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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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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    대하소설 황혼 제5권(82) 미녀의 기구한 운명 김장혁 댓글:  조회:205  추천:1  2024-12-11
       대하소설 황혼 제5권          김장혁        82. 미녀의 기구한 운명      색마 류덕재는 자기가 알골을 짜내서 꾸민 꿍꿍이가 하나, 하나 척척 진척돼 나가는 것을 보고 속으로 은근히 흐뭇해났다.    그는 쏘파에 드러누워 눈을 지그시 감고 그걸 슬슬 주무르면서 이전에 데리고 놀던 미녀들을 하나, 하나 떠올렸다. 문뜩 그의 머리 속에 미녀비서 왕춘영이 떠올랐다.    “이쁘기야 왕춘영이 젤 젊고 이쁘지. 왕춘영인 류려평과 다른 매력이 있어. 류려평은 좀 내놓고 벌벌거렸지만 왕춘영은 좀 내성적이었어. 고 외까풀눈을 치켜뜨고 곱게 흘겨보면서 ‘아니, 아니, 이러지 마세요.’ 하는 것이 퍽 매력적이었지. 전번에도 왕춘영이 피뜩 떠올랐는데 재수없이 불시에 류항곤과 류기가 찾아와서 흥을 깨버렸어. 헤이, 참 재수 없어.”    색마의 눈에 든 이쁜 미녀들이 그 누가 그 놈 색마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    류려평은 진절머리 나는 색마한테서 자기 몸을 빼려고 신대처 미녀직원 왕춘영을 그 발정난 수캐 같은 오빠한테 소개해 주었다.    처음 류려평이 사무실에 왕춘영을 데리고 들어섰을 때 류덕재는 대번에 사무실이 환해지는 감이 들었다.    색마 류덕재는 체면도 잃고 벌떡 일어나서 음충스런 눈을 가슴츠레 뜨고 삼십대 초반 왕춘영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자기보다 한 열대여섯살은 어린 미녀 아닌가.    호리호리한 체격에 탄탄한 몸매에서는 단통 향기로운 꽃내음이 몰몰 풍기어 나오는듯 했다.    류려평은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이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왕춘영은 류려평과는 달리 외까풀눈에 얊은 선이 다른 매력이 있었다. 외씨처럼 걀죽한 우유빛얼굴에 좀 수심이 어린듯한 눈빛, 운우지정을 그리는듯한 눈빛이 반짝이는 외까풀눈이 쌍까풀눈과는 확실히 은은한 흡인력이 있었다.    색마는 한시 급히 맑고 그윽한 청춘의 정이 빛나는 그 초롱초롱한 눈, 물기가 함초롬한 그 눈 안에 퐁당 뛰어들어가고 싶었다.    처음 왕춘영을 보자마자 색마는 온 몸에 정욕이 끓어넘쳐 더는 참기 힘들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마른 나무 꺾듯이 결단을 내렸다.    “왕춘영 동무, 오늘부터 행장실에 옮겨오오. 왕춘영동무를 내 비서로 쓰겠소.”    그런데 뜻밖이었다. 원래 행장의 비서로 쓰겠다면 단통 좋아하리라 생각했는데 왕춘영은 내켜 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수심에 찬 외까풀눈으로 류덕재 행장을 쳐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류행장님, 관심해줘 고맙습니다만. 난 계속 신대처 일반직원으로 있겠습니다.”    똑똑한 왕춘영은 행장의 심부름이나 하기 싫었던 것이다. 더욱이 류덕재 행장의 희번뜩거리는 그 음충한 눈길만 보아도 온 몸에 소름이 쪽 끼치는 감을 느꼈다. 어쩐지 불안해나고 무서웠다.    그때 옆에서 류려평은 퉁사발눈을 부라리면서 펄쩍 뛰었다.    “뭐라고? 류행장과 난 그래도 널 이쁘게 봐서 제발시키자고 그러는데. 좋은줄도 모르고 그런 배부른 소릴 해? 남들은 류행장의 비서를 하지 못해 난시판인데. 널 내놓고도 비서를 하자는 여자 쌔고 버렸어.”    류덕재는 너무한 거 같아 류려평에게 좀 살살 다루라고 눈짓했다.    왕춘영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활한 류덕재는 류려평을 먼저 보냈다.    류덕재는 녀자들을 수없이 다뤄 보았기에 류려평과는 달리 내성적인 왕춘영을 마른 나무를 꺾듯이 다그쳐서는 손에 넣을 것 같지 못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하여 그는 고삐를 좀 느슨히 놔 주기로 했다.    그는 사무상에 돌아가 틀스럽고도 아주 점잖게 앉더니 왕춘영을 내려다 보며 지껄였다.    “춘영이, 지금 사는 집이 몇평방이나 되오?”    왕춘영은 류행장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머리를 숙인 채 나직이 대답했다.    “한 60평방 됩니다.”    “좀 작구만. 그게 제 집이오?”    “아닙니다. 셋집입니다.”    류덕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젓더니 슬그머니 미끼를 스리슬쩍 내던져 보았다.    “신대처 일반직원으로 있어서야 언제 셋집살이를 면하겠소? 언제 그렇다하는 아파트랑 사고 살겠소? 내 비서로 있으면 올해 년말에 상금으로 120평방짜리 아파트를 줄게. 어떻소? 그래도 내 비서를 하지 않겠소?”    그래도 왕춘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순간, 그녀의 머리 속에서는 복잡한 갈등이 번개치면서 격결한 갈등을 일으켰다.    그녀는 류덕재 행장의 말을 반신반의했다.    (세상 남자들은 믿을게 하나도 없어. 입에 꿀을 묻혀 좋은 말이란 좋은 말은 다 하지. 내 어디 세살짜리 앤가 해? 흥!)    미녀는 눈물이 많다고 환하게 생긴 왕춘영은 이제껏 숱한 사대들이 느침을 질질 흘리면서 따라다니며서 하는 허위 가득찬 감언리설을 들을만큼 다 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진간해서는 사내들이 홀리는 말을 믿지 않았다.    류덕재는 천천히 일어나면서 낚시줄을 길게 늘였다.    “돌아가 잘 생각해보고 비서로 하겠으면 날 찾아 오오.”    왕춘영은 가타부타 한마디 대구도 하지 오쫄 일어나 머리를 다소곳이 숙인 채 문 밖으로 나갔다.    이튿날 류덕재가 출근해 주요한 실무를 다 처리하고 사우나실에 떠나려고 할 때었다.    뜻밖에 노크소리와 함께 왕춘영이 사무실 문을 떼고 사뿐 들어서지 않겠는가.    류덕재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왔소?”    류뎍재는 손수 커피를 타서 왕춘영한테 건네면서 왕춘영의 걀죽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왕춘영의 외까풀눈이 좀 퉁퉁 부었고 눈에 피지지 않았겠는가.    (아마 온 밤 궁리했는 모양이구나.)    “그래, 잘 생각해 보았소?”    “네. 온 밤 자지도 못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내 비서를 하겠소?”    “초보적으로 비서를 하기로 결정하긴 했습니다.”    (요것아, 끝내 미끼를 덥썩 물었구나. 이게 웬 떡이냐? ㅎㅎㅎ.)    낚시질하기 좋아하는 류덕재는 이 시각 왕춘영을 미끼를 문 물고기로만 보였다.    “건데…”    “또 뭐 있소?”     류덕재는 왕춘영의 팔을 잡아 쏘파에 앉혔다.    왕춘영은 류덕재 갈퀴 같은 손에서 팔을 빼며 나직이 말했다.    “비서 실무가 주요하게 뭡니까? 그저 커피나 타 주고 심부름이나 하는 겁니까? 그런 건 해보지 못해서. 잘 할 거 같잖습니다.”    “아, 그걸 그러오.”    교활한 류덕재는 왕춘영의 선이 얇은 이쁜 얼굴을 노려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이제 천천히 적응될 거요. 잘 모르겠으면 더러 류려평 부행장과 묻기도 하오.”    왕춘영이 행장실 옆 칸에 놓인 침대에 눈이 갔다. 어째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 내 낮잠을 자는 침대요. 추한 꼴 보여서 미안하오.”    류덕재는 제꺽 눈치채고 천천히 일너나 옆칸 문을 슬쩍 닫아버렸다.    “한마디로 말해줄게. 내 일만 잘해주면 춘영인 뭐나 다 차례질 수 있소.”    왕춘영은 그것도 운명이라고 여겼다.    (행장의 비서가 어찌 행장의 말을 잘 안듣겠소만. 허나 그런 일만은 시키지 말았으면…)    그녀는 세집살이, 가난살이에서 벗어나려고 이를 옥물고 류덕재 비서를 하기로 작심하였다.    그러나 색마의 마수가 서서히 덮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비서로 출근한지 한달도 안돼 끝내 사고를 쳤다.    류덕재는 춘영을 데리고 조용히 할 말이 있다면서 옆칸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절컥 잠궈버렸다.     류덕재는 서류궤에서 묵직한 토색가죽가방을 꺼내더니 쪼르레기를 쪼르륵 열어보였다. 금빛이 반짝이는 황금덩이와 빨깍빨깍하는 돈뭉치가 꼴똑 담겨 있었다.     “춘영이 세집살이를 하는게 불쌍하오. 이걸 가져다 쓰오.”     춘영은 전기에라도 붙은듯이 덴겁했다.    “아니,어찌 아무 일도 해드린게 없이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받겠습니까?”    류덕재는 춘영의 손에 가죽가방을 쥐어주면서 지껄였다.    “내 말만 잘 듣소. 그럼 아파트도 있고 황금도 있을게오. 래일 내 아파트 한채 줄게. 이건 년말 상금과는 별도로 주는게오. 팔아서 돈을 쓰겠으면 쓰고 마음대로 하오.”    류덕재는 서류궤에서 자지색 가옥소유증을 하나 꺼내 주었다.    “250평방짜리 별장이오.”    왕춘영은 가옥소유증을 받아들고 깜짝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류덕재는 왕춘영의 허리를 뱀처럼 스르르 휘감아 안았다.    왕춘영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서면서 류덕재를 떠밀었다.    “이러지 마세요.”    “어째 싫소?”    왕춘영은 아무 말도 못하고 걀죽한 얼굴을 떨어뜨리면서 외면했다.    “싫다면 더 강요하지 않겠소.”    그러나 왕춘영은 가옥소증을 토색가방에 걷어넣어 꽉 끌어안는 것이었다.    류덕재는 왕춘영이 미끼를 완전히 물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젠 낚시를 홱 나꿔 챌 때였다. 물고기가 하얀 배때를 팔딱거리면서 수면 위로 끌려 나오는 순간이랄까. ㅋㅋㅋ.    색마는 왕춘영을 와락 끌어안아 침대에 스르르 눕혔다. 그런데 왕춘영은 가방끈을 놓지 않고 소리치며 반항하지도 않았다.    색마 류덕재는 음충한 외까풀눈으로 왕춘영의 겁기에 찬 눈을 내려다보며 꺼슬꺼슬한 턱수염으로 왕춘영의 걀죽한 얼굴을 비비면서 지껄여댔다.    “왕비서, 끝내 명지한 선택을 했구만. ㅎㅎ. 우리 서로 도우면서 가난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이 세상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기오. 인생이 길면 얼마나 길겠소? 세집살이 하면서 고생할게 있소? 춘영인 내한테 아름다운 몸매를 선사하고 난 춘영을 이 세상에서 젤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줄게.”    “이러지 마세요. 제발, 난 유부녀인데요. 애도 낳지 못한 여잔데요. 제발 살려주십시오.”    색마는 왕춘영의 파랗게 질린 걀죽한 얼굴에 느침을 질질 흘리면서 지껄였다.     “헤헤헤. 네 남편이 남자구실을 못하는 모양이구나. 이런 미녀를 집에 감춰두고 구들농사를 잘 못했구나. 어쩜 애도 하나 못 만들어? 내 하나 만들어주마.”    왕춘영은 몸을 이리 곰실, 저리 곰실 탈고 발버둥질치면서 거부했다. 그녀는 눈물 코물 흘리며 두 손으로 색마를 마구 올리 떠밀어버리면서 애원했다.    “아니, 이러지 말라다는데도. 왜 이럽니까? 제발 날 놓아주십시오. 이럴줄 알았더라면 비서를 그만둘 거 그랬습니다.”    색마는 반항하는 춘영의 손을 탁 쳐버리고 허벅다리를 내리눌러 자기 두 무릎 아래에 깔아버렸다.    “ ‘아니, 아니, 이러지 말라’는게 더 매력이 있어. 달라고 하자마자 그저 들이대는 그런 순한 갈보들만은 더 유혹적이고 중독적이지.”    왕춘영은 나약한 자기 힘으로는 색마를 저지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얀 이를 꼭 옥물고 외까풀눈을 스르르 감아버렸다. 그녀의 빨갛고 초들초들한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공포에 찬 외까풀눈에서는 쓰라린 눈물이 샘솟듯 했다. 그녀는 외까풀눈을 질끈 감고 참았다.    (다 가난이 낳은 죄악이야.)    색마는 왕춘영의 몸에서 실 한오리도 남기지 않고 한견지, 한견지 천천히 벗기면서 미녀의 매력적인 몸매를 마음껏 감상하며 련이어 감탄했다.    “아하이고, 하느님 맙시사.”    색마는 부래지어를 벗겨 내던지며 음충한 외가풀눈이 다 뒤집히게 희번뜩이면서 개탄했다.    “요 백지장 같은 풍만한 젖가슴을 봐! 무르익은 복숭아 같은 연분홍젖무덤, 발가우리한 젖꼭지. 우-와- 큰 젖꼭지를 봐. 남자복이 많은 미녀구나. 내 비서로 발탁된 건 왕춘영의 다행이고 운명이야. 대박인줄도 모르고 울긴?!”    색마는 뭉긍뭉글한 젖무덤과 발가우리한 연분홍젖꼭지를 살살 매만졌다. 드디어 개처럼 게걸스레 빨고 핥아대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발딱 일어선 젖꼭지를 봐라. 벌써 흥분됐는 모양이지.”    색마는 미녀를 내려다보면서 끊임없이 지껄여댔다.    “말해? 바쁜 구멍부터 막아줄까?”    그러나 왕춘영은 수치심에 차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면서 고통스레 외씨처럼 걀쭉한 얼굴을 찡그리면서 흐느껴 울고 있었다. 색마는 남이야 어떤 고통스런 감수든지 관계없이 팬티를 천천히 내리면서 손으로 하얗고 탄력 있는 허벅다리를 슬슬 매만졌다.     “초두부처럼 야들야들한 요 허벅다리!”     색마는 왕춘영을 번져눕혀 놓고 연신 신음소릴 내며 야단쳤다.     “윤기도는 이 우유빛몸매, 네 뒷모습 진짜 이쁘구나. 이런! 절세의 미인이구나. 아, 어쩜 하느님이 윤기 도르르 흐르는 곡선미 풍기는 미녀 육체를 나한테 내려 보냈어?”     색마는 느침을 질질 흐리며 개탄을 금치 못하면서 곡선미 풍기는 왕춘영의 탄탄하고 매력적인 여체를 어루만지며 흠상했다.     “어쩜 이렇게 이쁜 미녀를 이제야 발견했을까? 넌 신대처에 깊이 꽁꽁 숨어 있은 장미꽃이구나. 요것아.”    색마는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빨리 미녀의 속살로 들어가 호물떡뻰찌 빨 힘을 맛봐야 했다.    류덕재는 왕춘영이 모욕감에 쓰라린 눈물을 흘리건 말건 개처럼 빨고 핥고 개지랄발광을 다 했다.    “아, 그땐 얼마나 즐거웠는가? 건데 왕춘영 같은 미녀도 마흔이 넘으니 시들어버린 빨간 장미꽃 같아. 참.”    류덕재는 왕춘영을 여비서로 두고 실컷 놀다가 실증났다. 인차 왕춘영한테 아파트도 한채 더 주고 신대처 처장으로 임명해 곁에서 내보냈던 것이다.    색마는 또 이쁜 새 여비서를 물색했다. 기실 말로는 여비서였지만 생활비서나 애인, 아니, 노리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류덕재는 어째 왕춘영이네 아들도 자기 사생아 아닌가는 의심이 부쩍 갔다.     “눈까풀이랑 외까풀인게 심통히 날 담지 않았는가? 키도 구척 같고… 딱 류문도처럼 생겼잖아? 흐흐흐.”    류덕재는 이번에 자기의 은총을 제일 많이 받았다고 인정되는 여비서, 젤 믿을 수 있는 왕춘영을 리춘희 대신 형사수사 처장으로 전근시켜 자기 죄행에 대한 최혜영과 리춘희의 수사를 막으려고 꿍꿍이를 꾸몄다.    비선실세 류덕재는 왕춘영을 별장에 불러다 마치 조직부장 시절처럼 조직담화를  하듯 의향을 물었다.    그때 왕춘영은 펄쩍 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녀는 외까풀눈을 흘기면서 성까지 냈다.     “아니, 내 수사처에 가서 뭘 해요?”    “국가 정법기관 처장으로 제발시키는데도 왜 그래?”    왕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신 무슨 궁리를 그렇게 해요? 진짜 머리 속에 사상이 있는가요. 산 설고 낯선  정법계통에 가서 뭘 해요? 숱한 사람들을 잡아먹다가 미움깨나 샀지. 흥, 숱한 죄수들과 원쑤를 맺으라고? 언제 보복당하자고? 흥! 은행 신대처보다도 먹을 알도 하도 없는데. 거기로 날 가라는 거요? 언제까지 처장인가요? 젤 믿는 녀자면 은행 행장이나 부행장이나 시킬게지.”    류덕재는 왕춘영의 어깨를 다독여주면서 갖은 감언리설로 얼리고 구술리었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녀자라구. 어째 그리도 세상을 몰라? 눈 앞에 자질구레한 리익만 따지지 말라.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눈 앞에 실리만 따질 땐가? 우린 한 배에 앉은 동료야. 지금 최혜영 고문이랑 리춘희 처장이랑 우리 배에 문제 있다고 눈깔이 새빨개서 쌍불을 켜고 우릴 수사하고 있단  말이야. 이 배가 번져지면 우린 다 죽어. 얻어먹은 아파트랑 우리 목을 조이는 올가미로 돼버릴 거야. 알만해?”     류덕재는 왕춘영의 가냘픈 어깨를 다독였다.     “정신 차려, 왕처장, 지금은 얻어먹는데만 눈이 어두울 때 아니야.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해. 우린 이 배를 보호하기 위해선 지금 수사기관을 장악하는게 급선무야. 내 생각다 못해 그래도 젤 믿음이 가는 수사처장 인선은 왕처장 밖에 없더란 말이야.”     왕춘영은 외까풀눈을 흘기었다.     “그럼 왜 고까짓 수사처 처장인가요? 공안국 국장이나 감찰국 국장이나 검찰장이나 법원 원장 시키면 몰라도.”    류덕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내 사랑하는 왕처장님, 그게 어디 그리 식은 죽 먹긴가 하오? 좋긴 왕처장이 정법서기나 시당위 서기로 되면 얼마나 좋겠소? 허나  조직원칙이 있단 말이오. 은행 처장이 어떻게 단통 몇층계를 뛰어넘어 국장이나 검찰장이 되겠소? 한단계 높은 자리에 제발되자면 수속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아오? 시당위 조직부랑 상무위원회랑 몇개 문턱을 넘어야 하는지 아오? 은행 행장은 상급은행 계통지도부의 비준까지 더 받아야 하오. 생각만 해도 머리끼 다 곤두 서오. 이번에 널 수사처장으로 전근시키는 것도 수사실무를 잘 모른다고 얼마나 내 애썼는지 아니? 힘들게 얻은 수사처장인줄 알고 소중히 여기라구. ”    왕춘영은 코웃음쳤다.    “픽, 평소에 뭐, ‘이 시내 토황제’노라고 큰소릴 땅땅 치더니? 왜 이럴 땐 꼬리를 사리는가요?”    류덕재는 한숨을 후- 길게 내쉬었다.    “내 아버지 서기질 할 때나 내 조직부장 할 때면 모르겠지만. 내 아버지 사망한지도 몇해 되고 나도 조직부장을 내놓은지도 오래잖아? 관사의 숱한 관료들이 이젠 내 말을 잘 듣지 않아. 먼저 수사처장을 하면서 천천히 보자.”    류덕재는 왕춘영을 어린애처럼 끌어안고 감언리설로 슬슬 구슬렸다.    “내 얼마나 널 사랑하고 아끼는 걸 알지? 신대처 처장을 시켜서 숱한 거 얻어먹게 했잖았어? 아파트도 몇채나 공짜로 주고.”    류덕재는 길쭉한 말상을 춘영의 걀쭉한 얼굴에 대고 슬슬 비비면서 지껄여댔다.    “형사수사처에 가서 내 하라는대로 잘하기만 해 봐라. 돈근심은 하지 말라. 신대처에서 얻어먹는 거보다도 더 생길 거야. 범죄자들을 몽땅 들춰내서 혼뜨검을 내 줘 봐. 황금도 생기고 아파트도 마구 생길 거야. 그 돈벌이 더 짭짤할 걸.”    왕춘영은 얼굴을 떼면서 외까풀눈을 곱게 흘겼다.    “그만 해요. 그 죽일 놈의 수염에 낯이 다 꺽술꺼술해 못 견디겠어. 지금 날 보고 범죄자들의 검은 돈 얻어먹으라고? 흥! 완전히 어째  류행장께서 날 실컷 데리고 놀고 헌 신짝 차버리듯할 작정인가요? 돈이 아깝지요?”    그때 류덕재는 능글스레 왕춘영을 끌어안으면서 구슬렸다.     “난 이 세상에서 널 젤 사랑해! 늙어빠진 류려평이겠니?”    왕춘영은 류덕재 팔을 뿌리쳤다.    “아이고, 이걸 놔. 꺼슬꺼슬해 죽겠다는데. 왜 자꾸 이래?”    왕춘영은 외까풀눈을 치켜떠 류덕재를 쏘아보며 물었다.    “그래 당신 류려평과도 이랬는가?’    류덕재는 황급히 마른 생강 같은 손으로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류려평은 우리 류씨네 여동생이잖아? 내 말은 여동생보다 네가 더 곱단 말이야. ㅎㅎㅎ.)    류덕재는 에둘러대며 왕춘영을 더 꽉 끌어안고 지껄였다.     “요것아, 난 널 젤 믿는다. 고와 죽겠어. 우린 한 배에 앉은 동료야. 내 감옥에 가면 너도 좋을게 있니? 배가 번져지면 네나 내나 다 죽는다, 죽어. 알만해? 네나 난 함께 우리 배를 번지자는 놈들을 물에 빠뜨려 죽여버려야 해. 그 놈들이 우릴 수사하는 걸 막아야 해.” 왕춘영은 외까풀눈이 꼿꼿해 류덕재의 음험한 눈을 들여다보면서 사태의 엄중성을 느꼈다.    나중에 그는 마지못해 수사처 처장으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왕춘영이 수사처장으로 전근해 간 후 수사방향은 확 바뀌었다. 왕춘영은 요즘 류덕재가 지휘하는대로 종호와 나영의 이른바 문제를 정호와 류려평의 문제와 한데 엮어 수사하기 시작했다.    왕처장은 류려평을 심문한다는 명목하에 리종호가 류평이 얻어가진 아파트를 팔아 책을 냈다는 단서를 장악했다.     "이게 공범이 아니고 뭔가? "    왕처장은 책상을 꽝 쳤다.    왕처장은 조직부에서 담화할 때 "수사실무경험이 없어 수사처장을 할만 하겠는가?"고 의문을 제기한 것에 반발심이 생겼다.    (어디 이 왕처장이 어떤 사람인가, 본때를 보여줘야지.)    그녀는 당장 수사치적을 쌓을 좋은 기회 왔다고 생각했다.     "당장 신문사 부사장 리종호를 련행하라!"    그러나 수사일군들은 종호의 종적을 파악하지 못해 난감해했다.     왕처장은 세길네길 펄쩍 뛰면서 노발대발하면서 독살을 피웠다.    "당신들도 수사일군인가? 당장 리종호를 잡아오지 못하면 자리를 옮길 준비하라고."    왕처장은 수사일군들에게 종호가 들어 있을 신문사 부근 려인숙 위치까지 알려주었다. 그 정보는 류문도한테서 제공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종호가 려인숙을 바꿔 버려서 또 헛탕을 쳤다.    "온 시내를 다 들춰서라도 리종호를 나포해!"   수사일군들은 사처로 흩어져 달아다녔다.     구류소 류기 소장도 왕춘영 처장을 협조해 경찰들을 사처로 풀어놓았다.    “잘한다, 잘해, 류대대장, 왕처장! 흐흐흐. 잘코사니야. 종호야, 배신자 놈아, 어디 두고 보자. 네놈이 언감 날 고발해? 내 쳐놓은 천라지망에서 어디 네놈이 벗어나는가 두고 보자. 네놈을 생지옥에 처넣지 못하면 내 류씨 토황제 아니야! 으흐흐”    류덕재는 쏘파에서 벌떡 일어나 음흉한 외까풀눈을 부라리면서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탁 치며 쾌자를 불렀다.
538    대하소설 황혼 제5권(81) 산소에 묻힌 비밀 김장혁 댓글:  조회:192  추천:0  2024-12-05
   대하소설 황혼 제5권          김장혁           81. 산소에 묻힌 비밀      종호는 취재 기회에 나영한테 유판을 주었기에 한시름을 턱 놓았다.    (아마 혜영이 그 유판을 받아 풀어보았겠지. 류려평과 류덕재는 법망에서 도망치지 못할 거야.)    그는 최혜영이 고문에서 해임된 일, 급변하는 정세를 털끝만치도 모르고 오리무중에 빠져 있었다.    종호는 이젠 성림 때문에 인차 한국에 돌아가야 했다. 물론 춘영이 성림을 돌보고 있지만 치료비를 대서 성림의 심장병과 코로나 치료가 급선무였다. 또 이젠 추석도 오래잖아 앞당겨 부모 산소에 가보려고 작심했다.    (음력 7월 15일도 오래잖은데 류생남 국장의 산소에도 가 봐야지. 허나 사나 그는 날 신문사에 배치해주고 사장으로 제발시키자고 애를 쓴 분이 아닌가?)    그는 류생남 국장이 신문사 윤광수 사장과 공작을 한 건 사후에 알았다.    그 일로 그는 가시아버지와 한바탕 다퉜다.    “내 일에 삐치지 맙소. 내 능력으로 제발돼야지. 선물작전을 하는 건 동의하지 않습니다. 신문사 어떤 곳입니까? 말썽이 어찌나 많은지 수말이 새끼를 낳는 곳이라잖습니까? 기자들이 가시아버지 뒤문거래 했다는 걸 알면 날 뭐라겠습니까? 내 신문사에서 배겨내겠습니까?”    그때 류생남 국장은 너부죽한 얼굴에 주름쌀을 쫙 펴면서 씨무룩이 웃었다.     “사위, 근심하지 마오. 윤광수 사장은 청렴한 분입데. 선물 하나도  받지 않더군. 그는 사위 실무수준과 지도능력을 아주 높이 평가합데. 나도 사위 자기 능력으로 주임으로 제발됐다는 걸 윤사장한테서 들어 알고 있소. 부모의 도리를 좀 했을뿐이오.”    그제야 종호는 시름을 놓았다. 그러나 가시아버지가 당시 조직부장인 류덕재와 시당위 서기 류덕재 애비한테 뒤로 무슨 공작했는지는 지금까지도 모른다.    종호는 당시 이렇든 저렇든 자기 전도 때문에 애쓴 가시아버지 그 정성과 은혜만은 잊어지지 않았다.    류생남 국장이 상급 당위에까지 가서 공작 한 일, 그 일은 류씨네 집 안의 비밀로 됐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비밀일뿐이었다. 지금 종호는 류씨네 집안 사위에서 밀려나왔기에 언제든지 공개할 수 있는 후환으로 되었다.    류덕재와 류항곤, 류문도 등은 류씨네 집 안에서 배신자 리종호를  완전히 숙청해버리기로 했다.    마수가 어느 골목, 어느 산굽이에서 종호한테 뻗칠지도 모른다. 공포가 먹장구름처럼 침침하게 엄습해왔다.    그런데 종호는 마수의 손길이 뻗칠 것도 모르고 한국에 나가기 전에 조상의 산소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종호는 민박에서 남동생 만호한테 전화했다.    만호는 삼복지간이라 너무 일하기 힘들어 한국에서 잠시 귀국해 쉬고 있었다.    “만호야, 오늘 시간 있으면 부모 산소에 피뜩 가 볼까?”    “그러기오. 형님, 오랜만이오. 그간 형님이 앓았다던데 어째 알리지도  않았소? 지금 어디오?”    “신문사 부근 XX민박에 오너라.”    잠간 후 만호가 택시를 타고 민박에 찾아왔다.    그들 형제가 민박에서 나갔을 때 검은 선글라스를 낀 꺽다리가 저쪽 골목에서 이쪽을 힐끔거렸다. 반대편 골목에서도 검은 선글라스를 낀 자 둘이나 서성거렸다.    종호와 만호는 눈치채지도 못하고 택시를 타고 먼저 잡화점으로 달려갔다.    검은 선글라스들도 두 택시에 나눠 타고 뒤쫓아 왔다. 그러나 종호 형제는 눈치채지 못했다.    종호네는 잡화점에 가서 먼저 낫을 샀다. 그때 선글라스들도 택시에서 내려 잡화점 부근을 멀직이 배회했다.    종호네는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고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슈퍼마켓으로 달려갔다.    선글라스들도 두 택시에 나눠 타더니 뒤쫓아갔다.    종호네는 슈퍼마켓에 가서 제사상에 올릴 제주, 과자, 사과, 마른 명태, 시루떡을 샀다.    꺽다리 선글라스도 슈퍼마켓에 들어와 슬슬 배회하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보통키의 선글라스 둘도 뒤따라 문어귀까지 뒤쫓아왔다.     한 선글라스는 슈퍼마켓에 스리슬쩍 들어오고 다른 선글라스는 슈퍼마켓 문어귀에서 서성거리면서 거리 쪽을 주시했다.    종호는 검은 선글라스를 낀 꺽다리를 보면서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는 만호를 뒤돌아보면서 말했다.    “평소에 아버지 좋아한 꽈배기도 가지고 가자.”    만호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양, 아버진 술도 마시기 싫어했는데 우유라도 몇병 사가기오.”    “그러자.”    만호는 어쩐지 선글라스들이 뒤따라는 감이 들었다.    그는 우유병을 종호가 든 장바구니에 넣으면서 나직이 말했다.    “저 몇몇 선글라스들이 이상하오. 별로 우리 뒤를 밟는 거 같소.”    “응?”   그제야 종호도 슈퍼마켓을 배회하면서 드문드문 이쪽을 흘끔거리는 선글라스들을 여겨보기 시작했다.    선글라스들이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흘끔거리는 것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특히 꺽다리 선글라스의 험상궂은 낯에 살기가 넘치는 감이 들었다.    종호는 인차 낫을 쳐들어 보이면서 만호한테 나직이 말했다.    “이게 있잖니? 겁나 말라. 그깐 놈들이 언감?”    그들 형제는 제물을 다 사 가지고 다시 택시를 잡아 타고 고향으로 달려갔다.    선글라스들도 두 택시에 나눠 타고 종호네 택시 뒤꽁무니를 물고 뒤따라 추격해왔다.     “만호야, 뒤 택시번호를 촬영해라.”    “알았소.”    만호는 핸드폰으로 뒤에 대고 동영상으로 촬형했다.    그 놈 뒤쫓던 택시들은 시내를 벗어나자 종호네 택시와 한 2, 3백메터씩 거리를 두고 먼지를 새뽀얗게 뒤따라 달려 왔다.    그런데 종호네 고향에 거의 이르렀을 때 뒤에서 쫓아오던 택시는 한대도 보이지도 않았다.    종호네 택시에서 내려 고향의 뒷산에 올라서 보니 그들 형제가 앉아 달려왔던 택시가 되돌아가는 것만 보였다. 다른 택시는 한대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종호네는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들 형제는 헐금씨금 고향의 가파로운 뒷산을 톺아올라갔다.    한편 꺽다리 선글라서는 종호네 고향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굽인돌이에서 택시에 내렸다.    키꺽다리는 택시 운전수한테 택시비를 주면서 위협했다.    “내 여기서 내린 걸 말하지 말어. 까딱 주동이를 삐쭉했다간 대갈통을 까버릴테야.”    “예, 예. 누가 감히 말하겠습니까?”    “돌아가!”    키꺽다리는 택시를 돌려보내고 강냉이밭으로 달려들어가 숨어버렸다. 그것은 뒤에서 계속 뒤꽁무니를 물고 쫓아오는 택시를 따돌리려는 것이었다.    키꺽다리는 강냉이밭에 깊숙이 들어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형님, 그 놈들이 뒷산으로 올라갔소. 어쩌라오?”    “아마 그 놈 부모 산소로 올라가는 모양이구나. 산소 위치 알려줄게. 쫓아가 봐라.”    “알았소.”    류생남 국장은 생 전에 자기 죽으면 토장을 해달라고 종호한테 부탁했던 것이다. 당시 시내에서는 교외 산에도 토장을 하지 못하게 했다. 종호는 궁리 끝에 가시부모를 자기 부모와 한 산에 나란히 모시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이후에 산소를 찾아오기도 편리할 것 같았다. 그런데 후에 류덕재는 자기 아버지가 사망하자 종호를 보고 좋은 산소 자리를 봐달라고 했다. 그렇게 돼 종호네 부모 산소에서 령길 하나를 양지바른 둔덕에 류생남 국장과 류덕재 부모의 산소도 쓰게 됐던 것이다. 그런데 종호는 류려평과 리혼한 마당에 세집의 산소는 진짜 악연의 산소로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종호 형제는 삼복지간 무더위를 무릅쓰고 고향의 뒷산으로 헐금씨금  올라갔다.    종호는 류려평과 리혼한 마당에야 가슴을 치면서 후회했다.    (사돈과 변소는 멀어야 하는데. 참 후회막급이야.)    저기 제일 산둔덕을 보라.    소나무 푸르른 산 둔덕에 부모의 산소와 높다란 비석이 보였다. 산소 주위 둔덕에 코스모스가 알락달락 피여 뒤덮혀 있었다. 종호의 녀동생 만순이 전 해에 코스모스 씨를 뿌려놓아서 온 뒷동산에 코스모스가 화원처럼 활짝 피였다.    코스모스는 알락달락한 고무풍선처럼 이쁜 얼굴을 한들거리면서 반겨 맞는다. 연분홍 꽃잎새마다 자식을 그리는 부모의 그리운 정이 이슬로 맺혀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꽃은 눈물겹기만 하다. 코스모스 하얀 꽃잎파리는  하얀 치마폭을 하느작거리며 춤추며 부모자식간 애간장을 끊는 그리운 정을 애틋한 서정시로 노래하며 하얀 웃음꽃을 날린다.     저기 저 산 둔덕에서 아버지와 엄마가 아들들이 찾아왔다고 주름살을 활짝 펴고 웃으며 손을 휘젓는 것만 같았다.    아, 아버지와 엄마가 흰 머리 흩날리면서 아들들을 반겨 맞으며 얼싸 끌어안는다.    종호는 부모 산소 앞에 달려가 털썩 꿇어앉아 대성통곡쳤다.    “아버지, 엄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옵소서. 내 체면을 지키느라고 불효를 저질러 미안합니다. 내 악처와 일찌감치 리혼했더라면 부모를 그렇게 속태우고 고생시켰겠습니까? 부모님, 죄송합니다.”    그는 자기가 자살하려던 일은 차마 부모 앞에서 말하진 못했다. 그러나 부모 앞에 못난 꼴을 보일 번한 일을 못내 후회했다.    만호는 리혼 말은 금시초문인지라 한마디 물었다.    "형님, 아주머니와 리혼했소?"    "그래, 이번에 와서 말끔히 리혼했다."    갑자기 산소 뒤에 묵묵히 서 있던 아름드리백양나무 가지 위 둥지에서 까마귀가 까욱 까욱 울었다.   (무슨 불길한 징조인가? 에이, 다 미신이야. 일본 사람들은 까마귀를 효자새라고 신처럼 여기잖는가.)     종호는 낫을 들고 요란하게 울어대는 까마귀를 흘끔 쳐다보고 개의치도 않았다. 그는 동생과 함께 먼저 산소를 돌아가면서 낫으로 벌초를 하고 제물을 정성 들여 차려놓았다.    종호와 만호는 부모 산소에 제주를 부어올리고 제밥도 올리고 나서 세번씩 큰절을 올렸다.    종호는 부모께 말씀드렸다.    “보모님,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하옵소서. 나는 악처 류려평과 리혼했습구마. 우리 리씨 집 안에 대를 잇지 못하게 한 이 죄인을 데려 가옵소서. 아버지, 엄마!”    그는 려향이 친딸이 아니라는 말은 너무 창피해서 차마 부모와 동생 앞에서 말하지 못했다.    만호는 꿇어앉아 대성통곡치는 형님이 불쌍해 따라 울었다. 그도 이젠 쉰고개를 넘은 덜먹로총각인데 아직도 장가도 가지 못해 부모 보기 죄송했던 것이다.    종호는 만호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네나 꼭 장가 가라. 네나 우리 전주 리씨 집 안 대를 이어달라.”    그러나 만호는 씨뿌둥한 표정을 지었다.    “형님네처럼 한뉘 부부간에 티격태격 싸우면서 살게면 장가를 가서 뭘 하오? 지금 자식을 낳아서 어디 무슨 덕을 보오? 형님은 려향의 덕을 볼 거 같소? 새끼를 낳아서 숱한 돈을 먹여 키워 공부시켜 생긴게 뭐요? 자식을 키우는 돈이면 혼자 쓰면서 얼마나 잘 살 겠소.”    찰싹!    종호는 동생을 따귀를 한대 갈겼다.    “이놈 못난 놈아, 그것도 말이라고 하니? 네놈까지 대를 잇지 못하면 부모한테 미안하지 않니? 이 집안은 망해.”    그는 부모 산소 앞에서 동생을 한대 치고나니 너무 과격한 거 같았다. 하여 인차 어조를 좀 부드럽게 했다.     “네까지 장가 안 가면 류려평이 뭐라겠니? 그 년 악처는 우릴 제 노릇을 못하는 바보 형제라고 욕할 거야. 아니? 넌 꼭 장가 가야 해. 이전엔 시내에서 직업찾지 못해 그랬지만 지금은 다르잖니? 한국에서 일해 한달에도 몇백만원 벌지 않니? 술 작작 마시고 여자나 얻어 살아라.”    그러나 만호는 목석처럼 서서 묵묵부답했다. 오랜만에 만난 형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종호는 만호가 너무 안타까웠다. 아니, 자기를 집어 뜯어놓고 싶었다. 괜히 동생네를 낑낑거리면서, 그것도 가시아버지한테 비난사정을 해 동생네를 시내에 들여와서 밭도 다 내놓고 직업도 찾기 힘들게 해 고생시키지 않았는가. 그 일로 류려평한테 가시집 신세를 졌다고 또 얼마나 거정질을 들었는가. 그러나 지금 후회해도 쓸데 없었다.    종호는 피뜩 무슨 일이 떠올라 손으로 얼굴의 눈물을 쓱쓱 닦으면서 일어났다.    그는 부모 산소와 가시아버지 산소와 류덕재 부모 산소 주위를 면밀히  살폈다.    종호는 가방에서 뭔가 꺼내 가지고 부모 산소 뒤에 우뚝 솟아 있는 백양나무 께에 다가갔다.    “뭐 하려고 그러오?”    “묻지 말라. 주위나 살펴라.”    종호는 백양나무를 끌어안더니 나무 가지를 잡고 다리를 버둑거리면서 올라갔다.    그는 몇길 위에 있는 까마귀 둥지 안에 류생남의 산소와 류덕재 부모 산소를 향해 새 알 몰카를 두개나 장치해 놓았다. 딱 새알과 같아 피뜩 봐선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는 류려평과 려향의 대화 녹음을 틀어보고나서 류려평의 부모 산소에 무슨 비밀이 있는가 알고 싶었다.    (뭐?  '부모 산소에 자기 인생 전부를 파묻었다.'고?  '그걸 파내면' 려향은 '한뉘 고생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네년이 여기다 뭘 파묻었는 모양이지?)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종호는 말이 새나갈가 봐 산소 앞에서는 동생한테도 몰카를 장치한 걸 말하지 않았다.    뒤늦게 쫓아온 키꺽다리는 강냉이밭 속에 숨어 음흉한 눈길로 종호의 거동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다. 그 놈은 핸드폰으로 백양나무 위에 기어올라간 종호의 동영상을 촬형했다.    (저 놈이 새 둥지를 들춰 뭘 해? 굶긴 굶었구나. 이게 어느 때라고 새 알을 다 들춰 먹어? 까마귀 둥지를 들췄다가 죄를 만나 썩어지지 않는가 봐라.)    그 놈은 종호가 몰카를 새 둥지 안에 장치하는 건 발견하지 못했다.    종호는 백양나무 가지를 가로 타고 앉아 산소 주위를 이리 저리  둘러 보았다. 어쩐지 자기네 형제 뒷골에 보이지 않은 눈길이 주시하고 있는 감을 느꼈다. 그러나 키 넘는 강냉이밭에 납짝 엎드려 은밀히 감시하는 키꺽따리는 발견하지는 못했다.    종호는 백양나무에서 주르르 미끌어져 내려왔다.    그는 어려서부터 나무에 바라오르기를 밥 먹듯해 아직도 십여길 되는 나무에도 식은 죽 먹기로 바라올라갔다.    그는 부모 산소 앞에 서 있는 키 만큼한 비석을 매만지는 척 하면서 비석 추녀 밑에 옴폭 파인 구멍에 무슨 떡 같은 것을 떡 붙여놓았다. 비석 색갈과 똑 같은 떡은 구멍을 빤빤하게  메꿔놓았다. 잠간 새에 떡 붙여놓아서 키 꺽다리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 떡에는 육안으로선 발견해내기 힘든 몰카가 장치돼 있었다.    순식간에 모든 일을 다 끝냈다.    종호는 만호와 함께 부모 산소 앞에 나란히 섰다.    “엄마, 아버지, 만순인 한국에 있어 우리 둘만 찾아 왔습구마. 널리 량해 하옵소서. 부모님, 우릴 낳아준 부모님 생전에 효도를 다 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널리 량해합소. 구천에서라도 자식들을 보우해주옵소서.”    키꺽다리는 류문도의 부탁대로 손 쓸 기회를 노렸다. 그런데 류문도의  부탁대로 죽이지 말고 둔기로 머리를 쳐 까무러치게 하자고 하니 힘든 감이 들었다.    (에이, 차라리 죽여버리면 뒤끝도 깨끗하겠는데. 그저 쳐 눕혔다가 후환을 남길텐데. 류형, 무슨 일을 이렇게 시켜. 씹 할!)    꺽다리는 쇠파이프를 쳐들어 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두더벌거렸다.   (내 혼자 어떻게 이런 걸로 저 놈들을 쳐 눕히겠는가? 황차 저 놈들은 낫까지 들었는데. 형제들을 몇을 더 보낼게지. 황금덩이 아깝는가? 형도 째째하게 놀 때 있구만. 오늘 뜻밖에 내 뒤에 택시 한대 줄곧 뒤쫓아오지 않았는가. 그 놈들을 떼버리긴 했는데. 그 놈들 실체는 뭐지?)    꺽다리는 손 쓸 기회를 노렸지만 좀처럼 신심이 없어 주춤거렸다.    저게 뭔가?    종호가 령길을 넘어가더니 다른 산소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찬찬히 여겨보니 엄청 큰 비석에 류생남 지묘라고 새긴 산소에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키꺽다리는 인차 핸드폰을 쳤다.    “형님, 저 놈이 류생남의 묘지에 가서 제사를 지내오.”    “뭐 하는가 잘 살펴라.”    “양, 동영상 찍어 보낼게.”    “배신자 같은 놈, 우리 류씨네 산소를 다치기만 해 보지. 네놈 조상  해골을 다 파내 개를 주지 않는가. 흥!”    종호는 령길을 건너 류생남 산소에 스적스적 다가갔다.    류생남 국장의 산소는 아주 높게 흙을 올렸는데 풀이 무성했다. 묘지 앞에는 키 넘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둘레에는 새로 화강석 기둥을 세우고 란간까지 둘러치지 않았겠는가. 자못 으리으리한 감이 들기까지 했다. 류려평이 종호 몰래 일군을 불러 묘지에 따로 손을 댄게 분명했다.      (개쌍년, 이전에 내 부모 산소에 비석을 세울 때 쓸데 없는 돈을 판다고 야단치더니. 흥, 제 애비, 에미 묘지는 으르으리하게 화강암 비석에 란간까지 세웠구나. 진짜 손바닥이 다르고 손등이 다르구나.)     종호는 범이 새끼를 칠 지경으로 키 넘는 쑥대를 헤치고 류려평의 애비 에미 묘비와 묘지를 둘러보면서 궁리했다.    "이 묘지에 도대체 무슨 비밀이 묻혀 있을까? 류려평은 려향한테 '자기 인생 전부를 묻었다', "그걸 파내면 넌 한뉘 고생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했잖은가. 또 려향 보고 내보다 외할아버지 묘지에 먼저 가라.'고 열당부 하잖았는가. 도대체 이 묘지에 뭘 파묻어뒀단 말인가?)    종호는 류려평의 애비 산소에 묻힌 그 비밀을 기어이 장악하려고 마음먹었다.     류생남 묘지 동쪽으로 해 양지바른 둔덕에는 수풀 속에 류덕재 애비- 류서기 커다란 묘지가 누워 있었다. 묘지 주위에는 화강암란간과 쇠살창란간이 높으직이 둘러쳐져 있고 쇠대문에는 주먹만큼한 자물쇠까지 채워져 있었다. 사철푸른 애솔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섰다. 두 길이나 되는 비석이 도고히 하늘을 찌르고 우뚝 서 있었다. 피뜩 보아도 신분이 아주 높은 망자의 묘지라는 것이 한눈에 안겨왔다.    종호는 류생남의 묘지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몇마디 했다.   “류국장, 당신이 나를 신문사에 보내준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당신 때문에 나는 류려평이란 악처, 바람쟁이를 만나 한뉘 내 자식 하나도 기르지 못하고 개고생 했습니다. 당신이 나한테 바람둥이 딸을 중매서지 않았더라도 나는 불효를 저지르면서 말 못할 개고생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나도 사랑하는 다른 녀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을 거요. 내한테도 따르는 녀자 없은게 아닙꾸마. 이제 이런 말을 해서 뭘 하겠소만은. 이젠 당신 그 잘난 딸과 리혼했습니다. 당신은 더는 내 가시아버지 아닙니다. 나에겐 새 세상이 열렸습니다. 빠이, 빠이, 류국장, 안녕히! 류씨네 집 안이여.”    말을 마치자 종호는 모자를 벗고 허리 굽혀 경례를 세번  했다.    그는 류생남 국장의 묘지를 한바퀴 돌아보고 비석을 매만지면서 비석 밑을 내려다보며 궁리했다.    (류려평은 여기에 뭘 파묻어뒀을까? 려향한테 파보라고 부탁했잖은가? 더러운 년, 너네 모녀간이 무슨 연극을 노는가 두고 보자.)       종호는 한참 어떻게 산소의 비밀을 알아낼가고 궁리하다가 천천히 돌아섰다.    순간, 강냉이밭에는 선글라스를 낀 꺽다리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키 넘는 쑥밭에 선글라스를 낀 두 청년도 숨어 이쪽 종호의 일거수 일투족과 그의 신변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종호는 일을 마치자 산소 옆에 만호와 마주 앉아 제물상에서 과일을 쥐어 먹기 시작했다.    한참 후 그들 형제는 부모 산소에 마지막으로 절을 세번  올리고나서 제물을 부모가 드시라고 거두지도 않고 산을 내려왔다.    고향 뒷산에서 다 내려오자 종호는 만호를 데리고 강냉이밭에 스리슬쩍 들어갔다.    그는 주위를 한참이나 살피고나서 만호의 어깨를 잡고 미더운 눈길로 마주 보며 부탁했다.    "한가지 부탁하자. 사람 일은 모른다. 만약 형이 잘못되면  백양나무 까마귀 둥지와 부모 산소 비석에서 몰카를 들춰 열어 봐라. 내 컴퓨터나 유판 같은 것도 꼭 들춰 봐라. 그걸 최혜영 국장이거나 리춘희 처장한테 전해달라."    "형님, 도대체 무슨 일이오?"    종호는 동생한테 나직이 류려평과 류덕재와의 죄행과 수사 경과사를 쭉 말했다.     만호는 다 듣고 나서 머리를 끄덕이더니 땅이 꺼지게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개새끼들, 가만 놔두는가 봐라. 형님, 근심하지 마오."     형제는 굳은 마음을 다지면서 고향 마을을 떠났다.    키꺽다리는 삼복염천에 반나절이나 강냉이밭에 숨어 헐헐거리면서 기회를 엿보았지만 끝내 손을 쓰지도 못하고 말았다. 진짜 닭 쫓던 개  지붕을 쳐다보는 신세랄까.    삼복지간 무더위에 강냉이밭에서는 이빨 가는 소리와 함께 공포가 무섭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졸지에 무덤이 뒤덮인 산 둔덕 위 상공에 느닷없이 자그마한 드론이 날아와 배회하였다. 산소에 묻힌 비밀을 탐지하려는 건가? 산소를 지키려는 건가? 진짜 유럽 전장을 방불케 하는 무시무시한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백양나무에 까마귀가 날아와 앉아 둥지와 무덤들을 번갈아보며 소름이 끼치게 울어댄다.    까욱- 까욱-    
