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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황혼(5) 꿈인가 생신가? 김장혁
2024년 07월 10일 12시 15분  조회:430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5. 꿈인가 생신가?

  

     아, 가엽구나.
     책짐 메고 달아다니던
     저 사막의 마라토너
 
      눈을 집어 뜯으며
      글 쓰던 저 마라토너 작가
      뜨거운 심장
      사막에서 선인장으로 재생하리.
 
      사막의 마라토너여,
      이젠 모든 걸 내려놓으라.
      몇십년 벼린 필도
      무거운 책짐도
      모두 내려놓고
      편안히 쉬시라…
 
  화장터에서 정호인가 읽는 추도사인지 시인지 종호의 귓전을 아프게,  쓸쓸하게 때린다.  
   “개소릴 작작 쳐라. 사막의 마라토넌 네 할애비라고 해라.”
   종호는 병상에서 또 잠꼬대를 했다.
  (내 모든 걸 내려놓는 이날 기다렸어? 돈과 미녀 밖에 모르는 부패분자! 정호, 네놈 색마 보기도 싫어. 성감옥에 갔다더니 왜 추도식에 바라왔어? 누가 보겠다데? 네놈들한테 내 추한 꼴 보이기 싫어 추도식을 열지 말라고 분부해놨는데. 참.)
  김춘희 박사는 외까풀눈으로 려향을 돌아보았다.
  “리사장님은 아마 몽유 하는 거 같아요.”
  려향이는 아빠의 머리를 따뜻한 수건으로 살살 닦아 주었다.
  그녀는 침대머리에 걸어둔 현광판을 쳐다보았다. 심률이 고르롭게 흘러지나가고 있었다.
  종호의 혼은 눈 앞을 가리기 힘든 사막으로 날아갔다.
  허약한 혼도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사막의 모래산에서 책짐을 메고 마라톤을 하는 종호를 따라 헤매다가 사막에 벌러덩 쓰러졌다. 귀전에는 주산알 딸까닥 딸까닥 튕기는 소리 울린다.
   별의별 앙칼진 비아냥거리는 소리 다 사막에서 불어치는 모래바람 속에서 란무한다 -
   “당신 책은 피 냄새만 나고 짜릿한 사랑 얘기 하나도 없어요. 그런 책을 누가 보는가요? 우리 출판사 망하겠어요.”
  “당신 책 화약 냄새만 나고 너무 예술성이 없어요. 이런 책은 팔리지 않아요. 이런 책 내면 우리 출판사 부도나요.”
  (에이,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 사회 효과성은 하나도 보지 않고 남의 책을 비하해? 흥!)
  종호는 그런 수전노들한테, 민족의 력사에는 관심도 없는 그런 얼빠진 놈들이 역겨워 침을 뱉었다.
  “얼빠진 놈들, 더러워! 저런 수전노들한테 책 내는 문턱을  맡기다니?”
  누르스름한 바탕에 벌거스름하게 활활 타번지는 락조가 비낀 무연한 사막, 모래바람이 윙윙 휘물아쳐 사위를 분간하기 힘들었다. 목구멍까지 홧홧 달아오르는 사막에서 한 마라토너는 완강한 의력으로 무거운 책짐을 메고 비틀거리며 걸어나가고 있다.
   전갈과 얼룩독사가 모래불에 몸을 모래불에 파묻고 한쪽 눈깔만 내놓고 팬들거리며 마라토너를 노린다.
  “바보 같은 놈. 이런 사막에서 누가 네 놈의 책을 산다고 저래?”
  전갈은 삐뚤어진 입귀로 조소를 흘리었다.
  독사도 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누가 저런 책 본다고 책짐을 메고 사막에까지 와서 돌아다녀? 어디 죽어 봐.”
  독사는 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마라토너 종아리를 노리어 본다.
  저게 뭔가?
  마라토너 허리 벨트 툭 끊어지었다. 괴춤이 훌렁 내리어진다. 책짐이 툭 떨어지며 풀린다. 모래바람에 책들이 훌 날려간다.
  마라토너는 괴춤을 춰 입을 새도 없이 책을 쫓아간다.
  “아, 저 책을!”
