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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13) 빚문서 김장혁
2024년 01월 11일 14시 15분  조회:818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장
 
   
                     4. 빚문서
 
 
      어둠침침한 어둠이 해를 몰아내고 도고한 토성에 타리대를 치고 앉아 다리쉼을 하고 있었다. 저 멀리 공포가 깨난 수림 속에서 승냥이가 주린 배를 신음하면서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성칠은 적토마 잔등에 멧돼지를 싣고 한길수의 토성 안 집 대문 안에 들어섰다.
      그때 한길수는 마루바닥에서 응삼과 마주 앉아 한창 뭐라고 쑤군거리면서 담배를 뻑뻑 빨고 있었다.
      “아니, 어디서 난 적토마야?”
      응삼의 말에 한길수는 기둥에 기대앉은 채 건 가래를 뗐다.
      “에헴, 해 다 졌는데 웬 일인가?”
     성칠은 곧추 마루 밑에까지 말을 몰고 다가섰다.
     “빚을 갚자고 왔소.”
     응삼은 씽 드르르 달려 내려와 말 잔등에 건 멧돼지고기를 말대가리를 기우뚱거리면서 여겨보았다.
    그때 부엌에서 은녀가 문선을 잡고 성칠을 내다보고 반겨 맞았다.
     “오빠!”
     성칠의 곁으로 다가온 은녀는 화들짝 놀랐다.
     “아니, 이 가슴의 피는? 어데 상하지는 않았소?”
     성칠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한길수 쪽으로 몸을 돌리고 쇠덩이 굴리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멧돼지를 가지고 은녀를 내놓읍소."
     "쳇!"
    한길수는 담배대통을 마루에 탁 쳐 털어버리면서 벌떡 일어나 고함쳤다.
    “무슨 소릴? 요까짓 멧돼지 고기 120원이나 가?”
     성칠은 반문했다.
    “한 250근은 되는데 안 된다니?”
    응삼은 길쭉한 박대가리를 홰홰 내저었다.
    “안 될 소릴 작작 하라구. 돼지고기 한 근에 50전씩이나 치겠다고? 흥!”
    한길수는 발로 마루를 구르면서 꽥꽥 고함쳤다.
    “걸 장마당에 가져다 팔아 은전을 가져 오게나! 120원에서 한 푼이라도 골아봐라! 은녀를 문밖으로 한 발자국이나 데려 내가겠구나! 흥!”
    응삼은 옆에서 붓는 불에 키질을 했다.
    “주인어른님, 소 한 마리에 30원 밖에 하지 않는데 멧돼지 한마리에 20원에서 더 하겠습둥? 우릴 바보 취급한다니까!”
    “그래, 그래. 요까짓 걸로 어림도 없어. 우릴 뭘로 보는 거냐?”
    한길수는 돌아서서 잔등을 보이더니 또 대통에 담배를 담아 꿍꿍 다졌다.
    성칠은 품속에서 뭔가 꺼내보였다.
    “자, 이건 백두산에서 자란 곰의 열이오. 이 열을 잡수면 허리 병이고 내장 병이고 다 떨어지구마.”
   한길수는 귀가 솔깃해 몸을 홱 돌렸다. 그는 점점 성칠이 쥔 웅담쪽으로 낯을 가까이 하면서 눈이 사발만해졌다.
   “이걸 잡수면 또 그 아래게 힘을 쓰오.”
   “그래?”
   한길수는 제꺽 성칠의 손에서 웅담을 뺏다시피 채갔다.
    “그럼 이걸 두고 은녀를 데려가게.”
   성칠은 한 발자국 다가섰다.
   "문서를 내다 줍소." 
   그때 응삼이 나서면서 새된 소리를 쳤다.
    “가만! 그까지 웅담이 백 원이나 된단 말인가? 고까짓 걸로 누굴 속이려고? 저 함박꽃 같은 은녀를 데려가? 안 될 소릴! 흥.”
    월선도 위방 문선을 잡고 내다보다가 혼자말로 욕지거리를 했다.
     "잘 하긴 잘 해. 저 쌍놈 영감태기 웅담을 먹고 동네 간나새끼들 엉덩이를 들쑤시려고? 은녀를 내보내면 누굴 부려먹어? 흥!"
    나그네 귀 석자라고 한길수는 응삼과 월선의 푸념질에 웅담을 쳐들고 은녀와 번갈아보았다. 그러나 이윽고 우멍한 눈에 이상한 눈빛이 번쩍였다.
    “저깟 계집년이야 없으면 말라지. 건강장수야 말로 돈을 주고도 못 바꾸는 게야. 이걸 먹고 오래 살면 다야.”
    응삼은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야단쳤다.
   “주인어른, 어쩌면 만 가지 일을 다 냉정하게 처리하다가도 이 일은 저 놈의 말을 딱 곧이듣고 이럽니까? 진짜 웅담인지 속아 넘어가지 맙소.”
    그러자 한길수는 웅담을 쭉 감빨아보았다. 당장 상을 찡그렸다.
     “아, 쓰다. 진짜 웅담이야.”
    응삼은 어이없다는 듯이 뱁새눈을 한일자로 감아버리면서 길쭉한 상판을 가로저었다.
    “이이고, 주인영감도. 정신 나갔나.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네.”
    찰싹!
   어느 결에 한길수가 그의 귀 쌈을 얼얼하게 갈겼다.
   “어디서 개 주둥아리 질이냐?”
     응삼이 한대 맞고 뱁새눈을 떴을 때에는 노기등등한 한길수가 눈깔을 부라리면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이윽고 한길수는 웅담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가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뒤로 홱 저으면서 고함쳤다.
     “개자식, 누가 정신 나갔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얼빠진 놈이라고. 어서 빚 문서를 내다주고 멧돼지고기나 부엌에 들여가!”
    월선은 별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홰홰 저면서 살진 엉덩이를 흔들거리며 영감을 따라 집안에 들어갔다. 응삼은 얼얼해나는 볼을 매만지면서 옆채에 들어갔다.
    성칠은 멧돼지고기를 부엌에 메 들여 다주고 은녀의 손목을 잡고 나왔다. 은녀는 성칠의 옆구리에 바싹 다가가 붙었다. 평소에 그렇게 으르렁거리면서 우쭐하던 응삼은 한풀 꺾인 채 빚 문서를 꺼내다 성칠에게 건네주었다. 성칠은 빚 문서를 갈기갈기 찢어 활 팽개치고 은녀를 데리고 적토마를 끌고 대문 밖을 나섰다.
    등 뒤에서는 응삼의  개 짖는듯 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짜 웅담을 먹고 우리 주인 영감 그게 맥을 쓰지 못하는 날엔 가만 놔두는가 봐라. 흥! 제길 할, 재수 없을러니 별 일을 다 본다. 쳇!”
    그 욕지거리에 대꾸하는 듯이 검둥이가 돌아서서 “왕, 왕, 왕!” 무섭게 짖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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