥과 은숙은 상진의 옷보따리와 이불을 택시에 실었다. 택시는 상진과 영옥을 모시고 시내 YB병원으로 달려갔다. 눈만 내리지 않았으면 반시간이면 될 길을 한시간이나 달려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그날 당직간호원은 우연하게도 간호장 벽화였다. 벽화는 성호를 알아보고 놀랐다. “성호, 어떻게 돼…” 그녀는 황급히 성호의 잔등에 업힌 로인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김국장 아닌가요?” 상진은 머리를 겨우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는 머리를 성호의 잔등에 맥없이 떨어뜨렸다. “어쩌다 이런 병에?” 벽화는 황망히 상진을 따라가면서 성호를 거들었다. “이쪽에 오오. 의사한테 먼저 진찰받고 입원수속을 하오.” 의무실에 이르자 벽화는 성호를 거들어 상진을 침대에 눕혔다. 의사는 상진의 혈압을 잰다, 눈을 번져본다, 청진기로 청진한다 하면서 진찰하느라 분주히 서둘렀다. 이윽고 의사는 조용히 진단결과를 내렸다. “뇌혈전에 걸렸습니다. 모세혈관이 몇가닥 막혔는데 점적주사를 좀 맞으면 인차 나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벽화는 성호를 보고 “뇌혈전은 경풍에 속하오. 너무 근심하지 마오.”라고 했다. 성호는 아버지를 업고 벽화가 이끄는대로 지정된 병실에 갔다. 그때까지 상진의  옆에서 걱정하는 승호 어머니가 고마우면서도 이상야릇했다. (승호 어머니 어떻게 아버지를 알아보지?) 벽화는 이전에 성호가 마음에 들어 선금과 맞선까지 보인 적도 있었다. (왜 저렇게 관심을 보일가? 사위가 됐으면 몰라도. 그때 절대 선금과는 안된다면서 얼마나 반대했는가.) 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승호 친구라고 관심하는가?) 이윽고 벽화는 간호원을 데리고 와서 상진한테 점적주사를 놔주었다. 정희는 벽화가 시켜주는대로 달아다니면서 입원수속을 마쳤다. 밤에 정희는 한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성호가 아버지 곁을 지키면서 대소변을 받아냈다. (하루 이틀도 아닌데, 맨날 김경리한테 청가 맡기도 그렇고. 광고를 물어오지 못하면 뭐라겠는가? 아버지 병간호가 문젠데.) 성호는 생각하다 못해 큰누나보다도 둘째누나 춘자한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큰누나 춘애는 소학교문도 나오지 못한 농사군인데 아주 힘겹게 살고 있었다. 요즘 춘애는 아들 군춘의 련애문제로 해 골머리를 앓았다. 군춘은 부대에 가서 운전사면허증을 타고 천수해술공장 운수대 대장으로 잘 나가고 있었다. 보통키에 꽤나 말쑥하게 생긴데다 항상 밝게 웃는 모습이 처녀애들의 호감을 샀다. 그리하여 따르는 처녀애들도 줄을 섰다. 어느날 군춘은 한 처녀애를 데리고 집에 와서 한 이불에 들었다. 처음에는 군춘이 처녀애를 데리고 와 조용한 집에서 그저 련애나 하려는가고 춘애는 자리를 피해주었다. 바깥에 나갔다가 우연히 집에 돌아와 가만히 쳐들린 창문 카텐 밑으로 집안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군춘과 처녀애가 한창 그 짓을 하고 있지 않겠는가. (아니, 쟤들이 결혼 전에 저게 뭐냐?) 당연히 춘애의 전통관념에는 맞지 않았다. 그녀는 문을 탕탕탕 두드렸다. 군춘과 처녀애는 황급히 옷을 주어입고 문꼬리를 벗겼다. “결혼 전에 이게 뭐냐? 응?!” 처녀애는 머리를 두 다리 사이에 파묻고 감히 쳐들지도 못했다. 군춘이 오히려 야단쳤다. “어머니, 작작 삐칩소. 지금 무슨 세월이라고 그런 걸 다 따집니까?” 춘애는 어이없어 턱을 홰홰 가로저었다. “이런 짓을 하려면 처녀애들을 작작 끌어들여라! 원, 꼴도 보기 싫다.” 춘애는 처녀애를 보고 훈계했다. “결혼 전에 이러다가 갈라지기라도 하면 어쩌오? 창피한줄도 모르고. 쯧쯧.” 처녀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황망히 신을 꿰고 바깥으로 달아났다. 그 후 그 처녀애는 다시는 이 집 문언저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일로 군춘은 어머니와 한바탕 말다툼했다. 나중에 군춘은 잔소리쟁이 엄마와 함께 살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엄마 몰래 세집을 잡고 나가버렸다. 춘애는 아들을 망쳐먹었다고 온 시내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땅 밑에 스며들었는지 아들 그림자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가 군춘이 퇴근할 때 미행하려고 먼발치에 숨어서 술공장 대문어귀에 아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눈치챈 군춘은 단위 차를 몰고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씽 도망쳐나가군 했다. “이 새끼야, 애비 없는 너네 오누이를 내 어떻게 길렀다고 이러니?” 그녀는 아버지 병문안을 와서 아들의 일이 답답해 성호한테 한바탕 하소연하고 돌아갔다. 무슨 일이 있으면 성호는 어렵게 사는 큰누나 춘애보다도 대학문을 나온 둘째누나 춘자한테 말하군 했다. 이번에도 성호는 둘째누나한테 알려 다른 형제들한테 아버지의 병간호를 좀 도와달라고 기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가까이에 있는 셋째누나와 다섯째누나가 제일 먼저 달려와 아버지 병간호를 거들었다. 어느날 성호가 병원에 왔을 때였다. 승호 어머니가 병실에서 점적주사바늘을 아버지 손등 혈관에 꽂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김범수가 직원들을 데리고 병문안 하러 오지 않았겠는가. 성호는 단위에 페를 끼치기 싫어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벽화가 승호한테 알린 것 같았다. 병문안을 온 직원들 속에는 굉팔까지 끼여 있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바쁜데 찾아와서.” 성호가 마주 인사했다. 해연이 두툼한 봉투를 꺼내 김범수 경리한테 건넸다. 범수는 상진의 손에 돈봉투를 쥐여주면서 “아바이, 병치료를 하는데 보태십시오.”라고 했다. 상진은 입술을 씰룩거릴뿐이였다. 성호는 황송해 몸둘바를 몰라했다.  “아니, 와봐도 대단한데 뭐 들고 왔습니까? 감사합니다.” 해연은 과일칼로 사과를 깎아 잘게 쪼갰다. 그녀는 손수 사과쪼각을 상진의 입에 넣으면서 문안했다. “김대장, 저를 알아보겠어요?” 상진은 한참 그녀를 바라보더니 머리를 약간 끄덕였다. “집체호 새애기 해연인데요. 꼭 완쾌되리라 믿습니다.” 이때 벽화는 뒤에 서 있는 승호를 한쪽에 끌고 가서 뭐라고 말했다. 승호는 황급히 앞으로 나와 상진의 손을 잡기까지 하고 문안을 드렸다. “성호 아버지, 전 성호 대학동창생입니다. 하루빨리 병치료를 하고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상진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이변이 생겼다. 벽화가 상진과 승호 옆에 다가가더니 “얘가 제 아들놈입니다. 승호예요.”라고 했다. 상진은 떨리는 손으로 승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두들 어안이 벙벙해졌다. 광고회사 직원들은 그저 우연한 만남이라고 여겼다. 제일 충격을 받은 사람은 성호였다. 아버지와 승호 어머니는 똑마치 잘 아는 옛친구가 오랜만에 만난듯 했다. 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 이상해.) 성호는 자기가 모르는 뭔가 있지 않는가고 미심해났다. 며칠 후 벽화의 주선으로 다른 병원에 가서 CT의기로 상진의 뇌촬영을 하게 됐다. 그 CT의기는 이 시내 병원들에 단 한대 밖에 없었다. 그날에도 승호가 찾아왔다. 분명 승호 어머니가 기별해 데리고 온 것 같았다. 벽화가 승호한테 눈짓하자 승호가 직접 상진을 업으려고 잔등을 들이댔다. “얘, 내 업을게. 물러나.” 성호는 싱거운 승호가 슬그머니 반감이 났다. “친구 사이에 따질게 뭐 있니? 친구 아버지는 내 아버지나 다름없지.” 승호가 기어이 아버지를 업자고 잔등을 내대자 성호는 화를 냈다. “얘, 내 체면이 뭐냐?” 그제야 승호는 마지못해 물러나 일어나더니 손수 상진을 부축해 성호의 잔등에 업히워주었다. 층계를 내려갈 때 성호는 아버지를 춰업다가 그만 발을 빗디뎌 앞으로 쓰러질 번했다. 다행이 승호가 제꺽 상진을 끌어안는 바람에 성호는 간신히 몸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내 업을게.” 승호 모자의 권고에 성호는 아버지를 승호에게 업혀주었다. 승호는 상진을 업고  간신히 한계단, 한계단 다 내려갔다. 목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아버지를 업고 가는 승호의 뒤모습을 보면서 성호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했다. (자식, 어떤 땐 굉팔한테 붙어서 죽기내기로 광고를 빼앗아가려고 발광하더니. 어떤 땐 과분하게 친절을 베풀어?) CT검사를 한 결과 확실히 대뇌모세혈관 두개나 막히지 않았겠는가. 벽화는 성호와 승호를 번갈아보며 위안했다. “괜찮아, 이제 치료를 좀 하면 인차 호전될 거야.” 벽화의 예측과는 달리 중풍환자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자꾸 업고 들락날락해 그런지 병세가 악화돼 상진은 사지마저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황급해난 성호는 먼 곳에 있는 형제들한테 아버지 병세가 위급하다고 전보를 쳐보냈다. 이튿날 춘자와 넷째누나 봉금이 밤차를 타고 황급히 달려왔다. 그녀들은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아버지 량손을 붙잡고 뜨거운 눈물을 텀벙텀벙 쏟아냈다. 그녀들은 병치료에 보태라고 돈봉투를 앓는 아버지 손에 쥐여주고나서 얼굴을 닦아준다, 손발을 씻어준다,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 하면서 효성을 하느라 분주히 서둘렀다. 성호는 외인들이 다 간 후 둘째누나와 조용히 휴계실에 나가 물었다. “편지를 써보냈는데 받았소?” “응.” 봉금은 성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뜻밖의 말을 했다. “부모문제 참 곤난하다. 우리 출가집 외인이 어쩌겠느냐?” “그게 무슨 말이요? 그래 딸들은 자식이 아니오?” 성호가 오만상을 찌푸르자 봉금은 정색했다. “옛날부터 아들이 부모를 모셨지. 딸들이 어디 모셨니? 우리 집에서도 큰오빠가 부모를 모시는게 맞아.” “농사군이 어떻게 모시오? 누가 조건이 더 좋으면 누가 모시는게 옳지. 내 부모를 모시겠으니까. 누나네도 한해에 생활비만 조금씩 도와주면 안되겠소?” 그때 은숙이 끼여들었다. “야, 말도 안돼.” 봉금은 얼굴이 새빨개나면서 떠들어댔다. “우리 두 집에서 모여서 의논했어. 이제껏 부모의 모든 경제는 네가 틀어쥐고 살지 않았니? 어떤 때는 혼자 득을 보고 어떤 때는 공동히 부담하자고 하니? 말도 안돼. 우리한테 손을 내미는게 말이나 되나? 우리 경상도에서는 출가집 외인은 본가집 일에 삐치지 않아.” 시집간지 20년 가까이 되더니 말투마저 경상도 거친 말투로 번지지 않았겠는가. “그래, 우리 경상도에서는 딸들이 본가집 일에 삐치면 재수 없다고 삐치지 않아.” “누난 그래 함경도 사람이지. 경상도 사람이오? 경상도 사람들은 그래 본가집 부모를 돌보지도 않는답데? 완전히  이상해졌구만.” 성호의 말이 고울리 만무했다. 춘자는 원래 팩하고 고집이 센 녀자였다. “얘, 죄꼬만게 무슨 말 버릇이냐? 이제껏 우리 부모한테 숱한 돈을 부쳐보냈어. 네가 고작 얼마나 부모를 보살폈다고 누나들 보고 떽떽거려?” 봉금도 고운 눈길이 아니였다. “얘, 우린 아무리 곤난해도 남한테 손 내밀지 않았어. 이날 이때까지 자기 힘과 노력으로 살아왔다. 너도 이젠 네 힘으로 살아라. 언제까지 막내노라고 서적  부리면서 여기저기 손을 내밀겠어?” 성호는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누나들 믿고 말을 꺼냈건만 이다지도 뜻밖으로 나올줄은 몰랐다. (딸들은 그래 우리 엄마 하늘땅이 맞붙게 아프게 낳아 기른 자식이 아니오? 이젠 올챙이때 일을 다 잊었구만. 그래 정춘과 정빈을 키울 때 누가 업어 키웠소? 울 엄마 돈 일전한푼 받지 않는 전문보모로 돼 애 둘을 다 업어 키우지 않았소? 봉금누나, 쌀고생한다고 영희와 근봉을 업고 본가집에 왔을 때 누가 숱한 쌀이랑 보내주었소? 누나 대수술 두번이나 하면서 죽는다 산다 할 때 누가 숱한 빚더미에 깔리면서도 치료해줘 살려냈소?) 그는 누나들한테 너무나도 섭섭하고 억이 막혀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부모가 저런 누나들의 말을 들으면 얼마나 섭섭하고 실망해하겠는가.) 성호는 더는 말을 나누고 싶지도 않았다. 저런 딸들을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없이 불쌍해났다. 성호는 고독함을 이기기 힘들었다. 조선에 나간 둘째형님 동선을 빼고도 형님과 누나 여덟이나 돼 항상 속이 든든했던 그였다. 그러나 이 시각 그는 믿던 기둥이 와그르르 무너지며 고독해나는 것을 가슴 아프게 느꼈다. 그는 형제들을 쭉 내리 훑어보며 재검토해보았다. 대학문을 나온 누나가 저러니 중학교문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형님과 누나들은 더 말할 나위 있겠는가. 맏형님 백호는 큰집 큰아버지 앞을 가서 모시느라고 큰아주머니를 여간 고생시키지 않았다. 게다가 이젠 년세도 예순고개를 바라보는데다 두 아들 놈들의 일이 풀리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큰누나 춘애는 음악교원인 박주룡한테 시집갔지만 남편이 뇌출혈로 불시에 사망하는 바람에 아직도 농사를 지으면서 힘겹게 산다. 그는 생활이 가난할 때 자기를 업어다 키운 토성안집 큰어머니를 모시고 있어 이쪽 부모를 돌볼 겨를이 없이 보내고 있었다. 셋째누나 은숙은 아들 낳자다가 딸 셋을 줄줄 낳고 그 애들의 뒤바라지를 하느라고 허리가 물러날 지경으로 농사일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다섯째누나 은자는 아래마을에 시집갔다가 애를 낳지 못한다고 쫓기다싶이 해 리혼하고 본가집에 얹혀서 살았다. 후에 여러번 재혼했지만 철준을 낳고 또 리혼했다. 그녀는 하는수 없이 웅걸을 본가집 부모한테 맡겨놓고 시내에 들어가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음식점일이나 주어하면서 사는 형편이였다. 여섯째누나 성숙은 경박호 폭포 근처에 시집가서 아들애 경남과 경춘을 낳고 살고 있었다. 키 작다고 나무린 시부모형제와 틀려서 항상 옥신각신하면서 힘겹게 살았다. 설상가상으로 매형이 자식 없는 큰아버지 앞을 서서 큰시부모까지 모시고 어렵게 시집살이를 하고 있었다. 성호는 아무리 올리 훑고 내리 훑어보아도 둘째누나 춘자와 넷째누나 봉금이 제일 괜찮다고 여겼다. 둘째누나 부부는 대학졸업생으로서 그래도 달마다 로임이 나오지 않는가. 정춘과 정일 두 애들도 이젠 오래지 않아 대학을 졸업할 판이다. 정춘은 중학교에서도 다섯손가락 안에 들게 공부를 잘했다. 대학입시를 칠 때 중학교 담임교원이 그를 보고 첫 지망에 길림대학을 쓰라고 했다. 그런데 그해 길림대학 입학점수가 어쩌나 높은지 정춘은 길림대학에 입학하지 못하고 할빈과학기술대학에 입학했다. 원래 중소학교에서 줄곧 체육위원을 한 그는 대학에 가서도 각종 활동에서 장기를 보였고 정치사상발전에도 힘써 학생당원으로 발전하였다. 또 그는 대학교 운동대회에서 장거리달리기 1등도 여러번 했으며 학생회 체육부장으로 활약했다. 할빈공업대학 석사연구생으로 된 후에는 연구생학원학생회 부주석을 담임해 맹할약했다. 그는 졸업을 앞두고 어머니와 성호한테 편지를 써보냈다. 그는 자기 앞에 두갈래 길이 있는데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옳은지 외삼촌의 고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 한갈래 길은 대학교 지도교수의 추천을 받아 미국에 가서 박사공부를 하고 돌아와 교수로 되는 길이라고 했다. 지도교수님은 일찍 미국에 류학가서 박사학위를 탔다. 그는 미국의 자기 지도교수라는 인맥을 통해 정춘을 미국에 류학보낼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런데 미국으로 가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그것은 자기 딸과 약혼하고 함께 미국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정춘은 지도교수의 딸이 키가 1메터 70, 남자같이 우둔하게 생겨 녀자 같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한갈래 길은 지금 한국의 한 유명한 기업에서 인재초빙하러 왔는데 기업으로 나가는 모험의 길이라고 했다. 성호와 춘자는 정춘한테 편지를 써서 미국으로 류학갔다가 교수로 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특히 지금 세월에 누구나 다 미국에 류학갈 수 있는가고 하면서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정춘은 어머니와 외삼촌의 말을 듣지 않고 모험의 길로 나갔다. 졸업을 앞둔 어느날 화동의 한 한국기업의 인사과장이 할빈공업대학에 와서 인재초빙공개회의를 열었다. 정춘은 외자기업의 소개를 듣고 초빙에 응했다. 오과장은 정춘의 략력을 보고 머리를 끄덕였다. “리정춘, 조선족, 26세, 할빈공업대학 연구생, 학생당원, 학생총회 체육부장, 부주석 력임.” 오과장은 학습성적이 특출하게 우수하고 학교 각종 활동에서 뛰여난 조직능력을 보여준 리정춘의 리력서를 따로 잘 건사해놓았다. 그러나 “학생당원”이란 것을 보면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인차 리정춘을 불러 면접을 보았다. 1메터 75나 되는 훤칠한 키에 싱글벙글 웃는 미남자의 얼굴이 첫눈에 호감이 갔다. 오과장은 기업경영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보았다. “뭘 보고 저의 기업에 오려고 해요?” 정춘은 꽤나 선견지명이 있었다. “세계에서도 유명한 이 외자기업이라면 저의 청춘을 바쳐 인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좋은 기업이라고 봅니다…” “좋아요. 우리 기업에 와서 함께 일해보자요. ” 정춘은 그 자리에서 그 한국 기업의 인사과 과원으로 초빙돼갔다. 리정춘은 지도교수의 딸이 아닌 다른 처녀, 할빈의 중등전문학교를 다닌 조선족처녀 김미옥을 데리고 남방으로 나갔다. 김미옥의 부모는 모두 할빈에서 한다하는 재벌가로서 집에 기업이 몇개 있었는데 장차 아들과 딸한테 경영을 나눠 맡기기로 했다는 것이였다. 만약 딸 미옥이 정춘과 결혼하면 할빈의 경영을 떼맡기겠다고 했다. 춘자 부부는 정춘이 미옥을 집에 데리고 왔을 때 대학생이 아닌데다가 키도 1메터 58 밖에 안된다고 나무랐다. 그들 부부는 키 1메터 75나 되고 잘 생긴 미남자 맏아들은 적어도 키 160 이상 되는 대학생처녀를 색시로 데려와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김미옥은 예쁘긴 했지만 학벌이나 체격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무랐다. 심지어 춘자 부부는 자기 집 문선에 1메터 60을 자로 재여 금까지 그어놓고 그녀가 나들 때면 눈이 시리게 키를 여겨보았다. 아무리 문으로 드나드는 그 처녀 키를 여겨봐도 문선에 그어놓은 표준키 1메터 60에는 미치지 못했다. 정춘이 그 처녀애를 데리고 강남에 나갔다고 하자 하늘땅이 뒤번져질 지경이였다. “당장 그 처녀애를 떼버려라! 어데 가서 그런 처녀애를 얻지 못하겠어?” 미옥의 부모들도 어찌나 정춘을 따라 남방으로 가지 말라고 성화같이 닥달했는지 미옥도 점차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사업형인 정춘은 밤낮으로 사업에만 골몰하다나니 미옥을 동무해줄 새도 없었다. 미옥은 직업도 없이 집에서 밥이나 하면서 너무 심심해 퇴근해 들어온 정춘과 불평을 토로했다. “어째 사업 밖에 몰라요? 쉬는 날엔 절 어델 데리고 가서 놀지도 못해요?” 뾰로통해하는 미옥을 보고 정춘은 그저 “우린 놀 시간이 아주 많소. 기업에 갓 와서 일 잘하지 않고 어쩌오?”라고 하고는 기업에 나가버렸다. 정춘은 그렇게 사업을 열심히 한 덕분에 인차 인사과 과장으로 승진했다. “날 데려다 가정보모로 쓸 예산인가? 어림도 없어.” 미옥은 독수공방하기 싫어 끝내 할빈으로 돌아가버렸다. 정춘이 아무리 돌아오라고 전화하고 편지를 써 보내도 다시는 련락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아들 정일은 무한공업대학을 졸업하고 형을 따라 미국기업 기술과에 들어가 취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과장으로 승진했다… 성호는 이젠 부모의 생활비 말을 일언반구 꺼내지 않고 자기 힘으로  고군분투하면서 부모를 모시리라고 작심했다. 순간 병실에서 병환에 계시는 머리 허연 아버지가 불쌍해났다. 부모는 자식을 열이나 낳았 건만 믿을만한 자식 몇이 없었다. 또 시아버지 발을 씻어드리고 발톱까지 똑똑 깎아드리는 사랑스러운 정희의 가녀린 모습이 눈물겹도록 불쌍해보였다. 성호는 코마루가 시큼해나 속으로 피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여보, 교수네 귀공주 같은 당신을 이 집에 데려다 해준게 없이 고생시키게 됐구만. 이 못난 농민 아들을 용서해주오.) 힘겨운 두달간이 지나자 상진의 병세는 호전돼 사지를 놀릴 수 있게 되였다. 그간 치료비만 해도 만여원이나 들어갔다. 성호는 광고를 해 번 돈을 몽땅 털어 아버지 병을 치료해주었다. 벽화는 성호를 불러놓고 입원치료비를 대기 힘들겠는데 집에 모시고 가서 약을 복용하고 간호원을 불러 점적주사를 놓으면 된다고 했다. 막내누나 성숙은 밤차로 달려와 아버지 손을 잡고 병문안을 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는 짝이 기운 신랑한테 시집가서 시집살이가 퍽 고달파보였다. 그녀는 키가 1메터 53밖에 안되는 작달막하게 생겼지만 신랑은 키가 1메터 75도 넘는 훤칠한 꺽다리였다. 성숙은 키는 작아도 총명해 무슨 일을 하나 궁리가 베아링처럼 잘 돌아갔다. 그러나 신랑은 그저 뚝심만 썼지 머리는 둔한 편이였다. 시부모와 시누이들이 짝이 기운다고 그녀를 난쟁이라면서 사람취급을 해주지 않았다. 하여 시부모와 시누이들과 항상 말다툼을 하기 일쑤였다. 성숙이 시부모를 욕하면 큰아들 경남과 둘째아들 경춘은 “엄마, 왜 자꾸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욕합니까? 이담 우리도 크면 딱 엄마 하는대로 하겠소.”라고 했다. 그 말이 섬찍해 성숙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설을 삼켜버리군 했다. 성호는 막내누나 성숙도 부모를 거들 겨를이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저러나 성호는 형님과 누나들이 병문안이라도 와주어서 고마웠다. 특히 막내누나 성숙은 손에 쥔 것이 없어 돈 50원에 신랑이 송화강강물에서 잡아 말린 메기와 미꾸라지, 붕어를 한보꾸러미 들고 온 것이 고마왔다. “물고기장국이라도 끓여서 아버지를 대접하자.” 성숙은 성호네 집에 가서 말린 물고기를 물에 푹퍼지워 물고기장국을 끓여 병실에 가져왔다. 아버지는 그 물고기장국을 얼마나 맛있게 잡쉈는지 몰랐다. 성호는 그보다도 순박하고 진심에 담긴 막내누나의 효성이 진하게 느껴졌다. 형제들이 그저 병문안이나 하고 말려는 눈치를 보이는지라 성호와 정희는 부득불 입원비를 더 지불하기 힘들어 약보따리와 옷보따리를 꿍져가지고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정희의 이모사촌오빠 리현철이 단위의 찌프를 몰고 와서 상진을 모셔 성호네 집으로 갔다. 영옥은 사돈이 고마워 인사로 쌀주머니를 차에 실어보냈다. 하루는 성호가 아버지 근심돼 집으로 가서 보았다. 그런데 글쎄 아버지는 방에 누운 채 대소변을 보아 오줌과 똥물이 주방에까지 흘러내려온 것이 아니겠는가.  집에서 지키던 엄마가 채소를 사러 시장으로 간 사이에 생긴 일이다. 성호는 아버지 똥오줌이 더러운줄도 잊고 대소변이 발린 옷을 몽땅 벗기고 구들의 오줌똥을 걸레로 깨끗이 닦았다. 뒤이어 똥빨래를 대야에 담아들고 세면실에 가서 손으로 똥을 털어버리고 물에 활활 휑구어 비누를 발라 썩썩 씻었다. 정희가 점심에 돌아와서 “어째 집에서 무슨 냄새 나요.” 하고 상큼한 코를 발름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무슨 냄새 난다고 그러오?” “냄새 나는 걸 냄새 난다고 하지 않겠어요? 흥!” 그녀는 시부모한테 밥상을 들여가다가 구들바닥에 슴밴 대소변자국을 발견하고 코를 막고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그 길로 코를 막고 학교로 가버렸다. 해가 지고 보름달이 휘영청 떴는데도 정희는 돌아오지 않았다. 보통 그녀가 한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소식이 없었다. “본가집에 데리고 갔을가?” 성호는 인차 가시집에 전화를 쳤다. 그러나 거기에도 가지 않았다고 했다. 당황해난 성호는 자전거를 타고 천수해중학교로 달려갔다. 그러나 학교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황급히 자전거를 타고 한나가 다니는 천수해소학교에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러나 그 곳에도 없었다. 성호는 당황망조한 나머지 자전거를 타고 천수해를 한고패 돌았다. 그래도 찾지 못하자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그는 혹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가고 막연한 미련을 품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가 영화관 앞을 스쳐 달려가다가 정희와 한나가 나란히 걸어가는 뒤모습을 발견했다. “한나야!” 성호는 자전거를 타고 그들의 앞에 달려가 급정거했다. “이때까지 뭘 했소?” “집에 들어가기 싫어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 길입니다.” 성호는 정희를 보고 눈을 흘겼다. “정신 있소? 집에 전화라도 칠게지.” 정희는 성을 낼 대신 나직이 말했다. “우리 둘째를 가지지 맙시다.” 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어째 우리 집 대를 끊을 예산이오? 그래 애를 낳기 싫어 집에 들지도 않소?” 정희는 정색해 말했다. “한나도 사탕을 나눠먹기 싫어 동생이 싫다는데요.” “됐소, 돼. 어서 앉소.” 정희는 자전거에 앉아 계속 도도거렸다. “아들을 해 뭘 해요? 내 무슨 전주 리씨네 대를 잇는 젖손가요?” “뭐? 젖소?” 성호는 어이없어 버릇처럼 도리머리를 홰홰 젓더니 정색했다. “우리 아들을 낳지 않으면 진짜 이 집안 대 끊어지게 되오. 보오, 큰형님네 아들 셋이라도 모두 장가도 가기 힘든 세월에 손자를 언제 보겠소?” “내 전주 리씨 집안 대를 있는 의무까지 있습니까? 지금 어디 애를 가질 형편인가요? 다른 형제들은 부모를 한푼도 도울 예산마저 없는데요.” “알았소. 우린 대를 끊는 불효를 저지를 순 없소.” “그만 두세요. 전 막내며느린데요. 무슨 의무가 그렇게도 많은가요? 대도 이어야 하고 시부모도 모셔야 하고…” “관두오!” 성호는 정희가 뒤통수를 치는 것 같아 괴로왔다. 그녀를 데려다 고생시키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정희는 한나를 안고 자전거에 올라탄 후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집 앞에 와서 자전거에서 내려 시부모한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손수건으로 닦고 또 닦았다. 성호는 속으로 피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가슴이 미여지는 것만 같았다…                                                     대하소설 진달래소야곡 제3권 실련의 눈동자    차례 50. 한 기자의 일기 51. 련꽃의 눈물 52. 사랑의 무덤 53. 세상에 참사랑이 있는가요?                          54. 열풍 55. 흐느끼는 울라지보스또크 56. 위기와 기회 57. 정미소특대참살사건 58. 빨간 장미꽃 함정 59. 조강지처 60. 밀모 61. 고민 62. 수림 속에서 벌어진 강간사건 63. 사위도 반자식 64. 기둥 65. 출렁이는 꽃서울 66. 부산에서 나래치는 갈매기 67. 애인파도 68.출렁이는 꽃서울 69. 실련의 눈동자 70. 부산에 피여난 진달래    
209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 (25) 댓글:  조회:1332  추천:0  2019-03-31
                          47. 사랑과 원한         범송은 시들어가는 예화의 마음을 살려내려고 모든 정성을 다하였다.         예화가 조개살을 즐겨 먹는다는 것을 알고 범송은 늘 생선관으로 데리고 갔다. 둘이 해산물을 어지간히 먹어도 200원  밑은 내밀어야 했다. 그러나 범송은 그 순간이라도 그녀가 비통과 고독 감에서 벗어나 조개살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자, 예화의 찬란한 앞날을 위해!” “고맙습니다.” 예화는 맥주잔을 들어 범송의 잔에 달라당 부딪치고 시원하게 마셨다. 대낮같이 환한 불빛 아래 수척한 예화 얼굴을 보는 범송의 마음도 쓰라렸다. 그는 될수록 예화를 최성균교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해산물을 자꾸 저가락으로 집어 그녀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예화는 이쑤시개로 조개 살을 쏙쏙 뽑아먹으면서 잠시나마 수척한 얼굴에 미소를 떠올렸다. 그 웃음은 진짜 예화의 얼굴에서 오랜만에 떠오른 값진 미소였다. 범송은 생선관을 나서자 그녀를 데리고 찜질방으로 갔다. 그들은 시원히 샤와를 하고 잠옷 바람에 따뜻한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마주 앉아 시원한 음료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뜩 예화가 애를 두고 나왔다는 대목이 피뜩 떠올랐다. “애는 어쩌고 나왔소?” “본가집 엄마한테 맡겼어요.” 기실 예화의 어머니는 범송이 실습을 갔던 천수해중학교 생물교원이였다. 알고 보니 예화의 어머니도 리혼하고 홀로 나서 예화를 고생스레 키웠던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예화도 어머니 옛길을 힘겹게 걷고 있지 않는가. 모든 것은 운명의 조화란 말인가? 예화는 요즘 고민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진 것 같았다. 범송은 스승으로서의 의무를 다 완수한 것 같아 내심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천정의 오색령롱한 전등불빛이 빙글빙글 돌더니 빠른 절주의 격렬한 음악이 자지러지게 울렸다. 모두들 디스크를 추느라고 야단법석였다. 예화는 일어나 범송의 손을 잡아 일으키더니 디스코마당에 뛰여들었다. 그녀를 기쁘게 해주려고 범송은 그녀와 함께 디스코를 춰댔다. 두팔을 추켜올리고 몸을 잽싸게 탈며 흔드는 그녀의 매혹적인 모습을 보고 모두들 신났다. 예화는 흥이 나서 정신을 잃고 여러가지 섹시한 몸놀림으로 디스코를 추었다. “그래, 마음껏 춰라! 모든 고민을 몽땅 털어버려라!” 범송은 예화의 생기발랄하고 매력적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응원했다. 다른 춤군들은 모두 예화가 열광적으로 멋지게 춤을 추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참 디스코를 춘 예화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조용하고 좀 서늘한 칸으로 범송을 이끌고 갔다. 예화는 따뜻한 찜빌방 바닥에 모로 눕더니 범송을 오라고 손짓했다. “선생님, 오세요.” 범송은 하얀 잠옷을 입고 누운 예쁜 예화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순간 가슴이 뭉클 하며 높뛰였다. 그는 예화가 오늘 따라 해당화처럼 아주 예쁜 감이 들었다. “오늘 기분이 아주 좋아요.” “기분이 좋으면 됐소.” 그녀는 생글 웃으면서 범송을 정답게 마주 바라보았다. “선생님, 돈을 많이 팔게 했어요.” “아니, 예화 기쁘면 돼.” “사모님한테 미안해요. 선생님의 곁을 이렇게 오래 차지해서요.” 범송은 묵묵히 예화를 바라볼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 이제야 선생님의 넓은 흉금과 고상한 품성을 알게 되였어요. 선생님께서 저를 고통의 심연에서 구하려고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보낸 진정 고마와요. 어떻게 은정을 다 갚을가요? 선생님, 선생님-” 그녀는 뭔가 말하려다가 말끝을 흐리며 웃몸을 일으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누우면서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선생님, 너무너무 사랑해요.” 예화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라 옆에 나란히 누운 범송을 꼭 끌어안았다. 뜻밖의 거동에 범송은 어리뻥뻥해 밀어내지도 못한 채 그녀가 하는대로 놔두었다. “딱 목석 같군요. 호호호.” 그녀는 범송의 뻣뻣한 목을 끌어안고 초롱초롱한 포도눈으로 마주 바라보다가  스르르 팔을 풀었다. 그녀는 한숨을 호~ 내쉬더니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집으로 돌아갑시다. 밤도 깊었는데 사모님이 기다리겠어요.” 그 후부터 예화는 사흘이 멀다하게 범송을 불러내 다방에서, 불고기집에서, 찜빌방에서 만났다. 그들은 노래방에 가서 마이크를 쥐고 은은한 악곡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서 복잡한 마음을 주고받았다. 시원한 음료로 닳아오르는 가슴을 지지고 서로 부둥켜 안고 막춤도 추었다. 예화는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고 마음이 홀가분해진 기분에 푹 빠졌다. 그녀는 이날 범송과 함께 노래방에서 목이 터지도록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뒤이어 그들은 전번에 갔던 찜질방에서 시원히 닳아오른 몸을 샤와에 식히고나서 나란히 누워 별의별 말을 다하였다. “전번에 우연히 점쟁이로파를 만난 적이 있어요. 점쟁이로파는 관상을 보더니 이러지 않겠어요. ‘음, 이쁘구만. 삼십대 새파란 나이에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줄낚시로 숱한 사내들을 줄줄이 낚아서 혼을 빼겠구나.’ 또 내 손금을 보더니 이렇지 않겠어요. ‘평생에 사내들을 많이 사귈 팔자구나. 네번째 남자가 천생배필이구나.’ 호, 그 말이야 어찌 믿겠어요. 저는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누가 그 네번째 남자겠는가 말이죠. 이젠 제 운명을 믿어요. 전번에 떠나간 시인은 세번째 남자니까 아마 전생에 연분이 없는 분인가 봐요.” 범송은 예화가 비통 속에서 서서히 벗어나 해맑은 모습과 삶의 용기를 되찾은 것을 보고 기뻤다. 그런데 의문도 떠올랐다. 최교수가 세번째 남자면 네번째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예화는 계속 가슴 속으로 우러나오는 열변을 토하였다. “이번에도 선생님이 삶의 용기를 복돋아주었어요. 선생님은 저에게 세번째 생명을 준 은인이고 신 같은 존재죠.” “아니, 제우스나 푸로메튜스 신이나 된 것 같소.” “그래요. 선생님은 저에겐 신 같은 존재죠. 전번에 한 사이트에서 선생님의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얼마나 딸을 낳고 싶었으면 그런 글까지 썼겠어요. 사모님은 어쩜 딸을 낳아주지 않아요? 나 같으면 딸을 둘이라도 낳아주련만요…” 예화는 진지한 표정을 짓는 범송을 보고 버릇처럼 혀를 홀랑 내밀었다. 저쪽에서 자지러진 디스코곡이 울렸다. 그녀는 전번처럼 범송을 이끌고 또  그리로 갔다. 하얀 잠옷을 입은 청년남녀들이 열광적으로 디스코를 추고 있었다. 예화는 그 세찬 디스코파도 속에 뛰여들어 열광적으로 디스코를 추었다. 디스코판이 끝나자 예화가 범송의 옆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밤을 새울가요?” “아니, 래일 출근해야 하오.”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도 활기를 띠였던 예화의 얼굴에 실망과 망설임이 넘실거렸다. “밤도 늦었는데 돌아가기오.” 밖에 나오자 예화는 범송한테 청을 들었다. “집에까지 데려다주겠어요?” “그래, 끝까지 책임져야지.” 범송이 택시를 부르려고 하자 예화가 말렸다. “아니, 전 오늘 밤 선생님과 함께 어디까지라도 멀리멀리 걷고 싶은데요.” “이게 몇시오?” 범송은 주춤 멈춰서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자정이구만. 바깥이 꽤나 쌀쌀한데 택시를 타고 가기오.” 하고 망설였다. “괜찮아요.” 예화는 범송의 팔을 끼고 딱 붙어서서  걸었다.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풀어헤친 긴 머리카락이 범송의 볼을 간질렀다. 예화는 신난듯이 어린애처럼 흥얼흥얼 코노래까지 부르면서 엉덩이를 덜썽거리면서 걸었다. 범송은 그 신난 모양을 보고 피씩 코웃음쳤다. 예화는 끝없이 이 말 저 말 늘여놓았다. 그는 부지중 말말간에 “첫번째 남자도 그저 그래. 멋적게 헤여졌지.”하고 말끝을 흐렸다. 범송은 더 물으려다가 이번에도 그만두었다. 그는 예화의 집 문 앞에 이르자 속으로 예화에게 삶의 용기를 북돋아준 것으로 해 스승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였다고 생각하면서 돌아서려고 했다. “선생님, 어쩜 차 한잔도 마시지 않고 가요?” “그래? 밤이 깊었어. 난 돌아가야 해.” “알았어요.” “오늘로 끝난 것도 아니고. 래일 다시 봅시다.” “그래. 래일 다시 보지.” “약속을 어기지 말아요. 래일 좋은 이야기 들려주지요.” “그래? 그럼 꼭 오지.” 그들은 깍지 걸이까지 하고 헤여졌다. 밤중에 집으로 돌아간 범송은 문을 살짝 열고 죄를 지은 도적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침실로 들어갔다. 그는 전등불도 켜지 않고 옷을 벗어버리고 스리슬쩍 선금의 옆에 기여들어가 번듯이 들어누웠다. “왜 이렇게 늦었습니까?” “일이 있어서.” 찰칵, 전등이 대낮같이 환히 켜졌다. 선금은 일어나 앉더니 범송을 똑바로 마주 보면서 물었다. “또 그 녀학생인지 뭔지 만났어요?” 범송은 개의치 않고 두팔을 깎지걸이를 해 벤채 선금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대답했다. “양, 자살하겠다는 걸 가만놔둘 수 있소?” 선금은 범송의 주먹코를 마구 비틀어놓았다. “에이고, 이 싱거운 나그네야. 그래 당신 말을 듣고 자살하지 않겠다고 하던가요?” “그래, 죽지 않았어. 지금 삶의 용기를 되찾고 새 삶을 살려 한단 말이요.” “죽는 거 살려냈으면 이젠 모든게 끝나지 않았는가요? 왜 사흘이 멀다하게 찾아가는가요?” 범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 혹시 예화를 구하다가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닌가요?” “어째 겁나오?” “아니, 그런 무직업자들은 근본 경쟁대상이 안돼.” “그런데 왜 그리 관심이 과하지?” 범송의 말 속에는 간사한 비난이 물결치고 있었다. 선금은 자리에 누워 묵묵부답하였다. 한참 후 그녀는 전등불을 잘칵 꺼버렸다. “당신, 대학문을 나왔으니 그렇지. 어데 가서 시내 공안국 과장네 귀공주와 살기나 하겠소? 농민의 아들이 이쁜 색시를 얻었으면 만족할줄 알리라 믿습니다. 잡시다.” 선금은 전에 없이 먼저 손을 써서 범송을 꼭 끌어안았다. “당신, 다른 생각을 하는 날엔 우리 오빠 가만놔두지 않을 거야. 알았지?” “에이고, 요것아, 난 널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우리 영철이 엄마 제일 예뻐.” “호호호.” “또 한가지. 난 그집 오빠처럼 바람둥이 아니오. 허허허.” “뭐라고? 다시 우리 오빠 말을 해보지.” 범송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며칠 후 범송은 구입과 사무실 문을 잠그다가 또 예화의 전화를 받았다. 주춤 멈춰서서 갈가 말가 망설였다. “또 선금한테 뭐라고 거짓말을 하지?” 핸드폰에서 예화의 호들갑을 떠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제가 한턱 내지요. 재미나는 얘기도 들려주고요.” 그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에라, 모르겠다. 가보자.) 그가 택시를 타고 예화와 항상 만나던 찜빌방으로 달려갔다. 예화가 찜질방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반갑게 맞았다. 범송은 버릇처럼 화장실부터 들어갔다. “어, 이게 누구야?” 화장실에서 뜻밖에도 승호를 만날 줄이야. 승호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밤중에 뭐야? 저 계집애 작작 만나라.” “녀학생이야.” “학생이라도 그렇지. 왜 사흘이 멀다하게 만나?” 범송은 개의치 않았다. “선금한테서 뭘 들었는 모양이구나. 저 앤 우리 최성균 선생을 짝사랑했다가 자살하겠다는 걸 어쩌겠니?” “허허허. 널 믿어. 그래서 녀동생도 줬지.” 승호는 아주 로련하게 자기 할 말은 다 하고 슬쩍 어색한 기분을 전환하면서 물러섰다. 진짜 탕탕 주먹을 안기고 살짝 빠져나가는 묘수였다. “무슨 일로 여기 왔니?” “오, 백화상점 광장군무 때문에 안무가들을 만났어.” “그래? 저 학생도 춤을 죽여준다. 보지 않겠니?” “그래, 그럼 합석하면 어떻니?” “좋아.” 범송이 화장실에서 나오자 예화가 조용한 방에 안내했다. 범송이 예화한테 승호를 인사켰다. “예화, 인사하오. 백화상점 공회 주석을 하는 내 동창생이오.” “안녕하세요?” “안녕? 리승호라고 부르오.” 승호는 예화와 악수를 나누는데 벌써 눈빛이 달랐다. (색마 같은 놈, 예화를 털끝 하나 다쳐보지.) 범송과 예화는 승호를 데리고 조용한 방으로 들어갔다. 범송은 아가씨를 불러 시원한 맥주와 안주를 주문했다. 주안상이 들어오자 범송은 맥주잔에 술을 돌리고 맥주잔을 들었다. “자, 한잔!” “건배!” 술잔을 잘라당 마주치는 소리 귀맛좋게 들렸다. 이상하게 예화와 승호가 그윽한 눈길을 마주치는 것 같았다. (진짜 추파를 보내는구나.) 범송은 이상야릇한 기분에서 빠져나오려고 모지름을 썼다. “리주석, 예화는 춤실력이 이만저만 아니오. 오간부와 말해서 백화상점 무용교원으로 데려오면 어떻소?” 승호는 기다렸다는듯이 “오, 그래, 그래. 지금 한창 군무를 련습하는데 솜씨 펴보오.”라고 하면서 예화의 걀죽한 미모를 슬쩍 훔쳐보는 것이였다. “이렇게 하기오. 먼저 우리 백화상점 녀무용수 옥설과 함께 군무를 리드하오. 전근수속은 후에 하지.” “고맙습니다.” 예화는 걀죽한 얼굴에 장미꽃을 활짝 피웠다. “백화상점을 무대로 삼아 한바탕 즐겨보죠.” 범송은 손사래를 쳤다. “그래, 백화상점에 아름다운 형상을 돋궈주오.” 예화는 쌔무룩이 웃었다. “예, 알았어요.” 예화는 범송의 옆자리에서 살짝 일어나 승호한테 맥주를 따라드리면서 습관처럼 아양을 떨었다. “오늘 또 귀인을 만났네요. 리주석, 분부만 하세요. 뭐든 잘 해드리겠어요.” 승호는 기다렸다는듯이 입귀가 째질 지경이면서도 범송의 눈치를 슬슬 엿보면서 맥주잔을 굽냈다. 그도 범송과의 사적관계를 밝히지 않고 지껄여댔다. “최 과장, 허허허. 예쁜 무용수를 우리 공회에 소개해줘서 고맙소. 예화라지?” “예.” “예화, 우리 무용대에 와서 잘하오. 뒤근심은 하지 마오. 빵도 있고 우유도 있을 거요. 허허허.” 승호는 녀인을 홀리는데는 이골이 텄다. 그는 범송의 눈치를 보면서도 예화와 서로 부둥켜안고 교배주까지 마시면서 놀아댔다. 아예 예화를 범송한테서 떼내가려는 눈치였다. 녀동생에게도 좋고 자기에게도 예쁜 예화가 생겨서 일거량득이 아닌가. 범송은 년놈들이 노는 것이 진짜 눈골사나왔다. (개꼬리를 삼년 파묻어놔도 그 개꼬리라더니. 쳇, 저래서 영희가 시름놓지 못하지.) 범송도 외롭게 맥주잔을 들어 쭉 굽을 냈다. 이때 찜빌방대청 쪽에서 요란한 댄스곡이 울렸다. 승호는 범송을 보고 예화를 데리고 가서 춤실력을 보자고 했다. 번쩍번쩍 빛나는 오색령롱한 불빛 아래 숱한 청춘남녀들이 자지러진 음악에 맞춰 신나게 디스코를 췄다. 얼근히 마신 예화도 춤판에 뛰여들었다. 그녀는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요동치면서 실버들가지처럼 날씬한 허리와 탄력있는 엉덩이에  허벅지까지 비틀고 흔들며 열광적으로 디스코를 춰댔다. 그녀의 섹시한 몸매와 디스코실력은 완전히 뭇사람들의 눈알을 몽땅 빼갈 지경이다. “좋지! 좋다!” 승호도 춤판에 뛰여들어 예화와 함께 디스코를 추었다. 예화의 부드럽고 섹시한 춤에 걸맞게 승호의 춤은 강인하고 열렬해서 기복과 조화를 이루었다. 나중에 다른 춤군들은 빙 둘러서서 박수 치며 응원하고 예화와 승호가 쌍무를 추는 격으로 됐다. 탕! 갑자기 천정에서 샨데리아가 박산나며 땅바닥에 와르르 흩어져내렸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여기저기서 녀인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제길할, 썩 꺼지지 못해?!” 골프채와 야구방망이를 든 거머칙칙한 깡패들이 우르르 뛰여들었다. “쳐라!” 깡패들은 다짜고짜 승호한테 씽 덮쳐들었다. “쳐라!” 깡패들은 골프채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승호를 구석에 몰아넣었다. 승호는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몰라. 몸을 훌쩍 날려 벽을 마구 톺아오르다가 뒤로 공중잡이로 먼저 덮쳐온 깡패 어깨우로 날아넘어가며 발길을 날렸다. “악!” 깡패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나동그라졌다. 고양이처럼 바닥에 날아내린 승호는 그 놈이 떨군 골푸채를 주어들고 호랑이처럼 깡패들과 맞서 싸웠다. 그새 범송은 질겁해 바들바들 떠는 예화를 빼내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춤군들도 재수없다고 두덜거리면서 사처로 헤여졌다. 깡패들은 수적우세를 믿고 승호를 물샘틈없이 포위하고 각일각 조여들며 골프를 휘둘렀다. “얏!” 기합소리와 함께 한 청년이 깡패들의 뒤에서 밥상다리를 뽑아들고 바람개비처럼 휘두르며 깡패들을 쳐눕혔다. 승호가 피뜩 보니 뜻밖에도 하늘에서 날아내린듯이 성호가 아니겠는가. 기실 성호는 가시아버지 전화를 받고 허송파네가 승호와 범송을 치러 간다는 것을 알고 급히 택시를 타고 찜질방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물론 전번에 광고 때문에 백화상점에 갔을 때 승호가 괘씸하게 놀았다. 하지만 성호는 위험에 처한 승호와 범송을 구하지 않고 이리떼 같은 깡패들한테 맞아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하늘에서 신병이 내린듯 성호가 합세하자 힘을 얻은 승호는 골프채를 휘둘러 서넛을 쳐눕혔다. “뛰쳐나가자!” 승호가 고함치며 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깡패들은 뜻밖에 뛰여든 승호와 쌍둥이처럼 생긴 성호를 보고 주춤거리다가 제 정신이 펄쩍 들어 고함치며 쫓아왔다. “서라!” “어디로 도망쳐!” 뒤에서 깡패들이 악마처럼 맹추격했다. 범송은 예화를 빼보내고 찜질방 밖에서 승호와 합세했다. 그들 둘은 닫다가도 제일 먼저 달려드는 깡패를 쳐눕히며 어둠 속에  사라져버렸다. 예화는 먼발치에서 용감한 최 과장과 리승호의 모습을 보고 못내 탄복했다. 며칠 후 예화는 백화상점 광장에서 집체댄서를 추는 옥설를 비롯한 녀무용수들 속에 나타났다. 백화상점을 지나가던 숱한 행인들이 미녀들의 집체댄스를 추는 것을 구경하였다. 그녀는 녀무용수들의 절주 있는 집체댄스 뒤끝에 격조 높은 음악에 맞춰 디스코를 분방하게 췄다. 진짜 관객들의 눈길을 모았다. 아니, 숱한 사람들의 찬탄 속에 그녀의 디스코는 춤판을 고조에로 이끌어갔다. 그후부터 날마다 오전 10시 좌우와 오후 3시 좌우이면 그녀를 비롯한 미녀들의 집체춤판이 펼쳐졌다. 하여 백화상점은 손님들의 열렬한 인기를 끌었고 매출액도 눈뜨이게 올라갔다. 모두들 공회 주석 리승호는 재간 있고 능력이 있다고들 감탄할 지경이였다. 안수련 총경리는 웃음주머니가 흔들거렸다. 그녀는 뜻밖에도 승호가 전근하겠다는 말을 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리주석, 왜 전근하려오?” “백화상점에서 할 일이 없습니다.” “아니, 주석을 시켰는데 좀 좋아 그러오?” “아무런 실권도 없는 필마옹을 그만두겠습니다. 전번에 성호가 찾아왔을 때도 보십시오. 백화상점의 리익과 광고회사와의 신용을 위해 동창생인 것도 체면을 가리지 않고 충고했건만. 제 의견은 받아들였습니까?" “어디로 가려고?”  “제발 놔주십시오. 경옥을 해친 나쁜 놈입니다.” 안수련 총경리는 서류가방을 챙기다가 손을 멈추고 승호를 유심히 마주보았다. “어머니 뭐라더냐?” 성호는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는 갑자기 머리를 번쩍 쳐들며 정색해 따지고 들었다. “솔직히 말하십시오. 절 죽여치우고 싶었는데 왜 중용했습니까?” 안수련 총경리는 정색하더니 서류가방에서 손을 떼고 의자에 되앉았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개인 감정으로 사업을 대하지 않아. 네 능력을 봐서…” “건 전부가 아닙니다.” 안수련 총경리는 아주 태연자약하게 조용히 말했다. “그래, 널 보는 순간 누군가 련상되더구나. 딱 그 사람을 닮았어.” “누구를?” “아니, 아니야. 리과장을 닮았단 말이야.” “의사질하던 그 사람 말인가요? 그 사람 때문에 우리 어머니와 사랑싸움까지 했잖았습니까?” “더는 속이지 않을게.” 안수련 총경리는 단정히 앉더니 승호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그래. 넌 리과장의 아들이 아니야.” “?” “넌 리공석의 아들이야! 공석을 딱 떼닮았어.” “리공석?” “그래. 리공석은 의사였어. 나와 네 어머닌 그이 고중동창생이였어. 그이 아버지는 우리 현 공안국 국장이였어.” “네 엄마와 난 누구도 그이를 가지지 못했어. 그는 앓아서 죽었으니까.” 성호는 정신이 아찔해났다. 안수련은 온몸을 전률하는듯 하더니 떨리고 격앙된 목소리로 뒤말을 이었다. “아, 그이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아. 네 에미한테 숱한 사랑과 정을 주고 떠나갔단 말이야. 미남이였어. 아주 천하미남이였지.” 그녀는 돌아서더니 분명 어깨를 들먹이고 있었다. “공석의 죽음으로 모든게 끝났어. 그런데 네가 우리 딸을 해쳤어. 금이야, 옥이야 하는 내 딸 경옥을 네 놈이 다쳐? 가라, 다시 순진한 처녀애들을 해치면 죄를 만날 거야.” 그녀는 승호를 외면하면서 창가에 다가가더니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난 널 보는 순간 공석을 보는 같아 해치지 않았다. 모든 건 허황한 꿈이였어.” 승호는 번개를 맞은듯 뇌리에서 우뢰가 진동쳤다. “리공석?!” 누구일가? 승호는 안수련 총경리한테 허리 굽혀 인사하고 총경리실을 나오면서도 그 이름을 외웠다. 그러나 어머니도 안수련 총경리도 더는 마음의 상처를 긁으면서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다. 한편 그는 범송이 처지도 근심스러웠다. (어머니와 나에 대한 원한의 골짜기가 저렇게 깊은데 내 매부라고 놔둘가?) 승호가 길거리를 나왔을 때는 모든 것이 자오록한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그가 근 10년이나 몸을 잠그었던 백화청사, 아니, 온 시내가 몽롱한 안개와 연기 속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성난 사자와 같은 정열이 삼복염천의 무더위처럼 휩쓸고 지나간 뒤에 고독이 흐느끼며 꼬리를 물었다.                48. 간판광고의 달인         여우도 추워 발을 동동 구르면서 눈물을 흘릴 겨울이 덮쳐왔다. 동장군의 랭랭한 입김이 대지를 핥으면서 지나가자 하늘땅이 몽땅 꽁꽁 얼어붙었다.         성호는 맵짠 추위에도 광고를 물어들이러 뛰여다녔다. 그는 어쩌다가 마수걸이로 백화상점의 “장백산금술”광고를 얻어들여 단통 광고수입 만원을 올렸다. 김범수 총경리는 성호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참 잘했소. 이제 그런 큰 ‘고래’를 몇개만 더 걸여오면 올해 광고임무를 완수하겠군. 힘내오, 젊은이.” 이때 경리실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김범수가 전화기를 들자 욕설부터 울렸다. “김경리, 당신 정 재미 없게 놀겠어? “무슨 소리오? 리경리.” “백화상점광고를 빼앗아갔더구만.” “우리 언제 빼앗았소?” “그래도 시치미 딸 작정인가?” “백화상점에서 결정했지. 우리 빼앗아온 건 아니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남의 광고를 빼앗아간단 말인가? 엉?” “작작 떽떽거리오. 우린 절대 빼앗지 않았소.” “개소릴 작작 쳐. 우리 광고회사가 쫄딱 망하게 생겼다니까. 백화상점 광고를 몽땅 성호한테 위탁한다고 하더군.” “시장경제시대엔 뭐나 신용과 능력으로 첫째지. 눈물에 의거해선 안되네. 하하하.” “당신 진짜 기를 채울래? 그따위 짓 해보라우. 언제 된방매를 맞지 않나!” “그쪽이 망하면 이쪽으로 전근해오게나. 허허허.” “개소릴 작작 치라우!” 김경리는 이쪽으로 건너왔다. “성호, 잘했소. 저 굉팔은 너무 치사하오. 저자가 보기 싫어 상급에 말해서 혼자 나와서 이 광고회사를 따로 차렸소. 헌데 이젠 우리 회사와 경쟁해서 지게 생겼소. 허허허.” 그는 성호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튿날 성호는 백화상점의 가전제품광고를 계약하려고 자전거를 타고 백화상점으로 재차 달려갔다. 도중에 굉팔의 희번뜩거리는 우멍눈이 떠올라 저도 몰래 잔등에 식은 땀이 돋아났다. (리경리와 정면충돌하면 어쩌지?) 그는 백화상점 광장에 이르러 자전거에서 내렸다. 섹시한 녀무용수들이 집단으로 댄스를 절주나게 추고 있었다. 그는 궁리를 번개같이 굴렸다. (다른 백화상점도 찾아가서 광고를 동원해볼가?) 그러나 인차 주춤 멈춰섰다. (거기서도 리경리를  만나면 어쩔가?) 이윽하여 그는 간신히 마음을 굳혔다. (이게 바로 현실도피주의라는 거야. 언제까지 굉팔을 피해야 하는가? 안총경리가 나를 믿는 한 리경리와 경쟁해서 이길 수도 있잖은가.) 그는 백화상점에 들어가 승강기에 올랐다. 그런데 뜻밖에도 승호와 딱 마주칠줄이야. “안경리를 찾아가지?” “응.” “가지도 말라. 백화상점 광고는 내가 도맡았어.” 뜻밖의 말에 성호는 주춤 멈춰섰다. 그는 원래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승호 말이 미덥지 않았다. “얘, 네가 웬 광고냐?” 승호는 총경리실을 흘끔 쳐다보더니 긴 목을 빼들고 목소리를 낮췄다. “굉팔 경리네 광고회사로 가기로 했어.” “오~” 성호의 머리는 삼검불같이 복잡해졌다. 승호는 비난사정을 들이댔다. “좀 양보하면 안되겠니? 굉팔 경리는 꽤나 까다롭다. 큼직한 광고를 들고 들어가야 내 앉을 자리 있을게 아니냐?” 성호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다가 “그래라. 백화상점 광고는 네가 더 잘할 수도 있지.”라고 했다. “안돼!”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안수련 총경리가 얼굴이 퍼러뎅뎅해 나타났다. “우리 백화상점 광고는 성호를 내놓곤 누구한테도 주지 않아.” 승호는 머리를 천천히 쳐들었다. “안총경리, 절 한번 봐주면 안됩니까?” “꿈도 꾸지 마오.” 안총경리는 승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성호를 보고 반색했다. “자, 어서 들어가기오.” 성호는 승호의 눈치를 보면서 차마 발을 떼지 못했다. 그때 범송이 나와 승호의 팔소매를 잡아당겼다. 승호는 범송의 손을 뿌리치면서 안총경리를 보고 돌직구를 퍼부었다. “이제야 본질이 드러났구만.” 범송은 승호를 마구 끌고 구입과 쪽으로 갔다. 숱한 직원들이 복도에 나와서 이쪽을 보았다. 안수련 총경리도 질세라 욕설을 퍼부었다. “넌 성호의 발치에도 못 가! 량심 없는 놈.” 그는 성호를 돌아보며 상냥하게 말했다. “성호는 ‘정의용사’죠. 우린 ‘정의용사’와 손잡겠소!” 성호는 마지못해 총경리실에 스적스적 따라들어갔다. “백화상점 광고를 승호한테 맡기면 안됩니까? 괜히 싸움이라도 나면 어쩝니까?” 안총경리는 조금전보다 정서가 퍽 안정됐다. “파리 무서워 장 담그지 못하겠소? 그런 탐욕스럽고 허위적인 놈들한테 광고를 맡길 순 없소.” 그녀는 광고계약서에 통쾌하게 싸인하고 도장을 뚝 찍어주었다. “행인들의 눈에 확 뜨이게 광고를 잘 설계해주오.” “예, 가전제품광고에 이쁜 아가씨를 배경으로 세울가 합니다.” 안수련 총경리는 반색했다. “참 창의적인 설계오. 행인들 눈길을 끌 수 있겠소. 죽은 가전제품이 살아나는 감도 나지 않고 뭐요.” 성고가 광고계약서를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수련 총경리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성호, 아예 우리 백화상점에 와서 일하면 어떻소?” 성호는 섬찍해났다. 승호를 실컷 리용해 먹고 가차없이 썩뚝 잘라버리는 그녀와 어쩐지 함께 일하기 싫었다. “믿어줘서 고맙습니다. 전 광고를 좀 해봐야겠습니다.” 안수련 총경리는 성호한테 다가오면서 정색했다. “우리 백화상점은 이젠 주식회사로 탈바꿈하게 되오. 우리 백화상점 상품광고비만 해도 한해에 20만원 빠져나가야 하오. 우리 백화상점에 광고회사를 차리면 광고비를 남아도 번 것이 아니고 뭐요? 우리 광고회사 경리를 하면 어떻소?” 성호는 그녀의 시대에 앞선 경영의식에 놀랐다. 그러나 성호는 그녀가 능란할수록 더욱 싫어졌다. 그는 능란하고 교활한 인간들 속에서 갈등을 겪으면서 살기 싫었다. 그래서 우직한 소 궁둥이나 치면서 살려고 고향 산속으로 들어간 적도 있지 않았는가. 안수련 총경리는 제 좋은 궁리만 굴리고 있었다. “백화상점 주식을 많이 사면 장차 부리사장이 될 수도 있지.” 성호는 허구픈 웃음을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되겠습니다. 백화상점 광고를 맡겨줘서 감사합니다.” “아까운 인재 자그마한 광고회사에서 썩겠구만.” 등뒤에서 안경리의 탄식소리가 들렸다. 성호는 광고회사에 돌아오자 곧추 경리실에 들어가 광고계약서를 김범수 경리 사무상 우에 내놓았다. “아니, 이게 뭐요? 단번에 12만원 계약했소?” 김범수 경리는 광고계약서를 들고 보면서 만면춘풍이 흘렀다. “진짜 기적이요. 우리 광고회사에 광고달인이 나타났구만. 하하하.” 성호는 숙였던 머리를 들더니 자못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김경리, 굉팔은 지금 승호를 내세워서 우리 광고를 빼앗아가려고 합니다.” 김범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성호는 금방 백화상점에서 벌어진 일을 쭉 이야기했다. “보오. 뭐나 믿음이 중요하오. 굉팔이 아무리 욕심 써도 되오? 안경리는 정의용사를 믿는단 말이요.” 김범수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의자에 되앉았다. 성호는 한마디 더했다. “2백화상점에 가서 광고동원을 할가 하는데 어떻습니까?” “아니, 아니오. 그러지 마오.” “예?” 김범수 경리는 의자등받이에 잔등을 대더니 성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정색했다. “백화상점 사이에 원래 상업경쟁이 심하오. 2백화상점 광고 나가면 안경리가 좋아하겠소? 괜히 곰이 옥수수이삭을 따는 격이 되겠소.” 듣고보니 도리가 있었다. “너무 욕심을 부렸구만.” “그래, 만약 2백화상점 광고동원을 가더라도 내 가는게 훨씬 낫을 수 있지.” “예?” “들어보라구.” 김범수는 의자등받이에 잔등을 기대더니 허리를 쭉 폈다. “제 가면 두 백화에 가전제품광고경쟁을 불러일으키는게지.”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내 가면 경쟁을 붙인다는 말은 듣지 않을 수 있잖소?” “예, 알았습니다.” 김경리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지금 상급 오간부는 우리 두 광고회사가 무리한 경쟁을 하기에 총체적인 광고수입에 영향준다고 하오. 오간부가 막다른 조치를 댈 수도 있소.” “예~ 광고가 이렇게 복잡할줄은 몰랐습니다.” “잘 해보오. 전도 창창한 대학졸업생인데 뭐나 전면적으로 고려해야 하오.” “예, 명심하겠습니다.” 김범수 경리는 만족스레 웃음지으면서 나가보라고 손짓했다. 성호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면서 경리실을 나와 촬영실에 들어갔다. “큰 광고를 얻어왔다면서?” 선희가 일어나더니 허리를 비꼬면서 사뿐사뿐 다가와 아양을 떨었다. “명모델을 어떻게 써먹으려는 건가요? 섹시한 창의설계를 했나요?” 성호는 겸손하게 나왔다. “명모델 선희 얼굴에 먹칠을 하지 말아야지. 우리 잘 설계해보기오.” “그러죠.” 성호와 선희는 촬영실에서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모아 멋지게 설계해나갔다… 며칠 후 백화상점 높은 벽에 환한 간판광고가 높이  걸렸다. 커다란 간판광고에는 이런 장면으로 장식됐다. 섹시한 모델 선희가 짧은 치마 바람에 두 손으로 색텔레비죤을 받들어 가리키고 있다. 그 옆에 선희가 한쪽 다리를 뒤로 살짝 비꼬고 한손으로 랭장고 문을 열고 한손으로 랭장고 안을 가리키고 있다. 처음 섹시한 아가씨를 배경으로 가전제품을 홍보하는 파격적인 간판광고는 퍽 인기를 끌었다. 며칠 후 안총경리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성호, 감사하오. 간판광고 덕분에 숱한 손님들이 가전제품을 사러 몰려왔소. 구입과에서 미처 판매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할 지경이오.” “예, 저도 기쁨니다. 광고비는 언제 주겠습니까?” “깜빡 잊었구만요. 오늘 당장 가져가오.” “고맙습니다.” 성호는 그 자리로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백화상점에 달려갔다. 그는 재무과에 가서 5만원짜리 돈표를 받아가지고 광고회사로 가면서 베아링처럼 속궁리를 굴렸다. (백화상점 광고에만 매달려선 안돼. 꼭 새 광고를 개척해야지.) 성호는 광고회사에 돌아와 재무과에 들어가 해연한테 은행 수표를 내밀었다. “우~와~ 5만원짜리야?!” 해연은 수표를 쳐들고 보면서 야단쳤다. “수고비만 해도 만원이야. 만원. 한턱 내.” 성호는 사람좋게 웃었다. “모델아가씨도 한턱 있겠죠?” 선희가 문을 떼고 들어서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럼.” “어머, 군침부터 난다. 호호호.” 성호는 선희가 어쩐지 이상한 녀자로 보였다. 광고를 설계할 때 “아이유, 더워라.” 하면서 고의로 짧은 치마 폭을 들어 부채질하면서 우유빛 허벅지를 드러내보이지 않겠는가. 그렇다, 해연과 선희는 이전에 조과장과 승호한테 찰싹 들어붙어 질탕하게 놀아난 아가씨들이 아닌가. 그때도 선희는 초면강산에도 승호 무릎에 마구 올라가 앉지 않았는가. 성호는 그녀들의 정체를 다 몰랐지만 자기 감각을 믿었다. (이런 녀자들과는 매사에 주의해야지. 자칫 함정에 빠지겠어.) 성호는 그녀들과 금을 쪽 그어놓고 일했다.
