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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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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    시는 알면 재미있고, 모르면 재미없고... 댓글:  조회:4403  추천:0  2016-01-05
▒詩에 대한 각가지 정의 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삶이란 무엇인가?" 와 같은 어렵고도 정의 내리기가 힘들 것 같네요. 모든 시인은 자신이 내린 詩觀(시관)에 입각해 작품을 세계를 형성했고, 문학가나 비평가는 그의 시관에 의해 시를 비평하고 연구했기 때문입니다. 시의 정의가 여러 가지가 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대상을 보는 시인의 안목이 여럿이기 때문이라고 생각 됩니다. 시를 보는 각도가 상이하고 방법이 달라서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조지훈님은 시관과 우주관의 관련에 대해 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오트(T.S.Eliot)는 라고 말했습니다. 시인이나 문학자라고 일컬을 수 있는 사람은 대부분 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기록했으니, 많은 정의가 범람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정의 중에서 몇 가지를 적어 봅니다. 1. 시는 율어에 의한 모방이다..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2. 시는 미의 운율적 창조다..포우(A.Poe) 3. 시란 상상 위에 환상을 불러 일으키는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기술, 즉 화가가 색채로 하는 일을 언어로 하는 기술을 말한다..매콜리(Macaulay) 4. 시는 정서의 표출이 아니라 정서로부터 도피요,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 도피다..엘리오트(T.S.Eliot) 5. 시를 구성하는 두 개의 주요한 원리는 격조의 은유다..웰렉(R.Wellek) 6. 시는 언어의 비평이다..스펜더(S.Spender) 7. 시는 언어의 건축이다..김기림(金起林) 8. 시는 위대하고 겸손한 것이다..키이츠(Keats) 9. 나의 시는 나의 커다란 참회다..괴테(Goethe) 10.시는 강한 감정의 자연적 발로다..워즈워드(Wordsworth) 11.시는 가장 행복한 심성의 최고 열락의 순간을 표현한 기록이다..셸리(Shelley) 12.시는 유용하게 즐거이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보왈로(Boileau) 13.시는 상상과 감정을 통한 인생의 해석이다..허드슨(W.H.Hndson) 14.시는 체험이다..릴케(Rilke) 15.우리들은 음악적인 사상을 시라고 부른다..카라일(Carlyle) 16.시는 가르치고 즐거움을 주려는 의도를 가진 말하는 그림이다..시드니(P.Sidney) 17.시는 시적 진리와 시적 미의 법칙에 의한 비평에 알맞는 상태에 있는 인생의 비평이다..아놀드(M.Arnold) 18.시는 인간 사상, 감정을 율동적인 운문으로 표현한 문학의 한 장르다..김용호(金容浩) 19.우주의 생명적 진실이라는 시의 본질이 사상의 정서적 감동이라는 시의 작용을 통하여 언어의 율동적 조형이라는 시의 표현을 갖출 때, 여기 한 편의 시가 나타나는 것이다..조지훈(趙芝薰) 20.시는 고상한 정서의 고상한 영역을 상상에 의하여 음악적 형식으로 암시한 것이다..러스킨(Rnskin) 21.시는 영감을 받은 일종의 산술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추상적인 수나 삼각이나 구형같은 방정식이 아니고, 인간 감정의 방정식을 주는 것이다..파운드(E.Pound) ▒시의 종류 1. 형식상의 분류 (1)정형시..일반적을 정형시란 시의 형식이 일정한 규칙에 의해 이루어진 시 시인 서정주는 이라고 말하였다. (2)자유시..자유시는 정형시가 지닌 형식적인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형식을 창조한 시 여기서 자유란 형식을 창조적으로 자유롭게 만드는 자유 전통적으로 내려 오던 정형시의 형식과 맞설 수 있을 정도의 참신한 형식을 자유롭게 만들어 내는 것. 자유시는 19세기의 미국 시인 휘트먼이라든지,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들의 시험을 거쳐서 이루어 졌다고 한다. (3)산문시..산문시는 시적인 내용을 산문으로 나타낸 시. 산문시와 산문의 차이..산문시와 산문은 모두 리듬을 갖지 않는 면에서는 일치하나 산문시에는 산문에 없는 그 무엇, 즉 시정신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2.내용상의 분류 (1)서사시..서사시의 특색은 객관적이고 설화적인 것 서사시를 의미하는 epic(영)은 라틴말의 epicus, 그리스 말의 epikos 곧 epos에서 온 말로서, 이것은 ,,를 뜻함. 서사시란 어떤 객관적인 사실을 이야기한 또는 음송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예)호머의 , 우리나라 김동환의 , 김용호 등이 서사시라고 말해지고 있다. (가)성장의 서사시(epic of growth):이 시는 고대 및 중세의 서사시로서 민족적 서사시 라고도 할 수 있다. 영웅호걸이나 집단적 운명을 그린 것 (나)예술의 서사시(epin of art):이 시는 르네상스 때의 서사시로 단테의 , 탓소의 , 밀턴의 과 등이 속함 (다)인생의 서사시(epic fo human):롱펠로우의 이란든지, 테니슨의
842    과소평가 된 시인과 과대평가 된 시인 댓글:  조회:4813  추천:0  2016-01-05
노를 저어 태평양을 횡단한 영국 탐험가 [ 2016년 01월 04일 08시 47분 ]     그리 젊지도 늙지도 않은 한 53세의 탐험가가 있다.그는 약 반년이란 기나긴 시간을 허비해 끝내  태평양을 횡단하는데 성공. 존 비든이라 불리우는 영국 탐험가는 2015년 6월 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 12월 27일 오스트랄리아의 한 해안도시에 도착. 그는 6메터에 달하는 배로 209일동안 노를 저어 7400해리에 달하는 바다길을 항행, 하루 평균 15시간씩 배를 저었는데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에는...  과소와 과대          세상에는 늘 이름이 앞서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괜히 이름만 들어도 주눅이 들고 범접하기 어려운 느낌이 드는 인물들이 그들이다. 시인 서정주와 기형도도 이들가운에 포함되어 있다. 서정주 선생이야 두말할 것 없는 한국 서정시의 기인이요, 기형도 또한 짦은 살만큼 찬란한 시어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괜히 딴지를 걸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업적은 그 자체로 빼어나다. 하지만 불멸이라고 이름붙이기에는 왠지 찜찜한 구석이 있다. 제목 : 한국 현대시 이렇게 볼 수도 있다 한국 현대시사(史)에서 과대평가나, 과소평가된 시인들로는 누구를 들 수 있을까? 계간 ‘시인세계’는 겨울호 특집으로 ‘과대평가된 시인, 과소평가된 시인’이란 주제를 다뤘다. 이에 따르면 시인 박목월 전봉건 김종삼 박인환은 과소평가 받았고, 서정주 윤동주 김수영 기형도는 과대평가 받은 시인으로 꼽혔다.》 ‘시인세계’ 측은 편집위원인 김종해 장석주 정끝별 씨가 그간 시단의 여론을 반영해서 이처럼 선정했으며 여기에 동의한 8명의 문인들로부터 거론된 시인들을 평가하는 글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선정은 주관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각각의 글에는 주요 시인들의 가려진 면모들을 조명해 주는 측면이 있다. 시인 김옥성 씨는 박목월에 대해 “청록파라는 관사가 이름 앞에 붙으면서 ‘청록집’을 그의 본령이라고 보고, 이후 시들은 시적 긴장이 결여됐다고 보는 흐름이 강했다”고 분석했다. 김 씨는 “박목월이 생활에, 서정주가 종교에 무게를 두긴 했지만 시적 사유에 있어서 양자는 용호상박”이라며 “박목월이 성숙한 생활인으로서 아버지 상을 그려낸 점, 기독교적 사유와 상상을 내밀하게 감춰둔 점이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론가 문혜원 씨는 전봉건에 대해 “문학의 사회 참여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그걸 인정하는 게 오히려 진실하다고 봤으나, 그게 현실도피적인 자세로 여겨졌다”고 분석했다. 또한 그가 대표적 시문예지인 ‘현대시학’을 1969년 창간하고 주간으로서 신인 발굴과 지면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었지만 이를 이용해 문단 입지를 확보하려 하지 않았던 점도 그가 과소평가된 원인이라는 것. 전봉건은 돈이 없어 이중섭의 그림을 팔아 사무실을 유지했지만, 사심이 없었고 외부 상황에 연연해하지 않는 ‘말 그대로 시인이었다’고 문 씨는 평가했다.   시인 강연호 씨는 김종삼에 대해 “대표작 ‘북 치는 소년’에서 보듯 그의 시는 그야말로 내용 없는 아름다움의 세계였다”며 “그에 대한 소극적 평가는 그가 현실의 비극과 싸우지 않고 심미적 구원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썼다. 평론가 이홍섭 씨는 박인환에 대해 “‘밤의 노래’ 등 전쟁의 비극을 다룬 시들에서 보듯 그에게는 감상주의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고 썼다.   평론가 신철하 씨는 서정주에 대해 시인 김지하 씨가 비판한 내용을 인용했다. “서정주의 대표시집인 ‘질마재 신화’의 경우 거대한 역사의 회오리가 반영돼 있지 않으며, 거칠거칠한 무기교의 기교를 만들지 못해 생생한 삶의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윤동주에 대해선 “저항시인으로 조명됐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며, 빙산의 밑둥은 ‘청춘의 비애를 드러낸 센티멘털 로맨티시즘’이다”(평론가 이명원)는 분석이 나왔다.   김수영에 대해 박현수 경북대 국문학과 교수는 “4·19 때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인들이 5·16으로 다시 억압받으면서 김수영 신화가 탄생했다”며 “신화 이후 그에 대한 평가는 절대적으로 상향 조정되어, 서정주가 우리 시의 우익정부라면 그는 우리 시의 좌익정부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이어 “김수영의 시를 꼼꼼하게 읽었을 때 박인환의 겉멋 같은 것이 너무 과잉되어 있으며, 시적 맥락이 작위적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스물아홉 살에 요절한 기형도에 대해 문학평론가 홍기돈 씨는 “한 시인의 우발적 죽음을 필연으로 수용하는 현상은 그 사회가 처한 조건과 관계 맺는다”며 “사회에 은연중에 유포되어 있는 죽음의 분위기가 기형도의 죽음과 공명하였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고, 그런 공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기형도의 죽음은 우리 문학계에서 마치 신탁과도 같은 영향력을 갖게 된다”고 분석했다. ///동아일보
841    시는 시인의 령혼 댓글:  조회:4441  추천:0  2016-01-05
[ 2016년 01월 04일 09시 10분 ]     신강 아러타이지구(阿勒泰地区)에서           시는 무엇이며 어떻게 창작하는가 / 김건일시인 시는 시인의 영혼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 시다. 시인의 영혼 중 시인이 어떤 상황에서 충격을 받고 영혼의 떨림이 왔을 때 즉 영혼이 최고조로 황홀경의 상태에 이르렀을때 시인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그 황홀경을 영혼에 두지 못하고 부지불식간에 영혼 밖으로 배출하게 된다. 주로 소리로 부르짖게 되는데 탄식처럼 부르짖게 되는데 그냥 소리로서만 흘러버리면 시인이나 그 시인의 소리를 들은 사람만 그 시를 숙지하게 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상태가 보존되지 않고 그것은 소멸되어버리고 만다.  이럴때 그 영혼의 탄식을 언어로 표기해 두면 그 시인의 영혼의 울부짖음이 시라는 작품이 되어 이 세상에 한 생명체로서 탄생하게 된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시인의 영혼이 떨림을 받는가?  나의 경우는 아름다운 꽃을 보거나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거나 아름다운 경치를 볼때 감탄을 하고 내눈으로 들어온 그사물과 내영혼이 교감을 하여 영혼에 각인이 되고 영혼이 감동을 받아서 황홀경이 되면 알수 없는 힘이 용솟음쳐 올라 나도 모르게 필을 들게 된다.  그런데 그 용솟음이 어떤 때는 꿈에서도 나타나기도 하고 현실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오래 생각 끝에 나타나기도한다.  나타날때 필기를 해두면 그상태가 보존되고 필기를 하지 않고 그냥 두면 오래도록 머리속에 영상으로 남아있기도 하고 순간에 그 영상이 사라져 아무리 그 영상을 도리켜 복원 시킬려해도 복원 되지 않을때가 있다. 나의 시 '아침목련'을 두고 한번 생각해 보자.  그날은 4월의 아침 7시 쯤 약초가게로 출근을 할려고 마악 대문을 열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데 옆집에 흰목련꽃이 마당에 희고 순결하게 피어 있었다. 너무나도 그 목련꽃이 아름다워 나는 나도 모르게 인사를 했고 출근길을 배웅하는 아내가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웃는데 마치 그 모습이 흰목련꽃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것이 아침목련이라는 시로 탄생하게 된다. 아침목련 -김건일 아침에 세수를 깨끗이 하고  대문을 나서다 이웃집 마당에 핀  흰 목련꽃  너무나 아름다워  정중히 인사하다 인기척 있어  뒤를 돌아다보니  아내가  목련처럼 웃는다 1.시인이 어떤 사물과 접촉하여 그사물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그 사물의 아름다움이라든가 느낌을 시로 나타낼 수 있다. 나는 요즈음은 주로꽃을 노래하는데 꽃보다도 더 내게 충격을 주는게 없어서 꽃을 노래 하고 있다 꽃이라고 말했지만 꽃이기도 하고 여인을 꽃에 비유하기도 했다. 네안의 안/ 내안의 안/ 끝없이 닿고 싶다/ 나에게 없는 너의 아름다운 빛깔/끝없이 받아들이고 싶노니/ 잘못하면 호흡마저 멈출까/ 겁나노라/ 꽃과 여인의 여체를 한꺼번에 노래한 남녀 상열지사를 시로 나타낸것이다. 2.시인이 사회현상이나 환경에 충격을 받고 시를 쓸 수 있다.  주로 사회의 부조리 비리 개선점등 시인이 확고하게 말하고 싶은 심정의 발로를 시로 표현할 수 있다. 3. 시인의 꿈. 소망. 기원. 희망. 미움. 질투. 적개심.투쟁심.연애감정.추억.사랑. 조국애. 민족애. 종교애. 향수. 우정등 시인의 간절한 바람을 시로 나타낼 수 있다. 이상은 시의 대상을 말했고 표현 방법을 말해 보겠다. 1.시인은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말을 언어로 표기하게 된다.  길게도 짧게도 표현할 수 있지만 시는 될수록 짧게 간단하게 일목요연하게 표현하는게 좋은 방법이다.  2.짧기만 하다고 의미가 충분히 담겨져 있지 않으면 안된다.  짧으면서 깊은 의미가 감동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3. 시는 문학이면서 동시에 노래에 가장 가까운 문학이기에 음악적인 리듬을 가지는게 좋다.  4. 음악적이면서 욕심을 조금 더 내자면 그림적이면 더욱 좋다.  시를 읽고 음악을느끼며 그림을 보는듯 이미지가 선명하게 나타나면 그시는 최상의 시라고 하겠다. 그런데 어떻게 표현하는가?  이것이 시의 기교면이 되겠는데 1.사물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개가 달리고 있다.  강물이 흐르고 있다.  바람이 분다. 2. 개가 말처럼 달리고 있다.  강물이 비단결처럼 흐르고 있다.  바람이 팔랑개비처럼 분다. 3.개는 말이다.  강물이 비단이다.  바람이 팔랑개비다.  어떤 사물을 있는 모습 그대로 표현 하는 직설적인 방법.  사물1.을 사물2.로 견주어 보는 방법  사물1을 사물2.로 대치 시키는 방법.  이런 방법을 비유법이라고 하겠고 직접적으로 비유하는 것을 직유법. 간접적으로 비유하는 은유법.이라 한다.  그외에 풍유법. 농담법.반어법.강조법.주술법.생략법. 축소법. 확대법.야유법. 탄식법. 통곡법. 기 호법.수수께기법. 실로 시를 표현하는 방법은 천태만상이라하겠다. 완전히 부호로 시를 쓰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상이가 그 시도를 했다.숫자로 13으로 의문을 수없이 나타냈다.오감도 조감도. 마치 장난처럼 시를 수수께기 취급 하였다. 김춘수시인과 박목월시인이 언어의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김춘수시인은 별로 의미도 없으면서 부다페스트에서온 소녀의 죽음.  베꼬니아꽃잎. 등 발음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어떤 사물을 많이 등장 시켰다.  박목월시인도 자하문 뭐뭐뭐 하면서 의미도 없는 고유명사를 등장 시켜 시의 흥미를 고조 시키기도 했지만 별로 시의 본질을 향상 시킨것은 아니라고 본다. 중요한것은 미당 서정주시인인데 이 시인은 당대 최고의 시인이지만 이분의 시에서는  서민들의 애환이나 땀이나 울부짖음 원통함. 비애 같은 서민들의 삶의 뿌리가 보이지 않고 이분의 미적세계에서 시가 생산 되고 있는것이다.  그 유명한 국화 옆에서도 읽어보면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먼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읽어보면 우리들의 젊은 정서를 자극 하지만 냉정히 현실의 눈을 가지고 이 시를 읽으면 현실과는 괴리된 이분만의 심미세계속의 넋두리임을 알게 된다. 그당시 우리의 누나들은 거울 앞에서 한가하게 자기의 모습을 아름답게 처다볼 상황은 없었던 것이다. 위안부. 피난살이.공장의 미싱공.와에이치사건. 4.19혁명. 우리누나들은 처참하거나 아픔의 세월속에 있었다고 하겠다.  이분의 또 다른작품 내 영혼에서 내 영혼은 물빛 라일락의 빛과 향이로다. 가다간 가다간 굴형이 있어 소학교 시절의 여선생 키만큼한 굴형이 있어 중략 굴형이라는 말은 구덩이라는 한자어인데 말하자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불행이 있다는 말인데 그 불행의 키가 소학교시절의 여선생 키만큼한 불행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기발난 착상이고 표현이지만 너무나 심미안적이고 패미니스트적인 언어의 희롱이 아닌가?  이런 대가를 내가 공격하는것은 예의가 아니겠지만 한번쯤 짚고 넘어갈 문제라서 말해본것이다. 그렇다고 이분의 시를 가치 없다고는 하지 않겠는데 시를 심미적으로 쓰는 방법을 처음으로 한국에 제시 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 아니할 수 없고 다만 이런 대가가 왜 서민들의 뿌리 깊은 이야기는 엮어내지 못했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 초기 시들은 거의가 교편을 잡은 교수나 교사가 많이 창작해서 이분들은 생활은 없고 흑판에서만 창작 강의를 하여 제자들이 현실에서 시를 발견하지 못하고 이분들의 가르침아래 창작을 하여서 시가 스승들의 아류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의 시인들도 거의가 교사 혹은 교수들이 많아서 시의 발전에 좋은점도 있지만 시가 행동성이 없어서 나약하고 힘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김수영시인이 비로소 현실을 바탕으로한 시를 썼다. 풀. 등 비교적 현실 비판적 시가 탄생 된다. 풀은 바람이불면/ 바람 보다 먼저 눕는다.  바람보다 먼저누웠다  바람 보다 먼저 일어선다. 라는 내용의 시 인데 풀은 민중을 뜻하고 바람은 권력의 상징 이다. 권력형 독재 정권에서 김수영시인이 고개를 들고 권력에 대항한것이다.  
840    시읽는 방법 댓글:  조회:4239  추천:0  2016-01-05
      김춘수의 꽃이 새겨진 조각품    [윗쪽/아래쪽]박목월의 '나그네' / 이육사의 '광야   시속으로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시도 많아서 시란 어려운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하고 겁을 먹는 초심 독자들도 있다. 시도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말이고 그러한 한에서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면 그것은 말한 사람의 책임인 경우가 많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반벙어리 소리를 해놓고 못 알아듣는다고 책망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처사이다. 다만 시의 세계에도 그 나름의 축적된 관습이나 기율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시를 많이 읽고 친해 두는 것이 시 이해를 굳히고 넓히는 길이 된다.       서평 유종호 교수의 시 읽기는 왜 다른가?  “이 책은 일반 독자에서 이른바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시 읽기의 한 전범이 될 것이다. 가령 시를 어  려워하는 사람들이나 시를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에게는 시 이해의 길잡이가 될 것이고 또 가령 시를  ‘읽을’ 줄도 모르면서 ‘비평’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우선 ‘느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넌지시 알려줄 것이다.  잘 익은 술처럼 술술 흘러나오는 문장은 역시 오랜 기간의 집중된 지적 탐구와 세상살이의 경험과  심미적인 능력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를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 책은 그 동안 유행하고 있는 수많은 시 감상 책들 ― 대부분 이해도 안목도 성의도 없이  아무렇게나 쓴 단평들을 붙여서 내는 시 감상 책들과는 아주 다른 책이라는 것도 덧붙여 말해 두고 싶  다.”  ― 정현종·시인  시, 아는 만큼 즐겁다  몇 년 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스포츠 경기를 재미있게 보려면 경기 규  칙이나 선수 기록 등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 것처럼 그림이든 음악이든 보는 법, 듣는 법을 알게 되면,  더 이해하기 쉽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불평하는 시는 어떨까? “세상 범백사에 이른바 왕도王道나 지름길  은 없는 법이다”라고 저자가 서문에 밝혔듯 시도 많이 읽는 것이 왕도다. 하지만 많이 읽기 위해서는  읽는 법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시는 무조건 어려운 것이다?  시란 무조건 어려운 것일까? 이 말에 저자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시도 많아서 시란 어려운 것이  라고 지레짐작을 하고 겁을 먹는 초심 독자들도 있다. 시도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말이고 그러한 한에  서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면 그것은 말한 사람의 책임인 경우가 많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반벙어리  소리를 해놓고 못 알아듣는다고 책망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처사이다”라며 짐짓 동의한다. 다만  “시의 세계에도 그 나름의 축적된 관습이나 기율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시를 많이 읽고 친해 두는 것  이 시 이해를 굳히고 넓히는 길이 된다”고 덧붙인다.  한편 “읽어서 모를 데가 없으면 초심 독자들은 안도하는 한편으로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만 알기 쉬운 시의 좋은 점을 알아차리는 일도 손쉬운 일은 아니다”라면서 쉬운 시를 얕잡아 보는 것  을 경계하기도 한다.  교과서 밖에서 시를 만나다  “20세기 우리 시를 될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해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바람처럼 이 책에  는 교과서에서 이미 접해 본 친근한 시부터 젊은 독자에게 생소한 우리 쪽 고전, 김소월·박목월·김춘  수·서정주 등 잘 알려진 시인의 경우엔 비교적 눈에 잘 띄지 않은 작품, 저자가 다른 기회에 다룬 적이  있는 시인의 경우엔 겹치지 않은 작품 등을 선별해 총 50편의 시를 다루고 있다. 이 중 2편의 시(타고  르·두보)를 빼고는 모두 우리 시다.  우리가 흔히 시를 처음 대하게 되는 경로는 교과서다. “그리 어려울 것 없는 작품인데 교과서 지침  서나 학습서에서 과도한 읽어 넣기 해석을 하는 바람에 공연히 어렵게 만들어놓고 있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지만 과해석도 온당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부질없는 과잉반응을 경계하면서 작품을 일단 있는  그대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말은 교과서 속의 시를 배우면서 시가 어렵다는 인식을 갖게 되  고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시를 멀리하는 우리에게 시 읽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스스로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다  그러면 낱낱의 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한 편의 그림마다 보는 법이 다르듯, 시 역시 한 편 한 편  읽는 법이 다르다. 이 책은 50편의 시를 저마다의 방식대로 읽어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요즘 유  행하는 시 감상 책들처럼 친절하게 시를 읽어주거나 감상 포인트를 일일이 짚어주지는 않는다. 다만 독  자 스스로 시를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그럼으로써 ‘발견의 즐거움’을 느껴보라고 부  추긴다.  “모든 훌륭한 문학 작품은 크건 작건 사람살이와 세상에 대한 독자적인 발견을 보여주고 있고 또  언어적 세목에서 새로운 발명을 보여주고 있다. 이 새로운 발견과 발명을 알아차리고 공감하고 감탄하  는 것이 독자의 소임이다.”(「책머리에」)  시 이해의 길잡이  “이 책은 일반 독자에서 이른바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시 읽기의 한 전범이 될 것이다. 가령 시를 어  려워하는 사람들이나 시를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에게는 시 이해의 길잡이가 될 것이고 또 가령 시를  ‘읽을’ 줄도 모르면서 ‘비평’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우선 ‘느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넌지시 알려줄 것이다.”― 정현종·시인  이 책은 시를 제대로 읽고 싶은 사람, 시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또, 무조건 시란 어렵다고 인식해 온 일반 독자도 이 책을 통해 쉽게 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이끄는 대로 한 편 한 편씩 50편의 시 읽기를 따라가다 보면 저도 모르게 시 읽는 힘을 키울 수 있다.  그래서 저자의 이전 책인 『시란 무엇인가』가 시 입문서라면, 이 책은 시 읽기의 실행서라고 할 만하  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저자는 ‘주체적인 시 읽기’와 ‘즐거운 시 읽기’를 강조하며,  최종적인 시의 감상은 주체적으로 시를 즐길 수 있게 된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놓고 있다. 남이 읽어주  는 시가 아닌 자신만의 판단기준과 방법으로 시를 읽고 이해하여 시의 즐거움을 누렸으면 하는 것이다.         
839    아버지는 영웅 /// 영웅을 낳는 어머니 댓글:  조회:4574  추천:0  2016-01-05
[ 2016년 01월 05일 10시 04분 ]     하남성 모현의 한 마을, 모택동상 세움, 이 상은 높이 36.6메터, 300만원 투자. 아버지                     - 환 DA 300     어릴 적 아버지는 영웅이셨다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세 보였고 가장 착하고 무서웠다 나는 이런 아버지가 영원할 줄 알았다 내가 커서 보니 아버지가 가끔 한없이 작아 보인다 소년원에 왔을 때 아버지께 맞아서 눈물이 났다 아파서 운 것이 아니라 너무 안 아파서 울었다   소년원을 방문해 수감된 청소년들과 시를 매개로 대화하는 시인들이 있다. 이른바 ‘시 치료’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소년원 학생들이 시를 쓰기 시작했고, 그것을 모아 최근에 『씨앗을 심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시집이 나왔다. 위 시는 ‘환’이라는 별명의 한 소년이 쓴 시다. 그는 “소년원에 왔을 때” 아버지에게 맞아서 눈물이 났는데, “아파서 운 것이 아니라/너무 안 아파서 울었다”고 한다. 소년은 이제 아프게 때릴 힘조차 없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 때문에 운다. 이 시집에 실린 시의 거의 대부분이 놀랍게도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상처도 용서도 사랑도 모두 가족 관계에서 시작된다. 가정을 지상의 천국으로 만드는 일은 정언 명령이다. ======================================================= 생일              - 박찬세(1979~ )   엄마는 가끔 나에게 말한다 -내가 니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어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DA 300   -내가 엄마 속에 들어갔다 나왔어 “니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으니” 까불지 말라는 엄마에게, 자식은 “엄마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는 말로 응수한다. 문제는 이런 대화가 생일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들어온 모든 생은 “엄마”라는 자궁을 경유한다. 우리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에 의해 엄마 안에 들어가 있다가 때(생일)가 되어 이 세상으로 나온 자들이다. 그러니 이 피붙이의 인연은 얼마나 큰가. 겉으로는 아웅다웅하는 것 같지만, 엄마와 자식 간의 이 대화는 혈육으로 맺어진 인연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보라, 우리는 피를 경유한 관계다. 사랑에 관한 어떤 이론도 이 관계 앞에서 다 불필요한 것이 된다. 데리다는 “환대는 모든 법들 위에 있다”고 했다. 피붙이는 모든 율법을 넘어 오직 사랑이라는 불가피성에 갇혀 있는 존재다.
838    시인 김억과 그리고 등 등... 댓글:  조회:6722  추천:0  2016-01-04
뿌리가 깊고, 밑둥이 튼실한 고목의 곁에서 어린 나무는 제자리를 지키는 법을 배운다. 가르치는 사람 없이 배우는 사람이 있을 수 없듯 스승의 존재가 얼마나 절대적인지에 대해 새삼 말할 필요가 있을까. 처음 시인에 대한 발표를 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모두 김억이라는 시인에게로 마음이 움직였다. 그 이유는 시인 김소월과 그 분의 작품이 아직도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시대를 적시고, 감성을 출렁이게 하는 데에 대한 반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없었다면 김소월도 없고, 그가 없었다면 그토록이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작품도 없었을 것이기에 스승 나무 곁에서 가지를 키우는 어린 나무가 되고픈 심정으로 발표시인을 정하였다. 이제 우리는 우리 문학사에 없어서는 안 될, 그러나 결코 큰 소리를 내지 않았던 뛰어난 문학의 선구자 김억을 만나보려고 한다. 김소월의 스승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그의 짧은 이름 두 글자에 과연 어떤 의미와 의의가 있는지 지금부터 시작해보도록 하자.  김억의 생애 1896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다. 호적상 본명은 희권(熙權)이고, 필명은 안서(岸曙)이다. 지주 가문의 맏아들이었던 그는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문 수업을 받았으며 여덟 살에 결혼하였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강 이승훈이 세운 오산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그는 신학문 수업을 받게 되었다. 입학 시기는 명확치 않으나 열한 살 무렵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산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문과에 입학하지만, 부친이 사망하면서 수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1916년 오산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제자였던 김소월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문단에 진출 시켰다. 그는 일본 유학시절 유학생 잡지인 에 1914년 창작 시 ‘이별’, ‘미련’ 등을 발표하고 서구 문학을 소개하는 글을 발표... ================================= 1896년 평북 정주 출생.  본명은 희권(熙權), 필명은 안서(岸曙).  오산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그는 신학문 수업을 받게 됨.  오산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문과에 입학, 부친이 사망하면서 수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됨.  1916년 오산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제자였던 김소월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문단에 진출시킴. 에 1914년 창작 시 ‘이별’, ‘미련’ 등을 발표하고 서구 문학을 소개하는 글을 발표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  1918년 에 프랑스․러시아 문학을 중심으로 서구 문학을 번역․소개하고 창작시를 발표 1920년에는 남궁벽 등과 함께 동인으로 활동하였고, 동인으로 참가.  1920년 백남규 등과 함께 서울에서 에스페란토 회를 발기.  1924년 ‘동아일보’의 문예부장 직을 맡았고, 이듬해인  1925년에는 을 창간하여 약 1년간 직접 편집 책임 일을 담당. ===================================================================== 김억은 그의 다양한 문학 활동 중에서 무엇보다도 번역을 중시하였다. 현재까지 김억과 서구 문학의 관계를 다룬 연구는 김억의 외국문학 수용 양상과 그 단계를 해명하는 데 중점을 두어 많은 성과를 남겼다. 이들 연구는 그가 한국근대시를 형성·개척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 인물이라 지적하고 그의 다양한 문학적 공헌을 평가하고 있다. 이 중 김억의 번역 태도와 실제 번역 작품은 연구의 한 부분으로 다루어지긴 했지만, 번역 문제에 적절히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깊이 있게 논의되지 못하였다.  김억에 관한 논의는 그의 서구 문학 수용 양상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서구 문학 도입과 수용과정, 그리고 영향 관계 고찰을 중심으로 한 비교문학적인 관점의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이들 실증적인 연구에서는 김억의 서구문학 도입과정, 시와 시론 소개의 수준, 또한 그것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도입·소개되고 어떻게 번역되었는가에 중점을 둔다. 번역을 문제 삼을 때 선행 연구들은 김억의 어학 능력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하여, 그의 번역을 日譯本, 英譯本, 에스페란토譯本과 대조하여 오역을 밝혀주는 작업을 해왔다.  ... ... 기다려선 안 오다가도  설운 날이면 보슬보슬 만나도 뭇코 떠나버린 그 사람의 눈물이던가. 설운 날이면 보슬보슬  어영도(魚泳島)라 갈매기떼도 지차귀가 축축히 젖어 너흘너흘 날아를 들고. 자취 없는 물길 삼백 리 배를 타면 어디를 가노 남포 사공 이 내 낭군님 어느 곳을 지금 헤매노. 김억의 시에 대한 평가는 그의 초기 근대시에 대한 이론적 공헌에 눌려서 그다지 활발하게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김억은 근대시사(詩史)에서 그 시 자체의 가치에 의해서 두드러지는 시인이라기보다는 상징주의 시론과 민요시의 개척 그리고 김소월이라는 시인에 대한 영향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지니고 있는 시인이다. ============================================================================== 시인 김소월의 스승이었던 시인 김억(1896~?)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1923년 발간한 '해파리의 노래'는 국내 최초의 근대 창작시집이고, 1921년 펴낸 '오뇌의 무도'는 최초의 서구시 번역시집이다. 특히 그는 외국 시 번역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가 번역한 타고르 시는 전문가급의 높은 번역 수준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억의 창작적 시 번역과 번역관을 살펴보고 그의 번역시가 한용운, 김소월 등 근대시 형성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 "1920년대 초반의 김억이 서구 근대시를 우리말로 된 창작적 역시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고전시가로부터 근대시로의 이행기인 근대시의 전범이 부재한 당시에, 우리 고유의 근대 시형과 시체를 고안해내는 일과 등가의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 눈 올때마다 - 김억- 하얀 눈 볼때마다 다시금 생각나네 어린적 겨울 밤에 옛날 듣든 이야기. 송이 송이 흰 눈은 산과 들에 퍼 불제 다스한 자리속에 찬 세상도 모르고 -. 산에는 신령있고 물에는 용왕님이 다가치 말은 세상 고로이 다스리매 귀여워라, 산새는 노래로 허공 날고 고기는 넓은 바다 맘대로 헴치느니. 같은해 고은 달을 이 인생 즐길것이 하늘에 홀로계신 전능하신 하느님 모도다 살피시며 죄와 벌 나리시매 세상은 평화스레 이렇듯 일없느니. 집을 떠나 몇해나 이세상 헤맷든가, 거울 보니 아니라 얼굴에 주름 젔 까닭스런 世苦에 부닥긴 탓이런가 나는 지금 비로소 이 인생을 묻노라. 산신령과 용왕님 어디로 도망가니 전능한 하느님도 본색이 들어았네, 빈 하늘 내 천지라 비행기 높이 날제 이세상 볼지어다 하로나 평안한가. 시펄은 하늘 오늘도 기색은 도는데 늙으신 어머님은 손자를 다리시고 北邦의 같은 겨울 눈 싸인 칩은 밤에 아직도 그 이야기 되푸리 하실런고. 봄바람 - 김억- 등록번호 8515 하늘 하늘 잎사귀와 춤을 춥니다. 하늘 하늘 꽃송이와 입 마춥니다. 하늘 하늘 어디론지 떠나갑니다. 하늘 하늘 정처없이 도는 바람은 그대 잃은 이내맘의 넋두리외다. 사공의 아내 김 억 모래밭 스며드는 하얀 이 물은 넓은 바다 동해 모두 휘돈 물. 저편은 원산 항구 이편은 장전 고기잡아 가장님 들고나는 길. 모래밭 사록사록 스며드는 물 몇 번이나 이 물에 어리었을까 ? 들고나며 우리 님 검은 그 얼굴. 山고개 싸락눈 오는 밤에 나와 만나려 고개고개 뒤넘어 그대가 왔고. 자즌닭 꼬꼬울쩨 나는 그대를 山고개 바라주며 잘가라 했소. 눈오는 밤이되면 그때의 일이 아니도 닞히우고 다시금 새뤄. 春雪 一 녹으랴 오는눈은 아니련마는 내려선 녹고녹고 그래도 오네. 보람없이 태어난 몸도 안언만 님 찾노라 떠돌다 그대로 지네. 二 하소많은 이맘에 눈이 옵니다. 하소많은 이맘에 눈이 쌥니다. 陽地라 진퍼리에 반가운 속닢 님이여, 어느날야 프르오리까. 눈 내려서는 싸히고 싸혀선 다시 녹고마는 눈이어. 눈물겹게도 설업지 아니한가. 왼하로동안 싸혀다간 또다시 왼하룻밤에 녹고마는 이心思. 첫눈 어제밤 찬자리에 밤을새며 어든꿈 깨고보니 가엾다, 눈내려 둘을쌋네. 맑은물 江기슭에 고요히 님과함께 하나둘 뜯어던진 풀닢은 어데간고.       봄은 간다                       김억/시인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출처] 좋은 시 - 봄은 간다 / 김억 [아름다운 시][봄의시]|작성자 귀공자   17세 소년이 작곡한 가곡      1930년대 말, 17세 소년이 멋진 가곡을 작곡해 세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지금도 많이 애창되고 있는 이다. 당대의 유명 시인인 김억(호는 안서 1896-1950?)의 시 에 곡을 붙인 그 소년은 당시 중앙중학교(5년제)를 그해 졸업한 나운영(1922-1993)이었다.   나운영은 1939년 동아일보의 신춘문예 작곡부문에 응모했다. 이것이 1등으로 당선된 것이다. 작곡부문의 심사위원장은 홍난파. 신춘문예에 작곡부문이 들어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시는 1924년 6월 30일자 에 최초로 실렸던 것인데 당시 김억은 ‘고사리’란 필명으로 이 시를 발표했다. 이후 는 김억이 1925년에 펴낸 창작시집 에 실렸다. 여기 의 시는 에 실려있는 것인데, 원본 형태 그대로이다. 즉 1980년대 지면에 옮겨 놓은 1920년대의 원본 시이다.   원본 시는 마치 고어체의 한글을 대하는 것 같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내용은 ‘가려나’ ‘뜨려나’등이 반복되는 것 외에는 노래 가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랑하는 이가 떠나려는 것을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심정, 그리고 젊은 날의 기쁨과 설움, 앞날에 대한 기대와 걱정을 잘 표현하고 있는 아름다운 시이다.                           가려나                       김안서 작사  나운영 작곡 끝없는 구름길 어디를 향하고 그대는 가려나 가려나 가없는 바다의 외로운 배처럼 어디로 뜨려나 뜨려나 사랑의 스물은 덧없이 흐르고 앞길은 멀어라 멀어라 기쁨은 빠르고 설움은 끝없어 맘만이 아파라  아파라 아파라 아파라 손기정의 올림픽 제패에 영향 받아 나운영은 국악을 각별히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었다.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꼭 음악을 전공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중앙중학교 3학년이던 1936년 8월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으로 세계를 제패했다는 신문 호외를 읽고 나서부터 작곡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을 굳혔다. 일제 식민지하에서 누구나 나라 없는 슬픔과 울분을 안고 살던 때였다.    나운영은 “나라는 없어도 개인이 우수하면 민족의 이름을 빛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음악을 통해서, 작곡을 통해서, 손기정 선수처럼 민족의 이름을 드러내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이 해에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가곡 를 작곡했다.  김수향의 시에 곡을 붙인 이 가곡은 지금도 가을이면 자주 불리는 노래이다. 이 노래도 김수향(본명은 윤복진, 1908-1991)이 월북작가였기 때문에 가사를 바꿔 불러야 하는 수난을 겪었다.   나운영은 1939년 3월 중앙중학교를 졸업한 후 이 해 12월 동아일보 신춘현상문예 작곡부문에 에 곡을 붙여 응모했다. 당선작은 12월 31일자 신문을 통해 발표되었다.   동아일보는 이듬해 1월 심사소감에서 다른 몇 사람의 작품을 평한 뒤 나운영의 를 당선작으로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선자인 나군의 작품은 역시 습작류에 속하기는 하지마는 그 수법이 예술적 가요곡에 가장 가까웠고 곡 전체의 균제(균형의 뜻)된 점에 있어서 일일지장(一日之長, 다른 것에 비해 조금 나은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곡은 소품에 지나지 않지만 가장 많이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동아일보, 1940년 1월 26일)   나운영의 당선 소감도 같이 실렸다.   “중학 2학년 때부터 음악(피아노와 작곡)에 취미를 가지고 있었으나 작년 봄에 중학을 졸업하고서야 비로소 여기 전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 동안 김성태 선생의 지도하에 작곡을 연구했으며 귀사 음악제에서도 큰 감동을 얻었습니다. 더구나 이번 작곡 현상은 조선에서 처음 보는 시험으로 많은 용기를 북돋워주었습니다. 응모하기까지에는 은사 박태현 선생과 신남철 선생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금춘(今春)에 동경음악학교에 입학코저 준비 중이며 이 기회에 힘을 얻어 단연 작곡 전공의 길에 들어서고저 합니다. ---이번에 안서 선생의 시를 택한 것은 저 같은 초보인이 가장 해석하기 평이한데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시를 더욱 연구해서 작곡에 정진하고 싶습니다.” 당선 후 유학의 꿈 이뤄 신춘문예 작곡 부문에 당선되기 전까지만 해도 집안에서는 나운영이 음악가가 되려는데 대해 절대 반대였다.   “꼭 음악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어머님이 적극 반대를 하셨어요. 그때만 해도 음악하는 사람을 ‘풍각쟁이’라고 천대하는 고루한 관념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어머님은 아들이 풍각쟁이가 되는 것을 허락하실 수 없으셨던 거지요.”(월간 꿈나라, 1980년 11월 1일 발행)   국악을 좋아했고, 나운영이 다섯 살 때 우리나라 고전악기인 양금을 가르치기도 했던 아버지는 그가 여섯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경제권을 갖고 있던 이는 형이었는데 형도 어머니의 허락 없이는 한 푼도 학비를 대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동아일보에 당선이 된 후 어머니를 비롯해 집안 어른들도 비로소 나운영의 음악적 재질을 인정하게 되어 마침내 동경 유학의 꿈이 이뤄지게 되었다.    그는 일본으로 떠나기 직전 먼 발치에서만 존경해 왔던 홍난파 선생을 찾아갔다. “공교롭게도 신춘문예심사위원장도 난파선생이었습니다. 그때가 타계하기 1년 전쯤이라 병색이 완연했어요. 서양음악을 모방하기에 앞서 우리나라 제 자신의 노래를 만들라고 거듭 강조하시더군요. 그 후 지금까지 그 말을 내 음악의 기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1992년 4월 19일)   나운영은 1943년 일본 제국고등음악학교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앨토 유경손과 결혼하던 1945년부터 중앙여자전문학교(현 중앙대), 서울대, 이화여대, 덕성여대, 연세대, 세종대, 전남대, 목원대 등에서 교수 생활을 하며 많은 가곡과 동요, 기악곡 등을 작곡했다. 가곡은 외에 잘 알려진 등이 있으며, 동요로는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으로 시작되는 등이 유명하다. 또한 많은 복음성가도 작곡했는데, 기독교인이면 모르는 이가 없는 시편 23편에 곡을 붙인 는 6.25 때인 1950년 피난지 부산에서 어느 날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3분만에 순식간에 만들었다. 보통 작곡을 한 후 여러 번 고치는데, 이 곡은 1점 1획도 고치지 않고 하나님이 불러주는 영감 그대로를 단숨에 작곡했다고 한다.     한편, 앞서 인용한 에 따르면, 안서 김억의 시 는 실제로 김억과 한 문학소녀와의 열정적인 사랑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신학문에 심취했던 그는 19세 때부터 창작시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30살 무렵인 1920년대 중반쯤 되던 해 어느 날 평남 진남포에 사는 한 문학 소녀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로부터 7년간 편지로 사연을 나누며 지속되었던 그녀와의 사랑은 안서의 시 곳곳에 깊은 흔적을 드리우고 있으며 도 그 중 하나이다. 평안북도 곽산의 명문가 태생이었던 김억은 8세 때 8살 연상의 여자와 결혼을 했다.     는 시 자체로는 유명하지 않았으나 10대 소년인 나운영의 작곡으로 널리 알려졌고, 안서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애송된 시가 되었다. 김소월의 스승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김억은 불행하게도 6.25 때 피난을 못 가고 서울에 남았다가 납북되었다. 북한에서 김억은 숙청 대상이었다. 북에서 김억이 문학사적으로 정식 복권된 것은 1992년 김소월, 정지용, 신채호, 한용운 등과 함께였다. [사진설명= 맨위 사진은 가려나 원본(당시의 한글 표기가 재미있다). 두번째 사진은 시인 김억. 세번째 사진은 작곡가 나운영. 맨아래 사진은 본지 이정식 편집고문 캐리커처]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 이정식 편집고문 (청주대 객원교수, 전 CBS사장)] =============================================================== 오늘날 '에스페란토(esperanto)'라면 나라 간 언어 장벽을 극복해 보려는 국제어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1920년대 이 땅에서 '에스페란토'를 가르치려는 움직임은 '외국어 보급'을 넘어서는 하나의 문화운동이었으며, 항일운동의 색채까지 있었다. 일제가 한·일 민족 간 소통을 구실로 우리말을 짓밟으며 일본어를 쓰도록 만들려던 시절에 '중립적 세계어'인 에스페란토를 배우자고 외치는 것 자체가 반일 행위였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조선에스페란토협회'가 1925년 임원을 선임하면서 "사랑과 이해로 형제 가튼 생활을 하려고 함은 인류의 오래된 이상"이라며 "이 큰 이상을 실현하려면 에스페란토를 제외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거창하게 천명한 것도 에스페란토에 실용의 수단 이상의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조선일보 1925년 11월 2일자) 당시 발표된 에스페란토 협회 위원 명단엔 홍명희(洪命憙) 김억(金億) 박헌영(朴憲永) 변영로(卞榮魯) 등 거물들이 수두룩하다.   '에스페란토' 창안자인 자멘호프 박사의 탄생일(12월15일)을 앞두고 그의 삶과 에스페란토를 소개한 일제하 조선일보 특집기사(1927년 12월 13일자) 세계어 보급을 내세운 민족운동에 힘을 실어주려는 듯 1920년대 조선일보 지면에는 에스페란토 관련 기사들이 무척 많다. '에스페란토 강습/진남포(鎭南浦) 상공학교에서'(1923년 5월 23일자) 등 강습회 기사는 물론이고 창시자인 자멘호프 박사의 탄생일(12월 15일)이 되면 거의 해마다 특집을 실었다. 1930년대 들어 이 운동의 '위험성'을 알아차린 일제가 탄압의 칼을 빼기까지 10여년간 에스페란토는 이 땅 지식인들을 사로잡았다. 에스페란토는 1887년 폴란드의 자멘호프 박사가 창시할 때부터 '민족 간 평등'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1920년대 초반부터 많은 지식인들이 이 '세계어'의 보급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중 선구자가 시인 김억이다. 김억은 1920년 6월 YMCA에서 최초의 에스페란토 강습회를 열었으며, 에스페란토로 시를 지었다. 그는 1922년 잡지 '개벽'에 발표한 글에서 "자기의 언어를 피정복자에게 강징(强徵)시켜서 그 고유의 정신을 빼앗는 것으로 유일 정책을 삼는 정복자에게 (국제공통어는) 저주의 맹렬한 찬사를 돌린 것"이라며 에스페란토 보급 운동이 일제에 맞서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억이 에스페란토 운동가로서 조선일보에 남긴 가장 큰 자취는 1924년 2월부터 5월까지 115일간이나 1면에 연재한 '에스페란토 강좌'다. 문법과 작문을 가르치는 난이었지만 신문 1면 상단에 장기 연재한 것은 '외국어 지상강좌'이상의 의미가 있었음을 알게 한다. 실제로 이 난에 실렸던 에스페란토 예문의 번역문 중에는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것도 있다. "나는 가슴에 불길을 피워 놓았습니다. 그것은 죽은 이라도 끄지 못합니다... 그 불의 이름은 인류애이며 그 불의 이름은 자유에 대한 사랑입니다." (조선일보 1924년 5월 4일자 1면)   ================================     오산학교는 1907년 12월 남강(南岡) 이승훈 선생이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평북 정주에 설립한 학교다. 일제의 탄압과 큰 화재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민족 교육의 요람 역할을 했다. 오산학교는 시인 김억·김소월·백석, 화가 이중섭, 목사 주기철·한경직, 언론인 홍종인, 사상가 함석헌 등을 배출했다. 조만식을 비롯해 신채호·이광수·염상섭·유영모 등이 이들을 가르쳤다.  =========================================   뒤늦게 발견된 제자의 노트   34세의 나이로 요절한 김소월의 시작노트가 사후 43년만에 1977년 발굴되었다.  그의 노트에는 초고부터 탈고까지, 그의 시작(詩作)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자료가 있단 말인가. 문단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흥분은 한 가지 의문을 동반했다.  김소월의 자작시들 중에, 그의 스승 김억의 이름으로 발표된 시들이 섞여있던 것이다.  오랜 논란 끝에, 놀랍게도  김억이 제자의 시를 자신의 작품으로 둔갑시켜 발표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뒤늦게 발견된 한 권의 노트로 인해 김억의 감추고 싶었던 과거는 세상에 드러났다.   “김억의 〈못 잊어〉는 여인과 生離別 하며 쓴 즉흥시” 김억과 김소월의 詩 〈못 잊어〉 논란    ⊙ 〈못 잊어〉 담긴 김억의 편지는 1923년 3월 23일 작성. 素月 시보다 두 달 앞서 ⊙ 김억, 유봉영 선생에게 ‘罪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 김억은 소월의 특별한 스승. 평북 정주 오산학교에서 소월의 詩才 키워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한국인이 가장 애송하는 시 중 하나인 김소월(金素月)의 〈못 잊어〉는 절절하고 가슴 시린 시어(詩語)만큼이나 시작(詩作) 배경에 관심이 가는 작품이다. 넉 달 전 《월간조선》 5월호는 ‘김억과 김소월의 〈못 잊어〉’ 제하의 기사를 통해 소월이 《개벽》지(1923년 5월호)에 〈못 잊어〉를 발표하기 한 달 앞서, 시인 안서(岸曙) 김억(金億)이 유봉영(劉鳳榮) 선생에게 쓴 편지 속에 등장하는 〈못 잊어〉를 소개했다. 유봉영은 나중 《조선일보》 주필, 부사장과 학교법인 숙명학원 이사장, 제8대 국회의원(민주공화당)을 역임한 애국지사다. 《월간조선》은 또 두 개의 〈못 잊어〉가 ‘시정(詩情)과 제재(題材)가 닮아 동일인이 쓴 작품의 변주(變奏)’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김억이 편지를 쓴 시점을 ‘1923년 4월 16일’이라 명시했다. 그러나 《월간조선》 보도 이후 〈못 잊어〉가 담긴 김억의 편지 소장(발굴)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전북 완주 책박물관장이자 서울 인사동에서 고서점 호산방(壺山房)을 운영하는 박대헌(朴大憲)씨는 “오래전 언론인 L씨로부터 김억이 쓴 엽서와 편지 20여 통을 얻었는데 그 속에서 김억의 〈못 잊어〉가 실린 편지가 나왔다”고 밝혔다. 1999년 영월책박물관을 설립한 그는 2013년 전북 완주군 삼례책마을로 박물관을 이전하여 책마을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저서 《서양인이 본 조선》(1996)과 《우리 책의 장정과 장정가들》(1999)로 제37회와 40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박대헌 관장은 《월간조선》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편지 시점이 1923년 4월 16일이 아니라 그해 3월 23일이며, 소월의 〈못 잊어〉 풍이 묻어나는 시는 원고지에 쓰였고 모두 4장”이라는 것이다. “소월의 〈못 잊어〉 풍의 시는 원고지에 쓰였고 모두 4장”     편지 겉봉의 수신처는 ‘봉천성 성소서변문 외(奉天省 城小西邊門 外 太平寺西胡同) 유봉영’, 발신처는 ‘평북 정주(朝鮮 平北 定州郡 郭山) 안서’로 기재돼 있다고 밝혔다. 박 관장은 “고향(정주)에 머무르고 있던 김억이 중국 봉천으로 옮겨다니던 유봉영에게 쓴 편지”라며 “유봉영은 당시 평북 철산(유봉영의 고향)과 경성, 중국 상해, 봉천 등지를 오갔다”고 했다. 안서는 〈못 잊어〉를 담은 편지 겉봉 뒷면에 ‘반드시 재회시(再回示) 줍시요. 그렇지 않으면 돌려줍시오. 떠나기 전에 꼭 일자(日字)를 가르쳐 줍시오’라고 썼다. 반드시 답장을 달라고, 답장을 안 하려거든 편지를 되돌려달라고 청한 것이다. 편지에 무슨 사연을 담았기에 편지봉투에 그런 애절한 글을 부기(附記)했을까.    김억의 1923년 3월 23일자 4장의 원고지 편지. 김억이 240자(12×20) 원고지에 쓴 4장의 편지 전문을 살펴보자. 시인은 편지 첫머리에 ‘1923년 3월 23일, 평북 정주군 곽산(에)서’라고 적어 놓았다. 도입부는 사변적인 내면의 심경(‘나는 그저 그 모양입니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찾으려는, 그러나 그것은 암만해도 쓸데없는 일인 듯합니다.’)이 이어진다. 그러다 두 번째 장 편지 말미에 이런 사연을 고백한다. 〈…광인(狂人)? 이취(泥醉)? 연애열중(戀愛熱中)? 이 세 가지만이 현실세계의 모든 고통에서 자유롭게 하여 주는 듯합니다. 진정한 고백을 하면 나는 그동안 웃음은 로맨스를 가졌습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17세의 소위 생이별(生離別)짜리와 놀았습니다. 한데 그것이 곽산 일주(郭山 一周)에 가득히 소문이 났습니다. 하고 저 편에서는 공동생활(共同生活)을 청(請)하여, 참말로 딱하였습니다. 만은 그것도 이제는 지내간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온갖 힘을 다하여 다른 곳으로 살림 가도록 하였습니다. 죄(罪)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사람의 맘이란 물과도 같고 바람과도 같은 것이매 그것을 어찌합니까. 일전에 이러한 말을 - 그 말은 쓰지 않습니다. - 듣고 즉흥(卽興)으로 시(詩) 하나 지어주었습니다.…〉 시인 김억은 ‘같이 살자’고 청하는 17세 난 애인을 떠나보낸 데 ‘죄를 지었다. 그러나 어찌하느냐’고 토로한다. 그러면서 떠나는 이에게 즉흥으로 시를 지어 주었다. 이것이 〈못 잊어〉인 것이다. 네 번째 장 편지에 〈못 잊어〉가 실려 있다. 시 전문은 이렇다. 떠나는 여인에게 ‘못 잊도록 사무치게 생각이 나거든…’ 〈못닛도로 사모차게 생각이 나거든, / 야속하나마 그런데로 살으십시구려, / 그려면 더러는 니저도 집니다. 못닛도록 살틀하게 그립어오거든 / 설으나마 세월만 가라고 합시구려, / 그러면 더러는 니저도 집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럿케 말하겠지요, / “사모치게 생각나는 못니즐 당신을 / 그대로 생각을 안는다고 니저바리며, 살틀하게 그립어오는 못니즐 당신을 / 그런대로 세월을 보낸다고 닛겠읍닛가?”〉 이 시를 현대어로 고쳐 쓰면 아래와 같다. 〈못 잊도록 사무치게 생각이 나거든 / 야속하나마 그런대로 사시구려, 그러면 더러는 잊어도 집니다. 못 잊도록 살뜰하게 그리워 오거든 / 서러우나마 세월만 가라고 하시구려. / 그러면 더러는 잊어도 집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렇게 말하겠지요, / “사무치게 생각나는 못 잊을 당신을 / 그대로 생각을 않는다고 잊히리며, 살뜰하게 그리워 오는 못 잊을 당신을 / 그런대로 세월을 보낸다고 잊겠습니까?”〉 그런데 두 달 뒤인 그해 5월에 발간된 《개벽》지에 김소월은 〈사욕절(思慾絶)Ⅰ, 못잊도록 생각이 나겠지요〉를 발표한다. 김억의 〈못 잊어〉와 시적 제재가 비슷하다. 《개벽》에 실린 전문을 옮겨본다. 〈못닛도록 생각이 나겟지요, / 그런대로 歲月만 가랍시구려. 그러면 더러는 닛치겟지요, /아수운대로 그러케 살읍시구려. 그러나 당신이 니르겟지요, /“그립어 살틀이도 못닛는 당신을 오래다고 생각인들 떠지오릿가?”〉    전북 완주 책박물관장이자 서울 인사동에서 고서점 호산방(壺山房)을 운영하는 박대헌(朴大憲)씨. 박대헌 관장은 “안서의 편지에 실린 시와 《개벽》에 발표한 소월의 시, 소월의 시집 《진달래꽃》(1925년 刊)에 수록된 〈못 잊어〉는 시어와 리듬에서 차이가 날 뿐, 같은 시가 개작을 통해 변모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리만큼 내용과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못 잊어〉는 떠나는 임을 그리며 쓴 동기가 분명한 만큼 원작자가 안서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도 덧붙였다. “안서는 소월의 특별한 스승입니다. 안서는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소월의 시재(詩才)를 발굴해 키웠으며, 그를 문단에 데뷔시키고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 스승’이 되어주었습니다. 소월이 쓴 대부분의 시를 미리 받아 첨삭(添削)·정서(正書)한 다음, 잡지사에 넘겼고요.” 안서와 소월의 시가 닮은 것은 다른 시에서도 확인된다. 안서의 또 다른 편지에 시 〈사향(思鄕)〉이 나오는데, 첫 행이 ‘공중(空中)에 나는 제비의 몸으로도’로 시작한다. 그런데 소월의 《진달래꽃》에 실린 〈제비〉의 첫 행도 ‘하늘로 날아다니는 제비의 몸으로도’로 되어 있다. 사실, 소월은 1920년대 초 한국 문단에서 ‘소(小)안서’로 불렸을 정도다. 안서는 소월이 죽은 뒤에도 유고를 모아 잡지에 발표했고 1939년과 1948년 시집 《소월시초》와 《소월민요집》을 펴냈을 정도로 제자를 못 잊었다. 소월이 20세기 한국의 대표시인이 된 데는 스승이 있어 가능했을지 모른다. 사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초창기 한국문학을 꽃피웠던 것이다. 박 관장은 “안서의 편지들은 소월의 대표작인 〈못 잊어〉와 〈제비〉의 원형을 밝힐 수 있다는 점 외에도, 근대문학사와 관련해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억, ㅡ동심초의 진실  역사를 본다      서울 음대 교수를 지낸 원로 작곡가 김성태 선생이 21일 향년 102세로 별세했다.     김성태 선생은 1910년생으로 1930년대에 동요집 를 내며 작곡가로 데뷔한 이래 가곡 등 주옥같은 노래를 남겼다.   김성태 선생의 대표적인 작품은 역시 이다. 노랫말은 김소월의 스승으로 유명한 안서 김억이 번역(번안)한 것이다.   현재 통신사인 의 사장을 맡고 있는 언론인 이정식은 지난 해에 나온 나온 그의 가곡 에세이집 에서 이 노랫말의 원작자에 대한 사연과 노랫말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이정식도 이 동심초라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정식은 이 책에서 김억의 가사가 발표된 잡지들을 일일이 대조하면서 이 노랫말의 원시가 중국 당나라 때의 유명한 여류시인인 설도(薛濤, 768?~832?)의 시 가운데 세째 수(首)를 번역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동심초'라는 것이 풀이 아니라 편지지라는 사실은 정작 번역가인 김억도, 이를 다시 취재한 이정식도 정확히는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과정을 전에 내가 취재한 글로 대신하고자 한다.   동심초 가사가 실린 원본(뉴스1사진)   동심초라는 노래 가사는 이렇게 되어 있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이 노래말은 앞에서 지적한 대로 중국의 여류시인의 한시를 김소월의 스승인 안서 김억(岸署 金億)이 번안한 것이다. 원래의 한시는 4수로 된 '춘망사(春望詞, 봄날의 바램)'라는 5언절구로서     花開不同賞, 꽃 피어도 함께 바라볼 수 없고 花落不同悲. 꽃이 져도 함께 슬퍼할 수 없네 欲問相思處,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디에 있나 花開花落時. 꽃 피고 꽃 지는 때에 있다네    攬草結同心, 풀 뜯어 동심결로 매듭을 지어 將以遺知音. 님에게 보내려 마음먹다가 春愁正斷絶, 그리워 타는 마음이 잦아질 때에 春鳥復哀鳴. 봄 새가 다시 와 애달피 우네    風花日將老, 바람에 꽃잎은 날로 시들고 佳期猶渺渺. 아름다운 기약 아직 아득한데 不結同心人, 한 마음 그대와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 공연히 동심초만 맺고 있다네     那堪花滿枝, 어쩌나 가지 가득 피어난 저 꽃 飜作兩相思. 날리어 그리움으로 변하는 것을 玉箸垂朝鏡, 거울에 옥 같은 두 줄기 눈물 春風知不知. 봄바람아 너는 아는지 모르는지     라고 해서 제1수에서는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써서 상사(相思)의 정을 표현했고 제2수는 마음과 마음이 합쳐지는 것을 바라는 아름다운 소원을, 제3수에서는 진정한 연인을 만나지 못해 비통해 하는 마음이 넘쳐흐르고 있다. 가곡 '동심초'의 가사는 바로 이 제3수를 우리나라의 말의 맛을 살려 다시 쓴 것이다.     그런데 동심초는 무엇일까?   노랫말을 보면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로 시작하고 있어 "아! 동심초 꽃잎이 바람에 지는구나"하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사전에 보면 동심초라는 단어가 없다. 중국말 사전에도 동심초라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동심초라는 꽃이나 식물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동심초는 무엇이란 말인가?   동심초는 무슨 풀이름이 아니라 바로 연서(戀書), 곧 러브레터란다. 그런데 왜 '풀 초(草)'가 들어가는가? 종이는 풀로 만드는 것이며 러브레터 접는 방식이 바로 돗자리 짜는 풀의 매듭방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란다. 이런 설명을 듣고 이 시를 다시 살펴보자. 괄호안에 풀어놓은 설명을 주목하면서 말이다.     攬結草同心 풀을 따서 한 마음으로 맺어                 (사랑의 편지 써서는 곱게 접어) 將以遺知音 지음의 님에게 보내려 하네                 (내 맘 아실 이에게 보내려 하네) 春愁正斷絶 봄 시름은 그렇게 끊어 졌건만                 (편지 쓰는 동안에는 행복했건만) 春鳥復哀吟 봄 새가 다시 슬피 우네                 (쓴 편지 부칠 길이 없어 슬퍼지네)     風花日將老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그리워 하다가 세월만 흘러가는데) 佳期猶渺渺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만나 볼 기약은 아득하기만 하네) 不結同心人 무어라 마음과 마음은 맺지 못하고                (한 마음이건만 맺지 못할 사람인데) 空結同心草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부질없이 편지만 쓰면 무엇하나)     또한 여기에서 不結同心人도 김억의 번역처럼 마음과 마음을 맺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한 마음이건만 맺지 못할 사람' 이 바른 번역이라고 한다. 바로 윗 구절에 이미 "내 마음 아시는 분께 보내려 하네" 가 나오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空結同心草도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가 아니라 "헛되이 편지만 접었다가 폈다 하네"가 바른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전체의 바른 번역은     ‘한 마음이지만 맺어지지 못할 사람이라 그걸 알면서도 헛되이 연애편지만 썼다가 찢었다가 하네 (혹은 접었다 폈다하네)’   가 된다는 설명이다. 즉 부치지도 못할 편지 써놓고는 하릴없이 접었다고 펴고 접었다고 펴고 하는 여인의 애타는 현실을 그린 것이 된다. '월명사'라는 ID를 가진 블로그에서 발견한 이 설명이 그럴 듯 하다.   '동심초'노래를 들으면서 김안서의 번안으로 된 노래가사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를 따라 부르기는 해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에 비춘다면, 이 설명이 더 타당하지 않은가? 同心結은 옛날 연애편지를 접는 방식 또는 그 편지이며, 그밖에도 사랑의 정표의 의미로 화초나 물건으로 만든 여러 가지 매듭, 혹은 장식물의 총칭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同心은 한마음이나 막연한 상징물이 아니라 바로 同心結로 마음을 담은 러브레터라는 설명인데 보다 구체적이고 멋있지 않은가? .    설도의 상(뉴스1 사진)   이 한시의 원작자 설도(薛濤 대략 770~832)는 중국 당대(唐代)의 유명한 기녀이며 문학인이다. 우리나라의 황진이에 비견할 수 있을까? 어렸을적 부터 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으며, 아주 총명하고 말재주도 뛰어나 그녀의 재능을 흠모한 당시의 일류 문인들인 백거이(白居易), 원진(元稹), 유우석(劉禹錫), 두목(杜牧)등과 교류가 많았는데 이들 중 원진과의 정분은 각별했으며, 죽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고, 비분상심의 감정을 붓끝에 모아내어 시를 썼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녀의 시는 감정이 절절이 묻어나는 명작이 많아 후세인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하는데 약 450편의 시를 썼지만 90수가 전하고 있다고 한다.   앞에서 든 동심결, 동심초에 대한 설명이 러브레터라는 설명이 더 맞을 수 있는 것은, 중국에 설도전(薛濤箋)이라고 하는 편지지가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설도는 만년에 시성 두보(杜甫)의 초당으로서 유명한 성도(成都)의 서교(西郊)에 있는 완화계(일명 백화담) 근처 만리교 근방으로 은거하였는데 이 근처는 양질의 종이가 생산되는 곳이어서 설도는 심홍색 종이를 만들게 하여 그것을 이용하여 촉의 명사들과 시를 주고 받고 하였다고 하며 그것이 풍류인들 사이에 평판이 높아, 이런 식의 종이를 ‘설도전(薛濤箋)’ 또는 ‘완화전(浣花箋)’이라 하여 크게 유행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심초의 바른 번역은 '사랑의 편지' 혹은 현대식으로 러브레터가 맞는 것 같다.   이런 점을 당시의 뛰어난 시인인 김안서가 모를 리는 없었겠지만 당시 시중에 도는 번역문만 참조해서 번안하다 보니 마치 꽃이름처럼 되어버렸고, 그러다 보니 동심초라는 꽃도 우리나라에는 있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떨까? 우리나라 소프라노들이 부르는 동심초는 '마음이 통하는 꽃'이란 듯처럼 보이는 그것 그대로도 좋지 않은가? 우리가 세상일을 모두 다 알고 살수는 없다. 적당히 알면서 즐기는 것도 인생이다. 동심초가 꽃이면 어떻고 사랑의 편지면 어떤가? 모두 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들인데.   그런 점에서 김 억 선생이  1943년에 펴낸 한시번역시집 서문에서 번역시에 대해 설명하면서 “원시의 뜻을 따다가 소위 김안서 식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밝히고 있고 다른  글에서 “시의 번역은 번역이 아니라 창작이며, 역시(譯詩)는 역자 그 사람의 예술품”이라고 강조한 것을 찾아내어  가곡 1절 뿐 아니라 2절로 불리우는 ‘바람에 꽃이지니---’ 역시 역자의 오랜 고뇌 끝에 나온, 원문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이 있는 또 다른 예술품이라고 말한 이정식의 평가는 정확하다고 하겠다.   김성태 선생의 별세 소식을 듣고 이런 저런 생각을 다시 해 본다. 그래도 동심초는 풀이 아닐 수 있다는 것만은 기억해 둘 일이다.     참고)唐代制纸工艺首推四川,而蜀中笺纸又以“浣花笺”首屈一指。浣花笺一名“薛涛笺”,又名“松花笺”。 相传唐元和(公元806-820年)中,元稹使蜀,营妓薛陶(涛)造十色彩笺相赠,稹于松花笺上题诗寄陶。(李石《续博物志》)   又李商隐《送崔珏往西川》诗:“浣花笺纸桃花色,好好题诗咏玉钩”句,可见薛涛笺为当时诗人所乐道。   按:薛涛字洪度,随父流落蜀中,遂入乐籍,工诗。韦皋镇蜀,招令侍酒赋诗,称为女校书。暮年屏居浣花溪。元"费著撰《蜀笺谱》,谓薛涛七十三岁卒,不知所据。薛涛笺是“以芙蓉等为料煮糜,入芙蓉花末汁,或当时薛涛所指,遂留名至今。其美在色,不在质料也”(见《天工开物》)。这时的笺纸,已有名家自制之开始。   "김억 시인 1930년대 가요 작사가로 활동" '문학사상' 1월호, 발굴가사 58편 공개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김소월의 스승이자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번역가로 잘 알려진 안서(岸曙) 김억(金億.1886-?)이 지은 대중가요 가사 58편이 공개됐다. 장유정(서울대 국문학과 강사) 씨가 '문학사상' 1월호에 기고한 '민요전통 계승한 김억의 대중가요 가사'는 1930년대에 가수 선우일선이 불러 인기를 얻었던 '꽃을 잡고'를 비롯해 '수부의 노래' '삼수갑산' '배따라기' 등 김억이 작사한 유행가의 가사를 모두 싣고 있다. 장씨는 "김억은 안서라는 호와 함께 김포몽(金浦夢)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노랫말을 지었다"면서 "현재 남아 있는 김억의 가사 목록은 80편에 이르지만 찾아낸 것은 58편"이라고 밝혔다. "하늘하늘 바람이/꽃이 피면/다시 못잊을 지난 그 옛날/지난 세월 구름이라/잊자건만/잊을 길 없는 섧은 이내 맘/꽃을 따며 놀던 것이/어제련만/그 님은 가고 내맘 외로이"라는 노랫말을 가진 '꽃을 잡고' 등 김억 가사의 특징은 '민요 전통의 계승'으로 요약된다. 장씨는 "김억 가사는 서도민요의 향락적 정서를 계승하고 있다"면서 "이는 동시대의 다른 대중가요 갈래인 재즈송이 보여주는 도시적인 향락성과는 그 질감이 매우 다른 것이어서 주목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사 창작에서 민요의 전통을 계승한 것은 외래 음악 양식의 토착화라는 측면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그러나 당시 다른 대중가요 갈래인 만요(漫謠)가 보여주었던 세태에 대한 비판이나 현실감각을 찾을 수 없는 것은 그의 가사가 지닌 한계"라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원로시인 황금찬(87) 씨는 지난해 시전문 계간지 '시인세계' 봄호에 기고한 '노랫말에 얽힌 30년대 문단 삽화'에서 "가수 선우일선이 1930년대에 부른 '꽃을 잡고'의 가사를 김억 시인이 썼다"고 밝힌 바 있다.
837    현대시 100년, 시인 166명, 시 700편 - 기념시집 댓글:  조회:5083  추천:0  2016-01-03
    시인의 낙관   ―한국 현대시 100년 기념 시집에 수록된 166 인명사전과 700편 시        당신의 낙관을 찾아보세요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 김억 삼수갑산, 주요한 불놀이, 한용운 님의 침묵, 김소월 진달래꽃,  오상순 방랑의 마음1,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 이병기 난초,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 김동환 산 너머 남촌에는, 조운 무꽃, 김광균 설야, 정지용 향수, 임화 우리 오빠와 화로, 김달진 샘물, 김기림 바다와 나비,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상 오감도, 신석정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유치환 깃발, 노천명 사슴, 장만영 달·포도·잎사귀, 오장환 고향 앞에서, 이육사 광야, 김현승 가을의 기도,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백석 여승, 신석초 무녀의 춤, 이용악 전라도 가시내, 서정주 국화옆에서, 김상옥 사향, 박남수 종소리, 박두진 해, 박목월 나그네, 윤동주 자화상, 조지훈 승무, 이호우 개화, 조향 EPISODE, 김수영 풀, 박인환 목마와 숙녀, 김종길 성탄제, 홍윤숙 사는 법,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한하운 보리 피리, 김남조 겨울 바다, 송욱 장미, 이형기 낙하, 전봉건 피아노, 천상병 귀천, 김종삼 묵화, 김구용 거울을 보며,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강, 김광림 0, 박희진 관세음상에게, 이태극 서해상의 낙조, 박성룡 풀잎 2, 박용래 저녁눈, 성찬경 화형둔주곡, 신경림 농무, 신동문 풍선기, 허만하 동점역, 고은 종로, 정한모 바람 속에서, 황동규 즐거운 편지, 김영태 김수영을 추모하는 저녁 미사곡, 마종기 바람의 말,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김제현 풍경, 정진규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 이성부 벼, 이승훈 이승훈씨를 찾아간 이승훈 씨, 이수익 그리운 악마, 이상범 우포 환상곡, 조태일 국토서시, 최하림 달이 빈방으로, 정현종 어떤 적막, 유안진 다보탑을 줍다, 천양희 마음의 수수밭, 홍신선 늦여름 오후에, 오탁번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 김형영 따뜻한 봄날, 오규원 개봉동과 장미, 오세영 열매, 강은교 자전, 신대철 흰나비를 잡으러 간 소년은 흰나비로 날아와 앉고, 박정만 대청에 누워, 윤금초 주몽의 하늘,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문정희 키 큰 남자를 보면, 김준태 형제, 이시영 후꾸도, 이건청 폐광촌을 지나며, 노향림 배꼽, 이성선 노을 무덤, 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조정권 독락당, 임영조 갈대는 배후가 없다, 나태주 하늘의 서쪽, 이하석 부서진 활주로, 감태준 철새, 신달자 생명의 집, 이기철 청산행, 김명인 동두천1, 김승희 한국식 죽음, 이동순 그대가 별이라면, 이태수 이슬방울,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송수권 산문에 기대어, 장석주 연하계곡, 김정란 비, 최동호 풀이 마르는 소리, 문충성 손금, 이성복 남해 금산, 최승호 텔레비전, 김혜순 환한 걸레, 박남철 목련에 대하여3, 최승자 일찍이 나는, 김정환 지울 수 없는 노래, 박태일 풀나라, 최두석 우렁 색시,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남진우 타오르는 책, 김용택 그 여자네 집, 송재학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이문재 우리 살던 옛집 지붕, 정호승 그리운 부석사, 박노해 노동의 새벽, 이재무 감나무, 황인숙 칼로 사과를 먹다, 고재종 그 희고 둥근 세계, 문인수 달북, 이승하 영안실을 나와 택시를 기다리며, 장정일 길안에서의 택시잡기, 정일근 어머니의 그륵, 기형도 빈집, 장경린 부처님 오신 날, 김영승 반성743, 박주택 시간의 육체에는 벌레가 산다, 고진하 굴뚝의 정신, 송찬호 동백열차, 장석남 그리운 시냇가, 장옥관 황금 연못,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김휘승 돌 속의 새 같은 미루나무 같은, 유하 사랑의 지옥, 정끝별 가지에 가지가 걸릴 때, 조은 따뜻한 흙, 채호기 뱀, 김기택 꼽추, 나희덕 사라진 손바닥, 차창룡 쟁기질 1, 박라연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박정대 음악들, 이윤학 진흙탕에 찍힌 바퀴 자국, 이진명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조용미 가시연, 최정례 3분 동안, 함성호 낙화유수, 김태동 버드나무여, 박형준 달팽이, 이원 나는 클릭한다 고로 존재한다, 최서림 생쥐, 문태준 맨발, 이수명 포장품, 이장욱 인파이터         당신의 낙관은 어디에 있나요?      