  어찌 애 탄 두 발로 바람을 따라가 붙잡을 수 있을까?
  저게 뭔가?
  꿈인가? 생신가?
  하느님이 돕는 걸까?
  아니면, 선렬들의 혼이 돕는 건가?
  바람에 날려간 책들이 기적처럼 황혼이 붉게 타오르는 무연한 사막의 하늘에 신기루로 나타나지 않았겠는가.
  (그래, 아무리 세찬 바람도 책을 빼앗아가지 못해.)
  종호의 혼은 황혼이 깃든 사막에서 두 팔을 벌리고 환호하며 달려갔다.
  천천히 다가가면서 보니 신기루는 구름을 찌르는 마천루도 아니고 무져놓은 책더미 아니겠는가.
  그때 책 신기루는 서서히 뻘겋게 피빛으로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이 비낀 사막에 서서히 내린다. 갑자기 신기루는 책 금자탑으로 우뚝 솟아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건 또 뭔가?
   책 금자탑 상공에는 오색령롱한 오로라가 온 누리에 빛 뿌린다.
  금자탑 붉게 타오르는 상공에 웬 장군님이 나타났다. 쏘련 홍군의 군모를 입은 장군님, 저 장군님은 항일명장 홍범도 장군님이 아닌가.
  책 금자탑 뻘건 상공에는 겨레의 무수한 영혼이 서서히 타나나지 않겠는가.
  환각인가?
  아니면 종호의 혼이 너무 우리 겨레의 영혼을 너무 그려서 나타났을가?
  구름 속에 이등박문을 쏘아눕힌 안중근 의사님, 용정 서전의숙의 창시자 리상설 선생님,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제 적장들을 삼대처럼 쓸어눕힌 윤봉길 의사님, 천왕궁 앞에서 일제 천왕이 앉은 마차에 폭탄을 던진 리봉창 의사님,청산리대첩을 올린 김좌진 장군님,항일명장 리홍광 장군님…
  민족영웅들의 늠름한 모습이 동영상처럼 생생하게 나타지 않겠는가.
  "돌격!"
   적진으로 달려가는 렬사와 영웅들의 고함소리가 귀전을 아프게 때린다.
  “광복 만세!”
  “인민정권 만세!”
   누르스럼한 황혼이 빨갛게 붉게 타오르는 사막의 서쪽 하늘에 영웅들의 넋이 오색찬란한 오로라로 빛 뿌린다.
   그 찬란한 빛을 받아서인가?
   사막의 책 금자탑 앞에는 뜻밖에도 사랑의 오아시스가 기적적으로 펼쳐진다.
   모래바람이 불어치는 사막 복판의 그 오아시스에는 연분홍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 이쁜 얼굴을 반쯤 내밀고 금자탑을 쳐다본다.저쪽에서 한나산 하얀 무궁화도 꽃잎을 활짝 펼치고 생글방글 웃음지으며 두 손들고 달려오며 환호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아시스 한가운데서 옹달샘이 퐁퐁 솟는다.사막에서 옹달샘이 솟다니? 그 기적에 목마른 사람들은 목을 축이며 환락으로 들끓는다.
   불시에 맑은 옹달샘물은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의 하늘에 은은한 도라지 노래에 맞춰 분수로 솟아오른다.사막의 모래바람이 멎는다.생명의 분수를 맞은 연분홍 진달래 꽃잎은 씻은듯이 더욱 청초하고 이쁘다.사막에서도 꽃 피는 연분홍진달래가 서글프기만 하다.
  연분홍 진달래 꽃잎 새에서 불어치는 신선한 바람에 슬픔이 스치고 지나가며 쓸쓸하게 아리랑을 부른다.
  벌거스럼한 황혼 락조가 서서히 져가는 사랑의 오아시스 언덕에서인가, 모래담장 너머 어디에서인가 어린이들이 ㄱ, ㄴ, ㄷ, ㄹ  읽는 낭랑한 소리 구슬프게 은은히 울리어 메마른 사막에 잔잔히 스며든다.
   “우리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
  종호의 혼은 두팔을 벌리고 미친듯이 환호하며 사막에 유일한 사랑의 오아시스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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