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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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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민요詩, 詩人, 讀者... 댓글:  조회:9003  추천:0  2016-01-14
20년대의 시 - 개인적 정서에 민족적 운율을 살린 풍부한 시가 쓰임 - 서구의 여러 문예 사조를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승화시킴 - 주요한의 , 김소월의 , 이상화의 , 김동환의 , 변영로의 , 한용운의 - 현대시조의 부흥 (시조부흥운동) : 이은상, 이병기 - 또 다른 특징은 경향시의 등장이다. - 사회 모순과 개혁을 위한 진보적인 사상을 담은 참여시가 많이 쓰임 - 언어를 매우 거칠게 사용한 단점이 있는 반면, 시의 영역을 넓혔다는 평가도 받는다. ④ 1930년대의 시 - 언어의 연마와 새로운 표현기법으로 시의 깊이를 더함. - 모더니즘 계열의 시 등장 - 정지용의 , 이상의 , 김영랑의 , 서정주의 , 이병기의 ⑤ 1940년대의 시 - 일제의 전쟁 도발로 인한 사회, 문화적 암흑기로 친일문학이 나오기도 함. - 한편에서는 자연을 노래한 작품과 저항 문학도 꽃을 피웠다. - 윤동주의 , 이육사의 , 조지훈의 , 박두진의 ,     1. 이야기가 있는 노래 국경의 밤(김동환)/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백석) 여승(백석)/ 여우난 곬족(백석)/ 고향(백석)/ 낡은집(이용악)/ 오랑캐꽃(이용악) 2. 부정적 현실에 대한 체념과 절망의 노래 저문 강에 삽을 씻고(정희성)/ 남사당(노천명)/ 추일서정(김광균)/ 와사등(김광균)/ 목마와 숙녀(박인환)/ 바다와 나비(김기림)/ 나비의 여행(정한모)/ 슬픈 구도(신석정)/ 길(김소월)/ 봄은 간다(김억) 3. 교훈과 설득의 노래 무등을 보며(서정주)/ 설날 아침에(김종길)/ 해마다 봄이 되면(조병화)/ 산(김광섭)/ 설일(김남조)/ 흥부 부부상(박재삼)/ 안민가(충담사)/ 용비어천가 제 125장(정인지 등)/ 오륜가(주세붕)/훈민가(정철) 4. 이데올로기의 혼란상을 반영한 작품 울릉도(유치환) /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휴전선(박봉우)/ 초토의 시8-적군묘지 앞에서(구상)/ 학(황순원)/ 광장(최인훈)/ 장마(윤흥길)/ 꽃덤불(신석정) 5. 박두진의 기타 작품 - 어서 너는 오너라 / 청산도/ 도봉/ 해 6. 비장미를 노래한 작품들 독을 차고(김영랑)/ 교목(이육사)/ 일월(유치환) /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에(한용운)/ 독짓는 늙은이(황순원) 7.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 꽃을 위한 서시(김춘수)/ 꽃(김춘수)/ 능금(김춘수)/ 오렌지(신동집) 8. 민중의 삶을 노래한 건강성 풀(김수영)/ 벼(이성부)/ 농무(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신경림)/ 저문 강에 삽을 씻고(정희성) 9. 운명적 삶에 대한 순응(운명론적 사고) 목계장터(신경림)/ 자화상(서정주)/ 규원가(허난설헌)/ 속미인곡(정철)/ 역마(김동리)/ 무녀도(김동리)/ 까치소리(김동리)/ 누항사(박인로)/ 청산별곡(작자 미상) 10. 사별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1-감정의 직서적 표출) 공무도하가(백수광부의 처)/ 귀촉도(서정주)/ 초혼(김소월) 11. 사별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2-감정절제) 은수저(김광균)/ 유리창(정지용)/ 하관(박목월) 12. 사별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3-슬픔의 초극과 종교적 승화) 눈물(김현승)/ 제망매가(월명사)/이별가(박목월) 13.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작품들 황조가(유리왕)/ 가시리(작자 미상)/ 동동(작자 미상)/ 서경별곡(작자 미상)/ 송인(정지상)/ 어져 내 일이야(황진이)/ 아리랑(작자 미상)/ 진달래꽃(김소월) 14. 안분지족을 노래한 작품들 남으로 창을 내겠소(김상용)/ 무등을 보며(서정주)/ 설날 아침에(김종길)/ 상춘곡(정극인)/ 누항사(박인로)/ 만흥(윤선도)/ 짚방석 내지 마라(한호)/ 어부사시사(윤선도) 15. 종교적 깨달음과 절대자에 대한 염원을 노래한 작품들 가을의 기도(김현승)/ 설일(김남조)/ 알 수 없어요(한용운)/ 겨울 바다(김남조)/ 눈길(고은)/ 동천(서정주)/ 승무(조지훈)/ 눈물(김현승) 16. 유랑(방랑)의 삶을 노래한 작품들 오랑캐꽃(이용악)/ 기항지1(황동규)/ 길(김소월) / 고향(정지용)/ 떠나가는 배(박용철)/ 고향 앞에서(오장환)/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이용악) 17. 현실 극복 의지를 노래한 작품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김소월)/ 님의 침묵(한용운) 18. 설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들 신부(서정주)/ 귀촉도(서정주)/ 접동새(김소월)/ 정읍사(어느 행상인 아내) /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목계정터(신경림)/ 석문(조지훈)/ 간(윤동주) 19. 부정적 상황에 대한 초극 의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광야(이육사)/ 십자가(윤동주)/ 간(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윤동주)/ 절정(이육사)/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파초(김동명) 20. 현대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 성탄제(김종길)/ 성북동 비둘기(김광섭)/ 새(박남수)/ 나비와 광장(김규동)/ 가을에(정한모)/ 생의 감각(김광섭)/ 종소리(박남수)/ 아침 이미지(박남수) 그 외; * 가을의 이중적 의미와 종교적인 신의 섭리 + 고독: 가을의 기도(김현승) * 실현을 통한 삶의 성숙: 국화 옆에서(서정주) * 자연과의 조화와 사랑을 노래한 작품: 백구야 말 물어보자(김천택) *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다룬 작품: 가을에(정한모) *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드러낸 작품: 깃발(유치환) * 안빈낙도/빈이무원을 노래한 작품: 누항사(박인로) *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 향수(정지용)/ 파초(김동명) * 전원적, 평화적인 작품: 그 먼나라를 알으십니까(신석정) * 아버지의 사랑 노래들: 가정(박목월), 아버지의 마음(김현승) ■ 수능 출제 현대시 & 예상 1994년 1차 - 산(김소월) 생명의 서(유치환) 폭포(김수영) 1994년 2차 - 찬송(한용운) 석문(조지훈) 그의 행복을 기도드리는(신동엽) 1995년 - 서시(윤동주) 바위(유치환) 1996년 - 자야곡(이육사) 삼수갑산(김소월) 산(김광섭) 1997년 - 이별가(박목월) 즐거운 편지(황동규) 1998년 -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신석정) 별헤는 밤(윤동주) 1999년 - 진달래꽃(김소월) 이육사(꽃) 2000년 - 향수(정지용) 외인촌(김광균) 2001년 - 봄비(이수복) 서시(윤동주) 귀촉도(서정주) 나그네(박목월) 가지 않은 길(프로스트) 2002년 - 가난한 사랑노래(신경림) 추억에서(박재삼) 그리움(이용악) 2003년 - 나룻배와 행인(한용운) 내 마음을 아실 이(김영랑) 우리가 물이 되어(강은교) 2004년 - 고향(백석) 내가 만난 이중섭(김춘수)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서정주) 2005년 - 은행나무(곽재구) 낡은 집(이용악) ------------------------------------------------ * 주의 깊게 봐 둘 시 천상병 - 귀천 / 행복 신동엽 - 봄은 / 산에 언덕에/ 껍데기는 가라 박두진 - 향현 / 청산도 / 어서 너는 오너라. 김춘수 - 꽃/ 꽃을 위한 서시(신동집- 오렌지) 조지훈 - 석문(서정주, 신부) / 낙화 이육사 - 교목 / 김영랑 - 독을 차고 김지하 - 타는 목마름으로 / 새봄 김광규 - 상행 /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김용택 - 섬진강 김수영 -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박재삼 - 수정가 황동규 - 풍장 / 몰운대행/ 기항지 //////////////////////////////////////////////////////// 1.민요시의 특징   민요시란 한마디로 민요를 지향하면서 씌어진 개인창작시라고 정의될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민요시는 구비전승 되는 구비문학이 아니라 활자 매체를 통하여 교류 되는 것입니다. 둘째, 민요가 가사, 시조, 시가의 성격을 모두 띄고 있는 반면 민요시는 개인창작에 의한 시감나으로 성립이 된것입니다. 또, 민요시는 민요의 서민계층이었던 것에 비하면 비교적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로 그 표현 방법에 있어서 현대시적인 특성과 더 나아가 서구적인 특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2.대표작품   1)김억의 민요시   버들기지   무심타 봄바람에 꽃은 팻다가   헛되이 그 바람에 지고 맙니다.   서럽지 안을까요 서관아가씨   오늘도 능라도다 버들개지는   물우를 혼자돌다 을허갑니다..   가엽지 안을가요 서관 서관 아가씨   2)주요한의 민요시   할미꽃   강건너 벌판에 할미꽃 핀다 벌건너 재넘어 할미꽃 핀다 볼처쳐 뿌리고간 소업은 우슴피어나 강건너 벌판에 쓴 냄새 퍼지는 할미꽃 사랑꽃   3)김소월의 민요시   초혼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여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마듸는 끗끗내 마자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든 그 사람 이여 하랑하든 그 사람 이여   4)김동환의 민요시   적성을 손가락질 하며   불국에는 날마다 밤마다 눈이 오느니 회색하늘 속으로 눈이 퍼부슬때마디 눈속에 파뭇기는 하-면 북조선이 보이느니   3.모더니즘의 의미   모더니즘이란.   넓은 범위에서는 기존의 틀에 맞춰진 관습과 고정관념에 저항하는 문화적 성향을 말하는 겁니다..    모던이라는 말 자체가 현대의.. 이란 뜻이기 때문에.. 어원적 의미로 이해하셔도 좋을것 같군요..   김기림 :  시집 저서   정지용 :      김 광균 :   오장환 :     4. 정지용의 시적 경향   1925년경부터 1933년경까지의 감각적인 이미지즘의 시,   1933년 '불사조' 이후 1935년경까지의 카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적인 시,   그리고 '옥류동', '구성동' 이후 1941년에 이르는 동양적인 정신의 시등으로 변모하였습니다.. ////////////////////////////////////////////// 7. 시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노래한다 인간을 포함한 뭇 생명체의 동일한 운명은 태어난 이상 마땅히 죽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로병사는 동서고금의 문학작품에 나타난 가장 보편적인 소재요 주제입니다. 제게 소설작법을 가르쳐주신 김동리 선생님은 "소설로 쓸 만한 소재가 없어 고민하는 학생은 '죽음'을 갖고 써보게. 우리에게 죽음만큼 친숙한 것은 없으니까."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실 텔레비전 뉴스나 조간신문에 누군가의 '죽음'이 보도하지 않는 날이 있던가요?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하루를 살면서 하루를 죽이는, 즉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운명공동체인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작품을 쓰다가 소재나 주제가 고갈되었다고 여겨지면 누군가의 죽음을 갖고 시를 써보십시오. 죽음이 아니면 탄생과 늙음과 질병 가운데 하나를 택해 써보셔도 좋겠습니다. 묘비들 사이로 아이가 달려온다 기억의 저편으로 아득히 건너간 생애들이 몇 줄 글자로 남아 무릎 키 세우고 있는 사이 네 살배기 아이가 무어라 소리치며 저쪽에서 뛰어 온다 Beloved Wife and Mother 1939-1980 이국 땅에서의 크고 작은 기쁨 설레임과 회한의 날들 꿈결같이 아득히 사라지고 조국 하늘 아래 한 여인의 평생은 한 줄 이국 글자 묘비명으로 남았는데 한 명의 딸과 의학박사란 칭호만이 한 남자의 사십 년 생애가 남긴 모든 것이어서 의·학·박·사 이름 위에 새겨놓은 네 글자 살아남은 자의 애달픈 마음 그 옆의 묘비는 전하는데 내가 지상에 남기고 싶은 단 하나의 풍경처럼 줄지어 선 비석들 넘어 딸아이가 온다 팔랑팔랑 꿈속 나비 같다 ―김기중, [공원 묘지에서] 전문 현대시 김기중은 외국의 한 공원 묘지에서 한국인의 이름을 발견하고서 사뭇 처연한 심사에 사로잡혀 이 시를 썼을 것입니다. 시에 나타난 가족사는 이렇습니다. 한 남자가 40년을 살아 지상에 남겨놓은 것은 한 명의 딸과 의학박사란 호칭이 전부였습니다. 즉, 의학박사의 신분으로 외국의 묘지에 묻혔으니 한 남자의 그리 길지 않은 생애에 공부가 차지한 세월이 거의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조국의 하늘 아래 남아 있던 아내의 '평생'이 남편의 묘비에 한 줄 이름으로 남게 되었을 뿐이니 그 감회가 착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착잡한 감회가 마지막 연에 담겨 있습니다. 딸아이는 아마도 성묘하러 온, 죽은 이의 자식이겠지요. 줄지어 선 비석들, 즉 수많은 주검을 뛰어넘으며 가장 최근에 죽은 이의 한 점 혈육이 꿈속 나비같이 팔랑팔랑 옵니다. 사서 중 하나인 {장자}에는 장주가 꿈속에서 본 나비의 고사가 나옵니다. 장주가 꿈에서 호랑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호랑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꾼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는, '물화(物化)'를 설명하는 고사가 생각납니다. 사람의 생이란 일장춘몽이며 남가일몽이란 말이 거짓이 아닙니다. 생에 아무리 집착한들 저승사자의 방문을 막을 길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게 되는 것이며,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일 뿐일까요? 예술은, 시는 우리 목숨을 부활할 수 있게 합니다. 여러분과 저의 사후에 우리가 써놓은 시를 읽고 누군가 감동을 한다면 우리는 그 독자의 마음속에서 부활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는 영원 회귀를 꿈꾸는 것입니다. 8. 시는 문명비판을 지향한다 20세기를 풍미했던 가장 강력한 시적 사조는 모더니즘이었습니다. 모더니즘이 표방하고 있는 정신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문명비판입니다. 영화는 기술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문명과 친화가 잘 이뤄지는데 문학은 이상하게도 문명하고는 좀처럼 어울리지를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정보를 제공하고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며 오락의 기능을 다하는 컴퓨터를 갖고 쓴 시가 있습니다. 어언 10년 전 일이 되었는데, 러시아의 한 해커가 인터넷을 통해 시티뱅크에 침투해 1천만 달러를 훔쳐간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컴퓨터를 잘 다루면 복면을 하고 은행털이 강도로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미국의 10대 해커들이 뉴저지 공군기지의 한 연구소에 침투한 일이 발생, 미국 사회를 경악케 하기도 했고, 1997년 초에는 호주와 에스토니아의 해커들이 3만 통이 넘는 전자 메일을 쏟아 부어 버지니아 랭글리 공군기지의 컴퓨터 네트워크가 마비된 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정보 전달이라는 약과 함께 시스템 파괴라는 병을 주는 것이 컴퓨터입니다. 컴퓨터가 사람의 머리와 손발을 대신하여 정보사회의 중요한 전달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학계에서는 '테크노 의존증' 혹은 '컴퓨터 중독증'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문명병이 등장하여 급속히 확산되는 중이라고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의사들은 기기 자체에서 나오는 전자파도 문제이지만 컴퓨터를 너무 오래 사용하는 바람에 시력장애·경근완 질환(목·어깨·팔에 통증이 오는 병)·두통·소화불량 등의 신체장애는 물론 대인기피증·광장공포증·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이 컴퓨터를 많이 다루는 현대인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컴퓨터를 소재로 한 시를 젊은 시인들이 쓰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 대다수는 사실 눈만 뜨면 컴퓨터를 켜고, 컴퓨터를 꺼야 잠자리에 들지 않습니까.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이 기억력 나쁜 고물 PC를 새 걸로 바꾸기로 결심. 언젠가 PC 카탈로그에서 보았던 삼성 알라딘을 사리라 마음먹는다 내 글이 안 되는 건 순전히 도구가 용산 조립품 286AT이기 때문이라 밤마다 기도하며 써 보았지만 고매해야 할 내 시들은 언제나 날림 조립식인 걸 알라딘을 사야지! 그의 자판을 요술 램프처럼 살살 만져 주면 나만의 유능한 종이 나타나 내 명령어들을 충실히 실행할 것이다 넘치는 하드 용량, 풍만한 그의 언어는 이 미궁에서 나의 탈출을 도우리라 사실 이 느림보 286AT에도 요정이 있다 언젠가 치약으로 열심히 PC 본체를 닦다가 난 보고 말았다 디스크 드라이브에서 하품을 켜며 기어 나오는 발이 안 보일 만큼 작은 바퀴벌레 새끼를, 나를 비웃으며 다시 제 집인 양 기어 들어가는 그 자식을 향해 재빨리 플로피 디스크를 몇 번이나 쑤셔 넣었다 뺐다 하며 압살을 노렸지만 디스크만 에러났던 기억. 가끔 모니터 속의 내 글 위로 그 바퀴들이 지나가지는 않을까, 그는 너무 두렵다 내가 잠든 사이 테트리스를 즐기고 어쩌면 이전에 헥사를 지우고, 가끔씩 바이러스를 먹이는 것도 그 요괴임에 난 짙은 혐의를 두었다 베네치아 워드게임에서 '바퀴벌레'란 단어가 내려와 나를 덮칠 때, 난 확신하였다 나의 체제는 이미 위협받고 있었다 놈은 밤마다 용량 작은 하드를 기웃거리며 내 글을 비웃을 거 아닌가? 무슨 시가 이래, 하면서도 내가 방심한 사이 내 연애시를 도용해 행여 또래 암컷들을 사귀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나의 신성한 작업실에서…… 온갖 상스런 상상들이 아! 또 잡종의 새끼를 쳐서 손잡고 다니겠지 아, 나의 약한 정신은 이미 도굴되었고……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김창진, [알라딘을 사야 한다] 전문 컴퓨터는 우리의 친구이자 원수이고 상관이자 부하입니다. 컴퓨터를 소재로 한 이 시를 유심히 읽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요술 램프를 문지르면 '유능한 종'이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는 {천일야화} 속 유명한 이야기의 그 유능한 종이 알라딘이죠. 이 시에서는 삼성전자에서 만든 신형 컴퓨터의 제품명이 알라딘이므로 알라딘은 중의법으로 쓰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신형과 구형의 차이가 아닙니다. "디스크 드라이브에서 하품을 켜며 기어 나오는/발이 안 보일 만큼 작은 바퀴벌레 새끼들"에 대한 이해가 이 시를 이해하는 요체가 됩니다. 요정·바퀴벌레·요괴는 같은 존재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놈들은 시인이 잠든 사이 테트리스를 즐기고, 가끔씩 바이러스를 먹이고, 내 연애시를 도용해 암컷들을 사귀고, 나의 약한 정신을 도굴하는 존재입니다. 여기서의 바퀴벌레는 인간에게 해악을 준다고 알려져 있는 발 빠른 곤충인 그 바퀴벌레가 아닙니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들어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에 들어 있는 정보를 파괴하고, 제 마음대로 침입해 남의 정보를 빼 가는 자는 얼굴을 알 수 없는 익명의 존재입니다. "또 잡종의 새끼를 쳐서 손잡고 다니겠지"라는 구절로 보아 그들은 증식까지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 연후에 시인의 약한 정신은 이미 도굴되었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힘주어 결론짓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타인을 향해서는 경고를 주고, 스스로는 각성하자고 다짐해본 것입니다. 인류의 공적(公敵)으로 등장해 암약하는 해커와 바이러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저는 이 시를 통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이 시는 문명비판시이며 일종의 현실풍자시입니다. ====================================================================================   214. 빗물 같은 정을 주리라 / 김남조                             빗물 같은 정을 주리라                              김 남 조   너로 말하건 또한 나로 말하더라도 빈손 빈 가슴으로 왔다 가는 사람이지   기린 모양의 긴 모가지에 멋있게 빛을 걸고 서있는 친구 가로등의 불빛으로 눈이 어리었을까 엇갈리어 지나가다 얼굴 반쯤 봐버린 사람아 요샌 참 너무 많이 네 생각이 난다   사락사락 싸락눈이 한 줌 뿌리면 솜털 같은 실비가 비단길 물보라로 적시는 첫봄인데 너도 빗물 같은 정을 양손으로 받아주렴   비는 뿌린 후에 거두지 않음이니 나도 스스로운 사랑으로 주고 달라진 않으리라 아무 것도   무상으로 주는 정의 자욱마다엔 무슨 꽃이 피는가 이름 없는 벗이여     김남조 시집 중에서         김남조 연보   1927년 9월 26일 대구에서 김소도와 최정욱의 장녀로 출생.   1940년 대구시 남명초등학교 졸업.   1944년 일본 후쿠오카 큐슈여고 졸업.   1947년 서울대학교 문예과 졸업.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문과 입학.   1948년 ‘연합신문’에 시 ,‘서울대 시보’에 등 작품 발표.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문과 졸업. 마산 성지여고 및 마산고 교사.   1953년 이화여고 교사. 서울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강사. 첫 시집 간행.   1955년 제2시집 간행. 숙명여대 전임강사, 조각가 김세중과 결혼   1958년 제3시집 간행. 제1회 자유문인협회상 수상. 숙명여대 조교수.   1959년 한국여류시선집 편저.   1960년 제4시집 간행.   1961년 숙명여대 부교수.   1962년 박목월과 공동문집 간행.   1963년 제5시집 간행. 제2회 오월문예상 수상.   1964년 숙명여대 교수. 첫 수필집 간행.   1966년 제2수필집 간행.   1967년 제6시집 및 제3수필집 간행.   1968년 제4수필집 간행.   1971년 제7시집 및 제5수필집 간행.   1972년   및 제6수필집 간행.   1974년 제8시집 간행. 제7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75년 간행.   1976년 제9시집 간행.   1977년 제7수필집 간행.   1979년 제8수필집 간행.   1981년 가톨릭문우회 대표   1982년 제10시집 간행.   1983년 제11시집 , , 제9수필집 간행.   1984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교육개혁심의위원회 위원.꽁트 간행.   1985년 일본어 번역시집 간행.        제40회 서울시 문화상 수상. 잠언집 발행.   1986년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 남편 김세중 교수 별세. 잠언집 간행.   1987년 방송위원회 위원.   1988년 제12시집 간행.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 한국방송공사(KBS) 이사.   1990년 제12차 서울 세계시인대회 계관시인(桂冠詩人). 예술원 회원.   1991년 서강대학교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음.        제10수필집 , 간행.   1992년 제33회 3․1문화상(예술부문) 수상.   1993년 숙명여대 정년퇴임, 명예교수. 국민훈장 받음.        제11수필집 및 영역시집 간행.   1995년 13시집 및 일역시집 간행.   1996년 독일어 번역시집 간행. 제41회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   1998년 받음.        제14시집 및 일역시집 구상, 김광림, 김남조 공저 간행.     1999년 제11수필집 간행.   2000년 방송문화진흥회(MBC) 이사. 일본 세계시인제에서 제25회 수상   2002년 한국대표시인선집 간행.   2003년 스페인어 번역시집 간행.   2004년 제15시집 간행.   2005년 간행.   2007년 제11회 만해대상 수상.   2008년 대한민국 건국60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 국민원로회의 위원. 한국문인협회 고문.   ------------------------------------------------------------------------------------------ 215. 가난한 이름에게 / 김남조                      가난한 이름에게                              김 남 조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는 쓸일 모 없이 살다 갑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여인을 만나지 못해 당신도 쓸일 모 없이 살다 갑니까   검은 벽에 검은 꽃그림자 같은 어두운 향료   고독 때문에 노상 술을 마시는 고독한 남자들과 이가 시린 한겨울 밤 고독 때문에 한껏 사랑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들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고독이 아쉬운 내가 돌아갑니다   불신과 가난 그중 특별하기론 고독 때문에 어딘가를 서성이는 고독한 남자들과 허무와 이별 그중 특별하기론 고독 때문에 때로 죽음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들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머리를 수그리고 고독이 아쉬운 당신이 지나갑니까   인간이라는 가난한 이름에 고독도 과해서 못 가진 이름에 울면서 눈감고 입술을 대는 밤   이 넓은 세상에서 고독한 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 우리 모두 쓸일 모 없이 살다 갑니다     김남조 시집 중에서    ================================================ 시와 시인, 그리고 독자들                               / 박제천  시란 무엇인가. 여기 대해서는 역사 이래로 수많은 답이 마련돼 있다. 그 답안을 읽는 일은 어찌 보면 시문학사 전체를 섭렵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시인된 자는 거의 누구나 이 질문에 매력을 갖고, 자문자답해 보기 때문이다. 하늘의 성좌도를 바라보듯, 그 답안들은 시인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휘황하게 빛난다.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칠 만한 답안도 있고, 그 답안을 화두 삼아 하염없이 빠져들 만큼 황홀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는 그 수많은 답안 중에서도 엘리엇이 말한 ‘시에 대한 정의에는 정답이 없다는 정의’가 가장 고전적인 모범 답안으로 꼽힌다.  시인들은 누구나 시란 그 무엇이 아닐까 궁리하고, 거기서 얻은 깨우침을 한편의 시로 써나간다. 다시 말해 시인들은 평생에 걸쳐 그들이 찾아 헤매고, 꿈꾸며 느끼고 깨우치는 시를 써나간다. 작품 한편 한편이 그 순간 순간 시인이 찾아낸, 시에 대한 최선의 정의라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시에 대한 누군가의 특별한 정의에 시인 모두가 동의한다는 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이 아니겠는가. 이 때문에 엘리엇의 정의는 시를 쓰고자 하는 시인들, 시란 무엇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최상의 화두로 남아 있다. ‘시에 대한 정의에는 정답이 없다는 정의’로 요약된 이 모범 답안은 대체로 시인들을 만족시키고 있지만 일반 독자로서는 아쉽기 그지없는 답안이다. 다시 말해 시에 대한 전문적인 정의이기에 다만 시가 무엇인지 궁금한 일반 독자의 궁금증까지 채워주지는 못한다. 시의 정의에 관한 독자용의 해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가 무엇이고, 시를 읽으면 무엇을 배우거나 즐기는지, 무엇을 얻거나 깨우치는지 알고 싶어하는 단순한 독자들의 궁금증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게 마련이다. 이 문제를 단번에 해소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논리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어쩌면 시인들이 자신의 시에 대해 솔직하게 정의를 내린 몇몇 작품들 중에 그 해답이 있을 수는 있다. 실제로 나는 처음 시를 공부할 때 시의 정의에 대한 내 목마름을 해갈시켜준 작품을 만났었다. 뿐만 아니라 40여 년 시를 쓰고 읽으면서 아, 시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섬광처럼 지나쳐가는 시의 비의에 황홀해 한 적이 적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먼 먼 아지랑이 너머 상상의 세계에서 날아와 가슴 속에 내려앉고 이내 하얀 뿌리를 내려 가슴의 진액을 빨아들이며 잎과 꽃을 피우고 나를 허무로 앓게 하고 몸져 눕게 하는 저것 …후략… ―문효치, 「시」 문효치의 ‘시’는 어느 날 갑자기 시인의 가슴에 날아드는 것이다. 시인이 생각지도 못했던 미지의 생명체는 상상의 세계에서 날아와 시인의 가슴에 뿌리를 내리고, 시인의 진액을 다 빨아들여 마침내 시인을 몸져 눕게 한다. 시에 시달려본 시인이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작품이다. 시인의 손에 닿을 듯 닿을 듯 감질만 내는 작품, 시인이 좇아가면 도망쳐버리고, 시인이 포기하면 다시 달려들기에 시는 많은 시인들에게 ‘시마(詩魔)’라 불리우기도 한다. 시를 쓰고 싶은 열망에 비례해 써나갈수록 깊어지는 상실감과 자괴감에 몸을 망친 시인이 얼마나 많은가. 한 일년 시를 잊어버리면 몸이 날아갈 듯 가뿐해지고 머리가 시원해지지만, 시를 완전히 잊었는가 싶으면 어느새 다시 찾아와 시름시름 앓게 하는, 마치 무당병처럼 평생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 시인의 천형(天刑)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시가 이렇듯 시인을 괴롭히기만 한다면 어느 누가 시를 쓰겠는가.  잘 나오는가 안 나오는가 그대의 이름을 써보네 만년필을 고르면서. 가느다란가 굵다란가 나의 이름을 적어보네 시라고 써보네. 새 만년필로 시 한 편 잘 써서 지갑에 넣네. ―윤제림, 「시인의 사랑」 시는 어느 날 만년필을 고르면서 무심히 써보는 그대의 이름, 새 만년필로 써보는 나의 이름이기도 하다. 우연히 샘솟아 오르는 그리움이자 새롭게 설레는 마음이자 누구에게 보여주기보다는 가슴 속 지갑에 잘 갈무리해두는 사랑이기에 시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또 한편의 시를 쓰고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시인들은 잠에서 깨어나면 문득 육신과 자연의 어둠이 걷혀가는 신새벽을, 그 처음의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한다. 신새벽, 그 처음의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  벌이 날아드는 그 순간, 꽃의 열림을 새가 날아오르는 그 처음의 날갯짓을 그러나 내게 보이는 건 오로지 상처받고 묶이고 갇힌 사람들뿐 저들을 보며 나는 깨닫는다 나는 결코 새벽, 새, 벌 따위의  시를 쓸 수 없다는 걸 ―제임스 매슈, 「시」 꽃이 제 몸을 열어보이는 그 순간을, 새들이 비상의 몸짓을 보여주는 그 처음의 날갯짓을, 시인은 기록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마음의 한쪽에는 사람의 세상에서 상처받고 묶이고 갇힌 사람들이 살아 있기에 시인은 시인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온몸으로 껴안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세상은 때로 그러한 시인을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내칠 때도 많다.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기를 원하지만, 마음과 달리 소통의 손길이 불화의 발길질로 바뀌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이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사람을 섬으로 보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바다로 본다. 지하철 정거장의 군중 속에서 홀연히 나타난 얼굴들을 보면서 “검은 가지위의 꽃잎”으로 느끼기도 한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늙마에 애인이 있느냐고 나는 애인이 수도 없이 많다고 대답하였다 그 비결을 일러 달라기에 마음이 끌리면 주저없이 눈을 맞추고 눈이 맞으면 그 자리에서 한 몸 한 마음이 되는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비결이 신통치 않았던지 혀를 끌끌 차며 재주가 없어서… 어깨가 축 늘어지더군 그래서 시를 읽어보라고 권하였다 시경 이래로 시인이란 자들은  하늘의 별님 달님은 물론 풀이나 나무, 하늘 아래 움직이는 것들, 심지어는 바닷속의 물고기까지 이름을 지어주고,  입 맞추고 껴안고 춤추면서 한 몸 한 마음이 되지 않았던가 백석이 갈매나무와 눈 맞추고 기림이 나비와 입 맞추고 미당이 달과 한 몸 한 마음이 되는 그 방법을 배우라고 하였다 배워서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한겨울 눈 내리는 벌판이라도  껴입은 입성 훨훨 다 벗어던진 맨몸, 맨마음이라면 왜 눈과 눈이 맞지 않겠는가. ―박제천, 「두번째 詩論 ―애인」 사람이 사람과 따듯하게 만나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한 몸 한 마음이 되지 않으면 사람은 물론 자연이며 자연의 어느 생명체조차 가슴에 받아들이지 못한다. 시라 해서 다를 바가 없다. 시란 바로 사람들의 삶이며 사랑이며 추억이며 죽음이며 운명, 헤어짐과 만남, 그리움과 외로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시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의 기록을 미학적 장치로 바꾸어 줌으로써 독자 또한 시인과 함께 시의 그 비밀한 뜻과 향기를 가슴 가득히 채울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金宗三,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의 평범한 진술은 그 ‘누군가’의 해석조차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뉠 수 있는 상징성을 지님으로써 비범한 의미로 전환된다. “시가 뭐냐고”에 누가 대답할 수 있으랴. 시인은 결코 그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시인의 답은 그 누구라도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같은 대답을 찾기 위해서 그는 차라리 시인이기를 거부한다. 그 대답은 오직 빈대떡을 먹는 사람들, 바로 독자의 가슴과 가슴이 닿는 곳에 있었던 것이다.  바다속에서 전복따파는 濟州海女도 제일좋은건 님오시는날 따다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그대로 남겨둔단다. 詩의전복도 제일좋은건 거기두어라. 다캐어내고 허전하여서 헤매이리오? 바다에두고 바다바래여 詩人인것을 ―서정주, 「詩論」 결론하자면, 미당 서정주는 시란 “님 오시는 날 따다주려고 바다 속에 남겨 놓은 제일 좋은 전복”이라고 제주 해녀를 빗대어 말한다. 그 좋은 시를 ‘바다 속에 두고서, 바다를 바래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라고 말한다. ‘다 캐어낼 수‘도 없지만, 아끼고 아끼는 그 마음이 시라는 생각은 공자의 ‘시즉절(詩卽切)’, 쓰고 싶은 것 중에서도 ‘가장 절실한 것이 시’라는 생각과 맥이 닿아 있다.  그러나 시란 무엇이고, 시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그와 상관없이 나는 오늘 또 한편의 시를 무심히 써나갈 것이다.  ///////////////////////////////////////////////////////// 9. 시는 독자 감동을 지향한다 근년에 들어 저는 광고 문구 속에 '고객 감동'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 것을 몇 번이나 보고 들었습니다. 광고인들도 이제는 광고주가 만든 제품에 새로운 기능이 첨가되어 있으니 쓰던 것을 버리고 우리 제품으로 바꿔 쓰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을 강조하지요. 향상된 기능으로 당신들을 감동시킬 만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시가 지향하는 최고의 미덕이야말로 감동이 아니겠습니까. 격렬한 감동이든 잔잔한 감동이든 시를 읽으며 느낀 감동은 우리의 뇌리를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아버지 따라가 묵정밭을 맨 적 있습니다. 쇠비름풀 여뀌 바랭이서껀 이런 저런 잡초들 수없이 뽑아 던졌습니다. 검붉은 맨살의 흙이 드러나면서 밭뙈기 한 두락이 새로 나는 것 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일평생 마침내 논 서른 마지기 이루고, 그러나 송충이 같은 자식들, 그 푸르게 일렁이던 논들 다 갉아먹어 버리고 빈 들 노을 아래 서 있던…… 아버지, 일흔 중반 넘어서면서 망령드셨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사 관심거리가 하나 둘 줄어들더니, 마을이나 집안 대소사는 물론 식솔들의 잦은 불상사에 대해서도 영 남의 일이 되어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당신의 자식들, 심지어는 늘 곁에서 수발 드는 어머니 보고도 당신 누구요, 우리 집사람 못 봤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음 아버지, 이미 다 닳아 치우고 없는 농토, 그 논에 물꼬 보러 간다며 나섰습니다. 없는 소, 없는 일꾼들을 부렸습니다. 품안의 새끼들을 어르고 입안의 혀 같은 당신의 아내와 자주 두런거렸습니다. 그러기를 십여 년, 어느 날 아버지, 검불같이 남아 있던 당신의 육신까지도 뽑아 던졌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신…… 아버지, 비로소 아버지의 풀 뽑기가 마저 끝났습니다. 번듯하게 눕는 아버지의 땅, 그곳으로 드는 아버지, 아버지, 보였습니다. ―문인수, [풀뽑기] 전문 아버지를 따라가 묵정밭을 맸던 어린 날의 추억에서부터 시는 전개됩니다. 쇠비름풀·여뀌·바랭이 같은 잡초들을 수없이 뽑아 던져야 밭뙈기 한 두락이 새로 태어나는데, 아버지는 평생을 바쳐 논 서른 마지기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송충이 같은 자식들이 푸르게 일렁이던 논들 다 갉아먹고 기진맥진한 아버지는 노을녘에 서서 빈 들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슬픈 초상은 빈 들, 즉 당신의 피땀으로 일구었건만 "이미 다 닳아 치우고 없는 농토"가 된 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삶의 비애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아버지는 일흔도 중반이 넘어 노인성 치매를 앓는 환자가 되셨는데, 증세가 나날이 심해져 자기 아내도 못 알아볼 지경에 이릅니다. 망령은 들었어도 아버지는 소몰이며 땅을 일구는 일에 인이 박인 농투성이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논도 없는데 물꼬 보러 간다며 나서고, 없는 소, 없는 일꾼들을 부리는 망령을 보입니다. 그러기를 십여 년, 그간 가족의 녹아 내린 애간장이 어떤 색깔을 띠고 있는가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윤회를 믿는 불가에서는 전생의 원수들이 모여 가족을 이룬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가 나를 아들로 보아주지 않는 슬픔, 죽음을 목전에 두고 헛소리를 하는 아버지를 마냥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 슬픔이 목젖을 차고 오릅니다. 이 슬픔은 은유나 상징 같은 시적 기교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문인수는 그저 뭉툭한 필묵으로(평이한 필체로) 아버지의 초상화를 스케치하고 있을 뿐입니다. 잡초를 수없이 뽑아 던졌던 아버지는 검불같이 남아 있던 당신의 육신을 끝내는 뽑아서 땅에 던집니다. 아버지, 비로소 아버지의 풀 뽑기가 마저 끝났습니다. 번듯하게 눕는 아버지의 땅, 그곳으로 드는 아버지, 아버지, 보였습니다. 눈물을 감추고 있어 오히려 눈물겨운 마지막 연입니다. 한평생 풀 뽑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자신의 몸을 마지막으로 땅에서 뽑아 반듯하게 관에 드러누움으로써 생애가 완성되었습니다. 뽑혀진 풀이 흙의 일부가 되듯이 인간의 육신도 흙의 일부가 됩니다. 문인수는 아버지의 초상을 이 시에 그려놓은 것일 테지만, 저는 땅을 파며 한 생을 살다 땅으로 들어가 마감하는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의 모습을 [풀 뽑기]라는 한 편의 시를 통해서 봅니다. 아버지의 풀 뽑기도 개간을 위한 창조 행위였고, 아들의 [풀 뽑기]도 '시'를 이룬 창조 행위였으니 그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시인은 이 시에서 눈물을 애써 감추고 있지만, 뭇 독자의 심금은 그것 때문에 울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비장미를 미의 하나로 취급해온 것일 테지요. 영화며 컴퓨터 게임 등 재미있는 것이 무궁무진하게 많아진 오늘날 시의 기능, 시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기상천외한 실험과 발명 및 파괴로 과학적 언어로밖에 대화할 줄 모르는 우리의 인식지평을 넓혀주는 것이 첫째 역할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보의 홍수 속에서 먹고사는 문제에 부대끼느라 무뎌진 우리의 가슴에 서정의 물살을 와 닿게 해 잠시나마 감동하게 하는 것, 그 기능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서정의 물살이 워낙 약해 비록 눈물을 글썽이지는 않더라도, 이 세상에는 감동하거나 감격할 일이 너무 적지 않습니까. 감동적인 시는 이렇듯 우리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슬픔의 힘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10. 시는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는 거짓말이다 199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의 제목은 '정동진역'입니다. 가운뎃부분에 "해안선을 잡아놓고 끓이는 라면집과/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는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 보이는 시입니다.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 그 마을에 가면 정동진이라는 억새꽃 같은 간이역이 있다.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 가끔 두 칸 열차 가득 조개껍질이 되어버린 몸들을 싣고 떠나는 역. 여기에는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이 있고, 해안선을 잡아놓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 아름다운 천장도 볼 수 있다. 강릉에서 20분, 7번 국도를 따라가면 바닷바람에 철로 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와 푸른 깃발로 열차를 세우는 역사(驛舍),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 -김영남, [정동진역] 전문 김영남은 등단작의 제목을 그대로 첫 시집의 제목으로 삼았는데, 그 첫 시집의 해설을 제가 썼기에 이 시의 생산 과정을 본인한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모래시계'이던가요, 텔레비전 드라마의 촬영 장소가 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진 정동진역은, 1996년까지만 해도 해돋이 관광 명소가 아니었습니다. 그곳 경치가 제법 괜찮다는 것 정도가 몇몇 사람에게 알려져 있었지요. 어느 신문기자가 누군가로부터 정동진역 풍광이 좋다는 말을 듣고 직접 갔다와서는 '알려지지 않은 곳, 그러나 가볼 만한 곳'이라며 그곳을 소개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김영남은 그 기사를 읽고 일필휘지하여 이 시를 썼습니다. 물론 가본 적이 없었지요. 신문기사 한 쪼가리도 유심히 읽는 관찰력이 그에게 시인이란 타이틀을 붙여주었습니다. {죄와 벌} {테스} {여자의 일생} 등 세계명작 가운데 짧은 신문기사를 읽고, 그것을 갖고 쓴 것이 아주 많습니다. 시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관찰하고 기록하기입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든 영화든 관찰의 안테나를 세우고 유심히 보면 거기서 시의 제재가 나옵니다. 친구의 이야기든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든 유심히 들으면 거기서 시의 제재가 나옵니다. 모든 사물과 모든 생명체가 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시는 열려 있는 총체입니다. 시는 그 어떤 인접예술과도 교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하되 시적 진실을 표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인이 정동진역에 전혀 가본 적이 없으면서 이런 시를 썼다고 하여 우리는 시인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앞에서는 저는 시가 시인 자신의 체험의 산물이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신문기사를 읽은 간접체험에다가 상상력을 보태어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혹은 훌륭한 시를 쓸 수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안 보고도 본 척, 안 겪고도 겪은 척, 모르고도 아는 척하는 사람이 또한 시인입니다. 시인은 신문기사를 보고도, 책을 읽고도, 영화를 보고도 시를 쓸 수 있습니다, 간접적으로 체험한 것을 직접 체험한 양 둘러칠 수 있는 능력이 시인됨의 기본 능력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시인의 자격으로 왔으니까 마지막으로 제 시를 한 편 낭송해 드릴까 합니다. 볼품없이 누워 계신 아버지 차갑고 반응이 없는 손 눈은 응시하지 않는다 입은 말하지 않는다 오줌의 배출을 대신해주는 도뇨관(導尿管)과 코에서부터 늘어져 있는 음식 튜브를 떼어버린다면? 항문과 그 부근을 물휴지로 닦은 뒤 더러워진 기저귀 속에 넣어 곱게 접어 침대 밑 쓰레기통에 버린다 더럽지 않다 더럽지 않다고 다짐하며 한쪽 다리를 젖히자 눈앞에 확 드러나는 아버지의 치모와 성기 물수건으로 아버지의 몸을 닦기 시작한다 엉덩이를, 사타구니를, 허벅지를 닦는다 간호사의 찡그린 얼굴을 떠올리며 팔에다 힘을 준다 손등에 스치는 성기의 끄트머리 진저리를 치며 동작을 멈춘다 잠시, 주름져 늘어져 있는 그것을 본다 내 목숨이 여기서 출발하였으니 이제는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활화산의 힘으로 발기하여 세상에 씨를 뿌린 뭇 남성의 상징을 이제는 내가 노래해야겠다 우리는 모두 이것의 힘으로부터 왔다 지금은 주름져 축 늘어져 있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하나의 물건 나는 물수건을 다시 짜 와서 아버지의 마른 하체를 닦기 시작한다. ―졸시,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전문 솔직히 말씀드려 이 시는 완벽한 거짓말입니다. 제 아버님은 이날 이때껏 입원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허리가 많이 안 좋으십니다만 올해도 고향에서 밭농사를 짓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 시를 읽은 많은 독자가 대부분 실제상황인 줄 알고 제게 물어왔습니다. 부친을 간병하느라 고생이 많았겠다는 위로의 말을 들을 때마다 곤혹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시는 재미교포 2세인 루이스 최가 쓴 {생명일기}(김유진 옮김, 김영사 간행)라는 간병기를 보고 제 체험인 양 가져와서 쓴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의 성기 운운하는 대목은 그 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식물인간의 상태가 된 어른을 간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여실히 기록되어 있는 그 책을 보고 만약 제 아버지가 저런 상태가 되었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상상해보면서 한 편의 시를 썼던 것입니다. 이 시가 시적 진실을 추구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책을 통한 간접체험을 직접체험으로 슬쩍 바꿈으로써 시를 쓸 수 있었습니다. 한 인간의 체험에는 한계가 있는 법인데, 간접체험과 상상력은 그 한계를 무한정 확장해 줍니다. 자, 그럼 이것으로써 제 강연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 얘기를 경청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열 가지 방법론에 입각하여 전개한 제 얘기가 여러분의 시작활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좋은 작품 쓰시길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 이승하 시인]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김천에서 성장했으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다. 현재 중앙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있다. 시집으로「사랑의 탐구」(1987),「우리들의 유토피아」(1989),「욥의 슬픔을 아시나요」(1991),「폭력과 광기의 나날」(1993),「박수를 찾아서」(1994),「생명에서 물건으로」(1995)가 있으며, 시론집으로「한국의 현대시와 풍자의 미학」(1997),「생명 옹호와 영원 회귀의 시학」(1999),「한국 현대시 비판」(2000),「한국 시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2001)가 있다. 이 밖에 소설집「길 위에서의 죽음」(1997)과 시선집「젊은 별에게」(1998)가 있다.     ====================================================================================   216. 너를 위하여 / 김남조                   너를 위하여                         김 남 조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 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김남조 시집 중에서     ------------------------------------------------------------------------   217. 편지 / 김남조                          편지                                  김 남 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을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김남조 시집 중에서   //////////////////////////////////////////////////////////////////////
1002    시의 구석진 곳에서 시인을 만나다 - 오상순 시인 댓글:  조회:6287  추천:0  2016-01-14
오상순 시인의 삶과 문학                                                                김경식       오상순 시인은 1894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해주, 호는 공초(空超),선운(禪雲), 성해(星海)라는 필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아버지 김태연의 4남 1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당시 공초의 부친은 목재상을 운영했다. 효제보통학교, 경신고보, 일본 교토에 있는 동지사대학 종교학과를 졸업한다. 1919년 일본에서 귀국하여 기독교전도사로 활동한다.   1919년 3.1운동은 민족의 희망과 동시에 절망이었다. 문인들은 당시의 상황을 허무와 탄식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공초 오상순도 그랬다. 그는 1920년에 의 동인으로 활동하며, 창간호에 ‘시대고와 그 희생’을 발표한다. “폐허는 상황을 극복해서 낙원을 찾는 긍정적 의미가 있다“는 논리의 평론으로 '폐허'의 옹호와 허무의 극복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무렵 그가 쓴 과 등은 어둡고 절망적인 시다.     아시아는 밤이 지배한다. 그리고 밤을 다스린다.   아시아는 밤이 지배한다. 그리고 밤을 다스린다. 밤은 아시아의 마음의 象徵이요, 아시아는 밤의 實現이다. 아시아의 밤은 永遠한 밤이다. 아시아는 밤의 受胎者이다. 밤은 아시아의 産母요, 産婆이다. 아시아는 實로 밤이 낳아준 선물이다. 밤은 아시아를 지키는 主人이요, 神이다. 아시아는 어둠의 검이 다스리는 나라요, 세계이다. 아시아의 밤은 限없이 깊고 속 모르게 깊다. 밤은 아시아의 心臟이다. 아시아의 心臟은 밤에 鼓動한다. 아시아는 밤의 호흡기관이요 밤은 아시아의 호흡이다. 밤은 아시아의 눈이다. 아시아는 밤을 통해서 一切相을 뚜렷이 본다. 올빼미 모양으로 밤은 아시아의 귀다. 아시아는 밤에 一切音을 듣는다. 밤은 아시아의 감각이요 감성이요 성욕이다. 아시아는 밤에 萬有愛를 느끼고 임을 포옹한다. 밤은 아시아의 食慾이다. 아시아의 몸은 밤을 먹고 生成한다. 아시아는 밤에 그 영혼의 양식을 구한다. 맹수 모양으로 밤은 아시아의 마음이요 悟性이요 그 行이다. 아시아의 認識도 叡智도 信仰도 모두 밤의 實現이요 表現이다. 오 아시아의 마음은 밤의 마음 아시아의 生理系統과 精神體系는 실로 아시아의 밤은 神秘的 所産인지 밤은 아시아의 美學이요 宗敎이다. 밤은 아시아의 唯一한 사랑이요 자랑이요 보배요 그 榮光이다. 밤은 아시아의 靈魂의 宮殿이요 個性의 터요 性格의 틀이다. 밤은 아시아의 가진 무진장의 寶庫이다. 마법사의 魔術의 寶庫 와도 같은        -오상순 시인의      부분 인용     공초는 보성고보의 교사와 불교중앙학교(동국대학교의 전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기독교에서 불교로 개종한 것은 이 무렵이다. 는 2호를 내는데 그친 단명 잡지이지만 우리 문단이 시작 하던 시대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황석우, 변영로, 남궁벽, 염상섭과 김억, 오상순은 폐허의 동인으로 함께 했던 작가들이다.   폐허는 주로 서울과 경기 출신 문인들이 중심이었다. 평안도 출신이 낸 의 출현은 이들을 결집시켜 폐허를 창간한다. 의 중심적인 인물은 이광수(1892~1950), 김동인(1900~1951), 주요한(1900~1979)이다. 출신지 별로 나눈 다면 '창조'는 주로 평안도 출신 문인들의 동인지며, '폐허'는 서울 출신 문인이 중심이 된 동인지다.     ‘페허’ 창간호에는 ‘시대고와 그 희생’이란 평론을 발표하며, '폐허'극복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이후에 발표한 시 ‘허무혼의 선언’, ‘아시아의 밤’, ‘타는 밤’ 등을 읽어보면, 허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폐허〉제2호에는 ‘힘의 숭배’, ‘힘의 동경’, ‘힘의 비애’ 등의 시 17편과 ‘종교와 예술’ 이란 제목의 평론을 발표한다. 1935년에는 대표시 ‘방랑의 마음’을 ‘조선문단’에 발표한다. 해방 후에는 ‘항아리’와‘해바라기’라는 시를 발표하며, 분단된 조국의 민족적 염원과 정서를 노래하기도 했다.   세상을 떠난 직후에 ‘공초 오상순 시선’이 발간되었으며, 1977년에 ‘방랑의 마음’이 출간되었다. 1955년 대한민국 예술원상과 1961년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공초는 1922년 5월, 베이징에서 열린 에스페란토 집회 참여했던 인물이다. 이 집회에는 중국의 대문호 노신도 참여했다.   그는 세계 평등사상과 상호이해의 정신을 토대로 한 세계공용어인 ‘에스페란토어’를 가장 먼저 배워 국내에 보급한 사람이다. 톨스토이는 “에스페란토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있다면, 신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고도 했고, 프랑스 대문호 로맹 롤랑 역시 “에스페란토는 인류 해방의 무기”라고 설파하기도 했다.   당시 에스페란토는 지식인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곤충학자였던 석주명, 소설가 홍명희 등 지식인들이 에스페란토를 배웠다.   공초 오상순은 주로 다방에서 생활한 분으로 알려졌다. 예전 명동의 예술극장과 유네스코회관 골목 모퉁이에 있던 ‘청동(靑銅)다방’이다. 자주 청동다방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그는 예술가와 문인들을 만났다. 당시 ‘청동다방’의 주인은 연극인 이해랑이었다.   공초 오상순이 애연가였다. 그의 줄담배는 깨어서 취침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담배연기처럼 허망하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53년 7월 6,25전쟁이 휴전이 되고, 1954년 무렵부터 명동은 문학과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는 명동거리를 자주 걸었다. 조계사에서 숙식하였지만 낮에는 주로 다방에 머물며 많은 예술인들과 대화했다.   공초는 한때 범어사에서 선불교에 귀의하기도 했다. 여러 사찰을 떠도는 방랑의 객이 되기도 했다. 결혼도 하지 않고 가족도 없었다. 거처할 자신의 집도 없는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다. 생전에 혼인하지 않았으니 그 자신에게 딸린 가족이 없었고, 방랑객으로 전국을 떠돌았으니 거처할 집도 없었다. 공초(空超)라는 호는 이를 상징한다.   해방 이후에 그는 우익문단에 가담한다. 변영로, 박종화, 양주동이 중심이 되었던 에 가담한다. 그러나 문단의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지는 않았다. 6·25전쟁은 그가 공초라는 호를 의미 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민족적으로는 최대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모든 것이 불타고 무너지고 부서졌기 때문이다. 그가 명동에서 초인처럼 살 수 있었던 것도 6,25의 참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시 명동에서 영업을 하던 동방싸롱, 갈채다방, 청동다방은 가난한 예술인들의 근거지가 되어 주었다. 공초 오상순은 때로 다방을 찾는 예술가들에게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게 했다. 당시 그의 취미는 청동다방을 찾은 예술가들의 비망록을 제작하는 일이었다. 일명 ‘낙서첩(落書帖)’이다. 낙서첩의 ‘청동산맥(靑銅山脈)’이란 이름을 가진 그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물이다. 195권에 달하는 낙서첩인 ‘청동산맥’에는 약 10년 동안 ‘청동다방’을 드나들던 예술인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시인 공초의 이 새로운 사업은 십년의 세월 동안 무려 195권의 청동산맥을 이루었다. 그는 생전에 본인의 시집은 발간하지 않고 이 작업에 매달렸다. 공초의 이런 작업이 없었다면 예술인들의 명동의 삶은 많은 부분이 단절되었을 것이다.   ‘청동산맥’은 당시 예술가들의 필체와 글과 그림 등, 실로 다양한 콘텐츠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청동다방의 비망록인 을 넘기다보면 이은상이 기록한 글도 보인다. ‘오고 싶지 않은 곳으로 온 공초여, 가고 싶은 곳도 없는 공초여’라며, 오상순 시인의 삶의 철학을 설파하는 글을 남겼다.   서정주 시인은 ‘안녕하시었는가. 백팔의 번뇌 내 고향의 그리운 벗들’ 이라는 글귀를 통하여 당시 작가들의 방랑과 낭만의 흔적을 한 줄로 표현했다. 박목월 시인도 다방에 들러 비망록을 남긴다. ‘우연히 다방에 들러 선생님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라며, 당시의 상황을 일상적인 인사말로 맺는다. 괴짜 시인 김관식은 ‘슬픔은 차라리 안으로 굳고, 겉으로 피는 자조의 웃음’이라는 시적 표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박경리 선생도 명동에 있는 청동다방을 찾았던 모양이다. ‘자학의 합리화가 종교이며, 자학을 벗어난 경지에서 신이 존재한다’ 라는 사뭇 명언을 남긴다. 이어령은 ‘여기에는 시초도 종말도 없다’고 써 놓았다. 당시로는 막내 문인이었을 고은 시인은 ‘담배의 공복(空腹)이란 건 더 야릇할 거예요’라며 공초와 담배를 일원화 시켰다. 청동다방의 낙서첩인 은 현재 건국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서울 명동의 ‘청동다방’ 자리는 옷가게가 되어 있다. 이 언저리에서 “봄은 동방에서 꽃수레를 타고 온다는데 가을은 지금 머언 사방에서 내 파이프의 연기를 타고 온다.”라던 공초 오상순 시인의 언어를 읽어본다. 그의 시 과 함께...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오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魂)   바다 없는 곳에서 바다를 연모(戀慕)하는 나머지에 눈을 감고 마음 속에 바다를 그려 보다 가만히 앉아서 때를 잃고   옛 성(城) 위에 발돋움하고 들 너머 산 너머 보이는 듯 마는 듯 어릿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다 해지는 줄도 모르고   바다를 마음에 불러 일으켜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깊은 바닷소리 나의 피의 조류(潮流)를 통하여 오도다.   망망(茫茫)한 푸른 해원(海原) 마음 눈에 펴서 열리는 때에 안개 같은 바다의 향기 코에 서리도다.   - 동명 제 18호(1923)에 발표한      오상순 시인의 시< 방랑(放浪)의 마음> 전문     이 시는 정처 없이 떠다니는 마음의 유랑을 표현하였다. 감정의 노출이 심한 시다. 안정적인 장소를 찾을 수 없는 작가 혼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안정적인 삶을 향한 노력을 하며, 이윽고 내면에서 안정감을 찾으며 완결되는 시다.   그의 시는 방랑과 낭만의 벽을 허물고, 자연과 합일되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불교의 선(禪)적인 명상 태도와 슬프고 고독한 분위기가 부분적으로 보인다. 오상순은 문학적인 방랑과 일상의 모든 물질적인 욕망들을 담배 연기로 날려 버리려 했던, 기인으로 한국문단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사찰을 떠돌다가 동국대학교에서 운영하던 역경원을 전전하다 조계사에서 지냈으며, 1963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수유리 빨래골에 안장된다. 수유리 빨래골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는 묘소에는 그의 대표시 〈방랑의 마음〉 첫머리를 새긴 시비가 있다. 이 시비는 사뭇 예술적인 풍모를 지녔다.     〈페허〉 창간호에는 〈시대고와 그 희생〉이란 평론을 발표하며, '폐허'극복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이후에 발표한 시 ‘허무혼의 선언’, ‘아시아의 밤’, ‘타는 밤’ 등을 읽어보면, 허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 폐허〉제2호에는 ‘힘의 숭배’, ‘힘의 동경’, ‘힘의 비애’ 등의 시 17편과 ‘종교와 예술’ 이란 제목의 평론을 발표한다. 1935년에는 대표시 〈방랑의 마음을> ‘조선문단’에 발표한다. 해방 후에는 ‘항아리’와‘해바라기’라기라는 시를 발표하며, 분단된 조국의 민족적 염원과 정서를 노래하기도 했다.   세상을 떠난 직후에 〈공초 오상순 시선〉이 발행되었으며, 1977년에〈방랑의 마음〉출간되었다. 1955년 대한민국 예술원상과 1961년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다음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공초 오상순 시인의 시 몇 편을 소개한다.      □ 구름 흘러가는 구름따라가던 나의 눈자취 없이 스스로 사라지는 피녀(彼女)의 환멸 보는 순간에 슬며시 풀어지며 무심히 픽 웃고 잇대어눈물짓다.   □ 나와 시(詩)와 담배 나와 시와 담배는 이음(異音) 동곡(同曲)의 삼위일체 나와 내 시혼은곤곤히 샘솟는 연기 끝없는 곡선의 선율을 타고 영원히 푸른 하늘 품속으로 각각 물들어 스며든다.   □  나의 고통 웃는 사람 따라서웃지 못함은 고통이다 그러나 우는 사람 위하여 울지 못함은 더 큰 고통이다.   □ 나의 스케치 나의 귀는 소라인양항상 파도소리의 그윽한 여운을 못 잊고 나의 눈은 올빼미인양고동하는 밤의 심장을 노린다. 나의 코는 사냥개마냥사향의 지나간 자취를 따라심산과 유곡을 더듬어 헤매이고 나의 입은 거북마냥담배연기 안개를 피워일체의 잡음과 부조리와일체의 중압과 불여의를 가슴 깊이 안은 채 나와 나 아닌 것의 위치와 거리와 간극을자유로 도회하고 조절하여하나의 조화의 세계를 창조하여그 제 호미에 잠긴다.     □ 단합의 결실 풀끝에 맺힌한 방울 이슬에해와 달이 깃들고 끊임없는낙수물 한 방울이주춧돌을 패여 구멍을 뚫고 한 방울의 물이샘이 되고샘이 흘러시내를 이루고 시냇물이 합쳐바다를 이루나니 오 한 방울 물의신비한 조화여무한한 매력(단합의 위력이여 우주 영원한 흐름이크낙한 너 발자취로 하여더욱 난만한 진리의 꽃은피는 것인가.   공초는 1963년6월3일 심장병과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난다. 현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문인과 승려, 학생과 시민이 몰려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그의 떠남을 서러워했다. 월탄 박종화는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오늘 이 고승(高僧) 같은 시인을 잃어버린 마음, 나의 마음은 텅 비어 있다.” ‘자신을 비우고(공·空) 세상을 초월(초·超)’한다는 뜻에 걸맞은 삶을 살았던 오상순 선생에 대한 예우였다.   공초 오상순의 `담배 아홉 갑` [홍성호 기자 /말짱 글짱] 공초 오상순의 `담배 아홉 갑` 한 개비 길이 7㎝×20개비×4갑=560㎝, 이것이 하루치 길이요. 5 60㎝×365일-2044m,이것이 또 1년치 길이요. 2044m×70년=14만3080m, 즉 143㎞. "선생님,이건 서울은커녕 추풍령에도 못 미치겠는데요." (구상 편,,자유문학사) 1920년 창간된 는 이듬해 2호로 단명했지만 와 더불어 한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퇴폐주의 문예 동인지이다. 그 를 이끈 이 중의 한 명인 공초 오상순은 각종 기행으로 당대에 숱한 일화를 남긴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담배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붙이기 시작한 담배를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놓지 않았다는 오상순을 앞에 두고 부산 피란 시절 어느 물리학자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계산을 했다. 평생 피우는 담배 길이가 얼마나 될지가 화제가 돼 나온 일화다. 그런데 실은 그의 하루 흡연량은 이보다 훨씬 많았다고 한다. 그의 제자 중 한 명이 에서 회고한 대로라면 그는 보통 하루에 180여 개비를 태웠다는 것이다. 20개비들이 담배 아홉 갑을 피웠으니 지금 생각하면 상상이 안 될 정도이다. 돌아가시기 전 반년 정도를 함께 기거하며 모신 제자가 직접 목격담을 풀어놓은 것이니 믿을 만한 수치인 셈이다. 하기야 오상순이 동인이자 당대의 주당이었던 수주 변영로와 어느 날 밤 한강에 뱃놀이를 갔는데 손에 쥔 것은 단지 술 몇 병과 담배 두 보루(20갑)였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일화다. 이들은 그렇게 술에 취하고 담배에 전 채 휘영청 밝은 달을 벗 삼아 밤새워 문학을 논했다고 한다. 오상순의 담배에 얽힌 일화를 길게 늘어놓은 까닭은 이 얘기 속에 우리말을 쓰는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선 오상순이 하루에 피운 담배는 '아홉 갑'이었을까 '아홉 곽'이었을까. 우리말에서 '물건을 담는 작은 상자 또는 그 단위'를 가리키는 말은 '갑'이라 한다. 그래서 '성냥곽'이라 하면 틀리고 '성냥갑'이라 해야만 맞는다. 비눗곽,담뱃곽,분필곽도 마찬가지로 모두 비눗갑,담뱃갑,분필갑이라 해야 한다. '갑'은 한자 匣에서 온 말이니 형태를 바꿀 이유는 없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곽'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는 본래 '주로 물기 없는 물건을 넣어 두는,뚜껑을 덮게 돼 있는 작은 그릇'을 말하는 것이다. 한자어 '곽(槨)'과는 달리 한글로만 쓰는 이 '곽'은 북한 사전의 풀이로 보면 '갑'과 미세한 의미 차이를 띠면서 함께 널리 쓰이던 말로 보인다. 이는 북한에서 남한의 도시락에 해당하는 '곽밥(곽에 담은 밥)'이 널리 쓰이는 데서도 확인된다. 물론 도시락이란 말도 함께 사용한다. 북한에서는 이 밖에도 밥곽(간편하게 먹을 수 있게 만든 밥그릇),과자곽,점심곽 같은 말이 쓰이고 있다. 그래서 북한의 문화어(남한의 표준어에 해당)에서는 '갑'과 '곽'을 모두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곽'을 버리고 '갑'만을 표준어로 인정했다. 따라서 아쉽지만 남한에서는 성냥곽이란 말은 안 되고 성냥갑만 가능할 뿐이다. 성냥갑인지 성냥곽인지 헷갈리는 사람은 '지갑'을 떠올리면 쉽게 알아둘 수 있다. '돈이나 주민등록증 같은 증명서 따위를 넣을 수 있도록 가죽이나 헝겊 따위로 만든 자그마한 물건'을 지갑이라 하지 절대 지곽이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갑은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라 한자 의식이 흐려져서 그렇지 실은 한자 '紙匣'이다. '갑'이 비교적 작은 물건을 담는 상자라면,비슷한 말에 함(函)이 있는데 이는 '갑'보다 사이즈가 좀 더 큰 것을 말한다. 옷이나 물건 따위를 넣을 수 있도록 네모지게 만든 통을 말한다. 성냥갑,비눗갑,담뱃갑,분필갑 등에 비해 사물함,패물함 식으로 구별해 말한다. /한국경제 戰後 문학의 살롱시대 열고,               空超는 담배연기처럼 사라졌다 권영민 교수(왼쪽)와 이근배 시인이 서울 명동의 청동다방 자리(두 사람 뒤편)를 방문했다. 지금은 옷가게로 변한 이곳은 1950년대 공초 오상순을 필두로 한 문인들의 아지트였다.    《 서울 명동은 항시 세일 중이다. 호화스러운 간판과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호객 소리가 요란하다. 1950년대 꿈과 낭만, 사랑과 열정의 공간이었던 명동은 가장 화려한 패션의 거리로 변했다. 명동예술극장 건너편으로 유네스코 회관을 지나 골목 모퉁이에 있었던 ‘청동(靑銅)다방’. 이제는 그 자리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청동다방의 주인공이라면 단연코 시인 오상순(1894∼1963)이다. 오상순의 ‘청동다방 시대’라고 해도 좋다. 아니 청동다방의 ‘오상순 시대’라야 더 어울릴 듯하다. 공초는 매일같이 다방 ‘청동’에 들렀고,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문인 예술가들을 반겼고, 낯선 손님들과도 흔쾌히 어울렸다. 청동다방은 연극인 이해랑이 운영하던 곳이었지만, 사람들은 터줏대감처럼 머물렀던 오상순을 더 많이 추억한다. 》  공초 오상순은 애연가였다. 그래서 그의 오른손에 담배가 쥐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드물었다. 건국대박물관 제공 오상순이 언제부터 청동다방의 주인공이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는 1954년 무렵부터 전후(戰後)의 불안과 혼란 속에서 문학과 예술의 심장이 되었던 명동을 지켰다. 불교의 인연을 따라 조계사(曹溪寺)에 몸을 기탁했던 그는 다방에 머물며 여러 문인들과 어울렸다.   오상순은 공초(空超)라는 그의 호를 붙여 불러야 더 어울린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경신학교를 다녔다. 일찍이 일본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에서 종교 철학을 공부했으며, 1920년 황석우 남궁벽 변영로 염상섭과 문학 동인 ‘폐허’에 참여했다. 한국 문단사의 첫머리에 오르는 ‘폐허’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학가로서 명패를 달았지만 그는 문단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한때 불교중앙학림에서 가르쳤고 보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는데, 1926년 부산 동래 범어사(梵魚寺)에 입산해 선불교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는 그때 이미 속세의 삶을 등졌고 방랑의 객이 되어 전국의 사찰을 떠돌았다. 생전에 혼인하지 않았으니 그 자신에게 딸린 가족이 없었고, 방랑객으로 전국을 떠돌았으니 거처할 집도 없었다. 공초라는 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공초는 떠돌이가 되어 일제강점기의 가혹한 시련을 피했다.   해방 공간의 문단이 좌우 이념의 대립과 갈등에 휩싸였을 때 공초는 변영로 박종화 양주동 이헌구와 민족 계열의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고 문학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그는 결코 문단 모임에 앞장서지는 않았다. 6·25전쟁을 겪으며 모든 것이 다 불타고 무너지고 부서졌을 때 그는 다시 선인(仙人)의 모습으로 서울 명동에 나타났다.  당시 명동은 국립극장을 중심으로 연극인들이 모여들었고 동방싸롱, 갈채, 청동 같은 다방은 가난한 문학예술인들의 근거지가 됐다. 한국 문학예술의 ‘살롱시대’가 바로 명동에서 펼쳐졌다. 소설가 이봉구의 ‘명동 엘레지’에서부터 명동은 예술의 혼을 낳았고, 사랑과 인생과 예술과 열정과 낭만으로 채워졌다.    공초는 다방을 찾는 사람들에게 종이를 내밀어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게 했다. 그가 이렇게 취미 삼아 모은 청동다방의 ‘낙서첩(落書帖)’은 그대로 한 시대의 귀중한 기록이 됐다. 살아생전에 시집 한 권도 내지 않고 초연했던 그가 청동다방의 낙서첩에 그렇게 열을 올렸던 이유는 알 수 없다. 당시 명동의 청동다방을 드나들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청동산맥(靑銅山脈)’이라는 이름의 이 낙서첩에 한두 개의 글 구절을 남겼고,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시인 공초의 이 새로운 사업은 십년의 세월 동안 무려 195권의 청동산맥을 이루었다.  공초의 청동산맥은 해외 문단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분량도 방대하고 그 내용도 다채롭다. 시인 이은상은 ‘오고 싶지 않은 곳으로 온 공초여, 가고 싶은 곳도 없는 공초여’라며 헛기침을 했고, 서정주는 ‘안녕하시었는가. 백팔의 번뇌 내 고향의 그리운 벗들’이라고 적었다. 박목월은 ‘우연히 다방에 들러 선생님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라고 소박한 인사말을 써넣었다. 당시 문단의 신참에 해당했던 김관식은 ‘슬픔은 차라리 안으로 굳고, 겉으로 피는 자조(自嘲)의 웃음’이라고 시 한 구절을 적었다.  소설가 박경리는 ‘자학(自虐)의 합리화가 종교이며, 자학을 벗어난 경지에서 신이 존재한다’라는 에피그램(경구)을 남겼고, 비평가 이어령도 ‘여기에는 시초(始初)도 종말(終末)도 없다’고 적었다. 고은은 담배를 물고 살아서 ‘꽁초’로도 불렸던 공초를 향해 ‘담배의 공복(空腹)이란 건 더 야릇할 거예요’라고 낙서했다.   청동다방의 낙서첩 ‘청동산맥’. 건국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건국대박물관 제공 공초를 문학의 스승으로 생각한다는 시인 이근배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공초는 모든 것을 품어 안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넓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 공초는 누구든지 청동다방의 구석자리에 앉히고는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고 말하며 말동무가 됐다고 들려주었다. 공초야말로 모든 것을 비우고 살았던 공인(空人)이며 모든 것을 초탈해버린 초인(超人)이었다고 했다. 공초가 남긴 이 희대의 낙서첩인 청동산맥은 지금 그대로 한국 문단의 가장 아름다운 ‘잠언집’이 되었다.    지난달 13일 이근배 시인과 함께 번잡한 명동 거리를 걸으며 청동다방의 흔적을 찾았다. 다방이 있던 자리는 형형색색의 여성복이 전시된 옷가게로 바뀌었다. 이곳을 지나가는 수많은 한국인도, 외국 관광객들도 여기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학적 성소라는 걸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봄은 동방에서 꽃수레를 타고 온다는데 가을은 지금 머언 사방에서 내 파이프의 연기를 타고 온다’라고 썼던 공초는 1963년 세상을 떠났다. 벌써 50년이 흘렀다. 하지만 명동 어디선가 예의 그 뿌연 담배 연기를 뿜으며 공초가 환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정리=황인찬 기자 ===============================================   공초(空超)라는 호를 가지고 있던 오상순 시인. 아침에 깨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줄곧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심지어 한 손으로 세수를 하며 다른 한손으로는 담배를 들고 있었다는 식의 일화를 생각하면 공초에서 자연스럽게 꽁초나 골초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다가 머리를 깎고 불교에 귀의한 뒤 전국의 명산과 명찰을 발길 닿는 대로 찾아다녔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공초(空超)라는 호를 재미삼아 허투루 지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구나 평생 자신의 집을 갖지 않았으며 시집 한 권 내지 않았을 정도로 모든 것을 비우고 살아간 삶을 생각하면 공초(空超)만큼 오상순 시인에게 잘 어울리는 호도 없다고 하겠다. 오상순 시인은 목재상을 운영하던 아버지 덕에 여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의 도시샤(同志社)대학 종교철학과를 나온 명민하고 진보적인 지식인이었다. 유학을 다녀온 뒤 보성고등보통학교 교사를 하기도 하고, 한때는 기독교에 빠져 전도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기독교를 버리고 불교의 문을 두드렸는데, 그렇다고 해서 정식 승려가 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불교를 통해 무소유, 무정처의 삶을 받아들였다고 이해하는 게 옳을 듯하다. 시인으로 나선 초기에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허무혼의 선언」과 같이 스케일이 큰 장시를 써서 발표하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시마저 거추장스러운 장식물로 여겼는지 시작 활동을 거의 접어버렸다.   ========================================================       백파 조석기 선생의 문학청년 시절. 대구에서 동인지 "반야월"을 만들 무렵으로 추정됨. 사진 좌로부터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1894~1963), 상화(尙火) 이상화(李相和, 1900~1943), 백파(白派) 조석기(趙碩基· 1899~1976)                           천하의 서정주를 ‘서군’이라 깔본 사나이           ‘시인’이란 과연 어떤 사람일까? 당연히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다. 그러나 시를 쓴다고 해서 다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려면 ‘등단’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한다. 일종의 ‘면허증’이 있어야한다는 거다. 하지만 등단을 한다고 해서 다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2세대, 3세대가 지날 때까지도 이름     ▲ 공초 오상순 시인과 김관식이 나란히 걷고 있는 장면 을 널리 알린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때론 문학가 중에는 작품보다는 ‘기행’, 즉 보통 사람과 다른 이상한 행동으로 더 잘 알려진 이들도 있다. ‘김삿갓’으로 잘 알려진 김병연도 방랑의 에피소드들은 많이 알려졌지만 그의 시에 대해서 아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의 눈에는 ‘기행’으로 보이는 우스꽝스러운 행동들. 그러나 그 기행 속에서 때로는 보석같은 글이 나오고 현실의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쓴 아름다운 글들이 나오기도 한다.   오늘부터 서울문화투데이에 연재할 의 첫 번째 이야기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문학가들을 제쳐놓고 ‘김관식’이라는 시인의 이야기로 정한 것은 바로 그의 이야기를 통해 ‘시인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여러분께 던져보고 싶기 때문이다. 기행과 병고, 가난으로 얼룩진, 그야말로 허렁방탕 주정뱅이 생활로 일관한 괴짜 김관식. 그가 누구길래 ‘한국 현대문학’을 다룬다는 이 거창한(?) 프로젝트에 제일 먼저 이름을 올린 것일까? 그렇게 ‘내 맘대로’ 현대문학 이야기가 시작된다.  ◆육당 최남선에게 한학을 배우다  김관식은 1934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4살 때부터 한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정인보, 오세창, 그리고 육당 최남선에게 한학을 배웠다고 한다. 그가 갓 스물을 넘은 나이에 서울공고와 서울상고에서 교편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최남선의 힘이 컸다. 뒷날 그는 '나의 스승 육당'이라는 시에서 최남선을 이렇게 추켜세운다.  '(전략) 누구는 최남선을 한국의 제퍼슨이라 하나/ 그것은 말도 아냐 애당초 망발이야! 토머스 제퍼슨이야 아메리카 최남선// 정말 그렇고말고 아하 정말 그렇고말고/ 행여나 허황하다 사람이여 웃지마소/ 두 나라 독립선언설 비겨 보면 알리라// 일지필 휘두르자 사해(四海)가 진동했네/ 어디라 터뜨리지 못할 겨레의 원통한 마음/ 한고작 두드려 뭉쳐 메아리쳐 울리니// (후략)‘  김관식은 한학과 함께 시에도 재질을 보여 열아홉 살인 1952년에 이라는 이름의 첫 시집을 내는데 시인 조지훈이 이 시집의 서문을 써줬다고 한다. 한학에 대한 지식, 그리고 시에 대한 재능. 그것은 결국 김관식의 오만의 상징이 됐다.  ◆서군, 조군 , 박군... 문인들을 조롱하다  그의 오만은 유명했다. 술을 마시면 그는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술에 취한 김관식은 대놓고 큰소리로 ‘서군, 박군, 김군, 조군’을 외치고 다녔다. 그가 깔본 이는 바로 당시 문단의 주류이자 그에겐 대선배였던 서정주(서군), 박목월(박군), 김동리(김군), 조연현(조군)이었다. 이제 갓 약관이 된 그가 ‘감히’ 나이가 한참 위인 문단의 대선배들에게 대놓고 ‘서군’, ‘이놈’이라 욕하며 돌아다닌 것이다. 그런데 그를 정식으로 문단에 추천한 사람은 바로 그가 욕한 서군, 아니 서정주다. 그는 추천을 받기 위해 서정주의 집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는데 그 무렵 처음 보자마자 한눈에 반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서정주의 처제였던 방옥례였다.       ▲ 드라마 '명동백작'(EBS)에서 괴짜시인 김관식으로 출연한 탤런트 안정훈의 모습   방옥례를 아내로 맞이하려는 김관식은 가짜 자살소동까지 벌이는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한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야 알게 된 것은 바로 방옥례가 김관식보다 연상이었다는 것. 서울상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김관식은 당시 자신보다 나이 많은 학생을 상대해야 했기에 나이를 속였다고 고백한다.  그가 쓴 시 중에 라는 시가 있다. 바로 사랑하는 방옥례에게 고백하고픈 그의 절절한 고백이었으리라.  初夜(초야)의 祈禱(기도)  저녁밥상을  물리고 나면  어느새 땅거미가 짙어 오나니  아내야  초롱에 불을 밝혀라  서울 변두리 조그마한 방에서  맡은 일을 개운히 해버리자고  낡은 책장을 제껴가면서  아득한 옛날 향기를 맡고 있노라는데  독수리 날개 같은 바람이 와서  초롱을 차고 달라나는 것 허지만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라  하다못해 저승에라도 자리를 옮겨  죽은 사람의 하얀 이마를  조용한 빛으로 밝혀 주리라.  임이여.  가난한 우리들은  모두 어디로든지 가고 싶어 하오니  당신의 심부름꾼 바람이 와서  초롱을 앞세우고 떠나가듯이  하루속히 저희에게도 길을 열어 주셔요. - 김관식 시선집 (창작과 비평사)- 결혼도 하고 등단도 하고 이제 김관식의 삶이 달라졌을까? 천만에. 그랬다면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았을 터. 지금 1편은 어디까지나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화려한(?) 기벽과 오만은 다음 편에 더 소개하겠다. ▲임동현/'세상사, 특히 문학, 영화, 예술에 관심은 있지만 기웃거리기만 하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                           조강현 작가 공초 오상순 초상 '문학사상' 8월호 장식 화제 월간 '문학사상' 8월호에 수록된 조강현 작 '공초 오상순 초상'. 1935년 '영화시대'(映畵時代)지에 발표한 김동리의 단편소설 '廢都의 詩人'을 발굴하고 시인 정지용의 시 '추도가'(追悼歌)를 발견, 문단이 '문학사상'을 집중하는 등 이슈화되고 있는 가운데 표지 장식을 이 지역 화가가 장식해 화제다.· 프랑스와 광주를 오가며 작업활동을 펼치고 있는 조강현(스페이스 Su 운영)씨가 주인공으로 생전 한 권의 시집도 남기지 않은 채 사후인 1963년 동료와 제자들이 '공초오상순시선'을 출간한 이후 문단의 조명을 받기 시작한 공초 오상순(1894∼1963)의 인물화를 그렸다.  조씨가 '문학사상' 8월호의 표지화를 그리게 된데는 문학사상 표지팀에서 표지화를 그릴만한 작가를 물색한 끝에 공초 오상순의 인물화를 그리는데 적합했다는 판단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해 한용운 시인의 다음 세대로 결혼을 하지 않은데다 불교에 심취해 있었고 항상 담배를 놓지 않고 있는 모습에서 예술적 감흥이 느껴졌다는 것이 작가가 들려주는 공초에 대한 인상이다. '춤' 8월호에 수록된 조강현 작 '춤, 바람!'. 공초 오상순의 인물화는 기존 인상파적이고 클래식한 것을 탈피해 모던하게 처리하는 데 주력했다는 후문이다. '문학사상' 8월호에는 현재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공초의 유년기부터 일본 유학까지의 성장기(1894~1917), 일본 유학 이후부터 청·장년기까지의 사회·문화 활동기(1918~1930)의 행적을 추적한 글 중 1920년 '폐허' 창간 전후의 일본 관련 행적이 수록됐다. '廢都의 詩人'은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발표한 김동리의 첫 작품으로 자신의 존재 근거에 대한 소설적 해답과 이후의 김동리 문학의 변모양상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또 1946년 3월2일 '대동신문'(大東新聞)에 실린 작품으로 기미독립선언기념 전국대회를 위해 쓴 행사용 가창곡의 가사로 추측되는 '추도가'(追悼歌) 역시 최초 소개돼 문단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조강현 작가.   조씨는 공초 오상순 인물화에 대해 "그동안 '문학사상' 잡지가 천편일률적으로 고전 인상파적이 많아 이번 잡지부터 바꿔보자는 생각을 했다"면서 "코발트 블루 계열로 계절에 맞게 현대 모던아트한 개념을 통해 현대적인 인물화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조씨는 국내 대표적 댄스잡지의 하나인 ‘춤’ 8월호(내지)에까지 '춤, 바람'이라는 명제로 시와 그림을 수록하기도 했다. 이번 조씨의 '문학사상' 8월호 표지를 계기로 지역작가들이 국내 대표적 문화예술지 표지화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지 주목된다. 고선주 기자            내게 있는 시집 - 공초 오상순 시선     이 시집은 空超 吳相淳 선생 생애의 마지막 시집이다. 선생의 문하들이 시들을 수집하고 책을 만들때 선생은 와병하여 적십자 병동에 입원해서 곡기도 끊고 영양제 주사도 못 맞으시던 때라고 한다.   시인 구상은 선생의 시집 후기를 6월1일자로 쓰고  선생은 6월 3일 타계하시고 이 시집은 6월 15일에 출간 되었다.   1,000부 한정판 이고 구상 시인은 후기에 이 책의 수입은 선생 타세 후에 묘비 건립에 쓰겠다고 첨가했다. 이 유고시집 권 말엔 「짝 잃은 거위를 곡하노라」 와 「가을」, 두편의 산문도 함께 있다.   수유리 빨랫골에 있는 공초 오상순 선생의 시비.     시인 구상이 발기하여 1964년 6월 6일 세워졌다고 한다. ================================================================                               첫날밤/오상순                             어어 밤은 깊어                           화촉동방의 촛불은 꺼졌다.                           허영의 의상은 그림자마저 사라지고…….                             그 청춘의 알몸이                           깊은 어둠 바다 속에서                           어족(魚族)인 양 노니는데                           홀연 그윽히 들리는 소리 있어.                             아아……야!                           태조 생명의 비밀 터지는 소리                           한 생명 무궁한 생명으로 통하는 소리                           열반(涅槃)의 문 열리는 소리                          오오 구원의 성모 현빈(玄牝)이여!                          머언 하늘의 뭇 성좌는                          이 밤을 위하여 새로 빛날진저!                            밤은 새벽을 배(孕胎)고                          침침히 깊어 간다.         이 시의 '첫날밤'은 속세 인간사의 남녀 관계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열반의 문 열리는 소리"라는 구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를 종교의 경지에까지 승화시키고 있다. 시상이 집결된 대목은 "아야 ……야!"로서 태초 생명의 비밀이 터지는 소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침침히(沈沈)히 : 속력이 무척 빠르게.   -시선집 『한국의 명시』김희보 엮음                                            공초 오상순 말씀                                   -시인 구상 옮김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출처] 공초 오상순|작성자 수위       나와 시(詩)와 담배                                                                                   /공초  오상순     나와 시(詩)와 담배는     이음(異音)동곡(童曲)의 삼위일체(三位一體)     나와 내 시혼(詩魂)은     곤곤(滾滾)히 샘솟는 연기     끝없는 곡선(曲線)의 선율을(旋律)을 타고     영원(永遠)히 푸른 하늘 품속으로     각각(刻刻) 물들어 스며든다. ​ [출처] 담배값        백파 조석기 선생의 문학청년 시절. 대구에서 동인지 "반야월"을 만들 무렵으로 추정됨. 사진 좌로부터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1894~1963), 상화(尙火) 이상화(李相和, 1900~1943), 백파(白派) 조석기(趙碩基· 1899~1976)           http://blog.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malipres&folder=75&list_id=12562641&page=1 [명동의 문인들]                           천하의 서정주를 ‘서군’이라 깔본 사나이 [내 맘대로 현대문학] ‘대한민국 김관식’의 무한도전(1)   2011년 12월 14일 (수) 01:41:47 임동현 객원기자  sctoday2naver.com   ‘시인’이란 과연 어떤 사람일까? 당연히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다. 그러나 시를 쓴다고 해서 다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려면 ‘등단’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한다. 일종의 ‘면허증’이 있어야한다는 거다. 하지만 등단을 한다고 해서 다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2세대, 3세대가 지날 때까지도 이름     ▲ 공초 오상순 시인과 김관식이 나란히 걷고 있는 장면 을 널리 알린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때론 문학가 중에는 작품보다는 ‘기행’, 즉 보통 사람과 다른 이상한 행동으로 더 잘 알려진 이들도 있다. ‘김삿갓’으로 잘 알려진 김병연도 방랑의 에피소드들은 많이 알려졌지만 그의 시에 대해서 아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의 눈에는 ‘기행’으로 보이는 우스꽝스러운 행동들. 그러나 그 기행 속에서 때로는 보석같은 글이 나오고 현실의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쓴 아름다운 글들이 나오기도 한다.   오늘부터 서울문화투데이에 연재할 의 첫 번째 이야기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문학가들을 제쳐놓고 ‘김관식’이라는 시인의 이야기로 정한 것은 바로 그의 이야기를 통해 ‘시인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여러분께 던져보고 싶기 때문이다. 기행과 병고, 가난으로 얼룩진, 그야말로 허렁방탕 주정뱅이 생활로 일관한 괴짜 김관식. 그가 누구길래 ‘한국 현대문학’을 다룬다는 이 거창한(?) 프로젝트에 제일 먼저 이름을 올린 것일까? 그렇게 ‘내 맘대로’ 현대문학 이야기가 시작된다.  ◆육당 최남선에게 한학을 배우다  김관식은 1934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4살 때부터 한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정인보, 오세창, 그리고 육당 최남선에게 한학을 배웠다고 한다. 그가 갓 스물을 넘은 나이에 서울공고와 서울상고에서 교편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최남선의 힘이 컸다. 뒷날 그는 '나의 스승 육당'이라는 시에서 최남선을 이렇게 추켜세운다.  '(전략) 누구는 최남선을 한국의 제퍼슨이라 하나/ 그것은 말도 아냐 애당초 망발이야! 토머스 제퍼슨이야 아메리카 최남선// 정말 그렇고말고 아하 정말 그렇고말고/ 행여나 허황하다 사람이여 웃지마소/ 두 나라 독립선언설 비겨 보면 알리라// 일지필 휘두르자 사해(四海)가 진동했네/ 어디라 터뜨리지 못할 겨레의 원통한 마음/ 한고작 두드려 뭉쳐 메아리쳐 울리니// (후략)‘  김관식은 한학과 함께 시에도 재질을 보여 열아홉 살인 1952년에 이라는 이름의 첫 시집을 내는데 시인 조지훈이 이 시집의 서문을 써줬다고 한다. 한학에 대한 지식, 그리고 시에 대한 재능. 그것은 결국 김관식의 오만의 상징이 됐다.  ◆서군, 조군 , 박군... 문인들을 조롱하다  그의 오만은 유명했다. 술을 마시면 그는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술에 취한 김관식은 대놓고 큰소리로 ‘서군, 박군, 김군, 조군’을 외치고 다녔다. 그가 깔본 이는 바로 당시 문단의 주류이자 그에겐 대선배였던 서정주(서군), 박목월(박군), 김동리(김군), 조연현(조군)이었다. 이제 갓 약관이 된 그가 ‘감히’ 나이가 한참 위인 문단의 대선배들에게 대놓고 ‘서군’, ‘이놈’이라 욕하며 돌아다닌 것이다. 그런데 그를 정식으로 문단에 추천한 사람은 바로 그가 욕한 서군, 아니 서정주다. 그는 추천을 받기 위해 서정주의 집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는데 그 무렵 처음 보자마자 한눈에 반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서정주의 처제였던 방옥례였다.       ▲ 드라마 '명동백작'(EBS)에서 괴짜시인 김관식으로 출연한 탤런트 안정훈의 모습   방옥례를 아내로 맞이하려는 김관식은 가짜 자살소동까지 벌이는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한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야 알게 된 것은 바로 방옥례가 김관식보다 연상이었다는 것. 서울상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김관식은 당시 자신보다 나이 많은 학생을 상대해야 했기에 나이를 속였다고 고백한다.  그가 쓴 시 중에 라는 시가 있다. 바로 사랑하는 방옥례에게 고백하고픈 그의 절절한 고백이었으리라.  初夜(초야)의 祈禱(기도)  저녁밥상을  물리고 나면  어느새 땅거미가 짙어 오나니  아내야  초롱에 불을 밝혀라  서울 변두리 조그마한 방에서  맡은 일을 개운히 해버리자고  낡은 책장을 제껴가면서  아득한 옛날 향기를 맡고 있노라는데  독수리 날개 같은 바람이 와서  초롱을 차고 달라나는 것 허지만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라  하다못해 저승에라도 자리를 옮겨  죽은 사람의 하얀 이마를  조용한 빛으로 밝혀 주리라.  임이여.  가난한 우리들은  모두 어디로든지 가고 싶어 하오니  당신의 심부름꾼 바람이 와서  초롱을 앞세우고 떠나가듯이  하루속히 저희에게도 길을 열어 주셔요. - 김관식 시선집 (창작과 비평사)- 결혼도 하고 등단도 하고 이제 김관식의 삶이 달라졌을까? 천만에. 그랬다면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았을 터. 지금 1편은 어디까지나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화려한(?) 기벽과 오만은 다음 편에 더 소개하겠다. ▲임동현/'세상사, 특히 문학, 영화, 예술에 관심은 있지만 기웃거리기만 하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                             조강현 작가 공초 오상순 초상 '문학사상' 8월호 장식 화제 월간 '문학사상' 8월호에 수록된 조강현 작 '공초 오상순 초상'. 1935년 '영화시대'(映畵時代)지에 발표한 김동리의 단편소설 '廢都의 詩人'을 발굴하고 시인 정지용의 시 '추도가'(追悼歌)를 발견, 문단이 '문학사상'을 집중하는 등 이슈화되고 있는 가운데 표지 장식을 이 지역 화가가 장식해 화제다.· 프랑스와 광주를 오가며 작업활동을 펼치고 있는 조강현(스페이스 Su 운영)씨가 주인공으로 생전 한 권의 시집도 남기지 않은 채 사후인 1963년 동료와 제자들이 '공초오상순시선'을 출간한 이후 문단의 조명을 받기 시작한 공초 오상순(1894∼1963)의 인물화를 그렸다.  조씨가 '문학사상' 8월호의 표지화를 그리게 된데는 문학사상 표지팀에서 표지화를 그릴만한 작가를 물색한 끝에 공초 오상순의 인물화를 그리는데 적합했다는 판단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해 한용운 시인의 다음 세대로 결혼을 하지 않은데다 불교에 심취해 있었고 항상 담배를 놓지 않고 있는 모습에서 예술적 감흥이 느껴졌다는 것이 작가가 들려주는 공초에 대한 인상이다. '춤' 8월호에 수록된 조강현 작 '춤, 바람!'. 공초 오상순의 인물화는 기존 인상파적이고 클래식한 것을 탈피해 모던하게 처리하는 데 주력했다는 후문이다. '문학사상' 8월호에는 현재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공초의 유년기부터 일본 유학까지의 성장기(1894~1917), 일본 유학 이후부터 청·장년기까지의 사회·문화 활동기(1918~1930)의 행적을 추적한 글 중 1920년 '폐허' 창간 전후의 일본 관련 행적이 수록됐다. '廢都의 詩人'은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발표한 김동리의 첫 작품으로 자신의 존재 근거에 대한 소설적 해답과 이후의 김동리 문학의 변모양상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또 1946년 3월2일 '대동신문'(大東新聞)에 실린 작품으로 기미독립선언기념 전국대회를 위해 쓴 행사용 가창곡의 가사로 추측되는 '추도가'(追悼歌) 역시 최초 소개돼 문단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조강현 작가.   조씨는 공초 오상순 인물화에 대해 "그동안 '문학사상' 잡지가 천편일률적으로 고전 인상파적이 많아 이번 잡지부터 바꿔보자는 생각을 했다"면서 "코발트 블루 계열로 계절에 맞게 현대 모던아트한 개념을 통해 현대적인 인물화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조씨는 국내 대표적 댄스잡지의 하나인 ‘춤’ 8월호(내지)에까지 '춤, 바람'이라는 명제로 시와 그림을 수록하기도 했다. 이번 조씨의 '문학사상' 8월호 표지를 계기로 지역작가들이 국내 대표적 문화예술지 표지화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지 주목된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내게 있는 시집 - 공초 오상순 시선l책 이야기 水巖 () l 2006-09-02 13:16 http://blog.aladin.co.kr/hjh/944545        이 시집은 空超 吳相淳 선생 생애의 마지막 시집이다. 선생의 문하들이 시들을 수집하고 책을 만들때 선생은 와병하여 적십자 병동에 입원해서 곡기도 끊고 영양제 주사도 못 맞으시던때라고 한다.   시인 구상은 선생의 시집 후기를 6월1일자로 쓰고  선생은 6월 3일 타계하시고 이 시집은 6월 15일에 출간 되었다.   1,000부 한정판 이고 구상 시인은 후기에 이 책의 수입은 선생 타세 후에 묘비 건립에 쓰겠다고 첨기했다. 이 유고시집 권 말엔 「짝 잃은 거위를 곡하노라」 와 「가을」, 두편의 산문도 함께 있다.   수유리 빨랫골에 있는 공초 오상순 선생의 시비.     시인 구상이 발기하여 1964년 6월 6일 세워졌다고 한다.(함동선의 문학비 답사기에서 사진 모셔옴)     [출처] 공초 오상순|작성자 수위   인상 국회통과와 시인 공초 오상순|작성자 푸르지오    