836    시에서 이미지만들기 댓글:  조회:4523  추천:0  2016-01-03
제1장, 시란 무엇인가 -벽파 김철진 시인 ① 시는 일상적 언어를 버리고 보다 완전한 언어로 실현 하려는 인간 노력의 소산이다.  일상적 언어를 일상의 언어, 산문의 언어, 도구의 언어로 완전한 언어를 시의 언어, 사물의 언어, 존재의 언어로 설명하고 있다.  ② 키이츠의 오류  → 결국 시는 사실의 보고 보다는 그것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 보다 중요한 문학 양식이라는 점을 증명  ③ 이렇듯 시가 사실의 언급 또는 정보 전달에 따르는 언어의 정확성, 질서화, 논리화를 배척하고 애매성, 직관성, 비논리성을 추구 한다는 것은 결국 상상력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④ 그리하여 시는 일차적으로 그 언어가 관념적, 추상적 , 직설적 진술이 되어서는 안되며 그것은 적어도 이미지에 의해서 형상화 되어야 하는 것이다.  ⑤ 엘리옷: 시를『객관적 상관물』로 정의  → 시는 종교적, 도덕적 차원의 비판, 적절한 지성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⑥ 추하고 혐오스러운 정서가 오히려 예술적 심미감을 유발 할수 있다.  그이유는 시적으로 형상화시킨 시인의 심미적 기법과 관습화된 의미나 개념을 깨뜨려 새로운 영역을 내 보일수 있었던 시적 상상력의 신기성이다.  한편 시를 例를 들면 서정주(문둥이)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제2장 시상은 어떻게 잡는가 -벽파 김철진 1. 시의 씨앗  ① 슈클로프스키 - (낯설게 하기)기법  -예술의 기법이란 대상들을 낯설게 하기의 기법이며 그 형식을 애매하게 하는 기법이며 지각의 어려움과 지속을 증가시키는 기법이다.  -예술이란 사고와 시각을 의도적으로 어렵게 만들어 구체적인 사물의 본질을 전달하는 것  ② 낯설게 하기 = 시적 표현의 원리  삐닥하게 보기 = 시적 발상의 원리  ③ 사물의 모순된 현상을 바로 잡기 위해서 모든 화두가 모순과 궤변으로 점철된 (삐닥하게 보기)의 例  -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다.  -뱀은 꽃대님 보다 아름답다.  -비듬이 떨어지듯 눈이 내린다.  -이완용은 애국자다.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  2. 감정의 당당한 배설  ① 아리스토텔레스 - 카타르시스  -정화, 배설, 공포와 연민(비극적 카타르 시스)  ② 당당한 배설  -심리적으로 왜곡되고 억압된 자아의 해방  -例- 김수영(性): 그것하고 하고 와서........  3. 상상력의 확장  ① 게으름,심심함,몽상(꿈)  ② C.D루이스- 시학입문  -인류 최초의 시상은 (게으르고 심심한 생활태도)에 의한 공상에서 시작 되었다.  -인류 최초의 시인은 원시사회에서 사냥을 할 수 없었던 신체적 불구자 였을 것이다.  ③ 로트레아몽 - 상상력의 확장이 시인에게 있어서 얼마나 폭넓게 용인될 수 있는가를 보 여주는 산문시  -긴손톱 → 아이 → 죽지 않을 정도로 상처 → 상처를 핥으며 피를 마신다.     제 3 장 소재는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벽파 김철진 1. 소재와 주제  ① 라이나. 마리아. 릴케  - 『시는 체험이다.』라고 시를 정의  ② 상상력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 체험이며 체험중 직접적인 체험만이 소재의 원천이 된다.  2. 소재 선택의 기준  ① 보편성: 시공을 초월한 법칙  김동명(밤), 마광수(눈)  보편성이 결여되어 있는 例: 김광균(추일서정)  ② 객관성: 확실하고 정확한 타당성 있는 소재의 제시를 통해서 얻어진다.  -객관성에 결여 되어 있는 例: 조향(바다의 층계)  ③ 참신성: 독창성, 구체성, 필연성, 친근감, 서스펜스, 극적요소, 유우머, 풍자, 아이러니 등이 참신성 범주에 든다.  이장희 (봄은 고향이로다.)  천상병 (땅) : 보편성과 참신성을 겸비한 모범적 例  박인화 (목마와 숙녀): 참신성은 있지만 객관성이 결여  3. 소재의 종류  ① 자연을 소재로 하는 시  -윤동주(서시)- 자연을 소재로 우주관, 인생관, 운명관, 도덕관등을 함축적으로 투영시키는데 성공한 작품  -김소월(산유화)- 자연을 소재로 자연계 삼라만상의 무상한 윤회와 변전, 반복을 노래한 가작  -시를 형이상학의 차원까지 끌어 올렸다.  -동양인의 자연 철학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단순한 자연이 아닌 심오한 주제를 담고 있다.  -김수영(풀) (폭포) (눈)  ② 일상적 사건을 소재로 하는 시  -유의해야 할 점  ○ 시속에 전개되는 사건이 전체적으로 뭉뚱그려진 상징적 사건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 시인이 아니면 느낄수 없는 어떤 시정신, 시적 진실 같은 것을 독자가 간접적으 로 체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 시의 한행 한행이 이루는 기교의 수일함 보다는 전체가 주는 상징적 감동을 노려 야 한다.  -박목월(가족)  -박노해(지문을 부른다.)  -윤동주(트루게네프의 언덕)  ③ 역사적 사실, 인물을 소재로 하는 시  -유의해야 할 사항  ○ 어떤 특정한 역사적 사실. 인물에 대하여 시인 나름의 독특한 해석의 시각을 마 련 해야 한다.  ○ 역사적 사실 그 자체의 전거에 대한 실증적 고찰을 할 필요는 없다.  ○ 정서적으로 느끼는 소감을 시로 표현해야 한다.  ○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심한 공부가 있어야 한다.  -변영로(논개)  -안도현(서울로 가는 전봉준)  -정일근(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④ 주변의 대상물을 소재로 하는 시  -시의 초보자(습작기)가 해야할 일  ○ 충실하고 객관적인 묘사법을 연습  ○ 대상물을 충실히 묘사하려는 의도  ○ 소재를 확대, 부연하지 말 것  ○ 주관적 관념성을 극도로 억제  ○ 소박함, 꼼꼼함  -쨩.콕또(귀) 내귀는 소라껍질.....  -김광균(뎃상) 향료를 뿌린 듯 곱단한 노을 위에....  -전연옥(멸치) 한 종지의 왜 간장에 몸을 담그고......  -이제하(빨래) 높은 가시 울타리에....  -허영자(백자) 불길속에 머리칼 풀면....  -한하운(개구리) 가갸 거겨 고교.....  -이세룡(성냥) 감옥속에는 죄인들이 가득하다......  ⑤ 추상적 관념을 소재로 하는 시  -창작할 때의 태도  시적 표현은 반드시 구체적 이미지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상징적 풍경화를 그려서 보여준다.  상징적 사건을 통해서 관념적 소재가 안고 있는 내포적 의미를 암시적으로 환기시 켜 주어야 한다.  관념어는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유치환(그리움) (행복)  -한용운(이별의 뒷부분)  -김광섭(고독)  -김춘수(부재)  -마광수(사치)   제 4 장.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벽파 김철진 1. 이미지와 상상  ① 이미지란  -머리에 떠오른 것으로서 감각적 성질을 지닌것(심리학용어)  -언어로 만들어진 그림(문학용어)  -현대 모더니즘시의 기준  -이미져리: 언어에 의하여 마음속에 생산된 여러 이미지군  -인긴의 가장 순수하고 진솔한 표현 방법은 원시인이나 아이들의 언어가 갖는 상징적 기능처럼, 이미지를 통해 획득하는 원초적인 성질의 것이어야 한다.  -상상력이 이미지들을 결합해서 새로운 이미지의 통일체를 만들어 낸다고해서 그것이 기계적으로 결합되는 것은 아니다.  ② 흄, 알딩턴 - 이미지스트 선언  -일상어를 사용하되 정확한 말을 고르며 모호한 말이나 장식적인 말을 배척한다.  -새로운 기분의 표현으로 새로운 리듬을 창조해야 한다.  -제재의 선택은 자유로와야 한다.  -명확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모호하고 불확정한 것이 아니라 견고하고 명확한 시를 쓴다.  -긴축된 것만이 시의 본질이다.  ③ 상상  -재생적 상상(과거의 기억)  -생산적 상상(과거의 이미지들중 선택된 여러 가지 요소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 의 통일체를 만드는 경우) : 우리가 시를 창작 할 때 사용하는 상상의 일반적 의미  -창조적 상상(관념적인 연상활동) : 생산적 상상의 더 높은 단계  2. 이미지의 종류  ① 감각적 이미지  -시각적 이미지: 김광균(뎃상): 향료를 뿌린 듯 곱단한 노을 위에....  -청각적 이미지: 정지용(바다): 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가니....  정지용(향수): 질화로의 재가 식어지면.... : 공감각적 이미지  김억(오다가다): 뒷산은 청청..... : 공감각적 이미지  -미각적 이미지: 네루다(페데리꼬에의 오우드): 페데리 꼬여....  -기관적 이미지: 서정주(화사): 석류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 맥박.심장고동.호흡 따위의 자각을 형상화 한 것  -중첩된 이미지: 마광수(칠월장마): 청각, 시각  ② 비유적 이미지  - 두사물이 모두 이미지인 경우  : 김요섭(옛날): 언덕은 꿈을 꾸는 꾸는 짐승.....  : 언덕과 짐승이 모두 이미지  -두 사물이 모두 감정이나 관념들인 경우  :김춘수(나의 하나님):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하느님-관념, 비애=감정  -원관념이 이미지, 보조관념이 감정이나 관념들인 경우  :조병화(분수): 분수야 쏟아져 나오는 정열을 그대로 뿜어도.....  : 분수=이미지, 정열=감정  -원관념이 감정이나 관념, 보조관념이 이미지인 경우  : 신동집(목숨): 목숨은 때 묻었다...  : 목숨=추상적 관념, 흙이 된 빛깔=이미지  ③ 상징적 이미지  -시인 자신의 정서적 긴장과 갈등을 변장.전이 시킨 결과  -극적인 형태로 시 전체에 유기적 긴장미를 부여한다.  -신화나 원형, 인간 잠재의식과 관련있다.  -이미지의 중첩된 다발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마광수(사랑노래)  3. 이미지 창조의 방법  -이미지의 통일성에 대한 이야기 - C.D루이스  ① 사물시의 경우  -어떤 사상이나 의지를 배제하고 사물의 이미지를 중시  -이미지즘시  -관념이 없는 순수시, 회화적 이미지의 시. 풍경화적인 시  -시인이 대상을 바라보며 얼마나 상상력을 잘 활용하여 새로운 연상작용을 불러 일으 키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달려 있다.  -서정주(한양호일): 풍경화시  -전봉건(피아노): 가장 시난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은 그 중의 가장 매혹적인 음율 의 부분을 비유한 것  -유치환(깃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장만영(달, 포도, 잎사귀)  ② 관념시의 경우  -사물의 이미지 보다 어떤 관념세계를 드러내어 독자를 설득시키려는 의지를 표현한 시  -사물시보다 먼저 있었다.  -시인의 관념, 주제의식이 바로 이미지의 묘사의 대상이 되는 시  -요즘 쓰고 있는 일반적인 대부분의 시  -정현종(사랑의 꽃)  -마광수(당세풍의 결혼)  -박재삼(섭리)  ③ 형이상시  -관념시의 한 부류  -추상적인 관념을 감각적 이미지로 표현 한다는 점에서 관념시 보다는 더 좁은 영역  -관념시의 발전된 형태  -이미지 표현에 있어 중층묘사를 중요한 방법론으로 내세운다.  -중층묘사란 같은 내용을 추상적 차원과 감각적 차원으로 교차시켜 입체적으로 표현하 는 방법 - 김현승(마음의 집)     제 5 장. 비유는 어떻게 만들것인가 -벽파 김철진   1. 비유의 원리  ① 문학의 표현기교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비유)이다.  비유를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유추)이다.  ②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명확하게 틀린 두 개의 사물사이에서 동질성을 찾아내는 능력)이 바로 시인의 특징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러한 능력을 (유추)능력이라 한다.  ③ 베이컨: 상상력이란 자연이 결합 시켜 놓은 것을 분리하고 자연이 분리해 놓은 것을 결합시키는 인간의 힘이다.  -우수한 비유는 유추적 대상의 발견에 기인하고 그 발견행위를 유발 시키는 것은 시인의 (상상력)이다.  ④ 일반적인 언어의 발달과정  -흉내내기를 위주로 하는 묘사의 단계  -유추적 단계 : 시적 표현의 근본원리 -유추작용에 의한 비유의 창조  -상징적 단계 : 시적 표현의 근본원리 -유추작용에 의한 비유의 창조  2. 비유의 종류  ① 직유(명유): 장식적 효과 형식  ② 은유(암유): 조명적 효과 : 숨겨진 비유  : 아리스토텔레스가 최초로 전이의 개념으로 파악한 이래 가장 중요한 문학적 요 소로 수용 형식  ③ 의유: 의인,의성,의태법을 총괄적으로 가리키는 말  -의인법: 은유의 변형된 형태로 대상과 인간을 융합시킨 것  : 원시적인 상상력  :인간의 주관이 대상의 존재론적 관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감정 이입의 방법을 쓴 다.  -활유법: 생명이 없는 것이 생명을 부여한다.  ④ 제유: 유의가 나타내는 의미나 사물이 전체의 한 부분인 경우, 방망이(무기의 전부), 빵(식량의 전부), 벽안(서양인)  ⑤ 환유: 제유처럼 유의와 본의가 부분과 전체의 관계로 밀접하게 연결되지 않고 조금 동 떨어지게 맺어지거나 유의가 본의를 환기시킬수 있는 경우  :엽전, 고무신(한국인), 만해(한용운의 시), 바가지(헌병)  3. 비유 사용의 방법  ① 직유로만 이루어진 경우  -관념적 주제를 시로 형상화 시키는데 자주 쓰인다.  -일상적 어법을 꾸미는 장식적 기능 외에 이러한 어법을 낯설게하는 창조적 기능을 소유한다.  -일상어를 지배하는 직유가 두 사물의 (표면적 유사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면 시적 직유 는 두사물의 (이면적 유사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  -가장 소박하고 원초적인 시적 수사의 형태를 갖고 있다.  -마광수(사랑) : 우리는 사랑했다 꽃과 같이.....  -이승훈(어느 조그만 사랑): 오늘 광화문에서 만난....  ② 은유로만 이루어진 경우  -직유보다 자의적 표현이 가능하다.  -시의 난해성이나 애매성이 시적 긴장미를 유발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유사성 보다는 (이질성)쪽에 신경을 쓴다.  -박두진(꽃), 김춘수(나의 하느님), 유치환(깃발), 최인희(미소)  ③ 의인법으로만 이루어지는 경우  -김종길(고고): 북한산이....  -박남수(종소리): 나는 떠난다.....  -신승철(비가 말한다): 황금 달빛도 피로풀 듯 타 죽었고......  -노창선(섬): 우리는 섬이되어 기다린다 어둠속에서....  -마광수(사랑이여)  ④ 어떤 비유적 사건을 유의로 삼는 경우  -산문시 또는 산문시에 가까운 형태의 시에서 쓰이는 수법  -한편의 시에 나오는 어떤 사건이나 행동 전체를 비유로 구성하는 경우  -강우식(바나나)  -김춘수(부재)  -박세현(모란)  -마광수(잡초)    제 6 장. 상징과 알레고리 -벽파 김철진 1. 상징  ① 상징의 본질  -상징이란 어원은 (한데 던지다.비교하다, 표시)라는 의미다.  -한 심상과 한 관념을 상상에 의하여 연결시킬수 있는 방법  -상징은 불가시적이고 형이상적인 실재를 드러내는 가시적형 또는 대상을 뜻하는 것으 로 파악되어야 할 것  -은유는 1:1의 유추적 관계에 의존하지만 상징은 아니다.  -상징은 확장된 은유이다.  -캇시러: 신호는 조작자, 상징은 지시자  : 인간을 상징적 동물 로 정의  -신호는 동물적 존재 세계 일부, 상징은 인간의 의미세계일부  -william York Tindall - 신호와 상징의 차이점  ㄱ.신호는 명확한 것. 상징은 불명확한 것  ㄴ.상징은 어떤 것을 남김없이 나타낼 수 없고 우리가 말할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사상과 감정을 암시  ㄷ.신호는 본의에 관심을 상징은 유의 자체에 관심을 갖는다.  ㄹ.신호는 작자와 독자 사이의 의사소통을 중시, 상징은 그것 자체와 독자 사이의 의사瑙肉?있다.  -시인의 임무  ㄱ.의미를 관념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구체적인 심상으로 형상화 시켜 전달  ㄴ.시가 상징을 그 표현의 가장 직접적인 질료로 삼게 된 이유는  관념 이전의 근본적인 의미를 전달해 주는 것  ㄷ.시인은 감동과 생기, 염감으로써 힘을 북돋아 주는 동시에 기쁨을 주는 것  ② 상징과 시  -이미지가 지니는 언어적 한계를 무한히 넓혀, 언어 이상의 본질적 , 실체적 세계로 이끌어 가는 작용이 시에 있어서의 상징화 작용이다.  -비둘기가 (평화)를 상징한다고 말할수 있는 것은 (연상작용) 때문이다.  -개인적 상징 -윤동주(십자가), 이육사(절정)  -관습적 상징(비유) - 이장희(봄은 고양이로다.)  -유치환(깃발) - 확장된 은유 상징  2. 알레고리  ① 알레고리의 본질  -하나를 말하여 다른 것을 의미할 때 알레고리가 나타난다고 한다.  -비유는 유의와 본의가 유사 관계를 가지며 이들이 문면에 확연히 드로나는 경우에 볼 수 있다.  -자의적 이질관계(유의가 생략된 본의를 지시하는 관계): 기호  -연상적 이질 관계(유의가 생략된 본의를 암시하는 관계): 알레고리.상징  -유의가 본의를 번역해 내면: 알레고리  -유의와 본의가 통합되어 의미를 현현시키면 : 상징  -알레고리는 비유와 기호처럼 유의와 본의가 구별된다.  상징은 그것이 통합되어 분리되지 않는다.  -알레고리의 본의는 기성의 도덕과 윤리의 추상적 개념을 갖는다.  -상징 우월론은 낭만주의 이후 대두되었고 상대적으로 알레고리는 위축  -프라이- 모든 비평은 알레고리이다.  -알레고리의 범주에서 작품을 해석할 때 나타나는 특질  ㄱ.수사적 측면에서 주로 의인화와 문답법의 기법을 나타낸다.  ㄴ.인식론 측면에서 이원론과 상반성을 갖는다.  ㄷ.의미론적 측면에서 현세성과 교훈성을 갖는다.  3. 상징적 표현의 방법  (개인적, 관습적, 제도적, 원형적 상징)  ① 작품전체가 하나의 상징을 이루는 경우  -윤동주(슬픈족석)  -시의 본문 전체가 하나의 뭉뚱그려진 상징을 이루고 있다.  -한용운(알수 없어요)  -김춘수(이중섭)  -이상(최후), 마광수(신)  ② 어떤 상징적 시어가 의도적으로 쓰여져 상징적 의미를 환기시키는 경우  -조병화(의자): 지금 어드께 쯤....  -이작품에 나오는 (의자)는 일상적 의미가 아니라 상징적 의미로 쓰였다. (아침)과 (묵은의자)가 서로 대비되면서 시간이 흘러가면서 세대가 교체되고 모든 것이 역사적으로 변해간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암시  -김수영(눈)  -김춘수(꽃)  -이러한 (의자, 눈, 꽃)같은 보편적인 소재를 상징적 시어로 승화 시킬 때 거기서 상징의 확산과 승화작용을 일으킬수 있다.  ③ 원형적 상징을 응용하는 경우  -원형의 이론은 문학의 해석에 있어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기한다.  ㄱ.꿈과 신화의 의식은 근본적으로 보편적인 정서적 욕구를 충족 시키거나 보편적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간접적으로 변장된 비공리적 방법  ㄴ.상징은 실제로는 그 행위를 초월한 다른 관념의 세계를 보여주는 암시적이고 간접 적인 방법  ㄷ.결국 원형이란 가장 보편적인 상징이다.  ㄹ.이때 시인은 일시적이고 현상적인 세계를 초월하여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원형적 상징들의 예  바람: 호흡, 영감, 생기, 정신, 시련  원: 통일성,전체성, 의식과 무의식의 결합, 영원한 회귀  강물: 시간의 흐름, 생의 윤회  -성적 상징 - 구두를 신는 행위  - 뱀  -꽃을 밟고 지나가다.  (사디스틱한 마조키즘)  -서정주(화사)  -마광수: 자궁 회귀 본능을 원형적 상징의 소재로 한시 → 불편한 가운데서 미의식을 충족 → 무거은 귀걸이, 목걸이, 긴손톱, 뾰족구두  -김춘수(봄바다)  4. 알레고리적 표현의 방법  ① 알레고리적 주제를 상징적 기법으로 표현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삼아서 시 창작에 알레고리를 응용해야 한다.  ② 알레고리는 결국 어떤 교훈적 메시지를 독자에게 은근하게 전달하려고 할 때 쓰이는 방법  ③ 정치풍자적 알레고리 시  -김수영(폭포)  1. 상징  ① 상징의 본질  -상징이란 어원은 (한데 던지다.비교하다, 표시)라는 의미다.  -한 심상과 한 관념을 상상에 의하여 연결시킬수 있는 방법  -상징은 불가시적이고 형이상적인 실재를 드러내는 가시적형 또는 대상을 뜻하는 것으 로 파악되어야 할 것  -은유는 1:1의 유추적 관계에 의존하지만 상징은 아니다.  -상징은 확장된 은유이다.  -캇시러: 신호는 조작자, 상징은 지시자  : 인간을 상징적 동물 로 정의  -신호는 동물적 존재 세계 일부, 상징은 인간의 의미세계일부  -william York Tindall - 신호와 상징의 차이점  ㄱ.신호는 명확한 것. 상징은 불명확한 것  ㄴ.상징은 어떤 것을 남김없이 나타낼 수 없고 우리가 말할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사상과 감정을 암시  ㄷ.신호는 본의에 관심을 상징은 유의 자체에 관심을 갖는다.  ㄹ.신호는 작자와 독자 사이의 의사소통을 중시, 상징은 그것 자체와 독자 사이의 의사瑙肉?있다.  -시인의 임무  ㄱ.의미를 관념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구체적인 심상으로 형상화 시켜 전달  ㄴ.시가 상징을 그 표현의 가장 직접적인 질료로 삼게 된 이유는  관념 이전의 근본적인 의미를 전달해 주는 것  ㄷ.시인은 감동과 생기, 염감으로써 힘을 북돋아 주는 동시에 기쁨을 주는 것  ② 상징과 시  -이미지가 지니는 언어적 한계를 무한히 넓혀, 언어 이상의 본질적 , 실체적 세계로 이끌어 가는 작용이 시에 있어서의 상징화 작용이다.  -비둘기가 (평화)를 상징한다고 말할수 있는 것은 (연상작용) 때문이다.  -개인적 상징 -윤동주(십자가), 이육사(절정)  -관습적 상징(비유) - 이장희(봄은 고양이로다.)  -유치환(깃발) - 확장된 은유 상징  2. 알레고리  ① 알레고리의 본질  -하나를 말하여 다른 것을 의미할 때 알레고리가 나타난다고 한다.  -비유는 유의와 본의가 유사 관계를 가지며 이들이 문면에 확연히 드로나는 경우에 볼 수 있다.  -자의적 이질관계(유의가 생략된 본의를 지시하는 관계): 기호  -연상적 이질 관계(유의가 생략된 본의를 암시하는 관계): 알레고리.상징  -유의가 본의를 번역해 내면: 알레고리  -유의와 본의가 통합되어 의미를 현현시키면 : 상징  -알레고리는 비유와 기호처럼 유의와 본의가 구별된다.  상징은 그것이 통합되어 분리되지 않는다.  -알레고리의 본의는 기성의 도덕과 윤리의 추상적 개념을 갖는다.  -상징 우월론은 낭만주의 이후 대두되었고 상대적으로 알레고리는 위축  -프라이- 모든 비평은 알레고리이다.  -알레고리의 범주에서 작품을 해석할 때 나타나는 특질  ㄱ.수사적 측면에서 주로 의인화와 문답법의 기법을 나타낸다.  ㄴ.인식론 측면에서 이원론과 상반성을 갖는다.  ㄷ.의미론적 측면에서 현세성과 교훈성을 갖는다.  3. 상징적 표현의 방법  (개인적, 관습적, 제도적, 원형적 상징)  ① 작품전체가 하나의 상징을 이루는 경우  -윤동주(슬픈족석)  -시의 본문 전체가 하나의 뭉뚱그려진 상징을 이루고 있다.  -한용운(알수 없어요)  -김춘수(이중섭)  -이상(최후), 마광수(신)  ② 어떤 상징적 시어가 의도적으로 쓰여져 상징적 의미를 환기시키는 경우  -조병화(의자): 지금 어드께 쯤....  -이작품에 나오는 (의자)는 일상적 의미가 아니라 상징적 의미로 쓰였다. (아침)과 (묵은의자)가 서로 대비되면서 시간이 흘러가면서 세대가 교체되고 모든 것이 역사적으로 변해간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암시  -김수영(눈)  -김춘수(꽃)  -이러한 (의자, 눈, 꽃)같은 보편적인 소재를 상징적 시어로 승화 시킬 때 거기서 상징의 확산과 승화작용을 일으킬수 있다.  ③ 원형적 상징을 응용하는 경우  -원형의 이론은 문학의 해석에 있어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기한다.  ㄱ.꿈과 신화의 의식은 근본적으로 보편적인 정서적 욕구를 충족 시키거나 보편적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간접적으로 변장된 비공리적 방법  ㄴ.상징은 실제로는 그 행위를 초월한 다른 관념의 세계를 보여주는 암시적이고 간접 적인 방법  ㄷ.결국 원형이란 가장 보편적인 상징이다.  ㄹ.이때 시인은 일시적이고 현상적인 세계를 초월하여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원형적 상징들의 예  바람: 호흡, 영감, 생기, 정신, 시련  원: 통일성,전체성, 의식과 무의식의 결합, 영원한 회귀  강물: 시간의 흐름, 생의 윤회  -성적 상징 - 구두를 신는 행위  - 뱀  -꽃을 밟고 지나가다.  (사디스틱한 마조키즘)  -서정주(화사)  -마광수: 자궁 회귀 본능을 원형적 상징의 소재로 한시 → 불편한 가운데서 미의식을 충족 → 무거은 귀걸이, 목걸이, 긴손톱, 뾰족구두  -김춘수(봄바다)  4. 알레고리적 표현의 방법  ① 알레고리적 주제를 상징적 기법으로 표현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삼아서 시 창작에 알레고리를 응용해야 한다.  ② 알레고리는 결국 어떤 교훈적 메시지를 독자에게 은근하게 전달하려고 할 때 쓰이는 방법  ③ 정치풍자적 알레고리 시  -김수영(폭포)    제 7 장 . 역설과 아이러니 -벽파 김철진 1. 역설  ① 개념  -산문과 구분되는 시어의 본질  -부룩스: 시어를 역설의 언어를 규정한 최초의 비평가  -시적 진술에서 상반되는 이미져리나 관념이 하나로 수용 초극됨을 말한다.  -경이, 아이러니, 모순등은 역설이 지닌 본질적 요소들이다.  -일상적 세계에서는 모순되는 진리가 그 모순을 초극함으로써 보다 차원 높은 세계에서  영원한 진리로 탄생되는 것을 의미  -역설은 어원적으로 (....넘어선)과 (의견)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모순속에 내포된 진리)가 역설이다.  -시어에서 역설이 개념이 포괄적인 뜻으로 사용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ㄱ.논리학적 개념의 역설로서는 개념화 시킬수 없다는 점  ㄴ.우리가 간과할수 없는 것은 시란 이미지에 의한 언어 창조에 있다는 것  -역설의 표현 형식 세가지  ㄱ.A≠A형식  : 동일 원리로부터 자유로운(삶은 삶이 아니다)형식  ㄴ.A=B and non B 형식  :비모순의 원리로부?자유로운 (삶은 죽음이다.)형식  ㄷ.A≠A or non B 형식  :배중율로부터 자유스러운(나는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다.)형식  ② 종류  -휘라이트 : 표층적 역설  심층적 역설 : 존재론적 역설  시적 역설  -표층적 역설: 무언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 쓰디쓴 즐거움, 달콤한 슬픔, 다윈은 다윈학파가 아니다. 이것은 소리없 는 아우성,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역설적 의미가 시의 구조로서 존재하지 않고 시행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  :논리적 유추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는 점  :비록 진지한 고찰에 의해서 그 모순되는 의미가 해명된다고는 하나 습관 적 어법으로 때묻은 사물의 의미에 신선한 충격을 준다는 점.  -심층적 역설  ㄱ.존재론적 역설: 삶의 초월적 진리를 내포한 역설  :기독교 및 종교에서 인간의 삶과 세계의 의미를 모순으로 보는 점  :시간은 오로지 시간을 통해서만 정복된다.  :그리하여 암흑은 빛일 것이며 정적은 춤일 것이다.  :나의 유일한 건강은 질병이다.  :한용운의 시들  ㄴ.시적 역설: 작품의 구조적 의미가 반영된 역설  : 김소월(진달래 꽃)  2. 아이러니  ① 개념  -아이러니의 본질이 상반하는 의미의 이가성에 있다는 점.  -하나의 의미는 정반대의 언어 표현에 의해 전달된다는 점.  -표현된 의미와 다른 진실이 그 이면에 감취진 발언  -키에르 케고르  ㄱ.인간이 실존에 이르는 과정: 미적, 윤리적, 종교적 단계  ㄴ.아이러니란 미적 단계와 윤리적 단계의 중간적 삶이다.  -노드럽 프라이  ㄱ.모형의 개념으로 아이러니를 설명  ㄴ.신화는 주인공이 신성한 존재  ㄷ.로망스는 주인공이 전형적인 영웅  ㄹ.고차원의 모방은 주인공이 한 집단의 권위를 지닌 지도자  ㅁ.저차원의 모방은 주인공이 일상적 수준의 인간  ㅂ.아이러닉은 주인공이 우리보다 더 저열한 힘의 소유자  ㅅ.미토스 이론- 봄(코메디), 여름의 유형(로망스), 가을의 유형(비극), 겨울유형(아이 러니, 풍자)  -리챠즈  ㄱ.시의 구조적으로 아이러니를 내포한다.- 내포하는 시  ㄴ.아이러니가 없는시- 배제하는 시  ㄷ.대립하는 두 충동의 조화  ㄹ.리챠즈의 아이러니는 부룩스의 파라독스와 동일시 한다.  -코울릿기  ㄱ.상상력의 본질을 '모순하는 두 가치의 조화'  -뮈케  ㄱ.어떤일을 말하면서 그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것  -아이러니의 보편적 속성들  ㄱ.순박함 혹은 모르면서 자신에 참.  ㄴ.실제와 그것이 현상으로 나타난 것 사이의 모순  ㄷ.희극적 요소  ㄹ.거리의 요소  ㅁ.극적 요소  ㅂ.신비적 요소  -W.C부드의 아이러니 특징 네가지  ㄱ.의도성, 은폐성, 분별성, 한정성  ㄴ.아이러니임을 지각하게 해주는 힌트 다섯가지  필자 자신의 간접적인 경고 혹은 교시  이미 공인된 잘 알려진 오류  작품 자체가 보여주는 사실이나 갈등-김소월(진달래꽃)  비정상적인 문체- 오규원(어떤도둑)  신념들 사이의 갈등
835    난해시와 초현실주의의 교주 - 조향시인 댓글:  조회:5854  추천:0  2016-01-03
  조향(趙鄕) 시인의 시, 에스뀌스   ESQUISSE                                 ―조향(趙鄕)               1 눈을 감으며. SUNA는 내 손을 찾는다. 손을 사뿐 포개어 본다. 따스한 것이. ―――― 그저 그런 거예요! ―――― 뭐가? ―――― 세상이. SUNA의 이마가 하아얗다. 넓다.              2 SUNA의. 눈망울엔. 내 잃어버린 호수가 있다. 백조가 한 마리. 내 그 날의 산맥을 넘는다.              3 가느다랗게. 스물다섯 살이 한숨을 한다. ―――― 또 나일 한 살 더 먹었어요! SUNA는 다시 눈을 감고. ―――― 그저 그런 거예요! 아미에 하얀 수심이 어린다.                 4 ―――― 속치마 바람인데.…… ―――― 돌아서 줄까? ―――― 응! 유리창 너머 찬 하늘이 내 이마에 차다.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됐어요.                 5 SUNA가 화장을 한다. ―――― 화장도 예술 아녜요? SUNA의 어깨 넘으로 내 얼굴이 쏘옥 돋아난다. 나란히 나와 SUNA의 얼굴이. 거울 안에서. ―――― 꼭 아버지와 딸 같아요.              6 SUNA의 하얀 모가지에 목걸이. 목걸이에 예쁜 노란 열쇠가 달려 있다. ―――― 이걸로 당신의 비밀을 열어 보겠어요.              7 STEFANO의 목청에 취하면서. 눈으로 SUNA를 만져 본다. 오랜 동안. ―――― 왜 그렇게 빤히 보세요? ―――― 이뻐서. ―――― 그저 그런 거예요!              8 나의 SUNA와 헤어진다. 까아만 밤 ․ 거리 . 택시 프론트 그라스에 마구 달겨드는. 진눈깨비 같은 나비떼 같은. 내 허망의 쪼각 쪼각들. 앙가슴에 마구 받아 안으며. SUNA의 눈망울이. 검은 하늘에 참은 많이 박혀 있다. 깜박인다. 「그저 그런 거예요」                自由文學, 4월호(1960년) *조향(趙鄕)전집 1994년 간행(刊行).  [출처] 시인 조향(趙鄕)의 시 (그의 시는 내게 혁명, 그 이상이었다)|작성자 banyantree           바다의 층계(層階)                                조향(趙鄕, 본명 조섭제)           낡은 아코오뎡은 대화를 관뒀습니다     ―――여보세요?     폰폰따리아 마주르카 디이젤 ―엔진에 피는 들국화,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受話器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깃폭들     나비는 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개정신보판 現代國文學粹, 自由莊(1952간)에서 발췌하여 엮은 1994년 간행 1詩,를 원문으로 옮겨 적었음. 찬     * 시인 조향은 1917년 경남 사천군 곤양면에서 태어나 진주고보를 나와 대구사범 강습과를 거쳐  일본대학 예술학원에서 수학했다. 1940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첫날 밤'이 입선되어 문단에 발을 디뎠다.  동아대 국문과 교수와 문과대학장을 역임했으나 말년은 쓸쓸했다.  문단 쪽에서 그를 반기는 이가 거의 없다시피 해 서울로 온 뒤 그의 초현실주의 시학에 동조하는  모임이 있던 강릉 해변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67세, 1984년의 봄이었다.  부산 용두산 공원 조향 시비.  열 오른 눈초리, 한 잔 한 입모습으로 소년은 가만히 총을 겨누었다  소녀의 손바닥이 나비처럼 총 끝에 와서 사뿐히 앉는다.  손끝에선 파아란 연기가 물씬 올랐다.  뚫린 손바닥의 구멍으로 소녀는 바다를 내려다 봤다.  아이 어쩜 바다가 이렇게 똥구랗니?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산태바기에다 연달아 머릴 처박곤  하얗게 화석이 되어 갔다.  시 'EPISODE' 전문    ==================================================== 조향(1917~1984) 시인은 부산에 거주했던 20년(1947~1966) 동안 한국 시에 전위적 정신과 형식을 제공하는 최선봉에 섰다. 1952년 발표한 시 '바다의 층계'와 '에피소드'는 한국 모더니즘시의 문제작이다. 두 시는 조향 시인의 대표작이자 초현실주의, 해체시의 선구작으로 손꼽힌다. 조 시인은 그림, 영화 등 다른 예술과의 접목으로 장르 패러디를 시도하고 기존 언어와 문화의 관습을 무너뜨리며 초현실주의 확산에 주력했다.  조향 시인에게서 시를 배운 구연식(1925~2009) 시인은 초현실주의나 모더니즘을 타고 넘어 자신의 체취로 채워진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했다. 초기 시가 허무주의적 실존 표현에 중점을 뒀다면 후기 시는 동양적 명상을 바탕으로 자유롭고 소박한 언어로 쓰였다... ======================================================================     조향     *1917; 음력 9월 2일(양력 12월 9일) 경남 사천군 (현재의 사천시) 곤명면 금성리 외가에서 아버지 조용주, 어머니 강숙희의 장남으로 출생.(친가는 사천군 곤양면 환덕리) *1920; 산청군 지곡으로 이사 (부친 산청군청 근무), 22년에는 산청읍내로 이사. *1924; 산청공립보통학교 1학년 입학. *1926; 아버지 실직으로 귀향, 곤양보통학교 3학년 전학. *1927; 아버지 생명보험회사에 직을 얻어 진주로 이사, 진주 제1공립보통학교 4학년 전학 *1930; 진주 제1공립보통학교 졸업. *1932; 진주 고등보통학교 입학, (수록 산문 「20년의 발자취」에 재학시절 자세히 회고) *1937; 진주고보 졸업, 경성제국대학 예과 문과 응시했으나 실패, 대구사범 강습과 입학. *1938; 대구사범 강습과 수료, 경남 김해 가락초등학교 교사로 발령. 본가 마산으로 이사. *1940; 매일신문(현재의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3석으로 입선(작품;「초야」) *1941; 일본대학예술학부 창작과 합격, 동 대학 전문부상경과로 옮겨 수학. 편지검열에 걸려 퇴학당함. 마산으로 돌아와 김수돈, 정진업 등과 교류, 일본시지에 일어 시 (詩) 투고. *1942; 마산 성호초등학교 교사로 복직, 이듬해 함안 북월천초등학교로 전근됨. *1945; 광복 후 마산 월영초등학교 교감으로 발령. *1946; 김춘수, 김수돈 등과 시 동인지 《魯曼派(로만파)》 창간(4집까지 발간) *1947; 서정주 후임으로 동아대학교 국문과 전임강사 발령. *1949; 김경린, 박인환, 이한직, 이상로 등과 서울서 결성. 문총 경남지부 문학부장 겸 출판부장 역임. *1950; 6.25 전쟁으로 동인지 《후반기》1집 조판했으나 발간 못하고 서울 동인들 피난. *1953; 동아대학교 학보사 주간 취임(1966년까지) *1956; gamma 동인회 결성 동인지 《geiger》1집 발간. *1957; 문총부산지부 대표위원, *1959; 민중서관 판『한국문학전집 35권에 시 작품 4편과 연보 수록, 문총 부산지부 주 최 제1회 부산예술제 총지휘. *1960; 동아대학교 문리대학장 피선(1962년까지) *1961; 신구문화사 판 《세계전후문학전집》8권인 《전후한국문제시집에 시 13편과 시작노 트 수록. *1062; 예총부산지부 초대 지부장, 동인회 대표 동인지《일요문학》 1집 발간. *1963; 동아대학교 도서관장(1966년까지) *1964; 대한교련 감사(1965년까지) *1966; 동아대학교 교수 및 보직 사임, 서울로 이주. *1968: 한국신시60주년기념 『한국시선』에 작품 2편 수록. *1969; 문화방송 해설위원(문화 방면)(1970년까지) *1972; 명지대 강사. *1973; 초현실주의문학연구회 결성하여 1984년 작고 할 때까지 강연, 출판 활동, *1974; 어문각 판『신한국문학전집』36권에 시 6편 수록, 초현실주의 동인지《雅屍體》창간. *1978; 《전환》동인으로 1984년 작고할 때까지 활동. *1984; 8.9 새벽 동해안 피서지에서 심장장애로 급서.     부인 정복진 여사(생존) 사이에 3남(붕래,향래,웅래), 2녀(유영,미정)의 자녀가 있음.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 ㅡ후반기 동인 조향 시인 출생지 환덕리   조향(趙燮濟)시인은 1917년 곤양면 환덕리 환덕마을에서 태어났다. 환덕리는 골짜기 마을이라 마을 사람들이 무얼 먹고 사는지가 궁금하여 조한제 선생에게 물었더니 과거에는 고구마를 생산했고 지금은 옥수수를 많이 생산한다고 했다. 경남도지사 조익래가 이 마을 출신이라는 것 등 이것 저것 묻고 있는 중에 이 마을 좌장 조한제 선생은 조향의 동생 조봉제에게 연락해 보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때사 필자는 조향 시인에게 동생이 있고 그 동생 역시 시인이라는 것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마을에서 돌아온 필자는 시인명부에서 조봉제(趙鳳濟)를 찾았다. 이름을 찾기 전에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최근까지 시작품을 잡지에 발표하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남자가 받았는데 조봉제 시인의 장남 조석래(63)였다. 아버지와 백부 조향 선생의 출생과 유년에 관해 묻고 싶어 전화했다고 하니 “작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알고 계시죠?”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잠시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저는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선생의 별세에 대해 애도를 표합니다. 죄송합니다.”하고 예를 표했다. 장남은 어머니를 바꿔 드리겠다 하여 조봉제 시인의 부인을 통해 다음의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조향 시인의 아우 조봉제는 9살 밑이다. 조향은 사천 환덕리에서 태어났지만 아우 조봉제는 산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산청에 공무원 발령이 나서 식구들이 산청으로 이사를 했다. 얼마가 되었는지는 모르나 그 뒤 진주로 이사를 나와 초등학교를 다닌 것으로 기억된다. 이때 조향은 진주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다시 집은 마산으로 이사를 했고 조봉제는 고등학교와 전문학교를 일본에 가서 다녔다. 유학을 마치고 마산으로 귀향했다. 여기까지가 조봉제시인의 부인이 증언한 내용이다. 조향은 거주지를 “사천 곤양--산청--진주--마산--부산”으로 이동했고 조봉제는 “산청--진주--마산--부산”으로 이동했다. 필자는 이어 조향 시인의 장녀 조유정(65)을 통해 슬하에 5남매를 두었다는 것을 알았다. 조유정(장녀·65), 조붕래(장남·64·조선해운 부사장), 조미정(차녀), 조향래(차남·사망), 조욱래(삼남·48·회사원) 등이 그들이다. 조향은 알려진 대로 진주고등보통학교(현 진주고교) 8회로 졸업했다. 동기들은 1932년 4월 1일 입학하여 1937년 3월 5일 졸업했는데 모두 59명이었다. 명단을 훑어보니 조향은 조섭제(趙燮濟)로 되어 있고 배종호(裵宗鎬·산청 생초출신·경성제대졸·연세대 철학과 교수 역임)가 눈에 띄고 김재원(金在元·인하공대 명예교수), 안동선(安東善·대구사범·기업인·정치인) 등 이름이 보인다. 배종호 교수가 일제하 경성제국대학을 다닐 때 산청 생초로 귀향하면 산청군수가 길목까지 마중나와 있었다는 이야기가 산청 곰내 언저리에는 전설처럼 퍼져 있다. 학생복을 입고 흰 장갑을 끼고 지팡이를 드는 것이 경성제대의 교복 차림이었다. 권위가 군수를 눌렀던 것이 아닌가 한다. 조향의 선배인 진주고보 7회 졸업생 중에는 교육자들이 많아 보인다. 박우진(朴宇震·전 진중 교장), 강극영(姜極瑩·전 진주고 명신고 교장), 정원용(鄭原鎔·박정희 대통령과 대구사범 동기·전 진주고 진주여고 교장·전 검찰총장 정구영·시인이자 세종대 석좌교수 정순영의 부친) 등이 있고 경남일보 사장과 개천예술제 대회장을 지낸 박세제(朴世濟)라는 이름이 보인다. 한 해 후배인 9회 졸업생으로는 구기회(具麒會), 고한준(高漢俊·전 경남대 교수), 박충권(朴忠權), 방재원(方在源), 이병선(李炳銑·전 한독실업학교장), 조무준(趙武駿·내과의사), 최기윤(崔其鈗·전 교장) 등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 조향은 진주고보를 졸업하고 이어 대구사범 강습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대학 예술학원을 다녔다. 귀국후 교육계에 발을 디뎌 마산상고 교사를 거쳐 동아대학 교수 문리대 학장을 역임했다. 1940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시 ‘첫날밤’이 입선돼 문단에 올랐다. 그 뒤 동인회 후반기 멤버로 활약하고 마산에서 ‘노만파’ 동인을 이끌었다.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 ㅡ후반기 동인 조향 시인 출생지 환덕리   조향은 출생지 곤양 환덕리에서 아버지 공직 근무지 산청으로 가서 몇 년 있다가 진주로 나왔다. 그의 동생 조봉제 시인이 산청에서 났고 그가 고등학교 다닐 무렵 일가가 진주로 나와 산 것으로 보인다. 조봉제의 출생지는 문학사전에 따라 다르다. 어떤 데는 ‘산청’이고 어떤 데는 진주로 되어 있다. 진주에서도 옥봉동에서 났다고 적혀 있다. 그런 것으로 보아 조봉제가 산청에서 났지만 전국적으로는 산청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조봉제 스스로 진주 출생으로 기록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의령 출신이나 함안 출신들이 서울 사람들에게 마산이 집이라 한다거나 하동이나 산청, 함양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에게 진주에 집이 있다고 하는 사례가 있는데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하겠다. 조향 시인의 제자로 사천 사남면 출신 고 구연식 교수가 있고 진주의 수필가 고 김토근, 시인 이덕이 있다. 조향 시인이 우리나라 초현실주의를 끌고 간 대표적인 시인이었으므로 그의 제자들도 우리나라 전역에서 초현실주의의 향도로 활약해 왔다. 구연식 교수는 조향의 제자이면서 동아대 국문과 후배교수로 봉직했다. 구교수의 시도 그런 형인데 1955년 조봉제 이인영 등과 초현실주의 동인 잡지 가이가(Geiger)에 참여하고 1962년 첫시집 ‘검은 산호의 도시’를 내어 서정 일변도의 시단에 작은 파장을 주었다. 이덕 시인도 동아대 재학 중 그 가이가 멤버였다. 부산 광복동 다방이나 ‘태백싸롱’을 드나드는 멤버는 조유로, 하근찬, 이호진, 그리고 구연식이었다. 이덕 시인의 시도 경남문학이나 진주문단에 주로 발표해왔는데 시인들 중 가장 이질적인 시를 쓴 것으로 화제가 되곤 했다. 슈르풍인 점에서 스승의 주장에 합류하는, 철저한 가이가 시인으로 초지일관하는 미덕을 보여 주었다. 조향 시인은 시집 한 권이 남아 있지 않지만 그의 시는 초현실주의의 고전으로 자리집고 있다.앞으로 그의 시집을 묶어내는 견실한 출판사가 나오길 기대한다. 어쩌면 경남대학교 박태일 교수의 지역문학 탐구 시리즈에 얹힐지도 모른다. 그간 박교수는 지역문학 총서를 그가 지도한 연구가들과 함께 내고 있는데, 김상훈전집, 포백 김동한전집(한정호), 정진업전집, 신고송문학전집(김봉희), 허민전집, 서덕출전집, 파성 설창수문학의 이해(김봉희 외) 등을 내면서 업적의 탑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아는 사람들은 소리없이 박수를 치고 있을 것이다. 조향처럼 이덕 시인도 아직 시집 한 권 내지 않고 있다. 그의 스승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덕시인은 “조향 시인은 캠퍼스 안에서 멋쟁이었어요.상아 파이프에 양담배를 반으로 잘라 비벼넣고 연기를 후 불어내었지요. 술은 양주 아니면 먹지 않았고 인상은 언제나 단정했어요.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고 양복 바지는 칼날같이 줄이 섰어요. 양복을 입고 학교에 나온 학생에게는 ‘너 완월동 한 번 다녀와라.’고 농담반 진담반 권고하는 것도 보았지요. 이런 언행이 슈르풍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덕 시인은 또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조선생은 교과서를 직접 저술해 강의했고, 서양 이론에 해박했다는 기억이 납니다. 당시 ‘사상’(월간), ‘신태양’ 등에 연재를 했고 졸업생들 취직 추천서를 귀찮다 하지 않고 써주었지요. 나도 추천서를 하나 받았지만 써먹지 않았지요. 그리고 학교신문 시단에 시를 써내면 조선생께서 뽑아 시평을 써서 발표를 시켜 주었는데 나는 3번 발표를 한 기억이 있어요. 김토근 수필가는 1번 뽑혔어요.“ 인터넷에서 본 자료 가운데 K모씨의 회고를 읽어보면 조향시인이 동아대학교 교수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대목이 나온다. 당시 J씨가 총장이었는데 느닷없이 조향 교수가 총장 후임 출마설이 떠돌았다는 것이다. 술집에서 나온 설인지, 근거는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조향 시인은 오너 총장의 눈 밖에 났다는 것 아닌가. 조향 시인은 결국 대학을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미련없이 사표를 던졌다. 1967년경 필자가 명지대학에서 열린 국어국문학 학술 발표회에 갔을 때 조향 시인이 주제 발표자에 끼여 있었는데, 그때 먼빛으로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셈이었다. ====================================시 바다의 층계 해설==========                -(1952)-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초현실주의적, 모더니즘적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현대문명과 상대적으로 무력하게 된 인간의 명암이 미묘하게 깔리면서, 도처에 극적인 이미지의 전개가 참신하다. 대개 이미지는 시인의 관념의 도구로써 쓰이게 마련인데, 이 시에서는 이미지 그 자체로 동원되어 한 편의 시를 이룬다. 이렇게 해서 순수시, 절대시가 되고 만다. 초현실주의 시가 난해하면서도 읽으면 매력이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시는 1950년대 초현실주의 작품을 썼던 조향 시인의 대표작이다.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평자들은 프랑스 초현실주의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원리를 도입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는 특이하게도 초현실주의 문학 운동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근거한 무의식의 자동기술을 시작(詩作)의 근간으로 삼는 초현실주의 시들은 일반 독자에겐 매우 생소하고 난해하다. 그는 시에 외래어를 대담하게 도입하고, 산문적 · 설명적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면서, 상상의 영역에 절대적 자유를 부여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의식의 심상을 발굴한 후 그것들을 비약 · 충돌하게 하는 초현실주의적 시풍을 우리 현대시에 실험한 대표적 시인이다. 그는 생전에 시집을 내지 않은 걸로도 유명하다. 앞서가거나 독창적인 사람은 대개 이단적이고 저항적이다. 그것이 도전과 공격에 대한 유일한 자기방어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귀재나 천재들의 이해하기 힘든 기벽이나 기행 등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과 문학적 이념이나 노선을 달리하는 다른 문학 집단이나 문학인들과는 아예 교류를 기피했다고 한다. 그는 철저하게 초현실주의 문학을 이론화 · 작품화하는 일에 정열을 기울이며 완고하고 집요하게 자기 영역을 고수했다. 1956년에 조봉제, 이인영 등과 '가이가(Geige)' 동인지를 내었으나 창간호가 종간호가 되었다고 전한다. 1961년 군사 쿠테타 이후 사회정화위원회의 악역을 맡아 부산지역 예술인들의 경원과 기피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특이하다. 그는 항상 당당하고 세속적 평판에는 초연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의 곁에는 늘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비난하는 사람에겐 이렇게 응수했다고 한다. "나는 공개적으로 떳떳하게 연애를 한다. 겉으로 도덕군자연하면서 뒷전에선 온갖 부도덕을 자행하는 위선자들과는 다르다. 초현실주의는 가식을 가장 싫어한다. 사랑이란 삶의 원동력이자 흐르는 물처럼 머무를 수가 없는 것이다." 조향 시인의 장례식 장면을 신태범 작가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유족들과 조객들의 흐느낌 속에 천천히 고인의 관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닦어내며 흐느끼고 있던 한 여인이 갑자기 관을 붙들며 절규했다. "선생님! 이렇게 혼자 가시면 저는 어떡하란 말입니까!" 사람들은 잠시 의혹의 시선을 모았다. 첫눈에도 빼어난 미모의 그 여인은 모두에게 낯선 사람이었다. 여인은 관을 내리고 있는 사람의 팔에 매달리며 계속 울부짖었다. "저도 선생님과 같이 묻어주세요!" 1984년 여름 초현실주의 시인 조향(1917~1984, 본명 조섭제)의 장례식 도중에 일어난 일이다.'   ◆ 시를 왜 낯설게 써야 하는가  낯설게 하기, 즉 데빼이즈망(depaysement)의 본뜻은 고향(paynatal)에 편히 길들어 있는 것들을 일부러 낯선 곳, 타향으로 보내 불편하더라도 낯가림을 겪도록 유도한다는 뜻을 지닌 불어의 어휘(de-paysement)에서 연원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낯선 표현, 낯선 기법에 의해서만 독자나 감상자의 관심과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낯익은 것들은 지겹도록 우리를 지루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그러므로 낯익은 것들은 낡은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우리의 지각을 자극시키기는커녕 우리의 의식을 게을러지게 하거나 무감각하게 만든다. 가령,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라는 농담을 처음 들었을 때는 재미있는 표현에 웃음이 났지만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들었을 경우는 다르다. 이런 관점에서 훌륭한 문학 작품이란 사물을 이화(異化), 끊임없이 낯선 관점으로 이끌어냄으로써 감상자, 관객, 독자의 의식을 혁신적으로 일깨워 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의식이나 언어 습관은 일상화되거나 기계화, 자동화되기 쉽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 새로운 기법으로 기존의 의미나 의식을 파괴하고 자율적 언어에 의한 독창적 의미의 틀을 이끌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일상적인 언어와 자율적인 언어의 차이란 평범한 보행과 예술가의 춤, 안무를 비교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문학적 언어 표현, 즉 자율적인 언어란 무용가가 창의적인 동작을 만들어 안무하는 춤과 같다고 보면 된다. 이와 반대로 일상적인 걸음걸이는 누구나 타성에 젖어 다만 걸어다니는 것 그 자체, 보행만을 의미하므로 무용가가 취하는 낯선 걸음걸이나 예술적 동작, 무대 위의 스텝과는 아무 연관도 없고 목적의식 자체도 다른 것이다. 자율적인 언어란 새로운 표현, 새로운 의미망을 구축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무기력한 언어습관에 의해 무뎌지고 무감각해진 세상을 새롭게 자극, 각성시킴으로써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에 깊이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김영찬) [출처] 바다의 층계-조향|작성자 꿈꾸는 섬   ====================================   EPISODE 외 2       열 오른 눈초리 하잔한 입모습으로 소년은 가만히 총을 겨누었다. 소녀의 손바닥이 나비처럼 총 끝에 와서 사뿐 앉는다. 이윽고 총 끝에선 파아란 연기가 물씬 올랐다. 뚫린 손바닥의 구멍으로 소녀는 바다를 내다보았다.     ---아이! 어쩜 바다가 이렇게 똥구랗니?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 산태바기에다 연달아 머리를 처박곤 하얗게 화석이 되어 갔다.     - 개정증보판 現代國文學粹, 자유장 (1952)             ✽1연 1행과 3연 2행을 필자가 행 가름했음.       바다의 層階           낡은 아코오뎡은 대화를 관뒀습니다     ―――여보세요?     폰폰따리아 마주르카 디이젤 ―엔진에 피는 들국화,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受話器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깃폭들       나비는 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 개정증보판 現代國文學粹, 자유장 (1952)       砂丘의 古典           木版 古書를 넘기는 孔子 蒼然한 시간의 上流에서 침침한 咿 唔     伽藍 병머리에 석양이 퇴색하고 외로운 文王鼎     東坡冠 고쳐 쓰고 때묻은 보선 銀長竹 빼어 물고 모두 양반이었다.     Magi는 西쪽으로만……     砂丘를 靑午 타고 「아라비아」로 가는 老子 달이 파아란 구역질을 한다.     캐라방은 희미한 童話를 싣고 가고 오고,     새지 않는 밤 東洋, 밤 다음 페에지에서 낭랑한 지각생 點呼 소리     - 韓國戰後問題詩集, 新丘文化社(1961)         초현실주의의 교주, 조향 시인 에피소드                                                                    이유식   조향 시인은 1917년생으로 1984년 6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특히 부산에 거주하고 있을 50년대나 60년대에는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는 쉬르레알리즘의 이론가이며 실천가이었다. 그가 봉직했던 동아대학교에서는 자기류의 목소리로 명교수란 명성을 얻었고 또 그를 따르는 후배들이나 제자들에게는 가히 우상이요 교주였다. 그는 1940년에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시가 입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조향은 필명이고 본명은 섭제이다. 일본의 시와 시론을 읽고 후에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모더니즘과 초현실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중앙시단에 널리 알려진 것은 46년도에 출발한 시 동인지 ‘로만파’에서 박목월, 김춘수, 유치환, 서정주, 이호우와 함께 동인 활동을 하면서 부터였다. 그 다음이 ‘후반기’동인으로서의 참가였다. 이 동인회는 비록 49년도에 결성은 되었으나 6.25가 나자 부산으로 피난해 온 김경린, 박인환, 이봉래, 김규동 등과 모더니즘을 다시 계승하며 발전시킨다는 취지로 출발은 했다.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회원 간에 뜻이 맞지 않아 비록 2년 만에 끝나버린 모임이긴 하지만 대신 시인으로서 그의 이름과 교류의 폭은 넓혀주었다. 그는 경남 사천군 곤양면 출신이고, 진주고보를 나와 대구사범 강습과를 거쳐 일본 니혼대학을 중퇴했다. 키는 작은 편이었지만 용모는 맹랑 궂은 듯 하면서 예리해 보였고 평소에 늘 멋쟁이 인상을 풍겼다. 동아대학 설립자인 정재환 총장과는 처남매제 간인데 갓 30 나이인 1947년부터 일찍 동아대 교수가 되었고 그후 학장으로 또 도서관장으로 있었다. 내가 조시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내가 문단에 나와 2,3년이 지난 60년대 초반의 부산시절이었다. 그분이 주재하고 있던 동인회 ‘일요문학회’모임에 평소 알고 지내던 그 동인 중의 한 사람이 조시인과는 바로 고교 동문이 아니냐며 해서 인사도 드릴 겸 그냥 구경삼아 두어 번 참석 한 적이 있다. 같은 서부 경남 출신에다 현재 진주고등학교의 전신인 진주고보의 후배라고 그나마 다정히 대해 주었다. 모교 진주고보로 보면 평론가로서는 제 1호요 또 자기 뒤를 바로 이은 고교의 문단 후배로서는 두세 번 째라면서 매우 기뻐도 했다. 그런데 그분은 그의 저돌적 성격과 안하무인 격의 유아독존적 행동 때문에 부산에서 종종 화제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내가 들은 이야기나 직접 알게 된 이야기만 해도 서너 가지가 된다. 첫째가 6.25 때 이야기다. 부산 피난시절 삶의 뿌리가 뽑힌채  서울에서 내려온 문인들을 갓 30대 초반의 나이에 교수라는 단단한 신분을 바탕삼아 심한 홀대를 했다. 마치 부산지방의 성주인양 중앙문단이 이제는 자기의 휘하에 들어와야 한다는 듯한 언행을 보여 눈엣 가시처럼 보였다. 이로 인해 수복 후 그는 중앙문단에서 완전 고립되다시피 되었다. 두 번째는 60년대 초에 있었던 세칭 동아대학 학생들의 ‘부산일보 습격사건’ 이다. 당시 조시인은 44세였는데 이 사건은 그가 조종했다고 뒤에 판명되었다.  시소유로 되어 있는 구덕공원을 동아대학이 캠퍼스 확장을 위해 그 점유를 기도하자 부산일보가 크게 반발하여 여론몰이에 나셨다. 이에 부산일보를 타도해야 한다고 학생들을 동원해 부산일보사로 몰려가 난동을 부리게 했던 사건이다. 부산 지역신문과 동아일보에 대서특필된 사건이다. 이 일로 차기 총장 자리를 노린다는 낭설이 돌고 또 총장과도 사이가 점점 소원해지자 결국 20여 년간 봉직했던 대학을 물러나 그 후 60년대 후반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 왔던 것이다. 세 번째는 김상옥 시인과의 불화와 맞고소 사건이다. 평소 부산사회에서 김상옥 시인과 조향시인은 견원지간이었다. 마침 62년도에 한국문학가협회 경남지부장을 김상옥 시인이 맡고 있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조향시인과의 사이에 고소사건이 발생했다. 조시인은 결국 지부 회원에게서 제명처분을 당했는데, 이에 관한 일련의 사건 역시 지역신문에 크게 오르내렸다. 네 번째는  많은 염문도 뿌렸다. 그중 김춘방이란 시인과의 연애사건이 부산 사회에서 한때 화제가 되었다. 김시인은 경기여고  출신의 재원이었다. 6.25 전쟁 중에 중국인과 뜻하지 않는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동아대 국문과 대학원의 제자가 된 것이 인연이었다. 그녀는 60년대 광복동의 멋쟁이로 통했다. 까만 스카프에 까만 원피스를 즐겨 입고 다녔는데 조향의 시에 자주 나오는 ‘검은색’을 직접 의상에다 실천하고 다닌다고 수군대기도 했다. 그녀는 70년대 초에 서울로 올라 왔는데 그나마 아는 사람이라고 전화가 와서 한번 만났는데 결국은 자살로서 인생을 종지부 찍었다는 소식을 아주 늦게야 알았는데 웬지 가슴이 아팠다. 또 하나 들은 일화가 생각난다. 어디서건 초현실주의 교주라 그를 따르는 소수의 제자들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서울에서 장례식 날 하관할 때 26세의 초등학교 여교사가 관을 붙들고 늘어지면서 ‘저도 함께 묻어 달라’ 고 울부짖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이런 저런 화제를 남긴 조시인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70년대에는 명지대에서 강사생활을 했고 또 생전에는 시집을 내지 않았던 분으로 유명하다. 시의 자동기술법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장소에 이외의 물건을 갖다 놓고 낯 선 충격을 창조한다는 ‘데페이즈망’ 기법 등 이른바 초현실주의의 시학을 금과옥조처럼 선전 했던 그는 성격 때문에 고립을 자초된 셈인데,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그는 능력도 있고 재치와 패기도 있는 시인인데 결국 부산에서건 서울에서건 어쩌다 시단의 주류에 들지 못하고 동시에 문예지에서도 소외를 당해 늘 변방에서만 맴돌다 이렇다 할 큰 평가를 받지도 못한 채 참 아깝게 간 셈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던 유일한 탈출구가 바로 동인활동 외에는 달리 없었던 듯도 싶다. 그처럼 동인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문인은 우리 문단에서는 그 아무도 없다. 50년도 전후에 결성된 ‘후반기’동인, 56년도에 결성된 ‘가이거’(Geiger)동인, 62년도에 결성된 ‘일요문학회’동인, 그 후 서울로 옮겨와서는 73년도에는 ‘초현실주의 연구회’를 만들었고,78년도에는 다시 한국시의 새로운 변모라는 목표 아래 김차영,박태진,박희선,이원섭, 정귀영과 함께 ‘전환’동인으로도 참여했다. 이외에도 한두 개 더 보탤 수 있는 동인 활동도 있는데 이런 모든 사실들이 바로 그런 해석을 가능케 해주는 사례들이 아닐까 싶다.   나는 지금 서부 경남 출신의 대선배 아니 나의 모교 진고 대선배의 이 글을 마치며 하나의 교훈을 얻고 있다. 비록 좀 시대가 지난 듯한 문학운동에 일생을 바치다시피 했지만, 뭐니 해도 문단 활동에서는 능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자기관리도 중요하단 사실을 확인해 보고 있다. 만약 조시인께서 이런 인간관리를 잘만 했다고 가정하면, 그의 시단의 위상은 물론 평가도 훨씬 달라졌을 것이고, 달라져 있으리라 본다.    아무튼 극히 소수였지만 그를 따랐던 후배나 제자들에겐 하나의 신화였고 우상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한국에서 초현실주의라면 그를 따를 자 아무도 없었으니 다시 재평가 되었으면 한다.   ==================================================       시인 김규태의 인간기행 ㅡ조향의 빛과 그늘 극우 이념성향… 문단'이단아' 낙인 군사 정권시 매카시즘 광풍 주도 스캔들 폭로·신문사 테러 전력도 현대시 업적, 저돌적 기질에 묻혀         조향은 항시 빨간 페인트 통을 들고 다니는 시인으로 보였다. 빨강 물감을 가득 채워놓고 필요할 때마다 뿌리고 칠하기 위해서다. 물론 그는 페인트공은 아니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현대시의 전파자요, 창조자인데다 그 힘이 쩡쩡 구덕골을 울리는 동아대 교수였다. 아니 교수 중의 교수로 자부했던 사람이다. 그만큼 그 자신의 시나 쉬르레알리슴에 관한 강의는 딴 사람의 추종을 용납하지 않는 독보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어찌된 영문인지 기성문단에선 아예 기피당하거나 상종하지 않으려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었다. 부득불 그에 대한 사나운 인심의 근원을 찾자면 한국전쟁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눠 그가 인심을 잃은 얘기를 해야겠다. 그는 기회만 있으면 이념 문제를 들고 나와 동료나 선배 문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더구나 5·16군사쿠데타 때는 군부가 지휘하는 사회정화운동에 적극 참여, 그 나름대로의 안목으로 대상자를 골라 빨강 리스트에 올리는 역을 맡았다. 이러한 사실은 그 보조역을 맡은 그의 제자 교수가 증언한 바 있다. 1970년대 어느 날, 서울의 박남수 시인이 부산에 내려왔다. 전화로 '부산 커피'에 좀 나오라는 것이었다. 광복동에 있는 이 다방은 조향이 잘 가는 곳이었다. 얼른 내키지는 않았으나 필자를 문단에 데뷔시켜 준 분의 말이라 거역할 길이 없었다. 그 자리에 놀랍게도 박남수는 조향과 마주 앉아 있지 않는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내색은 할 수 없고 차를 함께 마셨다. 비단 박 시인뿐 아니라 피란 온 북한출신 문인들이 그의 붉은 리스트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 일단 빨간색으로 낙인찍히면 살아남기 어렵고 살아난데도 생존자체가 위협을 받는 때가 아니던가. 박남수는 부산에 내려올 때마다 맨 먼저 자신에게 페인트칠을 한 조향을 왜 만나는 것일까. 박남수 시인은 "그가 나에게 용서를 빌었기 때문"이라고 짤막하게 털어 놓았다. 용서를 빈 자에 대한 예우로써 부산에 오면 맨 먼저 만난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관용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이데아 문제'로 다른 사람의 가슴에 페인트칠을 한 경우지만 다른 사례 하나는 얼굴에 페인트칠을 하여 창피를 준 일대 폭로사건이 있었다. 부산이 피란 수도 때이다. 당시 주간지에 한 페이지에 걸쳐 김동리와 손소희와의 스캔들이 대서특필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조향이 직접 제공하고 쓴 기사였다. 이들 두 작가는 정식으로 재혼이 이뤄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적잖은 파문이 일었다. 두 사람이 한낮에도 남포동 한가운데를 팔짱을 끼고 활보한다니, 그들의 아지트가 영주동 산기슭에 있다느니 하는 매우 구체성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피란지 부산 문단이 곧 중앙문단이었던 시절이다. 피란 온 문인들은 물론 부산쪽 문인들까지 충격을 받을 만한 기사였다. 조향의 저돌적 기질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기성 문단의 우상에 대한 파괴적 행동양식이라고나 할까. 해석 나름의 폭로기사가 그를 일약 겁을 모르는 '부산의 나이트' 쯤으로 인식되게 했다. 그런가 하면 70년대에 와서 동아대의 캠퍼스 확장 문제와 구덕공원 점유관계를 둘러싸고 부산일보가 시민 편에 서서 동아대를 한창 공격하고 있을 때 그가 부산일보를 타도하는 일선에 나섰다. 윤전기에 모래 한 줌 뿌리면 끝장 보는 일이라고 부산일보 바로 뒤에 있는 마로니에 다방에 앉아 거의 공개적으로 테러를 지휘하기도 했다. 당시 동아대생들이 편집국에 난립, 곤봉을 휘두르고 집기를 부수는 등 일대소동이 벌어졌다. 위의 몇 가지 예를 보듯이 그가 극우적 행동 양식에 젖게 된 것은 해방공간에서 좌파인 건준(建準) 일부 적색인사와 투쟁한 전력 이후라니 그 속내를 소상히 헤아리기 어렵다. 결국 서울 등지의 예술인들에게도 이념적 공세를 가해 기피인물로 간주됨으로써 그의 쉬르레알리슴 운동조차 순수하게 바라보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조향의 문학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그가 재직한 동아대에 대한 충성은 지극했다. 부산일보를 상대로 한 그의 행동만 봐도 총장이 탄복할 만한 일이 아니던가. 감히 신문사를 상대로 테러를 감행하다니….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이 차기 총장을 노린다는 모함에 휩쓸려 동아대를 떠난다. 그가 당시 병원에 입원중인 정재환 총장을 만나 해명하려 했으나 정 총장은 이미 결심을 한 터였다. 조향은 예닐곱 번이나 병상을 찾아갔다. 총장은 조향이 왔다하면 눈을 딱 감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쪽으로 오면 총장은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저쪽으로 다시 가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고 자신이 설 자리를 잃은 것을 확인한 그 날 돌아와 짐을 꾸리고 무작정 서울로 떠나야 했다.     시인 김규태의 인간기행 ㅡ조향의 빛과 그늘 거침없는 연애 즐긴 고독한 별 여교수와 팔짱끼고 광복동 거리 활보 장례식때 젊은 여교사가 관 붙들기도 문단서는 냉대받아 쓸쓸한 말년 보내       쉬르레알리슴의 왕국에서 미완의 황제로 군림했던 조향. 그는 일상인으로서, 자기류 시학의 명교수로서 명성을 얻었으나 한 인간으로선 끝내 한을 품고 사라진 고독한 별이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며 다닌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부산의 환락가는 광복동 거리였다. 서울의 명동과 진배 없었다. 조향은 이 거리를 너무 당당히 보란듯이 D대 체육과 여교수와 팔짱을 끼고 다니는 것쯤은 예사로 여겼다. 60년대는 지금의 시각과는 아주 딴판의 시대였다. 조향은 이 거리에서 제자들을 만나도 스스로 팔짱은 풀지 않는다. 언제나 푸는 쪽은 여인 쪽이다. 조향은 거리에서 제자를 만나 곁에 팔짱을 끼고 오던 여교수가 팔을 풀면 그 여교수를 향해 "좋아하는 사람의 팔짱을 끼고 걷는 것이 뭐가 부끄럽고 죄가 된다고 주저해. 여기 걸어 다니는 저 신사들도 알고 보면 다 위선자야." 그는 이렇게 사뭇 비분강개조로 설파한다. 도리어 제자들이 질려 그 자리를 뜨고 싶어 한다. 여류 시인 김춘방과는 아예 드러내놓고 팔을 끼고 다녔다. 필자도 여러 번 목격했던 사실이다. 김춘방과의 사이에 낳은 딸애를 집에 데려와 기른다는 말과 자기 큰딸이 그 애를 좋아해서 참 다행이란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 이전 50년대 후반에는 같은 과의 제주도 출신 J양과의 염문이 파다했다. 그는 23세 때 첫 결혼했으나 첫 부인과의 중매에 불만을 품고 초등학교 교사시절 동료와 사랑에 빠지고, 일본인 여교사와의 염문이 말썽이 되어 좌천되기도 했다. 줄곧 별거 해오던 첫 아내와 이혼하고 재혼하지만 그의 여성 편력은 그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속말을 숨기지 않고 털어 놓는 제자가 바로 신라대 총장을 역임한 시인 김용태다. 그의 전언에 따르면 여인들을 가까이 두는 이유를 물었더니 "이 사람아, 사랑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어. 사랑이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위대한 힘"이라고 말했단다. 이를테면 명예나 돈이 아무리 있어도 애틋한 사랑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다. 김춘방이 늘 불쌍하다고 말해 왔다. 춘방이 일탈의 삶을 산 까닭도 6·25전쟁 중 중국인과의 뜻하지 않은 결혼이 가져온 결과였다. 그녀가 나중에 자살한 것도 결혼 생활의 불행과 더불어 아들의 걷잡을 수 없는 탈선이 복합되었기 때문으로 보고들 있다. 그녀는 경기여고를 나왔고 부산 최초로 부산극장에서 발레를 추었고 그 뒤에 시를 썼다.     용두산 공원 내 조향 시비.    그는 여인들과의 관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초현실주의는 위선을 가장 혐오한다. 그것이 사실주의와 다른 점이다. 연애를 하려면 위선적으로 사실주의적으로 하지 말고 자기처럼 초현실주의로 당당하게 해야 옳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60년대의 일이니 망정이지 요즘 같은 세태였다면 조향은 여인 편력 그 하나만으로도 강단에 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의 여인 편력은 서울에 가서도 쉬지 않아 기어이 장례 날 하관 때 일이 터졌다. 조향의 시신을 하관하려 할 때 26세의 초등학교 교사가 관을 붙들고 늘어졌다. 사랑은 당당히 초현실주의로 해야 가장 순수한 것이라는 교조적 신앙을 가졌던 그의 초현실주의의 연구회 회원이 주위의 눈을 전혀 의식치 않고 몸소 실천한 것이다. 대담하게도 관을 붙들고 "선생님! 저를 두고 어디로 가시렵니까." 그리고 "저도 함께 묻어 달라"고 울부짖었다. 그 울부짖음이 지나치다 보니 옆에 있던 부인이 "저 년도 어서 같이 묻어라"고 고함쳤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그의 시비는 사후에 용두산 공원에 '부산을 살다간 시인' 속에 포함되어 다음 시가 돌에 새겨졌다. '열 오른 눈초리, 한잔한 입모습으로 소년은 가만히 총을 겨누었다/ 소녀의 손바닥이 나비처럼 총 끝에 와서 사뿐히 앉는다. 손끝에선 파아란 연기가 물씬 올랐다./ 뚫린 손바닥의 구멍으로 소녀는 바다를 내려다 봤다. / -아이 어쩜 바다가 이렇게 똥구랗니?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산태바기에다 연달아 머릴 처박곤 하얗게 화석이 되어 갔다.'('EPISODE' 전문) 시인 조향은 1917년 경남 사천군 곤양면에서 태어나 진주고보를 나와 대구사범 강습과를 거쳐 일본대학 예술학원에서 수학했다. 1940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첫날 밤'이 입선되어 문단에 발을 디뎠다. 그는 일찍 동아대 국문과 교수와 문과대학장을 역임했으나 말년은 쓸쓸했다. 문단 쪽에서 그를 반기는 이가 거의 없다시피 해 서울로 온 뒤 그의 초현실주의 시학에 동조하는 모임이 있던 강릉 해변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67세, 1984년의 봄이었다. 문학과 일상의 행위가 모순되는 일은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비록 그의 죽음은 릴케 같은 아름다운 모순의 죽음이 아니더라도 문학은 문학대로 평가해야 하는 경우다. \\\\\조향시인 일화\ 시인 김규태의 인간기행 -시인 김상옥의 익살 "예수는 도적… 나는 예술의 킹…" 특유의 해학… 전세 살며 고가 백자 구입 12세때 시 발표, 반일로 세차례 감옥살이 조향과 법정싸움 벌여 사과 받아내기도       가람 이병기, 노산 이은상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인 시조시인이었던 김상옥 선생의 생전 모습.   초정 김상옥이 부산 남성여중에 재직할 때 처음 찾아 뵈었다. 고교 졸업반 학생으로서 그의 시조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그런 용기를 부린 적이 없는 주제에 문단의 대가를 만나볼 생각을 실천에 옮겼던 것은 내겐 대견한 일이었다. 필자가 그의 시조집 '초적'을 비롯, 시집 '고원의 곡' '이단의 시' 등 처음부터 나온 작품집을 죄다 가지고 있다고 했더니 몹시 반가워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는 내 이름을 수첩에 기록했다. 그때 받은 미소가 몹시 따뜻하여 가슴에 오래 남아 있었다. 초정이 처음 시를 발표한 것은 12세에 쓴 동시 '꿈'이다. 이 시인과 가장 오래도록 친근했던 역사학자 김재승 씨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1932년 통영보통학교 4학년 때 프린트 판 교지(여황의 여록)에 발표한 것이다. 대단한 조숙이다. 그는 일찌감치 타고난 재간의 소유자였다. 초정은 그토록 아름다운 언어의 주술사로서 우리 시사, 특히 시조문학에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는 나아가 시적 재능의 발휘에만 만족한 것이 아니었다. 남다른 민족애를 지닌 애국자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였다. 일제 때 사상범으로 세 차례나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장기간 할 정도로 정의감, 민족애를 가슴에 불덩이처럼 안고 살았다. 일본 경찰에 쫓겨 고달픈 유랑생활을 하면서도 우리의 수많은 진정한 애국지사들에 비하면 자신은 너무나 미온적 행동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성격은 칼날 같은 데가 있지만 그런 성깔은 함부로 부리지 않았다. 예컨대 부산시절인 1960년, 동아대 교수이자 시인 조향이 주관한 부산예술제를 가리켜 "예술제가 아니라 마술제"라고 비꼬아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조향이 발끈한 것 까지는 이해하지만 급기야 모 일간지에 초정을 두고 남의 시를 훔치는 '도벽시인'이라고 모함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초정의 격분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무학이나 다름없는 초정이 대학을 배경으로 업은 교수의 힘이 막강한 줄 알지만 그렇다고 굴할 수는 없었다. 김상옥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하여 조향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사회저명 인사들과 문인들, 특히 월탄 박종화, 미당 서정주를 비롯하여 문단 중진들까지 흔쾌히 서명에 동참했다. 이미 피란시절에 서울 문인들을 홀대하여 인심을 잃은지 오래인 조향을 상대한 싸움이고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재판정에서 조향은 원고를 벌하길 바라지 않는다고 했고, 초정은 "조향을 엄벌할 것"을 바란다는 단호한 자세를 취했다. 과오를 인정한 조향으로부터 화의 제의를 받아들여 서울과 부산의 일간지에 사과광고를 내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초정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아 교사자격증이 있을 리 없다. 그는 만년 강사로 지냈지만 어느 정규교사보다 든든하고 존경받는 그런 교사생활을 영위했다. 그의 주옥 같은 작품들이 교과서에 몇 편씩이나 실려 있기 때문만도 아니다. 시·서·화 삼절에다 전각까지 그 솜씨가 비범하여 찬탄을 들을 만했다. 그런 반면 너무 엄격한 나머지 제자를 일상적인 정분에 얽매여 문단에 추천한 일이 없다는 사실, 정부가 주는 문화훈장 같은 걸 거절하는 기개에 이르면 보통사람이 쉬이 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초정은 또 특유의 재치와 해학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해 양가가 독실한 크리스천 집안의 주례를 맡은 적이 있다. 자신은 크리스천이 아니지만 성경을 들고 갔다. 양가 가족과 친지들이 무슨 말을 하느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첫 마디가 "예수는 이 지상에서 가장 큰 도둑입니다"로 시작되었다. 이 말이 떨어지자말자 참석한 교인들은 모두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자못 비분강개하는 분위기였다. 혼란스러워질 판이었다. 곧 이어 "생각해 보세요. 인류역사상 예수만큼 오래도록, 그리고 많은 인간의 마음을 도둑질해간 분이 또 있습니까? 마음을 많이 뺏기면 뺏길수록 행복한 것이 우리 신자들 아닙니까?"라고 슬쩍 말머리를 돌렸다. 이만한 비유법을 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엔 화가 났던 교인들이 웃으며 돌아갔다는 일화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스스로 자신을 한국의 '스리 킹' 중의 하나라고 했다. 권력의 킹은 ..., 돈의 킹은 이병철, 예술의 킹은 단연 자기라고 했다. 그 이유란 이렇다. 자신이 2000만 원짜리 전셋집에 살 때 4000만 원짜리 조선조 백자를 샀다. 이병철이 백자나 청자를 10억 원을 주고 사는 것은 쉽다. 자신의 경우처럼 전셋집값의 배를 던져 사는 것은 그만큼 예술품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가 그 점에선 왕임을 자부한다는 익살이다./국제신문 기고 \\\\\\\ 장미와 수녀의 오브제 ​      조향(趙鄕 1917.12.9~1985.7.12) ​ ​ ​ ​  하얀 아라베스크 짓궂게 기어간 황혼   낙막(落寞)이 완성된 꽃밭엔   수 많은 수녀의 오브제.   인생이라는. 그럼.   어둠침침한 골목길에서   잠간 스치며 지나보는 너를…….     영구차가 전복한 거리거리마다에서   비둘기들은 검은 까운을 휘감고   푸른 별이 그립다.     내가 서 있는 소용도는 상황에   짙은 세피어의 바람이 분다.   까맣게 너는 서 있다.                네가 사뿐 놓고 간 검은 장미꽃.   내 이단(異端)의 자치령에   다시 꽃의 이교(異敎)를 떨어뜨려 놓고.   들국화 빛으로 하늘만 멀다.     taklamakannakamalkata   사막의 언덕엔 갈대꽃   갈대꽃밭 위엔 파아란   이상(李箱)의   달.     달밤이면   청우(靑牛) 타고 아라비아로 가는   노자(老子).     꽃잎으로 첩첩 포개인   우리 기억의 주름 주름 그늘에서   먼 훗날 다시 서로의   이름일랑 불러 볼 것인가!     패배의 훈장을 달고   예상들이 줄지어 걸어가고 하면…….     포르말린 냄새만 자꾸 풍기는   새까만 지구 위에서   어린애들의 함잉 소리만 나고‥….   메아리도 없이 하 심심해서   나는 요오요오나 이렇게 하고 있다. ​ ​ ​ 월간 『현대문학』 1958년 12월호 발표             조향(趙鄕 1917.12.9~1985.7.12) 시인     ​ 1917년 경남 사천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섭제(燮濟). 시인 봉제(鳳濟)는 그의 동생이다. 진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대구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한 뒤, 1941년 일본대학 상경과를 중퇴했다. 8·15해방 후 마산상업고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노만파 魯漫派〉를 주재했다. 이어 동아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가이거 Geiger〉·〈일요문학〉 등을 주재했고 모더니즘 시를 내세웠던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했다. 1953년 국어국문학회 상임위원과 현대문학연구회 회장, 1974년 한국초현실주의 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1941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시 〈初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뒤, 〈Sara de Espera〉(문화세계, 1953. 8)·〈녹색의 지층〉(자유문학, 1956. 5)·〈검은 신화〉(문학예술, 1956. 12)·〈바다의 층계〉(신문예, 1958. 10)·〈장미와 수녀의 오브제〉(현대문학, 1958. 12) 등을 발표했다. 특히 〈바다의 층계〉는 낯설고 이질적인 사물들을 통해 바다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읊은 작품이다. 평론으로 〈시의 감각성〉(문학, 1950. 6)·〈20세기의 문예사조〉(사상, 1952. 8~12)·〈DADA 운동의 회고〉(신호문학, 1958. 5) 등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현대국문학수 現代國文學粹』·『고전문학수 古典文學粹』 등을 펴냈다.   \\\\\\\\\\\\\\\\\\\\\\\\\\\\\\\\\\\\\\\\\   검은 전설   조향     하얀 종이 조각처럼 밝은 너의 오전의 공백(空白)에서 내가 그즘 잠시를 놀았더니라 허겁지겁 하얀 층층계를 올라버린 다음 또아리빛 달을 너와 나는 의좋게 나눠 먹었지 옛날에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고대(古代)의 원주(圓柱)가 늘어선 여기 내 주름 잡힌 반생을 낭독하는 청승맞은 소리 밤이 까아만 비로오드의 기침을 또박또박 흘리면서 내 곁에 서 있고 진흙빛 말갈(靺鞨)의 바람이 설레는 하늘엔 전갈이 따악들 붙여 있다 참새 발자국 모양한 글자들이 마구 찍혀 있는 어느 황토 빛 영토의 변두리에서 검은 나비는 맴을 돌고 아으 다롱디리! 안타까비의 포복(匍匐)이 너의 나의 육체에 의상(衣裳)처럼 화려하구나 나는 골고다의 스산한 언덕에서 마지막 피를 흘린다 나의 손바닥에서 하얀 네가 멸형(滅形)하고 나면 물보라 치는 나의 시커먼 종점에서 앙상하게 걸려 있는 세월의 갈비뼈 사이로 레테의 강물이 흐른다 나는 검은 수선꽃을 건져 든다 쌕스폰처럼 흰 팔을 흔드는 것은 누굴까! 팔목에 까만 시계줄이 감겨 있다 인공위성 이야길 주고 받으면서 으슥한 골목길로 피해 가는 소년들의 뒤를 밟아 가니까 볼이 옴폭 파인 아낙네들이 누더기처럼 웃고 섰다 병든 풍금이 언제나 목쉰 소리로 오후의 교정을 괴롭히던 국민학교가 서 있는 마을에 아침마다 파아란 우유차를 끌고 오던 늙은이는 지금은 없다 바알간 석양 비스듬히 십자가 교회당 하얀 꼬리를 흔들면서 지나가는 바람결에 항가리아 소녀 탱크에 깔려 간 소녀들의 프란네르 치맛자락이 명멸한다 소롯한 것이 있다 아쉬운 것이 있다 내 어두운 마음의 갤러리에 불을 밝히러 너는 온다 지도를 펴 놓고 이 논샤란스의 지구의 레이아웃(layout)를 가만히 생각해 보자 내일이면 늦으리 눈이 자꾸 쌓인다.       작가 : 조향(1917-1984) 본명 섭제(燮濟). 경남 사천 출생. 일본에 유학, 니혼[日本]대 상경과 수학. 유학중 반일사상의 혐의를 받고 일경에 체포. 194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첫날밤」이 당선되어 등단. 광복 후 마산상고 재직시에 『노만파』를 주재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고, 이어 부산에서 『후반기』 동인으로 참가했으며 한편 『가이거』, 『일요문학』등의 동인지 주재. 동아대 문리대학장 명지대 강사 등을 역임.   그는 시에 외래어를 대담하게 도입하고, 산문적․설명적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면서, 상상의 영역에 절대적 자유를 부여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의식의 심상을 발굴한 후 그것들을 비약․충돌하게 하는 초현실주의적 시풍을 우리 현대시에 실험한 대표적 시인이다.   생전에 시집을 남기지 않았다.     < 감상의 길잡이 >   조향은 기성의 문학적 질서와 권위를 철저히 부정하고 새로운 작품의 창작을 선언한 동인의 일원이다. 전후세대 시인들의, 전세대의 암울하고 상투적인 문학에서 벗어나 1950년대 즉 20세기의 후반기 문학을 선도한다는 선언과 함께 시작된 동인의 시에서도 역시 식민지 시대의 암울과 해방공간의 혼란, 전쟁의 참혹한 기억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시는 일몰 시간에 일어나는 사물의 변화와 화자의 심경의 변화가 검은색을 주조로 하여 암울하게 묘사되어 있다. `까아만 비로오드', `진흙빛 말갈', `검은 나비', `시커먼 종점', `검은 수선꽃', `까만 시곗줄', `어두운 마음' 등의 검은색이 당시의 음울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오전의 공백(空白)'이 `바알간 석양'으로 바뀌는 저녁 나절에 깃든 것은 마치 `골고다의 스산한 언덕'과 같은 스산함이며 `마지막 피'가 연상시키는 절망과 희생뿐이다. 멀리 `항가리아'에서 소녀들이 `탱크에 깔려 간'다는 절망적인 소식이 전해지는 `지구'와 `내일'에 대한 불길한 상상과 묘사가 이 시의 주제이다.   `내일이면 늦'을듯이 눈이 자꾸 쌓이는 암담한 석양 풍경이 곧 화자의 내면풍경일 것이다. 시간의 흐름은 `레테의 강물'로 흐르면서 망각을 일으키고, 이러한 망각의 흐름 속에서 시간과 인생이란 `잠시 놀았'다가 `허겁지겁' 석양이 되는 해의 모습처럼 늘 조급하고 무의미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시간에 화자는 `지구의 레이아웃' 즉 `지도'를 펴놓고 우울한 미래와 같은 `검은 전설'을 예감하고 있다.   시인이 검은 색과 우울한 풍경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인간성과 일상의 평화가 존재 조건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폐허 의식으로 확대되는 도시 풍경일 것이다. 전후의 세상이란 시민들의 합창이 가득한 새로운 도시를 꿈꾸었던 젊은 시인들도 벗어나기 힘든 마치 늪과 같은 침체이며 우울이었음을 우리는 이 시를 통해 느껴볼 수 있다. [해설: 이상숙]      인쇄 블로그 카페 북마크
834    충동적으로 쓰고마는 詩는 아마추어들이 하는 짓 댓글:  조회:4740  추천:0  2016-01-03
                                    전위적인(avantgarde) 시(시론)의 비극적 종말                                                                                                                                                                                             - 최 이 인   * 글 머리   우리 한국의 현대 문학사를 되돌아 보면, 해방후(1950년대) 조 향 시인을 중심으로 “초현실주의” 시작품 활동이 있었고, 나중에(1960년대 이르러) 김춘수 시인을 대표로 하는 “무의미 -탈관념” 시 운동이 있었다. 그 뒤를 이어 문덕수 시인이 사물시 이론을 근거로 시작품을 내놓았었는데, 최근에(2000년대) 이르러 월간 “詩文學“지와 ”현대시인협회“의 일부 회원들을 중심으로 ”디지털 시“ 운동에 이어서 ”하이퍼 시“ 운동을 적극 펼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라 안에서 시작품의 창작활동이 오로지 시문학 본연의 전통에만 매달려서 천편 일률적으로 고정되어 있다면, 말이 옳든 그르든 예술활동의 정체성을 느끼게 해줄 것이고, 진부한 일상성에 싫증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탈(脫) 모던이즘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적극적으로 실험적인 시짓기를 통해 시의 소재와 내용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또 한편으로는 이른 바 아방가르드(avantgarde)라고 하는 전위적인 시작활동을 통해 현대적 사고의 흐름에 부응하며 인터넷 정보화시대의 기술과 그것을 이용하는 젊은 세대의 독자 수준에 부응하는 전달 방식을 찾아서 다양한 방향으로 시도해 보는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여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하고 거침없는 시 창작활동에 비판적인 검토를 수행하여 문학 정신의 적절성을 따져보며 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넓은 철학적 식견을 가지고 그 운동 경향에 반성할 여건을 마련해주지 않는다면, 언어의 예술인 시문학이 예술창작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실로 겉잡을 수 없이 “무-의-미”한 “말놀이, 언어의 유희”에 그칠 위기에 빠지고, 가뜩이나 독자가 떠나간 시 마당에서 시인이라는 이들만이 더욱 외롭게 웅크리고 서로만 바라보고 살 위험이 도사리게 될 것이란 사실은 많이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저들 곧 “초현실주의 시- 무의미(탈관념) 시- 디지털 시- 하이퍼 시” 라는 전위적인, 앞서나가는, 시작(詩作) 운동을 주의깊이 관찰하면, 주장하는 사람이나 시기의 앞뒤 그리고 사용된 소재와 용어만 조금 다를 뿐, 심상운시인의 주장처럼 “탈관념을 지향한다”는*1) 관점에서 한 통속에 넣어놓고 분류를 해도 좋을 만큼, 많은 닮은 꼴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것들이 정신병환자들을 많이 상대해본 시인의 체험적 입장에서 냉철하게 분석해 볼 때, 정신병 환자 정확하게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이른 바 자유연상에 의한 환상적 이미지들로 풀어놓는 홀로 떠들음, 중얼거림, 지껄임 짓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아래서 이 논평문은 먼저 이른바 “무의미(탈관념) 시-초현실주의 시- 디지털 시- 하이퍼 시”운동을 주도한 시인들의 주장을 제시해서 그 유사한 점을 드러내어 한 통속에 넣어 분류할 수 있음을 밝힌다. 다음으로 그 주장하는 이론과 견해 그리고 시작품들이 단순한 의구심을 넘어서, 정신분열증 환자의 증상과 표현에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아 쉬 구별을 할 수가 없을 정도라는 사실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시(문학) 일반의 보편적 정신과 이상을 환기하면서 그에 반성의 자리를 마련해본다. 이 때 각 시(詩)운동의 주의나 주장, 발생 연원(淵源)이나 주도하는 시인들의 활동과 추구하는 이념 그리고 작품에 관련한 자세한 논의는 주제의 목표를 벗어나는 것이라 판단하여 최소한의 언급에 그치는 것으로 한계를 설정한다.  1.무 의미(탈 관념) 시, 초현실주의 시 , 디지털 시, 하이퍼 시의 공통점   무 의미(탈 관념) 시, 초현실주의 시 , 디지털 시, 하이퍼 시는 얼핏 그 제명(題名)만으로 보면 어떤 공통점이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국제적으로 출발한 초현실주의부터 최근에 국내에서 대두한 디지털과 하이퍼-라는 IT기술용어의 낯설음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고찰하면 이 모두를 한 영역(통속)안에 분류할 수 있는 공통의 근거를 찾아낼 수 있는 데, 무엇보다 그러한 시운동을 펼치며 적극적인 주장을 내세우는 시인, 문학평론가들의 입을 통해 직접 그 공통점을 모아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겠다.   하이퍼 시운동을 주도하는 (시인, 문학평론가) 심 상운은 “극소수의 시인들이 관념을 거부하는 시운동을 펼치고 있다”면서 ”관념이 침범할 수 없는 의미의 제로 포인트 지점영역으로서“, ① 언어유희의 무의미의 시 ②초현실주의 시 ③ 순수이미지의 사물시 ④ 21세기 아방가르드 전면에 선 디지털리즘 시를 들었다. 여기에다가 그이는 ⑤ 하이퍼 시라는 것을 포함시킨다.*2)   덧붙이기를: [...] 일상생활에 밀착된 사실적인 이미지와 환상적이고 초월적인(-초현실적인;글쓴이) 이미지의 뒤섞임을 즐기고자 한다. 이 뒤섞임은 그들에게 관념이나 의미를 넘어선(-무의미:글쓴이) 비약의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환상적인 디지털의 감각을 선호하는(-디지털리즘:글쓴이) 현대시의 변화로 파악된다. 따라서 그들의 경향은 과거의 인습적인 사유나 관념에 대한 거부,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것보다 기존관념에 집착하지 않을 때 더 큰 세계가 열리게 된다. 그것이 살아 움직이는 탈관념의 세계이며, 현실과 상상이 결합된 새로움으로 가득한 하이퍼(hyper)의 세계다. 따라서 하이퍼시에서 중요한 것은기존관념으로부터 과감한 탈출과 창의적인 상상력의 발현이다. 거기에는 우주적인 개안이 들어있다.*3) 곧 하이퍼 시라는 것이 앞의 세가지 유형의 시 경향과 공통하면서도 오히려 모두를 통합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와같은 시각에서 하이퍼 시론을 펼치며 주장을 내세우는 이들의 입장을 덧붙이면 다음과 같다:   (시인, 문학평론가) 손해일의 주장*4): 하이퍼 시가 음소, 단어, 문장, 의미 단락 간 마디마디에 해체와 단절을 거치고 이를 취사, 선택, 가공해 복합적으로 재구성하는 하이퍼적 기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상상, 공상, 환상을 망라하고,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가상현실도 넘나드는 첨단 글쓰기. [...]크고 작은 마디인 시어와 행과 연, 의미단락 등 기본 유니트(unit)들이 거미망처럼 하이퍼링크(hyper link)로 연결돼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을 이룬다. [...]비논리적, 비선조직이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첨단 글쓰기. [,,,]난해한 암호풀이 하듯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골똘히 캐기보다는 디지털매체의 그림 감상이나 댓글달기처럼 비선형적, 비선조직으로 독자 나름대로 상상하거나 언어이전의 언어로 작자가 보여주는 대로 그저 따라가 볼 일이다. 이 시에서의 하이퍼링크는 ·의식의 흐름을 매개로 시공간 순서없이 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사라지는 이미지의 집합적 덩이들이다.   (시인, 문학평론가) 조 명 제 의 주장*5): [...]우리 현대시가 여전히 ‘2천여 년 전 예수나 석가 시대의 비유, 상징의 기법으로 정서와 관념을 표현해’ 오고 있는 현실에 일침을 가하며 하이퍼텍스트 시운동에 과감히 뛰어든 김규화 시인은 디지털 시대의 하이퍼적 시쓰기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해 가고 있어 주목된다. [...]의식과 무의식, 시공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인간의 뇌 구조의 복잡한 그물망처럼 하이퍼시는 합리주의의 근본인 인과적 논리성이나 순차적 질서, 혹은 위계적 시스템을 벗어나 탈중심의 리좀(rhizome) 형태를 구축하며, 일방향적 단선구조에서 쌍방향적 혹은 다방향적 다선구조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관계론적 체계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유연상과 공상적 상상력으로 현실과 비현실의 가상공간을 가릴 것 없이 점핑해 가며 텍스트의 마디들을 연결짓거나 병치, 혹은 나열 등의 방법으로 공존시킴으로써 기계론적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한한(4차원적) 상상력과 환상의 세계를 맛보게 한다.   (시인,목사) 최 진연의 주장*6): 하이퍼시를 쓰는 시인들이 추구하는 바는, 기본적으로 탈 관념적인 사물시와 같은 입장에서 시를 쓰되, 그 구성 양식에 있어서 초월, 건너뜀의 기법을 쓴다. 연과 연, 또는 한 연 속의 문장과 문장을 인과적 관계의 논리성 없이 구성하며, 상상력의 비약에 의해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초월한 언어 단위(unit)들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Hyper하다고 하겠다. [...]아무튼 상관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이미지들의 불연속적 결합이 하이퍼시의 중요한 특성이다. [...]논리적 인과관계가 없는 이미지들은 연과 연, 행과 행은 순서를 바꿔놓아도 상관없다. 이미지 단위들이 각기 독립성을 갖기 때문이다. [...]의미론적 혹은 정서적 통일성을 찾을 수 없는 게 하이퍼시의 특징이다.그러나 화자의 의식 혹은 무의식의 흐름이 시의 저변에 깔려 있으며, 이것이 하이퍼텍스트문학에서 링크 역할을 하는 유사한 소리나 단어, 구문의 반복 등과 함께 연상에 의해 시의 통일성을 유지해준다. [...]이 가상현실의 세계로 문학적 공간을 상상에 의해 무한하게 확대하자는 것이다. 과거 시적 이미지는 현실세계를 따오는(Sampling) 데 그쳤으나, 하이퍼시에서는 그 이미지들이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드는 자유의 자성(自性)을 갖게 되었다. 단순한 상상을 넘어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공상에 의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경계가 무너지고, 공간도 자기로부터 세계와 우주에까지 제한 없이 넘나드는 이미지창출을 보여준다.   이로써 우리는 위의 시들이 연과 연, 또는 한 연 속의 문장과 문장을 인과적 관계의 논리성 없이 구성하며, 무의미한 탈관념에 의존하여 현실을 떠난 환상적 이미지들의 자동기술적 연결에 의하여 상상, 공상, 환상을 망라하고,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가상현실도 넘나드는 글쓰기라는 사실에 의해 한 통속에 넣을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짓기가 정신병 환자 정확하게 말하면 정신분열증 환자의 (보통 “넋두리”라고 불리는) 특정 증상과 아주 유사하다고 보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2. 정신분열병 증상의 특이성    나는 여러 해 전에 어느 정신병 환자 요양원에서 상당기간 종교활동과 상담 책임자로 근무한 바 있다. 당시 열악한 수용시설에서 300여명에 가까운 천차 만별의 정신병환자들은 상태나 학력과 나이와 남녀의 가정배경에서 각양각색으로 대부분은 우울증 (manic depressive illness, 躁鬱症)을 함께 가지고 있었는데 15% 내외로(30여명) 이른바 조(躁)증 환자가 있었다. ( 내가 여러 정신병 의원과 정신병요양소를 돌아보며 확인한 바로는, 정신병 환자들 대부분은 말이 없이 우울한 상태로 지내나,- 그들 중 심한 중증의 환시 환청 환자들을 빼고- 약 20 % 내외는 홀로 돌아다니며 지껄이고 떠들었다.) 이들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혼자 중얼거리고 지껄였다(떠들었다). 이들 가운데서도 환청(幻聽 Auditory hallucinations,홀로 이상한소리를 듣고 대꾸하며 중얼거림)과 환시(幻視 visual hallucination,홀로 이상한 현상을 보고 대꾸하며 중얼거림)에 고통을 받는 심한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실내에 갇혀 지내야 했으나, 홀로 중얼거리고 지껄여대는 증상만 있지 다른 활동에는 별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이들은 밖의 취사장에서 일을 하며 잔 심부름도 맡곤 하였다. 취사장에서 일을 하는 이들 가운데 강씨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온순한 성격으로 말이 거의 없고 어쩌다 물어보는 말에만 간단히 대답을 하는 이였으나(- 꼭 조울증 환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동생은 간 밤 취침전에 모든 수용자들에게 관리실에서 주는 신경안정제의 약기운이 떨어질 무렵인 오전 10경 부터는 저 혼자서 또는 옆에 사람이 있으면 제 말을 들어주건 말건 그 쪽 사람을 향해 (홀로) 말하고 뇌까리기를 계속하는 이였다. 위쪽 병동의 취사장과 아래쪽 병동의 취사장을 오가며 심부름을 해주는 21살의 여성 김귀선은 하루 종일 홀로 중얼거리고 다녔으나 말 소리가 작아서,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았던데 반해, 이 28살 된 강형구의 ‘홀로 중얼거림’은 이른바 “초현실주의(슈르 레알리즘) 시” 라고 할 수 있는 것, 또는 무 의미시라고도 불리우는 것 과 아주 비슷해서 (오늘날의 하이퍼시라는 것과 거의 똑같다) 놀라움을 주었다.   먼저 강 씨의 “지껄임(넋두리)” 을 여기 옮기고 한 마디로 결론을 맺기 이전에*7), 강씨가 지껄인 말씨에서 진단할 수 있었던 정신분열병 환자의 병적증상으로서 일반적으로(사전적으로) 알려진 조증(躁症) 환자의 특이성을 알아보자*8).   정신분열병 환자의 일반적 증상: 정신분열병은 환자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증상을 나타내는 듯하지만 최대공약수로 집약해 보면, 사고과정(思考過程), 즉 연상(聯想)을 하는 데 있어서 정상적인 논리과정이 파탄되어 논리적 연결을 잃거나, 토막토막으로 단절되며, 감정표현의 조화가 안 되고, 기분과 생각 사이가 유리되어 일치되지 않는다. 감정이 둔마되며 양면(兩面)의 극단적인 감정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이런 기본적인 증상의 복합으로 복잡한 증상이 생겨나서, 정상인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묘한 사고와 행동 등의 증세를 나타내게 된다. *정신분열증 특징:(1) 망상 (2) 환각 (3) 와해된 언어 (예: 대화의 주제에서 빈번한 탈선 또는 지리멸렬한 지껄임) (4) 심하게 와해된 행동이나 긴장증적 행동 (5) 음성증상, 즉 정서적 둔마, 무 논리증 * 정신병중 조(躁)증 환자의 증상:조증 환자는 흥분되어 있고 이야기가 많으며 과잉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말할 때 목소리가 크고 비정상적인 사고의 흐름으로 심한 경우 말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망상이나 환각이 나타나기도 한다. (1) 팽창된 자존심 또는 심하게 과장된 자신감 (2)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거나 계속 말을 하게 됨 (3) 대화와 사고의 비약 또는 사고가 연달아 일어나는 의식적 -무의식적(잠재적) 표출  3. 위 두 부류의 동일성 및 유사성    위의 1 (하이퍼 시 짓기를 주창하는 시인들의 요지)과 2 (정신분열증 환자의 일반적증상과 보기로 든 강씨의 특이성)에서 각각 밑줄을 그은 데를 비교하여 보면 핵심적인 상태나 증상에서 양쪽은 대부분 일치함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최대한 간추려 적시한 2항의 정신분열증 환자의 증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좀 더 설명을 붙여서 ( 하이퍼 시적 용어로) 해설해 풀어보면 다음과 같은 1항의 증상과 같은 상태를 유추할 수 있다.   *환상적이고 초월적인 이미지의 뒤섞임. 관념이나 의미를 넘어선 비약의 세계, 현실과 상상이 결합된 새로움으로 가득한 세계, 기존관념으로부터 과감한 탈출과 창의적인 상상력의 발현. 음소, 단어, 문장, 의미 단락 간 마디마디에 해체와 단절을 거치고 상상, 공상, 환상을 망라하고,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가상현실도 넘나드는, 비논리적, 비선조직이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첨단 말하기. * 나름대로 상상하거나 언어이전의 언어. 의식의 흐름을 매개로 시공간 순서없이 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사라지는 이미지의 집합적 덩이들. 의식과 무의식, 시공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인간의 뇌 구조의 복잡한 그물망처럼 합리주의의 근본인 인과적 논리성이나 순차적 질서를 벗어남, *자유연상과 공상적 상상력으로 현실과 비현실의 가상공간을 가릴 것 없이 점핑해 가며 마디들을 연결짓거나 병치, 혹은 나열 등의 방법으로 공존시킴으로써 기계론적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한한(4차원적) 상상력과 환상의 세계를 맛보게 함. *초월, 건너뜀의 기법으로 단락과 단락, 또는 한 단락 속의 말과 말을 인과적 관계의 논리성 없이 구성하며, 상상력의 비약에 의해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초월한 언어 들로 구성 *단락 상호간에 별 관계가 없는 이미지들. 거기에 ‘건너 뜀 초월’이 있게 된다. [...]