537    대하소설 황혼 제5권(80) 대결 김장혁 댓글:  조회:240  추천:0  2024-12-02
     대하소설 황혼 제5권         김장혁       80. 대결       드르릉.    감옥 지하심문실 철문이 아츠러운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류기 경장과 여경이 최정호 국장을 압송해 어둑시그레한 지하심문실에 들어섰다.    최혜영 국장은 류려평과 류덕재 “문화국청사 대부금사건”을 조사하려고 특별히  형사처 리춘희 처장, 류기 경장과 남경 한명을 데리고 긴급히 성감옥에 가서 최정호를 심문하기로 했다. 문화국청사 대부금사건은 당시 문화국 국장이었던 최정호와 떨어질 수 없는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정호가 우멍눈으로 흘끔 쳐다보니 눈이 시리게 비추는 조명등 뒤 정면 좌석에는 저승사자로 소문난 머리 희슥희슥한 최혜영 고문과  감찰국의 40대 초반 녀처장 리춘희가 엄숙히 앉아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청바위처럼 무섭게 굳어진 채 최정호를 쏘아보고 있었다.    최정호가 좌석에 앉기 바쁘게 최혜영 고문은 단도직입해 심문하기  시작했다.    “최정호, 우리 정책을 알지?’    “네, ‘로실히 탄백하면 관대하게 처리한다’. 최국장, 아니, 머리 싯허얀게 아직도 퇴직하지 않았소?”    리춘희 처장이 책상을 꽝 치면서 호통쳤다.    “닥쳣!  어디라고 언감 감찰국 고문을 모욕중상하는가?!”    정호는 쇠고랑이를 찬 손으로 대머리를 슬슬 만지면서 능청을 떨었다.    “저승사자로 소문나더니 좋긴 좋구만. 예순고개 넘어 고문으로 다 초빙되고. 똥별을 서너개 달고 대단한 지도자구만. 최고문동지, 난 탄백할 거 다 탄백하고도 감옥살이 14년이나 해야 하는데. 또 뭘 탄백하란 말입니까? 탄백하나 마나. 흥!”    최혜영은 골려주는 말은 개의치도 않고 정색해 엄숙히 심문했다.    “허튼 소릴 작작 치고 로실히 탄백하라. 문화국 청사 대부금을 낼 때 류려평과 류덕재가 당신과 박나영한테서 얼마나 얻어 먹었는가?”    최정호는 순순히 탄백하려고 들지 않았다.     “전번에도 말했지만 우린 류려평과 류덕재한테 아무 것도 준게 없습니다. 우린 재정정책을 하나도 어기지 않고 대부금을 내왔습니다.”    최혜영은 책상을 꽝 쳤다.    “거짓말! 박나영이 다 탄백했소.”    류기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내 보는 척하면서 록음앱을 꼭 눌렀다.    순간 실시간으로 심문과정이 류덕재 짝통핸드폰 위쳇과 컴퓨터에 전송돼 갔다.    “최국장, 당신은 그날 박나영을 시켜 전람관 돈 5만원을 꺼내가지고 오라고 했어. 당신은 박나영의 손에서 돈봉투 세개를 받아 류려평 부행장한테 3만원을 주었고 류덕재한테 5만원을 준게 분명하다. 류덕재한테 더 준 3만원은 어디서 난 돈인가?”    최정호는 심장을 찔리운듯이 쪽걸상에 앉아 움찔 했다. 류덕재를 더 준 돈은 기실 정호가 문화국 재회과 과장을 시켜 꺼내 가져온 것이었다. 그러나 늙은 너구리는 교활하게 너스레를 떨며 질문을 회피하려고 들었다.    “아니, 이건 생사람을 다 잡는다. 야, 박나영은 날 돈을 준 적도 없습니다.”   최혜영 고문은 서슬이 퍼런 눈길로 정호를 쏘아보면서 질문했다.   “사실이 다 밝혀졌는데도 아직도 로실히 탄백하지 않을텐가?! 어째 형기를 더 연장해줄까?”    “아니, 아니, 제발 그러지 마오. 지금 생지옥에서 막 죽을 거 같은데. 또 연장이라니 무슨 짓이오?”    순간 최정호는 손사래를 치며 낯에 식은 땀을 줄줄 흘렸다.    “최국장, 무인도에서 내 목숨을 내걸고 당신을 구해준 일을 벌써 다 잊었소? 최국장네 아버지나 최국장이나 다 당년에 시당위 서기인 내 가시아버지 덕분에 제발됐다는 걸 벌써 다 잊었소?”    최정호는 적반하장격으로 나왔다.    “배은망덕한 배신자들 같은게. 책상까지 꽝꽝 치면서. 그게 뭐요? 건방지게. 깜짝 깜짝 놀라 간이 다 떨어지겠다이.”    최혜영 고문은 허구픈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는 정호를 슬슬 정치공세를 하면서 탄백하게 유도했다.    “쓸데 없는 소릴 작작 하고 로실히 탄백하오. 우린 류려평과 류덕재  죄행을 기본상 장악했소. 다만 당신과 증실할뿐이오. 당신의 태도를 보자게오. 다른 부배분자 죄행을 적발하면 당신의 형기를 단축할 수도 있소. 헌데 안되겠구만.”    최정호도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 너구리었다.    그는 우멍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한참 궁리했다. 그도 저승사자 손에 걸리면 뛸 데 없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류려평과 류덕재는 저승사자한테 꼬리를 밟혔어. 증거를 딱딱 들이대는데 어쩌는가? 류덕재가 아무리 뿌리 깊고 날고 뛰어도 저승사자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해. 감옥에 있으면 편안한데. 여자가 없는게 젤 고통스럽지. 아까운 변강쇠 다 썩어빠진다. 14년 형기를 채우고나면 팔순이 될 판인데. 그땐 이쁜 아가씨 있어도 맥이 없어 못 놀겠는데. 에라, 다 불어버리고 형기나 단축하는게 상책이야. 하루라도 빨리 이 생지옥에서 나가 아가씨 야들야들한 엉덩이나 매만지면서 실컷 놀아야지.)    정호는 마른 헛기침을 깇더니 빗장을 질렀던 입을 끝내 무겁게 열었다.    “최국장, 난 다 적발하겠소. 내 형기를 진짜 단축해 줄 수 있소?”    정호는 기대에 찬 눈빛이 번쩍이는 우멍눈으로 “저승사자”를 쳐다보았다.    최국장의 어글어글한 쌍겹눈에도 대번에 활기 넘쳤다. 기대에 찬 눈길로  정호의 우멍눈을 마주 바라보며 똑똑히 말해주었다.    “우리 사법부에서는 당신의 탄백 정도에 근거해 성감옥당국과 토론해 형기를 단축해 재판결(개판)할 수도 있소. 모든 건 당신의 태도와 탄백 정도에 달렸소. 어서 탄백하오.”    정호는 류기 쪽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물을 한사발 주오.”    여경이 음료기에서 뜨거운 물 한 컵을 받아 주었다.    정호는 물을 한 컵 다 들이켜고 빈 컵을 탁자 위에 달랑 내려놓고 나서 두툼한 입술을 감빨더니 입을 무겁게 열었다.    “나와 박나영은 문화국과 전람관 청사와 아파트 건축용 대부금을 내오자고 류덕재 행장에게 5만원, 류려평 부행장한테 3만원 주었소.”    최혜영 고문은 코방귀를 뀌었다.    “흥, 그뿐인가?”   정호는 꼬리를 밟힌 건 떼를 쓸 방법없어 탄백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뿐이오.”   최혜영은 서슬이 퍼래 책상을 꽝 쳤다.    “류려평과 류덕재한테 집을 몇채씩 줬는가? 어째 우리 모르고 심문하는 거 같애?!”    정호는 속으로는 화들짝 놀랐지만 겉으로는 침착한 척 하면서 시치미를 땄다.    “무슨 소리오? 금시초문인데.”    정호는 류덕재와 류려평한테 아파트를 준 사실을 탄백하면 자기도 집을 공짜로 가진 사실이 들킬가 봐 겁났던 것이다.    “우린 류려평과 류덕재가 공짜로 가진 숱한 아파트 있다는 걸 다 장악하고 있어. 최정호, 지금 가옥관리는 모두 전자화하고 있다는 걸 당신도 알겠지? 누굴 속이려고?”    최정호는 번대머리를 숙이고 우멍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저승사자는 증거 없이 허망 심문하진 않을 거야. 오, 망했다, 망했어. 내 아파트 가진 것도 알고 있는 거 같아. 이거 혹을 떼러 왔다가 혹을 더 붙이게 생겼는데. 어쩌는가? 형기를 줄이기는커녕 늘어날 거 같다. 아이고, 이 일을 어쩌는가?)    순간, 대부금을 내자고 나영과 함께 돈봉투를 가지고 은행 행장실에 찾아 갔을 때 류려평의 째려보던 퉁사발눈이 떠올랐다.    (그때 류려평은 돈봉투 세개를 꺼내 줄 때 어쨌던가. 퉁사발눈이 다 째지게 부릅뜨고 나를 째려보더니 돈봉투를 활 밀어버렸지. 뭐? ‘요따위 걸 가지고 와서 대부금을 내려고 하는가?! 최국장, 째째하게 놀지 마오.’ 이렇게 고아댔지? 류려평, 네년 얼마나 엉큼한 악어냐? 모두 네년을 암펌이라더니 그른데 없구나. 어떻게 지은 아파튼데 네년은 한채를 가지고서도 모자라 숱한 아파트를 돌아보면서 욕심냈느냐? 탐욕스러운 녀탐관년아, 어디 살아남는가 보자.)    그는 독한 마음을 먹었다.    (류려평이 아파트 한채 가진 걸 활 불어버리자. 내 형기나 단축해야지.”    정호는 번대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다 적발하겠소. 대부금을 내주자고 문화국과 전람관 지도부 성원들과 토론하고 류려평 부행장한테 집 한채 주었소.”    최정호 뒤에 서고 있던 류기가 깜짝 놀라면서 뒤주춤하기까지 했다.    (아니, 저 놈이! 류려평 고모를 물어먹다니? 고모는 끝장이야, 끝장! 살인미수죄를 졌지. 아파트까지 가진 일이 터졌지. 이 일을 어쩌나?)    류기는 평소에 자기를 친딸처럼 고와하던 류려평 고모의 처지를 생각하자 속이 곪아터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일도 없는듯이 평온을 되찾으면서 놀란 기색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최헤영 고문의 예리한 눈길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류기의 반상적인 거동에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류기 경장, 어째 몸이 불편하오?”    “아니, 괜찮아요. 눈앞이 불시에 깜빡해서 좀…”    “그래요? 남경한테 경계를 맡겨도 되오. 휴계실에 가서 좀 쉬든지?”    류기는 척 똑바로 서더니 손사래를 쳤다.    “아니, 괜찮아요. 경계는 저의 임무니깐요.”    류기는 경계보다도 심문록음을 해 재빨리 류덕재 큰아버지한테 전송해야 했다. 때문에 그녀는 이 관건적인 심문자리를 절대 떠날 수 없었다.    “좋소.”    최혜영 국장은 날카로운 쌍까풀눈을 류기 몸에서 정호한테 돌렸다.    “최정호, 오늘 적발하는 태도가 참 좋소. 계속 적발하오.”    정호는 가랑잎으로 눈을 가리고 야옹 하기 시작했다.    “난 이젠 다 탄백했소. 류려평은 대부금 주관부행장이오. 류려평 부행장이 직접 비준해 대부금계약서에 싸인까지 하고 은행 공장을 꽝 찍었단 말이오. 이만하면 다 적발했소.”    최혜영 고문은 허구픈 미소를 지었다.    “최정호, 당신 세살짜리 애들처럼 떼를 쓰지 말고 다 탄백하란 말이오. 당신은 아직도 류덕재 행장과 도시건설전망국 국장의 죄행을 적발하지 않았단 말이오. 우리 모르는가 해 가랑잎으로 눈을 가리고 아옹하오?”    (아차, 이걸 어쩌나? 류려평이 한국에서 인터폴에 나포돼 인도돼 국내에 압송됐다던게. 그년이 다 탄백했어? 류덕재는 무서운 놈인데. 그 놈 호랑이 궁둥이를 들춰내서야 뼈다귀도 남을 수 있겠는가? 류덕재 애비는 사망해서 이젠 힘이 없지만. 류덕재는 뿌리 깊은 교활한 호랑이인데. 류덕재 아들 놈새끼는 온 시내에 이름이 자자한 깡패(조직폭력배) 우두머린데…)    정호는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 봐도 무리 승냥이 같은 류씨네 집안  우두머리만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진짜 그 놈 무서운 호랑이와 원쑤를 맺고 싶지 않았다.    정호는 번대머리에 돋은 식은 땀을 손으로 쓱 쓷더니 우멍눈을 판들거리면서 번개처럼 속궁리를 굴렸다.    (그 놈 류덕재를 적발해 형길 몇년 단축받겠는지? 감옥에서 앞당겨 나가도 승냥이 무리들한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호랑이 궁둥이를 들춰 봤자 좋은 끝장 있겠는가? 차라리 감옥에 조용히 갇혀 있는게 편안하지.  내 감옥에 들어올 때까지 여직껏 대부금문제는 터져나오지도  않았는데. 괜히 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까는 격이 되지나 않을까? 내 집을 얻어먹은 일까지 터지면 형기를 단축하기는커녕 연장될 수 있지 않을까? 역은 새 방아간을 날아지나가는 격이 되지 않을까? 어쩐담? 으흠, 아이고.)    최혜영 고문과 리춘희 처장은 당황해 하는 정호의 표정과 거동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정호의 복잡한 내심갈등과 심리변화를 불 보듯 환히 다 꿰뚫어 보고 있었다.     “정호, 로실히 탄백하오. 우린 류덕재 행장의 죄악도 다 장악하고 있소.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적발해 립공속죄하길 바라오.”    최혜영 고문의 말에 정호의 우멍눈에는 무서운 빛이 번뜩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피뜩 류덕재 괘씸한 일이 떠올랐다.    (개자식, 네 애비 서기로 되고 네놈이 조직부장에 행장으로 승급한게  다 누구 덕인데. 개새끼, 내 가시아버지 서기질할 때 너네 부자 제발시킨게 아니고 뭐야? 그때 청렴한 가시아버지는 너네 부자한테서 집을 얻어먹었니? 돈을 얻어먹었니? 고잘난 모태주 몇병 들고 와 가지고. 흥, 배은망덕한 놈들, 그 애비에 그 아들새끼지. 나를 시장을 좀 시켜달라고 찾아가니 너네 부자들 날 다 개 닭 보듯 했지? 내게서도 얻어먹자고 했잖았니? 개씨끼들, 누구 덕에 기어올라가고 우리 가시아버지 사망하니 배은망덕해? 괘씸한 놈 새끼들. 몽땅 량심짝도 의리심도 없는 배신자 놈새끼들이야.)    정호는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그의 우멍눈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다 불어치워고 내 형기를 줄이고 보자. 감옥에서 나간 다음 무리승냥이들은 그때 다시 대처할 판이지.)    정호는 이렇게 마음먹자 인차 번대머리를 번쩍 쳐들고 저승사자를 쳐다보더니 포문을 열었다.    “다 적발하겠소. 대부금을 내자고 류덕재와 도시전망국 국장한테도 아파트 한채씩 주었소. 또 당시 시당위 서기질한 류덕재 애비한테도 한채 더 주었소.”    류기는 놀란 기색도 없이 침착하게 핸드폰으로 심문을 록음해 전송하기에 열중했다.    최혜영 고문은 희슥희슥한 단발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정호한테 물었다.    “류서기한텐 왜 아파트를 줬소?”    “당시 시건설전망국 국장은 문화국 청사 뒤에 있는 유치원 해빛을 가리운다고 9층 이상 짓지 못한다면서 문턱을 올렸지. 분명 얻어먹으려는 개수작이었지. 우린 류서기 보고 좀 도시건설전망국 국자과 말해 층수를 올리게 해달고 집 한채를 주기로 하고 사정했댔소. 건설전망국 국장한테도 한채 주었소. 류서기 한마디 말에 9층으로부터 일약 29층으로 올라가지 않았소? 류서기 말을 듣지 않고 국장은커녕 훅 어디로 날아가 처벅힐지도 모른 판인데. 누가 감히 류서기 말을 듣잖겠소? 흥! 세상 일이 모두 이렇소.”    “참 좋소.”    최혜영은 그래도 만족하지 않았다.    “정호, 당신은 절반도 적발하지 않았소. 로실히 탄백하오.”    “또 뭘 말이오? 잘 생각나지 않는데…”    최혜영 고문은 날카롭게 정호희 우멍눈을 쏘아보았다.    “어째 내 일일이 말해야 탄백하겠소? 문화국 청사와 직원 아파트를 짓고 최정호 국장과 해당 부문 간부들은 집을 몇채씩 가졌소? 우린 다 알고 있소. 어서 로실히 탄백하오.”    정호는 저승사자의 칼날처럼 서슬이 퍼렇고 예리한 눈길을 피해 머리를 뚝 떨어뜨리었다.    그는 우멍눈을 팬들거리면서 속궁리를 했다.    (나영이 다 불었는가? 아니야, 나영은 분 거 같잖은데. 나영도 한채 얻어가졌는데 감히? 그럼 문화국과 부직들과 전람관 관장이 불었을까? 그 놈들도 한채씩 가졌으니깐. 차마 불었을까? 아니야. 저 저승사자는 지금 썰매뛰기를 하고 있어. 내 아파트 가진 일을 들고 나가면 끝장이야. 형기를 단축하기는 고사하고 연장될 수도 있어. 절대 안돼.)    그는 나영을 잡기는 싫었다.    (나영은 내 조강지처는 아니지만 필경 나를 따라 일본과 한국에까지 따라다니지 않았는가? 내 젤 어려울 때 내 정욕을 말려준 여자 아닌가? 남녀간에도 신뢰와 의리를 지켜야지. 최저한도의 량심도 지키지 않으면 사람인가? 나영을 실컷 데리고 논 변강쇤가? 이건 최후방아선이야. )    정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나서 머리를 쳐들었다.    “최국장, 아무리 저승사자라도 너무 강요하지 마오. 내 아는 건 다 적발했으니까. 이젠 더 묻지 마오. 이젠 때려죽이든지, 무기징역에  처하든지 해도, 진짜 탄백할게 더 없소.”    최혜영 고문과 리춘희 처장이 아무리 따지고 들어도 정호는 대머리를 푹 숙이고 우멍눈을 딱 감아버렸다.    “가만!”    갑자기 정호가 우멍눈을 번쩍 떴다.    “최국장, 다시 만나지 못할가 봐 한가지 부탁하는데. 내 형기 단축돼 감옥에서 나가면 후처감을 하나 미리 알선해 주오.”    “픽!”    최혜영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는 우멍눈을 쏘아보면서 다그쳐 물었다.    “지금 그런 걸 말할 때오? 박나영은 집 한채씩 가졌소? 안 가졌소?”    옆에 앉은 리춘희 처장도 한마디 질문했다.    “부관장인 박나영이 한채 가진 걸로 아는데 전람관 관장은 한채 안 가졌는가?”    그러나 최정호는 우멍눈을 다시 내리감고 두툼한 입에 빗장을 지르고 한마디 말도 더 대답하지 않았다.    최혜영은 심문을 마무리지으면서 쇠덩이 구으은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탄백태도 좋았소. 꼭 사법부와 감옥당국에 회보해 형기를 단축하도록 하겠소. 당신한테 시간을 줄테니 곰곰히 생각해 보고 낱낱이  탄백하오.” …    속담에 화는 눈섭 끝에서 떨어진다고 했다.    최혜영 고문과 리춘희 처장이 성감옥에서 다급히 돌아와 녀자감옥 소장실로 찾아갔을 때였다.    그녀들은 뜻밖의 일에 부딪치게 됐다.    소장실에는 김천선 소장이 보이지 않고 대신 류기가 도고히 앉아 있었다.   류기는 높으직한 의자에 거만하게 앉은 채 최혜영과 리춘희를 째려보면서 물었다.    “무슨 일로 또 찾아 왔습니까?”    리춘희 처장이 찾아온 사연을 말했다.    “김천선 소장을 부탁드립니다. 류려평을 긴급히 심문해 증실해야겠습니다.”    픽!    류기는 코웃음쳤다.    “김천선 소장은 년령관계로 이젠 소장자리에서 물러나 퇴직했습니다. ”    최혜형은 류기한테 다가서면서 다급히 물었다.    “그럼 김호 대대장을 찾을 수 없겠소?”    류기는 쌀쌀하게 조소하면서 빈정거렸다.    “최로파, 좀 똑똑히 알아두십시오. 김호는 치안대대 부대대장으로 강급돼 전근해 갔습니다. 여기 감관대대 대대장 겸 녀자감옥 소장은 내, 류기란 말입니다.”    최혜영은 반색하면서 류기 사무상 옆에 다가섰다.    “류기 대대장, 류려평을 심문실에 데려다 주오.”   류기는 책상을 꽝 쳤다.   “파파 로파, 이젠 다신 여기와서 내게 이래라 저래자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이젠 이 사건을 수사할 권리 없습니다. 흥!”   최혜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소리오?”    류기는 틀스레 의자등받이에 기대 앉아 몸까지 흔들거리면서 득의양양해 말했다.    “감찰국에 돌아가 해임문건이나 찾아보고 심문인지 뭔지 할거나 말거나. 쳇,”    “뭐라고?!”    최혜영은 류기 앞에서 가까스로 침착성과 인새성을 잃지 않고 자리를 떴다.    그녀는 구류소 대문을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단위로 부랴부랴 달려갔다.    그의 책상머리에 확실히 해임문건이 달랑 놓여 있었다.    “…년령관계로 이미 퇴직한 최혜영동지 고문직을 해임하고 영광스럽게 퇴직시킨다. 리춘희동지는 수사실무능력이 차하고 실직행위가 있기에 처장직무를 해임하고 은행 신대처 처장으로 전근시킨다. 최혜영동지와 리춘희동지는 사흘 내에 지금까지 류려평과 류덕재 대부금 사건에 관계되는 모든 수사자료를 신임 처장 왕춘영에게 인계해야 한다.…”    최혜영은 마른 하늘에서 생벼락을 얻어맞은 기분에 잠겨 눈앞이 깜깜해났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마수가 자기한테 뻗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문건은 류덕재의 막후조종대로 최혜영이나 리춘희나 너무 자극하지 않고 자리만 내놓게 아량있게 작성된 것이었다.  류덕재는 진짜 이 시내 뿌리 깊고 가지 무성한 밭머리 뱀, 아니, 토황제였다. 그는 정계에서 물러나 조직부장과 은행 행장을 내놓은지 오랬지만 아직도 의연희 조직부장, 은행 행장 행세를 하면서 자희 태후처럼 정계를 막후조종하면서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왕춘영은 류덕재 행장시절 여비서 아닌가? 후에 신태처 처장질 한 거 같은데 일약 감찰국 처장으로 돼? 실무도 하나도 모르는 생떼기를 데려다 수하하게 한다고?)    진짜 악세력과의 대결이었다.    최헤영은 문건을 책상 위에 활 뿌리치고 주먹을 불끈 쥐더니 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어글어글한 쌍겹눈에서는 이상한 빛이 번개쳤다. 머리속 에서는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우르릉 꽝꽝 울렸다.    최혜영은 서리내린 단발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이를 악물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누가 최종승리자인가는 아직 미지수다. 이 세상에는 정의가 살아 있고 법이 있지 않는가!)
536    대하소설 황혼 제5권(79) 류씨네 애비와 아들 김장혁 댓글:  조회:314  추천:0  2024-11-28
            대하소설 황혼 제5권                    김장혁       79. 류씨네 애비와 아들    모든 일을 마무리짓자 류덕재는 짝통핸드폰으로 아들 류문도를 별장에 불렀다. 관건적인 시각에는 그래도 아들이야 말로 젤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이윽고 키가 훨칠한 30대 말의 류문도가 별장 객실에 들어섰다.    류덕재는 마주 나가 아들을 꽉 끌어안았다.    그는 눈물이 글썽해 아들의 길죽한 얼굴을 쳐다보면서 울먹였다.    “나무 잎은 떨어져도 뿌리에 떨어지는 법이야. 내 죽으면 이 숱한 별장과 황금을 관에 넣어가지고 가겠니? 몽땅 너와 손자들한테 넘겨줄테다.  헌데 난 이젠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몇번 볼 수 있겠는지도 모르겠다.”    류문도는 퉁사발눈이 데꾼해져 애비 두 손으로 어깨를 잡고 황급히 물었다.    “아빠, 도대체 무슨 일 생겼습니까? 아들이 있는 한 어느 놈이 언감 아빠를 어쩐다고? 말하십시오. 누가 아빠를 건드립니까? 그 놈을 당장 없애 치우겠습니다.”    류덕재는 아들의 손을 잡고 쏘파에 가 앉았다. 그는 미더운 눈길로 아들을 마주 보았다.    “너무 충동하지 말라. 이 일은 랭정하고 침착하게 손 써야 한다.”    류문도는 머리를 끄덕였다.    “어느 놈입니까?”    류덕재는 핸드컴퓨터를 열고 류기자 저장해 놓은 동영상을 켰다.    류덕재는 아들의 어깨를 다독이고나서 나직이 말했다.    “넌 직접 나서지 말라. 네까지 련루되는 날엔 우리 류씨 집안이 망한다. 젤 좋긴 돈을 팔아 깡패들을 시키는게 좋을 거 같아.”    류문도는 머리를 끄덛였다.    “내가 알아서 처결할테니깐. 근심하지 마십시오.”    류덕재는 길죽한 말상을 류문도 귀에 갖다대고 목소리를 낮춰 쑤근덕거렸다.    “신문사 전임 부사장 리종호라고 있어. 그 놈이 날 돈을 얻어먹었다고 감찰국 전임국장 최혜영이란 저승사자한테 고발했어. 너네 류려평 고모도 그놈한테 물려서 한국에서 붙잡혀 지금 구류소에 갇혀 있다.”    “개새끼, 가만 놔두지 않겠어.”    류덕재는 음흉하게 말했다.    “꼬리를 남기지 말고 해치워야 해. 살인하지 말고 다리갱이나 분질러놓으면서 날 더 물지 못하게 경고해야 해.”    “안됩니다.”    류문도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빠, 아빠를 물지 말라고 경고하면 우리 시켜 때려눕힌 걸 알텐데. 아예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치우면 말끔하게 끝날 건데.”    류덕재는 뒷근심이 앞섰다. 그는 말상을 가로 저었다.    “안돼, 절대 살인은 하지 말라. 내 죽어선 괜찮다. 허나 네가 살인죄에 련루되는 날엔 우리 류씨 집안이 망한다, 망해. 너와 손자들은 아버지  유일한 희망이야.”    류덕재는 류문도 귀에 대고 나직이 쑤근거렸다.    “리종호, 그 놈이 다신 고발하지 못하게 뇌진탕에 걸리게 해놓으면 다야. 쇠파이프 같은 둔기로 대가리를 쳐서 병신을 만드는게 어떠냐? 절대 숱한 형제를 부르지 말라. 사후에 말이 새나가면 어쩌니? 젤 믿는 형제  하나만 골라 거사를 딱 맡겨라.”    류문도는 애비의 로련함에 탄복했다.    “네- 그게 좋겠습니다. 알아서 그 놈을 처결할테니 근심하지 맙소.”    류덕재는 별장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거사를 맡긴 형제한테 이 별장을 줘라.”    류문도는 쏘파에 잔등을 대면서 아까와 했다.    “필요없습니다. 황금 한덩이 주지요.”    “아니야. 아까워하지 말라. 목숨을 건 동생인데. 우린 재물을 아끼지 말고 이번 위기를 넘겨야 해. 알만 해?”    그제야 류문도는 이번 일이 그저 사고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 머리를 끄덕였다.    류덕재도 아들이 그 일을 말끔히 처결하리라 믿었다. 이제껏 그는 막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절대 아들의 손을 빌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기 일가의 생사와 관계되기에 핍박에 의해 량산에 오르게 되였다.    그의 아들 류문도는 시내에서도 소문난 깡패두목이니깐. 류문도는 애비 덕에 아무 직업도 없이 돈을 흔자만자 쓰면서 세상 못된 짓을 다 하고 주색이나 밝히는 건달이었다.    류문도는 애비한테 물었다.    “리종호라던가? 그 놈 용모팍과 주거지를 알려 주겠습니까?”    류덕재는 탁자 위 핸드컴퓨터에 류기가 저장한 동영상을 돌리면서 리종호를 가리켰다.    “이 놈이야.”    류문도는 깜짝 놀랐다.    “이건 고모부 아닙니까?”    류덕재는 이빨을 사려물었다.    “아니야! 이 놈은 배신자야! 류려평 고모와도 이미 리혼했어.”    류문도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쩜 이럴 수가?! 그렇게 죽자 살자 하면서 가깝게 지내던 고모부가 원쑤로 되다니? 참.”    “짐작하기 어려운게 세상 인심이야. 이 세상에 영원한 친구는 없어. 그러게 가까운 형제라도 속을 다 드러내선 안돼. 길러준 개 발뒤축을 물 때 있으니깐. 이 동영상은 리종호란 놈이 전람관 박나영이란 관장을 취재할 때 장면이야.”    류문도는 짝통핸드폰을 꺼내 리종호 용모를 촬영했다. 동영상 그대로 촬영도 하고 단독 사진으로도 몇장 촬영했다.    “알았습니다. 개놈새끼 대갈통을 까부셔 놓지 않는가 봐라.”    류덕재는 황망히 손사래쳤다.    “살인은 절대 안돼. 손 쓸 형제한테 사유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말라. 뭐나 여지를 둬야 해. 한번에 안되면 재차 암해하더라도. 절대 죽이진 말라.”     “근심하지 마십시오.”    류문도는 애비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이 놈 주거지는 어딥니까? 이전엔 신문사 부근 그 조꼬만 집에 있습니까?”    류덕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신문사 부근 그 조꼬만 아파트를 팔아버렸다니깐. 그 놈은 습관대로 자기 익숙한 신문사 부근 려인숙에 들지 않았겠는지 모르겠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바다에서 바늘을 건져내서라도 들춰내야죠. 그 놈을 꼭 찾아내 정신나간 병신으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나중에 류덕재는 류문도 두 손을 잡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문도야. 넌 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야. 내 목숨과 같애. 너와 손자들은 내 유일한 미래이자 희망이야.”    류문도는 머리를 끄덕였다.    “아버지, 알만합니다. 아버지도 내 기댈 유일한 산입니다.”    류덕재는 상냥한 빛이 어린 외까풀눈으로 아들을 정겹게 마주 바라보면서 정색했다. 한뉘 평생 교활한 류덕재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해왔다. 그러나 아들 앞에서만은 속을 터놓고 진정에 담긴 말을 했다.    “속담에 나무 잎은 떨어져도 뿌리에 떨어진다고 했다. 이젠 예순고개를 넘은 이 못난 애비는 죽어도 괜찮다. 볼 장을 다 봤어. 넌 아직 새파란 나이에 손자들을 데리고 한고조 류방의 후손 류씨 가문, 우리 류씨네 집안 향불을 이어가야 해. 알만하니?”    류문도는 애비 손을 활 놓으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만하십시오. 왜 그리 심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우린 아버지를 무는 사악한 개들의 이빨을 몽땅 까 버리고 활개치면서 살아나갑시다. 이 좋은 세상에  우리 류씨네 가문에서 세세대대로 오래오래 향락을 누립시다.”    류덕재는 머리를 끄덕였다.    “기세등등한 네 말을 들으니 신심이 생긴다. 시당위 서기를 하신 할아버지께서 계시기만 해도 주먹을 휘두르는 하책을 대지 않아도 되겠는데. 나도 퇴직했지. 별 수 없구나. 좀 례사롭지 못하구나. 핍박에 의해 량산에 오르게 됐다. 참.”    류문도는 정치는 개뿔도 몰랐지만 선물을 한꾸레미씩 들고 할아버지와 애비를 찾아오던 숱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덕분에 승급한 사람들이 숱해 있잖습니까? 이럴 때 그 사람들 보고 좀 도와달라고 하면 안됩니까?”    류덕재는 길쭉한 말상을 절레절레 저었다.    “딱 그 사람들만 믿어선 안돼. 사람이란 살아가노라면 뭐나 여지를 두고 빈틈없이 여러가지로 궁리해야 해.”    그는 삐죽한 개 턱을 고이고 한참 궁리하더니 뒷말을 이었다.    “할아버지 계시고 내 조직부장 자리에 있을 땐 아첨하던 사람들 중에 몇이 은혜를 잊지 않고 의리심을 지켜서 이번에 나서겠는가는 건 아직 미지수야. 정치라는 건 그래. 내 권력을 쥐고 있을 땐 허리를 꼽싹거리면서 아부하지만 일단 자리를 내기만 하면 개 닭을 쳐다보듯 하는 자들이 많아. 그런 자들을 믿다간 한지에 방아를 걸어. 우린 모든 걸 그래도 자기 재물을 아낌없이 퍼주고서라도 이번 고비를 넘겨야 해. 그래야 우리 류씨 집안을 지켜낼 수 있어. 내 말을 명심해라. 사람이 살아 있으면 재물이야 또 생기는 법이지.”    류문도는 애비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일단 머리를 끄덕이었다.    “아버지 교시를 명심하겠습니다.”    아들놈이 자기 말을 순순히 듣는 것을 보자 류덕재는 가슴 속에 오래동안 숨겨뒀던 말을 꺼냈다.    “문도야, 사람 일은 모른다. 때문에 하나 밖에 없는 아들한테 이 말을 미리 해두는게 옳은 거 같다.”    류문도는 애비 길쭉한 말상을 쳐다보았다. 어째 정색한 외까풀눈이랑 이상했다.    류덕재는 류문도한테 다가가 나란히 앉더니  두 손을 꼭 잡고 나직이 말했다.    “얘야, 할아버지 산소를 정성들여 모시면서 잘 지켜라. 할아버지 산소 유체 옆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평생 모은 황금을 금고에 넣어 파묻어두었다.”    류덕재는 열쇠뭉치를 탁자 위에 척 내놓았다.    “자, 이걸 받아라. 금고 열쇠야.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네가 그 황금으로 우리 류씨 집안을 굳세게 이어나가기를 바랄뿐이야. 할아버지와 난 널 믿는다. 너를 믿기에 황천에 가서라도 눈을 감겠다.”    류문도는 금고 열쇠를 받아들고 속으로는 감지덕지했지만 그래도 례의를 지켰다.    “아버지, 왜 벌써 이런 말씀을 합니까? 별로 유언을 남기는 것 같아 불안합니다.”   류덕재는 류덕재 어깨를 다독이면서 눈물까지 글썽해 말했다.   "문도야, 지금 말하지 않으면 기회 더 없을지도 모른다."    류덕재는 류문도의 손을 꼭 잡고 당부했다.    "얘야, 돈을 절대 은행에 저금하지 말라. 금고에 차곡차곡 쌓아 둬야 내게야. 집에 두기 겁나면 황금으로 바꿔서 남몰래 할아버지 산소에 파묻어둬라. 이건 할아버지와 애비가 집을 지킨 좌우명이야. 그러잖다간 일단 일이 생기면 수사기관에서 은행에 미리 배채해놓은 은행직원을 시켜 네 이름만 딱 치면 손금 보듯 저금액이 다 드러난다. 수사기관에선 수시로 네 카드의 돈을 차압할 수도 있어. 순식간에 남의 돈이 되는 거야."     "비밀번호 있는데 무슨 소립니까?"     류덕재는 말상을 절레절레 저었다.     "이 놈 자식아, 수십년 은행장을 한 애비 말을 명심해라. 비밀번호고 뭐고 수사기관에선 다 열어재껴."     류문도는 섬찍했다.     "세상에!"     류덕재는 계속 지껄여댔다.     "여기 은행이 스위스 은행인가 하니? 스위스은행은 전쟁이 일어나도 개인 재물을 보호해주지. 절대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그래서 전 세계 부패분자들은 신용도가 젤 높은 스위스은행에 저금하는 거야. 그런데 우린 스위스에 가기 전에 나포되니깐. 꿈도 꾸지 말라. 할아버지 산소가 젤 좋은 내 은행이지. 누가 거기에 황금을 묻어두리라 생각이나 하겠느냐?"     그제야 류문도는 머리를 끄덕였다.     류덕재는 류문도에게 또 이것저것 지껄여댔다.    “문도야, 아버지는 조직부장도 해보고 은행 행장도 해보았다. 또 적젆은 돈도 벌었다.”    류덕재는 이런 자랑도 늘여놓으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숱한 아가씨들도 데리고 실컷 놀았다. 미국 아가씨, 로씨야 아가씨, 일본 아가씨, 태국 아가씨, 한국 아가씨, 영국 아가씨, 네덜란드 아가씨, 국내 각 민족 아가씨들을 몽땅 데리고 실컷 놀아봤다.”    그는 색마였지만 자식한테도 여지를 두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 그만두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세상 향락을 다 누려봤다. 이젠 볼 장을 다 보았구나. 사람이 실돌피처럼 약하게 비실거리면서 오래 살아 무슨 멋이 있겠느냐? 짧게 살아도 가질 거 다 가지고 먹을 거 다 먹고 누릴 향락 다 누리면 그게 제일이야. 이젠 아버진 당장 죽어도 한이 없다.”    류덕재는 독기어린 외까풀눈을 희번뜩이면서 이를 쁘득쁘득 갈았다. 진짜 서슬이 시퍼런 칼날 같아 공포를 휘몰아왔다.    “네 아버지도 만만친 않을 거야. 난 우리 류씨 집안과 후대들을 위해 거치장한 놈들을 몽땅 제거할 거야. 정 안되면 최후발악도 할 거야. 그러나 넌 손자들을 봐서 절대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을 하진 말라. 넌 이제부턴 쩍하면 주먹을 휘두르지 말고 머리를 많이 써서 꼭  지혜롭게 우리 류씨 집안을  지켜야 한다. ‘不要武斗,要文斗’。알만하니?”    류문도는 아버지 두 손을 꼭 잡고 머리를 조아렸다.    “네, 아버지 말씀을 꼭 명심하겠습니다.”    류덕재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자기 어릴 때처럼 까불면서 싸움만 하지 말고 공부 잘해 출세하라고 이름도 류문도(刘文道)라고 지었다. 그러나 류문도는 닮은 데 없겠는가. 딱 애비 어릴 때 처럼 공부에는 빼돌이고 싸움질에 이골이 튼 건달로 자라났다. 나중에 집에 걸 다 내다 퍼주면서 숱한 싸움군 친구들을 친해 무리싸움까지 하는 깡패 우두머리로 돼버렸다. 장가를 가면 낫겠는가 했는데 애 애비 돼도 그새 장새였다.  싸리 그루에서 싸리 자란다고 류문도는 애비를 닮아 시내에서 이쁜 미녀만 보면 느침을 질질 흘리면서 따라가서 해코지를 하고야 말았다.     류덕재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들거리면서 노는 백수건달 아들 놈, 주색을 밝히는데 이름난 건달 아들 놈, 정당한 수입도 없는 아들 놈이 항상 근심스러웠다. 나아가서 류씨네 집 안의 운명마저 근심스러웠다. 그래서 류덕재는 악을 쓰고 부정축재해 건달 아들놈과 손자들이 한뉘 쓸 재물을 미리 마련해두었던 것이다.    이번에 류덕재는 창피한대로 건달 아들을 써먹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됐다.    “이 별장이랑 부동산은 다 남의 걸 받아먹은게 돼서 꼬리 밟히기 쉽다. 의리를 지키는 형제들한테 훌훌 나눠주고 이번 일을 부탁해라. 그리고 저기 커다란 금고에 있는 황금덩이도 이번 고비를 넘기는데 쓰고 나머진 할아버지 산소에 금고채로 기름종이와 비닐박막에 싸서 파묻어라. 산소에 묻어두는게 어디다 두기보다 젤 안전하다. 누구도 거기에 묻어두리라고 생각도 못할 거야. ”    류문도는 애비를 믿음과 존경에 찬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나직이 대답했다.    류덕재는 숱한 부탁을 해놓고서도 또 시름이 놓이지 않아 마지막으로 독사 혀바닥을 날름거렸다.    "문도야, 젤 후황는 리종호야. 그 놈은 우리 조상 산소 위치를 다 안다. 이번에 절대 실수하지 말고 그 놈을 제거해야 해."    류문도의 우멍한 우멍눈에서는 살기 넘쳤다.   "아예 없애치웁시다."    "이놈 자식아, 절데 살인죄를 지지 말고 깜쪽같이 해치워야 해? 알만 해?"    류문도는 이를 악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음험한 류씨네 애비와 아들은 오래도록 음흉하고 섬찍한 꿍꿍이를 하나, 하나 빈틈없이 꾸며 나갔다. 바깥에서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먹장구름이 몰려왔다.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소리 하늘 땅을 들었다 놓았다.    번쩍!    우르릉 꽝꽝!    저게 뭔가?    생벼락이 별장 울안의 늙은 비술나무를 탁 쳤다.    생벼락을 맞은 고목에 퍼런 불이 달려 활활 타올랐다.    팔뚝만큼한 나무가지들이 뚝, 뚝 끊어져 비물이 질벅한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번쩍!     먹장구름 속에서 형체 모를 무수한 마수가 인간세상에 내리뻗친다.     태풍이  질벅한 세상에 몰려온다. 먹장구름 속에서 공포가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생벼락, 공포의 마수가 어느 골목에서 노려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제 이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하늘도 땅도 그 누구도 몰라.