208    동화 꼬리 긴 토끼 댓글:  조회:1119  추천:0  2019-03-25
                                                동화      꼬리 긴 토끼                 김장혁               1        아름드리나무숲이 우거진 삼림락원에서 코끼리 대왕이 여러 동물들을 거느리고 화목하게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엄청나게 크고 꼬리 긴 토끼가 삼림락원으로 깡충깡충 뛰여 왔어요. 코끼리 대왕은 길다란 코를 슬슬 만지면서 규례대로 숱한 집식구들 앞에서 새로 온 토끼 신분부터 조사했어요. “넌 어데서 살던 토끼냐?” 토끼는 앞발을 쳐들고 수다를 떨었어요. “대왕님, 저를 삼림락원에 받아 주세요. 저는 마음이 착해서 백두산 일대에 소문이 자자한 백설토끼예요. 저는 백설이란 이름처럼 마음이 깨끗하죠.” “백설토끼?” “예. 저는 밀림 속에서 이슬맺힌 풀을 뜯어먹고 맑은 샘물을 마셔서 마음이 이슬처럼 깨끗하죠. 보세요. 티없이 깨끗한 저의 마음이 바깥으로 우러나와서 털마저 백설 같고 티없이 깨끗하죠. 마음은 어찌나 새빨간지 눈알마저 빨갛지요. 백두산 일대에선 모두 마음씨 착한 저를 명실에 부합되는 백설토끼라고 칭찬이 자자한데요.” 코끼리 대왕은 토끼의 횡설수설에 귀가 솔깃해졌어요. “음, 참 그럴 듯하구나.” 이때 호랑이 경찰이 불쑥 백설토끼한테 물었어요. “네 꼬리는 왜 그렇게 기냐?” 화뜰 놀란 토끼는 긴 꼬리를 사타구니에 끼여 늘어뜨리면서 아양을 떨었어요. “호호호. 잊으셨나요? 옛날 한 토끼가 어는 강물 속에 꼬리를 넣어 고기를 낚는 척해서 호랑이를 꾀여 강물에 꼬리를 넣게 해 얼어붙게 한 이야기 있잖아요? 그후부터 그 토끼 후손들은 꼬리가 몽땅 짧지요. 그러나 저의 조상의 마음은 호랑이를 속이지 않았지요. 그래서 깨끗한 마음을 가진 우리 조상들은 긴 꼬리를 대대로 물려줄 수 있었죠.” 그 감언리설에 호랑이 경찰도 “오- 그런 판이였구나.” 하고 흰 수염을 슬슬 쓰다듬었어요. 토끼는 신나서 부산을 떨었어요. “저의 큰 빨쭉귀는 산중 어른들의 말을 특별히 잘 듣지요. 요 오물오물 입은 남의 허물을 절대 하지 않지요. 리간 따위는 한마디도 할줄 몰라요. 하기에 만물의 령장 인간들도 달나라 옥토끼 어쩌구저쩌구 하지 않는가요?” 사냥개가 왕왕 짖어대며 나섰어요. “대왕님, 저자의 감언리설 소홀히 믿지 마세요. 토끼는 이전에 룡왕도 속이고 거부기 잔등을 타고 룡궁을 벗어났잖아요? 왕왕왕!” 토끼는 눈알이 빨개 반박했어요. “작작 짖어대라. 남을 헐뜯긴? 물어뜯는 건 너희 사냥개들 큰 흠이야. 흥!” 세상만사에 두 귀가 뻘쭉하고 비리에 도전하면서 왕왕 짖어대는 사냥개는 물러서지 않았어요. “하나 묻자. 넌 왜 몸통이 그렇게 크냐?” 토끼는 쓴 웃음을 지었어요. “흥!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개 새끼 가소롭구나.” 코끼리 대왕과 호랑이 경찰 그리고 사냥개의 눈길이 일제히 토끼한테 쏠렸어요. 토끼는 아주 태연자약하게 떠들었어요. “에이, 너희들은 장백산 아래 토종 토끼만 알았지. 유럽에서 갓 들여온 벨지끄 토끼는 모르는구나?” “뭐?” “벨찌끄 토끼?” 모두들 의아해 귀를 도사렸어요. 토끼는 앞으로 나오면서 지껄여댔어요. “벨지끄 토끼는 특별히 커서 보통 몸무게가 10여킬로그람이나 되는데요. 꼬리도 특별히 길지요.” 모두들 머리를 끄덕였어요. 코끼리 대왕은 파초 같은 귀를 너펄거리더니 길다란 코를 슬슬 매만지면서 령을 내렸어요. “깨끗한 마음을 헤아려 백설토끼를 삼림락원에 받아들여 창고관리원으로 임명한다.” “옛, 고마와요. 저한테 창고를 맡기면요. 고기 한점 축나지 않을 거예요.” 백설토끼는 기뻐서 깡충깡충 뛰였어요.                               2   이튿날, 백설토끼는 수림 속에서 먹음직한 나무이파리를 보자 깡충깡충 뛰여가 코끼리 대왕을 모셔다 대접했어요. 코끼리 대왕은 백설토끼의 충성심에 흐뭇하였어요. 이때 사냥개가 풀숲에서 코로 냄새를 씩씩 맡으면서 뛰여다녔어요. 백설토끼는 대뜸 빨간 눈에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렸어요. 고개를 갸우뚱하던 백설토끼는 구새먹은 통나무 쪽으로 뛰여가 한창 늘어지게 자던 곰을 불러 깨웠어요. “아흠, 남의 잠을 깨우면서. 참, 웬 일이냐?” 곰이 통나무굴 속에서 어슬렁어슬렁 기여나왔어요. 백설토끼는 곰의 귀에 대고 앞발로 삿대질했어요. “곰아저씨, 저 놈 사냥개 글쌔 아저씨를 헐뜯지 않겠어요.’ “뭐라고?” “사슴이랑 잡아먹는 젤 악독한 놈이라고 했어요.” “뭐? 고 놈 범 무서운줄 모르는 하루강아지 어데 있냐?’ “저기-” 곰은 부리나케 사냥개한테로 덮쳐갔어요. 허나 사냥개가 깨갱거리면서 잔나무숲 속으로 들어가 숨었어요. 곰은 잔나무숲 속으로 들어갈 수 없어 씩씩거렸어요. 시에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찬다고 성이 꼭두까지 치민 곰은 사냥개를 놓치고 저쪽에서 풀을 뜯는 꽃사슴한테로 덮쳐갔어요. 곰은 미처 도망치지 못한 사슴을 앞발로 와락 덮쳐 뿌리를 내리누르며 목을 꽉 깨물었어요. 꽃사슴은 짹 소리도 못치고 피를 흘리면서 풀밭에 쓰러졌어요. 노루와 기린 같은 초식동물들은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 곰을 욕했어요. 백설토끼는 노루와 기린한테 다가가 소곤거렸어요. “기실 곰보다 더 요사하고 괘씸한 건 저 놈 사냥개야. 금방 곰이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하자 잔나무숲 속에 곰을 데리고 가서 개고기보다 스슴고기 더 만만하고 맛있다고 꼬드겼어. 그 바람에 사냥개 대신 애매한 꽃사슴이 목숨을 잃고 말았어.” “음-참 고약한 놈이구나.” 백설토끼는 간사한 웃음을 지었어요. 사냥개는 불찌가 탁탁 튀는 눈길로 백설토끼를 노려보았어요. 질겁한 백설토끼는 통나무굴 쪽으로 뛰여갔어요. “곰아저씨, 저기 사냥개 잔나무숲에서 나왔어요.” “그래? 때마침 고발했다. 고 놈 성가신 사냥개까지 잡아먹어야지. 흐흐흐.”                            3   온종일 사냥개를 쫓아다니다가 헛물을 켠 곰은 해가 질녘에야 나무동굴 부근 바위돌 쪽에 돌아왔어요. 바위돌을 들고 허기진 배를 달래려던 곰이 갑자기 고래고래 고함쳤어요. “아니, 어느 놈이 내 꽃사슴고기를 뭉청 뜯어먹었어?” 호랑이 경찰이 뛰여와 보니 바위돌 밑 흙을 판 자리와 웬 꼬리가 끌리운 자리가 나 있었어요. 사냥개가 뛰여와 씩씩 냄새를 맡더니 왕왕 짖어댔어요. “분명 저 백설토끼 냄샌데요. 왕왕왕!” 백설토끼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아니, 이 엉큼한 사냥개야, 내 마음이 얼마나 깨끗하다고 헐뜯어? 그래 고기도 먹지 않는 내가 훔쳐먹었다면 누가 믿겠느냐?” 그는 코끼리 쪽으로 돌아서더니 대성통곡쳤어요. “아유- 코끼리 대왕님, 억울해 죽겠어요. 분명 사냥개 저 놈이 훔쳐먹구 나한테 덮어씌우려 해요. 엉엉엉.” 코끼리 대왕은 백설토끼가 만만한 나무이파리와 기름진 풀을 먹게 해준 일을 떠올리자 퉁사발 같은 눈알을 부라렸어요. “그래, 아무렴 초식동물이 고기를 훔쳤겠느냐? 흥!” 그 코바람에 주먹만큼한 돌멩이가 먼지를 일구면서 쒹- 날려갔어요. 백설토끼가 앞발질하며 사냥개를 욕했어요. “저 놈 사냥개 리간놓고 밤낮없이 짖어대기에 삼림락원이 조용할 새 없어요. 대왕님, 저 놈 사냥개를 당장 쫓아내세요.” 사냥개도 지려고 하지 않았어요. “여러분, 그래 바른 말을 하는 제가 잘못했는가요? 나와 곰아저씨도 조 놈이 리간질했죠. 도적은 분명 조 놈이예요.” 곰이 앞발로 백설토끼를 덮치며 피묻은 주둥이로 꽉 물려고 들었어요. 백설토끼는 황급히 코끼리 대왕의 쇠기둥 같은 다리 사이로 깡충깡충 도망쳤어요. “왜 이래요? 도적도 증거가 있어야 잡는 거죠.” 코끼리 대왕은 어느 말을 들어야 할지 몰라 퉁사발눈을 데룩거리다가 꾹 감고 덤덤히 앉아 있었어요. 그때 호랑이 경찰이 무슨 묘수라도 생각난듯이 코끼리 대왕의 축 늘어진 귀에 대고 뭐라고 쑤근거렸어요. 코끼리 대왕은 퉁사발눈을 번쩍 떴어요. “그래, 여기 우리 집 식구들 가운덴 도적이 없어. 서로 의심 말고 모두 돌아들 가라구.” 모두들 헤여져갔어요. 백설토끼와 사냥개는 서로 독기어린 눈깔로 쏘아보았어요. 그들의 부딪치는 눈길 사이에서 우뢰가 울고 번개가 번쩍이었어요.                                4 삼림락원에 밤장막이 서서히 드리웠어요. 곰은 먹다남은 꽃사슴고기를 바위돌로 꾹 짓눌러놓고 나무굴에 가서 쿨쿨 자기 시작했어요. 한밤중에 사냥개는 어데선가 땅을 긁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어요. 그는 소리나는 쪽 풀숲에 살금살금 다가갔어요. 깜짝이야! 후미진 풀숲 속에 웬 굴이 펑 뚫려 있지 않겠어요. 분명 웬 놈이 바위돌 밑까지 굴을 파고 들어가 번마다 곰의 고기를 훔쳐 먹은 것이 아니고 뭔가요? 사냥개는 통나무굴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곰을 깨웠어요. 뒤이어 코끼리 대왕과 호랑이 경찰도 불러왔어요. 그들이 바위돌 주위와 굴어귀를 둘러싸고 숨을 죽이고 있을 때였어요. 바위돌 밑에서 까드득까드득 고기를 뜯어먹는 소리가 들렸어요. “에익, 도적놈!” 곰이 바위돌을 움쩍 들었어요. 와닥닥 놀란 도적놈이 몸을 돌려 굴 속으로 달아나려고 했어요. “이 놈, 죽어봐!” 곰이 들었던 바위돌을 꽝 메쳤어요. 도적놈은 그만 바위돌에 긴 꼬리를 끼운 채 굴 안으로 들어가려고 바득거렸어요. 호랑이 경찰이 도적놈의 몽뚱이를 콱 밟았어요. 순간 곰이 도적놈의 긴 꼬리를 잡아당겼어요. 굴 속으로 도망치려던 도적놈이 그만 가죽이 쭉 벗겨졌어요. “아니, 이게? 마음씨 그렇게 깨끗하고 착하다던 백설토끼 가죽이 아닌가?” 호랑이 경찰의 말에 모두들 눈이 휘둥그래졌어요. 코끼리 대왕이 퉁사발눈을 뚝 부릅뜨고 똑똑히 보았어요. 꼬리 긴 토끼는 분명 토끼가죽을 쓴 여우였어요. 사냥개가 짖어댔어요. “왕왕! 보세요. 이래서 천길 물 속은 알아도 한치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잖았어요. 왕왕왕!” “에익, 안팎이 다른 교활한 놈! 원레 리간질이나 하구 도적질을 일삼는 간사한 도적놈이였구나!” 성이 꼭두까지 치민 코끼리 대왕은 망돌짝 같은 발굽으로 여우놈의 배때기를 꽝 밟았어요. 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여우 배때끼가 터졌어요. 그 엉큼한 배때기에서 꽃사슴 고기가 왈칵 터져나왔어요.
207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24) 댓글:  조회:1483  추천:1  2019-03-18
                   46. 탈바꿈        락엽이 우수수 지는 마가을의 고향 천지꽃산의 풍경은 누런 벌거숭이로 되여 꼴분견이였다. 다만 “가을이 돼야 소나무가 푸름을 알 수 있지 않는가?” 하고 묻는 듯이 소나무 몇그루만이 푸르른 기상을 떨치며 우뚝 서 있었다. 락락장송 사이 사이로 앙상한 진달래나무가지들이 락엽을 떠이고 서서 입새로 스며드는 추위에 사시나무 떨 듯하고 있었다. 누렇게 번진 이파리들은 땅바닥에 떨어지면서도 자기를 꽉 붙잡지 않았다고 돌랑돌랑 나무가지를 탓했다.        우사에서는 물초롱만큼한 젖통을 디룽디룽 단 얼룩 젖소 서너마리가 한창 소여물을 먹고 있었다. 황소들은 젖소들을 질투나 하는듯이 간혹 뿌리로 젖소를 들이박으려고 하다가도 주인의 눈치를 보고 대가리를 저으며 피해버렸다. 이른 아침이면 성호는 적토마를 타고 천지꽃산에서 소를 몰았다. 상진은 칠순에도 마음이 낡지 않아 룡혈말을 타고 아들을 거둘어 소를 방목했다. 성호가 그만두라고 말리면 상진은 뭐라는지 아는가. “말 타고 방목하는 건 힘든 일 아니야. 해방전쟁 때 이런 말이 아니라 노새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 기관총과 이불짐까지 백근 넘어 지고서도 산비탈을 달아다니면서 적들과 싸웠어.” “이젠 년세가 계시지 않습니까?” “내 걱정 말고 빨리 시내에 가서 앞길이나 잘 개 척해라. 뭐나 시기하구 기회가 있는 법이야. 시기를 놓치면 모든게 끝장난다.” “예, 이젠 시내에 진출할 때 된 것 같습구마.” 상진은 룡혈말 고삐를 당겨 성호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뒤말을 이었다. “교수네 딸을 데리고 시내에서 살아야지. 농촌에서 소궁둥이 쳐서야 되니? 난 네가 대학을 가니 한뉘 농촌에서 땅을 파는 농민의 그루를 시내에 박게 됐다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그런데 소궁둥이 치러 고향에 돌아오다니. 참, 얼마나 실망했는지 아니?” 밭고랑같은 주름살이 진 상진의 이마에 수심의 그림자가 흘러갔다. 그는 채찍을 날려 룡혈말을 타고 산중턱을 번개같이 달렸다. “쨔!” 성호도 적토마 고삐를 놓아 뒤따라 달렸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절벽 쪽으로 몰려가는 소들을 이쪽 마른 강냉이대 널린 밭쪽으로 몰아왔다. 상진은 성호와 말머리를 나란히 했다. “내몽골에 갔다가 살아왔으면 됐어. 그때 우린 얼마나 놀라고 근심했는지 몰라. 며느리는 이틀이 멀다하게 소식이 있는가 찾아왔댔다. 어쩜 소식도 전하지 않고 그래?” “너무나도 절망스러워 집에 알릴 맥조차 없었습구마.” 상진과 성호는 말을 타고 경사가 강하지 않은 쪽의 비탈을 따라 스적스적 령마루에 올라갔다. 천지꽃산 아래를 굽어보니 올망졸망한 초가삼간이 널려 있고 논배미가 주름살처럼 늘어서 있었다. “이 땅은 우리 할아버지 괭이로 일군 황무지야. 이 땅을 소중히 여겨야 해.” 그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대학졸업생인 넌 이 땅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이젠 여기 근심은 하지 말고 시내에 들어가 사회 사업을 좀 해라.” 성호는 마음속으로 굳게 대답하였다. 사실 성호가 내몽골에서 구사일생으로 강도들의 마수에서 벗어나 소떼를 기차에 부쳐가지고 돌아와 소떼가 불어났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성호네 장사를 해주는 것 같아 성호네 소와 우유를 사려고 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동불사 령감과 세린하 령감의 뒤공론이 큰 “공”을 세웠다. 그는 늙은 비술나무 아래에 모인 마을 령감들을 보고 뾰족한 턱을 쳐들고 뒤공론했다. “우리 무슨 성호 돈을 벌라고 그 집 우유를 사겠소? 흥!” 세린하 령감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잖고. 우린 이제껏 우유라는 걸 마시지 않고도 살아왔소. 어디서 몽골 우유를 퍼들고 집집이 돌아다닌단 말이오?” 두 령감은 부르고 썼다. “대학을 밑구멍으로 다녔다오?” “막다른 골목에 소궁둥이나 치는  판이지.” “좌우간 이상하오. 쟤네 애비도 공안국 국장까지 철직받고 시골에 락향하지 않았소?” “그 애비에 그 아들이 아니고 뭐요?” “허허허.” “하하하.” 그들은 작심한 것처럼 성호 부자를 헐뜯었다. “성호는 우리 마을 사람들이 다 바본가 하는 모양이지. 누가 몰라? 몽골소를 눅게 사다가 비싸게 팔아 뭉치돈을 벌자고? 쯧쯧쯧.” “그만하오.” 덕팔 령감이 듣다못해 역정냈다. “남의 되는 호박에 손가락질 작작 하라이.” “오~” 동불사 령감이 뾰족한 턱을 치켜들고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곽재령감의 코마루에 대고 손삿대질을 했다. “이 령감이, 어째? 성호한테 잘 보여서 돈이나 꿔 쓰자고 이러오?” 곽재령감은 한발자욱도 물러서지 않았다. “작작 헐뜯소. 당신 이 마을에 이사온지 몇해오? 이 마을은 성호네 조부가 개척한 마을이오. 알기나 하오?” “뭐? 뭐?” 동불사 령감은 뒤로 물러서면서 세린하 령감한테 몸을 돌려 구원을 청했다. “이걸 보오. 우리 후에 이사왔다고 없신여기잖소?” “그 령감이 원래 간에 가 붙고 슬개에 가 붙고 하는 령감이 아니고 뭐요. 알고 보니 저 령감이 옛날부터 상진령감한테 붙어서 득을 보았답데.” “령감이 정미소를 차리겠다더니 일부러 만원호 부자한테 아첨하는게 아니고 뭐요?” “그래야 성호네 돈을 꿔서 정미소를 차리지.” 그때 상진이 룡혈말을 타고 소를 몰고 마을에 들어서는 바람에 비술나무 아래에서 떠들썩하던 소리가 잠잠해졌다. 비술나무에서 재잘거리던 참새들도 놀라 포로롱포로롱 날아나버렸다. 상진은 동불사령감과 세린하령감의 뒤공론을 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는 성호와 의논하고 소와 우유를 마을 사람들한테 팔지 않고 시내 소시장에 가지고 가서 팔게 했다. 마을에서 누가 부림소가 없어 농사철을 놓치게 되면 소를 무상으로 빌려주어 쓰게 하였고 우유는 먹고 싶어하는 마을사람들한테 아주 싼 값으로 팔았다. 하여 마을 사람들의 인심을 얻고서도 소장사는 장사대로 잘 됐다. 상진과 성호는 몇해 사이에 고향 마을에 큼직한 일들을 척척 해놓은 것으로 해 흐뭇했다. 성호는 소와 우유를 팔아 목돈을 벌자 벽돌을 실어다 부모한테 큼직한 팔간짜리 벽돌기와집을 지어주었다. 마을의 오보호 마반산집 할머니한테 벽돌집 한채를 지어주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 가운데는 비쭉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동불사 령감은 “흥! 돈깨나 번거 같으니 인심을 내는 척하는구만.” 하고 코웃음을 쳤다. 세린하 령감은 “애비 뒤를 이어 이 마을 촌장이나 할 모양이요.” 하고 맞장구를 쳤다. “대학을 밑구멍으로 졸업했다오? 이런 시골 마을에서 촌장이나 하면서 굴러다니다니?” “흥! 개천에서 룡이 났다고 했더니 호박을 쓰고 돼지굴로 들어간다고 하오.” 성호는 코웃음치는 두 령감을 보고 개의치 않았다. 그는 평두산집 할머니가 이 마을의 조산사로 돼 자기를 비롯한 숱한 애들을 받아낸 은혜에 보답하려고 벽돌집을 지어드렸뿐이였던 것이다. 성호는 마을 제일 북쪽 옛날 생산대 탈곡장자리에 큼직한 벽돌기와집을 지어놓고  로인독보조활동실로 쓰게 주었다.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고 농망기에 돈이 딸려 힘들어하는 집에서 찾아오기만 하면 선금을 척척 대주어 마을 사람들은 성호한테 엄지를 내둘렀다. 한번은 동불사 령감이 중풍을 맞아 앓아누웠는데 입원치료를 할 돈이 없었다. 그때도 성호는 아버지와 토론하고 입원비를 선대해주었다. 덕분에 동불사 령감은 몇달 후에 병마를 털어버리고 지팽이를 짚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됐다. 그때부터 동불사 령감은 태도를 확 바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성호를 치켜세웠다. “야~ 성호야 말로 우리 마을 구세주요. 정말 저 집 부자간은 어쩜 저렇게 마음씨 착하오.” 곽재령감이 정미소를 차릴 자금이 모자라 찾아오자 성호는 3천원이나 선대해주었다. 그리하여 곽재령감은 두부장사를 때려치우고 이젠 늘그막에 정미소에 척 들어앉아 부근 10리 안 사람들의 쌀을 찧어주면서 살게 됐다. 마을 사람들은 성호를 두고 상진을 뒤이어 마을에 나타난 구세주라고 하면서  떠받들었다. 거기에는 동불사령감의 입김이 용을 쓰고 있었다. 세린하령감도 천천히 태도를 바꿨다. 그는 마을 로인활동실에 가서 장기를 땅땅 두면서 칭찬이 자자했다. “야, 성호는 정말 천하에 둘도 없는 효자요, 효자!” 동불사 령감이 지팽이를 짚고 활동실에 들어서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러잖고. 성호 덕분에 우리 마을 령감들이 이젠 바깥에서 헤매지 않고 비 오는 날에도 로인활동실에서 장기를 땅땅 놀게 됐소.” “점심에는 두부를 바꿔다 시원한 막 걸리나 한 사발 마시기요. 허허허.” “성호 가져온 우유도 끓여서 마시기요. 허허허.” “우리 황혼 참 멋있구려. 하하하.” 곽재령감은 집에 놀러 온 아들 철주한테 정미소를 맡겨놓고 로인활동실에 들어왔다. 그는 동불사 령감과 세린하 령감을 손삿대질했다. “어째 성호한테 장사를 시켜주자고 우유랑 마시오?” “에이, 령감!” 동불사령감은 웃으면서 지팽이를 들어 곽재령감의 엉덩이를 칠 상 했다. “다 지나간 얘기지. 이제 누가 성호를 욕하면 내 이 지팽이로 족치겠다니까.” 세린하령감도 맞장구를 쳤다. “우리 마을 구세주를 누가 욕하겠소? 허허허. 안 그렇소?” “그러잖고. 하하하.” 정희는 성호가 마을 사람들을 위해 통이 크게 노는 걸 한사코 반대했다. “여보세요. 어떻게 번 돈이라고 그렇게 훌훌 줴줍니까? 목숨을 내 걸고 번 돈이 아니고 뭡니까?” 성호는 파랗게 질린 정희의 걀죽한 얼굴을 쏘아보았다. “어떻게 쓰든 작작 삐치오.” “자기 부모만 부모라고 가시부모는 념두에 두기나 했어요?” “가시부모는 그래도 층집에서 교수로임을 타서 잘 살지 않소? 우리 부모를 보오. 칠순이 넘도록 한뉘 농촌에서 땅을 파면서 고생하잖소. 벽돌집을 지어준 걸 다신 말하지 마오.” “글쎄 시부모한테 벽돌집을 지어준 거 말하는게 아니죠. 동네 로인활동실을 지어주거나 오보호할머니한테 집을 지어준 건 너무 하지 않아요?” “…” 침묵을 지키는 성호를 흘끔 곁눈질하더니 정희는 계속 도도거렸다. “엉덩이를 들여놓을 손바닥만한 집도 없어 가지고 여기저기 푹푹 퍼주긴?… ” 성호는 정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정희, 나를 어떻게 보고 이러오? 이제 시내에 가면 가시부모께도 효성을 해드리겠소.” 그제야 정희는 해시시 해 종주먹으로 성호의 넓은 가슴을 두드렸다. 하나도 “아빠, 시내에 가죠?” 하고 목에 매달렸다. 성호는 하나를 와락 끌어안고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아이고, 우리 귀염둥이야.” 아들며느리와 손녀가 희희락락거리는 모습을 보고 상진과 영옥의 주름살이 쫙 펴졌다. 성호가 요즘 시내에 들어간다는 말을 듣자 마을 사람들은 너무나도 믿던 기둥이 뽑히는 것 같아 아쉬웠다. “성호, 네가 가면 우리 마을 사람들은 누굴 믿고 사니?” 곽재령감은 우사칸에 찾아와 성호를 보고 눈물이 글썽해했다. 성호는 짐을 자전거 짐받이에 동이다가 말고 희죽이 웃으며 진정을 고했다. “아바이, 제가 고향을 영 떠나는게 아닙니다. 시내에 가도 자주 고향 마을에 돌아오겠습니다. 이 우사칸을 칠순고개에 오른 아버지한테 맡길 순 없잖습니까? 마을 사람들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꼭 돕겠습니다.” 그제야 곽재령감은 밭고랑처럼 진 주름살을 좀 펴면서 한숨을 후~ 내쉬였다. 상진은 아들이 짐을 싸는 걸 거들면서 밭고랑 같은 주름살이 조글조글한 얼굴에 춘풍이 감돌았다. “아버지, 어머니,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를 칩소.” “그래지. 근심하지 말고 어서 가라.” 상진은 한시름을 놓으면서 한숨을 후~ 내쉬였다. 자전거를 척 타고 시내로 떠나는 아들 뒤모습을 보고 영옥은 어깨춤까지 덩실덩실 추었다. 성호는 그간 가시집에 너무 가지 않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자전거를 타고 곧추 가시집으로 달려갔다. 가시부모들은 속으로 “해가 서산에서 뜨지 않는가?”는 놀라운 표정이였다. 성호는 자리에 앉자 가시부모를 보고 “그간 자주 찾아뵙지 못해 미안합니다.” 라고 하면서 웃호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더니 정희한테 눈짓했다. 정희는 대뜸 해시시하면서 그 봉투를 어머니한테 드렸다. “이건 뭐요?” 가시어머니는 두툼한 돈봉투를 받아들고 놀란 표정으로 사위를 바라보았다. “이제껏 부모님네 신세만 지고 한번도 효성을 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에이, 무슨 소리오? 이걸 가져가오.” 가시어머니는 돈봉투를 성호 쪽으로 되밀어주었다. “그래, 우린 돈이 딸리지 않네. 그저 저네 세식구가 무사히 보내면 족하네.” 성호는 기어이 가시어머니한테 돈봉투를 드렸다. “이걸 받지 않으면 전 가시집으로 올 면목이 없습니다. 자그마한 성의니깐 받아주십시오.” “맞아요. 사위가 돈을 벌었는데 부모님들도 호광을 부려야죠.” 가시어머니는 할 수 없이 “성의는 받겠소. 고맙소.” 하고 일단 건사했다. 엄삼기 교수는 성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래, 시내에 들어와 무슨 일을 할 예산이오?” “글쎄 말입니다. 맞갖은 일터가 없습니다.’ “광고회사에 가면 어떻소?” 가시아버지 말에 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이전에 광고회사에 가보니 틀렸습디다. 낑낑거리면서 술공장 광고랑  가져오니까. 리경리는 나를 쫓아내고 술공장 광고를 뺏아갔습니다. 서로 빼앗아먹기를 하는 판에 어떻게 일합니까? 생각만 해도 정신이 다 잃어집니다.” 성호는 광고회사에 갔던 일을 되돌이키기도 싫었다. 엄교수는 로실하고 마음이 어진 사위가 확실히 리해득실만 따지는 리경리 밑에서 일하기 힘들겠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경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위가 시내에서 할만한 마땅한 자리가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정희처럼 중학교 같은데서 교편을 잡을 사람은 아니고…) 한참 궁리하던 엄교수는 “백화상점 같은데 가서 구입과  과장을 하면 좋겠는데.” 하고 말을 내보았다. 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거기서 우리 동창생 범송이 과장을 합니다.” 엄교수는 성호를 정색해보면서 말했다. “아무리 궁리해봐도 사위는 광호회사로 가는게 옳은 것 같소. 리경리네 광고회사 말고 내 학생이 경리를 하는 다른 광고회사에 가면 어떻소?” 성호는 여전히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에이구, 황금이 흑사심이라고 누군들 탐욕스럽잖겠습니까?” “그래, 동문 뭘 할 예산인가요?” 성호는 정희한테서 눈을 떼 가시부모한테 돌렸다. “택시업을 할가 합니다.” “뭐라고?” 성호는 신심에 차 말했다.  “제가 소사양을 하면서 오래동안 궁리했습니다. 남의 밑에서 벌벌 기기보다 자체로 개체택시업을 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엄교수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계속 개체호를 하면서 살 예산이오?” 바위돌처럼 굳어버린 성호의 얼굴을 보아 이미 마음을 든든히 먹은 것 같았다. 엄교수는 상을 찡그리더니 “마지막으로 충고하기오.”라고 하면서 성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무리 시장경제시대라고 해도 자그마한 철밥통이라도 하나 든든히 붙잡아둔 후 과외로 택시업을 해도 되오. 왜 대학졸업장을 그렇게 값이 없이 버리려고 하오?” 성호는 가시아버지 말씀이 지당하다고 생각했다. 국영단위에 이름을 걸어놓고 기본생존에 보험을 해놓고 과외로 택시업을 하는 것이 최적의 방법이였다. “좋습니다. 국영단위에 출근하겠습니다.” “공안국에 가면 어떠오? 전번에 내몽골에서도 ‘정의용사’상을 탔더구만. 우리 시공안국에서도 저를 잘 알고 있지. 공안국의 로국장님 아들인데다 이모부가 공안국에 있으니까. 공안국에 가는게 유리할 거 같소. 제 생각은 어떻소?” “공안국에 가지 않겠습니다. 전번에 공안국에서 밀려나왔는데 무슨 체면에 또 간단 말입니까? 자존심이 상해서, 원.” “그럼 어델 가겠단 말이오?” 성호는 가시아버지를 정색해 바라보았다. “리경리네 광고회사에는 다시 가지 않겠습니다. 시내에 숱한 국영광고회사가 있는데 다른 광고회사를 알아보겠습니다.” “오, 그래?” 엄교수는 안경을 춰올리면서 “내 한가지 충고하기오.”라고 하더니 사위의 손을 잡기까지 했다. “사위, 자꾸 복잡한 갈등과 경쟁이 싫어 현실을 도피하지 마오. 저도 알겠지만 사회생활을 하자면 수많은 갈등과 경쟁에 부딪칠 수 있소. 그런 갈등과 경쟁을 피하려고 시골에 가서 소사양을 하는 건 나약한 표현이오. 광고업계나 공안국에서 일하자면 치렬한 경쟁과 갈등을 겪어야 하오. 이 세상에서 경쟁과 갈등이 없이 척척 돼나가는 일이 어디 있소? 왜 현실 모순과 경쟁을 자꾸 회피하려고 하오? 성호는 지식과 능력이 있소. 현실 모순을 정확한 방법으로 해결하고 갈등과 경쟁을 용감히 이겨나가면서 자기 갈 길을 가야 하오.” 성호는 가시아버지의 말씀이 자기 나약성을 적중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뜻까지 굽힐 수는 없었다. “알았습니다. 전 광고회사에 출근하면서 과외로 택시업을 해보겠습니다.” 가시아버지는 사위의 손을 굳게 잡아 흔들면서 정희와 안해를 돌아보았다. 한시름을 놓는 순간이였다. “래일 김경리한테 련계를 달겠네.” “예, 고맙습니다.” 언제나 뒤심이 돼서 남몰래 돕는 가시아버님이였다. 사실, 이전에 리철갑 과장과 허철만 서기의 비리를 록음한 테프를 공안기관과 당규률검사위원회에 제공한 사람은 성호의 가시아버지 엄교수였다. 대학가의 공학교수인 그는 첨단도청기를 자기 집 뒤창문 쪽에 가설해놓고 허서기와 깡패 허송파 형제를 감시해왔던 것이다. 엄교수가 해외에서 입수한 그 도청기는 100메터 밖의 건물에서 주고받은 말까지 다 도청할 수 있는 특제마이크가 달렸다. 그 마이크방향을 조절하면 지척에서 듣는 것처럼 똑똑히 들렸고 미형록음기까지 달려 있어 동시 록음까지 가능했다. 허서기와 허송파 형제는 기실 하루 24시간 동안 엄교수의 감시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허씨네 일가 부자간에 비밀리에 숱한 말을 주고받았다. 사 후에 그들 부자간은 누군가 도청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앞집의 엄교수가 한 일이라는 것까지는 전혀 몰랐다. 무지한 그들은 자기네 집 전화선을 따라가면서 훑어보았지만 련결된 아무런 선도 보이지도 않았다. “허, 참 이상한 일이야.” 허송파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그후부터 그들은 진짜 자기 집 안에서도 겨울의 청개구리들처럼 입에 빗장을 지르고 살아야만 했다. 그 사이 엄교수는 허송파네 집에 드나든 코수염쟁이와 하이칼라 등 깡패들의 낯짝도 일일이 사진을 찍어 비밀리에 공안국 강운룡 과장한테 제공했던 것이다. 그 덕분에 강운룡 과장은 아주 준확하게 깡패 코수염쟁이와 하이칼라 등 일당을 나포했던 것이다. 각종 형사범죄자들과 깡패들을 호되게 타격한 뛰여난 사업실적으로 형사정찰대대 대대장으로 승급한 강운룡의 앞에는 아직도 깡패두목 허송파와 허송호 형제를 조속히 나포해야 할 간고한 임무가 놓여 있었다. 엄교수는 허서기네와 무슨 원쑤를 진 것은 아니였다. 그는 사위를 도와 깡패들을 제거해 자기 집을 비롯한 이웃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게 하려는 것이였다. 한편 사위의 이모부인 강운룡 과장을 도와줌으로써 사위가 장차 공안국에 들어갈 수 있는 명분을 쌓으면서 길을 닦아주려는 것도 있었다. 이는 엄교수를 놓고 보면 범의 코구멍을 쑤시는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기어이 허송파 일당을 도청하고 촬영하면서 장기적으로 감시해왔다. 성호가 자기 심정을 알아주지 못하고 기어이 공안국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성호는 며칠 가시집에서 머물면서 여러 광고회사를 돌아다니다가 진짜 마음에 드는 광고회사를 만났다. 광고회사 경리는 알고 보니 가시아버지가 외우던 학생 김범수였다. 김범수 경리의 쌍까풀눈은 우묵한 눈확에 들어박혀 팬들거리는 리굉팔 경리의 외까풀 우멍눈보다 보기 좋았다. 김범수 경리는 사람 좋게 웃으면서 말했다. “동문 시내에 소문난 ‘정의용사’더구만. 경제활동도 꽤나 많이 했구. 시장경제시대에 광고를 잘하려면 그런 슈퍼 경제의식과 경영능력이 있어야 하오. 절대 눈물에 의거해선 안되오. 피타는 노력으로 광고를 얻어다 업적을 하나 하나 쌓아야 하오. 조급해하지 말고 광고업주를 하나, 하나 찾으란 말이요.” “예, 노력하겠습니다.” 성호는 김경리의 말을 듣고나니 가슴이 후련하고 앞이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김범수 경리는 통쾌한 분이였다. 그는 상급부문과 련계를 달아 성호의 전근수속을 하루에 끝마쳤다. 광고회사에 출근하는 첫날에 정희는 걀죽한 얼굴에 웃음이 찰랑찰랑 넘쳐 흘렀다. “동무, 출근 첫날인데 양복을 입고 가겠어요?” 성호는 정희가 내민 양복을 보고 “관두오. 멋 부리러 가오? 일하러 가지.”라고 하더니 수술한 중산복을 입고 나섰다. 뒤에서 정희의 부모는 덩실덩실 어깨춤을 출 지경이였다. 성호는 광고회사에 출근한 첫날 김범수 경리와 함께 직원들한테 인사했다. 김경리는 성호를 데리고 재무과에 들어갔다. “인사하오. 우리 회사에 새로 온 리성호요.” “아니?” 성호는 출납원의 손을 잡으려다 안경을 춰 올리는 녀성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마을 집체호에 내려왔던 최해연이 아닌가. 아니, 자기를 지꿎게 따라다니며 짝사랑하던 해연이 아닌가. 그들 둘은 놀라움과 복잡한 심정을 억지로 참으며 어색하게 악수를 나눴다. 눈치 빠른 김범수 경리가 그들 둘은 번갈아보았다. “면목 아는 사인가?” “어, 예~ 우리 마을 집체호에 왔댔습니다.” 성호가 꺽꺽거리는데 해연이 제꺽 받았다. “저 마을에 락향했댔죠. 호호호.” 그녀가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어색한 기분을 날려보냈다. “오, 그래?” 김범수 경리는 날씬한 녀자를 보고 “저는 어째 여기 있소?”라고 하더니 성호한테 소개했다. “우리 광고회사 간판모델 장선희오.” “많이 도와주세요.” 성호는 자기 몸을 훑는 장선희의 눈길이 어쩐지 이상한 빛이 반짝이는 것을 느꼈다. (내 너무 신경이 예민한가?) 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그외 남자 직원들은 벌써 광고를 물어오려고 나가서 만나보지 못했다.  김경리는 성호를 경리실에 데리고 들어갔다. “우리 광고회사에는 직원이 모두 5명 밖에 안되지만 광고실적은 대단하오. 한해에 30만원을 올린단 말이요. 농촌에서는 만원호라는 말이 있지 않소?  건 다 지나간 얘기요. 우리 광고직원들은 모두 만원호란 말이요. 한해에 한 10만원 광고실적을 올려야 하오. 그런데 어떤 광고직원은 이름만 걸어놓고 광고를 얻어오지 못한단 말이요. 이제 광고실적을 봐가면서 직원을 조절할 예산이오.” 성호는 인사를 마치자 어느 곳에 가서 광고를 얻어올 것인가 궁리하다가 피뜩 백화청사가 피뜩 떠올랐다. 몇해 전에도 백화상점을 지나다가 술상자를 보고 술광고를 하자고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 리굉팔 경리한테 수모를 당해 광고회사에서 밀려나온 아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때 피뜩 김범수 경리 가르침이 떠올랐다. “모든 인맥을 동원해 광고를 해야 하오. 저는 농민의 아들이니까. 시내에 무슨 인맥이 있겠소? 광고를 하자면 낯이 두터워야 하오. 면목을 모르는 경리라도 찾아가서 광고를 하자고 딱 들어붙어야 하오. 시내를 돌아다니다가도 광고를 내면 될 것 같으면 광고동원을 해야 하오. 그렇게 하나 하나 광고사용호를 개척해야 하오…” 가시아버지 말씀도 떠올라 성호는 시무룩이 웃었다. “가시아버님, 보기 싫은 사람 또 피하면 안되죠. 사업을 위해선 백화상점에 가봐야겠습니다.” 성호는 큰 마음을 먹고 백화상점으로 찾아갔다. (농민 아들의 본때를 보여줘야지.) 성호는 백화상점에 가서 승호를 찾지도 않고 곧추 총경리 사무실에 들어갔다. 승호를 앞세우면 괜히 안수련 총경리한테 원쑤로 취급당해 일이 틀릴 것만 같아서였다. 그는 안수련 총경리한테 명함을 드리고 술광고때문에 찾아온 사연을 간단히 말했다. 쌀쌀한 안총경리의 청바위 같은 얼굴을 보는 순간 잘못 왔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아무 수확도 없이 훌 일어설 성호가 아니였다. 안수련 총경리는 성호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어디서 딱 본 얼굴 같은데.” 하고 한마디 했다. 성호는 얼떨떨해졌다. “전 산골 농민의 아들입니다. 총경리께서 언제 절 본 적이 있겠습니까?” 안수련 총경리는 다가오더니 따뜻한 물까지 컵에 따라주었다. “고향은 어디오?” “태평거촌에 있는데요.” “오, 천수해 태평거촌인가요?” “예, 그런데요. 태평거촌을 압니까?” “그래요. 청년때 우연히 한번 찾아간 적이 있지.” 성호는 이상야릇해 안총경리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뭘 하는분이오?” 성호는 별 고려 없이 “농촌에서 농사질을 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혹시 당지부 서기를 하던분이 아니오?” “예.” 안수련 총경리는 성호의 명함을 들고 유심히 뜯어보더니 “리씨라? 혹시 전주 리씨 아니오?" 하고 물었다. "네." 성호는 놀란 눈길로 안경리를 피끗 바라보았다. "그럼 아버진 옛날 공안국 국장을 하신 적이 있는분이 아니오?” “맞습니다. 저의 아버지를 아십니까?” “아니, 아니오. 옛날 국장을 버리고 시골에 락향한 전주 리씨 국장  한 분 있었소. 아마 저네 부친인 거 같은데 퍽 인상 깊었소. 그때 우리 시내에 소문이 자자했소. 호박 쓰고 돼지굴로 들어간다고. 전주 리씨는 리씨왕조의 후손이라고 들었소. 그런데 어쩜 그렇게 어진 국장도  다 있소?” 성호는 또 한번 아버지 살아온 력사에 가슴이 아팠다. 안수련 총경리는 전화를 들더니 누군가에게 “여기 오오.”라고 했다. 이윽고 뜻밖에도 승호가 총경리 사무실 문을 뚝 떼고 들어왔다. “아니, 네가 어떻게 돼 여기 왔니?” 성호와 승호는 서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손을 굳게 잡았다. “임마, 백화상점에 왔으면 찾을게지.” 성호는 황망히 “일을 본 후에 찾아가보려고 했어.”라고 둘러대면서 어색한 기분을 따돌리려고 했다. 역어빠진 승호가 그 속내를 모를 리 없었다. (개자식, 광고 때문에 왔지?) “호호호. 딱 쌍둥이 같네.’ 안총경리는 승호와 성호를 한참이나 번갈아 유심히 바라보았다. “리주석, 서로 아는 사이오?” “예, 대학교 동창생입니다.” “그래?” “리주석, 술광고를 하면 어때?” 성호는 승호를 쳐다보았다. 도와달라는 눈빛이 반짝였다. 승호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몇해째 굉팔 경리네 광고회사와 계약을 맺고 광고를 했는데 어떻게 광고회사를 바꾸겠습니까?” 순간 안수련 총경리는 입귀에 비웃음이 찰랑찰랑 흘러넘쳤다. “딱친구라면서 도울 생각이 없소?” “글쎄 같은 값에 도와주면 좋겠지만 리경리와 계약이 있어서…” 안수련 총경리는 서류궤에서 서류철을 들춰 꺼내 탕 메쳤다. “그만하오. 광고를 성호 선생한테주기로 결정했소.” “예?” 안수련 총경리는 서류철에서 광고계약서를 펼쳐보았다. “광고계약에는 ‘광고효과를 봐가면서 광고주는 가히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조목이 있소. 광고효과가 없으나 다름없기에 리경리와의 광고계약을 취소하면 그만이오.” 그녀는 성호와의 합작을 작심한 것 같았다. “이 후에 무릇 우리 백화상점의 광고는 리성호 선생한테 위탁하겠소.” 성호는 마음 속으로 안수련 총경리가 고마웠다. 반면에 승호의 처사가 괘씸했다. (자식, ‘흥’ 소리도 반간이라고 도울망정 반간을 놓다니?) 안수련 총경리는 광고계약서에 도장을 땅 찍어 두손으로 주면서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성호 선생, 이 후에 잘 합작해봅시다.” “예, 고맙습니다.” 성호는 광고계약서를 가지고 총경리 사무실을 나오면서 광고가 효과나지 않을가봐 근심됐다. 며칠 후 성호는 가시집과 한 10분  걸어야 할 거리를 둔 산을 등진 공원 옆에 2만 2천원을 주고 자그마하나 반 듯한 아빠트 한채를 사고 나갔다. 가시부모는 성호가 준 돈에 더 보태서 새 살림집에 가구를 사다 들여놓아주었다. 성호는 너무 황송해 어쩔바를 몰라했다. “아니, 제가 되받자고 드렸습니까? 미안합니다.” “무슨 말을 하오. 사위도 반자식이라오.” 정희의 말에 이어 가시어머니도 진정에 넘친 덕담을 했다. “우린 사위가 농민의 아들이지만 시내사람들 못잖게 사는게 자랑스럽소. 새 집에 들어서 행복하게 사오.” “예, 고맙습니다. 할머니!” 하나가 하는 말에 엄교수는 너무나 고와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새 아빠트에 드는 날 정희는 기뻐 흥분된 나머지 걀죽한 얼굴에 홍조까지 빨갛게 어리였다. “여보, 우리 이 집에서 한평생 살자요.” “그래지. 아들 하나 낳아주겠소?” “무슨 소린가요? 이제 살만하니 애 둘씩이나 키우면서 고생하자고?” “에이, 이젠 시내에 들어왔지. 새 집도 샀지. 애를 더 낳을 조 건이 되지 않았소? 나를 믿소. 애 둘이라도 남보다 못지 않게 살게 할 수 있소.” 정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하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한나야, 남동생 한나 업어올가?” “예, 남동생 업어오십시오.” 한나는 폴짝폴짝 뛰면서 “아, 좋다. 나도 동생이 있다. 우와~야호~” 하고 환성을 질렀다. 정희는 성호를 보고 정색했다. “이제 아빠트도 100여평방메터 되는거 갖추고 승용차도 갖추면 아들  낳아주죠.” 성호는 가슴을 내밀며 “알았소. 약속하기오.” 하고 깍지손까지 내밀었다. “저금도 한 10여만원 있어야 애를 더 키우지.” “자, 약속하기오.” “약속하죠.” 정희는 웃으며 깍지 걸이를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성호는 다짐을 땄다. “변심하면 안되오.” “호호호.” 새 살림집에는 성호 일가의 행복에 찬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강가의 버드나무에는 참새들이 먹거리 풍성한 여름이 그리워 재잴거리고 있었다.  
206    수필 아들비위 딸비위 김장혁 댓글:  조회:472  추천:0  2019-03-17
                            수필                            아들비위 딸비위                                                                                                                      김장혁         나는 전통파인데다가 외동아들이여서 특별히 아들비위를 몹시 한것 같다. 세집살이를 하면서 아이를 낳지 말자고 색시와 진작 약속해놓았건만 정작 첫 애를 류산하자 가시집에 아파 누워 있는 색시를 주의하지 않았다고 노발대발하면서 서너길씩 펄쩍펄쩍 뛴적이 있다. 아버지가 사돈보기를 할 때 처음 내 약혼녀를 보자 “약해서 애내기를 할수 있겠는가?”라고 근심하던 말씀을 떠올리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지어 며느리가 약해서 애를 낳지 못할가봐 근심하던 나머지 어머니를 보고 닭고음을 해달라고 해서 들고 몇십리 밖의 내 가시집에까지 찾아가 갓 류산하고 앓아 누워 있는 며느리를 문안하기까지 하였댔다. 한해 후에 사랑스러운 내 색시가 아들을 낳자 온 집안은 경사나 난듯하였다. 나는 포대기에 싼 갓난애를 꼭 껴안으면서 얼마나 속이 든든했는지 몰랐다. 아들이 있으니 집안의 대를 잇게 되였다. 장차 우리 가문이 날따라 번성해지리라는 신심이 생겼다. 돌생일날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해 기른 닭을 씨암탁도 남기지 않고 몽땅 잡아 손자의 돌생일 손님상에 올렸다. 청년교원들이 술상에 앉아도 항상 아들을 낳은 우리들은 상좌에 앉아서 딸을 낳은 애아버지들을 아래상에 쫓아보내기까지 하면서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렁거리였다. 그만큼 아들이 있어 기뻤고 어깨가 으쓱하였고 행복하였다. 그만큼 아들이 있어 속이 든든하였고 일을 하고 돈을 벌 힘이 용용 솟구쳤다. 또 아들이 있어 문학작품도 많이 쓰고싶었고 뭔가 해놓고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아들은 내 기쁨이였고 행복이였고 희망이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들을 위해 해놓은 일이 너무나도 적은것이 마음에 내려가지 않는다. 한메터 팔십도 거의 되는 장한 길림대학생 아들을 낳아준 안해를 위해 해놓은 일이 너무 적은것이 속에 내려가지 않는다. 아들애를 낳고 하혈을 너무 많이 해 홀쪽해진 안해의 그때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듯이 아프다. 아들을 본 기쁨에 머리가 뜨겁기만 하였지만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을 낳은 안해를 너무나도 등한하고 쨍하게 사랑해주지 못한것으로 하여 마음이 아프다. 어찌하면 한구들에서 20여년 살면서 안해의 허약해지는 몸도 잘 살피지 못하였을가? 이제라도 전에 주지 못한 사랑을 처자에게 몰부어주자. 알콩달콩 처자를 사랑하면서 깨알이 쏟아지게 랑만적으로 살아보자. 사람이란 만족이 없는가봐. 나는 장한 아들을 보았는데도 딸비위를 얼마나 하였는지 몰라. 텔레비죤이거나 길거리에서 칠색색동저고리를 입은 녀자애들을 보면 나도 저런 딸을 봤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비위를 썼다. 그래, 덕대 같은 아들에 예쁜 딸애까지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내 혼자서야 어찌 딸애를 낳을수 있겠는가? 아들애가 대여섯살이 되여서부터 줄곧 두번째애를 낳자는 내 요구를 들었지만 안해는 요 핑게 조 핑게 대면서 낳아주지 않았다. “여보세요. 아빠트 한채도 온전한게 없이 애를 낳아서 뭘 해요. 고생시키자고 또 낳아요? 나도 애 둘을 키우느라고 사업을 잘 하지 못하면 무슨 출로가 있겠어요? 아예 생각지도 말아요.” 그래서 나는 기자와 편집 사업을 하느라고 밤낮없이 맴돌면서도 과외로 택시업을 하여 백평방메터도 넘는 집을 갖춰놓고 딸애를 보자고 안해를 동원하였다. 그러나 안해가 하는 말은 얼마나 실망스러웠던가? “아빠트만 있으면 저금 한푼도 없이 애 둘을 어떻게 길러요?” 나는 또 몇해 아득바득해 돈을 마련해놓고 두번째 애를 낳자고 하였다. 그러나 안해는 또 요런 핑게를 대는것이 아니겠는가! “여보세요. 나를 죽이자고 그래요. 우리 병원 의사네 40고개에 당장 오를  안해가 애를 낳다가 산대우에서 출혈해 죽은걸 몰라요. 좀 주책머리 없는 말을 하지도 마세요. 이젠 며느리를 삶아서 손자와 손녀를 안아볼 궁리나 하세요.” 그렇다, 이젠 40고개에 오른 안해를 보고 애를 낳으라고 강요하는것은 산대우에서 애를 낳다가 죽으라는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24살이나 되는 아들이 이제 몇해 아니면 장가갈 판인데 두번째 애를 보려는것은 얼마나 때가 지난 말인가. 그렇게 묘한 핑게를 대고 이제껏 두번째 애를 낳아주지 않은 안해가 얄밉기만 하다. 이제 애원하고 원망하고 욕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젠 널직한 아빠트가 있고 생활조건이 훨씬  좋아졌지만 나에게는 딸애란 있을수 없게 되였다. 나는 한평생 딸이 없는 유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장차 아들며느리를 보면, 아니 우리 조선족 새 신랑과 신부들을 보면 나는 이런 속심의 말을 하고싶다. 내 평생 유감은 아들에게 동생을 낳아주지 못하고 2대 외동아들을 만들어놓은것이다. 너희들은 절대 우리 부부의 유감을 재연하지 말아라. 애들도 형제간이 있어야 한다. 애들 둘이면 더 분발하여 그 애들을 키울 돈을 벌수 있는 법이다. 옛날 우리 어머니는 아침에 죽물이라도 마시고나면 저녁에 솥에 앉힐 쌀이 없어  근심하면서도 애들을 열이나 낳아서 넷이나 병으로 죽이면서도 여섯을 남겼다. 바로 우리 어머니와 같은 조선족어머니들이 계셨기에 오늘 우리 민족이 살아남아있다. 한족들은 전국춘추시기부터 애들을 많이 낳는 녀성들에게 상으로 밭이나 황금을 내렸고 생육년령이 되여도 애를 낳지 않거나 낳지 못하는 녀성에게는 벌을 주는 정책을 써서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위대한 민족으로 되지 않았는가? 너희들은 아들이든 딸이든 낳기만 해라. 우리 부모들이 너희들을 도와 손군들을 한둘은 길러줄게. 나는 애들을 둘 이상 키운 조선족의 어머니들을 보면 “우리 조선민족의 위대한 어머니들”이라고 소리높이 찬탄하고 싶다. 바로 그들이 있으므로 하여 인구마이나스장성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 중국조선족이 인구위기를 넘기고 날따라 번성할 것이 아닌가? 그렇고 보면 아들비위 딸비위는 가족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아름다운 야망이 아니겠는가!                                             본 수필은 “연변녀성”잡지 수필상 수상작임.                          