아무튼 상관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이미지들의 불연속적 결합 *논리적 인과관계가 없는 이미지들은 순서를 바꿔놓아도 상관없다. 이미지 단위들이 각기 독립성을 갖기 때문이다. [...] 의미론적 혹은 정서적 통일성을 찾을 수 없는 특징 *유사한 소리나 단어, 구문의 반복 등과 함께 연상, 가상현실의 세계로 공간을 상상에 의해 무한하게 확대, 이미지들이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드는 자유의 자성(自性)을 갖게 되었다. 단순한 상상을 넘어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공상에 의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경계가 무너지고, 공간도 자기로부터 세계와 우주에까지 제한 없이 넘나드는 이미지창출을 보여준다.   의학사전에 기술된 정신분열증 환자의 특이성에 이렇게 조금 살을 붙여 놓으면, 우리는 양쪽(위 1과 2)의 차이를 얼른 구별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흡사하다거나 형식 및 방법론적 동일성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도대체 그 정신분열증 환자 강씨와 같은 사람들의 지껄임이 어떠하기에 이들 시인들의 시작품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일까 ? 굳이 앞에서 그이의 뇌까림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다음에서 인용한 시 작품들을 지은 시인들의 이름만 빼고 보면, 그 정신병 환자의 지껄임과 말 그대로 형식에 있어서 거의 대동소이(大同小異)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정신 분열증 환자의 독백을 옮겨보겠다.     나팔 꽃이 하늘로 솟아오른다. 오늘은 참 많이 컸다. 시집갈만하다 그쟈? 팔이 아플텐데, 나비를 잡고 싶은가 보다 나팔 소리가 시끄럽다. 조용히 좀 하래이 나비가 기뻐서 하늘로 춤추고 올라간다 그쟈?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끓어오른다. 어디 저 먼 나라로 여행가나 보다. 나도 엄마랑 놀러가고 싶대이. 비행기가 나비를 싣고 서해바다를 지나간다 우리도 신나게 날아간다. 중국 땅에는 짜장면이 덮여있다. 모택동이 좋아해서 맛있게 먹었다. 인도의 갠지스강을 지나갈 때 시체 타는 냄새를 맡는다. 죽으면 지옥불에 왜 심판받는다고 안카나? 히말라야 눈덮힌 산을 넘어서 나비는 추워서 얼어죽고, 온 땅을 하얗게 덮었다. 몬살겠다. 아라비야 사막으로 가자. 덥다 옷벗고 자자. 않좋나? 네 치마속이 더 뜨겁다. 너도 추우면 못살기라. 그쟈? 지중해는 하늘보다 더 푸르다. 푸른 것은 깨끗하다고 안카나? 제우스 신전에는 깨끗한 사람만 들어간다카이. 물속에서 빨가벗고 고래처럼 놀아보자. 너도 몸 좀 깨긋이 씻고 흰 옷만 입어라. 빤스가 되게 더럽다. 네가 신전에 절 할 줄을 모르니 사람들이 미쳤다고 안카나? 이태리 로마에 곧 도착한다. 바티칸 사원에 너도 가고 싶으면 돈 좀 내놔라. 호떡이라도 사먹고 배불러야 걷지 굶고는 거기 못간다. 국수좀 많이 끓이라 내일에는 스페인에 도착한다. 소싸움은 볼 것 이 없다 안카나? 투우사놈들은 나쁜 놈들이데이. 동물 학대하는 것은 동물보호법 3조에 따라 형법으로다가 의법 처치해야 한다. 민법은 구리다. 그쟈? 말을 타고 달려가야 할텐데 ...말 좀 찾아봐라. 힘센 말 저기 온다. 그만 됐다....   위와 같이 “그쟈? ... 안카나?”를 자주 후렴구처럼 넣어서, 운율감 넘치게 이른바 하이퍼 링크로 연결되는 텍스트처럼 끝없이 이미지를 이어서 사람의 잠재의식의 표출이나 자동기술적으로 역동적 상상력의 세계를 아낌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하이퍼 싯귀를, 초현실주의 시(싯귀)를, 디지털 시를, 무의미 탈관념 시작품(?)을 만들어 냈다.   다음은 2010년 봄 철 2개월 쯤 서울 남산 도서관 정문 마당앞 벤취옆에 거의 매일 서서 (홀로 중얼거리는 수준이 아니라 마치 꽤 큰 목소리로 연설하듯이) 홀로 떠들어대던 42살의 서울 대방동에서 산다던 김형문이라고 자신을 밝힌( 겉보기 멀쩡한 회사원 같던 ) 한 사내의 지껄임을 간략히 옮긴다.  내일의 날씨는 전국적으로 맑겠고 곳에 따라 소나기가 내리는 곳도 있겠습니다.   시베리아 대륙의 건조한 대기와 북 태평양 고기압이 부딪쳐서 한반도에는 살벌한 전쟁의 기운이 감돌겠고 봄 기운도 점차 북상하면서 개나리 진달래 철쭉 꽃 소식이 온 땅을 무섭게 수놓겠습니다. 새학기 등교하는 우리 어린이들의 책가방에서 꽃들이 새싹을 피우기 다투는데 새 나라의 어린이는 꽃나무에 앉아서 지저귀는 새들, 트로트로다가 노래를 부르며 전진하겠습니다. 김일성이 죽은후 북반부에서는 김정일 장군님이 위대한 교시를 받들고 강성대국 건설에 한창인데 옆 벤취의 두 젊은 남녀 대학생은 오늘도 공부를 않하고 연애에 열을 올리며 입술을 새빨갛게 빨아대서 피가 흐르고 사회주의 와 자본주의의 개념조차 모른채 자유민주주의의 통일 정책에 무조건 찬성할 따름임니다. 봄이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내 마음속에도 피었는데 이명박 정권의 친미 정책을 나는 적극적으로 지지한 탓에 일찍이 시들어버리고, 북한의 사주를 받은 학생들에 의해 민주투사가 되어 조만간 감방으로 사라지겠습니다. 삼천만이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좃나발 불지마 아버지는 노조운동에 다리 부러져 북해도 탄광에 끌려가고 배가 곺아도 신나게 별보기 운동을 했고, 비가 오고 날 흐리면 동해 바다로 가서 파도와 애기를 나눴습니다. 아 다시 못 올 이 땅의 내 청춘... 다음에는 청춘이 좀먹어서 대머리가 다 된 김형문 기자가 빠리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치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처럼 형식은 시사 보도적이었으나, 내용의 갖춤과 마디 마디는 저 1의 주장자들의 바로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 여기서 다시 정신분열증 환자의 병 증상과 “하이퍼” 시론을 펴는 위 네 사람들의 주장하는 요지와 방법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이다.   다음에 각각의 시론들을 인용된 시작품을 중심으로 논평한다.  4.무 의미(탈 관념) 시, 초현실주의 시 , 디지털 시, 하이퍼 시(시론) 비판  1.무 의미- 탈 관념 시론   도대체 의미가 없는 시와 관념을 벗어난 시라는 것이 존재할 수가 있단 말인가?   시라는 문학적 활동을 떠나서도, 언어와 사고행위를 통한 정상적인 사람의 의식의 세계에서조차 불가능하고 말이 성립되지 않는(語不成說) 이 무의미와 탈관념이라는 언어행위를 분석해 보는 것이 먼저 터닦아놓을 일이 되겠다.   “의미”가 무엇인가? 언어학적으로 의미론에 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반 상식에 따른 보편적 통용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의미란 사전적으로 우리말 “뜻”의 한자어이다. 사람이 “말(언어행위)”을 할 때 형식은 소리(발성)와 내용(지시)을 갖는다. 이 경우 내용(지시)이 뜻(의미)이다. 특별한 경우에 소리 자체 만으로도 고저 강약의 발성에 따라 지시기능을 하기 때문에 소리도 뜻을 갖는다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언어”는 반드시 의미를 갖는다. 말(언어)를 문자로 표현할 때 형식은 문자기호와 내용(지시)으로 구성되는데 내용이 바로 뜻이지만, 교통신호처럼 사회적 약속과 같은 특별한 경우에는 문자 기호만으로도 뜻이 된다. 따라서 사람이 행하는 모든 표현수단은 뜻(의미)을 갖는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의미가 없다(무의미)”라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사람이 의식활동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의미의 부여이고 의미의 추구의 행동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 이미는 목적을 지향하고 욕구하는 “의도”나 “의지”와는 다른 것이다.   “관념(觀念)”이란 무엇인가? 사전에 따른 일차적인 뜻은 “사고”, 생각(영어 idea, 동사 think, 독일어 denken)“이다. 한자말로도 본것(觀)을 마음속에 담아두기(念)이다.   사람이 대상(객체)을 감각에 의해서 받아들인 것(감각 자료)을 생각(사고)하여 정리 구별해 놓는 것을 말한다. 사고하여 구별하고 정리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언어에 의해서 수행한다. 언어로 수행한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의미있게 분별한다는 것이다. 만일 언어로 감각자료를 구별하고 구분하여 우리 뇌속에서 정리를 하지 않는다면(곧 관념화가 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단지 막연한 감각(眼耳鼻舌身에 의한 느낌)에 지나지 않으며, 지렁이가 밟으면 꿈틀거리거나 짐승이 본능적으로 먹이를 보면 달라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관념이 없으면 의미가 형성이 않되고, 의미가 없으면 관념이 생성이 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탈관념(관념을 벗어나기)”하겠다고 한다면 의식적 활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곧 죽겠다는 것)이거나 언어를 모르는 짐승이나 하등 동물이 되겠다고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의미가 없고(무의미) 관념을 떠난(탈관념) 시를 쓴다고 하고 그렇게 쓰자는 시인이 있다.  가. 그 주장자와 시작품   김춘수 시인은 「事物詩와 觀念詩의 問題」*9)에서 사물을 감각적으로 그대로 수용해서 쓰는 곧 사물의 세계를 아무런 설명이나 哲學 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事物詩와 의지적이고 비유적으로 세계를 관념으로 묶어 보는 관념시로 구분하면서, 앞의 것은 탈 관념적으로 서술적(=묘사적-글쓴이) 이고 순수한데 반해 뒤의 것은 도덕적 교훈이나 판단의 목적을 위해 사물을 수단시하고 독자를 강요한다고 지적하면서 보기로서 다음과 같이 든 시 작품(1연)을 김춘수는 탈관념 이고 그래서 무의미한 시라고 하였다:  산은/九江山/보랏빛 石山//山桃花/두어 송이/송이 버는데        이 시가 정말 김춘수의 주장처럼 무의미 하고 탈관념이 된 시란 말인가? 우리는 그렇게 이 작품을 이해해야만 하는가? 새삼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언어로 쓰여진 모든 시가 ”뜻이 없이“( 무 의미) 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관념시라고 비판하며 주장하는 이들의 견해를 한마디로 통일을 할 수가 없는데, 김춘수는 “관념”이란 단어를 앞에서 풀이한 대로 일상적이고도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곧 사전적 의미인 “사고”, 생각이라고 이해를 하지 않고, 주체의 ”의도“나 ”일정한 의지“ 또는 ”목적적인 의식“을 일컫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관념이란 것에서 의미가 나오는 것인 데, 의미= 뜻 이란 1차 사전적이고 통념적인 단어풀이에서라면 ”무 의미“라는 용어가 있을 수가 없으나 ”의미“를 ”의도“나 ”일정한 의지“ 또는 ”목적적인 의식“을 일컫는 것으로 김춘수가 바꾸어서 이해하고 사용하는 한, 비 학문적이고 비 상식적이긴 하지만 거기서는 무의미라는 용어를 납득할 수 있다. 의미란 용어를 이렇게 이해하고 사용하는 한에서 관념을 벗어난다는 ”탈 관념“이란 말도 납득될 수가 있다.   아무리 김춘수 방식으로 의미라는 단어를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사람이 사용하는 모든 언어와 취사선택한 단어에 의미(=의도나 의지)와 관념이 배제될 수가 있단 말인가? 관념에서 벗어나(脫)있으니, 무 의미하다는 이 주장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김춘수는 지은이가 (어떤 의미-의도부여가 없이) 사물에 단순한 이름만 붙여서 단어를 나열한 것처럼 했기 때문에 사물시요 탈관념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인 박목월이 무의미(無意味)한 시를 쓰려고 이 시를 지은 것은 아니라는 추론을 하기에 앞서, 시라는 것과 거기 사용된 시언어라는 것에 대한 김춘수의 혼란된 인식을 엿볼 수가 있다.   이 시는 [구강이란 산이 있는데, 보랏빛을 띈 돌산(석산)이다. 거기에 산복숭아 꽃이 두어 송이 막 꽃 봉우리를 트고 있다]라는 것을 압축한 문장이다. 그렇게 볼 때 이 시는 김춘수의 말처럼 “사물을 감각적으로 그대로 수용해서 쓴 곧 사물의 세계를 아무런 설명이나 哲學 없이 그대로 드러낸” 것이 아니다. 그리고 독자는 사물 이름으로서의 단어만 나열한 그것을 그대로 감상하지 않는다.   그와는 정 반대로, 시인은 구강이란 산이 하얀색이나 황토색 돌(석)산이 아니라 보랏색을 띈 돌산이고 그 산에 진달래꽃이 아니라 산복숭아꽃이 피었는데 아직 만발해 있지는 않고 두어송이 막 꽃봉우리를 트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이는 무르익은 봄의 시기가 아니라 겨우 겨울 기운이 가신 이른 봄의 시기를 보여준다. 봄눈녹아 흐르는/ 옥같은 물에//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2연과 끝 연인 3연을 종합해서 감상하면, 구강산이라는 노장사상의 신선교에서 희구하는 도원경(桃源境)은 속세의 사람들이 더럽히지 않은 이상향으로서 옥같이 순수한 물을 새끼를 거느릴(린) 악의 없는 암사슴이 몸을 더욱 깨끗이 가꾸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표출해 내서, 시 지은이는 그러한 순수 자연관의 철학과 그런 생활을 꿈꾸는 의도를 보여주며 속세의 우리 네 삶의 질곡과는 다른 순수한 자연생활의 모습에 대한 희구라는 의미부여를 산도화의 배경에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럴진대 김춘수가 보기로 거든 사물시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관념시인 것이다. 한 마디로 사물 이름만(단어만) 나열한 시라고 해도, 지은 시인이나 독자는 압축된 행간의 단어와 생략한 의미를 염두에 두고 짓기를 하는 것이며, 감상을 해야하는 것이 시에 대한 바른 도리(이해)가 아니던가? 이를 부정하고 의미연결이 않되는 단어들만의 나열이라면 앞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정신분열병 환자의 지껄임이나 보고 읽은 셈이 될 것이다.   그러면 다시 심상운의 “탈관념 시에 대한 이해”라는 논문을 들여다 보자. 이 논문은 시인 오남구(옛 이름, 진현)와 심상운의 탈 관념시론에 대한 최진연의 비판에 관해 심상운이 다시 반박하다시피 하면서 “탈관념에 대한 논쟁을 잠재우고 탈-관념의 이론을 새로 정립한 글 [...] 이 글의 논리를 바탕으로해서 아방가르드의 시론이 성립된다”고 자신만만하게 주장하였는데*10), 최진연은 자신의 논문에 대한 심상운의 이같은 반박 논문을 읽은 후, 화자의 주관적 생각이 들어간 것이면 관념이고 인지적 사실에 그치면 탈관념이라고 이해하였음을 밝히면서 “내가 제기한 관념문제에 명료한 답을 제시해주었다.”고 대답하였다. 과연 올바른 말일까?  나 . 그 주장의 오류   김춘수처럼 탈관념을 주장하는 시인 심상운은 그 논문에서 독자적인 많은 연구의 노력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릇된 이해로써 자신의 주장을 펴내고 있다.   먼저 불교의 인지론을 거론하면서 1.감지(6식의 초기작용) 2.인지(의식의 분별작용) 3. 의미형성(사고와 연관에 의해)의 단계에서, 순수인지는 2항 까지를 일컫고, 이를 직관이라고 정리한다. 그러나 우리 사람이 대상을 인지한다는 것이(의식의 분별작용은) 지렁이처럼 조금만 손(촉각)을 대도 꿈틀거리며 반응하는 것(지각)에서가 아니요, 끈끈이 주걱(잡초 식물)이나 호랑이(동물)처럼 어떤 것을 잡으면 뜯어먹는 욕구충동에 따른 본능적 활동이 아니다. 사람이 대상을 서로 달리 분별하여 인지하고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식상태 또는 기본 욕구적 충동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말(언어)을 갖고 자기를 표현하며 의식활동을 하고 사는 사람(호모 사피엔스)은 이미 언어(말)로 지칭된 사물(사람)이나 사태를 통해서 서로를 지각하고 구분하고 구별하는 것이다. “이미 언어로 지칭된 사물”이라 할 때, 거기에는 기표(시니피앙)와 기의(시니피애)라는 유의미화가 자동적으로 속성화 되어 있다. 쉽게 말하면 관념화 되어있는 것이다. 이름자유연상은 정신의 본도(本道), 간도(間道)를 통하여, 의식의 제한에 방해 당하는 법 없이 사고(思考)와 인상(印象)을 모아서, 그것을 가지가지로 결합시키면서, 드디어 새로운 관계나 형(型) 이 생겨나도록까지, 심리과정을 자유스럽게 헤메도록하는 것이다.[...]자유연상 상태란 곧 자아(ego) 초자아(super ego)의 간섭이 없거나 극히 약해서 상상의 자유가 보장되어 [...] 이런 방심상태에서는 무의식(無意識) 혹은 전의식(前意識)의 세계, 곧 심층심리면(深層心理面)에 잠겨 있던 것들이 순서도 없이 곡두(환영幻影)처럼 의식면에 떠올랐다간 가뭇없이 스러지고 스러져버리곤 한다. [...]그것을, 적당한 시기에 바리아송(variation, 變奏)을 주어 가면서 몽따쥬(montage)를 하면 한 편의 시가 되곤 한다.   조향은 자신의 시가 시간성이 산산이 끊어져 버리고, 돌발적인 신기한 이미지들이 단층을 이루고 있는 자유연상에 따라 의식의 제한에 방해 당하는 법 없이 사고(思考)와 인상(印象)을 모아서, 그것을 가지가지로 결합시키면서, 드디어 새로운 관계나 형(型)이 생겨나도록까지, 심리과정을 자유스럽게 헤메도록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조향시인이 주장하는 바에 따라 아래의 시(바다의 층계, 1연)  낡은 아코뎡은 대화를 관뒀습니다/-- 여보세요 --//// -- 왜 그러십니까  를 읽는다면, 그야말로 어느 정신 분열증 환자의 뇌깔임(넋두리)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떠돌고 다니며 사는  정신병 환자의 지껄임을 옮겨 놓으면, 조향의 초현실주의 시편 이론을 따르는 이와 똑같은 것을 누구든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 초현실주의 문제점을 다음에서 자세히 짚어보자.  나. 그 주장의 문제점과 비판   초현실주의에 관하여 또 그 시가 목표(시의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다음의 심상운과 조병무의 시론을 통한 해설에서 간단 명료하게 엿 볼 수가 있으며 동시에 그 안에 담겨진 문제점도 들춰낼 수가 있다.   “시를 교훈이나 쾌락 또는 서정의 표현 정도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초현실의 시들은 난해하기만 하고 존재가치가 없는 무질서한 언어의 집합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고 심상운은 스스로 그 단점을 지적 하고 있다. 나아가 심상운이 중에서 조향시인의 초현실주의 시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보기를 든 양준호 시작품을 보자.  꽃잎을 짓밟고 간다. 문득 저승에서 뻐꾸기 세 번 울고/간다.너는 뭐니 너는 뭐니. 노란 파도가 노란 파도를/ 따라간다. 비이슬에 젖은 철조망, 메뚜기의 눈이 등대처/럼 설레고 간다.(양준호 시, 문득. 전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18) 서술 기법은 현대시만의 특별한 기법은 아니다. 고대 소설에서도 꿈을 통한 암시나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상투적이라고 할 만큼 흔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통해서 보여 주는 시인의 내면의식[잠재의식]이 현대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식의 총체적인 파악을 위해서는 빙산의 일각 같이 겉에 드러난 의식보다는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무의식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하기 때문이다. 양준호 시인의 시편 속에 들어 있는 상식을 뛰어넘는 언어들의 현란함은 단순한 언어유희의 차원이 아닌 의식과 무의식의 교직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무늬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평가속에서 심상운은 한국 현대시에서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꼽혀지는 조향(趙鄕)의 시를 무의식 상태에서의 자동기술로 "망각의 강 깊숙한 저변에서 건져 올리는 고향의 언어‘ 라고 했다. 무의식은 의식의 고향이며 가장 본질적이고 원형적인 순수의식의 세계여서 그것은 자연히 탈현실, 탈관념의 세계가 되는 것이라 한다.   같은 시각에서 평론가 조병무도 “양준호의 시세계 ”이라는 논평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일기 시작한 초현실주의에 많은 예술이 공감한 바가 있었다. 비합리적 인식과 잠재의식의 세계를 추구하여 새로운 세계에 정착하고팠던 운동의 하나였다. 양준호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 있었던 문학의 한 명맥을 보는 것 같다. 정신의 바닥에 내재해 있는 수많은 의식의 한 덩어리를 실상의 형태에 몰입시키면서 새로운 해석의 차원을 넘나들려는 의도는 다른 면이 있다. 그에게는 잠재의식이라는 세계를 실제의 실상에서 이를 해체하여 새로운 의식의 면모를 구축하려는 데 있다. 그에게 부딪치는 모든 것은 경이로운 것이며 그 경이가 실상의 합리적인 것에서 비이성적 형태의 상태로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양준호의 시를 여기서 어떤 사상적 이즘에 한정시키려는 것은 아니나 몇 가지 그의 시에서 특이한 점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의식의 변화 및 해체, 잠재의식과 실제 실상의 변모에 따른 차이, 강박관념의 몰입 등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조병무의 해석은 심상운의 다음의 해명 글에서 크게 부각된다. “ ”간다“라는 동사가 이끄는 네 개의 문장이 병렬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네 개의 문장은 논리적(객관적)인 의미의 연결이 안된다 어떤 의미의 형성이 불가능하다. 네 개의 문장이 담고 있는 영상은 그의 무의식의 내면에서 포착된 영상같기도 하다.”   이렇게 논평하는 두 사람이 시인이란 것을 모르는 이라면, 어느 의사가 정신 분열증 환자의 증상을 설명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말 것이다.  여기에 조향의 노트를 참조해서 말하면, 내가 맨 앞에서 정신 분열증 환자의 한 증상으로서의 홀로 중얼거림현상과 거의 일치하는 설명에 해당한다. “현실을 벗어나서, 초월해서” 라는 초- 현실(sur- réal)이란 말은 * “(현실인식의)실재,사실 (réal) 를 벗어나서,넘어서 (sur -)”, 달리 말하면   ”현재의 사실을 그대로 보지도 못하고  보지도 않아 정신이 -미쳐서, 돌아서“, ”제 정신이- 아니어서“ 라는 뜻과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초현실주의 시작품 이라는 것도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냥 정신분열증 환자의 떠벌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이 점을 프랑스 쉬르레알리즘 문학가들이 미쳐 생각지 못한 것처럼 지금까지 한국의 문학가들도 그 불행한 증상을 아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아니라, 신경정신과 의학을 공부한 의사들도 시문학의 이런 초현실주의의 현상을 비교적으로 제대로 간파하거나 지적할 줄을 몰랐다.  이제 주체의 사상과 감정이란 관념을 개입시키지 않고 순수하게 대상의 이미지만을 드러낸다고 보아서 “사물 시”라고 규정이 된 시작품들을 검토해보자.  III . 순수 이미지의 사물시   사물시란 무엇인가? 최진연시인은 [...] 엄밀한 의미에서 사물시란 대상을 주체의 사상과 감정이란 관념을 개입시키지 않고 관찰한 현상들을 이미지로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시는 ‘탈 관념(무의미)’의 시이다 라고 정의를 한다. 이러한 사물시 이론은 먼저 무의미 탈관념 시쓰기와 그 이론을 주창한 김춘수에게서 제시되었는데, 그이에게서 무의미(탈관념) 시를 잘 쓰기 위한 한 방법론처럼 모색된 것이 사물시 이론으로 발전된 것이 라고 여겨진다. 이를 나중에 문덕수시인이 뒤따르고 있는데 둘 사이의 차이점을 굳이 들자면 문덕수에게서는 무의미 탈관념이 아니라 사물 대상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현저하게 눈에 띈다.  가. 주장자들과 그 시작품   최진연 시인은 문덕수 시인의 이른바 사물시의 특징을 무의미-탈관념의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하이퍼시와의 깊은 연관성을 간추려서 아래와 같이 지적한다*19).: “관념시는 개화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100년이 넘게 주류로 군림해왔다.” [...]이런 한국시의 관념성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시의 모색은 문덕수에 의해 주창되어왔다. [...]그는 2천 년대 들어와서 탈 관념의 사물시를 비롯한 새로운 시 쓰기 운동에 열정을 쏟기 시작했다. [...] 문덕수 시인이 오래 전부터 주창하고 그의 시에서 적용해온 시적 방법으로서 “집합적 결합” 이론[...] 예컨대 컴퓨터, 책, 확대경, 볼펜, 찻잔, Secret Card, … 이런 물품들은서로 필연적 인과 관계가 없으나[...] 이와 같이 시에서 행과 행, 연과 연 상호간에 별 관계가 없는 이미지들로 한 편의 시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   위 인용문에서 우리는 사물시의 특징을 탈관념의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하이퍼시와의 깊은 관련성을 제시했다고 간주할 수 있다.  빨간 저녁놀이 반쯤 담긴/유리컵 세 개./휑하니 열린문으로는/바람처럼 들이닥치듯이 차들이/힐끗힐끗지나간다./ 세 유리 컵/ 그 세 지점을 이으면 삼각형이 되는/ 그 속에 재떨이는 오롯이 앉아있었다./ 열린 문으로는/서있는 한 사나이,/ 길건너 어느 고층으로 뛰어오를 듯이/ 서있는 그 신사의 등이 실은/ 유리컵을 노려보고 있었다./세 유리 컵/ 그 세 지점을 이으면 삼각형이 되는/ 그 금 밖으로 밀려나/ 금박의 청자 담배와 육각형 성냥갑이 앉아있고/ 그 틈새에 조그만 라이터가/발딱발딱 숨을 쉬고 있었다./ (문덕수 시, 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 전부)    보기로 든 윗 시를 심상운은 사고 이전의 언어들 모음이기에 어떤 의미도 내포하지 않는다. 아무런 의미(의도)를 띄지 않고 사물의 놓여있는 상태와 주변 정경만을 객관적인 눈으로 묘사하여 사물성의 존재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시인의 지각작용이 포착한 생동하는 사물성과 한 순간에 집중된 감각적인 순수이미지를 보여줄 뿐이라고 한다. 덧붙여 시도 관념이전의 순수한 사물성만을 제시해주는 기능을 함으로써 창조적인 사물시의 가능성을 확인케 해준다며 이 솔 시인의 시를 지적한다.  욕조가득 비누거품이 부풀고 있다/거품속에 색들이 팔딱거린다/거울속에서 허물이 흘러내린다/구석구석 비누거푸을 벗겨낸다/동그랗게 굴러가는 색깔들//텃밭에서 갓 따온 가지빛깔/ 처음 우러나온 치자빛깔/옥수수 수염색깔/샘물바닥에서 솟아나는 모래빛깔/청심환을 싸고 있는 금박지/씨가 환히 비치는 청포도 빛깔// 바구니 가득한 캔디/ 눈에 담기는 색깔부터 입속에 넣는다/달콤하다가 시다가 씁쓰레하기도/켄디 맛인지,색깔맛인지/욕조가득 넘치는 맛과 색/맛으로 빛으로 춤춘다 (이솔 시, 맛의 빛, 빛의 맛, 전부)   정말 이들 시작품이 관념을 벗어나서(탈-) 사물성만을 제시하고 마는가?  나. 그 주장의 문제점과 비판   시를 지은 문덕수가 의도한 바가 심상운의 주장 그대로 무의미하게 탈관념을 노리고 詩作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독자)는 그 작품속에 든 문덕수의 (비의식층인 잠재적인) 온갖 의도를 케어 볼 수가 있어야 하고 끌어내어 밝혀보아야 한다. 왜냐면 앞에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작가가 선택하여 사용한 언어는 그것 자체로 나름의 질서와 의미(관념)을 지니고 예술작품으로서 객체화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윗 시에서는 사람이 서로 만나서 대화하고 웃고 떠들며 인정을 나누게 마련 된 의자는 텅 비어있고, 탁자위에는 유리잔과 라이타와 잿털이만 모여있는 사물위주의 퐁경을 우선 보여준다. 대화가 단절된 고독한 도시인의 삶의 울타리 안에 어느덧 저녁 황혼기의 황량한 기운만 기웃거리고 있다. 이를 묘사함으로서 빌딩으로 둘러쌓여 갇힌 현대인의 낭만이나 우정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바로 이를 탁자를 주변으로 하는 풍경이 지적하고 있다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때, 이 작품은 그런대로 관념을- 의미를 지닌 값을 다하는 작품이다. 무엇을 쓰고 그리느냐(표현하느냐)? 의 문제 보다 어떻게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감상하느냐?)가 예술의 본래 면목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것이 최종적이고 작가의 손을 떠난 일반대중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도구화된 사물들만의 기하학적 위상을 묘사함으로써 대화의 단절로 인한 도시인의 고독과 상호 이해부족이나 오해 속에 사는 인간성의 소외현상을 극명하게 드러내준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물이 주체가 되고 사람이 객체가 된 이 시대의 비극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솔의 시-이를 사물시로 보든, 하이퍼시로 보든 상관없이-에서도 심상운처럼 관념이 없이 사물의 사물성만을 감지하고 비누거품의 빛과 맛의 세계만을 감상하는 소수의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자들은 욕조에 비누거품처럼 넘치는 관념과 그것의 상징적인 의미를 되새김하며 다양한 일상적 활동에 이를 적용해 보기도 하는 것이다. 곧 1연의 더러운 욕조(안에서의)와 그것(어떤 것 y)의 비누 세척 하기. 2연의 비누거품들(x)의 갖가지 색깔(빛)의 열거를 통한 그 깨끗한 모습. 3연에서 욕조가 바구니로, 비누거품(x)은 켄디로 지칭 전환되어서 빛(색깔)을 맛으로 치환하여 입에 들어갈 만큼 깨끗하게 씻겨진(정화된) 어떤 것(y)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더럽혀져서 손으로 만진 것이- 눈으로 들어오고 -다시 입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가 된 어떤 (Y)것의 오염- 세탁-정화의 단계가 1연의 촉각화 2연의 시각화 3연의 미각화를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고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철학자 M. 하이데거가 예술이란 것도 철학(존재론)처럼 존재자의 존재 양태를 그대로 밝혀서 보이는(드러내는=현상) 것이라 했는데*20), 만일 문덕수가 이 철학에 근거하여 자신의 “순수이미지-사물시” 이론을 시도하였다면, 심상운이 말하듯이 무의미나 탈관념이 아니라, 그와 정반대로 내가 바로 위에서 해석한 대로, 존재양태의 의미를 현상시키려 한 것이라고 봐야한다. 하이데거는 사물들(존재자들)의 존재상태나 양태에서 도구성과 정황성을 통하여 의미연관성을 드러내주고 실존적인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또 케낸다. 존재하는 사물(대상,객체)의 상태나 상황을 그대로 묘사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준다고 할 때, 무의미나 탈관념을 시키는 것으로 이해하면 큰 오류이다. 그것은 본질을 케내는 일이 아니라 현상을 은폐하지 않고 드러내어 존재(있음), 또는 있는데 어떻게 있는가? 를 더 뚜렷하게 보임으로써 그 자체가 가진 의미를 밝혀준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시가 언어로서 존재를 건립하는 것이라고 하이데거가 규정을 했을 때 거기에는 필연코 존재자와 언어를 선택하고 사용하는 순간에 의미화와 관념이 생기고 짓는 이의 심상이 투영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의미있는 관념화된 시작품이 창작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보기를 들어, 하이데거가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구두”를 해명하듯이, 화가 고흐가 구두를 가장 그럴듯하게 사실적으로 그려냈을 때, 그 구두가 어느 농부의 가난과 일상화된 노고와 뼈아픈 가족의 생계부양의 짐이 투영된 것을 보여주고자 화가가 그림을 그렸고, 감상자는 또한 이를 잡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동하는 사물성과 순수 이미지의 시라고 주장하는 심상운의 논평은 시 제명인 “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이라는 풍경에만 사로잡혔거나 이솔의 “맛의 빛, 빛의 맛”이라는 그 사용된 언어와 관련된 의미의 심층적 맥락과 시인의 창작과정에서 이면에 놓여지는 잠재의식을 간과했거나 무시한데서 발생된 것이라 추측된다. 만일 이를 부정한다면 특히 이솔의 작품에서 드러나듯이 정신분열증환자의 두서없는 말지껄임에 불과할 것이거나, 정상인이 자신도 잘 알아차릴 수가 없는 잠재의식속의 정신병적 징후를 그대로 토로한 것이 될 뿐이다. 이를 변호해서 말한다면, 의학적 식견이나 정신병적 증상을 잘 알지 못하는 이가, 현실을 넘어선 자유로운 의식-잠재의식적 사고를 표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다음으로 탈관념과 디지털리즘시를 주장하는 현대적 시운동의 전위에 서있다고 일컬어지는 오남구시인의 시를 검토해보자.  IV. 디지털 시론    디지털 시란 무엇일까? 디지털리즘 선언이란 글에서 밝히는 오남구의 정의를 직접 들어보자. “지금까지 아날로그 시대의 시가 기술 또는 자동기술하는 것이라면, 미래 디지털시대의 시는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염사(念寫) 또는 접사(接寫) 곧 ‘찍는다’는 행위로 구분짓는다.[...]시인의 생각과 의식을 배재시키는 방법으로 나는 언어 이전의 언어(사물언어)로 사물을 사진찍듯이 찍는다”*21)고 했다.  가. 주장자들과 그 시작품   오남구의 이 디지털 시론을 최진연은 같은 논평에서 오남구의 탈관념시에 관한 설명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다. 즉 오남구가 말하는 디지털시가 탈관념시와 같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덧붙이기를, “전통적인 시가 대체로 연속적인 사유의 산물이란 점에서 아날로그방식이라 한다면, 그의 디지털시는 단속적인 직관에 의해 찍는다”는 점에서 구별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 ‘찍는다’는 말은 관념을 배제하고 보이는 현상 그대로를 직관적으로 옮겨놓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최진연은 탈관념시=디지탈 시= 하이퍼 시의 등식을 상정한다. 강조하건대, 그들 시작품이 큰 틀에서 크게 차별이 않되고 같다는 것이다. 다음의 오남구의 시 작품을 보자.   겨울 조소리 천태산 달이 비껴가고/바람 소소히 고라실 억샐 베는 머슴 심심한 머슴이/도리께 명당 솔밭 후미 으슥한 골마릴 풀고/무당네 골방 선반 지른 시렁가레 깊은 어둠을/밤새 봉준이는 과년한 계집을 안고 운다.//(오남구 시, 조소리 구름밭, 전부)   심상운은 이 시를 “어떤 논리적인 설명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토착적이며 전통적인 가락과 호흡 그리고 토착어에 깃들인 민족 心靈의 흐름은 첫 새벽 淸水를 앞에 놓고 한울님과 接神하는 맑은 영혼이 아니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법이다”라고 하였다. 얼핏 피상적으로만 생각하자면 “겨울- 조소리- 천태산- 달이 비껴 감-바람-고라실- 머슴-도리께-골마릴 풀고- 무당네 골방- 시렁가레- 어둠- 봉준이- 과년한 계집” 이런 단어들 만이 두서 없이 늘어놓은 느낌이 든다.   심상운은 또 오남구의 “부드러움의 단상”이란 시에서도 “비- 파란 신호등-부드러운 선- 녹색 빗물-나무들-빨간 신호등-차다 단단하다 날카롭다”에서 어떤 지각의 속도만 있을 뿐 의미가 없다고 논평을 했다.  비, 비, 파란 신호등이 켜지자, 부드러운 선들이 팔딱팔딱 숨을 쉰다. 에워싸 나를 가둔다. 금시 차다 단단하다 날카롭게 날을 세운다. 수로 솟으면서 수평으로 퍼지면서 나무들이 솟아오르고 녹색이 번지고 빗물이 번지고 속도가 날을 세운다. 빨간 신호등이 켜지자, 모두 갇혀 버린 빗길, 팔딱팔딱 선들이 곡선을 그리다가 부서져 떨어진다. 흘깃 보는, 조각 허공에서 뿌리는 부스러기 무지개 ( 오남구 시, 부드러움의 단상, 전부)  나아가 송시월의 시에서도 비 그친 날의 풍경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그려낸” 이 아닌 “찍어낸” 시라는 것이다.  비 그친후, 물 웅덩이/붉은 하늘 한 조각/하늘 속의 물구나무선 가로수/거꾸로 처박힌 빌딩의 모서리와/육교 한 토막./그 틈새에 납작이 끼인 나/ 한 조각/언뜻 맷새 한 마리가 획 일렁이며 간다 (송시월 시, 물 웅덩이, 전부)  물웅덩이, 하늘 한조각, 하늘속의 물구나무선 가로수, 거꾸로 처박힌 빌딩의 모서리, 육교 한토막, 그 틈새에 납작이 끼인 나, 한조각, 멧새한마리가 동시적으로 눈에 포착되어서, 관념을 벗어났고 직관을 통한 엽사,접사의 기법이 적용된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나. 그 주장의 문제점과 비판   “시인의 ①생각과 의식을 배재시키는 방법으로, ②언어 이전의 언어(사물언어)로 사물을 ③사진찍듯이 찍는다”는 오남구의 주장에는 시문학 일반개념과 언어행위에 관한 오해나 무시에서 오는 억지가 깃들어있고, 시와 그림(사진)간의 예술 분야의 혼동이 내재한다. 시인에게서 생각과 의식을 배재시킨다는 것은 시체나 되라는 말이나 다름없고, 언어이전의 사물언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을뿐더러, 사물을 사진을 찍듯이 한다면 굳이 시란 것이 왜 필요할까? 무용지물이 될 뿐이다. 시는 대상 사물을 있는 그대로 찍는 예술이 되어서도 않되고 될 수도 없다. 시인에게서 재 창조가 되어 나와야하는 창작물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만일 심상운처럼 우리가 오남구의 작품 “조소리 구름밭”의 시적 배경과 쓰인 지명과 인명에 대해 알지 못하고 감상하려 든다면, 어떤 논리적 설명을 할 수가 없고 단어들의 나열속에서 “토착적이며 전통적인 가락과 호흡”만을 볼 것이다. 그러나 조소리 천태산이 동학군의 지도자 전봉준이 태어난 고향땅 이름이고 그 전봉준이 겨울 긴긴 밤을 단잠 못이루고 과년한 계집을 끌어안고 울음운다는 장면을 이어놓으면, 우리는 “관념을 벗어난 장면만을 다양하게 엮어서 찍은 것”이 아니라, 동학혁명운동에 떨쳐일어선 농민군들과 지도자 전봉준이 청나라 군대와 일본 군대의 협공에 시달리며 머슴처럼 노예살이 신세였던 농민들과의 생사를 건 봉기가 일시에 꺾이고 절망적인 형편에 괴로워하는, 구름밭의 새울음(조소리) 소리를 헤아려 감상할 수가 있는 것이다. 깊은 민족사적 비애를 품고 종교적 천지개벽을 꿈꾸던 이들의 슬픔이 절망을 감싸서 자아낸다 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송시월도 순간의 물웅덩이를 포착하여 그 상황을 재현했는지 모르겠으나, 감상자는 물웅덩이 같은 세상과 거기에 처박힌 “나”의 몰골을 반사해보면서 멧새 한 마리가 상징하는 자유와 비상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아직은 꿈과 희망을 품을 수가 있는 삶을 보여주었다고 음미할 수가 있는 것이며, 그것은 나쁜지 않은 독법에 해당한다. 만일 그렇지 않고 송시월이나 오남구 시를 손해일이나 조명제의 주장에 따라서 읽는다면, 우리는 그저 정신병 환자의 뇌깔임이나 다름없는 소리를 보고 들은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전혀 의미연결이 않되는 단어와 어휘들의 진열과 이미지들을 지껄인 수준이외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상운이 “종이(책) 문화의 시대에 본질적이었던 의미의 예술에서 디지털시대에 맞는 영상(이미지)의 예술에로 전환을 주장하고 특정한 경계를 벗어난 상상과 공상(fancy)을 중요한 표현수단으로” 삼고자 했을 때, 언어의 예술인 시문학의 본질적 특성을 망각한데서 이처럼 암초에 좌초하고 말 항해의 운명은 예정된 것이었다. 영상의 예술로 전환 했을 때, 언어예술인 시라는 고유의 영역은 사라지고 디지털시대의 영상속 한 부수적인 설명귀나 장식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마치 신문지 나 TV의 광고판 속에 나오는 설명귀쯤으로 한쪽을 차지하고 말 것이다.  V. 하이퍼 시론   나는 맨 앞에서 전위적인 몇몇 시론들의 시가 하이퍼시에 공속하고 공통적인 요소를 나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하여, 심상운,손해일,조명제,최진연의 하이퍼 시론의 핵심을 간추려서 이미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몇몇 하이퍼 시 작품을 읽어가면서 앞의 평론가들의 해설을 곁들여 감상하고, 지금까지 내가 비판하면서 정신병적 증상과 다름없다고 예증한 바를 전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으로 삼고자 한다.  가. 주장자들과 그 시작품   최진연에 의하면, 하이퍼시론을 처음 주창한 이는, 오남구시인과 “탈관념- 디지털 시론”을 함께 전개한 심상운 이다. 심상운은 “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라는 논문(책)에서 하이퍼 시론을 터닦아 놓았는데, ‘디지털의 특성과 디지털시대의 감각에 호응하려는 시운동’에 따라서 ‘순수한 영상언어를 지향하고 추상화적 기법과 오남구의 염사와 접사의 사진찍기 기법 그리고 사물성의 강조와 다양한 시점에서의 순간포착에 의한 감각적 이미지의 표현(기법)에 중점을 둔 언어단위들의 집합적 결합방법을 제시하였다’ 고 하였다. 이것이 하이퍼 시론의 출발점이면서 종착점이다. 먼저 심상운이 하이퍼시라고 규정하는 오남구의 시작품을 눈여겨 보자.  싹이 트려나, 배낭을 벗어 놓고 양지 볕에 앉아 몸이 근질근질하다. 긴다리로 떼지어 서있는 계곡의 진달래며 철쭉 싹이 트려나, 아른아른 기척 없이 날아든 작은 새, 까맣게 잠이 든 앙상한 가지 부리를 부비어 흔들다가, 새싹에 대고 내 어머니의 맑은 목소리 깍궁! 소리치고 포르르 다른 가지로 날아간다. 또 한 마리 뒤따라 깍궁! 하고 포르~ 포르~ 포르르 ~ 포르~ 앞을 서거니 뒤를 서거니 두 마리 작은 새 깍궁! 깍 궁! 소리치고 새싹의 잠을 깨우며 날아다닌다. 싹이 트려나, 진달래 철쭉의 앙상한 가지들이 꽃샘바람에 흔들리어 이~잉~잉 울어댄다. 일시에 아가야 깍궁! 깍궁! 계곡에서 일어나는 맑은 목소리 환청이 돈다.   (오남구 시, 깍궁, 전부)    위의 시에 관해 심상운은 “이 시의 화자는 늦겨울 산행중에 대지가 혼곤한 잠속에서 새싹을 피우려 기지개켜는 듯한 초 봄의 정경을 의식과 무의식간 상상으로 넘나들고 있다. 소재나 정서는 지극히 한국적이지만 기법은 매끄러운 언어구사와 하이퍼텍스트적 구성이다. [...]이 시의 연상 고리는 양지에 앉은 화자-계곡의 진달래, 철쭉- 작은 새의 재재거림-어머니의 깍궁! -새싹을 어르는 작은 새들의 깍궁! -이에 화답하는 진달래 철쭉들의 잉잉거림 등 엄마와 새들의 깍궁을 회상하는 리드미칼한 환청 하머니이다. 그리고 시상의 각 유니티들을 매끄럽게 하는 하이퍼링크로 ‘깍궁!’ ‘ 포르~포르르~’ ‘이~잉~잉’ 같은 의성어들이 유려한 테크닉을 보여주고 있다.” 고 해설한다.   바깥 세계 정경을 의식과 무의식간 상상으로 넘나들고 있고, 리드미칼한 환청 하머니라고 지적한것을, 우리는 정신분열병 환자의 지껄임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고 더구나 (시)상의 각 유니티들을 매끄럽게 하는 하이퍼링크로 ‘깍궁!’ ‘ 포르~포르르~’ ‘이~잉~잉’ 같은 의성어들이 유려한 테크닉을 보여주고 있다 고 한데서는 그 환자가 지껄이면서 리드미컬하게 내뱉는 특정한 의성어 “...그쟈?, 안카나? ” 또는 “ 퉤, 씨팔” 같은 테크닉(?)을 생각케 한다. 다만 정신병 환자의 그것에서는 문장?(말)이 세련되게 보이지 않고 다소 투박해서 배움이 많지 않은 티가 나 는 것이 하이퍼 시와 차이점이라고 비판이 될까?  햇빛은 무색이다가도 단풍나무에 가 닿으면 단풍잎이 된다/ 노랑은 노랑금빛 빨강은 빨강금빛/ 갠지스강가에 쌓아놓은 나무더미에 빨간 불꽃을 당긴다/ 빨간 불꽃에 금빛 영혼이 하루종일 번쩍이며 탄다/ 아무 말 없이 타는 시체 위로 허공에 고루 숨어 사는 햇빛이/ 모조리 몰리어간다. 타다닥 탁탁 단풍무더기/ 햇빛은 단풍을 좋아해, 단풍에 닿자 마자 크게 웃어/ 마릴린 몬로는 입을 약간 벌리고 금빛 머리칼을 / 신사의 가슴에 올려 놓는다 <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포스터를 보는 18살 소녀도 크게 웃어/ 학교가 끝 나면 곧바로 동방극장엘 갔지 내친구와 몰래/ 웃음소리가 크게 퍼지고 먼 마을로 간 마 릴린 몬로가 /타는 단풍속으로 들어와 앉는다 , 햇빛이 심지를 돋운다 ( 김규화 시, 햇빛과 단풍, 전부)   심상운은 “위 인용 시에서는 햇빛과 단풍을 매개로 한 자유연상과 의식. 무의식의 가지치기, 청소년 시절 추억 등이 행간에 배어 있다. 시상전개의 각 유니트와 연상단락의 하이퍼링크적 징검다리로 동서양과 현재, 과거를 넘나들고 있다. 무색인 햇빛이 단풍잎이 되는 것을 시작으로 -노랑 빨강 금빛-갠지스강 나무더미- 빨간 불꽃-금빛 영혼 -타는 시체-단풍무더기 -단풍에 웃는 햇빛으로 확산된다.” [...] 여기서 하이퍼링크적 연결고리는 햇빛과 단풍의 교호작용을 통해 마치 끝말잇기 놀이하듯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미지군이며, 이것이 매끄러운 시읽기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독자로서는 이런 하이퍼시에서 의미나 결론을 애써 찾기보다는 파노라마 경관 감상하듯 화자의 자유분방한 공상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 즐기며 음미할 일“이라고 한다.   여기서도 우리는 하이퍼 시라는 것의 정신분열병적 증상에 관한 설명을 다시 보게 된다. 곧 자유연상과 의식- 무의식의 가지치기, 전개의 각 유니트와 연상단락의 하이퍼링크적 징검다리로 동 -서양과 현재 와 과거를 넘나들고 있고, 마치 끝말잇기 놀이하듯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미지군들이 나오니, 거기서 의미나 결론을 애써 찾기보다는 화자의 자유분방한 공상과 의식의 흐름을 그저 따라 즐기며 음미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의 방 우측 벽에 걸려 있는 첫 번째 그림-검은 철제 의자위에 사람 대신 활활 불타는 붉은 꽃 한 다발이 앉아있고, 그 밑엔 “ 죽은 뱀의 영혼은 발가숭이로 꿈틀거리며 꽃 밭의 환한 햇빛속으로 들어 갔을까? 라는 글이 붙어있다. 나는 그 글 밑에 ” 영하 10도의 겨울 밤 시멘트 도로 바닥에 귤장수가 떨어 뜨리고 간 노란 색종이 같은 귤의 꿈을 보았느냐?고 쓴다. 그는 그밑에 “시인들은 밤마다 죽은 언어가 새로 태어나는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고? ”라고 또 쓴다. (2연 생략) 그때 그의 두 번째 그림 속에서 나온 파랑 공, 초록 공, 노랑 공, 빨강 공, 하양 공이 거실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점점 부풀어 식탁이 되고 놀이터가 되고, 침대가 되고, 의자가 되고, 남자 여자 어른 아이들과 들판을 통통통통 신나게 튀어가고, 마을 언덕에 봄빛이 눈부신 한낮 하늘을 나는 마차가 되어 지붕 위를 둥둥 떠간다. 나는 찬란한 햇빛속에서 공이 터지는 환상에 전율한다. (심상운 시, 미완성의 시, 그림 감상하기, 1연, 3연 )   최진연에 따르면, 이 시는 “ [...]자유연상과 분방한 의식, 무의식의 흐름을 환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난해한 암호풀이 하듯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골똘히 캐기보다는 디지털매체의 그림 감상이나 댓글달기처럼 비선형적, 비순조적으로 독자 나름대로 상상하거나 언어이전의 언어로 작자가 보여주는 대로 그저 따라가 볼 일이다. 이시에서의 하이퍼링크는 의식의 흐름을 매개로 시공간 순서없이 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사라지는 이미지의 집합적 덩이들이다 “ 라고 하였다.   위에서 김규화 시작품에 관해 심상운이 해설한 것이나, 심상운의 시작품에 관해 최진연이 해설하는 것이나 양쪽에서 동일한 표현기법이나 해설을 다시 읽을 수 있는데, 이는 하이퍼 시 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들에 공통적이라서 새삼스럽지가 않다. 그 때문에 정신분열증 환자의 다양한 병적증상에 관한 임상의학 병실 의사의 일관된 진단 소견서를 읽는 기분이 드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가 않을 노릇이다.   이 때문에 최진연이 인용한 논문에서 “일반 독자입장에서는 난해하고 생경한 이 시에서 어떤 특정한 의미나 순서, 상식적 질서, 교훈을 찾으러 들지 않는다면 오히려 디지털적 하이퍼시의 특성을 따라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지금 이 시공간에도 미쳐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다차원적 상황들이 앞뒤 없이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천지만물의 존재나 사건, 사물들이 불가측, 불연속적이어서 어찌 보면 뒤죽박죽이지만 나름대로 혼돈 속에 우주순행의 질서가 있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뒷풀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최진연의 해석에서 우리는 이미 앞에서 보아온 정신분열병 환자의 조(躁)증 증상을 다시 겹쳐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증 환자는 흥분되어 있고 이야기가 많으며 과잉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데, 목소리가 크고 비정상적인 사고의 흐름으로 심한 경우 말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고, 망상이나 환각이 나타나기도 한다. 팽창된 자존심 또는 심하게 과장된 자신감을 나타내며,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거나 계속 말을 하게 되고, 대화와 사고의 비약 또는 사고가 연달아 일어나는 의식적 -무의식적(잠재적) 표출이라는 점에서 저 시라는 것의 해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 10시, 그녀는 파란 의자에 앉는다// 앉아 있는 그녀를 하얀 구름이 휩싸고/빨간 버스가 그녀와 구름을 싣고 달린다 /(TV 속에서는 굶주린 하이에나 두 마리가 뚝뚝 뻘건 피 떨어지는 누우새끼의 허벅지를 입에 물고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고 있다 )//그녀는 구름이 만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고 /무거운 가방을 든 검은 외투의 사내에게 손을 흔든다/ 사내도 그녀를 보고 웃으며 손짓한다 //버스 안은 침묵들이 움직이고 있는 빈 악보 속 같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음표들이 투명한 물방울로/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녀는 그 방울들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터뜨린다/ 그럴 때마다 방울 속에서 나온 노란 알몸의 소리들이/ 쪼로롱거리며 버스 안에서 뛰어놀다가 바람에 실려서/도시의 하늘로 줄지어 날아간다 //도시를 빠져나온 빨간 버스는/ 돌고래들이 솟구치는 태평양 바다 위를 달린다// 출렁이는 바닷물이 그녀를 덮친다 /그때 그녀의 가슴 속에서 뛰쳐나온 물고기 한 마리가 / 은빛 지느러미를 퍼들거리며 튀어오른다 //순간 그녀의 눈 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2001년 9월 11일 아침, 뉴욕 무역센타 쌍둥이 빌딩/ 눈부신 유리창 속으로 날아 들어가 굉음을 내며 /폭발하는 은빛 비행기 //(그 은빛 비행기에는 검은 외투를 벗어버린 알몸의 사내가 타고 있었고?)//아침 11시, 빨간 버스는 아마존 숲 위를 날아가고/그녀의 파란 의자는 더 반짝이기 시작한다 ( 심상운 시, 파란 의자, 전부)   이들 하이퍼 시가 장차 세계무대에서 한국시인들에 의해 독창적으로 창안된 새로운 시 모형들의 큰 성과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최진연은 위 인용한 논문에서 이 시작품에 관해 “이런 표현은 현실을 벗어난 공상의 산물이다. 그(심상운)는 현실세계뿐 아니라 가상현실에서도 시적 공간을 공상에 의해 확장하고 있다. 문학에서 공상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어본 사람이면 실감할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상세계를 무대로 전개되는 그 소설뿐 아니라 그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 7편이 평균 7억 달러쯤 벌어들였다니 엔터테인먼트 측면에서도 문학에서 공상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심상운이 공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시에 도입하여 시적 공간을 획기적으로 넓힌 최초의 시인이 아닌가 한다.[...] 그가 현실과 가상현실을 아울러 감각적인 시적 공간을 공상세계로 확장하고 있음은 일찍이 우리 시사에 볼 수 없었던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의 공상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은 우리가 종래의 시에서 흔히 말하는 기상(奇想conceit)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그 범위에 현실과 가상현실의 제한이 없다“고 논평을 한다.   최진연의 해설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과 공상과 환상의 세계에서 얘기 줄거리를 따라 주인공들의 행동이 묘사되며, 어둠과 밝음- 순수한 어린이 세계와 흉악한 어른들의 세계를 대조하여 수수께끼같은 사람의 삶의 다양성을 제시해서 깨닫게 해주고 한층 성장-성숙케 해주는 소설과 영화와 달리, 저 시는 그저 “현실을 벗어난 공상의 산물로서, 가상현실에서 공상만을 확장하고 있기에“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 아닌, 시인이라고 할 수가 있는 이의 시작품으로 보아줄 수가 없다는 진단에서만 그렇다. 불행하게도 위 시를 정신분열병 조울증 증상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으나, 어느 시인이 쓴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사람이 읽었다면, 결코 시라는 예술 작품이라고 인정해주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반문을 할 수 있다:   공상, 망상, 환상의 세계를 시인이 말하면 한편의 시-예술 작품이 되고, 정신이 미쳤다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말하면 “현실과 가상현실을 아울러 감각적인 (시적) 공간을 공상세계로 확장하고 있음은 일찍이 우리 시사에 볼 수 없었던 놀라운 일” 이 아니되는 것인가? 어떤 이는 이렇게 변명을 할지 모르겠다.: “개 장난같은 모형이라도 피카소가 그리면 수백억원짜리 값나가는 그림이 되지만, 어린애가 그리면 욕먹는 낙서가 된다.” -말되는 소리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는대로 느껴서 그리는 그림(畵)과 달리, 시라는 것은 언어로 창작하는 2차적인(철학적인 말로 “메타-”) 예술행위이다. 언어의 취사 선택이라는 고도의 사고작용의 산물이기에 단순한 시각예술과 구별이 되는 것이고 그만큼 지적판단 행위가 따르는 짓인 것이다. 언어의 취사선택이 없이 의미를 저버린 문장 나열하기는 글장난이나 말장난에 다름없는 짓일 뿐이다. 바로 이것이 정신이 건강하냐 병들었느냐의 판가름이 된다.  나. 그 주장에 대한 비판   바로 위에서 하이퍼 시작품을 감상하면서 나는 동시에 그 문제점도 정신분열증환자의 증상과 나란히 비교하여 지적한 바 있는데, 이제 그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을 할 차례이다.   최진연은 앞에서 언급한 논문에서 디지털 시, 탈관념 시, 사물 시, 하이퍼 시 간의 차별성이 없음을 다음과 같이 짧게 정리한다.: 하이퍼시와 디지털시의 차별성은 없어 보인다. 사이버 공간의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현실성을 지적하면서 사이버시대의 시에 있어서 탈관념의 근거를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이미지의 실재성을 가스통 바술라르의 시학에서 찾은 그(심상운)는 ‘의미의 예술’에서 ‘영상(이미지)의 예술’로 전환해야 함을 강조한다. 디지털 공학적 세계에서 구현되는 현상을 탈관념의 원초적 언어로 쓰는 디지털 시 쓰기에서 상상과 공상을 강조하는데, 이는 오남구의 탈관념시에서 영감(inspiration)과 관찰에 의한 ’직관을 강조한‘ 것과 다른 면이라 하겠다. 상상과 공상(fancy)을 강조하는 점이 심상운의 하이퍼시론의 차별성으로 보인다. 심상운이 사물에 대한 감각과 인지에 그치는 ’관념의 그림자‘ ’지장수 같은 의미‘를 인정하는 감각적 이미지의 표현은 한마디로 말해서 사물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시화(詩化)하자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고정관념을 벗어난 새로운 언어(의미)창조로서 사물시(physical poetry)에서도 강조하는 바이고, 하이퍼시에도 그대로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최진연의 차별성에 관한 비교 발언에는 디지털 시론을 주창한 오남구와 하이퍼 시론을 주창한 심상운간의 차별성을 중심으로 탈관념시와 사물시론의 불가분리성이 언급되어있을 뿐, 이들 시론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비판하는 데에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독자에게 감상의 태도 전환만을 요구하고 일방적인 희망적 예측만을 내놓는다. “[...]의미론적인 소통의 독해보다 읽고 느끼는 감성적 소통에 그쳐야 할 것이다. 읽고 느끼는 재미 이상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상상과 공상을 통해서 현실에서 볼 수 없거나 있을 수 없는 가상의 세계를 영상언어의 투명한 이미지로 그려 확장해보이는 것은 시인 자신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세계를 떠난 신선한 해방감을 주므로 환영하리라 생각된다.” 과연 그런 시를 읽는 독자들 중에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세계를 떠난 신선한 해방감을 맛보고 환영하게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이퍼 시쓰기를 적극 옹호하며 지지하는 조명제도 앞서 언급한 자신의 논문에서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는 막연한 기대점에서는 동일하다. “지금까지 하이퍼시 텍스트를 접해 온 시인들 가운데는 이념과 용어, 이론과 작품, 자기 모방과 유행어, 감동 부재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는 이들이 없지 않다. 이런 문제는 하이퍼 시를 쓰고 있는 당사자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논의되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난관을 차근차근 극복해 나갈 때 하이퍼 모더니즘의 시대는 보다 빨리 열릴 것이다.”   그에 지지하는 점에서는 뒤쳐져있지 않지만, 문제의 주요한 맥락만은 언급된 논문에서 손해일이 잘 짚어냈다. “하이퍼 시가 비논리적, 비선조적이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첨단 글쓰기라 해도 이를 어느 정도 조정하는 하이퍼링크적 기능이 없다면 현대시의 ‘낯설게 하기’를 넘어 난삽한 글쓰기나 시인 개인의 극히 편향되고 혼란스런 의식의 나열에 그치고 말 것이다. 아무리 복잡한 시대라 하더라도 인간의 기본욕구는 혼돈과 무질서보다는 정서적 안정과 예술적 즐거움을 선호할 것이다. 이미 수 십 년 전에 선보인 이상(李箱) 시인의 난해한 문제작들이 호사가들의 지적 호기심과 분석 텍스트로는 적합할지 몰라도 일반 독자대중들의 애송시는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독자를 먼저 의식하고 첨단을 리드한다는 하이퍼시가 수위 조절없이 의욕이 지나쳐 난해시로 편향될 경우 오히려 독자들의 외면을 자초할 위험이 크다.”   그러면서도 손해일은 다음과 같이 비상식적인 시 쓰기를 통해서 시작품의 일반적인 고정된 개념과 틀을 허물려고 시도한다.  “셔블 발기다래 빔드리 노니다가” 을지로-충무로통 골뱅이 골목 번개팅, 을지문덕-이순신장군,살수-한산대첩 축하연,생백주에 골뱅이 안주로 우리가 남이가! 나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e-mail을 날린다.클릭! 골뱅이복음@KOREA.COM, 오픈 세사미! 오우,베리 굳! 그란데 억수로 유감인기라,구텐베르그선생! 당신의 튻허 활자체를 1972년 미굴 BBN사 레이텀 린슨이 이메일 발신자 표시 약호로 처음 썼다 카는데...앹 사인(at sign) 앹심볼(at sinbol)이라나 뭐라카나,오우,노우! 바벨탑의 징벌! 나라마다 말쌈이 달라 헷갈리기 짝없으니 X-Y@#&{^6^}-(/+$)%=??? 줄줄이 사탕-링크-링크- 프랑스,이태리는 별미 끝내주는 달팽이- 됙일은 귀바퀴 동그란 오이-네델란드는 앞에 스라지(ape slaggi) 원숭이 꼬리-폴란드,루마니아는 똥구녁 뻘건 원슁이-스웨덴은 두르르말린 코끼리 코 [다음 생략...] *22)   위에 든 글을 나의 체험적인 정신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떤 진단을 내릴 수가 있을까? 정신병 초기에서 최악의 상태까지를 1-10 단계로 구분해본다면, 무의미(탈관념) 시- 1~2단계, 디지털 시– 3~5 단계, 초현실주의 시– 6~8단계, 그리고 위에 인용한 손해일의 하이퍼 시 는 9~10단계 에 해당한다고 보겠다. 이러한 단계는 죽음을 최소한 5~6개월을 앞에 둔 환자의 말기상태인데, 극심한 환시(幻視)증 정신분열 환자가 간헐적으로 토해내는 말씨들을 주워 모아 놓으면 저런 글이 나올 수 있다.   저런 상태일 경우 환자는 거의 음식을 먹지를 못하기 때문에 신체는 말라서 뼈만 남아 뵌다. 깍두기가 사람 손톱처럼 보인다거나 얼큰하게 끓인 찌개가 피를 흘린 살점으로 보이고 김치가 돼지 창자처럼 보여서 아무 것도 먹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여자 환자의 경우 치마도 팬티도 다 벗어던지고 펄쩍 펄쩍 날뛰다가 자절하기에 손발을 묶어서 독방에 가두고 안정제를 투여하여야만 어느 정도 주변사람이 여유를 가질 수가 있는 때이다. 사물과 사람이 그 형체나 활동이 혼동되고 혼난스러워서 자신의 감각기관이 주체를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 쯤 되면 주변의 건강한 사람이 볼 때 하염없이 인간으로서 무력감을 느끼고 전혀 도움의 손길을 뻗칠 수가 없어 절망감과 자괴감을 갖고 괴로워하게 되는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하이퍼 시짓기를 주장하고 고집하는 이유는 “비논리적, 비선조직이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첨단 글쓰기”가 정신분열병 환자의 “비논리적, 비선조직이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첨단 말하기” 나 다름없음을 알지 못한데서 기인하고, “개인의 극히 편향되고 혼란스런 의식의 나열에 그치고 말 것” 이 정신분열병 환자의 증상에서 나오는 지껄임투와 다름없다는 사실에 무지하여 그런 병자와 같은 짓을 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 날 의(醫)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신경계통의 질병치료수단에 관해서는 아직도 커다란 진보를 하지 못하였다. 왜 신체가 멀쩡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정신 이상상태를 보여서 완전히 비상식적인 말과 행동을 하고 나중엔 불행한 생애로 마감하게 되는 것인지, 그것이 유전적인 요인인가 아니면 충격받은 환경적 요인인가가 아직도 뚜렷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수많은 정신 병의원이 있지만 모든 정신병을 말끔히 완치시키는 곳은 없고 의사도 신경을 안정시키는 선에서 개선을 많이 하느냐 않하느냐에 치료효과를 두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업무를 보던 정신병자 요양원은 이름난 정신병원을 많이 돌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으나 완쾌를 못보고, 많은 치료비로 재산을 거의 바닥을 내서, 지친 가족이나 환자나 이제 마지막으로 신체를 위탁하는 곳이었다. 이 병은 사람의 뇌와 심리상태의 미묘한 시스템에서 기인하기에 의과학을 공부한 의사들도 뇌 신경 조직을 다 뜯어 살펴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두 손을 들고만 있는 지경이다. 그리하여 차라리 종교적인 신비하고 기적적인 카리스마에 의한 치료술을 기대하는 것인데 이는 전통적으로 무속에 의해서 무당들이 굿으로 악귀를 축출하여 본래의 심리를 되찾으려한 방법과 비슷한 것이기도 하였다. 이 말은 달리 신앙지도에 의해서 심신을 추스르고 정신건강을 회복시키는 종교교육자의 능력도 정신과 의사 에 못지않은 치료효과를 거두기도 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60년대에 새로운 시적 실험으로서 ”무의미 시“운동을 하게 된 김춘수가 ”무의미 시“의 막다른 골목에서 다시 ”의미의 시“세계로 돌아와 고백한 말을 경청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나의 무의미시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 또 의미의 세계로 발을 되돌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23)    이는 그 시 이론을 다루면서 처음에 내가 지적한  모순성을 늦게야 깨달았다는 자기 고백이요 솔직한 증언이다.  그 러면서 늦게야 철이 든 사람처럼 김춘수는 전위적인 시 쓰기를 하는 시인들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우선 내가 봐도 이해 안 되는 시들이 있다. 박상순, 송찬호의 시 같은 시들이다. 이들의 시는 전위적이다. 이들에게는 이미지가 그려내는 환상세계만 있을 뿐이다. 허무적이다. 의식상태가 그런 거 같다. 믿고 기대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철저한 비대상 세계, 말하고 싶은 대상이 없는 거다. 환상세계가 이미지를 통해서만 펼쳐지고 있는데, 아무 의미없는 세계다. 그 허무를 언제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허무는 견뎌내기 어렵다. 뭔가 기대는 게 있어야 된다. 사람이라고 하는 육체를 가진 이상, 허무를 이겨내지 못한다. 허무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자유, 완전히 해방된 상태다. 그 자유를 견디지 못한다. 내가 무의미시를 견디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계속 이런 시만 못 쓴다. [...]의식이라고 하는 건 언어다. 언어와 의식은 동일한 것이다. 언어에서 해방된다고 하는 것은 모든 것에서 해방된다고 하는 건데 결국 언어에서 완전히 해방된다는 건 시를 못쓴다는 것이다[...]시적 진일보라는 게 어느 한계에 가면 막다른 골목이다. 우리 시도 막다른 골목에 가 있다. 시가 없어지는 단계에까지 와있다.”*24)   여기서 전위적인 실험시, 무의미시에 대한 솔직한 김춘수의 비판은 하이퍼 시 뿐만이 아니라 거기 공속한다고 지적한 다른 전위적인 시-이론들에도 해당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시가 없어지는 단계에까지 와 있다.”  * 글 맺음   지금까지 나는 이른 바 무의미(탈관념) 시, 초현실주의 시, 디지털 시, 하이퍼 시라고 또 불리는 것들을 평론하였다. 이들 시론을 펴는 이들의 공통된 주장으로부터 우리는 그것들이 이름을 달리하고 있음에도 (1) 전위적인 실험적 시, 또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해체론에 입각한 시류(詩流)에 속한다는 점 (2) 무의미는 탈 관념적이고 그러는 한 현실을 벗어난 가상적인 공간과 이미지를 중시하여 의식과 잠재의식(=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고 연과 연, 또는 한 연 속의 문장과 문장을 인과적 관계의 논리성 없이 구성하며, 상상력의 비약에 의해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초월한 언어 단위(unit)들로 구성된다는 있다는 점이며, 바로 그런 수단과 방법들로 인하여 아날로그의 시대를 마감하고 디지털의 기술 시대에 걸맞는 시 운동이고 이 디지털 기술을 응용한 문자, 동영상, 이미지, 시적 상상력 등이 쌍방향 또는 방사형 네트워크로 가지를 치고 얽히고 설켜 복합구성을 이루고, 크고 작은 마디인 시어와 행과 연, 의미단락 등 기본 유니트(unit)들이 거미망처럼 하이퍼링크(hyper link)로 연결돼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을 이룬다는 점에서 하이퍼 텍스트(링크)적 글 쓰기로 하이퍼 시작법 이라는 것과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다는 방식에서 한 통속에 넣을 수가 있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가 있음을 알았다.   뒤돌아보면, 일찍이 프랑스에서 일단의 예술가들이 “쉬르레알리즘(surrealism, 초현실주의)” 운동을 선언한 때부터 오늘날까지도, 창조적인 상상력과 자유로운 이미지의 구현이라는 목표에만 이성(理性)이 함몰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와 같은 아류로서 무의미 시니 디지털 시니 하이퍼 시니 하면서 전위적인 시운동과 그런 이론들이 아무런 반성이 없이 마구 내뱉어졌다. 심지어 차 영한 시인처럼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처럼 허무적이거나 파괴적인 격렬한 반응이 아닌 초현실과 정신, 신비한 꿈이 결합한 가장 위대한 정신의 자유”라는 극 찬양까지 서슴없이 하기에 이르렀다*25). 이럴진대 지금까지(나의 이 비판 논평문이 나오기 까지) 아무도 그것의 부정적이고 치유되지 않는 병적인 이면까지 파헤쳐 보는 노력도 없었고 아무도 이를 밝힌 이도 없었다.   어떤 이들은 강 건너편(피안)을 동경하고 그리로 가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며 산다. 지금 이곳(차안)의 일상적 생활이 불편해서이기도 하고, 너무 안락한 나머지 싫증이 나서 모험심을 가지고 여기와는 또 다른 경험을 해보고자 하는 이유도 있다. 온갖 상상과 공상으로 저쪽 강건너 쪽을 묘사하고 꿈을 꾸어 채색하고 황당한 이야기도 해댄다. 그러나 강 저쪽을 건너간 사람들은 다시는 강 이쪽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이 강을 건너간 후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말하고 행동을 했고 더는 이 쪽 세상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 저쪽의 비참한 생활은 강 이 쪽 사람들도 알 수가 없었다. 오직 단 한 사람만이 강 저쪽의 세상을 가 보았다. 가서 보고 이쪽으로 건너와서 지금 저쪽의 세계의 불행과 슬픔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말을 무시하거나 믿지를 않으려들고 여전히 자신의 상상과 공상과 망상이 만들어 낸 저쪽 세계만을 동경하고 그 쪽을 찬탄하며 계속 글쓰기를 고집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고뇌에 찬 독창적인 시 예술작품을 정신분열증 환자의 넋두리라느니 지껄임이라느니... 하여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고 달라들지도 모른다. 구원할 수 없는 인간의 자만행위에 마침내 이 글쓰는 이는 고통스럽게도 침묵하기로 할지 모른다. 그러나 비판의 정당성이 별처럼 밝다면 이를 막으려는 어떤 횡포의 암흑도 당해낼 수가 없을 것이란 사실은 이성을 신뢰하는 역사의 징표이다.   상상(imagination)과 공상(fancy)은 예술(문학) 창작의 바탕이 되는 세계이다. 그것이 없이는 예술이 설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가치있는) 주제를 표현해내고자 사용하는 수단이 되어야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고 단지 오락(유희)를 위한 방법이 될 때는 문학이든 예술이든 한갓 만화책같은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뿐이다.   이제 우리는 결국에 와서 본질적인 질문앞에 당도하였다. 불행한 정신병자들이 지껄이는 짓을 왜 그토록 배운 지식층 시인과 평론한다는 이들이 흉내내려고 안달을 하는가? 애지중지 키워서 많은 돈을 들여 대학교를 보내고 세상에서 출세하기를 바랬는데, 시인인가 평론가인가 되어서 외롭게 글짓기를 하고 함께 모여 연구하고 기를 쓰고 공부하더니, 한다는 소리가 기껏 “ 쯪쯪... 젊은 놈이 사지는 멀쩡해가지고, 정신이 돌아서 미친 넋두리나 지껄이고 다니다니...”하는 탄식의 소리를 듣는 정신분열증환자의 지껄임짓이나 하겠다는 말인가? 도대체 왜 이 지경에 이르고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온갖 미사여귀를 동원한 수식어를 앞세워 시문학의 예술에 전위대요 선구자요 창조적인 활동가라는 허위의식속에 자기를 망각하고 독자를 우롱케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일까? 그 이유는 첫째로 사태의 한쪽 면만을 보고 이를 전부로 생각하고 눈딱감고 덤벼들어서 다른 쪽 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탓이고 둘째로는 특수한 개성있는 시작품을 선보여서 남의 이목을 집중해보자는  시선끌기 예술의 의도적 일탈일 수도 있고 셋째로는 창작활동에 나침판 구실을 할 문학의 이념에 대한 정립 곧 문학의 오랜 세월에 걸쳐 확립된 정의에 관한 확고한 인식이 결여된 탓이라고 비판해야 하겠다. 그러므로 시(문학)의 이상과 가치관 확립하기가 마지막에 와서도 우리의 제일의 관심사가 되기에 이르렀다.   문학이란, 웰렉과 워렌(R. Wellek & A. Warren)이 그들의 저서 『문학의 이론」*26)에서 주장하듯이, 작가의 체험을 통해 얻은 진실을 함축적·내포적이며 비유·상징 등의 언어를 통해 표현하는 예술로서 인생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창조의 세계이다. 비록 허구화된 현실일지라도 실제 현실의 모방이며, 현실의 모습중 의미있는 내용을 선택하여 상상력과 작가의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인데, 이 때 문학은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제시하고 현실의 문제를 바로잡는 힘으로 작용하는 기능을 한다. 여기서 사상과 정서의 표현 의식이 생기는데, 미의식이 정서와 관련이 있는 형성적 요소라면, 윤리성이나 이념의 문제는 문학의 내용을 이루는 사상과 관련이 있다고 할 것이다. 곧 미적(美的)으로 정화되고 정서화된 사상의 표현만이 문학일 수 있다. 문학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로서 미적인 즐거움(오락성)을 주지만, 동시에 거기에는 언제나감동을 주고 삶의 바람직한 의미를 줄 수 있는 사상을 상징적으로 그려내어 Paul Ricceur가 말한바 처럼, “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해서 달리는 포착되지 않는 우리의 존재상황에 대한 깨달음을 가능케 하는 힘을 주는 것이” *27)어야 한다.   인류 역사에 불멸의 영원성을 띠고 시대와 장소와 인종을 초월하여 독자들에게 늘 읽히는 문학서들- 소설이든 시이든 희곡이든 -은 재미(오락성)와 감동(깨달음)을 함깨 지닌 것들이었다. 여기서 재미(오락성)을 단순히 유희나 장난같은 놀이로 착각해서 이해하지 말라. 감동을 주는 웃음 울음이나 감정의 진폭을 다스려서 카타르시스(치유)를 겪게 하는 그런 재미를 말한다. 그러한 카타르시스적 오락성(재미)이 유감스럽게도 하이퍼 시라는 것에는 들어있지도 않고 들어올 수가 없다.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에서 시 짓기의 실험 정신과 다양한 기법에 대한 욕구는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무의미(탈관념) 시, 초현실주의 시, 사물 시, 디지털 시, 하이퍼 시라는 것들은 감동(깨달음)성을 교훈적인 것이거나 의도적인 것이라 하여 문학에서 배제하고, 단순히 사물성이나 오락성만을 강조하여 이를 무의미 또는 유희화 하려는 유혹에 빠져 있다. 시가 꼭 교훈적이거나 교육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또 모두가 그러한 시만 쓴다면 시는 도덕 과목이거나 윤리과목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시가 단순히 오락성과 유희의 도구로 전락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문학 예술이 될 수가 없고, 놀이(게임)의 한 가지로 추락해버릴 것이다. 언어를 수단으로 하는 시문학은 영화(영상)나 그림(회화)이나 건축이나 조형예술을 흉내 낼 수도 없고 따라갈 수도 없는 것이다. 만일 그것을 노린다면 시문학은 다른 영상매체의 보조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최진연은 상상력과 환상속에 펼쳐지는 오락성으로 한 시대를 석권한 영국의 환타지 소년소설 해리포터를 보기로 들면서 시짓기도 그에 따라하기를 권고하나 그 환타지 작품의 겉 맛을 파고 들어가 숨겨진 권선징악(또는 어두운 어른들의 세력에 대한 순수한 동심의 세계의 극복)의 측면까지 엿보지 못하여서 유감이다. 소설과 달리 詩가 하이퍼 시인들이 주장하듯이 사이버시대에 걸맞는 현대인들에게 오락성을 주자고 그 쪽으로 경도된다면, 엄청나게 다양한 오락을 주는 기기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서 외면받고,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자신들의 시와 함께 파묻히고 말 것이다. 그들에게 굳이 하이퍼시와 같이 이해가 어렵고 까다롭고 고통스런 글을 읽겠다고 돈을 들여 시집을 사거나 시간을 낼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김춘수가 자기 삶의 말년에 와서 시문학계에 권고하는 다음의 말을 경청해보자.:시에 대한 자의식이 있어야 된다. 자기 시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왜 이런 시를 썼는가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냥 충동적으로(전위적인 詩들 처럼-글쓴이) 쓰고 마는 것은 아마추어가 하는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떤 예술가적 자의식이 있어야 한다. 시는 자연발생적으로 나올 수가 있지만 그걸 의식하고 제어하는 이성이 있어야 한다. 19세기 시대의 로맨티스트들처럼 자연발생적으로 부르짓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28) 이같이 김춘수가 시인 자신의 시작활동에 반성과 비판을 요구하는 것은 문학의 본질적인 전통적인 정신을 향해 깨어있으라는 주문이나 다를 게 없다.   시(문학)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가치를 매겨서 의미있는 세계, 가치있는 세계를 건립하여, 인간성을 회복하는데 기여하고 인본주의를 고양시킴으로서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새로울수록 우리의 삶은 건강하고 우리의 내일은 더욱 정신적으로 풍요로울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 이래,아니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같은, 중세 암흑기를 거쳐 르네상스운동에 목숨을 바쳐온 인류의 고귀한 재산은 문학을 통한 휴메니즘의 구축 -바로 그것이 아니었던가? 시 창작의 자유에 바로 이 근본 정신은 깃발처럼 늘 펄럭여서 살아있어야만 한다.                                                                                           끝.   ......................................................................................................                                                                                                                           *곁 풀이     1)심상운, 탈관념 시에 대한 이해, 월간,시문학 2006.8월호, 시문학사 2)심상운, 위의 논문 , 같은 곳 3)심상운“21세기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형태를 추구하는 젊은 시 운동-‘하이퍼시’-기존관념에서 해방, 자유로운 상상력의 발현, 우주적 개안”  4)손해일, “의식- 무의식-언어의 징검다리와 하이퍼 링크” 월간. 시문학 2008.6월호 .시문학사 5)조명제, “하이퍼모더니즘의 시대는 오는가”. 월간.시문학 2008.10월호  6)최진연, “하이퍼시(hyper poetry)의 이해” . 월간. 시문학 2010.10월호 7)당시 글쓴이의 경험에 의하면, 김양이나 강씨는 조증(=기분의 고양상태,흥분)의 상태에 빠져있지 않고 성격적으로도 차분한 편인인데도, 홀로 중얼거리며 돌아다니거나 옆에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지껄여댔는데, 그런 이들이 꽤 있었다. 8)이홍식,정신분열증, 진수출판사,1995, 88쪽,94,  Pychopathology, Milyn R.Zide & Susan W. Gray. (역) 전석균, 권구영, 서미경 , 71,72쪽. 하나 의학사,2003.  학원 세계대백과사전26. 12쪽 정신분열병. 학원사,1993.  그밖에, 포탈- 네이버 관련항 참조 9)심상운: “이 글은 1981년 12월호 월간 에 김춘수 시인의 現代詩의 探究로 발표된 글로서 현대시를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되는 매우 중요한 논문이다.”라고 하면서 심상운 시인이 옮긴 것이다. 10)심상운: “이 글은 1981년 12월호 월간 에 김춘수 시인의 現代詩의 探究로 발표된 글로서 현대시를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되는 매우 중요한 논문이다.”라고 하면서 심상운 시인이 옮긴 것이다. 11)M. Heidegger, HU。S。313 12)M. Heidegger,HW。S。310.  13)최이인( 엣이름; 최성도), 시작적 사유(사고). 연세대학교 대학원, 1990, 석사학위 논문 참고 14)최진연, 탈관념은 가능한가? 월간,시문학 2006. 7월호 15)M. Heidegger,US. S. 208. 16)심상운.위의 논문, 같은 곳 17)심상운; “이 글은 (신구문화사 1961년11월)의 "시작노트"에 실려 있는 시인 조향의 시작노트를 원문 그대로 수록한 글입니다. 앞서 감상문에서 언급했던, "바다의 층계"에 관한 시인 자신의 해설도 있고 해서 그의 시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이라고 생각되어 옮겨 봅니다”. 18)여기서 無意識 이란 용어 자체가 성립 될 수가 없는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의식과 잠재의식 이라고 바꾸어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무의식 이란 의식이 없다는 말인데, 혼절했거나,죽은 상태인데 어떻게 경계를 넘나드나? 19)최진연, 하이퍼시의 이해, 월간, 시문학 2010.9월호 20)마르틴 하이데거 철학에서 존재론의 핵심임 21)최진연, 위 논문, 같은 곳 22) 현대시인협회 발행, 2011년 사화집 23) 김춘수 시전집, 서문, 현대문학사, 2004  24) 김춘수- 이재훈과의 인터뷰, 현대시 2004년 4월호  25) 차영한, 초현실주의 시와 시론, 한국문연, 2011 26) 웰렉과 워렌(R. Wellek & A. Warren), 『문학의 이론』 ,김병철 역, 서울 을유문화사,1993 27) Paul Ricceur, Interpretation Theory, Fort Worth, Texas, 1976, p. 37. 28) 김춘수- 이재훈과의 인터뷰, 현대시 2004년 4월호     *** 도표 참고
833    시에서 아방가르드를 꿈꾸는 시인은 고독자 댓글:  조회:4677  추천:0  2016-01-03
     조향의 시와 정신                                 최 휘 웅        시에서 아방가르드 정신을 꿈꾸는 자는 고독하다. 전위의 예술 행위는 인습이나 관행에 대하여 통렬한 반항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당대의 몰이해는 물론이고, 현실로부터 소외되기 십상이다. 외면과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타성에 젖어 있는 시의 현실을 일신하기 위한 새로운 정신의 추구는 늘 이런 고통을 수반한다. 시의 발전을 위하여 현실과의 적당한 타협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의 영토를 개척하기 위한 노력은 꼭 있어야 되는 것이지만, 정작 전위의 중심에 서 있는 시인은 주변의 몰이해와 비난의 형벌을 감내해야 된다. 무미건조한 상식의 틀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전위시인들은 그들이 걸어온 혁명의 길만큼이나 험난한 예술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아직도 유교적 윤리관이나 자연 친화의 정신이 뿌리박혀 있는 한국 문화 토양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방가르드 정신을 수용하고 용인할 수 있는 문화적 폭이 그만큼 인색하다는 뜻이다.    초현실주의의 전도사임을 자처했던 조 향(1917-1984) 시인의 시의 일생도 몰이해와 외면과 비난의 울타리에 갇혀 있었다. 중앙문단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고, 방기된 채, 주변 문학의 한 축으로만 인식됐던 시의 인생이었다. 몇몇 그의 추종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문단의 중심에 있었던 문인들로부터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어쩌다가 관심을 보이는 시인이나 비평가들도 비난의 칼을 들이대는 경우가 더 많았다. 1984년 여름 강원도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심장마비로 급서했을 때, 그 흔한 추도사 한 마디 신문에는 실리지 않았다. 그만큼 그의 문학은 절해의 고도에 유배되어 격리된 이단의 문학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1950년대 6.25전쟁중 피난 수도 부산에서 이봉래, 김경린, 박인환, 김규동, 김차영 등과 함께 했던 『후반기』 동인 시절이 그의 문학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던 것 같다. 1940년 매일신문에 「초야」란 시가 가작으로 입선되어 등단한 이후 일제말기『日本詩壇』,『詩文學硏究』와 같은 일본잡지에 동인으로 참여하여 시작활동을 했으며, 광복후 잠시 경남 마산에서 박목월, 김수돈, 김춘수 등과 『魯漫派』의 동인활동을 했지만 조 향의 본격적인 문학정신이 드러난 것은 『후반기』동인 시절부터였다. 이렇다 할 동인지는 없었지만 주로 『週刊 國際』를 통하여 그들의 문학적 신념을 펼쳐 보여 주었는데, 문단의 관심이 모아졌던 때다. 이때는 피난 문인들의 집결지로서 중앙문단의 역할을 했던 부산의 지정학적 조건과 전쟁이란 시대의 정신적 공황과 그들의 문학정신이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문학사의 조명을 받게 되는 측면도 있지만, 어떻든 이 시기의 이들은 중기 한국 모더니즘을 주도했다는 평을 듣는다. 조 향의 입장에서는 문학의 동지들이 있었고, 시대의 첨단에 서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만한 시기였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였다. 수도의 환도 이후 후반기 동인들은 흩어졌다. 대다수 서울로 올라가 버렸고, 조 향은 부산에 혼자 남는다. 그 이후 그는 외로운 문학의 길을 걸어야 했다. 후반기 동인이었던 박인환과 그 주변에 있던 김수영, 김춘수가 문단의 중심에서 각광을 받고 있을 때, 조 향은 한국의 남단 부산에서 초현실주의의 깃발을 들고 혼자 고군분투했다. 20년 가까이 봉직했던 동아대학교 교수직을 잃고, 1968년 서울로 이주하기 전까지 『현대문학』,『가이가』, 『일요문학』 등의 동인지를 주도하면서 양병식, 구연식, 조봉제, 노영란, 김춘방, 정영태, 김일구, 문재구, 안장현, 김용태 등과 함께 초현실주의의 이념과 방법론을 나름대로 소화하여 확장하고자 했지만 문단의 무관심 속에 그의 문학은 소외의 늪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조 향은 그런 문단의 소외에 굴하지 않았다. 일부 문인들의 그의 시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문학적 신념을 놓지 않았다. 주로 도시적 우울과 불안의식으로 현실에 대한 반항정신을 노래했던 후반기 동인 중에서도 가장 파괴적이고 실험성이 강했던 그는 문단의 아웃사이더 시인으로 고립되어 있었지만, 그는 현실과 타협하거나 기존의 문학 질서에 순응하지 않았다. 아방가르드 정신의 철저한 실천자로서 고집스러울 정도로 시의 인습에 반항하는 혁명가의 길을 걸었다. 서울로 이주해서도 제자들을 중심으로 를 조직하여 『아시체』란 실험적인 동인지 1,2집을 냈고, 김종문, 정귀영, 김차영, 노영란 등과 『전환』동인 활동을 하며 과격할 정도로 시의 형식을 파괴하는 초현실주의 시를 발표했다.    조 향은 전통적인 서정시의 질서를 거부했다. 그는 분명 시대의 첨단에서 아방가르드 정신으로 무장한 시의 혁명가였다. 한국시의 보수적 질서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시의 영토를 개척하고자 했던, ‘시는 전적으로 현대적이어야 한다’는 랭보의 명제를 실천하는 길이기도 했다. 그것은 그가 살았던 당대의 문화조건이나 전통이란 미명의 사슬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절대적 자유를 향한 정신적 저항이었다. 그의 시는 이성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을 꿈꾸는 것이었고, 관습적 관념에 길들여져 온 피폐한 인간 정신을 일신하는 것이었으며, 합리주의의 이성적 사고에 의하여 억압된 인간의 원초적 감성과 상상력의 불을 무의식의 자동기술을 통하여 지피고자 했던 언어 혁명이었다. 그렇기에 당대에 이해 받을 수 있는 그런 시인은 아니었다. 문단으로부터 이단아 취급을 받으며 외로운 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기성의 비평가나 시인들 다수는 조 향의 시와 초현실주의 이론을 육화되지 못한 설익은 서구시의 모방으로 혹평했다. 한자어나 외래어를 남용한 난해시의 원조로 비난하기 일쑤였다. 장백일 평론가는 ‘그의 시에서 4, 5할을 차지하는 외래어를 빼어버리면 16, 7세 소녀의 눈물 같은 센치만 남을 뿐이다.’(현대시학 70년 7월호)라고 비난하고 있다. 한평생 추구했던 조 향의 초현실주의에 대해서는 1920년대 서구에서 있었던 한 때의 유행을 답습한 철지난 문학운동쯤으로 평가절하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조 향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편협한 논리다. 지근거리에서 그의 문학 강의를 듣거나 논문을 상세히 읽었던 지인들은 그의 시 이론이나 시를 그렇게 쉽게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재단할 수 없다. 그의 해박한 현대시의 이론에 경외감을 가졌던 필자의 눈에는 조 향의 시가 우리 문학에 분명 새로운 지평을 제공한 것으로 비춰졌다. 아직 유교적 윤리관과 동양적 자연관이 지배했던 당시의 시각으로는 조 향의 시가 납득하기 어려운 난삽한 언어장난으로 보였을 것이지만 점차 우리 사회가 산업화, 서구화의 길을 가면서 후기 자본주의 모순을 드러내는 시점에서 그의 시는 여기에 대응하는 분명한 하나의 문학적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물론 그것이 서구 이론에 경도된 결과였기에 독창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국문학의 지평에서는 의미 있는 문학의 실천이었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조 향 시인도 후반기 동인활동 이전의 초기에는 낭만적인 서정시를 썼다. 본인도 60년대 초에 출간된 경남 문인협회 기관지 『문필』에서 이 시기에는 주로 낭만적인 연애시에 몰두했다고 회고한다. 등단작인 「초야」가 그렇고 다음에 인용하는 시에서도 서정성에 기초한 그의 초기 시 경향을 엿볼 수 있다. ]   하얀 돛배가 돌아오면 작은 항구에는 불이 켜진다   자줏빛 어스름으로 저무는 무학(舞鶴)의 산허리에 꼬리 긴 흰 문어연이 흔들흔들 흔들리고 있는 이른 봄   어두운 다리 밑에서 비럭지의 무리가 거미들처럼 기어나올 무렵 점토빛 매축지(埋築地)에 서커스의 천막이 흔들리면서 손님을 부르는 슬픈 클라리넷의 노스탈자!   죄그만 부두(埠頭) 부선(艀船) 위에는 인간들이 붐비고 하얗게 탁해진 먼지 냄새   호의 기적(汽笛)이 이 밤을 흔들 무렵 먼 추억의 피안(彼岸) -그대의 하렘에는 작은 사랑의 불꽃이 갑자기 피어오른다.   - 「마산항 」전문     옷도 베드도 벽도 창장(窓帳)도 모두 희어 무섭게 깨끗해얄 곳인데두 이 무슨 악착한 병균(病菌) 살기에 이리 외론 곳이냐   저승으로 갈 채비를 하얗게 하였구나 병동(病棟) 유리창에 오후의 햇볕이 따가워 간호부 흔드는 손이 슬프기만 하여라 -「SANATORIUM」전문        위의 시들은 조향 시인이 해방 직후 마산에서 교편생활을 하며『魯漫派』(1946년)동인활동을 할 무렵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비교적 쉽게 읽혀지는 시들이다. 마산항과 병동의 분위기를 서정적으로 전달한다. 감상적인 정감도 깔려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시들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운율 중심의 전통적 서정시와는 다른 시적 표현에 있다. 회화적 이미지가 주축을 이룬다. 시에서 회화성이란 20세기 초에 있었던 영미 이미지즘 운동의 중요한 시적 방법으로 이미 30년대에 김기림, 김광균 등이 선보인 바 있다. 이것은 조 향의 시가 초기부터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시「마산항 」에는 ‘Dessein 초(抄)’란 부제가 있는데, 이것은 언어로 마산 항을 점묘적으로 그려 보여주려는 시적 의도를 밝힌 것이다. 저녁 무렵 작은 돛배가 들어오고 있는 조그만 부두, 거기서 바라본 마산 무학산, 그리고 매축지의 써커스 천막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크라리넷 소리와 사람들이 붐비고 있는 부선艀船의 정경 등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시 「SANATORIUM」에서도 흰색의 병동 이미지와 외롭고 차가운 그리고 슬픈 환자의 내면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조 향은 초기부터 회화성을 시의 기본 축으로 삼아왔다. 관념의 진술을 거부하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중시하는 태도는 이미 초기 시에서부터 나타난 것이다. 이국적 취향도 엿볼 수 있다. 병동이나 요양소로 번역되는 영어를 그대로 시의 제목으로 쓰는 의식에서 그런 취향이 드러난다. 회화성과 이국적 취향은 조 향 시의 한 평생을 지배해온 요소다. 일어세대로 성장한 조 향은 광복후 우리말 구사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상당 기간 어려움을 겪었다고 『문필』의 같은 지면에서 고백한 적이 있다. 어쩌면 우리말에 대한 자신감 결여가 그의 시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외래어 남용의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1949년 박인환, 김수영, 김경린, 양병식 등의 신시론 동인이 발간한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보고 급거 상경하여 그들과 합류하기로 한 것도 조 향의 시적 경향으로 보았을 때, 극히 자연스럽다. ‘후반기 동인회’를 결성하기로 한 것도 이 때였지만 본격적인 활동의 시작은 1950년 6.25전쟁 중 부산에서다.    후반기 동인 중에서도 전투성이 가장 강했던 조 향은 ‘20세기 시는 진화를 했다. 진보는 수정이고 진화는 혁명이다’고 『국어국문학』 16호지에 발표한 「시의 발생학」이란 제목의 글에서 말하고 있다. 그가 상정하고 있는 진화된 시란 서구 현대시의 여러 유파 중에서 특히 관심을 가졌던 초현실주의 시일 것이다. 50년대 시인 다수가 서구시에 대한 교양적 접근을 통하여 시의 에스프리를 구했던 것처럼 조 향도 1920년대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의 시나 이론이 가지고 있는 신기성에 매료되어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측면이 있다. 그것도 한국에 수용된 외래사조가 거의 그렇듯이 그의 텍스트가 그 당시 일본의 계간지『시와 시론』지를 통하여 얻어진 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굴절될 수밖에 없는 한계성 또한 갖고 있다. 조 향은 마산에 있을 때 문장지 출신의 김수돈과 교류하면서 그가 가지고 있던 『시와 시론』지를 읽으며 모더니즘과 초현실주의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 이후 자동기술법, 오브제론, 데빼이즈망, 꼴라쥬, 달리의 편집광적 수법과 같은 초현실주의의 시적 방법론에 관한 연구와 이에 집착한 시작활동을 함으로서 초현실주의의 외형만을 쫓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의 시가 포마리즘Fomalism의 시 형태에 기울어진 것도 이런 비판의 원인이 되었다. 어쩌면 그의 초현실주의가 한국의 자생적 사조가 아닌 외래사조의 수용과정에서 빚어진 어쩔 수 없는 결과로 볼 수도 있다.     수화기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시 「바다의 층계」중에서     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 .................... .............. .......... ...... 꽝!                         -시「SARA DE ESPERA」중에서         코에계층      스      계층      모          계층      스              계층      한                  계층      송  소 이  녀 만 의 주 소 에 는                           -시 「코스모스가 있는 층계」중에서        이런 문자 배열을 통한 포마리즘의 시도는 시의 시각화를 극단적으로 몰고 간 것이다. 문자가 가지고 있는 시각성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쇄술의 발전과 더불어 촉발된 것이지만, 이런 시도는 이미 초현실주의의 원조로 평가되는 아뽈리네르의 입체파시나 李 箱의 시에서도 있었다. 그 자체로서는 독특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당시 전통시의 관점에서는 표현의 혁명임에 틀림없다. 李 箱의 시에서 띄어쓰기를 무시하거나 선과 숫자를 동원한 형태주의를 선보였지만 그보다 더 과격하게 본격적으로 포마리즘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인간심리의 단층과 음향효과를 선명하게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는 점에서 순기능의 측면도 있다. 특히 시 「코스모스가 있는 층계」나 「물구나무 선 세모꼴의 서정」은 모든 책자들이 종서로 인쇄되던 시절 그에 맞춰 문자배열을 한 것으로 시 전체가 문자로 만든 독특한 회화 양식처럼 느껴진다.    조 향은 1951년 어느 날 부산의 전원다방에서 이봉래, 김경린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합작시를 시도한다. 부산으로 피난 온 시인들이 주로 밀다원 찻집을 이용했는데, 그들 문학에 식상하여 반기를 들었던 후반기 동인들은 그들을 피하여 전원다방이나 갈채다방을 아지트로 하여 모였었다고 한다. 일명 ‘아시체 놀이’라고 하는 합작시 시 쓰기는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이 무의식을 드러내기 위하여 집단적인 사고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고안해낸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하나의 종이 위에 돌아가면서 단어나 문장을 하나씩 써서 조합하는 방식이다. ‘아시체’란 용어는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이 이런 방법으로 ‘우아한 시체는 술을 마실 것이다.’란 기상천외한 문장을 최초로 얻은 데서 유래 한다. 이 방법을 조 향, 김경린, 이봉래가 다시 시도한 것이다. 다음은 그 합작시 「不毛의 엘레지」마지막 연이다.     A 오오, 산델리아 밑에서 바라보는 태양은 우리들의 리리크 B 도움의 하늘에 拍手처럼 흩어지는 무수한 訃告여 C 강아지를 몰고 오후의 散步路에 선다.        이런 놀이는 쾌락 원칙에 입각한 집단적 표현이다. 이런 방법을 통하여 순수하고 강렬한 희한한 구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그들에게 있었다. 시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일탈한 이런 여러 가지 실험들은 기존 시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의식의 흐름을 원용한 특이한 소설 「구관조」가 발표되고, 초현실주의 이론과 실험적인 시들을 계속 썼다. 희곡이나 시나리오 형식을 접목한 장르 파괴적인 실험 시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눈을 감으며. SUNA는 내 손을 찾는다. 손을 사뿐 포개어 본다. 따스한 것이. ―――― 그저 그런 거예요! ―――― 뭐가? ―――― 세상이.SUNA의 이마가 하아얗다. 넓다. -시「ESQUISSE」첫째 연               1             (C ․ U) 유리창에 시꺼먼 손바닥 따악 붙어 있다 指紋엔 나비의 눈들이…                 (M ․ S) 쇠사슬을 끌고 수많은 다리의 행진                (O ․ S) M 「아카시아꽃의 계절이었는데……」 W 「굴러 내리는 푸른 휘파람도……                                  -시 「검은 SERIES」첫째 연        시에서 이처럼 인물 행위 위주의 진술과 독백이나 대화 형식의 과감한 도입은 그 때까지의 시 형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어 놓는다. 특히 시 「검은 SERIES」는 cine-poem이란 부제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시나리오 형식을 시에 도입한 최초의 작품이 될 것이다. 철저하게 설명적 요소나 관념의 진술을 배제하고 감각적인 언어의 지문과 독백, 대화로 구성된, 장르의 경계를 초월한 시 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조향은 초기 평면적인 회화 시로부터 보다 입체적이고 동적인 공간감 확장의 방향으로 시의 영역을 확대해 갔다. 연극이나 영화, 또는 사진 같은 인접예술에서 영감을 얻어 표현의 혁명을 꾀한다. 직접 초현실주의적인 사진을 찍어 사진전에 내놓기도 했고, 전위극단 『예술소극장』대표로 연극을 한 적도 있다. 이런 그의 노력은 그 당시 경박한 언어장난으로 매도되었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완고하고 고루한 시의 근엄주의에 불과하다. 인간에게는 유희본능이란 것이 있고, 거기에 기대어 예술적 상상력은 더욱 확장된다. 물론 서구시의 주체적 수용이란 측면에서 전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의식과 유리되어 토착화되지 못한 측면 때문에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지나치게 표현의 혁명에만 몰두한 나머지 내용의 공소함을 드러낸 점도 있다. 특히 내용 중심의 서정시를 쓰는 시인의 눈에는 그렇게 비춰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존의 표현기법에 안주할 수 없는 시의 정신은 새로운 방법론을 찾아 고행할 수밖에 없다. 그것의 성공 여부는 후차적인 문제다. 기성의 문학적 질서와 권위를 부정하고, 20세기의 후반기 문학을 선도한다는 의식이 강했던 후반기 동인들의 탈 전통성은 시에 있어서 현대성의 추구와 도시적 감수성을 근간으로 한 서구 모더니즘의 수용으로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조 향은 초현실주의에 경도된 시작과 이론 전개에 열을 올렸다.    조 향은 초현실주의가 물질문명에 길들여지고 순치된 인간정신을 해방하여 절대적인 자유를 줄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절대자유를 얻기 위한 근본적인 반항정신으로 초현실주의를 이해했다. 존재를 억압하는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무의식을 해방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의 논리를 버려야 한다. 이미 언어에 덧칠된 논리성과 의미의 때를 벗겨야 한다. 