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jinchanghe 블로그홈 | 로그인
김장혁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홈 > 전체

전체 [ 536 ]

236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43) 댓글:  조회:3290  추천:5  2019-12-05
                     73. 패가망신        하늘이 무너졌는가? 땅이 꺼쪄버렸는가?       흐리멍텅한 하늘에서 구름이 무너져내리는듯이 함박눈이 무더기로 펑펑 쏟아져내린다. 하늘이 마구 내리뜨리는 눈에 천지꽃산의 앙상한 진달래 가지들이 지지눌려 맥없이 부러졌다.        흐리멍텅한 하늘에 짓눌린 시가지는 더욱 엉망진창이다. 수풀처럼 치솟은 꿀뚝에서 시꺼먼 연기를 꾸역꾸역 내뿜었다. 자오록한 연기가 온 시내를 감싸고 있어 행인들은 숨막힐 지경으로 갑갑하였다.        성호는 눈 앞이 캄캄해났다.        원래 그는 다단계판매로 일약 갑부로 돼 시가지에 큼직한 아빠트를 사놓고 부모를 모시고 효성을 다하고 아들을 낳아 기르면서 살려는 황홀한 꿈을 꾸었다. 그러나 하루 사이에 그 황홀한 황금몽이 와르르 무너졌다. 함박눈이 흩날리는 길바닥에 지진이나 났는가? 성호가 높다고 딛이면 낮고 낮다고 딛이면 높았다. 그는 천방지축 주정뱅이처럼 비틀거리며 겨우 한발자욱 한발자욱 공안국으로 걸어갔다. (도대체 정희는 어떤 징벌을 받게 될가? 만약 5년 이상 징역을 받는다면 정희가 생육년령을 넘기게 된다. 그럼 아들을 보려던 꿈마저 산산이 박산난다. 만약 정희 수하에 들어간 80여명의 경제손실을 몽땅 배상하라고 판결이 난다면 어떻게 살겠는가! 새 집과 택시까지 다 팔아넣어도 모자라.) 성호는 너무 안타까와 미친듯이 주먹으로 가로수를 꽝꽝 쳐대며 대성통곡쳤다. 눈이 마구 흩날려 그의 몸을 뒤덮어버렸다. 행인들은 주춤주춤 멈춰서더니 그를 흘끔흘끔 쳐다보다가 미친 놈이라고 침을 뱉고 지나가버렸다. 그가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패가망신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굉팔은 손쓸 좋은 기회를 잡았다. 그는 언제부터 승호와 성호, 해연을 한 몽둥이에 날려보내려고 미쳐 날뛰였다. 그 기회는 끝내 오고야 말았다. 사실 굉팔은 아래에 능력이 있는 그들을 두고 싶지 않았다. 수하에 능력은 차해도 밀가루를 반죽하는듯이 마구 주무를 수 있고 자기 말이라면 황제 말처럼 꼽싹꼽싹 듣는 무골충을 두고 싶었다. 좋기는 성품도 온순하고 부드러운 녀성을 데려 왔으면 좋을 것 같았다. 심지어 같은 값에 분홍치마라고 이쁜 색시를 데려다가 비서로 쓰고 싶었다. (춘란 같은 범죄자라도 좋아. 장선희처럼 간사하고 음험한 년이 아니면 돼.) 그는 연화나 예화 같은 예쁜 색시를 데려 왔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연화나 예화는 승호와 선화 인맥이기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리굉팔은 전체 회의를 열고 우멍눈을 희번뜩이면서 성호부터 노려보았다. “성호, 뭐야? 광고는 뒤전이고 개인 돈벌이에 미쳐? 잘 됐어. 승호와 해연까지 다단계판매에 끌어들였지? 다단계판매가 위법행위라는 걸 몰라? 엉?!” 성호와 승호는 아무 대구도 하지 못했다. 해연은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그녀는 미안한 눈길로 서경리를 흘끔 훔쳐보았다. 그녀가 서경리를 다단계판매홍보관에 끌어갔던 것이다. 서일철 부총경리는 해연과의 우스운 에피쏘드가 떠올라 피씩 웃었다. 다단계판매로 돈을 벌려는 것보다 개구리가 학의 고기를 먹으려고 엉뚱한 궁리를 했던 것이다. 화장품을 사들고 해연과 함께 택시에 앉아 집으로 돌아갈 때였다. 가로등불빛이 피뜩피뜩 스쳐지나가는 택시 안에서 서경리는 해연의 손을 슬쩍 잡았다. 해연은 반사적으로 손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서경리가 다단계판매를 그만둘가봐 놔뒀다. 서경리는 해연의 어깨를 감싸안으면서 귀속말로 치근덕거렸다. “해연이, 우리 둘이 재밌게 놀기오. 향월이 가버린 후 외롭고 적적하오.” “안해 있잖아요?” “안해보다 해연이 더 예쁘오.” 해연은 거울로 흘끔거리며 훔쳐보는 택시 운전수 눈을 피하면서 나직이 귀속말을 했다. “예쁘면 밥이 나오는가요? 서경리는 예쁜 녀자면 다 쫓아다녀요? 최선생한테 미안하지도 않은가요?” 서경리는 개의치 않았다. “별, 소릴 다 하오? 이런 일엔 다 사심이 장난치오. 최씨면 어떻고 서씨면 어떻소?” 해연의 대답은 애매했다. “서경리, 어쩐지 향월이 죽은 담에 난 생각이 달라졌어요. 여길가 저길가 하기보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줄 참사랑을 찾는게 옳은 것 같아요. 숱한 나그네를 해봐도 어쩐지 재미 없어요. 수컷들은 왜 그런가요? 정욕을 이기지 못해 암컷을 쫓아다니는 미친 개 같아요.” 해연은 자꾸 지껄이는 서경리를 보고 내심의 고충을 고백했다. “처음엔 남의 나그네와 사는 짜릿하고 감격이 충격적이던데요. 어쩐지 남편 몰래 남의 사랑을 도적질해 먹는 죄의식이 생겼어요. 남의 유부녀 발등을 딛고 저렬한 자극과 격정을 받았는데요. 즐거움보다 량심의 가책을 받을 때가 더 많았어요. 제발 이젠 복잡한 애인 함정에 유혹하지 마세요. 조용히 정파답게 살고 파요.” 서경리는 로련한 색마여서 마른 나무를 뚝 분지르듯 억지공사를 하지 않았다. 해연에게는 심리부담이 생겼다. 그녀는 굉팔이 혹독한 욕설을 퍼붓는 마당에 서경리를 놓아줄 수 있었다. 아니, 색마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어 홀가분해졌다. 그녀는 저도 몰래 한숨을 호~ 내쉬였다. (다단계판매 아니면 저런 색마를 뭘 해?) 그녀의 속을 꿰뚫어보았는지 서경리가 건가래를 떼더니 말문을 열었다. “광고사업에는 신용이 우선입니다. 숱한 사람들의 믿음을 짓밟고 사기쳐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쳐선 안됩니다. 그런 불량한 직원들은 우리 광고회사에서 몽땅 몰아내야 합니다. 그렇찮으면 우리 광고회사가 어떻게 사회에서 머리를 들고 광고사업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기군들한테 누가 믿고 광고를 맡기겠습니까? 리총경리, 상부에 반영해서 가차없이 썩은 팔은 잘라버려야 합니다. 흥!” 이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뜻밖에도 오청룡 국장이 살기등등해 들어섰다. 굉팔과 서일철은 벌떡 일어나 굽실거리며 소파에 자리를 권했다. “오국장, 어서 앉으십시오.” 굉팔은 오청룡이 자리에 앉자마자 성호를 공격했다. “에헴, 오늘 때마침 상부 오간부, 아니, 오국장께서 오셨는데요. 아래에 오국장께서 다단계판매에 참가한 동무들에 대한 처분결정을 선포하겠습니다.” 보아하니 굉팔은 진작 상부에 반영해 처분을 조률했었다. 그의 해골 같은 낯짝은 살기등등해 청바위처럼 굳어졌다. 오청룡은 날카로운 눈길로 승호와 성호, 해연을 쓸어보았다. “국제사기를 친 성호와 승호는 광고회사에서 축출한다. 해연은 성호의 감언리설에 미혹됐고 성호와 승호의 불법사기죄를 적극적으로 조직에 반영했다. 때문에 관대하게 처리해 신문사 광고과에 전근시키기로 결정한다.” “의견이 있습니다.” 그때 승호가 벌떡 일어났다. 모든 눈길이 일제히 승호한테 쏠렸다. “오국장, 처분해도 시비를 좀 가르십시오.” “의견이 있어도 쓸데 없소. 착오를 인정하고 자기절로 살길을 찾아가오.” 승호는 일루의 희망을 걸고 서일철을 업고 똥물에 풍덩 뛰여들었다. “서경리도 다단계판매에 참가했는데 왜 아무런 처분도 하지 않고 우리만 처분합니까?” 승호는 지원군을 바라보듯이 성호와 해연을 둘러보았다. 해연은 떠들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녀는 다욕한 굉팔의 밑에서 일하는 것이 퍽 피곤했던지라 오히려 이 광고회사를 떠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성호가 나섰다. “승호 말이 옳습니다. 법률 앞에선 사람마다 평등해야 합니다. 누굴 처분하고 누군 처분하지 않습니까?” 힘을 얻은 승호는 계속 반격을 가했다. “말 뭣에 얼럭이 있지 처분에 어찌 얼럭이 있습니까? 저는 불공평한 처분결정에 복종할 수 없습니다. 상부에 다시 반영하겠습니다…” 꽝! “뭐라고?!” 오청룡은 차탁까지 치더니 벌떡 일어나 손삿대질했다. “지금 상급부문의 처분에 불복하는가?! 서경리는 해연한테 미혹돼 다단계판매품을 샀을뿐이야. 한 사람도 사기치지 않았어. 지금도 무슨 죄를 범했는지 잘 모르는구나. 감옥에 처넣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인줄 알아. 숱한 사람들을 사기치고 편안할 것 같아? 녀편네들까지 이제 감옥에 가지 않는가 봐라.” 서경리는 독기어린 눈길로 승호를 쏘아보았다. 그때다. 승호가 몸을 홱 돌려 성호를 손가락질했다. “몽땅 성호한테 사기당한 탓입니다. 어떻게 똑같게 처분합니까?” 모두 깜짝 놀랐다. 성호는 세귀눈에 눈초리 꼿꼿해 승호를 쏘아보았다. (자식, 굉팔을 재끼자고 공수동맹을 맺더니. 관건적인 시각엔 남을 물고 늘어져? 흥!) 굉팔은 깨고소해했다. (개자식들, 개똥처럼 한데 뭉쳐서 굴러다니더니. 서로 물고 뜯는 꼴 참 보기 좋구나.) 승호는 입을 쩝쩝 다시더니 굳게 닫았던 입의 빗장을 열었다. “다 제 잘못이 맞습니다. 제가 승호와 해연를 홍보관에 데리고 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겁니다. 량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숱한 사람들한테 경제손실을 입혀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모든 손실을 책임지고 갚아드리겠습니다. 처분에 복종하고 죄를 뉘우치겠습니다. 다신 이런 사기활동에 휘말려들지 않도록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피면서 살겠습니다.” 오청룡은 박수까지 짝짝 쳤다. “좋소. 진작 그래야지. 당원이라면 착오를 인식하고 개조표현이 좋아야지.” 승호는 그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성호, 지금 백화상점 숱한 녀직원들이 날마다 날 찾아와 못살게 군다. 손실 몽땅 책임져라. 그까짓 감언리설로 숱한 사람들 손실책임을 회피하려니? 우리 집은 망했다, 망했어. 난 직업을 떼웠고. 엄마와 안해, 범송네 부부까지 집을 팔아 넣어도 손실을 다 미봉하지 못한다. 개새끼, 널 팔아도 30전 고리대 빚을 갚지 못해!” 경옥은 승호를 쌀쌀하게 쏘아보면서 한마디 했다. “승호는 원래 저렇게 사람을 해치는 갠데 뭐? 량심이 없는 개라니깐. 이번 기회에 쫓아내야 해요.” 승호가 경옥을 흘겨보면서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 성호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요구 있습니다.” 모두들 성호를 쳐다보았다. “이번 사기사건은 전적으로 제 잘못입니다. 어떻게 상부에서 승호와 해연의 착오를 면제해주지 못하겠습니까?” “뭐라고? 이게 무슨 처분을 흥정하는 장마당인가?” 굉팔은 서슬이 퍼래졌다. 순간 우멍한 철색눈확에서 사기알 같은 흰 자위가  데굴거렸다. 성호는 계속 사정했다. “저는 택시업을 하니까. 그런대로 근근득식하면서 살겠지만 저 동무들이야 사정이 다르잖습니까? 하루 아침에 무직업자로 만들어놓으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해연은 서일철 부총경리를 흘끔 곁눈질해보았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자고 허둥대는 판이였다. 그때 서일철은 인차 눈치채고 굉팔과 오청룡의 눈치를 슬슬 살피면서 한마디 했다. “제 보건대, 해연은 전적으로 성호의 유혹에 미혹돼서 홍보관에 갔습니다. 처분을 면제해주면 어떻습니까?” 굉팔은 서일철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어째 서경리도 처분받고 싶어? 해연을 따라 다단계판매홍보관에 간 걸 모르는 것 같애?” 서일철은 오청룡를 믿고 물러서지 않았다. “리총경리, 다단계판매회사와 광고계약이라도 맺지 못하겠는가 해서 갔댔소. 누굴 끌어들여 사기를 친 일도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 회사에서 쫓아내는 처분은 과분한 것 같습니다.” 굉팔은 벌떡 일어나며 고함쳤다.  “고양이 쥐를 생각하는구만!” 오청룡은 퉁퉁한 낯에 내밴 개기름을 썩썩 닦으면서 코웃음쳤다. “진짜 삶은 소대가리 웃다가 꾸레미 다 터지겠다. 흥, 리경리, 이때까지 이렇게  돼먹지 못한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일했소?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알만하오.” 그는 굉팔을 둘러보면서 뒤말을 이었다. “공수동맹을 맺은 전우를 죽이는 놈에, 또 그 놈을 살려달라고 비는 놈에, 얼마나 희비가 엇갈리는 살벌하고 눈물겨운 장면이오?” 그는 건가래를 떼더니 뜻밖에도 처분결정을 고쳤다. “에헴, 승호는 동창생의 사기사건을 적발하였고 마지막까지 한치 양보도 없이 투쟁하면서 대의멸친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승호를 관대하게 처분한다.” 승호는 감격에 찬 눈길로 오청룡 국장을 바라보았다. 굉팔은 썩은 오이를 씹은듯이 쓰디쓴 표정을 지었다. “안돼요. 저런 인정머리도 없는 놈을 밑에 두었다간 언제 뒤통수를 얻어맞을지 모릅니다. 이번에 아예 화근을 싹 뽑아버려야죠.” 오청룡는 인심을 쓰는 척하다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사람이 의리심을 버리면 좋은 끝장이 없다는 걸 알아야지.” 굉팔도 맞장구를 쳤다. “쯧쯧쯧. 사람이 너무 역어도 방아간 날아지나가는 참새로 되고 말어.” … 성호는 주먹으로 가로수를 꽝꽝 쳤다. (승호, 어쩜 날 물어먹고 개구멍으로 빠져나가려고 한단 말이냐?” 그는 공안국 쪽으로 눈깔린 길바닥을 스적스적 걸으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식, 대학교 때부터 교활하고 량심이 없었어. 이번엔 최저한도의 의리심마저 저버릴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젠 누굴 믿고 산단 말인가?) 그가 승호를 보호하려고 나선 것은 인간적인 동정이였을뿐이다. (자식, 굉팔을 검거할 토론을 한 것까지 불지 않았는지도 몰라.) 성호는 이 시각 얼마나 고독한지 몰랐다. 단위에서 굉팔한테 당한 건 둘째이고 정희가 공안국에 잡혀간 것이 더 큰 일이 아닌가. 그는 옆집 아줌마 한희선이 원망스러웠다. 하늘을 욕하고 땅을 치면서 원망해도 쓸데 없었다. 이젠 이모부를 통해 정희를 구해내고 봐야 했다. 성호가 비틀거리면서 공안국 청사로 들어가려고 할 때 등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성호!” 머리를 들어보니 뜻밖에도 승호 아닌가. 성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청사로 들어가려고 했다. 승호는 황급히 성호를 막아서더니 팔을 잡아 끌고 한쪽으로 갔다. “오해하지 말라. 난 광고회사에 남아서 굉팔을 감시하겠어. 그래서 체면을 불구하고 고육계를 쓴 거야.” “고육계?” 성호는 픽 코웃음쳤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숱한 사람들 앞에서 나한테 모든 책임을 들씌운단  말이냐?” “광고회사에 잠복해 굉팔의 죄장을 파려고 그랬어.” “진짜 간교해도 천하무쌍하구나. 됐다. 이젠 모든 게 끝났어. 백화상점 직원들의 손실까지 몽땅 갚을게. 이럼 됐지?” 성호는 승호를 밀치고 공안국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승호는 놓아주지 않았다. “얘, 내 말 들어.” 성호는 마지못해 멈춰섰다. “지금 우리 모두 중벌을 면하려면 우선 수백명한테서 거둔 돈을 찾아내 돌려줘야 한다.” “무슨 수로?” 승호는 과단성있게 말했다. “공안국을 협조해 한희선과 백영을 나포해 기름을 짜내자. 그년들이 우리 거둔 돈을 몽땅 가져가지 않았고 뭐냐?” 성호는 승호와 함께 공안국청사로 들어갔다. 그는 이모부를 찾아가면 별로 뒤문거래를 하는 것 같아 먼저 김성광 부국장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2층 현관에서 경호원이 우쭐 일어나 앞을 막았다. “무슨 일로 찾습니까?” 성호가 찾아온 사연을 말하자 경호원은 “그런 일로 국장을 찾지 못합니다.” 하고 퉁명스레 말했다. 그때 국장실 문이 열리더니 강운룡 부국장이 나왔다. “강국장님!” 승호가 중뿔나게 먼저 웨치며 마주 나갔다. 강운룡은 승호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지나가려다가 뒤에 선 성호를 발견하고 주춤 멈춰섰다. “무슨 일인지 사무실에 들어가 말하자.” 강국장은 사무실에 묻어들어온 승호를 보더니 의아해했다. “리과장네 아들과 동창생이라던가?” “예.” “생김새 너무 비슷해. 승호라던가?” “예.” 이윽하여 강운룡 부국장은 성호한테서 찾아온 사연을 간단히 들은후 훈계부터 했다. “그게 뭐냐? 왜 최저한도 법적개념도 모르고 헤덤볐느냐? 다단계판매는 불법사기라는 걸 하나도 몰랐니?” 그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뒤말을 이었다. “이젠 별 수 없다. 한국 사기군들을 나포해서 손실금액을 피해자들한테 돌려줘야 해.” 성호는 이번 사건 때문에 법률자문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승호를 달고 다니면서 한마디도 더 묻고 싶지 않았다. 그는 승호를 떼놓고 오후에 다시 이모부를 찾아갔다. 성호는 이모부를 보고 “정희가 어데 갇혔는지 좀 알아봐주십시오.” 라고 간청했다. 강운룡 부국장이 전화를 들었다. “천일 대대장이요? 정희가 지금 어데 있소? 양? 양. 알았소.” 그는 전화를 놓더니 “감관대대 녀자수용소에 있단다. ”라고 했다. 강운룡 부국장은 성호를 보고 귀띔해주었다. “아까 리과장네 아들부터 주의해라. 걔는 어쩐지 제 애비처럼 교활한 것 같애.  적은 항상 자기 옆에 있다는 걸 잊지 말라. 너네 아버지는 승호네 애비를 얼마나 믿었는지 아니? 그런데 그 놈한테 물려 농촌에 내려갔다.”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저도 가시아버지한테서 들었습니다. 이번 일은 승호가 공상국과 공안국에 고발한 거 같습니다.” 강운룡 부국장은 정색해 타일렀다. “절대 보복해선 안돼. 알만하지? 자기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법률책임을 질 건 져야 해. 다만 이후엔 사람을 알고 살아란 말이다.” “알았습니다.” 강운룡 부국장은 사물실에서 뚜벅뚜벅 거닐다가 주춤 멈춰섰다. “저 리과장네 아들애 생김새 어떻게 돼 애비를 닮지 않았어. 딱 네 큰형님처럼 생겼어.” 성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뭐랍니까? 저한테 형님이 또 있었습니까?” “그래. 너네 이모 항상 외웠지. 옛날 배 다른 형이 있었단다.” “예? 그런데 왜 아버지와 어머닌 우리한테 한번도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강운룡 국장은 정색했다. “아직 확정하진 않다. 절대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라.” “예.” 그제야 강운룡 국장은 뒤말을 이었다. “너네 아버진 네 엄마한테 장가들기 전에 한 마을의 다른 녀자와 결혼해  아들을 보았지. 그런데 난산으로 본 처가 사망할줄이야 누가 알았겠니? 해방전에 갓난 아들 공석를 YJ 시내 남한테 주었어. 공석은 후에 위생학교를 졸업한 후 YB병원 의사로 됐지. 리철갑 과장과 벽화, 백화상점 안수련 총경리, 너네  이모까지 모두 공석과 고중동창생들이였어. 공석과 벽화, 안수련은 삼각련애관계였지. 벽화와 안수련은 사랑의 라이벌이 돼서 공석을 두고 죽자살자 사랑싸움을 했어. 리철갑은 벽화를 짝사랑했단다. 얼마나 복잡했니? 후에 공석이 불행하게도 백혈병에 걸려 사망하다나니 삼각련애는 비극으로  끝났지. 그때 현공안국 국장인 너네 아버지가 벽화를 리철갑한테 중매를 서서 결혼시켰다. 안수련은 당시 무장부장을 한 허철군한테 시집가버렸구. 그런데 리과장네 아들이 자라는 걸 여겨봐도 어쩐지 리과장을 닮지 않고 공석를 닮은 거 같더라. 지금 봐도 또 너하구 아주 비슷하게 생겼어. 그래서 철갑은 승호를 자기 아들이 아닌가고 피를 뽑아 자기 피와 대조해보겠다고 날뛴 적도 있어.” 성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마?) “승호는 저와 외모가 비슷해도 성질은 판판 다릅니다. 교활하고 간사하고 안팎이 다르게 놉니다. 량심이 없고 음흉합니다. 어진간하면 어디를 가나 며칠 있지 못하고 돼지죽그릇의 도토리처럼 떠밀려다니겠습니까? 우리 리씨 집안에 절대 저런 간교한 색마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강국장은 신중하게 말했다. “수십년 형사수사사업을 한 나는 관상을 빗보지 않아. 리과장도 승호를 자기 아들 같지 않다고 한 적이 한두번 아니야. 우둑진 체구라든지 메부리코라든지 자기를 닮지 않았다고 했어.” “언제 아버지와 물어봐야겠습니다.” 성호는 이모부의 그 말을 미심해했다. 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화제를 바꾸었다. “이모부, 내 공안국에 와서 일하면 안됩니까?” “안된다.” “무엇때문입니까?” “마흔살 넘었는데 이제 공안국에 와선 전도 없다. 황차 경찰실무도 잘 모르지. ” 성호는 “알았습니다.”고 한마디 하고는 국장실에서 나왔다. 성호는 허탈감을 느꼈다. (승호하구 혹시 진짜 혈연관계가 있다면 어쩌지? 먼 친척도 아니고 배다른 친조카?!) 성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진짜 점쟁이 말처럼 납작코 돼서 항상 쓸데 없는 소릴 들을가? 항상 남을 돕는 걸 락으로 삼았건만 왜 승호마저 날 괴롭힐가? 하늘도 무심하지.) 그는 쓸쓸히 감관대대 녀자수용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언제 승호와 내  DNA를 대조해봐야지.) 그는 착잡한 생각에 빠진 채 철조망을 둘러친 높은 담장 안의 녀자수용소 대문으로 들어갔다. 승호의 아버지가 당직실에서 내다보고 찾아온 사연을 듣고 대대장실에 가서 면회비준을 받으라고 했다. 박철운 대대장은 정의용사인 성호가 찾아가자 인차 면회를 비준했다. 성호는 자그마한 면회실에서 쇠살창을 사이에 두고 정희와 마주 앉았다. 정희는 초췌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멍해 바라볼뿐이였다. “정희, 안심하오. 이제 백사장과 엄희선을 나포해 손실금액을  피해자들한테 돌려주면 되오. 이모부도 법적으로 도와줄테니 너무 근심하지  마오.” 정희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성호는 정희 손을 꼭 잡아주었다. “돈은 있다가도 없을 수 있고 없다가도 있을 수도 있소. 이젠 헛욕심을 부리지 말고 아들이나 하나 낳아 기르면서 조용히 오손도손 살기요. 그게 황금덩이를 얻은 것만 낫소.” 정희는 뜨거운 눈물을 닦으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직도 마음이 죽지 않았구만요. 아들비위를 작작 쓰세요. 괜히 이 세상에 태여나서 남들처럼 살지 못하게 고생시켜 뭘 해요? 저도 이젠 마흔고개를 넘은지도 몇해 되는데요. 어떻게 애를 낳아요? 우리 중학교 교장의 안해도 마흔에 애를 낳다가 해산대에서 출혈이 너무 심해 불행하게 사망했어요. 어째 날 죽이고 싶은가요?” 그 말에 성호는 할 말을 다 잃었다. 정희의 마음 아픈 말을 계속 이었다. “동무가 너무 아들비위를 하니 저도 낳지 않으려고 한게 아니죠. 이 몇해 환도 빼버리고 임신하려고 했지만요. 안되던데요. 어쩌다 임신해도 궁외임신을 했어요..” “어째 나한테 알리지도 않았소?” “알면 속상해할가봐 몰래 긁어버렸어요.” 정희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이젠 포기하세요. 독신자녀증이나 영광의 선물로 품고 살아요. 달마다 15원씩 탈 수 있잖아요? 국가 산아제한정책도 어기지 않고 얼마나 영광스러워요?” 그녀는 나직이 뒤말을 이었다. “이젠 교원이란 공직도 떼웠지. 어떻게 살아요?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한국이나 미국에 가겠어요. 숱한 교원들과 친척한테 손해를 끼쳤는데 피나는 돈을 물어줘야죠. 이젠 하나한테 아빠트 한채도 물려줄 게 없게 됐는데요. 늙어서 쓸 양로비라도 벌어야 살죠.” “그게 무슨 당찮은 소리요. 내가 있잖소? ” 정희는 도리머리를 맥없이 절레절레 저었다. “동문 효성스럽고 의리심도 강하죠. 부모한테 효성해야 하고 형제들과  조카들까지도 챙겨야죠. 언제 날 먹여살릴 겨를이 있어요? 어서 가보세요. 제 걱정은 하지도 마세요. 손해비를 물게면 감옥에서 징역살이 몇해 하다가 나가는 게 나을 거 같애요.” “그따위 소릴 다신 하지도 마오. 사람이 있고 돈이 있지. 아빠트를 팔아서라도 당신을 구해내가겠소.” 정희는 랭소했다. “어떻게 피나는 돈으로 산 건데 팔아?” 성호는 정색했다. “여보, 이젠 모든 걸 잃게 됐소. 이제 사랑하는 당신까지 잃을 순 없소.” 정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혀를 홰홰 내둘렀다.  “에이구, 로봉건통이라구야. 쯧쯧쯧.” 그녀는 코웃음쳤다. “당신 진짜 바보야.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요? 내보다 퍽 젊은 연화나 예화 또래를 얻어서 님도 따고 아들도 보고 일거량득 너무 좋아서요? 호호호.” “말이라고 해?” 성호는 성이 나서 씩씩거리면서도 정희 손을 꼭 잡고 신신당부했다. “헛된 생각을 하지 말고 내심하게 기다리오.” 정희는 줄 끊어진 구슬처럼 눈물을 주르르 흘리였다. 성호는 면회시간이 다 돼 정희 손을 꽉 잡은 채 차마 놓지 못했다. 경찰이 재촉해서야 눈물을 휘뿌리며 리별하고나서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면회실을 나왔다. (난 이젠 아들을 다 보았구나. 우리 집은 내 대에 와서 대가 끊어지게 됐구나. 이 절통한 심정을 그 누가 알겠는가?) 그는 피뜩 막연한 환상이 떠올랐다. 녀자감옥 대문 앞의 눈보라 치는 강뚝 너머 천지꽃이 활짝 핀 동산이 떠오르지 않겠는가. 분명 그것은 고향의 천지꽃산이였다. 연분홍 천지꽃이 만발한 천지꽃산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순희가 자기를 보고 생글방글거리며 구름을 나래처럼 등에 지고 날아내려오지 않겠는가. 순희를 와락 끌어안으려는 순간 새침한 표정을 지으면서 눈꽃처럼 어데론가 사라져버렸다. (어처구니 없는 환각!) 그는 막연하고 한심한 생각도 해보았다. (혹시 순희와 살았더라면 아들 쌍둥이를 보지 않았을가? 순희는 딸 쌍둥이를 낳지 않았던가? 혹시 연화와 재혼하면 아들을 볼 수도 있지 않을가? 그 애는 공장장한테 시집가서 떡 돌 같은 아들을 낳았지.) 성호는 인차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리혼과 재혼이 어디 그리 쉬운가? 그렇게 죽자살자하고 따르던 본처도  시집살이에 신물이 나서 아들을 낳아주지 않았어. 재혼한 후처가 아들을 낳고 부모를 잘 모시려고 하겠는가?) 언젠가 성호는 연화를 만나 다방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슬쩍 물어본 적이 있다. “연화, 만약 이제라도 누구와 재혼한다면 아들을 낳아줄 수 있소?” 연화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한술 더 떴다. “만약 감정이 깊은 선생님과 재혼한다면 아들뿐이겠어요? 딸도 더 낳아줄 수 있어요.” 성호가 팔순이 넘은 부모를 모시면서 살 수 있겠는가고 묻자 연화의 보름달 같은 얼굴에는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여올랐다. 한참 궁리하던 연화는 마지못해 이렇게 대답했다. “로실히 말해서 이 세상에 시부모를 좋아할 녀자들이 몇이겠어요. 시부모와 며느리는 집을 따로 잡고 사는게 제일이지요. 입 안의 혀도 씹을 때 있다고 어찌 난 부모도 아닌데 갈등이 생기지 않겠어요. 녀자들은 신랑이 좋아 시집갔지 시부모가 좋아 시집간 게 아니잖고 뭔가요?” 순간 성호는 붙었던 정이 다 떨어졌다. (만약 그때 연화가 시부모도 잘 모실수 있다고 대답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가?) 그는 인차 허구픈 미소를 짓고 말았다. “성호야, 어디로 왔다가니?” 귀에 익은 목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종수가 아니겠는가. “무슨 일로 여기 왔니?” 성호의 반문에 종수는 허구푼 웃음을 지었다. “금방 녀자감옥에서 매음녀들의 변질과정을 취재하고 나오는 길이야. 저걸 봐라. 얼마나 새파란 녀자들이냐?” 그때 녀자감옥 울 안에서 라지오체조 전주곡이 울렸다. 창호가 바라보니 젊은 녀자죄수들이 와-야- 밀려나와 줄을 서는 것이였다. 그 속에는 정희도 머리를 수깃한 태 서있는 것이 피뜩 띄였다. 성호는 종수를 보기 얼마나 조마조마하고 바늘방석에 앉은 듯했는지 몰랐다. 알락달락한 등산복을 입은 20, 30대 젊은 녀자들이 노랗고 빨간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라지오체조를 하였다. 종수는 장탄식했다. “야- 저렇게 잘 생긴 녀자들이 육체와 령혼을 팔아가면서 돈을 벌다니? 헤이, 참, 비극이야. 우리 지역은 경제가 락후해서 저 녀자애들을 다 취직시킬만한 기업소가 없는 게 문제야.” 그는 성호와 함께 감관대대 녀자감옥 대문을 나오면서 몇몇 매음녀들의 비극적인 변질과정을 쭉 이야기했다. 성호는 그런 이야기에 오래동안 귀를 귀울일 겨를도 없었다. 그는 하루속히 한국 사기군들과 한희선 총경리가 빼돌린 불법수입을 되찾아내야  했다. 큰길에 나와서야 성호는 종수한테 한마디 물어보았다. “전번에 쓴다던 조선족력사이야기 책은 거의 됐니?” 종수는 가슴을 쑥 내밀고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거의 쓴다. 이제 출판되면 출간식에 꼭 오라. 이젠 정치학부에 간 게 후회돼. 조문학부나 가서 문학을 배워 작가로 됐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니? 이제라도 필끝이나 벼려가지구 조선족이민사를 하나하나 차곡차곡 정리해야겠어.” 그는 갈라지기 전에 성호의 손을 잡고 정색해 말했다. “너 기분이 말째구나. 그까짓 가정일에 너무 신경쓰지 말라. 에이구, 아낙네들처럼 그 놈의 집구석에 빠지면 빠질 수록 머리 아파. 옛날 황제도 나라는 다스려도 가정은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고 하잖니? 이젠 우리 나이 마흔고개도 넘었는데 사회를 위해 뭔가 해놓을 때 아니고 뭐야? 돈을 대줘서 우릴 대학생으로 만든 당과 국가, 인민들한테 미안하지 않게 보답해야지. 물론 부모한테 효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린 당과 나라, 민족과 인민들께 충성하고 효성하는 게 더 크나큰 효성이고 충성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해. 돈을 따르지 않아도 효자한텐 자연히 돈이 생기는 거야. 하늘은 항상 공정하니까.” 종수는 성호의 기색이 좋지 않은 걸 눈치채고 택시에 앉아 눈가루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멀어져갔다. 어둠이 깔린 거리에 눈보라가 윙-윙- 기승스레 휘몰아쳤다.         성호는 멍하니 서서 저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택시 뒤꽁무니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한지 근 20년만에 처음 종수 앞에서 스스로 작아지는 자기를 발견하였다.         그는 헐망한 소사양실에 부모를 모신 일을 생각하자 마음이 아파나고 밑도 끝도 없는 환멸을 느꼈다.        (부모도 잘 모시지 못했고 아들도 보지 못했다. 내가 사회나 가정에 해놓은 일이 뭔가?)  
235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42) 댓글:  조회:2367  추천:0  2019-10-24
                                   72. 아들비위 봄아가씨가 대지에 사뿐사뿐 다가왔다. 만물이 소생하여 뒤지개를 켜더니 겨우내 얼었던 몸을 툭툭 털고 소생하기 시작했다. 시내물은 조잘조잘 봄노래를 부르며 흐르고 개울가의 버드나무가지에 매달린 오동통한 버들개지들이 봄바람에 그네를 뛰고 있었다. 성호는 원래 고향에 부모의 새 벽돌집을 지으려다가 그만두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부모는 하나라도 막내아들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였다. 뒤늦게야 아버지 마음을 읽은 성호는 시내에 큰 아빠트를 사고 부모도 모셔올 궁리를 했다. 어느 날, 성호는 기분좋게 말을 꺼내려고 정희와 하나를 해물관으로 데리고 갔다. 돈을 쪼개쓰던 아빠가 해물관에 데리고 간다고 하자 한나는 기뻐 아빠 팔을 붙안고 달싹달싹 걸으면서 종알거렸다. “아빠, 오늘 해가 서산에서 뜨잖습니까?” “그래? 기실 서산에 지는 해 더 아름답단다.” 정희의 걀죽한 얼굴에도 미소가 남실남실 춤추고 있었다. 그들은 해물관에 들어서자 조용한 단간방에 좌석을 정하고 앉았다. 한참 후 신선로에서 조개랑 소라랑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부글부글 끓었다. 정희와 한나는 큼직한 소라를 건져 이쑤시개로 뽁뽁 빼 맛있게 먹었다. 성호는 전희한테 맥주를 철철 넘치게 부어주고 한나한테까지 음료를 부어주었다. “자, 우리 가정의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위하여!” 그들 셋은 댕그랑 잔을 부딪치고 시원하게 마셨다. 정희와 한나가 한창 들뜬 기분에 폭 빠졌을 때 성호는 무겁게 말을 꺼냈다. “우리 새 아빠트를 사기요.” “와-싸- 좋아요!” 한나는 두 손을 들어 아빠의 손과 마주쳤다. 정희는 자기 귀를 의심하다가 반색했다. “아이유, 쥐 구멍에도 볕이 들 때 있구만요.” 그녀는 한참 궁리하더니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부모를 모셔야 되겠는데요. 침실 3개에 객실이 있는 걸 사면 어떨가요?” 성호에게는 듣던 말 중에 제일 기쁜 말. “정희, 한140여평방 되는 걸 사기요.” 정희와 한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제 아들을 보면 아들딸이 한칸씩 차지해야지.” 정희는 대뜸 새침해졌다. “집만 있으면 아들을 키울 수 있는가요? 저금도 한 10여만원이 있어야지.” 성호는 호언장담했다. “택시를 하기에 한 2년이면 10만원이야 쉽게 벌 수 있겠지.” “에이유, 큰 소린? 부모가 또 중병에라도 걸리면 그 돈이겠어요? 아들 얘긴 차차 봅시다요. 딸 하나라도 남 부럽잖게 키우면 돼요. 줄줄 낳기만 하면 돼요? 6.1절에 애가 그렇게 놀고 싶어하는 놀이기구조차 두개 밖에 놀지 못하게 했을 때 어때요? 난 마음이 비길데 없었어요.” 한나도 뽀로통해 종알거렸다. “어렸을 때 풍차 아니면 말 밖에 타지 못했죠.” 성호는 한나를 흘겨보면서 을러멨다. “정 돼지처럼 놀다간 엄마 남동생 업어오지 않으면 어쩌니?” “동생 해서 뭘 해요. 다른 애들이 말하는게 부모 유산을 절반으로 나눈다고 하던데요. 아빠는 아들, 아들 하긴? 아들만 자식이고 딸은 자식이 아닌가요? 이담 나도 시집가면 아빠트를 사달라고 하지 않는가 봐라.” “요 쪼꼬만 계집애, 벌써 시집갈 궁리까지 해?” 성호는 식지로 한나의 보슴털이 보송보송한 이마를 콕 찔러주었다. “애개개.” 정희가 좋다고 끼여들었다. “요즘 애들 속심의 말인데요. 지금 경제시대에 10만원으로 어느 코등에 바른다고 그래요? 우에 량가 부모 있지. 애들을 줄줄낳았다가 남들처럼 먹고 살자고 해도 쉽지 않을줄 아세요. 우린 이젠 마흔고개에 오른 중년인데요. 애들을 줄줄 낳아서 뭘 해요? 이담 애들 신세를 볼 거 같애요.” 정희의 말에 성호는 맥이 쑥 빠졌다. 그는 한나를 바라보면서 지원을 요청했다. “한나야, 넌 진짜 엄마 남동생을 업어오면 좋지 않니?” 한나는 별 생각도 하지 않고 단통 “필요없어요.” 하고 대답했다. “왜?” 성호는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든 듯한 기분에 물었다. “남동생 있으면 엄마 아빠 사랑 몽땅 빼앗길텐데요.” “아니야. 딸은 딸이고 아들은 아들이지. 엄마와 아빤 아들딸 다 사랑할 거야. 이담 아빠트도 똑같이 사줄 거고.” 성호는 손을 쳐들어 손가락을 펴보였다. “봐라. 이 다섯손가락은 몽땅 내 손가락이야. 어느 손가락을 다쳐도 다 아파. 아들딸이 다섯이 있으면 다 다섯손가락처럼 귀중한 거야.” “픽! 거짓말. 엄마한테 늘 대를 이을 아들, 아들 했잖아요?” 성호는 애꿎은 맥주만 쭉쭉 굽냈다. 정희는 고향에 돌아간 시부모를 잘 모시려고 무등 정성을 다했다. 시부모가 사는 집에 세탁기를 사다놓았고 일요일마다 한나를 데리고 남편을 따라 시집에 달려와서 제때에 옷을 빨아 입혔다. 또 올 때마다 돼지고기랑 소고기랑 사다  푹 끓여 대접했다. 시부모가 제일 반가와하는 명태를 사다가 명태국을 푹 끓여 시부모를 대접했다. 워낙 말수 적은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정성들여 끓인 명태국을 후후 불면서 맛있게 들었다. 그러나 뭣 때문인지 늘 묵묵히 앉아 우울하게 지냈다. (무슨 일이 좋지 않아 저러시지?) 정희는 시아버지를 여겨보다가 손톱이 긴 것을 보고 얼른 대야에 더운 물을 퍼다 놓고 손을 씻어주려고 했다. “며느리, 내 절로 씻을게.” “아니예요. 손쓰시기 불편한데요. 제가 씻어드릴게요.” 정희는 시아버지 손과 발을 대야에 불구고 말끔히 씻어드리고나서 손톱깎개를 가져다 손톱과 발톱마저 딱딱딱 깎아드렸다. 그것도 그때뿐. 상진은 예전처럼 항상 창문 너머 먼 남산을 쳐다보면서 우울해 앉아 있었다. (시부모가 좋다는대로 하다나니 고향마을에 돌아온 건데. 혹시 사양실에서 살게 돼서 기분이 상하신 것이 아닐가? 어떻게 하면 시아버님을 즐겁게 보내게 할 수 있을가?) 며칠 궁리하던 정희는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다. (오- 아버님은 현공안국 국장에 농촌 대대당총지 서기도 하신 분이 아닌가. 오래동안 지도사업을 한 아버님은 연설하기 좋아하지 않을가?) 정희는 그날 저녁에 음식상을 거두자 집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정색해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 가정회의를 열겠습니다. 여러분, 그럼 아래에 일찍 현공안국 국장과 농촌대대당지부 서기 사업을 해오신 로지도자이신 시아버님께서 가정을 대표해 중요한 연설을 하시겠습니다. 박수!” 이벤트에 모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성호마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한나는 배를 끌어안고 구들에서 뒹굴며 깔깔깔 웃어댔다. “얘, 웃긴? 일어나 앉아라.” 한나는 벌떡 일어나 똑바로 앉아 할아버지를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하회를 기다렸다. 상진은 며느리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우울하던 얼굴에 반기는 기색이 서서히 피여올랐다. “아버지, 한마디 얘기합소.” 성호까지 요청하자 상진은 애들을 둘러보면서 난감해했다. “불시에 무슨 말을 하라느냐?” 정희는 시아버지 옆에 다가가서 앉으면서 직업병처럼 시아버지를 계발해주었다. “의식주에 대해 말씀해도 좋아요. 혹시 이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요? 또 음식에 대한 요구도 좋고 자녀교양에 대한 것도 좋아요. 뭐나 생각나시는대로 얘기하세요.” 한참 궁리하던 상진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럼 한마디 하자. 이 몇달간 아들며느리 정성을 다해 치료해주고 잘 공대해준 덕에 중풍도 치료하고 다시 살아났다. 너희들 효성에 감사하다. 며느리한테 한마디 해도 되겠소?” 상진은 며느리를 기대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예, 말씀해주세요.” 정희는 한쪽 무릎까지 세우고 바로 앉으면서 시아버님의 말씀을 기다렸다. “며느리,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이 전주 리씨네 집 안에 대를 이을 손자를  안겨주오. 그게 최대효성이요. 우리 집 대가 끊어질 생각을 하니 요즘 밤잠도 잘 오지 않소.” 영옥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잖구. 손자 없으면야 집에 기둥뿌리 없는 것처럼 허망 같지. 날 보오. 애들 열을 낳지 않았소. 또 무남독녀를 만들겠소? 며느리도 동생이 없이 무남독녀 좋습데?  한나한테도 형제가 있어야지.” 상진은 며느리 눈치를 흘끔 보면서 로친의 무릎을 슬쩍 다쳤다. 정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목석처럼 묵묵히 앉아 있었다. 녀자들은 밥상을 들고 문턱을 넘는 순간에도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정희는 이 순간에도 속으로 천마디 만마디 대답하고 있었다. (아버님, 이제야 아버님의 고민을 알 것 같아요. 옛날부터 남의 집 대를 끊거나 애를 낳지 않는 녀자는 칠거지악 중의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던데요. 저도 이 가문에 들어와 어떻게 하나 떡돌 같은 아들을 낳고 싶어요. 아버님, 들어보세요. 낳기만 해서 뭘 해요? 시부모께서 자식 열을 낳았지만 어느 아들과 딸이 부모를 모시겠다고 척 나섰는가요? 딸들은 출가집 외인이라고 외면하죠. 딸이든 아들이든 자식 하나라도 효성스럽게 키우면 그게 낫다고 봐요. 글쎄요. 여건이 되면 저라고 왜 애를 더 낳지 않겠어요? 저의 부모도 하나 밖에 없는 무남독녀를 이 집에 시집보내고 얼마나 외롭고 허무해 하시는지 아세요? 저한테도 본가집 부모를 모실 남동생이라도 있었더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며느리 마음을 모르고 영옥은 바투 들이댔다. “며느리, 어째 한마디 말도 없소?” 그제야 정희는 머리를 들었다. “예? 오늘 가정회의는 부모님들의 말씀을 들으려고 연 회의입니다. 이상 오늘 가정회의를 마치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정희는 부엌으로 나가더니 사과배를 싹싹 깎아 쪼개여 접시에 담아 들여왔다. “아버님, 아버님 말씀대로 노력할게요.” 정희의 그 한마디 말에 상진과 영옥은 싱글벙글 웃으며 사과배쪼각을 집어들었다. “듣다가 제일 반가운 소리군!” 영옥은 반가와 어쩔줄 몰라했다. 성호는 엄마의 무릎을 툭 쳐놓았다. 뜻밖에 한나도 박수까지 치면서 반기지 않겠는가. “우-와- 나도 남동생 있겠다야. 와- 좋다야.” 초중생인 한나는 아직도 철부지처럼 천진하게 놀았다. 정희는 시부모를 반갑게 해드리려고 갖은 방법을 다했다. “아래에 저명한 처녀가야금수 리한나의 위문연주를 시작하겠어요. 박수!” 비좁은 집 안에서는 박수소리가 요란했다. 한나는 가야금을 들어다 구들 복판에 놓고 허리 굽혀 인사했다. “존경하는 할아버님, 할머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앉으세요. 그럼 가야금병창 ‘오래오래 앉으세요.’를 연주해드리겠습니다.” 한나는 나비처럼 치마폭을 나풀 날리면서 구들에 앉더니 둥기당당 가야금을 울리면서 금방울 은방울 울리는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성호는 옆에 앉은 정희 무릎을 툭 쳤다. “춤을 좀 추오.” 정희는 일어나더니 성호 손을 잡아 일으켰다. 성호와 정희는 한나의 구성진 노래소리에 맞춰 어깨춤을 너울너울 췄다. “좋다!” “좋아!” 상진과 영옥은 밭고랑같이 파인 주름살을 쪽 펴고 손바닥이 아프게 박수 치면서 함박꽃웃음을 지었다. 명월이 만공상한 달밤에 진짜 화목한 시골 가정의 친륜지락을 그린 한폭의  수채화오도 같은 장면이 오래도록 연출되고 있었다. 정희와 성호는 잠시나마 부모님들을 즐겁게 해드린 것으로 하여 기뻤다. 정희는 집에 돌아온 후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전주 리씨 집 안의 대를 끊을가봐 근심이 태산과도 같은 시부모의 부탁이 너무나도 무겁고 눈물겨웠다. (손자가 없다고 시부모가 저렇게 섭섭해하지 않는가. 본가집 아버지도 영월 엄씨네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 얼마나 속상했을가. 후횐들 오죽했으랴.) 그녀는 한편으로는 아들을 보겠다고 날마다 광고를 얻어들인다, 택시업을 한다하면서  눈코뜰새 없이 보내는 남편이 가긍했다. (그렇다고 아무런 경제토대도 없이 애를 줄줄 낳는다는 것도 말은 아니잖는가?” 어느 날, 그가 학교에서 퇴근해 금방 집에 들어섰을 때다. 옆집의 아줌마가 문을 두드리고 마실을 왔다. 옆집 나그네는 운수공사에서 차를 몰았는데 쩍하면 술주정을 부리면서 안해를 때리고 욕하면서 가정기물을 마구 들부셨다. 어찌나 복잡한지 한 아빠트에서 사는 이웃들이 도리머리질하며 질색이였다. 정희는 옆집 아줌마와 평소에 별로 거래도 없었다. 아줌마는 자그마한 진의 소학교 음악교원 출신이였다. 덩치는 컸지만 우악하게 눈덕에 군살이 붙은데다가 눈길에 독살이 있어 예술을 할 녀자라기보다는 꽤나 사무러운 소시민녀성으로만  보일뿐이였다. 아줌마는 어찌나 역빠른지 뗄뗄 구을어 시내 조선족문화관에까지 들어와 음악보도원을 하고 있다고 하지 않겠는가. 그녀네도 딸 하나를 키우고 있어서 정희네 집과 가정형편이나 뭐나 비슷했다. 정희는 아줌마와 이 말 저 말 하면서 알고보니 둘 다 영월 엄씨가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벌써 서로 언니, 동생 하면서 지내자고 약속까지 한 처지로 되였다. 옆집 아줌마는 이말 저말 하다가“이집이나 우리나 아들 하나는 봐야는데.” 하고 말을 꺼냈다. “살기 바쁜데 언제?” 정희의 맥빠진 말에 옆집 아줌마는 힘을 불어넣어주었다. “마음만 먹고 머리를 쓰면 돈이야 얼마든지 벌 수 있지.” 뒤이어 아줌마는 “심심한데 우리 시문화관에 가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지 않겠소?” 하고 물었다. 정희는 좀 저어했다. “언니, 그만 두기오. 어떻게 명가수들이 우글거리는 문화관에 가서 노래까지 부르겠소?” 옆집 아줌마는 정희를 놓아주지 않았다. “에이, 사람 일은 모르오. 동생처럼 예쁜 선생이 그저 교원을 하면서 썩다니? 참 아까운 인재요. 내 다리를 놓아주지. 혹시 문화관에 전근할 수 있겠는지 어떻게 아오?” 정희는 교외 중학교로 통근하기도 힘든데다가 교원생활에 권태감을 느끼던 차에 음악에 소질이 있는지라 무대에 오를 생각에 가슴이 설레이고 부풀어오름을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날 정희는 옆집 엄아줌마를 따라 활동장소로 가보았다. 그날 따라 커다란 중학교 강당에 수백명 관중들이 모여들었다. “동생, 먼저 잠간 앉아 있소.” 한참 후 무대 조명이 꺼졌다. 뒤이어 무대에 둥그런 조명이 환히 비추더니 옆집 엄아줌마가 마이크를 쥐고 나타났다. “여러분, 이렇게 만나게 돼서 정말 행운으로 생각하고 기쁩니다. 우리의 만남은 운명인가 봐요. 그럼 지금부터 시조선족문화관의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조명이 다시 꺼졌다가 무대를 환히 비췄다. 번쩍번쩍 빛발치는 레이저불빛과 자지러진 음악에 맞춰 문공단의 선녀 같은 무용수들이 너울너울 경쾌하게 춤추며 무대에 나타났다. 련이어 몇수의 노래음악에 맞춰 춤마당이 끝나자 또 무대에 엄아줌마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다른 사회자가 마이크를 쥐고 따라나왔다. “지금부터 우리 한국JMTO주식회사 중국지사 총경리 엄희선녀사님께서 간단한 말씀이 있겠습니다. 박수!”  (아니, 문화관 음악보도원이라더니. 뭐 총경리라고?!) 정희는 깜작 놀라 엄희선을 다시 여겨보게 됐다. 양복에 넥타이까지 척 맨 그녀는 진짜 한국 회사 엄엄한 총경리처럼 틀스럽고 도고해보였다. 엄희선의 연설은 첫마디부터 아주 매혹적이였다. “여러분, 부자로 되고 싶습니까?” “예-” “박수!” 장내에는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엄희선은 연설에 앞서 반문부터  앞섰다. 수업시간에 교원이 학생들을 계발하려고  던지는 계발식물음의 효과를 보려는 것이였다. “돈을 누가 우리 손에 그저 쥐워줍니까?” “아닙니다.” “그럼 우린 미국의 최첨단상업기술로 무장한 한국JMTO주식회사를 따라 풍요로운 생활을 창조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뒤이어 엄희선 총경리는 구수하게 연설인지 주입식강의인지 장황하게 늘여놓기 시작하였다. “여러분들은 미국 경제의 3분의 1이나 쥐고 흔드는 유태인들의 지혜를 알고 있는가요? 골드바흐의 추축이랑 미국의 기신져박사랑 허망 이 세상에 나온 것 같습니까? 중동을 떠난 적잖은 유태인들은 세계 각지에서 자기 지혜로 여러 분야에서 민족의 기개를 떨치고 부유를 창조했습니다.” 첫마디부터 기세가 등등했다. “제2차세계대전 때 일부 유태인들은 독일 파쑈들의 잔혹한 대학살에 쫓겨 지중해를 빠져나가고 대서양을 건너 머나먼 아메리카대륙에 상륙해 피신했습니다. 그들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미국 경제의 3분의 1이나 되는 막대한 경제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갑부들 속에는 유태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미국의 이름난 정객 속에도 유태인의 그림자를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전 국무경 기신져박사도 유태인입니다. 아메리카대륙에 상륙한지 얼마 안되는 짧은 시간 내에  그들은 무엇에 의해 발달한 미국에서 이같이 놀랍게 정치, 경제, 과학기술 분야에서 활약하는 스타들로 떠올랐겠습니까? 여러분, 아시는지요?” 정희나 기타 관중들은 엄희선 총경리 말에 모두 입을 쫙 벌리며 경악했다. 엄희선이 음악보도원이라는 자기 신분에 맞지 않게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 연설을 퍼붓고 있지 않는가.  그녀의 연설은 관중들한테 거센 파문을 일으키면서 계속됐다. “경제분야에서만 봐도 미국에 널려있는 유태인들은 한 가족처럼 똘똘 뭉쳤습니다. 마치 몸 속을 흐르는 혈관처럼 서로 경제정보를 교환하고 상품을 구매하면서 온당하게 풍요로운 생활을 창조하였습니다. 그들은 상품을 사도 자기가 잘 아는 유태인의 상품을 샀고 그 상품에 관한 정보를 자기가 제일 친한 사람한테 알려주어 사도록 했습니다. 또 서로 홍보하고 정보를 교환하였으며 서로 돕고 리윤을 나누면서 잉여가치를 창조했습니다. 그들은 바로 이런 다단계식 상품판매련계망을 구축해 놀랍게 무궁무진한 리윤을 창조했습니다. 아니, 이 세상에서 제일 큰 황금산을 쌓아올렸습니다. 여러분, 유태인들의 선진적인 다단계식 상품판매방법을 장악해 부자로 되고 싶습니까?” “예~” 관중들은 이구동성으로 고함쳤다. 그 고함 속에는 저도 몰래 정희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아래에 한국 본 회사에서 오신 마케팀 팀장 허하늘녀사로부터 다단계식 판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열렬한 박수로 환영합시다.” 하얀 와이샤쯔와 남색바지를 입은 회사정복차림의 삼십대초반 녀자가 무대에 올랐다. “여러분, 유서 깊은 중국 땅에서 여러분들을 만나게 돼서 너무너무 기뻐요. 저희는요. 공항에서 내리자 이 천년비밀이 묻힌 신비한 땅에 키스했어요. 천혜의 이 땅에서 여러 분들과의 만남은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분들은 오늘 이 자리에 오셨기에 부자로 될 행운의 끈을 거머쥐게 됐어요. 이제 당장 황금금자탑에 오를 돈줄과 황금길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여러분 알고 싶습니까?” “예-” 허하늘 팀장은 소학생을 다루듯 관중들의 마음을 웅켜쥐고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어째 대답소리 높지 않아요. 알고 싶은가요?” “예- 알고 싶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황금금자탑에 오르는 황금길을 알려드릴게요. 금방 엄희선 총경리가 이스라엘 유태인들 미국에 이주해 창조한 다단계판매에 대해 개략적으로 소개했는데요. 다단계판매야 말로 황금금자탑에 오르는 황금길이예요. 여러분 알고 싶은가요?” “예-” “빨리 알려주세요.” 간절하고 조급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그때를 기다려 허하늘 팀장이 계속 했다. “그럼 이제부터 제가 다단계판매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정통편만한 까맣고 동그란 자석을 엄지와 식지로 집어 들고 장황설을 그럴 듯하게 늘여놓기 시작했다. “요건 자석인데요. 일반자석과는 달라요. 요걸 아픈 부위 경락에 찰싹 붙이면요.  그날로 신기하게 통증이 딱 멎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이 의료용 자석을 팔려면요. 광고비가 다닥다닥 들어붙어요. 다단계판매는 관계망을 통해 상품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팔기에 광고비가 필요없어요. 또 도매상과 소매상 등 숱한 류통업체를 거치면서 드는 판매와 도매 상업비용을 더 팔지 않고 직접 소비자들한테 팔지요. 때문에 소비자는 눅은 값에 살 수 있고요. 상품을 소개한 분들은 수고비로 리윤을 층층히 나눠먹을 수 있죠. 다시말하면 광고업체나 류통업체, 상업계통에 주던 쓸데 없는 비용을 남아서 소비자에겐 상품을 할인해주고 소개자한테는 수고비를 드리죠. 소비자나 소개자나 모두 수익이 있어 얼마나 합리한 분배인가요. 이거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때는 격이 아닌가요?” 정희는 점점 귀가 솔깃해졌다. 허하늘 팀장은 엄희선보다 아주 흥미진진하게 다단계판매를 홍보했다. 그녀의 달콤한 말에 의하면, 중국에 없는 한국의 화장품과 치료의기 등을 사도록 숱한 사람을 데려오면 그만큼 얻는 수익이 높아진다고 했다. 자기 수하에 한쎄트에2천원씩 하는 상품을 산 회원을 27명만 발전시키면 골든마케팀장(금팀장)으로 임명되는데 한달 로임이 근 3천원이나 된다고 했다. “인민페 3천원, 이 3천원은 여러 분들 1년 로임에 맞먹는 어머어마한 돈이지요? 어때요? 해볼 만하지요?” “예-” “한국에 가지 않고서도 중국에서 천문수자 돈을 벌어보겠어요?” “예-” “박수!” 뒤이어 허하늘 팀장은 더욱 놀라운 소식을 공포했다. “우리 엄희선 총경리는 석달 사이에 우리 이 홍보관에 100여명을 모셔왔어요. 엄총경리는 한달 로임이 만원도 넘어요. 여러분, 박수!” 관중들은 자리에서 막 일어나 박수쳤다. 엄희선 총경리는 무대에 재차 등장해 허리를 구십도로 굽히면서 인사했다. “여러 분, 저와 함께 가정을 위해, 내 인생을 위해 부를 창조해봅시다! 어떻습니까? 신심이 있습니까?” “예~” “박수!” 정희도 가슴이 설레였다. 부모께 효성하고 아들을 보려고 밤낮 돈을 벌자고 아득바득하는 성호를 도와 뭔가 하고 싶었다. 순간 그녀는 땅에 묻힌 돈줄이나 발견한 것처럼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아래에 유명한 가수 엄정희 선생님으로부터 독창을 불러드리겠습니다. 박수!” 정희는 뜻밖의 요청에 깜짝 놀랐다. “아니, 사전에 아무 말도 없이 어찌?” 그녀는 할 수 없이 엄희선한테 끌리다싶이 해 무대에 올라갔다. 그녀는 악대와 몇마디 주고받은 뒤 부자로 될 푸르른 꿈으로 가슴이 부풀어올라 격정에 넘쳐 노래 한곡 불렀다. 관중들은 그녀의 우아하고 부드러운 저음노래실력에 혀를 끌끌 찼다. 집으로 돌아올 때 엄희선은 정희를 보고 충고했다. “돈을 벌 좋은 기회요. 별게 없소. 친구, 친척, 동료들을 다단계판매홍보관에 데려만 오오. 홍보는 전문 홍보관에서 한국 마케팀장이랑 할테니까.” 정희가 고무풍선처럼 둥둥 뜬 것을 눈치챈 엄희선은 계속 바람을 불어넣었다. “몇달만 하면 나처럼 골든팀장이 돼 한달에 만원은 탈 수 있소. 처음부터 상품을 보이면서 홍보관에 가자고 하면 오지 않소. 내 동생과 하던 것처럼 공연을 보러 가지 않겠는가고 하든지, 아니면 놀러가지 않겠는가 하든지 대상에 따라 알맞는 방법으로 홍보관에 모셔오오. 홍보관에만 오면 모두 부자로 되려고 90프로는 상품을 사오. 친척친구들도 부자로 되게 하는 좋은 일이요. 왜 부자로 되는 일을 하잖겠소.” 정희도 다단계판매에 푹 빠져 당장 부자로 될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언니, 손잡고 해보기요. 좋은 기회를 마련해줘 고맙소.” 희선은 정희의 손을 굳게 잡고 헤여져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정희는 성호와 다단계판매를 하러 다닌다는 말도 없이 이튿날부터 다단계판매홍보관에 사람을 끌어들였다. 제일 먼저 아버지와 어머니를 홍보관에 모셔가기로 했다. 정희는 본가집에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고 단도직입적으로 “문예공연을 보러 가지 않겠어요?” 하고 물었다. 적적하게 집 구석이나 지키던 어머니는 인차 “구경하러 가지.”하고 반겼다. 그러나 엄삼기 교수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에이, 늘그막에 무슨 구경이요? 텔레비죤이나 보면 됐지.” 어머니도 덩달아 저어했다. “너네 돈이 바쁘겠는데 돈을 팔면서 구경할게 뭐야?” 정희는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를 잡아끌다싶이 했다. “돈 일전한푼 팔지 않고 하는 구경인데요. 오히려 돈을 벌 수도 있어요.” “아니, 구경하는데 무슨 돈을 번다고 그래?” “글쎄 가보면 알아요.” 그제야 부모들은 정희를 따라나섰다. 부모들은 다단계판매홍보관에 가보고 다른 세상에 들어선 것 같았다. 그들도 정희처럼 돈을 벌 욕심으로 늙은 가슴이 부풀어올라 딸을 따라 다단계판매에 뛰여들었다. 정희는 뒤이어 이모사촌동생들인 준식과 광인을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홍보관에 데리고 가서 2천원어치 상품을 사게 했다. 그녀는 일주일도 안돼 일약 다단계판매 파트너장이 되였다. 그녀는 또 자기 중학교에 가서 동료교원들과 학부모까지 20여명을 동원해 다단계판매조직에 가입시켰다. 그리하여 첫달에 한희선 총경리한테서 골든 팀장 금빠찌를 달고 로임 3천원을 탔다. (이게 정말 해볼만한 장사야. 점포도 필요없고 사람만 끌어다 내 밑에 넣으면 돈이 줄줄 생기는 판이구나.) 저녁에 정희는 피로한 기색으로 집으로 돌아온 성호한테 두툼한 봉투를 꺼내보였다. “이건?” 성호는 봉투 안의 돈을 세여보고 깜짝 놀랐다. 3천원은 자기가 그렇게 애나게 택시업을 해 번 한달 수입의 절반이 아닌가. “이건 우리 같은 사업일군들의 6개월 로임이나 되잖소?” “글쎄요. 절 따라 좋은 곳에 놀러 가면 한달에 3천원 버는 새 돈줄을 볼 수 있어요.” 성호는 의아한 눈길로 안해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린 절대 위법하면서 돈을 벌어선 안되오.” “호호호.” 정희는 입을 싸쥐고 깔깔깔 웃었다. “여보, 리성호 동무, 정치와 법률상식을 가르치는 교원이 아무려면 위법하면서까지 돈을 벌겠어요? 근심하지 마세요. 맞들고 돈을 벌어 아들을 보지 않겠어요?” 성호도 귀가 솔깃해졌다. “무슨 수로 돈을 보오?” “백문불여일견이라고 오늘 저녁 당장 저와 함께 가보자요.” 성호도 호기심에 차 그날 저녁으로 정희를 따라 다단계판매홍보관에 갔다. 한국의 예쁜 홍보팀장 허하늘 아가씨의 다단계판매리론을 귀맛좋게 듣고난 성호는 당장 갑부로 될 유혹에 견디기 어려웠다. “어때요? 다단계판매를 해보겠어요?” 정희가 햇쭉 웃으며 묻자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해보기요.” 정희는 성호의 손까지 잡고 홍보관을 나서면서 말했다. “자기절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아래 사람들이 줄줄이 데려오면 몇달이 안돼 골든부장이 될거예요. 저 옆집 언니는 총경리로 돼서 한달에 2만원도 넘게 번대요. 한국에 갈게 뭐예요? 앉은 자리에서도 몇만원씩 탄다는데요.” “뭘? 얼마 탄다고?” “이제 우리 둘 아래70명만 더 늘어나면 우리도 부총경리거나 총경리로 돼 2만원은 탈 거예요. 당해에 집과 자가용 사고 아들 볼게 아닌가요?” “진짜 장난 아니구먼. 어디 한번 통이 크게 해보기요.” 성호는 이튿날 아침에 당장 저금소에 달려가서 택시업으로 번 돈 2천원을 찾아내 홍보관에 가서 한희선 총경리한테 주고 한국 화장품과 약, 의료용자석 등을 탔다. 그는 속으로 누굴 다단계판매홍보관에 데려오겠는가고 친구와 친척, 동료들을 쭉 참빗질했다. (옳지. 송숙과 주옥을 데려와야지.) 그는 이튿날 외사촌녀동생 송숙을 홍보관에 데려오려고 찾아떠났다가 주춤 멈춰섰다. 매부 보고 택시를 몰지 못하게 했던 일이 마음에 걸렸다. 승복은 로운전수여서 차는 확실히 잘 몰았다. 이전에 림산작업소에 가서 산속 눈길에서도 자동차로 목재실이도 했기에 시내 포장도로에서 택시를 모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황금이 흑사심이라고 어쩐지 승복한테는 믿음이 가지 않았다.  전번에 차를 몰고 돈화로 달아나서 흑룡강성 쪽으로 가려고 한 믿지 못할 일을 친 후에도 엄마와 송숙의 얼굴을 봐서 마지못해 택시를 몰게 했었다. 그런데 낮 당번에 200원씩 딱딱 바치지 않고 항상 20원씩, 지어 30원씩도 갖은 구실을 대서 떼내고 바치지 않았다. 의심스러운 사람을 쓰지 않는다고 승복더러 재차 택시를 몰지 못하게 했다.   “무슨 면목으로 찾아가지?” 성호는 발길을 돌렸다. (뭐나 믿음에 토대를 해서 한걸음 한걸음 온당하게 나가야 해.) 그는 대학가에 가서 하학해 숙소로 돌아오는 외조카 주옥을 면바로 만났다. “외삼촌, 어떻게 돼 여기 왔습니까?” “다른 일로 왔댔는데 널 만날줄은 몰랐다. 만난바 하곤 점심이나 함께 먹을가?” 주옥은 어려서부터 그를 무척 따랐다. “감사합니다.” 성호는 외조카를 데리고 선화음식점에 데리고 가서 푹 삶은 개고기채를 푸짐히 주문해 먹이면서도 능청스레 다단계판매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장사를 한다는 말만 들으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무리 믿는 처지라고 해도 이상하게 역반심리가 작용했다. 당신이 자꾸 “사십시오.”, “사십시오.” 할수록 남들은 사지 않는다. 때문에 외조카라고 해도 처음부터 다단계판매가 어떻게 돈을 벌고 어쩌고 하면 오히려 외삼촌을 장사를 시켜주는 것 같아 의심하고 지어 뒤로 번져지면서 따라오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었다.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배운 성호는 바로 그런 역반심리를 주의하면서 조심스레 외조카한테 접근했다. 마치 낚시군이 미끼를 넣고 고기가 물리기를 내심하게 기다리듯이 말이다. “요즘 공부 바쁘냐?” “괜찮습니다. 이젠 오래잖으면 졸업하니까요.” “집에는 언제 갔니? 엄마랑 아빠랑 모두 잘 있니?” “예.” “넌 소비자가 아니냐? 많이 먹어라.”  성호는 주옥의 접시 앞에 개고기랑 자꾸 집어놓으면서 권했다. 주옥은 외삼촌의 푸짐한 대접에 맛있게 먹었다. 갈라질 때 성호는 주옥을 보고 “우리 집에 놀라오렴.” 하고 손까지 잡아주었다. “예, 그러잖아도 언제 가봐야겠는데요.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 자주 가보지 못해 미안해요.” 주옥은 생글방글 웃다가 뭔가 생각났던지 무릎을 탁 쳤다. “아, 정말 사회조사에 관한 졸업론문을 쓰겠는데요. 외삼촌이 다니는 광고회사를 조사해 쓰면 어떨가요?” “그래? 그럼 아예 다른 일이 없으면 지금 우리 집에 갈가?” “예. 그렇게 합시다.” 서로 잘 된 셈. 그날 오후 성호는 주옥을 데리고 단위에 들려 현지답사를 시킨 후 퇴근무렵에  집으로 데리고 왔다. 정희와 성호는 정성을 다해 주옥의 졸업론문제강까지 작성해주고 저녁대접까지 잘하였다. “얘, 주옥아, 우리 재미있는 공연을 보러 갈가?” 성호는 옆집 한희선 아줌마가 정희를 꾀여 홍보관에 데리고 간 경험을 지금 주옥한테 썼다. “예? 오늘 대박이야. 대접도 잘 받고 졸업론문제강도 작성했는데요. 공연까지 구경하다니요. ” 그날 주옥도 홍보관에 가게 됐고 나중에 다단계판매에 발을 들여놓게 되였다. 주옥이 또 자기 동창 몇을 소개해 홍보관에 데려왔다. 주옥은 성호의 선량한 거짓말에 끌리워 홍보관에 갔다가 일약 다단계판매 파트너장으로 되였고 첫달로임으로 3백원을 탔다. 그 돈이면 반학기 용돈으로 쓸수 있었다. 성호도 용기를 내서 송숙과 백호 형님에 조카 정국과 일복까지 몽땅 끌어들였다. 성호는 원래 송숙이네 집에는 몇번이고 가려고 망설이다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승복과는 관계가 벌어졌지만 송숙은 그래도 한살 지하인 외사촌녀동생이 아닌가. 게다가 다단계판매를 해서 갑작스레 생각 밖의 돈을 벌 수 있는데 이 좋은 돈줄을 녀동생한테도 알려 줘 함께 잘 살면 좀 좋겠는가고 생각하고 송숙을 홍보관에 데려  갔다. 이밖에 성호는 또 한 단위 해연과 승호까지 각종 수단을 다해 홍보관에 데려갔다. 그리하여 한달새에 성호도 자기 수하에 10여명을 발전시켜 한다하는 다단계판매 3개 소조를 관리하는 주관과장으로 승진해 첫달 로임 1,025원을 타게 됐다. 두번째달에는 승호가 자기 처 선금과 백화상점의 범송까지 끌어들이고 나중에 백화상점의 직원 30여명을 홍보관에 끌어들였다. 그도 첫달에 단통 골든팀장이 되였고 첫달로임 3천여원을 타게 됐다. 승호가 숱한 사람을 끌어들인 덕분에 성호는 일약 부장으로 돼 두번째달에 로임 9천원을 타게 됐고 정희는 수하에 80여명을 두어 부총경리로 승진해 두번째달에 로임 1만 5천원을 탔다. 부부가 한달에 2만 4천원이나 탔다. 성호와 정희는 입이 함박만해졌다. 성호는 낮에는 단위 광고를 해서 돈을 벌고 집에서 택시를 하는 외에 다단계판매까지 해서 2중 3중으로 돈을 벌어 한달 가정수입이 3만원도 넘었다. 이대로 나간다면 당장이라도 갑부로 될 것만 같았다. 한달에 3백원 타는 광고회사 일이 싫어졌다. 그들 부부는 날마다 다단계판매를 해서 고급아빠트에 금빛이  번쩍번쩍이는 황금몽을 꾸었다. 성호는 정희와 상론하고 진짜 엘레베이터아빠트단지 19층의 150평방메터나 되는 살림집 한채를 사서 사람들을 불러 한달여만에 장식까지 멋드러지게 척 해놓았다. 새 집에 들자 성호는 또 정희한테 지청구를 들이댔다. “여보, 이젠 아들을 봐도 되잖소?” 그러나 정희는 왕청 같은 말을 했다. “요까지 집 한채를 보고 아들을 낳을 수 있어요?” 성호는 정색했다. “한달에 50개월 로임을 벌어도 만족되지 않소? 사람이 욕심이 어디 끝이 있소? 맞춤할 때 아들이나 보기요.” 그는 시큰둥해하는 정희의 손을 잡고 아들 비위를 바짝 냈다. “여보, 내 소원을 꺼주면 안되오?” 그러나 정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보마표 자가용 갖추고 저금도 한 50만원 있어야지.” “아니, 저금 10만원이면 아들 낳겠다더니 또 올랐소.” 성호는 아연실색하며 입을 쫙 벌렸다. “그럼요. 생각해보세요. 송숙이네처럼 애를 셋이나 줄줄 낳기만 하면 돼요?  남들처럼 먹이지도 못하고 남의 집 애들의 옷을 주어다 입히면서 기를 거면  아예 낳지 않는 게 낫죠.” 정희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하는 말에 성호도 하나하나 따져주었다. “우린 송숙이네 정도는 아니잖소? 애들도 다 장차 제 살 길이 있겠지. 애 둘이면 우린 더 분발해 돈을 벌 게 아니요?” 정희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만해요. 지금 돈을 벌 때 콱 벌고 차차 봅시다. 딱 아들을 낳는다고 할 수 없잖아요? 또 지금 임신해 배 뚱뚱해 어떻게 다단계판매를 하러 달아다니겠어요? 우린 지금 시내 친척과 친구, 동료들에 국한됐어요. 이제 이 시내를 벗어나 다단계판매망을 농촌과 다른 도시에까지 넓혀나나가야 해요. 한국의 백영 사장은 이제부터 간고하다고 말하던데요. 아마 장춘이나 심양 그 쪽으로도 발전시켜야 할 것 같아요.” “홍보관에 마켓 팀장이라던 녀자 말이요?” “예, 허하늘 팀장은 기실 중국지회사 사장인데요. 원명은 허하늘이 아니라 백영이래요.” “가명을 쓰면서 돌아다녔구만.” “쉿-“ 정희는 입에 식지를 댔다.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엄희선 총경리와 저한테만 알려준 건데요.” 정희는 정색했다. “이제 길림과 장춘, 심양에까지 가서 다단계판매망을 발전시키자고 하던데요.” “아니, 욕심도. 백만부자를 꿈꾸는 거 아니요?” “앞으로 아들딸한테 집과 차를 사주고 손자손녀를 길러주자면 백만부자가 뭘 그리 대단해요? 난 교편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이 일을 할가 해요.” 성호는 억이 막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보, 왜 그렇게 짧은 생각을 하오. 자그마한 철밥통이라도 버리진 말아야지. 난 백만부자보다도 아들딸만 낳아 기르기만 하면 더 좋소.” “날마다 애들과 씨름하다나면 언제 부자 돼요? 백만부자 됐다고 해서 아들딸을 낳지 못한다는 건 없잖아요? 이 기회에 억만부자가 되면 어때요? 호호호.” 성호는 머리가 뜨겁다 못해 뻥 뚫린 것 같은 정희를 말리지 못해 근심이 태산 같았다. 세상 일이 어디 그리 식은 죽 먹기겠는가. 송숙이랑 농촌에서 시내에 들어온 아낙네들은 2천원을 주고 한국 화장품이랑  자석이랑 쓰지도 못할 걸 한아름 타 집에 가져갔다. 그러나 아래에 사람을 끌어다넣지 못해 한번인가 몇십원 로임을 타고는 더 타보지도 못해 두덜거렸다. “에이구야, 오빠 좋은 일이나 했지. 우린 본전도 찾지 못하겠소.” 성호는 돈을 벌지 못한 송숙이랑 함께 뒤에서 쑤근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그들한테 보상을 주려고 자기 로임으로 선화음식점에 데리고 가서 밥도 사먹였다. 홍보관에 올  때거나 집으로 돌아갈 때면  자기 집 택시로 실어다주게 하였다. 그런 고생을 하는 건 그래도 꽃이였다. 성호는 항상 돈벌기 좋은 이런 날이 며칠이나 갈가고 근심했다. 어떤 때에는 어째 돈을 벌기 너무 쉬워서 자꾸 현실이 꿈만 같아 조마조마하고 불안했다. 며칠 후, 근심하던 일이 끝내 터졌다. 극장에 신설한 홍보관에서 정희가 무대에 올라 한창 마이크를 틀어쥐고 천여명 다단계판매업자들한테 신나게 다단계판매를 홍보할 때였다. 두리모자를 쓰고 정복차림을 한 몇몇 사내들이 홍보관에 뛰여들었다. “꼼짝 말엇!” 그들은 주석대에 앉은 한국 백영 사장과 한희선 총경리, 엄정희 부총경리를 나포해 경찰차에 압송해갔다. 다단계판매업자들은 “와야-” 하고 바깥으로 도망쳤다. 공안국 간부는 마이크를 빼앗아들었다. “우린 공안국과 공상국 련합수사대입니다. 여러 분, 한국 다단계판매는 불법판매활동이며 국제사기행위입니다. 여러 분들은 국제사기군들의 감언리설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성호는 밀물처럼 밀치고 닥치는 군중들 속에 숨어 요행 극장을 빠져나왔다. “아이구,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아들비위를 쓰면서 황금몽을 꾸던 황금탑이 순식간에 와그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234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41) 댓글:  조회:1481  추천:0  2019-10-20
