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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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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24) 친일 주구 김장혁
2024년 03월 05일 11시 22분  조회:588  추천:0  작성자: 김장혁


                제5장 음모궤계
 
 
 
             1. 친일주구
 
    앞을 가리기 힘들게 눈보라치는 을씨년스러운 겨울. 박달나무가 얼어 탁탁 터지고 여우도 엄동설한에 눈물을 흘리면서 눈 덮인 수림으로 도망간다.
    휘몰아치는  친일 주구의 우멍눈이 눈보라 속에 숨어 교활한 눈빛을 번쩍인다. 아첨이 눈발 속에서 해해거리며 거만하게 딸까닥거리는 게다짝에 비굴하게 절을 꾸벅꾸벅한다.
     당나귀차가 명천 우시장 큰 거리 돌바닥길을 딸까닥딸까닥 절주 있게 달렸다. 당나귀차에는 중절모자를 쓴 한길수가 개화장을 짚고 앉아 우멍눈을 떡 감고 구두발만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의 집에 마차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빨리 닫는 마차에 앉았다가 사고라도 날가 봐 당나귀차에 앉아 길을 떠났다.
   
     그는 지금 철주가 꼬드긴 대로 우시장에 와서 일본 쪽빨이들 품에 안기러 오는 길이었다. 한길수는 날개가 돋혀 한시급히 일본 사람들이 욱실거리는 명천으로 날아가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다.
     (그 놈새끼 말대로 일본 사람들을 등에 업고 병완을 꺾어버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 맏아들 말이 맞아. 이런 세월에 순풍에 돛을 달고 제 노릇이나 하는게 제일이지. 모슨 놈의 만세야?)
      그런데 한길수는 일본 말을 통 모르는 것이 참 답답했다. 불시로 배우는 수도 없는 일이어서 먼저 일본말 통역을 찾기로 했다.
    득호는 차를 세우고 뒤돌아다보면서 물었다.
    “주인어른, 우시장에 다 왔습구마. 어디로 가겠습둥?”
    “에이, 듣기도 싫은 함경도 도둑놈 사투리! 흥!”
    한길수는 우멍 눈을 번쩍 뜨더니 두덜거리며 등의자에서 몸을 뗐다. 한참 두리번거리던 그는 일본 병사들이 보초를 서는 초소가 있는 쪽을 개화장으로 가리켰다.
     “저리 가자.”
     득호는 기절초풍한 나머지 고삐를 쥔 채 멍해 주인어른을 뒤돌아다보았다.
     "아니, 쪽발이새끼들한테 무슨 경을 치자구 이럽둥?"
    한길수는 개화장으로 득호 잔등을 툭 치면서 재촉했다.
    "빨리 가잖고 뭘 해?"
   득호는 시에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차듯 고삐로 당나귀 잔등을 탁 치면서 중얼거렸다.
   “저쪽은 허월향 기생집인데요.”
    길수는 발로 득호 엉덩이를 탁 차놓으며 왈칵 성냈다.
   “야, 이 놈아, 가라면 갈 게지. 뭘 알아서 꾸물거리느냐?"
   득호는 그제야 이 늙은 두상이 또 속이 근질거려나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당나귀 잔등을 쳐 차를 동남쪽으로 빨리 몰았다.
    “득호야, 집에 가서 기생집에 갔다는 말 절대 하지 마라. 알만 하냐?”
    “예, 목이 떨어지자고 혀바닥을 놀리겠습니둥?”
    “음. 우리 집에서 일하자면 입이 무거워야 해. 알만해?”
   "네. 주인어른이 기생집에 들린 걸 절대 입 밖에 내지 않겠습구마."
   ''에끼, 이 놈아, 차나 잘 몰아라!"
    한길수는 이젠 우멍 눈을 크게 뜨고 등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떼고 여기저기 살피면서 득의양양해 코 노래를 흥얼거리었다. 그는 어쩐지 기생 월향의 기생방에 갈 때면 흥이 났던 것이다.
    (이래서 사내대장부는 창검 속은 쉽게 지나가도 미인관은 넘어가지 못한다고 하는 거야. 어험.)