조 향에게 있어서 언어의 의미론으로 시에 접근하는 것은 자유의 포기를 뜻한다. 기성의 시적 사고에서 일탈하기 위하여 언어의 실용적 기능, 의미의 전달 기능을 철저히 배격했다. 신구문화사에서 출판한 『전후 문제 시집』에는 자작시「바다의 층계」를 해설한 ‘데뻬이즈망의 미학’이란 제하의 글이 실리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시에 있어서 말이란 것을, 아직도 '의미'를 구성하고 전달하는 단순한 연모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이 시는 대단히 이해하기가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말'의 구성에 의하여 특수한 음향이라든가, 예기치 않았던 '이미지', 혹은 활자의 배치에서 오는 시각적인 효과 등, '말의 예술'로서의 기능의 면에다가 중점을 두는 이른바 '현대시'로서, 이 시를 읽고, '느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실용적인 언어가 갖고 있는 현실적 의미의 연관을 차단하지 않고는 새로운 언어미학은 탄생할 수 없다. 그래서 초현실주의자들은 기존의 언어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기 위하여 데뻬이즈망의 기법을 강조한다. 조 향은 같은 지면에서 '데뻬이즈망 Depaysement'을 전위轉位로 번역하면서 ‘사물 존재의 현실적인, 합리적 관계를 박탈해 버리고 새로운 창조적인 관계를 맺어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의미를 배제한 언어미학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아름다운 렛델이 붙은 통조림통이 아직 부엌에 있는 동안은 그 의미는 지니고 있으나, 일단 쓰레기통에 내버려져서 그 의미의 효용성을 일어버렸을 때, 나는 비로소 그것을 아름답다고 한다.’는 입체파 화가 브라끄의 말을 인용하여 덧붙이기도 했다. 여기서 의미의 효용성을 잃어버렸을 때란 실용성과 일상적 의미의 세계를 포기했을 때 그 뒤에 남는 것이 절대 순수 실존이며, 이 상태가 바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초현실주의의 방법론 가운데서도 특히 자동기술법은 잠재의식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데 유용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하여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복해 있는 이미지들을 시의 전면에 끄집어 올리려 했다. 전연 이질적인 것이 한 공간에서 충돌하며 공존하는 이상야릇한 시, 문명과 현실의 정신적 속박에서 벗어나 환상과 꿈의 십자로가 열리는 시의 절대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그의 이상이었다. 시의 진부함을 거부하고, 꿈의 물결, 신기루 같은 환상, 신기함, 증오와 절규,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마법의 신비주의가 그가 꿈꾸는 시의 세계였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윤리관이나 질서관으로 보았을 때, 파괴적인 악마주의요, 무모하고 무질서한 난해시였다.         노크를 한다「어둠」나와서 갈색 기침을 너댓번 내뱉더니 문을 연다。 「어둠」의 얼굴은 뭉개져 있고, 손엔 二미터나 되는 털들이 흐늘거린다。 물결에 일렁이는 水草다。 너무 하십니다。 퇴락한 벽에는 죽음이 자고 간 자국。 더러운 무늬들이。 앙상하게 걸려 있는 세월의 갈비뼈 사이로。 내 과거의 시제가 동결된 채 매달려 있고。 「白髮(백발)의 拳銃(권총)」소리。「일찌기 존재했던 모든 장소를 오직 메아리만이 또락히 再現할 것이다。」사면 벽에선 자물쇠 잠그는 섬짓한 音階(음계)。 다시 낄낄거리는 소리들。 아찔하다。「어둠」은 길게 절망을 그림자인 양 끌면서 아직도 골마루에 서 있고 창 밖에선 군중의 시커먼 끝없는 아우성들이。 밤의 층층계 死神의 옷자락엔 검은 나비가。 도시는 오늘. 노예선처럼 암담히 가라앉아만 간다。   -시「검은 不定의 arabesque」후반부    詩集을 안고. [빠아] 의 辭表. 거만한 高架線. 과부 구락부. [메가 폰] 걸어가는 헌병 Mr. Lewis. Poker. 검문소의 . 聖敎堂에서는 街娼婦人과 卒業證明書를 (중략) 검은 안경. 화랑부대 00고지 탈환. von de nuit. 의 미소. (중략) 의 피리소리. 파아란 맹렬한 밤. 그럼요. . -시 「어느날의 MENU」중에서     죽어 쓰러진 엄마 젖무덤 파고드는 갓난애. 버려진 軍靴짝. 피 묻은 [까아제]. 휘어진 鐵筋. 구르는 頭蓋骨. 부서진 時計塔. 전쟁이 쪼그러고 앉았던 廣場에는 누더기 주검들이. 彈丸 자국 송송한 郊外의 兵舍.                                                                  -시 「文明의 荒蕪地」에서        이상에서 예시된 바와 같이 조 향의 초현실주의 시에는 일상과 비일상이, 꿈과 현실이 공존한다. 시 「검은 不定의 arabesque」에서 ‘어둠’은 꿈에서 만나게 되는, 실체가 잡히지 않는 공포의 대상이다. 깊은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억압 상태의 변형된 이미지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무의식 속에 잠복되어 있다가 꿈의 상태로 재현되는 죽음의 공포와 그것에 전율하는 절망적 심리상태, 그리고 시적 자아를 에워싸고 있는 암담한 현실인식 등이 복합된 이미지들을 비논리적으로 자동기술 하고 있다. 이 시에서도 ‘白髮의 拳銃’, ‘자물쇠 잠그는 섬짓한 音階’, ‘시커먼 아우성’, ‘밤의 층층계’와 같은 이질적 언어의 결합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데뻬이즈망을 통하여 창조된 오브제들이다. 현실적인 의미관계가 박탈된 사물들, 일상적인 합리적인 관념에서 해방된 특수한 객체를 초현실주의에서는 오브제objet라고 한다. 특히 ‘白髮의 拳銃’에서 권총 앞에 현실적으로 올 수 있는 말은 백 개의 총알이란 뜻의 ‘百撥’이다. 그런데 이것을 흰 머리털이란 뜻의 ‘白髮’로 환치해 놓고 있다. 이것은 동일 음에서 유추하여 다른 뜻의 단어로 바꿔치기 한 언어유희다. 언어유희는 언어 사이의 현실적인 의미 관계를 박탈하여 의미를 초월하게 하고, 예기치 않은 뜻밖의 발상으로 이때까지 길들여진 언어습관이나 정상이라고 믿고 있는 고정관념을 전복시키는 일종의 정신해방 운동이다. 이런 오브제들은 비시각적 대상을 시각화 하며, 합리적 사고에 충격을 가하여 이완시킨다. 경련하게 한다. 느닷없이 끔직한 공포의 심리상황과 마주하게 한다. 특히 죽음이나 어둠, 탄환, 병사 등이 환기하는 이미지들은, 무의식에 잠재해 있는 '전쟁의 기억'과 관련된다.    1954년에 발표한 에서 이미지의 충돌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 시는 마치 음식점의 메뉴판에서 각기 다른 음식의 이름들이 인과 관계나 논리적 연관 없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처럼 이미지의 파편들을 열거한다. 문장 구문이 갖고 있는 주어, 수식어, 서술어 등의 유기적 관계를 해체하여 이미지 간의 단절, 또는 단층화를 시도한다. 그리하여 혁명적인 새로운 시의 공간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런 오브제들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시적 효과는 단절감, 해학, 경이의 미학이다. 이 시에서 인과론적 관계가 차단된 이미지의 파편들은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전쟁의 상흔'을 환기한다. 시「文明의 荒蕪地」는 보다 직설적으로 무의식에 잠재해 있는 전쟁의 기억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 시에서는 전쟁의 참혹한 이미지들이 차례로 이동하는 영화장면의 컷처럼 전개된다. 이미지의 끝마다 마침표를 찍고 행갈이를 함으로써, 의식의 단절을 꾀한다. 수사학의 측면에서는 인접성의 원리에 따라 물질성을 지닌 언어기호를 나열한 환유적 표현이다. 환유의 세계는 파편화 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어느날의 MENU」에서도 이미지 간의 단절은 있었지만 산문시 형태로 연속시켜 ‘불연속의 연속’과 같은 자유연상의 형태였다면 이시의 각기 독립된 이미지들은 몽타주 기법으로 처리된 영화의 장면처럼 '전쟁의 참상'을 파노라마로 펼쳐 보여준다.    이렇게 조 향 시에 나타나는 무의식의 근원에는, 전쟁의 어두운 기억이 도사리고 있다. 5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활동을 한 많은 시인들이 그랬듯이 조 향도 식민지 시대의 암울과 해방공간의 혼란, 전쟁의 참혹한 기억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전쟁의 폐허에서, 탈출구 없는 검은 벽과 부딪힌다. ‘世紀의 폐허에서' '돌아다봤더니 내 뒤에는 검은 壁 壁壁壁壁壁壁 되돌아나갈 바늘구멍 하나도 없는' 한계상황으로 현실을 인식한다. 그러나 조 향은 시「왼편에 나타난 灰色의 사나이」에서 ’우리는 아직도 살아있다. 스스로 타버린 잿더미에서 다시 생생하게 숨 쉬는 것‘을 노래한다. 다시 태어나는 생명력을 회구하는 의식에서 한계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읽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억압된 죽음의 검은 벽으로부터 자아해방을 꿈꾸는 의지의 표현이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자신의 문학적 신념을 이끌어 가는 힘의 원천은 바로 이런 의지에서 나온다. 조 향에게 있어서 초현실주의는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는 통로요, 방법이었을 것이다. 초현실주의가 일체의 억압이나 정신적 구속으로부터 자아를 해방하여 절대자유를 획득하고자 한 문학 운동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1950년대 암담했던 전후라는 특수상황의 맥락에서 조 향이 초현실주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가름하게 한다. 시「Episode」에서는 현실계를 떠나 꿈의 상태, 잠재의식의 몽상적인 세계가 무관계한 구상적 언어들의 병치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열 오른 눈초리 하잔한 입모습으로 소년은 가만히 총을 겨누었다. 소녀의 손바닥이 나비처럼 총 끝에 와서 사뿐히 앉는다. 이윽고 총끝에선 파아란 연기가 물씬 올랐다. 뚫린 손바닥의 구멍으로 소녀는 바다를 보았다. - 아이! 어쩜 바다가 이렇게 동그라니?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 산태바기에다 연달아 머리를 처박곤 하이얗게 화석(化石)이 되어 갔다.        여기서 소년, 소녀, 총, 손바닥, 연기, 구멍, 바다 등은 모두가 구상적인 언어들이다. 그러면서도 이 구상적인 언어들은 실재적인 현실관계를 표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현실적인 꿈의 상태를 탐미적으로 나타낸다. 과 , 과 , 과 가 관계 지워지는 공간은 현실적인 공간을 떠나 상상력이 펼치는 환상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마치 현실적인 사물의 관계를 박탈한 오브제들을 화폭에 담아 놓은 살바돌 달리의 초현실적인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이 시의 구조는 다분히 논리적이다. 소녀의 손바닥에 총을 겨눈다는 가정 다음에 손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바다가 보이고, 그 바다는 구멍을 통하여 보이기 때문에 동그랗다는 모양 설정이 그렇다. 이런 논리성의 이면에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환상이 자리한다. 이런 환상을 통하여 조 향은 일체의 실용성이나 이데올로기적인 관념을 거세한 순수의 절대 영지를 개척하려 했다. 한 편 프로이드의 관점에서는 무의식에 억압된 성 충동이 치환되어 나타나는 이미지의 시로 볼 수도 있다. 남성 성기가 총으로, 여성 성기는 구멍을 통하여 바라본 동그란 바다로, 그리고 도착된 성행위가 놀란 갈매기들이 머리를 처박는 것으로 치환되고 상징화 되어 꿈으로 나타난 무의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무의식은 이성에 의하여 억압된 기의들의 다양한 기표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프로이드 학파들은 말한다. 이 기표들이 기의에 종속되지 않고 압축, 치환, 은유, 환유 등의 법칙에 따라 무의식을 구성하는 것으로 그들은 보았다. 이 시의 언어들을 그런 무의식의 기표들로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조 향의 시에는 순수한 환상시와 더불어 상황악을 표상하는 이미지들이나 무의식에 잠복해 있을 법한 돌출 이미지들이 그의 많은 시들에서 발견된다.     1. 너는 까만 밤의 수첩 갈피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태양의 경수, 끈끈이주걱, 소파수술) 2. 검은 발자국 소리, 모가지도 없는 붉은 망토자락의 그림자들(붉은 달이 있는 풍경화) 3. 붉은 발톱이 국경선을 할퀸다. 밤 곁에서 회색의 기침소리가 난다(쥬노의 독백) 4. 모가지 없는 입상들이 하얀 태양 아래서/ 시커먼 회의를 열고(검은 Ceremony) 5. 유령의 마을에는 백합꽃이 만발한데(지구 위령탑 위에) 6. 지하욕조에서 납인형이 된 여인을 한 아름 안고(시편들은 옴니버스를 타고) 7. 밤의 톱니바퀴에 걸려 있는 소녀의 육체(샅으로 손을 내미는 소녀는 밤의 톱니바퀴에 걸려있다) 8. 醫師의 손가락을 잘라서 옥상정원에 심었다(디멘쉬어 프리콕스의 푸르른 算數) 9. 맥줏병저쪽, 죽음의 灰色이 만발한 오후3시에(木曜日의 하얀 筋骨) 10.고층건물은 向天性 男根(하얀 傳說) 11. 아침마다 펼쳐진 서울의 퀴퀴한 內臟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聖 바오로 病院의....)        비교적 후기에 쓰여진 텍스트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시구들이다. 원거리 연상에 의한 폭력적인 언어결합도 보이고, 의미론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문법의 해체도 보인다. 이미지들의 전위와 충돌. 이런 언어 구사는 공포, 불안, 죽음, 저주, 종말의식, 성도착과 같은 심층심리를 반영한다. 특히 黑, 白, 赤의 색채어는 시의 회화성에 일조하기도 하지만 어둡고 칙칙한 무의식의 세계를 형상화 한다. 조 향은 일찍부터 시의 회화성에 눈을 떴다. 그리고 이 표현 방법은 조 향 시의 핵으로 자리한다. 조 향의 시에서 색채어는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 하는 시각적 효과, 그리고 일제의 암흑이나 6. 25전쟁의 참혹한 경험, 개인적인 좌절 등이 각인된 무의식을 표현하는 기표로서의 역할을 한다.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의 기표들을 조 향의 시에서 수없이 만나게 된다. 원초적 감정이나 강박관념, 성적 갈등 등이 도덕률이나 타인과의 관계 때문에 무의식에 억압되고, 이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자기소외와 욕구불만의 정신상황으로 이어진다. 조 향 시에 나타난 부정否定적 이미지들은 자아를 근원적으로 소외시킨 세계에 대한 욕구불만의 표현이요, 타락하고 부조리한 외부 현실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갖는다. 조 향 시의 언어기호들은 총체적으로 거대한 현대문명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현대인의 암흑 의식을 반영한 묵시론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의 시에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은 공포영화나 심령영화의 장면처럼 섬뜩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자유 연상법에 의한 이미지들의 돌출 현상들은 살바돌 달리의 편집광적인 오브제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시에서 경이의 미학, 광기의 미학에 심취했던 조 향은 몽환적인 초현실의 세계에 더욱 깊이 빠져 들어갔다.    조 향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과 융 등의 심층심리학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면서 초현실주의 이론을 확장해 갔다. 초현실주의의 이론적 근거를 이들 심리학에서 구했다. 급기야 조 향은 동양의 주술적 세계에서 초현실주의의 정신을 만난다. 이미 장자나 노자의 사상과 초현실주의와의 관련성을 기술하여 초현실주의 정신이 동양정신에 맥락이 닿아 있음을 역설하기도 했는데, 필자가 조 향 시인으로부터 들은 마지막 강의 내용은 무의식과 주술적 세계에 관한 시적 상상력이었다. 1975년 봄이었던가 싶다. 점술가들의 예화가 많이 등장했다. 영매들의 주술적인 언어를 시의 공간으로 끌어들인다면 훌륭한 초현실주의 시가 될 것이라는 부연이었지만 그것이 실현된 조 향의 시를 필자는 끝내 보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 시 「永訣」에서 그런 상상력의 일단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그리도 거칠던 숨소리도 걷히고, 고요히, 핏빛, 입술에서 빠져나가고, 해쓱해진 아버지, 눈 감으시다. 얼굴. 주검     들먹거리는 어깨, 어깨, 아이고아이고아이고아이고아이고                                                                               燮 濟                                                                           鳳 濟   옴모보리 가마리 이다가야 사바하. 코스모스 핀 언덕길,아버지가 가신다.담배를 피워 무신다. 돌아다보신다. 幽體 자락에 바람이 감긴다. 옴바아라사다목사목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 이젠 하이얀 미이라,하얗게 동여진 아버지 집을 배반한 놈 마중 나갔다만 봐라! 하시더라던 아버지 그래도 기차 닿을 시간에 먼저 나오셔서 먼빛으로 플랫포음의 날 맞이해 주시더니, 아버지,蕩兒 돌아오다 그 날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손자 보고 싶다시더니 란 놈 손잡고 한 번 거니시지도 못해 보시고, 끝내 아버지는, 그만 참!     옴살바못다못디사다야사바하 새벽에,屈巾,祭服,대작대기,보슬비 靈幀旣駕 往卽幽宅     「處士咸安趙公偉鏞周之墓」     건너편 언덕 신작로 오르막길, 이승의 버스가 씨근거린다 永 訣 終   天        이 시는 외형상으로는 부친의 임종에서부터 시신을 산에 묻고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 그 시간 안에서 전개되는 전통적인 상례의 절차를 압축적이며, 시각적으로 제시한다. 장의가 진행되는 단층마다 상주의 의식이 겹치고, 망자에 대한 자식의 회한과 슬픔의 정서가 엄습한다. 스님의 염불소리, 상주의 곡소리를 의성화 하여 음향의 입체감을 살림과 동시에 과감히 차용한 한시나 한문구와 겹쳐 주술적 영감을 떠올리게 한다. 형태주의를 의식한 문자의 배치는 시에 공간감을 부여하는데, 특히 상주의 이름을 나란히 독립된 행으로, 행의 끝에 배치함으로써 상주들이 서서 곡을 하거나 문상객을 맞이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하고, 굴건, 제복, 대막대기 등 장의에 등장하는 소도구의 병치는 빈소의 리얼한 상황제시 효과가 있다. 언어 상호간의 논리적인 의미 관계를 차단하여 언어와 언어 사이, 행간에 의식의 명암을 투영시키고, 혼백의 움직임을 영상화 한다. 시의 결미에서 ‘永訣終天’의 한자를 일렬종대(원래는 횡대였다. 종서로 인쇄되던 때의 형식에 맞추어 쓴 것이기 때문에 시 전체를 종서로 읽으면 시각적 효과가 더 크다.)로 나열하여 혼백과 영결하는 심리적 공허감이나 공황의식을 시각화 한다. 특히 마지막 글자 ‘天'을 한 행 더 띄움으로써 망자를 묻고 돌아서는 순간의 휘청하며 무너질 것 같은 허전한 심리의 공복감을 형상화 한다. 현실과 영계, 과거와 현재, 내면의식과 상황을 동시공존 시키는 이런 기법들은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으로 시의 공간을 확장한다. 시적 상상력의 무한공간을 우리는 이 시에서 볼 수 있다. 이 시의 실험정신이 초현실주의 정신에 닿아 있다고 보는 것은 현실의 실제성을 뛰어넘어 비실제성의 영감의 세계까지를 시의 공간으로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혼과 교감하는 의식의 단층, 외부현실과 내부세계가 공존하는 환상공간을 우리는 이 시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일찍이 초현실주의는 의식과 무의식, 육체와 정신의 이원적 경계를 무너뜨리고 인간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지 않았던가? 현실세계와 꿈 사이의 부자연스러운 경계가 소멸되었을 때, 비로소 신기루와 같은 초현실이 나타난다. 이것은 물질적 대립과 모순을 뛰어넘어 정신의 지고점至高點에 도달하고자 하는 열망의 한 소산이다.    조 향은 현대시론(抄)에서 ‘항상 역사의 첨단에 서 있다는 의식과 역사를 창조해야 한다는 의식- 역사를 창조하는 데는 언제나 혁명과 실험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서구라파의 황혼의 네거리에서 이미 를 포기하려는 실험은 상징주의, 인상주의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이 두 문장으로 조 향이 평생 동안 고군분투했던 시의 정신을 요약할 수 있다. 조 향 시인이 갈망했던 시의 길은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시의 영토를 확장하는 일이었고, 우리의 정신을 일신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었다. 초현실주의가 작품 자체의 완성에 가치를 두기보다 자아 해방의 자유정신과 그것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의 탐구를 더 우위에 두었듯이 조 향도 그런 맥락에서 시작에 임했다. 그것은 전위의식으로 무장할 때만 실천 가능한 일이다. 결코 그는 문학적 명성이나 대중에 영합하는 길을 가지 않았다. 비평가의 눈치를 보며 문학적 신념을 슬쩍 바꾸는 수정주의자는 더욱 아니었다. 항상 문학의 미래가치를 염두에 두고, 시의 고정된 관념의 틀을 깨며, 시의 진화를 위하여 고심했던 전위시인이었다. 그 이후에 전개된 해체시나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창하는 젊은 시인들의 실험시와 조 향이 추구했던 시의 여러 모험들을 비교해 봤을 때, 그의 시적 상상력이 결코 뒤지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그가 미래를 향하여 살아왔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조 향의 문학적 성취가 자신이 기대했던 것만큼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생전에 비판 받았던 것처럼 외래어의 남용과 방법론에 집착한 작위적인 시작 태도를 드러낸 점은 그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그의 해박한 초현실주의에 대한 지식과 이론에 비하여 작품의 깊이가 미처 따르지 못했다는 느낌도 있다. 지나친 현학적 취향도 조 향의 글에 접근하는데 상당한 장애 요소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에서 새로움과 경이를 창출하기 위하여 무의식의 세계를 열어보고자 했던 한 시인의 노력을 너무 과소평가 했다는 생각도 한다. 문학의 본질 탐구 보다는 문단의 자리를 놓고 이전투구 하는 문단주변의 속물적 풍토에 혐오와 염증을 가지고 있었던 조 향은 철저히 문단과 담을 쌓으며 오로지 자신의 문학적 신념만을 붙들고 스스로 소외의 외로운 길을 걸었던 진정한 시학도였다. ‘무의식이야말로 존재의 진수요, 정신을 지배하는 원동력이요, 일체의 기만이 거세된 세계, 마땅히 그려질 가치가 있는 영토다.’ 라고 시론에서 그는 말하고 있다. 초현실주의가 순간과 영원, 외부와 내부,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 등 대립과 모순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하고 용해시킴으로써 과학문명과 윤리적 이성에 억압된 자아를 해방하고자 한 운동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이 명제는 후기 자본주의 모순을 안고 신음하는 지금의 시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 한다.        *약력 1982년 월간 『현대시학』에 전봉건 시인 추천으로 등단. 『시와의식』(74년), 『절대시』(86년), 『시21』(98년) 동인활동 현재 계간 『시와사상』 편집인 시집: 『녹색화면』 외 다수. 평론집: 『억압. 꿈. 해방. 자유. 상상력』              
832    천재 시인 李箱과 조선족 소설가, 시인 金革 댓글:  조회:5081  추천:0  2016-01-02
  조선족 소설가 김혁과 한국의 천재 시인 李箱의 관련 양상   김정일 (북경외국어대학 한국어학과 전임강사, 문학박사)   중국 조선족 문단에서 이상(李箱)을 한국 문학의 범주에 넣고 볼 것인가 아니면 조선반도 문학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쟁론이 생길 수도 있으나 1980년대 초반까지 중국 조선족 문단에서는 이상의 문학을 접하지 못하였으며 중한 수교 전야에 이르러서야 이상의 문학이 한국 문학과 함께 조선족 문단에 흘러들어왔고 80년대까지 조선 문학사에 취급되지 않았던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상의 문학을 한국 문학으로 봐도 큰 이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글에서도 이미 서술한바 이상(李箱)은 김혁의 창작성향에 큰 영향을 가져다 준 13명의 문인중의 한 사람이다. 이는 김혁의 많은 글에서 이상(李箱)의 시를 직접 인용하고 있으며  이상(李箱)과 같은 초현실주의 시와 소설을 창작하였다는 사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김혁은 왜서 이상의 문학을 좋아하게 되고 그의 영향을 크게 받아야만 했는가?   본절에서는 그 원인을 먼저 이상과 김혁과의 인생프로필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김혁의 인생프로필에 관해서는 이미 다른 론문에서 살펴보았기에 략하고 여기서는 이상의 프로필을 살펴보기로 한다.   1930년대 한반도 문단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지금까지 논란의 대상이 되어온 이상은 1910년 8월 20일(음력) 아버지 김연창과 어머니 박세창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별로 공부한 것도 없는 그의 아버지는 생계의 책임을 맡은 형 김연필과 아버지에 얹혀 살다 이상이 세 살 되던 해 겨우 분가하게 된다. 그런데 김연필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이상은 종손으로 김연필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이상은 세 살적부터 부모와 떨어져 낮선 세계에 부닥쳤으며 또 이러한 낮선 세계는 너무 일찍부터 비극적인 형태가 이루어졌다. 하여 이상은 어릴 적부터 분리불안이라는 정신적 상처를 입었고 자라면서는 이복 형과 큰 어머니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겪으며 공포증에 줄곧 시달려 왔다. 유아기의 환경조건은 한 개인이 개성을 형성하거나 성장 후의 정신세계를 펼쳐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의 이상의 이러한 유아기의 정신적 외상은 이상의 일생동안 그림자와 같이 따라다니게 된다. 이상의 불행은 이상이 성인이 된 후에도 따라다닌다. 현실은 실패와 좌절, 일경에 피검, 폐결핵, 건강의 악화 등 일련의 악순환으로 그의 정신적 세계에서의 외침은 처음부터 정신적 고통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 이상은 자신의 정신적 불안을 억누르고 스스로에게 호소하며 실로 고통의 외침일 수밖에 없었던 그의 내면의 소리를 소설로, 시로, 수필로 형상화시켰다. [35]   위의 이상(李箱)의 간략한 프로필을 통해 우리는 이상(李箱)은 그의 짧은 인생역정에서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는바 김혁 역시 그의 성장과정에서 많은 아픔을 겪은 인물이다. 김혁은 그의 출생부터 비극으로 시작되었다.   봉당에는 보자기에 동여진 아기 하나가 그 무슨 물건처럼 내쳐져있었다. 태여 난지 이제 겨우 사흘이 되는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석현에 있는 어느 처녀가 결혼 전에 아기를 뱄는데 부모의 결사적인 반대와 항간의 눈이 무서워 룡정의 병원에 와서 아이를 낳고 버렸다고 한다. 그 아이를 룡정 어느 소학교의 아이 낳이를 못하는 교원이 안아왔는데 아이가 풍을 일구고 담이 목에 막혀 우유도 넘기지 못한 채 죽어 가는지라 막 버리려던 참이었다.[36]   이상과 같이 김혁 역시 아주 어려서 그의 친부모 곁을 떠났다. 김혁은 비록 자신이 친부모에게 거리에 버려졌던 입양아라는 사실을 고등학교에 들어서서야 알게 되었지만 어린 나이에 그 아름찬 정신적 충격을 감내할 수가 없었고 그때로부터 세상풍진에 덜익은 소년은 삐뚤어지기 시작하고 그 콤플렉스는 그의 생활의 그림자로 비운을 던지고 심적인 고통은 내내 그의 가슴속 한가운데 자리를 잡게 된다. 불우한 출생과 학구적인 대학을 나오지 못한 음영에 깃눌려 김혁은 남보다 큰 성적가리를 쌓아올렸음에도 소외된 삶을 내내 살아온다.[37] 김혁에게 있어서 인간의 존재와 인간의 가치는 하나의 커다란 물음표였다. 그는 존재에 대한 확인과 가치에 대한 확인 그리고 그로부터 자아실현을 완성하고저 글 속에 파묻혀 인생을 탐구하고 문학을 탐구한다. 그 와중에 그가 벗으로 사귄 것이 삶과 문학의 우상이였던 이상(李箱)이였고 번뇌와 고통을 힘과 용기와 신심으로 변화시켜주는 주신 디오니소스였다.[38] 김혁이 이상 문학의 영향을 받게 된 원인은 이상과 비슷한 인생역정 외에도 당시 중국 조선족의 문단 분위기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80년대 개혁개방의 세찬 물결과 더불어 중국대륙에는 서방문화가 물밀듯이 흘러들어온다. 그러자 중국조선족문단(1980년대)에는 서방의 각종 문학리론과 문학사조 및 창작방법이 따라들어왔다. 의식의 흐름, 실존주의, 상징주의, 초사실주의, 신소설파, 황당파, 표현주의 등 각종 현대주의문학류파가 일시에 밀려들자 한족문단은 물론 조선족문단에도 현대소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39]   위의 인용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오래동안 폐쇄된 조선족 문단은 개방이 되자 자연히 접촉하지 못했던 외국의 문물을 급속히 받아들이게 되었고 특히 시대정신에 민감하고 신생사물에 대해 호기심과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은 새로운 사물을 재빨리 받아들이는데 급급했다. 김혁은 당시 20대의 나이로서 신생사물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가설 것이며 또한 기자로서 민감한 김혁은 시야를 넓혀 새로운 창작방법을 받아들였 것이다. 파격적인 형식을 취한 이상의 문학은 그때 당시 중국 조선족 문단에 가져다 준 신선함은 말도 없이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여 조선족 문단에서는 이상문학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 김혁 외에도 몇명 된다.[40] 이미 앞에서 언급된 리동렬 외에도 류순호가 있다. 이것은 1998년 『문학과 예술』문학지에 게재된 류순호의 탐구소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에 대한 김룡운의 단평에서도 확인할수가 있다.   류순호의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는 탐구적색채가 있는 소설이라고 볼수 있겠다. 리상의 오감도 제1호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를 표제로 따온 이 소설은 인간심리의 저변에 깔려있는 진솔한 삶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파헤쳤다는 점에서 눈에 띄인다.[41]   류순호의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가 이상(李箱)의 오감도 제1호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의 표제외에도 오감도 제1호 시의 일부가 소설에 직접 인용되었고 이 이 시가 작품내용의 구성부분으로 설정되었으며 주인공 역시 구체적 이름이 없는 P로 설정되었다. 작품 외에도 『문학과 예술』 2002년 제1기에는 한국의 평론가 정덕준의 「리상의 자아의식, 창조적회상」이라는 평론이 게재되었다. 이 모든 것은 이상의 문학이 조선족 문단에 커다란 영향을 가져다주었음을 재삼 증명해준다. 김혁은 일찍이 이상의 작품에 경도되었는데 그는 자신의 창작담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리상과 그의 갑골문같기도 ET들이 남겨놓은 하외성계문명같기도 정신질환자의 일기장같기도 한 시를 맨처음 접한 것은 10여년전이였다. 그때 문학에 현혹했던 나는 어데선가 한국의 명시 집을 빌리고는 복권 특등에 당첨된 사람처럼 좋아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는 무지스럽게도 그 500여 폐지나 되는 시랍을 베끼기로 했다. 역시 문학에 현혹된 여자친구가 가세해서 볼펜으로 무명지를 부단히 학대한 끝에 우리는 단 일주일만에 그 명시집을 다 베껴낼 수 있었다. 진품이 아니고 수사본일망정 그 시집을 꼭 소장하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중에 리상의 시 몇수가 들어있었다. 띄여쓰기마저 무시했던 그의 초현실주의 시들을 베끼며 우리는 버릇처럼 띄여쓰기가 너무 잘되여 다시다시 베끼며 띄여쓰기를 잘하지 않는데 퍼그나 류의해야 했다. ……  …… 그래서 나는 언감 이 잊혀졌던 모더니즘대가의 본을 따서 「신오감도」를 련작하기로 뼈물러먹었던것이다. ……[42]   중국 조선족 문단의 동향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가 다 알고 있듯이 10년전에 이상의 작품들을 읽은 김혁의 모더니즘 작품의 정식적인 창작시도는 1998년에 들어서서 였다. 위의 인용문에서 언급했던 「신오감도」 련작시 100수외에도 김혁의 초현실주의 중편소설 「천재죽이기」가 1998년이 되어서야 정기간행물에 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문학의 영향이 반드시 동일시기에 곧장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어난다는 사실과도 연관이 있겠지만 역시 당시 조선족 문단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무관하다고 생각된다.   현시기 우리 문학은 시대의 도전에 직면하고있다. 세기의 교체를 가져오는 시대에 우리 사회는 한방면으로 개혁개방의 심입과 더불어 《모든것이 뒤엎어지고 방금 형성되여가는》 시대적변천속에서 탈피와 갱신의 모지름을 겪고 있으며 다른 방면으로 외래사회변천의 충격, 즉 후기산업사회의 정보화, 지식화, 세계화의 충격을 받고있다. 이와 같은 사회적현실속에서 사람들은 가치의 혼란과 삶의 곤혹을 겪는가 하면 진통을 동반한 정신적 사회적 출로의 모색에 모지름을 쓴다. 우리 문학은 이런 시대에 직면하여 진통을 겪고 있다. 다시말하면 시대와 더불어온 가치관념의 갱신속에서 탈피와 신생의 진통을 겪고있는것이다.[43]   시에서 보면 30대는 확실히 특점이 있습니다. 가장 훌륭한 표현이 다른 세대보다 모더니즘을 수용하는점입니다. 시에서 전인류적인것에 대한 추구, 상징법의 보편적인 리용, 시적함축성에 대한 탐구 등 면에서 보면 30대 시인들이 수용하였다고 볼수 있습니다. 다른 세대보다 이점이 다르지요. 물론 제대로 완미하게 수용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우리가 쓴 시를 귀족시라고 하거나 자아팽창, 무병신음이라고 비평하는데는 근거가 있습니다. 우리가 모더니즘의 일부 방법과 기교를 표상적으로 배우는 결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에서 자아표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아란 곧 시인의 생명본체가 아닙니다. 아직까지도 시의 교육기능만 강조하는것을 너무도 뒤떨어진 문학관념이라고 말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요즈음 우리 시들을 보면 도리를 내세우는 경향이 적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요즈음 적지 않은 소설에서 주인공을 죽입니다. 여기에는 문학의 국한성에 대한 인식이 안받침되여있습니다. 역시 일종의 도리입니다. 도리도 일종의 초월이 아닙니까. 그리고 30대의 시에는 반어가 많고 듣기 싫은 소리가 많습니다. 저는 30대의 시인들은 시의 탐구에서 더 미쳐나야 한다고 봅니다.[44]   김혁의 상술한 문학주장과 조선족 문단의 분위기의 영향하에 1998년에 이르러서야 모더니즘시 「신오감도」가 창작, 발표되고 초현실주의 소설로 불리우는 「천재죽이기」가 『도라지』제4기에 게재된 것이라고 할수 있다. 김혁이 이상의 문학을 좋아하게 된 원인은 또한 그의 중편소설 「륙가락」에서도 제시되고 있다.   마음이 번거로울때면 김은 컴퓨터앞에 마주앉군 했다. 키보드를 두다리군 했다. 자기 기록을 쇄신하려는 달리기 선수처럼 재빨리 글자를 두다려 보군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리상의 시를 쳐보군 했다. 난해하기 짝이 없어 어떤 암호의 해독이 있어야 하는 리상의 시였지만 그런 류다른 시가 바로 자신의 기분을 해독하는 안정제라고 김은 느껴졌다. 김은 시인 리상을 좋아했다. 그의 광기어린 천재적 기질을 좋아했고 그의 실험적이며 파격적인 문풍을 좋아했다. 리상의 시는 그의 창작풍격을 철저히 바꾸어 주었다.[45]   「륙가락」에서 등장하는 시인 ‘김’의 일부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청년시절의 문학도 김혁의 삶을 떠오르게 하며 김의 목소리 역시 청년시절의 김혁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김혁은 이와같이 자신의 분신이 작품 속의 한 인물로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륙가락」 외에도 다음과 같은 작품도 역시 김혁의 자서전적 요소가 강하게 들어나있다.   아버지의 장례 날, 동료들이 많이도 모여왔고 하늘 향해 조총을 울리였다. 모두들 비감에 물젖어있었지만 나의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있었다. 그 조총을 쏠때 튕겨 나온 탄알 깍지가 못내 갖고 싶어졌다. 그래서 장례식이 끝나기 바쁘게 허겁지겁 탄알 깍지를 줏는데 어머니가 「이 철없는 것아!」 하고 오열하며 나의 뒤통수를 철썩 아프게도 때렸다.(나의 첫 장편소설 「마마꽃, 응달에 피다」 중에 이러한 나의 동년의 모습이 가감 없이 세세히 그려져 있다.)[46]   말하거나 나의 삶은 조악하였다. 강보의 몸에 버려졌고, 양모와 의붓아버지의 끝없는 소시민적 갈등 속에서 암울한 사춘기를 지내왔고, 대학문전도 못간 몸으로 엘리트 속에 묻혀 필봉 하나만 믿고 신심을 혹사해왔으며, 청빈한 문인신세 때문에 혼인이 파열되었다. 30대중반이 넘도록 안식할 보금자리 하나 마련 못해 수천책의 책 꾸러미를 지고 메고 열다섯번씩 이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오로지 사랑하는 딸애와 타향 멀리 떨어져 함께 지낼수 없는 살을 도려내는 마음의 진통 속에 거액의 빚짐에 눌리워 수년간 내내 리자돈을 꾸어대야 하는 나날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세대주로 인생을 감당해야할 나이에 어수룩한 일에 휘말려 직장을 말고 한지에 쫓겨나야하는 이변까지 일었다. 내 인생의 초반부터 덧쌓인 그 수많은 절망의 소품들... 초현실주의수법으로 예술화한 그 아픔이 나의 중편소설집 「천재 죽이기」의 구구절절에 배어있다.[47]   위의 두 인용문에서 우리는 「천재 죽이기」와 「마마꽃, 응달에 피다」 두 작품에서의 주인공들의 삶과 김혁의 불우한 출생, 그리고 그의 성장역정의 삶과 많은 부분 겹쳐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아픔을 겪어온 김혁에게 있어서 아픔은 그의 문학창작에 있어 좋은 소재이자 영원한 주제이고 나아가 그의 문학의 뿌리로 되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문학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서는 안될 충동을 가진다.   나를 고통의 류활불에서 빠져나오게 한 구원의 빛이 바로 문학이였다. 절망의 정체를 저울질하게 하는 도구, 말 못할 사정과 가슴 터질 슬픔을 상쇠해주는 엔돌핀이 바로 문학이였다.[48]   하여 김혁의 많은 작품속에서 부각된 인물들은 모두가 비극적인 인물이며 모두와 같이 아름차게 파란마장한 인생을 체험한다. 김혁의 이러한 창작성향은 그의 첫 장편 「마마꽃, 응달에 피다」(200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변모된다.[49] 이 작품에서 비로소 김혁은 개인의 아픔을 넘어서 중국 조선족 공동체의 아픔으로의 변모를 가져오게 된다. 비록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의 여전히 김찬혁이라는 인물에서 김혁작가의 삶과 겹치는 부분을 많이 찾아볼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을 시발점으로 김혁은 “중국조선족 문제 테마소설”이라는 부제 하에 변혁기 중국 조선족의 고뇌를 다룬 작품들과 천입민족으로서의 그 역사의 행정을 다룬 작품들을 꾸준히 펴내고 있다.[50] 김혁이 이토록 자전적 요소가 띄는 작품들을 창작하게 된 계기와 원인에는 그에게 끊임없이 찾아오는 불행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겠지만 이상(李箱)문학의 영향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위에서 언급된 이상(李箱)문학의 영향을 뚜렷이 받은 「천재 죽이기」에 이르러서야 김혁의 자전적인 요소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작품이 자서전적이라는 점은 이미 한국의 많은 연구자들에게 의해 증명되었다.   이상의 소설은 작가 자신의 고뇌를 작중인물인 ‘나’를 통해서 토로하는 자전적인 삶의 기록이다. 즉 시대의 아픔과 자신의 번민 및 소외감 등을 현대 심리주의 기법인 의식의 흐름이나 내적 독백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소설은 곧잘 주인공으로서 화자인 ‘나’를 등장시키는 사소설(私小說)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예컨대,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와 가 그것이다. 이 두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은 1933년에 폐결핵을 앓던 이상 자신이 총독부의 건축 기사직을 그만두고 요양차 황해도의 백천(白川)온천에 갔을 때 만났던 금홍이라서 더욱 흥미롭다. 그는 당시 그녀와 함께 동거하며 다방이나 술집(카페)을 운영했는데 전부 실패하고 가난에 병마까지 겹쳐 있었던 것이다.[51]   앞에서 살펴본 이상의 소설과 수필은 그 자신의 천재성과 폐결핵으로 인한 죽음에의 강박관념 및 식민지 치하라는 불합리한 현실 사회에서의 무기력과 외로움을 표출한 기록물들이다. … (중략) … 말하자면 그에게 있어서 문학은 이상 자신의 소외감이나 절망감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자 목적이었다. 어느 누구도 절박하고 처절한 그의 고뇌를 위로해 줄 수 없었으며 이상 자신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삶의 의지는 끝까지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추락한 날개의 모습이 바로 이상의 문학이자 작가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52]   그리고 김동현은 이상의 문학이 자서전적이라는 이유를 다음과 같은 실례를 논거로 주장한다.   이상의 누이인 김옥희씨가, 현대문학 90호(1962년 6월호)에서 이상의 작중 인물이 이상 자신의 생활에 실제했던 인물의 해학적 묘사임을 지적하고 있으며 또 창작 수법이 1인칭 시점을 사용하여 사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작중인물의 명명문제에 있어서도 실명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53]   이상과 김혁의 작품들이 모두 자전적 요소가 강하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을 보여주었다면 그 두 작가의 작품들의 상이점이라면 이상의 작품속의 일인칭 시점과는 달리 김혁의 많은 작품에서는 3인칭의 시점을 사용하고 있다. 「천재 죽이기」와 「마마꽃, 응달에 피다」 두 작품에서는 김혁을 대표하는 인물이 ‘나’가 아닌 의 man이나 김찬혁으로 설정되어있다. 이상의 문학은 자전적 요소가 강한 특점 외에도 창작기법이 독특하다. 이상은 그의 작품 여기저기에 ‘아이러니’, ‘패러독스’, ‘위트’ 뿐만 아니라 ‘농담’, ‘경구’, ‘에피그램’ 등 수사학적 장치, 또는 그것과 관련된 언급 등을 통해 고도의 지적 유희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유희적 태도는 언어의 차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문체로, 또는  창작방법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상의 텍스트들은 독자에게 암호풀이 내기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거나, 저자와 독자가 텍스트에 대해 의미 찾기에 대한 긴장감 있는 대결의 형식을 자아내기 때문에 작품 자체를 단순히 읽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게 한다. 이러한 유희적 태도는 이상 소설에서 하나의 수사로서 사용된 것도 있지만 작품 전체를 관류하는 방법론으로 제기되고 있다.[54] 이러한 이상의 창작특점은 김혁의 작품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가 있다. 먼저 김혁의 초현실주의 소설 「천재 죽이기」의 경우를 놓고 보면 이 작품은 소설의 시작의 서두를 이상의 “… 박제가 돼버린 천재를 아시오? 난 유쾌하오. - 리상”으로 하고 있다. 그외에도 이러한 성향을 보여준 작품은 많다. 『도라지』 2002년 제5기에 게재된 중편소설 「타인의 시간」에서는 “시계를 자주 보는 사람에게는 흔히 두 가지 류형이 있다.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 그리고 시간이 가기를 바라는 사람.” 라는 경구로 서두를 시작하고 있으며 『도라지』 1996년 제5기에 게재된 중편소설 「바다에서 건진 바이올린」에서는 쇼펜하우어의 『생존공허설』중의 “만물의 변화란 실제에 있어서 그저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허나 바로 형식의 내면에 항구불변의 생존의 의지가 잠자고 있다.”라는 부분과 야마다까 가이요의 『인간의 심층심리분석』중의 “우리의 정신세계 및 리념의 구축은 언제나 현실세계의 경험에서 비롯하여 다시 여러가지 형태로 변형되여 전개되며 나중에 우리는 그 한 형식의 내용으로 과제를 해결하군 한다.”를 각각 인용한데다 저자가 좋아하는 명언 “무릇 변형은 모두 그 자체로서의 이유가 있다.”덧붙혀 서두를 시작하고 있고, 2005년 『연변문학』 윤동주 문학상 수상작품인 「불의 제전」에서는 정한모의 시 「춤의 판타지아」로 소설의 서두를 시작하고 있으며 중편소설 「와늘」에서는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중의 일부분을 인용하여 소설을 시작하고 있고 중편소설 「바람과 은장도」에서는 조지훈의 시 「승무」의 일부분을 인용하여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중편소설 「뼈」는 관속에 누운 “뼈”에 관한 시로부터 시작된다.[55] 작품에서의 이러한 ‘경구’, ‘에피그램’, 시의 인용은 작품의 내용과 유리된 것이 작품 속에 잘 용해되여 작품의 의미를 보태고 있다. 이렇게 많은 작품에서 이상문학의 영향의 흔적이 드러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선명히 드러나고 있는 작품으로는 역시 초현실주의 소설 「천재 죽이기」와 중편소설 「륙가락」이다. 「천재 죽이기」에서 나타나는 이상 문학의 영향의 흔적과 이상의 시와 소설을 여러 곳에 인용하여 작품의 의미를 덧붙힌 부분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는 3절에서 다룰 계획으로 여기서는 「륙가락」에서 나타난 이상 문학의 영향을 살펴보기로 한다. 중편소설 「륙가락」은 서두는 비록 하나라는 소제목하에서 이상의  시 「오감도」 제11호로 작품을 시작하지만 위의 작품들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작품들이 ‘경구’, ‘에피그램’, 시들을 아무런 변화없이 직접 인용하는 것과는 달리 「륙가락」에서는 이상의  시 「오감도」 제11호를 약간 변형시켜 인용하고 있다.   그?사기컵은?내?해골과?흡사하다?내가?그?컵을?손으로?꼭?쥐였을때?내팔에서는?난데없는?팔?하나가?접목처럼?돋더니?그?팔에?달린?손은?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루바닥에?메어?부딪는다?내팔은?그?사기컵을?사수하고있으니?산산히?깨어진것은?그럼?그?사기컵과?흡사한?내?해골이다?그러나?내?팔은?여전히?그?사기컵을?사수한다? 리상?「오감도」시?제11호?[56]   이상(李箱)의  시 「오감도」 제11호의 원텍스트는 아래와 같다.   그사기컵은내해골과흡사하다. 내가그컵을손으로꼭쥐었을때내팔에서는난데없는팔하나가접목처럼돋히더니그팔에달린손은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룻바닥에메어부딪는다. 내팔은그사기컵을사수하고있으니산산이깨어진것은그럼그사기컵과흡사한내해골이다. 가지났던팔은배암과같이내팔로기어들기전에내팔이혹움직였던들홍수를막은백지는찢어졌으리라. 그러나내팔은여전히그사기컵을사수한다.[57]   두 작품을 비교해볼 때 김혁은 원텍스트의 띄여쓰기가 없고 문장부호가 있는 자리에다 ?을 삽입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과도 밀접히 연관이 되겠지만 소설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하는 것은 역시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이 작품을 읽도록 유도하려는 장치가 아닐까 한다. 김혁의 중편소설 「륙가락」은 그의 계렬공포소설 『일어서는 머리칼』의 제2부로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시인 김과 료리사 박, 때밀이 최는 그들이 함께 20여년전 륙가락인 마동무를 물에 빠뜨려 죽음으로 몰아간 죄책감에 최근에 들어서 갑자기 자신들의 오른 손에 자꾸만 륙가락이 생긴 환각에 빠지게 된다. ‘이상의 광기어린 천재적 기질을 좋아하고 실험적이며 파격적인 문풍을 좋아하는’ 김은 이상의 영향을 받아 그도 「흰옷입은 사람들은 자위를 즐긴다」라는 쉬르얼리즘 경향이 다분한 시를 지어 출판사에 보내지만 5번이나 출판사에 거부당한다. 그는 그의 시를 여섯번째로 출반사에 보냈지만 그의 시가 적극적인 문체적 실험자로서의 응분의 긍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문단에 의해 외면당하는 고통에 시달리게 되며 그러는 와중 자신의 오른손 약손가락에 손가락 하나가 더 나 있는 환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 환몽과 현실에서 성형외과에 가서 수술을 받는 장면을 연출하다가 20여년전 물에서 빠져죽은 마동무를 떠올린다. 료리사인 박 역시 라면을 만들다가 자신의 오른손이 륙가락이 생겨난 환각에 빠진 나머지 칼로 자신의 성성한 손가락을 끊어버리기 까지 한다. 최도 때밀이를 하는 와중에 자꾸만 20여년전의 일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에게 아무런 징조도 없이 다가온 그동안의 공포는 그들의 정상적인 생활을 파괴하였으며 그들로 하여금 독주에 취한듯 허환의 나날들을 보내게 하였다.’ 작품에서는 앞에서도 언급했던 이상의 시와 이상에 관한 내용이 직접 등장하는 점 외에도 많은 곳에서 이상의 작품들과 흡사한 점이 나타난다. 첫째로는 「날개」에서 나타난 꿈과 현실에서 넘나드는 모티프(장면)가 등장한다. 둘째로는 이상의 작품 속에서 자주 나타나는 ‘아이러니’도 이 작품에서 여러군데 등장한다.   ①   이 라면은 박의 료리사생애에서 가장 엉성하게 만든 한그릇의 라면일 것이였다. 명주실처럼 가늘고 매끈거리게 뽑았던 그의 라면이 오늘은 밀가루덩이를 뭉덩뭉덩 쥐여뜯어놓은 꼴, 아예 수제비국에 가까웠다. … (중략) … 다행히 손님은 엉성한 라면에 대해 탓하지 않고 있었다. 맛나게 먹어주고 있었다. 후르르 첩첩, 후르르첩첩 소리도 요란히 맛나게 먹어주고 있었다. … (중략) … 라면이 맛잇어 죽겠다는 듯 다시한번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58]   ②   카운터쪽에서 저 혼자 흥을 피워 올리는 록음기의 소리가 들렸다. 손에 손잡고 령을 넘어서... 요즘의 기분에서 들으려니 같은 음악이 다르게 들린다. 야! 올림픽이 언젠데 아직도 그런 노래냐? 그쪽을 향해 박이 성마른 소리를 질렀다. 노래소리가 바뀌였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 하필이면 「안해에게 바치는 노래」냐? 다른 계집 넘보고 다방 기쑥이는 수컷들한테 꼭 녀편네를 들먹여야 맛이겠냐? 박이 또 한번 소리소리 질렀고 록음기가 이붓아비 고함질에 그치는 애 울음소리처럼 딱 멎었다. 그러는 박에게 김은 리해가 갔다. 귀신에게 홀렸던지 멀쩡한 손가락을 잘랐으니 세상이 귀찮을법도 했다. 박은 물론 김도 최도 지금 손이라는 단어에 신경을 가시처럼 곤두 세우고 있었다. … (중략) … 라이터에 새겨진 다방의 자호와 전화번호를 보았다. 2666666 마담의 말처럼 번호가 기억하기 쉬웠다. 6자가 여섯이였다. 중국속담에 육육(六六大順)이란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다방 전화번홀 말짱 6으로…[59]    ‘말’, ‘륙’, ‘손’을 꺼려하는 김, 박, 최 들에게 ‘말’과‘륙’, ‘손’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꾸만 찾아든다. 세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한 원인도 ‘엄지를 치켜든 손가락모양의 조각물의 시표’를 발견했기 때문이고 딸을 소망한 김이 그의 소망대로 딸애가 태여났지만 왼손이 륙가락인 것으로 설정되고 있다. 그외에도 다음과 같이 손에 대한 묘사를 세 번 반복하여 독자들의 공포감을 한층한층 심화시키고 있다.   쥘부채처럼 손가락이 기름한 손이였다. 로동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는 깨끗한 손이였다. 여자의 손처럼 작고 손마디가 굵지아니한 손이였다.[60]   이상의 시 「오감도」 제1호에 나오는 이러한 문체는 김혁의 장편소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계집애들이 술을 남자들처럼 억벽으로 마셨다. 술 못하고 음료만 기울이는 신애는 당연 그들의 권주돌림에서 빠졌다. 그리고 모두들은 신애를 망각한채 저희들끼리 술잔을 기울이며 와짝 떠들어가며 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남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화장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시체옷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서양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 (중략) … 그때 그들은 경자네 마당에 모여앉아 호도를 까며 울고 떠들며 마을에서 샛길을 닦는다고 얘기를 했다. 산옥이네 집 굴암퇘지가 새끼네마리를 낳은 얘기를 했다. 장과부의 음식솜씨가 알뜰하다는 얘기를 했다. 최털보네 과수가 우박을 맞던 얘기를 했다. 촌 뒤산에 묻혀진 발해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61]   위의 인용문에서는 비슷한 내용이 단순히 반복만 되는 것이 아니라 박신애가 머물렀던 두 장소의 이야기와 생활에 대한 대조도 이루어지고 있다. 돈, 남자, 화장품, 시체옷, 서양음식에 대한 이야기와 샛길을 닦는다는 이야기와 굴암퇘지가 새 끼를 네마리 낳은데 대한 이야기, 장과부의 음식솜씨에 대한 이야기, 최털보네 과수원이 우박을 맞은 이야기, 뒤산에 뭍혀진 발해공주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는 시민들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농민들의 이야기이며 하나는 도시생활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농촌생활에 대한 이야기다. 이 두 공간의 이야기와 생활을 대조시켜 농촌에서 성장한 신애가 도시생활에 융합되기 어려움이며 도시인의 소외를 받기 마련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상 김혁과 이상의 관련 양상을 불운한 경력, 문학수신 및 문학창작 등 측면에서 살펴보았는데 이상과 유사한 경력은 김혁으로 하여금 이상의 문학을 수신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고 이상문학의 수신을 통한 조선족 문단에서의 파격적인 문체실험은 또한 김혁으로 하여금 한국 문단에서 파격적인 문체로 이름 난 이상과 비슷한 경향의 문인으로 닮아가게 만들었다.   5.3 「천재죽이기」에 나타난 이상의 영향   문학은 작가의 언어적· 예술적· 문화적 관습들을 통하여 만들어졌으며 이러한 관습들을 통해 새로운 텍스트가 생산되고, 생산된 텍스트는 이후 새로운 관습이 되어 또 다른 텍스트의 토대가 된다. 그러므로 전통과 관습을 떠나 순수 창조작품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텍스트들의 상호작용은 역사 저술의 가치성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가치의 조건을 재정의하는 것이라는 견해는 텍스트를 과거와의 연계선 상에서 평가하는 가장 우선되어야 할 명제라 할 만하다. 앞의 글에서도 여러 번 밝혔는 바 김혁의 「천재 죽이기」는 이상 문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작품으로서 그 영향의 흔적이 선명히 드러나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에서는 이상의 시와 소설들을 직접 인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용은 단순한 인용에만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내용과 유기적으로 잘 용해되여 있어 이상의 시와 소설의 인용이 작품에서 담당하는 역할에 관해 살펴보는것은 흥미로운 일이며 또한 원텍스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 작품을 제대로 분석하고 연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여 본절에서는 작품에서 인용된 이상의 시와 소설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미 여러 평론가들에게 조명되었던 「천재 죽이기」를 다시 고찰해 보려고 한다. 김혁의 「천재 죽이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man은 사업에서도 실력가이고 지식소유에서도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천재이며 가정에도 충실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물은 회사의 버림을 받게 되고 안해의 배반을 당하고 이혼을 하게 되며 사회의 버림을 받는다. man은 천재로서의 응분의 대우를 받을 대신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 마저도 다 잃어버리게 되며 나중에는 길가의 광고판이 떨어져 머리가 큰 손상을 입게 되어 지력상수가 다섯살짜리 어린애 정도로 쇠퇴한다. 이처럼 이 소설은 천재로서의 응분의 대우를 받을 대신 모든 것을 다 잃고마는 이 시대 순결무구한 지식인의 비극적 운명을 무게있게 뼈아프게 펼쳐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때 당시 조선족 문단에서는 김혁외에도 최홍일의 「흑색의 태양」 등 소설에서도 장석 등과 같은 인물이 부각되고 있어 크게 이목을 끌만한 소재는 아니지만 발표 당시는 각별히 문단의 각광을 많이 받게 되었으며 그 이듬해 이 작품으로 김혁은 『도라지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며 또한 이 작품이 선후로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연구되었다. 이 작품이 이토록 조선족 문단에서 물의를 일으키게 한 점은 다름 아닌 김혁작가가 이러한 순결무구한 지식인의 비극적 삶을 예전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관습을 타파하고 조선족 문단에서는 전례없는 초현실주의 수법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서두에서부터 이상의 초현실주의 소설인 「날개」의 서두“‘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의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부분의 인용으로 작품을 시작하면서 이 작품이 초현실주의 작품과 연관이 있음을 암시한다.   … 박제가 돼버린 천재를 아시오? 난 유쾌하오.                                —리상[62]   조선족 문단에서 이 작품을 초현실주의 소설로 보는데는 큰 이의가 없으나 어떠한 측면에서 초현실주의 소설로 보는가에 대해서는 일정한 입장적 차이가 있다.   소설의 일반적인 구조나 규범의 파괴를 들어 이른바 쉐르알리즘 즉 초현실주의 소설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소설의 일반적인 구조나 규범을 파괴하였다면(그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해체미학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로 보는것이 옳다. 이 작품이 초현실주의적인 성격을 지닌 작품으로 볼수 있는 이유는 환몽과 현실 사이를 넘나드는 주인공의 의식과 그런 주인공의 의식을 능청스러울 정도로 태연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의식때문이 아닐가 한다. 초현실주의대가로 알려진 리상의 시와 소설작품들을 군데군데 인용함으로써, 또한 장절의 번호를 거꾸로 달았다든지 주인공의 이름을 엉뚱하게도 남성이라는 의미의 영어 man으로 하였다든지 하는 파격적인 구성 등은 그러한 환몽과 현실의 간격을 허물어버리는 역할을 하며 따라서 작품의 초현실적인 느낌을 강화시켰다고 볼수가 있다. 초현실주의는 경험의 의식적령역과 무의식적령역을 완벽하게 결합시키는 수단이기때문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절대적실재, 즉 초현실속에서는 꿈과 환상의 세계가 일상적인 리성의 세계와 소란이 있다고 보는것이다.[63]   본고에서는 이 소설을 초현실주의 소설로 보는 이유를 위의 장춘식의 관점에 따르고 있음을 밝히고 그외에도 지금까지 연구자들에게 의해 발견되지 못했던 초현실주의적 요소를 찾아내려고 한다. 「날개」의 서두 부분의 인용에 뒤따르고 있는 것이 소설의 소제목 9이다. 위의 인용문에서도 이미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소제목 달기에서 처음의 9자로부터 거꾸로 마지막 -1에 까지 이른다. 먼저 각 소제목이 다루고 있는 내용을 각각 세부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이상의 시 「오감도」 제1호를 패러디한 느낌을 주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장절 9는 시작된다.   … 라다가 지나갔다 캐딜락이 지나갔다 자전거가 지나갔다 오디가 지나갔다 샤리가 지나갔다 봉고차가 지나갔다 쌍타나가 지나갔다 삼륜차가 지나갔다 벤츠가 지나갔다 살수차가 지나갔다…[64]   출근길 네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셀러리맨 man의 눈에 안겨오는 지나가는 차량의 모습을 보여주는 위의 인용문은 이상의 원텍스트와 유사한 초조와 불안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차가 한대, 두대 지나가면서 시간도 함께 지나가고 있기에 차량이 하나가 지나갈 때마다 출근시간의 많은 부분을 네거리에서 허비하고 있는 man에게 초조와 불안은 깊어갈 수 밖에 없었다. 모두 134대 차량이 지나가서야 출근 고봉기의 대로를 헤치고 나올 수 있었기에 지각을 죽기보다 싫은 man의 불안은 굉장히 컸을 것임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준다. 네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던 man은 안해가 늘 귀띔해주군 하는 “지하상가를 리용하세요”란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왕거미줄같이 얼기설기 뻗은 상가의 통로에서 늘 길을 찾지 못하군 하는 man에게 구체적 행로를 담은 말끝에 man에 대한 비웃음이 섞인 안해의 말도 떠올리며 man 은 샐러리즈맨인 자신이 길녘 난전에서 허드레장사를 하고 있는 안해에게 제압당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뒤로 회사의 엘레베이터를 타고 9층에 있는 사무실에 올라가는 과정에서는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직장의 동료들을 떠올린다. ‘퇴직기한이 엘레베이터 타고 8층쯤 닿아오고 있는 부장’과 동료 1과 동료 2가 man의 평소의 인상에 의해 독자들에게 소개되고 있다. 이어 그려지고 있는것이 man을 맞는 동료들의 태도와 사무실에서 자주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대화이다. 9는 이처럼 출근길에서의 man의 내심활동을 독자들에게 펼쳐주고 있다. 소제목 8에서는 man과 딸애와의 끝말잇기로 시작한다. 딸애와의 보내는 동심과 어우리지는 시간은 man의 맘벽에 묻은 모든 고뇌와 번민, 얼룩이 잊혀지고 사라지고 지워지게 한다. 딸애와의 유희에서 man은 그동안 자신의 결혼생활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사업에서 빼여나게 열심했고 가정에도 구순하게 충실하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였고 요즘 들어 가정을 소홀히 대하는 아내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며 모성애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불쌍한 딸애를 생각한다. 그러다가 J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그리고 통화중의 그들간의 대화가 교대된다. J와의 통화가 끝난 고요 속에 옆집에서 수런대는 소리가 들려오며 나중에는 기묘한 소리로 바뀌여 들려온다. 그러다 최저한도의 은사권도 지킬수 없는 세집을 생각하게 되고 거기서 또 지금까지 살았던 집들을 돌이켜 보게 되고 결혼 5년간 6번을 이사를 했던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며 “불찬놈이 녀편네와 아이 엉덩이 들여놓을 굴 하나 마련하지 못한다는” 안해의 욕을 생각하게 되고 그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다 회사의 사장, 부장, 차장이 집들이를 여러번 했던과는 비교되게 사업 연한이 10년이나 넘는 자신이 아직 주택분배를 받지 못했던 상황을 떠올린다. 옆집의 운우지정이 끝나고 고요가 회복되자 잠이 든 man은 이상한 꿈에 빠지게 된다. 중세기적 기사들처럼 눈가리개를 하고 있는 사람이 man과 홍콩의 깽영화에서나 보았던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자고 든다. ‘가위, 바위, 보’란 주먹내기를 하여 진 사람이 총알 한방이 들어있는 총으로 자기 머리를 겨누어 쏘는 그러한 게임이다. man은 ‘보’를 내어 주먹내기에서 지게 되여 총구를 태양혈에 가져다 붙힌다. 죽음의 공포에 얼굴에 땀방울이 팥죽처럼 흘러내린다. 그리고 man의 죽음으로 가까와가고 있는 자신의 내심상황을 다음과 같이 인용문으로 나타내고 있다.   … 나의 호흡에 탄환을 쏘아넣는 놈이 있다 … 별이 흔들린다. 나의 기억의 순서가 흔들리듯… 배속 뼁끼칠을 한 십자가가 날에 날마다 발돋움한다. 나에 대해 달력의 수자는 차츠차츰 줄어든다. 네온싸인은 휘파람같이 여위였다… 하얀 천사가 나를 가벼이 노크한다. -리상《날개》[65]   필자는 위의 인용문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려고 인용문의 출처가 제시된 이상의 소설 「날개」를 여러번 읽어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소설 「날개」에서 위 인용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상의 다른 여러 작품을 찾아봐서야 그 출처를 확인할수가 있었는데 위의 인용문의 정확한 출처는 이상의 소설 「날개」가 아닌 「각혈의 아침」이란 일문시였다. 이 시는 1933년 1월 20일 일문시로 발표되었다가 1976년 7월 『문학사상』 제 46호에 게재되었던 작품이다.[66] 위의 인용문에 해당되는 원텍스트를 보면 다음과 같다.   … (중략) … 나의 호흡에 탄환을 쏘아넣는 놈이 있다 병석에 나는 조심조심 조용히 누워 있노라니까 뜰에 바람이 불어서 무엇인가 떼굴떼굴 굴려지고 있는 그런 낌새가 보였다. 별이 흔들린다 나의 기억의 순서가 흔들리듯 어릴 적 사진에서 스스로 병을 진단한다   가브리에 天使菌(내가 가장 불세출의 그리스도라 치고) 이 살균제는 마침내 폐결핵의 혈흔이었다(고?)   폐속 페인트 칠한 십자가가 날이면 날마다 발돋움을 한다 폐속엔 요리사 천사가 있어서 때때로 소변을 본단 말이다 나에 대해 달력의 숫자는 차츰차츰 줄어든다   네온사인은 색소포 같이 야위었다 그리고 나의 청맥은 휘파람 같이 야위었다.   하얀 천사가 나의 폐에 가벼이 노크한다. … (중략) …[67]   인용문을 원텍스트와 비교해볼 때 일부 생략된 부분과 일부 첨가된 문장부호 외에 다음과 같은 몇 곳에서 차이가 있다. 원텍스트의 “폐속”이 “배속”으로 변화되었고  “페인트 칠한”이 “뼁끼칠을 한”[68]으로 변화되었으며 “네온사인은 색소포 같이 야위었다”가 “네온싸인은 휘파람같이 여위였다. ”로 변화되었고 “하얀 천사가 나의 폐에 가벼이 노크한다”가 “하얀 천사가 나를 가벼이 노크한다”로 ‘폐’가 생략되어 인용되었다. 이런 차이점이 생성된 원인은 지금 확정할 수 없으나 아래와 같은 몇가지 가능성이 존재할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로는 중국 조선족의 한글표기법과 맞춤법이 한국의 표기법과 맞춤법의 차이로 인한 현상이라고 예상된다. 둘째로는 「천재죽이기」라는 작품의 내용과 결부시키려고 김혁이 의도적으로 변화한 것이라고 예상할수 있으며(왜냐하면 이상의 대표적 초현실주의소설 「날개」의 부분을 인용하면 적어도 시각적으로 독자들에게 이 소설을 초현실주의 소설이라고 전달할 수 있다) 셋째로는 당시 중국 조선족 문단으로 흘러들어온 이상의 작품집에 여러 가지 오류점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한 작가로서 인용문의 출처를 잘못 표기할 가능성은 극히 낮을 것으로 생각되며 또한 지금까지의 연구자들에게 이 출처의 오류를 발견하지 못한 점이 그 이유가 된다. 얼굴도 보지 못한 어머니를 속으로 부르며 man은 두눈을 질끈 감고 방아쇠를 당겼다. ‘절컥’하는 안해가 들어오는 소리에 꿈에서 깨어난 man은 밤늦게 귀가한 안해와 싸움을 벌린다. 소제목 7에서는 출근하는 길에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에 올라가는 도중 고장이 생겨 엘레베이터에 갇힌 청소부 아줌마와 man의 대화가 펼쳐지고 있다. 그 대화는 엘레베이터가 자주 고장나게 되는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엘레베이터의 연혁사와 엘레베이터의 원리를 man의 말을 통해 독자들에게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엘레베이트에 갇힌 man의 심정을 다음과 같은 인용문을 통하여 나타내고 있다.   너는누구냐?그러나문밖에와서문을두드리며문을열라고웨치니나를일심(一心)이아니고또내가너를도무지모른다고한들나는차마그대로내여버려둘수는없어서문을열어주려하나문은안으로만고리가걸린것이아니라밖으로도네가모르게잠겨있으니안에서만열어주면무엇하느냐?너는누구기에구태여닫힌문앞에서탄생하였느냐?                                 -리상 「정식」(正式) (「천재죽이기」, 33-34쪽)   Man은 분명히 자신이 나오고 싶으면서 나오지 못하는 심정을 엘레베이터 밖의 다른 사람이 들어오고 싶지만 들어오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내’가 안에서 열어주고 싶지만 열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고 있다. 위 인용문은 심리적방어기전중의 투사[69]에 속하는 부분이다. 몇분 늦는 것으로 중인의 험구의 과녁이 되기 싫은 man은 자신이 엘레베이터에서 나올 수 없는 상황을 반대로 다른 사람이 들어오고 싶어하는데 내가 문을 열어주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함으로써 심리적 평형을 이룩하여 안위를 얻고자 한다.[70] 소제목 6에서는 직장회식에서의 man과 그의 동료들이 나누는 대화를 펼쳐보이고 있다. 회식에서의 대화를 통해 많은 지식정보를 소유한 man이 동료들에게 소외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소제목 5에서는 man의 빼여난 기억력이 승인받아 TV의 오락프로에 출연하여 방청객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man의 출연은 성공적이었지만 고요한 분장실에서 다음번 출연계약을 맺기 위해 프로듀셔를 기다리는 와중에 무심결에 체경속의 낯선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어딘가 허전한 느낌을 금할수가 없었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요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요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왼손잡이요   거울 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 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였던즐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 만져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 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또꽤 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 으니퍽섭섭하오           -리상「거울」 (「천재죽이기」, 37쪽)   소제목 5의 마지막 부분에 이상의 시 「거울」을 인용하여 작가 김혁이 어떠한 의미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원텍스트를 분석해본다. 이상의 시 「거울」은 1933년 10월 『카톨릭 청년』에 실린 작품으로 에서 평면경을 통하여 자아를 해부하듯 거울 밖의 내가 거울에 비친 나를 대상으로 시각적 탐구를 하고 있다.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시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어조의 아이러니에 속한다. 소리가 없는 조용한 세상에서는 귀가 있을 필요가 없으며 설령 귀가 있다고 하더라도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귀의 기능은 마비된다. 그럼에도 두 개의 딱한 귀가 있다고 한다. 화자의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것은 화자와 ‘거울 속의 나’ 사이에 교통이 단절됨을 의미한다.[71] ‘왼손잡이’ 나의 악수를 수용할 수 없는 왼손잡이, 매우 자연스러운 유추를 토대로 한 표현이다. 시적 화자는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내가 서로 교통할 수 없는 이유를 거울로 보고 거울에게는 모든 해악을 뒤집어씌운다. 대단한 의식의 아이러니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각적 탐구란 무엇인가. 시각은 본원적으로 불충분하다. 항상 부수적인 물체들이 시야를 가림으로써 환유적인 인식만 가능할 뿐이다. 푸코에 의하면 감시초소 속에 있는 간수는 결코 모든 것을 다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끊임없이 가려 있는 것을 드러내기만 할 뿐 결코 이 과정의 궁극적 목표, 즉 드러난 것을 한 눈에 보는 단계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인용시는 분열된 두 분신의 갈등 양상이 탐구로 표출된 대단히 뛰어난 작품이다. 거울 밖의 나와 거울 속의 나는 수은 도막 된 물체의 거울이 아닌, 눈을 뜨고 서로가 서로를 들여다보는 평면인 거울을 사이에 두고 대칭되는 존재들이다. 그것은 본질과 현상의 관계일 수도 있고, 대상의 이중성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문제로서 도출되는 부분이 있다면 두 개의 ‘나’ 사이의 존재의 불일치이다. 거울에 비쳐진 나의 육체는 실재하는 나를 사실 그대로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로는 실재하는 나의 육체를 변형시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거울때문에 거울 속의 나를 만져볼 수 없다 따라서 하나의 핑계를 만든다. 이상 시가 늘 그렇듯이 일상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 사이를 의도적으로 분열시키고 있다. 또한 의식이란 이상적 자아와의 만남을 가능케 하지만, 그러한 실체를 만져볼 수 없게 한다. 그것이 이른바 의식의 아이러니이다. “거울 속의 나는 참나와는 반대요 만은 꽤 닮았소”, 반대이면서 꽤 닮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둘 사이에는 동질성이 형성되지 않는다. 화자의 육신이 거울을 통해 본래적 자아를 꿈꾼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진찰할 수 없는 자아 분열상태만이 실체로 남는다.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는 나이면서도 나일 수 없는 절망적 악순환의 거리를 노정한다. 내가 나로부터 분열하는 타자적 자의식은 실로 여기서부터 근거한다고 할 것이다. 거울이 있음으로 하여 더욱 멀어지는 나와의 거리가 자의식적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으며 한편 내가 나를 통해 교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72] 인용시에서 이와 같이 거울을 통해 들여다 본 영상이 능동체와 수동체로서의 대립양상에 놓여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일대 혼란으로 다가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다른 나를 음모하고 음해하는 것 같지만 결국 거울 속의 나는 서로가 서로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즉 시의 아이러니의 양상으로 드러난다. 거울에 비친신의 모습(얼굴)을 묘사하며 그로 인한 자아성찰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소제목 4에서는 man이 추리소설 「여섯사람의 낭떠러지」의 일부를 J에게 전화로 이야기해주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J와의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진행되고 있는 man의 심리활동을 전경화 하고 있다. 아내의 귀가로 J와의 전화를 통한 대화가 끊어지고 늦게 귀가한 아내에 대한 man의 내심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그 뒤에는 아내와 정사를 나눈뒤 man의 또다시 러이안룰렛 꿈의 정경을 펼쳐보여준다. 해괴한 질문으로 시작되는 소제목 3에서는 점점 이상해지는 질문으로 빠져드는 상황에 대한 man의 회의하고 있는 심리활동, TV출연으로 인한 사회 각 계층, 동료, 안해 등이  man을 대하는 태도, 나이트클럽의 출장문제로 인한 안해와의 싸움 및 ‘주말대잔치’를 협찬한 련적 ‘혼다 125’와의 ‘공방전’ 그리고 ‘혼다 125’에 대한 man의 내심활동을 펼쳐보이고 있다. 종목을 마친 man 은 화장실에서 ‘혼다 125’를 만나게 되는데 man의 ‘혼다 125’에 복잡한 심정을 작가는 이상의 시 「오감도」시 제3호를 인용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싸움하는사람은즉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또싸움하는사람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였기도하니까싸움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고싶거든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싸움하는것을구경하든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나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지아니하는것을구경하든지하였으면그만이다.                      -리상《오감도》 시 제3호(「천재죽이기」, 43쪽)   인용시는 1934년 朝鮮中央日報 에 발표되었던 작품이다. 시의 표제는 「오감도」다. 화자는 싸움 현장을 배경으로 한 일상적 삶의 현장을 해체하고 있다. 이상은 여기서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는 현실세계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자아의 시각으로 해체하고 있다. 그래서 ‘싸움하는 사람’이 ‘싸움하지 아니하던 사람’이라는 말은 너무나 타당한 진술이 된다. 현재 싸우는 사람은 과거에는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싸우는 사람이 과거에 싸운 사람일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 고정화된 일상적 지식의 절대성을 파괴하는 행위로서의 글쓰기를 들여다볼 수 있어 주목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무엇보다 과거를 딛고 일어서려는 지향적 글쓰기와 관련된다.[73] 하지만 「천재죽이기」에서 인용된 이 시의 목적은 인용문 뒤에 오는 글로 미루어 보아 작가가 이 시를 인용하고 전달하려는 의미는 아마도 일부 연구자들이 주장한 ‘싸움하는 사람’과’싸움하지 않는 사람’ 따위의 반의어를 뒤풀이함으로써 그의 양가치를 노출시키고 있다는 주장과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가치란 정반대되는 생각이 동시에 같은 값어치로 나타나면서 도무지 결정을 짓지 못하는 심리현상을 말하며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를 가리켜 불안의 가장 보편적인 근원적인 요소로 보고 있다.[74] 소제목 2에서는 소제목 9와 마찬가지로 이상의 시 「오감도」 제1호를 패러디한 느낌을 주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 뻐스가 지나갔다 캐딜락이 지나갔다 자전거가 지나갔다 봉고차가 지나갔다 쌍타나가 지나갔다 벤츠가 지나갔다 라다가 지나갔다 모터찌클이 지나갔다 령구차가 지나갔다 …(「천재죽이기」, 43쪽)   man의 아내와의 이혼에 대한 불안한 정서를 독자들에게 전달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는 위 인용문 뒤에는 이혼한 man의 내심활동이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man의 출생비밀이 밝혀지고 그 출생비밀을 알게 된 man의 심리활동이 전경화 되고 있으며 아내와의 이혼과 불우한 출생비밀의 이중적인 타격 하에 어찌할바를 모르는 man의 내심을 다음과 같은 인용문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 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 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 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 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 도좋소. -리상 《오감도》시 제1호(「천재죽이기」, 44-45쪽)   「오감도」 15편 중 가장 잘 알려진 이 시는 한편의 영화, 특히 공포영화의 세트처럼 구성되어 있다. 첫 연에서 시인은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는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곧 이어 괄호 속에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다는 해설을 집어넣고 있다. 다음 연에서 시인은 제 1의 아해부터 제 13의 아해까지 차례로 나열하면서 무섭다고 한다고 말하며 다시 괄호 속에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라는 말을 집어넣어 하나의 장면을 완성시키고 있다.[75] 그 다음부터 마지막까지는 처음에 제시한 상황 자체를 부정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처음에 시인은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는 상황을 제시했지만 이 상황은 마지막 행에서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 좋소"라는 마지막 행에 의해 부정된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라는 2행 역시 “길은뚫린 골목이라도적당하오”라는 구절에 의해 부정된다.[76] 이처럼 이 시는 무엇인가 제시해놓고 그것을 차례로 부정함으로써 처음 제시했던 장면을 무화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시는 아무 것도 의미하는 바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 시는 분명히 처음 제시한 상황을 부정하고 있지만 부정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그것은 "무섭다고 그리오"의 공포감이다.[77] 시인은 공포감을 제시하기 위해 처음부터 치밀한 전략을 가지고 세트를 짜고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그 공포감이 특정한 대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닌 절대적인 공포감, 절대적인 존재의 위기감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즉 이 시에서 세트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장치일 뿐이지 세트 자체가 이상이 제시하고자 하는 목적은 아닌 것이다. 이상은 독자들이 세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것을 걱정하여 그것을 제거시키는 친절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78]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라”는 첫 장면에서 눈치 빠른 독자는 공포감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시인은 친절하게 괄호 속에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라는 구절을 넣음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도우려고 하고 있다. 괄호 속의 대사는 지문 형식을 갖는 것이다. 그 다음 시인은 제 1부터 제 13까지 숫자를 하나씩 나열함으로써 아이들이 한꺼번에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겁에 질려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씩 뛰어나오는 것처럼 인지시킴으로써 상황을 더욱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만들어놓고 있다. 13인이 한꺼번에 달려가는 것보다 하나씩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장면 자체를 더욱 괴기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러한 나열을 통해 충분히 공포감을 이해하게 되겠지만 시인은 다시 한번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 그렇게뿐이모였소라/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세트를 완결짓고 지금까지의 상황이 공포감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 다음에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 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라는 구절은 다시 처음에 제시했던 상황에 대한 부정이다. 결국 이 시 전체에서 처음에 의도적으로 제시되었던 세트들은 모두 부정되고 공포감만이 남게 된다. 이상이 이 같은 세트를 연출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시에서 제시되는 공포감을 절대적인 공포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판단된다.[79] 소제목1은 역시 앞에서도 여러 번 나타났던 man의 러시안룰렛 꿈의 정경으로 시작된다.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부장의 자리에서 밀리자 직원들의 부장에 대한 태도가 돌변하였고 man 역시 도서관 관리직으로 밀리게 되며 혼자 버려진 고독을 달래려고 화단의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는데 떨어지는 광고판이 마침 man의 뇌부위를 덮쳤다.   … ?????? …… ? … ! … XX … △△△ … □ □ □ … 《… … ?》 … ㅇㅇㅇ… 2653550 … 127-1305761 … 222405650909061 … 1.68cm … 65Kg … ????! … ... v=v/g … 4 5/3 …  「 … ㅇ ㅇ ㅇ ?」 … 2568705 … 127- 1316553 … ×××… [……] … … a2+b3=c4 … ! … x … ? … HOFCNNaMaCu … ???? …π=3.14  π … 0.618 … 1+2=1 … ?? … m … dm … mm … mu … ! … ????????? …  H2o! … o2! … sos…sos … sos … sos … sos … sos ! … sos!! … sos!!! …[80]   소제목 0은 단지 부호와 수자로만으로 구성된 위의 한단락의 인용문만으로 되여져 있다. 이러한 부호와 수자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그 수자와 부호가 대표하는 뜻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용문에 제시한 모든 수자와 부호에 대해서는 잘 알수 없으나 ‘222405650909061’는 아마 김혁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일 것이고, ‘1.68cm … 65Kg’는 김혁의 신장과 체중, 그리고 ‘m … dm … mm … mu’는 각각 미터, 센치미터, 미리미터, 남성을 가리키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고 ‘H2o! … o2! … sos’는 물, 산소, 긴급도움 요청 등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여 위 인용문의 전체적인 의미는 대체로 부상자의 신원, 그리고 얼마 만한 사이즈의 광고판으로 인한 부상 및 그 긴급한 상황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추리해볼 수 있다. 이러한 부호나 수자 등을 통하여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은 이상의 「三次角設計圖」나 「오감도」시 제4호, 「오감도」시 제5호, 그리고 「건축무한육면각체 診斷(진단)0:1」등 작품에서 많이 찾아볼수가 있다.   이상은 언어의 확대를 시도했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말만이 언어가 아니라 의미를 전달하는 일체의 수단을 차용하여 언어화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도의 출발은 개념과 주관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 객관의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수자와 기호와 도식의 언어화가 필요하고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운동 역시 미래파의 영향을 받은 운동 역시 미래파의 영향을 받은 다다이즘의 언어객관화 운동의 일부였던 것이다. 한국에서 최초로 이를 시도한 사람은 이상이었다.[81]   소제목 -1에서는 뇌과병원 주치의사가 청소부 아줌마에게 환자의 증세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병세가 엄중한데 반해 병문안하러 오는 사람들은 전무하다 싶이 적은 상황과 몇이 안되는 사람중에서 전처가 보여주는 무책임하고 냉담한 태도, 한때는 부상전 man으로 하여금 ‘태동질하던 불안과 걱정, 고민 같은 것을 잠재우고 잊어버리고 덜어낼 수 있었던’ J양의 아이러니적인 무관심한 태도와 비교되게 그냥 단지 한번 엘레베이터에서 갇힌 친분뿐인 청소부아줌마의 진지한 태도와 관심을 대조적으로 전경화 되고 있다. 특히 J양과 통화하는 과정에서 그녀에게 들려주는 「여섯사람의 낭떠러지」라는 추리소설의 다음과 같은 결말 부분이 소개되는데 이 추리소설의 결말은 다른 측면에서 사업에서 빼여나고 탁월한 기억력의 소유자인 man이 천재로부터 정신적 질환자로 추락하게 된 처지는 역시 그의 재능을 질투하는 동료, 그의 사랑을 빼앗아간 사회로 인해 초래되었음을 암시해준다.   공학박사 하나가 있었는데 그 재능을 질투하고 그 사랑과 돈에 연관되는 일련의 욕념으로 동료 다섯이 함께 살인을 모의, 뛰여내려라 낮은 낭떠러지다! 뛰여내려라. 그만한 용기도 없어? 뛰여내려라. 넌 모든 면에서 팔뚝 굵잖아? 뛰여내려라. 네가 못하면 우리라도 할수 있다 … 고 술마신이들 합세하여 들볶은데서 멀쩡한 사람이 천지분간 못하고 뛰여내렸다는 그런 심경 추리소설이였다.[82]    추리소설의 결말에 등장하는 공모모티프는 앞에서 살펴보았던 김혁의 「륙가락」이라는 소설에서도 나타난다.   수영을 모르는 마를 셋은 강심으로 끌고 들어갔다. 치기와 광기가 발동하여 셋은 마의 머리를 물속에 사정없이 처박았다. 이 육가락을 가진 괴물놈아! 공부 좀 잘한다고 말눈깔에 사람이 안보이냐! 육가락이 공부를 잘한들 어쩔건데! 집 잘 산다고 다른 사람 걸레처럼 보이냐! 우린 못 살아두 니처럼 육가락은 아니다! 그 주제에 문오위원을 넘봐! 오줌싸고 니 말상판 비춰봐! 문어다리같은 네 육가락 비춰봐! 이 육가락을 가진 괴물아!- 이 육가락을 가진 괴물아!- 이 육가락을 가진 괴물아!- 죽어랏! 죽어! 죽어어어어어어![83]   이것은 김혁에게 있어서 이 추리소설의 영향이 매우 컸음을 시사해준다. 소설에서는 추리소설외에도 man의 패배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3번이나 반복되어 man의 꿈속에 나타나는 ‘러시안루렛’게임이다. 지금까지의 작품에 대한 분석을 근거하면 첫번째 ‘러시안루렛’ 꿈에서 등장하는 눈가리개를 한 사람은 지금까지의 man 의 직장동료임을 확인할수 있으며 이 꿈은 동료와의 경쟁에서의 패배를 나타내고 있으며 두번째의‘러시안루렛’ 꿈에서 등장하는 여적수는 man 의 아내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 꿈은 가정에서의 아내에 대한 패배를 의미하고 있으며 세번째의 러시안루렛’ 꿈에서 등장하는 여드름이 더덕더덕한 인물이 그의 연적인 “금도유한회사”의 총경리인 ‘혼다 125’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연적과의 대결에서의 패배를 의미하고 있다. 이상 「천재죽이기」를 각 소제목별로 세부적으로 살펴보았다. 위의 각 장별로의 세부적인 분석을 통해 우리는 이 작품에서 김혁작가가 man이 겪는 사건들과 동시에 그의 내심활동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현실과 무의식의 세계를 교차시켜 그리고 있어 이는 이 소설이 경험의 의식적 영역과 무의식적 영역을 완벽하게 결합시키는 초현실주의 소설임을 재차 확인하여 준다. 또한 소설을 전반적으로 볼때 이 작품은 대부분 3인칭 선택적 전지시점으로 씌여졌다고 볼수 있다.[84] 이러한 시점은 화자가 자신이 선택한 인물에 초점화하여 그 인물속에 들어가는 시점이다. 하여 독자들은 비록 소설이 1인칭으로 씌여지지는 않았지만 1인칭 소설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은 화자가 man의 입장에 서서 그가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직접 독자들에게 전달해주고 있어 독자들은 화자의 이야기를 듣는듯한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이 소설에서의 소유의 인물들은 아예 성명이 없이 주인공man의 안해, 아이, 동료 1, 동료 2, 동료 3, 어머니 그리고 man의 전화로 사귄 친구 J, man의 부장, man이 나서는 장끼자랑 종목의 사회자, man을 치료하는 주치의사, man을 관심하는 청소부 아줌마 등 구체적 이름이 없고 man을 중심으로 명명된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많은 소설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일 대표적인 것은 배수아의 소설이다. 배수아는 한국에서 신세대로 불리는 재능 있는 작가의 한사람으로서 중국에도 그의 작품이 많이 들어왔다. 특히 김혁과 배수아는 거의 동년배에 가깝다. 자기의 동년배이고 문학적 성과를 거둔 작가는 자못 중시하기 마련이다. 배수아의 「검은 저녁 하얀 버스」를 읽을 때, 우리가 맨 먼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을 지칭하는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는 사실이다. 일인칭의 주인공이 라고 지칭되고 있는 것 하나를 빼면 모두가 독특하다. , , , , , 따위가 이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말들인 것이다. 그 어느 인물도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전체의 윤곽이 다분히 모호하고 불투명하게 된다.[85]   이상 작품에서 인용된 이상의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소설 「천재죽이기」를 살펴보았는데 이 작품에서 직접 인용된 이상의 문학작품은 소설의 주제와 연계가 긴밀하며 주제를 심화시키는데 커다란 작용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난해하기로 소문난 이상의 문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또한 그것을 자신의 작품에 용해시키려고 시도한 김혁의 「천재죽이기」는 조선족 문단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초현실주의 소설로서 격변기 시대 중국 사회가 물질만능주의에 의해 병들어 나타난 가치오류와 가치전도, 가치 상실의 현상을 비판하고 있다. 부단한 문학 수신과 끊임없는 문학의 참에 대한 접근은 김혁으로 하여금 중국 조선족 문단에서 문체 실험을 가장 많이 진행한 작가로 불리도록 만들며 그로 하여금 왕성한 소설 창작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든다. -------------------------------------------------------------------------------------------------------   참고문헌-   [35] 김동현, 「작품에 나타난 이상의 정신적 편력」, 『평택대학교 논문집 제11집』, 1998, 158쪽. [36] 김혁, 「시지포스의 언덕 – 문학, 그 궁극적인 짓거리」(문학자사전), 김혁의 네이버 블로그. [37] 김룡운, 「괴재 이재 기재 – 김혁과 그의 문학」, 『도라지』, 1997년 제5기, 7쪽. [38] 김룡운, 「괴재 이재 기재 – 김혁과 그의 문학」, 『도라지』, 1997년 제5기, 7쪽. [39] 최상철, 「중국조선족문단에 나타난 현대소설의 실태와 전망」, 『문학과예술』, 1991년 제4기, 32쪽. [40] 이상의 문학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 여럿 있을 것으로 예상되나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렬거하는데는 방대한 실증적 고증이 있어야 하기에 여기서는 작품속에서 선명히 이상 문학의 영향의 흔적을 나타내는 리동렬과 류순호만을 예로 들기로 한다. [41] 김룡운, 「13인의 아해는 왜 질주했는가」, 『문학과 예술』, 1998년 제6기, 111쪽. [42] 김혁, 「아마추어비가 내리던 날의 명상록」, 『문학과 예술』, 1998년 제4기, 64쪽. [43] 현동언, 「진통속의 모지름 - 96조선족문학」, 『문학과 예술』, 1997년 제3기, 36쪽. [44] 문학대화, 「우리 문단의 30대」, 『문학과 예술』, 1997년 제5기, 7쪽. [45] 김혁, 「륙가락」, 『도라지』2003년 3호 [46] 김혁, 「시지포스의 언덕 – 문학, 그 궁극적인 짓거리」(문학자사전), 김혁의 네이버 블로그. [47] 김혁, 「시지포스의 언덕 – 문학, 그 궁극적인 짓거리」(문학자사전), 김혁의 네이버 블로그. [48] 김혁, 「춤추는 엔돌핀」(수필), 『연변문학』, 2004년7월호, 112쪽. [49] 김은자는 「김혁과 그의 작품세계」에서 “김혁의 작품에서 작가의 추구와 아픔양상이 변모()를 가져오게 된 계기를 마련한것은 장편르포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를 창작하면서 취재를 위해 만난 피해자들과 읽었던 신문기사의 영향을 받은것으로 보이나 그런 생각이 실제로 소설작품에 반영되기 시작한것은 첫 장편 《마마꽃, 응달에 피다》를 발표한후라고 볼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본고에서도 그의 관점을 따르기로 한다. [50] 김은자, 「김혁과 그의 작품세계」, 김혁의 네이버 블로그. [51] 이상, 『날개』(하서명작선), 하서, 249쪽. [52] 이상, 『날개』(하서명작선), 하서, 253쪽. [53] 김동현, 「작품에 나타난 이상의 정신적 편력」, 평택대학교 논문집 제11집(1998), 153쪽. [54] 강룡운, 『이상 소설의 역설의 의미생성에 대한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2년, 27쪽. [55] 즉 이 소설은 제목과 함께 작품의 시작부터 “뼈”에 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할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56] 김혁, 「륙가락」, 『도라지』2003년 3호  [57] http://cafe.naver.com/leesangkhk.cafe [58] 김혁, 「륙가락」, 『도라지』2003년 3호  [59] 김혁, 「륙가락」, 『도라지』2003년 3호 [60] 김혁, 「륙가락」, 『도라지』2003년 3호 [61] 김혁,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연변문학』2003년 10호~2004년 12호  [62] 김혁, 「천재죽이기」, 『도라지』, 1998년 제5기, 28쪽. [63] 장춘식, 「문학의 참을 찾아서」, 연변문학 2006년 8월호. [64] 김혁, 「천재죽이기」, 『도라지』 제4기, 1998, 28쪽. [65] 김혁, 「천재죽이기」, 『도라지』 제4기, 1998, 38쪽. 본문의 이하 인용문은 페지수만 밝힘. [66] http://blog.naver.com/ndaumum?Redirect=Log&logNo=130102774089. [67] 이상, 『이상 시모음』, http://blog.naver.com/viking999?Redirect=Log&logNo=40073922507. [68] 이 작품의 38쪽에서는 ‘페인트칠’로 표기되었다. (김혁, 「천재죽이기」, 『도라지』 제4기, 1998, 38쪽). [69] 우리 인간은 뼈아픈 자료나 경험을 그대로 의식화시켜 본인이 인정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것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이 때 그 대신 의식적으로 그것과 정반대의 것으로 의식화시킴으로써 자아의 평형을 이룩하는 기전을 투사라고 한다.(박덕근, 『현대문학비평의 이론과 응용』, 새문사, 1988) [70] 김성학, 「초현실주의로 보는 김혁의 중편소설 「천재죽이기」」, 『중한수교후 한국학 연구의 현황과 전망』, 민족출판사, 294-295쪽. [71] 이원도, 『이상 문학의 해체성 연구』, 동의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7년, 63-64쪽. [72] 이원도, 『이상 문학의 해체성 연구』, 동의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7년, 63-64쪽. [73] 이원도, 『이상 문학의 해체성 연구』,   동의대학교, 2007, 45쪽. [74] 김성학, 위의 책, 298쪽. [75] http://nongae.gsnu.ac.kr/~jcyoo/reread/ogamdo1.html. [76] http://nongae.gsnu.ac.kr/~jcyoo/reread/ogamdo1.html. [77] http://nongae.gsnu.ac.kr/~jcyoo/reread/ogamdo1.html. [78] http://nongae.gsnu.ac.kr/~jcyoo/reread/ogamdo1.html. [79] http://nongae.gsnu.ac.kr/~jcyoo/reread/ogamdo1.html. [80] 김 혁, 앞의 책, 47-48쪽. [81] 조동민, 「한국적 모더니즘의 계보를 위한 연구」, 35-36쪽. [82] 김혁, 앞의 책, 49쪽. [83] 김혁, 「륙가락」, 『도라지』2003년 3호 [84] 소제목 0에서는 수자, 문자, 기호로 구성되여 있고, -1에서는-1에서는 3인칭 객관적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85] 이동하, “해설-배수아/검은 저녘 하얀 버스”, 『96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현대문학, 1996, 109쪽.   강옥, 앞의 논문, 55쪽 재인용.