1001    시의 구석진 곳에서 시인을 만나다 - 朴龍喆 시인 댓글:  조회:4643  추천:0  2016-01-14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ㅡ龍兒 朴龍喆 詩人 誕生 100年祭ㅡ            ■追慕 ㅡ.   용아 박용철(龍兒 朴龍喆 1904.6.21-1938.5.12)ㅡ.      생가는 광산구 소촌동 솔머리 518-14. 삼남지방 일대에서 `솔머리 朴씨'라면, 곧 忠州朴氏를 지칭하는 마음의 고향이다.    ■挫折된 悲劇 凄切히 떠올려ㅡ.          詩  ‘떠나가는 배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아늑한 이 항구-ㄴ들 손 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밭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ㅡ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헤살짓는다 앞대일 언덕인들 미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1929. 8)     《떠나가는 배》는 고독하고 황량한 삶의 한 폭의 내면 풍경이다. 미련 없는 고향 땅을 박차고, 쫓기는 마음이듯 어디론지 가버리고 싶은 다짐은 방황하는 시대 인간의 운명과 그 좌절된 비극성을 처절하게 떠올린다.   ■《詩文學》으로 純文學 運動에ㅡ.   그 해 光州학생사건(1929. 11.3)을 충동했던 사소하고 무수한 분쟁ㅡ 정초의 元山 부두노조 대파업, 서울 등 도처에서 지속됐던 독립운동단체의 조직적인 습격파괴 행위...    일본관헌의 긴장과 사회적 극한상황 의 배후를 읽게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무엇을 일깨우는가를 알고 싶다. 구체적으로 판연하게 알지 못하면 공감의 토대를 잃는다.    상황 그 자체가 시사하는 현실을 함축한 20년대 말기의 혼돈과 금일적 상황에서는 현실의 초점이 이동돼 투쟁하며 저항하는 의미와 저항에 대한 개개인의 반응이 주된 관심의 과녁이 돼 있어서다.    전체적인 흐름이 감상적이어서 호소력을 수반하는데 이 것이 곧 상황의 반응이다. 그리고 사회의식의 배제와 순수한 언어예술에 치중해 그를ㅡ 순수시를 옹호 발현하게 했다고 평가한다.     위에 인용된 대표 시에서 깨닫게 하듯 시인은 이듬해 1930년 부인 임정희(林貞姬) 여사와 상의해 순문학 운동의 깃발을 올리면서 문예지 《詩文學》을 창간한다. 세칭 시문학파의 대두로 우리 시단을 주목하게 했다.   ■世界文學으로 우렁찬 出帆ㅡ.   박용철, 김영랑, 이하윤, 오일도, 정지용, 변영로, 김기림, 신석정 등이 시단을 주도했다.《詩文學》(주간 박용철)은 제3집까지 이어지고, 1933년에 《文藝月刊》을 발간한다. 참여 시인들은 순수시의 자각과 우리 시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ㅡ`문학은 사회주의 사상 뿐 아니라, 어떠한 사상단체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동시에 문학작품은 무엇보다 먼저 예술품으로 성공한 것이어야 한다' 시문학파의 표방은 다음 4 가지로 요약된다. ①언어적 자각을 통한 언어예술의 형태 완성. ②독자적 순수성으로 꾸준히 반성하는 문학정신. ③대중문학과 순수문학 작가와 독자의 엄격한 구분. ④해외문학 파와의 합류로 세계문학에의 지향 등이다.     용아가 〈떠나가는 배〉로부터 실질적으로 닻을 올린 그의 문학정신은 해외문학 파와 합류를 통한 세계문학으로의 우렁찬 출범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스타일을 모방하거나 또 어떤 경향에 염색되지 않았다.    그 양식을 섭취하고 순화하는데 멎었을 뿐, 주체적 독창적 수수한 자기풍토의 영역을 가꾸어나갔다.   ■偏屈한 斷面을 果敢히 修正ㅡ.   30년대 우리문단은 왁자한 외향성과 달리 일본문단의 ㅡ북해도의 아니누문학, 유구의 유구문학, 조선의 조선문학 식의ㅡ 편견에 충격이 컸다. 용아는 이 부당한 수치스런 구별을 반박하듯《新東亞》(1934.2월호)에 `조선어와 조선문학'에 대해 논평했다.    ㅡ`조선어와 조선문학, 또는 조선인은 아이누어와 아이누문학, 아이누인, 유구어와 유구문학 또는 유구인과 동렬에 놓을 것인가?' 하고 지적하며 `일본문학 주변의 문학'이 아님을 명백히 했다.    그는 꾸준히 시를 쓰면서 자기 작품에 대한 검증으로 비평 안식을 높였다. 그리고 이 문학의 지평은 자기 신념에 대한 반성을 거듭해 일체의 폐단을 환기하고 편굴한 단면을 과감히 수정해야 했다.     이 비평가로서의 재치는 비상했으며 희곡의 번역과 창작, 기관지《劇藝術》에 적극 참여했다. 8일 한로 날 저녁 7시 휘황하게 막을 올릴 작품 〈석양〉은 특히 많은 동호인과 팬들을 감명 깊게 할 것이다.    그의 생가를 공개하는 소촌동 솔머리 가을 풍경은 유달리 아름답다. 이 전통 한옥은 19세기 후반 작품으로 전해진다.   ■人生의 멋 詩精神으로 追究ㅡ.   지금의 고풍스런 가옥들은, 1970년대 초 군사문화의 새마을 사업과 함께 한때 모든 초가가 수난을 맞듯 시멘트와 슬레이트로 바뀌었다가 1995년 문화재 복원 계획에 따라 옛 모습을 되찾았다.     용아는 일본 東京에서 靑山학원 중학부를 나와, 東京 외국어학교 독어과를 수학했으며 귀국해서는 연희전문에서 배웠다.    1929년 부인 임정희(林貞姬)와 결혼하고 이듬해 《詩文學》을 창간했다. 광복 후 그의 부인이 한때 이 문예지를 복간했으며 문학평론가 백완기(白完基)가 주재했다.    현재의 문예지 《시문학》(발행인 金圭和)은 1977년 용아의 창간정신을 승계했다. 한 시대의 천재시인 박용철은 1938년 늦은 봄 34세의 청춘으로 세상을 떠났다.    화려한 시정신으로 인생의 멋을 추구하기 위해 초인적 능력을 발휘해온 인간, 용아 박용철!    지성의 빛이 타오르는 아름다운 청춘으로 성취히지 못한 패기와 낭만과 야망이 아직 당신의 무수히 찬란한 시의 진주 안에 미완으로 남아 있어 가슴 아프다.    그러나 당신의 유지는 오늘의 후진들을 더욱 일깨운다. 경건히 옷깃을 여미며 당신의 탄생 100주년에 삼가 마음으로부터 묵념을 올린다.  (2004, ‘銀河의 宮殿’)♠    
1000    시의 구석진 곳에서 시인을 만나다 - 변영로 시인 댓글:  조회:5469  추천:0  2016-01-13
  한 시대를 바람처럼 살다 간 풍류객 ......시인 변영로(卞榮魯)             몇 날 며칠 밤을 앉은자리에서 꼬박 새우며 술을 마셨다는 얘기나, 당대의 4大酒仙으로 일컬어지는 오상순, 이관구, 염상섭 등과 함께 대취하여 성균관대학 뒷산 사발정 약수터에서부터 옷을 홀딱 벗은 채 소를 타고 내려와 인근 주민들을 기겁하게 만들어 결국 신고를 받고 출동한 순경에게 끌려가는 곤경을 겪었다는 얘기, 술에 대취한 그가 홍난파의 집 안방에서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뚱이으로 벌거벗고 자다 심한 갈증으로 깨어나 물을 마시려고 마루로 나섰다가 마침 여름철이라 마루에 모기장을 쳐놓고 자고 있던 그 집 아낙네들 위로 넘어져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는 예기들은 그 전대미문의 신화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변영로는 이미 소학교 취학 연령 이전부터 아버지 무릎에 앉아 한두 잔씩 얻어마시던 버릇이 누구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주도의 역사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다.   卞榮魯는 1898년 한말의 문장가이며 선비인 변정상과 진주 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위로는 형님 두 분이 있는데, 큰형은 국한학자이며 법관을 지낸 卞榮晩이고, 중형은 문학자이며 나중에 국무총리를 지낸 卞榮泰이다. 이들 삼형제는 중국의 큰 문장으로 이름을 널리 떨치며 唐宋八大家의 세 자리를 차지한 蘇洵 3부자에 비견하여 한국의 ‘삼소(三蘇)’라고 불릴 정도로 그 재주가 뛰어난 인물들이었다. 약관의 나이인 20세에 법관직에 오를 만큼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였던 卞榮晩은 한말 석학 金允植을 가리켜 ‘시골 훈장감’이라고 거침없이 폄하했고, 대학자로 꼽히는 鄭寅普를 가리켜서는 겨우 ‘면무식했다’고 짜디짠 평을 하기도 하였다. 변영로는 서울 계동 계동부통학교를 거쳐 1910년 사립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3학년 때인 1912년 체육교사와의 마찰로 자퇴하고 만주 안동현 등지를 유람하다가 같은 해 평창 이씨 흥순과 혼인했다. 1915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 영어과에 입학하여 3년 과정을 6개 월 만에 마친 뒤 중앙고보 등에서 영어교사 생활을 하던 중 YMCA 구석진 방에서 일경의 눈을 피해가며 3.1독립선언서를 영역해 해외로 발송하는 일을 했다.   1920년에 문예지 의 동인으로 활동하며, 평문 , 잡지 ‘신천지’에 논문 , 시 . 등 5편을 발표하며 정식 문단 등단의 절차를 밟았다. 1921년에는 시동인지 동인으로 참가하는 한편 에 해학과 기지가 넘치는 수필과 발자크의 작품들을 번역해 게재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 땅에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도량으로 술과 풍류를 즐겼으나 도가 지나친 인간적 실수를 반성하는 뜻에서 몇 번이나 금주를 선언하고 실천에 옮겼다. 처음에는 은으로 만든 금주패를 목에 걸고 다녔는데, 한동안은 술자리에서 그것을 풀어 상 위에 올려놓고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 결심은 굳은 것이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동아일보’ 지면에 ‘금주단행론’이란 글까지 써서 금주 맹세를 선언한 일이다. 그러나 그 결실도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나는 동키호테를 배우고 싶다. 닮고 싶다. 하다 못하면 흉내라도 내고 싶다.“고 했던 변영로는 1961년 3월 4일 영원히 눈을 감았다. 궁색한 형편에 처해 있으면서도 서울의 일류 양복점이던 ‘源泰洋服店‘이나 ’福章洋服店‘에서 꼭 맞춤옷만 해 입고, 구두는 인편을 통해 상해나 홍콩에서 맞추어 신었다는 변영로, 우리는 앞으로 그러한 도량을 지닌 풍류객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저서로 수필집 (1953), (1959), 영문시집(1948) 및 1981년 유족들이 간행한 등을 남겼다           백주(白晝)에 소를 타고     혜화동(惠化洞) 우거(寓居)에 지낼 때이었다. 어느 하룻날 바커스(Bacchus)*의 후예들인지 유령(劉伶)*의 직손(直孫)들인지는 몰라도 주도(酒道)의 명인(名人)들인 공초(空超-吳相淳), 성재(誠齋-李寬求), 횡보(橫步-廉想涉) 주삼선(酒三仙)이 내방하였다. 주인이 불주객(不酒客)이란대도 이런 경우를 당하여서는 별도리가 없었을 것은 거의 상식 문제인데, 주인이랍시고 나 역(亦) 술 마시기로는 결코 그들에게 낙후되지 않는 처지로, 그야말로 불가무일배주(不可無一杯酒)이었다. 허나, 딱한 노릇은 네 사람이 주머니를 다 털어도 불과 수삼 원(數三圓), 그때 수삼 원이면 보통 주객인 경우에는 3~4인이 해갈(解渴)함 직하였으나 오배(吾輩)* 4인에 한하여서는 그런 금액쯤은 유불여무(有不如無)*이었다. 나는 아무리 하여도 별로 시원한 책략이 없어 는 원리와는 다르다 하여도 1개의 악 지혜(기실 악은 없지만)를 안출하였다. 동내(洞內)에서 모인(某人) 집 사동 하나를 불러다가 몇 자 적어 화동(花洞) 납작집에 있는 동아일보사로 보내었다. 당시 동아일보사의 편집국장은 고(故) 고하(古下-宋鎭禹)이었는데, 편지 사연은 물을 것도 없이 술값 때문이었다. -좋은 기고(寄稿)를 하여 줄 터이니 50원만 보내달라는. - 우리는 아이를 보내 놓고도 마음이 약간 조이지를 않았다. 혹, 거절을 당한다든지 하면 어쩌나 함이었다. 10분, 20분, 30분, 한 시간, 참으로 지리(支離한)시간의 경과이었다. 마침내는 보내었던 아이가 손에 답장을 들고 오는데, 우리 4인의 시선은 약속이나 한 것같이 한군데로 집중되었다. 직각(直覺)도 직각이지만, 봉투 모양만 보아도 빈 것은 아니었다. 급기야 뜯어보니 소기(所期)*대로, 아니 소청대로의 50원. 우화(寓話) 중의 업오리 금 알 낳듯 하였다. 이제부터는 이 50원을 어떻게 유효적절하게 쓰느냐는 공론이었다. 그때만 하여도 대금(大金)이다. 아무리 우리 넷이 술을 잘 먹는대도 선술집에 가서는 도저히 비진(費盡)시킬 수 없었던 반면에 낮부터 요정에를 가서 서둘다간 안심 안 될 정도이었다. 끝끝내 지혜(善·惡間)의 공급자는 나로서 나는 야유(野遊)를 제의한바, 일기도 좋고 하니 술 말이나 사고 고기 근이나 사 가지고 나 있는 곳에서 지척인 사발정 약수터(성균관 뒤)로 가자 하니 일동 낙(諾)다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일행은 명륜동에 있는 통신중학관(故 姜相熙 군이 경영하던)으로 가서 그곳 하인 어(魚)서방을 불러내어 이리저리하라 만사를 유루(遺漏)*없이 분부하였다. 우리는 참으로 하늘에나 오를 듯 유쾌하였다. 우아하게 경사진 잔디밭 위에 둘러 않았는데 어 서방은 술심부름, 안주 장만에 혼자서 바빴다. 술은 소주이었는데 우선 한 말은 올려다 놓고 안주는 별것 없이 냄비에 고기〔牛肉〕를 끓이었다. 참으로 그날에 한하여서는 특히 쾌음(快飮), 호음(豪飮)하였다. 객담·농담·고담(古談)·치담(痴談)·문학담을 두서없이 지껄이며 권커니 자커니 마시었다. 이야기도 길고 술도 길었다. 이러한 복스러운 시간, 길이 계속되기를 빌며 마시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랄까, 고금 무류(古今無類)의 대기록을 우리 4인으로 하여 만들게 할 천의(天意) 랄까, 그는 하여(何如)했던 국면이 일변되는 사태가 의외에 발생하였다. 그 때까지는 쪽빛같이 푸르고 맑은 하늘에 난데없는 검은 구름 한 장이 떠돌더니 그 구름장이 삽시간에 커지고 퍼지어 온 하늘을 덮으며 비가 쏟아지기를 시작하였다. 그야말로  바로 그대로이었다. 처음에는 우리는 비를 피하여 볼 생의(生意)도 하였지만, 일가 하나 없는 한데이고 비는 호세 있게 내리어 속수무책으로 살이 불을 지경으로 흠뻑 맞았다. 우리는 비록 쪼루루 비두루마기를 하였을망정 그때의 그 장경(壯景)! 산중취우(山中驟雨)의 그 장경은 필설난기(筆舌難記)*이었다. 우리 4인은 불기이동(不期而同)으로 만세를 쾌창(快唱)하였다. 그 끝에 공초(空超) 선지식(善智識), 참으로 공초 식 발언을 하였다. 참으로 기상천외의 발언이었던 바, 다름 아니고 우리는 모조리 옷을 찢어 버리자는 것이었다. 옷이란 워낙이 대자연과 인간 사이의 이간물(離間物)인 이상,몸에 걸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따는 그럴 듯도 한 말이었다. 공초는 주저주저하는 나머지 3인에게 시범 차(示範次)로인지 먼저 옷을 찢어 버리었다. 남은 사람들도 천질(天質)이 그다지 비겁은 아니 하여 이에 곧 호응하였다. 대취(大醉)한 사나한(四裸漢)들 광가난무(狂歌亂舞)를 하였다. 서양에 Bacchanalian orgy (바커스 식 躁宴이란 뜻)란 말이 있으니, 아무리 광조(狂躁)한 주연(酒宴)이라 하여도 이에 비하여서는 불급(不及)이 원의(遠矣)일 것이다. 우리는 어느덧 언덕 아래 소나무 그루에 소 몇 필이 매여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번에는 누구의 발언이거나 제의이었던지 이제 와서 기억이 미상하나, 우리는 소를 잡아타자는 데 일치하였다. 옛날에 영척(甯戚)*이가 소를 탔다고 하지만 그까짓 영척(甯戚)이란 놈이 다 무엇이냐? 그따위 것도 소를 탔는데 우린들 못 탈 배 어디 있느냐는 것이 곧 논리이자 동시에 자세(姿勢)이었다. 하여간, 우리는 몸에 일사(一絲) 불착(不着)한 상태로 그 소들을 잡아타고 유유히 비탈길을 내리고 똘물(소낙비로 해서 갑자기 생기었던)을 건너고 공자(孔子) 모신 성균관을 지나서 큰 거리까지 진출하였다가 큰 봉변 끝에 장도(壯圖-市中까지 오려는)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註] *박쿠스: 로마 신화의 주신(酒神) 바쿠스(Bacchus). *유령(劉伶): 중국 西晉, 竹林七賢의 한 사람. 술 대가. 酒德頌을 지음 *오배(吾輩): 우리들. *유불여무(有不如無): 있으나 마나. *소기(所期): 바라던 대로. *유루(遺漏): 빠짐없이. *필설 난기(筆舌難記): 글이나 말로는 다 옮기지 못함. *영척(甯戚): 춘추시대 齊나라 정치가.白石歌를 부름. ++++++++++++++++++++++++++++++++++++++++++++++++++++++++++++ 변영로(1897~1961) 시인 · 수필가. 1920년 《폐허》 동인으로 문단에 데뷔, 1922년 이후 해학이 넘치는 수필과 발자크의 작품 등을 번역해서 발표. 1924년 일제 강점 하의 민족적 울분을 노래한 시집 《조선의 마음》을 내놓았으며, 동아일보사 재직 시에는 《신가정》 표지에 손기정 선수의 다리만을 게재하고 ‘조선의 건각(健脚)’이라고 제목을 붙이는 등 일본 총독부의 비위를 건드려 회사를 물러나기도 하였음. 그의 수필집 《명정 40년(酩酊 四十年)》은 너무나 유명. 1981년 3월, 20주기를 맞아 《수주 변영로 문선집(樹州卞榮魯文選集)》이 출간됨. ******************************************************************************************        일제시대 변영로(卞榮魯 )는 누구입니까? 변영로는 부평부 오정면 고강리(古康里) 출신이다. 변영만, 변영태 형제의 막내 동생으로 1915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 영어반에 입학하여 3년 과정을 6개월만에 마쳤다. 그 뒤 1931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산호세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귀국하여 기독교청년학교 및 중앙고등학교 영어 교사를 지냈고, 1919년 ‘독립선언서’를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1920년 「폐허(廢墟)」 동인을 비롯한 문단 활동을 시작했으며, 『조선의 마음』 등의 시집을 발표하기도 했다. 1923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로 출발하여 광복 후인 1946년 성균관대학교 영어과 교수로 취임했다. 작품집으로 『수주(樹州) 변영로 문학선집』이 있다.   총 획득메 달   채택된 답변답변추천해요1추천자 목록 일제시대 변영로(卞榮魯 )는 누구입니까? -변영로(卞榮魯)는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영역하여 해외로 발송한 시인입니다. -호 수주(樹州). 부천 출생. 영만, 영태와 함께 3형제이다. 12세 때 중앙학교에 입학하여 3학년 때 중퇴하였다. 1913년 중앙기독청년회관 영어반을 6개월만에 수료하고, 1914년 영시(英詩) 《코스모스》를 발표하였다. 1918년 중앙고보 영어교사로 들어갔고, 1919년 3·1운동 때는 YMCA의 구석진 방에서 일경(日警)의 눈을 피해 가며 독립선언서를 영역하여 해외로 발송하였다. 1920년 《폐허》 동인으로 문단에 데뷔, 1922년 이후 《개벽》지를 통해 해학이 넘치는 수필과 발자크의 작품 등을 번역해서 발표하였다. 1924년 일제하의 민족적 울분을 노래한 시집 《조선의 마음》을 내놓았고, 193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산호세대학을 수료하고 귀국, 1935년 동아일보사에 입사, 《신가정(新家庭)》 편집장이 되었다. -그는 《신가정》 표지에 손기정 선수의 다리만을 게재하고 ‘조선의 건각’이라고 제목을 붙이는 등 일본 총독부의 비위를 건드려 그들의 압력으로 회사를 물러나기도 하였다. 1927년 ‘우리의 것’을 알아보기 위해 백두산에 올라가 《두만강 상류를 끼고 가며》 《정계비(定界碑)》 《천지(天池) 가에 누워》 등 10여 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수필집 《명정(酩酊) 40년》은 무류실태기(無類失態記)로서 너무나 유명하고, 1981년 3월 그의 20주기를 맞아 새로 발견된 그의 작품까지를 수록하여 《수주 변영로 문선집(樹州卞榮魯文選集)》이 출간되었다. 1949년 제1회 서울특별시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총 획득메 달   답변추천해요2추천자 목록 [질문] 일제시대 변영로(卞榮魯 )는 누구?   변영로(卞榮魯, 1898∼1961)는 시인·영문학자로 서울 출신이며 아호는 수주(樹州). 정상(鼎相)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입니다   이하는 변영로(卞榮魯)의 생애 및 활동사항이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서울 재동·계동 보통학교를 거쳐 1910년 사립 중앙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12년 체육교사와 마찰이 일어 자퇴하고 만주 안동현을 유람하다가 같은 해평창 이씨(平昌李氏)흥순(興順)과 결혼하였다. 1915년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 영어반에 입학하여 3년 과정을 6개월 만에 마쳤다. 그 뒤 1931년미국 캘리포니아주립 산호세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 및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교사를 지내기도 하였으며, 1919년에는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한 일도 있다. 1920년에 ‘폐허(廢墟)’, 1921년에는 ‘장미촌(薔薇村)’ 동인으로 참가하였으며, ≪신민공론 新民公論≫ 주필을 지내기도 하였다. 1923년에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로 부임하였다. 1933년 동아일보기자, 1934년 ≪신가정 新家庭≫ 주간을 지내다 광복 뒤 1946년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 1950년에 해군사관학교 영어교관으로 부임하였다. 1953년에 대한공론사(大韓公論社) 이사장에 취임, 1955년에는 제27차 비엔나국제펜클럽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한 바 있다. 그의 시작 활동은 1918년≪청춘 靑春≫에 영시 <코스모스 Cosmos>를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에는 천재시인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활동은 1921년≪폐허≫ 제2호에 평문 <메텔링크와 예이츠의 신비사상>, ≪신천지 新天地≫에 논문 <종교의 오의(奧義)>, 시 <꿈많은 나에게>·<나의 꿈은> 등 5편을 발표하면서부터 전개되었다. 1922년에는 ≪신생활 新生活≫에 대표작 <논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는 창작 활동 초기부터 과작(寡作 : 작품을 적게 제작함.)의 시인이었다. ≪신생활≫·≪동명≫·≪개벽 開闢≫ 등을 통하여 한 해에 5, 6편 정도를 발표하였을 뿐이다. 1924년에는 첫 시집 ≪조선의 마음≫이 평문관(平文館)에서 간행되었는데 거기에는 <버러지도 싫다하올 이몸이>를 비롯한 28편의 시와 수상 8편이 수록되었다. 그러나 이 시화집은 내용이 불온하다 하여 발행과 동시에 곧 총독부에 의하여 압수되어 폐기처분된 바 있다. 그의 시작품들은 가락이 부드럽고 말씨가 정서적이어서 한때 시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작품 기저에는 민족혼을 일깨우고자 한 의도도 깔려 있었다. 그의 시세계는 크게 3기로 구분된다. 1기는 시집 ≪조선의 마음≫이 발간되기까지인데, 민족시인으로서의 의식이 표출된 시기이다. 이 무렵의 대표작으로 <논개>를 들 수 있다. 2기는 그 뒤부터 광복까지의 시기로, 자신을 둘러싼 상황인식에서 오는 절망감 속에서도 선비적 절개와 지조를 고수하려는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 <실제 失題>·<사벽송 四壁頌> 등을 들 수 있다. 3기는 광복부터 죽기까지의 시기로 <돐은 되었건만>과 같이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우국적 시를 주로 썼다. 시작 활동 이외에도 우리 문단에 영미문학(英美文學)을 소개하고 우리 작품을 영역하였으며, 남궁 벽(南宮璧)의 유고 일문시(日文詩)를 ≪신생활≫에 소개하여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시인의 위치를 확고하게 하는 등 시사(詩史)에 공헌한 바가 크다. 1948년에는 서울시문화상(문학부분)을 수상한 바 있다. 저서로 수필집 ≪명정사십년 酩酊四十年≫(1953)·≪수주시문선 樹州詩文選≫(1959)·영문시집 ≪진달래동산 Grove of Azalea≫(1948) 및 1981년 유족들이 간행한 ≪수주변영로문선집 樹州卞榮魯文選集≫ 등이 있다.   총 획 득   답변추천해요0 1898∼1961. 시인·영문학자. 개설 서울 출신. 아호는 수주(樹州). 정상(鼎相)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서울 재동·계동 보통학교를 거쳐 1910년 사립 중앙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12년 체육교사와 마찰이 일어 자퇴하고 만주 안동현을 유람하다가 같은 해평창 이씨(平昌李氏)흥순(興順)과 결혼하였다. 1915년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 영어반에 입학하여 3년 과정을 6개월 만에 마쳤다. 그 뒤 1931년미국 캘리포니아주립 산호세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 및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교사를 지내기도 하였으며, 1919년에는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한 일도 있다. 1920년에 ‘폐허(廢墟)’, 1921년에는 ‘장미촌(薔薇村)’ 동인으로 참가하였으며, ≪신민공론 新民公論≫ 주필을 지내기도 하였다. 1923년에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로 부임하였다. 1933년 동아일보기자, 1934년 ≪신가정 新家庭≫ 주간을 지내다 광복 뒤 1946년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 1950년에 해군사관학교 영어교관으로 부임하였다. 1953년에 대한공론사(大韓公論社) 이사장에 취임, 1955년에는 제27차 비엔나국제펜클럽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한 바 있다. 그의 시작 활동은 1918년≪청춘 靑春≫에 영시 <코스모스 Cosmos>를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에는 천재시인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활동은 1921년≪폐허≫ 제2호에 평문 <메텔링크와 예이츠의 신비사상>, ≪신천지 新天地≫에 논문 <종교의 오의(奧義)>, 시 <꿈많은 나에게>·<나의 꿈은> 등 5편을 발표하면서부터 전개되었다. 1922년에는 ≪신생활 新生活≫에 대표작 <논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는 창작 활동 초기부터 과작(寡作 : 작품을 적게 제작함.)의 시인이었다. ≪신생활≫·≪동명≫·≪개벽 開闢≫ 등을 통하여 한 해에 5, 6편 정도를 발표하였을 뿐이다. 1924년에는 첫 시집 ≪조선의 마음≫이 평문관(平文館)에서 간행되었는데 거기에는 <버러지도 싫다하올 이몸이>를 비롯한 28편의 시와 수상 8편이 수록되었다. 그러나 이 시화집은 내용이 불온하다 하여 발행과 동시에 곧 총독부에 의하여 압수되어 폐기처분된 바 있다. 그의 시작품들은 가락이 부드럽고 말씨가 정서적이어서 한때 시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작품 기저에는 민족혼을 일깨우고자 한 의도도 깔려 있었다. 그의 시세계는 크게 3기로 구분된다. 1기는 시집 ≪조선의 마음≫이 발간되기까지인데, 민족시인으로서의 의식이 표출된 시기이다. 이 무렵의 대표작으로 <논개>를 들 수 있다. 2기는 그 뒤부터 광복까지의 시기로, 자신을 둘러싼 상황인식에서 오는 절망감 속에서도 선비적 절개와 지조를 고수하려는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 <실제 失題>·<사벽송 四壁頌> 등을 들 수 있다. 3기는 광복부터 죽기까지의 시기로 <돐은 되었건만>과 같이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우국적 시를 주로 썼다. 시작 활동 이외에도 우리 문단에 영미문학(英美文學)을 소개하고 우리 작품을 영역하였으며, 남궁 벽(南宮璧)의 유고 일문시(日文詩)를 ≪신생활≫에 소개하여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시인의 위치를 확고하게 하는 등 시사(詩史)에 공헌한 바가 크다. 1948년에는 서울시문화상(문학부분)을 수상한 바 있다. 저서로 수필집 ≪명정사십년 酩酊四十年≫(1953)·≪수주시문선 樹州詩文選≫(1959)·영문시집 ≪진달래동산 Grove of Azalea≫(1948) 및 1981년 유족들이 간행한 ≪수주변영로문선집 樹州卞榮魯文選集≫ 등이 있다. ----------------------------------------------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魂)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수주 변영로 시인과 부천의 인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이 시,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수능시험을 대비해 한번 쯤은 보았을 시,'논개' 입니다.     채명신 장군과 변영로 시인(1953)         그런데 이 시를 쓴 시인 '변영로(卞榮魯, 1898~1961)'가 우리 고장 부천의 인물이라는 것은 알고 계신가요?   수주 변영로?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영역하여 해외로 발송한 시인. 수필집 《명정(酩酊) 40년》은 매우 유명하며 이를 제외하고 주요 작품으로 《두만강 상류를 끼고 가며》, 《정계비(定界碑)》, 《논개》 등이 있다.  -      변영로 시인의 호인 수주(樹州)는 고려시대 사용하던 부천의 옛이름(樹州 : 나무고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부천에 이런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저는 오늘 낡은 자전거를 타고, 변영로 시인의 동상을 찾아나서기로 했습니다.       변영로 시인의 동상을 찾아서...         변영로 시인의 동상은 특이하게도 부천에서 양천구로 가는 봉오대로의 끝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도 상에서는 '고강지하차도'입니다. 오정동 OBS 방송국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발하였는데요, 초행길인지라 약간 헤매기도 했습니다.     사실 부천에는 아라뱃길로 이어지는 굴포천 자전거길을 제외하면 자전거 전용도로는 없고, 보행자 겸용 도로가 많아 아쉬운데요, 이쪽은 부천의 외곽인지라 비교적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춰져 있는 편이었습니다.      열심히 달리다보니 부천의 특산물 중 하나인 마시멜로 밭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 무럭무럭 자라는 마시멜로들이 입맛을 다시게합니다~ 츄르릅~   저기 먼 발치엔 오정구청과 덕산 중학교도 보였습니다.     가는 길에는 중간중간 쉬어갈만한 벤치도 마련이 되어있었습니다. 또 중간 중간 보이는 표지판에는각종 박물관으로 가는 길이 안내되어있네요. 오늘 찾아 갈 코스는 아니지만, 이렇게 많은 박물관이 부천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뿌듯해집니다.     변영로 시인 동상 발견!     자전거를 타고 출발한지 약 30분 정도. 드디어! 변영로 시인의 뒷 모습이 보입니다~ (감동 ㅜㅜ) 사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는데, 뒷모습이 어찌나 반갑던지요. 동상 뒤로는 김포공항으로 착륙하려 고도를 낮추는 여객기도 보였습니다.     변영로 시인의 동상이 있는 이곳에는 꽤나 규모 있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행복해보이는 가족상과, 자전거 도시 부천을 알려주는 다양한 구조물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변영로 시인입니다. 시인이자 영문학자답게 책을 손에 들고 앉아있는 모습입니다. 동상 앞에 있는 푯돌에는 시인의 일대기와 대표작인 '봄 비'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변영로 시인의 일대기     변영로 시인은 1918년 그의 나이 21세에 영시 '코스모스'를 발표하여 천재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습니다. 1919년에는 최초로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하여 다른 나라에 알렸고, 일제에 의해 중부서 지하 유치장에서 107일간 고문과 형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1924년 발간된 시집 《조선의 마음》에는 변영로의 대표작 '논개'가 실립니다. 직유와 상징의 수법을 통해 서정적으로 승화시켰다고 평가되는 이 시는 지금도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이 시집은 발간되자마자 일제로부터 판매 금지 및 압수령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변영로 시인은 우리 민족의 저항을 보여주는 애국 시인이며, 부천 문학의 효시이자 자랑입니다. 그러나 그의 동상이 부천의 외곽에 있어 인적이 드물고,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오늘도 변영로 시인은 서울에서 부천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수 많은 이들을 맞이하며 시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   한국 삼변(三卞)은 변영만(卞榮晩 1889~1954), 변영태(卞榮泰 1892~1969), 변영로(卞榮魯 1897~1961)를 칭하는 말이다. 삼변은 중국 북송시절 소위 삼소(三蘇)라 불린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鐵)에 빗댄 표현으로 이들 삼부자(三父子)는 당송8대가(唐宋八大家)에 속할 만큼 중국에서 그 명성이 자자하다. 삼변은 이러한 중국의 삼소에 걸맞는 많은 활동과 업적을 남겼다. 세 형제 모두 문학적으로도 뜻 깊은 작품을 남긴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각계각층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변영만 선생은 판사와 변호사 등으로, 변영태 선생은 외무부 장관을 거쳐 국무총리로, 변영로 선생은 민족시인으로 명성을 날리며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변영로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아렴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앞에 자지러지노라!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누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           환갑 때 창경원 수정궁에서(가슴에 꽃을 꽂은 변영로)       1955년 국제 PEN클럽 대회가 열리는 비엔나로 떠나며(맨 오른쪽)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 불붙은 정렬은 사랑보다도 강하다로 시작되는 논개는 수주 변영로 시인의 대표시이다.  민족적 울분을 시에 담아냈던 변영로시인도 시문학파의 창립동인중의 한명이다.    변영로는 1898년 5월 9일 서울 맹현(지금의 종로구 가회동)에서 아버지 변정상과 어머니 진주강씨 사이에서 셋째아들로 태어난다.  서울 재동보통학교 등을 거쳐 사립중앙학교에 입학한 변영로는 자퇴하고 만주 안동현을 유랑하게 된다.  1915년 중앙기독교 청년회학교에 입학한 변영로는 3년과정을 6개월만에 졸업하고 다음해 영어반 강사로 취임한다.  중앙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한 1918년에는 청춘지에 영시 '코스모스'를 발표하면서 천재시인이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 또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자 YMCA에서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에 조선의 독립선언 취지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던 변영로였다.    이후 1924년 첫 시집 '조선의 마음'을 발표한 변영로는 이듬해 조선일보에 여러편의 시와 산문을 발표하면서 그의 아호인 수주(樹州)를 쓰기 시작했다. 1930년에 변영로는 시문학 2호에 '고운 산길'을 발표해 시문학파 동인으로 활동하게 된다.    1933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월간 신가정의 주간을 맡게 된 변영로는 손기정의 다리만 게재한 사건이 빌미가돼 동아일보를 떠나게 된다. 이어 1939년에는 독립운동 단체인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돼 107일간 옥고를 치루기도 한다.    해방이 된 후 성균관대 영문과 교수, 서울신문사 이사로 활동했던 변영로는 휴전 후 대한공론사 이사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초대이사장을 맡는다. 1959년 수주시문선을 출간한 변영로는 1961년 3월14일 서울 신교동 자택에서 인후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변영로의 시는 크게 3기로 구분된다. 1기는 시집 조선의 마음이 발간되기전까지로 민족시인으로서의 의식이 표출된 시기로 대표작이 바로 논개이다. 2기는 광복까지의 시기로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서 오는 절망감을 선비적 절개와 지조를 고수하려는 태도로 들어나있다.  이 시기의 대표작이 실제와 사벽송이라고 할수 있다. 3기는 광복후에서 사망할때까지로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우국시를 주로 썼다.    이런 모습속에서 변영로의 가장 중요한 모습은 당연히 민족시인의 행보다. 조선의 독립선언을 알리기 위해 기미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하고 신가정의 주간을 맡으면서 잡지표지에 신기정의 다리만 게재한 사건,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107일간 옥살이를 하는 변영로의 모습이다.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조선인들의 민족적 울분을 그대로 표현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런 민족시인의 길을 걸었던 변영로의 시문학파 활동은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시문학파의 핵심인물은 박용철과 김윤식이고 여기에 정지용, 정인보, 이하윤이 참여해 시문학 창간호가 발간되었다.  뒤이어 변영로와 김현구가 2호에 참여했고 신석정, 허보가 제3호에 동참했다. 시문학은 제3호를 끝으로 더 이상 발행되지 않았다.    번영로는 영랑 김윤식과 인연으로 시문학파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변영로가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 영어교사로 활동하던 1916년 영랑 김윤식이 영어반에 입학하게 된다.  당시의 상황은 정확히 알수 없지만 영어교사와 학생으로 만났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연이 훗날 시문학 창립동인으로 이끌었다는 추정의 근거가 되고 있다.    지난 1998년 수주탄생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리면서 기념사업으로 수주문학상이 제정됐다. 2005년 제1회 수주 변영로 문학제가 열린 이후 청소년 백일장과 함께 수주문학제로 이름을 바꿔 매년 10월 행사가 마련되고 있다.       제 1회 문학 예술상 시상식장에서(왼편 세 번째) 변영로 시인 연보 ·1898년 5월 9일 서울 맹현(현 종로구 가회동) 출생 ·1910년 사립중앙학교 입학, 학교자퇴후 만주 안동현 유랑 ·1915년 중앙기독교 청년회학교 영어반 입학 ·1916년 중앙기독교 청년회학교 영어반 교사  ·1918년 청춘지에 영시 코스모스 발표 천재시인 찬사 ·1919년 YMCA에서 독립선언서 영문으로 번역 ·1920년 동인지 폐허 동인. 학지광 20호 주아적 생활발표  ·1923년 이화여전 강사 부임.  ·1930년 시문학 2호 고운산길 발표  ·1933년 동아일보 입사 월간 신가정 주간  ·1939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일경 체포, 107일간 옥고치룸. ·1946년 성균관대 영문과 교수 부임  ·1950년 진해 해군사관학교 영어 교관 ·1953년 대한공론사 이사장 취임  ·1961년 서울 종로구 신교동 자택에서 별세  ·1999년 수주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수주문학상 제정              ▣ 인터뷰 - 변영로 선생 후손 변창순 종친회장 "절실한 애처가 수주 할아버지" 수주 변영로 선생의 후손으로 기념사업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변창순 종친회장을 만났다.  변 회장은 비교적 어린시절의 변영로 선생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변 회장은 "변영로 할아버지는 3형제로 첫째 변형만은 재산을 팔아 중국 독립군을 지원했다고 들었고 셋째 변영로는 사랑방에서 한학자로 계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변 회장은 " 영등포에 다니면서 문인 활동을 하셨던 할아버지가 막걸리에 취해서 집으로 걸어왔던 기억이 난다"며 "할머니가 발이 아프다면서 할아버지 발을 씻겨줬던 기억과 할머니를 끔찍하게 위해줬던 것이 머릿속에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 변 회장은 작은 소망을 이야기 했다. 변 회장은 "강진의 시문학관을 보면 상당히 부럽다"며 "수주문학관, 기념관을 짓기 위해 종친회에서 기념관 부지매입의사까지 밝혔지만 자료수집이 않되 진행을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999    아방가르드 영화 3인 감독 댓글:  조회:5132  추천:0  2016-01-13
  추천해요0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를 대표하는                                     3인의 영화감독 ◈ 장 엡스탱 Jean Epstein (1897 - 1953) 장 엡스탱(1897-1953)은 마르셀 레르비에, 루이 델뤽, 장 그레미옹과 더불어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 최고의 감독으로 꼽히는 거장이다. 루이 델뤽과 더불어 첫 번째 영화이론가이기도 했던 장 엡스탱은 영화와 아방가르드 예술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동시에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의 주도적인 감독으로 활동했다. 그의 데뷔작인 는 파스퇴르의 생애에 리얼리즘적으로 접근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며, 빠른 편집과 독특한 클로즈업의 미학을 보여준 은 ‘상징적인 멜로드라마’라는 평과 함께 큰 성공을 거뒀고, 바지선을 배경으로 한 는 ‘섬의 시네아스트’라는 엡스탱의 별명에 걸맞게 흐르는 물의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독특한 드라마를 선보이는 작품으로, 장 비고의 에 큰 영향을 준 영화이다. 또한 알랭 레네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황홀한 영화 과, 에드가 앨런 포의 원작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옮겨놓았다고 평가받는 은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의 최고 걸작들이다. 엡스탱은 에서는 브르타뉴 섬을 배경으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미학을 일치감치 선보였고, 1930년대와 40년대에는 과 같은 경이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 파스퇴르 Pasteur 1922년 - 충실한 마음 Coeur fidele 1923년 - 라 벨 니베르네즈 La Belle nivernaise 1923년 - 6 _ _ 11 Six et demi onze 1927년 - 삼면 거울 La Glace a trois faces 1927년 - 어셔가의 몰락 La Chute de la maison Usher 1928년 - 세계의 끝 Finis terrae 1929년 - 태풍 Le Tempestaire 1947년 ◈ 장 비고 Jean Vigo (1905 - 1934) 장 비고(1905-1934)는 29세에 요절할 때까지 단편을 포함하여 단지 4편의 영화만을 남겼을 뿐이지만, 그 4편의 영화 모두가 세계영화의 보석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천재감독이다. 그는 태양과 달, 눈, 밤의 이미지들을 마치 언어처럼 다루면서 가장 강렬한 시적 리얼리즘의 영상을 창조했던 영화감독이었다. 전위적으로 매체를 이용하며 신랄한 묘사 속에 서정성을 담은 새로운 영화스타일을 창조했던 장 비고는 장 르누아르를 비롯한 당대의 감독들뿐만 아니라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등 누벨바그 작가들과 그 이후의 감독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는 트뤼포의 와 린제이 앤더슨의 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영화 는 레오스 카락스의 에 영향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 니스에 관하여 A propos de Nice 1930년 - 타리, 물의 왕 Taris, roi de l'eau 1931년 - 품행제로 Zero de conduite 1933년 - 라탈랑트 L'Atalante 1934년 ◈ 장 콕토 Jean Cocteau (1889 - 1963)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 문학비평가이면서 화가, 조각가로 모든 예술방면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과시했던 장 콕토는 40대에 영화작업을 시작했다. 장 콕토는 1930년대에 앙드레 브르통, 루이스 부뉴엘 등과 함께 초현실주의 운동을 주도하며 시와 영상을 결합하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의 세계에 입문하였다. 그의 영화 데뷔작 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사실적인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고 있는 작품으로, 장 콕토는 이 작품에 이어 , 으로 이어지는 ‘시인 삼부작’을 만들었다. 이 세 편의 영화는 시인의 내적인 영감과 보이지 않는 창조 과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로, 콕토는 자신의 영화에서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할 수 있는 영화 테크놀로지의 창조적인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의 고통스런 창작 과정과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시인 삼부작’은 이후 마야 데런이나 캐네스 앵거 등 미국의 아방가르드 영화감독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 시인의 피 Le Sang d'un poete 1930년 - 미녀와 야수 La Belle et la bete 1946년 - 쌍두 독수리 L'Aigle a deux tetes 1947년 - 무서운 부모들 Les Parents terribles 1948년 - 오르페 Orphee 1949년 - 오르페의 유언 Le Testamanet D'Orphee 1960년  글꼴조정 공유하기 북마크
998    영화 <<시인의 피>> 댓글:  조회:4816  추천:0  2016-01-13
  분열된 시인의 초상 사망 40주년 시인 장 콕토의 ‘빛의 잉크’로 쓴 시(詩) 영화세계 조명 글: 홍성남 / 영화평론가  장 콕토의 영화들 속에서 시인은 죽음의 세계로 들어갔다가 그 어둠의 세계로부터 귀환하는 존재로 종종 그려진다. 그의 마지막 영화 에서 콕토 자신이 연기한 시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어쩌면 이런 식의 부활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었는지 1963년 10월의 어느 날 콕토는 절친한 친구였던 가수 에디트 피아트에게 자신들의 좋지 않은 건강 상태에 대해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우리의 의사들은 아는 게 없어. 우리가 죽고 난 걸 보고 나서야 우릴 되살려내려나봐.” 며칠 뒤 두 사람은 같은 날 몇 시간의 간격을 두고 차례로 이 세상을 떠났다. 물론 초현실적 혹은 몽상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콕토의 영화에서 일어난 일이 현실에서도 발생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의 영화에서와 달리 죽음은 되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무심하게 시간만 흘렀을 뿐인 것인데 바로 그렇게 지나가버려 하나의 단위를 만들어버린 40년이란 긴 시간이 이제 우리로 하여금 콕토라는 한 ‘시인’과 그의 (예술)세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빌미가 되어주었다.  펜으로 붓으로 카메라로 시 표현 콕토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르네상스 맨’으로서의 그의 자질이다. 파블로 피카소, 에릭 사티, 기욤 아폴리네르, 에두아르 드 막스,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 당대의 중요한 예술가들과 교분을 맺었던 콕토는, 그 교분관계가 그려낸 예술적 영역의 넓은 스펙트럼에 절대로 뒤지지 않겠다는 듯 스스로 다양한 예술 장르에 손을 댔던 왕성한 탐식가였다. 그는 우선 신선한 이미지가 살아 숨쉬는 시를 쓴 시인이었고 항상 새로운 충격을 쫓아다닌 아방가르드 연극인이었다. 그에게 동반되는 또 다른 예술적 직함들로는 소설가, 문학비평가, 화가, 배우, 조각가 등도 있었다. 여기서의 주요 관심사인 영화에 대해서도 그가 탁월한 성취를 남긴 예술가였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콕토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던진 비평가들은 그가 그 많은 예술 장르에 개입했지만 실상 그 어떤 영역에서도 최고의 지위를 누리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를 가리켜 20세기 최후의 딜레탕트 정도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하지만 영화라는 신대륙 안에서 콕토가 예술가로서의 영예를 누릴 만큼 중요한 인물이라는 데에는 어느 정도 비평적 의견이 일치한다. 심지어 적지 않은 평자들은 영화야말로 콕토가 가장 큰 관심을 가졌고 그만큼 그의 재능이 잘 발휘된 예술적 영토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하튼 콕토가 영화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탁월한 시네아스트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인데 콕토의 그런 면모에 대해서는 영화평론가 존 러셀 테일러의 글에 명쾌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다. 그는 다른 예술 영역, 특히 문학에서 명성을 얻은 뒤에 영화의 영토로 옮겨와서는 영화감독으로서 작가적 지위에 오른 이는 콕토말고는 영화사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이렇게 적었다. “그는 다른 매체에 몸을 담았던 이로서 영화를 그와 동등한 무게와 중요성을 가진 매체로 받아들인 최초의 중요한 예술가였으며 영화쪽에서 절정을 맞이한 최초의 예술가였다.”  아방가르드 영화의 개척자 영화는 콕토의 예술가적 경력에 위대함을 더해주는 데 묵직한 역할을 한 매체이긴 했지만 그는 자기 인생의 후반기에 들어서야 영화에 입문했다. 그의 첫 번째 영화인 가 만들어진 것은 1930년으로 콕토의 나이가 이미 불혹을 넘긴 때였던 것이다(그의 첫 장편영화는 이로부터 16년이 더 지난 뒤에야 나온다). 이 영화를 만들 당시에 그는 “나는 영화 예술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작업을 해가면서 나 스스로 그것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영화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그런 아마추어리즘적 접근과 시적인 자기 표현에의 강렬한 갈망이 만나자 기존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신선한 영화 한편이 만들어졌다. 영화는 마치 꿈의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되는 세계 속에다가 한 갈등하는 예술가를 데려간다. 거기서 예술가는 자기가 만들어놓은 작품과 말 그대로 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다른 차원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는 죽음을 맞기도 한다. 콕토는 영화의 처음과 끝에 붕괴되는 굴뚝의 이미지를 붙여놓음으로써 그 중간에 펼쳐진 이미지의 흐름들이 굴뚝이 무너지는 찰나의 순간에 한 예술가의 내적인 세계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음을 슬쩍 암시한다. 콕토의 독자적인 영화세계를 선보인 는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던 루이스 브뉘엘의 (1929)(와 (1930))와 함께 초현실주의영화의 대표작으로 불리면서(비록 콕토 자신은 그런 식의 명명을 매우 싫어했지만) 1930년대 말에서 1950년대 초에 이르는 미국 아방가르드영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를테면 마야 데런의 (1943) 같은 이른바 ‘몽환의 영화’(trance film), 즉 몽유병에 걸린 듯한 주인공이 정체성을 찾겠다며 금단의 영역을 비현실적인 걸음으로 배회하는 유의 영화들에는 콕토의 이 아방가르드 데뷔작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몽상·비합리적 세계에 현실감을 콕토는 이 인상적인 첫 영화 를 선보이고 나서 다시 오랜 세월을 보낸 뒤 다섯편의 장편영화-(1946), (1947), (1948), (1949), (1959)-를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추가했다. 무언가 정리의 편의성을 원하는 우리의 요구에 따라 이 수적으로는 빈약한 필모그래피를 한번 분류해보자면 와 그에 이은 두편의 영화가 하나의 하위 범주를, 그리고 나머지 세편의 영화들이 다른 하위 범주를 형성한다고 이야기하면 무방할 듯싶다.  그렇지만 전자의 경우 그 응집력이 후자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은 것이 세 영화 모두가 높은 장벽을 마주한 이뤄지기 힘든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 원천과 톤에서는 일치하지 않는 편이다. 예컨대 여기서 가장 환상의 영역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영화가 동화를 토대로 한 라면 은 그 반대편에 자리하는 영화인 것이다.  또 하나 조심스레 지적해볼 수 있는 것은,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그만큼 가장 많이 논의되는 영화가 이지만 그보다 더 높이 평가할 만한 영화가 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은 애정의 이상한 연쇄를 동력 삼아 스토리를 전개해나간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갖고 있지만 아들은 연인이 생기면서 예전보다 어머니를 멀리한다. 그런데 이 아들의 연인은 알고 보니 아버지와 불륜의 관계를 맺는 상대였다. 한편 아버지의 곁에는 오랫동안 그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서 가정부로 일하는 여인이 있다. 한정된 실내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이 다섯 인물들 간의 관계와 음모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콕토 자신의 희곡을 스크린에 옮겼으면서도 지나치게 연극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영화적인 트릭을 쓰지 않은 채 내내 극적인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어, 만약에 콕토가 이런 쪽으로 영화세계의 방향을 잡았다면 그의 영화적 행로는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자연스레 하게 만드는 걸작이다.  앞서 이야기한 영화들과 다른 범주에 속하는 영화들, 으로 이어지는 ‘오르페 삼부작’ 혹은 ‘시인 삼부작’은 연속성과 공통 부분에서 다른 세 영화 그룹보다는 훨씬 그 강도가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와 는 20년의 간격을 두고 만들어졌지만 후자는 전자의 확장에 해당하는 영화이고 보다 10년이 지난 뒤에 나온 은 전작들과 콕토의 예술적 삶 자체에 대한 고별사와도 같은 영화이다. 전체적으로 콕토적 우주라 할 만한 어떤 세계를 형성하는 이 세편의 영화들에서 콕토가 그리고자 한 것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시인의 초상일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시인이란 에 나오는 대사를 빌리면 “본질적으로는 불구자이면서도 달리기를 꿈꾸는 종류의 인간”이고 또 의 한 구절에서 인용하자면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하고 “미지의 것들에 대해,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것에 이끌리는” 사람이다. 당연히 이 몽상가이자 탐험가인 시인은 시공간과 생사로 구분된 금단의 경계를  드나들고자 하는 불법 침입자- 에서 콕토에게 부여된 죄상!- 이게 마련이다. 시적인 소재를 찾아서 일부러 시적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바로 이 시인의 정신적·신체적 움직임을 따르기에 콕토의 영화는, 그의 다른 작품들이 비평적 시, 소설의 시, 회화의 시 등등이듯이 영화의 시 혹은 시정(poesie)의 영화가 될 수 있다.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담아라” 자신의 예술 활동 전체를 시의 이름 아래 통합하려 했던 콕토에게 영화는 시인을 위한 완벽한 매체였다. 그건 그가 영화란 꿈의 세계, 몽상의 세계, 마술의 세계, 비합리의 세계를 스크린에 그려낼 수 있되 그런 세계에다가 현실감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는 것, 바로 그 점에서 특별한 매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영화란 다름 아닌 조형적인 시를 만들어내는 매체인 것이다. 영화에 대한 이런 식의 고려는 ‘시인 삼부작’에서 고스란히 현실화한다. 예컨대 콕토는 를 두고 “비현실적인 사건들에 대한 현실적인 기록”라고 불렀는데 이건 영화로 비합리의 세계를 그려내되 구체성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는 자신의 원칙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 에서 저 건너편의 세상이 현실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게 묘사되는 것도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처럼, 장 뤽 고다르의 표현대로 시네마 베리테와 시네마 라이(cinema-lie)를 포개놓음으로써 콕토는 자신의 영화(세계)를 좀더 몽환적이고 그리고 좀더 관능적인 것으로 구축해냈다. 그 자신이 영화사의 그 어떤 누구와도 다른 독자적인 영화세계를 보여준 콕토는 영화가 예술이라는 것(지금에 와서는 점점 용도 폐기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명제)을 결코 부정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생각 속에서 (개인적인) 예술로서의 영화, 즉 시네마토그라프는 탐구라기보다는, 실험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무엇보다도 카메라를 가지고 혼자서 자신 안에 있는 것을 즐겁게 표현해보라는 바로 그 목소리에 후대의 아방가르디스트들과 누벨바그 멤버들이 많은 감화를 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콕토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16mm영화를 만들라는 식의 글들로 전달해보려고도 했다 (당시 그가 ‘위대한 16’(le grand seize)이라고 불렀던 16mm영화는 ‘독립적’ 혹은 ‘개인적’이란 단어와 동의어였다). 그 가운데 하나의 글에서 그는 피카소가 자신에게 해줬던 말을 인용한다. “어느 지점이 지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이 하는 건 무엇이든 의미를 가지게 마련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지금도 개인적 표현의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콕토는 아직 불멸의 뮤즈 같은 존재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997    영화 <<죽은 詩人의 사회>> - 현재를 즐겨라... 댓글:  조회:5109  추천:0  2016-01-13
      詩·美·낭만·사랑 등이 삶의 목적 불구 주객전도… 야망과 욕망만이 있을 뿐 인간미·배려도 없는 사회 단지 영화 속 이야기일까 명대사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으로 유명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톰 슐만의 시나리오로 1989년 피터 위어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구에서 따온 ‘죽은 시인의 사회’는 1959년 뉴잉글랜드의 보수적인 명문 사립학교인 ‘웰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통, 명예, 규율, 최고’라는 4개의 교훈을 내건 ‘웰튼’을 통해 작게는 입시 위주의 틀에 박힌 교육제도를 비판하고 크게는 이런 틀을 갖게 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비판한다. 학생들은 모순된 틀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사회상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4개의 교훈을 ‘익살, 공포, 타락, 배설’로 우스꽝스럽게 비틀어버린다. ‘웰튼’에 새로 부임한 영어 교사 존 키팅은 첫 수업부터 틀을 깨는 방식으로 수업에 임한다. 학생들을 교실에서 이끌어내어 졸업생의 사진이 있는 방에 둘러 세운다. 그리고 ‘카르페 디엠’이라는 명대사가 나오게 되는 ‘시간을 버는 천사에게’의 첫 구절을 읽게 한다.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거두라, 시간은 흘러 오늘 핀 꽃이 내일이면 죽게 될 것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우리는 반드시 죽는 존재임을 부각시키고 이젠 고인이 되어버린 졸업생들의 사진을 보게 한다. ‘카르페,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인생을 독특하게 살아라.’ 존 키팅의 ‘카르페 디엠’에는 자아 발견이 전제되어 있다. 이후 그는 학생들이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자신의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늦게 시작할수록 찾기가 더 힘들 것이라며 ‘소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망적으로 산다고 했다’며 과감하게 부딪혀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서라고 했다. 그는 학생들이 자유로운 사색가가 되어 자신의 꿈 속에 있는 진정한 자유를 찾아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소로의 시구처럼. “나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 숲속으로 갔다. 깊이 파묻혀 삶의 정수를 빨아들이며 살고 싶었다. 삶이 아닌 것을 모두 떨치고 삶이 다했을 때 삶에 대해 후회하지 말라!”(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소로는 부와 명성을 좇는 화려한 생활을 따르지 않고 아름다운 고향으로 돌아가 자연 속에서 글을 쓰며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존 키팅은 ‘시의 이해’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불러 모으고 이 사회가 ‘죽은 시인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될 법한 비밀 하나를 알려준다.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이 비밀을 살펴보면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삶의 목적’과 ‘삶의 유지’의 주객이 전도되어 있다. 아니라면 ‘삶의 유지’ 틀만 있고 ‘삶의 목적’ 틀은 없다. 그 모순이 제도화되고 틀이 되어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전통, 명예, 규율, 최고, 익살, 공포, 타락, 배설’에는 야망과 욕망만 있을 뿐 인간성도 인간미도 타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도 없다. 존 키팅은 이렇게 ‘죽은 시인의 사회’에 인간의 생명과 존재에 해당하는 ‘시, 미, 낭만, 사랑’이라는 4개의 새로운 교훈을 불어넣고자 했다. 하지만 연극배우의 꿈을 이룬 닐 페리가 의과대학만을 강요하는 아버지의 완강한 틀에 부딪혀 결국 아버지의 권총으로 목숨을 끊고 만다. 이 과정에서 존 페리는 아들에게 ‘웰튼’에서 자퇴시켜‘브래든 육군사관학교’에 입학시키겠다고, 하버드대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사회)의 더 완강해진 틀(브래든 육군사관학교)에 의한 폭력(권총)이 이끈 이 죽음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또 ‘웰튼’은 닐 페리 가족의 요청에 의해 어쩌면 ‘전통, 명예, 규율, 최고’를 위해 조작된 틀로 이 모든 책임을 존 키팅에게 전가시킨다. 그렇게 존 키팅은 ‘웰튼’을 떠나게 되지만…. ‘죽은 시인의 사회’는 1989년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현실인가.               한때 꽤나 잘나가던 영화인데.. 지금은 주말의 명화가 됐지만요..   이 영화가 나올 무렵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쟎아요"란 영화도 2~3년 전에 나왔었고, 성적비관 자살이 사회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을 때였죠.   이 영화(죽은시인의사회)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잘 나갔죠..   키팅선생님인 로빈윌리암스는 자신의 모교인 남자명문학교에 문학?선생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이 학교는 규율이 매우 엄격하고, 명문대학에 진학을 많이하는 학교죠. 마치 우리나라를 대표하듯이, 학생들일 밤낮으로 오로지 학업에 매달리고 있고 교칙도 지나치다 싶을 만큼 엄격합니다. 이에 피끓는 나이의 고교생들이 결코 견디기 쉽지 않았겠죠. 이런 와중에   키팅 선생은 첫 시간에, 다른 선생님들과는 매우 색다른 수업을 합니다. 땅바닥에 누워서 하늘을 보게 한다든가, 책을 북북 찢어버리더니, 책상위로 올라가서는 내려다보라고 합니다. 고정관념 등에 빠져서 죽은듯이 살지 말고 때로는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라 뭐 그런 일장 연설을 하죠. 학생들이 처음엔 주저하지만 결국 그 많은 아이들이 모두 책상위로 올라갑니다.   정말 책상위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그때까지 억눌렸던 응어리진 마음의 골이 깊었기에 이런 작은 일탈행동만으로도 해방구로 여길 수 있었던 거지요.   한 학생은 연극에 심취해서 연극부에 들지만, 부모님은 명문대에 가야한다고 굳게 믿는 고지식하고 강건한 분이지요. 이 학생은 키팅의 도움으로? 연극무대에 서게 되고 (연기도 잘하나 봅니다.) 부모님을 초청해서 관람하시게 하고, 이해를 돕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학생은 이런 저런 도움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과 현실과 자신의 자유의 갭을 줄이지 못하고 권총으로 자살을 하고 맙니다.   뭐.. 그 사이사이에 학생들이 "죽은시인의 사회"의 존재를 알게 되고, 자신들도 그 불량클럽을 이어가려고 하죠. 그리고 키팅선생이 그 회원이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중간에 어찌어찌하여 키팅선생이 그만두었다가 복직된것 같기도 한데.. ...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이들이 현재의 자신을 이토록 가두고 학대하고 힘들게 보내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명문대! 명문대! 하면서 오로지 입시지옥을 견뎌야 하는 학생들의 마음과 생활 모습을 나름대로 실감나게 보여주면서 키팅선생이라는 사람을 통하여여 나름의 대안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당시 우리의현실과도 잘 맞아떨어지니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지요. 요즘은 성적비관 자살은 뉴스로 치지 않아서 안나오나 몰라도 당시엔 성적비관 자살이 사회적 이슈가 될 만큼 심심치 않게 뉴스에 나왔으니까요. ... 입시지옥으로 인한 자살 이라는 주제는 그만큼 충격적이면서도 공감대를 갖게 했던 부분입니다. 혹자는 미국의 50년대 모습이니까 지금은 않그럴꺼라고 하는데, 혹자는 미국도 명문학교는 여전히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시인이란건..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명문고에서는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 없습니다. 입시라는 상황때문에 억눌리고 통제당하고, 스스로 억제하죠. 그래서 죽지 않고서는 영혼의 자유를 얻을 방법이 없다는 말을,-   마치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   답변추천해요0 감독:피터 위어  출연:로버트 숀 레오나드,로빈 윌리엄스,에단 호크  각본:톰 슐맨 제작:스티븐 해프트  촬영:존 실  편집:윌리엄 M. 앤더슨 음악:모리스 자르,데이빗 힉스 미술:웬디 스타이츠 ※줄거리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웰튼 고등학교의 새학기가 시작된다. 웰튼 고등학교는 일류대 진학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엄격한 학교이다. 웰튼 고등학교에 전학 온 토드는 다른 신입생들과 함께 들뜬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학교 출신의 키팅 선생이 영어 교사로 새로 부임하는데 그는 첫시간부터 새로운 수업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닐, 녹스, 토드 등 7명은 키팅 선생으로부터 들은 옛 써클 '죽은 시인의 사회'를 자신들이 이어가기로 한다. 이들은 학교 뒷산 동굴에서 시를 낭독하면서 잃었던 자아를 찾기 시작한다. 닐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싶었던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용기를 내어 연극에 출현하기로 한다. 한편 녹스는 크리스라는 소녀와 좋아하게 된다.그러나 닐의 아버지는 닐에게 의사가 될 것을 강요하면서 당장 연극을 그만 두지 않으면 군사학교로 전학시킬 것이라고 다그친다. 자신의 꿈을 꺾인 닐은 그날 밤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닐이 자살을 하자 학교 측은 조사를 하게되고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서클을 권유한 키팅 선생에게 책임을 돌린다. 키팅 선생은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학교를 떠나게 되고 학생들은 마지막 인사를 하기위해 교실에 들른 그에게 모두 책상 위로 올라가 "오 캡틴, 나의 캡틴"을 외친다. ※작품해설  청춘스타 에단 호크가 책상 위에 올라가 '오, 캡틴!'으로 그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이 감동적이다. 키팅 선생역을 열연한 로빈 윌리엄스의 진지한 모습을 접할수 있는 드문 기회. 극단적인 입시지옥에서 사는 우리의 중고교 학생들뿐 아니라 기성세대들도 꼭 봐야 할 영화. 단순한 주입식 교육으로 메말라가는 현실에 따뜻한 인간애와 자유로운 정신을 심어주는 한 교사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81년에 발표한 톰 슐만(Tom Schulman)의 소설을 영화화하였다.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호응을 받았던 이 영화는 명문교의 전통과 권위에 저항하는 청춘 세대의 향수를 따뜻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그려졌다. 키팅(John Keating) 선생의 감동적인 역할을 한 로빈 윌리암스를 비롯,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청소년 배우들의 풋풋한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 1990년 아카데미 각본상, 1991년 세자르와 1990년 플란더스 국제 영화제 외국영화상, 1990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작곡상, 1990년 프랑스 영화 아카데미 외국영화상 수상. 원래 이 작품은 리암 니슨(Liam Neeson)이 주연을 맡아 제프 카뉴(Jeff Kanew) 감독과 함께 영화화할 예정이었으나, 나중에 피터 위어 감독이 연출을 맡게 되자 주연도 로빈 윌리엄스에게로 넘어가고 말았다. 이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코네티컷 대학의 영문과 교수로 있는 사뮤엘 피커링(Samuel Pickering)과 함께 한 사립학교 학생들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시나리오에서 키팅 선생님은 백혈병으로 죽는 것으로 되어있었는데, 감독은 학생들의 이야기로 초점을 맞추기로 결정하면서 변경되었다. 피터 와이어 감독은 학생들이 키팅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커져가는 것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시간 순서대로 촬영을 하기로 했다. 촬영은 델라웨어에 위치한 세인트 앤드류스(St. Andrews) 사립 학교에서 이뤄졌다. 이 영화의 대사 중, 키팅 선생이 제자들에게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바로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 '이 날을 붙잡아라(seize the day)', '오늘을 즐겨라(enjoy the present)'라는 뜻. 이 말은 헐리우드에 있는 '만의 차이니즈(Mann's Chinese)' 극장의 로빈 윌리엄스 석상에도 나와있다. 옥의 티. 시대적 배경이 1950년대쯤이지만 학생들이 사용하는 화학책은 1987년에 출간된 것이었다. 또 로버트 디야니(Robert DiYanni)의 명시 선집('Literature: Reading, Fiction, Poetry, Drama, and the Essay')도 1986년에 출간된 것이므로 시대적 배경과 맞지않다고 할 수 있다. 영화 내용에서 녹스(조시 찰스)가 크리스(알렉산드라 파워스)에게 연극에 같이 가자고 설득할 때, 카메라 시점에 따라 눈이 내리거나 그쳐 있거나 한다. 그외 영화 속의 밴드 단원들이 사용하는 악기들은 영화 속 시대적 배경보다 약 20년 후에나 나올 수 있는 것들이라고 한다. 테너 드럼이나 섬유유리(fiberglass) 수자폰 등등...   도움이 되었음 합니다~~
996    시인 윤동주, 영화 <<동주>>로 살아오다... 댓글:  조회:4562  추천:0  2016-01-13
    ‘동주’ 강하늘 박정민 흑백스틸이 공개됐다. ‘왕의 남자’ ‘사도’에 이은 이준익 감독 열한 번째 연출작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영화 ‘동주’(제작 루스이소니도스)가 시를 쓰고 있는 윤동주 시인의 모습을 담은 흑백과 컬러 두 가지 버전의 스틸과 함께 보도스틸 6종을 전격 공개해 눈길을 끈다.    ▲ ‘동주’는 일제강점기 스물 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시인 윤동주의 청년기를 그린 영화다.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 시인을 컬러로 그려냈다면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인물과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해서 오히려 흑백이 더 사실적이라고 판단했다”며 “흑백 사진으로만 봐오던 윤동주 시인과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모습을 최대한 담백하고 정중하게 표현하기 위해 흑백 화면을 선택했고, 스물여덟 청춘의 시절을 그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낸 이분들의 영혼을 흑백의 화면에 정중히 모시고 싶었다”고 ‘동주’를 통해 처음으로 흑백영화 연출에 도전한 소감을 밝혀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공개된 보도스틸에서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대표 시인 윤동주(강하늘)와 그의 짧은 삶 내내 밀접한 교감을 나누고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친구 송몽규(박정민)의 청년 시절을 만나볼 수 있다.  고향 용정에서 문예지를 만들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동주와 몽규의 천진한 모습부터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뒤 서로 다른 선택을 하며 갈등하는 모습까지 청년 시절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며 상기된 두 사람의 표정은 앞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될 그들의 미래를 예견케 한다. 일본으로 떠난 뒤에도 시를 쓰며 암울한 현실을 버텨내는 동주와 온 몸으로 시대에 저항하는 몽규 사이의 갈등이 앞으로 펼쳐질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 시킨다.  동주와 몽규가 살았던 71년 전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낸 흑백의 스틸들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더해주며 이름도, 언어도,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조차도 허락되지 않은 일제강점기 가장 빛나던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동주’는 오는 2월 웰메이드 감동 드라마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이름도, 언어도,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1945년,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빛나던 청춘을 담은 이야기 ‘동주’는 오는 2월    18일 개봉한다. ...