205    아동소설 꿈 많은 향화 김장혁 댓글:  조회:1512  추천:1  2018-12-29
                                단편아동소설                    꿈 많은 향화                                       김장혁        향화, 참말 이름처럼 어여쁜 애지요. 외씨같이 걀죽한 얼굴에 예지로 반짝이는 새별눈, 항상 응석을 부리는 작은 앵두입, 실로 비너스 버금으로 곱게 생겼다고 할 수 있겠지요.        옥에 티라고나 할가요. 그 걀죽한 얼굴 왼쪽볼에는 좁쌀만한 기미가 괘씸하게 나 있었어요. 말도 말아요. 그 기미 때문에 우리 귀여운 향화가 닭똥 같은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알아요? 향화는 원래 계산문제풀이는 번개불이 번쩍나게 풀어 학급에서 엄지손가락으로 꼽히였고 “패뜩골”이란 별명까지 딱 들어붙었어요. 그런데 요즘 그는 영희랑  무용써클실에서 디스코와 발레무용을 배워 신나게 추는 것을 흠모의 눈길로 바라보았지요. 그후부터 그는 어쩐지 응용문제풀이가 딱 싫어졌어요. 공부하기보다 춤추는 것이야 말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고상하다고 생각됐던 것이지요. 어느날, 향화는 영희를 앞세우고 무용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저를 무용써클에 받아주겠어요?” 향화는 간절한 눈길로 무용선생님을 바라보며 애원했어요. 무용선생님은 향화의 얼굴로부터 발끝까지 참빗질했어요. 그런데 무용선생님의 눈길이 향화의 볼에 피뜩 멎더니 도리머리질했어요. “돌아가 공부나 잘 하세요.” “녜? 요 기미 때문인가요?” 향화의 손이 기미에 가 멎었어요. “동문 무용하기엔 좀 그래요.” 향화는 무용교연실에서 나온 후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허나 패뜩골인 그의 머리에는 패뜩 한가지 꾀가 떠올랐어요. 그는 침대에서 바시시 일어나서 어머니 화장품통을 들춰 가지고 거울에 마주 섰어요. 뒤이어 눈물이 가랑가랑 맺혔던 눈언저리를 싹 닦고 그 얄미운 까만 기미에 새하얀 분을 발랐어요. 그러나 청어름에 서리 내린듯해 괘씸한 기미 형체를 감출 길 없었어요. 애탄 나머지 그는 아예 분세수를 하다싶이 했어요. 거울을 들여다보니 실로 온 얼굴은 밀가루주머니에 빠졌다 나온 것 같지 않겠어요. 눈섭은 서리를 맞은 것 같았고 오똑한 코마루 량옆의 물기어린 깜장눈만 가려볼 수 있었어요. 순간 향화는 입술을 꼭 깨물었어요. 량볼 우로는 줄 끊어진 구술처럼 눈물이 주르르 흘렀어요. 이튿날 아침, 향화는 세수를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머리카락을 훔치다가 걀죽한 얼굴에 웃움기가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어요. 어여쁘게 생긴 얼굴과 몸매를 보고 자신감이 생겨났어요. (무대와 열대여섯메터 밖에 있는 관중들이 어찌 화장하고 뺑뺑 돌아치는 요 작은 기미를 보아낸단 말인가! 우리 어머니 주근깨 다닥다닥해도 열다섯메터 밖에서 보면 미인이여서 “열댓메터 밖 미인” 아닌가. 나도 이제, 호호호.) 그는  축 처졌던 어깨가 당금 으쓱해졌어요. 무용수로 될 꿈이 새록새록 다시 싹 텄어요. 하여 그는 새 희망을 품고 재차 무용선생님을 찾아가 울먹울먹해서 기미 있어도 괜찮다고 실토정하면서 애원했어요.    그러나 무용선생님의 말씀은 이러했어요. “향화, 꿈은 좋은데요. 누구나 춤추고 싶으면 다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딱 기미 때문만이 아닌데요. 향화는 예쁘긴 한데요. 키가 좀 작아서 무용하기는 좀 그래요.” 원래 무용선생님은 처음에는 향화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 같아 완곡하게 거절했지요. 그러나 한 학생의 전도와 관계되기에 이 자리에서는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을 수 없었어요. 향화는 어깨가 맥없이 축 늘어졌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기보다 한뼘씩이나 더 큰 무용써클 애들이 춤을 추며 골리는듯한 눈길로 힐끔거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향화는 그만 위축감이 들어 엉엉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어요. 그는 책상다리라도 발 밑에 이어놓고 싶은 애절한 심정이였어요. “울지 마세요. 정 무용을 배우고 싶다면 오후부터 배우세요.” “예? 정말입니까? 야, 좋아라!” 향화는 언제 울었는가 싶게 눈물을 싹싹 닦고 무용선생님의 손을 잡고 퐁퐁 뛰다가 와락 안겼어요. 오후부터 향화는 영희네와 함께 아름답고 경쾌한 선률에 맞춰 무용을 배웠어요.  얼마나 신났는지 몰랐어요. 요즘 그는 벌써 명무용수로 돼 오색찬연한 무대에 올라 선녀처럼 날씬한 몸매를 놀리면서 장고를 둥기당당 치며 장고춤을 추는 꿈을 몇번이나 꾸었는지 몰라요. 그러나 무용배우기도 향화의 생각처럼 순풍에 돛을 단 격이 아니였어요. 아니,  하늘의 별따기처럼 느껴졌어요. 날마다 무용선생님의 장고를 치는 박자에 맞춰 반시간씩 련속 팔다리를 놀리면서 기본동작을 익히느라면 온몸이 해나른해졌어요. 좀 고달프긴 했지만요. 향화는 한학기 배운 후 어지간한 춤은 출 수 있어 고달픔을 어지간히 참아낼 수 있었어요. 한창 자랄 나이여서 그런지 그새 문턱에 올라 키를 재여보니 둬센치메터는 더 자란 것이 아니겠어요. (그럼 그렇지. 이제 반년 지나 솜옷을 입을 땐 더 크겠지. 등산복도 언니 것만큼 큰 걸로 사야지.) 그런데 뜻밖의 시련을 겪게 됐어요. 무용선생님은 발레무용 기본동작을 배워주기 시작했어요. 발끝으로 서기를 배울 때 실로 참기 어려운 아픔을 참아내야 했어요. 향화는 열개를 셀 때까지도 서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물앉고 말았어요. 향화는 발가락이 바늘로 쑤시는듯이 아파 널장판에 물앉아 두 손으로 발가락을 붙잡고 만지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어요. “울긴? 어서 서요. 이번엔 열다섯개 셀 때까지 서야 돼요.” “선생님, 발가락이 아파서 못 서겠어요.” 향화는 집에서 부모한테 응석을 부리듯이 어깨마저 흔들며 칭얼거렸어요. 무용선생님은 향화의 발을 매만지면서 차근차근 일깨워줬어요. “향화, 무용써클에 올 때 그 강렬하던 욕망은 어데 갔어요? 왜 요만한 아픔도 참지 못하고 물앉아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려면 몇분씩 서야 하는데요. 몇초 밖에 서지 못하고서야 어찌 무대에 오를 수 있겠어요? 자, 강자가 돼야죠. 견지하면 아픔이란 놈도 달아나요.” 향화는 마지 못해 일어나서 또 련습했어요. 그러나 나흘도 못돼 발가락이 부어오르더니 이젠 발목까지 팅팅 부어올랐어요. 발가락 뼈가 땅바닥에 닿기만 하면 뼈 속까지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아 눈물을 찔끔찔끔 짰어요. 게다가 발가락 끝은 이젠 걷기만 해도 아파났어요. 고통에 모대기는 향화의 내심을 꿰뚤어본듯이 무용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충고했어요. “꼭 견지해야 해요. 이 고비만 넘기면 썩살이 생겨 괜찮아요.” (흥! 남은 아파서 이가 다 쫓기는데. 춤? 무슨 놈의 뚱딴지 같은 바레무용이야!) 향화는 무용선생님의 충고를 들을 념도 하지 않았어요. 게사니무리 속의 병아리처럼 키 큰 영희랑 애들 속에서 춤을 출라니 얼마나 위축감이 들었는지 몰라요. 향화는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았는지 분이 콱 치밀었어요. 그후 영희가 와서 무용실로 가자고 잡아끌었어요. 그러나 향화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면서 다시는 무용실로 가지 않았어요. 한편 무용실에 발길을 끊으니 진절머리나게 매서운 무용선생님의 엄한 눈길을 받지 않는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어요. 어느 날, 청신한 아침 공기에 답답한 마음을 말끔히 씻으려고 향화는 운동장에 나갔어요. 자오록한 안개 속에서 어디에선가 둥기당당 가야금을 타는 은은한 선률에 맞춰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소리가 향화를 확 잡아 끌었어요. 천천히 다가가 보니 안개 속에 명암이 분명하게 실실이 내리드리운 수양버들가지 아래에서 이웃집 은희가 쪽걸상에 앉아 가야금을 둥기당당 타고 있지 않겠어요. (호- 저렇게 걸상에 착 앉아 가야금을 타니 얼마나 편안해. 뼈마디 아프게 발레무용을 출게 뭐야?) 향화는 또 패뜩골이 패뜩, 꿈도 패뜩 바뀌였어요. 그는 은희와 지청구를 들이대 그날 오전에 가야금선생님을 만나보게 됐어요. “오- 아주 곱게 생겼구만요.” 가야금선생님은 향화의 량손을 쥐여 손가락을 찬찬히 뜯어보더니 말했어요. “손가락도 길죽하니 실로 가야금타기에는 훌륭한 싹인 것 같아요.” 가야금선생님은 향화를 끌어당겨 맞은켠에 앉히면서 당부했어요. “가야금타기도 이를 악물고 배우지 않으면 발레무용공부처럼 중도랑패하게 되오. 견지할만 하오?” “예! 어떤 곤난이 있어도 꼭 견지하겠어요.” 한참만에야 향화는 해말쑥한 얼굴을 귀 밑까지 붉히면서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어요. (무용선생님이 벌써 뭐라고 쑥덕거렸는가?) 가야금선생님의 짙은 눈섭 아래 맑은 눈은 무용선생님의 엄한 눈과는 달리 상냥해 보였어요. 향화는 머리를 푹 떨구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생각할수록 별로 무용선생님이 자기를 무용써클에 받기 싫어서 마지 못해 받고서는 고의적으로 발이 아프게 굴어 저절로 물앉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됐어요. 사실 무용선생님은 향화를 잘 배워주라고 가야금선생한테 주탁했는데도 말이예요. 향화가 뾰로통해 침대에 걸터 앉아 있을 때였어요.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가 들가방에 뭘 들고 들어왔어요. “향화, 월병!” “야, 내 좋아하는 월병!” 향화는 어느결에 들가방을 채다가 월병을 량손에 쥐고 게걸스레 먹어댔어요. “어머니, 가야금을 사줘요? 예?” “얘, 얹히겠다. 천천히 먹어라.” 향화는 월병을 량볼이 볼록하게 넣고 오물거리다 콜록콜록 기침을 깇었어요. 그는 어머니 품에 안겨 칭얼거렸어요.  “어머니- 가야금을. 예?” 어머니는 향화 잔등을 다독여주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어요. “춤을 추는데 가야금을 해선 뭘 하느냐?” 향화는 입이 뾰로통해졌어요. “어머니, 발가락이 아파 발레무용을 추지 않겠어요. 이젠 가야금써클에 갈래요.” “그래?” 어머니는 한참 뭔가 생각하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어요. “얘야, 한창 꿈이 많을 때지만 자꾸 꿈을 바꿔서 되겠니? 뭐 하나 한가지를 꾸준히 해야지. 우물을 파도 한 곳을 파라고 하잖았니?” 향화는 발을 들어 속살까지 파난 발가락을 보이면서 불평을 털어놓았어요. “보세요. 발가락이 끊어질 지경인데요. 그래도 계속 발레무용을 춰야 하는가요?” 어머니는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어요. “아이구, 이게 웬 일이냐? 아프겠구나.” 어머니는 입으로 호호 발가락을 불어주면서 중얼거렸어요. “아프면 가지 말아야지. 괜히 발가락을 다 잃어먹겠다. 내 가슴이 막 미여지는 것 같아. 가야금을 사줄게. 가야금타기는 앉아서 하는 거니깐. 아프잖겠지.” “가야금을 사주겠다는 말씀이죠?” “그래, 우리 요 무남독녀를 사주고 말고.” “야- 좋아라.” 향화는 기뻐 퐁퐁 뛰였어요. 그때 아버지가 들어왔어요. 사연을 안 아버지는 입에 빗장을 지르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날 밤 향화는 꿈을 꾸었어요. 은하수가 거꾸로 쏟아지는 듯한 새하얀 백두폭포가 청석옥석을 부시면서 천길만길 하늘가에서 쏟아져내리고 단풍이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무대배경 앞에서 향화가 걸상에 편안히 앉아 칠색단색동저고리 옷고름을 날리면서 송학이 나래치듯 둥기당당 가야금을 타는데요. 박수갈채가 장내가 떠다갈듯했어요. “아갸갸!” 비명소리와 함께 향화는 발딱 뛰쳐 일어났어요. 꿈이였어요. 무용선생님이 억지로 무대에 끌어내가는 바람에 향화는 발레무용을 추게 됐어요. 그런데 얼마 추지 못하고 무대에서 뾰족한 못을 꽉 밟고 말았어요. 실로 진저리나는 춤이 그의 황홀한 미몽을 깨뜨렸어요. 그후 향화는 가야금선생님의 상냥한 눈길을 받으면서 쪽걸상에 편안히 앉아 어머니가 사준 새 가야금을 재미나게 튕겼어요. 무용써클에 가서 은희랑 함께 달타령 곡조에 맞춰 걸상에 착 앉아 가야금타기를 배우는 것이 발레무용배우기보다 식은 죽 먹기로 느껴졌어요. 그러나 오선보 우에 다닥다닥 들어붙은 콩나물대가리를 익히기는 실로 머리가 아픈 일이였어요. 성급한 향화는 그 놈의 콩나물대가리를 쟁개비에 기름을 달이다가 볶아 먹으면 머리에 곡조가 막 떠올랐으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럼 얼마나 쉽고도 신나게 가야금을 타겠어요. 가야금선생님은 향화의 곁에 다가와서 차근차근 타일렀어요. “향화, 어찌 단숨에 배를 불리겠소.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워야지.” 뒤이어 식보지식을 개별보도까지 해주었어요. 향화는 울며 겨자먹기로 도레미 콩나물대가리를 익히기 시작했어요. 오선보 악보에 따라 가야금을 타자고 하니 이번엔 두 손이 착착 배합되지 않았어요. 은희랑 다른 애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둥기당당 신나게 탔어요. 그런데 향화가 타는 소리는 애처로운 외마디 비명소리에 달가닥거리며 가야금줄을 받쳐든 나무쪼각이 공명밑판을 두드려 듣기도 역정났어요. 애탄 향화는 가야금줄을 마구 쥐여뜯다가 꽝 밀어버렸어요. 심지어 어떤 때에는 신경질적으로 가야금을 마구 발로 차버렸어요. 그때 가야금선생님의 말씀이 귀전을 아프게 때렸어요. “이를 악물고 배우지 않으면 춤배우기처럼 중간랑패를 하게 되오.” 향화는 눈물을 훔치고 마지못해 다시 가야금을 탔어요. 련며칠 가야금을 탔기에 오른손 식지와 중지 끝에는 콩알만한 물집이 생겼어요.  가야금줄을 튕길 때면 손가락으로부터 팔을 타고 심장마저 바늘로 찌르는듯 찡찡 아파났어요. “선생님, 이걸 보세요.” “오-” 선생님은 다가와 향화의 손가락을 쥐고 여겨보더니 책상 서랍에서 성냥곽을 들고 왔어요. “터치기오.” “어마나, 아프지 않습니까?” 향화는 새별눈에 겁기를 꽉 싣더니 손을 뒤로 움츠려뜨렸어요. “겁쟁이야, 우리도 몇번씩 터치우고 이젠 아프잖아.” “호호호!” 은희랑 코까지 싸쥐고 웃었어요. 선생님은 억지로 향화의 손을 쥐여다가 식지 물집 우에 성냥가치 꼬투리를 대고 화약껍데기를 쪽 문질러 딱총을 놓았어요. 피씩- “아이구머니! 선생님, 살랑살랑!” 향화가 엄살을 부리는 사이에 피씩- 소리와 함께 딱총을 맞은 물집이 데여 터지면서 진물이 주르르 흘렀어요. “엄살쟁이야, 이제도 두개 더 터치워야 해.” 은희랑 떠들었어요. 피씩- 피씩- 향화는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줄줄 흘렸어요. 집에 돌아온 후에도 손가락으로부터 가슴까지 찡찡 아려났어요. “아이유, 아파라. 아이고-” “뭐? 어째?” 향화가 문을 떼고 들어서면서 싸맨 손을 쥐고 죽는 상을 했어요. 어머니는 물기어린 눈으로 향화의 싸맨 손을 보더니 호호 불어줬어요. 뒤이어 어머니는 향화를 집에 데리고 들어가 밥상을 마주 앉혔어요. 손수 어린애처럼 밥과 국을 입에 한술한술 떠넣어주기까지 했어요. 말수 적은 아버지는 못마땅한 눈길을 보내더니 건가래를 뗐어요. “그렇게 어린애처럼 키우니깐. 의력이 없지.” 향화는 아버지가 얄미워 새별눈을 곱게 흘겼어요. 이튿날 향화는 손가락을 싸맨채 가야금써클실에 갔어요. “싸맨 걸 풀고 가야금을 타오.” “예?” 순간 향화는 새별눈이 화등잔처럼 휘둥그래졌어요. 상냥해보이던 가야금선생님의 눈길이 무용선생님의 엄한 눈길로 변해 겹쳐보였어요. 그는 흐릿한 눈길로 가야금줄을 내려다보다가 곡조고 뭐고 마구 쥐여뜯었어요. 물집이 터진 손가락에서 피고름이 흘러내려 가야금줄을 타고 눈물이 흥건한 향화의 얼굴에 마구 튕겼어요. 손가락, 팔, 가슴, 머리에까지 줄이 뻗치며 바늘로 찌르는듯이 아파났어요. 가야금줄은 신경질적으로 비명을 질렀어요. 향화는 가야금을 활 팽개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쿵 쓰러졌어요. 두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섧게 엉엉 울었어요. 이젠 당장 초중입학시험을 쳐야 하는데요. 향화는 응용문제풀기는 싫고 발레무용 꿈도 가야금 꿈도 다 수포로 돌아갔어요.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어느날 저녁, 향화는 텔레비죤에서 이런 장면을 보았어요. 그물 우로 쉭- 솟으면서 강타를 안기는 랑평, 지도원으로 된 랑평, 열렬한 박수소리 속에 수상대에 올라 금메달을 받는 중국녀자배구팀 녀자선수들. 웬 일일가요? 향화의 눈 앞이 흐릿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게 뭐예요? 향화는 수상대 선수들 속에 서 있는 자기를 발견했어요. 관중석에서 부러운 눈길로 하염없이 자기를 바라보는 영희, 은희. 숱한 동창생들의 눈길이 따가웠어요. 향화는 가슴이 부풀어올라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운동장으로 나왔어요. 실실이 늘어진 수양버들가지들이 넘실넘실 춤추는 사이로 보름달이 두둥실 걸려 은빛이 부서졌어요. 그 선경 같은 경치 아래에서 노랑저고리에 연분홍치마를 입은 은희가 가야금을 둥기당당 타고 있었어요. 그 선률에 맞춰 칠색단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은 영희가 선녀처럼 장고춤을 나풀나풀 추는 것이 아니겠어요. 무용선생님과 가야금선생님이 웃음을 지으며 팔을 홱 휘둘렀어요. 저건 웬 일인가요? 은희와 영희는 가야금을 타고 춤을 추면서 오선보 같은 오색령롱한 칠색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고향의 산마루를 훨훨 날아넘더니 예술학원으로 날아가지 않겠어요. 학교 녀자축구팀 말괄량이 경자 등 녀학생선수들은 축구공을 탕! 차더니 하늘로 날아오르는 축구공에 매달려 날아올라 체육학원으로 날아갔어요. 숱한 동창생들은 제마끔 입학시험지를 두 손에 들고 하늘로 쌩쌩 날아오르더니 자기 꿈대로 학교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함께 가자! 영희야, 은희야-” 향화는 두 손을 입에 모아대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목놓아 소리쳤어요. 이때 쏴- 소리와 함께 난데없이 산더미 같은 쓰나미가 덮쳐왔어요. 선생님들이 주는 가야금과 장고를 급급히 받아쥐고 타기도 하고 두드려도 보았어요. 하지만 가야금타기와 장고춤 실력이 차해 한키쯤 몸이 솟다가 되떨어져 내려오군 했어요. “향화, 뽈을 받소!” 졸지에 체육선생님이 툭 친 배구공이 씽- 날아왔어요. (옳지. 배구명장으로 돼 내 꿈을 실현해야지.) 향화는 황급히 받아치려고 손을 내밀었어요. 그런데 배구공이 소녀의 가슴에 쨩 맞았어요. 숨이 컥 막히게 찡 아파났어요. 가야금줄을 튕길 때 생긴 물집보다 더 아파났어요. “에잇, 배구도 못할 노릇이구나.” 이때 쓰나미가 당장 학교 담장을 박차고 들이닥칠 판이였어요. 향화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엉엉 울었어요. 저게 뭐예요? 갑자기 사나운 파도 속에서 고무풍선 세개나 불쑥 솟아올랐어요. 고무풍선 세개에는 각각 가야금, 장고, 배구공이 새겨져 있지 않겠어요. 향화는 머리 우에 둥둥 뜬 그 고무풍선 끈을 황급히 붙잡고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어요. 이젠 고향의 산도 저 먼발치의 모래무지처럼 아득히 내려다보였어요. 그런데 고무풍선은 영희와 은희가 간 예술학원이거나 경자가 간 체육학원 쪽으로도 날아가지 않았어요. 고무풍선은 아득히 높고 푸른 하늘 우의 먹장구름 속으로 날아들어갔어요. 그 먹장구름 속에 글쎄 올림픽 배구장이 있지 않겠어요.   향화가 구름과 고무풍선을 타고 바야흐로 배구장에 내리려는 순간이였어요. 펑! 퍼펑!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고무풍선이 몽땅 터졌어요. “앗!” 향화는 비명소리와 함께 끊어진 풍선 끈을 잡은채 두 다리를 바둥거리면서 떨어졌어요. 귀뿌리에서 윙윙- 소리났어요. 하늘 아래로 곤두박질쳐 내려갔어요. “어머니!” 향화는 두 손에 식은 땀을 쥐고 고함쳤어요. 그는 몸부림치다가 그만 침대에서 방바닥에 뚝 떨어졌어요. 그제야 향화는 자기가 이제껏 황홀하면서도 무시무시한 꿈, 고무풍선 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알게 되였어요. 오- 꿈많은 향화가 이제 또 무슨 꿈을 꾸겠는지요? 아무리 패뜩골이라고 해도 자꾸 패뜩패뜩 꿈을 바꿔서야 되겠어요?
204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10) 댓글:  조회:1370  추천:0  2018-12-24
                                                                                               군사분계선에서의 대적선전 1954년 상반년, 미군 제2사단이 아군 정면에서 철거한 후 남조선(한국)군은 원래 한개 사단 외에 2개 사단이 더 증파돼 왔다. 적정 변화에 따라 리해식 소속 군단에서는 전연사의 2개 민경대대마다에 조선족간부 15명 가량씩 배치하였다. 원래 영어번역원까지 합하면 한개 민경대대에 30여명 대적공작간부가 배치돼 비무장지대에서 활동하였다. 정전 후 우리 지원군의 맞은켠에 있은 괴뢰군 제2사단은 네번이나 우리 지원군에게 호되게 족치워 4만여명이나 살상되거나 포로됐다. 괴뢰군 수도사단은 상감령전역에서 8천여명이나 섬멸되였다. 금성전역에서 괴뢰군 수도사단의 “백호련대” 련대장 임익순이 포로되고 병사들이 전멸되였으며 장갑차련대 련대장 륙근수는 격사당했다. 그리하여 괴뢰군은 우리 지원군 민경들을 보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들은 우리 민경들의 곁을 지날 때면 총가목을 꽉 틀어쥐고 경계하는 눈길로 쏘아보면서 지나갔다. 한번은 적 민경이 산에서 스적스적 걸어내려오더니 분계선 부근의 양지바른 언덕 풀무지에 힌들 드러누워 코를 드렁드렁 골았다. 그러다가 발자욱소리에 깜짝 놀라 버덕덕 일어나 앉았다. 그는 철조망 너머 맞은켠에서 우리 지원군 민경이 걸어오는 것을 보자 화닥닥 일어나더니 총이고 뭐고 다 버린채 선불 맞은 노루처럼 뺑소니쳤다. 한번은 리해식은 남측 괴뢰군 민경 셋과 맞띄우게 되였다. 리해식은 그들에게 “어이, 여기 와 담배나 피우오.” 하고 말을 건넸다. 그들 셋은 서로 마주 보더니 하나는 총을 벗어들고 경계하고 하나는 경계하는 눈길로 리해식 등 셋을 살피면서 다가왔다. 그 자는 권연을 받아쥐면서도 온 얼굴에 겁기를 꽉 띄운 채 황황한 눈길로 리해식이 멘 총창을 힐끔힐금 쳐다보았다. 후에 리해식과도 면목익힌 뒤에 그 민경은 이렇게 말하였다. “처음에는 당신들의 총창을 보니깐 간담이 서늘해지더라구.” 괴뢰군 민경들은 리해식 등과 자주 만나면서 면목을 익히게 되자 함께 담배를 피우고 한담하며 과자나 통졸임, 술 같은 것을 먹고 마셨다. 상감령고지의 딱 맞은켠 서남산의 적 민경 중사 백만호는 리해식 등과 16차나 만났다. 어느날 지원군 민경 둘이 대적공작과 간부와 함께 분계선 철조망 옆을 순라하다가 백만호와 또 만났다. “어이, 만호, 와서 담배나 피우지.” “걸케 할라우.” 대적공작간부는 권연을 한통 꺼내 철조망 사이로 넘겨주었다. 백만호는 온지박이권연을 한대 꺼내 붙여물었다. 그는 한모금 길게 들이빨아 후- 연기를 내뿜더니 혀를 끌끌 찼다. “하, 거 담배 맛 둏다(좋다)!” 그가 권연갑을 되넘겨주려 하자 대적공작간부는 도로 밀어주었다. “까짓 걸, 피우라구.” “걸케 해 될가유?” “되고 말고.” 백만오는 알고보니 전라도의 가난한 농민의 자식이였다. 그는 생활이 구차한데다 핍박에 의해 입대했던 것이다. 대적공작간부는 그의 이런 특점에 근거해 정치공작을 들이댔다. “량식창고라고 불리우는 남조선엔 권연도 흔하잖아요?” “쳇, 모르는 소릴. 쌀 지어놓으면 주인량반들이 다 퍼가는데두유.” “우리 새 중국은 달라요. 백성들이 밭을 고루 나눠가지고 제 밭에서 지은 량곡은 땅세를 내놓고는 몽땅 농사군 거라고.” 백만오는 한숨을 후- 쉬며 부러워 볼멘 소리를 쳤다. “당신들 중국 대단하오. 헌데 우리 한국은 돈 있는 량반들 세상이죠. 울처럼 천한 사람의 지옥인데요.” 옆에 서 있던 민경이 끼여들었다. “북조선도 우리 중국과 같다오.’ 그러자 백만오는 한숨을 담배연기에 섞어 후- 내보내면서 철조망을 건드리며 말했다. “이까짓 철조망 쳐버리구 조선이 통일됐으면 얼마 좋겠시우.” 이때라고 대적공작간부는 아예 철조망을 사이 두고 백만오와 마주 앉았다. 민경이 호주머니에서 통졸임과 술병을 꺼냈다. “자, 한잔 합세.” “어, 거참, 매번 페를 끼쳐서 안됐시우.” 백만오가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면서도 다가앉아 술병을 들었다. “캬, 거 술맛 둏다(좋다). 이전에 늙은이들한테서 드을라니 중국 도수 높은 술이 맛 둏다던디우(좋다던데요). 마실수록 정 든다.” 그는 민경이 신문지에 담아 넘겨주는 통졸임을 손으로 집어씹다가 “조선보”신문에 눈길을 박았다. 그는 신문을 들여다보면서 물고기를 질근질근 씹어댔다. “평화적으로 조선문제를 해결한다? 참, 맞아요. 전쟁 해서 뭘 해요? 숱한 도시 재더미로 됐시우. 허우, 분계선 저쪽에 가봐요. 김화군엔 아무 것도 없는 쓸쓸한 재더미로 됐시우.” 그는 술병을 들어 꿀꺽꿀꺽 들이켰다. 대번에 울기 올라 얼굴이 빨개졌다. “만약 미군이 안 들어왔어봐요. 싸우긴 뭔 졷대가릴 싸워? 조선문제는 진작 풀렸을 걸, 쳇.” 그는 물고기통졸임을 집어 입에 넣고 질금질금 씹으면서 뒤말을 이었다. “이 신문에 쓴 게 맞아요. 북한의 평화주장이 맞아요. 이담 평화통일이 되면요. 중국에도 놀러 갈테요.” “좋소. 우린 환영하지.” 우리 대적공작간부는 시간이 좀 간지라 일어섰다. 그러자 맥만오는 술을 둬모금 꿀꺽꿀꺽 더 마셨다. “야, 거 술맛 일품이유.” “가져다 마시오.” “고마와요. 저 전번에 보던 ‘평화와 행복’이란 화보 있는가요?” “여기 있소.” 대작공작간부는 미리 준비해가지고 간 그 화보를 꺼내주었다. “자, 다시 만납세.” 백만오는 화보를 11장이나 품 속에 깊숙이 걷어넣더니 비칠거리면서 떠나갔다. 괴뢰군 제21사단의 1등병 장유익도 우리 민경들과 16번이나 만났다. 그는 조선정부의 평화통일 호소문을 우리 민경들에게서 듣고 철조망을 총탁으로 탁 내리치면서 석쉼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호소문에서 말한게 도리 있어요. 리승만이 미제 말을 듣지 않았으면 무슨 이 놈의 철조망이 생겼겠어요. 이 놈의 철조망 땜에 우리 겨레 마음대로 드나들지도 못하잖아요.” 그러자 우리 대적공작간부는 한술 더 떴다. “그렇소. 만민이 증오하는 이 놈의 철조망 때문에 전쟁으로 하여 흩어진 부모형제들이 만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니고 뭐요.” 장유익은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이 놈의 철조망이 아니면 나도 뭘 할락꼬 이 놈의 뒈질 곳에서 굶으면서 개고생하겠어요?” 대적공작간부는 이날 예기했던 목적에 달했기에 자리를 떴다. 우리 군 대적공작은 사전에 방안을 세우고 지도부의 비준을 받은 후 해나갔다. 선전하는 내용도 우리 나라의 평화외교정책과 조선정부의 평화통일 각항 관점에 따라 진행하였다. 선전하는 대상에 대해서도 가정환경, 민경대에서의 지위, 성격, 사상기초를 깐깐히 분석연구한 다음 선택성있게 골라 선전하였다. 주로 하층민경들을 대상해 선전했다. 그러나 적 민경 속에 잡입해들어온 특무나 군관은 아예 접촉도 하지 않았다. 한번은 381고지에서 대적공작간부 김권식과 김봉춘은 분계선 철조망 부근에서 몇몇 적 민경과 만나게 됐다. 구레나룻이 더부룩하고 마흔이 훨씬 넘은 키꺽다리가 민경병사들 속에서 그들한테로 스적스적 다가왔다. 보나 마나 직위 높고 심상치 않은 자였다. 그 뒤를 따라오는 민경들은 김권식이나 김봉촌을 잘 아는 사이였지만 이날만은 얼굴에 긴장한 그늘이 졌다. 구레나룻은 김권식이네를 가까이 만나자 이런 것부터 물었다. “친구, 왜 모택동이 준 군사견장을 달지 않았는가요?” “김권식은 아닌 보살을 떨었다. “우리 병사가 어찌 그런 일을 다 알겠소?” 구레나룻 꺽다리는 나무꼬챙이를 주어쥐더니 쭈크리고 앉아 땅바닥에 한자로 이런 글귀를 썼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는 어려운 일 없으리라.” 그는 우쭐 일어서더니 철조망 맞은켠의 김권식이네를 보고 물었다. “이 글 무슨 뜻인가요?” 김권식과 김봉춘은 서로 마주보면서 눈직하고는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모르겠소.” 김권식은 진짜 모르는 것처럼 뒤더수기까지 썩썩 긁었다. 구레나룻 꺽다리는 그들에게 또 웅글진 목소리로 물었다. “정치는 뭘 배웠소? 로씨야 사람들의 ‘정치경제학’을 배웠는가요?” “모르겠소.” 그러자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꺽다리는 깔보는 눈길로 그들을 쓸어보더니 손에 쥐였던 나무꼬챙이를 홱 집어던지고는 뒤짐을 지고 가버렸다. 그 놈이 간 뒤 상급에서는 통보를 민경대대에 내려보냈다. 원래 구레나룻 꺽다리는 서울의 한 적특무기관의 두목이였다. 그는 비무장지대 전연에 직접 와서 우리측 민경들의 정황을 시탐하러 왔다고 하였다. 그 자는 그번에 돌아가서 “그쪽의 자식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숭이들이더군.”라고 하였다고 한다. 우리 군 통보에서는 김권식과 김봉춘이 모르는 것처럼 했기에 우리 대적공작간부들의 신분과 사업의도를 숨겼다고 칭찬하였다. 어느 한번, 리해식은 대적공작이 비교적 잘 되는 381고지 민경관측소에 가서 적민경들과의 “련환모임”에 참가하려고 하였다. “가지 마십시오. 면목이 없는 사람이 나타났다가 보이지 않으면 적들의 의심할게 아닙니까?” 민경전사들이 말렸다. “리동무 얼굴은 우리 얼굴처럼 해볓에 그을지 않아 검실검실하지 않습니다. 몸도 실해서 간분게 인차 알립니다.” 그러나 리해식도 가야 할 리유가 있었다. “두개 사단 민경주둔지에 한번씩 가서 적정을 알아야겠소. 이번에 꼭 가야 하오.’ 그러자 민경들은 “그럼 관측소 관병인척 하면서 조선말을 하지 말고 한족민경인 척하시오.”라고 하였다. 민경들은 아주 솔직하고 모든 것을 주밀하게 타산하고 있었다. 리해식은 속으로 못내 감탄하였다. 그날 원래 오후 3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적민경들은 벌써 오후 2시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괴뢰군 민경들은 물자공급이 잘 안돼 밥도 온전히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북쪽의 우리 지원군 민경들과 련환모임이나 하여 중국의 먹거리를 얻어먹으려고 들었다. 리해식 등이 나타나자 적민경 넷이 우쭐우쭐 일어나 웃으며 마주나왔다. 김관식이 나가면서 인사했다. “미안하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적민경들은 낯선 리해식을 보고 나직이 물었다. “저 친구는 첨 보는데.” “오- 우리 관찰소 관찰병이요. 늘 나오지 않다가 우리 여기서 재미있게 논다니깐. 우릴 따라 온 거네.” “음, 그래? 자, 친구도 앉으랑께.” 리해식 등은 적민경들과 분계선 철조망을 사이두고 나란히 마주 앉았다. 그들이 호주머니에서 술과 통졸임을 꺼내자 적민경들은 입이 함박만해져 헤벌쭉거렸다. “아따, 번마다 신세져 잘 먹네.” 적민경들은 해식이네가 권할 새도 없이 벌써 너도 나도 한잔씩 부어 마셨다. “캬, 중국 술은 참 맛 좋아.” “그래, 벌써 배꼽이 쨍해난데이.” 적민경들이 통졸임통에서 절인 돼지기를 꺼내 맛나게 먹을 때였다. 김관식은 적민경 김관웅한테 술별을 건네며 물었다. “여보게, 친구, 그저껜 왜 오지 않았소? ‘6.25’ 에 전쟁준비 하느라고 못오게 하던가?” 김관웅은 술병을 받으면서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였다. “쳇, 관계없어. 전쟁 나면 누가 너거한테 총 쏜대? 총 들어 아무데나 마구 쏴대면 다야.” “하하하.” 그 소리에 모두 한바탕 웃어댔다. “자넨 진짜 전투고수야. 사격묘수 있거든.” 권커니작커니 술이 여러 순배 돌자 적민경들은 집 일로부터 세상만사, 조선전쟁에까지 다 말해도 개의치 않고 맞장구를 쳤다. 이럴 때 리해식은 제꺽 숱한 례를 들어 6.25전쟁은 미제와 리승만괴뢰군이 먼저 발돌한 것이라는 것을 까밝혔다. 적민경 김관웅은 그의 말을 듣고 머리를 끄덕였다. “아, 원래 그런 판이였구만. 그런 걸 우린 당신들이 먼저 쳤다고. 원참.’ 목적에 도달하자 리해식 등은 술을 가지고 가서 마시라고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선전용 신문으로 통졸임을 싸주었다. 통졸임을 먹을 때 보게 하려는 것이였다. “여보게, 친구. 잘 먹겠수다.” 적민경들은 나머지 술병과 통졸임을 주어넣고 비칠거리면서 떠났다. 그후 이 민경관측소에서는 적민경 소대장 김룡삼을 낚으려고 짜고 들었다. 어느날 점심, 김권식과 민경들은 김룡삼이 분계선 철조망 부근에 있는 걸 보고 순라하는 척하면서 다가갔다. “아니, 김소대장 아니요?” “오, 권식이, 허허.” 그들 둘은 철조망을 사이두고 굳게 악수까지 나눴다. 이때 우리측 민경관측소의 민경이 이쪽에 대고 소리쳤다. “어이, 점심이나 먹으라구-“ 등의덕이 대답했다. “우린 여기서 이 친구와 놀겠소. 좀 있다가 먹겠소.” 이윽고 취사원민경이 계획대로 물만두를 “죽엽청”술병과 함께 가져왔다. 김이 물물 나는 물만두를 보자 김룡삼은 군침을 꼴깍 넘겼다. 그는 아쉬운대로 떠나려고 하였다. “어이, 친구, 우리 중국 물만두나 맛보라구.” “걸케 해 될가요?” “되구말구요.” 그들은 철조망을 마주하고 술도 마시고 물만두도 먹었다. 김룡삼은 잘게 싼 물만두를 맛나게 먹으면서 연신 “하, 별맛이다. 별맛이야!” 라고 하였다. 술도 다 마시고 물만두도 기껏 먹은 김룡삼은 이런 엉뚱한 궁리를 내놓았다. “권식 친구가 딱 맘에 들어요. 우리 결의형제를 맺으면 어때요?” 권식은 등의덕과 마주보고 눈치를 맞추고 나서 인차 응낙하였다. “좋구말구요.’ 그리하여 한살 이상인 권식이 의형이 되고 적민경 소대장 김룡삼은 동생이 되였다. 그후 그들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졌다. 김룡삼이 휴가를 맞고 결혼하러 가게 되였다. 그러자 권식은 그에게 결혼부조로 그물수건을 보냈다. 김룡삼은 결혼하고 돌아와 권식에게 결혼사진마저 꺼내 보였다. 한번은 권식이 김룡삼을 보고 “심심해 죽겠네. 뭘 볼 것두 없구. 거게 뭘 신문 같은게 없소?”하고 물었다. 김룡삼은 고려도 없이 “우리한텐 ‘륙군보’ 밖에 없어요.”라고 하였다. 이튿날로 김룡삼은 괴뢰군 “륙군보”를 가져다가 철조망 너머로 쑥 내밀었다. 권식과 리해식이 보니 별로 가치 없었다. 권식은 이튿날 신문을 김룡삼한테 되돌려주기로 하였다. 김봉춘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적민경과 장기를 두었다. 김권식은 김룡삼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권식은 호주머니에서 “륙군보”를 꺼내 김룡삼에게 넘겨주면서 넌지시 물었다. “신문은 재미없소. 다른 건 없소?” “요새 우에서 내려보낸 3급비밀문건이 있어요. 부대 편제와 화학무기, 원자무기 훈련 같은 내용인데요.” 김룡삼은 후에 슬그머니 그 비밀문건을 가져다다 김권식에게 주었다. 김권식은 그 비밀문건을 중대부에 가지고 와서 촬영해두고 원본을 인차 김룡삼한테 넘겨주었다. 이 적민경관측소의 민경들은 괴뢰군 제11사단의 수색중대에 속했다. 어느날 밤, 리해식과 20여차나 만나본적이 있는 한 적민경이 군사분계선을 가만히 넘어와 의거하였다. 민경들이 그를 민경중대부에 데리고 갔을 때였다. 언제나 민경전사복을 입고 늘 그 적민경과 만나던 김권식이 소위견장을 단 지원군 군복을 입은채로 리해식과 그를 만났다. 그러자 그 적민경은 깜짝 놀랐다. “아니, 당신이 군관일줄은 꿈에도 몰랐는데요.” 상급에서는 적민경과 김권식이 익숙한 사이이기에 김권식을 보고 그 적민경을 데리고 평양에 있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련락부에 호송하라고 하였다. 그 민경을 데리고 평양에 갔을 때 련락부 장부장은 김권식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칭찬하였다. “지원군동무들은 비무장지대에서 대적정치공작을 참 잘했습니다.” 뒤이어 장부장은 김권식한테 차에 안내자까지 보내 평양구경을 시켰다. 후에 들을라니 의거해온 그 적민경은 학교에 가서 공부한 후 좋은 일자리를 찾아 잘 먹고 잘 산다고 하였다. 리해식은 늘 대적공작처 부처장 려광은 상감령지구 비무장지대에 가서 대적공작조 동지들을 도와 사업하였다. 추석 전 어느날 오후 3시, 리해식은 관찰병으로 가장하고 대적공작조 석정과, 조홍권, 리병정 그리고 두 민경과 함께 선전화보와 조선신문으로 싼 술 두병과 통졸임 두통, 월병 14개 그리고 배, 복숭아, 오이 20여개를 들고 분계선 철조망 곁으로 갔다. 이날 그들은 이 곳에서 적민경들과 “련환모임”을 가지기로 하였다. 그들이 가서 얼마 안돼 적민경 다섯이 산에서 내려왔다. “안녕들 하오?” “예, 안녕해요?” 적민경들은 인사를 받으면서 분계선 철조망을 넘어와 땅바닥에 된장국 한곽과 과자 두봉지를 내놓았다. 한 적민경은 난생처음 월병을 보는지 주어들고 신기해하며 한입 뚝 떼 먹어보았다. “이건 무슨 과잔가요? 이리 맛있는가요?” “월병이요.” “오- 월병, 거 보름달처럼 생겼다고 월병이라는 모양이지.” 리해식은 술을 권한다 월병을 먹으라고 쥐여 준다 하면서 월병의 래력을 말해주고 추석이면 온집식구가 다 모여 월병을 먹으면서 명절을 쇠는 중국의 전통풍속을 알려주었다. 조홍권은 사단 대적공작과 조리원 석정과를 가리키면서 그럴듯하게 말했다. “월병은 우리 부분대장이 명절에 먹으라고 사온 거요. 이 복숭아는 우리절로 마련한 거고 오이는 우리 심은 거요. 오늘 우리 실컷 먹고 마음껏 놀기요.” 애숭이티 나는 적민경이 혀를 끌끌 찼다. “보라우, 남들은 분대장이 병사들한테 먹을 걸 다 사준다네. 얼마나 좋겠나.” 이때 조홍권이 적민경에게 술병을 쥐여주며 말했다. “다 먹지 말고 남겼다가 전번처럼 관측소 형제들두 주라구. 관측소엔 몇사람이 남아 있소? 요걸루 되겠소?” 적민경은 별로 고려없이 “되구 말구요. 어제 온 세 사람 밖에 없는데요. 이걸 다 마시면 배 터질라구요.”하고 말하였다. 적민경은 새로 온 동료들 이름마저 낱낱이 알려주었다. 한창 권커니 작거니 할 때였다. 마흔이 넘은 려광 부처장이 허리에 흰 앞치마까지 두르고 얼굴에 밀가루칠을 좀하여 취사원으로 그럴듯하게 가장하고 물만두를 대야에 듬뿍 담아가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관측소에서 내려왔다. 조홍권은 적민경들에게 그를 가리키면서 소개하였다. “이 분은 우리 취사원이요. 물만두를 실컷 자시라구.” 려광 부처장은 만면에 웃음을 담고 적민경들에게 물만두를 권하면서 말하였다. “물만두는 우리 중국 사람들이 젤 즐겨 먹는 음식이요. 자, 내 손재간이 어떤가 맛보라구.’ 주름살이 죽죽 간 그가 취사원으로 꾸미고 척 나서니 실로 그럴듯하였다. 적민경들은 술이 거나하게 된 적민경들은 그를 의심하기는커녕 그의 후더운 거동에 마음이 훈훈해나서 조흥권이랑 손을 잡아 일으키더니 어깨춤을 덩실덩실 춰댔다. 노래소리, 웃음소리가 철조망 남북 저 멀리에로 울려퍼졌다. 조흥권과 춤 추던 적민경은 떠나면서 그에게 귀속말을 하였다. “오늘 오전에 351고지에서 전화로 날 오라지 않겠나요. 가보니 20여명이 새로 왔더구만.” 이때 한 적민경이 조홍권에게 “요 며칠새 중공군과 만났는가요?” 하고 물었다. “아니요.” “만약 누굴 만나든간에 오늘 일을 말하지 마세요.” 그러자 조홍권은 그를 안심시켰다. “우린 친구니깐. 시름놓으라구.” 적민경들은 헤여지기 아쉬워하면서 철조망을 넘어갔다. 이번 “련한모임”을 통해 적들의 새로운 병력배치정황을 알아냈다. 한번은 상감령 맞은켠 적민경 중사 박상원은 우리 민경에게 한가지 부탁하였다. “내 고향은 북반부 세포군 세로리죠. 거긴 저의 삼촌이 있는데 몇해 되도록 편지로 문안마저 하지 못했는데요. 편지라도 전해주겠는가요?” 그의 눈에는 크게 희망을 걸지 않으면서도 간절하게 부탁하는 빛이 어려 있었다. “되구 말구요.” 지도자의 동의를 거쳐 그가 써준 주소대로 한 간부를 보내 그의 삼촌에게 편지를 전해주었다. 눈보라가 윙- 윙- 휘몰아치는 날에 인차 그의 삼촌의 회답편지를 손수 가져다가 주었다. 박상원은 매우 감격하여 만면에 웃음을 피우고 우리 대적공작조 간부의 손을 굳게 잡았다. “난 편지를 주면서도 당신들이 정말 전해줄가고 근심했죠. 인제야 당신들이 진짜 절 도와준다는 걸 알았어요. 이 편지는 확실히 제 삼촌이 친필로 쓴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 은혜를 갚을가요?” 그는 감격된 나머지 뜨거운 눈물까지 두 볼에 주르르 흘렸다. “저의 부모들 모두 한국에 있으니 말이죠. 부모들이 아니면 벌써 고향에 돌아갔을 거예요. 전 자나깨나 제가 나서 자란 고향을 생각해요.” 이 일을 알게 된 후부터 적민경들은 더 각근히 굴었다. 하여 우리 군의 정치영향은 적군들의 가슴에 뿌리를 내리고 그 가족들에게까지 뻗쳤다. 이에 따라 북에 의거해오는 적민경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리해식 소속 군단 맞으켠의 적민경들만 해도 82명이나 의거해 넘어왔다. 그 속에는 중위급군관 3명과 사단부 특무대 특무 설종태도 들어 있다. 상감령 아래 하감령 아군 방어구역 안에는 작은 금광이 있었다. 이 금광의 광석은 금함량이 매우 놓았다. 그런데 전쟁 후에 비군사구역이 디면서 누구도 파내지 못하였다. 이 금광에서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400여메터 떨어진 곳에 적민경보초소가 있었다. 한 적민경 분대장은 어느날 밤에 보초를 서는 기회를 빌어 보초병에게 동정을 살피게 하고 미국식 손전지와 밥곽, 작은 마치를 가지고 분계선 철조망을 슬쩍 넘어와 서서 동정을 두리번거리면서 살피다가 슬금슬금 금광 굴 안으로 들어갔다. 좀 지나 굴 안에서 마치로 금광석을캐는 소리가 딱딱딱 들려왔다. 그의 거동을 진작 지켜보던 우리측 민경 넷은 한 사람이 분계선 쪽을 경계하고 세 사람이 동굴어귀를 포위하였다. 한 20분이 지나자 적민경 분대장이 밥곽 안에 금광석을 꼴똑 캐담아가지고 나왔다. “꼼짝 말엇!” 갑자기 시꺼먼 총구멍이 셋이나 겨누자 적민경은 와들짝 놀랐다. 그는 손전지와 마치를 땅바닥에 뚝 떨어뜨리고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금광석이 든 밥곽만은 놓지 않고 오히려 품에 꽉 껴안는 것이였다. “걸엇!” 민경관측소에서 책임자가 그의 손에서 밥곽을 받아 금광석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금광석을 캐서 뭘 하려오?” 그는 머리를 푹 수그리면서 쥐구멍에 기여드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저의 어머니 중병에 걸렷어요. 돈 없어 어머니 병치료 못하고 있는데요. 어머니 치료비 좀 만들려고 금광석이라도 캤어요.” 책임자는 엄숙하게 말하였다. “당신은 정전협정을 어기고 분계선을 넘어왔소. 우린 뒤에 보내 처리해야겠소.” 그 소리에 그는 벌떡 일어났다가 무릎을 꿇고 안자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울먹울먹한 얼굴로 책임자를 바라보며 간곡히 빌었다. “제발 그러지 말아요. 절 놓아줘요. 제가 갇히면 우리 어머니는 돈이 없어 병치료를 못해요. 이 금광석을 팔아 어머니 병치료하게 되면 제가 온 분대 민경들을 몽땅 데리고 와서 의거하겠어요. 은혜를 꼭 갚겠어요.” “일어나오. 우리 우에다 말해보지.” 책임자는 그가 어찌나 불쌍한 처지를 절절히 빌고 또 태도가 성실한지 상급의 비준을 거쳐 그날 밤으로 보초를 바꾸기 전에 놓아보냈다. 그리고 정전협정에 위반되는 행위라고 남조선측에 항의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우리 측 인도주의 처사에 감화된 그 적민경 분대장은 금광석을 팔아 어머니 병을 치료한 후 진짜 어머니까지 모시고 그의 분대 민경들을 몽땅 데리고 상감령 동쪽 조선인민군에 의거해왔다. 38선에서 대적공작사업은 피의 대가도 치르면서 위대항 업적을 쌓았다. 조선족대적공작간부 리병정, 조명석, 강남필 등 동지는 38선에서의 대적투쟁에서 영광스럽게 희생되였다. 38선에 붉은 피를 휘뿌린 그들은 아직도 조선 38선에서 고이 잠자고 있다.                 리목리암살사건 1956년 하반년, 지원군의 정치적 영향이 적군 내부에 점차 확대되여감에 따라 38선을 넘어 이북에 의거해온 적군이 날로 늘어났다. 당시 중국과 쏘련의 국제주의적인 지원을 받는데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 주석께서 령솔한 조선로동당의 령도아래 조선 인민들은 신속히 전쟁의 피해를 극복하고 재더미 우에 위대한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여 인민들의 생활수준도 남반부보다 훨씬 높았다. 그리하여 남반부의 평민백성들과 군인들이 월북하는 사건도 비일비재였다. 그리하여 적군 상층기관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리승만괴뢰군의 한 사단에서 남조선(한국) 괴뢰군 국방부에 한 보고에는 이런 애탄이 적혀 있었다. “철원지구의 비무장지대에서 공산군은 늘 우리 한국 군에게 정치선전하고 있다. 하여 쌍방은 적의가 없어졌다. 숱한 군인과 백성들이 월북했다. 만약 계속 이렇게 해나간다면 우리 한국 군의 사기에 영향줄 것이며 앞길이 막막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정황에 근거해 아군 맞은켠 적군지휘부에서는 일찍 민경들이 아군 민경들과 만나는 것을 금지할데 대한 명령을 내렸다. 또 전문 훈련받은 한무리 특무들과 헌병들을 민경들 속에 파견해 정전협정을 어기고 파괴활동을 감행하였다. 1956년 9월 20일, 상감령지구를 들썽케 한 리목리암살사건은 바로 그 철증으로 된다. 리목리는 38선 북쪽, 상감령 서쪽과 5킬로메터 떨어진 군사분계선 부근에 있는 마을인데 전쟁 때 포격에 재더미로 되고 말았다. 이 곳은 정전 후 적아쌍방 민경들이 늘 만나는 곳이였다. 9월 20일, 추석 이튿날이였다. 대적공작조의 석정과, 리병정과 민경전사 왕동무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술 한병과 과자 두봉지를 가지고 순라하러 나갔다. 그들 셋은 허리를 치는 잡초를 헤가르면서 순라선을 따라 살피면서 리목리로 갔다. 10시 쯤 되였을 때였다. 그들 셋을 본 적민경 셋이 351고지에서 슬금슬금 내려왔다. 그들은 리목리마을 뒤산 둔덕에서 만났다. “추석 잘 쇴소?” “엉? 음, 그래.” “어젠 왜 안 왔소?” “그럴만한 일 있었네.” 적민경 남종석이란 자가 얼버무리면서 흘끔거렸다. 서로 면목이 있는지라 석정과네는 무람없이 분계선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리병정은 앉자마자 술병과 과자를 꺼내 벌려놓았다. 적민경들은 좋아라고 술병을 주어들어 꿀꺽꿀꺽 둬모금 마셨다. 그들이 서로 한담을 하며 권커니작커니할 때 우리측 민경 왕동무는 뜻밖의 일을 막으려고 총을 멘채 옆에 서서 구경만 하였다. 한참 지나서 남종석이 바지춤을 쥐고 일어섰다. “야따, 술 좀 마시니 오줌 마렵군.’ 그 자는 한쪽으로 가서 소변 보는 것처럼 하였다. 그 놈은 권총을 슬쩍 꺼내 바지주머니 안에 넣어 총끝을 오줌구멍으로 해서 리병정에게 두방 쐈다. 땅! 땅! 야무진 총소리 울렸다. 리병정은 아래배와 왼가슴을 맞고 피못 속에 쓰러졌다. 그는 권총을 빼서 남종식을 겨누었지만 쏘지도 못하고 희생되였다. 피못 속에 쓰러진 그는 분노에 찬 두눈을 부릅뜨고 철조망 맞은켠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남종석과 그 짝패들은 미군식보총 두자루를 던진 채 데굴데굴 구을어 산 아래로 내려갔다. 석정과와 왕동무는 그 놈들에게 사격하였다. 한 적민경이 맞아 비칠거리다가 두 놈의 부축을 받으면서 도망쳤다. 뒤이어 나무숲 속에서 여러 놈이 나와 엄호하였다. (분명 저 놈들이 미리 짜고 들어 암살한 것이구나.) 석정과와 왕동무가 풀숲에 엎드려 찬찬히 보니 철조망 건너 풀밭에 미군식보총 두자루와 미국제톰식권총 탄알까지 2개가 풀밭에 있었다. 이때 부근에서 순라하던 조홍권이 총소리를 듣고 한개 소조의 민경들을 데리고 뛰여왔다. 그들은 인차 사람을 띄워 대대부에 알리는 한편 사건현지를 지켰다. 그날 리해식도 상감령지구 모 사 민경 2대 중대부에 있다가 사건보고를 받았다. 뒤이어 군 수장의 지시에 다라 한 부대장과 함께 한개 패 민경들을 데리고 사건현지에 뛰여갔다. 리해식과 부대장은 분계선에서 10여메터 떨어진 북산언덕 수림에 전투대형을 짓고 엎드려 사건현지를 보호하였다. 이 곳은 맞은켠 적들이 지키는 산보다 훨씬 낮은 개활지대 앞에 있는 산둔덕이여서 아군에게 매우 불리하였다. 산골짜기를 하나 사이 두고 한 백메터 떨어진 맞은켠 산 우의 나무숲에 벌써 철갑모를 쓴 적들이 새까맣게 몰려오더니 시꺼먼 총부리를 이쪽에 겨누고 있었다. 실로 힘껏 당긴 활시위처럼 일촉즉발의 팽팽한 분위기였다. 피못 속에 쓰러진 전우 리병정을 보자 동무들은 눈에 불길이 이글거렸다. “부대장, 명령하십시오!” “원쑤를 갚읍시다!” 전사들이 분노에 치를 떨자 부대장도 참을 수 없었던지 리해식을 돌아다보면서 물었다. “어쩌겠습니까?” 리해식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안되오. 우린 견결히 군단 수장의 지시대로 련합조사조가 올 때까지 사건현지와 리병정동지 시체를 지켜야 하오. 기다리기요. 사태를 확대시켜선 안되오.” 군단과 사낟에서는 점심 전에 사건현지에 직통전화기를 가설했다. 리해식은 전화기 옆을 한발자욱도 떠나지 않고 적정변화을 군단 수장에게 보고하였다. 따르릉, 따르릉. 군단 오보산 정위에게서 전화지시가 왔다. “동무는 인내성있게 전사들의 사상사업을 해야 하오. 상급의 명령이 없인 누구도 먼저 사격해선 안되오. 그렇게 되면 우린 주동으로부터 피동에 빠지게 되오.” “예, 알았습니다. 꼭 전사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리해식은 송수화기를 놓고 일어났다. 민경전사들은 새로운 지시가 있는줄 알고 총가목을 으스러지게 쥐고 세줄 횡대로 차렷자세로 섰다. 리해식은 부대장한테 대체적지시내용을 말하고나서 분노에 불타는 전사들의 눈길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동무들, 군단 정위 오보산 동지는 다음과 같이 지시했습니다. 비무장지대 일거일동은 직접 국제적인 외교투쟁에 관계됩니다. 전반 국면을 돌봐야지 일시적 충동에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행동은 지휘에 복종하고 우리 민경들은 정전협정을 지켜야 합니다.” “옛! 꼭 명령에 복종하겠습니다.” 전사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분계선 철조망을 뒤흔들면서 저 멀리 산에까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전사들은 조선 중부의 무더운 날씨에 땀을 철철 흘리면서도 소나무숲이 우거진 산둔덕에 엎드려 맞은켠 산의 나무숲 속에 점점 많아지는 적들을 노려보았다. 이날 오후, 리목리암살사건정보를 받은 중조측조사소조일군들이 차를 타고 달려왔다. 그들은 석정과와 왕동무에게서 사건경과를 들었고 이튿날 공동조사를 할 때 주의사항을 구체조치를 포치하였다. “리해식동무는 공동조사 경호를 책임지오.” “옛!” 리해식은 우렁차게 대답하였다. 리해식은 민경들을 데리고 밤낮 사건현지를 지켰다. 이튿날 아침에 군사정전위원회에서 파견한 제3련합관찰소조가 누런 기를 단 찌프를 타고 현지에 달려왔다. 그들은 풀숲을 헤치면서 분계선 철조망 옆으로 해서 산둔덕에 있는 사건현지에 이르렀다. 먼저 미군측에서 데려온 법의가 리병정의 시체를 검사하였다. 뻘건 피가 걸어붙은 굳어진 시체 왼쪽 가슴과 아래배에 총알이 뚫고 나간 구멍이 있었다. 북쪽을 향해 뒤로 쓰러진 시체의 자세나 철조망 남쪽 풀밭에 던지고 달아난 보총 두자루, 탄알깍지를 보아도 분계선 남쪽에서 총을 쏜 것이 불보듯 빤하였다. 그런데도 미군측 조장이란 꺽다리 중좌는 이렇게 얼토당토하지 않은 소리를 지르지 않겠는가. “총은 당신들 민경이 북쪽에서 이쪽에 대고 쏜 것이구만.” 그 말을 통역하자 우리측 조장 조선인민군 김류근 중좌는 엄숙하게 반박하였다. “당신들은 당신들측에서 저지른 만행을 반성해야 합니다. 공동조사에 아무런 성의도 없이 사건진상을 무시하고 책임을 우리측에 밀어버리려고 괴변을 부려선 절대 안됩니다.” 미군측 법의가 또 관건적인 문제를 두고 당나귀 떼질을 썼다. “권총 사격선과 시체에 난 총구멍이 일직선에 놓이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우리측에서 쏜 것이 아닙니다.” 우리측 부조장인 중국인민지원군 왕진강 소좌가 아주 풍자적으로 한마디 툭 쏘았다. “건 아마 미국의 권총 탄알이 요리조리 에돌면서 괴변 부릴줄 알기 때문이겠죠.” 통역원이 그 말을 영어와 조선어로 통역하자 적측 관찰원들은 입에 빗장을 지른 채 아무 말도하지 못하였다. 뒤이어 우리측 당사자들인 석정과와 민경 왕동무를 하나하나 불러다 사건경과를 일일이 물었다. 그들이 증실한 경과는 똑 같았고 현지실제정황과 딱 맞아떨어졌다. 이번에는 적측의 살인흉수 남종석 등 셋을 조사하게 되였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장면이 나타났다. 그 놈들 셋은 우리측 민경들에게 얻어맞은듯이 낯판대기에 반창고를 더덕더덕 붙히고 나타나지 않았겠는가. 총에 경상을 입은 놈은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나타났다. 우리측 당사자 석정과가 엄살을 부리는 그 자들을 손가락질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개놈들, 리병정을 쏴죽이고서두 맞은 척하긴? 반창고를 뜯어라! 상처를 어디 보자!’ 우리측 대표가 그 자들의 낯판대기 반창고를 쭉쭉 뜯어버렸다.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복수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우리측 대표와 경위일군들의 눈길을 보자 그자들 셋은 고양이를 본 쥐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미군측 조장은 그 난처한 모양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공동관찰소조에서 그 자들에게 사건경과를 물었으나 남족석은 꺽꺽거리면서 대답도 온전히 하지 못하였다. 또 그들 셋의 대답은 각기 달랐다. 미군측 조장은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올라 붉그락푸르락해서 영어로 뭐라고 욕지거리를 했다. 후에 리해식이 영어통역에게 물어보니 시켜준 서방질도 온전히 못하는 “밥통들”이라고 욕했다고 하였다. 한참 후에야 남종석은 얼토당토하지 않은 말을 불쑥 했다. “소변을 보다가 그만 오발했다니께.” 그 놈의 궤변에 우리측 대표가 반박했다. “련이어 두방이나 오발할 수 있는가? 오발이면 두발 다 명중해 살인까지 할 수 있는가?” 그러자 미군측 대표 중좌는 성난 어조로 “당사자들 조사는 이만합시다. 오늘 쉬고 래일 계속 조사합시다.”라고 하고는 수행인원들을 끌고 산 아래로 우르르 쓸어내려갔다. 조사가 끝나자 리해식은 전사들을 보고 사건현지 경호를 철수하게 하였다. 그날 전우들은 리병정 렬사의 유체를 조선 평강군 성암리의 푸르싱싱한 소나무가 우거진 지원군렬사릉원에 안장하고 리병정렬사의 성명과 가정주소를 쓴 종이장을 넣고 밀봉한 큰 놋그릇을 묘지아래에 엎어놓고 파묻어놓았다. 뒤이어 부대에서는 성대한 추도대회를 열었다. 리병정 렬사는 중국 길림성 휘남현 사람으로서 16세 밖에 안되는 어린 나이에 중국인민지원군에 입대해 조선전쟁터에 나왔으며 선후하여 포병, 통신원, 보병부대 조선어번역원으로 일하였으며 1954년에 비무장지대 대적공작사업을 하다가 불행하게 희생되였다. 9월 22일 오전 9시 좌우, 중조측소조 성원들은 먼저 사건현지에서 서쪽으로 50메터 떨어진 둔덕에 서서 적측대표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적측 대표들이 351고지 동쪽 산골까기에서 알라오고 있었다. 몇몇 괴뢰군 병사들은 낡은 책상과 걸상을 몇개 들고 따라왔다. 이윽고 백명은 실히 될 적측 일군들이 산둔덕에 있는 사건현지에 올라왔다. 그런데 그들은 온 오전 담판에 성의가 없이 질질 끌면서 궤변을 부리기만 하였다. 오후에 담판이 시작되자마자 우리측 소조장 김류근은 적들이 사건현지에 남긴 미국제자동보총 두자루와 미국제톰식권총 탄알까지 두개를 쥐여 미군측 꺽다리조장의 코 앞에 내들면서 말했다. “보시요. 이건 철증입니다. 당신들측 민경들이 고의적으로 정전협정을 파괴하고 암암리에 총으로 우리측 민경들을 쏘아 비무장지대에 긴장국세를 조성했습니다. 우리는 강렬한 항의를 제기합니다.” 철증 앞에서 미군측 꺽다리 조장은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김류근 조장은 이런 요구를 제기하였다. “정전협정 해당 규정에 따라 우리는 살인흉수를 호되게 징벌할 것을 요구합니다. 금후 다신 이런 암살사건을 저지르지 않도록 잘 단속해야 합니다.” 입에 빗장을 지르고 있던 미군측 꺾다리 조장은 더는 잔꾀를 부릴 수도 없는지라 “참 유감스럽습니다.” 하고 한마디 하고는 산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수행인원들도 우르르 뒤따라 산아래로 내려갔다. 리목리암살사건을 돌이켜보면, 적들이 얼굴에 칼상처자국이 있는 리병정을 군관으로 알고 암살하려고 미리 획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범행지점도 사건을 저지른 후 달아나기 좋은 둔덕진 곳을 골라 미리 정해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측 민경들이 경각성을 높이지 않아 피의 교훈을 얻고 말았던 것이다. 리목리암살사건이 발생한지도 수십년이 되였다. 그러나 소나무가 우거진 산둔덕을 바라볼 때마다 리해식의 눈 앞에는 리목리암살사건에서 희생된 리병정렬사의 묘지가 선히 떠오르군 한다.                                       제7장 조국으로 개선              칠혈육의 정 1958년 2월 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서는 성명을 발표하여 조선에서 즉시 모든 외국군대를 철수하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실현할데 관한 여러가지 건의를 제기하였다. 2월 7일, 중국 정부에서도 평화적으로 조선문제를 해결할 군면을 열고 미제로 하여 조성된 원동의 긴장국세를 완화시키기 위해 성명을 발표하여 조선정부의 성명을 완전히 지지한다고 표시하였다. 2월 10일, 주은래 총리가 외교부장 진의 등 동지들을 주요성원으로 한 중국정부대표단을 령솔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하였다. 방문기간에 주은래 총리는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2월 17일, 중국정부와 조선정부에서는 중국인민지원군이 조선에서 철거할데 관한 세계를 뒤흔든 련합성명을 발표하였다. 이튿날, 중국인민지원군총부에서는 성명을 발표하여 중조 두 나라 정부의 련합성명을 옹호하며 1958년 내에 중국인민지원군을 전부 철수하며 4월 말 전에 먼저 6개 사단을 철수한다고 성명하였다. 그리고 성명에서는 미국과 기타 나라의 군대도 조선반도에서 몽땅 철거할 것을 요구하였다. 모든 외국 군대를 조선반도에서 철수하고 평화적으로 조선문제를 해결할데 관한 문제는 조선군사정전협정에 명확히 규정돼 있었다. 정전 후 적아쌍방은 3개월 이내에 고위급정치회의를 열고 모든 외국 군대가 조선에서 철수해야 했다. 그러나 정전된 12일 후인 1953년 8월 8일에 미제와 리승만괴뢰군은 침략성적인 “공동조약”을 맺고 12월 12일에는 모든 외국 군대를 철수할 문제를 협상할 고위급협상회의를 공공연히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바람에 줄곧 그 고위급형상회의를 열지 못하였다. 미제는 또 전쟁준비를 다그치기 위해 중립국감찰소조를 남조선에서 철거하라고 강박했다. 중립국감찰소조가 핍박에 의해 남조선(한국)에서 철가한 이듬해인 1957년 6월, 미제는 증원무기를 조선반도에 들여오지 못한다는 조선정전협정 규정을 무시하고 남조선에 원자탄과 로케트를 끌어들여 계속 조선반도의 긴장국세를 조성하였다. 이와 반대로 중국인민지원군은 조선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였다. 조선을 곧 떠나게 되자 지원군과 조선 인민군, 인민들은 피로써 맺어진 친선의 정을 잊을 수 없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조선전쟁터에서 중조 부대와 인민들은 피로써 친선의 정을 맺었다. 지원군이 38선 부근에 진군했을 때였다. 상감령, 평강지구 조선인민들은 몇백명이나 되는 전선원호대를 무어가지고 지원군의 부상병과 탄약을 날라주었다. 19세 민청원 처녀 김명옥은 담가로 부상병을 들어나르다가 적기가 날아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죽더라도 지원군 부상병을 살려내야 한다.) 김명옥은 재빨리 담가를 나무숲 아래에 내려놓고 자기 몸으로 지원군 부상병의 몸을 덮었다. 쌩- 꽈르릉, 꽝꽝! 적기가 던진 폭탄이 그들의 옆에 날아와 작렬하였다. 담가 옆에 서 있던 나무가 날아나고 파편이 김명옥의 허벅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치마에 피가 뻘겋게 물들었다. 적기가 날아가자 그녀는 허벅다리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쓱 문지르고는 이를 옥물고 담가를 메였다. 그것을 본 부상병은 두 볼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담가에서 내리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김명옥은 지원군 전사를 설복해 되눕히고나서 이를 옥물고 담가를 들더니 아픈 다리를 쩔룩거리면서 앞으로 한걸음한걸음 나갔다. 그녀가 상감령전선에서 10킬로메터나 떨어진 전선병원에 이르렀을 때에는 피가 코신에 질벅하였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고 깨문 입술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19세 나는 조선 처녀 석길영은 이름난 전선지원모범이였다. 석길영의 집은 상감령 뒤쪽의 김화군 장덕면 매송리에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가증스러운 미제공중날강도의 폭격에 목숨을 잃었다. 원쑤를 갚으려고 그녀의 오빠는 조선인민군에 들어갔고 그녀는 혼자서 늘 적들의 비발치는 포화를 무릅쓰고 산에 올라가서 도라지와 야들야들한 삽주이파리, 개암나무버섯 같은 산나물을 캐다가 지원군부대에 가져다주군 하였다. 1952년 6월의 어느날 그가 광주리와 괭이를 가지고 산에 올라가 도라지를 캘 때였다. 갑자기 적들이 쏜 포탄이 날아와 부근에서 작렬하였다. 꽝! 굉음과 함께 석길영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때 부근에 있던 지원군 취사원들이 피못 속에 쓰러진 그녀를 발견하고 달려갔다. 석길영이 캔 돌라지는 사처에 널려 있었고 석길영의 왼쪽발이 뭉청 날아나고 끊어난 발목에서 뻘건 피가 줄줄 흘렀다. 하여 바삐 석길영을 업어 부근 지원군병원에 가서 구급하였다. 석길영이 캔 도라지랑 삽주랑 반광주리는 지원군 모부 진지 무후좌력포패에 보내졌다. 취사원들이 광주리 안에 써넣은 편지를 보고서야 모두들 석길영이란 조선처녀가 이 산나물을 캐오느라고 왼쪽발을 적들의 포탄에 잃었다는 것을 알고 모두들 비통에 잠겼다. 이튿날 전투에서 그 패 전사들은 “석길영의 원쑤를 갚자!” 하고 드높이 구호를 부르면서 적 땅크(탱크) 6대나 까부셨다. 그해 가을 상감령전역의 포소리가 울렸다. 지원군 의료일군들의 치료받아 상처를 완치한 석길영은 출원하자마자 지팽이를 짚고 마을의 처녀들과 함께 전선으로 통한 큰 길 옆에 더운물공급소를 차렸다. 그녀들은 적들의 포격을 무릅쓰고 마른 나무가지를 주어다가 물을 끓여 뜨거운 정이 듬뿍 담긴 더운 물을 지나가는 지원군 아저씨들에게 드렸다. 물이 특별히 귀한 상감령전역의 목마른 지원군 전사들은 그녀들의 뜨거운 물을 마시고 고무돼 영용히 적들을 무찔렀다. 마을의 숱한 녀성들은 석길영을 본받아 분분히 일떠나 “석길영담가대”, “석길영수혈대”를 무어가지고 전선지원에 일떠섰다. 온 마을에서는 전선지원의 열조가 일어났다. 조선정부에서는 석길영 처녀의 전선지원공적을 표창하기 위해 2급국기훈장을 수여하였다. 후에 지원군 부대에서는 석길영 처녀에게 재봉침 한대를 선물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밤낮 외발로 재봉침을 돌리면서 지원군 전사들의 옷을 기워주었다. 조선전쟁이 끝난 뒤 지원군 군단에서는 석길영에게 새 벽돌기와집을 지어주었다. 그러자 석길영은 군 수장에게 열정이 넘치는 감사신을 써보냈다. 그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저 석길영은 그대들의 뜨거운 보살핌과 치료를 받은 수천수만의 조선 인민 가운데 한 사람인데요. ‘조중 인민들은 친혈육과 같다.’는 이 한마디 말은 저의 몸에서 낱낱이 드러난다고 생각돼요. 제가 적포탄에 맞아 왼쪽발을 잃어 목숨이 위험할 때 중국인민지원군 간호원언니들이 국제주의정신을 발양해 자기들의 붉은 피를 뽑아 저의 몸에 넣어 저를 살려냈습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그대들은 끊임없이 먹을 쌀과 생활용품을 가져다주었고 저에게 재봉침 한대를 가져다주었어요. 이번에는 또 저에게 새 집까지 지어주었죠. 하여 저는 생활상의 모든 곤난을 이겨나갈 수 있었어요. 저는 이런 한마디 말을 하고 싶어요. 저도 중국 인민들처럼 그대들 중국인민지원군을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부를 것이예요.” 1958년에 중국인민대표단 단장 곽말약동지가 친히 석길영에게 기념장 하나를 드리자 그녀는 두 볼에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저의 혈관에서는 지원군의 피가 흐르고 있어요. 저의 심장이 뛰는 날까지 저는 조중친선을 위해 싸울 거예요.” 