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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7) 결혼 김장혁
2024년 01월 29일 08시 12분  조회:876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1권


           

                           8. 결혼
 
 
 
     가없이 맑고 푸른 가을의 하늘은 푸르기만 했다. 강물도 어찌나 맑은지 지느러미를 하느작거리며 조약돌에 키스하면서 유유히 노니는 붕어도 다 들여다보일 지경이였다.
      고향의 강가에서 빨래하는옥실의 눈앞에는 뱀을 잡아주고도 아무 말 없이 산으로 나무하러 성큼성큼 떠나가던 경숙의 모습이 떠올랐다.
     옥실은 빨래를 훨훨 휑구어 함지에 담아 이고 집에 돌아갔다.
   그녀는 이번에는 물동이를 이고 샘물터에로 사뿐사뿐 다가갔다. 그녀가 바가지로 샘물을 푸려고 샘물을 들여다보는 순간 경숙의 길쭉한 얼굴이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웬 일이지?)
     옥실은 한숨을 호 내쉬면서 바가지로 잔잔한 샘물을 저어 경숙의 모습을 지워버렸다. 그녀가 쪼그리고 앉아 두 손을 무릎에 얹고 샘물을 들여다보니 고요해진 물에 또 경숙의 상반신이 떠올랐다.
     옥실은 누가 볼까 봐 황급히 바가지로 샘물을 물동이에 퍼 담아 이고 샘물터를 떠나갔다.
    열다섯 살의 이팔청춘 옥실은 그때로부터 저도 모르게 경숙에 대한 사랑의 싹이 트는 것을 가슴 속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하루. 옥실은 빨래터에 가서 빨래를 했다. 넙죽한 돌에 빨래를 놓고 방치로 탁탁 쳐서는 조약돌이 환히 다 들여다보이는 운주하 개울물에 빨래를 불렀다가 왈왈 헹궈 꾹 꾹 짰다. 그리고는 빨래를 버드나무가지에 훌훌 널어 말렸다.
    그런데 흐르는 개울물에도 경숙의 모습이 떠오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우람진 체격에 길쭉한 얼굴, 짙은 눈썹에 두부모같이 두꺼운 입술, 항상 말수 적은 그 입은 철문처럼 꾹 닫겨져 있었다.
    “아니, 이게 웬 일일까?”
    옥실이 중얼거리는데 개울물에 떠오른 그 그림자는 자기 쪽으로 움직여 오는 것이었다. 이상한 것은 거울같이 맑은 개울물 안에 서있는 경숙은 자기 앞에 쪼그리고 앉는 것이었다.
    옥실은 조약돌을 주어 물에다 힘껏 뿌렸다.
    출렁!
    순간 물방울이 옥실의 얼굴과 저고리에 뿌리우면서 경숙과 자기 그림자도 지워졌다.
    화뜰 놀란 옥실이가 너무나도 이상해 옷을 털면서 일어나 돌아다보니 경숙이가 실로 말없이 앉아 자기를 보고 있었다.
    “아니, 경숙오빠!”
    “허허허.”
    “남은 물을 맞고 깜짝 놀라 죽겠는데 너털웃음을 웃소? 흥!”
   옥실은 경숙을 고운 눈길로 흘겨보면서 동전을 감아쥐며 돌아섰다. 순간 옥실의 하얀 볼이 귀밑까지 홍당무로 돼버렸다.
   “누가 보겠소.”
    옥실은 빨래와 방치를 와락와락 대야에 담아 이고 버들강변을 떠나버렸다.
    뒤에서 경숙은 멀어져가는 옥실의 잔등을 보면서 너털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허허허. 누가 보면 뭐라오?”
    이윽고 최구장 어른이 호미를 들고 버들강변으로 다가왔다.
    “경숙아, 옛말에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했다.”
    그러자 경숙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장가들 나이가 되여도 처녀애들과 말도 못합둥?”
    그 말에 최구장은 경숙의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중얼거렸다.
     “오- 그래, 내가 잊었구나. 너도 장가 이젠 들 나이가 되였지.”