995    시인 김수영 비사 댓글:  조회:5563  추천:0  2016-01-13
[장석주의 '한국문단 비사'] '시인 김수영'   1950년대 말,서울 명동의 한 술집에서 시인 몇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이미 술기운이 올라서 다들 붉어진 얼굴이다.  그들 사이에는 시며 잡지,원고료,문단 얘기들이 오간다.  다만 유난히 키가 큰 한 사나이는 아까부터 입을 꾹 다문 채 말이 없다.  좌중의 화제가 사회와 정치 쪽으로 옮아가자 입을 다물고 있던 사나이도 말문을 연다.  엔간히 취기가 올라 있던 그는 자유당과 이승만을 향해 직설적인 비판과 함께 욕을 토해낸다.  한 시인이 제지하려고 들자 그가 대뜸 항의한다.  "아니,자유 국가에서 욕도 내 마음대로 못 한단 말이오?" "글쎄,김형 말이 도에 지나치니까 하는 말이지" "도에 지나쳐? 그럼 이 썩어빠지고 독재나 일삼는 정부며,늙은 독재자를 빼놓고 불쌍하고 힘없는 문인들 험담이나 해서 쓰겠어? 당신 시가 예술지상주의 냄새가 나는 건 그 지나친 조심조심 때문이오!"  이에 상대방이 발끈해 말다툼으로 번지고 결국 술상까지 엎어져 술자리는 난장판으로 끝난다.  이 키 큰 사나이가 바로 시인 김수영(金洙暎·1926∼1968년)이다.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노고지리가 자유(自由)로왔다고/부러워하던/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사람이면 알지/노고지리가/무엇을 보고/노래하는가를/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혁명(革命)은/왜 고독한 것인가를//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이라고 노래한 김수영.  그는 현실의 전위에 선 시인의 불온성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며,도시 소시민의 내면과 자의식을 까발려 내보이며,그때까지 한국 시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여성적 운율과 재래의 토속성을 벗어던지고 세련된 도시 모더니즘의 시세계로 나아갔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온갖 금기와 허위의식을 깨뜨리기 위해 좌충우돌하며 그가 생전에 남긴 1백80여편의 도저한 요설의 시들은 곧 쉬지 않는 싸움의 도구이고,싸움의 현장이다.  그는 1921년 11월27일 서울 종로 6가에서 김태욱(金泰旭)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다.  김수영네는 경기도 파주·문산·김포와 강원도 철원·홍천 등지에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해마다 4백여석을 거둬들이는 지주 집안이었으나,일제의 침탈 뒤 급변하는 사회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했다.  어의동공립보통학교(지금의 효제초등학교)를 전학년 우등으로 마친 김수영은 당대의 수재들이 진학하던 경기도립상업학교에 응시했다가 떨어진다.  당연히 합격할 것으로 알았던 집안은 낙방 소식에 울음바다가 된다.  2차로 응시한 선린상업 주간부에도 떨어져 결국 선린상업 전수과 야간부에 진학한다.  상급학교 입시에 거푸 실패한 것은 잔병치레가 잦던 그가 보통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폐렴과 늑막염으로 앓아 누워 1년쯤 학업을 쉰 탓이다.  1941년 김수영은 선린상업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뒤 도쿄성북(東京成北)고등예비학교와 도쿄상대(東京商大) 전문부에 적을 두고 공부한다.  유학에서 돌아온 뒤 태평양전쟁의 막바지에 만주 지린성(吉林省)으로 이주한 가족을 따라가 거기서 한동안 연극에 빠져든다.  그는 해방과 더불어 귀국한 뒤 친구와 함께 일고여덟 달 동안 영어 학원을 경영하기도 한다.  이 무렵 연극에서 시 창작으로 진로를 굳힌 그는 1945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廷)의 노래'를 내놓으며 문단에 나온다.  그의 등단작은 평론가 김현의 말처럼 "조지훈류의 회고 취미가 압도적"인 작품이다.  그가 연희전문 영문과 4학년에 편입학했다가 이내 그만둔 것은 1946년의 일이다.  선배 시인들의 복고적이고 퇴영적인 언어 관습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자신의 작품에 불만이 많던 그는 두번째 작품인 '공자(孔子)의 생활난(生活難)'에 이르러 범속한 일상 용어들을 시어로 바꿔놓는다.  김수영의 시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사물과 현실을 '바로보려는 정신'이다.  이 비타협적인 '바로보려는 정신'이야말로 반골의 전형성을 드러내는 정신인 것이다.  1950년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다.  서울의대 부설 간호학교에서 영어 강사 노릇을 하고 있던 김수영은 인민군이 퇴각할 때 의용군으로 징집되어 이북으로 끌려간다.  1개월 동안 훈련을 받은 뒤 북원훈련소에 배치된 그는 유엔군이 평양 일대를 장악하면서 자유인이 되어 남하한다.  얼마 뒤 서울 충무로에서 경찰에 체포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내진다.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고 스스로 전하듯이,그는 포로수용소 야전 병원 외과 원장의 통역으로 있다가 풀려난다.  그는 이후 미8군 수송관의 통역,선린상고 영어 교사,평화신문사 문화부 차장 등을 거친다.  서울 마포 구수동으로 이사한 1955년 무렵부터 그는 양계(養鷄)와 번역을 하며 힘겹게 가족을 부양한다.  1960년 4월 12일 부산일보를 받아 든 독자들은 신문에 실린 사진 한 장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머리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중앙 부두 앞 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주검 사진이다.  마산상고 입학 시험을 치르기 위해 전북 남원의 집을 떠나 마산의 할머니 집에 와 있던 김주열은 부정 선거 규탄 시위가 벌어진 3월 15일 밤에 사라졌다.  행방불명된 지 거의 한 달만에 참혹한 주검이 되어 나타난 열일곱 살 소년.이 한 장의 사진이 3.15부정선거와 장기집권을 꾀하는 이승만 정권에 신물이 나 있던 민심을 분노로 들끓게 만들어 마침내 4월 혁명의 기폭제가 된다.  4월 혁명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세대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4월 혁명에 대한 자의식이 강렬하고 이를 자신의 문학적 자산으로 삼아 성공한 사람으로는 시인 김수영과 신동엽,소설가 최인훈,평론가 김현을 꼽을 수 있다.  4월 혁명 기간 내내 김수영은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들뜬 마음으로 거리를 쏘다녔다.  거의 매일 만취되어 집에 돌아오고,어느 때는 고래고래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다가 날이 새면 또 거리로 뛰쳐나가는 것이다.  4월 혁명을 통해 김수영은 비로소 시인으로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김수영은 혁명의 현장을 생생히 목격하고 자유에 대한 느꺼움을 가누지 못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후 아침에 깨어나서는 말짱한 정신으로 시와 산문을 미친 듯이 썼다.  그리고 정치와 사회 현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비로소 그의 시 세계는 만개하며 절정을 맞은 것이다.  그의 언어들은 풍자(諷刺)와 해탈(解脫) 사이로 뚫린 길 위를 질주한다.  그의 시는 독재,빈곤,무지,허위,속물 근성을 사정없이 질타하고 후진국 지식인의 설움을 머금는다.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 소시민적 자아의 소심함과 비겁함을 까발리며 그는 치를 떤다.  이처럼 젊은 정신과 끊임없는 자기 갱신의 언어는 그를 영원한 청년 시인으로 남게 한다.  그는 자유와 정의,사랑과 평화,행복을 얻기 위한 혁명에는 피와 고독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한다.  '푸른 하늘을'에서 자유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며,혁명은 본디 '고독한 것'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서라벌예대·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 등에서 시간 강사 노릇을 하던 그는 이 혁명이 '미완'으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비관적 예감에 사로잡힌다.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뒤 새로 들어선 제2공화국의 요직을 친일 지주와 관료,경찰 출신이나 보수적 인사들이 차지할 때 혁명은 이미 실패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혁명이 좌절되었다고 느끼자 그는 '제2공화국!/너는 나의 적이다/나는 오늘 나의 완전한 휴식을 찾아서 다시 뒷골목으로 들어간다'고 토로하거나,체제와 제도는 거의 달라지지 않고 사람만 바뀐 현실 상황에 비애를 느껴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고 절규한다.  이듬해 5·16 군사쿠데타가 터지고 군부 세력이 정권을 잡자 현실에 대한 시인의 환멸과 절망은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시인을 정말로 괴롭힌 것은 그토록 혁명을 원했으면서도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소시민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자신이 '현실의 피해자일 뿐 아니라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뼈저린' 인식이다.  혁명의 장애 요소들이 우리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는 깨달음은 정치와 사회 현실에 주고 있던 그의 눈길을 다시 '안'으로 돌리게 한다.  그러나 '안',즉 아내를 비롯한 가족이라든지 헤어날 길 없는 소시민적 일상은 나태와 허위로 감싸여 있고 이런 사실은 그를 못 견디게 만든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는 거지가 되고 싶다고 외치거나 가족이라는 속된 사슬에서 풀어달라고 미친 듯이 소리를 쳐서 잠자던 아내와 아이들을 깨워 울리는 등 예전보다 심하게 식구들을 괴롭힌다.  그는 혁명 뒤에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조국의 후진적인 정치 현실에 절망하며 그 절망을 술로 풀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술이 억병이 되어서 눈 위에 쓰러진 것을 지나가던 학생이 업어 가지고 경찰서에 데려다 준 일도 있었다.  술에 취한 채 경찰서에 업혀간 그는 순경을 보고 천연덕스럽게 절을 하고 "내가 바로 공산주의자올시다!" 하고 인사를 했다.  그는 이튿날 사지가 떨어져나갈 듯이 아픈 가운데에도 아내에게 이 말을 전해 듣고는 더럭 겁을 내기도 한다.  극심한 자기 비하나 자기 연민에서 비롯된 이런 잦은 음주와 가정 폭력은 시에서 혁명의 좌절을 가져온 소시민 계급의 안일함과 소극성을 향해 거침없이 내뱉는 야유와 욕설로 변용된다.  영원한 자유를 향한 비상과 거듭된 좌절 사이에 걸쳐 있는 김수영의 시 세계는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영 시의 감동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1968년 4월 13일,그는 펜클럽이 마련한 부산의 문학 세미나에 참석해 "시여,침을 뱉어라"(원래의 제목은 "시에 있어서의 형식과 내용"이다)라는 제목으로 40분쯤 강연을 한다.  그는 이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파격적이고 예기치 못한 발언으로 청중을 당혹에 빠뜨린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내가 지금-바로 지금 이 순간에-해야 할 일은 이 지루한 횡설수설을 그치고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다"  김수영은 상업 학교를 나왔음에도 숫자를 극도로 싫어해 원고지에 매기는 번호도 아내나 여동생에게 부탁하곤 한다.  1968년 6월 15일,그는 이날도 아내가 번호를 매긴 원고를 들고 광화문 네거리에 있던 신구문화사에 나갔다.  번역 원고를 넘긴 뒤 고료를 받은 그는 이날 밤 신구문화사의 신동문(辛東門),늦깎이로 등단한 신예 작가 이병주(李炳州),한국일보 기자인 정달영(鄭達泳)과 어울려 청진동의 술집들을 옮겨다니며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신다.  술에 취한 김수영은 좌충우돌하며 횡설수설하던 끝에 "야, 이병주,이 딜레탕트야" 하고 시비를 걸었다.  이병주는 "김 선생,취하셨구먼" 하고 껄껄 웃어 넘긴다.  그들이 헤어진 것은 밤 이슥한 시각.김수영은 이병주가 운전사 딸린 자신의 폭스바겐 차로 모시겠다는 것을 뿌리치고 시내 버스를 타고 서강 종점에서 내린다.  그 때 좌석 버스 한 대가 인도로 돌진하면서 인적 끊긴 길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던 김수영의 뒤통수를 들이받는다.  김수영은 '퍽!' 하는 두개골이 파열되는 소리를 내며 나가 떨어진다.  밤 11시30분께의 일이었다.  그는 응급실로 옮겨지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이튿날 아침에 숨진다.  김수영은 스스로 몸담고 있는 사회 현실에 대한 준엄한 비판 의식을 시 속에 구현하고자 애썼다.  그는 해방 이듬해에 시작 활동에 뛰어들어 1950년대의 궁핍하고 혼란한 시기에 '후반기' 동인을 거치며 비로소 자신의 독자적인 문법을 발견하고 비판적 시선을 날카롭게 심화시켰다.  이어 4월 혁명을 기점으로 1960년대에 들어서며 아직 정치·경제·사회·문화의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현실과 그의 의식은 첨예하게 부딪친다.  이 때 시인 김수영의 비판적 감수성이 절정의 시편들을 토해낸다.  김수영은 근대적 자아 찾기,온몸으로 자기 정체성 찾기의 한 모범을 보여준 시인이다.  그는 이상(李箱) 이후 최고의 전위 시인이며 4월 혁명의 정치적 함의를 정확하게 읽어낸 명실상부한 현대 시인이다.  그는 문학 속에 하찮은 '일상성'을 수용하고,삶이 문학이며 문학이 곧 삶임을 일깨운다.  거칠고 힘찬 남성적 어조의 시 속에 담아 낸 소시민적 자아에 대한 가차없는 자기 폭로,후진적 정치 문화에 대한 질타,빈정거림,맹렬한 비판은 오랫동안 여성적 정조의 전통을 이어오던 한국 시에 대한 반동이며 갱신의 뜨거운 몸짓이다.  그는 정신의 깊이와 정직한 자기 성찰,예술가의 순결한 양심과 완전하게 밀착된 시를 쓰려고 했으며,이것이 곧 시인에게 부과된 행동과 실천의 길임을 믿은 사람이다.  따라서 시를 쓴다는 것은 삼중의 싸움,곧 언어와 자기자신,그리고 정치 현실과의 힘든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김수영은 그 길을 기꺼이 걸어갔다.  그의 시집이 30여 년이 훨씬 지난 오늘까지 여전히 이 땅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그리고 꾸준히 읽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 시인·문학평론가 > =========================================================== [장석주의 '한국문단 비사']                                김수영 - 원고료 꼬박꼬박 '주머니로' 1, 1950년대 문단에서 김수영은 노랭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누구랄 것도 없이 가난하게 살던 당시의 문인들은 원고료를 받으면 집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동료들의 막걸리값으로 풀어야 했다.  그것이 당시 한국 문단의 미풍 양속이고 관습이었다.  따라서 원고료를 안주머니에 챙겨 꼬박꼬박 집에 갖다주는 김수영의 행위는 이런 관례를 깨뜨려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수영에게 글쓰기와 번역은 가장으로서 생활비를 버는 노동이다.  그는 작품이 발표되거나 번역 원고를 넘기고 나면 신문사나 잡지사로 찾아가 당당하게 원고료를 재촉한다.  창작을 노동으로 생각하는 시인에게 그것은 당연한 행동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김수영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어떤 잡지 편집자는 몇 밤을 새워 번역한 원고의 원고료를 받으러 온 김수영에게 대놓고 "당신이 일해 오는 것은 무서운 생각이 든다"고 모욕적인 말을 내뱉기도 한다.  2.  1950년대 말,서울 명동의 한 술집에서 시인 몇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이미 술기운이 올라서 다들 붉어진 얼굴이다.  그들 사이에는 시며 잡지,원고료,문단 얘기들이 오간다.  다만 유난히 키가 큰 한 사나이는 아까부터 입을 꾹 다문 채 말이 없다.  좌중의 화제가 사회와 정치 쪽으로 옮아가자 입을 다물고 있던 사나이도 말문을 연다.  엔간히 취기가 올라 있던 그는 자유당과 이승만을 향해 직설적인 비판과 함께 욕을 토해낸다.  한 시인이 제지하려고 들자 그가 대뜸 항의한다.  "아니,자유 국가에서 욕도 내 마음대로 못 한단 말이오?" "글쎄,김형 말이 도에 지나치니까 하는 말이지" "도에 지나쳐? 그럼 이 썩어빠지고 독재나 일삼는 정부며,늙은 독재자를 빼놓고 불쌍하고 힘없는 문인들 험담이나 해서 쓰겠어? 당신 시가 예술지상주의 냄새가 나는 건 그 지나친 조심조심 때문이오!"  이에 상대방이 발끈해 말다툼으로 번지고 결국 술상까지 엎어져 술자리는 난장판으로 끝난다.  이 키 큰 사나이가 바로 시인 김수영(金洙暎·1926∼1968년)이다.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노고지리가 자유(自由)로왔다고/부러워하던/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사람이면 알지/노고지리가/무엇을 보고/노래하는가를/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혁명(革命)은/왜 고독한 것인가를//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이라고 노래한 김수영.  그는 현실의 전위에 선 시인의 불온성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며,도시 소시민의 내면과 자의식을 까발려 내보이며,그때까지 한국 시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여성적 운율과 재래의 토속성을 벗어던지고 세련된 도시 모더니즘의 시세계로 나아갔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온갖 금기와 허위의식을 깨뜨리기 위해 좌충우돌하며 그가 생전에 남긴 1백80여편의 도저한 요설의 시들은 곧 쉬지 않는 싸움의 도구이고,싸움의 현장이다.  그는 1921년 11월27일 서울 종로 6가에서 김태욱(金泰旭)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다.  김수영네는 경기도 파주·문산·김포와 강원도 철원·홍천 등지에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해마다 4백여석을 거둬들이는 지주 집안이었으나,일제의 침탈 뒤 급변하는 사회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했다.  어의동공립보통학교(지금의 효제초등학교)를 전학년 우등으로 마친 김수영은 당대의 수재들이 진학하던 경기도립상업학교에 응시했다가 떨어진다.  당연히 합격할 것으로 알았던 집안은 낙방 소식에 울음바다가 된다.  2차로 응시한 선린상업 주간부에도 떨어져 결국 선린상업 전수과 야간부에 진학한다.  상급학교 입시에 거푸 실패한 것은 잔병치레가 잦던 그가 보통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폐렴과 늑막염으로 앓아 누워 1년쯤 학업을 쉰 탓이다.  1941년 김수영은 선린상업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뒤 도쿄성북(東京成北)고등예비학교와 도쿄상대(東京商大) 전문부에 적을 두고 공부한다.  유학에서 돌아온 뒤 태평양전쟁의 막바지에 만주 지린성(吉林省)으로 이주한 가족을 따라가 거기서 한동안 연극에 빠져든다.  그는 해방과 더불어 귀국한 뒤 친구와 함께 일고여덟 달 동안 영어 학원을 경영하기도 한다.  이 무렵 연극에서 시 창작으로 진로를 굳힌 그는 1945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廷)의 노래'를 내놓으며 문단에 나온다.  그의 등단작은 평론가 김현의 말처럼 "조지훈류의 회고 취미가 압도적"인 작품이다.  그가 연희전문 영문과 4학년에 편입학했다가 이내 그만둔 것은 1946년의 일이다.  선배 시인들의 복고적이고 퇴영적인 언어 관습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자신의 작품에 불만이 많던 그는 두번째 작품인 '공자(孔子)의 생활난(生活難)'에 이르러 범속한 일상 용어들을 시어로 바꿔놓는다.  김수영의 시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사물과 현실을 '바로보려는 정신'이다.  이 비타협적인 '바로보려는 정신'이야말로 반골의 전형성을 드러내는 정신인 것이다.  1950년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다.  서울의대 부설 간호학교에서 영어 강사 노릇을 하고 있던 김수영은 인민군이 퇴각할 때 의용군으로 징집되어 이북으로 끌려간다.  1개월 동안 훈련을 받은 뒤 북원훈련소에 배치된 그는 유엔군이 평양 일대를 장악하면서 자유인이 되어 남하한다.  얼마 뒤 서울 충무로에서 경찰에 체포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내진다.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고 스스로 전하듯이,그는 포로수용소 야전 병원 외과 원장의 통역으로 있다가 풀려난다.  그는 이후 미8군 수송관의 통역,선린상고 영어 교사,평화신문사 문화부 차장 등을 거친다.  서울 마포 구수동으로 이사한 1955년 무렵부터 그는 양계(養鷄)와 번역을 하며 힘겹게 가족을 부양한다  3.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한번 정정당당하게/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 파병에 반대하는/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일부) 이 시는 주체로서의 각성과 반성을 보여주는 김수영의 정신적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의 실천적 이성은 마땅히 "왕궁의 음탕"과 "언론의 자유","월남 파병"같은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들에 온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생활 속에서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한다.  설렁탕집 여주인과 야경꾼들은 그와 마찬가지로 소시민의 범주에 든다.  행동에 나서기보다 일상의 조가비 속에서 방관자로 지내며 나약한 후진국 지식인에 머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가 치를 떤 까닭은 바로 이런 비겁함 자체가 퇴폐고 타락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그를 자기 연민과 비애의 감정으로 나아가게 하거나 때때로 온갖 억압으로 가득 찬 사회 속에서의 고독한 자기 학대로 나아가게 한다.  4. 1960년 4월 12일 부산일보를 받아 든 독자들은 신문에 실린 사진 한 장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머리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중앙 부두 앞 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주검 사진이다.  마산상고 입학 시험을 치르기 위해 전북 남원의 집을 떠나 마산의 할머니 집에 와 있던 김주열은 부정 선거 규탄 시위가 벌어진 3월 15일 밤에 사라졌다.  행방불명된 지 거의 한 달만에 참혹한 주검이 되어 나타난 열일곱 살 소년.이 한 장의 사진이 3.15부정선거와 장기집권을 꾀하는 이승만 정권에 신물이 나 있던 민심을 분노로 들끓게 만들어 마침내 4월 혁명의 기폭제가 된다.  4월 혁명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세대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4월 혁명에 대한 자의식이 강렬하고 이를 자신의 문학적 자산으로 삼아 성공한 사람으로는 시인 김수영과 신동엽,소설가 최인훈,평론가 김현을 꼽을 수 있다.  4월 혁명 기간 내내 김수영은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들뜬 마음으로 거리를 쏘다녔다.  거의 매일 만취되어 집에 돌아오고,어느 때는 고래고래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다가 날이 새면 또 거리로 뛰쳐나가는 것이다.  4월 혁명을 통해 김수영은 비로소 시인으로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김수영은 혁명의 현장을 생생히 목격하고 자유에 대한 느꺼움을 가누지 못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후 아침에 깨어나서는 말짱한 정신으로 시와 산문을 미친 듯이 썼다.  그리고 정치와 사회 현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비로소 그의 시 세계는 만개하며 절정을 맞은 것이다.  그의 언어들은 풍자(諷刺)와 해탈(解脫) 사이로 뚫린 길 위를 질주한다.  그의 시는 독재,빈곤,무지,허위,속물 근성을 사정없이 질타하고 후진국 지식인의 설움을 머금는다.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 소시민적 자아의 소심함과 비겁함을 까발리며 그는 치를 떤다.  이처럼 젊은 정신과 끊임없는 자기 갱신의 언어는 그를 영원한 청년 시인으로 남게 한다.  그는 자유와 정의,사랑과 평화,행복을 얻기 위한 혁명에는 피와 고독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한다.  '푸른 하늘을'에서 자유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며,혁명은 본디 '고독한 것'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서라벌예대·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 등에서 시간 강사 노릇을 하던 그는 이 혁명이 '미완'으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비관적 예감에 사로잡힌다.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뒤 새로 들어선 제2공화국의 요직을 친일 지주와 관료,경찰 출신이나 보수적 인사들이 차지할 때 혁명은 이미 실패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혁명이 좌절되었다고 느끼자 그는 '제2공화국!/너는 나의 적이다/나는 오늘 나의 완전한 휴식을 찾아서 다시 뒷골목으로 들어간다'고 토로하거나,체제와 제도는 거의 달라지지 않고 사람만 바뀐 현실 상황에 비애를 느껴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고 절규한다.  이듬해 5·16 군사쿠데타가 터지고 군부 세력이 정권을 잡자 현실에 대한 시인의 환멸과 절망은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시인을 정말로 괴롭힌 것은 그토록 혁명을 원했으면서도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소시민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자신이 '현실의 피해자일 뿐 아니라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뼈저린' 인식이다.  혁명의 장애 요소들이 우리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는 깨달음은 정치와 사회 현실에 주고 있던 그의 눈길을 다시 '안'으로 돌리게 한다.  그러나 '안',즉 아내를 비롯한 가족이라든지 헤어날 길 없는 소시민적 일상은 나태와 허위로 감싸여 있고 이런 사실은 그를 못 견디게 만든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는 거지가 되고 싶다고 외치거나 가족이라는 속된 사슬에서 풀어달라고 미친 듯이 소리를 쳐서 잠자던 아내와 아이들을 깨워 울리는 등 예전보다 심하게 식구들을 괴롭힌다.  그는 혁명 뒤에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조국의 후진적인 정치 현실에 절망하며 그 절망을 술로 풀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술이 억병이 되어서 눈 위에 쓰러진 것을 지나가던 학생이 업어 가지고 경찰서에 데려다 준 일도 있었다.  술에 취한 채 경찰서에 업혀간 그는 순경을 보고 천연덕스럽게 절을 하고 "내가 바로 공산주의자올시다!" 하고 인사를 했다.  그는 이튿날 사지가 떨어져나갈 듯이 아픈 가운데에도 아내에게 이 말을 전해 듣고는 더럭 겁을 내기도 한다.  극심한 자기 비하나 자기 연민에서 비롯된 이런 잦은 음주와 가정 폭력은 시에서 혁명의 좌절을 가져온 소시민 계급의 안일함과 소극성을 향해 거침없이 내뱉는 야유와 욕설로 변용된다.        2008년 김수영 시인의 40주기를 맞아 많은 후배시인들은 김수영 시인의 작품을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로 꼽았다.   나희덕 시인은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사랑을 발견하겠다’(김수영 ‘사랑의 변주곡’)에서  “그의 전언은 혼란도가 낮은, 그리하여 폭력적 질서에 갇혀 있는 나의 시들을 화들짝 깨우는 말”이라고 말한다.   장석주 시인은 “비가 오고 있다/여보/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김수영 ‘비’)에 대해 “한순간에 눈이 번쩍 뜨인다. 비의 운동역학에 ‘비애’를 슬쩍 얹는 솜씨라니!”라며 감탄한다.  ‘시인세계’는 겨울호에서 현역 시인 109명이 뽑은 ‘벼락 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를 가려 뽑은 기획특집을 마련했다. 강은교 김규동 신달자 등 원로에서 정일근 이원 등 중견 시인까지 전 연령대를 망라한 시인들이 가슴에 감춰온 ‘최고의 시구’를 조사해 꾸민 기획이었다.  조사 결과 시인들의 시세계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인은 단연 김수영이었다.‘최고의 시구’로 언급된 횟수를 기준으로 본 평가이다. 이어 서정주와 정지용 이상 백석의 순이었다.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발목까지/발밑까지 눕는다/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이 시는 "풀"과 "바람"이라는 명사와 "눕다" "일어나다" "울다" "웃다"라는 동사 두 쌍만을 교묘하게 반복함으로써 뛰어난 음악성을 만들어낸다. 단순하기에 오히려 암시성의 극대화를 가져온 시가 바로 "풀"이다. 이런 까닭에 일부에서는 풀을 민초의 상징어로 읽어 참여시의 표본으로 내세우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대지에 뿌리를 내린 인간의 근본적 삶과 관련된 순수 서정시의 백미로 본다. 이처럼 견해가 엇갈리는 것 자체가, 이 시가 풍부한 의미성을 내재하고 있는 문제작이라는 증거다.    시를 쓴다는 것은 삼중의 싸움, 곧 언어와 자기 자신, 그리고 정치 현실과의 힘든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김수영은 그 길을 기꺼이 걸어갔다. 그의 시집이 30여 년이 훨씬 지난 오늘까지 여전히 이 땅의 젊은이들 사이에서가장 널리 그리고 꾸준히 읽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것이다.  (장석주)   김수영 육필시(왼쪽)와 일기. 김수영의 유년기와 그 생애 김수영은 1921년 11월 27일 서울 종로 6가에서 김태욱(金泰旭)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다. 김수영네 집안은 본래 의관(醫官)이나 역관(譯官), 부상(富商)들로 이루어진 중인들의 주거지인 관철동에 있었다.    무반(武班) 계급에 속한 김수영네는 경기도 파주. 문산. 김포와 강원도 철원. 홍천 등지에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해마다 4백여 석을 거둬들이는 지주 집안이었으나, 일제의 침탈 뒤 급변하는 사회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했다.  김수영이 태어나던 해에 관철동에서 종로 6가로 이사한다. 그는 어의동 공립보통학교(지금의 효제초등학교)를 전학년 우등으로 마치고 당대의 수재들이 진학하던 경기도립상업학교에 응시했다가 떨어진다. 당연히 합격할 것으로 알았던 집안은 낙방 소식에 울음바다가 된다. 2차로 응시한 선린상업 주간부에도 떨어져 결국 선린상업 전수과 야간부에 진학한다. 상급학교 입시에 거푸 실패한 것은 잔병치레가 잦던 그가 보통 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폐렴과 늑막염으로 앓아 누워 1년쯤 학업을 쉰 탓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건강이 좋지않았다.   1941년 김수영은 선린상업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뒤 도쿄성북(東京成北)고등예비학교와 도쿄상대(東京商大) 전문부에 적을 두고 공부한다. 일본행의 동기가 유학 때문만이 아니라 당시 김수영의 첫사랑이었던 고인숙이라는 여인 때문일 거라는 가족의 증언도 있다. 정확한 사정은 알수 없으나 김수영은 일본에서 고인숙을 만나지 못하였고, 동경성북예비학교에 들어가 대학 입학 준비를 하다가 그만두고 미즈시나 하루키(水品春樹)연극연구소를 찾아갔다. 유학에서 돌아온 뒤 태평양전쟁의 막바지에 만주 지린성(吉林省)으로 이주한 가족을 따라가 거기서 한동안 연극에 빠져든다. 그는 해방과 더불어 귀국한 뒤 친구와 함께 일곱여덟 달 동안 영어 학원을 경영하기도 한다.    이 무렵 연극에서 시 창작으로 진로를 굳힌 그는 1945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廷)의 노래"를 내놓으며 문단에 나온다. 그가 연희전문 영문과 4학년에 편입학했다가 이내 그만둔 것은 1946년의 일이다.    1950년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다. 서울의대 부설 간호학교에서 영어 강사 노릇을 하고 있던 김수영은 피난을 가지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다가 인민군이 퇴각할 때 의용군으로 징집되어 이북으로 끌려간다. 평남 야영 훈련장에서 1개월 동안 훈련을 받은 뒤 북원(北院)훈련소에 배치된 그는 유엔군이 평양 일대를 장악하면서 자유인이 되어 남하한다.    그런데 얼마 뒤 그는 서울 충무로에서 경찰에 체포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내진다. 그는 포로수용소 야전병원 외과 원장의 통역으로 있다가 풀려난다. 그는 이후 미8군(美八軍) 수송관의 통역, 선린상고 영어 교사, 평화신문사 문화부차장 등을 거친다. 서울 마포 구수동으로 이사한 1955년 무렵부터 그는 마포에서 양계(養鷄)와 번역을 하며 힘겹게 가족을 부양한다.    ‘겨울의 사랑’ 육필원고. 사진 제공 민음사 ‘늬가 준 요ㅅ보의 꽃잎사귀 우에서 잠을 자고/늬가 준 수건으로는/아침에 얼굴을 씻고/(…)이만하면 나는 너의/애정으로 목욕을 할 수/있는 행복한 사람이다(…)늬기 너의 애무/대신 준 흰 속옷/(…)따뜻한 사랑이였다/발악하는 사랑이였다’(겨울의 사랑) 김수영 시인(사진)의 미발표 시 ‘겨울의 사랑’이 나왔다. 이 시는 김 시인의 부인인 김현경 씨(82)가 보관해왔으며, 1일 나온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민음사)에 실렸다. ‘겨울의 사랑’은 1954년경 쓴 사랑시다. 전집을 엮은 이영준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연구원은 1일 기자간담회에서 “시인이 부인과 별거하던 중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만났던 간호원을 서울에서 재회하며 쓴 시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실 비판이나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을 남긴 시인의 작품으로는 이례적이다.  김수영의 시는 러닝셔츠 차림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그의 사진처럼, 시란 아름다울 필요가 없다고 작정한듯 '간단한 복장'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지나칠 만큼 진실과 정직을 시어로 삼았던 그는 타계하기 두달 전인 1968년 4월13일, 부산에서 열린 문학세미나에서 '시여, 침을 뱉어라'라는 발제하에 이렇게 일갈했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도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이다."  김수영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한 시인이다. 그의 성장기의 주된 삶의 공간이 도시라는 점은 그의 시가 전통 서정시의 공간인 농촌이나 전원이 아닌 도시를 배경으로 적극 차용하는 모더니즘적 성격을 지니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그가 두 자식이 사망한 뒤 태어난 병약한 맏아들이라는 점도 그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그는 할아버지를 비롯한 식구들의 지나친 관심과 애정을 받음으로써 자아 중심적인 고집 불통의 성격을 갖게 된다. 그래서 후에 그가 이어령과 벌이는 참여시 논쟁이나 시론 등에서 강하게 표출되는 타협을 모르는 신념의 고수는 유아기의 환경이 주요한 인자로 작용했으리라 짐작된다.   ▲ 김수영 시인의 초상화 앞에 선 부인 김현경씨. 김씨는“초상화 속 남편이 입은 옷들은 모두 내가 만들어 준 것들”이라고 말했다. /문학동네 제공   김 시인이 우리집 바깥 길가에서 휘파람을 불어요. 베토벤 교향곡 〈운명〉을 잘 따라 불렀어. 조바심이 나서 나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 그래서 몰래 구두 갖다 놓고 또  이쪽으로 오버코트 갖다놓고…. 이런 식으로 기어이 나가서 만나곤 했지요." "시여 침을 뱉어라"며 엄정한 시정신을 추구했던 시인 김수영(金洙暎·1921~1968)의 부인 김현경(金顯敬·81)씨가 회상한 시인과의 연애시절 한 장면이다.   김수영 시인과 부인 김씨는 6·25 전쟁에 김 시인이 의용군으로 끌려나가고 종전 후에는 한 때 별거를 하는 등 거센 풍파를 겪었지만 그 후 시인이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함께 살았다.   부인 김씨는 6·25 전쟁중 김 시인이 의용군으로 입대하게 된 계기에 대해 "길에서 붙잡혀 끌려갔다"고 증언했다. 김 시인의 의용군 입대에 대해서는 그간 자원입대와 강제 징집 사이에 논란이 있어 왔다. 부인 김씨는 "내가 만들어 준 셔츠를 입고 외출한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수소문 끝에 서울 일신초등학교에 수용된 것을 알고 감자를 한 보따리 삶아 찾아갔다"고 회고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패퇴하던 인민군에 의해 북으로 끌려가던 김 시인이 살아 돌아온 사실은 그간 '탈출했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가 그녀의 증언을 통해 이번에 세밀하게 드러났다.  '큰 구덩이에 세워놓고 빵(집단사살)해버렸는데… 어느 순간 자기도 쓰러졌는데 자기 위로 팍팍 시체고 사람이고 겹쳐지면서 쌓이더라.… 어떻게 해서든 죽은 시늉을 해야 되겠다 싶어서 그러고 있었다.'라고 김수영이 말하더라고.   별거와 재결합 부인 김씨는 김수영 시인의 선린상고 선배이자 영문학자인 이모씨(작고)와 자신이 잠시 동거한 사실을 두고 떠도는 풍문에 대해서도 "아주 거짓말은 아니다"고 말했다. 전쟁 중 임시수도 부산에 있는 시인을 찾아갔던 그녀는 일자리를 알아본다며 평소 안면이 있던 이씨를 만나러 갔다. 부인 김씨는 그러나 당시 40대 노총각이었던 이씨의 집에 그대로 눌러 앉았다.   두 사람이 살던 집에 김 시인이 나타나 부인 김씨에게 "가자"고 했지만 실제로 그녀가 시인에게 돌아온 것은 2년이 더 지난 뒤였다. 김씨는 (이혼하기 위해)김 시인의 도장까지 받았지만 "이러다가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고, 재결합을 결심한 뒤 서울 성북동에 집을 마련했다. 부인은 재결합하던 날의 상황도 증언했다. "삼선교 어디에서 5시쯤 만나자"고 엽서를 써 보내자 시인이 '이발을 깨끗하게 하고 딱 나와 앉아 있었'고, 두 사람은 '그냥 삼선교를 빙 두 바퀴 돌고 그날 밤 이후 다시 부부로 같이 살기' 시작했다. 부인 김씨는 대담에서 김 시인이 "술을 무지무지하게 먹고 들어오는 날이 있는데, 그런 날은 길에서 이○○를 만났다든지 하는 자극이 있는 날"이라는 말로 남편에 대한 미안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부인은 또 "1년에 한두 번 무지무지하게 (구타를) 당하기도 했"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내가 꼭 냉수를 떠다 줬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남편에게로 돌아온 뒤 "시인과 밤을 새가면서 얘기를 참 많이 했다"고 했다. 남편에게 "시인 중의 시인, 최고의 시인"이라고 말해주면 김 시인이 아주 좋아하며 "나는 인류를 위해서 시를 쓰는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시인으로서의 남편에 대해서도 나름의 평가를 내렸다. "똑같은 기분으로 절대로 시 두 편을 안 써요. 그리고 곱게 쓰는 것도 싫어하고." 아내가 "어머 이거 참 좋다"고 하면 시인은 일부러 더 거칠게 시를 만들어서 대중성을 경계했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왜 이렇게 어려워요?"라고 물으면 "내가 좀 덜 됐지"라며 난해하다는 지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도 했다고 한다.   ▲ 아내를 등장시킨 김수영의 시. 아내 김현경에 따르면 김수영은 1960년대 중반 이후 하이데거의 철학에 큰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이 영향은 그가 남긴 빼어난 산문 중 하나인 (1968)에 담겨 있다. 김현경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금도 남편이 남긴 시 원고를 보면 가슴이 뜨겁고 이런 大詩人과 살았다는 것이 흐뭇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시인이 쓰던 물건은 재떨이 하나도 버리지 않고 지금껏 간직하고 있다"며 "1980년대 초에 충북 보은 속리산 자락에 집을 사 둔 것이 있는데 이곳에 생전에 시인이 사용하던 그대로 서재를 복원하는 것이 내 생의 마지막 소망"이라고 말했다. 몇년전 교육방송(EBS)에서 방영한 을 볼 때였다. 이 작품은 1950년대 명동에서 활동한 예술인들의 삶과 작품을 다룬 일종의 예술드라마였다. 김수영은 그 주인공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서울로 돌아와 전쟁 중 헤어졌던 아내와 다시 결합해 마포에서 양계업을 시작했던 당시의 어느 날.  오랜 친구인 박인환이 시집을 낸 것을 보고 아내 김현경이 당신도 이제는 마음 편히 시를 쓰라고 했을 때, 그는 하루하루의 노동이 바로 시라고 답하면서 아내를 위로한다. 문제는 그 다음 장면이다. 저녁을 먹은 후 그는 집 마당 닭장 앞에서 혼자 쭈그리고 앉아 있다. 살랑거리는 강바람 속에 닭들이 구구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는 부인에게 이야기하듯 자신에게 말을 건다.  쓰고는 싶은데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의용군과 포로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여전히 떨쳐버리기 어렵다고, 한때 자신을 떠난 아내를 용서할 수 없다고, 아니 미안하다며 그는 눈물을 글썽거리는 장면이 기억난다.       시인 김수영의 돌연사   1968년 4월 13일, 그는 펜클럽이 마련한 부산의 문학 세미나에 참석해 "시여, 침을 뱉어라"(원래의 제목은 "시에 있어서의 형식과 내용"이다)라는 제목으로 40분쯤 강연을 한다. 그는 이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파격적이고 예기치 못한 발언으로 청중을 당혹에 빠뜨렸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내가 지금 - 바로 지금 이 순간에 - 해야 할 일은 이 지루한 횡설수설을 그치고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다."    여동생 김수명씨는 1955년 창간된 월간 '현대문학'에 입사, 초대 편집장 오영수씨에 이어 2대 편집장을 20년 가까이 지냈다. 문예지로서는 국내 최초의, 그리고 최장기 여성편집장이었다.   김수영은 상업 학교를 나왔음에도 숫자를 극도로 싫어해 원고지에 매기는 번호도 아내나 여동생에게 부탁하곤 했다. 1968년 6월 15일, 그는 이날도 아내가 번호를 매긴 원고를 들고 광화문 네거리에있던 신구문화사에 나갔다.  번역 원고를 넘긴 뒤 고료를 받은 그는 이날 밤 신구문화사의 신동문(辛東門), 늦깎이로 등단한 신예 작가 이병주(李炳州), 한국일보 기자인 정달영(鄭達泳)과 어울려 청진동의 술집들을 옮겨다니며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셨다.    술에 취한 김수영은 좌충우돌하며 횡설수설하던 끝에 "야,이병주, 이 딜레탕트야"하고 시비를 걸었다. 이병주는 "김 선생,취하셨구먼"하고 껄껄 웃어 넘긴다. 그들이 헤어진 것은 밤 이슥한 시각. 김수영은 이병주가 운전사 딸린 자신의 폭스바겐 차로 모시겠다는 것을 뿌리치고 시내버스를 타고 서강 종점에서 내렸다. 그 때 좌석버스 한 대가 인도로 돌진하면서 인적 끊긴 길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던 김수영의 뒤통수를 들이받았다. 갈색 옷을 입고 있던 김수영은 "퍽!"하는 두개골이 파열되는 소리를 내며 멀찌감치 나가떨어진다. 밤 11시 30분께의 일이었다. 그는 적십자병원 응급실로 옮겨지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이튿날 아침에 숨졌다.    “자신을 활활 태운 오빠"   "최근 결심한 게 하나 있는데 조카들에게 유언을 할까봐요. 내가 죽거든 분골해 김수영 시비가 세워진 잔디밭에 뿌리라고 말이죠. 시비 뒤쪽 어디쯤. 그거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풀도 잘 자랄거고요."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그에게 오빠 김수영은 혈육 이상의 절대적인 존재인 것이다. 김수영 신화라는 현상 김수영 문학은 시인의 생전에는 비평적 조명을 그다지 받지 못하다가 그의 사후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김수영 문학을 텍스트로 한 2차 문서들의 집합에는 시인에 대한 회상이나 시와 산문에 대한 단상을 비롯하여 본격적인 평론에 이르기 까지 약 120편의 길고 짧은 글들과 100여 편의 석사논문 그리고 10여편의 박사논문이 들어있다. 김수영 시의 가장 흔한 모티프의 하나는 폭로적인 자기 분석이다. 죄와벌(1963), 강가에서(1964),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 식모(1966), 엔카운터지(1966), 전화이야기(1966), 도적(1966), 美濃印札紙(1967), 성(1968),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1968)등 1960년대에 그가 쓴 시들은 대체로 폭로적인 자기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 김수영의 그런 자기 해부와 노출은 늘 꾸임없는 직선적인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자기 분석은 김수영의 시의 구심적 핵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시에서는 본질적인 것이다. 1960년대 발표 작품뿐만 아니라 1950년대 발표한 작품에서도 거의 예외 없이 그러한 자기 분석을 발견할 수 있다. "먼 산정에 서있는 마음으로/나와 자식과 나의 아내와/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구름의 파수병,1956),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 나는 정지의 미에 너무나 등한하였다"(서시,1957),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아래에서/간간이/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사령, 1959). 이러한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작품들의 특징은 시인 자신의 구체적 일상을 분석 대상으로 삼으면서 거기에다 희화적인 극적 정황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 파병에 반대하는/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일부)  이 시는 주체로서의 각성과 반성을 보여주는 김수영의 정신적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의 실천적 이성은 마땅히 "왕궁의 음탕"과 "언론의 자유","월남 파병"같은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들에 온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생활 속에서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한다.  김수영의 미발표 시 15편 사후 40년 공개   이 원고들은 김수영의 부인 김현경씨가 보관해 오던 것으로, 10여 권의 수첩과 노트, 서류 봉투와 엽서, 광고지 등에 남긴 것이다. 이 가운데 라는 시는 4ㆍ19가 일어난 반년 뒤인 1960년 10월6일 탈고했지만 이념적인 금기 때문에 발표하지 못한 작품이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부분.                           시인의 문학세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내는 왜 덜 다듬어진 작품을 공개했을까. 27일 김씨가 사는 경기도 광주를 찾았다. 김씨는 시인의 육필 원고와 노트가 들어있는 커다란 반닫이를 열어 보이며 "깨끗하고 아름다운 부분만이 문학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27일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씨가 경기도 광주 자택에서 시인의 육필 원고들을 하나씩 꺼내 보이고 있다. /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김 시인(남편을 지칭)은 인생 전부가 시였어요. 생활이 시고, 시가 생활이었죠. 김 시인을 후대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미완성작도 있고 발표하기 싫은 것도 있었지만, 이제 와서 그것 때문에 김 시인이 비하될 것도 없잖아요." 이번에 공개된 작품 중 '김일성 만세(金日成 萬歲)'(1960)는 이념적 금기어를 직설적으로 담아 논란을 불렀다. 김씨는 "김 시인은 본질적으로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시는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일 뿐, 공산주의 찬양과는 거리가 멀어요. 김 시인은 절대적인 자유주의자였어요. 공산당과 호흡을 맞출 수 없는 사람이죠." 문학소녀였던 김씨는 고등학생 때 김수영을 만났다. 여섯 살 차이 나던 시인을 김씨는 '아저씨'라고 불렀다. 40년 전 장례식 때, 김씨는 시인의 관(棺)에 마르틴 하이데거의 책을 함께 묻었다.  시 한 편에 300원 하던 시절이었다. 김씨는 양계(養鷄)와 바느질삯으로 한 달 생활비 2600원을 벌었다. 1949년부터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 사이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혼하자는 말도 나오고 별거도 했다. 그러나 '예술과 밥'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인에게 받은 '벼락같은 감동'이 부인을 지탱하게했다.   김수영 시인이 떠오르는 시상(詩想)을 정리해놓던 노트. / 채승우 기자   "한번은 싸구려 대중잡지에서 소설을 써달라는 청탁이 왔어요. 원고지 70장짜리였는데, 원고료가 대두 한 말 값일 정도로 후했어요. 김 시인이 나보고 쓰라는 거야. 물론 이름은 가명으로 하는 거였고. 그 정도야 하룻밤이면 뚝딱이지. 아침에 원고를 건네주면서 원고료 받아오라고 시켰는데, 한밤중에 술에 잔뜩 취해 와서는 다짜고짜 주먹질을 했어요. '더러운 년, 나쁜 년' 하면서. 알고 보니, 원고료 받으려고 잡지사에서 기다리다 그 소설을 읽었는데 엄청나게 화가 났다는 거야. 내가 미워 죽겠더래요. 다음 날 아침에 해장국 들이밀고 방에서 나오려는데, 내 발목을 턱 잡았어요. '우리 그런 거 써서 밥 먹고살지 말자. 굶는 게 낫겠더라.' 그 말을 들으니, 두들겨 맞았다는 생각은 없어지고 눈물이 줄줄 흘렀어요."김씨는 요즘도 김수영의 작품을 꺼내 읽으며 새로운 감동을 받는다. "김 시인은 산문도 조각 같아요. '정말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최고다' 하는 생각이 솟아나요.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안기고 싶어."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씨가 경기도 광주 자신의 집에서 김시인에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김수영은 체질적으로 보수주의 또는 민중주의에 기울어지기 어려운 지식인이다. 김현이 지적하듯 일생 동안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자유였다. 자유에 대한 열망을 그는 현실과 역사 안에 끝없이 위치시키려고 했다. 또 이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권력을 비판하고 저항하고자 했다 참고 자료 : 부인 김현경이 밝힌 '인간' 김수영 시인 /대구 문인협회  [기타] 도서:한국시인론(백년글사랑,2003), 2002년 한국경제 연재, 장석주 시인. 문학평론가) ,  창작과 비평 건국 60년의 책·담론·지식인 김호기 교수의 대한민국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서③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 [원고지시대 작가들] 時의 자유정신 김수영… 분신으로 살아온 여동생 수명씨/ 정철훈 전문기자 chjung@kmib.co.kr,     [출처] 김수영|작성자 드라이문  
994    詩人들의 모양과 의미도 百人百色 댓글:  조회:4941  추천:1  2016-01-13
요절한 시인들이 보여준 죽음의 방식과 그 의미                                                       /정효구 | 문학평론가 1. 글을 열며 김소월, 이상, 윤동주, 박용철, 이장희, 임홍재, 신동엽, 김수영, 고정희, 기형도, 박정만, 이연주, 진이정……. 우리 시단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온 사람이라면 방금 열거한 시인들의 성명을 보고 필자인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금방 짐작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편의를 위하여 굳이 말을 꺼내자면, 위에서 열거한 시인들은 하나같이 길지 않은 생애를 보내고 잽싼 걸음으로 이승을 하직한 시인들이다. 이런 시인들을 가리켜 우리는 ‘요절시인’이라고 칭하거니와, 그런 시인들의 시와 삶 앞에서 우리는 각별한 감정과 끝나지 않는 사색의 시간을 갖는 것이 보통이다.  요절한 시인이든, 장수한 시인이든, 평균 수명 정도를 표나지 않게 살다 간 시인이든, 이런 모든 시인들을 포함한 인간들 하나하나의 죽음은 그 모양도 백인백색일 뿐만 아니라 그 의미 또한 백인백색이다. 그러므로 삶에 대한 연구 못지 않게 죽음에 대한 연구가 인간사를 깊이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죽음의 연구를 지속하다 보면, 사는 일 만큼 어려운 일이 죽는 일이며,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는 긴박한 문제는 삶의 그림자 혹은 동반자라고 할 수 있는 저 죽음이란 존재와 어떻게 투쟁하고, 대면하고, 대화하고, 타협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여기 세상을 일찍 떠남으로써 숱한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까운 감정에 사로잡히도록 만든 5명의 시인 ― 고정희, 기형도, 김남주, 박정만, 진이정 ― 과 관련하여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나는 오랫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관념적인 죽음이 아닌, 실존적인 육체의 죽음 앞에서 나는 말을 장황하게 풀어놓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으며, 일찍 찾아온 그들의 죽음이란 그림자 앞에서 그것을 정면으로 직시하며 맞대결할 용기가 쉽게 솟아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잘 달래며, 그리고 인간과 역사와 시인들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내 마음 속에서 회복시키며, 그들의 그림자를 고요히 끌어안고 발효시키다 보면 승화의 숨은 신비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이 글을 힘있게 밀어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 2. 역사와의 대결에서 실족한 비극 ― 고정희 고정희는 역사를 믿는 시인이다. 고정희는 역사가 진보한다고 생각하는 시인이다. 고정희는 역사가 진보한다고 생각하며 현실 속에 뛰어든 시인이다. 고정희는 그가 믿는 기독교까지도 이러한 역사관과 더불어 함께 하는 신앙이 아니라면 그 의미가 없다고 믿는 ‘역사주의자’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엔 항상 미래를 향한 희망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그런가 하면 그의 시엔 역사를 살리고 인간을 살려내려는 생명력이 가득하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시엔 역사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추진력과 역사 속의 인간들을 계몽시키고자 하는 교훈적 선동성도 가득하다. 더 나아가 그의 시엔 왜곡된 역사, 파행적인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정의감이 가득하다. 이런 고정희의 내면세계와 행동 그리고 그의 시를 통하여 분출되는 강한 의지력을 읽고 있노라면, 역사는 추상명사가 아니라 현장 속의 진행형 동사임을 절감하게 된다. 고정희, 그는 평생을 젊게 산 시인이다. 그가 쓴 시의 어느 구석을 보더라도, 그리고 그가 살아온 생애의 어느 시간을 보더라도 그는 청년처럼 싱싱하고 건강하였다. 그는 진행형 동사의 형태를 띤 역사의 중심부 혹은 최전선에 자신의 위치를 정하였고, 그 위치를 이탈하지 않으면서 정의의 역사를 만들어내려고 무던히 노력하였다. 그가 이처럼 진행형의 형태를 띤 역사의 중심부 혹은 최전선에 자신을 의연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세우면서 내공을 키우듯 스스로의 안팎을 무장하려고 노력한 일 중의 하나가 바로 매년 계속된 ‘지리산 등반’이었다. 그러나 그가 매년 하나의 의식儀式처럼 행한 지리산 등반은 그로 하여금 갑자기 불어난 홍수 속에서 실족을 하게 만듦으로써 그의 삶에 종지부를 찍게 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럴 수가 있느냐고, 그가 믿는 기독교 야훼 하나님에게 항의라도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의식처럼 치러진 그의 지리산 등반과 그에 포함된 적극적인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지리산 등반도중 생명을 잃은 그의 비극은 수많은 사람들을 각성시키고 그의 지리산 등반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지리산은 어떤 산인가. “아! 지리산!” 하고 외칠 때, 우리는 그 외침으로부터 남다른 느낌과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 까닭은 지리산이 인간과 관련된 무수한 삶과 역사의 내용들을 껴안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고 보면 고정희가 지리산을 오른 것은 물리적인 산으로서의 지리산을 오른 것이 아니다. 그는 역사의 한가운데를 오른 것이고, 그럼으로써 역사의 기운을 몸속 깊은 곳까지 흡수하고자 한 것이며, 그 힘으로 역사의 미래를 희망의 세계로 바꾸어 보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를 실족사시킨 지리산 계곡의 홍수처럼, 역사는 선한 의도까지도 무력화시키고 배제시킬 만큼 폭력적일 때가 너무나도 많다. 그러니 그 역사와 맞서서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뛰어드는 사람들은 폭력적인 역사의 횡포까지도 감내할 만한 용기를 갖고 있는 자들이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인간에 의해, 만든 것이 역사라고 불리움에도 불구하고, 역사란 어찌 그렇게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그 엄청난 문제 앞에서 역사와 대면한 고정희는 안타깝게도 실족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 나는 여기서 그의 실족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그는 분명 외형적으로 볼 때, 실족을 통하여 역사 바깥으로 주검이 되어 밀려난 존재가 되고 말았지만, 그는 그 실족에 의하여 역사의 물결에 온몸을 던지면서 역사의 온전한 회복과 발전을 꿈꾼 것이라고……. 그렇게 볼 때, 고정희의 실족사는 한편으로 비극의 형태를 띠지만, 다른 한편으론 영웅의 승리와 같은 성공담의 모습을 지니는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우리 시단은 한동안 허전하였다. 여성시단은 물론 민중시단, 더 나아가 기독교시단까지 허전함을 메우기 어려웠다. 그런 만큼 그의 역할은 컸었던 것이고, 그런 만큼 그의 죽음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 수많은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마련해주었던 것이다. 3. 밀려오는 어둠 속에서 질식한 생 ― 기형도 기형도의 시집처럼 어두운 시집이 또 있을까. 세상의 어둠이란 어둠은 다 이 시집에 모여들었듯이 그의 시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캄캄하였다. 따라서 그의 시집을 열어보는 일은 어둠과 대면하는 일이었으며, 그의 시 한 편 한 편을 읽는 일은 어둠을 만나고 판독하는 일과 같았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어둠의 세계에 사로잡히게 만들었을까. 아니 무슨 일로 인하여 세상의 어둠이 그의 영혼 속으로 그토록 오랫동안 강렬하게 몰려들어갔을까. 시대적·사회적 분석도 필요하겠지만, 특별히 생애사적 탐구와 심리학적 탐구를 필요로 하는 기형도의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그 어둠에 목이 콱콱 막히는 체험을 반복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것은 그의 시집 속에 자욱한 안개처럼 스며 있는 그 어둠의 유혹과 마력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에겐 어둠의 세계에 잠기고 싶어하는, 아니 어둠의 세계를 관음증 환자처럼 훔쳐보고 싶은, 아니 어둠 그 자체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이 숨어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기형도 시에 그토록 강하게 이끌리는 비밀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쯤해서 인간이 가진 죽음의 본능을 떠올린다. 죽음의 본능과 삶의 본능은 언제나 팽팽한 긴장 속에 있으면서 상호 모순관계를 유지하거나 상호 공존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무엇인가가 한 편에 유리한 계기를 이루게 되면, 이들 두 본능 중 하나의 본능이 월등하게 우세해지며 다른 하나를 억압한다. 기형도의 경우 죽음의 본능이 큰 세력을 형성하면서 삶의 본능을 억압한 형국이거니와, 그 거대해진 죽음의 본능에 저당잡힌 한 인간이 마침내 자기자신을 죽음 그 자체로 만들어버린 경우가 기형도의 예이다.  삶의 본능도 강력하고 교활하다. 그러나 죽음의 본능도 그에 못지 않게 강력하고 교활하다. 너무나도 순진하고 결백한 한 인간의 영혼은 죽음의 본능에 쉽게 빠질 수 있다. 아니 너무나도 깊이 사색하고 너무나도 진지한 한 인간은 그 스스로 죽음의 본능을 불러들일 수 있다. 나는 기형도를 보면서 이 두 가지 가능성을 함께 본다. 그는 ‘너무나도’ 순진하고 결백한 한 청년이었으며, 역시 ‘너무나도’ 깊이 사색하고 진지한 한 젊은 영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세상과 적절히 타협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가. 죽음의 본능이 유혹하면 삶의 본능을 불러오고, 삶의 본능이 조증躁症의 환자처럼 나부대면 죽음의 본능을 슬쩍 불러들이면서 이 양자 사이의 줄타기를 유연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지혜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인가.  그런 점에서 기형도는 지나치게 고지식했다. 그는 자학하듯 죽음의 본능이 부르는 소리 쪽을 끝까지 따라갔다. 끝이란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 그 끝을 요령도 부리지 않고 따라가다니……. 적당한 자리에서 멈추었어야 할 그의 행보가 ‘끝까지’ 이어짐으로써 그는 시로써 죽음의 노래를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육체적 죽음까지 감행하고 만 것이 아닌가. 우리는 사는 동안 죽음의 본능이 만들어내는 안팎의 수많은 죽음에 온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일이다. 죽음의 본능은 끊임없이 세포증식을 일으키며 한 사람을 어둠 속으로 익사시킬 만큼 괴력을 갖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죽음의 본능이 삶의 본능을 압도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죽음으로 인생을 마감한다. 그 시간은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 그러니 너무 이른 나이에 조로한 얼굴로 죽음의 본능 쪽에 몸을 맡길 일이 아니다. 죽음의 본능에 귀를 기울이며 그것을 승화시키는 일은 필요할지 모르나, 죽음의 본능 안쪽으로 무작정 발길을 들여놓고 출구를 발견하지 못하는 일은 안타까울 뿐이다. 기형도는 보통 사람들이 가기 어려운, 가서는 곤란한 죽음의 본능 쪽으로 지나치게 멀리 갔다. 그것을 우리가 바라보는 일은 두렵고 불안하면서도 우리의 욕망이 지닌 어떤 부분을 자극시켜주고 충족시켜준다. 그러나 그것을 직접 사는 일은 막고 싶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처럼 죽음의 본능에 이끌렸을 때, 우리는 보통 사람이기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보통 사람으로서 세속의 마당에 남아 적당한 타협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삶은 진부하지만, 진부한 것이 세속사라면, 그것을 용납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기형도와 같은 삶에 무한한 경외감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참을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끼며, 보통 사람인 수많은 사람들은 죽음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올 때까지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묵묵히 영위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이상주의자가 받은 형벌(?) ― 김남주 김남주의 시와 그의 생애를 보면서 나는 이상주의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김남주는 누가 뭐래도 근본적으로 이상주의자였고, 그 이상주의자의 꿈을 위하여 자신의 일생을 바친 사람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상주의자는 고귀하다. 이상주의자는 순결하다. 이상주의자는 정의롭다. 그러나 이상주의자만큼 위험하고, 이상주의자만큼 외롭고, 이상주의자만큼 결핍감에 사로잡히는 자가 또 있을까.  그런데 말이다. 세속의 찌든 시장터에서, 폭력이 난무하는 전선 같은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주의자가 나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고귀한 일이다. 어떻게 드높은 이상주의자의 꿈을 설정하고 그것만을 바라보며 몸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이상주의적 속성은 사람을 마비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상주의자의 꿈을 위하여 순교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말이다.  김남주가 가진 이런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보면서 나는 그가 변혁시켜 완성시키고자 한 역사의 현실을 생각해본다. 역사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역사는 발전하는가. 인간은 역사를 발전적으로 운영할 능력이 있는 존재인가. 진정 역사는 인간 편에 서 있는가. 역사는 어쩌면 인간에게 복수를 가할 만큼 난폭하고 무정한 존재는 아닌가. 어떻게 하면 역사를 믿고 역사 속에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꿈을 지닐 수 있을까. 유토피아는 과연 실현가능한가. 그 유토피아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 이외에도 무수한 물음을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질문은 이쯤에서 그치기로 하자. 그리고 김남주가 이상주의자의 열정을 바치다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간 일에 대하여 생각해보기로 하자. 김남주는 사회주의자였다. 그에게 사회주의는 모순덩어리의 현실을 넘어서서 유토피아로 가는 길이었다. 그는 순결한 이상주의자의 모습으로 이 사회주의를 신봉하면서 이 땅에 그가 유토피아라고 믿는 사회주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남주의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고, 지금도 동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박노해가 말하듯이 가치로서의 사회주의는 그 나름의 의미와 참뜻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사회주의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점이 아니라, 그 사회주의의 나라가 옳다고 믿으며 그것의 실현가능성을 신뢰한 김남주야말로 이상주의자의 전형이었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이런 김남주는 사회주의라는 종교 앞에서 순교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순교하는 사람은 그가 어떤 것을 믿고 옹호하든지 간에 거의가 이상주의자임이 틀림없다. 이상주의자가 아니라면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지 결코 순교의 방식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순교란 한편 비장하다. 그러나 순교란 다른 한편 어리석다(?). 관념 이전에 육체가, 유토피아 이전에 현실이, 미래 이전에 지금 이곳의 삶이 진실일 터인데 그 관념을 위하여, 유토피아를 위하여, 미래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상주의자인 김남주, 그는 이상주의자였기 때문에 받아야 할 형벌(?)을 받은 것이다. 그가 받은 형벌 앞에서 우리는 그의 이상세계에 동의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아픔을 느낀다. 세속사회와 적당히 타협하며 그 속에서 유연하게 처신하면서 세속의 단맛에 인생을 맡겼다면 그런 고통과 때이른 죽음은 없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리얼리스트의 냉정함과 교활함을 모른 채, 우직하게 이상주의자의 꿈을 삶의 한가운데에 놓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래서, 심란해진다. 그가 이 세속의 땅에서 당해야 할 고통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이다. 4. 정치적 폭력에 짓밟힌 개인 ― 박정만 정치적 폭력 앞에서 개인은 무력하기 그지없다. 폭력혁명으로 세력을 거머쥔 주체가 이 땅에 자신들을 태양으로 삼아 움직이는, 이른바 독재정치의 새판을 짜려고 폭력을 계속하여 휘두를 때, 개인은 그 아래서 개미 한 마리보다 나을 것이 없을 때가 많다. 새판을 짜려는 독재자들은 잔인하다. 그들이 새판을 짜는 데 방해가 되는 자들은 모두 금 밖으로 몰아내며 공포정치를 감행하기 때문이다.  박정만의 생애를 보며 나는 새판을 짜려는 독재자들의 폭력 앞에서 무력하게 쓰러진 한 개인을 본다. 주지하다시피 박정만은 1981년, 전두환 정권의 고문과 횡포로 인하여 어느날 직장과 건강과 가정을 다 잃어버린 가슴 아픈 사연의 주인공이다. 그는 좋은 서정시인이었고, 그는 한 출판사의 책임감 있는 직원이었으며, 그는 한 가정의 따스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언로를 감시한 전두환 정권의 폭력 앞에서 한 순간에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그는 폭력정치가 내두른 몽둥이 앞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박정만은 소위 ‘한수산 사건’에 아무 잘못도 없이 그야말로 ‘우연하게’ 연루되어 고문을 당한 이후에 폭력적인 정권을 저주하며, 폭력적인 역사를 두려워하며, 폭력적인 인간에 분노와 좌절을 느끼며, 정치와 역사와 인간의 ‘저쪽’ 편에 그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가 마련한 그 자리에서 그는 그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냈거니와, 그것은 서정시 쓰기와, 술마시기와, 우주를 사모하기였다. 박정만은 서정시의 대가이다. 나는 그가 그토록 폭력적 정치의 희생물이 되었으면서도 어떻게 결이 고운 서정시만을 써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의 서정시 쓰기는 폭력정치의 두려움을 다스리는 방식이며, 폭력정치에 대한 적개심을 가라앉히는 방식이며, 폭력정치에서 오는 좌절감을 껴안는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서정시 쓰기는 그를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도와줬을 것이다. 이런 서정시 쓰기로 인하여 그는 잠시나마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과 다른 곳에서 지낼 수가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서정시 쓰기는 그를 지탱하게 만들어준 중요한 요인이었다. 박정만의 서정시 쓰기와 더불어 언급돼야 할 것은 그가 마신 엄청난 술에 대해서이다. ‘1987년 6월과 8월 사이에 나는 500병 정도의 술을 쳐죽였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술을 밥처럼 먹고 마시며 고문 이후의 생을 살아냈다. 이렇게 술병을 옆구리에 끼고 생의 보폭을 옮긴 박정만은 명실공히 ‘술의 나라’ 사람이었다. 그는 더 이상 폭력정치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사람이기를 거부하고, ‘술의 나라’ 속으로 거처를 옮겼던 것이다. 독재자의 폭력정치는 이렇게 건강한 한 개인을 ‘술의 나라’로 밀어넣어버렸다. 그 속에서 박정만은 이성 너머의 혹은 이성 이전의 삶을 살았고, 그런 삶은 그로 하여금 시의 귀신에 들린 사람처럼 시를 쏟아내게 만들었다.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술의 나라에서 서정시 쓰기, 그러나 이것도 그에게는 치욕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이 영토에까지 가끔은 독재자의 폭력정치 소리가 들려오고, 그 영토에 머물면서도 가끔은 독재자의 폭력정치가 가한 아픔으로 치를 떨 때가 있었을 터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독재자의 폭력정치가 아예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더 멀리 거처를 옮기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자신을 이전보다 더 자유로운 존재로 무화시키는 일이다. 아니 풀어놓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곳은 어디이며 그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그것이야말로 ‘죽음’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박정만은 세상을 버렸다. 그는 이 세상을 버리면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 「종시(終詩)」의 전문 ‘광활한 우주’ 속으로 거처를 옮긴 박정만, 그는 이제서야 지독한 독재자의 폭력 정치가 난무하는 땅으로부터 비로소 온전히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죽음을 보면서, 아직도 이 땅에서의 삶에 연연해하는 우리들은 여전히 아프고 안타깝다. 그리고 그의 빈자리가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6. 허무로부터 벗어나는 길 ― 진이정 허무에 발목 잡혀 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웬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누구나 허무에 발목 잡혀 거미줄에 걸린 곤충처럼 허둥대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허무를 만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다가온 그 허무의 늪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를 두고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그런데 그 허무는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어느 순간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위장일 뿐, 허무는 우리의 몸과 삶 근저에 자리잡고 언제든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허무와의 긴 싸움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고, 수시로 앞서 말한 바처럼 ‘허무의 늪’을 어떻게 건널 수 있을 것인가, 골몰하게 된다. 일단 허무의 늪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된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을 두고 우리는 구원에 도달하였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많은 종교들이 구원을 말해도 유한한 인간조건 앞에서 구원을 온전히 체험하며 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진이정의 시와 생애를 보면서 허무의 문제를 꺼낸 것은 그의 시와 생애의 근저에 이 허무와의 지난한 대결상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대결 속에서 진이정은 허무를 이긴 것일까, 아니면 허무에 예속돼버린 것일까. 어찌보면 진이정은 허무를 이긴 자같이 보이고, 또 다르게 보면 허무에 패배한 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시를 잘 읽어가다 보면 진이정은 죽음으로써 허무를 자발적으로 극복한 사람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 역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죽음으로써 허무를 자발적으로 극복하다니……. 그러나 이 역설을 깊이 이해할 때 진이정의 죽음은 허무에 짓눌린 수동적인 죽음이 아니라 허무를 휘어잡은 자의 능동적인 죽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진이정은 죽음으로써 우주와 적극적인 합일을 이루기 이전에는 허무의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사람이다. 다시 말하자면 죽음으로써 우주의 거대하고 무한한 흐름에 몸을 싣기 이전에는 삶의 첫 부분에도, 마지막 부분에도 허무가 담겨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처럼 죽음으로써만이 허무를 극복할 수 있다면 인생은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 그러나 진이정은 인생을 잔인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은 분명 어느 면 잔인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주적 사유를 동원한다면 인생이 잔인하다는 생각을 넘어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진이정은 일찍 인생의 허무를 넘어서 우주의 거대하고 무한한 흐름 속으로 몸을 실었다. 그런 점에서 진이정은 허무의 늪 앞에서 너무 긴 시간을 낭비(?)하지 않은 현명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말하기를 ‘내 인생은 소위 보람 있다는 일로 낭비되었다’(「거꾸로 선 자의 꿈을 위하여 3」)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는 죽음을 통한 우주와의 합일에 의하여 낭비로 얼룩진 삶을 일찍 거두어버린 것이다. 그것을 나는 현명한(?) 것이었다고 말한 것이다.  허무, 그것과의 만남, 그리고 그것의 극복을 위한 적극적인 도전 속에 진이정의 죽음이 놓여 있다. 이런 그의 죽음은 허무에 발목 잡힌 우리들의 삶을 자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러나 나는 글을 끝내며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허무가 죽는 날까지 우리를 괴롭힌다 하여도, 우주적 사유를 적극적으로 하기엔 우리의 생명욕이 너무나도 강력하다고……. 정효구 1958년 출생.  1985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현재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서 『우주공동체와 문학의 길』 『상상력의 모험』  『몽상의 시학』 『한국 현대시와 문명의 전환』  『시 읽는 기쁨 1, 2』 등 다수가 있음. 5. 시는 유머 감각의 산물이다 이상국의 시가 너무 비감하여 우리 모두를 숙연케 합니다. 이번에는 유쾌한 시를 한 편 감상해봅시다. 미학에서는 아름다움을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비장미, 숭고미, 순정미, 우아미 외에 골계미가 있고, 또 하나 미와 반대개념이면서 미의 일종인 추(the ugly)가 있습니다. 우리 시는 너무 점잖고 엄숙한 경향이 있습니다. 언중유골이라고, 엄숙한 가운데서도 농담을 할 줄 알고, 농담을 하는 중에도 뜻을 새길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도 시를 읽다가 미소를 짓거나 씩 웃는 경우가 있었습니까? 팔순을 넘기신 우리 할머니 경주이씨와 칠순이 가까운 큰고모부는 의좋은 오누이 모습으로 도란도란 옛날 이야기 나누시네. 때는 봄날, 햇살은 까르르 까르르 간지러운 웃음으로 방바닥 위로 환하게 퍼져나가고 백발 장모가 권하는 일배 일배에 취한 눈멀고 귀먹어 가는 사위는 아주 오랜 옛날도 어제처럼 가까워 흥이 나네. 기억하시는교 빙모님요 막내 처제 낳고 제가 가물치 한 마리 사 가지고 찾아갔지요. 하모 김서방 그 달이 윤삼월 참으로 큰 가물치였제. 마흔 고개 힘겹게 넘어 출산한 장모 문안 가던 젊은 서른 사위, 가물치 한 마리 짚으로 꿰어들고 경남 양산군 하북면 삼감리로 걸어가는 키 큰 고모부 모습 나도 보이네. 산후조리하고 있던 할머니의 민망한 마음 보이네. 갓난애기 처제를 본 우리 큰고모부 선한 눈가 웃음도 보이네. 金粉으로 부서지는 두 분의 옛날 이야기 곁에 버릇없이 누운 나는 살아보지도 못한 저 먼 세월 어슬렁어슬렁 거슬러 올라가는 귀 큰 당나귀, 금줄 친 사립문 밖에서 百年 손님 맏사위 멋쩍게 맞으며 新羅瓦當의 웃는 얼굴로 웃는 할아버지 젊은 웃음소리 듣네. 아직도 살아 푸드득거리는 가물치 소리 생생히 들려오네. 정일근, [흑백사진―가물치] 전문 이 시는 상황 설정부터 웃음이 나옵니다. "마흔 고개 힘겹게 넘어 출산한 장모 문안 가던 젊은 서른 사위"의 이야기이니까요. 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촉매제가 바로 가물치입니다. 장모가 마흔이 넘어 처제를 낳았으니 본인은 백년 손님인 맏사위 보기가 민망하고, 장인은 사위 맞기가 멋쩍기 이를 데 없습니다. 사위는 그래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엄청나게 큰 가물치 한 마리를 사 들고 처갓집에 갑니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런 상황입니까. 그런데 시인의 재능은 이러한 상황을 보여주는 데 있지 않습니다. 모든 등장인물을 아름다운 금빛으로 도금하는 언어의 연금술에 있습니다. "햇살은 까르르 까르르 간지러운 웃음으로 방바닥 위로 퍼져나가고", "新羅瓦當의 얼굴로 웃는 할아버지 젊은 웃음소리" 같은 표현도 그렇거니와, 화자의 팔순을 넘기신 할머니가 칠순이 가까운 큰고모부에게 술을 계속 권하면서 나누는 대화가 더없이 정겨워 독자는 감동하게 됩니다. 시 한 편에 사람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따듯한 정감을 이렇게 듬뿍 담을 수 있다니, 아니 흘러 넘치게 할 수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6. 시는 새로운 요소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그럴듯한 소재와 주제일지라도 표현 방법이 너무 진부하면 시의 맛이 사라져버립니다. 시를 쓸 때는 어느 정도의 실험정신이 시를 맛깔스럽게 하는 양념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번 읽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한 편의 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난 그날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처음 시도로 글자 그대로 해석해보기로 한다. 그―①그윽한 ②그믐달 ③그림자 날―①날카로운 첫 키스(님의 침묵) ②날강도 ③날짐승 통합적으로 그윽한 면도날로 정의해보기로 하자. 그런데 나의 알 수 없는 우울증은 조금 더 강도를 높인다. 다음 단계로 그날의 사건과 정황을 그려보기로 한다. 이 단계에서 경계해야 할 점은 육신이 제거된 영혼의 교만함이 고개를 쳐든다는 점이다. 냉정함을 잃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두 번째 시도로 들어간다. 정말이지, 그날 자네가 불시에 가한 엄청난 테러가 떠오른다. 정말 어찌 하라는 건지, 나 부끄러움 넘어선 견디기 힘든 굴욕감에 별들도 차가운 눈빛으로 가슴 깊이 얼음 송곳 밀어 넣는다. 바람에 상처받기 쉬운 겨울나무는 땅의 마지막 수액 한 방울도 빨아올려 단단한 겨울에 완강히 저항한다. 그런 잠 못 들기 몇 날인가, 핏발 서린 눈에선 자꾸 마른 눈물 흘러, 말라비틀어진 흔적이 영혼 깊숙이 각인된다. 그러면 육신은 무엇이며 영혼은 또 무엇인가, 영혼의 기막힌 알리바이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끊이지 않는 우울증으로 육신을 계속 괴롭힌다. 더 나아가 내 몸 구석구석 굴욕의 상처들이 바람에 제 존재를 알리는 풀잎처럼 우우, 일시에 일어나 실개울로 흘러 비굴한 시 쓰기를 관통하여 뜨거운 태양이 그대의 오만함을 녹여줄 회복기의 봄을 고대하도록 한다. 이쯤 되면 영혼의 교만함이 육체의 단순성을 비웃듯 또다시 고개를 쳐들고 나는 또다시 이 우울증의 원인 치료를 위해 그날이라는 글자 분석에 몰입한다. (ㄱ⇒무엇인가 어긋남, ㅡ⇒동물의 울음, 나⇒egoistic, ㄹ⇒물 흐르듯이;너무 랭보的이어서 나의 우울증은 더욱 심화된다) ―강성철, [그날] 전문 시인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렵지요? [그날]이란 제목을 보고 '그 어느 날'이라고 생각한 저의 기대지평은 초장에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시인은 '그날'을 달리 생각해보고자 '그'를 ①그윽한 ②그믐달 ③그림자로, '날'을 ①날카로운 첫 키스(님의 침묵) ②날강도 ③날짐승으로 해석해본 뒤, 통합하여 '그윽한 면도날'로 정의해봅니다. '그'는 ①번을 선택했으나 '날'은 세 개 중 마땅한 것이 없어 면도날을 연상한 것입니다. ①번 '날카로운 첫 키스([님의 침묵])'에서 날카롭기 짝이 없는 면도날을 연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윽한 면도날이라니요. 여기서 독자는 시인의 장난에 우롱 당했다는 당혹스런 느낌과 시인의 계산을 못 따라잡았다는 허탈한 감정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장난이냐고 못마땅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요.  제2연에 접어들어서도 강성철은 계속 독자에게 미지의 덫을 놓습니다. "그날 자네가 불시에 가한 엄청난 테러"는 면도날을 휘둘러대는 상황이었던가 봅니다. 불시에 가한 자네의 행동에 나는 괴롭고 서러워 마지막 수액 한 방울도 빨아올려 겨울에 저항하는 겨울나무처럼 잠 못 드는 나날을 보냅니다. 고통과 설움은 "끊이지 않는 우울증으로 육신을 계속 괴롭힌다"는 2연 중반 끝 부분까지 이어집니다. 이런 뒤엉킴의 실마리는 아마도 이 구절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육신은 무엇이며 영혼은 또 무엇인가. 시인이 신의 존재를 믿는 종교인이라면 영혼의 불멸 또한 믿어 의심치 않겠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육신'과 '영혼'의 관계는 평생 동안 뇌리에서 지울 수 없는 화두와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설사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영혼의 불멸을 믿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일은 이 현실사회에서도 얼마나 자주 벌어지고 있습니까.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다가 온 사람이 죽어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봤다고 하는 경우도 있지요. 이제 대충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육신을 계속 괴롭히는 영혼의 병이 나의 큰 문제인 것입니다. 타인에 의해 늘 상처받는 내 영혼의 병인 우울증이 문제인 것입니다. 시인은 "굴욕의 상처들"과 "비굴한 시 쓰기", "그대의 오만함"과 "영혼의 교만함" 등 온갖 자극적인 언어를 동원하면서 굴욕과 비굴, 영혼의 교만함에서 벗어나기를, 고통과 설움이 끝나기를, 그 무엇보다 우울증이 완치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제2연 끝 부분에 이르러 '그날'이란 글자의 분석에 몰입했던 이유가 밝혀집니다.  나는 또다시 이 우울증의 원인 치료를 위해 그날이라는 글자 분석에 몰입한다. 불면증 환자가 잠을 청하기 위해 숫자를 백, 아흔아홉, 아흔여덟, 아흔일곱…… 하면서 밤이 깊도록 세고 있듯이 강성철은, 아니 [그날]의 시적 화자는 우울증에서 벗어나고자 '그날'이라는 글자를 분석하는 데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울증 환자의 글자 분석의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요. (ㄱ⇒무엇인가 어긋남, ㅡ⇒동물의 울음, 나⇒egoistic, ㄹ⇒물 흐르듯이;너무 랭보的이어서 나의 우울증은 더욱 심화된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게 애를 썼건만 화자의 우울증이 회복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되고 말았다니까요. 이 거대한 정신병동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이 이 괄호 속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너와 나의 관계는 늘 어긋나기만 하고, 인간은 하나님이 숨은 세계에서 승냥이처럼 울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나와 타인은 다들 지독한 에고이스트들이고, 나의 우울증은 심화되기만 합니다. 읽고 곧바로 이해되지 않는 시, 여러 번 되풀이해 읽는 동안 뜻이 풀리는 이런 시가 오히려 매력적인 시일 수 있습니다. 1980년대에 한국 시단을 풍미했던 이른바 해체시라는 것에 대해서도 따뜻한 애정의 시선을 갖고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암호 풀기나 미로 찾기 같은 시 읽기이지만 그 속에 오묘한 진리가 들어 있거든요.   ============================================================================   213. 향수 / 정지용                           鄕愁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연보   1902년(1세)  음력 5월15일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40번지에서 정태국과 정미하의 장남으로 출생.                    지용의 아명은 연못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태몽을 꾸었다하여 지룡(池龍)이었고,                    이 발음을 따서 본명은 지용(芝溶)으로 했음. 세레명은 프란시스코.   1910년 (9세) 옥천공립보통학교(현재 죽향초등학교) 입학.   1913년(12세) 동갑인 송재숙과 결혼.   1918년(17세)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함. 학교성적은 우수하고 집안이 어려워서 校費生으로 선정.                    재학당시의 교우로는 3년 선배인 홍사용, 2년 선배인 박종화, 1년 선배인 김윤식, 1년 후배인                     이태준 등이 있으며 이 무렵 부터 문재를 나타내어 박팔양 등과 8명으로 요람동인을 만들어                    동인지을 프린트판으로 10여호를 발간.   1919년(18세) 3·1운동이 일어나 교내문제로 야기된 휘문사태의 주동이 되어 이선근과 함께 무기정학.                    12월 창간호에 소설을 발표함 지용의 유일한 소설이며 첫 발표작품임.   1922년(21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함. 이때까지 계속 아버지의 친구 유복영의 집에서 생활.   1923년(22세) 휘문고보의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하는 문우회에서 만든 창간호의 편집위원이 됨.                    휘문고보의 교비생으로 일본 교토(京都)의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에 입학.   1926년(25세) 창간호에 등 9편의 시,                    ·에 ·등 3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활동이 시작.   1927년(26세) ·등 7편의 시를 교토와 옥천을 오가며 씀.                     ····지에 등 30여편의 시 발표.   1929년(28세) 도시샤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함.                    그 해 9월 휘문고보 영어과교사로 부임, 부인과 장남을 데려와 종로구 효자동로 이사.   1930년(29세) 시문학동인으로 참가, 동인으로는 박용철, 김영랑, 이하윤 등이 있음.   1932년(31세) ··지에·등 10편의 시를 발표함.   1933년(32세) 6월에 창간된 지의 편집고문을 맡음.   1935년(34세) 첫 시집 을 시문학사에서 출간함, 거의 발표 되었던 작품 89편으로 수록됨.   1936년(35세) 서대문구 북아현동으로 이사. 북아현동 자택에서 부친 별세.   1938년(37세) ······에                    산문 , 산문시 ·, 평론 , 그외 수필 등                    약 30여편을 발표.                    블레이크와 휘트먼의 시를 번역하여 최재서 편(編)의 에 수록.                    천주교에서 주관하는 를 돕는 등 문필활동이 가장 왕성했던 한 해임.   1939년(38세) 지의 시부문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시킴.   1941년(40세) 22호 특집으로 ,조찬>· 들 10편의 시가 특집으로 실림.                     둘째 시집 이 문장사에서 발간됨   1944년(43세) 제 2차대전의 말기에 이르러 서울 소개령으로 부천군 소사읍 소사리로 이사함.   1945년(44세) 해방과 함께 휘문중학교 교사직 사직.                     이화여자전문학교(현재 이화 여자대학교)교수로 옮겨 한국어와 라틴어 강의.   1946년(45세) 다시 서울의 성북구 돈암동으로 이사함(46세).                     6월에 이 을유문화사에서 나옴.                     경향신문사 주간으로 옮김.                     조선문학가동맹의 아동분과위원장으로 추대.(본의가 아니었으므로 활동한 일은 없음.)   1947년(46세) 경향신문사의 주간직을 사임하고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복직.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강사로도 출강.「시경」을 강의함.   1948년(47세) 이화여자대학교를 사임하고 녹번리초당(현재 은평구 녹번동)에서 서예를 하며 소일.                     2월 출간. 등 37편의 시문, 수필, 기행문 등 수록.   1949년(48세) 3월 이 출간(3월). 시문, 수필, 역시(휘트면) 등 55편이 수록.    1950년(49세) 6ㆍ25전쟁이 일어나자 정치보위부로 끌려가 구금됨.                    정인택, 김기림. 박영희 등과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다가 평양감옥으로 이감.                    이광수, 계광순등 33인이 함께 수용 되었다가 그 후 폭사 당한 것으로 추정.   1971년 부인 송재숙 70세를 일기로 별세.   1982년 48명의 문인과 각계인사들이 납북 후 묶여있었던 정지용문학의 회복운동을 시작함.   1988년 3월31일 정지용의 문학이 해금됨. 4월 지용회 결성. 초대회장 방용구.            5월 15일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제 1회 지용제를 지냄            6월 25일 고향인 옥천의 관성회관에서 다시 지용제 개최 이후 16회를 이어옴.   1989년 지용시문학상 제정.    1997년 제2대 회장 이근배.   2002년 5월 정지용 탄신 100주년 서울지용제 및 지용문학심포지움 개최함   2003년 이달의 문화인물 (5월)로 선정 기념 서울지용제 및 지용문학 심포지움 개최.      