831    超現實主義 = 超自然主義 댓글:  조회:4563  추천:0  2016-01-02
초현실주의 [超現實主義, surrealism]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문학·예술사조.  쉬르레알리슴이라고도 한다. 초현실주의라는 말은 1917년 시인 아폴리네르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처음에 쉬르나튀랄리슴[超自然主義]이라는 명칭을 생각했으나, 철학용어로 오해받을 것을 염려하여 초현실주의로 고쳤다고 한다. 초현실주의가 명확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앙드레 브르통이 《쉬르레알리슴 선언》을 발간한 1924년부터이며, 1925년에는 이 운동의 첫 종합전이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초현실주의는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 ·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초현실주의는 사실주의나 추상예술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하기 쉬우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달리의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세밀한 묘사력은 사실(寫實)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으며, 또 A.마송, J.미로, M.에른스트의 작풍(作風)에도 추상화의 경향을 볼 수가 있다. 따라서, 이것은 기술적으로는 사실성·추상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초현실주의의 뿌리를 찾는다면 그것은 다다이즘에서 찾아야 한다. 다다이즘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기성의 전통·질서에 대한 파괴운동이었던 만큼 비합리를 예찬하고 때로는 비윤리적인 방향으로 흐르며, 콜라주와 같은 새로운 기법, 오브제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도 채택했으며, 초현실주의의 강력한 무기인 에로티시즘에 이르러서는 다다이즘의 비도덕적인 자세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현실주의의 기원을 더 먼 곳에 찾아본다면, 그것은 당연히 입체주의(입체파)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20세기의 예술운동 속에서 야수파나 표현주의 이상으로, 입체주의는 혁신적인 공간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야수파나 표현주의가 원색주의를 택하고 강렬한 감정표현을 주체로 삼았다고 한다면, 입체주의는 종래의 회화를 부정하는 순수한 이념화(理念化)만을 꾀한 운동이었다. 그것은 한 개의 화면을 완벽한 평면으로 보는 관점이며, 일찍이 세잔이 추구한 원근법이라든지 전경 ·후경의 배치와는 별도의 구성, 별도의 공간개념을 필요로 하였다. 초현실주의 공간은 많은 경우, 상상적 공간이며 비현실의 공간이다. 따라서 초현실주의는 간접적으로 입체주의의 계열을 잇는 공간파악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초현실주의는 그 때까지 빙산처럼 수중에 가리어 있었던 무의식의 영역에 눈을 돌렸다. 즉, 이성(理性)의 반대의 극점, 합리의 반대쪽의 세계이다. 초현실주의가 나타나기 이전에, 예술은 이성과 감성, 정신과 마음이 합치는 지점에 그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이미 예술은 그러한 조화 ·통일로서는 설명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인간의 자아는 밝음과 어두움의 두 부분으로 성립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자아의 확대라는 문제에 제일 먼저 눈뜬 것은 낭만주의였다. 여기에 미술사가들이 지적하듯, 낭만주의에서 직접 초현실주의로 맥을 잇는 정신의 계보가 있다. 한 예로서 독일 낭만파의 노발리스, L.티크, W.H.바켄로더의 사상을 생각할 수 있다. 《예술환상》의 저자인 바켄로더는 끝없이 감미로운 도취상태에 그의 예술의 뿌리를 박고 있었으며, 티크는 격렬한 자아의 분열상태 속에서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티크의 대표작인 《프란츠 슈테른발트의 여행》 속에서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의 사상의, 이 끝없는 동요가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때로 나의 마음을 살짝 만지며 스쳐 지나가는 그 부드러움이 내 마음속에서 뿌리를 내려준다면, 나는 행복에 대해 말할 수도 있게 되고 예술가도 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억압할 수가 없다. 불가항력이라고나 말해야 할지. 나의 계획 ·희망 ·신념 모두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새로운 감정에 빠져버리고 만다.” 또한 《푸른 꽃》의 저자인 노발리스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꿈의 세계 속에서 방황을 계속했던 사람이다. 독일 낭만파 문학에서 영향받은 독일 낭만파의 회화는 O.룽게나 C.D.프리드리히의 회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무한대의 동경을 그 특질로 삼고 있다. 또 그들의 작품에는 종교적 감정이 짙게 스며들어 있다. 초현실주의는 종교감정 대신에 프로이트의 리비도설(說)이 도입된다. 따라서 인간의 숨겨진 부분에 상상력을 펼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술적으로 보아 프랑스 낭만주의의 거장인 V.위고는 그의 데생에서 이미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오토마티슴)에 가까운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여류작가 G.상드가 풍경화 속에다 이끼나 꽃 같은 것을 붙인 것도 일종의 콜라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작품은 모두 무형체를 지향하였다. 창조력이란 그것이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현존하는 것을 뛰어넘어, 비구상(非具象)의 경향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낭만주의는 자아를 절대시하고, 그것에 무제한의 능력을 부여했을 때에 비로소 초현실주의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억압된 무의식의 세계를 가능한 한 참되게 표현하려고 하는 초현실주의의 갖가지 시도는 시 ·회화 ·사진 ·영화 속에서 현실적인 연상을 뛰어넘는 불가사의한 것, 비합리적인 것, 우연한 것 등을 표현하였다. 이런 표현은 당시의 모순된 현실과 결부되어 예술일반의 인식을 비약시키고 20세기 특유의 환상예술을 발흥(勃興)시키게 된다. 특히 미술의 경우 초현실주의는 종래의 공간의식과는 별도의 비현실세계를 겨냥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새로운 테크닉을 필요로 하였다. 도밍게스의 데칼코마니, 에른스트의 프로타주, M.레이의 레요니슴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만, 이와 같은 테크닉이 충격의 효과를 미리 계산하고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자인 R.마그리트에 이르면 큰 바위덩어리를 공중에 띄워놓는다든지, 낮이 밤으로 변해 있는 등 정신의 전위(데페이즈망)를 볼 수 있다. 이렇게 기법에 있어서의 데페이즈망과 정신에 있어 그것이 초현실주의의 최대의 표현기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대표적인 미술가로서는 그 밖에 Y.탕기, M.뒤샹, A.자코메티, 레오노르 휘니, J.B.파렝, 투아이앙 등을 꼽을 수 있다. 초현실주의운동은 20세기 프랑스 문학에 하나의 변혁을 가져왔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다다이즘의 파괴적인 태도에 만족할 수 없었던 브르통, L.아라공, P.엘뤼아르, F.수포, A.페레, R.데스노스, 크르베르 등이 《쉬르레알리슴 혁명》지(誌)(1924∼1929)를 통해 문학 운동을 펼쳤다. 영감(靈感)의 발생을 천명하기 위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한 이 운동은 꿈이 지니고 있는 여러 힘의 찬양, 자동기술(自動記述)에 대한 깊은 신뢰, 초현실적 사실의 열렬한 탐구와 평행하여 사회생활이 개인에게 강제하는 모든 것의 금지를 문제삼고 혁명을 통한 자유의 도래를 그려보며 영원히 온갖 제약을 파기하고, 종교적·정치적 신화를 타도하고 사회의 명령에서부터 해방된 개인의 승리를 보장하려 했다. 또한 문학 ·예술에 한정하지 않고, 윤리 ·종교 ·정치의 면에 있어서도 기성관념에 대한 수정을 가하는 하나의 주의로서 형성되었다. 1924년 브르통의 《쉬르레알리슴 선언》의 발표와 기관지 창간 이후의 수년간, 이 운동의 불길은 최고조에 다다랐다. 문학작품으로서는 아라공의 《파리의 농부》, 《문체론》, 엘뤼아르의 《고뇌의 수도》, 브르통의 《나자》 등이 이 운동의 실험에 있어서 빛나는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이어 새로운 기관지 《혁명에 봉사하는 쉬르레알리슴》이 창간되고, 초현실주의와 초합리주의가 일체를 이루는 브르통과 엘뤼아르의 공동작 《무원죄수태》, 브르통의 대표시집 《자유로운 결합》이 간행되었다. 그러나 이 일파의 혁명적 야심은 점차 인간의 미적 ·윤리적 개념의 전복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정치면에서의 직접 행동으로 옮아갔으나, 초현실주의의 이론과 공산주의 이론의 일치에 실패하여, 이 운동은 분열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30년 우크라이나의 하르코프에서 열린 국제혁명작가회의에 참석한 아라공은 소련에서 정치시(政治詩) 《적색전선》을 발표한 바 있는데, 후일 이 시가 프랑스에 전해지자 이른바, ‘아라공 사건’을 일으키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공산당에 대한 무조건 복종을 택한 아라공은 다음해 이 그룹에서 제명되었다. 1930년대에 접어들자, J.위녜의 《쉬르레알리슴 소시선(小詩選)》, 브르통의 《새벽》, 엘뤼아르의 가장 초현실주의적인 시집 《민중의 장미》, 화가인 S.달리의 《비합리의 정복》이라는 편집광적 비판의 방법에 관한 논문이 쏟아져나옴으로써, 문학·회화 양면에 걸쳐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할 수 있다. 이 무렵부터 초현실주의는 국제선전운동으로 나타나, 36년에는 런던에서, 1938년에는 파리에서 브르통, 엘뤼아르가 중심이 되어 ‘국제쉬르레알리슴전(展)’이 열렸다. 그 사이 브르통의 《미친사랑》, 엘뤼아르 시집, 로트레아몽의 《전집(全集)》이 출판되는 등 성과를 거두었으나, 브르통은 1936년의 에스파냐내란 이래로 공산당에 접근하기 시작한 엘뤼아르와 드디어 결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기간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이 초현실주의 운동의 재창조라기보다는 오히려 비평과 신화의 인식과의 방향으로 쏠렸다. 대전중에 브르통, 베레, 달리 등은 미국으로 건너가 해외에서 초현실주의의 선전을 계속하였다. 1947년 귀국한 브르통이 파리에서 ‘국제쉬르레알리슴전(展)’을 열고 공산당과 실존주의자들에 대한 집단선언서 《즉시결렬》을 발표하였다. 이 방향에서 나타난 전후의 대표적 작품은 브르통의 시집 《샤를 푸리에에게 주는 오드》가 있다. 유파로서의 초현실주의는 일단 이론적인 면에서는 그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으며, 미학적인 면에서의 영향은 오늘날에 와서도 여전히 크다.      [출처] 초현실주의 [超現實主義, surrealism] |작성자 헌책    
830    캐나다시인들은 시를 어떻게 쓸가... 댓글:  조회:4698  추천:0  2016-01-02
캐나다시인 15인의 작품감상  Newfoundland Seamen  E. J. Pratt  (1882~1964)  This is their culture, this­their master passion  Of giving shelter and of sharing bread,  Of answering rocket signals in the fashion  Of losing life to save it. In the spread  Of time­the Gilbert-Grenfell-Bartlett span­  The headlines cannot dim their daily stoty,  Nor calls like London! Gander! Teheran!  Outplay the drama of the sled and dory.  The wonders fade. There overhead a mile,  Planes bank like gulls: like curlews scream the jets.  The caravans move on in radar file  Scarce noticed by the sailors at their nets,  Bracing their bodies to their tasks, as when,  Centuries before Argentiaꡑs smoking funnels,  That small ancestral band of Devon men  Red-boned their knuckles on the squirrel gunwales.  As old as it is new, as new as old,  Enduring as a cape, as fresh as dulse,  This is the Terra Nova record told  Of uncontractual blood behind the pulse  On sea or land. Was it but yesterday  That without terms and without drill commands,  A rescue squad found Banting where he lay  With the torn tissues of his healing hands?  뉴펀들랜드의 어부  E. J 프렛  이것은 그들의 문화, 주인다운 열정  피난처를 제공하고 빵을 나누는……  불꽃신호에 유행패션으로 답하는  생을 구원하기 위해 생을 앓는,  ꡐ타임지'를 펼치면- 길버트, 그렌펠, 바트렛이 한 뼘.  헤드라인이 그들의 일상 이야기를 지울 순 없지.  런던! 갠더! 테헤란하고 부를 수도 없지.  썰매와 거룻배의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  놀라움은 사라지고 머리 위 일 마일 상공에서  비행기는 갈매기 둑을 쌓는다. 마도요새 같은 제트기가  비명을 지른다. 캐러반이 레이다 행렬을 움직인다.  그들의 하는 일에 몰두하며 어망을 놓는  항해자들에게 거의 들키지 않게……  그 때 아르헨티나의 연기나는 굴뚝 앞 여러 세기.  저 드본 사람들의 키 작은 선조의 대열.  뱃전의 다람쥐현 위에  붉은 뼈, 그들의 손가락 관절.  새 것이 낡아지고, 낡은 것이 새 것이 된다.  망토로 견디면서 해초처럼 신선하게  이는 테라노바* 기록이, 바다나 땅의 맥박 뒤 비계약적  피에 대해 말하는 바이다. 바로 어제던가.  규정도 훈련지령도 없이 나선 한 구조부대가  찢겨진 조직의 손을 고치고 있는  말레이 들소를 발견한 것은.  Overture  F. R. Scott  (1899~1985)  In the dark room, under a cone of light,  You precisely play the Mozart sonata. The bright  Clear notes fly like sparks through the air  And trace a flickering pattern of music there.  Your hands dart in the light, your fingers flow.  They are ten careful operatives in a row  That pick their packets of sound from steel bars  Constructing harmonies as sharp as stars.  But how shall I hear old music? This is an hour  Of new beginnings, concepts warring for power,  Decay of systems­the tissue of art is torn  With overtures of an era being born.  And this perfection which is less yourself  Then Mozart, seems a trinket on a shelf,  A pretty octave played before a window  Beyond whose curtain grows a world crescendo.  서곡  F. R. 스콧  어두운 방, 원추형의 빛 아래  모차르트 소나타를 정교하게 연주하는 너는  밝고 명쾌한 음조 대가 중에 불꽃처럼 날며  거기 음악의 명멸하는 형태를 좇는다.  빛 속 화살 같은 너이 손, 날으는 너의 손가락  한 줄로 선 열 명의 조심스런 직공들이다. 그들은  쇠막대로부터 소리의 묶음 다발을 뽑아 가지고  별들의 날카로운 조화를 만들어 내는.  허나, 나는 어떻게 옛 음악을 들을 것인가.  이것이 새로운 시작의 시간. 힘을 위해 싸우는 개념.  시스템의 붕괴- 예술의 조직이, 막 생겨나는  한 영역의 서곡과 더불어 찢겨진다.  모차르트에 미치지 못하는 너 자신의 기예는  선반 위에 올려진 장식물.  커튼이 한 세계의 크레센도로 자라나는  창 앞에서 연주되는 깔끔한 한 옥타브.  The Bear on the Delhi Road  Earle Birney  (1904~ )  Unreal tall as a myth  by the road the Himalayan bear  is beating the brilliant air  with his crooked arms  About him two men bare  spindly as locusts leap  One pulls on a ring  in the great soft nose His mate  flicks flicks with a stick  up at the rolling eyes  They have not led him here  down from the fabulous hills  to this bald alien plain  and the clamorous world to kill  but simply to teach him to dance  They are peaceful both these spare  men of Kashmir and the bear  alive is their living too  If far on the Delhi way  around him galvanic they dance  it is merely to wear wear  from his shaggy body the tranced  wish forever to stay  only an ambling bear  four-footed in berries  It is no more joyous for them  in this hot dust to prance  out of reach of the praying claws  sharpened to paw for ants  in the shadows of deodars  It is not easy to free  myth from reality  or rear this fellow up  to lurch lurch with them  in the tranced dancing of men  델리로드의 곰  얼리 버니  비현실, 신화같이 키가 큰,  길가에 선 히말라야 곰이  청명한 대기를 두드리고 있다.  안으로 굽힌 두 팔로  그 주의의 두 사람, 미르떼같이  호리호리하고 노골적인, 뛰어오른다.  한 사람이 크고 부드러운 코의 링을  끌어 당긴다. 그의 친구가  살작 친다. 화등잔 눈을  향해 막대기로 겁을 준다.  그들은 그를, 여기 터무니없이 큰 언덕  에서, 거칠 낯선 평원으로  시끌시끌한 세상으로  끌어 내려하지 않는다. 죽이기 위해  단지 그에게 춤추는 것을 가르칠 뿐.  그들 둘 다 평화로워 보인다. 이들  카시미르의 야윈 남자들 살아있는 곰은  그들의 생활이다. 또한  만약 델리로에서 멀리 떨어져서  충격적인 그의 주위를 돌며 그들은 춤을 춘다.  그것은 단지 입는 것,  누더기 같은 신체로부터.  산딸기 묻힌 네 발  어슬렁거리는 곰으로만  오직, 영원히 머무르려는  황홀한 소망을 입는 것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다.  뜨거운 먼지 속  히말라야 삼목의 그늘에 있는  개미를 긁어 모으기 위해 날카롭게 간  기도 중인 발톱들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그들이 껑충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은.  현실로부터 신화를 해방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또는 이 친구를 길러  비틀거리게 하는 것은.  이 황홀한 춤을 추는 남자들  그들과 함께 비틀거리는 것은.  Hunterꡑs Moon  Ralph Gustafson  (1909~ )  The moon was gold and the leaves were gold.  The red leaves had fallen and the pallor  Of the soft aspen was lighted, as gold,  By the hunterꡑs moon, the first full  Moon of October. She stood on the verandah,  Facing that upper gold moon  (My arms lightly, closely around her  As if the time would come now.)  Foliage was fallen thickly, the lawn  Almost uncertain, the dry brown leaves  Fallen, Across the pathway  The last flowers, a further frost  Was promised.  She did not like deer  To be in the forested hills. It is a hunterꡑs  Moon, she said. But it was beautiful,  The dense covered hills, the moon above,  The moment, the way it was,  The moment.  사냥꾼의 달  랄프 구스탑슨  달은 금빛, 잎새도 금빛.  붉은 잎새들 지고, 부드러운 사사나무의  해쓱함이 켜진다.  시월의 첫 만월  사냥꾼의 달 근처 금빛으로.  위의 금빛 달 마주보며  베란다에 서 있는 그녀  (마치 기회가 지금 온 것처럼  그녀 주위에 가볍게 얹히는 나의 팔)  떨어진 잎새들 마른 갈색의  잎새가 두껍게 깔린, 거의 잔디인 양 헛갈리는  통행로를 가로질러 가는  마지막 꽃들에겐 서리가 약속된다.  숲이 있는 언덕에 사는  사슴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ꡒ그것은 사냥군의 달이야."  ꡒ그것은 아름답지.  빽빽히 덮힌 언덕  그 위에 있는 달  순간 그렇게 멈춘  순간  For the Sisters of the Hotel Dieu  A. M. Klein  (1909~1972)  In pairs,  as if to illustrate their sisterhood,  the sisters pace the hospital garden walks.  In their robes black and white immaculate hoods  they are like birds,  the safe domestic fowl of the House of God.  O biblic birds,  who fluttered to me in my childhood illnesses  ―me little, afraid, ill, not of your race,―  the cool wing for my fever, the hovering solace,  the sense of angels―  be thanked, O plumage of paradise, be praised.  듀 호텔의 자매를 위하여  A. M. 클레인  짝 지은 채  마치 자매애를 자랑하듯  그들은 병원 정원 도보를 걷는다.  더 하나 없는 흰색과 검정색 옷 입은  그들은 새와 같다.  신의 집에서 기르는 보호받는 가금류.  성경적인 새들  어린 시절 골골하던 내 곁에서 아양떨던  - 나, 작고, 겁 많고, 아픈, 너희들 종족이라 할 수 없는  나의 열꽃을 위한 냉정한 날개 어른거리는 위로  천사의 감각을  감사하라. 오, 낙원의 깃털을 찬미하라.  Green Rain  Dorothy Livesay  (1909~ )  I remember long veils of green rain  Feathered like the shawl of my grandmother―  Green from the half―green of the spring trees  Waving in the valley.  I remember the road  Like the one which leads to my grandmotherꡑs house,  A warm house, with green carpets,  Geraniums, a trilling canary  And shining horse-hair chirs;  And the silence, full of the rainꡑs falling  Was like my grandmotherꡑs parlour  Alive with herself and her voice, rising and falling―  Rain and wind intermingled.  I remember on that day  I was thinking only of my love  And of my loveꡑs house.  But now I remember the day  As I remember my grandmother.  I remember the rain as the feathery fringe of her shawl.  녹색비  도로시 라이브세이  녹색비의 긴 베일을 기억하고 있지.  할머니의 쇼올 같은 깃털로 짠,  반쯤 녹색인 봄나무들로부터  골짜기에 녹색 물결로 출렁이는.  할머니집으로 가는 길을 기억하고 있지.  따듯한 집, 녹색 카페트와  제라니움, 재재거리는 카나리아와  빛나는 말털로 된 의자가 있는.  그리고 침묵, 떨어지는 빗방울로 가득 찬  오르락 내리락 여전히 목소리가  살아있는 할머니의 회랑같이  비바람에 함께 뒤엉킨.  그 날을 기억하고 있지.  오직 내 사랑만을  내 ꡐ사랑ꡑ의 집만을 생각하던 그 날을……  또한 나는 지금  내 할머니를 기억하듯  그 날을 기억하고 있지.  그녀의 쇼올 깃털 가장자리 같은  비를 기억하고 있지.  For Mao Tse-Tung: A Meditation on Flies and Kings  Irving Layton  (1912~ )  So, circling about my head, a fly.  Haloes of frantic monotone.  Then a smudge of blood smoking  On my fingers, let Jesus and Buddha cry.  Is theirs the way? Forgiveness of hurt?  Leprosariums? Perhaps. But I  Am burning flesh and bone,  An indifferent creature between  Cloud and a stone;  Smash insects with my boot,  Feast on torn flowers, deride  The nonillion bushes by the road  (Their patience is very great.)  Jivatma, they endure,  Endure and proliferate.  And the meek-browed and poor  In their solid tenements  (Etiolated, they do not dance.)  Worry of priest and of commissar:  None may re-create them who are  Lowly and universal as the moss  Or like vegetation the winds toss  Sweeping to the open lake and sky.  I put down these words in blood  And would not be misunderstood:  They have their Christs and their legends  And out of their pocks and ailments  Weave dear enchantments―  Poet and dictator, you are as alien as I.  On this remote and classic lake  Only the lapsing of the water can I hear  And the cold wind through the sumac.  The moneyed and their sunburnt children  Swarm other shores. Here is ecstasy,  The sunꡑs outline made lucid  By each lacustral cloud  And man naked with mystery.  They dance best who dance with desire,  Who lifting feet of fire from fire  Weave before they lie down  A red carpet for the sun.  I pity the meek in their religious cages  And flee them; and flee  The universal sodality  Of joy-haters, joy-destroyers  (O Schiller, wine-drunk and silly!)  The sufferers and their thick rages;  Enter this tragic forest where the trees  Uprear as if for the graves of man,  All function and desire to offend  With themselves finally done;  And mark the dark pines farther on,  The sunꡑs fires touching them at will,  Motionless like silent khans  Mourning serene and terrible  Their Lord entombed in the blazing hill.  마우쩌둥을 위하여  - 왕과 파리를 위한 명상  어빙 레이턴  그렇지. 내 머리 주위를 맴도는 파리 한 마리  미칠 듯한 단조음의 후광  그 때, 피의 모깃불이 내 손가락 위에서  연기를 내며, 예수와 부처가 비명을 지르게 한다.  그들도 길일가? 상처를 용서해?  나병 요양소 아마도 그러나 난  살과 뼈를 태우고 있다.  구름과 돌 사이  무관심한 한 피조물  내 장화로 벌레를 짓이기리라.  찢겨진 꽃들로 축제를 벌려라.  길가 수천 만 덤불들을 비웃어라.  (그들의 인내는 매우 크지.)  지바트마, 그들은 견뎌낸다.  번식한다.  그들의 굳어진 주택 속  얌전한 이마와 가난뱅이들  (창백하게 된 그들은 춤추지 않는다.)  목사와 인민위원들을 염려하라!  아무도 이끼같이 낮고 일반적인 그들을  재창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혹은 야채같이 바람은 열린 호수와  하늘 향해 휩쓸리며 나아간다.  내가 이런 말들을 핏속으로 밀어 넣으면  이들이 오해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구세주의 전설을 갖고 있다.  그들의 마마 자국과 병으로부터  낯익은 매혹을 짜내어라.  시인과 독재자 당신은 너만큼이나 이방인이다.    Cookꡑs Mountains  P. K. Page  (1917~ )  By naming them he made them.  They were there  before he came  but they were not the same.  It was his gaze  that glazed each one.  He saw  the Glass House Mountains in his glass.  They shone.  And still they shine.  We saw them as we drove―  sudden, surrealist, conical  they rose  out of the rain forest.  The driver said,  ꡐ Those are the Glass House Mountains up aheadꡑ  And instantly they altered to become  the sum of shape and name.  Two strangenesses united into one  more strange than either.  Neither of us now  remembers how they looked before they broke  the light to fragments as the driver spoke.  Like mounds of mica,  hive-shaped hothouses,  mountains of mirror glimmering  they form  in diamond panes behind the tree ferns of  the dark imagination,  burn and shake  the lovely light of Queensland like a bell  reflecting Cook upon a deck  his tongue  silvered with paradox and metaphor.  요리사의 산  P. K. 페이지  이름을 붙이며 그는 그들을 만든다.  그들은 거기  그가 나타나기 전부터 있었지만  전과 같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각각을 빛나게 하는 것은  그의 응시.  그는 보았다,  그의 유리거울 속에 있는 ꡐ유리집의 산'들을.  그것들은 빛이 났다.  여전히 그들은 빛이 난다.  우리는 차를 몰면서 그들을 보았다.  갑자기 초현실적인 원추형으로  그들은 일어섰다.  비의 숲에서  운전자가 말했다.  바로 위의 저들은 ꡐ유리집의 산'이라고.  그리고 즉시 그들은 변화해서  모양과 이름의 합이 되었다.  두 개의 낯선 것이 결합해서  각자보다 더 낯선 것이 되었다.  우리들 중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다.  운전자가 말하던 중  그들이 빛을 산산조각 내기 전  그들이 어떻게 보였는가를.  운모의 둔덕 같은  별통 모양의 온실  반짝이는 거울의 산들  그들은 만든다.  어두운 이미지의 이끼나무 뒤에서  다이아몬드 창유리 속에서  태우고 흔든다.  종(鍾)같은 여왕의 땅의 아름다운 빛을……  작업대 위에 있는 요리사를 돌아보라.  그의 혓바닥이  역설과 메타포로 은빛에 타오르는.  Ukrainian Church  Miriam Waddington  (1917~ )  Little father your  rhythmic black robe  against white snow  improvises you  a black note  on a white keyboard;  let me follow  into your churchbarn  through the gate  to the onion domes  where your carrot  harvest burns  a fire of candles,  let me follow  in the cool light  as you move through  Godꡑs storehouse  as you put the bins  in order as you set  each grain in place;  let me follow  as your voice  moves in the  familiar liturgy  through the low caves  of Gregorian chant  and let me hear  little father  how you pray  for all your geese  for the cow fertile  at Easter and the  foundations of new  houses to be strong  and firmly set;  let me hear  how you beseech  for all your people  a clear road, an  open gate and  a new snowfall  fresh, dazzling,  white as birchbark.  우크라이나 교회  미리암 왜딩턴  당신을 위해  흰 키보드의 검은 음조를  즉흥적으로 작곡 해주는  작은 아버지 당신의  흰 눈에 비해서  부드러운 검은 법의(法衣).  나로 하여금  당신의 교회 헛간 따르게 하는  문을 통과해  양파의 돔 향해  거기서 당신의  수확한 당근이  초의 불꽃을 태우는  나로 하여금  차가운 빛을 따르게 하는  당신이 신의 곳간 통과해 가듯이  당신이 각각의 곡식 제 자리에  두기 위해 콩뒷박 놓듯이  나로 하여금 따르게 하는  당신의 목소리  그레고리안 챤트의 낮은 동굴 뚫고가는  친근한 연도 속에 움직일 때  그리고 나로 하여금  작은 아버지에게 귀 기울이게 하는,  당신이 어떻게 기도하는지……  자신의 모든 거위들 위해,  부활절의 번식력 있는 소를 위해,  그리고 새집의 기초를  튼튼하고 견고하게 쌓기 위해,  나로 하여금 듣게하는  당신이, 어떻게 탄원하는지  당신의 모든 사도를 위해  명백한 길  열린 문, 그리고  새로운 강설,  신선하고 현란한  자작나무같이 흰.  Snow  Margaret Avison  (1918~ )  Nobody stuffs the world in at your eyes.  The optic heart must venture:a jail-break  And re-creation. Sedges and wild rice  Chase rivery pewter. The astonished cinders quake  With rhizomes. All ways through the electric air  Trundle candy-bright disks;they are deaolate  Toys if the soulꡑs gates seal, and cannot bear,  Must shudder under, creationꡑs unseen freight.  But soft, there is snowꡑs lehend:colour of mourning.  Along the yellow Yangtze where the wheel  Spins an indifferent stasis thatꡑs deathꡑs warning.  Asters of tumbled quietness reveal  Their petals. Suffering this starry blur  The rest may ring your change, sad listener.  눈  마가렛 에비슨  아무도 세상을 너의 눈안에 구겨 넣을 수 없다.  눈 뜬 가슴은 필시 모험적이어서: 자일이 부셔져도  다시 창조한다. 사초(沙草)와 야생미(野生米)는  강의 백랍을 좇는다. 놀란 재가  땅속 뿌리로 흔들린다. 전기적인 대기를 뚫고  모든 길이 캔디처럼 빛나는 작은 판을 돌린다.  그들은 절망적인 장난감일 뿐이다.  만일 영혼의 문이 봉함을 견딜 수 없어  창조의 보이지 않는 집 아래 흔들린다하더라도.  그러나 부드러운 눈의 전설이 있다. 신음의 빛깔  누런 양쯔강을 따라 거기서 세월의 바퀴는  죽음을 경고하는 무심한 핏덩이를 돌리고 있다.  뒤집힌 정적의 숙부쟁이가 그 꽃잎을  들춰낸다. 이 별들의 오점을 겪고 나면  남은 생은, 너의 변화를 소리없이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슬픈 독자여,  Study:The Bath  Raymond Souster  In the almost dim light  of the bathroom a woman  steps from white tub  towel around her shoulders.  Drops of water glisten  on her body, slight buttocks,  neck, tight belly,  fall at intervals  from the slightly plumed  oval of crotch.  Neck bent forward  eyes collected  her attention gathered  at the ends of fingers  as she removes  dead skin from her nipples.  목욕에 대한 탐구  레이먼드 사우스터  흰 목욕통에서 걸어나오는,  어깨에 타올을 두른,  거의 희미한 빛속  목욕실의 한 여자.  물방울이 번쩍이는,  그녀의 신체 위 가벼운 엉덩이,  목, 꽉죈 배 위에서  간헐적으로 떨어진다.  약간 자주빛 나는  계란형의 가랭이로부터.  앞으로 구부린 목,  모아진 두 눈,  그녀의 집중력이  손가락 끝에 모인다.  그녀가 젖꼭지로부터  죽은 표피를 제거할 때면.  The Speaking Earth  Eli Mandel  (1922~ )  grandfathers fall into it  their mighty beards muffled in grass  and admirals, the sea-sounding men  lovers fall into the earth  like rain in wet dark bodies  listen, our lady earth flowers  into the sea-green language  of grass and drowned admirals  listen:in bearded branches  clasped like broken hands  admiring birds  lovers singing of their kiss  before and after all the words  말하는 대지  엘리만델  할아버지들이 그 속으로 굴러 떨어진다.  풀속에 너풀거리는 무시무시한 수염……  장군들, ꡐ바다'를 소리내 말하는 남자들.  여인들이 지구 속으로 굴러 떨어진다.  젖어든 검은 신체 위에 내리는 빗방울……  들어보라. 우리의 여인 대지가  익사한 장군들의  푸른 바다 말로써 꽃피는 것을.  들어보라. 부서진 주먹같이  꽉 죈 까그래기 있는 가지들,  흠모하는 새들,  모든 말의 앞과 뒤에서  키스를 노래하는 연인들을……  Occasions of Desire  Phyllis Webb  Occasions of desire with their attendant envies,  the white heat of the cold swan dying,  create their gestures, obscene or most beautiful.  Oh, the clear shell of a swanꡑs fluted wings!  And as the old swan calls clarity from dark waters,  sailing triumphant into the forgotten,  desire in its moving is that rapacious cry,  gorgeous as the torrent Lethe, and wise.  And if the curl of cygnets on the Avon,  so freshly broken from their perfect shells,  take from a dying bird not moral or enticement,  but float with their own white mother, that is just.  Oh, imperious innocence to envy  only the water bearing such beauty!  욕망의 경우들  필립스 웹  질투가 따르는 욕망의 경우들  죽어가는 차가운 백조의 백열(白熱)  오, 백조의 플룻 부는 날개의 투명한 껍질  그들의 제스쳐를 볼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만든다.  또한 늙은 백조가 어두운 수면으로부터  청명을 불러 모을 때 승리에 차 항해하면서  잊혀진 세상으로 간다.  고뇌스런 레테만큼 게걸스럽게도, 현명하게도  그 움직임의 욕망은 탐욕스런 외침.  또한 아본 강위 한 무리 새끼 고니가  그들의 완벽한 껍질로부터 신선하게 찢겨져나와  한 마리 죽어가는 새로부터 비도덕적이면서 비유혹적인 것을  빼앗는 대신 그들의 하얀 어머니와 함께 떠다닌다.  바로 그, 오, 질투하기에는 오만한 순진성.  오직 물만이 그러한 아름다움일지니……  Beautiful Creatures Brief as These  - For Jay Macpherson  D. G. Jones  (1929~ )  Like butterflies but lately come  From long cocoons of summer  These little girls start back to school  To swarm the sidewalks, playing-fields,  And litter air with colour.  So slight they look within their clothes,  Their dresses looser than the Sulphurꡑs wings,  It seems that even if the wind alone  Were not to break them in the lofty trees,  They could not bear the weight of things.  And yet they cry into the moirning air  And hang from railings upside down  And laugh, as though the world were theirs  And all its buildings, trees, and stones  Were toys, were gifts of a benignant sun.  이처럼 간결한 피조물  D. G. 죤즈  여름날의 긴 누에고치로부터  늦게 온 나비와 같이  이 소녀들은 학교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빛깔있는, 흐드러진 대기 속  보도, 경기장 위로 떼지어 우글거리며……  그렇게 가볍게 보이는 의상의 그들  그들의 옷은 유황나비 날개보다 헐렁하다.  바람조차 혼자서 높은 나무들 위의 그들은  부숴버릴 수 없다 할지라도  그들은 사물의 무게를 다 견딜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들은 아침 대기 속에 소리 지른다.  난간으로부터 거꾸로 매달린 채  웃는다. 마치 세계가 그들의 것인 양  그 모든 빌딩과 나무, 돌들이  장난감이며, 은혜로운 태양의 선물인 양.  The Genius  Leonard Cohen  (1934~ )  For you  I will be a ghetto jew  and dance  and put white stockings  on my twisted limbs  and poison wells  across the town  For you  I will be an apostate jew  and tell the Spanish priest  of the blood vow  in the Talmud  and where the bones  of the child are hid  For you  I will be a banker jew  and bring to ruin  a proud old hunting king  and end his line  For you  I will be a Broadway jew  and cry in theatres  for my mother  and sell bargain goods  beneath the counter  For you  I will be a doctor jew  and search  in all the garbage cans  for foreskins  to sew back again  For you  I will be a Dachau jew  and lie down in lime  with twisted limbs  and bloated pain  no mind can understand  천재  레어나드 코헨  너를 위해  난 유대인 빈민자가 될거야.  춤을 출거야.  너의 꼰 다리에  흰 스타킹을 놓고  시내에 있는 우물에  독을 뿌릴거야.  너를 위해  난 유대인 배교자가 될거야.  스페인 목사에게  탈무드의 피의 성약에 대해 말할꺼야.  어린 아이의 뼈들이  감추어져 있는 그것에 대해……  너를 위해  난 유대인 은행업자가 될거야.  오만에 찬 사냥하는 옛 왕에게  파멸을 가져와서  그의 운세를 끝장낼거야.  너를 위해  난 보르드웨이의 유대인이 될거야.  극장에서 내 어머니를 위해  소리치며  계산대 아래에서  할인 상품을 팔거야.  너를 위해  난 유대인 의사가 될거야.  끌어모은 쓰레기 캔 속에서,  다시 꿰메 붙이기 위해,  음경의 표피를 찾을거야.  너를 위해  난 다쵸의 유대인이 될거야.  꼬은 다리로  석회 속에 드러누워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부풀거야.  캐나다시인 15인의 작품감상  Newfoundland Seamen  E. J. Pratt  (1882~1964)  This is their culture, this­their master passion  Of giving shelter and of sharing bread,  Of answering rocket signals in the fashion  Of losing life to save it. In the spread  Of time­the Gilbert-Grenfell-Bartlett span­  The headlines cannot dim their daily stoty,  Nor calls like London! Gander! Teheran!  Outplay the drama of the sled and dory.  The wonders fade. There overhead a mile,  Planes bank like gulls: like curlews scream the jets.  The caravans move on in radar file  Scarce noticed by the sailors at their nets,  Bracing their bodies to their tasks, as when,  Centuries before Argentiaꡑs smoking funnels,  That small ancestral band of Devon men  Red-boned their knuckles on the squirrel gunwales.  As old as it is new, as new as old,  Enduring as a cape, as fresh as dulse,  This is the Terra Nova record told  Of uncontractual blood behind the pulse  On sea or land. Was it but yesterday  That without terms and without drill commands,  A rescue squad found Banting where he lay  With the torn tissues of his healing hands?  뉴펀들랜드의 어부  E. J 프렛  이것은 그들의 문화, 주인다운 열정  피난처를 제공하고 빵을 나누는……  불꽃신호에 유행패션으로 답하는  생을 구원하기 위해 생을 앓는,  ꡐ타임지'를 펼치면- 길버트, 그렌펠, 바트렛이 한 뼘.  헤드라인이 그들의 일상 이야기를 지울 순 없지.  런던! 갠더! 테헤란하고 부를 수도 없지.  썰매와 거룻배의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  놀라움은 사라지고 머리 위 일 마일 상공에서  비행기는 갈매기 둑을 쌓는다. 마도요새 같은 제트기가  비명을 지른다. 캐러반이 레이다 행렬을 움직인다.  그들의 하는 일에 몰두하며 어망을 놓는  항해자들에게 거의 들키지 않게……  그 때 아르헨티나의 연기나는 굴뚝 앞 여러 세기.  저 드본 사람들의 키 작은 선조의 대열.  뱃전의 다람쥐현 위에  붉은 뼈, 그들의 손가락 관절.  새 것이 낡아지고, 낡은 것이 새 것이 된다.  망토로 견디면서 해초처럼 신선하게  이는 테라노바* 기록이, 바다나 땅의 맥박 뒤 비계약적  피에 대해 말하는 바이다. 바로 어제던가.  규정도 훈련지령도 없이 나선 한 구조부대가  찢겨진 조직의 손을 고치고 있는  말레이 들소를 발견한 것은.  Overture  F. R. Scott  (1899~1985)  In the dark room, under a cone of light,  You precisely play the Mozart sonata. The bright  Clear notes fly like sparks through the air  And trace a flickering pattern of music there.  Your hands dart in the light, your fingers flow.  They are ten careful operatives in a row  That pick their packets of sound from steel bars  Constructing harmonies as sharp as stars.  But how shall I hear old music? This is an hour  Of new beginnings, concepts warring for power,  Decay of systems­the tissue of art is torn  With overtures of an era being born.  And this perfection which is less yourself  Then Mozart, seems a trinket on a shelf,  A pretty octave played before a window  Beyond whose curtain grows a world crescendo.  서곡  F. R. 스콧  어두운 방, 원추형의 빛 아래  모차르트 소나타를 정교하게 연주하는 너는  밝고 명쾌한 음조 대가 중에 불꽃처럼 날며  거기 음악의 명멸하는 형태를 좇는다.  빛 속 화살 같은 너이 손, 날으는 너의 손가락  한 줄로 선 열 명의 조심스런 직공들이다. 그들은  쇠막대로부터 소리의 묶음 다발을 뽑아 가지고  별들의 날카로운 조화를 만들어 내는.  허나, 나는 어떻게 옛 음악을 들을 것인가.  이것이 새로운 시작의 시간. 힘을 위해 싸우는 개념.  시스템의 붕괴- 예술의 조직이, 막 생겨나는  한 영역의 서곡과 더불어 찢겨진다.  모차르트에 미치지 못하는 너 자신의 기예는  선반 위에 올려진 장식물.  커튼이 한 세계의 크레센도로 자라나는  창 앞에서 연주되는 깔끔한 한 옥타브.  The Bear on the Delhi Road  Earle Birney  (1904~ )  Unreal tall as a myth  by the road the Himalayan bear  is beating the brilliant air  with his crooked arms  About him two men bare  spindly as locusts leap  One pulls on a ring  in the great soft nose His mate  flicks flicks with a stick  up at the rolling eyes  They have not led him here  down from the fabulous hills  to this bald alien plain  and the clamorous world to kill  but simply to teach him to dance  They are peaceful both these spare  men of Kashmir and the bear  alive is their living too  If far on the Delhi way  around him galvanic they dance  it is merely to wear wear  from his shaggy body the tranced  wish forever to stay  only an ambling bear  four-footed in berries  It is no more joyous for them  in this hot dust to prance  out of reach of the praying claws  sharpened to paw for ants  in the shadows of deodars  It is not easy to free  myth from reality  or rear this fellow up  to lurch lurch with them  in the tranced dancing of men  델리로드의 곰  얼리 버니  비현실, 신화같이 키가 큰,  길가에 선 히말라야 곰이  청명한 대기를 두드리고 있다.  안으로 굽힌 두 팔로  그 주의의 두 사람, 미르떼같이  호리호리하고 노골적인, 뛰어오른다.  한 사람이 크고 부드러운 코의 링을  끌어 당긴다. 그의 친구가  살작 친다. 화등잔 눈을  향해 막대기로 겁을 준다.  그들은 그를, 여기 터무니없이 큰 언덕  에서, 거칠 낯선 평원으로  시끌시끌한 세상으로  끌어 내려하지 않는다. 죽이기 위해  단지 그에게 춤추는 것을 가르칠 뿐.  그들 둘 다 평화로워 보인다. 이들  카시미르의 야윈 남자들 살아있는 곰은  그들의 생활이다. 또한  만약 델리로에서 멀리 떨어져서  충격적인 그의 주위를 돌며 그들은 춤을 춘다.  그것은 단지 입는 것,  누더기 같은 신체로부터.  산딸기 묻힌 네 발  어슬렁거리는 곰으로만  오직, 영원히 머무르려는  황홀한 소망을 입는 것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다.  뜨거운 먼지 속  히말라야 삼목의 그늘에 있는  개미를 긁어 모으기 위해 날카롭게 간  기도 중인 발톱들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그들이 껑충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은.  현실로부터 신화를 해방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또는 이 친구를 길러  비틀거리게 하는 것은.  이 황홀한 춤을 추는 남자들  그들과 함께 비틀거리는 것은.  Hunterꡑs Moon  Ralph Gustafson  (1909~ )  The moon was gold and the leaves were gold.  The red leaves had fallen and the pallor  Of the soft aspen was lighted, as gold,  By the hunterꡑs moon, the first full  Moon of October. She stood on the verandah,  Facing that upper gold moon  (My arms lightly, closely around her  As if the time would come now.)  Foliage was fallen thickly, the lawn  Almost uncertain, the dry brown leaves  Fallen, Across the pathway  The last flowers, a further frost  Was promised.  She did not like deer  To be in the forested hills. It is a hunterꡑs  Moon, she said. But it was beautiful,  The dense covered hills, the moon above,  The moment, the way it was,  The moment.  사냥꾼의 달  랄프 구스탑슨  달은 금빛, 잎새도 금빛.  붉은 잎새들 지고, 부드러운 사사나무의  해쓱함이 켜진다.  시월의 첫 만월  사냥꾼의 달 근처 금빛으로.  위의 금빛 달 마주보며  베란다에 서 있는 그녀  (마치 기회가 지금 온 것처럼  그녀 주위에 가볍게 얹히는 나의 팔)  떨어진 잎새들 마른 갈색의  잎새가 두껍게 깔린, 거의 잔디인 양 헛갈리는  통행로를 가로질러 가는  마지막 꽃들에겐 서리가 약속된다.  숲이 있는 언덕에 사는  사슴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ꡒ그것은 사냥군의 달이야."  ꡒ그것은 아름답지.  빽빽히 덮힌 언덕  그 위에 있는 달  순간 그렇게 멈춘  순간  For the Sisters of the Hotel Dieu  A. M. Klein  (1909~1972)  In pairs,  as if to illustrate their sisterhood,  the sisters pace the hospital garden walks.  In their robes black and white immaculate hoods  they are like birds,  the safe domestic fowl of the House of God.  O biblic birds,  who fluttered to me in my childhood illnesses  ―me little, afraid, ill, not of your race,―  the cool wing for my fever, the hovering solace,  the sense of angels―  be thanked, O plumage of paradise, be praised.  듀 호텔의 자매를 위하여  A. M. 클레인  짝 지은 채  마치 자매애를 자랑하듯  그들은 병원 정원 도보를 걷는다.  더 하나 없는 흰색과 검정색 옷 입은  그들은 새와 같다.  신의 집에서 기르는 보호받는 가금류.  성경적인 새들  어린 시절 골골하던 내 곁에서 아양떨던  - 나, 작고, 겁 많고, 아픈, 너희들 종족이라 할 수 없는  나의 열꽃을 위한 냉정한 날개 어른거리는 위로  천사의 감각을  감사하라. 오, 낙원의 깃털을 찬미하라.  Green Rain  Dorothy Livesay  (1909~ )  I remember long veils of green rain  Feathered like the shawl of my grandmother―  Green from the half―green of the spring trees  Waving in the valley.  I remember the road  Like the one which leads to my grandmotherꡑs house,  A warm house, with green carpets,  Geraniums, a trilling canary  And shining horse-hair chirs;  And the silence, full of the rainꡑs falling  Was like my grandmotherꡑs parlour  Alive with herself and her voice, rising and falling―  Rain and wind intermingled.  I remember on that day  I was thinking only of my love  And of my loveꡑs house.  But now I remember the day  As I remember my grandmother.  I remember the rain as the feathery fringe of her shawl.  녹색비  도로시 라이브세이  녹색비의 긴 베일을 기억하고 있지.  할머니의 쇼올 같은 깃털로 짠,  반쯤 녹색인 봄나무들로부터  골짜기에 녹색 물결로 출렁이는.  할머니집으로 가는 길을 기억하고 있지.  따듯한 집, 녹색 카페트와  제라니움, 재재거리는 카나리아와  빛나는 말털로 된 의자가 있는.  그리고 침묵, 떨어지는 빗방울로 가득 찬  오르락 내리락 여전히 목소리가  살아있는 할머니의 회랑같이  비바람에 함께 뒤엉킨.  그 날을 기억하고 있지.  오직 내 사랑만을  내 ꡐ사랑ꡑ의 집만을 생각하던 그 날을……  또한 나는 지금  내 할머니를 기억하듯  그 날을 기억하고 있지.  그녀의 쇼올 깃털 가장자리 같은  비를 기억하고 있지.  For Mao Tse-Tung: A Meditation on Flies and Kings  Irving Layton  (1912~ )  So, circling about my head, a fly.  Haloes of frantic monotone.  Then a smudge of blood smoking  On my fingers, let Jesus and Buddha cry.  Is theirs the way? Forgiveness of hurt?  Leprosariums? Perhaps. But I  Am burning flesh and bone,  An indifferent creature between  Cloud and a stone;  Smash insects with my boot,  Feast on torn flowers, deride  The nonillion bushes by the road  (Their patience is very great.)  Jivatma, they endure,  Endure and proliferate.  And the meek-browed and poor  In their solid tenements  (Etiolated, they do not dance.)  Worry of priest and of commissar:  None may re-create them who are  Lowly and universal as the moss  Or like vegetation the winds toss  Sweeping to the open lake and sky.  I put down these words in blood  And would not be misunderstood:  They have their Christs and their legends  And out of their pocks and ailments  Weave dear enchantments―  Poet and dictator, you are as alien as I.  On this remote and classic lake  Only the lapsing of the water can I hear  And the cold wind through the sumac.  The moneyed and their sunburnt children  Swarm other shores. Here is ecstasy,  The sunꡑs outline made lucid  By each lacustral cloud  And man naked with mystery.  They dance best who dance with desire,  Who lifting feet of fire from fire  Weave before they lie down  A red carpet for the sun.  I pity the meek in their religious cages  And flee them; and flee  The universal sodality  Of joy-haters, joy-destroyers  (O Schiller, wine-drunk and silly!)  The sufferers and their thick rages;  Enter this tragic forest where the trees  Uprear as if for the graves of man,  All function and desire to offend  With themselves finally done;  And mark the dark pines farther on,  The sunꡑs fires touching them at will,  Motionless like silent khans  Mourning serene and terrible  Their Lord entombed in the blazing hill.  마우쩌둥을 위하여  - 왕과 파리를 위한 명상  어빙 레이턴  그렇지. 내 머리 주위를 맴도는 파리 한 마리  미칠 듯한 단조음의 후광  그 때, 피의 모깃불이 내 손가락 위에서  연기를 내며, 예수와 부처가 비명을 지르게 한다.  그들도 길일가? 상처를 용서해?  나병 요양소 아마도 그러나 난  살과 뼈를 태우고 있다.  구름과 돌 사이  무관심한 한 피조물  내 장화로 벌레를 짓이기리라.  찢겨진 꽃들로 축제를 벌려라.  길가 수천 만 덤불들을 비웃어라.  (그들의 인내는 매우 크지.)  지바트마, 그들은 견뎌낸다.  번식한다.  그들의 굳어진 주택 속  얌전한 이마와 가난뱅이들  (창백하게 된 그들은 춤추지 않는다.)  목사와 인민위원들을 염려하라!  아무도 이끼같이 낮고 일반적인 그들을  재창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혹은 야채같이 바람은 열린 호수와  하늘 향해 휩쓸리며 나아간다.  내가 이런 말들을 핏속으로 밀어 넣으면  이들이 오해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구세주의 전설을 갖고 있다.  그들의 마마 자국과 병으로부터  낯익은 매혹을 짜내어라.  시인과 독재자 당신은 너만큼이나 이방인이다.    Cookꡑs Mountains  P. K. Page  (1917~ )  By naming them he made them.  They were there  before he came  but they were not the same.  It was his gaze  that glazed each one.  He saw  the Glass House Mountains in his glass.  They shone.  And still they shine.  We saw them as we drove―  sudden, surrealist, conical  they rose  out of the rain forest.  The driver said,  ꡐ Those are the Glass House Mountains up aheadꡑ  And instantly they altered to become  the sum of shape and name.  Two strangenesses united into one  more strange than either.  Neither of us now  remembers how they looked before they broke  the light to fragments as the driver spoke.  Like mounds of mica,  hive-shaped hothouses,  mountains of mirror glimmering  they form  in diamond panes behind the tree ferns of  the dark imagination,  burn and shake  the lovely light of Queensland like a bell  reflecting Cook upon a deck  his tongue  silvered with paradox and metaphor.  요리사의 산  P. K. 페이지  이름을 붙이며 그는 그들을 만든다.  그들은 거기  그가 나타나기 전부터 있었지만  전과 같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각각을 빛나게 하는 것은  그의 응시.  그는 보았다,  그의 유리거울 속에 있는 ꡐ유리집의 산'들을.  그것들은 빛이 났다.  여전히 그들은 빛이 난다.  우리는 차를 몰면서 그들을 보았다.  갑자기 초현실적인 원추형으로  그들은 일어섰다.  비의 숲에서  운전자가 말했다.  바로 위의 저들은 ꡐ유리집의 산'이라고.  그리고 즉시 그들은 변화해서  모양과 이름의 합이 되었다.  두 개의 낯선 것이 결합해서  각자보다 더 낯선 것이 되었다.  우리들 중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다.  운전자가 말하던 중  그들이 빛을 산산조각 내기 전  그들이 어떻게 보였는가를.  운모의 둔덕 같은  별통 모양의 온실  반짝이는 거울의 산들  그들은 만든다.  어두운 이미지의 이끼나무 뒤에서  다이아몬드 창유리 속에서  태우고 흔든다.  종(鍾)같은 여왕의 땅의 아름다운 빛을……  작업대 위에 있는 요리사를 돌아보라.  그의 혓바닥이  역설과 메타포로 은빛에 타오르는.  Ukrainian Church  Miriam Waddington  (1917~ )  Little father your  rhythmic black robe  against white snow  improvises you  a black note  on a white keyboard;  let me follow  into your churchbarn  through the gate  to the onion domes  where your carrot  harvest burns  a fire of candles,  let me follow  in the cool light  as you move through  Godꡑs storehouse  as you put the bins  in order as you set  each grain in place;  let me follow  as your voice  moves in the  familiar liturgy  through the low caves  of Gregorian chant  and let me hear  little father  how you pray  for all your geese  for the cow fertile  at Easter and the  foundations of new  houses to be strong  and firmly set;  let me hear  how you beseech  for all your people  a clear road, an  open gate and  a new snowfall  fresh, dazzling,  white as birchbark.  우크라이나 교회  미리암 왜딩턴  당신을 위해  흰 키보드의 검은 음조를  즉흥적으로 작곡 해주는  작은 아버지 당신의  흰 눈에 비해서  부드러운 검은 법의(法衣).  나로 하여금  당신의 교회 헛간 따르게 하는  문을 통과해  양파의 돔 향해  거기서 당신의  수확한 당근이  초의 불꽃을 태우는  나로 하여금  차가운 빛을 따르게 하는  당신이 신의 곳간 통과해 가듯이  당신이 각각의 곡식 제 자리에  두기 위해 콩뒷박 놓듯이  나로 하여금 따르게 하는  당신의 목소리  그레고리안 챤트의 낮은 동굴 뚫고가는  친근한 연도 속에 움직일 때  그리고 나로 하여금  작은 아버지에게 귀 기울이게 하는,  당신이 어떻게 기도하는지……  자신의 모든 거위들 위해,  부활절의 번식력 있는 소를 위해,  그리고 새집의 기초를  튼튼하고 견고하게 쌓기 위해,  나로 하여금 듣게하는  당신이, 어떻게 탄원하는지  당신의 모든 사도를 위해  명백한 길  열린 문, 그리고  새로운 강설,  신선하고 현란한  자작나무같이 흰.  Snow  Margaret Avison  (1918~ )  Nobody stuffs the world in at your eyes.  The optic heart must venture:a jail-break  And re-creation. Sedges and wild rice  Chase rivery pewter. The astonished cinders quake  With rhizomes. All ways through the electric air  Trundle candy-bright disks;they are deaolate  Toys if the soulꡑs gates seal, and cannot bear,  Must shudder under, creationꡑs unseen freight.  But soft, there is snowꡑs lehend:colour of mourning.  Along the yellow Yangtze where the wheel  Spins an indifferent stasis thatꡑs deathꡑs warning.  Asters of tumbled quietness reveal  Their petals. Suffering this starry blur  The rest may ring your change, sad listener.  눈  마가렛 에비슨  아무도 세상을 너의 눈안에 구겨 넣을 수 없다.  눈 뜬 가슴은 필시 모험적이어서: 자일이 부셔져도  다시 창조한다. 사초(沙草)와 야생미(野生米)는  강의 백랍을 좇는다. 놀란 재가  땅속 뿌리로 흔들린다. 전기적인 대기를 뚫고  모든 길이 캔디처럼 빛나는 작은 판을 돌린다.  그들은 절망적인 장난감일 뿐이다.  만일 영혼의 문이 봉함을 견딜 수 없어  창조의 보이지 않는 집 아래 흔들린다하더라도.  그러나 부드러운 눈의 전설이 있다. 신음의 빛깔  누런 양쯔강을 따라 거기서 세월의 바퀴는  죽음을 경고하는 무심한 핏덩이를 돌리고 있다.  뒤집힌 정적의 숙부쟁이가 그 꽃잎을  들춰낸다. 이 별들의 오점을 겪고 나면  남은 생은, 너의 변화를 소리없이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슬픈 독자여,  Study:The Bath  Raymond Souster  In the almost dim light  of the bathroom a woman  steps from white tub  towel around her shoulders.  Drops of water glisten  on her body, slight buttocks,  neck, tight belly,  fall at intervals  from the slightly plumed  oval of crotch.  Neck bent forward  eyes collected  her attention gathered  at the ends of fingers  as she removes  dead skin from her nipples.  목욕에 대한 탐구  레이먼드 사우스터  흰 목욕통에서 걸어나오는,  어깨에 타올을 두른,  거의 희미한 빛속  목욕실의 한 여자.  물방울이 번쩍이는,  그녀의 신체 위 가벼운 엉덩이,  목, 꽉죈 배 위에서  간헐적으로 떨어진다.  약간 자주빛 나는  계란형의 가랭이로부터.  앞으로 구부린 목,  모아진 두 눈,  그녀의 집중력이  손가락 끝에 모인다.  그녀가 젖꼭지로부터  죽은 표피를 제거할 때면.  The Speaking Earth  Eli Mandel  (1922~ )  grandfathers fall into it  their mighty beards muffled in grass  and admirals, the sea-sounding men  lovers fall into the earth  like rain in wet dark bodies  listen, our lady earth flowers  into the sea-green language  of grass and drowned admirals  listen:in bearded branches  clasped like broken hands  admiring birds  lovers singing of their kiss  before and after all the words  말하는 대지  엘리만델  할아버지들이 그 속으로 굴러 떨어진다.  풀속에 너풀거리는 무시무시한 수염……  장군들, ꡐ바다'를 소리내 말하는 남자들.  여인들이 지구 속으로 굴러 떨어진다.  젖어든 검은 신체 위에 내리는 빗방울……  들어보라. 우리의 여인 대지가  익사한 장군들의  푸른 바다 말로써 꽃피는 것을.  들어보라. 부서진 주먹같이  꽉 죈 까그래기 있는 가지들,  흠모하는 새들,  모든 말의 앞과 뒤에서  키스를 노래하는 연인들을……  Occasions of Desire  Phyllis Webb  Occasions of desire with their attendant envies,  the white heat of the cold swan dying,  create their gestures, obscene or most beautiful.  Oh, the clear shell of a swanꡑs fluted wings!  And as the old swan calls clarity from dark waters,  sailing triumphant into the forgotten,  desire in its moving is that rapacious cry,  gorgeous as the torrent Lethe, and wise.  And if the curl of cygnets on the Avon,  so freshly broken from their perfect shells,  take from a dying bird not moral or enticement,  but float with their own white mother, that is just.  Oh, imperious innocence to envy  only the water bearing such beauty!  욕망의 경우들  필립스 웹  질투가 따르는 욕망의 경우들  죽어가는 차가운 백조의 백열(白熱)  오, 백조의 플룻 부는 날개의 투명한 껍질  그들의 제스쳐를 볼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만든다.  또한 늙은 백조가 어두운 수면으로부터  청명을 불러 모을 때 승리에 차 항해하면서  잊혀진 세상으로 간다.  고뇌스런 레테만큼 게걸스럽게도, 현명하게도  그 움직임의 욕망은 탐욕스런 외침.  또한 아본 강위 한 무리 새끼 고니가  그들의 완벽한 껍질로부터 신선하게 찢겨져나와  한 마리 죽어가는 새로부터 비도덕적이면서 비유혹적인 것을  빼앗는 대신 그들의 하얀 어머니와 함께 떠다닌다.  바로 그, 오, 질투하기에는 오만한 순진성.  오직 물만이 그러한 아름다움일지니……  Beautiful Creatures Brief as These  - For Jay Macpherson  D. G. Jones  (1929~ )  Like butterflies but lately come  From long cocoons of summer  These little girls start back to school  To swarm the sidewalks, playing-fields,  And litter air with colour.  So slight they look within their clothes,  Their dresses looser than the Sulphurꡑs wings,  It seems that even if the wind alone  Were not to break them in the lofty trees,  They could not bear the weight of things.  And yet they cry into the moirning air  And hang from railings upside down  And laugh, as though the world were theirs  And all its buildings, trees, and stones  Were toys, were gifts of a benignant sun.  이처럼 간결한 피조물  D. G. 죤즈  여름날의 긴 누에고치로부터  늦게 온 나비와 같이  이 소녀들은 학교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빛깔있는, 흐드러진 대기 속  보도, 경기장 위로 떼지어 우글거리며……  그렇게 가볍게 보이는 의상의 그들  그들의 옷은 유황나비 날개보다 헐렁하다.  바람조차 혼자서 높은 나무들 위의 그들은  부숴버릴 수 없다 할지라도  그들은 사물의 무게를 다 견딜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들은 아침 대기 속에 소리 지른다.  난간으로부터 거꾸로 매달린 채  웃는다. 마치 세계가 그들의 것인 양  그 모든 빌딩과 나무, 돌들이  장난감이며, 은혜로운 태양의 선물인 양.  The Genius  Leonard Cohen  (1934~ )  For you  I will be a ghetto jew  and dance  and put white stockings  on my twisted limbs  and poison wells  across the town  For you  I will be an apostate jew  and tell the Spanish priest  of the blood vow  in the Talmud  and where the bones  of the child are hid  For you  I will be a banker jew  and bring to ruin  a proud old hunting king  and end his line  For you  I will be a Broadway jew  and cry in theatres  for my mother  and sell bargain goods  beneath the counter  For you  I will be a doctor jew  and search  in all the garbage cans  for foreskins  to sew back again  For you  I will be a Dachau jew  and lie down in lime  with twisted limbs  and bloated pain  no mind can understand  천재  레어나드 코헨  너를 위해  난 유대인 빈민자가 될거야.  춤을 출거야.  너의 꼰 다리에  흰 스타킹을 놓고  시내에 있는 우물에  독을 뿌릴거야.  너를 위해  난 유대인 배교자가 될거야.  스페인 목사에게  탈무드의 피의 성약에 대해 말할꺼야.  어린 아이의 뼈들이  감추어져 있는 그것에 대해……  너를 위해  난 유대인 은행업자가 될거야.  오만에 찬 사냥하는 옛 왕에게  파멸을 가져와서  그의 운세를 끝장낼거야.  너를 위해  난 보르드웨이의 유대인이 될거야.  극장에서 내 어머니를 위해  소리치며  계산대 아래에서  할인 상품을 팔거야.  너를 위해  난 유대인 의사가 될거야.  끌어모은 쓰레기 캔 속에서,  다시 꿰메 붙이기 위해,  음경의 표피를 찾을거야.  너를 위해  난 다쵸의 유대인이 될거야.  꼬은 다리로  석회 속에 드러누워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부풀거야.    [출처]캐나다시인 15인의 작품감상 |작성자헌책   [출처]캐나다시인 15인의 작품감상 |작성자헌책  
829    모든 것 없는 것, 없는 것 모든 것... 댓글:  조회:4397  추천:0  2016-01-02
제가 이해하고 있는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옹호의 입장에 서서 문학과 철학사조의 관점에서 설명드립니다. 근대 문학사조에 보면 사실주의가 등장을 합니다. 사실주의의 무미건조함에 반기를 들고 등장한 것이 자연주의 입니다. 자연주의의 대표적인 한국 작품.. 아시죠?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입니다.  그 후 자연주의의 사실에 대한 과대한 부풀림에 반발로 등장한 사조가 바로 모더니즘 입니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비교는 아주 쉽습니다. 여기 사과가 있습니다. 모더니즘 적으로 사과를 바라보면, 이 사과는 빨갛게 잘 익은 부분과 시퍼리 둥둥하게 덜 익은 부분이 있다. 일부는 반들반들 윤이나고 일부는 벌레가 먹어 썩어있다. 이렇게 바라보고, 이중에 빨갛게 잘익은 부분과 반들반들 윤이나는 것만 취하고 시퍼리 둥둥한 덜익은 부분과 벌레가 먹은 부분은 배격합니다. 즉, 모더니즘은 어떤 사물의 좋은 부분만 취합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이분법적 사고관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흑-백, 신-인간, 사람-동물, 남자-여자, 주인-하인... 이런식의 이분법적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중 좋은 것만 택합니다. 백, 신, 사람, 남자(이견이 많겠군요^^),주인... 철학적인 사조로는 실증주의에 해당되며 대표인물로 꽁트가 유명합니다. 종교적으로는 기독교가 해당 되겠지요.(종교 욕하는 것 아닙니다...)기독교 역시 이분법적 사고관이 근간에 깔려 있으니까요. 신 - 피조물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역시 이 모더니즘의 최악의 산물 입니다. 우등한 인자를 가진 사람(순수 게르만) VS 그외 모더니즘의 최후는 바로 전쟁입니다. 모더니스트들은 아까 얘기한 어떤 사물의 나쁜 부분 즉 이분법에서 하위계열에 속한 것을 배격합니다. 따라서 그것들을 없애기 위해 전쟁을 해야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핵폭탄이 터지고 인류는 깨닫기 시작합니다. 과연 이게 잘하는 짓인가.. 하고요. 물론 아직 못 깨달은 ...같은 애들도 있지요. 그래서 나온것이 post-mordernism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봅니다. 사과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빨갛게 잘익은 부분과 시퍼리둥둥 덜익은 부분, 반들반들 윤이 나는 부분과 벌레 먹은 부분, 모든 것이 사과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철학적으로는 야스퍼스,하이데거로 유명한 실존주의가 이에 해당합니다. 종교적으로는 불교나 노자 장자의 사상이 이에 해당합니다. 즉 모든 것의 존재함은 서로의 유기적인 관계에 의함이다.. 이렇게 보는거죠. 예를 들어보면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말이있죠. 즉 Everything is Noting, Noting is Everything 입니다. 모든 것은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은 모든 것이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구요? 이런 겁니다.  모더니즘적 관점에서 볼때 1+1 = 2 입니다. 그외의 경우는 다 배격하죠.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적 관점에서 볼때 1+1= 반드시 2가 아닙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인정하죠. 예를 들면, 공기방울 하나 더하기 공기방울 하나는 공기방울 하나 입니다. 즉 1+1 = 1이지요. 남자 + 여자는 남자,여자,애기 입니다. 즉 1+1 = 3입니다. 이렇게 보면 1=2이고 1=3입니다. 1=4 일수도 있고 1=100 일수도 있습니다. 즉 100을 everything으로 보고 0을 Nothing으로 보면 이제 Everything is Nothing, Nothing is Everything을 이해하시겠죠. 포스트 모더니즘적 관점에서 또다른 예를 들어보면, 나비의 날개짓이 전 지구를 흔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비가 날개짓 한것이 주변의 바람을 흔들리게 하고 그 흔들린 바람이 풀을 흔들리게 하고, 나무를, 빌딩을,땅을 흔들리게하고 전 지구를 흔들리게 하는거죠.  즉 모든 것은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존재하는 것이지,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상은 적과 나를 구별하지 않고 있는 그 존재를 다 인정합니다. 즉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과의 단절적 특징 말고 연계적 특징을 알려달라고 하셨는데... 그건...  모더니즘의 반발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공통점은 없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 문학에 관한 부분입니다. 사실주의 - 자연주의 - 모더니즘 -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연결 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 문학의 시조는 보통 자크 데리다로 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의견은 분분함)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이하게 중남미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옥타비오 빠스의 La Calle (거리에서)와 같은 시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절정을 이루고 있는 시 입니다. 노벨상도 탔지요.  포스트 모더니즘 문학의 특징은 어떤 특정한 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장정일씨가 쓴 라디오란 시가 있습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라디오가 되었다." 후략 이 시는 김춘수의 꽃을 꽃만 라디오로 바꿔 쓴 것입니다. 모더니즘 적 관점에서 보면 이게 무슨 시냐고 할 수 있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런 장르도 다 수용합니다. 꽃이나 라디오나 그 이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꽃이라고 명명한 것이지 그것의 원래이름은 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지요. 너무 어렵나요? 여하튼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은 어떤 호칭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La calle라는 시도 이거리에 걷는 발자국 소리를 저 거리에서 듣는다... 머 이런식입니다. 다시 말하면 위에 썼듯이 모더니즘적 사고로 보면 1+1은 2입니다. 바꿔예기하면 이 사물은 꽃 입니다. 꽃 이외의 단어는 다 틀린거지요.  하지만 장정일씨는 우리가 꽃이라고 부르는 것을 라디오라고 불렀습니다. 왜? 포스트 모더니즘적 관점에서 꽃이라는 이름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부른 것일 뿐이지요. 포스트 모더니즘적 관점(모든것을 수용하는 것) 1=2, 1=3, 꽃=라디오 입니다. 즉 모든것을 다 수용하고 accept하는 거죠. 포스트 모더니즘의 관점에서는 그것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지 그것의 이름이 꽃인지 라디오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겁니다. 꽃이란 사물의 이름은 우리가 지은 겁니다. 영어로는 Flower 스페인어로는 Flores 한국말로는 꽃 등등...  이렇게 부르는 것은 사회적 약속이지, 그것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의 이름이 꽃이건 라디오건 중요치 않다고 말씀드린거구요. 그 본질 자체, 그 존재의 자체가  포스트 모더니즘에서는 중요시 하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처럼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포스트 모더니즘을 형식이나 틀이 없다고 말합니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떤 틀이나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것입니다. 참고로 탈구조주의, 다원주의,반권위주의등은 모두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적 입장입니다.    [출처] penguinasa/ 포스트모더니즘|작성자 헌책  
828    미래파의 형성 댓글:  조회:5409  추천:0  2016-01-02
1, 미래파(未來派)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시인 마리네티에 의해서 제창된 예술운동이다.  과거의 전통을 부정하고 근대 문명이 낳은 속도와 기계를 찬미하는 것을 시의 본령으로 삼았다. 단명하기는 했으나 파스테르나크나 마야코프스키 등이 이의 대표자이다.   2. 미래파 : 20세기초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미술운동 이탈리아 내의 젊은 미술가들이 유물숭배와 아카데미즘을 배격하고 동적 감각의 표현에 의한 새로운 시대의 미를 창조하는데 공감을 얻어추진된 미술사조의 경향. 과거에 집착한 기성 부류를 과거파라 명명하고 끝없는 내일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의 입장을 미래파라고 붙인 것이다. 특징은 모험과 소음과 속력을 찬미하고 미래의 아름아움은 속도에서 나온다고 주장하였다. 대표적인 미래파 예술가는 조각가 보치오니, 지아코모 발라, 지노 세베리니 등이 있다. 미래파의 이념은 운동의 양식, 역동감, 현상의 동존성를 강조하고 여기서 일어나는 다이나믹한 속력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데 있다. 이 운동은 약 10년간 지속되면서 추상 예술의 등장에 많은 자양이 되었다.   3. 미래파가 우리나라에서 먼저 언급했다? 아마 아닐껍니다. 1905년 마르네티가 이미 '포에지아 잡지'에서 언급했으며 4년 후인 1909년 (이태리 피렌체지역) 동일 인물 마르네티가 미래파 선언 을 했습니다. 미래파란 말 그대로 미래 지향적이며 역동적, 속도감, 도시적 기계주의, 강한추진 등을 토대로 하는 문예 사조로서 폭력과 전쟁을 찬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글로는 아포리네르의 '미라보 다리 위에서' 가 있습니다. 1921년 일본에 상륙하여 일본에서도 미래파 선언을 했으나 우리나라에는 들어 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기죠?) 글은 대충...  부사 형용사 등을 뺀,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참조 문헌 [문예사조론]     4. 20C 초반, 이태리의 전위예술운동입니다. 19세기 후반에 통일을 이룬 이탈리아는 펼처질 20세기가 흥분되고 진보를 향해가는 시기였을겁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산업혁명,전쟁등을 통해 20세기 유럽 예술운동은 정말 큰계단을 오르듯 성큼성큼 새로움을 지향했습니다.   '파괴의 미학'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이게 아마 미래파에 가까운 표현일듯. 과거의 양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명을 향해 가는 과격한 화파로 전쟁을 찬미하고, 도서관을 부수기도 했습니다. 사회의 전반적인 기계화,기계문명에서 도시,도약,속도등을 미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야수파,입체파가 유행했습니다. 세 화파가 결부되는 부분이 있다면 도전적이고 기운찬 느낌..  다음 세대로 가자는 혁신을 도모했다는 점입니다.   작가는 지아코모 발라,움베르토 보치오니 등이 있습니다. (엘라스티시티. by 보치오니) (넘버스 인 러브.by 발라) [출처]미래파(未來派)|작성자 헌책  
827    어느 할아버지 시평 - 김춘수 "꽃", 존재론적에 머문 詩 댓글:  조회:4793  추천:0  2016-01-02
김춘수 -꽃 - 【노자(老子)와 플라톤】의 눈으로 - 시평(詩評)   구약(舊約)성경에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창조에서 이름이 붙여진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創造)하시고.... 흙으로 들의 온갖 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를 빚으신 다음, 사람에게 데려가시어 그가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셨다. 사람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 - 창세기(創世記) 1장- 」   수(數) 많은 초목들이 어우러져 있었던 초원(草原)에서 【사람 - 아담】은 개개(箇箇)의 꽃과 풀에게 각각 이름을 붙였다. 「장미(薔薇)」「소나무」「질경이」... 그【이름 名】이라는 것은 다른 존재(存在)와 구별 (區別)짓기 위한 표시이면서 【차이(差異) difference 】가 된다.   이 이름을 받으면 그 【존재 (存在)】는 【실재 (實在)】에서 【현상(現象)】으로 떠오르고 그로부터 【차이】에서 오는 속성 (屬性 attribute)을 받게 된다.   【장미(薔薇)】는 인간의 감성(感性)으로 「가시」와 「넝쿨」,「향기」와 「하얀 꽃」… 이라는 「특징 (特徵)」들이 정립(定立)되어 지고 이들은 【속성】이라는 틀 속에 축적(蓄積)된다 .   이름이 붙여진 이제부터의 장미(薔薇)는 원초(原初)의 【실재 】와는 차이가 나는 오직 【속성 】들로 꾸며진 【상(像) image】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장미의 【개념 (槪念)】만 있지 장미의 【실재 】는 인간에게서는 사라진 것이다.   【스무고개】알아맞히기는 바로 【속성】을 길잡이로 하여 【상(像) image】을 찾아가는 미로(迷路)의 게임인 것이다. 「식물성(植物性)」-「꽃」-「넝쿨」-「향기」-「가시」…「장미」 【속성】과 【이름 名】은 있으나 【진정한 존재 實在】는 이미 사라진 것이다.   노자(老子)는 도(道)라고 이름을 붙여지면 그것은 이미 원래 모습의 도(道)가 아니다. 이름(名)을 붙이면 그것 또한 원래 있었던 존재와는 다른 것으로 떨어지게 된다. 세상의 처음(初)은 허공(虛空)의 무(無)를 바탕으로 하여 그 안에서 하늘과 땅이 서로 어울리는 관계(關係)로 맺어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존재들이 각기 그 이름을 받음에서 현상(現象)으로 나타난 것이다.   一.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 오산(吳山) 역(譯)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나의 【몸짓】은 【실재 - 이데아】였는데, 【이름】을 붙임으로 올림포스 산상(山上)에서 지상(地上)의 인간 세계로 【하강(下降) - 현상(現象)】된 것이다. 무수한 여인(麗人)들 틈에 있던 그녀가 【사랑】이라는 꾸밈을 붙이니 【연인(戀人)】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여기서 자연적인 존재(存在)는 노자(老子)가 말하는 【소유론 (所有論)】적(的)인 「존재자(存在者)」-【장미】가 되고 【내 연인】으로 좁혀진 것이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김소월(素月)은 【산유화】에서 「저만치 혼자서」라는 거리감(距離感)을 두고 오직 존재(存在)로만 그 꽃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김춘수는 그 꽃에【이름을 불러 주어】그 존재는 【나에게로-】 소유(所有)가 되는 【존재자】인 【꽃】으로 만들었다.   심연(深淵)에 있던 「물고기- 몸짓」은 「낚시 - 이름」에 걸려 「뭍- 나의 것」으로 올라온 것이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이 연에서도 이름을 붙임으로 하여 순수(純粹)한 존재(存在)에서 소유(所有)의 존재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플라톤」은 【이데아】와 그것이 투영(投映)된 【현상 (現象)】을 말했다. 김춘수의 【꽃】이 【현상(現象)】이 되면, 이름이 불리기 전은 【이데아 - 실재(實在)】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 마음에 담고 손에 잡히는 것은 【현상(現象)】이요 【모상(模像)】이요 존재자(存在者) 일뿐이다.   현상(現象)은 가변적(可變的)이고 생멸(生滅)하고 불완전(不完全)한 것이다. 인간은 영원불멸(永遠不滅)한 진실한 세계를 추구(追求)한다. 즉 현상(現象)의 세계에서 이데아의 세계로 발돋움하려는 지향(指向)힌 것이다. 所有와 執着의 貪慾으로 뭉쳐진 현상(現象)의 세계 - 「이름 불려진」것 -에서 그냥 【몸짓】으로 나타나는 【이데아】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망향(望鄕)에 젖는다. 이것이 진정 시인(詩人)이 노래하여야 하는 귀로(歸路)인 것이다.   김춘수의 【꽃】은 이 【망향 (望鄕)】을 그리지 못하고 겨우 그 중간에서 머뭇거린 존재론(存在論)적에 머문 시(詩)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 위의 【시평(詩評)】은 어느 할아버지께서 【수능(修能)】시험에 골몰하는 외손자 등 같은 또래들을 위하여 강론(講論)한 것을 간추린 원고(原稿)를 가져 옴 .  [출처] 김춘수 -꽃 -【노자(老子)와 플라톤】의 눈으로 - 시평(詩評) (시산문(詩散門))  [출처]어느 할아버지 詩評|작성자헌책  
826    해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댓글:  조회:6452  추천:0  2016-01-02