     최구장은 쪼그리고 앉아 호미를 개울물에 씻으면서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한참 후 허리를 펴면서 일어섰다.
     “그래 저 옥실이 네 마음에 드니?”
    경숙은 그저 히죽이 웃으면서도 아무 말도 못했다.
    “좋단 말이지. 알았다. 내 혼사말군을 허도이사한테 보내 혼사 말을 해야겠다.”
    최구장은 신흥동의 만춘집 김 구장에게 부탁해 맏아들 경숙의 혼사 말을 신흥동의 옥실의 아버지 허득필에게 했던 것이다.
   허득필은 술이라면 오금을 못 쓰고 농사일이라면 뒷전이어서 살림이 형편없었다. 딸 옥실과 명실의 중간에 아들 명철이 있었다.
   “주인집 영감 있소?”
   김 구장이 집 울안에 들어서자 그때까지 막걸리를 마시던 허득필은 바삐 막걸리사발을 내려놓고 마루에 나가 맞이했다.
    “아니, 어떻게 돼 이 구차한 우리 집에 찾아왔소? 허허. 어서 올라와 한잔 같이 하기요.”
    김 구장은 고무신을 벗고 머리 태를 어깨 너머 뒤로 척 돌려가더니 집안에 들어가 사양하지 않고 술상에 마주 앉았다. 원래 김 구장도 술을 반가와 하여 허 씨 와는 알맞춤한 술친구였다.
     이때 허씨 처자들이 모두 나와 곱도록 인사를 올렸다. 김 구장은 피뜩 옥실에게 눈길을 멈추었다가 허득필에게 돌렸다.
     허득필은 막걸리를 부어 주면서 지껄였다.
     “아니, 신흥동에서 한다하는 만춘집 구장 어른이 어떻게 돼 서발막대기를 휘둘러도 걸칠게 없는 우리 집에 찾아왔소? 자, 좌우간 반갑소. 어서 드오.”
     김구장은 막걸리를 한 사발 죽 마신 후 건가래를 뗐다.
“에헴, 이 집에 내 혼사 말을 하러 왔소.”
     그 말에 조왕 쪽에 있던 옥실은 두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었다. 그는 마음 속에 경숙이 있는데 김 구장이 자기 집 아들에게 혼사말을 하면 어찌 하겠는가고 저으기 근심했다.
    그때 허득필은 싹아 떨어진 이발이 다 들여다보이게 입을 하 벌리고 김 구장을 쳐다보다가 막걸리동이에 바가지를 넣어 막걸리를 퍼 김 구장 앞의 사발에 부으면서 정색해 물었다.
     “그래, 김 구장 어느 아들과 혼사 말을 하러 왔소?”
    그러자 김 구장은 손을 들어 살래살래 흔들었다.
     “아니오. 아니. 참. 에헴."
    허득필은 막걸리를 붓던 사발을 밥상에 달랑 놓으며 다가앉았다.
    "그럼 뉘네 집하구?"
    "저 강 건너 운주동 최구장네 맏아들과 혼사 말을 하러 왔네.”
     허득필은 옥실을 힐끔 내려다보더니 다시 김 구장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때 옥실은 부끄러워서 뒷문을 열고 뒷마당에 나가 추녀 밑에 서서 집안에서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을 엿들었다.
    허득필은 김 구장과 맞 잔을 하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 최구장어른이 김구장을 보냈소?”
     “그러잖구. 최구장 집은 사방 십리 안에 이름 있는 유식한 가문이 아니고 뭐요? 이 집 맏딸을 그 집에 맏며느리로 보낸다면 얼마나 좋겠소?”
      허득필은 귀가 솔깃해졌다.
     “김 구장이 중매를 서니깐. 길게 말해 뭘 하겠소. 내 맏딸을 최구장 집에 주기로 하겠소.”
     옥실은 뒤 벽에 기대 문틈으로 그 말을 엿듣고 부끄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옥실은 기도나 드리듯이 두 손을 맞잡아 가슴에 대고 북녘하늘을 바라보더니 잠간 눈을 딱 감았다. 이윽고 뒤울안에서 구새 목 쪽으로 살금살금 달아났다.