                     71. 아들과 사위 성호는 선희가 광고수입을 몽땅 가지고 송준과 함께 한국에 도망치지 않았는가 의심했다. 근봉과 전화해 물어보니 생각 밖으로 송준은 며칠 전에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하지 않겠는가. 요즘 성호는 부모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또 속을 썩이게 되였다. 영옥은 성호의 손을 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얘야, 아버지 소원을 꺼줘라. 죽으면 화장터에 가서 불에 타 두번째죽음을 당하기 싫단다. 난 괜찮다. 이담 죽으면 화장터에 보내달다. 그 좋은 뻐스에 앉아 천당으로 가지 왜 북망산에 가서 땅 밑에서 썩겠느냐? 우린 한평생 농촌에서 살았기에 고향으로 돌아가면 나갈 데도 있어 기분 좋다. 어쩐지 시내에 있으니깐. 나갈 데도 없고 수토가 맞지 않는지 이걸 봐라.” 영옥은 뚱뚱해진 배를 가리켰다. “어째 자꾸 배 붓긴다. 지난 해 가을엔 고향에 돌아가 탈곡하니 배 쑥 내려가더라.” 상진도 간곡히 부탁했다. “얘야, 화장터에 가서 두번 죽음을 당할 생각만 해도 머리끼 곤두서고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성호는 부모 말을 듣고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고향에 집도 없지. 어떻게 허망에 간다고 그럽둥?” 그때 정희도 안방에 들어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물었다. “혹시 제가 잘 보살펴드리지 못해 섭섭하셔서 그러진 않으십니까?” 영옥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게 무슨 소리요? 며느리, 시내 각시라도 시부모를 살뜰히 모신 착한 며느린데.” 정희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젠 칠순고개도 넘었는데요. 고향에 돌아가서 농사 지을 수도 없잖아요? 집도 없이 농촌에 돌아가 어떻게 산다고 그래요?” 상진은 묵묵히 앉아 있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집이야 사위한테서 되찾으면 되지. 집값을 어디 한푼이라도 물었소? 부모한테 먹을 쌀도 주지 않는 불효자식들, 새 해엔 밭을 남한테 주면 줬지. 그런 인정머리도 없는 불효자식한테 줄 순 없소.” 정희는 황급히 말렸다. “아버님, 괜히 부모자식간에 말썽이라도 생기겠어요. 이제 우리 돈을 벌어 시내에 큰 집을 마련하면 부모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상진은 며느리를 보고 정색했다. “아들며느리 성의는 아오. 시내 정말 싫어서 고향에 가자고 그러오.” 성호나 정희나 일단 결단 내리면 벽이라도 차고 나가고 마는 아버지 성질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때 혜옥이 결혼하게 돼서 일가친척들이 은숙이네 집에 모이게 됐다. 성호는 당연히 상빈으로 가게 되다나니 일찍이 고향 마을로 올라갔다. 그는 될수록 매형과 누나와 마찰을 피하려고 매형한테 판 집을 되찾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와 영옥과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파는 집이 없는가 수소문해보았다. 옛날 생산대 창고 앞을 지나다가 영옥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얘야, 이 창고 안에 구들을 놓고 살면 어떨가?” 성호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웃겠습둥? 시내에 모시고 가서 호광을 시킨다더니 고향에 돌아와 창고에서 산다고. 자식을 망신시키자고 그럽둥? 에이구, 부모를 잘 모시자고 해도 부모들도 자식 말을 좀 들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상진은 “창고에 가마를 걸고라도 고향마을에 기어이 돌아가겠다.” 하고 고집했다. 정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어떻게 초라한 창고에 구들을 놓고 부모를 모셔갑니까?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뭐라겠습니까? 아들과 며느리를 불효자식으로 만들려고 그래요?” 그러나 상진은 기어이 창고에 들어 살겠다고 고집을 썼다. 기실 그는 사망한 후에  화장터에 가는 것도 싫었다. 그보다도 막내아들며느리를 도와주지 못하고 시내에 눌러 있는 것이 바늘방석에 앉은 것만 같았다. 성호는 부모의 그런 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한마디 또 해보았다. “아버지, 그럼 우리 집과 가까운 교외 어느 마을에 집 한채를 사놓고 살면  어떻습니까?” “얘야, 낯선 마을에 가서 어떻게 산다고 그래? 우리 근심 너무 하지 말고    손자나 안겨달라. 그게 제일 큰 효도야.” 말수 적은 상진은 시내 아들 며느리 집에 와서 병치료를 하면서도 슬그머니 손자 비위가 났다. (대를 이을 손자녀석이 없어서야 안되지.) 성호는 별수 없이 어머니와 함께 고향마을로 달려올라갔다. 그는 창고를 사서 구들을 놓으려다가 중천정도 없는 창고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그만 두었다. 영옥은 은숙이네 울 안에 있는 소사양실을 돌아보더니 경만을 보고 어려운 말을 꺼냈다. “사위, 창고에 구들을 놓자니 맞갖잖습데. 저 소사양실을 손질하고 우리 들면 안되겠소?” 경만은 철색얼굴이 단통 화가마처럼 지지벌개나더니 단마디에 투박한 목소리로 거절했다. “안됩구마. 장차 거길 손질하고 혜옥이네를 데려올 예산입구마.” 영옥은 너무나도 억이 막혀 도리머리를 홰홰 둘렀다. “아니, 사위도 반자식이라고 어째 이러오? 우리 집값을 한푼이라도 물었소? 집을 내놓아라는 것두 아닌데. 정말 너무 하오?” 경만은 볼멘 소리를 줴쳤다. “밭이랑 남을 붙이게 할 땐 어떻구. 사위두 반자식이랍둥? 어째 자꾸 딸집에 기여들면서 이럽둥? 가시집과 변소간은 원래 멀어야 된다는 법도 모릅둥?” 성호는 곁에서 듣다못해 툭 쏴주었다. “매형, 그만하오. 부모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요?” 경만은 적반하장격으로 제 쪽에서 억이 막혀했다. “야, 뼈 굵어지니 어째 매형두 눈에 차지 않니?” “동네 부끄럽잖소?” 그때 혜옥이 신랑과 함께 웃방에서 나왔다. “아버지, 그게 무슨 소립둥? 그래 사위는 반자식이 아닙니까? 사위 부끄럽잖아 가시집과 변소간은 멀어야 하는 법이라고 합니까? 아들도 없는 아버지 이담  어떻게 우리하구 함께 살겠다고 그럽니까? 외할머니한테 효도를 해서 사위한테 모범을 좀 보여줍소.” 경만은 장차 믿고 살아야 할 맏딸의 말에 찍소리도 못했다.  성호는 매형네 집에서 나와 태평강 건너 천지꽃산 기슭에 있는 소사양장을 찾아가 돌아보았다. 소사양실은 문이랑 매형이 다 뜯어간데다가 돌토성도 여기저기 허물어가서 페허 같았다. 게다가 간장물 같은 비물이 새서 볼 품도 없었다. “그래도 창고보다 퍽 나을 거 같애. 매형네 집과도 거리를 두어 신세를 졌다는 말도 덜 듣고.” 그런데 막상 겨울이 돌아오기 전에 소사양실에 구들을 놓고 부모를 모셔오자니 그리 식은 죽 먹기가 아니였다. 성호는 구들을 놓고 가마를 거는 일을 해본 적도 없었다. 핍박에 의해 량산에 오른다고 그는 먼저 마을에서 손잡이뜨락또르를 빌어 벽돌공장에 가서 벽돌을 실어오고 태평강에 가서 모래와 흙을 실어들였다. 그때 가을을 하러 가던 만주가 빈정거렸다. “아니, 형님, 어째 시내에서 부모를 모시기 힘든 모양이구만. 이리 헐망한   소사양실을 다 손질하오?” 성호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억지로 희죽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어쩌겠니? 부모가 시내 벽돌집을 두고도 화장터에 가기 싫어 고향에 돌아와 살겠다는 걸.” 동불사령감도 낫을 들고 지나가다가 소사양실에 들어와서 조개턱을 들고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동불사령감을 불러 함께 가면서 싱거운 소리를 했다. “아들을 대학에 보내 다 쓸데 없소. 애비에미를 우사에 모시는 걸 보오.” 동불사령감이 맞장구를 쳤다. “아들딸이 열이나 돼도 어느 자식이 모시자고 하오?” 그 말은 마디마다 칼로 되여 성호의 가슴을 아프게 쿡쿡 찔렀다. (내 숨만 돌리면 꼭 고향에 고래등 같은 벽돌집을 지어 부모를 모실테야.) 그래도 혜옥의 욕을 먹고 뭔가 가책됐던지 경만이 와서 성호와 함께 구들을 놓는다, 벽돌로 간벽도 쌓는다, 부뚜막을 쌓고 가마도 건다하면서 맴돌아쳤다. 간벽과 천정 사이가 너무 높았지만 벽돌로 더 쌓을 수 없어 이깔나무를 대고 에을 얽은 후 진흙으로 발라야 했다. 그런데 이깔대고 문이고 하나도 없었다. 또 경만이네 사양장의 창문이고 문이고 다 빼가서 문도 새로 달아야 했다. 하는 수 없이 영옥은 태평강을 건너 가을걷이를 가는 은숙을 보고 문 한짝과 이깔대를 몇대 달라고 통사정을 들이댔다. 은숙은 딱 잡아뗐다. “안됩구마. 건 다 집값에 들어간겝구마.” 영옥은 손바닥이 다르고 손등이 다르다고 자기 낳은 딸이면 낫겠는가고 은숙을 찾아가 통사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믿던 딸의 입에서 구렁이처럼 으쓸한 대답이 나올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 와서 다 찾아가겠다면 어떻게 합둥? 공짜로 준 건 준 게지. 어째 딸집에 기여들어 자꾸 끌어가려고 이럽둥? 흥! 정말 시끄럽게 굽구마.” “돈을 줄게. 문짝과 이깔대를 팔아라.” “어이유, 공짜로 가진 걸 엄마한테 팔면 남들이 뭐라겠습둥?” 영옥은 억이 막혀 말이 더 나가지 않아눈물을 흘리면서 돌아섰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더니. 원, 참, 어디 남의 새낀들 저럴 수 있겠니? 어쩜 내 배 아프게 낳은 딸 같지도 않을가. 개라도 나았으면 주인을 보면 꼬리라도 치지.) 그 눈물겨운 정경을 보던 정미소집 장천이 지나가다가 물었다. “무슨 일로 그러오?” 영옥은 너무나도 억울해 하소연했다. 장천은 자기 집 이깔대 몇대를 가져다 쓰라고 했다. 그때 은숙은 황급히 쫓아나오면서 어머니를 손가락질하면서 고함쳤다. “잘하긴 잘한다. 제 딸을 온 동네에 다 팔아먹겠습둥? 어이구, 언제 저 늙은 것들이 다 썩어지겠니?” 그때 웃방에 있던 은숙의 사위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혜옥이 듣다못해 웃방에서 나오면서 질책했다. “어째 외할머니와 이럽둥? 동네 부끄럽지 않습둥? 외할아버지네 집에 외상으로 들어 살면서 이깔대 몇대 그렇게 아깝습둥?” 말을 마치자 혜옥은 신랑을 불러 토성 안의 이깔대를 수레에 실었다. “야, 그걸 어째 싣니?” 은숙이 뭐라건 혜옥과 신랑 준범은 수레를 몰고 태평강 건너 소사양장으로 떠났다. “엄마, 그럼 이러기요.” 은숙은 허연 머리를 흩날리면서 떠나가는 늙은 어머니 굽은 잔등에 대고 소리쳤다. “이깔대 한대에 6원씩 가져가오.” “그래라. 우리한테서 공짜로 가진 걸 되팔아서 잘 살겠다.” “팔기만 해도 좋은줄 아오. 어데 가서 그리 좋은 이깔대를 얻어온답데.” 그때 웃마을의 백호가 집손질하러 왔다가 그 딱한 사정을 알고 자기 집 이깔대를 더 가져왔다. 그뿐이 아니다. 소사양장에 있던 숱한 농기구와 물독, 쌀독, 소먹임 물을 끓이던 커다란 대국가마 등은 기실 몽땅 집값에 넣지도 않고 몽땅 딸한테 공짜로 준 것이였다. (진짜 딸이래도 거저 주기는 쉬워도 되찾아 쓰기는 쉽잖구나.) 영옥은 부모자식간에도 인품이 날로 각박해지는 세월에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딸과 사위한테 수모를 당하고서도 자식들간에 싸움이라도 생길가봐 성호와 백호한테 한마디 섭섭한 말도 하지 않았다. 더구나 성질이 애비를 닮아서 불 같은 성호가 아는 날에는 매형과 큰 싸움이 벌어질가봐 겁났던 것이다. 그날 저녁부터 영옥은 채마르지 않은 소사양실 구들에 건치를 깔고 잘 지언정 은숙이네 집으로 가지 않았다. 하루 밤도 더 묵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며칠 후 상진은 지팽이를 짚고 고향마을에 찾아와 소사양장에 들어섰다. 그때도 영옥은 령감한테 은숙과 경만의 허물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괜히 령감이 중풍에라도 걸리면 큰 일이 아닌가.) 상진은 사양실 울 안에 키 넘는 쑥대를 보더니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아이구, 범이 새끼를 칠 지경이구나.” 그는 지팽이를 짚고 태평강을 건너 셋째딸집에 갔다. 그는 사랑칸에 들어가 두루 살피더니 자기가 쓰던 낫을 찾아 들고 나오려고 했다. 그때 경만이 나와서 호통쳤다. “아니, 건 어째 다칩둥?” “사양장 울 안에 범이 새끼를 칠 지경이오.” 상진은 사랑간에 되돌아가 호미도 주어들면서 뒤말을 이었다. “명년에 터전이라도 가꿔야 남새를 먹지. 입에 거미줄을 치겠소?” 경만이 한다는 소리 더 한심했다. “아니, 중풍을 맞아 쩔뚝거리면서 무슨 터전을 가꾼다고 그럽둥? 흥! 다 죽게 돼가지고 욕심을 작작 씁소!” “뭐라오?!” 상진은 들었던 호미와 낫을 땅바닥에 탕 메쳤다. 그때 은숙이 동네 사람들이 보기 민망했던지 달려나와서 소리쳤다. “어이유, 싹 가져갑소. 귀신딴지 같은 걸 보기두 싫습구마. 이젠 우리 집에 얼씬거리지도 맙소.” 혜옥이 또 엄마를 욕했다. “아니, 엄만 진짜 불효자식입구마. 아들도 없는 엄마, 바꿔놓고 이담 우리 그러면  엄마 좋겠습둥? 우린 딱 아버지, 엄마 외할아버지와 하던대로 하지 않는가 두고 봅소.” 그제야 은숙은 두덜거리다가 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영옥이 은숙을 보고 소사양실에 놓았던 물독과 쌀독을 가져가려고 했다. 은숙은 대뜸 화를 냈다. “물똑과 쌀똑까지 다 가져가겠다고?” 그녀는 이를 사려물고 뭐라고 욕하려다가 웃방에서 내다보는 혜옥과 사위를 보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을 억지로 꿀꺽 삼켰다. “콱 가져갑소.” 영옥은 소사양실로 나가면서 은숙을 보고 “얘, 좀 이워달라.” 라고 했다. 은숙은 마지못해 소사양실에 가서 그 무거운 물독을 칠순 넘는 어머니 하얀 머리카락 우에 들어 이워주면서 줄욕을 퍼부었다. “에이유, 늙은 것들이 아직도 죽지 않고 새끼들을 밸까지 다 빼갈 예산이요. 에이구, 산 속의 호랑이 다 뭘 하고 굶어죽는다오?” 늙은 영옥은 무거운 물독을 이고 일어나다가 그 욕설에 다리맥이 풀려 일어나지 못하고 그만 풍덩 물앉았다. 쾅! 물독이 은숙의 발치에서 박산났다. “아이구!” 은숙은 어머니 어데 상했는가 보기는커녕 자기 발이 상하지 않았는가 내리보다가 발을 쾅 구르더니 자리를 떠났다. 영옥은 눈물을 머금고 다른 물독을 혼자 이고 일어나려고 모지럼을 썼다. 그때 외손녀 혜옥과 손녀사위가 모다못해 씽 달려나왔다. “할머니, 우리 실어다드립지비.” 그들은 할머니 머리에서 물독을 빼앗다싶이 내리워 수레에 싣고 외할머니를    모시고 태평강을 건너갔다. 영옥은 인정머리도 없는 은숙이 너무나도 섭섭해 두고두고 외웠다. “어쩜 은숙은 내 배아프게 낳은 딸 같지 않다. 어쩜 어미하구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가?” 영옥은 혹시 자식들이 알면 말썽이라도 생길가봐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속으로 외우고 또 외웠다. 성호는 부모를 시내로 모셔올 때 부모가 쓰던 톱과 망치, 큰자귀, 대패 등을 일전한푼 받지 않고 몽땅 경만한테 넘겨주었댔다. 그런데 이젠 성호가 목수도구를 빌어써야 할 처지로 됐다. 은숙은 “말로는 빌어다 쓰자지만 되찾아가자고 그러지?” 하고 도도거리면서 목수도구를 내놓기 아까와했다. 사양실을 집이라고 다 손질해놓았는데 딱 출입문이 없었다. 성호는 매형네 집에 가서 돌아보다가 울안의 소사양실 뒤에 람색뼁끼칠을 한 문이 벽에 기대 세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문은 원래 사양실 출입문이였다. “저 문을 주오.” 은숙은 하늘이 낮다고 세길네길 펄쩍 뛰며 야단쳤다. “부모자식간에도 어디 공짜가 있니?” “저건 분명 우리 사양실 문인데. 어째 우리 동의도 없이 뜯어왔소?” “40원에 사가라!” “우리 사양실문을 뜯어다 지금 되팔겠소? 참, 누나도 한심하오.” 성호는 어처구니 없어 입을 딱 벌렸다. 그는 가을하러 나가는 동불사령감이랑 세린하령감이랑 보는데서 고까짓 돈 40원 때문에 다투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아버지가 노여워서 병이 도질가봐 겁났다. “40원 줄게.” 성호는 성이 꼭두까지 치밀었지만 억지로 참고 그 자리에서 40원을 꺼내 던져주고 그 문짝을 싣고 떠났다. 성호는 마음이 아팠다. (아, 저래서 어른들이 항상 애지중지 키운 자녀들의 불효에 섭섭해했겠구나. 부모 집은 영원히 자녀 집이지만 자식의 집은 잠시도 부모 집이 아니라는 말씀이 맞구나.) 성호는 매형과 셋째누나를 한바탕 쏴줄가하다가도 그만뒀다. 어쨌든  고향 마을에서 누나와 매형을 믿고 부모를 모셔야지 않겠는가. 그는 매형과 아버지 사이가 벌어진데는 부모자식간에 서로 양보와 배려심이 모자란데 원인이 있다고 여겼다. 그보다도 인간수양을 닦지 못한 불효에 주요한 원인이 있었다. 경만과 은숙이 약혼할 때 상진은 아버지 없이 자라서 수양이 없고 성질이 팩하다고 반대했었다. 경만은 제일 아픈 마음속의 상처를 건드린 것이 항상 속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결혼해 살면서도 술만 마시면 그 일이 생각나서 가시아버지와 걸고 들어 행패를 부리군 했다. 또 밭을 나눌 때 반이랑 때문에 가시아버지와 시비를 걸고 들었다. 물론 후에 상진의 것으로 판명났다. 그때 경만은 기분이 어찌나 생했던지 자를 땅바닥에 홱 팽개치면서 “에이씨, 이젠 가시아버지구 뭐구 모른다!” 하고 쩔뚝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후부터 경만은 가시집이라면 쓴 외 보 듯하였다. 그때 만약 은숙의 말대로 상진이 사위한테 좀 양보했더라면 관계가 더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상진은 절대 시비에 지고 살려는 사람이 아니였다. 그의 인생 좌우명은 “빚을 지고 살아도 시비에 지고 살 수 없다.”는 것이였으니깐. 상진은 일찍 시내 아들며느리 집에 갈 때 다리를 젖은 사위를 많이 돌봐주었다. 그는 이전에 옥맺힌 매듭도 풀어주려고 자기 밭을 사위한테 붙이라고 주었을뿐만아니라 새 벽돌집마저 외상으로 사위한테 팔았다. 영옥은 봄에는 벼모랑 떠주었고 성호도 청가를 맡고 벼모내기를 도와주었다. 늙은 량주는 여름에는 터밭을 매주었을뿐만아니라 가을에는 낫을 들고 가을을 해주었고 초겨울에는 상진과 성호까지 데리고 와서 탈곡까지 도와주었다. 기실 부모네 밭 일은 부모와 성호가 거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런데 경만은 다욕하게도 가시부모들이 먹을 쌀도 주지 않았다. 가시부모가 거저 쌀을 가져가려는 것도 아니고 밭을 양도한 값으로 먹을만큼만 달라는데도 한근도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가시부모와 사위 사이가 점점 벌어졌다. (부모와 매형네 사이가 벌어진 주요한 책임은 그래도 매형한테 있지. 우리 얼마나 양보해주었는데 배은망덕하고 불효를 저지른단 말인가.) 성호는 매형과 누나를 고깝게 생각하면서도 관계가 나빠지면 안된다고 여겼다. 비록 매형보다 열살이나 지하였지만 필경 대학을 나온 사회 사업일군이여서 도량도 넓었다. 쭉 훑어보아도 어느 누나나 매형이나 모두 장점과 허물이 없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드넓은 흉금으로 누나와 매형네를 모두 포옹하려고 무등 애를 썼다. “이제 누나들과 매형들도 부모네 년세와 가까와지면 꼭 후회할 날이 있을 거야.) 성호는  앞날이 캄캄하고 아득하기만 했다. 나먹은 누나와 매형이 셈이 들 때면 부모가 이 세상에 살아계실지 걱정됐다. 이듬해 봄이 오자 성호는 밭을 매형한테 붙이게 주자고 아버지와 상론했다. 상진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글쎄 사위한테 밭을 주면 같은 값에 동네 보기도 좋지. 그런데 또 식미를 주지 않으면 어쩌니?” 하고 근심했다. “이제 계약할 때 똑똑히 하면 됩구마. 매형도 사람인데 아무리 그러면 계약도 지키지 않겠습둥? 한번 더 믿어보깁소. 이 마을에서 누나와 매형도 믿지 못하면 누굴 믿고 살겠습둥?” “그래? 흉금이 넓구나.” 상진은 희죽이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성호는 그 길로 매형네 집으로 건너갔다. “매형, 새 해에 우리 밭을 붙히겠소?” 경만은 저으기 놀라하면서도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아버지 동의하니?” “양, 이제 금방 토론하고 왔소. 그런데 새 해엔 밭양도세로 꼭 부모 식미를 주오.” “아니, 그러잖구.” 경만은 두 말 하지 않고 동의했다. 성호는 백지장에 계약서를 줄줄 쓰더니 경만한테 원주필을 내주었다. “여기에 서명하오.” “이건 뭐냐?” 경만의 말에 은숙도 백지장에 쓰인 글을 들여다보았다. 계약서에는 가을에 장마당 시세에 따라 밭양도세만큼 쌀을 줘야 한다고 똑똑히 씌여 있었다. “밭양도계약서?” 경만은 계약서를 들여다보고 웃었다. “얘, 부모자식간에 무슨 계약서냐?” 그러나 성호는 정색했다. “구두로 맺은 군자계약은 쓸데 없소. 부모자식간에도 돈은 세여 주고 받으라 하지 않았소? 계약서를 쓰면 서로 좋소. 법적 효력을 보니까.” 은숙은 머리를 끄덕였다. “어떻게 신용없이 놀았으면 매형하구 처남 지간에 밭양도계약서를 다 써야 하오? 뭐랍데? 부모 잡술 쌀을 주자는데두.” 경만은 눈을 치켜떴다. “에이구, 이제 와선 다 내 탓이라고 한다. 쯧쯧쯧.” 그는 부르튼 소리를 치면서도 계약서에 이름 석자를 비뚤비뚤 써넣었다. 그는 자리를 뜨는 막내처남을 바래면서 중얼거렸다. “너도 가시아버지 못잖구나. 절대 시비에 지지 않을 놈이군. 그래도 넌 가시아버지보다 인정머리 있어. 가시아버지가 네 절반만큼이나 인정머리 있게 놀아도 절대 그러잖았울 거야.” 성호는 시무룩이 웃으면서 매형의 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매형, 새 해에 수고하겠소. 형제끼리 서로 도우면서 화목하게 살기요.” 은숙은 굳게 손을 잡고 희죽이 웃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복숭아 같은 얼굴에 해시시 웃음을 지었다. 경만은 부모와의 갈등이 다 해소된 것이 아니였다. 엄동설한이 눈 앞에 당장 덮쳐들게 됐다. 그런데 부모들은 땔나무가 없어 고생이 막심했다. 먼저 소사양실 울 안에 키넘게 듬성듬성 자란 마른 쑥대를 상진이 낫으로 베놓았다. 영옥은 한아름씩 안아들여다 아궁이에 쑤녀넣고 그럭저럭 늦가을 추위를 몰아냈다. 경만네 집 마당에는 돼지들이 마구 뜯어널어놓은 산더미 같은 벼짚이 눈썩임물에 다 썩어빠질 지경이다. 혜옥이 외할머니네 땔나무 없다고 실어다주려고 하자 경만은 철색낯이 시꺼매나면서 눈 흰자위를 뗄뗄 구을렸다. “한단에 2전 5리씩 사라고 해라.” 은숙은 부삽으로 아궁이에 석탄을 퍼넣다가 남편한테 마땅찮은 눈길을 보냈다. 그녀는 나그네 집에 비였을 때 가만히 혜옥과 사위와 함께 벼짚을 한수레 꽉 박아 실어다주었다. 성호는 눈 앞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했다. 그는 택시영업을 하지 않고 택시에 석탄마대를 꽉 박아 싣고 고향으로 떠났다. 정희는 택시 뒤좌석에 묻은 시꺼먼 선탄재를 보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야단쳤다. “아니, 여보세요. 택시를는 계속 뛰게 하고 화물차를 삯을 내 석탄을 실어가세요.  택시 안의 저 석탄재를 어쩝니까?” 성호는 당장 땔나무가 없는데 불시에 화물차를 어디에 가서 구한단 말인가? “실은 석탄은 실어가고 다음에 보기요.” 그제야 정희는 얼굴에 화기를 띄우더니 신신당부했다. “무사히 갔다가 오세요.” 또 이모사촌동생 광인을 보고 “해졌는데 주의해 천천히 몰고 갔다 오라.” 하고 신신당부했다. 광인과 준식은 모두 정희의 이모사촌동생들이다. 전번에 녀기사가 강간당한 후 차수리부에서 일하던 광인을 데려왔다. 성호는 광인이 모는 택시 조수석에 앉아 고향을 바라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온 여름 온 장마비에 아래마을 앞길이 깊다란 물도랑처럼 길게 패웠다. 하리표택시가 그 움푹 패인 호박길에 들어서니 택시 천정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홈이 깊었다. 초겨울이여서 장마철과는 달리 물이 고이지 않아 다행이였다. “주의해라. 구덩이에 빠지면 큰 일이야.” 성호가 금방 주의를 줄 때다. 쿵더덩! 택시가 구덩이에 빠졌다. 성호는 조수석의 서랍을 열고 손전지를 꺼내 빠진 차 밑을 비춰보고 깜짝 놀랐다. 글쎄 택시  밑바닥이 언 홈채기에 쿡 박혔던 것이다. 박힌  밑바닥면이 너무 넓어서  전진도 후진도 못하고 바퀴가 연기를 일구면서 앵앵 헛돌아가는 것이였다. “이걸 어쩐다?” 성호와 광인은 무릎을 꿇고 앉아 택시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한탄했다. 한참 후 성호는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다. “매형네 소를 가져다 끌어내자.” 성호는 광인을 보고 택시를 지키게 하고 고향마을로 종주먹을 쥐고 달려갔다. 경만은 사연을 듣고 두말 없이 황소를 몰고 아래마을로 내려왔다. 경만과 광인은 서로 인사하고 먼저 륜번으로 괭이로 택시 밑바닥을 끄고 삽으로 퍼냈다. 그런 다음 황소를 가대기 멍예에 메워 바줄로 택시를 끌었다. “이라!” 경만이 소잔등을 탁 치며 소를 몰았다. 동시에 광인이 택시를 후진시켰다. 택시는 모진 엔진소리와 함께 황소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50~ 60메터나 되는  길다란 홈채기를 다 빠녀나갔다. 그때 뒤에서 헤드라이트불빛이 다가왔다. “에이, 좀 늦었으면 화물차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할 번했구나.” 택시가 효성의 석탄을 싣고 희읍스럼한 달빛을 빌어 울퉁불퉁한 호박길을 따라 부르릉 부르릉 힘겹게 달려가고 있었다.
233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40) 김장혁 댓글:  조회:1396  추천:0  2019-10-16
                             70. 황금몽 성호는 광고나 택시업이나 모두 식은죽먹기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흐리멍텅한 하늘아래 함박눈이 푸실푸실 흩날리는 엄동설한에 그는 광고를 얻으러 한 술공장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다. 그는 얼음이 살짝 깔린 철길을 건너다가 그만 미끌어져 허망 쿵 넘어갔다. 다른 차 바퀴 밑에 들어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였다. 그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겨우 일어나 오토바이를 밀고 쩔뚝거리며 간신히 철길을 건넜다. 찬찬히 오토바이를 여겨보니 받침대와 배기관이 후러들어 탈 수 없었다. (박공장장과 약속해놓았는데 어쩌지?) 그는 아예 오토바이를 눈풍설이 윙윙 휘몰아치는 철길 옆에 세워놓고 자물쇠를 잠그어놓은 후 택시를  잡아타고 술공장에 갔다. 공장장 박광률은 성호 어깨에 묻은 눈을 털어주면서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째 이제야  왔소?” 성호는 “미안하오.” 하고 박공장장의 손을 굳게 잡았다. 사연을 듣고 박공장장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에이, 괜히 사고를 칠 번했구만.” 호리호리하게 생긴 그는 항상 간판광고 덕분에 술판매가 잘 됐다면서 성호가 광고를 하자고 하면 인차 대답해주었다. 성호가 자리에 앉기 바쁘게 박공장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요즘 우린 인삼술과 알로에술을 개발했소.” 그는 벽궤에 줄느런히 진렬해놓은 술병들을 가리켰다. “인삼은 우리 장백산기슭 특산이 아니고 뭐요? 인삼술은 사람의 원기를 회복하는데 아주 좋은 보약이요. 알로에술은 소염과 원기회복에 다 좋은 술이요.” “맞소. 우리 지방특산으로 술을 제조해야 우리 지방 외에 내지에도 널리 팔 수  있소.” “한번 광고를 내보기요.” 성호는 그 날로 박공장장과 2만원 광고계약을 맺고 광고설계에 착수했다. 그러나 인삼술광고가 뜻밖에도 총경리 굉팔의 낮은 문턱에 걸릴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성호, 너거 왜 술광고에 집착해? 국가 광고법에는 술광고를 하지 못한다고 명확히 규정된 걸 몰라? 위법술광고까지 해? 우리 광고회사 의미지가 뭘로 돼? 참, 답답해. 공상국에서 전번에 벌금시켰는데도 아직도 술광고야? 진짜 소가죽보다도 더 질기군.” 성호는 통사정을 들이댔다. “지금 세월에 광고를 얻어오기 그리 쉽습니까?” 꽝! 굉팔은 사무상까지 꽝 치며 벌떡 일어나 우멍눈을 희번뜩거렸다. “야! 정신 차려! 위법광고를 했다가 누가 책임져? 엉?!” 굉팔은 총경리라는 권력을 빌어 지금 성호한테 심술을 부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제 계속 술광고를 하는 날엔 전근시키지 않나 봐. 사람 귀에 말이 통 들어가지 않아?” 성호는 계속 통사정을 들이댔다. “아니, 한다하는 텔레비죤방송에서도 술광고를 하던데 왜 못한다고 그럽니까? 눈을 질끈 감고 한번 대담히 해봅시다. 예?” 굉팔은 뒤짐을 지고 서서 큰소리를 쳐댔다. “관둬(그만둬)! 호랑이 같은 범수도 다 쫓아냈어! 네깐 놈은 훅- 불면 어디로 날아가 처박힐지도 몰라. 흥!” 성호는 그런 심술쟁이 밑에서 한발작도 내딛기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 더 빌고 싶지도 않았다. 며칠 후 그는 한가지 령감이 피뜩 떠올라 박공장장을 또 찾아갔다. 그는 박공장장을 만나자마자 굉팔이 심술을 부린 자초지종을 쭉 이야기했다. 박공장장은 피씩 쓴웃음을 웃었다. “탐욕스러운 놈, 지금 큰 떡을 놓쳐 배 아파 그러오. 그 자가 며칠 전에 찾아와서 자기와 광고계약을 맺고 술광고를 하자고 했소. 광고비도 당신보다 더 싸게 정해주겠다고 했소.” “예?” 박공장장은 화를 냈다. “굉팔인지 나팔인지 술광고를 빼앗아가자는 거요. 당신과 이미 광고계약을 맺았기에 다른 사람과  계약을 맺지 않겠다고 툭 찍어 말했소. 그러자 어디 술광고를 내는가 보라면서 문을 쾅 차고 가버리지 않겠소. 광고를 못하면 말라지. 남의 발등을 밟는 새끼들과 누가 광고를 한다오?” 성호는 자기 령감을 말했다. “한가지 묘안이 있소.” “뭐요?” 박공장장은 성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술공장 건물 우에 간판술광고를 내건단 말이요.” 박공장장도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다. “좋소. 그렇게 하기요!” 박공장장은 한참 간판광고설계를 의논하다가 근심했다. “굉팔이 또 공상국에 고발하지 않을가?” 성호도 자리에서 일어나 공장장 사무실 안에서 버릇처럼 뒤지개를 짚고 왔다갔다 거닐며 사색에 잠겼다. 한참 후 그는 머리를 들더니 박공장장을 돌아보았다. “괜찮을 것 같소. 자기 공장건물 우에 자기 공장 술광고간판을 내걸었는데 어쨌단 말이요?” 박공장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성호의 아이디어로 해 박공장장네 인삼술과 알로에술은 당지는 물론 내지에까지 널리 팔리게 됐다. 어떤 달에는 한달에 판매액을 100만원도 넘겨 올렸다. 박광률 공장장은 아무런 보스도 없이 진심으로 도와준 성호가 고마워서 인삼술을 몇상자 주겠다고 했다. 성호는 가만히 혼자 챙기지 않고 직원들한테 한상자씩 나눠주었다. 미운 놈을 떡 하나 더 준다고 굉팔도 빼놓지 않고 한상자를 주었다. 그런데 굉팔이 그 일로 성호한테 걸고들어 행패를 부릴줄이야. 이튿날 굉팔은 이른바 회의를 열었다. 그는 우멍눈으로 여러 직원들을 둘러보면서 뱀의 혀를 날름거렸다. “올해 광고는 수많은 애로를 겪고 있는데이(있소). 국에서 준 광고임무를 완수할 것 같지 못하다니께(못하다니까).” 이번에는 성호를 쏘아보며 질책하였다. “그게 뭔가? 전번에도 말했지만 개인택시업을 하면서 단위광고를 착실히 하지 않는단 말이야. 단위와 개인, 어느 게 더 중요한가? 불법술광고를 꿍꿍 해주고. 흥! 광고주들한테서 명품술이나 한 자동차씩 받아챙겨? 완전히 무조직무기률이야. 광고계 특등부패란 말이야. 마땅히 기률처분을 받아야 해. 또 술을 가져왔으면 회사에 바치고 경리가 나눠줘야지. 네가 뭔데 면목을 내? 엉?” 성호도 참을 수 없어 맞받아쳤다. “심술을 작작 부리십시오. 이번엔 술광고를 한 적도 없습니다. 술공장에서 자기 공장건물 우에 술선전판을 내걸었는데 어째 불법이란 말입니까?” “뭐라고?!” 굉팔은 움퍽한 사팔뜨기눈을 희번득거리며 야단쳤다. 성호도 물러서지 않았다. “예, 자체선전입니다.” “좋아. 자체선전이라 치자.” 굉팔은 벌떡 일어나 성호한테 손삿대질까지 했다. “바로 네가 그렇게 부추기는 바람에 우린 그 술광고를 하지 못하게 됐어. 손실이 얼마나 큰지 알어?” 성호는 억이 막혀 말도 나가지 않았다. “이보십시오. 어떤 땐 광고계약을 맺어오니까. 비법광고라고 하지 못하게 하더니. 이젠 또 광고를 하지 못하게 됐다고 야단칩니까?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합니까? 이제라도 똑똑히 말하십시오. 그 술공장 술광고를 하랍니까? 하지 말랍니까?” 굉팔은 결국 자기 창으로 자기 방패를 찌른 격이 되고 말았다. 그때 선희가 성호를 핼끔 쳐다보더니 째죽거렸다. “리경리 말씀이 천만지당합니다. 우린 언제나 단위 리익부터 첫자리에 놓아야지.  개인 리익을 앞세워선 안되죠. 성호선생은 단위 광고보다 개인 택시업에 열중하는데요. 그게 옳은 처사인가요? 사람마다 이렇게 광고에 소극적으로 나간다면 올해 광고수입을 20만원도 올릴 것 같지 못해요.” “선희 부총경리 말이 맞소.” 굉팔은 선희를 부쩍 춰올리면서 지껄여댔다. “성호, 개인 면목을 작작 내란 말이야.” 성호도 지지 않았다. “당찮은 말을 작작 하십시오. 백화상점이나 술공장에서 우리 단위와 광고를 하지 않고 자체로 선전판을 내건 건 완전히 리총경리 탓입니다. 이제 와서 책임을 나한테 떠밀지 마십시오.” 그는 선희한테 날카로운 눈길을 돌렸다. “남이 과외로 택시업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요? 난 광고사업시간에 택시업을 한 적이 없소.” “흥, 옛말이면 듣기나 좋지.” 선희는 간사하게 웃으며 혀바닥을 날름거렸다. “전번에 택시 운전수가 로임을 타러 우리 단위로 오지 않았는가요? 건 사업시간에 로임을 준 게 아니고 뭔가요?” “잠간 나가서 로임 주고 들어왔는데 그걸 다 꿰드오? 내 입이 터지면 전 여기서 머리를 들고 앉아 있을 거 같소?” 선희는 등곬에 식은땀이 쪽 끼쳤다. 그녀는 미인계로 낚아챈 송준의사가 바로 성호의 넷째매형일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일이 단위에서 터지면 큰 일이 아닌가.) 그녀는 성호에게 눈을 흘기더니 입에 빗장을 지르고 덤덤히 앉아 있었다. 며칠 전에 선희는 오청룡 국장의 이른바 배려하에 부총경리 자리까지 차지하게 돼  욕심을 차릴 권력토대를 튼튼히 마련해놓았다. 그 더러운 욕심이 아니면 무슨 낯짝으로 굉팔과 오청룡한테 몸을 들이대면서까지 광고회사에 되기여들어 출납원을 맡았겠는가. 승호도 포문을 열었다. “리경리나 선희는 너무 하오. 남이 과외시간에 택시업을 하든 말든 떠들 건 뭐요? 광고사업이 잘 되지 않는 건 전적으로 굉팔 경리가 광고를 롱단하면서 남의 광고를 빼앗으려 하고 남이 애나게 해온 광고를 비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고서야 아래 사람들이 어떻게 광고를 한단 말입니까?” 해연도 망설이다가 나섰다. “우선 우리 광고회사 재무제도부터 완벽하게 내와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광고수입은 얼마도 되지 않는데 리경리는 사업경비라고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한해에 글쎄 7만원씩이나 령도접대에 쓰니까. 이게 진짜 밑굽이 빠진 항아리가 아니고 뭡니까? 그걸 절약해도 광고상납금을 내는데 얼마나 많이 보탬이 되겠습니까? 남의 호주머니 돈을 그만큼 얻어오기 어디 그리 쉽습니까?” 굉팔은 성호를 진압하려다가 본전도 찾지 못했다. 그는 포위공격을 받게 되자 “회의를 끝낸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문을 박차고 휑 하니 나가버렸다. (에이, 저것들을 몽땅 쫓아냈으면 속이 씨원하겠어.) 그는 두덜거리면서 씨꺼먼 속을 끙끙 앓았다. (내 사람들로 광고회사를 꽉 채워넣어야는데.) 며칠 후 어느날 아침이였다. 광고회사에는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굉팔은 철색낯이 쌔까맣게 죽은 채 승호의 사무실에 찾아와 야단쳤다.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 어쩜 회사 돈을 몽땅 가지고 한국으로 도망친단 말인가!” 승호는 깜짝 놀랐다. “누가 도망쳤단 말이요?” “누군 누구겠나? 선희, 그 갈보년이지.” 굉팔은 앙상한 주먹으로 사무상을 꽝 쳤다. “다 오청룡 탓이야. 저런 년을 출납에 부총경리까지 시키다니. 흥!” 승호는 억이 막혔다. “아니, 그래, 올해 번 돈을 몽땅 가지고 달아났소?” 굉팔은 대답도 하지 않고 비좁은 가슴을 탕탕 치면서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는 선희가 도망친 기회에 좋다고 몽땅 선희한테 죄를 덮어씌웠다. 그리고 선희를 부총경리 겸 출납원으로 임명한 책임도 몽땅 오청룡한테 떠밀어버렸다. 승호는 더럽고 음흉한 굉팔의 속알멀치를 다 꿰뚫어보면서도 시기상조라고 여겨 입을 꾹 다물고 앉아 있었다. 성호와 해연은 선희가 도망쳤다는 말을 듣고 억이 막혀 도리머리를 홰홰 흔들었다. “며칠 전까지도 집체리익이 어쩌구 저쩌구 하더니.” “뺑덕이 에미처럼 광고비를 몽땅 가지고 도망쳤어?” “흥! 량심도 없는 년!” 며칠 후 굉팔은 광고회사 전체회의를 열었다. “상부에서는 우리 광고회사 돌발상황에 근거해 중대한 인사변동을 결정했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사무실 밖에 나가더니 일남일녀를 데리고 들어섰다. “새로 부임된 서일철 부총경리와 허경옥 부총경리입니다.” 모두들 일어나 악수를 나누었다. 승호는 깜짝 놀랐다. 그와 허경옥은 악수를 나누기 어색해 머뭇거렸다. 그때 굉팔이 떠들어댔다. “서로 아는 사인가?” 백지장처럼 창백한 경옥의 얼굴을 보고 굉팔은 말을 바꿨다. “서경리와 허경리는 모두 오래 동안 상업분야에서 지도사업을 했기에 슈퍼경영 의식과 능력이 있는 분들입니다. 우리 광고회사가 꼭 번영하리라고 믿습니다.” 해연은 서경리를 보고 너무나도 놀라 막 소리를 지를 번했다. 향월의 애인, 색마 같은 서경리가 광고회사 부총경리로 오지 않았겠는가. (어쩜 저 바람둥이 여기까지 왔어?) 서일철 경리는 모든 사람들 앞인지라 해연한테 그저 눈인사를 찔끔 보냈다. 해연은 핼끗 곁눈질하며 눈인사를 받아주었다. 승호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광고부문에서 낯짝을 내민 적도 없는 사람들을 하루 사이에 장기쪽처럼 마구 쥐여놓은 인사변동이였다. 더구나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허경옥이 부총경리 겸 출납으로 오지 않았겠는가. 진짜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이였다. (어떻게 고양이와 쥐가 머리를 맞대고 일할가?) 승호는 눈 앞이 캄캄해나고 머리에서 윙- 소리났다. 허경옥은 쌀쌀한 눈길로 승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승호는 회의고 뭐고 훌 일어나 나가려고 했다. 굉팔이 불러세웠다. “승호, 아직 회의 끝나지 않았어.” 승호는 마지못해 제자리에 물앉았다. 굉팔은 자리에서 우쭐 일어나더니 우멍눈을 희번뜩거리며 승호를 내리쓸어보며 실돌피 같은 가는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세우며 선포했다. “광고사업의 수요에 의해 리승호의 부총경리직을 해임한다.” 순간, 승호는 쓴 외를 씹은 표정을 지었다. 성호는 참지 못해 질문했다. “무슨 리유로 승호를 해임합니까?” 굉팔은 개를 잡은 포수처럼 어깨까지 으쓱해 장황히 늘여놓았다. “언감 상부의 결정에 떠들어?” 성호는 승호가 말리는 것도 계속 떠들었다. “아니, 그래 아무런 리유도 없이 부총경리를 마구 해임하는 것이 옳습니까?” 굉팔은 불찌 튕기는 우멍눈으로 성호와 승호를 번갈아 쏘아보았다. “좋아. 똑똑히 말해주지. 승호는 해마다 광고임무를 완수하지 못했고 회사 직원들의 단결을 파괴하고 무리를 지어 총경리를 공격했다. 국에서는 광고사업과 단결을 위해 리승호의 부총경리직을 해임했다. 됐나?” 성호가 또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옆에서 승호가 무릎으로 성호의 다리를 툭 쳤다. “오늘 점심에 서경리와 허경리 환영파티를 열겠소. 누구나 빠지지 마오.” 승호는 코방귀를 뀌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와버렸다. 굉팔은 뒤에서 두덜거렸다. “죄꼬만 새끼들, 쫓아내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인줄 알아. 이제 떠들어대면  진짜 쫓기울줄 알어. 흥!” 승호가 몸을 홱 돌리자 성호가 팔을 잡아챘다. “가만놔둬라.” 그들 둘은 답답해 선화식당에 가서 조용히 마주 앉았다. “굉팔을 놔둬선 안되겠다. 점점 못하는 짓이 없구나.” 승호가 성호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먼저 입을 뗐다. 성호는 잔을 들어 성호의 잔과 부딪치면서 맞장구를 쳤다.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손을 쓰니? 괜히 풀을 건드려 뱀을 놀리우겠다. 꾹 참고 있자. 언젠가는 누군가 굉팔의 정수리에 화로불을 올려놓을 거야.” 승호는 독한 술로 답답한 가슴을 지져대며 불만을 토로했다. “굉팔은 오청룡와 짜고들어서 너와 날 몰아내려는 거야. 허경옥을 데려다 내 자리에 앉히고 마음대로 해먹을 궁리 아니고 뭐냐?” 성호도 맞장구를 쳤다. “백화상점 광고를 빼앗으려는 씨꺼먼 속셈이 아니고 뭐냐?” 이때 문을 똑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호가 내다보니 생각 밖으로 해연이 오지 않았겠는가. 해연이 들어오자 성호와 승호는 하던 말을 그만두었다. 성호가 어색한 분위기를 깼다. “아니, 해연이, 어째 저쪽에 가지 않았소?” 해연은 성호를 째려보며 말을 받았다. “거길 갔다가 꼬락서니 보기 싫어 나와버렸소. 어째 환영하지 않소?” 승호도 발라맞췄다. “아니, 환영하지.” 해연은 성호와 승호의 잔에 술을 따라놓고 잔을 들었다. “여긴 당신들의 로거점이란 걸 진작 알고 있었죠.” 성호는 승호와 눈을 마주치며 그저 빙그레 웃었다. 그들은 해연이 진의인지 의심했다. 해연은 잔을 높이 들었다. “자, 우리 함께 단합해 리굉팔을 몰아내기요. 그 길만이 살길이요.” 승호가 잔을 내려놓고 한마디 물었다. “전번에 굉팔을 고발했댔소?” “맞아요. 제가 그 놈을 공금람용죄, 회뢰죄로 고발했어요.” 승호는 성호와 눈을 마주치고나서 잔을 들어 해연한테 권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잔 들기요.” 그들 셋은 통쾌하게 한잔씩 굽을 냈다. 해연은 서너순배 돌자 얼근해서 승호와 성호의 얼굴에 돌아가면서 손삿대질했다. “너희들도 하늘을 떠인 사내들이냐? 그저 굉팔한테 당하기만 하고 찍소리 한마디 못쳐? 참 답답하다, 답답해.” 그녀는 종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쳐댔다. “광고회사 공금을 7만원씩이나 손님접대비로 람용하고 오국장한테 장식비로 5만원이나 가져다준 것도 그저 엄중경고란다. 말이 되오?” 성호는 해연을 말렸다. “됐소. 취했구만.” 그는 술잔마다 술을 따랐다. “이 잔으로 끝내자.” 그들 둘이 한잔씩 쭉 마시고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해연이 머리를 쳐들었다. “내 말 좀 들으면 안돼?” 성호와 승호는 해연을 내려다보았다. “서경리를 우리 사람으로 만들 수 있어.” 성호와 승호는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해연은 뒤말을 이었다. “그 자를 얼려서 굉팔의 뒤를 얼마든지 파낼 수 있을 거야.” 성호는 해연을 부축해 일궈세우고 정색했다. “서경리는 숱한 녀성을 유린한 색마야. 우린 그런 색마와 단짝이 될 필요없어.” 해연은 성호의 목을 끌어안으며 아양을 떨었다. “지금은 힘을 모을 때야. 서경리를 리용해먹잔 말이야.” 승호와 성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놈아. 난 언제까지나 네 편이야.” 그녀는 얼굴에 뽀뽀를 뽁 해주었다. 성호는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손으로 볼에 묻은 게침을 쓱 닦았다. “하하하.” 그녀의 해사한 너털웃음소리 속에서 승호는 황금몽이 물 먹은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것을 느겼다.        
232    수필 제주도 며느리 김장혁 댓글:  조회:736  추천:0  2019-10-11
                수필           제주도 며느리       한국 제주도를 사나흘 유람하면서 아름다운 경치구경도 좋았지만 제주도 한 려행사의 가이드 성아가씨가 들려준 시집살이이야기가 퍽 인상이 깊었다. 성아가씨는 네 며느리가운데서 셋째며느리였다. 그녀는 시부모와 한 층집에서 살면서 슬그머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였다. 그녀는 제주도나 한국 대륙의 사람들 앞에서는 시집 말을 하지 못하고 늘 바다가에 가서 출렁이는 파도에 조약돌을 쥐여뿌리면서 한참 고함치고나면 스트레스가 조금 풀린다고 하였다. “시어머니, 어떻게 그렇게 할수 있어요? 녜?” “셋째며느리 뭘 잘 못해서 큰며느리 발바닥 취급해요? 녜?” 그러고도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는 날엔 늘 다시 볼지 말지 한 중국관광객들과 한바탕 시집말을 하고나면 시어머니에게서 받은 스트레스가 풀려 마음이 후련하다고 하였다. 성아가씨는 맏며느리도 아니고 셋째며느리인데 시부모와 한 층집에서 사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제주도의 성읍민속마을을 참관하면서 들을라니 제주도에는 전통적인 미풍량속이 있었다. 어느 아들며느리든지 하나는 시부모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였다. 난생처음 들어 알게 되였다. 옛날부터 이제껏 제주도의 부모와 아들며느리 한 집에서 부엌을 따로 두고 세간살이도 따로 하여왔다고 한다. 그리하여 아들며느리가 옆에서 조석으로 부모를 돌봐드릴수 있고 세간살이도 따로 하니까 상대적으로 독립된 가정과 같아 아들며느리에게도 아주 편리하였다. 누가 부모를 모시는가는 아들며느리와 토론도 없이 부모가 일방적으로 결정한다고 하였다. 제주도의 그 미풍량속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어 제주도의 아들며느리들은 대부분 시부모를 모시고 한 집에서 산다고 하였다. 보통키에 꽤 예쁘장하게 생긴 성아가씨는 셋째며느리였지만 마음씨가 좋은데다가 가이드를 하면서 돈을 꽤나 버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제주도의 풍속대로 시부모의 선택을 받아 시부모를 모시고 살게 되였다. 생활의 편리를 위하여 성아가씨네는 2층에서 살고 시부모는 1층에 모시였다. 성아가씨가 가이드를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밤중에라도 꼭 1층에 들려서 시부모에게 인사하고 선물을  드리고서야 2층 자기 집으로 올라가군 하였다. 그녀는 처음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다나니 시부모에게 선물만 챙겨주고 자기네가 먹을 것만 들고 2층에 있는 자기 집으로 올라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주는 선물을 받아 챙기고서도 자기들이 먹을 것만 사왔다고 노여워하기가 일쑤였다. 어떤 때 시어머니는 마루바닥에 나앉아있다가도 “셋째며느리, 저쪽손에 든 건 뭐냐?” 하고 물으면서 시부모들의 몫을 사오지 않았다고 훈계하기도 한다는 것이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어데를 갔다오면 뭐나 꼭꼭 두몫을 사서 들고 집으로 가는 것이 이젠 습관되였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명절에 어느 며느리가 무엇을 가져왔는가고 눈박아 보군 한단다. 그래도 옆에서 모시는 셋째며느리가 더 고생을 하였건만 시누이나 다른 며느리들이 어쩌다가 놀러 오면서 옷견지나 돈 몇십만원(한화)을 가져오면 시어머니는 그것을 크다고 혀를 끌끌 찬단다. 그럴 때면 성아가씨는 열이 욱 치밀어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는 것이였다. 그리하여 일본 도꾜에서 온 맏시누이와 섧은 말을 하였단다. 맏시누이는 셋째올케를 위안하면서 어머니에게 그러지 말라고 귀띰해주었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맏시누이가 귀띰해주는 말을 들은 후부터는 극력 네 며느리들을 똑같이 대하느라고 여간 신경쓰지 않았다고 하였다. 외지에 관광하러 갔다가도 네 며느리와 두 시누이에게 똑 같은 선물을 사다가 준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며느리 넷은 누구를 더 좋은 걸 주는가고 여겨보다가도 똑같은 선물을 받고서는 서로 마주 보면서 폭소를 터뜨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시부모는 그래도 네 아들며느리 가운데서 셋째아들과 며느리가 제일 믿음직하기에 함께 살자고 한것 같다고 하였다. 그것만으로도 우리에 대한 믿음으로 해 영광을 느끼면서 스스로 위안해야 하였다. 그런데 한번은 시아버지가 중풍에 걸려 일신을 쓸 수  없게 되여 병원으로 모셔가야 하였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셋째아들과 며느리를 옆에 두고서도 다른 세 아들과 며느리를 다 불러 왔다. (이번에 누구 등에 업혀 승용차에 앉는가 보자. 의례 제일 믿는 우리 신랑의 잔등에 업혀 나가야지.) 성아가씨는 속으로 이렇게 궁리하면서 시아버지 거동을 살폈다. 아들들은 서로 자기한테 업히우라면서 잔등을 들이댔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잘 말을 듣지 않는 손으로 맏아들을 손짓하여 불러 업히워 나갔다. 그러자 시아버지 마음 속에는 그래도 맏아들을 믿는다는 서운한 감이 별스레 들더라는가! 하여간 성아가씨는 제주도 제일 남쪽 천지연폭포를 구경하고 제주도 제일 북쪽에 있는 룡두암에까지 달리는 길에서 뻐스에서 한식경이나 시집 말을 하였다. 나는 눈을 감고 성아가씨의 말을 들으면서 제주도의 미풍량속이 무너지는 것을 마음이 아프게 느꼈다. 뭐나 변증법적인 통일인가 봐! 아들며느리와 함께 한 아빠트에서 살기에 부모는 편리하지만 며느리는 몇갑절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닌가! 한 구들도 아니고 1, 2층에 나뉘여 부엌이 따로 있고 세간살이도 따로 하건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만약 한 집에서 부모와 함께 산다면 어떨가? 실로 생각만 해도 기막힌다. 옛날 한 구들에서 팔촌이 함께 살았다는 우리 민족의 전통은 깨여진지도 오랜 옛말로 됐다. 이젠 한 구들에서 부모와 자식마저 함께 살지 못하게 되였다. 제주도의 며느리들은 대륙의 며느리들을 아주 부러워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대륙의 며느리들은 부모와 함께 살지 않고 남편들도 아주 살갑게 대해주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반면에 삼다도(돌과 바람, 녀자가 많은 섬) 제주도에서는 녀자(며느리)가 벌어서 남편을 먹여살리는 페단이 많다고 한다. 해녀들은 일흔이 넘도록 잠수복을 입고 바다물 밑에 들어가 굴조개도 건지고 해삼도 건져내 팔아서 온집식구들을 먹여살린다고 한다. 제주도 며느리 성아가씨도 날마다 가이드를 하면서 동분서주한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제주도의 남편들은 안해가 대륙의 남자들에게 유혹될가봐 혼자 대륙으로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아뿔싸! 이젠 부모와 자식이 한 룡마루 아래에서 사는 제주도의 오랜 전통미풍량속마저 지키내기 어렵게 되였구나.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231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39) 댓글:  조회:1472  추천:0  2019-10-11
                69. 17층 아빠트에서 떨어진 눈꽃송이 어느날 아침, 해연이 설걷이를 하는데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누구 전화야?” 출근하려고 신을 신던 난쟁이 씽 달려가 해연의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해연이 황급히 핸드폰을 빼앗아 꺼버리자 욕설이 쏟아졌다. “쳇, 더러운 년.” 난쟁이는 핸드폰을 빼앗아 번호를 꾹꾹 눌러보더니 눈을 가슴츠레 뜨고 캐물었다. “웬 군나그네야?” “약방 경린데요. 약광고를 하다나니 알게 된 경리요.” “잡생각을 작작 해. 눈에 띄우기만 해봐라. 정갱이를 분질러놓지 않는가. 흥!” 이때 핸드폰이 또 자지러지게 울렸다. “누구냐?” 핸드폰을 열어보니 향월에게서 온 전화였다. “응, 향월아, 어데 있니? 응, 알았다. 곧 갈게.” “무슨 일이냐?” “향월이 생일인데요.” “흥! 잘한다, 잘해. 계집년들이 생일은 무슨 생일?! 쓸데 없는데 돈을 작작 팔아라!” 해연도 물러서지 않고 도도거렸다. “아가씨들한텐 200원도 탕탕 메치면서. 흥! 안해한텐 일전한푼 대주지도 않는가?! 꼬치꼬치 캐묻긴? 고까짓 몇백원을 들여놓고 려관비, 식당비, 보모비까지 되는가? 내처럼 훌륭한 가정보모 또 어데 있는가요?” 난쟁이는 더 할 말이 없는지 끙끙거리며 신을 꿰더니 문을 쾅 박차고 나가버렸다.     해연이 향월이네 집으로 갔을 때다. 향월은 한창 생일파티준비에 분주히 서둘었다. 해연은 부조로 100원짜리 한장을 꺼내 주었다. “야, 깍쟁이나그네한테서 어떻게 얻어온 돈인데 이렇게 많이 부조하니?” “괜찮아. 난 광고회사 출납원출신이 아니냐?” 향월은 두 말 않고 돈을 핸드빽에 챙겨넣고 분을 톡톡 치기 시작했다. “최선생 허우대만은 달리 깍쟁이지? 그날 말하는 거 봐라. 애인을 책임지겠다는 말인가?” 해연은 솔직히 말했다. “최선생은 그날 말과는 달리 놀더라. 난 최선생과 함께 노니 얼마나 유쾌한지 모르겠어.” “얜, 진짜 최선생한테 푹 빠졌구나.” 해연은 향월한테 물었다. “서경리는 통쾌한 거 같더구나. 봐라. 생일파티까지 다 열어주고. ” “그래. 제 나그네도 모르는 척하는 세월에 애인의 생일파티까지 마련해주니 기쁘지.” “서경리를 어떻게 알았니?” 향월은 풍만한 가슴을 쑥 내밀고 화장대에 마주 앉아 화장을 하면서 자랑을 늘여놓았다. “우리 오빠 초중 때 동창생이야. 나그네보다 나아. 나그네야 생일이라도 어디 관심이 있니? 날마다 닭다리를 차고 쥐를 잡으러 고양이처럼 싸다니기나 했지.  드문드문 달콤한 말로 얼리기나 하지. ‘여보, 당신은 볼 수록 곱고 사랑스러운 조강지처요. 항상 먹어도 싫지 않은 이밥처럼 좋소. 그래서 몇십년 살아도 싫지 않은 건 조강지처라지. 조강지처를 버리는 놈은 죽일 놈이지.’ 감언리설은 잔뜩 늘여놓았지만 실제행동은 꼬물만치도 없어. 난 고독한 생과부야. 서경리를 알게 된게 다행이야. 얼머나 유쾌한지 몰라. 그러잖으면 내 인생이 얼마나 비참하겠느냐? 마흔이 넘도록 남자들의 짜릿한 사랑도 한번 먹어보지 못하고…” 혜경은 해맑은 얼굴로 화장대안의 향월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서경리네 안해는 곱다니?” 향월은 얼굴에 분치장을 하면서 술술 얘기했다. “꽤나 예쁘더라. 좀 실팍해서 섹시하지 못하더라. 서경리는 닭다리를 차고 다니는 우리 나그넬 무서워 해. 발각되는 날엔 끝장이니까. 한번은 저 서경리가 글쎄 술에 푹 취해 큰 실수를 했어." “어째?” 해연과 혜경은 눈을 치뜨며 향월을 쳐다보았다. “글쎄 술을 마시고 갈라진 다음에 면바로 내 사촌시동생이 모는 택시에 앉지 않았겠니? 그런데 택시에서 정신없이 ‘야, 세상에 향월보다 더 좋은 녀자 있는가? 향월이 만세!’ 하고 미친 소릴 쳤단다.” “저런!” “우리 시동생이 집이 어딘가고 물어서 부축해 집 안에까지 데려다주었대. 시동생은 날 찾아와 낯이 수수떡처럼 지지벌개서 ‘어제 음식점에서 함께 술을 마신  나그넨 누군가?’고 따지지 않겠느냐? 내 하도 시동생과 관계좋으니까 그저 얼버무려 보냈지. 하마트면 큰 경을 칠 번했어.” 해연의 가슴도 찔리는데가 있어 섬찍해났다. 최룡학은 집에서 노는 안해가 가마목의 암고양이처럼 어찌나 자기를 살피는지 자그마한 상점을 차려줬다. 최룡학은 해연과 련계하기도 편리해졌고 어디 가서 놀아도 안해 눈치를 덜 살피게 됐다. 담이 커진 최룡학은 안해가 상점에 나간 후 해연을 데리고 자기 집에 가서 술판을 벌리기까지 했다. 온 오전 권커니 작커니 하면서 술을 마시다나니 둘 다 곤드레만드레 취해버렸다. 해연은 위생실에 갔다가 그만 깜빡 잠들어버릴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룡학도 취해 구들에 늘어져 쿨쿨 잤다. 그런데 룡학의 딸이 점심에 집으로 돌아와 위생실에 들어갔다가 쓰러진 해연을 보고 기절초풍할 지경으로 놀라 고함쳤다. 그제야 깨난 룡학은 위생실에 가서 해연을 깨워 보내고 딸애한테 돈을 줘서 얼렸단다. “집에 녀자도적이 들었댔어. 엄마가 알면 놀라 심장병이 도진다.”고 얼리면서 절대 입 밖에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에이, 최선생네 녀편네나 돌아왔더라면 어쨌겠니?” 모두 한숨을 후~ 내쉬였다. 이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향월은 전화를 들더니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받았다. “예? 예. 오늘 일이 있어서 나갑니다. 영일을 학교에서 데려오시요. 예, 끊어요.” 전화를 놓자마자 향월은 뾰로통해서 두덜거렸다. “생일날에 국수 한사발도 사줄 궁리는 하지 않고 제쪽에서 화를 내? 애를  데려오라구? 흥!” 이때 전화벨이 또 울렸다. “아, 아니, 예- 서경리구만요. 집의 나그네라고? 해해해, 우리 곧 가지요.” 향월의 흐렸던 얼굴은 대번에 개인 날씨 함박꽃 같았고 말씨 또한 아양조로 변해 여간 살뜰하지 않았다. 향월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에이, 몰라. 저 서경리와 친한지 한 반년 됐는데 언제 열이 식을지 누가 알아?  어데서 또 새 애인을 구해놨는지도 몰라. 애인은 보기는 좋으나 순간적인 칠색무지개야. 비 온 뒤 해가 쨍 뜨면 황홀한 칠색무지개 애인이지. 그러나 시간이 흘러 해만 지면 칠색무지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단 말이야. 영원한 애인이 있을 수 있니?” 혜경과 해연은 향월의 경험과 철리가 있는 말에 머리를 끄덕였다. 이윽고 한복차림까지 한 향월과 함께 혜경과 해연은 집에서 나왔다. 그녀들은  혹시 나그네들이 살피고 있지 않는가 해서 도적고양이처럼 여기저기 살피면서 골목을 빠져나가 황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뻐스정류소로 달려갔다.  향월은 모 공사 보위과에 출근하는 남편한테 걸리면 큰 일이다. 이전에 남편은 백화상점 보위과 조홍수 과장과도 잘 아는 친구였다. 남편은 한 사람을 잡자고 들면 살려두지 않을 정도로 지독했다. 해연은 향월의 남편이 조과장의 친구라고 하자 속이 떼끔해났다. 문제는 그녀가 선희와 함께 조과장이랑 승호랑 뒤를 따라다니면서 술을 마시고 곤드레만드레 취해 라사가 풀린적이 한두번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그 일이 탄로나면 향월이 뭐라하겠는가.) 녀인 셋이 모이면 장마당이라고 애인을 두고 그녀들의 뒷말은 끊을줄 몰랐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더니 저기 뻐스정류소에 서경리와 최룡학과 리철웅이 들어섰다. 그들 세쌍은 진짜 부부처럼 쌍쌍이 뻐스를 타고 자유로운 대자연의 품 속에 안기려고 달려가는 기분이 아주 흘가분하고 유쾌하였다. 시원한 바람이 차창으로 불어들어와 그들의 열기 띤 얼굴을 선선하게 간질러주어  아주 상쾌했다. 이윽고 뻐스에서 내리자 조용한 강가의 넘실거리며 춤추는 버드나무숲이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록음이 짙은 청산이 꺼꾸로 비껴 있어 별유천지였다. 줄기차게 흐르는 강물  속에 동글납작한 조약돌들이 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강물은 맑디맑았고 하얀 모래톱은 마구 뒹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강가에 가서 모래톱에 비닐돛자리를 펴놓은후 술과 안주를 벌려놓고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남편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서경리가 진짜 정색해 장황설을 퍼부었다. “자, 아가씨들, 신사들, 오늘 친애하는 애인 향월의 탄생 33돐이 되는 생일날이요. 경사로운 오늘 간단한 음식을 차려놓고 생일파티를 열어 향월씨의 생일을 축하하오. 향월씨가 계속 예뻐지고 또 우리 둘의 순정이 영원할 것을 축원하오.” 뒤이어 서경리는 웃옷 호주머니에서 빨간 비단으로 포장한 비닐곽을 꺼내 두 손으로 정중하게 향월한테 주었다. “자, 향월씨, 생일기념품이오.” 향월은 너무나도 감격한 나머지 뜨거운 눈물을 줄 끊어진 구슬처럼 흘리면서 목이 멘 소리를 하였다. “고마워요. 너무너무 좋아요. 서경리, 사랑해요.” 향월은 서경리 품에 와락 안겨 어리광을 부렸다. 한복을 곱게 입은 오동통한 어깨가 흐느낌소리와 함께 들먹였다. “향월아, 그만 해라. 서경리, 기념품이 뭔지 보자요.” 혜경의 말에 서경리는 품 속에서 향월을 살짝 떠밀면서 물었다. “향월이, 금목걸이요. 여기서 걸어달라오?” 향월은 눈물을 닦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서경리는 빨간 비단포장을 풀고 비닐곽 안의 금빛이 반짝이는 24K짜리 금목걸이를 향월의 하얗고 긴 목에 정중하게 두 손으로 걸어주었다. 순간 보슴털이 보송보송한 향월의 목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뒤이어 서경리는 들가방에서 빨간 장미꽃 한송이를 꺼내 무릎을 꿇고 두손으로 향월한테 드렸다. “향월이, 사랑하오. 이 몸이 죽어 죽어 열백번 죽더라도 님을 향한 일편단심 영원히 변할손가.” 감격적인 그 장면은 례배당에서 올리는 혼례식에서 한평생 백년해로할 것을 다지는 신혼부부의 첫날 포로포즈를 연상시켰다. 모두들 손바닥이 아프게 박수갈채를 드렸다. 최룡학은 말상을 찡그리며 박수를 치며 덫이를 다 드러내고 웃었다. “헤이, 서경리 그저 경리 아니구만. 속에 술만 찼는가 했더니 먹물도 꽤나 찼구만.” 뒤이어 최룡학과 리의사는 “이건 우리 친구들의 선물이오.”라고 하면서200원씩 꺼내 향월한테 주었다. 참말로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이라고 항상 욕하던 사람  같지 않았다. 최선생은 잔을 들고 서경리와 향월을 보고 생일축사를 올렸다. “자, 그럼 서경리와 향월의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사랑이 금목걸이처럼 변치 말고 둥글어가고 저 빨간 장미꽃처럼 푸르싱싱하고 아름답기를 축원하오. 그런 의미에서,  자, 한잔 교배주를 듭시다!” 서경리와 향월은 잔을 잘라당 마주치고 팔을 끼더니 교배주를 쭉 들이켰다. 향월의 눈에는 감격의 뜨거운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주르르 흘렀다. 그들 세쌍은 취토록 술을 마시고나서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나중에 버드나무숲 속에 거치장스러운 옷을 활활 벗어버리고 맑은 시내물에 뛰여들어 웃고 떠들면서 목욕을 했다. 진짜 굴레를 벗은 들말들처럼 아무런 구속도 없는 대자연의 품   속에서 야성인들처럼 마음껏 야성을 드러내며 즐겼다. 향월은 팬티와 브래지어 바람에 서경리의 팔을 베고 모래톱에 반듯이 누워  자기를 안은 서경리의 얼굴을 매만지며 푸르른 하늘에 떠가는 솜뭉치 같은 꽃구름을 바라보면서 정답게 속삭였다. “친애하는 서경리, 오늘 너무너무 행복해요. 이대로 끌어안고 죽어도 한이 없겠어요. 안해도 생활도 모르는 그런 나그네를 해서 뭘 하겠어요. 서경리만 내 곁에 있으면 돼요. 어떤 땐 그 쓸쓸하고 고독한 집을 나오려고 해도 영일을 어미 없는 만들가봐 물앉군 했어요. 전 그 불행한 가정을 생각할 때면 정말 자살이라도 하고 싶어요.” 서경리는 털이 부스스한 벌거숭이 가슴에 향월을 보듬다가 꼭 안아주었다. “이 좋은 세월에 죽긴 왜 죽겠소. 이대로 한 백년 알찌근하게 살기요.” 향월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서경리 품에 몸을 맡겼다… 해연은 그날 생일파티에서 향월을 마지막으로 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며칠 후 갑자기 밤중에 향월의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해연이, 빨리 오오. 향월이 자살했소.” “예? 그게 무슨 소린가요?” “우리 17층 아빠트에서 뛰여내렸소.” 해연은 혜경한테 알린 후 인차 택시를 잡아타고 향월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숱한 경찰들이 강운룡 국장의 지휘아래 사건현지에서 번쩍번쩍 촬영한다, 자로 시체와 아빠트 사이 거리를 재인다 하면서 수사하고 있었다. 숱한 구경군들이 모여  쑤근거렸다. 해연이 피뜩 보니 향월은 집 앞마당에 적삼과 짧은 치마를 입은 채로 피못 속에 쓰러져있지 않겠는가. 향월의 머리는 콩크리트바닥에 부딪혀 뇌장이 마구 흘러나온 것 같았다. “향월아! 이게 웬 일이냐?!” 향월의 오빠와 어머니가 콩크리트바닥을 치면서 통곡쳤다. 해연과 혜경도 향월의 어머니를 부축하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향월의 오빠는 경찰들이 향월의 시체를 차에 실으려는 것을 두팔을 뻗쳐 막으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향월인 죽지 않았어. 절대 가져가지 못해!” 그러나 경찰들은 향월의 오빠를 말리며 향월의 시체를 차에 실어갔다. 자살인지 피살인지 부검을 해야 했다. 향월의 남편 증언에 의하면, 그가 밤중까지 당직을 서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 앞의 콩크리트바닥에 웬 짧은 치마를 입은 녀자가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는가. 그래서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수사대원들의 수사에 의하면, 부근 주민들은 며칠전에 누군가 밤중에 그 집에 와서 향월과 옥신각신 다툰 소리가 나더라는 것이였다. 또 향월의 단위 어떤 사람들은 자살한 전날 점심에 향월이가 서경리네 집에서 풍류사건을 저지르다가 한국에서 불시에 돌아온 서경리네 안해한테 들켰다고 하였다. 그들은 가능하게 향월은 창피해 자살했을 것이라고도 추측했다. 향월의 오빠를 비롯하여 부모형제들은 평소에 너그롭고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향월이 결코 고만한 일에 자살할 애가 아니라고 고집하였다. 향월의 오빠가 공안기관에서 사건진상을 철저히 해명하기 전에는 향월의 시체를 절대 화장하지 못한다고 하는 바람에 사체실에 랭동한 채로 장장 몇달이나 보관해두었다. 공안기관에서는 반복적으로 사건현지와 사체를 분석한 후 향월은 자살하였다고 결론지었다. 그것은 그녀가 뛰여내린 쪽의 창문이 반쯤 열려져 있었는데 창문을 마슨 아무런 흔적이 없었으며 향월의 몸에도 아무런 외상도 흉터도 멍도 없었기 때문이였다. 위장 안에도 아무런 독성물질이 들어있지 않았다. 심지어 알콜냄새도 나지 않았다. 다만 머리가 콩크리트바닥에 부딪혀 두개골이 엄중하게 터지면서 피와 뇌장이 흘러나왔을뿐이며 타박상이나 얻어맞은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적삼이나 짧은 치마가 벗겨졌거나 째잔 자리도 없었으며 피해자의 질 안에도 정액도 없었다. 때문에 강간살인도 아니였다. 집 안의 돈이나 기타 귀중물품을 도적질해간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피해자의 목에 금목걸이도 걸려 있었으며 손가락에 금가락지가 그대로 끼여 있었다. 때문에 강탈살인도 아니고 자살로 밖에 볼 수 었다고 결론지었다. 향월의 친정집에서는 별수 없이 향월의 시체를 화장하는 수 밖에 없었다. 생일파티에서 행복의 눈물까지 흘리던 향월이가, 너무너무 행복해 이젠 죽어도 원이 없겠다던 향월이 서경리 준 금목걸이를 걸고 17층 아빠트에서 뛰여내려 눈꽃처럼 사라지다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쌍겹눈을 빛내면서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애인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향월이 하루아침 이슬처럼 사라지다니. 그래 애인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너울너울 춤추던 향월이 이렇게 처첨하게 숨져야 한단 말인가! 애인 바람에 휘말려든 대가가 너무나도 처참한 것이 아닌가! 해연은 화장터에 가서 향월의 불행한 최후를 두고 머리가 터지는 것 같이 복잡해 도리머리질하였다. 그녀는 떠나가는 향월한테 신선한 생화 두묶음을 올렸다. 혜경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아, 실로 서른살 꽃나이에 이게 웬 일이냐? 향월아, 넌 끝내 애인 바람에 휘말려 날려가고 마는구나.) 현실은 뜨거운 애인파티를 열던 무더운 여름이 아니라 모닥불도 추워 품 속에 기여들듯한 맵짠 엄동설한이였다.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는 화장터 광장 저쪽에서 서경리와 최룡학, 그리고 리의사가 빨갛고 노랗고 파란 생화묶음을 들고 하늘 높이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하얀 연기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향월의 남편이 엉엉 우는 영일의 고사리손을 쥐고 그들 쪽을 차디찬 눈길로 쓸어보고 있었다. 향월의 남편은 허나 사나 안해의 장례식이여서 해연이랑 서경리랑한테 걸고 들진 않았다. 해연과 위생실 입구에서 단둘이 만나자 욕설을 한마디 퍼부었다. “돈 밖에 모르는 간나새끼들, 외간 사내들과 바람을 피우더니 어디 제 명에 죽는가 보자. 흥!” 그런 눈치도 모르고 서경리를 비롯한 최룡학과 리의사 등은 바깥에서 기도나 드리는듯이 두 손을 합장하고 향월의 명복을 빌고 또 빌고 있었다. 해연은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면서 불현듯 자기 남편이 선희와 바람이 나서 헤매던 일이 떠올라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향월의 남편이 향월을 좀 관심하고 살뜰이 대해줬더라면 향월이 애인을 찾았겠는가. 딱 다른 남자를 만나서 도적고양이처럼 눈치를 보면서도 남편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과 행복을 보충받아야 인생이 즐거운가? 부부간에 서로 모자라는 것이 있으면 요구를 제기해 만족을 받지 못할가? 사랑이란 서로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가꾸면 결혼해서도 가정은 사랑의 무덤으로 되지 않고 사랑의 오아시스로 되지 못할가? 안해는 남편의 련인이자 애인으로, 현처량모로, “첩”으로 되지 못할가? 남편으로 하여금 자기 한 몸에서 녀성의 모든 것을 향수하게 해 그 용암처럼 꿈틀거리는 정욕을 붙들어매놓지 못할가? 딱 가정을 깨면서 남과 살아봐야 사랑의 진맛을 보는 걸가? 꼭 남편(안해)을 속이면서 숱한 애인을 해야 행복한가? 하긴 처음 시집장가를 잘 가야 해. 첫결혼에서 실패하면 진짜 서로 믿음을 형성하기도 힘들고 살긴 점점 힘들지. 백번 결혼하고 백명 애인을 한들 어찌 마음에 딱 드는 나그넬 얻을 수 있겠는가? 그게 어디 그리 쉬운가?) 해연은 한숨을 호~ 내쉬면서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자기 재혼한 후남편 철수나  애인 최룡학이나 다 맞갖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는 저기 높은 꿀뚝에서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연기를 쳐다보았다. 향월의 시체가 그을고 타번져 타오르는 그 한가닥의 시꺼먼 연기는 애인바람에 들뜬 그녀들에게 끊임없는 의문부호를 남기면서 흩날려갔다. 열렬한 애인의 사랑을 그렇게 갈망하하던 향월이, 홀가분한 사랑의 행복에 도취돼 열광하던 향월이, 그 향월의 혼이 시꺼먼 연기로 피여오르다가 흩날려 날아내린다. 차마 서경리를 두고 떠나가기 싫은 듯이, 아쉬운 듯이 하얀 눈꽃으로 서경리 품에 흩날려내렸다. 서경리는 그 눈꽃을 쓸쓸히 맞아주더니 바래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귀찮은 듯이 그 하얀 눈꽃을 툭툭 털어버리고 자리를 떠났다. 기실 서경리는 숱한 녀성들의 순정을 짓밟지 않았는가? 학잡비를 내지 못해 애타하는 연화를 짓밟았고 장철과 연화의 순진한 첫사랑마저 짓밟아버리지 않았던가!  연화를 돈으로 유혹해 한동안 데리고 놀다가 놓치자 향월을 나꿔채 실컷 데리고 놀지 않았는가?  향월의 앞에서 서경리는 극력 허위적으로 돈깨나 있는 신사처럼 놀면서 향월의 순정을 릉욕하였다. (재수없어. 반년도 데리고 놀지 못하고 죽어버렸어.) 그러나 인차 시원섭섭한 기분도 홀가분하게 없어졌다. (낡은게 가지 않으면 어찌 새게 생기겠는가? 흥!) 모든 색마가 다 그러하듯 서경리는 녀자들을 사냥하는 제일 좋은 미끼와 무기를 휴대하고 있었다. 돈묶음을 가지고 또 새 사냥물을 찾아 떠날 판이였다.                            