535    대하소설 황혼 제5권(78) 음모궤계 김장혁 댓글:  조회:220  추천:0  2024-11-26
   대하소설 황혼 제5권          김장혁        78. 음모궤계      류덕재는 창문 밖으로 댓살처럼 쏟아지는 소낙비 속에 수풀처럼 거무충충하게 우뚝우뚝 솟은 고층건물들을 내다보면서 위기가 닥쳐오는 것을 직감했다.    (저 숱한 고층건물들을 짓게 숱한 대부금을 내주면서 숱해  받아 먹었는데. 어쩌는가? 어느 고층건물에서 불시에 생벼락이 터질지 어떻게 아는가? 아이고, 하느님 맙시사. 이 일을 어쩌는가?)   류덕재는 가까스로 공포에 질린 심리균형을 제대로 바로잡은 후  류항곤과 류기한테 스적스적 다가왔다. 류덕재가 류기 옆에 다가와 나란히 앉았다. 그런데 류덕재 몸에서 지독한 퀴퀴한 냄새 나서 류기는 코로 흡흡하며 상을 찡그리며 멀찍이 물러나 앉았다.    그런줄도 모르고 류덕재는 억지로 류기한테 웃어보이며 나직이 쑤근덕거렸다.    “류기야, 네가 류려평을 만나면 가만히 전해달라. 내랑 너네 아빠랑 평생 맺은 넓은 인맥을 다 리용해 류려평을 구할테니까. 근심하지 말라고. 로실히 탄백한다고 류려평을 살려주지 않을테니까.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서 기다리라고 전해달라.”    류기는 바위돌처럼 얼어붙은 얼굴 표정으로 류덕재를 쳐다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네, 꼭 전하겠습니다.”    류덕재는 새라도 말소리 들을가 봐 류기의 귀밑머리에 대고 나직이 쑥덕거렸다.    “류기야, 종호가 나영한테 넘긴 유판을 어떻게 빼냈으면 좋겠다.”    류기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저승사자 어떤 늙은 너구리라고 그게 그리 쉽겠습니까?”    류덕재는 포기하지 않았다.    “유판을 빼내지 못하면 기회를 봐서 록음하거나 복제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류기는 류덕재와 손바닥을 쨩 쳤다.    “근심마세요. 큰아버지, 기회만 있으면 꼭 분부대로 해 보겠습니다.”    류덕재는 시름이 놓이지 않아 한마디 덧보탰다.    “이후에는 내한테 핸드폰이나 위챗으로 련락하지 말라. 아마 수사부문에서는 내 핸드폰을 감청하고 있을 거야. 무슨 일이 있으면 밤에 이 별장에 나를 직접 찾아와 말해라. 좋기는 류문도하구 짝통핸드폰위챗에 련락해라.넌 처처에서 매사마다 빈틈없이 하면서 안전에 주의해라. 자칫 새파란 나이에 전도를 망치겠다. 류기야, 절대 내 일 때문에 련루돼선 안돼. 너하고 류문도는 우리 류씨 집안 유일한 미래이자 희망이야.”    류기는 어설프게 웃기까지 했다.    “네, 큰아버지, 근심하지 마십시오. 이젠 나도 어린애 아닌데요. 서른살도 넘었는데요. 히히히.”    류덕재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는 류기한테 물었다.     “너네 구류소 대대장이 이름이 뭐냐?”     “김호 대대장입니다. 듣는 말에 의하면 김호 대대장은 전번에 취재하러 왔던 신문사 리종호 부사장이란가? 그 로기자네 학생이랍디다.”    류덕재는 독기어린 외까풀눈을 부라리면서 음흉하게 칼로 썩뚝 자르는 시늉을 했다.    “그 새끼부터 잘라 버려야 해. 김호를 그 자리에 놔두면 저승사자나 리종호 말을 듣고 류려평을 더 못살게 굴게 아니야?”    그는 아주 담담하게 류기를 마주 보며 뒷말을 이었다.    “넌 내 심부름이나 잘 해라. 이제 김호를 대대장 자리에서 잘라버리고 널 제발시킬 예산이다. 기쁜 소식을 기다려라.”    류기는 이게 웬 떡이냐고 류덕재 손까지 잡고 감지덕지해 했다.    “어머나. 감사해요. 큰아버지 그 은혜를 한평생 잊지 않고 보답해드리겠습니다. 제가 제발되면 큰아버지를 도와 일하기도 퍽 편리할 겁니다. 유판에 접근할 기회도 많을게고 류려평 고모와도 수시로 비밀리에 만나기도 퍽  편리할 겁니다.”    “그래. 넌 언제까지 녀자감옥에서 경장이나 하겠니? 이젠 서른살도 넘게 경장질했으니까. 제발될 때도 됐어.”    류덕재는 독기 오른 외까푼눈을 부라렸다.    “저승사자와 구류소 주위부터 말끔히 정리해야지.”    그는 류기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녀자감옥의 김소장이던가? 이젠 꽤나 나이 있어 보이던데.”    류기는 좋은 기회라고 물어먹었다.   “네. 김천선 소장은 이젠 50도 넘었습니다. 늙은 게 아직도 렴치없이 퇴직할 때까지 소장질 할 예산인 거 같습디다.”    류덕재는 이을 악물었다.     “김호나 김소장이나 다 한 짝패야. 그 년놈들을 정리하지 않고서야 네가 어떻게 기를 펴고 살겠니? 또 류려평을 어떻게 구하겠니? 그 놈들이 살판치는 날엔 우리 류씨 집안 사람들이 기를 펴고 살 수 없어. 그 놈들 기를 꺾어놔야지.”    원래 류덕재는 말수가 적었는데 오늘 따라 말이 많았다.    “그 놈들이 내 은행 행장 내놨다고 업신여기는 거 같은데. 큰 집이 무너져도 3년은 걸린다는 걸 아는 거 같지도 않다.”    그는 일부러 류항곤과 류기한테 자기를 믿고 따르기만 하면 아무 것도 근심할 필요없고 모든 게 잘 되리라는 신심을 안겨주려고 들었다.    류덕재는 사촌동생과 여조카 앞에서 큰소리를 탕탕 쳤다.    “아버지 시당위 서기질 할 때 제발시킨 관료들과 내 조직부장할 때 제발시킨 관류들이 관사 각 부처에 욱실거린다. 우리 류씨 집안은 이 사내에서 나무가 젤 크고 뿌리가 젤 깊은 가문이야. 아직도 내 한마디 말이면 저승사자고 뭐고 훌 날아가 어디 처박힐지 모르잖는가 봐라.”    그는 류항곤과 류기를 들으라고 말했다.    “정치를 하거나 뭘 하든지 사람은 의리심이 있어야 돼. 우리 부자간이 제발시킨 숱한 관료들은 모두 의리심이 있는 형제들이야. 그 형제 관료들이 모두 내 억울함을 당하게 놔둘 거 같애? 날 배신하고 물어먹는 놈들을 좋은 끝장 있을 거 같아? 흥!  리종호나 저승사자, 그리고 박나영이 같은 조무래기들이 어디 살아 남는가 두고 보자. 뼈다귀도 추리지 못하잖는가 두고 봐라. 흥!”    류항곤은 류덕재한테 머리를 조아렸다.    “형님, 형님이란 큰 산이 있는 한 그 몇몇 놈들이 형님을 어쩌지 못하리라 믿소. 그리고 내나 류기나 다 어쩌지 못하리라고 믿소. 나도 형님과 큰아버지 신세를 많이 졌는데. 류기까지 제발시켜 주겠다니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소.”    류덕재는 손사래를 쳤다.    “그러지 말라. 우린 피를 나눈 형제야. 한 집 안 사람끼리 두 말 하지 말자.”    그는 류기한테 눈길을 돌렸다.    “류기야, 저승사자가 또 누구를 심문했니?”    류기는 류덕재를 치켜보며 종알거렸다.    “전람관 부관장 박나영과 문화국 최정호 국장을 하나하나 심문합디다. 큰아버진 박나영을 잘 압니까? 박나영도 이번에 류려평 고모와 함께 인터폴에 나포돼 한국에서 국내에 인도돼 왔는데요.”    “그래? 박나영이 뭘 공술했느냐?”    류기는  미주알 고주알 고발했다.    “박나영은 전람관 공금 5만원을 꺼내 람용했다고 승인합디다. 그리고  대부금 내올 때 문화국 최정호 국장과 함께 큰아버지와 류려평 고모한테 찾아가 그 5만원을 나눠 줬다고 공술합디다.”    류덕재는 펄쩍 뛰면서 억울하다고 고함쳤다.    “개쌍년, 그래 최정호 국장은 날 뭐라고 불데?”    류기는 나직이 말했다.    “최국장은 죽는 상을 하면서 자기는 더 탄백할게 하나도 없다고 합디다. 나영한테서 돈을 받은 적도 없고 큰아버지나 고모한테 준 적도 없다고 합디다. 나영이 자기를 무함한다고 합디다.”    류덕재는 길쭉한 말상을 흔들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봐라. 박나영의 공술은 무함이다, 무함! 아무런 증거도 없는 무함이야.”   그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뒷말을 이었다.    “문화국 청사 대부금은 류려평이 대부금 원칙에 따라 내준 거야. 재정원칙을 위반한게 하나도 없어.” 교활한 류덕재는 아무리 믿는 사촌동생과 여조카라고 해도 극력 자기 죄행을 감추고 류려평한테 죄를 밀었다.    “류기야, 빨리 단위로 가라. 김호나 저승사자한테 눈에 나겠다. 가기 전에 아까 그 유판을 내 컴퓨터에 저장해놓고 가라.”    “네, 깜빡했구나.”    류기는 류덕재 핸드컴퓨터에 저장해주면서 말했다.    “큰아버지. 병원에 갔다 왔다고 하면 그 년놈들이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류덕재는 류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주의를 주었다.    “소낙비 내리는데 차를 주의해 몰아라. 구류소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인차 알려달라.”    “네, 알겠습니다. 꼭 큰아버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잘 명심하겠습니다.”    류기는 류덕재한테 허리 굽혀 인사하고는 별장에서 총총히 나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버렸다.    류항곤은 류기한테 너무 살갑게 구는 형이 눈에 거술렸다. 색마인 사촌형이 언젠가는 종친여동생 류려평을 재끼듯이 자기 딸의 몸에 손을 댈가 봐 겁났던 것이다.    그는 피뜩 떠오르는 무슨 궁리 있어 무릎을 탁 치면서 일어났다.    “형님, 먼저 저승사자도 제거해야 하오. 그 저승사자 류려평의 넝쿨을 따라 형님을 찾아오면 어쩌오?”    류덕재는 뻐드렁이빨을 드러내며 음흉하게 말했다.    “음, 퇴직한 년을 아직도 고문으로 쓰다니? 검찰원에 사람이 없긴 없다. 그런 늙은 페허소를 아직도 중용하다니? 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도 이젠 퇴직했다고 업신여기는 얼빠진 놈들이 있는 거 같은데. 어디 두고 보자. 생강은 늙은게 더 냅다는 걸. 흥!”    류덕재는 류기를 보내놓고 류항곤과 함께 한참 갖은 음모궤계를 다 꾸몄다.    음모궤계가 둥글어져 갈 때 류항곤은 근심돼 말했다.    “형님, 아무리 류기를 시켜 리종호가 저승사자한테 주라고 박나영한테 준 유판을 얻어와도 진상을 감추기 힘들게오.”    류덕재는 외까풀눈이 데꾼해졌다.    “무슨 말이냐? 혹시 류기 유판에 손을 댔다가 련루될가 봐 근심해 하는 소린 아니냐? 그게 근심되면 너도 내 일에 삐치지 말라.”    류항곤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오. 절대 우리 모녀 안위를 걱정해 하는 말이 아니오. 오해하지 말고 내 말을 잘 들어보오.”    류항곤은 류덕재 퍼러덩덩한 얼굴 표정을 흘끔 곁눈질하면서 뒷말을 이었다.    “아무리 류기가 그 유판을 훔쳐 온다고 해도 리종호란 놈이 살아 있는 한 숱한 유판을 복제해 저승사자한테 계속 제공할게 아니오?”    “알았다. 리종호, 그 고발쟁이놈이 젤 사달이야.”     류덕재는 피발이 선 외까풀눈을 부릅뜨고 뻐드렁이빨을 쁙쁙 갈았다.    류항곤은 또 한마디 했다.    “형님, 내 생각에 36계에 줄행랑이 상책인 거 같소. 아무리 우리 막아봐도 어떻게 그 숱한 구멍을 다 틀어막겠소? 그땐 도망치자고 해도 늦을 거 같소.”    찰싹!    류덕재는 류항곤의 귀쌈을 한대 후려갔다.    “닥쳣!”    그는 피발이 선 눈깔을 데굴데굴 굴렸다.    “맥 빠진 소릴 작작 쳐! 도망치긴 어델 도망쳐! 지금은 모든 인맥과 물력을 다해 극력 방어해야야.”    류항곤은 얼얼한 낯을 매만지며 머리를 뚝 떨어뜨리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류덕재는 너무 한 것 같아 어조를 될수록 부드럽게 낮춰 말했다.    “너도 날 생각해 하는 말이라는 거 안다. 허나 잘 생각해 봐라. 도망치면 어디로 도망치겠니? 류려평도 한국에 빼보냈는데 인터폴에 나포돼 인도돼 압송돼 오지 않았느냐? 한국도 이젠 안전한 곳이 아니야.”    류항곤은 포기하지 않고 권고했다.    “그럼 유럽이나 미국에 가오. 일찍이 손써 도망치면 다요.”     그러나 류덕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돼. 미국과 유럽에선 정치범은 보호하지만 경제범죄자는 보호해주지 않아. 양키놈들도 경제범은 인터폴에 합작해 나포해 인도한단 말이야.”     류덕재는 우쭐 일어나 별장 침실에 들어갔다. 그는 옷궤 안쪽 널판자미닫이를 열고 그 안벽 사이에 놓은 보험궤를 열고 금덩이를 수태  꺼냈다.     그는 금덩이를 빨간 비단주머니에 담아들고 객실에 나와 류항곤한테 건네주었다.     “이걸 네가 좀 처리해야겠다. 그 놈들을 잘라버려야 류기를 그 자리에 인차 앉히지.”    류덕재는 류항곤의 귀에 대고 누구, 누구한테 가져다 주고 부탁하라고 쑤근덕거렸다.    “알았소. 근심하지 마오.”    류항곤은 멜가방에 묵직한 금덩이를 넣고 별장 지하주차장에 내려갔다.    류덕재는 류항곤을 보내놓고 조직부장 재직 때처럼 자기가 믿는 형제 관료들한테 전화를 쳐서 암암리에 자기가 부딪친 난제를 얘기하면서 갖은 음모궤계를 다 꾸몄다.  
534    대하소설 황혼 제5권(77) 경악할 특대뉴스속보 김장혁 댓글:  조회:230  추천:0  2024-11-23
   대하소설 황혼 제5권         김장혁       77. 경악할 특대뉴스속보       (이쁘기야 여비서 왕춘영이지. 그 백지장 같은 살결, 풍만한 우유빛젖가슴, 초두부처럼 하들하들한 엉덩이… 슬슬 매만지기만 해도  말초신경까지 짜릿짜릿해 났지. ㅎㅎㅎ.)    색마 류덕재는 숱한 아가씨들과 색깔바람을 피우던 썩어빠진 추억에서 헤염치면서 티비 뉴스채널을 켰다. 그는 퇴직한 후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어 뉴스도 별로 보지 않았다.    뉴스채널에서는 한창 주간 뉴스를 방송하고 있었다.    색마는 뉴스를 보면서도 색깔 여흥이 가지 않아 어느 아가씨를 찾아 갈가고 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렸다.    (저게 뭐야?!)    주간뉴스에 글쎄 경악할 특대뉴스속보가 뜨지 않겠는가!    아, 글쎄 류려평이 쇠고랑이를 찬  채 경찰들에게 압송돼 고향  비행장에서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지 않겠는가.    그 특대뉴스속보를 들어도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거액의 부정축재를 한 혐의가 있는 인터폴 지명수배녀도주범 류려평이 일전에 한국에서 인터폴에 나포돼 국내에 인도됐습니다. 부패분자 류려평은 일전에 은행 부행장으로서 직권을 리용해 대부금을 내준 기회에 부동산회사 업주에게서 수많은 부동산과 거액의 금전을 선물로 받은 혐의가 있습니다.    부패분자 류려평은 인터폴에 의해 국제 항공기편에 압송돼 귀국한 그날로 당지 구류소에 수감됐습니다.    부패분자 류려평과 그와 관련된 부배분자들의 수많은 경제형사사건은 지금 감찰국과 검찰원 등 수사기관에서 수사, 심리 중에 있습니다…      류덕재는 그 놀라운 뉴스속보를 여러번 되돌려보고나서 쏘파에서 벌떡 일어나 화가마 뚜껑에 올라앉은 개미처럼 안절부절 못하면서 별장 객실에서 서성거렸다.    (류려평이 인터폴에 인도돼 귀국하다니? 저게 살인죄로 한국 경찰에  나포돼 감옥에 처박힐게지. 참, 재수 없는 놈은 냉수를 마셔도 이빨에 끼운다더니. 이젠 내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구나. 큰 일 났는데. 이걸 어쩌는가?)    그런데 류려평을 압송하는 검사와 경찰들 속에는 머리 희슥희슥한 녀자검사가 눈에 뜨이었다.    “아니, 저게 저승사자 최혜영 국장 아닌가? 최국장은 이젠 퇴직 나이도 훨씬 넘었는데. 아직도 형사사건에 삐쳐?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등을 깬다더니 어쩜 저승사자한테 딱 걸렸어? 저승사자한테 걸려들면 살아남지 못해. 류려평은 이젠 끝장이야.”    류덕재는 자기 죄행을 덮어 감추고 살아 남기 위해 일련의 죄악적인 음모궤계를 꾸미고 조치를 대기 시작했다.    (저승사자와 검사들은 꼭 먼저 류려평의 꼬리를 밟고 그 꼬리를 따라 몸통인 내 죄행을 수사하게 돼. 때문에 젤 먼저 류려평이란 저 꼬리를 잘라버려야 해.)    류덕재는 창문가에 다가가 먹장구름이 뒤덮여 오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말상을 기우뚱거리며 외까풀눈을 띠룩띠룩 굴리면서 꼬리를 잘라버릴 궁리를 했다.    세상의 풍운조화는 헤아릴 수 없이 급촉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 벨이 급촉하게 울렸다.    류덕재가 짝통핸드폰을 꺼내 보니 사촌동생 류항곤한테서 온 전화였다. 류항곤은 류덕재 덕분에 병원 원장으로 제발됐던 것이다. 그래서 류항곤은  류덕재라면 친형님처럼 모시면서 자별하게 지냈다.    짝통핸드폰은 비밀리에 할 긴급전화 아니고는 류덕재나 류항곤이나 다 평소에 서로 치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형님, 전화로 말하기 불편하니까. 지금 류기를 데리고 집에 가도 되겠소?”    “그래라. 아무도 없어.”    “어느 집에 가라오?”    “공원 부근에 있는 별장에 오라.”    “알았소.”    류덕재는 핸드폰을 끄면서 류항곤도 꼭 류려평의 일로 오리라고 추측했다.    바깥에서는 먹장구름이 뒤덮여오면서 번개가 번쩍였다. 먹장구름 속에서 독사의 뻘건 혀가 별장을 탁 쳐 빨아놓고는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우르릉 꽝, 꽝!    우뢰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창문 밖에서는 눈 앞도 가리기 힘들게 폭우가 억수로 쏟아졌다. 건뜻 쳐들린 별장 추녀에서 무수한 실폭포들이 쏟아져 내렸다.    류덕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먼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고 봐야지.)    이윽고 류항곤이 딸 류기를 데리고 부랴부랴 별장에 들어섰다.    “류기는 구류소에 출근하지 않고 왜 왔니?”    류기는 사복 차림으로 별장 문에 들어섰다.    “근심 말아요. 김천선 소장한테 병원에 가겠다고 청가를 맡았습니다.”    류기는 류덕재한테 다가가면서 다급히 말했다.    “큰아버지, 큰 일 났습니다. 류려평 고모가 우리 구류소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 나도 금방 주간뉴스속보에서 보았다.”    류덕재는 별로 이상해 하지도 않았다.    그는 류항곤과 류기를 쏘파에 앉으라고 자리를 권했다. 뒤이어 손수 커피를 타서 커피잔을 탁자에 가져다 놓았다.    “커피를 좀 마시면서 상세히 얘기하자.”    류항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류덕재한테 귀속말로 미주알고주알 여쭈었다.    “형님, 큰 일 났소. 지금 저승사자로 소문난 최혜영 국장이 류려평 사건을 직접 수사한다오. 건데 그 신문사 부사장을 하던 리종호란  놈이 큰 사달이오. 종호는 류려평과 리혼수속까지 했다오. 아마 꼬리를 잘라버리는 수작이겠지. 그건 그렇구. 그보다도 그자가 일전에 말로는 매음녀들을 취재하는 척하면서 나영이란 년한테 저승사자 최국장한테 유판을 전해라고 줬다오.”   류덕재는 깜짝 놀라 쏘파에서 벌떡 일어나 펄쩍 뛰었다.   “뭐라고?!”   류기가 핸드빽에서 유판을 꺼내 탁자 위에 댕그랑 내놓았다.   “여게 다 있습니다. 우리 구류소 소회의실 CCTV 몰카에 다 찍혔지요. 제가 그 영상을 유판에 저장해 가져 왔습니다.”   류덕재는 유판을 쥐어 들고 보면서 류기를 칭찬했다.    “잘했다. 그래도 조카가 솜씨 있어.”    그러나 인차 류기의 걀쭉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류기야, 이런 일을 할 땐 안전에 주의해야 해. 자칫 볼 장을 다 본 내 때문에 새파란 네 전도를 망치겠다.”    류기는 어글어글한 쌍겹눈으로 류덕재를 마주 보면서 개의치도 않았다.    “근심하지 말아요. 누구도 몰래 저장했으니까요. 큰아버지 신상과 관계되기에 모험하는 수 밖에 없었지요.”    류덕재는 류기의 걀쭉한 얼굴을 매만져주었다.    “고맙다. 류기야.”    류항곤은 류덕재가 류기 얼굴을 만지면서 너무 살갑게 구는 건 별로 좋잖게 여겼다. 사촌형이지만 친오누이 같은 류려평마저 놔두지 않는 색마,  인륜도 모르는 색마이기에 자기 딸도 가로챌가 봐 저으기 근심됐던 것이다.    류기는 류덕재한테 손을 내밀었다.    “큰아버지, 유판을 인주십시오.”    류기는 멜가방에서 자그마한 핸드컴퓨터를 꺼내더니 류덕재 손에서 유판을 받아 꽂았다.    류기는 일일이 설명까지 달았다.    “이건 관건적인 장면만 절록한 동영상입니다.”    핸드컴퓨터에 이런 동영상이 떠올랐다.      종호는 주위를 살피더니 나영을 가까이 와 앉으라고 손짓하였다. 나영은 엉덩이걸음으로 스리슬쩍 종호 옆에 다가가 앉았다.    종호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더니 호주머니에서 엄지손가락만한 유판을 꺼내 나영의 손에 쥐워 주었다.    “이걸 최혜영 국장한테 주오.”    나영은 의아한 눈길로 종호를 쳐다보며 물었다.    “류덕재와 류려평의 죄행을 녹음한 유판이오. 류덕재와 류려평은 건축상들한테 대부금을 내주고 집 몇채를 가졌는지도 모르오. 공짜로 가진 려향의 이름으로 가옥소유증을 올렸다오. 려향의 돌생일에도 류덕재는 백만원이나 축의금을 줬소. 그걸 적발하란 말이오.” 나영은 유판을 제꺽 부래지어 안에 걷어넣었다.    “아니, 려향의 집까지 폭로하랍니까?”    “남김없이 사정없이 폭로하오. 려향은 내 친딸이 아니오.”   나영은 쌍까풀눈이 데꾼해졌다.    “네? 무슨 말씀입니까?”    종호는 나직이 일러줬다.   “려향은 류덕재와 악처 류려평의 사생아요.”   “네? 세상에?!”    나영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개탄했다.      류항곤도 그 소리를 처음 듣고 경악했다.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류덕재를 흘끔 곁눈질했다.    입이 빠른 류기가 이상해 물었다.    “큰아버지, 류려평 고모네 려향이 진짜 큰아버지 친딸인가요?”    류덕재는 류기와 류항곤을 흘끔 번갈아보더니 능청스레 에둘러댔다.    “종호란 놈이 횡설수설하는 소릴 다 믿니? 저 놈은 류려평과 리혼한 승풀이로 물어먹는 거야.”    류기는 그제야 머리를 끄덕였다.    “글쎄, 큰아버지는 얼마나 정파다운데. 무함하긴? 로기자 허울을 쓴 나쁜 놈이군요. 저런 놈이 어떻게 신문사 부사장까지 다 했는지 모르겠어요.”    류덕재는 맥없이 말했다.    “다 내 눈이 멀어서 그랬다. 조직부장 할 때 저 놈을 신문사 부사장으로 상급당위에 거천했지. 참, 후회막급이야.” 류기 핸드컴퓨터 화면에는 이런 장면이 나타났다.      종호는 격동돼 말했다.    “난 정의와 진실을 구명하고 나영을 구하기 위해 대의멸친하는 수 밖에 없소. 나영도 류려평의 부정축재를 가지지 않는게 좋소. 류려평과 류덕재와 공범이 될게 뭐요? 려향은 한국 회사 회장 녀비서로 350만원이 받는데 얼마든지 자기 능력과 신근한 로동으로 잘 살 수 있소. 근심하지 마오.”    종호는 개의치 않고 뒷말을 이었다.    “그 년놈들 죄악이 담긴 유판을 수사기관에 바치면 나영은 꼭 관대처분 받을게오. 감옥에서 하루라도 빨리 출옥해야 성림을 구하지.”    나영은 유판을 손에 꼭 쥐며 의아해 물었다.    “어째 리사장님이 직접 최혜영 국장한테 주지 않았는가요?”    “나영이 줘야 나영이 적발한 공으로 되잖고 뭐요? 그래야 관대처분을 받지.”    나영은 쌍까풀눈을 내리뜨고 궁리하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개새끼, 길러준 개 발뒤축을 문다더니. 참.”    류덕재는 주먹으로 탁자를 꽝 치더니 뻐드렁이빨까지 쁙쁙 갈았다.    “당년에 아버지와 내 거천하지 않았더라면 제깐 놈이 신문사 부사장이나 했겠구나. 하도 류생남 삼촌이 자꾸 찾아와 징징거리면서 애걸하니 도와줬지. 이제 와선 은혜를 갚긴커녕 원쑤 치부를 하는구나. 어디 네깐놈이 한고조 류방의 후손인 우리 류씨 집안과 원쑤 지고 살아남는가 보자. 네놈이 그래도 무슨 리씨 조선 왕의 후대라고? 황제 후대 더 센가? 왕의 후손이 더 센가 어디 두고 보자. 씨당머리도 남겨두지 않을테야!”    그 소리를 듣는 류항곤도 질겁했다. 이제껏 류덕재 한마디 말이면 살아남는 자가 별로 없었으니까. 그만큼 류덕대 말은 오뉴월에도 서리 낄 정도로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류덕재가 조직부장을 하고 애비가 시당위 서기질 하면서 제발시킨 서기, 부서기, 시장, 부시장, 국장, 처장들이 온 시내에 거대한 그물처럼 쭉 깔려 있었으니깐.    류항곤도 류덕재 한마디 말에 보통과 주임으로부터 일약 병원 원장으로 직승비행기를 타고 올라갔던 것이다. 류덕재는 그를 위생국 국장으로 제발시키려고 했는데 류항곤이 실리를 따져서 병원에 있는 것이 좋다고 해 그만두었던 것이다.    류항곤은 정치를 하기 싫어하고 돈과 주색에만 몰두하는 그런 풍류인물이었다. 그는 정계에 들어가 행정 사무실에 앉아 있기 싫었다. 그는 병원에서 숱한 돈을 벌고 원장실에 침대까지 갖춰놓고 병원의 미녀들을 하나하나 따먹는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김춘희 박사와 황선희 박사는 일본에 류학까지 보내주면서 얼렸지만 끝내 따먹지 못했다. 그러자 류항곤 원장은 그녀들을 병원에서 적까지 떼 내보내면서 위협했지만 끝내 그녀들을 점유하지 못해 못내 아쉬워한 적이 있었다.    류항곤 원장은 색마 류덕재 사촌동생인데 멀어서 색마 형을 담지 않았겠는가. 류항곤도 색마이기에 류덕재 속내를 알만큼 알기에 류기한테 손을 댈가 봐 저으기 사촌형 류덕재를 경계하고 있었다.    류덕재는 류항곤의 그런 눈치도 못채고류기한테 물었다.    “류려평이 너네 구류소에 간 거 같은데 잘 있니?”    “류려평 고모 진짜 불쌍합니다. 글쎄 손목과 발목에 그 무거운 쇠고랑이를 차고 끌려다닙디다.” 류덕재는 다급히 물었다.    “너네 관계를 구류소 사람들이 아느냐?”    류기 얼굴은 대뜸 청얼음처럼 굳어지면서 저으기 긴장해 했다.    “몰라요. 나와 다른 여경이 여러번 류려평 고모를 압송해 심문실에랑 민정국에랑 가옥관리국에랑 다녔는데 난 고모를 모른 척 했습니다. 고모도 모르는 척 합디다.”    “음, 잘했다. 서로 모르는 척해야 해.”    류덕재는 류기한테 엄지를 척 내밀었다.    “이제부터 넌 나와 류려평 사이 련락을 맡아야겠어.”    류기는 두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류덕재는 류기한테 물었다.    “류기야, 저승사자 최혜영 국장이 류려평을 심문했니?”    류기는 제꺽 대답했다.    “네. 한 대여섯번 심문했습니다. 내 직접 고모를 심문실에 압송했거든요.”    류덕재는 자그마한 골을 류기한테 가까이 가져다대며 다급히 물었다.    “그래, 저승사자가 류려평한테 내 정황도 질문했니?”    “최혜영 국장은 큰아버지랑 고모랑 문화국과 전람관 청사  재건축용 대부금을 맡을 때 정황을 묻습디다.”    “그래 류려평이 내 말이랑 했니?”    “아니, 한마디도 안했습니다.”    류덕재는 긴장한 눈빛이 어린 외까풀눈으로 류기 입만 쳐다보았다.    “최혜영 국장은 문화국 최정호 국장과 전람관 박나영 부관장한테서 류려평 고모가 3만원 받은 일이 없는가, 류덕재 행장도 그들한테서 2만원 받아먹지 않았는가? 이런 걸 심문합디다. 고모가 딱 잡아떼니깐. 박나영과 최정호 국장이 인증을 섰다면서 승인하라고 합디다.”    류덕재는 깜짝 놀라 쏘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큰 일 났구나.)    “그래 류려평이 승인했니?”    “절대 그런 일 없다고 딱 잡아뗍디다. 오히려 리종호가 박나영과 중혼죄 있다고 반격합디다.”    류덕재는 그 말에 머리를 끄덕였다.    (저승사자는 벌써 류려평의 꼬리를 단단히 밟았구나. 이제 류려평이란 넝쿨을 따라 조만간에 나를 찾아올 거야. 다행히 아직 류려평은 날 불지 않았구나. 네년이 날 불면 다 죽는 거야.)    부배분자 류덕재는 자기 표정변화를 류항곤과 류기가 볼까 봐 창문가에 다가가 한참이나 궁리했다.    별장 객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대형유리창문 바깥 하늘에서는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천지를 진동했다.    우르릉, 꽝, 꽝!    세상의 풍운조화는 류덕재도 헤아릴 수 없이 진짜 급변하고 있었다.