     김구장은 막걸레를 죽 들이마시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매듭을 지었다.
    “그럼, 혼사 말이 성사 된 걸로 최구장에게 전하겠소."
    “가만!”
    아주 시원하게 대답하던 득필이 김 구장을 따라 일어나면서 꼬리를 달았다.
    “그런데 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옥실을 시집보내고 이 집 농사는 누가 짓겠소. 한 3년 있다가 시집보내야 될 것 같소이다.”
    김 구장은 어이없다는 듯이 조개턱을 흔들면서 허득필의 낯에 대고 삿대질을 했다.
    “에끼, 이 사람아, 그래 다 큰 딸을 시집보내지 않고 영영 붙들어두고 자네 대신 농사 질을 시키겠는가!”
     “아니, 그런 말은 아니요.”
    “그래, 딸을 준 대신 막걸리 값이라도 달라는 건가?”
     허득필은 씨무룩이 웃었다.
     “알만하오. 곤난한 살림살이에 기둥같이 믿던 맏딸을 그럴 수도 있지. 내 알아서 최구장에게 말해주지.”
     최구장은 김 구장에게서 혼사말을 갔다 온 과정이야기를 죽 듣고 나서 그 이튿날로 둘째아들 경인을 시켜 송아지 한 마리를 사돈 허득필에게 보내주었다.
    두 사돈집에서는 그해 섣달 초하루에 경숙과 옥실의 결혼을 올리기로 했다.
    최구장 일가는 경사가 났다.
    최구장의 아내 성단은 임신한 몸이 돼가지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돋을 지경으로 바삐 돌았다. 그녀는 감자떡이나 빚어놓고 녹두 길금이나 깨 기름에 볶고 두부와 닭 알 지짐을 지쳐 상우에 올리고 닭이나 잡아 큰상에 올려놓았다. 막걸리를 많이 겨를 수 없어 성단은 경인과 경민을 전날 우시장 고을에 가서 막걸리나 몇 동이 사서 수레에 사서 실어오게 했다.
     원래 옛날 남부와 중부 조선에서는 결혼잔치를 사흘이나 했다. 결혼잔치 첫날에는 신랑이 백마를 타고 신부네 집에 가서 큰상을 받고 신부네 집에서 하루 밤 자고 이튿날에야 신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신부에게 큰상을 받게 한다. 그리고 사흘에는 신랑이 다시 신부를 데리고 신부네 집에 가서 가시부모에게 인사를 올려야 했다.
     그런데 함경북도에 들어온 후 살림살이도 힘들기에 많은 사람들은 결혼잔치를 간단히 하루에 다 치르는 것이 새로운 습관으로 돼버렸다.
    최구장과 허득필은 토론하고 여기 함경북도 새로운 습관대로 결혼식을 간단히 치르기로 했다.
    신랑 경숙은 백마를 타고 삼촌 최구철과 동생 경인을 비롯한 상빈들의 옹위를 받으면서 운주하 개울물을 지나 앞마을 신흥동의 허득필의 집에 이르렀다.
    마을 아낙네들은 울바자 박에 모여서서 손가락을 입귀에 물고  신랑이 허 씨 네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소곤거렸다. 신랑이 키도 훤칠한데다가 매부리코라던가 사내답다고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말고삐를 잡은 총각 경인이도 아주 잘났다고 혀를 둘렀다.
    양태머리를 무릎아래까지 내리 드리운 경인은 키도 경숙보다 더 크고 몸도 탄탄하고 날렵해보였다. 게다가 경인은 고을에 가서 태권도와 무술을 배워서 명절이거나 굿을 하는 날에는 칼춤을 아주 날래게 추어 운주동과 신흥동에는 물론 영월동에까지 인기 있는 총각이었다.