     한길수는 여편네 월선이 허벅다리를 꼬집어 놓으면서 기생집출입을 하지 말고  해 넘어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라는 말도 귀 등으로 흘려버리고 말았다. 하긴 이 근년에 마흔 고개도 넘은 월선과 밤잠을 억지로 자고 나면 이전에 애교가 찰찰 넘치던 월선이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됐다. 그리하여 흘러간 세월로 하여 마음이 별스럽게 쓸쓸해나기만 했다.
     그새 변화가 눈 뜨이게 생겼다. 허월향 기생집 옆에는 양옥으로 일본 기생집 사꾸라관이 일떠섰다. 일본 기생 년들이 게다짝을 짝짝 끌면서 화복을 입고 궁둥이를 비뚤거리며 기생집에서 나와 거리를 나돌아 다녔다.
    거리 곳곳마다 초소를 세우고 일본 헌병들이 시퍼런 총창을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몸과 짐을 꼼꼼히 수색했다.
한길수 네가 초소로 다가가자 일본 헌병 둘이나 다가와 총창을 들이대고 내리라고 시늉하면서 뭐라고 씨부렁거렸다.
   “에참, 세상이 더럽게도 변했네. 이 우시장에서 누가 언감 내 앞길을 막는 놈이 다 있었던가? 오래 사노라니 원, 별것들을 다 보겠다.”
    “고노 빠까새끼(이 바보새끼)!”
   한 일본병사가 일어에 조선어를 섞어 고함치면서 총 박죽으로 길수의 턱주가리를 들이갈겼다.
   싸움꾼 출신인 길수는 낯을 옆으로 피하면서 날아드는 총 박죽을 왼손으로 비껴 치우면서 두덜거렸다.
    “야, 정말 이 새끼들!”
   길수는 개화장을 쳐들었다가 치미는 밸을 억지로 꾹 참았다. 그는 바위돌처럼 굳어졌던 박대가리 근육을 풀면서 억지로 웃음지으며 뭐라고 손시늉했다.
    그제야 일본 병사들은 한길수를 당나귀 차에서 내려오라고 손짓했다. 그 놈들은 몸부터 수색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당나귀 차까지 이리저리 수색한 후에야 놓아주었다.
   길수는 투덜거리면서 기생집 앞에 간신히 이르렀다. 그러자 벌써 문어귀에 서있던 기생 년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와 아양을 떨고 교태를 부리면서 마중했다.
    “아유, 오랜만인데요. 영월동의 한 양반!”
    “어서 오세요. 당신 생각에 잠도 안 오데요.”
    “그래, 그래. 어험.”
     그제야 한길수는 금방 당한 굴욕감에서 서서히 풀려나오면서 길죽한 낯에 웃음 구름이 흐르기 시작했다.
    두 기생이 한길수의 양팔을 안고 기생집에 들어가 복도의 층계를 올라갔다. 그래도 길수는 어쩐지 이맘 때면 언제나 달려 나와 자기를 마중하던 월향이 보이지 않는 것이 속에 걸리었다.
    “월향이 없냐?”
    팔을 낀 기생년은 한참이나 아무런 대답도 없이 잠잠하다가 입귀를 배시시 열었다.
    “월향 언니는 오늘 귀한 손님이 있어요. 우리와 폭 취토록 술을 마시면 어때요?”
   길수는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올라 꽥꽥 고아댔다.
     "이 우시장에 날 내놓고 또 누가 있다고 그래? 그년 보고 얼른 나와 마중하라고 햇! ”
     이때 옆에서 부축하면서 층계를 오른 기생들이 기겁해 손으로 한길수의 입을 막으면서 월향의 방을 눈짓했다.
     한길수는 우멍눈을 가슴츠레 뜨면서 뭔가 눈치 챘다.
     (어떤 놈이 왔기에 이 지랄들인가?)
    길수는 월향을 찾아와 중대사를 토론하여야 하겠는데 웬 놈이 와서 붙들고 앉아있는 것이 아주 불안했다.
    그러나 옆에 꼭 붙어 옥방으로 들어가는 기생 년들이 어찌나 예쁜지 월향이고 일본 놈의 통역이고 만나는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는 점차 색마의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양옆에 예쁘고 살 냄새 풍기는 기생 년을 두고서도 모자라 복도 벽에 줄느런히 걸어놓은 반라체기생년들의 사진을 흘끔흘끔 도적눈을 팔았다. 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리고 두 손으로 반 라체 하신을 가린 기생, 일본 녀인머리처럼 부푼 머리카락을 휘감아 올려 동이고 젖가슴을 살짝 반쯤 드러낸 채 외면한 기생, 그 기생들의 사진을 보는 길수의 눈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아이유, 이 양반도. 우리 뭐가 짝져서 어디에 눈을 팔아요?”