후에 석길영은 지원군 그 군단 주둔지에서 이사해갔다. 리해식은 귀국하는 도중에 신문에서 석길영이 지원군에 대한 깊고 깊은 감정을 품고 지팽이를 짚고 머나먼 길을 걸어 평양에까지 와서 귀국하는 지원군 전사들을 환송했다는 소식을 보았다. 1952년 10월, 세계를 들썽한 상감령전역의 총소리가 울리자 회양군 란곡면 현리의 농민 박재근은 담가원호대에 들었다. 어느날 밤, 박재근과 그들의 담가대는 지원군 부상병들을 담가에 메고 산둔덕으로 올라갔다가 산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이 산기슭에 담가를 내려놓고 잠시 땀을 들일 때였다. 갑자기 적기가 앵- 하고 날아왔다. 박재근은 황급히 담가를 나무 아래에 내려놓고 숨었다. 적기는 그들의 꼭대기에 날아와 폭탄을 떨어뜨렸다. 박재근은 바삐 자기 몸으로 지원군 부상병의 몸 우에 엎드렸다. 꽝! 굉음과 함께 폭탄이 공중에서 작렬하였다. 파편이 날아와 박재근의 잔등에 박혔다. “억!’ 외마디소리와 함께 박재근은 입귀로 피를 흘리며 일어나지 못했다. “재근이!” “재근이!” 담가대 사람들이 애타게 불렀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그를 전선병원에 업어갔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박재근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피기없는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띠염띠염 물었다. “그 지원군, 부, 부상병은 어떻게, 돼, 됐나?” “근심 말아요. 안전히 병원에 왔어요.” “음.” 그제야 그는 가쁜 숨을 후- 몰아쉬더니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지원군 부상병도 담가대원들도 모두 애절하게 통곡하였다. 상감령전투의 총포소리 속에서 당지 당정기관과 지원군부대 대표들은 흐르는 피눈물과 함께 박재근렬사를 상감령 산기슭에 묻었다. 조선전쟁이 끝나자 지원군 이 군단부대에서는 군단 경위2련의 전사들을 파견하여 박재근렬사의 기와집을 현리촌 도려옆에 지어주었다. 집문 우에는 빨간 바탕에 금색테두리칠을 하고 “불멸의 국제주의전사 박재근렬사의 집”이란 글을 새긴 커다란 편액을 걸어놓았다. 황금나락이 설레이는 가을의 어느날 점심에 박재근렬사의 안해 리옥선과 딸 박숙금은 3년 동안이나 살아온 방공굴 같은 헌 집에서 새 벽돌기와집에 들었다. 그날 새집들이의식에는 박재근렬사가 생전에 몸바쳐 구한 부상병 소속 지원군 군단 정치부 주임 범춘양이 부대대표들을 이끌고 당지 조선 당정지도자들과 함께 참가하였다. 후에 명절이면 군단의 수장들은 사람을 파견하여 위문편지와 명절선물을 가지고 박재근렬사의 가족을 찾아가 보았다. 1956년 한해 봄에만 해도 지원군 이 군단에서는 박재근렬사네 집에 량식 1,800근을 보내주어 보리고개를 근심걱정없이 넘게 하였다. 지원군 군단에서 상감령 전초에서 떠나기 전에 군장 범영 소장 일행은 박재근렬사의 안해 리옥선과 작별인사하러 갔다. 군 수장들이 탄 차가 박재근렬사의 집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회양군 당정지도자들과 인민군 대표들, 그리고 박재근렬사의 안해 리옥선과 마을사람들 수백명이 진작 동구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부대의 수장과 동지들을 보자 리옥선 아주머니는 5년 동안이나 지원군부대에서 살뜰히 보살펴준 일을 생각하고 범군장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두 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는데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석별의 정으로 차넘치는 작별의식은 환락으로 차넘치는 군악소리 속에서 시작됐다. 범염 군장이 군단 전체 장병들을 대표하여 위대한 국제주의전사 박재근렬사의 안해 리옥선 아주머니에게 “위대한 국제주의전사 박재근동지는 영생불멸하리라.”는 글발이 새겨진 거폭의 편액을 드렸고 당장에서 그 편액을 새 벽돌기와집에 걸어주었다. 그리고 빨간 꽃댕기를 목에 건 백마 한필, 굴암돼지 한마리와 새끼돼지 두마리를 선물로 드렸다. 뒤이어 범염 군장 일행은 박재근렬사의 묘소 앞으로 가서 당지 조선풍속에 따라 제사를 지냈다. 범군장과 조선 당지 당정군 책임자들이 애절한 군악소리 속에서 꽃다발을 렬사묘지에 드렸다. 뒤이어 범군장은 렬사묘지에 제주를 부어드리고 중국 풍속대로 향불을 피우고 절을 세번 하였다. 범군장은 축축한 눈길로 렬사의 묘지를 바라보며 호주머니에서 추도문을 꺼내 비통하게 읊었따. “…우리는 귀국한 후에도 영원히 박재근 렬사가 몸바쳐 우리 지원군 전사를 구한 국제주의정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박재근렬사는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박재근렬사여, 고이 잠드시라.” 범군장은 머리 숙여 경례하였다. 뒤이어 렬사의 가속과 함께 렬사의 묘지에 가토하고 푸른 애솔을 묘지 앞에 심었다. 리옥선 아주머니는 범군장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었다. 범군장은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그녀의 손을 굳게 잡아 흔들었다. 범군장 일행은 갈라지기 아쉬운 석별의 정을 안고 차에 앉아 천천히 저 멀리 떠나갔다. 리옥선 아주머니는 딸을 데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락조가 깔린 묘지 앞에 오도카니 서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차가 저 멀리 까만 점으로 아물거리다가 산굽인돌이를 에돌아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아, 조선 전쟁터에서 피로써 맺어진 중조 인민들의 친선의 정은 세월이 흘러도 영원하리라.              안녕히! 조선이여!         4월의 상감령에는 봄볕이 완연하였다. 상감령 아래 산꼴짜기에는 개울물이 촐랑촐랑 노래하며 흘렀다. 상감령에는 영웅들의 선혈을 머금고 피여난 연분홍 진달래가 부드러운 봄바람에 나풀나풀 춤추고 있었다. 리해식 소속 지원군 군단은 전우들의 피로 물든 아아한 상감령, 구소운영웅고지 등 40킬로메터나 되는 전연진지를 조선인민군에 넘겨주고 조국으로 돌아가게 되였다. 모두들 조국에 돌아갈 날이 돌아온 것으로 하여 기뻐 야단이였다. 그러나 비밀을 지킬데 관한 규정에 따라 누구든지 중국 국내에서 온 편지를 받아볼 수 있을뿐 국내에 편지를 써서 부치지 못하였다. 리해식 등 대적공작처 간부들은 창문과 문을 뜯어 개울가에 메고 가서 겨우내 다닥다닥 붙어 있은 종이를 강물에 퍼지워 새끼줄로 닦아 말끔히 벗긴 후 되달아놓았다. 그리고 사무실도 말끔히 청소하여놓았다. 조선인민군 군단 수장들 선견대가 밤중 어둠을 빌어 비밀리에 38선 부근 지원군 군단 군영에 들어왔다. 두 나라 군단의 수장들은 회담을 가지고 진지교환문제를 토론하였다. 그들은 군사작전, 정치사업, 후근, 무기창고 등 각 부문별로 동시에 회담을 가지고 해당 인계사항을 토론하였다. 리해식은 군단 정치사업인계부문 회담에 참가하였다. 그때 군단 대적공작처 처장 왕진강이 병치료를 하려고 귀국하였기에 정치부 수장의 지시에 따라 리해식이 대적공작처를 대표하여 대적공작처의 사업을 인계하게 되였다. 조선족인 리해식이 정치사업부문 회의를 주최해 인계하였기에 통역원이 없어도 되였다. 회담 후 중조부대 군단의 련합명령에는 목표를 폭로하지 않기 위해 일선부대와 비군사무장지대 민경부대의 인계사업은 밤에 하기로 하였으며 넘겨주는 지원군측에서는 인계받는 조선인민군측에서 온 후 한 주야 함께 당직을 서도록 하였고 이튿날 밤에 가만히 진지에서 철수하기로 하였다. 진지를 인계하기로 된 날 밤에 조선인민군 제1집단군 모 사단 사단장 김철만 소장과 정치부사단장 리길남 상좌를 비롯한 조선인민군 전우들이 38선 전연진지로 가만히 들어왔다. 어깨겯고 싸우던 지원군 장병들과 조선인민군 장병들은 서로 포옹하며 환희에 잠겼다. 조선인민군 한 정찰소대장은 시퍼런 비수를 뽑아 지원군 퇀 정찰참모 유자여에게 기념으로 주었다. “이 비수는 전쟁년대에 정찰임무를 수행할 때 미군 놈을 넷이나 찔러죽인 비수요.” 그러자 유자여 참모는 자기가 결혼할 때 안해가 준 베개를 그 정찰소대장에게 기념으로 주었다. 조선인민군 한 부련대장은 든든하게 수건한 갱도와 교통호, 또치까를 인계받은 후 만족한 웃음을 지으면서 지원군 모 퇀 수장에게 말하였다. “참 훌륭한 진진데요. 당금 싸운다 해도 난 이 진지에서 전투를 지휘할 수 있겠어요. 지원군동지들 안심하십시오. 우린 꼭 38선을 잘 지킬 것입니다.” 지원군 군단 정치부에서는 군지휘부의 강당과 문예, 체육기재 같은 것을 조선인민군에 인계하게 되였다. 그런데 무대에 친 천막은 얼마전에 군단 문화처에서 만원이나 들여 국내에 가서 새로 사다 친 것이였다. 문화처의 한 동무는 천막을 두고 가기 아까와 손으로 매만지면서 “이걸 떼가고 원래 걸 쳐놓으면 어떨가요?” 하고 물었다. 그때 일손을 거들던 정치부 수장이 듣고 도리머리질하였다. “그대로 몽땅 놔두오.” 그리하여 리해식 등은 강당의 우아한 장식을 그대로 남겨두고 청소까지 말끔히 해놓았다. 깨끗하고 장식이 우아한 강당을 인계받은 조선인민군의 해당 책임자는 매우 기뻐하였다. “무대장식이 대단히 멋집니다.” 38선 비무장지대의 대적공작을 인계할 때였다. 지원군 사단 대적공작과 과장은 리해식 등과 함께 직접 조선인민군 모 사단 대적공작지도원 등을 지원군 순라일군들로 가장시켜 데리고 직접 군사분계선의 철조망을 따라 거닐면서 적과 접촉하는 지점, 그리고 적측 민경들의 활동법칙, 순라로선, 관찰소의 위치 및 우리 대적공작조의 활동범위와 민경분대의 배합 등 정황을 일일이 소개해주고 모든 대적공작을 인계하였다. 며칠 후 인계회의에서 사단 대적공작과 과장은 몇년래 대적선전공작의 기본정황과 경험교훈을 소개하였다. 중국인민해방군 총정치부 대적공작부 부장 장재정 소장과 지원군 총정치부 대적공작부 부장 장락정중좌가 군단의 대적공작과 적정종합자료 등 사업서류 수십부를 리해식 등과 함께 일일이 심사한 후 조선인민군 정치부 대적사업 지도원 고실성 등 해당 책임자들에게 인계하였다. 조선인민군 고길성 지도원은 정밀한 자료를 받아보고 감탄하였다. “실로 이런 자료는 얻기 힘든데요. 이건 지원군 동지들이 피땀으로 바꿔온 1선자료지요. 우리 대적공작에 매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리해식은 개성에서부터 간직해온 모주석마크 두개를 고길성과 문창록에게 달아주었다. 그들 둘은 아주 기뻐하면서 포탄깍지 밑굽으로 만든 담배재떨이를 리해식에게 주었다. 기념품교환을 마치자 그들은 사무실 앞마당에 나가서 전체 대적사업일군들과 함께 합영을 촬영하였다. 리해식은 몇십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 담배재떨이를 건사해두었다. 매번 그 재떨이를 볼 때마다 그때 그 인계사업을 할 때 정경이 떠오르군 하였다. 전연진지의 인계사업이 끝난 후 영웅진지 상감령고지 등 비무장지대 민경부대의 인계사업이 시작되였다. 지원군 민경들은 대낮에는 조선인민군 민경들을 안내하여 흰구름 감도는 망원초소에 올라가 지형을 익숙하게 알려주고 적정을 일일이 소개해주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적특무를 잡던 구소운진지 산기슭이며 영웅 황계광렬사가 희생된 상감령 고지며 상감령지구를 들썽케 한 “리목리암살사건” 현지 산둔덕이며 몽땅 손금 보듯이 눈 앞에 확 안겨왔다. 중조 부대 민경들은 하루 낮에 밤을 이어 어깨겯고 웅위로운 삼강령 주봉진지 우에 서서 총가목을 잡고 격강성 높이 38군사분계선 철조망 남쪽의 적정을 주시하며 살폈다. 지원군 민경들이 진지를 떠날 시간이 되자 두 나라 전우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형편에서 서로 굳게 포옹하는 것으로 천마디 만마디 말과 석별의 정을 주고 받았다. 참말리해식 등 지원군 대적공작과 간부들과 민경들은 몇년 동안 피를 흘리며 싸우면서 지켜온 38선을 떠나기 아쉬웠다. 특히 영용히 희생된 전우들을 38선 부근 산에 묻어두고 조선을 38선을 영영 떠나려고 하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흐르는 눈물을 팔소매로 닦고 38선에 영영 고이 잠든 전우들, 영웅들의 혼과 떨어져 조국에로 돌아와야 했다. 영웅 황계광의 동생 황계서도 형제부대와 함께 38선 부근 상감령 진지에 와서 구소운렬사와 형님 황계광렬사와 작별하였다. 그는 형님 황계광이 희생된 곳에 묵묵히 머리를 숙여 애도를 표시하고 그 곳에 푸른 소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그는 주먹을 불끈 들고 맹세하였다. “형님, 마음놓소. 나는 꼭 구소운 렬사와 형님의 자아희생정신을 따라배워 피로 바꿔온 승리열매를 굳게 지켜내겠소!” 밤중에 전연진지를 떠난 지원군 장병들의 대오는 이튿날 아침에 38선 부근 군영을 떠나게 되였다. 그들이 상감령에서 까마아득히 멀어져 점점이 흑점처럼 아물거리다가 사라질 때까지 조선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손을 젖고 또 저었다. 1958년 4월 15일, 리해식은 지원군 군단 기관과 직속대 간부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38선에서 제일 가까운 역, 남쪽에서 북으로 달리는 시발역, 조선 강원도 평강군 소재지에 있는 복계역에 이르렀다. 역광장에 한복을 입은 조선인민들과 군복을 입은 조선인민군 장병들 환영의 꽃물결이 설레였다. 오전 8시 47분, 렬차가 고동을 울리더니 천천히 앞으로 미끌어져 나갔다. 영원히 갈라지지 않음을 상징하는 숱한 색종이줄이 렬차 우의 지원군 장병들의 손과 렬차 아래 조선인민들의 손을 이은 채 주르르 길게 뻗어져나갔다. 수천명 조선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은 눈물을 휘뿌리면서 꽃묶음과 채색기를 흔들며 환호하였다. “잘 다녀가세요!” “다시 만나요!” 목메인 목소리를 저 멀리 뒤로 하면서 무정한 렬차는 북으로, 북으로 달렸다. 렬차는 어느덧 평강평원을 벗어나 나무숲이 우거진 선포산골에 들어섰다. 리해식은 사면을 꽉 밀봉한 짐차바곤에 들어 바깥의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는 이불짐을 풀어놓고 털썩 드러누워 잠을 청하였다. 그러나 정작 조선을 떠나게 되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렬차는 선후하여 강원도 고성역, 원산역을 지나 드디여 조선의 수도 평양에 이르렀다. 3년 전쟁기간에 미제 침략자들은 40여만 인구를 가진 이 아름다운 도시 평양에 42만 8천 700여개 폭탄을 떨구었다. 이는 평양시 시민마다 폭탄 1개를 맞은 셈이였다. 정전 후 평양시는 재먼지가 푸실푸실 흩날리고 그을음내가 코를 찔렀다. 그러나 리해식 등이 렬차에 앉아 평양시에로 달려왔을 때는 판판 다른 모습이였다. 영웅적인 조선인민들은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주석과 조선로동당의 영명한 령도 아래 전쟁의 상처를 말끔히 가시고 재더미 우에 아름다운 평양시를 건설해 시내 모습을 일신시켰다. 웅위로운 평양역 대청, 그 둘레에 높이 솟은 층집들, 우중중하게 솟은 공장 건물과 꿀뚝들, 새 학교와 구락부 건축물들… 실로 평양은 공원 속의 도시여서 아름답기로 그지없었다. 평양역에서 조선정부의 당정 책임자들과 시민들이 노래부르고 춤추면서 지원군 장병들을 열렬히 환송하였다. 리해식 등이 탄 렬차는 이튿날 오후 1시에 조선의 제일 마지막 역인 신의주역에 이르렀다. (이제 몇발자국만 더 가면 압록강다리다. 압록강다리를 넘어서면 오매에도 그리던 위대한 조국의 땅이다.) 리해식은 조국으로 돌아간다는 기쁜 심정과 더불어 8년 동안이나 청춘을 바쳐 싸워오면서 정을 붙인 조선 땅을 정작 떠나게 되는 아쉬운 감정이 한데 뒤엉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석별의 정을 안고 신의주역 홈에 내려섰다. 실로 그가 1950년 11월 밤중에 조선 땅에 들어설 때 신의주가 아니였다. 그때에는 미제 공중날강도의 폭격에 신의주는 불바다로 되여 짙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도시였다. 미제 공중날강도들이 내리드린 폭탄파편이 죽음의 노래를 부르면서 쌩- 쌩- 날아다니고 백성들이 폭탄을 피해 살구멍을 찾아 달아다니던 도시가 아니였던가. 그러나 8년 후 그들을 맞아주는 것은 즐비하게 선 고층건물과 하늘을 떠이고 솟은 공장굴뚝이였다. 따뜻한 봄볕 아래 안겨오는 신의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순간 리해식은 8년 동안 조선에서 청춘을 바쳐 헛되게 싸우지 않았다는 긑없는 긍지감을 느꼈다. 환호소리가 우뢰같이 울렸다. 진작 홈에 나와 기다리던 조선 평안북도 당정군 지도자들이 마주 나와 지원군 범군장 등 수장들과 굳게 악수하고 포옹하며 작별하였다. 청년학생들과 인민군 전사들은 조선 땅에서의 제일 마지막 꽃묶음을 지원군 장병들에게 안겨주었다. 우뢰 같은 환호소리 속에서 지원군 장병들은 렬차에 올라탔다. 뿡- 뿡- 렬차는 드높은 고동소리를 길게 울렸다. 렬차는 중조 두 나라 인민들의 깊고 깊은 친선의 정과 석별의 정을 안고 압록강다리 쪽으로 서서히 미끄러져나갔다. 리해식 등 지원군 장병들은 저마다 금빛 눈부시는 군공메달과 항미원조기념메달, 조선조국해방전쟁기념메달, 중조친선기념메달을 한 가슴 가득 달고 목에는 붉은 넥타이를 휘날리며 신의주 인민들이 안겨준 꽃묶음을 흔들었다. 눈물을 휘뿌리면서 꽃묶음을 흔드는 조선인민들의 환송의 꽃물결이 점점 멀어져갔다. 지원군 장병들은 목메여 드높이 웨쳤다. “잘 있으라! 영웅적인 조선 인민들이여!” “안녕히! 조선이여!”                                                      
203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9) 댓글:  조회:1082  추천:0  2018-12-19
                                                                                         판문점에서의 문화향연 지원군정정담판대표단 정치부 선전과 문화조리원으로 있은 리해식은 정전담판 기간에 국내에서 온 여러 예술단체를 조직하여 중조대표단과 중립국대표단에 가서 공연시켰고 조선 개성의 명승고적을 참관시켰다. 그는 또 조선측대표단 구락부와 함께 체스꼬슬로벤스꼬와 뽈스까대표단의 일상문화생활을 배치하고 황야에서의 적막감을 풀어주고 문화생활을 풍부히 하려고 늘 한주일에 한번씩 “국제사교무만회”를 조직하였다. 한번 사교무만회를 조직하자면 쉽지 않았다. 악대만 있어선 안되였다. 녀성이 적은 담판대표단에서 춤짝이 있어야 춤을 출 수 있었다. 그리하여 리해식은 량미간을 찌프리다가 외지에서 온 문예단체 녀성들을 데려오고 그래도 모자라니 심지어 녀성들이 좀 있는 정전대표단 기요처, 통신처와 병원 등 단위에까지 가서 예쁘고 문화수양이 있는 녀성 군관과 간부들을 데려왔다. 사교무대청 네벽에는 중국, 조선, 체스꼬슬로벤스꼬, 뽈스까 등 네개 나라 국기를 가득 세워놓았고 사교무대청에는 오색령롱한 불빛이 반짝였다. 사교무청 둘레에 놓은 책상에는 포도주, 맥주, 사이다 등을 줄느런히 갖춰놓았다. 진짜 “국제사교무만회” 같은 분위기가 났다. 사교무만회가 시작되기 전에 지원군 정치부 주임 두평 장군과 황하 대표가 약속한대로 앞당겨 사교무대청에 들어섰다. 리해식 등 사업일군들이 마주 나가 인사했다. “수장동지, 안녕하십니까?” “동무들, 수고합니다.” 황하 대표와 두평 장군은 그들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었다. 우리 나라 수장들을 비롯한 4개 나라 대표단 수장들이 뽈스까원무곡의 아름다운 선률에 맞춰 예쁜 중조녀성동지들과 손잡고 사교무를 추며 즐겁게 빙글빙글 돌아갔다. 사교무만회에 참가한 중국 남자들은 악대를 내놓고 리해식 등 사업일군 몇사람 밖에 없었다. 외국 대표단에는 녀성사업일군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춤을 추자요.” “감사합니다. 함께 춥시다.” 뽈스까대표단의 마흔살 푼한 교제과장은 리해식한테 다가와 서투른 한어로 춤을 추자고 한 손을 앞으로 벌려보였다. 리해식은 주저없이 그녀의 허리와 손을 잡고 왈쯔곡에 맞춰 춤추며 돌아갔다. 오색령롱한 색전등이 반짝이는 사교무대청에서 그들은 아름다운 선률에 맞춰 쌍쌍이 돌아가는 춤군들의 물결을 따라 몇바퀴나 빙글빙글 돌아갔다. 사교무대청에는 중국과 조선, 체스꼬슬로벤스꼬, 뽈스까 4개 나라 군인들 사이 친선의 정이 흘러넘쳤다.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5주년이 되는 1954년 10월 1일, 고려왕궁 옛터 개성시 만월대 푸른 하늘에는 오성붉은기가 훨훨 휘날리고 만월대 둘레에는 여러가지 색기들이 꽉 들어섰다. 정문 층계에는 빨간 네모기둥으로 루각을 세웠는데 어찌나 현란한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리해식 등은 원래 색기를 꽂은 곳에 이전에는 대형행사 때마다 커다란 “평화흰비둘기”기발을 꽂아놓았댔다. 그런데 하룡 원수가 중국인민 제3기 조선위문단을 거느리고 왔다가 만월대위문대회 회장에 몽땅 흰비둘기기발을 꽂은 것을 보고 “전쟁의 불길이 금방 멎자 동무들 여기는 태평성대로구만!” 하고 비평하였다. 그뒤부터 리해식 등은 만월대고 어데고 평화를 상징하는 “흰비둘기”기발을 꽂지 않고 국경절날에도 몽땅 색기를 꽂았던 것이다. 국경절날 오전 만월대 넓은 광장에서 체육운동회와 문예만회가 성대히 거행되였다. 천여명 운동원과 장병들이 참가한 운동회개막식에 조선인민군 리상조 중장, 중국인민지원군 정국옥 장군 등 두 나라 수장들이 주석대에 올랐다. 달리기, 투탄, 사격 등 항목으로 벌어진 이번 국경절 5돐 경축 체육운동대회는 지원군대표단의 규모가 제일 큰 체육운동대회였다. 또한 조선에서 가진 제일 마지막 체육운동대회였다. 그날 밤 경치가 수려한 송악산 아래에서 또 중국, 조선, 체스꼬슬로벤스꼬, 뽈스까 수장들이 참가한 4개국 사교무만회를 성대히 열었다. 리해식은 개성에서 사업하는 기간에 조국에서 온 여러 참관단을 안내해 판문점과 래봉장, 개성의 명승고적과 경치가 수려한 풍경구를 참관시켰다. 1954년 늦가을, 리해식은 중국작가협회 고옥보 등20여명 작가들로 구성된 중국작가대표단을 안내해 박연폭포를 유람하였다. 그들이 차를 타고 개성시에서 동북쪽으로 12킬로메터 쯤 달려갔을 때였다. 늦가을이여서 온 산과 들판은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타는듯이 빨갛게 물들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었다. 박연폭포는 조선 3대 폭포의 하나이고 송도 3대 유람명승지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이 탄 차가 폭포 가까이에 이르자 폭포 량옆의 절벽에 옛날 유람인들이 한자로 새긴 제사와 이름이 확 안겨왔다. 차에서 내려 폭포 아래에 가서 머리를 들어보니 새하얀 폭포수가 30메터 남짓한 높은 절벽에서 쏴- 하고 굉장한 소리를 울리며 날아내려 쏟아졌다. 진짜 “은하수가 구천에서 내리는듯”하였고 눈사태가 무너져내리는 상 싶었다. 고옥보 등 작가들은 혀를 끌끌 차며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폭포가 쏟아져떨어지는 곳에는 40평방메터가량 될 못이 누워 있었다. 못의 물은  맑기로 물 밑바닥이 다 들여다보였다. 이 못을 옛사람들은 “고모못”이라고 불렀다. “고모못”의 서쪽에는 큰 바위돌이 물 속에 누워 있었다. 그 웃대가리가 수면 우에 드러나 있었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룡암석이라고 하였다. 룡암석 우에는 중국 당조의 저명한 시인 리백의 시 “려산폭포”의 두 시구가 새겨져 있었다.       3천자를 내리쏟아지는 폭포수     은하수가 구중천에서 쏟아지는듯하도다   룡암석에 새긴 이 두 시구는 송도의 이름난 기생 황진희의 필적이라고 한다. 그 한자체는 어찌나 필치가 힘있고 섬세한지 룡이 꿈틀거리는듯하고 봉황이 춤추며 하늘로 오른상 싶이 폭포와 조화되여 기세가 하늘을 찌를듯하고 매우 아름다웠다. 그 시구의 오른쪽 아래에 리백의 시구와 황진희의 글씨를 칭송한 칠언절구가 새겨져 있었다.       려산의 진면모는 그림에도 없거니     예로부터 유람객이 몇이나 다녀갔더뇨?     여기 리백의 시 황진희의 글재주만이     세상에 짝 없는 절승경개라 하노라   박연폭포의 장관을 두고 이름난 기생 황진희가 이런 시구를 남겼다.       옥 같은 폭포수 은하수런가     우뢰 같은 폭포 단풍숲 속에 가로 누웠구나     유람인들 려산폭포에 가지랑 말으시고     천마산의 박연폭포 구경함이 나으리오   리해식은 장관을 이룬 박연폭포를 배경으로 유명한 작가 고옥보와 함께 룡암석 앞에 나란히 앉아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폭포 옆의 산기슭을 따라 빨간 단풍나무숲을 헤치면서 폭포 꼭대기 옆으로 올라갔다. 폭포꼭대기 수면에는 커다란 바위돌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바위돌을 “섬바위”라고 불렀다. 당지 민간전설에 의하면, 박연폭포라는 이름은 이 바위돌에 깃든 이야기에서 생긴 것이라고 하였다. 멀고먼 옛날 어느날 달밤에 피리를 잘 부는 박진사라는 선비가 혼자 달빛을 밟으면서 이 폭포로 왔다. 그는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에서 폭포의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되여 이 섬바위 우에 앉아 흥겹게 피리를 불렀다. 그의 맑고도 귀맛을 돋구는 피리소리는 룡궁의 한 예쁜 룡녀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하여 그 룡녀가 못 속에서 걸어나와 박진사에게 사랑을 고백하였다. 뒤이어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고 못 속에 들어갔다. 후에 박진사의 어머니는 폭포에 와서 아들을 찾아헤매다가 아들을 찾지 못하게 되자 절망한 나머지 폭포 아래 못 속에 몸을 던졌다. 하여 후세사람들은 이 폭포를 박연폭포라고 이름을 지어 불렀고 폭포 아래 못을 고모못이라고 불렀다. 박진사가 앉아 피리를 불던 물 속의 바위는 섬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제6장 비무장지대에서의 대적투쟁                   특수한 투쟁환경 봄, 정전 후 두번째로 맞는 봄이 왔다. 화염에 그은 조선반도에 비단결마냥 부드러운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고 산에는 빨간 진달래와 철죽꽃, 모란꽃이 활짝 피여 그윽한 향기를 풍기였다. 원래 한족속인 진달래와 철죽꽃, 모란꽃이 서로 반기여 웃음꽃을 피우며 한들한들 춤 추고 있었다. 리해식은 산의 청신한 아침 공기를 한 가슴 후련히 들이켜고나서 38선 산에 핀 진꽃을 구경하면서 겹겹이 둘러선 산등성이를 둘러보았다. 1954년 말에 개성 중조정전대표단을 철수하자 리해식은 개성을 떠나 회창에 있는 지원군총부 정치부 대적공작부에 전근되여 사업하다가 상감령지구 40킬로메터 구간 38선을 지키는 모 군단 대적공작처에 전근돼 사업하였다. 리해식은 처음으로 38선을 가까이에서 돌아보게 되였다. 38선에는 산발을 따라 철조망이 멀리 뻗어갔고 남북으로 2킬로메터 되는 비군사지대에는 남북의 군대가 없었다. 그러나 철갑모를 쓴 쌍방의 민경들이 손을 잡고 서로 철조망을 사이 두고 오가면서 순라하고 있었다. 그 철조망 사이는 손을 내밀어도 서로 잡을 수 있을만했다. 어떤 곳에는 두겹으로 철조망을 늘였고 그 중간에 난 한메터 되는 오솔길로 쌍방 민경이 다 순라하면서 다녔다. 하여 적아 쌍방의 민경이 팔과 팔을 스치면서 지나갈 때도 있었다. 산발과 들판을 다라 뻗어나간 철조망과 분계선패말을 보자 리해식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쩜 조상들이 살아온 조선 땅이 이렇게 두 토막 났어?” 그렇다, 저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과 한강 강물은 서으로 흐르고 흘러 서해에 가서 서로 부둥켜안고 흐느끼며 통곡치고 있지 않는가! 언제 가면 38선이 조선민족의 념원을 안고 무너지겠는가!   전쟁의 불길은 꺼졌지만 38선 비무장지대의 특수한 환경에서의 투쟁은 멎은 적이 없었다. 리해식 소속 군단이 지키는 상감령, 구소운 진지인 391고지를 포함한 김화, 평강, 철원 방선의 삼각지대에는 상감령 뒤쪽의 오성산, 서쪽의 평강, 철원이 있었다. 이 곳은 군사요새여서 전쟁년대에 적아 쌍방이 대가를 아끼지 않고 쟁탈한 곳이였다. 일찍 미군은 시종 이 지구를 점령하지 못해 “철삼각”이라고 불렀다. 때문에 정전 후에도 적들은 정전협정을 뒤전에 두고 전신무장한 특무들을 늘 이 곳 비무장지대에 파견하여 사단을 일으켰고 아군의 민경을 기습하군 하였다. 한번은 괴뢰군 한개 소대가 가만히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철원 이북지구 5호교 동쪽에 있는 아군 민경부대를 기습하였다. 아군 전사들은 세배나 되는 적들에게 맹렬한 사격을 가해 적들을 몽땅 분계선 남쪽에로 몰아냈다. 적들은 정전협정을 어기고 수시로 각종 정찰기를 우리 상감령지구에 보내 저공비행하면서 정찰하고 기관총소사를 하였다. 이런 첨예하고 복잡한 투쟁환경에 비추어 각 전연 사단과 퇀에서는 1953년 11월부터 정찰대와 민경대를 합하여 두개 민경중대를 내오고 륜번으로 보초서게 하였다. 후에 각 보병퇀에서는 전투경험이 있고 날랜 전사들을 뽑아 계속 민경력량을 보충하였다. 하여 1956년 봄에는 지원군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우리 군단 전연사단에 민경대를 내왔는데 서너개 중대가 되였다. 사단 정찰과장이 민경대대 대대장을 겸임하고 사단 대적공작과 과장이 정치위원을 겸임하였다. 비무장재대를 관찰하고 통제하기 위해 군사분계선 가까이에 있는 상감령, 391고지, 석광산, 상가단동 동쪽의 무명고지 등 열몇개 중점진지와 고지에 민경관찰소를 세웠고 매개 관찰소마다 드러난 민경관찰소와 은페관찰소를 세웠다. 관찰소마다 지형특점에 근거해 관찰구역내 지형, 지물, 심지어 일초일목까지 몽땅 번호를 달아놓고 원거리 망원경과 포대경 등 관찰도구로 남쪽의 적정을 밤낮으로 관찰하였다. 어느날 이른 아침에 상감령관찰소의 민경전사가 포대경으로 분계선 부근 우리측 구역내 풀밭을 관찰하다가 풀밭이 한줄로 우묵하게 헤친 자리가 난 것을 발견하였다. “저기는 우리 민경들이 밤중에 매복해 있지 않은 곳이요. 풀밭에 헤친 흔적이 있는 걸 보면 밤중에 적특무가 저기에 들어온 것 같소.” 그 관찰소 민경책임자는 민경들을 령솔해 허리를 굽히고 총가목을 틀어쥐고 그 곳 풀밭에 살금살금 다가가 수색하였다. 과연 적특무 한 놈이 풀 속에 파묻고 숨어 있었다. 우리 민경들은 당장에서 그 놈을 체포하였다. 이런 사건은 비일비재였다. 포화가 울부짖던 전쟁터가 비무장지대로 된 후 상감령에는 몇해 되여도 풀 한대 자라나지 않았다. 세월이 류숴처럼 흘러감에 따라 이 곳에는 천천히 잡초가 키를 넘게 자라고 인가가 없는 들판으로 되여갔다. 리해식은 어느 한번 상감령고지에 올라가 흙 한줌을 움켜쥐여 보았다. 절반은 벌겋게 녹이 쓴 탄알깍지나 파편부스러기였다. 움푹한 포탄구뎅이에 고인 물이나 돌짬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몽땅 벌거스름한 녹이 쓴 물이였다. 이 곳 민경들은 오래동안 이런 물을 마시고 이런 물로 지은 벌건 밥을 먹었다. 쇠물맛이 좀 났지만 별일은 없었다. 비무장지대 산마루에는 포탄과 폭탄에 맞아 끊어진 나무와 삭정이가 아주 흔했다. 한번은 군단 대적공작과의 조명석과 강남필이 산 아래에 내려가 과동할 나무를 줏다가 전쟁년대에 묻어놓은 반땅크(반탱크)지뢰를 밟았다. 꽝! 요란한 굉음과 함께 두 동지는 장렬히 희생되였다. 잡초가 우거지자 비무장지대에서는 야생동물들이 나타나 번식하기 시작하였다. 한번은 우리측 민경들이 상감령 서쪽 금곡리 일대에서 송아지만큼 큰 메돼지가 풀밭에 나타난 것을 발견하였다. 우리측 민경들은 정전협정을 지켜 메돼지한테 총을 쏘지 않고 놔두었다. 그 메돼지는 땅을 뚜지면서 분계선 남쪽으로 건너갔다. 땅, 땅, 땅.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아군 민경 한개 소조가 총소리 난 맞은켠에 가서 숨어 동정을 살폈다. 괴뢰군 민경군관이 부스럭부스럭 풀밭으로 다가오더니 민경병사들에게 물었다. “웬 일이야? 엉?!” 괴뢰군 민경병사는 목구멍으로 기여드는 소리로 대답하였다. “메돼지한테 총 쐈는데요. 놓쳐버렸어요.” “흥, 밥통 같은 녀석!” 적민경 군관은 욕지거리하더니 가버렸다. 우리측 민경들은 총알에 맞은 그 메돼지는 이쪽 풀밭에 와서 피를 흘리면서 축 늘어져 가느다란 숨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남쪽의 몇몇 민경들이 와서 가만히 그 메돼지를 메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300킬로그람은 실히 될 엄청 큰 메돼지를 어떻게 메간단 말인가? 이튿날 우리 측 민경들이 죽은 메돼지를 여겨보니 발쪽은 소발쪽 같이 컸고 잔등에 풀까지 자라나지 않았겠는가. 후에 아군 민경들은 마차 한대를 가져다가 겨우 민경대대부에 실어왔다. 그 메돼지를 잡아서 우리 전 련 민경들이 몇끼니 잘 먹었다고 하였다.   보이지 않는 전선 38선의 철조망을 상이에 두고 보이지 않는 전선에서 적들은 암투를 끊임없이 벌렸다. 적들은 우리 군 방어구역 정면에만 하여도 지면특무파견소 3개, 특무파견관찰소 5개나 세웠으며 서울과 일본의 오끼나와, 중국의 대만으로부터 미베와 리승만괴뢰군, 장개석국민당 특무기관에서 훈련해낸 특무들을 끌어다가 우리 군 방어구역에 잠입시켜 정보를 수집하군 하였다. 1954년 5월의 어느날, 391고지 관찰소에서는 망원경으로 맞은켠 비무장지대 남쪽으로 적들의 찌프 한대가 달려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찌프에서 내린 적 서너 놈이 이쪽을 망원경으로 살피더니 손질하면서 뭐라고 지껄여댔다. 뒤이어 두 놈을 남겨두고 찌프는 천천히 되돌아가는 것이였다. “저 놈들이 오늘 밤에 건너오려는게 분명하오.’ 로민경 왕길청이 곁에 서 있는 두 전사에게 망원경을 넘겨주면서 보라고 하고는 인차 대화기로 상급에 보고하였다. 뒤이어 그는 명령에 따라 두 전사를 데리고 391고지 기슭의 지정된 지점으로 떠났다. 해는 붉게 타는듯한 저녁노을 속으로 내리면서 몇가닥의 마지막빛을 뿌리였다. 땅거미가 꼴깍 넘어가는 해를 바래면서 어둑어둑 지기 시작하였다. 적들이 찌프를 타고 와서 두 놈을 남겨 놓은 맞은 켠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땅크가 지나간 길이 우불꾸불 뻗어나갔다. 왕길청은 두 전사를 돌아보면서 “여기 호형으로 매복하기요.”라고 낮게 말하였다. 그리하여 왕길청이 정면에 매복하고 두 전사는 앞으로 해서 량옆에 매복했다. 숨막힐듯한 침묵 속에서 하늘에 아기별이 하나 둘 뜨기 시작하였다. 때는 봄이라지만 밤이 깊어가니 오싹오싹 추워났다. 이때 그들은 자기들이 지금 매복한 곳은 바로 전투영웅 구소운동지가 장렬히 희생된 곳이라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왕길청은 머리를 돌려 어둠 속에 소소리 높이 솟아 있는 구소운렬사의 기념비를 우러러보았다. (구소운렬사는 이글거리는 불에 타 죽으면서도 견지했다. 요까짓 추위가 다 뭔가? 꼭 견지해 특무놈들을 붙잡아야지.) 왕길청과 두 전사는 이를 악물고 풀밭에 엎드려 예지로 반짝이는 눈으로 앞을 살폈다. 시간은 일초, 일초 흘렀다. 적정변화는 없었지만 그들 셋은 꼼짝하지 않고 열시간이나 엎드려 있었다. 갑자기 맞은켠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찬찬히 여겨보니 검은 두 그림자가 이쪽으로 허리를 굽히고 슬금슬금 다가왔다. (음, 이놈들 끝내 오는구나.) 왕길청은 량쪽 련락바줄을 당겨 두 전사에게 주의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때 다가오던 두 그림자는 왕길청과 한 3메터 떨어진 곳에 와서 주춤 멈춰섰다. 왕길청과 두 검은 그림자 사이에는 풀무지가 있었다. 두 특무놈은 풀무지 곁에 서서 손시늉질하면서 뭐라고 쑤군덕거렸다. 왕길청은 적들이 매복권에 들어온 뒤 손쓰려고 기다렸다. 그러나 적들은 반시간이 넘도록 까딱하지 않고 있었다. 날이 거의 밝아오자 두 특무는 몸을 돌려 풀무지를 떠나려고 하였다. “꼼짝 말엇!” 왕길청은 번개같이 뛰여나가 독수리가 병아리 덮치듯 한 놈의 목덜미를 잡아누른 동시에 권총을 꺼내 다른 특무를 겨눴다. 두 전사가 덮쳐나와 두 특무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냈다. 적특무들은 돌연습격에 부들부들 떨면서 두 손을 천천히 들었다. 왕길청과 한 전사가 두 특무놈의 두 팔을 바줄로 꽁꽁 묶은 다음 앞에 세우고 압송하였다. 뒤에서 다른 전사가 경계하면서 따라왔다. 그들이 민경중대부로 돌아왔을 때는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한단천 강물은 군사분계선을 가로 질러 쏴쏴 쏜살같이 흘렀다. 적 특무들은 한단천의 쏴쏴 높은 물소리를 빌어 항상 물곬을 따라 북으로 기여들군 하였다. 어느날, 신입민경 장진국은 두 로전사와 함께 한단천 강변 풀숲에 매복하여 강변을 주시하였다. 풀숲에는 귀뚜라미들이 찌르륵찌르륵하고 땀내를 맡은 모기들이 앵앵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릴뿐 아무런 동정이 없었다. 밤 10시가 넘었을 때다. 갑자기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장진국은 어쩐지 짐승의 울음소리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경각성을 높여야지.) 또 반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그와 그리 멀지 않은 앞에서 꿩 한마리가 놀라 푸드득 날아났다. (오, 짐승이 꿩을 놀래웠으면 꼭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날텐데. 부스럭거리지 않는 걸 보면 꼭 무슨 놈의 조화가 있어.) 그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주위 동정을 살폈다. 몇분이 지난 뒤 과연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수상한 검은 그림자가 강가를 따라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장진국은 긴장해나 어쩌면 좋을지 몰라 숨소리마저 거칠어졌다. 그는 인차 매복조 조장에게 적정을 발견했다고 찍찍 쥐소리를 냈다. 검은 그림자는 이쪽으로 느릿느릿 다가오다가 문뜩 멈춰서더니 이쪽 동정을 살피느라고 두리번거렸다. 장진국은 참을 수 없어 그 놈을 덮치려고 들었다. 그때 그의 속내를 짐작이나 한듯이 조장에게서 적이 매복권에 들어설 때까지 꾹 참으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제야 장진국은 한숨을 후 내쉬고 꾹 참고 적의 동정을 살폈다. 검은 그림자는 두리번거리면서 이쪽으로 점점 다가왔다. 10메터, 5메터, 3메터… 장진국은 까딱하지 않았다. 그 그림자는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의 옆으로 해 걸어지나갔다. 그 그림자가 자기 뒤로 한 7, 8메터 지나간 뒤에야 장진국은 천천히 일어나 총을 빼들고 검은 그림자를 따라갔다. 그가 그 자를 따라 10여메터나 뒤를 밟았는데도 그 자는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젠 포위권 복판에까지 들어섰다. 딱! 딱! 장진국은 특무를 붙잡자는 신호를 보냈다. “꼼짝 말엇!” 조장과 다른 로민경이 특무놈의 앞에 불쑥 나타나 총을 겨눴다. 장진국은 뛰여나가 총을 그 특무의 뒽통수에 겨누었다. 그 특무놈은 어두운 풀숲에서 뛰쳐나온 맹호 같은 지원군 세 민경, 자기에게 겨눠진 시꺼먼 총부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놈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천천히 두 손을 쳐들었다. 그 놈은 어찌나 놀랐는지 이발마저 덜덜 맛쪼았고 바지에 오줌까지 셀셀 쏘았다. 장진국은 그 놈의 허리춤에서 권총과 비수를 뽑아냈고 두 로민경은 그 놈의 두 팔을 뒤로 비틀어 노끈으로 꽁꽁 묶었다. 그들은 밤도와 그 특무놈을 압송해가지고 민경중대부로 돌아왔다. 중대부에서 심문해보니 그 놈은 대만에서 파견한 국민당 특무였다. 상감령 서쪽의 수동은 분계선과 가까운 개활지대였다. 우리 한개 민경분대의 작은 관측소가 여기 있었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부는 가을밤에 신기암 등 민경들은 모두 매복하러 나가고 주둔지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이날 밤 두 특무놈은 우리 민경들이 매복하러 나가고 주둔지에 사람이 적은 틈을 타서 민경을 붙잡아가려고 기여들었다. 그런데 그 특무놈들은 주둔지에 이상하게 사람이 하나도 없자 제 방귀에 놀라 주춤 멈춰서고 말았다. “중공군이 우리 속을 뒤집어본게야.” “옳아, 빨리 뻗자구!” 그 놈들은 황망히 관측소에서 뛰여나와 한 200메터 떨어진 풀숲에 가서 납작 엎드렸다.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오는데도 두 특무는 감히 분계선을 넘지 못하고 계속 엎드려 날이 어둡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매복하러 나갔던 민경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나무를 팬다, 밥을 짓는다 하면서 분주의 돌아쳤다. 신기암은 낫과 바줄을 찾아들고 이영으로 쓸 풀을 베러 면바로 특무들이 엎딘 풀숲으로 스적스적 걸어갔다. 그는 한창 풀을 베다가 땀을 닦으려고 허리를 펴는 순간, 한 20메터 떨어진 풀숲에 철갑모자가 눈에 띄였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다가 풀숲 속의 철갑모자 밑에서 한쌍의 까만 눈깔이 떼룩떼룩 구으는 것을 발견하였다. (특무놈이구나!) 신기암은 성난 사자처럼 낫을 휘두르면서 덮쳐들었다. 그러자 두 특무놈은 불쑥 일어나 권투자세를 취했다. 부대축구선수 출신인 신기암은 발길로 나먹은 특무의 아래배를 탁 걷어찼다. 그 놈은 뒤로 벌렁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 놈들! 꼼짝 말엇! 네깐 놈들은 내 적수도 안돼! 여긴 몽땅 우리 사람들이야. 누구든 까딱하면 낫으로 모가지를 벨테야!’ 신기암은 서투른 조선말로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렸다. 풀숲에 뻐드러져 아래배를 싸쥔 나먹은 특무놈은 부들부들 떨었고 젊은 놈은 쳐들었던 주먹을 내리웠다. 신기암은 나먹은 특무의 두 팔을 비틀어 풀을 묶으려고 가지고 간 바줄로 꽁꽁 묶었다. 뒤이어 얼이 빠져 못박힌듯 떡 서 있던 젊은 놈의 팔도 뒤로 비틀어 한데 꿍꿍 묶었다. “걸엇!” 신기암은 낫을 쳐들고 그 두 놈을 앞세우고 한 20메터 나가서 관측소의 동지들을 불렀다. “어이, 특무놈들을 붙잡았소.” 나무를 패던 민경들이 우르르 달려와 함께 두 특무놈을 민경중대부로 압송하였다. 1957년 6월의 시루가마 속처럼 무더운 어느날 밤이였다. 대만 국민당특무 세 놈이 철원 이북지구에서 분계선을 넘어 비무장지대 우리측 통제구역으로 기여들었다. 그 놈들은 비무장지대를 벗어나 아군 제1선부대쪽에까지 들어갔다가 밤 0시 쯤에 아군 제1선부대 보초병에게 발각되였다. 땅, 땅, 땅! 아군 보초병들이 사격하였다. 세 특무놈은 황망히 비무장지대 나무숲 속에 들어가 숨었다. 아군 제1선부대에서는 비무장지대에 천라지망을 친 한편 인차 비무장지대 우리측 관측소 민경들에게도 통지했다. 민경 부패장 구양신복은 한개 민경소조를 보내 수색하게 하고 자기는 조선인민군 민경대에 통지하러 떠났다. 그가 돌아올 때는 이미 아침해살이 나무숲을 비추었다. 그는 지꿎게 내리는 비를 무릅쓰고 우항리를 지나가다 질척질척한 진흙바닥에 박힌 의심스런 발자욱을 발견하고 추격하였다. 그가 나무가 꽉 들어선 수림을 질러나가 우항리 서남쪽의 개울가에 이르렀을 때였다. 개울가 개흙바닥에 어지러운 발자욱이 다닥다닥 찍혀있지 않겠는가. (안돼. 여기 서 있다간 습격받을 수도 있어.) 그는 인차 개울가에서 물러나 높은 곳에 올라가 납짝 엎뎌 살폈다. 이때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가 몸을 낮추면서 뒤돌아보니 자기가 파견한 민경소조가 다가오지 않겠는가. “어떻게 돼 왔소?” “두 사람의 발자욱을 따라 추격중입니다.” “음, 좋소. 계속 발자욱을 살피오.” “옛.” 그들은 흩어져 질척질척한 풀숲을 살폈다. “보십시오. 여기에 발자욱이 또 있습니다.” 부패장 구양신복이 전사가 가리키는 땅바닥을 살펴보니 과연 북으로 향한 발자욱이 있었다. 발자욱의 진흙이 스르르 내려앉는 것을 보아 금방 난 발자욱 같았다. “이 발자욱을 따라 수색하기오.’ “예.” 갑자기 개울가 수림 속에서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엎드렷!” 땅! 땅! 구양신복은 총소리 난 곳에 총 두방을 쏘았다. 그러나 수림에서는 아무런 반격도 하지 않았다. 구양신복은 두 민경을 제자리에서 엎드려 계속 살피게 하고 한 민경을 거느리고 수림을 수색했다. 수림 속에 웬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오른쪽 태양혈에 권총 탄알구멍이 펑 뚫려 피가 쿨쿨 솟구치고 있지 않겠는가. 그 자는 뻘건 눈은 펀히 뜬 채로 있었다. “뛸데 없자 자살한 거요.” 구양신복은 그 놈의 호주머니를 들췄다. 호주머니에는 위조한 중공 당원 당증과 군사칭호 등이 있었다. 특무놈들은 모두 세 놈이 왔는데 죽은 이 놈은 국민당 상위군관 특무조장 설총이였다. 설총은 아군 모 전연사 정치부 선전과 부과장으로 가장해 잠입하려고 들었던 것이다. “나머지 두 놈은 어디로 도망쳤을가?” 구양신복은 한 전사를 보내 중대부에 보고하는 한편 계속 민경들을 령솔해 발자욱을 따라 수색해나갔다. 다른 수색조도 와서 함께 군사분계선에서 100메터 떨어진 수림에까지 수색했다. 그런데 두 발자욱이 수림 부근에서 없어졌다. “꼭 이 수림 속에 있소. 남쪽으로부터 북쪽으로 수색하기요.” 구양신복은 민경들을 령솔해 풀숲을 헤치면서 수림 속을 샅샅이 훑으면서 나갔다. 그런데 뒤에서 한 민경이 돌멩이를 디뎌 넘어졌다. 쿵! 이때 그들의 10여메터 앞에서 두 놈이 놀라 후닥닥 뛰여 일어났다. 한 놈은 서쪽으로 달아나고 한 놈은 남쪽으로 달아났다. “투항하면 살려준다!’ 구양신복은 성난 사자처럼 호통치며 서쪽으로 달아나는 특무놈을 추격했다. 특무놈은 선불맞은 노루처럼 기를 쓰고 달아났다. 구양신복 등 민경들은 추격하다가 사격하였다. 로련한 특무는 빽빽한 나무와 돌무지를 요리조리 에돌면서 총탄을 피해 도망쳤다. 민경들은 지형에 익숙한지라 특무놈의 오른쪽을 질러나가면서 추격했다. 뒤를 힐끔 돌아다보던 특무는 구양신복에게 총질했다. 그런데 총알이 떨어졌다. 구양신복은 총알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맞사격을 하며300여메터나 추격했다. 질척질척한 진흙 때문에 뛰기 힘들자 신짝을 벗어던지고 추격했다. 질겁한 특무는 황망히 뛰다가 발을 헛딛고 풀쳐 쿵 넘어졌다. 구양신복은 제꺽 탄창을 바꿔넣고 그 놈의 뒤에 대고 총 두방을 쏘았다. 땅, 땅. 일어나서 또 뛰던 그 놈은 질겁해 비칠거렸다. 구양신복은 한 10메터 가까이까지 쫓아가 서투른 조선말로 꽥 고함쳤다. “손들엇!” 특무놈이 알아듣지 못하자 이번엔 한어로 호통쳤다. “무기를 놧!” 그제야 특무놈은 알아듣고 권총을 질척질척한 진흙탕에 뚝 떨어뜨렸다. 민경 량패호가 뛰쳐나가 특무의 권총을 주어들었다. “걸엇!” 그들 둘이 특무를 북으로 압송하려고 총신으로 뒤잔등을 떠밀었다. 그런데 그 놈은 떡 버티고 서서 자꾸 분계선 남쪽을 건너다보면서 좀처럼 걸을 념을 하지 않았다. 분명 동료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서 민경들을 습격하고 자기를 데려갔으면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잡초가 우거지고 나무들이 꽉 박아서서 적측에서는 그들을 똑똑히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오래 있을 곳은 아니였다. “빨리 걸엇!’ 그들은 특무를 압송해가지고 재빨리 군사분계선과 멀리 떠나갔다. 그제야 느릿느릿 걷던 특무놈은 구원탈출을 바라던 꿈을 버리고 걸음을 재우쳤다. 남쪽으로 달아난 특무놈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붙잡힌 대만 국민당특무 이름은 주두운으로서 주지라는 가명을 썼다. 이 자는 중국 운남성 사람인데 국민당군 중위군관이였고 남쪽으로 달아난 놈은 소위군관이였다. 민경대대 주둔지에서 심문할 때 주지는 솔직하게 탄백하였다. “우리 대만 특무 26명은 1956년 10월에 대만 국민당군에서 뽑혀 미군 오끼나와 군사기지에 가서 미군과 장개석특무기관의 전문훈련을 넉달동안 받은 후 이 곳에 파견되였습니다.” “임무는 무엇인가?” 주우둔은 심문하는 민경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두 손을 마주 비비며 공손히 탄백하였다. “우린 두번째로 분계선을 넘어왔습니다. 이번 임무는 지원군의 신식 복장과 견장, 령장 견본을 얻어가는 것입니다.’ 1957년 7월의 어느날 밤이였다. 민경반장 장송주는 밤 11시 반 쯤 되자 민경 호원우, 류기귀와 함께 신호용 자갈돌을 호주머니에 넣고 창창 대살처럼 쏟아지는 소낙비를 무릅쓰고 매복구역으로 떠났다. 이런 궂은 날씨일수록 특무들이 넘어올 가능성이 더 컸기 때문에 그들은 경각성을 더 높여 수색하며 나아갔다. 그들이 매복구역까지는 아직 절반 밖에 가지 못했을 때였다. 한 50메터 앞엥서 갑자기 무엇이 진창에 빠지는 것 같은 소리 났다. 그들은 납작 엎드렸다. 장송주는 뒤에 신호용자갈을 두개 뿌렸다. 그러자 그들 셋은 인차 삼각형대형을 지어 매복해 총가목을 잡고 포복전진했다. 목표까지 대여섯메터 떨어진 풀숲에 기여갔을 때였다. 비옷을 쓴 웬 놈이 풀숲에 쭈크리고 앉아 비를 막으며 쉬고 있었다. 장송주는 자갈 하나 뿌려 까딱 움직이지 말라고 암시했다. 뒤이어 그는 혼자 량손에 권총과 보총을 쥐고 살금살금 기여나갔다. 한 2메터 가까이에까지 기여갔는데도 그 놈은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손들엇!” 장송주는 벌떡 일어나 덮쳐나가며 고함쳤다. 총부리를 본 그 놈은 벌떡 일어나면서 손을 휙 저었다. 무슨 빛이 번쩍하지 않겠는가. (전기칼!) 장송주는 인차 그 놈의 뒤덜미를 탁 쳤다. 그 놈은 손에 쥔 권총을 풀숲에 떨구며 꺼꾸러졌다. 그 놈의 손을 더듬어보니 전기칼은 없고 대신 손목에 야광시계가 빛뿌렸다. 야광시계를 전기칼로 오해했던 것이다. 이때 뒤에 있던 호원우와 류기괴가 덮쳐와 번뜩이는 총창으로 그 놈을 겨눴다. 장송주는 민경관측소에 신호탄을 쏘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2개 조의 민경들이 뛰여왔다. 그들은 특무를 압송해가지고 밤도와 민경대대부로 돌아왔다. 민경대대부에서 심문한 결과 그 놈은 대만 국민당특무 진문병이였다. 그 특무와 함께 국민당특무 세 놈이 건너왔던 것이다. 그런데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져 앞을 가리기 힘든데다가 길이 질고 미끄럽다고 대만 국민당 소좌군관 특무책임자는 비무장지대에 들어온 후 흩어져 행동하자고 해 특무 넷이 다 흩어졌다고 했다. 38선에서 특무잡이투쟁에서 우리 민경들은 피의 대가도 치렀다. 8월의 어느날 밤, 상감령 부근 민경관측소 민경 양경영과 엽세택 등은 금곡리 일대에 가서 매복조를 교대하려고 떠났다. 그들이 금곡리 소무명고지 한 산골짜기로 내려갈 때였다. 땅, 땅! 밤정적을 깨뜨리는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제일 앞에서 걷던 엽세택이 “특무!” 하고 쿵 넘어갔다. 양경영과 다른 민경은 기민하게 몸에 걸쳤던 솜외투를 벗어 허연 안이 겉으로 나오게 번져 풀숲에 덮어놓고 량옆으로 흩어져 매복했다. 땅! 땅! 땅! 적 특무들은 흰 외투에 대고 총 몇방씩 갈겼다. 양경영과 민경은 사격불빛이 번쩍거리는데다 대고 련발사격했다. “앗!’ 적 특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콩볶듯하는 총소리를 듣고 민경관측소의 한 부패장은 민경들을 데리고 뛰여왔다. 그들이 보니 민경 엽세택은 이미 피못 속에서 숨을 거두었고 양경영과 민경은 특무를 수색하고 있었다. 부패장은 민경들을 령솔해 날이 밝을 때까지 수림과 풀숲을 샅샅이 수색하였다. 한 교통호를 수색하다가 특무놈이 쭈그리고 앉아 왼손으로 바지우에까지 피가 즐벅한 허벅다리를 누르고 오른손에 권총을 쥐고 두리번거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무기를 놧!’ 그래도 특무놈은 무기를 놓지 않았다. 그러자 부패장은 그 놈에게 총 몇발 쏘며 뛰여가 그 놈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아냈다. 사실 이날 대만 국민당 “국방부” 제2청 특무 왕인강(가명)과 만발생 두 놈이 지원군 군관으로 가장해가지고 분계선을 넘어 기여들었다. 금방 총에 맞은 이 놈은 엽세택에게 사격한 후 양경영 등이 쏜 총에 맞아 다리를 상해 도망하지 못했고 다른 특무놈은 북쪽으로 도망해 잠입했다. 적측 어떤 특무들은 아주 로련하였다. 1956년 8월 어느날 밤, 철원 철도를 따라 웬 놈이 38선을 넘어왔다. 웡, 웡, 웡. 민경부대의 사냥개가 짖어댔다. 민경들이 개를 따라 가보니 분계선 이쪽 200메터 되는 강가에서 헌 옷 우에 고무바지를 입은 웬 꺽다리가 강을 건느려고 꾸물거리고 있었다. “꼼짝 말엇!’ 그 놈은 흠칫 놀라더니 민경들을 보자 아닌 보살을 떨었다. “헤헤, 난 리승만괴뢰군 군관인데 이북에 의거하러 왔습니다.” 희죽벌죽 웃으며 아주 능숙한 한어로 지껄이지 않겠는가. “좋소. 우릴 따라 가기요.” “예, 예.” 그 자는 도강하려고 입던 고무바지를 벗어버리고 권총마저 꺼내 민경에게 주고는 민경을 따라 공손히 걸었다. 민경중대부에서 리해식은 그 자를 심문하였다. “의거하러 온 걸 환영하오. 괴뢰군 어느 련대에 있었소?” “예, 괴뢰군 X 군단 X 사단 X련대에서 대대장질 했지요.” “그럼 그 사단의 리모 사단장을 잘 알겠구만.” “예, 예,잘 알고말고요.” 그자는 아주 침착하게 대답하였다. “그럼 사단장이 뭘 즐기는지 잘 알겠구만.’ “건, 접촉이 별로 없다나니깐, 잘 모르는데요.” 무릎 우에 놓은 그자의 손가락이 바르르 떨렸다. 리해식은 짚이는데가 있었다. “그럼 그 련대 김학길 련대장은 잘 알겠지?” “예, 당상급인데유. 잘 알아요.” “그는 장기를 잘 두지?” “예, 평소에 저와 장기를 잘 두는데요.” “닥쳣! 그 련대에는 근본 김학길 련대장이라고 없어. 허튼 수작 말고 빨리 탄백햇!” 그자는 꼬리가 드러나고 말았다. 리해식은 오래동안 괴뢰군 포로와 의거해온 괴뢰군 장병들을 심문해왔기에 괴뢰군의 력사, 군정소질, 정치사상, 관병관계, 군영생활 등과 우리 군 맞은켠 괴뢰군 사단, 련대 군관들의 이름, 출생지, 애호, 가정정황까지 손금 보듯 환히 알고 있었다. 그자는 리해식에게 잘 못 걸린줄 알고 혀를 홀랑 내밀며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더니 탄백하기 시작하였다. 올해 53세인 이 특무는 김영송이라고 불렀는데 류관민이란 한족이름을 썼다. 그는 한어, 일어까지 정통한 특수훈련을 받은 직업특무로서 일제와 미제, 리승만 괴뢰군 고급특무기관에서 20여년 동안이나 간첩활동을 해왔다. 그는 선후하여 9차나 분계선을 넘어 비무장지대에서 제일 가까운 복계역에 기여들어 항상 기차를 타고 조선 평양과 함흥 등지에까지 잠입하여 조선 북반부의 정치, 군사, 경제 등 정보를 훔쳐간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강을 거너 북에 깊숙이 잠입하려다가 발각되자 거짓으로 의거하러 온 척했다가 꼬리를 밟혔던 것이다. 어떤 특무들은 당원증이나 공무원증 같은 것을 휴대하고 지원군으로 가장해 들어왔다가 번번히 그물에 걸렸다. 당시 지원군 당원들은 근본 당원증이란 것을 휴대하고 다니지 않았다. 비무장지대에서는 계속 이전 지원군 흉장을 달았지만 후방 제1선 부대에서는 새 군사칭호에 따라 몽땅 흉장을 달지 않고 새 군복을 입었다. 그런데 지원군으로 가장한 특무놈들은 흉장을 단 이전의 지원군 군복을 입었으니 나포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위조한 공작증은 더구나 어처구니없었다. 그때 지원군 사단에는 정치처가 없고 정치부가 있었다. 그런데 특무들의 위조한 공작증에는 사단 정치처 부처장이란 글자가 박혀 있었으니 말이다. 적들은 38선 우리측 비무장지대에 기여들어 정전협정에 어긋나는 도발사건 2, 323차나 저질렀고 59명이나 되는 특무들이 우리측 민경들에게 나포되였다. 그중에는 대만 국민당특무 10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우리측 민경들은 의심한 자 17명을 나포하고 총과 무전기, 사진기 등 수많은 특무도구를 로획하였다.                                                 
202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8) 댓글:  조회:1144  추천:0  2018-12-13