1. 해체주의[deconstruction, 解體主義] 포스트구조주의의 문학이론으로 1960년대에 프랑스의 비평가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가 제창한 비평이론을 말한다. 주어진 것으로서의 전체성, 즉 신(神)이나 이성 등 질서의 기초에 있는 것을 비판하고 사물과 언어, 존재와 표상(表象), 중심과 주변 따위 이원론을 부정하고 다원론(多元論)을 내세운다.   2.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현상에 대하여     Ⅰ. 서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은 현대에 이르러 한때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명확한 개념이나 한계가 분명히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단어가 세련됨의 대화의 대명사처럼 마구 사용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대체로 모더니즘 뒤에 나타난 예술 문화의 운동이라고 이해되었지만 이는 사상 영역의 후기 구조주의와도 대응하고 있다. 철학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온 이 하나의 경향은 문학 및 전 예술 영역으로 확산되었고, 현대 사회를 해석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모더니티의 이성상에 대한 비판을 극단적으로 급진화 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 그리고 그 인간이 견인하는 역사의 진보성, 사회의 합리화, 주체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실제라는 모더니티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들을 지적한 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기존의 관념들을 해체하고 요란하게 분해, 조립하여 정작 그 실상을 알 수 없는 모습으로 우리를 혼란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기저에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이 '해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해체 현상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무엇이고 오늘날 대중문화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리고 그러한 현상이 어떤 의의를 가지며 문제점을 무엇인가?   본론에서는 이러한 '주체의 죽음', '인간의 종말' 현상의 근저에 있는 해체 현상에 대해 철학적 시각에서 근본적으로 탐구해 보고자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조건 거부가 아니라 진리, 규범, 양식 속에 깃들어있는 절대성과 중심성의 허구를 드러냄으로써 자연스럽게 해체를 시도하는 것이며 그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은 포스트 구조주의의 탈중심이론을 사상적 배경으로 하게 된다. 데리다, 푸코, 료타르, 라캉, 하버마스 등의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서구의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진리관을 거부하고 해체시키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들의 사상을 통해서 여러 가지 탈주체 이론 - 특히 현대 프랑스 철학계를 중심으로 - 을 그 형성 배경과 함께 제시하며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탈중심화 해체 현상이 문화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여러 분야에서 그 특성이 나타나지만 특히 문화에서는 문학, 미술, 연극과 대중문화 전반에 두드러지는 영향을 미쳤다. 본고에서는 특히 '작가의 죽음', '메타픽션'등으로 대표되는, 문학 분야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과 그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해체 현상은 열병처럼 퍼지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대표적인 현상으로써 기존의 이론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기도 하다. 이에 입각해서 많은 현대 철학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기존 사상을 비판하고 주체를 해체시키는 관점의 이론들을 앞다투어 내놓았다. 특히 철학 분야에서는 그러한 탐구가 활발해짐으로써 포스트 구조주의의 지평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이 자체적으로 가진 모순점역시 많이 비판되고 있다. 따라서 결론에서는 이러한 해체 현상에 대한 전반적이고 개괄적인 관찰과 의의 및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며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논함으로써 글을 맺고자 한다.       Ⅱ. 본론   1. 해체 현상에 대한 철학적 이해 - 포스트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특히 문학, 예술 면에서 두드러진 변화를 몰고 왔다. 이렇듯 복잡 다단한 변화들 중에서 중심된 특징과 경향을 살펴보고자 할 때 사회와 개인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하는 포스트 구조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배경이 되므로 먼저 이에 대해 알아보아야 겠다.   1) 해체 이론의 기원과 생성 서양의 중세와 근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자아의 발견이라고 할 때, 인식의 주체, 사유의 주체로서의 자아에 대한 탐구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아주 중요한 영역을 차지한다. 서양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자아 중심의 철학은 자의식의 풍부한 활동성을 강조하고 나아가 창조적 능력과 상상력을 강조하여 창조적 주체, 자유로운 개인을 핵심으로 삼는 근대 자유주의 사상의 한 토대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표방하는 것은 주체에 의해 파악된 객관적 실재가 진리의 기준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회가 이성의 힘에 의해 총체적으로 합리화될 것이라는 모더니즘의 이념의 거부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이성 중심의 세계상이 해체되고 거시적 일반 이론도 거부되며 인식론 상의 기초 이들은 서구에서 상식처럼 통용되어 온 견해, 즉 이성적 '주체'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을 마련하여 '진리'로 비이성적인 현실의 장막을 제거하고 '이성적인' 사회, 역사를 만들 수 있다고 보는 계몽주의적 이성 중심의 세계관을 거부한다. 모든 문제의 근원이 자연과 사회 속에서 인간에게 부여되는 모든 관계들과 그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삶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의 근간을 이루었던 이성 중심주의 , 과학지상주의 , 체계화와 총채성의 이념은 해체와 다원화 탈중심과 불연속으로 대체된다. 이성과 비이성 주체와 객체의 명확한 구분이 사라지고 의미의 능동적 창출자로서의 주체는 갈가리 흩어져 종말을 맞이한다.   특히 이 모든 해체 현상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선행되고 있는 것이 바로 '주체의 해체'현상이다. 사실 '주체'라는 개념 자체는 모호한 것으로 인식의 주체 일수도 있고 정치권력의 주체 일수도 있으며 인간의 자의식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개인의 인식의 우선성과 보편적 타당성을 제공하는 절대절명의 원리인 이성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세계를 포착하고 규정할 수 있는 특권화된 인식의 주체이며 자신의 삶과 역사의 원동력을 우리는 주체의 죽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이 말하는 '주체의 죽음'은 의미의 능동적 구성자이며 창조적 인물인 이성적 주체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성적 주체라는 것은 인간관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고 나아가 그러한 인간관에 의해 구성된 존재와 인식자연과 타자 등의 모든 세계관적 문제를 주제 삼고 있는 것이다.   '신의 죽음'을 주창한 니체에게서 인간의 규정은 사고의 핵심을 이루며 우리는 그의 철학을 '자아의 해체 작업'이라 명명할 때 그러한 점에서 니체는 포스트 구조주의의 기반을 닦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유럽 정신사에서 볼 때 인간은 고대로부터 이성을 가진 동물로 구분되어 왔으며 데카르트이후 근세 철학은 이성을 '자의식'형태로 전수하여 철학의 원칙으로 삼게 되었다. 데카르트에게서 확실한 학문의 기반으로서의 사유, 칸트에게서 모든 통일성의 기반으로서의 초월적 자아의 통일성, 헤겔에게서 모든 현실성의 기반으로서의 객관정신등이 그것이다. 이에 반해 니체는 인간의 본질을 의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일종의 도치된 인간 이해라고 비판한다. 그는 인식을 "인간의 핵심, 영원한 것, 근원적인 것, 확고히 주어진 것"등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해 "우스꽝스러운 과대평가와 오해"라고 평가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깊은 내면에서 우선적이고 근원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상이하고 모순된 욕망과 의지의 충돌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 충돌로부터 일종의 화해, 계약이 성립되며 그것이 곳 우리가 일컫는 지성이라는 것, 이성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의식이나 지성이란 결코 그 자체로 독자적인 원리에 입각한 독립적 능력, 모든 다른 비이성적 충동들을 상호간의 투쟁이 서로 화해하며 끝날 때까지의 최후의 결과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용 기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힘, 의지로서의 생의 힘은 의식이 아니라 충동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니체에게서 의식은 생의 비본질적 부분적 영역으로 축소되어 이해될 뿐 아니라 나아가 생의 가장 약한 부분, 가장 표피적이며 가장 나쁜 부분으로 이해되고 있다.   니체에게서 의식이란, 인간에 의한 특수한 내적소여방식을 뜻하는데 이는 엄밀히 말하여 충동이나 기쁨이나 고통처럼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간접적인 소여, 즉 언어를 매개로 하여 주어진 것을 뜻한다. 니체에게서 의식은 한마디로 '언어적 파악', '언어적 사고'와 동일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니체에게서 의식의 기원과 기능을 밝혀 주는 단서는 바로 의사 전달 기호로서의 언어이다. 또한 이러한 언어적 사고를 따르는 의식은 개별자로서의 인간 각자의 본래적 자아가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일반적이며 군중적인 속성에 속하게 하여 자의식이란 것도 역시 인간의 개별적 자아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바른 이해의 길은 못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개인의 본질을 개인의 고유성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성을 추구하는 '사회적 존재'에서 찾았다. 니체에 따르면, 기독교에서 이상과 위대함은 오로지 신의 속성으로 피안에서 설정된 가치이며, 차안의 인간은 단지 작고 힘없는 왜소한 존재로 규정된다. 이는 더욱 심화되어 끝에는 인간이 너무도 왜소하여 신의 위대한 자체가 인간에게 자기 모순적으로 나타나 결국 인간이 신을 제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에 의해 인간의 대비자로써 생각되고 세워진 것은 결국 인간 스스로에 의해 파멸되고 만다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니체는 인간이 곧 신의 창조자이며 동시에 신의 살상자라고 강조하는 의미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곧 모든 인간에 의해 설정된 가치, 피안적 진리, 불변하는 진리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본래적 자아가 되고자 하는 인간은 사고되고 의식된 표상 세계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자기 자신에 의해 자유로운 긍정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니체는 생각하였다.   인간은 그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 나가야 할뿐이며 자기 자신을 자신 이외의 다른 이상이나 목적 아래 둔다거나 혹은 자신을 표피적 의식이나 일반화된 군중의 척도에 따라 평가하고 그에 예속시키려 드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니체의 철학 정신을 한마디로 일반성과 군중을 앞서는 인간 각자의 고유성과 개별성의 강조, 즉 실존의 강조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니체의 반형이상학적 정신들은 하이데거에 이어 포스트구조주의자들에게 계승되고 그들에 의해 니체의 정신은 방법적으로 보다 정교하게 심화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포스트 구조주의와 동일한 맥락으로 연계되어 있다. 즉 포스트 구조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배경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2) 해체 이론의 발달 - 포스트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철학적 관점에서도 그 이전의 입장과는 큰 차이점을 보이는데 새로운 철학적 입장은 주로 프랑스에서 1960년대 말엽부터 대두되기 시작하는 포스트 구조주의가 가장 잘 대변한다. 해체 주의를 포함한 포스트 구조주의는 후기의 롤랑바트르를 비롯하여 데리다, 푸코, 라캉, 료타르 그리고 들뢰즈 등의 이론가들이 주로 주창하였다. 이들은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삶의 실재의 본질이나 성격에 대해 전통적인 철학자들과는 달리 실재를 편린적,이질적, 다원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파악하는 주체에 회의적이면서 '존재의 형이상학'을 해체하고 있다. 몇몇 철학자들이 흔히 '주체의 죽음'으로 일컫는 현상이다. 이 '주체의 죽음'은 장소의 고정성 그리고 개인이나 국가 역사에서의 권위나 가치의 확실성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을 의미한다. 또한 거대 이론의 붕괴를 몰고 와 신학과 역사학, 경제학,  정치학 등 각 분야에 거대한 파장을 몰고 왔다.   ① 자크 데리다   지난 60년대 후반에 등장해 오늘날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전반에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해체 이론은 서구인들의 바로 그러한 인식의 변화를 잘 표출해 주고 있는 중요한 사고 체계이다. 이의 창시자인 자크데리다는 (1967)라는 저술을 통해 자신의 해체 이론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레비스트로스등 이에 앞선 구조주의자들역시 전통적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인간의 본성을 규명하고자 할 때는 과학적 방법 등을 사용하여 접근하였다. 그들이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종래의 형이상학적인 방법이나 가설, 가정 등에 의존함으로써 형이상학적인 체계에서 근본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데리다는 우선, 서구의 형이상학적이 이차적이고 간접적인 언어인 글보다도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언어인 말에 더 우선권을 주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리하여 그는 말이 글보다 더 본원적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서구의 전통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말 역시 글처럼 불완전한 이차 언어에 불과하며 서구인들이 말속에 현존해 있다고 믿는 본원적 의미란 다만 착각일 뿐 사실은 부재 속에 있다고 하면서 이에 대항하는 자신의 이론을 라고 칭했다. 그렇다면 문자학 또는 해체 이론은 신이 사라진 시대, 곧 절대적 진리가 사라진 시대의 이론이 된다. 해체 이론은 아직도 신의 음성 곧 절대적 진리가 현존하고 있으며 자기들이 그것을 대표하고 있다고 믿는 모든 시대착오적 지배 체제의 독선과 횡포에 도전하여 그것들의 눈먼 확신을 그 근본에서부터 무너뜨리는 체제전복적 이론이다. 이러한 그의 해체 이론은 서구 사고 체계 전체에 대한 강력한 도전으로 이어진다.   사실 그는 서구의 형이상학 전체가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서구의 문화와 사상은 사물을 둘로 나누어 그중 첫 번째 것에만 특권을 부여하고 두 번째 것은 이차적이고 열등한 것으로 소외시키고 제외시키는 양분법적 태도 위에 세워져 있다. 데리다는 바로 이와 같은 이분법적 태도가 그 동안 사회의 모든 구조에서 타자를 부당하게 억압하고 배제시키는 것을 합리화시켜 주고 합법화시켜 주는 논리적 근거의 역할을 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깨달음은 곧 모든 사회적, 정치적 체제 속에 스며들어 이제는 보이지 않게 된 지배올로기의 억압 구조를 드러내 보이고 그 횡포를 깨닫게 해준다는 면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데리다는 그와 같은 양분법적 흑백 논리가 실은 상호보족적인 관계에 있음을 지적하며 그 둘 사이의 경계에 해체를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해체 이론의 궁극적 목적은 인식론적 변혁을 통한 지배 체제의 해체가 된다. 그러므로 '해체'라는 말은 외부로부터의 파괴가 아닌, 내부로부터의 '탈구축'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은 예전부터 항상 그에게 고유한 종말로서 달리 말하면 인간에게 '고유한 것'의 종말이다"라고 말한다. 데리다는 지배 체제의 독선과 횡포를 가능하게 해준 것은 절대적 진리에의 확신이었다고 하며 그 현존을 부정한다. 그의 해체 이론에 따르면 진리란 당대의 지식과 권력이 담합하여 만들어 놓은 언술행위이고 또다른 진리를 침묵시킨 결과로 얻어지는 것일 뿐 결코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순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해체 이론은 진리와 허위의 오랜 경계선을 무너뜨렸다. 데리다는 해체 이론을 통해 이성, 질서, 총체성 등의 존재와 회복을 신뢰하는 헬레니즘적 세계관을 해체하고 비이성, 무질서, 파편성 등을 특성으로 하는 헤브라이즘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해체 이론은 가시적인 투쟁 대상뿐만 아니라 불가시적인 투쟁 대상까지도 찾아내어 붕괴시킬 수 있는, 현대의 고도로 복합적인 시대의 한 효과적인 저항 이론이 된다.   ②질 들뢰즈   데리다가 철두철미한 반개념적인 철학을 견지하고 있는데 반해 들뢰즈는 철저히 개념 철학에 의존하여 차이가 이 세계의 철학적 원인임을 규명해 나간다.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것을 긍정하고 인정함은 존재가 곧 차이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복은 차이의 대긍정이며 그러므로 긍정을 역설하고 찬양함은 존재하는 것에 기대는 수동적 측면이 아니고 부정적인 것을 부정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는 정신분열증을 자본주의와 연결시켜 분석하면서, 정신분열증 환자야말로 자연인에 가깝다고 보고 그야말로 기호의 세계에서 살면서 사회적으로 통제되고 제도화된 의미의 경계를 거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신체가 사회적으로 분절된, 훈련받은, 기호화된, 주체화된 상태로부터 자유롭게 해방된 것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는 길을 정신분열증에서 찾았다. 들뢰즈에 의하면 차이를 긍정하고 창조하고 평가하는 자는 원한과 질투에 의해 비교하는 비루한 짓은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차이에 지나지 않으며 반복하는 영원 회귀는 동일성이 없이 연루된 세계 속에서 서로 서로 손잡고 있는 차이의 세계와 같다. 존재는 사실상 하나의 다양성에 지나지 않으며 그의 철학은 어떤 전체성도 거부하고 중심이 없는 것이다.   ③ 료타르   료타르는 전체화, 중심화, 절대화는 그것을 통한 획일화를 조장하게 되므로 그것을 거부하고 비합리적인 현상을 합리화하려는 행위와 차이점보다 동일성을 창조하는 행위를 비판, 해체시키고자 하였다.   료타르는 보다 사회적이고 실천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는 그가 사회적 인간관계에서 투쟁과 갈등이 불가피하게 생기고 그런 사회적 갈등과 압력의 해결을 위한 보편적 법칙일 인간이 발견하기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적 인간관계는 '언어 놀이'와 '문장 놀이'에서 표출되고 이는 시시각각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각각의 문장 놀이는 쉽게 다른 사람의 것과 일치되지 않는 각자의 특유 어법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기존의 철학이 큰 체계를 중시하는 것에 반대하여 '조그만 이야기들'을 포스트모더니즘의 조건으로 내세운다.   ④푸코   푸코를 비롯한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총체성의 관점은 그 자체로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는 기존 사회의 억압적 구조를 '진리'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투명한' 사회를 목표로 삼는 혁명적 이상이 전면적 감시 프로그램과 연결된다고 본다 (이것은 진리의 이름으로 억압을 정당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푸꼬는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불연속적이고, 특수하고, 지역적인 비판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푸꼬는 해석의 다원론을 강조하며 열려진 해석학적 체계를 선호한다. 그에게서 절대적으로 우선적인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라곤 없다. 모든 것은 이미 해석이며, 모든 기호는 그 자체가 해석에 제공된 사물이 아니라, 다른 기호에 대한 해석이다. 따라서 어떠한 사회적 합의도 세계에 관한 공유된 합의일 수 없고 그 상황에서의 힘의 균형에 의한 것이다. 이처럼 푸꼬는 사회· 역사에 관한 총체적 지식이 권력에 대한 주장을 지닌다고 본다. 그가 에서 밝히듯이 그것은 배제의 체계--참과 거짓의 구분, 특정한 담론에 대한 금지 등--에 의한 것이다. 참과 거짓의 구별은 궁극적으로 자의적이고 우연적인 것이다. 따라서 명제의 의미는 과학적 담론이 짜여진 실천의 체계와 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의 제도적 배열은 항상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나타낸다.   푸꼬는 어떤 체계도 실재의 복합성을 밝힐 수 없다고 보고, 그 자신의 탐구의 무질서하고 파편적인 성격을 강조하면서, 체계적 통일을 거부한다. 이처럼 그는 참된 지식의 이름으로 걸러 내고, 위계화하고, 질서지우는 단일한 이론을 요구하는 것에 대항하며, 견고하고 동질적인 이론적 地形을 제공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국지적이고, 불연속적이고, 비특권적이고, 정당화되지 않은 지식에 머물고자 한다. 푸꼬는 '보편적' 지식인이 아니라 '특수한' 지식인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지식인은 자신의 작업장, 수용소, 병원, 연구실, 대학 등에서 특정한 투쟁에 충실해야 한다. 이론은 단지 특수한 투쟁에 봉사하는 도구 상자일 뿐이며, 그것의 유용성을 잃어버리는 순간에 곧바로 버려야 한다.   한편 푸꼬는 권력 이론을 크게 3가지로 구별한다. 즉 1)'경제적' 이론, 2)권력을 억압적이고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비경제적' 이론과 3)권력 관계를 일종의 '전쟁'으로 보는 자신의 관점으로 대비시킨다. 권력을 어떤 개인, 집단, 기구가 소유하는 실체로 보지 않고 관계, 또는 그물망으로 본다. "권력, 그것은 제도도 아니고 구조도 아니며, 어떤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권한도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복합적인 전략적 상황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므로 권력은 소유된다기 보다는 행사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배계급의 '특권'이 아니며, 전략적 상황의 효과이다. 따라서 국가를 지배계급의 정치적 도구로 보고, 권력의 핵심을 국가 기구로 이해해서 모든 권력 현상을 국가 기구에 의해 설명하는 방식은 일면적인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그는 '권력이 무엇인가?' 라고 묻지 않고 '권력은 어떻게 작용하는가?'라고 묻는 방식을 바꾼다. 그리고 권력은 자연, 본능을 억압하고, 개인이나 계급을 억압한다고 본다 (헤겔, 프로이트, 라이히 등의 견해). 권력을 권력이 오로지 제한하고 구속하며, 금지하는 법률과 금지의 메커니즘에 의해서만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달리 푸꼬는 권력을 단순히 금지하는 힘으로 보지 않고 창조적, 생산적, 긍정적인 힘으로 보며 일종의 전쟁, 적대적 세력 관계들간의 상호 투쟁으로 이해한다.   그러면 을 통해 이러한 권력의 작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푸꼬는 18세기 후반에 감옥 제도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일반화되면서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규율적인 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한다. 그는 감옥 제도를 규율적 권력이 행사되는 전형적인 예로 보면서 이런 권력이 사회 전체에 침투해서 현대 사회를 규율적 권력이 편재하는 '유폐적' 사회로 만들어 나간다고 본다. 푸꼬는 이러한 권력의 새로운 메커니즘이 인간의 신체에 주목하면서 그 신체를 권력이 작용할 수 있는 유용한 대상으로 만드는 과정에 주목한다. 푸꼬는 이러한 신체에 대한 권력의 작용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영역들--작업장, 군대, 감옥, 병원, 학교 등--에서 규율이 생산, 수행되는 일정한 방식들에 주목한다. 푸꼬는 이러한 규율적 권력이 '위계질서적 관찰'과 '정상화하는 판단'을 결합시킨 형태를 통해 작용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것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이 기준이 '정상화하는 판단'이다. 이것은 일탈을 없애 그것을 정상으로 만드는 기능이다. 이를 위해 일정한 정상적 질서를 정해 놓고 사소한 위반에 관해서도 처벌한다. 그래서 일상 행위의 가장 미세한 측면을 특정화함으로써, 거의 모든 것이 잠재적으로 처벌 가능한 것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이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그래서 이러한 정상적인 질서에 적응하지 않거나 반항하는 자들은 규율의 감시, 처벌, 교정 대상이 된다. 푸꼬는 이와 관련해서 인간 과학이 탄생하고, 그것은 개체들을 인식론적 무대 안에 적절하게 배치시키는 작업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정리, 분류된 기록은 권력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개체를 길들이고, 유용하게 만드는데 최대한 이바지하게 한다.   푸꼬는 어떤 사회에서도 사회적 신체를 구성하고 특질화하는 다양한 권력 관계가 있는데, 이러한 권력 관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담화의 생산과 축적, 유통이 필요하다고 본다. 즉 권력은 '진리'를 생산함으로써 작용한다. 푸꼬는 권력이 신체에 작용하는 것이 사실은 정신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이상에서 살펴본 규율 체계는 사회 전체에 대한 통제를 심화시키면서 모든 개인을 정상적으로 기능 하는 위계질서의 한 지점에 배치시킨다. 이처럼 '비정상성', 위반이 배제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체제 안으로 흡수, 통합된다. 그리고 규범적인 것의 '보편적' 지배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권력이 완성된다.   푸꼬는 지식을 지식 외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려는 입장--역사유물론,사회학주의 등--을 거부하고, 지식이 의식과 관념의 (제도적, 문화적) 산물이라는 입장--인간학주의--도 거부한다. 푸꼬는 인간 과학의 관리적 역할, 권력과의 공모 관계를 밝히고자 한다. 지식과 권력은 쌍둥이며, 지식 자체가 권력이고 권력은 지식을 통해 작용한다. 모든 지식 형태는 그 자체가 권력의 형태이며, 동시에 그 존재와 기능에서 다른 형태의 권력과 연결된 의사 소통, 기록, 집적, 대체의 체계가 없이는 행사될 수 없다. 푸꼬는 권력과 지식이 서로를 함축하고 있으며, 서로 의존하고 서로를 강화시킨다고 본다. 그는 지식-권력이 지식의 형식과 가능 영역을 결정한다고 본다.   ⑤ 롤랑 바르트   롤랑바르트는 언어의 상대성과 불명료함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진리관을 비판하게 된다. 언어 자체가 확실한 것임을 전제로 하는 일련의 노력들은 사실상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느낌이나 자각 이외의 것을 보여줄 수는 없다. 언어는 그 자체로써는 무기력한 것에 불과하나 그러한 언어를 통해 사물의 본질이나 진정한 리얼리티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절대적 진리 그 자체를 언어 속에 붙들어 둘 수도 없으며 언어가 진리 그 자체가 될 수도 없는 일이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의도, 사유, 전략 따위를 보여주는 것이지 그것과 유리되어진 진리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에 의해 통제되고 발견되고 창조되는 진리란 이미 절대성을 손짓하기보다는 상대성을 드러내게 된다. 절대라는 말은 그러한 상태가 결핍된 인간이 만들어 낸 욕망과 미몽의 혼합물일 뿐이다. 그러나 언어가 환기시켜 주는 느낌은 일종의 현기증이나 현혹 작용을 일으켜 구원, 초월, 절대, 중심 따위의 말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주관과 그 주관의 상대성과 허구성을 은폐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롤랑바르트, 데리다, 푸코등은 언어에 기반을 두는 진리관을 철저하게 해부하며 그것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그 허구성을 사유의 공간 속에서 소멸시키려 한다. 나아가 후기구조주의자들은 주체의 죽음이라는 테마를 인식론적, 역사적, 미학적으로 훨씬 다채롭게 발전시킨다. 이러한 포스트 구조주의의 탈 중심적 경향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배경을 이루며 포스트모더니즘의 탈중심화 현상을 이론적으로 조명해 주고 있다.     2. 문화에서의 해체와 탈중심화 경향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학과 예술 전통으로서의 모더니즘이 안고 있는 모순과 한계, 예술적 허상을 비판하는 문예적 개념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은 건축 부분에서 시작하여 문학과 미술, 연극등 다양한 분야로 퍼져 갔는데 이는 기술의 발달과 사회 변화로 인한 문화의 패턴이 변하여 대중매체에 뿌리내린 대중문화 속에 스며들면서 더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해 프레데릭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을 가리켜, 제국적 자본주의가 다국적 자본주의 형태로 세계 시장에 파고드는 것을 도와주는 후기 자본주의 논리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특징을 '미학적 대중 주의, 문화 생산물의 깊이 없음, 역사성의 빈곤, 의미의 해체, 비판적 거리의 말소, 재현 이데올로기의 약화 등으로 들고 있다. 이러한 판단의 공통적인 현상인 해체 현상은 문학에 경우 특히 지대한 영향을 미쳐 1970년대 이후 현대문학 이론의 전개와 방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데리다가 해체 이론서인 에서 보여주는 탈중심지향은 활발한 유희와 해석 작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중심의 횡포나 억압과 현존을 거부하게 했다. 그는 체제 내부에서의 해체 작업을 위해 패러디와 다원성 긍정의 두 가지 책읽기 방법을 제시했다. 이는 이후에 상호 텍스트성, 파편화현상, 메타픽션 등의 경향을 보이며 현재에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1) 상호 텍스트성   '상호텍스트성' 현상은 다른 문학 텍스트들과 맺고 있는 상호 연관성을 중시한다. 하나의 작품을 텍스트라고 한다면 작품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는데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의도적으로 상호텍스트성을 활용하여 장르 개념을 해체시킨다. 상호 텍스트 성은 무조건적인 모방이 아니라 비판이 개재되어진 텍스트의 적극적 활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독창성을 강조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 세상에서 진정한 독창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문학이나 예술 작품은 마치 모자이크와도 같아서 이미 과거에 존재했던 작품들을 다시 결합하고 배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에서 '작가나 저자의 죽음'이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작가는 더 이상 초월적인 신으로 간주되지 않고 한낱 언어라는 재료로 제품을 만들어 내는 생산자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호텍스트성이 보여주는 의미란 무엇인가. 이는 무엇보다 모더니즘 미학에 대한 비판으로 형성되었고 독자성, 또는 독창성의 허구를 드러냄으로써 창작을 둘러싸고 있는 규제를 비판해 자율과 자유를 철저히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탈 장르, 탈 양식의 일환인 상호텍스트성은 형식보다는 내용이 함유되게 되는 생명력이 중시되게 되었다. 각 장르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비평이 독자적 기능의 하나였던 해석은 중시되었다. 소설은 영화를 텍스트로 하기도 하고 회화는 영화의 한 장면이나 상품광고의 한 장면을 텍스트로 하기도 하고 고전주의 문학작품을 텍스트로 하기도 한다. 여기에 패러디와 혼성 모방까지 뒤엉켜 사실상 장르나 양식 개념은 해체되고 있다.   여기서 작품의 형식적 요소는 더 이상 판단이나 비판의 기준이 되지 못하며 중요한 것은 작품이 지닌 설득력이나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호텍스트성은 단순한 모방이나 표절이 아닌, 텍스트에 대한 비판 의식에서 출발한 재창조로 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이는 장르 개념이나 양식 개념을 비판하여 양식상에서도 고정관념이나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대항 문화'의 기능을 함유하려 드는 것이다.   2) 파편화 현상   포스트모더니즘은 총체적인 비젼의 제시나 모든 현상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버리고 분산화, 파편화의 방법을 지향하게 된다. 전체화를 지향할 할 경우 중심을 만들고 보편적 개념을 만들어 내며 구체적 현실과는 유리된 이념의 허구적 중심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전체적 현상보다는 미시적이고 파편화된 현상에 접근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이는 문학 분야에서는 '의식의 흐름'의 기법을 차용하여 개인 서술의 단편적 나열을 통한 심리묘사 방법을 쓰는 현대 소설에서 잘 드러난다. 또한 아무런 상관도 없고 의미없을듯한 장면의 나열로 총체적 이미지를 주는 광고들에게서도 잘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들은 구체적이며 파편화된 현상에 대해 접근하며 그 미세함 속에 나타난 세계와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전에는 도외시되었던 공포와 혐오를 자아내는 묘사를 거리낌없이 함으로써 도덕의 구현이나 종교적 구원, 이념의 생활화 따위의 식상한 구호들과는 먼 거리의 현대인들의 좌절감을 그려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파편화된 이미지들은 어떠한 이데올로기나 총체적인 개념 제시보다 후기 현대사회의 인간들의 본질적인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이 현상은 전체적인 전망이나 총체적인 시도가 가지는 거대 체계의 허구성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써 제시되고 있으며, 동일성보다는 차이점을 부각해 본성의 차이를 비롯하여 사유와 구체적인 현실간의 차이를 드러내어 사유가 표방하는 진리, 합리화된 제도가 내세우는 목적 등과 상치되는 미세한 현상들을 부각시켜 그러한 사유와 제도가 갖는 허구성을 노출시키고자 한다. 또한 그것은 보다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현상에 접근하기 위한 시도로 정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20세기 후반의 등장한 특이한 소설 장르로써 메타 픽션을 살펴보겠다.   지난 60년대부터 서구의 소설들은 종래의 관습적인 소설 양식으로부터 탈피해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대신 소설은 자신에 대한 끝없는 회의와 성찰과 반성 속에서 스스로의 특성을 찾아갔다. 소설의 이러한 변화는 바로 소설이 더 이상 리얼리티를 제현할수 없으며 더 이상 진실을 제시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페트리샤 워는 '메타픽션'에 대해 "픽션과 리얼리티 사이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스스로가 하나의 인공품임을 의식적`체계적으로 드러내는 소설 쓰기"라고 지칭하며 이를 통해 "해석과 해체의 개념 속으로 혼합시킨다"고 하였다. 이는 위에서 서술한 예술 작품의 허구성을 인식하고 그를 밝혀 보이려는 시도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창작 행위 그 자체에 대해 극도의 자의식을 보여주게 되는데 작품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픽션이며 환영이고 작가의 인식이나 감정의 소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 그 자체가 현실이나 실제도 아니며 그러한 대상을 가리켜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대상에 대한 작가의 주관성의 투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작가가 만든 환영에 현혹되어 그것을 실제로 착각하면 그를 만든 작가의 의도는 은폐되고 일종의 우상 숭배 현상이 일어나므로 메타픽션은 그러한 허구적 노력들을 거부하고 작품을 작가의 의도로 환원시키고자 한다. 따라서 이 속에서 작가의 자의식은 극도로 개입되게 되어 있다. 또한 현대에 와서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의 권력 구조가 극도로 복합되있는 상태에서 진실과 허구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현대 소설의 저항 역시 복합적이고 불 가시적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메타픽션이 현실 도피적인 것은 결코 아니라고 워교수는 부연한다. 메타픽션의 자아반영적 요소 역시 작가들의 부단한 자기 성찰과 반성일 뿐 결코 현실 상황으로부터의 단순 도피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또한번 패러디의 효용이 언급되고 있다. 패러디는 곧 하나의 창작이자 동시에 비평이 되고 새로운 것이 고갈된 어떤 것의 말기 현상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의 탐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떠한 교훈적 의도도 없이 다만 관습에 대한 과감한 조롱과 통렬한 자기 반성을 통해 출구를 찾는 행위라 할때 메타픽션과 필연적 관계를 맺는다.     Ⅲ. 결론   이상으로 해체 이론의 이론적 토대와 그 현상 등을 살펴보았다.  해체 이론이 우리들로 하여금 그 동안 우리가 당연시해 왔던 모든 형태의 지배 문화와 지배 이데올로기의 합법성과 억압에 대해 새삼 회의와 의문을 던지게 해주었다는 점은 분명히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서구인들에게 자신들도 합리주의와 이성주의에 대한 심오한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도 쉽게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해체 이론은 또한 단순한 서구의 사조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사회와 문화 모든 분야에서 전세계에 절실하게 느껴지는 중요한 지적 움직임처럼 보인다..그것은 결코 진리나 전통을 단순히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진리와 전통으로써 그 동안 우리에게 부과되어 온 것들을 심문하고 외부로부터의 단순한 파괴가 아닌 내부로부터의 해체를 그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해체 이론은 모든 것을 텍스트로 축소시킴으로써 사회 정치적 역사적 담색을 소홀히 하는 단점이 있다. 또한 해체 이론은 텍스트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독자의 반응을 철저히 무시하거나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해체 이론은 창작과 비평을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비평이 창작을 압도하는 소위 비평 만능 시대를 열었다.   더욱이 해체 이론은 사변적 이론으로 인해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엘리트주의에 물들어 그 스스로 유리화를 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며 전통과 진리를 해체한 후 이번에는 자기 스스로가 또하나의 전통과 진리가 되어 갈 가능성도 보이는 것이다. 대안적 형이상학의 구축을 꾀하지 않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운동은 그것이 대항하고 있는 기존의 질서가 이후 역설들에 의해 일단 무력화되면,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되어 미세한 차이들의 세계로 만들것다. 한편, 이 차별화 전략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과 소비의 무한한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이용되고 있다. 새로운 유행의 창조와 광고를 통해 새로운 상품에 대한 구매 의욕의 자극이나 다품종 소량 생산과 같은 것이 그 구체적인 전략일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권위와 교조적 주체를 해체시켜 줌과 동시에 더 물을 수 없는 단절을 가져왔다.   포스트모더니즘을 통해 다양해진 세계상은 또한 그만큼 피해를 입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해체를 통해 이성적 우상들은 해체되었을지라도 해체라는 나름의 합리성을 가진 따라서 이성적인 로고스는 해체되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이성 중심의 로고스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은 자기 모순을 범하게 된다. 또한 다양성의 기치를 들고일어난 포스트모더니즘 문화가 상품화를 통해 제도 권의 지배 문화에 종속되어 스스로 자신의 토대를 허물고 있다는 점이나 저자의 죽음을 역설하며 해석자를 크게 부각시킨 포스트모더니즘 문화가 자기반영성 상호텍스트성 등을 통해 이를 이해하는 일부의 엘리트 해석자들에게만 호소력을 지닌 채 스스로 대중에게서 차단되어 엘리트 문화로부터 더 먼 거리를 보이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결국 자신의 논리에 묶여 새로운 논리로 세계를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략은 사회 내의 개인의 경우여도 마찬가지여서 차별성의 원리야말로 자아 동일성을 담보해 주는 원리이며 다양한 삶의 방식은 일관되고 공동체적인 삶을 방해하는 것으로 비난받는 것이 아닌, 오히려 끝까지 고무된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 내의 문화 전략으로 극단화되면 사회의 자기 분열의 상황까지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며 극도의 산만성, 집중성등으로 사회는 무책임한 자유방임의 무질서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해체가 극단화되면 주체가 해체되고 인식과 대화는 불가능해지며 객관성은 사라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철학도 자기 정체성을 잊고 세계의 유령으로 방황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체 이론은 탈 중심과 탈구축의 인식과 전략을 제시해 줌으로써 오늘날 기존의 지배 문화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문화와 현실에서 새로운 시각과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모더니즘의 정형들, 이성 중심주의, 근원 주의 과학 지상 주의 역사주의 세계의 총체화 대신에 파편화 불연속성, 다원화, 분산화등 탈 정형화 등의 폐쇄와 분리를 통해 인류 문화에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과연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것이 표방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혼란성과 더불어 문화 주체로서의 인류가 유념해 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영한, 임지현(편), , 지식산업사, 1994 뤽 페리, 알랭르노, , 인간사랑, 1995 김혜숙, , 이화 여자 대학교 출판부, 1995 이진우, , 서광사, 1993 윤평중, , 서광사, 1992 윤평중, , 교보문고, 1990 김성곤, , 열음사, 1990 김성곤 편, , 민음사, 1988 이광래, , 민음사, 1989 김동욱 , 현암사 김욱동 편, , 현암사, 1991, 이승훈 외, , 고려원, 1994 F.제임슨, , 정정호, 강내희 편, , 도서출판 터, 1989, 함세진, , 홍익 대학교 교육대학원, 1991     3. 데리다, 로고스의 언어를 해체하는 시퍼런 매스를 든 철학자  로고스의 언어를 해체하는 시퍼런 메스를 든 철학자     -『목소리와 현상』(자끄 데리다, 2006. 인간사랑)에 대한 서평         신승철 : 동국대 철학과 박사과정, 노동자의 책 집행위원            공역서 (이후, 2003),            저서 (중앙 M&B, 2005)    프랑스 ‘해체주의’ 철학자인 자끄 데리다는 2004년 10월 9일 췌장암으로 숨을 거두면서 에 마지막 기고문을 남긴다. 마지막 그가 남긴 말은 그의 최후의 앙숙이었던 하버마스와 화해라도 하는 듯, “과거의 계몽과 앞으로 올 계몽”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다. 그는 새롭게 열리게 될 계몽의 사회는 세계질서를 이분법으로 몰아가는 일방주의와 일류 공통의 적들의 논리를 극복하고,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최후의 그의 표현은 죽음의 목소리를 거부하고 삶의 목소리를 희망하는 데리다의 바램마저도 담고 있어 더 여운이 남았다. 2006년도를 예감하는 데리다의 책 『목소리와 현상』은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의 해체주의의 반격서이며, 의사소통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깨는 멋진 개념들로 구성되어 있는 상상력이 넘치는 책이다. 우선 그는 반복적 동일성의 재현과 상호주관성에 의해 형성된 객관성의 이념적 대상의 수반현전에 대하여 로고스의 언어이자, 실지로는 주체의 죽음을 의미하는 장소라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매개성을 거부하고, 삶이라는 직접적 현전 속에서 현상학의 기본개념들인 생, 체험, 살아있는 현재, 정신성 등의 개념을 다르게 해석하기 시작한다. 곧이어 그는 후설의 현상학을 재독해하면서, 우리가 말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데리다가 삶의 영역을 환원주의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데리다에 따르면 삶이라는 영역에서 타자와의 조우는 이상적 담화상태를 이끄는 동화같은 스토리가 아니다. 담화는 끝없이 불-안정적이며, 의식과 언어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그러나 이 복잡함의 해답은 단순한 하나로 결집되는데, 그것이 ‘목소리’라는 개념이다. 우리가 표현한다는 것은 그것을 연쇄적으로 표시하는 행위의 일부라는 로고스적 기호체제, 즉 글로 기록하는 행위로 대표되는 행위가 두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표현한다는 것은 표시가 아니라 말이며, 말은 일종의 몸짓이며, 혼잣말하는 고혼의 생의 절대적인 낮은 목소리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중얼거리는 독백이 외출을 할 때, ‘나’라는 주체와 ‘여기’, ‘지금’이라는 개념이 생긴다. 그러나 우리는 객관의 표시체제인 인칭대명사와 공간성에 익숙해져 있다.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를 내면서 바깥으로 그것을 전염시킨다. 이것을 발화와 매질, 음소, 음운 등으로 판단하는 이상야릇한 언어이론들은 우리의 신체에서 뿜어 나오는 숨결이 표현하면서 만들어내는 진정한 의미를 깨달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말을 들을 때, 타자에게 노출될 때 굳이 이념적 대상의 수반현전을 매개하지 않고도, 근원적 직관과 직접적 지각에 의해서 타자의 현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타자와의 관계가 발신자와 수신자의 피드백이라는 단순명제의 함수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관계는 표지를 필요로 할 뿐이다. 독백을 하는 사람들인 이 사람들은 상징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의 낱말은 상상된 것이며, 아무리 기호로 발화된 것이든, 인쇄된 것이든 현존하지 않는 비실재적인 것이다. ‘내면발화를 하는 나’라는 사람은 재현과 상상 속에서 자신을 표현할 뿐이지, 소통을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통을 절대화시키는 것은 기호질서를 삶에 이식하는 로고스적 언어이론에 충실한 것일 뿐이다. 오히려 우리는 줄곧 독백하며, 이따금씩 외출한다. 그것은 절대적 반복이 아니라, 차이를 늘 가지고 있는 반복이다. 절대적 반복인 이념은 표시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 표시라는 기호작용은 나의 죽음의 공간을 의미할 뿐이다. “동지, 자아비판 하시요.”, “판결을 속기하세요.”라는 기호작용의 공간은 사실 절대적 반복의 이념의 공간이자, 내면발화가 불가능하며, 상상작용으로서 여유롭게 외출하는 우리의 목소리가 불가능한 현시적 공간일 뿐이다. 살아있는 지금, 여기서의 경험과 지각이 모든 사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고 경험적 심리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초월적 삶의 근원성, ‘나’의 비가시성과 표출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기 없는 음향 상태로 말하지 않고, 혼을 가진 신체의 상태에서 말하며, 그러한 자기촉발로 인해 목소리가 된 그 낱말은 신체의 일부로서 변양된다. 그 낱말이 만일 말뜻이 부재한다고 하더라도 ‘아브라카다브라’처럼 대상이 부재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념화, 반복, 기표작용이 기록처럼 뚜렷하게 이루어지려면, 사실 나의 죽음이 수반되어야 하며, 어떤 무명씨에 의해서 쓰인 글을 모노드라마 형태로 번갈아 읽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데리다의 『목소리와 현상』은 죽기 전에 하버마스와 화해를 통해서라도 이루고 싶었던 진보의 희망을 다시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 사건 이전에 존재했던 하버마스와의 팽팽한 대결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창의적인 역작이라는데, 그 중요성이 있다. 2006년 초 이 책은 살아있는 데리다가 더 이상 그의 목소리와 호흡으로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표되었지만, 삶을 표현하려는 거장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의 상상계를 자극하여 도도히 시작되고 있는 열린 신질서를 꿈꾸게 하는 책이다.    4. 구축주의연구의 논리         1. 머리말 2. 구축주의 연구의 기본 논리 1) 다원주의 2) 언어 중심주의 3. 구축주의 연구이 방법론 1) 구축주의 연구의 방법론적 특성 2) 언설 분석의 방법 3) 언설 분석의 사회적 지향성 4. 구축주의 연구의 실례 1) 성격의 ‘규정과정’에 대한 분석 2) ‘카테고리 배치’를 둘러싼 언설과 현실 3) 가족에 대한 ‘역사사회적인 언설’분설 5. 한국교육에 대한 시사점 1) 언설과 교육 2) 가족과 교육 6. 맺음말     1. 머리말 변화와 다양성이 주도하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전 시대와 같이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진리만이 존재한다고 믿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또한 나의 입장이나 우리의 입장만이 옳다고 주장하기도 힘든 처지에 놓여 있다. 다양한 세계관과 기치관이 통용되는 가운데 자신의 입장이나 우리의 입장을 정리하고 선택해 나가는 것이 개인의 인생에서나 국가의 발전에서 모두 중요한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다원적인 현실을 전제로 하고 각자의 입장을 인정하는 구축주의적 시각은 현대사회의 여러 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구축주의적 시각의 기본적인 입장은 역사와 문화의 맥락 속에서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며, 절대적이거나 초월적인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유일무이한 본질이란 것을 부정하는 구축주의는 오직 하나만의 진리 혹은 본지리라는 것을 학문이 추구해야 할 지고한 목표로 보기보다는 학문을 구속하는 허구적인 것으로 본다. 구축주의자들은 우리가 현상을 이해하는 기본 단계인 ‘사실’ 자체를 다원화하고, 인식의 도구로만 여기기 쉬운 ‘언어’를 현실을 구성하는 힘을 가진 대상으로 탈바꿈 시키는 작업에 힘을 기울인다. 또한 ‘보편’이나 ‘본질’ 그리고 ‘실재’라고 여겼던 것들이 인간의 인식이나 활동에 의해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맥락 속에서 ‘구성된 것’임을 밝히는 과정을 통해서 본질주의나 실재주의가 가진 허구성을 드러내고 있다.   2. 구축주의 연구의 기본 논리 구축주의자들은 인간들 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속에서 형성되어 만들어진 ‘언설’이 원래부터 존재하여 왔던 자연적인 것, 혹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게 존재하는 본질적인 것으로 탈바꿈되어 버렸다고 주장하고, 언설(discourse) 분석을 통해 그것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밝히려고 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진리의 존재를 부인하는 구축주의는 상대주의적인 입장에서 전개되므로 다원주의적이며, 그 분석 작업은 언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 다원주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피상적인 겉부분뿐만 아니라 근원적인 본질이라는 것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본질주의적 사고방식은 일상적인 생활세계에서 상식에 속하는 것이자 건전한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진리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발상에 기반을 둔 것이며, 그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절차와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는 믿음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구축주의는 이러한 소박한 믿음을 의문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인간의 세계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방식과 그러한 이해과정에서 필요한 언어와 카테고리와 개념들은 결코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성격을 띠지 못한다는 것이 구축주의의 기본 관점이다.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특수성을 배경으로 태어난 언어와 인식방법을 토대로 보편타당한 진리를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구축주의 논리에서, 진리의 보편성이라는 것은 인간이 가진 소박한 믿음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구축주의자들의 주된 연구 경향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역동적인 과정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구조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연구자들이 많다. 그들은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지식이 형성되는 과정을 중시한다. 지식을 우리가 ‘소유’하는 대상이 아닌 서로가 ‘만들어 가는 행위’의 일부라고 본다. 따라서 구축주의 연구는 하나의 통일된 체계적인 이론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 간에는 다양한 의견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진리의 존재에 대해서는 모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는 구축주의자들이지만, ‘실재’에 대해서는 모두가 일치된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의견 차이는 ‘언설’과 ‘사회적 맥락’간의 관계와 비중의 차이에서 연유한다. 구축주의자들은 언어란 단지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기존의 언어관을 부정한다. 그들은 우리가 언어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이 바로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라고 본다. 인간이 세계를 사고하는 방식과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 틀을 제공하는 것이며, 언어로 구성된 ‘틀’이 그 안에 담기는 내용인 대상(세계)_를 지배하고 형성해 나간다는 것이다. 구축주의자들은 언어와 사회적 맥락 대한 그들의 입장에 따라 ‘엄격파’와 ‘맥락파’로 나뉜다. ▶맥락파: 언설의 형성에 사회적 맥락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고 보고 언어와 사회적 맥락 간의 관계를 중시함. 사회문제라고 주장하는 특정한 언설뿐만 아니라 그 언설을 둘러싼 사회적 배경도 설명변수로 삼는다. ▶엄격파: 언설’만들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택함. 언설만을 분석대상으로 하기 위하여 사회문제에 대한 언설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상태’에 대해 언급하는 대신에 그 상태를 기술하는 ‘언어적 카테고리’에 초점을 맞춘다. 2) 언어 중심주의 실재에 대한 구축주의자들의 다양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언설이란 단지 현실을 반영할 뿐이라는 기존의 수단적인 언어관에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현실은 언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구축주의가 내세우는 가장 기본적인 이론적 전제이다. 여기서 언설이란 ‘문장보다 길고 완결된 언어사의 단위’를 지칭하는 푸코의 용어이다. 언어론적 전환이라고 부르는 언어중심적인 관점을 ‘개념’과 그 개념이 ‘지시하는 대상’간에 직접적인 일대일 대응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소쉬르의 이론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구축주의자들은 소쉬르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언어가 우리가 세상을 파악하는 방식을 구조화하고 결정하며 ‘현실’은 심층에서 존재하는 언어적 관습의 소산이라는 설명방식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관념론에서 발하는 인간의 이성이나 실증론에서 말하는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존재가 아닌 언어를 중심으로 이론을 전개하는 것이다. ▶데리다: 형이상학적 관념들을 해체하면서 언어가 사고에, 수사가 논리에, 문체가 의미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함 ▶라일: 해체주의자들에 대한 비난을 긍정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언어를 통한 해체작업을 건축자재의 강도실험을 하는 건축기사의 작업에 비유함. 이전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고층건물이 급증하는 현대사회에서 건축자 재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필수 불가결하듯, 매스미디어나 정보매체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인식과 이론에 언어가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탐구가 필수라고 함. ▶오스틴; 언어가 현실을 구성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나타내는 개념 중의 하나는 ‘언어행위’의 개념이다. 모든 發話(발화)는 문법을 통하여 일정한 의미내용을 표현하지만, 그것에 머물지 않고 명명하기, 약속하기, 사죄하기, 경고하기 등과 같은 사회적 행위를 수행한다. 그러므로 오스틴은 언어가 단지 현실을 표현하는 정적인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현실을 창조하는 동적인 차원의 수행적(performative) 행위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언어행위의 기초를 쌓았다. ▶홀스타인, 구브리엄: 오스틴의 언어행위와 유사한 기술하는 행위(descriptive practice)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언어가 현실을 구축하는 구체적인 방식이나 언어와 현실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구축주의자들 간에도 이견이 존재한다. ‘언어 밖으로 통하는 출구는 없다’는 버(Burr)의 표현에서 잘 나타나듯이 절대적으로 언어에 중심을 두는 일군의 학자들이 있다. 또한 언어는 현실을 형성하는데 커다란 힘을 발휘하지만 언어만이 현실을 형성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라는 의견을 가진 연구자들도 있다.   3. 구축주의 연구의 방법론 1) 구축주의 연구의 방법론적 특성 지식이나 진실 혹은 리얼리티를 결정하는 요인이 객관적이고 초역사적인 기반 위에 존재한다는 기본신념을 가진 실증주의에 거리를 두고 언어가 현실을 구성하는 토대라는 전제하에 기본적인 연구방법론을 전개한다. 2) 언설 분석의 방법 구축주의적인 연구방법의 관점으로 교육문제에 적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는 교육문제를 둘러싼 언설을 대상으로 삼아 회화분석과 언설 분석을 동원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주로 회화 장면이나 TV프로그램과 같은 미시적인 자료를 소재로 한 분석방법이다. 둘째, 교육문제와 관련된 특정한 제도적 장면을 인류학적인 방법으로 조사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참여관찰이나 현장연구 방법이 이용된다. 셋째, 특정한 교육문제와 그 해결을 둘러싼 집합표상과 그 장면의 과정들을 추적하는 것이다. 주로 의회나 매스컴과 같은 공적인 기관에 의한 언설분표에 대한 조사가 이에 해당한다. 넷째, 교육문제를 둘러싼 집합표상의 역사를 언설사의 접근방법에 의해 조사하는 것이다. 이는 언설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의미한다. 3) 언설 분석의 사회적 지향성 구축주의의 관점에서 언설분석을 하는데 사회문화적 배경 자체를 연구 과제에서 제외하는 연구자들이 있는가 하면, 정치사회적인 변화를 지향하는 목적을 가지고 분석에 임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젠더나 동성애를 테마로 하는 연구자들 중에는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억압받는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진 경우도 잇다. 그들은 젠더나 동성애란 카테고리를 분석할 때 거기에 내포된 사회적 성격을 중요한 논점으로 설정한다. 또한 젠더나 동성애에 대한 본질주의적인 패러다임을 해체하고 대항적인 패러다임을 전개하고자 한다. 그들은 본질주의란 다양하게 존재하는 여러 특성을 시공간을 초월한 본질에 환원시키고 내부적으로는 동질성을, 외부적으로는 이질성을 절대화하는 사고방식이라고 본다. 본질주의적인 관점에서 보면, 동성애라는 성적 카테고리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서 문화와는 독립된 변수로 여기기 때문에 근대 서구 이외의 문화권에서 다양한 성행동을 이해하는데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한편 성(sexuality)을 ‘자연’이나 ‘본능’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맥락에서 형성된 사회적 관계에 의해 구성된 것으로 보는 구축주의는 ‘동성애적 해위’나 ‘동성애 정체성’을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구성물로 본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중세를 거치면서 동성애는 서구사회에서 비도덕적인 죄악이자 비합법적이고 종교상의 죄로 치부되게 되었다. 그러나 중세시대에 죄악시 되어 비난받고 처벌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동성애저인 ‘행위’에 국한된 것이다. 근대로 넘어오면서는 동성애를 의학적인 치료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동성애는 인간의 일부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전체적인 인격과 결부되게 된다. 그리하여 이전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동성애자’라는 언어적 카테고리가 등장하게 된다. 이 카테고리에 속하는 사람은 단지 ‘동성애적 해위’를 하는 사람( 그 행위 이외에는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에서 그 사람의 전체적인 인격이 ‘동성애자’와 등치되어 그 사람자체가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전환된다. 결국, 이 때문에 동성애자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은 본인 스스로 비정상적인 인간이라는 부정적인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말하자면 고대에는 동성애적 행위가 정상적인 범주에 속하는 평범한 것이었음에 불구하고, 근대 이후에 동성애적 해위를 보는 관점의 변화로 인해 ‘비정상적인 동성애자’라는 언설이 사회적으로 통용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동성애자는 유전적으로 혹은 성장과정에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고, 본인들도 스스로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축주의자들은 정체성을 그 사람의 내적인 본질이나 신체적 표면에 각인된 것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언설과 인간 간의 상호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구축주의적인 입장에서 보는 정체성이라는 것은 선험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언설의 실천’에 의해 언설 이전에 존재하거나 언설을 초월하는 불변의 본질과 같은 것으로 전환될 뿐이다.   4. 구축주의 연구의 실례 1) 성격의 ‘규정과정’에 대한 분석 ▶기타야마의 분석: 기존의 심리학에서는 성격을 인간의 심리 내부에 존재하는 일관성을 가진 것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기타야마는 성격의 일관성과 내재성이라는 것이 실재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언어로 상황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만화를 소재로 분석하였다. 성격을 규정하는 과정이란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을 이해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이자 우리가 보는 세상을 유의미한 것으로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보는 것이 언설 분석의 입장이다. 도한 이 세상에서 일어난 일을 이해하고, 이 이해를 바탕으로 사람들 사이에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필요할 것이 ‘언어화’ 라는 절차인 것이다. 즉 ‘언어화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에게 그가 속한 세상이 비로소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유동성을 가진 잠정적인 대상을 언어화 과정을 통해서 특정한 사실로 고정시키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자 세상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든 수단을 제공받는 것이다. 언어화 과정이란 인간이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필요불가결한 수단을 제공하는 한편 폭력성을 동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자기 이해’는 물론 ‘타자이해’를 가능하게 해 준다. 그러나 어떤 성격으로 규정되든 일단 특정한 성격으로 규정되면 그 틀 안에 갇히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도 하나의 폭력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나를 포함한 한 인간의 성격을 규정하는 과정은 그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을 빠짐없이 검토한 후에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 아니다. 단지, 그 사람의 일부분, 즉 단편적인 파편들이 이어져서 하나의 성격이 탄생하게 된다. 그 파편들이 어떤 식으로 이어지느냐에 따라서 어떤 셩격으로 귀결되느냐가 결정되는데, 언설분석에서 밝히려고 하는 것은 그 파편들이 이어지는 것이 언어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일단 규정된 이후에는 특정 성격이 다양하고 잠정적인 여러 결론 중의 하나가 아니라, 그 사람 내부에 존재하는 실체나 본질로 전환되어 버리고, 그 사람과 그를 둘러싼 관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사나 부모와 같은 ‘교육관계자’들은 자기 나름의 관점에서 이 아동은 이런 ‘성격’을 가진 아동이라는 추론을 내라고, 자신의 추론에 근거하여 그 아동의 행동과 생각을 분석하거나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곤 한다. 이러한 아주 일상적인 과정 속에서 아동의 성경은 실재로 존재하는 그 아동의 내부적인 속성이 되며, 그 성격의 단점을 고쳐야 한다는 방침에 다라 그에 대한 교육적 행위가 이루어진다. 물론, 교육관계자들이 교육을 행하는 데 대상이 되는 학생에 대한 이해과정은 기초적인 단계이자 필수적인 단계이며, 이를 근거로 교육적인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대상에 대한 특성이나 성격을 일정하게 규정하는 것에 대한 자각이 부족할 때, 이러한 교육적인 행위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폭력적이고 지배적인 측면을 간과하게 된다. 이러한 위험성을 확인할 때, 성격을 비롯한 교육현실과 관련된 것에 대해 규정하는 과정에 대한 언설분석이 유용하다. 2) ‘카테고리 배치’를 둘러싼 언설과 현실 ▶기타자와의 분석: 문제적인 현실을 규정하는데 핵심적인 부분을 이루는 언어적 카테고리는 해당 카테고리 자체에 누가 그 문제의 당사자인가에 대한 규정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누가 그 사태의 당사자인가와는 관련 없이 해당 사태의 당사자를 규정한다. 상식으로 통할 정도로 보편타당한 규정력을 가진 특정한 카테고리는 다른 카테고리가 적용되는 것을 배제하는 과정을 통해 독점적으로 특정한 현실을 규정하는 유일한 틀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것이 상식적인 판단이라고 믿는 한 우리의 일상적인 현실은 그 카테고리에 의해 자연스럽게 규정된다. 강력한 지배력을 갖는 언어적 카테고리의 현실규정력은 세상에는 ‘하나의 사실’이 존재할 뿐이라는 믿음과 결합하여 우리의 현실 판단을 형성하는데 핵심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3) 가족에 대한 ‘역사사회적인 언설’분설 ▶우에노의 분석: 근대적인 핵가족에 대한 언설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서 분석하였다. 인류학에서 가족이라고 부는 것이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특정한 정의를 내리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 데 비해, 사회학에서는 가족이 보편적인 것이라는 전제하에 가족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너무나 협소한 정의를 내라고 있다고 비교하였다. 그럼으로써 사회학 내의 가족에 대한 언설이 가지는 보편성의 토대가 취약함을 기술하였다.   5. 한국교육에 대한 시사점 1) 언설과 교육 구축주의자들은 지금껏 연구자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하였던 언어를 분석의 주 무대에 세운다. 그럼으로써 언어라는 것을 객관적인 실재가 그 속에 그대로 반영되는 거울 같은 것, 혹은 인간의 인식능력에 따라 좌우되는 도구 같은 것으로 인식해온 기존의 안이한 언어관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제까지 언어는 종속적인 자리에만 위치하고 언어가 가진 현실에 대한 구성력은 무시되어 왔다. 그러나 기타야마의 성격형성 과정에 대한 연구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언어는 상황에 대한 정의와 인간의 인식과 행동방향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또한 일상적인 생활이나 교육 장면과 같이 미시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교육제도라는 거시적인 차원에서도 구축주의적 관점에 의한 분석은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열이나 평준화제도와 같은 주제들은 대표적인 교육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단순한 교육문제에 머물지 않고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된 교육문제들을 둘러싼 논쟁들을 살펴보면 같은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서 서로 다른 전제와 논리를 구사하여 대치되는 주장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주장이 교육현실을 파악하고 문제를 진단하는 데 절대적인 우위에 서 있다고 명쾌하게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 예를 들면 평준화 제도가 학력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과학적인 논리와 통계적인 기법들을 동원한 분석들이 많이 시도되어 왔지만, 일관적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대치되는 결론이 양립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회문제나 교육문제는 그것을 탄생시키고 그 탄생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배경을 필요로 한다. 구축주의에서 말하는 상화작용 과정하에서 사회문제가 탄생한다는 것은, 바로 사회적 문제는 단지 그 문제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성립하지 않고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이를 인정하는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말한다. 기존의 관점에서 보는 사회문제라는 것은 세상의 여러 가지 객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존재론을 전제로 하며, 그 객체라는 것은 사람의 지각과 신념, 관념과 같은 경계선에 의해 구분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축주의는 이와 같은 기존의 전제를 뒤집는다. 즉, 실제로 무엇이 사회문제로 존재하는지를 우선시 하지 않고, 무엇을 사회문제라고 주장하는 논점과 언설이 사회문제를 구성하는 부분을 우선시한다. 구축주의자가 분석대상으로 하는 언설은 크게 지배적인 언설과 경쟁적인 언설로 나눌 수 있다. ▶지배적인 언설: 그 시대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배경으로 사회적 규범과 질서를 구성하는 언설. 남녀 불평등이 동성애자의 비정상성을 구성하는 언설을 테마로 하는 구축주의자들은 性(성)을 둘러싼 지배적 언설이 조성하는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질서를 만들어 내는 구성요소와 그 의미 그리고 역사사회적인 맥락을 밝혀낸다. 그럼으로써 지배적인 언설이 유포하는 보편성과 진리성의 제한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억압적 질서에서 해방을 지향한다. ▶경쟁적인 언설: 특정한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되는 주장들을 지칭함. 평준화 체제를 둘러싼 반대론자와 옹호론자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학력에 대한 평준화 효과를 둘러싸고 그에 대한 기본적인 상황 정의 및 문제의 성격에 대한 합의된 정의가 도출되지 않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교육문제를 둘러싼 갈등관계에 놓인 주장들을 분석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모색해 온 구축주의자들은 ‘무엇’이 문제를 가진 현상인가를 밝히는 대신, 무엇인가를 교육문제라고 주장하는 언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밝히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볼 때 교육학자는 교육문제의 범위와 정도 그리고 원인과 결과를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문제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과정은 2차적인 의미에 불과했다. 그러나 구축주의적 관점은 이와 정반대의 입장을 표방하면서, 교육학자가 아닌 관련 당사자가 직접 교육이 놓인 상태를 도덕적인 객체로서 구축하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을 인정한다. 동시에 관련 당사자들은 지각을 가진 주체로서 관찰회고 구축주의자들이 해석할 중요한 대상이 된다. 따라서 구축주의적 관점엣 보면 관련 당사자들이 상황과 문제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는 과정이 바로 연구대상의 중심이 되며, 관련 당사자가 행하는 해석작업에 대한 분석이야말로 연구의 최우선 과제가 된다. 왜냐하면 교육문제란 결국 관련 당사자의 관점이 집적되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준화 체제를 둘러싼 문제제기와 그에 대한 반론에서 구축주의자들은 반대론자들의 주장대로 학력의 하양평준화가 실제로 일어났는지, 아니면 옹호론자들의 주장대로 학력수준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상승하였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결론 도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각각의 주장들이 어떤 전제와 관용어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스타일로 전개되는지에 대한 언설분석을 시도하여 경쟁적인 언설들을 모두 해체하는 것이 구축주의자들(특히 엄격파)의 과제이다. 기존의 학자들은 전문가적인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제공해 줌으로써 문제해결 과정이나 정책수립에 직접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결론과 해석을 제공한다. 그러나 구축주의자들의 연구는 무엇이 ‘진정한’ 사회문제인지에 대한 원인분석과 해결책을 제공하는 대신, 사회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진 기본적인 관점은 어떤 것이며, 그 주장을 실제의 것으로 만드는 언설의 특징이란 무엇인지를 밝혀준다. 그러므로 구축주의자들의 연구는 문제라고 주장하는 언설에 대한 해체작업이자 재구성 작업니다. 이러한 구축주의자들의 작업 결과는 우리에게 바로 쓸 수 있는 완제품으로서 지식이나 우리가 따라야 할 지침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관점과 언설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제공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실재라고 믿고 있는 것,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것 그리고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해결책이나 목표들에 대해 재검토하고 재고찰하는 기회와 재료를 제공한다. 2) 가족과 교육 ▶ 우에노의 연구 근대적인 가족은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가지고 있을 분만 아니라 가족과 가정의 형태에 대한 규범으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핵가족 이외의 다양한 가족 형태가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바람직한 가족 형태의 단란한 핵가족이 가지는 이미지와 정상 가정과 비정상 가정이라는 이항대립적인 구도에 균열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핵가족의 지배력이 약화되는 가운데도 가족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와 구도가 가지는 공고함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차별적인 용어라는 비판 속에서 ‘결손가정’이라는 용어는 점차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지만 ‘이혼가정’이라는 일견 중립적인 용어로 보이는 카테고리가 구성하는 현실의 결론 부분도 ‘결손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손이라는 부정적인 용어가 이혼이라는 사실적인 용어로 대치되었다고 해도, 가족의 기본을 핵가족으로 설정하고 아버지의 엄한 지도와 어머니의 자애로운 사랑을 기본으로 하는 가정과 연관된 언설이 지배적인 언설로 살아 있는 한, 핵가족 이외의 가족이나 가정에 대한 판에 박힌 언설은 계속될 것이다.   6. 맺음말 구축주의자들의 언설을 중심으로 한 분석을 통해서 우리가 실재를 나타내 주는 중립적인 표현이라고 믿고 사용하는 언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를 갖지 않은 것이거나 중립적이기보다는 특정한 이미지를 강하게 내포한 것이거나 대로는 지배적인 질서를 만들어 내는 구성요소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구축주의적 접근 방법은 우리에게 언어 자체가 가진 현실 구성력과 사회적 성격을 자각하면서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 준다. 말하자면 진리나 현실이라고 ‘통용’되는 것에 구속되지 않고, 그것이 진리나 현실로 통용되게 된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개개인의 삶이나 사회나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좀 더 유연하게 바라보고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이 구축주의적 접근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축주의적 연구결과는 기존의 실증주의적인 혹은 관념주의적인 접근방법에서 제시하는 것과 같은 원인규명이나 대책수립에 필요한 지식을 직접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가 믿고 있는 것과 전제로 삼고 있는 것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재구성할 수 있는 참고자료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권위 있는 전문가가 교육에 대해 부여하는 정답이나 지침을 구하는 사람보다는 스스로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지침을 재점검하고 결정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구하는 사람에게 유용한 관점과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구축주의적인 연구 결과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구성적 실천의 신지평을 위하여    (포스트 알뛰세르주의 비판과 들뢰즈를 중심으로)                                                ...        “(...)때로 협상이 너무나 오래 지속되어 그것이 여전히 전쟁의 일환인지 아니면 벌써 평화의 일환인지 모르게 되는 경우가 있다. (...) 철학은 권력이 아니다. (...) 권력이 아니어서 철학은 권력과 전투를 시작할 수 없다. 그렇지만 철학은 그들에 대항하여 전투없는 전쟁, 게릴라전을 이끈다. 철학은 그들과 대화하지 못한다. 아무 할말도 없고 전해 줄 것도 없다. 그저 담판을 이끌 뿐이다. 권력들이 외적인 것으로 머물지 않고 우리 각자의 내부로 침투하는 것인 만큼 바로 우리 각자 스스로와 싸움을 벌이고 대담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철학 덕분에 ,                                                 -  들뢰즈의 [대담]중에서       序論    해체적 재구성을 평가하며     소련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맑스주의는 두개의 대칭적인 세계를 형성하는 체제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고, 변혁에 대한 지상 명제를 남겨둔채 ‘구천에 떠도는 공산주의 유령’1)이 되어야 했다. 1991년 말, 민주주의와 독재권력타도전선에서 대중 육박전이라는 시대의 ‘불꽃’은 개량/개혁주의의 흐름 속에서 소진되었다. 실존 사회주의의 몰락은 ‘스탈린주의 진영테제’에 근거한 국제적/민족적 연대의 환상과 희망, 혁명적 낭만주의의 현실적 의미를 퇴색케 하기에 충분하였다. 한국에서 맑스주의운동은 혁명의 이론을 국외로부터 번역하고, 수입한지 얼마 되지도 않는 채, 국제 맑스주의운동의 소실점을 보아야 했다. 남한 변혁운동의 비극은 스스로 실체를 형성하기도 전에 그 과정의 결과로서 질서 지워진 실존사회주의의 몰락을 직면함으로서 이중의 위기 즉, 기간 지상명제로 인식해 왔던 ‘국제 맑스주의운동의 위기’와 ‘계급투쟁이라는 현실에서 위기’를 이중적으로 맞이해야 했기에,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선택의 폭이 매우 협소해졌던 데 있다.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갓 출생신고를 마치지도 못한 맑스주의 이념조직들은 불운한 역사의 유제를 안고 표류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어둠을 일시적으로 맞이해야 했다. 그리고 운동의 핵심 지도부위구축을 위해 분투하던 사회주의운동세력의 움직임은 ‘생성에서 해체로’ 순시간에 역전되었다. 또한 계급지형은 대중운동의 물리력의 유실과 부르조아계급동맹의 강화가 가속화되어 그 결과로 의회민주주의를 포함한 정치적 전 영역이 총보수화되었다. 남한 맑스주의자들은 ‘실존 사회주의의 현실’과 ‘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 이념’간의 괴리를 느꼈으며, 동시에 맑스주의의 적자인 스탈린주의적 편향을 자신이 담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신의 조직운동을 통하여’ 또는 ‘자신의 이념을 통하여’ 거울반영으로 확인하였다. 남한 맑스주의운동은 외부로부터의 사상적 도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으며, 실천적으로 이를 구체화시킬 수 없었던 상태에서 이론/실천적으로 이중적 딜레마를 안고 있었다.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문제의식은 “현실운동의 역전을 기약하며 이미 파산난 맑스주의이론의 원칙들에 대한 현실적 재해석 및 수정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괘도에 오른 사회주의운동을 복원하고, 맑스주의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함으로서 합리적 핵심을 구출하는 이론적 재구성작업을 수행할 것인가?” 협소한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전자의 실천은 한국노동당을 통하여 실물화되는데 일차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는 의회라는 공간과 법 테두리 내에서 부르조아 정치와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역동하는 노동자계급운동에 기반하지 않은 채, 부르조아 정치에 대한 개입의 여지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되는데 그치고 말았다. 후자의 운동세력들은 ‘비극적 숭고미’를 안고 맑스주의의 내재적 모순으로서의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나아간다. 먼저 이들은 70년대 서구 지식인들이 던졌던 역사적 질문 “소련사회를 이루고 있는 사회구성체는 무엇인가?”라는 동일한 질문을 던졌는데, 이러한 문제제기는 현존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구체적 역사와 연관되거나 포함되어 혹은 중첩되어 사회주의 붕괴는 “맑스주의내에 스탈린적 편향이라는 내재적 모순의 폭발한 것” 또는 “타락한 노동자의 국가/국가자본주의가 사회주의라는 허위이데올로기를 벗어 던지고 추악한 실체를 드러낸 것” 등으로 해석하게 된다.2) 그런데 이러한 해석의 과잉속에서 더욱 분명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현실운동을 역전시키기 위한 전략의 재구축이라는 문제틀에서 시작한 논쟁이 현실운동의 흐름의 변화를 주도했다기 보다는 계급대중운동의 현실과 괴리되거나 멀어졌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 마치 유럽지식인들이 스탈린정당과 맑스주의에 대한 환멸을 던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맑스주의운동의 중심적 설정이었던 프롤레타리아운동으로부터 이탈하는 흐름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포스트 신사회운동의 문제제기의 요지는 “맑스주의는 이미 마지막 숨을 내쉬었고, 이러한 종말에서 이제까지 간과했던 새로운 영역에서, 새로운 방식의 운동의 대안을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맑스주의의 대부분의 논의는 ‘헤겔에서 맑스로’ 이어지는 이념의 전체주의적 성격에 대한 비판과 해체의 작업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헤겔의 이성주의가 부르조아 국가이성의 거대체제담론이며, 이러한 전통을 계승한 “맑스/레닌/스탈린의 이론은 헤겔과 동일선상에서 국가라는 거대한 억압기구를 용인한다”라고 보았다. 이들의 포스트모던한 설정은 근대이성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대이성을 재구성하려는 과도기적 시도로 ‘근대적 이성주의’를 반대한다. 그런데 ‘반이성주의’담론은 헤겔의 이성주의를 실제적으로 돌파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이것에 대한 반진동으로서 정치적 허무주의, 국가이성에 동전의 양면으로의 시민운동이라는 또 하나의 모던한 ‘이성주의’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해체주의가 프롤레타리아운동의 대안적 운동이라기 보다는 프롤레타리아운동의 역사적 변질에 따른 소실점을 의미한다는데 이유가 있다. 대부분이 좌익 활동을 경험하던 해체주의자들은 실물적/정치적 최종결론으로서 맑스주의운동의 역사적 현존이었던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또는 모순)에서 비롯된 탈중심적 정치지형의 현실과 만나게 된다. 그런데 90년도 초엽 합종연횡0하던 해체주의의 열풍이 ‘찻잔 속의 태풍’이 되어 잠잠해졌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해체주의가 의도했던 것은 “근대적 맑스주의를 완전히 땅에 묻고 다시 시작하자”는 것인데, 해체주의자, 스스로가 맑스주의에 열광하고, 신뢰하던 대중들이 가졌던 환멸감이 그만큼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주의/정치허무주의라는 탈정치화된 후기 자본주의의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더 자신의 정치가 부르조아정치와 준별점이 사라지고, 흡입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헤체주의자들은 실물적인 현존 사회주의 몰락이라는 ‘탈근대’의 시점에 도달하자마자 탈중심의 상태로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적이기 이를 데 없는 ‘자본의 변증법적 통일’ 즉, ‘전지구화되고 전일화된 자본주의’의 출현을 목도해야 했다. 이때 점차로 해체주의의 동시대에 대한 저항성은 사라지고 후기자본주의의 시대이성을 담지하는 역할로 이행하게 된다. 포스트 산업사회로 나아가면서 자본주의 국가는 “작고 강한 정부”라는 신보수주의적 형태로 사적 영역인 학교/정당/노동조합/시민단체등을 광범위하게 개입/통제하고, 케인즈적 복지국가로서의 자신의 역할인 공공의 이익이라는 거추장스러운 부담을 자본의 요소로 재편함으로서 자본의 축척과 사회적 재생산에 있어서의 내재적 모순과 위기를 세련시키고, 조절하려 하였던 것이다. 후기자본주의야말로 생산에서 정치/교육/제도/문화에서 자기모순을 피상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완충장치들을 형성하는 탈근대의 주체가 되었다. 근본적 변혁이 아니라 그야말로 포스트모던한 부르조아 개혁주의에 열광하며, 신사회운동 바로 자신이 후기 자본주의국가에 종별화된 시민사회의 새로운 운동주체임을 신선한 미풍처럼  느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주도한 것은 개혁을 염원하는 시민운동이 아니라, 후기자본주의로의 진입한 노동자계급에 대한 실질적 포섭의 경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본이었다. 후기 자본주의의 특징은 노동자계급을 노예화시키기 위한 자본의 전략이 더욱 전사회적으로 확대됨으로서 자본은 더욱 자신의 억압적/착취적/약탈적 성격을 드러낸다는데 있다. 자본의 운동은 ‘포디즘의 체제에서 포스트 포디즘체제로의 이행’을 통하여 생산의 현장에서 자본의 이해에 맞게 산노동의 힘을 축출하고, 철저히 핵심노동자와 다수 주변화된 노동자를 분할/견인함으로서 노/노간의 경쟁 속에서 노예화시키려 한다. 후기자본주의는 자본가계급의 최종목표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즉, 자본주의 체제수호의 최후의 관문은 노동자계급의 조직된 힘을 분쇄하는 것이다. 후기 자본주의는 대중을 경쟁이라는 집단적 정신분열증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이는 현실에서 자본이 산 노동에서만 창출된다는 본질적 진리를 은폐시키고 산 노동의 단결된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중세시대의 연금술적 착란증상과는 달리 노동자계급의 힘 즉, 산 노동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대공장 노동자에서 사회적 노동자로의 더욱 확장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동시에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전사회적 확장이자, 전지구적 확장은 역으로 골리앗과 같이 더욱 더 거대해져 가는 사회적 공장을 형성할 뿐이다. 후기자본주의는 사회적 생산이라는 사회의 모든 영역이 최종적인 잉여가치 창출을 위한 자본주의적 가치로 광범위하게 재조직화되기를 강제하며, 동시에 사회 속에서 노동하는 모든 대중이 자기 스스로 노동의 주체성을 인식하지 못하게끔 은폐하려 한다.3)  그러므로 시대이성으로서의 해체주의는 반이성주의의 한계개념으로서의 국가이성에 대한 극복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주의 몰락이후 가속화된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주요한 특징인 ‘정치적 허무주의’와 ‘대중의 노예화 현상’을 단순히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동시에 저항담론으로서의 해체주의는 맑스주의가 간과했던 측면들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의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영역에서의 실천이 실물적인 즉, 외재적인 간섭과 관계를 제거한 채로 - 현상적 괄호치기를 통하여 -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보게 되는 물활론적인 인식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것은 노동의 한 부분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물신화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예컨대 자본주의 환경파괴의 주된 피해자인 동시에, 환경운동의 실지 주체는 노동자계급대중이며, 여성운동 또한 그것의 특수함에도 불구하고 부르조아여성운동이 여성주의의 외피에서 한치도 전진하고 있지 못한 현실은 주목되어야 한다.  이성적 인식의 불투명/불확실성의 시대 속에서 확실성에 대한 탐구과정은 감성적 대상으로 회귀과정으로 나타난다.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파괴적 비인간화에 대한 진단의 한편으로 인간해방이데올로기가 형성되는데, 과소인간적 설정은 과잉인식의 동전의 양면으로 언제나 구조화되었다는 것을 독일고전철학의 정치적 퇴행으로서의 포이에르바하로의 이행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4) 포스트주의의 다양한 논쟁은 과잉담론과 과잉문화/과소인간의 용두사미(龍頭蛇尾)한 실천을 즉, ‘대안’, ‘새로운~’, ‘선택’ 등의 미사어구에도 불구하고 이에 못 미치는- 실천을 특징으로 한다. 이들의 전체주의 비판을 실물적 현실운동을 통하여 개방적인 지평으로 나아가게 추동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분열된 부분이 살아서 움직이는 원초적인 마니교도적 의식을 ‘통과제의’라고 칭하며 ‘특별한 인식의 원리’로 가공하였을 뿐이다.5) 최근에 포스트주의와 해체주의가 실제 운동에서 자기 스스로 매장한 맑스주의를 다시 언급하기 시작하는 것6)은 맑스주의를 또다시 부관참시(剖棺斬屍)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맑스주의에 대한 조용한 교류를 통해 해체주의 자체의 현실운동에서의 한계를 진솔히 승인하는, 동시에 진정한 대안을 찾기 위한다는 본래의 취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또한 ‘해체주의’의 이론적 한계대상이자, 실제적인 당사자로 볼 수 있는 동구와 구소련 영토에 공산당과 좌익의 재복권 현상은 단순히 선택의 폭의 문제나, 과거의 향수로 치부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원한과 부정, 반진동이라는 해체적 흐름인 탈 근대적 시대이성의 소실점을 의미한다. 70년대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가 서구 지식인들에게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을 이념적으로 해체하게 했다면, 90년대 더러운 전쟁인 ‘유고 내전’과 추악한 제국주의 러시아독립국가연합의 ‘체첸침공’에서 동구사회의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희망 또한 해체를 겪었던 것이다. 우리는 맑스주의운동의 ‘해체적 재구성’이라는 기획에서 출발하거나, 정치적 비관속에서 맑스주의 운동외부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이론적 편력에 종착지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역사의 지각변동에 의해 동시에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들뢰즈의 ‘구성적 유물론’에 대한 제안은 동시대적인 해체된 운동의 흐름에 대해 ‘실천’이라는 발본적(拔本的)인 문제제기를 던지는 것이다, ‘실천’과 ‘구성적 주체’의 제안은 또한 서구 지식인의 해체주의와 포스트주의 흐름을 자체 내에서 마침표를 찍는 것이기도 하다. 실물적인 맑스주의 운동은 기존의 실천적 전통에서 절단된 채로 복원될 것이다. 오늘날의 맑스주의운동은 맑스/레닌주의라는 구 사회주의이론의 전통으로 협소화되고, 교리화되기를 바라는 - 자신은 결코 레닌이 될 수 없었던 레닌의 충복(忠僕) - 스탈린의 생각과 달리 다양한 이론적 지평과 실천의 전통에서 형성되고 실재화될 수 있다는 개방성을 가지고 있다. 노동계급대중운동만이 이제까지 죽은 것, 창백해지고, 사멸하는 것이 산 자를 지배하는 것, 과거의 원한이 삶의 긍정을 훼손하고 실천적 구성을 억압하는 것, 실천으로 단련되고 실천으로 나아가는 발전의 과정을 이론의 권위와 전통으로 바꾸는 것등의 실천적 한계를 과감히 전복하고, 돌파하고, 극복할 것이다. 모든 주어진 현실을 승인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과 투쟁을 통하여 돌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때 절단된 맑스주의도 다시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7)                          바로 만물의 원천 헤라클레이토스의 불꽃을 통하여!           만물의 지혜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을 통하여!   만물의 구성 디오니소스의 불꽃을 통하여!   本論   1. 後期資本主義의 諸問題         가> 一般的인 現象들  헤겔에 의해 완성된 근대자본주의의 노동은 살아 있는 실천이자 긍정적인 구성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로서 법 앞에 권리를 보장받아야 할 대상이었다. 노동은 시민의 원초적인 권리이며, 이성의 내부에서 인정투쟁이라는 부정적 가치를 부여하였다. 긍정적인 것은 국가이며 법인 이성일 뿐이었다. 노동의 존재는 자본의 존재의 사법적 질서와 분리되어 비대칭적으로 존재한다. 두개의 계급이 실존하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제헌적(制憲的) 권능(權能)의 잠재력을 가진 존재이다. 현대의 노동은 자본이 생산/재생산의 영역에서 거대한 사회적 공장을 조직함으로서 거대한 공룡(dinosaurs)이 되었다.      “노동시간 - 단순한 노동량 -이 자본의 유일한 규정 요소로서 제시되는 정도에서 직접적 노동 및 그 양은 생산 - 사용가치 창출 - 의 결정적 원리로서 소멸하며, 양적으로는 좀더 작은 비율로, 질적으로는 불가결하지만 한편으로는 전반적인 과학적 노동, 자연과학의 기술적 적용과 다른 한편으로는 총생산 속에서 사회적 접합에서 나오는 전반적인 생산력과 비교했을 때, 종속적인 계기로 축소된다. 이처럼 자본은 생산을 지배하는 형태로서 자기 자신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8)     자본의 노동에 대한 ‘형식적 포섭단계’에서 자본은 경영인이자 관리자의 형상으로 생산에 개입하고, 외재적인 유동자본으로 존재하는 노동을 생산관계내에 결합시키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실질적 포섭단계’에서 자본은 과학/기술을 발전시킴으로서 스스로 새로운 노동과정을 창출하고 이러한 내적인 힘으로 노동을 포섭한다. 실질적 포섭의 단계에서 자본은 사회적 재생산을 통해 숙련되고, 교육되고 훈련된 사회적 노동자를 요구하고, 공장과 사회는 이에 조응하여 결국 자본은 사회적 자본으로 전화한다. 자본 스스로는 유통자본의 형태로 노동과 매개하며, 노동은 독립변수로서 자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기계의 도입을 통하여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유기적 구성도의 강화는 자본의 이윤율 하락의 위기를 형성하는데, 이것을 상쇄하는 요인은 자본이 전사회적 공장화로의 변형을 통해서 창출된다. 자동기계의 시대는 사회적 노동의 과정 속에서 잉여가치를 획득하며, 이것의 형태는 노동의 유연화를 통해 핵심노동자를 최소화하며, 사회적 노동자에게 평균필요임금이하 임금을 지불하고, 착취밀도를 조밀함과 동시에 사회적 근육인 유통과 분배의 조직화를 통하여 가치창출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후기자본주의에서 자본이 생산의 사회화를 이루는 진정한 이유는 집합적인 대중노동자에 대한 조직적인 역능을 분쇄함으로서 산 노동의 구성적 힘을 축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후기자본주의의 소재량적으로 본다면 내포적 축척의 형태를 띠는데, 자본의 외연적 확장인 대공업적 생산방식에서의 가치창출은 단지 생산의 현장에서만 이루어졌지만, 내포적 생산형태에서는 全사회적으로 이루어진다. 외피적인 소재는 축소되지만 자동기계에 이전되는 사회적 가치밀도가 강화되고 유연화됨에 따라 자본주의의 가치창출은 사회 전 영역에서 이루어진다.9) 자본의 사회화된 특징은 자본주의를 위협했던 대중노동자인 산 노동의 조직된 힘을 생산의 현장에서 축출함으로서 유기적 구성도를 강화하는 경향이며, 동시에 사회의 유연화를 통해 착취밀도를 강화함으로서 이를 상쇄하려는 것이다.  후기 자본주의국가는 만성불황의 연속 속에서 위기를 스스로 창출하고 조절하는 위기국가의 형태를 띤다. 또, 사회는 자본이 고도로 추상화되고 사회화됨으로서 전사회적 영역은 기존의 국가로부터 자율성을 갖는 시민사회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 노동자 일반으로 존재하게 된다. 국가의 광범위한 시민사회의 포섭의 작용의 결과로 진정한 의미의 시민사회는 종말에 이르고, 자본주의 국가가 스스로 창출한 가공의 시민만이 존재하게 된다. 노동자계급의 노동은 더욱 생산에서 부차적인 요소로 나타나는데 이는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배제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성불황과 경제위기에 대한 자본의 명분은 실지로는 산 노동 힘을 전면적으로 배제하고자 하는 욕구의 직접적인 표현인데 즉, 더이상 단체협상도 배제하고 파업에 대체근로로 맞서고자 하는 것이다. 자본은 1> 고용불안의 결과로 단체교섭의 조건을 악화시키고, 2> 국가의 단체교섭의 거부 3> 자동기계를 통한 작업장의 제조직화를 통한 생산에서 일부 노동의 축출10)이라는 노동자조직의 배제와 미조직화된 사회적 노동자의 매개라는 변증법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는 교섭 파트너로서의 노동조합의 입지약화시키고 자동기계와 컴퓨터의 도입을 통하여 생산지대를 사막지대로 만들고, 사회적 노동자를 생산에서 우연적이고 화폐라는 추상화된 형태로만 매개하려는 것이다. 노동만이 유일한 잉여가치창출의 근원이라는 본래적 의미는 물신화되어 마치 생산에 종속변수로 나타나며, 유통/교환조직을 통하여 사회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자본의 정치경제학은 마치 객관을 가장하여 나타나지만 노동의 논리일 수 없다. 자본은 노동의 유연화를 강제함으로서 산 노동의 힘을 약화시키고 노동자조직을 분쇄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비대칭적으로 제헌적 권능을 담지한 더욱 거대한 사회적 노동자의 창출을 의미할 뿐이다. 자본은 산노동을 노예화시키고, 노동자계급간의 분화와 경쟁사회를 통해 미분화시키려 한다. 노동자계급은 가시적으로 존재하는 생산의 영역은 더욱 축소된 핵심노동자로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고, 이것마저 불완전한 매개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노동의 종말’로 보여지기도 한다.11) 이는 대공업적 생산방식에서 창출된 대중노동자의 시대의 종말이며, 동시에 더욱 강력한 사회적 노동자의 시대의 개막을 의미하는 것이다. 노동의 제헌적 권능이라는 잠재력은 사회적 노동자의 구성적 실천에 의하여 더욱 실재적인 힘을 이루는데 자본은 이것을 탈중심화시키고, 탈구성화시키기를 희구하며, 경쟁이라는 분열로 나아가기를 획책한다. 사회적 노동자의 존재자적 차별성과 자기운동의 구성적 실천은- 자본은 그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 제헌적 권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후기자본주의에서의 사회적 노동의 구성적 힘은 꼬뮤니즘의 전제조건이 이미 성숙해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나> 勞動者階級의 中心性문제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의 문제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마치 시민의 권리로의 일부의 중심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후기 자본주의국가는 작고 ‘강한 정부’의 형태를 띠는데, 국가가 자본에 대해서 완전고용과 복지국가, 수요창출이라는 형태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신자유주의와 양날의 칼인 국가권력이 정당/교육/언론/노조 등에 대하여 탈중심적으로 개입하여 행정기관화시킨다는 신보수주의를 내용으로 한다.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축소되거나 소멸함으로서, 국가는 개혁/개량주의를 통해 국가의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 시민에 이해를 가공한다. (예컨대 시민의 발을 볼모로~, 국민을 위한~) 노동조합은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매개됨으로서, 또한 자본의 배제의 칼날앞에서 진정으로 노동의 대표자로서 역할의 한계와 사회적 노동자의 구성적 주체로서의 노동자조직이 되기에는 한계를 드러낸다. 자본의 사법질서는 노동의 제헌적 권능의 잠재력을 철저히 배제함으로서 존재하고, 신자유주의의 투명성은 무차별적으로 자유롭게 포획하는 경찰/억압기관의 자유로서만 가능하며, 차별적으로 존재하는 노동자에게는 비자유주의적인 억압과 통제를 의미할 뿐이다.12) 노동의 중심성은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으로서의 중심성의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소멸 속에서 구성적 주체로서의 중심성이자. 사회적 노동자의 창출이라는 의미로서의 사회적 중심성이다. 조절이론은 ‘주체없는 과정’으로서의 자본의 위기조절능력을 분석하면서 실지로는 탈중심화된 자본의 객관적 운동으로만 이를 분석하였을 뿐이다. 