533    대하소설 황혼 제4권(76) 색마 추억의 바다 김장혁 댓글:  조회:213  추천:0  2024-11-21
   대하소설 황혼 제4권         김장혁            76. 색마 추억의 바다      “이쁜 아가씨들을 가득 두고 색깔도 하지 못하면서 산다고 누가  '금욕주의자' 홍살문을 세워줄 거 같은가?"     “한 녀자만 사랑하면서 살았다고, "현시대 둘도 없는 렬남" 이라는  비석을 세워줄 거 같은가?"     "아직 사지 성할 때 아가씨들을 실컷 놀아보자."     "독한 술로 작작 답답한 가슴을 지지지 말고 이쁜 아가씨들과 바람이나 피우자. 바람 피우면 엔돌핀이 생성돼 날마다 건강해져."      “히히히."      색마 류덕재는 널다란 빈 집 객실에서 쏘파에 앉아 3D색정 티비록화를 보다면서 길쭉한 말상을 저으면서 미친듯이 중얼거렸다.     색마는 외까풀눈을  지긋이 감고 이전에 여자의 몸에 우유칠을 하던 황홀경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순간 그의 눈 앞에는 숱한 미녀들의 이쁜 모습이 삼삼거렸다.     웬 일일가?     젤 먼저 류려평이 떠오르지 않겠는가.    (곱기사 류기 젤 곱지. 한창 피는 꽃봉오리야. 건데 걔는 내 5촌조카 아닌가. 류려평과는 달리 너무 가까운 조카야.)    순간 색마 눈 앞에는 젋었을 때 류려평의 매력적이던 구석구석이 떠올랐다. 망글망글하고 하얀 두쪽의 반달, 박바가지만한 우유빛젖무덤, 하얗고 야들야들한 허벅다리가 떠올랐다.    “젤 잊어지지 않는 건 그래도 젊어서부터 데리고 논 류려평인 모양이지. 성 소재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절벽길에서 차사고 난 날 온 밤 차 안에서 놀던 일이 젤 잊어지지 않지.”    색마의 귀전에는 그날 밤 류려평이 부르짖던 소리가 들리는 상 싶었다.    “오빠라는게 뭐요? 여동생을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색마 류덕재는 굴어귀 풀이고 뭐고 오누이고 뭐고 야들야들한 젖무덤을 마구 만지고 핥고 빨고 생지랄을 다했다. 매독에 걸려 피고름이 줄줄 흐르는 그게 불끈 머리를 쳐들었다.     오늘도 그 날 밤 류려평의 흐느낌소리, 신음소리, 오열을 터뜨리는 아우성소리를 듣는 상 싶었다.     색마 류덕재는 그때 류려평과 속살을 섞던 일을 회상하면서 쏘파에 누워 그걸 주물주물 주물렀다. 그러자 뜨끈뜨끈한 옥수죽 물 같은 오열이 쭉 빠져나갔다.     “오호홍, 죽인다, 죽여.”    색마는 허공에 날아올라가는 기분에 잠겼다가 마른 널판자처럼 땅바닥에 퉁 떨어지는 감을 느끼면서 한숨을 후- 길게 토해냈다. 탄식이 뒤따랐다.    “아, 그때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세월이 무정하구나. 그렇게 이쁘던 류려평을 파파 늙은 로파로 만들다니? 참, 무정한 세월의 깍재로 썩썩 긁어 잔주름이 쭉쭉 가고 머리 파 뿌리처럼 희슥희슥한 파파 로파로 만들어버리지 않았는가.”    인생의 황혼에 들어선 류덕재도 무정하게 흘러간 세월을 한탄하였다.    “류려평은 젊어서 얼마나 이뻤어? 보름달 같은 환한 얼굴에 어글어글한 쌍까풀눈, 물기를 머금은 령리한 깜장눈, 추파를 머금은 그 쌍까풀눈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류덕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색마 류덕재는 여자가 없어 친여동생이나 다름없는 종친 여동생 류려평을 오래동안 애인으로 데리고 산 것이 아니었다. 류려평은     너무나도 이뻐서 종호 같은 꼬리빵즈(高丽棒子)한테 그저 주긴 아까웠다. 그래서 굴 어귀 풀이나 다름없는 류려평마저 종호 먼저 뜯어먹고 말았던 것이다. 류씨네 집안에 먹칠을 했지만 색마는 자기 일시 좋으면 다였다.    색마 류덕재는 늙어가는 류려평을 떠올리면서 길쭉한 말상을 절레절레 저었다.    (녀자는 나이 들면 페허암소나 다름없어. 녀자들은 월경만 가면 점차 남자가 싫어지지. 성욕이 나면 혼자 손이거나 비닐성기로 자위를 하기 좋아하면 했지. 집에 나그네한테 들이대긴 싫어해. 그 년들은 자위흘 하면 성병에 걸려 피고름이 즐즐 흐르는 개 그거보다 더 편안할 수도 있었지. 자위는 생리적으로도 남자들이 무섭게 뚜지지 않아 아프지도 않고 만족도도 더 높고.”    색마는 침까지 뱉었다.    “퉤!”    누런 침이 차탁 우에 튕기었다.    “더러운 년들, 내 성병에 걸렸다고 항상 콘돔을 끼자고 했지. 간나새끼들, 본처나 류려평이나 다 그래. 항상 하자면 아프다면서 두더  벌거리면서  침대에 오르지 않고 이불을 들고 다른 방으로 달아나 문을 꽁꽁 닫아걸었지. 그럼 별 수 있어? 난 아가씨들을 찾아가 정욕을 말려야 했지.”    색마는 외까풀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바람 피운게 다 내 탓인가? 네년들 탓도 있어. 옛날에는 부자들은 본댁이 늙으면 젊은 첩을 몇이고 해들여 살았지. 지금 보면 첩을 들이는게  과학적이라고 생각돼. 생리적으로 녀자는 나이 들면 나그네 싫어지는데 첩을 하게 하는게 합당한 강구지책이 아닌가? 지금 일부일처제 돼서 위법이 돼 첩을 내놓고 하진 못하지. 내 민사활동을 하면서 젊은 아가씨들을 데리고 논 건 가정을 지키기 위한 아주 과학적인 정당방위야. 아프다고 아우성치며 도리머리를 젓는 본댁(로파들)을 생각해 한 유희 아닌가?”    색마는 눈을 지긋이 감고 입을 하 벌리고 뻐드렁 말이빨을 드러내놓고 헤헤 웃으면서 제 좋은 궁리를 했다.    (녀자는 일단 늙으면 성에는 점점 무뎌지고 돈을 틀어쥐려고 하지. 그래서 난 본댁 리문곤씨한테 돈을 두툼히 가져다 맡겼지. 내 무슨 본댁이 번 돈을 쓰면서 바람 피웠는가? 로임까지 딱딱 본댁한테 맡겨놓고 내 액외로 얻어먹은 돈으로 아가씨들과 놀았지. 그러니 내 바깥에 나가 무슨 짓을 하든지 관계하지도 않았어. 그년은 나그네 필요없으니까. 한쪽 눈을 감고 한쪽 눈을 뜨고 내 돈만 챙겼지. 그년은 이젠 아들 류문도(刘文道)와 함께 그저 부유하게 잘 살면 그만이야. 이젠 그런 생활에 만족하고 있지 않아? ㅋㅋㅋ. )    색마의 눈 앞에는 임신 주름살이 쭉쭉 간 류려평의 아랫배가 떠올라 길쭉한 말상을 절레절레 저었다.    (간나새끼, 그제날 야들야들하고 새뽀얗던 아래배는 온데간데 없고 그게 뭐야? 허연 돼지 배가죽 같은게. 려향을 낳은 에미니 그렇지. 진작 헌신짝처럼 차버렸을 거야. 백번도 차버렸을 거야. 그 간나새끼한테 숱한 돈을 판게 아까워 죽겠다. 그 돈이면 아가씨를 얼마난 많이 데리고 놀았겠는지 모르겠다. 참, 아마 몇백명은 데리고 놀수 있었을 거야. 류려평은 사무럽지. 정욕을 제대로 만족시켜 주지 못하지. 혀로 살갑게  감빨아주지도 않지. 늙은 페허암소 같은게. 이젠 늙어서 윤활유를 사다 바르지 않으면 장작개비처럼 바짝 말라 거기에 잘 들어가지도 못해. 하는 재미도 없어. 아니, 아픈 감각 밖에 없어. 껍질이 다 벗겨질 거 같은게 싫다, 싫어. 진절머리난다. 간나새끼, 어데 정이 붙을 데 하나도 없어. 참,  맛이 다간 년이야. 그것도 헐럭한게. 딱 마대통처럼 아구리 널다랗고  헐럭한게. 그래길래 종호새끼도 사돈보기 날 밤에 어째 그게 헐럭한가고 의심했다지 않았는가. 류려평은 자기 그게 헐럭한 허물이 난다는 ㅇ것도 모르고 내한테 사돈보기 하던 날에 숫처녀인 척하면서 종호를 속여 넘기던 일을 다 말해? 뭐, 때마침 요대기에 피를 흘리는 바람에 종호가 처녀인가 속히워 넘어갔다고? 요대기 위에 그린 빨간 매화꽃을 보고 종호가 숫처녀하고 그랬는가 해 기뻐 어쩔줄 몰라 하더라고? 허허허. 바보, 종호야. 류려평 숫처녀는 내 먼저 재껴버린 거야. ㅋㅋㅋ.)    색마 류덕재는 웃음보가 터져나와 너털웃음을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 옹달샘은 내가 먼저 다 파 먹은 거야. 그것도 모르고 약혼했어? 류려평을 뭘 보고, 종호는 그년한테 미쳤댔는지 몰라. 내나 종호나 다 눈이 멀었지. 이 세상에 녀자 없다고 그런 년한테 집 몇 채 주고 돈도 몇백만원 줬어. 려향의 돌생일엔 백만원이나 주잖았어? 내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류문도한테도 2백만원 밖에 내놓지 못했는데. 아이고, 아까워. 배 아파!”    퇴직해 집에 물앉아 있는 류덕재는 재직 때 권력이 있을 때 돈을 흔자만자 쓰던 세월이 그리워났다.    (권력은 있을 때 써먹어야 해. 그때 더 해먹지 못한게 한이야.)    류덕재는 인생의 쾌락은 숱한 아가씨들을 데리고 노는 것이라고 여겼다. 권력을 빌어 돈을 벌어 아가씨들과 술을 마시고 질탕하게 섹스를 하면서 노는 것, 그것이 색마 류덕재의 인생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색마 류덕재는 여자들의 마음을 가지기보다는 섹시한 몸만 노렸다.    색마는 노래방이나 마사지방에도 드문드문 가서 일회용아가씨들도 돈을 주고 데리고 질탕하게 놀기도 했다. 색마 류덕재는 연분홍네온등 불빛 아래서 색깔바람에 파도치는 갈대숲에서 아가씨들의 야들야들한 배 위에서 절주있게 노를 흔들흔들 저으면서 아가씨들이 죽겠다고 몸부림치면서 내는 흐느낌소리,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하늘에 붕 뜨는 흥분을 느끼군 하였다.     어떤 때는 아가씨 하나 데리고 놀아서는 별로 자극이 없어 아가씨 둘을 데리고 놀군 하였다. 그는 아가씨가 옆에서 지켜보는데서 다른 아가씨를 죽여주면서 놀아야 즐거웠다. 색마는 특별히 아가씨들이 극도로 흥분돼 부르는 특수음악-흐느낌소리,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온 몸의 말초신경까지 짜릿짜릿해나는 감을 느껐다. 그거야 말로 천국에나 날아올라가는듯이 퍽 자극적이었다. 이쁘고 새파란 아가씨들과 놀아야 격정도 넘치고 극도로 자극받고 흥분되고..      그런데 어쩐지 놀 때만은 일시 기분이 좋았는데 일을 끝마치고 갈라라질 때면 허전하고 쓸쓸한 것이 이상했다. 뭐 첫사랑 아가씨도 아닌데 어쩐지 갈라지기 싫었다. 고 이쁜 아가씨를 호주머니에라도 넣어 집에 가지고 싶은 것이 이상했다. 완전히 아가씨를 점유하지 못한 그런 기분이랄까.    어쩐지 아가씨들과 실컷 놀고  갈라지면서 자꾸 그런 기분에 잠기면서 아가씨를 데려다가 완전히 자기 걸로 만들고 싶은 욕망도 생겼다. 그러나 꼬리 길면 두리모자들한테 꼬리를 밟혀 수모를 당할가봐 겁났다.    색마 류덕재는 굴어귀 풀을 뜯어먹한 적이 한두번 아니었다.    색마 류덕재 행장은 은행에 직원을 모집할 때면 직접 면접을 보군 했는데 그것은 마음에 드는 이쁜 애인감을 물색하는 전초진지 수순이었다. 그는 우선 직원에 응모한 녀자들의 인물체격부터 보았다. 류덕재는 직원을 모집한다는 미명하에 기실 응충한 외까풀눈을 흘끔거리면서 자기 미녀애인을 모집하는 순서를 밟고 있었다.    색마는 눈독을 들인 미녀가 있기만 하면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그 미녀가 굴어귀 풀이든 야생화든 가릴게 없이 은행에 녀직원으로 들어선지 사흘이 멀다하게 갖은 수단을 다해 닥치는대로 점유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색마가 짓밟은 미녀는 류려평을 내놓고서도 몇십명이 되는지 모른다. 마사지방이나 노래방이나 다니면서 일회용아가씨들을 재낀 것은 수백, 아니 수천을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색마는 아가씨들을 재끼는 수자뿐만 아니라 질도 다 추구했다. 권력을 빌어 제압했든지 돈을 주고 유혹했든지 어쨌든지간에 그 아가씨를 완전히 점유해 질탕하고 실켯 놀았다고 생각해야 시름놓았다.    희신염구(喜新厌旧)라고 색마 류덕귀는 한동안 질탕하게 화끈히 놀다가 싫어져야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또 음충한 외까풀눈을 흘끔거리면서 어디 새 미녀아가씨 없는가 헤매면서 탐구했다.    (새파란 아가씨들이 얼마나 섹시하고 좋아? 꽉 조여주는 힘도 세지. 윤활유도 즐벅해 매끌매끌한게 비스듬히 들이대도 매끌거리면서 쏙 빨려 들어가지. 빳빳한게 한번이면 류려평이나 본댁과 열번 하기보다도 더 자극적이야. )    색마는 두 허벅다리를 딱 붙이면서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오열했다.    “매끌매끌한 데 대고 왕복피스톤 운동을 열렬히 하다가 오열을 터뜨리면서 쑥 정열이 빠져나가는 순간, 아, 하늘에 붕 뜨는 기분이지.”    색마는 새파란 아가씨들을 데리고 놀던 행복했던 그 나날들을 회상했다.그도 황혼에 들어섰는지라 지나간 아가씨들을 하나, 하나 회상하면서 개탄했다.    (천매대에 촘촘히 꽂혀 있는 비단처럼 보들보들한 꽃같은 아가씨들 얼마나 좋아?아침 이슬 머금고 피여나는 나팔꽃처럼  청초한 새파란 아가씨들, 아가씨들 얼마나 맛갈스러웠어? 울긋불긋 꽃마다 맛이 다 달라. 아가씨들도 자극이 다 달라. 사과처럼 사박사박하고 꽃처럼 보들보들하고 야들야들한 아가씨들, 진짜 한번이면 뽕 갔댔지. 아랫배로부터 온몸의 말초신경까지 짜릿짜릿해 났지. 오, 아름다운 아가씨들아, 나는 아가씨들 야들야들한 배 위에 엎드려 연분홍 복숭아 꼭지를 빨다가 쓰러져도 좋아. 아가씨들의 풍만하고 망글망글한 우유빛젖가슴을 움켜쥐고 놀다가 지쳐 꽃밭에 쓰러져 죽어도 한이 없다. 남자들의 구성 위대한 아가씨들이여, 오늘도 그대들이 사무치게 그립구나.)    색마는 그제날 깊고 깊은 추억 바다에 깊이 빠져 개탄했다.    옥수죽물에 푹 젖은 그의 팬티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물씬 풍겨 코를 찔렀다. 색마는 저도 몰래 길쭉한 말상을 찌프리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532    대하소설 황혼 제4권(75) 첫사랑이 낳은 악과 김장혁 댓글:  조회:257  추천:0  2024-11-18
    대하소설 황혼 제4권           김장혁             75. 첫사랑이 낳은 악과       종호는 나영을 보내고 소회의실에서 매음녀를 취재하기로 하였다.     김천선 소장과 류기는 30대 초반 보통키 매음녀를 소회의실에 데려왔다.     종호는 전번에 악처를 압송해온 류기가 류려평과 눈인사를 슬쩍 하던 일이 좀 이상야릇했다. 그러나 거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종호는 취재분위기를 고려해 김소장에게 매음녀 손목의 쇠고랑이를 풀어줄 것을 건의하였다.    김천선 소장은 여경 류기를 시켜 매음녀 손목의 쇠고랑이를 잠시 벗기라고 하였다.    매음녀는 종호한테 감사한지 할끔 쳐다보며 눈인사를 했다.    보통키에 걀죽한 얼굴, 백지장처럼 하얀 우유빛살결…종호가 피뜩 여겨보아도 섹시하게 생긴 그녀는 뭇사내들의 눈길을 끌었을 것 같았다.    김천선 소장은 매음녀를 보고 미리 다짐을 땄다.    “은희, 오늘 기자선생님한테 자기 죄행을 사실대로 말해야 하오. 전번날 영화처럼 절대 제 좋은 소리를 해선 안되오. 그럼 죄가 가중해진다는 걸 알아야 하오. 알만 하오?”    은희라는 그녀는 머리를 떨어뜨리더니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김소장은 류기와 다른 한 여경을 보고 분부했다.    “복도에서 은희를 잘 지키오.”    “넷.”    김소장은 종호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류기를 부르세요." 하고 분부하고는 눈인사를 하더니 소회의실에서 나갔다.    류기와 다른 여경도 전번처럼 복도에 나가 문어귀에 서서 소회의실을 지켰다.    순간 소회의실에는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마저 다 들릴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종호는 김소장이 준 자료를 미리 보았기에 핵심적인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은희라든가? 어떻게 돼 매음녀로 변했소? 경과사를 쭉 얘기할 수 있겠소?” “네.”    은희는 종호를 외까풀눈으로 힐끔 쳐다보더니 부끄러운대로 무거운 입을 뗐다.    “모두 첫사랑은 티없이 깨끗하고 순결해 한뉘 잊혀지지 않는다고들 하지만요. 저의 첫사랑은 쓰디쓴 악과를 낳은 함정과 교훈 그 자체입니다.”    은희는 참회의 눈물을 줄 끊어진 구스러럼 주르르 흘리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호- 내쉬었다.      어느날 밤, 사교무청 오색령롱한 불빛 아래 파란 청춘들이 은은히 흐르는 음악에 맞춰 쌍쌍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은희가 걸상에 앉아 구경하는데 면목도 모를 웬 한족청년이 허리를 꿉썩 굽혀 인사하면서 점잖게 춤을 청했다.    은희는 한족청년인지라 춤을 출줄 모른다고 완곡히 사절하였다. 그런데 소 가죽보다 더 질긴 그 남자는 끈질기게 춤을 추자고 재차 요청했다. 은희는 하는 수 없어 일어났다.    그 한족남자는 춤을 추면서 자기는 경찰학교에 다니는 왕수덕이라고 싱겁게 자기 소개를 장황히 했다. 은희가 왕수덕을 쳐다보니 훤칠한 키에 꽤나 준수하게 생기지 않았겠는가. 이상한 일이었다. 은희는 왕수덕이 별로 싫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곡 또 한곡 함께 사교무를 추었다.    그녀는 그날 밤 왕씨와의 만남이 그녀의 가슴에 비극적인 첫사랑의 씨앗을 심는 계기가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은희는 왕씨를 사귀면서부터 사랑하는 님과의 상봉의 기쁨과 리별의 슬픔을 알게 되였고 꿀같이 달콤한 첫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왕수덕의 과거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녀는 열련에 빠져버렸다.    보통 열련에 빠져 머리 뜨거워지면 랭정해지지 못하는 법이다.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은희는 왕수덕과 총망히 결혼까지 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그들 신혼부부는 이성의 매력에 의해 민족의 계선을 산산히 박산내고 깨알이 쏟아질 지경으로 행복하게 지냈다.    그런데  은희가 임신막달이 된 어느 하루 그들의 사랑에 믿음이 파괴되는 사건이 터졌다.    왕수덕은 경찰학교를 졸업한 뒤 변경의 한 파출소에 가서 근무했고 은희는 목단강시 교외 한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들 신혼 부부는 두 곳에 나뉘여 견우와 직녀처럼 살다나니 서로 너무 그리울 때가 많았다. 은희는 왕서방한테 뜻밖의 기쁨을 안겨주려고 기차를 타고 변경파출소로 달려갔다.    그녀는 왕수덕이 퇴근하기 전에 셋집에 널린 걸 정리하였다. 그녀는 피뜩 불룩한 책을 서재에 올려놓다가 한족여자 사진과 편지까지 몇통 끼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은희는 편지를 읽어보고 초풍할 지경으로 놀랐다.    원래 왕수덕은 경찰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벌써 할빈시 모 병원의 간호원인 장연이란 두살 이상 처녀와 첫사랑을 속삭였고 여러해 동안 동거하였던 것이다.    “개자식, 날 속이고 결혼했어? 날 임신시켜 놓고서도 나와 결혼한 일을 속이고 이년과 계속 편지거래를 하다니?” 지어 메스꺼울 정도로 편지 마지막에 “내 첫사랑에게 뜨거운 키스를 보낸다. 후에 고향에 가면 우리 이전처럼 또 열렬히 살아보자.”라고 지껄이지 않았겠는가!    은희는 대성통곡하다가 그만 까무러치고 말았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왕서방이 셋집 문을 떼고 들어섰다. 그녀는 다짜고짜로 따지고 들며 야단쳤다. 왕서방은 자기 정체가 드러난 것을 눈치채고 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발이 되게 싹싹 비비며 빌었다.    “할빈 장연과 관계를 영원히 끊겠다, 제발 한번만 용서해달라.”    그러나 은희는 첫사랑 사기군 같은 왕수덕을 용서할 수 없었다.    (도적놈은 살려줘도 배신자는 살려 줄 수 없어.)    그녀는 그날로 왕수덕과 갈라져 고향으로 돌아갔다. 임신한지 한두달이면 긁어버리겠지만 막달이 돼서 어쩌는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눈물을 머금고 배 속의 쓰디쓴 첫사랑의 악과를 낳고 말았다. 세상에, 피눈물 속에서 이 세상에 잘못 태어난 갓난애는 남자애가 아니겠는가.    그녀는 학교 부근에 잡은 셋집에서 솟구치는 눈물을 겨우 참으면서 학교에 마지못해 출근하였다. 그런데 왕수덕은 아들애를 보러 오는 척하면서 사흘이 멀다하게 은희의 셋집에 기어드는가 하면 셋집에 들여놓지 않으면 학교 교실에까지 들어와 은희를 쥐어 끌면서 떠들면서 주정을 부렸다. 학생들이 집에 돌아가 부모들한테 은희와 왕서방이 어쩌구 저쩌구 미주알 고주알 다 말하는 바람에 소문이 파다히 퍼져 은희는 머리를 들고 학교에 출근하기 힘들었다…      종호는 은희의 말을 듣다가 중도무이했다.    “시간이 없는데 중점적으로 매음하게 된 경과만 말하오.”    복도에서 류기는 종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머리를 끄덕이었다.    류기는 소회의실 문을 뚝 떼고 들어와 은희를 째려보며 호통쳤다.    "쓸데 없는 소릴 작작 치고 자기 범죄과정을 낱낱히 기자선생님한테 탄백하란 말이야."    은희는 머리를 폭 숙였다.     “네, 말하다니 내 억울한 일이 생각나서 마구 얘기했군요.”     그녀는 한참 궁리하더니 중점적으로 얘기하자고 애썼다.      그후 은희는 애를 본가집에 업고 가서 친정부모한테 맡겨놓고 무작정 기차를 타고 머나먼 심양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심양에서 한 한국 회사 회장의 녀비서로 일하게 됐다.    그런데 회장은 음충한 눈길로 그녀의 우유빛살결을 퀭해 훑어보더니 느침을 질질 흘렸다.    (탄력있는 몸매, 짧은 치마 밑에 드러난 하얗고 야들야들한 우유빛허벅다리, 하얀 샤츠 밑에 엿보이는 풍만한 젖가슴… 아, 통채로 삼켜도 비린내 나지 않을 것 같아. 사과배처럼 사박사박하고 시원할 거 같아.)    회장은 전기에나 붙은 것처럼 아래배까지 찡해나 온몸을 부르르 떨며 전률했다.    그후부터 회장은 쩍하면 은희를 보고 식사나 함께 하자, 노래방에 가자, 함께 북경에 출장가자고 요구하면서 퍽 피곤하게 굴었다.    그녀는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회장 덕분에 난생처음 온 외지 심양에 홀로 와서  편안하게 호의호식하면서 두툼한 로임을 타는데 치사하지만 그 요구들을 칼로 베듯 거절해버릴 수는 없었다.     사달은 회장을 따라 북경에 출장갔을 때 생겼다.    그날 은희는 한국 회장과 함께 천안문이요, 고궁이요, 천단이랑 구경하고 천안문광장 동쪽에 있는 북경오리구이점에 가서 오리고기구이를 먹고 노래방까지 가서 질탕하게 놀았다.    그녀는 밤중에야 회장의 팔을 잡고 부축해 비틀거리면서 호텔에 돌아왔다.     그녀가 비틀거리는 한국 회장을 부축해 호텔방에 들어가 침대에 눕혀 놓고 돌아서 나가려고 할 때였다.    “잠간!”    회장이 불시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은희, 날 살려주오. 날 잘 모시면 한뉘 살 근심 하지도 말아. 해마다 로임 외에 생활비로 만딸라씩 줄게. 여기서 살기 싫으면 한국에도 데리고 가마.”    은희는 마구 뿌리치고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짐승처럼 야욕이 발작할대로 발작한 색마를 아녀자 몸으로 아무리 버둑거리면서 반항해도 막아낼 수 없었다.    그녀는 극도로 모순된 내심의 갈등을 겪으면서 눈을 지긋이 감고 자포자기하고 말았다.     한국 회장, 아니, 색마의 음충한 눈길과 추잡한 뻘건 혀끝이 그녀의 하얗고 야들야들한 우유빛 몸을 올리내리 훑는다. 금송곳이빨을 드러내며 징글스레 웃는다. 그녀의 귀에서는 색마의 거친 숨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녀는 순식간에 당하면서 오열을 터뜨렸다. 호텔방에서는 그녀의 흐느낌소리에, 신음소리 간간히 들려왔다.    한번이 있으면 두번, 세번이 있기 마련이었다. 한국 보스는 회사에 돌아간 뒤에도 남의 눈을 피해 거의 날마다 밤이면 그녀를 자기 숙소로 불러다가 야욕을 채웠다.    색마회장은 번마다 일을 끝내고는 백딸라짜리 몇장씩 팁처럼 쥐워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성이란 일단 정조를 더럽히기만 하면 고삐를 끊은 야생말과 같은 법이다.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고 그녀는 하느님처럼 믿던     첫사랑인지 뭔지 왕서방의 배반을 받고 심리가 공허할대로 공허해졌다.    은희는 점차 한국 회장의 열렬한 성애라도 마음껏 받아보고 싶어지는 것이 이상했다. 성기갈이 든 한국 회장은 은희와 섹스할 때면 마른 장작더미에 달린 불처럼 성애의 불길을 활활 불태웠다. 색마는 변태적으로 그녀한테 별의별 체위를 다 요구하며 섹스기교를 뽐냈다. 그 불길과 기교가 심해질수록 그녀의 저금통장 돈 자리수자는 직상승선을 점점 빨리 그었다.    그러나 “그런 좋은 날”도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 회장은 은희를 실컷 데리고 놀고나니 질렸는지 점점 드물게 찾았다. 후에 알고 보니 회사에 새로 들어온 더 어리고 이쁜 여직원을 데리고 놀고 있지 않았겠는가.    은희는 질투와 배신감으로 온 몸을 바르르 떨었다.    “세상 사내들이란 모두 량심 없는 개들이야.”    두번째로 사내한테 배신당한 은희는 그날로 보짐을 싸들고 그 한국 회사에서 나가버렸다.    그후 은희는 심양에서 민박도 차려보고 옷장사도 해보았다. 그러나 운수가 사나워서 다 잘 되지 않아 죽물도 먹기 어려울 정도로 돼버렸다.    그녀는 별 수 없어 한국에 나가려고 한 한국 회장한테 수속해달라고 3만원을 맡겼다. 그때는 조선어시험을 치고 또 한국 출국수속이 꽤나 번거롭고 힘들었다. 때문에 출국수속료로 3만원 낸 건 적게 낸 셈이었다.    그런데 그놈 한국 회장을 거의 석달이나 점심을 대접하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놀았는데도 한국 출국수속은 전혀 소식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 한국 회장은 온데간데 그림자도 보이지도 않았다. 진짜 은희 돈과 몸까지 다 가지고 다 파 먹은 김치독처럼 차버린 것이었다.    은희는 첫 혼인생활에서 심한 타격을 받은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심양에서 정신상, 육체상, 경제상에서 모진 타격을 받을대로 받아 심히 심약해졌다. 빈털털이로 된 그녀는 눈풍설이 이는 심양거리에서 헤대다가 교외의 한 술집에서 접대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허둥지둥 찾아갔다.    그녀는 그 술집에서 뭇 사내들의 술안주에 들어 시끄러운대로 독한 술로 허전한 가슴을 지지려고 들었다. 그녀는 점차 화끈 달아오른 주색마당에서 몸을 팔아 돈을 벌면서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시작하였다.    사내들의 돈을 벌기는 식은 죽 먹기었다. 한 반시간 술시중을 들고 나중에 한 반시간 속살을 내대고나면 백원짜리 빨깍빨깍하는 팁까지 생겼다.    꼬리가 길면 밟히기 마련이었다. 그녀가 한창 더러운 교역을 벌릴 때 술집 문을 꽝꽝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짧은 치마와 팬티를 춰 입을 새도 없이 두리모자들이 우르르 쓸어들어왔다.     은희는 심양 구류소에서 로동개조를 하고 숱한 벌금을 하고서야 석달만에 풀려 나왔다. 엄청난 벌금을 하고나니 몸을 팔아 번 돈이 밑바닥이 다 드러날 지경이 됐다.     은희는 남은 돈을 빡빡 긁어모아 가지고 기차표를 사서 한많은 심양을 떠나 두만강변의 한 도시에 나와버렸다. 그 도시는 조용하고 조선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어서 좋았다. 그런데 경제가 락후했다.     그녀는 그 도시에서 음식점이나 려인숙이나 아무 걸 다  차려 보았다. 그런데 경제가 락후한 변강도시여서 죽벌이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마사지방은 사내들의 쉽게 돈을 벌 수 있어 아주 열기를 띠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생존하기 위해 할 수 없이 마사지방에 아가씨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녀는 또 발을 빗딛고 말았다.    은희는 마사지방에서 뭇사내들한테 젊고 이쁜 몸과 색을 들이대고 빨깍빨깍하는 팁을 받아 챙기었다.    “그런데 또 재수없이 경찰들한테 붙잡힐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종호는 또 은희의 말을 중도무이해 질문했다.     “은희는 문화도 있는 교원출신 아니고 뭐요? 자기 매음한 잘 못을 아직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구만. 그저 재수없어 붙잡힌 걸로 생각하는 건 잘못이오. 지금까지 실각한 걸 돌이켜보면 후회되는게 있소?”    은희는 머리를 툭 떨어뜨린 채 한참 궁리하더니 줄 끊어진 구슬처럼 쓰라린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나직이 말했다.    “새파란 나이에 이렇게 되고 보니 후회되는 일이 많고도 많지요. 한 사람에게서 최대의 행복은 첫 대상자를 잘 골라 만나는 것이지요. 아무리 잘 생긴 첫사랑이라도 복잡한 과거 연애사가 있는가 없는가 잘 알아보고 사귀고 결혼해야죠. 과거 연애사가 복잡한 대상자라면 인차 칼로 썩뚝 자르듯이 무정하게 관계를 끊어야죠. 난 그렇게 결단내리지 못했기에 새파란 나이에 인생 비극을 겪게 됐지요. 또 아무리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해도 내처럼 법을 어기고 더러운 돈을 벌지 말아야 한다고 봐요. 림시 빨깍빨깍하는 팁을 챙기는 재미는 좋은 것 같지만 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기를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에 처넣게 되지요.”    은희는 류기와 종호를 피끗 번갈아보더니 대성통곡치면서 말했다.    “진짜 첫사랑이 낳은 비극이지요. 기자선생님 절대 저의 진짜 이름을 신문이나 잡지에 내지 말아 주세요. 내 고향 소학교 사생들과 학부모들이 알면 날 뭐라고 욕하겠어요? 아니, 세상 사람들이 날 뭐라고 손가락질 하겠는가요? 아들애가 이담 커서 엄마가 이런 더러운 과거가 있다는 걸 알면 얼마나 큰 타격을 받겠는가요? 난 얼마나 후회되는지 몰라요. 제발 신문에 내 이름 그대로 내지 마세요.”    “근심하지 마오. 가명을 달아 낼게.”    종호는 취재를 마치고나서 인생의 기로에 들어선 숱한 매음녀들을 어떻게 바른 길에 들어서게 할 것인가 고민하였다.    그는 가슴이 너무 갑갑해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면서 장탄식했다.  
531    대하소설 황혼 제4권(74) 녀자감옥의 나영이 김장혁 댓글:  조회:157  추천:0  2024-11-16
      대하소설 황혼 제4권            김장혁        74. 녀자감옥의 나영이       종호는 가옥까지 처분해 숨을 좀 돌릴 수 있게 되자 그 날 오후에 김호 대대장의 부탁대로 녀자감옥에 특수취재를 하러 갔다.     종호가 녀자감옥 울안에 들어가 보니 철조망을 두른 높은 담장 속에서 해볕이 쨍쨍 내리쪼이는 무더위를 무릅쓰고 전번처럼 여경들의 감시하에 숱한 아가씨들이 청바지 바람에 팔을 량쪽으로 쭉 펴고 몸을 휘휘 돌리면서 중간체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핏 봐도 새파란 녀죄수들이 전번보다 눈에 뜨이게 더 많아진 것 같았다.     (아니, 저게 나영과 류려평이 아닌가?)    종호는 녀죄수들 속에서 피끗 나영과 류려평을 발견했다. 그녀들은 체조를 하느라고 여념없었다. 그런데 머리를 풀어헤친 나영이 그를 발견했다. 그녀는 두 팔을 쳐든채 주춤 멈춰 서서 종호를 멍해 쳐다보았다.    “뭘 쳐다 봐?!”    여경장 류기가 고함치며 나영한테 다가갔다.    나영은 체조를 하면서도 간절한 눈빛은 종호한테서 떼지 않고 따라갔다.    (리사장님, 이 생지옥에서 절 구해줘요.)    류려평도 종호를 발견하고 코웃음쳤다.    (리혼해 주고 집까지 다 팔아 줬는데 어째 또 찾아 왔어?)    종호가 류려평을 피뜩 여겨보니 손목과 팔목에 쇠고랑이와 족쇄가 없었다. 아마 체조를 하는데 불편할가 봐, 감옥 안인지라 인도주의를 베풀어 쇠고랑이와 쇠사슬을 잠시 풀어준 것 같았다.    김호 대대장은 벌써 대문 어귀에 기립해서서 반갑게 마중했다. 김호는 당년에 종호가 실습하러 왔을 때 일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체육시간에 종호는 학생들 앞에서 고도를 한메터 반이나 개구리 물에 뛰어드는 멋진 동작으로 날렵하게 날아넘지 않았겠는가. 그는 아직도 방불히 날렵한  종호를 보는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김호는 허리까지 굽이면서 반갑게 인사하고나서 종호를 모시고 자기 사무실에 갔다.     여경이 커피를 타서 커피잔을 종호 앞 탁자 위에 가져다 드렸다. 다른 여경은 종호가 커피를 마시지 않고 뜨거운 물을 마시겠는가 해서 뜨거운 물을 부은 컵을 가져다 커피잔 옆에 달랑 놓아드렸다.     김호 대대장은 종호와 나란히 앉더니 먼저 종호와 여경을 서로 인사시켰다.     “김소장, 신문사 리종호 부사장님이오.”    김호 대대장은 종호한테 40대 초반 김소장을 소개해 주었다.    “녀자감옥 김천선 소장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녀자 감옥 김천선이라고 부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천선 소장은 깎듯이 인사드렸다.    김호 대대장은 스승 앞인지라 스스럼없이 말했다.     “선생님, 녀죄수들을 만나기 전에 한가지 부탁합시다.”    종호는 미더운 눈길로 김호 대대장을 마주 보며 물었다.    “말하오. 무슨 일이오?”    김호 대대장은 이런 일을 부탁드리는 것이었다.     “선생님, 선생님도 금방 들어오시면서 보셨겠지만요. 녀죄수들이 많아졌습니다. 그중 매음녀들만 봐도 숫자가 기하학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요즘 공안국에서 밤중에 불시에 마사지방, 노래방 등등 유흥업소를  수사했는데 숱한 표창자들과 매음녀들을 나포했습니다. 이젠 구류소가 넘쳐날 지경입니다. 더 치안구류 할 감방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비록 조선족매음녀는 한국 문이 열리면서 훨씬 줄어들었지만 매음녀 총수는 훨씬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선생님께서 시간 좀 내서 매음녀들의 정황을 많이 조사해 신문이나 잡지에 냈으면 합니다. 교훈적인 선전을 폭넓게 하면 매음과 표창을 두절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매음녀들과 표창자들에게 사회여론을 통한 교육과 경고도 될 것 같습니다.”     종호도 통쾌하게 대답했다.     “그러기오. 전번에 취재한 영화 사실은 이제 이달 안으로 잡지에 날 거요. 월간잡지는 보통 한두달 쯤은 기다려야 책이 나오게 되오.  영화 인터뷰는 주필과 잘 부탁했기에 빨리 나오는 편이오.”    김호 대대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네- 그렇구만요.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종호는 통쾌하게 말했다.    “이제 책이 나오면 몇부 가져다줄게. 오늘 먼저 매음녀들의 자료라도 제공해주오. 자료를 본 후에 시간 내 매음녀들을 일일이 취재해 낼게.”     “네. 고맙습니다. 오늘은 먼저 선생님 일 있으면 보십시오.”     “그럼 매음녀를 취재하기 전에 탐오범 박나영을 취재해도 되겠소?”     “그렇게 하십시오.”    김호 대대장은 김천선 소장한테 얼굴을 돌렸다.    “김소장, 먼저 박나영을 소회의실에 데려오오. 그리고 매음녀들의 심문자료도 인차 준비하오.”    “네, 이미 준비해 놓았습니다.”    김천선 소장은 여경들을 돌아보더니 명했다.    “류기(刘琪),박나영을 소회의실에 데려오오.”    “예. 곧 데려오겠습니다."     류기라는 여경은 꽤나 이뻤다. 어글어글한 눈이라든가 오똑 솟은 코...    종호는 딱 어디서 본 거 같지 않겠는가. 그런데 별로 본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어쩜 류려평과 생김새가 비슷해보이었다.    (같은 류씬게. 멀어서 닮지 않았겠는가?)    김소장은 류기와 다른 여경한테 나지막하게 분부했다.     “박나영은 경범죄이기에 쇠고랑이를 풀어도 되오.”     “옛, 알겠습니다.”      이윽고 여경 둘은 회의실에서 나갔다.     김천선 소장은 미리 준비한 매음녀들의 자료를 종호한테 드렸다.     “리사장님, 수고하겠습니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인차 륙속 신문과 잡지에 내도록 하겠습니다.”    종호는 김호 대대장과악수하고 나서 대대장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는 김천선 소장과 함께 소회의실에 갔다.     이윽고 나영이 여경들과 함께 소회의실에 들어섰다. 전번 만났던 류려평과는 달리 나영의 손목과 발목에는 쇠고랑이가 채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종호를 보자 검은 그림자가 흐르는 수척한 얼굴에 잔미소가 서서히 피어났다.     김소장은 종호를 보고 “잘 취재해 보세요.”라고 인사하고나서 여경들한테 귀속말로 뭐라고 분부했다. 아마 박나영을 잘 지켜라고 분부하는 것 같았다.     여경들은 나영을 피끗 돌아보더니 복도로 나가려고 했다. 김소장과 여경들은 아마 김호 대대장의 부탁대로 종호한테 취재하는데 편리하게 특수배려를 베푸는 것 같았다.     나영을 지키는 여경은 아마 한족인 것 같았다.    종호는 여경들을 보고 말했다.    “취재 편리를 위해 조선어로 취재해도 되겠습니까?”    여경들은 서로 마주보더니 피씩 웃었다.    “괜찮아요.”    말을 마치자 여경들은 복도에 나가 소회의실을 지켰다.    기실 여경들은 조선어를 잘 알아 들었다. 소회의실에도 몰카가 장착됐기에 복도에서도 나영을 얼마든지 지킬 수 있었다. 종호는 그걸 조금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종호는 나영을 보고 가까이 와 앉으라고 손짓했다. 나영은 종호의 맞은 쪽 쏘파에 와서 앉았다.    종호는 자기한테 여경들이 가져다준 커피를 나영한테 권했다.    그는 여경들이 들으라고 고의로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영이, 감옥에서 나가 새 삶을 찾는 길은 자기 죄를 스스로 탄백하고 다른 죄범들의 죄악을 폭로하는 길 밖에 없소.”    나영은 걀쭉한 얼굴을 쳐들더니 이상한 눈길로 종호를 흘끔 쳐다 보았다.    (별론데. 리사장은 어쩜 경찰을 대신해 나를 심문하는 어투 아닌가? 아니야? 혹시 주위가 불편해 공식적인 말을 하는 거겠지?)    그녀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종호는 나영을 마주보며 정색해 나직이 말했다.    “나영이, 며칠 전에 나영이 남편을 찾아보았소. 그런데 철석은 나영의 탐오금을 심계국에 일전도 바치지 않았습데.”    나영은 커피잔을 들어마시다가 내려놓았다. 그녀의 쌍까풀눈이 화등잔처러 데꾼해졌다.    “뭐라구? 그 놈, 진짜, 날 잡아먹으려고 들었는군요. 그런 놈 믿고 어떻게 사는가요? 인차 리혼해야겠어요. 그래 내 리혼하겠다더라고 얘기했는가요?”    종호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얘기했소. 그런데 철석은 표창죄로 지금 구류소에 갇혀 있습데.”    “네?!”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영이 탐오금을 바치라는 돈을 아마 다 주색에 처넣은 거 같습데.”    “개 같은 놈새끼, 량심없는 몰렴치한 놈…”    종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고나서 뒷말을 이었다.    “구류소에 찾아가 나영이 리혼청구서를 전했소. 철석은 화를 벌컥 내면서 자기 집 일에 작작 삐치라고 욕합데. 날 보고 누군가고 따져 묻더구만. 리혼은 부부간에 해결할 일인데. 나영과 무슨 관계이기에 삐치는가고 합데. 나영이 한국에서 오면 리혼해주겠다고 합데.”    나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괜히 리사장님을 욕 보게 했군요. 미안해요. 헌데 제가 나가야 당장 리혼하겠는데. 리사장님은 리혼수속 다 했는가요?”    종호는 측은한 눈길로 나영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미 리혼했소.”    소회의실 안에서 종호와 나영이 주고 받는 말소리는 특별히 낮아 복도의 류기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조차 힘들었다.     그는 인차 화제를 돌렸다.    “탐오금인지 뭔지, 그 5만원은 근심하지 마오. 나영인 이제 문화국 청사를 지을 때 최정호 국장이랑 류덕재 은행장이랑 류려평이랑 죄를 낱낱이 교대하면 되오.”    나영은 의아해 했다.    “아니, 그럼 혹시 리사장님이 그 탐오금을 바친게 아닌가요?”    종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검찰원에 바쳤소. 수사받을 때 나를 시켜 탐오금을 바치게 했다고 하오. 그래야 나영이 죄 경감될게오. 나도 최혜영 국장과 나영이 시켜서 탐오금을 바친다고 말했소. 나영이 억울함도 밝혔댔소. 그 5만원은 최정호 국장이 하라는대로 단위 돈을 꺼내 최국장한테 준게 아니고 뭐요? 때문에 나영은 탐오죄가 없소. 근근히 공금람용죄를 졌을뿐이오. 그것도 나영은 사적으로 쓴게 아니고 전람관건축대부금을 위해 최국장한테 준게 아니고 뭐요? 죄가 훨씬 경감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오. 이제 변호사를 찾아 잘 자문해보겠소.”    나영은 몸둘바를 몰라했다.    “그게야 사실이지요. 그런데, 아니, 리사장님이 무슨 돈이 있어서 저의 탐오금을 바쳤는가요?”    “탐오금이란 말을 하지 마오. 이젠 람용금이라고 하오.”    “네. 알겠습니다. 리사장님한테 너무 신세 져서 어쩌지? 제가 감옥에서 나가면 꼭 5만원을 꼭 갚겠습니다.”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필요없소. 전번에 내 앓을 때 나영이 책을 내라고 500만원이나 주지 않았소? 내 죽으려고 할 때 나영이 거의 날마다 찾아와서 정신적으로 위문해주지 않았더라면 난 진작 죽고 말았을 거요. 그 은공을 어찌 돈으로 다 계산하겠소? 우린 서로 도우면서 사는 환난지우 아니고 뭐요?”     나영은 “환난지우”라는 말에 가슴마저 찡해났다.     종호는 주위를 살피더니 나영을 가까이 와 앉으라고 손짓하였다. 나영은 엉덩이걸음으로 스리슬쩍 종호 옆에 다가가 앉았다.     종호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더니 호주머니에서 엄지손가락만한 걸 꺼내 나영의 손에 쥐워주었다.      종호는 복도에 있는 류기와 여경이 들을가 봐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걸 최혜영 국장한테 주오.”    나영은 의아한 눈길로 종호를 쳐다보며 물었다.    “류덕재와 류려평의 죄행을 녹음한 유판이오. 류덕재와 류려평은 건축상들한테 대부금을 내주고 집 몇채를 가졌는지도 모르오. 공짜로 가진 려향의 이름으로 가옥소유증을 올렸다오. 려향의 돌생일에도 류덕재는 백만원이나 축의금을 줬소. 그걸 적발하란 말이오.”     나영은 유판을 제꺽 부래지어 안에 걷어넣었다. 녀자들한테는 젤 은밀한 호주머니었다.     “아니, 려향의 집까지 폭로하랍니까?”     “남김없이 사정없이 폭로하오. 려향은 내 친딸이 아니오.”    나영은 쌍까풀눈이 데꾼해졌다.    “네? 무슨 말씀입니까?”    종호는 나직이 일러줬다.    “려향은 류덕재와 악처 류려평의 사생아요.”    “네? 세상에?!”    나영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개탄했다.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종호는 기른 정이 있는 려향의 전도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친딸은 아니지만 길러준 정은 있소. 려향은 에미 부정축재를 가지지 않는 것이 좋을 거요. 괜히 부패분자 에미와 함께 공범이 될게 있소? 려향은 한국 회사 회장의 비서 로임 3백만원도 넘게 타는데. 그게면 실컷 살 수 있소. 려향은 부패분자 에미와는 달리 자기 능력과 신근한 로동으로 전도를 개척해야 하오."     종호는 결코 반금련 같은 악처와 서문경 같은 류덕재를 보복하려는 것만이 아니었다. 하루 빨리 성림한테 엄마의 모성애를 안겨주려는 것이 우선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길러준 정이 있는 려향이라도 마음이 아픈대로 대의멸친하지 않으면 안됐다. 어쨌든 허위를 까부시고 진실을 온 세상에 쫄딱 까밝아 놔야 했다. 그것은 그의 인생좌우명이니까. 아니, 어떻게 보면 종호의 인생 자체 전부일 수도 있었다.    종호는 개의치 않고 뒷말을 이었다.     “부패분자 류덕재 행장과 류려평, 그 년놈들 죄악이 담긴 유판을 수사기관에 바치면 나영은 꼭 관대처분 받을게오. 감옥에서 하루라도 빨리 출옥해야 성림을 구하지.”    나영은 유판을 손에 꼭 쥐며 의아해 물었다.    “어째 리사장님이 직접 최혜영 국장한테 주지 않았는가요?”     “나영이 줘야 나영이 적발한 공으로 되잖고 뭐요?”     나영은 쌍까풀눈을 내리뜨고 궁리하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종호는 나영을 보고 거리를 띄워 앉게 한 다음 화제를 바꾸었다.    “성림이 좀 불행한 소식인데.”    나영은 깜짝 놀라 쌍까풀눈이 데꾼해졌다.    “성림이 무슨 일이 있습니까?”    “자꾸 숨이 차 합데.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글쎄 코로나에 심장이 좋지 않다고 하지 않겠소. 교수의사는 당장 심장수술을 해야 한다잖겠소?”    나영은 하늘이 쿵 무너지는감이 들었다. 그녀는 천길, 만길 절망의 심연 속에 훌러덩 빠져들어가 버렸다.    “아이고, 불쌍한 성림아,”    나영은 대성통곡쳤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여경 둘이 불쑥 들어왔다.    류기라는 여경은 까칠한 눈길로 나영을 쏘아보았다.    “웬 일입니까?”    종호는 여경들한테 자초지종을 얘기해주었다.    류기와 다른 여경은 나영의 처지가 가긍해 머리를 끄덕였다.    “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여경들은 다시 복도로 나갔다.    나영은 여경들이 알아들으라고 한어로 울며 불며 야단쳤다.    “아이고, 내 불쌍한 아들아, 고 어린애를 어떻게 심장에 수술칼을 댄다고 그래요? 엄마라는게 감옥에 갇히다니? 하나 밖에 없는 아들애도 치료 못해주고. 아이고, 하느님이여, 내 아들을구해 줍소서.”    종호는 나영을 위안했다.    “근심하지 마오. 내 살아 있는 한 꼭 성림을 구해낼테니. 성림을 꼭 조선어를 잘하는 조선족후대로 키워낼 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에미 모성애 없이 성림이 건강하게 크겠는가요?”    나영은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물었다.    “수술비용도 엄청 많이 들겠지요?”    “한 3천만원 든다오.”    나영은 눈이 화등잔처럼 데꾼해졌다.    “네? 아이고, 불시에 어디서 그렇게 엄청 많은 수술비용을 마련하겠습니까?”    그녀는 또 대성통곡쳤다.    “아이고ㅡ 불쌍한 성림이 죽게 생겼구나.”     “성림이 수술비를 근심하지 마오. 내 집을 팔았소. 그런데도 한 천만원 모자라오.”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됩니다. 하나 밖에 없는 집을 다 팔아버리고 선생님은 한지에 나앉겠습니까? 악처가 또 야단치겠습니다.”    종호는 정색해 나영한테 알려주었다.    “내 리혼했잖소? 이젠 반금련 같은 악처 내 일에 삐치지 못하오.”    그래도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돼요. 내 이런 처진데. 선생님이 어떻게 혼자 수술비를 어떻게 댑니까? 수술 잠시 그만둡시다. 다른 방법 없겠는가 잘 생각해 봅시다.”    그녀는 한창 궁리하더니 무슨 생각이 피뜩 났는지 무릎을 탁 쳤다.    “아차, 대림 셋집에 둔 내 카드에 한 천만원 있을 겁니다. 그거면 수술비용은 되겠습니다.”    그제야 종호는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러나 나영은 또 시름놓지 못했다.    “안 돼요. 수술해도 제가 나온 뒤 합시다. 제가 옆에 없으면 고 쪼꼬만 애 얼마나 수술하기 겁나겠습니까? 한국 의사들은 돈 밖에 몰라요. 안돼요. 한국 수술비용도 너무 비싸요. 어떻게 먼저 어린애한테 수술칼을 대지 말고 약물치료는 안되겠는지 다른 방법을 생각해봅시다.”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며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길게 내쉬었다.    그는 피뜩 떠오르는 유명한 의학박사 황선희가 떠올랐다.    “나영이, 황선희박사한테 성림을 부탁하면 어떻소?”    “네-난 어째 황박사를 생각하지 못했을가요? 전번에 제 낙태수술도 황박사 한국까지 와서 해주지 않았습니까? 일본까지 류학한 황박사는 꼭 성림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순간 나영의 쌍까풀눈에는 한가닥 희망의 빛이 반짝였다.    “먼저 그렇게 하기오. 내 황박사를 찾아 잘 부탁할게.”    종호와 나영은 잠시나마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러나 그들이 어찌 알았겠는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것을.