                    적군 포로들       먹장구름이 뒤덮인 하늘에서 지꿎은 장마비가 구질구질 쏟아졌다.       서울을 떠나 판문점을 향해 북으로 달니는 자동차들에는 겨릅대처럼 피골이 상접한 중조 측 포로들이 람루한 옷을 입고 비물에 푹 젖은채 맥없이 꽉 박아 서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우묵한 눈을 맥없이 내리뜬 포로들, 쏜살같이 내달리며 흔들리는 자동차 우에서 상처가 아파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소리를 내는 포로들, 두 다리 없는 포로들, 팔을 잃은 포로들, 참말로 그들의 모양은 처량하고 끔찍스러웠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그 무슨 인성이요, 인도주의요, 인권을 밥 먹듯 외치쳐대는 미군, 그 머나먼 아메리카에서 조선반도에 싱겁게 기여든 미군 측에서는 중국인민지원군 포로들에게 아무런 의료처치대책도 대지 않았다.         반면에  개성을 떠나 판문점을 향해 남으로 달리는 풍막자동차들에는 피둥피둥 살지고 불깃불깃하게 혈기왕성한 미군과 괴뢰군 측 포로들이 편안히 앉아 가고 있었다. 적측 포로들은 몽땅 회색캬바진 새 옷을 떨쳐입고 희희락락 떠들썩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꽉 차넘쳤고 수심의 그늘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이 둘러멘 배낭에는 자기가 쓰던 시계와 라이터, 만년필과 치솔, 악기 그리고 우리측에서 준 기념품 같은 것을 불룩하게 걷어넣었다. 몇몇 부상당한 포로들 곁에는 흰 위생복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약가방을 둘러메고 청진기를 목에 건 채 딱 붙어앉아 간호하고 있었다. 포로교환구에 건너갈 때 적측의 어떤 포로들은 목에 기타를 걸고 겨드랑이에 불룩한 배낭을 끼고 떨굴가봐 조심스레 느릿느릿 걸어갔다. 적측 포로들 속에는 지팽이를 짚은 포로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부상당한 포로들은 우리측 포로수용소 의료일군들이 제때에 치료했기에 사지를 끊긴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측 포로들은 제때에 처치받지도 못하고 치료받지 못해 두 팔을 잃었거나 심지어 사지를 다 잃은 포로도 있었다. 우리 측 남녀포로들은 옷을 쫄딱 벗기우고 큰거리에 끌려나가 조리돌림을 당했고 돌팔매까지 맞았다. 녀성포로들은 강간당하기까지 않았던가! 미군측에서 우리측에 건네준 18부의 두꺼운 포로사망부에는 우리측 사망된 포로들의 이름이 꽉 박혀 있었다. 미군측에서는 많이 줄여서 8,840명만 죽었다고 했지만 기실 13,814명이나 집중영에서 사망, 살해되였다. 우리측의 눈물겹고 들끓는 장면과는 달리 적측 포로접수구의 분위기는 아주 쌀쌀하였다. 적측 포로들은 우리측 사업일군들과 굳게 악수하고 갈라져 적측 교환소에 가서도 웃으면서 이쪽에 대고 손을 저었다. 포로접수소 곁에 괴뢰군과 미군 병사들이 이쪽을 노려보면서 시꺼먼 총을 부여잡고 서 있었다. 군관들은 허리에 두 손을 찌르고 포로들을 쏘아보았다. 적측 포로들은 그 놈들을 보자 웃음을 거두고 몸을 옹송그리면서 접수소 안으로 들어갔다. 괴뢰군 군관은 허리에 두 손을 지르고 다리를 거만하게 척 벌리고 서서 괴뢰군 포로들을 보고 쌀쌀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자식들, 맥살도 없이 포로되다니? 저쪽에서 고생했지?” 괴뢰군 포로들은 그자에게 눈길도 돌리지 않고 휴게실천막에 들어갔다. 포로들이 우리측 수용소에 있을 때 대우를 잘 받았다는 말을 할가봐 적측에서는 취재하러 온 기자들이 자기들 포로들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제한하였다. 그자들은 전신무장한 적병들을 포치해 휴게실천막 둘레를 줄지어서서 지키게 하였고 휴게실천막으로 들어가는 길과 기자들 사이에 바줄을 매놓고 마구 드나들지 못하게 막았다. 포로들이 휴게실천막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기자들은 포로들에게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미군 안전군관은 사전에 기자들에게 공산당에 도움이 되는 보도를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어떤 기자들은 돌아오는 포로들에게서 가만히 취재해가지고 미군의 검사를 피해 38선 이남, 남조선(대한민국) 경기도 파주 부근의 문산에 가서 소식을 보도하였다. 어떤 기자들은 일본 도꾜에 날아간 후 보도하였다. 이는 우리측에서 포로교환접수구 련합적십자회 사무실에 기자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면서 취재하게 하는 것과는 완전히 딴 판이였다. 적들이 아무리 소식을 봉쇄하려고 들어도 세계 정의적인 기자들의 보도에 의해 세계인민들은 우리측에서 적측 포로들을 아주 잘 우대했다는 것을 다 알게 되였다. 심지어 적측포로들도 우리측 포로수용소를 “어디 포로수용소 같은가? 꼭 학교나 휴양소 같네.”라고 할 지경이였다. 1952년 10월, 가을의 하늘은 푸르고 높았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시원히 불어왔다. 맑은 물에 둘러싸인 조선 북반부 벽동전쟁포로관리소 운동장 주위에는 붉은기가 휘날리고 주석대 정면 량켠에는 중조 두 나라 국기가 높이 휘날렸다. 축구장에서는 흑인포로들과 백인포로들이 섞여 축구시합을 벌리느라고 법석거렸다. 작은 체육장에서는 집단체조하는 포로들, 권투시합과 씨름을 하는 포로들, 구경하면서 하하하 하고 웃음보를 터뜨리는 포로들로 법석 들끓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포로라는 수치감과 고독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황혼 무렵에 포로들은 줄을 지어 포로수용소에 들어갈 때 “동방홍”과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불렀다. 밤이 되자 포로들은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으며 중조부대 선전대의 공연을 구경하기도 하였다. 12일 동안의 운동대회를 벌린 뒤 우승을 따낸 포로들에게 포로관리소의 수장이 직접 상품과 기념품을 발급하였다. 포로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운동대회는 정말 잘 열렸네.” , “이번 운동대회는 력사에 오를만해. 우리는 영원히 잊을 수 없네.” 라고 하였다. 어떤 포로는 “운동대회는 포로라는 걸 다 잊게 했네.”라고 하였다. 한 미군 포로군관은 “지원군은 포로관리에서 전례없는 력사를 창조하였다.”라고 하였다. 운동대회에서 상품을 탄 한 포로는 흥분된 나머지 구호까지 불렀다. “모주석 만세!” “중국인민지원군 만세!” 운동대회 기간에 포로들은 저마다 자기 가족에게 편지를 써서 운동대회 성황을 알렸다. 한 포로는 자기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 중량급권투경기에서 우승을 한 경과를 상세히 쓰고나서 집에 돌아가면 운동대회에서 탄 금빛빈침 등 정밀한 상품을 가져다주겠다고 하였다. 제네바공약 규정에 따라 우리 중조측에서는 1951년부터 포로들이 자기 가족들에게 편지나 사진을 보내게 하였다. 적지 않은 포로들은 편지에 제집 식구들에게 지원군 포로관리소에서 잘 보내기에 시름놓으라면서 “포로로 있는 것이 전선에서 싸우기보다 더 안전하다.”고 하였다. 한 포로의 안해는 남편의 편지를 받고 “줄곧 매우 건강하다고 하니 지나간 두해에 비해 마음이 놓입니다.”라고 하였다. 3년 사이에 적측 포로들은 도합 2만 9천여통의 편지를 써서 가족들에게 보냈다. 편지 거개가 포로관리소가 좋다는 말을 써넣었다. 하여 우리측 포로정책에 대한 그 어떤 모욕중상도 믿는 사람이 없게 되였다. 성탄절이 돌아왔다. 바깥날씨는 실로 박달나무가 얼어 터질 지경이였다. 그러나 적측 포로들은 봄날처럼 훈훈한 집 안에서 성탄절을 즐거이 쇠였다. 회장에는 성탄나무, 은색의 종, 빨간 초가 갖춰져 있었다. 벽에는 숱한 표어가 붙어 있고 책상 우에는 국외에서 산 권연과 사타이 수두룩이 올랐다. 실로 집 안에는 서양민족풍속과 종교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미국과 영국적 포로들은 본토에서 집식구들과 함께 성탄절을 쇠는 감을 느끼게 되였다. 만회에서 한 금발머리 포로는 제2차세계대전 때 포로돼 독일파쑈집중영에서 갖은 시달림을 받던 정경을 소개하고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독일 사람들은 천주교와 기독교를 믿지만 우리한테 성탄절을 쇠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갖은 혹형을 다해 우릴 못살게 굴었습니다. 중국 인민들은 종교를 믿지 않지만 우리한테 이렇게 성대한 성탄만회를 차려주었습니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중국은 세계에서 제일 문명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온몸이 쇠기둥같이 새까만 포로가 일어나 구호를 불렀다. “중국인민지원군 만세!” “모주석 만세!” 장내에서는 우뢰 같은 구호소리가 울려퍼졌고 박수소리, 웃음소리, 찬탄소리 끝없었다. 서양음악에 맞춰 포로들은 춤추고 노래하였다. 에이피통신사의 한 기자가 다가와 묻자 좋은 대우를 받은 영국의 한 포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린 중조측 포로수용소에서 뜨끈뜨끈한 구들 우에 침대에서 새 이불을 덮고 잤고 잘 먹으면서 충분한 휴양을 하고 왔습니다. 우리 든 수용소에는 철조망도 없고 때리고 욕하는 일도 보고 죽자고 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전선에도 약품이 딸렸지만 우리한테 먼저 썼습니다. 내 두 다리는 여섯달이나 움직이지 못했는데 중국 사람들이 치료해주었습니다. 보시오.” 그 포로는 성큼성큼 걸어보였다. 그러고나서 멨던 불룩한 배낭을 벗어 풀어헤치고 여러가지 약을 꺼내보였다. “내 다리병이 도질가봐 약까지 넣어보냈수다. 중구사람은 제일이요.” 그 포로는 엄지손가락을 흔들어보였다. 미군 군의도 미국과 영국 포로들의 신체를 검사해보고 모두 매우 건강한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42살에 나는 미군 상병자포로 상위 크린은 튼튼한 신체를 군의한테 검사맞히고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으면서 기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대전시 부근에서 남하하는 조선인민군 전사들에게 포로됐습니다. 그때 조선인민군 전사들은 비행기 폭격을 무릅쓰고 6일 동안이나 간고한 행군을 해서야 전선을 떠나 우리를 후방에 호송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들과 한집 식구들처럼 이밥에 물고기반찬을 해서 하루에 세끼씩 먹었습니다. 비행기 폭격이 심한 날에는 세끼를 먹을 음식을 두때나 한때에 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얼마만큼 크면 그 많은 걸 다 먹겠습니까? 실로 배를 두드리면서 먹을 지경이였죠.” 그 포로는 분개한 어조로 뒤말을 이었다. “그때 젤 괘씸한 건 미군 날강도드이 날아와 기관총소사하고 폭격을 해대는 것이였습니다.” 참말로 이 모든 것은 입으로 “인도주의”와 “인성론”을 부르짖는 미제와 리승만괴뢰군이 우리 포로들을 갖은 수단으로 구타하고 릉욕하고 무참히 살해한 죄행과는 얼마나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가!                     포로쟁탈전 판문점에서 33일 동안 전쟁포로를 서로 송환하였지만 아직도 중조측의 지원군과 조선인민군 포로 각각 15,000명과 8,000명, 적측의 포로 351명이 송환되지 못하고 남아 있었다. 9월 10일부터 정전협정 해당 규정에 다라 중립국 포로송환위원회의 지도아래 인도군대에서 량측 포로를 지켰다. 당시 중립국 포로송환위원회는 정전협정에 따라 인도, 체스꼬슬로벤스꼬, 뽈스까, 스위스, 스웨리예 등 5개 국으로 이뤄졌다. 인도 대표이며 인도 륙군중장 티마이야 장군이 주석으로 임명되였다. 쌍방에서는 해석대표단을 파견하여 자기측 포로들에게 90일 동안 해석사업을 하여야 했다. 이는 조선전쟁의 특정된 조건하에서 전쟁포로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세계 전쟁력사에서 전례없는 복잡하고도 특수한 투쟁을 벌리는 것이였다. 우리 측대표단에서는 지원군에서 능력과 경험이 풍부한 정치사업일군돌로 대표단 성원을 구성한 한편 지원군 포로 지도자 왕방, 위림, 손진관 등 23명 골간들이 잠시 개성에 남아 포로해석사업을 협조하도록 결정하였다. 미군측에서 우리측 포로들을 인도부대에 넘겨줄 때 우리측 해석대표단에서는 관찰대표를 파견해 철조망 밖에서 인도부대의 접수사업을 관찰하였다. 미군측에서 이른바 “되돌아가는 것을 거절하였다.”는 우리측 포로들은 모두 얼굴이 창백하고 피골이 상접했으며 “PW(전쟁포로) 글자가 박힌 헌 바지를 입고 미군식군용화를 신고 등에는 낡아빠진 담요를 말아메고 맥없이 걷고 있었다. 그들의 새 흰 적삼에는 국민당휘장이 새겨져 있었다. 그 적삼은 얼마전 대만 국민당특무 두목 방치 일당이 그들에게 준 “례물”이였는데 인도부대에 넘겨주게 되자 억지로 입힌 것이였다. 집중영에 돌아간 후 인도부대 병사들이 포로들의 적삼을 벗기고 검사할 때 그들의 가슴과 잔등에 국민당휘장도안을 새긴 것이 드러났다. 우리측 관찰일군들이 동정어린 눈길로 포로들을 여겨보면서 지나가자 포로들은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집중영에 들어가면서도 몸을 돌려 이태 남짓이 보지도 못한 지원군일군을 돌아다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이쪽을 넘어오고 싶어하면서도 겁나 넘어오지 못하는 그런 초조와 공포의 그늘이 어려 있었다. 첫날에 인도부대는 인민군포로 1,000명을 넘겨받았다. “우릴 살려주십시오!’ 갑자기 9명의 조선인민군 포로가 인도부대에서 지키는 판문점포로송환소 쪽으로 고함치며 달려왔다. 그들은 손에 쥐였던 태극기를 홱 뿌리고 인도 병사들 속에 달려들어왔다. 그리하여 그들은 인차 인도 병사들에게 호송돼 우리측 포로송환접수소로 돌아왔다. 기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놀라운 장면을 찰칵찰칵 촬영했다. 적측에서는 인도부대가 지키는 포로들 속에 포로로 가장한 수많은 특무들을 잠복시켜 미군총부 특무기관인 CIA 쥐휘 밑에 우리측 포로들을 엄밀히 통제하고 있었다. 이밖에 거제도 제64야전병원을 옮겨왔다. 실제상 특무지휘중심을 옮겨다 직접 서울특무총부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특무들은 한 집중영의 500여명 포로들을 보고 진짜이름을 대면 공산당이기에 죽이겠다고 위협하면서 누구나 진짜명단카드를 인도부대에 넘겨주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우리측 관찰대표가 집중영에 오기만 하면 포로들더러 까만 색안경을 끼게 하여 특무들이 정체를 감추게 하였다. 특무들이 아무리 포로들을 위협했지만 9월 20일과 27일에 도합 67명의 지원군 포로들이 적들의 통제를 벗어나 인도부대의 호송하에 우리측으로 우르르 넘어왔다. 이는 판문점을 들썽케 했다. 포로들은 판문점에 이르러 차에서 내리자 대륙에 못돌아간다는 국민당과 장개석이 직접 서명한 문건을 꺼내 내동댕이치는가 하면 국민당휘장도안을 새긴 런닝을 벗어던지고 가슴팍에 새긴 국민당휘장도안을 가리키면서 국민당 특무들을 욕하였다. “이게 바로 우리 포로를 붙잡아둔 미군과 장개석의 죄증입니다.” 우리측의 한 포로는 자동차 안에서 얻어맞아 중상을 입었다. 우리측 접수일군들이 포로를 담가에 들어내리우자 의료일군들이 인차 그 담가를 받아들고 의료실로 달려들어가 구급하였다. 여러 나라 기자들은 또 그 장면을 촬영했다. 적측 특무들의 마수에서 벗어난 우리측 포로들은 인도부대 부사령 신그 준장, 려단장 파는테르 준장을 비롯한 인도부대 장병들과 적아쌍방 기자들 앞에서 집중영 안에서 우리측 포로들을 못살게 굴고 해석사업을 파괴한 적들의 죄행을 공소하였다. “해석사업을 할 날이 다가오자 특무들은 우리한테 ‘만약 중조 해석대표가 천막 안에 들어서기만 하면 모여들어 족쳐라. 필요하면 죽여치워라!’고 충동질하였습니다.’ 이어 포로 왕모가 일어나 말했다. “나는 제주도 제3포로집중영에서 물을 긷고 불을 때는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난  포로집중영에서 달아나 인도부대를 찾아와 보호받았습니다. 그러자 안달아난 특무들은 인도부대 한 소좌와 중위를 갑자기 붙잡아 인질로 두고 나를 내놓으라고 핍박하였습니다. 이걸 보면 포로영에 얼마나 많은 특무들이 미친듯이 활동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뒤이어 이렇게 폭로하였다. “어떤 포로집중영에서는 특무들이 비밀전보기를 설치하고 상관과 련계를 달고 있습니다. 특무들은 몽둥이와 비수를 이불 속에 감춰가지고 포로집중영에 들어왔습니다. 어떤 자들은 가죽신바닥에 철편을 넣어가지고 들어와 콩크리트바닥에 갈아서 비수를 만들어 휴대했습니다.” 그러자 인도부대 부사령 신그 준장이 포로들에게 물었다. “누가 그런 철편을 꺼내 보일만한가?” 한 포로가 자기 신은 미군 가죽신을 벗어 칼로 신 밑바닥을 째더니 철편 하나를 꺼내 보였다. “정부소대장 이상 포로는 이런 철편을 꺼내 비수로 만들어 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신그 준장은 철편을 쥐고 찬찬히 뜯어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한 포로는 품 속에서 적 특무들이 준 “반해석사업질문”이란 소책자를 꺼내 흔들면서 적발하였다. “미군 당국에서는 포로들더러 이 소책자에 찍힌 질문을 다 외워라고 강요했습니다. 우리측 해석대표들이 해석하기 시작하면 련속 외워둔대로 질문을 들이대서 해석사업을 파괴하라고 했습니다. 만약 질문이 깜빡 잊어졌을 때에는 ‘대만에 가겠다!’, ‘대만에 가겠다!’고 떠들어라고 시켰습니다. 만약 누가 떠들지 않으면 천막기둥에 목을 매 죽이겠다고 을러멨습니다.” 우리 측 포로들은 그 자리에서 포로집중영에 숨은 국민당 특무들의 이름과 특무조직을 까밝혔다. 우리측 포로 조모는 일어나서 적들에게 잘리워 절반 밖에 남지 않은 귀를 가리키고 적삼을 걷어올려 12센치메터나 째진 가슴의 상처자리를 보이면서 공소했다. “거제도 전쟁포로집중영에 있을 때 하루는 ‘정치훈련강의’를 하는 미군 교도관이 미국의 민주를 버쩍 고아댔습니다. 내가 ‘민주를 실시한다는게 왜 그 많은 중국 포로들을 살해했는가?’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미군 교도관은 말문이 막혀 나를 쏘아보지 않겠습니까?” 그날 밤, 국민당 교도관이 그를 끌고 나가 한바탕 치고 박고 했다. “이튿날엔 총살한다고 했습니다. 나를 포로집중영 밖에 세워놓고 한 미군 병사  보고 총을 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군 병사가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한 국민당 특무가 흉악한 몰골을 짓더니 비수를 뽑아들고 덮쳐들어 내 오른쪽 귀를 절반이나 베갔습니다. 그 놈은 베간 내 귀를 물통에 처넣고 포로들 보고 그 물을 마시라고 강박했습니다. 내 귀에서는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습니다. 아픈 건 더 말데 있습니까. 그날 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는 국민당 특무놈들은 천막 속에 뛰여들어 수건으로 내 입을 틀어막고 비수로 내 배를 쨌습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쭉 길게 째지 않았습니까! 내 너무 아파 마구 뒹구는데 다른 국민당 특무가 들어와 ‘죽이지 말고 전형으로 둬 다른 놈들의 버릇 가르치면 더 좋아.’ 하고 을러멨습니다. 특무들은 실로 살인마귀들입니다.” 10월 2일, 지원군 포로 장자룡은 집중영천막 안에서 “난 조국으로 돌아갈테야!” 하고 고함치면서 대청통곡쳤다. “개자식, 죽어봐라!” 살안마귀 특무 두 놈이 욱 달려들어 장자룡을 엎어놓고 걷어차고 짓밟아놓았다. 그 놈들은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장자룡의 두 팔을 장막기둥에 뒤로 비끌어매놓고 온밤 치고 박았다. 지어 나무몽둥이로 머리고 가슴이고 다리고 마구 조겨댔다. 장자룡은 성한데 없이 피가 랑자하였다. 피비린내가 집중영천막 안에 물씬 풍겼다. 포로들은 온 밤 너무 아파 신음소리를 내는 장자룡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모두 머리를 두 다라 사이에 파묻었다. “개자식, 중공 땅에 돌아갈텐가? 엉?!” “죽어도 돌아갈테야! 어디 죽여봐라! 이튿날 날이 밝자 또 다른 특무들이 서슬푸른 비수를 뽑아들고 장자룡의 피에 젖은 옷을 쫄딱 벗겼다. 야수 같은 특무들은 이발을 사려물고 비수로 장자룡의 가슴팍에서 살을 썩 베냈다. 장자룡은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놈, 오늘 회를 쳐놓겠다!” 특무놈들은 장자룡의 팔과 다리, 가슴팍에서 살점을 한점한점 저며냈다. 장자룡은 비명을 치다못해 까무러쳤다. 뒤이어 특무놈들은 장자룡의 귀를 썩뚝 자르고 손가락을 잘라냈다. 심지어 그의 머리 가죽을 칼로 쭉 오려 턱까지 쭉 벗겨 베냈다. 포로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머리를 숙였다. 특무들은 장자룡의 머리가죽을 쳐들어 흔들면서 그걸 보라고 몽둥이로 포로들을 툭툭 때렸다. 살인마귀들은 비수로 장자룡의 배를 가르고 심장을 떼내 비수에 꿰서 뻘건 화로불에 바질바질 구웠다. 뒤이어 그걸 날창에 꿰가지고 포로들한테로 한걸음한걸음 다가왔다. “개자식들, 봤지? 중공 땅에 돌아가려는 자는 이런 끝장이야!” “이 자식들, 이걸 먹어!” 특무들은 포로들의 두귀와 코를 붙잡고 장자룡의 심장을 그들의 입에 마구 쑤셔넣더니 씹어 먹으라고 날창으로 위협하였다. 집중영장막 바깥에서 이 처첨한 광경을 본 중립국일군들은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졌다. 실로 하늘 아래 사람으로서 어찌 이런 끔찍한 짓을 다 할 수 있단 말인가! 극악무도한 특무놈들은 뼈 밖에 남지 않은 장자룡의 시체를 벌판에 끌고 가 휘발유를 치고 포로들의 고무신 열컬레를 한데 태웠다. 자기들의 죄장을 덮어감추려는 것이였다. 그러나 고무 타는 냄새와 함께 사람의 살이 타는 노릿내가 네시간 동안이나 풍겼다. 적들은 나중에 재가루가 된 뼈를 파묻으면 고리를 잡힐가봐 땅에 묻지 않고 강물에 가져다 던졌다. 판문점을 들썽케 한 “장자룡학살사건”이 발생한 뒤 지원군 포로 11명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꼬 특무들의 마수에서 벗어나 인도부대 송환접수소에 달려왔다. 그들은 장자룡학살사건경과를 온천하에 폭로하였다. 우리측의 요구에 따라 인도부대에서는 27일이나 지난 뒤에야 조사하였다. 그들은 학살사건이 발생한 28호 포로집중영의 포로들을 몽땅 포로집중영 앞의 마당에 나와 모여앉게 하였다. 이때 조국 땅에 돌아가려는 16명 포로가 특무들이 위협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포로들 앞에 걸어나가 장개석 대만 특무들이 장자룡을 죽인 죄상을 폭로하면서 인증을 섰다. 살인마귀들은 생떼질을 썼지만 인도부대 병사들에게 잡혀 끌려갔다. 인증을 선 포로를 포함해 27명 지원군 포로들이 인도부대 보호를 받아 우리측 송환접수소에 돌아왔다. 미제는 저들의 모략책동에 “방애”하는 인도부대를 어떻게 해서나 2천명으로 줄이려고 미쳐날뛰였다. 그러나 인도부대에서는 미제의 압력을 물리치고 5천여명 장병들을 중립구에 파견하였다. 중립국포로송환위원회에서는 쌍방에서 제때에 포로해석사업을 하도록 하려고 미군측에 천막 32개, 큰마당 2개를 짓고 장막들에 통하는 길을 닦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미군측에서는 해석사업을 지연시켜 90일만 차면 우리측 포로들을 되끌고 갈 목적으로 30일 동안 걸려야 천막을 짓고 길을 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중조측에서는 미제의 비렬한 음모를 간파하고 그 공사를 주동적으로 맡아 나흘에 천막을 다 짓고 길을 다 뺐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20일 동안이나 중단된 해석사업은 10월 15일에야 다시 시작되였다. 이날 티마이야장군은 원 계획대로 제28호, 제31호 포로영의 1천여명 지원군 포로들에게 해석사업을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해석사업을 할 때 무력이나 위협수단을 쓰지 못합니다.” 그런데 각 집중영에서 온 포로“대표(특무)”ㄷ르은 박에 나와 해석을 듣는 것을 거절해나섰다. 그 놈들은 해석대표단들더러 천막 안에 들어와 해석하라고 해놓고 흉측한 짓을 하려고 시도하였다. “안돼!” 티마이야 장군은 책상을 탕 치면서 당장에서 거절하였다. “포로들은 반드시 지정된 장소에 와서 해석을 들어야 합니다. 돌아가서 포로들더러 나오 해석을 들으라고 하시오. 시그럽게 굴지 마십시오.” 여러 나라 기자들, 중립국포로송환위원회 대표들과 중조측 해석대표들이 장막에 가서 기다렸다. 그러나 오전 10시가 썩 지나도 포로들은 특무들의 위협을 받고 나오지 못하였다.   티마이야 장군은 기자들을 둘러보면서 “만약 12시까지 나오지 않으면 필요한 조치를 대겠습니다.”라고 하였다. 12시 돼도 포로들의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도부대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대지 않고 내심하게 기다렸다. 오후 4시 20분까지 애타게 기다려서야 31호집중영천막에서 500여명 지원군 포로들이 나와 32개 천막 안에 들어갔다. 천막 문어귀마다 미국 대표와 미군 군복을 입은 국민당특무들이 서서 천막 안에 들어가는 포로들을 가로보면서 위협하였다. 우리측 해석대표들은 포로들에게 인사말을 하고나서 1952년 4월 6일, 중조 두 나라 발언인이 발표한 포로문제성명과 포로들에게 알리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와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 팽덕회동지의 글을 읽어주었다. “우리는 전체 포로들이 조국의 품에 돌아오는 것을 열렬히 환영할 것입니다.’ “개나발이다! 가면 투쟁하고 총살한다!” 포로들 속에 혼입한 특무놈들이 책상을 치면서 고함치자 특무들의 위협받은 포로들도 떠들어댔다. “대만으로 돌아가겠다!” 포로들은 소학생들이 암기내듯 그 소리만 쳤다. 그리하여 해석사업을 계속 할 수 없게 됐다. 이때 미국측 관찰대표로 가장하고 문어귀에 서 있던 국민당특무가 소리쳤다. “내 길안내를 해주겠습니다. 대만으로 가겠으면 이 문으로 나가시오.” 포로들은 특무들의 위협받고 핍박에 못이겨 그 문으로 나갔다. 첫날에 해석사업을 거쳐 겨우 14명 지원군 포로들이 우리측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인도부대에서는 포로들에게 오전 11시 전으로 지정된 곳에 나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90여명 국민당특무들이 천막 밖에다 전호를 파놓고 비수와 날창까지 들고 죽 늘어서서 지키면서 인도부대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후 특무들의 창궐한 위협과 파괴를 받아 남영의 우리측 포로해석사업은 자꾸 중단됐다. 나중에는 아예 해나갈 수 없었다. 12월 20일 우리측과 중립국인 뽈스까, 체스꼬슬로벤스꼬의 노력하에 33일 동안이나 중단되였던 해석사업이 다시 시작되였다. 이틀간에 480명 포로에게 해석해 겨우 56명 포로들이 우리측에 송환되였다. 중조측 정전대표단 정치부 선전과 영사대에서는 륜번으로 북영의 적측포로들에게 영화를 상영하였다. 그때 중립국 포로송환위원회의 규정에 따라 정치적 색채가 짙지 않은 영화를 뽑아서 티마이야 장군의 심사를 받고야 돌릴 수 있었다. 중국측의 기록영화 “8.1운동회”는 통과되였다. 그 다음날 리해식 등은 조선 새 영화 “정찰병”을 티마이야 장군에게 심사받으러 가야 하였다. 그날 밤, 리해식은 영사대를 데리고 찌프를 타고 판문점 인도부대 군영에 달려갔다. 문 어귀에 있던 인도부대 장병들이 군례를 올렸다. 뒤이어 그들은 리해식 등이 강당에 들어가 영사기랑 장치하는 것을 거들어주었다. 강당에는 2,3백명 인도 장병이 앉아 있었다. 한참 후 훤칠하고 뚱뚱한 티마이야 장군이 몇몇 군관들의 호위하에 강당 뒤문으로 들어와 탄자를 깐 높고 큰 의자 앞으로 걸어왔다. 이때 직일관이 뭐라고 소리치자 앉아 있던 인도 장병들이 몽땅 일어섰다. 리해식 등도 덩달아 일어섰다. 티마이야 장군이 의자에 앉아 모두들 직일관의 소리치자 몽땅 앉았다. 티마이야 장군의 참모장이 리해식과 함께 긴 걸상에 앉았다. 조선 새 영화 “정찰병”은 한어로 번역하지 않은 영화였다. 그리하여 리해식이 영화를 보다가 한어로 번역해주면 영어번역원이 티마이야 장군한테 영어로 번역해주었다. 어떤 때 리해식이 좀 번역하지 않으면 참모장은 리해식 보고 빨리 번역하라고 무릎을 툭툭 치면서 재촉하였다. 영화가 끝났다. 인도 장병들은 강당이 떠나가게 박수를 쳤다. 리해식이 여겨보니 티마이야 장군도 손벽을 둬번 치는 것이였다. 심사에 통과된 셈이였다. 리해식 등이 영사기를 거둬 상자 안에 넣을 때 몇몇 인도 병사들이 우리 영어번역원과 손삿대질하면서 떠들썩하였다. 찌프에 앉아 개성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리해식은 영어번역원에게 물었다. “금방 인도 병사들이 뭐라고 그리 떠들썩했소?” 영어번역원은 안경을 닦아 끼더니 “오- 영화를 잘 찍었다더구만. 조선인민군 정찰병들은 아주 용감한데 미군은 좀 얻어맞으면 손 드는 멍청이들이라더구만.” “하하하.” 찌프차는 그들의 웃음소리를 싣고 밤정적을 헤가르면서 쏜살같이 내달렸다. 미군 측에서는 1개월 7일이 지난 뒤에야 북영의 자기측 포로들에게 해석사업을 진행하였다. 해석상업을 방애하고 파괴하는 미군측과는 달리 우리 중조측에서는 북영에다 난방설비와 소음제거설비까지 장치한 5개 천막을 쳐놓았다. 미군측 해석대표는 숱한 기자들과 기술전문가들을 데리고 차를 타고 북영에 와서 내렸다. 기술전문가들은 천막 밖에서 발전기 발동을 건다 장막 안에 록음기를 가설한다 하면서 맴돌아쳤다. 이때 건장한 괴뢰군 포로들이 깨끗한 새 옷을 입고 이불짐과 일용품을 가득 넣은 멜가방을 메고 장막 안에 들어와 조용히 앉아 기다렸다. 괴뢰군 군관은 손목에 찼던 손목시계를 벗어 미국제만년필과 함께 책상 우에 놓고 미국고급권연을 라이터 불에 붙여 꼬나물었다. 이때 책상 우에 놓은 록음기에서 민요 “아리랑”곡이 은은히 울려나왔다. 뒤이어 한 녀성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울렸다. “포로오라버님들, 자유대한의 품에 안겨요. 우린 꼭 뜨겁게 포옹할 거예요.” 미군측 해석대표는 녀성의 울음소리로 포로들의 마음을 흔들려고 들었다. 그러나 포로들은 그 녀성과 아무런 관계없는지라 들었는둥만둥해하였다. 뒤이어 괴뢰군 국방부장의 유혹에 찬 록음연설이 울렸다. “형제들, 대한민국으로 돌아오면 후한 로임을 내줄 것이며 제때에 승급시켜줄 것입니다. 절대로 ‘잘못’을 따지지 않고 그대들의 뜻에 맞게 일자리를 알선해줄 것입니다.” 뒤이어 송환돼간 포로들의 육성을 풀어놓았다. 모든 포로들은 조용히 귀담아듣고 있었다. 심지어 한 포로는 필기장에 뭔가 적고 있었다. 그것을 본 적측 해석대표는 흡족해하던 나머지 필기하는 그 포로에게 다가가 사진 몇장 꺼내보였다. “이 포로는 한국에 간 뒤 온집식구와 단란히 모여 매우 잘 지내고 있어.” 그때 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곁의 한 포로가 피씩 웃더니 일어나 말했다. “그 포로는 우리 잘 아는 백모인데요. 그는 장가도 못 가 안해도 없는데 웬 네살짜리 앤가요?” 괴뢰군관은 난처해 변명하다가 화제를 바삐 돌려버렸다. 다른 천막에서 처음으로 긴 양태를 내리드리운 한 괴뢰군 녀성포로가 해석을 다 듣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전 진작 갈 길을 골라놨어요. 이건 저 혼자 고른 거죠.” “너거 부모 돌아오길 기다려. 너건 부모도 생각 안해?’ 녀성포로는 핼끔 쳐다보면서 아츠런 소리를 질렀다. “저의 부모는 미제 날강도 폭탄에 맞아 사망했어요!” 녀성포로는 슬퍼서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머금고 입술을 깨물었다. 괴뢰군 군관은 지꿎게 씨벌였다. “너건 시집가서 편안히 안 살련?” “저도 한국에 돌아가 편안히 살려 해요.” 괴뢰군 군관은 헤벌쭉 웃으면서 한발작 다가섰다. 그때 녀성포로가 뒷말을 이었다. “미제 양키놈들이 한국에서 물러가야 돌아가겠어요. 리승만 괴뢰정권이 신물나게 보기도 싫어요. 미군 놈들이 당신들 양애비라도 되는가요? 왜 그 놈들 수하에서 놀아나는가요?” 코 떼운 괴뢰군 군관의 얼굴에는 대뜸 환멸의 빛이 어렸다. 어떤 포로는 일어나 군관을 손삿대질하며 소리쳤다. “당신이나 양키놈들 구속받지 말고 북반부에 넘어오라고!” 괴뢰군 군관은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올라 낯이 수수떡처럼 지지벌개서 꽥 소리쳤다. “개자식, 네깢 놈이 돌아오건말건 내캉 무슨 상관이여?” 그러고는 장막에서 훌 나가버렸다. 천막에서는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첫날 적측 해석대표들이 끙끙 갑자르면서 온종일 해석했지만 돌아가려는 포로는 하나도 없었다. 리승만괴뢰군 귀국작전 총책임자 백영준 준장은 일찍 “대한민국 포로 15%는 돌아오게 해석할 수 있다.”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결과를 보고는 “몇이라도 건너온다면 하늘이 구해준 거지.” 하고 말하였다. 미군측에서는 해석을 해보았자 헛수고라는 것을 알고 포로들이 해석을 거절한다는 리유로 나머지 23명 포로들에게 해석하지도 않았다. 해석사업이 끝나는 마지막 날인 1953년 12월 23일에 미군측에서는 북영 부근의 논밭에서 확성기에 록음을 풀어놓고 다시는 저희들 병사들을 보로 찾아가지도 않았다. 1954년 1월 21일, 미군측에서는 중조측 그리고 티마이야 장군을 비롯한 중립국 포로송환위원회의 견결한 반대도 무시하고 남영의 우리측 포로를 “백성의 신분”으로 고쳐 “석방”하였다. 한 미군 군관이 특무들을 만나 뭐라고 쑥덕거리더니 포로들을 몽땅 대만에 보낸다고 선포하였다. 누가 중국 대륙에 가겠다고 하기만 하면 반주검이 되게 구타한 다음에 배 우에 끌고 가서 마대에 넣어 바다에 처넣었다. 그것은 판문점 부근에서 죽이면 꼬리를 잡히기에 바다에 가서 죽였던 것이다. 특무들은 포로들 보고 으르릉거리며 으름장을 놓았다. “23일이 지나면 인도부대는 네놈들을 돌려보낼 권리를 행사하지 못해. 누가 달아나면 우리 총이 용서하지 않어!” 특무들은 포로들을 대여섯명씩 한데 팔과 다리를 묶어 달아나지 못하게 하고는 이른바 “석방”하였다. 뒤이어 열서너대 미군 직승비행기(헬기)가 분주히 날아왔다갔다하면서 중조측의 포로 21,000여명을 몽땅 실어 남조선(한국) 포항, 군산 등지와 대만에 끌어다가 괴뢰군과 장개석비도군에 각기 편입시켰다. 14,000여명 지원군 포로를 인천항에 압송하여 배에 오를 때 미군은 중립국부대가 부두에 들어가 임무를 집행하지 못하게 하였다. 지원군 포로를 실은 첫 큰배가 황망히 인천항구를 떠나다가 그만 미군의 군함을 부딪쳐놓아 28명의 미군 병사가 물에 빠져 물귀신이 대버렸다. 지원군 포로를 실은 첫 큰 배가 대만 기륭항에 이르렀을 때였다. 백여명이나 되는 포로병 “지도자(특무)”들이 포로대오를 떠나 줄을 서서 환영하러 나온 국민당 장령들에게 거수경례하고 굳게 악수하였다. 그것을 보고서야 영국 기자는 포로들 속에 숱한 국민당 특무들이 섞여 있었다는 것을 믿게 되였다. 특무들이 아무리 엄하게 통제했지만 중국측 포로들은 대여섯이 팔을 한데 묶이운 채 인도부대 병사들 속에 끼여 우리 측으로 넘어왔다. 적측으로 넘어가지 않은 북영의 적측 포로 347명(그중 미국, 영국 등 국적포로 22명)은 인도부대가 영지를 떠난 뒤 1월 23일에 각기 중조 두 나라 적십자회에 넘겨주었다. 그날 그들은 북영을 떠날 때 에이피통신사, 국제신문사, 프랑스신문사와 인도통신사 기자들의 취재를 받게 되였다. 한 영국 기자는 한 영국포로와 한시간 남짓이 이야기를 나눈 후 “당신이 만약 돌아가고 싶으면 우리와 함께 갑시다. 밖에 차가 있는데 빨리 갑시다.”라고 권고하였다. 그 포로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감사합니다. 중국측에서도 저를 가라고 자꾸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전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이젠 우리가 자원해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믿을만합니까?” 그러자 영국 기자는 머리를 끄덕였다. 뒤이어 전체 포로들은 사전에 준비해둔, 귀국하지 않겠다는 공동성병을 엄숙하게 읽었다. 그날 오후, 적측 포로들이 차에 앉아 개성시에 이르자 개성시 인민들의 열정적인 연도환영을 받았다. 그번 포로쟁탈전에서 특무들의 통제를 벗어나 인도부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우리측으로 넘어온 중조측 포로는 502명이나 되며 해석을 받고 넘어온 포로는 136명이나 되였다. 이 기간에 적측 포로는 4명이 넘아갔는데 그중에는 미군 포로 1명이 들어 있었다.
201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7) 댓글:  조회:1327  추천:0  2018-12-08
                  판문점 정전 그리고 돌아온 포로들   1년 6개월이나 끌어오던 포로송환문제에 관한 협의는 1958년 6월 8일에야 달성되였다. 그때부터 쌍방은 조인의식준비사업을 다그치게 되였다. 그런데 이튿날인 6월 9일에 남조선(한국) 국회에서는 귀국을 거절하는 조선측 포로를 즉시 석방하며 중국측 포로는 즉시 대만에 넘겨줄데 대한 “결의안”을 통과하였다. 이어 리승만 괴뢰군 헌병사령 원용덕에게 6월 17일부터 마산, 부산, 로산 등지에서 중조 포로를 석방하라고 명령하였다. 6월 17일 오후, 포로영을 지키던 미군 경호일군들은 그림자를 감추었다. 밤 9시에 남조선 반공청년단 단원들, 대대장, 경비대원들은 여러 집중영에 뛰여들어 포로들에게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너희들을 몽땅 석방한다!”, “안 달아나는 놈은 끝장낸다!” 하고 위협했다. 몇천명을 헤아리는 포로들은 그 놈들이 미리 끊어놓은 철조망을 꿰뚫고 우르르 쓸어나가 어둠 속에서 포로영 뒤산을 하얗게 뒤덮으며 도망쳤다. 특무들은 포로들을 뒤산 아래에 미리 서 있던 자동차들에 억압적으로 떠밀어싣고 부랴부랴 그 곳을 떠나가버렸다. 또 이와 동시에 미국측에서는 중조측 포로 2만 7천여명이나 억류하였다. 6월 19일, 중조측 수석대표 남일 장군은 이 사건과 관련해 미군측에 엄정한 항의를 제기하였다. 세계 평화를 요구하는 인민들과 여론을 불구하고 리승만은 판문점담판을 파괴하려고 남조선(한국) 경내에 계엄령을 내리고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 괴뢰군 참모장 백선엽을 불러들였으며 “단독으로 북침”하려고 미쳐날뛰였다. 중조부대에서는 리승만의 기염을 꺾어버리고 정전담판에 배합하기 위하여 금성 남부전선에서 제3차 진공을 발동하였다. 천여문의 대포가 금성 남쪽의 25킬로메터에 달하는 적방어선에 분노의 불길을 토하였다. 아군 6개 군의 우세한 병력이 괴뢰군 4개 사단에 맹렬히 공격하였다. 하여 괴뢰군 도합 78,000여명을 살상포로하고 땅크 45대, 자동차 279대, 대표 425문을 로획하였다. 그리고 220여평방킬로메터나 되는 땅떵어리를 빼앗아내여 금성 남부 아군방어선을 곧게 펴놓았다. 아군이 계속 남쪽으로 쳐들어가자 미군측 수석대표 해리슨은 7월 15일에 당황망조하여 다시 판문점 담판석상에 돌아와 앉았다. 날따라 땡볕이 쨍쨍 내리쬐여 무더위만 더해가는 7월 20일에 중조측에서 조인대청을 조선민족의 특색이 짙은 기념물로 짓기 시작하였다. 나흘 사이에 길이 38메터 너비 18메터나 되는 정전조인식대청을 다 짛어놓았다. 조선 력사에서 잊을 수 없는 1953년 7월 27일 아침해가 불쑥 솟아올랐다. 비 온 뒤 맑은 하늘은 푸르기도 하였다. 오전 9시 45분, 조인식에 참가할 쌍방의 군관들과 기자, 촬영사들이 조인대청에 들어왔다. 오전 9시 59분, 쌍방대표단 성원들이 조인대청에 입장하였다. 중조측 대표들로는 남일 대장, 리상조 중장, 정국옥 장군, 시정문 장군, 주연 소장 등이였다. 오전 10시, 쌍방 수석대표들인 남일대장과 해리슨 중장은 조, 중, 영 세가지 문자로 된 13부의 정전협정서에 조인하였다. 점심, 라지오방송에서는 조선인민군 김일성 최고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 팽덕회 총사령관이 내린 정전명령이 울려퍼졌다. 1953년 7월 27일 밤 10시(평양시간), 조선군사정전협정은 정식으로 효과를 보기 시작하였다. 개성전선에서 밤낮없이 콩 볶듯 들려오던 총포소리가 가뭇없이 들리지 않았다. 이날 밤 맑게 개인 하늘에는 몇날째 처음으로 금싸락을 뿌려놓은듯 뭇별이 총총하였다. 집집마다에서 마음놓고 방공창문카텐을 젖혀놓아 고려왕조의 개성은  하늘의 별무리가 내려앉은듯이 환하였고 환락의 분위기로 들끓었다. 7월 28일 오전 9시 30분에 팽덕회 사령관이 개성시 송악산 기슭에 자리잡은 지원군대표단 본부 회의실에서 조선군사정전협정서와 림시보충협정서에 서명하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원수는 평양에서 조선정전협정서와 림시보충협정서에 서명하였다. 개성에서 동남쪽으로 25킬로메터 떨어진 유명한 홍산포진지는 판문점담판을 보위하기 위해 7,600여명 미군과 괴뢰군을 소멸한 3차나 치렬한 전투를 한 피로 물든 전투진지였다. 7월 28일, 즉 정전한 그 이튿날, 홍산포진지에서는 지원군 전사들과 어제날의 적들인 영군 병사들과 정전을 경축하는 련환모임을 가졌다. 이 고지의 영군 병사들은 지원군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전에 영군의 한 부상병이 아군에 포로됐을 때다. 전사들은 상처를 잘 싸매주고 영군에 통지해 담가를 들고 와서 부상병을 들어가게 하였다. 그때 전사들은 그들이 안전하게 자기 진지로 돌아갈 때까지 총 한방도 쏘지 않았다. 영군 병사들은 “중국 사람은 말하면 말한대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감탄하였다. 전날 사전에 쌍방대표와 영어번역원이 함께 련환모임을 잘 협상한 후 오전 10시에 련환모임이 열렸다. 홍산포 진지에는 영어로 “정전을 경축한다!”, “우리는 당신들이 평안히 영국 고향에 돌아갈 것을 축원한다!” 등 구호를 새긴 붉은기가 펄럭였다. 그들은 서로 평화를 노래하는 영어와 조선어, 한어 문자가 박힌 축기를 교환하고 쌍방의 대표가 정전을 축하하는 축사를 드렸다. 뒤이어 그들은 미리 준비한 술잔을 들어 권커니작커니 하면서 술을 마셨고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춤추고 노래하였다. 한 영군 병사는 감개무량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린 조선과 중국 사람들과 싸우려고 하지 않소. 개 같은 미국 놈들과 리승만이란 놈이 한동아리가 됐기 때문이요. 만약 미국 놈들이 간섭하지 않았더라면 조선문제는 진작 조선 사람들끼리 해결했을 거요.” 북경영화촬영소와 여러 나라 기자들이 소문을 듣고 달려와 이 격동적인 장면을 촬영하고 취재했다. 7월 30일 오후 6시, 개성전선의 보병부대는 앞당겨 진지를 떠났다. 홍산포진지의 용사들은 피로 지켜온 피로 물든 진지를 떠나게 되였다. 그들은 떠나가면서 머리를 들어 메꿔놓은 진지공사, 포격에 콩가루 된 온 산을 둘러보았다. 영군 병사들은 진지에서 철거하면서 이쪽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지원군 전사들도 손저어 해답하였다. 7월 30일 밤 10시, 아군 개성전선의 제일 마지막 경비부대가 떠날 때 팽덕회 최고사령관이 진지에 와서 부대 장병들을 시찰하였다. 포로송환을 할 때 리해식은 몇몇 동무들과 함께 판문점에서 올리뛰고 내리뛰면서 위생통과구역에서 장소배치, 환영대오조직 등 사업을 하였다. 포로접수구역은 판문점에서 서남쪽으로 1킬로메터 떨어진 가설령에 설정됐다. 불도젤로 빤빤하게 민 가설령 언덕에 길이 200메터나 되는 주홍색루각을 지어놓고 루각에 “조국의 품”이란 커다란 간판을 걸었다. 리해식 등 사업일군들은 주위에 색기를 촘촘히 꽂아놓았다. 8월 5일 오전 9시, 포로접수구역에 제일 첫패의 우리측 포로들이 송환되여왔다. 포로들은 미군 위생차우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중국인민지원군 군가를 노래부르고 구호를 부르면서 접수소에 다가왔다. 숱한 사업일군들과 기자들이 그쪽으로 눈길과 렌즈를 돌렸다. 그들은 먼 곳에서 높은 주홍색루각에 걸린 “조국의 품”이란 간판과 중조 국기를 보자 자기 피로 물들여 자체로 만든 자그마한 중조 국기를 흔들면서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동방홍”을 높이 부르고 “조국 만세!” 구호를 높이 불렀다. 그들은 두 볼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날 조중측 수석위원 리상조 중장, 위원 정국옥 장군 등이 마중하러 나왔다. 포로들은 차에서 내려 미군 놈들에게 갖은 모욕을 받던 설음이 북받쳐올라 사업일군들의 품에 와락 안겨 엉엉 울었다. 그들은 미군 놈들이 준 군복을 벗어버리고 포로접수소 천막에 들어갔다. 어떤 포로들은 실한오리 걸치지도 않고 건너왔다. 그리하여 우리측에서는 바삐 팬티를 400여개나 만들어 접수소에 가져와 그들에게 입혔다. 포로들은 접수소를 지나 위생구역에 들어갔다. 그들은 옷을 몽땅 벗어 번호를 단 후 둘둘 말아 뙤창만한 구멍으로 안에 떨어뜨렸다. 우리 사업일군들은 그 옷을 몽땅 호주머니로부터 혼솔까지 샅샅이 검사해 일부 남조선과 중국 대만특무들을 붙잡아냈다. 남조선과 중국 대만 놈들은 포로를 송환하는 기회에 특무를 혼입시켜 북반부에 침투하려고 들었던 것이다. 목욕을 다한 포로들은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 새 군복을 갈아입고 자동차에 다시 올라 개성시 교외에 있는 포로접대소와 병원에 가서 휴식하고 치료받았다. 포로송환 젤 마지막날인 9월 6일 오전 9시에 미국측에 인질로 갇혀 있던 이른바 “전쟁범죄자”들인 지원군포로 지도자 왕방, 위림, 장택석(영어번역), 오성덕을 비롯한 138명과 조선인민군포로 지도자들인 박상현, 리인철 등이 돌아왔다. 중조측 리상조 중장, 정국옥 장군 등이 마중나왔다. 제일 앞 위생차에서 박상현이 내렸다. 피골이 상접하고 눈확이 우묵하게 들어간 그는 리상조 중장의 품에 와락 안겨 엉엉 울었다. 그는 “나는 동지들을 보고서야 조국에 돌아온 걸 알, 알게 됐습니다.”라고 하며 울었다. 그는 이윽고 머리를 들더니 “지원군포로 지도자 왕방이랑 돌아왔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때 수장들이 “오늘 다 돌아오오.”라고 하자 한시름 놓았다. 박상현은 원래 조선 모 도의 당위원회 지도일군이였다. 1950년 10월 적들이 북반부에 쳐들어올 때 차에 앉아 북으로 철퇴하는 길에서 당지 반동분자들에게 들키워 미군에 생포되였다. 포로집중영에서 어느 자인지 포로조직구성 기밀을 루설하는 바람에 박상현의 신분이 발각됐다. 미군 놈들은 그를 사면에 바람이 불어들어오는 쇠살창독방에 가둬 얼궈 죽이려고 획책하였다. 그는 손가락이 다 다슬도록 쇠살창감방 땅바닥을 파서 동굴을 파고 바람에 날아드는 나무 잎을 한잎한잎 모아 동굴에 펴고 한파를 피하면서 살아남았던 것이다. 제일 마지막 위생차에서 귀밑머리난 듬성듬성하게 남은 지원군 모 사단 정치부 주임 겸 부정위 오성덕이 내렸다. 그는 수장들의 손을 굳게 잡아 흔들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수장들은 그를 굳게 포옹해주었다. 오성덕은 모 사단 부정위였는데 제5차 전역 때 부대를 따라 철퇴하다가 적들의 포위를 돌파하지 못하였다. 그는 10여명 전사들을 데리고 남쪽 험산준령에서 1년 6개월 동안이나 유격전을 하다가 전우들이 다 희생되고 탄알마저 다 떨어져 체포됐다. 그는 미군이 감방에 들이뿌린 신을 되내뿌리고 자기가 몇해전에 조국에서 항미전쟁에 나올 때 다 파이난 신을 밤도와 깁어 신고 돌아왔다. 판문점 포로교환소에 와서야 그는 그 헌 가죽신을 벗었다. 북경군사박물관에서 온 한 사업일군이 오성덕이 신고 온 그 헌 가죽신을 북경군사박물관에 가져가려고 찾아달라고 했다. 그리하여 리해식은 한 총무일군의 침대 밑에서 그 헌 가죽신을 찾아냈다. 들고 보니 그 헌 가죽신은 다닥다닥 깁고 기워서 원래 신 모양을 찾아볼 수 없었고 두껍고 무거웠다. 다만 신바닥만이 조선에 올 때 조국 부대에서 준 것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후에 그 헌 가죽신은 북경군사박물관에 보관해두었다. 박상현, 오성덕 등 포로지도자들은 중조부대 수장들과 함께 차에 앉아 개성시로 떠나갔다. 바깥에서 기다리던 중조부대 군관들과 사업일군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환영하였다.                               비참한 녀성포로들 리해식은 당년에 중조 녀성포로들이 인간생지옥 같은 미제 집중영에서 갖은 시달림을 다 받은 비참한 사실, 그녀들이 송환돼올 때 그 눈물겨운 장면을 잊을 수 없었다. 1953년 8월 9일 송환돼온 2,873명 포로 가운데는 조선인민군 녀성포로 473명과 중국인민지원군 녀성포로 1명이 있었다. 오전 10시 쯤 되자 우리측 녀성포로들을 실은 미군측 트럭과 위생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측 교환접수구역에 거의 이르렀다. 저 멀리서부터 녀성포로들의 노래소리, 구호소리, 울음소리가 한데 뒤섞여 들려왔다. 그녀들은 손에 손마다 자체로 만든 중조국기를 들고 흔들고 있었다. 트럭우의 녀성포로들은 운전실쪽으로 몰려서서 이쪽에 대고 손을 흔들며 흑흑 흐느껴 울고 있었고 다 쉰 목소리로 계속 구호를 불렀다. 그녀들은 차에서 부축받으면서 내리자마자 가슴이 뭉클해났다. 그녀들은 우리측 사업일군들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 대성통곡쳤다. 인간생지옥에서 갖은 시달림과 모욕을 당한 그녀들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어머니 조국의 품에 돌아왔는데 어찌 기쁘지 않으랴. 적지 않은 녀성포로들은 벗어쥐고 있던 신으로 위생차 유리창문을 까부셨다. 미군 교환관이 차문을 열자 신짝을 그 자들한테 비발치듯 줴뿌렸다. 미군측 군관들은 날아가는 신짝들을 피해 우리측 교환관 등뒤에 피하였다. 심지어 미군 운전수들은 질겁해 위생차 운전실 꼭대기에 올라가 피하였다. 녀성포로들은 차에서 내리면서 수많은 거폭의 표어를 펼쳐들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형제적인 중화인민 만세!” 그 붉은 표어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 표어는 조선인민군 녀성포로 김영자 등이 부산역에서 차에 올라 북으로 떠날 때 손가락을 깨물어 쓴 것이였다. 그녀들은 그 표어를 들고 단식투쟁을 벌려 자체로 만든 인민군 군복을 입고 인민군 모자를 쓰고 돌아왔다. 그녀들은 작은 중조 국기를 들고 줄을 지어 씩씩하게 걸어 우리측 자동차에 올라탔다. 그녀들 속에는 중국인민지원군 녀성포로 양옥화도 있었다. 그녀는 길이 1메터, 너비 60센치메터 되는 오성붉은기를 들고 차에 올라탔다. 수무살 밖에 안되는 양옥화는 중국인민지원군 사업일군을 보자 머리를 숙이더니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 피눈물은 그의 여윈 얼굴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이때 위생통과구에서 기다리던 지원군 정치부 주임 두평 장군이 다가와서 양옥화의 손을 잡고 친절히 위문하였다. “동무는 끝내 조국의 품에 돌아왔습니다. 조국은 어머니처럼 동무를 보살필 것입니다. 푹 쉬면서 몸조리를 잘하시오.” 방송소에서도 양옥화를 위해 한어로 환영사를 방송하여 그녀를 열렬히 환영하였다. 양옥화는 감격의 눈물로 옷섶을 적셨다. 이때 미군측 위생차에서 중상을 입은 조선인민군 녀성포로 3명을 담가에 들어내리였다. 인간성이라고는 꼬물만치도 없는 미군 놈들은 갖은 수단으로 우리 측 녀성포로들을 모욕하고 박해하였다. 조선인민군 녀성포로 김모는 조선 황해도 해주시 녀대학생이였다. 그녀는 전쟁의 포소리가 울리자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였다. 1950년 9월 중순에 미군이 인천에 등록한 뒤 인천 부근에서 체포되였다. 그녀는 미군 놈들을 이렇게 규탄하였다. “그때 저는 150여명 녀군관과 녀전사들과 함께 서울 림시수용소에 압송돼갔어요. 미군 놈들은 몸을 수색한다는 구실 밑에 우리 옷을 몽땅 벗기고 총칼로 우리를 협박하여 서울 남대문의 사람이 제일 많은 큰거리로 몰고 나가질 않겠어요. 말을 듣지 않는 녀성포로는 날창으로 푹푹 찔러 온몸에 피가 랑자하게 만들었지요. 놈들은 추악하게도 촬영기자더러 그 장면을 찍어 수용소 흑판보에 내걸어 전람시키기까지 했어요.” 김모는 모욕감에 몸을 떨면서 팔소매로 눈물을 쓱 씃고 계속 공소하였다. “개만도 못한 미군 소위 두 놈이 80여명 남녀포로들을 서울역에 압송해갈 때였어요. 달아나는 걸 방지한다는 허울 밑에 옷을 몽땅 벗기고 남자와 녀자의 손목을 한데 묶고 우격다짐으로 내걷게 하였어요. 그리고 잔등에다 ‘우리는 핍박에 못이겨 인민군에 가담하였다.’는 글을 써붙였댔지요. 그리고 숱한 사람들을 불러다 구경시키고 돌팔매질을 하게 했어요. 으흐흑, 흑흑.” 격분해 여기까지 공소하던 김모는 더는 말을 잊지 못하고 엉엉 통곡쳤다. 이때 옆에 서 있던 한 녀성포로가 공소하였다. “남조선 광주시 포로수용소에서는 어쨌겠어요. 미군 군관놈이 녀성포로들을 커다란 방에 가둬놓고 옷을 몽땅 벗으라고 으르댔지요. 어데서 옷을 몽땅 벗기운 남자포로들을 데려다몰아넣고 호통쳤어요. ‘듣건대 공산당은 춤추길 좋아한다던데 오늘 춤을 춰라. 빨리 췃!” 쫄딱 벗은 남녀포로들이 억지로 춤을 추는 시늉을 내는 걸 보면서 양키놈들은 사탕을 질근질근 씹다가도 하하하 하고 징글스레 웃었댔지요. 짐승보다 못한 양키놈들은 짐승처럼 성욕이 발작하여 녀성포로들에게 달려들어 젖가슴을 만지고 끌어안아 땅바닥에 넘어뜨리고 강간도 서슴찮고 했어요. 으흐흑, 흑흑.” 그 녀성포로는 모욕감에 두 손으로 얼굴을 싸쥐더니 울다가 또 공소하였다. “그, 그 미군 놈들은 우릴 강간했고 심지어 밥하던 14세 박에 안되는 포로소녀마저 빼놓지 않고 강간하였어요.” 그녀가 말을 잇지 못하자 옆에 있던 녀성포로들이 너도 나도 공소하였다. “남조선 대전시에서 한번은 미군 군관놈이 한 조선인민군 녀성포로를 붙들어내다가 사지를 묶어놓고 강간한 후 감방에 들여보냈지요. 두번째로 또 그 녀성포로를 강간한 후 총으로 쏴죽였는데요. 서울 괴뢰군형무소의 괴뢰군 군관놈들은 녀성포로 6명이나 붙잡아다가 륜간하였어요. 그중 한 녀성포로는 음부가 터져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비참하게 죽고 말았어요.” 당시 조선중앙통신사의 보도에 의하면, 우리측 녀성포로들 가운데서 미제와 괴뢰군 놈들에게 128명이 강간당하였는데 반항하다가 살해된 녀자포로가 34명이고 적들이 강간한 후 죄행을 덮어감추려고 살해한 녀성포로가 44명이나 되며 기타 리유로 살해한 녀성포로가 120명이나 된다고 하였다. 개성에 집이 있는 한 녀성포로는 이렇게 공소하였다. 1950년 가을, 적들은 500여명이나 되는 녀성포로들을 부산녀전쟁포로집중영에 가둔 후 사회의 녀건달들을 인민군녀성포로로 가장시켜 녀성포로들 속에서 활동하게 하였다. 그들은 미군과 괴뢰군을 비호하였으며 도처에서 음탕한 말을 해대면서 녀성포로들의 사상을 부식하고 롱락하려고 들었다. 녀성포로들은 그년들의 음모를 제때에 간파하고 몽땅 집중영에서 몰아냈다. 그러자 적들은 침대를 다 걷어가고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이에 분개한 녀성포로들은 한결같이 단식투쟁을 벌렸다. 하여 끝내 침대 우에서 자게 됐고 식사도 좀 개선되였다. 그후 적들은 단식투쟁을 한 22명 녀성포로들을 단식투쟁 지도자라고 붙잡아갔다. 적들은 그녀들을 몽둥이로 때리고 전기취조를 하였으며 바늘로 손가락 끝을 찌르면서 단식투쟁 지도자를 대라고 을러멨다. 련 5일 동안이나 고문을 들이댔지만 아무 단서도 쥐지 못한 적들은 할수 없이 그녀들을 내놓았다. 1952년 봄, 적들은 녀성포로들을 몽땅 포로들이 “사망섬”이라고 부르는 거제도포로집중영에 압송해 가두었다. “우리 녀성포로들 속에는 전기취조를 받아 정신착란이 온 리모가 있었지요. 한번은 그가 ‘혼자 나가지 말자’는 우리 녀성포로들의 포로보호규정을 잊고 혼자 변소로 갔지요. 그를 본 양키놈은 경위실에 붙들고 들어가 강간하지 않았겠어요. 하여 리모는 완전히 미쳐버렸어요. 그때 우리는 너무 격분해서 시위하면서 항의했지요. 미군 집중영당국에서는 별수없이 리모를 강간한 양키놈을 녀성포로영에서 다른데로 전근시켰지요.” 양모의 말에 이어 서울 태생인 송모가 석쉼한 목소리로 공소하였다. 그의 말투는 완전히 남쪽 서울말씨였다. “전 1952년 5월 두드사건 뒤 담판에 참가한 3명 녀성포로 가운데 한사람이죠. 두두가 석방된 뒤 저도 다른 담판대표들과 함께 잡혀갔죠. 양키놈들이 저를 심문하다가 옷을 벗기고 강간할락꼬 미쳐날뛰잖겠어요. 제가 물고 뜯고 하면서 마구 밀쳐대니께. 양키놈들이 흉악한 상통을 해가지고 새빨갛게 단 쇠꼬챙이로 저의 젖가슴이캉 허벅다리캉 마구 지지지 않겠어요. 이 보세요.” 그녀의 걷어올린 팔다리를 보니 성한 데 없었다. “그때 중립국인 스웨리예대표단이 집중영을 시찰할 때 전 양키놈들의 위협도 무릅쓰고 달려나가 팔다리 걷어올리고 양키놈들의 죄행을 공소했던 거래요. 그랬다고 절 또 단독감방에 가두질 않겠어요. 교환돼서 돌아올 때에야 내놓았어요.” 이때 숱한 어린애들을 혹은 안고 혹은 손잡고 온 녀성포로들이 다가왔다. 그녀들은 대부분 군관 가속이여서 부대를 따라 남하하였다가 포로됐던 것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생인 23살 되는 조선인민군 녀성포로 김모는 둬살 박에 안되는 남자애를 안은 채 두 볼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전 포로된지 여섯달만에 집중영에서 이 어린애를 낳았지요. 옆의 동무들이 보살펴주지 않았더라면 저와 이 애는 집중영에서 굶어죽었을 거예요. 전 애를 낳고 몸이 어찌나 허약한지 두달 동안이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 했지요. 그때 녀성포로들은 가련할 정도로 적은 밥그릇에서 밥 한숟가락씩 내 그릇에 더 놓아 우릴 먹게 했어요. 저는 눈물과 함께 전우들이 주는 밥을 삼키면서 끝내 몸을 춰세워 이 애를 살려냈어요. 후에 극악한 양키놈들은 모자방에 우릴 따로 가둬 굶겨 죽이려고 달려들었어요. 녀성포로들은 항의했지만요. 양키놈들은 우리 모자를 끌어다가 모자방에 따로 감금하였지요. 한 녀성포로는 굶어서 갈비뼈가 아롱아롱한 자기 어린애가 울자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정신이 나가 그만 자기 어린애를 침대 우에서 목을 조여 죽이까지 하였어요.” 가련한 23명 산모포로들은 1953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건군절에 어린애를 업고 철조망에 “우리는 전쟁포로가 아니다!”는 표어를 내걸고 철조망 안에서 구호를 부르며 시위행진하였다. 땅! 땅! 적들은 그녀들에게 최루탄을 130여발 쏘았다. 숱한 애들이 놀라 몇달동안이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조선정전협정이 체결된 후에야 적들은 선전목적에 어린애들에게 옷과 신을 내주고 먹을 것을 좀 주었다. 쉰이 다 된 늙은 녀성포로들과 산모포로들이 어린애를 데리고 위생통과구역에 들어간 뒤였다. 환영하러 나온 부녀들이 이런 말을 주고 받았다. “죽일 양키놈들, 어쩜 쉰이 다 된 녀성을 다 포로라고 붙잡아뒀을가?” “글쎄 말이요. 썩어질 놈들이 어린애한테 무슨 죄 있다고 감방에서 고생시켰다오?’ 조선 녀성들은 질서을 유지시키는 리해식을 보더니 욱 모여와 물었다. “지원군동무, 저 어린애한테 어떤 옷을 입히는가요? 큰 군복을 입히는가요?” 리해식은 웃으면서 “근심하지 마십시오. 우린 어린애들도 돌아온다는 걸 알고 사전에 다 준비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윽고 새 군복을 입은 녀성포로들이 나왔다. 그녀들 속에는 하얀 바탕에 파란 무늬 가로 간 “꼬마해군” 군복을 입고 해군모자를 쓴 둬서너살 되는 남자애들과 빨갛고 노란 치마저고리를 입은 녀자애들, 칠색단저고리에 파란 조끼를 입은 어린애들이 위생통과구역 앞에서 나왔다. 초조히 근심하던 부녀들은 그제야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내며 환호하였다. 집중영에서 갖은 천대를 다 받던 녀성포로들은 곱게 차려입은 자기 어린애들을 안고 손에 손잡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목청껏 구호를 불렀다. “김일성 원수님 만세!” “모택동 주석님 만세!” 그 뒤에 지원군 녀성포로 양옥화가 새 지원군 군복을 입고 나왔다. 환영하러 나온 군중들은 그녀에게 꽃묶음을 안겨준다, 얼굴을 만진다 하면서 위안하였다. 어깨까지 쌍태머리를 땋아내리드리운 얼굴이 걀쭉한 중국 이 처녀는 열정적인 조선 부녀들 속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양옥화는 리해식 소속 군단에 있었다. 그녀는 1951년 5월 하순 제5차 전역이 끝날 때 북한강 북안인 지암리 부근에서 소속 사단과 함께 포위를 돌파하다가 포로되였다. 그녀는 꿈에도 자기가 전쟁터에서 포로돼 양키놈들이 왔다갔다하는 집중영 철조망 속에 갇히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처음에는 며칠 동안이나 집중영에 웅크리고 앉아 창백한 얼굴에 겁기 띤 눈으로 철창 밖에서 총칼을 비껴들고 삽살거리는 미군 놈을 지켜볼뿐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적들은 그녀를 심문실로 끌고 가서 “사단 책임자가 누군가?” 하고 심문하였다. 그때 눈이 파랗고 코대가 큰 미군놈을 보던 양키놈을 쏘아보던 양옥화는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문하던 미군 군관놈들은 엉큼한 마음을 먹고 미국 사탕 한봉지를 꺼내주면서 희죽거렸다. “더러운 개자식!” 양옥화는 미군 놈이 손에 든 그 사탕을 땅바닥에 탁 쳐던졌다. 그녀는 발로 심문실 문을 꽝 차고 나와버렸다. 그후에도 미군 군관놈은 더러운 마음을 죽이지 않고 그녀를 끌어내갔다. 그럴 때마다 조선인민군 녀성포로들은 단식투쟁을 하면서 항의하였다. 하여 그 양키놈은 양옥화를 되돌려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교환돼 돌아올 때 양옥화는 조선인민군 녀성포로들과 함께 부산역에서 맨 마지막 렬차바곤에 앉아 북상귀국의 길에 들어섰다. 그녀들은 당장 조국의 품에 안길 것을 생각하고 끓어번지는 내심의 감격을 억누를길 없었다. 순간 차칸에서는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동방홍” 노래소리, 구호소리, 웃음소리와 환호소리가 울려퍼졌다. “개쌍년들, 무슨 개지랄들이냐?!” 양키놈들은 게사니처럼 꿱꿱거리더니 차창을 꽁꽁 닫아걸고 차간에 독가스탄을 들이쏘았다. 탕, 탕탕, 탕탕탕! 여섯발의 독가스탄이 녀성포로들과 어린애들 속에 날아와 터졌다. 순간 차간 안은 독가스로 자욱해졌다. 탕! 또 독가스탄이 날아왔다. 양옥화는 다른 녀성포로들과 어린애들을 구하려고 선뜻이 제 몸으로 독가스탄을 막았다. 그의 손은 폭발하는 독가스탄에 맞아 벌겋게 데였다. 돌아오는 길에서 국민당 특무놈들이 그녀를 정치적으로 롱락하고, 육체를 릉욕하려고 하였다. 그때 그녀와 조선인민군 녀성포로들이 견결히 반항했기에 위험에서 벗어났다. 몇해 동안 집중영에서 적들과 싸우면서 조선인민군 녀성포로들과 양옥화는 두터운 친선의 정을 맺었다. 갈라진 후에도 조선인민군 녀성포로들은 손목시계 하나를 개성시병원에서 치료받는 양옥화에게 기념으로 보내주었다. 양옥화는 송환돼 돌아오는 날까지도 조국에서 신고 온 겹겹이 기운 신을 신었다. 조국을 그처럼 그리던 그녀가 이제 곧 조국의 품 속으로 돌아가게 되였다. 그녀는 조선인민군 녀성포로들과 함게 차에 앉아 개성시를 떠났다. 그들이 탄 차는 점점 멀어져갔다. 그 뒤에서는 우리측 접수일군들과 조선 군중들이 미제와 괴뢰군 집중영에서 갖은 릉욕을 다 당한 그녀들에게 오래도록 박수갈채를 보냈고 손을 저었다.                  적군 포로들 먹장구름이 뒤덮인 하늘에서 지꿎은 장마비가 구질구질 쏟아졌다. 서울을 떠나 판문점을 향해 북으로 달니는 자동차들에는 겨릅대처럼 피골이 상접한 중조 측 포로들이 람루한 옷을 입고 비물에 푹 젖은채 맥없이 꽉 박아 서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우묵한 눈을 맥없이 내리뜬 포로들, 쏜살같이 내달리며 흔들리는 자동차 우에서 상처가 아파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소리를 내는 포로들, 두 다리 없는 포로들, 팔을 잃은 포로들, 참말로 그들의 모양은 처량하고 끔찍스러웠다. 미군 측에서는 그들에게 아무런 의료처치대책도 대지 않았다. 이때 개성을 떠나 판문점을 향해 남으로 달리는 풍막자동차들에는 피둥피둥 살지고 불깃불깃하게 혈기왕성한 미군과 괴뢰군 측 포로들이 편안히 앉아 가고 있었다. 적측 포로들은 몽땅 회색캬바진 새 옷을 떨쳐입고 희희락락 떠들썩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꽉 차넘쳤고 수심의 그늘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이 둘러멘 배낭에는 자기가 쓰던 시계와 라이터, 만년필과 치솔, 악기 그리고 우리측에서 준 기념품 같은 것을 불룩하게 걷어넣었다. 몇몇 부상당한 포로들 곁에는 흰 위생복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약가방을 둘러메고 청진기를 목에 건 채 딱 붙어앉아 간호하고 있었다. 포로교환구에 건너갈 때 적측의 어떤 포로들은 목에 기타를 걸고 겨드랑이에 불룩한 배낭을 끼고 떨굴가봐 조심스레 느릿느릿 걸어갔다. 적측 포로들 속에는 지팽이를 짚은 포로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부상당한 포로들은 우리측 포로수용소 의료일군들이 제때에 치료했기에 사지를 끊긴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측 포로들은 제때에 처치받지도 못하고 치료받지 못해 두 팔을 잃었거나 심지어 사지를 다 잃은 포로도 있었다. 우리 측 남녀포로들은 옷을 쫄딱 벗기우고 큰거리에 끌려나가 조리돌림을 당했고 돌팔매까지 맞았다. 녀성포로들은 강간당하기까지 않았던가! 미군측에서 우리측에 건네준 18부의 두꺼운 포로사망부에는 우리측 사망된 포로들의 이름이 꽉 박혀 있었다. 미군측에서는 많이 줄여서 8,840명만 죽었다고 했지만 기실 13,814명이나 집중영에서 사망, 살해되였다. 우리측의 눈물겹고 들끓는 장면과는 달리 적측 포로접수구의 분위기는 아주 쌀쌀하였다. 적측 포로들은 우리측 사업일군들과 굳게 악수하고 갈라져 적측 교환소에 가서도 웃으면서 이쪽에 대고 손을 저었다. 포로접수소 곁에 괴뢰군과 미군 병사들이 이쪽을 노려보면서 시꺼먼 총을 부여잡고 서 있었다. 군관들은 허리에 두 손을 찌르고 포로들을 쏘아보았다. 적측 포로들은 그 놈들을 보자 웃음을 거두고 몸을 옹송그리면서 접수소 안으로 들어갔다. 괴뢰군 군관은 허리에 두 손을 지르고 다리를 거만하게 척 벌리고 서서 괴뢰군 포로들을 보고 쌀쌀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자식들, 맥살도 없이 포로되다니? 저쪽에서 고생했지?” 괴뢰군 포로들은 그자에게 눈길도 돌리지 않고 휴게실천막에 들어갔다. 포로들이 우리측 수용소에 있을 때 대우를 잘 받았다는 말을 할가봐 적측에서는 취재하러 온 기자들이 자기들 포로들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제한하였다. 그자들은 전신무장한 적병들을 포치해 휴게실천막 둘레를 줄지어서서 지키게 하였고 휴게실천막으로 들어가는 길과 기자들 사이에 바줄을 매놓고 마구 드나들지 못하게 막았다. 포로들이 휴게실천막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기자들은 포로들에게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미군 안전군관은 사전에 기자들에게 공산당에 도움이 되는 보도를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어떤 기자들은 돌아오는 포로들에게서 가만히 취재해가지고 미군의 검사를 피해 38선 이남, 남조선(대한민국) 경기도 파주 부근의 문산에 가서 소식을 보도하였다. 어떤 기자들은 일본 도꾜에 날아간 후 보도하였다. 이는 우리측에서 포로교환접수구 련합적십자회 사무실에 기자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면서 취재하게 하는 것과는 완전히 딴 판이였다. 적들이 아무리 소식을 봉쇄하려고 들어도 세계 정의적인 기자들의 보도에 의해 세계인민들은 우리측에서 적측 포로들을 아주 잘 우대했다는 것을 다 알게 되였다. 심지어 적측포로들도 우리측 포로수용소를 “어디 포로수용소 같은가? 꼭 학교나 휴양소 같네.”라고 할 지경이였다. 1952년 10월, 가을의 하늘은 푸르고 높았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시원히 불어왔다. 맑은 물에 둘러싸인 조선 북반부 벽동전쟁포로관리소 운동장 주위에는 붉은기가 휘날리고 주석대 정면 량켠에는 중조 두 나라 국기가 높이 휘날렸다. 축구장에서는 흑인포로들과 백인포로들이 섞여 축구시합을 벌리느라고 법석거렸다. 작은 체육장에서는 집단체조하는 포로들, 권투시합과 씨름을 하는 포로들, 구경하면서 하하하 하고 웃음보를 터뜨리는 포로들로 법석 들끓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포로라는 수치감과 고독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황혼 무렵에 포로들은 줄을 지어 포로수용소에 들어갈 때 “동방홍”과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불렀다. 밤이 되자 포로들은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으며 중조부대 선전대의 공연을 구경하기도 하였다. 12일 동안의 운동대회를 벌린 뒤 우승을 따낸 포로들에게 포로관리소의 수장이 직접 상품과 기념품을 발급하였다. 포로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운동대회는 정말 잘 열렸네.” , “이번 운동대회는 력사에 오를만해. 우리는 영원히 잊을 수 없네.” 라고 하였다. 어떤 포로는 “운동대회는 포로라는 걸 다 잊게 했네.”라고 하였다. 한 미군 포로군관은 “지원군은 포로관리에서 전례없는 력사를 창조하였다.”라고 하였다. 운동대회에서 상품을 탄 한 포로는 흥분된 나머지 구호까지 불렀다. “모주석 만세!” “중국인민지원군 만세!” 운동대회 기간에 포로들은 저마다 자기 가족에게 편지를 써서 운동대회 성황을 알렸다. 한 포로는 자기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 중량급권투경기에서 우승을 한 경과를 상세히 쓰고나서 집에 돌아가면 운동대회에서 탄 금빛빈침 등 정밀한 상품을 가져다주겠다고 하였다. 제네바공약 규정에 따라 우리 중조측에서는 1951년부터 포로들이 자기 가족들에게 편지나 사진을 보내게 하였다. 적지 않은 포로들은 편지에 제집 식구들에게 지원군 포로관리소에서 잘 보내기에 시름놓으라면서 “포로로 있는 것이 전선에서 싸우기보다 더 안전하다.”고 하였다. 한 포로의 안해는 남편의 편지를 받고 “줄곧 매우 건강하다고 하니 지나간 두해에 비해 마음이 놓입니다.”라고 하였다. 3년 사이에 적측 포로들은 도합 2만 9천여통의 편지를 써서 가족들에게 보냈다. 편지 거개가 포로관리소가 좋다는 말을 써넣었다. 하여 우리측 포로정책에 대한 그 어떤 모욕중상도 믿는 사람이 없게 되였다. 성탄절이 돌아왔다. 바깥날씨는 실로 박달나무가 얼어 터질 지경이였다. 그러나 적측 포로들은 봄날처럼 훈훈한 집 안에서 성탄절을 즐거이 쇠였다. 회장에는 성탄나무, 은색의 종, 빨간 초가 갖춰져 있었다. 벽에는 숱한 표어가 붙어 있고 책상 우에는 국외에서 산 권연과 사타이 수두룩이 올랐다. 실로 집 안에는 서양민족풍속과 종교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미국과 영국적 포로들은 본토에서 집식구들과 함께 성탄절을 쇠는 감을 느끼게 되였다. 만회에서 한 금발머리 포로는 제2차세계대전 때 포로돼 독일파쑈집중영에서 갖은 시달림을 받던 정경을 소개하고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독일 사람들은 천주교와 기독교를 믿지만 우리한테 성탄절을 쇠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갖은 혹형을 다해 우릴 못살게 굴었습니다. 중국 인민들은 종교를 믿지 않지만 우리한테 이렇게 성대한 성탄만회를 차려주었습니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중국은 세계에서 제일 문명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온몸이 쇠기둥같이 새까만 포로가 일어나 구호를 불렀다. “중국인민지원군 만세!” “모주석 만세!” 장내에서는 우뢰 같은 구호소리가 울려퍼졌고 박수소리, 웃음소리, 찬탄소리 끝없었다. 서양음악에 맞춰 포로들은 춤추고 노래하였다. 에이피통신사의 한 기자가 다가와 묻자 좋은 대우를 받은 영국의 한 포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린 중조측 포로수용소에서 뜨끈뜨끈한 구들 우에 침대에서 새 이불을 덮고 잤고 잘 먹으면서 충분한 휴양을 하고 왔습니다. 우리 든 수용소에는 철조망도 없고 때리고 욕하는 일도 보고 죽자고 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전선에도 약품이 딸렸지만 우리한테 먼저 썼습니다. 내 두 다리는 여섯달이나 움직이지 못했는데 중국 사람들이 치료해주었습니다. 보시오.” 그 포로는 성큼성큼 걸어보였다. 그러고나서 멨던 불룩한 배낭을 벗어 풀어헤치고 여러가지 약을 꺼내보였다. “내 다리병이 도질가봐 약까지 넣어보냈수다. 중구사람은 제일이요.” 그 포로는 엄지손가락을 흔들어보였다. 미군 군의도 미국과 영국 포로들의 신체를 검사해보고 모두 매우 건강한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42살에 나는 미군 상병자포로 상위 크린은 튼튼한 신체를 군의한테 검사맞히고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으면서 기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대전시 부근에서 남하하는 조선인민군 전사들에게 포로됐습니다. 그때 조선인민군 전사들은 비행기 폭격을 무릅쓰고 6일 동안이나 간고한 행군을 해서야 전선을 떠나 우리를 후방에 호송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들과 한집 식구들처럼 이밥에 물고기반찬을 해서 하루에 세끼씩 먹었습니다. 비행기 폭격이 심한 날에는 세끼를 먹을 음식을 두때나 한때에 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얼마만큼 크면 그 많은 걸 다 먹겠습니까? 실로 배를 두드리면서 먹을 지경이였죠.” 그 포로는 분개한 어조로 뒤말을 이었다. “그때 젤 괘씸한 건 미군 날강도드이 날아와 기관총소사하고 폭격을 해대는 것이였습니다.” 참말로 이 모든 것은 입으로 “인도주의”와 “인성론”을 부르짖는 미제와 리승만괴뢰군이 우리 포로들을 갖은 수단으로 구타하고 릉욕하고 무참히 살해한 죄행과는 얼마나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가!