230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38) 댓글:  조회:1295  추천:0  2019-10-07
                                                                                        68. 애인파티 련인절날에 숱한 남녀들은 싱숭생숭해 황홀한 바깥세상에서 헤맸다. 며칠 지난 어느 날 저녁에 해연은 몇몇 친구들과 함께 근사한 음식점 신선로에 마주앉아 잡답을 벌렸다. 왈패 향월이 첫포를 쏘았다. “오늘 몽땅 다리 부러진 노루들만 모였구나. 련인절날에 남들은 밤이 가는줄도 모르고 놀았잖아. 그런데 우린 아무 재미도 없이 보냈더구나.” 얌전한 혜경이 맞장구쳤다. “그래, 요즘 세상에는 애인바람이 불어서 애인이 없는 건 머저리라더라.” 해연은 슬그머니 역정냈다. “얘들아, 애인, 애인 하는게 딱 애인게걸이 든 것 같다. 애인이란 말만 나와도 신경질이 난다.” 혜경은 개장국을 떠 후후 불다가 해연을 건너다보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왈패 향월이 눈을 치뜨며 물었다.  “어째 전번 남편이 한 단위에서 애인을 하더니 이젠 딱 질색이냐? 아니면 후에 얻은 나그네 눈치 보여?” 해연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내 나그넨 말이야. 련인절날에 자기는 실컷 밖에 나가 놀면서도 드문드문 집에 전화를 걸어 감시하잖겠어? 괘씸해 나도 나가 놀자니깐. 어디 애인이 있니? 돈이 있니? 호주머니를 들추니 글쎄 딱 2원 밖에 없더라. 원.” “호호호. 광고회사 출납원이 돈이 없다고 하면 누가 곧이들을줄 알아?” 향월이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혜경도 어처구니 없어했다. “돈이 있는 놈일수록 없는 척해. 누가 꾸자니? 우리 앞에서 다신 간살을 부리지 말라.” “출납원을 내놓은 걸 몰라 그러냐? 굉팔인지 나팔인지 하는 경리는 갈보년한테 출납  맡겼어.” 향월은 개장국을 떠먹던 숟가락을 상에 달랑 내려놓으면서 삿대질했다. “선희, 그 년 한국에 간다더니 어째 아직 가지 않았니?” “응. 의사를 꾀서 한국에 가고 어쩌고 하더니 안 갔어.” 해연은 목소리를 낮췄다. “알고 보니 선희가 친한 의사는 글쎄 우리 단위 성호네 매형이라고 하잖니?” “그래?” 모두들 눈자위가 희뜩 번져질 지경. “무슨 렴치에 성호하구 머리를 맞대고 일한다니?” 해연은 코웃음쳤다. “흥! 선희는 낯빤대기 돼지 엉덩이짝보다도 더 두텁단 말이야. 굉팔한테 철썩 들어붙어서 출납원자리를 차지했잖고 뭐냐?” 향월은 한숨을 호- 내쉬였다. “옛날부터 칼자루를 쥔게 이겼지. 이젠 출납원 꿈 버리고 네 인생을 즐기라는데. 어떻게 나그네 손에서 돈을 얻어 살겠니? 나그넨 밖에서 제멋대로 놀고 넌 죽어 살아야 해. 쯧쯧쯧.” 향월은 봉이눈을 슴벅거리며 해연을 보더니 숟가락으로 개고기점을 떠 후후 불다가 입에 홀랑 밀어넣고 질근질근 씹었다. “난 련인절날에 더 개팔자였어.” 혜경은 다소곳이 숙였던 머리를 들어 향월을 보면서 끼여들었다. “난 련인절 밤만큼 고독한 밤은 없더라. 우리 나그넨 감정이 무디기로 도끼등이야. 련인절날 저녁에 내 초콜릿아이스크림을 사다가 내미니 뭐라는지 아니?” “응?” “‘에이구, 이 머저리, 이건 뭐냐? 먹고 뚱뚱해져 빨리 죽으라는 거냐?’ 이러지 않겠니? ‘오늘 무슨 날인지 아오?’ 하고 물으니 ‘무슨 날이요?’ 하고 되반문하지 않겠니? 련인절이라고 하니 뭐라는지 아니? ‘오- 난 또 무슨 큰 일 난 날인가 했지.  어험, 이젠 나이 먹은 부부 사인데 이따위 짓 작작 하오. 이런 쓰레기를 사는 돈이면 마작이나 놀겠소.’ 이래더라. 얼마나 맹랑하기 짝이 없는 나그네야.” 해연이 향월을 보고 “너넨 련인절날에 어떻게 보냈니?” 하고 물었다. 향월은 오이랭채를 집으면서 시원하게 대답했다. “장미꽃을 주자는 사람이 있어야 놀지. 토끼 제 굴에 들어간다고 해라.” “거짓말!” 혜경이 향월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삿대질했다. “그날 밤에 우리 둘이 상점에 가서 초콜릿아이스크림을 사지 않았구 뭐냐? 밤 10시 넘어 너네 집에 전화를 쳤댔어. 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던데. 어디로  갔댔어? 로실히 말햇!” “얘, 생사람을 잡지 말라.” 해연은 왈패 같은 향월에게 애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피뜩 들었다. “말해. 퍽 재미있었지.” 혜경은 볼우물을 파면서 향월의 오똑한 코를 쥐여놓으며 익살을 부렸다. “말해. 애인을 데리고 노는 재미 어떠냐? 재우리한테두 소개해주렴.” 그제야 향월은 풍만한 가슴을 쑥 내밀고 한바탕 자랑을 늘여놓았다. “그래, 애인 있다, 있어. 너희들도 애인 바람에 휘말려들어봐라. 별 멋이야. 아주 달콤하고 짜릿짜릿한게 말이야! 집 나그네하구 10여년 산 거보다 더 화끈하고 전기에 붙은 것처럼 찡찡하더라.” “와- 정말이구나.” 혜경은 놀란 나머지 입을 함박만큼 쫙 벌렸다. 해연은 원래 남편의 애인바람에 가정을 깨먹은 후 애인이라면 딱 질색이야. 그런데 웬 일인지 저도 몰래 점점 귀가 솔깃해지는 걸 어쩔 수 없잖겠니. 향월은 참대통에서 콩알을 굴려내듯이 잔뜩 늘여놓았다. “내 로동자남편이겠니? 한다하는 경리다, 경리!” “와- 돈도 좀 있겠지?” 혜경의 물음에 향월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래, 인물체격도 퍽 낫지. 그런데 내보다 열두살이나 이상이야.” 혜경은 궁금해 향월의 옆구리를 찔렀다. “얘, 애인을 불러라. 우리 한번 보자.” 향월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바보라고 오겠어? 지금 세월에 애인 없는 건 바보야, 바보! 너네도 애인 얻어라. 우리 애인파티 열면 어때?” 해연과 혜경은 서로 어색하게 마주 보며 웃었다. 향월은 정색해서 뚜쟁이질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애인 찾고파 하는 걸 알만해. 에헴, 서경리한테 친구 여럿이 있던데 하나씩 소개해줄가?” 혜경은 속으로는 좋아 어쩔줄 몰라하면서도 겉으로는 얼굴을 붉히면서 아닌 보살을 떨었다. “우리 무슨 애인게걸이 들었는가 해?” “글쎄 말이야. 한 분은 지식도 있고 글도 아주 잘 쓰는 분, 한 분은 한국도 제 집 나들 듯하는 의사야. 특히 성의학에 이름이 있는 분이라더라. 혜경아, 어때?” 혜경은 속으로는 좋아하면서도 갓 혼사말을 들은 숫처녀처럼 부끄러워하는 척했다. “헛일 삼아 의사를 만나볼가?” 해연은 향월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불평을 부렸다. “좁쌀 같은 글쟁이 싫어.” 향월이 툭 쏘아붙였다. “봐라. 해연까지 나서는구만. 허허허. 그 분 얘길 하루종일 들어도 싫지 않을 거야!” 그 말에 해연은 다소 위안되였다. 웬 일인가? 해연은 저도 몰래 가슴이 설레는 것이 아니겠는가? (환장했나? 이전에 승호랑 따라다니면서 술을 마실 때도 이다지 가슴이 설레이지 않았는데. 문호 애비를 복수해야지.) 며칠 후 저녁에 해연이 금방 밥상을 갖춰놓고 숟가락을 들려는데 향월한테서 전화가 왔다. “얘, 해연아, 집구석에 처박혀 뭘 하니? 전번 그 일이…” “잠간! 곧 나갈게. 향월아, 혜경도 불러라!” 해연은 옆에 앉은 후남편 철수를 도적눈으로 힐끔 곁눈질해보고 전화를 놓았다. 철수는 피씩 미소를 짓더니 빈정거렸다. “요샌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저녁도 안 먹고 나돌아? 흥!” “별, 당신은 사나흘에 한번씩 곤드레만드레 취해 밤중에야 돌아오다가도 검정개 돼지 흉을 봐? 녀자들이라고 매일 집구석을 지켜야 한다는 도리는 없잖은가요?” 철수는 꼬락서니 보기 싫어 숟가락으로 밥을 볼이 메지게 떠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해연은 곱게 화장하고 옷궤에서 빨간 라사천외투에 깜장 라사천치마를 꺼내 입고 나섰다. (진짜 신바람이 났구나.) 그녀는 저도 몰래 웃음이 나갔다. 그녀가 애인파티 장소인 음식점에 갔을 때였다. 벌써 향월과 혜경이 깔끔하게 생긴 40대 중반의 한 남자와 함께 김이 물물 나는 개장국신선로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해연은 처녀시절에 맞선을 볼 때처럼 설레는 가슴을 가까스로 내리누르면서 제 좋은 생각을 굴렸다. “자, 인사나 할가요?” 향월이 우쭐 일어나면서 인사시켰다. “서경리, 내 딱친구 해연인데요.” 서경리가 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습니다. 전 서일철이라고 부릅니다.” 해연이 뭐라고 인사하려는데 향월이 그녀를 마구 자리에 눌러앉혔다. “얘, 이 분은 서경리야. 절대 빼앗지 말라.” 그제야 해연은 긴장했던 마음의 탕개를 활 풀면서 한숨을 호- 내쉬였다. “왈패, 똑똑히 말해야지. 하마트면 내게 소개해준다던 선빈가할  번했어.” “호호호.” 혜경이 옆에서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서일철은 일찍 가정교사로 들어간 연화를 돈으로 유혹해 해친 색마였다. 그는 여기저기 거미줄을 늘이며 돌아다니면서 이쁜 녀성들을 나꿔채 릉욕하고 있었다. 해연은 서일철 경리가 색마인줄도 모르고 돈깨나 있다고 묻어다니면서 놀고 있었다. 이윽고 안경쟁이 키꺽다리와 호리호리하고 작달막한 사내가 들어왔다. 모두다 서경리보다 나이 먹은 것 같았다. 향월은 사내들한테 삿재질하면서 지껄여댔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 멋진 신사들이 척척 들어서는군요. 자, 자, 서로 인사하세요.” 향월은 해연에게 키꺽다리를 인사시켰다. “자, 먼저 이 한쌍부터 인사시키죠. 여긴 문필가 최룡학 선생, 요 참대처럼 미츨한 선녀는 해연인데요.”  최선생이 해연을 여겨보니 복숭아 얼굴에 깜장 쌍겹눈이 꽤나 매력이 있었다. 해연은 이상한 빛이 번쩍이는 최선생의 눈길을 피해 숫처녀처럼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손을 내밀었다. 최룡학은 해연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았다. “만나서 기쁩니다. 이것도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최선생님을 만나 영광인데요.” 해연은 이상하게 처녀 때 첫선을 보는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여서 가슴이 무척 부풀어올랐다. 그때 수를 붙여주느라고 향월이 놀려주었다. “얘, 손 한번 줴보고 즐겁다니? 벌써 전기 찡 통하는 모양이지?” 해연은 진짜 얼굴이 달아올라 귀 밑까지 홍당무우처럼 새빨개졌다. “아니, 제수도, 쯧쯧쯧, 익지 않은 감이 무슨 맛있다고 번개불에 콩을 닦아먹을 소릴 하오?” 최룡학의 말에 해연은 속으로 먹물을 먹은 작가가 확실히 다르구나고 못내 감탄했다. 향월은 이번엔 난쟁이를 혜경한테 인사시켰다. “여긴 한국 회장들의 웅심까지 살려준 명의사 리철웅선생인데요. 이쪽은 얌전한 미인사회자 혜경이예요.” 리의사는 혜경의 손을 잡고 점잖게 인사했다. “유명한 사회자를 만나게 돼 기쁘오.” 혜경은 리의사 우멍눈이라든가, 작달막한 키를 보는 순간 눈에 차지도 않아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아프면 찾지요.” “호호호. 명사회자 무슨 인사 그래? 원, 쯧쯧쯧.” 향월은 어색한 국면을 돌려세우려고 술잔을 들었다. “가만!” 그때 서일철 경리 황급히 향월의 술잔을 내리누렀다. “가만, 오늘 애인파티 개막식 연설을 최선생한테 맡기기오.” 모두 손바닥이 아프게 박수를 치며 최룡학을 건너다보았다. 최룡학은 허리를 쭉 펴고 안경을 춰올리더니 정색해 입을 열었다. “그럼 분부대로 개막사를 한마디 올리지.” 최룡학은 샘물까지 반고뿌 마시고 고뿌를 내려놓고 정색했다. “저- 해마다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봄이 오면 봄아가씨가 사뿐사뿐 다가오는 봄날입니다. 오늘 예쁜 아가씨들과 함께 애인 파티에 앉으니 기분이 한결 유쾌하고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여기에 오신 꽃향기 다분한 아가씨들이 련인절의 빨간 장미꽃처럼 아름답고 향기가 그윽할 걸 미리 축원합니다. 생활은 우리 모두가 마음 맞춰 조직하고 가꿔가기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자, 오늘 우리 세쌍이 만난 애인파티를 축원해 한잔 듭시다. 우리 만남을 마련한 향월양과 서경리한테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자, 이런 의미에서 첫잔을 듭시다.” 모두들 잔을 들어 통쾌하게 굽냈다. 해연은 최선생의 말재간에 취할 것만 같았다. 혜경과 향월도 혀를 끌끌 차면서 최선생에게 흠모의 눈길을 보냈다. 향월이 술잔을 들었다. “감사해요. 이 첫잔을 세쌍이 모두 교배주로 마시면 어때요?” “좋소.” 서경리가 맞장구를 쳤다. 그는 향월을 부둥켜안고 팔을 걸더니 잔을 다 비웠다. 해연과 혜경도 뒤따라 최선생과 리선생과 교배주를 마셨다. 한참 술문화를 화제에 올리면서 화끈하게 술을 마시다나니 모두 얼근하게 되였다. 왈패 향월이 버릇처럼 손삿대질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자, 여러분, 애인 파틴데요. 제가 묻는 말에 선생들이 먼저 척척 대답해요. 물론 아가씨들도 완미하게 보충해야 되죠. 어떤가요?” “예, 좋습니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대답했다. 향월은 사회자나 된듯이 마른기침을 깇더니 첫물음을 내놓았다. “애인이란 무엇인가요? 먼저 대답할 분, 손 드세요.” 최룡학은 해연의 눈치를 흘끔 훔쳐보더니 아닌 보살을 떨며 덤덤히 앉아 있다가 손을 척 들었다. 룡학의 입에서 왕청 같은 말이 나올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야 애인을 해보지 못한 게 어떻게 애인을 알겠소? 서경리나 경험담을 말하게나.” 리의사는 우멍눈을 끔쩍이며 서경리를 쳐다보았다. 향월이 또 팔소매를 걷어부치고 나섰다. “애인놀음을 실컷 해본 선배야 서경리하구 내지. 우리 둘이 도맡아 얘기해야겠군. 호호호. 이 능청스러운 년놈들을 어쩌겠어? 한대 탁 박아주고 싶어! ” 서경리는 향월의 삿대질하는 손을 훌 잡아 내리며 언짢은 기색을 띄우며 억지로 부드럽게 말했다. “스스럼없는 장소니까. 얘기하지. 향월과 눈이 맞아서 사귀여보니까. 짜릿한 감정에 이젠 죽자살자 하는 판이요. 등록하지 않은 부부라고나 할가. 아니, 부부보다 감정이 더 깊은 새로운 부부로나 된 거 같소.” 향월은 서경리 이마에 키스를 뻑 안겼다. 그 바람에 서경리 이마에 빨간 입술도장이 딱 박혔다. “만점이야! 만점! 애인은 등록하지 않은 부부, 바깥에서 만난 새 부부야! 난 우리 집 나그네 딱 질색이야. 요 서경리를 만난 다음에야 진짜 짜릿한 사랑을 홀랑 빼먹었어. 참 맛있어. 해해해.” 향월이 아양을 떨다가 옆에 앉은 최룡학한테 눈길을 돌렸다. “최선생, 그대 차롄데요. 애인을 뭘로 알고 해연을 만나려고 했는가요?” “야~ 이거 과거시험보다도 더 진땀이 나는 문젠데.” 그는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닦아 건 후 뒤말을 이었다. “인생이 길면 얼마나 길겠소? 우리 별로 길지 않은 인생에 행복하게 정신감옥 같은 가정이란 울타리를 벗어나서 자유를 찾자. 마음이 통하는 애인하구 마음껏 즐기자. 아무런 부담도 없이 홀가분한 심정으로 즐겁게 보냅시다.” 향월이 눈이 데꾼해졌다. “애인이란 서로 즐기기 위해 만난 상대란 말인가요?” 최룡학은 안경을 벗어 닦으면서 향월을 가슴츠레 건너다보며 자기 견해를 고집했다. “그렇소이다. 애인이란 향락을 누리고 서로 즐기려고 만난 쌍방이지. 미안하오.  ‘동록하지 않은 부부’라는 서경리 말과는 좀 다르오. 만약 애인이 등록하지 않은 부부로 된다면 정신감옥 같은 가정을 간신히 떠났는데 또 새 정신감옥의 부부로 되오. 애인도 마찬가지로 가정의 부부처럼 경제상, 정신상 의무감과 책임감이 생기게 되오. 서로 지겹고 무거운 정신부담을 느끼게 되고 피로해지고 권태감이 나게 되지 않겠소? 나중엔 서로 경제문제로 티격태격 싸우고 갈라지게 되오. 때문에 애인이란 새로운 부부로 생각하지 말고 잠간 서로 화끈하게 즐기는 상대로 돼야 하오.” 향월은 술잔을 들다가 맥없이 놓았다. “어마나! 정말 술맛이 다 떨어지게 논다.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의무감도 없이 놀아대겠다는 건가요? 그럼 애인이 오래 가지 못해 헤여질 거예요. 누가 그런 남자와 애인이라고 놀겠어요. 원, 참.” 향월은 못 마땅한 나머지 투덜거리면서 최룡학에게 눈까지 흘겼다. 좌중의 사람들 보기에도 너무 민망하였다. “괜찮아요. 서경리하구 최선생의 말씀이 다 지당하다고 봐요.” 해연이 어색한 국면을 타개했다. “애인을 찾는게 가정울타리를 벗어나 집사람하구 즐겨보지 못한 걸 다른 사람하구 보충해 즐겨보자는 거죠. 누가 정신부담을 가지자고 애인을 찾겠어요. 허나 애인도 서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오래가지 못할 걸요.” 해연은 최룡학의 눈치를 피뜩 곁눈질해보았다. 룡학은 담담한 표정이였다. 이제껏 덤덤히 앉아 있던 리의사가 술을 권하면서 한잔 쭉 내고 우멍눈을 버릇처럼 끔쩍이면서 입을 열었다. “애인을 얻는 건 안해나 남편한테서 얻지 못한것을 보충해 향수하기 위한 게  옳다고 보오. 안해한테서 모든 녀성들의 진맛을 볼 수 있소? 녀자들마다 성격이 다르고 향기도 맛도 다르오. 안해한테서 느껴보지 못한 걸 바깥 애인한테서 보충받아야 하오. 그래야 생활이 새롭고 다채로울 게 아니오?” 그 땡땡 여문 말에 옆에 앉은 혜경의 새침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지고 있었다. 우멍눈에 작달막한 리의사가 외모는 엉망이여도 속은 땡땡 여문 것 같아보였다. 리의사는 혜경의 그런 마음의 변화를 꿰뚫어본듯이 우멍눈을 끔쩍거리면서 흥이 도도해 뒤말을 이었다. “즐겨야죠. 그러나 애인들도 믿음과 책임감이 있어야 하오. 돈을 내밀 데는 척척 내밀고. 경제시대에 경제적으로 애인을 책임져야 하오. 돈이 없으면 바깥녀자들을 엿보지도 말아야 하오.” “가만, 가만!” 향월이 리의사 말을 중둥무이했다. “그럼 돈이 없는 사람은 애인도 찾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요? 애인이면 딱 남자  돈을 써야 한단 법은 없잖아요?” 리의사는 손을 가로 저었다. “아니요. 오해하지 마오. 애인이라면 녀자 돈을 좀 써도 괜찮소. 애인놀음은 매음과 기생놀이와는 다르오. 그래도 사내가 돈을 쓰는 게 옳소.” 혜경이 바투 딱 들이댔다. “리의사는 애인이 집을 사달라고 해도 척척 사줄 수 있는가요?” 리의사는 그 엄청나게 각박한 말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건 고급매음을 하는 고급기생의 요구지. 만약 애인이 진짜 좋으면 경제조건이 허락되는 사람은 집도 사줄 수 있지.” 서경리도 뒤질세라 나섰다. “집을 사줄 정도면 한뉘 살 애인이여야지. 애인도 단기, 장기로 나누는 게 옳은 거 같소.” 향월이 눈이 데꾼해졌다. “전 단기인가요? 장기인가요?” 서경리는 한발작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둘의 감정 어떤가 두고 봐야지.” 이때 리의사가 술잔을 들며 그 어색하고 각박한 장면을 타개했다. “자, 자, 이젠 애인토론을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기요. 개장국이 다 식겠소.” 그는 좌중을 둘러보면서 “오늘 술값은 내가 물겠으니 근심하지 마오. 자, 쭉 굽을 내기요.” 라고 했다. 그 시원한 소리에 모두들 거나하게 마시고 숟가락을 들었다. 그런데 밥사발이 세 사발 밖에 오르지 않았다. 서경리는 상을 찡그렸다. 왈패 향월이 우렁찬 목소리로 엉뚱한 말을 꺼냈다.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등록하지 않은 부부로 됐어요. 우린 한 집에서 한 가마밥은 먹지 못해도 바깥에서나마 한 사발 밥을 먹게 됐소이다. 밥 속의 메추리알은 신랑들이 쿡쿡 찔러 드세요. 신랑들 잊지 마세요. 알은 혼자 먹지 말고 옆의 신부한테도 맛을 보게 좀 주세요.” 그때 해연이 맞장구를 쳤다. “신부들이야 신랑 메추리알을 먹으면 되지. 뭘, 호호호. ” “히히히. 아주 걸작이구만.” “저 애가, 저게.” 모두들 그 소리에 배를 끌어안고 웃고 떠들다가 숟가락을 들었다. 그들 세쌍은 음식점에서 나오자 노래방에 가서 노래 부르고 끌어안고 웃고 떠들며 밤이 가는줄도 모르고 질탕하게 놀았다.  해연은 호랑이 같은 난쟁이 남편이 눈을 흘길가봐 두려워 노래방에서 나오기 바쁘게 택시를 불러 타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런데 서경리가 최룡학을 불러 이쪽에 대고 뭐라고 하며 손가락질하였다. 이윽고 최선생이 해연의 택시쪽으로 총총히 다가왔다. “슴슴하게 갈라질 순 없잖소? 다방에 가서 커피나 한잔 마시기요.” 해연은 막무가내로 최선생을 태우고 가자는대로 달려갔다. 이윽고 그들은 어슴푸레한 불빛아래 조용한 다방에서 마주앉았다. 은은한 분위기  속에 해연은 커피를 홀짝 마시느라니 밤중이건만 후남편이고 뭐고 머리 속에서 가뭇없이 사라졌다. 길죽한 말상을 한 최룡학은 안경 너머 해연의 온몸을 누볐다. 안경알 밑에서 그의  눈길이 이상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해연은 그의 거칠어가는 숨소리가 고즈넉한 다방의 정적을 달래고 있음을 온몸으로 듣고 있었다. “짧은 밤에 긴 얘길 할 게 없소. 아까는 깊이 말하기 불편했소. 툭 까놓고 말해서 애인관계의 핵심은 성관계가 아니겠소?” “어마나!” 해연은 깜짝 놀랐다. 점잖아보이던 선비의 입에서 구렁이 같은 말이 스르르 기여나올줄은 천만뜻밖이였다. “어째? 납득 안되오?” “남녀 사이엔 성관계 외에 진정한 우정은 없는가요?” “그런 말은 오빠하구나 하오.” 최룡학은 피씩 웃더니 권연을 꺼내 붙여 물었다. “애인이란 정신과 육신이 한데 융합돼 화로불처럼 연소해 새로운 사랑의 감정을 승화시켜야 하오. 그러잖으면 무슨 재미로 애인을 하오?” 해연은 뭇사내들이 다 그러하듯이 최선생이 그 다음 어떤 대답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 만난 최선생한테 경솔히 대답할 수 없었다. 최룡학이 불시에 차탁 우에 놓인 해연의 손을 덥썩 잡았다. 해연은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손을 빼려고 했다. “어이구, 숫처녀 상을 하오. 어디 손금이나 보기요.” 해연은 그제야 참새처럼 놀라 할딱거리는 가슴을 천천히 진정하며 손을 맡겼다. 최룡학은 안경을 춰올리며 해연의 오른손바닥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횡설수설했다. “남편 손금이 짧고 복잡한 걸 보니 남편 복은 없구나. 이게 뭐냐? 평생 나그네 셋은 해야 되겠구만. 뭐냐? 후에 만난 나그네 바람둥이구나.” “픽, 제 후남편은 얼마나 정파답다고 그래요?” 최룡학은 계속 능청스레 뒤말을 이었다. “아니요. 내 천리혜안을 속이지 못하오. 이 명금도 나쁘구먼. 꼭 명이 무슨 액에 막혀 피바람에 죽을 거 같소. 오행설에 의하면 사람마다 타고난 사주팔자는 다 정해진 게 돼서 고치지 못한다오. 우리 어떻게 액운을 피하고 짧디짧은 인생을 즐겁게 보내기요. ” “아니, 당장 죽을 사람이 무슨 재미를 본다고 그래요? 그런 미신 믿지 않아요.” “너무 근심하지 마오. 천천히 그 액운을 피할 방도를 말해줄게. 양말을 벗겠소?” “왜?” “발바닥금을 봐줄게.” “아니, 세상에, 발바닥금을 다 봐요?” “그럼.” 최룡학은 해연의 발바닥 중간에서 조금 웃쪽을 만져보더니 놀란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게 뭐요? 새파란 녀자가 부부생활이 조화롭지 못하구만. 풍만하던  젖가슴도 젖밸만 남았구나.” 해연은 깜짝 놀랐다. (이 나그네 진짜 천리혜안 가졌는가? 내 가슴을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아? ) 최룡학은 계속 지껄였다. “부부 간에 그 일이 잘 조화돼야 인슐린과 엔돌핀이 많이 배출돼 면역력도 높아지고 신경질이 나지 않소. 몸도 좋아지고.” 최룡학의 손이 장단지 우로 구렝이처럼 슬슬 기여올라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만! 밤도 깊었어요.” 최룡학은 고개를 기우뚱할뿐 아무 일도 없은듯이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후에 자주 만나기요.” 해연은 집으로 돌아가 도적고양이처럼 집문을 살짝 떼고 들어서면서 남편 철수의 눈치를 핼끔 살피면서 침대에 다가가 사르르 이불을 홀랑 들고 들어가 누워버렸다. 철수한테서 역한 술냄새가 코를 찔렀다. 순간 서려오르던 미안한 감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흥! 개자식! 내 없는 틈을 타서 또 밤중돌이를 했군. 사흘이 멀다하게 술집에 드나들면서 아가씨들과 흥청망청 놀아대? 나도 이젠 바깥에서 한바탕 놀테야.) 작달막한 철수는 해연이 송철한테 보복하려고 고의로 찾은 난쟁이후남편이다. 철수는 남의 차수리부에서 정비공이나 하면서 호주머니에 돈도 없어가지고 뱁새눈을 해가지고 어데 고운 아가씨가 있는가 살피며 오금을 쓰지 못하는 바람둥이였다. 한번은 백원짜리 몇장 밖에 안되는 로임을 손에 쥐자 향월의 이모사촌녀동생이 차린 술집인 것도 모르고 아가씨부터 찾더라는가. “여기 춘란 아가씨가 제일 이쁘다던데. 이쪽에 인차 들여보내오.” 춘란은 원래 백화상점 출납원이였다. 그녀는 백화상점의 현금 1만원을 절도한 죄로 5년 유기징역형을 받았다. 만기석방된 후 승호의 추천을 받아 광고회사의 출납원으로 들어갈가해서 기웃거린 적도 있었다. 감옥살이를 한 딱지가 딱 들어붙어  출납원으로 되려던 꿈이 수포로 돌아가자 술집으로 떠돌아다니며 아가씨질이나 하면서 마구 뒹구는 판이였다. 이윽고 요염하게 화장을 한 춘란이 들어왔다. 그녀는 백화상점 출납원을 하다가 절도죄로 감옥살이를 했다. 만기석방된 후 신분을 속이고 여기저기 술집이나 돌아다니면서 아가씨질을 하는 판이였다. 춘란은 철수의 팔을 끌어안고 바싹 다가앉아 아양을 떨며 술을 부어올렸다. “어서 한잔 드세요. 신사님.” “오- 그래. 어여쁜 아가씨를 끼고 술을 마시니 술맛이 참 좋구나.” 철수는 춘란의 보름달 같은 얼굴을 꼬집어놓으면서 수작을 피웠다. “아이유, 요것아, 네한테 홀딱 반해버렸구나. 춘향과 자매간이지? 예쁜데다가 이름도 춘향하구 비슷하고. 하하하.” 정비공 출신과는 달리 양복을 쭉 빼입고 넥타이까지 척 매고 신사처럼 허풍치며 거들먹거리는 철수를 보고 춘란은 돼지고기점을 집어 입에 넣어주면서 종알거렸다. “신사님, 오늘 팁을 얼마나 주겠나요?” “오? 무역공사 경리를 하는 내가 돈이 없겠니? 자, 받아라! 200원이야!” “어마나! 경리 진짜 짱인데요. 호호호!” 철수는 100원짜리 두장을 꺼내 춘란의 풍만한 가슴에 마구 쑤셔넣었다. 저걸 보라. 철수는 처자 앞에서는 항상 돈이 없다고 죽는 상하다가도 아가씨들   앞에서는 한달 로임 절반도 탕탕 메치는 멍청이, 허풍쟁이다. 그는 이 구실 저 구실 대서 로임에서 탐오해낸 돈으로 색갈을 하는 판이였다. 향란의 녀동생이 들을라니 철수는 춘란이 앞에서 한바탕 허풍을 치며 희극을 놀았다고 한다. “난 그저 경리가 아니야. 아주 유식한 문학가란 말이야. 춘란아, 내 보지 못한 소설책이 어디 있겠느냐?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는 책은 전문 강철을 어떻게 제련하는가하는 과학지식을 쓴 책이란 말이요. 그런데 번역을 잘못한 거 같애. 강철을 제련한다 하지 어디 단련한다고 해?” “호호호. 그 책 내용이 어디 그런 건가요? 빠웰의 단련, 성장 과정을 썼지.” “뭐? 오, 그래, 그 책을 봤단 말이지. 아마 내 본 책과 다른 거 본 거 같구나.” “그래요? 호호호.” 그 말을 들은 향월의 녀동생은 코웃음이 나 눈물까지 찔끔 나올 지경이였다고 한다. 해연은 생각할 수록 최룡학선생의 말처럼 사주팔자가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죽마고우 첫사랑 송철과 결혼해 아들 문호를 낳았지만 송철이 선희와 바람나서 리혼했지. 두번째로 만난 철수도 이런 방탕아지. 이 세상 누굴 믿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기구한 운명을 생각할 수록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베개잇을 적시였다. (혹시 진짜 최선생과 살면 어떨가? 내 리상형이야, 훤칠한 꺽다리지.  유식하지. 이제껏 작달막한 나그네들과 살았는데, 꺽다리와 살아본다? 헤이, 문호만 달리지 않아도 최선생한테 재가를 갔으면 좋겠는데.) 그후 해연은 꺽다리 최룡학과 사흘이 멀다하게 애인파티를 가졌다. 광고회사도 리굉팔이 독점하고 선희를 데려다 출납원을 시켰지. 설상가상으로 전번에 리굉팔이 공금을 람용한 사실을 암암리에 신고한 “죄” 때문에 굉팔의 눈치를 살피면서 살아야지. 성호와 승호마저 그녀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하긴 해연은 자기가 신고해놓고 리굉팔을 말에서 끌어내리우지 못하자 승호화 성호한테 덮어씌우려 했던 것이다. 때문에 성호와 승호도 그녀를 믿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단위에 나갈 멋도 없었다. 갑갑한 울타리를 벗어나 최선생과 애인파티를 벌리군 했다. 상점이나 작은 음식점에서 마주 앉아 명태나 건두부쪼각에 맥주를 마시고 냉면을 한사발 먹으면서 얘기를 나눠도 그렇게 시원하고 별맛이였다. 해연은 난쟁이, 바람쟁이 나그네를 보지 않으니 좋았다. 범상치 않은 최룡학의 신기한 얘기를 들으니 더욱 즐거웠다. 참말로 최룡학의 얘기를 듣노라면 모든 고민거리를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롭고 황홀한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아 이를데 없이 기분 좋았다. 어느날, 해연은 회사에 나가 광고를 얻으러 나간다고 리굉팔 경리한테서 청가를 맡았다. 사흘이 멀다하게 광고를 하러 간다고 나돌아다녀도 광고 하나 얻어오지 못한 해연이 보기도 싫어 청가만은 계속 주었다. 해연은 굴레를 벗은 들말처럼 최룡학과 함께 슈퍼마켓에 가서 맥주랑 명태랑 사들고 택시를 잡아타고 망아산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해살이 부채살처럼 비켜뜨는 울창한 나무숲 속은 어찌나 조용한지 간혹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천연주단처럼 깔린 푸른 잔디에 비닐돗자리를 펴고 맥주랑 명태랑 꺼내놓고 마주 앉았다. 실로 속세를 벗어나 그들만 사는 자유로운 선경에 들어선 것 같아 황홀하기만 했다. 그들은 맥주를 따서 컵에 부어 딩둥댕 마주치고나서 한잔씩 쭉 마셨다. “야, 시원하다.” “기분 참말로 좋아요.” 해연은 명태를 쪽 찢어 고추장에 찍어 룡학의 입에 쏙 밀어넣어주었다. “최선생을 만난후 제 인생이 새로 활딱 바뀐 거 같애요. 최선생을 늦게 알게 된 게 참 아쉬워요.” “그래?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 교배주를 마실가?” “교배주뿐이겠어요? 뭐나 다 해드릴 게요.”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맥주를 쭉쭉 들이켰다. 최룡학은 서너잔 얼근히 되자 점점 로골적으로 나왔다. “야, 고 야들야들한 입에 키스를 했으면 좋겠다.” “아이유- 그럼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해연은 애교를 부리면서 최룡학의 품에 안겼다. 최룡학은 이게 웬 떡호박이 넝쿨채로 굴러드는가고 꽉 끌어안았다… “꼼짝 말엇!” 갑자기 수림 속에서 생벼락 같은 고함소리가 울렸다. 해연이 와뜰 놀라 황홀한 꿈에서 깨나 둘러보니 구레나룻을 기른 사내와 땅딸보사내가 옆구리에 손을 찌른채 다리를 쩍 벌리고 떡 서서 그들을 노려보는 것이였다. “어머나! 빨리 가자요!” “가긴 어델 가?! 시퍼런 대낮에 바람을 피워! 흥!” 해연은 질겁해 바들바들 떨었다. 그래도 최룡학이 능글거리면서 림기응변했다. “바람이라니? 부부간에 들놀이를 왔는데.” 구레나룻들은 희죽거리며 을러멨다. “뭣이 어찌구 어째? 부부간?! 그럼 신분증을 내놔. 사업단위도 대라.” “당신들이 뭐기에 우릴 보고 호통질이야?” 구레나룻은 룡학을 발로 탕 걷어찼다. 룡학은 얼굴이 피투성이 돼서 저만치 나뒹굴었다. “우린 경찰이야. 전문 너희들 년놈처럼 수림에 와서 오입하는 오입쟁이들을 붙잡고 있어. 톡톡이 망신당하지 못해 대들어? 어서 파출소로 가자. 단단히 벌금해야겠군.” 말이 변설인 최룡학도 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는 이 놈들이 경찰이 아니라 날강도라는 것을 직감했다. 어서 그 놈들의 함정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백원짜리 두장을 꺼내 주면서 빌었다. “맥주나 사 마시고 우릴 놔주오.” 구레나룻이 홱 채가더니 을러멨다. “요걸로?”  옆에서 땅딸보가 해연한테 눈길을 돌리더니 꽥 고함쳤다. “돈이 없으면 아가씨라도 두고 가라!” 해연은 룡학의 뒤에 비실비실 물러서다가 돌아서서 걸음아 날 살려라고 선불 맞은 노루처럼 줄행랑을 놓았다. 그제야 제 정신이 든 룡학도 뒤따라 껑충껑충 큰 길 쪽으로 달아났다. 혼줄이 난 그들은 련 며칠 만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공포가 지나가자 보름도 지나지 않아 야성이 머리를 숙였던 잔디처럼 고개를 쳐드는 것을 어쩌겠는가?        
229    동화 백로와 까마귀 김장혁 댓글:  조회:1477  추천:0  2019-09-25
                 동화                       백로와 까마귀                                 김장혁 참대숲이 우거진 외로운 후수가에서 백로 한마리가 한창 얕은 물 속에 주동이를 넣고 물고기잡이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갑자기 푸른 호수물에 웬 까마귀 한마리가 날아내리는 것이 비꼈어요. “까욱- 까욱-” 백로는 가뜩이나 날따라 호수가에 먹이가 줄어드는 판에 까마귀까지 끼여들자  한바탕 골려줘 쫓아버리려고 작심했어요. 백로는 하얗고 긴 목을 빼들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어요. “에이, 까마귀 울면 재수 없다더니. 아침부터 웬 지껄이냐?” 까마귀는 호수가 풀숲에 날아내려 까만 털을 부시시 털더니 대꾸 한마디 하지 않고 먹이를 찾아 헤맸어요. 백로는 하얀 가슴을 쑥 내밀고 목을 빼들고 잘난 척하면서 지껄여댔어요. “종달새처럼 목소리나 고우면 몰라도, 흥, 너네 까마귀들은 왜 ‘종달새 지종 하늘에 날고’ 이런 노랜 모르냐. 하도 못해 알락까치처럼 ‘까까까.’ 할줄도 몰라? 흥! 맨날 사처로 싸다니면서 듣기 싫게 ‘까욱’, ‘까욱’이냐? 너네 목소리 어지간이 듣기 싫었으면 사람들이 이런 속담까지 만들어 너넬 욕했겠어. ‘까마귀 하루에 열두마디를 울어도 송장 먹는 소리’. ‘까마귀 열두가지 소리 하나도 고운 것이 없다. 까마귀 열두번 울어도 까욱소리뿐.’ 딱 맞고 딱 떨어지는 속담이야. 히히히.” 까마귀는 듣다 못해 “남이야 ‘까욱’ 하든지 말든지 웬 상관이냐?” 하고 한마디 대꾸했어요. “허허, 검정돼지 같은 놈, 언감 하늘에서 내려온 새하얀 선녀께 대들어?” 백로는 긴 목을 빼들고 껑충한 다리로 까마귀한테 성큼성킁 다가가 귀를 물어 당겼어요. “아갸갸, 왜 이래?” “이 놈 까마귀야, 넌 까마귀 고기를 먹어 까맣게 잊었어. 넌 온통 새까매. 어째 재물 배때기에 들어갔다가 나와 이래? 온몸이 검정돼지 같구나. 깔깔깔, 이름도 까마귀라고 지은 걸 보면 너네 귀는 까만 귀냐? 어디 보자. 까만 귀야. 흐흐흐.” 까마귀는 시끄러워 푸드득 날아 저쪽으로 가 먹이를 계속 찾았어요. 백로는 따라가면서 계속 물고 늘어졌어요. “봐라. 세상엔 하얗고 빨갛고 노랗고 파란 색갈 얼마나 곱고 알락달락해? 고운 색이 많고도 많은데. 어쩜 너네 엄마는 널 이렇게 못나게도 새까맣게 낳았느냐?. 날 봐라. 이봐, 백설처럼 하얀 몸매에 머리엔 빨간 리봉을 맸지. 체격은 또 얼마나 백설공주처럼 쭉 빠지고 예쁘냐?” 까마귀는 “얘, 난 너와 지껄일 새 없어.” 하고는 저쪽으로 또 날아가 먹이를 찾았어요. 백로는 아무리 놀려줘도 까마귀가 달아나지 않자 까마귀 곁에 슬금슬금 다가가 직격탄을 날렸어요. “야, 까만 귀(까마귀)야, 남의 말이 들리지 않니? 이 호수가에 날따라 먹이가 줄어드는 판에 네까지 끼여들어? 이젠 우리 백로들이 뭘 먹고 살겠느냐? 넌 겉만 까만가 했더니 속까지 새까맣구나.” 참고 참던 까마귀도 한마디 반격했어요. “백로야, 오늘 보니 넌 겉은 백설 같지만 속은 꺼멓기로 말 못할 애구나. 야비하게 남을 헐뜯긴.” “뭐, 뭐?” 백로는 더는 말이 나가지 않았어요. 그는 주둥이를 물에 걷어넣고 물고기를 잡는 것처럼 하면서 어떻게 진공할가고 궁리를 굴렸어요. 한참 후에야 또 한마디 했어요. “만물의 령장인 사람들이 말하기를,  겉에 속이 절반 들어난다고 하지 않았느냐? 난 겉이자 속이야. 마음도 새하얗게 깨끗하지. 흐흐흐.” 까마귀는 더 말대구를 하지도 않고 죽은 수달 고기를 물고 하늘로 날아올라갔어요. “야, 너넨 전문 남이 먹다가 남긴 죽은 고기를 잘 먹어 그런가 보다. 못나고 못나게 새까맣게 번졌지. 너넨 아마 까만 마귀라고 까마귀라고 이름을 달았는지도 몰라. 얘, 까만 마귀야, 우릴 봐라. 생선을 먹어서 얼마나 호수가 백조처럼 흰가? 호호호.” 백로는 호수가에서 코노래까지 부르며 백조를 모방해 날개를 퍼덕이며 외발뜀을 뛰면서 춤까지 춰댔어요. 그러나 하늘높이 날아올라가 점점 흑점으로 변해가는 까마귀를 보고 멋적어졌어요.  구경군이 없는 독무를 추긴 좀 싱거웠어요. “아니야, 저 놈을 쫓아가 계속 놀려줘야지.” 백로는 푸드득 하늘에 날아올라 까마귀를 뒤쫓아 날아갔어요. 그는 솜뭉치 같은 구름을 헤가르고 날아나와 아래를 살폈어요.오리무리 속의 거위처럼 저 먼 발치 참대숲 속에 우뚝 솟은 백양나무 가지에 커다란 까마귀 둥지가 보였어요. 백로는 까마귀 둥지를 향해 직하강하면서 살폈어요. ‘아차, 저게 뭐야? 까마귀 둥지에 웬 털도 없는 벌거숭이 새가 있어? 새끼를 낳았어?” 백로가 백양나무가지에 날아내려 까마귀 둥지를 찬찬히 살폈어요. 까마귀가 한창 부리로 수달고기를 찢어 벌거숭이 새한테 먹이고 있었어요. 그런데 가죽 밖에 남지 않은 벌거숭이 새는 새끼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컸어요. 까마귀는 눈물을 흘리면서 앙상하게 말라버린 벌거숭이새한테 백로는 본 척 만 척, 계속 고기를 찢어 한점 한점 먹여주는 것이 아니겠어요. “건 누구냐?” 까마귀는 까만 눈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목멘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내 어머니야.” “응? 앓느냐?” 까마귀는 머리를 끄덕이며 피눈물을 흘렸어요. “늙으신 어머니께선 이젠 털이 다 빠져 날지 못해. 아무 것도 잡아 잡숫지 못해. 으흐흑, 까욱, 까욱.” 그제야 백로는 횡설수설한 자기 잘못을 깨달았어요. 그는 까마귀를 보기 너무 창피해 푸드득 백양나무가지에서 날아 하늘로 올라갔어요. 백로는 며칠이고 까마귀 둥지 상공을 날아 빙빙 돌면서 살폈어요. 을씨년스러운 가을하늘에서 비가 구질구질 지꿎게 내렸어요. 그러자 까마귀는 자기 날개를 펼쳐 벌거숭이 어머니를 덮어주는 것이였어요. 까마귀는 날마다 사처로 날아다니면서 물과 고기를 물어다가 어머니께 대접하면서 지극한 효성을 다하였어요. 까마귀는 늙어서 털 한대도 없이 다 빠진 로모까마귀가 앓다가 숨을 거둘 때까지 그렇게 지극한 정성을 다해 대접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어머니까마귀가 사망하자 까마귀는 “까욱, 까욱” 하고 애처럽게 울었어요. 그 울음소리는 그렇게도 처량하게 하늘 높이 메아리쳤어요. 그때부터 백로는 다신 까마귀를 욕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까마귀를 두고 찬탄을 금치 못했어요. “까마귀는 겉은 새까매도 속은 비길데 없이 효성이 지극한 효자로구나.”    
228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37) 댓글:  조회:1326  추천:0  2019-09-25
                 67. 부산에 피여난 진달래 세찬 파도는 성난 사자들마냥 무섭게 포효하며 백사장을 덮쳐와 하얀 물바래로 부서졌다. 썰물은 하얀 백사장에 키스하고 아쉬운 마음을 심어놓고 서서히 물러갔다.  푸르른 바다에서 갈매기들이 파도를 스치며 억세게 날아예고 있다. 성호는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 앉아서 해변가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다섯째누나 은자의 기구한 운명을 회상하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누나가 이 각박한 한국에 와서 온전히 살만할가?” 은자는 서발막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 하나 없이 가난한 집에서 자라면서 막내 남동생을 각별히 아끼고 보살폈다. 성호도 어려서부터 은자누나를 제일 좋아했다. 은자는 마음씨 착한 녀성이였지만 운명이 아주 기구했다. 그녀는 고자인줄도 모르고 허씨네 외동아들한테 시집갔다가 애를 낳지 못한다고 시집에서 어찌나 구박하는지 결혼 5년만에 리혼했다. 그후 그녀는 5년이나 본가집에서 얹혀 살며 지내다가 오누이가 달린 김종환이란 사내한테 재가갔다. 종환은 말수가 적었는데 어쩐지 외까풀눈에 독이 있어 보였다. 은자는 종환과 살아서 두달도 안돼 덜컥 임신했다. “이게 웬 일인가? 내가 임신했단 말인가! 애를 낳지 못한 건 확실히 남편 탓이란 말인가?” 그녀는 이전에 애를 낳지 못한 “죄” 때문에 항상 시집 식구들한테 “병신”이라는지, “부실하다”는지 별의별 욕을 다 밥 먹듯 하였다. 그러나 한마디 대구도 하지 못하고 종년처럼 머리를 숙이고 꿉썩꿉석 일만 하면서 살아야 했다. 그러나 종환과 살면서 진짜 사내를 알게 됐고 임신까지 해 당당한 녀자로 되지 않았는가. “이젠 난 녀자 구실도 못하는 병신이 아니야!” 그런데 그 기쁨도 몇달 가지 못했다. 애 둘이나 붙은 집에 들어섰다가 시에미  어찌나 구박하는지 눈물을 머금고 남산만한 배를 붙안고 본가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안됐다. 본가집 부모와 친척들은 모두 만삭이 된 은자를 보고 인산하라고 했다. “애비도 없는 애를 낳겠느냐?” “어서 긁어버리고 새 출발 해라.” “이젠 임신하지 못할가봐 근심할 필요없다.” 그러나 은자는 기어이 애를 긁어버리지 않았다. 온 세상에 자기는 애를 낳을 수 있는 녀자라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은자는 끝내 떡돌 같은 아들애를 낳았다. 그녀는 쇠덩이 같은 어른 되라고 이름도 철수라고 지어주었다. 그녀는 재가를 단념하고 철수를 데리고 본가집에서 9년이나 살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중풍에 걸려 고향의 집을 다 팔아치우고 성호네 집으로 병치료하러 가는 바람에 은자는 의지가지 없이 허망 나앉게 되였다. 부모를 따라 남동생네 집으로 들어와 얹혀 살기는 올케 눈치가 보였다. 그녀는 할수 없이 철수를 데리고 시내에 들어와 코구멍만한 세집을 맡고 여기저기 음식점으로 돌아다니지 않으면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가정보모를 하면서 의악스레 살아나갔다. 그런데 철수를 튼튼히 키우려고 “꿀즙왕”을 사먹였는데 부작용이 날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철수는 어려서부터 뚱뚱하게 번졌다. 가난하게 살다나니 진짜 철수가 먹고 싶어하는 과자나 사탕도 온전히 사먹이지 못했다. 명절이면 그래도 본가집에 와서 함께 쇠다나니 철수를 돼지고기점이라도 얻어먹일 수 있어 다행이였다.  6.1절에도 남들처럼 공원에 가서 마음대로 놀이기구를 놀게 하지도 못했다. 더구나 학부모회의에 가면 내밀게 없어 항상 담임교원의 쓴 눈길을 받아야만 했다.  담임교원의 표독스런 눈총이 철수한테 돌아가는 것이 항상 안타깝고 마음이 쓰라렸다. 애비 없는 애라고 애들이 놀려댈 때마다 철수는 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따지고 들었다. “엄마, 난 어째 아버지 없습니까? 예?” 그때마다 은자는 철수를 꼭 껴안고 속절없이 피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어떻게 하나 철수한테 애비를 찾아주려고 종환과 관계를 회복할가고 세상 사람들을 웃길 정도로 짝사랑을 몰부어왔다. 종환의 세상뜬 선처가 낳은 오누이한테 맛있는 음식도 사간다, 로인절이면 종환의 어머니한테 옷을 사 가져간다 하면서 지성을 다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종환은 늙은 어머니 말을 듣고  그녀와 철수가 찾아가기만 하면 철천지원쑤나 만난 것처럼 때리고 욕하면서 쫓아내군 했다. 한번은 은자가 소고기국을 끓여 물초롱에 담아 밀차에 밀고 집에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런데 종환은 소고기국 몰초롱마저 차 길바닥에 나뒹굴게 했다. 철없는 어린 딸애마저 후엄마라고 욕하며 몰아냈다. 은자는 너무나도 섧고 억울해 어느 날 달밤에 종환을 조용히 불러냈다. 종환은 은자를 떼놓기 위해 마지못해 천수해중학교 마당에 갔다. 쪼각달이 쓸쓸히 내리비추는 학교 마당에는 수양버들이 풀어헤친 머리를   선들선들한 가을바람에 넘실거렸다. 그들은 체조대 앞에 나란히 앉았다. 은자가 조용히 물었다. “진짜 그렇게도 나와 살기 싫어요? 자꾸 엄마 말만 듣지 말고 철수를 봐서라도 우리 함께 살면 안돼요?” 종환은 한참 동안 묵묵부답하며 먼 남산만 쳐다보며 무슨 궁리를 하는 것 같았다. “아니, 속 시원히 말하세요? 무엇 때문입니까?” 종환은 머리를 들고 구름 속에 숨는 쪼각달을 쳐다보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우린 함께 살 사람이 아니오.” “원인을 말하시오. 내가 뭘 잘못했는가요?”  “나는 부모와 두 자식이 있소. 그런데 은자는 이 복잡한 가정에 들어와서 제대로 처리하면서 살 녀자가 아니라고 보오.” “뭘 말인가요?” “가시집에 갔을 때 그게 뭐요? 그날 가시부모는 어떻게 돼 우리와 한상에 앉아 밥을 잡숫게 됐소. 은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고 뭐라고 했소? ‘에이유, 이 주책없는 늙은 것들을 봐라. 저쪽에서 먹을 게지. 언제 늙은 것들이 싹 썩어지겠니?’ 이러지 않았소?” “어마나! 기억나지도 않는데. 말 한마디 실수한 걸 가지고 그래오?” 종환은 콩크리트에 쇠덩이 구우는 듯한 목소리로 맺고 끊듯 했다. “어찌 한마디 실수라고만 볼 수 있소? 례의 바르고 부모께 효도를 하는 것은 우리 조선족의 훌륭한 전통이 아니고 뭐요? 자기 부모를 욕한 그 한마디 말에 난 자칫하면 우리 부모한테 시집살이를 시키지 않겠는가는 근심부터 앞섶데. 은자는  늙으신 어머님께 효도하고 귀여운 오누이를 제 자식처럼 키울 사람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소.” 은자는 억이 막혀 웃고 말았다. “무슨 총살받을 죄나 졌는가 했더니. 원, 참. 한마디 실수한 걸 가지고 왜 그래오? 진짜 못된 나그네구만.” “나하고 만난지 며칠이라고 본가집 부모형제 허물을 한단 말이요. 심지어 자기를 그렇게 도와준 성호마저 ‘세상물정 모르고 날뛰는 무례한 깡패’라고 욕하더구만. 옛날부터 말 한마디 천냥 간다고 은자 말마다 어떤 사람인가 본질을 보여준단 말이요. 어떻게 저를 믿고 로모와 어린 오누이를 맡기오?” 그 마디마디 말은 은자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여보세요. 우리 함께 낳은 철수를 봐서라도 모든 걸 량해하고 함께 삽시다.” 종환은 자기 팔을 꼭 잡고 매달리는 은자를 훌 밀어버리고 먼지를 툭툭 털면서  일어났다. “꿈도 꾸지 마오.” 그는 무섭게 뒤말을 이었다. “은자는 말실수만 한게 아니오. 그게 뭐요? 친정부모 생일에도 가지 않고 자녀들이 다 돌아간 다음에 부모 집에 기여들어 성호네랑 가져온 돼지고기랑 소고기랑 가만가만 끗어다 제 새끼를 먹인단 말이요? 친정부모한테도 그렇게 불효하고 제 새끼만 새끼라는데 내 엄마와 자녀들을 곱다고 하겠소? 할 말 다 했으니 다신 찾지도 마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정하게 가버렸다. 은자가 울며 뒤따라가 손이 발이 되게 싹싹 비비며 애원했건만 쓸데 없었다.  부모형제들이 종환을 포기하라고 열당부를 해도 그녀는 곧이듣지 않았다. 열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고 정성을 다하면 종환은 행여나 언젠가는 꼭 마음을 돌리겠는가고 오산했다. 그녀는 모든 굴욕을 참으면서 인정머리도 없는 종환한테 눈물겨운 짝사랑을 몰부었다. 종환과 애들이 좋아하는 소고기국을 한 물초롱이나 끓여 밀차에 싣고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동환은 숱한 동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소고기국물초롱을 발로 차 쏟아버렸다. “개쌍년, 오지 말라는데 왜 자꾸 찾아와?!” 그후 은자는 너무 억울해 막내동생 성호를 불러 당부했다. “네 한번 가서 으름장을 놓아라. 우리 누나와 살라고 해봐라. 주먹으로 위협하면 내 앞에 무릎을 꿇겠는지.” 성호는 억이 막혀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누나, 나도 애비 없이 자라는 철수 불쌍해 한바탕 패주고 싶소. 그러나 사랑은 어디 주먹으로 강다짐해 될 일이요? 종환은 아주 똑똑하고도 못된 사람이요. 누난 말머리 무거운 그 사람 앞에서 쓸데없는 소릴 횡설수설하더니 제 눈을 멀군 게 아니고 뭐요? 종환 앞에서 부모를 욕한 건 잘못이요. 왜 그렇게 수양도 없이 부모를 함부로 욕했소? 그런 잘못을 고치지 못하면 누가 살자고 하겠소? 누나는 마음이 착하고 효성이 지극하지만 입을 널어놓고 다니는게 흠이요.” “됐다, 됐어! 나서지 않겠으면 말아라.” 그녀는 부득불 종환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철수가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면서 공부를 잘해 할빈림학원에 붙었다. 하지만  입학등록금마저 낼 돈이 없어 그녀는 사처로 달아다니면서 손을 내밀어야 했다. 그때도 성호가 나서서 선대해주어 하나 밖에 없는 금덩이 같은 아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 그녀는 계속 그렇게 하나 밖에 없는 마음 속의 기둥 같은 철수를 남들처럼 입히지도 못하고 먹이지도 못하면서 살 수는 없었다. 철수를 보기만 하면 엄마 구실을 못한 빚진 마음이 항상 쓰라렸다. 그녀는 대가를 아끼지 않고 한국에 나가려고 했다. 끝내 기회는 찾아왔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그녀는 시내 한 섭외혼인소개소 소개로 한국 부산에서 온 칠순되는 정병욱을 만나게 되였다. 그녀는 자기보다 15세나 더 많은 등이 다 굽은 정병욱령감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들의 마음에 구김살이 가지 않게, 어엿한 대학생으로 키우기 위해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면서 재가하지 않으면 안됐다. 저금통장의 돈을 다 털어 소개비 2만여원이나 혼인소개소에 출국수속비로 내고 정병욱과 함께 민정국에 가서 이른바 국제결혼등록을 하였다. 영상한대로 본가집 부모와 형제들을 불러 결혼식이라고 올리고 사진관에 가서  결혼사진도 찎었다. 그런데 정병욱이 부산에 돌아간지 1년이 넘었건만 은자는 령사관의 퇴자를 맞아 줄곧 한국에 나가지 못하였다. 성호는 한국 국제결혼중매소 김소장이랑 국제결혼인이라는 허울을 쓰고 사기친 것이 아닌가고 한국에 나온 김에 부산에 내려왔던 것이다. 난생처음 부산으로 온 성호는 정병욱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은 목책 하나만 달랑 들고 바다에서 바늘을 건지는 격으로 그 령감을 찾기 시작했다. 헛일 삼아 공중전화를 치자 정병욱이 전화를 받았다. “은자 남동생인데요. 만날 수 있어요?” “오, 그래요? 처남 지금 어데 있어?” “지금 부산역 부근에 있는데요.” “지하철 타고 해운대역까지 오라고. 지하철출입구에서 기다릴게요.” 성호는 부랴부랴 지하철을 타고 해운대역에까지 달려갔다. 그런데 붐비는 행인들  속에는 마중하겠다던 정령감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령감은 택시비가 아까워 역에까지 걸어오다나니 늦었던 것이다. 성호에게는 정령감 집의 전화번호 밖에 없고 핸드폰이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부산에 온바하곤 바다구경이나 하면서 기다리자.) 그는 해운대 해변가 백사장에서 바다풍경을 구경하면서 전화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검푸른 바다가 오래잖으면 해를 먹어치우겠는데도 기다리고 기다리는 전화는 울리지도 않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정령감은 전화비마저 아까워 치지 않았던 것이다. 푸르른 바다에서 날아예는 갈매기떼, 붕- 기적을 울리며 달리는 유람선, 바다가  백사장에서 바글거리는 인간들, 성호는 더 구경할 생각이 없어졌다. 그는 재차 해운대 지하철역에 돌아갔다. “처남! 처남!” 느닷없이 부르는 소리에 성호는 주춤 멈춰섰다. 되돌아보니 분명 정령감이였다. “오래 기다렸어?” “아니, 이렇게 부산 한끝에서 만나니 정말 반갑습니다.” 성호는 아직 정이 들지 않은 서먹서먹한 매형이였지만 애타게 찾다가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다. 정령감의 옆에는 국제결혼중매소의 너부죽하게 생긴 김소장도 와 있었다. 그는 사전에 은자가 국제전화로 정령감한테 부동산등록이 없어 출국수속이 되지 않는 리유를 말해주었기에 재차 수속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성호는 정령감이 삼계탕을 대접하겠다는 것도 마다하고 숨돌릴 새도 없이 김소장을 따라가 중개소에 가서 국제결혼등록증을 재차 내서 가졌다.  해를 쳐다보니 아직도 바다 우에서 빛뿌리고 있었다. “어떤 집에서 사는가나 보고 가야겠습니다.” 성호는 은자가 와서 시름놓고 살만하겠는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 날 따라오라고.” 정령감은 하늘을 찌를듯한 아빠트단지가 즐비하게 늘어선 해운대는 내놓고 산기슭의 오불꼬불한 길을 따라가는 것이였다. 성호가 한참 허리구부정한 정령감을 따라 걸어갔더니 게딱지 같은 2층집 앞에  멈춰섰다. “우리 집이야. 어서 들어갑세.” 성호가 둘러보니 산중턱 길  옆에 몽땅 낡은 2층집과 3층집이 줄느런히 늘어서 있었다. 그가 어두커니 서 있자 정령감이 말했다. “한국에서 이런 집이 있으면 다 부자야, 부자!” 그는 성호를 데리고 벽에 몸이 쓰리울듯이 비좁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딱 다락방 같았다. 그래도 1층과 2층 모두 100여평방메터는 실히 되였고  지하실도 있었다. 홀애비 집에 이 서말이라고 하더니 집을 거두지 않아 숨이 꽉 막혔다. 여기저기 입던 옷이랑 빨래랑 마구 구들에 널어놓아 말이 아니였다. 부엌 쪽으로 해서 먹던 음식그릇과 검질하지도 않은 남새들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아래층과 지하까지 모두 160평방메터는 실히 돼.” 정령감은 굽은 허리를 펴면서 성호를 당당하게 쳐다보았다. “시가로 얼마나 되는가요?” “중고집이니까 어림 잡아 한 2억 5천만원이야 받겠지.” “?!” “어때? 누나 오면 잘 살 수 있겠지?” 원래 정령감은 칠순고개를 넘도록 홀로 살면서 음식점을 돌아다니면서 칼이나  부지런히 갈아 아껴 먹으면서 이 아빠트를 사놓았다. 진짜 황소처럼 벌어서 쥐처럼 먹으면서 모은 재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일만 하고 주산알을 잘 튕기지 못해 모두들 바보로 취급했다. 경찰서에 다니는 친동생도 형취급을 하지 않았고 숱한 조카들은 이런 삼촌이 있는 것으로 해 창피해 평소에 거래를 끊다싶이 했다. 심지어 명절이나 앓을 때에도 얼굴 하나 내밀지도 않았다. 정병국은 한 마을에서 함께 자란 5촌고모 정분선을 믿고 번 돈을 몽땅 맡겼고 가옥소유증에도 그녀의 이름으로 올렸다. 집도 없고 돈도 없으면 국가로부터 최저생활보장금을 탈 수 있다는 정분선의 말을 딱 곧이듣고 그런 허무맹랑한 일을 했다. 그 때문에 은자와 국제결혼을 했지만 부동산등록이 없어 령사관의 퇴자를 맡게 되였다고 했다. “갑세. 이제 5촌고모를 보고 이 집이 내 집이라는 증명서를 떼서 동사무소에 가서 도장을 땅 맞으면 돼.” 성호는 정령감을 따라 정분선이 있는 가게로 갔다. 작달막한 5촌고모 정분선이라는 로친은 사연을 듣더니 정병욱한테 삿대질 했다. “이 바보야, 국제결혼 기어이 할라나? 그년 사기치는 거 뻔한데. 왜 계속 해? 한 100만원 떼운 셈 치고 이제라도 그만둬.” 정병욱은 수긍하지 않았다. “아니야, 그래 평생 마누라도 없이 살라나?” 그는 성호를 돌아보며 뒤말을 이었다. “보라고. 처남까지 오잖았어? 고모 말처럼 시집올 뜻 없는 건 아냐.” “중국년 데려다 어디 잘 살아 봐.” 실눈을 흘기는 정분선은 진짜 헐찮은 로친이였다. 로친은 집에 가서 부동산등록증을 가져다주었다. “옛다, 이제 이 가옥마저 사기당하지 않나 봐.” 아무리 반간을 놓아도 정령감이 어찌나 고집을 쓰는지 정로친도 하는 수 없이 성호네를 따라나섰다. 동사무소에 가서 가옥등록변경증을 내서 도장까지 꽝 맡고서도 계속 정령감을 “궁리 없는 바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가옥등록변경을 하려면 시일이 걸려야 했다. 그러나 동사무소에서는 정령감과 5촌고모 정분선의 주민등록증을 보더니 증명서를 먼저 떼주었다. 모든 걸 말끔히 끝내자 성호는 고모사촌녀동생 최인숙을 만났다. 그날 인숙이네 집에서 자고 이튿날 첫차를 타고 부산을 떠났다. 부산역에까지 따라나온 정병욱은 용돈으로 쓰라면서 만원짜리 지페 몇장을  성호의 손에 쥐여주고나서 두 손을 꼭 잡고 신신당부했다. “처남, 난 누나와 며칠 살아도 좋네. 평생 마누라도 없이 산 홀아비 딱지만 떼버려도 원이 없겠어. 누나 보면 시름놓고 건너오라고 해요. 함께 여생을 행복하게 살겠네.” 성호는 저으기 감동됐다. “그래요. 꼭 누나를 보낼 게요. 순박하고 부지런하고 인정미 있는 매형한테 믿음이 가요.” 한달도 되지 않아 은자의 출국비자가 떨어졌다. 은자가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날아가게 된 날에 성호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이젠 살 길이 열렸구만.” 성호의 말에 철수는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야, 어쩜 엄마를 한국에 팔아 내가 살아야 합니까?” “무슨 소리냐?” 성호는 꾸지람했다. “모성애란 세상에 그 어떤 사랑보다도 대공무사한 사랑이야. 모두 널 위한 희생이야.” 은자는 공항에서 철수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는 부모형제들과 아들과 갈라지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비행기탑승구로 나갔다. 성호는 다섯째누나의 뒤모습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그는 마음씨 착하고 인정미 넘치는 누나가 부산에 가서 무탈하게 행복하게 살 것을 빌고 또 빌었다. 은자의 운명은 진짜 기구했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를 다친다고 했다. 어쩜 그녀가 재가해서 석달만에 령감이 불행하게도 간암말기란 진단을 받지 않았겠는가! 은자는 눈 앞이 캄캄해났다. 어제까지도 살겠다고 그 추운 겨울 날씨에 기침을 쿨룩쿨룩 깇으면서도 숫돌틀을 메고 이 음식점 저 음식점 돌아다니며 칼을 갈던 령감이 아닌가. 칼을 한자루 갈아야 한화로 2천원 밖에 벌지 못했다. 은자는 살겠다고 아글타글하던 령감이 불쌍해 부여안고 대성통곡하였다. 그녀가 처음으로 한국 김해공항에 도착해 출구로 나올 때 정병욱은 구부정한 허리를 쭉 펴고 이마의 밭고랑 같은 주름살을 쫙 펴고 활짝 웃었다. “마누라, 끝내 왔구만!” 정병욱은 어찌나 기뻤던지 숱한 사람들이 여겨보는 것도 잊고 은자를 와락 끌어안아 한바퀴 휘- 돌리고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첫날 저녁에 잠자리에 든 정병욱은 칼날과 숟돌에 다슬어 꺼슬꺼쓸한 두 손으로 은자를 꼭 껴안고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마누라, 칠순에 끝내 마누라와 함께 살게 됐구만. 우리 행복하게 한 백년 삽세.” 이튿날 은자는 숟돌틀을 메고 나가려는 령감을 말렸다. “령감, 이젠 년세도 칠순이 다 됐는데요. 숟돌틀을 메고 다니지 마세요. 제가 음식점에 가서 일해서 살아도 실컷 살 수 있어요.” 정령감은 길죽한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은자를 보고 다정하게 말했다. “여보, 마누라, 난 칠순이 되도록 로총각으로 홀로 외롭게 살았시우(어요). 마누라 해준 뜨신 밥을 먹고 숫돌틀을 메고 나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어깨춤이 절로 난다이. 마누라, 마누라가 내 집에 고이 앉아만 있어도 난 일하기 힘들지 않고 웃음 절로 기쁨 절로 흥겹다니께(까).” 정령감은 진짜 기뻐 숫돌틀을 메고 콧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령감은 큰길로 나가면서 어깨춤까지 으쓱으쓱 추는 것이였다. 숫돌틀을 멘 령감의 허리 굽은 뒤모습을 보면서 은자는 눈시울에 뜨거운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하루 밤 부부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진짜 한 백날 산 그들은 진짜 밴년을 산 늙은 량주처럼 다정다감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이러고 있을 때 아니지.” 은자는 택시에 정령감을 모시고 병원으로 달려가 입원시켰다. 한편 하루 24시간 동안 한시도 떠나지 않고 세수를 시켜준다, 손발을 닦아준다, 따뜻한 밥과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 하면서 살뜰히 보살폈다. 옆의 환자들은 은자를 정령감과 오래 산 조강지처인가 할 지경이였다. 은자는 물론 세번째 남편으로 만난 령감이였지만 정병욱한테는 조강지처나 다름없는 유일한 안해였다. 그녀는 정성들여 정병욱을 보살펴 다시 건강을 되찾게 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인정머리 없는 시동생과 시조카 그리고 항상 령감의 돈을 관리하며 챙기던 시5촌고모 정분선은 병문안하러 오지도 않았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 우에도 꽃이 핀다고 했다. 그러나 은자의 지극한 정성도 몰라주고 병마는 야속하게도 은자의 곁에서 정령감을 끝내 떼내 저세상으로 보내고 말았다. “아이고, 나와 함께 한 백년 살자던 령감이 이게 웬 일인가요?” 은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 대성통곡치다가 그만 기혼해 쓰러지기까지 했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정병욱은 사체실로 옮겨졌고 자기는 령감이 누웠던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코구멍에는 산소호흡기까지 꽂혀있지 않겠는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그녀는 사체실에 달려가서 정령감의 사체를 안고 또 울고불고 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비통한 심정으로 장례까지 치른 은자는 휑뎅그렁하고 어수선한 집을 둘러보면서 고독감을 어쩌는 수 없어 또 대성통곡쳤다. 남의 집에 불이 난 틈을 타서 도적질을 하는 도적놈들이 있을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시5촌고모 정분선은 상가집에 찾아와 문안하기는커녕 기웃거리다가 표독스럽게 은자를 쏘아보면서 호통쳤다. “거지 같은 년, 당장 이 집에서 나가.” 은자는 밤중에 홍두깨 내밀 듯하는 시고모 호통소리에 깜짝 놀랐다. “아니, 시고모, 왜 이러십니까?” 정로파는 은자를 흘겨보며 호통쳤다. “뭐? 시고모? 너거(넌) 위장결혼하고 왔제이(왔잖아). 강제출국하기 전에 이 집 빼라고!” 은자는 억이 막혀 숨도 바로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나 인차 침착성을 회복하였다. “이제 우리 령감이 사망한지 며칠이라고 뭔가요? 난 이 집의 당당한 안주인입니다. 나가라니? 당치도 않은 소리!” “뭐락꼬(뭐라고)? 당당한 이 집 주인?” 정분선은 들고온 주머니에서 뭔가 꺼내더니 쳐들어 흔들었다. “이걸 보라고. 이 집 부동산등록증은 내 이름으로 됐어! 정분선의 집에 왜 중국에서 위장결혼으로 기여든 네년이 살아야 해? 말도 안되는 소릴, 흥! 당장 짐 챙겨가지고 나가라고! 사흘 안에 나가지 않으면 조카들을 불러 쫓아낼테야! 아니, 출입국사무소에 위장결혼한 네년을 신고해 강제출국시킬 거야.” “뭐랍니까?” “길게 말할게 없어. 사흘 안에 이 집에서 조용히 나가면 그간 조카 병시중을 둔 거 봐서 한국에서 살게 곱도록이 놔두겠어. 허나 말썽 일으키며 나가지 않아봐. 강제출국당하지 않는가! 흥!” 정병욱령감 생전에 말을 듣고 간대로 남동생과 조카보다도 그렇게 믿던  시5촌고모가 그러겠는가고 반신반의했었다. 그러나 은자는 더러운 심보를 가진 탐욕서러운 정분선의 진면모를 보아내고 뒤늦게야 섬찍해났다. 며칠 후 정분선로친은 자기 아들과 사위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아니, 이 렴치없는 중국년, 언감 남의 집에 퍼더버리고 앉아 있어? 당장 나가지 못해?!” 은자는 털끝만치도 질겁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맞장을 떴다. “시고모, 당찮은 소리 그만두세요. 남편이 간암말기로 입원해도 낯짝 하나 내밀지 않더니 이제 와서 조카 집을 자기 집이라고 빼앗으렵니까?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처삽니까?” “뭐라고? 이년이 정말 죽자고 환장했어?” 정분선이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세우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그러나 은자는 은자대로 맞받아 도리를 따졌다. “제가 중국에서 시집온 조카댁이라고 너무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이 집은 내 령감 정병욱어른의 집입니다. 정벽국어른이 사망했으니까. 이 집은 당연히 내 집입니다. 괜히 고모와 조카 사이에 법정놀음을 놀지 말고 조용히 삽시다.” “아니, 누가 네 시고모냐?! 넌 내 조카 집을 엿보고 위장결혼한 중국년이야!” “난 정상적인 수속을 하고 정병욱어른한테 재가해 왔습니다. 남을 무함하지 마십시오. 무함죄로 신고하면 큰 일 날줄 아십시오.” “개소릴 작작 치고 당장 나가지 못할가?!” 눈깔을 부라리던 정분선의 아들과 사위는 아예 당장 은자를 칠것처럼 날쳤다. “한매만 쳐봐라! 파출소에 폭행죄로 신고할테야. 한국에도 법이 있겠지.” 그 말에 두 사내는 서로 눈치를 흘끔거리며 망설였다. 정분선로친은 얼리고 닥쳐도 안되자 아들과 사위를 보고 소리쳤다. “관둬라! 괜히 너네 손 더럽힐라! 저년을 출입국사무소에 신고해 강제출국을 시키면 다야! 부동산등록증도 있는데야. 병국이 동생 다니는 파출소에 불법체류자로 신고해버리자. 가자!” 아들과 사위도 은자한테 으름장을 놓고 가버렸다. 은자는 이국 타향에 와서 홀몸으로 무리승냥이떼 같은 놈들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나 결코 무릎을 꿇 그녀가 아니였다. 그녀는 층층계를 탕탕탕 구르며 내려가는 그들의 등뒤에 대고 삿대질하며 고함쳤다. “법으로 할려면 해봅시다. 누가 이기는가. 흥!” 며칠 후에 진짜 파출소의 경찰이 찾아왔다. 문을 탕탕탕 두드리자 은자는 2층에서 아래층 문어귀에 경찰이 온 걸 보고 마지못해 문을 열어주었다. 나이 이슥해보이는 경찰은 계단으로 2층에 헐금씨금 올라오자마자 호통부터 쳐댔다. “아니, 이 녀잔 누구여? 언감 내 형의 집에 들어있어? 어서 나가지 못해?” “형의 집이라니요? 그럼 시동생인가요?” 은자는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난생처음 시동생이라면서 나타난 쉰고개를 훨씬 넘은 중년 사내를 보고 놀랐다. 그 경찰은 가소롭다는듯이 은자를 쏘아보며 거만하게 부르튼 소리를줴쳤다. “시동생? 아줌마, 정신 나가지 않았으면 내 형 집을 내놓고 나가라고요! 이 집은 내가 형한테 사준 거야.” 은자는 오리무중에 빠졌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시5촌고모는 이 집이 자기 집이라고 하던데요.” 후에 알고 보니 그는 배 다른 동생이였던 것이다. 그는 친형이 나이들도록 장가도 못가고 제 노릇을 못하는 바보라고, 낯이 깎인다고 수십년간 거래를 끊고 살아왔던 것이다. 친형이 칠순에 결혼식을 할 때에도, 간암말기로 입원했을 때에도, 장례를 할 때에도 낯짝 한번 내밀지 않던 난데 없는 시동생이 아닌가. 그런데 형한테 집이 있다는 걸 알고 불시에 이 집에 어슬렁어슬렁 기여들어 형의 지을 자기 집이라고 우겨대는 것이 아니겠는가. “뭐? 고모가 자기 집이래?” “예. 며칠 전에 아들과 사위를 데리고 왔더군요.” 시동생은 “고모도 너무해. 어쩜 자기 이름으로 올린 형의 집을 자기 거라고 해.”하고 중얼거리더니 은자한테 한마디 하고 돌아갔다. “아줌마, 이 집은 내가 형한테 사준 집이지. 그 정분선이란 고모네 집이 아니란 말이여. 참 렴치없어.” 은자는 시동생이 가면서 한 그 말에서 피뜩 한가지 계발을 받았다. (시동생과 시고모의 모순을 리용해 먼저 이 집은 정병욱의것이란 걸 증명해야지.) 성호는 은자누나한테서 정병욱령감의 사망가능성과 가옥소유권으로 인한   법정송사가능성을 들은 후 몇가지 조언을 미리 해주었다. 은자는 그때까지도 성호를 어린 남동생으로만 여겼다. 게다가 한국과 중국의 법이 다르다고 성호 말을 흘려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만약 진짜 령감이 사망한 후 가옥소유권으로 인해 법정송사가 벌어진다면 쓸모 있을 것 같아 성호의 조언대로 정병욱령감과 토론한 후 미리 대책을 대두었다. 후에 은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얘, 진짜 정분선이 법정에 정병욱의 집은 자기 것이라고 송사를 걸었어.” “그래 어떻게 됐소?” 은자는 전화에서 법정에서 있은 일을 자세히 얘기했다. 시5촌고모 정분선로친은 파출소와 법정에 리은자는 정병욱과 위장결혼을 하고 한국에 불법으로 입국한 불법체류자이며 정병욱과 합법적으로 결혼한 안해가 아니라고 신고했다. 그리고 정병욱이 림시 살았던 집은 자기가 돈을 대줘 산 것이며 부동산등록증도 자기 이름으로 돼있기 때문에 자기 집이며 위장결혼으로 불법입국한 리은자가 유산상속할 집이 아니라고 하였다. 처음에 파출소에서 긴급출동해 은자를 련행해 심문했다. 그러나 은자는 위장결혼이 아니라 합법적결혼해 입국한 경과를 쭉 이야기했다. 그러자 파출소에서는 은자를 조사해보고 문제없다고 놔주었다. 법정에서는 더 날카로운 공방이 진행됐다. 법정에서 정분선은 자기 이름으로 된 부동산등록증을 증거로 내들어보이면서 정병욱이 살던 집은 은자가 상속할 집이 아니라고 했다.  그 로친은 법정에서 피고석에 앉은 은자를 표독스러운 눈길로 쏘아보며  손가락질했다. “저년은 위장결혼으로 불법입국한 불법체류자예요. 마땅히 강제출국을 시켜야 해요. 위장결혼했기에 정병욱의 합법적인 안해도 아닌데요. 어찌 내가 사준 살림집을 저년이 상속받을 수 있는가요?” 판사는 정분선을 보고 “법정에서 피고의 인격을 모욕하지 말아요. 증거를 제출하십시오.”라고 했다. 정분선은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해 은자를 흘겨보면서 가옥소유증을 변호사한테 넘겨 판사에게 바치게 했다. 판사는 가옥소유증을 죽 세심히 내리훑어보더니 머리를 들었다. “피고는 무슨 근거로 정병욱의 집이라고 주장하는가요?” 은자는 당당히 일어서 답변했다. “그 집은 저의 령감 정병욱이 몇십년 동안 칼을 갈아 아글타글 모은 돈으로 산 집이예요. 다만 최저생활보증금을 타기 위해 잠시 정분선의 이름으로 가옥소유증을 올렸을뿐이예요.” 판사는 허구푼 웃음을 지으면서 은자한테 물었다. “무슨 증거라도 있는가요?” “예.” 은자는 미리 준비한 증명서를 변호사한테 넘겨 판사한테 제출했다. 그것은 은자의 출국비자때문에 성호가 부산에 왔을 때 정분선과 정병욱을 데리고 동사무소에 가서 만든 부동산등록 변경 증명서였다. 판사는 부동산등록 변경 증명서를 자세히 본후 정분선을 보고 물었다. “부동산등록 변경 증명서에 그 집은 정병욱의 거라고 똑똑히 적혀 있구만요. 주민등록증도 첨가됐군요. 법정에서 위증을 하면 처분받는다는 걸 명심하고 사실대로 대답하세요.” 정분선은 입술을 옥물더니 “예. 그때 칠순이 넘는 조카 불쌍해 마누라 얻어주자고 가짜증명을 떼주었어요. 건 가짜증명서예요.”라고 대답했다. 순간 법정안은 소란스러워졌다. “조용하세요.” 판사는 나무망치로 두드리더니 계속 은자한테 질문했다. “원고는 피고를 위장결혼했다고 신고했는데 피고는 합법적인 부부라는 증거가 있는가요?” 은자는 결혼등록증을 제출하고나서 정병욱과 결혼해 살던 일을 간단히 천명했다. 정분선이 성이 나서 은자를 손가락질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아니, 저년이 우리 조카와 며칠 살고 몇억이나 되는 살림집을 차지하려고 그래?” 은자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겐 정병욱령감의 재산상 속에 관한 유서와 육성유언 록음테프가 있습니다.” 법정에서는 은자한테서 유서와 록음테프를 받았다. 록음테프를 틀어놓자 정병욱의 유언이 흘러나왔다.   리은자는 유일한 합법적인 마누라입니다. 우린 비록 함께 산 날은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리은자는 간암말기로 죽어가는 나를 진짜 남편으로 살뜰히 보살폈습니다. 칠순이 넘도록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면서 사람 같잖케 살아온 저는 마누라 은자한테서 안해의 따사로운 사랑을 받았고 인간대접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나는  모든 재산을 마누라 리은자한테 물려주겠습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최저생활보장금을 받기 위해 자기 이름으로 올리라는 5촌고모 정분선의 말을 듣고 그의 이름으로 잠시 올렸을뿐입니다. 전번에 동사무소에 가서 가옥등록 변경을 신청했는데 정분선은 이구실 저구실 대면서 질질 끌면서 변경하지 않았습니다. 이젠 내 안해 은자가 들어왔기에 내 이름으로 변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속였습니다. 이제 내가 죽은 후 5촌고모는 내 집을 마땅히 리은자 이름으로 변경해야 합니다. 내 대신 건사해둔 돈 1200만원도 당연히 마누라 은자한테 넘겨줄 것을 바랍니다…   정분선은 철 같은 육성유언에 그만 눈 앞이 캄캄해나서 제자리에 물앉았다. 판사는 또 은자에게 물었다. “정병욱이 그 집을 살 때 돈 5천만원을 대줬다고 하는데요. 이 일은 어떻게 하면 생각하는가요?” 은자는 미리 생각해둔대로 똑똑히 말했다. “시동생한테 만약 정병욱의 싸인이 있는 차용증이 있다면 이것 역시 그 집은 저의 령감의 돈으로 산 집이라는 것이 반증되는 좋은 증거라고 인정합니다. 또 증거가 충분하면 사 후에 그 돈을 제가 갚도록 하겠습니다.” 판사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정분선을 보고 “원고는 최후진술을 하세요.” 라고 했다. 정분선은 그저 악을 딱딱 썼다. “아니, 억울해 죽겠어요. 그 집이 어떻게 하면 저년이, 불법체류자의 소유로 넘어갈 수 있는가요? 저년을 강제출국을 시켜야 해요.” “그만!” 판사는 나무망치로 딱딱딱 힘있게 두드렸다. “피고도 법정 최후진술을 간단히 하십시오.”  은자는 일어나서 당당하게 말했다. “저와 정병욱은 합법적인 부부입니다. 저의 령감은 생전에 저에게 모든 유산을 몽땅 넘긴다고 유서와 유언을 작성해두었습니다. 판사님께서 한국의 법대로 공정하게 처분하리라 믿습니다. 한국에도 법과 정의가 있겠지요. 아무리 중국출신이라도 시5촌고모의 탐욕스러운 처사는 마땅히 질책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머나 인정머리 없습니까? 저의 령감이 간암말기에 걸려도 병문안 한번 하지 않다가도 그가 사망하자마자 자기 것도 아닌 집을 빼앗자고 날뛰는 시고모가 정말 안타깝습니다. 왜 그렇게 몰인정합니까? 시동생도 그래요. 평소에 형취급을 했습니까? 아니, 사람대접이나 했습니까? 수십년 동안 거래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친형의 장례날에도 오지 않았습니다. 시집온지 몇달도 안되는 제가 혼자 장례를 치러도 여기 앉아 있는 시집식구들이 하나라도 왔습니까? 사체를 내 혼자 이기지 못해 붙들고 울 때 손발 하나 거들어주었습니까? 아무리 배 다른 형제라도, 칼을 갈면서 부산 밑바닥에서 기여다니는 형이라도 그렇죠. 왜 그다지도 몰인정한가요? 으흐흐흑, 흑흑흑…” 은자는 더 말해내려가지 못했다. “에이, 인정머리 없어.” “저 것들도 사람인가?” 법정에서 사람들은 뒤에서 모두 정분선과 정병욱을 손가락질하면서 질책했다… “호호호.” 은자는 전화하며 통쾌하게 웃었다. “네 말대로 미리 대책을 대두었기에 이번 송사에서 이겼어. 집도 내걸로 됐고 정분선은 무함죄와 사기죄, 쥐증죄로 700만원을 벌금했고 유예부 3년 징역에 언도됐어. 정로친이 내 령감 돈 1천 2백만원을 꿔간 것도 법원에 송사해서 끝내 갚게 만들었어. 시동생은 내가 알아서 얼마간 주기로 했어. 차용증이라고  만들어왔더라. 진위를 알기 힘들지만 어쩌겠니? 이번 송사에서 그가 형님한테 돈을 꿔주어 산 집이라고 증명을 서주지 않았더라면 이길 수 있니? 얼마간 줘야지. 원래 우린 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시비와 송사를 해서 잘 이기지 않고 뭐야?” “잘 됐소. 아버지 말씀처럼 ‘빚을 지고 살아도 시비를 지고 못 살지.’ 누난 우리 리씨 집안을 위하여, 아니, 누난 한국에서 중국 조선족들의 기개를 떨쳤소. 하하하.” “덕분에 이젠 철수를 데리고 남 부럽잖게 살게 됐어. 고마워!” 낯선 이국 타향에서 피고로 된 은자가 한국 본토배기 정분선과의 송사에서 이기게 된데는 곡절도 많았다. 처음에 송사에서 피고석에 앉게 됐다고 하자 성숙은 집을 활 주고 나와 꿍꿍 일해 돈을 벌어 살아라고 권고했다. “언니, 괜히 시고모와 맞섰다가 불법체류라고 판결이 나서 강제출국을 당하면 어쩌오? 집이고 뭐고 싹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오오. 날 보오. 불법체류라도 아무 일도 없이 음식점에서 일해 돈을 벌지 않소. 우리 집에 와 있으면서 함께 식당에나  다니기오.” 그러나 은자는 신경질을 쓰며 녀동생이 생각해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얘, 내가 도망치면 정로친이 무함한대로 내가 위장결혼으로 불법입국한걸로 되지 않니? 집은 둘째고 사람이 어찌 빤한 시비를 지고 억이 막혀 살 수 있니? 중국조선족녀자라고 업신여기는 그 로친이 꼴도 보기도 싫어. 난 꼭 송사에서 이겨 무지막지하고 법도 도리도 없는 정로친의 기를 꺾어놓을테야.” 성호도 처음에는 자기도 한국 법률을 잘 모르는데다가 누나가 한국에 갓 가서 아무런 인맥도 없는 낯선 고장에서 송사놀음에 승산이 없어 망설였다. 은자가 어찌나 꼭 시비를 밝혀내고야 말겠다고 하는지. 그 바람에 성호는 정병욱령감과 토론해 정병욱의 살림집을 은자한테 물려준다는 유서와 유언을 작성하라고 귀띔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흘이 멀다하게 구체적으로 정황을 알아보고 일일이 여차여차 하라고 은자를 지도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변호사를 청하자고 해도 시가로 2억 5천만원이나 하는 집문제이기 때문에 돈이 엄청 많이 들어야 했다. 한국에 간지 몇달 되지 않은 은자는 변호사한테 줄 수고비도 마련하지 못했다. 한국의 량심적인 변호사는 “이 사건은 중국동포라고 정분선이 업신여기고 마구 걸고 든 송사입니다. 모든 걸 보면 리은자씨의 집으로 상속받아야 할 집입니다. 변호사료금은 후일 돈을 벌면 주면 돼요.”라고 하면서 법과 정의를 주장했다. 그리하여 은자는 변호사와 성호의 부탁대로 대담하게 법정에 나섰다. 법정 송사가 어디 그리 식은죽먹기처럼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법정공방이 어찌나 치렬했는지 1년 반 동안에 16번이나 휴정했다가도 개정했다. 그러나 마라손식 법정공방에서 은자는 한국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끝내 법률적으로 시비를 밝히고 송사에서 이겼던 것이다. 성호는 내심으로 기뻐하면서도 누나의 신변안전을 당부했다.  “누나, 아무튼 부산에서 홀로 살기에 몸조심 하오. 무슨 보복을 당할지 어떻게 아오?” “알았어. 그까지 참새들이 두려워 할 내가 아니야. 난 참새를 잡아먹는 독수리야. 량심 없이 탐욕스럽게 게걸을 쓰는 한국의 참새들을 전문 잡아먹는 독수리란 말이야.” “누나는 부산에서 훨훨 나래치는 갈매기란 말이요!” 성호는 기뻐 탄복했다. 은자는 고향의 진달래마냥 한국 부산에 뿌리를 박고 힘겹고 외롭게 살면서도 모든 역경을 이겨나가며 자기 삶의 터전을 굳건히 꾸려 지켜나가고 있다. 아니, 진달래꽃의 향연을  한국 부산에 널리 풍기고 있지 않는가!  