530    대하소설 황혼 제4권(73) 정신감옥 김장혁 댓글:  조회:152  추천:0  2024-11-13
    대하장편소설 황혼 제4권           김장혁          73. 정신감옥       종호는 경찰차에 류려평을 데리고 리혼하러 민정국으로 달려가면서 눈을 지긋이 감았다. 류려평과 마주 보기 싫은 것도 있었다. 그보다도 그는 빠뜨린 구멍이 없는가 이것 저것 꼼꼼히 점검하면서 속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렸다.     “아차!”     종호는 무릎을 탁 치며 외까풀눈을 번쩍 떴다. 그는 피뜩 무슨 생각이  났는지 류려평을 건너다 보았다.     “당신 신분증을 가져 오지 않은 거 같구만.”    류려평은 쓴웃음을 지었다.    “난 또 무슨 큰 일이 났는가 깜짝했지. 불시에, 참, 사람 간이 다 떨어지게 논다. 숱한 경찰 앞에서 무식하게. 흥!” 악처는 분명 기회를 봤다고 승풀이를 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 이제라도 구류소에 가서 가지고 와야겠소.”    악처는 차 안이 다 떠나가게 두덜거렸다.    “사람을 보기로 뭘로 봐? 신분증도 가지고 오지 않고 어떻게 리혼하러 가겠는가?”    (정신타격을 좀 받은 거 같은데…)    종호는 단마디로 재삼 족따졌다.    “동문서답하지 말고 똑똑히 말하오. 신분증 가지고 왔소?”    “있다니까. 몇번 물어?”    그래도 종호는 믿어지지 않았다. 확인해야 했다.     “어디 보기오.”    류려평은 두덜거리면서 쇠고랑이를 찬 손으로 허리에 띤 벨트식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이었다.    “신분증은 총살받기 전엔 내 몸에 꼭 건사해야지.”    종호는 신분증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숨을 후- 내쉬었다.    경찰차는 민정국 앞에 달려가 천천히 멈춰섰다.    그들이 혼인소개소 창구에 올라가자 난리났다.     여직원들은 여경들이 손목에 쇠고랑이를 찬 류려평의 량팔을 붙잡고 압송해 들어서자 초롱초롱한 포도눈알이 데꾼해졌다. 그녀들의 데꾼한 눈은 눈섭 밑에 다 달라붙을 지경이다.    류려평은 일종 모욕감을 느끼면서 머리를 뚝 떨어뜨렸다.    여직원들은 전날에 혼자 왔던 종호를 알아보았다.    “리혼수속하러 대방을 데리고 왔습니다.”    “두 분의 신분증을 주세요.”    여직원은 신분증을 받아 종호와 류려평의 얼굴과 찬찬히 대조해 보았다.    류려평은 창피해서 게두두벌거렸다.    “리혼하겠으면 할게지. 쇠고랑이를 채워서 데리고 올게 뭔가?”    여직원은 류려평을 못 마땅한 눈길로 째려보았다.    “무슨 소립니까? 쌍방이 다 오지 않으면 리혼수속을 못합니다. 어떤 특수정황이 있어도 꼭 와야 합니다.”    여직원은 종호한테 물었다.    “리혼 사유는 무엇입니까?”    종호는 솔직하게 말했다.    “우린 서로 사랑하지 않고 감정도 파렬된지 오랩니다. 실제 서로 갈라 산지도 십여년 됩니다. 이제라도 꼭 리혼해야겠습니다.”    종호는 류려평이 류덕재와 살아서 애까지 낳았다는 것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괜히 악처의 신경을 자극해 리혼수속에 방애될가 봐서였다.    여직원은 류려평한테 눈길을 돌렸다.    “리종호씨가 리혼사유 말했는데 동의합니까?”    “백번도 리혼 동의합니다. 제 노릇도 못한 저런 나그네를 믿고 살지 못하겠습니다. 저런 나그네 만나서 한뉘 평생 고생한 걸 생각하면 원통해 죽겠습니다. 저 나그네를 보기만 해도 열통이 터집니다. 어서 리혼수속 해주십시오.”    여직원은 머리를 끄덕였다.    “재산분할은 어떻게 할 예산입니까?”    종호는 리혼청구서를 내밀었다.     “여기 다 썼습니다. 이 리혼청구서는 우리 둘이 토론해 작성한 겁니다. 이대로 하면 됩니다.” 여직원은 쌍방의 싸인과 지장이 박힌 리혼청구서를 훑어보더니 류려평한테 물었다.    “이 리혼청구서대로 하면 되겠습니까?”    류려평은 리혼청구서를 흘끔 건너다보더니 인차 대답했다.    “예. 아쉬운대로 그렇게 합시다. 내 좀 밑지지만.”    여직원은 류려평을 째려보며 다잡아물었다.    “도대체 이 리혼청구서대로 재산분할을 하는 걸 동의합니까? 안합니까?”    “동의합니다.”    “그런데 왜 자꾸 토를 붙입니까? 딱 한마디로 대답하십시오. 46평방짜리 집을 리종호씨한테 주고 나머지는 몽땅 류려평과 딸 리려향한테 준다고 했구만요. 이걸 동의합니까? 반대합니까?”    류려평은 황급히 대답했다.    “동의합니다.”    “사진을 찍으십시오.”    “아니, 난 저 나그네하구 사진 안 찍어.”    “아닌데요. 리혼증에 붙힐 개인 증명사진을 찍으라는겝니다.”    “리혼하는데 무슨 증명사진이야?”    그제야 류려평은 게두두벌거리면서 창피한대로 렌즈 앞에 가 앉았다.    찰칵!    여직원은 사진을 씻어 리혼증에 붙힌 후 도장을 꽝 찍었다. 뒤이어 종호와 류려평한테 각기 리혼증을 내주었다.    종호는 리혼증을 받아 핸드빽에 넣으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는 혼인소개소를 나오면서 김호 대대장한테 귀속말을 했다.     “류려평을 데리고 가옥관리국에까지 가야 되겠소. 가옥소유증이 부부 공동소유로 돼서 그러오.”    김호 대대장은 통괘하게 대답했다.    종호는 인차 박선영한테 전화했다.    “여보세요. 가옥소유증과 신분증 가지고 인차 가옥관리국에 오십시오. 전번처럼 2층 교역대청에서 만납시다.”    선영은 환성을 질렀다.    “어머. 정말 지영의 말처럼 신용 있구만요. 네, 알았어요. 인차 가지요. 리사장님, 리혼수속 했는가요? 네? 일이 됐구만요. 네. 고맙습니다.”    종호는 경찰차에 류려평을 싣고 가옥관리국에 달려갔다.    이날 따라 가옥관리국 2층 교역대청에는 손님이 전에 없이 적어서 가옥변경은 인차 순조롭게 수속할 수 있었다.     선영은 교역창구에서 쇠고랑이를 찬 류려평이 신분증을 내미는 것을  보고 뒤에서 흠칠 놀랐다.     (이런 특수사정이 있었구나. 녀편네도 무슨 죄를 졌을까? 쇠고랑이를 차고 다니는 신센가?)     종호는 리혼증과 신분증, 가옥소유증, 리혼재산분할계약서 등을 창구에 들이밀었다.     녀직원은 쇠고랑이를 찬 류려평을 째려보면서 신분증과 리혼증을 받아 꼼꼼히 대조해보고나서 컴퓨터에 뭔가 툭툭 쳐넣는 것이었다.     “됐습니다. 교역세를 내고 1층에 내려가서 새 가옥소유증을 타 가세요.”     1층에서 새 가옥소유증을 가진 선영은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그녀는 가옥소유증을 들고 자꾸 들여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이젠 나도 제 집이 있게 됐구나. 이젠 집 없는 소녀처럼 떠돌이를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류려평은 경찰차에 올라가며 종호를 째려보면서 코웃음쳤다.    “잘하긴 잘하는구나. 무슨 큰 일 났다고 하나 밖에 없는 집마저 다 팔구. 에이구, 저런 나그네 믿고 어떻게 살아? 이전엔 내 은행에서 탄 집을 팔아 책을 내더니. 또 무슨 바보 짓을 하려고 저래? 제 노릇을 못하는  멍청이! 흥!”    종호는 아무 대구도 하지 않고 류려평과 헤여졌다.    (집을 팔아 한 조선족어린이를 구하자고 그런다. 참새들이 어찌 고니의 큰 뜻을 알겠느냐? 흥!)    종호는 김호 대대장과 여경들에게 깎듯이 인사했다.    “오늘 바쁜데 수고 많았소.”    “괜찮습니다. 선생님 후에 시간 나지면 매음녀들을 취재하러 오십시오.”    “후에 꼭 취재하러 갈게.”     “선생님, 수고하시겠습니다.”    김호 대대장과 여경들은 종호와 작별인사하고 경찰차에 류려평을 압송해 구류소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종호는 선영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오늘 가옥소유증도 순조롭게 변경했는데. 함께 냉면이라도 한 그릇 잡술까요? 지영의 언니라니깐. 괜찮지요?”     “아니, 고마워요. 제가 일이 있어 그만 가야겠어요.”     선영은 일을 핑게로 발뺌을 했다. 그녀는 전 남편한테 혼나서 남자들이라면 딱 질색이었다.     세상은 요지경, 세상은 넒고도 졻았다. 가옥매매로 해 종호는 박지영의 언니 박선영과 인연을 맺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종호는 혼자 려인숙으로 돌아와 한시름 놓고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그는 리혼증을 만지작거리면서 또다시 착잡한 생각에 빠졌다.     (이젠 모든 것이 말끔히 정리됐다.)     사랑도 없이 몇십년을 살아온 혼인에 종지부호를 땅 찍은데서 오는 해탈감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허위로 꼴딱 찬 허울 밖에 없는 가정, 정신쇠사슬에 얽매인 정신감옥에서 해탈된 쾌감이랄까? 새 세상이 열리는 감이 들었다.     뒤따라 허위적인 류려평과 몇십년 살아온 허무한 감도 없지 않아 머리 속에서 감도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진작 리혼을 끝장 내야 했어. 허위로 엮어진 혼인이었어. 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빈 허울 밖에 없는 가정을 유지해 뭘 했어? 리혼하면 나와 려향의 전도를 망칠가 봐 억지로 가정을 유지하려고 했어. 내 가정이란 건 보이지 않는 허위와 정신쇠사슬에 거미줄처럼 꽁꽁 묶인 정신감옥이었어. 그걸 모르고 썩어빠진 가정을 가정이라고 유지하려고 했어. 그 정신감옥에서 악처는 암암리에 내 정신과 인격을 얼마나 릉욕하고 짓밟았어? 난 여직껏 진짜 바보 짓을 했어.)    종호는 개 열을 씹은듯이 쓰거워났다.    (나는 몇십년 동안 악처한테 속히워 속을 태우면서 그 보이지 않는 정신감옥에 갇혀 살았잖은가? 무대랑처럼 독약을 먹고 죽을 번했잖았는가? 자초에 잘 못했지. 가시아버지 류생남 국장의 권력을 빌어 시내에 남아 살면서 기자 꿈을 실현하자고 한게 잘못이었지. 내 기자 되자고 류려평과 약혼한게 잘못이었지. 나도 순결하지 못했어. 류국장네 싸가지 없는 귀공주 치마자락에 매달려 리상을 실현하려고 꿈꾸다니?)    종호는 생각할수록 청년 때 자기 처사가 어처구니 없었다.    (리상은 자기 노력과 능력으로 실현해야지. 리상과 혼인을 반죽했기에 아무 것도 반중건중하게 됐잖았는가? 리상을 실현하자고 어쩜 사랑하지도 않는 한족간나새끼와 결혼해? 정치결혼이었어. 세상 사무러운 악처를 만나 한평생 개고생을 하지 않았는가? 누가 한족처녀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내 밥곽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말리겠다.)    그는 악처를 만나 한평생 속히워 산게 억울하고 분했다.    (사돈보기 할 때 내 류려평을 의심한게 옳았지. 그년 그게 헐럭하다고 하니 억울하다고 울며불며 야단쳤잖아? 그건 다 불여우의 눈물이었어. 그러나 난 국장네 귀공주를 데려다가 셋집살이를 시키면서 고생시키는게 죄송해서 악처의 정조를 더 의심하지 않았지. 악처는 나와 약혼하기 전에 벌써 류덕재와 실컷 살아서 임신하고 락태까지 한 거야. 그래서 그게 그렇게 헐럭했지. 사돈보기 하는 날에 요대기에 그린 빨간 매화꽃에 홀린 내가 바보였지. 그런데 그날 밤에 흘린 빨간 피는 뭔가? 혹시 내가 너무 힘껏 그래서 흘린 피?”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많고도 많았다.     악처는 내하구 결혼하구서도 계속 류덕재와 살아서 려향까지 낳지 않았던가? 도적이 ‘도적이야!’ 해? 얼마나 철면피한 년인가? 중혼죄는 누가 져놓고. 뭐? 내가 나영하구 중혼죄를 졌다고?)    종호는 온 밤 침대에서 이리 궁실 저리 궁실 하면서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원통하기 그지 없었다.     (악처는 나를 정신감옥에 처넣고 암암리에 하늘이 용납못할 패륜을 저질렀지 않았는가? 세상에 둘도 없는 악처도 용서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저 년놈들을 복수할까?)     그의 머릿속에서는 무서운  내심의 모순갈등으로 해 우뢰가 울고 번개가 번쩍이었다. 그의 눈 앞에서는 무수한 별찌들이 소낙비처럼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529    대하소설 황혼 제4권(72) 불여우의 꼬리 김장혁 댓글:  조회:172  추천:0  2024-11-10
     대하장편소설 황혼 제4권              김장혁        72. 불여우의 꼬리      종호는 악처 량옆에 딱 붙어 있는 여경들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여경들은 한족 같았다. 하나는 류려평의 집안집 여조카 류기 아닌가.   (류기 조선말을 알아듣지 못하겠지.)   그러나 류기라는 여경장은 기실 종호가 한국에 나간 후 과외로 조선어를 배웠기에 조선말을 싹 다 알아 들을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종호는 그런줄도 모르고 류려평만 듣게 하느라고 조선말로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어느 하루 장백산 기슭에 꼬리 긴 토끼 한마리가 나타났지. 그 놈 토끼는 다른 토끼들과는 달리 꼬리가 특별히 길었고 엄청 덩치가 컸지. 그래서 원시림동산 경찰인 멍멍이가 그 토끼를 보고 ‘왜 그렇게 꼬리 긴가?’고 물었지. 그러자 토끼는 자기는 벨지끄 토끼 돼서 덩치도 크고 꼬리도 길다고 했지. 또 자기는 알프스산의 이슬만 먹고 살아서 마음이 이슬처럼 맑고 깨끗하고 붉다 못해 눈마저 새빨갛게 됐다고 했지.”     류려평은 종호를 쏘아보며 픽 코웃음쳤다.     “그만. 쇠고랑이를 차고 언제 그런 얘기 들을 새 있어. 발목이 아파 죽겠어. 오늘 찾아온 요건만 말해.”    그러건 말건 종호는 계속 이야기했다.     “어느날, 원시림동산 곰이 바위돌 밑에 숨겨 놓은 사슴 고기를 어느 놈이 도적질해갔지 뭐야. 경찰 멍멍이는 흡흡 냄새를 맡더니 곰한테 토끼 입에서 사슴 고기 냄새 난다고 고발했지. 그런데 곰은 멍멍이경찰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어. ‘초식동물인 토끼가 사슴 고기를 도적질해 뭘 하겠는가?’고 했지. 심지어 토끼는 증거도 없이 아무나 문다고 멍멍이를 산중대왕 백두호랑이한테 고발했지. 멍멍이경찰은 밤잠을 자지 않고 아름드리미인송 옆에 숨어 있으면서 바위돌 밑에 있는 사슴고기를 누가 훔치는가 살폈지. 그런데 밤중에 땅 밑에서 누가 바위돌 밑으로 굴을 파는 소리가 들렸지. 멍멍이경찰은 산중대왕 호랑이와 코끼리, 곰한테 달려가서 알렸지. 모두들 달려와 보니 바위돌 밑에 굴이 펑 뚫리지 않았겠어. 그런데 굴 어귀에 누런 털이 부숭부숭한 기다란 꼬리가 드러나지 않았겠어. 멍멍이경찰이 그 길다른 꼬리를 딱 밟았지. 곰은 꼬리를 쥐어 힘껏 당겼어. 웬걸, 굴에서 끌려나온 놈을 찬찬히 보니 원래 도적놈은 그 놈의 꼬리 긴 토끼 아니겠어?”     류려평은 십중팔구는 자기를 빗대 욕하는 얘기라는 걸 눈치챘다.     “그만하지 못해? 내 무슨 세살짜리 앤가 해? 누굴 빗대고 욕하는 거야?”     그러나 종호는 계속 얘기했다.     “산중대왕이 그 꼬리를 쥐어 훌 당기니 가죽이 쭉 벗겨지지 않겠어? 원래 그 놈 꼬리 긴 토끼는 토끼 가죽을 쓴 불여우가 아니였겠어? 곰은 불여우의 꼬리를 밟고 산중대왕은 불여우의 배때기를 콱 밟았어. ‘펑’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여우의 배때기 터지면서 사슴 고기 터져 나오지 않았겠어. 허허허.”    종호는 이야기를 마치고나서 류려평 눈치를 뚫어지게 쏘아보면서 불여우에 빗대여 비난했다.    “이 동화는 한 조선족작가가 쓴 동화요. 어째 이 동화 줄거리를 얘기했는지 알만 하오? 자기 한 짓을 곰곰히 생각해 보오. 불여우가  아무리 토끼가죽을 쓰고 착한 척 해도 꼬리 길면 아무 때든지 꼬리를 밟히기 마련이오. 바위돌 밑에 파묻어둔 사슴고기랑 훔친 것도 다 드러났소. 아무리 자기 전부 인생을 땅 밑에 파 묻어 둬도 다 백일 하에 드러나기 마련이오. 그때 가서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걸 아오.”    류려평은 속이 떼끔해났다.     (저 놈 무슨 소리야? 려향한테 알려준 아빠 산소에 파묻은 비밀을 알아챘는가? 아니야, 절대 아니야. 지금 날 썰매떼기하는 거야.)     악처는 서서히 침착성을 회복하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무슨 허튼 소리 치오? 그래 어쩔 셈인가? 툭 찍어놓고 말해.”    종호는 단도직입적으로 요건을 말했다.    “떼를 작작 쓰고 당장 리혼수속을 하기오.”    픽!    류려평은 퉁사발눈을 부라리면서 코웃음쳤다.     “안돼. 절대 리혼 안해? 이젠 몇번 말했어? 살인미수죄를 들씌워서  총살맞게 물어먹고서도 리혼해달라고? 경찰들을 데리고 와서 위협하면 리혼할 거 같애? 쳇, 어림도 없어. 리혼은 내 자유야.”     악처는 절대 종호 앞에서 기 죽은 표정을 보여선 안되였다. 그럼 진짜 꼬리 드러날게 아닌가?    종호는 어이없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당신을 물어먹었다고? 난 지금까지 당신 죄를 경감시키려고 그랬소. 당신도 알지만, 처음엔 당신이 내 링겔병에 뭘 주사해넣지 않았다고 했지. 산소호흡기도 내 절로 뗐다고 하잖았소? 그후 당신은 려향과 면회할 때 당신이 살인미수죄를 졌다고 말해야 당신이 한국 법정에서 판결받게 되면 중국에 인도되지 않는다고 하잖았소? 당신은 려향을 통해 날 보고 도와달라고 비난사정까지 하지 않았소? 그래서 당신의 살인미수죄를 사실대로 말하게 됐지. 지금 와서 날 물어먹었다고 억울하게 굴겠소? 또 내 말하지 않아도 당신은 남편을 살해하려 한 숱한 단서를 남겼소.”     종호는 한발자욱도 물러서지 않고 경고했다.     “당신 부정축재 얼마나 되오? 그래 그 많은 집이랑 재물을 다 나와 함께 나눠가질 생각이오? 당신 무기징역을 받거나 사형 받으면      그 재산 다 누구게 될 거 같소?”     그 한마미 한마디 말은 모두 비수로 돼 류려평의 심장을 찔렀다. 류려평은 더 숨을래야 숨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저 놈이 내 부정축재 내막을 다 아는가? 아니야, 절대 알 수 없어. 지금 나를 썰대떼기 하는 거야. 흥! 늙은 너구리 같은 놈. 누굴 얼리려고? 난 꼬리 긴 토끼처럼 그렇게 쉽게 꼬리 드러나지 않을 거야. 흥!)     류려평은 아닌 보살을 떨기 시작했다.      “아이고, 미안해 어쩌겠니? 당신 그렇게 안해를 보호한 것도 모르고 억울하게 굴다니? 원, 참.”      악처는 퉁사발눈으로 종호의 표정을 핼끔 훔쳐보며 지껄여댔다.      “그래요. 하루 밤 부부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우린 조강지처 아닌가요? 부부간에 무슨 원쑤 졌는가요? 관건적인 시각엔 그래도 자기 안해를 보호할 거죠?”     종호는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뭐? 조강지처? 퉤! 네년은 무대랑한테 독약을 먹여 죽인 반금련이야!  세상에 둘도 없는 악처,  네년은 한평생 날 사기쳤어! 날 속이고 류덕재하고 살아서 려향까지 낳지 않았는가? 아직도 누굴 속이려고 들어?)     종호는 괘씸한 생각 같아선 귀썀을 한대 찰싹 갈겨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내심을 드러내 보여서는 안되였다. 그는 어떻게 하나 꾹 참고 류려평을 얼리고 닥쳐서라도 리혼수속을 이끌어내야 했다.     류려평은 무서운 주산알이었다. 때문에 종호는 리해득실을 따져가면서 류려평을 손을 들게 해야 했다.     “당신은 유일한 희망이 무남독녀 류려향이 아니오? 그런데 그 재산이 려향 걸로 될 거 같소? 리혼하지 않으면 어림도 없다는 걸 알아두오.”     “류려향이라니?”     류려평은 태연자약한 척 하면서 부정축재에 대한 말은 꺼내지도 않고 왕청 같은 말을 지껄여댔다.     “불시에 왜 리려향을 류려향이라고 지껄이는가?”     종호는 허위로 포장된 더러운 악처의 옷을 와락와락 벗겨버렸다.     “려향이 원래 류씨네 딸인데 어째 이상하오? 당신 말처럼 려향이 전주 리씨네 딸이 되기보다 한고조 류방네 후손이 되면 얼마나 좋소? 당신네 류씨네 더러운 족보에 올리면 또 기적이 아닌가?”     류려평은 제 쪽에서 도적놈이 “도적이야!” 하는 적반하장 격으로 떠들어댔다.     “아니, 무슨 미친 소릴 줴치오? 지금 려향은 내 바람 써서 낳은 딸이란 말이오?”    종호는 한술 더 떴다.    “당신이 젤 잘 알잖소? 이미 전번 면회 때 려향을 시켜서 DNA검사까지 하게 하잖았소?”     순간 류려평은 등곬에 소름이 쫙 끼쳤다.     (아니. 저 놈이 저걸 어떻게 다 알아? 이젠 끝장이야. 저 놈이 구치소 놈들을 매수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알겠는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낮게 한 말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저 놈이 또 썰매떼기 하는 거야.)     류려평은 인차 침착성을 회복하고나서 물었다.     “그래 리혼하면 려향의 성을 우리 류씨네 성으로 고치게 할 예산인가?”     “내 새끼 아닌데. 왜 우리 신성한 전주 리씨 성을 타게 하겠소? 당신네 류씨네 더러운 족보에 올리오.”     류려평은 철면피하기로 짝이 없었다. 낯짝이 두껍기로 돼지 언덩짝 같았다.     “그렇게 하기오. 이제부터 려향은 리려향이 아니라 류려향이란 걸 알어.”    종호는 쓴 웃음을 지으며 류려평을 쏘아보면서 조소했다.     “류려평, 류려향, 진짜 에미 딸인지? 자매간인지?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겠구나. 이제 색마 류덕재 행장한테 걸려들면 또 애비 딸인지, 처제와 처형 관계 되겠는지도 몰라. ㅋㅋㅋ.”     류려평은 벌떡 일어나 쇠고랑이를 찬 손을 휘둘러 종호를 칠 상 했다.     “누굴 모욕해?! 네놈이 감히 우리 한고조 류방의 후대를 릉욕해? 제 명에 썩어질 거 같아?”     종호는 류려평을 손으로 찌를듯이 손가락질해대며 을러멨다.     “건 널 두고 하는 소리야. 지금까지 살아온 걸 생각해 봐라. 네년이 그런 소리 듣지 않게 됐는가? 세상 오누이 사이에 바람 피워 애까지 만들어놓고, 창피한줄도 몰라? 이 세상에서 대갈 쳐들고 살 수 있을 거 같아? 내 창피해 못 살겠다.네 같은 걸 이때까지 안해라고 믿고 산 내가 바보지. 원, 참.” 악처는 더러운 몰골이 다 드러났다. 이젠 불여우의 긴 꼬리를 더 숨길 데도 없게 됐다.     악처는 머리를 툭 떨어뜨리더니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었다.     악처 머리 속에서는 우뢰가 꽈르릉 치고 번개가 번쩍였다.     그녀는 베아링처럼 속궁리를 굴렸다.     (난 이젠 끝장났어. 난 죽든지 말든지, 한평생 감옥에서 살든지 말든지 관계없어. 허나 려향만은 내 대신 향수하면서 살게 해야 해.      그런데 저 바보 내 밑바닥을 다 파 본 거 같아. 이래서 류덕재 그랬겠다. ‘젤 위험한 적은 곁에 있다.’ 그래서 류덕재는 저 놈을 죽여 살인멸구하라고 날 한국에 보냈는데. 저 놈을 죽이지 못한게 후회막급이야. 진짜 큰 후환이야. 려향의 앞날을 위해 저 놈을 죽여버려야 했는데. 이걸 어쩌는가?)     그때 종호가 악처한테 정색해 말했다.     “마지막으로 권고하는데. 내 리혼하자고 할 때 리혼하기오.”     류려평은 실오리만한 희망의 끈을 놓칠 수 없었다.    “당신은 마음씨 착하지 않고 뭐요? 리혼하더라도 려향은 해치지 않지?”     종호는 바로 앉으면서 똑똑히 말해두었다.     “길러준 정이 있는데 왜 려향을 해치겠소?”    류려평은 려향의 앞날을 위해 타협하기 시작했다.    “그래요. 길러준 아버진 양아버지 아니고 뭐요? 리혼해도 우리 재산을 려향한테 넘겨주는게 옳지 않소?”    종호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도 알지 않소? 난 이제껏 재물엔 털끝만치도 관심없이 살아왔소. 당신 전부 인생을 어디다 어쨌든지간에 난 관심이 없소. 전번에 리혼청구서에 밝힌 것처럼 다만 46평방메터 짜리 집만 내 가져야겠소."     여탐관은 픽 코웃음쳤다.     "리종호 사장님, 재산이 참 많군요. 제 노릇도 못하는 바보 같은게. 고까짓 쥐 구멍 같은 집도 재산이라고 옴니암니 따져? 리혼하면 걸레도 가위로 베서 나누는 구두쇠도 있다더니. 참, 당신 가소롭기 짝도 없어!"    종호는 정색해 엄중경고를 했다.    "그 집은 내 정신로동의 대가 원고료로 산 집이니까. 난 아주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기념이야. 허나 넌 집이 아무리 몇채 돼도 모두 시한폭탄인줄 알아라.”    류려평은 퉁사발눈이 화등잔이 돼 횡설수설했다.    “당신 지금 날 위협해? 혹시 내라는 긴 꼬리를 잘라버리자고 리혼하려는 건 아닌가?”    종호는 더 길게 말하기도 싫었다.     “어떻게 생각하든 다 좋아. 당신도 머저리는 아닌데, 려향의 앞날을 생각해도 그렇고 모든 걸 생각해 봐도 리혼하는게 좋을게오. 이젠 애들처럼 떼질쓰지 마오. 리혼하는데 동의하지?”     순간 류려평의 머리 속에서는 번개처럼 주산알이 튕겼다. 아무리 주산알을 요란하게 튕기면서 따져 보아도 리혼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 들어섰다.    류려평은 희죽이 웃기까지 하면서 목구멍에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리혼에 동의하오.”    종호는 벌떡 일어나며 한어로 말했다.    “그럼 당장 민정국에 가서 리혼수속을 하기오.”    류려평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는 량옆에서 자기 팔을 딱 잡은 여경들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발목에 쇠사슬을 차고 어디로 가? 창피해 죽겠다.”    여경이 날카로운 눈길로 류려평을 쏘아보았다.    “창피한줄 알면 왜 그런 죄를 저절렀는가?!”    종호는 여경들 보고 부탁했다.    “김호 대대장을 불러주겠소?”    이윽고 김호 대대장이 소회의실에 들어섰다.    종호가 김호 대대장한테 말했다.    “리혼수속을 하러 민정국에 피뜩 갔다가 와야겠소. 류려평이 창피해하는데. 발목의 쇠사슬만 풀어주면 안되겠소.”    그러자 김호 대대장은  여경들한테 시원히 말했다.     “손목에만 쇠고랑이를 채워가지고 민정국에 가면 되오.”    여경장은 그때를 기다렸다는듯이 류려평의 발목에 걸린 묵직한 쇠사슬을 풀어주면서 중얼거렸다.     “아무리 죄수래도 인권과 자존심을 지켜줘야지.”    김호 대대장은 여경들과 함께 경찰차에 종호와 류려평을 싣고 민정국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는 이제야 리혼 딜레마에서 서서히 해탈되는 감을 느끼었다. 아니, 새 세상이 활짝 열리는 감이 들었다. 순간 무엇 때문인지 예순도 넘은가슴마저 몹시 설레이었다. 그는 저도 몰래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러나 그의 해탈감도 잠시뿐이었다. 불현듯 그의 눈 앞에 불여우의 긴 꼬리가 디룽디룽 걸려 그네를 뛰는 것 같아 또 다른 고민의 심연에 빠져들어가는 감이 들어 저으기 괴로웠다.            XX                                      XX                                 XX          저자 주:       채화순선생님 댓글     김장혁소설가님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짬이 나는대로 선생님의 대하소설 "황혼"을 보고 있습니다. 보는 잡지도 많지만 선생님의 소설에 마음을 더 빼앗깁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좋은 글로 우리 조선족 후대들에게 자랑거리를 남겨주세요.