200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6) 댓글:  조회:1490  추천:1  2018-12-02
         래봉장에서의 첫 겨룸        리해식은 정전대표단의 문화선전을 책임진 간사로서 조국에서 문예계 대표단이 개성에 오기만 하면 래봉장에 안내하고 래봉장에서의 첫겨룸을 소개해주군 하였다.        래봉장은 송악산 남쪽 기슭, 개성시 고려동 북쪽끝에 자리잡고 있다. 차를 타고 래봉장에 가 둘러보면 사면이 산에 둘러싸이고 장원에 여러가지 버드나무들이 우거진 것이 한눈에 안겨온다. 래봉장 대문 밖의 언덕에는 작은 옛탑이 서 있다. 래봉장 대문으로 울안에 들어서면 우거진 록음 속에 인공호가 조용히 누워 있고 호수 가운데 작은 수중 정자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호수 량 옆에는 래봉장 큰 건축물로 통할 수 있는 두갈래 오솔길이 나 있다.       래봉장 단층집 왼쪽은 곁채이고 복판에는 두개의 큰 원채가 있다. 첫 원채는 쌍방의 참모일군들이 정기회의를 연 곳이다. 두번째 정면대청은 첫 정전담판을 한 곳이다. 후에 담판장소를 판문점으로 옮겨갔지만 래봉장의 담판대청의 탁자며 의자며 모든 것을 그대로 두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제는 쏘련을 주요적수로 하고 전략적 중점을 구라파에 두었다. 미제는 조선전쟁에 륙군 총수의 3분의 1에 달하는 9개 사단, 공군의 5분의 1에 달하는 1,450여대의 비행기와 해군의 절반에 달하는 함대와 해군 륙전대를 투입시키고 많은 군사장비와 물자를 투입하였다. 그런데 의연히 날따라 패배하는 국면을 돌려세울 수 없었다. 게다가 조선전쟁으로 하여 구라파에서의 방어력량(당시 구라파에는 6개 산단 밖에 없었다.)이 영향을 받는 불리한 형편에서 부득불 조선전쟁을 시급히 끝내고 발을 빼려고 하였다.        1951년 5월 31일, 미제와 유엔군이 우리 중조 부대의 다섯번째 타격을 받아38선 이남으로 쫓기워간 후, 당시 미국 국무경 애치슨은 그의 고문이며 일찍 쏘련 주재 미국 대사로 있은 카이난을 시켜 개인신분으로 유엔 주재 쏘련 대표 마리끄를 통해 조선정전담판의 가능성을 알아보게 하였다.         6월 23일, 마리끄는 유엔 보도기구를 통해 조선전쟁 쌍방에 정전담판을 할 것을 건의하고 외국 군대가 조선반도에서 철거할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어 6월 30일, 유엔군 총사령관 리치위 장군은 미국정부의 위임을 받고 중조부대에 방송연설을 하였다. 그는 방송연설에서 자기는 미국 정부의 명령에 좇아 조선정전담판을 하려 하며 담판은 조선 동해의 원산항구 밖의 단마르크료양선에서 할 수 있다고 하였다. 7월 1일, 중조 측의 김일성 수상과 팽덕회 총사령원은 라지오방송을 통해 담판을 동의하며 담판지점을 38선에 있는 개성지구에서 하며 시간은 1951년 7월 10일부터 15일까지 사이로 하자고 하였다.         7월 8일, 제1차 정전담판을 준비하기 위한 쌍방 련락관들의 예비회의가 여기 래봉장에서 먼저 열리게 되였다. 오전 8시 22분 맑디맑은 개성시 하늘에 미국 직승비행기(헬기) 한대가 나타나더니 요란한 엔진과 프로펠라 소리를 내면서 개성시 서북쪽으로 날아가 고려동 래봉장 부근의 지정된 곳에 내렸다.        비행기 문이 열리더니 미국측 대표 켄니아 상좌를 비롯한 3명의 군관과 2명의 번역원이 내려 겁기어린 눈길로 여기저기를 힐끔거리면서 래봉장 대문 안에 들어갔다.        오전 8시 반, 련락관회의가 정식으로 열렸다. 우리 중조 측에서는 조선인민군 상좌 장춘산, 중국인민지원군의 시성문 등 3명 군관이 참가하였다. 맞눈총을 놓는 담판대청의 분위기는 매우 팽팽하였다. 중조 측의 수석련락관 장춘산 상좌가 먼저 회의를 시작한다고 선포하고 예비회의의 중요성과 회의내용을 강조하였다. “이번 회의는 정식담판대효회의 장소와 휴식실, 공급 및 기타 해당 문제를 사전에 토론하고 준비하여 정식대표회의에 유리한 조건을 지어주는 것입니다.” 미군측 수석련락관 켄니아 상좌는 별다른 생각도 없이 “고맙습니다.” 하고 한마디 할뿔이였다. 장춘산 상좌가 켄니아 상좌에게 “먼저 어느 문제를 토론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고 묻자 켄니아 상좌는 꿈에서 깨여난듯 불쑥 물었다. “정식회의를 언제 열려고 합니까?” 그러자 중조측 대표들은 대답 대신 코웃음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쌍방의 최고사령관들이 편지로 정식담판은 7월 10일부터 15일에 열기로 결정하지 않았는가. 실로 코 막고 답답한 노릇이였다. 이때 갑자기 꽝 하고 소리 났다. 간이 콩알만해 창문 곁에 앉아 있던 괴뢰군 련락관 리수영 중좌는 깜짝 놀라 그만 걸상에서 떨어져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는 얼음강판에 넘어져 버둑거리는 소 눈깔로 희번뜩거리며  두리번거리다가 바람에 창문이 꽝 닫긴 소리라는 걸 알고서야 제풀에 얼굴이 귀밑까지 벌개졌다. 그는 그제야 엉뎅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제자리엣 돌아가 앉았다. 좀 지나 또 회장 바깥의 문이 바람에 꽝 떨어져 넘어갔다. 미군의 한 련락관은 깜짝 놀라 떼굴떼굴 주위를 살피다가 문이 넘어간 걸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였다. 회의에서 우리 측이 제기한 의견을 미군 측에서 다 접수하였다. 이어 군사정전담판에 참가한 쌍방 정식대표명단을 교환한 후 회의를 끝냈다. 7월 10일 오전 8시 전 세계 인민들의 눈길을 모으는 조선정전담판이 래봉장 담판대청에서 정식으로 열리게 되였다. 중조 측 담판대표단 수석대표로는 조선인민군 대장 남일이였고 대표들로는 조선인민군 소장 리상조, 중국인민지원군 부사령원 등화 장군, 참모장 태방 장군, 조선인민군 소장 장평산이였다. 유엔군측의 수석대표로는 미군 원동해군 사령원 쵸이 중장이였고 대표들로는 미군 공군 소장 크레찌, 미군 륙군 소장 코디스, 해군 소장 베크, 리승만 괴뢰군 소장 백선엽이였다. 유엔군측 대표들은 중조측의 요구와 준비회의의 사전결정에 따라 의외사고를 방지하고 안전을 위해 백기를 꽂은 찌프차에 앉아 38선을 넘어 래봉장에까지 느릿느릿 달려왔다. 그 모양을 보고 중조측 담판대표단 일군들은 미제 사촉하에 움직이는 유엔군이 투항을 상징하는 백기를 걸고 온다고 비웃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미국 측 대표들은 담판석상에서 전쟁의 모든 죄과를 중조 측에 들씌우면서 담판에 장애를 조성하였다. 쌍방이 담판회의 의정을 토론할 때 중조측 수석대표 남일 장군이 담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세가지 의정안을 제기하였다. “첫째, 쌍방에서 협희한 후 모든 군사행동을 정지해야 합니다. 둘째, 38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하고 전쟁포로송환 등 문제를 토의해야 합니다. 셋째, 모든 외국군대를 조선으로부터 철거시킨 문제를 토의해야 합니다.” 남일 장군의 발언에 뒤이어 등화 장군이 남일 장군의 세가지 제의안을 지지한다고 발언하였다. 미군측 수석대표 쵸이 장군은 도리여 괴상한 론조로 문제를 제기하였다. “정전 유관 제 항목에 협의를 달성하고 군사정전위원회를 세워 사업하기 전에는 군사행동을 정지할 수 없습니다.” 뒤이어 쵸이 장군은 “우선 전쟁포로를 송환할 문제부터 토론합시다.”라고 하였다. 오전의 담판은 의정문까지 협의를 달성하지 못하고 끝났다. 오후 회의에서 미군측은 갑자기 유엔군측의 20여명의 기자들을 회의에 참가시킬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우리 중조측에서는 미군측의 무리한 요구를 동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쌍방의 협상을 거쳐 합당한 시기에 쌍방의 기자가 개성에 들어와 취재할 수 있도록 허락할데 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첫날의 담판은 의정문제마저 협의도 맺지 못하고 끝났다. 7월 12일 오전 7시 45분, 미군측에서는 쌍방의 협상을 거치지도 않고 20명 기자와 65명 대표단 성원을 숱한 차에 태워가지고 개성 동남쪽의 판문점에 들이닥쳤다. 그들을 몽땅 래봉장회의에 참가시키려는 것이였다. 판문점에 있던 중조측 련락관은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대표단 대표들만 지나가게 하였다. 무지막지하고 야만적인 쵸이 장군은 붉으락푸르락해서 숱한 차대를 끌고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되돌아 달아났다. 그런 뒤 사흘이나 담판석상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7월 15링에야 미군측 대표들은 낯을 내밀었다. 중조측의 제의하에 쌍방이 협상한 후 개성시 십자로어귀를 중심으로 반경 5백야드 지대를 중립구로 정하였다. 중립구내에서는 일체 군사활동을 엄금하며 중조 단방면의 적은 수효의 군사경찰일군들이 경무기를 휴대하고 중립구의 안전사업을 책임지게 하였다. 담판의정문제에 대해서 7월 26일까지 쟁론하던 끝에 겨우 다섯가지 의정안만 협의를 달성했다. 7월 27일, 실제문제를 토론하기 시작하자 미군측 수석대표 쵸이 장군은 싸움터에서 얻지 못한 것을 담판석상에서 얻어보려고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세우고 침방을 튕기면서 떠들어댔다. 그는 세계여론과 조선전장의 실제적정황을 무시하고 38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하려는데 대해 극구 반대해나섰고 중조측이 군사분계선으로 하려는데 대해 극구 반대해나섰다. 그는 중조측이 림진강 서쪽에서는 뒤로 철거하여 2천 내지 3천 평방킬로메터의 지역을 내놓아야 하며 동부와 중부 전선에서는 3천 내지 4천 평바킬로메터 지역을 내놓아야 한다고 무리하게 요구하였다. 이것은 총 한방도 쏘지 않고 중조측의 1만 2천여평방킬로메터나 되는 땅을 빼앗으려는 악동하고 망녕된 궤계 아니고 무엇인가! 당시 전쟁터의 정황을 놓고보면, 전쟁이 사작되여서부터 정전담판이 시작된 7개월 사이에 38선을 중심으로 적측에서도 38선 이북으로 두차례나 쳐들어왔고 중조부대가 38선 이남으로 두차례나 쳐들어갔다. 중조 부대는 38선 이남지구를 5개월 동안 점령하였고 적측에서는 두달동안 점령하였다. 중조측에서는 38선 이남의 145킬로메터나 되는 지역, 37도 위도선에 위치한 수원 이남 지역까지 쳐들어갔댔으며 북으로 철퇴한 후에도 개성을 비롯한 38선 이남의 3,630킬로메터에 달하는 지역을 통제하였다. 적측에서는 38선 이북의 165킬로메터 종심에 달하는 구간의 4,630평방킬로메터에 달하는 38선 이북의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조측에서 통제하는 38선 이남 지역은 개성을 포함하여 경제상, 군사상에서 모두 가치가 큰 요충지였다. 중조측에서는 미군측의 무리한 요구를 견결히 거절하고 반박하였다. 중조측에서는 군사적으로 빈번히 전쟁터에서 승리함으로써 담판석상에서 미제와 리승만괴뢰군의 기염을 여지없이 꺾어놓았다. 그리하여 미군측에서는 제나름대로 할 수 없었고 발언권도 잃고 말았다. 이때 미군측은 비밀회의를 하자고 새로운 제의를 내놓았다. 8월 17일부터 비밀회의를 열었다. 비밀회의기간에 중조측 대표는 38선을 분계선으로 하자던 제의를 그만두고 전선실제접촉선을 분계선으로 삼자고 하였다. 미군측은 들을념도 하지 않고 무력으로 1만 2천여평방킬로메터나 되는 땅을 빼앗으려고 전선에서 대진공을 하는 한편 담판회의를 악렬하게 파괴했다. 8월 15일, 미제와 리승만괴뢰군은 이른바 여름철공세를 들이댔고 뒤이어 가을철공세를 들이댔다. 적괴수 팸프리드는 자기 수하의 미군 제8군을 포함한 9개 사단의 병력으로 덮쳐들었다. 허나 20일 동안 싸운 결과 적들은 7만여명의 병력과 땅크 129대, 비행기 189대를 손실당하고 말았다. 8월 16일 밤이였다. 땅! 땅! 갑자기 야무진 총소리가 담판회중립구의 고즈넉이 잠들었던 하늘을 깨웠다. 지원군 경위패 패장 요경상이 8명 경위전사들을 데리고 중립구내 송곡동 부근에서 순라할 때였다. 그 곳에까지 매복해 있던 30여명 미군 놈들이 불의습격했다. 요경상 패장이 당장에서 숨지고 다른 한 전사가 부상당하였다. 이튿날 개성시 군민들은 요경상렬사의 시체를 개성시에서 제일 경치가 좋은 자남산 기슭에 안장하고 추도대호를 열었다. 렬사의 까만 화강석 묘비 앞면에는 “요경상렬사지묘”라는 글자가 새겨졌고 뒤면에는 미제가 정전담판을 파괴하고 렬사를 살해한 죄장이 새겨져 있다. 리해식은 개성에 온 뒤 수많은 중조 군민들과 함께 요경상렬사의묘지를 침앙한적이 있다. 적들은 군사적으로 중조측에게 타격을 입고 더 큰 지역을 빼앗겼으며 요경상렬사를 살해하였기에 세계여론의 질책을 받았다. 미군측 수석대표 쵸이 장군은 부끄러운대로 담판석상에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미제 공중날강도들은 8월 16일과 8월 22일에 중립구 중조담판대표 숙사에 폭경하고 소사하였다. 그리하여 담판장소를 부득불 판문점에 옮겨가지 않을 수 없었다. 10월 25일, 2개월이나 미제의 파괴로 말미암아 중단되였던 담판은 개성시에서 동남쪽으로 15킬로메터 상거한 판문점에서 다시 열리게 되였다. 적들은 1만 2천킬로메터에 달하는 지역을 자기들의 손에 넣으려는 무리한 요구를 다시 들고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개성은 서울을 방어하는데 수요되는  요충지라면서 개성을 내놓으라고 떼질썼다. 그러지 않으면 고성과 금성 2개 도시로 개성을 바꾸자고 하였다. 사실 그때 고성과 금성 지구는 우리 중조부대의 통제 밑에 있었고 적들은 이 두 곳에서 매우 작은 곳만을 통제했을뿐이였다. 첫 의정안인 군사분계선과 비군사구역 문제는 4개월 동안 쟁론을 거쳐 11월 27일에야 합의를 보았다. 이는 중조측에서 합리하게 방안을 내놓고 한차례 또 한차례 적들의 음모를 분쇄하고 강대한 군사적타격을 잘 배합한 결과이다. 1953년 6월 17일 쌍방이 최종적으로 확정한 군사분계선은 1951년 11월 27일에 정한 군사분계선보다 개성지구를 포함하여 190여평방킬로메터나 남으로 더 나갔다. 그때로부터 래봉장은 미제 침략자가 아군에게 5차 타격받고 “흰기”를 들고 와서 담판을 한 곳으로, 중조 인민의 공동의 원쑤 미제와의 첫겨룸에서 중조인민이 승리한 상징으로 되여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었다.                      판문점 정잔담판장소가 판문점에 옮겨지자 중조측 정전담판대표단 정치부 선전과도 판문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였다. 리해식 등이 찌프에 앉아 개성시에서 동남쪽으로 한 15킬로메터 즘 달려가니 푸르른 들판에 둘러싸인 펑퍼짐한 산둔덕에 자리잡은 판문점이 한눈에 안겨왔다. 당지 민간전설에 의하면, 옛날 지금의 판문교에서 서북 쪽으로 200여메터 떨어진 곳에 땅 밑에서 퐁퐁 솟아나는 맑은 샘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샘물을 마시면 백병이 떨어진다고 소문이 파다히 퍼졌다. 그리하여 조선 팔도에서 숱한 사람들이 병을 치료하려고 이 샘물을 마시러 샘물터로 찾아왔다. 그때 부근에 살던 마음씨 착한 한 농사군은 샘물 사시러 오는 사람들의 숙식을 마련해주려고 샘물터 옆에 려관방을 차려놓았고 벌레와 먼지가 들어가지 않게 우물을 판장문으로 덮어놓았다. 그때로부터 사람들은 이 곳을 판문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류수와 같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 전설 속의 “판문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다만 직경이 반메터 남짓하고 십여메터 깊이 되는 옹둘우물이 남아 있다. 이 샘물터로부터 동쪽으로 몇발작 걸어가 작은 언덕을 굽어들면 동서로 뻗은 길이 나지고 그 길 북쪽에 널판자와 참대삿자리로 지은 장방형의 큰 집이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판자집이 바로 쌍방대표단이 담판하는 회의장소였다. 이 판자집을 중심으로 반경이 천야드 되는 둥그런 원 안은 회장구역이다. 회장구역 네귀의 상공에는 빨간 줄을 네줄이나 칠한 커다란 고무풍선이 둥둥 떠 있었다. 이것은 회장구역 공중표식물이다. 밤이면 탐조등을 밝혀 그 고무풍선을 대신하였다. 회의장소로 된 그 장방형 집은 회장구역의 유일한 집이였다. 그 나머지는 몽땅 흰 방수포장막이였다. 회장 남쪽에 회장과 나란히 앉아 있는 큰 천막집이 있었는데 쌍방 참모일군들이 회의를 하는 곳이였다. 이 천막집의 동쪽과 서쪽에 좀 큰 천막집이 각기 있었다. 이 곳은 쌍방대표단이 쉬는 곳이였다. 도로 남쪽에는 우리측 사업일군과 기자들이 쉬는 두개의 천막집 외에 판문교를 가까이한 척측의 천막집이 몇개 있었다. 찬찬히 여겨보면 온 회장구역 내의 크고 작은 천막은 이미 비바람과 해볕에 희읍스름하게 퇴색하였다. 담판회의장으로 쓰는 장방형 큰 집 꼭대기의 참대삿자리도 희읍스름하게 퇴색하였다. 이 큰 집의 남쪽과 북쪽에는 유리창문 몇개가 있었다. 서쪽과 동쪽에는 문이 하나씩 있었는데 웃문턱 우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흰비둘기 조각이 박혀 있었다. 담판 할 때면 우리 중조측 대표들이 서쪽 문으로 회장에 들어가고 미군측 대표들은 동쪽 문으로 들어가게 되여 있었다. 리해식은 서쪽 출입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회의장에 들어갔다. 회의장 복판에는 남북으로 록색천을 띤 긴 책상이 가로 놓여 있었다. 이 긴 책상 남쪽 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작은 국기가 꽂혀 있었고 긴 책상 북쪽 우에는 유엔의 작은 기대가 꽂혀 있었다. 담판할 때면 쌍방대표는 동서 량쪽에 나뉘여 마주앉고 뒤줄에는 번역일군과 참모들이 앉아 있었다. 선전과 로동지들이 해식에게 우리 측 대표단이 이 담판석상에서 적측 대표단과 날카롭게 맞서 싸우던 정경을 말해주었다.   1952년 5월 23일, 미군측 선임수석대표 해리슨 중장이 전임 수석대표 쵸이 중장을 대신하여 판문점에 나타나 담판석상에서 포로송환문제를 가지고 생떼질하였다. 전쟁포로송환에 아무런 성의도 없는 미군측 선임수석대표 해리슨은 탐판회장에 들어선 첫날부터 무리한 첫마디를 던졌다. “당신들이 우리 측 방안을 언제 접수하면 언제 담판을 다시 하겠습니다.” “당찮은 말을 하지도 마십시오.” 우리 측 대표는 엄숙하게 반박하였다. 해리슨은 어깨를 으쓱하며 두 팔을 벌려보였다. “닷새 후에 다시 담판합시다.” 5월 27일에 다시 담판할 때 해리슨은 매우 거만스레 떠벌이였다. “담판을 중지합시다. 당신들의 발언에 아무런 흥취도 없습니다.” 6월 7일, 담판석상에서 해리슨은 유엔군의 수석대표이자 미군 3성박이장군이라는 체면도 잊었다. 그는 실하고 긴 목을 기린의 목처럼 빼들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가 하면 휘파람을 휘-휘- 불기까지 하면서 도무지 담판에는 정신을 팔지 않았다. 해리슨은 앉아 있기도 싫던지 제쪽에서 “사흘동안 담판을 중지합시다.” 하고 선포하고는 번역일군이 번역하기도 전에 벌컥 일어나 회장을 나가버렸다. 더욱 한심한 일도 있었다. 해리슨은 후에 련속 몇번이나 회장에 들어시기 바쁘게 회의를 중지한다고 선포하고는 되돌아나갔다. 확실히 그는 고의적으로 담판을 방애하여 유엔군 총사령 클라크 상장의 명령대로 포로송환을 하루하루 지연시켜 중조측 포로를 억류하며 두드사건의 진상을 감추려고 하였다. 미제 침략자들은 1949년 8월 제네바에서 63개 제약국이 제정한 “전쟁포로에 관한 제네바공약”을 공공연히 어기고 포로를 돌려보내지 않고 잔혹하게 학살하였다. 그자들은 포로의 입 안에 휘발유를 부어넣고 불을 달아 태워죽이고 강한 전기불빛을 비춰 눈을 멀궈놓았으며 시뻘겋게 단 쇠꼬챙이로 포로의 몸을 지지고 손톱을 집게로 집어 뺐으며 바깥에 끌고 나가 산 과녁으로 삼아 총살하였으며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세균실험을 한 후 바다물에 처넣어 참혹히 죽였다. 녀자포로들을 강간한 후 젖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손발을 베버리고 휘발유를 치고 불태워 학살하였다. 그리고 포로들을 강박하여 이른바 “반공구국군”, “대한청년단” 등 반동조직에 들게 하였으며 포로의 몸에 한자와 영어로 반동구호를 새겼다. 1951년 10월까지만 해도 미제 침략자들은 중조측 포로 17,000여명이나 잔혹하게 학살하였다. 그러면서도 담판석상에 나와서는 포로들이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세계여론을 기만하려고 들었다. 뒤이어 미국 전쟁포로집중영당국에서는 미군 참모장련석회에서 채택한 이른바 “자원적인 귀환”의 “원칙”에 좇아 두달 전에 남조선 거제도 조선인민군 포로들이 집중된 62호 전쟁포로집중영을 시점으로 잡고 마수를 뻗쳤다. 그날 전쟁포로집중영당국에서는 6대의 장갑차에 1개 영의 전신무장한 병력을 실어다 적수공권인 5천명 전쟁포로병들이 갇힌 62호 감방을 물샐틈없이 겹겹이 포위하였다. 적병들은 총칼을 빼여들고 집중영에 뛰여들어 닥치는대로 찔러죽였다. 눈깜짝할 사이에 120여명 포로들이 피못에 스러져 숨졌다. 290여명 포로들이 팔이거나 다리를 찔려 쓰러졌다. “가만 있다가 죽을게면 싸우다가 죽자!” 누군가 웨치자 조선인민군 포로들은 빈 주먹으로 적병들과 맞다들었다. 어떤 포로들은 적병들의 날창을 비껴치우고 멱살을 거머쥐고 골받이(헤딩)를 들이대 쓰러눕혔다. 어떤 포로들은 찔러들어오는 날창을 비껴쥐고 소발쪽 같은 무쇠주먹으로 적의 대갈통을 쳐 눕혔다.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한 미군 적병은 조선인민군 포로들의 물매를 맞고 늘어졌다. 이밖에 30여명 양키놈들이 맞아 코가 삐뚤어졌거나 팔다리가 부러졌고 빼앗긴 날창에 찔리워 옆구리에서 피가 즐벅이 흐르거나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 바빠맞은 양키놈들은 포로영 대문 밖으로 뿔뿔이 꽁무니를 뺐다. 4월 6일, 거제도집중영에는 서슬푸른 살기가 어리였다. 이날 거제도 83호 집중영 철조망 안팎에는 기관단총을 비껴든 미군 양키놈들이 물샘틈없이 둘러싸고 있었다. 미군은 누가 “자원적으로 되돌아가겠는가?” 고 포로들을 하나하나 심사하고 부류끼리 나눠놓기 시작하였다. 포로들은 적들의 총칼이 숲을 이룬 삼엄한 심문실에 끌려들어가 하나하나 심사를 받게 되였다. 한 포로가 떨리는 다리를 글며 끌려나가자 사무상에 마주 앉은 한 미군 군관놈이 철갑모 밑으로 파란 눈깔을 떼룩거리면서 뭐라고 씨벌여댔다. 옆에 선 괴뢰군 번역원이 번역하였다. “북으로 되돌아가는게 소원인가?” “예, 꼭 돌아가겠습니다.” “죽자고 그따위 소릴 쳐?!” “자나 깨나 마음이 그런 걸 어쩌랍니까?” “망할 자식!” 그 군관놈이 꽥 고아댔다. 뒤에 섰던 두 놈이 그 포로의 정수리를 총박죽으로 탁 쳤다. 그 포로는 그 자리에 풀썩 꺼꾸러져 까무러쳤다. 반주검이 된 그 포로는 줄줄 끌리워나갔다. 그 다음 포로가 끌리워 들어갔다. “보았지? 돌아가자면 저런 끝장이야!” 미군 군관놈이 길다란 손가락으로 삿대질하였다. “그래도 되돌아갈텐가?” “죽어도 되돌아가겠다!” “이 놈, 죽어봐라!” 그 군관놈이 손짓하기 바쁘게 옆에 섰던 적병들이 날창으로 그 포로의 옆구리를 콱 찔렀다. “앗!” 비명소리와 함께 그 포로는 왼손으로 옆구리를 찌른 날창을 틀어쥐고 적의 멱살을 거머쥐려는듯 오른 손을 허공중에 내뼏쳤다가 허우적거리더니 맥없이 옆으로 스르르 쓰러졌다. 그 포로의 시체가 끌려나가자 또 다른 포로가 끌려들어왔다. 그 포로는 끌려나가는 포로의 시체와 자기를 쏘아보는 파란 눈깔을 번갈아 보면서 천천히 사무상 앞에 다가가 섰다. 군관놈은 오른손을 머리 우로 올려 엄지와 식지를 마주쳐 딱 소리를 냈다. “OK! 저 끝장 봤지? 넌 돌아가지 않지?” “난 죽어서 시체 돼서라도 이북 땅에 가고 싶다!” “엉?!” 또 물매를 면할 수 없었다. 적들이 아무리 무력으로 강박하여도 조선인민군의 대부분 포로들은 한결같이 이북 땅에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적들은 하나하나 심사하던 것을 그만두고 한패한패씩 분류하였다. 이북으로 돌아가려는 포로들을 십자나무기둥에 비끄러매놓고 알몽뚱이에 시뻘건 쇠꼬챙이로 “반공”, “멸공”이란 글자와 태극기, 유엔기 도안을 새겼다. 뿌지직뿌지직 살이 타들어가는 소리, 비명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다. 뒤이어 적들은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청원서에 억지로 혈인을 찍게 강박하였다. 이날 오후, 전신무장한 미군 놈들이 중국인민지원군 전쟁포로들이 든 거제도 제71호 포로집중영을 겹겹이 둘러쌌다. 이어 포로집중영 장관 두드장군의 대표인 벨 상좌가 집중영대문 안에 들어섰다. “오늘, 되돌아가려는 자들을 분류해야겠다.” 지원군 포로대표가 한발 나서서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세우면서 항의하였다. “전쟁포로를 몽땅 디돌려보내는 것은 제네바공약의 규정이다. 미국은 제네바공약 제정 참가국이다. 때문에 반드시 제네바공약대로 무조건 우리 포로들을 송환해야 한다. 당신들의 이른바 ‘자원귀환’은 제네바공약에 대한 란폭한 위반행위이다.” 벨은 말문이 막혀 대문 밖으로 나갔다. 이윽하여 전신무장한 미국 병정들과 국민당 특무들이 뛰여들어와 조국으로 돌아가려는 포로들을 비수와 날창으로 찌르고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렸다. 삽시에 비명소리와 신음소리, 포로들이 반항하는 웨침소리가 울리였다. 이날 오후 72호, 86호 집중영에서만 해도 중국인민지원군의 99명의 포로들이 살해되였다. 적들의 칼에 큼직하게 살점을 뜯기운 포로가 300여명이나 되였고 중상 입은 포로는 340명, 경상 입은 포로는 천여명이나 되였다. 적들의 이런 만행에 극도로 분개한 중조 포로들은 주밀한 계획을 세우고 반항하였다. 포로들은 단식하는 한편 포로집중영철조망 안에서 시위행진하면서 포로집중영당국의 최고장관 두드가 직접 나와 포로대표와 담판하자고 웨쳤다. 1952년 5월 7일 오후 1시, 미군 두드 준장이 전신무장한 한개 소대 병사들의 호위 밑에 거제도 제76호 전쟁포로집중영 대문 앞에 나타났다. 그 자는 거만스레 대문짝 하나 열만한 거리를 두고 조선인민군 포로대표와 담판하자고 책상에 마주 앉았다. 조선인민군 포로대표는 두드 량 옆에 총을 든 적병이 딱 붙어선 것을 둘러보고 말했다. “총을 든 병사 앞에서 어떻게 담판할 수 있는가?” 두드는 모든 것을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뒤로 손을 저었다. 두 병사는 뒤로 썩 물러섰다. 두드 옆에는 시종부관 밖에 남지 않았다. 그제야 조선인민군 포로대표는 두드가 마주 앉은 사무상에 다가가 마주 앉았다. “미군이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 포로를 학대하고 되돌아가려는 포로를 억류하고 있다. 식량과 마실 물도 제때에 공급하지 않고 있다. 이는 전쟁포로의 합법적인 권익을 침범하는 비법적 행위이다. 이후에 다시는 이런 폭행이 발생하지 않도록 담보해야 한다.” 두드는 듣는둥마는둥하면서 손칼을 꺼내 연필을 깎다가고 손톱깎개로 손톱을 딱딱 깎았다. 담판은 두시간이나 하였지만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였다. 이때 갑자기 4명의 조선인민군 포로가 대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한 억센 포로가 독수리 병아리 덮치듯 덮쳐나가 집제 같은 손으로 아무런 준비도 없는 두드의 손을 꽉 틀어쥐였다. 다른 한 포로는 두드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다른 두 포로는 두드의 두 팔을 건뜻 들어 포로집중영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뚱뚱한 두드는 묶이운 돼지처럼 두 다리를 버둥거리면서 돼지 멱 따는 소리를 질렀다. 적병들은 총을 쏠 수도 없어 발만 구르며 왔다갔다 맴돌아쳤다. 포로들은 포로집중영의 대문을 꽉 닫고 쇠빗장을 찔러놓았다. 실로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돌연습격이였다. 이 찰나에 두드 장군은 평소의 그 거만하던 위풍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질겁한 나머지 낯이 창백해지고 바지에 오줌까지 질질 쌌다. 이때 포로들은 진작 준비해두었던 길이 7메터, 너비 2메터 되는, 영어로 된 프랑카드를 포로집중영 대문 우에 내걸었다. 그 프랑카드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우리는 전쟁포로집중영 장관 두드 준장을 생포하였다. 그의 생명안전을 꼭 담보한다. 우리는 그와 정당한 담판을 끝낸 다음 꼭 안전하게 돌려보내겠다. 엄중한 무장행동으로 하여 생기는 일체 후과는 몽땅 너희들이 책임져야 한다!” 포로대표들은 두드에게 엄정히 경고하였다. “네가 놓여나갈 수 있는가 하는 건 네 태도에 달렸다. 전쟁포로들의 정당한 요구를 재빨리 들으며 거제도의 각 집중영에서 대표를 보내 담판에 참가할 수 있게 해라.” 두드는 연신 “yes”, “yes(예, 예.)” 하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털이 부시시한 손으로 송수화기를 들더니 집중영당국 사무실에 76호 집중영의 포로대표 두 사람을 데리고 각 집중영에 가서 포로대표들이 담판에 참가하게 통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날 밤, 남조선 경상남도 남해바다의 외로운 섬인 거제도 17개 집중영의 중조 포로대표 43명 (그중 녀포로대표 3명)이 76호 전쟁포로집중영에 모여왔다. 그들은 즉시 중조 포로위원회 창립 대회를 열었다. 대회장 정면에는 중조 두 나라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포로들이 자체로 그린 중화인민공확국 모택동 주석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 원수의 채색초상화가 모셔져 있었다. 둘레 벽에는 오색령롱한 종이꽃이 달려 있었다. 두드는 끌리워와 이 대회에 억지로 참가하였다. 그는 먼저 주석대에 가서 흰 별이 박힌 장군모자를 벗고 차렷자세를 취하더니 중조 국기와 수령의 초상화에 경례하고 또 전체 포로들에게 경례한 후 공손히 지정된 자리에 가서 앉았다. 대회에서는 대표들의 협상을 거쳐 전쟁포로위원회의 정부위원장을 선출하였다. 조선인민군 포로대표이며 원 조선인민군 사단 참모장 리XX가 위원장으로, 중국인민지원군 포로대표이며 원 중국인민지원군 모 영 교도원 손진관이 부위원장으로 당선되였다. 두두가 생포된 소식이 각 집중영에 인차 퍼지자 중조 포로들은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그들은 각기 부동한 방법으로 자기 담판대표들을 성원하였다. 602호 집중영의 지원군 포로들은 밤도와 돛천으로 길이 8메터, 너비1메터 되는 프랑카드를 만들어 이튿날 이른새벽에 철조망 어귀에 걸어놓았다. 기타 집중영에서도 중조 국기를 내걸고 수천수만의 포로들이 철조망 옆에 줄을 서서 자작악기로 국가와 군가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불러 자기 담판대표들을 성원하였다. 이때 미군은 20여대의 땅크(탱크)와 1천여명 보병을 동원하여 76호 집중영을 겹겹이 포위하였다. 두드와 직무를 대신할 콜쓴 준장은 고성기를 통해 집중영에 대고 으르대였다. “10분 내에 두드 장군을 내놧! 그러잖으면 무력으로 구해낼테야!” 중조 포로대표는 두드에게 엄숙하게 알려줬다. “만약 콜쓴이 무력으로 평화적 담판을 파괴한다면 우리는 네 생명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두드는 질겁하여 인차 떨리는 손에 송수화기를 들었다. “콜쓴 장군, 만약 무력으로 진압하면 내 생명이 위험해. 절대 경거망동하지 말게나.” 담판을 거쳐 두드와 콜쓴은 부득불 포로대표들이 제기한 네가지 요구에 서명하였다.   첫째, 전쟁포로에 대한 일체 폭행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 둘째, 비법적으로 전쟁포로를 억류하는 이른바 “자원적인 귀환”이라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 셋째, 강박적인 선별을 그만둬야 한다. 넷째, 중조포로위원회를 승인해야 한다. 두드와 콜쓴이 서명한 이 네가지 요구는 정식문건으로 작성되였다. 10일 밤 9시 남짓하여 78시간이나 갇혔던 두드 장군은 석방되였다. 포로대표의 요구에 따라 집중영을 포위하였던 땅크가 뒤로 물러가고 콜슨의 대표이며 미군 제49헌병대대 대대장 래윈 중좌가 두드를 태울 찌프를 몰고 와서 조문과 영문으로 된 “접수증”을 내놓고 두드 장군을 데려가려고 하였다. 두드는 떠나가기 전에 중조포로대표들이 미리 갖춰놓은 필을 들어 허연 종이장에 “난 꼭 있는 힘껏 협의를 준수하고 이 협의를 실현하기 위해 힘쓰겠습니다.”라고 써서 서면으로 태도표시를 하였다. 그는 떠나면서도 뚱뚱한 몸뚱이를 연신 굽신거렸다. 그러나 두드가 석방되자 미군은 협의서에 서명한 글씨 먹이 채 마르기도 전에 협의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새로 부임된 유엔군 총사령 클라크 장군의 명령에 따라 콜쓴의 자리를 차지한 보트나 장군은 우리 중조측 포로들에 대한 야수적인 보복을 감행하였다. 1952년 5월 23일 거제도의 6, 223명 조선인민군 포로들은 “미국 지옥에서 죽어가는 우리 포로들을 구해달라.”는 련명호소서를 남로당(남조선로동당)의 령도하에 있는 인민유격대를 통해 북반부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 보냈다. 하여 미제의 진면모는 온 천하에 발가졌다. 바로 이런 정세에 비춰 정전담판 미군측 신임수석대표 해리슨은 유엔군 총사령 클라크 장군의 명령에 좇아 집중영당국의 보복적인 “류혈만행”에 배합하고저 전쟁포로송환문제를 천방백계로 질질 끌었다. 또 중조측의 방안은 고려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급기야 회의를 중지시켰다. 10월 8일 미국측은 무기한으로 정전담판을 그만둔다고 선포하고 “비행기, 대포더러 발언하게 하여” 담판에서 얻지 못한 것을 전쟁터에서 얻으려고 달려들었다. 적들은 팸프리트 장군의 직접적인 지휘하에 상감령지구에 대한 미친듯한 추기공세를 들이댔다. 그러나 그들은 43일 동안에 우리 지원군의 금성철벽의 진지를 점령하지 못하였을뿐만아니라 25,000여개 주검을 남기고 말았다. 전쟁터에서 코밥을 먹은 적들은 또 담판석상에서 돌아왔다. 1953년 4월 6일, 여섯달이나 중지되였던 담판을 판문점에서 다시 열게 되였다. 5월 25일, 미군측 수석대표 해리슨은 중조측에세 제기한 주요원칙을 다 접수하였다. 그날 괴뢰군대표 최덕신 장군은 말로는 문산에서 서울에 전화를 치는 사이에 대표단의 직승비행기(헬기)가 떠났기에 담판에 참가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기실 정전담판에 불복하고 계속 북진해 무력으로 조선반도를 통일하려는 리승만괴뢰군정권의 명령에 따라 정전담판에 참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 리승만괴뢰군은 쌍방에서 곧 협희를 달성하게 도리 전쟁포로문제에 대한 토론에도 참가할 생각도 아예 없었다. 1953년 6월 8일, 전 세계 인민들이 관심하고 주시하여온, 미국측의 저애로 하여 1년 6개월이나 끌어온 전쟁포로송환에 관한 협의를 달성하였다. 담판기간에 1년 동안이나 휴식전문가로 된 해리슨 장군은 끝내 포로송환에 관한 중조측의 공정합리한 제의안에 자기 이름을 써넣지 않으면 안되였다.                    비밀부호        리해식이 정전대표단 정치부 선전교육과에서 사업한지 얼마 안되는 7월 초의 어느날이였다. 해식은 지원군 병상자포로들이 가져온 자료를 정리하고저 병상자포로들이 든 집을 찾아갔다. 그는 자리에 앉기 바쁘게 병상자포로들에게 인사하고 찾아온 사연을 말하였다. 한창 둥그런 조선식밥상 우에 널려 있는 종이쪼각을 이어놓던 한 다리 잃은 포로는 해식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건 우리가 생명을 무릅쓰고 가져온 비밀부호입니다. 여기엔 우리 포로들이 적들과 싸운 사적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자 옆에 앉은 한쪽 팔을 잃은 포로가 구체적으로 말하였다. “이 종이쪼각에는 세계를 들썽한 ‘두드포로사건’과 ‘제주도 상공에 오성붉은기가 휘날리게 한 사건’도 적혀 있습니다.” 뒤이어 그들은 자기들이 북반부로 돌아올 때의 경과부터 이야기하였다. 제주도 제8집중영에서 미군 신문을 통해 포로송환문제가 거의 합의를 달성하게 되여간다는 것을 알게 된 그들은 조국으로 돌아갈 희망으로 차넘쳤다. 하여 그들은 집중영에서의 투쟁사적을 비밀부호로 가만히 담배갑종이에 써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비밀부호를 암기해두었다. 이 비밀부호로 된 숱한 종이쪼각을 집중영을 떠나게 되는 여러 사람이 나눠가지고 가게 되였다. 어떤 포로는 그 종이쪼각을 꾸겨 옷섶에 넣고 기워맸고 어떤 포로는 모자 안이나 신 안에 넣고 기워맸다. 어떤 포로들은 종이쪼각을 꼬깃꼬깃 꾸기여 다른 종이에 싸서 홍문에 밀어넣고 떠날 차비를 하였다. 1953년 4월 11일, 판문점정전담판대표단 쌍방련락관회의에서 중조측 수석련락관 리상조 소장과 미군측 수석련락관 딴니르 소장은 각각 병상자포로를 송환할데 관한 협정에 서명하였다. 그리하여 4월 중순에 되돌가게 된 제주도 제8포로수용소의 700여명 지원군 병상자포로들은 비밀부호종이쪼각을 지닌 채 다른 수천명 포로들과 함께 부산전쟁포로수용소에 압송되여갔다. 그들은 거기에 있던 포로들과 함께 귀국선서대회를 가졌으며 부산전쟁범죄자감옥에 갇힌 지원군 포로, 원 모 사단 부정위 오성덕을 석방하여 귀국시키며 귀국하는 부상자포로들 귀국길에서의 안전을 담보해줄 것을 미군집중영당국에 제기하였다. 그러나 미군중영당국에서 답복하지 않자 사흘이나 단식투쟁을 벌렸다. 적들은 선전수요로부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포로들에게 치솔과 비누 같은 일용품을 나눠주고 미군식군복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50명을 한조씩 무어 여섯면이 꽉 막힌 철제기차바곤에 앉혔다. 도중에 말할 권리도 주지 않았으며 음식도 음료수도 주지 않았다. 적들은 문산에서 포로들을 자동차에 갈아앉히자 판문점을 향해 쏜살같이 달렸다. 그들이 지나가는 길마다 경계가 아주 삼엄하였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봄바람이 비단결처럼 얼굴을 부드럽게 만지면서 산들산들 불어왔다. 판문점 전쟁포로송환구역에는 쌍방의 숱한 위생차와 트럭이 드나들었다. 차문을 열자 어깨를 덮는 머리카락, 맥없이 드인 눈, 창백하고 피기없는 얼굴을 한 포로들이 람루한 옷을 걸친 채 헝겊막대기처럼 휘청거리면서 우리 측 사업일군들의 부축을 받아 차에서 내렸다. 그 포로들은 차에서 내리자 동지들의 품 속에 얼굴을 파묻고 어린애처럼 처량하게 엉엉 대성통곡쳤다. 그것은 포로영에서 학대를 당할대로 당한 포로들의 설음이였다. 뒤이어 내리는 포로들은 거개가 다리 없거나 팔이 하나 없는 불구자들이였다. 어떤 포로는 두 다리가 다 없어 우리 사업일군들이 업어서 내리웠다. 마지막으로 내린 여섯명의 녀성포로는 사지가 다 끊어져 없고 맨 몸뚱이만 남아 있어 담가에 실어 내리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내리우면서 볼라니 몸의 길이가 70 내지 80센치메터 밖에 안되였다. 사업일군들은 그 비참한 정경을 보고 눈물을 금치 못하였다. 야수 같은 미군 병정들은 이런 녀성포로들을 압송해오면서도 야욕을 채우려고 달려들었던 것이다. 사지가 없는 녀성포로들은 격분해 소리칠뿐 반항할 수 없어 그저 당하기만 하였다. 하여 한 녀성포로는 정신병에 걸려 20여명 동료들의 간호 밑에 겨우 판문점에까지 올 수 있었다. 그녀는 북반부에 돌아왔지만 정신상 육체상 다시는 이전의 처녀로 돌아갈 수 없게 되였다. 남성포로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적들이 내준 람루한 옷을 벗어던지고 빤쯔(팬티)만 입고 포로송환선을 넘어왔고 어떤 남성포로들은 아예 미군이 준 실 한오리 걸치지 않고 사업일군들의 부축을 받아 절뚝거리면서 건너왔다. 어떤 포로들은 적들이 길에서 준 치솔과 과자봉지 같은 것을 따라온 적들에게 쥐여뿌렸다. “개놈들, 이래구서 잘했느라고 나발불려구?  언제 한번 이런 걸 줬느냐? 옜다, 가지고 가라!” 쟁그랑! 댕그랑! 포로들이 줴뿌리는 고뿌 속에서 튕겨나온 것은 마른 무우짠지와 곰팽이 허옇게 낀 닦은 콩이였다. 어떤 포로들은 변질한 음식과 함께 미제를 풍자하는 쪽지를 차 안에 남겨두었다. “이런 걸 사람 보고 먹으라구? 미국 경제가 불경기라는 거 알 수 있지. 우린 이 음식을 가련한 코큰이들한테 돌려준다!” 8일 동안 교환을 거쳐 우리 측 전쟁포로 6,670명이 돌아왔다. 그중 지원군 포로가 1,030명이였다. 그때 부상당한 포로병들이 벗어던진 수천벌의 헌 옷과 수천컬레 신은 맑디맑은 강물 밑바닥의 조약돌이 들여다보이던 강물에, 포로송환구역 가까이에 있던 사천하에 버렸다. 그강물은 오래동안 흐려 있었다. 부상당한 포로는 격분해 말했다. “그때 우리 포로들은 누구도 치욕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옷이고 뭐고 하나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비밀부호종이쪼각을 가진 동무들이 옷을 벗어던지지 않자 동료들은 마구 욕을 퍼부었습니다. 실로 참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야전병원에 온 뒤 람루한 옷섶이거나 모자 혼솔에서 비밀부호종이쪼각이나 종이쪽지를 꺼내서야 동료들은 오해를 풀었습니다.” “예- 그랬군요.” 해식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밥상 우에 놓인 종이쪼각을 무심히 볼 수 없었다. 거기에는 우리 지원군 포로들이 적 포로집중영에서 피와 목숨으로 싸운 사적이 적혀 있었으니 말이다. 그때 리해식 등 사업일군들은 포로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들여서야 비밀부호로 된 종이쪼각을 맞추고 자료를 정리해냈다. 몇십년이 지난 오늘 그때 비밀부호 종이쪼각을 가지고 돌아온, 부상포로들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들이 가져온 자료중에서 “10월의 붉은 노래”의 매력만은 아직도 력사에 길이 남아 있다. 1952년 5월, 판문점 담판석상에서 미군측에서는 포로송환문제를 질질 끌어댔다. 미군 포로집중영당국에서는 중조 포로들을 더욱 잔혹하게 박해하고 학대하였다. 뒤이어 그해 7월 초에 적들은 귀국하려는 7천여명 지원군 포로들을 제주도 포로집중영에 옮겨다가 가두었다. 이에 9월 25일, 지원군 포로지하령도조직인 “공산주의단결회”에서는 귀국하려는 지원군 포로들이 갇힌 제8포로수용소의 각 집중영에 국기게양식을 하라고 지시하였다. 만약 미군당국에서 국기게양식을 간섭하게 되면 일체 대가를 아끼지 말고 국기를 보호하라고 거듭 강조해 지시하였다. 이 지시에 따라 각 집중영에서는 적들의 눈을 피해 가만히 여러가지 준비사업을 다그쳤다. 그들은 국기를 만들 때 빨간 물감이 없으니 주먹으로 자기 코를 탁 쳐서 코피를 터지우거나 칼로 자기 팔을 베여 흐르는 피를 받아 적삼과 흰천에 빨갛게 물들였다. 그리고 국기를 올릴 때 쓸 바줄을 꼬고 천막을 칠 때 쓰는 나무막대기 몇개를 이어 넉장 길이나 되는 기대를 만들고 또 적들 몰래 집중영 부근에 기대를 세울 구뎅이를 석자 깊이로파놓았다. 국경절 전야에 각 집중영의 전쟁포로들은 선서대회를 열고 돌격대, 결사대, 예비대와 구급대를 무었다. 어떤 포로들은 담배갑이나 파지에 조국에 대한 사랑과 충성심, 그리고 바야흐로 벌어질 생사박투를 맞이할 결의가 담긴 결심서, 혈서, 청원서를 “공산주의단결회”에 보냈다. 어떤 포로들은 종이쪼각에 이렇게 썼다. “나는 죽음으로 당과 모주석의 은정에 보답하며 적들에게 우리 애국의 권리를 박탈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겠다!” “우리의 끓는 피로 국기를 보호하겠다.” 그들은 가정주소를 서로 남기고 조국의 오성붉은기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칠 것을 맹세하였다. 국경절이 돌아왔다. 맑게 개인 제주도의 푸른 하늘에 흰구름 몇쪼각이 둥둥 더서 해발 1,900여메터나 되는 한나산 허리에 걸렸다. 이른 아침에 서늘하고 습기찬 바다바람이 제주도집중영 철조망을 쓸며 포로집중영에 불어들었다. 해 뜨기 전에 벌써 일어난 포로들은 처량한 섬에서 조국이 있는 쪽 바다 저 멀리를 내다보았다. “아, 지금 쯤 조국의 수도 북경과 고향 그 어데서나 국경절맞이로 들끓을 것이다!” 이국의 외로운 섬에서 초롱 속에 갇힌 새로 된 그들의 마음은 쓸쓸하기 그지 없었다. 그들은 누구도 아침 숟가락을 들지 못하였다. 아침 7시, “공산주의단결회”에서 통일적으로 국기를 올리라고 명령하였다. 감격적인 시각이 닥쳐왔다. 각 집중영의 전쟁포로들은 정연하게 줄을 서서 국기게양식을 거행하였다. 포로들이 자체로 만든 악기로 연주하는 장엄한 국가 속에 피로물ㄹ든 10폭의 오성붉은기가 바다바람에 나붓기면서 이국 땅 제주도 푸른 상공에 서서히 게양되여 나붓기였다. “차렷!”, “경례!” 구령소리가 나자 질서 정연히 줄지어 선 포로들은 푸른 하늘에 나붓기는 국기에 거수경례를 드렸다. 이국 땅에서 휘날리는 오성붉은기를 보자 전쟁포로들의 마음은 설레였고 눈물이 두 볼을 적시면서 하염없이 흘렀다. 조국에 돌아간듯한 느낌으로 가슴을 들먹였다. 휘날리는 붉은기 아래에서 포로들은 조국의 “국가”, “동방홍”, “조국을 노래하네”와 같은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조국 만세!” “모주석 만세!” 여기저기서 구호소리가 울렸다. 노래소리와 구호소리가 오래도록 메아리쳤다. 제8포로수용소의 10개 포로영에서 10폭의 오성붉은기가 높이 오르자 미군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놈들은 당황한 나머지 11대의 땅크(탱크)와 전신무장한 1개 영의 병력으로 포로수용소를 물샘틈없이 포위하였다. 분위기는 대뜸 팽팽해졌다. 미군 적지휘관은 고성기를 통해 위협하였다. “5분 내 기발을 내리우라! 만약 내리지 않으면 행동할테다!” 포로들은 1분이라도 기발을 더 오래 걸면 그만큼 승리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누구도 적들의 위협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 못 박힌듯이 까딱 움직이지 않고 질서 정연하게 줄 지어 선 채 휘날리는 붉은기를 눈물을 머금고 바라보았다. 5분이 지났다! 또 5분이 지났다. 그러나 붉은기는 의연히 푸르는 하늘에서 휘날리였다. 1개 련의 적들이 철조망 대문을 열고 총칼을 번쩍이면서 7호 포로집중영에 덮쳐들었다. 미군 제8군 정보초의 개다리상위 부르크스가 권총을 뽑아들고 꽥꽥 고함치며 앞장서 뛰여왔다. “기발을 내리웟!” “계속 기발을 안 내릴텐가?! 한 놈도 남기잖고 다 죽여치울테다!” 포로들은 치미는 분노를 누를길없어 일제히 목청껏 웨쳤다. “우리는 죽음을 겁나지 않는다!” “네놈들의 반사발밥을 먹기도 싫다!” “개다리상위놈아, 오기만 해라. 네놈의 대가리를 박산낼테다!” 포로들의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길에 질겁한 적들은 포로들을 향하여 최루탄을 쏘아댔다. 포로들은 코를 싸쥐고 쿨럭거리면서도 누구도 하나 물러서지 않았다. 뒤이어 상관의 명령을 받은 적들이 철조망 안으로 우르르 쓸어들어왔다. 그 놈들은 오성붉은기를 향해 미친듯이 덮쳐들었다. 돌격대와 결사대의 몇십명 포로들은 명령소리와 함께 돌멩이를 뿌려 적들에게 반격을 가하면서 놈들을 막아나섰다. 적들은 망루와 장갑차, 땅크(탱크)에서 중기관총을 쏘았다. 뚜르륵, 뚜르륵… 수많은 포로들이 피못 속에 쓰러졌다. 몇몇 포로들은 비발치는 총탄을 무릅쓰고 재빨리 오성붉은기를 내리워 휘발유를 치고 불태워버렸다. 죽더라도 조국의 국기가 적들의 손에 들어가게 할 수 없었다. 제8포로수용소의 7호포로집중영의 “공산주의단결회”의 기대에서 기발이 내린 것을 보자 다른 아홉개 집중영에서도 기발을 내리웠다. 포로들은 자기 생명으로 적들과 싸우면서 조국의 영광스러운 국경 3돐을 경축하였다. 이날 국기를 보호하는 반시간 동안의 투쟁에서 고용, 마여룡, 진건화 등 50여명 포로들이 영광스럽게 희생되였고 130여명이 부상당하였다. 포로들은 모두 흰옷을 입고 흰꽃을 달고 렬사들의 령위에 200여개 하얀 꽃다발을 올리고 성대한 추도대회를 가졌다. 추도대회가 끝난 뒤 포로들은 줄을 서서 렬사들의 령위를 들고 경비가 삼엄한 집중영 철조망 안을 세바퀴 돌면서 미군 포로영당국에 항의하였다. 그때 오성붉은기를 보호하기 위해 영광스럽게 희생된 제8포로수용소의 전우들을 기념하려고 포로들은 가요 “10월의 붉은기 노래”를 지어 불렀다. 제주도에서 판문점에로 돌아올 때도 그들은 줄곧 이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또 불렀다.                                 