이렇게 객관적인 지위에서 구조만을 분석할 때, ‘조절국가’가 아니라 ‘위기국가’라는 후기자본주의의 개혁/개량주의적 계획적인 통치모델의 본질을 인식할 수 없으며, 동시에 구성적 주체로서 노동의 중심성을 간과하고, 산 노동이 ‘국가의 자율성’으로 말미암아 ‘국민을 위한’으로 시민의 권리중의 일부로 간주되게 한다.13) 후기자본주의의 돌입은 만성불황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이것은 산노동의 상대적/절대적 궁핍화를 가중시키고, 경쟁사회에서 이탈하지 않게끔 사회적으로 재조직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경제위기, 파산으로 달려가는 듯한 불황은 이후 만성불황의 단지 시작일 뿐이다. 자본은 끊임없이 경쟁사회라는 노예화의 논리를 재생산하고 교육시키면서, 산노동의 힘이 분쇄되는 날을 염원한다. (그럴 수 있을까?)       다> 後期資本主義의 文化    후기자본주의는 포스트 포디즘사회로 전화되어 포스트모더니즘을 자신의 문화를 창출하는데, 이러한 문화의 흐름은 극도로 인위적으로 재현된 하나의 시뮬라르크를 형성한다. 이것은 문화구성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일체화된 주체의 인격적 표현을 거부함으로서 실재하는 존재와 거리를 갖는다. 사회적 타당성의 범위 내에서 노동, 성, 인종, 지향성, 욕구, 가치, 성격 등이 극도로 비인격적인 탈중심화된 자율구조로 나타남으로서 실재하는 존재의 인격과 다양한 차이들을 도리어 사상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조결정론은 주체들의 연약하고 회피적인 풍경을 형성한다. 이러한 어떤 필연적이고 목적론적인 기호가 없는 미시적이며, 균열된 비일관성의 정치적 의미는 미결정성에 있다. 들뢰즈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대상으로 하는 분절화된 주체성은 정치적 구성의 새로운 주체로 간주될 수 있다고 본다. 즉, 미시적인 영역과 거시적인 영역을 융합하는 적극적인 노동운동이 이를 극복할 것이라고 본다.14)  후기자본주의의 상업문화는 문화/기호/욕구체계를 식민화 시킨다. 인위적인 시뮬라시옹으로 재현되는 상업문화는 일상과 역사적 성과물에 대하여 약탈적, 종말론적, 파괴적인 형태를 띤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적나라한 통찰’은 구조결정이라는 요소를 전도시키고 제거한다면, 일상과 정치를 넘나들 수 있는 주체의 다수성과 존재론적 차이를 가진 인격체로서의 모습을 비로소 갖게 되었다는 것에 있다. 이것은 구성적 주체의 실천적 몫이다. 이데올로기의 자율성이라는 문화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와 구조주의의 신화를 제거하고 진정으로 과잉된 차이를 지닌 다수자의 존재를 진솔하게 다룬다면, 문화는 쉽게 산 노동의 진정한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산 노동의 구성적 실천은 일상과 정치와 문화의 경계를 결합하는 것, 이론적이고 전형적인 개념으로서의 문화, 전도된 문화가 아니라 실재하는 산노동의 적극적인 발산과 표현으로서 문화를 위해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       (....)번즈는 시골지역이나 노동계급의 환경에서 여성을 찾아내려 했다. 한사람이 하버마스에 대해 묻는다  “이론이 뭐죠” 엘마투미가 묻는다. “그건 사물에 대한 일반적 설명인데, 그 설명은 당신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또 사물을 올바르게 놓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말해 줍니다.” 알튀메트가 용감히 대답한다. “군인들이 우리를 죽이지 못하게 하세요” 씹는담배에서 나온 검은 타액을 뱉기 위해 고개를 돌리며 그녀가 말했다.  알튀메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알아요 알마투미, 당신의 말뜻을 알아요. 하지만 합리적 정당화는 우리의 대담자가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타당한 개념을 사용하면서 우리의 경우를 말할 것을 요구합니다. 모르겠어요?”    “당신의 나라는 부자고 우리는 가난하다는 것을 압니다. 군인들 뒤에 있는 큰 차를 탄 사람들을 나는 압니다. 당신이 그것에 관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이 당신이 말한 단어로 정당한 겁니까?”15) 2.포스트알뛰세리안의 失墜와 들뢰즈     가> 초기/후기알뛰세르의 問題提起들    소련사회주의의 붕괴를 전후하여 알뛰세르주의의 수입은 대중운동을 지도하는 조직체가 부재한 상황에서 이론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맑스주의운동에 대한 새로운 재구성의 요구에서 시작되었다. 80년초반에 변혁을 고민하는 지식인들은 불법화된 맑스원전보다 먼저 종속이론, 그람시, 알뛰세르등등을 읽었다. 그러나 90년초 알뛰세르의 논쟁과 문제의식이 공개화되고 전면화된 것은 현존 사회주의 붕괴와 관련해서 였다. 알뛰세르의 대표적인 초기저작들 [맑스를 위하여]와 [자본론을 읽는다]는 맑스주의이론의 창조적 생산, 역사적 유물론의 재구성이라는 희망찬 기획과 열정을 안고 국제 맑스주의운동에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여러 가지 편향을 내포하고 있었는데, 현실운동에서 이론가집단으로의 퇴각이라는 가장 직접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기존까지 맑스주의는 계급대중운동에 외부에서 자신의 전략과 과학을 주입하는 위치로 인식되고 있었으며, 이것은 알뛰세르의 ‘이론적 실천’이라는 테제에서도 집약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이론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계급대중운동과의 유기적인 연관관계의 끈을 현실운동에서 발견하지 못할 때, 스스로 학문의 일파로서 강단으로 향하게 되는 결과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알뛰세르의 ‘이론적 실천’이 그리고 ‘이론적 실천의 이론’이 -알뛰세르 스스로 인정하듯이- 이론의 후퇴적 설정으로 나아가게 했다는 것은 알뛰세르가 과학/철학의 분리된 문제틀속에서 과학/철학이 동시적으로 대상으로 하는 직접적인 물질, 현실운동을 ‘경험주의’적 요소로만 사고한 지점에 있다.16) ‘혁명적 이론없이 혁명적 실천 없다.’는 그 유명한 테제는 이론의 실천에 대한 항시적인 우위성과 함께, 이론의 검증과정으로서의 실천이라는 실천의 명제에 대한 협소화를 낳게 되었다. 즉, 중심적인 것은 이론적 전통과 전략의 확립이며 부차적인 것은 이를 검증할 만큼의 현실운동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편향은 알뛰세르가 맑스주의의 역사 속에서 내재한 제 2인터네셔널부터 시작된 맑스주의의 내재적 모순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뛰세르의 역사적 유물론의 재구성과 과학적 개념의 생산의 계획은 알뛰세르 자신의 독창적인 기획이며, 당시 교조화된 맑스-레닌주의의 전통 안에서 계급운동의 위에 군림했던 프랑스 공산당에 대한 실망과 변화가능성을 모색하던 청년 맑스주의자들의 시대적 문제의식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초기 알뛰세르는 ‘이론내 계급투쟁’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당시 유럽내의 다양한 이론 - 특히 구조주의/정신분석학등 - 에 대한 유물론내에 포섭을 성공함으로서 이론 진영에서의 압도적인 우위라는 빛나는 길을 창출하였다. 그러나 당시 정치지형하에서 노동자계급운동과 소련의 지도를 받던 프랑스공산당 내의 모순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알뛰세르의 이론적 기획은 당내에서의 비판세력으로의 알뛰세르의 입지-현실적으로 독자적인 조직적 실천이 아니라 -를 표현하는 것 뿐이었다는데 한계가 있다. 프랑스공산당은 스탈린주의정당과 마찬가지로 당내 비판적 지식인을 주기적으로 축출하였으며 항시적으로 민주집중제의 원칙에 따라 이미 결정된 지도에 벗어나는 새로운 정책과 입장을 배제하였다. 또한 68년 혁명과 같이 노동자계급과 학생운동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던 시기에 이러한 운동이 자본주의체제의 부정이라는 극렬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게끔 - 당에 의해 지도되고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 노동자파업에서는 현장복귀를, 학생시위대와 노동자시위대의 철저한 분리를 유지하려 했다. 당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제출한 정책은 혁명적 대안의 수립으로 달려가고 있었음에도 이러한 요구는 무시하였으며 68년 혁명의 불꽃은 무정부주의, 마오주의, 아나코 생디칼리즘이라는 규정 속에서 소실되었다.  프랑스에서의 68년 혁명의 패배이후에 지식인사회는 맑스주의전통의 밖으로 방출되었다. 많은 젊고 야심에 찬 맑스주의자들은 맑스주의의 영역 밖에서 해체되고, 침묵하거나, 분열되었다.17) 이러한 불운한 상황에서 후기 알뛰세르는 초기에 제출한 계획과 문제제기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즉, 맑스주의내에는 ‘국가론’과 ‘조직론’이 부재하며, ‘맑스주의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18)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위기의 이유를 맑스주의이론 내부에 맑스주의의 정치이론의 부재에서 찾았다. ‘맑스주의의 위기’는 맑스주의가 자신의 역사속에서 프롤레타리아의 고유한 정치이론을 생산하지 못하였다는데 있으며, 그러므로 맑스주의는 당대의 정치를 조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후기알뛰세르는 맑스주의를 역사과학에서 계급해방의 이데올로기로 변경하였으며, 맑스는 역사적 유물론과 정치경제학을 발견하고 생산한 과학자에서 유럽의 노동자계급의 실천적이고 직접적인 실천과 함께 했던 유기적 지식인으로 재규정되었다.19) 우리는 후기 알뛰세르의 입장이 당시 프랑스 좌파지식인의 역사적 상황속에서 상당히 모호하였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침잠하거나 일탈하거나 현실 정치세력에 대한 환멸로 말미암아 반대편으로 나아간 지식인들속에서 알뛰세르는 스스로 그토록 비판한 프랑스 공산당에 대하여 - 투쟁의 과정에서 함께 했던 - 애틋한 마음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좌파지식인이 모두 탈당하거나 축출된 프랑스공산당내에 남아 당내 비판자로 남아 있기를 원했고, 정치적으로 결정적인 소시기에 그는 자신의 입장을 선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또한 그의 비판들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지 않았다. 그의 대표적인 ‘당내에서 더이상 계속될 수 없는 것’이라는 비판적 저작도 단지 이론지형의 변화 즉, 당내 비판지형의 변화로서 서술되었다는데 한계가 있다.   프랑스철학자들 - 당내 공식 철학자든, 비공식 철학자든 -이 철학사에 착목하였던 것은 철학적 논쟁 속에서 새로운 권력의 요구를 찾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철학을 통하여, 한 시대를 압박했던 헤겔주의 즉, 부르조아 국가이성, 법이성에 대한 대안을 찾기 위해서 였다. 당시 철학자들은 헤겔주의로부터 지평과 언표, 코드를 결정하는 동시대의 플라톤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헤겔주의에 대한 꼼꼼한 독해과정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론적인 모순점을 그 자체에 대한 정확하고 선명한 인식에 기반하지 않은 채 단순히 반대한 것이 사실이다. 알뛰세르와 같은 경우는 헤겔주의가 가지고 있었던, 총체성- 변증법의 실체를 형성하는 모순의 전체관- 이 단선적이며, 미분화된 채로 보편성을 획득함으로서 독자성을 자지고 있는 심급에 대한 과학적 인식들을 불가능케 하는 경험주의적인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그러므로 헤겔의 변증법을 전도의 형식으로 계승한 맑스주의내부에 헤겔주의의 영향은 경제결정론적 편향의 철학적 원인이 된다. 맑스주의는 경제를 본질로 하는 것으로 경제라는 심급은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심급을 형성하는 이데올로기, 정치, 과학에 대한 일방적인 우위를 이룸으로서 구체적인 정세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을 불가능하게 가로막는 하나의 장벽이다. 알뛰세르는 맑스주의내에서의 경제주의/주의주의는 맑스주의내에 잔재하는 - 또한번 제거하고 추출해야 하는 - 헤겔주의의 잔재라고 보는 것아다.  알뛰세르는 헤겔의 전체성으로의 인식체계를 철학/과학 논쟁을 통하여 구조적 총체성으로 세련화시키려 하였다. 그런데 알뛰세르의 문제의식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헤겔의 비판을 ‘인식론 = 존재론 = 논리학이라는 설정 속에서 맑스주의의 역사적 재구성의 작업을 과학/철학의 문제 즉, 인식론적인 문제해결로만 수행하였던 것이다.20) 그런데 우리는 인식론과 논리학과 존재론이 진정으로 동일한가?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동시에 역사적으로 이론적 논쟁이 현실 속에서 절대적인 실현을 보증하였는가? 왜 맑스는 이성적 질서 안에서 ’비판적 비판‘을 현실대상에 대하여 실천적이며, 변혁적이지 않다고 보았는가? 맑스가 “이론이 대중을 전취하자마자 물질적인 것이 된다.”21) 고 말했던 때와 “이론만으로 부족하다. 현실이 쇄도해야 한다.”22)라고 말했던 때는 단지 시기적인 고려 속에서 사상적 진화일 뿐 어떠한 모순점도 없는 것일까? 의심해 보아야 한다. 유물론의 전통 속에서 이제까지 간과됐던 부분에 대한 지적은 역사적 사건과 역사적 인식이 항상 동일하다는 역사주의의 전제이다. 물론 역사적 조건 속에서 동일지반을 형성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사실임에도, 헤겔주의는 비동시대성을 갖는 역사를 승인하지 않는다. 이것에 대하여 다름 아닌 알뛰세르 자신이 경험주의, 역사주의라는 비판을 통하여 치열하게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 그런데 이것이 인식론적 비판과 단절 속에서만 이루어졌을 뿐이다는데 문제가 있다.  헤겔의 동일성의 근원은 무규정적이고 무차별적인 존재자라는 설정에 있다. 헤겔의 존재에는 분리와 적대와 투쟁이 없다. 헤겔이 존재론(존재/무/생성의 원리)에 대하여 승인하는 것은 인식과 존재의 변증법적 통일을 마법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되살아나게 할 것이다.23) 존재론적인 균열과 분리와 차이가 없는 무규정적인, 무근거적인 존재가 생성의 가장 일차적인 것이라는 것을 승인한다면, 현실운동의 본질적 차이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헤겔의 동일성은 프롤레타리아운동과 부르조아운동의 존재적 분리와 적대를 은폐하고, 의회라는 틀 내에서 국가장치의 협력자가 되거나 일국사회주의의 지배권력을 형성하여 ’국가강화‘를 이루어냄으로서 부르조아정치의 근본원리 -억압을 통한 통제-와 근본적인 차이점을 드러내지 않게 하는 요소임에 분명하다. 꼬뮌투사들의 입에서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변증법적 통일‘이라는 원리는 근본적인 존재의 적대를 법이성 / 국가이성내의 대립과 모순으로 환원한다.24)  존재론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는 그 동안 침묵하였던 분리되고 차별화된 적대를 차이의 진정한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유물론의 전통은 만물의 근본원리는 물질운동이라는 점을 승인하고, 물질운동의 양태가 사유와 존재의 영역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다. 알뛰세르는 사유의 영역을 존재의 영역에서 분리시켜 하나의 물질운동의 연장 - 물질성에 대한 승인- 으로 사고한다. 그것을 통하여 인식의 총체성내에 다양한 자기운동의 심급을 도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존재의 영역은 단일한 존재일 뿐이고 중층화된 의식을 경유하여 진화하는가? 의식과 분리된 존재의 영역에는 차이와 균열과 적대란 없는가? 질문해 보아야만 한다. 만약 선차적으로 자기원인에 의해 생성하는 다수자들이 없다면 현실의 실천은 구조화된 진리의 검증과정으로서 지위밖에 없을 것이다. 즉, 영구불멸한 법질서 테두리, 국가장치의 테두리에서의 존재의 운동과 실천만이 가능할 뿐이다. 때문에 우리는 “알뛰세르주의는 초기에 ’이론주의‘에서 그러한 과정의 결과로 나타나는 후기에 신헤겔주의로의 전향과정에 있다”고 평가한다. 초기 알뛰세르는 헤겔주의에 대한 이론적 전통과 권위에 대항하여 독창적인 이론적 전통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그 자신이 이론적 전통을 확립한 시점에서 - 또는 이론적으로 한계에 봉착한 시점에서 - 실천으로 나아가려 했을 때, 실천의 구체적인 무엇이 되기에는 현실에서 쪼그라듦을 막을 수 없었다. 초기 알뛰세르의 ’이론적 실천‘ 개념은 이론과 실천의 통일에서 기회주의를 의미하는 한 편향 즉, 카우츠키적인 편향이 아닌가? 또는 베른슈타인의 신칸트주의적 수정주의가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를 던질 수도 있는데, ’이론적 실천‘ 개념은 사실 ’과학적 사회주의의 외부로부터의 도입‘이라는 레닌에게 계승되는 하나의 전통으로 이론의 재구성이라는 해부용 메스를 대지 않은 알뛰세르가 중심개념이다. 그런데 말년 알뛰세르는 현실 속에서의 맑스주의 정치적 실천을 해명하면서 자신이 그토록 경험주의라 힐난하며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것은 모호한 정치, 우연적이며 불확실한 세계상으로의 후퇴를 의미하는데 그에게 침묵을 권고하던 발리바르도 말년에 가지 않을 없었던 길이다.25)  이러한 상황에서 포스트 알뛰세르주의는 결국 유로콤의 정치지형에 흡입되었다. 포스트알뛰세리안의 실추와 더불어 ‘실천적 실천’ - 현실 속에서의 단련과 조직화 - 의 들뢰즈의 제안은 주목될 수 있다. 맑스주의라는 이론논쟁의 지형이 스탈린주의정당내에서 이루어졌던 프랑스의 정치/이론지형에 대한 고찰없이 그에 대해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맑스주의, 신무정부주의, 문화주의라고 낙인짓는 것은 너무 섵부른 규정이다. 들뢰즈는 ‘오늘날의 헤겔주의’인 포스트알뛰세르주의에 대한 논쟁을 통하여 ‘실천적 실천’이라는 구성적 유물론을 제안한다. 동시에 구성적 유물론은 수미일관성을 편협함과 ‘과거는 구체적으로, 현채는 추상적으로’ 실천하는 교조주의적 전통에 대해, 실천의 다양한 지평과 이론에 대한 실천의 우위를 통해서 유물론이 진정한 개방성과 우위성에 있다는 것이다.26)        .        나> 理論과 實踐의 一般的 關係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철학의 근본문제와 연동되는 문제이다. 맑스의 저작 내에서도 초기의 저작 [헤겔법철학비판],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임시테제]부터 [자본론]에 이르기까지 문제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론과 실천의 문제는 변증법적 통일이라는 일반론으로 그것의 실재적 의미를 간과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변증법적 통일’이라는 동일화가 평론가적으로, 때로는 이론적 권위와 전통을 보증하는 매개고리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실천에서 괴리된 이론은 순전 스콜라적인 태도로 간주될 수 있으며, 스콜라적인 것의 한계지점을 부정하게 된다면, 현실운동에 능동적인 것을 이론으로 인식하는 메시아주의적 태도, 이론적 태도가 현실의 난관을 구출한다는 허구적인 이데올로기를 퍼트릴 뿐이다. 맑스주의는 청년헤겔좌파의 이론과잉이 바로 후진적 독일의 정치상황을 즉자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독일고전철학의 과도한 논쟁들이 실재로는 비실천적이고 무능력한 현실이라는 것을 보았다.27) 맑스가 [신성가족]에서 그것의 부재를 ‘비판적 비판에 대한 비판’으로 설정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당시 청년헤겔파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현실과의 유일한 매개고리였던 신문평론에 대한 탄압을 직면하여 포이에르바하를 발견한 것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헤겔 좌파를 포이에르바하주의자로 전화시킨 시대적 열광은 사실 정치적인 패배에 따른 이론적 퇴행 즉, 감성적 인간으로의 복귀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맑스또한 포이에르바하의 문제설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영향은 초기 저작에서 쉽게 발견된다. 포이에르바하와 청년헤겔주의는 사실은 밀접한 내적 연관을 형성하고 있었다. 과소인간/과잉이성이라는 철학적 원환(圓環)은 감성적 존재의 본성을 다루는 철학적 인간주의와 이것을 뿌리로 하고 본질을 획득해 나가는 즉자/대자적인 운동(부정의 부정)을 통하여 물신화된 절대이성으로 나아가는 헤겔주의의 전 체계내에서의 운동인 것이다.             맑스는 자신의 11개의 임시테제에서 인간본성론적인 포이에르바하의 문제설정이 감각적이고 직접적인 실천의 진정한 의미를 신비화시키고 있음을 지적하였으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실천은 현실운동을 주도하고, 현실적 한계를 돌파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변혁’의 원동력을 주체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실천은 독자적인 장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에 종별화된 것으로 하위화되어 있다. “실천은 진리의 기준이자, 진리의 검증기준이다.”라는 엥겔스 정식은 이론과 실천의 연관하에서만 실천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28) 피상적으로는 ‘실천’을 변혁의 원리로서 승인하는 것처럼 보이는 소비에트이데올로기의 명제의 문제점은 이론과 관계를 갖는 실천만을 실천으로 봄으로서 실천이 “존재의 원리” 즉, 스피노자의 코나투스(conatus :투쟁)로서 존재를 보존하는 원리이면서 “현실변혁의 근본원리”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실천은 헤겔처럼 이성의 하위의 범주로서 감성적이고 본성적인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진리의 검증을 위해서만 이루어지는 의례적인 절차가 아니다. 또한 소비에트 이데올로기가 ‘이론적 권위와 전통’이라는 원리를 자신의 지배권력을 유지하는 원리로 교묘히 차용하고 있을 때, 혁명적 실천의 의미는 이론의 점진적 검증과정을 의미하거나 반대로 우연적인 발견과 도약과 예정된 파국의 의미로 해석될 뿐이다. 제2인터네셔널의 진화주의 / 파국론이라는 편향 속에서 실천의 의미는 기계론적으로 교조주의자들에게는 전통/비전통의 이론적 대립을 검증하고, 수정주의자들에게는 의회의석 확보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진정한 ‘실천’의 의미는 현실운동속에서 단련되고 투쟁하고, 현실의 난관과 한계에 직면하였을 때 이를 돌파하고, 전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29)    다>‘理論的 實踐’에서 ‘實踐的 實踐’으로    맑스주의는 자신의 역사속에서 실천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변화와 창조를 억압하고, 봉쇄한 채로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스주의가 결정적인 의존한 것은 그 자신의 이론과 실천이 대상으로 하는 프롤레타리아운동의 역사적 선명성과 구체성에 있었다. 즉, 혁명의 구체성과 선명성이 맑스주의의 억눌린 실천적 전통을 그나마 보충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뛰세르의 ‘이론적 실천’은 이러한 봉쇄된 맑스주의 이론에 생명력을 주기 위한 시도였다. 그는 수정주의라는 이상한 딱지를 감내하고30) 레닌주의의 ‘구체에서 구체로’의 분석기획을 계승하여야 했다. 이것은 과거의 역사는 구체적으로 현재의 역사는 추상적 보편의 원리로 바라보는 소비에트이데올로기의 교조주의에 맞서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은 카우츠키, 레닌, 알뛰세르까지 계승된 전통으로 ‘미리 설정해야 하는 전략’이라는 이론설정이 갖는 ‘진리효과’로서 현실개입과 실천의 전통이다. 이러한 실천의 모델은 선차적으로 이론전략을 재구성하고 세련화/생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알뛰세르는 보편적 원리인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철학에 하위화된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역사과학을 구원하기 위하여 ‘인식론적인 단절’이라는 구조주의적인 방법을 차용한다. 동시대적 인식으로서 철학에서 비동시대적 인식으로서 과학을 구원하기 위한 이러한 ‘인식론적 단절’은 이론내 혁명/생산/실천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알뛰세르는 합리론적 전통아래에서 현실과 사유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경험주의적 인식과 거리를 유지함으로서 ‘선험적인 의식’내에서 ‘주어진 대상에 대한 인식’을 비생산적인 초험적 의식(철학)과 대상성이 명확하며 생산적인 의식(과학)으로 분리함으로서 과학의 우위성을 검증하려 하였다. 이러한 철학과 과학의 분리는 스피노자적 일원론적 인식의 도입을 통하여 즉, 신(=자연)의 본성의 연장으로서의 사유와 존재의 속성들은 독자적인 자기원인을 갖는 심급으로서의 분리될 수 있다고 검증하였다. 알뛰세르는 맑스주의 이론 내에서 자기운동의 심급은 과학으로서 역사적 유물론이라고 선언한다. 알뛰세르는 역사과학의 재구성이라는 기획을 통하여 구체적인 역사의 운동속에 정치/경제/과학/이데올로기의 자율적인 심급을 분리시키고 이들의 물질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하여 스탈린주의의 경제결정론은 돌아오지 않는 역사의 시간인 ‘최종심급에서의 결정’이며, 중요한 것은 불균등한 발전 속에 존재하는 사회적 생산관계라고 본다. 문제는 이러한 기획이 이론의 선험적 설정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도출될 수밖에 없는 마치 이론의 우위성속에서 마치 철학의 혁명/경제학의 혁명/정치학의 혁명/과학의 혁명으로 표출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론적 실천’이라는 중심범주 속에서 ‘과학의 생산작업’이 ‘경험주의’라는 맑스주의정당의 인식론적 오류를 정정할 것이라 본 것이다. 알뛰세르는 구체적인 역사속에서의 맑스주의의 내재적 모순들의 극복은 현실운동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맑스주의정당이 과학적 생산자로서 자신과 역사적으로 이루어졌던 오욕을 투명하게 - 있는 그대로 - 보았을때, 맑스주의는 변화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31)  알뛰세르는 이론의 실천적 의미를 이론내적 실천으로 가둠으로서 결국 ‘실천’을 질식시키고 압박하는, 실천의 의미를 변혁적인, 현실운동의 도약과 결절, 이행의 현실운동의 원동력으로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이론에 의해 전취될 수 밖에 없는(‘대중=독자들?’) 진리효과로 느끼고 있었다.  만약 알뛰세르가 과학의 중립성에 근거한 이론의 자율성의 한계를 승인한다면 이론은 결국 스콜라적인 것, 논쟁적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한계를 명확히 갖는 것으로서, 실천보다 우위에 서서 이론을 메시아적으로 만들고 실천을 스콜라적으로 만드는 타협점을 동시적으로 거부해야 한다.  물론 이론과 실천은 각기 상이한 속성을 가진 심급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험주의는 이론과 실천의 한계를 모호하게 하며, 타협시킴으로서 주관적 관념론과 기계적 존재론이라는 상보적인 이론지형을 형성한다. 일상에서 느껴지는 이론과 실천은 동시적이고, 상보적인 원환을 형성하여 이것의 경계가 모호한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론과 실천이라는 각기 개념은 극한적인 지점인 한계테제로서 다루어져야 한다. 알뛰세르의 이론의 자율성의 테제는 이러한 분리작업에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실은 이론과 존재를 대립시킴으로서 실천을 이론에 종속되게 하였다. 이론과 실천의 차이와 분리는 현실이라는 유일한 장에서 실물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서 인식되어야 한다. 즉, 이 말은 모든 실천에서 이론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유효성’이라는 현실 속에서 이론이 과연 얼마나 실물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잠재하고 있는가로 다루자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이론은 실천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에 자신이 실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계내에서만 유효성을 갖는다. 극한적인 실천의 개념은 실재적인 것의 자기운동이자 이론의 개입은 이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므로 이차적이다.32)  이제까지의 실전과 이론의 관계는 “실천의 한계는 이론의 한계라는 동일성으로 말미암아 이론의 극복이 실천의 지평을 연다”라고 사고되는 편향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론과 실천의 관계를 반대로 실천의 우위성 속에서 판단한다면 실천은 존재론적인 한계와 다양한 논쟁의 한계를 돌파하게 하는 근본적인 동력이다. 즉, 이론과 실천은 하나의 계주를 형성하며, 이론과 실천은 상보적으로 평행을 달리지만 계주의 끝에서 실천만이 이론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물론적 전통은 ‘이론의 자율성과 발전과정’이 아니라 실천의 현실적 도약을 인식하는 것이다. 극한적으로 실천의 상승발전은 ‘실천적 실천’- 단련과 조직화, 투쟁- 이외에 개념의 외부개입의 여지가 없다. 이론의 독자성은 예컨대 실천의 과정에서 그 한계와 위기를 표현하는 것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33) 즉, 수많은 이론의 해석이 한계의 지점에 다다르면 실천이 이 한계를 돌파하는 것이다.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통일은 이론과 실천의 유효적 차이를 적절히 설명하지 못함으로서 ‘이론의 권위와 전통’과 ‘이론의 재구성작업’을 과도하게 착목함으로서 실천을 유대교적인 천한 것으로 만들었다.34)  결국 신성가족의 비밀은 세속가족에 있듯이 지상에서 해결하여야 할 문제를 이론주의로 우회하는 것은 다양한 실천을 신비화하고, 과도하게 자임/자만하는 오류로 나아가게 된다. 현실적인 것과 가능적인 것은 현실의 실재적인 것이 자신의 역능을 획득하여 가는 과정이외의 존재의 배후에 의식이 메시아적으로 능동성을 갖고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즉, 대중은 항상 수동적이며, 지식인은 능동적이라는 해묵은 발상은 노동자운동의 실재적이며, 적극적인 의미를 축소하는 것이다. 들뢰즈의 이론과 실천의 유효적 차이와 이에 따른 평행적 계주로의 소묘는 이원론에 대한 거부로 의미한다. 이는 맑스주의와 노동운동의 융합이라는 역사 속에서 권위주의적이고 이론주의적인 전통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들뢰즈는 실천의 영역속에 이론의 영역을 실재적인 역능의 구체적인 장에서만 마련하고, 이를 통하여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유효적 차이 - 비변증법적인 분리 - 를 설정함으로서 유물론의 ‘실천적 전통’을 방어한다. 이론과 실천의 관계는 ‘실천적 실천’의 범주의 우위속에서 분리되어 나타나고 평행을 형성하지만, 현실에 영향을 주는 유효적 차이로서만 이러한 분리는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평론가이자 과학자로서의 당’을 유념하여 이론에 대한 우위를 강조하는 편향(알뛰세르)과 이론의 유효적 영향력을 전향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동일화시킴으로서 결국 실천을 존재의 본성으로 돌아가는 편향(네그리)에 대해서도 적절히 비판할 수 있다.      라> 意識의 外部導入테제와 關聯하여    그러므로 의식의 외부도입테제는 이론과 실천의 분리(정치와 경제의 분리)라는 이원론적 설정으로 이해되기보다는 역사적인 혁명조직의 역능과 이것의 실물적인 영향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에 대한 이론이다’라는 테제는 ‘의식의 외부도입반대테제’로서의 보편적 이론설정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내에 존재하는 역능, 잠재력을 서술하는 것이어야 한다.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현상학적 존재론은 존재자체가 현존재로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의식과 의지의 최고 구현체로서의 당이 계급의 항상 상위에 위치하게 된다.35) 루카치는 계급의 즉자/대자적인 발전을 통한 개별에서 보편적 구현체로의 상승발전이라는 의식적 발전모델을 제시하는데, 이러한 발전모델은 스탈린주의적 편향인 주의주의/경제주의라는 이원론적 문제의식과 일치한다. 즉, 인과론적인 결정형태로서의 사회나 자연의 필연적인 과정의 수동적 심급에 대한 의식적인 주체의 자유의지가 대자적으로(주/객의 동일화)발전하여 능동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다. 루카치의 당이론은 계급의지의 최고산물로서 인데 이 당이 계급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며 당의 정책과 실천이 어떤 조건하에서만 진정한 계급의지의 최고산물이 되는지에 대하여 설명하지 못하는 스탈린주의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루카치는 노동자계급운동을 현실변혁의 역동적인  주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해진 역사인과론에 의해 움직이는 주어진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다. 현존재와 개인적 의식이라는 이원론을 매개하는 것은 초월적 원리일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루카치의 (동시에 스탈린의)당이다. 36)  이러한 당이론에 대한 편향은 알뛰세르에 의해 완전히 극복되지 않았는데 즉, 당과 계급의 관계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자계급 위에 군림하는 당인가? 노동자계급운동의 상승발전가운데 사용되어야 할 무기로서 당인가?를 해명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이원론적 편향은 이론 내에서만 ‘의식의 외부도입인가? 반대인가?’를 말했을 뿐 ‘당조직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는다.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에게 주는 크리스마스선물과 같은 것이 아니며, 동시에.  노동자계급 또한 주어진 역사의 경로대로 움직이는 수동적이고 자연사적인 운동의 담지체가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잠재력은 노동자계급의 소시기의 투쟁에 의하여 발현되며, 운동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적대를 재생산한다. 맑스주의정당은 노동자계급운동의 일부이며, 다양한 노동자계급운동에 조류중에서 반자본주의의 과도기적 이행기에 있어 제반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에 있어서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기능이자 도구로서 의미를 갖는다.  후기알뛰세르는 피상적으로는 의식의 외부도입에서 반대테제로의 이행을 통하여 ‘주체 없는 과정’에서 ‘계급대중주체’로의 대전환을 이룩한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사실 일관되게 그는 “과학자로서의 당” 또는 “지성적 당”이라는 설정 속에서 선험적 보편전략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논의는 실물적인 형태를 표현할 때 현실적이다. 현실의 투쟁과 자율성이 존재하는 한 무제한적인 폭력적 적의 설정은 현실운동의 억압을 위한 가공적인 것이다.37) 전략자체가 먼저 세워지고 수정되었던 알뛰세르주의는 유럽의 정치지형변동 스탈린주의적인 편향 내에서 ‘전략수정을 통한 혁신’이라는 “스탈린주의정당에서 유로콤정당으로의 선회”와 조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와 [인민의 벗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작은 미발전한 자본주의에서 숙련노동자를 핵심으로 한 동맹계급에 대한 의식적 지도속에서 혁명적 이행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계급지형의 변화를 거쳐 4월테제,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은 당시 노동자계급이 투쟁의 과정에서 어떠한 부위보다 선진적이며, 사회주의로의 성장전화는 노동자계급의 분출하는 혁명적 요구가 있을 때야만 ‘가능성과 슬로건의 영역에서’ 현실의 흐름으로 전화될 수 정확한 지적이다. 러시아혁명의 시기에서 이러한 슬로건은 실재적인 노동자계급운동의 성장전화의 표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즉, 인민주의에 대한 비판과 사회주의조직의 태도를 다루는 초기저작은 계급의 선도성을 인민주의의 ‘농민계급과 인텔리’를 혁명세력의 중심으로 본 실천에서 ‘혁명적 직업가와 직업적 혁명가가 변증법적으로 통일되는 숙련노동자’를 중심으로의 당조직의 토대마련으로의 이행을 다루고 있다. 레닌의 이론은 이미 인민주의자들의 실천과정속에서 느껴지고 있는 한계(인민주의자의 일부와 울리아노프도 이미 느끼고 있었던)과 현실의 변화를 표현하는 것으로, 레닌의 이론은 ‘인민주의의 실천이 사회주의로 진화한다는 이론적 문제틀을 생산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38) 레닌의 이론은 단순히 현실을 논쟁으로 이끌기 위한 평론적 원리가 아니고 실천이 돌파해야 할 구체를 표현하는 것이다.  제2인터네셔널은 ‘경제와 정치의 엄격한 분리’라는 이원론속에서 계급과 당의 엄격한 위계와 분리, 당의 현실운동에 대한 이론적 권위가 노동자계급의 외각에서 스스로 제헌적 권능으로서 변질하게 하였다는 뼈아픈 역사적 교훈을 제시한다. 제 2인터네셔널은 사회주의정당과 노동자계급과의 융합을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잠재력을 통한 변혁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의회내에 의석 수를 확보하기 위한 표밭으로 대중의 욕구를 한계짓고, 철저히 의회라는 계급의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선전과 담론들, 전통과 비전통의 논쟁과정에서 이론적/실천적 무능을 의미하는 당의 폐쇄성이라는 문제점들을 남겼다.39) 역사의 구체운동은 러시아혁명의 진군이 가지고 있는 난점들, 후진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가 발전한 자본주의의 국제적인 지원없이 스스로 프롤레타리아를 창출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결국 당의 역사적 타락이라는 형태를 통해 해결됐다. 전쟁과정에서 많은 선진노동자가 유실되었고, 혁명과정을 주도한 숙련노동자의 일부는 경영인으로의 전화를 통해서(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통일), 혹은 당내 경영인의 영입을 통해 새로운 지배계급은 형성되었다. 맑스레닌주의정당이 스스로 제헌적인 권능을 가진 지배세력으로 전화하여 계급으로부터 분리하고, 계급을 통제함으로서 스탈린주의는 혁명을 변질시켰던 제 2인터내셔널의 각 정당이 가지고 있는 이원론적인 편향들을 계승하였던 것이다.  포스트 알뛰세르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을 이론적인 심급에서 선택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이론적인 면에서는 초기 알뛰세르주의 급진적인 과학적 태도에서 모호한 정치학으로의 퇴행, 실천적으로는 노동자계급운동의 잠재력을 상승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를 국가내의 제헌적 범위로 억누르고 한계 지웠던 제 2인터네셔널과 스탈린주의, 그것에서 입장선회한 유로코뮤니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40)       마> 헤겔辨證法의 또 다른 問題點들  맑스가 헤겔의 변증법적 체계와 방법을 자신의 이론적 작업에 적극적인 도입을 하였다는 것은 이미 주지해 온 바다. 맑스는 헤겔의 적극적인 반대자이면서 동시에 비판적 재구성을 통한 헤겔의 계승자였다. 초기에 맑스는 청년헤겔좌파에 대한 논쟁에서 맑스는 헤겔 체계의 전도를 통하여 포이에르바하의 인간학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서 있거나(도이취이데올로기), 정치경제학의 재구성작업에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도입하거나(1844경철수고). 헤겔의 논리학을 도입(정치경제학 강요)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맑스는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론에 진정한 계승자, 이성의 왕국을 필연의 왕국으로 전도시킨 ‘빈자의 헤겔’인가?  헤겔의 변증법은 감성적 세계와 이성적 세계로의 즉자/대자적인 진화과정이다. 이성은 감성적인 세계에서 소외되어 부정에 부정의 운동을 연속시킨다. 그런데 이러한 운동의 과정은 역사를 단선적 진화과정으로 바라볼 위험에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역사는 우연적인 간섭이 배제된 동일자의 현실운동인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적대와 분리에 있는 원리를 동일자로 환원시키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데, 근저에서 이 마력의 협조자가 다름 아닌 포이에르바하의 휴머니즘이라는 알뛰세르의 폭로는 타당한 것이다. 맑스는 이러한 대상의 소외과정으로서의 물신성의 원리를 자본주의에서 노동자계급의 보편적인 억압과 수탈이라는 원리로 차용한다. 이러한 원리는 감성적 존재와 절대적 이성이라는 시민/국가의 부르조아적 설정에서 완전하게 벗어난 것이 아니다. 다가올 정치세력은 이성의 보편적인 소외자이면서 이를 전도할 역사적 사명을 띤 프롤레타리아이기 때문에 전근대로부터 계급지배의 도구인 국가를 폐절하는 혁명적 운동과 보편적 권력의 획득과 새로운 모순을 일으킨다. 맑스는 이러한 잠정적으로 이해하고, 논리의 전체계화라는 동일성의 요구를 억누르는데 이것은 빠리꼬뮌의 역사적 실천이르러 구체를 획득할 수 있었다. [자본론]의 서술시기에 맑스는 자본의 물신성현상을 단지 각주로 서술하면서 소외라는 철학적 논쟁의 실물적 영향력을 확대해석하지 않는다. 즉, 자본에 대하여 대응적으로 존재하는 노동자계급을 사고하지 않는다.41) 자본론은 물신화된 대상세계에서 감성적 인간의 원리를 배제하였다는데서 ‘과학’이라고 볼 수 있다. 노년 맑스는 헤겔철학이라는 근원과 목적에서 벗어나 대상적인 인식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본론]의 기획의 문제점은 가치-화폐-자본으로의 이행과정이 개념자체의 자기원리에 의하여 서술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은 [요강]의 개념의 적확성을 겨냥한 주해서인 것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여기에 있다.42) 역사적으로 ‘화폐에서 자본으로 전화’는 비변증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 졌다. 예컨대 자본의 시초적 축척은 진화적 과정이 아니라 억압적이고, 폭력적이었고,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은 비경제적인 정치권력의 강제에 의해서, 자본의 위기와 모순은 스스로 조정되기 보다는 전쟁과 공황과 분규 등의 결절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요구한다는 점을 맑스는 간과하고 있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자본론]은 ‘역사적 자본주의’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전제들을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구체 자본주의의 분석을 위한 전제들을 서술한 것이다. 맑스가 서술한 이론의 평균공간에는 틈이 없다. 변증법적이고 균등하며, 간섭의 요인이 없다. 예컨대 가치론의 전제, 노동의 이중성은 전형화 되고 완결된 체계이다. 이러한 난점들에 대한 지적들은 수정주의 논쟁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온 바이다. 수정주의는 맑스주의를 신칸트주의적인 형태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논쟁에서 맑스의 개념적 확실성을 위한 이론적 공간과 실물적 현실세계에 대한 간극은 비변증법적인 운동의 실존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변증법적 통일’의 철학적 원리를 보편화시켜 직접적으로 적용하면 이론적 한계들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것은 유물론의 우위성속에 변증법/비변증법은 함께 포섭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변증법적 통일의 원리는 노동계급의 권력으로의 진군의 미래를 그리고 노동자조직의 꼬뮤니즘적 활동을 소묘적이고, 수사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이 마치 형이상학적 배타성과 동일성을 승인하는 것과 같이 느껴지는데, 역으로 변증법적 통일의 원리가 부정의 형이상학을 내포하고 있다. 헤겔의 인정투쟁은 단일한 존재의 운동이므로 때문에 존재자의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헤겔의 모순은 반성작용이며, 소외로서 법테두리내에서의 인정투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헤겔의 변증법에서 부정의 사법적/가치론적 의미는 이렇게 묘사될 수 있다.       너는 사악하다. 그러므로 나는 선하다.  - 노예의 추론법 나는 선하다. 그러므로 너는 사악하다.  - 주인의 추론법        주인의 가치판단은 자신의 가치의식을 통하여 대타(對他)적인 규정과 평가의 형식에서 이루어지지만, 노예의 부정의 형이상학은 주인이 결정한 선이라는 가치의식 내에서만 부정적 운동을 수행한다. 때문에 노예의 논리는 주인에 대하여 독립적이지 않다. 인정투쟁의 가치론적 의미는 국가이성의 핵심을 이룬다. 노동은 헤겔의 변증법에서 반성되어야 할 대상으로 나타날 뿐 주체로 나타나지 않으며, 주인의 가치의식 내에서의 노예의 부정은 일시적으로 정당성을 획득한 것으로 보이지만 주인의 논리로 수렴되고 만다.43) 노동자운동의 적극적 의미는 주인의 논리에 포섭된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생산 즉, 제헌적 권능을 스스로 구성하는 주체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마치 자본이라는 주인의 논리가 영구적이고, 이를 통해서만 주체화양식이라는 상승적인 질서를 기약할 수 있다는 포스트알뛰세르주의 주인-노예의 변증법과 제 삼의 길에 대한 환상은 주인의 법테두리내에서의 우연적이고, 일시적인 우위로만 노동자운동의 미래를 가두는 것이다.44) 후기알뛰세리안이 본 것처럼 노동자계급은 역사적인 노예에 비교될 수 없다. 헤겔의 변증법은 부정은 반성과정 = 즉자대자적 소외 = 이성을 더욱 긍정적이고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며, 부정적인 것은 긍정적인 것에 포섭되거나 단지 형이상적인 부정의 질서인 시민이라는 단자로 해체된다. 헤겔의 부정은 철저히 계급적 가치론을 내포하고 있는데 원한과 극단적 부정이 차별적인 질서이며, 동시에 적대적인 계급이 자신을 긍정하고 새로운 자기가치를 형성하지 못하게 하는 근본적인 장벽이라는 의미에서 이다. 후기자본주의라는 [노동의 실질적 포섭단계]에서 자본의 전사회적 공장화의 노력의 결과로 형성된 ‘대중의 노예화현상’은 필연적으로 ‘개혁/개량주의’의 융성을 의미한다. 동시에 자본 스스로가 탈중심화된 형태로 나타나 자본주의에 실존하는 또하나의 계급 노동으로 하여금 자기보존의 투쟁으로서 가치생산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게끔 가로막고 헤체하고, 미분화시킨다. 그러므로 후기자본주의의 포스트포디즘적 생산에 진정한 문화적 표현은 포스트모더니즘이다. ‘국민을 위한~’ 이라는 수사학을 동원하여 만성불황과 지속적인 경제위기라는 형태로 자신의 독점적인 제헌의 역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끈다.45) 자본주의생산내에서 생산력의 발전은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노동생산성의 발전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생산수단의 발전이다. 알뛰세르와 발리바르가 생산력의 발전은 착취의 강화를 의미하므로 생산양식론의 일반설정은 불가능하다라고 본 것은 타당하다. 그런데 후기자본주의에서는 생산력의 발전에 의하여 노동의 양적 착취만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 변화 또한 수반한다. 즉, 자본에 외재적인 요인으로 독립변수로 느껴졌던 노동이 자본의 사회 - 생산협동주의를 통한 사회적 공장화를 통해 종속변수로 전화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헤겔적 변증법과 부정의 형이상학이 동원되는데, 즉 산노동의 일부를 축출하고 자동기계를 대체시키며, 사회화되고 유연화된 노동의 일부를 매개하는 방식을 통하여 자본은 자신을 합리화하고, 철저한 배제와 헤체의 메카니즘을 작동하는 것이다.46)  법의 테두리에서 노동(의 권리)은 부정적이고 반성적인 지위를 가질 뿐이다. 그러나 노동의 제헌적 잠재력이라는 긍정에서 출발하여, 존재를 보존하기 위한 투쟁과 더불어 노동자조직의 지체의 시간을 극복해 나가는 자기가치증식47)의 실천이 요구된다. 노동을 탈구성적 요소로 바라보는 자본의 입장에서 노동력은 생산의 일부 요소일 따름이다.48) 한계된 부정은 한계외부의 긍정에 의해서만 새로운 지평을 연다. 긍정의 장을 여는 존재에서의 유보없는 절단은 봉합되어 있는 적대와 분리를 실물화한다. 이것만이 자유롭고 창조적인 힘의 공간을 연다. 자본과 차별화되고 분리된 노동에 대한 긍정을 통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활동적이게 하는 것이야말로, 구성적 주체인 진정한 노동의 적극적 운동인 것이다.49)  또한 알뛰세르는 헤겔의 존재/무/생성의 존재론적 운동은 단일한 존재의 양적 증가를 의미하는 단일한 본질의 표현적 총체성을 의미할 뿐이라는 비판을 수행한다. 이러한 비판은 스탈린주의에 내재된 헤겔주의의 유제로서 경제결정론과 생산력주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알뛰세르는 이러한 문제를 구조결정론적 인식으로 극복한다. 앞서 알뛰세르의 이론주의가 어떻게 실천을 왜곡하였는지 살펴 보았다. 존재는 중층화된 자율구조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성을 갖는다. 즉, 자본주의에서는 자본과 노동이라는 두개의 자기운동이 결합된다. 알뛰세르는 양에서 질로의 전화의 법칙이 양이 동일한 질적 규정 내에서 증대하는 것이 아니라, 상이한 질적 수준이 양과 결합된다고 말한다.   “ 자아는 단일자이며(정립),  또한 그것의 다수자(반정립)이며, 그런 다음 그것의 다수자의 통일(종합)이다.”50)     그런데 알뛰세르의 생산력주의 비판은 사회적 생산관계가 계급투쟁에 의하여 결정된 계급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구조적 중층결정이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알뛰세르는 존재의 다수성 즉, 두개의 계급이 서로 상이한 목적과 수단을 가지고 자기운동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즉, 그는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의해 구성된 사회구성체가 자율적인 구조들의 접합에 의해 이행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알뛰세르가 숙명론적 파국이나 진화/우연적인 자유의지라는 이원론적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 理論的 反人間主義/人間主義에 대하여    알뛰세르의 이론적 반인간주의테제는 근대의 주체이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철학/과학의 인식론적 단절을 위하여 근대적인 휴머니즘적 주체이론(과소인간)을 비판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철학과 과학은 상호보충적인 작용을 하므로 추출되는 경우에 자신의 지반을 극한적으로 변형한다. 알뛰세르 말마따라 맑스가 감성적 과소인간으로서의 포이에르바하/국가이성이라는 헤겔주의적 상보적 지반 속에서 있었다면, 알뛰세르는 과소인간 극한점/과잉오성으로 지평을 낮추어 조정했다. 근대철학의 대상으로서 데카르트 이후로 인식론적 논쟁의 대상인 주체는 투명하게 다루어 졌다. 그리고 이러한 근대철학이 주체를 감각적이고 직접적인 실천적 인간을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맑스의 지적은 여전히 타당하다. 근대 주체이론의 출발점은 주체의 인식과 대상이 거울과 같이 동일할 것이라는 설정이었다. 그러므로 현실 속에 실천적 ‘주체’는 신비화되고 추상화되었다. 주체의 주/객관적 동일성이라는 자기동일성의 신화는 그 자체의 보편성에 의거하여 노동의 구성적 주체의 눈과 언어를 지하에 묻는 몰주체적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근대자본주의의 사회(시민)과 정치(국가)라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운동이 노동자로 하여금 절대적인 소외를 의미한다는 것을 보편적으로 비인간적 노동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보아서는 안되며, 노동의 자기보존의 끊임없는 투쟁과 노동에 대한 구성적 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알뛰세르의 반휴머니즘은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실존하는 노동의 목소리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구체적인 노동의 주체성을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초기자본주의에서 노동자계급은 자본의 외부에서 외재적이고 비변증법적인 힘에 의해서 창출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자본주의 시대의 노동은 비인간적인 소외된 인간의 욕구로 소묘되었다. 그런데 대공업적 생산방식인 포디즘체제로 돌입하면서 노동은 조직적이면서 집단적인 대중노동자로서의 인간형을 창출하였으며, 소외집단으로서의 의미는 실천적으로 탈각되었다. 포스트 포디즘은 자신에게 위협적인 인간형을 변형하기 위해 산 노동을 생산에서 축출하는 방식으로 공장을 사막지대로, 사회를 공장지대로 만드려 한다. 후기자본주의의 자본은 생산에서 더욱 추상화되고 노동의 구체성과 전면성은 전사회화된다. 사회적 노동자는 자동기계와 컴퓨터를 사용하는 더욱 강력한 반인/반기계의 사이보그적 인간형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회 전 영역이 노동의 중심성하에 구성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노동의 비인간화로서의 인간주의라는 인식론적 문제제기는 노동의 중심성의 회의로 역전되고 있으며, 이와 비대칭적으로 실지 존재하는 사회적 노동자라는 ‘과잉인간’은 공장에서 사회로 재조직화되어 유출되고 있다. 사회 전 영역에 노동이 중심성을 가지고 있는 시점에서 사이보그적 인간들의 구성적 권력의 출현이 예고되고 있다. 구성적 주체의 제헌적 권능을 발산할 노동거부의 강력한 위력이 바로 새로운 과잉인간들에 의해서 창출될 것이다. 진정 해체와 노/노간의 경쟁이라는 탈구성을 바라는 자 누구인가?51)  알뛰세르는 이론적으로 반인간주의를 설정하였을 뿐, 현실에서 존재하는 주체를 간과했다. 알뛰세르는 주체가 없는 상태라는 이상적 평균상태를 설정함으로서 노동을 자본주의 생산과정의 한 요소로 동일하게 취급하는 오류를 범했다. 후기 알뛰세르는 자기비판을 통해 계급투쟁과정에 있는 계급주체로 존재의 문제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즉자/대자적 계급의식의 이원론적 설정이라는 인식의 문제로 돌아갔다. 이로 인하여 포스트 알뛰세리안들은 ‘사회적 노동자’를 또 하나의 대상적 사회로 보는 시민사회론으로의 회귀로 나아가며, 동시에 이것은 우연적인 해후라는 모호한 방식으로 대중이라는 개념을 부활시키게 된다.                    사> 스피노자/프로이드 맑스주의에 대하여    초기알뛰세르는 [프로이드와 라깡]에서 프로이드의 무의식에 대한 라깡적 해석 “존재하는 곳에 욕망은 없고, 욕망이 있는 곳에 존재가 없다.” 부재와 결핍의 욕망을 서술하는데, 이것은 분열된 주체(주체들)가 무의식이라는 근원적인 대주체(이데올로기)에 의해 호명되는 이데올로기론으로 발전한다.52) 헤겔주의에서 시민사회내의 개인은 소유권에 대한 사법적 제약을 받는데, 이것은 개인은 ‘욕구적 존재’이며, 이것을 종합할 진정할 주체는 국가라는 것을 의미한다. 알뛰세르가 무의식이라는 대주체를 승인하였을 때, 그것은 욕망하는 구체적인 주체의 개념으로부터 탈각하여 물신화된 원리로 발전한다. 즉, 헤겔에게 있어 국가의 의미는 알뛰세르에게 있어 이데올로기 또는 무의식의 개념이 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엄격한 분리는 살아 있는 욕망하는 생산의 상위에 선결정성을 갖는 국가기구라는 대주체의 자율성을 승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체가 구체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구조가 되는 끔직한 분열과 전도가 일어난다. 알뛰세르에게 있어 가족/국가/제도이데올로기는 자율성을 갖고 미리 주어진 채로 끊임없이 구체적인 존재를 괴롭히는 것이다. (알뛰세르의 광기!)  자본주의는 생산수단과 노동과정에서 최종생산물에서 자유로운 욕망하는 생산을 전근대적인 억압수단을 통하여 재생산한다. 자본주의는 욕망하는 생산에 경쟁이라는 정신분열증세를 요구한다. (극단적인 형태로 다단계판매의 집단히스테리를 보라!) 이러한 주체는 분열된 채로 남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제도로 회귀함으로서 재생산된다. 물론 혁명적 정신분열과 혁명적 편집증을 나타내는 경우는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즉, 기존의 제도로 돌아가지 않는다.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분절결합’의 메카니즘은 일탈의 여지를 주지 않는데 후기자본주의의 시대적 특징인 투쟁하지 않는 대중을 강력하게 형성하려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메카니즘을 횡단하며 탈주를 시도하는 유목민적 주체가 형성된다. 이러한 주체(새로운 노동자조직)는 생산과 재생산의 메카니즘을 넘나드는데 이것이 일탈된 개인을 의미하는 것(자본은 선진노동자를 해고시킴으로서 진정으로 일탈과 무력화를 바라지만)이 아니라, 선 결정성을 거부하는 구성적 주체를 의미한다. 자본주의에서 ‘욕망하는 생산’들은 그러한 욕망을 해결할 기관을 가진 것이 아니라 ‘기관없는 연접적 신체들’로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53)  1919년을 전후로 한 독일에서는 로자의 대중의 무의식적 행동에 대한 주목들이 방기된 채, 결국 제1야당인 독일공산당은 나찌정당에 참패하고 만다. 독일공산당은 지성적 당이라는 설정 속에서 대중의 이해와 요구의 외부에서 존재할 뿐 이를 조직화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독일공산당은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과 대중의 행동을 융합하지 못하고 비합리적이라고 선험적으로 대립설정하거나 방관했다. 그런데 대중의 이해와 요구는 실지로 사법적 질서를 기준으로 그 외부에 존재하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방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긍정적인 것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역능 - 이것을 나찌당은 철저히 반대로 이용한다 -을 내포하고 있다. 기존의 제도와 법테두리내에서 결정된 권리 - 선결정된 무의식 - 을 거부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생산적인 요구는 노동의 제헌적 권능의 잠재력의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운동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자본은 탈영토화된 노동을 재영토화로 제한하고 기율화시키지만 노동의 탈영토화는 구성적 주체의 제헌적 권능의 적극적 발현으로 나아갈 잠재력을 의미한다. 사이보그의 반란은 정치라는 또 하나의 예술을 탈영토속에서 구성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54)         포스트 맑스주의자들의 스피노자 맑스주의의 전통 중에서 민주주의의 개념에 대해 주목한다. 스피노자는 존재의 역능에 기반한 정치를 사고하는데 이것이 존재의 유일한 자연권을 의미한다. 스피노자는 어떠한 질서도 미리 규정되어 있지 않고 ‘스피노자적 사회는 가까이에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구성적 주체들(그들이 무식하던 배웠던)에 의해 현존하는 촉발들에 기초하여 내부적으로 구성해야 한다.’55) 그런데 포스트 알뛰세리안은 이러한 존재의 역능과 구성적 주체를 무차별적인 논리로 적용한다. 즉, 존재의 다수성을 배제한 채, 일반민주주의 설정 속에서 역능의 문제로 다룬다. 때문에 노동의 권리는 노동의 제헌적 잠재력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사법적 제도에 종속된 채로 노동권으로 다루어진다. 포스트 알뛰세리안은 헤겔이 스피노자를 곡해 했던 방식으로 스피노자를 곡해한다. 즉, 포스트 알뛰세리안은 스피노자의 민주주의로부터 ‘시민의 권리’인 인권의 제 범주의 재구성하고, 이를 통하여 생산양식과 함께 주체화양식을 제시하는 것이다. 인권의 정치는 천부적인 자연권인 노동권, 소환권, 저항권과 여성권의 옹호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인권과 민주주의 개념의 재구성은 구성적 주체의 문제를 권리의 문제로 대체하는 전도된 세계상을 의미하며, 존재의 분리와 적대를 은폐한다. 즉, 노동의 존재론적 문제를 생산양식에 하나의 요소로 보고 차별적으로 존재하는 구성적 주체의 적극적인 운동을 인권의 사법적 위계하에 상보적인 영역으로 있는 것으로 치부한다.56) 이러한 헤겔적 세계관을 통하여 노동의 권리는 그 자체가 바로 노동의 비권리임을 은폐한다. 유물론자라면 노동의 존재론적 노동의 제헌적인 권능을 승인하고, 구성하는 실천으로 시작하여야 하지 않을까?  3. 生産樣式論의 問題들에 대한 批判的 接近   사회구성체론에 접근하기 위하여 먼저 사회구성체의 위상과 문제틀을 정확하게 위치지워야 할 것이다. 기간의 사회구성체론의 논의는 ‘제국주의세계질서와 경제사회구성체론’을 중심으로 형성하여 왔다. 일차적으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가장 추상적인 위계를 형성함으로서 이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틀로 인식하는 것이었다. 사회구성체론은 이러한 본질적인 것에 대한 개별적이고 상대적인 요소가 역사/사회적 특수성을 형성하고 이러한 특수성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근본적으로 노동의 관점에서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또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산 노동 구성이 어떻게 변화하였는가?에 대해서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일반적 위계하에 세계질서와 사회구성체에는 변화가 없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기간의 역사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행로로 나아가지 않고 역사의 긴 우회로의 후퇴와 전진, 본질적이면서 그 예측의 범위에서 일탈적인 이론내의 상상의 지평을 언제나 초과하고 넘어서는 역사의 상상력을 현실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제기를 통하여 다시 한번 ‘축척구조의 변화’와 ‘생산과정의 변화’, ‘노동의 유기적 구성도 변화’‘사회적 지배양식과 착취질서의 변화’, ‘수탈구조에서 불균등교환구조로의 변화’등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양상에 대한 진단’은 1> 자본주의 조절양식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자본주의의 내적모순과 한계를 도리어 은폐하게 되는 자본파적 편향과 2> 자본의 병형의 양태를 간과하고 착취와 수탈구조가 초역사적이고 변화에 무관한 불변의 본질의 동일지반에 머물고 있다는 전통파적 편향으로 나아갈 위험을 가지고 있다. 사회구성체론은 최종심으로서의 생산 내에서 산 노동의 일부 축출과 자동기계와 컴퓨터의 도입을 통하여 핵심노동자이외에 사회(구성체)를 노동의 가치창출의 유연한 풀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사회구성체의 자율성의 논의는 바로 산노동의 노동자운동의 자율운동과 연동될 수 밖는 것이다. 노동자조직의 구성적 실천의 대상은 사회적 노동자와 생산에서 안정성을 잃은 핵심노동자 전반을 의미한다. 자본의 실질적 포섭의 단계에서의 산노동의 위치가 종말에 이른 것이 아니라 바로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종말에 이르렀으며, 노동의 관점이 사회의 관점과 떨어질 수 없는 즉, 산노동=사회=사회적 노동자=사회구성체=계급구성체로 동일화되고 있다. 사회구성체론의 역동성은 사회와 정치의 분리, 계급역학관계와 두개의 계급간의 정치적 헤게모니로 간주되는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사회화된 자본과 사회적 노동자가 비대칭적으로 실존하는 이 시점에서 사회를 핵심노동자의 정치력의 대상으로 스스로 분리시키는 실천은 노동의 제헌적 역능을 가로막는 ‘부정’으로서의 실천이다. 문제는 산노동의 사회적 역능의 총합과정으로서의 구성적 실천은 노동에 대한 ‘긍정’이며, 구성적 실천을 통해 창조의 신지평을 여는 것이다.             가> 社會構成體論에 대한 一般的 槪括   1> ‘자본주의 생산양식론’은 맑스레닌주의의 이론의 골간을 형성하는 역사적 유물론 즉, 역사과학의 핵심적인 분석의 틀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론은 ‘임노동과 자본’의 착취관계는 자본주의생산양식에서 토대와 상부구조를 형성하는데 경제적 ‘생산관계와 생산력’은 토대를, 국가/정당/교육기관등은 이를 반영하는, 혹은 조응하는 상부구조이다. 생산양식을 기본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경제적 토대인데 이에 대한 규정은 ‘물질적인 생산’이다. ‘물적 생산’은 사회적 노동이 자연에 대한 합목적적인 활동과정을 통해 형성하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적 통일체’를 의미한다. 생산력과 생산관계는 상호연관되고 상호전화될 수 있지만 ‘사회적 생산’의 위계를 결정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자연과 인간사회간’의 일차적인 모순과 투쟁을 형성하며 발전하는 생산력 즉,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제요소로 하는 생산력이다.57) 그렇기 때문에 사회발전의 원동력은 두가지의 요소로 이루어 지는데, 이는 1>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2>계급간의 상호적대적 모순이다. 이러한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대한 관계는 생산양식과 관련하여 가장 근본적인 부분을 형성하는데 그 중에서도 ‘핵심요소는 생산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산력은 생산관계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물적인 요소가 아니다. 즉, 생산력은 현존하는 생산관계를 반영하는 ‘사회적 생산력’에 다름 아닌 것이다.58) 생산양식론에서의 생산력은 ‘사회가 자연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구체적으로 사회적 생산력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생산수단과 그것을 작동시켜 재화를 생  산하는 인간이다. 생산력 발전수준에 조응하는 생산관계는 생산력 발전에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역으로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력의 발전에 조응하지 못하는 생산관계의 역사적 폐절은 임박한 것이며, 하나의 필연적인 것이 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다른 전제하에서 볼때 완전히 불충분하다고 생각되는 생산의 특정한 확정단계에서 장벽에 부딪친다. 그것은 필요가 충족되는 지점이 아니라 이윤의 생산과 실현이 결정되는 지점에서 정지하게 된다.59)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내적 법칙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는 ‘평균이윤률 경향적 저하의 법칙’60)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론은 자본/자본주의간의 내적모순을 해명했다는데 의미가 있지만 동시에 자본주의는 평균이윤률의 경향적 저하의 법칙에 의해 필연적으로 붕괴할 것이라는 자동붕괴론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자본주의붕괴론은 ‘이윤률 경향적 저하와 상쇄요인들’의 분절결합을 단순화시켜 자본의 자기정화능력 즉, 전쟁과 공황과 사회불평등에 의한 위기국면 또한 역사적 자본주의의 일 국면들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다.  근본적으로 붕괴론의 오류는 자본주의와 자본간의 내적 모순을 자본주의가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원죄적 차원에서의 사회/역사적인 문제로 직접적으로 적용하려 했다는데 있다. 자본주의의 진정한 위기는 생산력의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노동과 산노동의 노동거부의 조직화된 힘이다. 포디즘에서 포스트 포디즘으로의 이행은 진정으로 자본에게 위협적인 대중노동자라는 산노동의 힘을 분쇄하기 위한 자본의 재조직화일 뿐이다. 자본의 자기변형을 통하여 자신의 위기를 상쇄해냈고, 그럼으로서 붕괴냐 조절이냐를 일반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산노동의 힘을 분쇄하려는 자본의 운동을 객관화시키는 바라보는 분명 역사적 오류다. 즉, 자본과 비대칭적인 산 노동의 위기가 아니다.61)   ‘자본주의 생산양식론’은 스탈린에 의해 ‘사회주의 생산양식론’으로 이어졌다. 생산양식의 분석은 근본적으로 생산이 사회적 재생산과 구분되며 동시에 사회적 잉여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독자성을 가질 때, 착취양식에 대한 분석일 수밖에 없다. 즉, 맑스의 ‘자본주의생산양식’에 대한 분석의 틀은 자본제적 착취양식에 대한 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탈린이 생산양식론을 사회주의로 확장하려고 하는 것은 사회주의가 독자적인 생산양식이 아니라 사회구성체라는 점을 억압한다. 생산은 더이상 인간의 창조적인 사회활동과 괴리되지 않을 것이라는 맑스의 전망62)은 스탈린의 생산양식론에 의하여 왜곡되고 만다. 스탈린은 사회주의를 독자적 생산양식의 단계로 봄으로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사회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형성된 폭발적인 대중투쟁이 아니라 순전 경제적인 이유로 보려 했다. 스탈린 사후에도 이러한 편향은 스탈린주의적 경향으로 소련지배관료와 경제학파들에게 이어져 소련의 지배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는 일국내 생산력의 발전이 역사적 진보를 가져옴으로서 공산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는 흐류시초프의 국제정치적인 데탕트와 제국주의와의 경제경쟁 승리라는 구호앞에 잠시 소련민중을 흥분케 한 ‘타락한 노동자의 국가’에서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다. 주지해야 할 것은 역사적 생산양식론이 지배적인 위계를 차지하는 논리는 산노동의 논리가 아니라 ‘착취양식’이라는 분석지점이다.63) 결론적으로 소련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였던 ‘사회주의생산양식론’은 산노동의 제헌적 역능이 바로 사회구성체의 근본적인 역동성을 형성한다는 산노동의 관점을 잃었으며 노동을 부정적인 요소로 압박했다는데 문제가 있다.64) ‘생산양식론’의 이론의 시간은 ‘전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이며, 역사적으로 사멸하는 범주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와 경제의 분립’의 극복이 계속될 수록 -마치 기독교의 신학의 존재가 근대이후 사회구성체내에서 지배적인 요소를 차지하지 않듯이- ‘생산’의 의미는 ‘사회적 생산’이며 사회적 필요의 의미와 일치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생산양식에 대한 경제적 분석은 가능하지 않으며, 산노동의 긍정적 역능과 구성적 실천에 입장에서 사회구성체론은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2> 생산양식 접합으로서의 사회구성체론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경제적 진화와 이행을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자본주의 최고 발전단계로서의 제국주의시대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이미 사회주의의 맹아를 내포하고 있는 ‘사회주의의 전야’라고 하는 레닌의 표지분해론을 계승하여 규정한다. 즉 국가의 시장 개입과 통제, 그리고 사회적 재생산(공공복지/서비스)에 대한 국가참여 등을 그 맹아로 보는 것이다. 그러한 이론은 쟈골로프 계열의 경제학자에 의해서 주도되어지는데 자본주의 내에서 근본적인 변혁을 통하지 않고 사회주의로 점진적으로 이행할 수 있다는 이행기의 전략에 의해 형성된 이론이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이론가들에 의해 알뛰세르의 한국적 수용으로 이루어지는데 사회주의적 이행의 제 요소가 이미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산양식 접합이론으로서의 사회구성체론의 오류는 사회주의 생산양식론을 근본적으로 비판하지 못하고 생산양식간의 접합과 이행으로 봄으로서 탈 역사적이고 몰 주체적인 성격을 드러냈다는데 있다. 자율적인 구조들의 역사는 바로 산 노동의 조직적 힘을 분쇄하려는 선구조결정론이라는 자본의 역사와 준별되지 않는다. 생산양식의 접합이론으로서의 사회구성체론은 산노동의 제헌적 권능을 승인하지 않고, 미리 주어진 구조의 자율성이라고 봄으로서 노동의 제헌적 권능을 사상(捨象)하였던 것이다. 이는 역사발전의 동력이 되는 사회구성체내의 다양한 모순과 역동적 계기를 포함한 계급투쟁이라는 사실을 구조주의적인 이행과 접합의 문제로 치환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는 또다른 자동붕괴론적인 경제환원론을 양산할 뿐이다.  3> 우클라드론은 생산양식 접합론과 위계적 차원을 달리한 경제사회구성체간의 헤게모니적 결정이론이다. 우클라드론은 지배적인 생산방식의 변동과 사회구성체내에 계급구성의 변동등을 통해 이행의 과정에서 다양한 우클라드가 실존하며, 역사는 다양한 우클라드내에 헤게모니를 장악한 우클라드가 사회의 지배적인 우클라드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이행논쟁]에서 주로 비롯되는 것인데 전 자본주의적인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봉건제 우클라드에 대해 자본제 우클라드가 상대적인 우위를 형성하며, 결정적으로는 정치/사회적 우위를 획득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배적인 우클라드가 그 시대의 경제사회구성체를 형성한다. 그런데 우클라드론은 봉건제에서 자본제로의 이행에 있어 착취양식으로서 또한 상호전화와 타협의 가능성이 실존했던 이행에 대해서는 상당히 타당성을 가진 사회구성체론이다. 즉, 봉건적 잔재인 군주제를 공화제와 타협시키기도 하고, 동시에 봉건귀족이 상인/산업자본으로 전화하거나 산업자본가가 봉건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맑스주의 관점에서나 노동의 관점에서 크게 빗나간 것이다. 산 노동의 구성적 실천은 지배질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 질 수 없으며, 자본주의에서 비대칭적으로 존재하는 자기운동으로서의 제헌적 역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클라드론은 경제사회구성체의 헤게모니의 문제만을 다루면서 실지로 근본적인 변혁의 문제와 이행의 역동적 가능성을 현재적으로 가두려하였다는데 문제점이 있다. 진정한 변혁의 역동적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이행의 문제를 화석화시키려는 것과 현실계급간의 헤게모니적 차원에서만 조명하는 것은 비대칭적인 노동의 논리를 자본의 논리로 치환시키는 것이다. 예컨데 국제적/일국적 자본의 권력은 가장 근본적으로 테러에 의해 유지된다. 죽음을 초과하는 핵권력의 시대에 산노동의 제헌적 권능은 테러와 전쟁의 논리가 아니라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65)    4> 후기알뛰세리안의 이론은 프랑스 조절학파로 계승되는데, 이들은 자본주의의 축적체계와 조절양식의 변화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내 경제적 변동과 재생산구조에 있어 사회체제의 조절양식이 어떻게 재편되는가를 분석하려 했다. 조절학파는 자본주의의 내적 역동성과 조정능력에 주목하면서 사회적 재생산과 생산방식 그리고 조절양식이 어떻게 변화하였는가를 고찰한다.66) 그런데 조절학파의 조절양식의 대상과 주체는 자본주의 내에서의 국가다. 그러므로 이것은 국가라는 주체와 비대칭적인 산노동을 객관화시키는 자본파적 편향을 내포하고 있다. 즉, 생산양식론의 토대결정론에서 조절양식의 국가론으로 붕괴론에서 조절론으로 한계지움으로서 자본주의사회에서 또하나의 긍정적인 존재의 실존 즉, 노동의 구성적 실천을 간과했다. 국가적 전일화된 조절적 공간은 산노동의 긍정적인 역능을 강제와 억압의 지배논리로 분쇄하는 자본의 공간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자본자체의 신선도가 보증될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본이 ‘탈취된 부불노동’에 불과하고, 이것이 사회구성체를 통하지 않고 형성될 수 없으며, 사회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 이들을 노예화시키고 은폐시키는 억압과 폭력을 수반해 왔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조절이론은 자본의 조절양식이 근본적으로 노동의 구성적 권력의 분쇄라는 의미를 간과하고 루비콘강 건너에서 이를 바라보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의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을 외치만 그런데 경제학자의 분석에서 정반대의 결론들이 제기되고 있다. 사회주의붕괴가 자본주의의 제계체제의 파국적 위기를 막았다는 것이다.67) 후기자본주의에서 자본은 스스로 위기를 창출하고 극복하면서, 현실에서 모순에 대한 조절능력을 세련화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본주의의 조절능력에 대한 과대평가를 하는 것은 개혁/개량주의의 발호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으로 일시적이나마 산노동의 힘을 약화시키고 구성적 힘을 분쇄하려는 것일 뿐이다.  ‘내포적 축척체계로의 전환’은 대중노동자라는 산 노동의 조직된 힘을 분쇄하고 자본의 근본적 입장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보다 유연한 노동의 창출을 위해 사회적 재생산과 사적 영역으로 마구 침투하여 조직하므로 사회를 공장으로 전화시키고, 착취밀도의 강화하려는 것이다. 조절학파의 분석은 축척양식에서의 포스트 포디즘과 조절양식으로서 신보수주의 즉, 작고 강력한 정부로의 변화를 분석하였다. 이것의 실체는 포스트포디즘은 생산수단의 효율적 사용 역으로 조밀한 노동력의 투여, 노동실질임금 수준에 못 미치는 파견직이라는 주변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정규노동자를 일당 백의 소수정예로 만들고 광범위한 노동과정을 형성하려는 자본의 운동이다. 이러한 운동은 자본의 목적과 논리와 준별점을 갖지만 마치 탈중심화된 사회의 돌입으로 느껴지는데, 이것은 사회적 노동자라는 강력한 노동의 주체의 등장을 의미할 뿐이다.    신보수주의는 자본에 대하여 기존 국가에 비해 허약/축소적으로 개입한다는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위기/조절의 형태로 개념화한 조절학파는 ‘국제적/일국적 자본의 전일화’를 산 노동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자본의 입장에서 봄으로서 탈중심적, 몰주체적으로 국가 = 사회(국가의 사회의 실질적 포섭)라는 현실을 객관화시킴으로서 국가물신의 논리로 함몰되고 만다.       5> 월러스타인에 의해 제기된 세계체제론은 자본이 일국적 차원을 뛰어 넘어 국제적 차원에서 조직되고 있음에 문제의식을 갖는다. 자본의 국제화는 국경을 뛰어넘어 전지구적 차원에서 자본의 축척구조를 형성함으로서 일국에서의 계급이 만나는 자본은 더욱 추상화되므로 일국적 차원에서의 계급투쟁은 종식되었다고 결과론적으로 돌출한다.68) 자본은 국경의 범위를 뛰어넘어 초국적 성격을 부여받으므로 일국의 노동자가 자본의 소유주와 최종노동생산물과 만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추상적 성격이 더욱 고도화되었다는 문제로부터 난점에 봉착한다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자본의 추상화는 자본의 안정성과 평등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금융독과점에 의한 금융압박과 불평등한 교환관계의 심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월러스타인은 자본의 추상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일국적 차원에서의 계급투쟁은 불가능해 졌으므로 반체제운동을 제안한다. 국제분업구조의 고도화와 국제무역에서의 불평등구조의 고도화는 가시적인 일국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세계체제론의 문제제기는 ‘전일화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승인으로부터 출발함으로서 국제적인 자본의 운동을 산 노동의 운동으로 치환하는 오류를 갖는다. 즉, 자본의 국제화와 일국에서의 가치창출이라는 내재적 모순은 국제자본을 위협하는 요인인 것이다. 산 노동의 입장에서 자본의 국제화가 탈영토화를 형성하지만 국가라는 형태로 재영토화하는 근원이 되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 중국동포들에 대해 새로운 제국주의적 불평등한 관계를 느끼게 하는 인종주의적이며, 차별주의는 철저히 자본의 논리이며, 노동의 구성적 실천과 무관하며, 사회적 노동자는 혼성이며, 다국적이고 반기계, 반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세계화라는 자본의 새로운 불평등한 세계질서와 비대칭적으로 존재하는 영토를 가로지르는 산 노동은 국제적 연대로 나아가는 구성적 실천의 과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6> 해체주의는 사회구성체의 내적 필연적 연관과 인과성을 부정한다. 헤체주의는 각 부문의 역사적 계보를 통해 부문의 상대적 독립성을 이론주의적으로 검증하고 사회구성체적인 역사적인 자율성과 상재적으로 자율적인 부문운동의 가능성을 주장한다. 헤체주의는 사회구성체의 내적 연관성을 헤체함으로써 인종//성/환경 등의 모순에서 자율성을 획득하려 한다. 헤체주의는 전체론적 접근방식에 대한 이론적 과도한 비판을 통하여 사회의 총체적 내적 연관성을 부정하는데 이것은 사회적 노동자의 제헌적 권능과 자기가치생산의 가능성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다. 북경의 나비가 미국의 허리케인을 몰고 올수 없듯이 내적인 연관이 두절된 주관주의적 주체에게 있어 사회적 관계는 각 주체간의 의사소통이라는 상호간주간성의 형식주의를 의미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후기 자본주의사회에 편입된 사적 영역의 특징에 대한 자생적인 표현이다. 후기자본주의국가권력은 사적 영역의 확장을 위해 한정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에서의 민주주의의 형식적 다양화를 추구하는데 이러한 흐름이 교육재편, 지방분권화등이다. 이것은 자본의 국가권력이 의사개량화되고, 세련화된 것으로 바라볼수 밖에 없다. 시민사회를 행정기구로 전락시키고 사회를 산노동의 유연한 토대로 만드려는 자본은 탈중심적으로 각기 부문에 침투함으로서 권력의 통제적 기능을 유지한다. 그러므로 국가는 공적 영역에 대한 대표성을 유지할 수 있다. 만일 노동에 대한 부정의 관점에서 사적 영역의 외재적 교류라는 한계에 머문다면 국가라는 억압기구의 사법적 시민으로 영구히 남아야 하는 운명에 있다. 포스트 시민사회론은 사회 즉 사회적 노동자는 사적 영역에 머물 수 밖에 없으며, 이는 이성의 합리주의적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과 달리 ‘이성의 현실적인 간지’인 법적 차원으로 사적인 영역을 보증할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사회(사회적 노동자)의 내적 총체성을 부정하고 우연적이고 파편화된 것으로 간주하는 포스트시민사회는 자본의 포스트 시민사회적 질서와 조응하는 것으로 자본과 비대칭적으로 존재하는 산노동의 구성권력과 노동의 중심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나> 階級構成體와 社會構成體   산 노동의 입장에서 ‘생산양식’의 분석은 ‘노동’과정에 대한 분석이며 동시에 ‘사회구성체’에 대한 분석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생산양식에서 창출되는 잉여가치에 대한 분석은 착취의 노동과정에 대한 분석이다. 산노동의 입장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노동’의 분석은 정치적 분석이어야 하며 이것은 정치경제학 비판, 자본주의적 노동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자본주의에서 두개의 계급이 실존하기 때문에 노동과정론은 객관적인 것일 수 없다. 기간 노동과정에 대한 분석은 가치론의 창출공간은 비생산적/생산적 노동과 복합/단순노동, 육체/정신노동에 생산의 영역에서 이상적/이론적으로 적용되는 전형에 대한 문제로 다루어 졌다.69) 그런데 이러한 가치창출의 일반설정은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공장을 가로질러 사회구성체인 사회의 영역으로 확장된 자본의 생산과 재생산의 영역은 기존의 필요노동임금에 대한 규정마저 무시한다.70)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노동과정은 사회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산노동의 사회적 확장은 적대를 확대재생산하므로 대중이 더이상 노동과정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사회적 노동과정내에 구성적 권력으로 나아가는 실천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초기자본주의생산에서 생산수단에 대한 전유와 자주관리라는 대중노동자의 실천적 힘은 이제 사회적 노동자의 구성적 실천을 통한 자기가치생산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구성체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토대와 상부구조의 구조적 결정론 주체를 명확히 하게 된다. 즉, 사회적 노동자의 노동과정론과 정치적 구성, 소비양식과 규제양식의 분석으로 전화된다. 생산의 영역에 존재하는 대중노동자와 시민사회라는 분리적 설정과 포스트시민사회론은 더이상 후기자본주의에서의 자본의 노동에 대한 실질적 포섭의 단계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기간 계급역관계는 자율성을 가진 시민사회영역에 대한 계급의 헤게모니관철로서 계급의 역학관계와 대중에 통합력으로 사고되었다. 자본의 의도는 생산의 현장에서 산 노동을 일부 배제하고 노동조직을 무력화시키려며, 적확하게 산노동의 힘을 분쇄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자본의 합리화의 과정에 따른 노동의 유연화는 자본의 의도와 수단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변형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형과정이 산노동의 새로운 차원의 노동과정의 등장이며, 동시에 사회적 노동자의 등장이다. 사회적 노동자의 구성적 실천은 구성권력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며, 사회적 노동자는 생산과 재생산의 영역을 가로지는 제헌적 권능을 이미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산노동은 사회적 구성체가 계급구성체와 일치로 나아가게 했던 자본의 변형으로 말미암아 비대칭적으로 사회의 전영역에서 실존한다. 오늘날 모순의 혁명지점은 사회적 노동의 구성권력과 지배통치권력간의 적대에 있다. 이러한 적대는 추상적 수준에서 노동기술의 사회적 합리성과 지배기술의 합리성간의 상대적 적대로 드러난다.71) 그러나 이러한 합리성의 논의는 기존에 공적 영역은 미리 구조화된 법제하에서 사적 영역은 시민사회의 영역내에서 존재한다고 하는 정식의 사멸을 의미한다. 초기 자본주의사회 이후에 자본의 포섭의 욕구는 국가권력으로 하여금 국가외부에 시민사회를 광범위하게 간섭하고 개입하게 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기종의 시민사회의 소멸과 국가의 내부에 명명된 포스트시민사회의 등장하였다. 이는 산노동이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통해 활용가능한 영역을 사용한다는 기존의 인식에 종말이기도 하다. 산노동은 자본의 논리와 자본주의기계들과 기구들을 통하여 권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산노동의 제헌적 권능과 사회적 노동자의 역능의 총합에 의해 구성적 권력으로 나아갈 것이다.  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의 자본의 변형된 운동은 자본이 노동의 논리를 스스로 배우고 있음을 의미한다.72) 자본주의하에서 비대칭적으로 존재하는 노동은 객관화된 자본의 영토밖에 있다. 즉, 생산수단과 생산물을 여전히 전유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자본은 자본주의에서 노동이 재영토화해야 한다고 강제와 환각의 공세를 펼친다. 산 노동, 프롤레타리아의 권력의 존재는 더이상 활용가능한 영역이 아니라 자기운동의 사회적 노동자의 구성적 잠재력의 심급에서 존재한다. 자본의 노력은 탈중심화된 형태로 사회적 노동자의 자기인식과 자기가치생산과 적대라는 구성적 실천의 외부에서만 위기를 창출하면서 조절하는 형태로 개입하려고 하지만, 살아 있는 사회적 인간에 실천의 욕구, 커뮤니케이션속에서 이미 외부로부터 개입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때문에 자본은 끊임없이 사적인 영역을 침투하여 국가수호와 경쟁의 이데올로기의 포탄을 쏟아부으며, 동시적으로 비밀스런 노동자와 은밀한 대중의 구성적 실천에 대항하는 스파이면서 포획으로서의 권력의 의미를 되살리고 강화하는 것이다. 후기자본주의 사회구성체론의 의미는 자본과 노동의 두개의 자기운동이 적대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며, 스스로 적대와 배타성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회적 노동자이면서 사회구성체이면서 노동계급구성체’에 대한 적나라한 국가권력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구성적인 실천의 권능은 폭발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동시에 위계제적인 실천방식이라는 기간의 정치에 대한 우회를 통하지 않고도 직접적으로 산 노동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구체화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노동자의 구성권력은 천개의 눈이라는 이론적 권위가 아니라 천개의 마루에서의 정치의 아상블라주를 형성할 것이다.73)  기간 사회구성체론은 사회와 정치라는 부문이 구별되는 것으로, 정치해방이 사회해방은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즉, 사회에는 다양한 계급질서가 존재하므로 이들은 시민사회로 자율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므로, 노동의 정치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의 정치의 대상인 사회는 사회적 노동자로 전화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대상과 주체, 목적과 수단이 다른 마키아벨리즘의 군주를 되살리는 것은 정치의 종언을 위한 꼬뮌의 전통에서 위배되고, 동시에 스탈린주의의 과오를 답습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구성적 실천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것이다. 후기 자본주의의 축척체제의 전화와 동시에 창출된 사회적 노동자는 계급간의 동맹이나 헤게모니전략의 파산을 의미하고, 정치와 경제를 분리시키는 전통적인 기간의 도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던지는 것이다. 레닌주의를 말하면서 레닌의 초기 대중노동자의 시대와 현대 사회적 노동자의 시대의 차별성을 간과하고 동일한 지평에 있는 교조주의자들에게 사회적 노동자의 실존을 인정할 수 있는가? 또한 실재를 인정할 수 없다면 산 노동의 제헌적 권능을 부정하고, 신뢰하지 않지도, 융합과 구성을 실천하지도 않은채 철저히 외부로 향하는 것은 실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계급구성체는 생산의 현장과 재생산의 현상을 가로지르는 사회적 노동자의 구성적 실천의 자기운동의 영토를 의미하며, 이를 구성하는 권력은 거시적(몰적)이면서 동시에 미시적(분절적)인 영역을 통합하는 구성(노마드)권력의 실천을 요구한다.74) 이것은 레닌의 정치와 경제의 분리와 정치로의 상승발전의 모델 즉, 외부로부터의 도입이라는 정식과 달리 노동의 자기운동이다. 실천의 외재적 한계는 내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구성체의 중심개념은 비대칭성에 있으며, 동시에 산 노동의 통일과 구성에 있음이 분명하다.          다> 組織論의 諸問題    터  미  널 : 레닌이 주장했듯이, 정치적인 것은 경제적인 것의 집중된 형태이고, 권력은 가치의 집중된 형태인가?  토니 네그리 : 정확하게 그 반대가 사실이다.75)    단도직입적으로 볼세비즘은 러시아지배계급과 자본주의의 후진적 상황에서 가능하였던 전략이었다. 이러한 볼세비즘의 원리를 구체적 상황에 대한 고려없이 그대로 적용한다면 실천의 구체성을 상실하게 될 이었다. 계급의 일부이면서 의지의 대표체로서의 볼세비키정당의 형태로의 정치는 실지로 정치와 경제를 미리 가정하고 정치를 상위에 놓는 실천이다. 레닌은 그러나 당과 대중과의 관계 계급동맹의 전략이 중요함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당을 레닌은 하나의 도구로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레닌은 ‘당없는 공산주의자’를 자임하였다는 것이다. [일보전진 이보후퇴]의 주된 논쟁은 당원을 규약을 승인하는 사람으로 할 것인가? 강령을 승인하는 인자를 당원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레닌/마르토프에 당구성에 관한 논쟁인데, 여기서 레닌은 볼세비키당을 투사로서의 당, 계급의 이론적 위계로서가 아닌 강고한 철의 규율을 가진 실천적 도구로 사고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도구로서의 당은 ‘철의 규율’이라는 폐쇄성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노동의 제헌적 권능을 억누르고, 스탈린에 의해 지배계급으로 변질된다. 레닌이 후진적인 상황에서 혁명을 연속시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들 - 브레스트 리토프스끼 조약, 신경제정책 -이 수행되었다고는 하지만 바로 그 도구들과 기계들인 정치의 영역에서 테르미도르가 시작되었다. 여기서 구성적이고 긍정적인 권능과 반동적 힘을 가치론적으로 더욱 구체화시켜 보아야 할 것이다.76)    1)능동적인 힘, 활동하는 또는 지배하는 권력 2) 반동적인 힘, 복종하는 또는 어떤 활동의 영향을 받는 권력 3) 발전된 반동적인 힘, 분열시키는, 나누는, 그리고 분리하는 권력 4)반동적이 된 능동적인 힘, 분리된 스스로에게 돌아선 권력77)    레닌이 러시아의 혁명의 연속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은 유럽혁명의 지원이었는데, 당시 유럽의 사회주의세력들은 제 2인터내셔널의 교조주의/수정주의적 오류속에서 지하로 침몰된 상태였다. 혹자는 ‘레닌은 옳고 스탈린은 틀렸다’라고 말하는데, 스탈린의 오류는 레닌의 실천의 괘적을 교조주의적으로 충실히 반복했을 뿐, 창조적으로 계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78) 예컨데 스탈린은 당을 일괴암적으로 인민과 국가와 동일시하였다. 즉, 존재의 외부의 의식이 자신의 존재를 형성하기 시작했으며 바로 당관료라는 새로운 지배계급이 되었다. 스탈린은 반동개념을 사회적인 개념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으로만 해석하였는데, 그의 혁명에 대한 적확한 이해 부족은 반파시즘 인민전선이라는 코민테른 정책에서도 보여진다. 이는 제 2인터네셔널의 당/대중의 분리의 극단적 형태인 계급의 의지의 최고구현체로 당이 영구히 남으며 - 레닌은 당보다 소비에트가 앞설 수도 있고 소비에트보다 당이 앞설 수 있다는 유연한 인식과도 차이가 있다 - ‘노동’의 제헌적 권능대신에 당이 사법적 행정집행적 권력을 집행한다. 당내에서의 분파형성권의 일시적 제한의 문제 또한 철의 요새에 대한 제국주의의 지속적인 위협으로 말미암은 민주집중제가 영구화되고 만다. 실천적 전통은 이론적으로 화석화되고 압살당하고 숙청된다.79)  레닌이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당과 대중을 철저히 분리구축하고자 했던 것은 러시아 사회구성체의 미발전 즉, 다수의 농민과 대중/숙련노동자라는 현실 속에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80) 그러므로 노동에게 제헌적 권능은 정치적 헤게모니의 관철이라는 형태로만 존재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던 것인데, 오늘날 사회적 노동자의 창출은 정치와 사회/경제의 분리구축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를 다시 묻게 하는 부분이다. 동시에 그 당시 대중의 외부에 존재했던 조직의 전통이 정치적 전위를 보증하는 기준이 될 수 없는데, 레닌은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의 융합의 구체적 실현을 통해서 의식의 외부도입이라는 설정의 실물은 노동의 헤게모니 정치라는 것을 밝혀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당-의식이 조직의 이데올로기로 전화되면서 이론적으로 권위와 전통을 유지하였으며, 투사이데올로기를 몰아냈으며, 당조직은 노동이 사용할 정치적 도구가 아니라, 노동에 대한 지배도구로 전화되었다는 점이다. 전쟁으로 인한 노동자의 유실과 함께 숙련노동자의 경영인으로 전화를 이루어냈고, 농민의 집산화로 자본주의로 나아갔던 것이다.  레닌시대의 러시아에서의 혁명은 미처 자본주의로 완전히 발전하지 못한 저개발국에서 노동자권력은 ‘숙련노동자’를 중심으로 이루어 졌으며 이들은 ‘이론과 실천의 진정한 통일체’이기도 하였다. 이중혁명은 일국내에서 계획과 경영을 통해 대공업의 도입을 통해 노동자를 창출하면서도 노동자의 권력을 유지하는 이중적 과제의 개막이기도 하며, 레닌은 노동자의 역능과 주요적대 속에서 대중의 움직임을 비교적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발전한 자본주의하에서의 산 노동의 역능을 총합시키기 위해서는 존재의 역능외부에서 의식적으로 농민과의 동맹을 지속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이러한 이론과 실천의 매개항의 설정은 정치와 사회의 분리라는 실재적 상황에 근거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의 개입또한 레닌의 ‘막대구부리기’라는 의식적 유연성속에서 였는데, 이는 노동의 역능이 어느 범위까지 실재적으로 구성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하였다.  오늘날 고도로 발전한 후기 자본주의사회, 산 노동은 사회적 노동자가 되고 자본은 더욱 추상화되어 존재하고 있다. 산노동의 제헌적 역능은 자신의 목적과 수단이 괴리된 형태로 사회적 노동자의 구성적 실천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더이상 계급의 외부에 설정이 아니라 일부기능으로서의 또는 그것의 내부의 자기운동의 표현으로서 노동의 민주주의만이 유효할 것이다. 과연 자본이 자신의 이해를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후기자본주의하에서 노동의 외부에 어떠한 부분이 활용가능한가? 한마디로 없다. 왜냐하면 사회전체가 사회적 노동자로서 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거에는 당이 천개의 눈이었다면 사회적 노동의 구성권력은 천개의 마루에서 생성될 것이다.    結論  1995년 해체되어버린 육신과 정념을 안고, 원한과 부정으로 가득한 채 파일공장 선반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경쟁사회에 뒤쳐져 버린 소위 과거 운동권이 이 사회에서 돌아갈 영토는 진보적 사회진출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거의 없다는 사실과 뒤틀려 버린 인간관계들 속에서 민주주의적 대화가 두절된 노예 논리와 거대한 사회라는 공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때, 들뢰즈를 읽으며, 노동과 실천의 새로운 의미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스피노자의 길을 따라 공장관리와 강제의 논리가 아닌 노동자의 눈으로 다시 현실을 보게 되었다. 작업장의 자동기계속에 끊임없이 진정으로 긍정적이며 기쁨으로 함께 해야 할 사람들을 생각하며, 구성적 주체를 생각하며, 강력한 욕구들을 느꼈지만 욕망하는 생산은 현실에서 ‘구성적 실천’을 통하지 않고 구체화 될 수 없는 것이다.  공장에서 많은 변화를 보았다. 같은 공장 내에 같은 작업장에서 비슷한 월급을 받는 노동자인데도 어떤 사람은 ##용역회사, 어떤 사람은 %%회사, 유통회사, 프리렌서, 아르바이트 등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다. 자본이 자신의 이름을 바꾸면서까지 노동자의 단결된 힘을 두려워하고 노동자간의 분리와 경쟁을 이간질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자본은 노동운동에게 기존의 제도, 가족, 국가로 돌아올 것을 끊임없이 유혹하지만, 막상 돌아온 그 자리에는 경쟁에서 일탈은 죽음뿐이라는 냉혹한 노예논리의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노동자조직의 지체는 경쟁이라는 임금 노예논리/자본주의적 정신분열증을 확산시키고 있지만 머지 않아 노동의 역능은 자본의 도구를 통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제헌적인 권능을 행사할 것이다. 일차적으로 사회적 노동자의 다양한 욕구가 분출하는 혁명적 행동으로 옮겨지는 잠재적 권능은 노동의 긍정이라는 존재의 적극적인 실천활동에 있다. 노동의 구성적 힘을 해체시키기 위한 자본의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히려 사회적 노동자 반인/반기계의 출현은 노동자의 자율성과 잠재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경제위기, 만성불황이라는 자본의 볼멘소리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위기의 도래는 노동의 권능과 코뮤니테리안의 구성적 실천이기에, 자본은 자꾸 ‘나 떨고 있니’하면서도 포획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노동법 날치기 통과의 연일 항의시위는 노동의 제헌적 권능이 아닌 자본의 국가이성의 틀 내에서 여/야당의 협상으로 끝났다. 국가이성의 법테두리의 안에서 개량과 개혁에 의해서 달라진 것이 있는가? 민주노총은 물론 매개와 베제라는 양날의 칼 아래 노동조합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한계와, 사회적 노동자전체를 대표한다기 보다 ‘국민을 위한’ 이라는 자본의 논리로 머무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노동운동의 발전과 구성적 실천이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며, 극복할 수 있는 길이다. 현재, 사회적 노동자의 창출과 더불어 새로운 구성적 실천을 이룰 노동자조직의 도래는 임박해 있다. 지상에 ‘과잉인간’이라는 조건은 폭발적인 디오니소스의 만물의 구성으로서의 불꽃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보다 발전된 도구, 컴퓨터와 자동기계를 사용하는 인간들에게 바로 꼬뮌의 피가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redshand [출처] 해체비평入門|작성자 헌책  
825    "거시기" 세글자면 모든 것 통하는 것... 댓글:  조회:4676  추천:0  2016-01-02