993    詩작법 살살살... 댓글:  조회:5030  추천:0  2016-01-12
5) 사물의 비밀과 존재 탐구에 주력한 시  - 고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의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이 시는 작가가 동료시인인 신동문의 모친상을 접하여 충북 청원군에 있는 文義 마을에 가서 장례식을 주관한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인이 직접 호상이 되어 장례절차를 주관하였는데, 시인은 거기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었다. 흔히 죽음은 절망이나 공포, 비애 등의 격렬한 감정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시에서는 죽음이 친근한 것이 되어 있고 그 친근성은 인간의 삶에 대한 경건함을 동반하고 있다.  1연에는 어느 해 겨울 문의마을에 가서 죽음을 보았다는 상황이 설정되어 있다. 즉 장례식이 있었다는 뜻이다. 문의마을까지 닿는 길은 몇 갈래의 길들이 하나로 합쳐져서 통해 있는데, 그 길이 적막한 것과 같이 죽음의 길도 적막하다. 그 길이 죽음의 길이기에 추운 쪽으로 뻗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죽음을 애도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은 길에서 돌아가 죽은 사람의 유품을 태우는데, 그 태운 재들이 마치 잠든 것처럼 고요한 마을을 향해 흩날리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는 문득 팔짱을 끼고 먼 산을 바라보는데, 그 산이 무척 가깝게 여겨진다. 즉 죽음과 삶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 장례식날 눈마저 날리어 죽음을 덮고 있다. 그 눈은 죽음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만물을 덮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것은 죽음을 통해 삶의 경건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된다.  그것이 2연에서는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으로 표현된다. 망자가 죽음 받기를 끝까지 사절하다가 이 세상의 살아있는 것들의 인기척을 듣고는 마침내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죽음을 향해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보는 것을 시적 화자는 마음의 눈으로 본 것이다. 엄숙한 장례의식을 통해 죽음과 삶의 관계와 그것들의 경건함을 깨달은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죽음 앞에서 낮아지고, 곧 겸허해지는데, 그 위로 눈이 내리고 있다. 이는 바로 엄숙함이자 경건함이다. 이런 장례절차도 끝나 죽음은 이승을 향해 떠나서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눈이 내리는 겨울날 문의 마을에서는 장례식이 있었다. 눈은 내려 죽음을 덮고 마침내 이 세상마저 모두 덮어버리고 있는 광경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시적 상상력은 삶과 죽음, 곧 존재의 비밀을 살짝 엿보게도 하는 것이다.  - 오태환  필경사가 엄지와 검지에 힘을 모아 철필로 원지 위에 글씨를 쓰듯이 별빛들을 쓰는 것 임을 지금 알겠다.  별빛들은 이슬처럼 해쓱하도록 저무는 것도 아니고 별빛들은 墨蘭 잎새처럼 쳐 있는 것 도 또는 그 아린 냄새처럼 닥나무 닥지에 배어 있는 것도 아니고 별빛들은 어린 갈매빛 갈매빛의 계곡 물소리로 반짝반짝 흐르는 것도 아니고 도장처럼 붉게 찍혀 있는 것도 아 니고 더구나 별빛들은 반물모시 옷고름처럼 풀리는 것도 아니고  별빛들은 여리여리 눈부셔 잘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수평선 위에 든 흰 섬들을 바라보 듯이 쳐다봐지지도 않는 것임을  지금 알겠다 국민학교 때 연필을 깎아 榧子열매빛 재활용지가 찢어지도록 꼭꼭 눌러 빼뚤빼뚤 글씨를 쓰듯이 그냥 별빛들을 아프게 아프게 쓸 수밖에 없는 것임을 지금 알겠 다.  내가 늦은 소주에 푸르게 취해 그녀를 아프게 생각하는 것도 바로 저 綠靑기왓장 위 별 빛들을 쓰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음을 지금 알겠다.  “별빛을 쓰다”니? 별이 그의 빛을 쓴다는 것인가? 아니다. 별의 빛을 쓰는 것은 시인 자신이다. 별빛을 쓰는 시인은 스스로 아름다운 별로 태어날 것 같다.  이 시는 아프고 아픈 한 편의 연시로도 읽힌다. 발에 밟힐 듯 긴 스란치맛자락 같은 다섯 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끝부분에서 ‘그녀’를 만나기 전에, 시의 젖가슴께에 놓인 ‘반물모시 옷고름’에서 눈이 밝은 독자들은 어렴풋이 사랑스런 여인의 그림자를 만났을 것이기에.  그러나 이 아름다운 시는 한 여인에 대한 헌시로서의 빼어난 문학적 성취에 그치지 않고 시적 우주를 창조하게 된다. ‘그녀’의 고유명사 위에 크고 아픈 모성으로서의 시가 덧씌워지는 大變轉의 회오리를 이 여릿여릿한 시편은 감추고 있다.  시인이 사는 마을의 하늘에는 이슬과 묵란과 계곡 물소리와 반물빛 치마저고리와 함께 참으로 아름다운 별들이 살고 있다. 이렇듯 사물이 잘 어우러진 좋은 시를 읽는 기쁨은 새로운 우주에 동참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상 우리는 다섯 갈래의 주제에 합당한 시를 살펴보면서 그 주제의식과 상상력이 빚어내는 참으로 아름답고 슬프고 높고 깊은 시세계들을 볼 수 있었다. 시는 시적 경험의 소재에다 주제의식과 불가분의 관계인 상상력을 결합하여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 세계는 슬픔과 한과 아름다움이 뒤범벅된 세계일 수도 있고, 맑고 착한 순수서정이 내면의 고요한 울림과 만나는 세계일 수도 있으며, 또 진실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계일 수도 있고, 언어로 세운 존재의 집일도 있으며, 모든 사물들이 제 존재 그대로 빛을 던져 하나의 융융한 화엄을 이루는 세계일 수도 있는 것이다.  3. 시적 구조, 그리고 직관력  E. 뮤어의『소설의 구조』라는 책에는 소설의 구조를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그 하나는 극적 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은 구조다.  극적 구조란 다르게 말하면 메인 스토리가 있는 구조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개의 주된 사건이 전개되면서 인물이 바뀌지 않는다. 나도향의「물레방아」같은 것이 그 전형적인 예가 된다. 이 소설은 애정의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다. 발단과 절정과 끝이 선명히 드러난다.  반면 극적이 아닌 구조란 메인 스토리가 없고 에피소드로 연결돼 있는 구조다. 등장인물이 에피소드가 바뀔 때마다 바뀐다. 김동인의「감자」같은 것이 그 전형적인 예가 된다. 복녀라는 한 농민의 딸이 가난 때문에 몸을 더럽히며 끝내는 파멸해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는 에피소드 두 개가 연결돼 있을 뿐 메인 스토리는 없다. 인물이 바뀐다. 에피소드는 얼마든지 연결시켜 갈 수가 있다.  시에서도 이런 따위 구조의 유형이 있다. 가령 서정주의「국화 옆에서」와 같이 다음 조지훈의「僧舞」는 극적 구조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기승전결로 아주 동적 기계적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희의 동작으로 채우는데 마침내 그녀의 동작이 절정을 거쳐 끝을 맺는다. 직접 시를 보자.  - 조지훈  얇은 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아서 서러워라 .  빈 臺에 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기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서서 날아갈 듯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煩惱는 별빛이라  휘여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合掌이냥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三更인데  얇은 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이 시는 본래 2행이 1연이 되어 모두 9연 18행으로 된 시인데 내가 기승전결의 한시 형식이 어떻게 짜여져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편의상 4연으로 배열했다. 처음 고깔과 고깔 속의 얼굴 묘사로 시작되어(기) 다음으로 배경과 춤동작의 찰나 포착(승), 그 다음 형이상학적 내면세계에 초점을 맞추고는(전) 마지막 시간의 경과 속에 지속되는 춤의 표현(결) 등이 너무도 확연한 기승전결 구조다.  특히 이 시는 제10행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와 제14행 “세사에 시달려도 煩惱는 별빛이라”라는 두 행에 핵심이 있다. 이 두 행은 모두 이 시의 중심축이 되는 승, 전의 터전을 마련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 시행들을 통해서 시적 화자는 춤으로서의 승무와 정신적 내면성을 지닌 인간의 고뇌를 시적으로 결합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시가 단순한 소재 차원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적 구조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참이었으니 여기서 그 내용의 해석은 그만 두기로 하자. 시에서 구조가 요구되는 것은 시적 형상화의 성공을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의 짜임새가 설득력 있게 전개되어야 한다. 나는 동양시학의 기승전결 구조를 시 창작에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의 자연적 구조와 일치하기도 하고 소년, 청년, 장년, 노년의 인생구조와도 부합되어서이다.  그런데 이런 극적 구조와 반대로 그렇지 않은 구조를 가진 시가 있다.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이 시는 정지용의「향수」일부분이다. 이 시는 아까「승무」와 다르게 연마다 다른 장면이 나온다. 앞연과 뒷연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그러기에 이런 시는 극적 구조를 가지지 않은 시에 해당된다.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선운사에서 ‘동백’이 피고 지듯 시적 화자인 시인의 내부에서 ‘그대’로 지칭되는 한 사람이 피고 진다. 생성되고 소멸되어버렸으며 만나고 헤어졌다. 그러나 한 존재의 진정한 소멸 혹은 진정한 결별은 기억 속에서 지우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고통없이 기억하는 것이며 그리움에 허덕거리지 않고 낡은 사진첩을 넘기듯 담담하게 떠올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피고 짐’이나 ‘만나고 헤어짐’은 분명하나 동백꽃이 우리 속에서 꿈틀거리듯 그대 역시 잊혀지지 않고 내 안에서 쉼없이 고통을 자아내며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다. 결코 닿을 수 없는 ‘멀리서’ 여전히 사랑을 담고 ‘웃는’ 그대는 산 넘어가지만, 잊는다는 것이 영영 한참일 수밖에 없는 이 괴로움을 어찌하는가.  짐짓 남의 일처럼 시의 종결어미를 ‘-이더군’ 이라고 쓰며 겉으로는 툭툭 말을 던지지만, 그 속엔 그대와 헤어지고 선운사에 여행을 가서 그 붉은 동백꽃의 피고 짐을 바라보며 그대에 대한 갈망과 탄식하는 것을 감추고 있다. 그럼에도 시적 장치인 기승전결의 안정적 구조와 대립과 병치를 반복하는 수평적 구조가 긴밀히 교직하여 상상력의 형식화에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 노향림  찻집 ‘째즈’에 올라간다.  카펫 붉게 깔린 3층 계단 옆에서  제 몸짓보다 더 큰 트럼펫을 들고  흑인 가수 루이 암스트롱의 커다란 눈망울이  나를 노려본다.  브랜드 커피엔 하얀 각설탕을!  카푸치노? 아니, 아니  나는 블랙만 마실거야,  블랙홀보다 검은 커피 한 잔이  내 앞에 당도한다.  나는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창가가 좋다.  오늘따라 바람이 센지 짱짱한 구름떼만  하늘에서 펄럭인다.  브레지어가 흘러내리고  흰 속치마가 절반쯤 뜯기고 찢겨나간  구름을 보는 것이 좋다.  아직 봄은 일러서 오지 않고  꽃샘바람에 눈꺼풀 닫은 채  종일 공중을 향해 팔을 벌리고  벌서듯 서 있는 나무들,  매캐한 매연 속에  푸른 잎을 틔울까 말까 생각 중이다.  그 슬픔을 하나의 보석으로 마음의  블랙홀에 켜 놓았다.  나트륨등이 반짝 켜진다.  밝은 미색 커튼 흔들리는 창가에서  블랙 커피나 한잔!  노향림의 이 시는 극적 구조가 없는 시다. 이 시에도 등장인물인 ‘나’가 등장하고 그가 처음과 끝에 나타나서 어떤 동작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내면적이건 외면적이건 어떤 사건과 연결돼 있지 않다. 그냥 어느 날 강변 찻집에 들러 이 커피를 마실까 저 커피를 마실까 유희하듯 생각하고, 창밖에 헝클어진 구름 떼를 바라보고, 아직 봄이 일러 푸른 잎 틔울까 말까 망설이는 나무를 생각하며, 그렇게 가볍고 하찮아진 자신에게 슬픔을 느낀다. 하지만 그러한 존재가 우리 인간이라면 그 슬픔을 하나의 보석으로 바꾸어 마음의 블랙홀에 나트륨등처럼 반짝 켜고, 블랙홀보다 검은 커피 한잔을 마심으로 인생을 씹을 수도 있는 것!  한데 이렇듯 극적 구조를 가진 시와 그렇지 않은 구조를 가진 시를 살펴보다 보면 시에서 구조는 꼭 어떤 논리를 수반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시가 시적 논리를 가져야 함에는 분명하지만 그래도 ‘詩三百이 思無邪’라는 말이나 시는 어떤 영감과 관계되어 있다는 말을 들을 때는 그런 논리적 구조 없이도 되어지는 시들이 있는 것 같다. 바로 이때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직관력’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직관이라는 것은 진리나 실재는 사고나 판단 등에 의하지 않고 분별지 곧 이성을 넘어선 본질로의 순간적 육박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를 철학화한 직관주의는 베르그송이 주창한 설이다. 직관력에 의한 자아와 세계의 동일화는 서정시의 원리이기도 하다. 그 원리에는 세계에의 동화와 투사가 있다. 하지만 그런 직관력에 의한 시나 순간성과 압축성을 생명으로 하는 짧은 시에도 구조는 존재한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 서정춘  길고 긴 두 줄의 강철 詩를 남겼으랴  기차는, 고향역을 떠났습니다  하모니카 소리로 떠났습니다.  먼저 이 시를 해설해 보자. 기차가 고향역을 떠났다. 하모니카 소리로 떠났다. 물론 기차가 고향역을 떠났다는 것은 그 기차를 탄 어떤 사람이 떠났다는 것이다. 또 하모니카 소리로 떠났다는 것은 하모니카로 상징되는 우리 고향의 오륙십 년대를 떠났다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기차가 떠난 뒤에 남는 것은 길고 긴 두 줄의 강철 레일뿐이다. 그런데 이 ‘레일’이 시인의 직관력에 의해 순식간에 ‘詩’로 바뀌어 첫 행으로 올려지니 평면적인 시가 지각 변동을 일으키며 겹무늬를 만들어낸다. 시를 남기고 떠난 사람, 그것도 길고 긴 두 줄의 강철 시를 남기고 떠난 사람은 어떤 이였을까. 어쩌면 우리 고향의 오륙십 년대에 만연했던 혹독한 가난과 못배움의 설움, 그것으로 인한 한 때문에 길고 긴 두 줄의 시를 남겼겠다. 또 가난과 못배움의 한을 딛고 기어이 성공해보겠다는 다짐이 있었기에 강철의 시를 남겼겠다. 그럼에도 이 사람은 그가 객지에서 성공을 했건 실패를 했건 결코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없었던 사람이겠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가 이미 ‘전설’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 시인은 그의 첫 시집에서 대나무를 빌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의 어려움을 앞서 피력했다.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竹篇․1」)라고. 그런데 이 시가 ‘전설’이 된 이유의 또 하나는 사실 백년이 걸려서 찾아가 보아야 “대꽃이 피는 마을”로 상징되는 고향, 혹은 길고 긴 두 줄의 강철 詩를 남긴 고향은 이미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시인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다. 우리의 꿈과 다짐이 있던 순수의 고향은 그리하여 이제 마음 어느 한켠으로 거두어진다.  결국 이란 시는 주로 직관력에 의해 형상화된 시지만 바로 해설을 통해서 보듯 극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시가 아니고 무엇인가.  - 채호기  내가 엎질러 버린 물  언 얼음 속에 네가 갇혀 있다  햇빛에게 떨어지며 네 몸은  보석의 파편처럼 반짝인다  얼음 풀리는 시내처럼  슬픔은 거리를 흐르고  시냇가에 핀 맑은 꽃처럼  너의 눈이 나를 바라본다  사랑에는 두 개의 극단이 있다. 불과 얼음. 사랑할 땐 불이지만 그 상처는 얼음이다. 사랑은 보석의 파편처럼 반짝이다가 때로는 슬픔으로 흐른다. 사랑은 잔인한 경험이다. 슬픔 앞에서는 누구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슬픔이나 고통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하지만 슬픔 뒤에 너의 눈은 시냇가의 맑은 꽃처럼 나를 바라본다고 한다.  이 짧은 시도 찬찬히 보면 2행 4연 구조를 갖추고 있다. 한 연이 다음 연에 對句하는 방식으로 쓰여진 시인데 영락없이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추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시에서 잘 짜여진 짜임새는 독자에게 시적 내용의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것이 외형적인 짜임새도 중요하지만 시에서도 갈등과 깨달음의 구조가 존재함으로 더욱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면 내용의 굴곡은 곧잘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  =================================================================================   208. 겨울 저녁이 다시 / 조정권                                  겨울 저녁이 다시                                   조정권   정신은 점점 위독해진다 창밖의 일몰 여섯 시 이십 분의 재 사내가 피우고 있는 감옥의 담배 사람들 속에 섞여 누워서 피우고 있는 감옥의 담배 모든 것을 제압하고 무시하고 뻑뻑 피우는 담배 재떨이에는 여섯 시 이십 분까지의 재 머리끝의 재 교회당 꼭대기의 재 조금 있으면 곧 떨어질 여섯 시 삼십 분의 재 발바닥까지 재를 떨구는 암담한 여섯 시 삼십 분까지의 재     조정권 시집 < 얼음들의 거주지 > 중에서      ---------------------------------------------------------   209. 어둠의 뿌리 / 조정권                  어둠의 뿌리                                   조정권   열한 시 이후부터 밤은 마당에 혼자 남는다. 지샐 곳이 없는 나뭇잎들이 구석에 모여 구석에 깃든 어둠을 한층 더 짙게 한다. 이런 밤엔 누구와 자도 잠들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돌맹이가 가득찬 밤하늘이 내리누르는 납덩이같은 어둠 때문만이 아니다. 유난히도 마당 구석에 진하게 모여 있는 나뭇잎의 어둠 때문만이 아니다. 이런 밤엔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은 제 뿌리를 그리워한다. 기댈 곳이 없는 모든 것들이 차가운 흙 위에 등을 깔고 누워 흙 속의 어느 따스한 품을 간절히 생각하고 있다.     조정권 시집 < 얼음들의 거주지 > 중에서    3. 시는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이산가족으로서의 뼈아픈 체험도 시가 될 수 있지만 늙어가면서 느낀 쑥스러운 체험도 시가 될 수 있습니다. 김광림의 시에는 민족사가 담겨 있지만 박남수의 시에는 일상사가 담겨 있습니다. 시인 박남수는 미국에 이민을 와 작품활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이라 여러분 중에 교분을 나눈 분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팬티 끈이 늘어나 입을 수가 없다. 불편하다. 내 손으로 끈을 갈 재간이 없다. 제 딸더러도 끈을  갈아 달라기가 거북하다. 불편하다. 이제까지 불편을 도맡았던 아내가 죽었다. 아내는  요 몇 해 동안, 나더러 설거지도 하라 하고, 집 앞 길을 쓸라고도 하였다. 말하자면 미리 연습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성가시게 그러는 줄만 여기고 있었다. 빨래를 하고는 나더러 짜달라고 하였다. 꽃에 물을 주고, 나중에는 반찬도 만들어보고 국도 끓여보라고 했다. 그러나 반찬도 국도 만들어보지는 못하였다. 아내는 벌써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팬티 끈이 늘어나 불편할 것도 불편하면서도 끙끙대고 있을 남편의 고충도.  ―박남수, [훈련] 전문  시인의 아내는 자신이 남편보다 먼저 세상을 뜰 것을 예감하고서 홀아비가 될 남편을 위해 혼자 살아가는 법을 가르쳤던가 봅니다. 그런데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기도 전에 아내를 눈을 감았습니다. 이 작품은 흡사 일기를 시행으로 나눈 듯 시적 기교는 없지만 읽는 이의 가슴을 치게 하는 바가 있습니다. 박남수 시인의 젊은 날의 시 가운데 [아침 이미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같은 눈부신 감각을 보여준 시를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는 노년에 들어서서 아주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부끄러운 과거지사는 어떻게든 숨기려고 합니다. 하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말함으로써 잔잔한 감동을 주는 시를 쓸 수 있습니다.  4. 시는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을 담아야 한다 저는 성선설이나 성악설 중 어느 한쪽을 지지하지는 않습니다만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순수한 본성은 나한테 잘못을 한 타인을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 타인의 불행을 보고 측은함을 느끼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넓게 말해 사랑이지요. 여러분은 신문을 읽으면서 혀를 차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혀를 차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되고 그 마음이 시를 쓰는 마음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타인의 불행에 오불관언하는 마음은 시인의 마음이 아닙니다. 다음에 감상해볼 시는 '95년 1월, 빚 때문에 영랑호에 와 자살한 한 가족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이곳 미국에서도 일가족 동반 자살의 뉴스가 전해지는 때가 있습니까? 한국에서는 해마다 정말 자주 듣는 뉴스가 바로 이것입니다. 일가족이 자살을 시도한 결과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났지만 살아난 사람도 중태란 소식, 부도를 막지 못한 중소기업의 사장이 가족을 먼저 죽이고 자살했다는 소식, 또 어른은 살아나고 아이들이 죽었으니 이건 동반자살을 아니라 비속살해라는 등등. 자, 시를 읽어봅시다.  그 해 겨울 영랑호 속으로 빚에 쫓겨온 서른세 살의 남자가 그의 아내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가던 날 미시령을 넘어온 장엄한 눈보라가  네 켤레의 신발을 이내 묻어주었다 고니나 청둥오리들은 겨우내 하늘 어디선가 결 고운 물무늬를 물고 와서는 뒤뚱거리며 내렸으며 때로 조용한 별빛을 흔들며 부채를 청산한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인근 모래기*까지 들리고는 했다 얼음꽃을 물고 수천 마리 새떼들이 길 떠나는 밤으로 젊은 내외는 먼 화진포까지 따라나갔고 마당가 외등 아래서 물고기와 장난치던 아이들은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애들이 얼마나 추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의 뺨을 적신다 그래도 저녁마다 울산바위가 물 속의 집 뜨락에 오래 가는 놀빛을 떨어뜨리고 가거나 산 그림자 속 화암사 중들이 일부러 기웃거리다가 늦게 돌아가기 때문에 영랑호는 문을 닫지 않는 날이 많다 그런 날은 물 속의 집이 너무 환하게 들여다보였다 * 모래기는 영랑호 주변에 있는 마을 이름. ―이상국, [물 속의 집] 전문 어린아이들이야 자살에 자발적으로 동참했을 리 없고, 부모가(흔히 아버지가) 자식을 일단 살해한 뒤에 자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인은 누구로부터 들었는지 밝혀놓지 않았는데, 1995년 1월에 서른세 살의 남자가 빚 때문에 고민하다 그의 아내와 두 자식의 손을 잡고 영랑호 속으로 뛰어들어 자살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듣습니다. 손에 손을 잡고 함께 뛰어들었으니 그야말로 '동반' 자살입니다. 타인의 죽음이므로 시인은 1연에서 이 사실을 담담히 독자에게 들려줍니다. 담담히?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제4행 "미시령을 넘어온 장엄한 눈보라"에 이르면 시인의 안타까워하는 얼굴이 확, 다가옵니다. 그 겨울의 눈보라는 영랑호를 눈앞에 둔 한 가족을 얼마나 떨게 했을까요. 이 비정한 세상에 남편 없이 팽개쳐질 두 새끼의 목숨까지 거둘 결심을 한 젊은 가장의 굳어 있는 얼굴까지 확, 다가옵니다. 인간에 대한 안타까운 연민의 정은 시인으로 하여금 제2연을 쓰게 합니다. 시인은 자살의 현장인, 네 사람의 목숨을 삼키고도 여전히 고요한 영랑호에 고리와 청둥오리들을 보내 조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상상합니다. 때로 조용한 별빛을 흔들며 부채를 청산한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인근 모래기까지 들리고는 했다 즉, 이제는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 가족을 시를 통해서나마 한 번 부활시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물 속에다 집을 만들어서 말입니다. 한때는 단란했을 그들,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빚이 없었던 그 가족의 지난날을 생각하니 하느님이 다 무심하다고 생각되고, 그래서 시인은 하느님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상국은 시를 구상하는 동안, 초고를 쓰는 동안, 퇴고하는 동안, 신이 되었습니다. 시밖에 쓸 수 없는, 언어의 창조주가 말입니다. 미국에서도 폭탄 테러로 어린아이를 포함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한 적이 몇 번 있었지요. 이런 소식을 접하고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을 어쩌지 못해 시 한 편을 써보는 것입니다. 이상국 시인은 자신의 무력감이 서글퍼 제3연을 썼을 것입니다. 제3연의 마지막 행에서는 시인 자신이 느닷없이 등장해 울고 있습니다. 죽은 가족이 시인이 아는 사람들이라 비보를 접하고서 울었는지, 눈물을 글썽거렸는지, 혹은 신문 기사를 보고서 울고 싶었는지, 뭐 그런 것은 하등 중요하지 않습니다. 혹자가 이 시를 평하면서 센티멘털리즘이니 감상 과잉이니 하며 비판하는 것도 시인은 개의치 않기로 한 듯합니다. 그는 다만 자신이 그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인 시작 행위를 하되,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을 이렇게 "지금도 눈물이 나의 뺨을 적신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일가족 동반 자살 소식을 접하면 아이들을 살해한 부모의 비정함에 분노하게 됩니다. 정 죽고 싶으면 자기네들이나 죽지 왜 애들을 죽여, 어떻게 자기 자식을 죽일 수 있을까 하고 개탄한 뒤, 욕을 몇 마디 덧붙이고는 남의 일이기에 곧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이상국 시인은 젊은 부부가, 혹은 젊은 가장이 오죽했으면 그런 식으로 생을 마감했으랴 하는 생각에 이어진 연민의 정을 억누를 수 없어 물 속에다 집을 지어주고, 물 속의 집 뜨락에 놀빛을 떨어뜨리고 가게끔 하고, 화암사 중들에게까지 부탁하여 목탁을 치게 합니다.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이 없이 우리가 어찌 문학을 한다고 운위할 수 있겠습니까.  ===============================================================================   212. 독락당 / 조정권                            독락당                            조정권   독락당 대월루는 벼랑 꼭대기에 있지만 예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셔 버린 이.     조정권 시집 < 산정묘지 > 중에서    
992    詩작법 끄매매... 댓글:  조회:4885  추천:0  2016-01-10
3) 현실인식과 역사를 껴안은 시  - 정희성  풀을 밟아라  들녘엔 매맞은 풀  맞을수록 시퍼런  봄이 온다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룰 수 없어  봄은 스스로 풀밭을 이루었다  이 나라의 어두운 아희들아  풀을 밟아라  밟으면 밟을수록 푸른  풀을 밟아라  『書經』에 ‘詩言志 歌咏言’이라는 말이 나와 있다. 그러니까 그 책이 나오기 전부터 시는 그러했다는 전제하에 그런 말이 나왔다고 해야 하리라. 그러므로 서경이 말하는 시의 정의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현재에도 이 정의에 따라 시를 쓰고 시를 해석, 음미하는 사람들이 동서에 그득하다. 어쩌면 7-80년대 민중시들은 대개 여기에 포함된다고 하겠다. 하지만 詩言志, 말로 뜻을 세우는 게 시라고 정의했을 때 시에서 내용 혹은 주제와 논리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 이게 문제가 된다.  대작『황무지』를 쓴 엘리엇은 시를 ‘잘 빚은 항아리’라고 했다. 그렇다면 결국 시의 형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는데 정희성의 이 시는 리듬이나 “맞을수록 시퍼런 봄이 온다” 라든가 “밟으면 밟을수록 푸른 풀을 밟아라” 라든가 하는 행에서 보여주는 비유는 핍진한 내용과 논리를 넘어서며 오히려 이를 미학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위의 엘리엇은 스물여섯이 넘어서도 시를 쓰려면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또한 말했다. 그런데 그가 밝힌 그의 역사의식은 자기의 시대가 불안의 시대라는 것이었다. 즉 기독교 신념이 무너진 시대라는 것이다. 20년대의 유럽 정신계를 그는 그렇게 보았다. 말하자면 역사를 내면적, 심리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우리도 80년대 민중시의 시대를 지나오며 많은 사람들이 이제 그 역사를 일상화, 내면화해야 한다는 말을 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그 80년대적 화두를 청산하기에 급급해서 욕망, 섹스, 죽음, 상품 등으로 우루루 달려갔지 그것을 시 속에 내면화시킨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 점에서 다음 이정록의 시는 시사하는 바가 크리라.  - 이정록  누나 하고 부르면  내 가슴 속에  붉은 풍금새 한 마리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린다  풍금 뚜껑을 열자  건반이 하나도 없다  칠흑의 나무 궤짝에  나물 뜯던 부엌칼과  생솔 아궁이와 동화전자 주식회사  야근부에 찍던 목도장,  그 붉은 눈알이 떠있다  언 걸레를 비틀던  굽은 손가락이  무너진 건반으로 쌓여 있다  누나 하고 부르면  내 가슴 속, 사방공사를 마친 겨울산에서  붉은 새 한 마리  풍금을 이고 내려온다  누나! 하고 부르면 금방이라도 풍금소리를 낼 것 같은 누나에 대한 시다. 아마 누나는 풍금을 잘 쳤던 모양이다. 그러기에 누나 하고 부르면 내 가슴 속에 그 풍금이 붉은 풍금새가 되어 내려온다. 아니 마지막 행대로라면 붉은 새 한 마리가 풍금을 이고 내려온다. 한데 누나를 생각하면 어떤 슬픔 같은 것이 마음을 저며 온다. 그 풍금 뚜껑을 열자 아뿔사! 건반은 하나도 없고 그 칠흑의 나무 궤짝에 어리던 날 나물을 뜯던 부엌칼과 연기 꾸역꾸역 내며 생솔가지를 태우던 아궁이가 들어있다. 그리고 누나는 커서 ‘공순이’가 되어 동화전자 주식회사를 다닌 모양인데 그 야근부에 찍던 목도장이 졸음을 이기느라 충혈된 붉은 눈알처럼 되어 떠 있고, 더 아득한 것은 그때 흔히 난방도 제대로 못한 자취방 생활을 하느라 언 걸레를 곧잘 비틀곤 했던 그 굽은 손가락들이 무너진 건반으로 거기에 쌓여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누나 하고 부르면 내 가슴은 사방공사를 마친 겨울산처럼 단정하고 엄정해져 붉은 새 한 마리가 풍금을 이고 내려오는 것이다.  버드나무껍질에 세들고 싶고 제비꽃 여인숙을 차려 특실 한 칸을 영구 분양해주고 싶다던 이 시인의 상상력은 참으로 기발하면서도 아름답다. 어떻게 누나의 힘든 생의 기억을 지상에 있지도 않은 풍금새를 상상하고 빌려와 이렇게 눈물겹게 노래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상상력 까닭에 이 시는 자칫하면 내용의 무게에 짓눌릴 것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4) 새로운 감수성의 언어를 지향한 시  - 장정일  1  301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요리사다. 아침마다 그녀의 주방은 슈퍼마켓에서 배달된 과 일과 채소 또는 육류와 생선으로 가득 찬다. 그녀는 그것들을 굶거나 삶는다. 그녀는 외롭 고, 포만한 위장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잠시 잊게 해준다. 하므로 그녀는 쉬지 않고 요리를 하거나 쉴새없이 먹어대는데, 보통은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한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해 먹을까? 그녀의 책장은 각종 요리사전으로 가득하고, 외로움은 늘 새로운 요리를 탐닉하 게 한다. 언제나 그녀의 주방은 뭉실뭉실 연기를 내뿜고, 그녀는 방금 자신이 실험한 요리 에다 멋진 이름을 지어 붙인다. 그리고 그것을 쟁반에 덜어 302호의 여자에게 끊임없이 갖다준다.  2  302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단식가다. 그녀는 방금 301호가 건네준 음식을 비닐봉지에 싸서 버리거나 냉장고 속에 딱딱하게 굳도록 버려 둔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먹지 않기 위 해 노력한다. 그녀는 외롭고, 숨이 끊어질 듯한 허기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야간 상쇄시켜 주는 것 같다. 어떡하면 한 모금의 물마저 단식할 수 있을까? 그녀의 서가는 단식에 대한 연구서와 체험기로 가득하고, 그녀는 방바닥에 탈진한 채 드러누워 자신의 외로움에 대하 여 쓰기를 즐긴다. 흔히 그녀는 단식과 저술을 한꺼번에 하며, 한번도 채택되지 않을 원고 들을 끊임없이 문예지와 신문에 투고한다.  3  어느 날, 세상 요리를 모두 맛본 301호의 외로움은 인육에까지 미친다. 그래서 바싹 마 른 302호를 잡아 스플레를 해먹는다. 물론 외로움에 지친 302호는 쾌히 301호의 재료가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의 외로움이 모두 끝난 것일까? 아직도 301호는 외롭다. 그러므로 301호의 피와 살이 된 302호도 여전히 외롭다.  이 시는 현대 도시문명의 상징인 아파트의 단절된 공간성을 301호와 302호로 압축시켜 구도화하고, 이 속에 기생하는 인간의 원초적 단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구도하에, 소통의 가능성이 철저히 차단된 아파트와 같은 현대 도시문명 속에서 인간이 겪는 단절과 외로움이 인육을 먹는 여자와 철저히 굶는 여자라는 충격적인 일화를 통해 담담히 서술되고 있다. 차분한 서술과 그 속에 담긴 충격적 내용의 대비는 이 시인의 능숙한 시적 기교를 드러내는 것으로서, 사실은 이 시적 기교와 장치 속에 시인의 전언이 폭풍 전의 고요처럼 잠재되어 있다. 시적 내용에 있어, 시적 언어의 마술에 가려지거나 신비화된 부분은 없다. 담담한 산문체는 내용을 직접적으로 서술한다. 이건 장정일 시의 특징이기도 하다.  새로운 감수성의 언어를 통하여 현대문명의 부정성에 집중하고, 또 거기에서 발생하고 극단화하기 마련인 인간의 이기와 소외와 외로움을 이처럼 아무 감정적 수사도 없이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 기형도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 담아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이 시는 기형도 시인의 비극적 세계관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어쩌다가 집을 떠나와 정거장에서 서성거리나 이미 집으로 돌아갈 길이 이 지상에는 존재치 않고 추억은 황량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몰려와 멎고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 무렵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1행에서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라고 쓰고 있다. 정말 희망의 길을 찾고자 해서 그렇게 다짐했던가. 하지만 시는 중반 너머 종반이 다 되도록 어떤 희망의 조짐도 표현하지 않는다. 되레 그 사이 사람들은 참으로 느린 속도로 죽어갔고, 많은 나뭇잎들은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으며 그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그 길을 묻던 혀는 흉기처럼 단단해진 상태다. 끝내는 지금까지 나의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쓰는 것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한마디로 모든 길들은 흘러오고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니, 이제 더 이상 불안 따위에 시달릴 것이 없다. 그러니 어쩌면 그게 희망인지도 모른다.  결국 이 시는 인간의 실존적 불안에 시달려온 시적 화자가 그간 많은 길을 찾아 헤매었으나 황량한 추억과 고향상실감만을 안은 채 마음의 한 정거장에 당도하여 죽음 쪽으로 발길을 옮기려는 상태를 서술한 시다. 그러기에 마른나무에서 연거푸 떨어지는 물방울은 목숨을 다한 나무에서 이탈한 수액으로 시신에서 흘러내리는 죽은 피를 닮았고, 종반부 화자가 “나그네의 말을 들으면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이라고 타이르는 물방울도 기력이 다해 움직이기를 그친 비가 되는 것이다. 아울러 노트는 시의 처음부터 천천히 덮이는데 사실 이 노트는 인간의 불안과 권태와 죽음을 캐고자 했고, 나뭇잎과 우주와 자연의 비밀을 캐려 했으며, 나아가선 삶의 참된 길을 찾고자 늘 의심을 품던 노트였으나 끝내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닫힌다. 그러니 희망, 물방울, 노트, 추억, 개, 길 등은 이제 죽음의 희망을 노래하려는 시적 화자의 심리를 추적케 하는 화려한 수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장정일과 기형도 80년대 민족, 민주, 민중이라는 거대담론의 광장 속에서도 새로운 감수성의 언어를 통하여 현대적 도시문명 속의 인간소외를 묘파해내거나 광장이라는 외면적 실존보다 거기에서 불안이나 허무라는 내부적 실존의식을 묘파해서 나름대로의 독창성을 확보해낸다. 하지만 이 시들에 그러면서도 도저한 문명비판이나 시 밑바탕에 깔린 현실정치비판이 건강하게 자리하고 있음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206. 코스모스 / 조정권                         코스모스                                   조정권   십삼 촉보다 어두운 가슴을 안고 사는 이 꽃을 고사모사 꽃이라 부르기를 청하옵니다 뜻이 높은 선비는 제 스승을 홀로 사모한다는 뜻이오나 함부로 절하고 엎드리는 다른 무리와 달리 이 꽃은 제 뜻을 높이되 익으면 익을수록 머리를 수그리는 꽃이옵니다 눈 감고 사는 이 꽃은 여기저기 모여 피기를 꺼려 저 혼자 한구석을 찾아 구석을 비로소 구석다운 분위기로 이루게 하는 고사모사 꽃이옵니다     조정권 시집 <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 > 중에서      ------------------------------------------------------------------------------   207. 목숨 / 조정권                                   목숨                                   조정권   마음의 어디를 동여맨 체 살아가는 이를 사랑한 것이 무섭다고 너는 말했다 두 팔을 아래로 내린 채 눈을 감고 오늘 죽은 이는 내일 더 죽어 있고 모레엔 더욱 죽어 있을 거라고 너는 말했다 사랑할수록 있는 사람들 틈에서 마음껏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 이 세상 여자면 누구나 바라는 아주 평범한 일 아무것도 원하지는 않으나 다만 보호받으며 살아가는, 그런 눈부신 일이 차례가 올 리 없다고 너는 말했다     조정권 시집 < 얼음들의 거주지 > 중에서  
991    詩작법 똥그랑... 댓글:  조회:4845  추천:0  2016-01-10
3) 현실인식과 역사를 껴안은 시  - 정희성  풀을 밟아라  들녘엔 매맞은 풀  맞을수록 시퍼런  봄이 온다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룰 수 없어  봄은 스스로 풀밭을 이루었다  이 나라의 어두운 아희들아  풀을 밟아라  밟으면 밟을수록 푸른  풀을 밟아라  『書經』에 ‘詩言志 歌咏言’이라는 말이 나와 있다. 그러니까 그 책이 나오기 전부터 시는 그러했다는 전제하에 그런 말이 나왔다고 해야 하리라. 그러므로 서경이 말하는 시의 정의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현재에도 이 정의에 따라 시를 쓰고 시를 해석, 음미하는 사람들이 동서에 그득하다. 어쩌면 7-80년대 민중시들은 대개 여기에 포함된다고 하겠다. 하지만 詩言志, 말로 뜻을 세우는 게 시라고 정의했을 때 시에서 내용 혹은 주제와 논리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 이게 문제가 된다.  대작『황무지』를 쓴 엘리엇은 시를 ‘잘 빚은 항아리’라고 했다. 그렇다면 결국 시의 형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는데 정희성의 이 시는 리듬이나 “맞을수록 시퍼런 봄이 온다” 라든가 “밟으면 밟을수록 푸른 풀을 밟아라” 라든가 하는 행에서 보여주는 비유는 핍진한 내용과 논리를 넘어서며 오히려 이를 미학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위의 엘리엇은 스물여섯이 넘어서도 시를 쓰려면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또한 말했다. 그런데 그가 밝힌 그의 역사의식은 자기의 시대가 불안의 시대라는 것이었다. 즉 기독교 신념이 무너진 시대라는 것이다. 20년대의 유럽 정신계를 그는 그렇게 보았다. 말하자면 역사를 내면적, 심리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우리도 80년대 민중시의 시대를 지나오며 많은 사람들이 이제 그 역사를 일상화, 내면화해야 한다는 말을 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그 80년대적 화두를 청산하기에 급급해서 욕망, 섹스, 죽음, 상품 등으로 우루루 달려갔지 그것을 시 속에 내면화시킨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 점에서 다음 이정록의 시는 시사하는 바가 크리라.  - 이정록  누나 하고 부르면  내 가슴 속에  붉은 풍금새 한 마리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린다  풍금 뚜껑을 열자  건반이 하나도 없다  칠흑의 나무 궤짝에  나물 뜯던 부엌칼과  생솔 아궁이와 동화전자 주식회사  야근부에 찍던 목도장,  그 붉은 눈알이 떠있다  언 걸레를 비틀던  굽은 손가락이  무너진 건반으로 쌓여 있다  누나 하고 부르면  내 가슴 속, 사방공사를 마친 겨울산에서  붉은 새 한 마리  풍금을 이고 내려온다  누나! 하고 부르면 금방이라도 풍금소리를 낼 것 같은 누나에 대한 시다. 아마 누나는 풍금을 잘 쳤던 모양이다. 그러기에 누나 하고 부르면 내 가슴 속에 그 풍금이 붉은 풍금새가 되어 내려온다. 아니 마지막 행대로라면 붉은 새 한 마리가 풍금을 이고 내려온다. 한데 누나를 생각하면 어떤 슬픔 같은 것이 마음을 저며 온다. 그 풍금 뚜껑을 열자 아뿔사! 건반은 하나도 없고 그 칠흑의 나무 궤짝에 어리던 날 나물을 뜯던 부엌칼과 연기 꾸역꾸역 내며 생솔가지를 태우던 아궁이가 들어있다. 그리고 누나는 커서 ‘공순이’가 되어 동화전자 주식회사를 다닌 모양인데 그 야근부에 찍던 목도장이 졸음을 이기느라 충혈된 붉은 눈알처럼 되어 떠 있고, 더 아득한 것은 그때 흔히 난방도 제대로 못한 자취방 생활을 하느라 언 걸레를 곧잘 비틀곤 했던 그 굽은 손가락들이 무너진 건반으로 거기에 쌓여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누나 하고 부르면 내 가슴은 사방공사를 마친 겨울산처럼 단정하고 엄정해져 붉은 새 한 마리가 풍금을 이고 내려오는 것이다.  버드나무껍질에 세들고 싶고 제비꽃 여인숙을 차려 특실 한 칸을 영구 분양해주고 싶다던 이 시인의 상상력은 참으로 기발하면서도 아름답다. 어떻게 누나의 힘든 생의 기억을 지상에 있지도 않은 풍금새를 상상하고 빌려와 이렇게 눈물겹게 노래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상상력 까닭에 이 시는 자칫하면 내용의 무게에 짓눌릴 것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4) 새로운 감수성의 언어를 지향한 시  - 장정일  1  301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요리사다. 아침마다 그녀의 주방은 슈퍼마켓에서 배달된 과 일과 채소 또는 육류와 생선으로 가득 찬다. 그녀는 그것들을 굶거나 삶는다. 그녀는 외롭 고, 포만한 위장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잠시 잊게 해준다. 하므로 그녀는 쉬지 않고 요리를 하거나 쉴새없이 먹어대는데, 보통은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한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해 먹을까? 그녀의 책장은 각종 요리사전으로 가득하고, 외로움은 늘 새로운 요리를 탐닉하 게 한다. 언제나 그녀의 주방은 뭉실뭉실 연기를 내뿜고, 그녀는 방금 자신이 실험한 요리 에다 멋진 이름을 지어 붙인다. 그리고 그것을 쟁반에 덜어 302호의 여자에게 끊임없이 갖다준다.  2  302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단식가다. 그녀는 방금 301호가 건네준 음식을 비닐봉지에 싸서 버리거나 냉장고 속에 딱딱하게 굳도록 버려 둔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먹지 않기 위 해 노력한다. 그녀는 외롭고, 숨이 끊어질 듯한 허기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야간 상쇄시켜 주는 것 같다. 어떡하면 한 모금의 물마저 단식할 수 있을까? 그녀의 서가는 단식에 대한 연구서와 체험기로 가득하고, 그녀는 방바닥에 탈진한 채 드러누워 자신의 외로움에 대하 여 쓰기를 즐긴다. 흔히 그녀는 단식과 저술을 한꺼번에 하며, 한번도 채택되지 않을 원고 들을 끊임없이 문예지와 신문에 투고한다.  3  어느 날, 세상 요리를 모두 맛본 301호의 외로움은 인육에까지 미친다. 그래서 바싹 마 른 302호를 잡아 스플레를 해먹는다. 물론 외로움에 지친 302호는 쾌히 301호의 재료가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의 외로움이 모두 끝난 것일까? 아직도 301호는 외롭다. 그러므로 301호의 피와 살이 된 302호도 여전히 외롭다.  이 시는 현대 도시문명의 상징인 아파트의 단절된 공간성을 301호와 302호로 압축시켜 구도화하고, 이 속에 기생하는 인간의 원초적 단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구도하에, 소통의 가능성이 철저히 차단된 아파트와 같은 현대 도시문명 속에서 인간이 겪는 단절과 외로움이 인육을 먹는 여자와 철저히 굶는 여자라는 충격적인 일화를 통해 담담히 서술되고 있다. 차분한 서술과 그 속에 담긴 충격적 내용의 대비는 이 시인의 능숙한 시적 기교를 드러내는 것으로서, 사실은 이 시적 기교와 장치 속에 시인의 전언이 폭풍 전의 고요처럼 잠재되어 있다. 시적 내용에 있어, 시적 언어의 마술에 가려지거나 신비화된 부분은 없다. 담담한 산문체는 내용을 직접적으로 서술한다. 이건 장정일 시의 특징이기도 하다.  새로운 감수성의 언어를 통하여 현대문명의 부정성에 집중하고, 또 거기에서 발생하고 극단화하기 마련인 인간의 이기와 소외와 외로움을 이처럼 아무 감정적 수사도 없이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 기형도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 담아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이 시는 기형도 시인의 비극적 세계관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어쩌다가 집을 떠나와 정거장에서 서성거리나 이미 집으로 돌아갈 길이 이 지상에는 존재치 않고 추억은 황량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몰려와 멎고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 무렵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1행에서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라고 쓰고 있다. 정말 희망의 길을 찾고자 해서 그렇게 다짐했던가. 하지만 시는 중반 너머 종반이 다 되도록 어떤 희망의 조짐도 표현하지 않는다. 되레 그 사이 사람들은 참으로 느린 속도로 죽어갔고, 많은 나뭇잎들은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으며 그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그 길을 묻던 혀는 흉기처럼 단단해진 상태다. 끝내는 지금까지 나의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쓰는 것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한마디로 모든 길들은 흘러오고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니, 이제 더 이상 불안 따위에 시달릴 것이 없다. 그러니 어쩌면 그게 희망인지도 모른다.  결국 이 시는 인간의 실존적 불안에 시달려온 시적 화자가 그간 많은 길을 찾아 헤매었으나 황량한 추억과 고향상실감만을 안은 채 마음의 한 정거장에 당도하여 죽음 쪽으로 발길을 옮기려는 상태를 서술한 시다. 그러기에 마른나무에서 연거푸 떨어지는 물방울은 목숨을 다한 나무에서 이탈한 수액으로 시신에서 흘러내리는 죽은 피를 닮았고, 종반부 화자가 “나그네의 말을 들으면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이라고 타이르는 물방울도 기력이 다해 움직이기를 그친 비가 되는 것이다. 아울러 노트는 시의 처음부터 천천히 덮이는데 사실 이 노트는 인간의 불안과 권태와 죽음을 캐고자 했고, 나뭇잎과 우주와 자연의 비밀을 캐려 했으며, 나아가선 삶의 참된 길을 찾고자 늘 의심을 품던 노트였으나 끝내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닫힌다. 그러니 희망, 물방울, 노트, 추억, 개, 길 등은 이제 죽음의 희망을 노래하려는 시적 화자의 심리를 추적케 하는 화려한 수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장정일과 기형도 80년대 민족, 민주, 민중이라는 거대담론의 광장 속에서도 새로운 감수성의 언어를 통하여 현대적 도시문명 속의 인간소외를 묘파해내거나 광장이라는 외면적 실존보다 거기에서 불안이나 허무라는 내부적 실존의식을 묘파해서 나름대로의 독창성을 확보해낸다. 하지만 이 시들에 그러면서도 도저한 문명비판이나 시 밑바탕에 깔린 현실정치비판이 건강하게 자리하고 있음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206. 코스모스 / 조정권                         코스모스                                   조정권   십삼 촉보다 어두운 가슴을 안고 사는 이 꽃을 고사모사 꽃이라 부르기를 청하옵니다 뜻이 높은 선비는 제 스승을 홀로 사모한다는 뜻이오나 함부로 절하고 엎드리는 다른 무리와 달리 이 꽃은 제 뜻을 높이되 익으면 익을수록 머리를 수그리는 꽃이옵니다 눈 감고 사는 이 꽃은 여기저기 모여 피기를 꺼려 저 혼자 한구석을 찾아 구석을 비로소 구석다운 분위기로 이루게 하는 고사모사 꽃이옵니다     조정권 시집 <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 > 중에서      ------------------------------------------------------------------------------   207. 목숨 / 조정권                                   목숨                                   조정권   마음의 어디를 동여맨 체 살아가는 이를 사랑한 것이 무섭다고 너는 말했다 두 팔을 아래로 내린 채 눈을 감고 오늘 죽은 이는 내일 더 죽어 있고 모레엔 더욱 죽어 있을 거라고 너는 말했다 사랑할수록 있는 사람들 틈에서 마음껏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 이 세상 여자면 누구나 바라는 아주 평범한 일 아무것도 원하지는 않으나 다만 보호받으며 살아가는, 그런 눈부신 일이 차례가 올 리 없다고 너는 말했다     조정권 시집 < 얼음들의 거주지 > 중에서
990    詩작법 타다닥... 댓글:  조회:4942  추천:0  2016-01-10
2. 주제와 상상력의 문제  체험 혹은 경험만으로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경험에는 언제나 상상력이 결합하여 그 경험의 시공간은 시인만의 창조적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상상력은 인간만이 지닌 독특한 힘이다. 꿀벌이 아무리 정교하게 집을 짓더라도 가장 서투른 목수에게 미치지 못한다. 목수는 집의 용도에 맞는 설계도를 작성할 줄 알기 때문이다. 연애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 사람과 어떻게 어떻게 교제하고, 결국 교제에 성공하여 결혼을 하게 되면 아들딸은 몇을 낳고, 집은 언제쯤 사고, 또 이 사람과의 행복을 위해 나는 어떻게 어떻게 해야겠다는 상상력이 없다면 그 연애가 어찌 되겠는가.  상상력에 관하여 우선 다음 시 한 편을 보자.  - 최승호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날개 돋친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다  흔히 ‘날개 돋친’이라는 자리에 괄호를 치고 그 말을 비운 뒤 채워보라고 하면 별별 소리가 다 나온다. ‘긴 다리의’ ‘뛰는’ ‘달리는’ ‘꼬리를 끊는’ ‘독을 가진’ 등등 짧은 다리의 한계를 극복해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 현실적 대안만을 찾는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주제가 총체적으로 담겨 있는 제목을 보아야 한다. 그건 ‘인식의 힘’이다. 그 다음 왜 주제에 니체의 철학적 경구가 붙어 있고 그것은 무엇이지 살펴야 한다. 그건 ‘절망한 자는 대담해지는 법이다’ 이다. 다시 말해 절망한 자는 대담해지는 것이 인식의 힘이라면 우리는 그것의 한계에 대한 현실적 대안보다는 좀더 고차원의 직관력을 통해 세계를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인식의 힘이 결국 ‘날개 돋친’이라는 비약적 표현을 낳은 것이다. 이 시에서는 이걸 인식의 힘이라고 했는데 결국 이건 상상력의 힘일 수밖에 없다.  두 개의 하얀 유방이 그녀의 블라우스 속에서 나왔다  이 표현은 너무나 단조로운 설명적 묘사다. 흠잡을 데는 없지만 우리 눈을 환히 열리게 하거나 우리의 인식에 별다른 충격을 가하지 않는다. 상상력이 없는 경험 그 자체의 표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크누트 함순이란 사람은 이 문장에서 ‘유방’을 ‘신비로움’으로 바꾸었다.  두 개의 하얀 신비로움이 그녀의 블라우스 속에서 나왔다  유방과 신비로움은 본질적 유사성이 있다. 사실 팽팽한 젊은 아가씨의 젖가슴은 누가 뭐라 해도 신비로움 그 자체일 것이다. 이를 잘 직관한 크누트 함순의 상상력은 그 단어 하나를 바꿈으로 우리의 눈을 부시게 한다.  일상적 삶은 지독히 평범하고 진부하다. 바람 빠진 풍선 같고, 찐 달걀 같은 삶의 이 비극적 단조로움과 폭폭함을 어린애 같은 경이의 눈길로 낯설게 보는 것이 시적 상상력의 본질이자 삶의 허무를 넘어서는 확실한 대안이기도 하다.  - 송찬호  마침내 사자가 솟구쳐올라  꽃을 활짝 피웠다  허공으로의 네 발  허공에서의 갈기  나는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 한다  바람이 저 동백꽃을 베어물고  땅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이 비범한 재능을 보라. 상상력의 놀라운 힘을 보라. 사자가 솟구쳐오르듯 꽃이 활짝 피다니, 허공으로 네 발 치켜올리며 허공에서 갈기 날리며 사자가 솟구쳐오르듯 꽃이 활짝 피다니! 여기까지도 비상한데 또 다음은 어떤가. “나는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만 한다/ 바람이 저 동백꽃을 베어물고/ 땅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란다. ‘나는 어서 시를 완성해야만 한다. 바람에 동백꽃이 다 지기 전에’ 라는 정도의 말인데 이를 뒤집는 상상력의 힘을 보아라. 그러니 숫제 이 시에선 뛰어난 상상력이 동백을 활짝 피우고 있는 형국이다. 이게 귀신의 소리가 아니라면 누가 이보다 더 은유를 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상상력은 주제의식과 연관되지 않으면 한낱 마술지팡이 밖에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시적 내용과 형식으로 시작품의 형상화를 이루어낼 경험 소재들은 상상력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시적 세계를 창조해내는데, 여기에서 상상력이란 시적 주체의 인생관, 세계관, 혹은 대상에 대한 주체의 태도가 정립되어야 힘차게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의 특수한 경험을 다수의 보편적 경험으로 올려놓을 수 있는 이 주제의식은 시를 이끌어 가는 철학적, 사상적 배경이다. 흔히 상상력 하면 형식과 표현의 새로움에 관계하는 무슨 마술지팡이 같은 걸로 알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그 시의 주제를 이끌어 가는 철학적․사상적 배경을 상상력과 연관시킨다.  가령 존재론적 상상력이니 사회정치학적 상상력이니 혹은 생태학적 상상력이란 소리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바로 주제의식에 의한 상상력의 활용을 위한 말들이다. 하지만 오늘은 얼마 전 한계전 교수가『한계전의 명시 읽기』에서 갈래 지은 전통․자연 그리고 인생을 노래한 시, 순수서정과 내면의 울림에 천착한 시, 새로운 감수성의 언어를 지향한 시, 현실인식과 역사를 껴안은 시, 사물의 비밀과 존재의 탐구에 주력한 시 한두 편씩을 살펴보며 상상력과 주제의식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살펴보겠다.  (1) 전통, 자연 그리고 인생을 노래한 시  -박재삼  집을 치면, 정화수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선선한 우물집이었을레.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평상의, 갈앉은 뜨락의, 물냄새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레. 서방님은 바람 같단들 어느 때고 바람은 어려올 따름, 그 옆의 順順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춘향이 마음이 아니었을레.  하루에 몇 번쯤 푸른 언덕들을 눈 아래 보았을까나. 그러면 그때마다 일렁여오는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흐느껴 물살 짓는 어깨가 얼마쯤 하였을까나. 진실로, 우리가 받을 산신 령은 어디 있을까마는, 산과 언덕들의 만리 같은 물살을 굽어보는, 춘향은 바람에 어울린 수정빛 임자가 아니었을까나.  서정주가 유일하게 자기 제자로 인정한 박재삼은「울음이 타는 가을 강」「추억에서」등의 명편으로 이미 전통, 자연 그리고 인생을 노래한 시의 일가을 이루고 있는 시인이다. 그런데 이「수정가」또한 춘향이의 마음을 자연에 비유해 읊은 수일한 시다.  먼저 1연에서 춘향과 이도령을 자연적 존재인 집과 바람으로 비유한다. 즉 춘향을 집으로 친다면 정결한 물냄새가 풍기는 집, 곧 물로 만들어진 집이었을 것이고 이도령은 바람 같지만 그렇다 해도 바람은 물에 녹아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2연에서는 이도령을 향한 춘향이의 마음과 존재의 면모가 형상화되고 있다. 이도령을 향한 춘향의 그리움이 깊어갈수록 춘향은 바람을 머금은 수정빛 물이 된다. 춘향의 푸른 그리움은 그 흐느낌 때문에 물살을 일으키지만 결국 춘향은 그 바람에 어울리는 수정빛 물이 되는 것이다.  이 계열의 시들이 대개는 눈물과 그리움과 한의 정서를 주제로 취하고 있는데 이 시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춘향이의 그리움이 물이라는 질료로 형상화된 점, 그리고 결국 이 물이 수정빛을 띰으로서 한의 정서가 승화된다는 점은 새롭다. 그리고 춘향을 집에 비유하고 이도령을 바람에 등치시켜 춘향은 정착적인 존재요 이도령은 부유하는 존재로 형상화한 점도 신선하고, 특히 집을 “정화수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신선한 우물집” 등으로 묘사하여 비유와 상상력의 기발함과 함께 이미지의 깊이를 얻은 점도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산문시임에도 ‘-이었을레’ ‘-을까나’라는 종결어미를 사용하여 춘향과 이도령이라는 허구적 인물과 그를 감싸는 신화적인 공간에 신비감을 더해주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이런 전통, 자연을 통해 사랑의 노래를 읊는 젊은 시인 중에 장석남이 있다. 물론 장석남은 여기에 모더니즘까지 가미하고 있으나 역시 그의 정서는 세상에 온 모든 생들을 측은히 여기는 전통적 서정에 그 뿌리를 대고 있다. 다음의 시를 보라.  - 장석남  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득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 없이 밀려드는 배여  남녀 관계엔 항상 사랑과 이별의 변주가 있다. 김소월의「진달래꽃」, 한용운의「임의 침묵」이 그렇고 서정주의「歸蜀道」와 박목월의「하단에서」가 그렇다.  마찬가지로 장석남의 이 시에도 사랑과 이별의 변주가 공식처럼 자리하고 있다. 지금 시적 화자는 사랑을 하다가 누군가와 헤어져야 할 시간인 모양이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그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것을 그는 어느 가을날 바닷가에서 배를 밀어보는 아주 독특한 경험 혹은 상상력을 통해서 비유해낸다. 먼저 이별을 모양새 있게 하는 것은 사실 배를 밀어보는 것만큼이나 아주 드문 경험일 게다. 대개는 이별의 순간에 울고불고 하거나, 원망의 비수를 들이대거나, 아니면 철저히 계산적이어서 위자료부터 챙기는 오늘의 세태에 되레 떠나겠다고 하는 상대의 등을 희번득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넣듯이 한껏 더해 밀어주는 시적 화자를 보라. 아마 꿋꿋하게 잘 살으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밀어주었을 것이다.  한데 너무 많이 밀다간 자기의 온몸이 배 쪽으로 추락해버릴 수도 있으므로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 그 순간에 아슬아슬히 배에서 손을 떼는 것이다. 한껏 더해 밀어주다가 그만 이별의 격정에 겨워 상대 쪽으로 다시 쏠리거나 안겨버리면 참으로 대장부답지 못할 것 같아 그 아슬아슬한 순간에 허공에서 손을 거두는 사내의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도 선연히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사랑은 참 부드럽게 잘도 떠난다. 보이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 잘도 나간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배를 한껏 세게 밀어냈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떠나보내고 슬픔을 밀어낸다고 해서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처럼 잠시 머물다 가라앉을 마음이겠는가. 오히려 나의 내부로 밀려드는, 아무 소리도 없이 밀려들어오는 사랑과 슬픔의 배에 다시 잠식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애처로움이여. 아니 사랑은 오고 가고 또 가고 오는 것일진대, 오는 사랑 막지 말고 가는 사랑 잡지 말진저!  (2) 순수서정과 내면의 울림에 천착한 시  - 이준관  부엌의 불빛은  어머니의 무릎처럼 따뜻하다.  저녁은 팥죽 한 그릇처럼  조용히 끓고,  접시에 놓인 불빛을  고양이는 다정히 핥는다.  수돗물을 틀면  쏴아 불빛이 쏟아진다.  부엌의 불빛 아래 엎드려  아이는 오늘의 숙제를 끝내고,  때로는 어머니의 눈물,  그 눈물의 등유가 되어  부엌의 불빛을 꺼지지 않게 한다.  불빛을 삼킨 개가  하늘을 향해 짖어대면  하늘엔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첫 별이  태어난다.  이 시는 순수 서정시의 전형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다. 부엌의 불빛을 어머니의 무릎처럼 따뜻하다고 보며 부엌의 온기와 어머니의 사랑을 동일화한 수법은 세계를 자아화하여 정서를 주관적으로 드러내는 서정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현실주의적 시각에 치우친 사람은 이 시가 복잡다단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슨 효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시골도 이젠 도시화되어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던 부엌이 사라진지 오래며 고양이와 개가, 또 어머니와 아이가 하나의 공간 속에 화합을 이루는 장면도 이제는 보기 힘들다고 말할지 모른다. 차라리 도시문명의 침윤에 의해 파편화 되어가는 농촌의 삶을 비판적으로 묘사한다든가 인간의 본원적인 모습을 상실해가는 인간부재의 정황을 고발하는 것이 시인이 할 일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시인의 상상력은 꼭 그렇게 당위적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사라져가기 때문에 아름답고, 보기 힘들기 때문에 의미 있는 그런 장면을 복원하는 데 시인의 상상력이 기능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그 상상력은 과학자의 정밀한 분석력이나 집중적 탐구력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시의 상상력은 소설이나 희곡 등 다른 문학갈래에서 볼 수 없는 본질에의 육박성을 갖는다. 그것은 과거가 현재로 회감하고 자아와 세계가 융합하는 신화시대의 본원적 체험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근대 이후 신화적 세계관은 무너지고 우리의 의식에는 과학적 세계관이 터를 잡았다. 생의 모든 국면에 있어서 우리는 계량적이고 분석적인 시각으로 사물과 세계를 대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시에서 신화적 상상력이 작용하여 사물이 재구성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부엌의 불빛과 어머니의 무릎은 다른데 시에서는 그것을 동일화한 것이나, 저녁이 팥죽처럼 끓고 고양이가 접시의 불빛을 핥는다거나, 수돗물에도 불빛이 쏟아지고 어머니의 눈물이 등유가 되어 부엌의 불빛을 계속 밝힌다거나, 마지막으로 부엌의 불빛을 삼킨 개가 하늘을 향해 짖으면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첫별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겠는가.  부엌의 불빛은 어머니로 표상되는 인간의 자애로움 속에 부엌의 모든 사물이 온화한 불빛을 나누어 갖는다. 고양이가 핥는 작은 접시에서부터 하늘의 별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마음이 두루 퍼진다고 생각하는 경지는 인간과 인간의 갈등, 인간과 세계의 갈등을 모두 무화시키는 경지다. 모든 갈등이 합일의 공간에서 해소되어야 한다는 염원을 형상화하는 경지다. 그 염원은 갈등에 시달리는 현재의 곤고한 삶에 위안을 준다.  이제 순수 서정이 내면의 울림과 조우한 시를 한 편 보자.  - 김용택  이별은 손 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 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꽃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김용택은『섬진강』연작을 통해 순수서정과 사회 역사적 분노를 결합할 수 있는 시를 수일하게 보여준 시인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바로 그 순수서정과 내면의 울림이 행복하게 조우한 모습을 보여주며 아울러 그의 많은 시에서 드러나는 시의 평면성을 극복해낸다.  지금 시인은 저문 산아래 쓸쓸히 서있는 한 사람을 보고 있다. 그는 아마 이별의 서러움을 겪고 있는 사람인 모양이다. 그런 그 앞에는 풀잎들이 돋아나고 꽃들이 피어나서 햇살 속에 빛난다. 그럼에도 사람마다 어디에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고, 그 까닭에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의 흰 이마도 서럽다. 하지만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그 꽃은 겨울의 삭풍한설에 찢긴 자리에서 피어난다고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고통 속에서 피어나고 그 고통은 또 꽃처럼 천천히 피어난다. 비록 오늘 고통스럽지만 몽땅 산 뒤에 있는 그리운 것들을 다시 그리워하다 보면 뒤로 오는 다정한 여인처럼 손에 닿지 못하는 것들이 꽃들이 되어서 돌아오리라. 그렇게 한 사람을 위로하지만 사실 저문 산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은 그런 내면의 울음에 귀 기울이고 있는 시인 자신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고자 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그 사람을 거기에 세웠을 뿐이지 실상은 시인 자신의 내면이 형상을 입은 경우라는 이야기다.   ============================================================================================   204. 벼랑 끝 / 조정권                                        벼랑 끝                            조정권   그대 보고 싶은 마음 죽이려고 산골로 찾아갔더니, 때 아닌 단풍 같은 눈만 한없이 내려 마음속 캄캄한 자물쇠로 점점 더 한밤중을 느꼈습니다. 벼랑 끝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가다가 꽃을 만나면 마음은 꽃망울 속으로 가라앉아 재와 함께 섞이고, 벼랑 끝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조정권 시집 <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 > 중에서       조정권 연보   1949년 서울에서 3남 5녀 중 장남으로 출생.        양정고와 중앙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양정고 3학년 때 교지에 투고한 산문을 보고 지도교사(김상억)의 권유로 시 공부.   1970년 시 이 박목월의 추천으로 창간 신인 시인으로 등단.   1975년 동인으로 활동.   1977년 첫 시집 (조광출판사) 출간   1982년 제2시집 (문학예술사) 출간   1985년 제3시집 (영인문화사) 출간. 제5회 녹원문학상 수상.        시선집 중에서     
989    詩작법 펑펑펑... 댓글:  조회:6004  추천:0  2016-01-10
시적 경험과 시 쓰기 고재종(시인) 1. 경험과 소재  서거정은 “시는 마음에서 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마음 속의 情이건 意건 그것을 일으키는 데는 대상이 있다. 이 대상은 사물이건 사람이건 현상이건 사건이건 모두 우리가 살아가는 데서 만나고 부딪히고 사랑하는 가운데 생기는 체험의 산물이다. 동양시학의 논리 가운데 先景後精이라는 게 있는데 이것도 풍경에 대한 체험이 먼저 있고서야 감정이나 정서가 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체험에는 일상적 삶의 체험, 독서 체험, 여행 체험 등이 있는데 이런 근원적이고 감각적인 체험 소재들이 지성, 언어, 의식 작용 등을 거쳐 경험으로 올라서게 된다.  이런 경험의 소중함에 대하여 릴케가『말테의 수기』에서 한 말을 보자. “젊을 때 시를 쓰는 일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다. 시는 언제까지나 끈질기게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일생동안 그것도 70년 또는 80년 걸려서 우선 벌처럼 꿀과 의미를 모아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열 줄의 훌륭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다. 시가 만일 감정이라면 젊어서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시는 바로 경험인 것이다.”  시가 감정의 발산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질타 때문에 한 얘기이지만 그렇더라도 경험의 핍진성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시적 경험은 자잘한 일상사에서부터 도저한 정신적 사유에까지 다양하다. 어쩌면 총체적 삶 자체가 우리의 시적 경험 소재가 아니겠는가.  자칫 지나치기 쉬운 자잘한 일상사 하나가 시인의 시적 카메라에 스냅사진처럼 잘 포착된 시를 보는 것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자.  - 최영철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고  자장면집 한켠에서 짬뽕을 먹는 남녀  해물 건더기가 나오자 서로 건져주며  웃는다 옆에서 앵앵거리는 아이의 입에도  한 젓가락 넣어주었다  면을 훔쳐 올리는 솜씨가 닮았다  이 시의 주인공 남녀는 아마도 결혼기념일을 맞았거나 어느 한쪽의 생일을 맞아서 외식을 나온 모양이다. 한데 그 특별한 날 온 곳이 기껏해야 자장면집인 걸로 보아 노동자나 서민의 삶을 면치 못한 부부일 것이다. 그럼에도 해물건더기가 나오자 서로 건져주며 웃는 걸로 보아 아직도 그들 사이엔 꿋꿋하고 씩씩한 사랑이 존재하고 있다. 더구나 그들에겐 옆에서 앵앵거리는 아이도 있지 않는가. 한데 아이에게 한 젓가락 넣어주자 그 면을 훔쳐 올리는 솜씨가 부모를 닮았다고 하는, 그 사실을 포착해내는 시인의 예리한 눈을 보라.  참으로 흔하디 흔하게 겪는, 그리고 그냥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일상의 한 장면을 시적 경험으로 포착하여 우리에게 가족과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수일한 시다.  - 장석주  커피 물을 끓이려고 가스레인지 불을 켠다  새벽 네시다  가스레인지의 스위치를 비트는 하얀 손이  낮엔 복숭아나무 죽은 가지 두어 개를 툭툭 분질렀다  아주 가까운 둔덕에서 소쩍새가 운다  그믐밤인가 보다  내가 청혼했던 여자의 잠도 깊겠다  내겐 벌써  저기 아득히 흘러가 버린 과거가 있다  당신도 알다시피 매우 숭고한  쓰라린 과거다  이 시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시인은 새벽 세시에 홀로 깨어나 커피 물을 끓인다. 낮엔 밭에서 복숭아나무를 손질한 손으로 말이다. 그때 가까운 데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주 깜깜한 그믐밤 홀로 그 소리를 듣다가 한때 청혼까지 했을 정도로 사랑했던 여자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흘러가 버린 과거다. 쓰라린 과거지만 그럼에도 그 과거가 숭고했다고 말하는 시인을 보라. 우리는 부끄럽고 괴롭고 힘들었던 과거들을 떠올리기 싫어하고 오히려 어서 빨리 지워버리려 하지만 시인은 이를 숭고하게까지 여기는 것이다.  어쨌거나 위의 두 시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경험한 사소한 일을 가지고 삶의 외로움과 사랑을 적절하게 표현함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 조정권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山頂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天上의 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이 시는 조정권의「산정묘지․1」의 일부분이다. 이 시는 보다시피 분명히 풍경의 서술이다. 그러나 또 풍경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육체의 감각기관이 포착한 풍경이라기보다는 어떠한 도저한 정신이 투사하는 내면풍경이기도 하다.  통속과 허영만이 난무하고, 기품 없고 향기도 없이 썩은내만 진동하는 지상의 저자에서 시인은 孤高지향의 淸淨의지를 꿈꾼다. 그러므로 겨울 산을 오르며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을 노래하는 것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는 것이 산정의 실체라는 것을 말하고자함이며, 시인이 고고와 청정의지를 꿈꾸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이란 경구적 구절은 이렇게 해서 태어난다.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기본적 충동의 하나로 주어진 자연상태로부터 벗어나려는 욕구가 있다. 사람들이 옷가지를 걸치려는 것, 또 문자 획득 이전의 사회에 산 사람들이 몸에다 색칠을 했던 것 등도 그 때문이다. 억제하기 어려운 슬픔을 당했을 때 사람들이 동물적인 비명이나 육체언어에 고스란히 자기를 떠맡기기보단 이를 억제하고 조정하려는 것도 모두 자연으로부터 문화로의 이행이라는 오랜 훈련과 양식화의 결과일 것이다. “금수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라는 준열한 상기는 동양문화권에서 가장 유서 깊은 지엄한 윤리적 수사였다.  이런 문화와 윤리의 정립 속에서도 오히려 금수보다 더한 인간이 난무하는 세태 속에서 시인이 지향하는 고고와 청정의지는 필요하고 또 필요하다. 시적 경험은 사소한 일상의 순간에서부터 이렇듯 도저한 정신의 사유 속에도 편재 돼 있는 것이다.  -이시영  세상에서 이처럼 단순한 기록을 남긴 왕도 있다.  惠王의 이름은 季이며 明王의 둘째아들이다. 昌王이 세상을 떠나자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2년(599)에 왕이 세상을 떠났다. 시호를 惠라고 했다.  말하자면 왕이 된 그 즉시 세상을 떠났으므로 아무런 치적도 패악도 남길 새 없었다.  깨끗하다. 백제 제 28대 왕.  이 시는『삼국사기』를 읽고 쓴 시다. 시적 화자는 1연에서 독자들을 삼국사기로 인도한다. 그리고는 2연에서 백제 제28대 왕의 기록을 사기 기록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 왕은 왕위에 오른 즉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그런 뒤 3연에서 다시 시인의 직접서술이 나오는데, 그런 왕이었으므로 세상에 아무런 치적도 패악도 남기지 않은 깨끗한 왕이었다는 것이다.  흔히 권력을 잡으면 그 권력자들은 세상에 자기의 치적을 남기고자 과욕을 부리기 마련이다. 특히 독재자일수록 그 치적과 질서를 조장하기 위해 각종 억압과 착취의 행위를 일삼기 마련이다. 우리의 현대사는 한마디로 그런 지배자들에 왜곡되어 민중들의 고통만이 가중되어 왔다. 이 시는 그 지배자들에 대한 통렬한 일갈로 그 의의를 다한다.  한데 나는 여기에서 이 시의 내용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시는 독서 경험을 통해서도 많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직업을 가진 일개 존재로서 모든 삶을 경험할 수는 없다. 또 우리는 우리의 많은 경험을 가지고도 그것을 표현할 세계관이나 지식의 한계 때문에 시적 형상화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당연히 요구되는 것이 독서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계 최고의 독서가라면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이다. 그는 사후에 “20세기 중후반의 모든 인문과학의 사조가 그에게서 출발했다”라는 극찬을 받는 사람이다. 그는 어릴 적 집안의 도서관에서부터 문학교수와 도서관 사서 그리고 나중엔 국립도서관의 관장을 역임하기까지 평생을 도서관에서 살았다. 그는 영국의 브리태니커, 프랑스의 디드로, 독일의 브록하우스 등 그동안 출간된 모든 백과사전을 외우다시피 반복해서 읽었는데,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실제세계와 백과사전 중에서 선택하라면 백과사전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장님이 되기까지 한 그 왕성한 독서력을 통해 ‘20세기의 창조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깊은 사유의 작품들을 발표하여 오늘날 수많은 추종자를 낳았다. 그는 “모든 곳은 도서관이다”라고 했는 바, 그렇다면 우주란 “신이 쓴 하나의 거대한 책”이겠다.  물․불․공기․흙의 4원소에 대한 ‘물질 상상력’ 이론을 정립함으로써 금세기 최고의 시인 철학가로 불리는 가스통 바슐라르 역시 독서광이었다. “새로운 책들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가득한 덕을 베풀어주는가! 젊은 이미지들을 말하는 책들이 하늘에서 내 바구니에 매일같이 가득히 쏟아져 내렸으면 싶다. 이 기원은 자연스러운 것, 이 기적은 손쉬운 것, 저 위의 하늘나라에서 낙원이란 다만 거대한 도서관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한 그는 독서를 통해 상상력의 끝간데까지를 가보았다.  터키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은『하얀 성』에서 “편도 마차 승차권으로는 한번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시는 삶이라는 마차에 오를 수 없다. 그렇지만 만약 당신이 책을 한 권 들고 있다면, 그 책이 아무리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당신은 그 책을 다 읽은 뒤에 언제든지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읽음으로써 어려운 부분을 이해하고 그것을 무기로 인생을 이해하게 된다” 라고 말했다. 그의 또 다른 소설『새로운 인생』의 첫 문장은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인생은 바뀌었다.”로 시작된다. 그는 책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책을 통해 보르헤스처럼 깊고 드높은 사유의 힘으로 세계와 우주를 통찰할 수도 있고, 바슐라르처럼 상상력의 무한한 시공간을 넘나들 수도 있으며, 파묵처럼 새로운 인생이해의 길로 나갈 수도 있다. 또 누군 소박하게 지식을 습득하고 다른 세계를 간접체험하기도 할 것이다. 나는 말년에 장님이 된 보르헤스의 ‘책 읽어주는 사람’으로 고용되어 독서에 탐닉한 알베르토 망구엘이 그 독서경험을 바탕으로 지은『독서의 역사』란 명저를 통해 책과 독서에 관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그 위대한 승리의 6000년 간의 역사를 본다. 이 책을 보면 “결국 세계는 한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 시인 말라르메의 말이 되새겨진다.  요새 영상의 시대를 운운하며 책의 종말을 얘기하지만 인간은 언어의 동물이다. 어쩌면 우주보다 더 오래 남을 그 언어의 기록, 곧 헤르만 헤세의 말대로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선물로 받지 않고 인간의 정신으로 창조한 수많은 세계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것인 책의 세계”가 인간세상에서 어찌 사라지랴.  - 황동규  걸어서 港口에 도착했다.  길게 부는 寒地의 바람  바다 앞의 집들을 흔들고  긴 눈 내릴 듯  낮게 낮게 비치는 불빛.  紙錢에 그려진 반듯한 그림을  주머니에 구겨넣고  반쯤 탄 담배를 그림자처럼 꺼버리고  조용한 마음으로  배 있는 데로 내려간다.  정박중의 어두운 龍骨들이  모두 고개를 들고  港口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에는 數三 個의 눈송이  하늘의 새들이 따르고 있었다.  이 시는 낭만적 우울에 바탕을 둔 낭만적 동경이 현실과 교섭하는 과정을 빼어나게 보여주는 시다. “걸어서 항구에 도착했다”라는 첫 구절은 이 시가 젊은 날의 방랑과 관련된 나그네의 입장에서 쓰여진 시임을 알 수 있다. 동반자 없이 혼자 무전여행을 하는 것 같은 젊은 나그네는 물론 일상의 단조로움과 권태로움을 넘어 모험과 멀리 있는 것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하여 항구에 도착했을 것이다. 경험과 모험에의 충동은 특히 젊은 날엔 에로스의 충동과 연결되는데, 항구는 멀리 있는 것에 대한 확실한 시적 기호일 것이다. 지상의 끝이자 다시 먼 출발을 약속하는 지점이며 나그네에겐 이국정서를 환기해주는 곳이기에.  한데 그 항구에 막상 도착해보니 찬바람은 길게 불어 바다 앞의 녹슨 집들을 흔들고 하늘은 눈이라도 내릴 듯 음산히 내려앉아 불빛마저 낮게 낮게 비친다. 그래도 지전에 그려진 반듯한 그림, 곧 돈과 관련된 세상의 합리적 사고나, 또 반쯤 탄 담배를 그림자처럼 꺼버리고, 그러니까 이제 어두워진 하늘이 지워버리는 그림자처럼 어떤 절망이나 운명에 대한 생각도 꺼버리고, 조용한 마음으로 배 있는 데로 내려간다. 그런데 웬걸, 정박 중의 배들은 그 머리를 거북선의 거북처럼 쳐들고 모두 육지를 향해 있는 것이다. 육지 끝으로 걸어온 나그네가 만난 것은 오히려 바다 끝 항구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용골인 것이다. 곧 낭만적 동경이나 모험이 현실적 경험 속에서 새로운 눈을 얻게 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래도 젊은 나그네에게 허망함이나 황량함, 그리고 아픔은 남을 터. 어두운 하늘에 수삼개의 눈송이가 떠돌고 그것을 새들이 따르고 있다는 풍경의 묘사는 바로 그것이 사실적이기보다는 喚情的인 만큼 시방 젊은이의 마음 속에 자리하는 황량한 아름다움과 제휴되어 있는 것이다.  이 시는 황동규의 젊은 날의 여행체험에서 얻어진 시다. 이 시인은 시 쓰는 일과 강의 외엔 거의 모든 날들을 여행에 바쳤다 할 정도로 여행을 좋아해서 이후 그 속에서 건져진 수많은 시들을 낳았고, 그 중에서도『풍장』 같은 연작시는 그 시적 성과도 만만치 않다.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도저한 정신의 사유에까지 뻗쳐있는 각종 경험과 독서 및 여행 체험이 어떻게 시적 형상화를 입는가에 대해 몇 편의 시를 통해 알아보았다. 여러분의 삶의 나날을 모두 시적 텍스트로 보는 눈을 통해 시는 탄생한다. 여러분은 그런 나날을 늘 응시하고 그것을 언어화하는데 게을리 하거나 두려워 말라.  ====================================================================================   202. 이런 詩 / 박목월                                   이런 시詩                       박목월   슬며시 다가와서 나의 어깨를 툭치며 아는 체 하는 그런 詩. 대수롭지 않게 스쳐가는 듯한 말씨로써 가슴을 쩡 울리게 하는 그런 詩. 읽고 나면 아, 그런가부다 하고 지나쳤다가 어느 순간에 번개처럼 번쩍 떠오르는 그런 詩. 투박하고 어수룩하고 은근하면서 슬기로운 그런 詩. 슬며시 하늘 한자락이 바다에 적셔지 듯한, 푸나무와 푸나무 사이의 싱그러운 그것 같은 그런 詩. 밤 늦게 돌아오는 길에 문득 쳐다보는, 갈라진 구름 틈서리로 밤하늘의 눈동자 같은 그런 詩.     < 심상 > 1977년 9월    ----------------------------------------------------------------- 203. 4월의 노래 / 박목월                         4월의 노래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박목월 시집 < 크고 부드러운 손 > 중에서              
988    詩작법 찌르르... 댓글:  조회:4907  추천:0  2016-01-10
대화와 부정, 그 겹의 언어 박남희 살아있다는 것은 그 순간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인간을 굳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규정하지 않아도 인간은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태어나면서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 이는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관계에 의해서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최초의 형태는 모성과의 만남이다. 이처럼 모성이 부여한 생명은 관계성에 의해서 규정된다. 이러한 관계성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면서 차츰 확장되어 나간다. 즉 인간의 삶은 무수한 만남과 관계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를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존재의 필수조건 중의 하나가 관계성이다. 이는 엘리어트의 관계성에 대한 사유와도 상통한다. 어떤 사람 또는 객체는 밖으로부터 의미를 취하는 관계들의 얽힘(nexus of relations)에 의해서만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보는 엘리어트의 시학은 관계성의 시학으로 명명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하나의 실체는 그 자체로서 정확하게 고정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실체는 그 자체로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다른 대상들에 대한 중첩하는 관계지어짐(relatedness) 속에서만 존재한다. 즉 개인 또는 사물은 그 자체로서 자족하는 존재성을 갖지 못하고, 다른 것들과의 관계적 얽힘에 의해서만 그 의미를 갖는다. 이는 엘리어트의 철학과 문학 사상을 집약하고 있는 비개성주의, 유기체주의, 전통주의의 인식론적 바탕이 된다. 그 핵심은 한 마디로 자아 또는 자기동일성이 선험적으로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고 관계적인 구축물이라는 것이다.( Miller, J. Hillis. Poets of Reality: Six Twentieth-Century Writers. Cambridge, Mass.: Harvard UP, 1966. pp.167-8, 170-2.) 이 글의 서두에서 엘리어트의 관계성의 시학을 언급하는 것은 이 글의 텍스트인 이대흠 시인의 시들이 긴밀한 관계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흠의 시를 지배하는 핵심어를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대화’와 ‘부정’이다. 이대흠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시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세계와의 관계성 위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체득하고 있다. 그가 그의 첫 시집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의 후기에서 “아직껏 시라는 걸 쓰면서 나는, 내 이름을 달고 나가는 시들을, 나 혼자 썼다고 믿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나를 빌어 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 누군가란, 내 영혼이 있다고 믿는 온갖 동물들이나 식물들, 그리고 작은 돌멩이들, 내 안에 든 무수한 죽음들인 것이다. 그것들, 삶 이전의 것과 살아있는 것 그리고 죽은 것들, 나는 그들과 오랜 대화를 나누고, 그 내용에 나의 이름을 달 뿐이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시에 대한 그의 태도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열망과는 상반되게 현실은 종종 그에게 허용되었던 대화의 통로를 폐쇄하려는 음모를 드러낸다. 그는 이러한 현실의 태도에 반감을 나타낸다. 그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부정의식이 주로 현실에 관계된 것이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이 현실과의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의 부정의식의 이면에 세계에 대한 대화의 열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이렇듯 대화와 부정이라는 피륙으로 짜여진 겹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대화’와 ‘부정’은 그의 시를 끌고 가는 두 개의 바퀴와도 같은 것이다. 우선 다음의 시를 읽어보자. 공장생활을 하는 햇어미들은 아기 젖 줄 시간을 맞추지 못해서 퉁퉁 불은 젖을 감추고 일을 하는데 그래도 아기가 배고플 즈음이면 어미가 먹었던 밥이 모조리 젖으로 와서 강 흐르듯 자연스레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데 그 강에 닿아야 할 풀뿌리 같은 아기 입이 없어서 쏟아져 나오는 젖을 플라스틱 통이 먼저 맛보고  그런데 신비로운 것은 몇 리나 떨어진 집에 있는 아기가 어미 젖 짜는 그 시간을 용케도 알아서 감전된 듯 감전된 듯 울어댄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긴 강은 미시시피강이나 아마존강이 아니라 어미의 젖내 흐르는 젖강인 것을 마흔 넘어 바다 건너 온 내가 바닷가를 서성이는 것은  두고 온 늙은 어미의 젖내가 갯바람에 몰아쳐서 자꾸만 자꾸만 눈이 아려서 ―「젖 감전」전문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필연적인 관계는 없다. 이는 이들의 관계가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혈연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혈연이라는 관계의 끈은 생래적이라는 점에서 함부로 변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모성은 엄마와 아기 사이를 무엇보다도 강력한 관계의 끈으로 연결해준다. 인용 시를 읽어보면 공장 생활을 하는 어미가 아기에게 젖을 주지 못하고 젖을 짜내는 행위와 아기의 울음이 맞물리면서 엄마와 아기 사이의 관계성은 시공을 초월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기가 배고플 즈음이면 어미가 먹은 밥이 모조리 젖으로 와서 강 흐르듯 자연스레 몸 밖으로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필연적인 관계도 사회적인 조건의 제약을 받는다. 공장의 노동자라는 어미의 신분은 아기에게 마음대로 젖을 먹일 수 없게 만든다. 즉 젖으로 연결되는 어미와 아기 사이의 대화가 공장이라는 현실적 환경에 의해서 단절되는 것이다. 여기서 둘 사이의 결핍이 생기게 된다. 시인은 마흔이 넘어서도 바다 건너의 늙은 어미의 젖내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통해서 이러한 결핍이 어미와 어린 자식과의 관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세상에서 가장 긴 강은 미시시피강이나 아마존강이 아니라 어미의 젖내 흐르는 젖강”이라는 시인의 진술은 어미와 자식 간의 관계가 영원한 것임을 의미한다. 시인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그의 생의 처음이자 마침표와 같은 분이다.(「마침표를 먼저 찍다」)시인이 모성성을‘강’이라는 이미지로 은유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몸과 자연을 하나의 전체로 인식하는 유기체적 상상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가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에서 “내 몸에는 탐진강이 흐르고 있으며/북한산과 용두봉이 둥지를 틀고 있다/나는 이미 한강의 일부이며 그 강은/나의 일부이다 나는 매일/이 땅의 산과 강으로 호흡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이처럼 그의 시에는 제유를 바탕으로 한 유기체적 상상력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이것은 그의 시가 본질적으로 인간과 세계(우주)의 관계성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의 발길이 끊어지면서부터 달의 빛나지 않는 부분을 오래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무른 마음은 초름한 꽃만 보아도 시려옵니다 마음 그림자 같은 달의 표면에는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발자국이 있을까요  파도는 제 몸의 마려움을 밀어내며 먼 곳에서 왔습니다 항구에는 지친 배들이 서로의 몸을 빌려 울어댑니다 살 그리운 몸은 불 단 노래기처럼 안으로만 파고듭니다 아무리 날카로운 불빛도 물에 발을 들여 놓으면 초가집 모서리처럼 순해집니다 먼 곳에서 온 달빛이 물을 만나 문자가 됩니다 가장 깊이 기록되는 달의 문장을 어둠에 눅은 나는 읽을 수 없습니다 달의 난간에 마음을 두고 오늘도 마음 밖을 다니는 발걸음만 분주합니다  ―「애월(涯月)에서」전문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 생래적인 필연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연인 간의 사랑은 후천적 관계성을 필연으로 연결시켜주는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남녀 간의 인연의 끈은 그리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찾아서 헤매는 것은 ‘인연의 끈’이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남녀가 서로 만나서 사랑을 나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관계가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이별의 아픔을 경험한다.「애월(涯月)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한 시적 화자의 심리상태를 애월(涯月), 즉 ‘달의 난간’에 마음을 두고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화자가 “달의 빛나지 않는 부분을 오래 보는 버릇이 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그 어두운 부분이 자신의 마음의 은유로 보였기 때문이다.“마음 그림자 같은 달의 표면에는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발자국이 있을까요”라는 진술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에 대한 회상이면서 동시에 육체적인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동반하고 있다. 그것은 “제 몸의 마려움”이나“ 살 그리운 몸은 불 단 노래기처럼 안으로만 파고듭니다”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난다. 이것은 그가 “그리움이란 성욕의 다른 이름”(「꽃핀 나; 검증 없는 상상」)이라고 한 것과도 연결된다. 이것은“아무리 날카로운 불빛도 물에 발을 들여 놓으면 초가집 모서리처럼 순해”지는 이치가 남녀 간의 육체적인 사랑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달빛이 물을 만나 문자”가 되는“가장 깊이 기록되는 달의 문장”을 읽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의 마음이 오랫동안 어둠에 눅어서 빛의 문장을 감별할 수 있는 심안心眼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어둠’은 그의 현실적인 삶의 부정성과 무관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나는 꽃을 아네 내가 꺾고 버리지 못한 꽃 꽃은 귀퉁이부터 말라갔네 나는 꽃을 아네 참 많은 꽃을 꺾었네 참 많은 꽃에 꺾였네 한 송이 꺾을 땐 죄스러웠지 또 한 송이 꺾을 땐 운명을 생각 했다네 세 송이 네 송이 될 때엔 꽃을 보지 못했네 나는 꽃을 아네 한 아름의 꽃을 꺾어도 다하지 못할 때 나는 꽃을 꺾지 않았지 나는 꽃을 아네 꺾어야만 순결함이 유지되는 그 비운을 꺾지 않으면 슬퍼지는 그 운명을 나는 꽃을 아네 씨앗으로 담기에는 너무 먼 기쁨 꺾기에는 너무 뜨거운 슬픔 나는 꽃을 아네 나는 꺾네 다 꺾어도 꺾이지 않은 꽃을 ―「나는 꽃을 아네」전문 꽃은 자연 속에 피어서 스스로의 존재성을 드러내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존재이지만, 꽃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은 꽃 역시도 관계성을 지향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꽃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향기를 주지만 인간은 꽃에게 유익을 주기보다는 폭력성을 보여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나는 꽃을 아네」에서 화자가 꽃을 꺾는 행위는 꽃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폭력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가 꺾고 버리지 못한 꽃은 귀퉁이부터 말라가서 결국엔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나와 꽃의 관계가 꺾고 꺾이는 관계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은 비극이다. 하지만 이것은 쉽게 해소될 수 없는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화자가 꽃을 꺾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자가 꽃을“꺾지 않으면 슬퍼지는 운명”을 자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 살아있는 한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이 꽃을 꺾는 것은 인간의 욕망 속에 내재하는 조급함 때문이다. 시인이“씨앗을 담기에는 너무 먼 기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씨앗을 얻기 위해서 먼 기쁨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시인이“꺾여야만 순결함이 유지되는 비운”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도 그 순결함이라는 것이 자아중심의 순결함이고 극히 이기적인 순결함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꽃을 꺾지만 정작 꽃은 “꺾어도 꺾어도 꺾이지 않는 꽃”으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의 제목인 “나는 꽃을 아네”라는 시인의 진술은 역설일 수밖에 없다. 이 시를 사랑 시로 보면 남성의 욕망의 이면에 숨어있는 폭력성을 보여준 것이고, 생태 시로 보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성을 보여준 것이 된다. 이 시에서 꽃(자연)과 나(인간)의 평등한 관계를 파괴하는 것은 꽃은 꺾어야 한다는 인간의 강박관념이다. 이러한 강박관념의 심층에는 시인의 육체적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부정성이 외적인 환경에서 온 것뿐 아니라 내면적인 것임을 말해준다. 그가 “어느 음부엔가 이 수억의 정자/집어넣고 싶다 해탈하고 싶다 여인이여/나를 이끌 여,……미치겠네 쓱/밀어넣고 싶은 이 딱딱한 지식이라는/이 성기”(「책꽂이의 책이 내 삶의 단면이냐?」)라고 했을 때, 그의 욕망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산된다. 그의 시의 건강성은 자신의 욕망을 개인적인 차원에 고정시키지 않는 데에 있다.  ------- 박남희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폐차장 근처』,『이불속의 쥐』,평론집으로『존재와 거울의 시학』이 있음.   =================================================================   200. 한계 / 박목월                       한계限界                       박목월   모든 것은 제나름의 限界에 이르면 싸늘하게 체념한다. 그 나름의 둘레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안으로 눈을 돌린다. 참으로 체념을 모르는 자는 미련하다. 지금 숙연한 나의 손. 그리고 알라스카로 迂廻하는 에어라인의 그 方向으로 一○○만 光年의 저편에서 玄玄한 大熊座의 星雲.     박목월 시집 < 無順 > 중에서  ------------------------------------------------------- 201. 청자 / 박목월                            청자靑瓷 ― 砂礫質·9                     박목월   응접실 한 구석에 단정하게 앉아있는 그녀를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았다.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을때, 간혹 내가 그녀를 유심히 바라볼 뿐.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한때 나는 그녀와 서로 건너다 보며 지냈을 뿐.   그녀가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그녀는 윤기나는 살결로 내게 다가오는.   어제는 黃錦燦氏가 노래한 「고려청자기」를 읽고 그녀에게 연잎이 돋아나는 것을 나는 보았다     < 현대시학 > 1971년 1월호 수록작      
987    詩작법 까르르... 댓글:  조회:4526  추천:0  2016-01-10