528    대하소설 황혼 제4권(71) 리혼 딜레마 김장혁 댓글:  조회:253  추천:0  2024-11-06
     대하소설 황혼 제4권            김장혁            71. 리혼 딜레마       종호는 뜻밖에 가옥소유증 리스크에 덜컥 걸려 리혼 딜레마에까지 시달려야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리혼수속은 언제든지 꼭 넘어야 할 아리랑 고비 아닌가? 리혼수속을 하지 않고선 집도 팔 수 없다.)     종호는 택시를 잡아타고 민정국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는 혼인등록처에 가서 여직원한테 신분증과 리혼청구서를 내밀었다.     “리혼수속을 해 주십시오.”    여직원은 신분증과 리혼청구서를 받아 보더니 의아한 눈길로 종호를 쳐다보았다.    “대상이 아직 오지 않았습니까?”    종호는 뜻밖의 물음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시끄럽게 됐구나.)    이윽고 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특수사정이 있어 오지 못했습니다.”    여직원은 신분증과 리혼청구서를 되돌려 주면서 쌀쌀하게 말했다.    “리혼 대상자를 데리고 와야 수속할 수 있습니다.”    “아니, 특수사정이 있어 오지 못합니다. 이 리혼청구서를 보십시오. 이미 상대방에서 리혼하는데 동의했습니다.”    종호는 리혼청구서를 내들면서 말했다.    “여길 보십시오. 류려평은 리혼청구서에 싸인도 하고 지장도 찍지 않았습니까? 왜 리혼수속 안 됩니까? 리혼수속이 이렇게 복잡할 줄은 몰랐습니다.”    여직원의 태도는 견정했다.    “그래도 될수 있는 한 본인이 와야 합니다. 대상이 어째 못 옵니까? 무슨 특수사정이라도 있습니까? ”    종호는 난처한대로 솔직히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옥에 갇힌 죄수 돼서 오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감옥당국에 말해서 데리고 와야 합니다.”    여직원은 종호의 신분증과 리혼청구서를 번갈아보면서 쌀쌀하게 말했다.     “이걸 보십시오. 이게 누구 싸인인지. 지장인지 누가 증명할 수 있습니까? 지금 결혼 사기, 리혼 사기 너무 많아서 우린 리혼수속에 심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대방 신분증도 없잖습니까? 바꿔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상대방이 없는데 리혼수속을 해주면 후에 말썽이 생기면 어쩌는가요?”    그러건 말건 종호는 계속 들이밀었다.    “아니, 상대방 없이도 법원에서는 리혼을 결석판결한 일도 있던데… 민정국에서는 어째 안 된다고 이럽니까?”    녀직원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심하게 설명했다.    “법원에서 결석판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전에 법정에 리혼소송을 하고 국가등록번호 있는 신문이나 잡지에 서면으로 상대방한테 리혼판결법정에 나오라는 공지광고를 내야 합니다. 광고를 낸지 석달 동안 기다려도 상대방이 응대도 하지 않으면 법정에서 리혼을 결석판결을 할 수 있습니다. 손님이 법정에 리혼소송을 하든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혼수속이 이렇게 복잡할줄은 몰랐습니다.”    “그래 한 가정을 유지하는가, 해체하는가 하는 관건적인 일이 그렇게 간단한줄 압니까?”    종호는 석달이나 기다릴 수 없었다.       (법정에 리혼소송을 했다간 한지에 방아를 걸겠다. 언제 집을 판단 말인가?)    그는 부득불 민정국에서 리혼수속을 계속 하기로 했다.     “제가 대상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기다려주십시오.”     여직원은 리혼청구서를 되돌려주면서 말했다.     “그러세요. 그래도 법원보다 여기서 수속하는게 빠를 겁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종호는 말을 마치자 자리를 떴다.     그는 만나기 싫은대로 악처를 또 찾아가야만 했다. 악처가 떠오르자 그는 온 몸에 소름이 끼쳐 앓음소리까지 다 냈다. 진짜 악처를 생각만 해도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종호는 단위 인사과에 가서 리혼소개신을 떼 가지고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는 곧추 망아산 기슭 소나무 숲 속에 자리잡은 구류소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는 달리는 택시에서 핸드폰을 꺼내 김호 대대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김대대장이오? 내 리종호요. 바쁜데 자꾸 찾아 미안하오. 말하기 창피한데. 내 리혼수속을 해야겠는데. 류려평이라고 있잖소? 양, 맞소. 그 녀자가 내 녀편네요. 며칠 전에 한국에서 인도돼 온 그 녀자, 옳소.  류려평을 구류소에서 구인해 데리고 민정국에 가서 리혼수속을 하면 안 되겠소? 된다고? 고맙소. 내 지금 집을 팔아야 되겠는데 류려평을 데리고 가옥관리국에도 가야 되겠소. 되겠소? 양, 부부간이 다 가지 않으면 팔 수 없다고 합데. 양? 된다고? 고맙소.”     종호는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었다.     대학생 시절에 실습생으로 가서 몇시간도 배워주지 못했지만 자기를 스승으로 여기는 김호 대대장이 마음 속으로 고마웠다.     원래 종호는 김호와 말해 일이 안되면 박동묵 국장을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김호 대대장이 쉼게 대답하니 시름놓았다.     그는 핸드폰을 다시 꺼내 들었다.     “김대대장, 인차 구류소에 도착하오. 경찰을 시켜서 류려평을 구인해 전번 그 소회의실에 데려다 줄 수 있겠소?” 핸드폰에서 김호 대대장의 씨원씨원한 목소리가 들렸다.     “예, 알았습니다. 류려평을 당장 소회의실에 데려가겠습니다.”     “고맙소.”     “리선생님, 그러잖아도 선생님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 찾아 뵙자고 했는데. 오늘 참 잘 됐습니다.”     종호는 핸드폰을 받으면서 정색했다.     “무슨 일이오. 백가지라도 부탁하오. 내 할 수 있는 일이면 꼭 도와 줄게.”     “네, 감사합니다. 오시면 만나뵙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양, 그렇게 하기오.”     종호는 핸드폰을 넣으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윽고 종호는 철조망을 두른 높은 토성에 펑 뚫린 구류소 대문 앞에 이르렀다.     대문 앞에는 벌써 김호 대대장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번에 처음 왔을 때와는 달리 접대하는 격이 훨씬 올라갔다.     “리선생님, 반갑습니다.”     김호 대대장은 종호를 반갑게 인사하면서 마중했다. 똑마치 공안국 상전이나 마중하는듯이 의전과 례의를 갖추었다.     “바쁜데 자꾸 찾아서 미안하오.”     종호는 김호 대대장의 손을 잡아주면서 송구한 인사말을 건넸다.     “천만에 말씀을 다 합니다. 저는 선생님과 같은 로기자 선생님을 모신 것으로 해 영광입니다.”     김호 대대장은 종호를 모시고 소회의실에 들어갔다.     “당신 어째 또 왔는가?”     갑자기 류려평이 쏘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악처는 쇠고랑이를 찬 손을 들어 휘두르며 고함쳤다.     “내 이런 꼴을 신문에 내자고 왔어?! 뭘 하려고 또 왔어?! 보기도 싫어!”     “꼼짝 말엇!”     여경들은 류려평의 량팔을 꽉 붙잡아 꼼짝달싹 못하게 제 자리에 꽉 눌러 앉혔다.     종호는 깜짝 놀랐다.     류려평의 발목에도 굵다른 쇠사슬이 채워져 절그럭거리지 않겠는가.     (보통 중죄수 아니면 발목에까지 쇠사슬을 채우진 않는데. 진짜 죽을 죄를 졌는 모양이구나.)     종호는 창피해 김호 대대장한테 눈짓했다.     김호는 여경 류기와 김천선한테 류려평을 잘 단속하라고 눈짓하고 나서 나갔다. 김호는 류려평은 여경 류기의 종친고모라는 것을 모르고 류려평을 압송하고 감독하게 했던 것이다.    류려평은 류기한테 찔끔 눈짓하더니 우쭐해 빈정거렸다.     “좋긴 좋구나. 나는 당장 죽게 됐는데. 네놈은 그 잘난 사장 꼬부랭이느라고 경찰들을 다 시켜 날 치죄하는구나.”     류기는 측은한 눈길로 종친고모 류려평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이슬이 맻히기까지 했다.     종호는 류려평이 지껄이는 말에는 개이치도 않고 단도직입했다.     “리혼수속 때문에 찾아왔소.”     “쳇,”     류려평은 단통 코웃음쳤다.     “누구 좋아하라고 리혼해? 난 리혼 안 해! 전번에 비행기에서 말했잖아. 난 죽어도 리혼 안해?”    종호는 집을 팔려고 리혼수속하자는 말은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어째 그렇게 변덕스럽소? 전번에 한국 구치소에서 리혼청구서에 지장까지 찍어놓고. 이제 와서 해뜩 나누우면 어쩌오?”     “픽! 다 죽게 됐는데. 네놈이 새파란 계집년과 재혼해 잘 살는 거 보자구 리혼해? 꿈도 꾸지 말라. 난 저승에 가도 악귀로 돼 너네 년놈들을  물어뜯어놓을 거야. 뼈다귀도 남기지 않고, 씨, 다 콱 썩어지기나 해라.”     종호는 짐작한대로 그저 리혼해달라고 졸라대서는 안되겠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미리 궁리해둔 수를 쓰지 않으면 리혼 딜레마에서 헤여나오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호는 바위돌처럼 퍼러덩덩하게 굳어진 험상궂은 악처의 낯빤대기를 보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길게 내쉬었다.                         XX X           XXX         저자 주:     문정 작가님 격려의 댓글:     안녕하세요 김 작가님      대하소설 잘 읽고 있습니다 비록 매일 읽지는 못하지만 읽을 때 마다 큰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필력은 물론이거니와 세심한 관찰, 풍부한 상상력, 생동감 넘치는 비유등이 인상 깊었습니다.     실로 대단합니다. 시를 몇편 써서, 수필을 몇개 써서 작가협회에 발을 들여놓은 «작가»와 비할 때 소설가들은 차원이 다른 작가라고 봅니다 특히 김작가님처럼 장편을 감나무에서 감따듯 자꾸자꾸 따제끼는 다산작가들은 실로 위대하다고 봅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는 고향이 梅河口인데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교원질하며 박선석소설가와 교제를 하며 그분의 도움으로 87, 88년에 단편소설 2편을 발표하였는데 그후 결혼을 하고 연변에 조동되여오면서 여러가지 원인으로 필을 놓았다가 3년 전부터 문학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소설은 엄두도 못 내고 시를 몇개 써서 연변작협에 겨우 가입하였습니다. 소설공부를 계속 견지했더면 나도 장편소설은 몰라도 중편소설 몇개는 썼을 텐데, 구천에 계시는 박선석작가님께 미안합니다     소설공부를 끝까지 견지하지 못하고 도주병이 되여 평생 한으로 남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 싶지만 나이를 먹고 여러가지 질병이 있어 여건이 허락 되지 않습니다     김작가님 왕성한 창작정력이 정말 부럽습니다. 계속 건강, 건필하십시요.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527    대하소설 황혼 제4권(70) 바보 사장과 그녀 김장혁 댓글:  조회:177  추천:0  2024-11-05
     대하소설 황혼 제4권               김장혁        70. 바보 사장과 그녀         집구매녀 박선영은 집에 돌아와서도 가옥소유증을 변경하지 못한 일로 해 속이 불안했다.      (이게 뭐야? 집값을 주고서도 새 가옥소유증을 가지지 못하다니? 참, 그렇게 복잡한 집인줄 알았더라면 사지도 말 걸 그랬잖아? 참, 이 일을 어쩌면 좋아?)     그녀는 점심을 대충 먹고 침대에 힌들 들어누워 천정 한 곳을 응시하였다. 그녀의 머리에는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집 주인이 신문사 사장이란 말을 딱 곧이 들어 되겠는가? 그러다가 집값을 떼우면 어쩌지? 그렇찮아도 숱한 돈을 떼웠는데. 또 빚구렁텅이에 빠지면 어쩌지?)    여기까지 생각하자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되겠다. 시원히 신문사에 가서 알아봐야겠어. 내 눈으로 리종호 사장이란 사람이 신문사에 있었는가 알아봐야 해.)     그날 오후, 그녀는 택시를 잡아타고 진짜 신문사에까지 곧추 달려갔다.     그는 당직실에 물어보고 곧추 사장실에 올라갔다.     김사장이란 분은 그녀한테서 사실경과를 들어본 후 이렇게 말했다.     “리사장네 그 집을 잘 샀습니다. 지금 시세에 19만원에 어떻게 그런  집을 삽니까? 리사장은 우리 신문사에서 청렴하기로 소문난  로사장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퇴직했는데도 그런 콧구멍만한 집 밖에 없잖습니까?  리사장은 절대 남의 걸 공짜로 얻어먹는 사람이 아닙니다. 리사장은 명예를 중히 여기고 남을 돕기를 즐기는 마음씨 착한 분입니다. 새 시대에 참 보기 드문 훌륭한 간부입니다. 그는 돈 따위는 따지지도 않고 남을 돕는 착한 분입니다. 진짜 새 시대에 법이 없어도 살 사람입니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집구매녀는 머리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그럼 사장님 말씀을 믿고 기다려 보겠습니다.”    김사장은 한마디 보탰다.     “다만 결혼증은 좀 시간이 걸릴 거 같습니다.”     “왜?”     “그저 혼자 알고 있으십시오.  금방 리종호 로사장이 리혼소개신을 떼려고 신문사에 왔다가 갔습니다. 그런데 리사장은 안해 복이 없어 그렇게 됐습니다. 지금 한창 리혼수속을 하는 중입니다.”     집구매녀는 어이없어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아니, 부사장까지 했다는 분이 어쩜 그렇게 처사합니까? 결혼증도 없이 어떻게 집을 팝니까? 리사장을 믿다간 한지에 방아를 걸겠습니다.”    김사장은 아주 내심하게 일깨워주었다.    “결혼증 대신 리혼증과 재산분할증명서만 있으면 집판매는 가능합니다. 그 집은 우리 신문사에서 지은 집인데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 집을 지을 때 내 후근을 책임진 사장인데 그 집 건축을 내 총책임졌댔습니다. 때문에 그 집을 잘 압니다. 그 집은 구조도 좋고 양광도 아주 잘 들어옵니다. 진짜 눅게 잘 샀습니다. 가옥관리국에 가서 그 집을 잘 문의해 보십시오.”     그제야 그녀는 해시시 표정이 바뀌는 것이었다.     “네- 가옥관리국에서도 그렇게 말하긴 합디다.”     그녀는 김사장한테서 리종호 부사장의 말을 듣고나서 가옥소유증 리스크가 단통 해소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안도의 숨을 호- 내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김사장과 리사장을 믿고 가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사장은 그녀를 사무실 문 밖까지 바래주었다.      그녀는 김사장은 같은 신문사 사장이 돼 그러는지 리종호 사장과 그 집을 너무 포장해 말하는 같은 감도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한 단위라도 리종호 부사장이 저런 평가를 받기는 쉽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다.      보통 모난 돌에 정이 가지 않는가. 누가 어떻다 하면 질투하고 시기하고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헐뜯지 않는가. 그러나 리종호 부사장은 확실히 신문사에서 위신이 높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녀는 마음 속으로 믿을만한 사람의 집을 잘 샀다는 것을 재삼 느꼈다.      다른 한편 선영은 집 주인은 경제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제 노릇을 잘 못하는 간부라고 여겼다. 아니, 어떻게 보면 현시대 바보 사장 같아 보이었다.      (어쩜 신문사 부사장이란 사람이 46평방 밖에 안되는 콧구멍만한 집 밖에 없어? 사장 쯤 되면야 보통 집 몇채는 있다던데. 권력을 쥐기만 하면 숱해 얻어 처먹는다던데. 참, 리사장은 어쩜? 진짜 현시대 바보야!)     그러나 그녀는 이 세상에 아직도 그렇게 “제 노릇도 잘 하지 못하는”  그런 청렴한 로간부도 있다는 것을 어찌 다 알고 있겠는가.     아니,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모를지도 모른다.     (신문사 사장이라는 분이 저렇게 제 노릇을 못하니 안해도 리혼하고 달아났겠지?) 선영은 리종호 부사장을 두고 별 궁리를 다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한국에 있는 여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언니, 이젠 그 집을 언니 집으로 만들었겠지? 얼마나 좋겠소?”     선영은 대뜸 화를 냈다.     “이 집을 사 놓고 애나 죽겠다.”     “어째 그러오?”     “오늘 오전이면 새 가옥소유증을 손에 쥐겠는가 했는데. 글쎄 가옥관리국에 갔더니 어쩌는지 아니? 집 주인의 안해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고 수속을 해주지 않더란 말이야. 리혼증을 떼가지고 안해를 데리고 와야 수속해준단다. 진짜 가옥소유증도 변경 못해 난 딜레마에 빠지고 말잖았겠니? 참 재수 없어.  어쩜 집을 고르고 고르다나니, 재수 없을라니, 딱 리혼하는 집의 집을 사자고 달려들었는지 몰라.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를 다친다더니? 원, 참.”     “집 주인은 뭐 하는 사람이라오?”     “금방 신문사에 가서 뒷조사를 해 보니 집주인은 신문사 부사장을 지낸 로간부라지 않겠니? 아마 제 노릇도 잘 못하는 시라소닌 거 같아. 어쩜 사장이란게 요런 쪼꼬만 집에서 다 살았니? 그러니 안해도 리혼하고 달아나겠지, 화목하지 못하기에 리혼하겠지?”     “뭐? 그 집 주인은 신문사 부사장이라고?”     “응, 그저 기자 아니고 신문사 부사장이고 정교수급 기자란다. 그런데 집형편은 구차한 거 같아. 일곱살 짜리 애 심장수술비용을 마련하자고 하나 밖에 없는 이 집을 팔자고 그런다잖겠니?”     “아니, 그 집 주인은 혹시 리종호라는 분 아닙데?”     “옳은 거 같다. 내 다시 보자. 여기 가옥매매계약서하구 집값령수증쪽지를 볼게. 리종호 맞구나. 아는 사람이냐?”     “아이유, 언니 그 분 집을 참 잘 샀소. 리종호 사장은 마음씨 참 착한 분이오. 잘 못 샀을가 봐 근심하지 마오.”     선영은 여동생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영아, 그 분을 어떻게 아니?”     “그저 알다뿐이겠소? 여기 한국에 있을 때 내 그 분 간병을 했댔소. 그 분은 지금 내 친구 나영이 있잖소? 나영이 아들애 성림을 구하려고 자기 집을 팔려고 그러는 거 같소.”     “오- 뭐, 일곱살 밖에 안되는 애 심장수술해야 한다던데. 난 처음엔 리사장네 손주나 되는가 했더니. 참, 알고 보니 동네집 애구나. 동네 집 애를 구하자고 하나 밖에 없는 제 집까지 파는 판이구나. 제 정신 있니? 진짜 제 노릇을 못하는 나그네구나. 그집 안해 저런 나그네 믿고 어떻게 산다니? 그래기에 안해도 리혼하고 달아났겠지. 제 노릇을 잘 못하는 그런 바보를 나그네라고  믿고 어떻게 살겠니? 내라도 열번은 리혼해버리겠다.”     그러나 여동생 지영한테서 들려오는 판판 다른 말일줄이야.     “언니는 모르고 하는 소리오. 남의 애도 구하자고 제 집을 파는 그런 사람은 얼마나 착한 사람이오. 얼마나 인성이 살아 있는 사람이오? 자기 밖에 모르는 그런 자사자리한 사람보다 퍽 낫소. 리사장님은 마음이 뜨겁고 착한 사람이오. 그런 사람은 자기 처자를 더욱 사랑하고 아낄게오.”     선영은 코웃음쳤다.     “그런데 어째 그 집 안해는 뺑덕에미처럼 리혼하고 달아난다니?”     “언니, 다 그 집 뺑덕에미 때문이오. 리사장은 조강지처라고 얼마나 그 녀편네를 아꼈는지 아오? 그 녀편네는 종친오빠하구 바람 피운 죄 드러날가 봐 리사장을 독약을 먹여 안락사를 시키자고 했소. 그러나 리사장은 조강지처라고 경찰이 수사할 때  녀편네 한 짓이 아니라고 방패를 들어줬소.”      “진짜 상상하기 힘든 사람이구나. 진짜 바보야. 그런 녀편네를 다 보호해?”      “언니, 잔말 말고 리사장을 믿고 그 집을 꼭 사오.”     “그래. 야, 너도 제 노릇이나 잘 해라. 여경들이 나영을 압송해 비행기에서 내리는 장면이 티비에도 나오더구나.”     “오. 그랬구만. 리사장네 녀편네도 나영과 함께 중국에 압송됐답데.”      “응- 그게 리사장 녀편넨가?”      “리사장네 녀편네는 리사장을 살해하려한 살인미수죄에 경제문제도 많답데. 언니, 내 성림 데리고 큰 길을 건너 가야 하오. 언니, 한가지 부탁하기오. 국현을 찾아서 내 리혼하자고 하더라고 전해주오. 그리고 시간 나지면 드문드문 슬기를 좀 찾아 봐 주오. 걔를 한국에 데려내오든지. 바람둥이 나그네한테 맡겨서야 사람을 만들겠소? 난 슬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거 같소. 후에 다시 말하기오.”      “응, 그래, 내 그 바람둥이 나그네와 슬기를 찾아볼게. 후에 다시 보자.”     선영은 핸드폰을 놓으면서 세상은 넓고도 졻은 요지경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그녀는 침대에 훌러덩 들어누워 천정 한 곳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호- 내쉬었다.
526    대하소설 황혼 제4권(69) 가옥소유증 리스크 김장혁 댓글:  조회:157  추천:0  2024-11-04
    대하소설 황혼 제4권           김장혁              69. 가옥소유증 리스크       따르릉 따르릉.     핸드폰 벨이 자지러지게 울렸다.    종호는 려인숙 세면실에서 치솔질을 하다가 말고 핸드폰을 열었다.    “여보세요. 저 집구매자인데요. 나머지 집값 14만원을 준비했는데요. 오늘 가옥소유증을 변경할 수 있는지요?”    듣다 젤 기쁜 소식이 아닌가.     “네. 되고 말구요. 아마 가옥변경할 때 세금도 얼마간 내야 될 겁니다.”     “네? 세금이야 집을 파는 집에서 낼게지. 사는 쪽에서야 무슨 세금이 있는가요?”    종호는 내심하게 명확히 알려주었다.    “집판매 쪽이나 집구매 쪽이나 다 세금이 있습니다. 세금은 얼마 안되는데요. 각기 자기 낼 세금을 내면 공평합니다.”    “네, 그럼 그렇게 하지요. 어데서 만나겠는가요?”    “가옥관리국 2층 교역대청에서 만납시다. 신분증을 꼭 가지고 오십시오.”    “네, 알겠어요. 그 쪽에서도 가옥소유증이랑 필요한 요건을 잘 챙겨가지고 만나요.”    “예, 그렇게 합시다.”    종호는 미리 한국에까지 가지고 갔던 가옥소유증을 트렁크에서  찾아내 신분증과 함께 배낭에 챙겨 넣고 려인숙을 나섰다.    그는 택시를 잡아타고 가옥관리국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이윽고 그는 가옥관리국에 도착해 숨돌릴 새도 없이 계단식 엘레베터를 타고 2층 가옥교역대청에 올라갔다.     2층 가옥교역대청에는 집을 팔고 살 사람들로 발 디딜 곳도 없을 정도로 붐비었다.     종호는 인산인해 속에서 구매녀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쓸어보았다.     “주인님!”     그때 옆에서 한 여인이 부르는 소리 들렸다.     집구매녀였다.     종호는 오래 갈라졌던 녀동생을 만난듯이 기뻤다.     생글방글 웃는 그녀의 생김새도 어디서 본 적 있는 사람처럼 친절해보이었다. 걀죽한 얼굴이라든지 외까풀눈이라든지. 꽤나 이뻤다.     (어디서 봤던가? 잘 모르겠는데.)    종호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누구든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오느라고 수고했습니다. 저리로 좀 갑시다.”     종호는 그녀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가방에서 가옥소유증과 신분증을 꺼내 집구매녀한테 보이었다.     “잘 대조해보십시오.”    집구매녀는 한참 가옥소유증과 신분증을 대조해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맞구만요.”    종호는 한마디 더 일깨워주었다.    “신분증과 저의 얼굴을 잘 대조해보십시오. 저의 신분증이 맞는가 잘 보십시오.”    “맞겠지요. 뭐?”     말은 그렇게 해도 그녀는 혹시나 해 종호의 신분증의 사진과 종호의 얼굴을 여러번 번갈아 보았다.     그녀는 생글방글 웃으며 신분증과 가옥소유증을 돌려주었다.     “맞습니다. 어데서 사업하는지요?”     종호는 신분증과 가옥소유증을 다시 가방에 챙겨넣고 직업병처럼 기자증을 꺼내 내밀었다.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신문사에서 30여년 기자로 사업했습니다.”      “네- 기자시군요. 단번에 믿음이 가는군요.”     종호는 기자증을 받아 잘 챙겨넣고 말했다.     “먼저 집값을 카드에 넘겨 주겠습니까?”    그녀는 의아한 눈길로 치떠 보았다.    “아니, 가옥소유증을 변경한 다음 돈을 건네야 하지 않는가요? 어디 돈부터 받는 법이 있는가요?”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보세요. 보통 물건을 팔고 살 때 먼저 돈을 내고 물건을 가지지 않고 뭡니까?”    “네, 그래도 그렇지. 돈을 넘긴 후 가옥소유증을 변경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이 집을 팔 수 있는 집인가? 가옥소유증이 진짜인가 저기 가서 검사맞힌 후에 집값을 넘기면 어떤가요?”    “그게 좋을 거 같아요. 기자선생님이야 믿지만 이 세상엔 뜻밖의 사건이 너무 많지 않고 뭔가요.”    종호는 가옥소유증을 가지고 가옥변경수속 번호부터 잡으러 갔다. 거기에는 벌써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며 줄을 서 있었다.     한참 줄을 서서 기다려서야 종호 차례 돼 가옥소유증을 내밀었다. 직원이 가옥소유증을 보고 컴퓨터에서 검사해 본 후 매매수속 번호를 주었다.     종호는 이번에는 집구매녀를 데리고 함께 가옥서류창구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집구매녀는 의아한 눈길로 종호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인데요?”    “가옥서류실인데 이 가옥은 판매할 수 있는겐가 검사합니다.”    “판매 못하는 가옥도 있는가요?”    종호는 가옥소유증을 꺼내 짚어 보이면서 설명했다.    “네. 가옥소유증 여기 ‘권리성질’란에 이렇게 ‘出让/商品房’이라고 찍혀 있으면 팔고 살 수 있는 가옥입니다. 그렇찮으면 팔지 못합니다.”    “왜 그런가요?”    “‘出让/商品房’은 이 집은 개발상이 집을 지을 때 토지세를 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걸 잘 알아보고 집을 사야 합니다.”    그녀는 입을 쫙 벌렸다.    “오- 그렇군요. 이때까지 아무 집이나 다 살 수 있는가 했더니. 알고 보니 문서짝도 많구만요. 오늘 기자네 집을 사면서 많이 알게 됐습니다. 감사해요.”     종호와 집구매녀는 온 오전 기다려서야 차례 됐다. 종호는  가옥서류실창구에 가옥소유증과 자기 신분증을 들이밀었다. 이윽고 녀직원이 컴퓨터에서 그 가옥소유증에 따라 가옥서류를 찾아 대조해보았다. 이윽고 가옥매매허가서에 도장을 꽝 찍어 주었다.    “이 집을 살 수 있는가요?”    집구매녀가 묻는 말에 녀직원은 종호와 집구매녀를 번갈아보며 이렇게 명확히 대답했다.    “상품집이기에 살 수 있습니다.”    “감사해요.”    그녀는 걀죽한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이젠 시름놓고 집값을 넘겨줄 수 있겠습니까?”    “네. 당장 집값을 넘기지요.”     “그럼 부근에 있는 중국은행에 갑시다.”     “네. 오늘 일이 잘 되자고 그랬는지. 면바로 중국은행 카드에 저금해 놨어요.”     종호는 집구매녀를 데리고 부근의 중국은행에 찾아가 인차 집값을 건네 받았다.     순간, 종호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이거면 이젠 성림을 구할 희망이 있게 됐다.)    그러나 인차 그의 이마에는 밭고랑 같은 주름살이 쫙 퍼졌다.    (요걸론 수술비용이 판 부족인데. 나영의 탐오금을 물어넣다나니 아직도15만원이 모자라는 건 어쩌지?)     그들은 다시 2층 가옥교역대청에 돌아와 차례를 기다렸다.     집구매녀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집값을 다 받았다는 령수증이라도 떼주세요."     종호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불시에 령수증을 어떻게 뗍니까? 이럽시다. 돈 받았다는 쪽지를 써주지요."     그녀는 미덥잖은 눈길을 보냈다.      종호는 그녀의 외가풀눈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펜을 꺼냈다.     "이제 당장 가옥소유증을 변경하겠는데 근심마오."     "네, 그러지요."      종호는 령수증이라고 쪽지를 쓰자고 그녀의 신분증을 들여다 보았다.     (박선영, 1970년생이라? 나와 띠동갑이구나.)     그녀는 집값을 문 령수증쪽지를 받아 꼼꼼히 여겨보고 핸드빽에 챙겨넣었다.     그녀는 무슨 일이 피뜩 떠올랐는지 또 한가지 물었다.     “어째 집의 사모님은 오지 않았는가요?”     “특수사정이 있어 오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특수사정이 있어도 그렇지. 집을 파는 일보다 더 중요하겠는가요? 외출했는가요?”    “네. 그런 일 있습니다.”    그녀는 종호가 말하기 불편해하는 눈치를 채고 더 캐묻지 않고 덤덤히 앉아 기다렸다.    점심 때 다 돼 그들의 차례가 됐다.     종호는 가옥교역창구에 가옥소유증과 신분증을 내밀었다.    녀직원은 가옥소유증을 보면서 컴퓨터에서 이것저것 보더니 종호를 내다보면서 물었다.     “이 가옥은 부부 공동소유인데요. 안해는 어째 오지 않았는가요?”     “특수사정이 있어 오지 못했습니다.”     “안해 가옥판매동의서나 신분증이 있는가요?”     “그런게 수요되는 걸 몰랐지.”    종호는 등곬이 다 서늘해졌다.     “안해 동의가 없인 이 가옥을 팔지 못해요. 두 분 결혼증도 필요합니다.”    “집을 파는데 결혼증도 필요합니까? 결혼증을 어디에 뒀는지 불시에 몇십년 전에 낸 결혼증을 어디에 가서 찾아옵니까?”    녀직원은 더 구구히 말하기 싫어 가옥소유증과 신분증을 창구로 훌 내보냈다.    “다음번엔 안해와 함께 결혼증도 가지고 오십시오.”    “이 일을 어쩌는가요?”    집구매녀는 혼비백산해 낯색이 새파래지었다. 그녀는 단통 미덥잖아 실눈을 지으면서 종호를 쏘아보았다.    “이런 걸 왜 사전에 말하지도 않고 집값부터 내라고 재촉했는가요?”    종호는 미안해 어쩔줄 몰라했다.    “죄송합니다. 사실 일곱살 밖에 안되는 어린애가 코로나에 급성심장병에 걸려 수술비용이 급히 수요돼 이 집을 급히 눅게라도 팔게 됐습니다. 너무 재촉해 미안합니다. 에미 없이 의지가지 없는 불쌍한 어린애를 구하는데 동참한 셈 치고 좀 기다려 주십시오. 필요한 리혼증이랑 요건을 인차 준비할 수 있습니다. 며칠 후면 가옥소유증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종호는 결혼증을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악처를 데리고 민정국에 가서 결혼증을 다시 내는 수도 없었다.    그는 피뜩 령감이 떠올랐다.    그는 녀직원을 보고 물었다.    “만약 결혼증 대신 리혼증을 가지고 오면 집교역 할 수 있습니까?”    “됩니다. 리혼할 때 이 집을 당신 개인 집으로 인정한다는 안해의 서면증명서가 있어야 개인이름으로 팔 수 있습니다. 좋기는, 리혼한 안해를 데리고 와서 당장에서 재산분할을 증명서게 해야 합니다.”    “오-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지.”    순간 종호는 눈 앞이 환해지는 감이 들었다.   그는 집구매녀한테 돌아서며 차근차근 일깨워주었다.    “근심말고 좀 기다리십시오. 리혼증이 인차 나오면 꼭 가옥소유증변경수속을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집구매녀는 아름차 발까지 동동 굴렀다.    “집값을 내랄 땐 그렇게 재촉하더니. 집판매요건도 채 갖추지 못했구만요. 아이유, 야, 참 시끄러운데. 짜증난다. 진짜 스트레스야.”    “미안합니다. 집을 판 경험이 없어서 그만 결혼증이나 리혼증이 필요한 걸 몰랐습니다.”    종호는 송구스러워 몸둘바를 몰라했다.    “근심말고 기다리십시오. 난 신문사 부사장 출신인데요. 내 인격으로 담보하겠습니다. 나는 정교수급 기자인데 한달 로임 만원 밑을  받습니다. 만약 가옥소유증을 변경하지 못하면 집값을 리자까지 얹어 돌려 드리겠습니다.”    “말이야 그렇게 쉽지요.  이 세상에 믿을게 몇입니까?”    “정 믿지 못하겠으면 신문사에 가서 물어보십시오. 이 리종호가 어떤 사람인가? 난 법에 어긋난 일을 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나는 남을 도와주면 도와주었지. 절대 남을 얼려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집구매녀는 의연히 미심한 눈길로 종호를 쳐다보았다. 아마 당장 새 가옥증을 받아 쥐려니 했는데  허탈감이 난 것 같았다.    종호는 가옥소유증을 꺼내 내밀었다.    “정 믿지 못하겠으면 이 가옥소유증을 먼저 가지고 있으십시오. 또 그 집이 있는데 근심할게 뭡니까? 집값을 물었으니 아직 수속하지 않았을뿐 실상 이미 당신 집이 된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집이 뭐 한날 한시에 날아나겠습니까? 근심마십시오. 꼭 며칠 새에 리혼증을 가지고 와서 변경해드리겠습니다.”    집구매녀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미 돈도 건넸는데. 이제 와서 다 쒀놓은 죽을 어쩌겠는가? 에라, 리사장을 믿고 기다려보자. 지체 높은 분이 고까짓 조꼬만 집을 메고 달아나겠느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낡은 가옥소유증을 받아 챙겨 넣으면서 말했다.    “될수록 빨리 서둘러 주십시오. 이게 어디 가옥소유증 리스크에 시달려서 살겠습니까? 진짜 짜증난다.”    종호는 집구매녀한테 재삼 사과하면서 부탁드렸다.    “네. 미안합니다. 제가 리혼증이랑 다 갖추면 련락드리죠. 그때 다시 여기 교역대청에서 만납시다.”    종호나 집구매녀나 다 가옥변경도 하지 못하고 온 하루 교역대청에서 헤매고나니 너나없이 허탈감이 들대로 든 것은 더 말할 필요없었다.  
525    대하소설 황혼 제4권(68) "저승사자"와 "카시모도" 김장혁 댓글:  조회:139  추천:0  2024-11-01
     대하소설 황혼 제4권             김장혁          68. "저승사자"와 "카시모도"       종호는 고요한 려인숙에 돌아와 침대에 맥없이 털썩 들어누웠다. 그는 두 손을 뒤더수기에 베고 누워 천정 한 곳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성림의 수술비용이 막막했다.     (내 집을 판대도 수술비용은 판판 모자라지 않는가? 설상가상으로 나영과 철석이 둘 다  감방에 들어가 인차 나올 거 같지 못하잖은가. 철석을 믿고 성림을 구한다는 건 한지에 방아를 거는 격이야. 나영이 심계국에 가져다 바치라는 탐오금도 가져가지 않고 기생놀이에 다 탕진한 거 봐라. 아가씨들 앞에서 통이 큰 거처럼 옷을 수태 사주고 몇백원씩 팁을 주고. 진짜 망종이야. 그런 놈 믿고 어떻게 성림을 구해? 나영도 그렇지. 그런 주색에 빠진 놈한테 성림을 맡기려고 부탁해? 한국에 나와 성림을 봐달라고 하다니? 참, 될 수 있으면 나영을 하루라도 더 빨리 감옥에서 나오게 해야 하는데.)     그는 빨리 자기 집을 팔아야 되겠다는 긴박감을 느꼈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종호는 세입녀한테 전화를 쳤다.    “여보세요. 집 주인인데요. 집값을 다 준비했는가요?”    세입녀가 죽는 소릴 쳤다.    “미안해요. 이재 집판매계약을 맺은지 사흘 밖에 안되는데요. 왜 그리  재촉하는가요? 세집살이 하는 제가 어떻게 그리 빨리 집값을 준비하는가요? 좀 기다리십시오. 가옥소유증이랑 기타 요건을 잘 준비해두고 내심하게 기다려 주세요. 한국에 나간 여동생과 오빠가 돈을 보내 올 건데요. 근심말고 전화를 기다리세요.”     종호는 별 수 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종호는 피뜩 철창 속의 불쌍한 나영의 보름달얼굴이 떠올랐다.     (철석이란 놈새끼 나영이 탐오한 5만원을 심계국에 바치지 않았잖은가. 아무리 다른 놈들을 적발해도 나영은 감형받기 힘들 거야. 이 일을 어쩌는가? 나영이 인차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는 날엔 불쌍한 성림은 어쩌는가?)     그는 포도알처럼 초롱초롱한 눈이 말똥말똥해 엄마를 기다릴 성림을 생각하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림을 구하자면 먼저 나영을 구해야 한다. 춘영이 한국에서 나영이 대신 성림을 보살피지만 이모와 엄마는 판판 달라. 성림인 모성애 없인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종호는 진짜 목숨 걸고 에메랄드를 구하느라고 애쓰던 등곱쟁이 바보 카시모처럼 놀기 시작했다. 그는 진짜 나영의 말처럼 카시모도 같은 바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카시모도 같은 바보들의 마음만은 더 뜨겁다는 걸 알아야 한다.    (안돼. 어차피 성림의 수술비용이 모자라는 판에 먼저 나영의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고 보자. 황차 성림이 수술하는 걸 나영이도 동의하겠는지 모를 판이 아닌가. 옳지. 성림을 구하자면 나영부터 구해야 해. 성림한테 어머니의 모성애를 안겨주자. )    종호는 나영 모자를 다 구하려는 일념으로 저금카드를 가지고택시를 잡아타고 은행으로 달려갔다.    그는 주저없이 전날에 세입녀한테서 받은 집판매예약금 5만원을 몽땅 찾아냈다.    그는 또 택시를 잡아타고 곧추 검찰원에 쏜살같이 달려갔다.    당직실에 가서 녀당직한테 기자증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신문사 기자 리종호입니다. 최혜영 고문을 부탁드립니다.”    녀당직은 어덴가 전화를 쳤다.     “최국장님입니까? 여기 리종호 기자가 찾아왔는데요. 네, 네? 신문사 리사장님이시라구요? 네, 알았습니다. 그럼 최고문께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녀당직은 전화를 놓자마자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안내했다.     “리사장님, 올라오시랍니다. 제가 2층 최고문 사무실에 모셔다 드리죠.”     여당직은 당직실 문을 열고 나왔다.     “바쁘겠는데 필요없습니다. 제절로 찾아 올라가겠습니다.”     그래도 여당직은 그를 2층 엘레베이터 쪽으로 안내해주었다.     그때 엘레베이터가 활짝 열렸다.     “리사장, 참 반갑소.”     아니, 글쎄 "저승사자"로 불리우는 최혜영 국장이 엘레베이터에서 나오지 않겠는가.     저승사자는 별명과는 달리 활짝 웃으며 오랜만에 만난 대학동기처럼 반갑게 마중했다.     “아니, 이제 만난지 며칠이라구 이러오? 최국장 바쁘겠는데. 마중까지 나오다니?”     최혜영 국장은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웃었다.     "천만의 말씀, 국내외에 유명한 기자 왔는데 마중도 안하면 뭐요?"     그녀는 종호를 안내해 엘레베이터를 타고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종호는 저승사자의 파 뿌리처럼 허연 머리를 보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쩜 빙장에서 은제비처럼 날렵하게 스케트를 타던 은영이 이젠 저렇게 늙었어? 뭐? 이전에 성호네 고향 서산에 가서 절벽에서 스키를 타고 날아내리던 은영이 맞는가? 참, 세월은 무정한 깍재야. 그 깍재로 썩썩 긁으면 그렇게 이쁘던 처녀도 파파 로파로 만들어보내는구나.)           복도를 따라 좀 가자 “고문사무실”이란 간판이 보였다.     “어서 들어오오.”     최혜영은 손수 커피를 타서 종호 앞의 차탁 앞에 놓았다.     “무슨 급한 일이 있어 여기까지 왔소?”     그녀는 종호가 십중팔구는 안해 류려평의 일 때문에 왔으리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종호는 왕청 같은 말부터 꺼내지 않겠는가.     “최국장, 내 요즘 알아보니 나영의 남편이 확실히 나영이 탐오한 5만원을 심계국에 바치지 않았더구만. 그런 나그네도 남편이라고 믿고  살아온 나영이 불쌍하오.”     최혜영 국장은 자기 안해 말을 안하고 나영이 말부터 하는 종호를 속으로 진짜 바보처럼 보여서 슬그머니 웃었다.     종호의 그 다음 말은 최국장을 더욱 놀라게 했다.     “내 나영이 탐오한 돈 5만원을 심계국에 가져갈가 하는데. 어떻소? 그럼 나영이 감형받을 수 있소?”     최혜영 국장은 의아한 눈길로 바보 같은 종호를 마주 바라보았다.     “물론 탐오한 돈을 바치면 나영은 관대처분을 좀 받을 수 있소.”    뒤이어 그는 종호한테 나직이 물었다.     “허물없는 동기친구기에 묻는 건데. 어째 나영한테 그렇게 딱 꽂혀 가지구 안간힘을 다 쓰오? 나영이 그렇게 구할 가치 있는 여자라고 보오?”     종호는 어글어글한 최혜영을 마주 보며 진정을 고했다.     “나영이 일곱살 밖에 안되는 아들애 불쌍해 그러오. 그 앤 지금 급히 심장수술을 해야 하는 판이오. 그런데 옆에 에미 없이 어떻게 사오? 나영의 어린 아들애는 엄마 모성애가 필요하오? 모성애 없는 애는 날개부러진 새에 불과하오. 기형적으로 자랄 수 있소. 그래서 나영을 극구 구하려고 그러오.”     최혜영은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종호 년편네 류려평이 야단치던 말을 들었는지라 한술 더 떴다.     “리사장의 사생활이지만 한마디 묻기오. 혹시 나영이 감옥에서 나오면 그 여자하구 재혼하자고 그러오? 동기니까 말하는데. 나영인 단정하지 못한 녀자요. 문화국 최정호 국장과도 살아서 임신해 낙태까지 했다오. 그런 녀자와 절대 재혼하지 마오. 리사장의 명예도 때묻을가 봐 근심돼 하는 말이오.”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건 아니오. 어떻게 딸 같은 나영하구 재혼하자오? 황차 나영도 동의하지 않을게구.”     그는 인차 뒷말을 이었다.     “난 다만 아들애를 참된 조선족애로 키우고 싶다는 엄마, 나영의 마음을 높이 샀을뿐이오. 나영의 아들애를 구하자면 에미부터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성림한텐 엄마 살뜰한 모성애가 필요하오. 나는 성림한테 엄마의 따뜻한 모성애를 안겨주려는 것뿐이오.”  최혜영 국장은 머리를 무겁게 끄덕이었다.     최혜영 국장은 로처녀여서 애도 낳아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같은 녀성으로서 엄마의 모성애에 대한 리해는 종호보다 못지 않았다.     “류려평은 전번에 기내에서 리사장과 나영을 중혼죄로 고발하겠다고 하지 않았소? 리사장은 류려평을 주의해야 하오.”    종호는 개의치도 않는 말투로 말했다.    “나와 나영의 관계는 동정에 토대한 순박한 관계일뿐이오. 우린 어려울 때 서로 도와준 것 밖에 없소.”     최혜영은 말이 나온바 하고는 미리 알아두려고 물었다.     “그런데 류려평은 리사장이 나영을 자기 세집에 데려다 함께 살았다고 야단치지 않고 뭐요?”     리종호도 류려평이 자기를 중혼죄로 고발하겠다고 한 이상 나영 사건 담당인 최혜영 국장도 제대로 알아두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나는 딸애와 함께 사는 셋집에 나영을 들어와 함께 지낸 적은 있소. 나영이 한국 냉면집 허보수한테 쫓기워나서 엄동설한에 트렁크를 끌고 지하철역에서 헤매니깐. 나영이 불쌍해 내 셋집에 데려다가 자게 했소. 대신  내 지하철에 가서 쪽잠을 잤소. 후엔 딸애 동의를 얻어  나영이 우리 부녀와 함께 한 집에서 살았소. 그러나 나는 나영을 딸처럼 생각했을뿐 그런 관계는 한번도 없었소.”     종호는 나영의 신상을 좀 알아보고 싶었다.     “나영이 말을 들어보면 문화국 최정호 국장이 더 큰 문제더구만. 나영이 뭘 적발합데?”    최혜영 국장은 정색하면서 말했다.    “리사장이 나영을 사상동원했기에 나영은 우리 수사에 협조해 수많은 문제를 적발했소. 문화국과 전람관 청사를 지을 때 최정호 국장 외에도 류려평부행장과  류덕재 행장의 미묘한 거래도 적발했소. 나영은 이제 형기가 훨씬 줄어들 수 있소.” “나영이 형기 줄어들면 얼마나 좋겠소? 성림이 애타게 엄마를 기다리는데.”     종호는 내심으로 기뻐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는 최혜영 국장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면서 귀띔해주었다.     “나영이란 그 넝쿨을 따라 류려평이랑 류덕재랑 최정호랑 들춰 나가면  커다란 뭔가 찾아낼 수 있을게오.”     최혜영 국장은 근심스러운 일도 있어 종호를 보고 물었다.    “류려평과는 어쩔 셈이오?”    종호는 더 고려없이 단마디로 대답했다.    “리혼할 예산이오. 이번에 고향에 돌아온 것도 실은 리혼수속을 하려고 들어왔소.”    최국장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런데 류려평이 전번에 기내에서 리혼해 주지 않겠다고 야단치던데. 그걸 보오. 류려평이 극구 리혼하지 않겠다고 나누우면 어쩌오?”    종호는 대수로워하지도 않았다.    “류려평은 리혼하겠다고 서면리혼청구서에 싸인까지 했댔소. 악처 같은게 리혼하지 않겠다고 떼를 써도 리혼수속은 가능하오.”    최헤영 국장도 머리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했다.    “법리적으로도 리혼은 정당하다고 생각하오. 민정국에서도 그렇지. 서로 감정도 없이 갈라 산지도 십여년이나 되는데 리혼시켜주지 않는다는 도리야 없지. 류려평을 구류소에서 구인해 데리고 민정국에 가서 얼마든지 리혼수속을 할 수 있소. 민정국에서 정 안되면 법원에 소송해 해결할 판이지. 류려평이 감옥에 있는 특수정황하에 근거해 리혼소송을 결석판결할 수도 있소.”     “고맙소. 리혼법리를 알려줘서.”     종호는 최혜영 국장이 동기를 생각하는 마음이찡할 정도로 가슴에 맞쳐왔다.     최혜영 국장은 또 한마디 물었다.     “리혼하면 재산분할을 어떻게 할 예산이오?”     “난 내 원고료로 산 신문사 그 집만 가지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겠다고 했소.”     “잘했소.”     최혜영 국장은 밝음 웃음을 지으며 동기를 바라보았다.     “류려평의 부정축재가 얼마인지도 모르오. 지금 류덕재 행장과 함께 해먹은게 하나, 하나 드러나는데. 류려평의 부정축재에 손을 댈 필요없소. 자칫 류려평의 부정축재 덤터기를 쓸 수도 있잖고 뭐요? 류려평을 판결하기 전에 리혼하고 재산분할도 깨끗하게 정리하면 좋을 거 같소.”     “최국장이 귀띔해줘 정말 고맙소.”     저승사자는 직업병이 또 발작하는가 보다. 기실 종호를 생각해 말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녀는 종호한테서도 단서의 실마리를 하나라도 더 쥐려고 들었다.     “이후에 류려평의 죄행이 생각나면 수시로 내한테 알려주오.”     “그러지. 난 류려평이 뭘 얼마나 해 먹었는지 진짜 잘 모르오. 그러나 의심스러운게 있으면 인차 알려줄게.”     최국장은 로련하게 만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녀는 뒤이어 또 한가지 물었다.     “리사장은 무슨 돈이 있어 여탐오분자 나영이 대신 탐오금을 갚는다고 그러오?”     “난 나영이 아들애 성림의 수술비용을 대자고 집을 팔았소.”     종호는 이렇게 말하자고 하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키고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믿는 동기라도 뭐나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이 좋을 거 같았던 것이다.     종호는 이렇게 얼버무렸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성림이 모자를 구해야겠소.”    그는 말을 마치자 우쭐 일어났다.     “그럼 심계국에 나영이 탐오금을 바치러 가겠소.”     최혜영은 일어나 말렸다.     “그 탐오금은 검찰원에 바쳐도 되오. 내 심계국 조국장한테 나영의 탐오금을 검찰원에 바쳤다고 알리면 되오. 나영이 사건은 이젠 검찰원에서 책임졌소. 물론 심계국에서 나영이 탐오사건을 발견하고 제보했지만 이젠 그 사건은 검찰원에서 법원에 기소할 절차를 밟고 있소. ”     “그럼 잘 됐소. 어데다 내는지 알려주오.”     최혜영 국장은 어덴가 전화를 치는 것이었다.     한 여검사가 사무실에 들어섰다. 여검사는 종호를 안내해 갔다.     종호는 일을 마치자 최혜영 국장과 악수하고 갈라졌다.     “나영의 사건을 아마 최국장이 책임진 것 같은데 법률상 공평하게 처리하리라 믿고 가겠소.”     최혜영 국장은 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법률 앞에선 사람마다 공평한 법이오.”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사무실에서 나와 성큼성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떠났다.     최혜영 국장은 복도에서 멀어져가는 종호의 뒤모습을 바라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기 안해 류려평의 안부는 한마디도 묻지 않고 왕청 같은 동네집 모자간을 구하려고 집까지 팔아 들이대며 왼심을 쓰는 종호가 바보처럼 보이었다.     그녀는 진짜 등곱쟁이 카시모도가 련상돼 콧마루가 시큼할 정도로 저으기 가긍했다.