227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36) 댓글:  조회:1228  추천:0  2019-09-21
                       66. 실련의 눈동자 심술이나 부리는듯이 시꺼먼 꿀뚝들에서는 시꺼먼 연기가 뭉게뭉게 괴여올랐다. 연기가 안개처럼 자오록이 낀 시내는 앞을 분간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으로 몽롱한 세상이였다. 성호는 연기 자오록한 시내를 내다보며 연화의 불운한 처지를 생각하니 불쌍하기 그지없었고 한숨이 땅이 꺼지게 나갔다. 연화를 눈물로 세월을 보내게 한 사내들을 한바탕 패주고도 싶었다. 동정심이 많은 성호는 연화로 하여금 실련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때때로  사먹이면서 친구해주었다. 나중에 정희가 연화한테 돈깨나 번다는 공장장 로총각을 소개해주어 결혼까지 성사시켜주었다. 연화는 결혼한 후 몇해 동안 련락이 딱 끊어졌다. (무소식이면 희소식이지. 이젠 시름놓았어.) 성호는 속으로 못내 축복해주었다. 어느날 밤에 갑자기 연화한테서 전화가 왔다. “리선생님, 안녕하세요? 엄선생도 잘 계시죠?” “오, 그래. 엄선생 본가집에 가고 없어. 웬 일이요?” “선생님, 전 막 죽고 파요.” “또, 또. 무슨 일이요?” 성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더니 텔레비죤을 꺼버리고 전화를 도정신해 들었다. “선생님, 부끄러운 일이지만요. 제 나그네 남자구실 못해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요? 아들까지 보지 않았소?” “애야 두루 생길수 있지만요. 진짜 살기 애나요. 이제 3십대 중반인데요. 근본 제 구실을 못해요. ” “아니, 그럼 병원에 가서 약을 써야지.” 성호는 연화의 팔자가 가슴아팠다. “병원에 적게 갔는가 해요? 그간 나그네 고개 숙인 기를 살려주려고 모든 노력을 다했어요. 이젠 실망했어요. 나그네도 절망에 빠져서 리혼하고 새 출발을 하라고 해요.” 동정심이 많은 성호는 연화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답답해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선생님, 저의 집으로 올래요?” “이 밤중에?” “제가 목을 매 죽으면 시신이라도 걷어주세요.” “잠간! 전화 놓지 말고 계속 내 말 듣소.” 성호는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들고 대화하면서 문 밖을 뛰쳐나갔다. “연화, 죽을 용기가 있으면 왜 살 용기는 없소?” “감사해요. 저도 괴로우나 서러우나 억지로 참으면서 살아보려고 무등 애를 썼어요. 이젠 세상 사내들 다 보기도 싫어졌어요.” “연화, 멍청한 소릴 작작 하오. 이 세상엔 착한 남자들 많고도 많소. 절대 짧은  생각을 하지 마오. 곧 갈게.” 성호는 층계를 다 내려가자 황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쏜살같이 연화네 집으로  달려갔다. 성호는 4층까지 무슨 정신으로 올라갔는지 몰랐다. 문을 조용히 두드리자 이윽고 문이 열렸다. 연화는 목석처럼 우두커니 서있었다. 갑자기 그녀는 성호를 와락 끌어안고 쓰러져버렸다. “연화, 짧은 생각을 하지 마오. 웬 일이요?” 연화가 무슨 독약이라도 먹지 않았는가 해 훌쩍 안고 침대에 가져다 눕혀놓았다. “뭘 마시진 않았지?” 성호는 정신을 잃은 연화의 얼굴을 손으로 탁탁 쳐놓으면서 소리쳤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야, 이 멍청아, 나그네 구실 못하면 약을 써줘야지. 자살이라니? 무슨 일이냐?’ 성호는 넉두리를 하면서 황급히 손으로 연화의 입을 벌렸다. 식지를 입 안에 쑥 밀어넣었다가 타액을 묻혀 자기 입에 넣어보았다. 씁쓸한 독약이 있는가 우둔하게 맛을 보았지만 쓰거운 맛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주방에 가서 바가지로 물을 퍼왔다. 그는 연화를 안아일으키고 물을 입에 부어넣었다. 연화가 물을 꼴딱꼴딱 받아 넘겼다. “넘기지 말고 뱉소.” 드디여 연화는 왝왝 토해냈다. 성호는 바가지 물을 손에 담아 얼굴에도 마구 쳐댔다. 연화가 뜨거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천천히 떴다. “미안해요, 선생님. 사랑해요.” 그녀는 천천히, 그러나 너무나도 분명히 또박또빡 말하였다. “전 이 세상 남자들이 다 싫어요. 이젠 이 더러운 세상이 염오스러워요. 이제껏 진심으로 아껴준 선생님의 착한 마음 고마워요. 아니, 선생님에 대한 첫사랑을 간직하고 이제까지 살아왔어요. 이젠 더 지탱할 수 없어요. 선생님께 보답해주지 못해 미안해요.” 성호는 연화를 안아 앉히면서 어린애 달래 듯했다. “연화, 제발 짧은 생각을 하지 마오.” “유일한 희망은 선생님인데요. 선생님이 해줄 수 있는 게 뭔가요? 그저 편지로 병문안 밖에 더 할 수 있는가요? 선생님을 무지무지 사랑하는데요. 선생님은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첫사랑인데요.” 연화는 몸을 일으켜 바로 앉더니 두 손으로 성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선생님의 사랑을 가지지 못할바에야 살아서 뭘 해요?” “바보 같은 소릴 작작 해. 난 마흔고개를 넘어선 유부남이야.” “사랑은 나이에 있는게 아니죠. 지적인 사랑이 행복하죠. 착한 마음을 가진 사내 가슴이 제일 따뜻해요.” 그녀는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을 믿어요. 외로워요. 죽고파요. 절 살려 주세요.” 성호는 뒤로 물러앉았다. 련화의 불찌가 튕기는 듯한 눈동자가 두려웠다. 연화는 성호를 와락 끌어안고 뒤로 훌렁 들어누웠다. “이러지 마오. 난 연화 선생이란 말이요.” 성호는 스승의 존엄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다 써서 련화를 떼버리려고 애썼다. 연화의 단말마적인 발악이라고 할가? 미친 듯한 손놀림, 손에 닿는 탄력있고 풍만한 가슴, 뜨거운 키스벼락… 성호는 점점 무기력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맥을 풀며 스르르 쓰러지는 순간 놀랍게도 연화가 벌떡 일어나 성호의 몸을 덮어버렸다. 성호는 느껴본 적이 없는 흥분과 격정을 느껴갔다. 그는 절망에 빠진 연화를 말리기 힘들었다. 스승의 존엄이 산산히 부서지려는 순간 성호는 기적처럼 벌떡 일어나며 연화를 훌 밀어냈다. “안돼! 절대 안돼!” 성호는 대낮같이 환한 전등불빛 아래 어깨를 들먹이는 연화의 절망에 빠진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불륜행위까지 도울 순 없소.” 그는 신발을 주섬주섬 주어 신었다. “꼭 남편을 잘 보신시키오. 그게 가정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요.” “픽! 지옥 같은 이 가정을 지켜 뭘 해요? 밤이 너무나도 길고 두려워요.” 연화는 현관까지 쫓아나와 자물쇠를 절컥 잠그더니 성호의 팔에 매달리며 애원했다. “살려줘요. 둘 다 리혼하고 재혼하자요. 알아요, 선생님이 절 사랑하고 있다는 걸. 엄선생은 선생님의 대가 끊어져도 아들애를 낳아주려고 하지 않고 뭔가요? 아들 하나뿐이겠어요? 둘이라도 낳아드릴게요. 효성을 다해 선생님의 부모를 모실게요.” 성호는 악몽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는 아무런 맘설임도 없이 연화의 손을 치우고 자물쇠를 절컥 열고 나와버렸다. 어쩌면 연화가 파놓은 함정 같은 감도 들었다. 그렇긴 했다. 만약 연화가 자살이라도 했다면 집 안에 들어간 성호는 살인사건의 제1피의자로 되고 말 것이 아닌가. (최악의 올가미로 나를 자기한테 올가매놓으려 해선 안되지.)  순간 연화가 너무 무서워졌다. 집 안에서 연화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도 남잔가요? 어쩜 부처님 상을 해요. 선생님은 꼭 후회할 거예요.” 성호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층계를 탕탕탕 내려왔다. 그때 아래층계로부터 키가 작달막하고 똥똥하게 생긴 사내가 남자애를 업고 올라오다가 이상한 눈길을 보냈다. 연화의 공장장 남편 같았다. 성호는 미안한 감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좁은 생각을 한 연화를 구한 것으로 해 당당했다. 한편, 층계를 내려오면서 남편구실을 못하는 그 나그네한테마저 동정이 갔다. (절대 남의 집에 불이 난 틈에 기여들어 남의 안해마저 훔치는 도적놈으로 될 수 없어.) 그는 희미한 가로등이 줄느런히 걸린 큰 길에 들어서자 핸드폰을 꺼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연화, 미안해. 충고 한마디 하기요. 절대 스승으로서의 내 착한 마음과 동정심을 오해하지 마오. 누구에게나 다 잊지 못할 첫사랑이 있소. 그러나 성공하지 못한 첫사랑은 추억의 마음 속의 창고에 깊이깊이 소중하게 간직해두는 것이 나을 거요. 더 매력적이고 여운이 있소. 그런 첫사랑은 귀중한 빛을 영원히 발산할 거요. 누구나 다 첫사랑을 잊지 못해 구구히 찾아가 첫사랑을 불태우려고 한다면 순박한 사제간의 사랑에 무덤을 파는 거나 다름없잖소? 첫사랑의 금빛 금자탑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매력도 없는 재무지로 변할 거요. 연화, 약을 써봐서 안되면 그 공장장나그네와 리혼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오. 그러나 절대 이젠 날 찾지 마오. 난 성적인 문제마저 도와줄 순 없소. 우리 두 가정에, 량심에 미안한 일을 할 수 없소. 나는 절대 서문경과 같은 불의한 감정도적놈이 되지 않겠소. 부디 완강한 의력으로 모든 역경을 이기고 행복하길 바라오.   연화는 핸드폰을 속치마 밑에 감춰가지고 불청객 나그네 눈을 피해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절망에 빠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동자로 그 문자를 보고 또 보다가 핸드폰을 얼굴에 대고 비비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구실을 대지 말아요. 언제까지라도 잊을 수 없는 첫사랑 당신을 기다릴 거요. 흐흐흑, 흑흑흑.” 성호는 절망에 찬 연화의 눈동자에 슬픔과 절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이제껏 그 실련의 천진한 눈동자가 삶의 희망과 희열로 빛나게 하려고 무등 애를 썼다. 자기 실련한 과거사를 둘춰내 얘기해주기까지 하면서 새 출발을 하도록 인도해주었다.   광고에 눈코뜰새 없이 보내면서도 친구처럼, 아니, 련인처럼 그녀가 즐겨 먹는 해물점에도 가서 대접하면서 삶의 희열을 느끼게 해주었다. 또 나이트클럽에도 데리고 가서 함께 춤도 추면서 삶의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련화는 실련한 녀제자에 대한 스승의 순박한 사랑에 먹칠을 하려고 허둥대지 않았는가. 심지어 성동반자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녀는 눈길마저 변했다. 이젠 옛날 천진란만한 처녀의 눈동자가 아니다. 예술을 사랑하고 무용수를 동경하던 리상이 있는 처녀의 눈동자가 아니였다. 성호는 고통스러웠다. 자기가 그렇게 아끼던 녀제자의 기구한 운명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옳은 삶의 길로 나가도록 위안해주고 보듬어주고 인도하던 스승을 뭐로 만들려고 하는가? 성호는 연화가 변질돼가는 것 같아 가슴을 저며내는듯이 아파났다. (어떻게 하면 연화를 옳바른 길에 들어서서 행복하게 살게 할 수 있을가?) 그때 핸드폰에 메시지 오는 소리가 들렸다. 성호는 연화의 메시지라는 것을 짐작하고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이윽하여 혹시 또 자살소동을 일으킬가 봐 마지못해 열어보았다..   리성호, 선생님은 위선자예요. 스승이란 허울을 벗어버리세요. 그래, 성호는 칠정 륙욕도 없는 목석인가요? 허수아빈가요? 어쩜 입 안에 들어간 고기마저 뱉어버릴 수 있는가요? 당신도 남자인가요? 혹시 우리 집 공장장처럼 남자 구실을 하지 못하는 병신은 아닌지요?   성호는 그 메시지를 보고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뒤이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오해하지 마오. 나는 실습교원으로서 실련에 빠진 녀학생을 구했을뿐이요., 환자나그네를 만나 절망에 빠진 채 자살까지 하려는 한 녀인을 구하려는 스승의 의무를 했을뿐이요. 아니, 최저한도의 인도주의 책임을 다했을뿐이오. 나한텐 아무런 미련도 가지지 마오. 새로운 상처를 입을가봐 근심되오. 하루속히 절망과 기로에서 헤매지 말고 참다운 인간으로 돼 새 삶을 살 것을 간절히 바라오.   연화한테서 인차 메시지가 날아왔다.   이미 새 상처를 주었는데요. 한 녀인이 마음 속에 깊은 상처를 받고 절망에 빠졌는데요. 건져주지도 않고 치료도 해주지 않는 그런 몰인정한 인간도 있는가요?   성호는 인차 메시지를 보냈다.   인간은 육체적인 사랑보다 정신적인 사랑이 더 고상하다고 보오. 육체적인 사랑은 동물적인 본능에 지나지 않는 저급적인 사랑이오. 딱 육체로 교제해야 사랑이라고 보오? 어떤 사랑은 천리만리 떨어져 있어 한평생 몇번 만나지도 못했지만 시간과 공간을 뛰여넘어 영원한 사랑도 있소.   호호호. 물론 정신적인 사랑으로 끝날 수도 있어요. 육체적인 사랑은 정신적사랑의 고조이며 승화라는 걸 몰라요? 온몸이 바르르 떨리고 허공에 붕 뜨는 감을 느끼고 미칠듯이 황홀한 육체적인 사랑을 떠나 영원한 정신적사랑을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유치한가요?  제가 어디 세살짜리 소녀인가요?   연화와 더 할 말이 없구만. 나는 정희와의 순결한 사랑에 먹칠하고 싶지 않소. 또 신성한 교원의 얼굴에 먹칠까지 하면서 그런 “저급적인 사랑에 빠질 수 없소. 더우기  행복한 가정을 깨면서까지 연화와 저급적인 취미에서 놀아날 수 없소.   성호는 숱한 남자들을 지내본 한 녀인을, 정조가 풀린 기구한 운명을 가진 연화를 더는 동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최저한도로 가정을 지키고 스승의 존엄을 지켜야 했다. 연화의 신성하고 참된 사랑을 위해, 앞날의 행복을 위해서는 그렇게 무정하게 해야만 했다.   연화의 문자메시지는 끝이 없었다.   리선생은 진짜 다채로운 현시대 리몽룡이군요. 누가 리선생한테 기념비를 세워줄 거 같애요? 현시대 바보!   “아니, 이건 정희 메시지가 아닌가?”   잘했어요, 한나 아버지. 진짜 내 랑군답군요. 정조관념이 산산히 깨지고 저급취미에서 놀아나는 녀자를 동절할 게 없어요. 여기저기 쓸데 없는 동정과 인정을 쏟아버릴 게 있나요? 그 정력이면 부모한테 효성을 더 하고 처자들을 더 생각해주겠어요. 그런 녀자들과는 무정하게 관계를 끊어야 해요.   성호는 뒤잔등에 식은 땀이 쪽 돋았다. (정희가 어떻게 우리 주고받은 메시지를 다 보았단 말인가?) 이윽고 정희의 파랗게 질린 외씨얼굴 뒤에 첨단통신기술을 연구하는 가시아버지 엄숙한 얼굴이 서서히 겹치면서 떠올랐다. 성호는 무릎을 탁 쳤다. “아차!” 그는 온몸에 소름이 쪽 끼쳤다. (장인님, 그대의 감시대상은 제가 아니라 깡패들인데요. 이젠 그 첨단도청기술을 공안기관에 넘길 때도 된 것 같군요.) 성호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과하기술이 폭발하는 현시대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그가 집으로 돌아와보니 정희가 쏘파에 앉아 텔레비죤을 보고 있었다. “랑군님 오셨군요.” 정희는 전에없이 현관까지 마중 나와 포옹하며 뽀뽀까지 뽁뽁 해주었다. 성호는 정희를 밀어놓으며 침실로 들어갔다. “당신, 정말 장해요.” 성호는 정희가 아양을 떨면 떨수록 역겨워 코웃음치며 침대에 털렁 들어누웠다. 정희는 성호의 곁에 나란히 누워 목을 끌어안고 다정하게 말했다. “이젠 모든 짐을 다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우리 가정이나 잘 꾸리자요. 부모께 효성을 다하고 한나를 잘 키우면서 잘 살아보자요.” 성호는 정희를 밀어내면서 뿌루퉁한 소리를 했다. “사람을 그렇게 믿지 못하고서야 어찌 화목하게 살 수 있소? 첨단과학기술까지  동원해 남편을 감시하다니?”
226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35) 댓글:  조회:1352  추천:1  2019-09-14
                                   65. 출렁이는 꽃서울 별들이 깜빡이는 밤에 명선은 동료 서넛과 함께 강릉의 지긋지긋한 건설현지에서  탈출해 서울에 들어섰다. 오색령롱한 불야성을 이룬 꽃서울의 야경은 진짜 황홀하였다. 깜빡이는  연분홍불빛은 외로운 나그네들의 마음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야따, 술집에 가서 한잔 마시자.” 한 마을에서 온 정호가 고함치자 종길도 맞장구를 쳤다. “맞어. 볼게 있어? 푹 마시고 보자.” 명선은 별로 술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별수 없이 술집에 묻어들어갔다. 명선은 지금도 한해 전에 밀입국하던 일을 생각하면 머리끼 곤두설 지경이였다. 그는 정호와 종길과 함께 야밤삼경에 한국 보스를 따라 대련 교외 해변가 어촌으로 갔다. 해진 검푸른 바다는 파도가 세차게 출렁이며 공포를 몰아왔다. 그들은 조마조마해 사처를 살피며 발판을 타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작은 기동어선에 올랐다. 한국 보스는 저금통장을 내밀었다. “비밀번호를 대라고.” 명선은 어이없었다. “아니, 아직 한국 땅을 밟지도 못했는데 비밀번호부터?” 한국 보스는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허허허. 누가 선전도 안 받고 한국에 데려다줘?” 명선은 눈이 데꾼해졌다. “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돈만 떼울게 아닙니까?” “절대 그럴 수 없어. 저희 함께 배 타. 담보하고 한국 땅에 건네 줄테니까. 근심말라고.” 그제야 그들은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보스는 핸드폰으로 자기 짝패들한테 비밀번호를 알려주면서 “입금되는대로 메시지 보내.” 하고 지껄였다. 명선은 종길과 정호한테 한어로 말했다. “보스를 놓치면 끝장이야.” “이 놈을 딱 붙잡고 한국까지 가지 뭐.” 한국 보스는 입금이 확인되자 진짜 어선에 올라타는 것이였다. 그제야 명선이네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어선은 어둠을 타 똑딱거리면서 서서히 검푸른 파도가 사납게 치는 대련 항만을 빠져나갔다. 반디불 같은 어촌의 전등불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어선은 파도가 사납게 이는 시꺼면 바다에 들어섰다. 처음 먹물을 퍼부은듯이 시꺼멓고 끝없는 바다로 나간 광산이네는 갑판에 서서 공포에 떨었다. “여보세요. 추운데 선창에 들어가 술이나 마십세. 술 마시고 한잠 푹 자면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어.” 그들 넷은 선창에 들어가 물고기 생회 한사발을 달랑 올려놓은 나무상자에 둘러앉았다. 한국 보스는 술병을 들어 사발에 부어놓았다. 의심이 많은 정호가 한어로 중얼거렸다. “술에 몽혼약이라도 탔는지 어떻게 알아?” “보스가 먼저 마시면 마시지.” 명선의 말에 한국 보스가 희죽이 웃었다. “좀 웃기지 말라고. 내 먼저 마시지.” 원래 한국 보스는 중국통이여서 한어를 다 알아들었던 것이다. 한국 보스가 술사발을 들어 꿀꺽꿀꺽 마시자 모두 허허허 웃으면서 마시기 시작했다. 한국 보스는 술이 얼근하자 말이 많아졌다. “당신들, 사람 믿어야지. 절대 어진 농사군들의 돈이나 뜯어먹고 사는 놈 아니야. 난 한국에서도 잘 나가는 보스 박기철이야. 이제 내 소개한 건설업체에 가면 진짜 한달에 100만원은 벌어. 인민페로 6천여원이면 어딘가? 한달에 중국 한해 농사 절반 벌면 안돼?” 90년대 초에는 6천원이면 천문수자였다. 그들은 술을 폭 마셨다. 뒤이어 긴장과 공포가 스르르 풀리고 대신 목돈을 거머쥘 희망과 피로가 반죽돼 몰려들었다. 밤도 깊었는지라 그들은 세찬 파도에 몸부림치는 선창에 내려가서 새우잠에 곯아떨어졌다. “어서 상륙준비하라고.” 보스의 소리에 명선이랑 화닥닥 일어났다. 푸르른 바다 상공이 희붐이 밝아오고 있었다. 어선은 어느새 한국 해만에 이르렀다. 이때 저쪽에서 쾌속정 한대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쏜살같이 덮쳐왔다. “해경선이야! 어서 랭장고에 들어가 숨어!” 보스의 다급한 소리에 명선은 황급히 커다란 물고기랭장고 안에 달려 들어갔다. 종길은 커다란 플라스틱물통을 엎어 물을 와르르 쏟아버리고 그 안에 기여들어가 몸을 숨겼다. 정호는 부랴부랴 물고기통 안에 들어갔다. 해경선에서 헤드라이트가 새벽 푸른 바다를 누비며 덮쳐왔다. “선장은 들으라. 어선을 멈춰세우라. 상선인원은 몽땅 손을 위로 쳐들고 갑판에 나오라.” “만약 숨긴자가 있으면 용서하지 않는다!” 경비정의 확성기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 명선이랑 어쩔가 망설였다. 그때 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둘 밖에 없시우.” “새벽에 뭐 한다고 나왔는가?” “우리 어부들이야 어디 밤낮을 가릴 새 있시우? 물고기를 잡아야 연명하지요.” “기다려! 수색해야겠어.” “마음대로 하시우. 괜히 남의 고기잡이를 방해하지 말라우.” 드디여 경비정의 엔진소리와 물을 헤가르는 소리 점점 다가왔다. 물통을 뒤집어쓰고 숨은 종길은 심장이 두근두근 높뛰였다. 랭장고 안에서 명선은 추운 것보다도 한국행이 물거품으로 돼 몇만원을 떼울가봐 눈 앞이 캄캄해났다. 경비정이 멈춰서더니 해경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선장은 누구야?” “전데요.” “아니, 배 모는 사내를 묻는 거야.” “오- 그 사람 벙어린데요.” 중국인 선장의 반벙어리 소리가 들렸다. “고길 얼마 잡았어?” “얼마 잡지 못했는데요.” 해경들이 갑판에 뛰여올라오는 소리인 것 같았다. “끝장났구나.” 해경들은 어선조타실에 들어가 여기저기 들췄다. 명선은 숨을 딱 죽이고 귀를 도사렸다. 이윽고 해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민신분등록증을 휴대했지요?” “네.” “조타수는?” “어어, 어어.” “벙어리여서 말이 통 통하지 않는군. 이후부턴 주민신분등록증을 꼭꼭 가지고 와요.” “어어.” “새벽에 고기잡일 하지 말아요. 여긴 NLL과 가까워서 통제구역인데요. 번마다 왜 여기 와서 고기 잡아요? 안전에 주의하세요.” “예. 고맙습니다.” 부르릉 부르릉. 경비정 엔진소리가 멀어져갔다. 그제야 명선이랑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였다. 한참 후 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나오게나.” “어, 살았다.” 명선은 랭장고에서 나와 희붐히 밝아오는 동녘하늘과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였다. 보스 박씨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 빈정거렸다. “혼났지?” 종길은 솜옷에 묻은 얼음쪼각을 털어버리면서 두덜거렸다. “남은 심장이 다 밖으로 터져나올 번했는데 웃습니까?” “이런 일 한두번 겪은 거 아니야. 겁쟁이들이라구야!” 명선은 어선을 둘러보면서 이상해 물었다. “해경들 눈깔이 멀었어. 중국 어선도 발견하지 못해?” 박씨는 어선에 바꿔댄 한국 어선 번호판을 가리켰다. “중국 바다에선 중국 어선, 한국 바다에 들어서면 한국 어선이지. 이젠 저 해경들도 날 면목 알고 있어.” 드디여 어선은 천천히 한국 어촌 해변가에 닿았다. 박기철은 주의를 주었다. “이젠 한국 땅에 왔어. 다 잘 살자고 하는 노릇이잖아. 천신만고 끝에 왔다가 불법체류 딱지 딱 붙어 잡혀가면 얼마나 억울해? 이제부터 주의해야 해. 내 소개한 건축현장에 가서 시키는 일이나 꼽싹꼽싹 해. 누가 신고하면 강제출국당한단 말이야. 알았어?” “예, 알았습니다.” 명선 등은 박씨를 따라 도적고양이들처럼 어선에서 내려 한국 땅에 살금살금 첫발을 들여놓았다. 그들은 박씨를 따라 처음에는 한국 강원도 강릉에 가서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그런데  불법체류자라는 리유로 한국인들의 기시와 갖은 릉욕을 다 받아야 했다. 명선은 경남이 또래 한국 애들한테 수모를 당하는 것이 제일 자존심에 허락되지 않았다. 한씨라는 한국 청년애가 제일 밉게 놀았다. 고되게 일하고 맥이 없어 쉼에 엉덩이를 붙이고 좀 쉬려고 할 때마다 죄꼬만 애가 별 심부름을 다 시켰다. “야, 담배 좀 사와!” “야, 물 좀 퍼와!” “이 떨거지야, 삽 주어 와!” 성이 꼭뒤까지 치민 명선은 죄꼬만 새끼를 한대 갈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보스 박기철의 말이 떠올라 그만두군 했다. “건축현지에서 시키는 일이나 꼽싹꼽싹 잘하라고. 안 그러면 누가 신고하면 강제출국당한단 말이야. 알았어?” (그래, 참아야지. 어떻게 하나 출국수속비를 다 물 때까진 참아야지.) 그렇게 2년 동안이나 참았다. 그간 건축현장에서 일해 겨우 출국수속비를 벌었다. 명선은 로임을 타자마자 정호와 종길과 짜고들었다. 그들은 한씨를 보고 술 사주겠다고 꾀여 음식점으로 데리고 갔다. 음식점에 가서도 한씨는 종놈을 부리듯 하려고 들었다. “거지새끼들 술 따라!” “누굴 거지라고 해?” 명선은 벌떡 일어나 단통 한씨의 멱살을 잡고 골받이를 떵 해놓았다. 한씨의 낯이 단통 쥐장마당이 돼버렸다. “떨거지새끼, 감히 손을 대?” “개새끼, 주먹 맛 좀 봐!” 종길과 정호까지 합세해 한씨를 죽탕이 되게 치고 밟아주었다. 한국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들자 명선이랑 음식점에서 허둥지둥 도망쳐버렸다. 그들은 그 길로 서울로 뿔뿔이 도망쳤다. 그들은 서울에 올라와서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 한 보름 풍찬로숙하면서 지냈다. 보스 박기철을 다시 찾을가 하다가도 그만두었다. 그의 당부를 어기고 한씨를 패놓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필경 박씨와 강릉의 건축회사의 사장은 서로 아는 사이여서 뒤끝이 좋을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서울 주변 기중기가 매달린 건축현장을 보기만 하면 무작정하고 찾아가  일을 시켜달라고 했다. 여러 건축현장을 찾아다니다가 끝내 한 건축현장에서  일하게 됐다. 빚도 다 갚고 한달에 한화로 200여만원씩 벌게 되자 사내들의 마음이 이상하게 싱숭생숭해났다. 본능이라고 할가, 굶으면 밥을 먹듯이 젊은 지하철에서 녀자들만 봐도 가슴이 뭉클 하는 것이 이상야릇했다… 중국 땅에 남아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살던 성숙은 어쩐지 남편이 간지 오래되여  그리워났다. 또 혹시 남편이 기생집이랑 많은 서울에서 외도나 하지 않는지 근심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꿈에 남편이 새파란 외간녀자들과 희희닥닥거리는 장면이 나타나군 했다. 그녀는 앓는 본가집 아버지를 병문안하러 왔다가 형제자매들 앞에서 남편이 근심스러워 울고 불고 했다. “나도 한국에 가야겠어. 남편도 없이 혼자 농사짓기도 힘들지. 경남도 이젠  대학에서 색시감을 얻어놨지. 경춘도 대련외국어학원에 갔지. 내 무슨 혼자 농사를 지으면서 개고생하겠어.” 성숙이 두덜거리는 소리에 성호는 “경남의 녀자는 잘 이쁘오?” 하고 물었다. “응, 순선이라고 부른다는데 경남과 한 학급 동창생이래. 대학교 문예위원인데 춤도 잘 추고 꽤 이쁘게 생겼더라. 경남은 뽈도 잘 차고 체육위원을 하다나니 서로 눈이 맞았대. 그런데 경남보다 한살 이상이란다.” 성호는 개의치 않았다. “사랑에 뭐 나이 문제요. 처녀 좋으면 좋지.” “같은 김해 김씨란다. 다 쒀놓은 죽인데 이제 무슨 방법이 있니?” 전통을 중시하는 성호도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성숙은 아들과 며느리감 자랑에 잠시나마 남편 근심을 잊은 것만 같았다. “지금 애들은 부끄러운줄도 몰라. 여름방학에 처음 우리 집에 왔다가 어쩜 시퍼런 대낮에 그 짓을 하니? 에미 정지에 있는데 뒤방에서 그 짓이람? 너무 아짜아짜 해서 집에서 훌 나가 버렸어. 참, 우스워 죽겠다.” 성호는 그저 희죽이 웃었다. 영옥은 듣다가 웃기는 말을 했다. “무슨 일이 있니? 결혼하기 전에 애를 가지면 좋다더라.” “경춘이 좀 문제요.” “어째?” 성숙은 궁금해 쳐다보는 성호를 보고 말했다. “글쎄 한 학급에 다니는 한족녀자앤지 일본녀자앤지 친하는 모양이더라. 사진을 보니 곱긴 곱더라.” “에이유, 애들 서로 좋아하면 다지. 지금 부모들이 어디 애들 혼인을 결정할 수 있니?” “엄마는 그저 외손비들이 귀해 뭐나 다 좋다고 합구마. 전통혼인관이 다 무너지면 우리 후대들이 뭐 되겠는지 모르겠습구마. 어쩜 부모들과 사전에 토론도 없이 아무 애들하구 사귄단 말이요?” 성호의 말에 성숙은 대수로워하지도 않았다. “저네 좋으면 다지. 애들 일을 너무 간섭해도 좋지 않지. 봅소. 둘째언니네 정춘의 혼인을 너무 간섭하더니 어떻게 됐습둥? 할빈 그 조선족녀자 얼마나 좋았습둥? 그런데 상해녀자와 결혼하지 않았습둥? ” 영옥은 성숙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상해처녀 너무나 곱더구나. 쯧쯧쯧.” 성호는 이전에 둘째누나가 정일 때문에 고민하던 일이 떠올랐다. 춘자는  둘째아들의 색시는 꼭 조선족녀자를 얻어주려고 대학교 때 동창생의 딸을 정일한테 붙여놓았다. 길림사범대학을 졸업했는데 키도 1. 60메터도 넘고 꽤나 곱게 생긴 대학생처녀였다. 처녀애는 량부모의 소개를 받고 상해에 있는 정일의 세집에까지 찾아갔다. 정일과 처녀애는 서로 만나보고 한 집에서 동거했다. 세상에 이상한 일도 다 있었다. 거의 한달 동안이나 한 침대에서 누워 잤지만 정일은 근본 처녀애의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였다. 춘자는 처녀애 어머니한테서 그 말을 듣고 혹시 정일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지 않는가고 걱정했다. 성호한테 어쩌면 좋겠는가는 자문까지 한 적도 있었다. 후에 알고 보니 정일은 그 처녀애가 비록 대학졸업생이지만 너무나도 무지해서 장차 후대를 제대로 교양할 것 같지 않아 아예 다치지도 않았다고 하였다. 진짜 현대판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처녀총각이 한달동안 한 집에서, 그것도 한 침대에서 자면서 그런 일을 한번도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일은 현실로 존재하였다. 참말 정일은 정직하고 참된 총각이였다. 성숙은 어머니 주름살이 조글조글한 손을 잡고 간절히 말했다. “엄마, 한국에 언제 갈지 모르겠는데. 우리 집에 가깁소. 이제 막내딸이가면 언제 엄마를 보겠습니까?” “저 앓는 아버진 어쩌느냐?” 정희가 나섰다. “제가 잘 모시겠어요. 근심하지 말고 바람 쏘이러 갔다 오세요.” 성호는 엄마한테 나직이 말했다. “엄마, 자꾸 여길가? 저길가? 하지 맙소. 그저 막내며느리를 믿고 여기 꾹 눌러 있습소. 괜히 아무데도 지긋이 있지 못하고 떠돌이를 하지 말고.” “괜찮아. 우리 집에 영 모셔가는 것도 아니고 엄마도 좀 숨을 돌리고 좀 좋아?” 성숙은 기어이 팔순고개를 바라보는 엄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단연히 한국행을 결심하고 여기저기 출국수속을 수소문했다. 두달 후 끝내 수속비 6만원을 낸 후 다른 녀성의 얼굴과 이름을 빌어가지고 한국으로 떠나게 됐다. 어머니를 모시고 성호네 집에 들어선 성숙은 성호를 붙잡고 대성통곡쳤다. “내 꿈이 맞았다. 한국출국수속이 됐다고 우전국에 가서 나그네한테 전화했더니 뭐겠니. 나그넨 ‘한국에 나와 뭘해?’ 하고 퉁명스럽게 내쏘지 않겠니? 남 같으면 좋아서 어서 나오라고 하지 않겠니? 두번째 전화했을 때는 아예 전화를 받지도 않더라.” 성호는 성숙을 위안해주었다. “누나, 괜히 매형을 의심하지 마오. 한국에 가서도 싸우지 말고 맞들고 벌어서 양로비나 준비하오.” 성숙은 눈이 데꾼해졌다. “양로? 언제 양로준비를 다 할 새 있니? 당장 결혼할 황소 같은 아들 둘을 어쩌고? 집을 마련해야지. 혼수준비도 해야지.” 순간 성호는 작달막한 막내누나의 가냘픈 두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상상하고 누나 불쌍했다. 성숙은 심양에서 비행기를 타고 처음 한국 인천국제공항으로 날아갔다. 남들은 출구에서 부부가 만나 얼싸 안고 춤을 출 지경이였다. 그러나 성숙은 위장신분증이 들통날가봐, 출입국검사에 통과하지 못할가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검사를 마치고 출구로 나갔다. 우두커니 서있던 명선의 얼굴에서는 반기는 표정을 찾아볼 길 없었다. 대신 볼멘 소리부터 했다. “한국에 나와 뭘 해? 괜히 성가시게.” “아니, 마누라 나오면 좀 좋아 그래? 손을 맞잡고 돈을 벌어 며느리 둘을 삶으면 좀 좋아서?” 성숙의 말에 명선은 짐을 챙기며 두덜거렸다. “당신 나오는 바람에 세집을 잡아야지, 이것저것 갖추고나면 뭐가 남는다고 그래?” 오랜만에 만났으나 찬밥신세였다. 다정하게 손 한번 잡아주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성숙은 애써 그런 의심을 떨쳐버리려고 무등 애썼다. 오랜만에 만난 부부면 당연히 첫날밤이 화끈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명선은 세집에서 끌어안는 성숙을 밀쳐내더니 훌 돌아누워 코를 드렁드렁 고르며 자는 척하였다. 이튿날 남편이 건축현장에 나간 후 성숙은 세집을 청소하고 짐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금목걸이를 발견했다. 꽤나 묵직하고 실한 금목걸이였다. (이건 뭐야? 날 주자고 산 걸가? 그래, 이제껏 아들 둘이나 낳아 기르면서  고생했건만 금반지 하나 사준 적이 있나?) 성숙은 제나름대로 좋은 생각하면서 금목걸이를 건사하려고 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어마나, 핸드폰을 두고 갔군.” 성숙은 핸드폰을 찾느라고 남편이 전화 하는가고 받았다. “여보세요? 사랑해요. 명선씨, 뭘 해요? 호호호. 와이프 온다더니 벌써 푹 빠졌는가요? 왜 요즘 저를 찾지도 않는가요? 벌써 잊었나요?” 젊은 녀성의 목소리였다. “아니, 뭘? 누굴 찾소?” “아, 아니예요. 잘못 걸었어요. 미안해요.” 그 녀성은 인차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떤 년일가?” 성숙은 다시 그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다. “야! 네 누군데 내 남편한테 전화를 걸어? 개쌍년이, 네년을 모를 거 같애. 바다 밑에 가서라도 가랭이를 찢어놓을테야!” 그녀가 욕설을 퍼부어도 상대방은 듣기만 하다가 이윽고 전화를 꺼버렸다. 성숙은 남편이 부쩍 의심이 들어 세집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옷호주머니랑 이불이랑 서캐 훑듯 했다. 허연 이불 안에서 길다란 커피색머리카락이 나왔다. “이놈 나그네새끼, 진짜 그 년과 살았구나.” 화장실에 나가 쓰레기통을 들추다가 월경대를 발견했다. 성숙은 기 딱 막혔다. 자기는 그게 간지 몇해 되지 않았는가. “더러운 나그네새끼, 진짜 젊은 화냥년 맛보았어? 그러게 오랜만에 만난 조강지처도 랭랭하게 대했지.” 저녁에 명선이 돌아오자 대판 싸움이 붙었다. 성숙은 핸드폰을 활 팽개치면서 걸고들었다. “더러운 나그네새끼, 서울에 나와서 잘했구나. 나보다 퍽 젊은 년을 끼고 실컷 살았지? 엉?” 그녀는 명선의 멱살을 틀어쥐고 대성통곡치면서 야단쳤다. “뭐 어째 그래?” 꺽다리 명선은 작달막한 안해한테 쥐여흔들리면서 핸드폰을 빼앗다 싶이 채다가 꾹꾹 눌러보았다. “무슨 큰 일 났다고?” 명선은 철면피하게 가랑잎을 들어 자기 눈을 가리고 “야옹”했다. 서울에 나와 몇해 있더니 제법 능청스레 연극을 놀줄도 알았다. “모를 전화구만.” “뭐? 모를 전화?” 성숙은 철면피하고 허위적인 남편을 손가락질하며 욕했다. “모를 사람이면, ‘사랑해요, 명선씨. 뭘 해요? 와이프 온다더니 벌써 푹 빠졌는가요? 왜 요즘 저를 찾지도 않는가요? 벌써 잊었나요?’ 이러겠소? 로실히 말해. 그 녀자와 언제부터 살았어?” 명선은 승인할 리 없었다. “몰라. 왜 제 남정 이렇게 의심해?” 성숙은 피씩 코웃음쳤다. “의심하지 않게 생겼어? 집에서도 이상한 감촉이 오더라. 자꾸 꿈에 웬 젊은 녀자가 너하고 다니는 게 떠오르더라. 30대 초반 키도 크고 예쁜 녀자더라. 너 정말 소원성취했겠다. 작달막한 녀자를 데리고 살다가 키도 훤칠하고 예쁘고 새파란 녀자 얻어 별재미 다 봤겠지. 이 세집에서 밤낮 딩굴었지?” 명선은 제쪽에서 억울하다고 씩씩거리며 맞장을 떴다. “왜 이래? 서울에 와서 리혼이라도 하려는 거야? 당신 신경이 좋지 않구만. 전화 한통 때문에 생사람을 잡아먹을 예산인가?” “리혼하면 했지. 두려워할 것 같애? 혼자라도 얼마든지 살 수 있어.” 명선은 한발작 물러섰다. “싹 걷어치워. 이제 며느리 삶아야겠는데 리혼은 무슨 리혼이야? 자식들 뭐라겠어?” “당신도 자식 생각할 때 있어? 이걸 봐?” 성숙은 건사해둔 길다란 커피색머리카락을 쳐들어보였다. “이건 뭐야? 분명 젊은 녀자 커피색머리카락이 아니야?” 명선은 그래도 발뺌을 하려고 들었다. “쯧쯧쯧, 정신병 해도 한두가지 아니구먼. 어디서 그런 머리카락 주어다 야단이냐?” “그래도 내 생사람을 잡는가? 어서 말해봐. 경과를 로실히 말하고 처자들의 처분을 기다려.” “세집에서 작작 떠드오.” 명선은 세집 창문을 닫아걸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한국인들이 동네 복잡하다고 신고하는 날엔 둘 다 강제출국당한단 말이요. 숱한 돈을 팔고 왔다가 어째 본전도 못하고 쫓겨갈 작정인가?” 그제야 성숙은 그만두었다. 그녀는 금목걸이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명선이 어쩌는가 두고 볼 심산이였다. 이튿날 건축현장에 나가려고 할 때 성숙이 손을 내밀었다. “당신, 핸드폰을 두고 가오.” “왜?” 명선은 눈이 데꾼해졌다. “또 그년과 련계 있는가 봐야겠소.” “관두오. 팀장과 련계해야 일하겠는데 핸드폰 없이 어떻게 해?” 성숙은 핸드폰을 가지고 가는 명선을 더 붙잡지 않았다. “저런 나그네를 보자고 숱한 돈을 팔고 한국에 왔어?” 그녀는 세집에서 섧게 울었다. 애들이 아니면 당장 리혼하고 싶었다… 몇해 후 성호는 관광하러 한국으로 날아갔다. 그는 제주도와 경주, 대구를 거쳐 서울에 도착했다. 성호는 막내누나네 집에서 무슨 일이 생긴지도 모르고 몇해만에 매형과 누나를 서울에서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레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간 날이 장날이라고 대살 같은 소낙비가 창창 쏟아졌다. 성호는 춤추는 꽃서울에서 홀로 안양으로 찾아가려고 나서니 모든 것이 어려웠다. 압구정에서 3호선을 타려고 했는데 지하철이 어찌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늘어섰는지 분간하기조차 어려웠다. 게다가 핸드폰도 없어 누나, 매형과 제때에 문의하고 갈 수도 없어 진짜 답답했다. 그는 술병이랑 약이랑 명태랑 넣은 무거운 트렁크를 촌스럽게 끌고 여기저기 물어서야 겨우 용산역에 가서 1호선을 탔다. 지하철에서 여기저기서 커다란 트렁크에 우산까지 들고 오른 중국인 성호를 기시하는 차디찬 눈길이 얼굴을 따겁게 찔렀다. 성호는 코웃음이 픽 나왔다. 안양역에서 내렸지만 누나네 집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성호는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역광장을 내다보노라니 눈 앞이 캄캄해났다. (매형이 집에서 쉰다니깐. 핸드폰만 있으면 련계하면 되겠는데.) 그는 역출구에 서서 역대합실 여기저기를 살폈다. 공중전화를 찾아야 했다. 혹시나 해 지나가는 숱한 한국인들과 “공중전화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나 말투만 들어도 중국인인 것을 알아차리고 차디찬 눈총을 보내면서 대답도 하지 않았다. “뭐? 이러고도 한국이 례의지국이라구? 흥!” 성호는 별수없이 행인들과 묻기를 포기하고 두덜거리면서 짐을 끌고 역대합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샅샅이 살폈다. 진짜 아는 도적질은 해도 모르는 도적질은 못한다는 말이 맞았다. 숱한 행인들이 붐비는 대합실에서 어디 꼭 공중전화가 있으련만 안타깝게도 찾지 못했다. 그는 맥을 버리고 역 출구에 서서 멍하니 억수로 쏟아지는 소낙비를 내다보았다. “요놈의 짐만 없어도 우산을 들고 바깥에 공중전화 있는가 찾아보겠는데.) 참 안타깝기만 했다. 그때 성호는 옆에서 숱한 물고기드럼을 쥐고 팔면서 서성거리는 한 아줌마한테 시선이 멈춰섰다. (순박해보이는 저 아줌마는 알려주지 않을가?)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그 아줌마한테 물었다. “아줌마, 공중전화 어디 있는지요?” 성호는 극력 조선족이라는 렬등감을 감추려고 한국말씨를 흉내냈다. 그러나 아줌마의 귀를 속이지 못했다. 아줌마는 성호의 아래우를 훑어보면서 피씩 웃었다. “중국 교포 아닌가요?” “예, 맞아요. 공중전화로 매형을 찾아야겠는데요. 알려주세요.” 아줌마는 성호를 보고 일어나더니 “물고기드럼을 좀 봐줘요. 내 화장실 갔다와서 알려줄게요.”라고 했다. 공짜로는 알려줄 수 없다는 계산이다. 장사군은 장사군이다. “예. 그러죠.” 성호는 아줌마의 물고기드럼을 쥐고 멀쩡히 서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그 아줌마가 화장실에 갔다가 허둥지둥 이쪽으로 돌아왔다. “저 2층에 올라가요. 2층 안쪽으로 들어가면 벽에 공중전화박스가 있어요.” 아줌마가 알려주는대로 2층에 올라가보니 확실히 공중전화박스가 있었다. “어-휴- 살았다, 살았어.” 그는 이제 전화를 치면 매형과 누나와 만날 일을 생각하니 정신이 났다. 그런데  호주머니를 아무리 들춰도 동전 한푼 없었다. 그는 또 물고기장사아줌마한테로 짐을 끌고 돌아갔다. “왜? 못 찾았어요?” “아니, 동전 없어 못 쳤어요. 동전 좀 바꿔 줄래요? 전화 어떻게 치는지 알려줄 수 없어요?” 아줌마는 어이없다는듯이 입을 딱 벌렸다. “아니, 멀쩡하게 생긴 사내가 전화 칠줄도 몰라?” 그래도 성호는 사람좋게 웃으면서 통사정을 들이댔다. “좋아, 그럼 이 물고기드럼 사라고. 그럼 내 동전도 주고 전화 쳐줄게.” 이번엔 성호가 어이없어 입을 헤 벌리고 서 있었다. “왜, 안돼? 누가 공짜로 전화 치는 거 가르쳐준대?” 이게 춤추는 꽃서울, 아니, 각박하기로 상상하기 어려운 한국 인심이였다. “좋아요. 사죠.” 성호는 가릴게 없었다. 물고기 한드럼을 사고 동전도 500원짜리 10개나 바꿔 쥐였다. (누나네 먹으라고 줄판이지.) 그제야 아줌마는 성호를 데리고 전화박스로 갔다. 성호는 아줌마가 가르쳐주는대로 동전을 전화통에 넣고 막내누나 성숙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누구세요?” “누나, 나요, 나, 성호.” “아이구머니나. 네가 어떻게 왔니? 지금 어디 있어?” “안양역에 있소.” “그게 무슨 전화야?” “안양역 2층 공중전화요.” “응, 알았어. 지금 음식점에서 일하니까. 바빠, 매형이 오늘 소낙비 와서 건축현장에 가지 못했어. 전화해 마중 가라고 할게. 역에서 기다려라.” “알았소. 기다릴게.” 성호는 감사해 아줌마한테 5천원짜리 지페 한장 쥐여주었다. “감사해요. 아줌마 가르쳐주지 않았더라면 누날 만나지 못할번 했어요. 한국에 처음 왔는데요. 진짜 아줌마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한발작도 내딛기 힘들었 거요. 고맙습니다.” “아니, 이래 되겠어? 고맙네.” 아줌마는 얼싸 좋다고 지페를 받아 넣고 물고기드럼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버렸다. 그런데 점심이 지나고 오후 세시까지 애타게 기다려도 매형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성호는 공중전화박스에 가서 매형한테 전화했다. “오, 처남 왔어? 내 세집 말리느라고 나가지 못하는데 택시 잡아타고 오라고.” “내 매형네 집도 모르고 어떻게 찾아가오?” “왜 그리 촌스러워? 택시 타고 여기 덕천시장 입구까지 오라고. 그럼 내 마중 나갈게.” “알았소. 내 당장 가겠소.” 성호는 택시를 타려고 짐을 끌고 소낙비가 창창 쏟아지는 바깥에 나왔다. 택시가 광장에 줄느런히 서 있었다. 성호는 녀택시기사가 모는 모범택시로 우산을 들고 짐을 끌고 다가갔다. “택시 탈 수 있죠?” 그가 택시문을 두드리면서 소리쳤다. “오르세요.” 성호가 뒤문을 열고 짐을 올리려는 때다. “아니, 젖은 짐을 좌석에 실으면 어떻게 해요?” 녀택시기사의 새된 소리가 들렸다. 성호는 “미안해요.”라고 하며 짐을 뒤에 실어놓았다. 성호가 택시 뒤좌석에 올라타자 녀택시기사가 핼끔 쳐다보았다. “중국 동포군요? 봤지요?” “뭘 말인가요?” “모범택시예요. 택시료금 낼만 해요?” “예. 아무리 중국조선족이라고 택시료금도 없는가 해요?” “어디로 갈래요?” “덕천시장 입구로!” 녀기사는 택시를 몰면서 도도거렸다. “중국 조선족이죠? 택시에 타는 조선족 처음 보는데요. 지하철도 공짜로 타려고 출구를 기여나가는 중국아줌마들을 많이 봤는데요. 중국에서 생활하기 퍽 어렵지요?” 성호는 쓸데 없이 말씨름을 하기 싫어 입에 빗장을 꾹 지르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중국엔 거지들도 많던데요. 살기 어려운 모양이지. 우리 한국에 와서 막일을 하는 걸 보면.” “아니, 아줌마, 택시나 잘 모세요. 무슨 말이 그리 많아요?” “어머, 큰소리 해요? 다른 중국인들과는 판판 틀렸네. 모두 불법체류해서 찍소리도 못하던데요. 누구한테 큰소리 빵빵 쳐요?” “뭘? 난 중국에서도 한다하는 기자인데요. 과외로 택시업 보스도 해죠. 허나 손님과 문명하지 못하게 대한 적이 없어요.” “그래요?” “아줌마, 퍽 살기 힘든 모양이군요. 소낙비 쏟아지는 날에 차 운전하는 걸 보면.” “이 손님 진짜.” “안그럼 남편 잘 못 만났네. 요 죄꼬만 안양에서 마누라보고 택시 몰라고 하고. 자기는 술이나 처 마시고. 허허허.” 성호는 녀기사를 골려주고 반격을 가하면서 속이 시원한 감이 들었다. “기실 우리 중국조선족들의 실제 생활수준은 여기보다 낮은 거 아니죠.” “그럼 왜 여기 와서 더러운 일, 어지러운 일 다해요?” “한화와 인민페 차이, 한국과 중국의 로임 차죠. 여기와서 한국돈을 벌어 중국에 가서 쓰면 엄청 돈을 남죠. 여기선 소갈비도 변변히 먹지 못하지만요. 우린 달마다 몇번씩 먹을 수 있어요. 이담 중국에 놀러오세요. 제가 소갈비 한대야 푹 삶아 대접해드릴게요.” “호호호. 듣기만 해도 배 부른데요.” “진짜예요. 중국에선 소갈비 한대야라야 한화로 4~5만원이면 실컷 되니깐요.” “덕천시장 입구에 왔어요. 3천 5백 나왔네요.” “이담 꼭 중국에 놀러 오세요. 중국에 와보지 못하면 한뉘 중국을 제대로 알 수 없어요.” 녀기사는 무안해 더 말하지 못했다. (진짜 우물안의 개구리 같은 녀자라구야.) 성호는 코웃음을 치면서 택시에 내려 우산을 들고 짐을 챙겼다. 그는 여기저기 살피다가 소낙비를 피해 덕천시장 입구 부근의 한 약가게 앞에 가서 매형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해질 녘까지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려도, 지나가는 꺽다리마다 다 훑으며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애타게 눈빗질 해도 매형의 바가지처럼 길죽한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다. 약가게에 들어가 전화를 빌어 칠가고 하다가도 오겠지 하고 온 오후 가게   앞에서 소낙비를 맞으며 기다렸다. 다행히 우산을 가졌으니 말이지. 큰 일 날  번했다. 그는 서울 깍쟁이들을 겪어보았는지라 괜히 전화도 빌어 치지 못하고 코를 떼우기 싫었던 것이다. 대살 같은 비가 창창 쏟아져 우산을 들었어도 바지가랭이가 다 젖었다. 가게들에서 우산을 들고 남의 가게 문  앞에 커다란 짐을 쥐고 서있는 초라한 모습을 보고 입귀를 비쭉거리며 차디찬 눈길을 보냈다. (매형은 웬 일일가? 안양역에 마중 나오지 못해도 문 앞에까지 온 날 마중하러 안 나와? 무슨 일이 생겼어?) 해는 져가고 소낙비는 창창 쏟아지는데 성호는 막연한 생각에 속이 재처럼 타버렸다. (오늘 밤은 어데서 자야 하는가? 비 내리는 바깥에서 온 밤 기다릴 순 없는데. 비만 오지 않아도 하루밤 로숙해도 괜찮겠는데.) 그때 한 소녀애가 가게  앞을 지나갔다. 천진한 소녀는 별로 대가없이도 제대로 알려줄 것 같았다. “여기 공중전화박스 어디 있어요?” 쌍까풀눈의 소녀애는 천진한 웃음을 지으면서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여기 뒤로 가다가 오른손편으로 굽어들어 좀 가면 있어요.” “고마워요.” 성호는 헛일 삼아 그 소녀애가 가리켜준대로 찾아갔다. 진짜 웬 상점 앞에 공중전화박스가 있었다. (이젠 살았다. 살았어.) 그는 호주머니에서 몇개 남지 않은 동전을 황급히 넣고 누나 전화번호를 눌렀다. “누나!” “지금 어디 있어?” “여기 덕천시장 입구요. 매형이 여기 와서 기다리라고 해서 온 오후 기다렸소.” “뭐라고? 이 나그네새끼. 너 거게 까딱 말고 있어라. 곧 나갈게.” 5분도 되지 않아 누나와 매형이 우산을 들고 달려나왔다. 알고 보니 그 약가게에서 불과 100메터도 되지 않는 곳에 세집이 있었다. (야, 어쩜 지척에 두고 중국 한끝에서 온 날 마중하러 나오지 않았을가? 화냥년과 논 일이 누나한테 들통났다더니. 내 오는게 달갑잖았는 모양이지. 진짜 색시 고우면 가시집 말뚝에 절도 한다더니 색시가 미우니 처남도 미운게지. 정말 야속해.) 성호는 그런 매형과 함께 마시자고 중국 소주병이랑 무겁게 들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숱한 차를 갈아타고 온 것이 후회됐다. 그러나 그는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코구멍 같은 세집에 들어가 앉자 다 젖은 트렁크에서 소주병이며 약이며 명태며 잣이며 버섯을 수태 내놓았다. 매형은 그제야 굳어졌던 낯근육이 좀 풀리는 상 싶었다. 열을 받은 성호는 아무 말도 없이 소주병을 들어 매형과 함께 애꿎은 술만 쭉쭉 마셨다. 이튿날 소낙비가 멎자 매형은 건축현장으로 일하러 나갔다. 누나는 매형의 허물을 들춰냈다. “나그네를 보고 ‘그 녀자와 있은 일을 로실히 말해라. 그럼 량해하고 함께 살 수 있다고 했다. 안 그럼 리혼 밖에 없다’고 야단쳤어. 저 나그네 제대 지하철에서 그 녀자를 만났다고 해. 그날 그 녀자 짐도 들어주면서 면목익혔단다. 계속 1호선을 타고 다니다나니 눈이 맞았다는가. 말로는 세집까지 잡고 반년 밖에 살지 않았다고 하더라. 어쩌겠니? 젊은 남자 안해 없이 혼자 있으니까 한번 실수 했다고 량해하기로 했다. 애들을 보고 놔둔 거야. 그 일 생각하면 집에 돌아와 쿨쿨 곤하게 잘 때 식칼로 목을 썩 베 죽이고 싶더라. 애들 애비라고 놔뒀어.” 성숙은 성호의 손을 잡고 신신당부했다. “절대 어느 형제한테도 말하지 말라. 창피해서 어떻게 사니?” 성호는 그제야 매형이 마중나오지 않은 진정한 리유를 알 것 같았다. 이전에 성호는 매형을 도와 그 큰 새 집 매질도 해주고 구들도 놓아주고 벼가을도 도와줬다. 하건만 어쩜 중국 한끝에서 온 처남을 소낙비 쏟아지는 가게 앞에 세워두고 온 오후 마중하지도 않는단 말인가? 그러고도 소낙비 와서 마중 못했다고 변명할 수 있단 말인가! 성호는 매형이 야속하고 또 야속했다. 그렇게 믿었던 매형이 원망스러웠다. 어쩜 덕대 같은 아들 둘이나 낳아준 조강지처를 배신하고 동물적인 정욕을 참지 못해 남의 젊은 색시와 세집까지 잡고 살을 섞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 이 세집에서 그 년놈들이 뒹굴었단 말이요?” “아니야. 내 그 세집에서 눈에 불이 일어 어떻게 사느냐? 그래서 이 세집 15만원 주고 새로 잡았지.” 성숙은 동생을 믿고 다 털어놓았다. “금목걸이 말을 내지 않고 어쩌는가 기다렸더니 후에 로실히 말하더구나. 그 녀자한테 준 거라고. 그런데 내 온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세집에서 나가면서 그만 가지고 가지 않은 거 같더라. 나그네 주는 거 어찌 목에 칼이 걸리 거 같아 그걸 목에 걸고 다니니? 그래서 팽개쳤지.”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틀만에 성호가 집으로 돌아가는 전날 저녁에 매형 명선이 세집에 돌아왔다. 성호는 가까스로 격분을 누르며 술상에 마주 앉았다. 술이 서너순배 묵묵히 돌아가자 명선은 침울한 표정으로 성호를 바라보면서 말을 꺼냈다. “처남도 누나한테서 들었으리라 믿소. 사람이란 배고프면 밥을 먹기 마련이지 않소? 녀자 없이 살기 힘들었소. 처음엔 성인테프를 보면서 자위를 했소. 간혹 청량리로 가서 기생집으로 드나들기도 했소. 전 모르지만 서울 기생거리로 가보오. 야, 연분홍네온등이 대낮 같이 비추는 거리에 대문짝 같은 유리 창문들에 선녀 같은 미녀들이 반라체를 하고 비단필처럼 서서 기다린단 말이요. 그 유혹을 이길 수 있소? 그러나 돈이 아까와서 몇번 가보지 못했소. 처남도 시간 있으면 청량리로 가보란 말이요. 그 미녀들이 춤추는 서울의 붉은 거리를 그저 지나갈 수 있는가. 병신이 아니곤 구경만 하고 스치고 지나갈 수 없지. 곁에 안해 없어 헤매다가 그 녀자를 지하철에서 만났소. 더는 참을 수 없어 그렇게 됐소. 창피해서 처남 마중을 가지 못했소. 널리 량해하오.” 명선은 술잔을 내밀었다. 성호는 누나가 받은 심리고통을 생각하면 한대 갈겨주고 싶은 충동이 욱 치밀었다. 그러나 누나의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아 묵묵히 술잔을 기울였다. 진짜 울지도 웃지도 못할 노릇이였다. 성호는 세멘트바닥에 쇠덩이를 굴리는 듯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옛날에 중이 고기맛을 들이면 빈대도 잡아먹는다고 했소. 사내대장부가 어째 정욕이 없겠소? 그러나 정욕이 끓어번질 때마다 아무데나 정욕을 쏟아부어서야 되오? 이번만은 용서하지만 두번 다신 없소.” “알았소. 다신 실수를 하지 않겠소.” 명선은 목구멍으로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처남 앞에서 다짐했다. 그도 성호의 불 같은 성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막내처남을 만나기 싫었고 두려웠다. 성호는 어름장을 놓았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춤추는 꽃서울? 흥! 더럽다, 더러워! 맨 바람둥이들과 깍쟁이들 서울이라고 해라!) 이 놈의 서울에는 화장실을 갔다 오는 시간이면 오입할 수 있을 정도로 기생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명선은 성숙과 성호 앞에서 아무리 다짐해도 얼마든지 눈을 피해 기생집에 갈 수도 있고 모텔에 녀성을 데리고 가서 바람을 피울 수 있었다. 속담에 사람 열이 도적 하나 지키기 힘들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어찌 명선이 외도를 했는가 일일이 감시한단 말인가? 서울에 왔다가 보지도 듣지도 못할 일을 알게 된 성호는 속이 미여지는 것처럼 아팠다. 농사일만 하던 순박한 매형을 춤 추는 꽃서울의 색갈로 만든 장본인은 누구인가? 조강지처마저 버리고 인정도 없는 놈으로 만든 죄인은 누구인가?
225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34) 댓글:  조회:1025  추천:0  2019-09-03
                                          64. 기둥       여우도 추워서 눈물을 흘리는 엄동설한이 돌아왔다. 맵짠 동지섣달 추위에  박달나무도 얼어서 탁탁 갈라터질 지경이다. 흩날리는 눈송이들은 하얀 가슴으로  대지를 포옹하며 키스를 안긴다. 하얀 눈꽃은 땅에 사뿐사뿐 내려앉으면서 새 해 풍년을 약속하는가, 언 땅에 하얀 이불을 씌워주면서 우리 민족의 하얀 얼을 조용히 속삭이는가. 일요일인지라 종수는 또 취재길에 나서려고 서둘렀다. 전번에 삼도만에 갔다가 굶어 죽을번한 경험을 살려 이번에는 배낭에 빵과 음료수병을 챙겨넣었다. 려평이 종수를 흘겨보면서 코웃음쳤다. “우리 집 대기자 또 나간다.” 그녀는 문 밖으로 나가려는 종수 배낭을 홱 잡아챘다. “또 어딜 갈 예산인가요? 오늘 쉬는 날에 좀 청화 공부나 가르치면 어때요? 예?” 종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야, 언제 그럴 새 있소? 해방전쟁 나날에 영용하게 싸우다가 장렬히 희생된  우리 민족 전투영웅이랑 렬사랑 취재해야겠는데. 지금 취재하지 않으면 영원히 력사에서 사라지게 된단 말이요. 저 눈보라 치는 수림 속에 이름 모를 렬사들이 얼마나 묻혀 있는지 아는가.” 려평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기자면 신문사 임무나 완수하면 됐지. 뭘, 그런다고 누가 동무를 잘한다고 할 거 같애요?” 종수는 정색했다. “우리 민족영웅들이 총탄과 포탄이 비발치는 가렬처절한 전쟁의 나날에 목숨을 바쳐 싸웠소. 그들이 아니면 오늘의 우리 행복한 생활 있을 수 있소? 어찌 선렬들의 피어린 자욱을 그리 소홀히 력사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단 말이요?” “어이구, 누가 보기나 하는가요? 아이고, 진짜 우리 집에 민족영웅이 나타났네요.” “그래, 민족영웅이 되지 못하는 게 한이야. 우리 민족의 영웅들과 렬사들의 피어린 자욱을 취재해 꼭 책을 묶어낼 거요. 집 안 일은 동무 좀 수고하오.” “그래, 가정은 안해 혼자 몫인가요? 내 은행 주임이라도 하니 그렇지. 당신 같은 나그네를 믿다간 서북풍이나 먹고 살 거요. 아이유, 내 팔자도 개팔자야. 대학생, 대학생, 하다가 어쩜 가정도 모르는 저런 나그넬 만났을가?” 려평이 도도거리건 말건 종수는 기어이 취재 길에 올랐다. “여보, 먼 길을 떠나는데 재수 없이 고양이 방정을 작작 떠오. 흥! 참새들이 어떻게 고니 큰 뜻을 알리오?” “집도 모르는 그 잘난 고니를 해서 어데 쓰겠소? 쯧쯧쯧.” 려평은 배낭을 메고 눈풍설이 이는 바깥으로 나가는 남편의 뒤모습을 눈물이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종수 어머니는 아들이 하는 일이 장해 말리지 않고 바랬다. “얘, 어디로 가든 안전에 주의해라. 전번처럼 무인지경에 들어서서 굶지 말고.” “예, 근심하지 마십시오. 이제 대학교에서 만수가 돌아오면 맛있는 음식이나 많이 해줍소.” 어머니는 맏아들이 하는 일이라면 안된다고 뒤다리를 잡아당긴 적이 한번도 없었다. 딸애 청화도 고사리손을 저었다. “잘 갔다가 오세요.” 종수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취재하러 떠났다. 그가 한창 뻐스를 타러 갈 때다. “종수야, 어디로 가니?” 생각 밖에도 승호가 손짓하면서 뛰여오지 않겠는가? “웬 일이냐?” 승호는 배낭을 둘러메고 개털모자를 꾹 눌러쓴 종수를 보면서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야, 어디로 가니? 오늘 우리 동창들끼리 모여 술을 마시잖겠느냐? 성호와 범송을 부를게.” 종수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야, 그럴 새 없다. 쉬는 날에나 내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어.” “쉬는 날에도 어디 다니니?” 승호는 종수를 마구 끌고 식당 쪽으로 가려고 했다. 종수는 승호의 손을 뿌리치며 저쪽으로 달아났다. “후에 보자. 미안해.” 승호는 저 멀리 눈보라 속으로 멀어져가는 종수를 보고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종수는 나름대로 눈가슴을 헤치면서 가렬처절했던 항일전쟁시기 우리 민족의 영웅들의 혼이 살아숨쉬고 있는 봉오골과 청산리 등 항일전적지를 돌아다녔다. 물론 당지 당안국이나 서적을 뒤져 당년 청산리전투나 봉오골전투 자료를 얻었다. 그러나 그는 그에 그치지 않고 청산리와 봉오골 전적지 지형까지 답사했다. 자신이 직접 눈 속을 헤매면서 체험해야 당년의 항일영웅들의 간고한 전투를 제대로 써낼 것만 같았다. 선바위 부근에서 항일용사들이 조선에서  건너오는 일본은행 놈들의 13만원을 지혜롭게 무장탈취한 사건을 취재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치 군사전문가처럼 선바위 전적지에 가서 지형지물을 답사하면서 당년에 일본은행 놈들이 조선으로부터 돈을 가지고 어디로 해서 말을  타고 들어왔는가, 우리 항일영웅들은 어디에 매복해있다가 앞뒤로 매복습격해 돈을 빼앗았는가, 또 자기라면 어디에서 매복습격하기로 결정했겠는가를 거듭 연구한 후 집에 돌아와 다시 이 력사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비록 현지답사하기는 힘들었고 집필 속도는 늦었지만 그가 피땀을 들여 쓴 력사이야기들은 전적지 지형까지 아주 보는듯이 생동하고 핍진하게 써냈다. 어느 날 종수는 쉬는 날에 소주랑 과자랑 소고기랑 두루 사 메고 두만강변에 자리잡은 고향으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두만강변의 고향마을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마냥 찾아가도 항상 가슴을 들먹이게 하는 태줄을 묻은 고향이였다. 보기 스산해도 항상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고향이였다. 두만강변의 고향에는 그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묻혀있고 청춘의 꿈이 꿈틀거리고 있지 않는가. 울고 웃는 우리 민족의 피눈물과 애환이 흐르는 유서깊은 두만강, 눈보라 속에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바라보는 순간 종수는 저도 몰래 눈물이 울컥 쏟아질 것만 같았다. 두만강가 벌거숭이 버드나무들이 기승을 부리는 눈보라 속에서 얼음에 맞절이나 할듯이 몸부림치고 까마귀들이 까욱까욱 울부짖으며 어디론가 허둥지둥 날아가고  있었다. 두만강변의 초라한 고향 마을에는 게딱지 같은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어떤 초가집은 주인이 버리고 한국으로 갔는지 시내로 갔는지 다 썩어 폴싹 물앉은 채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키넘는 마른 쑥을 들쓰고 누워 있었다. 항상 정답고    오매에도 그리던 고향이 이다지도 초라하게 변했을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마을에는 몇몇 늙은이들이 살뿐 청년들과 젊은 녀자들, 애들을 찾아볼 수 없이 적막하고 한산했다. 종수는 해방전쟁에 참가한 적이 있는 마을의 로전사한테서 장춘해방전투에 대한 취재를 마치고 로인들이 모여 노는 마을의 로인활동실로 찾아갔다. 담배연기가 자오록한 로인활동실 조왕 쪽으로 해서 몇몇 안로인들이 화토를 쳤다. 웃방에서는 최대장과 면목도 모를 두 로인이 장기를 두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늘은이들은 종수를 귀빈처럼 반겨 맞았다. “어허, 우리 마을 수재 왔구만.” “어서 올라오게나.” 최대장은 종수의 손을 잡아주면서 기뻐했다. “그래, 엄마랑 시내에 가서 잘 보내느냐?” “예. 그럭저럭 잘 보내고 있습구마.” 마을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다. “종수 엄마는 맏아들을 국장 사위로 주더니 팔자를 고쳤단 말이오.” “그러잖고. 그게 다 저 대학생아들 덕분이지.” 종수는 늙은이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인사했다. 드디여 그는 배낭에서 소주 두병과 과자랑 푹 삶은 소고기랑 수두룩이 내놓았다. 최대장은 밭고랑 같은 이마의 주름살을 쫙 펴고 반가와했다. “우리 마을 대학생이 선물도 톡톡히 가져왔구만.” 안로인들도 화토를 치다가 소고기랑 소주랑 부엌쪽으로 가져다놓으며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점심에 잘 먹겠소.” 종수는 최대장을 따라 웃방에 올라가 함께 “장훈이야!”, “멍훈이야!” 하면서 훈수하였다. 점심때 거의 될 때였다. “두부를 사오~” 최대장이 대야와 잔돈을 가지고 나거더니 두부 몇모 들고 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이 밥상에 둘러 앉자 종수는 술병을 들어 사발에 일일이 돌아가면서 소주를 부어 올렸다. 늙은이들은 모두 반가와 소주를 마시고 종수가 가져온 통졸임소고기를 집어 잡수며 기뻐 야단쳤다. “어허, 오늘 기자선생 덕분에 소고기에 술까지 마시는군.” 종수는 배낭에서 민족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은 도서를 수두룩이 꺼내 최대장한테 드렸다. “마을 활동실에  걸어놓고 보십시오.” “아이고, 고맙기두.” 최대장은 책을 받아쥐여 이리저리 번져보다가 도리머리를 저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책을 보지 않는게 통 흠이라니까. 모두 책을 읽어야 하겠는데 말이요. 그저 모여들어 도박이나 놀고 술이나 마시고. 참 말이 아니야.” 종수네  앞집에서 살던 나그네가 받아쳤다. “에이구, 최대장이나 콱 읽소. 우린 눈이 시려서 못 보겠다이.” 종수네 뒤집 나그네는 최대장의 손에서 책을 하나 쑥 뽑아 두루 번져 보더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농사에 관계되는 책은 없소?” 다른 늙은이들은 황소가 닭을 쳐다보듯 하면서 신을 신고 소피 보러 나가거나 다시 화토판에 들어붙었다. 안로인들은 아예 책을 쓴 외 보듯했다. 한 안로인은 팔소매를 걷고 구들에 화토장을 탕 메치며 떠들어댔다. “에이구, 우리 이제 책을 읽어 벼슬 하겠소? 화토나 치구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면 다요.” 종수는 활동실에서 나와 어려서 다니던 고향 마을에 있는 모교로 가보았다.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몸부림치는 소학교 교실은 문이고 창문이고 다 떨어져나가지 않았겠는가. 교실에서는 소들이 누런 똥을 밀밀 싸며 돌아다녔다. 종수는 마음이 아팠다. “아, 이게 그래 내가 다니던 모교란 말인가?” 순간 그는 코마루가 시큼해나 손으로 찌그러진 교실문을 매만졌다. 그는 쓸쓸한 고향 마을의 초가집들을 둘러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고향의 장래가 근심됐다. 종수가 씁쓸한 마음을 안고 시내에 거의 들어설 때다. 승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종수는 마지못해 핸드폰을 꺼냈다. “종수야, 여기 성호랑 범송이랑 널 기다린다. 어쩌다 모이자니 넌 항상  후에,  후에 하면서 빠지니.” 종수는 “시간이 없다.”고 말할가하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어디냐?” “선녀음식점이야.” “응, 알았어.” “이번엔 실언하면 영원히 동창생명단에서 삭제할 테야.” 종수는 배낭을 맨채 그 길로 선녀음식점으로 찾아갔다. 왁짝 떠들어대는 음식점에 들어서자 선화가 반갑게 맞았다. “정말 오래간만이구만요. 리경리랑 저 칸에서 기다린지 오랜데요.” 종수는 선화와 인사를 하고나서 승호랑 있는 칸으로 갔다. 거기에는 승호와 성호, 범송이 둘러앉아 있었다. “어이구, 대기자선생이 끝내 왔구만. 환영한다! 환영해!” 승호가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이구나.” 성호도 손을 내밀었다. 종수는 범송까지 일일이 손을 잡고나서 자리에 앉았다. 안주도 들어오고 술이 오르자 승호가 술잔을 잡고 권했다. “야, 우리 동창생들이 한 시내에 살면서도 얼마나 오래간만에 한자리에 앉았니? 오늘 즐겁게 마시자. 자, 건배!” “건배!” 그들은 첫잔을 통쾌하게 굽냈다. 뒤이어 동창생들은 권커니 작커니 하면서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너순배 돌자 승호가 종수를 마주보며 화제를 꺼냈다. “종수야, 네 손을 좀 빌면 안되겠니?” “뭘?” 승호는 정색해 말했다. “사실 우리 단위에는 부패현상이 대단하다. 종수는 폭로문장을 쓰기 좋아하잖니?  우리 단위 일도 세상에 폭로할 수 없겠니?” “어떤 부패현상인데?” 종수가 어안이 벙벙해하자 승호는 술잔을 내려놓고 간단히 말했다. “우리 광고회사 리굉팔이란 나그네 말이 아니야. 오국장을 등에 업고 마구 탐오하고 람용한단 말이야. 사흘이 멀다하게 오국장을 데리고 유흥장소에 드나들어. 오국장한테 장식비로 5만원이나 준 적도 있다.” 종수는 샘물병을 들어 한모금 마시더니 상을 찡그렸다. “물론 신문에 내는 것도 좋지만 검찰부문에 신고해 조사하게 하는게 낫다.” 성호는 조용히 듣다가 격분해 입을 열었다. “전번에 누군가 검거신을 써보내 조사하러 왔댔다. 장부랑 다 들어가고 한참 조사했지. 그런데 오청룡이 ‘광고회사 돈을 꿨지. 공짜로 쓰자 한게 아니다.’고 딱 잡아뗐단다. 또 말로는 꿔간 돈을 다 되물어넣었단다. 조사기관에서도 별수 있니? 그저 광고회사 돈을 마구 람용했다고 엄중경고처분을 내리고 말았지.” 승호는 이번에는 굉팔을 잡자고 팔을 걷고 나섰다. “굉팔이 우리 광고회사에 있는 한 우린 편안한 날이 없어. 봐라. 굉팔은 저쪽 광고회사를 다 비벼먹고 망하자 김범수 총경리 덕분에 우리 광고회사에 왔댔지. 그런데 배은망덕한 배신자라구. 김범수 총경리를 쫓아내고 우리 광고회사 총경리자리를 차지했지. 그 놈새끼는 이제 나하구 성호도 제거하려고 할 거야.” “가만, 가만!” 종수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승호를 손가락질하였다. “넌 굉팔 덕분에 백화상점 공회 주석을 하다가 광고회사에 가지 않았니?” 승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난 정의감에서 출발해 부패분자를 척결하자는 거야.” 성호도 동을 달았다. “맞다. 굉팔은 탐욕스럽고 삐뚠 정치를 하는 놈이야.” 그는 종수를 정색해 보면서 말했다. “승호도 알지만 백화상점 광고는 내가 안총경리와 련계해서 가져온게 아니고 뭐냐? 그런데 기어이 자기 걸로 만들자고 나를 협박한단 말이야. 이게 어디 도리에 맞니? 이번 조사에서도 묘한 수로 그물에서 빠져나갔단 말이야. 오청룡한테  꿔준 돈’을 되물어넣고 미꾸라지처럼 살짝 빠져나갔지. 진짜 간교한 놈이야.” 종수는 승호를 보면서 물었다. “조사조에서는 널 조사하지 않더냐?” “아니, 근본 부르지도 않더라.” 승호의 말에 성호가 부언했다. “피뜩 보니 이번에 은영이랑 조사하러 온 거 같더라. 정희한테서 명세장을 가져가기만 하면 몽땅 드러날텐데.” 종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진짜 서뿔리 풀을 건드려 뱀을 놀래워놨구나.” 이윽고 그는 뒤말을 이었다. “이번 일은 신문에 내지 못해.” “왜?” 승호와 성호는 눈이 데꾼해졌다. 믿던 기둥이 와그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였다. 종수는 저으기 엄숙해졌다. “신문폭로는 신중해야 한다. 특히 이번 일이 그래. 들을라니 전번에 상부 조사조에서도 ‘오청룡이 광고회사 돈을 꿔갔고 공금을 마구 꿔준, 공금람용’으로  규정했잖아? 그걸 신문에 내서야 되니?” 승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정의감이 있다던 너도 그저 그렇구나. 왜 그리 쫄짱부냐?” 종수도 물러서지 않았다. “보도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승호는 지꿎게 고집했다. “그럼 왜 엄중경고처분을 줬겠어? 엄중경고처분을 받은 걸 세상에 폭로하면 안되니?” 종수의 견해는 달랐다. “그게 아니야? 신문에 폭로할 수도 없고 또 설사 폭로한다고 해도 뱀을 서뿔리  건드려놓을게 뭐냐?” 종수의 말에 승호의 눈이 반짝였다. “고견을 말해봐라. ” 종수는 샘물병을 들어 한모금 마시고나서 말했다. “이번 일을 파묻어두자. 그 쥐새끼 같은 놈이 재차 너덜대기를 기다려 손을 써야 해. 증거를 딱 잡으란 말이야. 만약 오청룡이 이른바 ‘꿔간 돈’을 장식에 다 쓴 다음에 적발했더라면 영낙없이 그물에 걸렸을 거야.” 종수는 허리를 쭉 펴면서 말했다. “그때 가서 그 놈들의 죄상을 폭로해도 늦지 않아.” “오-”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면서 한잔 들었다. 나중에 그들은 자연히 인생에 대해 허물없이 담론하게 됐다. 승호는 술을 쭉 굽내더니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이젠 정계에 다 진출한 거 같애.” 종수는 의아해했다. “무슨 소리냐? 넌 부총경리 아니냐?” 춰주는 말에 승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도 말라. 인생은 서른에 일어서야 한다는 말이 있잖느냐? 그런데 이젠 마흔 고개를 다 바라보면서 이게 뭐냐? 굉팔 같은 풍각쟁이한테 다 당해야 하니? 단위 돈을 좀 복리에 쓰면 어떻겠냐? 굉팔은 그저 상전한테 돈을 푹푹 쓰고 우리 직원들의 생활고초는 털끝만치도 고려하지 않는단 말이야.” 종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승호는 계속 넉두리를 했다. “가정은 무슨 꼴이냐? 아들도 보지 못했지. 맨날 녀편네한테 돈타령을 들어야지. 쩍하면 바람을 피우지 않는가 의심받지. 요즘엔 돈고생을 하지 못하겠다면서 한국에 나가겠다고 야단친다. 어떻게 살겠니?” 범송도 승호의 어려운 처지를 듣고 한숨을 후~ 내쉬였다. “나도 한가지야. 백화상점 구입과에 있으면 어디 허망 돈이 생기니? 돈 때문에 맨날 댕댕거린다. 전번에 선금도 처남댁과 함께 한국에 나가자고 했대. 옛말에 안해와 그릇은 바깥에 내돌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잖았니? 그런데 안해들이 한국에 나가면 애들은 어쩌니? 참 코막고 답답하다.” 종수는 성호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우리 동창들 가운데서 그래도 성호네 제일 괜찮은 거 같애. 택시두 경영하지. 한때 소장사도 했지. 광고도 남보다 많이 하지.” 그러나 성호의 대답은 맥이 없었다. “어느 집에 골치 아픈 일이 없겠니? 돈을 벌어 우로는 부모께 효성을 하고  아래로는 대를 이을 아들을 볼가 했다. 그게 어디 식은 죽 먹기처럼 쉽니?” 종수도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 집도 항상 가정을 돌보지 않고 김삿갓처럼 나 다닌다고 생야단이야.” 그는 돌아가며 술잔에 술을 부어놓고 말했다. “우린 살아가면서 한가지만은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우린 나라에서 돈을 대서  공부시킨 대학생들이야. 언제나 눈 앞 리익만 따지지 말고 나라와 백성들을 걱정하고 민족의 앞날을 걱정해야 한다.” 범송은 코웃음쳤다. “에이구, 텔레비죤 드라마에서 옛날 임금이 하던 말을 듣는 거 같다. 흥, 우리 로백성들은 생존이 우선이야. 그따위 빈말이 필요없어.” 종수는 정색해 승호를 쳐다보면서 뒤말을 계속 했다. “바른 말을 한다고 노여워하지 말라. 봐라. 너는 한사코 정계에 바라올라갈 잡도리만 하고 아득바득 애쓰잖았니?” 승호는 안색이 단통 새까맣게 질린 채 밥상 우에 놓은 손마저 바르르 떨었다. 종수는 계속 바른 소리를 했다. “기실 넌 반중 건중한 정객이야. 좀 자기를 알고 너덜거려라!” 승호는 어이없어 허구픈 웃음을 입귀로 흘렸다. 종수는 손을 들어 성호와 범송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좀 달라. 민족의 전통대로 효성을 다할 생각을 하니까.” 꽝! 승호는 밥상을 치고 일어나더니 종수를 손가락질하면서 욕했다. “그래, 넌 대단구나. 지금 우릴 깔보는 거냐?!” 성호가 일어나 말렸다. “야, 왜 이래? 앉아라!” 승호는 마지못해 앉아서 성을 이기지 못하고 술병을 들어 꿀꺽꿀꺽 마셨다. 종수는 웃으면서 정색해 말했다. “야, 승호, 남의 말 마저 듣고 말해라. 우린 생존을 위한 경쟁도 필요하다. 돈도 벌고 효성도 하고 애도 장군으로 키워야 해. 부패한 놈들도 쳐내고 자기 위치도 찾아야 해. 그러나 항상 우린 정신기둥을 잊지 말아야 해. 정신기둥이 무너지면 생존도 뭐도 다 무너져.” 성호는 종수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네가 말하는 정신기둥이란 뭐냐?” 종수는 동창들을 둘러보면서 똑똑히 말했다. “민족의 정신기둥!” 종수는 천천히 해석했다. “생존을 위한 삶은 가치가 별로 없어. 최하바닥 가련한 인생이야. 우린 나라와 민족, 인민을 위해 뭔가 정신기둥을 세워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거야 말로 보람찬 인생이야.” 승호는 비웃었다. “그래, 우린 다 생존을 위해 벌레 같은 생활을 한다고 치자. 넌 해놓은 일이 뭐냐? 큰소리만 땅땅 치면서. 흥! 삶은 소대가리 웃다가 꾸레미 터질 소릴 작작 해라!”      범송도 코웃음쳤다. “종수, 넌 제 힘으로 살겠구나. 너네 색시 은행 주임을 하니 그렇지. 신문사에 기자질을 해서 살기나 하겠구나.” 승호는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올라 씩씩거리며 두덜거렸다. “별 새끼, 잘난  척하지두 말라. 농민 아들새끼, 국장네 사위로 된 덕에 그만큼  살면서 누구 앞에서 큰 소릴 땅땅 치니?” 성호가 반박해나섰다. “야, 농민의 아들이라고 너무 깔보지 말라. 농민 아들이 어떻단 말이냐? 너네 시내 애들이 해놓은게 뭐냐?” 승호는 그제야 말실수를 한 것을 알았다. 그 자리에 자기를 내놓고 몽땅 농민의 아들이 아니겠는가. 범송까지 포함해 “농민의 아들”이라고 깔보면 모두 좋아할리 만무했다. 눈치빠른 승호는 제꺽 술잔을 잡았다. “됐다, 됐어. 모두 술이 과한 모양이야. 말다툼이나 하려고 모이자고 한 게 아닌데.” 그는 종수의 잔을 쥐여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너무 과격하게 말한 거 같은데. 널리 량해해라.” 종수도 사람좋게 웃으면서 잔을 들어 승호의 잔과 마주쳤다. “괜찮아. 우린 필경 허물없는 동창생이니깐. 허허허.” 성호와 범송도 웃으면서 맞잔을 들었다. 이윽고 성호가 종수를 보고 물었다. “네가 항상 나라와 민족의 정신기둥을 세운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거냐?” 종수는 아주 정색해 말했다. “나는 오늘도 유서 깊은 두만강가 고향에 가보고 가슴이 아프더라. 우리 조상들이 일제의 침략을 받아서 쪽박을 차고 두만강을  건너 이 땅에 와서 첫 보습을 박아서부터 이 땅에 두번째고향을 건설하느라고 얼마나 많은 고생 했느냐? 이 땅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 선렬들이 얼마나 많은 목숨을 바쳤느냐? 이 땅에는 우리 조상들의 피와 땀이 슴배여 있지 않는 곳이 어디 있느냐? 나는 우리 민족의 빛나는 력사적 공훈과 혁명사적을 온 세상에 알리고 우리 후대들한테도 길이길이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 민족 영웅들과 렬사들의 사적을 취재하고 정리해서 책으로 묶으려고 한다.” 성호가 지지해나섰다. “그래, 정말 나라와 민족의 력사에 길이길이 남을 일을 하는구나. 책을 낼 때 자금이 딸리면 말해라. 나도 얼마간 지원하겠다.” 종수는 성호의 손을 잡았다. “감사하다.” 승호와 범송은 머리를 수깃하고 침묵을 지켰다. 종수는 계속 열변을 토했다. “지금 글쎄 돈벌이나 술놀이에 빠져서야 되겠니? 내 고향 마을에 가보니 모교가 다 망가지고 온 마을에 성한 초가집이 몇채 밖에 없더라. 혁명렬사기념비가 무너져가도 손질하는 사람이 없어 살풍경이더라. 대부분 마을 람들이 국외로무송출을 가거나 대도시로 나간 자식들을 따라 나가서 동네 로인들 몇분 밖에 없더라. 활동실에서는 늙은이 몇이 새뽀얀 담배연기 속에서 장기를 놀거나 화토나 치더구나.  두부 몇모에 소주 몇잔 마시고는 만족해하며 집으로 헤여져가더라.” 승호는 술잔을 들고 종수를 마주보며 빙그레 웃었다. “야, 술이나 마시자. 오늘 혁명전통교육을 단단히 받았구나. 허허허.” 술잔을 쭉 굽내고 성호가 말했다. “정신기둥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있다.” 종수는 저가락으로 개고기를 집다가 “뭘 말이냐?” 하고 물었다. 성호는 동창들을 둘러보면서 정색해 말했다. “내 보 건대 정신기둥에 ‘가정이 화목해야 만사가 흥성한다.’는 것과 ‘효성’에 대한 것도 보충했으면 좋겠다.” 종수도 승호도 좀 생각하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지금 수많은 자식들이 효성은 하지 않고 부모들의 등을 파먹으려고만 한다. 일부 불효자식들은 부모들께 효성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효성을 하는 일을 두고 아들과 딸, 시부모와 며느리 갈등이 얼마나 심하냐? 지금 내리사랑만 있고 치사랑이 있느냐? 가정은 사회의 제일 작은 한개 세포가 아니고 뭐냐? 가정에  갈등이 심하면 사회가 불안정할 게 아니냐?” 범송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 종수야, 가정 생존이 담보돼야 정신기둥도 든든히 세울 수 있지 않느냐?” 승호도 나섰다. “나도 정신기둥에 한마디 보충하자. 오청룡이나 리굉팔 같은 부패분자 척결도 정신기둥의 하나라고 본다.” 종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오늘 모임에서 정신기둥이 더 풍부하고 든든해졌구나.” 그제야 승호는 헤벌쭉 웃었다.  “이담 책이 나오면 한권 달라.” 종수는 쾌히 잔을 들었다. “그럼 우리 그날을 위하여 한잔 들자.” “위하여!” 술잔을 댕 부딪치는 소리가 귀맛좋게 들렸다.        바깥에서는 눈보라가 앞뒤를 가려볼 수 없이 쌩-쌩- 휘몰아쳤다. 하지만 선녀음식점 분위기는 삼복염천의 무더위처럼 부글부글 끓어번졌다.