    경숙은 버선발로 가시집 마루를 딛고 안방에 들어가 큰상을 점잖게 받았다. 백두산 원시림에서 내려온 최구철은 경인 등 상빈들을 데리고 아주 틀스레 곁방에 들어가 상빈 상을 받았다. 경인은 수시로 앞뒤로 달아 다니면서 오촌 숙 최구철과 형님 경숙이 사이에 말을 전했다.
    점심때가 거의 될 무렵에야 신랑 경숙은 큰상을 물리고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옥실과 함께 가시부모인 허득필 부부를 비롯한 가시집안 어른들에게 절을 올렸다.
    옥실이 고운 한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면서 가마에 오를 때 허득필은 서운해 멍해 서 있다가 바가지로 막걸리를 퍼서 죽 들이켰다.  그의 처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얼굴을 돌리었다.
    경숙은 백마에 올라타고 고삐를 잡은 경인과 함께 앞서고 그 뒤로 사인교를 탄 신부 허옥실이 뒤따랐다. 상빈들인 최구철은 적토마를 타고 그 뒤에서 옹위하면서 따랐다. 백마를 탄 신랑 경숙은 다른 때보다도 더 늠름해 보였다.
    앞마을에서 신랑신부의 행렬이 운주동에 나타나자 최구장을 비롯한 시집 식구들은 마을 어귀까지 달려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반겨 맞았다. 은녀는 육촌 오빠 경숙이가 결혼한다고 하자 아버지와 함께 며칠 전에 백두산 기슭에서 말을 타고 최구장 큰아버지 집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그는 육촌오빠 경숙이 장수처럼 백마를 타고 가마에 탄 신부를 데리고 늠름하게 오는 것을 보고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성칠은 최구철과 진달래가 왔다는 기별을 받고 마을 타고 백두산에서 잔치 집에까지 찾아 달려왔다. 최구철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진달래와 함께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가마에서 신부가 나오자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신부에게 쏠렸다.
    “와- 정말 곱다.”
    “신흥동에 저렇게 고운 색시가 있었니?”
    “글쎄 말이야."
    "경숙이 색시 고와서 온 밤 자지 못하겠다.”
    바자굽과 구새 목에서 아낙네들이 수군거리는데 마을 처녀들은 부러운 눈길로 새 색시 옥실을 바라보았다.
    새 색시가 큰상을 받자 최구장은 한시름을 푹 놓았다…
    이듬해 음력 2월 2일에 옥실은 옥동자 봉인을 낳았다. 옥동자는 외까풀 눈에 얼굴은 자그마 해도 귀엽기만 했다.
    옥실은 포대기에 싼 봉인을 남편 경숙에게 안겨주었다.
    봉인을 안고 경숙은 너무 좋아서 매부리코를 실룩거렸다.  
     “어허, 그 놈이 보채기도 보챈다.”
     그는 애를 안고 서성거리다가 아버지에게 안겨주었다.
     최구장은 맏손자를 안고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는 애 볼에 뽀뽀를 해주면서 중얼거렸다.
     “봉인아, 이 놈아, 네 놈은 우리 개성 최씨 가문의 기둥 같은 14대장손이다. 어이구, 우리 14대 장손어른이 대단히 역빠르겠는데. 허허허.” 
     맏손자를 본 최구장은 이마의 밭고랑 같은 주름살이 단번에 쪽 펴지면서 내 천 자가 이전에 비해 얕아진듯했다.
     봉인이라는 이름은 최구장이 임시 지어 부른 애명이었다. 후에 최구장은 뿌리 근자 돌림으로 손자들의 이름을 짓기로 하고 봉인의 이름을 근형이라고 지었다.
     마당의 앙상한 나무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 꼬리를 달싹거리며 근형이 태어난 것을 세상에 알리기라도 하듯이 깍, 깍, 깍 노래하고 있었다. 뻐꾸기가 화답이나 하듯 눈덮은 수림에서 뻐꾹뻐꾹 울었다. 
     까치와 뻐꾸기는 화음으로 봉인의 길고 긴 인생의 꿈을 미리 연주하고 있는가? 
    그 울음소리 특별히 애처롭고 비장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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