     “빨리 우리 방으로 들어 가자요.”
    기생들이 뾰로통한 표정을 짓자 한길수는 기생 년들의 야들야들한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구슬렸다.
    “그래. 어서 들어가자. 요것아.”
   길수는 월향의 방을 그저 건너 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월향의 방에서는 웬 왜놈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알아듣지도 못할 일본 노래를 부르면서 저인지 숟가락인지 술잔인지 사라인지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라리 잘됐다. 이 젊은 기생 년들과 놀면 좀 좋아서. 월향은 월선처럼 이젠 한물 지나간 년이야.)
   길수는 복도 마지막까지 나가면서 칸칸의 미닫이문 옆의 벽에 걸린 기생 년들의 사진을 몽땅 점검했다. 그래도 어째 시원치 않았다.
그는 자기 양팔을 안고 있는 기생 년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왼쪽팔을 안은 기생은 얼굴이 걀쭉한 년인데 외까풀 눈으로 생글 웃으면서 애교를 부리는 그 눈이 아주 매혹적이었다.
    “이름이 뭐지?”
   걀쭉한 기생은 해시시 웃으면서 “뽕녀얘요.”라고 대답하며 몸을 비비 탈았다.
   “뽕녀? 좋아. 너와 함께 한판 하면 뽕뽕 가겠구나. 허허허.”
   길수는 이번에는 눈길을 돌려 오른팔을 안은 년을 훑어보았다.
   반 너머 드러난 풍만한 젖가슴이 백설같이 희고 보름달같이 둥근 우유 빛 얼굴이라든가 진주같이 반짝이는 쌍가풀 눈이라든가 오똑한 코에 키스를 기다리는 빨간 작은 입술이라든가 실로 정이 찰찰 흘러넘치고 그녀의 온몸에서 향기가 그윽하게 풍겼다.
    “에라, 오늘 질탕하게 놀아야겠다. 잘 모셔야 돼.”
   길수의 욕망에 찬 말에 기생 년들은 호들갑을 떨면서 미닫이문을 열고 길수의 팔을 감싸 안은 채 안방으로 들어갔다.
    “에이구, 한 양반. 진짜 황금 한양반을 가지고 왔나 봐.”
    “그래. 영월동 한 양반이 그래도 황금 한냥 반이야. 호호호.”
    안방에 있던 기생년도 일어나 사뿐사뿐 다가와 길수를 반겨 맞았다.
    “안녕하세요?”
    한길수는 탐스레 그년의 온몸을 눈으로 쓸어 만졌다.
   절반밖에 비단으로 가리지 않은 온몸이 다 익은 감같이 말랑말랑해보였다. 그래서 바삐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복숭아이마에 키스부터 뻑 안겼다.
    “넌 이름이 뭐냐?”
    “만금이예요. 이뻐해줘요.”
    한길수는 양팔에 계집 하나씩 끼고 구들에 들어앉으면서 떠들어댔다.
     “그래, 그래. 에이고, 요것들아. 오늘 늘어지게 놀자구나. 누가 소리할 줄 아냐?”
     “예. 옥설이가 소리야 잘하지요.”
     뽕녀의 말에 옥설은 벽에 기대놓은 가야금을 내려다 술상 저쪽으로 하여 놓았다.
    뽕녀와 만금은 바삐 술상을 차려놓고 한길수의 잔과 자기 앞의 잔에 술을 찰찰 넘치게 부었다.
    뽕녀와 만금이가 한길수의 양 무릎에 올라앉아 잔을 들었다.
    “자, 한잔 드세요. 우리 친애하는 한 양반.”
     “오, 그래, 그래. 너희들 남대치 말이 우리 함경도 말보다 참 듣기 좋구나.”
    한길수는 한잔 쭉 굽냈다.
    “캬- 거, 술맛이 좋다. 옥설아. 유행가 한곡 불러라.”
    옥설은 꽃방석 우에 치마를 꽃처럼 동그랗게 씌우면서 들어앉아 가야금을 둥기 당당 탔다. 뒤이어 온방에 둥기 당당 가야금소리에 맞추어 은방울 굴리는 듯 청아한 목소리가 간드러지게 울렸다.