224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33) 댓글:  조회:1384  추천:1  2019-08-14
                             62. 수림 속에서 벌어진 강간사건 승복을 보고 택시를 몰지 못하게 한 후 성호는 인터넷광고매체와 신문광고지에  택시운전수초빙광고를 냈다. 광고가 나가자 숱한 남녀운전수들이 초빙에 응해 련계해왔다. 성호는 숱한 운전수 가운데서  서른살 푼한 녀운전수를 골라내 썼다. 화는 눈섭끝에서 떨어진다고 재수없이 첫날에 날강도한테 략탈당했다고 녀운전수한테서 전화가 왔다. 성호가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보니 문 앞에 빨간 택시가 서 있었다. 살펴보니 녀운전수는 상한데는 없는 것 같았고 택시도 파손된 곳이 없었다. 녀운전수는 성호를 보자 택시에서 내리면서 왕왕 대성통곡쳤다. 성호는 황급히 비칠거러는 녀운전수를 부축하며 문안했다. “어데 상하진 않았소? 어떻게 된 일이요?” “망아산 수림에서 돈을 몽땅 빼앗겼어요.” “아니, 시퍼런 대낮에 강도질한단 말이요? 어디 다친데 없소? 얼마나 놀랐겠소?” 녀운전수는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성호와 함께 집으로 올라갔다. “그 놈은 내 금목 걸이와 금반지를 다 빼앗아갔습니다. 그리고…으흐흐흐.” “뭐라오?!” “그래 공안국에 신고했소?” “아니, 창피해서 어떻게 해요? 내 신랑과 절대 말하지 마세요. 알면 무조건  리혼당해요.” “알았소. 공안국에 신고해야지. 그 놈을 붙잡아 원쑤를 갚아야지.” 성호는 인차 전화로 강운룡 부국장한테 신고했다. “너네 집 앞에서 기다려라. 인차 수사대원들을 보낼게.” 이윽고 경찰차 두대나 달려왔다. 창남 대대장은 직접 수길 중대장과 수사대원들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녀운전수를 차에 싣고 사건현지로 달려가면서 강탈사건경과를 들었다. 녀운전수는 격분해서 사건경과를 쭉 이야기했다. “오늘 오전 9시반쯤이죠. 택시를 몰고 백화상점 앞에 갔을 때 웬 훤칠한  한족사내가 손을 듭디다.” “몇살이나 되는 놈이오?” 창남 대대장이 묻자 녀운전수는 두 눈을 살풋이 내리깔더니 기억을 더듬었다. “한 마흔살 넘어 보이던데요.” “얼굴에 무슨 특징이 없습데?” “길죽하게 생겼던데요. 아차, 네, 덧이가 났습디다. 저, 코 밑에 꺼먼 사마귄지 짐인지 있었어요.” 수사대원은 일일이 적었다. 녀운전수는 계속 말했다. “그 놈을 보고 어디로 가겠는가고 묻자 한숨을 푸~ 내쉬더니 ‘교외에 있는 합촌마을로 가자.’고 합디다. 그 마을로 가려면 망아산 수림 속을 지나 가야 되잖고  뭔가요? 무서워서 가지 않겠다고 했죠. 그 놈은 백원짜리 돈을 꺼내 주면서 기어이 가자고 하잖겠어요. 나는 손님도 별로 없지 무서운대로 요행을 바라고 떠났지요. 교외로 나가 수림 속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어귀에 이르렀을 때였어요. 그 놈은 불시에 비수를 빼들고 작은 갈림길로 몰라고 하지 않겠어요? 앞뒤 주위를 봐도 행인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차들만 씽씽 지나가는 걸 보고 이젠 꼼짝 못하고 죽었구나고 했어오.”  그 놈은 녀운전수의 옆구리를 비수로 푹푹 다치면서 “까딱 하면 죽을줄 알아!” 하고 을러메면서 수림 속 오솔길로 몰라고 위협했다. 녀운전수는 하는 수 없이 큰길을 벗어나 수림속 오솔길로 굽어들었다. “바로 저기예요.” 수사대원들이 앞을 보니 큰길 량켠에는 돌언제를 쌓아놓았다. 합촌 마을로 가는 길은 그 돌언제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들은 경찰차에서 내려 사건현지 수림으로 들어가보았다. 울퉁불퉁한 오솔길을 따라 소나무숲 속으로 들어가다가 구뎅이가 나졌다. 금희는 그 구뎅이를 가리켰다. “바로 여기서 그 놈이 금목걸이하구 금반지를 빼앗았죠.” 수길 중대장은 구뎅이를 들여다보니 발버등질을 한 것 같은 자리가 있었다.  그는  녀운전수한테 얼굴을 돌리며 물었다. “그 놈이 금목걸이와 금반지만 뺏고 다른 짓은 하지 않았소?” 녀운전수는 대뜸 얼굴이 홍당무우가 된 채 머리를 숙이더니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 놈은 제 돈지갑을 둘춰보고 오전에 별로 벌지 못한 거 보고 홱 뿌리치더니 쥉쥉  수림 속으로 가버렸어요.” 수길 중대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지형을 둘러보았다. 차들이 씽씽 달아다니는 고속도로와 20여메터 떨어진 수림 속이기에 지나다니는 차들이 보이지 않았다. 돌언제굽인돌이를 빠져나와 수림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데다 행인도 하나도 없어 강탈사건을 벌이기는 안성맞춤한 지형이였다. 수사대원들은 사건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날강도놈은 이 곳 지형에 익숙한 놈입니다. 가능하게 이 곳에서 여러번 녀운전수들을 강탈했을 수도 있습니다.” 수길 중대장의 말에 창남 대대장도 머리를 끄덕였다. “옳소.” 그는 수사대원을 보고 녀운전수의 핸드폰번호를 적어둔 후 경찰차에 실어 집에 데려다주게 했다. 뒤이어 그는 “수사대원들을 여기에 잠복시켜 강도놈을 나포해야 하오.” “알았습니다.” 수길 중대장은 수사대원을 고속도로와 오솔길 어구에 잠복하게 하고 자기는 사건현지 부근 수림 속에 잠복해 있었다. 그런데 해가 사산으로 뉘엿뉘엿 져도 수림으로 들어오는 택시가 한대도 없었다. 밤에는 녀성운전수들이 일반적으로 외지로 가려고 하지 않기에 날강도가 유인할 기회가 없었다. 이튿날 그들은 또 경찰차를 타고 미리 사건현지에 잠복했다. 그런데 날강도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수사대원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수길 중대장은 맥을 버리지 않았다. “그 놈을 나포하지 않으면 이제도 얼마나 많은 녀운전수들이 피해를 볼지 모르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우린 며칠이고 계속 잠복해야 하오.” 그들은 사흘째 수림에 잠복해 내심하게 기다렸다. 오전 10시 반에 택시 한대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천천히 돌온제굽인돌이를 빠져나와 차궁둥이를 들썩거리며 오솔길에 들어섰다. 수길 중대장이 마른 가둑나무 가지를 헤치고 살펴보니 녀운전수가 모는 빨간 택시 조수석에 한 사내가 한 팔로 녀운전수의 목을 끌어안고 있었다. 흉상궂게 생긴 그 놈은 뭐라고 위협하는 것 같았다. 녀운전수가 몸을 마구 비틀어대며 반항하는 것이 열린 차창으로 환히 들여다보였다. “사람 살려요!” 날강도가 시퍼런 비수를 뽑아들고 목에 대며 위협했다. “소리치지 마! 죽인다, 죽여!” (날강도구나!) 수길 중대장은 숲 속에서 뛰쳐나가면서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들어 공중에 대고  쏘았다. 땅! 땅! “꼼짝 말엇!” 깜짝 놀란 날강도는 녀성운전수를 활 밀어놓고 택시문을 열고 큰길 쪽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섯!” “계속 도망치면 쏜다!” 그러나 날강도는 섶불 맞은 노루처럼 다리야 날 살려라고 소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빠지며 도망쳤다. 맞은 쪽 숲 속에서 수사대원이 뛰쳐나와 권총을 빼들고 막아나섰다. “서라! 어디로 도망쳐?!” 날강도는 비수를 뽑아들더니 뒤쫓는 수사대원한테 마구 휘둘렀다. 수길이 쫓아가 발길을 날려 그 놈의 손목을 걷어찼다. 비수가 소나무에 꽂히며 부르르 떨었다. “계속 발악해?!” 수길이 호통쳤다. 수사대원도 날강도의 등을 경찰차 쪽으로 떠밀었다. “우린 네놈을 사흘이나 기다렸어!” 수사대원은 허리춤에서 쇠고랑이를 꺼내 날강도 손목에 쩔꺽 채웠다. “아이쿠!” 날강도는 오만상을 찡그렸다. “걸엇!” 날강도는 경찰차에 압송돼가면서 대가리를 툭 떨어뜨렸다. 수길 중대장이 그 놈의 험상궂게 길죽한 말대가리를 살펴보니 확실히 피해녀운전수가 말한대로 덫이가 입술 밖으로 튀여나고 코와 입 사이에 사마귄지 기미인지 붙어 있었다. 수사대원들은 형사대대에 돌아와 심문했다. 현행범으로 나포된 41세난 왕길군은 떼를 쓸래야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놈은 대가리를 푹 숙이더니 자기 범행을 낱낱이 교대하기 시작하였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사실 요즘 새파란 녀자 하나 찾았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금목걸이와 금반지를 욕심내는지 이런 짓을 했습니다.” “녀성택시운전수를 몇이나 강탈했는가?” “오늘 딱 첫번째입니다.” “닥쳣!” 수길  중대장은 책상을 꽝 쳤다. “네놈 죄행을 모르는가 해?!” “뭘?” “오늘 녀성운전수는 근본 금목걸이와 금반지가 없어.” “그랬던가?” 왕길군은 혀를 훌렁 내밀었다. 덧이가 유표하게 드러났다. 수길  중대장은 그 놈을 쏘아보면서 호통쳤다. “교활하게 놀지 말고 죄행을 낱낱이 교대하지 못하겠는가.” 왕길군은 길죽한 말상을 홰홰 저으며 잔 꾀를 부렸다. “무슨 증거 있습니까?” “네 놈이 더 잘 안다.” 송길수는 “생각해보지.” 하고 아닌 보살을 떨었다. 수길 중대장은 왕길군을 류치실에 처넣었다. 그는 왕길군의 죄행을 인증과 물증으로 밝혀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수사대원들을 데리고 교통운수관리소에 가서 운전수등록부를 찾아보았다. 그들은 녀운전수들의 명단을 일일이 기록한 후 교통운수관리소 소장을 보고 협조를 부탁했다. “우리 수사대대에서 전문 녀성택시운전수들을 상대해 강탈, 강간범죄를 저지른  강탈, 강간 흉수를 나포했습니다. 그 놈은 여러번 류사한 범죄활동을 한 것 같은데 아직 증거가 부족합니다. 혹시 피해녀성운전수들이 더 있으면 그녀들 보고 신고하라고 부탁할 수 없겠습니까?” 교통운수관리소 소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예, 좋습니다. 우리 녀성운전수들과 련계해 보지요. 보통 녀성운전수들은 강탈사실은 신고하지만 강간당한 사실은 신고하길 꺼립니다.” 수길은 너무 안타까왔다. “녀성운전수들의 딱한 사정도 리해됩니다. 가정이 있으니까 그럴테지. 그러나 강간, 강탈범을 법에 의해 호되게 타격하자면 범죄사실과 증거를 많이 밝혀내야 합니다. 피해녀성들의 정의감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소장은 힘써 협조해 조사하겠다고 답복했다. 수길 중대장은 교통운수관리소에서 나오자 그 길로 곧추 송길수의 세집에 찾아가 자물쇠를 부시고 들어가 수색했다. 그들은20평방메터도 되나마나 한 세집 옷장 서랍에서 금목걸이 4개에 금손목 걸이 2개, 금반지 5개, 인민페 4천 7백원이나 들춰냈다. 이튿날 오후, 교통운수관리소 소장한테서도 소식이 왔다. 보내온 서류에는 새로 3명의 녀성택시운전수들이 강간, 강탈당한 사건이 제보되여 있었다. 범죄자의 용모팍은 모두 왕길군이 틀림없었고 범죄수단과 지점은 모두 전번에 나포할 때 사건현지와 동일했다. 수길 중대장은 밤도와 재차 심문했다. “몽땅 교대하지 못하겠는가?” 송길수는 아직도 아닌 보살을 떨었다. “예, 나흘 전에 녀운전수를 소나무숲 속에서 강탈하고 강간했습니다.” “뭐라고? 강간했다고?” “예. 강간했습니다.” 수길은 창남 대대장과 눈길을 마주쳤다. 분명 그 녀운전수는 강탈당한 사건만 말하고 강간당한 사건은 창피해서 신고하지 않은 것 같았다. “범죄사실이 더 있어. 몽땅 탄백하라.” “다 탄백했는데 뭘 자꾸 따집니까? 전번엔 당장에서 잡혔는데.” “이게 뭔가?!” 수길이 사무상 우에 금목걸이와 금반지, 금손목걸이를 내놓았다. 송길수는 단통 철색낯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렸다. 뒤이어 대가리를 두 다리 사이에 툭 떨어뜨렸다. 이윽고 그는 자기 죄행을 참대통에서 콩알을 굴려내듯이 탄백했다. 녀성택시운전수를 강간, 강탈한 송길수는 법률의 호된 징벌을 받게 됐다. 사건해명은 끝났다. 하지만 성호는 답답했다. 녀운전수가 정신상에서 모진 타격을 받았다고 위안하려고 한달 로임까지 줘보냈다. 그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녀성운전수가 더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였다.  불시에 택시를 몰 운전수가 없었다. 그때 송숙이 찾아왔다. 그녀는 손에 바나나랑 들고 와서 먼저 성호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 고모부터 인사했다. 건너방에 와서 눈물을 머금고 성호한테 비난사정을 했다. “오빠, 우리 다섯식구가 뭘 먹고 살겠소? 우리 나그네 잘못했소. 한번만 용서하고 택시를 몰게 해주오.” 어머니마저  건너와서 역성을 들었다. “얘야, 조카사위를 몰게 해라. 괜히 택시를 하다가 친척간에 이나겠다.” 성호는 어머니까지 사정하자 마음을 넓게 먹고 한번 용서해주기로 했다. (별 수 없지. 이제 다시 한번만 그런 짓을 하면 용서없어. 세상에서 돈벌이 제일 어렵구나.)                              63. 사위도 반자식        산과 들은 명화가가 큰 붓으로 누런 칠을 해놓은듯이 날따라 황금물결로 출렁인다. 마가을의 락엽은 아무런 아쉬움도 없이 뿌리에 우수수 떨어져 밑거름으로 될 차비를 한다. 그러나 뿌리는 락엽의 대공무사한 락하를 대자연의 법칙으로만 알고 있을뿐 락엽의 갸륵한 정성과 참된 사랑을 다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세상에서는 내리사랑이 있지 치사랑은 없다고 하는 걸가. 성호와 정희가 효성을 다해 좋다하는 약을 다 대접하고 보양음식을 대접한  덕분에 상진은 기적적으로 자리에서 겨우 일어나 바깥출입을 할 수 있게 되였다. 그는 성호를 보고 “얘야, 가을철인데 사위가 다리를 절면서 어떻게 혼자 가을하겠느냐?” 하고 근심했다. 성호는 인차 “근심하지 맙소. 전번에 가보니 고향에서 가을을 다 하고 이젠 탈곡을 합더구마.” 하고 알려주었다. 상진은 기어이 “고향에 가서 탈곡이라도 도와줘야지. 어떻게 가을에 그저 먹을 벼를 달라고 하겠니?” 하고 고집하면서 지팽이를 짚고 일어났다. “아버지, 밭을 양도했으면 벼를 주지 않으리라고 그럽둥? 편찮은 몸으로 어떻게 탈곡을 돕는다고 그럽니까? 병이라도 도지면 어쩝니까?” 성호는 아버지 팔을 부축해 되앉히면서 말렸다. “아버지, 우리 부부가 매형네 탈곡을 도와주겠습니다. 근심하지 마십소.” 어머니도 나섰다. “얘, 우리 어떻게 집에 떡 들어앉아 햇입쌀이 입에 들어오기를 기다리겠니? 농사군들은 목에 걸려 그렇게 못한다. 바람도 쏘일 겸 고향에 가보면 좋을 거 같아.” 성호는 할 수 없이 부모를 택시에 모시고 고향으로 달려갔다. 경만은 성호가 목숨을 걸고 소장사를 해 번 돈으로 지은 새 벽돌집에 들어 입귀가 귀밑까지 째질 지경이였다. 벽돌토성을 두른 마당에서 그의 일가는 한창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탈곡을 하느라고 분주히 돌아치고 있었다. 성호네는 집을 매형한테 외상으로 팔고서도 부모가 쓰던 가대기랑 숱한 농기구를 그대로 밀어주었다. 심지어 수레까지도 다 그저 주었다. 경만과 은숙은 너무나도 좋아 입이 함박만큼 떡 벌어졌다. 은숙과 조카들은 성호가 부모를 모시고 온 것을 보고 탈곡기를 멈추고 우르르 모여와 인사했다. 정국은 달려와 할머니를 안아 한바퀴 빙 돌리면서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인사가 끝나자 경만은 스위치를 재차 넣었다. 탈곡기가 성수나게 윙윙 돌아가고 사람들은 또 분주히 서둘렀다. 은숙은 부모를 집에 모셔들여가려고 했다. 그러나 상진은 쩔뚝거리면서도 벼단을 나르고 영옥은 탈곡기에 벼단을 주어 먹였다. 통통 영근 벼알들이 짜르르 쏟아져나왔다. 성호는 옷을 갈아입고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선글라스까지 낀 후 탈곡기 앞에서 먼지를 새뽀얗게 들쓰면서 흩날리는 벼짚과 북데기를 깍쟁이로 걷어냈다… 그날 저녁 성호는 먼지 묻은 얼굴과 손이나 대충 씻고 부랴부랴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달려왔다. 부모들은 기어이 남아서 사위네 가을싣걱질과 탈곡을 돕겠다고 했다. “사위도 반자식인데 도와줘야지. 여기 고향 마을에 돌아오니 공기도 좋고 물도 좋고 기분도 좋구나.” 성호는 흰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일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은숙은 보다 못해 “아버지, 일신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무슨 일을 한다고 그럽둥? 어서 집으로 들어갑소.” 하고 말렸다. 경만도 투박하게 동을 달았다. “에이구, 제 몸도 이기지 못하면서 무슨 일을 온전히 하겠소? 재풍이라도 맞으면 어쩌자고? 우린 치료비를 대지 못합구마.” 상진은 속으로 애비없이 자라서 수양도 없이 말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저 허구프게 웃기만 했다. 이튿날 상진은 지팽이를 버리고 경만이 싣걱질하는데 따라가서 벼단을 수레에 섬기겠다고 나섰다. “에이구, 가시아버지, 온전히 걷지도 못하면서 어딜 온다고 그럽둥? 어디 상하면 치료비라도 내라면 어쩜둥?” “다릴 상한 사위 일하는데 벼단이라도 섬겨줘야지.” 은숙도 말렸다. “아버지, 집에서 구경이나 합소. 할만하면 엄마와 함께 돼지죽이나 끓여서 먹입소.” “응, 그럼 그러지.” 경만은 욕심스레 성호네 소를 길렀던 우사에 굴암퇘지 10여마리나 치고 있었다. 딸과 사위가 수레를 몰고 떠나가자 늙은 량주는 사양실에 들어가서 커다란 가마에 돼지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영옥이 보드라운 벼겨랑 뜨물이랑 쏟아넣고 상진이 커다란 아궁이에 땔나무를 쑤셔넣고 불을 달자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씨뻘건 불길을 들여다보는 상진은 불시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시내에 있으면 영낙없이 화장터에 가서 불에 타 두번째 죽음을 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 따가워 어떻게 타겠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졌다. “여보, 우리 고향 마을로 돌아오기요.” 영옥은 괴여올라오기 시작하는 돼지죽을 막대기로 훌훌 저으면서 말렸다. “무슨 소리요? 막내아들며느리 얼마나 잘 대접하는데? 하루 삼시 돼지고기국에 생생한 남새를 먹으면 어째 배 부른 소릴 하오?” 상진은 탁탁 불찌가 튀면서 세차게 타오르는 시뻘건 불길을 불뚜지개로 뚜지며 계속 중얼거렸다. “이 불길을 보오. 이 보다 더 센 휘발유불에 어떻게 따가와서 타죽겠소?” 영옥은 혀끝을 끌끌 찼다. “에이구, 죽은게 타는지 따가운지 알 턱이 뭐요? 괜히 살았을 때 자꾸 타는 생각을 하지 말란 말이오. 쯧쯧쯧.” “나는 죽어도 타지 못하겠소. 괜히 시내에 내려가서 타죽을게 있소. 시내는 화장하지 않으면 자식들 전도에 영향주게 되오. 우리 이 마을은 반산구니까 죽으면 태우지 않아도 된단 말이요.” 상진은 진작 오래동안 이 일을 궁리한 것 같았다. “미리 돌아오기오. 괜히 막내아들과 며느리 전도를 그르치지 말고.” 영옥은 뜨끈뜨끈하게 끓은 돼지죽을 물초롱에 퍼담으면서 말했다. “집이랑 사위한테 외상으로 다 팔아놓고 어디로 돌아온단 말이오? 엉치를 들여놓을 데나 있소?” 상진은 나무고챙이로 세차게 타는 장작을 이리저리 뚜져놓고 장작을 걷어넣으면서 말했다. “사위도 반자식인데 돈 일전한푼 내지 않고 이 집에 들었으니 우리 돌아오겠다면 방 한칸이라도 내주겠지.” 영옥은 돼지죽을 뜨다 말고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안될 소릴 하지도 마오. 괜히 성질이 괴벽한 셋째사위와 말다툼이라도 생기겠소. 팔았으면 팔았지. 되찾으려니 하지도 마오.” 영옥은 돼지죽초롱을 들어 부뚜막에서 내리우면서 뒤말을 이었다. “옛날 시아버지 항상 큰딸네 집으로 가서 버치랑 틀면서 얹혀 살 궁리를 하더니 심통하냥 하오. 그래도 아들을 믿고 살아야지 사위를 믿고 살겠소? 이제 막내아들집에서 나와 셋째딸집으로 나와 보오. 막내며느리 좋아하는가? 하루 삼시 생생한 남새채에 이밥을 대접받으면서 좋은줄 모르고 허망생각을 하지도 마오.” 상진은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사위도 반자식인데 믿어야지. 한 마을에서 20년이나 함께 산 때 묻은 사위 아니고 뭐요?” 영옥은 자기 생각이 따로 있었다. “그런 소리 하지도 맙소. 몇해 전에 밭 반이랑 때문에 영상하게 생산대 대장을 데리고 가서 자대로 재고 그랬습둥? 그때 사위 뭐라고 합데? ‘이제부터 가시아버지고 개나발이고 다 모른다.’고 하지 않았소. 사위도 반자식이라지만 사위 믿고 산다는 게 말이나 되오? 마음씨 착하기로 법 없이 살 거 같던 넷째사위를 보오. 조강지처마저 죽이고 화냥년을 끼고 한국에 달아나자고 하지 않았소? 이 세월에 자기 난 아들딸이나 믿어야지. 사위들을 믿고 산다는 건 한지에 방아를 거는 격이요.” 상진은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시내에서 살면서 화장터에 가서 타고 싶지 않았고 고이 관에 들어가 부모가 묻힌 뒤산에 가서 묻히고 싶었다. “송준은 말수가 적어서 속으로 무슨 궁리를 하는지 아무도 모르오. 공부까지 좀 한 놈일수록 더 교활하고 엉큼하지. 경만은 다르오. 투박한 농민이지만 솔직하오.  좋으면 좋고 나쁘면 나쁘다고 내놓고 솔직하게 떠들고 욕하지. 송준 같으면 그러겠소. 속으로는 죽어라고 욕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소. 그런 놈이 더 음험하고 교활하고 더 무섭소.” 상진은 말수가 적었다. 그런데 오늘처럼 말을 길게 하기는 처음이였다. “개도 짖지 않는 개가 더 무섭지. 경만은 성질이 괴벽하고 거칠어 그렇지.  송준보다 로실하고 순박하오.” 늙은 량주는 한참 역사질해서 돼지죽을 끓여 둘이서 물초롱에 퍼담아 들고 간신히 돼지우리로 나갔다. 철러덩! 상진이 그만 돌부리에 걸려 허망 넘어졌다. 끓은 돼지죽이 넘어진 상진의 다리에 튀였다. “에이구, 어디 데지 않았소? 좀 쉬라니까.” 상진은 손으로 땅바닥을 짚고 일어나면서 중얼거렸다. “에이구, 옛날 해방전쟁 때 말이요. 기관총과 쌀짐에 이불짐까지 100여근씩이나 지고도 방공호를 훌쩍 뛰여넘어 돌격했는데. 허참, 힘이 싹 어디로 빠져나갔을가? 나이 정말 원쑤로구나.” 이때 경만과 은숙이 벼단을 산더미처럼 실은 소수레를 몰고 울 안에 들어섰다. “일손이 많을줄 알았더라면 미리 벼를 많이 실어들여오는 건데.” 딸과 사위가 벼단을 부리워놓고 가자 령감과 로친은 돼지죽을 다 퍼주고나서 벼단을 무지기 시작했다. 령감이 벼단을 끌어다놓으면 로친이 허연 머리카락을 마가을바람에 흩날리면서 차곡차곡 벼낟가리에 무져놓았다. 흐리멍텅한 하늘에서 허연 눈송이들이 흩날려내렸다. “에이구, 어쩜 딱 요때 눈이 내려?” 영옥이 벼단을 잽싸게 무지면서 눈송이 내리는 하늘을 원망했다. 상진은 벼단을 낱가리에 던져주면서 재촉했다. “일손이나 다그치오!” “원, 령감두, 항상 우물에 가서 숭늉을 달라 할 지경이오.” “야따, 빨리 무지오. 온 한해 농사지은 거 몽땅 눈 밑에 넣겠소.” 벼수레를 몰고 돌아온 경만은 벼단을 무지는 가시부모를 보고 흐뭇해했다. 그때 외손녀들인 혜옥과 주옥이, 송옥이 줄줄이 들어섰다. “야, 너네 할아버지를 도와 벼단을 날라라.” “예~” 애들은 환성을 지르며 장난삼아 벼단을 날라왔다. 저 셋째딸 송옥을 보라. 언니네를 따라 제키만한 벼단을 끌어다 할아버지 손에 쥐워주느라고 입술을 옥물고 낑낑거렸다. 송옥은 경만이네 원래 아들을 낳자고 산아제한정책을 어겨 벌금으로 재봉침을 줘보내고 난 애였다. 그런데 낳고 보니 또 딸이여서 얼마나 실망했는지 몰랐다. 경만과 은숙은 늘 송옥을 두고 “아까운 재봉침과 바꿔온 애.”라고 롱담했다. 그때마다 송옥은 뾰로통해서 눈을 흘기면서 “내 그래 재봉침 값 밖에 안된단 말입니까? 이담 크면 꼭 재봉침을 사줄게.” 하고 엉뚱한 말로 웃기군 했다. 상진과 로친은 벼단을 한단한단 주어 낱가리에 보기 좋게 착착 무져놓았다. 흩날리는 눈을 무릎쓰고 키 넘는 벼낱가리에 올라가 흰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벼단을 무지는 령감로친의 정성어린 모습 참말 눈물겨웠다. 이튿날 오후에는 령감로친 덕분에 벼낱가리가 령감로친의 두 키는 넘어 올라갔다. 저녁에 영옥은 령감을 보고 타일렀다. “여보, 당신은 이젠 낱가리에서 내려가오. 괜히 떨어져 상하면 어쩌오?" “맞습니다. 할아버지, 내려오십시오. 우리 무지겠습니다.” 혜옥이 까만 쌍까풀눈으로 외할아버지를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말렸다. “그래, 내려가지. 이젠 외손녀들 신세를 보게 됐구나.” 상진은 혜옥과 주옥의 부축을 받으면서 간신히 벼낟가리에서 내렸다. 주옥이 벼단을 부리우는 부모를 보고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엄마, 이게 뭐야? 칠순이 넘은 외할아버지를 부려먹다니? 두고 보십시오. 이담 우리도 크면 딱 엄마, 아빠 하던대로 하지 않는가?” “이놈 가시나들이!” 경만은 퉁사발눈을 부라리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다 키워놓으니 배때 쑤셔나니? 이담 너넬 믿고 살 거 같니?” “아들도 없어가지고 그래 누굴 믿고 살겠습니까? 흥!” 주옥이 빈정거리자 경만은 속이 써늘해 더 말하지 않았다. 그때 혜옥이 통장훈을 쳤다. “진짜 딸이라고 업신여기지 맙소. 지금은 아버지 젊어서 힘이 있어 그렇지만 이제 늙어봅소. 외할아버지처럼 이 딸집 저 딸집 돌아다니면서 살지 않는가?” 주옥이 맞장구를 쳤다. “아빠 외할아버지랑 잘 모셔야지. 우리 세 딸한테 모범을 잘 보여야죠.” 그때 어린 송옥이 뾰로통해 앵두입으로 종알거렸다. “아버진 진짜 령점이야. 이전에 외할아버지와 밭 때문에 다 싸우지 않았어?” “주둥이를 다물지 못해?!” 아버지가 퉁사발눈을 희번뜩이며 주먹을 쳐들자 애들은 “와야!” 하고 도망쳤다. 애들은 저만치 토성구석에까지 도망쳐서 배를 끌어안고 깔깔깔 웃었다. 상진과 영옥이 도와준 덕분에 경만과 은숙은 산더미 같던 벼낱가리를 며칠 사이에 몽땅 탈곡해버렸다. 산더미 같은 벼무지를 보는 늙은 량주의 가슴도 햇입쌀을 먹고 살 희망으로 부풀어올랐다. 그들은 딸과 사위를 도와 숱한 벼를 마대에 퍼담아 무져놓았다. 그런데 사위 경만이 글쎄 부모들의 식량마저 주지 않고 떼를 쓸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날 경만은 소수레를 몰고 시내로 쌀을 팔러 가면서 가시부모한테 무정하게 한마디 던졌다. “올해 쌀값이 올라가서 원래 계획대로 쌀을 줄 게 없습구마. 정 쌀을 가져가겠으면 시장값만큼 우리 집에 거 삽소.” “뭐라오?” 상진은 먹을 쌀마저 주지 않겠다고 하자 눈 앞이 캄캄해났다. 그는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더니 마루바닥에서 까무러쳐 허망 쓰러졌다. 영옥이 황급히 령감을 부축하면서 애타게 불렀다.  “여보! 여보! 아무렴 입을 가진 사람이 굶어죽겠소?” 은숙도 황망히 달려왔다.  “아버지!” 그녀는 아버지를 부축해 집 안에 모신고나서 나그네를 욕했다. “저 미친 나그네, 어쩜 부모 보고 이럴 수 있소?” 경만도 물러서지 않았다. “뭐라고? 그래 언젠 밭고랑 반이랑도 양보하지 않다가 우리 집에 영 얹혀 살 작정인가?” 그 광경을 본 주옥은 아버지를 나무랐다. “아버지, 어째 외할아버지 잡술 쌀마저 주지 않습니까? 어디 두고 보십시오. 우리 이담 크면 딱 아버지 하던대로 하지 않는가.” “뭐라니? 다 키워놓으니 배은망덕하겠느냐? 내 쩔뚝거려도 너네 신세에 사는가 봐라.” 혜옥도 무정한 아버지한테 눈을 흘겼다. “늙은 다음에 잘 되는가 봐라!” 송옥은 더 천진란만하면서도 돌직구를 퍼부어댔다. “아버진, 아들도 없는게 이담 봐라, 누가 모시는가?” “이 개쌍년들이, 한번만 주둥이를 더 놀리기만 해봐라! 흥!” 애들은 “와-야-” 하고 소리치며 도망갔다. 걔들은 저쪽 담장 밑에 가서 아버지한테 입귀를 비쭉거렸다. “개쌍년들이, 이담 너네 신세에 살 거 같애?” 경만은 코방귀를 뀌였다. 그는 가시아버지 쓰러졌건 말건 쌀수레를 몰고 처자들의 쌀쌀한 눈길을 받으면서  울타리 대문을 나섰다. 동네 개들이 경만을 보고 왕왕왕 짖어댔다.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 백호가 맏아들 정국을 데리고 달려왔다. 그들의 뒤로 맏며느리 명희가 수건을 벗어 쥐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아버지, 이게 웬 일입둥?” 그는 은숙을 돌아보았다. “저 썩어질 나그네새끼, 어쩜 부모 잡술 쌀도 주지 않고 몽땅 팔겠다고 저러오? 아버지 화김에 그만…으흐흑, 흑흑흑.” 은숙이 울면서 말끝을 맺지 못했다. 백호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경만이 가버린 쪽을 내다보면서 욕했다. “어쩜 부모 밭을 붙이면서 잡술 쌀도 주지 않다니?” 은숙은 손으로 눈물을 씃으면서 넉두리를 했다. “글쎄 말이요. 사람새끼 인정머리 없이. 흐흐흑, 흑흑흑, 저게 제 명에 썩어지지 못할게. 남이라도 어찌 저럴 수 있소? 에이구, 저런 것두 사위라구 믿구 밭을 붙이게 한 게 잘못이지. 에이구, 원, 동네 망신스러워서 어떻게 살겠소?” 백호는 정국과 함께 아버지를 업어 따뜻한 가마목에 눕혔다. “이러고 있을 때 아니야, 빨리 성호한테 알려서 아버지를 병원에 모셔가야 해.” 정국과 혜옥은 할아버지 다리와 손을 주물러주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윽고 흰눈이 푸실푸실 흩날리는 해질 무렵에 성호와 정희가 이모사촌처남  경철이 모는 자동차에 앉아 쏜살같이 달려왔다. “아버지, 아니, 펀펀하던 아버지 웬 일이요?” 성호는 은숙한테서 자초지종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안해와 함께 아버지를 자동차에 모셨다. “나도 가겠다.” 영옥이 따라나섰다. 성호는 “어머니 여기 있습소.” 하고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무정한 매형네 집에 어머니를 두고 간다는 것은 말도 아니였다. 자동차는 상진을 싣고 시내로 쏜살같이 달렸다. 인사불성이 된 상진은 막내아들의 품에 안겨 고요히 잠들었다. 간혹 한숨을 길게 내쉬기도 하고 코를 드렁드렁 곯기도 하였다. 성호는 한평생 고생한 아버지가 불쌍했다. 한편 매형 경만이 야속했다. 사위도 반자식이라고 앓는 몸으로 탈곡을 돕느라고 했건만 어찌 쌀 한근도 주지 않는단 말인가? 성호는 동네 망신스러워서, 집 안 허물이 날가봐 한마디 원망도 하지 않고 울컥거리는 마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그는 이 시각에도 매형의 좋은 점만 생각하고 나쁜 건 떠올리지 말면서 형제간의 화목을 극력 유지하려고 모지름을 썼다. 그랬다. 경만은 막내처남인 성호가 학교에 가서 다른 애들한테 맞으면 항상 팔을 걷고 나서서 역성을 들어주었다. 집에서 기르는 소 고삐가 자꾸 끊어나서 성호가 찾아갔을 때도 매형은 낮잠도 자지 않고 코뚤레에 가죽고삐를 동여매주었다.  가시집이 길림 교외에 이사가서 성호가 한족학교를 다니기 어려워 조선족학교를 다니고 싶어할 때도 경만은 두말없이 나오라고 해서 자기 집에서 공부시켰다. 성호는 지금도 기억났다. 매형이 소수레를 몰고 15리나 떨어진 역에까지 마중나와서 성호의 이불짐이랑 싣고 자기 집으로 데려가던 일로, 면도칼날로 백로지를 쪽쪽 베여 필기장을 매주던 일로, 쌀고생을 그렇게 하면서도 청수수를 베여 방아에 찧어 밥을 지먹으면서도 성호한테 이밥을 지어먹이면서 공부시키던 일로 눈 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성호가 학과목마다 100점을 맞은 시험지를 가지고 집으로 달려오면 매형과 누나가 기뻐하던 일로, 매형과 셋째누나의 사랑을 한껏 받던 일들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런 내막을 다 알지 못한 정희의 생각은 달랐다. 재풍을 맞은 시아버지를 입원시켜놓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도도거렸다. “어쩜 그렇게 무정합니까? 나어린 막내처남한테 가시부모를 맡겨놓고서  쌀마저 주지 않다니? 어디 사람이 할 짓입니까?” 성호는 어머니가 오시러워 할가봐 정희 팔을 잡아당겨 침대에 앉혀놓더니 입가에 식지를 댔다. “쉿-” 그는 뒤방을 가리켰다. 정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계속 떠들어댔다. “동무 그렇게 무골충인줄은 몰랐습니다. 어째 매형을 속시원히 툭 쏴주지 못합니까?” 성호는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자존심을 작작  건드리오.” 정희도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집에서는 우쭐렁거리고 어째 매형과는 ‘쌀을 달라.’고 한마디도 짯짯이 하지 못합니까? 매형이 그렇게 무섭습니까? 부모를 모셔왔는데 명년엔 뭘 먹고 산단 말인가요? 참 코 막고 답답해요.” “됐소, 됐어. 그래 매형과 주먹다짐이라도 해야 한단 말이오? 아무리 그럼 오늘 이 세상에서 우리 다섯식구 입가지고 굶어죽겠소? 배급이 모자라면 쌀을 고가로 사먹으면 되지.” 성호는 뒤방에 엄마도 있고 하나도 공부하는지라 그만두었다. 정희는 뾰로통해서 두덜거렸다. “좋은 제 땅을 붙이게 하고서도 가을에 쌀도 받아오지 못하고 이게 뭔가요? 아무리 형제간이라도 그렇지. 마을에 내놓고 시비해도 어디 그런 법이 있어요?” “알았소. 동네 망신스럽게 떠들지 마오. 웃마을에 큰형님도 있으니까. 타당하게 처리하겠지. 새 해에는 먹을 쌀을 주겠는지 안주겠는지 계약을 똑똑히 맺고 밭을 주지. 안되면 다른 사람한테 주면 되지.” 성호는 정희의 손을 잡고 당부했다. “절대 이 일로 형제간에 이 벌어져선 안되오. 꾹 참고 나서지 마오. 엄마 항상 말하지 않았소? 남이 밑지게 하는 거보다 내 밑지는 게 낫소.” 정희는 실망한 눈길로 성호를 바라보았다. “항상 밑진 노릇만 하세요. 동물 믿고 어떻게 애 둘을 기르겠는가 걱정돼요.” 성호는 눈이 데꾼해졌다. “무슨 소리요?” 정희도 정색했다. “보세요. 그 좋은 벽돌집과 소사양장까지 팔데 없어 그랬는가요? 인정, 사정도 없는 매형한테 눅거리로 팔았죠. 그것도 외상으로 팔다니요? 농기구를 몽땅 무상으로 밀어주다니요? 아무리 형제간이라도 그렇지. 옛날부터 부모형제간에도 돈은 세여 주고 세여 받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남을 주기는 쉬워도 찾기는 힘들죠.” 성호는 기분이 상했지만 꾹 참았다. “됐소. 됐다는데. 형제간도 그렇고. 세상 사람들한테 좀 밑진다 하면 좋소. 어째 계속 이러오? 뒤방에서 한나가 공부하오.” 정희는 말문이 터지자 걷잡지 못했다. “이제 후회해도 어쩌는가요? 부모는 자꾸 농촌으로 되돌아가겠다는데요. 아버진 이 막내며느리 효성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그러는지. 아니면 며느리보다 딸이 더 좋은지 자꾸 딸집으로 가겠다고 하지 않아요? 이제까지 난 그래도 시부모를 잘 모시느라고 노력할만큼 노력했어요. 정말 섭섭해요. 이래서 모두 시집식구들이 싫어서 ‘시’자 들어간 시금치마저 사먹지 않는다고들 하죠?” 성호는 억이 막혔지만 눈물을 줄줄 흘리는 정희를 보기 안쓰러워 와락  끌어안더니 손으로 볼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닦아주었다. “진짜 시부모를 잘 모시자고 해도 막내아들며느리 마음을 리해하고 우리 말을 좀 들어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요? 기실 부모를 모시는 사람이 고생은 하고 허물만 나기 마련이죠.” 정희는 너무나도 섭섭해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울었다. 성호는 꼭 끌어안고 뽀뽀까지 해주면서 구슬렸다. “정희, 제 고생한 걸 내 알아주면 됐잖소?” “픽, 빈 말뿐이지. 이날 이때까지 해준 게 뭔가요? 숱한 시누이들이나 시형들이 어디 꼬물만치나 알아줬는가요?” 정희는 진짜 이날 이때까지 하지 못한 섭섭함을 다 털어놓을 예산인 것 같았다. “시누이들이나 시형들이나 부모를 모셔본 사람이 몇이 되는가요? 큰시형과 큰형님은 그래도 큰아버지를 모셨으니까 리해하겠지만요. 쭉 훑어보세요. 큰누나로부터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누나까지. 어느 누나 시집살이를 해보았는가요? 시부모를 모셔보지 못한 누나들은 시집살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가를 래해하지 못해요. 그저 일년에 설이나 생일에 한두번 뭘 사가지고 와서 주고 갔지. 언제 한두달이라도 부모를 모시고 있어본 적이 있는가요? 우리 아무리 잘해도 허물만 났지. 잘했다고 할 거 같은가요?” “내 다 알고 있소. 밤이 깊어가는데 병원에 가봐야겠소.” “어째 내 말이 듣기 싫은가요?” “아니, 날 내놓고 누구와 하소연할 사람이 어디 있소? 내 리해하니까. 이만하기요.” 성호는 바깥으로 나가면서 정희의 복숭아이마에 뻑 하고 키스를 해주었다. “보기 싫어. 세살 먹은 어린앤가?” 정희가 몸을 탈면서 떼를 쓸 때다. 한나가 숙제책을 들고 들어오다가 손벽을 치면서 새된 소리를 쳤다. “아, 웃으워라. 아빠, 엄마 뽀뽀하더라.” 한나는 뒤방을 향해 소리쳤다. “할머니, 와서 구경하쇼. 아빠하구 엄마 뽀뽀 하면서 논다.” 정희는 그제야 한나를 끌어안고 해시시 웃었다. “야, 못 쓴다. 못 써. 떠들지 말라.” 성호는 바깥에 나와 눈가루가 흩날리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였다. 고향 마을 경만이네 집에서는 백호와 경만이 맞상을 하고 앉아 한창 애꿎은 술만  꿀꺽꿀꺽 마시고 있었다. 술이 서너순배 돌자 백호가 무거운 입에서 빗장을 훌 뽑았다. “매부, 올해 농사를 짓느라고 고생했소. 그런데 양, 그게 뭐요?” 경만은 그 말귀를 알아듣지 못할 사람이 아니였다. “양, 부모네 먹을 쌀줄게 한근도 없소.” 경만은 투박하게 한마디 툭 내쏘아싿. 백호는 성이 꼭두까지 울컥 치멀었지만 가까스로 참으면서 따지고 들었다. “그것두 말이라고 하오? 그래 부모 밭을 붙여 산더미 같은 벼를 쌓아두고서도 부모가 잡술 쌀도 주지 않을 작정인가? 그저 달라는 것두 아니구. 밭을 붙힌 값으로 달라는 건데.” 경만은 술잔을 굽내더니 의연히 외고집을 부렸다. “년초하구 정황이 판판 다르오. 지금 장마당에서 쌀 한근에 얼마나 하는지 아오? 년초보다 30전이나 올랐소. 부모네를 줄 쌀 700근이면 210원이나 나드오. 송아지 한마리 나드는데 정신있소?” 백호는 너무 억이 막혀 술잔을 내려놓았다. “경만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늙은이들이 잡술 쌀이야 줘야지. 그럼 웃돈을 주면 안되오?” 경만은 제쪽에서 억울한듯이 두덜거렸다. “작작 삐치오. 가시부모한테서 웃돈을 받았다면 동네 사람들이 뭐라겠소?” 백호는 직통배기를 날렸다. “매부, 정말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구만. 어째 가시부모 잡술 쌀을 주지 않으면 동네에서 웃는 건 모르오? 양? 한사코 쌀을 주지 않겠다고 우기오?” 경만은 천정이 날아갈듯이 떠들었다. “아니, 지주라도 그런 지주 어디 있소? 온 한해 고생스레 농사를 지어놓으니 어째 한사코 쌀을 달라고 하오? 양? 진짜 시끄러워 못 살겠다.” “시끄럽다고? 동네 나가 시비해보오. 매부 옳다는가?” “옳으면 어쩌고 틀리면 어째? 내 주지 않으면 다요. 이전에 가시아버지 그게 뭐요? 밭고랑 반이랑 때문에 허대장을 데리고 가서 자대로 쟁기면서 생야단치지 않았는가? 얼마나 챙피했는지? 이젠 가시아버지고 뭐고 다 모른다, 몰라. 다신 쌀말을 입 밖에 내지도 마오.” 백호는 더 참지 못하고 밥상을 꽝 치며 고함쳤다. “야, 너도 사람새끼야?! 새 해부터 우리 부모 밭을 붙일 거 같니? 이 집이랑 몽땅 내놔라. 너 같은 개새끼한테 외상으로 줄게 없다. 우리 부모 집이니까. 래일 당장 내놓고 나가라!” 경만은 술잔을 구들에 탕 팽개치면서 버럭 고함쳤다. “뭐라고?! 가라는 소리 죽으라는 소리보다 더 하다구. 누굴 감히 나가라는가?! 어째 맞고 싶은가?!” 백호도 물러서지 않고 고함쳤다. “호로자식, 어디서 덜 돼먹은 개짓 해?!” 경만은 벌떡 일어나 백호의 멱살을 거머쥐고 주먹을 날렸다. “야, 어째 이러오? 이상오빠한테 주먹질인가? 동네 영상하게!” 은숙이 황급히 일어나 경만의 팔에 매달려 멱살을 쥔 손을 풀려고 했다. “물러나지 못해?!” 경만은 은숙을 활 밀어버리고 주먹을 날렸다. 백호도 날아드는 주먹을 피하면서 발로 경만의 쩔뚝거리는 오른다리를 걷어찼다. 경만은 저만치 뿌리워나가 쓰러졌다. 경만은 다리는 절어도 팔힘만은 셌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백호의 허리를 안고 허망 쓰러뜨렸다. 백호는 구들에 누운 채 경만의 다리를 잡아당겨 넘어뜨렸다. 그들 둘은 구들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구을며 한참 싸웠다. 애들이 놀라 울며 소리쳤다. “아버지!” “엄마!” 아녀자 은숙의 힘으로는 호랑이들처럼 으르릉거리며 싸우는 그들을 뜯어말릴 수 없었다. 그때 백호의 맏아들 일복과 둘째아들 정국이 뛰여들어왔다. 그들 둘은 엉켜붙어 구들에서 한창 뒹구는 아버지와 고모부를 뜯어말렸다. “야, 동네 영상해 못살겠소.” 은숙의 말에 경만은 버럭 고함쳤다. “나가! 애비 역성을 들겠으면 나가!” 일복과 정국은 아버지를 말려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백호는 집으로 가면서도 경만한테 손삿대질을 했다. “너네 쌀을 주지 않으면 우리 부모 잡술 쌀이 없을 거 같니? 명년에 밭을 붙히은가 봐라. 당장 이 집을 내라. 이건 부모 집이야!” 경만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 집에 불을 콱 지르지 않는가 봐라. 낼 거 같은가!” 백호는 떠나가면서도 고함쳤다. “어디 감옥에 가고 싶으면 그래 봐라! 쌍놈의 호로자식! 애비 없이 자란게 어디서 덜돼먹은 개새끼!” 그 소리는 경만의 제일 아픈 상처를 찔렀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렵게 자랐던 것이다. 경만은 부엌에 씽 달려가더니 시퍼런 식칼을 주어들고 쩔뚝거리면서 백호한테로 덮쳐갔다. 다행히 일복과 정국이 달려들어 식칼을 빼앗아내고 구들에 물앉혀놓았다… 며칠 후 병원에서 상진은 아들며느리의 살뜰한 보살핌 속에서 점차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눈을 천천히 뜨고 천정을 쳐다보더니 첫마디에 이렇게 외웠다. “사위도 반자식인데 어쩜…” 상진은 뒷말을 잇지 못하고 밭고랑처럼 파인 얼굴 주름살에 씁쓸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 처량한 모습을 본 성호는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아 눈물을 펑펑 쏟았다.  영옥도 령감이 불쌍해 외면해 어깨를 들먹이면서 저고리고름으로 눈물을 닦았다. “내 뭐라고 합데? 사위를 믿고 여길가 저길가 하지 말고 막내아들며느리를 믿고 가만 있자는데두.” 시어머니 말에 감동을 먹은 정희는 구석에 돌아서서 손수 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어깨를 가늘게 들먹였다.       저자 주: 저의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이 출판된 후 수많은 애독자들이 연길시 신화서점 2층에 가서 사갔는가 하면 저의 위쳇에 책값 120원에 우편료 20원까지 보내 책을 택배로 받아 보고 있습니다. 택배구독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위쳇번호는 핸드폰번호 13844352157입니다.      저 은행계좌:우정은행카드 6217 9824 0000 0003 408 金长赫     
223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32_ 댓글:  조회:1430  추천:1  2019-08-09
                        60. 밀모 굉팔은 간사한 늙은 너구리처럼 음흉하게 사람 잡는데는 이골이 텄다. 어느날, 광고회사 사무실에 두리모자를 쓴 공상국 일군들이 들이닥쳤다. 그중 배가 항아리만큼한 간부가 승호를 쏘아보면서 물었다. “누가 성호요?” 성호는 잔등에 소름이 오싹 끼쳤다. 그는 천천히 일어났다. “접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말라꽹이가 성호를 손가락질하면서 고함쳤다. “당신, 뭐요? 광고법 어기고 술광고를 하다니?” 뚱뚱보도 성호를 쏘아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단단히 벌금해야겠소? 당장 비법수입한 령수증을 내놓소!” 분명 술공장 금술광고를 했다고 찾아왔다. 굉팔은 경리실에서 건너와 빈정거렸다. “꼴 보기 좋게 됐군. 불법술광고를 하다니, 흥! 이젠 진짜 우리 광고회사를 다 말아먹는 판이야. 흥!” 승호는 못마땅한 눈길을 보냈다. 이럴 때일수록 경리는 수하를 보호해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굉팔은 도리여 깨고소해 했다. 그는 성호를 꺼꾸러드리려고 암암리에  공상국에 고발했던 것이다. 한쪽에서 성호가 공상국에 불리워 다니면서 벌금당하는 것을 보고 굉팔은 철색 말상에 간교한 웃음을 지었다. “잘코사니야! 암전에 맞아 피 흘리며 쓰러지는 성호, 그 비참한 모습, 참 가관이야! 허허허.” 굉팔은 음험하고 간교했다. 그는 회사 회의에서 비판하고 공상국에 고발하는 비렬한 수를 다 써서 성호를 음해하고 회사에서 발을 붙일 곳이 없게 납작하게 만들었다. 굉팔은 또 상부 간부에게 아첨하는데는 능수였다. 웃사람의 비위를 슬슬 맞춰가면서 기여야 할 땐 땅바닥에 납짝 엎드려 가달두새로 설설 기여 빠져나갔다. 그는 쥐새끼처럼 시내를 쏘다니면서 우멍눈으로 어데 소문난 유흥장소가 있는가 정찰해두었다간 오청룡를 모시고 가서 질탕하게 놀게 했다. 술자리에는 꼭꼭 이름난 모델들이거나 미스무용수들을 불러 배석해 주흥을 돋구게 하군 하였다. 또 일주일이 멀다하게 마사지업소에 모시고 가서 섹시한 아가씨들을 불러 사지가 시원하게 주물러주게 했다. 오청룡 국장은 굉팔을 총경리로 임명한 덕에 팔자를 고쳐 별의별 향락을 다 누렸다. 오래잖으면 설날이다. 굉팔은 재무과에 가서 해연을 보고 “사업경비로 쓸 일이 있소.” 하고 손을 내밀었다. 해연은 “얼마?” 하고 새침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한 5만원 가져오오.” “예?” 해연은 눈이 휘둥그래 입을 함박만큼 딱 벌렸다. 평소에 굉팔이 돈을 쓰겠다면 두말없이 척척 내놓던 해연도 그 엄청 많은   천문수자에 놀랐다. “전번 달에 2만원을 가져갔는데 또 이리 많이?” 7만원, 진짜 광고회사 총수입의 5분의 1이나 되는 돈이 아닌가! “총경리 가져오라면 가져올게지. 무슨 잔소리요? 경리 할 일이 따로 있고 출납이 할 일이 따로 있소. 출납은 총경리 시키는대로 해야 하오.” 해연도 너무 지나친 것 같아 슬쩍 둘러댔다. “예, 령수증에 무슨 항목으로 써넣어야겠는지 몰라 그래요.” 굉팔은 재무과 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해연한테 가까이 다가와 나직이 쑤근거렸다. “제만 알고 있소.” 해연은 무슨 심상찮은 일인가고 굉팔의 깡마른 철색낯을 쳐다보았다. “사실 오국장께서 새 집을 사셨대. 장식하겠는데 어쩌겠시우?” “예? 이래서 괜찮겠어요? 아무리 상부 간부라고 해도 그렇죠. 광고회사 돈을 주는 건 재무정책에 어긋나는데요.” “아니, 모르는 소리. 이것도 사업경비지출이지. 농사를 지어도 화학비료 필요해. 택시업을 해도 차보험이 필요한디. 오씨한테 딱 들어붙어야 광고회사를 살리고 우리 호주머니에도 두툼하게 쑤셔넣을 수 있는기우. 지도일군을 모르곤 한발작도 나가기 힘들어. 딱 마치 농사에 쓰는 화학비료값이나 택시업에 지불하는 보험비라고 여기면 돼. 저도 전번에 오청룡 아니면 재무과에 남을 수 있었겠어? 잊지 말라니께.” 그제야 해연은 좀 깨달은 것 같았다. (리경리는 사업경비라는 명목으로 오청룡한테 가옥장식비를 찔러주고서라도 총경리직을 지키려는구나. 총경리직만 지키면 권세도 돈도 다 있을 수 있으니까.) 해연은 자기 살을 저며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무슨 수가 있겠는가? 할 수 없이 그녀는 저금소에 가서 만원 묶음 다섯개나 찾아내 굉팔한테 가방채로  건네주었다. 굉팔은 5만원에서 두 묶음은 스리슬쩍 챙겨 저금소에 가서 자기 저금통장에 저금해넣었다. 그는 저녁에 나머지 3만원이 든 돈가방을 달랑 들고 오청룡을 조용한 다방으로 불러냈다. 오청룡은 이젠 리굉팔이 부르기만 하면 꼭 무슨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습관적으로 직감했다. 한밤중에라도 굉팔이 부르기만 하면 헐레벌떡 쏜살같이 달려나오군 했다. 그러나 그 뒤끝에는 꼭 무슨 요구가 꼬리를 달고 디룽디룽 달려 나오군 하였다. 아무리 아첨에 눈이 어두운 굉팔이라도 그것만은 싫었다. 다방의 희미한 전등불 밑에서 더러운 교역이 벌어졌다. 굉팔은 마주 앉기 바쁘게 두툼한 돈뭉치 네개나 든 돈가방을 차탁 아래로 쓱 밀어주었다. “새 집에 들겠는데요. 장식에 쓰십시오.” “아니, 이래서 되겠나?” 오청룡은 입이 귀밑까지 째질 지경이 됐다. 그는 돈가방을 쓱 끌어다가 허벅다리 밑에 척 깔고 들어앉았다. 대신 굉팔이 요구하는 일은 백에 백을 다 대답했다. “김범수를 쫓아내시우.” “신문사에 쫓아보냈는데 또 어데로 쫓아보낼가?” 청룡은 음흉한 굉팔이 섬찍해 흘끔 곁눈질했다. “토끼도 너무 쫓으면 뒤발로 수리개를 올리찬다고 하잖소? 범수는 이발 빠진 범이 돼버렸는데 아직도 위험한가?” 숱한 돈을 받고서도 오청룡이 뜻밖에도 망설일줄이야. 굉팔은 불쾌해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범수를 헐뜯었다. “개자식, 아직도 성호랑 승호랑 규합해서 나를 왕따로 만들려고 꿍꿍이를 한다니께. 대갈통도 들지 못하게 납작하게 만들어주시우.” “그래? 심각하구먼. 어떻게 하면 좋을가?” 검은 돈을 얻어먹은 오청룡은 어리석게도 지도일군의 체면도 다 잃고 인사문제를 수하와 물었다. “방법은 많은데요. 신문사 광고 경리직을 철직하십시오. 그 놈한테 권력이 없으면 누가 따라다니우?” 누가 상전이고 누가 수하인지 분간하기 힘든 판. 허허. 국정롱단이 아닌가. 입이 물러진 저 부실한 오청룡이 하는 말을 들어보라. “어허. 그거 묘수구만. 당장 그렇게 하지. 그런데 무슨 명목으로 또 신문사에서 몰아낸다?” 소 웃다가 꾸레미 터질 지경. 굉팔은 조개턱에 침을 튕기며 끊임없이 “지시”하였다. “죄목은 만들기에 갑지요. 으흐흐.” 오청룡은 뜨물에 빠진 돼지 눈깔을 데굴데굴 굴렸다. 굉팔은 우멍눈에 간사하고 음험한 빛이 번뜩였다. “성호도 쫓아냅시다.” “왜?” “전번에 내 죄상을 밝힐 증거를 수집하느라고 그러는지. 단위 서류궤에서 광고문을 도적질해갔단 말이유. 우리 둘이 해먹은 증거를 쥐면 어떻게 하겠슈?” “쉿-” 오청룡은 식지를 입술에 가져다대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굉팔은 계속 지껄였다. “해연은 수준이 발바닥인데요. 전번에 백화상점광고를 번역한다는게 뭡니까? 한어로 ‘高士达’표 텔레비죤’을 글쎄 ‘고사달표 텔레비죤’이라고 번역해서 백화상점 안총경리한테 혼빵났습니다. ‘금성표 텔레비죤’을 영어명칭을 음차로 ‘고사달표 텔레비죤’이라고 직역하지 않았겠시우. 백화상점 위신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금성표 텔레비죤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안경리 한바탕 야단쳤죠.” 오청룡은 기딱차서 “허허허.” 하고 웃고 말았다. 그는 굉팔이 자기 망신스런 일을 해연한테 들씌우고 있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 그도 능청을 떨었다. “그런 발바닥수준이면야 광고회사에서 진작 쫓아내야지. 허허허.” 오청룡은 우스개를 했지만 저으기 섬찍한 감을 느겼다. (굉팔이 큰 권력이나 틀어잡으면 숱한 사람을 죽이겠구나. 실로 음흉하기 짝이 없는 괴물이야. 으흠.) 굉팔의 예술적이고 간교한 수작은 계속 되였다. “오청룡, 아니, 오국장님, 퍽 피곤하겠는데요. 어디 조용한데 가서 질탕하게 놀지오?” 오청룡은 돈뭉치가 든 묵직한 가방을 쳐들어보였다. “이건 어쩌고?” 굉팔은 우멍눈을 띠룩 굴리더니 “집에 가져다 두고 오시면 되죠.” 하고 구슬렸다. 오청룡은 희죽이 웃으며 하회를 기다렸다. “먼저 맥주나 마시고 2차로 노래방에 가고 3차로 양고기뀀을 먹고 4차로 안마회소나 가서 푹 쉬고 5차로 또…” 굉팔의 말에 오청룡은 이상하게 아래배로부터 가슴까지 찡해났다.  “됐네, 됐어. 돈 너무 팔잖아?” 그는 기뻐 웃음주머니 흔들거리면서도 겉으로는 사양하는 척했다. 그 속내를 빤히 꿰뚫어보면서도 굉팔은 손사래쳤다. “벌써 닭곰집에서 예쁜 아가씨가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놓고 기다리는뎁쇼.” 순간, 술에 곤기가 가득하던 오청룡의 쌍까풀눈에서 이상한 빛이 번쩍였다.  “누군가? 전번 그 아가씬가?” 굉팔은 그 효과를 기다렸다. “야따, 급하기도. 오청룡, 우물에 가서 숭늉 달라겠시우.”  그는 일부러 오청룡를 애태웠다. “자, 어서 가방이나 집에 두고 달빛닭곰집으로 오세요. 택시비는 내가 대줄테니까.  택시 타고 빨리 갔다 오세유.” “그래, 별찌처럼 날아갈게.” 오청룡은 아가씨 말만 들으면 오금을 쓰지 못했다. 번마다 만사를 다 제쳐놓고 무조건 달려왔다. 오늘도 아가씨 말이 나오자마자 네모번듯한 낯짝에 대뜸 활기가 넘치고 웃음꽃이 꽃물결쳤다. 오청룡은 코노래까지 흥얼흥얼 부르면서 다방에서 일어섰다. 그는 집에 가서 안해 몰래 궤짝에 묵직한 돈이 든 가방을 숨겨놓고 택시를 타고 연화닭곰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는 노크도 하지 않고 지정된 장소 문을 뚝 떼고 들어갔다. 불길이 이글거리는 눈이 황해 어떤 아가씨 왔는가 두리번거렸다. “안녕하세요?” (와- 귀맛 돋구는 목소리, 아가씨 부드러운 목소리, 진짜 사람 죽인다, 죽여.) 예쁜 아가씨 두 손 맞잡고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했다. “어데서 좀 본 거 같애”. 그녀의 가느다랗고 매끌매끌한 손을 꽉 잡았다. 굉팔이 히죽거리면서 인사시켰다. “이 아가씨는 선희라고 불러요. 우리 시내  명모델이죠.” 오청룡은 육감이 나게 풍만한 선희 몸에서 눈을 떼지 않고 탐나게 쏘아보았다. “아, 텔레비죤에랑 자주 나오던 유명한 미녀모델이구만. 리경리네 광고회사에도  있지 않았소? 세상 미녀지. 흐흐흐.” 선희가 애교 넘치게 인사를 받아챘다. “네, 이쁘게 봐줘서 고마워요. 잘 부탁드려요.” 인사수작을 마치자 셋이 자리에 앉았다. 그때 문이 배시시 열리더니 아가씨 둘이나 더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존귀한 손님을 처음 뵙게 돼 영광입니다.” “어허허, 어서 올라와. 어서.” 굉팔은 아가씨 하나를 오청룡 옆에 더 붙여주었다. 진짜 꽃밭 속에 들어앉은 셈. 술이 서너순배 돌아가자 선희는 오청룡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앉아 교태를 살살 부렸다. 오청룡은 술에 마음이 없고 아가씨들 풍만한 젖가슴부터 탐났다. 눈치챈 굉팔은 선희를 남겨놓고 아가씨들을 데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방이 조용해지자 오청룡은 구렁이처럼 량팔로 선희를 칭칭 감아안고 앉아 희희닥거렸다. 선희가 소주를 부어 올렸다. 오청룡도 선희한테 한잔 부어주며 수작을 붙였다. “자, 우리 만남을 위해 한잔 들기오.” “예, 오늘 즐겁게 놀자요.” 년놈은 수작을 부리며 “위하여!” 소리와 함께 한잔을 꼴딱 마셔버렸다. “캬- 술맛 참 좋다!” “그래요? 한잔 더 마실래요?” “천천히, 천천히.” “그럼 아-” 선희는 기름이 번지르르한 돼지고기점을 저가락으로 집어들었다. “논다, 놀아!” 오청룡은 개기름이 번지르르하게 흐르는 입을 함박만큼 쫙 벌려댔다. 선희는 캐드득거리면서 돼지고기점을 입에 쑥 밀어넣어주었다. 우물우물 돼지고기점을 씹던 오청룡은 “기실 내 고기를 넣어줘야 하는데. 자! 아-” 하고 돼지고기점을 집어 선희 입에 가져갔다. 선희는 도리머리를 살래살래 저었다. “어째? 내 고기 맛이 없어?” “아니, 진짜 오국장 고기야 맛이 없을리 있겠어요?” “허허허. 그래?” 오청룡은 불시에 선희를 와락 끌어안고 키스벼락을 뻑뻑 안겼다. “에라, 모르겠다.” 오청룡은 참지 못하고 선희를 허망 깔고 넘어갔다. 선희는 밑에서 아양을 떨면서 갈보년의 수작을 다 부렸다… 곁방에서 미리 장치해놓은 비디오촬영기로 촬영하던 굉팔은 낚시에  걸린 오청룡을 보고 웃음주머니 흔들거렸다. “오청룡, 잘한다, 잘해. 이제부터 언감 내 말을 거역하겠어?” 굉팔의 함정에 빠진줄도 모르고 오청룡은 한참이나 지랄발광하다가 거친 한숨을 후- 몰아내쉬였다. 뒤이어 아주 능청스런 소리를 쳐댔다. “리경리, 아가씨와 마시니까. 술맛이 참 좋군 그래. 허허허.” “그래요? 그럼 폭 마시세요.” “아니, 이젠 모두들 들어와 함께 술을 마십세.” “건너가지요.” 굉팔도 능청스레 비디오촬영기를 번개같이 가방에 걷어넣고 건너갔다. “아니, 아까 그 아가씨들은 어데 갔어?” “좀 있으면 들어올 거요.” 굉팔이 여겨보니 오청룡이나 선희나 모두 낯이 쥐마당이 돼버렸다. 오청룡 낯에는 빨간 입술도장이 다닥다닥 찍혔고 선희의 하얗고 가는 목에는 돼지기름이 번지르르하게 묻어 있지 않겠는가. 아마 오청룡이 돼지고기점을 받아 먹던 입으로 마구 핥아놓은 자린 것 같았다. 오청룡과 선희는 굉팔의 말상에 비웃음이 세차게 파도치는 것을 눈치챘다. 그제야 서로 장마당이 된 낯빤대기를 마주 쳐다보고 깔깔깔, 키득키득. 수건과 종이로 닦아대느라고 분주했다. 이윽고 자리에 앉은 굉팔은 오청룡를  건너다보며 물었다. “오간부, 오늘 즐겁게 놀았는가요?” “아, 그래, 명모델아가씨와 술을 마시니 별맛이네. 허허허.” 오청룡은 아직도 열이 식지 않아 선희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웃었다. 굉팔은 선희를 보고 “오늘 수고했소. 이 후에도 종종 오간부를 잘 모시오.”라고 하고나서 오청룡에게 철색낯을 돌렸다.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뭔데?” “선희를 우리 광고회사에 재차 입사시켜 주십시오.” 오청룡은 팔로 선희를 휘감아 안으면서 그 자리에서 대답했다. “당장 광고회사에 출근하도록 하오. 리경리, 선희를 귀공주처럼 모시게나.” “두 말 있겠시우?” 선희는 오청룡의 품 속에 어린애처럼 얼굴을 파묻으면서 칭얼댔다. “고마워요. 오간부, 아버지처럼 효성을 다해 잘 모실게요.” 그런데 오청룡은 꽉 끌어안았던 선희를 훌 놓았다. “아니, 아니야.” “왜?” 선희가 걀죽한 얼굴을 들어 오청룡을 쳐다보면서 입이 뾰로통해했다. 오청룡은 손으로 선희의 얼굴을 살짝 꼬집어 놓았다. “시체를 따라야지. 아버지라 부르지 말고 오빠라고 불러. 아버지가 어떻게 딸을 데리고 놀아?” “예~ 그런 걸 난 또…” 선희는 새침해졌던 얼굴에 홍조를 띠우면서 해시시 웃으며 아양을 떨었다. “하루 부부도 백일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 그렇구 말구.” “제 부탁 하나 들어줄래요?” “오, 그래. 백개라도 들어주마.” “절 광고회사 부경리를 시키면 안돼요?” “아니, 건 좀…” 오청룡은 리굉팔의 눈치를 힐끔 쳐다보았다. “금방 내 부탁 백개라도 들어주겠다더니 처음부터 수를 날릴 건가요? 알았어요. 간부들도 우뢰만 울고 비는 내리지 않을 때 있네요.” 선희는 몸을 배배 탈며 입귀까지 씰룩거렸다. 