199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5) 댓글:  조회:1134  추천:1  2018-11-27
                 조국의 위문품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는 어느날, 비서과 과장 리홍천이 리해식을 찾았다. “리동무, 조국 인민들이 보낸 위문품을 몇백리 떨어진 후방역에까지 실어왔다오. 이 사업을 맡은 려지전이 일보러 귀국하고 없소. 리동무가 몇몇 전사들을 령솔해 자동차 네대에 실어오오.” “예.” 리해식은 처음 이런 무거운 임무를 맡았기에 저으기 속이 두근거렸다. 리홍천 과장은 긴장한 빛이 흐르는 해식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거듭 당부하였다. “적기가 우리 후방공급도로를 미친듯이 폭격봉쇄하고 있소. 꼭 공습에 주의를 돌려서 위문품을 안전하게 가져오오.” “예, 꼭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해식은 무겁게 대답하면서 두발뒤꿈치를 척 붙이며 거수군례를 척 드렸다. 이윽하여 리해식은 네대의 자동차에 8명 전사들을 이끌고 밤도와 길을 떠났다. 그는 제일 앞의 자동차 운전실 조수석에 앉았다. 자동차 대오는 동북 쪽으로 눈덮인 산길을 누비면서 달렸다. 눈덮인 산들이 차창 밖으로 하여 뒤로 피끗피끗 지나갔다. 가는 길에서는 적기공습을 받지 않아 밤중에 순조롭게 목적지 역 부근에 이를 수 있었다. 창고 둘레에는 철조망을 늘였는데 보초병들이 총을 들고 왔다갔다하는 것이 자동차 헤드라이트불빛에 보였다. 해식은 자동차 운전실에서 뛰여내렸다. 창고 책임자가 다가와 해식이 건넨 소개신을 받아 손전지불로 비춰보더니 창고로 통한 대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자동차에 위문품을 실을 때였다. 해식이 위문품 마대아구리를 풀어보니 안에 숱한 작은 위문품주머니가 가득 들어 있었다. 손으로 만져보니 사탕이랑 비누랑 필기장이랑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네대의 자동차에 위문품을 꽉 박아 싣고 적재함마다 방수포를 씌우고 굵다란 바줄로 꽉 조여동였다. 이윽고 창고대문을 나와 밤눈길을 누비며 서남 쪽으로 달렸다. 리해식은 제일 앞 자동차 운전실 조수석에 앉아 차창 밖의 밤하늘을 주시하였다. 띠띠- 자동차 경적소리가 나자 앞을 살펴보니 조선 백성들이 소수레를 몰고 지나가는 것이 차창 밖으로 피끗피끗 보였다. (운전수들은 다 재간 있어 자동차 운전에는 문제 없을 거야. 적기 공습만 받지 않으면 되겠는데…) 해식은 차창유리를 다 내리우고 밤하늘과 뒤로 물러가는 눈덮인 고산준령을 살폈다. 차대는 어느덧 적기가 자주 폭격하는 따발령길에 들어섰다. 자동차들이 따발령길마루에 올라 내리막길을 달릴 때였다. 땅! 땅! 땅! 갑자기 먼 곳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산꼭대기와 산 아래에서도 총소리가 울렸다. 아군 초소에서 보내는 방공신호였다. “헤드라이트를 끄시오!” 해식의 명령에 따라 해드라이트불빛은 몽땅 꺼졌다. 자동차가 멈춰선 곳은 양지쪽 비탈길이였다. 대낮 해볕에 눈이 다 녹아버려 미끄러운데다가 불빛이 없어 더 달리기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굽인돌이 내리막길이여서 자칫하면 차가 골짜기에 처박힐 위험도 있었다. 이때 적기가 그들 머리 우에서 웅웅거리면서 맴돌았다. 분명 그들의 차대를 발견한 것이였다. 해식이 뒤의 차를 돌아보았다. 운전실에서 한사람씩 뛰여내려 흰천이나 흰수건을 흔들면서 차의 길잡이를 하였다. 운전수들은 그 흰천이나 흰수건을 보면서 차를 천천히 앞으로 내몰았다. 해식도 그들처럼 운전실에서 뛰여내려 허리춤에서 흰 세수수건을 쑥 뽑아쥐고 제일 앞차의 차길을 인도하였다. 찬바람이 윙- 윙- 휘몰아쳐 뼈 속까지 스며들었다. 그들의 차대가 금방 멈춰섰던 곳에서 한백여메터 떠나 내리막으로 내려왔을 때였다. 꽈르릉, 꽈르릉, 꽝, 꽝! 차대가 멈춰섰던 자리에 숱한 폭탄이 작렬하였다. 그 굉음은 귀청을 쨀듯하였다. “허참, 다행이로군.” “하마트면 폭탄에 맞아 콩가루가 될 번했군.” 차길을 인도하던 전사들이 떠들썩했다. 전사들과 운전수들은 자주 자동차로 군수품이랑 싣고 이 곳을 드나들었기에 아주 능란하게 적기의 공습을 대처했던 것이다. 이때 적기가 그들의 상공에 조명탄 두개를 떨구었다. 삽시에 온 산발이 달밤보다도 더 환해졌다. “쳇, 우릴 살려주는군. 동무들, 고속도로 따발령을 벗어납시다!” “옛!” 해식은 뒤에 선 차들에 소리치고 운전실에 올랐다. 운전수들은 헤드라이트를 끈 채 조명탄의 환한 불빛을 빌어 쏜살같이 달렸다. 순식간에 산비탈 굽이진 내리막따발길을 벗어났다. 적기는 저 뒤 멀리 따발령 상공에 떨어져 웅웅거렸다. 적기의 폭격봉새선을 벗어나자 해식은 안도의 숨을 후- 내쉬였다. 그들은 밤낮 적기의 폭격봉쇄선을 뚫고 달려 마침내 사단 전연진지에까지 이르렀다. 리과장은 해식의 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임무를 잘 완수했소. 수고 많이 했소.” 그때 해식은 그저 뒤더수기만 긁적거렸다. 해식은 인차 위문품을 각 퇀에 나눠주었다. 위문품을 받아안은 전호 속의 전우들은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어쩔줄 몰라하면서 더욱 잘 싸우려고 굳게 다짐하였다. 그 정경을 바라보는 해식의 마음은 자그마한 일이라도 한 자부심으로 벅차기만 하였다.                      피로 맺어진 친선        북한강 동안의 산세가 가파로운 어음산고지, 문등도로로부터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상심령고지”에 이르기까지 산에 산마다, 들에 들마다 그 어디에나 중조 두 나라 형제부대에서 어깨겯고 싸운 친선의 노래와 이야기가 깃들지 않은 곳이 없다.        일찍 1951년 가을, 지원군 모 부대에서는 울긋불긋 단퐁이 든 산발을 타고 넘어 조선인민군 모군이 지키던 문등도로연선의 고지를 물려받으러 진군하고 있었다. 그런데 적들은 금성 남쪽에 대한 공세에 배합하려고 아군이 진지를 넘겨받기 이틀 전에 조선인민군 모 군단 진지에 미친듯이 덮쳐들었다.       적들의 밀집포격에 진지는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적지 않은 진지는 개미떼처럼 갑자기 덮쳐드는 적들에게 점령당하였다. 인민군 장병들도 완강하게 저격하다가 수많이 피못 속에 쓰러졌다. 심지어 조선인민군의 한 련대는 에돌아 포위해 조여드는 적들로 하여 아슬아슬한 시각에 이르렀다. 이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자 지원군 모 퇀에서는 명령에 따라 앞당겨 전호 속에 뛰여들어 조선인민군 전사들과 어깨겯고 적들과 백병전을 벌렸다. 지원군 한개 패의 전사들은 직접 조선인민군 한 대대장의 지휘를 받으면서 싸웠다. 이 패의 8반 전사들은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적들과 육박전을 벌리다가 몽땅 장렬히 희생되였다. 부패장 리홍로는 진지에 혼자 남아 적들의 세차례 미친듯한 진공을 물리치고 80여명의 적을 진지 앞에 쓸어눕혔다. 이 패의 영용한 저격으로 하여 조선인민군 모 련대부 기관은 안전하게 앞당겨 후방에 전이하게 되였다. 조선인민군 모 군단 군단장은 이들을 높이 칭찬하면서 진지를 넘겨줄 때 이 지원군부대에 한폭의 축기를 기념으로 드렸다. 지원군 모부가 문등도로연선의 진지를 넘겨받아 지킬 때였다. 하루는 적들의 땅크(탱크) 40대나 무리를 지어 지심을 울리며 문등도로를 따라 기세사납게 덮쳐왔다. 그러나 땅크를 까부신 경험이 적은 지원군 모 퇀의 장병들은 5킬로메터 남짓이 쳐들어온 적 땅크를 노려볼뿐 속수무책이였다. 적들의 땅크는 각일각 우리 지원군 모 퇀부를 위협하며 박근하여왔다. 이 아슬아슬한 시각에 문등도로 동쪽에 있던 조선인민군부대에서 류탄포를 쏘았다. 꽝!꽝! 굉음과 함께 적 땅크 부근에서 버섯구름이 치솟아올랐다. 제일 앞에서 덮쳐오던 4대의 땅크가 자욱한 초연 속에서 무한궤도가 벗겨져 옴짝달싹하지 못하였다. 질겁한 적 땅크들은 그 자리에서 맴돌다가 대가리를 돌려 도망쳤다. 지원군 퇀부의 지휘원과 전사들은 식은땀을 그러쥐였던 손을 스르르 풀면서 한숨을 후- 내쉬였다. 이윽고 조선인민군 부대에서는 7명으로 조직된 조선인민군 반땅크소조를 이 퇀에 파견하였다. 조선인민군 반땅크소조 전우들은 지원군 전호에 건거왔다. “우린 지원군 수장의 지휘에 따라 적 땅크를 까부시러 왔습니다.” “환영하오!” 퇀 수장은 그들의 손을 굳게 잡았다. 조선인민군 반땅크소조의 전사들은 지원군 전사들에게 금방 땅크를 까부신 경험교훈을 총화하면서 땅크격파기술을 차근차근 가르쳐주었다. 그들은 이렇게 석달동안이나 지원군 전사들과 함께 한 전호 속에서 적 땅크와 싸웠다. 이리하여 수많은 반땅크 용사들을 육성해냈다. 그들은 적들의 이른바 “땅크개척전”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하고 진지가 공고해진 뒤에야 조선인민군 진지로 건너갔다. 떠나갈 때 두 나라 형제 전우들은 서로 붙안고 눈물로 두 볼을 적시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실로 피로 맺어진 중조 두 나라 친선의 정이 문등도로연선의 전호마다 산봉우리마다에 차고 넘쳤다. 1953년, 조선인민군 “2.8”건군절 전야에 사단 정치부 비서과 리홍천의 인솔하에 특등공신 팽복례 등 몇몇 영웅모범대표들이 조선인민군 친선사단을 방문하러 갔다. 그때 리해식도 번역원으로 함께 갔다. 그들 일행은 찌프에 앉아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헤가르면서 눈덮인 산길로 달렸다. 그들이 눈덮인 한 높은 산 기슭의 수림 속에 자리잡은 조선인민군 사단 지휘부에 이르렀을 때였다. 미리 길 옆에서 기다리던 친선사단의 정치위원과 부사단장이 정치부의 숱한 동지들과 함께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은채 그들한테로 몰려왔다. “환영합니다! 전우들!” “오느라고 수고했습니다.” 그들은 악수를 한다, 포옹한다 하면서 기뻐 어쩔줄 몰라하였다. 산기슭에서 열린 영웅모범좌담회의장에는 숱한 조선인민군 장병들이 모여앉아 있었다. 리홍천 과장과 팽복례 등 영웅모범대표들과 리해식 등은 조선인민군 사단부 수장들과 함께 주석대에 올랐다. 우뢰 같은 박수소리가 눈덮인 산기슭 대회장에 울려퍼졌다. 조선인민군 친선사단 수장의 환영사에 뒤이어 지원군 특등공신 팽복례가 주석단 발언석에 나갔다. 회의장에는 또 우뢰 같은 박수갈채가 터졌다. 팽복례는 숨을 한껏 들이그어 들먹이는 가슴을 눅잦히고나서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자기 전투사적을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저는 1949년에 서안 남쪽의 소오대산전투에서 입대한 전사입니다. 지금 중국인민지원군 모 퇀 제2련 부지도원입이다. 저는 오늘 제5차 전역때 고대산진지를 어떻게 지켜 싸웠는가를 회보하겠습니다.” 회의장은 물뿌린듯 조용하였고 조선인민군 전우들은 팽복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고대산전투는 우리 사단이 출국한 후의 첫 전투였다. 고대산은 높이가 1,100여메터나 되였다. 서쪽으로 련천에 잇닿았고 북으로는 철원 평원을 내다볼 수 있어 사방 몇십킬로메터를 통제할 수있는 제일 높은 고지였다. 제5차 전역때에는 우리 군이 차지한 중요한 군사요새였다. 적들은 토이기려단의 다섯개 영을 긁어모아가지고 영국의 한 황가땅크영의 엄호하에 이 고지를 돌파구로 삼아 우리 지원군의 전진을 가로막아보려고 망녕되게 시도하였다. 1051년 4월 21일 오후, 2련에서는 고대산을 지킬 전투임무를 맡고 떠나게 되였다. 지도원은 전 련의 동지들에게 힘차게 전투동원을 하였다. “동무들, 이번 전투는 우리 련이 조선에 온 후 첫 전투입니다. 우리는 꼭 나라와 군의 위력을 떨쳐야 합니다. 그 어떤 대가를 내서라도 고대산진지를 지켜 주력부대가 승리적으로 출격하게 해야 합니다!” 전 련 전사들은 우뢰와 같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견결히 나라와 모주석을 위해 우리 군의 영광을 떨치겠습니다!” 그날 밤으로 2련에서는 적들의 미친듯한 폭격과 포격을 무릅쓰고 아아한 고대산에 올라갔다. 팽복례는 한개 전투소조를 데리고 고대산의 맨 앞에 있는 전연진지에 배치되였다. 그들은 인차 밤도와 괭이와 공병삽으로 전호를 팠다. 타는듯한 침묵 속에서 새날이 밝아왔다. 그들은 전호 속에 엎디여 총을 겨누고 산 아래를 노려보았다. 오전 9시 쯤 되였을 때였다. 쌩- 쌩- 포탄이 날아와 진지에서 련이어 작렬하였다. 꽝! 꽈르릉 꽝! 꽝! 뒤이어 남쪽 하늘에서 적기가 편대를 지어 날아왔다. 적기는 기수를 낮추더니 산마루 진지를 스칠듯이 날아지나가면서 기총소사를 하고 소이탄을 내려뜨렸다. 적기는 쉼없이 겨끔내기로 폭격해댔다. 진지는 삽시에 불바다로 되였다. 파편과 흙모래, 돌과 끊어진 나무가지들이 사처로 날아났다. 전호 속에 엎딘 그들의 온몸은 흙모래에 뒤덮였다. 팽복례는 머리 우의 흙먼지를 도리머리질해 털고 산 아래 적들의 동정과 하늘을 번갈아 살폈다. 때마침 적기가 기수를 낮추고 앵- 아츠러운 소리를 지르면서 기총소사를 해댔다. “그때 저는 압록강을 건는 이튿날에 본 비참한 정경이 떠올랐습니다. 미제 공중날강도들의 폭격을 받아 재더미로 된 한 마을을 지날 때였습니다. 한 젊은 녀성이 피못 속에 쓰러졌는데 서너살 된 어린애가 고사리손으로 그 녀인의 얼굴을 쥐여 흔들면서 ‘어머니, 어머니.’ 하고 애처롭게 울지 않겠습니까. 그때 또 갑자기 적기가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폭탄을 떨궜습니다. 하마트면 그 어린애의 목숨마저 빼앗아갈 번했습니다. 미제 공중날강도들은 아름다운 조선의 그 얼마나 많은 도시와 마을을 재더미로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그 얼마나 많은 부녀들과 어린애들의 목숨을 빼앗아가갔는지 모릅니다. 그때부터 미제 공중날강도를 보면 저는 기관단총을 들어 미제 날강도놈들에게 한배짐씩 갈기군 했습니다.” 팽복례의 말을 리해식이 번역하자 제일 앞줄에 앉았던 조선인민군 고사포수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 구호를 불렀다. “미제 공중날강도를 타도하자!” “타도하자!” 구호소리는 하늘땅을 뒤흔들었다. 또다시 조용해지자 팽복례는 계속 이야기했다. 폭격이 멎자 적들은 한개 련이나 되는 병력으로 그들 셋이 지키는 고지에로 개미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런데 왼쪽에 엎디여 적들에게 불벼락을 안기던 전우의 총소리가 뚝 끊었다. 피끗 머리를 돌려보니 그 전우의 귀언저리에서 선지피가 쿨쿨 쏟아져 흐르고 있지 않겠는가. 팽복례가 바삐 그 전우를 안아 전호 속에 내리워놓고 보니 이마로부터 귀 우에 관통상을 입어 피와 뇌장이 섞여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피묻은 그 한쌍의 눈, 복수심으로 이글거리는 눈만은 부릅뜬 채 한 곳을 무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전우의 시체를 내려놓은 팽복례는 적들에게 몰사격을 들이댔다. “이 개놈들아! 오라! 다 죽여버리겠다!” 그는 성난 사자처럼 고함치면서 사격하였다. 적들은 무리로 쓰러졌다. 산 아래로 물러내려갔던 적들은 군관이 권총으로 위협하자 또다시 고지에로 덮쳐왔다. 팽복례가 한창 사격하고 있을 때였다. 오른쪽에 있던 전우가 수류탄을 뿌리면서 일어섰다가 그만 오른 가슴을 붙안고 “억!” 하며 쓰러졌다. 팽복례가 달려가 그 전우를 안고 붕대뭉치를 가슴에 넣었지만 피는 쿨쿨 나오기만 하였다. 적들이 코 밑까지 덮쳐왔다. 그는 전우를 내려놓고 전우의 피묻은 기관단총을 들고 적들에게 맹렬히 사격하였다. 적들은 맹사격에 숱한 주검을 남긴 채 산 아래로 몰켜내려갔다. 그는 숨진 두 전우의 시체를 안아다가 제일 견고한 전호에 조용히 눕혀놓고 속궁리를 하였다. (혼자서 어떻게 할가? 마구 해재껴볼가? 안돼! 내가 죽는 건 별문제다. 그러나 진지는 누가 지키겠는가? 이 진지를 빼앗긴다면 주력부대의 출격에 불리해.) 그는 연기가 군데군데 피여오르고 적들의 주검이 겹겹이 쌓인 상중턱에 눈길을 돌렸다. (적들은 무리승냥이처럼 많고 나는 혼자다. 어떻게 하면 고지를 지켜낼가?) 그는 기관단총 탄창에 복수의 탄알을 한알한알 꽉 재워넣었다. 흙 속에 파묻힌 수류탄을 하나하나 파내 전호 앞에 쌓아놓았다. 그런데 위력이 센 수뢰가 보이지 않았다. 초조하게 전호 안을 쓸어보던 그의 눈길은 미시가루주머니에 가 멎었다. (옳지!) 그는 무릎을 탁 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미시가루주머니를 오리오리 찢어 수류탄을 서너개씩 한데 쥐여 묶었다. 그것을 수뢰대용으로 쓰려는 것이였다. 푱! 푱! 갑자기 산 아래에서 총알이 날아와 전호 앞 돌멩이에 부딪쳐 돌가루를 날렸다. 후닥닥 일어나보니 2개 중대나 되는 적들이 그가 혼자 지키는 고지에로 엉금엉금 기여오르고 있지 않겠는가! 이때 포탄이 날아와 진지의 여기저기에서 터졌다. 포격이 멎자 적들은 주린 이리떼처럼 고함치면서 욱 덮쳐왔다. “개놈들!” 팽복례는 적들을 향해 맹렬히 사격하였다. 그는 여기저기 뛰여다니면서 가까이 다가드는 놈들부터 쏴눕혔다. 토이기 병사 두 놈이 전호 속에까지 뛰여들어왔다. 그 두 놈은 전호에 있는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아둔하게도 산꼭대기에 대고 헛총질하였다. 팽복례가 총을 쏴 죽이려는데 10여메터 되는 전호 앞에 또 한놈이 뛰여내렸다. 그 놈은 전호 굽인돌이에 착 붙어 선 팽복례를 발견하지 못하고 눈깔을 희번뜩거리면서 전호 안을 이리저리 살피며 이쪽으로 다가들었다. 땅! 땅! 팽복례가 선손을 써 그 놈을 쓸어눕혔다. 뒤에서 나는 총소리에 몸을 돌린 두 토이기(터키) 병사가 영문을 차리기도 전에 팽복례가 수류탄을 날렸다. 꽝! 굉음과 함께 그 두 놈도 자욱이 일어나는 연기 속에 스러졌다. 이때 전호 밖에서 적들은 팽복례가 혼자인줄 발견하고 새까맣게 무리지어 미친듯이 덮쳐왔다. 이 위기일발의 시각에 팽복례는 미리 묶어놓은 수랴탄을 한묶음 한묶음 적들의 무리 속에 냅다 뿌렸다. 꽝, 꽈르릉 꽝! 꽝! 련속 일어나는 굉음과 함께 적들의 시체 우에 적들이 뻐드려져 겹겹이 쌓였다. 나머지 적들이 산 아래로 뒤걸음질치다가 줄행랑을 놓을 때까지 그는 수류탄을 뿌리고 또 뿌렸다. 팽복례는 용감하고 슬기롭게 혼자서 3개 중대나 되는 적들과 싸우면서 고대산고지를 굳게 지켜냈다. 장내에서는 우뢰 같은 박수소리가 터졌다. 팽복례가 주석단에 돌아와 앉았는데도 박수소리는 오래도록 그칠줄 몰랐다. 인민군 장병들은 박수를 치며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 조선인민군 한 군관은 팽복례의 두 손을 굳게 잡아흔들면서 찬탄하였다. “당신은 참 대단합니다. 혼자서 3개 중대 놈들과 싸워 이겼으니깐. 당신은 실로 령활하구만. 미시라루주머니마저 놈들과 싸우게 했다니까. 허허허.” “하하하.” 숱한 장병들이 웃음보를 터뜨렸다. “계속하여 조선인민군 첫 녀고사포수 김창화동무가 자기 전투사적을 소개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소개에 뒤이어 열렬한  박수소리 속에서 퇴색한 군복을 입은 수무나문살 되는 녀전사가 주석단 발언석으로 성큼성큼 걸어나왔다. 억대우 같은 그녀는 녀자 같지 않아 보였다. 그는 남자 목소리처럼 웅글진 목소리로 말하였다. “저는 조선인민군 녀전사입니다. 미제 공중날강들이 우리 사랑스러운 조국의 하늘에서 마구 미쳐날뛰면서 숱한 형제자매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저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여 저는 남성동무들처럼 고사포수로 돼 미제 공중날강도들을 호되게 족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처음 제가 고사포수로 되려고 하자 수장들은 ‘고사포수는 녀자들이 할 일이 아니요.’ 하고 거절하였댔습니다. 제가 하도 졸라대니깐 수장들은 응낙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조수로 돼 남성동무들에게서 고사포 조종과 사격 기술을 까근하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은 순풍에 돛단듯이 쉬운 것이 아니였습니다. 처음 적기가 나타났을 때 제가 너무 긴장한데다가 적개심에만 불타다보니 고사포를 제대로 조종하지 못해 적기가 그만 꽁무니를 빼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락심하지 않고 고사포다루기를 계속 꾸준히 익혔습니다. 그후 적기 네대가 날아왔을 때 잘 묘준해 쏘았습니다. 한대가 떨어지고 세대는 격상되였습니다.” 장내에서는 우뢰 같은 박수소리가 터졌다. 김창화는 발언석에서 내려 지원군 수장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그때 그녀는 리해식과도 악수를 나누었다. 그녀의 손아귀가 어찌나 센지 손이 시큰해났다. 뒤이어 김창화 등 녀고사포수들이 고사기관포 조종표현을 하였다. 억대우 같은 김창화는 고사기관포 각을 뜯자 그 무거운 포신을 혼자 척 둘러메고 내닫는 것이였다. 뒤이어 고사기관포 각을 번개같이 맞추고 빙글빙글 조종대를 돌려 목표를 겨누는 것이였다. 잇달아 박수갈채가 터졌다. 그날 해질 무렵에야 두 나라 군대 영웅모범좌담회의가 끝났다. 두 나라 장병들은 굳게 악수를 나누면서 석별의 정을 금치 못하였다. 그들은 갈라지기 아쉬운 마음으로 찌프에 앉아 눈길로 서서히 미끌어져나갔다. 그후부터 지원군 친선대표단이 조선인민군 그 사단으로 가기만 하면 꼭 녀고사포수 김창화를 의례히 찾아보았다. 조선인민군 그 사단의 친선대표단에서는 지원군 이 사단에 오기만 하면 꼭 팽복례를 만나보고서야 돌아갔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두 나라 두 사단의 형제부대가 전선에서 피로 맺은 전투적친선의 정은 날따라 깊어만 갔다              제5장 개성에서의 나날                        개성에로       1953년 4월 말에 리해식은 사단 대적공작과로부터 군단 정치부 대적공작과에 전근해 사업하게 되였다.        6월 초의 어느 하루, 리해식은 한 과에 있는 조리원 리묵과 함께 군단 포로수용소에서 방금 전선에서 압송해온 포로를 심문하여 적정자료를 정리하였다.        대적공작과에서 새로운 임무가 있기에 해식더러 인차 돌아오라는 기별이 왔다.        “리동무, 심문한 재료를 옛소. 마저 수고하오.”         “다시 만나기요.”         리해식은 리묵과 굳게 악수를 나누고는 이불짐을 꿍져메고 부랴부랴 군단 대적공작과로 돌아갔다.         거기에는 벌써 해식의 로전우 조선어번역원 김진태, 강길하가 있었다. 이밖에도 여러 사단에서 선발한 사단 정치부 주임과 퇀 정치위원, 사단 보위과장, 영 교도원까지 하여 모두 23명이나 와 있었다.         군단 참모장 등임준은 그들을 둘러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동무들은 우리 군에서 여덟가지 조건에 따라 선발해온 간부들입니다. 동무들은 우리 군의 해석대표단 일원으로 되여 개성으로 가서 중조정전대표단의 사업을 한몫씩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         모두들 뜻밖의 일이라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이어 개성정전담판 과정과 추세 및 우리 지원군 군단에 있다가 포로된 사람들의 기본정황을 소개하였다.         조선전쟁의 특점은 미제 침략자들과 군사상에서 치렬한 투쟁을 할뿐만아니라 정치상에서도 치렬한 투쟁을 하는 것이였다. 때문에 조선전쟁은 군사와 정치 투쟁이 뒤얽힌 첨예하고도 복잡한 투쟁이였다.        1951년 7월 10일에 조선군사정전담판이 시작된 이래 조선전쟁은 싸우다가  담판하고 담판하다가도 싸우는 국면으로 넘어갔다.        1953년 3월 말, 중조 두 나라 정부에서는 또다시 전쟁포로를 교환할 문제를 공평하고도 합리하게 해결할 방안을 내놓았다. 중조측대표단의 노력으로 하여 4월 중순에 오래동안 끌어오던 전쟁포로송환문제에 대한 담판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교활한 적들은 조중측의 성의와 노력을 도외시하고 “전쟁포로를 되돌려보내는 문제”와 ‘정전감독문제” 담판을 질질 끌어대였다. 당시 우리 중조 두 나라 부대의 병력은 대단하였으며 군사물자공급이 충족하였고 싸울수록 강대해졌다. 정전담판에 배합하기 위해 5월 중순에 중조 두 나라 전선부대들에서는 금성 일대에서 제1차 진공을 들이대여 적들에게 침중한 타격을 주었다. 하여 정전담판석상에서 미국과 영국의 태도는 좀 누그러들었다. 그러나 리승만은 미군 호전집단의 지지 밑에 계속 담판에 참가하지 않았을뿐만아니라 무력으로 북침하여 조선반도를 통일하려고 망상하면서 담판의 진전을 막아나섰다. 이런 정황에 근거하여 우리 중조 부대에서는 원래 서쪽의 미군을 위주로 치던 계획을 고쳐 동쪽의 괴뢰군을 위주로 족치고 적당히 미군을 치며 영군을 잠시 치지 않는 전술을 썼다. 하여 5월 중순부터 금성 남부계선에서 두번째 공격을 발동하였다. 이 공격전에서 아군은 세개 퇀의 우세한 병력으로 리승만 괴뢰군 제5사단 27련대를 돌연습격하여 한시간 10분 동안에 적들을 몽땅 섬멸해버렸다. 그리고 리승만 괴뢰군 제8사단을 포함하여 도합 4만 1천여명의 적을 살상, 포로하고 정면적진을 12킬로메터나 무찔러나갔으며 6킬로메터나 뚫고 들어갔다. 호된 타격을 받은 미제 침략군은 당황한 나머지 급급히 판문점담판석상에 나와 태도를 고쳤다. 하여 조선정전이 실현될 가능성이 어느때보다도 매우 커졌다. 판문점에서는 당금 실현될 정전을 위해 여러가지 준비사업을 바삐 서두르고 있었다. 이제 바야흐로 도장을 찍게 될 조선정전협정서의 포로송환에 관한 규정에 따라 참전쌍방에서는 규정된 수효의 해석대표단을 쌍방의 전쟁포로수용소에 보내 직접 되돌려보내지 않는 포로들을 설복하여 제 나라로 돌아가게 하여야 하였다. 군참모장 등임준은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동무들은 이전에 해본적 없는 포로송환사업을 하게 되였습니다. 전 군단 동지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승리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후 돌아올 것을 축원합니다.” 6월 6일 밤, 리해식, 김진태 등 일행은 군부 주둔지 자제동에서 자동차에 앉아 개성을 바라고 밤길을 누비며 서쪽으로 달렸다. 달리는 차에서 저 멀리 뒤로 물러가는 주마등 같은 산등성이들을 바라보면서 리해식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이번에는 코를 맞대고 적들과 싸우게 됐구나. 적들은 우리 조선족번역일군들을 아니꼬와할텐데…” 리해식은 자동차에 앉아서 갈마드는 심정을 눅잦히려고 눈을 스르르 감고 잠을 청하였다. 그들이 탄 자동차는 8월 오전 7시 쯤에 길고도 긴 골짜기를 따라 굽이굽이 달리다가 당시 전 세계 인민들이 주목한 조선중립구 개성시에 들어섰다. 개성시는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였다. 남쪽에는 진봉산이 우뚝 솟아 있고 북쪽에는 가파로운 송악산이 38선을 등제 진채 우뚝 서 있었다. 아아한 송악산 아래 자리잡은 개성시내에 은띠 같은 시내물이 울퉁불퉁한 언덕 사이로 흐르는 것이 자동차 우에서 완연히 내려다보였다. 시내물을 따라 언덕에 자리잡은 조선 옛식 기와집들이 거개가 그대로 풍치있게 서 있는 것이 한눈에 안겨왔다. 개성시의 큰길에 들어서니 거리는 숱한 행인들과 달리는 차들로 붐비였다. 먼 곳에서 들리는 포소리 외에 개성시 상공에는 적기의 아츠런 엔진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조선전쟁터에 나온 뒤 포화가 울부짖는 전선에서 밤을 대낮으로 삼던 우리는 처음으로 대낮에 차를 타고 조선 땅 우의 들끓는 사가지로 달렸다. 실로 딴 세상에 들어선듯하였다. 이때 한 동무는 기쁜 마음을 누를길없어 달리는 자동차 우에서 두팔을 쭉 벌리더니 시를 읊듯 말하였다. “아, 끝내 평화로운 도시 개성에 오고야 말았구나!” 그들은 개성에 들어간 후 새 임무를 맡아 하게 되였다. 강길화와 리해식은 정전대표단 정치부 선전교육과에서 문화사업을 맡게 되였고 김진태는 대안감독소조에 갔으며 사단 보위과장 량자단은 경위처에 가 사업하게 되였다.                     유서깊은 옛도시 개성       개성은 조선 반도 중부에 있는 유서깊은 유명한 옛도시이다. 일찍 고려왕조의 시조 왕건이 918년에 개경(오늘의 개성)을 고려의 수도(서울)로 정해서부터 1392년에 고려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근 500년 동안의 력사를 가진 고려왕조의 수도(서울)이였다. 천여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옛도시 개성에는 아직도 고려 명승고적이 그대로 많이 남아 있었다.       난생처음 개성에 온 리해식은 개성의 명승고적에 부쩍 호기심이 동하였다. 그와 김진태는 쉴짬이거나 저녁식시후면 좋다하는 이런 명승고적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보았다. 실로 백문불여일견이라고 직접 자기 눈으로 보니 현란할 정도로 황홀하였다.      어느날, 그들은 송악산 남쪽에 있는 명승고적 “망월대”에 가 보았다. 송악산 남쪽 기슭으로 해서 한 50메터 올라가자 20메터쯤 되는 돌층계가 나타났다. 그 돌층계를 올라가니 승평문 유적이 나타났고 동서로 길이 450메터, 남북으로 너비 150메터나 되는 넓은 옛날 콩크리트바닥이 훤하게 한눈에 안겨왔다. 광장 같은 이 곳은 원래 고려왕조 궁전의 옛터로서 회경전을 중심으로 수많은 궁전이 들어앉아 있었다. 그런데 1361년 홍두군이 쳐들어와 호화로운 고려왕궁전은 몽땅 재더미로 되였고 지금은 그 청석돌바닥이 광장처럼 훤하게 남아 있을뿐이였다. 력사기재에 따르면, 원래 “만월대”는 “망월대”였는데 후에 “만월대”라고 고쳤다 한다. 옛날에는 망월대의 궁전에서 회경전이 중심궁전이였고 그 남쪽 정면에는 승평문이 있었는데 어전의 주요출입문이였다. 회경전의 좌우에는 동락정이 대칭되게 세워져 있었는데 이름 그대로 궁전의 오락장소였다. 회경전의 남북에는 신풍문이 있었으며 동서에는 춘덕문이 있어 회경전으로부터 직접 왕후와 왕귀비의 진궁과 춘궁에 이를 수 있었다. 서쪽 정면 옆으로 하여 난 태초문은 임금의 침궁인 건덕전에 이르는 문이였다. 회경전의 기초돌은 아직도 군데군데 들쓱날쑥하여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회경전 뒤쪽에 있던 장화전, 원덕전과 자화전 등 적지 않은 궁전의 기초돌은 거개가 알아볼 수 없게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 정경을 둘러보자 해식은 가슴이 뭉클해났다.                         망월대                쓸쓸하고도 슬프도다              하늘 찌르던 왕궁은 어디메뇨?              썩고 만 망월대 맨 바닥만 남았구나               처량하게도 잡초 속에                 묻노니, 천하를 호령하던 옛 임금 어데 가고               너울너울 춤 추던 궁녀들은 어디에 갔노?               양키놈들 철발굽에 조상들 산소 짓밟히거늘               망월대 옛터는 비분에 몸소리치누나   정전 후 지원군담판대표단에서는 망월대의 빤빤한 맨 바닥 북쪽으로 하여 대단히 큰 무대형구락부를 지었다. 대표단에서는 여기에서 대형 집회, 구기시합, 연극과 영화관람 등 활동을 벌렸다. 어느날, 리해식과 김진태는 개성시 중심의 북안동 경내에 있는, 소문 높은 남대문을 퍽 인상깊게 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벌써 여러 나라에서 온 여러가지 살색의 기자들이 노랗고 하얀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사진을 찍는다, 구경한다 하면서 떠들썩하고 있었다. 소문과는 달리 남대문 성루는 미제 공중날강도들의 폭격에 은데간데 없고 다만 무지개식 돌문과 돌각담이 남아 있었고 그 우에 원래 성루에 걸렸던 커다날 종이 놓여 있었다. 이 종은 “선복사종”이였는데 창평의 “상원사종”, 경주의 “복덕사종”, 천안의 “성지사종”, 지평의 “상원사종”과 함께 조선의 5대 명종 가운데의 하나였다. 이 옛종은 청동으로 부어 만든 것이였다. 직경은 1,8메터, 높이는 2.12메터, 웃부분의 직경은 0.23메터, 무게는 14톤이나 되는 큰 종이였다. 주요 공예는 매우 독특하였는바 종의 겉면에는 우로부터 아래로 꽃무늬가 일곱줄로 새겨져 있었고 그 꽃무늬로 종을 아래우가 나뉘게 그려놓았다. 일곱줄의 꽃무늬 사이에 사자와 범, 말과 같은 여러가지 동물과 한자, 고조선어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가석하게도 미제 날강도들의 폭탄파편에 맞아 종의 여기저기에 깊고 누런 생채기가 나 있었다. 심지어 어떤 곳은 구멍이 펑펑 뚫렸다. 리해식과 김진태는 종을 돌아가면서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세여보았다. 27곳이나 깊은 상처를 입지 않았겠는가. 력사기재에 따르면 이 옛종은 1336년 고려목왕 2년에 부어만든 것으로서 원래는 개성시의 선복사에 걸려 있었는데 1563년 리조 명종 18년에 선복사가 불에 타버리자 개성시 남대문 루각에 옮겨다 걸어놓았다고 한다. 남대문도 지금과는 달리 아주 장관이였다고 한다. 남대문은 원래 옛 고려 서울 개경 반월성의 남정문루각이였다. 고려왕조가 망한 해인 1391년에 짓기 시작하여 리씨왕조가 선 이듬해인 1393년 리씨왕조 태조 2년에 남대문루각을 다 지었고 한다. 당지 사람들의 소개에 따르면 남대문에는 미제 공중날강도들의 폭격을 맞기 전까지만 해도 커다란 무지개식돌대문 우에 30메터 길이나 되는 다섯칸의 목제루각이 있어 매우 웅위롭고 장관이였다고 한다. 비록 웅위로운 루각은 미제 날강도들의 폭격에 날아났지만 해식과 진태는 무지개식돌대문 우에 놓인 커다란 옛선복사종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찰칵 찍었다. 당시 개성 남대문이 숱한 유람객을 끈데는 그가 력사의 견증자라는데도 있었다. 1950년 4월 남조선 소장 김석원이 개성 남대문루각에서 기세흉흉하게 군대를 사열하였다. 그는 숱한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떠들어댔다. “이제 북진명령이 내리기만 하면 일거에 38선을 돌파하고 북진할 것이다. 38선을 돌파하는데는 오직 나 김석원만이 해낼 수 있다.” 김석원은 아마 1949년의 5월부터 10월 사이에 두번이나 있은 처참한 실패를 잊은 것 같았다. 당시 남조선 괴뢰군 제1사단 상좌사장 겸 38선지구전선 사령관으로 있은 김석원은 다섯달 사이에 두번이나 38선 이북을 들이쳤다. 그런데 번마다 조선인민군 경비대의 호된 타격을 받았다. 1949년 5월, 김석원은 직접 괴뢰군 제1사단 주력인 제11련대를 지휘하여 송악산으로부터 북반부를 쳐들어갔다. 그때 괴뢰군은 조선인민군에게 호되게 얻어맞아 볼꼴없이 송악산으로부터 개성 남대문 앞에까지 쫓기워 갔다. 1950년 6월 25일, 평양시간으로 6시에 미제와 리승만괴뢰군이 북침할 때도 조선 북반부를 진공하는 남조선 괴뢰군의 첫발의 포탄도 바로 당시 남조선 괴뢰군이 차지한 개성 남대문 앞에서 쏘았다. 북반부로 제일 먼저 쳐들어간 괴뢰군부대 역시 바로 두달 전에 남대문루각에서 우줄렁거리면서 떠들어대던 김석원이 지휘한 적이 있는 괴뢰군 제1사단이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오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품 속으로 돌아온 개성시 남대문은 제일 훌륭한 견증자가 아닌가. 적들은 졌고 인민은 이겼다. 후에 리해식이 개성을 떠난 1955년에 개성시 인민들은 남대문루각을 원 모양대로 수건하고 서녹사종을 남대문루각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개성의 선죽교는 고려왕조의 충신이며 저명한 학자 정몽주(1337년-1392년)가 리조 태조 리성계의 아들 리방원 일파에게 손죽교에서 피살된데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리해식과 김진태가 개성시 교외 선죽동 경내 우거진 나무숲 속에 자리잡은 선죽교로 갔을 때였다. 흐르는 강물은 없고 흙모래가 물곬을 꽉 메워 다리 웃면과 다리 란간, 쇠사슬만 지면에 드러나 있었다. 돌다리 웃면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을 보아 선죽교도 그리 크지 않은 것이 엿보였다. 원래 다리 밑으로 로계라는 강이 있어 강물이 흘렀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의 철발굽이 조선의 땅을 짓밟을 때였다. 일본 놈들은 당지 백성들을 핍박하여 선죽교 밑으로 흐르던 로계강 물곬을 50메터 떨어진 곳에로 돌려놓게 강박하였다. 그때로부터 선죽교 아래에는 강물이 흐르지 못하였다. 하여 말을 타고 빠져나갈 수 있던 다리 구멍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흙모래에 막히웠고 나중에는 다리 웃면과 란간 밖에 남지 않았다. 다리 웃면에 둘러세운 란간과 쇠사슬은 듣는 말에 의하면 정몽주의 후예들이 1780년 리씨왕조 정조 4년에 이 다리를 보존하려고 세운 것이라고 한다. 선죽교 옆에는 돌다리 하나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 다리 역시 그때 정몽주 후예들이 선죽교를 보존하려고 인도교를 따로 놓은 것이라고 한다. 선죽교는 지금으로부터 1천여년 전인 919년에 고려왕조 태조 왕건이 서울 개경(오늘의 개성) 성곽에 짓기 시작하여 놓은 것이다. 당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돌로 쌓아놓은 이 선죽교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흙모래에 묻히기 전에는 아주 장관이였다고 한다. 리해식과 김진태는 장관을 이루었던 선죽교를 눈 앞에 그려보면서 선죽교를 둘러싼 돌란간을 이어놓은 쇠사슬에 걸터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선죽동 경내에는 또 정몽주가 공부를 한 적이 있는 “송양서원”이 있었다. 아늑하게 자리잡은 송양서원의 푸른 기와, 건뜻 쳐들린 처마, 참말로 조선민족의 건축특색이 짙게 안겨왔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송양서원”은 개성에 남아 있는 력사고적 중에서 력사가 제일 유구하다고 한다. 옛날 정몽주는 리성계의 아들 리방원 일파에게 피살되기 전에 이 곳에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후에 1573년 리조 선조 6년에 개성의 유생들이 정몽주의 자에 따라 이 서원을 “문충당”이라고 이름을 달아 선배문학가이며 고려왕조의 마지막충신 정몽주를 기리였다. 1575년 리씨왕조 선조 8년에 조정에서는 이 서원에 “송양서원”이라는 편액을 내려서 걸게 하였다. 지금 볼 수 있는 “송양서원”이란 편액은 바로 그때 건 조정의 편액이라고 한다. 개성시 인민들은 정몽주에 관한 일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리해식 등에게 개성시 운학동 경내에 목청전이 있다면서 그 곳에 유관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목청전은 리씨왕조 시조 리성계가 즉위하기 전에 들어 있던 집이였다. 정몽주는 리성계 아들 리방원 일파에게 살해되기 전에 목청전에서 일찍 리성계가 베푼 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고 한다. 리성계가 리씨왕조 시조로 된 후 1410년 태종 18년에 목청전을 궁전으로 고쳤으며 후에 리씨왕조가 한양(지금의 서울)에 궁전을 옮긴 후에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절당으로 되였다. 1950년 12월, 미제와 리승만괴뢰군이 개성에서 철퇴할 때 불을 질러 목청전의 수많은 건축물이 불타버렸고 그 나머지는 적기의 수차 폭격에 재더미로 되였으며 비바람에 씻기워 흙무지로 돼버렸다. 듣는 말에 의하면, 정전 후 조선정부에서는 목청전이 있던 곳에 이전 모습대로 목청전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개성은 또 세계에 이름난 인삼의 고향이였다. 개성시의 여기저기에는 인삼장이 많기도 하였다. 우리 중조 두나라 정전담판대표단 정치부 주둔지인 만월대 밖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 인삼장의 가공공장이 있었다. 원래 가공공장건물은 다 적기의 폭격에 무너져 로동자들은 림시로 지은 간이설비로 인삼을 가공하여 밖에 내다가 말리우고 있었다. 리해식과 김진태는 늘 밥술이 떨어지기 바쁘게 인삼장에 가서 거닐면서 인삼을 말리우는  공예과정을 돌아보군 하였다. 시간이 오래되자 처녀로동자들과 낯이 익게 되였다. 처녀들은 그들이 나타나자 생글방글 웃으면서 인삼뿌리를 한줌 쥐여주었다. “가져다가 뜨거운 물에 불궈 마시라요.” 리해식이 부드럽게 사양하자 처녀들은 까르르 웃어댔다. “지원군동지들은 실로 기률이 너무나도 많죠. 인삼뿌리를 몇뿌리 맛보는데요. 큰 일 나겠어요? 돈 내라는 것도 아닌데요. 호호호.” 리해식도 웃으면서 처녀들에게 한미디 하였다.        “바로 동무들이 돈을 안 받기에 감히 가져가지 못합니다.”        그러자 처녀들은 또 깔깔 웃어댔다.