 
      첫사랑에 마음을 적시던 그 날 밤
      오동추야 기나긴 정열의 깊은 밤
      나는야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내 사랑 멀리멀리 가버린 첫사랑
 
      가야금아 둥기 당당 울려라
      강남에 날아갔던 제비는 돌아오고 
      훈훈한 봄은야 찾아왔건만
      언제 돌아오랴  기약없이 떠나간  첫사랑
  
      “그래, 그래. 너의 첫사랑 내가 이렇게 돌아오지 않았느냐? 그런 의미에서 한잔 들자. 오, 요것아. 헤헤.”
      길수는 왼팔로 뽕녀를 안고 오른손으로 술잔을 입에 가져가려고 했다.
      그런데 만금이 술잔을 앗아 입에 가져갔다.
     길수는 양팔에 뽕녀와 만금을 안고 만금이가 입에 부어주는 대로 술을 마셔댔다. 입귀로 술이 흘러 비단적삼을 적셨다.
    “어, 술맛 좋구나. 옥설아, 거 쓸쓸한 노래 그만 부르고 여기 와서 술이나 따르라.”
    옥설은 가야금을 내려놓고 나비가 날아와 꽃 위에 옮겨 앉듯이 다가와 섬섬옥수로 술병을 들어 놋 잔에 찰찰 넘치게 부어 길수의 앞에 드렸다.
    “아이고, 요 손이 어쩌면 이렇게 부드럽고 매끌매끌하냐? 요 손으로 입에 부어넣어라.”
    옥설은 두 손으로 잔을 들어 한길수의 침이 발린 입에 술을 부어넣었다.
    “어허, 술맛이 참 좋구나. 세상에 이런 재미보다 더 좋은 게 있다더냐?”
    한길수는 만금과 뽕녀의 허리를 놓고 술병을 쥐어 두 잔에 술을 찰찰 넘치게 붓더니 한잔은 옥설에게 주고 나머지 잔은 자기 손에 쥐였다.
    “옥설아, 너를 만나 정말 기쁘구나. 한잔 들자.”
   댕그랑.
   한길수와 옥설은 놋 술잔을 마주치고 기분 좋게 죽 들이마셨다. 술이 묻은 옥설의 빨간 입술은 앵두처럼 더욱 빨갛게 물기가 돌았다. 옥설을 쳐다보는 한길수는 말 이발을 드러내며 음탕한 웃음을 술이 발린 입가에 띠웠다.
뒤이어 그는 두 손으로 옥설의 하얀 얼굴을 받쳐 들고 은은한 정이 그윽한 깜장 눈을 들여다보면서 지껄였다.
   “야, 요년. 하늘이 어쩜 오늘 나에게 너같이 예쁜 애를 주었을까. 네 고향은 어디냐?’’
   옥설은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김해예요.”라고 대답했다.
   한길수는 “그래? 김해라. 멀기도 먼 곳에서 왔구나.”라고 하면서 기막힌지 옥설을 놓아주었다.
   “얘, 앉아라. 김해가 얼마나 좋은 고장이니 이런 시골에 와 이런 돈을 버느냐?”
  옥설의 깜장 눈에는 이슬이 반짝였고 머리는 폭 숙여졌다.
  “너 무슨 일이 있었느냐? 말해라. 이 영월동의 한길수는 여기 우시장의 왕이니까 어느 놈이 너를 업신여기거나 못살게 굴면 내가 어디까지라도 쫓아가 그 놈의 대갈통부터 박산내겠다. 겁나 말고 어서 말해라.”
   옥설은 고개를 천천히 들고 한길수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눈치 빠른 한길수는 얼른 옥설의 손을 잡고 잔등을 살짝살짝 다독여주면서 지껄여댔다.
   “자, 어서 말해봐. 객지에 나와서 고생이 많지? 성씨부터 말해봐. 집에는 누구랑 있냐?”
   만금과 뽕녀는 질투의 눈길로 옥설을 쏘아보았다.
   옥설은 눈물을 흘리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집은 김해에 있는 김해 김 씨예요. 우리 집에는 우리 오누이밖에 없어요.”
   “그래. 네 집이 아주 가난한 모양이지. 이런 일을 하러 이런 시골에 보낸걸 보면.”