굉팔이 나서서 난처한 국면을 풀어주려고 했다. ”출납원을 하면 어떻소?” “경리는 왜 못해요?” 선희의 당돌한 물음에 오청룡이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요것아, 경리부턴 남의 눈치가 보이는 일이야. 민의측검해야 하고 상부의 비준이 있어야 돼. 선희는 광고회사에서 실적을 쌓은게 없고 소문도 잘못 났어. 민의측검부터 힘들 거야. 괜히 욕심을 부리지 마. 리경리를 잘 협조해 출납이나 하면서 돈이나 많이 챙기는게 제일이지.” “허수아비 해서 뭘 해? 실리를 따지란 말이야.” “당신들 매일 술이나 처마시고 아가씨 데리고 놀아도 상부의 고위간부도 되고 경리도 되는데요. 난 왜 못돼요? 세상에 그런 짝 시비도 다 있는가요?” 오청룡과 리굉팔은 모두 입에 빗장을 질렀다. 그때 선희가 어마어마한 최후일격을 가했다. “내 입이 터지기만 해보지. 저네 간부고 경리고 개낫자루라도 하는가 봐라.” 그 으름장에 오청룡나 리경리나 잔등에 싸늘한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 온몸에 소름이 끼쳐 멍하니 선희를 쏘아보았다. 오청룡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래도 굉팔이 머리 뱅글뱅글 빨리도 돌았다. “자, 따져보오. 그까짓 부경리를 해보았자 허수아비고 실리는 없소. 지금 승호를 보오. 무슨 권리 있소? 아예 출납을 하면서 우리 둘이 광고회사 돈을 쥐락펴락 하면 낫지 않겠소?” 그 말에 선희는 귀가 솔깃해졌다. “얼리는 건 아니죠?” “얼리다니? 해연한테 출납을 시켰더니 사업경비도 쓰는 게 눈치 보이지. 잘 됐소. 이제부터 우리 둘이 짜고들어 마음대로 해먹읍세. 좀 좋아?” “실언하지 마세요. 래일부터 광고회사 출근하는 거죠?” 굉팔이 선선히 대답했다.  “그럼, 그럼. 두 말 하면 잔소리지. 우리 광고회사 출납원동무. 하하하.” 그는 눈치도 빨랐다. 그때까지 목석처럼 묵묵히 앉아있는 오청룡을 보고 공 들인 탑이 무너질가봐 겁났다. (괜히 선희 나설 건 뭐야?) 굉팔은 오국장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다른 카드를 꺼내들었다. “자, 이젠 술도 됐으니까. 노래방에 가지요.” 오청룡은 기분이 잡쳐 손사래쳤다. “됐네, 됐어. 밤도 깊고 피곤한데 집으로 돌아가겠네.” “그래요?” 굉팔은 오국장이 뜻밖이라는 표정이였다. 그는 선희한테 나무라는 눈길을 보내더니 술상에서 일어나더니 아가씨들과 뭐라고 쑤근거리더니 자리를 떴다. 굉팔은 먼저 선희를 집에 보냈다. 선희는 택시에 앉아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녀는 오청룡 앞에서 가물에 실돌피 같은 허리를 굽신거리는 굉팔을 째려보면서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맨물의 거시처럼 굽신거리긴? 네까짓 것들 고와서 웃음 팔고 몸까지 바치는가 해?” 그녀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못된 궁리를 굴리고 또 굴렸다. 기실 그녀는 로씨야에 가서 한국 옷공장 한사장한테 풍덩 빠져 돈은 꽤나 얼려냈다. 한사장은 녀색에 빠져 로씨야 옷공장을 잘 관리하지 못해 수입을 올리지 못한 죄과로 한국 본 회사 회장한테 소환돼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런데 선희를 데리고 가겠다던 한사장은 언약을 지키지 않고 간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바람결처럼 사라졌던 것이다. “더러운 놈, 그저 알몸 빼먹고 꼬리를 빼? 량심없는 색마령감!” 옷공장 사장이 바뀌자 숱한 중국 조선족녀성들의 눈총을 받기 힘들어 선희는 결국 온다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귀국의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국내에 돌아와서 또 푸대접을 받을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무역회사 경리는 그녀가 로씨야옷공장에 가서 일은 며칠 하지 않고 숱한 남성들과 바람을 피웠다는 리유로 로임이 한푼도 없다고 딱 잡아떼는 것이 아니겠는가. 법원에 소송해보려고 해도 자기 한 짓이 창피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설상가상 이웃도 보기 창피해 원래 살던 집도 팔아버리고 울며 겨자먹기로 근사한 세집을 맡아가지고 홀로 살았다. 우울증에 위병까지 걸린 그는 송준 의사가 위병을 잘 치료한다는 말을 듣고 그리로 병치료를 다녔다. 송준의 기공안마가 얼마나 온 몸이 시원한지 몰랐다. 더구나 그 가려운데를 슬슬 만져주는 송준의 손놀림이 이상야릇하게 찡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날마다 싶이 송준한테 몸을 내대고 마사지를 받았다. 어느 하루 송준이 한창 배를 만질 때 선희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손을 잡아 자기 하신에 쑥 밀어넣었다. 뒤이어 벌어진 일은 누가 먼저고 후인지 가릴새없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후 그들은 병원이 조용하면 그 짓을 벌렸고 나중에 선희네 집에 가서 실 한오리 걸치지 않고 일을 벌렸다. 선희는 침구와 기공안마 기술이 높은 송준을 지팽이로 짚고 재차 일어서려고 했다. 그녀는 송준과 위장결혼을 해 한국에 데리고 가서 돈을 벌자고 얼려냈다. 때마침 송준의 본댁이 가스중독에 걸리자 날마다 가만히 언제 죽는가 병원에 가서 령탐했다. 드디여 봉금이 죽자 선희는 로골적으로 위장결론해서 한국에 가 잘 살자고 송준을 들볶아댔다. 그러나 송준은 처가집 눈이 두려워 당장 따라가지 못하고 잠시 애들이 있는 북경으로 피해가서 병을 보기로 했다. 선희는 굉팔을 찾아갔다. 그녀는 굉팔을 주색으로 꾀려고 들었다. 굉팔은 그녀를 실컷 데리고 놀다가 싫증이 나자 오청룡한테 붙여주고 상전의 환심을 사려고 들었다. 선희는 딴 속궁리도 있었다. 그녀는 굉팔의 상전과 색으로 금전 교역을 벌리면서 광고회사의 돈을 마대들이로 집에 메갈 궁리를 했다. (개 같은 색마들아, 두고 봐라. 네놈들이 날 언제까지 릉욕하고 리용하고 짓밟고 놀아대는가, 내 네놈들을 리용해 얼마나 돈벌이를 하는가 봐라!) 선희가 그런 야심을 품은줄도 모르고 너무나도 소총명한 굉팔은 원 계획대로 밀고나갔다. 2차로 노래방으로 갈 차례다. 이제 3차로 양고기뀀, 4차로 안마방, 5차로 다방 놀음이 줄을 쭉 써서 기다렸다. 아가씨들을 끼고 택시를 잡아타고 노래방으로 달려갈 때다. 오청룡은 굉팔의 귀에 대고 쑤근거렸다. “이후엔 선희를 데리고 오지 말게나. 그년은 좀 위험해.” “저도 진짜 가시 돋힌 빨간 장미꽃인줄 몰랐시우.” 굉팔은 아주 쥐도 새고 모르게 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후에 사달이 생길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해연은 내내 오청룡한테  건너간 돈이 아까워 속을 끙끙 앓았다. (네놈이 뭐 잘나서 7만원이나 가져가? 광고 하나 물어오지 않고서도 한해에 단통 7만원이나 가져가? 리경리도 너무해. 그 돈을 직원들한테 나눠줬으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어느날 해연은 재무과로 광고비를 바치러 온 성호를 보고 굉팔이 돈 7만원이나 오청룡한테 가져간 일을 슬쩍 내비쳤다. 생각 밖에도 꼬챙이에 꿰들고 벌떡 일어나려니 한 성호가 랭담할줄이야. 성호도 한번 당했기에 다신 해연한테  속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괜히 소용돌이에 잘못 휘감겨들어 곤경을 치를 필요가 있겠는가. 며칠 후 끝내 암암리에 쥐새끼처럼 활동하던 음침한 곳에서 화산이 꽝 폭발하고야 말았다. 광고회사는 발칵 뒤집혔다. 반탐오회뢰국에서는 3명으로 구성된 련합조사조를 광고회사에 파견했다. 녀성조사일군은 경리실에 들어서자마자 굉팔과 쌀쌀하게 물었다. “혹시 총경리 리굉팔 맞지요?” “예.” 얼굴이 걀죽한 녀성조사일군이 두리모자 채양 밑으로 표독스런 눈길로 쏘아보았다. 굉팔은 속이 뜨끔해나하면서도 태연자약한 척했다. “출납원 해연 동무를 부르세요. 경제장부와 령수증을 몽땅 가지고 오라고 하세요.” 굉팔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이윽고 해연이 장부와 령수증묶음을 가지고 들어섰다. 그 녀성조사일군은 남성조사일군들과 눈길을 마주쳤다.  “오청룡에게 가옥 구매와 장식 비용으로 도합 7만원이나 준 사실을 조사하러 왔습니다. 리굉팔과 출납원은 사살대로 이실직고하오. 만약 허위진술을 하면 법률적책임을 지게 되오.” 굉팔은 청바위처럼 굳어진 표정으로 녀성조사일군을 흘끔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남성조사일군은 옆에서 핸드컴퓨터로 기록하고 미형록음기로 록음하기 시작했다. “해연 동무는 장부와 령수증을 여기 가져다놓으시오.” 해연은 장부와 령수증을 녀성조사일군  앞에 공손히 가져다놓았다. “리굉팔, 단마디로 대답하시오. 이 광고회사에서 오청룡에게 가옥 구매와 장식 비용 7만원을 준 일이 있습니까?” 굉팔은 녀성조사일군을 보면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절대 그런 일 없습네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오청룡에게 가옥 구매와 장식 비용 7만원을 준 일이 있습니까?” “정말 없습니다. 건 사악한 무함입네다.” 굉팔은 딱 잡아뗐다. “좋습니다. 자기 한 말을 법 앞에서 책임져야 합니다.” “예. 책임지겠시우.” 굉팔은 당황해 해연을 슬쩍 눈짓해보았다. “우린 이 광고회사에서 오청룡한테 7만원을 줬다는 사실을 장악하고 왔습니다.” 녀성조사일군은 리굉팔 앞에 빨간 도장집을 내밀었다. “여기 지장을 찍고 싸인하십시오.” 굉팔은 뭔가고 들여다보고나서 싸인과 지장을 마치고 파지에 손가락에 묻은 뻘건 도장집을 쓱쓱 닦으면서 중얼거렸다. “어떤 놈이 우릴 물어먹었단 말입니까? 억울합니다.” 그는 고의로 “우리”에 어조를 강하게 높이면서 해연을 건너다보았다. “굉팔 경리는 나가서 잘 생각해보십시오. 나중에 다시 찾겠습니다.” 굉팔이 두덜거리며 나가자 이번에는 남성조사일군이 입을 열었다. “해연이, 이제 장부를 뒤져보면 모든 게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오.” 뜻밖에 해연은 웃으면서 말했다. “더 물을 필요없습니다. 확실히 리경리가 오청룡 국장한테 새 집을 샀다고 광고회사의 돈2만원을 내갔습니다. 일주일 전에도 장식비로 주겠다고 5만원을 더 내갔습니다. 장부에 기록이 다 있습니다.” “좋소.” 남녀 조사일군은 장부를 들춰보고 머리를 끄덕였다. “령수증에는 리굉팔 경리의 싸인도 있습니다.” 조사일군들이 령수증을 들춰보니 확실히 마구 갈겨쓴 리굉팔의 싸인이 있었다.  제보신의 내용은 몽땅 사실이였다. 더구나 손님접대비용이 엄청 많이 들어간 것에 놀랐다. 년간광고총수입이 35만원 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광고회사에서 각종 손님접대비용이 무려 5만원에 사업경비 7만원이나 되였다. 모든 건 빤했다. 리굉팔은 상부 간부인 오청룡에게 돈을 주고 경리직을 산 후 광고수입을 속여 바치고 탐오했다. 남성조사일군은 억이 막혔다. “물증, 인증이 다 있는데도 탄백하지 않는단 말이오. 리경리는 진짜 철면피한 작자로군. 흥! ” “딱 잡아떼는 걸 보오? 얼마나 신통한가?” 녀성조사일군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여기 리승호 부총경리와 성호선생이 있지요?” “녜.” 해연은 놀랐다. 여기 사람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지 않는가. “먼저 승호 부총경리를 부르랍니까?” “아니, 필요없습니다.” 조사일군들은 리굉팔을 재차 불러 한바탕 족따지더니 장부와 령수증을 가지고 돌아갔다. 승호와 성호는 열어놓은 사무실문 앞을 지나가는 남녀 조사일군을 내다보다가 자기 눈을 믿지 못했다. 뒤따라나가 복도를 내다보았다. 별로 눈에 익었다. 승호와 성호는 깜짝 놀라 이구동성으로 부르짖을 번했다. “은영이!” 그날 승호와 성호는 온종일 사무실에서 까딱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면서 사태의 발전을 주시했다. 굉팔과 오청룡은 불도가니우서 바글거리는 개미들처럼 안전부절하지 못했다. 처음 굉팔한테서 전화를 받은 오청룡은 깜짝 놀라 식은 땀을 쫙 흘렸다. 그러나 그는 인차 침착성과 랭정을 회복했고 이윽고 굉팔한테 묘수를 알려주었다. “굉팔이, 근심하지 말게. 이제 금방 장식하다나니 광고회사에서 꾼 돈 말이요.  만원도 쓰지도 못했네. 되가져다 바치면 다요.” “예? 광고회사에서 꿨다고요?” “그래, 바보라고야. 집을 금방 사고 장식할 돈이 없어서 꿔 쓴게 무슨 죄란 말이요? 인차 갚으면 다지. 허허허. 안 그래?” 굉팔은 오청룡의 로련함에 감탄했다. 진짜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갔다. “예- 알았습니다. 간이 다 떨어질 번했지. 하하하.” 굉팔은 시름을 활 놓으면서 핸드폰을 꺼버렸다. 갑자기 그는 핸드폰을 또 쳤다. “여보십시오. 지도자, 집을 살 때 돈 2만원은 어떻게 합니까?” “이제 내 돈이 있을 때 갚을게. 먼저 리경리 대게나. 강산이 살아있는 한 땔나무를 걱정할게 있는가?” “예? 오. 그래. 그렇죠. 강산이 살아있는 한 내가 왜 땔나무걱정을 하겠습니까? 이 후에도 많이 보살펴주십시오.” “그럼, 더 여부가 있나? 사람이, 융통성이 업게 놀지 말라구.” 굉팔은 오청룡한테 장식비로 가져간 돈 4만원을 달라고 하자다가 마음이 아픈대로 그만두었다. “개놈 새끼, 남은 똥줄이 나가는 판에 4만원을 꿀꺽 삼키고 수염을 쓱 씃으려고? 흥! 진짜 엉큼한 독종이구나. 여태껏 아주 로련하게 한바탕 해먹고 그물에서 스리슬쩍 빠져나간 뱀이로구나.” 그는 오청룡를 한바탕 욕하다가 달리 생각해보았다. (어떤 독종인가? 그 놈한테서 4만원 떼운 셈치고 경리직만 지키면 돼. 그때면 4만원이겠나? 40만, 아니야. 400만, 4000만도 해먹을 수 있지.” “개자식, 무슨 아까운 내 돈으로 네 놈 밑구멍을 씃어?” 그는 한참이나 우멍눈을 떼굴떼굴 굴리더니 “으흐흐흐.” 하고 음흉한 표정으로 징글스레 웃었다. 굉팔은 마음이 아픈대로 자기 염채기에 걷어넣었던 두 묶음에 6만원이나 여기저기 달아다니면서 얻어다 보태 7만원을 만들었다. 그는 돈뭉치가 든 가방을 들고 재무과의 해연한테 찾아갔다. 해연은 굉팔이 척 내놓는 돈묶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건 뭔가요?” 굉팔은 간교하게 웃었다. “해연이, 오청룡이 꿔간 돈을 몽땅 갚았소. 꿔 간게 무슨 죈가?” 해연은 어리둥절했다. “꿔갔다고? 언제 꿔간다고 했는가요? 장식에 쓰라고 주지 않았는가요?” 굉팔은 이발로 입술을 사려물고 무섭게 쏘아보았다. “해연이, 남의 엉덩이를 너무 들추면 개똥 밖에 차려질게 없다는 걸 기억해두라구.” “무슨 말인가요?” “자기 해놓은 짓 자기 더 잘 알잖아?” 굉팔과 오청룡의 로련한 수작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길을 남기려고 해연도 껍데기를 벗어놓고 몸을 살짝 빼야 했다. 해연은 머리를 숙였다 천천히 들었다. “누가 제보했다던가요?” 굉팔은 건방지게 해연의 사무상에 덜러덩 올라앉아 지껄였다. “능청을 떨지 마시라요. 오청룡한테 돈을 준 사실을 나와 제 내놓고 누가 알어?   아직도 가랑잎을 들어 자기 눈을 가리고 ‘야옹-’ 할 작정인가?!” 굉팔은 주먹으로 사무상을 꽝 쳤다. 그 바람에 사무상 유리마저 박산났다.  굉팔의 주먹에서 뻘 건 피가 주르르 흘렀다. “광고회사에 남아있을줄 알어?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래?” “아, 다 제 잘못인데요.” 해연은 해시시 웃어보이면서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또 남을 물어먹기 시작했다. “사실 오청룡한테 돈을 너무 많이 쓰는게 아까왔던 거죠. 그게면 우리 직원들이 몇만원씩 나눠 먹겠는데 말이죠. 그래 성호와 승호한테 그만 말했던 거죠. 혹시 걔들이 고발한 건 아닐가요?” “엉?” 굉팔의 우멍한 눈확에서 허연 눈자위가 떼루룩떼루룩 굴렀다. “이번에도 그 개새끼들이란 말인가?” “아니예요.” “아니라고? 흥!” 굉팔은 우멍눈으로 해연을 뚫어지게 쏘아보며 빈정거렸다. “해연이, 거짓말 하지 마라우. 전번에도 가정분란이 생겼을 때 오청룡과 말해서  보호했던 거야. 믿고 출납원도 시켰고. 넌 지금 내 엉뎅이 밑에 500와트 전등불을  켜놓았지 뭐야. 전번에 민의측검 때도 네가 성호랑 부추겨서 날 물어뜯은 걸 다 알고  있어.” “생사람을 잡지 마세요.” 해연은 돈뭉치를 가방에 넣어 메고 나가려고 했다. “잠간! 여기 돈 받았다는 싸인이나 해놓고 가라!” 해연이 령수증에 싸인하고 나가려는데 굉팔이 팔을 뻗쳐 막았다. “왜 이래요? 홀로 사는 아녀자라고 업신여기지 말아요? 생사람을 잡아도 한심하구만요.” 굉팔은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생사람을 잡아? 그럼 언제 록음해놓은 걸 감상해볼가? 난 항상 미형도청기를 사무실에 두고 다니는 버릇이 있어. 알겠나? 이 바보들아.”  순간 이발을 사려물며 쏘아보는 굉팔이 괴물로, 악마로 둔갑한 것 같았다. “진짜 특무정치군요.” (악마 같은 놈, 이번에 법망에서 빠져나갈지 몰라도 언젠가는 잘 되는가 봐라.) 해연은 쌍까풀눈이 실눈으로 돼 흘겨보면서 나가려고 했다. 굉팔의 줄욕이 흘러나왔다. “그래, 난 특무, 넌 배신자야. 세상물정도 모르는 바보!” “그래요. 난 바보죠. 선희랑 끌어들여 출납원을 시키고 콱 해먹으세요. 흥!” 해연은 돈가방을 들고 문을 쾅 걷어차고 나가버렸다. 굉팔은 한숨을 길게 몰아내쉬였다. 한차례 폭풍우, 아니, 태풍은 잠잠해졌다. 상부에서는 오청룡은 확실히 광고회사 돈을 꿔갔다고 결론지었다. 오청룡과 리굉팔은 집체의 돈을 람용한 문제로 엄중경고처분을 받았다. 굉팔은 져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누가 물었을가고 복수의 이발을 쁙쁙 갈았다.                                 61.고민 가을의 하늘은 맑고 푸르고 높았건만 성호의 마음은 무겁고 갑갑하기만 했다. 택시업을 한지도 어언간 1년이 거의 돼갔다. 그간 속인들 얼마나 태웠던가. 택시를 사느라고 맡은 대부금은 10달만에 본전에 리자까지4만 5천원을 다 갚았다. 그런데 매형의 출국수속비 때문에 불시에 둘러맞춘 봉금이네 돈 1만 6천원을 채 갚지 못했다. 금방 넷째누나를 잃어 마음이 아픈데 송준이 어찌나 빚재촉이 성화 같은지   마음이 상했다. 이젠 조카까지 내세워 시도 때도 없이 문을 뚝 떼고 들어와 빚재촉을 하게 했다. (개자식, 누나 장례날엔 대가리도 내밀지 않더니 빛재촉은 성화같네. 송준은 진짜 빚까지 받아가지고 갈보년을 끼고 한국으로 뺑소니칠 작정인가?) 성호는 시끄러워서 송준의 조카를 보고 말했다. “얘, 빚을 꼭 갚을테니 근심하지 말라고 전해라.” 조카가 한심하게 물었다. “택시업을 해서 달마다 숱한 돈을 벌면서 왜 빚부터 갚지 않아요?” 성호는 너무 한심해 도리머리를 홰홰 돌리기까지 했다. “얘, 어째 누나가 사망하니 외삼촌을 믿지 못하니? 이제껏 고리대와 대부금을 무느라고 너네 돈을 갚지 못한 거야.” “그럼 달마다 얼마씩 갚을 수 있어요?” “사고만 나지 않으면 한달에 5천원씩 갚을 수 있을 거야.” 그제야 조카는 해시시 웃었다. “신용을 지켜요. 그 돈으로 근봉이 대학공부를 해야 하니까요.” “그래. 난 남의 빚을 지고선 바늘방석에 앉은 거 같아 못 살아. 어째 누나가 사망하니 너네마저 이래? 날 믿지 못해? 참말 섭섭하구나.” 영희도 지나친 감이 들었는 모양. “미안해요. 외삼촌, 아버지가 저희들이 공부하는 북경으로 갈 예산인가 봐요.  언제 돈 받으러 여기까지 또 오겠어요?” 성호도 떠나가는 조카들한테 돈 한푼 줘 보내지 못해 죽을 죄나 진 것처럼  미안했다. “그래? 어째 그 갈보년을 끼고 한국에 가지 않는다니?” 성호가 정색하자 송준의 조카가 옆에서 떠들어댔다. “우리 삼촌 모욕하지 마세요.” 성호는 송준의 조카 거친 말에 기분이 상했다. “야, 숙모 세상떠도 장례식에도 대갈통 하나 내밀지 않더니 빚재촉엔 급선봉이구나.” 그는 툭 쏴주려다가 참고 그만두었다. 정희는 영희를 빈손으로 돌려보내기 민망했다. 그때 때마침 준식이 그날 밤에 택시를 몰아 번 돈 200원을 바치려고 들어왔다. 성호는 그 돈을 영희 손에 쥐워줘 보냈다. 식전부터 빚재촉을 받은 성호는 스트레스를 받아 한참 침대 우에 훌렁 드러누워 있었다. 설상가상 단위에 나가서도 굉팔의 혹독한 질책을 받을줄은 몰랐다. 굉팔은 전번 사건을 두고 성호를 의심했다. 굉팔은 온 낯의 철색근육을 청어름덩이처럼 떵떵 굳힌 채 우멍눈을 희번뜩거리며 일장 훈계를 시작했다. “요즘 택시업을 해 엄청 번다면서?” “?” “왜 대답 안해? 내 말 무시하는 거야?” 성호는 그저 덤덤히 앉아 듣기만 했다. “뭐야? 왜 택시를 영업해 숱한 돈 벌면서 단위 광고는 제대로 안해? 전번에 사무실에서 광고문묶음이 잃어졌어. 네 훔쳐갔지?” 성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과외시간에 뭘 하든 무슨 상관입니까? 지난해 제가 혼자 15만원을 올렸으면 안됩니까? 생사람을 작작 잡소. 또 광고문묶음을 가져다 새 광고문을 작성하는데 참고했는데 어찌 훔쳤다고 할 수 있습니까?” “뭐라고? 왜 나한테 말하지도 않고 가져갔어? 도적질 아니고 뭔가?” “광고문을 훔쳐 뭘 하겠습니까? 그게 돈입니까? 사람을 억울하게 굴지 마십시오.” “허허허. 돈이든 뭐든 단위 지도자의 허락도 없이 가져간 건 절도행위야!” 성호는 더 말이 나가지 않았다. “진짜 남을 무함해도 한두가지 아니구만! 흥!” 그가 입을 닫자 굉팔은 별 지껄이를 다 했다. “널 생각해 술공장광고랑 맡겼지.” (쳇, 고양이 쥐 생각을 했어?) 성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리경리, 기실 리경리는 지금 광고 가운데서 노란자위를 다 가져가지 않았습니까? 의료광고는 상대적으로 많고 얻기 쉽습니다. 그러나 공업광고는 어렵습니다. 광고 내자는 공장이 어디 몇개 있습니까? 세살짜리 앤가 하지 마오.” 굉팔은 사팔뜨기 우멍눈을 희번뜩거리며 성호를 쏘아보다가 “허허허.”하고 너털웃음을 웃어댔다. “자식, 아직 세상 몰라도 한창 모르는군. 사람이란 누구나 다다소소 흑심이 있어. 사심과 흑심이 반죽돼 만든 게 사람이야.” (그래. 탐욕으로 빚어 만든 놈.) “사심은 무한한 야망을 낳고 야망은 또 권세욕을 낳는 거야. 그 야망을 채우기 위해 권세욕이 생겨. 권리는 또 야망을 채워주는 거야.” 성호는 굉팔을 그저 무식하지만 가수로만 본 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리경리,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괜히 왕청 같은 걸 트집잡지   마십시오.” 굉팔은 사무상을 꽝 내리쳤다. “야, 이 새끼야, 내 앞에서 작작 요사하게 놀아!” “누가 아쨌단 말인가?!” 성호도 책상을 치며 일어났다. 굉팔은 힘으로야 성호를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마지못해 헤벌쭉  웃으며 앉으라고 손시늉했다. “조용히 말하자.” 성호도 너무한 것 같아 도로 자리에 앉았다. “한가지 물어보자.” 성호는 눈을 똑바로 뜨고 굉팔의 나풀거리는 얇은 입술을 쏘아보았다. “전번에 누가 고발했어?” “뭘 말입니까?” “오청룡한테 장식비로 4만원을 뀌워준 일 말이야.” “예? 4만원이나?!” 성호는 놀란 체했다. “시치미를 따지 말고 말해 봐. 누가 고발했어? 네 한 거 맞지?” 성호는 바로앉으면서 억울해했다. “좀 이러지 마십시오. 금시초문입니다.” 그는 이쯤 대답하고 말려다가 또 입을 열었다. “리경리, 누가 고발했는가를 조사하기보다 자기 처사부터 옳은가 살펴보십시오. 광고회사 책임자라고 집체 돈을 마구 뀌워주는 건 틀렸습니다.” 굉팔의 우멍눈에서 이상한 빛이 서리발쳤다. “틀림없구나. 네놈이지?” 성호도 언성을 높였다. “시비는 분명해야 합니다. 집체 돈을 준 건  잘못입니다. 잘했으면 전번에 상부의 엄중경고처분을 받았겠습니까?!” “알았다. 알았어. 네 놈 잘되는가 어디 두고 보자!” 성호는 랭소하면서 자리를 뜨며 한마디 했다. “경리느라고 너무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렁거리지 마십시오. 언제든지 욕심을 너무 부리면 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까게 될 겁니다. 언제 덫에 치울줄도 모릅니다.  명심하십시오.” 꽝! 굉팔이 유리재떨이를 땅바닥에 메쳤다. “개새끼!” 굉팔은 큰소리는 쳤지만 속은 꽁꽁 얼었다. (승호는 내 자리를 노리고 성호는 우둔한 소새끼처럼 뜨지. 해연은 꼬물거리면서 딱딱 마주서지. 어떻게 하지?) 그는 한시 급히 선희를 데려다 앉혀야 했다. 한편 승호는 성호를 찾아가 답답한 술이라도 마시려고 했다. 성호는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은 저녁에 공원 부근에 있는 선녀음식점으로 갔다. “어마나, 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는가요?” 선화가 함박꽃웃음을 꽃피으며 아양을 떨었다. 성호는 선화의 손을 잡아주며 인사를 건넸다. “영업이 잘 되오?” 선화는 승호한테도 손을 맡기면서 부산을 피웠다. “아이유, 두 분 다 멋져. 어쩜 진짜 쌍둥이 같네요.” 그녀는 아가씨들을 돌아보며 목청을 돋우었다. “얘들아, 귀빈들을 안방으로 모셔라.” 아가씨들이 고운 목소리로 대답하며 달려와서 성호와 승회를 조용한 안방으로 모셔갔다. 그들 둘은 개고기 둬 접시를 마주해 앉아 묵묵히 애꿎은 소주만 한잔, 두잔 축냈다. 술이 서너순배 돌자 승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이 누구 때문에 터진 거 같니?” “몰라.” “진짜?” “응.” 승호는 성호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소주잔을 내밀었다. “우리 좀 진지하게 말해보자. 이대로 가만 있다간 굉팔한테 다 쫓겨나겠어.” 성호는 입에 빗장을 지른채 목석처럼 앉아 있었다. “오후에 굉팔이 찾더구나. 내 고발했는가 캐묻더라.” “제보편지를 썼니?” 성호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아니야. 이럴 땔수록 침착하고 랭정해야 해.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지금 굉팔은 오청룡한테 딱 들어붙어 권력을 람용하고 있단 말이야. 해연한테서 다 들었어. 제보해 봤자 증거도 없이 이길 수 있니? 괜히 무함했다고  똥바가지나 들썼지?” 승호의 로련함에 성호는 놀랐다.   (정치후각이 예민한 자식.) “또 굉팔한테 덤벼들어 승산이 있니?” 성호는 피씩 코웃음쳤다. 승호는 자신만만했다. “승산이 있어. 이제부터 시작이야.” 성호는 반신반의했다. “어떻게?” 승호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그물에서 빠져나간 굉팔은 꼭 더 크게 해먹으려고 할 거야. 굉팔이 선희를 출납원으로 들여온다더라. 굉팔은 선희하구 짜고들어 한바탕 해먹으려는  속셈이 아니고 뭐냐? 명확한 증거를 잡기만 하면 굉팔은 감옥에 가야 해.” 성호는 손사래를 쳤다. “진짜 고향에서 소궁둥이를 치면 쳤지. 시내에 들어와 살기 싫다. 서로 물고 뜯고 뒤통수를 치고. 딱 질색이야, 질색. 제 앞에 차례진 광고나 할 게지. 굉팔과 싸워 뭘 하니? 네랑 굉팔이랑 똑같이 눈꼴 사납다. 왜 광고는 하지 않고 사람잡이를 해?” 승호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낸들 정치를 하고 싶어 해? 생존하려면 눈 앞의 정치야 해야잖겠니?” 그는 성호 코 앞에 대고 저가락으로 삿대질하면서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세웠다. “봐라. 굉팔이 지금 무슨 궁리하는지 아니? 우릴 다 쫓아내고 대신 림시공을 끌어들일 예산이야. 림시공들은 그저 주는 밥이나 먹고 우리처럼 눈을 밝히지 않을게 아니고 뭐냐? 굉팔은 오청룡을 등에 업고 선희와 짜고들어 집체 돈을 뜯어내 부화타락한 향수를 할 거야. 그래, 우리 대학졸업생들이 그까짓 나부랭이한테 당하고 말겠어?” “똥이 더러워 피하지 무서워 피해?” 승호는 생긴 것과는 달리 나약한 성호가 리해되지 않았다. “건 현실도피주의 졸장부 론리야. 피할 땐 피해야지만 싸워야 할 땐 싸워야 해.” 성호는 한참 궁리하다가 술잔을 내밀었다. “자, 밤도 깊었으니 이 잔이나 마시고 일어서자.” 그들은 답답한 술 한병 굽내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단합해서 부패분자 굉팔과 해보자. 네가 은영을 동원해보렴.” 성호는 마지못해 승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성호는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워서도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여보, 요즘 무슨 일이 있는가요?” 정희가 모로 돌아눕더니 성호 허리를 꼭 끌어안고 품 속에 머리를 파묻으면서 물었다. “아니, 일은 무슨 일?” 성호는 정희의 얼굴을 슬쩍 밀어내며 돌아누웠다. 정희는 성호를 돌려눕혀놓고 어글어글한 외까풀눈으로 빤히 들여다보았다. “또 연화가 무슨 일이 있어요? 이젠 사처에 정을 줄줄 흘리면서 살지 말아요. 당신은 그저 나만 보고 살아야 해요.” 성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씨무룩이 웃었다. “그래, 그러지. 그러나 실련의 고통 속에서 당장 자살할 거 같은 학생을 내버려둘 순 없잖소?” “너무 지나치면 안되죠.” “그래, 연화 대상을 물색해놓았소?” “맞갖은 대상이 없어요. 무슨 일이 그리 답답해요?” 성호는 정희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광고도 잘 되잖지. 택시업도 여름이 되니 잘 되잖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내에서 살기 힘들어 고향 마을에 자꾸 돌아가겠다지? 이러구서야 어떻게 부모를 잘 모시겠소? 언제 돈을 모아 넓은 아빠트를 사구 아들 보겠소?” 정희는 성호의 얼굴을 살살 매만지면서 종알거렸다.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 뭘 해요? 딸이 있으면 됐지.” 성호는 화나서 정희를 활 밀어놓았다. “우리 집 안에 당장 대 끊어지게 됐소. 큰형님네 아들들을 보오. 다 딸을 낳지 않았소? 둘째는 농학원 녀대생한테 실련당해 다신 장가를 가지 않겠다오. 민정국 회계마저 팽개치고 고향에 돌아왔지. 셌재는 딸을 둘이나 줄줄 낳지 않았소? 이젠 대를 이을 집은 우리 밖에 없단 말이요.” “우리 뭐 대나 잇는 기계인가요? 딸 하나 키워도 남부럽잖게 먹이고 입히면 되지.” “자식들도 형제가 있으면 좋지.” 정희는 일어나 앉아 성도 내지 않고 천천히 말했다. “형제 있으면 어떻고 대를 이으면 어떻습니까? 보세요. 동무네 형제가 아무리 많아도 부모가 앓아도 누가 나서는가요? 돈을 한번 가져다주면 끝이잖아요? 그런 형제는 열이 아니라 백이라도 쓸데 없어요. 딸 하나라도 효성을 가르쳐 효녀로 키우면 도리깨아들보다 나아요.” 성호는 정희 말을 들을 수록 신경질이 났다. “자사자리한 소릴 작작 하오. 바로 그런 속셈으로 숱한 구실을 댔소? ‘아빠트도 큰 거 사내라’, ‘10만원 저금 있어야 된다’. 이것저것 조건부를 내걸면서 애를 낳지 않는게지.” “그래요. 아빠트 없어도 애를 낳을 수야 있지요. 고생시킬 거면 낳아서 뭘 해요?” 성호는 성이 났다. 하지만 건너방에서 마른 기침을 깇는 아버지가 어려워 그만두고 그저 랭가슴을 앓았다.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치다가 침대에 훌 들어누웠다. 며칠 후 더 골치아픈 일이 벌어졌다. 준식은 10킬로메터나 떨어진 교외에서 왕복통근하면서 밤에 택시를 몰았다.  비록 대학의 통근차를 타기에 교통비는 많이 들지 않았지만 날마다 밤에 택시를 몰고 곤한데다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처이모가 아들이 아까와 어찌나 고충을 들이대는지 골치거리였다. 성호는 궁리하다 못해 정희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여보, 준식을 우리 집에 데려오면 어떻소?” 정희는 대뜸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고맙습니다. 뒤방에는 부모가 계시지 이 비좁은 방에 보초군을 두고 불편해서 살 만합니까? ” 성호는 대수롭잖게 대답했다. “불편한대로 어쩌겠소? 택시업을 하자면 고만한 불편이야 견뎌야지.” 정희는 성호의 코를 살짝 꼬집어놓았다. “말이 쉽지 한달이나 견디겠어요? 호호호. 동문 하루에 세번씩이나 장마당을 벌리잖아요. 하루를 건너도 못견디면서?” “택시업을 하자면 그런 것쯤이야 꾹 참아야지. 어쩌오?” “정 그러면 준식을 데려오세요. 걔야 편리하지.” 이튿날로 성호는 준식을 자기 집에 들어오라고 했다. 준식이 밤에 택시 몰러 나갈 때는 괜찮았다. 그런데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자 승복이 밤에 몰겠다고 하는 바람에 부득불 준식이 낮에 몰게 되였다. 그후부터 성호와 정희는 세상 고해를 겪어야 했다.  삽십대 후반인 성호는 9평방메터도 되나마나한 방에서 침대 우의 준식이 잠이 들기를 기다려 숨을 딱 죽이고 살아야 했다. 성호가 이불 밑에서 달려들기만 하면 정희는 뒤발로 마구 차버렸다. 그녀는 이불을 들쓰고 숨을 딱 죽인채 입을 성호의 귀에 대고 모기 우는 소리만한 소리로 소곤거렸다. “주책 있어요. 다 큰 애를 한 구들에 두고 뭔가요?” 성호도 이불 밑에서 나직이 쑤근거렸다. “까딱 소리를 내지 말고 가만 있소. 순식간에 해결할게.” “그만두세요. 래일 점심에 집이 빈 다음 올게. 꾹 참으세요.” “야, 못 참겠는 거 어쩌오?” 정희는 성호의 코를 살짝 꼬집었다. “아들을 보려면 요만한 거 참아야죠.” “야, 이게 어디 살겠소?” 그때 코를 골던 준식이 뚝 멈췄다. 깨난 것 같았다. 정희는 성호를 훌 밀어놓았다. 그제야 성호는 후- 한숨을 길게 내쉬며 뒤로 물러났다. 이윽하여 그는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버렸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집의 전화벨이 다급하게 울렸다. 성호는 저녁에 집의 택시 운전수들인 처남 준식이나 매형 승복한테서 전화가 오는 것이 제일 싫었다. 벌떡 일어난 성호는 황급히 전화기를 들었다. “야, 또 무슨 일이 생겼니? 응? 아이구,  그걸 어쩌니? 차를 좀 조심해 몰아야지. 그게 뭐냐?” 성호는 벌떡 일어났다. “그게 어디메냐? 뭐? 철남이라구? 철남 어디메냐? 주유소부근이라구? 응, 인차  갈게.” 성호는 전등불을 찰칵 켜고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었다. 정희도 당황해 벌떡 일어났다. “큰 사고를 쳤답니까? 사람은 다치지 않았답니까?” “양, 주정뱅이운전수한테 치웠다는구만.”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면 됐어요.” 그제야 정희는 한숨을 호~ 내쉬였다. 성호는 바깥에 나가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철남 주유소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사고 현지에 가보니 웬 청년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준식에게 주먹다짐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호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주정뱅이를 말리고나서 교통경찰대대에 신고했다.   허연 라다표택시에 꼬리를 치운 빨간 택시를 들여다보던 성호는 그만 풀썩 물앉고 말았다. 어찌나 세게 치웠는지 택시 꼬리가 뭉청 우그러들어 볼품 없이 되지 않았겠는가. 어진 준식은 매형한테 미안해 머리를 숙였다. 주정뱅이운전수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적반하장격으로 또 준식의 멱살을 틀어쥐고 행패를 부렸다. “야, 이 새끼야, 네가 앞에서 피했더라면 우리 차 마사 안졌지.” “뒤에서 치고서도 무슨 소리요?” 이때 교통경찰이 달려왔다. “술에 취해 사고를 치다니?” “뭐라고?” 술에 취한 주정뱅이운전수는 비틀거리면서 교통경찰한테도 주먹을 쳐들었다. 성이 꼭뒤까지 치민 교통경찰은 단통 무쇠주먹으로 반격했다. 그 자는 허망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성호는 엉망진창이 된 택시를 보고 무릎을 풀썩 꿇고 물앉았다. 정신마저  흐리멍텅해졌다. “뭘 하오? 주정뱅이 행패를 부리는데 그저 구경만 하다니? 정의감이 있소? 없소?” 그제야 정신이 펄쩍 든 성호는 벌떡 일어나면서 술에 취한 운전수를 활 밀쳐놓았다. “야, 네가 처놓고서도 큰소리야?!” 성호가 사납게 나오자 주정뱅이운전수도 정신을 좀 차렸는지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뒤걸음질쳤다. “래일 술 깬 다음 보자.” 성호가 으르렁거리자 그쪽 주인이 운전수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교통경찰은 몽땅 뒤차 운전수의 책임이라고 하면서 쌍방 운전수는 래일 교통경찰대대에 오라고 했다. 성호는 택시업을 하면서 별의별 사고를 다 당해보았다. 한번은 외사촌매부 승복이 택시를 몰고 어떤 마을로 갔다가 건달들한테 당했다. 마을의 건달들이 몽둥이와 식칼을 휘두르면서 길목을 막고 택시문을 걷어차  마사놓았다. 승복은 택시를 몰고 꿰뚫고 나가다가 혹시 택시 유리라도 마사질가 봐  온 오후 마을 뒤산으로 도망쳐 숨어 있었다. 열통이 번져진 성호는 승복과 준식을 데리고 택시를 몰고 그 마을로 달려갔다. 성호는 마을을 서캐 훑듯 훑었다.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마을 십자길목에서 건달들과 딱 마주쳤다. “저 새기들이요.” 성호는 택시에서 내려 스적스적 다가갔다. “이게 어제 왔던 택시 아니야.” “맞아, 돈을 뺏자!” 건달들은 성호를 손님인가 오해하고 몽둥이를 들고 승복한테로 덮쳐갔다. 그때다. 성호가 발끝으로 부랑배 다리를 걸어 쓰러뜨렸다. “썩어지지 못해?!” 건달들이 우르르 성호한테 덮쳐들어 몽둥이를 휘둘렀다. 저걸 보라. 성호가 허망 자세를 낮추면서 비자루로 땅바닥을 쓸듯 발발닥을 땅바닥에 대고 다리를 한고패 씽- 돌렸다. 땅바닥에서 먼지가 새뽀얗게 일더니 세 건달은 제 힘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놈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성호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뜀각질하면서 대가리를 걷어찼다. 건달들은 손쓸 새도 없이 면상이 쥐마당이 돼 땅바닥에서 뗄뗄 구을었다. “당장 배상하지 못해?!” 성호가 호랑이처럼 호통쳤다. 건달들은 몽둥이를 버리고 벌벌 기여일어나더니 “와-야-” 하고 꼬리 빳빳해 도망쳤다. “서라!” 성호가 몸을 날려 그 놈들 앞에 날아내리면서 뒤발로 면상을 차넘겼다. “아이쿠!” “사람 살리오!” 그 놈들은 성호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언감 내 택시를  건드려?!” “다신 안 그래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때 저쪽까지 도망쳤던 나머지 건달이 울바자 뒤에 숨어 이쪽을 흘끔거렸다. 성호는 발로 쓰러진 놈의 잔등을 밟고 서서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렸다. “저 새끼들 보고 돈을 가져오라고 해라!” “예, 예, 예.” 그 자는 성호의 발 밑에서 간신히 대가리를 쳐들고 죽는 상하며 소리쳤다. “얘들아, 돈을 가져오라!” 저 쪽의 건달들이 우르르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참 기다려도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성호와 준식은 건달의 팔을 뒤로 비틀어쥐고 그 자의 집으로 끌고 갔다. 그때 문이 벌칵 열렸다. 한 사내가 시퍼런 식칼을 들고 뛰쳐나왔다. “놓지 못해?!” 성호는 건달을 사내한테 쾅 밀어놓았다. 그는 씽 달려나가더니 뒤쫓아오는 사내 머리 우로 씽 날아넘어가면서 뒤발로 뒤골을 걷어찼다. 사내는 칼을 잡은 채 동생과 함께 땅바닥에 코방아를 찧었다. 성호는 바람벽으로 탕탕탕 평지처럼 달려올라갔다. 뒤이어 초가집 추녀를 뒤발로 걷어차며 쓰러진 건달 형제 우에 공중잡이로 날아내렸다. 무릎으로 아래배를 꽝 짓쫗았다. “아이쿠!” 하나는  아래배를, 하나는 옆구리를 붙안고 땅바닥에서 댈댈 굴렀다. “배상하지 않고 견딜 같애?” 마을의 숱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하며 혀를 끌끌 찼다. 준식과 승복도 성호가 그렇게 날랜 걸 처음 보는지라 눈까지 치떴다. 그때 집 안에서 어미 돼보이는 녀인이 손에 50원짜리 지페 다섯장을 쥐고 나와 비난사정했다. “안됐습구마. 택시를 마스다니? 이걸 가지고 용서해줍소.” 성호는 돈을 받아쥐고 호통쳤다. “다시 우리 집 운전수를 위협해 봐라. 용서하지 않을 테야!” 성호는 주먹으로 바람벽을 꽝 쳤다. 바람벽에 구멍이 풀렁 뚫리면서  먼지가 우스스 흩날렸다. 모두들 경악했다. 성호는 주먹을 구멍에서 빼 툭툭 터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느날 승복이 차를 몰고 송하로 갔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한족처녀애가 택시 문고리에 핸들이 걸리는 바람에 허망 넘어져 무릎을 벗겼다. 그 한족처녀애는 사고처리를 담당한 교통경찰의 중학교 때 담임교원의 딸이였다. 은사의  딸이 무릎을 벗긴 것을 보고 교통경찰은 교통법규와는 달리 사고책임을 몽땅 승복한테 들씌웠다. 원래 주요 책임은 승복한테 있었지만 차요책임은 그 한족처녀한테도 있었다. 한족처녀는 굽인돌이에서 속도를 제때에 죽이지 못해 기동차도에 들어섰던 것이다. 성호는 외지에 와서 시비를 따지다나면 해 넘어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올 것 같지 못해 그만두었다. 대신 보험회사에서 제대로 배상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승복은 택시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성호가 시비를 하지 않았기에 한족처녀의 신랑감한테 귀썀을 맞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후 며칠 되도록 택시를 몰러 오지도 않았다. 성호가 집에 찾아가자 승복은 반듯이 누워서 일어나지도 않고 담배를 꼬나물었다. “귀쌈을 맞은게 귀 아파 택시를 몰지 못하겠소.” 성호는 참다못해 한마디 툭 내쏘았다. “좋소. 몰지 마오. 매부 몰지 않으면 몰 사람이 없을 거 같소? 키를 내놓소.” 외사촌녀동생 송숙이 애원했다. “오빠, 저 나그네를 계속 몰게 하오. 저 나그네 차를 몰지 않으면 우리 다섯식구는 뭘 먹고 살라오?” 송숙은 성호보다 한살 어렸는데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다나니 정이 폭 든 녀동생이였다. 성호는 꼭뒤까지 치미는 성을 가라앉히고 돌아서려고 했다. 그때 승복이 키를 활 내팽개치면서 두덜거릴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콱 가져가오. 처남네 차를 몰지 않으면 몰 택시 없을 거 같소?” 자존심이 면도칼날 같은 성호는 뒤통수에 된방매를 맞은 것 같았다. 송숙은 성호의 팔에 매달리면서 비난사정했다. “저 나그네 한족간나새끼한테 귀쌈을 맞은 게 분해 그러오. 오빠, 한번만 참소.” “그래, 형제간에 고만한 거야 리해 못하겠니?” “당장 가오! 형제 의리도 없는게. 매부 자존심이 꺾이게 얻어맞았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다니? 그 드센 무쇠주먹을 뒀다가 뭘 하오?” 성호는 구들에 들어앉으면서 해석했다. “매부, 교통대대에 가서 주먹을 휘두를 일이 아니잖소? 내라고 자존심이 없어 그랬겠소? 주요 책임이 우리한테 있다고 판결을 내린 이상 뒤집기 힘든 판에  어쩌겠소?” “당신 같은 보스를 믿고 누가 택시를 몰겠소?” 성호는 승복을 위로하려고 “매부, 우리 가서 술이나 한잔 마실가?” 하고 잡아 끌며 일어났다. 승복은 손을 홱 뿌리쳤다. “됐소, 돼. 굶어죽어도 처남네 차를 몰지 않겠소.” “이 나그네, 왜 이래? 그 한족간나새끼와 해내지 못하고 오빠와 왜 이러오? 진짜 시어머니 역정에 개 배때를 차는 격이오.” “뭐라고?” 찰싹! 승복은 송숙의 뺨을 한대 갈겼다. 성호는 50원짜리 지페 여섯장이나 꺼내 손바닥에 쥐여주면서 승복을 구슬리려고 들었다. “매부, 내 잘못했소. 이걸로 술이나 사 마시고 다시 잘 생각해보오." 성호는 가정분란을 일으킬 것 같아 미안해 집으로 돌아왔다. 승복은 그 일이  속으로 내내 좋지 않아 비좁은 속에 앙금이 들어찬 것 같았다. 성호는 승복이 며칠 후에 택시를 몰겠다고 찾아오자 기꺼이 키를  내주었다. 승복은 그날 택시를 몰고 나간 후 해 넘어가도 돌아오지 않았다. 속이 탄 나머지 성호가 여러번 핸드폰을 쳐도 받지 않았다. “강도라도 만나지 않았을가?” 정희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채 근심했다. “재수 없이 녀편네들이 불길한 말 하지 마오.” 벽시계는 저녁 7시를 가리키는데도 택시고 사람이고 돌아오지 않았다. 성호는 부득불 여러 시, 현 교통경찰대대에 신고했다. 한참 후 송하 교통대대 왕교도원한테서 전화가 왔다. “우리 교통관리소 통과차량기록을 들춰보니 오늘 오후 6시쯤에 확실히 그 택시가 우리 시내를 벗어나려고 왔댔습니다. 당시 교통경찰은 해가 졌는데 손님도 싣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가려는 것이 이상해 운전수와 어디로 가는가고 물은 적이 있답니다.  운전수는 당황해하면서 차머리를 돌려 되돌아가더랍니다. 교통경찰은 너무 수상해 오토바이를 타고 그 택시를 쫓아가보았는데 흑룡강성쪽으로 달려가더랍니다. 혹시  운전수가 택시를 흑룡강성에 몰고 가서 팔자고 그러진 않았는지?” 성호는 전화를 쥔 채 벌떡 일어났다. “지금이라도 그 택시를 쫓아가 우리 집으로 보낼 수 없습니까?” “알았습니다. 기다리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수고하겠습니다.” 성호는 전화를 끊자 집 안에서 주먹을 쥐고 왔다갔다하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매부라고 택시를 맡겼더니. 엉큼한 놈, 돌아오기만 해봐라.” 정희도 혀를 끌끌 찼다. “진짜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치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쯧쯧쯧, 어쩜 우리 택시를 탐낸단 말인가요?” 준식도 이상한 점을 말했다. “아침에 택시를 교대해준 후 좀 이상합데. 택시 뒤바곤에서 받치개를 몽땅 꺼내 털어내고 다시 펴지 않겠소? 이때까지 그런 적이 없었소.” “먼 길을 가겠는데 차부터 정리해야지. 흥!” 성호는 침대에 훌렁 들어누워 벽시계를 쳐다보며 속을 바질바질 태우면서  택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송숙이 들어왔다. “오빠, 어째 우리 나그네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소?” 성호는 정희와 눈길을 마주치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글쎄. 우리도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송숙은 성호의 손까지 잡고 울며 말했다. “우리는 사람을 내놓고 오빠네는 차를 내놓지 않았고 뭐요? 그래도 사람을 내놓은 쪽이 더 속이 타겠지. 안 그렇소?” “그러나 저러나 이건 알아야 해. 차는 말하지 못하는 기계여서 사람이 모는대로 가지.” 손바닥이 다르고 손등이 다르다고 송숙은 남의 10만원짜리 차는 둘째이고  남편근심이 태산 같았다. “거야 그렇지. 혹시 강도라도 만났는지 어떻게 아오?” 성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정만 쳐다보았다. 그는 괜히 택시 때문에 대대로 가깝게 보내던 친척관계를 벌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정희가 얼굴이 새파래나며 뭐라고 말할가하자 성호가  앞질러 말했다. “다 무사하면 얼마나 좋겠니?”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는 송숙은 성호의 말에 동을 달았다. “그러잖고.” 납덩이처럼 무거운 침묵 속에 초조하고 피를 말리는 시간이 한시간, 한시간 흘렀다. 벽시계가 이젠 밤 9시 반을 가리켰다. 따르릉, 따르릉. 갑자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성호는 황급히 전화를 들었다. “예, 왕교도원? 예? 택시를 찾았다구요? 예, 감사합니다.” 성호는 벌떡 일어서면서 정희와 준식을 둘러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였다. “택시를 이쪽으로 압송했다구요? 예, 예, 알았습니다. 왕교도원, 수고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화를 놓자 성호는 벌떡 일어나면서 주먹을 불끈 쥐여 휘둘렀다. “됐소. 택시를 찾았소.” 정희는 침대에 쓰러지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간이 다 떨어지겠다. 사촌매부도 믿지 못하면 누굴 믿고 택시업을 한대요?” 준식은 허구푼 웃음을 지었다. 성호는 주먹으로 벽을 꽝 치며 말했다. “사람에 달렸지. 엉큼한 사람이야 아무리 잘 대해줘도 량심을 흑룡강성에 실어다 팔아먹으려고 하지.” 송숙은 계면쩍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한숨을 호~ 내쉬였다. “나그네새끼, 어쩜 흑룡강성까지 가? 뭘 하려고 저랬어? 좌우간 다 무사하다니 됐소. 이제 돌아오면 단단히 따져보겠소? 무슨 놈의 지랄이 나서 그 한끝까지 가서 숱한 사람을 속을 태우게 했는가? 썩어질 나그네새끼. 쯧쯧쯧.” 정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일어났다. “저렇게 주인 말도 잘 듣지 않고 택시를 몰고 아무데나 달아다니고서야 어떻게  해요? 어디로 가면 간다는 말이라도 해야죠.” 송숙도 만만치 않았다. “아니, 형님, 이 집에 운전수 없을 땐 사정, 사정 해서 몰잖았소? 어쩌다가 외지로 차를 몰고 갔는데 연유도 묻지 않고 이렇게 말썽이 많소? 우리 나그네 진짜 이 집 택시를 몰지 않으면 몰 게 없어 그러는줄 아오? 이젠 몰아달라고 손이 발이 되게 싹싹 빌어도 몰지 않을 게요.” 정희가 와닥닥 일어나면서 뭐라고 쏴붙이려고 했다. 순간 성호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됐소, 됐어. 괜히 그 잘난 택시 때문에 친척관계가 벌어지겠소.” 그제야 정희는 입을 다물고 도리머리를 홰홰 가로 저었다. 송숙은 성호와 정희를 번갈아보면서 뭐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고 건너방에 들어가 고모를 붙안고 울고 불고하다가 집으로 쥉쥉 가버렸다. 영옥은  건너방에 와서 성호를 불러갔다. “얘야, 송숙이 나그네 어쨌다고 그러니?” 성호는 승복이 저지른 일을 자초지종 쭉 얘기했다. “아무리 그렇다 쳐도 돌아왔으면 욕하지 말라. 언제나 내 좀 미찐다하면 된다. 송숙이 아버진 내 년년생 되는 친오빠야. 우리 오누인 고향에서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 함께 자랐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우리 오누이 자손들이 이가 벌어지는 거 볼 수 없다.” “엄마, 알았소. 송숙도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 정이 푹 든 녀동생이오. 그러나 매부는 속이 좀 다르오. 돈에 눈이 어둡단 말이오.” 상진도 간신히 일어나 벽에 기대 앉으면서 한마디 했다. “옛날부터 장사는 누구도 믿지 말아야 한다고 했느니라. 옛날 내 장사할 때 9촌숙이 내 돈을 다 떼먹고 수엽을 씃은 일이 있다.” 영옥은 령감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그만둡소. 9촌숙과 외사촌녀동생이 어찌 같소?” 상진은 영옥을 흘겨보면서 쏘아붙였다. “가까우나 머나 장사는 매 한가지야. 인심이란 난측이느니라.” 그는 성호를 돌아보면서 타일렀다. “친척들을 택시를 몰게 하면 관리하기 힘들게야. 옛날부터 쓸 사람은 의심하지 말고 의심스런 사람은 쓰지 말라고 했네라. 들어보니 그쯤 하면 승복을 보고 택시를 몰지 말게 하는게 옳아. 이번엔 교통경찰들이 수고해서 붙잡아오다 싶이 했지만 이제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아니?” 영옥은 혀를 끌끌 찼다. “쯧쯧쯧, 끝내 조카사위를 내칠 작정이구나. 승복이 차를 몰지 않으면 애들 셋이나 키우는 송숙이네 뭘 먹고 산다니?” 상진은 영옥을 꾸지람했다. “당신 작작 삐치오. 성호, 썩은 살은 사정없이 베버려야 해.” “알았습구마.” 성호는 바깥에 나가 가로등불빛을 빌어 저 쪽에서 언제 빨간 택시가 나타나겠는가 눈뿌리 빠지게 기다렸다. 마가을의 밤바람은 꽤나 싸늘하게 불어쳤다. 성호가 한참 바깥에서 서성거릴 때 저쪽에서 경찰용오토바이 한대가 빨간 택시를  앞세우고 돌아왔다. 성호네 3층집 앞에서 택시가 멈춰서고 경찰도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승복은 계면쩍은지 아니면 량심의 가책을 받았는지 택시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핸들을 붙잡고 머리를 숙이고 뭔가 찾는 상을 했다. 성호는 경찰한테 다가와 손을 굳게 잡았다. “밤중까지 수고했습니다. 택시를 찾아주어서 감사합니다.” 성호는 경찰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송하까진 백킬로메터도 넘는데요. 진지 들고 가십시오.” “송하에서 먹었습니다. 저런 운전수는 절대 쓰지 마십시오. 위험합니다. 안녕히!” “예, 편안히 가십시오!” 경찰을 보내고 그때까지 운전석에 앉아 있는 승복을 돌아보는 성호의 눈에서는 이상한 빛이 번쩍였다. 그는 용케도 분을 삭이고 운전석에 다가가 차문을 열어제꼈다. “아니, 어째 이렇게 늦었소? 전화도 하지 않고?” 승복은 능청스레 대답했다. “송하에 가는 손님을 싣고 가다나니…” 그는 택시에서 내리더니 키와 돈 50원짜리를 몇장 성호한테  건네주었다. 성호는 받아들고 돈을 세여보니 360원이나 됐다. “어째 이렇게 많소?” 승복은 “그렇게 됐소. 그 손님이 처음에는 송하까지 가겠다고 했는데 송화까지 가자고 해서 늦었소.” 하고 중얼거리면서 발은 벌써 저쪽으로 슬금슬금 옮겨놓고  있었다. 성호는 더 붙잡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능청스러운 승복을 보고 저으기 놀랐다. “승복이, 이걸 가지고 가서 저녁이나 사 먹소.” 승복은 체면에 돈을 받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가버렸다. 성호는 가로등불 밑에서 멀어져가는 승복의 비틀거리는 뒤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착잡한 고민에 빠졌다. (세상 인심은 난측이야. 승복은 택시를 흑룡강성에 가서 팔아버리려고 한 게 아닐가? 만약 팔기라도 했더라면 도중에 강도를 만나 겨우 살아 돌아왔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겠지. 의심스러운 놈은 쓰지 말아야지. 아무리 생활고에 허덕여도 처남 택시를 팔아먹으려고 들가?) 성호는 밤중에야 집에 돌아온 택시를 어루만지고 닦으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하루를 삼추 맞잡이로 속을 태워 성호의 머리에 서리가 새하얗게 내리기 시작했다.  
222    김장혁작가의 두번째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 출판 댓글:  조회:819  추천:1  2019-07-28
                 출간소식 ||             김장혁작가의 두번째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 출판       延邊作協 5天前           료녕신문                      최동승 기자           김장혁 작가의 두번째 대하소설 《진달래소야곡》(총 4권)이 일전 료녕민족출판사에 의해 출판되였다.        이 대하소설은 개혁개방 초기로부터 조선족 대이동의 격변시대를 배경으로 주인공 리성호를 둘러싸고 리승호, 리종수, 엄정희, 최은영, 해연, 선희, 예화, 연화 등 인물들의 부동한 사랑관과 가정관, 가치관의 갈등 속에서 현시대 조선족들의 가정에 비낀 희노애락을 반영하였다. 또 이런 작중 인물들과 리성호 형제자매의 피눈물 나는 울고 웃는 가정생활 이야기, 특히 고부 사이의 갈등을 통해 침통한 교훈을 남겨주고 효성 그리고 가정문제를 헤쳐나갈 앞길을 긴 여운으로 남기려고 시도하였다. 주인공 리성호는 농민가정 출신 대학졸업생으로서 전통적인 순결한 사랑과 혼인관을 고집하며 화목한 가정생활을 추구하며 교수의 딸 엄정희의 순결한 사랑을 얻어 결혼까지 한다. 그는 공안국에 들어가려던 꿈마저 산산이 부서지자 자기 실력으로 선후로 목축업, 소장사, 택시업, 광고업 등을 하여 부모를 시내에 모셔다 효성을 하면서 화목한 가정을 꾸리려고 모지름을 쓰는 등 곡절적인 인생행로를 걷는다. 교수의 딸 엄정희는 농촌의 시부모한테 효성을 하려는 성호와 갈등을 빚게 되며 다단계판매에 휘말려들어 옥살이를 하며 집마저 팔고 허망 나앉게 된다. 그후 선후로 한국과 미국에 밀입국했지만 미국에서 또 주식에 번 돈을 다 처넣고 알거지로 되는 비극을 맞게 된다. 소설에서 반면인물 리승호는 련애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처녀들의 정조를 유린하며 바람둥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처처에서 장벽에 부딪친다. 나중에 그는 에이즈병에 걸려 처참한 인생종지부를 찍게 된다.       소설에서는 이 밖에도 성호와 애매한 련정을 품었다가 퇴짜를 맞고 남편한테 배신을 당해 비극을 겪는 해연, 간에 가 붙고 쓸개에 가 붙으면서 웃음 팔고 몸을 팔아 사는 정희, 사회 최하층에서 구르며 로무송출, 가정교사, 광고모델로 헤매며 별의별 수모와 릉욕을 다 당하는 연화, 권리를 리용해 부패타락한 향락을 누리며 부정재물을 챙기는 오간부, 광고회사 경리 리굉팔 등 인물형상도 생동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10여년 동안 번 피나는 돈과 고향집마저 판 돈을 몽땅 털어 두 아들며느리한테 집과 차까지 갖춰주고서도 불효한 아들며느리들한테 박대를 받다못해 쫓겨나 눈물을 흘리면서 고향으로 돌아간 성호의 막내누나 성숙, 림종을 앞둔 시어머니를 어서 죽으라고 주사마저 놔주지 않는 '쥐며느리' 류려평의 형상도 생동하게 부각하였다.       김장혁 작가는 2014년에 중국조선족의 백년력사를 반영한 첫번째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을 펼쳐낸 뒤을 이어 이번에 두번째 대하소설 《진달래소야곡》을 펼쳐냈다. 이 대하소설은 현시대 조선족들의 짙은 생활정취를 보여준 독특한 매력으로 독자들을 흡인할 것이다.  
