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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들비위 딸비위 김장혁
2019년 03월 17일 10시 27분  조회:473  추천:0  작성자: 김장혁








                            수필
                           아들비위 딸비위

                                                                                                                     김장혁
        나는 전통파인데다가 외동아들이여서 특별히 아들비위를 몹시 한것 같다. 세집살이를 하면서 아이를 낳지 말자고 색시와 진작 약속해놓았건만 정작 첫 애를 류산하자 가시집에 아파 누워 있는 색시를 주의하지 않았다고 노발대발하면서 서너길씩 펄쩍펄쩍 뛴적이 있다. 아버지가 사돈보기를 할 때 처음 내 약혼녀를 보자 “약해서 애내기를 할수 있겠는가?”라고 근심하던 말씀을 떠올리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지어 며느리가 약해서 애를 낳지 못할가봐 근심하던 나머지 어머니를 보고 닭고음을 해달라고 해서 들고 몇십리 밖의 내 가시집에까지 찾아가 갓 류산하고 앓아 누워 있는 며느리를 문안하기까지 하였댔다.
한해 후에 사랑스러운 내 색시가 아들을 낳자 온 집안은 경사나 난듯하였다. 나는 포대기에 싼 갓난애를 꼭 껴안으면서 얼마나 속이 든든했는지 몰랐다. 아들이 있으니 집안의 대를 잇게 되였다. 장차 우리 가문이 날따라 번성해지리라는 신심이 생겼다.
돌생일날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해 기른 닭을 씨암탁도 남기지 않고 몽땅 잡아 손자의 돌생일 손님상에 올렸다. 청년교원들이 술상에 앉아도 항상 아들을 낳은 우리들은 상좌에 앉아서 딸을 낳은 애아버지들을 아래상에 쫓아보내기까지 하면서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렁거리였다.
그만큼 아들이 있어 기뻤고 어깨가 으쓱하였고 행복하였다. 그만큼 아들이 있어 속이 든든하였고 일을 하고 돈을 벌 힘이 용용 솟구쳤다. 또 아들이 있어 문학작품도 많이 쓰고싶었고 뭔가 해놓고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아들은 내 기쁨이였고 행복이였고 희망이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들을 위해 해놓은 일이 너무나도 적은것이 마음에 내려가지 않는다. 한메터 팔십도 거의 되는 장한 길림대학생 아들을 낳아준 안해를 위해 해놓은 일이 너무 적은것이 속에 내려가지 않는다. 아들애를 낳고 하혈을 너무 많이 해 홀쪽해진 안해의 그때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듯이 아프다. 아들을 본 기쁨에 머리가 뜨겁기만 하였지만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을 낳은 안해를 너무나도 등한하고 쨍하게 사랑해주지 못한것으로 하여 마음이 아프다. 어찌하면 한구들에서 20여년 살면서 안해의 허약해지는 몸도 잘 살피지 못하였을가? 이제라도 전에 주지 못한 사랑을 처자에게 몰부어주자. 알콩달콩 처자를 사랑하면서 깨알이 쏟아지게 랑만적으로 살아보자.
사람이란 만족이 없는가봐. 나는 장한 아들을 보았는데도 딸비위를 얼마나 하였는지 몰라. 텔레비죤이거나 길거리에서 칠색색동저고리를 입은 녀자애들을 보면 나도 저런 딸을 봤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비위를 썼다. 그래, 덕대 같은 아들에 예쁜 딸애까지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내 혼자서야 어찌 딸애를 낳을수 있겠는가? 아들애가 대여섯살이 되여서부터 줄곧 두번째애를 낳자는 내 요구를 들었지만 안해는 요 핑게 조 핑게 대면서 낳아주지 않았다.
“여보세요. 아빠트 한채도 온전한게 없이 애를 낳아서 뭘 해요. 고생시키자고 또 낳아요? 나도 애 둘을 키우느라고 사업을 잘 하지 못하면 무슨 출로가 있겠어요? 아예 생각지도 말아요.”
그래서 나는 기자와 편집 사업을 하느라고 밤낮없이 맴돌면서도 과외로 택시업을 하여 백평방메터도 넘는 집을 갖춰놓고 딸애를 보자고 안해를 동원하였다.
그러나 안해가 하는 말은 얼마나 실망스러웠던가?
“아빠트만 있으면 저금 한푼도 없이 애 둘을 어떻게 길러요?”
나는 또 몇해 아득바득해 돈을 마련해놓고 두번째 애를 낳자고 하였다. 그러나 안해는 또 요런 핑게를 대는것이 아니겠는가!
“여보세요. 나를 죽이자고 그래요. 우리 병원 의사네 40고개에 당장 오를  안해가 애를 낳다가 산대우에서 출혈해 죽은걸 몰라요. 좀 주책머리 없는 말을 하지도 마세요. 이젠 며느리를 삶아서 손자와 손녀를 안아볼 궁리나 하세요.”
그렇다, 이젠 40고개에 오른 안해를 보고 애를 낳으라고 강요하는것은 산대우에서 애를 낳다가 죽으라는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24살이나 되는 아들이 이제 몇해 아니면 장가갈 판인데 두번째 애를 보려는것은 얼마나 때가 지난 말인가. 그렇게 묘한 핑게를 대고 이제껏 두번째 애를 낳아주지 않은 안해가 얄밉기만 하다. 이제 애원하고 원망하고 욕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젠 널직한 아빠트가 있고 생활조건이 훨씬  좋아졌지만 나에게는 딸애란 있을수 없게 되였다. 나는 한평생 딸이 없는 유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장차 아들며느리를 보면, 아니 우리 조선족 새 신랑과 신부들을 보면 나는 이런 속심의 말을 하고싶다.
내 평생 유감은 아들에게 동생을 낳아주지 못하고 2대 외동아들을 만들어놓은것이다. 너희들은 절대 우리 부부의 유감을 재연하지 말아라. 애들도 형제간이 있어야 한다. 애들 둘이면 더 분발하여 그 애들을 키울 돈을 벌수 있는 법이다. 옛날 우리 어머니는 아침에 죽물이라도 마시고나면 저녁에 솥에 앉힐 쌀이 없어  근심하면서도 애들을 열이나 낳아서 넷이나 병으로 죽이면서도 여섯을 남겼다. 바로 우리 어머니와 같은 조선족어머니들이 계셨기에 오늘 우리 민족이 살아남아있다. 한족들은 전국춘추시기부터 애들을 많이 낳는 녀성들에게 상으로 밭이나 황금을 내렸고 생육년령이 되여도 애를 낳지 않거나 낳지 못하는 녀성에게는 벌을 주는 정책을 써서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위대한 민족으로 되지 않았는가? 너희들은 아들이든 딸이든 낳기만 해라. 우리 부모들이 너희들을 도와 손군들을 한둘은 길러줄게.
나는 애들을 둘 이상 키운 조선족의 어머니들을 보면 “우리 조선민족의 위대한 어머니들”이라고 소리높이 찬탄하고 싶다. 바로 그들이 있으므로 하여 인구마이나스장성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 중국조선족이 인구위기를 넘기고 날따라 번성할 것이 아닌가? 그렇고 보면 아들비위 딸비위는 가족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아름다운 야망이 아니겠는가!
 
                                          본 수필은 연변녀성잡지 수필상 수상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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