시 공부에 필요한 문학용어       *감상주의(感傷主義) : 어떤 원칙을 주장하는 뜻에서 주의가 아니고 감정 과정의 의미에서 주의이다. 슬픔이나 기쁨 등의 정서를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러한 정서 자체를 인위적으로 조장하는 데서 생긴다.  *감정이입(感情移入) :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을 다른 대상에 집어넣어 대신 나타내는 표현 기법 상의 하나.시에서 많이 쓰인다.  *객관적 상관물(客觀的 相關物) : 어떤 특별한 정서를 나타낼 공식이 되는 한 떼의 사물 정황 일련의 사건으로서 바로 그 정서를 곧장 환기시키도록 제시된 외부적 사실들을 이르는 말. 엘리어트가 처음 말함.  *계몽주의(啓蒙主義) : 서양에서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왕성했던 사조로서 인간의 이성을 중시했다. 계몽주의 문학은 작가가 교사 선각자의 입장에서 민중을 합리성에 호소하여 가르치려 하는 일종의 교훈주의 문학이다.  *고전주의(古典主義) : 그리스 로마의 고전적 미를 전범으로 하여 17.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문예 경향 개성적이기보다는 보편적이면 일반 미를 지향한다.  *구조(構造) : 내부 요소들이 짜임 또는 그러한 짜임에 의하여 이루어진 문학 작품의 전체  *구조주의(構造主義) : 문학 작품을 작품 속의 여러 요소들의 상호 관계로서 조직된 구조로 보는 연구 방법론 이 사상은 프랑스의 언어 학 이론에서 나왔다.  *기지(機智) : 지적인 것이며 언어적 표현에 의존한다 서로 다른 사물에서 유사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경구나 압축된 말로 표현하는 지적 능력  *기호학(記號學) : 문학 작품을 하나의 기호 체계로 보고 이를 분석하는 문학 연구의 한 방법 작품의 언어 분석을 통한 문화 요서의 분석 문체론적 접근 의미론에 따른 분석 등을 행한다.  *낭만주의(浪漫主義) : 18세기말부터 19세기초에 걸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 유행한 문예사조의 하나 고전주의에 반발하여 생겨난 것으로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고 현실보다는 이상을 추구하는 풍만해 감정 표출을 특징으로 한다.  *내재율(內在律) : 자유시나 산문시에서처럼 문장 안에 미묘한 음악적 요소로 잠재되어 있는 운율 외형률과 대조가 된다.  *내적 독백(內的獨白) : 20세기 심리 소설의 한 서술 방법으로 인물의 심리 적 독백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외적 사건을 그리는 기교  *내포(內包) : 사전적 의미가 작품 구조 내에서 새롭게 이루어 내는 의미 함축적 의미  *다다이즘 : 1차 세계대전 중 나타난 전위적 예술 운동에 대해 시인 트리스탄 짜라가 붙인 이름 전쟁의 잔인성을 증오하고 합리적 기술 문명을 부정하여 일체의 제약을 거부하고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과격한 실험주의적 경향 뒤에 초현실주의에 흡수되었다.  *다의성(多義性) : 단일한 의미가 아니라 암시적으로 여러 갈래의 의미를 드러내는 문학 언어의 한 특성.  *데카당스 : 퇴폐주의 19세기말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에서 유럽 각 국에 퍼져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예술 경향으로 뒤에 상징주의로 발전하였다.  *매너리즘 : 예술 창작에서 독창성을 잃고 평범한 경향으로 흘러가 생기와 신선미를 잃는 일  *모더니즘 : 철학 미술 문학 등에서 전통주의에 대립하여 주로 현대의 도시 생활을 바였나 주관적이 예술 경향의 총칭 시에 있어서는 1910년이래 영미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미지즘과 주지주의를 함께 말한다.  *모티프 : 일정한 소재가 예술적 관점에서 해석되어 작품의 주제를 구성하고 통일감을 주는 중요 단위를 말한다. 이것은 한 작가 한 시대 나아가 한 갈래에 반복되어 나타날 수 도 있다.  *몽타주: 따로따로 촬영된 화면을 효과적으로 떼어 붙여서 화면 전체를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영화나 사진 편집의 한 수법  *묘사(描寫) : 어떤 대상을 객관적 구체적 감각적으로 표현하여 나타내는 일  *민요(民謠) : 민중 속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민중의 생활 감정을 소박하게 반영시킨 노래  반어 의미를 강조하거나 특정한 효과를 유발하기 위해서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되는 말을 하여 그 이면에 숨겨진 의도를 나타내는 수사학의 일종  *보조 관념(補助觀念) : 어떤 다른 생각을 나타내는 매개로 쓰이는 사물이나 생각 비둘기 가 평화를 나타낼 때 비둘기는 보조 관념 평화는 원관념  *부조리(不條理) : 문학: 베케트나 카뮈의 작품이 그것으로 인간 존재의 무의미함 인간 사이의 의사 소통의 불가능함 인간 의지의 전적인 무력함 인간의 근본적인 야수성, 비생명성, 요컨대 인간의 부조리를 아이러니컬하게 나타내는 문학을 말한다 특히 부조리극은 내용만이 아니라 극 구성 자체가 부조리하다.  *비유(比喩) : 하나의 사상이나 사건을 설명할 때 다른 사물을 빌려 표현하는 것 직유 함유 은유 인유 등이 있음  *사실주의(寫實主義) : 19세기 후반에 낭만주의에 대립하여 자연이나 인생 등의 소재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는 예술의 경향 또는 인간의 본질을 역사적 사회적 존재로 보는 세계관  *산문시(散文詩) : 일정한 운율 없이 자유롭게 쓰는 시로 이야기 형식으로 쓰는 시  *산문 정신: 운문의 외형적 규범 및 낭만주의적인 시적 감각을 배제하고 사회적 현실주의에 의하여 파악된 현실을 순전한 사문으로써 표현해야 한다고 하는 태도  *상징(象徵) : 한 사물 자체로서 다른 관념을 나타내는 일 즉 보조 관념만으로 원관념을 나타내는 일  *상징주의(象徵主義) : 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자연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문예 상의 경향 내면적이고 신비적인 세계를 상징으로써 암시하려고 했다.  *서사시(敍事詩) : 민족적이거나 역사적인 사건이나 신화 또는 전설과 영웅의 사적 등을 이야기 중심으로 꾸며 놓은 시  *서사체(敍事體) : 어떤 사건이나 사실 전달을 위주로 서술해 나가는 문체  *서술자(敍述者) : 소설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 시에서 시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은 '시적 자아'라고 하며 주로 '나'라는 1인칭 서술자가 된다.  *서정시(敍情詩) : 서사시 극시와 달리 주관적이며 관조적인 수법으로 자기 감정을 운율로서 나타내는 시의 한 갈래  *서정적 자아(抒情的自我) : 시 속에서 말하는 사람으로 보통 시인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시인이 시적 표현 효과를 위해 허구적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부름 시적 자아라고도 한다,  *서정주의(抒情主義) : 시 소설 등에서 작자의 주관적 체험을 서정적으로 표현하는 한 경향 주로 사람 죽음 자연 등을 제재로 내적 감동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리리시즘  *소재(素材) : 예술 창작 상의 요소가 되는 재료 곧 자연물 환경 인물의 행동 감정 같은 것  *수사학(修辭學) : 역사 전설 도덕 철학 등의 산문적인 요소를 내포하지 아니하고 순수하게 정서를 자극하는 표현적 기능만을 활용하여 짓는 시  *시튜에이션 : 상황 어떤 인물이 처한 정세를 가리킨 것으로 연극 소설 영화 등에서 결정적 장면을 말함  *시학(詩學) : 시에 대한 조직적 체계적 이론으로 시의 본질과 분류, 형식과 기교, 효용, 그 밖에 다른 예술과의 관계, 시의 기원 등을 합리적으로 설명한다.  *신고전주의(新古典主義) : 17세기 중엽에서 18세기 말엽까지의 유럽 문학 사조를 가리킨다 신고전주의는 사람의 불 완전성을 강조하고 고전 문학에서 발견한 자연의 보편서 조화 균형 합리성을 더욱 철저히 방법적으로 따르기를 주장하였다.  *실존주의(實存主義) : 실제로 존재하는 체험적 개인의 상황 자체가 중요하며 개인의 실존은 비합리적이라는 입장 실존주의 문학은 인간 존재를 그 근원적 부조리성에서 추구하는 것 존재가 본질에 선행한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앙가주망도 여기에서 나왔다.  *심볼 : 상징 인간이나 사물 추상적인 사고를 그 연상에 의해 표현하는 것  심상(心像) : 이미지  *아이러니 : 반어법, 수사학에서 의미를 강조하거나 특정한 효과를 유발하기 위해서 말의 표면상 의미 뒤에 숨어 그와의 반대의 뜻을 대조적으로 비치는 표현 형식  *알레고리 : 흔히 풍유 또는 우유라고도 함 표면적으로 인물과 행위와 배경 등 통항적인 이야기의 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는 이야기인 동시에 그 이야기 배후에 정신적 도덕적 또는 역사적 의미가 전개되는 뚜렷한 이중 구조를 가진 작품  *앙가주망 : 사회 참여 현실 참여라는 뜻으로 프랑스의 사르트르가 주창하였다.  *애매성(曖昧性) : 신비평의 용어 함축적 의미의 언어가 사용되는 시에서 상식적인 의미 이외에 풍부한 암시성을 수반하거나 동시에 둘 이상의 의미를 드러낼 수 있는 융통성 복합적 의미 풍부한 의미라는 뜻으로서 난해서과는 구별된다.  *어조(語調) :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사물과 독자에 대한 작가의 태도에 의하여 결정되는 말의 가락  *역설(逆說) : 겉으로 보기에는 진리에 어긋나는 것 같은 표현이나 사실은 그 속에 진리를 품은 말 패러독스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 : 예술을 위한 예술, 예술은 오직 미를 추구하는 독자적인 존재라는 주장으로 유미주의자들이 내세운 구호에서 비롯되었으며 미의 절대적 가치를 의미함  *오버랩 : 영화에서 어떤 화면 위에 다른 화면이 겹쳐지는 것으로 시간 경과에 대한 생략의 의미로 쓰인다. 약화  *외연(外延) : 한 낱말이 본래 가지고 있는 사전적 의미 지시적 의미라고도 하며 내포와 대립된다  *우화(寓話) : 인간의 정화를 인간 이외의 동물, 신 또는 사물들 사이에 생기는 일로 꾸며서 말하는 짧은 이야기로서 도덕적 교훈이 담겨 있다.  *운율(韻律) : 시의 음악적 요서 같은 소리의 반복에 의한 음악적 성과를 운이라 하고 말의 고저 장단에 의한 음악적 성과를 율이라고 한다.  *원관념(元觀念) : 어떤 말을 통하여 달리 나타내고자 하는 근본 생각 보조 관념과 대립  *원형(原形) : 근본적인 형식으로 그것으로 부터 많은 실제적 개체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프레이저의 인류학과 융의 심리학의 영향을 받아 문학 비평에 이 방법이 원용되어졌다. 인간의 원초적 경험들이 인간 정신의 구조적 요소로 되어 집단적 무의식을 통해 유전되며 그것이 문학에서 상징적인 형태로 나타난다는 입장  *위트 : 기지 사물을 신속하고 지적인 예지로 인식하여 다른 사람이 기쁘게 즐길 수 있도록 교묘하고 기발하게 표현하는 능력  *유미주의(唯美主義) : 탐미주의라고도 함 미를 최고의 것으로 보고 여기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태도로서 문학 예술의 목적을 도덕이나 실용성에서 분리시켜 미 자체를 추구하는 것  *율격(律格) : 율, 즉 말의 고저 장단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음악적 격식은유처럼 같이 등 연결어가 없이 원관념과 보조 관념을 결합시켜 나타내는 비유법의 하나 A는 B이다 A의B와 같은 형태를 취한다.  *음보(音步) : 시의 전체적인 리듬을 형성하는 어절로서의 최소 단위  *음성 상징(音聲象徵) : 시적 표현에서 음성 자체가 감각적으로 떠올리는 표현 가치를 이른다. 의미 작용 의미 작용 문학 작품의 내적 구조 관계를 통해 자율적으로 의미를 산출해 내는 일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의미  *의식(意識)의 흐름 : 인간의 잠재 의식의 흐름을 충실히 표현하려고 하는 문학상의 수법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는 이 기법으로 쓰여진 유명한 작품이며 이상의 날개도 이런 유의 작품에 속한다.  *이미지 : 오관을 통한 육체적 지각 작용에 의해 마음속에 재생된 여러 감각적 현상. 심상, 영상이라고도 한다.  * 이미지즘 : 일차 대전 말기 영미의 시인들이 사물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로써 명확한 심상을 제시하고자 창도한 문학 운동으로 이미지의 색채와 율동을 중시하고 적확한 용어로 새로운 운율을 창조하려고 했음  *인본주의(人本主義) : 인간성의 해방과 옹호를 이상으로 하는 사상 인간성을 구속 억압하는 대상이 시대에 따라 다름으로 휴머니즘의 내포적 의미를 시대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인상주의(印象主義) : 회화나 조각에 있어 자연에 대한 순간적인 시각적 인상을 중시하고 여러 가지 기교로 인상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하는 주의와 그 작가들  *자기화(自己化) : 문학 작품 통해 얻어지는 여러 가치를 자기 변화의 동기로 삼는 일  *자연주의(自然主義) : 사실주의의 뒤를 이어 나타난 문예사조로 진화론 물질의 기계적 결정론 실증주의 등의 사상을 배경으로 일어났으며 생물학적 사회환경적 지배하에 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자연 과학자와 같은 눈으로 분석 관찰하고 검토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유시(自由詩) : 전통적인 정형적 리듬을 벗어나 자유로운 리듬의 가락으로 이루어진 모든 형태의 현대시  *자율성(自律性) : 문학 작품이 그 자체의 내적 구조를 통해 스스로 하나의 완결된 전체를 이루는 특성  *정화 작용(淨化作用) :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 이론으로 울적한 공포에 질린 감정을 해소하여 쾌감을 일으키게 하는 일 카타르시스  *주지주의(主知主義) : 종래의 주정주의에 대립하여 감각과 정서보다 지성을 중시하는 창작 태도와 경향 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와 영국 미국에서 성했다.  +지시적 의미(指示的意味) : 사전에 나타나는 그대로의 의미  *직관(直觀) : 판단 추리 등의 사고 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정신 작용  직유처럼 같이 등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직접 연결해 주는 말에 의해 나타내는 비유법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 : 쉬르리얼리즘 프랑스에서 일어난 예술 운동으로 1920년대에 다다이즘에 이어 프로이트의 심층 심리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기성의 미학 도덕과는 관계없이 내적 생활의 충동적인 표현을 목적으로 한다.  *초점(焦點) : 주의에 상상적인 작품의 제재가 집중된 중심 초점은 한 작품 속에서 순간 순간 이동 될 수 도 있고 지속적으로 고정 될 수도 있음  *추체험(追體驗) : 작품을 읽으며 자신을 작품 속의 인물과 같은 입장에서 그 작품 세계를 행동하고 경험하는 것  *카타르시스 :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 이론으로 공포와 연민을 통해 감정을 해방하여 쾌감을 일으키게 하는 일  *테마 : 작품 속에 나타난 중심 사상이며 작품 속에 구현되어진 의미여 제재에 대한 해석이다. 창작 과정으로 보아서는 동기의 구체화라고 할 수 있음 주제  *텍스트 : 주석 번역 서문 및 부록에 대한 본문 원문 원전을 말한다.  *패러디 : 어느 작가나 시인의 내용 문체 운율 등을 모방하여 풍자적으로 꾸민 작품  *폭풍노도(暴風怒濤) : 1770-1780년 무럽에 괴테와 실러를 중심으로 독일에서 일어난 혁명적 문학 운동 합리적인 계몽주의에 반대하고 격력한 감정과 개성을 존중했다.  *표현주의(表現主義) :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특히 연극 분야에서 성행했다 작가 개인의 강력한 주관적 표현을 내세운다.  *풍유법(諷諭法) : 본래의 뜻을 감추고 표현되어 있는 것이 이상의 깊은 내용이나 뜻을 짐작하게 하며 흔히 교훈적인 수사법 알레고리  *풍자(諷刺) : 인간의 약점 사회의 부조리 비논리 같은 것을 조소적으로 표현하는 수법  *함축적 의미(含蓄的意味) : 문학 작품에 있어서 내부 구조를 통해 드러내는 의미 지시적 의미의 반대되는 뜻으로 쓰인다.  *해학(諧謔) : 성격적 기질적인 것이며 태도 동작 표정 말씨 등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인간에 대해 선의를 가지고 그 약점이나 실수를 부드럽게 감싸며 극복하게 하는 공감적인 태도이다.  *형식주의(形式主義) : 작품 자체의 형식적 요건들 작품 각 부분들의 배열 관계 및 전체와의 관계를 분석 평가하는 문학론 구체적으로는 러시아 형식주의를 지칭하며 신비평은 여기서 나왔다.  *휴머니즘 : 인간성의 해방과 옹호를 이상으로 하는 사상 또는 심적 태도 인간성을 구속 억압하는 대상이 시대마다 다른 양상을 띤다. 인도주의   =============================================================================   198. 모일某日/ 박목월                               모일某日                       박목월   이라는 말은 내 姓名위에 늘 붙는 冠詞. 이 낡은 帽子를 쓰고 나는 비오는 거리로 헤매였다. 이것은 全身을 가리기에는 너무나 어줍잖은 것 또한 나만 쳐다보는 어린 것들을 덮기에도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것. 허나, 人間이 평생 마른옷만 입을가부냐. 다만 頭髮이 젖지않는 그것만으로 나는 고맙고 눈물겹다.     박목월 시집 < 欄 · 其他 > 중에서             ---------------------------------------------------------------------------------------   199. 무제 無題 / 박목월                         무제無題                       박목월   訪問客은, 누구나 자기의 性格대로 벨을 울리고, 用務의 性質에 따라 노크 소리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벨소리와 노크 소리만 듣고도 訪問客의 性格과 用務를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눈이 오는 날은 누구나 조금씩 例外的이다. 벨소리가 약간 情緖的으로 울리고 用務도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어느 눈오는 日暮. 벨이 울렸다. 저렇게 牧歌的일 수 있을까. 저렇게 바리톤으로 울릴수 있을까. 나는 울렁거리는 가슴으로 대문을 열었다. 하지만 대문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노크가 울렸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겸손한 울림. 겸손한 間隔. 하지만 문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날, 우리 집 벨을 울리고 문을 노크한 분이 누굴까. 아무도 몰랐다. 우리 집을 방문한 손님이 누군지 몰랐다. 하지만 그날밤 가족들의 얼굴이 溫和하고, 불빛이 한결 부드러워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박목월 시집 < 경상도의 가랑잎 > 중에서    
986    詩작법 뇨뇨뇨... 댓글:  조회:5583  추천:0  2016-01-10
새로운 시와 지루한 시  이 승 하 (시인, 중앙대 교수)   내용의 측면에서건 형식의 측면에서건 새로운 구석이 조금도 없는 시를 읽으면 지루해짐을 넘어 고통을 느끼게 된다. 구태의연한 시는 상상력의 빈곤을 말해줄 따름이다. 하지만 새로움이 시의 진정성을 무시한, 이를테면 실험을 위한 실험이라면 그것은 언어 유희요, 새로움을 가장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젊은 시인 중에는 재기 발랄함을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이가 꽤 된다. 물론 재기 발랄함만을 갖고 있다 해도 큰 재산이기는 하겠지만. 부지불식간에 몸이 나뒹굴려져 아리고 아린 갖가지 삶의 고리를 엮듯 몸을 질질 끌어 공간을 지우는 섬뜩한 경계 없음의 퍼포먼스 선명한 경계를 세우며 휘두른 후리채에 맞고 나가떨어진 파리, 모기, 하루살이, 거미, 때로는 길을 잘못 든 귀뚜라미의 육신을 보며, 그 박살난 몸뚱이를 보며, 또한 나는 경계를 허물지 못했던 매 순간을 탓하며 진정, 아리게 바닥에 나뒹구는 몸. 죽음을 당기고 있는 생의 순간들이 저릿저릿하게 바닥을 긋는 선, 지울 수 없는 궤적이 파인다. 대단원의 피날레에 사선이 그어진다. ―김광기, 「스키드 마크」전문 김광기 시인의 등단 지면을 나는 모른다. 동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나왔다고 하나 학부는 어디를 나왔는지 모른다. 나는 이 시인의 시를 이번에 처음 보았는데 흥미로운 요소가 있어 논해 보고자 한다. 스키드 마크(skid mark)는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옆으로 미끄러지면서 차도에 남겨지는 자국이다. 제일 앞 4행을 읽고 나는 고속도로상에서의 사고를 연상했다. 차는 완전히 구겨진 종이조각처럼 되고, 사람의 몸은 도로상에 나뒹굴거나 차체에 질질 끌려간다. 마치 후리채(파리채?)를 맞고 나가떨어진 파리나 길을 잘못 들어 몸이 박살난 귀뚜리처럼 말이다. '경계'란 무엇일까? 삶과 죽음의 경계, 살아 숨쉬는 육신과 박살난 몸뚱이와의 경계, 육과 영의 경계……. 뭐 이런 상대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 둘 사이의 경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엇갈리기도 한다. 그 시간에 졸지 않았더라면, 그 시간에 승선하지 않았더라면,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살 사람이 죽고 죽을 사람이 산다. 그런데 스키드 마크는 그 사건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증언할 수 있다. 인간의 자력으로, 혹은 자의로 그 경계를 허물지는 못한다. 그 경계는 운명의 힘이 관장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경계를 관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치!'하는 순간에는 이미 "아리게 바닥에 나뒹굴"게 된다. 시인이 이해한 스키드 마크는 "죽음을 당기고 있는 생의 순간들/저릿저릿하게 바닥을 긋는 선"인데 아뿔싸! 사고가 나버린다. 지울 수 없는 궤적이 파인다. 이 시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생의 순간들이 죽음을 당기고 있다는 표현도 절묘하지만, "저릿저릿하게 바닥을 긋는 선"이라는 시행에 이르러서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대단원의 피날레에 사선이 그어진다"는 것은 끔찍한 교통사고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이 바로 스키드 마크라는 뜻이리라. 이 시의 소재는 당연히 스키드 마크이고, 주인공도 '나'라기보다는 스키드 마크인 듯하다.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쓴 시인가 다소 막연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특이한 소재를 다루는 솜씨를 높이 사주고 싶다. 떠벌이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죽음의 링에서 그 집을 발견했다 맞고 터지고 정신을 잃다 보면 들어가 쉬고 싶은 방문이 보인단다 나, 지금 그 앞에 와 있다 ―김형수, 「혼몽(昏 )의 집」앞부분 이 시의 강점은 흡입력이다. 처음 3연을 읽어보고 흥미를 느끼면서, 곧바로 그 다음이 읽고 싶어진다. 무하마드 알리는 맞기보다는 나비처럼 날아가 벌처럼 쏜(때린) 복서이지만 어쨌든 많이 맞았기에 노년에 들어 병고에 시달리고 있다. 복서가 다운을 당했을 때 무엇을 보았을까 하고 시인은 생각해보았다. 그것을 가리켜 '혼몽의 집'이라 하고는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본다. 시대의 슬픈 관능 위에서 더불어 궁핍했던 지상의 촉수(觸手)들아 아프고 병든 인간들의 극장에서 맹인가수처럼 우리는 노래했다 세상의 혼란과 사랑의 목마름을 저 완강한 삶의 공허 앞에 주저앉은 사람을, 인생을, 이별을 이제 목도 쉬고 듣는 이도 없다 나도 들어가 편하게 눕고 싶다 ―「혼몽(昏 )의 집」가운데 부분 시는 제 4연으로 접어들면서 아연 분위기를 바꾼다. 제 4연은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엉뚱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가운데 4개의 연을 보면 시인이 떠벌이 복서 무하마드 알리를 노래하고자 이 시를 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노래한 장소는 아프고 병든 인간들의 극장이었고, 우리는 "저 완강한 삶의 공허 앞에/주저앉은 사람"을 맹인가수처럼 노래했다. 우리는 혹 시인이 아닌가? "세상의 혼란과 사랑의 목마름"을 노래하는 음유시인. 그런데 이제 나도 우리도 늙고 지쳤다.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혼몽의 집에 거하고 있는 것이다. 떠벌이 복서 알리도, 가수도, 나도, 우리도……. 상대방의 펀치를 맞았건 세상의 뭇매를 맞았건 늙음 앞에 장사일 수 없다. 시는 이렇게 끝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하마드 알리가 링 위에 누우며 했던 말을 떠올린다 너를 먼저 보내고 싶었는데 내가 와서 이렇게 기다리는구나 마지막 연이 알리가 링에 누우면 했던 말인 것 같지는 않다. 의문이 드는 것은 '너'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구태여 해석을 해보자면 너는 혼몽이 아닐까. 알리에게는 혼몽이 많이 맞아서 온 것이겠지만 화자에게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껴지는 것. 평자는 시의 마지막 연을 되새기는 동안 자꾸만 백발가가 떠올랐다. 『시와반시』 이번 여름호가 배출한 2명의 시인의 시는 대체로 길다. 김산옥의 「영산홍」이 제 1연 11행, 이세경의 「봄길」이 제 6연 9행, 「冬眠」이 제 7연 10행으로 되어 있어 비교적 짧을 뿐, 20행이 넘는 시가 대부분이다. 시가 길다는 것이 흠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시가 시종일관 뻣뻣한 산문 문장으로 되어 있다면, 즉 운율이 전혀 배어 있지 않은데 길기까지 하다면 문제가 있다. 두 분은 이제 갓 등한한 신인이니까 앞으로 좋은 시, 혹은 시다운 시를 쓰면 된다. 등단작 중 2편을 예로 들어 조언을 좀 하고 싶은데,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횡단보도를 건넌다 다리를 벌리고 어기적어기적 그가 걷는 것만 봐도 어디가 아픈지 어디서 진물이 나는지 병원에 가서 어디를 수술받고 왔는지 대번에 안다 그는 최대한 빨리 걷지만 제일 느리다 그는 부산하게 움직이지만 제일 굼뜨다 그가 보도블록을 걷는다 다리를 최대한 벌리고 느릿느릿 붙었다 떨어지는 보도블록 기울어져 벌건 국물을 토해낸다 몸이 자꾸 기울어진다 이쪽저쪽으로 무게가 표나게 옮겨다닌다 그는 뛰지 않는다 아무 데나 앉지 않는다 그가 다리를 벌린 채 걸음을 멈춘다 함부로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두리슈퍼 평상 위에 방석을 놓는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엉거주춤 한참 생각한다 천천히 자세를 바꾸고 손으로 평상을 짚는다 그가 조심스레 방석에 앉는다 은행잎 한 장 그보다 먼저 장기판에 앉는다 그는 상처를 모시고 다닌다 거기에 집중한다 ―김산옥, 「대장」전문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대위로 전역한 김산옥 시인이기에 이 시는 상고나 중 한 사람이었던 어떤 대장을 형상화해 본 시인 듯하다. 대장의 행동거지를 꽤나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데, 그럼으로써 독자는 대장의 성격까지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시는 참으로 지루하다. 제 2행 "다리를 벌리고 어기적어기적"에서부터 제 3행 "대번 안다"까지가 제법 긴 문장일 뿐 비교적 짧은 문장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 숫자가 무려 19개이다. 19개의 무미건조한 문장이 나열되어 있으니 얼마나 지루한가. 특별한 사건도 없고 감칠맛 나는 묘사도 없다. 직설적인 직유도 은근한 은유도 없다. 一言以蔽之왈, 시가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소월과 영랑, 미당과 백석의 시를 보라. 우리말도 잘 살아 있지만 이들의 시에는 은밀히 숨어 있는 운율이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그래서 시인 것이다. 「대장」은 산문의 나열이지 시라고 봐주기 어렵다. 그는 숲에 앉아 있다 시커먼 불판에 가리워진 참나무 숯불이 숨어서 지는 밤 투명하고 맑은 소줏잔을 부딪치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사람들 그늘 속에서, 말이 없다 뭉턱뭉턱 덤으로 잘려 나온 선명한 붉은 간, 기름장에 찍으며 맥없이 웃어도 보지만 독을 숨긴 간사한 방울뱀의 혀를 가져보지 못했거나 하늘로 오르는 동아줄 스쳐본 적도 없이 길고 지루한 회식 상 맨 끄트머리에서 또 말이 없다 세상이 내민 손 잡을 줄 모르는 게 아니었으나 이 숲을 벗어나 동네 어귀에 다다를 쯤이면 아이들에게 줄 몇 마리의 붕어빵, 그 온기가 소록이 손에 닿을 때마다 외등으로 서성이는 푸른 별빛이 늘 고개 숙인 가슴에 스몄던 것이다 ―이세경, 「황소고집, 숯불구이」부분 연 구분 없이 총 34행으로 되어 있는 시인데, 제 1∼23행을 적어 보았다. 이 시의 등장인물들은 "길고 지루한 회식 상"에서 숯불구이를 먹고 있다. 주인공 격인 '그'는 아이들에게 몇 마리의 붕어빵을 사줄 정도로 착실한(?) 가장이다. 시의 내용으로 보아 가장은 꽤 소심하다. 독자는 전형적인 소시민이 회식 자리에서 말없이 숯불구이를 먹고 있는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시의 문장이다. 제 8행 "뭉턱뭉턱 덤으로 잘려 나온"부터 시작되어 제 15행에서 한 문장이 끝난다. 무려 여덟 개의 행이 한 문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문장도 마찬가지로 길다. 제 16행부터 23행까지 역시 여덟 개의 행이 한 문장을 이루고 있다. 행을 나누어 두어 시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시가 아니다. 라 풍텐의 우화시에도 리듬이 숨어 있고 투르게네프나 정진규의 산문시를 봐도 외양이 얼추 산문 같지만 그 속에는 리듬이 담겨 있다. 시의 문장을 맺고 끊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길고 긴 문장이 중첩되는 이런 시는 내용을 음미하기 이전에 형식이 맛을 완전히 죽여버린다. 두 사람이 이런 시답지 않은 시를 쓴 데 대해 비난을 할 수도 없다. 중견, 원로 시인들도 이런 식으로 문장이 축축 늘어지는 시를 쓰고 있기 때문에 '배운 대로' 쓴 것일 따름이다. 하지만 심사평에서 이런 점에 대해 지적을 좀 했더라면 어땠을까. 오늘날 독자들이 시집을 사 읽지 않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는 것이다. 시가 도무지 시 같지 않은데 무엇을 느끼겠다고 시집을 사본단 말인가. 베스트셀러 시집을 내는 사인방 류시화·용혜원·원태연·이정하의 시집을 보면 내용은 제쳐두고라도 감칠맛 나게 말을 구사할 줄 안다. 운율을 적절히 살리고 여백의 미를 적당히 활용하기에 적어도 외양으로는 시에 가깝다. 정통문학권에서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정호승·안도현·김용택·나희덕 네 시인의 시집을 봐도 마찬가지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눈으로 보아도 음미가 가능하고 입으로 낭송하면 더욱 시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기에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신인의 등단작을 갖고 타박하여 미안하지만, 우리 시의 앞날이 밝게 느껴지지 않아 고언을 한 것이니 이해해 주시기를. ==================================================================================   196. 나그네 / 박목월                                                                                                   나그네                       박목월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청록집 > 중에서       박목월 연보   1916년 (1세) 1월 6일 경북 경주군 서면 모량리에서 박필준과 박인재의 장남으로 출생.              (본명 : 영종 泳鍾, 아호 : 소원素園)               ※ 木月은 시를 쓸 무렵 본인이 지었음(엄친은 아주 언짢게 생각함).   1923년 (8세) 건천보통학교 입학.   1930년(15세) 대구 계성중학교 입학.   1933년(18세) 계성중학교 3학년 때 잡지 에 동시 ‘통딱딱 통딱딱’이 뽑힘.               6월호에 ‘제비맞이’가 당선.   1935년(20세) 계성중학교 졸업, 경주 동부금융조합에 입사.   1938년(23세) 유익순과 결혼, 신접살림을 모량리에 차림.   1939년(24세) 경주 동부금융조합 재직 중에 정지용에 의해‘길처럼’, ‘그것은 年輪이다’가              9월호에 1회 추천. 12월호에 ‘산그늘’로 2회 추천.   1940(25세) 9월호에 ‘가을 어스름’, ‘연륜’으로 추천을 완료하고 등단.   1945년 10월 1일 ~ 1948년 8월 대구 계성고등학교 교사 추임.   1946년(31세) 4월 김동리, 서정주 등과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              조선문필가협회 상임위원직 역임.              6월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3인의 합동 시집 발간.              동시집 발간.   1948년 4월 ~ 1958년 10월 한국문학가협회 중앙위원 및 사무국장 역임   1949년 9월 ~ 1952년 9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강의.   1950(35세)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            이라는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 , 간행.            6월 한국전쟁 발발 후 한국문학가협회 별동대를 조직하여,            1953년 환도 때까지 공군종군문인단의 일원으로 복무.   1951년 3월 ~ 1954년 3월 공군종군문인단 편수관 역임. 대구에서 출판사 운영.   1954년 5월 ~ 1956년 8월 홍익대학교에서 강의.   1954년 ~ 1970년 3월 서라벌예술대학에서 강의.     1955년(40세) 제3회 아시아 자유문학상 수상. 첫 개인 시집 발간.   1956년 9월 ~ 1959년 3월 홍익대학교 전임강사, 조교수 역임. 아버지 별세.   1958년(43세) 자작시 해설서인 발간.   1959년 4월 ~ 1978년 3월 한양대학교 조교수, 부교수, 교수, 문리과대학 학장서리, 학장 역임.   1959년 9월 ~ 1964년 한국문인협회 시문과 회장.   1959년(44세) 시집 발간.   1962년(47세) 동시집 발간.   1964년(49세) 시집 발간.   1968년(53세) 국정교과서 심의회 심의위원. 한국시인협회 회장(사망 시까지 역임)              시집 , 연작시집 , 발간.              으로 대한민국 문학상 본상 수상.   1969년(54세) 서울시 문화상 수상.   1970년(55세)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장 선임.   1970년 ~ 1976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서 강의.   1972년(57세) 국민훈장 모란장.   1973년(58세) 대한민국 예술진흥위원(4년제) 역임. 시 잡지 창간.  간행.   1975년(60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이사 역임.   1976년(61세) 시집 발간.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 취임.   1977년(62세) 한양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음.   1978년(63세) 원효로 효동교회에서 장로 안수.              3월 24일 새벽 산책 후 지병인 고혈압으로 영면.(용인 모란 공원에 안장)   1979년 1월 미망인 유익순 여사에 의해 신앙시 모음집 간행.   1984년 2월 간행.   2003년 2월 간행.  -------------------------------------------   197. 산이 날 에워싸고 /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山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 청록집 > 중에서  
985    詩작법 팔팔팔... 댓글:  조회:4720  추천:0  2016-01-10
쉬운 시의 어려움  나호열  시인들은 쉬운 시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독자들 또한 어려운 시를 선호하지 않는 것은 분명합니다. 名詩라 일컬어지는 많은 시들, 베스트 셀러가 되는 시집들의 대부분은 낭송하기에 알맞은 가락과 누구나 쉽게 해독할 수 있는 언어로 짜여져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시인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쉬운 시'의 매력에서 좀처럼 빠져 나오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이 ' 쉬운 시'의 명제는 결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생각거리를 파생시키고 있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인구에 회자되는 소월의 '진달래 꽃'이나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천상병의 '귀천'이나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우선 독자들의 일차적인 정서를 충족시켜 줍니다. 일차적인 정서라고 함은 우선 시에 나타난 의미가 독자들의 감성 내용과 일치된다는 점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恨'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하는 단순한 관념이 시에 표상되므로서 문학 예술의 두 기능인 '배설'과 '정화' 또는 '교훈의 전달'이라는 목표에 부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위에 열거된 시들은 결코 그러한 일차적 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의미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는 중층 구조를 내포하고 있음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말은 발화자인 시인의 의도와 독자가 체험한 내용이 일치되거나 독자가 직접 체험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이와 유사한 추체험의 형식으로 전이되는 것 이상의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님의 침묵'에서의 '님'이 한 개인의 사랑의 대상이면서 그 이상의 존재 의미로 확대할 수 있으며 확대된 상태에서의 시의 구조 또한 그 논리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시는 분명히 로고스의 세계가 아닌 파토스의 세계에서 진행되므로 시인의 상상력은 비논리적인 직관에 연유함은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언술과 달리 시라는 틀에 얹힌 언술은 질서정연한 상상력의 통로를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내용과 형식의 조화라는 큰 틀에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 님의 침묵'은 하나의 연시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으며 불교적 세계관의 인식 배경을 놓고 읽어도 그 다양한 의미는 결코 훼손되지 않습니다.  시는 일반적인 진술과는 달리 언어에 옷을 입히는 행위입니다. 시인이 겪어낸 삶에서 우러나는 시의 향기는 어떤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쉬운 시'는 그러므로 삶을 벼려내는 시인의 정신이 현실과 부딪치면서 일으키는 섬광과도 같은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한 편의 시에는 고스란히 시인이 가지고 있는 삶의 태도가 담겨져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외면상으로 평이한 구조와 평범한 진술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면서 시가 함의하는 의미의 내포가 큰 시야말로 진정한 '쉬운 시'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시 한 편을 읽어보도록 합시다.  꿈꾸듯 편지를 쓴다①  이민 간 친구에게  짝사랑했던 그에게  가슴 저리도록 그리운 어머니에게②  요란한 자명종 소리에 아침은 깨고③  남편의 성으로 바뀌어버린 그녀에게  가을의 전설이 되어버린 브래드 피트에게  인명구조견이 되어서라도 찾아낼 것만 같았던 어머니에게④  세 통의 편지를  한 통만 부친 채⑤  이 시는 습작기에 있는 분의 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매우 잘 짜여진 구조와 명료한 메시지가 도드라지면서 쉽게 읽혀지는 시입니다. ①과③, ②와④처럼 대구법을 사용하여 그리움의 대상을 점층적으로 묘사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암시하는 기법은 예사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하루 중에 밤은 안식 뿐만 아니라 꿈 꿀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며, 시간인 셈이지요, 그러나 그리움의 대상에게로 향하는 날갯짓은 인위적인 자명종 소리에 깨이는 아침과도 같이 무엇엔가 끌려가는 현대인의 고독한 심상을 잘 드러내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⑤에서와 같이 마음 속에 써 내려간 편지는 부치지 못하는 무위의 행위로 그쳐버리고만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꼼꼼하게 살펴 보기로 합시다. ②에서의 친구, 그. 어머니는 현실적으로 나에게서 떠나버린 존재들입니다. ②는 내게 인식된 대상들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는데 ④에서는 부재의 상태를 명료하게 하는 구체적인 인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이민 간 친구'는 이민을 감으로 해서 '남편의 성으로 이름이 바뀐' 상태이며, 짝사랑의 대상인 그는 영화 '가을의 전설' 에 나오는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처럼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존재이며 '그리운 어머니'는 내가 인명구조견이 되어서라도 찾아야할 대상으로 변화된 듯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②의 진술에서 ④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서 본다면 ②에서 ④로진행되는 필연적 구조가 생성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②와④는 'A는 B이다'로 지칭되는 은유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 A와 B의 의미망이 유사한 관념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을의 전설' 같은 막연한, 즉 가을이라는 심상과 전설, 이라는 심상의 결합에 있어서의 적합하지 않은 유추가 시의 멋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 시에서 드러나는 중요한 맹점은,- 이 점은 많은 시인 지망생 여러분이 시적 진실과 사실의 관계를 혼돈하는데서 발생하는 문제인데- 시에 있어서의 순수성을 시의 내용과 사실과의 일치에서 찾는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 시의 작자는 실제로 세 통의 편지를 쓰고 그 중 한 통의 편지를 실제로 부쳤는지 모릅니다. 부쳐진 한 통의 편지는 누구에게 보낸 것일까 하고 글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갖게 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는 시의 트릭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 통의 편지를 부쳤다는 사실로 인하여 이 시가 가지고 있는 일상의 고립감이나 허무감은 반감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결국 한 통의편지도 부치지 못했다든가, 부치긴 했는데 그 편지들이 수신인 불명으로 되돌아 왔다든가 하는 결말을 보여주었다면 더욱 큰 감동을 전달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이 시는 한 편의 시가 결코 많은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는 좋은 작품일 수 있으나 누구나 일상적으로 느끼는 것 이상의 의미를 모색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인의 현실인식의 한계를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복숭아 꽃빛같이  아무 생각없이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복숭아 꽃빛만 같이  사랑은 꼭 그만큼에서  그 빛깔만 같이  - 장석남의   이 시는 아주 평이한 어휘와 단순한 어조로 아주 쉽게 읽혀질 것 같이 보이는 시이지만 이 시의 올바른 감상을 위해서는 몇 단계의 유추의 단계를 지나가야 하는 시입니다. 현대시의 조류에 있어서 시에서의 주제와 소재의 분류 같은 의도적인 시 해석의 도구를 배제하는 경향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주제와 소재를 찾아보기로 합시다. 이 시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소재는 무엇일까요? 복숭아꽃? 뻐꾸기 소리? 그렇습니다. 이 시의 모티브는 뻐꾸기 소리입니다. 시인은 뻐꾸기 소리를 듣습니다. 어느 산에서 우는 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뻐꾸기 소리는 사랑의 실체이기도 하면서 사라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뻐꾸기 소리는 어느덧 창호지에 복숭아 꽃빛으로 물듭니다. 시인은 창호지 문 안쪽에서 차단된 저 쪽 세계의 메시지를 분홍 복숭아 꽃빛으로, 그림자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뻐꾸기 소리 - 창호지 안에서 듣는 나 - 나에게서 발화되는 뻐꾸기 소리의 관념 - 복숭아 꽃빛 - 그림자로 어리는 창호지를 바라보는 나와 같은 의식의 흐름과 공간의 이동을 보여주면서 사랑을 뻐구기 소리로 뻐구기 소리는 복숭아 꽃빛으로 변화시키는 상상의 질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인은 '사랑'이라는 관념을 소리로 빛깔로 치환시키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관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상식으로부터 빗겨 서 있는 시인의 태도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사유의 깊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감상 방식은 이 시를 읽어내는 많은 통로 중에 하나에 불과할 것입니다. 만일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다른 방식의 시 읽기를 주장하신다면 바로 그 순간에 이 시는 좋은 시로 평가될 수 있는 덕목 하나를 갖추고 있는 셈이 될 것입니다.  茶道는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즐기기에는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합니다. 한 잔의 녹차를 마시는 방법 중에 하나는 인스턴트 녹차를 마시면 될 것입니다. 끓는 물에 봉지 하나만 넣으면 쉽게 우리는 차를 즐길 수 있습니다. 차를 마신다는 행위에 있어서는 다도를 배우고 절차를 따르고, 다기를 준비하는 등의 번거로움은 불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기를 씻고 배열하고, 물을 적당한 온도로 끓이고 우려내는 행위를 거듭하면서 마시는 차에는 형언할 수 없는 향기가 베어있게 마련입니다.  '쉬운 시' 는 눈으로 쉽게 읽히고 가슴에 금방 와 닿는 시가 아닙니다. 시의 내용이 독자에게 쉽게 동의를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려낼수록 깊은 향을 풍기는 차 처럼 오래 가슴에 담아두고 되내이면서 새로운 의미를 재생산시키는 시를 많은 시인들은쓰고 싶어합니다    ====================================================================   194. 탄가歎歌 / 이동주                                                      탄가歎歌 ― 흥행일기興行日記                           이동주   노래가 끝나면……   흰 박수薄收의 철포徹布가 낙화마냥 황홀하다   그러나 모두는 그것뿐이다   굿에 지친 시민들은 늦잠을 자고   소녀도 화환도 찾을 리 없다   눈썹을 그린 채 새벽 차를 타면 또 어느 낯선 곳에 수면제를 파나     이동주 시집 중에서   -------------------------------------------------------   195. 무제無題 / 이동주                           무제無題                             이동주   눈물로 쓰여진 내 시 한편이 눈물에 씻기운다   자다가 문득 눈물로 얻은 시를 눈물로 지운다   풀 한 포기 자생할 수 없는 이 박토에서 천재여 네가 자라기엔 너무 허약하다   고향을 잘 만나 태어나렴   요다음 뿌려질 씨알은,   뻐꾸기가 숨어 우는 깊은 숲속에서 입덧난 임부마다 빌어주마     이동주 시집 중에서    
984    詩작법 아이구... 댓글:  조회:5119  추천:0  2016-01-10
  비유와 이미지에 대한 시교육의 방향  박호영(문학평론가·한성대 교수)  1. 새로운 시교육을 위하여  시교육이 어렵다는 것은 교육현장에 있는 교사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시들이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서정시 위주로 선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시의 수사적 장치나 내포적 의미의 파악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대개 의존하고 있는 것은 참고서나 전공서적에 실린 해설이다. 마치 절대적인 해석인 양 단언적으로 규정해 놓은 해설은 입시에 매달려 촌각의 시간도 아까운 교사들과 학생들을 매료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시교육의 환경이 아니다. 특히 수용자의 입장에서 볼 때 개인에 따른 해석의 다양성을 애초부터 차단하는 것이고, 텍스트의 유연성도 배제하는 것이다.  시교육의 소통 구조를 생산자로서의 작자, 중개자로서의 교사, 수용자로서의 학생으로 놓고 볼 때 사실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은 수용자로서의 학생이다. 그들의 다양한 관점에 따라 시텍스트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중개자로서의 교사는 다양한 관점을 이끌어내는 데 능숙해야 한다. 그것이 훌륭한 중개자의 역할이다. 서울의 모고등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어느 교사는 학생들에게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등장하는 시적 화자의 심정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라는 과제를 내줬는데, 의외로 대다수의 학생들이 자기가 사랑하는 이라면 진심으로 축복하며 보내줄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시교육의 사례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것은 요즈음의 학생들의 사랑관과 기성 세대의 사랑관이 차이가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교사가 기존의 어느 한 쪽의 해석에만 매달려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아이러니나 역설의 표현 기교를 구사한 시로 인식토록 가르친다면 그것은 수용자의 입장을 무시한 중개자의 횡포밖에는 안된다. 수용자는 그 나름으로 시작품을 향수할 권리가 있는데 이 권리를 박탈한 셈이다.  그러므로 시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은 수직적인 관계보다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자보다는 "학습자가 시를 보다 잘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가이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시교육의 목표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교사는 시의 이해를 위한 단서 제공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이 단서들은 시의 중요한 구성 요소들 -비유, 이미지, 상징 등-중에서 찾아진다. 비유, 이미지, 상징 등은 생산자인 시인이 자신의 의도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마련한 장치이다. 그러나 시의 중요한 구성 요소들의 개념을 날카롭게 구분하거나 고정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적 텍스트는 궁극적으로 단 한 번만 '演技되는' 것이 아니고, 그와 정반대로 언어의 특수화된 용법을 통해 구조화된 한 공간 내부에서 벌어지는 무한한 '遊戱'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비유나 이미지, 상징 등의 분석에 규격적인 잣대를 사용해 온 우리 시교육에는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 이에 필자는 우리에게 고정화되다시피 한 시텍스트의 비유와 이미지를 살펴보고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점검해 봄으로써 참다운 시교육의 일단을 본고를 통해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비유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  비유는 시적 표상의 가장 기본이 되는 형태이다. 시인은 어떤 사물이나 감정을 표현하고자 할 경우 자신의 독창적인 인식을 보여주기 위해 비유를 사용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이 상대방에게 보다 잘 전달되리라고 믿는 것이다. 이 경우 비유의 과정에서 시인의 의도가 내재되게 마련이다. 즉 하나의 사물에 대한 의미 규정을 다른 사물을 빌어 표현하는 것이 비유인데, 이 때 비유되는 두 사물 간에 시인의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세계관의 파악은 비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될 지는 모르지만 시교육적 측면에서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시교육에서 텍스트 해석이란 완결된 의미를 밝혀내어 학생들에게 그것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확정적이어야만 그들이 텍스트의 의미역을 넓히고, 텍스트에 흥미를 갖는다. 특히 비유는 두 대상 간의 유추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模糊性과 多義性을 구비한다.예를 들어 "내 마음은 호수요"라고 할 때 내 마음의 상태가 잔잔하다고 할 수도 있고, 평화롭다고 할 수도 있으며, 맑고 깨끗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호수로부터 환기되는 어떠한 정서도 '내 마음'으로 연결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교사는 비유를 가르칠 때 해석의 다양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비유의 의미가 다른 각도에서 조명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육사의 시 [절정]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 시에서 문제삼을 부분은 비유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대개 "비극적 자기 초월의 아름다움"(김재홍), "절망적 상황을 통해 발견된 영원한 생명 혹은 이념의 세계"(오세영)의 범주 속에 놓여 있다. 문학 교과서 자습서에서는 "은유. 겨울과 강철의 매서움과 단단함이라는 복합 심상이 '무지개'와 결합되어 유미적 빛깔로 승화되고 있다. '겨울'의 이미지는 어두운 일제 치하의 현실을, '강철'은 광물성 이미지를 통한 저항의식을 보여주며, '무지개'는 역설적 이미지를 통해 꿈과 희망을 암시한다"(김윤식·김종철)고 설명되어 있기도 하고, "강철이 현실의 절망과 죽음의 표상이라면, 무지개는 새로운 소망과 재생의 표상으로 서로 모순 관계에 있다"(김봉군·한연수)고 설명되어 있기도 하다. 이 모두를 종합해 보면 절망적 현실을 극복하려는 시적 화자의 초극적 자세를 나타낸 것이라고 보는 것이 공통적인 견해이다. 물론 이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 시의 작자가 일제 말기의 대표적인 저항시인이라는 사실은 이같은 해석이 타당하다는 근거를 확보한다. 그러나 이 비유는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 즉 3연까지의 극한적 상황 서술과 4연의 '이러매'와 '∼밖에'라는 어휘가 주는 뉘앙스를 바탕으로 시적 화자가 초극적 자세를 지닌 것이 아니고 체념적인 자세를 지녔다고 보는 것이다. '무지개'란 시어가 있는데 어떻게 절망적인 태도를 보였냐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무지개'가 아니라 '강철로 된 무지개'란 점에서 논리의 객관성을 지탱한다. '무지개'란 시어는 그의 다른 시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① 밤은 옛일을 무지개보다 곱게 짜내나니  한가락 여기 두고 또 한 가락 어데멘가  내가 부른 노래는 그 밤에 江 건너 갔소.  -[강 건너간 노래]  ② 무지개같이 황홀한 삶의 光榮  罪와 겻드러도 삶즉한 누리  -[鴉片]  ③ 船窓마다 푸른막 치고  촛불 鄕愁에 찌르르 타면  運河는 밤마다 무지개 지네.  -[獨白]  ④ 그리고 새벽 하늘 어데 무지개 서면  무지개 밟고 다시 끝없이 헤여지세.  -[芭蕉]  ⑤ 담배를 피우면 입술을 조붓하게 오무리고 연기를 천정으로 곱게 부러올리는 것이였다. 거기에 나는 개인 날의 무지개를 그리는 것이었다.  - [계절의 표정] (수필)  ①-⑤에서 무지개는 '고움', '황홀함', '그리움', '꿈', '희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것은 시인의 '무지개'에 대한 인식이 대개 이런 의미의 범주 안에 놓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에서 겨울, 강철, 무지개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볼 때 '무지개'는 차가움, 비정함, 절망적, 현실적 등의 이미지를 지닌 '겨울' '강철'과 대척적인 위치에 놓인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겨울 ---+  |←────→ 무지개  강철 ---+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지개'와 '강철로 된 무지개'는 다르다는 것이다. '무지개'가 아름답고, 환상적이고, 긍정적이고, 일시적인 것이라면, '강철로 된 무지개'는 차갑고, 단단하고, 현실적이고, 부정적이고, 지속적인 것이다. 또한 의 비유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은 '겨울'과 '강철로 된 무지개'가 동질적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관계가 형성된다.  무지개 ←----------------→ 강철로 된 무지개  겨울 = 강철로 된 무지개  그러므로 이 시의 마지막 행 의 의미 속에는 겨울은 봄의 도래를 약속하는, 무지개와 같은 꿈과 희망의 계절이어야 하겠는데, 이 시대의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이기에 그렇지를 못하고 겨울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시인의 염려가 담겨 있다. 혹자는 지사적인 면모를 지닌 시인이 어떻게 나약한 심성을 드러낸 체념적인 시를 썼겠는가라고 반문할 지 모르지만 이육사는 실제로 [남한산성], [자야곡], [편복] 등의 시에서 보듯이 절망적이고 체념적인 상태를 노래한 시를 썼고, 텍스트 자체만을 놓고 분석할 때는 얼마든지 이같은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3. 이미지에 대한 시교육  이미지는 신체적 지각에 의해 산출된 감각을 마음 속에 다시금 재생시켜 놓은 것이다. 이 정의를 음미해 보면 이미지라는 것이 개인의 상상력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체적 지각의 과정과 마음 속에 생산되는 과정이 얼마든지 주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월 대보름의 달을 차갑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포근하게 받아들이는 이도 있고 그 결과 같은 달일지라도 사람에 따라 달의 이미지는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교육 현장에서 가르치는 시의 이미지는 어떠한 것인가? 우리가 기억하는 시들, 예를 들어 김수영의 [풀]에서의 '풀'의 이미지라든가 윤동주의 [서시]에서의 '밤'의 이미지가 머리 속에 고정되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이미지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의 모색을 거치지 않았다. 이는 비유와 마찬가지로 이미지에 대한 교육에도 문제점이 있음을 시사한다. 박목월의 [윤사월]을 실제의 예로 들어보기로 한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이 시는 4연 8행의 짧은 시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풍부한 연상 속에 놓이게 하는 시이다. 이 시에서 눈먼 처녀의 비극적인 상황-산지기 딸로서 가난하고, 어릴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눈이 멀게 된 비극을 겪었고, 과년하도록 시집을 가지 못했고, 지금은 외롭게 살고 있는 한과 설움의 삶-은 교육 현장에서 대개 지적되었다. 그러나 송화가루, 꾀꼬리의 노란 빛깔의 이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천착이 되지 않았다. 도시의 학생들에게는 송화가루의 빛깔이 어떤 색인지도 잘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시를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 송화가루나 꾀꼬리의 이미지를 물어보는 것은 필수적이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에 나오는 에서 '노오란'의 이미지가 '성숙'을 의미하는 것처럼 이 시에서 노란 빛깔의 이미지가 성숙을 의미할 수도 있고, 그 경우 그 '성숙'의 이미지는 눈먼 처녀의 성숙함과도 연결되어 마지막 연에서의 처녀의 행동, 즉 '듣는' 것이 아니라 '엿듣는', 부끄러움의 미학으로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상 아무도 없는 외딴 집에서 들려오는 꾀꼬리 소리를 자연스럽게 듣지 않고, '엿듣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 처녀의 성숙함과 부끄러움으로 연결되어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때 '문설주'는 안과 밖의 통로요, 자연과 인간의 통로이며, 외부의 성숙함과 처녀의 성숙함의 통로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이 시를 다음과 같이 도표화해 보일 수 있다.  | 송화가루 |-------→ | 문설주 | --------→ | 눈 먼 처녀 |  | 꾀꼬리 |  위에서 보듯 한 편의 시에 대한 해석은 대상의 이미지를 폭넓게 파악하는 데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다. 대상의 이미지를 고정적인 지식으로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는 이를 보더라도 증명이 된다.  이미지라는 것이 우리의 내면세계를 자극하고, 독자의 반응을 유도하여 시를 정서와 연결시켜주는 구실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이미지의 해석으로 '열린 독서'가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 [윤사월]이란 시를 통해서도 살펴 보았듯이 주목하지 않은 대상의 이미지 분석에 의해 시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졌다. 물론 이것은 단적인 예에 지나지 않는다. 학생들의 교육 현장 참여가 이루어지면 보다 신선하고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질 수 있다. 교사는 여러 가지 의견을 수렴하여 그들이 공감을 하게끔 올바른 해석으로 이끌어야 한다. 이 경우 교사는 독선적이거나 지배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같이 생각해 보자는 태도, 학생들의 시각도 수용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는 격려 속에서 해석의 단서만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지라는 것이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한 편의 시를 대하면 먼저 한 두 번을 찬찬히 읽고 눈을 감고 그 시의 분위기를 상상하도록 하는 일도 이미지 교육에 중요한 몫을 할 것이다.  4.맺음말  문학교육의 전반적인 문제이겠으나 시교육에 있어서 시인의 의도를 중심으로 시를 해석하거나 텍스트에 대한 구조적 분석으로 해석을 확정짓는 것은 誤讀이 될 지 모르는 위험한 일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열린 사고를 억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교육자가 지배적인 위치에서 피교육자에게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도 자의적인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한 시라는 장르의 성격상 불합리한 일이다. 가장 이상적인 시교육은 이 중간층의 해결점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비평적 객관주의와 주관주의 사이에서 시교육을 定位하는 일이야말로 시교육 전문가들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지적은 타당성을 얻는다. 그러나 과거의 우리 시교육을 살펴보면 권위주의적인 주입식 시교육이 대부분이었다. 해석에 있어 일방적인 통로만 열려진 셈이다. 그 결과 학생들은 항상 수동적인 입장에서 시를 받아들였고 시를 보는 안목을 신장시키지 못했다. 특히 비유와 이미지는 시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 규정에 있어 다양한 시도가 없었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비유나 이미지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시 해석의 폭이 넓혀질 수도 있고 좁혀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시교육을 위해서는 학생들의 능동적인 교육 현장의 참여로 가장 설득력이 있는 해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텍스트의 실체는 그같은 작업을 통해 드러난다. 우리가 비유와 이미지에 대한 과거의 교육을 시정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192. 강나루 / 이동주                                                                                                                     강나루                             이동주   늙은 수양垂楊의 허리에서 나룻배가 풀린다   누비 보단을 두른 아내는 하늘을 보고   나는 눈을 꽃잎일사 물 위에 띄운다   사공마저 벙어린 체 먼 산을 보는데   옛날에 아버지가 난을 피하듯   너와 나도 드매에서 이별이 있나부다   노을도 서러운 술에 취한 저녁 강나루     이동주 시집 중에서         이동주 연보   1920년 음력 2월 28일 전남 해남군 현산면 읍호리에서 이해영과 이현숙의 외아들로 출생.        (본관 : 전주, 아호 : 심호) ※ 가산이 기울어 12세 때 외가인 공주로 이사.   1927년 달산학교(현 현산초등학교) 입학.        ※ 달산학교는 증조부(이재범)이 사재를 들여 세운 학교.   1932년 달산학교 졸업.   1933년 공주고등보통학교 입학.   1937년 공주고등보통학교 졸업, 어머니가 염소를 팔아 준 7환을 가지고 상경.   1940년 혜화전문학교 불교과 입학. 윤길구, 송영철과 함께 기거하면서 고학.   1942년 혜화전문학교 2년을 중퇴하고 고향(해남)으로 귀향.   1943년 목포시청 근무.   1945년 해남군 황산면사무소 근무   1946년 좌경단체인 목포예술문화동맹에 가담. 광주 호남신문 문화부장 취임.        오덕, 심인섭, 정철 등과 공동시집 간행.   1948년 좌경문학활동을 중단 후 상경. 에 취업. 서울연합신문 문화부 차장.   1951년 첫 시집 간행. 전라남도 문화상 수상.   1952년 차재석을 중심으로 시동인지 을 목포에서 간행. 전라남도 문화상 수상.   1955년 시집 간행.   1959년 전북 이리로 이사. 남성고 교사로 부임. 원광대, 전북대 출강.   1960년 한국문인협회상 수상.   1965년 한국문협 이사로 취임. 장려상 수상. 숭실대 출강.   1967년 서라벌 예대 출강.   1969년 한국문협 시분과위원장 취임.   1970년 월간문학 상임 편집위원. 결성 후 운영위원으로 선임.   1971년 주월 한국군사령부 초청으로 월남 방문.   1972년 시 전문지 발간에 참여.   1973년 문인협회 사업 간사로 취임.   1977년 문인협회 부이사장으로 취임.   1978년 문인협회 이사장(서정주)의 세계 일주로 이사장 대행.        한양대 부속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음.   1979년 1월 28일 서울시 은평구 역촌동 1번지에서 위암으로 귀천.        장례는 문인협회장으로 거행.(경기도 장흥 신세계 공원묘지에 안장)        시집 , 실명소설집 간행.   1980년 아들(우선)이 유고집 출간. 해남 대흥사 입구에 이동주 시비를 세움.   1982년 수필집 간행.   1987년 간행.   1993년 실명소설집 간행.   2010년 간행.   ---------------------------------------------------------------------------   193. 소녀 / 이동주                             소녀                             이동주   어머니의 눈총이 하나도 아프지 않다   물에 젖은 포도알로 서글서글 덤빈다   검은 수염의 아버지도 이 딸 앞엔 바보같이 지신다     이동주 시집 중에서  
983    詩작법 어마나... 댓글:  조회:4746  추천:0  2016-01-10
시점의 선택과 내용의 변화  박주택  (시인·문학평론가,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  1  시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를 쓰겠다는 의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를 쓰겠다는 생각만 있을 뿐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거나 곧잘 씀에도 불구하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중도에 그만 두는 것을 허다하게 보아 왔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저렇게 의지가 부족해서야 혹은 시라는 것을 아무나 쓰나 하는 망연감茫然感이었다. 다행히 인간은 타고난 위대함이 있어 시라는 형식을 재빨리 눈치채는 기술을 가졌다. 해서, 몇 달 안에 사람들은 시라는 것의 형체를 나름대로 그릴 수 있게 되었고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몇 년이 지나도록 게으름과 박약薄弱을 고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시점이라는 용어는 소설적 어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창작 용어로 굳이 차용하는 이유는 시점이 화자나 거리 또는 어조 등과 유기적 맥락을 이루기 때문이며 창작에 있어서도 쉽게 적용할 수 있는 편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시 이론가에 따라서는 시점과 화자의 불가분의 관계를 들어 화자의 선택이 곧 시점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화자가 말하려고 하는 내용인 화제話題조차 시점의 간섭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시점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시점이 비록 소설의 경우에 보다 많이 쓰이는 용어이기는 하나 이것을 시에 관입貫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설의 시점은 통상 1인칭 주인공(서술자)시점, 1인칭 관찰자(객관적)시점, 3인칭 관찰자(객관적)시점 그리고 3인칭 전지적 시점 등으로 분류한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은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가 주관적인 고백의 성향을 띠는 것이라 전제로 한다면 대부분의 시가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점의 맹점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함으로써 독자와의 거리를 멀게 하는 데 있다. 자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대신 독자는 그 내용에 대해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으로 화자와 텍스트간의 거리는 가깝지만 텍스트와 독자와의 거리는 그만큼 멀어진다는 뜻이다. 어조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 해서 격앙, 분노, 참담, 절망 등의 감정이 여과되지 않은 채 드러날 수 있으며 화제 또한 화자만이 알고 있는 사소성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1인칭 관찰자 시점은 화자가 대상 혹은 세계를 관찰하는 것으로 화자와 텍스트간의 거리는 멀지만 텍스트와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즉 화자의 이야기가 객관적으로만 제시되어 있어 독자가 자세히 들려다 보지 않으면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시점은 사물을 객관적으로 제어하는 통제의 원리에 의존한다. 따라서, 자아를 타자화시키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객관화함으로써 보다 냉정하게 자신의 생각을 보여줄 수 있다. 어조에 있어서도 차분하고 침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3인칭 시점은 1인칭 시점이 가지고 있는 내용의 폭을 보편적으로 확대시킨 것이 특징이다. 이는 1인칭 시점이 안고 있는 주관성을 극복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은 주로 관찰하고 묘사하는 보여주기showing기법에 의존하는데 이 시점의 강점은 1인칭 시점이 안고 있는 동일화의 오류에서 벗어나 사물을 그 자체로 바라보게 하는 데 있다. 이에 따라 화제는 우리들 눈앞에 전경화前景化되어 보이고 어조 또한 침착함을 유지한다. 3인칭 전지적 시점은 말 그대로 화자가 전지 전능한 관점에서 텍스트에 관여하는 것으로 내부 심리나 내용을 깊이 있게 전달하는 데 용이하다.  시에 있어서 시점은 매우 복잡한 이론 틀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글이 시 창작 실기에 도움을 주는 것에 목적이 있는 만큼 우리가 알고 있는 이론과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특히 3인칭 시점은 시라는 것이 다른 장르와는 달리 주관성의 문학이며 대상의 자기표현의 장르라는 것을 감안 할 때 과연 시에서도 존재하겠는가 하는 것을 상기할 때에도 그렇다. 그러므로, 이 글은 어떤 이론을 세워 그 준거에 맞추기보다는 필자 나름대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파악한 글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필자가 지도하고 있는 학생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분석해 보기로 하겠다.  2  화자는 시속의 내용을 말하는 전달자로서 서정적 자아라고도 일컫는다. 화자의 결정은 시의 구조에 밀접히 연계되어 있는데 그것은 화자의 심리적 상태나 환경 등에 따라 시의 내용에서부터 시의 형식을 이루는 제반 요소들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가 화자를 시인과 오해해서 읽기도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화자란 시인이 자신의 얼굴을 감춘 채 대신 내세운 대리인agent이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허구화시킨 시적 인물에 불과하다. 시점은 이 화자의 인칭과 관계한다. 다음의 시를 보자.  방조제 안에 오래도록 갇혀 있던 바다  나도 바다처럼 썩어  더 이상 똑바로 서 있지를 못하지  삶은 이렇게 흔들리는 거라고  두꺼운 구름 아래에서 목 졸린  하루가 떨어지며 중얼거린다  겨울을 물고 온 철새들과  도시에서 밀려난 철새들이 늘어선 흉흉한 휴일이면  나는 내 발 밑에서 솟아오르려는 추억을  썩히려고 그곳으로 돌아오곤 했지  아프지 않은 추억이 있을까마는  몸뚱이를 던져버린 간척지에는  놀란 기억들이 구름을 지우고 날아오른다  바다 어디로부터 새어나오는 흔들리는 삶의 핏줄기를  바라보며, 위로 받을 수 없는 배고픈 하루  뜨거운 굴밥으로 허기를 채우려는  메마른 입 속에서는 굴 껍질 같은 하루가  썩어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섞이지 못하고 흉흉한 휴일 속에서 서걱거린다  -박호균「A지구 방조제」전문  이 시의 문면에 드러난 화자는 ‘나’이다. ‘나’가 ‘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으므로 이 시의 시점은 1인칭 주인공(서술자)시점이다. 내용은 이렇다. 화자(나)는 휴일에 서해에 있는 A지구 방조제에 가서 바다와 구름 그리고 철새들을 바라보며 과거의 고단했음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메마르고 허기진 현재적 삶에 대해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일상적 삶을 가라앉은 어조로 노래한다.  이 시의 약점은 시의 형식을 잘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인칭 서술자 시점이 안고 있는 딜레마대로 자신이 지니고 있는 현재의 정서를 적절히 통어하지 못하는 데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나’가 서해에 간 것은 과거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 시를 쓰고 있거나 씌어진 상황은 바다를 다녀온 뒤의 상황인 현재이다. 즉 서해에 간 것은 과거인데 비해 이 시를 쓰고 있는 정서나 내용은 책상에 앉아 쓴 현재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이 말은 창작자가 바다 앞에 선 것 같지만 그것은 과거를 현재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창작자가 과도하게 감정을 과거 혹은 사물에 투사하고 있는 이 시는, 현재의 정서를 적절히 제어하지 못한 채 나열에 그치고만 느낌이 든다. ‘나도 바다처럼 썩어’ ‘목 졸린 하루’ ‘흉흉한 휴일’ 등에서 보이고 있는 외부 세계와의 손쉬운 타협과 가학적인 동일화가 이를 증명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마음은 시원하겠지만 자칫 개인의 사소한 경험에 그치는 수가 있으므로 자신의 감정이나 사유를 좀더 숙성시킬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시에서는 삶의 고단함을 술회할 때 삶의 발견이나 깨달음을 동시적으로 병치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벽 홍원항에 고래 한 마리  옅은 숨을 몰아쉬며 죽어가고 있다  바다에는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너는 이제 바다를 잊어야 했다  비린내가 질퍽하게 스며든  시멘트 바닥에 얼굴을 쑤셔 박고  물살을 가르던 네 지느러미를 늘어뜨리며  너는 너무 멀리까지 바다를 걸어나온 일들을  후회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물빛이 네 눈가에 어리는 것 같기도 하고  고래에게는 이제 꼬리도 지느러미도 없다  검은 고무와도 같은 등위로 죽음의 그림자가 어릴 뿐  그리고 먼 곳처럼 배경에 바다가 있을 뿐이다  더는 나아갈 길이 없는 곳에서의 젖은 기억들은  그 절망의 순간조차도 얼마나 눈부신가  감은 고래의 눈에 아직 바다가 출렁인다  이은경「고래에게는 바다가 없다」전문  ‘나’가 ‘너’인 고래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이 시는 관찰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1인칭 관찰자의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너’에 해당하는 ‘고래’는 실제의 ‘고래’일 수도 있고 타자화된 ‘자신’ 혹은 ‘그 어떤 것’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시는 앞의 시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가는 것과는 달리 ‘고래’라는 사물을 묘사하고 관찰함으로써 거리를 적절히 유지하는 하고 있다. 그러나,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자신의 이야기를 다층적이고 다성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강점이 있는 반면에 1인칭 관찰자 시점은 장면을 제시한다거나 보여주는 것에 그치는 약점이 있다. 이 시 역시 생명의 시원인 바다를 잃고 사지死地를 헤매는 ‘고래’의 절망이 다소 냉정한 어조로 묘사되어 있다. 1연에서의 ‘바다에는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2연의 ‘비린내가 질퍽하게 스며든/ 시멘트 바닥에 얼굴을 쑤셔 박고/ 물살을 가르던 네 지느러미를 늘어뜨리며’ 등은 이 시에 사실성과 핍진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 시 역시 ‘나’가 바라보는 구체적 대상인 ‘고래’(너)에 이야기를 한정화시킴으로써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안고 있는 과도한 자기 고백의 위험만큼 관점과 ?六璨? 대한 해석과 견해가 축소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즉 대상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대상이 지니고 있는 속성에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는 적절하게 창작자가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여 표현하는 요령이 필요하고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는 축소된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여 그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다.  3  낭낭한 새벽을 짊어지고 온 산은  아침 터는 물소리에 목을 적신다.  지난 밤  산 오른 물안개들 웅얼거림에  잠 못 들어 뒤척이다 그만,  청솔모도 다람쥐도 아니 깨우고  저 홀로 바삐 목을 적신다.  김재남「산 하나」전문  묘사로만 이루어진 이 시는 대상인 ‘산’이 전경화前景化되어 있다. 여기에는 화자의 해석이나 사유가 거세된 채 ‘산’의 풍경만이 제시되어 있을 뿐이다. 관찰로만 제시되어 있는 이 시는 아침 산의 청신함과 정적이 이미지화되어 있을 뿐 화자나 청자가 개입할 틈이 보이지 않는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강점은 대상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있다. 이미지 시나 즉물시 혹은 사물시 등이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화자의 정서가 억제되는 대신에 대상이 중요한 부면을 차지한다.  화제話題가 중심이 되는 이 시점은 1인칭 관찰자 시점과 마찬가지로 관찰과 묘사, 장면 제시 수법과 보여주기 기법 등이 사용되고 있으나 1인칭 시점보다 더 화자의 정서가 억제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훨씬 객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점이 빠질 수 있는 오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생겨날 수 있는 건조함이나 무의미한 내용의 나열에 있다. 그러므로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난점으로 남아 있다고 하겠다. 위시에서도 이 같은 것이 잘 나타나 있다. 즉 아침 산에 오르면서 만날 수 있는 풍경만이 별다른 해석 없이 객관적으로 기술함으로써 ‘그래서 어떻다’ 하는 화자의 사유가 빠져 있는 것이다.  거리의 측면에서 이 시는 1인칭 시점이 빠질 수 있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를 넘어서고는 있지만 이 시가 주는 주제적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정보가 불충분하게 주어져 있는 까닭으로 시의 내용과 독자와의 거리는 그만큼 멀어져 있다. 이에 따라 이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기술적 배려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이다.  그는 늘,  아내 몰래 질펀한 연애 한번 할 궁리를 한다  검은 구두가 현관을 빠져나오자마자 울리는 무선의 선  아내보다 젊은 연인이다  삶은 빨래의 군살이 배인 이야기 거리가 아닌  생 야채 즙의 신선한 풀 냄새, 살진 힘이 솟는다  퍽퍽한 화운데이션 향이 짙은 골동품 냄새를 낸다  적포도주 속에서 숙성시킨 비곗덩어리  아내의 뱃살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뚱뚱한 아내와 통통한 그녀  그는 늘,  그것의 이중적 신비함이 언제까지일까  그 궁금함을 즐긴다  아내의 첫 키스와는 다른  한잔의 생 야채 즙을 삼키며  무선의 다리미로 구겨진 아침의 주름살을 편다  그는 늘 궁리를 한다  아내와의 이불 속에서  죽통 같은 몸부림의 변명거리를  또한 궁리를 한다  늘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찍는  서영미「궁리」전문  이 시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는 바람을 피우는 사내이다. ‘그’는 아내 몰래 질펀한 연애를 꿈꾸며 아내와 젊은 연인 사이의 아슬아슬하게 이중적 삶을 오가는 사내이다. 이 시는 ‘그’를 주인공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3인칭 시점이다. 그러나 ‘그’가 처해 있는 현재적 상황을 바탕으로 하여 ‘그’의 심리적 상태를 화자가 일일이 개입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전지적 시점이다. 이 시점의 강점은 1인칭 시점이 함몰될 수 있는 감정의 과잉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한편 ‘그’의 내부로 침투하여 화자의 정서를 용이하게 투여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서, 1인칭 시점이 안고 있을 수밖에 없는 동일화의 감정을 배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객관성과 그 객관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화자의 정서나 사유의 침투가 쉽게 전달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시점의 한계는 시가 주관적 양식을 압축시킨 것이라 할 때 화자의 정서나 사유가 ‘그’를 통해 치환되어 전달될 수밖에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자칫하면 남의 이야기만을 공소하게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뜻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어떤 시점을 택하든 거기에 도사리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살펴 그 장점을 살리는 한편 단점이 가지고 있는 것을 적절히 보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많이 읽고 많이 써 보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시라는 것이 인간의 무한한 사유를 제어하고 다듬어 그것을 구조화시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같은 노력은 더욱 절실해 보인다.  「궁리」는 재미있는 주제를 선택하여 아내와 젊은 연인을 묘미 있게 대조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너무 많이 침투되어 있고 그 해석이 단순함에 그치고 있다. 특히 이 시의 마지막 연은 이 같은 의미에서라도 생략했어야 마땅하다.  시점은 시 창작에 있어 중요한 기본이 되고 있다. 그것은 어떤 시점을 택하느냐에 따라 거리, 어조, 리듬, 시어의 선택, 정조 심지어 주제까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 창작에 있어 어떤 시점이 좋은가는 정답이 없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서 적절히 활용하는 기술적 태도가 요구될 뿐이다. 이에 따라 시적 구조뿐만 아니라 미적 완성도도 달라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190. 바람이 부는 걸 보니 / 윤후명                          바람이 부는 걸 보니                             윤후명   바람이 부는 걸 보니 사랑할 때가 되었나 보다 시간은 밤마다 절망할지라도 나는 속지 않는다 언제나 너를 향하여 두 눈을 흡뜨고 죽어 있기를 원하기 때문에 밤마다의 절망이 사랑이 되어 때를 알려 주는 것이다 바람이 부는 걸 보니 사랑할 때가 되었나 보다 어느결에 지나가 버리므로 바로 지금 떠날 채비를 차려야 한다     윤후명 육필시집 < 먼지 같은 사랑 > 중에서    -------------------------------------------------------------   191.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 윤후명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윤 후 명         이제야 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너무 늦었다 그렇다고 울지는 않는다 이미 잊힌 사람도 있는데 울지는 못한다 지상의 내 발걸음 어둡고 아직 눅은 땅 밟아가듯이 늦은 마음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모두 떠나고 난 뒤면 등불마저 사위며 내 울음 대신할 것을 이제야 너의 마음에 전했다 너무 늦었다 컴컴한 산 고갯길에서 홀로     윤명후 시집 <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 중에서          
982    詩작법 줄줄줄... 댓글:  조회:4362  추천:0  2016-01-10
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방법  고재종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시적 상상력의 개진 방식들은 사실 추상화되어 있다. 한 편의 시는 모름지기 단 하나의 주도적인 상상력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섬세한 발견과 관찰, 날카롭게 대상의 본질을 길어 올리는 투사와 유추, 분리된 것을 결합하는 연상과 현실을 부정의 눈으로 확인하는 전복의 상상력들은 사실 한 편의 시에 긴밀하게 습합되고 용해된 채, 하나의 시적 세계를 튼실하게 엮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편의상 이런 분리는 상상력의 실체를 더욱 선명하게 들여다보기 위한 장치라는 점에서 놓칠 수 없는 이점들을 갖는다. 더욱이 상상력들은 동일한 깊이로 시적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인 상상력이 전면에 배치된 채 여타의 상상력들은 후경에서 마치 삼각형의 꼭지점을 위한 밑변과 옆변을 형성하는 것처럼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시들을 보면 이러한 결합의양상은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20)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매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매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이 시에는 다채로운 상상력이 사용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 시의 모티브로 존재하는 것은 현실에서의 경험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 시를 쓴 80년대는 영화가 시작되기에 앞서 줄곧 애국가를 틀어주었다. 어쩌면 김남주의 말대로 세금고지서와 징병통지서 밖에 가져다 주지 않는 조국에 대한 애정을 강요하기라도 하는 듯 틀어주던 애국가였다. 그런데 이 일상적 경험은 사실 발견적 상상력에 속한다. 영화 속의 한 화면을 그대로 시적 경험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시의 중심적인 시상에는 이 발견에 대한, 시적 인식으로서의 투사가 중핵을 이루고 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날아오르는 새들이 ‘어디론가 날아간다’는 객관적 사실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주관적인 인식으로 슬그머니 환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명백히 주관적인 의식의 투영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투사가 가능하며 이는 과연 충분한 공감을 자아내는가? 이 시가 1981년에 발표되었음을 생각해 보라. 광주항쟁을 겪었고, 군사독재가 한층 더 강화되고 있던 그때, 시인을 비롯한 깨어있는 모두가 시의 이면에 그 아픔의 흔적과 고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고통 안에서 심지어 그 고통의 현실과 무관한 새들조차 이 한반도의 남쪽을 벗어나고자 할 것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끼룩거리면서” “낄낄대면서”로 투사된 채. 이러한 웃음 역시 남겨 두고 떠나는 세상에 대한 빈정거림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없는 모멸을 남긴 채 새들이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매고” 앞 화면에서 비추었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뜨는 것이다. 그런데 이 투사는 시의 후반부에서 짝을 이루는 유추로 정교하게 반복된다. 우리 역시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다시 말해 빈정거리면서, 야유를 퍼부으면서 썩어빠진 세상을 떠나 깨어있는 우리들끼리라도 “우리들의 대열을 이루며” “이 세상 밖”의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들은 날아갈 수 있으나 우리들은 날아가지 못한다. 그 부푼 꿈이 애국가가 끝나자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 그냥 앉는 것이 아니라 어쩌지 못한 채 주저앉는다. 영화관의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광주에, 현대사의 고통의 심부에, 썩은 세상에 주저앉는 것이다. 한마디로 의식에서의 꿈이 애국가가 끝나는 현실로 돌아오면서 그만 전복이 되는 것이다. 전복적 상상력인 것이다. 뜬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결코 낄낄거리거나 깔쭉대지 못한 채 고통과 눈물로 우리들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한편의 시에는 발견과 투사, 유추와 전복이 다채롭게 융합되어 있다. 이제 다음의 시를 보라.  (21) 성모성월?1 - 이성복  그날 꽃들은 부끄러운 가슴과 눈물겨운 뿌리를 쓰다듬으며 피어오르고 봄은 달아나는 애 인처럼 꽃 속에 묻혀 자꾸 죽고 싶어했다 봄은 아랫도리를 가리지 않은 아이처럼 길가에 방뇨했고 후후, 뜨거운 입김을 뿜으며 음료수 가게로 달려갔다 아름다운 오월 건조한 고기 압의 땅에서 우리는 자꾸 죽고 싶었다 그날 사마리아 여인들과 함께 미사를 볼 때 버드나 무 꽃가루가 창을 넘어 들어왔고 우리는 자꾸 죽고 싶었다, 죽을 생각은 없이 천주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여…늙은 양들의 기도는 간절했고 우리는 자꾸 죽고 싶었다 흰 나룻배보다 긴 꽃잎 속에 몸을 감고, 눈부시고 목메어 고개 흔들며 아무도 밟지 않은 땅을 가고 싶었다 아름다운 오월 버드나무 꽃가루가 눈을 덮을 때 미사는 끝났고 붉은 제 단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사랑의 어머니,  당신의 이름을 힘겹게 부를 때마다  임종의 괴로움을 홀로 누리시는 어머니,  불러주소서  그 눈짓, 그 음성으로  죄의 한 아이를…  이 시는 ‘성모성월’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아마도 시의 내용으로 볼 때 성모성월은 5월일 터이다. 5월은 우리에게, 적어도 80년 5월을 깨어있는 정신으로 대면해야 했던 이들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존재한다. 이는 현대사의 질곡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상처로도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시는 그 상처를 어루만지고자 하는 시적 대응이다.  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어우러져 있다. 앞의 길게 이어지는 진술과 뒤의 기도문의 형식을 빈 간구로. 그런데 진술은 이성복 특유의 자유로운 연상을 주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더욱이 그 연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수사들은 특정한 상상력의 유형으로 묶어두기에는 지나치게 분방하다. 예컨대 첫 번째 문장의 ‘봄’과 ‘꽃들’은 유추의 틀 안에서 이후에 연결되는 ‘우리는’과 동류의 ‘사람들’로 읽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죽고 싶었다’는 고통에 찬 정서의 토로로 묶여 있다. 따라서 유추일 뿐만 아니라 시적화자의 정서를 통해 모든 대상을 전일적으로 인식하는 투사 역시 개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투사는 “붉은 제단에서 식은땀이 흘렀다”는 묘사로 완결된다. ‘죽고 싶다’는 자괴감이 고스란히 신의 제단에도 전달되었고, 그 전달은 계시를 내리는 대신 고통의 몸짓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절망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이어지는 기도는 산문적인 진술 전체에 가름하는 집약적인 제시일 뿐만 아니라 산문적인 진술의 진전이기도 하다. 고통에 찬 기도에 스스로의 괴로움으로 화답하는 ‘사랑의 어머니’는 인간과 신의 세계를 간구와 긍휼의 세계로 서로 연결하며, 죄로부터의 구원을 단서를 열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불러주소서”란 소명에의 간구야말로 단순한 죄씻음에 그치지 않고, 참담한 시대에도 의연히 자신을 세울 수 있는 자존을 향한 갈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후반부의 기도문은 특정한 상상력으로 명명하기 힘들만큼 내면의 심경이 그대로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역시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모색에 전율하는 전복의 상상력이 존재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22) 昇天 - 이수익  내 목소리가  저 물소리의 벽을 깨고 나아가  하늘로 힘껏 솟구쳐 올라야만 한다  소리로써 마침내 소리를 이기려고  歌人은  심산유곡 폭포수 아래서 날마다  목청에 핏물 어리도록 발성을 연습하지만  열길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쉽게 그의 목소리를 덮쳐  계곡을 가득 물소리 하나로만 채워버린다  그래도 그는 날이면 날마다  산에 올라  제 목소리가 물소리를 뛰어넘기를 수없이 기도하지만,  한번도 자세를 흐뜨리지 않는 폭포는  준엄한 스승처럼 곧추 앉아  수직의 말씀만 내리실 뿐이다  끝내  절망의 유복자를 안고 下山한 그가  발길 닿는 대로 정처없이 마을과 마을을 흘러 다니면서  소리의 昇天을 이루지 못한 제 恨을 토해 냈을 때  그 핏빛 소리에 취한 사람들이  그를 일러  참으로 하늘이 내리신 소리꾼이라 하더라  시 (22)도 관찰과 유추와 투사와 전복적 상상력이 종합적으로 융해되어 있다.  시적 상상력을 통해 시를 읽고, 나아가 시를 쓰는 일은 사실 시의 전부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다만 시라는 작은 세계의 커다란 진실을 들추어보는 하나의 조촐하고 소박한 매개가 될 따름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틀을 통한 시읽기와 시쓰기가 아니라 이러한 틀의 이면에 잠복해 있는 시정신일 터이다. 이런 시적 상상력도 중요하지만 ‘시는 온몸으로 쓰는 것이다’라는 김수영의 거친 갈파에서 확인되는 시정신이 더욱 소중한 것이다.*    ===============================================================================   188. 마음 / 윤후명                     마음                             윤후명   그대가 그린 인왕산에서 바위가 흘러내린다 흘러내리며 폭포가 된다 바위가 물이 되는 순간 마음을 이룬다 오래오래 바라보는 사람은 순간이 영원으로 변하는 걸 본다     윤후명 육필시집 < 먼지 같은 사랑 > 중에서   ---------------------------------------------------   189. 희망 / 윤후명                         희망                             윤후명   내게 황새기젓 같은 꽃을 다오 곤쟁이젓 같은, 꼴뚜기젓 같은 사랑을 다오 젊음은 필요없으니 어둠 속의 늙은이 뼈다귀 빛 꿈을 다오 그해 그대 찾아 헤맸던 산 밑 기운 마을 뻐꾸기 울음 같은 길 다시는 마음 찢으며 가지 않으리 내게 다만 한 마리 황폐한 시간이 흘린 눈물을 다오     윤후명(윤상규) 시집 < 명궁(名弓) > 중에서
981    詩작법 저너머... 댓글:  조회:5110  추천:0  2016-01-10
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방법  고재종 헤겔은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다’라는 아리송한 말을 『법철학』에서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은 헤겔의 상속인들이 좌파와 유파로 갈리게 되는 헤겔 사유에 내재한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마르크스를 비롯한 좌파들은 이 말의 앞부분에 방점을 찍고, 우파들은 이 말의 뒷부분에 방점을 찍는다.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란 곧 인간의 사유가 언제라도 현실로 전화될 수 있다는 것으로 철학의 실천적 의미를 극대화한 주장이다. 이성적 사유는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이론적 실천으로 전화될 수 있다는 이 주장은 마르크스의 이론을 단순히 이론이 아닌 실천으로 이끌어내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반면에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란 명제는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이성적 사유의 결론이라는 주장으로 현실을 정당화할 논거를 마련해주고 있다. 실제 헤겔은 반동적인 독일의 정치적 현실을 이상화함으로써 진보의 반대편에 서고, 그 결과 한동안 파산선고를 받은 채 사상사의 변경에 서 있어야 했다.  그러나 잠깐이라도 눈여겨보면, 헤겔의 보수적 선회는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실적인 것, 곧 존재하는 것이 이성적 사유의 결과일 수 없음은 명확하다. 현실은 오히려 지극히 비이성적인 탐욕의 결과이거나, 반이성적인 폭력으로 은폐된 허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적 삶에 파묻혀 사는 우리는 안타깝게도 이 허위와 위선에 더 이상 분노하지 못한다. 그 분노가 우리의 현실적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는 잠언에 몸을 떨지만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진리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리라’는 자각에 몸을 비켜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다르다. 시인은 진리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리라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 고통에 기꺼이 온몸을 바치는 사람들이다. 비록 그 진리가 영원히 자유와는 무관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온몸으로 예감하면서도 시인은 단호하게 거부하고 저항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존재해야 할 것들을 즉각적으로 이끌어내며 또 표출한다. 그 표출이 불러일으킬 고통이 실핏줄 구석구석을 터질 듯이 메워 갈지라도 기꺼이 그 고통 아래에 목을 늘어뜨린다. 이 또한 상상력의 일종이다. 현상을 통해 현상의 이면에 숨죽이며 떨고 있는 본질을 드러내는 사유의 힘, 그것이 꿰뚫어보는 상상력이며 뒤집어보는 상상력이며, 일체의 허위를 전복하는 상상력인 것이다.  (17) 받들어 꽃 - 곽재구  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아파트 입구에 모여  전쟁놀이를 한다  장난감 비행기 전차 항공모함  아이들은 저희들 나이보다 많은 수의  장난감 무기들을 횡대로 늘어놓고  에잇 기관총 받아라 수류탄 받아라  무서운 줄 모르고  서로가 침략자가 되어 전쟁놀이를 한다  한참 그렇게 바라보고 서 있으니  아뿔사 힘이 센 304호 아이가  303호실 아이의 탱크를 짓누르고  짓눌린 303호실 아이가 기관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받들어 총을 한다  아이들 전쟁의 클라이막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떠들면서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과 학용품 한아름을 골라주며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얘기했다  이름답고 힘있는 것은 총이 아니란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별과  나무와 바람과 새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서 늘 피어나는  한 송이 꽃과 같은 것이란다  아파트 화단에서 피어난 과꽃  한 송이 꺾어들며 나는 조용히 얘기했다  그리고 그 꽃을 향하여  낮고 튼튼한 목소리로  받들어 꽃하고 경례를 했다  받들어 꽃 받들어 꽃 받들어 꽃  시키지도 않은 아이들의 경례소리가  과꽃이 지는 아파트 단지를 쩌렁쩌렁 흔들었다  (18) 北魚 -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열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시 (17)은 전복적 상상력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중 아파트 어귀에서 전쟁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과 마주친다. 아이들은 우리가 항용 마주치는 아이들이 그러하듯 시끌벅적하게 서로 한껏 총질을 해대며 ‘죽어, 죽어!’를 외치고 있었을 터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이 현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섬뜩하고 짠하다. 아이들의 노는 방식이 섬뜩하고, 왜 아이들이 이렇게 놀고 있을까 하는 원인에 대한 탐구는 분단된 내 조국의 아픈 상채기 하나를 만지는 듯해 서글프다. 그러나 그저 그렇겠거니, 어른들이 그렇게들 살고 있으니 아이들이라고 무어 다를 것이 있겠어 하고 외면해버릴 우리와 달리 시인은 이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는 아이들을 아파트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받들어 총’이 아니라 ‘받들어 꽃’이라고, 죽음의 놀이가 아니라 작은 생명에 대한 지극한 외경의 의식을 행하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에 대한 굴종 대신 생명에의 축복으로 아이들 놀이가 바꾸어져야 한다는 것을 부드럽게 주장한 것이다. 주변에 널려 있는 수많은 왜곡과 은폐의 더께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빛나는 삶의 진정성을 일구어 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전복적 상상력의 탁월한 기능이다.  시 (18)은 참 재미있는 시이다. 식료품가게 꼬챙이에 꿰어진 채 널브러져 있는 북어를 직접 들여다보고 있는 듯이 형상화하고 있다. 더욱 세밀한 묘사가 계속 이어지다가 ‘가슴속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꿈꾸는 가운데 교묘하게 북어가 사람으로 대체되어 있다. 헤엄쳐 가기를 원하는 것은 북어가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그 순간 느닷없이 커다란 입을 벌린 북어들이 큰소리로 ‘너도 북어지!라고 귀가 먹먹하도록 계속 부르짖는 눈부신 전복으로 시를 끝맺고 있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말라 찌부러진 요즈음의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  (19) 銀山鐵壁 -오세영  까치 한 마리  미루나무 높은 가지 끝에 앉아  새파랗게 얼어붙은 겨울하늘을  엿보고 있다.  銀山鐵壁.  어떻게 깨뜨리고 오를 것인가.  문 열어라, 하늘아.  바위도 벼락맞아 깨진 틈새에서만  난초 꽃대궁을 밀어 올린다  문 열어라, 하늘아.  은산철벽이다. 은산철벽이라 함은 禪家에서 禪僧들이 화두를 참구하는 데서 오는 막막함이다. 온 산이 온통 흰 눈으로 덮이고 얼음으로 짜 올려져 철벽을 이룬 상태인 바, 세상의 分別智 정도로는 도대체 그걸 깨뜨릴 수 없다. 한마디로 백색 절망의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 속의 까치 한 마리, 곧 선승은 홀로 미루나무 높은 가지 끝에 앉아 있다. 백천간두에 처해있는 것이다. 한 발만 까딱 잘못 재겨 디뎌도 수천 수만 리 허공으로 추락해버릴 그 자리. 그 한계상황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아 올라야 하는데, 그 하늘조차 새파랗게 얼어붙어 있다. 은산철벽을 먼저 깨트려야 되는데, 그래야 그나마 새파랗게 얼어붙은 하늘로 오를 생각을 해볼 수 있는데, 상황은 여전히 암담하다. 전후좌우를 헤아려보고, 차가운 이성과 불같은 감정을 동원해보고, 피투성이의 몸부림을 해봐도 눈에 보이고 귀로 열리는 것은 추호도 없다.  안 된다. 안 된다. 그렇다면 에라이 모르겠다. “문 열어라, 하늘아,” 호통칠 수밖에 없다. 분별지 같은 걸로 어림없는 세계. 직관력 아니고는 어림짐작할 수도 없는 세계. 결국 선승으로서는 일대 전쟁을 감행할 수밖에 없이 하늘하고 상대를 하는 것이다. 이모저모 따질 것 없이 곧바로 하늘하고 맞붙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늘이 문을 여는가.  결국 “바위도 벼락 맞아 깨진 틈새에서만/ 난초 꽃대궁을 밀어 올린다.”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은산철벽 속 어떠한 고통이라도 감수하고 이를 극복하는 데서만 비로소 난초 꽃, 곧 삶의 극적인 진실이 열리는 것이다. 그것도 “문열어라, 하늘아”라고 다시 한번 호통치는 그 용기로 인해서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는 고통에 처했을 때 마지막 뚝심으로 돌아서서 그 몰아대는 자를 악착같이 물어버리는 대전복이 청천벽력처럼 일순간에 일어나는 것이다.  진실의 근원이라고 여겨지는 하늘에다 대고도 호통칠 수 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깨달음. 그러기에 시형식도 여러 진술이나 묘사를 생략하고 간명한 막대기 같은 언명만 필요하다. 이런저런 군더더기 없이 팽팽한 긴장과 절제의 언어만이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불립문자의 세계를 말하기 때문에 여타의 모든 말들은 언어도단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뒤틀린 현실을 전복하고자 할 때 전복적 상상력은 비판적 세계인식을 드러내는 유효한 무기가 된다. 따라서 이것은 앞의 발견적 상상력과 함께 리얼리스트들의 중심적인 상상력을 형성한다.   =====================================================================================   186. 확인 / 윤후명                         확인                             윤후명   너 가고 있는 길 나도 간다 길 가는 사람은 많고 많으나 둘만이 아는 길은 따로 있음을 믿는 길이다 믿어야 한다 머나먼 세상 끝 아득한 남해섬 마늘 싹과 보리 싹 파아랗게 밟으며 가고 있는 길 비린 술 한 잔에 영혼을 달래면서 세상 미련 죄다 떨쳐 버리면서 가고 있는 길 그러므로 사랑이 삶을 확인한다   (2006.7.3. 개작)   윤후명 육필시집 < 먼지 같은 사랑 > 중에서       윤후명(尹厚明) 윤상규(尹常奎) 연보     1946년 강원도 강릉 출생. 본명은 윤상규이나 필명인 윤후명을 사용함.   169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인 등단   1969년 연세대학고 철학과 졸업. 시 동인지 창간 동인.   1977년 시집 발간.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당선, 소설가로 등단.   1980년 소설 동인지 창간 동인.   1983년 거제도 체류. 중편소설 출간, 이 작품으로 녹원문학상 수상.   1984년 단편소설 출간, 이 작품은 뒤에 으로 개작하여 소설문학작품상 수상.   1985년 단편소설 과 를 중편소설 으로 개작,        이 작품으로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   1986년 단편소설 가 MBC 베스트셀러 극장 방영.   1987년 산문집 , 중편소설 출간.   1988년 중편소설 이 국제 팬 대회 기념으로 에 번역 수록.   1989년 소설집 출간.   1990년 장편소설 , , 산문집 ,        시집 , 문학선집 출간.   1992년 장편소설 , 장편동화 ,        시집 출간.   1993년 단편소설 이 프랑스 출판사(Actes Sud)에서 번역 출간.   1994년 중편소설 로 현대문학상 수상.   1995년 중편소설 로 이상문학상 수상.        한국소설가협회 기획분과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 연세대학교,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강사.   1997년 소설집 , 산문집 출간. 한국소설학당 설립.   1998년 추계에술대학교 강사.   1999년 단편소설 가 독일에서 에 번역 소개.   200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선임.   2001년 소설집 출간.        추계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한국소설가협회 이사, PEN클럽 기획위원회 위원.   2002년 단편소설 로 이수문학상 수상. 산문집 출간.        대한매일신보 명예논설위원, 연세대학교 동문회 상임이사 위촉.   2003년 산문집 출간.   2004년 동화 출간, 소설가협회 중앙위원 선임.   2005년 장편소설 출간. 서울디지털대학교 초빙교수.   2006년 시와 소설 신화집 출간, 국민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겸임교수.   2007년 단편소설 로 제7회 현대불교문학상 수상.        소설집 출간, 이 작품으로 제10회 동리문학상 수상.   2008년 편집 위원.   현재 문학비단길 고문, 국민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겸임교수, 한국문학원 원장.  ------------------------------------------------------------------------------------ 187. 얼굴 / 윤후명                                              얼굴                             윤후명   가장 사랑하는 고운 님에게 시들지 않는 추파를 엮어 드리리 오직 하나밖에 없는 내 승냥이의 얼굴을 보여 드리리     윤후명 육필시집 < 먼지 같은 사랑 > 중에서   
980    詩작법 으으응... 댓글:  조회:5427  추천:0  2016-01-10