221    수필 버릴줄 알아야 김장혁 댓글:  조회:767  추천:0  2019-07-19
  수필             버릴줄 알아야                                                 김장혁            나의 안해는 무엇이나 버리기를 좋아하였다. 몇번 입지 않은 옷도 자기에게 조금만 어울리지 않는것 같으면 남에게 훌훌 줘버리는가 하면 가지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쓰레기무지에다 여지없이 버렸다. 쓸만한 가구도 역시 헌것이라고 버림을 당하는 운명을 면할수 없었다. 반면에 나는 뭐나 건사하기를 좋아한다. 어머니를 닮아 그런지 버리기 아까와하고 건사해두군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부부는 수많은 재미나는 에피쑈드를 낳기도 하였다.           어느날 안해는  내가 쓰는 사무상 의자가 헐었다고 눈에 거슬려 버리려고 하였다. 그러자 나는 쓸만한 것을 왜 버리겠는가 하면서 버리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자 내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안해는 아들을 시켜 끝내 내다버리게 하고야 말았다.   이전에 나는 없는 재간을 다하여 나무를 대패질하여 부엌틀도 세우고 세멘트로  매질도 하고 자기타일도 붙여 그럴 듯하게 주방가구를 만들어놓았다. 그런데 안해의 마음에 들지 않을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나를 동경성에 있는 막내누나네 집에 가을걷이를 보낸 후 일군을 불러다가 내가 그렇게 정성들여 만든 주방가구를 다 뜯어버리고 몽땅 자기 마음에 들게 다시 만들고 야말았다.   이번에 새 집에 이사하면서 또 숱한 가구들이 버림을 당하고 말았다. 나는 쓰던 책장과 사무상, 침대, 쏘파, 밥상만은  꼭 가지고 이사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안해는 고급침대를 내놓고 쓰던 가정기물은 일률로 버리고 가고 새 집에는 몽땅 새 가구를 사놓고 산다고 선포하였다.   “아니, 여보, 참대쏘파는 9년전에 2천 1백원이나 주고 산 거구. 책장은 2천 9백원이나 주고 산 거잖소? 왜 쓸만한 걸 가지고 안가오? 저 밥상두 천원 돈을 넘어 주고 산 건데 왜 버리오? 그리구 저 사무상두…” “여보세요, 낡은 걸 버리지 않구서야 어찌 새 것이 차례질 수 있어요? 다 버리구 갑시다.” 안해는 끝내 자기 주견대로 쓰던 가구를 버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새 쏘파, 새 밥상을 사다가 새 집에 척척 들여놓았다. 새 집안은 침대를 내놓고는 몽땅 새 가구를 사놓다나니 참말로 황홀하게 눈부실 정도였다. 알른알른하는 새 집에서 사니 나도 새 사람이 된 것 같고 우리 부부도 새 부부로 된 기분에 잠겨 살게 되였다. 그리고 낡은 가구들을 원래 집에 버리고 왔댔는데 세집살이를 하는 젊은 부부들이 쓰게 하고 보니 실로 일거량득이 아닐 수 없었다.   안해와는 정반대로 옛날부터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오신 나의 어머님께서는 무엇이나 버리기 아까와하였다. 어머님께서는 쌀독과 물독은 늘 꼴똑꼴똑 채워놓고 살고 가구나 그릇은 낡아도 마스거나 버리지 말고 뺑뺑 돌려놓으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기에 어머님께서는 무엇이나 집의 물건을 내다 버리는 습관이 없었다. 정말 프팡스 대작가 발자끄의 소설 “고리오령감”에서 나오는 주인공 고리오령감처럼 몇푼어치도 되지 않는 잡동사니들을 온 집안 가득 무져놓았다. 오십년 전에 마반산에서 가져왔다는 매돌로, 어머님께서 시집오실 때 외할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농궤와 나무함지로… 몇십년씩 묵은 골동품을 다 보관하면서 92년세월을 살아오셨다. 물론 그 골동품들에는 지나간 이야기와 추억이 깃들어 있어 돈으로 헤아릴 수 없이 어머님께는 아주 귀중하다는 것은 조금 리해된다. 그런 골동품쯤은 그래도 건사가치가 조금 있다고 하자. 그러나 지금 어머님의 방에 들어가보면 그 좋은 옷궤와 침대궤를 두고서도 침대 옆에 크고 작은 종이상자에 옷견지를 가득 넣어 무져놓으신 것을 볼 수 있다. 또 여기저기에서 나무꼬챙이마저 주어다가 깎아서 무엇에 쓰려는지 여기저기 주룽주룽 걸어놓으셨다. 어머님의 방은 참말로 페품상점을 방불케 하였다. 쓰레기무지에 내다버려도 주어갈 사람이 없는 그런 잡동사니를 무져놓다나니 새 가구를 사다가 놓을 자리마저 없었다. 어머님께서는 그런 종이상자마저 재부로 생각하면서 만족해하시였다.   어느 하루 내가 어머님께서 몇해 모으신 잡동사니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버리였다. 어머님께서는 내가 없을 때 아까와 그것들을 하나하나 집으로 되주어들여오셨다. 이렇게 어머님의 소비관념은 일조일석에 고치실 수 없었다. 어느 잡지에서 나는 이런 만화를 본적이 있다. 어떤 나그네가 헌신짝으로 잔등긁개로, 이발 빠진 빗으로, 쓰레바키로, 장대걸레로, 몽당비자루 등을 가득 넣은 커다란 대바구니를 구부정한 허리에 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겹게 걷는 장면을 그린 만화였다. 그 만화 설명문도 퍽 인상깊었다.   “대부분 늙은이들이 잘 살지 못하는 원인은 버릴줄 모르기 때문.” 곰곰히 생각해보면 참말로 철리가 있는 만화였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건사할줄 알아야 할뿐만아니라 낡은 것을 버릴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밑굽이 빠진 항아리처럼 버리기만 하고 건사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정말 안해의 말처럼 낡은것을 버리지 않으면 새것이 생기지 않는다. 낡은 것들을 다 버리지 않으면 새 것을 놓을 자리마저 없게 된다. 낡은 것을 깨끗이 버리면 기분도 홀가분하고 새것을 바꿔 쓰면 그만큼 기분도 새로와지게 된다. 물건과 환경이 새로와지면 사람도 자연히 새로와지게 되며 낡은 것에 대한 만족감과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추구를 하게 되며 분발노력하게 된다.   이전에 나는 그 보잘 것 없는 졸작수필이나 소설들을 발표하고 어깨가 으쓱해하였고 아주 정성스레 나의 작품이 발표된 신문과 잡지를 건사하였다. 나는 그런 두부모만한 보잘 것 없는 졸작들에 만족하면서 그럴듯한 새로운 탐구작을 써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요즘 이사하면서 내가 쓴 두부모만한 졸작들이 실린 신문과 잡지들을 들춰보고서야 정말 보잘 것 없는 졸작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몽땅 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나는 그것들을 주머니에 넣어서 고향마을 로인활동실에 가져다 주었다. 고향마을을 떠나 오면서 나는 이제부터 새로운 의식과 시각으로 사회를 관찰하고 문학작품 같은 글을 써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였다.   사람은 없는것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낡은 물건을 버리듯이 케케 묵은 사상과 관념, 낡은 의식과 가치관을 말끔히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새 사상과 관념, 새 의식과 가치관을 받아들여 자기를 새 시대에 맞는  새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자질구레한 일을 마음에 넣고 끙끙거리지 말고 머리도 마음도  비우고 바꿀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속세에서 벗어나 굵직굵직한 일을 마음에 담고 해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본 수필은 한국 KBS방송 2021년 수기우수상을 받았음                                                    
220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31) 댓글:  조회:1412  추천:1  2019-07-17
소설 58. 빨간 장미꽃 함정   련인절날 밤, 불야성을 이룬 시내에는 오색령롱한 전등불빛이 반짝이고 시내 중심에 자리잡은 시대광장은 쌍쌍이 빨간 장미꽃을 들고 오손도손 이야기하며 산보하는 련인들로 들끓었다.    어느날 연화가 새물거리면서 성호를 찾아왔다.    성호는 호리호리하고 탄력있는 연화의 몸매와 새물거리는 얼굴을 보고 조금 시름이 놓였다.    “리선생님, 랭면을 사줄래요?”    “그러지.”   성호는 흔쾌히 대답하고 연화와 함께 택시를 잡아타고 랭면집으로 달려갔다.   랭면집에서 청춘 남녀가 명태와 조개살 안주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기분이 아주 상쾌했다. 그들은 랭면을 한사발씩 먹은 후 랭면집에서 나왔다. 조용한 골목에 들어서자 연화가 성호의 팔을 살짝 끼였다. “누가 보면 어쩌오?” “뭐래요? 련인절인데 련인인가 하겠죠.” “안해 보면 어쩌오?” “뭐래요? 사모님, 아니, 정희 선생도 리해하겠죠.” 연화는 대수로와하지도 않고 성호의 팔을 끼고 부근의 다방으로 들어갔다. 희미한 전등불빛 아래 연화는 성호와 마주 앉아 커피를 홀짝 마시더니 앵두입을 조용히 열었다. “선생님, 실련당한 후 선생님이 친구로 돼줬기에 다시 삶의 용기를 얻었어요. 한편 이왕지사도 자꾸 영화필림처럼 떠올라 저를 괴롭히는군요.” “에이, 싹 잊어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하오.” 연화는 두손으로 성호의 손을 꽉 잡고 울컥했다. “동창생, 그 배신자는 잊은지 오래죠. 제일 처음 저의 정조를 짓밟은 그 색마가 내 마음을 이렇게까지 괴롭힐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또 련인이 있었소?” “예.” 연화는 머리를 숙이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한참 후에 천천히 머리를 든 연화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더니 조용히 앵두입을 열었다. “선생님은 집에 기여든 살인악마를 나포하고 많이 놀랐겠는데요. 위로할 대신 제 이왕지사를 얘기해 미안해요.” “괜찮아.” 성호가 바라보니 연화의 어두운 실련의 눈동자에서는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연화는 다방에서 흘러가는 정적을 조용히 깨우면서 눈물겨운 이왕지사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날도 련인절날 밤이죠. 제가 모교 예술학원 무용실 강당에서 춤을 추고 숙사로 돌아갈 때였어요. 난데 없는 꺽다리가 다가와 치근거렸어요…”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미술학부에 다니는 영호라고 소개하고나서 너스레를 떨었다. “야- 정말 이쁘고 매력적이구만. 우리 알고 지내면 어떻소?” “시끄러워요. 피해요.” 연화는 꺽다리를 피해 숙사 쪽으로  걸었다. 꺽다리는 뒤따라오면서 “너무너무 예뻐서 수채화를 그려주고 싶은데.”라고 했다. 처녀들이란 춰주는 말 한마디에도 가슴이 울렁일 때도  있었다. “아니, 영호라던가요? 기장밥이라도 해달라는 건가요?” 연화는 쌍까풀눈을 곱게 흘기였다. 점심인데도 영호는 식당에 갈 대신 연화한테 딱 달라붙어서 모델을 서달라고 비난사정했다. 순식간에 당한 일이지만 연화는 한 학원 영호의 말을 들어주었다. (모델이 돼주고 수채화 한장 받는 건 수지 맞는 거야.) 영호는 정말 숙사에 가서 미술도구를 가지고 오더니 그녀를 데리고 자기 집에 설치된 화실로 들어갔다. 영호는 연화를 벽 쪽에 놓인 빨간 비단으로 감싼 의자에 앉으라고 하고 붓에 색물감을 툭툭 찍어 수채화를 쓱쓱 그리기 시작했다. 백설 같이 하얀 얼굴, 복스러운 복숭아이마에 초생달 같은 눈섭, 정기도는 까만 쌍까풀눈, 오똑한 코 아래 빨간 앵두입술, 가느다랗고 야들야들한 목, 어깨우로 넘실넘실 파도쳐내린 커피색머리, 예술적체형미가 다분한 호리호리하고 탄력있는 몸매… 턱을 고이고 앉아 추억  속에 잠긴 듯한 미인을 그리면서 너무 아름다와 감탄이 자꾸 났다. “실로 예쁘오. 진짜 선녀 같소.” “어마나!” 연화는 얼굴을 감싸쥐고 머리를 숙였다. 한식경 역사질 끝에 영호의 붓끝에서 진짜 예쁜 연화의 초상화가 완성됐다. “자! 보오.” 연화는 황급히 의자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와서 수채화를 들여다보았다. 진짜 살아 움직이는 자기 같았다. 아니, 자기보다 더 예쁜 순진한 처녀의 모습이였다. “현물보다 더 예쁜 처녀를 그렸구만요.” “아니요. 어찌나 이쁜지 퍽 쉽게 잘 그려진 거 같소.” 영호는 점잖고도 겸손하게 인사를 받았다. “어마나, 어떻게 고마운 인사를 드릴가요?” 연화가 두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몸둘바를 몰라했다. 영호는 정색해 “천만에. 후에도 멎진 그림을 그려줄테니까. 부르면 나올만 하오?” 하고 물었다. 연화는 부끄러운지 몸을 배배 탈며 눈을 살풋이 내리감으며 궁리하다가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연화는 영호가 부르기만 하면 밤중에라도 화실로 나갔다. 그녀는 영호의 거슴츠레한 실눈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뛰여난 미술기량을 탄복했다. 차차 지내보면서 훤칠한 체격과 사내대장부답게 돈을 쓰고 푹푹 쥐여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점차 영호와 함께 있으면 즐거워났다. 련인절날 밤에도 영호는 빨간 장미꽃을 한묶음이나 연화한테 안겨주고 부동한 각도로 사진을 찰칵찰칵 찍어주었다. 이어 그들은 노래방에 가서 밤이 가는줄도 모르고 경쾌한 음악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으면서 붙안고 춤 추고 또 추었다. 새벽이 거의 되여 영호는 꽃가게에 가서 빨간 장미꽃 한송이에 새하얀 백합꽃 한송이, 울금향 네송이를 사가지고 연화와 함께 조용한 다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영호와 함께 갔던 다방이 바로 이 다방인데요. 바로 이 자리에 선생님과 마주 앉은 것처럼 마주 앉았죠.” 그때 영호는 실눈을 크게 뜨면서 꽃묶음을 연화 앞에 내밀었다. “티없이 맑고 깨끗한 내 마음이 담긴 이 꽃을 받아주오.” “아까 레이저광장에서 받았는데요.” “그 꽃은 이미 얼고 시들었잖소. 꽃은 신선해야 아름답고 향기로운 법이요. 이 걸 꽃병에 꽂아두고 오래오래 향기를 맡아보오.” 연화는 그 말뜻을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꽃묶음을 받아 오똑한 코를 대고 그윽한 향기를 맡았다. 그 매력적인 장면에 매혹된 영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야- 꽃향기를 맡는 연화의 이쁜 모습! 오늘 밤에라도 붓이 있으면 수채화를 그려주고 싶구나.” “어마나, 화가인가 했더니 세상의 고운 말은 다 골라 하는 말박사네요. 호호호.” 연화는 쌍까풀눈을 곱게 흘기면서 깔깔깔 웃었다. 그날 밤, 연화는 영호가 미술학부를 이미 졸업하고 간판광고회사를 경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우리 선생도 간판광고회사에 다니는데요.” “누구요?” 영호는 저으기 놀라했다. “성호 선생이라고 알아요?” “오- 알구말구.” 영호는 대뜸 불쾌해하는 눈치. “우린 광고라이벌이지.” “그래요?” 순간 연화는 혀를 홀랑 내밀었다. “그때 저는 다신 영호 앞에서 다시 리선생님 말을 꺼내지 말아야겠구나 했지요.” 연화는 성호의 눈치를 할끔 훔쳐보며 뒤말을 이었다. “그때 영호는 나를 처음 보는 순간 무슨 호수에 나타난 백학 같다는지, 숲 속에 피여난 빨간 장미꽃 같다는지 하면서 잔뜩 춰올렸지요…” 영호는 격동되여 연화의 야드르르한 손을 꽉 잡고 야망을 토로했다. “연화, 나는 연화라는 빨간 장미꽃을 아름답게 그려 온 세상에 널리 장랑하고 싶소. 어떻소? 그때면 연화는 단번에 명도델로 뜰게요. 우리 잘 합작해보기요.” 연화는 고무풍선처럼 하늘에 둥둥 뜬 기분이였다. 그녀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럼 얼마나 좋겠어요.” “연화는 미래의 명모델이요.” 연화는 영호의 손아귀에서 손을 빼면서 “한가지 부탁하자요.”라고 했다. “뭘? 백가지라도 부탁하오. 다 들어줄게.” “절대 간판광고에 내지는 마세요.” “왜?” “성호선생이 좋아하지 않아요.” 그 말에 영호는 대뜸 상을 징그리며 가슴츠레한 실눈으로 연화를 째려보았다. “왜?” “리선생님이 광고모델을 서달라고 해도 전 창피하다고 서주지 않았는데요.” “오- 알만하오.” 그제야 영호의 찡그렸던 얼굴근육이 느슨히 풀리면서 실눈도 좀 트이였다. 그는 커피잔을 들어 마시면서 실눈으로 황홀한 꿈 속에 잠겨 있는 연화의  표정변화를 찬찬히 살폈다. 어느덧 봄기운이 완연하여 산과 들에는 향기로운 꽃들이 울긋불긋 피여 아름다움을 뽐내며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처녀총각들의 가슴도 봄꿈으로 탱탱 부풀어올랐다. 봄을 맞아 연화의 예쁜 얼굴에는 청춘의 홍조가 발갛게 어리였다. 영호의 초청을 받은 그녀는 곱게 치장한 후 택시에 앉아 공원으로 달려갔다. 공원의 잔디밭에서는 봄풀의 싱그러운 냄새가 그윽하였다. 연화는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고 신선한 꽃 몇송이를 들고 푸른 잔디밭에 앉았다. 지나가던 구경군들이 장미꽃 같은 연화의 그 예쁜 모습에 도취돼 걸음을 멈추고 오래도록 떠날줄 몰랐다. 실로 하늘에서 선녀가 내린 듯하였다. 그날 영호는 연화에게 많은 사진을 찍어주었다.   영호는 사진을 찍을 때 연화가 입었던 대여섯벌이나 되는 한복을 몽땅 주고서도 모델비도 두툼하게 주었다. “소비자가 아니고 뭐요? 학잡비에 보태 쓰오.” 연화는 영호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며칠 후 뜻밖에 시내 번화한 거리에 장미꽃같이 어여쁜 연화의 사진을 배경으로 한 간판광고가 줄느런히 내걸렸다. 행인들은 연화의 아름다운 모습에 시선이 끌려 발길을 멈추고 광고내용까지 내리보았다. 광고효과는 놀랍게도 좋았다. “오- 그때 난 간판광고를 보고 놀랍고도 불쾌했소. 우리 회사에 와서 광고모델을 서달라고 해도 사양하더니. 원, 참 불쾌했지. 돈이나 많이 줬겠구나고 추측도 했댔소.” “미안해요. 선생님.” 연화는 성호의 손을 잡으면서 머리를 숙였다. “그때 난 영호를 찾아가 화를 냈죠. ‘왜 신용을 지키지 않았는가’, ‘왜 동의도 거치지 않고 간판광고를 내 걸었는가?’고 말이예요.” 그런데 영호는 실눈으로 연화를 가슴츠레 바라보며 그저 씨물씨물 웃을뿐이였다. “미안하오. 불시에 간판광고를 내야겠는데 모델을 찍어놓은게 없어 그렇게 됐소. 다신 내지 않지.” “이제 다시 내면 모든 건 끝이죠.” “알았소, 알아. 예상치 못한 기적이 일어나면 그땐…” 영호는 뭔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끝을 얼버무렸다. 진짜 기적이 일어났다. 텔레비죤방송국에서 연화를 패션전시회 모델로 초빙하겠다고 영호네 광고회사에 전화문의가  걸려왔다. 촬영가협회에서도 모델로 초빙하겠다고 련계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소식을 들은 연화는 영호에 대한 반감보다 호감과 감사한 마음이 반죽돼 가슴이 벅차오르고 설레이기까지 했다. 연화는 텔레비죤방송국 스튜디오에 가서 며칠동안 모델훈련을 받았다. 며칠 후 그날이 닥쳐오고야 말았다. 연화는 시체옷을 갈아입고 섬광등이 번쩍이는 텔레비죤패션전시회 무대에 올라섰다. 그녀는 경쾌한 음악에 맞춰 사뿐사뿐  걸어나갔다. 그녀는 세계미스선발대회에 나선 미인처럼 아가씨들이 질투의 눈길을 보낼 지경이였다. 관중석에서 영호는 실눈으로 아름다운 연화를 눈박아 바라보며 닭알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패션전시회프로가 방송된 후 연화는 일약 명모델로 부상했다. 패션회사 사장은 두툼한 로임으로 그녀한테 패션모델초빙서를 내밀었다. 텔레비죤방송국 광고회사 총경리와 당시 국영간판광고회사의 총경리였던 리굉팔도 간판광고모델초빙서를 내밀었다. 연화는 모두 사양하고 자기를 모대에 올려준 영호의 광고모델만 했다. 심지어 영호가 새 미술착상이 있다면 언제 불러도 달려가서 모델을 서주군 하였다. 하여 그녀는 온 세상에 아름다운 모습을 더욱더 떨칠수 있게 되였다. 이젠 무더운 여름에도 긴팔적삼과 청바지를 입고 다니던 연화가 아니였다. 눈부시게 하얗고 오동통한 우유빛젖가슴을 반넘어 드러내고 촬영에 나서는가 하면 심지어 부래지어와 팬티차림으로 숱한 사람들이 여겨보는 수영장에서도 먼진 포즈를 취하고 촬영하게 했다. 어디 그뿐인가. 그녀는 영호를 따라 울울창창한 나무숲이 우거진 남산에 가서 늙은 아름드리비술나무 밑에서 팬티와 브래지어 차림새로 인체사진을 촬영한 적도  있었다. 그녀는 이젠 진짜 영호의 말처럼 자기 아름다운 모습을 온 세상에 자랑하는 명모델로 된듯 푸른 하늘에 둥둥 뜬 고무풍선처럼 들뜬 기분에 잠겨버렸다. 어느날, 영호한테서 전화가 왔다. “연화, 내 화실에 오오.” “예.” 연화는 영호가 부르기만 하면 택시를 타고 오라는 지점으로 달려갔다. 화실에 들어가 보니 판판 다른 세상에 들어선 것 같았다. 널다란 화실복판에 놓인 병풍 앞에 긴 렌쯔를 단 고급사진기가 서 있었고 벽에는 눈 뜨고 차마 볼 수 없는 미녀들의 라체화가 줄느런히  걸려 있었다. 실 한오리  걸치지 않고 침대 우에 모로 누워있는 처녀의 라체화, 강변에서 한쪽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물동이를 어깨우로 들어 하얀 몸에 물을 끼얹는 처녀의 라체화, 백설처럼 하얀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하면서 쏘파에 엎드려있는 라체처녀… 미녀들의 라체화들은 살아 움직이는 처녀들과 흡사해 보기도 끔찍했다. 연화는 침대에 누워있는 처녀와 쏘파에 엎뎌있는 녀성을 패션전시회에서인지 어느 간판광고에서 본 것 같았다. “후에 알고보니 선생님네 광고회사의 모델 선희더구만요.” 연화의 말에 성호가 중얼거렸다. “그 녀자는 원래 개방형 성격이니까. 라체화모델로 나설 수도 있지.” 연화는 라체화들에 매혹돼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영호는 실눈을 크게 뜨면서 한껏 열변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이건 지고무상의 예술품이요. 예술을 사랑하는 연화는 리해하리라 믿소. 세계를 들썽하는 명모델아가씨로 떠오르자면 예술을 위한 희생정신이 필요하오.” 연화는 쑥스러워 머리를 천천히 숙였다. “이번엔 어떤 예술적인 구상을 했는가요? 시키는대로 할테니까요.” 용기를 얻은 영호는 대담히 자기 착상을 내놓았다. “요즘 아주 엉뚱하고 멋들어진 착상을 했소. 제목은 ‘타오르는 청춘의 불길’이요. 어떻소?” “우-와- 참 멋진데요.” “연화는 청춘의 불길이 타오르는 아름다운 시절의 청춘 장미꽃이오. 이 주제를 예술적인 극치로 승화시키려면 실 한오리도  걸치지 않은 옥기둥 같은 처녀의 몸에 타오르는 불길을 그려 촬영하고 그걸 모델로 그림을 그려야 한단 말이요.” “어마나!” 연화는 대듬 두손으로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가리였다. “세계미스로 떠오르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가 하오? 예술을 위한 헌신정신이 필요하오.” 영호는 연화의 팔을 끼고 병풍 앞으로  걸어가면서 열변을 토했다. “이전에 몇몇 처녀들이 바로 그 희생정신이 모자랐기에 세계 미인으로 거의 되려다가 중도랑패를 보았소.” 병풍 앞에 이르자 영호는 연화를 세워놓고 마주보면서 계속 세치 혀끝을 날름거리며 씨벌였다. “연화, 큰 마음 먹소. 예술의 극치를 위해 희생할 때 됐소.” 연화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며 “그래도 어떻게?”하고 발끝으로 땅바닥을 허비였다. 이윽고 그녀는 머리를 천천히 들더니 용기를 내 “어떻게 하라는가요?” 하고 물었다. “아, 아니, 이 조용한 화실에는 연화를 세계미스로 떠오르게 하려는 한 화가와 세계명모델로, 아니, 월드미스로 될 푸른 야망을 품은 연화 밖에 없단 말이요. 용기를 내오. 보수로 2천원을 줄게. 자, 옷을 한겹, 한겹 벗소.” 연화는 인차 옷을 벗지 않았다. “한가지 약속해요. 이 사진과 라체화를 본 지방에 팔거나 걸어선 안돼요.” “그럼, 그렇구말구. 남방이나 국외에 가지고 가서 세계명화전시회에 전시하려오.” 그제야 연화는 머리를 끄덕였다. 영호는 사기가 부쩍 올랐다. “연화, 옷을 하나, 하나 벗소. 먼저 부동한 각도에서 촬영하겠소. 그 다음에 불타오르는 ‘청춘의 불길’을 그리겠소.” 연화는 큰 마음을 먹고 영호가 시키는대로 하얀 보를 편 네모상자 우에 서서 천천히 옷을 하나, 하나 벗으면서 멋진 포즈를 취하였다. 먼저 적삼을 벗고 하얀 우유빛 잔등을 내놓았다. 섬괌등이 번쩍! 짧은 치마를 벗자 탄탄하고 옥기둥 같은 우유빛허벅다리가 드러났다. 번쩍! 그녀가 부래지어까지 풀어 네모상자 아래에 스르르 흘려내렸다. 번쩍! 연화는 부끄러워 머리를 숙이면서 두손으로 가슴을 안고 돌아서지 않았다. 번쩍! 드디여 그녀는 용기를 내 팬티까지 천천히 벗었다. 순간 새하얀 옥기둥 같은 미녀의 라체가 황홀하게 나타났다. 영호는 넋을 잃고 촬영하는 것마저 잃고 멍해 그녀의 라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영호는 적잖은 라체모델을 상대하여 인체화를 그려왔다. 하지만 연화의 몸처럼 예술적으로 잘 다듬어진 매혹적인 처녀의 라체는 처음 보았다. 그는 넋을 잃고 숨을 딱 죽인채 한참이나 실눈을 크게 뜨고 연화의 우유빛살결을 쳐다보고 또 보고  아래우로 훑어보고 또 보면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의 S라인곡선미가 발가우리한 불빛에 빛나고 있었다. 영호는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조용한 화실 안이 터지게 한숨을 후- 몰아쉬였다. 연화가 머리를 모로 돌려 뒤돌아보자 그제야 제정신이 든 영호는 번쩍, 번쩍 샷타를 눌렀다. “연화, 돌아서서 두손을 머리우로 들어올려 맞잡고 허벅다리는 좀 모로 타오. 옳소. 참 매력적이요. 그대로 한 반시간쯤 서있어야 되겠소.” 뒤이어 영호는 비디오촬영기 샷타를 눌러놓고 연화한테 다가가 붓에 노란 칠과 빨간 칠을 묻혀서 하얀 우유빛허벅다리로부터 올리 세차게 타오르는 불길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연화는 부끄럽고 간지러워 허벅다리를 모아 배배 탈면서 두눈을 살풋이 내리감았다. 그러건 말건 영호는 매우 빠른 솜씨로 그녀의 옥 같은 몸에 활활 타오르는 뻘건 불길을 다 그려냈다. 영호는 청춘의 불길이 타오르는 그녀의 몸을 번쩍번쩍 촬영했다. 기실 그쯤 하면 모든 미술과 촬영은 끊난 셈이다. 그러나 영호는 아닌 보살을 떨었다. “참, 미흡한데 많은데. 어떻게 빠리세계명화전시회에 내놓는단 말인가?” 머리를 절레절레 젓던 그는 붓을 쥐더니 다시 연화의 허벅다리와 가슴, 목에까지 색칠을 먹이는 척했다. 그러다가 영호는 불시에 연화한테 덮치더니 흰보를 편 네모상자 우에 깔아눕혔다… 한참 후에 영호는 두팔을 하늘공중에 높이 펼쳐들고 미친듯이 환성을 질렀다. “세계명화 탄생! ‘불타오르는 청춘의 불길’이 이 세상에 고고성을 울렸다. 청춘의 불길 만세! 만세! 만만세!” 연화는 갑자기 당한 일에 줄 끊어진 구슬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며 구슬피 흐느끼며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었다. 그녀의 흐릿한 눈 앞에 벽에  걸린 라체화들이 희미하게 안겨왔다. 침대 우에 모로 누운 처녀, 물동이로 어깨 넘어 알몸에 물을 끼얹는 처녀, 쏘파에 마구 엎드린 라체처녀… 그녀들도 모두 이 화실에 와서 자기처럼 라체모델이 되고 “예술을 위해 헌신”하였으리라고 생각되자 저으기 격분했다. 이제 또 어떤 예쁜 처녀가 색마의 눈에 걸려들어 이 화실에서 자기처럼 라체모델이 되고 간음당할지 누가 알랴! 연화의 눈에는 영호가 더는 명화가 아니라 항상 가슴츠레한 실눈으로 음충하게 처녀들만 노려보는 색마로, 아니, 악마로 보였다. 연화는 영호가 주는 두툼한 돈뭉치를 활 뿌려던지고 정신없이 문을 박차고 부랴부랴 도망쳤다. 그녀는 숙사에 돌아오자 영호가 준 장미꽃병을 들어 땅바닥에 탕 며쳐 박산냈다. 그 빨간 장미꽃의 유혹을 생각만 해도 가증스러웠다. 여기까지 토설한 연화는 성호를 마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선생님, 저의 원쑤를, 아니, 우리 처녀들의 원쑤를 갚아줄 수 없어요? 아직도 그 얼마나 많은 이쁜 처녀들이 인체화가의 허울을 쓴 색마의 빨간 장미꽃 함정에 빠져 한뉘 참회의 눈물을 흘릴지 어떻게 알아요? 하늘이나 알고 땅이나 알가요?” 성호는 연화의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가냘픈 그녀는 실련당하고 색마한테 정조를 유린까지 당하지 않았는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절망에 뻐졌겠는가!) 기실 연화는 실습하러 갔을 때 정희가 한달반 동안 밖에 배워주지 않은 녀학생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연화가 정희를 찾아가 말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런데 어떻게 돼 이렇게 됐던지 연화는 쩍하면 성호를 찾아와서 하소연하군 했다. 성호는 어쩐지 정희 몰래 만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심지어 불편한 감이 들었다. 그러나 연화는 성호가 어떻게 생각하던지 착한 성호를 자꾸 찾아왔다. “연화, 정희를 보고 랭면을 먹으러 오라고 할가?” “글쎄요.” 연화는 성호를 고운 눈길로 바라보더니 “이담 제가 엄선생님을 따로 찾아뵙죠. 오늘은 선생님과 할 말이 있는데요.”라고 했다.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속으로 정희의 눈치 좀 보이지만 량심적으로 정희한테 미안한 일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연화는 성호를 데리고 자기가 든 손바닥만한 세집으로 갔다. “혼자 여기 있잖소?” “아니, 남동생과 함께 있어요. 우리 학교 다녀요.” 그제야 성호는 시름놓고 연화를 따라 구들에 올라갔다. “앉으세요. 세집이 초라하죠?” “아니, 오누이가 사는 정취가 아늑한거 같아 좋소.” 진짜 세집이 어찌나 너무 비좁은지 무용교원이 사는 집 같지 않았다. 가마목에는 커다란 솥 두개가 나란히  걸려있고 그  옆에 빤질빤질 윤기도는 배가 불룩한 물독이 놓여 있었다. 벽쪽에는 나란히 놓인 옷궤와 책궤 우에 이불 두채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제야 성호는 오누이가 사는 집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한숨을 홀가분하게 후~ 내쉬였다. 연화는 궤짝에서 사진첩을 꺼내 펼치더니 이것저것 찾다가 성호 앞에 내밀었다. “남동생이예요.” 연화는 순 조선족녀성처럼 보통키였는데 그녀의 남동생은 키가 훤칠하였다. “음. 사내답게 멋지구만.” 연화는 몇장 더 번지더니 사진 한장을 빼 성호 앞에 내밀었다. 훤칠하게 생긴 한 총각이 세 녀성과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였다. 그 속에는 연화도 끼여 있었다. “배신자예요.” “누군데?” “절 배신한 동창생련인 말이예요.” “오~” 성호가 머리를 끄덕이면서 그 총각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코가 유별나게 커보였다. 딱 마치 양키 같았다. “이 옆에 선 앤 내 발등을 밟은 계집애죠.” “오~ 그 녀동창생 말이지?” 연화는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녀는 또 사진 한장을 내보였다. “여기 또 나쁜 사람 한 놈이 있어요.” “보기요.” 성호는 입귀에 미소라할가 비웃음이라고 할가 흘리면서 물끄러미 마주 보는 연화의 손에서 사진을 받아 보았다. “아니, 이건 내 실습할 때 찍은 사진이 아니요.” “그래요. 은희랑 영자랑 함께 찍은 사진이죠.” 연화는 사진 속의 성호를 가리키면서 종알거렸다. “보세요, 이 히죽이 웃는 리선생님을. 선생님은 그때 저한테 뭐라고 했어요. ‘연화 같은 녀동생이  있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소.’ 전 그때 그 말이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어요. 그 한마디 말이 소녀의 마음을 얼마나 울렁이고 설레이게 했는지 알아요?  마음 속에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는지 알아요?” “그 말이 어째서?” 성호는 억이 막힌듯 입을 함박만큼 벌리고 연화를 쏘아보았다. 연화는 종주먹으로 성호의 가슴을 톡 내지르며 계속 종알댔다. “저의 마음 속에는 리선생님이 첫사랑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선생님을 만나려고 무용을 배우러 간다해놓고 정희선생을 자꾸 찾아갔지요. 물론 알아요. 고중생인 제가 어찌 대학생인 정희 선생님과 비할바가 되겠어요? 정희 선생님을 제치고 리선생님을 차지한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일수도 있죠. 그러나 어쩐지 제 마음은 비길데없이 선생님한테로 끌려가고 따라갔어요.” 연화는 종주먹으로 성호의 가슴에 방망이질하다가 그의 가슴에 와락 안기면서 흐느껴 울었다. “전 대학교에 가서도 선생님을 내내 잊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영호한테 당했고 또 동창생한테서도 배신당했어요. 전 어쩌면 좋아요? 정말 자살하고 싶어요.” “에이, 바보 같은 소릴 작작 하오. 실련해서 죽으라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이 몇이겠소?” 성호는 연화의 잔등을 다독여주었다. “연화, 힘내오. 죽을 용기가 있으면 왜 살아나갈 용기가 없단 말이요. 악착스레 살아나가노라면 꼭 연화  앞에 백마왕자가 나타날거요.” 이때 갑자기 문을 뚝 떼는 소리와 함께 키가 훤칠한 남학생이 들어왔다. 그는  나란히 앉아 사진첩을 펼쳐들고 보는 성호와 누나를 번갈아보더니 되나가려고 했다. 연화는 우쭐 일어나면서 “얘, 어디로 가니? 내 중학교때 리선생님이야. 인사해라.” 하고 말렸다. “예~ 안녕하십니까?” “연화 남동생이겠구만.” “예. 경희라고 부릅니다. 많이 가르쳐주십시오.” “고중 3학년인데요. 이제 명년이면 대학시험을 쳐야 해요.” “오~” 성호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우쭐 일어났다. “장래 대학생동무 공부 바쁘겠는데. 이만 오늘 가겠소.” “아니, 김선생님, 제 보자요. 할 말이 있는데요.” 연화는 방치를 찾아들더니 빨래를 꼴똑 담은 대야를 번쩍 들어 이더니 성호를 따라 나섰다. “선생님이 다망한 건 알아요. 미안한데요. 절 좀 동무해주세요.” 연화는 무슨 일이 있는거 같았다. 세탁기가 없어 강변에 가서 빨래를 해야 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저 어색한 장면을 피하려고 빨래대야를 이고 나선것 같았다. “그러지.” 성호는 통쾌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는 연화를 따라 달빛이 부서지는 강변으로 가노라니 십여년전에 둘째누나네 집으로 갔다가 영화를 따라 강변 빨래터로 가던 일이 이상하게 떠올랐다. 지금도 모기 종아리를 물던 빨래터에서 영화가 자기 종아리에 옷을 감아주던 일이 삼삼히 떠올라 서글프기만 했다. (숱한 처녀애들과 사귀였지만 어느 한 처녀애한테서도 진짜 찡한 사랑을 해보지 못했어. 퐁퐁 솟는 샘 같은 사랑 말이야. 허허허.) 생각해보면 처녀애들과 한 허구픈 달밤들이 많기도 했다. 연화는 차거운 마가을 강물이 출렁이며 흐르는 강가에 가서 사위를 둘러보더니 납작한 빨래돌이 있는 곳에 다가갔다. 가을바람에 설레이는 갈대가 병풍처럼 둘러있어 바람과 행인을 막아주어 빨래하기는 안성맞춤한 빨래터였다. 갈대 사이로 가로등불빛이 잔잔히 비껴드는데 간혹 강뚝옆길로 헤드라이트가 갈대밭을 누비면서 쏜살같이 달려지나갔다. 연화가 멈춰서자 성호는 그녀의 머리 우에서 빨래대야를 받아 내리웠다. “고마워요.” 연화는 머리 우에서 따발을 내리우더니 옷을 차디찬 강물에 훌훌 불궈 비눌을 쭉쭉 먹였다. 뒤이어 빨래를 납작한 돌에 개여 올려놓고 방치로 탁탁탁 쳐댔다. “연화, 그 고운 손이 다 얼겠소. 내 언제 세탁기를 사줄게.” “고마워요. 이젠 습관돼서 괜찮아요.” “어떻게 손이 시려 씼겠소?” “집엔 세탁기가 있는가요?” “있소. 중풍에 맞은 아버지 똥 걸레를 세탁기 없어서야 어떻게 씼겠소?” 연화는 방치질을 멈추고 빨래를 돌에 대고 몇번 더 비비더니 강물에 훌훌 휑구어 대야에 담았다. 성호는 강물에 불군 빨래를 빨래돌 우에 올려놓고 방치질을 하는 연화의 가냘푼 잔등을 바라보노라니 한없이 가엽어 보였다. (어쩜 20대 중반의 요 가냘픈 몸을 그렇게도 복잡한 비극이 충격했을가? 나쁜 놈들, 사내자식들이 정말 개새끼들이야.) 성호는 저도 몰래 방치질하는 연화의 잔등에 손이 올려놓더니 매만졌다. 순간 연화가 빨래방치질을 멈췄다. “선생님, 리선생님은 저의 첫사랑이예요. 절 살려주세요.” 온몸이 달아오른 연화는 성호한테 와락 안기더니 키스벼락을 안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지 마오. 난 유부남이요.” “유부남이면 뭐래요? 절 동무해줄 수 없어요?’ “아니, 우린 사제간이요.” “사제간이면 뭐래요?” 성호는 연화를 훌 밀어내고 우쭐 일어났다. “아니, 난 연화를 이렇게 보지 않았는데. 대체 정신상의 공백을 메우려는 거요? 아니면 육체적인 기갈을 풀려는 거요?” 강물에서 뛰노는 금잔디들에 비낀 연화의 표정은 랭담했다. 초롱초롱한 쌍까풀눈은 정열과 그 어떤 갈망에 반짝이고 있지 않겠는가. “뭘가요? 저도 모르겠어요. 죽고픈 생각 밖에 없어요.” 성호는 빨래터에서 조용히 연화한테 말했다. “나한테 미련을 가지지 마오. 실련의 고통 속에서 구해주려고 할뿐 아무런 만족도 줄 수 없는 사람이요.” “목석.” “그래. 동정 밖에 없는 목석이지.” “알았어요.” “밤도 깊었는데 집으로 돌아가기요.” “먼저 돌아가세요.” 연화는 빨래를 훌훌 물에 휭구어 빨래돌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빨래방치가 물에 떠내려가고 없었다. 연화는 빨래를 꽉꽉 짜서 대야에 훌훌 담았다. 성호는 대야를 번쩍 들어 안더니 제방뚝으로 씨엉씨엉 올라갔다. 제방뚝에 웬 청년이 서 있었다. “누나!” “왜 여기까지 나왔니?” “밤중이 돼서 마중하려고?” 연화의 남동생이였다. 그는 성호의 손에서 대야를 받아들고  앞에서  걸었다. 성호는 제방뚝으로 올라오는 연화를 보고 “후에 바쁜 일이 있으면 부르오.”라고 할가하다가 그만두었다. “잘 다녀가세요.” 연화는 한마디 남기고 남동생을 따라 희읍스럼한 달빛을 사뿐사뿐 밟으며 사라졌다. 성호는 집에 돌아와서도 연화의 비참한 모습과 그 절절한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한편 놀라움을 금치도 못했다. 자기도 연화처럼 미묘한 빨간 장미꽃 함정에 빠질 번하지 않았는가고. 정희는 그때까지 이불을 펴놓고 침대에 누워 텔레비죤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무슨 일이 있는가요?” “어? 아, 아니, 아무 일도 없어.” 정희는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쉬면서 잡소릴 많이 하던데요.” 하고 말하였다. 그 말에 성호는 놀랐다. “아니, 그럴 수가?” “미치면 그래요? 꿈에도 그 녀자가 떠오르고 그 녀자의 손을 잡고 달리고 흥! 그 녀자를 끌어안고 키스를 하고 잡소리를 하고…” “아니,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성호는 상을 찡그리면서 안해를 쏘아보았다. 정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정색하며 따지고들었다. “내가 당신의 가정배경을 나무랐는가요? 부모 병시중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가요?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가요?” “아니, 당신은 나무랄데 없는 현처량모요.” 성호는 정희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정희는 성호를 활 밀어놓고 모로 돌아누웠다. “은영을 잊었는가 했더니. 원.” 정희는 눈물을 줄 끊어진 구슬처럼 주르르 흘렸다. “똑똑히 기억해두세요. 내 첫사랑은 당신이예요. 교수네 곱게 기른 무남독녀인 내가 농민의 아들인 동무를 뭘 보고 사랑했나요? 돈이 있나요? 가정배경이 있는가요? 난 그저 당신의 성실하고 착한 마음과 변함없는 사랑을 바랄뿐이예요.” “그래, 그래. 난 우리 사랑에 미안한 일을 한게 없소.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장차도…” 그제야 정희는 돌아누우면서 성호를 꼭 끌어안았다. “오늘 연화를 만났댔소. 실련당했는 모양이요.” 성호는 연화 얘기를 낱낱이 쭉 얘기해주었다. “그게 해결책이 아니죠.” “그럼 어떻게 할가?” 성호는 정희한테 모로 돌아누웠다. 정희는 성호의 얼굴을 두 손으로 맞잡고  속삭였다. “동무가 어떻게 실련한 연화를 내내 친구를 해주면서 삶의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는가요? 근본해결책은 연화한테 알맞는 결혼대상을 소개해주는 거죠.” “오~ 참 묘책이로군.” 성호는 이불 안에서 정희를 꽉 껴안고 뜨거운 뽀뽀를 뽁뽁뽁 해주었다.                                           59. 조강치처         초겨울이 다가오자 자오록한 연기가 맑은 하늘을 밀어내고 온 시내를 지지눌러 사람들을 갑갑하게 만들었다. 성호는 요즘 이모저모로 답답하고 쓸쓸했다.         아버지도 이젠 칠순을 넘긴데다가 중풍까지 맞아 농사일은 둘째이고 소사양조차  맡길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와 토론하고 경만한테 밭을 맡기고 소와 집까지 몽땅 팔아 아버지 병치료에 쓰기로 했다. 경만은 손에 쥔 돈도 없으면서도 어벌주머니 크게 가시아버지 집을 사겠다고 나섰다. (참 진퇴량난인데. 집을 판 돈이 있어야 택시를 사겠는데. 매형한테 팔잖고 남에게 팔면 인정머리 없다고 욕하겠지?) 성호는 고민 끝에 매형한테 외상으로 팔기로 했다. 성호가 고향 마을의 일을 다 처리하고 좀 숨을 돌릴가 할 때다. 뜻밖에도 넷째누나 봉금이 세집에서 군내를 먹고 쓰러졌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전날까지만 해도 펀펀하던 누나가…?) 성호는 황급히 정희를 불러 택시를 잡아 타고 YB병원으로 부랴부랴 달려갔다. 정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동문 마음이 착하고 동정심이 많아 흠이죠. 괜히 매형을 시내에 불러 와서 일을 만들었잖아요?” “통통한 말을 작작 하오. 누나를 구해야지.” “경상도 분들은 가시집을 따라가면 잘 안된다고 나무란다던데요…” “무슨 군소리 그렇게 많소?” 정희는 혀를 홀랑 내밀었다. 그들이 병실에 들어가보니 봉금은 정신을 일은 채 코구멍에 산소호스를 꽂고  바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이요?” 송준은 미안해 서성거리면서 어물어물 대답했다. “군내에 중독됐어. 엊저녁에 춥다고 문을 닫았지 뭐야. 새벽에 군내 난 걸 모르고 자다나니.” 성호는 뿌르퉁한 소리를 줴쳤다. “매형은 펀펀하잖소?” “병 보러 나가다나니 누나보다 좀 나은 모양이야. 그런데 너거(너네) 누난 집에서 가도 사람들 밥을 짓느라고 중독됐어.” 성호는 침대머리에 가 앉아 누나 손을 꼭 잡고 조용히 불렀다. “누나, 누나!” 남동생의 부름소리에 봉금은 천천히 눈을 떴다. 뜨거운 눈물이 량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 귀방울 밑으로 내려갔다. 성호는 누나 량볼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힘내오. 이제 치료하면 나을 거요.” 정희는 간호원실에서 대야에 물을 퍼다 하얀 수건을 씼어가지고 시누이의 얼굴을 닦아드렸다. 봉금은 처녀시절에 맹장염에 걸려 대수술을 두번이나 하고 겨우 살아났었다. 그때 춘자는 대학공부도 팽개치고 봉금의 병시중을 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녀는 봉금을 좀 마음씨 착한 총각한테 시집보내 마음고생을 시키지 않고 살게 하려고 소학교 동료교원 송준을 소개했다. 성호는 지금도 송준이 처음 자기 집에 넷째누나와 첫선을 보러 왔을 때 일이 생생히 떠올랐다. 초가을 어느 하루, 아홉살 밖에 안된 성호는 철주랑 함께 태평강에 가서 한창 반디로 물고기잡이를 하고 있었다. “야~ 성호야!” 성호가 반디질하다가 머리를 들어보니 다섯째누나 홍자가 뛰여오면서 부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수원에 가서 넷째누나를 데려오라.” “어째?” “넷째누나 약혼하자고.” “오- 알았어.” 성호는 종주먹을 쥐고 천지꽃산 기슭에 있는 과수원으로 달려갔다. 과수원에서 봉금은 한창 사과배나무에 올라서서 주렁주렁 달린 배를 뜯고 있지 않겠는가. 성호는 가지가 휘가 주렁주렁 달린 누런 사과배 싱그런 향기를 맡으면서도 사과배를 먹을 새마저 없었다. 봉금은 버드나무가지로 엮은 광주리에 싱그러운 사과배를 무드기 담아 이고 성호를 앞세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성호가 집마당에 들어서니 춘자가 하얀 다리를 가둥거리는 애를 안고 마중했다. “막내오라버니 왔구나.” 성호는 기뻐 싱글벙글거리면서 “얘는 누구요?” 하고 물었다. “네 외조카 정춘이지.” “정춘아, 야, 곱다. 어디 한번 안아보자.” 성호는 정춘을 안고 하얀 우유빛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봉금이 사과배광주리를 이고 들어서자 송준은 기뻐 어쩔줄 모르며 우쭐 일어나 봉금의 머리 우에서 배광주리를 받아내리웠다. 봉금과 송준은 서로 마주 바라보며 좋아 어쩔줄 모르면서 생글방글, 싱글방글 웃었다. 기실 그들은 초면강산이 아니다. 봉금이 둘째언니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정춘을 업고 학교에 갔다가 운동장에서 애들과 뽈을 차는 송준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들은 첫눈에 정이 들었다. 기실 봉금의 혼사말은 그리 쉽고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다. 봉금은 부모의 사랑을 무척 받았다. 말띠로 태여난 봉금은 태몽도 이상하게 말과 련관됐다. 태몽에 영옥이 생산대 회의를 갔다가 꽃을 단 하얀 말을 타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달부터 태기가 있어 난 귀염둥이가 바로 봉금이라고 했다. 봉금은 다른 딸과는 달리 날 때부터 살색도 새하얗고 예쁘게 생겼다. 그래서 그랬던지 아버지 상진은 여섯이나 되는 딸 가운데서도 봉금을 제일 고와하면서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키웠다. 아버지가 일하러 나갔다가도 돌아와 봉금을 보고 “반듯이 번져누워라!” 하고 소리치면 항상 마구 엎뎌 자다가도 희뜩 번져누우면서 서적을 썼다. 그때마다 상진은 봉금이 너무 고와서 하얀 얼굴을 매만져주군 하였다. 상진은 대수술을 두번이나 한 봉금을 좋은 신랑한테 시집보내려고 여기저기서 혼사말을 해도 어진간해선 줄곧 퇴자를 놓았다. 곽재령감이 황소 몇마리를 탄 씨름군총각을 혼사말을 했을 때다. 상진은 인차 친척을 통해 씨름군총각이 괴벽하고 술주정뱅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퇴자를 놓았다. 상진은 문턱이 다슬게 찾아오는 혼사말을 다 물리쳤다. 그러나 춘자가 소개한 송준만은 달리 대했다. 송준은 길림시에서 중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키는 작아도 떡 벌어진 어깨, 말수 적은 성질이 상진의 마음에 좀 들었다… 봉금은 시집가서 아들딸 셋을 낳앟는데 큰애 길봉을 그만 물에 잃고 영희와 근봉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듯이 애지중지 키웠다. 애들이 어찌나 공부를 잘했는지 딸애 영희는 남개대학에 가고 아들 근봉은 북경대학 의학원에 갔다. 애들의 뒤시중을 하느라고 봉금은 10여리 떨어진 탄광마을로 자전거를 타고 가서 올리막내리막을 밀고 돌아다니면서 떡장사와 남새장사를 하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봉금은 눈을 뜨자 오라버니 손을 꼭 잡고 울었다. “오래비, 이 불효한 누나를 용서하오.” “천만에 말. 누난 아버지가 제일 고와하는 효성스러운 딸인데.” 봉금은 남동생의 손을 꼭 잡고 뒤말을 이었다. “그때 넌 딸도 부모를 봉양할 의무가 있다고 했지. 난 애들 뒤시중을 하기 애나서 아들이 부모를 모시지 어디 출가집 외인이 부모를 모시는 법이 있는가고 했지. 편지까지 써서 널 욕했지.” 그 글귀가 지금도 성호의 눈에 선했다. “이제까지 난 자기 힘으로 애들을 키우면서 살았다. 너도 이젠 누나들한테 의거할 궁리를 하지 말고 자력갱생해서 부모를 모셔라.” “중풍을 맞은 아버지가 병치료를 하려고 우리 집에 왔댔는데 제대로 모시지 못했어. 아버지 화나서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얼마나 불효냐? 이제 내 병이 나으면 꼭 부모를 모시는데 한몫 할테야. 으흐흑, 흑흑.” 그때 상진은 사위를 믿고 찾아갔는데 치료도 방정히 해주지 않아 노여움이 나서 지팽이를 짚고 집으로 돌아왔다. 심지어 송준은 성호를 조용히 불러놓고 다짐을 딴 적도  있었다. “성호, 우린 애 둘의 뒤시중을 하다나니 살기 어렵소. 아버지를 우리 집에 왜 보냈소?’ 송준은 말수가 적었지만 일단 말을 꺼내면 치명적으로 퍼부어댔다. 성호는 지금도 바위돌처럼 굳어진 송준의 철색얼굴을 보는 상 싶었다. “기실 모든 조건이 우리보다 둘째누나네 썩 낫소. 월급쟁이 둘이나 있잖소? 정춘과 정일은 이젠 대학을 다 졸업했지. 널직한 벽돌집도 있지. 어째 둘째누나네 집에 데려가지 않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성호는 도리머리가 홰홰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송준이나 봉금을 나무리지도 않고 도와주고 싶었다. 송준의 교원로임에 봉금의 벼농사와 떡장사에 의거해 두 대학생의 뒤시중은 엄청 모자랐다. 세간에서는 대학생 둘이면 빈곤호라고 하지 않는가. 성호는 어려운 형편을 몰라준 것이 송구스러웠다. 송준은 체육과와 생물과를 가르치면서 과외시간에 침구와 안마, 기공을 배워냈다. 그 밑천으로 교편을 버리고 YB시내에 들어와 의사질을 하려고 성호를 보고 연줄을 달아달라고 했다. 성호는 먼저 방학간에 헛일 삼아 시내에 들어와서 자기가 아는 개체골과병원에 가서 병을 보라고 했다. 골과병원의 원장은 성호가 광고를 하면서 알게 된 의사였다. 그 원장은 원래 광고의식이 없었다. 그런데 성호의 선전과 소개를 받고 방송광고와 간판광고를 했는데 환자가 눈에 뜨이게 많아졌다. 성호가 매형을  소개하자 그 원장은 인차 받아주었다. 송준은 안마침구과 간판을 달랑 내걸고 환자들의 병을 보기 시작했다. 골과병원 한 녀의사가 위염에 걸려 항상 쓴 물을 왝왝 토하며 위가 너무 아파 식사도 온전히 하지 못했다. 송준은 숱한 사람들 앞에서 녀의사를 진찰용 침대에 눕혀놓고 기공안마를 한 10여분 해줬는데 당장에서 위통증이 멎었다. 련 며칠 몇번 더 기공안마를 해줬더니 기적적으로 위병이 치료됐다. 그때부터 송준은     기공안마치료에  용하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송준이 요추간판탈출과 경추병, 견주염에 위병과 중풍까지 치료해 치료항목이 중첩됐다. 골과병원 원장은 자기 밥통을 건드리자 좋아하지 않는 눈치를 보였다. 핍박에 의해 량산에 오른다고 송준은 한 가도병원으로 옮겨가 병을 보게 됐다. 한번은 성호가 배구를 치다가 허리를 풀쳐 침대에 쓰러진채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다. 그때도 이틀만에 침대에서 일어나게 치료한 적도 있었다. 그의 기공안마와 침구는 신통력이 있어 소문 듣고 숱한 환자가 모여들었다… 저녁에 기별을 받은 영희와 근봉이 병실로 달려와 산소호스를 코구멍에 꽂은 채 인사불성이 된 엄마의 목을 꼭 끌어안고 통곡쳤다. “어머니, 일어나세요. 어머니!” “어머니, 우리 왔어요. 얼른 일어나랑께(일어나라는데). 흑흑흑.” 영희가 어머니 품에서 천천히 머리를 들더니 우두커니 서 있는 아버지를  쌀쌀하게 쳐다보았다. “아버지, 어떻게 돼 어머니 이 지경이 됐습니까?”  영희가 랭랭하게 묻자 송준은 목구멍으로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겨우 우물거렸다. “군내 먹었어.” “잘 치료할게지. 뭔가요?” 근봉은 언성을 높였다. 성호가 말렸다. “얘들아, 너네 아버진 엄마를 구하려고 당날로 인차 택시에 싣고 병원에 왔댔어.” 영희와 근봉은 어머니 머리로부터 손과 발까지 살뜰히 주물러주며 효성을 해드렸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 우에도 꽃이 핀다고 했던가. 아들딸들의 정성어린 마사지를 받던 봉금이 끝내 눈을 간신히 스르르 떴다. “언, 언제 왔어? 콜록콜록.” “어머니, 금방 왔어요. 좀 정신이 들어요?” “그래, 난 너희들 불쌍해 죽을 수 없어.” 봉금은 머리를 들려다가 맥없이 떨어뜨렸다. 이윽고 그는 손을 들어 삿대질하더니 “날, 날 부축해 일으켜, 일으켜라.” 하고 띄염띄염 말하면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예.” 애들이 부축해 일으키자 봉금은 간신히 침대머리에 기대 흐릿한 눈동자로 사위를 살폈다. 그는 남편과 남동생 그리고 올케와 아들딸을 한눈에 몽땅 담으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곁에 앉은 올케 손을 꼭 잡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올케, 아버지랑 잘 있소?” “예. 근심말고 치료를 잘 하세요.” “정말 고맙소. 올케, 우리 부모 모시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소. 이번에도 올케 아니면 난, 난 죽을 번했소.” “아니, 아주버니가 곁에서 고생했어요.” 정희가 손을 잡고 송준을 가리키자 봉금은 머리를 끄덕였다. “20여년이나 함께 산 남편이야 응당 그래야지. 허나 올케가 병원에 입원수속을 하던 일 밖에 모르겠소.” 정희는 시누이 손을 잡고 말했다. “의사 말하던데요. 군내는 후유증이 무섭대요. 처음 군내를 먹었을 때 잘 치료하지 않으면 후유증에 걸리면 치료방법이 없대요. 생명이 위험해진대요.  입원했을 때 잘 치료해야죠. 시누이 온 몸 혈액 속에는 아직도 군내 일산화탄소가 수태 남아 있어요. 산소호흡도 하고 점적주사도 계속 맞아야죠. 그래야  혈액 속 일산화탄소를 체외로 몽땅 배출시킬 수 있대요.” 송준의 귀에는 의사도 아닌 처남댁의 말이 곧이들릴리 만무했다. 결국 그는 그 말을 귀등으로 흘려보냈다. “언제까지 입원해야 된다오?” “둬달은 잘 치료해야 한대요.” 송준은 철색얼굴에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다 살아났구만. 그리 오래 병원에 누워 있어 뭘 한다오? 의사도 정신없는 소릴 하오.” 영희가 끼여들었다. “아버지, 왜 그래요? 외숙모 아는 의사라는데요. 의사 말대로 한달이고 두달이고 입원해 있으면서 엄마 병 잘 치료해요.” “알았다, 알아. 이제 집에 가서 기공안마를 해주면 병이 나을 거야. 나도 요새 날마나 병원 사무실에 나가 기공을 했더니 이렇게 펀펀하잖아. 내 기공안마를 믿어라.” 조금 화학을 배운 사람이라도 그만한 상식 쯤은 알 것이다. 기공안마로 어떻게 혈액 속의 일산화탄소를 체외로 밀어내 배출시킨단 말인가. 성호는 옆에서 듣다가 한마디 충고했다. “매형, 세집도 바꾸오. 가보니 아직도 군내 나더구만. 이제 날이 흐리면 언제 또 군내 날지 모르잖소. 군내 빠지라고 천정의 종이를 뜯어 구멍을 내놓았소. 밤중에 군내만 나면 큰 일이요.” 그러나 송준은 곧이듣지도 않았다. “세집은 두달 더 있어야 기한이 차는데 그때 가보지. 불시에 어데 가서 세집을 구하겠소. 초겨울에 이사한다는 것도 말이 아니고.” “내 세집을 얻어볼게.” 근봉도 동의해나섰다. “세집도 불을 때는 온돌방보다 난방설비가 있는 아빠트로 구하는게 맞아요. 돈보다 사람 목숨이 중하죠.” 송준은  건성으로 “응, 알았어. 근심하지 마.” 하고 대답했다. 며칠 후 상진의 생일이여서 자손들이 모이게 됐다. 46평방메터 밖에 안되는 성호네 집은 큰 잔치집 같았다. 형제 모두들 아버지와 어머니께 축수상을 차려드리고 한잔 얼근히 마시고 록음기를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고 놀았다. 봉금은 자기 차례에 한국 노래 “가지 마오”를 목이 터지게 불렀다.   가지 마오 가지 마오 나를 두고 가지를 마오 이대로 영원토록 한 백년 살고파요 나를 두고 가지를 마오   봉금은 울먹거리며 노래를 부르다가 진짜 대성통곡쳤다. 춘자가 봉금의 손에서 마이크를 받아쥐며 “얘, 왜 우냐? 노래를 부르다가 왜 울어?” 하고 물었다. 봉금은 백지장같이 하얀 얼굴에 눈물을 즐벅이 흘리면서 손가락으로 송준을 가리켰다. “저 나그네 날 버리고 한국으로 가겠다오. 날 버리고 갈 나그네를 생각하니 기막혀… 아이구, 난 혼자 어떻게 살아? 아이구…” 그녀는 멍해 앉아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다가가 손잡고 “미안해요. 생일에 울어서.” 하고 말하더니 송준을 손가락질하면서 또 통곡쳤다. “저 나그네 가짜리혼을 하고 시내 다른 아낙네와 위장결혼해 한국으로 가겠다오.  가지 말라고 그렇게 애원해도 듣지 않습구마.” 그 놀라운 소리를 듣고 모두 송준을 쳐다보았다. 송준은 숨길 수 없었던지 마지 못해 자기 좋게 해석했다. “애들 공부시키고 안해 병치료도 하자면 숱한 돈이 들어야죠. 위장결혼해 한국에 가서 기공안마와 침구로 돈을 벌자고 그랬어요. 가짜리혼인데  저럴 것까지야  있는가요?” 그러나 봉금은 단통 거절했다. “가짜리혼이란게 어디 있어요? 리혼 도장을 뚝 찍으면 국가에서 인정하는 리혼이지. 가짜결혼식까지 올리고 간다고 하지 않았소? 생각만 해도 원통해 죽겠단 말이요. 그렇게 말려도 나보다 열살이나 젊은 그 아낙네한테 미쳤소. 진짜 미쳐.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다른 년과 함께 큰상까지 받고 팔 끼고 한국에 가는 건 절대 볼 수 없소.” 송준은 자기한테 도리 있다고 떠들어댔다. “돈 벌자고 방법없이 가짜결혼식을 올리는 거지. 진짜요? 내 아무리 돈에 미쳐도 20여년이나 살면서 아들딸까지 낳은 조강지처를 버리겠소? 지금 위장결혼을 하고 한국에 나가면 내 재간에 숱한 돈을 벌겠는데. 한달에  한 2, 3만원은 문제없다는데. 어째 사람을 그리 믿지 못하오. 진짜 의심병이요. 의심병!” “듣기 싫소. 돈이 싫소. 그저 여기서 버는만큼 쓰면서 함께 살면 되오.” 봉금은 진짜 실성한 사람처럼 또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지 마오 가지 마오 나를 두고 가지를 마오 …   그날 부모의 축수잔치는 봉금 부부가 울고불고 옥신각신 다투는 바람에 스산하게 끝났다. 송준은 우는 봉금을 두고 먼저 훌 일어나 집으로 가버렸다. 성호는 봉금한테 “그래 병원에서 계속 치료하오?” 하고 물었다. 봉금은 부모형제들 앞에서 모든 걸 숨기지 않고 다 털어놓았다. “아니, 저 나그네 병원에서 출원하면 안된다는데 기어이 나를 끌고 집으로 가잖겠니? 요새 기공안마를 해주긴 하더라. 그 잡아치울 년이 자꾸 불러내서 제대로 안마해주지 않는다.” “내 얻어준 세집으로 이사했소?” 성호의 관심어린 물음에 봉금은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아니, 기한이 차지 않았다면서 바꾸지 않았어. 또 자기 한국에 가게 되면 그때 바꿔도 늦지 않다고 하더라. 이사를 한해에 몇번 하겠는가 하면서 이사할 예산조차 없다. 저 나그네 고집을 누가 당하니? 황소 열마리를 메워 끌어도 이기지 못해.” 성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정희는 봉금의 손을 잡고 신신당부했다. “꼭 병원에 가서 계속 치료해야 해요. 의사가 가스중독후유증에 걸리면 생명이 위험하다던데요. 그리고 밥 짓는 일도 그만두세오. 돈을 몇푼 번다고 중병환자가 치료하지 않고 밥을 지어요?” 봉금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다. “에이유, 올케도 이렇게 관심하는데 저 나그네 근본 내 병치료는 념두에도 없소. 펀펀한데 점적주사를 맞을 필요없대. 저 나그네 한국에 가려고 변심했어. 세상에 어쩜 마음씨 착하던 나그네 한국바람에 저렇게 정신 나갔어? 한국에 가면 마가을 락엽처럼 널린 돈을 깍쟁이로 마구 끌어모은다더니? 진짜 돈에 미쳤어. 그 쌍년한테 미쳤어.” 춘자도 미심해 물었다. “그 미친 녀자는 어떻게 만났다니?” 봉금은 원통해 가슴을 탕탕 치며 하소연했다. “개쌍년이 처음에는 위병 치료하러 다녔소. 지금 보면 별로 우리 나그네를 꼬시려고 계속 찾아오지 않았는지 모르겠소.” 춘애도 욕설을 퍼부었다. “그 쌍년은 나그네 없다니?” “없대요.” 은숙은 이마살을 찡그렸다. “그 개쌍년은 한국에 가지도 못해가지고 어떻게 위장결혼을 하면 한국에 간다고 네 나그네를 꾄다니?” 봉금은 형제들이 묻는 말에 눈물이 글썽해 대답했다. “그년은 원 나그네와 리혼하고 한국 불구자와 위장결혼하고 한국에  건너갔다는가? 그런데 그만 한국 나그네가 밤에 자다가 급성 심장병으로 즉살했다오. 나그네 없이 떠돌다가 저 나그네와 눈이 맞지 않았는지 모르겠소.” 봉금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뒤말을 이었다. “저 나그네 보통 한 환자를 40분씩 안마치료를 해주오. 그 개쌍년만 들어가면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나오지 않는단 말이요. 너무 수상해서 진찰실에 들어가면 잔등이 다 드러나게 웃통을 걷어올린 그년을 눕혀놓고 여기저기 주무른단 말이요.” “헤이, 필경 거기서 사달이 생긴 거야.” 춘자가 끼여들었다. “아니, 네보다 열살이나 젊은 새파란 녀자 몸을 날마다 한시간씩이나 주므르는게 50대 초반의 사내가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있겠니? 목석이 아닌 이상 아래 그게  건들거리지 않겠니? 쯧쯧쯧.” “글쎄 말이요. 그래서 병원 사무실에 가서 떡 앉아 구경하면 뭐라는지 아오?” 성숙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뭐라 했기에?” 봉금은 눈물을 닦으면서 대꾸했다. “내 자꾸 가서 앉아있으면 녀성환자들이 불편하다고 잘 오지 않는다고 하지 않겠니.” 봉금은 언니들을 둘러보며 억울해했다. “내 무슨 귀신이요? 뭐요? 저 나그네 내 가스중독에 걸려도 잘 안마를 해주지 않다가도 그 개쌍년이 오기만 하면 두시간씩도 오랜 줄을 모르고 만지고 개지랄을 했다니까.”  성숙은 반감이 나했다. “넷째언니, 그렇게 아저씨를 의심하면 안되오. 마음이 그렇게 비단 같은 아저씨가 아무리 정신이 나간들 조강지처를  옆에 두고 병을 보면서 뉘네 녀자를 다치겠소?” 춘자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사내들의 마음은 산꼭대기에 부어놓은 물과도 같아 사처로 흩어져 흘러. 젊은 녀자한테 반하면 조강지처고 뭐고 헌신짝 버리듯 할 수 있어. 봐라. 저 봉금이 이라는게 다 빠져 틀이를 해넣었지. 반평생 애들 셋이나 나서 키우면서 별의별 고생을 다 하면서 살아와서 40대 후반이지만 나이에 비해 퍽 늙었잖아. 환갑도 지난 할머니처럼 10년은 늙었어. 새것을 좋아하고 낡은것을 싫어하는게 남자들의 본성이야. 아무리 마음씨 착하던 송준이라고 해도 퍽 수상해. 믿을  수 없어. 말로는 위장결혼이라고 하지만 진짜 그 쌍년과 한국에 함께 가서 살면 그때 가서 어쩔수 있겠니?” 그 말에 봉금은 더 슬프게 울었다. 춘자는 봉금을 끌어안으면서 과단성있게 말했다. “나그네를 가지 못하게 꼭 말려야 해.” 그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던 상진이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모여서 생사람을 뼈도 남기지 않고 다 널어대는구나. 송준을 의심해선 안돼. 그 사람도 살자고 그러지. 아무리 한국바람에 세상이 험악하다한들 조강지처를 진짜 버릴 송준이 아니야.” 어머니도 동을 달았다. “그러잖구. 사위 여섯 가운데서 송준이 마음이야 제일 곱지비.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야.” 부모 말씀에 모두들 송준에 대한 말을 그만두었다. 봉금은 너무 울고 불고 해 맥이 진한 나머지 한쪽구석에 네각을 쭉 뻗어버리고 들어누웠다. 아버지 생일 축수잔치는 송준 때문에 그렇게 스산하게 막을 내리웠다. 봉금은 군내 나는 귀신굴 같은 세집으로 가기도 싫다면서 뒤방에 들어가 부모들과 나란히 누워 밤새도록 도란도란 이야기하다가 새벽에야 겨우 새우잠에 폭 빠졌다. 그런데 그날 밤이 봉금이 마지막으로 부모와 마지막 상봉일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한달 후에 큰 일이 났다. 병원에서 제때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봉금은 글쎄 가스중독후유증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져 재차 입원했다. 송준은 입원치료를 질질 끌다가 봉금이 까무러쳐서야 마지 못해 택시를 불러 병원에 싣고 갔다. 그것이 송준이 부모형제의 마음에 못을 박은 대목이였다. 성호는 병실에 달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넷째누나를 보고 그간 광고와 택시업에 달아다니다나니 넷째누나 병치료에 등한하였던 죄송한 마음에 자기 가슴만 꽝꽝 쳤다. 그는 의사사무실에 가서 녀주임의사한테 “누나 병세 어떻습니까?”하고 물어보았다. 녀주임의사는 환자치료서류를 들춰보더니 한숨을 호~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원래 한달전에 처음 중독됐을 때 잘 치료해야 했습니다. 혈액 속의 일산화탄소를 제때에 분해시켜 체외로 배출시키지 못했기에 일산화탄소가 천천히 온 몸에 퍼져서 지금 생명이 위급하게 됐습니다.” “이젠 호전될 희망이 없습니까? 주임선생님, 저의 누나를 살려주십시오. 예? 두손 모아 빕니다. 그 은공은 꼭 갚아드리겠습니다.” 성호는 사위를 둘러보다가 주임의사의 호주머니에 백원짜리 다섯장을 찔러넣어주려고 했다. “이러지 마세요. 환자를 치료하는 건 우리 인도주의적 의무입니다.” 녀주임의사는 돈봉투를 손으로 밀어버렸다. “최선을 다해 치료해봅시다. 이제 최후로 산소통치료를 해봅지요. 혹시 기적이 일어나겠는지요.”라고 했다. 성호는 의사의 분부대로 인사불성이 된 넷째누나를 등에 업고 3층 병실에서 계단을 한계단한계단 내려가 1층에 있는 산소호흡치료실로 내려갔다. 뒤에서 송준과 정희가 자꾸 처지는 봉금의 팔을 받들어 성호의 어깨에 올려놓아주었다. 성호는 자꾸 떨어져 자기 가슴 앞에서 거덜거리는 누나의 팔을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 정말 누나가 이 세상을 이렇게 떠나야만 하는가? 살아날수만 있다면 뭐든지 아끼지 않고 들이댈텐데. 치료시기를 놓치다니. 누나를 구할 약이 이 세상에 없단 말인가?) 녀주임의사와 간호원은 성호의 등에서 봉금을 안아내린후 커다랗고 투명한 유리산소통 안에 눕힌후 유리덮개를 닫았다. 뒤이어 산소가 쒹- 주입됐다. 한 반시간이 지난후 간호원이 유리산소통 안에서 봉금을 꺼내라고 하였다. 그때도 봉금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송준이 봉금을 업으려고 하자 뒤에서 은자가 새된 소리를 질렀다. “그 더러운 손으로 우리 언니를 다치지 마오!” 은자는 성호를 돌아보았다. “성호야, 누나를 업어라!” 송준이나 성호나 다 어색하게 됐다. “다섯째누나, 매형과 그게 무슨 말이요?” 성호가 누나를 잔등에 업고 3층으로 올라왔다. 인사불성이 된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봉금을 병실 침대에 도로 눕히는 성호와 은자의 볼에는 눈물이 즐벅했다. 그러나 송준은 죄지은 바보처럼 멍청히 침대 옆에 서서 구경했다. 그때 괘씸하게도 한 서른살 푼한 녀인이 병실 문어귀에 나타나 송준한테 눈짓했다. 성호가 피뜩 보니 그녀는 놀랍게도 광고회사에서 사라졌던 선희 같았다. 그러나 선희는 병실 구석에 있는 성호를 발견하지 못하고 송준한테만 눈길이 갔다. 송준은 멍해 서 있다가 선희가 나타나자 정신을 벌떡 차리면서 복도로 씽드르 달려나갔다. 선희는 가스중독에 쓰러진 녀인이 바로 성호의 넷째누나 봉금이라는 것도 몰랐다. 더우기 송준은 호랑이 같은 성호의 매형이라는 것도 잊고 이때까지 날치고 있었다. 성호는 둘의 꼬락서니가 눈꼴사나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저 계집애 어떻게 매형을 알았지? 혹시 매형과 좋아한다는 그 녀성이 아닐가? 네년의 정체를 어데다 감춘단 말인가? 한 단위 송철과 바람피우다가 단위에서 쫓겨나 로씨야로 로무송출을 가지 않았던가? 뭐 위장결혼하고 한국에 시집갔는데 남편이 죽었다고? 위장결혼으로 매형을 꾀여 한국에 데리고 가서 돈벌이나무로 써먹으려고?) 송준도 선희가 성호의 옛 동료였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성호가 뒤문으로 해 복도 굽인돌이에 숨어서 볼라니 송준과 선희는 아주 딱 붙어서서 쑤근거렸다. “병세 어떤가요?” “오래잖아.” “빨리 서두르세요.” “글쎄, 헌데 죽어가는 안해를 병실에 두고 한국 출국수속을 한다는 건 말이 안돼.” 그 말을 귀동냥해 듣고 성호는 내심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직 량심은 좀 남아 있구만. 네 놈이 조강지처를 버리고 잘 될 거 같애.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거야.) 선희의 말은 더 고약했다. “그 녀잔 이젠 죽은 목숨이예요. 빨리 민정국에 가서 결혼등록을 해야 이 달 안으로 출국수속을 하죠.” “장례를 지낸 후에 수속해도 늦지 않소. 왜 재촉해? 급히 먹는 떡이 목에 걸려.” “야, 답답해. 당신 한국 가서 팔자 고치겠어요? 도대체 어쩔 건데요?” “알았어. 내 알아서 꼼꼼히 챙길게.” 선희는 뭐라고 지껄이더니 오른손을 들어 송준의 볼을 꼬집어놓고 돌아섰다. “잘 가!” 송준은 손을 들어 흔들며 희죽거렸다. (누나한테는 항상 겨울 청개구리처럼 무뚝뚝하고 길가 개살구처럼 텁텁하더니. 흥, 언제부터 저렇게 해사하고 싹싹하게 번졌는가? 퉤! 더러운 년놈들, 꼬락서니 더러워서. 원.) 성호는 가까스로 격분을 억누르며 다른 층계로 뛰여내려가 1층 대층에서 선희와 딱 마주쳤다. “아니?!” 선희는 소스라칠듯이 놀랐다. 그러나 그녀는 배우마냥 천천히  침착성과 랭정성을 회복하더니 걀죽한 얼굴을 간사한 미소로 칠했다. “아, 정말 오래간만이구만요. 점심 사줄래요?” 성호도 능청스럽게 연기했다. “그럴 겨를 없소. 로씨야에 갔다더니 돈 많이 벌었겠구만.” 선희는 머리를 좀 수깃하다가 번쩍 쳐들었다. “오~ 난 로씨야에 간 적도 없는데요. 그간 한국에 갔댔어요. 세계 명미스모델콩쿠르가 있어서 갔댔는데요. 진짜 세계미스들이 다 모인 굉장한 대회였죠. 전 이젠 세계무대에 진출하게 됐어요. 여기 산골무대가 너무너무 비좁아요.” 성호는 속으로 메스꺼우면서도 짐짓 “어떻게 돼 여기 왔소?” 하고 속뽑이를 해보았다. 선희는 배우 못잖게 아닌 보살을 잘 떨었다. “위 아파 유명한 의사 있다고 해서 치료받고 가는 중이예요.” 성호는 눈을 뚝 부릅뜨고 거짓말을 불어대는 선희를 쏘아보았다.  “더러운 갈보년, 모르는 거 같아? 전문 남의 발등 밟고 남의 가정 깨는 량심없는 쌍년! 간에 가 붙고 염통에 가 붙는 요사한 여우! 웃음 팔고 미모 팔고 몸까지 파는 더러운 갈보년!” 성호는 콱 쏴주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간신히 꿀꺽 삼켜버렸다. (어디 두고 보자. 네년이 량심까지 팔고 싸다니는데 얼마나 잘되는가? 하늘이 굽어보고 있어. 퉤!) 선희도 성호의 눈치를 챘는지 “그럼 이만 가겠어요.” 하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성호는 총총히 병원 대청을 떠나가는 철면피한 선희의 잔등에 쓴 침을 “퉤!”  뱉었다. 영희와 근봉은 온밤 어머니를 붙안고 울면서 사지를 주므르면서 마지막 효성을 다했다. 그러나 오누이의 효성이 담긴 념원과는 달리 봉금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오누이는 다시는 어머니 자애로운 모성애가 담긴 부름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 어머니 봉금은 다시는 사랑스러운 아들딸과 부모형제를 볼 수 없었고 그들의 애탄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춘자와 성숙이, 그리고 은자와 은숙이, 성호 부부간은 봉금의 옆을 떠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친혈육이 마지막숨을 거두는 것을 지켰다. 형제들과 아들딸 모든 친혈육의 슬픈 피눈물을 보지도 못하였는가? 봉금은 긴 한숨을 길게 몰아쉬더니 호흡을 멈추었다. 봉금은 아쉽게도 49세를 일기로 심장의 고동을 서서히 멈추었다. “어머니!” “어머니! 일어나세요-” 영희와 근봉은 어머니 품 속에 엎드려 대성통곡쳤다. 춘자와 은숙은 영희와 근봉을 봉금의 품에서 떼내려고 말렸다. “어머니!” 영희와 근봉은 이모네를 마구 뿌리치고 사체실에 들어내가려는 어머니를 놓아주지 않고 붙들고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봉금은 애들을 대학공부시키겠다고 세상떠나기 며칠 전까지도 가도판사처 직원들의 점심밥을 지었다. 성호는 한편생 고생해온 누나가 불쌍해 뜨거운 눈물을 훔쳤다. 형제들은 새파란 나이에 저세상으로 떠나간 봉금이 불쌍해 피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은자는 영희와 근봉을 물러나게 한 후 손수 지은 한복을 상시옷으로 봉금에게 갈아입혔다. “야, 살았을 때 이렇게 곱게 입혔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소.” 송준은 그때까지 멍해 서 있다가 “이젠 들어내가지 뭐.” 하고 나가더니 담가를 들이댔다. 성호와 송준은 봉금을 들어 담가에 내려놓았다. 성호는 그때까지도 시체가 식지 않아 따뜻한 누나 얼굴을 매만지면서 섧게 울었다. “우리 숱한 형제들이 누나를 하나 구해내지 못하다니? 형제 많아서 무슨 소용있소? 누나, 우릴 욕하오. 속시원히~ 어~허허, 헉헉헉.” 성호는 휘청거리면서 일어나 송준과 함께 누나를 들어  아래층에 있는 사체실로 내려갔다. 형제들이 문짝이 다 떨어져나간 헐망하고 싸늘한 사체실을 지키다가 잠시 자리를 뜬 틈에 송준이 마지막으로 봉금한테 엎드려 뭐라고 중얼중얼 넉두리를 했다. 성호는 아마 이제야 송준은 안해한테 죄송해 용서를 빌리라고 좋게 생각했다. (누나가 사망한 마당에 매형까지 괴롭혀 뭘 하겠는가? 사람은 량심이 배긴 것만큼 살게 놔두자.) 비보를 들은 영옥은 사체실에 들어서면서 두 손으로 무릎을 탁 쳤다. “야,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냐? 봉금이 죽다니? 이 에미를 두고 네가 먼저 가다니?” 백발이 성성한 어머니는 밭고랑 같은 주름살에 쓰라린 눈물을 흘리면서 딸의 싸늘한 얼굴을 쓰다듬었다. 자녀들은 모두 피눈물을 흘렸다. 영희와 근봉은 그때에야 백발이 성성한 외할머니가 딸이 죽어나가는 것을 볼 때의 비통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였다. 그들은 외할머니와 함께 어머니 시체를 번갈아 쓰다듬으면서 슬프게 엉엉 울었다. 상진은 제일 고와하던 넷째딸 봉금의 비보에 입귀를 씰룩거리며 락루하였다. “아니, 오래 사니 세상에 보지 못할거 다 보는구나. 이 애비 먼저 봉금이 죽다니. 세상에~” 이튿날 봉금의 시체는 형제자매들과 아들딸의 옹위를 받으면서 운구차에 실려 화장실에 갔다. 형제들과 아들딸은 친인을 보내기 너무 아쉽고 비통해 서로 붙안고 화장실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친인들의 통곡소리 속에서 봉금은 한가닥의 하얀 연기로 돼 하늘로 서서히 타래쳐올라갔다. 형제들의 가슴을 더 아프게 원통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봉금의 새하얀 골회가 채발에 담겨 나왔을 때 송준은 골회함에 담지도 않고 뭇뼈다귀가 널린 쓰레기무지에 훌 쏟아버렸다. 그 일을 보고 성호는 내내 마음에 두고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쩜 나그네란 자식이 그럴 수 있어? 필경 함께 20여년을 살아온 안해 골회를 거두지도 않고 쓰레기무지에 쏟아버린단 말인가?” 성호나 형제들은 모두 송준이 그렇게 처사할줄 몰랐다. 예전에 가시집 부모형제들은 그를 세상에서 법이 없어도 살 착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내보니 세상에서 육친도 모르는 제일 독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됐다. 성호는 속으로 마음 아프게 되뇌이며 울었다.  “우리 부모형제들이 송준을 그저 옛날 착하고 소박한 사람으로 본 것이 잘못이야. 그는 시내에 들어와 완전히 변했어. 갈보년 선희한테 미쳐버렸어. 그런 송준을 믿고 누나 가스중독치료를 맡긴게 우리 잘못이지. 설마 송준이 아들딸을 두고 조강지처를 버리겠는가고 믿은게 잘못이지.” 성호는 후회막급이였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넷째누나 봉금을 살릴 수만 있다면 후회로 만리장성이라도 쌓을 수 있으련만. 성호는 세상에서 법이 없어도 살 마음씨 고운 누나를 잃은 것으로 하여 가슴이 미여지는 것만 같았다. 칼로 살을 여며내는 것 같아 가슴을 쾅쾅 치며 통탄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누나를 보러 세집에 찾아갔을 때까지만 해도 누나는 남동생의 눈에 든 티를 씃어주겠다고 모지름을 쓰지 않았던가. 벌써 마비가 오기 시작해 말을 잘 듣지 않고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눈까풀을 번지고 혀로 티를 핥아내지 않았던가. 막내동생을 그렇게 사랑하던 누나는 이젠 영영 눈을 감고 남동생의 애탄 부름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저 세상 하늘나라에 날아올라가 고요히 누워 있다. 아니, 한줌의 재가루로 되여 하늘나라로 후루루 날려가고 말았다. 하늘도 운다, 땅도 얼어붙었다. 새들도 눈물겨워 지저귀고 눈송이들이 비통으로 부서지며 비틀비틀 몸부림친다. 저 송준을 보라. 조강지처 장례날에 숱한 상객들이 찾아와 위문하는데 혼자 가도판사처 마당에서 당구를 떵떵 치지 않겠는가. (못된 인간, 너도 인피를 쓴 사람이냐? 그래, 이젠 시름놓았겠구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선희란 갈보년과 결혼해서 한국으로 가서 돈을 벌 수 있겠구나.) 성호는  속이 더욱 비길데 없이 울컥했다. 밸 같으면 년놈들을 단매에 쳐눕히고 싶었다. 으스러지게 틀어쥔 무쇠주먹이 윙윙 울고 있었다. (죽은 누나 불쌍하지. 누난 그래도 저런 인간을 믿고 여지껏 충성을 바치면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어린 나이에 젊은 엄마 잃고 한쪽날개 끊어진 오누이조카들이 불쌍해. 애들이 엄마 잃고 얼마나 놀랐을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슬프겠는가? 아, 쟤들의 앞날이 큰 걱정구나.) 형제들은 모두 뒤에서 송준을 세상에 둘도 없는 독종이라고 욕했다. “쳇, 나쁜 놈, 량심 어긴 놈!” “조강지처 버리고 갈보년을 끼고 한국에 가면 잘 되는가 보라지.” 초겨울이 되자 성호의 꿈에 봉금이 자꾸 나타났다. 꿈에 화장터 부근 쓰레기무지에 자꾸 나타나 성호를 보고 추워서 못살겠다면서 손잡고 자기 자는 데를 가보자고 했다. 그가 누나를 따라 토성밑의 개구멍 같은 구멍으로 쓰레기무지가 있는 토성 안으로 기여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누나는 토성 밑의 개구멍으로 들어가 쓰레기무지로 갔지만 성호는 좁은 개구멍에 몸이 걸려 들어가지도 못하고 버둑거렸다. 다행히 둘째누나 춘자가 성호를 잡아당겨서야 그 구멍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성호는 맨날 그런 악몽을 꾸다가 깨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누나는 세상 떠서도 자기를 허허벌판 쓰레기무지에 버린 나그네를 원망해 남동생을 찾아오는구나. 초겨울이 돌아오니 허허 벌판에서 추운 모양이지.) 성호는 내내 속에 걸려 악몽에 시달리군 했다. “안되겠어. 허허벌판에 버려진 누나 너무 불쌍해.” 성호는 안해 정회와도 말하지 않고 가만히 삽과 주머니를 들고택시를 잡아타고 화장터로 달려갔다. 준식은 웬 영문인지 몰라 자꾸 매형의 눈치를 살폈다. 성호는 묵묵히 앉아가다가 화장터 입구에 이르자 택시에서 내렸다. “먼저 가라.” 성호는 처남을 보내놓고 혼자 화장터 쓰레기장에 가서 그날 송준이 누나 뼈를 버리고 간 후 슬그머니 파묻어둔 하얀 뼈를 몇개 주어담았다. 드디여 그는 무릎을 꿇고 하늘에 대고 대성통곡치며 빌었다. “하느님이여, 우리 누나를 못된 독종놈이 허허벌판에 버린 죄를 용서해주옵소서.  오늘 누나의 뼈와 혼을 담아 편안한 곳에 모시려고 하오니 도와주옵소서~” 뒤이어 그는 주머니에 담은 하얀 뼈를 매만지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누나한테  속삭이듯 말했다. “누나, 이제 편안한 고향 땅에 모시겠으니 나와 함께 가기요.” 그는 누나의 뼈를 담은 주머니를 둘러메고 화장터에서 내려왔다. 그는 택시를 잡아타고 곧추 고향마을 천지꽃산 기슭으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조부모와 큰형님의 산소가 모셔져 있었다. 그는 산소 앞에 꿇어엎뎌 중얼거렸다. “조상님들, 오늘 허허벌판에서 헤매던 누나의 혼과 뼈나마 조상들의 산소 옆에 모시려고 하오니 부디 잘 보우해 주옵소서. 못난 손자는 차마 누나 혼과 뼈를 허허벌판에 버린 송준한테 맡길 수 없소이다. 출가집 외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저는 누나를 죽어도 본가집 귀신으로 만들고 싶나이다.” 말을 마치자 그는 할아버지 산소 옆에 구덩이를 파고 누나의 뼈를 잘 파묻어놓 놓았다. 그는 누나의 봉분에 절을 꾸벅꾸벅 하고 중얼거렸다. “누나, 이젠 조상의 품 속으로 돌아왔으니까 절대 춥지 않을 거요. 이젠 편안히  잠드오.” 그는 산을 내려오다가 애기 봉분마냥 너무나도 자그마하고 초라한 누나의 무덤을 되돌아보고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고씨네 집에 시집가서 애 셋이나 낳으면서 한평생 고생한 누나의 비극적운명이 피눈물나게 비통하고 아리기만 했다.  일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만 상진은 딸의 사망에 너무 비통해 재풍에  걸려 쓰러지지 않았겠는가. (야, 금방 누나를 잃었는데 또 아버지마저…) 재앙에 또 재앙이 세찬 파도처럼 덮쳐오고 있었다. 기구한 운명을 가진 성호는 이 난관을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하는가? 땅과 묻고 하늘에 물어봐도 대답이 없다. 다만 내가의 앙상한 버드나무들과 백양나무들만이 몸부림치며 윙-윙- 외롭고 구슬프게 울부짖을뿐이다.      