   한길수가 아무래나 지껄이는 말에 옥설은 화도 내지 않고 묵묵히 하얀 볼에 눈물만 하염없이 줄줄 흘리었다.
     그러자 한길수는 가래 같은 손으로 옥설의 볼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울지 마라. 얘, 네가 울면 내 가슴에 칼이 박히는 것 같이 아프다. 네가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필시 무슨 말 못할 연유가 있겠다. 어서 말해 봐.”
     이때 말수 적은 옥설이 갑자기 한길수의 손을 뿌리치면서 훌 일어나면서 그릇이 깨지는 듯 악청으로 소리를 질렀다.
    “누가 여기 오기 싶어서 고향을 떠나 왔는가 해요? 누가 이런 노리개질을 하고 싶어 하겠어요? 저 일본 놈들이 붙잡아 와서 여기까지 끌려왔지.”
    한길수는 펄쩍 놀라 일어났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일본 사람들이 말이 아니구먼. 이런 일이야 어디 강박하면 되는가? 혹시 너 네 집에서 일본사람들에게 빚을 많이 진건 아니야?”
    옥설은 문께로 나가면서 “쳇, 우리 집은 김해에서도 한다하는 부자 집인데 바다를 건너온 일본 사람들에게 무슨 빚을 진단 말인가요? 만금과 뽕녀와 술을 천천히 드세요. 난 오늘 기분이 엉망이 돼서 나가봐야 하겠어요. 후에 놀러 오세요.”
   “아, 아니. 옥설아, 가지 말라.”
   한길수는 보배나 잃은 듯이 허전해 옥설을 따라 막 일어나 나가려고 했다. 그 바람에 중절모자가 벗어지면서 번들 이마가 드러났다.
만금과 뽕녀는 배를 끌어안고 깔깔깔 웃어댔다. 그녀들은 황급히 중절모자를 주어준다 번지진 술잔을 주어다 놓는다 하면서 킬킬거렸다.
   원래 이마 벗겨진 사내가 바람기가 세다고 했다. 또 월향의 말대로라면 번들 이마 한길수는 너무 바람을 피워 여인들과 섹스를 하다나니 여인들이 너무 바빠 위의 한길수의 머리를 끄당겨서 머리털이 다 빠져 번들 이마로 됐다고 하기도 했다.
   이때 바깥에서 웬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렸다.
    “이 년아, 어디로 갔는가 했더니 잘한다. 네가 감히 내 발등을 디뎌? 이년, 이 경칠 년아. 오늘 죽어봐라.”
    찰싹!
   옥설의 새된 비명소리 들려왔다.
   한길수가 나가 보니 개 난장판이 벌어졌던 것이다. 글쎄 월향이가 옥설의 귀를 삐틀어 쥐고 방치로 옥설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월향은 한길수를 발견하자 독살스런 눈길로 그를 쏘아보았다.
    “퉤, 더러운 영감태기, 그 우멍 눈깔에도 젊은 계집이 보이는 모양이지. 옛날에 누구 덕에 영월동을 가진 걸 다 잊었어? 배은망덕한 더러운 영감태기!”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찬다고 월향은 옥설의 머리채를 휘감아 쥐더니 마구 끄당겼다.
    옥설은 두 손으로 머리를 틀어쥔 월향의 손을 잡고 “애고고.” 하며 휘청거렸다.
    그 바람에 나체나 다름없는 옥설의 우유 빛 젖가슴이 반쯤 드러나 출렁거렸다.
   여기저기서 문이 열리며 색정광이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들은 큰 구경거리나 생긴듯이 한길수와 월향을 손가락질하면서 웃고 떠들어댔다. 월향은 숱한 사람들 앞에서 한길수를 망신시켜주려고 한손으로 옥설의 머리채를 틀어쥔 채 다른 손으로 불시에 한길수의 귀 쌈을 찰싹 갈겼다. 그 바람에 한길수의 중절모자가 월향의 손에 빗맞아 벗겨지면서 잔등으로 굴러 땅바닥에 뚝 떨어져 나뒹굴었다.
순간 한길수의 번들 이마가 훌렁 드러나 전등불빛아래 번들거렸다. 한길수는 번들 이마의 땀을 뚝뚝 손으로 찍으면서 월향을 콱 밀치고 옥설의 머리채를 틀어쥔 손을 풀려고 모진 애를 썼다.