524    대하소설 황혼 제4권(67) 아가씨의 넉두리 김장혁 댓글:  조회:225  추천:1  2024-10-30
       대하소설 황혼 제4권        김장혁       67. 아가씨 넉두리       영화는 소장의 말을 딱 곧이듣고 시내 한 마사지방에 가서 일했다.     마사지방 대청에서 연지꼰지 바르고 손님을 기다리는 아가씨들이 백화점 천매대에 촘촘히 꽂혀 있는 비단필처럼 줄느런히 늘어앉아 있었다.     이쁜 영화가 대청에 나와 앉자 아가씨들은 자기 손님을 빼앗길가 봐 질투의 눈길을 보냈다.     영화는 따끔해지는 눈길을 피해 한쪽 구석에 가서 앉아 있었다. 그러나 해가 뜨자 달이 지듯이 너무 환한 영화가 마사지방에 들어온 뒤 다른 아가씨들은 빛을 일었다. 영화는 항상 구석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손님들은 용하게도 뒷구석에 앉아 있는 이쁜 영화를 찾아내 데리고 마사지방에 들어갔다.     그럴 때면 영화 등뒤에서는 아가씨들의 비쭉거리는 소리 여기저기서 들렸다.     며칠 후 직업소개소 소장은 영화를 데리고 옷시장에 갔다.     “오늘 입고 싶은 옷 다 사 줄게.”     “어마나! 이러면 어쩌죠? 전 줄 것도 없는데 너무 황송해요.”     “사양말고 사기 싶은 치마랑 사 입소. 돈은 내가 내재리.”     영화는 사양하다 못해 눈을 질끈 감고 연분홍색 치마를 입어보고 샀다.     철석 소장은 핸드폰을 내밀어 척척 결산해주었다. 그날 영화는 잎고 싶은 치마랑 샤쯔랑 수두룩이 사 가졌다.     철석은 새로 산 연분홍치마를 곱게 입은 영화 허리를 껴안으면서 지껄여댔다.     “봐라, 이포단장이라고 고운 치마를 척 입으니 영화 얼마나 이쁘오? 완전 선녀 같단 말이오. ㅎㅎㅎ.”     그날 영화는 돈 일전한푼 팔지 않고 철석의 덕분에 숱한 여름 옷을 사가지고 한끼 잘 대접받았다.     영화는 그때부터 그 소장을 점차 오빠처럼 믿게 됐다.     마사지방에서 어떤 손님들은 자꾸 음충한 눈길로 그의 가슴과 허벅다리를 노려보면서 음탕한 말을 하는가 하면, 어떤 손님들은 짧은  치마를 쳐들고 그녀의 야들야들한 허벅다리를 슬슬 만지었다. 심지어 어떤 손님들은 그녀한테 팁으로 빨깍빨깍 하는 돈을 쥐어주면서 마지막요구를 들이댔다.     영화는 돈을 밀어버리고 완곡하게 거절했다.     “제 무슨 숫처녀요? 돈을 싫다는 아가씨는 처음 본다. 다른 아가씨를 불러.”     그녀는 손님 마사지방에서 쫓겨나오고는 심리모순에 빠질 때도 있었다.     (진짜 내 무슨 숫처녀인가? 정조를 잃은바 하고는 돈이라도 많이 버는게 옳찮은가?)     그런데 어느 하루 들어온 손님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쌍까풀눈이 화등잔이 돼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멍청히 서 있었다.     그 손님은 오빠처럼 믿던 그 소장이 아니겠는가.     종호는 영화의 말을 중조무이하면서 한마디 물었다.     "그 소장이란 사람은 누구요?"     "나를 재수 없이  경찰한테 붙잡히게 한 직업소개소 박철석 소장입니다."      "오, 그렇구만. 경과사를 계속 말하오."     영화는 말하기 시작하니 뱀이 나가는지 구렁이 나가는지도 모르고 자랑삼아 매음경과사를 줄줄 내리말했다.     그녀는 마사지방에서 철석을 보자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물었다.     “오빠도 이런데 다니는가요?”     “나두 남잔데 어째 향수하러 다니지 못하겠소? 이쁜 아가씨를 향수하는 거야 모든 남자들의 최저욕망이 아니겠소?”     영화는 마사지방에서 나가려고 하며 물었다.     “오빠, 다른 아가씨 부를까요?”     철석은 외까풀눈이 가슴츠레해 물었다.     “왜? 오빠 싫어? 돈벌 기회도 버리겠소.”    “아니, 그런 거 아니고. 손님들을 보니 대부분 여기 와서 뭔가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거 같던데요. 다른 아가씨를 부르면 오빠한테 만족줄 수 있을 거 같아서…”     “난 네가 젤 좋아. 오빠를 좀 잘 주물러주면 안돼?”     영화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며 종알거렸다.     “오빠 만족할 거 같잖아 그래요.”     철석은 마사지복을 갈아입고 침대에 힌들 들어누웠다.     “내 시키는대로 하면 되오.”     “네, 오빠, 잘해 드릴게요.”    영화는 머리부터 마사지해드렸다.     “영화, 거기 말고 허벅다리를 좀 주멀러 주오.”     “네, 오빠, 퍽 곤한 모양인데요?”     “그래, 그렇게 꾹꾹 주무르오. 오, 씨원하다.”     불시에 철석은 영화의 손을 쥐어 팬티 안에 쑥 걷어넣었다.     “여기도 좀 주물러 주오.”     “어마나!”     영화는 감전이라도 한듯이 덴겁해 손을 홱 뺐다.     “오빠, 여동생이라면서 왜 이래요? 그만 할까요?”     “왜? 안 되오? 오빤데. 좀 잘 해주면 어떠오? 여자는 돈 벌자면 좀 흐트러져야 해. 내내 정색해서야 언제 돈 벌겠소?”     영화는 두 손을 가슴에 대고 철석을 외면하더니 머리를 다소곳이 숙였다.     “그래도 그렇지. 깨끗한 돈을 벌어야지. 오빠 거길 어떻게…”     연분홍불빛 아래 걀죽한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잔잔히 흔들리며 은밀한 련정시를 쓴다.  도리머리질 하는 그 이쁜 아가씨의 황홀한 모습이  사내 애간장을 다 녹여버리는 순간이다.     철석은 슬그머니 일어나 앉더니  영화의 팔을 쥐어 몸을 천천히 돌려세워 놓았다.  그는 음충한 눈길로 탄력있고 풍만한 젖가슴을 뚫어지게 쏘아보면서 물었다.     “영화는 숫처녀요? 숫처녀면 더 강요하지 않겠소. 애어린 꽃을 너무 일찌기 꺾고 싶진 않소.”     영화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것도 마사지 일종이오. 그걸 해 줘야 오빠는 젤 좋아하오. 수고비는 톡톡히 줄게.”    철석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맥없이 침대에 훌러덩 드러누웠다.    영화는 자기를 그렇게 잘 해준 오빠한테 미안한 감이 좀 들었다.    “아무리 숫처녀 아니라도 어떻게 오빠하구 그러겠는가요?”    “괜찮아. 그래 남보다 오빠를 더 잘 해주면 어떠오? 오빠는 영화를 친여동생처럼 아낀단 말이오. 영화, 이 시내에서 이 오빠를 내놓고 누굴 믿고 살겠소?”     철석은 두툼한 돈을 꺼내 척 내밀었다.      피뜩 봐도 몇백원.     “자, 받소. 영화를 공 수고 시키지 않을게. 내 말을 듣소. 오빠한테 잘 해주면 영화를 이 세상에서 젤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줄게.”     영화는 돈의 유혹을 물리칠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눈을 질끈 감고 그걸 주물러주자. 잠간 사이에 몇백원 벌면 오죽 좋아?)     그녀는 돈을 받아 제꺽 가슴을 열고 브래지어 안에 걷어 넣었다.     “오빠, 잘 해드릴게요.”     “그래, 허허허. 이재야 여동생 같구나. 마음의 문을 활짝 열라구. 네 하얀 젖가슴에 대박이 넝쿨채로 굴러떨어질 거야. 으흐흐.”     철석은 힌들 눕더니 영화의 손을 쥐어 자기 팬티 안에 훌 넣었다.     이번에는 영화도 그리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녀는 쌍까풀눈을 질끈  감고 철석이 하라는대로 그걸 주물렁주물렁 주무르기 시작했다.     “어, 씨원하다. 오, 그래, 좀 더 세게. 빨리. 오, 안되겠다.”    철석은 벌떡 일어나 앉더니 영화를 와락 끌어안아 눕히고 가슴을 마구 헤쳤다.    “영화, 난 안해 한국에 나간지 오래다. 여자라는게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지도 오래. 오빠 불쌍하잖소. 날 좀 살려주오. 우리 서로 도우면서 살기오.”     순간 그녀의 눈 앞에는 강냉이 밭에서 강간하던 날강도 음충한 몰골이 떠올랐다. 순간 영화는 불시에 거부감이 생겨 발버둥질쳤다.     “오빠, 이러지 마오.”     “돈 더 줄게. 날 좀 살려달라.”     철석은 영화의 팬티를 벗기고 그걸 들이댔다. 그러나 환경 때문인지 그게 말을 잘 듣지 않아 그저 어구지에서 몇번 홀락거리다가 시라지로 되고 말았다.     철석은 그래도 이쁜 아가씨 맛을 보았는지라 영화 몸 위에서 옆으로 스르르 미끌어져 내렸다. 그는 거친 한숨을 후- 몰아 내쉬더니 손바닥으로 침대바닥을 탕탕 치면서 개탄하였다.     영화는 철석이 가소로웠다.     (남자 아니구나. 뚫어놓은 구멍도 온전히 뚫지 못하는구나. 혹시 고자 아닌가?)     그녀는 철석 오빠가 불쌍해났다.     한참 후에 철석은 영화 손에 돈을 쥐우주는 건 잊지 않았다.     영화가 돈을 부래지어 안에 쑤셔 넣고 돌아서려고 할 때였다.     철석은 영화 허리를 끌어안아 눕히며 애원했다.     “한번만 더…”     영화는 측은한 눈길로 돌아보더니 그 옆에 스르르 누웠다. 그녀는 눈을 찔근 감고 소장 오빠한테 모든 걸 내맡겼다. 철석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몇번이고 영화 몸 위에 올라탔다. 그러나 끝내 연분홍 황홀경으로 제대로 들어가 감상하지 못하고 말았다.     "빨리 손으로 주물러 물을 빼달라."     영화는 하는 수 없이 손으로 그걸 주물렀다. 철석은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벌떡 일어나 변태적으로 영화 입에 그걸 싸넣었다.     철석은 밑지는 것 같아 영화를 놓아주지 않았다.    (숱한 돈을 주고 그저 이러고 말겠니? 본전을 찾아야지.)     그는 정상적으로  만족을 얻지 못하자 변태적으로 놀았다. 그는 영화의 몸을 가로 타고 앉아 젖가슴과 하신을 미친듯이 핥고 빨았다.     그는 정상적으로 영화의 연분홍 황홀경에 들어가 감상하지도 못하였다. 그러자 너무 애나서 누른한 그걸 쥐어 영화 풍만하고 뭉글뭉글 젖가슴에 대고 마구 비벼댔다.      영화는 밑에서 의아한 눈길로 해바잔 철석의 낯을 쳐다보았다.       철석은 누른한 그걸 영화 입에 훌 밀어넣었다. 비록 연분홍 황홀경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감각만은 비슷해 좋았다.       "빨리 빨아라. 오, 그래. 시원하구나. 더 꽉 깨물어서 빨아라. 오, 그래. 시원해."      성변태는 끝내 영화 입에 쭉 싸넣었다.      철석이 한창 영화와 칡덩굴처럼 뒤엉킨 채 뒹굴 때였다. 경찰들이 우르르 뛰어들어왔다. 여경이 영화의 부래지어 끈을 활 쥐어당겨  풀었다. 부래지어에서 더러운 지전이 땅바닥에 후르르 떨어졌다...      영화는 종호를 쳐다보며 지난 일을 쭉 이야기하고 나서 하소연했다.     “난 억울해요. 나는 근본 철석 오빠와 매음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특수마사지를 했을뿐입니다. ”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었다.     “무슨 리유로 매음하지 않았단 말이오?”     영화는 초면인 종호 앞에서 창피한줄도 모르고 꺼리낌없이 털어놓았다.      “철석 오빠는 고자인 거 같애요.  그게 내 몸 속에 한번도 들어오지도 못햇습니다. 그래서 난 손으로 그걸 쥐어 수음해 물을 빼줬을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매음했다고 할 수 있는가요? 또 내 몸에 붙은 거 팔았는데 무슨, 공안국에서 어째 내 몸의 자유마저 관리한답니까? 싱겁지 않습니까? ”     종호는 어이없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싸가지 없는 간나새끼구나. 누구 앞이라고 아무 개 소리나 횡설수설해?)     종호는 한마디 날카롭게 툭 쏴주었다.     “남녀 단둘이 붙어 있는 걸 당장에서 경찰이 붙잡았다는데 매음죄 아니고 뭐요? 어째 승인하지 않소? 철석이 표창죄를 다 승인했소.”     "입에 한게 표창이나 매음인가요?"     "수음이나 구강섹스 행위도 역시 류사표창과 류사매음과 동일하게 음란한 행위에 속하오. 경우를 봐서 좀 경하게 처벌할 수도 있소."       영화는 계속 꺼리낌없이 실토정했다.      “철석 오빠는 근본 내 몸 속에 들어오지도 못했는데. 매음죄를 들씌우는 건 너무 억울합니다. 철석 오빠는 근본 남자 아닙니다. 고자입니다. 믿지 못하겠으면  의사를 데려다가 검사해 보세요. 그 집 아주머닌 그런 나그네와 애나서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제야 종호는 지영이 하던 말을 곧이듣게 됐다.      (저런 나그네 애나서 나영이 군스나를 해 한국에까지 도망쳤겠구나.)      종호는 영화를 바라보며 정색해 말했다.     “새파란 나이에 그게 뭐요? 어디 가서 돈을 벌지 못한다고 그런 짓을 다 하오? 이젠 그만두고 옳바른 길에 들어서길 바라오.”     영화의 넉두리는 끝이 없었다.     “나는 철석 오빠하구 그때 딱 한번 밖에 그러지 않았는데요. 그것두 그저 어구지에서 입내나 냈는데 어떻게 매음했다고 그럽니까? 법도 공평해야지. 새파란 새애기 한뉘 매음녀라는 딱지 딱 붙어다녀 어떻게 머리 들고 살겠습니까? 매음녀 범죄경력이 따라다녀서 한국에도 못 나가면 이담 뭘 벌어 먹고 살겠습니까? 내 전도를 다 망쳐먹었습니다.”      종호는 영화의 말에 도저히 믿음이 가지 않았다.     "딱 한번 밖에 매음하지 않았는데 경찰들이 단속해 로동개조를 시켰단 말인가? 절대 그런 일 있을 수 없소."     “네. 재수없어 그렇지요. 딱 한번 그랬다가 경찰한테 딱 걸렸지요. 다른 아가씨들은 수백번 해도 붙잡히지 않았는데. 난 재수없이, 참.”     “다 제 절로 돌을 들어 발등을 깐게오. 누구를 탓할게 없소. 이제라도 옳바른 길에 들어서길 바라오.”     영화는 게두덜거렸다.     “오빠라는게 하필 마사지방에 와서 그럴게 뭔가요? 사람이 눈치 무드러도 도끼 등이라니깐요. 돈을 받지 말아야 하는데. 그 놈의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큰 코 다쳤습니다.”     영화 주책 없는 말을 듣고 종호는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이 여자 생기긴 잘 생겼는데 좀 부실하잖은가? 싸가지 없기로서니, 참, 내 누구라고 이런 지지한 말까지 다 하는가?)     그는 영화가 강도한테 강간당한 건 동정이 갔다. 그러나 법맹인 그녀가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고 지껄이는 것을 보고 너무나도 가소러웠다.     (법맹이라도 한창 지나간 법맹이구나.)     영화는 종호를 쳐다보면서 비아냥에 섞인 어조로 비난사정했다.     “김대대장이 직접 나온 걸 보니 지체 높은 기자 같은데요. 별 거 다 취재하는군요. 원고료를 벌자고 이렇게 더러운 매음녀를 다 취재합니까? 내 매음하는 거 어디다 내자고 그럽니까? 창피하게. 내 이름 밝히지 마십시오.”     종호는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영희라는 가명으로 낼테니 근심하지 마오.”     영화는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이 화등잔이 됐다.     “영희와 영화 얼마나 비슷합니까? 괜히 날 절망에 빠뜨려 자살하게 만들지나 마십시오.”     “근심하지 마오. 어떻게 잘 개조해 나갈 생각이나 하오.”     종호의 말에 영화는 배지장처럼 창백한 얼굴에 쓰라린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나직이 애원했다.     “김대대장과 좀 잘 말해서 날 여기서 꺼내 주십시오. 내 나가면 은혜를 잊지 않을게요. 네? 꼭 오빠처럼 잘 모셔드릴게요.”     영화는 종호의 눈치를 핼끔 쳐다보면서 기대에 찬 맑은 추파까지 보냈다.     종호는 우쭐 일어나더니 정색했다.     “모든 건 영화 개조태도에 달렸소. 자기 잘못을 철저히 교대하고 잘 개조해 하루빨리 나오길 바라오.”     말을 마치자 그는 경찰을 불러 영화를 맡기고 소회의실에서 나와 버렸다.     등뒤에서는 영화가 애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자선생님, 저를 구해주세요. 네? 재삼 부탁드립니다.”    종호는 한숨을 땅이 꺼지제 내쉬었다.    “어쩜 법맹 여자들이 아직도 이렇게 많을까?”     종호는 특수취재를 마치고 구류소 사무청사를 나왔다.    철조망을 두른 높은 토성 안 구류소 마당에서는 녀자감옥에 갇혔던  수십명 매음녀들이 여경들의 감시하에 해볕을 쪼이면서 중간체조를 하고 있었다. 그늘진 그녀들의 얼굴에는 삼복염천에도 해볕을 쪼이는 기쁨이 서리서리 비껴 있었다.     한국 문이 열리면서 조선족매음녀들은 훨씬 줄어들었다. 여기서 불명예스럽게 매음하기보다 한국에 나가 고달프게 일해도 수입이 더 톡톡했으니까. 매음할 필요없으니까 말이다.     종호는 김대대장한테 페를 끼칠가 봐 점심도 안 먹고 구류소 대문을 나섰다.     그는 소나무 숲이 뒤덮인 망아산 기슭 조용한 산길을 걸으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김대대장이오? 금방 영화는 직업소개소 소장질을 하는 철석과 딱 한번 밖에 매음하지 않았다면서 억울하다고 합데. 근본 성교를 하지 않고 손으로 수음을 해줬다고 하던데. 철석과 영화는 좀 감형받을 수 없소? 영화는 날강도한테 강간당해 기로에 들어선 거 같은데... ”     김대대장의 강경한 목소리가 들렸다.      “영화 넉두리는 다 거짓말입니다. 영화는 마사지방에 일하는 5년 남짓한 기간에 얼마나 매음했는지 모릅니다. 영화의 미모에 유혹돼 표창한 숱한 건달들이 지금 우리 구류소에 갇혀 있습니다. 영화는 상습매음녀입니다. 우리 구류소에도 몇번 들어왔는지 모릅니다. 반년 로동개조도 형기 짧은줄 아십시오.  전탕 거짓말을 합니다. 개조표현이 나쁘면 이젠 형사죄를 추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조표현이 좋으면 형기는 좀 줄어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공작이 바쁠텐데 오늘 취재협조해 줘 수고했소.”    "선생님도 시간 나지면 영화처럼 기로에 들어선 매음녀들을 더 취재해 신문에나 잡지에 내주십시오. 기로에 들어서려는 녀성들한테 피의 교훈을 안겨주면 좋을 거 같습니다."    " 알았소. 후에 다시 련락드릴게."     종호는 핸드폰을 넣으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 앞에는 금방 눈물이 글썽한 쌍까풀눈을 할기죽거리며 애원하던 영화가 삼삼히 떠올랐다.     “철석과 한번 밖에 매음하지 않았다더니, 참, 진짜 안팎이 다른 미녀 불여우구나.”     종호는 금방 영화한테 사기당할 번한 일을 생각하니 섬찍해났다. 뒤골이 다 써늘해졌다.     그의 귀전에는 아직도 불여우 아가씨의 넉두리소리 쟁쟁하게 울렸다. 그의 머리에서는 착잡한 고민이 소용돌이쳤다.      (이 세상에 믿을만한 여자 몇이나 있는가? 성림이 불쌍하다. 불쌍해, 애비 에미 다 구류소에 갇혀서 누가 성림을 구해줄까?)
523    대하소설 황혼 제4권(66) 직업소개소 소장과 아가씨 김장혁 댓글:  조회:200  추천:1  2024-10-30
     대하소설 황혼 제4권             김장혁         66. 직업소 소장과 아가씨        종호는 성림을 두 날개 다 부러진 의지가지 없는 외로운 철새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넓은 사회관계를 리용해 성림의 엄마 나영을 구하고 싶었고 성림의 그 잘난 애비도 구할 수 있으면 구해 보려고 웬간히 모지름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종호는 눈 앞에 떨어진 불부터 먼저 꺼야 했다. 성림의 수술비용을 한푼이라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되겠는지 해 치안죄의 일종인 표창죄로 철창 속에 갇혔다는 철석의 죄상을 령탐하기로 했다.      (철석이 도대체 어떤 표창죄를 졌는지 알아봐야겠어. 그저 한번 밖에 표창하지 않은 초범이면 괜찮은데. 박동묵 국장과 성림의 딱한 처지를 말하면 철창 속에서 내갈 것 같기도 한데.)      종호는 당직실에 가서 구류소 책임자를 찾았다.      “저는 신문사 부사장 리종호입니다. 취재할 일이 있는데 책임자를 불러 주겠습니까?”      “네.”      당직경찰은 전화를 쳐보더니 “미안합니다. 기자님, 아까 만났던 책임자는 급히 어디로 나가고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럼 다른 책임자를 찾아 주십시오.”      “네. 알아보겠습니다.”      당직경찰이 또 전화를 걸었다.      “김대대장입니까? 신문사 리사장님이 취재할 일이 있어 김대대장을 만나자고 합니다. 예, 지금 당직실에 계십니다. 네, 곧 오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당직경찰은 종호한테 돌아서며 알렸다.      “좀 기다려 주십시오. 김대대장이 나오겠답니다.”     이윽고 김대대장이 당직실에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리사장님,”     김대대장은 종호를 만나자마자 반갑게 인사했다.     “선생님, 참 반갑습니다. 저를 알아보지 못하겠습니까?”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날카롭고 예리한 쌍까풀눈, 칼날처럼 날이 선 코, 훤칠한 키...    아무리 여겨봐도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미안합니다. 누구던가?”     김대대장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리종호 선생님 맞지 않습니까? 제가 고중을 다닐 때 선생님은 우리 학급에 실습교원으로 왔댔습니다. 저는 그때 학생 김호입니다. 리선생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종호는 김호 대대장의 손을 굳게 잡았다.     “오, 그렇구만. 이제야 좀 면목이 알리오. 그때 저는 반장이었지?"     "예,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    "정말 반갑소.”     김호 대대장은 사람좋게 웃었다.     “네. 저를 다 기억하시눈구만요. 그때 선생님은 과외시간에 교내 운동대회 준비로 체육장에 우릴 데리고 가서  훈련시켰지요. 그때 선생님은 아주 날랬지요. 고도도 개구리 물에 뛰어드는 동작으로 한메터 반도 넘어 훌쩍훌쩍 날아넘어갔지요. 지금도 선생님 날랜 모습 보는 것 같습니다.”     종호는 시무룩이 웃었다.     “그게 다 옛말이오. 이젠 환갑도 지났는데. 이거 보오. 머리 다 허옇소.”     종호는 모자를 벗어보였다.     김호는 종호를 모시고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물었다.     “리선생님, 이젠 퇴직했겠는데 아직도 취재하러 다닙니까? 이런 루추한 구류소에 다…”     “좀 알아볼 사람이 있어서 그러오.”     종호는 김대대장을 따라 사무실에 들어가면서 물었다.     “박철석이라고 있잖소? 도대체 무슨 죄로 구류소에 들어왔소?”     김대대장은 손수 커피를 타서 커피잔을 종호 앞의 탁자에 가져다 드렸다.     “철석은 표창죄로 잡혀 들어왔습니다. 철석을 어떻게 압니까?”     종호는 한달 실습기간에 김대대장을 몇시간 밖에 배워 주지 않았다. 하지만 성림이한테 애비를 찾아주려고 체면을 잃고 솔직하게 말했다.     “실은 철석이네 일곱살 밖에 안되는 아들애가 글쎄 급히 심장병에 걸리지 않았겠소. 지금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데 애비 에미 다 철창 속에 갇혀 엄청난 수술비용을 누가 대겠소? 그래 너무 불쌍해 찾아왔소.”     김호 대대장은 짙은 눈섭을 치켜뜨더니 물었다.     “성림이라던가 그 애 엄마는 누굽니까?”     “박나영이오.”     “오- 그 한국에서 인터폴에 나포돼 어제 인도돼 온 그 박나영 말입니까?”     “그렇소.”     “어제 티비 뉴스에서도 보았습니다. 어쩜 전람관 관장이 그런 죄를 범했는지. 참. 박나영은 소문이 자자한 인터폴 지명수배도주범이기에 아마 인차 석방될 거 같잖습니다.”     “어린 성림을 구해야겠는데 에미는 희망이 있을 거 같잖소. 애비는 단 한번 표창한 초범이라던데, 어째 반년이나 로동개조를 시키오. 애비 에미 다 철창 속에 갇혀서 성림인 두 날개 다 부러진 새로 됐소. 의지가지 없는 애가 참 불쌍하오. 박철석이 도대체 초범이오? 상습범이오?”     김대대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선생님, 철석은 상습범입니다. 철석은 근년에 마사지방에 가서 표창(기생놀이) 하다가 여러번 경찰에 붙잡혔댔습니다. 글쎄 한번 표창한 초범이면 반년 로동개조를 시킬 것까지야 없지만. 철석은 상습범이고 죄질이 아주 나쁩니다. 술을 마시고 쩍하면 여자화장실에 들어가 옆칸 녀성들의 하신을 찍었습니다. 그것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진짜 변태입니다. 반년 로동개조를 시키는 것도 경합니다. 이젠 검찰원에서 자칫 형사죄로 기소할지도 모릅니다.”     종호도 더 어쩌는 수 없었다.     (진짜 질이 나쁜 놈이구나. 나영은 저런 나그네를 다 믿고 이제까지 리혼도 하지 않고 속혀 살았을까? 나영이 불쌍해. 저런 애비를 둔 성림이 불쌍하지.)     그러나 종호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철석의 죄과로 보아 로동개조형을 개변시킬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참 궁리하다가 무거운 입을 뗐다.     “철석의 표현이 좋으면 로동개조 형기를 좀 줄일 순 없소? 의지가지 없는 성림을 구하는 셈치고.”     김호 대대장도 애럴 키우는 부모인지라, 또 선생님의 체면을 너무 봐주지 않아서도 딱한 처지였다.     “선생님, 철석의 개조표현에 따라 로동개조형기는 얼마간 조절할 순 있습니다. 모든 건 철석의 개조태도에 달렸습니다.”     종호는 자기 말이 좀 먹히자 한술 더 떴다.     “범죄기록이 있으면 한국에 못나간다고 들었소. 어떻게 박철석의 범죄기록을 지울 순 없소? 애비라도 한국에 나가야 성림을 돌보겠는데 말이오. 철석이 한국에 나가지 못하면 치료비용이랑 어떻게 대오?”     김호 대대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선생님, 미안합니다. 어린애 딱한 사정은 알겠습니다. 허나 철석의 범죄기록은 일단 컴퓨터에 딱 들어가면 누구도 고치지 못합니다. ”     종호는 더는 김대대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도 해당 법과 원칙, 정책을 지키는게 옳다고 생각하오. 난처하게 굴어 미안하오.”     김대대장은 자못 송구해하는 눈치였다.     “미안합니다. 선생님, 될만한 일이면 도와드리고 싶은데 진짜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종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소. 한가지 알아볼게 있어 그러오. 지금 매음과 표창하는 바람이 불어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데 철석과 매음한 아가씨를 취재할 수 없겠소?”     김대대장은 선선히 대답했다.     “그 직업소개소 소장과 매음한 아가씨를 그럽니까? 됩니다. 신문이나 잡지에 그러루한 비극과 교휸을 널리 홍보해야죠. 그러나 이름은 밝히지 말아 주십시오.”     “가명을 쓰면 되오.”     김대대장은 전화기를 들었다.     “그 영화를 2층 소회의실에 데려오오. 로기자 한분이 취재하겠다오.”     김대대장은 전화를 놓고 종호를 돌아보았다.     “선생님, 소회의실에 갑시다.”     그는 종호를 소회의실에까지 모셔다주었다.     “김대대장, 철석과 나영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기별해주오.”     “네. 근심하지 마십시오.”     저쪽 복도에서 한 경찰이 훤칠한 한 녀성을 데리고 오고 있었다. 피뜩 보아도 환하게 생긴 처녀애였다.     김호 대대장은 영화가 다가오자 훈계했다.     “기자가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하오. 자기 죄행을 낱낱이 교대하고 잘 못을 뉘우치라고. 알았는가?”     영화는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하고 간신히 대답하고 나서 종호를 핼끔 쳐다보았다.     김호 대대장은 종호와 악수하고 자기 사무실로 들어갔다.     영화라는 아가씨는 경찰의 압송하에 머리를 폭 숙이고 소회의실에 들어섰다.     영화라는 아가씨는 피뜩 봐도 꽤나 인물값을 할 20대 말 처녀애였다.     물찬 제비 같은 체격에 백설같이 하얀 살결, 걀죽한 얼굴에 짙은 눈섭, 물기를 머금은 어글어글한 쌍겹눈, 가슴에 흘러내린 함치르르한 머리카락, 탄력 있고 풍만한 가슴, 아무데를 보아도 성감적이어서 이전에 뭇사내들의 혼을 빼먹을만한 섹시한 여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종호는 문뜩 이렇게 이쁜 처녀애가 왜 하필 매음을 했는가는 커다란 의문이 생겼다.     그는 경찰이 복도에 나가자마자 “취재”에 달라붙어 꼬치꼬치 캐물었다.     “어떻게 돼 더러운 매음을 하게 됐소?”     영화는 백지장 같은 우유빛얼굴에 쓰라린 눈물을 줄이 끊어진 구슬처럼 주르르 흘리며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나는 억울합니다. 저는 날강도한테 강간당해 몸을 더럽힌 후 매음하게 됐습니다.”     그녀는 자기 억울함을 개탄했다. 입이 터지자 과거사를 옛말 하듯이 줄줄 늘여놓았다.       어느 일요일 해질 무렵, 그녀가 시내 옷매장에서 일하다가 퇴근해 집으로 돌아갈 때였다.     갑자기 강냉이밭 옆길에서 억대우 같은 날강도가 덮쳐들었다. 영화가 강도한테 깔리운 채 아무리 두 손으로 떠밀고 허비고 발버둥질 치면서 단말마적으로 반항해도 짐승처럼 야성이 발작한 그 놈을 당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강단당한 장면을 본 한 마을 녀성이 온 동네방네에 소문을 파다히 펴 놓았다.      강간범은 나포돼 엄벌당했지만 영화는 동네에서 머리를 들고 살 수 없게 됐다. 그런데 시내 옷매장 주인은 강간당한 그녀를 수를 날린다고 잘라버렸다.      옷매장에서 쫓기워 나온 영화는 시내에서 외롭게 헤맸다.     그녀는 세집이라도 잡고 살려고 무슨 일이라도 찾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눈에 한 직업소개소 간판이 들어왔다.     영화는 고려없이 그 직업소개소로 들어갔다.     직업소개소 소장은 영화 아래위를 힐끔거리더니 물었다.     “무슨 일을 하겠소? 음식점 복무원? 노래방 아가씨? 마사지 아가씨?”     “음식점에 가 일하겠습니다.”     중년소장은 영화의 이쁜 모습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음식점에 보내긴 너무 아깝다, 아까워.”     서른살 푼해 보이는 소장은 영화의 손을 매만지면서 아쉬워했다.     “돈도 많이 버는 노래방이나 마사지방에 가면 어떻소?”     영화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굶어 죽어도 그런덴 가지 않겠습니다.”     소장은 외까풀눈이 데꾼해졌다.     “어째?”     “그런덴 남자들의 노리개 되는 곳이 아닙니까? 몸을 파는데 아닙니까?”     소장은 음충한 눈길로 영화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게침을 줄줄 흘렸다.     “에이, 다 그런게 아니오. 제게 달렸소. 제 치마를 들고 들이대지 않으면야 어떻게 강박적으로 강간하겠소? ㅋㅋㅋ.”     영화는 그 말에도 도리 있다고 생각했다.     “내 직업소개비도 받지 앓을게. 마사지방에 가서 일하오. 마사지해서 벌고 손님들한테서 팁도 받아 챙기는 재미도 쏠쏠하오. 이렇게 하기오. 뭉치돈을 벌면 맥주나 한잔 마시기오.”     마음씨 좋은 소장은 그녀를 데리고 시장골목 음식점에 데리고 가서 몇가지 요리에 맥주를 접대하고 소고기국밥까지 청해 실컷 대접했다.     소장은 영화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영화, 농촌에서 시내에 들어와 고생하는게 불쌍하오. 시내에서 홀로 일하면서 살자면 믿을 사람이 있어야지? 나 같은 오빠 있으면 얼마나 좋소?”     “믿을 분 있으면야 참 좋지요.”     “그럼 날 오빠처럼 믿으라고.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를 찾소. 내 있는 힘껏 도와줄게.”     “네. 그래요. 오빠.”     그 소장은 생김새가 녀자 같았지만 아주 통이 크게 직업소개비도 내지 않고 오히려 한때 잘 대접까지 해주는 것이었다.  영화는이런 인심이 각박한 요즘 세상에 이렇게 마음이 후더운 사람도 다 있는가 생각하면서 마음 속으로 마음씨 착한 소장한테 믿음이 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종호는 영화의 끝없이 쏟아지는 과거사 얘기를 중도무이하고 물었다.      "그 소장의 이름이 뭐요?"     영화는 쌍까푼눈을 치켜떴다.      "기자 선생님, 소장의 이름까지 공개할 필요 있습니까? 제 이름이랑 절대 공개하지 말아 주십시오. 부탁합시다. 더러운 매음녀라는 딱지 딱  붙어 다니면 어떻게 머리를 들고 살겠습니까?"     그녀는 해쭉거리면서 지껄여댔다.     "난 아직도 새파란 청춘인데요. 장차 약혼하고 시집가고 애도 낳아야겠는데요. 부탁드려요."      "가명으로 내기로 했소. 근심말고 말하오? 소장은 누구요?"     영화는 길죽한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간신히 말했다.    "공개하지 않겠다니 알려드리죠. 박철석 소장인데요."    종호는 외까풀눈이 데꾼해 소리쳤다.     "박철석이라고?!"    영화도 쌍까푼눈이 데꾼해졌다.    "네. 아는 분인가요?"    데꾼해진 쌍까풀눈과 외까풀눈이 공중에서 부딪치며 숱한 의문부호가 불찌처럼 튕겨나왔다.    "?!"