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방법  고재종 시란 다른 질서 안에서 존재하는 사물을 자신의 질서로 바라보는 것이다. 시는 타자를 자신의 질서 안에 재편할 뿐만 아니라, 타자의 질서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 뿌리내리고 있는 본질적 의미를 역설적으로 깨닫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타자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혹은 자신의 질서 안으로 타자를 끌어들이는 시적 관계 양상을 유추라고 명명할 수 있다.  유추는 두 대상을 나란히 마주 세움으로써 시작된다. 물론 그 한편에는 항상 인간의 삶이 있다.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여우는 여우가 아니라 사람이다.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나폴레옹이라는 시커먼 돼지 역시 탐욕스런 인간의 상징적 대체물이다. 이 두 상징이 얼마나 엄밀히 조응하는가에 따라 유추의 효과는 그 빛을 발한다.  일반적으로 유추를 통해 획득되는 시적 인식은 계몽적이거나 풍자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유추의 대상을 통해 삶이 무엇인지를 배우라고 말하고 싶거나, 삶이 얼마나 비루한 것인지 잔뜩 조롱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유추가 삶 전체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열려 있지만은 않다. 시가 문제 삼는 삶은 특정한 삶이지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추상으로서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가 어떠한 삶을 풍자하거나 외경스러워하는지를 무엇보다 명료하게 인식해야 한다.  (14) 느티나무 여자 - 안도현  평생 동안 쌔빠지게 땅에 머리를 처박고 사느라  자기 자신을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가을날, 잎을 떨어뜨리는 곳까지가  삶의 면적인 줄 아는  저 느티나무  두 팔과 두 다리로 허공을 헤집다가  자기 자신을 다 써버렸다  그래도 햇빛이며 바람이며 새들이 놀다 갈 시간은  아직 충분히 남아 있다고, 괜찮다고,  애써 성성한 가지와 잎사귀를 흔들어 보이는  허리가 가슴둘레보다 굵으며  관광버스 타고 내장산 한 번 다녀오지 않은  저 다소곳한 늙은 여자  저 늙은 여자도  딱 한 번 뒤집혀 보고 싶을 때가 있었나 보다  땅에 박힌 머리채를 송두리째 들어올린 뒤에,  최대한 길게 다리를 쭉 뻗고 누운 다음,  아랫도리를 내주고 싶을 때가 있었나 보다  그걸 간밤의 태풍 탓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은  인생을 절반도 모르는 자의  서툴고 한심한 표현일 뿐  (15) 오징어 3 - 최승호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부둥켜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 릇이 있다  시 (14)는 태풍이 지나간 뒤 쓰러진 느티나무의 모습에서 모든 유혹을 물리친 채 온갖 고생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온 농촌여성의 내면에 깃든 광포한 욕망을 읽어내는 시인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가을 날, 잎을 떨어뜨리는 곳까지가/ 삶의 면적인 줄 아는/ 저 느티나무” 같은 구절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또 스러진 느티나무를 여자에 비유하며 “최대한 길게 다리를 쭉 뻗고 누운 다음,/ 아랫도리를 내주고 싶을 때가 있었나 보다”처럼 표현한 구절은 얼마나 짓궂은 유머를 담고 있는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걸 간밤의 태풍 탓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은/ 인생을 절반도 모르는 자의/ 서툴고 한심한 표현일 뿐”이라고 한 대목에서 이 시인의 경우바른 성실함이 물씬 묻어난다. 비유가 극명하게 드러난 시이지만 사실 비유조차도 유추적 상상력을 통한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방법인 것이다.  시 (15)는 3행으로 이루어진 시다. 이 짧은 시의 대상은 ‘오징어 부부’이다.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남다르다. ‘부둥켜안고 목을 조르는 버릇’은 결코 사랑의 자연스런 방식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표현은 오징어의 여러 개의 긴 발의 형상에서 취한 상상력인데, 그러나 이러한 부부는 그 오징어 부부만이 아니라는 현실 때문에 표현의 성공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류의 사랑은 많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은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목을 조르고 있지는 않았던가. 교묘하게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속하고 억압하고, 풍부한 인간적 감성을 마모시키지나 않았던가. 결국 그 오징어 부부는 우리들 사랑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욕망으로 뒤덮인 인간이며 그 사랑의 방식은 우리들이 항용 지니고 있던 버릇이었던 것이다.  안도현과 최승호의 시는 모두 인간적인 세계가 아닌 자연의 세계 혹은 우화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한데 이런 유추는 현실과의 접촉면이 현저히 차단된 채 자연 세계의 환멸과 동경만을 가능케 할뿐이다. 어떻게 한 편의 우화를 통해 삶의 현실성을 획득할 수 있겠는가. 고작해야 즉자적인 찬탄과 모멸이라는 양극단의 감정적 대응만이 가능할 뿐이다.  (16) 개밥풀 - 이동순  아닌 밤중에 일어나/ 실눈을 뜨고 논귀에 킁킁거리며/ 맴도는 개밥풀/ 떠도는 발끝을 물밑에 닿으려 하나/ 미풍에도 저희끼리 밀고 밀리며/ 논귀에서 맴도는 개밥풀/ 방게 물 장군들이 지나가도/ 결코 스크럼을 푸는 일없이/ 오히려 그들의 등을 타고 앉아/ 휘파 람 불며 불며 저어가노나/ 볏짚 사이로 빠지는 열기/ 음력 사월 무논의 개밥풀의 함성/ 논의 수확을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함부로 버리며/ 우리의 자유를 소중히 간직하 더니/ 어느날 큰비는 우리를 뿔뿔이 흩어놓았다/ 개밥풀은 이리저리 전복되어/ 도처에서 그의 잎파랑이를 햇살에 널리우고/ 더러는 장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어디서나 휘몰 리고 부딪치며 부서지는/ 개밥풀 개밥풀 장마 끝에 개밥풀/ 자욱한 볏짚에 가려 하늘은 보이지 않고/ 논바닥을 파헤쳐도 우리에겐 그림자가 없다/ 추풍이 우는 달밤이면/ 우리 는 숨죽이고 있다/ 옷깃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귀뚜라미 방울새의 비비는 바람/ 그 속 에서 우리는 숨죽이고 있다/ 씨앗이 굵어도 개밥풀은 개밥풀/ 너희들 봄의 번성을 위하 여/ 우리는 겨울 논바닥에 말라붙는다  이 시 또한 다르지 않다. 이 시의 화자는 분리되어 있다. 전반부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개밥풀이란 수생식물의 생태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후반부에 들면 관찰자의 관찰에 응답이라도 하듯, 개밥풀 자신의 목소리로 한 떼의 여리고 작은 이파리들의 헌신을 노래한다. 여름에서 가을로, 다시 겨울로 이어지는 계절의 변화 안에서 그들이 어떻게 몸을 부리며, 마침내 어떻게, 그리고 왜 논바닥에 말라붙는지를 노래한다. 물론 이 개밥풀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유추의 원형질은 민중이다. 김수영의 풀보다 더욱 미천하고 더욱 낮은 대상에까지 천착하여 형상화함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이름 없는 무지렁이 민중들과 그들 민중의 삶 구석구석에 연결된 자그마한 살아 잇는 모든 것이 얼마나 견고하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단지 헌신과 희생의 속성만이 연결될 뿐만 아니라 자잘한 생태적 순환들까지도 완벽하게 일체가 됨으로써 자연의 순환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의 긴밀한 유대와 삶의 동일성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운다’는 말이 있다. 이 간명한 명제야말로 시적 상상력을 튼실하게 받치고 있는 또 다른 한 축인 것이다. 느티나무, 오징어, 개밥풀 등 이 모든 세상을 구성하는 존재들로부터 이 세상을 구성하는 다만 또 다른 하나의 존재에 불과한 인간들이 삶의 철학과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위의 명제를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삶을 배운다’라고 수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184. 선술집 / 고은                         선술집                                                       고은   기원전 이천년쯤의 수메르 서사시 '길가메시'에는 주인공께서 불사의 비결을 찾아나서서 사자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하늘에서 내려온 터무니없는 황소도 때려잡고 땅끝까지 가고 갔는데   그 땅끝에 하필이면 선술집 하나 있다니!   그 선술집 주모 씨두리 가라사대   손님 술이나 한잔 드셔라오 비결은 무슨 비결 술이나 한잔 더 드시굴랑은 돌아가셔라오   정작 그 땅끝에서 바다는 아령칙하게 시작하고 있었다   어쩌냐     고은 시집  중에서    -----------------------------------------------------------   185. 가을편지 / 고은                     가을편지                                             고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979    詩작법 시시시... 댓글:  조회:5803  추천:0  2016-01-10
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방법  고재종 시적 대상이 있다. 그 대상을 바라보는 서정적 주체가 있다. 주체는 반드시 주체의 관점을 통해서 대상을 바라본다. 그 관점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럼에도 그 주관은 삶의 본질을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주관이자, 어떤 객관적인 언술로도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향해 비약하는 주관이다. 그 주관은 일체의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함으로써 획득된 것이며 순간적으로 지각된 느낌을 명징하게 드러냄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다라서 그 어떤 논증적인 결론에 뒤지지 않는 심정적인 깨우침을 안겨준다. 그리고 독자는 이 당연한 주관성을 엿봄으로써 공감을 느끼거나 부적절함에 대한 반감을 토로함으로써 시적 상상력에 개입한다. 무엇보다 이 내밀하고 주관적인 관점이 우리에게 건네는 공감이야말로 시의 아름다움이 갖는 본질적인 표딱지인 것이다. 여기에서 이 주관을 가능케 하는 힘을 투사라고 한다. 이 투사는 또 직관력을 절대로 필요로 한다.  (10) 墨畵 -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11) 自尊 - 이시영  화창한 가을날  벌판 끝에 밝고 환한 나무 한 그루  우뚝 솟아 있다  모든 새들이 그곳에서 난다  시 (10)은 회화적이다. 이는 첫 행과 두 번째 행을 통해 누구의 눈에라도 확연히 그 풍경을 지각할 수 있다. 저물 무렵, 아마도 깡마른 손임에 분명한 할머니 손이 물먹고 있는 소의 목덜미를 어루만지고 있는 외딴집 울타리 속의 풍경. 제목이 묵화이듯이 어떤 묵화를 바라보고 썼거나, 거꾸로 풍경과 人事의 여러 자잘한 가지를 생략해버리고 고단위의 긴장과 절제의 방법으로 여백과 농담의 미가 충만한 묵화의 세계를 지향했거나 상관없다. 이 시는 묘사적 풍경에서 멈추지 않는다. 3행으로 넘어가면서 직바로 본질로 진입해 가는 시인의 날카로운 주관적 투사, 곧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말해버림으로 물먹는 소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지는 단순하고도 객관적인 풍경이 소와 할머니 사이에 지극한 교감으로 바뀌고, 또 단순하고 객관적인 풍경이 생의 비애, 존재의 고통의 면모를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투사로서의 상상력은 한 존재가 맞닥뜨린 생에 대한 자각과 그에 반응하는 섬세한 존재의 울림을 고스란히 확인케 함으로써 우리를 천박하고 저열한 우리의 그저 놓여진 일상을 새롭게 충전하는 것이다.  시 (11)도 이 점에선 시 (10)에 한 점도 뒤지지 않는 시이다. 오히려 시 (10)이 3행부터의 투사적 진술이 우리를 깨우치긴 하지만 존재와 풍경이 감추고 있는 아득한 비의를 약간은 깨버린 듯한 인상을 주는 데 비해 시 (11)은 그렇지 않다. 이 시에서도 너무도 확연한 그림 하나를 볼 수 있다. 화창한 가을날이면 하늘은 높고 햇살은 순금빛으로 쏟아지고 대기는 맑다 못해 푸르른 날일 것이다. 그런 날 벌판 끝에 그 햇살을 받고 나무는 역시 황금빛으로 빛나는 은행나무도 좋겠고 투명한 갈색으로 빛나는 느티나무도 좋겠다. 얼마나 밝고 환할 것인가. 그것이 우뚝 솟아 있다. 황금나무다. 세계수다. 은행나무라면 땅에서 하늘로 팔 벌린 상태일 것이고 느티나무라면 둥그렇게 마을을 감싸는 모습일 것이다. 은행나무나 느티나무나 모두 지상과 하늘을 매개하는 영매이다. 어쨌든 그것은 얼마나 신비롭고 아늑하고 정정하고 성성하고 밝고 환할 것인가. 여기까지는 객관적 풍경의 언어적 그림이다. 이에 덧붙여 연을 달리한 마지막 한 줄이 투사적 진술을 감행한다. “모든 새들이 그곳에서 난다”라고. 객관적 사실은 모든 새들은 그곳에서 날 수도 있고 날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밝고 환한 나무에서 새가 날지 않고 어디서 날겠는가. 새는 자유, 순수, 평화 등 모든 것을 상징한다. 그 새는 인간의 비상의 꿈을 하늘로 치솟음으로 상징해준다. 그러나 들판의 새는 대개 옆으로 난다. 여기 밝고 환한 나무에서 나는 새도 그 나무에서 솟는 새이기도 해야 하지만 그 나무를 가로질러 나는 새이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나무의 수직과 새의 수평이 이루어지는 것을 상상치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시는 이런 모든 췌사를 불필요하게 만든다. 풍경에 대한 언어의 선연한 그림과 이에 날카로운 투사적 상상력을 보탬으로 존재의 비의를 한층 더 깊게 만드는, 말을 침묵에 가깝게 줄임으로 되레 수많은 말을 가능케 하는 시의 진경이 여기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12) 어린 게의 죽음 - 김광규  어미를 따라 잡힌  어린 게 한 마리  큰 게들이 새끼줄에 묶여  거품을 뿜으며 헛발질할 때  게장수의 구럭을 빠져나와  옆으로 옆으로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개펄에서 숨바꼭질하던 시절  바다의 자유는 어디 있을까  눈을 세워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달려오는 군용 트럭에 깔려  길바닥에 터져 죽는다  먼지 속에 썩어가는 어린 게의 시체  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  (13) 직관 - 고재종  간밤 뒤란에서  뚝 뚜욱 대 부러지는 소리 나더니  오늘 새벽, 큰 눈 얹혀  팽팽히 휘어진 참대 참대 참대숲 본다  그중 한그루 톡, 건들며 참새 한 마리 치솟자  일순 푸른 대 패앵, 튕겨져오르며 눈 털어낸 뒤  그 우듬지 바르르바르르 떨리는  저 창공의 깊숙한 적막이여  사랑엔, 눈빛 한번의 부딪침으로도  만리장성 쌓는 경우가 종종 있다  김광규의 시는 밑바닥에 깔린 첨예한 시대의식을 감지할 수 있다면, 그의 투사적 직관력이 시에 얼마나 큰 힘을 부여하고 있는가를 수일하게 짐작할 수 있다. 투사력이라 해도 좋고 직관력이라 해도 좋은 이 상상력은 무릇 시인치고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지만 이걸 얼마나 잘 갈고 닦느냐에 따라 좋은 시를 쓸 수 있는가 없는가 판가름이 난다. 필자의 「직관」이라는 시도 함께 살펴보기 바란다.   ==============================================================   182. 도라지꽃 / 고은                               도라지꽃                                                       고은   이 길고 긴 여름 나는 당신을 위해 한 송이 도리지꽃을 피웁니다 그렇게도 모진 세월 흘러 끝내 나는 어쩔 수 없이 도라지꽃입니다 이 나라의 도라지꽃입니다   모독이었든 원한이었든 그 식민지의 꽃이었고 오늘은 1996년 7월의 마정리 분단의 꽃입니다     고은 시집  중에서 -------------------------------------------------------- 183. 그 시인 / 고은                   그 시인                                                       고은   오랫동안 그는 시인이었다 어린이들도 아낙들도 그를 시인이라고 불렀다 과연 누구보다도 그는 시인이었다 돼지와 멧돼지들도 그를 시인이라고 꿀꿀 말하였다   그가 멀리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죽었다 그의 오막살이에는 시 한 편 남겨져 있지 않았다 시를 쓰지 않은 시인이었던가 그래서 한 시인이 그의 시 한편을 대신 썼다 쓰자마자 그 시조차 바람에 휙 날아갔다   그러자 몇 천 년 동안의 수많은 동서고금의 시들도 너도나도 덩달아 휘익 휙 날아가 버렸다     고은 시집  중에서    
978    詩작법 뽕구대... 댓글:  조회:6545  추천:0  2016-01-10
  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방법 고재종 사랑은 시와 흡사하다. 사랑이 시와 흡사한 것은 양자가 모두 논리의 대척점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이 남자가 누구의 남자인가는 아랑곳없이 마음의 길이 언제나 그에게 향하고, 그에게 맞닿아 있듯, 남들이 보기에는 하잘 것 없는 왜소한 존재임에도 바닥 모를 깊이로 몰두한 채 시의 길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콩깍지가 씌어도 몇 겹으로 덧씌웠는지 알 수 없을 만치 혼미한 가운데 연인들과 시는 앞 다투어 마음의 길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에 빠졌을 때, 이 주체할 수 없는, 나 아닌 또 다른 존재를 향한 갈망 또한 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시 역시 다른 존재를 향한 짙은 그리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시는 망망한 밤하늘의 한 점 불빛이다. 반짝반짝 또 다른 살아 있는 정신에게 보내는 간절한 신호인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가로놓인 섬을 넘어서서 마침내 따수운 손길을 부여잡고자 하는 갈망에 찬 몸짓이 시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곤혹스러운, 무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예전엔 느껴 본 적도 없던 이 독특한 감정이야말로 시와 다르지 않다. 무어라고 딱히 명명할 수 없는, 망명하는 순간 이미 그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질되어 버리는 느낌, 사랑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표현한 순간 그저 범속한 사랑이 되어버리는 절망감, 공동변소와도 같은 그런 통속적인 ‘사랑’이라는 단어로는 결코 자신만의 설렘과 두근거림을 표현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 사랑이라는 범속한 단어 그 근처에서 기미라도 알아차리게 만드는 단어를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사랑을 전해줄 언어를 모색하는 지난한 과정, 이것이 시쓰기의 심부에 닿아있는 작업인 것이다.  오직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계를 보는 완벽한 주관성, 자신의 세계를 방기할 정도로 타자에 몰두하는 전적인 沒我. 그 어떤 언어로도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는 절망과 모색 등이야말로 시와 사랑의 교차지점이다. 이들 특성은 견고한 세계의 질서를 모두 자신의 열망 안으로 끌어들이며, 외적 대상 자체로부터 사유를 시작하는 바탕을 이루며, 직접적인 제시 대신 함축적인 은폐를 기도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독특한 갈망들을 연상은 너끈히 감당한다. 연상이야말로 의미를 은폐하고 세계를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이는 유효한 방법이며 모든 세계를 한 곳으로 끌어 모으는 힘인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모든 존재하는 대상들을 그 남자와 연결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7) 산수유 - 정진규  수유리라고는 하지만 도봉산이 바로 咫尺이라고는 하지만 서울 한복판인데 이거 정말 놀라운 일이다 정보가 매우 정확하다 훌륭하다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 벌떼들, 꿀벌떼들, 우리집 뜨락에 어제오늘 가득하다 잔치잔치 벌였다 한 그루 활짝 핀, 그래, 滿開의 산수 유, 노오란 꽃숭어리들에 꽃숭어리들마다에 노랗게 취해! 진종일 환하다 나도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두근거렸다 잉잉거렸다 이건 노동이랄 수만은 없다 꽃이다! 열려 있는 것을 마다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럴 까닭이 있겠는가 사전을 뒤적거려 보니 꿀벌들은 꿀을 찾아 11킬로미터 이상 往復한다고 했다 그래, 왕복이다 나의 사랑도 일찍이 그렇게 길 없는 길을 찾아 왕복했던가 너를 드나들었던가 그래, 무 엇이든 왕복일 수 있어야지 사랑을 하면 그런 특수망을 갖게 되지 光케이블을 갖게 되지 그건 아직도 유효해! 한 가닥 염장 미역으로 새까맣게 웅크려 있던 사랑아, 다시 노오랗 게 사랑을 採蜜하고 싶은 사람아, 그건 아직도 유효해!  꿀벌떼들이 찾아온다. 서울 한복판에 벌떼들이 뜨락의 만개한 산수유를 찾아온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얼마나 정보가 정확하기에 아파트숲과 소음과 시멘트와 먼지 속을 뚫고 꿀벌들이 찾아왔을까. 그 꿀벌 떼들의 꽃숭어리 잔치에 시인도 하루종일 두근거리고 잉잉거리고 노랗게 취한다. 그걸 지켜보다가 시인은 결국 사전을 뒤적인 끝에 ‘왕복’이라는 단어를 찾아낸다. 산수유와 벌떼들, 그 둘을 하나로 이어주는 단어, 왕복! “그래, 왕복이다” 우리들의 사랑도 왕복인 것이다. 길 없는 길을 찾아 왕복하는 것이다. 그런 사랑을 하게 되면 자연히 사람도 특수 통신망인 광케이블을 갖게 되어서 네 속을 드나드는 것이다. 특수 통신망 광케이블이라는, 시에는, 더구나 사랑시에는 너무나 비시적인 언어로 충분한 낯설게 하기를 감행하면서 시를 고양시켜 나간다. 이 시의 절정은 ‘염장 미역’이란 비유다. 자신의 내면에 빼빼 마르고 까맣게 졸아든 채로 웅크려 있는 염장 미역 같은 사랑이 사랑의 물을 만나면 바가지 가득 부풀다가, 마침내 바호밥나무처럼 무성하게 자라 어린 왕자의 별을 휘감게 되는 것이다. 산수유 꽃숭어리와 벌떼들로부터 연상해낸 사랑은 마지막 행에 이르러 ‘노오랗게 사랑을 채밀하고 싶은 사람아’라는 호소력 있는 호명으로 모든 대상을 하나로 결합하며 시적 화자 자신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다분히 김수영을 연상시키는 “아직도 유효해!”의 ‘!’로 시를 끝맺고 있다. 더더욱 이 시가 감동적인 것인 시적 화자의 나이가 60살 가까이 된, 이젠 사랑보다는 생을 관조해야될 나이에 이런 연상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허망함처럼 “아직도 유효해!”라고 외치는 그 사랑도 필경 허무로 끝날지 모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사랑은 그만큼 생을 맹목적이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8) 明鏡 - 박형준  강나루 가에는 커다란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나는 소매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여인들이 버드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여인들은 잎이 무성한 버드나무를 꺾었다  배에 올라탄 남정네들에게  버드나무 가지를 둥글게 구부려 정표로 주었다  배가 떠날 시간이었다  내려서 뒤돌아보지 말고 걸어야 했다  책갈피에 버드나무 잎이 끼여 있었다  저녁 무렵 잠깐 잠이 든 사이였다  꿈속에서 한 권의 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꿈속에서 해가 지고 있었다  그 책은 이승에서 내가 평생 써야 할 시였다  이 슬프면서 아름다운 우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저녁 무렵 잠깐 잠든 사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도 해가 질 무렵이었다. 꿈속에서 한권의 책을 손에 쥐고 읽고 있었다. 그런 그 앞에선 버드나무 아래서 여인들이 울고 있고, 배가 막 떠나려 하고 있고, 배에 올라탄 남정네들에게 여인들은 사랑의 정표로 버드나무 가지를 둥글게 구부려 주고, 그 버드나무잎이 그의 책갈피에도 끼여 있지만, 배에서 내려서도 뒤돌아보지 말고 걸어야만 하는 슬픔이다. 어쩌면 인생은 덧없는 꿈이라는 상투적인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다. 여기서 배는 인생이고, 그 인생 속에서 우리는 사랑과 이별을 할 수밖에 없고, 그중 이별은 강을 건너는 행위 곧 이승과 저승으로 나뉠 수밖에 없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을 뒤로하고 오연하게 앞으로 나아감으로 성취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시라고 말하는, 저승까지 가져갈 것이 시라면, 뒤집어서 이승에서도 평생 써야할 시는 그 책갈피에 낀 버드나무잎같이 생생한 사랑과 이별의 변주인 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꿈속에서 본 이별의 광경을 통해 시인이 끝내 써야할 시가 무엇인가를 조용히 연상케 하는 시인 것이다. 이제 다음 시를 보자.  먼저 그대가 땅 끝에 가자 했다/ 가면, 저녁은 더 어둔 저녁을 기다리고/ 바다는 인조 견 잘 다려놓은 것으로 넓으리라고/ 거기, 늦은 항구 찾는 선박 두엇 있어/ 지나간 불륜 처럼 인조견을 가늘게 찢으리라고/ 땅끝까지 그대, 그래서인지 내려가자 하였다// 그대는 여기가 땅끝이라 한다, 저녁놀빛/ 물려놓는 바다의 남녘은 은도금 두꺼운/ 수면 위로 왼 갖 소리들을 또르르 또르르/ 굴러다니게 한다, 발 아래 뱃소리 가르릉거리고/ 앞섬들 따 끔따끔 불을 켜대고, 이름 부르듯/ 먼 데 이름을 부르듯 뒷산숲 뻐꾸기 운다/ 그대 옆의 나는 이 저녁의 끄트막이 망연하고/ 또 자실해진다, 그래, 모든 것이 이 땅의 끝/ 벼랑에 서처럼 단순한 투신이라면야…// 나는 이마를 돌려 동쪽 하늘이나 바라다보는데/ 실루엣 을 단단하게 잠근 그대는 이 땅 끝에 와서/ 어떤 맨처음을 궁리하는가 보다, 참 그러고 보니/ 그대는 아직 어려서, 마구 젊기만 해서/ 이렇게 후욱 비린내나는 끝의 비루를/ 속 수한 것들의 무책을 모르겠구나/ 모르겠는 것이겠구나 ―(9)이문재의 「해남길, 저녁」  이문재의 시는 적어도 가식이 없다. 자신이 직면한 고통에 솔직하게 대면하고 있다. 그는 사랑의 끝이 땅끝과 마찬가지로 벼랑의 투신처럼 자명하기를 바란다. 망연자실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삶이란 얼마나 너절한 것인지. 인연이란 얼마나 질긴 것인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 어린 그대가 끝의 비루를 알지 못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땅끝에서 손쉽게 건져 올린 사랑의 끝을 생각하는 이 시는 풍부한 묘사와 함께 한자 성어를 적절하게 분리시킴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풍자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 드러냄은 미화될 여지조차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미화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저 그렇고 그런 불륜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지독한 사랑의 끝은 비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것이 존재이유가 되어 버릴 때도 불륜이 비루일 수 있는가.   ===================================================================   180. 화살 / 고은                                화살                                                     고은     우리 모드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고은 시집  중에서  ------------------------------------------------------- 181. 무덤 / 고은                     무덤                                                  고은   진실은 아무리 무덤에 깊이 파묻혀도 그 무덤 뚫고 솟아 나옵니다 진실은 생명이므로 그 어둠 뚫고 솟아 나옵니다 그러나 그 진실이 오늘의 진실이 아니라 어제의 진실로 솟아 나올 때 한갓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야기가 되기 전의 그 혁혁한 진실을 위하여 한사코 오늘을 지켜야 합니다 파헤쳐 푸른 불빛 날고 새빨간 진실이 솟아 나와야 합니다 그리하여 긴 밤 새어 먼동 틉니다 파헤친 무덤에는 이제 아무것도 없어야 합니다     고은 시집  중에서    
977    詩작법 삐삐삐... 댓글:  조회:4882  추천:1  2016-01-10
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방법  고재종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정말 그럴까. 별이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 소원을 빌기 위해서는 그 바람을 언제라도 가슴에 담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갑작스런 유성의 낙하 앞에서 간절하게 그 바람을 간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와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언제라도 기원할 수 있는 그 갈망, 그 열망이야말로 희망을 현실로 바꾸는 원동력이다. 그 갈망이 있을 때에야 늘 범속한 사물과 일상 속에서도 생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관찰해낼 수 있는 것이다.  (4) 공터 - 최승호  아마 무너뜨릴 수 없는 고요가 .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빈 듯하면서도 공터는  늘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다  공터에 자는 바람, 붐비는 바람,  때때로 바람은  솜털에 쌓인 풀씨들을 던져  공터에 꽃을 피운다  그들의 늙고 시듦에 .  공터는 말이 없다 .  있는 흙을 베풀어주고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볼 뿐.  밝은 날  공터를 지나가는 도마뱀  스쳐가는 새가 발자국을 남긴다 해도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늘의 빗방울 자리를 바꾸는 모래알들,  공터는 흔적을 지우고 있다  아마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5) 둑 - 김춘수  봄이 와 범부채꽃이 핀다.  그 언저리 조금씩 그늘이 깔린다.  알리지 말라,  어떤 새가 귀가 없다.  바람은 눈치도 멀었다. 되돌아와서  한번 다시 흔들어 준다.  범부채꽃이 만든  (아무도 못 달래는)  돌아앉은 오목한 그늘 한 뼘.  점점점 땅을 우빈다.  시 (4)의 대상은 ‘공터’이다. 아무도 없는 여름 한낮 그 공터의 한쪽 귀퉁이에 앉아 시인은 적요와 적멸이 아니라, 동그란 세모와도 같은 역설적인 텅 빈 충만을 지켜보고 있다. 고요의 지배 아래 공터에는 “자는 바람, 붐비는 바람” 풀씨들을 던져 꽃을 피우는 바람으로 가득 차 있다. 또 거기에는 밝은 날 지나가는 도마뱀과 스쳐가는 새발자국과 빗방울과 그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들이 있다. 그러나 공터는 이 존재하는 것의 고통스런 생로병사에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그저 흙을 베풀고 “무심히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이 공터에는 어떤 흔적조차 오래가지 않는다. 그 흔적은 “하늘의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알들”로 지워져 버리기 때문이다. 고요 아닌 그 어떤 것도 공터를 지배하지 못하고 고요만이 왕인 것이다.  이 시에 내재된 기본적인 상상력은 유추이다. 하나의 대상을 구축함으로써 넌지시 다른, 정작 말하고자 하는 또 다른 대상을 환기시키는 상상력 말이다. 그렇다면 이 시 곧 공터를, 고요가 지배하는 공터를 통해 시인이 건네고자 하는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공터라는 대상의 즉물적인 세계가 아니라 인간적인 세계임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인간적인 세계는 어떠한 세계인가? 구체적인 단서는 ‘늙고 시듦’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생로병사의 인생의 四苦를 의미한다. 더욱이 이 시 전체 흐름이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이항대립을 넘어서 있다는 점에서 현저히 불교적인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텅 빈 충만’이라는 역설적인 세계인식이 도처에서 드러나며, 따라서 이 시에서 유추해낼 수 있는 인간적 세계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살이인 것이다. 이 세상살이를 한 차원 높은 ‘빗방울’을 내리는 하늘의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지독히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 세상에서 삶의 진정한 주인이란 오히려 적요와 적멸뿐이라는 것이다. 色卽是空이라는 인식이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거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그 삶의 흔적인 생의 자취란 잠깐 남기는 도마뱀, 스쳐가는 새의 발자국이자 조만간 작은 모래알로 지워져버릴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 유추적 상상력보다 더욱 선명한 이미지로 드러나는 것은 관찰로서의 상상력이다. 그 관찰은 보이지 않는 ‘고요’를 보게 할뿐만 아니라 ‘붐비는 바람, 잠드는 바람’도 보게 한다. 무엇보다도 “하늘의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알들”이란 관찰은 얼마나 정교하고 놀라운가. 그 미세한 움직임조차 또렷이 형상화함으로써 시인은 이 세계의 놀라운 추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시 (5)에서는 시적 주체가 사라진다. 시적 대상에 반응하는 시적 주체의 마음이나 감정이나 생각이 전혀 없다. 그리고 오로지 이 시에는 눈, 관찰의 눈, 투명한 관찰의 눈만이 존재한다. 어쩌면 이 관찰의 투명한 눈 속에 시적 주체가 들어가 있다. 우리의 모든 서정시에 공식처럼 얘기되는 주관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봄이 오는 날 시인은 둑에 피는 범부채꽃을 본다. 그러나 그가 강조하는 그 언저리에 깔리는 그늘이다. 이 그늘은 존재의 비애를 표상한다. 그러기에 이른 봄 속의 해질 무렵이고, 새도 귀가 없는 새이고, 바람도 눈치없는 바람이다. 이 바람이 흔드는 것은 범부채꽃이 아니라 그늘이고, 땅을 후비는 그늘 한 뼘이다. 이 그늘 한 뼘이 세상이고 그의 내면이라면 결국 모든 존재는 비애의 존재이고 그 비애는 시시각각으로 점점점 더 우리를 후빈다.  다음 시에서 관찰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살펴보라.  작약꽃이 한창인 아파트 단지의  화단을 나비 한 마리가 날고 있다  어린 후박나무를 지나 향나무를  지나 목단을 넘고 화단 가장자리의  쥐똥나무를 넘어 밖으로 가더니  다시 속으로 들어와  한창인 작약꽃을 빙글빙글 돌더니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혼자 훌쩍 날아올라 넘더니  비칠대는 온몸의 균형을 바로잡고  날아넘은 허공을 뒤돌아본다  뒤돌아보며 몸을 부풀린다  ―(6)오규원의 「나비」  관찰만 예리하게 잘 하여도 시의 절반은 이룬 셈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관찰은 시적 묘사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묘사가 없는 시가 있을 수 없듯이 관찰이 없는 묘사 또한 있을 수 없다. 위의 시는 순전히 관찰만으로 막막한 아파트 단지의 생명성과 존재의 비의를 환하게 드러내주는 수일한 시이다.   ============================================================================   178. 시인의 마음 / 고은                         시인의 마음                                                      고은   시인은 절도 살인 사기 폭력 그런 것들의 범죄 틈에 끼어서 이 세계의 한 모퉁이에서 태어났다   시인의 말은 청계천 창신동 종삼 밤거리 그런 곳의 욕지거리 쌍말의 틈에 끼어서 이 세상의 한 임무를 맡는다   시인의 마음은 모든 악과 허위의 대낮에 이 시대의 진실 몇 개를 찾아온다 그리고 그 마음은 다른 마음에 맞아 죽는다   시인의 마음은 이윽고 불멸이다     고은 시집  중에서       고은 연보   1933년 8월 1일 전북 옥구군 미면 미룡리 용둔부락에서 고근식과 최점례의 장남으로 출생.       (본명 : 고은태高銀泰, 호적에는 4월 1일 출생으로 잘못 등재됨.)           ※ 1950년 6월 한국전쟁 중에 이름의 끝자는 떼어내고 고은(高銀)으로 자칭.   1942년 인근 서당에서 한학을 익힘.   1943년 미룡초등학교 입학   1945년 해방이 되자 4학년으로 월반. 친일파 교장을 몰아내기 위해 동맹휴학 주동.   1946년 군사사범학교 응시결과 동맹휴학 사건으로 낙방.   1947년 군산중학교 수석 입학.   1949년 하굣길에 우연히 주운 를 읽고 시인이 되겠다고 결심.   1951년 미군 제21항만사령부 운수과에 검수원으로 취직.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미수에 그침.           옥구군 대야에서 엿장수 생활, 다시 자살 시도(미수).           친척이 설립한 군산북중학교에 국어 및 미술 교사로 특채.           군산 근처의 동국사에서 혜초 승려를 만나서 교사 사직 후 출가.   1952년 일초라는 법명으로 수도생활.   1953년 혜초가 환속하자 통영 도솔암에 있는 혜초 스승인 효봉 스님의 제자가 되어 상좌생활.            선 수행과 전국 각처의 절을 떠도는 행각승으로 방랑.   1957년 효봉 스님이 서울에 있는 총무원장이 되자 스승을 따라서 상경.         창간 후 초대 주필. 비구승단의 대변인으로 활동. 선학원에 들어감.   1958년 조지훈 등의 천거로 그의 시 ‘폐결핵’이  제1집에 발표.           서정주의 단회 추천으로  11월호에 3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           ※ 등단작 3편 : , ,   1959년 첫 시집 가 신문에 출판광고까지 나갔으나 인쇄소 화재로 소실.           해인사에서 용맹정진의 선 수행 몰입.   1960년 4.19혁명으로 절에서 난돌이 발생하자 거의 혼자 힘으로 수습, 주지대리로 추대.           첫 시집  출판.   1961년 최초의 장편소설  출판.(이후 으로 개명됨.)           선학원에서 등사본으로 ,  출산.   1962년 한국일보에 환속선언을 발표하고 환속. 그동안 품수한 대덕법계(大德法階)를 반환.   1963년 자살을 결심하고 목포에서 제주행 배에 승선. 제주에서 생활.            제주시 화북동에 도서관 설립 후 관장을 맡음.            금강고등공민학교를 개교하여 무료 수업 실시. 교장, 국어, 미술교사 겸임.   1966년 시집  출간   1967년 서울 홍릉으로 이사. 시집  출간.(후에 로 개명.)   1968년 수필집 , ,  출간.   1969년 동화통신사 부장대우로 취직. 외신기자클럽에서 주정 난동으로 권고사직.           수필집  출간.   1970년 정릉 계곡에서 자갈 기도(미수). 아버지 사망.           단시와 산문을 결합한 형태의 수필집  출간.   1971년 삼선개헌 반대운동에 문인대표로 참여. 수필집  출간.   1972년  연재 중 잡지윤리위원회에 의해 중단되자 책으로 출판.   1973년 화곡동에 집 마련. 여러 문인들과 함께 문인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동료 구명운동 주도.            민청학년 관련으로 구속된 시인 석방운동 전개.        과 역주  출간.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회 창립. 초대 대표간사 역임.           제1차 선언문 발표 후 가두시위 중 체포(구금되었다가 석방).           민주회복국민회의에 문인대표로 참여(자주 연행됨). 동아일보 백지광고운동에 앞장섬.           시 로 제1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 , 장편 , 기행문집(고시편역-나의 방랑 나의 산하>,       소설집 , 수필집  출간.   1975년 긴급조치 9호 선포로 가택구금.           시선집 , 역주 ), 수필모음집 ,  출간.   1976년 산문집 , 역주 , 산문집 ,        불교 설화집  출간.   1977년 양성우의 시집 에 서문을 써준 이유로 구치소 수감(구속 취하로 석방).            시집 , , 수필집 , 소설집 ,        장편  출간.   1978년 민주화운동청년협의회 결성. 한국인권위원회 부회장.        시집 , 수필집 , 평론집 , ,        소설집  출간.   1979년  창간을 주도. 국민연합 결성에 참여(부위원장). YH사건으로 투옥.           산문집 ,  출간.   1980년 5월 17일 자정에 강제 연행, 7월 하순 육군 교도소 특별감방으로 송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 혐의로 군법회의 1심에서 종신형 선고.           소설집  출간.   1982년 8.15 사면으로 석방.   1983년 5월 5일 영국 유학에서 돌아온 이상화와 수유동 안병무의 집 뜰에서 극비리에 결혼.        (주례는 함석헌이 하였고 결혼식에는 당시 수배를 받고 있던 문인 등이 참석)            결혼 후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 마정리로 이사.  출간   1984년 시집 , 소설집  출간.   1985년 서사시 이 실천문학 강제 폐간으로 연재 중단. 산문집  출간.   1986년 , 시집 , , , 평론집 , 산문집 , 수필집 ,  출간.           제13회 한국문학 작가상 수상   1987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 공동대표. 박종철, 이한열 추도회 주관.        민족문학작가회의 결성.        , 시집 , 사찰 기행집 , 평론집 ,        , 산문집 , , 시선집  출간.   1988년 시집 , , , 산문집 ,        시집 ,  출간.   1989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공동의장으로 취임. 남북작가회담 준비위원장.           작가회담 사건으로 투옥. 9권까지 출간.           산문집 , 평론집  출간.   199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시집 , 산문집 , ,        수필집 , , 평론집 출간.   1991년 장편 , 시집 , , , 시선집 ,        , 산문집  출간.   1992년 잠언집 , 시집 , 소설집 ,         출간.   1993년 시집  출간.   1994년 시집  출간.   1995년 시집  출간.   1996년  출간.   1997년 히말라야 순례. 어머니 별세. 시집  출간.   1998년 15일간 북한 방문. 경기대학교 대학원 교수 정년퇴임.            프랑스 미셀 기드와 알랭 주프루아와 함께 시낭송 시집  출간.   1999년 버클리대 한국학과에서 시론 강의(방문교수). 시집  출간.            멕시코의 P. 네루다 기념 시축제에 참가(아시아 대표로 시낭송).   2000년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평양 방문(정상회담 참여).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만찬장에서 장시  낭송.        8월 뉴욕 UN세계평화정상회의 참가.(총회장에서  낭송.)        9월 스웨덴 스톡홀름대 동양학과 주최 한국문학 포럼에 참가.            시집 ,  출간.   2001년 유네스코  개최. 유네스코 세계시 아카데미 창립회원(한국대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시론 강의. 시집 , 신선집, 신작시집, 산문집 간행.   2002년 4월 프라하 작가 축제 참가. 마드리드 고은 시낭송회.           시집 ,  출간.   2003년 프랑스 파리 제7대학 동양학연구소 주최, 아시아 축제에서 강연 및 시낭송.            일본 도쿄 국제 도서전의 한일 지식인 포럼에서 기조연설.            제3회 베를린 문학제에 초대받아 강연 및 시낭송.   2004년 한국문학평화포럼 회장.            오페라 대본  집필.  출간. 단재상 수상.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제1회 한이문학포럼에서 강연 및 시낭송.   2005년 분단이후 최초의 한국어 공동사전 편찬을 위한  상임위원장 취임.            장편 판소리 대본  집필.            독일, 노르웨이 등에서 강연, 시낭송 등 참여.            노르웨이의 유일한 문화훈장인 뵨슨 문화훈장 수상.   2006년 백두산에서 남북작가 300여명이 참가한 문학축제에 남측 대회장으로 시낭송.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에서 강연 및 시낭송.            스웨덴에서 시카다상(문학상) 수상.        , 시집  출간.   2007년 몽고, 홍콩, 스페인, 일본 등에서 강연 및 시낭송.           서울대 초빙교수, 영랑문학상 수상,           한러문학제, 한중문학제에서 강연 및 시낭송.        , 시집  출간.   2008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아시아문학제에서 시낭송과 대담.           영국 런던의 한국문화원 주최 첫 문화행사로 시낭송회 개최.           유심문학상. 예술원상 수상. 캐나다 코론토에서 그리핀 문학상, 평생공로상 수상.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만해국제문학제 대회장으로 기조연설.           시인 등단 50주년 기념시집  출판   2009년 마키즈 명사 사전(Marquis Who‘s Who)에 등재.            산문집  출간.   2010년 4월 9일 연작시편  전 30권(4,100편 수록) 완간.   --------------------------------------------------------------------------------   179. 문의마을에 가서 / 고은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고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다다른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어느 죽음만큼 이 세상의 길이 아득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小白山脈)쪽으로 뻗어간다. 그러나 구비구비 삶은 길을 에돌아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고 서서 견디노라. 먼 산이 너무 가깝다.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무덤으로 받는 것을. 끝까지 참은 뒤 죽음은 이 세상의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지난 여름의 부용꽃인 듯 어쩌면 가장 겸허한 정의인 듯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은 다음 우리 모두 다 덮을 수 있겠느냐.   * 충청북도 청원군의 한 마을. 지금은 대청댐으로 수몰되었다.     고은 시집  중에서    
976    시인들이여, 상상은 우주 너머 맘껏 펼쳐라... 댓글:  조회:4253  추천:0  2016-01-10
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방법  고재종 범속한 사물과 일상 속에서 생의 의미를 들여다보고자 갈망하는 이들이야말로 시인이다. 그들은 이 겨울 산야에서도 상고대며 설화며 인동초며 동백꽃 등 갖가지 꽃들이 風光 속에서 눈부시게 명멸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가만히 시를 기원한다. 세상의 외진 한 귀퉁이를 여리게나마 밝히는 등불 같은 시도 기원한다. 그것들은 시인의 삶의 절절한 체험 속에서만 탄생한다. 그러나 아무리 절절한 삶의 체험이라도 그것이 상상력을 통한 시적 체험으로 올라서지 않는 한 우리는 그러한 시들에서 삶의 의미와 꿈은커녕 일상의 지루한 설명만 듣게 되는 것이다.  우선 다음 상상력의 기본을 잘 구사한 시 두 편을 보자.  (0) 재로 지어진 옷 - 나희덕  흰나비가 소매도 걷지 않고  봄비를 건너간다  비를 맞으며 맞지 않으며  그 고요한 날갯짓 속에는  보이지 않는 격렬함이 깃들어 있어  날개를 둘러싼 고운 가루가  천 배나 무거운 빗방울을 튕겨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날개는 몸을 태우고 남은 재이니  제 마음 몇 배의 돌덩이를 굴려 올리면서도  걸음이 가볍고 가벼운 저 사람  슬픔을 물리치는 힘 고요해  봄비 건너는 나비처럼 고요해  비를 건너가면서 마른 발자국을 남기는  그는 남몰래 가졌을까  옷 한 벌, 흰 재로 지어진  흰 재로 지어진 옷 한 벌을 남몰래 가진 사람은 비를 건너가면서도 마른 발자국을 남긴다. 소매도 걷지 않고 봄비를 건너가는 나비의 고요한 날갯짓 속에는 사실 얼마나 격렬한 삶의 욕망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날개를 둘러싼 고운 가루가 천배나 무거운 빗방울을 퉁겨내면서 비를 맞으며 비를 맞지 않으며 가는 나비! 그 나비는 제 마음 몇 배의 돌을 굴리면서도 걸음이 가볍고 가벼운 사람과 같다. 봄비 건너는 나비처럼 무거운 슬픔을 물리치는 힘도 고요히 간직한 사람이다. 한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모든 날개는 몸을 태우고 남은 재인 것처럼 그 사람도 이미 흰 재로 지어진 옷 한 벌을 남몰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결국 재 혹은 흰 재인데, 이건 삶의 허무나 혹은 어떤 큰 지혜를 가르키는 바, 그런 걸 소유한 사람은 역시 남보다 몇 배의 무거운 돌멩이를 굴리면서도 나비처럼 고요하고 가볍게 한 세상을 건널 수 있지 않겠는가. 참으로 빗속의 나비날개와 흰 재와 그것을 무욕의 사람과 연결시키는 상상력이 놀라울 뿐이다.  (0) 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 문인수  지리산 앉고  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  저녁노을 시뻘건 것 물에 씻고 나서  저 달, 소리북 하나도 중천 높이 걸린다.  산이 무겁게, 발원의 사내가 다시 어둑어둑  고쳐 눌러앉는다.  이 미친 향기의 북채는 어디 숨어 춤추나  매화 폭발 자욱한 그 아래를 봐라  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다.  이 시는 강가에서 북을 치며 판소리가락을 내뽑는 사람의 모습을 일단 표현한 것인데, 그 소리꾼은 지리산으로, 북은 중천의 보름달로, 터져 나오는 노래는 섬진강 긴 자락으로, 그 노래의 한은 시뻘건 저녁놀로, 북채는 폭발하는 매화 향기로, 그리고 선혈의 난타는 뚝뚝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로 상상을 한 시로 가히 우주적이다. 상상력의 전범을 보여준 시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 모두 상상력을 잘 구사할 수 있게 하는 몇 가지 시적 전략을 생각해 보자.  1. 발견 그 새로운 눈 발견이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발명과 달리 고작해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수많은 삶의 편린들 속에서 시가 될 수 있는 특정한 편린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뒤샹이란 화가가 있다. 그는 한 전시회에서 수세식 변기를 그대로 전시장으로 옮겨 놓고는 그것을 이라고 이름 붙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 작품을 두고 사람들은 숱한 입방아를 찧었다. 더러는 예술을 모독한 것이라고, 어찌 변기를 이 신성한 예술 전시의 공간으로 끌어들였느냐면서 당장 철거하라고 발광을 했다. 더러는 천재적인 예술가의 등장으로 예술의 영역이 한없이 확장될 것이라고 조심스런 전망을 내리기도 했다. 더러는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은 결코 선을 긋듯이 명확한 것이 아니며, 다만 예술이란 제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면 모든 것이 예술임을 피력하기도 했을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음 시를 보자.  (1) 숙자는 남편이 야속해 - 황지우  길중은 밤늦게 돌아온 숙자  에게 핀잔을 주는데, 숙자는  하루종일 고생한 수고도 몰  라주는 남편이 야속해 화가  났다. 혜옥은 조카 창연이  은미를 따르는 것을 보고 명  섭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모는 명섭과  은미의 초라한 생활이 안쓰  러워…  어느 날 나는 친구집엘 놀러  갔는데 친구는 없고 친구 누  나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친  구 누나의 벌어진 가랑이를  보자 나는 xx가 꼴렸다. 그  래서 나는…  (2) 掌篇 - 김종삼  작년 1월 7일  나는 형 종문이가 위독하다는 전달을 받았다  추운 새벽이었다  골목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허술한 차림의 사람이 다가왔다  한미병원을 찾는다고 했다  그 병원에서 두 딸아이가 죽었다고 했다  부여에서 왔다고 한다  연탄가스 중독이라고 한다  나이는 스물둘, 열아홉  함께 가며 주고받은 몇 마디였다  시체실 불이 켜져 있었다  관리실에서 성명들을 확인하였다  어서 들어가보라고 한즉  조금 있다가 본다고 하였다  시 (1)은 (하오 9시 45분)라는 부제가 달려있는데 말할 것도 없이 이 시의 전반부는 신문의 TV프로 안내에 있는 프로그램 소개문이다. 그리고 후반부는 공중변소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질 낙서이다. 시인은 이 두 가지 글을 빌려와 나열해놓았을 뿐 시인 자신의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두 종류의 글이 어떤 시적 연관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이 시의 의미는 무엇인가? 시인은 앞의 글과 뒤의 글이 같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결국 저질연속극을 신랄하게 야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의 소재 자체는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체험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발견적 상상력이라는 엄격한 시선이 이 시를 관장하고 있고, 또한 그 밑에 시대상황 혹은 시대정신에 대한 주제의식이 치열하게 깔려 있어 시로서 성공한 것이다. 사실 이 시는 어떤 의미에서 시의 폭력이다. 시인과 독자가 맺은 약속의 공간을 과감하게 일탈해버린 시라고 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면책은 오로지 시적 진실로서만 가능하다.  시 (2)는 매우 드라이한 시이다. 형 종문에 대한 병문안을 가다가 추운 새벽 골목길에서 만난 허술한 차림의 사람을 만나 병원까지 가다가 들은 이야기를 시적 주체의 그 어떠한 반응도 생략한 채 간략하게 기록했을 뿐인 시이다. 그러나 그 시적 내용은 천둥벼락이라도 쳐서 무너져 내릴 듯한 것이다. 꽃다운 나이에 공장에 다니다가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죽은 두 딸을 찾아가는 아버지의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할 것인가. 그 내용의 참담함을 시적 주체가 아무리 긴절한 언어로 표현한다 해도 미치지 못할 것임을 시인은 잘 알기에 오히려 간략한 사실기록 형식을 취했을 것이다. 더구나 끝의 두 행, 곧 “어서 들어가보라고 한즉/ 조금 있다가 본다고 하였다”라는 함축적인 표현을 통해 그 아비의 끝없이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는데 어쩌면 이 시는 바로 위 두 행 때문에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 시도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상의 체험을 시로 옮긴 것인데 바로 시의 끝 두 행의 예리한 발견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사실 발견적 상상력은 소재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한편의 문학작품을 읽을 때 독자들은 일정한 前理解을 갖게 마련이다. 전이해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전이해란 일종의 선입견으로, 동시대의 삶의 상황과, 시와 시인에 대한 기대 그리고 언어지식, 자신의 인생관 등등이 얼크러져 있는 인식의 배경이다. 한편의 시를 읽을 때 그 시에 대한 전이해가 중요한 해석의 수단이 된다. 그러나 전이해가 그대로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작품 속의 구체적 사실들의 의미를 전이해를 통하여 해명하지만, 그 부분들은 다시 이해의 틀을 수정한다. 즉, 전체의 의미는 부분들의 의미를 밝혀주지만 그 부분들의 의미는 다시 전체의 의미를 변환시킨다. 그러므로 독자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전이해에 아무런 변화를 요구할 수 없는 시는 새로움이 없는 시다.   =================================================================   177. 그리스도 폴의 강 24 / 구상                                           그리스도 폴의 강 24                                  구상   오늘 마주하는 이 강은 어제의 그 강이 아니다.   내일 맞이할 강은 오늘의 이 강이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 강과 새사람을 만나면서 옛 강과 옛사람을 만나는 착각을 한다.     구상 연작시  중에서  
975    詩작법 빵쭉쭉... 댓글:  조회:4467  추천:0  2016-01-10
시적 화자는 반드시 체험적 자신이어야 하는가     윤석산     당신의 시 속에는 이 등장합니까, 이 등장합니까?  피이, 그것도 질문이라고 하느냐구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체면을 봐서 그냥 대답해 보세요.  시인 자신을 등장 시킨다구요? 히히히…. 땡입니다. 만일 이제까지 그런 방식으로 써왔다면 고급 독자들로부터 낡았다고 외면을 당했어도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서정 장르는 화자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탄생된 장르이고, 그래서 을 채택하고, 모든 사람들이 시인을 등장시키는 장르라고 믿어 왔으니까 말입니다.  이와 같은 서정 장르에 의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현대로 접어들어서부터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의 작품도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결코 작가 자신이 등장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 문제를 좀 더 정확히 알아보려면 먼저 일상적 담화의 구조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을 출발시킨 사람 중 한 사람인 야콥슨(R. Jakobson)에 의하면, 일상적 담화는 의 역동적 관계에서 탄생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관계를 문학에 대입시키면 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학적 담화, 특히 이나 는 에 해당하는 속에 작가가 꾸며낸 인물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다시 말해, < 정보> 속에 다시 가 들어있고, 그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고 행동하는 것을 독자가 엿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를 좀 더 알기 쉽게 그리면 다음과 같이 그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정 장르도 등장 인물이 제한되고, 청자는 그냥 듣기만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날 뿐, 마찬가지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낡았다고 치부하는 김소월(金素月)의 [진달래꽃]만 해도 그렇습니다. 김소월은 남자 시인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싫어 떠나는 님에게 꽃을 뿌릴 테니 '사뿐히 즈려 밟고' 가라고 애원하는 여성화자(女性話者)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아니, '내 님이 그리워 밤 늦게 울며 쏘다닙니다'라는 고려 시대의 [정과정곡(鄭瓜亭曲)]도, 임금님을 님으로 비유한 조선 시대 정철(鄭徹)의 [사미인곡(思美人曲)]과 [속미인곡(續美人曲)]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문학의 3대 장르인 시·소설·희곡 등은 를 채택하고, 작품 속에 다시 가 들어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작품 속의 화자를 완전한 허구(虛構)의 산물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리고 작가 자신이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교술적 장르도 정도 차이가 날 뿐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하여 꾸며 쓴다 해도 결국 작가의 경험을 재구(再構)한 것에 불과하고, 사실대로 쓰려 해도 그 작품의 목적과 구조에 맞추어 수정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실대로 쓴다고 믿는 일기(日記)를 살펴보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기를 쓸 때에는 그 당시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들도 그렇게 생각한 것처럼 부분적으로 꾸미고, 어떤 부분을 강조하거나 약화시킵니다. 따라서 문학 작품 속의 화자는 시인 자신의 반영도 아니고, 허구적 존재도 아닌 의 절충적 존재(折衷的存在)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론일 뿐, 을 내세운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무엇이 그리 잘못되었냐구요? 네에, 그건 제가 질문하려 했던 건데, 독자들이 먼저 하셨으니 대답할 수밖에 없군요. 우선 시인 자신이 작품 속에 등장한다고 믿으면 화제를 제한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가 경험한 것이 아니면 작품으로 쓸 수 없을 뿐더러 자신을 등장시키면 자신을 돋보이도록 만들고 싶어하는 심리 때문에 고상하고, 우아하고, 진지하고, 영웅적인 화제만 택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작품 전체를 통일시키기 어려워진다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도 남의 이야기처럼 하면 훨씬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왕 꾸미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물론, 거리와 어조, 어법, 어휘까지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허구적 화자를 택할 경우 자전적 화자를 택할 때보다 의미적 국면에서부터 조직적 국면에 이르기까지 훨씬 유기적인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머뭇거리다가는 여러분들이 다시 질문하실 테니, 먼저 질문하겠습니다. 자아, 받아보세요. 뿅!  □당신은 를 설정할 때 무얼 먼저 염두에 두십니까?  '그냥 대충…'이라구요? 그러시겠지요. 작품 속에 자신이 등장해야 한다고만 믿어 왔으니까.  제일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자기가 쓰려는 작품의 주제에 적합한 인물의 ··입니다. 어떤 계층의 인물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화제는 물론 시적 공간·어조·시어· 시의 형태 등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가령 시골 여자 어린이로 정했다고 합시다. 이런 화자를 선택하면, 성이라든지 폭력 같은 화제는 다룰 수 없습니다. 소설의 경우이긴 하지만, 주요섭(朱耀燮)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만 해도 그렇습니다. '옥희'라는 어린 여자 아이를 등장시켰기 때문에 어머니가 사랑방 손님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빨개지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입니다. 다른 요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먼저 유의해야 할 것은 화자의 성(性)입니다. 성에 따라 지켜야 할 화자의 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시의 의미적 국면  ⅰ) 화자의 태도와 정서 : 남성화자를 등장시키면 대상으로부터 독립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이성적(理性的) 능동적(能動的)으로 대응하는 태도를, 여성화자를 등장시키면 대상과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보살핌의 원리로 감성적(感性的) 수동적(受動的)으로 대응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ⅱ) 화제의 성격 : 남성화자를 등장시키면 국가 사회 윤리 같은 공적(公的) 추상적(抽象的) 화제를, 여성화자를 등장시키면 이별 사랑 아름다움 같은 사적(私的) 구체적(具體的) 화제를 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② 시의 형식적 국면  ⅰ) 시형과 율격 : 남성화자를 등장시키면 상대적이지만 자유율(自由律)의 경우 자유분방한 시형을, 여성화자를 등장시키면 정제된 시형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정형율(定型律)의 경우우 남성화자는 4음보처럼 균형적(均衡的)이며 대응적(對應的)인 음보를, 여성화자는 3음보처럼 가변적(可變的)이며 대응된 짝이 없는 음보를 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ⅱ) 음성 조직 : 남성화자를 택하면 기능적이고 소박한 음성을, 여성화자를 택하면 섬세하고 장식적인 음성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물론,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여성 독자들은 상당히 불만스러워할지 모르겠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여성주의자들이 남성중심주의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다고 해서 반대해온 프로이드(S. Freud)와 융(C. G Jung)의 분석심리학(分析心理學)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석심리학만 참조한 게 아닙니다. 남성화자의 '대상으로부터 독립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라는 조건이나, 여성화자의 '대상과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보살핌의 원리'로 행동한다는 조건은 길리건(C. Gilligan)을 비롯한 여성 심리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좀더 생각해보면 여성심리학자들의 주장은 같은 특징을 달리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대상으로부터 독립하여 옳고 그름을 따질 경우에는 능동적이고 이성적일 수밖에 없으며, 관계를 중시하고 관계되는 것들을 아낄 경우에는 자연히 수동적이고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배우자의 바람에 대한 반응을 가지고 생각해봅시다. 남자든 여자든 그런 기미를 눈치채면 분노하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 와이셔츠 깃에 묻은 루즈 자욱을 보고도 용서하는 것은 내가 이혼하면 어린 자식들은 누가 돌보나, 친정 어머니는 얼마나 상심하실까, 친구들이 뭐라고 수군댈까를 생각해서 참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타자와의 관계를 생각하고, 그들에 대한 '보살핌의 윤리(ethic of care)'로 행동하기 때문에 참는 것입니다. 그리고, 맨 날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 아내의 늦은 귀가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잘못은 돌아보지 못하고 아내의 일이 옳은가 그른 가만 따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차(性差) 무시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차이를 인정하되 나름의 가치를 지녔다고 받아들이는 의식구조가 더 중요합니다.  다시 본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작품 속의 화자는 이와 같은 성적 특질을 그대로 반영해야 자연스러워집니다. 그것은 다음 김소월의 작품들을 비교해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 [진달래꽃] 1, 2연  ⓑ마소의 무리와 사람들은 돌아들고, 적적(寂寂)히 빈 들에  엉머구리 소리 우거져라.  푸른 하늘은 더욱 낮춰, 먼 산(山) 비탈길 어둔데  우뚝우뚝한 드높은 나무, 잘 새도 깃들어라.  볼수록 넓은 벌의  물빛을 물끄러미 드려다 보며  고개 수그리고 박은 듯이 홀로 서서  긴 한숨을 짓느냐. 왜 이다지!  - [저녁 때] 1.2연  ⓐ는 상대가 '님'인 점으로 미루어 여성화자로, ⓑ는 '-어라'와 같은 남성적 어미를 택한 점으로 미루어 남성화자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고, 시인 자신이 골라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한 작품인데도 전혀 다른 특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화제를 살펴보면, ⓐ는 개인적인 사랑을 다루는 반면에, ⓑ는 일제(日帝)의 토지 수탈 정책에 의해 농토를 빼앗긴 농민의 문제인 공적·사회적 화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는 님이 떠나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변함없는 사랑을 다짐하는 반면에, ⓑ는 한숨을 지으며 물끄러미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 땅을 빼앗긴 것이 과연 정당한가 따지려 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앞에서 지적한 특징 그대로 들어맞고 있지요? 그리고, 형식과 율격 면에도 역시 달라지고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가 4연시지만, ⓐ는 하나의 율행(律行)을 2개의 층량(層量) 3보격으로 나누고, 2개의 율행(律行)을 한 연으로 구성하여 정형성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반면에, ⓑ는 각행이 2음보(音步)에서 6음보 사이를 불규칙하게 넘나들면서 자유시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 대응(對應)되는 짝이 없는 3보격을 규칙적으로 택한 것은 여성의 가변적(可變的)이면서도 정제된 정서를 나타내기 위해서이며, ⓑ가 자유시 형식을 택한 것은 남성의 자유분방하면서도 격렬한 정서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이런 차이는 시어와 통사 구조(統辭構造)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에서 화자의 행위와 정서를 잘 드러내는 문장성분은 서술어(敍述語)입니다. 이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는 전(轉)의 '가시옵소서'를 제외하고 '보내드리우리다'·'뿌리우리다'·'흘리우리다'와 같은 극존칭(極尊稱) 종결어미와 음성모음 및 활음조 현상(euphony)이 우세한 시어들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술어를 수식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는 '-져라'·'-어라'·'-느냐'와 같은 오연(傲然)한 어미와 투박하고도 실용적인 어휘들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푸른 하늘은 더욱 낮춰, 먼 산 비탈길 어둔데/우뚝우뚝한 드높은 나무, 잘 새도 깃들어라'와 같이 행 가운데 쉼표를 찍고, '긴 한숨을 짓느냐. 왜 이다지!' 같은 구절에서는 도치법(倒置法)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 극존칭 어미를 선택한 것은 청자(님)가 화자(나)보다 상위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음성모음이 우세한 어휘를 선택한 것은 화자의 서럽고도 어두운 심정을 반영하기 위해서이며, 활음조 현상이 일어나기 쉬운 어휘를 선택하고 통사 구조를 정제시킨 것은 이별의 순간에도 아름답게 보이려는 여성적 태도를 반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가 거친 문장과 실용적인 어미를 택한 것은 남성화자의 자유 분방한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작품은 화자에 따라 의미적 국면에서부터 조직적 국면에 이르기까지 모두 조정됩니다. 그러므로, 각 유형의 화자가 어떤 기능을 지니고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그리고 화자에 맞춰 모든 것을 조정할 수 없다면 결코 좋은 시인이 될 수 없습니다.  자아, 이번 문제는 좀 까다운 질문을 해볼까요? 준비하시고, 받아보세요. 쾅!  □당신이 채택한 화자는 언제나 명백하고 단정하게 말합니까, 아니면 때때로 흐트러지는 수도 있습니까?  그야 명백하고 군더더기 없이 써야 되는 게 아니냐구요? 땡, 땡, 땡. 또 틀렸습니다. 그럼 달리 여쭤보겠습니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깨뜨렸다고 합시다. 그래서 '누가 깨뜨렸어?'하고 고함치자,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큰 소리로 '제가 깨뜨렸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기막히겠지요? 또 정말로 좋아하는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한다고 합시다. 논리 정연하게, 그리고 청산유수격으로 이야기하면 오히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요?  말은 아무 때나 명백하게 하는 게 아닙니다. 때로는 군더더기가 있고, 더듬는 게 더 진실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시 속의 화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앰프슨(W. Empson)의 '다의성(ambiguity)의 이론'에 의해 비로소 논리화된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작품이 우수한 작품이고, 서정 장르는 장르 자체가 그런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시의 기본 어법인 비유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녀는 아름답다'라는 말을 '꽃'이나 다른 것으로 치환(置換)하여 얼른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왜 사람을 식물의 기관인 꽃으로 비유했는가를 생각하고, 여자의 아름다움, 연약함,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생식성(生殖性) 등을 떠올릴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여자가 아름답다고 아무리 직접 이야기한들 독자는 예사로 들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동화(automatic)'되어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비유를 통해 낯설게 하기(defamilarization)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우선 명백히 말하지 않아야 할 경우는 두 가지를 상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화자가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감성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청자가 화자보다 상위라서 직설적으로 말하면 역효과가 나타나리라는 판단에서 속셈을 감추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럴 이 경우 화자가 겉으로 말하는 와 로 분열됩니다. 그리고, 역설(pardox)나 반어(irony)의 어법을 채택합니다.  앞에서 인용한 [진달래꽃]의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보내고 싶어 보낸다는 게 아닙니다. 떠나려는 님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라고 역설적으로 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3연에서는 꽃을 뿌릴 테니 '밟고' 가라고 한 것으로 미뤄어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자기가 버린 여자가 뿌리는 꽃을 밟고 갑니까? 그러니까, 표층적 화자는 가라고 했지만, 심층적 화자는 가지 말라는 게 이 작품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보내겠다고 말했지만 자신도 보낼 수 없고, 가겠다고 하지만 님도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그렇게 말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말했다면, 이 작품은 아이러니 어법을 채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역시 표층과 심층의 화자는 분리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이 작품은 이렇게만 해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무수하게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번 이제까지 다른 사람들이 해석한 것과 제 나름대로 해석한 것을 열거해 볼까요?  ⑴내가 이토록 사랑하는데도 떠날 수 있느냐는 고도 수법의 만류.  ⑵'진달래꽃'이 화자 자신의 상징물이라고 할 때, 나를 밟고 가라는 뜻으로 절대 못 보내겠다는 반어적 표현.  ⑶내가 싫어 떠난다면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죽어도 안 붙잡겠다는 프로이트 식의 오기(傲氣) 또는 실언(失言).  ⑷화자가 님이 없는 사람이라면, 나는 싫다고 떠날 때 꽃까지 뿌려 줄 정도로 착한 사람인데 왜 날 사랑하는 사람이 없느냐는 자기 선전.  ⑸떠날 때는 막지 않을 테니 함께 있는 동안만은 마음놓고 사랑해 달라는 현실주의적 책략.  ⑹떠날 때 깨끗이 보냄으로써 잊지 못하여 되돌아오게 만들겠다는 [가시리]식 계산.  ⑺남녀간의 사랑은 한번 깨지면 아무리 울며 매달려도 회복되지 않으니 차라리 깨끗이 보내자는 체념.  ⑻어쩌면 발생할지도 모르는 미래의 이별할 때의 가정해본 자기 태도.  ⑼이별은 꿈도 꾸지 않으면서 만발한 진달래꽃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을 순순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사랑의 표현.  ⑽여성의 무의식 속에 숨겨진 피학적 욕구.  시를 읽는 재미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구절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완성하는 데 있습니다. 명백한 시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지만, 모호한 시는 자기 나름대로 상상력을 발휘하고 완성하는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명백한 시가 좋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명백하게 전달하여 설득하려는 시인의 욕심일 뿐, 독자나 문학적인 입장에서는 결코 상찬할 만한 게 못됩니다.  군더더기가 끼어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일 경우는 화자가 격정에 빠졌을 때입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논리 정연하게 말하던 사람도 다급하거나 격정에 빠지면 횡설수설하고 어법에 맞지 않게 말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시적 담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행과 연을 비슷한 길이로 나누고 표준적인 어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화자가 격정에 빠졌을 때에는 형식이 흐트러지고 어법에 어긋나게 표현해야 더 실감이 납니다.  라이트(G. T. Wright)는 이와 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정상적 정서 상태의 화자는 , 격정에 빠졌을 때의 화자는 로 나누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의 실수로 나타나는 문장의 혼란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작품의 첫머리부터 원시화자를 등장시키는 것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먼저 문명화자를 등장시키고, 정서가 격앙하는 과정을 그려 준 다음, 원시화자를 등장시키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담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에서 원시화자를 구사하여 성공한 예로는 서정주(徐廷柱)의 초기시 가운데 [화사(花蛇)]를 비롯한 몇 편을 들 수 있습니다. 좀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니 번호를 붙여가며 인용해 볼까요?  ⓐ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 아름다운 베암…  ⓒ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 꽃다님 같다.  ⓔ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 소리 잃은 채 낼룽그리는 붉은 아가리로  ⓖ 푸른 하눌이다…물어뜯어라, 원통히 무러뜯어,  ⓗ 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麝香) 방초(芳草)ㅅ길  ⓙ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 우리 할아버지의 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 석유(石油) 먹은 듯…석유(石油) 먹은 듯…가쁜 숨결이야  ⓜ 바늘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슴여라! 베암.  ⓞ 우리 순네는 스믈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슴여라! 베암.  ⓐ에서 ⓓ까지는 문명화자의 발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터는 갑자기 기독교 신화인 에덴 동산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결합도 일상적 감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원시화자의 발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곱다'의 보조관념으로 동원한 '피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이나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만 해도 그렇습니다. 피먹은 입술은 징그럽고, 고양이 같은 입술은 야옹하고 할퀼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아름답다는 의미를 보조하기 위해 차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뱀을 무슨 헝겊처럼 바늘에 꼬여 두르고 싶어하며(ⓜ), 액체처럼 입술로 스며들라고 명령하는 것(ⓝ,ⓞ) 역시 비논리적입니다. 이와 같이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폭력적(暴力的)으로 결합한 것은 화자의 정서 상태가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유사성 여부를 따질 만큼 이성적인 상태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통사 구조 역시 뒤틀린 상태입니다. '너희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 내던 달변의 혓바닥(ⓔ)'이라는 구절 뒤에는 그 상태가 든지, 라는 서술부(敍述部)가 와야 합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소리를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푸른 하늘이다…물어뜯어라, 원통히 무러뜯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ㅅ길/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이라는 구절 뒤에는 무엇 때문이라는 이유가 와야 하는 데 '석유 먹은 듯…석유 먹은 듯…가쁜 숨결이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연이나 행의 배치에서도 혼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서 ⓓ까지는 각 행을 완결된 의미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터는 한 연을 하나의 문장으로 짜는가 하면, 한 행의 길이를 2음보에서부터 7음보까지 불규칙하게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화자의 정서가 적당한 단위로 의미를 분절할 만큼 이성적 상태가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에서 ⓓ까지는 이성적인 문명화자가 지배하고, ⓔ에서 ⓜ까지는 원시화자가 등장하기 시작하며, ⓝ 이후는 완전히 원시화자가 지배하는 곳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시적 담화는 적절한 비유와 완전하고 매끄러운 문장만이 시의 주무기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아어(雅語)와 율문(律文) 중심의 고전적 시어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서, 상황에 따라 군더더기를 남겨두고 흐트러트릴 수 있어야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방식을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는 저 자신조차도 매끈하게 다듬는 습관이 있어 항상 작픔을 자신도 모르게 다듬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질문 하나만 더 하고 이번 호는 마칠까요? 장진했습니다. 받으세요. 빵!  □당신은 현대시에 주로 채택되는 화자가 어떤 유형이며, 이들의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논의한 화자의 유형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건 제가 정리해 드릴 테니 답변을 준비해 두세요.  시인과 관계에 따른 유형 :   신분에 따른 유형 : < 상위-하위>, , ,   담화의 담당 층위에 따른 유형 :   정서 상태에 따른 유형 :   글쎄요, 잘 모르시겠다구요? 화자의 변천사(變遷史)를 살펴보면, 시인과 화자 관계의 경우 인 에서 출발하여 인 쪽으로 이동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바뀐 것은 문학 작품을 자아의 표현으로 보던 고전적 관점이 오락성이나 미적 탐구 쪽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신분을 살펴보면 으로, 성은 으로 이동해 왔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쪽으로 하강해 왔다는 프라이(N. Frye)의 지적이나, 고대로 올라갈수록 남성 시인이 여성화자를 택하여 노래하는 작품이 드문 반면에 현대시로 내려올수록 여성화자를 빌어 노래하는 작품이 늘어가는 점을 미루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하강 현상은 모든 장르에 나타나는 것으로서, 사실감(reality)을 강화시키기 위한 노력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에 따른 이동 방향은 리얼리즘의 강화라는 이유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남성이 이성적이고 여성이 감성적이라고 할 때, 리얼리즘은 이성주의를 배경으로 탄생되는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일부에서는 현대시의 여성화 경향을 한국 문학에는 여성화의 전통이 있었고, 그것이 현대에 재현되고 있다든가, 일제(日帝)의 강압적인 파시즘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소극적 여성주의(女性主義)를 택한 것이 체질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 문학에만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세계 각국의 시들이 대체적으로 여성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다 보편적인 현상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의 발달에 원인을 찾는 게 보다 타당할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기초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재화(財貨)를 소비하던 것이 자기의 사회적 신분을 표시한 로 바뀌고, 그로 인해 실용성(實用性)이나 기능성(機能性)보다 장식성(裝飾性)과 세공성(細工性)을 중시하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남성적 특질인 사상과 교훈보다 정서와 섬세함을 강조하는 여성 화자 중심의 작품이 증가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편 화자의 분열 방향은 아이러니를 중시하는 낭만주의 시대부터 로, 초현실주의 시가 등장한 뒤부터 와 쪽으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적 인물의 이동 방향은 전인성(全人性)을 상실하고 비인간화(非人間化) 내지 해체화(解體化) 쪽으로 진행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이동의 원인은 더 이상 진로가 막힌 리얼리즘 문학이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 의식의 밑바닥에 숨겨진 인간상을 등장시키는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한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하여 문학사 속에서 독자적 위치를 확보하려는 작가들에 의해 가속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해체 작업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문학작품이 사회보다 앞서 인간성을 해체하는 것은 문학의 본래 목적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독자와 작가의 관계를 파괴하고, 자아와 사회의 해체를 촉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미 변해버린 독자의 감수성을 무시하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현대 시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전자아(全自我)를 대변할 수 있는, 그러니까 의식과 무의식, 이성과 감성, 도덕과 욕망 등을 모두 대변할 수 있는 화자를 발견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   175. 기도 / 구상                         기도                                            구상   저들은 저들이 하는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들도 이들이 하는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눈먼 싸움에서 우리를 건져 주소서.   두 이레 강아지 눈만큼이라도 마음의 눈을 뜨게 하소서.     구상 시집  중에서                     ------ 176. 하루 - 강 20 / 구상                                하루 ― 강 20                                                    구상   오늘도 신비(神秘)의 샘인 하루를 구정물로 살았다.   오물과 폐수로 찬 나의 암거(暗渠) 속에서 그 청렬(淸冽)한 수정(水精)들은 거품을 물고 죽어 갔다.   진창 반죽이 된 시간의 무덤! 한 가닥 눈물만이 하수구를 빠져나와 이 또한 연탄빛 강에 합류한다.   일월(日月)도 제 빛을 잃고 은총의 꽃을 피운 사물들도 이지러진 모습으로 조응(照應)한다.   나의 현존(現存)과 그 의미가 저 바다에 흘러들어 영원한 푸름을 되찾을 그날은 언제일까?     구상 시집  중에서      
974    시인들이여, - 시를 재미있게 쓰라... 댓글:  조회:5523  추천:0  2016-01-10
재미 있는 시를 찾아서 - 이승하     재미가 없는 시가 너무 많다. 내가 맛보고 싶은 시의 재미는 'interest'가 아니라 'fineness'에 가깝다. 시를 읽을 때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공감이나 감동이 있을 수 있고, 참신함이나 산뜻함을 들 수도 있다. 시인의 상상력이 재미를 주기도 하고 '깨달음', '놀람', '괴로움' 등이 뜻밖의 재미를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계간지와 문예지 3, 4월호 20여 권을 쌓아놓고 읽어도 재미있는 시가 그리 많지 않다. 개성이나마 있으면 읽을 맛이 있을 텐데, 참 많은 시가 이름을 가리고 읽는다면 시인의 이름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개성이 없다. 봄이어서 그런지 천편일률적인 봄 노래가 아직도 즐비하다.  서양의 미학에서 미적 범주(aesthetic categories)를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순정미·우아미·숭고미·비장미·골계미·추(醜)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우리 문학은 특히 골계미의 전통이 강하였다. 한(恨)이란 것은 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개념이 아닌가 한다. [흥부전] [장끼전] 같은 산문은 차치하고라도 [귀지가] 같은 고대가요, [서동요] [처용가] 같은 향가, [쌍화점] [이상곡] [만전춘] 같은 고려가요, 그리고 조선조의 수많은 사설시조에는 골계미가 풍성하였다. 골계미를 발휘하는 시는 대개의 경우, 성적 담론을 담고 있다. 풍자시의 대가 송욱·전영경·김지하는 물론이거니와 80년대의 박남철·황지우·장정일·김영승, 90년대의 함민복·유하 등의 시에는 남녀상열지사에 대한 이야기가 거리낌없이 행해져 야릇한 즐거움을 제공하곤 하였다. 그런데 요즈음의 시들은 풍자성이 죽고 서정성이 강해져서인지 별 재미가 없다. 다소나마 재미있는 시를 찾아서 이번 호 계간평을 써볼까 한다.  어떻게 하지? 나 그만 부자가 되고 말았네  대형 냉장고에 가득한 음식  옷장에 걸린 수십 벌의 상표들  사방에 행복은 흔하기도 하지  언제든 부르면 달려오는 자장면  오른발만 살짝 얹으면 굴러가는 자동차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기만 하면  나 어디든 갈 수 있네  나 성공하고 말았네  이제 시만 폐업하면 불행 끝  시 대신 진주목걸이 하나만 사서 걸면 오케이  내 가슴에 피었다 지는 노을과 신록  아침 햇살보다 맑은 눈물  도둑고양이처럼 기어오르던 고독 다 귀찮아  시 파산 선고  행복 벤처 시작할까  그리고 저 캄캄한 도시 속으로  폭탄같이 강렬한 차 하나 몰고  미친 듯이 질주하기만 하면  ―[성공시대] 전문  문정희의 [성공시대]({현대시} 4월호)는 현대인의 욕망 추구가 끝간 데 없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시종일관 빈정거리며 쓴 시이다. 시적 화자가 내지르는 '행복한 비명'은 어디에서 오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할 수 없는 것은 또 무엇인가. 돈만 충분히 가진다면 먹을 것과 입을 것, 부족할 것이 없다. 자동차를 몰고 어디든 놀러가서 "내 가슴에 피었다 지는 노을과 신록"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시인이다. 시만 폐업하면 불행이 끝나고 행복한 나날을 살아갈 수 있지만 시인이기에 그것을 거부한다. "저 캄캄한 도시 속으로/폭탄같이 강렬한 차 하나 몰고/미친 듯이 질주하기만 하면"에 이르면 입가에 머문 미소를 거두게 된다. 도시는 뜻밖에도 밝지 않다. 어둡다. 그 어둠 속으로 미친 듯이 질주하다간 사고가 나게 마련이다. 욕망을 추구하며 무작정 달리다간 대형사고를 맞을 수밖에 없으리란 경고를 시인은 하고 있다. "어떻게 하지? 난 그만 부자가 되고 말았네"라는 재미있는 말로부터 시작된 이 재미있는 시는, 주제의 측면에서는 재미를 따지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심각하다.  집이 전소되고 사람이 죽는 화재 참사는 엄청난 재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을 소재로 하여 물질의 욕정을 그린 시가 시의 재미를 십분 맛보게 한다.  갑작스런 화재로 집이 전소되었다.  화인은 난로의 과열,  아빠는 죽고 엄마는 화상을 입고  단란한 가정은 깨져버렸다.  물질도 때로는 욕정으로 몸부림을 치는 것일까.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자 일순,  본능으로 전율하는 쇠붙이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건드리지 마라  오늘밤 나는 너와 더불어 온몸을  불사를 수도 있다.  전류(電流),  밤마다 정사(情事)를 꿈꾸는  물질의 에로스  ―[욕정] 전문  내가 보건대 오세영의 [욕정]({문학사상} 3월호)은 네 부분으로 분할이 가능하다. 화재 이야기(4행), 물질의 본능에 대한 고찰(4행), 인간의 욕정(3행), 그리고 마지막 3행은 본문 그대로이다. 짧은 시이지만 변화가 무쌍하다. 인간은, 특히 남자는 성적 욕구가 폐경기가 있는 여자보다 더 강하고 더 오래 지속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시인은 인간의 욕정에 대해서가 아니라 물질의 욕정, 물질의 에로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물질이 몸부림치고, 뜨겁게 달아오르고, 온몸을 불사르고, 밤마다 정사를 꿈꾼다. 물질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시인이야말로 언어의 창조주가 아니고 무엇이랴. 시인의 현대적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된 시이며, 짧은 시이지만 긴장감이 늦춰진 행은 하나도 없다.  아침 딱따구리 계곡의 나무를 둥치 큰 나무를 흔드는데  졸면서 마당 쓰는 동자승 바라보고  빙그레 미소 짓는 부처님 살풋한 눈빛  법당의 큰스님 자기 해골 두드리는 소리  산과 계곡으로 퍼져나가  세상의 햇살이 아기 걸음마처럼 화창하다  ―[해골바가지 두드리면 세상이 화창하다] 전문  최동호의 이 시({유심} 2001년 겨울호)에는 부제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가 붙여져 있는데, 같은 부제를 단 시의 편수가 꽤 된다. 이런 부제를 붙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선시의 새 경지를 개척해보려는 것. 둘째는 생과 사, 성과 속, 색과 공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개진해보려는 것. 셋째는 생활 속에서 불심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 아무튼 시의 앞 연에는 사찰의 아침 풍경이 담겨 있다. 졸면서 마당을 쓰는 동자승의 등장도 재미있지만 이 시의 재미는 "법당의 큰스님 자기 해골 두드리는 소리"에 있다. 목탁을 스님의 해골로 상상한 것도 재미있는 요소이고 그 소리가 산과 계곡으로 퍼져나가자 "세상의 햇살이 아기 걸음마처럼 화창하다"는 마지막 행도 그 표현이 무척 재미있다. 시인은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는 동안에도 시간이 가고 있음을 말해주려 한 것일까, 늙음과 죽음이 비극이 아님을 들려주려 한 것일까. 해골에서 나는 소리가 산과 계곡으로 퍼져나가 햇살을 화창하게 한다는 것은 청각적 이미지의 시각적 이미지로의 변환이며, 한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을 낳는다는 인식의 일대 전환이다. 단 6행의 시가 사람의 눈을 부시게 한다. 아기가 나오는 또 한 편의 시가 있다.  아가가 문을 밀고 나오던 날  지구 위에 생명 하나 심은 게 좋아 웃다가  웃음이 눈물이 되는 법 깨달았지요  눈감고도 우유 먹는 게 신기하여  종일 굶은 배가 벌렁벌렁 뛰었구요  배내옷보다도 작은 인형만한 아가  그 쬐끄만 몸은 우주를 채우고도 모자라  제 주먹만한 할미 가슴으로 비집고 오데요  …(중략)…  안개꽃다발보다 짧은 키에서  어쩜 그렇게 깊은 생각이 나오는지  조근조근 귓속말 나눌 때  오므린 입이 졸리운지  입술을 딱 벌리고 하품을 하데요  그때 내 가슴에서 기쁨 한 덩이 탁 터졌지요  꽃망울 하나가 놀라서 피었구요  ―최정애, [아기 되던 날] 부분  이 시는 {시현실} 신인작품상 당선작 5편 가운데 하나이다. 손녀가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보며 신비로움과 기쁨에 휩싸여 쓴 할머니의 시라고 여겨진다. 즉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쓴 생명 예찬이다. 예찬의 대상은 아기만이 아니라 모성도 포함된다. 아기를 낳아보았기에 아기의 마음이 가질 수 있는 사람, 곧 세상의 모든 어머니이다. 이 시는 아기를 낳음으로써 아기의 마음과 몸을 갖게 된 어머니에 대한 예찬이면서 이 세상 모든 신생에 대한 찬양이다. [아기 되던 날]에는 아기가 커 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얼마나 잘 그렸는지 독자는 읽고 있는 동안 아기의 마음이 된다. 티없이 맑은 마음을 가지면서 많이 행복해진다. 아기의 귓속말과 하품이 내 가슴에 기쁨 한 덩이를 터뜨리고, 꽃망울 하나가 그 때문에 놀라서 피어난다는 마지막 처리는 신인답지 않은, 무척 세련된 기법이다.  세상의 모든 아기는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지 않으면 태어나지 않는다. 생명을 순수함의 결정체로 본 최정애의 시각과 달리 원구식은 여성을 회임케 하지 않은 정충, 그 "폐기된 욕망의 찌꺼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시는 몹시 지저분하다. 묘하게도, 지저분한 묘사가 시의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1  정충보다 더러운 곳에 버려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휴지에 싸여 더럽기 그지없는 쓰레기통에,  냄새나는 무책임한 하수구에,  때로는 변기 속에 머리를 처박고  죽음의 유영을 할 것이다.  폐기된 욕망의 찌꺼기는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곳에 버려지는 법!  의심하지 마라,  세상에서 가장 큰 쓰레기통이  그대 머리 위에 있음을.  ―[서울야곡 2002―Ver.3.0] 부분  원구식의 서울 묘사는 이 시({시와 시학} 2002 봄호)의 1번에서 쓰레기통과 하수구와 변기 속에 버려지는 정충에 집중되어 있다. 정충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곳에 버려지고, 버려진 정충은 생명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난자와 결합한 정충의 신세는 그렇지 않다. "따뜻한 양수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난다. "산소를 터뜨려 주는 어머니의 자궁,/골고다의 언덕보다 단단한 골반이/생명을 보장하는 그 곳"에서 생명은 "세상에서 가장 깊은 잠을 잘 수" 있다. 운 좋게 버려지지 않고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자라나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수도 서울에서 꿈틀거리며 사는 우리 시민들. 서울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3  봄비를 맞으면서  정충처럼 남산을 걸어갈 때,  나는 보았다.  하늘 아래 가장 많은 십자가들이 반짝이는 서울의 붉은 밤을. 신생의 아침은 혼돈 속에 오는 것. 세상은 좀더 썩어야 할 것이다. 역사도 사랑도 이데올로기도 좀더 썩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도저히 더 이상 썩을 것이 없을 때, 혼돈의 종결자가 더 이상 두드릴 배신의 뒤통수가 없을 때, 신생의 아침이 정충처럼 꿈틀거리며 서울의 자궁을 두드릴 것이다.  아,  어느 님이 버리셨나.  하루가 천 날 같은,  천 날이 하루 같은, 혼돈의 꽃다발을……  ―[서울야곡 2002―Ver.3.0] 부분  시는 여기에 이르러 반전한다. 신생의 아침은 혼돈 속에 오는 것이므로 이 세상도 역사도 사랑도 이데올로기도 썩어야 할 것은 좀더 썩어야 한다. 썩을 것 다 썩어 더 이상 썩을 것이 없을 때 비로소 "신생의 아침이 정충처럼 꿈틀거리며 서울의 자궁을 두드릴 것"이다. 정충이건 무엇이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이 있어야 거름이 생겨난다. 거름, 즉 새 생명의 자양분이 없이 어떻게 신생의 아침을 구가할 수 있으랴. 버려지는 정충들, 그 혼돈의 꽃다발이 썩었기 때문에 서울은 이렇게 굴러가고 있는 것이리라. 1300만이 산다는 서울, 초스피드와 만성 정체가 엇갈리는 서울에서의 삶이여! 버려진 정충이 아니라,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정사를 재미있게 묘사한 시가 있다.  늘어나는 것이 오디 그뿐이랴 울 엄니 이태가 멀다 실제 배가 불렀다는디, 갈이질에, 새끼들 가동질에, 하루 해가 지는지 가는지 하 정신 없었다는디, 울 아부지 저녁밥 안치는 엄니 그대로 부엌바닥에 자빠뜨린 거라  그 징헌 꽃이 셋째 딸년 나였더란다 첫국밥 수저질이 느슨할 밖에…… 임자 암 걱정 말어 울 아부지 구레나룻 쓰윽 훑었다는디, 스무 날을 넘기자 사랑방 올린다고 밤새 불을 써 놓고 퉁탕퉁탕 엄니 잠을 깨웠드란다 모름지기 사내 자슥 셋은 되야 혀 그때 되믄 계집애들이랑 분별하여 방을 줘야 않겄어!  ―[사랑방] 부분  함순례의 [사랑방]({시와 사람} 2002 봄호)에는 태생의 비밀이 조금도 비밀스럽지 않게 묘사되어 있어 미소를 머금게 된다. 이태가 멀게 배가 불렀던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자궁에 씨를 심었던 아버지의 정사가 "저녁밥 안치는 엄니 그대로 부엌바닥에 자빠뜨린 거라"는 재미있는 표현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아버지는 아들을 셋은 낳아야 한다며 이제 겨우 산후조리를 끝낸 어머니를 깨워 퉁탕퉁탕 또다시 방의 일(房事)을 벌인다. 사랑방을 만들게 된 이유도 재미있다. 딸이 셋이지만 아들이 계속 태어나면 방을 나눠줘야 한다고 사랑방을 만든 아버지의 자식 욕심에는 고소가 머금어진다. 부쳐먹을 땅뙈기 하나 없던 아버지는 적수공권으로 집을 올리고, 방을 늘이고, 자식을 낳고, 전답을 넓혔다. 그 아버지는 "성 안 차는 아들 두 놈 부려놓고" 저승으로 가버리셨다. 시인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그 왕성한 성욕과 자식욕을 비난하는 입장에 서지 않고 기리고 있다. 그랬었다, 농경사회에서 자식은 곧 재산이었고, 자식농사는 인생의 큰 즐거움이었다.  여성의 회임 능력은 초경으로부터 시작된다. 초경―성스럽기도 하고 속되기도 한 것,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한 것. 초경을 맞은 소녀가 있는 데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임시보호텐트이다. 초경의 피를 흘리는데 총성이 울리고, 소녀는 젊음을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숨을 거둔다. 조정인의 [지하드]({리토피아} 2002 봄호)는 신인의 시답게 참신한가? 신인답지 않게 참신한가? 1998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한 그의 첫 시집이 기다려진다.  포인세티아 손톱 만한 속엣것이  이상하다 바닥에 뚝. 선혈처럼 진다  어제 밤새에도 뚝뚝 앳된 꽃잎을 흘려놓더니  초겨울 임시보호텐트 새우잠에서 눈뜬  차도르 속 겁먹은 검은 눈동자 젖어온다  새로 깐 요 홑청을 적시던  초경의 아침은 그렇듯 문득 찾아오질 않던가  오늘 무슬림의 한 소녀 홀로 해 뜨나보다  울컥울컥 꽃잎을 쏟아내다 보다  꽃을 통과하는 한 발 총성  펄럭, 들쳐지는 지구의 속엣것에  점점이 붉은 체온 번진다  ―[지하드] 전문  '지하드'는 성전(聖戰)으로 번역이 되는데, 이슬람교도에게 전쟁에 의해 이슬람을 전파하도록 하는 종교적 의무이다. 정치적인 투쟁에 종교적인 의무를 부여한 것은 이슬람의 오랜 전통이었다. 그런데 이 시의 제목은 성전(聖戰)이 아니라 성전(性戰) 같다. 소녀가 여성이 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초경이라는 신체의 변화가 1∼3연에서 묘사된다. 시의 급반전이 제4연에서 이루어진다. 꽃(소녀의 성기)을 통과한 한 발의 총성은 이스라엘 군인이 쏜 총에서 울린 것일까? 그 총을 나는 남성의 성기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마지막 연을 보라. 소녀의 몸은 천에 덮여 있는데, 바람이 불어 펄럭 들쳐지자 "지구의 속엣것에/점점이 붉은 체온 번진다"고 하지 않는가. 소녀는 초경을 맞이한 날, 총탄에 죽고 말았다. 이 시는 소재 선택과 주제 설정도 새롭지만 전개 방식과 전환의 과정이 무척 참신하다. 비극적인 상황을 너무 재미있게 그려 그것이 흠이라면 흠일까.  (이승하:중앙대교수) ===============================================================   173. 우음 2장 / 구상                                    우음(偶吟) 2장                                       구상 1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참된 기쁨도 맛본다.     2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구상 시집  중에서      ※ 우음(偶吟) :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시가로 읊음  -------------------------------------------------------------------   174. 꽃자리 / 구상                       꽃자리*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라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 시인 공초(空超) 오상순 선생의, 사람을 만났을 때의 축언을 조금 풀이하여 시로 써 보았음.     구상 시집  중에서    
973    시인들이여, 시의 제재를 잘 잡아라... 댓글:  조회:6032  추천:0  2016-01-10
제재를 잘 잡으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잘 관찰하고 열심히 기록하기  ‘괄찰기록’과 ‘의미부여’라는 말을 했다 관찰기록 제재 찾기와 관련이 있고 의미부여는 주제의식과 연결된다  주변 사물을 유심히 바라보지 않으면 시의 제재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김기택 지하도‘걸인’ 제재를 삼았다  제1연은 단순묘사  제2연 제재에 힘을 불어 넣었다  꼽추  김기택  하루는 무덥고 시끄러운 정오의 길바닥에서  그 노인이 조용히 잠든 것을 보았다  등에 커다란 알을 하나 품고  그 알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곧 껍질을 깨고 무엇이 나올 것 같아  철근 같은 등뼈가 부서지도록 기지개를 하면서  그것이 곧 일어날 것 같아  그 알이 유난히 크고 위태로워 보였다  거대한 도시 소음보다 더 우렁찬  숨소리 나직하게 들려오고  웅크려 알을 품고 있고 어둠위로  종일 빛이 내리고 있었다  -꼽추- 제2연  꼽추일수도 , 꼽추같다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노인 제재로 삼기로 했다 노인 관찰 꼽추라 생각  알을 등에 품고 있다 생각, 알속으로 들어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다 생각, 제재를 놓고 꼼꼼히 살펴보면  생각을 확장 , 상상력 발휘 , 시가 되는 것  정동진역  김영남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  그 마을에 가면  정동진 이라는 억새꽃 같은 간이역이 있다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  가끔 두칸 열차 가득  조개껍질이 되어버린 몸들을 싣고 떠나는 역  여기에는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이 있고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  아름다운 천정도 볼수 있다  강릉에서 20분 , 7번 국도를 따라가면  바닷바람에 철로 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그루와  푸른 깃발로 열차를 세우는 역사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  -정동진역-  시의 생산 과정을 본인에게 들을 수 있었다 촬영장  경치가 아름다워 알려졌다 ‘알려지지 않는 곳’ ‘가볼만한 곳’  기사가 나와 김영남은 기사를 읽고 시를 썼다  물론 가본적은 없다 , 신문기사 한 쪼가리를 유심히 읽고  관찰력 시인 타이틀을 붙여주었다  세계 명작 중 신문기사를 읽고 모티브로 해서 쓴 것이 많다  텔레비전 , 영화든 관찰의 안테나를 세우고 유심히 보면  시의 제재가 나온다, 모든 사물 , 생명체가 시가될 수 있기에  시는 열려있는 총체입니다  어떤 인접 예술과도 교배할 수 있습니다.   ====================================================   171. 만화 / 구상                               만화 漫畵                                   구상   여보! 당신 몰루? 내가 찾는 것 그것 몰루?   당신마저 몰루? 이제는 찾는 내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된 바로 그것 말이오.   내 속은 눈 감고도 환하다는 당신이 내가 한평생 찾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만은 몰루? 여보!     구상 시선집  중에서                          172. 노부부 / 구상                   노부부 老夫婦                                       구상   아름다운 오해로 출발하여 참담(慘憺)한 이해에 도달했을까!   우리는 이제 자신보다도 상대방을 더 잘 안다.   그리고 오히려 무언(無言)으로 말하고 말로써 침묵한다.   서로가 살아오면서 야금야금 시시해지고 데데해져서 아주 초라해진 지금 두 사람은 안팎이 몹시 닮았다.   오가는 정이야 그저 해묵은 된장맛……   하지만 이제사 우리의 만남은 영원에 이어졌다.     구상 시집  중에서                
972    詩작법 쭉빵빵... 댓글:  조회:4970  추천:0  2016-01-10