문예평론   력사소설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에 대하여 김장혁                                                                                                                                      중국조선족의 이름난 작가 리근전선생은 장편소설 에서71명의 개성이 독특한 인물형상을 창조하고 독특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동만을 중심으로 조선북부와 전 동북을 넓은 무대로, 19세기 말엽으로부터 20세기 “8.15”해방에 이르는 반세기란 기나긴 력사시기 조선족인민들의 피눈물 나는 이민사,  중국 공산당의 령도아래 한족 등 형제민족과 어깨겯고 이 땅을 개척하고 일제와 벌린 수많은 피어린 투쟁사를 형상적으로 보여주었다. 때문에 리근전작가의 장편소설 는 중국조선족인민들의 투쟁력사의 기념비적거울로 될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수 있다. 리근전작가의 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깊이 연구하는것은 중국조선족문학사, 나아가서 중국당대문학사에서 리근전작가의 창작과 그 지위를 반석우에 세우며 금후의 장편력사소설창작에 아주 큰 문학적의의와 현실적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리근전작가의 와 프랑스 작가 발자끄의 , 중국 작가 라관중의 , 조선 작가 천세봉의 ,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과 “아리랑”.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등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대조해 연구해보기로 하자.       프랑스 작가 발자끄는 무려 96편이나 되는 소설로 이뤄진 “인간희극”에서 주로 부동한 소설에서의 동등한 인물재현의 예술수법으로 프랑스의 나뽈레옹제정시대(1799년)부터 1848년혁명에 이르는 기나긴 력사시기 천태만상의 “인간희비극”을 보여주고있다. 세계 명작가 발자끄는 객곽세계를 호상 전형적련결에서 고찰하며 사회현상을 지배하고있는 기본법칙들을 찾아내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여 그는 96편의 소설로 된 “인간희극”에 2천여명이나 되는 전형인물을 부각하여 등장시키고 부동한 소설의 부동한 환경에서 동일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혹은 차요인물로 재현시킴으로써 부동한 환경에서의 인물성격의 진일보 발전을 보여주면서 주제를 심화시켰으며 여러 소설을 하나의 정체—“인간희극”으로 유기적으로 통일시켰다. 하여 부동한 소설에서 보여준 부동한 력사환경은 의연히 프랑스 사회를 떠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면서 프랑스 사회 력사를 련결적으로, 거폭의 형상적화폭으로 보여주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은 조선반도와 중국, 로씨야(구쏘련),  태평양 미국의 하와이, 지어 싸이판과 괌, 동남아세아, 일본까지 배경으로 해 20세기 초엽으로부터 1945년 광복까지 력사시에 일제의 폭압에 맞서는 우리 민족의 피어린 항일투쟁과 민족의 이민사, 끈질긴 생존과 투쟁을 다룬 민족의 대서사시이다.      조정래 작가는 지삼출, 대근, 송수익, 신세호, 방영근, 남용석, 감골댁, 보름, 수국, 정분, 김창봉, 정재규, 장칠문, 장덕풍, 김봉구, 방태수, 무주대, 임덕구, 주성춘, 손판식, 기생 옥향; 백종두, 주재소장 하야가와, 요시다, 쓰지무라 등 허구된 수많은 전형인물들을 부각하여 반세기나 되는 그 시대 력사화폭을 형상적으로 보여주었다.     또 허구된 인물의 허구된 이야기와 력사적으로 실존한 리승만, 김구, 의병장 임병서, 최익현, 임병찬 등의 진실한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이 시기 민족의 력사를 아주 넓은 화폭으로 예술적으로 반영하였다.       일부 력사이야기는 작중 허구된 인물의 대화속에서 예술적으로 삽입해 보여주었다. 례하면 작중의 방영근과 남용석의 대화에서 당시 하와이에서의 반일단체와 이승만의 항일투쟁사를 정면으로 보여주었다.       일부 력사이야기는 사회배경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직설적으로 보여주었다. 례하면 조선 서울의 3.1독립운동과 중국 룡정의 3.13반일운동, 의병장 홍범도가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구쏘련에 전이한 과정 등 력사이야기는 작자가 사회배경을 소개하듯이 직설적으로 보여주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광복후로부터 6. 25 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분단이후 여순반란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한국 태백산맥을 따라 남으로 나가면서 지리산구를 근거지로 삼고 남로당(박헌영의 령도하에 있은 남조선 주재 조선로동당의 약칭임.) 유격대의 유격투쟁활동과 한국 계엄사령본부와 경찰대, 토벌대가 지리신지역 남로당유격대를 진압한 과정의 력사이야기를 폭넓게 보여주었다.        이 소설에서 작가 조정래는 “실화소설” 같은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당시  염상진대장, 안창민대장, 하대치 등 유격대 두목과 골간들의 투쟁이야기를 주선으로 소설로서의 진실한 인물화폭을 그리면서 진실한 력사를 반영하는 예술수법을 쓰고있다. 진짜 력사와 예술의 혼연일치를 보여준 걸작이라고 할수 있다.        우선 작가는 실존한 력사인물들을 피도 있고 살도 있는 아주 전형화된 인물로 형상적이고도 생동하게 형상화해 유격대 투쟁과 정부군, 토벌대의 진압의 력사이야기를 반영했다. 작중에는 보성군 유격대 대장 염상진과 보성군당위원장 겸 후임 대장 안창민을 비롯한 하대치, 오판돌, 강동식, 이해룡, 고두만, 손승호, 강동기, 김임일, 이영생 그리고 계엄사령관 심재모, 신임사령관 백남식, 보성경찰서장 남인태, 토벌대장 임만수, 검찰총장 권승렬, 중부경찰서장 윤기병 등 실존한 전형인물들을 아주 성공적으로 부각하였다. “태백산맥”에서도 조정래 작가는 작중 인물의 대화를 통해 력사이야기를 보여주는 예술수법을 적지 않게 썼다. 례하면 작중인물  손승호와 김범우의 대화를 통해 백범 김구가 암살당한 력사사건을 보여주었다.         조정래 작가는 “태밴산맥”에서 허구된 인물의 허구된 에피소드를 양념처럼 많이 삽입해 독자들을 력사이야기를 감염력있께 읽게 흡인하는  예술수법을 보조적으로 썼다. 례하면, 염상구에게 강동기 안해가 장기적으로 강간당해 임신까지 한 에피소드, 허출세에게 외서댁이 강간당한 에피소드, 그외에도 작중 인물의 진한 사랑과 치정  에피소드 등을 들수 있다.        중국 조선족작가 리근전선생의 동일한 하나의 소설인 (상, 하집)에서,  조선의 작가 리기경선생은 "두만강" 에서  발자끄처럼 부동한 소설의 부동한 력사환경에서가 아니라 부동한 력사시기 환경에서 동일한 인물을 재현시키고 인물들을 혈연적, 사회적, 계급적으로  련결시키고 충돌시키면서 인물성격을 발전시키고 력사사건들을 유기적으로 련결시키면서 보여주고있다. 때문에 “인물재현”이라는 측면에서는 발자끄의 력사반영의 예술수법과 류사한 점이 있다. 하지만 “부동한 소설에서”와 “동일한 소설에서”의 부동한 력사시기에서 인물재현이라는데서 발자끄의 과 리근전선생의 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범이 서로 다르다는것을 알수 있다.      다음, 중국 작가 라관중의 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대조해 연구해본다 첫째,  라관중의 에서는 력사상의 실재인물들인 조조, 류비, 손권, 제갈량 등을 주인공으로, 주요하게 적벽싸움과 관도싸움 등 력사적전형환경과 력사인물과의 관계속에서 전형성격을 부각하면서 해당시기 력사를 반영하였다. 그러나 리근전선생의 에서는 주요하게 주인공 박천수, 박윤민 등을 비롯한 71명 인물들은 모두 허구된 인물들로서 춘황폭동, 5월폭동 등 력사사건과 천수동민란, 동맥휴학 등 허구된 사건과 허구된 인물관계속에서 부각하면서 해당 시기 력사를 형상적으로 반영하였다. 둘째, 에서 각 력사사건의 발생, 발전, 고조, 해결은 주인공에 의해 제약되고 추동되는 예술수법으로 력사사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리근전선생의 에서는 력사사건에 력사인물 대신 허구된 작중인물을 바꿔넣거나 차요한 위치에서 참여시키면서 작중인물의 이야기, 회억, 대화속에서 자연스레 력사사건을 반영하였다.      때문에 사건과 인물관계가 력사적인것인가, 허구적인것인가 하는데서 라관중의 와 리근전선생의 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 부동하다.         다음, 조선 작가 천세봉의 와 대조해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연구해보면 허구된 전형인물형상을 부각하여 력사를 보여준 점에서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 류사하지만 일부 부동한 점도 있다. 첫째, 천세봉의 는 순전히 허구적인 사건들인 소작인동맹건립, 보돌공사장폭동, 박진우환갑식, 대검거참안 등을 통해 현재진 일가 5형제, 최선도, 최창국 등 인물형상을 부각하여 당시 력사정형을 반영하였다. 그러나 리근전선생의 에서는 허구된 사건외에도 력사적사건속에서 박천수, 박윤민 등 인물형상을 부각하고 당시 력사정형을 반영하고있다. 이런 예술수법은 리기영의 "두만강에서도 찾아 볼수 있다.      둘째, 천세봉의 에서는 전형적사회력사환경을 작자의 정면서술로 밝히지 않았고 자연환경도 “XX군 송하면 월하리” 등 허구적으로 모호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리근전선생은 에서 작자의 정면서술로 사회력사환경을 밝히였으며 자연환경도 허구적인 “천수동”뿐만아니라 실재한 륙도구, 국자가 등을 삼고있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리깅영의 두만강에서도 제2대혁명자 "씨동"의 활동 자연환경은 두만강 량안의 조선 중북부와 중국 동만으로 삼고 있다.           총적으로 리기영선생과  리근전선생은 고금동서 명작들의 부동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에서 정화를  섭취하여 계승하고 발전시켜 독특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창조해냈다.         그럼 리근전선생의 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은 구경 어떤것인가? 첫째, 전형환경에서 전형인물을 부각하여 해당 시기 사회력사를 반영한 예술수법이다.         똘쓰또이는 자기 창작은 “인물형상을 부각할뿐만아니라 그 형상을 통해 력사를 보여주기 위한데 있다.”고 하였다. 리근전선생은 동서고금의 력사물명거작들의  력사반영의 예술정화를 섭취하여 “고난의 년대에서 륙도구와 천수동을 동북의 축영으로 형상화하고 그속에서 자기로서의 얼굴과 웃음, 말본새를 가지고 자기 신분에 알맞는 행위를 하는, 개성이 독특한 각이한 인물을 71명이나 형상적으로 부각하였다.  이런 인물들은 당시 전변하는 사회적계층의 어느 한 계층을 각각 대표하는 전형인물로 등장하면서 매개 인물들의 개인적운명의 발전속에 몰락하는 계층과 발전하는 세력간의 계급투쟁, 민족투쟁에 의한 력사적진로를 표시해놓았다. 하여 우리는 력사의 흐름에 따른 륙도구와 천수동의 변화와 그속의 인물성격의 변화를 통해 사회력사 제특성들의 변화를 통해 당시 력사 발전을 찾아볼수 있다.        이제 작중에서 전형인물들의 개성적얼굴들을 찾아보면서 그 전형형상이 당시 력사정형을 어떻게 반영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주인공 박천수는 시대적제한성으로 하여 로동계급의 혁명리론으로 무장하지는 못했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의협심과 결단성이 강하고 봉건통치배들을 반대하는 강의한 개성과 일반화정도가 높은 애국적농민의 전형형상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순박하며 선량하며 의협심이 강한 한족농민 왕덕후, 말수 적고 심성이 곧은 김성녀, 착하고 어진 김명도, 강직하고 반항심이 강한 최창두를 비롯하여 장서방, 강도룡, 조월래 등 농민들의 형상을 개성적이고도 살아 움직이게 그려 봉건지주와 통치배들의 압박과 착취 밑에서 생활난을 껵다가 각성하여 반항하기 시작하는 당시 조선족과 한족 형제민족농민들의 력사적제특성을 예술적으로 재치있게 반영했다. 그외에도 조장희, 리광국 등 전형형상을 통해 당시 민족주의자들로 무어진 반일단체의 제 력사정형을 보여주었다. 또 비굴하고 탐욕스러우며 잔인하고 횡포무도하며 교활한 친일주구 오영길, 음탕하고 아첨을 일삼는 앞잡이 마상수, 탐욕스럽고 강직하며 량반의 체모를 중히 여기는 상인 최영세를 비롯한 매판자본가 김경필, 김만호, 팽국장과 향악지주 주천림, 김소래 등을 비교적 개성적으로 인물형상화하여 해당 력사시기의 자본가, 지주들이 일제와 봉건통치배들에 아부굴종하고 인민을 잔혹하게 압박착취한 시대적 제 특성을 잘 보여주고있다. 이밖에도 교활하고 잔인한 스즈끼총령사, 특무 고산, 경찰서장 고자끼, 친일주구 김목사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형상화해내 그 부류인들의 죄악적력사도 예술적으로 반영했다.      작자는 이상의 늙은세대의 긍정적, 부정적인 인물형상들을 통해 주요하게 19세기말부터 20세기 10년대말의 력사와 그제반특성 및 각 계층 특성들을 반영하였다.      다음, 소설에서 이런 늙은세대에 의해 보여준 미적리상과 인민투쟁력사의 계승자로서 슬기롭고 용감하며 심중하고 강직한 당원 박윤민을 비롯하여 왕주, 김범도, 순희, 윤길, 영심, 귀동이와 큰동이, 당조직 지도자 리진과 안경림 그리고 명화와 기생 김벽선, 향화 등을 개성적으로 부각하면서 그들이 부정인물 오창수, 오창덕 및 일제놈들과의 갈등과 투쟁을 통해 1919년 5.4운동이후로부터 1945년 8.15해방이전 력사시기 당의 령도아래 조한 형제민족 인민들이 단결하여 진행한 반제, 반봉건 투쟁력사를 예술적으로 반영하였다. 그리고 작품 결말에 제3대 인물인 귀섭이 형상을 등장시킴으로써 조선족인민들의 투쟁력사는 계속됨을 암시해주고있다.        이런 3대에 걸친 수많은 인물형상체계의 중심에는 박천수와 박윤민이 련이어 서서 끌고나가고있으며 이들과 기타 인물들의 혈연적, 사회적, 계급적 련결과 갈등속에서 인물성격을 발전시키고 해당 시기 력사를 예술적으로 반영하고있다. 때문에 매개 력사사건은 동떨어진감이 없이 련결되여 독자들로 하여금 형상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매 시기 력사정형을 리해하게 하였다.       둘째, 작자가 정면서술한 력사환경(력사사건을 포함)에서 작중 인물이 활동하거나 작중 사건의 발전속에 력사사건을 삽입시키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다.        이런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장백산봉금령반포와 개간국설치, 한족과 조선족 동북이주력사, 신해혁명, 1911년 룡정 력사환경, 룡정통감부 간도파출소와 일본령사관 설립, 3.13폭동, 20년대 반일단체활동, 1923년 대검거참안, 녕안위만군 탄약탈취 등 력사를 반영하였다.        이런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은 작자 정면서술의 지루함과 무형상성 그리고 작중 인물의 활동으로써 전반 력사환경을 제시하기 어려운 결함을 피면하고 장점을 취해 독자들로 하여금 피와 살이 있는 개성적인물들의 움직임을 여겨보면서 당시 력사정형을 완정하고도 형상적으로 감칠맛이 나게 알수 있도록 하였다.       셋째, 인물의 이야기, 회억, 대화속에서 력사사건을 보여주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 그리고 이런 제 수법과 작자 정면서술을 서로 결합시켜 력사사건을 반영하는 예술수법이다. 이는 작자가 작중에서 제일 많이 쓴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라고 할수 있다.     이런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제31장에서 윤길과 김성녀의 대화, 제32장에서 순희의 회상속에서 3.13폭동을 보여주었다. 김범도와 왕주, 윤민의 대화와 이야기속에서 경신년대토벌을, 귀동의 이야기에 의병단 및 왕청 배초구습격사건을, 스즈끼와 김벽선의 대화, 리진의 분석과 작자 정면서술로 일제 “만몽침략계획”과 9.18사변을 반영하고있다. 그외에도 선바위 부근에서 12만 5천원 탈취한 사건, 춘황폭동도 이런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보여주었다. 그중에서 스즈끼나 친일주구 오창덕, 오창수와 같은 부정인물들의 대화, 이야기로 9.18사변의 내막이나 일제의 만몽침략야심, 일제의 “문치주의”와 “무단정치”의 본질을 드러내 보여준것은 력사제재 장편소설창작에서 거둔 창신적인 예술성취라고 본다. 이같이 부동한 장절에서 여러 인물의 대화, 회억, 이야기 그리고 작자 정면서술을 서로 결합시켜 력사사건을 반영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딱딱하고 지루한감이 없이 다측면적으로 형상적인 력사교과서를 보는듯한감을 느끼게 한다. 이는 독자들의 다시각적형상을 통해 력사를 알려고 하는 심미적수요에 맞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라고 생각한다.       넷째, 력사적인물 대신 작중 허구적인물의 이름을 바꿔놓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다. 력사상 약수동토벌참안때 실제 존재한 항일렬사 김순희의 감동적사적을 반영하기 위해 작자는 제55장 “대참안”에서 렬사 “김순희” 대신 작중 윤길의 처 “백봉선”이란 허구된 인물을 바꿔넣고 등장시켰다. 이런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춘황폭동, 5월폭동, 12만 5천원 탈취, 해란강대참안 등 력사를 핍진하게 반영했다. 이런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은 작중인물과 력사적인물, 작중 사건발전과 력사이야기를 유리시키지 않고 통일적인 전일체로 련결해 반영하였다.       다섯째, 인물의 설정과 인물의 신분, 활동경력, 인물이 처한 사회와 자연 환경 등은 모두 인물의 성격을 부각하고 생활론리에 맞으면서도 력사를 반영하기 위한데 복종시킨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다.       작자는 1911년 룡정력사환경, 춘황폭동, 3.13폭동, 경신년대토벌, 반일단체활동, 의병단활동, 5.30폭동, 12만 5천원 탈취, 항일련군 항전투쟁 등을 반영하기 위해 주인공 박윤민을 두만강변으로부터 륙도구 자선학교, 천수동, 륙도구술공장, 할빈, 봉천, 왕청과 의란 산속, 녕안현, 중쏘변경, 연안 등지로 번개같이 드나들게 하였다. 그리고 신분도 배사공, 교원, 로동자, 지하당원, 의병단 부단장, 항일련군 군관, 지위 서기로 바뀌고있다. 이는 다 생활론리에 맞게 박윤민이란 인물성격을 부각하면서도 력사반영의 수요에 따라 그의 신분도 변화시키면서 중요하거나 차요한 위치에서 력사사건에 참가하거나 참여시키면서 박윤민이란 인물의 대화, 회상, 아야기 등으로 력사를 반영하는 예술수법을 쓴것이다. 이는 동일한 소설의 부동한 력사사건과 환경에 동일한 인물을 재현시키는 재치있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다.       이밖에 짙은 지방민족생활색채, 흥미진진한 민담, 민요, 속담 등의 광범하고 적절한 응용과 향토적이고 형상적인 언어 등은 작품의 감염력을 높여 작중 력사반영의 예술수법들의 효과성을 높이는 보조적인 력사반영의 예술수법과 같은 작용을 놀았다. 허나 옥에 티라고나 할가.  하집에서 작중 인물의 회억, 이야기, 대화에 의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지나치게 많이 썼기에 력사반영의 형상성을 약화시켰다고 본다.       필자의 수준제한으로 하여 저명한 중국 조선족작가의 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상 거둔 예술성취를 제대로 긍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더욱 깊이 연구한다면 력사제재 장편소설창작에 매우 큰 방조를 주리라고 믿는다.
218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30) 댓글:  조회:1134  추천:0  2019-07-06
                               56. 위기와 기회        찜통더위는 서서히 꼬리를 감추었다. 어느덧 시원한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불어오더니 산과 들이 누르스름하게 번져져 갔다. 저쪽에서 누런 잎이 벌써 락엽으로 우스스 지려고 팔짱을 끼고서 기다리고 있다.         가을하늘은 높고 푸르렀지만 광고회사의 사무실은 성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비좁게 느껴졌고  갑갑해나기만 했다. 굉팔은 품 속에서 칼을 뽑아들고 본격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거의 이틀이 멀다하게 회의를 열고 승호와 성호의 흠집을 들춰내 호되게 질책했다.         이날 아침에 또 시작했다. “우리 회사는 광고회사지 정치회사 아니야. 정치를 하겠으면 기관으로 가라구.” 승호는 또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몸을 옹송그리고 굉팔을 쳐다보았다. “어떤 동무들은 계속 묵은 그루에서 이밥 먹던 소릴 한단 말이유. 깨그루에 앉은 참새들처럼 주둥이만 까져서 입방아만 찧어대고 광고는 꼬물만치도 가져오지 못해. 광고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광고회사에서 나갈 준비를 해야지. 안 그래?” 굉팔은 우멍눈으로 힐끔 승호를 훔쳐보았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승호를 보고 속이 더 부글부글 괴번져졌다. “어떤 치들은 광고회사를 전혀 책임지지 않는단 말이야. 뭔가? 백화상점 돈을 만원이나 훔친 도적년 그리 좋은가? 우리 회사 출납원을 도적년을 앉혀야 하는가?  말이나 돼?” 승호는 듣다못해 한마디 툭 내쏘았다. “자꾸 빗대고 욕하지 마십시오. 그때 해연이 나오지 못해 소개한 건데. 왜 큰 꼬리나 밟은 것처럼 아침부터 재수없이 빈정거립니까.” “뭐라고?” “어쨌다고 날마다 야단칩니까?” 잔뜩 열이 오른 굉팔은 우멍눈 흰자위가 튀여나올듯이 부라리면서 실돌피처럼 가는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세우며 버럭 고함쳤다. “듣기 싫으면 광고회사에서 나가란 말이야!” “어디 쫓아보지.” 승호가 눈을 뚝 부릅뜨자 굉팔은 억지로 샐쭉 웃어보이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어디 쫓으려는 거요? 광고회사를 좀 잘 꾸리자는 건데.” 그는 승호와 성호의 눈길이 곱지 못한것을 보고 얼른 화제를 슬쩍 바꿨다. “아래에 김경리 맡았던 광고를 나눠주겠네. 김경리 광고를 대부분 해연이  맡아야겠어. 출납이 내근만 해서야 몇푼 벌겠나? 우리 남자들이 바깥에 나가 더 뛰여다니더라도 하나 밖에 없는 녀자를 배려합세.” 진희는 슬그머니 질투에 찬 눈길로 해연을 쏘아보았다. 그러건말건 굉팔은 뒤말을 이었다. “약방광고는 내 맡아해야겠네.” “동의해요.” 이번에는 해연이 맞장구를 쳤다. 승호와 성호는 년놈들이 부르고 쓰고 하는 꼴이 보기 싫어 묵묵부답이였다. “어째 아무 말도 없어?” “마음대로 해보십시오.” 성호가 선뜻이 대답하자 승호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좋소.” 굉팔은 소학생들한테나 강의하듯이 이른바 “인생철학”을 퍼붓기 시작했다. “사람이란 사심이 조금씩 있기 마련이야. 장차 너희들 가운데 누가 경리를 해도 경리체면은 세워야 하잖겠어? 에헴, 에헴.” (개자식, 자기 능력으로 광고수입을 올릴게지. 김경리를 밀어내고 광고를 몽땅  빼앗아내?) 그때 굉팔은 계속 내리먹였다. “성호는 농민의 아들과는 달리 술공장이랑 다니기 좋아하더구만. 전문 공장  제품광고만 맡게나. 누구나 이제부터 내 맡은 병원에 광고하러 다니지 말게나. 건 내 발등을 밟는 거야. 누가 병원에 얼씬거리기만 해봐. 그 놈의 대갈통을 까벌테야.” 그는 우멍눈으로 휘 둘러보았다. 굉팔은 뒤말을 이었다. “승호는 백화상점의 광고를 맡게나.” 성호는 억이 막혔다. 절대 물러설 수 없었다. “아니, 백화상점 광고는 내 개척한 건데 말도 안됩니다. 행정권력으로 마구  나누는 건 합리하지 않습니다.” 분명 승호와 성호를 리간을 놓으려는 더러운 수작이였다. 승호도 맞장구를 쳤다. “성호 말에 도리 있습니다. 성호 하던 광고를 빼앗아서야 됩니까?” 꽝! 굉팔은 주먹으로 사무상을 꽝 내리치더니 벌떡 일어났다. “무슨 허튼 소리야?! 총경리 하라는대로 하라구!” 성호는 굉팔과 더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저런 꼴 보기 싫어 산골에서 소궁둥이를 쳤는데. 재수 없어 어디 시내에서 살겠니?) 그는 김범수 경리를 보호하려고 나섰다가 보호하지도 못하고 위기감이 빈대처럼 스믈스믈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이래서 나처럼 현실과 정치를 외면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벌을 받는다고 하는 건가? 안되겠어. 광고회사만 믿고 어디 살겠니?) 성호는 저물어가는 흐리멍텅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버지 병치료는 뭘로 하는가? 소를 길러서 번 돈은 거덜나지 않았는가? 나머지 소 대여섯마리를 팔아서야 아버지 치료비 대기도 어렵잖은가. 언제 정희 요구대로 널직한 아빠트를 사고 아들을 봐?) 그는 주먹으로 강가에 서있는 버드나무를 꽝 쳤다. (안돼, 굉팔한테 운명을 맡길 순 없어. 택시업이라도 해야지. 그런데 밑천이 있어야 아무거나 해보지.) 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누나네와 형님네를 쭉 훑어보아도 돈을 선대해줄만한 집은 하나도 없었다. 큰형님네는 이제 겨우 맏아들을 장가보내고 갓 살림집을 갖춰줬는데 무슨 돈이 있겠는가. 둘째누나네도 갓장가를 간 맏아들 살림집도 마련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외조카 정춘은 할빈공대 연구생원을 졸업하고 기어이 교수로 되는 길을 버리고 화동지구 한 한국기업 인사과에 취직했다. 정춘은 마음씨 착해 어려서부터 어려운 친구들을 잘 동정하고 도와주었다. 그는 할빈과학기술대학에서 공부할 때 한 한족동창생이 늘 우울해있는 것을 보고 조용히 찾아 속심을 나눴다. 알고보니 그 한족동창생은 한 학급의 녀동창생을 짝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처녀애를 사모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정춘은 평생 처음으로 한족동창생 대신 련애편지를 써주었다. 그런데 한족동창생은 련애편지마저 건넬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정춘은 별수 없이 직접 그 녀동창생한테 련애편지를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의 정성과는 달리 련애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자 정춘은 한족동창생을 데리고 대련에 유람하러 가서 “이담 꼭 더 좋은 처녀한테 장가들수 있다.”고 위안해주기까지 했다. 정춘은 낮에 밤을 이어 사업에만 열중하다나니 련애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자기를 따라 남하한 김미옥이란 처녀는 끝내 온다간다는 말도 없이 집으로 가버렸다. 돌아오라고 아무리 편지를 띄우고 전화를 쳐도 소식이 없었다. (에이, 아마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없는가봐.) 그는 모진 마음을 먹고 한 인사과에 다니는 당지 한족처녀와 결혼하였다. 정춘의 결혼식에 성호와 정희는 귀빈석에 앉았다. 예로부터 소주와 항주에 미인이 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결혼 첫날에 외조카의 항주색시는 진짜 남방의 미녀였다. 부드러운 남방어조로 “외삼촌”, “외삼촌” 하며 어찌나 귀엽게 노는지 한족각시라도 얼마나 귀여운지 몰랐다… 누나들 중에서 그래도 넷째누나 봉금이 형편이 낫아보였다. 넷째매형 송준은 원래 중학교 체육과 생물 교편을 잡았다. 그는 과외시간에 기공과 침구를 익혀가지고 교편을 버리고 막내처남인 성호를 믿고 이 시내에 와서 의사질을 했다. 성호가 간판광고로 널리 선전해 환자를 끌어오고 송준이 침구와 기공안마를 결합해 경추병과 요추간판탈출에 지어 내과병까지 잘 치료한 덕에 한달에 3천원 내지 4천원씩 벌었다. 한번은 성호가 배구를 치다가 허리를 상해 침대에 들어누워 일어나지도 못했다. 심지어 누운 자리에서 돌아눕지도 못해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다. 그때 정희는 대소변을 받아내며 절망에 빠져 눈물을 흘렸고 가시어머니마저 몰래 딸의 신세가 가여워 눈물을 훔쳤다. (중풍을 맞은 시아버지에 젊은 신랑까지 쓰러지면 딸이 고생할게 아닌가?) 그때 송준이 신통력을 발휘해 성호의 허리뼈를 맞춰넣은 후 허리에  부황을 댄다, 뜸을 뜬다, 기공안마를 한다하면서 사흘이나 치료해주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성호는 기적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절로 변소출입을 할 수 있게 됐다. 송준이 정성을 들여 한 일주일 치료하자 성호는 일어나 바깥출입까지 할 수  있었다. 성호는 넷째매형의 신세를 너무 많이 져서 손을 내밀기 구차했다. 황차 넷째누나네는 남개대학에 간 영희와 북경대학에 간 근봉의 뒤바라지를 하느라고 여간 힘들지 않았다. 넷째누나는 마음씨 착했지만 운명이 기구하기도 했다. 큰아들애 길봉은 9살 때 늪에 가서 목욕하다가 다른 애와 함께 빠져 불행히 죽었다. 사실 농민들이 겨우내 그 늪 밑바닥의 부식토를 곡괭이로 꺼 밭에 내다나니 여기 저기 깊은 웅덩이 함정처럼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글너데 애들은 늪가의 물이 얕은 것 같자 한발한발 더 들어가다가 물웅덩이에 허망 빠져 헤여나오지 못했다. “야, 길봉이 죽느라고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니?” 영옥은 항상 외손자를 외우면서 주름진 볼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군 했다. 다 큰 애를 잃은 부모의 고통이야 오죽했으랴. 큰애를 잃은 넷째누나는 영희와 근봉이 오누이를 끔찍이 사랑했다. 토요일에 오누이 시내에서 집에 돌아올 때면 맛나는 음식을 해놓고 문 밖에 나서서 기다렸다.  눈보라가 치는 해질 녘에 애들이 언 논밭의 땅거미를 밟으면서 돌아오는 것이 눈에 뜨이면 마구 뛰여갔다. 그녀는 애들을 얼싸 안고 “얼마나 추웠니?” 하고 얼굴을 두 손바닥으로 감싸쥐고 녹여주군 했다. 그 모성애야 말로 천하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이었다. 성호는 누님네 귀여운 자식들 대학공부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 어느날 성호가 퇴근해 집에 돌아와 웃방을 보니 아버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와 물어보니 아버지는 병문안하러 온 넷째딸과 함께 갔다고 하지 않겠는가. 상진은 성호 허리병을 치료하는 것을 보고 넷째사위가 꽤나 용하다는 것을 알고  치료받고 싶었던 것이다. 황차 송준은 여섯 사위들 가운데서 마음씨 제일 착하다고  은근히 믿고 찾아갔다. 송준은 이불짐까지 가지고 온 가시아버지를 보자 생각 밖으로 인사마저 하지 않고 훌 나가버리지 않겠는가. (아, 오늘 병원에 환자가 많아 그러겠지.) 그러나 사흘이 지나가도 송준은 퇴근해서도 병문안 한마디 하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의연히 병원에 나가 기공이나 련습하다가 밤중에야 돌아와 전등불을 절컥 꺼버리고 잠자리에 들군 했다. 봉금이 보다못해 “아버지를 좀 치료해주오.” 하고 사정해보았다. 그제야 송준은 마지못해 상진한테 침을 몇대 꽂아주었다. 그래도 상진은 중풍이 인차 나을 것만 같아 마음에 흡족했다. 그만큼 사위의 착한 마음과 의술을 믿었다. 어느날 성호가 찾아가자 그는 조용히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병원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는 철색얼굴에 아주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무거운 입을 뗐다. “성호, 저도 알겠지만 우린 애들 둘을 대학공부 시키느라고 집도 없어  세집살이를 하네. 우린 아버지를 모시지 못하겠어. 부모는 아들이 모시는 법이지. 어디 출가집 외인이 모시는 법인가?” 성호는 단통 억이 막혔다. “매형, 사실 부모를 모시는데 무슨 아들이고 딸이고 따질게 있소? 그래 딸은 우리 엄마 배아프게 낳은 자식이 아니오?” “글쎄 누나들 가운데서도 둘째누나네 젤 낫소. 부부간이 다 대학졸업생이지 국가 로임 타잖소? 이젠 애들도 다 대학을 졸업했지. 우리보단 훨씬 형편이 낫지 않고 뭐요?” 성호는 코웃음쳤다. “매형, 부모 때문에 근심하지 마오. 래일 굶어죽더라도 내 부모를 책임질테니.” 송준은 아버지가 이불짐까지 가지고 찾아가자 이젠 이 집에서 모시라는가고 오해했다. 송준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성호의 두 손을 굳게 잡았다. “알았어. 처남은 불효자식이 아니야.” 그날부터 송준은 시름놓고 가시아버지 병치료를 착실히 해주었다. 상진의 병은 한달도 안돼 눈에 뜨이게 호전돼 이젠 지팽이를 버리고 쉬염쉬염  걸어다닐 수 있게 됐다. 성호와 형제들은 송준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랐다.   그때 막내누나 성숙한테서 편지가 날아왔다. 사연인 즉 가을철이 됐는데 벼가을을 좀 도와줄 수 없는가는 사연이였다.   …얘, 성호야, 지금 한시 급하다. 너도 알겠지만 우리 발해 입쌀은 청나라 때부터 황제가 먹던 쌀이 돼서 다른 쌀값의 두배나 한다. 하루라도 빨리 가을해서 남보다 일찍이 입쌀을 팔면 한근에 2원씩 받을 수 있다. 네가 사업이 바쁜 거 알면서도 렴치없이 손을 내밀어야 되겠구나. 인차 와서 가을을 도와줄 수 없니? 올해만 부탁하자. 명년에는 매형이 한국에 나갈 궁리하는데 농사를 지을 거 같지 않구나…   편지를 보고 성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이전에도 성호는 막내누나네 새 집을 짓고 수리할 때 동경성에 가서 매형을 도와 벽도 발라주고 구들도 놓아주었다. 그때 매형 명선은 성호의 매질솜씨를 몰랐기에 성호를 보고 앞에서 흙칼질을 하게 하고 자기는 뒤에서 재흙칼질을 했다. 성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함께 집의 벽을 발랐기에 흙칼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흙칼로 터덜터덜한 벽을 쓱쓱 긁어버리고 모래와 흙을 섞어 이겨서 척척 벽에 붙여놓고 썩썩 반듯하게 발랐다. 명선은 아예 흙칼을 버리고 흙을 떠주며 성호의 시중을 들었다. 하여 성호는 혼자 전담해 백평방메터도 더 되는 농촌 살림집 벽을 다 발랐다. 그때부터 명선은 성호가 비록 대학물을 먹은 선비였지만 그의 일솜씨만은 믿게 됐다. 성호는 낫을 놓은지 한 10여년 됐지만 막내누나가 고양이 손도 빌어쓸 지경인 것을 보고 백사를 불구하고 기차를 타고 동경성으로 달려갔다. 명선과 성숙은 진짜 감농군이였다. 벌써 동녘하늘이 푸름해서 일어나 밥을 지어 먹고 낫과 도시락을 둘러메고 논밭에 나갔다. 성호는 먼 길을 기차를 타고 달려가서 곤한대로 낫을 쥐고 뒤따라나갔다. 황금나락이 넘실거리는 무연한 논벌이 희붐히 밝아오는 해빛을 받으며 아득하게 누워 있었다. 낫을 쥐고  앞을 바라보기만 해도 아득했다. (언제 저 앞까지 벨가?) 성호는 한숨을 후~ 길게 내쉬면서 허리를 굽혀 뚱뚱한 배를 내리누르며 부지런히 낫을 놀렸다. 허리를 굽히고 가을할 때 뚱뚱한 배가 눌리워 밸이 당장 목구멍으로 울컥 나올 것만 같아 한시간도 견디기 힘들었다. 한시급히 쉼시간이 돼서 논바닥에 물앉고 들눕고 싶었다. 그때 봉금도 가을을 방조하러 갔다. 그 허약한 몸으로 입술이 다 새파랗게 질려도 이를 꼭 옥물고 가을걷이를 견지해나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쉼이 되자 성호와 봉금은 낫을 훌 쥐어뿌리고 베놓은 벼 우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맑고 드높은 가을 하늘에서 흘러가는 하얀 솜뭉치 같은 구름을 바라보니  서글프기만 했다. (언제면 가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가?) 그는 모로 돌아누워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논밭을 바라보다가 피뜩 엉뚱한 궁리가 떠올랐다. (막내누나네 쌀을 판 돈을 꿔서 택시를 사면 어떨까?) 그는 벌떡 일어나 매형한테 머리를 돌렸다. “매형네 밭이 몇헥타르 되오?” 매형은 숫돌에 낫을 썩썩 갈다가 손가락으로 낫날을 쓱쓱 문질러보며 대답했다. “두헥타르 밖에 안되오.” “한헥타르에 쌀이 얼마나 나오?” “만근이야 나겠지.” “올해 입쌀 한근에 2원씩 팔 수 있소?” “오, 그래.” “매형네는 돈낟가리에 앉겠구만.” “에이구, 지금 한국에 나갈 수속비를 한 3만원 내야 하오. 재촉이 성화 같아서 죽겠소.” 쉼이라야 낫을 네자루 가는 새다. 성호는 매형네 돈도 희망이 없는 것 같아 맥이 풀렸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해질 녘까지 가을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다. 명선은 소를 풀러 강가로 갔다. 봉금은 소변을 보러 강냉이밭으로 들어가고 옆에 없었다. 그 틈에 성호는 성숙한테 넌지시 말을 꺼내보았다. “햇쌀을 팔면 한 4만원 꿔줄 수 있소?”     성숙이 대답하기도 전에 “국가리자만큼 줄게.” 하고 덧붙였다. “뭘 하려고?” 성숙은 저으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택시업을 할가 해서 그러오.” “택시업을?” “양, 어디 광고회사에만 출근해서야 살겠소? 아버지 치료비도 벌어야지, 널직한 집을 갖춰야 아들도 보지.” 성숙은 한참 궁리하다가 진심어린 대답을 했다. “글쎄 택시라도 해서 돈을 벌면 얼마나 좋겠니? 저 매형이 한국에 나가지 말고 농사를 지었으면 좋겠는데 한국 바람에 진짜 혼을 싹 빼앗겼다. 미치겠어, 미쳐.” 성호도 맞장구를 쳤다. “한국에 나가 뭘 하오? 수속비를 3만원이나 내고 한국에 가서 몇푼 벌겠다고. 여기서 농사만 잘 지어도 한해에 4만원은 벌겠구만.” 성숙은 봉금을 부축해 질척질척한 도랑을 건너면서 중얼거렸다. “화학비료랑 산 거 떼고도 한 3만 5천원이야 벌지. 저 나그넨 한국 밖에 모른다.  손재간이 많아서 두루 목수질에 야장질하면 한 만원은 식은죽먹기로 벌 수 있다.” “그럼 한국에 가서 뭘 한다오?” “몰라. 한국에 가면 덕대 우의 돈을 내리울 것처럼 고집을 쓴다. 저 나그넨 성질이 급하고 고집이 어떻게 센지 뭐나 딱 하자고 마음 딱 먹으면 벽이라도 차고 나가는 성질이야.” 그때 명선이 소를 몰고 어둠 속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정지에서 두 누나는 저녁밥을 짓느라고 분주히 서둘렀다. 성호는 뒤칸에 들어누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면서 어떻게 하면 막내누나네 돈을 꾸겠는가 궁리했다. 그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성호는 매형과 누나들과 함께 퍼런 벼단을 논드럼에 무져놓았다. 일요일에 외조카 경남과 경춘까지 돌아와서 벼를 실어다 학교 마당 탈곡장을 닦고 탈곡을 시작했다. 성호는 날마다 매형과 함께 근 100마대나 되는 벼를 정미소 마당에 날라다 펴서 말리우고 저녁이면 마대에 담아 무져놓았다. “저녁에 벼를 마대에 담지 말고 그대로 모아놓으면 어떨가? 아무튼 래일 아침이면 또 마대 걸 쏟아 널어야겠는데.” 명선은 손재간은 있어도 핵산은 성숙을 따라가지 못했다. “안 되오. 마대에 담아둬야 누가 가져갔는가 안 가져갔는가 알지.” 도적을 막으려고 날마다 백마대나 되는 벼를 담았다 쏟았다 하기란 실로 쉬운 일이 아니였다. 기실 마대에 담아 무져놓으면 도적이 도적질하기 더 쉽지 않겠는가. 성호는 너무 기막혀 말렸다. “저녁에 여기서 자면서 지킬게.” 고집이 센 명선도 어쩌다 그 말에 도리 있는게 알리는지 더 고집을 쓰지 않았다. 며칠 후 싹 마른 벼를 정미소에서 찧게 됐다. 한국 정미기계는 그저 쏟아넣는대로 네벌 정미해서 곧추 하얀 입쌀로 쏟아져나왔다. 성호는 부지런히 벼마대를 날라다 정미기입구에 쏟아부어넣었다. 온 하루 거의 백마대나 되는 산더미 같은 벼마대를 혼자 날라다 쏟아붓고나니 기진맥진할 지경이였다. 설상가상 70여마대나 되는 입쌀을 몽땅 집에 실어가야 된다고 하지 않겠는가.  명선과 성호는 저녁을 먹기 바쁘게 수레로 온 밤 입쌀을 집에 실어들여 쌀창고에 척척 쌓아놓았다. 로동이 사랑이라고 막내매형 명선은 저으기 감동됐다. 성호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 매형이 손잡고 말했다. “처남, 수고했소. 쌀을 팔면 택시를 사게 뀌워줄게.” 뜻밖의 말에 성호는 막내누나를 돌아보았다. “저 나그네 처남 일이라면 순순히 대답한다.” 성호는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감사하오. 그런데 매형은 무슨 돈으로 출국수속비를 내겠소?” 명선은 개의치 않았다. “그때 가서 다시 보지.” “감사하오. 그럼 쌀을 팔면 전화하오.” 성호는 날듯이 기뻤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 앉아서도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누님네 쌀장사가 잘 돼야겠는데…) 성호는 두손 모아 기도라도 드리고 싶었다. 며칠 후 누나네 발해입쌀을 한근에 2원 50전씩 북경에서 다 사갔다고 전보가 왔다. 성호는 가정의 중대사여서 정희한테 택시업을 할 예산이라고 했다.  “그만두세요.” 정희가 대뜸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반기를 들고 나설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성호는 단통 피가 꺼꾸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광고회사만 믿어선 아버지 치료비도 대기 힘든데 언제 널직한 아들 보겠소?” 정희는 정색했다. “싹 걷어치우세요. 아들을 보지 못하면 말라죠. 지금 택시 운전수들이  강도들한테 살해되는 일이 부지기수인데요. 사람 빚을 지자고 그래요? 돈도 벌지 못하고 인명사고라도 치면 어떻게 해요?” 성호는 화났다. “좀 재수 없는 말을 작작 하오. 아낙네들이 사전에 댕댕거리면 일이 잘 안된다니까.” 정희는 한발자욱도 물러서지 않았다. “동무 차를 몰줄도 모르면서 어떻게 택시업을 해요?” “차를 모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겠지. 어려운 대학공부도 4년 동안에 다 했을라니 차운전을 배워내지 못하겠소? 먼저 남을 고용해서라도 택시업을 기어이 해내고 말테오.” 성호는 정희가 반대하건 말건 발해행차에 나섰다. 며칠 후 그는 성숙이네 집에 가서 돈 4만원을 얻어가지고 헐금씨금 돌아왔다. 그런데 그 돈으로는 근본 9만원 내지 10만원 하는 택시를 견줄 수 없었다. 성호가 애나서 애를 태울 때 뜻밖에도 기회가 찾아왔다. 시내 어느 한 택시회사에서 은행의 대부금을 내주면서 택시를 판다고 했다. 성호는 당장 택시회사로 찾아가 알아보았다. 택시회사 경리는 남방에서 온 사람 같았다. 그는 선불금 4만 5천원을 내면 나머지 택시 값은 가옥소유증을 차압해두고 은행대부금을 맡을 수 있다고 했다.  달마다 본금과 리자를 합쳐 3천 5백원씩 갚으면 된다고 했다. (OK!) 성호는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칠 수 없다. 그런데 그의 살림집은 아직 가옥소유증이 나오지 않아 은행에 눌러둘 수 없었다. 그때 정희가 나서서 이모사촌오빠네 가옥소유증을 얻어왔다.   성호는 끝내 하리표택시를 사게 됐다. 그가 운전을 할줄 몰라 이모사촌처남이 눈풍설을 무릎쓰고 집에까지 몰아왔다. 택시는 사왔는데 운전수가 하나도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하여 그날부터 성호는 누구도 몰래 처이모사촌오빠한테서 운전을 배웠다. 정희는 정작 택시를 사오자 신랑을 도와나섰다. “이모사촌동생 둘이 집에서 노는데 우리 차를 몰겠는가 물어볼가요?” 그러나 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처남네도 택시업을 하는데 그래서야 되오? 괜히 남의 담장을 허문다는 말을 듣겠소.” “호호호. 그 이모사촌동생을 그러지 않아요.” “그럼 누굴?” 정희는 쌔물쌔물 웃었다. “작은 이모네 동생 말이예요.” “그 앤 큰 이모네 차를 몰 소리를 하던데.” “오빠와 말해 우리 차를 몰게 할게.” 성호는 한숨이 후~ 나왔다. “운전수 하나는 해결됐구만. 그런데 밤에 몰 운전수도 있어야겠는데.” 그때 웃방에서 어머니가 귀띔해주었다. “외가집 송숙이네 나그네 승복을 보고 몰아달라면 어떻니?” 성호는 그제야 무릎을 탁 쳤다. “깜박 잊었군. 그 매부야 통나무차를 다 몰았으니 훌륭한 운전수지.” 택시를 사서 이틀만에 모든 수속을 마치고 운전수도 면담이 끝났다. 사흘만에 택시는 밤낮으로 뛰면서 영업하게 되였다. 첫날에 승복이 낮영업액 200원을 가져오고 가시이모사촌동생 철수가 밤 영업액 150원을 가져왔다. 주유소에 가서 휘발유를 43원어치 넣고도 순 수입 300원을 쥐였다. 하루에 두달 로임을 척 번 셈이 아닌가. 그달 말에 성호와 정희가 택시영업을 해 벌어들인 돈을 계산해보니 운전수들의 로임까지 주고도 5천 500원이나 떨어졌다. “야-호-” 그들 부부는 당장 부자로 될 듯한 꿈에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성호는 목돈을 쥐자 그 자리로 택시회사에 가서 대부금 본금과 리자 3천 5백원을 갚았다. 택시회사를 나온 성호는 홀가분한 감이 났다. “빚을 무는 재미도 있구나. 한해 버둑질하면 대부금을 다 물겠지.” 그는 언제면 4만원 본금에 리자까지 다 갚을가는 막연한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세상 일이 어디 다 식은죽 먹기겠는가. 택시를 산지 한달도 안돼 성숙이 찾아왔다. “얘, 미안하구나. 저 나그네 기어이 한국에 가겠단다. 일주일 내로 수속비 3만원을 내야 한국에 간단다. 나머지 만원은 한국에 도착한 후에 내야 하고. 저 나그네 돈을 찾아오라고 생야단이구나. 어쩜 좋겠니?” 그때 때마침 봉금이 부모를 보러 왔다가 나섰다. “우리 집 돈을 먼저 가지고 가라.” “언니네 무슨 돈이 있소?” 마음씨 착한 봉금은 항상 형제자매들을 정성을 다해 돕군 했다. “아저씨 병치료 해서 2만원 푼히 있다. 막내오래비도 택시를 사겠으면 우리 돈도 꿀게지. 그 먼데 가서 꿔왔니?” 성숙은 그늘이 졌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을 피웠다. “그럼 얼마나 좋겠소? 그런데 아저씨 애나게 번 돈을 드텨서 좋아하겠소?” “괜찮아, 형부도 동의할 거야.” 그제야 성호는 한숨이 후~ 나왔다. 그는 두 누나가 진짜 고마웠다. 그는 막내누나한테 말한대로 리자라는 말은 하지 않고 감사비로 5백원을, 매형이 한국에 간다고 100원을 더 얹어주었다. 성숙은 되밀어주었다. “형제간에 감사비까지 받겠느냐? 성의는 받았다. 아버지 병치료에 보태 써라.” 성호가 받지 않자 성숙은 기어이 올케한테 쥐워주었다. 정희도 시누이 호주머니에 되쑤셔넣었다. 성숙은 훌 일어나 바깥에 나가면서 구들에 꼬깃꼬깃해진 돈말이를 훌 뿌려주고 달아나다싶이 했다. “누나~ 가지고 가오~” 성호가 쫓아나왔으나 성숙은 택시를 잡아타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택시업을 벌려서 두달 동안 그런대로 달마다 5천원 좌우씩 순 수입을 올려 성호는 웃음주머니가 흔들거렸다. 택시업은 진짜  속을 썩인 값을 번다. 성호는 택시가 어디 가서 사고라도 칠가봐 근심, 운전수들이 강도한테 강탈당하가봐 근심, 심지어 인명사고라도 생길가봐 근심하다나니 이 근심, 저근심, 근심이 태산 같았다. 택시업은 모험성이 많은 영업이다. 고정된 영업집에서 영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네바퀴가 달린 놈이여서 수시로 교통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고 어슥한 골목에서 강도를 만날 수도 있었다. 성호는 택시를 집 앞에서 내보내고는 항상 근심에 싸여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봄날이 오자 항상 밤중까지 가로등 밑에서 장기군들과 함께 장기를 두면서 시간을 보내면서 태산 같은 근심에서 해탈되려고 애썼다. 집에 돌아와도 택시와 운전수 근심에 발편잠을 자지 못했다. (2년반 로임을 한달에 버는게 그리 쉽겠는가?) 성호는 스스로 위안하면서 하루, 하루 속을 태우며 지냈다. 어느 하루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성호가 한창 승복한테서 낮에 번 돈을 받아 셀 때였다. “야, 돈을 많이 벌었구나. 날마다 한달 로임을 넘어 버는 것 같구나.” 생각지도 않은 철주가 뜻밖에 찾아오지 않았겠는가. “오, 어떻게 돼 왔니?” 성호는 돈을 대충 세여 호주머니에 챙겨넣고 택시를 보내고 철주의 철색얼굴을 쳐다보았다. 철주는 멀어져가는 빨간 택시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야, 돈을 좀 뀌워달라.” 성호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는 철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호야, 우린 고향친구가 아니냐? 양고기뀀점도 잘 되지 않지. 싹 걷어치우고 안마원을 좀 차릴가 한다. 조용한 거리에 영업집은 세를 맡아놓았는데 돈이 딸려서 그래. 도와주기만 하면 이담 안마는 무료로 할 수 있어.” 성호는 희죽이 웃었다. “야, 나도 은행대부금을 맡아서 빚을 갚는게 죽을 지경이야. 누나네 돈도 숱해 꿨지. 가시집 가옥소유권마저 은행에 눌러둔 처지야.” “됐다, 됐어. 꿔주지 않겠으면 말아라.” 철주는 화를 냈다. 철주는 정미소를 차리면서 아버지가 꿔간 돈을 아직도 갚지 못한 일도 기억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볼 부은 소리를 줴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휑 하니 가버렸다. “철주, 명년에 빚을 다 갚으면 좀 뀌워줄게.” 성호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누군가 타이르는 목소리가 귀방울이 때끔하게 울리는 상 싶었다. “친구끼리 절대 돈거래를 하지 말라.” “친구끼리 돈거래 하면 언젠가는 벌어지게 된다.” 그는 땅꺼미가 어둑어둑 지는 가로등불 밑으로 성이 나서 씩씩거리면서 멀어져가는 철주 뒤모습을 바라보며 도리머리질했다.                                   57. 정미소특대참살사건        유유히 흐르는 천혜의 부르하통하는 어머니 젖줄기마냥 부르하통하강반을 적시면서 오곡백과를 우르익혀 평화로운 이 곳 백성들을 키워왔다.        마을 서쪽에 숱한 검을 깎아지른 듯한 천지꽃산이 병풍처럼 둘러섰고 마을 서쪽변두리를 흰 비단띠 같은 태평강이 유유히 고향 마을을 감돌아 흘렀다. 밋밋한 말무덤산을 북쪽에 등지고 드넓은 황금들판을 내다보며 언덕 우에 들어앉은 고향 마을, 백여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성호의 고향 마을에는 이제껏 형사사건이 생긴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향 마을 정미소의 곽재령감과 로친이 백주에 살해당한 참살사건이 발생했다. 성호는 비보를 듣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칠순이 되도록 자기 힘으로  살아보겠다고 정미소를 차려놓고 아글타글 하던 곽재령감이 아닌가. 그런데 로친과 함께 백주에 자기 집 마당에서 동시에 살해당하지 않았겠는가. (실로 한심하구나. 어떤 놈이 살해했을가?) 성호는 황급히 자전거를 타고 고향마을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가 고향마을 정미소 마당에 들어섰을 때다. 강운룡 부국장은 한창 숱한 수사대원들을 지휘해 현지수사하느라고 정미소와 집 안을 들락날락하며 분주히 서둘렀다. 정미소 토성 밖에서는 숱한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렸다. 강운룡 부국장을 비롯한 수사대원들은 진수해파출소 소장과 함께 먼저 신고자인 곽재령감의 둘째아들 만주한테서 정황을 료해했다. 만주는 줄줄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쓱쓱 닦더니  떠듬떠듬 이야기했다. “어제 오후 3시쯤에 나는 부모가 이렇게, 이렇게 참살, 참살당한 것도 모르고  정미소에 왔댔습니다…” 사실, 만주가 전날 오후에 정미소 울 안에 들어섰을 때였다. 아버지가 글쎄 장작더미 옆에 쓰러져 있지 않겠는가. 그는 혹시 뇌출혈에나 걸려 쓰러졌는가 해 황급히 달려가 아버지를 안아일으켰다. 그런데 피못이 된 머리가 글쎄 땅바닥에 뚝 떨어지지 않겠는가. “아이구, 아버지, 이게 웬 일입니까?” 그는 아버지를 놓고 황급히 집으로 달려가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안으로  걸려 있었다. “엄마, 엄마! 문을 여오!” 그러나 아무리 소리치면서 문고리를 잡아당겨도 집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참살사건을 해명한 후에 안 일이였지만 당시 살인악마는 안으로 문을 걸고 집 안에서 한창 돈이 있는가고 옷장과 이불장, 궤와 쌀독마저 들추고 있었다.  그때 만주가 찾아와 문 밖에서 소리치자 살인악마는 황급히 뒤창문의 모기장을 식칼로 째고 창문을 뛰여넘은 후 서쪽토성을 넘어 도망쳤던 것이다. 일이 심상찮음을 느낀 만주는 뒤울 안으로 달려가 활짝 열린 뒤창문으로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구들 우에 어머니가 피못 속에 쓰러져 있지 않겠는가. “엄마! 이게 웬 일이요?” 기실 그때 만주가 조금만 더 빨리 뒤울 안에 뛰여갔더라면 뒤창문을 뛰여넘어 도망친 살인악마와 마주쳤을 것이다. 만주는 집 안에 뛰여들어가 엄마를 끌어안고 엉엉 대성통곡쳤다. 그때 정미소에서 북으로 서른메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늙은 비술나무 아래에서 장기를 두던 동불사령감과 조양천령감, 세린하령감이 통곡소리에 놀라 령감들과 함께 삼삼오오 정미소에 모여들어 야단쳤다. “에이고, 어쩜 잘 살아보겠다고 아글타글 애쓰던 령감이 죽었소?”  “글쎄 말이요. 두부장사로, 정미소 일로 눈코 뜰새 없이 보내더니. 쯧쯧쯧.” “어느 놈이 살해했는지. 이제 생벼락을 맞을게요.” “어쩌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미소에서 번 돈을 아들이 안마원을 차리게  주겠다더니. 쯧쯧쯧.”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장산이네 쌀을 찧어줬는데. 헛참, 이런 봉변을 당하다니.” 곽재령감은 한푼이라도 더 벌어서 두 아들을 대주려고 정미소 앞에 전기톱과 전기대패까지 놓고 목재가공소까지 차려 손이 놀새 없었다… 수사대원들은 정미소 울안의 서쪽편에 무져놓은 장작무지 옆에 엎딘채 쓰러진 곽재령감의 시체를 세밀히 관찰하고 촬영했다. 곽재령감의 온 몸은 뻘 건 피투성이로 됐고 피가 랑자한 머리는 목에서 떨어져 있었다. 그의 끊어진 목에서 흐른 피가 5메터 밖에까지 흘러 자그마한 피못을 이루었다. 누군가 그 피자국에 톱밥을 퍼다 덮어놓았다. 두 발이 끌리운 흔적을 따라 가보니 나무를 패던 도끼와 패다가 만 장작이 도끼도마 우에 놓여 있었다. 곽재령감이 정미소 마당에서 장작을 팰 때 웬 놈이 둔기로 머리를 쳐 쓰러뜨린 후 칼로 목을 자른것 같았다. 톱밥주머니 옆에 삽 두자루가 놓여 있었다. 그 중 남쪽에 놓인 삽날에 피와 톱밥이 묻어 있었다. 정미소와 붙은 살림집 앞의 세멘트마루바닥에 피방울이 몇방울 떨어져 있었고 출입문 높이 1.1메터 되는 곳에 피 묻은 손가락자리가 있었다. 집 안의 옷장과 이불장이 몽땅 열려 있고 그 안의 옷과 이불이 구들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심지어 랭장고마저 활 열려 있었다. 구들 동남쪽 구석에 놓인 재봉침틀 우에 놓인 까만 가죽상자에 무슨 도구로 열어젖힌 흔적이 나 있었다. 동쪽벽에서 반메터 떨어진 구둘 우에 피투성이 된 로친 박옥금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목은 칼에 둬번 찍힌 상처자국이  있었고 마지막 순간에도 반항하면서 흉수를 쏘아본듯이 두 눈을 부릅뜬채 천정을 쳐다보며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녀의 하신은 넘어진 궤짝에 짓눌려 있었다. 마구 널린 옷장의 이불 옆에 놓인 사우나상자도 문이 열려 있었고 사우나상자 우에 펴놓았던 비닐박막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세심한 수사대원들은 그 비닐박막에서 완정한 지문 하나를 채집하였다. 그 지문은 이 사건을 해명하는데 중요한 증거로 될 수도 있었다. 부엌 북쪽의 창문에 댄 모기장이 예리한 비수에 째진채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수사대원들이 집 북쪽 울 안에 들어가 북쪽에 난 창문 아래를 살펴보니 창문 아래로부터 서북쪽으로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수사대원들은 가능하게 흉수가 뒤창문으로 뛰여내려 토성을 넘어 달아났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그때 철주가 집 안에서 뛰쳐나와 성호의 손을 잡고 엉~ 엉~ 대성통곡쳤다. “야, 정의용사야, 우리 아버지 원쑤를 갚아달라. 살인악마를 꼭 붙잡아달라.” 성호는 철주의 손을 잡고 어떻게 위안했으면 좋을지 몰라했다. 그때 순희도 다가와 눈물이 글썽해 부탁했다. “성호야, 꼭 경찰들과 잘 말해서 흉수를 붙잡아달라.” 성호는 그저 머리를 끄덕였다. “인민경찰들이 있는 한 철주 부모를 살해한 놈은 도망치지 못해.” 그때 강운룡 부국장이 성호를 불렀다. 성호는 강국장을 따라 정미소 안에 들어갔다. 강국장은 성호를 보고 부탁했다. “마을에 피해자와 척진 사람이거나 경제관계가 있는 사람이 없는가 알아봐달라.” “예.” 성호는 인차 철주를 데리고 정미소 서쪽에 있는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순희도 뒤따라왔다. 그때 성호네 집 소사양을 하는 지괴룡이 소를 몰고 나가다가 헤쭉거리며 인사했다. “헤이, 도련님 어쩌다 왔소?” 성호도 알은 체했다. “그래. 소방목을 나가는가?” “그래. 어쩜  아래집 곽재령감 부부가 살해당한단 말이오?” 성호는 살진 소들을 보고 까마잡잡한 지괴호가 일만은 잘한다고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는  철주와 순희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 다그쳐 물었다. “철주, 혹시 요즘 너 부모와 경제거래 있거나 척진 사람이 없니?” 철주는 머리를 푹 숙이고 한참  속으로 올리훑고 내리훑었다. 이윽고 그는 머리를 들더니 성호를 마주바라보면서 말했다. “있긴 있다. 그러나 걔가 그럴 수 있겠니?” “누가?” 성호는 철주한테 다가가 앉았다. 철주는 두툼한 입술을 무겁게 열었다. “장산이 우리 아버지와 척졌지.” 성호는 한족학교를 다닐 때 동창생 장산의 네모난 얼굴과 쌍까풀눈이 피뜩 떠올랐다. “걔가 무슨 일로 척졌니?” “정미소를 차리는 일 때문이야. 걔도 마을 뒤에 정미소를 차리려고 했는데 우리 집에서 마을 앞에 먼저 정미소를 차리지 않았니? 그래서 우리 아버지 멱살을 틀어잡기까지 하며 대판 싸운 적이 있다.” “오~” 성호는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소홀히 결론을 내리려고 하지 않았다. “또 척진 사람은 없니?” 철주는 도리머리를 가로저었다. “너도 알지만 우리 아버진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 아니고 뭐냐?” 순희는 눈물이 글썽해 동을 달았다. “평생 누구와 싸울분이 아니지.” “이제 생각나는구나.” 철주가 성호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그 동불사령감과 세린하령감은 항상 우리 아버지 하는 일이라면 빈정거리고 헐뜯었단 말이야…” 순희가 철주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그 령감들이 질투심은 많지만… 말도 안돼.” 성호는 화제를 돌렸다. “혹시 너네 부모와 돈거래 있는 사람은 없니?” “없어.” 철주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우리 집에 무슨 돈이 있니? 돈이 있었으면 너한테 꾸러 갔겠니?” 그때 순희가 무릎을 탁 쳤다. “깜빡 했다. 우리 며칠 전에 정미소를 팔지 않았고 뭐야? 혹시 그 돈을 탐내서 어떤 놈이 손쓴게 아닐가?” 성호와 철주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가능해.” 철주는 손벽까지 마주 치면서 성호한테 다가가 앉았다. “너도 알지만 우리 양고기뀀점이 잘 되지 않아 안마원을 차리자고 정미소를 팔잖았니?” 그의 눈 앞에서는 번개같이 숱한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대체 어느 놈이 그랬을가? 꼭 내부 실정을 아는 놈이 한짓이야.” 성호는 한마디 물었다. “그래 정미소를 판 돈을 너네 부모 건사했니?” “아니.” 철주는 즉답했다. “정미소하구 살림집까지 3만 5천원에 팔자마자 우리 가져갔지.” “음~” 성호는 단서가 좀 잡히는 것 같았다. “정미소를 판 일을 우리 마을에서 누구랑 아니?” 철주는 단마디에 “장산이지.” 하고 짚었다. “또 장산이냐?” 성호는 이마살을 찌프리며 물었다. “그래. 장산이 우리 정미소를 샀으니까.” “걘 너네 돈을 가져간 걸 아니?” “모를 거야. 그 새끼 정미소 값을 주고 간 다음에 우리 저녁을 먹고 가지고 갔으니까.” “정미소 판 거 또 누가 아니” 성호의 물음에 철주는 “이젠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알 거야.” 라고 했다. 성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혹시 의심스러운 사람이 없니?” 철주와 순희는 성호의 얼굴에서 눈을 떼더니 서로 마주보며 머리를 숙이였다. 성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부탁했다. “의심스러운 자가 떠오르면 인차 수사대대에 알려라.” “응.” 철주는 이를 쁙쁙 갈았다. “콩가루로 만들어놔도 원쑤를 다 갚지 못할 거 같애.” 성호는 철주와 순희를 보낸 후 인차 강운룡 부국장을 찾아갔다. 강운룡 부국장은 김창남 대대장을 불러 함께 성호네 집으로 올라갔다. 자연히 성호네 집은 이번 특대살인사건을 해명하는 수사지휘부로 되나 다름없었다. 성호한테서 정황을 회보받은 강운룡 부국장은 한참 사색에 잠기더니 무거운 입을 천천히 열었다. “이번 사건은 가능하게 정미소를 판 걸 아는 놈이 그 돈을 노린 특대살인강탈사건인 거 같소.” 김창남 대대장도 머리를 끄덕였다. “예. 흉수는 정미소 마당에서 곽재령감을 비수로 목을 잘라 살해한 후 집 안에 들어가서 로친의 머리를 잘라 살해한 거 같습니다. 그리고 옷장이랑 이불장이랑 궤짝이랑 다 들춘 걸 보면 확실히 정미소 판 돈을 찾은 것 같습니다.” 강운룡 부국장은 과단성있게 지시했다. “범죄시간에 마을 사람들의 행적을 몽땅 조사해야 하오.” “예, 알았습니다.” 그날 저녁으로 수사대대에서는 온 마을 사람들을 하나 하나 불러 조사하는 한편 의심스러운 단서를 제공받았다. 수사대원들은 제일 의심스러웠던 장산을 성호네 집에 불러다 조사했다. 장산은 성호네 집에 들어서자 네모진 얼굴이 새까매났다. “날 왜 조사합니까? 난 곽재령감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수사대원은 피씩 랭소했다. “우리 언제 자네가 곽재령감을 살해했다고 했소? 묻는 말이나 대답하오.” “난 정말 억울합니다…” “사건이 발생한 7월 11일 오후 3시쯤에 어디서 뭘 했소?” “11일이면 어젠데. 어제 난 마을에 없었습니다.” “어데 갔댔소?” 장산은 굳어졌던 네모얼굴의 근육이 풀리면서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쌀을 팔러 시내로 갔댔습니다.” “쌀은 왜 팔았소?” “정미소 값 4만원에서 3천원을 채 물지 못했습니다. 형제들한테서 꾼 것도 모자라서 쌀을 팔러 다녔습니다.” “누가 증명설 수 있소?” “가만 있으십시오. 좀 생각해봅시다.” 장산은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무릎을 탁 쳤다. “어제 오후에 비술나무 밑에서 장기를 놀던 세린하령감도 내가 쌀수레를 몰고 지나가는 걸 봤습니다. 저 서쪽 성호네 집에서 소사양하던 지괴룡도 날 보았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됐소. 곽재령감을 살해했다고 의심스런 사람은 없소?”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지문을 찍고 가오.” 장산은 아무런 긴장감도 없이 다섯 손가락과 손바닥을 빨간 도장집에 푹푹 찍어 새하얀 종이에 탁, 탁, 탁 세번 찍었다. 오히려 한숨을 후- 내쉬더니 홀가분해하는 상싶었다. “혹시 의심스런 자가 있으면 말하오.” “예.” 동불사령감과 세린하령감은 확실히 그 전날 오후에 늙은 비술나무 그늘 아래에서 해질 때까지 장기를 놀다가 장산이 쌀장사를 하러 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지괴룡을 찾아 물어봐야 하겠는데 소방목하러 가고 없어 그만두었다. 그리하여 장산과 동불사령감 그리고 세린하령감까지 혐의에서 배제되였다. 그럼 흉수는 누구란 말인가? 수사대원들이나 성호나 모두 오리무중에 빠졌다. 강운룡 부국장은 창문 밖을 내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이 마을을 벗어나 수사범위를 확대해야 하오.” 이때 어둑어둑해지는 바깥에서 황소의 영각소리가 길게 울렸다. 성호는 우쭐 일어나 창문 밖을 내다보다가 울안으로 밀려드는 소떼를 보자 강운룡 부국장과 김창남 대대장한테 머리를 돌렸다. “저 지괴룡을 조사해 보았습니까?” 그 자리에 있던 수사대원이 제꺽 대답했다. “소방목하러 가서 미처 조사하지 못했소.” “조사해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김창남 대대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수사대원들은 크게 희망을  걸지 않고 지괴룡을 불러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어째 오늘 늦었구나.” 성호의 말에 지괴룡은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더니 “소들이 어찌나 밭으로  뛰여들어가는지.” 하고 대충 대답하면서 수사대원들을 힐끔 도적질해보았다. “어제 오후에 뭘 했소?” “예? 소방목을 했습니다.” 지괴룡은 먼 천정을 쳐다보았다. 저으기 긴장해하는 눈치. “어데 가서 소방목을 했소?” “장개골에 가서 방목했습니다.” 지괴룡은 자꾸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며 대답하다가 천정에서 눈을 떼고 수사대원들을 쏘아보았다. “뭐 어쨌다고 이럽니까? 곽재령감과 로친을 살해하고 돈을 빼앗았다고 의심합니까?” “묻는 말이나 순순히 대답하라.” “에이, 씨, 별난 사람들을 다 보겠다. 원, 참.” 수사대원들은 지괴룡이 이상해 몇마디 더 물어보았다. “소방목을 간 걸 누가 증명설 수 있소?” “가만 있자.” 지괴룡은 한참 사색을 더듬더니 “아, 옳지. 장산이 봤습니다. 장산이 쌀수레를 몰고 저  아래 길로 나오다가 내 소를 몰고 가는거 봤습니다.” 하고 대답하면서 허구픈 웃음까지 지어보였다. “그게 몇신가?” “오후 한시 쯤인가.” “의심스러운 사람을 발견했소?” 뜻밖에 지괴룡은 “장산이 의심스럽습니다.” 하고 나섰다. “왜?” 지괴룡은 장산을 물고 늘어졌다. “장산은 곽재령감이 정미소를 차려 자기와 경쟁한다면서 한바탕 싸웠댔습니다. 또 정미소를 판 일은 장산이 알지 누가 압니까? 혹시 장산이 정미소를 사고 자기 준 돈이 아까와서 손을 썼는지 어떻게 압니까?” 누구도 그런 의심을 가질 수도 있었다. “장산은 그날 쌀 팔러 가지 않았는가?” 괴룡은 선 자리에서 손삿대질까지 해대면서 의심스러운 점을 주어댔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쌀수레를 몰고 쌀 팔러 가는 걸 본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중도에 쌀수레를 감춰놓고 정미소에 뛰여들어 살인했는지 누가 압니까?” 수사대원들과 강운룡 부국장 등은 서로 눈길을 맞췄다. 창남 대대장은 지괴룡을 보고 지문을 찍으라고 했다. 지괴룡이 그럴듯하게 적발할수록 수사대원들은 그의 말마디마다 주의를 돌리게 됐다. 지괴룡은 지문을 찍을 때 좀 긴장한 것 같았다. 거멓게 때묻은 손가락이 바르르 떨렸다. 그는 지문을 찍고나서 종이로 빨간 도장집을 손으로 쓱쓱 닦으면서 힐끔힐끔  수사대원들의 눈치를 보며 나갔다. 강운룡 부국장은 먼 발치에서 지괴룡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머리를 이쪽으로 돌렸다. “저자를 잘 감시하오. 흔히 등잔불 밑이 어둡다고 하잖소. 저 괴룡은  대단히 의심스러운 자요.” 창남 대대장도 동을 달았다. “예, 장산이 쌀 팔러 간 척하고 중도에 살인할 범행시간이 있었다고 하잖았습니까? 저 괴룡도 산에 소방목하러 간 척하고 중도에 마을에 기여들어 범행할 시간이 있잖겠습니까?” 그 말에 강룡운 부국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성호, 저 자가 방목하러 간 산에 소들을 풀어놓고 마을에 돌아와 일을 볼 여가가 있니?” “예, 있습니다.” 성호의 대답은 명확했다. “저 산은 동쪽과 서쪽, 북쪽 삼면은 깎아지른 바람벽 같은 절벽이 둘러서고 있어 소들이 달아나지 못합니다. 지괴룡은 범행할 시간이 푼합니다.” 수사대원들은 이 마을에서 지괴룡과 장산을 중요혐의자로 정하고 채취한 지문을 시공안국 형사정찰대대 본부에 가지고 가서 대조해보기로 결정한 한편 재차 그들을 조사하기로 하였다. 수사대원들은 먼저 장산을 불러 심문했다. “어제 오 후에 쌀을 팔러 간 걸 누가 증명할 수 있는가?” 장산은 억이 막힌듯이 입을 쫙 벌렸다. “지금 날 의심하는겁니까? 동불사령감과 세린하령감이 장기를 두면서 보았습니다. 지괴룡도 보았는데.” 수길 중대장은 창남대장과 강운룡 부국장과 눈길을 마주치고 나서 한마디 더 물었다. “쌀을 어느 마을에 가서 팔았는가?” “태양촌에 가서 팔았다고 하잖았습니까?” “어느 집에 팔았소?” “예, 정 믿지 못하겠으면 태양촌에 가서 삼조대면을 해봅시다.” “좋소. 의심스러운 사람은 없소?” “잘 모르겠습니다.” 수길 중대장은 손을 저었다. “그럼 함께 삼조대면을 해보러 태양촌에 가기오.” “이건 버섯목이니 벗어보이겠는가? 정말 억울합니다.” 수길 중대장은 수사대원과 함께 장산을 데리고 태양촌으로 떠나갔다. 한편 성호는 소사양실에서 지괴룡과 함께 묵은 밥을 먹고나서 이 말 저 말 하면서 뒤다리를 붙잡고 앉아 있었다. 지괴룡은 이불을 베고 누워 천정만 말뚱말뚱 쳐다보면서 무슨 궁리를 했다. 갑자기 지괴룡이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배를 끌어안고 “아이구, 배야!” 하고 소리치면서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성호는 벌떡 일어나 몸을 날려 바깥에 뛰여나갔다. “서라! 어디 가?!” “변소에 간다!” 지괴룡은 괴변을 부렸다. 변소와는 반대쪽인 서쪽 토성으로 뛰였다. 성호가 바싹 쫓아가 토성에 뛰여오르는 그자의 뒤다리를 잡아 홱 나꿔챘다. “앗!” 비명소리와 함께 지괴룡이 허망 옥수수밭에 나동그라졌다. “어디로 도망쳐?!” 그때 토성 바깥에서 경계하던 수사대원이 뛰여와 쇠고랑이를 채웠다. 이윽고 괴룡은 수사지휘부인 성호네 웃방에 끌려들어갔다. 창남 대대장이 직접 심문했다. “죄행을 낱낱이 탄백햇!” 지괴룡은 요행을 바라고 변명했다. “무슨 죄 있다고 이럽니까?” “왜 토성 넘어 도망치려고 했어?” “배 아픈데 똥도 못 싸는가?” 그때 때마침 공안국에 지문을 대조하러 갔던 수사대원이 들어섰다. 그가 지문대조결과를 창남 대대장 앞에 내밀었다. 강운룡 부국장과 수길 중대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증거가 있는데도 떼 쓸테냐?” “픽!” 지괴룡은 코웃음치면서도 철색낯이 새까맣게 재빛으로 변하는 것이 확연했다. 창남 대대장은 지괴룡 앞에 지문대조결과서를 내밀었다. “봐라! 살인현장 사우나상자 우에 덮어놓았던 비닐박막에 남긴 지문과 네 지문은 4개 똑같은 특징이 있어.” 지괴룡은 들여다보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거기에 지문이 남아있을 리 없겠는데.” 그 말에는 혐의가 아주 크게 묻어나왔다. “이젠 생떼를 쓰지 말고 자기 죄행을 낱낱이 교대하라. 사건현지엔 네놈이 돈을 들추느라고 여기저기 숱한 지문을 남겼어.” 지괴룡은 벌떡 일어나 미친듯이 고함쳤다. “야, 저 성호새끼네 일가를 몽땅 죽이지 못한게 원통하다! 저승에 가서라도 널 물어뜯어 놓겠다. 으흐흐, 하하하!” 강운룡 부국장은 지랄발광하는 괴룡을 쏘아보았다. “성호네와 무슨 원쑤 있어?” “해방 전에 우리 일가는 지주였어. 그래서 저 성호 애비한테 청산맞고 항상 투쟁맞았어. 이번에도 저 새끼 아니면 도망쳤을 거야. 아, 어떻게 하면 이 원쑤를 다 갚을가?” “곽재령감 량주를 살해한 죄를 승인하는가?” “그래. 내 죽였다. 난 성호네 소궁둥이를 치면서 살고 싶지 않았어. 곽재령감네 정미소를 팔았다는 말을 듣고 그 돈을 빼앗으려고 했어.” 괴룡은 죄행을 낱낱이 교대하기 시작했다. 전날 괴룡은 시퍼런 비수를 품 속에 품고 어슬렁어슬렁 토성에 다가와 정미소 마당을 살폈다. 그때 곽재령감은 한창 도끼로 장작을 패고 있었다. 사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괴룡은 도적고양이처럼 토성을 뛰여넘어 슬금슬금 뒤로 가서 장작더미에 세워놓은 삽을 들고 곽재령감의 뒤로 슬금슬금 다가가서 뒤통수를 탁 내리쳤다. “앗!” 비명과 함께 곽재령감은 머리로 땅바닥을 쪼으면서 쓰러졌다. 미친 야수 같은 괴룡은 곽재령감을 장작더미 쪽으로 끌고 가서 품 속에서 비수를 뽑아 목을 썩뚝  잘랐다. 곽재령감은 목에서 시뻘건 피를 뿜으면서 당장에서 숨을 거뒀다. 곽재령감의 목에서 뿜긴 피가 줄줄 흐르자 괴룡은 누구한테 발각될가봐 삽으로 톱밥을 퍼다 피를 덮어놓았다. 그는 인차 정미소와 붙은 살림집에 뛰여들어갔다. 집 안에서 곽재령감네 로친 박옥금이 한창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었다. 괴룡은 집 안으로 문을 잠그고 박옥금의 목을 끌어안고 구들에 올라가 쓰러뜨린 후 비수로 목을 두번이나 찔러 살해했다. 그는 이불장이고 옷장이고 번지면서 돈을 찾았다. 옷장  밑에서 겨우 4천원을 들춰냈다. 사실 박옥음은 전날 정미소 값을 받자마자 시내에 내려가 저금해두고 림시 쓸 돈 4천원만 집에 두었던 것이다. 괴룡은 나머지 돈을 어데 뒀을가고 사우나상자랑 찬장이랑 뒤번지면서 계속 찾았다. 그리하여 사우나상자 우에 덮어놓았던 비닐박막에 숱한 지문을 남겼다. 그때 바깥에서 만주가 문을 탕탕 두드리면서 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만약 앞창문에 카텐과 모기장을 치지 않았더라도 만주는 지괴룡을 발견했을 것이다. 당황해난 괴룡은 겁을 집어먹고 뒤창문 모기장을 비수로 쫙 째고 열어젖치고  뛰여내렸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 서쪽으로 뛰여가 토성을 넘어 도망쳤다. 만주가 뒤울 안에 달려가 열린 뒤창문으로 집 안을 들여다보니 어머니가 구들위에 피못 속에 쓰러져 까딱하지 않았다. 만약 만주가 좀 일찍 뒤울 안에 뛰여왔더라면 괴룡과 딱 마주쳤을 것이다. 소를 방목하는 산으로 도망쳐간 지괴룡은 범행했을 때 입은 옷과 신, 범행도구인 비수를 몽땅 태워버렸다. 그러나 지괴룡은 슬기로운 수사대원들에게 납짝 나포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수사대원들은 살인강탈혐의자 지괴룡은 쇠고랑이를 차고 찌푸차에 오르면서도 성호를 돌아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개놈 새끼, 네놈의 소를 판 돈도 빼앗으려고 했어. 그러나 네놈의 주먹이 무서워 손을 쓰지 못했어. 사양실에 들어가봐라. 이불 밑에 시퍼런 비수가 있을 거야. 오늘 저녁에 네놈새끼를 비수로 찔러 죽이고 도망치지 못한게 천추의 한이야.” “개소릴 작작 쳣!” 수길 중대장이 괴룡의 등을 떠밀었다. “허허허.” 괴룡은 미친듯이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고함쳤다. “내 먼저 저승에 가서 기다릴게! 저승에서라도 네놈 일가를 물어뜯을테다!”  한차례 특대참살사건은 서서히 막을 내렸다. 괴룡을 쏘아보는 성호의 마음은 무겁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진짜 승냥이를 집에 끌어들이고서도 눈치채지 못했구나. 부모들과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했는가!)     철주와 만주는 지괴룡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것이 밝혀지자 아연실색했다. 며칠 전에 괴룡은 그를 보고 “왜 돈벌이 잘되는 정미소를 파는가?”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철주는 아무런 궁리도 없이 “양고기뀀점이 잘 되지 않아서 안마원을 차리자고 그래.”라고 대답했다. (그때 괴룡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정미소를 팔겠으면 나한테 팔아라.” 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정미소를 파는 걸 눈치채고 손을 쓸 기회를 노린게 분명했어. 그런데 정미소를 장산에게 판다고 알려주지 않았던가.) “야~ 저 괴룡을 칼탕을 쳐놓아도 원쑤를 다 갚지 못하겠다.” 철주는 찌프에 압송돼가는 괴룡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대성통곡쳤다. 순희도 줄줄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철주는 갑자기 성호 멱살을 잡아 흔들며 꽥꽥 고함쳤다. “야, 이 개새끼야, 네놈새끼 우리 아버지한테 인심을 내는 척하면서 돈을 꿔주지 않았더라면 우리 부모 살해되지 않았을 거야.” 성호는 너무나도 억울해 머리를 홰홰 저었다.  옆에서 순희가 리지를 상실한 철주를 뜯어 말렸다. “정신 나간 소릴 작작 해라. 살인범과 해낼게지. 왕청 같은 성호와 해낼게 뭐야?” 철주는 괴룡을 압송해가는 찌프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행악질했다. 그는 순희를 성호한테 활 밀어버렸다. “원래 너네 둘이 좋아하지 않았구 뭐야?” “야, 어째 이래니?” 순희가 철주한테 눈을 흘기자 철주는 숱한 마을 사람들  앞에서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너네 둘이 콱 살아라.” 철주는 성호한테 씽 달려들었다. “철주야, 왜 이래니? 좀 정신 차려라!” 성호는 순희를 보고 “철주를 데려가라.”라고 했다. “내 힘으로 되겠니?” 순희가 철주한테 채워 저만치 나가 넘어졌다. 성호는 철주를 말리면서 뒤에 말뚝처럼 꽂혀 있는 만주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야, 뭘 하니? 어서 집에 뎌려가라!” 철주는 만주와 순희한테 량팔을 잡혀 끌려가면서도 계속 고함쳐댔다. “성호야, 순희와 첫사랑이라고 항상 외우지 않았니? 네 대학에 가지 못해도 둘이 살았겠는데. 아니야, 아니. 순희 대학에 갔더라면 너네 둘이 살았을게 아니냐?” “야, 오늘 어째 이래니?” 순희는 철주를 마구 줴흔들면서 눈물을 흘렸다. “어서 입 다물지 못해?” “성호야, 이 개새끼야, 이제라도 괜찮아. 내 이젠 아무것도 없잖아? 돈이 있니? 뭐 있니? 이젠 부모마저 없어. 정미소도 없어. 이제라도 순희를 데려다 살아라. 순희만 행복하면 다 된다, 돼! 어, 허허허.” 철주는 실성한 것 같았다. 성호는 부모를 잃은 철주의 비통한 심정을 리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는 무쇠주먹으로 토성을 꽝꽝 내리쳤다. 애꿎은 흙과 자갈이 풀썩풀썩 무너져내렸다.        천지꽃산의 나무들이 놀라 우스스 떨고 태평강물도 치를 떨며 흐르고 있었다.    
217    수필 유와 무 김장혁 댓글:  조회:1119  추천:0  2019-06-12
       수필                           유와 무                                                                                                                                                김장혁     요즘 단위 편집사업만 해도 눈코뜰새 없이 채바퀴 돌듯이 뺑뺑 맴돌아칠 때였다. 설상가상으로 세방살이하는 청년이 세집의 하수도가 막혔다고 날마다 전화를 몇번씩이나 걸어왔다. 고까짓 돈 몇백원을 받고 세집을 내주었더니 얼마나 시끄럽고 스트레스를 받는지 모르겠다. “집주인입니까? 전등이 고장났습니다. 고쳐주십시오.” “하수도가 막혔습니다. 뚫어주십시오.” “화장실의 거울이 깨졌습니다. 새 거울을 달아주십시오.” 지어 이런것까지 요구하였다. “주인님, 석현에 있는 할머니가 불시에 급병에 걸려 가보아야 하겠는데 먼저 돈을 선대해줄수 없습니까? 일주일후에 상해에 있는 어머니가 돈을 부쳐오면 물게요.” (별, 세집주인 보고 마지막엔 별 요구를 다 제기한다. 아, 진짜 미치겠다.) 나는 너무 열통이 터져서 안해를 보고 당장 “저 집을 팔아버리고 홀가분하게 살자.”고 말하였다. 세집을 주고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았는가 하면 그외에도 택시를 경영할 때에도 별의별 스트레스를 다 받았다. 교통경찰대대 차량관리소와 교통운수관리소에 가서 계도검사, 년도검사를 맞아야 하였다. 그런데 한번에 통과될 때가 아주 적었다. 흔히 몇번 검사를 맞혀야 하였다. 게다가 택시는 고정된 장소에서 경영하는 레스토랑이나 슈퍼마켓이나 나이트클럽과는 달랐다. 쩍하면 차사고를 냈다. 그러면 네탈 내탈 하면서 교통경찰대대에 가서 시비를 한후 차수리비를 배상하고 자기 택시도  수리하여야 하였다. 어떤 때에는 차사고가 나서 개명치 못한 대상을 만나면 혼쭐났다. 유관 부문에 인맥이 있느라고 세워놓은 차에 부딛쳐 넘어간 애를, 아무 상처도 없는 애를 입원시켜놓고서 치료비를 내라고 생떼질을 쓰는 애비에미로, 분명 자기 차의 주요 책임인데도 모든 책임을 남에게 들씌우는 차임자로 별의별 작자들과 만나 옥신각신 다퉈야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에게서 별의별 스트레스를 다 받아야 하였다. 그러다나니 어데 가 앉아있어도 항상 오늘 또 차사고나 나지 않았는가고 근심을 하다나니 마음이 편안할 새 없었다. 한번은 딴 마음을 먹은 운전수가 택시를 몰고 손님도 싣지 않고 돈화시를 벗어나 길림쪽으로 가는척하다가 길을 바꿔 흑룡강성쪽으로 도망쳤댔다. 다행히 내가 잡지 기자사업을 하면서 전주 각 현, 시 공안국 책임자들을 잘 알았기에 돈화 교통경찰대대 교도원에게 전화를 걸었기에 경찰들이 택시를 쫓아가 운전수를 붙잡아 택시를 연길에로 되돌려보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가옥소유증을 눌러두고 대부금을 맡아 산 9만원짜리 택시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정말 택시를 경영한 8년, 차가 있은 10년 사이에 나는 그 놈의 차로 하여 근심걱정에 싸여 살면서 그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속을 태웠는지 모른다. 자기 집에 택시가 있어 가시집에 가거나 고향에 갈 때 편리한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러나 택시가 있어 편리하고 즐거울 때보다도 택시로 하여 받은 스트레스와 차사고가 날가봐 근심걱정할 때가 몇십배나 더 많았다. 사람은 사노라면 없는것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집이 없이 세집살이를 할 때에는 자그마한 집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갈망하고 차가 없을 때에는 남들이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것을 보면 부럽다. 그러나 그런것들이 있을 때에만이 없을 때의 “무(无)” 가 얼마나 홀가분하고 편안하고 좋았는가를 알수 있다. 나는 자가용을 다시 사지 않을 예산이다. 택시가 없어지자 온갖 스트레스에서 해탈되여 근심스러운 일이 없어 얼마나 홀가분하고 좋은지 모르겠다. 아무리 택시까지 있어도 택시가 없는 사람보다도 편안하지 못하고 별의별 당해보지 못한 고생을 다 해야 하지 않았던가! 세집살이를 하다가 40평방짜리 집이 있는것도 얼마나 만족해하면서 알콩달콩 깨알이 쏟아지게 살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기 집이 있고 세집까지 주었지만 세집값의 노예가 되고 세방살이군들의 “종”으로 되여 하수도구멍을 뚫고 전등을 수리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얼마나 곤혹한가! “유”와 “무”는 변증법적 대립물이자 통일물이다. “무”로부터 “유”에 이르자면 그만큼 속을 태우고 고생하여야 하고 근심걱정을 하여야 한다. 아무리 부자라고 하여도 있어서 즐겁기만 한것이 아니라 날마다 밤중까지 그만큼 고생과 근심걱정을 하여야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없어서(“无” 여서) 고생을 조금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베풀줄 안다면 그만큼 편안하고 홀가분하고 근심없이 살수 있을것이 아닌가.   그래서 경이나 읽고 죽이나 마시는 중이 세상에서 제일 편안하다고 하는것일가? 반면에 권세욕과 탐욕에 눈이 어두워 뭐나 다 가지려고 욕심을 차리면 남의 미움을 받을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고 항상 근심걱정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것이다. 세도를 부리면 그만큼 원쑤도 많아지고 지어 목숨을 잃는 일까지도 있을  것이다.                                              주: 본 수필은 2011년  "연변문학"에  발표된 수필임
‹처음  이전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