522    대하소설 황혼 제4권(65) 철창 속 애비 댓글:  조회:328  추천:0  2024-10-27
    대하소설 황혼 제4권              김장혁          65. 철창 속 애비         종호는 집판매가 한단락 진척돼나가자 나영의 부탁대로 그녀의 남편을 찾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리혼청구서를 전하고 성림의 수술비용을 좀 대달라고 말해 봐야지. 성림의 애비면 좀 대주겠지.)      종호는 구류소를 찾아가면서 피뜩 나영과 그녀의 남편 철석을 두고 지영이 하던 말이 떠올라 저도 몰래 허구픈 웃음이 나왔다.      어느날 지영과 종호는 대림시장 부근 초증학교에서 하학하는 성림을 마중해 데리고 돌아오다가 냉면집에 들렀다.      성림이 화장실로 간 틈에 지영은 나영의 부부간 일을 말하면서 철석을 한바탕 욕했다.      (녀자들이란 이상해. 아무리 친구라도 그렇지. 어쩜 돌아앉으면 친구 남편까지 허물할가?)      지영은 종호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이런 말도 불쑥 꺼냈다.      “나영이 어째 남편과 갈라져 최국장을 따라 일본과 한국으로 나왔는지 아는가요?”      종호는 도리머리질 하면서 의아한 눈길로 지영을 바라보았다.      지영의 빨간 구찜을 바른 입에서는 뱀이 나오는지 구렁이 나오는지도 모르고  마구 쏟아져 나왔다.      “나영은 항상 남편 그게 짧다고 허물했습니다. 항상 한 1분이면 끝이랍니다. 그래서 변강쇠라고 소문난 최정호 국장을 따라 일본으로 해 한국에 들어왔답니다. 호호호.”      지영은 제 딴에는 한 몽둥이에 나영과 철석을 때려 눕혔다고 여겼다.      종호는 어이없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영은 종호가 도리머리질 하는 걸 보고 자기 말에 그러는지, 나영이를 두고 그러는지도 모르고 걸죽한 뒷말을 이었다.      “평소에 나영은 나한테 못하는 말이 없습니다. 나영은 철석이 그게 너무 짧아서 항상 어구지에서 홀락거리다가 퉤 가래를 뱉아 놓곤 홀라닥 나가군 한대요. 나영은 철석이 남자구실을 못한다고 항상 나무렸지요. 그러나 최국장은 변강쇠 돼서 자기를 최대한 만족시켜준다고 자랑질을 끝없이 했댔지요. 호호호. 세상 우습죠?”     종호는 외까풀눈을 할기죽거리며 웃는 지영이  얄밉게 보이었다. 아니, 쌍스럽게까지 보였다. 물론 믿고 허물없이 한 말이겠지만.     (날 뭘로 보고 이런 추저운 말을 다 해? 한쪽으로는 내한테 나영과 재혼하라고 권고하고 한쪽으로는 나영이 허물을 해? )     종호는 지영이 그런 쌍스런 말을 해 나영의 얼굴에 먹칠하는 진짜 용의를 알 수 없었다. 어쩐지 지영이 슬그머니 얄밉게 논다고 여겼다.     그는 더는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우쭐 일어났다.      그때 때마침 성림이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왔다. 그 바람에 지영은 어린애 앞인지라 더는 상스런 말을 더 꺼내지도 못했다.      종호는 “남자구실을 못하는 철석”이 어떤 사람인가 이번 기회에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종호가 나영이 사전에 알려준 전람관 아파트로 찾아가 엘레베이트를 타고 6층에 갔다.      똑똑똑.      아무리 노크해도 집 안에서 아무런 동정도 없지 않겠는가.      자꾸 노크하자 옆집 중년 아낙네가 문을 열고 머리를 쏙 내밀고 시끄럽다는 눈길로 그를 보고 물었다.     “누굴 찾습니까?”     “이 집 나그네 철석을 찾습니다.”     그 아낙네는 아니꼬운 눈길로 종호 아래위를 훑어보는 것이었다.     “그 사람과 어떻게 되는 사람입니까?”     종호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한국에 나간 이 집 아주머니 심부름을 시켜 찾아왔습니다.”     “그래요?”     그 아낙네는 문 밖으로 나와 말했다.     “나영이 심부름시켜 왔다구요? 그럼 나영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겠구만요.”     종호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 아낙네는 종호를 유심히 마주보며 말했다.     “나영이 나그넨 공안국 구류소에 갔다고 들었습니다.”    “네?”    종호는 깜짝 놀랐다.    “무슨 일로 구류소에 갔는지? 이걸 어쩐다?”    아낙네는 머뭇거리다가 종호 눈치를 슬슬 보면서 입을 무겁게 뗐다.    “저는 나영과 한 단위 친구인데요. 이런 말 하기 좀 불편한데요. 이 아파트는 문화국과 전람관 단위 아파튼데요. 수말이 새끼를 낳는  곳입니다. 한마디만 얼쩍 했다간 큰 일 납니다. 좋긴 구류소에 가서 직접 확인해보세요.”    종호는 한발 다가서며 나직이 물었다.    “난 신문사 부사장을 지낸 리종호라고 부릅니다. 천석이 도대체 무슨 일로 구류소에 들어갔습니까?”    아낙네는 복도와 층계를 두루 돌아보더니 나직이 귓속말로 알려주는 것이었다.    “나영이 나그네 마사지방에 가서 아가씨와 놀다가 경찰들한테 붙잡혔습니다. 아마 반년 로동개조는 할 것 같다고들 합디다.”    “네?!”    종호는 나그네를 보고 한국에 나와 성림을 봐달라고 전해달라던 나영의 말이 피뜩 떠올랐다.    (끝장났구나. 구류소에 갇혔으면 범죄전과 딱지 딱 붙어 이젠 한국에도 다 나갔구나. 성림은 어쩌니? 애비 에미 다 보지 못하는데.    성림의 수술비용도 지원받기 힘들겠구나. 이걸 어쩌는가? …)    종호는 성림의 앞날이 막막해 눈앞이 캄캄해났다.    종호가 돌아서 엘레베이트 단추를 누르려는데 아낙네가 다가서며 나직이 물었다.    “나영인 지금 잘 보내고 있습니까?”    종호는진정이 담긴 아낙네 표정을 보고 알려주었다.    “나영인 한국에서 중국에 인도돼 귀국했습니다.”    “네- 그랬군요.”    아낙네는 머리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도깨비지. 어쩜 단위 돈 5만원이나 탐오합니까? 참, 새파란 나이에 전도를 망쳤지. ㅉㅉ.”    종호는 나영을 위해 한마디 해야 했다.    “나영인 탐오한 그 돈 5만원을 남편 보고 심계국에 바치라고 했다던데. 그럼 감형될 겁니다.”    아낙네는 입을 삐쭉하더니 비양거렸다.    “쳇, 듣기 좋은 소리죠. 일전한푼 바치지 않았습니다. 나영이 나그네 혼자 있으면서 전탕 술만 곤드레만드레 마시고 아가씨놀음에나 빠진게 언제 그 돈을 가져갈 새 있겠습니까?”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영인 자기 저금통장의 돈을 가져가라고 했다던데…”    “옛말이면 듣기나 좋지요. 단위 사람들이 모두 나영을 잡아치우자고 이를 쁘득쁘득 갈고 있습니다. 나영이 그 돈 5만원 내놓고도 다른 문제도 많은 것 같습디다. 이제 야단 날 겁니다. 이 아파트도 좀 의심되는 모양입데다.”    아낙네는 웃층 복도에서 인기척이 나자 종호한테 허리 굽혀 인사하고는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갈수록 심산이었다.    종호는 성림과 나영의 전도가 근심돼 칼로 에이는듯이 마음이 아파났다.    (세자리수 20여개도 암산으로 척척 계산하던 성림이, 성림인 얼마나 귀여운 앤가. 성림을 생사선에 놔둘 수 없어. 절대 그런 일은 없어.)    순간 청포도눈이 초롱초롱해 자기를 기다릴 성림이, 수술비용을 기다리며 경각을 다투는 나어린 성림이, 나어린 성림의 생명위기를 생각하자 종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성림인 아빠 복이 없구나. 어쩜 저런 아빠를 만났어? 성림이 불쌍해)    그는 택시를 잡아타고 곧추 공안국 구류소로 달려갔다.     구류소는 시가지를 벗어나 망아산 기슭 소나무 숲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철조망을 촘촘히 두른 토성을 바라보다가 구류소 대문 어귀 당직실에 가서 당직경찰한테 미리 준비해온 기자증을 내밀었다.     “저는 신문사 기자 리종호입니다. 여기 구속된 박철석을 취재하려고 왔습니다.”    그는 아무 관계없는 철석을 면회하려고 왔다면 철석이 거부할 거 같아 취재하러 왔다고 둘러댔다.    이윽고 구류소 책임자는 공안국 박동묵 국장한테 전화해 기자가 철석을 취재해도 되겠는가고 청시했다.    “철석을 취재해 뭐 한다오? 취재기자는 누구라오?”     “로기자 같은데 리종호라고 합디다.”    “아, 신문사 리사장이구만. 취재하라고 하오.”     종호는 재직 기간에 박동묵 국장한테 자주 찾아 가서 숱한 중대형사사건 해명기를 취재해 써서 신문에 내주었다. 하여 박동묵 국장의 치적과 승진에 많은 도움이 됐던 것이다.     박동묵 국장의 비준을 받고 종호는 무난히 구류소 소회의실에서 성림의 아빠라는 박철석을 만날 수 있었다.     박철석은 쇠고랑이를 찬 채 경찰한테 압송돼 머리를 푹 숙이고 소회의실에 들어섰다.    왜소하게 생긴 박철석은 머리가 작고 낯색마저 해바잔게 진짜 남자 같지 않았다.      철석의 작은 납짝코를 보는 순간 종호는 피뜩 우스운 생각마저 떠올랐다.     ( 코 작으면 남자 그것도 작다고 하지 않는가. 납짝코를 봐라. 쓸데 없는 말도 많이 듣겠구나.)    종호는 미신을 믿지 않았지만 관상에 그 사람의 절반이 보인다고 하는데야 별 수 없었다.     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자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아가씨를 놀러 마사지방에 다 갔어?)     종호는 아니꼬운 눈길로 피끗 철석을 쏘아보았다.    경찰은 철석을 보고 명했다.     “기자 묻는 말에 자기 죄행을 제대로 대답해. 알았는가?”     “예, 예.”     철석은 연신 허리를 꼽싹꼽싹했다.     경찰은 종호를 돌아보고 말했다.     “기자님, 제가 복도에서 경계하겠습니다. 저자가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저를 부르십시오. 혼빵 내주겠습니다.”     “네- 그럽시다.”    종호는 경찰이 나가자 철석한테 나란히 다가앉으며 나직이 물었다.    “여긴 어떻게 돼 들어오게 됐소?”    철석은 외까풀눈으로 종호를 흘겨보았다. 말하는 목소리도 여자 목소리처럼 목구멍에 기어들어갈듯이 낮은데다가 모기 우는 소리처럼 가늘게 앵앵거렸다. 확실히 지영의 말처럼 남성 표징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다.    (저래서 나영이 군스나를 쳐다보았을까?)    “밥 먹고 할 일도 없는 모양입꾸마. 창피하게 별 거 다 조사합꾸마. 흥!”    종호는 온 바하고는 철석의 더러운 바닥을 파 보고 싶었다. 아마 뭐나 꼬치꼬치 캐묻는 기자의 직업병도 좀 작용한 것 같았다.    “어째 경찰을 불러야 말하겠소?”    그제야 철석은 머리를 툭 떨어뜨리면서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실토정했다.    “마사지방에서 아가씨와 오입하다가 붙잡혀 왔습구마.”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나영이 보내서 왔는데. 이전에 나영이 당신 보고 심계국에 5만원 가져가라고 했다던데 가져 갔소?”    “못 가져갔습니다. 내 혼자 살면서 무슨 돈이 있어 가져가겠습니까?”    “아니, 5만원카드와 비밀번호를 알려줬다던데 그 돈은 어쨌소?”    “다 비벼먹고 없습니다.”    종호는 나영이네 옆집 녀인의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철석의 범죄에 대해선 이제 구류소 해당 경찰과 아가씨를 찾아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기고 젤 관심사부터 말했다.    “성림이 불시에 심장병에 걸려 수술비용이 엄청 많이 수요되오. 얼마간이라도 대줄 수 없겠소?”    “흥! 내 무슨 돈이 있어 치료비를 대라오? 한국에 데려다 공부시키겠다더니. 흥! 바람둥이 간나새끼, 뺑덕이 에미처럼 가정과 애를 다 버리고 변강쇠하 구 바람나서 달아나더니. 다 콱 썩어져라구 해라.”     “저도 애비오? 사람이 어쩜 그런 말을 다 할 수 있소? 제 새끼 앓는데 치료비 일전한푼도 안 대고. 그게 뭐요? 저도 애비오?”    철석은 종호를 흘끔 쳐다보았다.    “펀펀해 뛰놀던 애 무슨 급병에 걸렸다고 심장을 다 수술한다오? 그것도 수술비 그렇게 비싼 한국에 나가 수술한다오. 약물로 치료할게지. 쩍 하면 수술한다오? 난 성림이 심장을 수술하는 걸 반대하오."     종호는 이전에 악처가 쩍하면 수술하자던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종호는 철석의 수술하지 말고 약물치료를 하자는데는 얼마간 동감이 가기도 했다. 그러나 수술비용이든 약값이든 치료비용은 마련해야 해야 했다.   그는 철석을 마주 보며 정중하게 말했다.    "여기서 나가게 해 주면 성림이 치료비용을 얼마간 대주겠소? ”   철석은 미덥지 않아 콧방귀를 흥 뀌었다.   “기자면 답둥? 와느르 법을 가지고 흥정합둥?  무슨 그리 대단해서 날 여기서 내간다고 그럽둥? 난 반년 로동개조로 판결받았는데.”     “글쎄. 구류소에서 나가게 되면 성림의 수술비용을 대줄 수 있지?”    종호가 너무나도 정색하는 바람에 철석은 고개를 들어 종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외까푼눈에는 아직도 미심한 표정이 남아 스스르 흘러 지나가고 있었다.    “구류소에서 내놓으면야 치료비를 얼마간 댑지. 성림은 내 새끼인데.”    철석은 종호한테 다가앉으면서 애원하면서 한술 더 떴다.     “날 한국에 보내줍소. 범죄전과 딱지 딱 붙어다녀 한국에 못 나가면 내 무슨 돈이 있어 성림이 수술비를 대주겠습둥?”     종호는 그때라고 물었다.     “그래, 이번에 마사지방에서 아가씨를 데리고 논 것 밖에 다른 죄는 없소?”     “없습구마.”     철석은 뒤를 달았다.     “그저 술을 마시구 시시껄렁한 주정을 한 것 밖에 없습구마.”    종호는 철석이 로동개조 반년 판결을 받은 것을 보면 그저 초범이 아닐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그러나 종호가 아무리 물어도 철석은 자기를 “류소에 내가달라”, “한국 수속을 하게 범죄경력을 지워달라.” 등등 비난사정을 할뿐 자기 죄행은 한마디도 하지 않을 잡도리었다.     종호는 억지로 고름 짜듯해선 안되겠다 싶어 화제를 바꿨다.     그는 가방에서 나영이 부탁한 리혼청구서를 꺼내 철석한테 내밀었다.      “나영이 리혼하겠답데. 동의되면 이걸 읽어보고 싸인하오.”      “뭐라고? 리혼?!”     철석은 외까풀눈이 째지게 데꾼해서 리혼청구서를 들여다보았다.     “개쌍년, 화냥년이 최국장과 눈이 맞아 한국에 달아나더니. 흥, 이젠 리혼하구 최국장과 살자고 이래?”    철석은 세길네길 펄쩍 뛰었다.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 더러운 바람둥이 간나새끼, 리혼하자고? 성림이 수술비용을 구실로 날 사기치자고 그러지? 내 모를 거 같애? 안된다, 안돼!  그 돈이 있으면 내 술이나 먹겠다.”    그는 의심에 찬 눈길로 종호를 쏘아보면서 따지고 들었다.     “당신 도대체 누구요?! 나영과 무슨 관계오?! 우리 부부간에 일어 초약에 감초처럼 싱겁게 삐치긴?"    "미안하오. 난 나영이 심부름을 할뿐이오."    "씨베, 어째 나영이 직접 와서 리혼하지 않는가?”    종호는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좋소. 나영이 지금 이 구류소에 있소. 저네끼리 해결하오. 이젠 삐치지 않겠소.”     “뭐? 나영이 여기 있다고?”     “그렇소. 리혼청구서는 두고 가겠소. 리혼문제는 당사자끼리 해결하오.”     종호는 자리를 뜨기 전에 마지막으로 물었다.    “성림의 수술비용은 얼마간 댈 수 있지?”     “여기서 날 꺼내 한국에 보내주면 벌어서 얼마든지 대겠습니다. 지위 높은 분 같은데 부탁드립시다. 날 꺼내줍소. 그럼 친아버지처럼 모시겠습구마.”     철석은 갈라지면서도 쇠고랑이를 찬 두 손으로 종호 손을 꽉 붙잡고 비난사정했다.     종호는 당직실로 나가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저런 것두 애비라고? 성림이 불쌍하구나. 애비, 에미 다 철창 속에 갇혔으니 나어린 성림은 어쩌는가? 철창 속 저런 애비를 믿다간 한지에 방아를 걸겠다. 성림의 치료비는 희망이 없구나.)     종호는 나어린 성림의 앞날을 생각할수록 막막해 저도 몰래 눈 앞이 캄캄해났다. 속이 탄 한숨은 삼복지간에도 서립발치며 뿜겨져 나갔다. 
521    대하소설 황혼 제4권(64) 괴상한 집들이 김장혁 댓글:  조회:476  추천:0  2024-10-27
     대하소설 황혼 제4권            김장혁                 64. 괴상한 집들이     종호는 세입녀를 찾아가 마지막 아파트를 19만원에 팔기로 집판매계약을 맺고 예약금 5만원까지 받아넣고 민박을 찾아가면서 그 마지막집을 두고 깊은 추억에 잠겼다.     새도 둥지 있건만 종호는 결혼한지 석3년이 되도록 엉덩이를 들여놓을만한 집도 없어 피눈물나는 셋집살이를 했다. 그 셋집이라는 것도 주인 집 석탄창고에 대충 구들을 놓은 콧구멍만한  셋집이었다. 중천장도 누르지 않아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아침에 일어나 쌀을 씻으려고 물독을 열어보면 물이 떵떵 얼군 했다. 하여 바가지로 살얼음을 깨고 물을 퍼 써야 했다.     무더운 여름에는 콧구멍만한 셋집에서 려향을 중간에 눕히고 세 식구가 총총 드러누우면 돌아눕기도 어려워 숨이 막혀 질색해 죽을 것만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소낙비 쏟아지는 날에는 셋집 천정에서 비물이 새 말이 아니었다. 하여 여기저기에 대야랑 바가지랑 사 발이랑 널어놓고 뚝뚝 떨어지는 비물을 받아내야만 했다.     류려평은 주인집에 가서 물초롱으로 물을 길어 들고 와서 물독에 부으면서 두덜거렸다.     “이런 집도 집이라고 살아? 본가집에 들어가 살기오.”    그러나 종호는 가시집에 얹혀 살기 싫어 완곡하게 거절했다.     “좀 참고 견디오. 이제 신문사 옆에 집을 지으면 한채 달라고 할 판이오.”      류려평은 코웃음치면서 종호 말을 곧이듣지도 않고 세집살이 고달프다고 두덜거렸다.      그때마다 종호는 둥지 없는 새 신세를 한탄하면서 국장 집 귀공주를 데려다 피눈물 나는 셋집살이를 시켜서 미안한 마음이 그지 없었다.      (엉덩이를 들여놓을 제 둥지도 없어가지고 장가를 들어 뭘 해? 괜히 남의 귀공주를 데려다 고생시키면서?)      그의 귀전에서는 류려평이 두덜거리던 소리 귀전을 아프게 때렸다.     “제 노릇도 못하는 나그네 그거 개를 떼서 줘라.”     종호는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자기 집을 마련할 기회만 기다렸다.     몇달이 지나지 않아 신문사에서 재정지원을 받아 단위 기자들의 아파트를 지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종호는 수박 하나 달랑 사 들고 윤광수 사장을 찾아갔다.      때마침 윤사장 부부가 집에서 텔레비를 보고 있었다.      종호가 윤사장네 층집에 처음 들어가보니 비록 부사급 신문사 사장인데도 윤사장네는 한 40평방미터도 되나마나한 자그마한 낡은 층집에서 살고 있었다.     종호는 속으로 윤사장은 경제시대 지도자와는 달리 청렴한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호는 윤사장을 보고 단도직입으로 아파트 한채를 달라고 비난사정했다.     “지금 제가 사는 셋집은 교외에 자리잡고 있어 눈이 오는 날이면 제때에 출근하기도 어렵습니다. 교외는 눈을 제때에 치지 않아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때에 취재하러 가지 못할 때도 많았습니다. 지금 사는 세집은 겨울에는 추워 물독이 떵떵 얼고 여름에는 비 새서 살기도 힘듭니다.”      윤사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런데 윤사장의 안해는 종호가 가져간 수박을 칼로 쪼개서 차탁에 올려놓으며 앞쇄기질했다.      “그럼 시내에 셋집을 잡아야겠구만.”     종호는 억이 막혀 입을 함박만큼 벌렸다. 이윽고 그는 간신히 무거운 입을 뗐다.     “시내에 어디 셋집을 얻기도 쉽습니까? 단위에서 지은 아파트 한채를 주십시오. 그럼 제가 제때에 취재하겠는데 말입니다. 저는 제 집이 있으면 윤사장님을 모시고 기자사업을 잘해 보고 싶습니다.”     윤사장은 한참 궁리하다가 한마디 물었다.     “종호 우리 신문사에 들어온지 몇해던가?”     “올해까지 3년 됩니다.”     윤광수 사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종호는 참 전도 있는 기자라고 생각하오. 보도기사도 참 사회문제성기사를 많이 쓰더구만.  단위에서 공령, 사령(社龄), 사업성과로 점수제를 해서 아파트를 분배할 예산이오. 이제 단위 지도부에서 토론할 때 종호문제를 잘 토론해보지. 내 생각에 종호는 사회부 주임하기에 적절한 인사라고 생각하오. 좋은 소식을 기다리오.”    종호는 그 말에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허리 굽혔다.     “아파트를 주면 저는 윤사장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사업을 더욱 잘해 보답하겠습니다.”    윤광수 사장의 안해가 또 코웃음쳤다.    “쳇, 우린 사장인데도 요만한 집에서 사는데. 이제 온지 3년 밖에 안되는 일반기자가 어떻게 46평방짜리 아파트를 타겠소? 어디 그리 쉬울 거 같소?”    (무슨 뜻일까?)    수박 하나 달랑 들고 와서 아파트를 타겠다고 그러는가는 말 같게도 들렸다.     그러나 이변이 생겼다.     종호는 숱한 중대한 뉴스, 문제보도기사를 써서 숱한 전국, 지역급 뉴스상을 탄데다가 항일투쟁사 책까지 냈다. 게다가 윤광수 사장과 김사장이 극구 주장해 종호를 신문사 사회부 주임으로 긴급임명했다. 아마 종호의 사업실적도 있었지만  기어이 종호한테 집을 주려고 주임 점수도 올려주려는 지도부의 의도도 있은 것 같았다.      좌우간 윤광수 사장과 김부사장의 덕을 입어 종호는 뛰어난 사업성과 점수에 주임 점수까지 추가하여 종합점수가 누구보다 높았다. 그런 연고로 종호는 자기보다 공령과 사령(社龄)이 훨씬 긴 기자들을 제치고 46평짜리 아파트를 반값에 타게 됐다.     그때 청렴한 윤광수 사장도 40평방메터가 되나마나 한 아파트에서 살았다. 종호는 윤광수 사장의 관심에 마음 속으로부터 고마웠다.     그 아파트는 무료로 주는 것도 아니고 반값은 단위에서 대고 반값은 기자 개인이 부담해야 했다. 그런데 갓 주임으로 임명된 종호가 새 아파트를 탄 일은 특급뉴스로 돼 물의를 일으켰다.     일부 공령이 긴 기자들은 신문사에 온지 3년 밖에 안되는 종호를 주임으로 임명한데다가 새 아파트까지 줬다고 사장실에 가서 떠들어댔다.     어떤 기자들은 뒤에서 종호는 국장 가시아버지 사장들과 뒤문거래한 덕분에 입사한지 3년 밖에 안돼 헬기를 타고 주임으로 제발됐다,  총편급이 탈 새 아파트를 가졌다고 떠들어댔다.      그때 윤광수 사장은 묵은 그루터기에 이밥을 먹으려는 그런 기자들을 손가락질하면서 명확히 말했다.     “종호는 저네와는 달리 뛰어난 사업성과를 따냈소. 때문에 당당하게 새 아파트를 탈 자격이 있소. 동무네 종호만큼 해놓은 일이 뭐 있소? 종호는 나이는 어리지만 사회문제성 보도를 했소. 그는 기자로서 여론감독을 젤 잘한 젊은 주임기자란 말이오. 허나 저넨 사업태도요?  젤 쉬운 회의보도나 슬슬 쓰면서 자리만 오래 지키면 되는가 하오? 그렇게 해선 10년 기자로 있어도 아파트를 탈 거 같소? 꿈도 꾸지 마오. 작작 떠들고 돌아가서 사업이나 잘하오.”     그제야 뒤공론은 잠잠해졌다.     종호는 그때 때마침 항일투쟁사 책을 낸 원고료 11,000원이 있어 가시집에 손을 내밀지 않고서도 시가의 절반 밖에 안되는 새 아파트를 살 수 있게 됐다.     종호는 그때 그 집 일만 생각하면 돌아가신 윤광수 사장님이 그리워 저도 몰래 콧마루가 시큼해났다. 동시에 그때 윤광수 사장네 사모님을 얻어먹자고 그러는가고 오해한 것이 못내 후회됐다.     종호는 추억의 돛배를 타고 30여넌 전에 그 집을 애나게 다 꾸려놓고 류려평을 데리고 괴상한 집들이를 하던 일도 피뜩 떠올랐다. 그때 일을 생각하며 종호는 씨무룩이 웃었다.     류려평은 종호가 새 집에 가서 집들이 의식을 하자고 하자 퉁사발눈이 데꾼해졌다.     “아니, 가구도 하나 갖추지 못하고?”     류려평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침대도 없이 불시에 어떻게 집들이한다고 그래오? 이사짐을 하나도 옮겨오지도 못하잖았소? 제 정신 있는 거 같잖다. 흥!”     “글쎄. 이제 로임을 타면 하나하나 갖춰놓고 오늘은 그저 집에 드는 의식을 하면 되오.”     “딱 오늘 해야 되오?”     “그래. 신을 셋이나 업은 신선할아버지한테 가서 오늘 날을 받았다니까.”     종호는 류려평을 데리고 시장에 가서 삶은 옥수수 여섯 이삭에 삶은 돼지고기 두근을 사가지고 새 아파트에 갔다.     종호는 집에 들어가 어정쩡해 서 있는 류려평의 손목을 잡아 끌고 들어가 집 안을 한고패 휘 돌아보았다.     뒤이어 종호는 침실에 들어가 유리창문 카텐을 쭉 쳐놓고 류려평을 와락 끌어안았다.     “싯허연 대낮에 왜 이래?”     류려평은 와뜰 놀라 두 손으로 종호 팔을 뿌리쳤다.     종호는 류려평을 더욱 으스러지게 끌어안고 뜨거운 입술로 그녀의 두툼한 입술을 찾아 헤맸다.     “려평이, 우리 이 집에서 아들 하나 더 낳고 행복하게 살기오.”     “왜 이래? 오늘 아들애를 만들자는 건 아니겠지?”     “날을 받은 오늘 만들면야 대박이지. ㅎㅎㅎ.”     종호는 려평의 뒤로 달려들어 보라색 치마를 훌 쳐들었다. 우유빛 하얀 반달이 훌러덩 드러났다. 종호는 성난 막대기를 짚고 그 하얀 반달 속으로 급급히 마구 달려들어갔다.     류려평은 허벅다리를 배배 꼬면서 아우성쳤다.     “아이고, 이런 집들이도 다 있어? 당신 참 괴상한 이벤트를 다 해. 아이유, 흑흑, 흑흑.”     뒤이어 자그마한 새 아파트에서는 거친 숨소리와 류려평의 아우성소리, 흐느낌소리, 신음소리 걸걸하게 반죽돼 마구 울려퍼졌다.     한참 후 그들 둘은 화장실에 들어가 대충 하신을 씻고 나왔다.     종호는 신문종이를 주방 부엌에 펴더니 삶은 돼지고기와 강냉이를 비닐주머니에서 꺼내놓았다.     “자, 이 새 집에서 첫 때를 먹기오.”     뒤이어 그들은 돼지고기에 강냉이나 먹으면서 웃고 떠들었다…     종호는 추억에서 깨나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그게 어제 일 같은데. 이젠 그 집에서 모든 게 끝났구나. 이젠 옛말도 많고 말썽도 많았던 그 놈 집을 팔아버랴야지. 헛되히 흘려버린 청춘과 정열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 버려야지. )     하나 밖에 없는 둥지를 털어 성림을 구할 생각을 하자 종호의 마음은 더 없이 홀가분해졌다. 그의 걸음걸이도 한결 가벼워졌다.
520    대하소설 황혼 제4권(63) 마지막 둥지 김장혁 댓글:  조회:352  추천:0  2024-10-26
       대하소설 황혼 제4권              김장혁         63. 마지막 둥지        어느 새 종호는 민박에 행장을 풀 새도 없이 삼복 무더위도 무릅쓰고 곧추 그 말썽도 많았던 46평방짜리 집으로 찾아갔다.      46평방메터 밖에 안되는 그 집은 종호가 30년 전에 항일투쟁사 책 원고료 11,000원을 주고 산 유일한 집이었다. 비록 그 집 가옥소유증에는 류려평과 공동소유로 돼 있었지만 종호가 아글타글 한푼두푼 벌어 허리띠를 동여매고 아껴쓰면서 산 아주 유서 깊은 마지막 아파트였다.     종호는  층계로 3층에 터벅터벅 올라가 문을 똑똑똑 두드렸다.     문이 열리지 않고 대신 집 안에서 웬 아낙네 목수리가 들렸다.     “누굴 찾습니까?”     “저는 이 집 주인입니다. 상의할 일이 있어 그럽니다.”     “네- 어서 들어오세요.”    절컥     자물쇠 여는 소리 들렸다.     드디어 문이 열리면서 의아해하는 한 녀인의 외까풀눈이 그의 아래 위를 훑어보는 것이었다.    세입녀는 종호가 출국하면서 세를 준 사람이 아니고 면목도 모를 녀인이 아니겠는가.     아마 세입자가 이 녀인한테 세집을 넘겨 세를 준 것 같았다.     종호는 집 안에 들어가 선 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급한 일이 있어 이 집을 팔려고 하는데요. 일주일 내로 집을 내 줄 수 있겠습니까? 될수록 협조해주면 고맙겠습니다.”     녀인은 기겁한 소리를 쳤다.     “아니, 너무 한데요. 일주일 새에 어디 가서 방정한 집을 찾겠습니까? 지체도 높은 신문사 사장이라던데요. 집도 없이 사는 아녀자를 불쌍히 여겨 시간을 좀 미뤄주세요. 네?”      그 녀인은 할기죽거리며 종호한테 비난사정했다.      “될수록 빨리 내주십시오. 급히 어린 애 심장수술비용을 마련해야겠는데. 난처한 사정을 좀 봐주십시오.” 녀인은 그 말에 더는 토를 달지 못하고 선선히 대답했다.     “알았습니다. 집을 얻어보면 인차 집을 내지요.”     종호는 세입녀 련락전화번호를 목책에 적고는 되돌아섰다.     “그럼 부탁드립시다. 집을 내게 되면 인차 련락주십시오. 인차  집판매광고도 내겠습니다.”     녀인은 문께까지 바래고 돌아서면서 뭐라고 도도거렸다.     종호는 이 마지막 둥지를 팔아 성림의 수술비용을 마련하려고 했다. 그는 결코 성림을 구해내 나영의 환심을 사려는 것도 아니었다. 또 성림의 수술비용을 대주고 그걸 디딤돌로 삼아 나영한테 구애해 재혼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종호는 다만 성림을 참된 조선족애로 키우려는 나영의 꿈이 가긍해 성림을 구하려고 나선 것이었다. 더 멀리 생각하면 종호의 그 성심에는 성림 같은 애들한테 장차 민족의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아름찬 기대도 슴배여 있었던 것이다.     (조상 환상곡은 장차 바로 성림 같은 수천수만의 조선족애들에 의해 계승되고 푸르른 하늘에 높이 울리게 해야 한다.)     종호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환상곡에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종호는 이제껏 한국에서 경찰에 쫓기면서 사는 나영이 불쌍해 여러모로 도와 나섰던 것이다. 같은 조선족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인간적으로 약자, 아녀자를 돕는 것은 그의 삶의 좌우명이었다.      그러나 그후 한국 여경한테서 나영은 공금을 탐오한 인터폴 지명수배도주범이란 것을 안 후에는 가차없이 관계를 끊으려고 했다.       그후 나영이 담가에 실려 병원에 들어가면서도 자기한테 성림을 참된 조선족 애로 키우고 싶다면서 부탁한 말을 종호는 아주 높게 샀다. 그때부터 성림의 모자를 인간적으로 보살피려고 고쳐 마음먹게 되였다. 설상가상으로 류려향이 자기 친딸이 아니라, 류덕재와 류려평의 불륜아라는 것을 안 시점에서, 이젠 민족의 조상환상곡을 려향한테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 후 종호는 더욱 성림을 친아들처럼 아끼고 보살펴 참된 조선족 애로 키우려고 마음 먹었다. 그리하여 나중에 그는 성림과 더불어 나영도 또다시 동정하게 되였다. 알고 보니 나영은 정호한테 속히워 공금을 가져다 류려평과 류덕재한테 준 것이 아닌가.      (나영은 정호한테 리용됐어.)     종호는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간 나영이 불쌍해났다. 그는 그 애지중지하던 집을 팔아서라도 에미 없는 불쌍한 성림을 꼭 구해내리라고 굳게 다짐했다. 또 고향의 얼기설기 얽힌 사회관계를 리용해 감옥에 들어갈 나영을 구하려고 들었다.     그러나 종호는 그 집을 팔아도 수술비용은 판 부족이라는 걸 불 보듯 빤히 알고 있었다.     종호는 먼저 부근 자그마한 려인숙에 들어가 행장을 풀었다.     그가 너무 무더워 세수를 하려고 화장실에 들어가려는데 핸드폰이 급히 울렸다.      피뜩 보니 아까 세입녀 전화번호 아니겠는가.     “여보세요. 금방 만났던 세입녀인데요. 이 아파트 얼마에 팔 예산인가요?”     종호는 제꺽 대답했다.     “한 25만원 받았으면 좋겠는데요.”     그는 그만큼 못 받을 걸 알았지만 집 값을 좀 올려 불러야 제 값에 팔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이고, 너무 비싸요. 지금 시가에 20만원에 팔아도 대단한줄 아세요. 지금 숱한 빈 집이 팔리잖는데 어떻게 그렇게 받습니까? 좀 받을만큼 낮춰 주세요.”     “그래, 세입자 집에서 그 아파트 사려고 그랩니까?”     “예- 그래서 알아보는 겁니다. 아무리 혼자라도 맨날 하루살이처럼 셋집에 떠돌아다니면서 산다는 것도 말이 아닌데요.”     종호는 좀 궁리하다가 결단성있게 말했다.     “그 집에서 사겠으면 집값은 좀 낮춰 고려할 수 있습니다. 한 23만원이면 어떻습니까?”    종호는 재빨리 성림의 수술비용을 장만해가지고 한국에 나가야 했다.     그러나 상대방도 집 값을 엄청 깎아내리웠다.     “신문사 사장님, 가진게 없는 아녀자를 좀 돕는 셈 치고 한 18만원에 파세요. 그럼 인차 사겠습니다.”     종호는 좀 궁리하다가 말했다.     “네, 아녀자를 돕는 건 저의 인생 좌우명입니다. 혼자 집없이 산다니깐. 무척 동정 가는데. 이렇게 합시다. 저는 좀 내리우고 그 집에선 좀 올리워 중간 값을 취합시다.”     “그럼 얼마에 팔 작정입니까?”     “내 통쾌하게 3만원 내리우고 그 집에선 2만원 올려 20만원에 삽소.”     “딱 19만원에 팝소.”      “20만원이라도 한평방에 4300원 푼합니다. 시내 중심에 있는 그 집은  적어도 4500엔 팔아야 돼요. 교통이 편리하지. 얼마나 편리합니까?  베란다에 큼직큼직한 통유리를 넣어서 집안에 해빛이 잘 들어오고 집안이 또 얼마나 환합니까? 20만원에 사면 사고 안 사겠으면 없는 일로 합시다. 잘 생각해보고 살 의향 있으면 전화 하세요. 제가 지금 급히 어디를 가야 합니다. 미안합니다. 전화 끊습니다.”     상대방은 아무 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종호는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고 화장실로 들어가면서 두덜거렸다.     “성림이 급히 심장수술만 안 해도 하나 밖에 없는 그 집을 안 팔아. 그 집을 꾸리느라고 내 얼마나 고생했는데. 참.”     종호는 정작 그 정든 집을 팔려니 좀 아까웠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는 진짜 이상했다. 그는 세수를 하면서 금방 19만원에 팔라고 할 때 제꺽 대답하지 않은 것이 후회나지 않겠는가.      (헌데 19만을 받아선 성림의 수술비용이 판 부족인데. 한국 교수의사는 수술비용이 적어도 3천만원이나 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 10만원이 모자라는데…)      그때 또 핸드폰이 울렸다.      또 그 세입녀였다.      “여보세요. 집이란 건 작자가 생겼을 때 제꺽 팔아야죠. 만원 때문에  질질 끌게 뭔가요?”      종호는 제꺽 대답했다.      “그 집에서 딱 사겠다면 19만원에 팔겠습니다.”      “19만원이면 사겠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먼저 예약금으로 한 5만원 내십시오.”      “보통 예약금은 한 만원 내지 3만원 내는데요. 그러나 사장님도 통쾌하게 집값을 내리웠기에 5만원 내지요.”     종호는 다짐을 땄다.     “그집에서 이 집 잘 샀습니다. 19만원이면 한평방에 4천원 푼합니다. 시내 중심에 있는 그 집은 적어도 시가에 한평방에 4500원은 넘어 받아야 합니다. 제가 어린애 수술비용 때문에 헐값에 팔겠다고 할 때 잘 샀습니다.   예약금 5만원 내고 가옥매매계약을 맺읍시다. 제가 급히 한국에 나가야기에 한주일 내에 집값을 다 주세요. 가옥소유증변경도 한주일 내에 다 끝냅시다.”     “그렇게 합시다. 한 두시간 후에 이 집에서 만납시다. 예약금 5만원 드리지요.”     “네, 그렇게 합시다.”     종호는 전화를 끊자마자 컴퓨터를 꺼내 탁상 위에 올려놓고 가옥매매계약서를 작성했다. 피뜩 려향을 감시하는 몰카앱을 켜보니    려향은 항창 회사 사무실에서 걸레로 사무상을 닦는 것이 보이었다.      (친애비 아니라고 이젠 어디 갔는가 문안 한마디도 없구나. 흥!)      그는 집매매계약서 전자파일을 핸드폰 위쳇에 저장한 후 려인숙을 나서서 복사부로 향했다.      그런데 속에 걸리는게 좀 있었다.      그 마지막집은 가옥소유증에 류려평과 공동소유로 돼 있었다.      (아직 우린 리혼도 하지 않았잖은가? 그럼 공동소유로 된 집을 려평의 동의 없인 팔 수 없지 않는가? 감옥에 간 악처를 어떻게 가옥관리국에까지 데리고 가는가?"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린 그저 구두로 재산은 서로 자기 차지한 재산을 그대로 가지기로 했을뿐이야. 재산분할 서면계약이 없잖은가? 이걸 어쩐다?)     순간, 종호는 피뜩 이런 궁리 떠올랐다.    (좌우간 집을 살 작자 있을 때 먼저 예약금을 받아놓고 가옥관리국에 가서 가옥변경수속을 들이밀어보자. 정 안되면 리혼수속을 하고 감옥에 찾아가서 류려평과 재산분할계약서를 맺을 판이지.)    종호는 삼검불 같은 머리를 이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복사부에 다가갔다.      그는 복사부에 가서 집매매계약서를 복사하고 나오면서도 착잡한 생각에 빠졌다.    (혹시 악처가 그 마지막집을 파는 걸 동의하지 않으면 어쩌지? 악처가 파는 걸 동의해도 공동소유라고 집값을 절반씩 나누자면 어쩌지?)    종호는 세입녀를 찾아가면서 베아링처럼 속궁리를 돌렸다.    그는 무릎을 탁 치면서 중얼거렸다.    "옳지. 바로 그거야." 그의 머리 속에서는 악처를 대처할 꾀가 피뜩피뜩 떠올랐다. 순간 굳어졌던 그의 얼굴근육이 느슨히 풀리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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