198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4) 댓글:  조회:1420  추천:0  2018-11-22
                                   대적정치공세       아군이 지키는 어음산과 500고지, 백운산으로부터 한강 동안에 이르기까지 뻗은 산과 산골짜기에는 백설이 새하얗게 뒤덮였다. 새하얀 어음산은 그 꼭대기가 흰 구름 속에 잠겨 있어 먼 곳에서 보면 산꼭대기와 구름을 분간하기조차 힘들었다.        어둠이 깃든 뒤 은빛 달빛이 깔린 산마루는 참말로 장관을 이루었다.       1953년 양력설을 전후하여 리해식이 소속한 중국인민지원군 60군 181사는 전례없는 대적정치공세를 발동하였다. 일찍 국내 해방전쟁시기 181사단은  태원전역에서 정치공세로 6,730여명의 적을 포로했거나 쟁취하였으며 사천 북부에서도 토비숙청할 때에도 2정치공세로 5, 500여명의 토비들을 포로했거나 쟁취하여 상급의 칭찬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군의 승리는 아군의 작전에 의거할뿐만아니라 적군에 대한 와해공작에도 의거해야 한다는 모택동 주석의 빛나는 사상과 대적정치공세에 대한 지시에 근거하여 사단에서는 정치부 범극양 주임의 령솔하에 두차레 회의를 열고 사단 정면의 리승만 괴뢰군 제3사단의 정치사상정황을 참답게 분석한 다음 전연진지의 보병과 포병에 배합하여 새 해에 대적정치공세를 벌리기로 결정하였다. 전 사단에서는 리해식을 비롯한 19명 조선족번역원을 뽑아 각 퇀의 전연진지에 보냈다. 그때 리해식은 사단 비서과로부터 다시 대적공작과에 돌아가 사업하였다. 그 외에 조선인민군에서 1년 남짓이 대적정치공세방송을 한 적이 있는 리정숙과 안옥순을 비롯한 6명의 방송원(아나운서)이 사단 대적공작과에 와서 방송을 하게 되였다. 그때 사단 오른쪽에 위치한 상감령에서는 적아쌍방이 한창 판가리싸움을 벌리고 있었다. 그때 해식 등은 적아 사이의 거리가 백메터로부터 천여메터 밖에 안되는 유리한 환경을 리용해 대적정치공세를 발동하였다. 대적공작과에서는 지휘소의 통일적인 지휘 아래 방송소를 꾸리고 만화를 그리였으며 구호판을 만들었고 삐라를 등사하였다. 그리고 적들에게 보낼 “선물주머니”에 사탕, 과자, 담배, 술, 마른 낙지, 일용품, 삐라와 “안전통행증”을 나눠 넣는 일을 해나갔다. 초연이 자욱한 싸움터에서 하루의 전투가 끝나 밤의 정적이 내리드리우면 포화에 그은 진지에도 무거운 정적이 깃들기 시작한다. 적병들은 아군의 저격탄에 맞을가봐 온 하루종일 가슴을 조이면서 알음장같이 차가운 전호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차디찬 또치카 안으로 기여들어가 얼음덩이처럼 차고 굳은 주먹밥을 긁어먹는다. 그들에게는 진지의 정적이 새로운 비애와 공포의 시작으로 되는 것이였다. 이럴 때면 헤여진지 오랜 친지들을 더욱 그리게 된다. 적병들의 이런 심리상태를 꿰뚫어보고 있는 아군 제1선진지의 대적공작조는 대를 놓칠세라 대적정치공세방송을 시작하군 하였다. 민족감정이 짙은 조선인민군 녀방송원의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적진상공의 정적을 헤가르며 산간에 메아리쳤다.   “괴뢰군 병사들, 그대들은 엄동설한의 고지 우에서 얼마나 고생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대들이 미제 침략자들과 그자들의 꼭두각시질하는 허수아비 괴뢰대통령 리승만역도에게 강제로 끌려나와 언제 죽음이 차례질지도 모르는 몸서리치는 위험 속에서 등 시리고 손 시린 고용병의 설음을 겪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대들이 우리 방송에 귀를 기울이는 이 시각 저 하늘의 밝은 달을 우러러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그대들은 도대체 누굴 위해 미제 놈들의 대포밥이 돼야 합니까? 그대들이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고 있는 이 시각, 그대들의 부모처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들도 미제 식민지 리승만괴뢰정부의 시달림 속에서 그대들과 마찬가지로 무서운 인생고를 치르고 있습니다…”   아군 방송에 적병들의 반향을 수집하려고 어음산 서쪽 산비탈에 설치한 아군 방송소에서는 방송이 시작되면 첫날에 조선족번역원 1명과 패장 1명, 전사 2명으로 무어진 도청소조를 적진 가까이에 파견하였다. 그들의 모험적인 행동이 일단 발견되면 위험하기에 전연진지의 총포가 몽땅 동원되여 그들을 보호할 대책을 미리 세워놓았다. 그들은 흰 위장복을 입고 사전에 정찰해놓은 로선을 따라 한자 두께나 되는 적설을 헤치며 적진에서 20메터 떨어진 곳에까지 기여들어갔다. 마침 대낮처럼 밝은 달빛 아래 적병사들의 일거일동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아군 진지의 방송이 시작된지 얼마 안돼 몇몇 적병이 또치까에서 기여나와서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중 한 적병은 아예 털모자를 벗어들고 목을 빼들고 듣고 있었다. 도청조의 전우들은 놈들의 코밑에서 적병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한 적병이 중얼거렸다. “허, 저 치들 말에 일리 있잖아?” 그러자 한 적병이 받았다. “글쎄, 똑마치 우리한테 왔다 간 거처럼 말하잖아.” 이때 웬 검은 그림자가 또치까에서 언뜰하더니 게사니처럼 웩웩거렸다. “이 맹추 같은 것들, 게서 뭣들 해? 중공군의 깜장콩알 얻어먹자고 그래?” 말투를 들어보니 군관인 듯하였다. 적병들은 찍소리 못하고 또치까 안으로 기여들어갔다. 군관인 듯한 그 검은 그림자는 스적스적 보초선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윽고 보초선에서 욕질하는 소리가 들러왔다. 보초병이 아군 방송에 귀를 기울이다가 그 군관이 온 것도 모른 모양이였다. … 밤이 깊었건만 아군 진지에서 울리는 녀방송원의 청아한 목소리는 백설이 망망한 뭇산의 협곡에서 메아리쳤다. 지심을 울리는 대포소리를 대체한 그 방송소리는 적병들의 가슴을 울려주었다.   “괴뢰군 장병들이여, 우리는 이 기회를 빌어 우리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의 포로정책과 의거하는 자에 대한 정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은 모든 포로에 대하여, 그리고 무기를 놓고 의거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군관이든 병사이든, 그의 정치적 신앙이 어떻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그의 생명안전을 담보해주며 절대 죽이지 않고 인격을 모욕하지 않으며 개인 재물을 빼앗지 않습니다. 이밖에 또 부상당했거나 앓는 사람에 대해서는 치료해주며 집에 돌아가겠다는 사람에게는 로비를 주어 돌려보냅니다. …”   뒤이어 적 장관들의 기만적인 선전목적을 까밝히고나서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의 전쟁포로관리소의 실제정형을 소개하였다. 아군 사단 정면에 대치하고 있는 괴뢰군 제3사단에는 북조선 함경도 지역에서 남조선으로 타향살이를 하러 갔다가 강제징병된 강제병도 일부 있었다. 그런데 이른바 “백골부대”라는 뜻으로 관병들의 철갑모자의 오른쪽과 왼쪽 팔소매에 해골표식이 박혀 있었다. 이 사단의 18련대는 당시 리승만군대의 3개 “정예련대” 가운데의 한 련대인 “백호련대”였다. “천하무적”이라고 자처하는 이 사단은 조선전쟁 최초에 남진하는 조선인민군에 의해 5,900여명이나 소멸되였는데 2개 련대가 몽땅 녹아났던 것이다. 그후 1951년 현리전투에서 우리 중국인민지원군의 포위전에 걸려 반수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그해 11월에 “김일성고지”전투에서 또 조선인민군에게 얻어맞아 4,200여명이나 섬멸당하고 사단 참모장 이하 수많은 장관과 병사들이 포로당하였다. 우에서 말한 몇차례 전투에서 포로된 이 사단의 적잖은 장관들과 병사들은 아군의 포로관대정책에 의해 석방되여 남조선으로 돌아갔다. 그러므로 이 사단의 인원들이 끊임없이 바뀌였지만 적잖은 장관과 병사들은 아군의 포로정책에 대해 료해하고 있었다. 리해식은 어느날 아군에 의거해 넘어온 괴뢰군 23련대의 리연모라는 병사와 담화를 나누었다. 아군 방송, 특히는 포로정책에 대한 아군의 선전에 그쪽에서 어떤 반향이 있는가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린 장관님들의 방송을 듣고 처음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로병사가 후방에서 중공군에게 포로당했다가 놓여나온 사람을 직접 만나봤다고 하면서 북쪽에선 방송에서 말한 거처럼 포로를 죽이지도 않고 잘 먹인다고 하잖겠습니까. 그러자 우리는 포로병도 저렇게 잘 대해준다니 주동적으로 의거해 넘어간다면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직접 의거하지 못하는 날엔 아예 포로나 되는게 맞다고 생각했지요. 어느때 어떻게 죽겠는지 모를 세월에 목숨이나 건지는게 상수지요.” 리연모는 아군 방송을 듣고 의거할 용단을 내린 6명 적병 가운데 한 사람이였다. 그는 아군이 방송한 포로정책과 의거방법을 거의 한줄도 틀리지 않게 조목마다 줄줄 외웠다. 아군 방송소에서는 또 북에 고향을 두고 남조선에 나간 적병들이 많은 정황에 근거해 그들이 즐겨 듣고 또 그들의 고향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노래들을 방송하였다. 례컨대 그때 적후에서 애창된 “대동강의 달밤”, “북녘의 나그네”, “락화류수” 같은 류행가와  “양산도”, “아리랑” 등 타령들을 자주 방송하였다. 이런 노래들은 적군의 병사들과 하층군관들의 환영을 받았으며 그들의 호감을 샀다. 때로는 이런 노래가 방송되면 맞은켠 산의 적병들도 따라 노래불렀다. 심지어 노래가 끝나자 제18련대 적병들이 노래를 잘한다고 소리치고 박수치면서 “재청!”, “재청!” 하고 웨쳤다. 녀방송원(아나운서)이 다시한번 노래하자 적진에서는 또다시 요란한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어느날 깊은 밤이였다. 맞은켠 산의 적병들이 아군과 주동적으로 말을 걸고 아군의 녀방송원(어나운서)더러 “울며 헤여진 부산항”이라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하였다. 녀방송원 리정숙은 쓸쓸하고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울며 헤여진 부산항 돌아볼제 련락선 란간머리 흘러드는 달빛 리별만은 어렵더라 리별만은 슬프더라 더구나 정들인 사람들끼리…   1절이 끝나자 맞은켠 산의 적병들이 울음섞인 목소리로 2절을 받았다.   달빛아래 허허바다 파도만 치고 부산항 간 곳 없는 수평천리길 리별만은 무정터라 리별만은 야속터라 더구나 정들인 사람들끼리…   고성기를 통하여 울려나가는 방송원(아나운서)의 노래소리와 적병들의 웅글진 남저음의 육성이 합창되여 울려퍼지는 이 노래소리, 그 노래소리는 일제의 식민지통치하에 울면서 지게 지고 쪽박 차고 고향을 떠나 북쪽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느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바다와 현해탄을 건너 일본 땅으로 향하던 우리 민족의 수난의 력사에 대한 애잡짤한 회억을 불러일으켰고 한피줄을 타고 난 겨레들이 총부리를 맞대고 싸울 것이 아니라 독립자유의 새 나라를 건설하여야 하며 쓰라린 지난날의 그 피눈물의 력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후에 의거해온 한 병사의 말에 의하면, 괴뢰군 23련대 9중대의 19살난 병사 신정빈은 아군이 방송한 “사향가”를 듣고 친인들이 생각나서 통곡치면서 “집에 가겠다! 이 쓸쓸한 고산에서 미국 놈들의 대포밥이 되지 않겠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밖에 아군은 방송을 통해 적군관들의 폭행과 탐오사건의 내막을 폭로하였다. 이런 자료들은 모두 적의 포로병과 의거자들에게서 조사해 얻은 것이였다. 아군이 이름까지 찍어 탐오사실을 까밝히자 한 하층군관은 적군관들이 이전처럼 병사들과 우쭐거리지 못하였고 병사들을 모아놓고 화식비를 떼먹은 걸 잘 못했다고 승인하였고 그후엔 다신 떼먹지 못하였다. 아군은 그 하층군관이 병사들의 수당금을 떼먹은 사실을 모르고 방송하지 못하였다.  그 하층군관은 수당금을 떼먹은 사실은 병사들도 모르기에 숨기고 승인하지 않았다. 여하튼 적 군관들은 아군 방송을 대단히 두려워했다. 그러나 적병들에게는 아군의 방송은 “벗”으로 되였다. 의거해온 적병들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고지에서 하루 저녁이라도 방송을 듣지 못하면 무엇을 잃어버리기나 한 것처럼 허전하였다. 아군 방송에서 적병들의 고통스런 생활을 말할 때면 “우리 졸병들이 이렇게 추운 눈 속에 묻혀 고생하는 거 저 방송이나 알아주지 누가 알아줘?” 하고 장탄식하였다. “고향”이나 “부모처자”라는 말만 나오면 전호를 파던 공병삽을 팽개치고 제자리에 털썩, 털썩 들어앉아 눈물을 머금고 방송에 귀기울였다고 하였다. 리해식 등 아군 대적공작과의 전우들도 직접 그런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군의 방송이 시작되기만 하면 적진에서 들려오던 , 밤도와 방어시설을 만드느라고 공병삽이 자갈돌에 부딪치는 소리, 나무를 켜는 톱질소리, 도끼로 나무를 찍는 소리가 가뭇없이 그치고 반디불 같은 불빛이 반짝반짝이였다. 적병들이 담배를 꼬나물고 깊은 상념에 잠긴 채 아군 방송을 듣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아군에 의거해온 괴뢰군 22련대 1대대 1중대 하사 오기술은 이렇게 말하였다. “군관들은 사람을 관리할 수 있지만 우리 귀는 관리할 수 없었지요. 군관들은 당신들의 방송을 듣지 말라고 했지요. 뭐 중공군의 방송은 독이 있어 누가 들으면 누가 얼리운다나요. 그러나 우리 병사들은 그들의 기만과 공갈을 듣지 않고 일하는 척하면서 귀로는 당신들의 방송을 들었지요.’ 그의 말에 의하면, 적병들은 아군이 보낸 선물에서 먹는 것외에 중조 두 나라 군대에서 찍어보낸 “안전통행증”을 제일 좋아하였다고 한다. 이런 “안전통행증”은 어떤 것은 대포로 쏘아보낸 것이고 어떤 것은 “선물주머니”에 넣어 전연진지의 철조망에 걸어놓았는데 적병들이 벗겨간 것이였다. 적병들은 “안전통행증”을 줏기만 하면 군관들의 눈을 피해 가만히 치워두었다. 어떤 병사들은 일부러 “안정통행증”을 쭉 찢어 두 쪼각을 내서 군관이 보는데서 몸에 건사하였다. 군관이 물으면 “담배종이로 쓰려고 그래요.”라고 변명하였다. 그러나 “안전통행증”은 담배종이로 쓴 것이 아니라 적병들의 “호신부”, “구명부”로 되였다. 의거해온 오기술도 가만히 “안전통행증”을 한장 주어두었다가 의거해올 때 썼던 것이다. 적 장관들은 아군 방송에서 울리는 진리의 목소리를 두려워했다. 그들은 병사들이 중공군의 선전에 넘어갈가봐 맹렬한 화력으로 아군 방송을 대처해나섰다. 그 놈들은 먼저 기관총으로 우박이 쏟아지듯 몰사격을 가하고는 뒤이어 여러가지 포를 마구 쏘아댔다. 그러나 아군 방송은 그 자들의 포사격이 심하면 심할수록 끊은 적이 한번도 없다. 오히려 고성기의 최대공률을 풀어 우렁찬 목소리로 놈들과 맞섰다.   “괴로군 장관들, 이런 헛수작을 걷어치우라. 너희들이 포탄 한발을 더 갈길수록 너희들 집에서 그만큼 세금을 더 물고 월가의 전쟁무기장사군들의 배를 불린다는 걸 왜 아직도 모르는가?”   “겨레의 량심 있는 조선 사람들이라면 미제 침략자들을 위해 아까운 목숨을 바치지 말라.’   때를 같이하여 아군 진지의 화력도 “발언”하기 시작하여 놈들의 화력점을 벙어리로 만들군 하였다. 아군 방송소는 웃층이 두터운 갱도 안에 설치돼 있기에 어진간한 비행기 폭격에도 무너질 위험이 없었다. 포사격 따위는 대수롭지도 않았다. 적들은 갱도 안의 방송소를 어쩌는 수 없게 되자 갱도 밖 높은 바위 틈사리나 키 높은 소나무 우둠지에 걸어놓은 고성기나팔을 묘준하여 포사격하였다. 그리하여 고성기나팔이 “부상”당하지 않으면 “희생”되군 하면 방송을 더 할 수 없게 되였다. 어느날 낮방송을 하는데 적들의 포탄이 아군 방송소가 설치돼 있는 갱도 어귀에서 연해연방 터졌다. 그 바람에 갱도 안의 고성기 공작등이 마구 흔들거렸다. 이때 전연진지 패에서 방송소리가 끊어졌다고 전화보고가 들어왔다. 보고를 받자 리해식은 즉시 포탄이 마구 작렬하는 갱도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방송선을 따라 가며 살펴보아도 끊어지지 않았다. 고성기나팔이 장치돼 있는 바위돌 앞에까지 뛰여갔을 때 고성기 나팔이 포탄파편에 맞아 볼품없이 오그라든 것을 발견하였다. 고성기나팔 중간의 발성기마저 꾸불어들지 않았겠는가. 해식은 인차 비발치는 포탄을 무릅쓰고 새 나팔을 가져다 바위틈사리에 잘 장치해놓고 소나무가지를 꺾어다가 잘 위장해놓았다. 그러자 아군의 방송은 또 적진 상공에서 울려퍼졌다. 아군의 새 해 대적정치공세는 적군 심리작전부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그 놈들은 대만특무기관에서 한패의 국민당 특무들을 매수하여 아군처럼 방송소를 세워놓고 한어방송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군 전연진지의 전사들은 그 방송을 듣고 분개해 펄펄 뛰였다. “개놈들, 백주에 무슨 놈의 새빨간 거짓말만 지껄여대는 거야.” “어르신님들이 너희들 발언권을 박탈하는 걸 봐라!” 장병들은 중기관총과 여러가지 포로써 그들의 방송에 대답해나섰다. 방송은 포격에 “벙어리”로 돼버렸다. 며칠 후에도 그 방송은 울리지 않고 영영 “벙어리”로 돼버렸다. 후에 의거해온 적병들에게서 그 내막을 알게 되였다. 원래 방송소에 왔던 심리작전과의 몇몇 대만특무들은 고지의 괴뢰군 군관한테 줄욕을 먹었다. “네놈들이 중공군의 포격을 불러왔어!” 결국 아군의 포화에 더 얻어맞기 싫어하는 군관들에게 방송하러 온 특무들은 쫓기워났던 것이다. 불비가 쏟아지는 조선 전쟁터에서 아군 대적정치공작과에서는 적들에게 선물을 보내주면서 새로운 “사탕폭탄” 대적정치공세를 진행하였다. 섣달 그믐날 밤이였다. 대적정치공작과의 포치에 따라 정찰경험이 풍부한 퇀 정찰대 부패장 손라자는 몇몇 전사들을 령솔하여 흰 위장복을 입고 12개 선물주머니를 메고 적의 네갈래 봉쇄선을 감쪽같이 넘어 적진에서 20여메터 떨어진 철조망에 걸어놓고 안전히 돌아왔다. 설날 아침에 아군은 방송을 통해 13개 곳에 280여개 선물을 보낸 것을 적병들에게 통지한 후 연막탄을 쏘아 군관들 몰래 선물주머니를 가져가게 하였다. 어느날, 리해식은 아주 가까운 적진에 대고 “여보시오, 우리 보낸 선물 받았습니까?”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한 적병이 “벌써 가져다 먹은지 오랜데요. 지원군 동무들 고맙습니다요.” 하고 대답하고는 손으로 입을 가리키며 먹는 시늉까지 하였다. 한 무명고지에서 포로된 한 적병은 선물주머니 5개를 가져다가 군관 몰래 동료들이 똑같이 나눠먹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과장랑 먹으면서 지원군이 우리를 후하게 대하는 걸 보면 포로돼도 절대 죽이지 않는다는 말이 정말인 거 같다고 뒤공론하였다. 그 포로병은 포로됐을 때 아군이 보낸 손거울과 세수비누을 휴대하고 있었다. 한번은 적병이 과자를 먹을 때였다. 적군관이 보고 “그 과자엔 독이 있어.”라고 하였다. 그러자 적병은 과자를 더 크게 떼먹으면서 “독이 있다고? 그럼 독살돼 보죠.”라고 하면서 뻐기였다. 적군관은 억이 막혀 성이 상투 밑까지 치밀어 얼음판에 넘어간 황소처럼 눈알을 희번쩍거렸다. 그러나 뭐라고 할 말이 없어 다른 적병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아 꿀떡꿀떡 마셨다. 드디여 그 군관은 “중국인민지원군 드림”이란 글씨가 박힌 권연을 꺼내 붙여물고 연기를 길게 빨았다가 후- 내뿜었다. “이건 진짜 천금 주고도 사기 힘든 중국 담배야!” 군관이 떠나간 후 술병을 빼앗긴 적병은 두덜거렸다. “제길, 재수 없어! 이담부턴 선물주머니 얻거들랑 그 자리에서 다 먹어치워야지. 쳇!” 다른 한 적병이 쐐기를 쳤다. “장관들 말대로 중공군이 운수선이 끊어져 급양이 딸린다면 우리한테까지 이 많은 선물 보낼 수 있겠노? 꼭 물자가 풍족할 거 아뇨? 장관들 말 믿지 못하겠어.” 아군의 대적정치공세에 의해 적지 않은 적병들이 이렇게 의논하고 의거해오기까지 했다. 걀죽하게 생긴 20살 밖에 안된 방송원(아나운서) 리정숙 처녀는 기침을 콜록콜록 깇으면서도 련 며칠동안이나 방송을 견지하였다. 수척해진 그의 얼굴을 보고 리해식은 “좀 쉬오.”라고 권고하였다. 리정숙은 수척해진 얼굴에 가벼운 웃음을 생글 지으면서 “괜찮아요. 아무 일도 없어요.”라고 하였따. “그러다간 큰 병이나 나겠소.” “고마와요. 전 방송을 계속 할 수 있는데요.” 아무리 권고해도 그녀는 들을 념을 하지 않았다. 안옥순은 얼굴이 동그스름하게 생긴 18세 밖에 안되는 처녀애였다. 그는 당지 학교에서 우리 지원군 부대에 와서 지원군 군복을 입은 고중졸업생이였다. 어떤 때 안옥순은 련 몇시간씩 목청을 돋궈 방송하느라고 입술이 마르고 목이 다 쉬였다. 해식은 “목이 다 쉬였구만. 좀 쉬오.”라고 권고하였다. 안옥순은 방실 웃으면서 마이크 앞에서 일어섰다. “예, 참 미안해요. 방송이 똑똑하지 못했겠네요.” 그녀는 꽃처럼 부드럽게 말하더니 포탄상자 우의 고뿌를 들고 갱도 저쪽으로 사뿐사뿐 걸어가 갱도 돌틈에서 떨어지는 물을 고뿌에 받아 마시는 것이였다. 뒤이어 이쪽에 돌아오더니 “이젠 괜찮을 거예요.” 하고 다시 마이크 앞에 다시 앉아 계속 방송하였다. 목소리는 좀 나아졌지만 목이 오죽 아팠으면 침을 겨우 넘기겠는가. 얼굴이나 말씨는 꽃처럼 부드러웠지만 속은 강하길 그지없는 두 처녀 전우에게 못내 감탄이 갔다. 심룡섭은 방송선이 끊어지기만 하면 씽씽 날아와 작렬하는 포탄을 무릅쓰고 절룩거리는 다리를 끌고 갱도 밖 산정에 올라가서 방송선을 이어놓았다. 어떤 때에는 적들의 폭격에 확성기 나팔이 굴러떨어져 마사질가봐 비발치는 탄우를 무릅쓰고 방송이 끝날 때까지 두팔로 확성기나팔을 붙안고 있군 하였다. 양력설을 전후하여 19일 동안 사단 대적정치공작과의 19명 조선족전사들은 조선인민군에서 파견돼온 6명의 녀방송원(아나운서)들과 함께 리승만 괴뢰군에 도합 133시간에 달하는 109차 방송선전을 진행하였고 적전연진지에까지 접근해 268차 대적함화를 진행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나날들은 실로 가슴이 벅차고 아짜아짜한 추억을 불러일이킨다.                             정신화력망            박달나무가 얼어터지고 승냥이들이 눈물을 똑똑 떨굴 한겨울 엄동설한이다.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는 고산준령의 적진 앞에는 여러가지 색갈로 그린 만화와 표어패쪽이 박혀 있었다.       금방 갱도에서 나온 적병들은 그것들을 보고 주춤 멈춰섰다. 그들은 갱도 어귀에서 제일 가까운 만화를 찬찬히 뜯어보는 것이였다. 통졸임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술병을 꺼꾸로 쳐들고 꿀꺽꿀꺽 마셔대는 군관, 그 아래에서 쭈그리고 앉아 주먹밥을 먹고 있는 적병들… “허허, 심통하게도 그렸군 그래. 저 치들이 주먹밥 먹는 우릴 본 거 아뇨?” “그러게 말이야.” 그들이 빠드득빠드득 눈밟는 소리를 내면서 눈깔린 교통호를 걷는데 교통호와 철조망, 어데라없이 숱한 만화와 표어판이 눈에 죽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거기에는 조선어로 이런 구호들이 씌여 있었다. “돈 있는 집 새끼들은 군대노릇을 하지 않고 가난한 집 자식들만 군대 되여 죽고 말게 됐다!” “여기에는 안전한 곳이 없다!” “당신은 살고 싶은가? 돌격할 때에는 뒤에 서고 달아날 때에는 앞장서라!” “투항해야 안전하다.” “우리는 포로를 너그럽게 대한다!” 적병들은 그것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다 읽어보았다. 추위 때문인지 적병들은 옷깃을 여미고 몸을 옹송그리고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어떤 자들은 지뢰나 본듯이 그 패말을 보고 뒤걸음치더니 동굴 속으로 되들어갔다. 사단 대적공작과에서 해제낀 사업이 위력을 떨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조선족번역원들은 지원군 전사들에게 대적함화와 일상용어에 관계되는 간단한 조선말을 몇마디씩 배워주었다. 실로 봄날에 구으는 눈덩이가 커지듯이 날에 날마다 더 많은 장병들이 간단한 조선말과 대적공작지식을 알게 되였다. 하여 아군은 “정신화력망”의 위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작은 대가를 내고 전투의 승리를 취득할 수 있었다. 해가 추위에 오스스 떨며 지는 무렵, 한개 반 가량 되는 적병들이 한줄로 서서 전연진지 서쪽 골짜기를 오락가락하였다. 그 놈들은 그 골짜기 허리에 동굴까지 파놓고 오고 갈 때 들려 몸을 녹이고는 새벽에야 돌아가군 하는 것이였다. 이렇게 련 며칠 규칙적으로 왔다갔다 하군 하였다. 리해식 소속 모 퇀에서는 한 정찰참모를 시켜 퇀 정찰패의 제3반 정찰병들을 이끌고 그 곳에 가서 “혀”룰 잡아오게 하였다. 정찰병들은 흰 위장복을 입고 어둠을 타서 아군 전연진지 전우들의 엄호 밑에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덮인 산 아래를 따라 적진을 향해 더듬어나갔다. 그들이 적전연진지와 가까운 절벽 밑에 이르렀을 때 계획대로 아군의 포가 불을 토하였다. 포탄이 적진에서 작렬하는 틈을 타서 정찰병들은 바위를 타고 절벽에 올라 철조망을 번개같이 날아넘었다. 포화가 멎자마자 그들은 혀를 잡을 동굴 가까이까지 접근해갔다. 그들이 보초놈과 서너메터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보초 서던 세놈이 그들을 발견하고 황급히 총을 쏘았다. 이어 수류탄 하나가 나라와 폭발하였다. 다행히 정찰병들이 눈 우에 납짝 엎드렸기에 상하지 않았다. “사격!” 정찰참모의 명령에 따라 정찰병들은 일제히 사격하였다. 그 세 놈은 허리 잘리운 나무통처럼 나가 뻐들어졌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보초를 서던 한 놈이 동굴 쪽으로 달아나면서 고함쳤다. “중공군이 왔다!” 정찰병들은 그 놈을 쫓아가 동굴 어귀를 봉쇄하였다. 독 안에 든 쥐가 된 적들은 동굴 안에서 법석 고아댔다. 적 분대장은 전화기를 돌려대더니 송수화기에 대고 상전에게 보고하느라고 게사니처럼 꿰꿱거렸다. “전화선을 끊어버렷!” 정찰참모의 명령. 두 정찰병이 동굴 밖으로 나온 전화선을 비수로 몇토막 냈다. 몇몇 장찰병들이 원 계획대로 동굴 안의 적들에게 조선말로 고함쳤다. “총을 놓으면 살려준다!” “우리 지원군은 포로를 너그럽게 대한다!” “무기를 놓고 손드록 나오라! 살려준다!” 함화소리는 무형의 정신화력이 돼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적들이 두 손으로 총을 받쳐들고 눈덮인 동굴 어귀에 나타났다. 맨 마지막에는 적 분대장이 전화통을 두 손으로 머리 위에 쳐든 채 나왔다. 정찰병들이 덮쳐나가 무기를 해제하고 포로를 세여보니 모두 여섯이였다. 정찰병들은 아군 진지에 돌아가는 신호탄을 쏘았다. 그들은 로획한 여섯자루의 자동보총과 전화기 한대를 나눠 메고 포로를 압송하여 귀로에 올랐다. 쿵, 쿵쿵! 정찰병들의 앞길을 차단하려고 적들이 대포를 쏘았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 슬기롭고 영용무쌍한 정찰병들이 아군 진지의 전호 속으로 돌아온 뒤였다. 어느날 밤, 이 퇀 5련 2패에서는 불시에 적들의 한개 소대 진지를 습격하였다. 2패 패장은 4반과 5반을 데리고 산을 뛰쳐나온 맹호마냥 적진의 왼쪽 뒤로 전호에 뛰여들어 적의 지휘소 쪽으로 쳐들어갔다. 4반 1조 전사들은 정면으로 적진의 제일 높은 곳을 점령하여 적들의 소대와 분대 진지를 이은 전호 교차점을 차단해버렸다. 4반의 2조와 3조에서는 번개같이 적진 옆 유리한 지형을 점령하여 적들의 퇴로를 막아버리고 증원하러 오게 되는 적들을 막을 태세를 갖췄다. 뒤이어 5반 반장이 2조와 3조 전사들을 령솔해 오른쪽에서 적 지휘소 또치까에 다가들었다. 그때 적 소대장이 한창 전화를 거는 것이 등불빛에 보였다. “한 동무 엄호하고 또치까 량쪽을 포위하라!” 4반의 한개 소조도 정면으로 몰사격을 가하면서 조선말로 고함쳤다. “너희들은 몽땅 포위됐다! 투항하라!” “총을 놓으면 살려준다!” “우린 포로를 너그럽게 대한다!” 그 조선말함화소리는 포위당한 적들의 가슴을 비수마냥 파고들었다. 적들은 아우성쳤다. “총 쏘지 마쇼-” “제발 살려주쇼-” 뒤이어 무기를 놓은 적들이 하나, 둘 두 손을 쳐들고 나왔다. 세여보니 적 소대장까지 도합 15명이나 되였다. 다른 또치까의 22명 적들은 아주 교활하게 놀았다. “손들엇!” 지원군 전사들이 고함쳤다. 그러자 적들은 “투항하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두 손을 들고 나오는 적들은 보이지 않았다. “손들고 나왓!” “예, 예.” 몇놈이 또치까에서 나오는 것이 어슴푸레 보였다. “손들엇!” “넷!” “손벽을 쳐라.” 혹시 손에 총을 쥐였을가봐서였다. “네,네.” 쨕, 쨕, 쨕! 손벽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한 놈이 손에 권총을 쥐고 다른 손으로 자기 뺨을 치는 것을 발견하였다. “총을 놧!” 그러자 그 놈은 권총을 휘둘러 아군 전사를 쏘았다. 땅! 지원군 전사는 몸을 옆으로 숙이면서 그 놈에게 명중탄을 안겼다. 땅! 그 놈은 거짓 투항하고 발악하다가 격살당하였다. 거짓 투항한 나머지 22명 놈들은 또치까 안에서 최후발악을 하다가 모두 영용한 지원군 전사들에게 격살되였다. 전사들은 뒈진 적들의 주검 우에 우리 대적공작과에서 조선어로 쓴 삐라를 뿌려놓고 떠났다. 그 삐라에는 이런 조선글들이 박혀 있었다. “산꼭대기는 네놈들의 무덤이다!” “투항하지 않으면 이런 끝장을 보게 될 것이다!” “봐라! 이것이 바로 미제와 리승만 괴뢰군 위해 목숨 판 끝장이다!” 그번 습격전에서는 선후하여 5분 동안에 적 한개 소대 병력을 없애치웠다. 이것은 실로 군사타격과 “정신화력망”의 위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적들의 사기를 꺾어놓은 승리였다. 한번은 이런 일도 다 있었다. 적 군관 한 놈과 병사 몇놈이 또치까에 갇히워 총을 쏴대면서 발악하였다. “투항하면 살려준다!” “무기를 놓고 나왓!” 아군 전사들의 조선말고함소리가 적 또치까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또치까 안의 적들은 계속 불질하였다. 이때 위리 한 대적공작골간이 또치까 총구멍으로 권연 두통을 뿌려넣었다. 쌔까만 밤이여서 똑똑히 볼 수 없어 적들은 아마 신식수류탄이 날아들어왔는가고 했던지 몽땅 피해 한쪽 켠에 엎드렸다. 그런데 한참 있어도 폭발하지 않았다. 한 적병이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권연이야!” “뭐라고?” “중국권연 두통이야!” 적들은 또치까 안에서 우야 소리치며 모여들어 너도 나도 담배를 나눠 피웠다. “투항하면 살려준다!” “투항하지 않으면 쏴죽일테다!” 적병들과 군관은 담배를 붙여물고 풀썩풀썩 피우면서 또치까 안에서 두 손을 들고 나왔다. 어떤 때에는 적병이 시체 속에 죽은 것처럼 누워 있다가 도망치려고 하였다. 그럴 때면 우리 전사들은 호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죽은 상을 하고 누워 있는 적병의 입 안에 밀어넣었다. 달디단 사탕을 입에 물자 그 적병은 령단묘약이나 먹은듯이 부시시 털고 일어나 쑥쓰러워하면서 두 손을 머리 우로 쳐들었다. 한 적병은 두 다리에 관통상을 입어 포로됐기에 데리고 올 방법이 없었다. 그러자 전사들은 그 포로에게 사탕과 담배를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안됐습니다. 할 수 없구려. 바쁜대로 제 진지에까지 기여갈만 하면 기여가시오.” 뒤이어 전사들은 붕대를 꺼내 피 흐르는 두 다리의 상처를 동여매주고 솜바지가랭이를 잘 내려주었다. 그러고도 그 포로가 얼가봐 적병의 군용탄자를 주어다 펴고 그 우에 눕히고 머리에는 비 옷을 가리워 눈보라를 막아주었다. 그 장면을 목격하고 부상당한 다른 포로병들은 길 수만 있으면 다 우리 전사들을 따라 기여 아군 진지에로 넘어왔다. 아군 전사들을 따라 길 수 없는 포로병, 다리를 상한 그 포로와 다른 포로들은 두 볼을 적시는 눈물을 팔소매로 쓱 문지르고 물기어린 감격된 눈길로 어둠 속에서 사라져가는 지원군 전사들의 뒤그림자를 바래면서 감탄하였다. “정말 인정미 찰찰 넘치는 군대야, 국방군 같으면 누가 관계하겠노? 정 메고 가기 싫으면 깜장콩알 한알 먹이면 다지.” “글케 하면서도 고생시키지 안을락꼬 그러는기여 하고 떠벌이지 않았노? 쳇!” 어느날 밤, 전연진지의 한 소분대에서는 패장 상국의와 반장 전홍인이 지휘밑에 괴뢰군 제3사 23련대 9중대의 한개 분대가 지키는 진지를 돌연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맵짠 밤바람이 가슴 속에까지 엄습하는 엄동설한에 전사들은 무릅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밟으면서 네시간이나 힘겹게 행군해서야 적진의 옆을 에돌아 밤중에 적진 뒤쪽 벼랑 밑에 이르렀다. 흰 위장복을 입은 돌격조와 수색조의 전사들이 패장 상국의의 명령에 따라 목마를 타는 방법으로 금방 절벽 우에 하나하나 올라갔을 때였다. “누구얏?” “구령!” 적 보초놈에게 발각되였다. 반장 전홍인이 어느새 수류탄을 날렸다. 꽝! 수류탄 폭발소리와 함께 그 보초놈은 쓰러졌다. 아군 전사들을 발견한 오른쪽 또치까 안의 적들이 이쪽에 대고 불질하였다. 어둠 속에서 사격하는 불빛이 번쩍번쩍 이쪽으로 비껴왔다. “앗!’ 전사 뢰귀청이 비칠거리더니 오른쪽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옆에 선 전사가 그를 부축하였다. 뢰귀청은 자기를 부축하는 전사의 팔을 쳐버리면서 고함쳤다. “나는 일없소. 적들을 빨리 족치오.” 뢰귀청은 상처에서 오는 모진 진통을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기관단총으로 놈들에게 뚜루룩뚜루룩 맹렬히 사격하였다. 적들의 화력이 대뜸 그에게로 돌려졌다. 뢰귀청은 적들의 화력을 끌어오고 장렬히 희생되였다. 그 틈을 타서 반장 전홍인과 다른 전사는 번개같이 덮쳐가 적 또치까 꼭대기에 올라갔다. 적들이 총구멍으로 요란스레 총질하였다. 전홍인 반장과 다른 전사는 수류탄을 세개나 또치까 구멍으로 뿌려넣었다. 꽝! 꽝꽝! 수류탄폭발소리와 함께 총질하던 몇놈이 뻐드러지고 또치까는 잠잠해졌다. 전홍인 반장과 그 전사는 또치까 출입구 어귀에 다가들어 안에 대고 서투른 조선말로 땅방울같이 을러멨다. “투항하면 살려준다!’ “우린 포로를 너그럽게 대한다!” “빨리 나왓!” 그 소리를 듣고 어둑시그레한 또치까 안에서 한 적병이 엉금엉금 기여나와 두 손을 천천히 들었다. 전홍인 반장은 미리 갖고 온 사탕을 호주머니에서 한줌 꺼내 그 적병의 쳐든 손을 내리워 쥐여주었다. 그러면서 조선말로 이렇게 한마디 한마디 어루쓸어댔다. “우리 지원군은 포로를 너그럽게 대하오. 당신의 생명안전을 담보하오.” 이때 패장 상국의가 거느린 몇몇 전사들도 벼랑 우에 올라와 그 또치까를 에둘러쌌다. 독 안에 든 쥐로 된 적들은 우리 전사들이 하는 말을 들었고 너그러운 태도도 보았다. 이때 포로된 적병이 반장 전홍인이 준 사탕을 쥔 손을 흔들면서 또치까 안에 대고 소리쳤다. 그러나 우리 지원군 전사들은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지원군은 너그럽다…”는 한마디 말만 알아들었을뿐이다. 좀 지나자 또치까 안의 적병들이 하나 둘 두 손을 쳐들고 느릿느릿 걸어나왔다. 아군 전사들은 포로들에게 다가가 사탕과 압축과자를 한줌씩 쥐여주었다. 땅! 땅땅! 정면으로 쳐들어가던 수색조는 다른 또치까 놈들의 저격을 받고 있었다. 한 전사가 어깨에 총탄을 맞고 비칠거렸다. 전사들은 또치까 문어귀에 나타난 적을 겨누고 맹렬히 사격하였다. 그 적병이 꺼꾸러졌다. “투항하면 살려준다!” “빨리 나왓!” 좀 지나 적병 3명이 총을 놓고 두 손을 쳐들고 나왔다. 적 한개 분대가 몽땅 살상되거나 포로되였다. 전투는 승리적으로 끝났다. 그런데 날이 밝기 전에 부상병을 데리고 8명 전사가 포로 8명을 압송해서 적 봉쇄구역을 벗어나 아군 진지로 돌아갈 길이 막연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눈덮인 지형이 눈 설고 눈덮인 산발 여기저기에 지뢰가 매설돼 있어 한발자욱도 내딛기 힘들었다. 게다가 적들의 포화가 심해 길이 막힐 위험이 무시로 있었다. 아군 전사들이 서성거릴 때 포로들이 길잡이를 서겠다고 손시늉을 하면서 나섰다. 포로들은 자기들을 너그럽게 대해주는 지원군에 감화됐던 것이다. 포로들은 아군 전사들의 앞에 서서 눈덮인 산발을 이리 돌고 저리 돌아 지뢰구역을 안전하게 벗어나게 길잡이를 하였다. 그리하여 아군 전사들은 포로들이 헤쳐나가는 눈길을 따라 첩첩한 화력봉쇄선을 뚫고 나와 아군 진지에로 돌아왔다. 상급에서는 이 반에 영예롭게 집체2등공을 기입해주었다.        그 후 아군 진지에는 아군의 “정신화력망”에 감화된 괴뢰군 8명 포로가 아군 한개 반 전사들의 길잡이를 해준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
197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3) 댓글:  조회:1260  추천:0  2018-11-18
                               제3장 황해도 곡산군에서                        친선의 정이 흘러넘치는 산골       1951년 6월 12일 밤에 해식이네 사단은 황해도 곡산군의 세림리와 외락리에 이르러 휴식정돈하게 되였다.        곡산이란 곳은 문자 그대로 산과 골짜기가 많았다. 또 나무 숲이 우거져 군대가 주둔하기 좋은 곳이였다. 옥에 티라고나 할가 골짜기에 오불꼬불하고 올리막내리막이 많은 좁은 길뿐이여서 군용차들이 다니기 어려운 것이 흠이였다.        부대가 들어오자 고즈넉이 잠들었던 이 산골은 들끓기 시작하였다. 이전에 자동차를 구경조차 하지 못한 산골의 조무래기들은 마을에 들어선 자동차며 찌프며 구경하느라고 차에 올라가 야단법석하였다.       전사들은 나무와 풀을 베여다가 마을 뒤산기슭 수림에 간이막집을 지었다. 공병영에서는 괭이를 휘둘러 사단 수장들과 기관 동지들이 들 토막집과 2, 300명이나 들어갈 수 있는 깊고 큰 방공굴을 팠다.       며칠 후 사단에서는 당지 조선 인민정부와 인민군중들과의 거래가 잦게 되자 리해식을 사단 대적공작과로부터 민운과에 전근시켰다. 사단 사령부와 정치부의 큰 방공굴에서 자주 영화를 돌리거나 문예공연을 하였다. 그때면 아무리 자리가 모자라도 리해식은 상급의 지시에 따라 당지 조선 백성들을 모셔다 제일 좋은 자리에 앉게 하여 구경시켰다. 모내기철이 되자 전체 장병들은 조선 백성들을 도와 모를 꽂아주었으며 사래긴 옥수수밭 기음도 매주었다. 그리고 쉼이면 전선의 승리소식도 전해주었다. 실로 온 산골짜기에는 친선의 정으로 들끓었다. 조선의 당지 도와 군 인민정부에서는 지원군부대에 말사료가 떨어진 것을 알고 인차 숱한 말사료를 실어왔으며 자주 문예단체를 파견하여 지원군 장병들에게 다채로운 위문공연을 해주었다. 어떤 때에는 미제의 공습에 위험했지만 조선위문단 배우들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사단 주둔지에 찾아와서 다채로운 문예종목을 공연하였다. 그들은 공연한후 쉼시간이면 피곤을 무릅쓰고 전사들의 옷을 씻는다, 옷을 깁고 단추를 달아준다 하면서 눈코뜰새 없이 보냈다. 장마철에 잡아들자 하늘은 개일줄 모르고 큰 구멍이나 뚫린듯이 소낙비가 대줄기처럼 쏟아져내렸다. 산홍수가 터져 오불꼬불한 산길은 뭉텅뭉텅 끊어져나갔다. 40년래 처음 보는 큰비로 하여 철도는 10여 곳이나 끊어졌고 다리는 백여개나 끊어져 40날이나 운수가 막혔다. 리해식의 소속사단에서도 산길이 끊어져 기관간부들은 10여킬로메터나 되는 곳에 가서 식량과 부식물을 메와야 하였다. 그리고 큰물피해로 하여 당지 백성들의 생활에도 막대한 곤난을 조성하였다. 하여 아군단에선는 각 사의 병력을 떼내여 군부 참모장 등사준의 지휘하에 주둔구역의 주요운수선인, 문암리로부터 룡암리에 이르는 21킬로메터 도로를 너비가 7메터 되는 큰길을 닦기로 결정하였다. 사단에서는 정치부 주임 범극양의 지휘아래 3개 보병영이 길닦기에 참가하였다. 이 구간의 길은 동서로 뻗었는데 굽인돌이가 많은데다가 걷기조차 힘든 령길이였다. 룡암리에서 문암리로 가자면 강변을 따라 가다가 크고 작은 26개의 강한 올리막굽인돌이를 거쳐 산꼭대기에 올라야 했다. 또 그 산꼭대기에서 다시 18개의 경사도가 강한 내리막굽인돌이를 내려 작대동에 이른 후 강곬을 따라 굽인돌이 5킬로메터 남짓한 길을 가야 하였다. 큰비가 내린 후 다리와 작은 배수로들이 홍수에 밀려 끊어났거나 무너져 사람이나 소나 다 걷기도 힘들었다. 그런 길로 군용자동차는 달릴 엄도도 내지 못하였다. 이런 길을 닦는다는 것은 실로 난사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로동도구도 없어 곤난이 막심하였다. 량미간을 쪼프리면 꾀가 생긴다고 전사들은 미제 공중날강도들이 내리뜨린 나팜탄탄피로 톱을 만들어 나무를 베왔고 버드나무가지를 베다가 광주리를 결어 흙을 날랐다. 어느날 장병들이 한창 들끓는 열의로 길닦이를 할 때였다. 갑자기 남쪽 하늘에서 적기들이 아츠런 엔징소리를 내면서 공중을 짜개며 날아왔다. “적기다! 은페!” 전사들은 모두 길옆의 수림에 들어가 피신하였다. 적기들은 기수를 숙이더니 기관총으로 소사하고 폭탄을 마구 투하하였다. 갓 닦아놓은 길에 폭탄구뎅이가 벌집처럼 수태 났다. 쿵! 쿵! 쿵! 쿵쿵! 아군의 맹렬한 고사포사격에 적기 한대가 시꺼먼 연기를 뭉게뭉게 풍기면서 저 먼 산에 처박혀 폭발하였다. 나머지 적기들은 겁을 집어먹고 황급히 남쪽으로 꽁무니를 뺐다. “만세!” “만세!” 전사들은 삽과 괭이, 멜대를 추켜들고 환호했다. 사기 오른 아군에서는 이른바 “공중교살전”을 벌리려는 공중날강도 3대를 떨구고 한대를 격상해버려 길닦이부대를 엄호하였다. 아군 사단 모 퇀 전사 하명산은 하루에 정으로 돌 7립방메터나 깨냈다. 전사들은 하명산처럼 손바닥에 피물집이 졌지만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억세게 돌을 캐고 흙을 메날라 길을 닦았다. 길바닥에 펼 모래가 없으면 심지어 10~15킬로메터 길을 오가면서 모래를 한광주리 한광주리 날라다 폈다. 전사들은 무거운 모래짐을 메나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모래 한광주리를 더 날라 길을 닦으면 그만큼 중조친선의 꽃이 더 아름답게 필 것이 아니겠소?” 아군 전체 길닦이장병들은 31일 동안 적기의 공습과 장마비를 무릅쓰고 악전고투하여 룡암리로부터 문암리에 이르는 21킬로메터나 되는 길을 너비 7메터나 되는 빤빤한 모래길로 닦아놓았다. 그들이 메나른 흙과 모래는 93만여립방베터로서 가히 자그마한 산을 이룰 수 있었다. 그들은 다리 3개를 수축하고 배수로 93개를 뺐으며 자동차은페소 20개를 구축해놓았다. 큰길을 닦아놓았기에 부대의 운수와 당지 조선 백성들의 생활에 커다란 편리를 가져다주었다. 당지 조선 백성들은 이 길을 걸을 때마다 지원군 장병들의 창거에 찬탄을 금치 못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황해도와 곡산군 등 당정지도자들도 여간 감탄해마지 않았다.                                           미제의 세균전에 맞서             1951년 7월, 제5차 전역에서 참패를 당한 미제는 개성에서 열린 정전담판에서 중조군대가 통제하는 커다란 지역을 싸우지 않고 제 손아귀에 넣으려고 시도하였다. 그 무리한 요구가 중조담판대표단의 거절당하자 미제는 그해 여름 장마철에 남조선의 수원, 군산, 부산, 김포, 성남, 대구 등 공군기지로부터 600여대 비행기를 띄워 중조군대의 주요교통요새를 폭격해 봉쇄하려고 망녕되게 시도하였다. 그러나 역시 참패를 면치 못하였다.       미제는 실패를 달가와하지 않고 1952년 새해 벽두부터 조선전쟁터에서 세균전을 암암리에 들이댔다. 일찍 미제는 2차세계대전 때 동북지구에서 일제가 731부대를 이끌고 세균무기실험을 해온 세균연구자료와 일본세균전쟁범죄자들을 리용하여 새로운 세균무기를 연구하여 제조하였다. 그 놈들은 1950년 12월에 황해도 등지로부터 패주할 때 처음으로 전염병세균을 뿌린 적이 있었다. 그후 조선 신의주와 중국 단동 교외 일대에도 세균무기를 투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번마다 중조 두 나라 반세균전문가들에 의해 좌절당하였다. 극악한 미제는 그후에도 계속 남조선 경상남도 거제도 등 미군 전쟁포로관리소에서 중조 두 나라 포로들의 몸에 대고 비인간적인 세균실험을 했다. 반복적인 실험을 거쳐 미제는 끝내 새 세균무기를 제조해냈다. 미제는 공군 비행사에게도 “터지지 않는 폭탄”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그들을 보고 세균폭탄을 아군의 전연진지와 교통요새에 마구 투하하게 하였다. 그리고 대량의 특무들을 북반부에 파견하여 세균전의 효과를 정탐해오게 하였다. 3월 중순, 지원군은 황해도 금천군 구이면 경내 산속에서 미군 정보기관에서 파견한 왕지가라고 별명을 단 특무를 붙잡았다. 피끗 보아도 그 자는 중국인임이 틀림없었다. 그 자가 입은 지원군 군용외투 팔소매에는 “US”글자가 박혀 있었고 외투 왼쪽어깨에는 십자가 모양의 “부호가 새겨져 있었다. “당신은 뭘 하는 사람인가? 낱낱이 교대하라.” 지원군 심문일군이 묻자 그 자는 머리를 푹 수그렸다가 천천힏르면서 무거운 입술을 뗐다. “나는 본명이 왕기고 중국 절강성 사람입니다. 국민당 ‘반공항로단’ 성원인데 참조미군의 ‘원동정보과’ 정탐일군입니다. 나는 다른 9명의 중국적 대만특무들과 함께 서울 ‘미군전연정보기관련락처’의 명령을 받고 서울에서 두대의 비행기에 앉아 북반부 여기에서 락하산을 타고 내렸댔습니다.” 왕기라는 특무는 쪽걸상에 앉아 두 손을 바르르 떨더니 마주 비볐다. 심문일군은 그 자를 날카롭게 쏘아보면서 바투 들이댔다. “임무는 뭔가?” 왕기는 심문일군의 날카로운 눈길을 피하면서 머리를 수그렸다. “지원군으로 변장하고 세균전 효과를 알려고 왔습니다. 말하자면, 저- 공산군에 전염병이 도는 정도와 사망률과 같은 정보를 수집하려고 왔습니다.” 심문일군은 왕기의 몸에서 군용지도와 도청기 등을 수색해냈다. 이 놈을 체포할 때 전사들은 돌격총과 통신용비둘기를 빼앗아냈던 것이다. 미제의 세균전을 막으려고 지원군과 조선인민군, 그리고 조선 당지 인민정부에서는 중국에서 파견해온 40여명 반세군전 전문가들의 지도 밑에 한차례 반세균전을 벌리였다. 아군 주둔지인 곡산군에서는 2월 중순부터 적들이 투하한 세균벌레를 발견하였다. 적들은 밤중에 선후하여 51차나 세균탄을 떨구었다. 이런 세균탄에는 전염병균을 가진 벼룩, 파리, 거미 그리고 돼지고기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이런 세균탄은 밤중에 공중에서 터진데다가 세균벌레가 매우 넓은 지역에 널렸기에 잡기 매우 힘들었다. 어떤 세균벌레는 삐라와 함께 투하하였기에 삐라를 쥐기만 하면 전염병에 걸릴 수 있었다. 사단에서는 3월 중순부터 동원되여 세균벌레를 잡고 면역사업을 펼쳐나갔다. 한번은 장병들이 산에 올라가 풀 속에 널린 세균벌레를 발견하였다. 한 전사의 발등에 커다란 세균벌레가 올라붙었다. “어이, 빨리! 그 독거미를 털어내 태우오.” 다른 동무가 다급히 웨치자 그 전사는 대수롭잖게 빈정거렸다. “쳇, 겁날게 뭐요? 이 어른은 전선에서 적기와 포탄도 겁나지 않았소. 요까짓 쪼꼬만 거미를 겁나할 거 같소? 원참.” 결과 그 전사는 전염병에 걸리고 말았다. 이와 반면에 어떤 전사들은 진짜 바줄을 보고도 뱀인가고 놀라는 우수운 일도 있었다. 한번은 사단 정치부의 간부들이 조선 백성의 집뜨락에서 밥을 먹을 때였다. 갑자기 쥐 한마리가 집 안에서 뛰쳐나왔다. “쥐, 쥐! 아이유, 쥐요!” 모두 후닥닥 뛰여일어나 밥사발을 쥔 채 쥐를 피해 이러저리 뛰여다녔다. 쥐가 달아나자 밥사발을 쥔채 서로 손가락질하면서 배를 끌어안고 껄껄 폭소를 터뜨렸다. 실로 싸움터에서 오십보를 달아난 자가 백보를 달아난 자를 웃는 격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단에서는 반세균전 전문가들을 청해 반세균전상식을 강의하게 하고 사상사업을 하여 장병들의 공포심리와 한시름 놓는 사상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전체 장병들을 동원하여 며칠새에 쥐 몇만마리나 잡아 마을에서 800여메터 떨어진 곳에 깊은 구덩이를 파고 묻어버렸다. 그리고 취사칸과 들집, 변소를 자주 깨끗이 쓸어 전염병세균 벌레가 끼지 못하게 하였으며 몸도 자주 씻어 정결을 유지하고 벼룩 같은 전염병균벌레가 끼지 못하게 하였다. 조국에서는 면역주사를 보내 모든 장병들과 당지 백성들에게 제때에 놔주었다. 면역주사를 맞은 전사들은 주사자리를 문지르면서 감개무량해하였다. “모주석과 조국 인민들이 비행기로 면역주사까지 보내주었는데 우린 꼭 적들의 세균전을 이겨 모주석과 조국 인민들의 배려에 보답해야 하오.” 아군의 선전과 동원을 거쳐 당지 조선 인민들도 세균벌레를 잡고 면역사업을 열성스레 벌렸다. 한번은 해식이 조선인민군 문화련락처 동지와 함께 일보러 어느 한 마을 동구 밖에 이르렀을 때였다. 마을 길어귀에 세운 소독실을 지키던 두 처녀가 앞길을 막아나섰다. “서세요. 소독실에 들어가 소독하고 마을로 들어가세요.” “우리는 일이 바빠서 그만두기요.” 해식의 말에 두 처녀는 웃음기를 거두더니 때뜸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안돼요. 이건 인민위원회와 지원군부대에서 공동으로 결정한 규정입니다. 부대 동지들도 꼭 소독해야 마을에 들어갈 수 있어요.” 그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길옆에 있는 소독실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소독실에 들어가니 뜨끈뜨끈한 온실에서 김이 문문 났다. 한 5, 6분 들어가 있으니 온몸이 뜨거워 견디기도 힘들었다. 온몸에는 땀이 후줄근히 내배였다. 밖에 나오니 온몸이 축축해졌다. “호호호. 뜨겁지요? 이젠 마을에 들어가도 돼요.” 얼굴이 걀죽한 처녀는 그들을 보고 깔깔깔 웃어댔다. “음, 괜찮습니다.” 마을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그들처럼 이렇게 온실에 들어가 소독하여야 하였다. 이밖에 군민은 련합으로 몇개 방역구와 공중관찰소를 내오고 적기가 세균탄을 투하하는가를 밤낮으로 밤하늘을 지켰다. 일단 적기가 세균탄을 투하하기만 하면 책임구역에 따라 즉시 군민들이 총출동하여 세균벌레를 잡아 없애버렸다. 3개월 동안 군민이 함께 노력 끝에 아군 구역에서 전염병이 돌지 못하게 하였다. 하여 미제가 벌린 세균전은 곡산군에서 철저히 실패하고 말았다.                                                                                      간부문화학습반    리해식 소속사단의 적지 않은 패장들은 신문을 읽을줄 몰랐고 어떤 련장들은 전사들의 이름마저 틀리게 불러 웃음통을 터뜨릴 때도 많았다. 심지어 어떤 영장이나 영급간부들도 행군작전할 때 지도마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명을 틀리게 말해 작전에 막대한 장애를 조성하였다. 그리하여 어떤 영장은 문서나 비서를 불러 지도를 보고 해석해달라고 할 지경이였다. 이런 실정에 근거하여 사단에서는 700여명이나 되는 패 이상 간부들을 조직하여 간부문화학습반을 조직하였다. 전사들은 사단 사령부가 자리잡고 있는 동산기슭의 이깔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수림 속에 간부문화학습반 강당과 숙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방공에 편리하게 하려고 강당 자리의 나무가지와 풀을 한대도 다치지 않고 해볕이 쨍쨍 내리쪼이는 삼복염천의 무더위를 무릅쓰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다른 산에 가서 억척스레 나무와 풀을 베 날라다가 700여명이나 들어갈 수 있는 강당을 지었다. 그리하여 이 강당에서는 문화학습도 하고 영화나 문예공연도 구경할 수도 있게 되였다. 숙사와 숙사 사이를 50메터씩 띄우고 이갈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하고 못이 없으니 칡넝쿨로 얽어매서 웃갓을 씌워놓고 풀로 이영을 이어놓았다. 해식은 학습반을 꾸리자 한자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불붙듯하였다. 열한살부터 시골의 일본학당에서 겨우 4년 공부한 그는 반문맹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일본글 밖에 배우지 못해 한자는 한글자도 몰랐다. 다행히 8.15광복 후 마을야학교에서 “천자문”이나 “삼자경”, “론어” 같은 옛글을 좀 배운 적이 있어 몇글자를 알뿐이였다. 부대에 온 뒤 비로소 한자를 조금 배웠지만 반문뱅모자는 의연히 벗지 못하였다. “야- 이 좋은 기회에 한자를 배웠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때 때마침 사단 정치부 주임 범극양이 그를 찾아왔다. “리동무, 이번 학습반에 참가하오. 이 좋은 기회를 놓쳐서야 되겠소?” “예. 꼭 참가하겠습니다.” 리해식은 어찌나 기뻤는지 범주임의 손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그날부터 해식은 리직하고 공부를 하나 다름없었다. 개학 첫날에 700여명 학원들은 사단 수장의 동원보고가 끝나자 인차 문화교원의 가르침 밑에 한자를 한글자, 한글자 배우기 시작하였다. 큰 강당에는 걸상마저 없어 땅바닥에 박은 빤빤한 나무통에 앉아 무릎 우에 책을 놓고 공부하였다. 필기장이 없어 학원들은 나무꼬챙이로 땅바닥에 한획한획 그으면서 한자를 익혔다. 그들을 가르치는 문화교원은 당시 전국적으로 널리 쓰는 “기건화속성식자교수법”에 따라 교수하였다. 이름난 기건화동지는 원래 이 군단 후근부 문화교원이였는데 그가 고안해낸 속성식자교수법은 당시 전군, 나아가서 전국에 널리 보급되였다. 그후 기건화동지는 북경에 전근돼가서 전국문맹퇴치위원회 부주임으로 부임되였다. 그들은 기건화속성교수법에 따라 먼저 한어주음자모와 병음을 배운 뒤 그림을 보면서 병음을 달고 글을 익혔다. 학원들은 전면교육과 개별교육을 결합하여 가르침을 받았기에 매우 빨리 한자를 익혔다. 하루에 스무나문개 한자를 익혀 한주일에 2, 3백개 한자를 익힐 수 있었다. 뙤약볕이 재글재글 내리쪼이는 낮에 나무그늘 밑에서 공부하기도 숨이 막혔지만 모두 아주 즐겁게 공부하였다. 다만 조명등이 없는데다가 등불관제가 엄해 아까운 밤시간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뿐이였다. 후에 학원들은 손전지불을 리용하여 공부하였다. 숱한 손전지불이 대낱같이 환하게 켜져 밤중 반공습에 불리하게 되였다. 량미간을 쪼프리면 꾀가 생긴다고 여러 동무들은 침대에 모기장을 치고 손전지 앞끝에 작은 구멍이 뚫린 천씌우개를 씌우고 그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빌어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침대 안은 밝지만 밖에 불빛이 새가지 않아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었다. 스무나문날 밖에 안되는 돌격적인 학습을 거쳐 학원들은 대부분 500 내지 600자 이상 한자를 배워냈다. 학원들의 실제 진도에 따라 공고반과 제고반으로 나눠 계속 공부하게 되였다. 리해식은 이전에 고한어를 좀 배운 기초가 있어 한자를 600자 이상 술술 내리쓸 수 있게 돼 제고반에 들어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반문맹의 모자를 벗게 되였다. 대부분 학원들은 한달 반의 학습을 거쳐 문맹의 모자를 벗고 흥겹게 각기 자기 사업터로 돌아가 서부전선으로 진군해 새 전투임무를 완수하게 되였다.                                                                 제4장 동부전선에서                           저격전       아군은 조선 황해도 곡산군에서 1년 넉달 동안 휴식정돈한 뒤 1952년 10월 25일에 동부전선에 이르러 조선인민군으로부터 어음산 일대의 20킬로메타나 되는 방어진지를 물려받았다. 아군 사단에서 맡은 진지는 동으로는 어음산 서쪽으로부터 서로는 북한강 동안에 이르기까지 10킬로메터나 되였다. 조선 동부전선의 지형특점은 가파롭고 높은 산이 많고 나무숲이 우거진 것이다.       적아 쌍방은 모두 5, 6백메터로부터 천여메터 되는 높은 고지에 견고한 진지를 쌇고 대치하고 있었다. 중조 두 나라 부대의 간고한 노력 밑에 조선반도의 허리를 가로 질러나간 250킬로메터나 되는 갱도식방어체계를 세워 진공할 수도 있고 방 어도 할 수 있는, 력사상 전례없는 “지하장성”을 이루었다. 이런 “지하장성”은 거의 모두 인공적으로 괭이나 삽 같은 것으로 판 것이다. 이는 실로 중조 두 나라 장병들이 피땀으로 수축한, 적들이 쳐들어올 수 없는 금성철벽이였다.       이런 금성철벽의 진지와 대치한 적들의 제일 먼 거리는 천여메터, 제일 가까운 거리는 백여메터 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저격전을 벌리기 아주 좋았다.       그때 40일 사이에 적 103명이나 쏴죽이고 9명의 저격수를 육성해낸 리해식 소속 사단 모 퇀 5련의 반장이며 청년저격수인 양지문의 사적은 전 지원군에 널리 알려졌다. 사단 비서과에 있던 리해식은 그때 양지문의 사적을 직접 정리하였고 또 그의 저격재능을 직접 목격한바 있다. 양지문은 전 반 전사들과 함께 적들과 제일 가까운 북한강 동안의 전연진지인 572.4고지에 배치받았다. 572.4고지와 굽이쳐흐르는 북한강을 사이 두고 2, 3백메터 떨어진 곳에 적들의 진지가 있었다. 양지문이네 고지는 대안의 적들이 지키는 고지보다 훨씬 높아 적들의 일거일동을 손금보듯 환히 볼수 있었다. 상급에서는 명사수인 양지문에게 저격임무를 주었다. 어느날, 적 취사원이 밥배낭을 메고 주요진지가 있는 서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 놈, 어디 깜장콩알 맛이나 봐라!” 양지문은 그 놈의 엉뎅이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땅, 땅, 땅땅! 그 놈의 엉뎅이를 20여메터나 따라가면서 스물대여섯발이나 쏘았다. 그러나 그 놈은 쓰러지기는커녕 양지문을 놀리기나 하듯 느릿느릿 걸어갔다. “제길, 저 놈새끼를 거저! 헤이.” 그는 주먹으로 전호 벽을 꽝 쳤다. 좀 지나 양지문은 그 놈이 나무 세그루가 서 있는 곳을 돌아 서쪽으로 가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첫나무 쪽에 총을 겨누고 그 놈의 옆구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아니나다를가 그 놈이 첫나무에서 둬메터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양지문은 인차 방아쇠를 당겼다.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그 놈은 두다리로 나무를 걷어차면서 대가리를 땅바닥에 처박더니 까딱하지 못하였다. 이윽고 한 놈이 그 곳에롤 달려와 그 놈의 시체를 끌어가려고 하였다. 땅! 그 놈도 네각을 뻗고 쓰러졌다. 이때 바빠맞은 적 몇놈이 시체를 끌어가려고 그 곳에로 욱 뛰여나왔다. 한 놈이 섶나무무지 가까이로 달려오다가 “땅!” 하는 총소리와 함께 뻐드러졌다. 뒤따라오던 두 놈도 두 방의 총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적들은 다시는 그 곳에 얼씬하지도 못하였다. 고지에는 어느덧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내리드리웠다. 별들이 하나, 둘, 반짝거리고 구리바라 같은 둥근달이 동녘하늘에 두둥실 떴다. 양지문은 전호 속에서 전사들을 모아놓고 이날 벌린 저격전 경험을 총화하였다. “처음에 명중하지 못한 건 흐르는 북한강 큰 강물과 골짜기가 탄알을 흡인하여 탄도에 편차가 생겼기 때문이오.” “옳습니다. 강과 골짜기를 넘어 저격하자면 양반장처럼 목표를 정하고 기다렸다가 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양지문은 어둑시그레한 전호 속에 둘러선 전우들을 둘러바다가 달빛을 빌어 강 건너편을 손가락질하면서 차근차근 말하였다. “그럼 저 세그루 나무가 선 곳을 1호 목표로 정하고 저 땔나무무지 부근을 2호 목표로 정합시다. 거리는 300메터로 정하고…” “예, 그렇게 합시다.” 이튿날, 동녘하늘에 아침해가 뿔끈 솟아올라 산을 타는듯 붉게 물들였다. 타는듯하던 단풍잎이 이젠 다 떨어진 뒤라 적들의 진지 안의 동정이 똑똑히 내려다보였다. 저격전을 벌리기엔 참 안성맞춤하게 목표가 잘 보였다. 이때 적진에 두 놈이 나타났다. 그 두 놈은 전날에 저희들 동료들이 총에 맞은 교훈을 섭취했는지 이전처럼 걷지 않고 후미진 곳으로 해 에돌아 양지문의 사격대 맞은켠에서 불쑥 나타나더니 이쪽으로 어정어정 걸어왔다. “흥, 그 놈새끼들이.” 양지문은 앞으로 묘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여섯발의 총소리와 함께 그 두 놈은 뻐드러졌다. 놈들은 시체를 글어갈 엄두도 못내고 기관총으로 양지문의 사격대 쪽에 대고 쏘아댔다. 양지문은 머리를 들 수 없었다. “어이, 양반장, 여기 와 보오.” 전호 저쪽에서 포병패장이 망원경을 들고 불렀다. 양지문이 전호로 기여가서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적기관총의 위치가 똑똑히 보였다. 양지문은 사격대에 돌아와 잘 묘준하여 두루룩 뚜루룩 한배짐 갈겼다. 그 놈의 기관총도 벙어리로 되였다. 그런데 다른 적 기관총이 계속 울부짖었다. 머리만 쳐들면 총알이 푱, 푱 소리를 지르면서 전호 벽에 박혔다. 그런데 적 기관총의 위치가 알리지 않았다. 량미간을 쪼프리면 꾀가 나온다고 궁리하던 끝에 양지문은 련락원더러 나무작대기에 모자를 벗어 전호 우에 올리밀었다 내리웠다 하게 하였다. 과연 모자를 올리밀기만 하면 총알이 쌩쌩- 날아와 모자에 구멍을 뚫었다. 양지문은 다른 곳에 엎드려 인차 적기관총의 위치를 발견하고 총을 겨눠 한 수무발을 련발로 갈겼다. 그 놈의 기관총도 벙어리로 돼버렸다. 뒤이어 적들은 참을 수 없었던지 한놈한놈 시체를 끌러 나왔다. 양지문은 적들이 나오는 족족 쏘았다. 이날 양지문 반의 전사들은 적 11명이나 쏴죽였다. 사흩날, 적들은 전호에 중기관총 한정을 걸어놓고 미친듯이 사격해댔다. 그리고 진지 뒤에서 숱한 놈들이 점점 더 많이 오락가락하였다. “제길할 놈들, 어디 대포 맛이나 봐라!” 양지문은 패의 주봉진지에 알려 포사격을 요구하였다. 쿵! 쿠궁! 쿵쿵! 아군의 무후좌력포가 불을 토했다. 적진지가 뭉청뭉청 날아났고 적 기관총도 벙어리로 돼버렸으며 세 놈이 즉살하였다. 이때 무너진 적진에서 다섯 놈이 슬금슬금 기여나왔다. 양지문은 인차 한배짐 쏘았다. 세 놈이 쓰러지고 나머지 두 놈은 시체에 길이 막혀 황급히 무너진 동굴 속에 뛰여들어갔다. 이윽고 그 두 놈은 동굴 속에서 나올 엄두도 내지 못하고 나무막대기에 모자를 걸어 동굴 밖으로 내밀었다 들여갔다 하면서 시탐했다. “허허, 고놈의 잰내비들이 흉내는 잘 낸다.” 양지문은 웃음보를 터뜨리면서 전사들과 함께 그 두 적을 가만 놔두었다. 몇분이 지난 뒤 그 놈들은 시름놓고 동굴에서 나와 되돌아가는 것이였다. 땅! 땅! 두방의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그 두 놈은 땅에 키스를 하며 버둥거렸다. 어느날 양지문이 진소화를 데리고 사격대에서 저격요령을 가르칠 때였다. 때마침 적 두 놈이 진지에서 나와 강변으로 내려오는 것이였다. “저 놈들을 쏴 보오.” “예.” 진소화는 그 두 놈의 앞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땅! 땅땅! 땅! 몇방을 쏘았지만 한 놈도 꺼꾸러지지 않았다. 총알은 자꾸 적의 앞에 가 먼지를 폴싹폴싹 일궜다. “진동무, 좀 뒤쪽으로 해 쏘오!” “아니, 놈들이 앞으로 다가오는데 뒤에 대고 쏘다니요?” “그럼 내 쏠테니 보오.” 양지문은 의아해하는 진소화를 피끗 돌아보면서 총을 받아쥐더니 적의 뒤로 한발자욱 사이 둔 곳을 겨누어 쏘았다. 한방에 한 놈씩 쏴눕혔다. “아니, 웬 일일가?” 진소화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강물이 흐르기에 편차가 생기오.” “예-“ 그제야 터득이 된 나얼니 진소화는 처녀애처럼 귀 밑까지 빨개났다. 그 이튿날 진소화는 양지문의 말대로 좀 뒤쪽으로 해 겨누고 세방을 쏘아 세 놈을 쏴 죽였다. 그날 점심 때였다. 다섯 놈이 나와서 죽은 세 놈의 시체를 끌어가느라고 야단법석했다. 진소화는 기관총을 가져다가 뚜루룩뚜루룩 갈겼다. 다섯놈이 몽땅 쓰러졌따. 그런데 한 놈도 산 아래로 굴러내려오지는 않았다. 총을 맞지 않은 놈들이 죽은 것처럼 납짝 엎드려 있었다. 격분한 진소화는 방아쇠에 손을 건 채 숨을 죽이고 살폈다. 그때 한 놈이 머리를 불쑥 들었다. 땅! 점발사격에 그 놈은 땅에 머리를 푹 박았다. 뒤이어 네 놈에게도 한방씩 갈겨주었다. 네 놈이 즉살하고 한 놈이 부상입고 기여 전호로 돌아갔다. 오후에 적들은 보복하려고 아군의 진지에 대고 포격과 기관총 사격을 해대는 한편 시체를 끌어갔다. 뒤에서는 군관이 권총을 휘두르면서 감독하고 있었다. 양지문은 뒤에서 우쭐거리는 그 군관놈을 겨눠 갈겼다. 땅! 총소리와 함께 그 놈은 권총을 뚝 떨구고 산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내려왔다. 양지문은 시체를 끄는 놈들이 보이는 족족 쏴눕혔다. 그러자 적들은 더는 시체를 끌러 나오지 못하였다. 그후부터 적들은 대낮에 밖에 나와 오줌똥도 감히 누지 못하고 동굴 안에서 통졸임통에 눠서 밖에 내던지군 하였다. 적들이 나오지 않자 용사들은 60밀리메터포로 포격하여 진지 밖에 끌어내다 한놈, 한놈 쏴죽였다. 후에 적들은 아예 동굴 속에서 나올 념도 하지 못하였다. “이젠 잘 됐네. 적들이 밥 먹거나 똥 싸는 것도 우리 손에 달렸구만.” “우리가 굶으라면 굶게 됐다니깐.” “하하하.” 전사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나중에 적들은 밤중에 흙을 넣은 벼짚가마니로 진지를 반키 넘게 쌓아놓고 결사적으로 저격을 막으려고 시도하였다. 적격수들은 적들이 나와도 잠시 쏘지 않았다. 그러자 적들은 점점 담이 커져 더 많이 나와 다녔다. 적들은 겁이 나 선불맞은 노루처럼 통로를 훌쩍훌쩍 뛰여 지나가군 하였다. 하여 몸뚱이를 내밀지 않아 저격하기 어려웠다. “옳지!” 양지문은 무릎을 탁 쳤다. 그는 포병더러 적 전호에 포를 쏘아 큰 구멍 세개를 내게 하였다. 적들이 그 무너진 세 구멍으로 지날 때 몸뚱이가 드러나기만 하면 쏘군 하였다. 하여 적진에서는 비명소리와 아우성소리가 높아갔다.       전연부대의 저격수들은 이런 저격방법으로 11월부터 12월까지 두달 사이에 도합 1,400여명이나 살상하였으며 포격하여 1,600여명이나 살상하였다. 당시 저격수들이 살상한 적의 인수는 동시기 섬멸한 적 총수의 46.6%에 달한다. 이밖에 포격으로 적 땅크 8대, 자동차 13대, 여러가지 포 13문이나 까부신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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