    “옳다! 잘한다. 이 년 놈들이 작당을 해서 나를 때리려고? 아이고, 분해라! 나 죽는다! 아이고, 이 개 쌍년아, 죽여치우겠다!”
    월향은 원통해 악을 딱딱 쓰면서 고함치고 옥설을 꼬집고 쥐어뜯어댔다. 갑자기 그녀는 옥설의 머리채를 놓고 번들 이마를 찰싹찰싹 갈겼다.
    구경꾼들은 복도가 꽉 차고 떠나갈듯이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이때 어느 방에서 나왔는지 한 주정뱅이가 장단까지 메고 나와서 두드리면서 노래를 불러댔다.
    “얼씨구 좋다 둥둥. 절씨구 좋다 둥둥. 잘도 싸우라 둥둥. 무기를 대줄게 둥둥. 죽을 내기로 싸워라, 둥둥. 우리 선수 잘 한다 둥둥. 죽여라, 살려라! 둥둥 당당 둥둥 당당!”
    갑자기 월향의 방문이 쭈르르 열리더니 코 수염을 기른 사나이가 허연 훈도시 바람에 튀어나왔다.
주정뱅이들과 색정광들이 죽 비켜섰다.
   “콘칙쇼(닥쳐)! 난노 고도까(무슨 일이냐)?”
   코 등에 붓으로 점을 똑 찍어놓은 듯 코 수염은 아주 위엄스러웠다. 그 뒤로 갱핏하게 생긴 조선인이 뒤따라와 머리를 조아렸다.
   뒤이어 그자는 주정뱅이들에게 위엄스런 눈길을 돌리고 우쭐해서 고함쳤다.
    “우리 우시장 일본제국 헌병대 대장이시자 총경찰국 끼무라 국장이시다. 너희들이 언감 여기 와서 끼무라 국장의 주흥을 깨뜨리느냐? 어째 대가리가 목에서 떠나고 싶으냐?”
    한길수는 제 정신이 펄쩍 들어 코수염을 바라보았다. 보통 키에 똥똥한 땅딸보 끼무라 국장은 옴몸에서 위엄과 힘이 빛발 쳤다.
    끼무라는 한길수를 보더니  꽥 고함쳤다.
    “빠까새끼 모노라!”
    무지한 길수는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저 양반, 뭐라구 하오? 뭐? ‘바가지새끼 못 놀아? 내가 바가지라고? 원, 참.”
   그 말에 통역 강철이는 어처구니없어 손으로 입을 싸쥐고 웃었다.
   끼무라는 강철과 길수를 번갈아보더니 더구나 언성을 높여 욕지거리를 했다.
    “빠까모노(바보)라! 혼야꾸시데(번역해줘)!”
    “뭘? 빠개지게 못 논다고?”
    끼무라 국장은 다가오더니 한길수의 귀 쌈을 찰싹찰싹 갈겼다. 그가 뭐라고 꽥꽥 고함치자 통역이 이렇게 번역해주었다.
    “온 조선이 일본제국의 땅이 됐으니 이 땅 우의 산이고 강물이고 계집이구 몽땅 우리 황군의 것이야! 네가 함부로 놀라는 계집들이 아냐!”
    길수는 얼얼해나는 귀 쌈을 손바닥으로 붙들고 그 말을 들으면서 귀뿌리가 웅 하는 것을 느꼈다.
    (별 놈 다 있구나. 네놈들이 오지 않았을 때 이 우시장에서 누가 감히 이 어른의 뺨을 쳤니? 우시장의 계집은 몽땅 내 것이었는데 이 오랑캐들에게 수모를 당하다니? 시비도 없는 일본 놈들과 못 놀겠다.)
    밸 같았으면 옆에 보이는 걸레대로 오랑캐 개 대가리를 박살나게 때리고 싶었다. 젊었을 때 같으면 그의 소 발굽 같은 주먹이 진작 코 수염의 면상에로 날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영월동을 독차지하려면 이 모든 것을 참아야 했다.
    볼을 싸쥔 길수의 이글거리는 눈길을 보고 끼무라 국장은 기생방에 되들어가 군도를 들고 나왔다.
   그때 옥설과 만금이가 끼무라의 양팔에 매달리면서 말리였다.