[ 2016년 01월 11일 08시 32분 ]       시 창작이란 무엇인가 김기택 (시인) 시는 일상적인 언어의 말하기와는 달리 ‘창작’이라고 말한다. 창작이란 이전에는 없던 것을 새로 만든다는 의미이다. 왜 일상적인 언어는 창작이라고 하지 않으면서 시는 창작이라고 하는가. 시를 쓰면 이전에 없던 무엇이 새로 있게 되는 것인가? 즉 무의 상태에서 유의 상태로 바뀌는 그것은 무엇일까? 시가 일상적인 어법, 산문적인 문장과 다르기는 하지만, 다르다고 해서 거기에 창작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가? 행갈이나 연 구분, 리듬이나 비유, 상징, 반어, 역설 등을 사용하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언어나 문장이 생기는 것인가? 요즘 텔레비전에서 음식에 대한 프로그램을 많이 방영한다. 거기 보면 어느 유명한 식당의 요리라든가 또는 어느 지방의 특별한 재료를 사용했다는 음식들이 소개되기도 하고, 어느 음식이 맛이 있는지 경쟁하기도 한다. 공중파라는 매체의 특성상 시청자는 시각과 청각으로만 그 음식을 대하면서 상상할 수 잇을 뿐, 그것을 먹어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시청자들에게 일일이 맛을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하니 음식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나서 출연자가 대표로 맛을 본다. 맛을 봤으면 시청자들에게 그 맛이 어떤지 말로 설명을 한다. 그 설명이란 것이 고작 ‘담백하다’, ‘깔끔하다’, ‘쫄깃쫄깃하다’, ‘고소하다’ 이런 정도인데, 아무리 잘 설명한다 해도 출연자가 직접 먹어본 맛의 경험 그대로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즉 맛에 대한 감각 체험을 시청자가 비슷하게라도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말이 턱없이 빈약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결국 출연자가 하는 말은 ’직접 먹어봐야 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 시청자는 출연자의 그 빈약한 말보다는 영상을 통해 상상하는 것이 맛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데 훨씬 유리할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의 맛을 체험적으로 표현해 줄 단어나 문장이 이렇게 부족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수천 년간 말을 써왔고, 단어나 표현법이 계속 생겨서 말이 계속 발전을 해왔는데도 말이다. 맛 뿐만 아니라, 소리는 어떤가? 처음 듣는 새 소리, 처음 들어보는 새로운 노래나 연주, 말로 그 느낌이나 감동을 실제 체험하는 것처럼 설명할 수 있을까? 냄새, 향기는 어떻고, 몰래 좋아하던 애인의 손을 처음 만졌을 때의 촉감은 또 어떤가? 또 감정이나 정서는 어떤가? 내가 이성에게 반해서 온몸이 그 사람에게 강력하게 끌리는 것을 느낄 때, 그 생생한 느낌을 어떻게 상대방에게 체험한 그대로 말로 전달할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말이 그 체험의 실감과 질감을 그대로 나타내줄 수 있을까?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죽었는데, 그 느낌을 ’슬픔‘이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실제의 느낌과 얼마나 가까울까? 어렸을 때의 기억,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저절로 떠오르는, 다시 체험하고 싶은 추억들은 또 어떤가? 이것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보여줄 수는 없지만, 분명히 우리 몸 안에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체험하듯 생생하게 표현해 줄 마땅한 단어나 문장은 의외로 찾기 힘들다. 우리 몸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그 실체가 느껴지는 생명체가 분명히 있다. 그것은 하루 종일, 일생 내내 나와 함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명체를 체험한 그대로 표현해 줄 단어나 문장은 이 세상에 없다. 우리가 그것을 우리의 내면에서 꺼내어 언어에 옮기고자 하는 순간, 그 살아있는 생생한 체험은 개념으로 변하고 만다. 짜다, 달다, 아름답다, 곱다, 사랑, 슬픔, 괴로움 따위의 말이 그것이다. 개념은 의미를 압축시켜 놓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즉 우리가 체험한 것에서 몸의 살아있는 느낌은 모두 빼고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의미만 남겨놓은 것이다. 그것은 몸의 생생한 체험을 머리가 처리할 수 있는 의미로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슬프다고 말하면 우리는 그것을 그 사람이 체험한 그대로 느끼는 대신에 머리로 이해하고 만다. 그때 그 의미는 머리로 처리하는 정보라는 점에서 교통 상황이나 뉴스 같은 정보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현대는 정보의 시대이고 개념화는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처리하여 세상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게 됩니다. 정보는 곧 권력이며, 인간은 이미 오래 전에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동물이 되어 세계를 지배해왔고 지금도 그 지배력은 날로 강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감이나 감정, 정서 등으로 체험한 살아있는 느낌, 보이지는 않지만, 이름도 없지만, 분명히 실체가 느껴지는 그 생명체(이것을 편의상 ‘이름 없는 생명체’라고 부르자)는 언어에 담는 순간 죽어버리게 된다. 체험이 개념으로 바뀌는 순간 의미라는 뼈다귀는 남고 체온과 떨림과 호흡이 있는 피와 살은 거의 다 제거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관습은 대부분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는 의사소통을 하거나 정보를 전달할 때 대개 머리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개념화한다. 그래서 머리로는 많은 것을 알게 되지만, 살아있는 느낌은 모두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우리가 체험한 것들은 어떻게 되는가? 언어에서 주로 개념만 남고 살아있는 생명체는 거의 제거되고 나면, 그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 아마도 그 대부분은 언어를 통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몸에 기억으로 무의식으로 축적될 것이다. 저장되었다가 어느 순간 잠깐씩 단편적으로 환기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슬픔, 분노, 괴로움 등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는 숙변처럼 몸에 쌓여 무의식의 정신 작용으로 몸에 잠재하면서 왜곡된 형태로 행동이나 말이나 꿈에 나타나고 종종 나를 괴롭히기도 하고 심한 경우, 눈에 드러나는 정신 장애를 일으키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있으나 보이지 않는 이 생명체를 몸 밖으로 꺼내고 싶다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를테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언급한 카타르시스 작용과 같이 그것들을 연민이나 공포를 통해 배설시키기고 싶을 것이다. 몸에서 꺼내는 방법으로 가장 유력한 것은 그것을 말에 실어 내보내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오감이나 감정, 정서와 같이 그 살아있는 체험은 개념화된 언어에 잘 담겨지지 않는다. 언어에 담는 순간, 살과 피와 체온인 체험, 감정, 정서 따위는 새어버리고 뼈다귀인 개념만 언어의 그물에 걸리기 십상일 것이다.  그러면 언어에 담겨지지 않는 이름 없는 생명체를 어떻게 산 채로 언어에 담을 수 있을까? 그것은 가능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언어 대신 사물이나 사건, 장면 등을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치환의 「깃발」의 첫 행,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보자.  여기서 “이것”은 깃발을 지시하는 대명사다. 즉 “깃발”이 “아우성”이라는 말이다. 왜 깃발이 아우성일까? 깃발은 긴 막대기 위에 매단 사각형의 천 조각인데 왜 이 시각적인 사물이 청각적 이미지인 아우성이 되었을까?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깃대에 매달린 깃발을 상상해 보자. 깃발은 사각형의 천조각이다. 그 천조각은 얇고 가벼워서 바람이 세차게 불면 쉽게 날아갈 수 있다. 그러나 깃발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천조각의 두 모서리는 깃대에 단단하게 메어있다. 바람의 힘에 의해 날아가려는 힘과 말아가지 못하게 꽉 붙들고 있는 힘 사이에서 그 연약한 깃발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물론 펄럭이는 것이지만, 그 펄럭임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해보면 떨기도 하고 바람의 방향에 따라 뒤틀리기도 하고 천조각의 물질성 때문에 물결무늬가 생기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몸짓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람의 난폭한 힘과 깃대의 고집불통의 힘 사이에서 허공을 향해 미친 듯이 격렬하게 움직이는 천조각의 모습은 마치 무엇인가를 애타게 호소하기도 하고 견딜 수 없이 괴로워 떨기도 하고 대단히 절박하게 용을 쓰고 있는 “아우성”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아우성은 소리가 없다. 마치 벙어리의 몸부림처럼 그 아우성은 소리 대신 온몸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속에서는 울음 같은 격렬한 외침이 터져 나올 것 같은데 소리는 나오지 않는 이 답답한 상황이 깃발의 격렬한 뒤틀림을 더욱 절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유치환이 일제 강점기의 시인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 깃발의 몸짓이 무엇인가는 비교적 쉽게 환기된다. 현실의 제약을 뚫고 광대한 세계와 우주를 향해 새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은 욕망과 그 욕망을 억누르는 현실의 여러 가지 고집 붙통의 여건들 사이에서 유치환의 내면에 있는 깃발처럼 부드럽고 연약한 ‘이름 없는 생명체’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미친 듯이 허공을 향해 격렬하게 떨고 뒤틀며 움직이는 깃발의 몸짓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시의 후반부에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이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시인은 그런 내면의 모습을 ‘깃발’이라는 사물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깃발이 환기하는 ‘체험’과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이 의미하는 바를 비교해 보라. 시인이 그것을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이라고만 표현한다면 그것은 시인의 몸속에 있는 어떤 살아있는 생명체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개념적인 언어가 된다. 슬픔, 애달픔, 마음 따위와 같은 개념만 남고 시인의 몸속에 있는 생명체는 죽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언어의 ‘개념’ 대신에 깃발이라는 ‘사물’을 제시한 것이다. 깃발의 격렬한 떨림과 뒤틀림, 날아갈듯 날개처럼 넓고 가볍지만 하늘을 앞에 두고 날아가지 못하게 두 모서리가 단단하게 묶여있는 모습, 그 사이에서 허공을 향해 온몸으로 외치는 연약한 천조각의 몸짓, 그러나 아우성을 들리지 않고 벙어리처럼 온몸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모습, 바로 그것이 시인의 몸속에 있는 살아있는 감정이나 정서에 더 가까운 것이다. 이 깃발이 독자에게 주어지는 순간, 독자는 깃발의 움직임 속에서 시인이 갖고 있었음직한 마음을 즉각적으로 환기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몸속에 있는 이름 없는 생명체를 개념적인 언어에 담아서는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언어의 개념 대신에 사물을 빌린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깃발의 저 움직임과 유사한 마음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깃발이라는 사물을 통해서 시인의 감정이나 정서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깃발’은 바로 시인의 감정이나 정서에 해당하는 ‘객관적상관물’이다.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은 “예술의 형식으로 정서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객관적상관물(客觀的相關物)을 찾는 것이다. 즉, 개인의 정서의 외형이 되는 사물이나 장면이나 사건들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의 감각경험과 관련 있는 외부 경험이 주어졌을 때, 정서가 즉각적으로 환기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즉, 감정이나 정서는 형태도 없고 이름도 없고 언어에 잘 담기지 않으니까, 그것과 외부적으로 유사한 상관물(사물, 사건, 장면)을 찾아서 독자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독자는 자신의 감각 경험과 유사한 사물을 통해서 감정이나 정서를 일시에 환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상 언어 관습에서 사용하는 ‘개념’을 버리고 그 개념 대신 사물이나 사건, 장면을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객관적상관물이란 시인의 감정이나 정서와 등가를 이루는 사물을 제시하고 그 사물을 통해 감정이나 정서가 환기되도록 고안된 일종의 폭발장치 같은 것이다. 사물이나 장면이나 사건에 뇌관을 만들어 놓고 그 뇌관을 건드려 그것들과 등가를 이루는 감정이나 정서를 환기하는 순간 그 폭발물이 폭발하도록 하는 장치인 것이다. 객관적상관물을 통해 표현된 시적 언어는 두 가지 면에서 일상 언어와 분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첫째는 몸속의 감정이나 정서 따위의 이름 없는 생명체를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거나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즉 머리로 알게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객관적상관물은 개념의 뼈다귀만 남은 언어에 살과 피와 체온이 있는 살아있는 몸을 부여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즉 형체 업  소리 없고 만질 수 없는 감정이나 정서를 마치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것처럼 변형시키는 것이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아는 것으로 끝나지만, 체험은 몸이 떨리거나 호흡이 가빠지거나 오싹해지거나 후련해지거나 흥분되는 것과 같이 구체적으로 몸이 움직이는 것이다. 둘째로 객관적상관물은 시인 자신의 체험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자신의 경험,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통해 체험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시는 단지 독자가 자신의 경험이나 기억, 감정이나 정서를 환기하도록 사물이나 장면이나 사건만 제시하는 것이고, 독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경험 속에서, 자기 몸의 감정이나 정서를 깨워 그것으로 체험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남에게 얻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체험이기 때문에 그 체험은 시인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 된다.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을 깨워 만들어낸 체험이기 때문에 그만큼 강렬한 것이 된다. 시인의 창작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 독자의 몸속에서 독자의 경험과 감정과 정서를 가지고 재연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제2의 창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객관적상관물은 시라는 장르가 난해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상 언어의 관습으로는 생명체를 언어에 담아 전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시적 언어는 일상 언어의 관습을 고의적으로 비틀어 사용합니다. 앞에서 인용한 유치환의 시 구절은, 시인의 내면의 이름 없는 생명체를 깃발로, 깃발이라는 시각적인 사물을 청각적인 아우성으로, 그 아우성이은 소리가 없다는 모순 어법으로, 세 번이나 뒤튼 문장을 사용했다. 살아있는 체험을 전달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언어를 이렇게 뒤튼 것이다. 그래서 박이문은 시를 “언어를 통해서 언어에서 해방되려는, 언어를 씀으로써 언어를 쓰지 않는 언어가 되려는 불가능하고 모순된 노력”이라고 했으며, “언어로부터의 해방을 꾀하지 않는 언어”,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가장 원시적인 감각을 언어로써 표현하고자 하지 않는 언어”는 시가 아니라고 단언하였다. 시는, 일상 언어 문법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이름 없는 생명체’를 전달하려는 특별한 언어관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일상 언어 관습은 말하는 사람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름 없는 생명체를 죽이기 때문에, 그것을 산 채로 전달하기 위해 고안된 특별한 언어 관습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가 창작이라고 할 때, 시가 만드는 것은 일상 언어 관습에는 없는 새로운 언어 형식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의 언어 관습에는 없는 새로운 언어관습이기 때문에 많이 경험해온 소재나 이야기라도 세상에 나와서 처음 보고 경험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따라서 시를 창작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없는 언어 관습, 처음 보는 언어 형식을 만들어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존의 형식을 답습한다면 거기에 ‘창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주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시라는 새로운 언어 관습은 앞에서 언급한 난해해질 수밖에 없는 특성 외에 몇 가지 슬픈 운명을 더 타고 났다. 그 하나는 일상 언어와는 달리 오나성된 형태의 문장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참여할 수 있는 여백과 공간을 만들어 불완전하게 끝낸다는 것이다. 즉 완성품이 아니라 반제품으로 독자에게 내놓는 것이다. 왜냐하면, 독자가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시인이 제시한 사물이나 사건, 장면 들을 통해 자신의 감각이나 감정, 정서, 경험 등을 깨워 환기하여, 시가 설치해 놓은 ‘체험’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시는 독자가 참여하여 어떤 환기 작용을 통해서 체험을 하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훈련된 독자가 아니면, 이 환기 장치는 무용지물이 된다. 일상 언어관습에만 익숙해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 그것은 외국어 같은 모국어이다. 따라서 시는 그것을 좋아하고 어느 정도 시적 언어에 훈련된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폐쇄적인 말하기이다. 시를 읽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시를 읽지 않는다고 해서 생계에 지장을 받거나 생활에 그다지 불편을 얻는 일이 없으므로 안 읽으면 그만이다. 따라서 시라는 말하기의 관습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대다수가 쓰지 않는, 마치 사멸되어 가는 소수 민족의 언어처럼 슬픈 소통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시가 가지고 있는 슬픈 운명은 창작이라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일상 언어처럼 사회적으로 약속된 기호를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쓰면 그것은 더 이상 창작이 아닌, 모방이나 복제가 된다. 시는 끊임없이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어 사용하는 말하기이다. 그리고 한 번 사용된 말은 다시 만들어서 쓸 수 없다. 많은 시가 창작되어 읽히면 더 소통이 풍요로워야 하는데, 시인은 고의적으로 이미 만들어진 말을 피하여 새로운 말을 만들어 써야 한다. 유치환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은 단 한 번만 창작될 수 있으며, 같은 문장은 물론 비슷한 문장도 피하여 새로운 말을 만들어 써야 한다. 의사소통이 주용 목적인 말의 특성상 이러한 소통 방법은 대단히 비효율적인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말을 쓴다면 대단히 생산적이고 효율적일 것이다. 시는 아무리 불편하더라도(실제로 시 읽기의 괴로운 경험을 상기해 보라) 끊임없이 이 세상에서 쓰지 않은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쓰는 대단히 이상하고 특별한 말하기라고 할 수 있다.  난해성과 소수만이 소통하는 폐쇄성과 기존에 있는 말을 버리고 끊임없이 새로 말을 만들어 쓰는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3천년 이상 시를 쓰고 즐겨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詩學’(the Poetics)은 기원전 330년 전에 씌어졌다. 시학에는 이미 호머(Homer, Homeros)의 서사시 '일리아드(Ilias)'와 '오디세이(Odysseia)'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 작품들은 기원전 800년 전에 씌어진 것입니다. 중국의 공자가 엮은 ‘詩經’에는 305편의 작품이 있는데, 가장 늦은 것이 기원전 600년의 작품이고, 가장 이른 것이 기원전 1115년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시가 3000년 이상 생명력을 유지해온 것은 그만큼 사람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매력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특별한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시를 쓰고 읽는 것이 즐겁지 않다면, 그 즐거움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면, 시는 사라져도 벌써 옛날에 사라졌을 것이다.  언어에 담겨지지 않은 이름 없는 생명체를 산 채로 언어의 그물로 잡을 때, 우리는 그 생명체를 밖으로 꺼내낼 뿐만 아니라 말할 수 없이 큰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과 정서는 씻겨나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무언가가 충족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삽날이 목에 찍히자 뱀은  떨어진 머리통을  금방 버린다 피가 떨어지는 호스가 방향도 없이 내둘러진다 고통을 잠글 수도꼭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뱀은  쏜살같이 어딘가로 떠난다 가야 한다 가야 한다 잊으러 가야 한다 - 이윤학, 「이미지」 전문 농촌에서 삽을 들고 밭일을 하다가 뱀이 나타나면 일어날 법한 장면이다. 이 시는 삽날에 목이 잘린 뱀이 도망하는 사건을 객관적상관물로 제시하였다. 이 시는 독자에게 목이 잘린 뱀이 되어 그 상황을 체험하게 한다. 1연은 그런 상황의 제시이다. 이 시의 백미는 2연이다. “피가 떨어지는 호스가 방향도 없이 내둘러진다”는 것은 뱀이 머리가 없어 세상이 캄캄한데, 몸속의 살아있는 본능은 강렬하게 움직이는 상황의 묘사이다. 세차게 물이 나오는 호스로 물을 뿌리거나 세차를 하다가 놓친 상황을 상상해 보자. 호스에서 분출하는 물의 압력은 큰데, 물이 나아갈 방향을 굳게 잡아줄 손이 없으면 호스는 요동친다. 몸에서 삶의 본능은 세차게 밀고 올라오는데 세상은 캄캄하고 가야할 방향이 없는 뱀의 모습이 ‘목이 잘린 뱀’과 ‘호스’라는 확장은유를 통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묘사는 머리가 없는 몸이 살아서 어딘가로 간다는, 죽음보다도 더 끔찍한 고통을 체험적으로 상상하게 한다. “고통을 잠글 수도꼭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그 고통이 근원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누구도 그것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절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 시는 삶의 어느 국면에서 몸과 마음으로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의 한계를 넘어서는 큰 고통을 경험했을 때의 화자의 심리상태를 암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자신이 마음으로 크게 의지하는 부모나 배우자나 자식의 죽음이나 이별을 경험했다거나 어떻게 수습할 수 없는 큰 사고가 났다거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병의 진단을 받았거나 등등 자신의 의지를 결정적으로 꺾는 좌절을 겪었을 때의 심리상태를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마음이 겪는 고통을 일상 언어로 표현한다면 아무리 잘 표현한다 해도 이름 없는 생명체의 모습과는 크게 다른 것이 될 것이다. 시는 이런 부정적인 경험을 꺼내는 과정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그 즐거움은 이미지를 통해 부정적인 정서의 찌꺼기들이 씻겨나가는 경험이다.  끝으로 객관적상관물이 보여 주는 다른 효과는 그것이 시작과정에서 분출하는 감정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데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읽어 본 이윤학의 시는 감정을 격정적으로 드러내기가 쉬운 시이다. 그러나 목이 잘린 뱀의 비유는 그런 감정의 분출을 적절하게 차단하고 있다. 시에서 극적인 체험을 하려면 감정이 한껏 분출되어야 하는데 왜 그것을 억제해야 할까? 감정은 시 쓰기에 있어서 에너지와 같은 것이다. 시작 과정에서는 감정이 마음껏 분출되어야 시작 과정의 체험도 강력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는 타서 없어지는 것이다. 즉 감정은 시작 과정에서는 극적인 체험을 하도록 마음껏 분출되지만 정작 시에서는 모두 연소되어 없어지게 되는데, 객관적상관물이 바로 그런 역할을 돕는 것이다. 위의 시에서 화자가 겪었음직한 극도의 절망감은 목 잘린 뱀의 체험으로만 제시되어 있다. 그 외의 어떠한 감정도 개입되어 있지 않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좋은 객관적상관물은 폭탄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독자가 감춰진 감정이나 정서를 사물이나 사건을 통해 환기했을 때 폭발할 수 있도록 하는 뇌관을 장치하는 것이다. 그때 시의 겉모양은 모양은 차갑고 단단하고 표면이 매끄럽고 광채가 나는 유선형의 쇳덩어리뿐이다. 어디에도 물기가 없다. 그러나 그 속에는 강력한 폭발물이 감추어져 있으며, 그것은 오로지 뇌관을 건드린 자만이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시에 감정이 노출된다는 것은 정작 폭발해야 할 폭발물이 겉으로 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 경우에 결국 속이 텅 비게 되므로 폭발은 일어나지 않는다. 감정을 효과적으로 억제한 시에서는 독자가 시인의 목소리를 느낄 수 없다. 오직 폭발작용만 일어난다. 그 폭발은 독자의 몸과 마음속에 있는 에너지가 폭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시인은 오로지 뇌관만 제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이 겉으로 드러난 시는 시인이 독자의 시 읽기에 계속 참견을 한다. ‘나는 이렇게 슬프니까, 너도 같이 슬퍼해 줘.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왜 너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거야. 당연히 내가 우는 목소리만큼 너도 고통스러워야지.“ 라고 독자에게 감정을 구걸하거나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시인은 독자의 몸속에 있는 감정이나 경험이나 정서를 깨워 그것으로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시인 자신의 감정, 정서, 체험을 독자가 수용하고 거기서 체험을 하도록 강요하게 된다. 이 경우 자발적이고 강력한 폭발작용은 없고, 억지 체험이나 고개를 끄덕거리는 이해 정도에서 그치기 십상이다.    ==================================================================   120. 견딜 수 없네 / 정현종                         견딜 수 없네                                      정현종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정현종 시집 < 견딜 수 없네 > 중에서 ======================================================   121. 환합니다 / 정현종                                     환합니다                                    정현종     환합니다. 감나무에 감이, 바알간 불꽃이, 수도 없이 불을 켜 천지가 환합니다. 이 햇빛 저 햇빛 다 합해도 저렇게 환하겠습니까. 서리가 내리고 겨울이 와도 따지 않고 놔둡니다. 풍부합니다. 천지가 배부릅니다. 까치도 까마귀도 배부릅니다. 내 마음도 저기 감나무로 달려가 환하게 환하게 열립니다.       정현종 시집 < 환합니다 > 중에서                    
971    시인들이여, - 말의 연금사가 되라... 댓글:  조회:5952  추천:0  2016-01-10
말과 말 사이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 - 여태천     말은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가장 혼란스럽고 저속한 것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디 그 뿐인가. 종종 시에서 아름답고 매력적인 말은 어느 순간 길을 잃기도 하고, 엉뚱한 길로 우리를 유혹하기도 한다. 가끔 너무나 많은 가상(假像)을 가지고 있는 이 말들을 믿어야 하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니 이 말들이 진실한 세계를 보여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말은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 그런데 정말로 말은 우연에서, 그리고 우연으로만 끝나는가. 말의 우연성과 불안정을 극복하는 길은 없는 것일까.  물론 시가 지속적으로 현전하는 무엇(말하자면 이데아, 절대 정신, 혹은 물자체와 같은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의 역사를 온전히 다 기록할 수도 없다. 미미한 우리의 정신(예컨대 시에서 일인칭 화자)이 온전하게 세계를 이해할 수도 없겠지만 빈약한 우리의 말(시어)이 어떻게 그것을 다 기록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말이 곧 진리라는 헛된 사실을 증명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대신 그 기록은 수없이 많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일(가령, 순간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을 발견하는)이 생길 수도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있다. 단언하건대, 시란 수없이 많은 그 기록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시가 형이상학처럼 본질적인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언어(말)를 아직도 그렇게 여기는 이가 없는 것도 아니다(몇몇 음성주의자들의 후예들이 그렇다). 그러나 시란 우리의 말로 설명되지 않는 현실을 특별히 의미론적으로 설명해주는 그런 장르가 아니다(그 쪽이라면 오히려 소설이 적당하다).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과거부터 그것이 ‘시’라고 고집하는 이들은 대체로 시에서 말의 가치를 잘 모르는 편에 속했다. 말이 곧 진리와 같다는 인식론에서 비롯된 미학적 자기중심주의로부터 이탈하는 유일한 길은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중심과 주변을 가로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허물 수 있다. 이때, 말의 주체(시에서 일인칭 화자)뿐만 아니라 말이 겨냥하는 한없이 무거운 의미(시의 주제)는 그 이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중심적 지위를 잃게 된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까. 그 해답은 역시 말에 있다. 그 말은 역사적인 것 속에서 시적인 것을, 순간적인 것 속에서 영원한 것을 추출한다. 물론 모든 말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드물게 시인은 세계의 존재를 말로 옮겨서 우리 앞에 환하게 밝힌다. 독일의 비극적 시인 횔덜린(F. Hölderlin, 1770~1843)은 그 말을 모든 자산 가운데 가장 위험한 자산이며, 시인만이 그것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놀라운 일이다.  말로 세계의 존재를 환하게 밝히는 것은 시인의 특권이다. 시인은 가장 직접적인 현실과 과감하게 맞서서 현실로부터 존재의 영원한 의미를 드러내 보이는 말의 세계를 만든다. 오직 순수하게 말의 세계에 빠졌던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S. Mallarmé 1842~1898)는 말과 말 사이의 공백을 일종의 시각적 ‘휴지(休止)’로 이용하여 말과 이미지의 리듬감 있는 운동감을 창출한 바 있다. 역시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이 휴지의 가치는 시각적인 차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말과 말 사이의 침묵, 곧 청각적 부정을 발견하게 된다. 소리와 침묵이 이러저러하게 교체될 때 시의 리듬이 만들어진다. 예컨대, 천둥이 칠 때 우리가 듣는 것은 순수한 천둥 그 자체가 아니다. 정적을 깨고 그 정적과 대비되는 순간을 천둥으로 듣는 것이다. 말과 말 사이에 있는 침묵이 중요하고, 침묵과 침묵 사이에 있는 말의 움직임이 소중하다. 그러므로 말라르메가 창조한 이 공백의 진정한 가치는 다른 데 있다. 시각적 휴지는 일종의 사유에 뚫려 있는 구멍과 같다. 좀더 확대하자면 그것은 일상적 의사소통에서의 의도적 단절이며, 더 나아가서는 모든 발화를 둘러싸고 있는 침묵이다. 이 침묵 저 아래로 늘 말이 움직인다. 실제로 시의 구조는 감추어져 있지만 말과 말이 만드는 공백 속에, 말이 환기하는 어떤 것으로 현존한다. 그것을 읽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짐작하는 의미와 시에 사용된 말 사이에서 어긋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울림이 생긴다. 그 울림이 바로 시의 이미지고 비유다. 시인은 이미지들과 비유의 테크닉에 의해, 또는 말들이 만드는 소리의 조화에 의해 독자의 감정에 호소한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말에 대한 이성의 동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가령,  당신이 처음으로 서쪽 하늘을 쳐다보았을 때  그 아래 어디선가 나는 유리 넥타이를 매고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을 것인데, 당신은  ― 졸시, 「루시」(『국외자들』) 부분 에서, ‘내’가 “유리 넥타이를 매고 / 조용히 앉아” 읽고 있는 바로 그 “책”은 이성의 동의가 필요한 물건이다.  그런데, ‘내’가 읽고 있는 “책”과 상관없이 “당신”은 있다. ‘나’는 “당신”을 이성의 질서인 “책”에서, “책”이 안내하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만났다. 하지만 “당신”은 “책”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세계에 무수히 많은 “당신”으로 산다. 비약하자면 여기서 “당신”은 “책” 속의 “루시”이자, 도널드 요한슨이 1974년 11월 30일 아프리카 하다르의 아와시 강가에서 발견한 인류 최초의 화석이다. “당신”은 320만 년 전에 살았던 25세의 여성으로 키는 약 1백7cm 몸무게는 28kg 정도에 불과한 여자다. 동시에 그녀는 비틀즈가 부른 아름다운 노래며, 그 노랫말이 만드는 슬픈 리듬이다. 노래 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사랑하는 여인이며, 노래가 생기기 전에 반짝였던 먼 우주의 어느 별이다. 그러나 그녀는 마지막으로 시다. 말들은 무엇보다 먼저 그것들이 갖는 의미에 의해 가치를 가지며, 그 다음에 말들의 환기력과 울림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하이데거(M. Heidegger, 1889~1976)가 말한 비은폐성(非隱蔽性 alētheia)은 사물과 작품, 진리, 예술이 모두 비은폐성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시란 언어가 환하게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위의 시에서 “당신”은 스스로 자기를 드러낸다. 그 드러남은 그 자체로 우주적인 한 현상(사건 Ereignis)이며 낡은 관념의 피라미드에 비치된 어떤 해설이나 주석보다 투명하고 예리하게 우주의 한 면모를 우리 앞에 불러온다. 그 드러남 속에 뭔가 미심쩍은 것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드러나지 않는 것 역시 당연하다. 비은폐성과 은폐성을 동시에 지니는 것이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드러나기도 하고 숨기도 한다. 비약이란 이와 같은 존재의 본질을 환기하는 말의 특성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이성에서 해방될 때, 말은 거칠어지기도 하지만 비로소 매우 강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당연하게도 시란 뭔가를 환기하고 충동질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사물이 아닌 그것이 빚어내는 효과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암시와 환기는 독자가 자신의 심상과 연상을 가지고 자유롭게 반응할 수 있게 해준다. 오직 존재하는 것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말이 말과 만나 만드는 세계, 시란 바로 그것이다.  죽지 않은 꽃들은 쉬지 않고 빨리 자라  하늘의 별에 닿았지, 책에 그렇게 적혀있어도  나는 어둡고 검은 눈으로 한 자씩 손을 짚어가며  새끼를 낳는다는 해변의 나무와 죽은쥐나무와  날카로운 발톱의 짐승들  있지도 않은 이름을 소리내어 천천히 읽고  또 읽고 있을지도 ―졸시, 「루시」(『국외자들』) 부분 “당신”이라는 “루시” 때문에, 노래 때문에, 사랑 때문에, 아름다움 때문에 ‘나’는 “책”을 읽으면서 상상한다. 역으로 “책”을 읽으면서 “죽지 않은 꽃들”과 “새끼를 낳는다는 해변의 나무와 죽은쥐나무와 / 날카로운 발톱의 짐승들”을 상상한다. 그것은 모두 “있지도 않은 이름”들이다. 우리는 산문의 말로는 이성의 범위와 깊이를 벗어난 느낌을 표현할 수 없다. 말은 그 극한으로 갈 수 없지만 가려고 한다. 말의 구조가 도달할 수 없는 극한에 이르고자 하는 끝없는 방황의 연속이 인간의 삶 그 자체다. 아니 인간의 목적이 태어나면서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현실의 말로 극한의 상태를 묘사할 수 없으므로, 그것을 표현하려고 하는 말은 난해할 수밖에 없다. 말의 능력은 한정되어 있다. 말이란 인간을 떠나면 더 이상 말일 수 없다. 그러나 일상어와 일상어 아닌 것 사이의 간극, 그 간극에 있는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 간극이 어쩌면 현대성일 수도 있다. 말의 바깥에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말과 말 사이에 세계가 있다.  말과 말 사이를 메우는 것은 신이 사라진 상황에서 은폐된 채로 있는 것,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찾는 일이다. 말과 말 사이는 ‘나’가 가고 오는 그 사이다. 이 사이는 시간의 사이이기도 하다. 또 그 사이에 모든 존재가 있으며, 사건이 있다.  복숭아 향기 나는 오렌지색 이층버스를 타고  인공의 구릉과 호수를 건너  당신이 거닐었던 검은 땅으로  비행기, 버스, 밤하늘, 다이아몬드  내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이 새로운 단어들의 감촉을  어떻게 전해줄 수 있을까  루시, 내 말을 듣지 못하는  ―졸시, 「루시」(『국외자들』) 부분 시는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 과거와 미래 사이의 이행 지점이다. 이 사이에 때로 역사가 들어앉기도 한다.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이 새로운 단어들”이 그 사이에 가득하다. 그래서 잠정적이고 흘러가는 영역을 가로질러 영원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것들이 불쑥 솟아오르기도 한다. 현재와 과거, 현재와 미래의 거리는 너무 멀어서 그 사이에 난 길을 걸어본 이가 아무도 없다. 그 길을 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 산에서 저 산으로 가는 길은 매우 험하지만, 우리는 단번에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비약할 수 있다. 시인이 종종 말을 타고 다니면서 이런 일을 한다. 그때 말이 지니는 가장 순수한 의미가 진리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 인상들을 기록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   118. 불쌍하도다 / 정현종                              불쌍하도다                                        정현종       詩를 썼으면 그걸 그냥 땅에 묻어두거나 하늘에 묻어둘 일이거늘 부랴부랴 발표라고 하고 있으니 불쌍하도다 나여 숨어도 가난한 옷자락 보이도다             정현종 시집 < 나는 별아저씨 > 중에서       정현종 연보       1939년 12월 17일 서울시 용산구, 3남 1녀 중 셋째로 출생.           대광고등학교 졸업.       1959년 연세대학교 철학과 입학. 박두진으로부터 현대문학에서 초회 추천 받음.           1965년 대학 졸업 후  3월에 , 8월에 등으로 < 현대문학 > 에 발표           박두진의 3회 추천으로 등단.       1966년 황동규, 박이도, 김화영, 김주연, 김현 등과 함께 동인지 를 결성하여 활동.       1969~1973년 서울신문 편집국, 문화부 기자.       1972년 첫 시집 < 사물의 꿈 > 출간.       1974~1977년 중앙일보 편집국, 월간부 기자.       1977~1982년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1978년 시집 < 나는 별아저씨 > 출간. 한국문학작가상.       1982~2005년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       1982년  시론집 < 숨과 꿈 > 출간.       1983년 시론집 < 시의 이해 >, 시선집 < 달아 달아 밝은 달아 > 출간.       1984년 시집 출간.       1989년 시집 <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 산문집 < 생명의 황홀 > 출간.       1990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외 6편의 시로 제3회 연암문학상.       1992년 '한 꽃송이'로 제4회 이산문학상.       1995년 '내 어깨 위의 호랑이' 제40회 현대문학상.       1996년 '세상의 나무들'로 제4회 대산문학상.       1999년 시집 < 갈증이며 샘물인 > 출간.       2001년 '견딜 수 없네'로 제1회 미당문학상 (시 부문).       2004년 제12회 공초문학상. 파블로 네 루다의 탄생 100주년 기념 메달 수상.       2005년 근정포장.       2006년 제2회 경암학술상 수상 등.  =============================================================   119. 사랑의 꿈 / 정현종                                 사랑의 꿈     ― 사물의 꿈 4                                                      정현종     사랑은 항상 늦게 온다. 사랑은 生 뒤에 온다.    그대는 살아 보았는가. 그대의 사랑은 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랑일 뿐이다. 만일 타인의 기쁨이 자기의 기쁨 뒤에 온다면 그리고 타 인의 슬픔이 자기의 슬픔 뒤에 온다면 사랑은 항상 생 뒤에 온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생은 항상 사랑 뒤에 온다.          정현종 시집 < 고통의 축제 > 중에서          
970    詩작법 총총총... 댓글:  조회:4682  추천:0  2016-01-10
서정시의 미적 양상과 시의 생산 방식 - 박주택   1. 들어가는 말  전통적으로 서사시가 민족 공동체적 가치나 종족 혹은 국가의 위대한 인물의 행위를 설화체의 이야기시의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반해 서정시란 시적 자아의 정서나 내면적 세계를 주관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으로 일컬어져 왔다. 따라서 서사시가 객관의 세계를 구체화시키며 민족 집단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면 서정시는 객관적 세계를 시적 자아의 내면에 용해시켜 세계를 자아화시키는 특징을 지닌다.  서정시(lyric)는 칠현금 현악기인 리라(lyra)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데에서도 나타나듯이 원래 악기에 맞춰 부르는 노래의 가사였다. 이로 인해 서정시는 소리나 리듬, 율조 등의 음악성이 강조되며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내면 정서를 표출하는데 그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또한 개인의 감정을 미감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양식상의 특징으로 인해 기법이나 장치 등과 같은 수사미와 함께 개성이나 독창성 등이 함께 강조되는 특징을 보인다. 서정시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은 시적 자아가 보편적 체계인 ‘우리’에서 비로서 주체적인 ‘나’로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 근대 이후로, 이로부터 장르적 개념은 주제, 표현 기법, 관찰, 기억, 지식, 감정 등이 복잡하면서도 점점 전문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리시의 경우, 근대 문학기에 서구의 서정시가 수용된 이래 그 양상이 다양하면서 중층적으로 변모해 왔다. 김소월에서 보이고 있는 한국적 율조와 애상적 정서, 한용운에서 보이고 있는 심원한 철학적 사유와 유장한 가락, 그리고 김수영에게서 보이고 있는 시대적 현실에 대한 조응과 외면 투사 등에 이르기까지 서정시의 갈래만큼 그 모습이 복잡하게 이어져 왔다.  서정시는 서사시, 극시 등과 분류되는 장르적 개념인 동시에 다양한 형태나 내용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부르고 있는 민중시, 도시시, 해체시, 여성시, 생태 환경시 등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이 서정시의 범주에 들 수 있다. 80년대 민중시의 경우만 하더라도 비록 시가 정치적 상황이 지닌 금제와 폭압에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하더라도 시인이 세계에 대해 욕망이나 정서 등을 현실과 대립시켜 세계와 주관적 정서를 교환하고 있다는 있다는 점에서 서정시의 본질과 깊은 연관을 맺는다. 도시시 역시 도시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나 진보의 허구를 지적하며 현실 세계에 대해 시인의 해석적 관점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서정시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수많은 담론을 포괄하면서 시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이 서정시는 60년대의 시대적 현실에 대한 불안 의식의 노정과 근대 시민 사회로의 희원 의지의 시, 70년대의 문화 재편성에 따른 가치 혼란과 산업화로 인한 농촌 공동체 해체에 대한 비판적 태도의 시 그리고 80년대 정치적 금제와 폭압에 항거했던 민중시 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거대 서사 담론의 붕괴와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육체, 여성, 생태 등을 노래한 시가 중심 담론를 이루고 있다.  서정시는 인간 내면에 일고 있는 섬세한 성정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과 욕망의 동맹 관계를 형성한다. 비록 시대나 작품 생산자에 따라서 시적 내용이 다양할 수는 있지만 길이가 비교적 짧은데다 인간의 내면과 미적 형식을 깊이 있게 강조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정서적 가치를 제공한다.  이상의 논의를 염두에 두고 필자는 9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했었고 앞으로도 그 문학적 성과를 뚜렷하게 거둘 것으로 기대되는 몇몇 시인을 대상으로 그들의 시에 나타난 정서의 특징과 그들의 시가 지향하고 있는 세계관을 개괄적으로 살펴 보도록 하겠다. 다만 서정시의 갈래만큼 그 시적 개성이 서로 상이하고 특이한 만큼 논의의 폭을 좁혀 시인의 작품론을 중심으로, 세계관이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시인들을 묶어 그 특징들을 살펴 보도록 하겠다.  2. 근대 공간의 체험과 자연 서정 근대와 탈근대의 경계에서 오늘날의 서정은 그 미학적 존재를 드러내고 이를 재생산하기 위하여 이제까지의 담론들과 부단히 저항하면서 그것을 다시 포괄해야 하는 실천적 요구에 직면해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서정은 인간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솟구치는 욕망을 제어하며 인간이 지니고 있을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해야 하는 윤리적 책무를 지고 있으며 날로 정보화되고 기술화되고 있는 사회에 삶의 방식들을 적응하도록 해야 하는 조정 기능의 부담도 안고 있다. 이미, 진보만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환상은 깨어진 지 오래다. 탈근대에 접어들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행복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근대에 대한 미적 체험은 자연이 지니고 영성(靈性)과 유기체적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해 주었다. 생명의 귀중함을 일깨우고 훼손되고 있는 ‘주체’를 복원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이 미적 체험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 의미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떠올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공동체적 연대감을 형성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오늘의 서정시는 이같은 흐름에 기대어 있으면서 80년대 거대 서사의 붕괴 이후 그 공백을 농밀하게 메우며 현실의 여러 문제를 맥락화시킨다. 김용택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산업화로 인한 농촌 공동체의 해체를 걸걸하면서도 섬세하게 묘파한 적이 있는 그는 남도의 구성진 가락을 바탕으로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섬진강’이라는 구체적 현실 공간을 아름답고 맑은 서정으로 그려낸다. 그는 해맑은 감성으로 무구(無垢)의 세계를 노래하며 사유의 건강함 속에 자연에 대한 사랑과 삶의 예지를 유장한 어조로 시 속에 아로새겨 놓는다. 섬진강 끝 하동에 가 보라 돌멩이들이 얼마나 많이 굴러야  저렇게 작은 모래들처럼  끝끝내 꺼지지 않고  빛나는 작은 몸들을 갖게 되는지 겨울 하동에 가 보라 물은 또 얼마나 흐르고 모여야 저렇게 말없는 물이 되어  마침내 제 몸 안에 지울 수 없는  청청한 산 그림자를 그려내는지 -김용택「강끝의 노래」부분  김용택 서정의 특징은 사물과 자연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지닌다는 데 있다. 그의 시는 우리를 따뜻하면서도 풍요로운 감성의 세계로 인도한다. 시적 체계를 이루는 공간이자 근대 공간인 ‘섬진강’을 주로 노래해 ‘섬진강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에게 자연은 삶의 원천이며 근원의 공간이다. 그의 대지적 상상력은 자연의 오염이나 황폐를 노래한 문명 비판류의 시와는 다르다. 그는자연이 본래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온기를 꾸밈없이 그려낸다. 우리가 잃어 버리고 있던 마음의 고향을 섬세하게 복원시켜 놓는 그는 산벚꽃이 희게 핀 모습에서 고독을 발견하기도 하며 달빛이 하얗게 쏟아지는 들판에서 가슴을 적시는 애틋한 서러움을 발견한다. 돌멩이가 수억 겁의 세월을 구른 뒤 작은 모래로 빛나는 것, 혹은 수없는 물이 모여 제 몸 안에 청청한 산그림자를 그려내는 것을 발견해내는 그의 서정은 건강하고 맑디 맑은 이데아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에 비해, 작고 사소한 것으로부터 그윽한 사유를 이끌어 내고 있는 안도현은 시의 서사성을 중심축으로 하여 선명한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의 시는 어렵거나 애써 무거운 주제를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산문적인 형식을 띠면서도 함축적인 여운을 주는 주제를 선택해 장면적이면서도 정확한 의미 전달을 지향한다.「가을의 전설」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시는 재미성이 표징을 이룬다. 저수지 물가에 배 한 척이 매어 있어 단풍놀이를 즐겨볼까 싶은 심산으로 주인집을 찾아 갔더니 고추를 매만지던 주인 아낙이 “대낮에 일도 없이 뭔 배를 탈라고 헌다요?” 하는 말에 그만 아내가 부끄러워 불이 붙은 단풍나무가 되었다는 이 시는 언어 유희적 요소가 시의 곳곳에 교묘하게 배치되어 있어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재미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타는 배와 사람의 배, 매운 고추와 사람의 고추 그리고 “대낮에 일도 없이 뭔 배를 탈라요?”에 함의된 해학적 의미 등은 시적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우리에게 시를 읽는 재미가 무엇인지를 제공한다.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안도현「겨울 강가에서」부분 강물이 세차게 뒤척이는 까닭을 ‘어린 눈발이 사그러져지게 되는 것이 안타까워서’라는 그의 시각은 독특하다. ‘어린 눈발’을 의인화시켜 우리에게 연민을 이끌어 내며 무형의 존재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그의 시적 방법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사소하게 흘러만 가는 강물에서 따스하고도 넉넉한 모성성을 이끌어내는 그의 서정은 그윽한 사유에서 나오는 통찰력이 아니면 만나지 못하는 삶의 예지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오늘날의 시에서 쉽고 평이한 언어로 독자의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그의 시는 ‘시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에 답하고 있는 시에 다름 아닐 것이다. 김용택과 안도현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주변을 맑고 결고운 서정으로 따뜻한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면 오늘의 시의 한 징후를 보여주고 있는 이윤학의 시는 근대 체험과 과거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신 안에 숨어 있는 황폐의 감정을 현동화(acturlization)시킨다. 시적 대상에 자신의 감정을 투사시키는 그의 언어적 인식은 대상에 자신의 입김을 불어 넣어 대상과 자신이 구별하기 힘들게 만든다. 자아와 대상이 서로 교호하며 삼투하여 동일화를 이루는 그의 시는 사물이나 풍경을 막연히 그려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통해 대상의 뒤에 숨은 의미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알레고리의 시학’을 보여주는 그의 시는 상징과 지시 대상이 중층화되며 입체성을 이룬다. 이를 통해 그의 시는 소읍과 변두리 도시 공간을 주 배경으로 삼고 이와 연계하여 음울한 자아의 모습을 흐린 흑백 필름처럼 아련하게 보여 준다. 잠을 이룰 수 없는, 겨울, 낮은 키의 울타리를 넘어오는 사람. 이불을 둘둘 말아 가슴속에 구겨넣고 먼 곳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야 했다. 밤새, 우리의 죄는 먼 곳에 있고······ 뼈 속으로 스미는 빗물에  그 무엇도 지울 수가 없었다. 입술의 푸른 멍이 몸 구석구석으로 녹아들고 부르튼 열매들이 붉은 꽃을 피워냈다. 시퍼렇게 도는 피를 닮은 잎들, 문신들, -이윤학「사철나무」부분 시적 대상에 자신의 감정을 전이시켜 문맥화시키는 그의 시는 주관적 감정과 체험이 강조되는 특징을 보인다. 추억이 주는 통점과 자아와 세계와의 불화를 조직화된 감수성으로 농밀하게 그려내는 그는 공허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내면의 공간에서 발화하고 발효된 이미지들을 하나씩 불러내 어두운 영혼의 그림자를 시의 전면에 유포시킨다. 그의 시는 김용택과 안도현의 시와 구별된다. 김용택과 안도현의 시가 세계와 동화하며 조화와 균형을 노래하고 있다면 이윤학의 시는 세계와 대응하며 세계에 끊임없이 위협받는 자아의 불안과 불화를 노래한다.  이윤학과 같은 시적 공간에 잇대어 있으면서 구수한 충청도 방언과 위트 넘치는 입담으로 어둡게 보일 수도 있는 삶을 밝고 명랑하게 그려내는 특징을 보이고 있는 이정록은 가늘지만 질긴 생명력을 사물에 불어 넣는다. 믿음직스럽고 신뢰할 수 있는 그의 목소리가 시의 곳곳에 포진하면서 완성미를 갖추고 있는 그의 시에는 밝은 사랑과 진솔한 삶이 묻어 있다. 큰애야 이따 돌아갈 때에는  네 아비가 마지막으로 묵었던 수덕여관엘 가봤으면 좋겠다 가슴 속 빨랫방망이를 꺼내어 눈물 찍으신다  피서 와서까지 그러시냐고 투덜거리자  나는 여기와서도 피가 서는구나 하신다 앞산이 갑자기 캄캄해지더니 도토리만한 소나기를 훑고 지나간다 한바탕 빨래를 마친 하늘에 된장잠자리들 가득하다  저것이 다 먼저 간 것들이여 한참을 올려다보신다 광목 홑청처럼 하늘이 팽팽하다 -이정록「피서」부분 할머니가 영면하시 전 ‘가곡’라는 곳으로 피서를 가서 건너편 산의 도토리는 누가 따갈까 걱정하시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군더더기 없이 기술하고 있는 이 시는 부풀리거나 축소시키는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를 그려냄으로써 시적 호기심을 유도해 낸다. 슬픔을 슬픔으로 그리지 않고 슬픔 속에 깃들어 있는 강한 페이소스를 드러내 보이는 그의 시는 시적 주제에 압도당하지 않는 그의 감성적 여과력을 보여준다. 시적 대상을 통어하며 서정의 건강함을 드러내고 있는 그의 시는 시인의 체험과 음성이 짙게 배어 있다는 점에서 시는 곧 그 사람이라는 텍스트적 의미를 지닌다.  김용택, 안도현, 이윤학, 이정록의 시는 각각 산, 강, 농촌, 도시 변두리와 같은 근대 공간을 배경으로 자신의 서정을 표현한다. 그들의 시는 서로의 개성에도 불구하고 늘상 부딪치는 현실의 체험을 어려운 수사를 동원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시에서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서정의 세계를 미감 있게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가 잃어 버렸거나 혹은 잊어 버리고 있던 자연의 아름다운 서정과 원체험적 인식들이 진실하게 그려내고 있는 그들에게서 발견되는 이러한 미의식이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전자 정보화되어 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참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일깨워 줄 것이 틀림없다.  3. 비극적 세계관의 추체험적 인식  90년대의 시는 세기말적 불안과 휴머니티의 상실이라는 위협 속에서 비극적 현실 인식이 문면에 전포되어 있었다. 절대적 권위를 누리던 담론들과 결핍된 욕망만의 분열된 주체의 몸 안에 기생하고 있었다. 90년대의 시는 인문학적 사유가 사라진 파편화된 욕망을 환유한다. 과학에 지배된 반윤리가 새로움의 이름으로 시를 감염시키기며 폐허에 풍경을 만들어 냈다. 남진우, 송찬호, 박형준의 시는 이같은 비극을 내면화시키며 그 내면 속에서 겪는 불화와 혼돈을 정합화시킨다. 80년대에 독특한 개성의 시세계를 보여준 바 있는 남진우는 죽음과 소멸, 종말과 허무와 같은 비극적 세계관을 몽유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어두운 영혼의 그림자를 떨쳐 버리기 위해 전부 그의 사유를 할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철저하게 죽음의 이미지에 천착한다. 그의 죽음에 대한 불안은 외부로부터의 단절이나 소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내부에서 생성되는 비극적 에너지에서 온다. 그는 죽음을 넘어서려 하거나 죽음 앞에서 무력한 비굴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내부에 가득찬 소멸과 죽음의 목소리를 그로데스크하면서도 깊이 있는 언어로 낯설고 진기한 죽음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 밤 죽은 자를 태운 배가 내 집 앞에 도착했다 새벽이 오기 전 그 배에 불을 질러  더 먼 바다에 떠나보내야 한다 그 배가 삐걱이며 내 잠 속으로 가라앉아버리기 전에 죽은 자들과 한 모든 계약을 끝마쳐야 한다 식인 상어와 암초들을 피해 어렵게 흘러든 해안 간신히 잠에서 빠져나온 내가 눈을 비비고 일어서면 희미하게 밝아오는 창문 저편 죽은 자를 태운 배는 서서히 떠나고 있다 -남진우「검은 돛배」부분 죽은 자를 태운 배가 집 앞에 당도했다고 믿는 그의 죽음에 대한 의식은 세계를 인식하는 그의 태도가 단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를 지배하고 있는 죽음에 대해 사로잡힌 망령은 지극히 병적이다. 그에게 공간은 죽음을 인식하는 기제에 불과할 뿐 그가 죽음을 인식하는 공간이 도시이거나 그의 집 혹은 그의 내부이거나 하는 것은 그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시간 역시 그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시적 환경에 불과할 뿐 시간이 주는 의미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의 집요한 죽음에 대한 천착은 그러나 우리들 의식 저 편 깊숙히 허무로 자리잡고 있는 세계를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 외에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무의식 속에서 역동적으로 파동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고 침묵적이다.  남진우가 우리들 삶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세계를 비정하게 파헤치며 음울의 벽화를 통일성 있게 그려내고 있다면 유추의 언어로 건조한 서정을 펼치고 있는 송찬호는 비약과 절제 같은 지적 조작을 통해 시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의 시는 감정을 최대한 감춘 채 대상을 장면화시킨다. 이로 말미암아 그의 시는 시적 해석의 다양성을 제공하는 한편 이러한 난해성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조합을 보다 새로운 시각에서 맥락화시키고 보다 심원하게 의미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놓았을까 모락모락 밥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고소하고 노오란 달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오르는 추억의 반죽덩어리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은 것이냐  먹고 버린 달 껍질이 조각조각 모여 달의 원형으로 회복되기까지  어기여차, 밤을 굴러가는 달빛처럼 단단한 근육 덩어리 달은 꽁꽁 뭉친 주먹밥이다 밥집 위에 뜬 희망처럼, 꺼지지 않는  -송찬호,「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전문 송찬호의 서정은 고정되어 있는 사물의 관념을 일탈시키며 시적 주제까지 관습적 의미로부터 탈골시키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의 시는 언어가 서로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환상적인 이미지를 텍스트 내 숨기거나 허구화된 관념을 코드화시킨다. 이로 인해 그의 시는 현실이 현실로서 읽히지 않은 채 우리에게 새롭게 부가되는 낯선 힙들을 강화한다.「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도 마찬가지다. 이 시 역시 우리의 보편적 인식을 거세시키며 관념들이 빚어내는 추체험 인식을 요구한다. 그의 시는 명료성을 유예하는 대신 의미를 다중화시킨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시는 언어가 빚어 내는 미적 세계로 관습적 시 문법에 감금되어 있는 담화 방식을 깨뜨린다. 송찬호가 언어적 상상력으로 낯선 힘들을 강화는데 비해, 박형준은 자신을 둘러싼 존재들의 불화를 드러내며 자아를 속박하고 있는 억압을 끊임없이 해방시키고자 한다.  자전거를 타고 방죽에 왔다. 들끓는 잎의 물결이 바퀴살에 갈라져 빛이 사방으로 퍼졌다. 섬을 지고 있는 거북처럼 논 사이에서  파닥거리는 수금 방죽에 자전거를 타고 왔다. 침례교도들이 차가운 물을 헤치며 소름이 돋는 몸을 움직여 세례를 받는다. (····················) 아침 방죽을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거닌다. 산책만이 살아 있는 유일한 형식, 누군가 모과나무 사이에서 바라본다면 좋으리라 -박형준,「수금 방죽」부분 박형준 시의 균형은 자아와 시적 대상과의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며 상호 교환적 태도를 유지하는 데 있다. 자아와 대상이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서로 습합되고 있는 그의 시는 흥분이나 과장 대신 치밀한 질서를 계량하고 차분하면서도 진지한 어조로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되살려 놓는다. 이완과 긴장을 번갈아 가며 시의 전면에 펼쳐는 그의 서정은 시적 대상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불순과 모멸을 정화시킨다. 그의 세계관은 우울하면서도 힘이 있다. 자아의 비극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음울하게 드러나는 그의 시는 우리의 감성적인 에너지를 자극하며 자아의 내부에서 충돌하고 있는 정서를 스팩타클하게 보여준다. 남진우, 송찬호, 박형준의 시는 자아 내부에서 일고 있는 감정을 감춘 채 현실에서 유추된 세계를 언어 미학적으로 구조화시키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의 시는 현실의 세계가 거의 거세된 채 상상력과 추체험적 인식들로 채워지는 은유 구조를 갖는다. 비록 생경스럽지만 우리 시의 관습에서 벗어나 현대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시는 우리 시의 영역을 한층 더 넓히며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할 것이다.  4. 건강하고 순결한 영혼을 찾아서  정보화 사회라고 일컫는 오늘날 인간의 정서적 가치가 한층 더 강조되는 느낌을 주는 것은 과학이 주는 진보와 합리가 더 이상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각은 이미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인간과 생명의 문제에 대한 공동 관심에 그 기본을 두고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갖는 소비적 욕망이 탐욕적 인간을 만들고 과학이 주는 허구적 환상이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이때 서정에의 관심과 복귀는 점점 잊혀져 가는 인간의 문제를 새삼 발견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서정과 존재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는 김기택, 장석남, 박용하의 시는 우리 시의 전망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될 수 있다. 먼저, 관찰과 묘사를 바탕으로 사물과 존재에 내재해 있는 생의 의지를 치밀하게 형상화시키고 있는 김기택은 ‘육체의 시학’이라 할 수 있는 몸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그의 시적 탐험을 계속한다 난로 위에 머리카락 하나가 떨어진다. 머리카락은 타면서 액체가 된다. 액체는 거품을 물고 격렬하게 꿈틀거린다. 그 꿈틀거림 속에서 고약한 냄새가 뿜어져나온다. 뿌리를 뻗으며 식물인 양 얌전하게 자라던 것이 불에 닿자마자 슬픈 몸짓 역한 냄새로  제 뜨거운 동물성을 있는 대로 드러내니, 눈 달린 것 이빨 달린 것 숨쉬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독한 냄새를 지우려고 창문을 열자  차고 커다란 겨울바람이 들이닥친다. 머리카락 속에서 용쓰던 힘과 냄새는 그 바람 속으로 고분고분하게 빨려들어간다. -김기택,「머리카락 하나」부분 김기택 시의 특징은 우리가 사소하게 여기는 것을 예리하게 붙잡아 사물의 외양 뿐만 아니라 속성까지 치밀하게 재생산해 내는 데 있다. 고요하고 번득번득한 삶의 통찰자로서의 표정이 짙게 배어 있는 그의 시는 몸 안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온몸으로 삭혀 그 스스로를 무기화한다. 이런 까닭으로 그의 시는 부드러움보다는 강인함이, 낭만보다는 리얼리티가 문면에 자리잡는다. 남성적 자아로서의 세계 인식을 보여주며 육체의 건강함을 복원하고 있는 그의 시는 우리 시에서 부족한 논리로서의 시의 미감을 건강하게 보여주며 서정을 맥락화시킨다.「머리카락 하나」역시 난로 위에 머리카락이 떨어져 액체가 되는 단순한 사실을 치밀하게 관찰한 후 급기야 죽음으로 인식하는 그의 태도는 그가 시를 형상화 하는데 있어 얼마나 집요한가를 보여준다. 이에 반해, 80년대 거대 서사가 붕괴된 이후 독특한 서정의 세계를 펼쳐 보인 장석남은 시류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시세계를 아름답게 펼쳐 보인다. 완성도 높은 시를 써온 그의 시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순수 서정’과 ‘탁마된 언어’이다. 요즘은 바람 불면 뼈가  살 속에서 한쪽으로 눕는다 꽃잎이 검은 무늬를 쓰고  내 눈에서 떨어져 발등을 깨친다 나는 안보이는 나라를 편애하는 것이 틀림없어 이 진흙별에서 별빛까지는 얼마만큼 멀까  -장석남「진흙별에서」부분 장석남의 서정은 우리가 잃어 버리고 있던 꽃, 별, 나무, 바다 등과 같은 자연적 소재를 시 속에 끌어들인다. 디테일한 정서를 자연적 소재에 호흡을 입히고 있는 그의 시는 언어의 미감에 공을 들이는 한편 행과 행 사이, 연과 연 사이의 울림이 주는 여운적 감동에 힘을 기울인다. 그는 사물의 세계나 속성을 핍집하게 그리기보다는 재현적 세계를 무효화시키며 시가 주는 관념의 모형을 제시한다. 영롱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들로 우리들 심층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순수 서정을 일으켜 세우고 있는 그의 시는「진흙별에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진흙별은 “뼈가/ 살 속에서 한 쪽으로 눕”고 “꽃잎이 검은 무늬를 쓰고/ 내 눈에서 떨어져/ 발등을 깨치”는 현실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 현실의 세계는 시적 언어에 전화되어 시의 내면에서는 관념화되어 나타난다. “이 진흙별에서 별빛까지는 얼마나 멀까”라는 구절이 의미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그가 현실 속에서 지향하는 이데아의 세계가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만 제시할 뿐이다. 장석남이 시 속에 현실의 문제를 용해시키며 융화된 순수 서정을 아름답게 펼쳐 보이는데 반해, 박용하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위기의 문제들을 시 속에 적극적으로 끌여 우리를 사로잡는다. 유년 체험에서부터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역사와 사회적 상황까지, 에두르지 않고 문맥화시키고 있는 그의 시는 우리에게 시를 읽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숨소리라니! 국가에 물들어 있지 않은 無爲의 나무들이 문을 잎여는 믿음의 전화 소리가 들린다. 국가가 괴물일진대 교회가 더 큰 죄를 키우는 휴식일진대 나에게 넉넉한 교회는  나무들의 뽐내지 않는 품. 나무들은 세상 밖과 안의 경계에서  인간들을 만난다. 그 경계의 밖으로 떠나지 않는 나무들의 마음 그 복판에서 나는 자연의 국가를 숨쉰다. -박용하「靑銅 구리빛 나무들의 노래」부분 박용하가 노래하고 있는 나무는 국가와 교회, 인간들과 구별되는 비세속적 대상이다. 나무는 박용하에게 있어 자신을 넉넉하게 받아 주는 무구(無垢)한 존재이며 무구한 국가이다. 박용하는 현실과 자아의 대립을 통해 자신이 속하고 있는 현실의 허위를 부정하고 냉소한다. 그는 자신이 꿈꾸고 있는 행복에 가깝게 가기 위해 역사와 사회 속의 불안정한 자아를 투명하게 그려내며 과거와 현실의 문제를 희망과 전망으로 전이시킨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아와 사회가 서로 길항하면서 발견되는 세계의 모순을 적의적으로 바라보면서 영혼을 억압하는 인간의 헛된 욕망을 조소한다. 우리들 삶에 대해 반성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승리로 이끌려는 그의 ‘정체성의 시학’은 세계의 균열을 해석화하고 참된 질서를 실현시키고자 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주체적이라 할 수 있다.  김기택, 장석남, 박용하의 시는 인간의 존재를 문제 삼으면서 순수 서정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다. 이들에게 있어 현실은 불화와 허위의 대상이며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다. 이를 통해 이들의 시는 육체와 정신의 건강함을 되찾는 한편 폭력과 허위로부터 우리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폐허의 서정을 구출하고자 한다. 생명과 그 생명 속에 깃든 영성(靈性)을 찾아내 이를 사려 깊게 펼쳐 보이는 이들의 시에서 우리는 오늘의 현실에서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눈여겨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5. 나오는 말 서정시는 인간의 감성에 감응을 요구하며 시대와 환경 혹은 시인의 경험과 개성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모해 왔다. 특히 오늘의 시는 후기 산업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다양한 가치와 탈근대로 치닫고 있는 주변 환경과 서로 맞물리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다원적이며 중층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지배 담론을 형성해 왔던 거대 서사 담론의 붕괴 또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던 억압된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내면서 우리 시의 지형도를 한층 더 높은 미적 세계로 바꿔 놓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본원적 가치와 생명적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서정시는 응전과 반전을 거듭하면서 그 책임을 다 해왔다. 비록 그 목소리가 변화해 가는 문화 환경을 다 담해내지 못하고 권력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의 부정적 기능들을 다 파헤치지 못했다 하더라도 시 자신의 정체성을 않으려는 노력만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서정시가 지니고 있는 미적 양상은 다양하기 그지 없다. 남성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 여성의 권리 찾기를 노래하고 있는 페미니즘 시에서부터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자연 파괴와 환경 오염을 적시하는 생태 환경 시 그리고 육체성과 인간의 내면 감정을 노래하는 시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가 존재하고 있다. 이들 시에는 생산 조건이나 생산 방식은 다르다 하더라도 인간의 감정을 대상화시켜 타자들과 교감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다는 점에서 또한 인간과 사회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존재를 거세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서로의 공통점을 갖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근대 공간의 체험과 대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조화와 불화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 김용택, 안도현, 이윤학, 이정록의 시는 원체험적 인식을 드러내며 물화된 자연과 인간의 내부를 결고운 언어로 담아낸다. 이에 비해 죽음, 소멸, 쇠약, 부도덕과 같은 사회와 인간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병리 현상을 은유 구조화시키고 있는 남진우, 송찬호, 박형준의 시는 고도의 시적 장치를 통해 깊이를 심원화시키고 넓이를 확장시키고 있다. 또한 김기택, 장석남, 박용하의 시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에 깃든 신성과 폐허의 서정을 강건하게 그려내며 순결한 영혼이 꿈꾸는 세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서정시는 온갖 병폐와 대응하면서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을 순수한 정감을 드러나게 해야 하는 전략적 책무를 지닌다. 컴퓨터와 같은 전자 매체가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생활 습관까지 바꿔놓는 오늘의 상황에서 서정시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서정시는 위기로 인식되는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야 할 도덕적 책무를 지니며 동시에, 참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고도 바르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럴 때만이 시가 확보하고 있는 주체의 자리를 지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   116. 강 / 송수권                           강                                                송수권      이 겨울에는 저무는 들녘에 혼자 서서 단호한 믿음 하나로 이마를 번뜩이며 숫돌에다 칼을 가는 놈이 있다 제 섰던 자리 벌판을 두동강 내어 어슬어슬 황혼 속으로 걸어가는 놈이 있다     보아라 저 방랑의 검객 한 굽이 감돌면서 모래밭을 만들고 또 한 굽이 감돌면서 모래밭을 만드는 건 힘이다      누가 저 유연한 힘의 가락 다시 꺾을 수 있느냐 누가 저 유연한 힘의 노래 다시 부를 수 있느냐     우리는 어느 산굽이 또 한 바다에 시퍼런 금이 설 때까지 흐득흐득 지는 잎새로나 숨어 유유히 황혼 속으로 사라지는 저 검객의 뒷모습이나 지켜볼 일이다.       송수권 자선시집 중에서                117. 혼자 먹는 밥 / 송수권                       혼자 먹는 밥                                             송수권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다      숟가락 하나 놋젓가락 둘      그 불빛 속 딸그락거리는 소리      그릇 씻어 엎다 보니 무덤과 밥그릇이 닮아 있다      우리 생(生)에서 몇 번이나 이 빈 그릇 엎었다 되집을 수 있을까      창문으로 얼비쳐 드는 저 그믐달 방금 깨진 접시 하나.       송수권 시집 중에서                            
969    시인들이여, - 진짜배기 시인답게 좋은 시써라... 댓글:  조회:4558  추천:0  2016-01-10
좋은 시와 나쁜 시 박태일(시인, 교수) 1 시는 제도와 관습의 산물이다. 끊임없이 이어진 시공간적 단위의 구성원이 서로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인 것으로 믿어온 담론 구성물일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 둘레 주류 시론에서 말하고 있는 시에 대한 생각은 부분 개념이거나 역사적 정의에 머문다. 처음부터 시의 본질이니 순수한 시정신이니 호들갑을 떠는 일은 수사적 부풀림이거나, 특정 시관에 대한 배타적 우월성을 굳히기 위한 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한 자각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특정 시관을 금과옥조로 일반화시키는 잘못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따라서 시와 비시의 경계는 유동적이다. 너무 느슨해서 오히려 경계의 나눔이 불필요해 보일 정도다. 어떤 작품이 시냐 시가 아니냐는 물음이 어리석은 까닭이다. 그보다는 좋은 시인가 나쁜 시인가 하는, 특정한 시적 취향과 그 관점을 밝히고 그에 대한 정당성을 토구하기 위해 나아가는 일이 생산적이다.  (ㄱ)콩나물죽  후룩후룩 먹으며 아버지 생각하였다 우리 아버지 돌아오시면 죽 안 먹으려니 하고 (ㄴ)새벽빛을 보고 싶어  불을 켜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새벽빛에 젖고 싶어  한없이 젖어들고 싶어…… 푸르른 몸이여 여명의 마음이여. (ㄱ)과 (ㄴ)은 둘 다 시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먼저 이 둘은 줄글 꼴로 쓰여진 예사로운 산문과는 다르다. 겉꼴에서부터 들쭉날쭉 글줄이 들고 난 가락글이다. 오늘날 가장 흔한, 그리고 가장 낯익은 시꼴이다. 그리고 둘 다 시집이라는 형태공간에 실려 있다. 그러하니 이 둘을 두고 시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다만 남은 문제는 있다. 이 둘 가운데서 어느 쪽이 더 좋은가 나쁜가라는, 작품에 대한 호오․취향에 대한 물음이다. 이 둘이 시인가 시가 아닌가라는 물음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먼저 (ㄱ)을 좋은 시로 여기는 이가 있을 수 있다. 시 속에 담겨 있는 현실감각을 눈여겨본 사람일 성싶다. 짐짓 배고픈 아이의 생각과 몸짓을 이음매로 내세운 가난이라는 현실이 짧은 시줄 속에 잘 옹글었다. 거기다 이 시는 나라잃은시기 1930년대 이른바 조선총독부의 검열에 걸려 일간지 지면에 실리지 못했던 작품 가운데 하나다. 조선의 빈궁 현실을 다루어 민족의식을 북돋울 수 있는 위험이 큰 작품으로 보였던 까닭이다. 이런 설명까지 덧붙인다면 (ㄱ)에 대한 독자의 호감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무명시인의 습작기 투고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달리 (ㄴ)을 나쁜 시로 꼽는 이가 있을 수 있다. 이 작품만을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ㄴ)은 구체적인 삶과 겉돌아 추상적이다. 작품 내용도 어름하다. 반복법에 이끌린 영탄조마저 없었다면 이 시를 객쩍은 벌소리로 볼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실상 이 작품은 그렇게 낮추어 보기 힘든 시다. 명망가 시인인 정현종의 것인 데다, 그에게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가장 상금이 많은 시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인 까닭이다. 이런 무거운 사실을 일깨워준 뒤 다시 독자에게 (ㄴ)에 대한 호오를 물어보라. 이 작품을 벌소리에 가까운 것이라 여겼던 이도 마냥 생각을 지켜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에 지녔던 눈길을 그대로 밀고 나가려면 유명 문학상과 그 심사위원회의 식견, 그리고 시상 주체의 사회적․제도적 명성과 권위체계를 딛고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 개인이 떠맡기 힘든 일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좋은 시와 나쁜 시를 결정 짓는 취향의 요건 또한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시 자체에서 오는 것 못지 않게 시 바깥에도 있다. 어쩌면 시 바깥 요인이 더 결정적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시 작품은 문학사회의 거시 제도 안에서 마련한 미시전략의 결과다. 각급학교 문학교육, 등단방법, 문학상과 같은 다양한 인정기제나 제도적 틀, 대중매체나 저널 문화면의 명성 생산과 재생산, 또는 인맥․학맥․지맥과 같은 문화자본, 서점 유통 단위에서 나타나는 판매지수나 기호도 순위와 같은 중계회로의 소비전략이 그 내면화의 세부를 이룬다. 이른바 시의 역장이다.  흔히 문학사회 안에서 시의 자리는 세 가지 역장을 보여준다. 고급시와 대중시, 그리고 교양시가 그것이다. 이 셋은 서로 다른 시적 취향과 목표를 겨냥한다. 그러면서 서로 긴장, 대립, 보족 관계를 거듭한다. 오늘날 우리시는 이러한 세 역장을 껴안고 있는 제도의 결과물이다. 좋은 시인가 나쁜 시인가 하는 잣대와 조건은 이 역장 안에서 다시 나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여러 길항관계를 받아들일 때라야만 비로소 시에 대한 열린 개념 정의와 이해가 가능하다. 이러한 전제를 깔고서 좋은 시의 요건을 몇 가지로 들어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나쁜 시의 모습 또한 자명해질 것이다.  2 첫째, 좋은 시는 무엇보다 좋은 시인으로부터 말미암는다. 좋은 시의 첫째 요건이 이것이다. 시인을 바라보는 눈길에는 크게 둘이 있다. 심리적 시인관과 사회적 시인관이다. 심리적 시인관이란 시인 안쪽에 시인이 됨직한 특질을 갖추고 있다고 보는 생각이다. 이럴 경우 시인은 보통 사람과 나뉘는 특별한 이로 여겨진다. 사회적 시인관은 이와 달리 시인은 사회 안쪽의 인정기제에 따른 결과라는 생각이다. 이럴 경우 시인은 여느 사람과 다름없다. 다만 시 창작 수련과 발표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이를 뜻한다. 그가 시인일 수 있는 터무니는 등단 제도나 방식을 거쳤는가 아닌가에 있을 따름이다.  우리 근대시사에서 좋은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이들은 그 삶에서 흔히 특별한 면모를 지닌다. 때로 안타까운 요절이나 열정적 연애와 같은 비장함, 언어 바깥의 선정성으로 겉칠된 삶이 그것이다. 곧 특별한 삶에서 좋은 시가 나올 것이라는 소박한 인과론, 개성론의 틀은 시인 됨됨이에 타고난 각별함을 요구한다. 심리적 시인관을 밀 수 밖에 없다. 시작에 대한 즉흥성과 시인에 대한 예외성을 버릇처럼 요구하는 태도가 이로부터 말미암는다. 그러나 좋은 시인은 세상의 그러한 조급한 기대와는 달리 끊임없이 시와, 언어와 다투는 이다. 그의 작품이 좋은 시 자리에 오를 개연성은 그만큼 크다.  둘째, 언어를 중심으로 좋은 시의 요건을 따져 봄직하다. 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숱한 언어 관습 가운데 하나다. 그러면서 언어의 특이성과 가능성을 극대화하려는 갈래다. 드높은 언어 관습이자 진지한 말놀이인 셈이다. 이 점을 형식주의자의 생각에 따라 일탈이라 부르든 비틀기라 부르든 시가 언어라는 조건을 받아들이는 한에서는 달라지기 힘든 자질이다. 따라서 좋은 시는 언어의 진폭이 넓고, 다채롭게 그 활용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무엇보다 언어는 자민족 중심적이다. 언어 활용의 가능성이란 바로 민족어의 가능성과 다르지 않다. 100년 남짓한 근대 시기 동안 우리시는 노래로 불려졌던 노래시가 아니라 눈으로 읽는 문자시로서 한글의 용례를 키우고 그 쓰임새를 세련시킨 공이 크다. 이 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근대시의 전통이다. 좋은 시는 이러한 전통을 따르면서도 그것을 더욱 변화, 발전시킨 경우다. 따라서 우리 근대의 제국언어였던 일본식 한자 투에 갇혀 있는 시는 좋은 시가 되기 힘들다. 영어 공용어론이 솔솔 피어나고 있는 오늘날 눈길에서 볼 때도 이 점은 달라짐이 없다.  글말이란 입말과 달리 본디부터 지식계층, 엘리트 문화물이다. 따라서 민족 구성원과 더불어 함께 하고자 하는 언어로 나아가지 못하는 시는 특권 문화로 떨어질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근대 민족국가의 민족다움을 재는 주요 상수 가운데 하나는 말할 것도 없이 언어의 동질성이다. 그러나 오해 없기 바란다. 이 말의 요체는 추상적인 정치 이념의 동질성이나, 섣부른 민족혼과 같은 명분론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민족 구성원이면 누구나 손쉽게 다가서서 생각과 느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언어여야 한다는 뜻이다. 담긴 뜻의 깊고 얕음이나, 언어기법의 각별함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셋째, 표현?【? 본 좋은 시의 요건이다. 시는 무엇보다 언어의 긴밀성을 요구한다. 따라서 수필이나 소설과 달리 압축과 생략을 바탕으로 삼는다. 시는 줄여 써서 많이 말하는 길을 따르고, 소설은 늘여 써서 적게 말하는 길을 따른다. 이 둘의 차이를 힘껏 맞세운 자리에 시와 소설의 관습적 정당성이 있다. 시가 소설에 가까워져 번잡하고 느슨해지면 더는 오롯한 시의 자리를 내세우기 힘들다. 거꾸로 소설이 시처럼 줄이고 다듬어 말과 말 사이의 긴장을 애써 키우고, 생각을 건너뛴다면 더는 소설 자리를 고집하기 힘들다.  그런데 압축과 생략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시적 요건이 뜻하는 궁극적인 자리는 어딘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반복불가능성, 곧 다르게 쓰여질 수 없는 상태에 이른 표현이 그것이다. 이 점이 진지한 말놀이로서 시 창작의 즐거움이고, 시가 다른 갈래와 맞서 끊임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터무니다. 좋은 시란 바로 기지의 표현과 다른 반복불가능성을 실천하고자 한 작품이다. 다르게 쓰여질 수 없는 상태로 나아가기 때문에 그 말에 힘이 실리고, 그 뜻에 환한 자장이 피어나고, 그 주체인 시인에 대한 외경이 솟아난다.  그렇다면 이 점은 어떻게 확인하는가. 간단한 길이 있다. 해당 시의 특정 부분을 다르게 고쳐 보면 될 일이다. 이 경우 고쳐진 상태가 본디 시보다 더 좋아진다면 그 본디 시는 서툴고 나쁜 시다. 거꾸로 다른 이가 손을 대었을 때, 오히려 고쳐진 시의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본디 시는 다르게 고쳐 쓰기 힘든 상태, 곧 반복불가능성에 가까이 다가선 경우겠다. 이른바 좋은 시인 셈이다. 아무리 명망을 얻고 있는 시인이라 하더라도 다르게 쓰여질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자 하는 열정과 노력, 그것이 일깨워주는 표현 가치를 포기한다면 하루아침에 범상한 시인으로 떨어지고 만다.  넷째, 작품 내용에서 볼 때 좋은 시의 자질에 대해서는 이미 낯설게하기라는 널리 알려진 개념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형식적 일탈에 붙인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 개방, 곧 주류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제기나 대거리라는 적극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손쉽게 이를 수 있는 생각이나 느낌, 이미 타자에 의해 만들어진 기지의 세계를 겨냥한 시는 좋은 작품이 되기 힘들다. 널리 승인된 작품 내용이나 문화관습에 가까이 빌붙으려는 유행시, 특정한 내용만을 부풀리는 키치시와 같은 것들이다.  사랑을 하며 산다는 건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보다, 더 큰  삶에의 의미를 지니리라. 바람조차 내 삶의 큰 모습으로 와 닿고  내가 아는  정원의 꽃은 언제나  눈물빛 하늘이지만,  어디에서든 우리는 만날 수 있고 어떤 모습으로든 우리는 잊혀질 수 있다 사랑으로 죽어간 목숨조차 용서할 수 있으리라 시인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어떤 이의 작품 가운데 한 부분이다. “사랑을 하면 산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드러냈다. 겉만 번지르하고 막연한 생각에 머물고 있다. 키치시라 일컬을 만큼 감상성도 두드러진다. 이런 작품의 가벼움과 얄팍함 속에는 삶에 대한, 사랑에 대한 범상한 감각만이 담겨 있 따름이다. 좋은 시란 적어도 손쉬운 고정관념으로부터 매몰차게 등을 돌리고 서려는 작품에게 붙일 수 있는 이름이다.  다섯째, 독자 쪽에서 좋은 시의 요건을 살필 수 있다. 압축과 생락, 곧 줄여서 말하는 방식인 시는 독자 쪽에서 볼 때 늘여서 읽는 일을 근본 방식으로 한다. 늘여서 읽기 어려운 시, 뻔하고 빤하지 않아 한번에 쉽게 뜻이 잡히지 않은 시, 그것이 무엇인가를 거듭 고심하게 만드는 힘이 큰 작품이 좋은 시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하거니와 적게 말하면서 많은 생각과 느낌을 일깨우고자 하는 역설적 갈래가 시다. 그런 까닭에 독자들의 거듭 읽기와 독서시간의 지연, 곧 소급적 독서는 필연적이다. 좋은 시란 바로 이렇듯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을 작품 안에 묶어두는 힘이 강한 작품인 셈이다.  그리고 그 힘은 여러 방향에서 작용한다. 작품 안일 수도 있고, 작품 바깥일 수도 있다. 문학교육이나 저널의 관심, 문학상과 같은 문학사회의 제도적 장치는 바깥 요인이다. 대중시에 가까울 수록 독자들은 작품 바깥에 의한 규정력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시 읽기는 문화 훈련이다. 일상언어 활동과는 길이 다르다. 세련된 언어관습으로서 읽기 훈련과 그로 말미암은 내면화는 필수적이다. 독자에게 손쉽게 읽히지 않는 시란 그 훈련에 거듭 이끌어들이는 힘이 강한 시다. 그들이야말로 특정 세대독자나 당대 현실독자가 아니더라도 마침내 문학사나 문화 자체가 독자가 되는 시, 오래도록 독자사회로 열려 있을 좋은 시로 거듭난다.  3 좋은 시란 시인된 됨됨이에서부터 언어를 거쳐 표현 방법과 인식 내용, 그리고 독자사회에 이르기까지 여러 자리에서 살필 수 있다. 위에서 나는 좋은 시를 좋은 시인이, 민족어의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는 자리 위에서, 어쩌면 될성부르지 않은 반복불가능한 표현을 겨냥하며, 세계를 개방해주는 쪽으로, 멀리 독자를 묶어두는 힘이 강한 작품으로 규정했다. 여러 편차와 다채로운 맥락이 그 안에서 새로 마련되겠다. 그럼에도 좋은 시는 이러한 요건의 그물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뜻하는 궁극은 마침내 하나다. 뜻있는 말놀이, 문화관습으로서 이르기 힘듦이 그것이다. 그 방위가 어디든 더욱 이르기 힘든 상태를 보여준 작품, 그것이 좋은 시다. 오늘날 문학사회의 환경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대중매체가 시의 취향을 이끈다. 디지털 기술에 따라 향유 방식도 바뀌고 있다. 시를 향한 취향의 높낮이나 경계, 기대지평이 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대중시의 자리가 시단을 이끌고 있다. 문학의 인정기제 또한 그에 맞물려 움직인다. 세련된 독서로서 시 비평과 연구의 경우 또한 다르지 않다.  그런 속에서도 시의 가능성, 곧 언어를 통한 창조적 가능성의 확대라는 쓰임새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좋은 시, 또는 시적인 것을 향한 헌신은 문학사회 안팎으로 지난날과는 견줄 수 없을 강도와 방향에서 요구되고 있다. 이 가운데서 당대시의 전통과 관습의 담장을 흔드는 좋은 시가 나올 개연성은 크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익명의 독자사회가 시인들에게 시를 향한 다함없을 헌신을 한결같이 기대하는 시대 분위기, 좋은 시가 나올 수 있는 처음이자 끝자리다.   ==============================================================================   112. 산문에 기대어 / 송수권                       山門에 기대어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 옴을.     * 그리메 : 그림자의 옛말 ** 산다화 : 동백나무의 일종   송수권 시집 중에서       송수권 연보 1940년 전남 고흥군 두원면 학곡리 1297번지 출생.   1959년 순천사범학교 졸업.   1962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75년 ≪문학사상≫에 ≪산문(山門)에 기대어≫ 등이 당선 등단.   1976년 지리산 노고단 ‘산상(山上) 시화전’ 개최.   1980년 제1시집 ≪산문에 기대어≫(문학사상사) 간행.   1982년 제2시집 ≪꿈꾸는 섬≫(문학과지성사) 간행.   1984년 제3시집 ≪아도(啞陶)≫(창작과비평사) 간행. 해방 후 최초로 ≪분단시선집≫ 편저.   1985년 중등학교 교감 자격증 취득.   1986년 산문집 ≪속(續) 산문에 기대어≫(오상사), 제4시집 ≪새야 새야 파랑새야≫(나남) 간행.           금호문화예술상 수상.   1987년 전라남도 문화상 수상.   1988년 소월시문학상 수상.           제5시집 ≪우리들의 땅≫(문학사상사) 간행. 시선집 ≪우리나라 풀이름 외기≫(문학사상사) 간행.   1989년 산문집 ≪사랑이 커다랗게 날개를 접고≫(문학사상사) 간행.   1990년 국민훈장 목련장 수훈.   1991년 역사기행집 ≪남도기행≫(시민) 간행. 한국현대시 100인 시선집 ≪지리산 뻐꾹새≫(미래사) 간행.           제6시집 ≪자다가도 그대 생각하면 웃는다≫(전원) 간행.   1992년 제7시집 ≪별밤지기≫(시와시학사) 간행.   1993년 서라벌문학상 수상.   1994년 제8시집 ≪바람에 지는 아픈 꽃잎처럼≫(문학사상사) 간행. 국제펜클럽 한국 본부 이사(감사).   1995년 30년간 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연구관으로 명예퇴직.   1996년 남도 음식문화 기행 ≪남도의 맛과 멋≫(창공사) 간행. 제7회 김달진문학상 수상. 광주문학상 수상.   1998년 산문집 ≪빛세상≫(토우) 간행.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와 광주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출강.           남도음식문화축제 심사위원. ≪무등일보≫ 편집위원.           제9시집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노을≫(시와시학사) 간행.   1999년 제11회 정지용문학상 수상.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객원교수 임용.           우리 토속꽃 시집 ≪들꽃세상≫(혜화당) 간행. 육필시선집 ≪초록의 감옥≫(찾을모) 간행.   2000년 ≪태산풍류와 섬진강≫(토우) 간행.   2001년 제10시집 ≪파천무≫(문학과경계사) 간행.           3인(고 이성선, 송수권, 나태주) 시집 ≪별 아래 잠든 시인≫(문학사상사) 간행.   2002년 산문집 ≪만다라의 바다≫(모아드림), 자선시집 ≪여승≫(모아드림) 간행(제 1~8 시집 정리).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정교수 발령.   2003년 제1회 영랑시문학상 수상. ≪시인 송수권의 풍류 맛기행≫, 산문집 ≪아내의 맨발≫ 간행.   2005년 제11시집 ≪언 땅에 조선 매화 한그루 심고≫(시학), 비평집 ≪사랑의 몸시학≫  간행.           논총 ≪송수권 시 깊이 읽기≫(나남), 민담시선집 ≪우리나라의 숲과 새들≫(고요아침) 간행.           시 감상선집 ≪그대 그리운 날의 시≫(고요아침), 시창작실기론 ≪송수권의 체험적 시론≫  간행.           김동리문학상 수상.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퇴임.   2006년 비평집 ≪그대, 그리운 날의 시≫, ≪상상력의 깊이와 시 읽기의 즐거움≫ 간행.   2007년 시선집 ≪시골길 또는 술통≫(종려나무), 산문집 ≪소리, 가락을 품다≫(열음사) 간행.   2008년 장편 동화집 ≪옹달샘 꽃누름≫(문학사상사) 간행. 한민족문화예술대상 수상.   2010년 제12시집 장편서사시 ≪달궁 아리랑≫, 비평집 ≪체험적 시론≫ <시창작 실기론> 간행.           지리산인산문학상, 만해님시인상 수상.     ==================================================   113. 석남꽃 꺾어 / 송수권                              석남꽃 꺾어                                           송수권      무슨 죄 있기 오가다 네 사는 집 불빛 창에 젖어 발이 멈출 때 있었나니 바람에 지는 아픈 꽃잎에도 네 모습 어리울 때 있었나니      늦은 밤 젖은 행주를 칠 때 찬그릇 마주칠 때 그 불빛 속 스푼들 딸그락거릴 때 딸그락거릴 때 행여 돌아서서 너도 몰래 눈물 글썽인 적 있었을까     우리 꽃 중에 제일 좋은 꽃은 이승이나 저승 안 가는 데 없이 겁도 없이 넘나들며 피는 그 언덕들 석남꽃이라는데…     나도 죽으면 겁도 없이 겁도 없이 그 언덕들 석남꽃 꺾어 들고 밤이슬 풀 비린내 옷자락 적시어 가며 네 집에 들리라.       송수권 시집 중에서    
968    시인들이여, - 주변의 소재로 그리라... 댓글:  조회:4543  추천:0  2016-01-10