    “류 통역 좀 일본말로 말리세요. 영월동 갑자 한길수 어른이시오.”
    옥설의 말에 그제야 제 정신이 펄쩍 든 통역 류강철은 끼무라국장의 귀에 대고 뭐라고 쑹얼거렸다.
   끼무라 국장은 한길수의 번들이마를 쏘아보다가 자기 팔을 감싸 안은 하얀 두 팔을 내려다보더니 군도를 든 채 지껄였다.
   “고노 빠까 또 난노 간께이까(이 바보와 무슨 관계인가)?” 
    기생 년들이 끼무라가 뭐라고 지껄이는지 알 턱이 있는가? 그저 머리만 끄덕이면서 군도를 앗아내려고 했다.
    화날대로 난 끼무라 국장은 두 기생 년을 활 뿌리치고 서리발치는 군도를 들고 한길수에게 덮쳐들어 내리찍었다. 하도 한길수가 옛날 솜씨가 있어 옆으로 몸을 날리면서 날아드는 군도를 피하였으니 말이지 몸이 진작 두 동강이 나고야 말았을 것이다.
    한길수는 일본 국장에게 반격을 가할 수도 없는지라 이리저리 날아드는 군도를 좁은 복도에서 피하다가 다리야 날 살리라고 층계 쪽으로 황급히 달아났다.
    이때 월향은 그 꼬락서니가 보기 좋다고 손벽을 쳐댔다. 그녀는 진물로 더러워진 팬티를 쭉 벗어 자기 옆으로 달려 지나가는 한길수의 번들 이마에 꾹 씨워 놓았다.
    뒤에서 끼무라가 군도를 휘두르면서 달려왔다.
   "사람 살려라!"
   한길수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번들 이마에 팬티를 뒤집어 쓴 채 아래층으로 달아났다.
   그는 황급히 당나귀 차에 달려가 올라 앉으려고 버둥거렸다. 갑자기 일본 헌병 놈들이 달려들어 허리춤을 꽉 잡아챘다. 그 바람에 바지가 쭉 벗겨지면서 한길수의 함지만한 엉덩이가 훌렁 드러났다.
    한길수는 인력거에서 허망 눈길에 떨어져 굴면서도 바지춤만은 춰 입었다. 월향의 팬티를 번들 이마에서 벗겨 던지며 일어섰다.
그는 이쪽에 군도를 쥔 끼무라 국장의 뒤를 따라오는 통역에게 고함쳤다.
    “이보게, 국장님께 잘 말해주게나. 사실 저분께 드릴게 있어 왔네.”
   통역은 재미나서 구경만 하다나니 또 통역할 것마저 다 잊고 멍해 서있었다.
    이때 옥설과 뽕녀가 끼무라 국장의 뒤를 쫓아와 양팔을 안고 군도를 휘두르지 못하게 말리면서 살뜰한 몸짓으로 애교를 부렸다.
    끼무라 국장은 통역을 되돌아다보면서 꽥 고함쳤다.
    "류상(류군), 하야꾸 혼야꾸(빨리 번역해)!” 
   강철은 한길수란 건달두목을 알고도 남음이 있는지라 길수에게 좋게 마구 날조해 통역했다.
    “저 영월동 한길수령감은 대일본제국 끼무라 국장에게 선물과 함께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이 계집들은 마음속에 끼무라 국장 밖에 없다면서 오늘 밤에 둘이 다 국장님을 잘 모시겠다고 합니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던지 끼무라는 군도를 든 채 두 계집을 차고 월향의 칸으로 되들어갔다.
    옥설은 끼무라를 끼고 기생집 문턱을 넘어서면서 당나귀 차에 올라탄 한길수에게 눈을 찔끔 감아보였다. 월향은 길수를 허비고 뜯고 싶었다. 그년은 끼무라가 옥설을 안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끼무라에게 원망에 찬 눈길을 보냈다.
   주정뱅이는 모든 일이 끝났는데도 또  뜨르륵 딱딱 둥둥 장단을 치면서 흥타령인지 넉두린지 지지벌거렸다.
   “얼씨구 좋다. 둥둥. 절씨구 좋다! 둥둥. 잘도 싸워. 둥둥. 무기를 대줄게, 둥둥. 죽을내기로 싸워라. 둥둥. 우리 선수 잘 한다 둥둥. 죽여라 살려라 둥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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