이미지 선택방식을 통한 시 창작 교육* - '주변의 소재로 그리기'를 중심으로 - 손진은 1. 문제의 제기 제7차 교육과정의 문학과목에서 그 이전의 과정과 두드러진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작품의 수용과 창작에 있다. 즉, 제6차 교육과정 문학과목의 주안점이 문학 작품의 이해와 감상에 있었다면 지난 2000년부터 적용되고 있는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문학 작품의 수용과 창작으로 비중이 옮겨가면서 창작이 문학 과목의 중요한 내용으로 설정되었다. 이는 창조성을 기반으로 하는 창작이 훈련에 의하여 향상될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된 기획이라 판단된다. 시 창작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창조성의 요인은 상상력이다. 창조적인 표현과 비유는 상상력에서 연유한다. 이미지는 상상력의 작용에 의해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같은 사물이나 대상을 바라보고서도 사람들이 각각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상상력 때문이다. 코울리지는 상상력을 수동적인 사물(the passive things)과 능동적인 정신(the active thoughts)을 결합하는 매개적 정신능력(the intermediate faculty)으로 정의하면서, 이를 인간의 직관적 인식능력과 관련된 일차적인 상상력과 대상에 대한 인식을 언어로 창조하는 이차적 상상력으로 나누고 이 중 이차적 상상력은 시인의 체험을 자각적으로 언어화하는 과정에 작용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일차적 상상력과 이차적 상상력의 차이는 그 대상에 대한 인식을 언어로 표현하느냐의 여부에 있다. 그러나 문학교육에서의 상상력은 시인인 주체가 대상을 인식하고 이를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학 작품 창작에서의 상상력'과 실제 문학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작용하는 '문학 작품 수용에서의 상상력'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시 창작 교육의 장에서는 창작과 수용에 작용되는 두 가지 상상력을 통합, 신장시켜주는 모델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본고에서도 창작교육의 과정에서 창작과 수용의 상상력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논지를 전개하고자 한다.  본고에서는 창조적 상상력을 유발시키는 방법 중의 하나로 '주변의 소재로 그리기'라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작품들을 창작교육에 활용하고자 한다. 우선 필자는 백석의 텍스트 중 [北新]을 선택하고, 여기서 사용된 창작 방식이 후대 시인들인 문태준, 기형도, 김영남의 텍스트에서 창작주체들의 경험과 수용방식에 따라 개성적으로 표출되고 있음을 밝히며, 수용자들에게 이 방법을 활용하여 창조적인 표현으로 텍스트를 생산시키기 위한 교수 학습방법과 평가 방식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그동안 문학 교육에 관한 논의들 중에서도 문학적 글쓰기 연구를 통해 일반적인 표현교육 내지는 창작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표현방법을 구안해 낸 성과로는 이지호(1997), 최미숙(1997), 최인자(1997) 유영희(1999), 염은열(1999), 김혜영(2000) 등의 연구를 들 수 있다. 이들 논의는 문학작품의 표현방식을 귀납적으로 연구함으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과 표현 방법이 결합되어 있음을 밝힌 사례라할 수 있다. 그러나 각 작가나 작품을 통해 귀납적으로 추출해낸 표현 방식이 보편적인 표현방식으로 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즉 매개에 대한 연구가 보완되지 않는다면 작가마다 독특한 표현방식을 밝혀낸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창작교육에 관한 최근의 논의로서 주목되는 것은 정끝별의 것인데, 그의 일련의 연구는 패러디, 알레고리, 환상(판타지), 그로테스크 등 시학의 변화에 힘입어 부상하게 된 새로운 규범들이나 장치를 통하여 시 교육 방법을 개발하려는 목적으로 시도되었다. 정끝별의 논의는 새로운 시도로서 충분한 의의를 지니고 있지만, 새로운 문화 경향에 대한 이해와 그 문학적 적용에 무게가 놓여 있고, 상상력을 부추기고 창작욕구를 유발하는 그런 핵심화의 원리에는 아직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 전자가 내재적인 관점이라면 후자는 외재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다.  본고는 전자처럼 내재적인 입장에 서 있지만 작가의 작품에서 도출된 표현방식이 보편적인 표현방식으로 화할 수 없었던 기존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를 교육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모델을 개발로 연결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아울러 본고는 이런 연계화의 방법을 통해 학습주체들에게 우리 시사의 전통을 함께 체험할 기회를 가지도록 함으로써 외재적인 관점이 가지고 있는 단점도 넘어서려 한다.  본고는 시 텍스트의 창작 방법과 과정을 특정 이미지의 선택과 조직의 원리를 통해 확인하고 특정 시인의 창작원리에서 도출된 방식이 후대의 시인들에게 실현되고 있는 방식을 함께 고찰하며 이의 원리를 보다 정교하게 창작주체의 창작에 활용함으로써 '교실창작'에서는 물론, '문단창작'에도 적용시킬 수 있도록 구안되었다. 교육의 대상자들은 대학 국문학과(국어교육과) 내지 문예창작학과 1학년생들이며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도록 수준을 조정하였다. 아울러 본고는 이미지의 선택과 조직의 원리가 각 단계와 이행과정에서 더욱 구체화되고 보다 정교하게 내재화되는 방법으로 논의를 진행한다.  이는 모델의 개발과 적용이라는 본고의 성격과 창작의 속성상 후대 창작주체들이 앞선 창작주체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새롭고 개성적인 요소들을 산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 이해 및 감상을 위한 적용의 실례 문학교육의 지향은 기본적으로 표현과 이해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문학교육의 지향은 이해의 측면에서 학습자가 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하고 감상하는지에 초점이 놓여져 왔다. 본고에서 텍스트의 생산, 즉 창작에 초점을 맞추려는 것도 이러한 경향을 극복하려는 데 기인한다.  본고에서 이러한 의도로 시도하려고 하는 것은 창작주체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 또는 '풍경' 내에 있는 주변 소재들로 이미지화하는 방식이다. 이 때 대상 혹은 풍경은 '지역' 혹은 '문화권'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 방법은 일찍이 백석이 시도했고 후대의 창작주체들이 계승하고 있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백석의 이런 창작경향은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 온 감이 있다. 이숭원은 이런 시적 경향을 포함한 백석 시의 특징을 '訥辯의 美學'이라는 말로 통칭하고 그의 시에 주로 사용된 비유법이 주로 직유이며, 이 때 직유는 세련된 비유가 아니라 일상어가 되어버린 관용적 표현이거나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느낌을 주는 것이며, 보조관념은 土俗的인 事物들이 대부분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중요한 지적임에도 초창기 연구라는 난점 때문인지 그는 백석의 은유와 직유를 시어 차원에서만 관찰했을 뿐 언술 차원으로 논의를 확장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백석 시의 비유 구조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권혁웅에 이르러서 이루어지는데, 그는 '은유적인 병렬'과 '제유적인 종합'으로 백석 텍스트의 구문을 읽어내면서 고향의 세부를 탐색하면서도 공동체의 특질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미지의 선택방식에 대한 고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창작의 측면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창작주체에 의하여 어떻게 이미지가 선택, 구축, 배열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우선 한 편의 텍스트를 통해 그 특징을 검증해 보기로 한다.  거리에서는 모밀내가 낫다 부처를 위하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가튼 모밀내가 낫다 어쩐지 香山부처님이 가까웁다는 거린데 국수집에서 농짝가튼 도야지를 잡어걸고 국수에 치는 도야지고기는 돗바늘 가튼 털이 드문드문 백엿다 나는 이 털도 안뽑은 도야지 고기를 물구럼이 바라보며 또 털도 안뽑는 고기를 시껌언 맨모밀국수에 언저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것을 느끼며 小獸林王을 생각한다 廣開土大王을 생각한다 -[北新-西行詩抄 2]({朝鮮日報} 1939. 11. 9.) 백석의 시에서 사물들은 그 자체로 시적 대상이 되어 독특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많은 시에서 그는 주변의 소재들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끝부분에 와서 대상이나 사건을 초점화하는 방식으로 텍스트를 창작한다. 이 시 역시 가장 백석다운 시적 표현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돗바늘 가튼 털"을 비롯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가튼 모밀내", "농짝같은 도야지" 등의 직유를 통해 어떤 세련된 표현도 따라올 수 없는 강렬하고 신선한 이미지로 수용자를 압도한다.  돗바늘은 가마니 같이 투박하고 거친 사물이나 피륙을 꿰맬 때 사용하는 굵은 바늘인데, 백석은 그 바늘이 굵고 두껍고 거친 사물을 꿰뚫고 나오는 생명의 강인함을 (배를 뚫고 나온) 털로 묘사한다. '농짝/도야지'의 대비는 그 자체로 이미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의 결합으로 효과를 배가시킨다. 네 다리가 묶인 채로 거꾸로 걸려 있는 돼지의 모습은 몸피는 굵고 다리는 짧은 농짝과 흡사한 유사성을 지닌다. 이런 이미지를 통해 수용자는 토실하게 살이 올라붙어 굵어진 몸집과, 짧은 다리를 가진 돼지의 모습을 어느 것보다도 선명하고 익살스럽게 떠올릴 수 있다.  백석 시의 깊이에는 이렇듯 수용자들에게 미학적인 즐거움을 제공하여 유희의 세계로 인도하는 부분이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이는 또한 집안의 가축과 기물, 무생명과 생명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가튼 모밀내"도 마찬가지다. 후각의 동일성을 통해 수용자는 작품 [국수]에서 나타나듯 식물(모밀)과 어진 인간(정갈한 노친네)을 하나로 결합, 인간미 있는 삶의 체취를 환기해 내려는 창작주체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물론 이 시는 1, 2연의 은유적 병렬을 3연의 제유적 종합으로 이끌어내어 의도된 전체 의미로 대상을 초점화하고 있지만 수용자의 입장에서 눈여겨 볼 가장 중요한 창작원리는 이미지의 선택과 조직의 원리에 있다.  즉 백석은 고향으로 표상되는 농촌공동체의 공간에서 발견할 수 있는 토속적인 사물을 자신만의 독특한 기준에 따라 비유의 소재로 선택함으로써 강렬한 호소력과 범상치 않은 깊이를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백석의 시는 수용자에게 순박하고 평화로운 전통세계와 유년에 대한 그리움을 실감 있게 조응해낸다. 아래의 평가는 이같은 모더니스트로서의 백석 시의 특질을 적실하게 짚어내고 있다. 이 같은 뜻에서 白石은 1930년대의 드문 스타일리스트라고 말할 수 있다. 고요하고 平明한 추억의 세계를 결코 범속한 것으로 버려두지 않으려고 하는, 이 강인한 고집스러움이 白石詩가 확보한 現代詩史의 뚜렷한 위치가 아닐까. 백석 시의 거의 전편을 흐르는, 작품의 수용자를 공감 속으로 깊이 있게 공명시키는 이런 감동은 긴 산문체 호흡의 도입과 병렬을 포함하는 서술자질 등의 다른 요인들도 많이 작용하지만 이 글에서는 주로 주변의 소재를 이미지로 선택, 배열하는 방식으로 한정하여 논지를 전개한다. 이러한 백석 시의 방법론을 적용시켜 창작한 다음의 텍스트를 통해 이 창작법이 어떻게 후대 창작주체들에게 활용되고 있으며 또 실제창작에서 수용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처음에는 까만 개미가 기어가다 골똘한 생각에 멈춰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등멱을 하러 엎드린 봉산댁 젖꼭지가 가을끝물 서리맞은 고욤처럼 말랐다 댓돌에 보리이삭을 치며 보리타작을 하며 겉보리처럼 입이 걸던 여자 해 다 진 술판에서 한잔 걸치고 숯처럼 까매져서 돌아가던 여자 담장 너머로 나를 키워온 여자 잔뜩 허리를 구부린 봉산댁이 아슬하다 - 문태준,[개미]({수런거리는 뒤란}, 창작과비평사, 2001.) 기어다가 멈춘 개미와 '등멱을 하러 엎드린 봉산댁'을 비롯, '젖꼭지/서리맞은 고욤', '겉보리/건 입', '숯/까만 얼굴'의 비유는 문명 이전의 농촌공동체에서 볼 수 있는 사물과 생명의 세목에서 선택된 것이다. 모든 비유가 주변의 소재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백석 시의 이미지 선택방식과 같은 맥락을 띠고 있는 이 텍스트는 다른 수용자의 눈에도 백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읽히고 있다. 저 30년대의 뛰어난 시인 백석을 오늘날 다시 만난 듯하다. 까만 젖꼭지와 개미의 대비가 기발하고 재미있다. 이 젊은 시인은 이런 해학적이면서도 텁텁한 막걸리 같은 풍경을 곧잘 그려낸다. 문명 이전의 샤머니즘적인 세계도 시인의 눈에 자주 포착된다. 그러나 이 텍스트는 화자 '나'의 개입으로 인해 백석의 텍스트와는 뚜렷하게 변별되는 세계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이 텍스트는 소년시절부터 담장 너머로 봉산댁의 알몸을 지켜보며 자라온 '창작주체'인 나의 성장사로 읽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텍스트는 문명과는 동떨어진 공간 속에 놓여진 소년의 은밀한 엿보기의 양태를 간직한다. 또래집단의 이성으로부터가 아니라 이웃집 나이 많은 '여자'를 통해 성을 깨달아가는 소년의 성장과정으로 시를 이끌어감으로써 이 창작주체는 백석의 영향을 주체적으로 소화하고 독자적인 개성과 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이 텍스트는 앞서의 언급처럼 개미, 봉산댁, 끝물, 서리, 고욤, 댓돌, 보리이삭, 겉보리, 술판, 숯 등 고향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세목에서 이미지를 선택하고 있고, 그 이미지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비유체계 역시 앞 부분의 병렬과 끝부분의 종합 방식, 즉 이미지의 구축과 대상의 초점화 방식에서 백석 텍스트의 창작방식을 원용하고 있다. 여기서 특히 두드러지는 부분은 허리를 구부린 봉산댁의 모습과 기어가다 골똘한 생각에 멈춘 개미의 유비이다. 봉산댁의 검은 피부와 가는 허리, 젖꼭지, 땅에 짚은 두 팔과 다리의 모습에서 기어가다 멈춘 개미의 모습을 읽은 창작주체의 눈에서 수용자는 매우 희극적이면서도 해학적인 양가성과 함께 현장적 생동감 또한 느낄 수 있다.  이는 백석의 '농짝가튼 도야지'라는 비유의 근저에 깔린 발상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으며, '개발코', '안장코', '질병코'의 비유로 연결된 '녕감'들이 투박한 북관말을 떠들어대며 저녁해 속에 사라지는 나타나는 [夕陽]의 생동감과도 그 뿌리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수용자는 이야기적 요소가 가미된 이 텍스트에서 화자인 '나'뿐만 아니라, 나의 눈에 비친 봉산댁이라는 인물의 입체성을 또한 살필 수 있는데, 그녀는 투박하고 거칠지만("겉보리처럼 입이 걸던 여자"), 외롭고 고단한("해 다진 술판에서 한잔 걸치고 숯처럼 새까매져서 돌아가던 여자") 삶을 살아가는, 고향공간에서 흔히 만날 수 있었던 인물로 드러난다. 봉산댁 역시 백석의 [여우난곬族]등에서 드러나는 가난과 슬픔으로 얼룩져 평탄치 못한 삶을 영위하는 인물들과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그러나 교실에서는 이러한 부분까지 수용자들에게 창작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일관된 하나의 원리를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이미지의 선택 및 조직 방식 쪽으로 논의를 집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단순하다면 단순한 방식을 통해서도 창의적 표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방법을 활용한 장점은 (창작과정을 통해 밝혀지겠지만) 시가 선명하게 되고 초점도 뚜렷하게 되고, 또 할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풀려져 나올 수 있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원리를 잘 모르고 거창한 소재와 이야기를 끌어오려 하면서 시의 초점이 흐려지고 난해해진다.  다음 장에서는 이를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찰해 보기로 한다. 3. 창의적 표현을 위한 교수 학습방법과 평가 이 장에서는 '주변의 소재로 그리기'라는 시 창작방법을 원용하되 개인의 경험과 문학적 감수성으로 새로운 차원으로 변용시킨 두 편의 텍스트를 통해 이미지의 선택과 조직, 표현방법이 시 창작교육 상황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를 검토하고 창작주체들의 작품이 생산되는 과정도 검토해보기로 한다. 시 창작교육은 학습자를 비롯한 여러 교육의 변인에 따라 교육 내용이나 수준이 결정되기 때문에 여러 국면을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본고는 대학교 문예창작학과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수업을 토대로 한 것이며 낮은 단계에서도 적용될 수 있도록 조정되었다.  3-1 교수 학습방법 창작 지도는 동기유발과 지도과정 및 지도 내용이 중요하다. 이런 과정을 수행하기 위해 유의해할 것은 내용이나 주제 중심의 수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수업은 작품을 감상하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창작주체의 텍스트 생산방식을 통한 감상과 실제의 창작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창작을 위한 텍스트의 온전한 해석을 위해서는 그 같은 관례적인 해석과 감상의 방법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형도의 한 편의 텍스트를 예로 들어 논의를 진행해 보도록 한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기형도, [엄마 걱정]({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89.) 위 텍스트는 제7차 교육과정 {중학교 국어} 1-1, '문학과 사회' 단원 '생각 넓히기' 란에 학생작품 [아버지가 오실 때]와 함께 실려 있는데, 그 아래에는 "생활하면서 겪은 일이나 느낀 점을 소재로 삼아 시를 한 편 써 보자."는 지문을 제시하고 있다. 단원의 성격과 관련시켜 볼 수는 있겠지만, 내용만 제시하고 시를 창작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운율과 이미지까지 같이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 텍스트의 교육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아래 수용자의 태도 역시 편향적인 면이 발견된다. 어린 시절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어 본 적이 있습니까? 엄마는 시장에 '열무 삽십 단'을 팔러 나가 언제 올지 모르는 빈 공간에서 말입니다. …… 빨리 돌아와 주었으면 하는 '나'의 마음이 어느덧 바깥으로 귀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말라비틀어질 것 같은 배추잎 같은 엄마의 피곤한 발소리는 들려오지 않습니다. 해는 저물어가고 '내'가 있는 빈 방에는 정적마저 감돕니다. …… 나는 그만 무서워집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조그마하고 누추한 빈 방에 팽개쳐진 '나'는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해봅니다. 혼자 침을 묻혀가며 엄마가 올 때까지 지루함과 무서움을 이기기 위해 '나'는 일부러 천천히 숙제를 합니다. 놀이할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는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혼자 빈 방에 엎드려  훌쩍거립니다.  이러한 '내' 마음을 아는지 금간 창 틈을 때리며 비가 옵니다. 나는 유년 속으로 들어가 있는 아이입니다. 그러나 2연에 들어서면, 어느덧 훌쩍 성장해 어른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유년의 그 순간, 그 빈 방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홀로 내팽개쳐진 유폐된 공간에서 보내었던 그 유년의 추억을 생각하면 더욱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가 부재(不在)한 그 공간 말입니다.  확실히 이 시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주체의 고통스러운 회감으로 읽힌다. 즉 자아의 일부로 들어와 앉아 있는 그 시절(의 '뜨거운' 경험)을 통해 자기 정체성(Identity)을 확인하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는 이미지 형상화와 같은 디테일을 통해 얻어지는 거시적인 차원의 것이라 할 때 이 시의 창작과정을 추적하는 데는 일관된 이미지의 조합으로 읽어내는 구성력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 이 때 수용자에게 필요한 것이 맥락 속에서의 시 읽기이다. 위의 감상이 빠트리고 있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이미지 선택과 조직 부분을 중심으로 서술해 보자. 이 텍스트 역시 앞의 텍스트들과 같이 창작주체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 혹은 풍경 내에 있는 주변 소재들-'열무 삼십 단', '찬밥', '배추잎', '윗목'-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고, 마지막(2연)으로 경험을 종합하는 서술의 초점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다만 독창적인 부분은 창작주체가 방안에서 숙제를 하면서도 열무를 이고 시장에 간 엄마가 언제 돌아오실까 하는 생각에만 사로잡힌 어린이의 심리에 맞춰서 이미지를 구축하고 배열하는 데 있다. 어린이에게는 현실세계(눈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거나 듣는 순간 그것은 자신이 고민하는 것들로 대치된다. 열무가 다 팔려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나'의 머리 속의 강박은 몰두하는 그 기호(열무)를 연상시키는 감각 이미지들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유사성(선택)이나 인접성(배열)의 혼란을 야기한다. 이 때 '열무 삽십 단'은 "해는 시든지 오래", "배추잎같은 발소리"(열무→배추, 발의 모양과 배추잎의 생김새의 유추 및 피곤의 이미지.) 같은 계열체의 표현을 이끌어낸다. "찬밥처럼 방에 담겨" 역시 밥통과 방의 유사성과 인접성의 혼란에서 기인한 것이다. 해가 지다(a') +열무가 시들다(a") →해가 시들다(A) 와 같은 창조적 사고를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작업은 구체적인 단계에서 사고 능력 향상이라는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 이미지 구축 단계에서 이미지 선택은 창작주체에게 경향성을 드러내게 해 주기도 하는데, 이 시에서 드러나는 식물성 이미지-열무, 배추잎, 찬밥-는 공간에 홀로 던져진 어린 아이의 수동성, 순수성, 나약성을 드러내는 간과할 수 없는 특징을 형성한다. 이런 형상화 능력은 이미지 조직을 통한 의미구성 교육에서 효과적으로 강화될 수 있다.  이미지는 형태를 만들어내고 정돈을 하며 관계를 맺는 것이다. 또 이미지와 관련을 맺는 다른 이미지와 이미지간의 체계적 연결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경우 새롭고 참신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는지, 그것이 다른 부분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창작주체가 생활하고 있는 세계와 관련하여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고 있는지 등이 검토되어야 한다. 이미지의 구상과 구축 단계에서 일어나는, 일관성 확보를 위한 전략을 따라가면 훨씬 더 깊이 있는 수업을 실행할 수 있다. 주변 소재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대상을 초점화하고 있는 또 다른 작품을 수업에 적용시켜 보기로 한다. 이 작품은 앞선 작품들과 같은 방식을 쓰고 있되 소재를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 작고 구체적이다. 이런 류의 텍스트는 시 창작을 공부하는 학습자들에게는 훨씬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수업효과도 당연히 커진다.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 그 마을에 가면 정동진이라는 억새꽃같은 간이역이 있다.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 가끔 두 칸 열차 가득 조개껍질이 되어버린 몸들을 싣고 떠나는 역. 여기에는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이 있고,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 아름다운 천정도 볼 수 있다. 강릉에서 20분, 7번 국도를 따라가면 바닷바람에 철로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와 푸른 깃발로 열차를 세우는 驛舍,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 - 김영남, [정동진역]({정동진역}, 민음사, 1998)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을 창작주체는 이렇게 밝히고 있는데, 이 진술을 통해 우리는 창작주체가 이미지를 어떻게 구상하고 구축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필자는 정동진역 풍경을 그리는 데 모두 정동진역 근처에 있는 소재들로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소재들은 실제로 정동진역에 다 있던 것들입니다. 억새꽃, 벤치, 모래사장, 라면집, 소주집, 소나무 등등……. 그래서 열차가 들어오는 역이니까 겨울이 오는 것도 "겨울이…도착…"으로 했고, 라면집도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이고, 소주집도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실제로 라면집을 묘사해야겠는데 구불구불한 소재를 찾으니까 산 능선, 도로, 해안선 등이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주변 소재에 어울리는 게 바로 해안선이었어요. 소주집도 묘사해야겠는데 배, 수평선, 갈매기, 파도 등이 보이더라고요. 이 중에서 파도가 가장 운치 있는 소재로 생각되었어요. 이렇게 주변소재로 둘러대었더니 읽는 사람마다 반하더군요.  이런 시의 창작은 직접 경험 현장 방문을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며, 여행 안내 책자나 사진을 통해서도 충분히 활용하여 봄직한 방법이다. 창작주체는 정동진역의 풍경을 그리는 데 비유의 보조관념이 되는 이미지들을 모두 정동진역 주변에 있는 것으로 선택함으로써 보다 선명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때 구상된 이미지는 당연히 선택과 배제의 과정을 통해 구축된다. 예를 들어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이라는 표현에서 '해안선'은 구불구불한 속성을 가진 대상들-산 능선, 해안 도로, 해안선 등의 계열에서 선택, 배열된 것이다. 창작주체는 구상단계에서 삼양라면(a')과 산능선(a"), 해안 도로(a"'), 해안선(a) 등 몇 개의 이미지를 추출한 뒤 조정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단계에서 제일 먼저 제외된 것이 a'이다. 누구나 아는 평범한 것으로는 시적 즐거움과 감동을 줄 수 없다. 다음단계에서 고려된 a", a"'와 a 가운데서는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신선함은 유지하지만 라면의 모습과 가장 닮아 있는 a가 선택되게 된 것이다.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잔을 주고 받기 좋은 소주집"도, '친구→배, 수평선, 갈매기, 파도→파도'의 이미지 구상단계를 거친 것이다. 다음으로는 일관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가 하는 검증단계에 들어서는데, 이 때 이미지 계열체를 사용하여 전체 이미지의 흐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기형도 시에서 적용되었던 것처럼("해는 시든지 오래"), 이 시에서도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열차 이미지, 강조 필자),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천정"(좁고 고즈넉한 이미지) 등 전체 문맥이 조정된다. 창작주체가 이미지의 구상과 구축단계(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생산 방식과 배열하는 방식), 검증 단계(일관된 이미지로 통일하는 문제 등)를 거치면서 미학적으로 새로움을 가진 시로 환골탈태할 수 있는 것이다. 3-2 창작 및 평가 주변의 소재로 이미지 만들기 방식은 당대의 문화적 조건과 함께 자신의 스타일로 수용하기만 하면 그 소재 속에 표출된 이미지들이 다른 공간 속에서 다른 의미의 창출로 개성적인 형태를 띨 수 있으며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이제는 수용자들에게 그 방식을 활용하여 직접 창작하게 함으로써 이 방식의 묘미를 체득하도록 한다. 이 때 초보자들인 창작주체들에게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관건은 쓸 거리로 어떤 환경이나 자료를 제공하느냐에 있다.  자신이 현재 보고 있는 주변의 사물(혹은 공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창작주체의 입장을 고려하여야 한다. 창작주체는 창작을 행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창작교육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창작과정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창작주체 자신에 대한 이해도 선행되어야 한다. 필자는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이 형광등, 침대, 커튼, 그림 등이 있는 방에 갇혀 한 여자를 그리워하면서 책상에 골똘히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려 보라.", "[엄마 걱정]에서 드러나듯 어린 시절의 자신이 그 공간 속에 들어 있는 집을 주변 소재를 활용, 실감 있게 그려 보라"는 구체적인 창작환경을 제시하였다. 아래는 첫 번째 환경에 응답하여 그린 텍스트이다.  그는 책상과 함께 한 여자를 침대처럼 그리워한다 그의 얼굴은 형광등처럼 창백하지만 마음을 커튼처럼 열어젖히고 밤늦도록 간절함을 족자처럼 그녀를 향해 내걸고 있다 - 황재윤, [사춘기] 이런 작품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주변 소재를 있는 그대로 활용하여 몇 개의 이미지를 추출한 뒤 구체적인 시 창작 틀에 맞게 그것을 조직하고 재구성하는 훈련을 과정을 거쳐서 생산된다. [사춘기]는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주변 소재를 활용한 이미지 만들기라는 소기의 교육성과를 거둔 예라 할 수 있다. 위의 텍스트에서 책상, 침대, 형광등, 커튼, 족자 등은 창작주체의 창조적 사고의 발현과정을 통해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거듭나고 있다.  이 텍스트는 아직 비유되는 사물에 따라 동사가 달라지는 등 일군의 이미지를 선택하고 그러한 선택 속에서 일정한 경향성이 형성되는 이미지의 통일성에까지 다다르지는 못했지만 선명한 이미지 제시를 통해 나름의 미학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반복된 학습을 통해 영역(공간) 체험의 사실성, 구체적인 묘사, 서사자질 능력이 향상되면서 일정 수준의 텍스트를 산출할 수 있게 된다.  이 때 창작주체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이미지 구상 훈련을 해 나가야 한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창작주체는 전문작가보다 더 참신한 이미지를 구상할 수도 있다. 후속작업으로 "집으로 가는 길의 모습을 그 주변의 소재들을 통해 참신하게 표현하라."는 제목을 주고 그 표현과정을 함께 점검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창작주체의 개성에 맞는 방법론을 터득하는 가운데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작 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다. 다음은 이 방식의 대상 텍스트로 활용한 시들에 대한 꼼꼼한 고찰과 이미지 구상훈련을 시행한 후에 생산된 텍스트로 읽힌다. 아침해가 다른 곳보다 일찍 돋는 마을 지문이 박힌 어머니의 옥토와 할아버지의 씨오쟁이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 마을에 가면 만삭의 아낙처럼 배부른 집들 신라인의 진신사리를 모셔놓고  둥그스레한 어깨 서로의 키를 낮추며 울타리도 없이 이웃해 살고 있다 문패와 자물쇠가 없는 마을  항아리 깊숙이 타임캡술을 내장 시키고  가끔 설화들 뛰쳐나와 어둠 쌓인 마을을 돌며 둘러앉은 화롯가에 두런두런 밤새 이야기를 지폈다 밤새들 부는 피리 소리를 들여앉히고 빗살무늬 옹배기에 달빛 물든 차를 우렸다 싸락눈 내리는 골목길에도 더운 김이 저녁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할머니 반짇고리 손때 묻은 말씀들 호젓이 남아 돋을새김 하는 마을 여기서는 미움이나 원망, 절망까지도 향기로운 꽃씨가 되고 있다 할아버지 씨오쟁이 속 씨앗들 봉긋봉긋 천 년 잠을 깨어나는 어머니의 기름진 땅 - 김일용, [古墳群 마을] 이 텍스트는 창작주체 나름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는 차용과 변용으로 조직된다. 구체적으로는 대상 텍스트들 중 주로 [정동진역]을 모방하면서 독자적인 미학으로 승화시킨 경우라 할 수 있다. [정동진역]과 이 텍스트는 시의 구조, 전개방식, 표현법에 있어서 유사하다. 특히 '∼이(가) 다른 곳보다 일찍 ∼는 장소'/ '그 마을에 가면 ∼하는 ∼가 있다'/'∼가 ∼하는 곳(장소)'라는 시 형식과 리듬전개의 방식은 흡사하다. 그러나 패러디적인 글쓰기가 '고분군 마을'이라는 특정의 공간에 맞는 소재의 이미지들로 구축되고 배열되었다는 점에서 이 텍스트는 선행 텍스트와 변별성을 가진다.  이 텍스트를 새롭게 하는 요인은 이미지를 구축하고 시적 문맥에 맞게 조직, 재구성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아침해, 지문, 할아버지의 씨오쟁이, 만삭의 아낙, 배부른 집들, 진신사리, 둥그스레한 어깨'(1연) '항아리, 화롯가, 옹배기'(2연), '반짇고리, 꽃씨, 씨오쟁이 속 씨앗들'(3연) 등 무수히 드러나는 둥근 이미지는 하나의 질서를 형성한다. 이렇듯 유사한 이미지를 통해 유사한 의미망을 구축하는 기법과, 끝 부분에서 "봉긋봉긋 천 년 잠을 깨어나는/어머니의 둥근 땅"이라는 구절을 삽입, 대상을 하나로 초점화하는 방식에서도 선행 텍스트를 나름으로 수용하고 재창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1, 2연에 나타나는 선행 텍스트와의 지나친 유사성, 둥근 계열 소재의 과도 노출, 그것을 하나로 잇는 동사의 연계([엄마 걱정]의 '시들다', [정동진역]의 '도착하다'와 같은) 부족 등은 아직 구상과 이미지 조직 훈련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古墳群 마을]은 이미지가 적절한 주변의 소재를 통해 짜여지며 시를 한 폭의 동양화처럼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시 창작 교육 수업의 실제를 통해서 표현의 측면에서 이 시 창작방식이 효율적이며 실제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4. 맺음말 본고는 먼저 주변 사물에서 이미지를 선택, 구축하는 방식을 시 창작에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 본고는 수용활동과 창작활동의 통합을 통하여 창작교육의 전체상이 구현될 수 있음에 착안하여 수용과 창작과정에 이미지의 선택 및 실현양상을 같이 적용했다. 여기서 주변 사물은 특정한 작은 공간에서 출발하여 넓은 공간, 같은 문화권 등으로 확산될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밝혔다.  본고는 주변 사물이나 소재에서 이미지를 선택하는 대표적인 경우로 백석의 텍스트를 우선 추출하고 이 방식이 후대 시인들의 텍스트에서도 활용되고 있음을 작품을 통해 확인하였는 바, 그 활용양상은 각 창작주체들의 경험과 수용방식에 따라 일정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음도 밝혔다. 다음 단계로 필자는 학습자들에게 이 방법을 어떻게 수용시키고 또 활용하여 창조적인 표현으로 산출할 것인가에 대한 교수 학습방법과 평가 방식을 도출하였다. 그 결과 여기서 시도한 시 창작 교육이 지닐 수 있는 효과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1. 수용의 측면에서 보면 시적 형상화와 이미지의 질서에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미적 완결성을 크게 돋보이게 하는 할 수 있고,  2. 실제 창작의 측면에서는 1)창작자의 예술적 표현을 촉진시킬 수 있고, 2)상상력을 자극하고, 인지·정의적 사고 능력을 신장시킴은 물론, 3)사고를 명료화시킬 수 있으며, 4)자신의 주변의 사물로 묘사하는 과정을 통해 자아의 정체성을 탐색하게 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특히 창작 주체의 개별 경험과 개성에 따라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을 실현시킴으로써 지금까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시적 구조의 모방이나 패러디 혹은 변형을 통한 창작교육의 단계에서 더 나아가 창조적 글쓰기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게 할 수도 있다고 본다.  논의 과정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논문은 선행 텍스트에 대한 후행 텍스트의 영향관계를 밝히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라, 특정한 비유의 선택을 통한 시 창작 방법을 제시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음을 밝힌다. 여기서 제시한 시 창작교육이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다소의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과정의 탐색을 통해서 상호텍스트성에 대한 연구와 이미지 계열체의 일반화 문제 등도 진척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의 연구를 기약한다. ================================================================= 111. 보리피리 / 한하운                                 보리피리                                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릴 때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피―ㄹ 닐니리.               한하운 시집 《보리피리》 중에서             
967    白石은 伯席이다... 댓글:  조회:5336  추천:0  2016-01-10
白石 詩 硏究  - '이야기'적 특성을 중심으로 - 박 경 순 Ⅰ. 들어가는 말 이 글에서 1930∼40년대에 활동한 백석 시의 '이야기시'적 특성을 지닌 시를 중심으로 '이야기시'의 개념 규정을 하고 그의 '이야기시'가 고향인식과 공동체적 친근성이 어떻게 형상화 하고있는가를 고찰하는자 한다. 이야기는 줄거리를 통해 인물과 사건을 재현하는 모방적 양식이며 화자와 대상, 즉 사건 사이의 거리 확립을 그 본질로 하는 객관성을 지니고 있다. 그의 이와 같은 특성을 지닌 시에는 고향의 풍정(風情)이 섬세하게 재현되어있을 뿐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친근성이 밀도있게 형상화 되어 있다. 백석 문학세계의 시적 화자는 유년 세계의 시적 공간에 있으며, 그곳에서 자아를 회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일련의 기행시에도 자연과의 매개를 통해 이런 그의 시적 형상화의 노력이 나타나기도 한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백석 시에서 이야기 즉 서사성을 끌어들이는 것은 그의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로 시장르의 특징적 요소인 서정성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인생사의 깊은 문제를 '이야기시' 형태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백석이 등장하기전 한국 시단은 세 개의 유파에 의해 판도가 결정되고 있었는데, 그 하나는 김기림이 주도한 주지주의계 모더니즘시다. 이들은 가능한 한 선명한 심상을 제시하고자 했고, 명증한 말씨로 대상을 부각 시키기에 힘썼다. 두번째 유파는 카프의 발전적 전개 형태에 해당되는 현실주의 흐름이다. 일제 강점이라는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마르크스 세계관에의 지향을 드러낸 카프 계열의 상당수 작품들이 경직된 이데올로기의 일방적인 전용으로 시와 문학을 심하게 변질 . 무력화시키고 만다. "카프의 행동원칙에 따라 제작 . 발표되는 시는 이데올로기의 앙상한 잔해로 선동 선전을 위한 전단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현대 시문학에서 리얼리티를 획득하려는 형상화 노력은,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외에도 서술구조를 택하여 시간과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내용을 제시하는 작품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서술구조의 개념은 서술성, 서사성, 서술시 (본 글에서는 서술시보다‘이야기시’개념으로 사용), 서사시 등에 나타나는 시문학의‘서사 지향성'에 직결된 것으로, 시의 진술이 이야기나 사건을 수용하여 시의 내용을 전달하는 'narrative structure’를 가르킨다. '이야기시'적 특성을 서정시에 원용하여 서술구조를 빌어 사건이나 이야기가 주제를 집약적으로 전달하는 효과를 보이며, 소설에서 이룩하기 힘든 시적 정서에 호소하는 시 장르 특유의 시적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시는 그것이 대상으로 하는 서술구조의 변별성에 따라, 사건을 진술하는 사건시 이야기 구조를 보여주는 서사적인 시의 두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백석의 경우는 대부분 후자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이야기의 구조를 통하여 소설적인 서사 진행을 보이면서 대상을 좀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묘사하기 위하여 이야기와 주인공을 설정하여 이야기의 진행을 시인이 간접적으로 진술하는데, 이는 때로 과감한 삭제가 필요하게 된다. 여기에서 독자는 많은 상상력을 얻게 된다. 김기림(金起林)이 지적한 대로 백석시의 특징을 '유니크(unique)'한 점, 다시 말해 백석 시작품의 '독특함' 그것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착안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방언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시에 입각한 그의 시세계이다. 어느 한 특정 부분에서 그러한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시 전반에서 '이야기시'적 특성을 볼 수 있으며, 그러한 그의 시적 노력이 백석시 전반에 다양하게 형상화하고 있음에 착안하여 이 글은 그의 시의 '이야기시'적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야기시'의 시적 형상화 양상을 셋으로 나누어 분류하였는바, 첫째는 고향 인식과 공동체적 친근성이다. 그의 시 전반에서 알 수 있듯, 고향 인식은 그의 시에 있어서 절대적이다. 둘째로 주목할 것은, 유년 세계의 시적 공간과 자아 회복의 양상을 볼 수 있다. '기억'을 통해 어린 시절로 돌아간 화자에 의한 시적 형상화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셋째, 여행을 통해서 본 현실 인식이다. 시인은 결코 값싼 낭만에 함몰되지 않는다. 당대의 피폐한 식민지 현실을 여행하는 시적 자아를 통해 깊이있게 형상화한 것이다. 이렇게 분류한 백석시의 시적 형상화 방법으로 '이야기시'의 형식을 빌어 표현한 것은 김윤식도 지적했듯 현실 앞에서 절망감을 느껴 고향을 떠난 유랑민으로서 그 심리적 허무감을 '이야기시'의 새로운 형식을 채택함으로써 초월하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Ⅱ. 본 말 1. '이야기시'의 개념 '이야기시'를 먼저 논하기에 앞서 '이야기시'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임화(林和)의 시 「우리오빠와 화로」를 읽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한 김기진(金基鎭)은 처음으로 '단편서사시'를 부각시켰다. 그는 이 시를 세밀히 분석하면서 프로시가가 나아갈 길이 '단편서사시'라 하고 이 양식은 프로시가의 참된 모습이자 동시에 대중화의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논증하였는바, 이는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기존의 서정시로는 급변해 나가는 서사적 현실의 복잡성을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 프로시의 한 방향 모색으로 이는 당대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시적 노력의 성과였다. '단편서사시'가 서정시의 발전 과정에서 서사시의 소설적 요건 - 스토리와 사건의 요건-을 어느 정도 소재상이나 문체상으로 지니면서 인상을 선명하고 간결하게 압축하여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김기진(金基鎭)은 '우리시의 양식 문제에 대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임화(林和)의 시 「우리오빠와 화로」를 분석하고 있는데 그 특징을 다음 네 가지로 들었다. 현실적 실제적 사건을, 객관적·구체적으로 파악하여, 통일된 정서로, 생생한 소설적 사건을 안전에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들어 프로 예술은 현실적 . 객관적 . 실제적 . 구체적 요구에 따라 시의 형식은 단편서사시의 형식을 요구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임화(林和)의 이 시가 자신의 이론을 증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작품적 사례로 들었다. 임화(林和)가 시도한 단편서사시의 시적 양식을 기폭제로 하여 한국시의 진정한 방향성과 대중성 획득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것이 하나의 강력한 시사적 경향성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기성 서정시’로써는 미처 급변해 가는 서사적 현실의 복잡성을 일정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무래도 역부족이라는 일종의‘양식적 자각’이 매우 진지하게 행해진 결과로서 비교적 선명한 골격을 지닌 일종의‘이야기시’를 지향하는‘시의 서사화 경향'은 악화일로만을 치닫는 당대의 객관적 정세에 비추어 볼 때 마땅히 그것을 필요로 하는 강력한 현실적 요청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이야기를 도입한 시를 지칭하는 용어로 '단편서사시, 이야기시, 서술시, 담시' 등 여러 용어가 있으나 '시에서 이야기를 부분적으로 취급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취급하다 보면, 즉 시에서 서사 지향성을 밀고 나가다 보면 이야기가 산출된다. 여기에서 이야기시는 서사 지향성이 강하게 발현된 시, 즉 처음과 끝을 갖는 어떤 변화 발전하는 사건이 한편의 시를 구성하고 있는 시'라는 개념에 따르고자 한다. 시인이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취급하는 방식은 이야기시와 서사시의 형식을 통해서라 할 수 있는데 백석의 경우 주로 이야기시 형식을 통해 시의 형상화를 모색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특히 소설의 경우는 유념할 때, '이야기'란 줄거리를 통해 인물과 사건을 재현하는 모방적 양식이다. 그리고 화자와 대상, 즉 사건 사이의 거리 확립을 그 본질로 하는 객관성의 양식으로 화자가 청중에게 전달하고 보고하는 양식이다. 인간은 원시사회로부터 이야기를 지어왔으며 이러한 이야기는 구비전승 되어 왔는데, 우리는 이렇게 구비 전승된 이야기를 '설화'라 한다. 이는 한국 시가의 전통이 되고 있다. 고대 삽입 가요인 「 공무도하가」를 비롯하여 「처용가」,「헌화가」,「서동요」등 신라향가도, 「쌍화점」,「만전춘」,「정읍가」등의 고려속요는 물론 조선시대의 많은 사설시조 및 우리의 대표적 민요인「아리랑」도 이야기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시에 있어서 '이야기'는 읽는 독자로 하여금 시적 상상력에 구체성을 부여해주는 하나의 뚜렷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것은 직접적인 감동 요인으로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이야기'에 감동을 받는다는 것은, 이야기속에 사람들의 마음이 스며 있으며 긴 세월을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일수록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그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쉽사리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시에 있어서 시인 자신이 사상 . 감정의 직접적 서술보다는 서술적인 구조로 형상화된 사건이나 이야기를 통하여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시'의 도입은 일제 강점기의 현실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삶의 모습들을 형상화함에 있어 주관화의 경향에 함몰하지 아니하고 시적 대상에 일정한 거리를 두는 시적 방법이라 볼 수 있다. 시인이 직접적으로 정서를 전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독자의 감흥도 직접적으로 시인의 정서에 동화하지 않고 시 자체가 주는 객관의 정서에 독자가 반응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백석의 이야기시에서는 하나의 이야기 줄거리가 담겨져 있는데 어린 시절 고향에서 평온한 삶을 누리던 서정주체가 암울한 식민지 시대속에 성인이 되어 공동체의 삶에서 소외되는 갈 등을 겪으며 우랑하던 끝에 자신의 삶의  지표를 깨우치게 되는 구조로 되어있다. 또한 서정적 주체는 객관화된 현실이나 인물을 일정한 거리에서 보고 듣고 전해주는 화자의 위치에 서서 이야기함으로써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2. 시적 형상화 양상 이 장에서는 백석의 '이야기시'의 형상화 양상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논하고자 한다. 그런데, 백석 시세계를 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의 삶의 역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아래에 그 개인사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기로 한다. 백석은 1912년 7월 1일 평북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에서 수원 백씨 백용삼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기행(夔行), 필명은 백석(白石, 白奭)이다. 1929년 개칭된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년여의 문학 공부에 힘써 1930년 1월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신춘문예)에 당시로서는 최연소인 19세의 나이로 〈그 母와 아들〉이라는 단편소설이 당선된다. 이어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같은해 일본의 주요 사립대학에 속하는 기독교 재단의 청산학원으로 유학을 떠나 영문학을 전공한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홉의 「臨終 체홉의 六월」과, 러시아 비평가 티.에스.마리키스의 논문 「'죠이쓰'와 愛蘭文學」을 번역하여 발표한다. 백석은 마리키스의 논문에서 많은 공감대를 찾았는데 애란의 훌륭한 작가들의 방법론을 습득하여 독자적인 방언을 중시함으로써 평안도어(平安道語)가 한국적인 시어가 될 수 있다는 시적 인식에 도달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곳에서 기자와 계열 잡지사인 『여성』에서 편집일을 하면서 1935년 8월 31일 조선일보지상에 첫 작품 「정주성」을 발표한다. 그후 계속하여 조선일보사에서 창간한 『조광』지에 「산지(山地)」(1935), 「주막(酒幕)」(1935), 「비(雨)」(1935), 「나와 지렝이」(1935), 「여우난골族」(1935), 「통영」(1935), 「흰밤」(1935) 등을 발표한다. 특히 그는 서정성이 뛰어난 「늙은 갈대의 독백(獨白)」이란 산문을 발표했는데, 거의 시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한 이 글은 갈대의 일생을 매우 서정적으로 읊고 있다. 백석은 1936년에 이르러 『사슴』이라는 제목의 첫시집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당시로는 최고의 호화판 시집을 간행했다. 백석이 활동하던 이 1930년대 중반이란 문학사적으로 보면 카프가 해산계를 제출하고 문단의 이면으로 잠복하던 때이며, 시문학파로 시작 활동을 전개하던 정지용(鄭芝溶)과 김영랑(金永郞)이 각 각 첫 시집을 출간하던 때이다. 또한 이효석(李孝石) . 박태원(朴泰遠) . 김유정 (金裕貞) 등이 이른바 구인회(九人會)를 결성하여 순수문학적 경향을 문단의 분류로 이끌어 들이던 때이며, 최재서(崔載瑞) . 김기림(金起林) 등의 영문학자들에 의하여 모더니즘 이론이 소개되던 때이기도 하다.  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있는 동안 그곳 출신의 ‘김자야’라는 한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3 . 4년간 둘의 사랑은 백석의 생활과 문학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최근 출간된 김자야의 『내사랑 백석』에서 볼 수 있다. 교사 노릇도 1938년 사임하고 1939년 다시 서울로 와 『여성』지에 편집일을 담당하다 그해 말 서울을 떠나 만주의 신경 (지금의 장춘)으로 유랑생활을 하게 된다. 김자야 여사에 의하면 백석이 서울을 떠나 만주로 간 것은 그가 부모의 강권에 의하여 이해에 두 번째 결혼을 치르는 등 복잡한 가정사와 봉건적인 관습 등으로 심한 갈등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석은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만주로 떠나려 할 때 김자야 여사에게 같이 가자고 제의했다고 한다. 그녀는 정식으로 결혼을 한 두번째 여성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 논리에 부담을 느껴서 백석을 피해 다니다가 결국 백석만을 만주로 보냈다고 한다. 그가 왜 직장과 가족 및 문우들을 버리고, 더욱이 사랑하는 사람조차 뿌리치고 만주에 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백석은 만주의 신경으로 떠난 이후에도 작품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국내에서 발행된 당시의 문학지 『문장』이나 『인문평론』 등에 「북방(北方)에서」(1940), 「흰 바람벽이 있어」(1941) 등의 시를 발표하였고 『조광』지나 『야담』지 같은 데는 러시아 작가의 소설을 번역하여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즈음 백석의 작품에는 북방의 서늘한 분위기와 뿌리를 읽은 당대의 지식인들의 우울한 내면세계가 담겨 있으며, 백석의 작품중 절창이라 불리우는 작품, 예컨대 「허준(許俊)」(1940), 「杜甫나 李白같이」(1941) 등이 이에 포함된다. 백석은 만주로 간 후 신경시 동삼마로(東三馬路) 시영주택의 '황씨집'에 살았으며 그후 측량 보조원, 측량서기, 소작인 생활 등을 하다가 안동의 세관에 근무하였다고 한다. 영문학을 전공한 그가 측량보조원이나 측량 서기와 같은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었나 의문이지만, 1941년 4월 『조광』지에 발표한 「歸農」을 살펴보면 측량관계일 뿐 아니라 남의 밭을 얻어 소작인 생활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해방이 되자 백석은 신의주로 거처를 옮겼다가 이내 그가 태어나서 자랐던 평안북도 정주로 간다. 그곳에서 조만식 선생의 러시아어 통역 비서를 하며 1946년 평양의 술집에서 김일성과 만나기도 했고, 마야코프스키의 시들과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江』 등을 번역했다고 전해진다. 그후 김일성 대학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는 그는 1950년 전쟁이 일어나자 지금 알려진 바와는 달리 중국 한인촌에 머물다가 전쟁 후 숙청 당해 함경도의 협동농장에서 일하며, 서정시를 계속 써 오다 1963년 숨졌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백석은 한곳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유랑을 하며 삶을 마무리 하였으며 그의 이야기시는 서정양식으로는 미처 두루 포괄하기 어려운 당대 현실의 모습을 여러 가지 형태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시인의 뚜렷한 노력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이야기시의 시적 형상화 양상은 크게, 첫째 고향 인식과 공동체적 친근성으로, 둘째 유년 세계의 시적 공간과 자아회복 양상으로, 셋째 기행시와 현실인식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본 장에서는 그의 시적 형상화 양상중 고향인식과 공동체적 친근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고향인식과 공동체적 친근성 고향인식의 시적 양상 우리 민족의 삶의 실체를 탐구하기 위해 그의 시에 절실하게 투영(透影)된 것은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우리의 고향이었다. 이 고향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원형적 모습이 잘 보존돼 있고 전통적인 풍속이 그대로 온존되어 있는 시적 대상이다. 이렇게 본다면 백석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마을이야말로 그의 시작 활동의 가장 풍요로운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 그의 고향인 평북 정주는 그런 의미에서 백석에게는 행운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시인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현실을 노래한다. 어딜가나 고향은 그런 점에서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그의 시에서 드러나는 고향인식은 막연한 향수감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우리민족의 공동체적 친근성이 강력한 기반을 이룬다. 그는 이같은 고향마을을 무대로 거기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삶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에서 탐구하는 고향은 근대 문물이 들어오기 전 우리민족의 고유의 삶의 모습이 그래로 보존된 원형적인 존재이다. 백석시에서 인식하는 형상화 방법으로 특히 평안북도 방언의 사용과 음식물 이름의 사용이 한눈에 두드러진다. 고향이란 어느 시인에게나 중요한 창작 모티브로 작용한다. 그러한 경향은 시인의 현재적 삶이 정신적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할 때 더욱 그러하다. 고향의 시적 형상화 방법에는 고향을 중심으로 펼친 방언 사용과 갖가지 토속적 소재 사용을 들 수 있다. 돌아갈 수 없는 곳에 있는 어린시절의 고향에 대한 재현 작업이 그 당시 백석에게는 가장 절실하고도 유일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백석이 고향을 인식하는 양상은 아무런 파괴가 없는 풍족한 고향을 노래하는 방법과, 파괴되고 일그러진 암담한 일제 강점기의 비극적 형상을 드러내는 두 가지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가. 풍족한 고향마을의 형상화 명절날 나는 엄매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 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로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新里 고무  고무의 딸 季女 작은季女 열여섯에 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  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土山 고무 고무의 딸 承女 아들 承동이 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山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 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洪女 아들 洪동이 작은 洪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려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 나물과 뽂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고리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 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 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  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  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  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 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츰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홍성거리는 부엌으론 셋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 「여우난골族」 전문 - 풍요롭고 아무런 파손됨이 없는 고향의 마을을 그리고 있는 이 시는 위에서 열거한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엄매, 아배를 따라 명절을 새러 진할머니집에 놀러가는 시적 화자의 행복한 모습이 첫연부터 그려지고 있으며, 이 행복은 마지막 연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로 이어진다. 이 시에서는 청자는 나타나지 않고 화자가 명절날의 풍속을 다채로운 기법으로 형상화 하고 있는바, 우선 눈에 띄는 시적 특성으로는 '엄매', '아배', '고무', '아르간' 등의 방언을 들 수 있다. 도시 문명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전통적인 방언의 사용으로 민속 명절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 두부, 콩나물, 뽂운잔디, 고사리 등 음식물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그의 많은 시에서 두루 산견(散見)되는 시적 현상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 나는 명절날 일가친척이 모인 가운데 화목하게 지내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그대로 앞에서 보여주듯 이야기해 주고 있다. 특히 이 시에서 눈앞에 보이듯 진술한 시제(時制)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문장의 종결어미가 '놀았다', '잤다'가 아니라 '논다'와 '잔다' 등의 현재형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현재형의 사용은 시적 자아가 지나가 버린 사건을 독자들에게 단순히 서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독자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현재라는 것은 지속의 개념 안에서 '창조의 의미', '발전의 의미', '미래를 지향하는 의미'를 내포한다. 현재 시제에는 크게 (1) 순수 현재 (2) 현재 진행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순수 현재는 동사의 기본형을 의미한다. "나는 가다"라는 말속에서 "가다"라는 동사로 나타난다. 현재 진행형은 "나는 간다", 나아가 "나는 가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순수 현재가 '순수한 수행'을 의한다고 보면 현재 진행형은 '지속적 수행'을 의미한다. '지속적'이라 함은 곧 영원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연에서는 큰집으로 가는 모습이 재미있게 표현되고 있다. 개가 시적 화자이면서 주인공인 나를 따르고 나는 엄매아배를 따르고 엄매아배는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집으로 가고 있음을 적고 있으며 연에서는 이 시가 서사적 구성을 지니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나타난다. 말을 더듬는 곰보인 신리고무,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토산고무, 해변으로 시집을 가 과부가 된 큰골 고무, 술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삼촌 등은 여우난골족의 가족사를 말해주는 것으로 이는 백석의 가족사와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연에서는 후각과 촉각의 이미지가 연결되면서 연과는 달리 대상이 매우 밀접한 환기력을 갖고 회복되면서 동적 분위기가 유도된다.  연에서는 동사들의 의미가 연결되는데 "∼고 ∼고 ∼고"의 부사어 나열이 동시에 연결되는 문장이 3개가 병치되는데 이것은 시간의 흐름에 상응하는 순차성을 보여주면서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율동적을 표현하고 있다. 즉 "고"의 중간운이 반복적으로 구사되면서 일가 친척들의 소개에 대한 진술과 아이들의 노는 모습이 속도감있게 표출되었던 것이다. 각연은 서로 평행선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편의 시를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작품의 구도는 어느 한 연이나 어느 한 구절을 중심으로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무게로 각연이 대등하게 평행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작품으로는 「三防」, 「고방」, 「여우난곬」, 「山地」 등을 들 수 있으며 「오리」, 「연자간」, 「넘언집 범같은 노큰마니」등에서 풍족한 고향마을을 찾아볼 수 있다. 나. 고향마을의 비극적 형상화 녯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  이었다. - 「흰밤」 전문 이 시에서는 한 수절과부가 목을 매어 죽은 사건을 넣어서 긴 이야기적 요소를 이미지즘의 기법을 사용하여 매우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수절과부라는 인물의 설정 하나만 보더라도 그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뿐 아니라, 그 수절과부의 자살이라는 사건은 이 시가 다른 시에 비해 비록 짧다하더라도 시 속에 많은 이야기시적 요소가 농후하다 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 구절의 처리는 매우 말끔하게 독자의 상상력을 발휘하게끔 한다. 드러나지 않는, 관찰자로서의 화자는 그림을 그리듯 옛 성에 떠오른 달과, 묵은 초가 지붕 위에서 달처럼 하얗게 빛나는 박과 목을 매어 자살한 수절 과부의 이미지는 푸르스름하게 느껴질 정도로 흰빛깔이란 점을 유추해 볼 때 단순하지 않은 고향을 느낄 수 있다. 흰색을 표현하는 그의 시에는  수리취전이 드나 머루전이 드나 수리취 땅버들의 하이얀 복이 서러웁다 -「쓸쓸한길」부분 불을 끈 방안에 횃대의 하이얀 옷이 멀리 추울 것 같이 -「머루밤」 부분 아카시아들이 언제 힌 두레방석을 깔었나 어데서 물준 개비린내가 온다 -「비」 전문 무이밭에 힌나뷔 나는 집 밤나무 머루넝쿨 속에 키질하는  소리만이 들린다. -「彰義門外」부분 그리고 다 달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야 萬年녯적이 들은 듯한데 - 「湯藥 」부분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膳友辭」부분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힌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부분 등 여러 작품들을 들 수 있다. 비교적 많은 시에서 '흰색'을 나타내는 시어를 썼는데 '흰색'은 시인 백석의 정서를 표현한다. '흰색'은 순수함과 청정함을 의미하는 반면 쌀쌀함과 냉혹함의 정서를 나타내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는 당시 백석의 황량한 심정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 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와장도 닭 의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 「모닥불」전문 시인에 눈에 비친 고향은 한없이 풍족하고 아름답기만 한 곳이 아니었다. 그것은 결핍되고 훼손된 상실된 고향 바로 그것이었다. 위의 작품들에서는 보이지 않는 시적 화자가 보이지 않는 청자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 견지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연에서는 각종 사물들 -새끼오리 . 헌신짝 등-이 열거하는 방식을 취하고 연에서는 살아있는 인간과 동물이 열거된다. 연에서는 어느 한 쪽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한꺼번에 대등하게 강조하는 열거식 병렬법을 사용하고 있다. 열거식 병렬법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주관적 감정이나 의도, 또는 개인적 욕망을 시 속에 표출하지 않고 좀더 객관적으로 대상을 표현하고 있다. 연에서는 모닥불의 주체, 즉 타는 물질을 열거하고 연에서는 모닥불을 쪼이는 인간과 동물을 열거함으로써 연과 연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연의 인물은 특별나게 잘나지도 않은 그야말로 극히 평범한 우리 이웃이다. 이러한 이웃들이 추워서 모두 모여 따뜻함을 함께 공유하고자하는 공동체의식을 고귀하게 여기는 작가의 마음이 보인다. 하지만 그런 모닥불 안에는 "딸라 붙었던 것이 다 떨어진 몸뚱이"만 있는 할아버지의 슬픈 이야기가 남겨 있다는 결말에 특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비단 할아버지의 개인사가 아니라 모닥불 주위에 모인 재당 . 초시 . 더부살이 아이 등 모두에게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시인은 모닥불이라는 현재의 대상에 다양한 개체들이 갖는 삶들을 투영시켜 암담한 고향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주홍칠이 날은 旌門이 하나 마을 어구에 있었다 '孝子盧迪之之旌門'-몬지가 겹겹이 앉은 木刻의 額에 나는 열 살이 넘도록 갈지字 둘을 웃었다 아카시아꽃의 향기가 가득하니 꿀벌들이 많이 날어드는 아츰 구신은 없고 부헝이가 담벽을 띠고 죽었다 기왓골에 배암이 푸르스름히 빛난 달밤이 있었다 아이들은 쪽재피같이 먼길을 돌았다. 旌門집 가난이는 열다섯에  늙은 말꾼한테 시집을 갔겄다 - 「旌門村」전문 이 시에서도 고향은 늘 충만하고 자족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적 화자 또한 자기의 감정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옆의 사람에게 담담하게 이야기하듯 진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정문(旌門)이란 충신 . 효자 . 열녀 등을 표창하고자 그의 집앞에 세우던 붉은 문인데, 그 정문의 칠이 낡은 것으로 보아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어떨 것인지를 일정하게 암시해 주고 있다. 시적 화자는 연에서 이 시의 배경이 된 정문촌(旌門村)을 회상하고 있으며 연에서는 낡은 정문촌을 구체적으로 폐허가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시적 화자는 유년으로 돌아가 정문에 쓰인 두 개의 "之"자(字) 글씨에 대한 웃음의 행위를 보여준다. 시적 화자는 유년이 되어 웃지만 시인인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성인으로 그것이 단지 재미나서 웃지는 않는다는 이중적인 태도를 동시적으로 보여준다. 연과 연에서는 유년 화자로 하여금 공포심을 유발하는 이미지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폐허가 된 정문촌이 아이들에게는 무서움의 공간인데 시각과 후각의 이미지를 이용해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부엉이의 심상찮은 죽음과 푸르스름한 달빛을 받은 배암만으로 된 정문 집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무서움의 공간일 수 있다. 그래서 유년의 시적 화자인 '나'는 그 정문촌(旌門村)을 피해서 멀더라도 돌아간다. 연에서는 '가난이'라는 인물과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한때는 번성했던 정문촌의 몰락을 진술한다. 한때는 번성했던 정문촌의 딸이 '늙은 말군'에게 시집을 갔다는 이야기만으로도 독자는 많은 상상력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말하자면, 이야기적 요소에 이미지즘적 표현이 중첩되어 묘한 시적 광휘를 드러내는 데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는 특히 시제와 시선의 변화도 아울러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표현은 다른 연에서의 과거 시제적인 시적 표현과는 다른 것으로, 이를 통해 '가난이'의 평범하지 못한 삶이 제시되고 정문집에 대한 유년의 공포나 뜻모를 웃음이 사실은 이러한 삶의 이야기들과 직결되어 있음을 환기시키는 일종의 시적 장치(appratus)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의 진술은 결코 정적이지 않은 그의 고향이다. 공동체적 친근성 백석의 시 전반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한편의 시에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고향을 노래함으로써 지금 현실과 어린시절의 고향을 동시에 볼 수 있으며, 또 그것을 통해 우리민족이 느낄 수 있는 공동체적 친근성이 강조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만이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공동체의식이 시 속에 어떻게 담겨져 있는가를 다음 작품들을 통해 논해보기로 한다. 낡은 질동이에는 갈 줄 모르는 늙은 집난이같이 송구떡이 오래도 록 남어 있었다. 오지항아리에는 삼춘이 밥보다 좋아하는 찰쌀탁주가 있어서  삼춘의 임내를 내어가며 나와 사춘은 시큼털털한 술을 잘도 채어 먹었다. 제삿날이면 귀머거리 할아버지 가에서 왕밤을 밝고 싸리꼬치에 두 부산적을 께었다. 손자아이들이 파리떼같이 모이면 곰의 발 같은 손을 언제나 내어  둘렀다. 구석의 나무말쿠지에 할아버지가 삼은 소신 같은 짚신이 둑둑이  걸리어도 있었다. 녯말이 사는 컴컴한 고방의 쌀독 뒤에서 나는 저녁 끼때에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하였다. - 「고방」전문 바슐라르에 의하면 모든 구석은 존재의 칸막이로서 이미지들이 '유령처럼' 출몰하는 곳이다. 여기에 '구석'은 '공간'을 의미하는데 하르트만은 '공간'을 '실재공간', '직관공간', '기하학적 이념공간' 등으로 분류하였다. '실재공간'은 실재적 자연이 전개되는 차원으로서의 공간을 의미한다. '직관공간'은 자연을 직관하는 우리 의식의 형식으로서의 공간을 말한다. 점의 운동으로 선이, 선의 운동으로 평면이, 평면의 운동에서 입체가 성립되는 3단계 연장의 공간이 존재한다. 고방이란 온갖 세간 밑천들과 곡식들과 조상때부터 써오는 집안일에 필요한 잡동사니들로 가득차 있는 곳으로서, 남아있는 공간은 구석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시에서도 백석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일정한 '미학적 거리(aesthetic distance)’두고 객관적으로 사물을 표현하고 있다. 현상적 화자는 존재하지만 자신의 너절한 감정을 표현치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1930년대 이미지즘의 영향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된다.  시적 화자는 유년시절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 연에서는 송구떡이 오래 남아 있었음을 회상함으로써 고방을 끌어올린다. 연에서는 삼춘이 밥보다 더 좋아하는 찹쌀 탁주가 있고 어린 나와 사춘은 삼춘의 흉내를 내며 시큼털털한 술을 먹는다는 내용을 유년의 화자가 등장하여 진술한다.  연과 연에서는 귀머거리 할아버지가 등장하며, 비록 이야기는 못하지만 그 주위에는 '파리떼'같이 아이들이 모인다. 이미 아이들의 의식 속에는 이야기가 가득차 있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존재는 그러한 이야기의 생생한 주인공으로 떠오른다. '곰의 발같은 손'은 할아버지의 존재가 이미 아이들의 의식 속 한가운데 중요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의미이다. 비록 귀머거리 할아버지 일지라도 아이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존재이다. 삼춘과 사춘과 할아버지는 친족 공동체로서 고방에서까지 그 친근함을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존재이다. 고방에 삼춘이 밥보다도 좋아하는 술이 있다는 사실은 고방이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시적 화자도 그 술을 잘도 채어 마신다는 것 또한 이러한 시적 의미의 연장선상에 있다. 연은 구석에서 시적 화자는 할아버지의 채취를 느낄 수 있는 짚신이 수두룩이 걸려 있음을 회상한다. 막연히 할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못에 걸려있는 짚신을 삼는 할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여기서도 백석시의 지배적인 시적 정서인, 친족공동체 내에서만 가능한 풍요로운 정서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연에서 고방을 백석은 '녯말'이 산다고 묘사하고 있는데, 이 '녯말'은 조상들의 옛 이미지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며, 이를 통해 화자는 고방 속에서 조상들의 옛말과 또 그 속에서 할아버지와 삼춘과 사춘을 만나게 된다. 또한 고방은 동심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무궁무진한 장소여서, 시적 화자는 저녁 끼니때에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들은 척 할 정도로 고방에서 노는 것을 남몰래 즐긴다. 고방과 관련된 자신의 가장 은밀한 추억을 서술하면서 화자는 시의 내적 공간에 동화되어 있는 존재이다. 소리를 듣고도 못들은 척하는 행위는 고방에 있었지만 지금도 그곳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기를 바라는 현재 화자의 간절한 소망의 시적 투영이다. 즉 화자는 과거회상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시속의 세계에 동화되어 행위의 주체도 되는 것이다. 백석은 어린시절로 돌아가 우리삶 속에 끈끈하게 배어 있는 친족공동체의 풍요로움을 표현하였다. 바로 이를 통해 우리는 유년 화자를 등장시켜 조상 전통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이 시인은 세계와의 분열을 모르는 민속적 세계와의 합일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민담 . 풍속 . 속신(俗信)과 같은 샤마니즘적 세계는 전통적으로 전래되어 온 우리 민족의 삶의 모습에 다름아닌데, 백석은 바로 이점에 깊이 착목(着目)하여 우리에게 한국인의 근원적인 삶의 모습을 유감없이 표현한 셈이다. 3. 맺는 말 1930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 이보다 좀더 넓게 잡으면 1930년대 후반에서 '해방'되기까지 집중적으로 활동한 백석은 어느 특정 유파나 시적 경향성에 휩싸이지 않으면서 그나름의 특유한 시세계를 튼튼하게 구축한 시인이다. 백석 시에서 무엇보다 이채를 띠는 것은, '이야기시적 특성'이다. 아마도 그것은, 단순한 서정성의 발현으로는 그 시적 전개가 미흡하리라고 판단한, 말하자면 일종의 양식적 자각의 소산인 것처럼 보인다. 즉, 백석이 시 속에 '이야기'(서사적 골격)를 끌어들인 것은, 인생사의 깊은 문제를 여러 이미지들의 단편적 제시만으로는 그 시적 성취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보다 높은 시적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방법으로는,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상징적인 시적 표상으로 제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보다 더 확실하게는 비교적 튼튼한 서사적 뼈대 속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차용하기도 한다. 백석의 시적 특성은 바로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 우리는 그것을 '이야기의 구조(narrative structure)'를 지닌 '이야기시적 특성'이라 규정할 수 있다.  '이야기시(narrative poem)'란 서사지향성이 강하게 발현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근현대시사를 돌아볼 때, 1929년에 발표된 임화(林和)의 [우리 오빠와 화로]에 대하여 김기진(金基鎭)이 명명한 '단편서사시'가 그 단초에 해당하며, 1930년대 들어 이러한 시적 경향은 백석을 비롯하여 이용악(李庸岳)·안용만(安龍灣) 등의 작품에로 이어진다. 일반적인 지적이지만 이같은 시적 경향의 출현은, 단순한 기성 서정시로써는 당대의 복잡다단한 서사적 현실을 일정하게 반영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데서 탐색된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한마디로 백석의 '이야기시'는, 짤막한 서정 양식으로는 미처 두루 포괄하기 어려운 당대 현실의 복잡성을 포착하려 한 시인의 뚜렷한 노력의 소산이라 하겠는데, 그 '이야기시'의 형상화 양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고향의 모습을 세부적으로 재현하였을 뿐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친근성을 생동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삶의 실체를 탐구하고자 한 백석 시에 두드러지게 투영된 것은,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고향' 바로 그것이다. 그의 시에서 드러나는 고향인식은 무엇보다, 한낱 막연한 향수감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우리민족의 공동체적 친근성에 밀착되어 있다. 고향에 대한 이러한 시적 형상화 방법과 관련하여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이 시인의 고양인 평안북도 정주(定州) 방언의 다채로운 활용 및 갖가지 토속적 소재 사용이 눈길을 끈다는 점이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대체로 '현상적 화자'가 시적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시적 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시에서 '고향'은 때로는 풍요롭고 포근한 시적 공간으로 노래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파괴되고 일그러진 암담한 일제 강점기의 비극적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본장에서는 논하지 않았지만 그의 이야기시적 특성은 다음 사항을 덧붙일 수 있다. 둘째, 유년세계의 시적 공간과 자아 회복의 의지가 적실하게 형상화되고 있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사실이 '기억' 또는 '회상'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상상력에 의한 예술적 변용보다는 '기억'에 의존하면서 체험 그 자체를 재구해 내는 데 역점을 둔 백석이 '기억' 속에서 반추하고 있는 것은, 저 유년 시절의 화목했던 전통적 생활상이다. 이는 그가 상실된 세계에서 현실과의 대결의식보다는 지난날의 기억 속에서 자아의 동일성을 회복하려 했음을 잘 말해준다.  셋째, 유랑(流浪)·표랑(漂浪) 체험을 토대로 하여 상당수의 '기행시'를 남겼다. 그의 시에서 '여행'은 일제강점기의 피폐한 민중적 삶의 현실을 절실하게 인식하게 하는 중요한 시적 계기로 작용하였다. 때로는 단순한 객수(客愁)를 읊조리기도 하였지만, 자신이 유랑했던 여러 지방의 일반 민중들의 삶 속에서 자신의 삶의 위치를 재조정하였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식민지 현실의 깊이있는 인식에로까지 나아갔던 것이다. 산골 마을의 향토성 짙은 풍정(風情), 여기저기 표랑하면서 몸소 보고 들은 참담한 민중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해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 근현대시의 사적 전개과정에서 볼 때, 백석에 의해 하나의 뚜렷한 시적 경향으로까지 대두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야기시'는 1960년대 이후 신동엽(申東曄)·신경림(申庚林) 등에 의해 다시 현대시의 한 모습으로 계승되고 있으며, 더 아래로는 1980-90년대 고은(高銀)의 연작 '인물시집' 『萬人譜』로도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 참고 문헌 〉 1. 기본 자료 김학동, 『백석전집』, 새문사, 1988. 이동순, 『백석시전집』, 창작과비평사, 1995. 정효구, 『백석』, 문학세계사, 1996. 2. 국내 저서 김용직, 『한국현대시사』, 한국문연, 1996. 김윤식, 『근대시와 인식』, 시와시학사, 1992. 김자야, 『내사랑 백석』, 문학동네, 1995. 김준오, 『시론』, 삼지원, 1996. 김재근, 『이미지즘 연구』, 정음사, 1973.  신범순, 『한국현대시사의 매듭과 혼』, 민지사, 1992. 역사문제연구소, 『카프문학운동연구』, 역사비평사, 1989. 유종호, 『시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6. 유한근, 『생각과 느낌』, 도서출판 모방과 모반, 1994. 윤여탁 외, 『한국현대 문학의 이해』, 태학사, 1994. 윤영천, 『한국의 유민시』, 실천문학사, 1987. 이동순, 『민족시의 정신사』, 창작과비평사, 1996. 이은봉, 『시와 리얼리즘』, 공동체, 1993. 이승훈, 『한국시의 구조분석』, 종로서적, 1987. 정현종 외, 『시의 이해』, 민음사, 1995. 최두석, 『리얼리즘의 시정신』, 실천문학사, 1992. 한계전, 『한국현대시론연구』, 일지사, 1983.   ==================================================================   109. 전라도 길 / 한하운                                             全羅道 길 ― 소록도로 가는 길에                                        한 하 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고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全羅道) 길.               한하운 시집 《파랑새》 중에서       한하운(韓何雲) 연보       1919년 2월 24일, 함경남도 함주군 동촌면 쌍봉리에서 한종규(韓鐘奎)의 2남3녀중 장남으로  출생.            (본명 : 한태영 韓泰永, 이후 개명 : 한하운 韓何雲) 1926년 한하운의 진학을 위해 함흥으로 이사. 1933년 몸이 붓기 시작(癩病 발병의 시초) 1936년 전라북도 이리농림학교 졸업. 중학 5학년 때 癩病임이 판명됨.            단편소설 를 조광[朝光], 를 삼천리에 투고. 1939년 동경 성혜고등학교 수료. 1942년 중국 국립 북경대학(北京大學)농업원 축산학과 졸업.            논문으로 조선축산사(朝鮮畜産使) 저술. 1943년 귀국 후 함남도청 축산과 임용. 장진군(長津郡)으로 전근.              면양(綿洋) 연구와 개마고원 개간에 몰두.  1944년 경기도청 축산과 전근. '나병' 발병으로 치료 시작.             본명을 한하운(韓河雲)으로 개명함. 1945년 8. 15 해방과 함께 소련 군정이 시작되자 재산을 몰수당함.                           1946년 함흥 학생의거 사건에 연루, 소련군에 체포되어 형무소 수감.                                          1947년 동생이 주동한 북한 전복의거에 연루되어 체포됨.             형무소에서 탈옥하여 월남. 전국을 방랑하며 시작(詩作)에 몰두. 다시 월북. 1948년 7월 월남. 1949년 4월 첫작품 외 12편을 '신천지' 4월호에 발표.                 5월  를 정음사에서 발간.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나환자촌 하천부락(河川部落)에 정착. 1950년 경기도 부평에 나환자 수용촌 '성혜원(成蹊園)'을 설립. 1951년 '신명보육원'을 창설하여 나환자 미감아들을 수용하여 교육 시킴. 1953년 경기도 용인에 '동진원(東震園)'을 설립.                                   대한 한센 연맹위원회 회장 취임.  1954년 전국 나병환자의 중앙기관인 '대한한센총연맹'을 결성하여 위원장으로 선임.             가 불온하다고 하여 국회 및 방송 등에서 논란되었으나 무혐의로 밝혀짐. 1955년 3월, 제 2시집 를 간행.            월간 '희망'지에 자선전 를 연재.    1956년 제3시집 〈한하운시전집〉간행.      1957년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간행.         1960년 자작시 해설집 〈황톳길〉및〈정본 한하운시집〉간행.            '청운보육원' 원장에 취임. 음성나병으로 판단받음.  한미 제약회사를 창설, 회장에 취임. 1962년 신문회관에서 첫 시화전(詩畵展) 개최, 을 문화교육 출판사에서 간행. 1963년 가축개량사업으로 '경인종축장(京仁種畜場)을 부평에 설립함. 1964년 월간 을 창간하여 를 연재. 1966년 신안농업기술학교 교장 취임.   1973년 전남 고흥군 도양면 소록도에 시비(詩碑)  '보리피리' 건립. 1975년 2월 28일  인천 십정동 자택에서 지병인 간경화증으로 인해 영면(永眠).            세상을 떠나면서 천주교에 귀의.            경기도 김포군 김포읍 장릉 묘원에 안치됨 ===============================================================   110. 여인 / 한하운                                            女人                                                        한하운       눈여겨 낯익은 듯한 여인 하나 어깨 넓직한 사나이와 함께 나란히 아기를 거느리고 내 앞을 무심히 지나간다.       아무리 보아도 나이가 스무살 남짓한 저 여인은   뒷모양 걸음걸이 몸맵시 하며 틀림없는 저……누구라 할까……       어쩌면 엷은 입술 혀 끝에 맴도는 이름이요 어쩌면 아슬아슬 눈 감길듯 떠오르는 추억이요   옛날엔 아무렇게나 행복해 버렸나 보지 아니 아니 정말로 이제금 행복해 버렸나 보지.               한하운 시집 《파랑새》 중에서                                                   
966    시인들이여, - 매순간의 부산물로 시써라... 댓글:  조회:4556  추천:0  2016-01-10
시 쓰기, 시 앓기   1  꼬집어 어디가 아프다고 할만한 곳도 없는데, 누워있는 것이 힘들고 답답하다. 자세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해 본다. 여러 번 자세를 고쳐 눕는다. 예민한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아주 조심스럽게 몸을 뒤척거린다. 가까스로 쌓아온 잠이 작은 뒤척거림으로 금방 무너진다.  오줌이 마려운 걸 참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해 본다. 그렇게 생각하니 금방이라도 쌀 것 같다. 오줌은 뜨거운데 변기에 떨어지는 양은 많지 않다. 다시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 낯은 익은데 누구인지 기억이 안 나는 얼굴들, 끊임없이 숫자를 대입해도 정답이 굳게 닫혀져 있는 수학공식들이 계속 꿈자리를 어지럽힌다.  감기에 걸린 것인가 생각해 본다. 저혈압이라는데, 혹시 피가 모자라 어지러운 건 아닌가도 생각해 본다. 병! 내가 아는 이름이 나오자 우선 마음이 편해진다. 초등학교 시절,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했을 때의 이상한 쾌감, 조금은 불안한 안락함, 아무도 없는데 어디선가 급우들이 떠들고 있는 듯한 다소 혼란스러운 고요함, 이런 추억들이 내 열과 불안을 자석처럼 빨아들인다.  나는 내 몸에 들어온 병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이 놈이 내 몸에 들어와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숨죽이고 지켜본다. 잔 물비늘 같은 떨림이 온몸을 흔들며 지나간다. 내 몸에 돋은 닭살들이 갈대처럼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 즈음에서 나는 약한 잠에 빠져든다.  2  필사적으로 바람을 견디다가 찢어진 비닐 조각처럼, 떨어져 덜컹거리는 문짝처럼, 망가지고 허술해진, 바람을 더 견디기엔 불안한 몸뚱어리를 그는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눕힌다. 조금이라도 호흡이 거칠어지거나 불규칙하면 몸속에서 쉬고 있는 폭풍이 꿈틀거린다. 숨이 바늘구멍을 무사하게 통과하느라 그는 아슬아슬 호오호오 숨을 고른다. 불손했고 반항적이었던 생각들과 거침없었던 감정들로 폭풍에 맞서온 몸은 폭풍을 막기에는 이젠 너무 가볍고 가냘프다.  ―졸시 「바늘구멍 속의 폭풍」 중에서  3  매일 불행하고 슬픈 일들이 일어난다. 그 슬픔과 불행이 왜 일어나는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두가 자기가 생긴 대로 열심히 살다가 생긴 일일뿐이다. 그렇게 생긴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탈이 나서 배가 아프다고 대장균을 탓하겠는가? 그 미생물들이 할 일은 저들이 타고난 생김새와 성질 그대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생김새와 성질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무의 잘못이 없는데도 언제나 적과 죄인은 있고, 계속 생겨나고 있다. 적과 죄인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만든 것이다. 분노와 적개심을 받아줄 대상이 필요한 자들의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무언가 잘못한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들이 그렇게 생긴 것이 바로 그들의 잘못이어야만 하는 일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것을 정교한 체계를 갖추어 시비를 가려내기 위한 법이 생겨난다. 불행과 슬픔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 필요성은 점점 커지고 비례하여 불행과 슬픔도 늘어나고 있다. 법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해지고 충실해졌지만, 불행과 슬픔이 늘어난 양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불완전하고 빈약하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적인가? 나는 얼마나 많은 죄를 짓는 사람인가?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나는 누군가에게 또는 무엇인가에게 폭력이 되고 있다. 나는 적이 필요한 사람과 내 행동이 단죄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불행과 슬픔이 생겨나도록 하기 위해, 매일 누구에겐가 적이 되고 무엇인가 잘못을 저지른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퇴근이 한참이나 지난 내 몸이 미세하게 떨고 있다. 그날의 일용할 폭력을 견뎌내느라 몸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들부들 떨고 있다. 오랫동안 그치지 않는다. 그 폭력을 견뎌내기 위하여 내 몸은 상처와 병을 필요로 한다. 상처는 폭력이 몸에 들어와 몸이 된 것을 말한다. 폭력이 몸이 되는 동안 몸은 뜨거워진다. 폭력이 몸이 되려고 뜨거워지는 것, 떨리는 것, 그것이 병이다. 병은 폭력을 껴안는다. 몸 안에서 폭력과 병은 서로 하나가 된다. 서로 싸우다가 다정해진다. 어느 순간, 폭력과 병은 폭력도 아니고 병도 아닌, 내 몸이 된다.  4  비에 젖은 구두  뻑뻑하다 발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신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구두는 더 힘껏 가죽을 움츠린다  구두가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린 적은 없었다  나는 구두주걱으로 구두의 아가리를 억지로 벌려  끝내 구두 안에 발을 넣고야 만다  내 발이 주둥이를 틀어막자  구두는 벌어진 구두주걱 자국을 조용히 오므린다  제 안에 무엇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소가죽은 축축하고 무거운 발을 힘주어 감싼다  ―졸시 「소가죽 구두」  5  몸살! 몸은 뜨거운데, 나는 춥다. 지금은 내 병이 내 몸 속의 폭력을 치료하는 중이다. 대부분의 경우, 앓는 동안 나는 내가 앓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병은 내밀하게 진행된다. 나는 둔하지만, 몸은 예민하다. 나는 단지 말이 없어지거나, 갑자기 화를 내거나, 술이 먹고 싶어지거나, 아무 생각 없이 중얼거리거나, 갑자기 어떤 대상이 떠올라 적개심이 일어나거나, 몹시 피곤해지거나 하기는 하지만, 병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감기약을 사 먹어야 할 만큼 병이 두드러지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나에게 전에 없던 습관이 생겼다든가 갑자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은 폭력의 긴 육체화 과정이 잠시 멈추고 병이 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6  그동안 나는 여러 번 넘어졌는지 모른다  지금은 쓰러져 있는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제 자리만 맴돌고 있거나  인력에 끌려 어느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졸시 「우주인」중에서  7  매일, 매순간, 앓는다. 병은 내 눈이고 코이고 입이다.  그리고…… 그 병의 부산물로 시가 얻어진다.  *김기택 , 「시 쓰기, 시 앓기 」 중에서.   ===================================================== 108. 쥐구멍 / 이동순                          쥐구멍                                                                이동순       사랑채 아궁이에 한참 군불을 안 넣었더니 쥐가 방바닥에 구멍을 뚫었다 쥐똥이 마구 널브러진 차디찬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나는 쥐구멍의 퀭한 어둠을 본다 내 마음도 꼭 저와 같으리 잠시만 돌보지 않아도 어둡고 퀭한 구멍이 여기저기에 뚫려 있으리       이동순 시집 '아름다운 순간' 중에서    
965    시인들이여, - 만 가지 시작법을 배우라... 댓글:  조회:5588  추천:0  2016-01-10
시 창작에 대하여 1. 시 쓰기에 가장 큰 장애물은 언어이다. 언어는 시의 재료이면서도 시 쓰기를 방해한다. 언어와 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의 다양한 정서 사이에는 아득한 거리가 있다.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담기에는 언어는 너무 상투적이고 단단한 외피로 둘러싸여 있다. 더구나 시인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는다. 시의 원료는 기억과 경험과 오감과 여러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는 혼돈 상태인데, 이것을 슬픔이나 사랑 따위의 두루뭉실한 언어로 어떻게 표현한단 말인가. ‘슬픔’이라는 단어는 시인의 마음 속에 있는 정서를 얼마나 표현해줄 수 있을까. 그것이 읽는 이에게 전달되었을 때에는,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모두 죽고, 공허한 언어의 외피만 남게 된다. 읽는 이의 몸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몸으로 전달되지 않으면 감동은 없다. 시를 읽는 즐거움은 없다. 머리로 감동하는가? 정보만 얻으면 감동하는가? 감동이라는 말은 느낄 감, 움직일 동, 즉 몸에 무엇인가가 들어와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떨림, 미열, 숨가쁨, 기분 좋음, 기운이 생김, 눈물이 나옴, 소리가 들림, 냄새가 남 등과 같이 구체적으로 몸이 변화하는 것이다. 2002 월드컵 경기를 떠올려 보자. 16강전에서 이탈리아에 내내 끌려 다니며 지고 있다가 동점골, 역전골이 터졌을 때 몸은 이겼다는 정보를 얻는 것으로 그쳤는가? 사전을 통해 입수한 정보와는 무언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골이 터질 때 몸은 구체적으로 반응했다. 떨림, 눈물, 소리가 터져 나옴 같은 구체적인 몸의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슬픔, 사랑, 기쁨 따위의 말을 하면 몸이 움직이는가? 그런 말들이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말들을 반에 반만이라도, 옮겨줄 수 있을까? 개인이 갖고 있는 정서는 대단히 개인적인 것이며, 복잡다단하고 미묘하다. 그것을 어떤 단어로 옮긴다는 것은 정서의 팔과 다리, 이목구비 따위를 모두 제거하는 것처럼 폭력적인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말들은 개인적인 정서가 갖는 몸통의 일부 조차도 산 채로 전달할 수 없다. 몸과 마음 속에 있는,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는 분명히, 눈과 코, 입, 귀, 팔다리가 달린, 살아있는 생명체였다. 언어는 뼈다귀와 같은 개념 덩어리이기 때문에, 산 것을 그대로 담아서 전달할 수가 없다. 일단 개인의 고유하고 다층적이며 미세하고 미묘하고 예민한 뿌리들이 가득 달린 무수히 많은 정서의 세목들을 언어에 담자면 우선 그 정서들을 죽여서 몸통에 달라붙은 이목구비며, 팔다리며, 머리카락 따위 자잘한 것들을 모두 발라내야 한다. 그런 후라야 앙상한 의미나 감정 따위가 겨우 전달될지 모르겠다. 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비하면 언어는 개념의 뼈다귀로 이루어진 너무 폭력적인 도구이다. 실제로 언어의 생명은 딱딱한 개념의 외피 속, 보이지 않는 곳에 깊이 감춰져 있다. 2. 왜 시 쓰기를 창작이라고 하는가? 창작이란 창조와 같이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다. 시는 없는 언어를 만들어 내는가? 시어란 이전에는 세상에 없었는데 시인에 의해 새로 생겨난 언어인가? 시인은 시어를 창조하는가? 시인이 사용하는 언어도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일상어임이 분명하다. 간혹 조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어가 시의 창조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조어는 시가 아니더라도 여러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생겨난다. 그렇다면 왜 시 쓰기가 창작인가? 시는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개인적인 정서,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정서를 죽이는 언어를 숙명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 언어들은 정서를 시로 표현하고자 할 때 끊임없이 시 쓰기를 방해하며 시의 도구로서 사용된다. 시를 창작한다는 것은 숙명적으로 시 쓰기를 방해하는 폭력적인 언어,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를 죽이고자 하는 언어를 통해서 정서를 죽이지 않고, 가능하면 덜 다치게 하고, 산 채로 전달하는 것이다. 언어 안에 시인의 정서가 산 채로 담겨 있어야 그것은 단순한 정보가 되지 않고 읽는 이의 몸에 들어가 몸을 움직이게 하는 변화로서의 감동을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시가 주는 감동이 스포츠에서 얻는 감동이나 즐거움, 쾌감 따위처럼 직접적이고 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스포츠나 오락 등에서 얻는 감동은 시에 비해서 보다 직접적이고 즉각적이고 표피적이다. 시의 감동은 약해보이고, 때로는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늦게 나타날 수도 있다. 대신 그것은 보다 심층적이고 지속적이다. 3. 어떻게 고유하고 복잡 미묘한 개인의 정서를 죽이지 않고 산 채로 언어에 담는가? 그것은 실체가 분명해 보이지 않는 감정, 정서, 고통, 생각 등 온갖 추상적인 것들을 사물로 표현하는 것을 통해서이다. 즉, 개념덩어리인 언어를 볼 수 있는 것, 들을 수 있는 것, 냄새 맡을 수 있는 것, 맛볼 수 있는 것, 손으로 만져서 촉감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실체가 없는 말에 육체를 입히는 것이다. 육화하는 것이다. 허공과 같은 말, 개념의 뼈다귀만 있는 말에게 살과 피를 입히는 것이다. 정서가 말의 살과 피와 체온에 스며들어 함께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이미지, 객관적상관물, 직유, 은유, 병치, 아이러니 따위와 같이 시에서 사용하는 여러 기교는 바로 사물을 통해 개인의 복합적인 정서를 드러내는 도구들이다. 예를 들면 을 보자. 엘리어트는 “예술의 형식으로 정서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객관적상관물(客觀的相關物)을 발견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 특유한 정서의 일정한 외형이 될 일조(一組)의 사물이나 장면이나 일련의 사건들을 찾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감가경험으로 낙착되는 외부적 사실들이 주어졌을 때에, 정서가 즉각적으로 환기되도록 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즉, 객관적상관물은 사물을 통해 정서를 환기시키는 장치이다. 사물은 육체를 가지고 있다. 볼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고,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다. 객관적상관물은 이 사물에다가 시인의 정서를 심어놓는 것이다. 이때 객관적상관물로 표현된 사물은 시인의 정서와 등가물(等價物)이 된다. 사람의 몸에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 겪은 여러 경험과 수억 년 몸의 유전자에 새겨진 진화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 이 기억들은 감정과 정서를 가지고 있다. 객관적상관물은 개인적인 기억과 정서를 사물에 심어 읽는 이로 하여금 사물을 통해 그것들을 환기하도록 한 것이다. 그것은 사물을 통해 감지한 것이므로 환기되는 순간 육체성을 갖게 된다. 즉 개인의 고유한 몸의 기억은 환기 작용을 통해 보편적인 정서, 살아있는 정서로 재생되는 것이다. 이미지(심상)도 언어를 육화시키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이다. 이미지스트들은 이미지를 라고 하였다. 이미지로 표현된 것은 사물의 육체를 갖고 있지만, 그 육체에는 시인이 투사시킨 지식과 정서가 복합적으로 들어있다. 개념적, 추상적인 말로는 획득하기 어려운 육체성을 통해 시인의 정서는 읽는 이에게 선명하게 제시된다.  4. 시는 사물과의 대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물은 생김새, 물성, 운동, 크기, 무게, 냄새 등과 그것이 있는 위치와 장소, 그것들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여러 가지 특성과 인상을 가지고 있다. 개개 사물이 가지고 있는 육체성은 우리 몸이 갖고 있는 정서와 감정과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들은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거나 사물을 의인화시켜 그것들로 하여금 사람의 말을 대신하게 하거나 그것들과 이야기하기를 즐겨 하였으며, 많은 문학 작품이 직접적으로 이런 내용을 다루거나 이런 방법을 사용해 왔다. 5. 시인들은 이와 같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정서, 감정, 의미 등을 전달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교를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은 시인의 본능이 찾아낸 방법이지 시를 창작하는데 고정된 어떤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고정된 방법은 오히려 시 정신을 죽인다. 좋은 시는 과거의 시인들이 기울인 노력에 더하여 살아있는 언어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에 의하여 얻어질 것이다. 좋은 시는 과거에 사용했던 방법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에 의해서 계속 바뀌게 될 것이다. 스포츠나 만화, 영화, 모험 등 모든 육체적인 감동과 변화를 주는 것은 시 창작 방법에 응용될 수 있다. 문제는 살아있는 생생한 언어, 시인의 의식과 정서를 극적,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이지, 정해진 시작 방법에 교과서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아니다. 만 명의 시인이 있다면, 만 가지의 시작 방법이 있는 것이다. 각자의 얼굴 생김새, 마음 생김새가 다르듯이 시작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   106. 쇠기르기의 깃털 / 이동순                              쇠기러기의 깃털                                                     이동순       쇠기러기 한 마리 잠시 앉았다 떠난 자리에 가 보니 깃털 하나 떨어져 있다       보숭보숭한 깃텃을 주워 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머물다 떠난 자리엔 이런 깃털조차 하나 없을 것이다       하기야 깃털 따위를 남겨 놓은들 어느 누가 나의 깃털을 눈여겨보기나 하리               이동순 시집 '철조망 조국' 중에서       이동순 연보   1950년 음력 6월 28경북 김천시 구성면 나실(羅室)이란 곳으로 피난을 갔다가 그곳에서 출생.           (아명 : 인출(寅出). 이후 출생지의 지명을 따서 나출(羅出)이란 이름으로도 불림.) 1962년  대구 수창초등학교 졸업. 1965년 대구 대건중학교 졸업. 1968년 대구농림고등학교 임과 졸업.       1989년 경북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입학. 1973년 졸업을 앞두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마왕의 잠>당선. 경북대학교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4년 이하석과 함께 시집 《백자도》 발간. 1975년 경북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석사과정 졸업(문학석사).           (이후 2년 6개월 동안 군 복무.) 1978년 안동간호전문대학 교수로 부임. 1980년 제1시집 《개밥풀》(창작과비평사) 발간. 1981년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국문학과 교수 취임. 1983년 제2시집 《물의 노래》(실천문학사) 발간. 1986년 4인(김창완, 김명인, 이동순, 정호승) 시집 《마침내 겨울이 가려나 봐요》 발간. 1987년 제3시집 《지금 그리운 사람은》(창작과비평사) 발간. 제5회 신동엽창작기금 수상.           백석의 시 작품을 수집 정리하여 광복 이후 최초로 《백석시전집》(창작과비평사)을 발간.            1988년 시선집 《맨드라미의 하늘》(문학사상사) 발간.           논문 <일제시대 저항시가의 정신사적 연구>로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음.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당선. 1990년 영남대학교 문과대 국문학과 교수 취임. 1991년 제4시집 《철조망 조국》(창작과비평사) 발간. 1992년 제5시집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문학과지성사) 발간. 1993년 편저 《한국 현대 대표시선 Ⅲ》(민영, 최원식, 이동순, 최두석 공편) 발간. 1995년 제6시집 《봄의 설법》(창작과비평사),  제7시집 《꿈에 오신 그대≫(문학동네) 발간. 1996년 연구서 《민족시의 정신사》(창비신서 125), 편저 《여우난골족》(백석시전집, 솔) 발간. 1998년 편저《모닥불》(정본 백석시전집, 솔), 평론집 《시정신을 찾아서》(영남대 출판부) 발간. 1999년 제8시집 《가시연꽃》(창작과비평사) 발간. 민족문학작가회의 대구지회장. 2000년 미국 시카고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2001년 제9시집 《기차는 달린다》(만인사), 산문집 《이동순 교수의 시와 시인 이야기》(월인) 발간.           연구서 《한국인의 세대별 문학의식》(아산재단 연구총서 제82집, 집문당) 발간.           제1회 김삿갓문학상, 제15회 금복문화예술상 수상. 2002년 기행에세이 《시가 있는 미국 기행》(새미) 발간. 2003년 민족서사시 ≪홍범도≫(전 5부작 10권, 국학자료원) 발간.           대구MBC 라디오에서 ≪이동순의 재미있는 가요 이야기≫ 프로 MC. 2004년 기행에세이 ≪실크로드에서의 600시간≫(선), 시선집 ≪그대가 별이라면≫(시선사) 발간.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소장. 제44회 경북문화상 문학부문 수상. 2005년 제11시집 ≪미스 사이공≫(랜덤하우스중앙), 제12시집 ≪마음의 사막≫(문학동네) 발간.           문학평론집 ≪잃어버린 문학사의 복원과 현장≫(소명출판) , 편저 ≪어디서나 보이는 집≫(북한현대대표문학선집, 선) 발간. 2006년 가요에세이 ≪번지 없는 주막-한국 가요사의 잃어버린 번지를 찾아서≫(선) 발간.           편저 ≪독도를 보는 한 눈금 차이≫(선) 발간. 2007년 문학평론집 ≪우리 시의 얼굴 찾기≫(선), 편저 ≪시인의 길-한국현대시 육필공원 시선집≫(선) 발간.           대구MBC 특집다큐멘터리 <금순아, 어디로 가고> 진행자. 2008년 어른을 위한 동화 ≪나의 기차는 어디로 갔을까≫(문학동네) 발간.           대구MBC 기획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10부작 <몽골> 진행자.     ===================================================================== 107. 봄비 / 이동순                           봄비                                                이동순       겨우내 햇볕 한 모금 들지 않던 뒤꼍 추녀 밑 마늘 광 위으로 봄비는 나리어 얼굴에 까만 먼지 쓰고 눈 감고 누워 세월 모르고 살아 온 저 잔설을 일깨운다 잔설은 투덜거리며 일어나 때 묻은 이불 개켜 옆구리에 끼더니 슬쩍 어디론가 사라진다 잔설이 떠나고 없는 추녀 밑 깨진 기왓장 틈으로 종일 빗물이 스민다               이동순 시집 '그대가 별이라면' 중에서                        
964    시인들이여, - 육화된 산 언어를 잡아라... 댓글:  조회:4996  추천:0  2016-01-10
놀이로서의 시 쓰기 1. 기다리기  한 편의 시가 나오기 전까지 나도 내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 궁금해서 기다려진다. 시가 나오기를 기다릴 때 시가 어린애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이 녀석은 성질이 청개구리 같아서 꺼내려 하면 얼른 숨는다. 아무리 좋은 컨디션. 고요한 시간, 알맞은 분위기를 준비해 놓고 유혹해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무관심한 척,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하면, 그때서야 저도 심심하고 궁금하니까 살살 고개를 쳐든다. 내가 전혀 글을 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예를 들면 펜도 종이도 없거나 만원 전철 안에 있거나 하여 쓰기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갑자기 나에게 놀자고 덤벼든다. 이 녀석이 스스로 찾아와 놀자고 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므로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녀석과 놀아주려고 노력한다. 잘 놀아주지 않으면 잘 뻗치던 상상력을 대부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언제 갑자기 찾아올지 모르는 이 녀석을 위해 가방이나 주머니에 필기구와 수첩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일을 할 때나 놀 때나 일상에 빠져 있어도 무의식적인 마음의 더듬이는 늘 세워두어야 한다. 그러나 시를 잡을 준비가 잘 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그 녀석도 눈치가 빤해서 잡히려고 하지 않는다. 이 녀석은 내가 준비가 안 된 순간을 느닷없이 급습하여 난처한 상황에 빠져 쩔쩔매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새벽꿈에 찾아와 상상력에 발동을 거는데, 일어나면 신기하게도 싹 사라진다. 번번히 당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녀석은 그런 어수룩한 나를 보는 게 여간 즐겁지 않은가 보다. 가만히 있을 때보다는 걷거나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보거나 움직일 때 이 녀석은 더 자극을 받는다. 그래도 때때로 나에게 제대로 걸려 꼼짝 못하고 작품이 되어 나오곤 한다.  2. 산 채로 잡기  내 시에는 묘사가 많지만, 시 쓰는 과정에서 실제로 묘사할 대상을 보는 것은 시 쓰기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시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시각이나 인식, 마음에 따라 그것을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대상을 상상력 위에 올려놓을 때 그것은 실체를 보는 것 보다 더 생생하고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다. 나는 대상을 상상의 공간에서 움직이게 해 놓고 그것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글자로 표현된 것이 내가 가상공간에서 상상했던 것과 같이 실감이 나지 않으면 그것이 생생하게 환기될 때까지 몇 번이고 수정한다. 그것이 상상 공간에서 본 것처럼 생생하게 될 때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표현하려다 보니 미세한 것까지 표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과장과 허풍이 나오게 된다. 과장과 허풍도 인식의 소산이다. 과장이나 허풍은 평면적인 그림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거나 지나치기 쉽거나 감춰진 것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평면적인 사실 속에 숨은 사소한 것들 그러나 시에서는 중요한 가치들을 깨우는 것이다. 시는 언어를 도구로 사용하지만 시 쓰기에서 가장 큰 방해자는 역시 언어이다. 언어와 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의 다양한 정서 사이에는 아득한 거리가 있다.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담기에는 언어는 너무 상투적이고 단단한 외피로 둘러싸여 있다. 언어는 너무 많은 사람이 사용해 닳고 닳아 살과 피는 별로 없고 뼈다귀 같은 개념 덩어리가 대부분이다. 이것을 그대로 사용하면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거의 죽고, 딱딱한 관념이나 언어의 질긴 껍질만 남게 될 것이다. 읽는 이의 머리로는 전달되겠지만 몸으로 전달되지는 않는다. 몸으로 전달되지 않으면 감동은 없다.  시인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개인적인 정서,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정서를 죽이는 언어를 숙명적으로 시 쓰기에 사용해야 한다. 시인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를 죽이려고 하는 언어를 사용해서 정서를 죽이지 않고, 가능하면 덜 다치게 하고, 산 채로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많은 시인 선배들은 은유나 이미지, 객관적 상관물, 아이러니, 낯설게 하기 등 언어를 산 채로 잡아 생생한 그대로 전달하는 여러 방법을 만들어 사용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흉내내는 순간 다시 상투어로 돌아가려 한다. 좋은 시는 남들이 썼던 것이 아니라 제 몸에 맞는 새로운 언어, 육화된 언어를 찾아 쓴다.  표현하기 어려운 대상을 만났을 때 나의 놀이 욕구는 더 힘을 얻는다. 나는 온 힘을 집중하여 완강하게 활자화를 거부하는 대상과 싸운다. 나는 그것이 명확하고 알기 쉬운 표현이 될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 그것이 선명하고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이 되어 내 앞에서 얌전하게 꿇어 앉을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 그 과정이 치열할수록 시 쓰는 즐거움은 커진다. 그 표현과의 싸움에 집중할 때 나는 재미있는 놀이에 집중하는 아이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즐거운 시 쓰기도 고통이 될 때가 많이 있으니, 그것은 아둔한 재주와 헐거운 연장 때문에 능력의 한계를 절감할 때이다. 잡을 때는 산 것 같았는데, 잡아놓고 보면 죽어있을 때가 많다.  3. 다듬기  퇴고에서 내가 하는 일은 시 쓸 때의 흥분 상태를 가라앉히는 일이다. 흥분 상태에서는 못난 표현도 제 새끼들 마냥 다 예쁘게만 보인다. 군더더기에 상투적인 안이한 표현, 의도적인 오류가 아닌 습관에 의한 오류, 감정의 과잉에 의해 흘러넘친 과장 따위가 작품 속에 빠져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나는 시간의 섬세한 여과작용을 이용한다. 되도록 이면 일주일 이상은 묵혀두고 시 쓸 때의 흥분도 충분히 제거시킨다. 그러면 뭔가에 홀린 눈이 조금씩 풀리고 냉정한 태도로 돌아와서 잘못된 표현이나 생각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렇게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다듬는 것이 좋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늘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원고를 보낼 때가 많고, 활자화된 후에야 후회하는 일이 적지 않다. 완성된 원고를 확정하는 일은 늘 어렵고 원고를 보낸 후에도 늘 꺼림칙하다.   ==================================================================================   105. 봄비 / 이수복                           봄비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에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벙글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며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이수복 시집 '봄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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