타령조로 쓴 ‘거시기’의 사회학적 재해석 죽어도 편 안 가르는, 맴과 맴을 이어주는 ‘침묵의 소리’                                            /김화성│동아일보 전문기자     참으로 말만 많고 진심과 진실은 통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전라도 사람들은 무슨 텔레파시가 있는지 예부터 ‘거시기’ 세 글자면 모든 게 통합니다. 그동안 이 ‘거시기’란 말은 각종 영화, 문학 작품을 통해 여러 가지 해석이 시도됐는데요, 필자는 이 거시기란 말을 ‘말이 돌처럼 딱딱허게 굳은 시상에, 혼자 앙앙불락허는 미친넘들의 나라에서, 죽어도 편을 안 가르는, 맴과 맴을 이어주는 침묵의 소리’라고 정의합니다. 이 글은 전라도 사투리를 타령조로 쓴 것이므로 표준어와 맞춤법에 맞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거시기’란 말은 자연과 동심을 닮았다. 드러내지 않아도 그 속내를 알 수 있는 밝고 따뜻한 말이다.   요즘 난 거시기 헙니다. 먹는 것도 거시기 허고, 자는 것도 거시기 헙니다. 신문을 봐도 거시기 허고, TV를 봐도 영~ 거시기 헙니다. 치깐에 안저 있어도 속이 더부룩허니 거시기 헙니다. 꼭 목구녁에 무신 거시기가 걸린 것 같습니다. 꿈속에서 저승에 기신 부모님이나 친척들을 만난 날은 하루점드락 맴이 걍 거시기 혀부립니다. 거울 속에서 삐죽삐죽 준치 까시 같이 돋은 은바늘 턱자락을 보먼, 거시기 혀부립니다. 한겨울 미나리깡 연초록 잎들을 보먼 코가 시큰허니 거시기 혀부립니다. 날씨가 꾸무럭혀서 그런가요? 나이 탓인가요? 몸이 껄쩍지근~허고, 심드렁~허고, 녹작지근~ 헌 것이 참 지랄 같습니다. 찌뿌등등~ 헌 것이 작대기로 여나무대 얻어맞은 것 같습니다. 저~, 거시기 머시냐~, 역시 나이는, 삼말사초가 질로 좋은 것 같습니다. 하먼요, 삼십대 말에서 사십대 초 때야 머 무서운 게 없었응게라. 술 머그먼 머리 속이 몽롱허니 허부적댈 때 진즉 알아보아야 혔습니다. 글자가 물범벅이 되어 희끄무레 보일 때 거시기 혔어야 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먼 손발이 저릿저릿, 허리가 시큰시큰, 모가지가 뻐근녹작헐 때 거시기를 히써야 혔습니다. 시상 일도 그렇습니다. 한창때는 기먼 기고, 아니먼 아니고, 니기미 작것, 뚜부라도 단칼에 동강내버렸는디, 인자는 머시 진짜이고, 머시 짝퉁인지 잘 모르겄습니다. 머시 옳은 거시고, 머시 그른 거신지 알다가도 모르겄습니다. 이거시 저것 같고, 저거시 이것 같고, 거시기가 저시기이고, 저시기가 그 거시기이고…. 사람 속은 또 얼매나 헷갈립니까? 한 사람을 알았다 싶으먼, 금시 모르겄고, 모르겄다 싶으면, 어느 날 문득 쬐께 알거 같기도 허고. 참말로 폭폭헙니다. ‘연못에는 빠져도 사람한티는 푹 빠지지 말라’고 혔는디, 그 말뜻을 인자사 알거 같습니다. 물에 빠지먼 깨구락지 히엄이라도 쳐서 나올 수 있겄지요. 그런디 사람헌티 한번 폭 빠지먼 죽어도 못 빠져 나당게요. 정말 거시기 머시기 혀부립니다. 탤런트 김성환(1950~)의 별명은 ‘거시기’입니다. 나같이 아래 사람덜은 그를 이무롭게 ‘거시기 성님’으로 부릅니다. 한자로는 클 ‘거(巨)’자에 심을 ‘식(植)’자 ‘김거식(金巨植)’입니다. 거시기 성님이 밸 이름도 없이 방거충이 맨치로 방송국에 허청허청 댕기던 80년대, 긍게, 저~ 거시기…, 무슨 드라마더라? 하여튼 그 머시기 TV연속극에 ‘거시기’라는 뜨내기장사꾼으로 등장헌 적이 있었는디, 그때 겁나게 떠부렀지라. 그때부터 ‘거시기’가 별명이 돼부렀습니다. 거시기 성님은 입이 걸쭉헙니다. 말도 능청시럽고 능글 징글맞습니다. 남덜이 배꼽을 잡고 뒹굴어도, 자신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조 으시딱딱허게 썰을 풀어갑니다. 노래도 가수 뺨치게 잘해부럽니다. 해마다 어버이날이나 연말연시가 되먼 디너 숀가 먼가를 삐까번쩍헌 호텔으서 멋들어지게 해부립니다. 아니 연기허는 사람이 먼 넘의 노래를 그렇게 징허게 잘허는 지…원. 거시기 성님이 디너쇼에서 빠지지 않고 허는 구라가 있습니다. 바로 ‘거시기 구라’입니다. 거시기 성님의 거시기 구라 나 고향은 전라북도 군산인디, 제 옆집에 아덜 삼형제를 둔 농부아자씨가 살고 있었구만이라. 근디 이 양반이 얼매나 부지런헌지 시복부터 깜깜헐 때까정, 기양 논에서 살다시피 혔지라우. 이 양반이 어느 날 시복에 논에서 돌아와 정신없이 끼대자고 있는 아들덜을 깨우는디, 그게 참말로 요상시럽다~ 이겁니다요. “옴메, 요런 싸가지 없는 것들 보소, 해가 똥구녁 우그까지 번허게 떴는디 시상 모르고 끼대 자빠져 자고 있네 그랴. 야, 거시가? 얼릉 일어나 나 잠 봐라 이잉? 이것떨이 귀를 쳐 먹었나. 거시가? 안 일어날래! 이 썩을 오살헐 넘아! ” 거시기가 누군가? 나는 고개를 자우뚱 혔습니다. 나가 아는 3명 아덜은 모다 번듯헌 이름이 있었는디, 기양 ‘거시기’라고 부르면 어느 자식이 일어날지 나가 생각혀도 쬐께 깝깝혔습니다. 근디 누군가 “예, 아부지 시방 일어나는 구먼이라~”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큰아덜이었습니다. 히야, 큰아덜이 거시기로구나! 근디 그 아자씨 다음 말이 더 걸짝이었습니다.      (계속)   “오냐, 얼릉 일어나, 나 야그 잠 들어봐라 이잉. 나가 오다봉게로 깐치다리 밑으서 집채만헌 차가 기양 노인네를 거시기 혀부렀다. 그러니 너는 허청으로 가서 거시기허고 거시기를 가져오니라.” 그러더니 그 아자씨는 또 방안에 아직도 자고 있는 두 아덜에게 때까오처럼 소락때기를 질러댔습니다. “야, 거시기 너도 일어나라 이잉? 너그 성허고 너는 항께 거시기 히야 된게. 너도 허청에 가서 거시기 갖고 나서라! 빨리 이잉~” “아이고 쬐께 더 잤으먼 쓰것고만~. 먼 하나씨가 시복부터 그 일을 당혀 갖고 이렇게 난리를 쳐부리는가 몰르겄네.” 둘째아덜 씨부렁거리는 소리였습니다. 마당에서는 먼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고, 쨍그렁허니 삽 부딪치는 소리 같은 것도 들렸습니다. 그 아자씨허고 큰아덜이 무신 연장 같은 것을 챙기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아자씨 입은 쉬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거시가!! 너는 성덜이 다 일어나 부새떨고 있는디 잠이 편히 오냐 이잉? 아이고 나가 전생으 무신 잠충이 고기를 아구아구 삶아 먹었는지, 새끼덜이 하나같이 잠만 퍼잔단 말이시. 이런 호랭이가 열두 번 차갈 넘덜. 그리 갖고 낭중에 밥술이나 제대로 쳐 먹고 살랑가 몰라. 거시기 넌 말이여, 너는 두 성들이 거시기허게 머시기 갖고 따라 오니라 이잉.” “아이고 아부지 알았서라. 그렇찬혀도 일어날라고 혔는디…. 어차피 더 잠자기는 글러버렸응게로. 긍게 아부지, 저그 머시냐, 나넌 저시기만 갖고 가먼 되겄고만요 이잉. 참말로 그 하나씨도 지지리도 복도 없구만이라. 어디 사는 하나씬지는 잘 모르지만, 먼 시복부터 그렇게 길을 바삐 가시다가….” 쬐께 있다가 그 아자씨와 거시기 삼형제가 깐치다리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지라우. 가마니 봉게 첫째 둘째 거시기 아덜은 삽과 들것을 들었고, 아자씨는 짚 한 다발 허고 잿간에서 재를 퍼 담은 다라이옴박지를 허리에 끼고 있었습니다. 막내 거시기 아덜은 거적때기를 둘둘 말아 들었고요. 기가 맥혔습니다. 아니 아자씨가 헌말은 ‘거시기는 거시기허고, 저시기는 머시기 허고…’ 하여튼 모다 거시기 저시기 말만 혔는디, 그 거시기 아덜 삼형제는 어치케 알아듣고 다덜 척척 거시기허고 나섰능게라. 구신이 곡헐 노릇이지라. 긍게 상황을 조근조근 빽다구만 추려보먼, 쯧쯧 어떤 할아버지가 다리 밑 길에서 차에 치여 그만 돌아가셨는가 본디, 그걸 아자씨가 새복 논 물꼬 보러 갔다 오다가 본 것이지라. 그려서 그 시신을 차마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응게, 들것 허고, 먼가 덮을 꺼적때기 허고, 핏자국 지울 재 같언 것이 필요혔겄지라. 글고 그 썩을 넘의 차가 길바닥을 뭉개놨을 거신 게 그걸 다시 평평허게 해놓을라먼 삽이나 머 그런 연장도 필요허겄지라.   허 참, 거시기 성님, 참말로 찰지고 맛나게 구라를 풀어부럽니다. 참 거시기 저시기 허니 옹골져부럽니다. 어치커나 전라도 사람덜은 머시든 거시기 하나로 다 통허는가 봅니다. 히히히, ‘전라도 사람덜은 거시기로 통헌다?’ 말혀 노코 보니 쬐께 거시기 헙니다. 이 바닥에선 머니머니 혀도 황지우 시인의 ‘거시기’가 으뜸입니다. 이 사설, 아니 넋두리는 절대로 자기 편헌 대로 꺾거나 붙여서 읽어부리먼 배려버립니다. 영 가락이 안 살아나고, 맛이 안 나부린당게요. 황 시인이 처음 쓴 그대로 행갈이 험시롱 따복따복 을퍼야 꼬숩고 들척지근허고 맛나지라. 근디 도대체 이 썩을 넘의 거시기가 머다요~ 이잉? “아이고, 이것이 무엇이냐! 아이고, 이것이 무엇이여! 분명 무신 장은 장인디~. 허 참 알다가도 모르겄네. 초화장? 된장? 천장? 마루장? 고추장? 기왓장? 면장? 사장? 회장? 장화초? 도대체 이거시 무엇이냐!! ” 놀부란 놈, 흥부네 집에서 모개나무로 만든 화초장을 눈 부라려 억지로 하나 짊어지고 오다가, 그만 그 이름을 홀라당 까먹어버렸것다! 그려서 혼자 미친 넘처럼 중얼중얼 지랄 생난리를 치는 모습입니다. 키키키~푸하하하~. 황 시인도 놀부만큼이나 ‘거시기’가 무엇인지 폭폭허고 화완장 혔던 모양입니다.     (계속)   황지우의 ‘거시기’   워매 요거시 머시다냐 요거시 머시여 응 머냔 마리여 사람미치고 화안장하것네 야 머가 어쩌고 어째냐 옴메 미쳐불 것다 내가 미쳐부러 아니 그것이 그것이고 그것은 그것이고 뭐 그것이야말로 그것이라니 이런 세상에 호랭이가 그냥 캭 무러갈 불 놈 가트니라고 야 너는 에비 에미도 없냐 넌 새끼도 없어 요런 호로자식을 그냥 갓다가 그냥 캭 위매 내 가시미야 오날날 가튼 대멩천지에 요거시 머시다냐 응 머시여 아니 저거시 저거시고 저거슨 저거시고 저거시야말로 저거시라니 옛끼 순 어떠께 됫깜시 가미 그런 마를 니가 할 수 잇다냐 응 그 마리 니 입구녁에서 어떠께 나올 수 잇스까 낫짝 한번 철판니구나 철판니여 그래도 거시기 머냐 우리는 거시기가 거시기해도 거시기하로 미더부럿게 그런디이 머시냐 머시기가 머시기헝께 머시기히어부럿는디 그러믄 조타 조아 머시기는 그러타치고 요거슬어째야 쓰것냐 어째야 쓰것서어 응 요오거어스으을   /‘황지우 ‘거시기’ 전문’ “히히히~ 키키키~ 낄낄낄~길길길~쿠쿠쿠~” 황 시인이 아조 애간장이 다 녹아부릴라고 허는 구만이라 이잉. 누구 좀 아는 사람 없소? 있으먼 지발 좀 갤쳐주시오 이잉? 앞날이 구만리장천 같헌 대한민국 대표시인을 기앙 속 터져 죽게 만들먼 쓰겄소? 나도 폭폭허니 맴이 맴이 아니구만이라. 허지만 나도 그 뜻이야 몸으로는 알지만, 어치케 말로는 표현 못 헌당게요. 거시기란 뜻은 구신도 말로 표현 못헌당게라. 안개 같은 것인게라. 바람 같은 것잉게요. 바람은 잡었다 싶으면 날아가 버리고, 날아갔다 싶으먼 살랑살랑 꼬랑지를 치면서 몸을 간질이는 아조 쌩보고리 인게요. ... [출처] 김화성/ ‘거시기’의 사회학적 재해석|작성자 헌책    
824    난해시와 김지하 댓글:  조회:4538  추천:0  2016-01-02
  한국 현대시는 조연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데 …                                /[중앙일보]  ‘문예중앙’시선(詩選) 속간 첫 번째는 조연호 『농경시』 해설 쓴 허윤진 편집위원 “독특한 리듬·음조에 쾌감”    시인 조연호씨가 시집 『농경시』(문예중앙)를 냈다. 문체 빼어난 평론가 허윤진씨가 해설을 썼다. 조씨와 허씨는 시집이 “뜻을 속속들이 모르더라도 말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김태성 기자]요령부득의 난수표 같다. 시집 제목은 자못 서정적이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이런 단언에 시인이 실망하더라도 할 수 없다). ‘한낮은 한낮을 색적(索敵·적을 찾아냄)하고 말았다. 이 식(蝕)을 간직할 것이다.’ 시집 첫머리, ‘시인의 말’이다. 무슨 뜻일까. 건너 뛴다.  시집 본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겨울, 꿈에게 다짐한다. 밤의 모호한 흔들림에 맺힌 핏방울처럼, 떠오르는 별로부터도 검게 윤이 나도록 너희는 배회로 허공을 치장하고 있었다. 내 작은 껍질을 자르기 위해 어버이는…’.  조연호(42) 시인의 새 시집 얘기다. 제목은 『농경시』. 2년간의 공백을 깨고 지난해 가을 속간호를 낸 계간 문예중앙의 시선(詩選) 1번으로 출간됐다.  2000년대 중반 문예중앙이 소위 ‘미래파 논쟁’을 제기하며 ‘물증’으로 선보였던 시집을 기억하는 이라면 조씨 시집에 대한 충격이 덜할 수도 있겠다. 당시 대표적인 문제작이었던 황병승의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를 두고‘획기적인 형식 실험’ ‘실속 없는 언어 유희’라는 주장이 맞섰다. 조씨의 새 시집을 두고 문예중앙 편집진은 전열을 재정비한 듯하다. 시집 뒷장 추천사에서 문예중앙 편집위원인 평론가 권혁웅은 “한국의 현대시는 조연호 이전과 이후로, 불가역적으로 나뉘었다”고 평한다. 극찬이다. 시집 해설 역시 문예중앙 편집위원인 평론가 허윤진(31)씨가 썼다. 집안 식구들이 모두 나서 자기네 선수를 응원하는 모양새다.  시집은 굳이 분류하자면 서사시다. 헌데 이렇다 할 사건을 찾기가 어렵다. 문장은 통상적인 문법규칙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추상명사를 생명체처럼 대한다. ‘문비(問備·죄가 있는 관원을 조사하는 일)’ 같은 난해한 한자어도 많이 나온다. 허씨에 따르면 조씨는 문장이나 사건의 인과관계를 한사코 부정하는 이다. 그러니 실존적인 고민에 빠지게 된다. 책을 던질 것이냐, 말 것이냐. 조씨와 허씨를 만나 시집의 의미, 감상법 등을 들었다. 획기적인 시집이라지 않는가.  -전문적인 감식안을 갖춘 독자가 아닌, 일반 독자에게 감상법을 추천한다면.  조=이번 시집이 하나의 의미망을 따라가지는 않기 때문에 여러 방법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우리가 보통 시집에 대해 갖게 되는 관심은 너무 재단되어 있지 않나. 작품은 어차피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그런 걸 파악하려고 노력해보시라고 당부하고 싶다.  허=시집은 제목이 없는 49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처음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는 없다. 비선형(非線形)적인 독서가 가능한 작품이다. 좋은 시는 낭송해 보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번 시집도 무슨 말인지 모르더라도 따라 읽다 보면 독특한 리듬과 음조가 느껴진다. 그게 일차적인 쾌감을 준다.  -형식실험이 극단으로 치우치면 소통 불능이 되지 않나. 이런 작업의 의의가 있다면.  조=다들 인과관계를 중시하는데, 사실 인과관계나 기억을 통한 현실의 재구성도 어떤 면에서는 가정이고 가설 아닌가. 내 시가 겉으론 혼란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어떤 종류의 전제, 내적 규정들에 따라 쓴 것이다. 혼란 자체도 질서라고 생각한다.  허=조씨의 작업은 굉장히 서정적이면서 지성적인 작업이다. 인류학적이고, 어떤 절대적인 가치를 붙들고 씨름한다. 독자를 괴롭히는 것은 맞지만 한국 문학의 지성적인 전통을 계승하는 측면이 있다. 의미와 형식적인 혁신,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야망이 큰 시인이다.  -뜻을 알 수 없는 한자가 많이 나와 더 어렵다.  조=신조어에 가까울 만큼 잊혀졌던 언어를 쓸 때 뉘앙스가 새롭다. 잊혀진 한자 단어를 찾기 위해 4, 5년 전부터 논어·맹자 등 고전을 혼자 공부했다.  허=음악적이고 보다 풍요로운 느낌을 준다. 한국어의 지평을 확대한다고나 할까. 글=신준봉 기자      5. 김지하의 새로운 시 “지난해 5월 촛불집회 때 아들 둘과 이야기를 하는데 아들이 ‘아버지 시는 왜 이렇게 어렵냐. 조금 못나고 쉽고 쿨하고 재미있게 쓸 수 없냐. 그게 신세대가 아버지에게 원하는 거다’라고 한 방 놓습디다.” 20, 30대 아들에게 들은 한 마디에 그는 평소 가졌던 시학을 내던져버렸다. 정제되지 않은 일상어로 일기 쓰듯 시를 써내려갔다. 파란만장했던 시인의 과거사, 사회 비판에 이르기까지 지나치게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형식은 ‘못남’을 취했지만 허례허식을 벗어던진 진솔한 자기 고백이 피부에 와닿는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못난 시’가 태어난 배경이 되기도 한 지난해 촛불집회에 관한 시들이다. “촛불이 온 지구 생명의 구원인지도 몰라…이 세상 맨 꼬래비/ 애갱치들과 여편네들과/ 쓸쓸한 외톨이들이 어느 날/ 문득 앞에 나서 직접 정치한다는/ 열흘씩/ 보름씩/ 야단법석 토론하는/ 옛, 옛, 옛, 화백인지도 몰라.”(‘못난 시9’) 김 시인은 “조직도 지도자도 없이 질서를 유지하며 집단 이성 합의에 의해 비폭력으로 유지된 촛불은 우주적 사건”이라고 했다. 동학사상의 ‘기위친정(己位親政)’을 촛불에서 읽었다는 시인은 “ ‘기위’는 맨 꼴찌를, ‘친정’은 임금의 직접정치를 의미하는데, ‘기위친정’이란 개벽이 시작되면 천대 받던 소외계층이 임금처럼 우주정치를 담당하는 큰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는 뜻”이라며 “20대 미만의 학생들과 젊은 여성, 아무도 안 알아주는 쓸쓸한 사람들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시민단체와 이익단체가 정치적 목적으로 촛불집회에 개입하는 것은 ‘횃불’과 ‘숯불’이라며 비판했다. “고기 구울 때 자기 고기 챙기려고, 이익 챙기려고 피우는 게 ‘숯불’이고 홍길동이 부잣집 습격할 때 들고 들어가는 게 ‘횃불’이라면 촛불은 할머니가 손자 감기를 낫게 해달라며 정화수 떠놓고 비는 다소곳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시인의 촛불에 대한 생각은 대학생 시절 군부독재 정권에 저항하던 시절의 추억과 현재 촛불집회의 다양한 군상들이 교차하며 나타나는 마지막 시 ‘못난시-진짜진짜 마지막 못난 시’에 집약돼 나타난다. “촛불은 또 켜지고 또 켜지고 계속 켜질 테니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김 시인은 함께 펴낸 산문집 에서 촛불집회에서 목격한 가능성을 동학사상과 접목시켜 자세히 풀어냈다.     6. 김지하 "한국시, 새 스타일 창조해야"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중진시인 김지하 씨가 '미래파'로 불리는 젊은 시인들의 실험적인 작품에 대해 "시 같지 않다"고 비판했다. 김 시인은 29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열린 '김지하 시인 초청 낭독회'에서 "요즘 한국시는 시 같지 않다"면서 "현재 한국시는 혼돈, 추함, 엽기, 괴기 등의 요소가 지배하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스타일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양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미래파 시인들의 작품에 대해 "내용이 부족할 뿐 아니라 형식적인 면에서 운문성, 율격, 리듬, 행갈이, 연갈이, 시어와 시어 사이의 절제미 등을 전부 버렸다"면서 "이런 작품을 보면 도대체 시인지 산문이지 알 수가 없고, 내용도 너무 복잡해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김 시인은 "미래파의 시가 전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며, 미래파가 젊은이들 사이에 등장해 확산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면서 "유럽의 예술사, 문학사를 살펴보면 미래파의 등장은 시의 전환기, 과도기에 늘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혼돈적 양상은 전환기를 지나면 새로운 스타일로 바뀌지만 그 스타일은 제멋대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고통, 방황, 모색, 시행착오 등을 거쳐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라면서 "새로운 한국시의 스타일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정신주의적 시, 생태환경주의적 시, 미래파가 서로 얽혀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자 5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2시간여 가량 진행된 이날 낭독회에서 김 시인과 연극배우 이남희 씨가 '무화과' '해창에서' '쉰' 등 10여 편의 시를 낭송했고, 김 시인과 독자 사이에 대화도 진행됐다.    7. "엽기 넘치는 요즘 한국시, 시 같지 않아" 김지하, '미래파' 작품 비판 "과도기 넘어 새 스타일 창조를"   시인 김지하(66)씨가 ‘미래파’로 불리는 젊은 시인들의 실험적 작품에 대해 “시 같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29일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낭독 공감’ 행사에 참석해 “요즘 한국시는 시 같지 않다”며 “혼돈, 추함, 엽기, 괴기 등의 요소가 현재의 한국시를 지배하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스타일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양상”이라고 말했다. 김 시인은 미래파 시인들의 작품에 대해 “내용이 부족할 뿐 아니라 형식적인 면에서도 운문성, 율격, 리듬, 행갈이, 연갈이, 시어의 절제미 등을 전부 버렸다”면서 “대체 시인지 산문인지 알 수가 없고 내용도 너무 복잡해 이해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래파의 시가 전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미래파의 작품이 확산되는 것은 이유가 있다”며 “유럽의 예술사, 문학사를 살펴보면 미래파의 등장은 시의 전환기에 늘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시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려면 정신주의 및 생태환경주의적 시가 미래파 등과 얽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자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시간 가량 진행된 이날 낭독 행사에서 김 시인은 연극배우 이남희(45)씨와 함께 등 10여 편의 시를 낭송하고 참석자와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출처] 한국 현대시의 형식 2|작성자 헌책    
823    산문시(散文詩)와 그 례... 댓글:  조회:4209  추천:0  2016-01-02
  시 [詩]  자신의 정신생활이나 자연, 사회의 여러 현상에서 느낀 감동 및 생각을 운율을 지닌 간결한 언어로 나타낸 문학 형태.   한국어로 보통 시라고 할 때에는 그 형식적 측면을 주로 가리켜 문학의 한 장르로서의 시작품(詩作品:poem)을 말할 경우와, 그 작품이 주는 예술적 감동의 내실(內實)이라고 할 수 있는 시정(詩情) 내지 시적 요소(詩的要素:poetry)를 말할 경우가 있다. 전자는 일정한 형식에 의하여 통합된 언어의 울림 ·리듬 ·하모니 등의 음악적 요소와 언어에 의한 이미지 ·시각(視覺) 등 회화적 요소에 의해 독자의 감각이나 감정에 호소하고 또는 상상력을 자극하여 깊은 감명을 던져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문학작품의 일종으로, 거기에서는 언어의 정동적(情動的)인 기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언어의 배열과 구성(構成)이 요구된다. 후자에 관해서는 시작품뿐만 아니라 소설 ·희곡 등의 문학작품으로부터 미술 ·음악 ·영화 ·건축 등의 예술작품, 더 넓혀서 자연이나 인사(人事) ·사회현상 속까지 그 존재를 인정하는 일이 가능하다.   시와 산문과의 차이를 말할 때의 시란, 일정한 울림 ·리듬 ·하모니를 가진 운문(韻文)을 말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시작품을 성립시키는 각 시구(詩句)를 가리킨다. 프랑스 시인 발레리는 시와 산문과의 차이를 말함에 있어서 전자를 무용(舞踊)에, 후자를 보행(步行)에 비유하고, 산문은 보행과 같이 명확한 하나의 대상을 가지고 어떤 대상을 향한 한 행위로서 그 대상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데 반해, 시는 무용과 같이 그것도 행위의 한 체계이기는 하지만 도리어 그 행위 자체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고 말하였다. 즉 시는 무용과 같이 어딘가를 목표로 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굳이 말한다면 하나의 황홀한 상태, 생명의 충일감(充溢感)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보행과 무용의 공통점은 그때 쓰이는 것이 육체(肉體)라는 점인데, 이것을 시와 산문에 적용시켜 보면 양자는 다같이 언어(言語)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즉 시에 쓰이는 언어, 시적 언어(詩的言語)는 산문에 쓰이는 언어가 이른바 의미기호(意味記號)로서의 언어, 전달을 첫째 목표로 하고 있는 실용적인 언어인 데 비해, 독자 속에 있는 어떤 감동 상태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쓰이는 언어, 즉 감화적 ·정동적인 기능을 달성하기 위한 언어인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우리가 대하고 있는 시에 쓰이는 언어는 반드시 의미 전달의 기능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시적 언어의 본질은 그런 데에 있으며 이런 사고(思考)를 밀고 나갈 때 소위 순수시의 개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는 어떤 경로를 거쳐 발생하며 또 발전해 왔을까. 어린이가 내적 감정(內的感情)의 솟아오름을 육체적으로 나타내려 할 때, 표정과 함께 몸까지 떨며 그리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노래를 입속으로 흥얼거리는 수가 있다. 미개인(未開人)에게 있어서도 이와 같아서 희로애락의 감정은 춤이나 소박한 노래라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오늘날의 춤의 기원과 더불어 시의 기원을 거기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단계에서 한걸음 나아가 생산 노동에 수반하여 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집단적으로 불리어진 노동가요(勞動歌謠)나 언어의 초자연적(超自然的)인 힘을 믿는 고대 신앙과 결부되어 욕망이나 기대의 실현을 바라는 주문(呪文)으로서의 기도가(祈禱歌)의 단계를 지나 그 자체로서 양식을 완성하려는 자각이 생김으로써 문학으로서의 시가 탄생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또한 고대 사람들이 포획물(捕獲物)인 동물을 한 마리라도 더 잡기를 기원하며 그린 동굴벽화(洞窟壁畵)에서 오늘날의 미술이 탄생한 과정과도 걸맞는 것이다. 동시에 시의 이와 같은 발생의 역사는 오늘날의 시의 본질적 성격까지도 얼마만큼 규정하고 있고, 훌륭한 시는 인간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각성된 의식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사회적으로 억압된 충동이나 소망을 표면에 끌어내어 일종의 심리적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작용이 인정된다. 반복이나 압운(押韻) ·직유(直喩) ·암유(暗喩) ·우유(寓喩) 등, 소위 시의 기법(技法)도 독자의 의식세계를 흔들어, 잠자고 있는 기억이나 소망을 불러 깨우기 위한 수단이라고 해도 좋다.   시는 크게 서정시(敍情詩) ·서사시(敍事詩) ·극시(劇詩)의 세 가지로 구별한다. 서정시는 개인의 내적 감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근대시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영어의 lyric poem이나 프랑스어의 poéme lyrique는 본시 lyre(七絃琴)에 맞추어 노래 불렀던 데서 온 호칭이다. 서사시(epic poem)는 민족 ·국가의 역사나 영웅의 사적(事蹟)과 사건을 따라가며 소설적으로 기술하는 것인데 그리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프랑스의 《롤랑의 노래》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극시(dramatic poem)는 극형식을 취한 운문(韻文) 내지 운문에 의한 극을 말하는데 셰익스피어, 코르네유, 라신, 괴테 등의 희곡이 이에 해당한다.   시에는 그 밖에 흔히 행(行)을 나눠서 쓰는 시와 대조되는 것으로 산문의 형식을 취하면서 그 속에 시적 감명(詩的感銘)을 담은 산문시(prose poem)가 있는데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 로트레아몽의 《마르도롤의 노래》,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등이 유명하다. 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시어를 배열 ·구성하는 정형시(定型詩)가 있는가 하면 그와 같은 형식적인 규칙을 무시하는 자유시가 있으며, 또한 그 내용에 따라 생활시(生活詩) ·사상시(思想詩) ·연애시(戀愛詩) ·종교시(宗敎詩) ·풍자시(諷刺詩) ·전쟁시(戰爭詩) 등의 호칭도 쓰여지고 있다.     산문시 [ prose poem , 散文詩 ]  운(韻)이나 리듬을 갖지 않는 산문체의 서정시. 정형시처럼 외재율을 갖거나 혹은 자유시처럼 내재율을 현저히 형성하고 있지 않지만, 형식상으로는 거의 산문이고 내용으로는 시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시의 한 종류. 자유시와의 구분은 불확실하지만, 산문시는 대략 행과 연(聯)의 구분 없이 줄글로 씌어진 데 그 형태상의 특성이 있다. 은유‧상징을 중심으로 한 시적 조사법(poetic diction)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경우는 한용운(韓龍雲)의 작품에 이와 같은 예가 보이며 해외의 것으로는 보들레르(P. C. Baudelaire), 투르게네프(I. S. Turgenyev), 타고르(R. Tagore) 등의 산문시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산문시 [散文詩, prose poem]  일정한 운율을 갖지 아니하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내재율(內在律)의 조화만 맞게 쓰는 산문 형식의 서정시.     특히 프랑스 문학에서 특이한 지위를 차지한다. 장 드 라퐁텐(Jean de La Fontaine), 장 드 라브뤼예르(Jean de La Bruyère),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에티엔 세낭쿠르(Étienne Senancour), 프랑수아 드 샤토브리앙(Franois de Chāteaubriand) 등이 산문시의 선구자들이며, 《밤의 가스파르》(1842)의 작가 루이 베르트랑(Louis Bertrand)은 근대 산문시의 창시자라고 불린다.   산문시는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가 《파리의 우울》(1869)을 발표한 이래 중요한 시의 한 부문이 되었다. 그는 서문에서 산문시의 특질에 관하여 "율동과 압운이 없지만 음악적이며 영혼의 서정적 억양과 환상의 파도와 의식의 도약에 적합한 유연성과 융통성을 겸비한 시적 산문의 기적"이라고 진술하였다.   보들레르 이후 산문시를 쓴 시인으로 막스 자코브(Max Jacob), 피에르 르베르디(Pierre Reverdy), 앙드레 지드(André Gide) 등이 있다. 프랑스 이외의 다른 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이반 투르게네프(Ivan Turgenev)와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산문시는 유명하다.   시의 예)   이육사의 절정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어떤 사람이 이 시를 산문으로 풀어 썼다.   산문의 예) 일제치하라는 맵고 차가운 현실에 채찍으로 얻어맞듯 내쫓겨 어느덧 이곳 북쪽의 끝까지 오게 되었다. 하늘과 땅이 분간되지 않을 만큼 끝없이 펼쳐진 북쪽 땅은 내게 있어 마치 하늘도 지쳐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할 고원과도 같이 느껴진다. 뺨을 스치는 차갑고 매서운 칼바람이 내게 더 이상 갈 곳 없는 서릿빛 칼날위에 선 것과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내가 나의 조국을 위해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쫓기고 쫓겨 막다른 길에 다다른 내게 무릎꿇고 있을 작은 도피처나마 존재하긴 한 걸까. 지금의 내게 있어 현재는 고통과 괴로움만이 가득차 있다. 눈 감아 가만히 생각해볼 때, 우리의 독립과 주권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길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눈물과 괴로움과 무기와 비명이 난무한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의지를 꺾지 않으면 그 힘겨움 너머 한가닥 희망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질척하고 어두운 비가 그치면 무지개가 솟아 오르듯이 말이다. *산문이란 시를 줄글로 바꾸어 쓰는 것을 말합니다. [출처]산문시 [散文詩, prose poem]|작성자 헌책  
822    詩史에서의 미래파시인 댓글:  조회:5480  추천:0  2016-01-02
  우리는 '미래파 논쟁' 에 갇혀있지 않겠다"        계간지 '시로 여는 세상' 미래파 시인 9명 기고   "결국 같은 서정시인데… 이면엔 정치적 의도" 지적-"젊은 시인들, 이미지보다 현실 탐구를" 주문 눈길도   2005년 초 문학평론가 권혁웅씨가 낯선 시풍으로 무장한 일군의 젊은 시인을 ‘미래파’로 명명한 이래 한국 시사(詩史)엔 ‘미래파 논쟁’이란 굵은 획이 그어지고 있는 중이다. 명칭이 적절한지, 이들 시인을 한 무리로 묶을 수 있는지 등의 기초적 문제부터 미래파의 작풍에 대한 미학적 가치판단까지 논의는 무성하지만, 많은 논쟁이 그렇듯 ‘미래파 논쟁’에 미래파의 목소리는 없는 상황이었다. 최근 발행된 시 전문 계간지 가을호가 마련한 특집 ‘미래파의 자기 진단과 미래파의 미래’는 미래파로 거명되면서도 논쟁의 객체에 머물렀던 시인들이 작심하고 자기 입장을 밝히고 있어 흥미롭다. 기고한 시인은 김언, 서영처, 유형진, 이근화, 이민하, 장석원, 장이지, 조동범, 진은영씨 등 9명. 기고자 대부분은 시인들을 범주화하는 움직임을 경계했다. 유형진씨는 “개성적 시인들을 카테고리화해서 그 담론에 묶어두는 일은 그들의 행보를 위축시키고, 나아가 문단 내부의 단절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동범씨는 “미래파 논쟁이 과거 참여-순수 논쟁처럼 자기 영역을 고집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우려하며 “젊은 시인들의 작품은 기존의 시적 흐름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승해 새롭게 만든 것”이라고 썼다. 장이지씨는 “부정과 파괴를 통해 새로운 전통을 세우려는 전위적 충동이 미래파라면 황병승, 김민정, 김경주 등 세 명의 시인만 이에 해당할 것”이라며 “결국 모두 서정시를 쓰고 있는데 미래파의 시는 서정시가 아닌 듯 말하는 것은 묘한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미래파 담론 이면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의견도 있었다. 김언씨는 “미래파 논쟁을 시단의 중심에 떠오르게 한 일등 공신은 다름아닌 그 반대파 평론가들”이라며 “이들이 스스로 일으킨 논쟁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가장 싫어했던 시인들을 띄워주는 우를 범한 것”이라고 조소했다. 이근화씨는 미래파 담론을 “그 속에 무엇이든지 채워넣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음식인 만두”에, 장석원씨는 “먼 곳에서 널 사랑한다는 주문을 외며 나를 협박하는 님의 사랑 고백”에 빗대며 논의의 ‘불순함’을 지적했다. 서영처, 이민하씨는 젊은 시인들의 시풍이 이전과는 차별된다는 점을 인정하는 입장이다. 서씨는 “이들의 다양한 불협화음과 추함은 새로운 표현양식이자 미의 추구”라고 규정했고, 이씨는 “뻔한 맛보다는 뻔뻔한 맛을 즐기는 감각의 전문가”들에 대한 동질감을 표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시적 흐름을 고정된 틀에 가두려는 시도에 대해선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다른 필자들과 달리 진은영씨는 젊은 시인들에게 낯선 이미지들의 수집에 머물지 말고 현실에 대해 집요한 탐구를 할 것을 주문해 눈길을 끌었다. 시 작업을 낚시에 비유한 진씨는 “풀의 배내옷으로 덮은 바구니에 담아온 물고기처럼 신선한 이미지들에 깔려 예감됐지만 의지박약 때문에 발견되지 못한 현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라고 권했다. 이번 특집에 기고하지 않았지만 미래파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김경주 시인은 지난달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 시 역사에서 반복되고 있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싸움에서 현재는 ‘미래파’란 이름으로 모더니즘이 앞서나가는 형국”이라며 “그런 경향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며, 시인은 예술의 전위로서 정형화되지 않기 위한 긴장을 부단히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   ​권혁웅 ​ ‘미래파 옹호’ 평론가가               시로 풀어낸 ‘세속 박람기’    권혁웅 평론가. ⓒ양윤의- 실험적 시인들 편에 섰던 권혁웅, 까다로운 상징과 거리두기,  도봉공원·불가마·감자탕집 같은 세상의 잡스러운 이모저모 묘사, 4대강 사업 등 비판한 시도 실어      평론가 권혁웅은 2000년대 젊고 실험적인 시인들에게 ‘미래파’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적극 옹호하면서 논쟁의 한복판에 선 바 있다. 그런데 정작 시인 권혁웅이 쓰는 시는 그가 옹호하는 미래파와는 거의 정반대라 할 경향을 보이고 있어 흥미롭다. ​ “세속이 그 지극한 경지 안에서 스스로를 들어올렸으면 했다.”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이 되는 에 붙인 ‘시인의 말’의 한 대목이다. 이 말마따나 그의 시는 세속(世俗)의 잡스러운 이모저모를 실제에 가깝게 재현하는 데에 치중한다. 미래파 시들이 특장으로 삼는 전위적 실험이나 까다로운 상징과 그의 시는 멀찌감치 거리를 둔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시가 그저 행갈이 한 산문적 진술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미래파와는 다른 방식의 시 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권혁웅의 시는 훌륭하게 보여준다. ​ “지금 애인의 울음은 변비 비슷해서 두 시간째/ 끊겼다 이어졌다 한다/ 몸 안을 지나는 긴 울음통이 토막 나 있다/ 신의주찹쌀순대 2층, 순댓국을 앞에 두고/ 애인의 눈물은 간을 맞추고 있다”( 부분) ​ “그는 자신을 마셔버린 거다/ 무슨 맛이었을까?/ 아니 그는 자신을 저기에 토해놓은 거다/ 이번엔 무슨 맛이었을까?/ 먹고 마시고 토하는 동안 그는 그냥 긴 관(管)이다”( 부분) ​ 인용한 두 시는 권혁웅 시작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시집 표제작 은 순댓국집에서 아마도 이별을 앞두고 마주 앉은 연인을 등장시킨다.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두 시간째 울음을 우는 애인과 그런 애인을 하릴없이 지켜보는 ‘나’의 처지를 다름 아닌 순대에 빗대 표현하는 솜씨가 능란하다. 지난해 미당문학상 수상작인 은 천변(川邊) 벤치에 누워 잠든 취객에게 바쳐진다.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두고/ 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의 “캄캄함 혹은 편안함”을 잔잔하게 그린 시에서 모종의 온기가 느껴진다면 그것은 대상을 보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 덕분일 것이다.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집이 그를 마중 나왔다”거나 “어리둥절한 꽃잎 하나가 그를 덮는다/ 이불처럼/ 부의봉투처럼” 같은 구절을 보라. 이 두 시에서 보듯 권혁웅의 시는 우아함이나 고상함과는 거리가 먼, 소박하거나 누추한 서민들의 삶을 즐겨 다룬다. 도봉근린공원, 천변체조교실, 불가마 같은 변두리 공간 또는 의정부부대찌개집이나 조마루감자탕집, 포장마차 같은 식당이 그의 시가 태어나는 자리들이다. 이런 공간에 서식하는 이들이란 구조조정에 희생된 가장(), “투덜대길 좋아해서/ 소음기 뗀 오토바이를” 모는 중국집 청년(), “종이상자가 주소지”인 노숙자() 들이기 십상이다.  “시금치는 시큼해지고 맛살은 맛이 살짝 갔지”()라거나 “그녀가 어두육미도 아니고/ 내가 용두사미도 아니고”(), “조각난 조개의 조변석개”()와 같은 특유의 말장난 역시 시집 읽는 재미를 준다. 시인의 발랄한 언어 감각이 날선 현실 비판과 만날 때 을 연상시키는 이런 시가 빚어진다. “남해로 나가면 처음 만나는 나라가 삽질국(揷質國)이다 해내로 자식을 위장전입 보낸 아비 하나가 그리움에 못 이겨 큰 삽으로 흙을 퍼 강이란 강을 죄다 메우고 있다 그 너머에 고소영국(高所嶺國)이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다리가 넷이요 집이 여섯이며 군이 면제다 강부자국(江富子國)이 인근에 있는데 둘이 같은 나라라 말하는 이도 있다 어린지국(魚鱗支國)이 그 남쪽에 있다 이곳 사람들은 몸에 어린이 돋아서 민망한 짓을 잘하며 그 말은 짖다 만 영어 같다”( 부분)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권혁웅 지음, 창비. 최재봉 기자 [출처] ‘미래파 옹호’ 평론가가 시로 풀어낸 ‘세속 박람기’ |작성자 헌책     [출처] 김언☆/ 우리는 '미래파 논쟁' 에 갇혀있지 않겠다" |작성자 헌책  
821    해체시와 박남철, 황지우 /// 시적허용 댓글:  조회:4839  추천:0  2016-01-02
해체시[ 解體詩 ] 시가 갖는 정형화된 틀을 깨고 언어를 개념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담기 위해 보다 자유로운 형태의 형식을 수용한 시.   언어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할 수 없다는 불신(不信)에서 출발하여 기존 전통시의 형태를 파괴한 일련의 전위적 실험시를 가리킨다. 이 경향은 시의 구조인 행ㆍ절ㆍ연의 구분이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되어 행ㆍ연을 통합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해체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시의 새로운 흐름으로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들어 박남철, 황지우 등 많은 시인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해체시 [解體詩]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     시적허용이란, 시를 쓸 때 정상적인 어순을 이탈하여 쓰거나 신조어, 또는 고어체 단어를 사용하거나 단어를 늘여서, 혹은 줄여서 쓰거나 하는 것들을 말합니다. 시적허용은 시의 운율을 살리기 위해서, 특별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 특별한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서 시도하는 것입니다. 시에서 예를 들면, 둑방길                                유재영 어린 염소/등 가려운/여우비도/지났다.// 목이 긴/메아리가/자맥질을/하는 곳// 마알간/꽃대궁들이/물빛으로/흔들리고.// 부리 긴/물총새가/느낌표로/물고 가는// 피라미/은빛 비린내/문득 번진/둑방길// 어머니/마른 손 같은/조팝꽃이/한창이다. 이 둑방길이라는 시에서의 시적허용은 [마알간 꽃대궁들이 물빛으로 흔들리고]의 마알간입니다.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색시 /새악시 발간/ 바알간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고깔에 감추오고, 고와서 서러워라. 별빛에 모두오고, 휘어져 감기우고 모든 순간이 다아 / 꽃봉오리인 것을, 보고픈 마음/호수만하니/눈 감을밖에 /와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니 표준어, 맞춤법에 맞지 않더라도 허용해 줍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출처] 시적허용|작성자 헌책     [출처] 해체시|작성자 헌책  
820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공예디자인론 댓글:  조회:4287  추천:0  2016-01-02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디자인을 하면서 절대 알아야할 지식중 하나이다. 하지만 정작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정확한 뜻과 의미를 알지 못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나는 그 대분분의 학생들 속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거 같다. 이 글을 보는 분들 또한 그 대부분의 학생들 속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모더니즘   1920년대 일어난 근대적인 감각을 지향하는 사상을 말한다. 전통과의 단절 (계급사회) 보다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기능적인 것을 추구한다. 긍정적인 것은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것은 배제하는 보수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FORM FOLLOWS FUNCTION!   포스트 모더니즘   세계2차대전 이후 일어난 문화운동으로서 모더니즘에 반발하는 사상을 말한다. 모더니즘의 경직성의 개념으로 부터 해방  따라서 다양성과 자율성 대중성 개성을 중시하였다 가장 큰 특징은 탈중심적 , 탈 이성적 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모더니즘의 예   아파트 (아파트는  모더니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이다. 우리가 옛날에 살았던 초가집이나 기와집에서 벗어나 작은 공간에 더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있는 기능을 최대한 살려서 만든것이 아파트이기때문이다. 모더니즘은 다르게 말한다면 기능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만큼 기능성과 합리성을 이렇게 직접적이고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는 예가 또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우리나라 포스트 모더니즘의 예   서울 혜화동 성당 ( 이 헤화동의 성당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잇는 성당의 형식과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기존의 성당들은 원래 고딕양식을 기본으로해서 설계되고 지어진다. 하지만 혜화동의 성당은 그 어디에서도 고딕양식을 볼수가 없다.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현대에 맞게 재구성되었으면 성당의 새로운 틀을 보여준 대표적인 포스트모던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우리나라를 디자인의 강국으로 만들어줄 서울시의 계획중 하나이다. 아직 완공은 되지 않았지만 시뮬레이션으로 본 완공된 모습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건물의 틀을 완전히 깬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육면체의 형식 대신에  곡선의 미를 충분히 살린 건물의 외관은 누가봐도 포스트 모던적인 냄새가 가득 묻어나는 건물이다. )   모던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징 1. 모더니즘  보수적, 기능주의적   2. 포스트 모더니즘  다양성 자율성 개성 대중성 중시  탈 중심적, 탈 장르적  다원주의적     내가 생각하기에는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은 서로 반발의 측면이 강하지만 예술적인 부분에서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느 쪽이 더 좋고 더 나쁘다고 평가를 할 수 없는 일이다. 둘을 편 가르기보다는 동시에 이해하고  더 나아가서  더 발전된 - nism 만들어내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된다. [출처]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공예디자인론|작성자 헌책  
819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공통점과 차이점 댓글:  조회:4947  추천:0  2016-01-02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공통점과 차이점                                     답변; 네이버지식인   ​   모더니즘(modernism)이란 말뜻을 일단 그대로 보세요. '현대적인', '근대의' 등의 의미를 가지는 modern에 '주의(主義)', '학설(學說)' 등을 가리키는 ism이 붙어 있습니다. 즉 "근대주의" 혹은 "현대주의"라고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옳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기죠? 세계사 시간에 공부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인류의 역사는 의 순인데, 모더니즘이 "근대주의" 혹은 "현대주의"라고 하면 정확히 어느 시대를 가리키는지 헷갈리시죠? 여기서 제가 현대주의라고 번역해놓은 것은 님이 modern이라는 영어 단어 속에 내포된 "현대적인"이라는 의미를 떠올리리라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실은 모더니즘은 근대주의라고 해야 옳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들, 즉 "현대인"의 시간적 기준에서 근대주의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근대인들, 가령 17c~19c까지의 사람들이 살았을 적의 모더니즘은 분명 "현대주의"입니다. 이해하시겠죠?   그렇다면 이 모더니즘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이것의 특징을 알아야 포스트모더니즘과 비교할 수 있을 테니 모더니즘부터 알아보죠. 첫째, 모더니즘, 즉 근대주의가 발생하게 된 배경부터 알아봅시다. 근대 이전에 교회를 중심으로 한 중세질서가 있었죠? 그리고 정치적으로 봉건주의 혹은 왕권중심주의가 있었죠? 모더니즘은 바로 이 교회와 왕 혹은 귀족중심주의를 타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발생된 사상입니다. 교회에서 신부 혹은 목사들이 뭐라고 하나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 즉 사제들이 전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확인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사제들이 전달하는 이 하나님의 말씀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바로 "성경"이라는 책을 사제들이 제각기 해석해서 전달하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비과학적이고 자의적이며 주관적인 말(語)들이 중세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독교 질서에 조금이라도 의문을 품으면 불신자로 몰려서 화형대에 올라야 했습니다. 인간이 각자의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보이지도 않는 신의 말씀의 노예가 되는 꼴이지요. ​ ​정치적으로는 또 어땠습니까? 요즘은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모더니즘이 태동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왕이 제멋대로 통치하는 게 상식이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너무도 당연해서 의문을 품을 수도 없죠. "짐이 곧 국가다"라고 외치며 왕권신수설(왕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나왔다: 왕은 신이 선택한 사람이므로 그의 권력을 넘보는 것은 신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이다)을 부르짖었지만, 이 역시 허무맹랑한 잡설입니다. 지금 당장 누군가가 대한민국을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며 모든 국민은 자기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한다면 어이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 어이없음이 바로 근대 이전의 정치적 상황이었습니다. ​ ​이렇게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에 의한 사상탄압과 세뇌, 정치적으로는 왕을 정점으로 하는 지긋지긋한 독재정치가 바로 모더니즘의 발생원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철학자들은 무엇을 생각할까요? 바로 "해방"입니다. 관념적으로는 신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인간이 스스로에게 주인이 되는 것, 즉 주체가 되는 것, 그리고 정치적으로 왕권으로부터 풀려나서 자유로운 시민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 바로 이것을 철학자들은 꿈 꿨습니다. 바로 이 인간중심주의, 휴머니즘이 "모더니즘"입니다. 그리고 모더니즘 사상이 가장 폭발한 사건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죠. 이 사건 아시죠? 자유를 외치는 시민들이 봉기해서 왕을 단두대로 끌고간 혁명 말입니다. 제가 설명드린 모더니즘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죠? 님은 현재 모더니즘이 구축해놓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모더니즘적인 교육을 받았기에 그런 것입니다.   이상 대충 모더니즘에 대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모더니즘(근대주의)이 전근대사회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듯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됩니다. 모더니즘의 특징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인간은 신으로부터 독립한 주체적인 존재이며, 왕의 통치를 받지 않고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지극히 자신감 넘치죠? 바로 여기에 모더니즘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 지나친 자신감, 인간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뤄낼 수 있고, 인간의 합리성이 극에 달한 과학을 도구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과학만능주의), 인간이 이 세상의 중심(인간중심주의)이며, 가장 인간성을 잘 구현해낸 존재일수록 우월한 존재라는(서구백인남성우월주의)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 이러한 모더니즘의 폐해로 인해 인류는 어떤 문제에 부딪혀 왔습니까? 대표적인 모더니스트들인 계몽주의자들이 믿었듯이, 인간은 교육을 시키면 계몽(꿈, 즉 무지몽매함에서 깨어남)되며, 이렇게 훌륭한 존재인 인간에게는 보다 많은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는 게 근대의 사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자연스레 근대법으로 이어졌고요. 근대법은 인간에게 거의 무한정의 자유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정치적으로는 야경국가(국가는 밤에 도둑이나 잡는 역할만 할뿐, 시민에게 어떤 간섭도 하지말라)이며, 경제적으로는 아담 스미스식의 자유주의 경제학 아닙니까? 이 결과 자본주의와 교묘히 영합한 모더니즘은 가진 자의 이기심을 더욱 부채질하고, 가난한 자의 희생을 보다 부추기게 됐습니다. 비단 이런 사회문제뿐만이 아니지요. 인간의 지나친 자신감, 오만함은 과학만능주의를 불러 핵폭탄, 환경오염, 자원고갈 등을 불러 왔습니다. 인간을 억압한 구시대의 질서를 붕괴시키고 인간을 자유로운 주체로 독립시킨 모더니즘의 공은 인정하지만, 그 폐해 역시 심각한 것입니다. ​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당연히 이런 모더니즘의 오만함을 비판하며 등장하겠죠? 아까 간략히 설명드렸듯이, 모더니즘은 인간중심주의이며, 그 인간 중에서도 서구 백인 남성 중심입니다. 쉽게 생각해보세요. 님도 뉴욕이나 런던을 활보하는 키 크고 잘생긴 백인 변호사가 우리나라 남자들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하시죠? 바로 이것이 모더니즘의 부작용 중 하나입니다. 모더니즘은 구체제로부터 인간을 독립시켰지만, 독립된 인간이 한정돼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대충 흐름이 보이나요? 구시대를 뒤엎고 나타난 모더니즘 역시 하나의 구시대가 되어 버린 꼴이 보이십니까? 그래서포스트모더니즘은 상호 간의 우월을 인정하지 않고, 다만 차이를 인정할 뿐입니다. 학교에서 "문화의 다양성"이란 것을 배웠지요? 우리나라와 아프리카문화는 서로 다르지만, 무엇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라는 게 그것입니다. 바로 이런 태도가 포스트 모더니즘입니다.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인간과 동물의 교감을 확인하고, 그래서 무분별한 개발보다는 환경주의가 등장하며, 남성중심주의를 뛰어넘어 양성평등의 시대가 도래하는 이 모든 현상들이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현상입니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며, 우열을 논하는 태도를 폐기하자는 것이지요. ​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 얘기하려면 또 한참을 써야할 것 같습니다... ----------------------------------------------------------------------이후, 더,ㅡ...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차이   모더니즘은 이성 중심 사회이다. 이러한 이성관은 근대 사상의 산물이다. 인간은 이성이라는 합리적인 도구를 가졌고, 사회를 보다 더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더니즘은 발전적 관점의 역사관이다. 또한, 모더니즘은 획일성, 통일성, 형식주의, 고급/저급 문화, 남성중심사회, 서구중심의 문화를 지녔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이성을 가진 인간들의 만행으로 많은 반성을 하였고 그로 인해 포스트 모더니즘이 나오게 되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획일성, 통일성, 형식주의를 거부한다. 탈이성중심주의이다. 여성의 세계관에 가치를 부여하였고, 다원화와 다양한 문화를 인정한다. 경계를 허물 것을 주장하였다.  [출처]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차이|작성자헌책   이후, 더,ㅡ... ---------------------------------------------------------------------------------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알아 봅니다. ​ ​ 우리는 modernism을 일컬을 때 두 가지로 나누어서 구분하는데 문화예술성과 사상성으로 나누어 말하곤 합니다.​ ​문화예술에 있어서 종교의 권위와 봉건적 태도를 비판하고 새로운 과학이 가져다준 생활을 추구하자는 주의라 할 겁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간단하게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상적인 입장에서 modernism을 본다면 중세시대의 유럽은 카톨릭이 종교적으로 강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카톨릭의 권위와 그동안 내려온 전통을 반대하는 개념입니다.​ 기존의 도덕과 전통과 카톨릭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발전하고 있는 새로운 문명을 자유롭게 받아들이자는 것을 modernism이 가진 사상적인 입장으로 볼 수가 있을 겁니다.​ 반면에 문화나 예술적인 입장에서는 카톨릭이나 교회의 권위를 초월하고 근대 이성을 중심으로 한  ​이념에서 자유로움으로 탈피하자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술적 견지에서 본다면 피카소나 고흐와 마네 등과 같은 화가가 모던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되고 문화적 견지에서 본다면 엘리엇이나 제임스 조이스같은 사람이지요.​ 기존의 유럽에서 보여준 화가들의 그림이 극사실주의적으로 그림의 대상을 아주 자세하게 표현했다면 화가의 감성을 포함시킨 그림이 모던사상이라 하겠습니다.​​ ​ 이러한 모던은 과학의 발달이 가져다 준 변화라 할 수 있는데 인물이나 풍경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주는 ​카메라가 발명되면서 그림이 설 자리를 잃어갔던 것이지요.​ 카메라에 자리를 빼앗긴 화가들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데 이 때 등장하는 개념들이 인상주의파와 초현실주의파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 모던 modern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현대라는 뜻으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낡은 관습을 탈피하고 ​현대적인 것을 받아들이자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지금 보면 현대라고 할 수 없는 낡고 퇴색된 사상이라 보여지는데 이것은 1900년대를 지칭하는 현대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1960년대에 포스트모던이라는 주의가 새롭게 선보입니다.​ 이 postmodernism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논리들이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서 등장하여 많은 예술가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1960년대 시작되어  50년 이상이 흐른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성보다 감성을 더 중요시한다는 거지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시대 변화에 적응하려는 일련의 ​문화적 예술적 창조나 진화라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트랜드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postmodernism을 간단하게 정리한다고 하면 절대적인 권력이나 권위같은 것을 부정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이념 또한 부정하려 하는 형식입니다. 그래서 이성보다는 감성을 더 중요시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출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작성자 헌책 ------------------------------------------------------------------------------------------------이후, 종종...ㅡㅡㅡ [출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공통점과 차이점|작성자 헌책    
818    포스트모더니즘과 니체 댓글:  조회:4469  추천:0  2016-01-02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성찰 니체의 경우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유체계는 니체에 대한 재조명에서 시작되며, 그 사유체계에 대한 해석이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는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자들뿐 아니라 몇몇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는 아주 직접적으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하산(Ihab Hassan), 데리다(J. Derrida), 푸코(M.Foucault) 등을 거론할 수 있다. 판비츠(Pannwitz)가 니체의 '초인'을 포스트모던의 원형으로 제시한 것은 이미 앞에서 본 바와 같다. 보러(K.H. Bohrer)는 독일 초기 낭만주의자들과 니체의 미학적 사유에 근거하여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자들의 철학적 성격을 분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니체는 퇴폐적이며 허무주의적인 현대의 물결을 극복한, 새로운 '이후의 문화'에 자리하며, 그것이 후기구조주의의 배경이 된다. 프랑스 후기구조주의들의 전면에 하이데거 수용이 자리하고 있다면, 니체에게 몰두하는 것은 그 뒷면을 차지한다. 이와 같은 상황은 푸코의 예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푸코는 그의 죽음 직전 자신의 사유에 있어서 가장 깊은 의미를 지니는 것은 니체였다고 회고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프랑크(M. Frank)는 신구조주의와 연관지어 이러한 관점을 지지하고 있다. '신구조주의는 형이상학의 종결 이후 헤겔 비판과 니체의 발자취에서 출발한 사유체계'이다. 비슷한 관점이 데리다에게도 적용된다. 그는 '하이데거보다는 니체에게서 시종일관하는 반 형이상학의 모습'을 발견한다. 초기의 하이데거가 '존재'라는 말로서 추구하는 바는 여전히 일정 부분 서구의 전통 형이상학과의 관련 위에 놓여있다고 평가한다. 궁극적으로는 형이상학적 관심에 따라 이루어져 있는 하이데거의 철학 역시 니체의 전통 형이상학 비판에 의해 촉발된 사유체계이다. 결국 이러한 근원으로서 니체를 재발견한 것, 이것이 포스트모던의 '신니체주의'적 경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1)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볼 때 문제가 되는 니체의 사상은 '신의 죽음'에서 출발하여 '힘에의 의지'와 '영원한 회귀'에서 정점을 이룬다. 그것은 전통 형이상학의 죽음, 삶과 예술의 형이상학, 생성과 극복의 놀이라는 원리에 의해 구체화된다. 먼저 '신의 죽음'이란 말로 니체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으로 대변되는 철학적 전통을 거부한다. 그것은 서구의 전통적인 도덕과 종교가 삶에 적대적이란 선언이다. 또한 전통 형이상학에 의해 모든 사물의 본질이며 초월세계로 상정된 신에 대한 종말을 선포한다. 이것은 지상적 삶을 폄하하고 거부하는 초월적 세계와 본질의 세계를 폐기한다는 뜻이다. 존재하는 것 자체의 진리와 존재자의 존재를 본질에 대한 추구에서 찾는 플라톤 철학과 그에 근거한 철학사의 흐름은 허무주의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니체에 의하면 허무주의는 서구 철학의 필연적 결과일 뿐이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사고는 합목적론적이거나 또는 그와는 대립된 의미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 허무주의(nihilism)는 플라톤주의가 태생적으로 배태한 결과물이며 그 완성이고, 뒤바뀐 플라톤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의 말에서의 신은 기독교의 신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서구 존재-신론의 역사에서 그 존재론적 기반과 근거로서 작동하는 형이상학적이며 불변하는 초감각적 세계와 그 세계관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신의 죽음을 바로 그로 대변되었던 초월세계의 종말, 존재의 역사에서 최고의 존재자로 이해된 것의 폐기, 모든 플라톤주의적 서구 형이상학의 가치를 뒤집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플라톤주의를 뒤집음으로써 전통 형이상학을 완성하는 행위는 가장 끔찍한 허무주의라는 원치 않았던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허무주의는 결국 '최고의 가치가 스스로를 가치절하하는 것'이며 '왜'와 '어디로'라는 근거와 목표에 대한 질문을 상실하게 만든다.(『힘에의 의지』) 허무주의는 서구 형이상학의 종말이며 완성이고, 그 본질이다. 니체의 허무주의는 이제까지의 모든 가치를 파기하고, 거꾸로 뒤집음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가치를 설정하는 움직임으로 이해된다. 지금까지의 '최고가치'를 부정하고 폐기함으로써 이룩되는 새로운 가치 설정의 움직임이 그의 허무주의 형이상학이다. 그것은 더 이상 초감성적이며 피안의 어떤 근거, 초월세계의 규범에 따라 설정되는 가치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이다. 그 가치는 풍요로운 삶이라는 새로운 규준에 의해 설정된다. 그러기에 서구 형이상학의 끝자락에 서있는 니체의 철학은 근대성을 넘어서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동시에 새로운 사유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결을 벌여야 할, 다가올 사유의 전형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니체의 의미가 자리한다. 각주 1 P. Tepe, Poststrukturalism, Wien, 1991. [출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성찰 _니체의 경우|작성자 헌책
817    난해시와 보들레르 댓글:  조회:4592  추천:0  2016-01-02
알바트로스- 보들레르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지치는 배를 시름없는 항해의 동행자인 양 뒤쫓는 해조를. 바닥 위에 내려놓자, 이 창공의 왕자들 어색하고 창피스런 몸짓으로 커다란 흰 날개를 놋대처럼가소 가련하게도 질질 끄는구나. 이 날개 달린 항해자가 그 어색하고 나약함이여! 한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가소롭고 추악한가! 어떤 이는 담뱃대로 부리를 들볶고, 어떤 이는 절뚝절뚝, 날던 불구자 흉내 낸다! 시인도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 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 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하네.   Souvent, pour s'amuser, les hommes d'équipage Prennent des albatros, vastes oiseaux des mers, Qui suivent, indolents compagnons de voyage, Le navire glissant sur les gouffres amers. À peine les ont-ils déposés sur les planches, Que ces rois de l'azur, maladroits et honteux, Laissent piteusement leurs grandes ailes blanches Comme des avirons, traîner à côté d'eux. Ce voyageur ailé, comme il est gauche et veule! Lui, naguère si beau, qu'il est comique et laid! L'un agace son bec avec un brûle-gueule, L'autre mime, en boitant, l'infirme qui volait! Le Poète est semblable au prince des nuées Qui hante la tempête et se rit de l'archer; Exilé sur le sol au milieu des huées, Ses ailes de géant l'empêchent de marcher.       “어린 시절부터 고독감./ 가족과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특히 친구들 속에 끼어서도―/ 영원히 고독하도록 운명지어진 숙명감.” 1821년 출생한 샤를 보들레르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많은 글에서 자신의 내면에 동거하는 두 개의 마음, 이중성에 대해 썼는데 그것을 “생명력, 그리고 쾌락에의 매우 격렬한 기호”라고 칭했다. 보들레르의 비교적 행복했던 초년은 “너무 짧았던 우리 여름의 생생한 빛”이었다. 적어도 그의 아버지 프랑수아 보들레르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루이 16세의 고가구, 고미술품, 집정 정부, 파스텔화, 18세기의 사교계”라는 어휘들로 꽉 차 있었으나,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앳된 사랑의 푸른 낙원”의 시간은 종료되었다(보들레르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서른다섯 살의 어머니는 당시 육군 소령이었던 자크 오픽과 재혼을 하게 된다.)   라틴어 작시(作詩)에 뛰어나 일찌감치 시를 짓는 재능을 발휘했던 보들레르에게 파란이 일기 시작한 것은 다니던 파리의 명문 루이 르 그랑으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수업 시간에 급우가 돌린 쪽지를 제시하라는 선생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쪽지를 찢어 삼킨 반항적 언동이 발단이 되었다. 이후 보들레르의 기질은 아주 달라진다. 보들레르는 개인 교사의 지도를 받아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파리 법과대학에 등록했지만 자유분방하고 구속 없는 생활이 본격화되었다. 문학청년들과의 교류, 거리의 여인 사라(Sarah)와의 만남과 성적 쾌락에의 탐닉, 그리고 빚에 쪼들린 생활이 이어졌다. 무절제한 생활을 하다 빚에 몰리게 된 보들레르를 지켜보던 형 알퐁스가 그 사실을 의붓아버지에게 알렸고, 이에 가족회의가 열려 보들레르는 1841년 1월 인도의 캘커타를 향해 떠나는 남해호에 실려 강제로 먼 항해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덥고 푸른 나라의 끔찍한 우울”을 경험하게 했던 이 길고 지루한 바다 항해는 보들레르에게 바다 이미지를 생성시켰고, 열대 풍경에의 매료 등 이국적 취향을 안겨 주어 그의 심성과 시심을 일변하게도 했다. “내 아이, 내 누이여/ 생각해 보렴/ 거기 가서 함께 사는 감미로움을!/ 한가로이 사랑하고/ 사랑하다 죽으리/ 그대 닮은 그 고장에서!/ 그곳 흐린 하늘에/ 젖은 태양이/ 내 마음엔 그토록 신비로운/ 매력 지녀/ 눈물 통해 반짝이는/ 변덕스런 그대 눈 같아”라며 다른 나라 땅으로 떠난 사랑의 도피 행각을 노래한 시 ‘여행으로의 초대’의 탄생도 이때의 경험이 도왔다.   무엇보다 시 ‘알바트로스’는 이 시기 항해 중에 일어났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배에 승선해 있던 한 군인의 소총에게 잡힌, 몸통 3미터가 넘는 이 거구의 바닷새 알바트로스가 수부들에 의해 질질 끌려다니는가 하면 온갖 방법에 의해 모진 박해에 시달리는 일이 그의 목전에서 벌어졌다. 보들레르는 이 충격적인 일화를 토대로 알바트로스에 “지상에 유배당한”, ‘저주받은 시인’의 모습을 투영했다.   보들레르는 상징주의의 비조(鼻祖)였으며(그의 시 세계는 베를렌, 말라르메, 랭보 등에게로 승계된다), “옛날의 파리는 이제 없네(아! 도시의 형태는/ 인간의 마음보다 더 빨리 변하는군)”라고 노래한 고독한 근대적 만보객이었다. 범박하게 말해 이 지상의 삶을 ‘병원’에 비유하며 현대와 도시의 타락과 부패를 노래한 보들레르의 생애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일 몇 가지가 있다. 우선 한 극장 소속 단역배우였던 잔 뒤발(Jeanne Duval)과의 사랑을 들 수 있다. 보들레르가 흑백 혼혈 여성이었던, 질병과 알코올중독에 시달리고 있던 그녀를 만난 것은 먼 바다로의 항해를 도중에 포기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보들레르에게 죽음과 방탕의 인자를 심어 준 잔 뒤발은 보들레르의 시에서 “신성한 요술쟁이의 막대기 끝에서/ 박자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기다란 뱀”에 비유된다.) 그녀는 보들레르에게 “유일한 오락”이요, “유일한 즐거움”이요, “유일한 친구”였으나, 보들레르를 “쇠사슬에 얽매인 노예처럼/ 노름판을 못 떠나는 노름꾼처럼/ 술병을 못 놓는 주정뱅이처럼” 붙들어 매어 놓았다. 보들레르는 많은 돈을 그녀에게 바쳤고, 결국 1844년 법원으로부터 금치산 선고를 받게 된다. (이후 보들레르는 돈을 보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어머니에게 줄기차게 보낸다.) 보들레르 시에 등장하는 육체에 대한 관능적 탐닉, 악마적 어투, 사디즘의 이상성욕 등은 뒤발로부터 상상적으로 창조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1857년 출간된 시집 [악의 꽃]은 보들레르에게 엄청난 불행과 시련을 안겨 주었다. “납골당과 도살장의 구역질 나고 냉랭한 시, 사상으로 이루어진 한심스러운 빈곤” 등의 혹평이 쏟아졌으며, 외설로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시집이 압류당하기도 했다. 여섯 편의 시 삭제, 300프랑의 벌금 처분도 내려졌다(이에 대해 보들레르는 한 편지글에서 “저는 제가 유죄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저는 오로지 악에 대한 공포와 혐오만을 불러일으키는 책을 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라고 썼다.) 플로베르가 “아! 당신은 존재의 지겨움을 알고 있습니다!”라는 격려를, 위고가 “예술이란 창공과 같은 것이어서 무한한 분야입니다. 귀하께서는 최근에 그 점을 증명해 보였습니다.”라는 지지와 신뢰를 보냈으나 세상의 혹독한 평가는 보들레르를 ‘저주받은 시인’으로 만들고 말았다. 물론 보들레르는 초판 텍스트에서 삭제된 여섯 편의 시를 대신해 서른다섯 편의 시를 보강해 1861년 [악의 꽃] 재판을 발간한다. 보들레르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이 책(재판본)은 모든 것에 대한 저의 증오심과 혐오감의 증거로 남게 될 것”이라고 썼다. 에드거 앨런 포와 바그너에 대한 애정도 보들레르의 생애에서 중요하게 놓이는 대목이다. 보들레르는 포의 작품을 대면한 후 자신이 꿈꾸던 주제와 문장들이 작품에 구현되어 있음에 놀라움과 황홀감을 느껴 포의 전 작품을 완역하기로 결심했고, 1860년 음악회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듣는 순간 생의 상승감을 느끼며 그에게 깊이 매료되었다.   보들레르의 말로는 참담했다. “아무 곳이라도 좋소! 아무 곳이라도 좋소! 그것이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이라고 절규하던 그는 두통, 신경쇠약, 숨가쁨, 구토, 신체 마비, 실어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1867년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숙명의 사닥다리 위에서 아래까지 가득한/ 불멸의 죄악의 지겨운 광경”을, “단조롭고 작은 이 세계”를, “우리 감옥의 권태”를 다 벗고 눈을 감고 말았다. 한 역자의 지적처럼 보들레르는 “고뇌와 이상, 악덕, 죄악, 갈증, 찢겨진 영혼의 울부짖음”을 불후의 역작인 한 권의 시집에 불어 넣었다. 그리고 그 시집을 이 요동치는 세계, 이 선상(船上)에, 수부들에게 붙잡힌 알바트로스처럼 남겨 놓고서 떠나갔다.        샤를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 1821.4.9~1867.8.31)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열여덟 살에 품행 문제로 학교에서 퇴학당했으나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한 후 줄곧 작가가 되고자 했다. 성년이 되어 의붓아버지가 남겨 준 재산을 상속받은 뒤에는 센강의 생루이섬에 거처를 두고 댄디즘의 이상을 추구하며 탐미적 생활을 즐겼다. 흑백 혼혈의 무명 여배우 잔 뒤발을 알게 된 뒤 관능적 시흥을 중요하게 여겼다. 상속받은 유산을 거의 다 낭비한 뒤에는 법정후견인이 딸린 준금치산자가 되었다. 스물네 살에 미술 평론가로 데뷔하였고 문예비평, 시, 단편소설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문단에서 활약하는 한편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번역하였다. 랭보 등 상징파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낭만파, 고답파에서 벗어나 인간 심리의 심층을 탐구하고 고도의 비평 정신을 추상적 관능과 음악성 넘치는 시에 결부하였다. 대표작으로 [악의 꽃]이 있다.     글 문태준  1994년 으로 등단.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산문집 [느림보 마음] 등이 있다.   [출처] 보들레르/ 알바트로스|작성자 헌책  
816    난해시를 읽는법 댓글:  조회:7127  추천:0  2016-01-01
난해한 시를 읽는 법            어려운 시를 읽는 법 / 신준봉       신준봉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문학담당 기자로 일하며 ‘문학 위기론’만큼 자주 듣는 말도 없다. 3년 전 일본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이 떠오른다. 근대문학의 종언을 얘기하며 한국을 사례로 들어 국내 문학판이 시끄러웠다. 1970∼80년대, ‘소심한’ 정치를 대신해 사회현실에 개입하며 번창했던 한국문학이 90년대 들어 정치적 발언권을 내준 뒤 쇠퇴했다는 게 주장의 요지였다.  위기론은 30여 년 전에도 있었다. ‘문학에 대한 경멸과 白手(백수)에 대한 조소가 그 어느 때보다 깊어져 가고 있어 보이는 지금, 인간정신의 가장 치열한 작업장인 문학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에게 더할 수 없이 귀중한 자기각성의 몸부림이다.’ 비장한 글이다. 평론가 김윤식과 고(故) 김현이 함께 쓴 『한국문학사』(1973년) 서문의 한 대목이다. 가라타니의 진단대로라면 문학이 가장 잘 되던 시기에 위기론이 일었던 것이다. 어떤 위기론은 과장 혹은 엄살인 것일까.  요즘의 위기론은 문학의 난해함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얻는 것 같다. 난해함은 소설보다 시에서 두드러진다. 가뜩이나 시 독자가 줄어든 판에 문학과지성사·창비·민음사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학출판사에서 나오는 시집들이 점점 읽기 어려워지고 있다. 한 번 뜨거운 맛을 본 독자는 조심하게 마련이다. ‘난해’가 ‘위기’를 재촉하는 일종의 상승작용이다. 오죽하면 서울대(국문과) 명예교수인 오세영 시인은 최근 일부 젊은 시인들의 난해시(難解詩)를 “정신분열적”이라고까지 비판했겠는가.  문제는 젊은 시인들의 난해시 선호가 질타로 해결될 성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언어에 예민한 젊은 시인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스스로 궁핍을 자초하면서까지 난수표 같은 난해시에 매달릴 게 뻔하다. 방법은 하나다. 피할 수 없다면 부딪쳐야 한다. 난해시는 한편으론 한국 현대시를 풍성하게 하는 귀한 존재 아닌가.  시인 K에게 난해시 감상법을 물었다. 그는 젊은 시인들의 시를 정확하게 보기로 소문난 이다. 그에 따르면 난해 시집은 우선 ‘속독(速讀)의 대상’이다. 그는 실내자전거 위에라도 앉아 시집 전체를 30∼40분간에 걸쳐 빠르게 훑는다. 이때 무언가 마음을 건드리는 게 있으면 계속 읽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둔다. 자기에게 맞지 않는 시집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이 단계를 통과했다면 다음은 각개격파. 시 한 편을 앞에 두고 어느 시간대인지, 장소는 어디인지, 시의 화자가 무언가에 쫓기는 상태는 아닌지 등 구체적인 시의 정황을 그려보려고 노력한다. 이게 잘 안 된다면 단어 하나하나를 소리 내 발음하며 의미가 분명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읽는다. 이렇게 해서 시 한 편을 온전히 이해한 후 다음 시로 넘어간다.  K는 시집 한 권 읽는데 예닐곱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장편소설 한 권 읽는 시간이다. 시집이 어떤 기쁨을 주기에. “세계가 넓어지고 깨달음이 깊어진다”고 한다. 그의 감상법을 실천해보고 싶어진다.      _중앙일보    곁에     심지아           머리카락은 잠들어 있다 공기 중에서 산호처럼 흔들렸다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쪼개진 석류의 아름다움처럼 꿈의 틈새가 벌어진다 손가락은 꿈에 잠긴다     암실에는 물이 흐른다 네 혈관 속 물고기가 피워 올린 노래들 돌멩이의 형상으로 물속 깊이 가라앉는다 우주의 하얀 잠속에서 부푸는 이야기처럼 돌멩이가 자란다 물결은 돌의 꿈을 방문한다 꿈이 느리게 용해된다 손가락은 물의 뿌리처럼 돌멩이를 감싸 쥔다 네 몸속 심장처럼     내 귓속 초록 밀밭을 불태우며 가꾸는 것들 네 심장 소리는 모스부호처럼 외롭고 단단한 문장으로 도착한다 너는 물기 많은 계절을 부른다 나는 장님처럼 또렷하고 모호한 너의 살갗을 쓰다듬는다                                   —《시산맥》2011년 여름호   ----------------- 심지아 / 1978년 전북 익산 출생. 아주대 경영학부 졸업. 2010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  =======  그게 외로움인 줄 모르고     이규리       시멘트와 물을 비벼 넣으니 단박에 벽이 생기고 벽을 사이로 순식간에 안과 밖이 나왔다   단단하구나 너에게 그게 외로움인 줄 모르고 비벼 넣었으니 어쩌자고 저물녘을 비벼 넣어 백년을 꿈꾸었을까   벽이 없었다면 어떻게 너에게 기댈 수 있었겠니 기대어 꿈꿀 수 있었겠니   벽이 없었다면 날 어디다 감추었겠니 치사한 의문들 어떻게 적었겠니   받아주었으니, 기대었으니 그거 내 안으로 들어온 밖 아니겠니 밖이 되어 준 너 아니겠니                                   —《문학마당》            [평론] 난해 시에 대한 소회    홍형표    그러니까 난해 시를 추구하는 시인들 대단하고 경이롭다. 사실 난해 시만큼 쓰기 쉬운 시도 없다. 자신만 아는 은유로 빤지르르하게 처바르면 그만이다. 아니다. 자신조차 몰라도 된다. 어차피 남들도 모를 테니 상관없다. 문제는 또 있다. 난해 시를 평하는 비평가다. 그들의 비평도 난해하긴 매한가지다. 그 또한 그들만 알 테니 말이다. 평범한 시를 쓰는 사람들은 난해 시를 깔보지 않는다. 반면, 난해 시를 쓰는 사람은 평범한 시는 시도 아니라며 코웃음을 친다. 평범한 시는 평범한 시 끼리 난해 시는 난해 시 끼리 어우러지면 그뿐 진짜, 더 큰 문제는 난해 시가 아니라 쓴 사람의 자세다. 한번은 난해 시를 흉내 내 봤더니 난리다. 그것도 30초 만에 쓴 글이다. 그래서 난, 난해 시를 안 쓴다. 난해 시라는 것이 많이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척 시침을 떼는 것 같아 쓰기 싫다. 솔직히 못쓴다. 재미도 없고...  이거 또 와락 할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火 超 시는 쉬워야합니다  쉬우면서 깊이가 있어야합니다  난해한 시는 혼자만의 은유입니다  시는 혼자 보려는 글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읽어주는 상대가 있습니다  상대를 어렵게 괴롭히며 읽어주길 바랍니다  그런 글 곤란하지요  안 보면 그만입니다.  제멋에 사는 것이니까요  더러는 난해시가 수준작으로도 대접 받지요  추천한 분이 과하게 척 하다가 그러는 건 아닌지 아리송하기도....ㅎㅎ  그럴리는 없겠지만요  모르는 걸 어찌합니까...ㅎ  퇴근해야지요.      낭만사유 글을 쓰다가  蛇足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가지를 잘라 냈더니 줄기만 남더군요 줄기만 있으니 읽을거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사족을 붙여 봤더니 그럴싸하게 보였습니다.  ...예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박커스     난해시 읽는 재미에 푸욱, 빠져보십시요,^^  참 난해하게 재밌습니다.홍시인님.(농담,,지송)^^*  피카소의 그림과,,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은 쟝르는 틀리지만  비슷한 맥락을 지닌 난해한 그림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결코, 쉬운 그림을 못그리는 분들은 아니구요.^^  애들이 설명좀 해 달라고 하면 참,,,화장실 가고 싶어집니다.  어려워서...ㅎ~ 넘, 조잘 거렸습니다.시인님.  즐거운 한주 보내십시요..건강은 필수과목입니다..^^      꿈속의 꿈   난해 시라는 것이 많이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척 시침을 떼는 것 같아  쓰기 싫다. 솔직히 못쓴다./ 그 반대일 수도 있지요....^^  한국시의 근간은 서정시 라고 합니다.  난해시도 역시 시의 한 쟝르라고 볼 수 있지만 서두,  쉽게 읽혀지고 감동의 여운이 짙게 남는다면.  더 기억에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시를 더듬는 다는 것.  골조든 가지든,  시를 쓴 시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노안이 와서, 쉽게 쓰기도 읽기도 어렵습니다.^^ 난해시든, 서정시든, 역사시든, 철학 시든, 선시든.....  암튼, 좋은 시는 좋은 마음과 생각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우리 홍형표님의 좋은 작품 잘 감상하고 물러갑니다.  암튼..............^^      오영록     참 어려운 화두지요.. 시인님.  난해시를 써야 문학으로 인정받는  구어를 쓴다고 결코 가벼울 수도  깊이나 낮을 수도 없는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시는 쉽게 읽혀야 하며  그래야 감동이 생기든 말든 하겠지요  시인도 이해할 수 없는 시를 써 놓고  독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선 시란 시인이 되서어 자연 발생적 시상을 가지고  기술적 기교로 감을을 돋우는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그저  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혼자만의 시라면  공상이나 망상이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성경/불경/시경/3경중 시를 작하는  사람들의 시작과 끝이 어딘지는 잘 모르나  정말 공감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존경합니다. 홍형표 시인님...      홍형표   네... 그렇습니다. 평범 속의 비범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동감하는 말씀이지요.  복잡 난해한 시를 쓰는 만큼 조금만 더 깊이 생각을 기울인다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지요.  공감으로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낭만사유 시인님 가지가 무성하 건 잘라 내 건  중요한 건 소통이겠지요. 소통의 부재를 노린다면  구태여 시를 택할 필요가...  차라리 입 꽉 다물고 아무 말 안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저의 짧은 생각은 이렇습니다.  감사합니다. 빠지고 싶어도 뭘 알아야 빠지고  추상화 것도 뭘 알아야 보겠죠.  그냥 편하게 살겠습니다.  사실 난해의 대표 시인 이상의 시가 누구에게 감동을 줬습니까  누가 이상의 오감도를 보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 시켰습니까  마찮가지로 피카소의 추상화를 보고 누가 눈물을 흘렸겠습니까  누가 흥분으로 몸을 떨었겠습니까.  물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주,아주 아주 소수의 이방인들 ...  걍, 저의 모자란 생각이니 무지의 소치라 여겨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커스 시인님 언제 쪼~옥 할 날 있겠지요. 좋은 시는 좋은 마음과 생각// 바로 그겁니다.  난해 시든 평범 시든 무에 상관이 있겠습니까.  다만, 인격, 성품을 말함이지요.  물론 저도 한참 못 미칩니다. 그러나 적어도  행동은 미흡할 수 있으나 가슴만이라도 정의로 왔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정의, 별거 아닙니다.  타인을 업신여기지 않은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이러한 것도 물론 저만의 생각입니다.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말입니다.  여러모로 좋으신 말씀 감사합니다.  깊은 마음을 지니신 우리 꿈속의 꿈 시인님 참, 공감 하신다면서, 감을을//이케 난해한 글을 주시면  저 보고 어쩌라는 말씀이신지^^*  글구, 존경은 제가 진심으로 시인님을 존경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제게 그러시면 복수하시는 게지요.  뭐 그런 복수라면야 얼마든지 지요.  하지만, 전 시인님께 그럴만한 인물이 못되옵니다.  담 부턴 그런 말씀일랑 삼가주세요.  그리고 그 말씀은 저만의 특허품이니 사용금집니다. 또 그러시면 놀리는 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옥천 김선근   시인들이 모이면 꼭 약방의 감초처럼 말하는 것이 난해시입니다  저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요  저는 시력이 짧아 쓸 수도 해석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저 대충 훑어보는 정도지요  제 생각으론 보다 높은 상상력과 독특한 것을 추구하는  신춘문예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서정시다 난해시다 무엇이다 하는 것은  시인의 입맛에 따라 꼭 김치가 있는 한식을 좋아하는 사람  당연히 포크질을 해야 식사한 것 같은 사람  취향에 따라 식성이 다르듯 서로 누가 옳다라  이것이 진짜다라 강요하지 말고  공존해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걱정되는 것은 시인들도 잘 해석 못하는 시를  스피드 시대에 일반 독자들이 해석하고 공감할 수 있겠느냐  과연 시는 시인들만의 소유물인가  일반대중들이 쉽게 시와 교감하며 가까워 지겠는냐 하는 것이지요  그나저나 저와 같이 쉽고도 단박에 시를 쓰는 사람으로선  난해시를 쓰는 시인님들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제 눈에는 편한 길을 놔두고 암벽을 타며 모험과 도전을 즐기며  협착한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번쯤 꼭 생각해 보야할 시인들의 화두인 난해시에 대한 글  시인님 덕분에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한드기   요즘 공부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매 댓글에 보면, 저같은 사람이야 어쩌고 저쩌고 하시면서두...  필력이 속일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ㅎㅎ 저는 요즘 시집 한 두어 권 더 보았더니  저 스스로 시쓰기가 그냥 겁납니다. 시 앞에 천만 겹이 있다면 이제 한두 꺼풀 벗겨진 것 같은... 시평은 생략하겠습니다.  시심을 오독할 것도 같고...  아무튼, 관심 항상 가는 우리 홍 시인님. 건안, 건필 하시옵소서.  이만 물러갑니다.      홍형표   네... 김선근 시인님 반갑습니다.  제가 뭘 알아서 난해시 운운하겠습니까.  다만 저의 좁은 생각을 나름 피력한 것 뿐이지요. 전 그렇게 생각 합니다.  특정인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다면  그 시는 시로서의 가치를 상실 했다고 봅니다.  모름지기 시는 사람의 마음을 일깨우는 덕목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순전히 모자란 이 사람의 짧은 견해 일 뿐입니다. 저는 난해 시를 비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진 각자의 몫에 달려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홍형표   글쎄요...제가 공부를 전혀 안 한다고 하면  믿으시려나. 아님 무장 많이 한다고 하면 믿으시려나.  건, 중요치 않구요.  저두 요즘 한드기 쉰님께서 뭔가 변화를 추구하시는 듯한  느낌을 강렬하게 받고 있습니다. 두어 꺼풀 벗겨 내셨으니 나머진 시간문제겠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 겹의 표지도 파악이 안 되고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웅숭깊은 시를 꺼내실 것 같으신 시인님과는  비교할 바 아니라 생각합니다. 늘 관심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한드기 시인님 건강만한 것도 없겠죠.        좋은 시는 쉽게 읽히는 시이고, 더좋은 시는 어려우면서도  잘 이해가 되는 시일것 같습니다. 간혹 요즘 젊은이들의  전매특허처럼 어렵게 갈긴 시들은 그냥 넘어갑니다.  그러다가도 한 번 눈길을 주곤 합니다만 쉽지가 않습니다.  나름 시공부가 덜된것 같기도 합니다.  시는 너무 숨겨서도 안되고 너무 드러내도 안되며  감칠맛나게 적당히 드러내고 숨기면서 독자들의 약을  바짝 바짝 올려야 결국에는 무릎도 치면서 쾌감을 주지  않을까요, 저는 어려운 시보다는 울림이 있는 시를 선호  합니다만 결국은 시도 간을 잘 보아야 맛이 좋을 것 같습니다. 2011-08-01     청둥배락   쨘~~~ 재미있는 토론.....ㅋ 난해시를 잘못 보고 .. 만해시라고 읽었네용. ㅎ  만해시는 쉽게 읽혀지는데 뭔 소린가.... 오해 할뻔.  제 눈이 난독증인 것 같습니다. 난해하면 안 읽으면 되죠.  골 아프게 왜 읽어요? 수능시험에 나오는 것도 아닌뎅.  허기사 수능시험에는 그런 시 안 나오기는 하지만요. 난해한 시도 제대로 된 시가 있긴 있더군요.  느낌으로 딱 오잖아요. 뭔가 말을 하고 있긴 있구나 하고요. 다만 악성버전시라고..... 일부러 뿌옇게 안개 뿌리고 나가는 시...  그건 좀 그래요. 일종의 사기죠. 그렇지만 작가 당사자가 나타내려는 메타포와 내 해석된 메타포가 일치되지 않아서  난해하게 느끼는 경우는 흔한 거 같습니다. 저는 쉽고 깔끔하고 팍팍 그림을 찍어내는 듯한 시가 좋습니다.  사회적 공감대가 넓게 형성될 수 있는 시라고 할까..  그게 좋습니다.^^      오정자   아프리카 사람들 백설공주 이해 못해요. 눈(雪)을 한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그들에게 말하려면 곰팡이(그들에게 제일 희다고 각인된 사물)공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문화나 개인의 취향까지 감안하는 것 중요합니다. 상식에 어느 정도 걸맞으면 통과.  단, 일반인들이 봤을 때 저들만의 리그다 하는 소린 안 들어야 할 것 같네요.^^      홍형표   시에는 핵심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라 할지라도 핵심이 분명하면 잠시 이해를 미루더라도  언젠간 마음을 잡아 당기기 마련이지요.  어렵기만 하고 핵심마저 불분명 하다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디카프리오 시인님께서 바른 정답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변태 과정을 거치며 논리가 아닌 체험으로 알아가는 것이겠지요.  시원한 해답을 주신 디카프리오 시인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쨘, 하시며 정의의 망토를 펼치시고 방문해 주신 청둥 어르신  저도 이해하기 쉬우면서 속 깊은 시를 좋아합니다.  제 능력의 한계로 하여 더는 깊은 말씀을 드릴 수가 없네요.  시인님의 구수한 입담 같으신 시에 마음이 많이 끌리고 있습니다.  모쪼록 무더위에 강건하시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청둥      홍형표   이크, 그래요 머...  제 글중에 가장 긴 대끌을 달아 주신 우리 오정자 쉰님  부드러운 깔침을 놓아 주셔서 기분 좋습니다.  눈을 처음 본 아프리카인들 그럴 수 있습니다.  아니 맞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아프리카인들의 사고방식을  누가 이해하고 이해 시킬까요. 문화나 개인의 취향까지 감안하는 것 중요합니다. // 물론입니다.  그래서 저를 위시한 많은 분들의 문화나 취향을 이해 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제 말에 어폐가 있었다면 용서 하시구요. 우리 흠모하는 오정자 쉰님의 방문에 저는 그저 어깨가 덩실덩실 합니다.  왜 있잖아요 걍, 이유없이 좋은 것  감사합니당.....      최준건   시는 타인에게 읽혀질려는 의도 이외에  자신의 내면을 담아내는그릇으로 쓰여지는  경우도 있답니다  잘보고 갑니다...     이종원   세상은 너무나 많이 빠르게 변화합니다.  그 중에도 진리는 변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것을 깨닫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요.  화자는 독자에게, 독자는 화자에게 접근하려고 하는  서로의 마음과 배려가 그 폭을 좁히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 시단의 화두!!!!  난해시에 대하여 깊은 고찰의 울림 또한 깊습니다.  홍형표 시인님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난해시는 가라, 극서정시 들고 나온 60대 시인 셋    [중앙일보] 2011년. 조정권·이하석·최동호씨 새 시집 “언어 최대한 줄이고 행간 넓혀” 나란히 시집을 낸 최동호·이하석·조정권 시인(왼쪽부터).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누군가는 말해야 하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나서게 됐다.”  예순 줄에 접어든 중진 시인 세 명이 뭉쳤다. 요즘 젊은 시인들의 작품이 너무 어려워 독자들이 시에서 멀어지고 있다며 ‘읽기 쉬운’ 시집을 나란히 냈다. 조정권(62)·이하석(63)·최동호(63)씨가 그들이다. 각각 시선집『먹으로 흰 꽃을 그리다』 『상응』『얼음 얼굴』(서정시학)을 ‘서정시학 서정시’라는 이름을 달고 냈다. 지향점을 짧고 알기 쉬운 ‘극(極)서정시’라고 규정했다. ‘서정시’ 앞에 ‘극’이라는 문패를 붙인 것은 언어를 최대한 줄이고 압축하되 행간의 의미가 넓고 깊이 있는 시를 써보겠다는 뜻이다.  2000년대 중반 출현해 ‘미래파’의 기치 아래 결집한 젊은 시인들의 난해시(難解詩)에 대한 저항감은 시단에서 그리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동료 시인은 물론 광범위한 시 독자를 상대로 짧은 시 쓰기 운동을 벌이는 ‘작은詩앗·채송화’ 동인들도 난해시에 대한 거부감에서 출발했다. ▶  세 명이 발의한 극서정시 운동은 문학전문 출판사를 거점으로 하고 있어 보다 집중력이 느껴진다. 출발부터 젊은 세대와의 대립각을 명확히 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최동호 시인은 “4월 말이나 5월 초 김종길·오세영·유안진씨의 시집 세 권을 나란히 낼 계획”이라고 했다. 중량감 있는 시인들을 자신들의 운동에 계속해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조정권씨는 “반드시 세대간 대립으로 보지는 말아달라. 요즘 시의 언어가 너무 과소비로 치닫고 있어 언어의 경제를 발휘하는 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극서정시의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최동호씨의 ‘얼음 얼굴’ 전문이다.  “거품 향기, 찬 면도날/출근길 얼굴/저미고 가는 바람//실핏줄 얼어, 푸른 턱/이파리 다 떨군/나뭇가지//낙하지점, 찾지 못해/투명한/허공 깊이 박혀//눈 거품 얇게/쓴/홍시 얼굴 하나”. 신준봉 기자              [평론]난해한 작품을 난해하다고 하지 않으면 뭐라고 하지?    난해한 작품을 난해하다고 하지 않으면 뭐라고 하지?   "난해시는 비평가가 제 안목을 벗어나는 시에 가하는 가장 손쉬운 복수라고. 가장 손쉬운 복수이면서 가장 무책임한 진단이 또한 난해시라는 용어다."(문학동네, 2009 가을호) 한 시인이 이런 말을 했다. 물론 잘못된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조금은 우스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 사람들은 시를 잘 읽지 않는다. 물론 소설을 포함한 우리 문학작품이 몇몇 성공을 거두는 특정 작가의 작품이 아니면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이유는 대중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중성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항상 난해하다라는 이야기를 쉽게 하게 된다. 물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그의 숨은 소통자들을 미리부터 차단하는 효과를, 난해시는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는 저 시인의 평가는 옳다고 할 수도 있다. 난해하다는 평론가의 말 한마디는 결국 생각하기 싫어하는 독자들에게 "시를 읽지 않는 것에 대한 좋은 핑계"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시인들의 책임도 없지는 않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노래하는 것이, 개인적인 서정을 노래하는 것이 시라고 하더라도 관계 속에서, 그리고 그 언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를 거스르면서 까지 실험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거부감이 있다. 아방가르드 적인 예술이라고 말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실험이라고 말하는 것도, 혁명이라고 말하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나는 궁금하다. 평론가들이 난해시라고 말하는 것이 일종의 폭력이라면, 그대들은 실험정신, 도전, 혁명, 아방가르드 따위의 말로 독자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문학의 위기는 독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잘난 작가들의 수준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대중을 포용할 줄 모르는 작가들이 초래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려운 시, 어려운 소설, 당신의 생각. 물론 다 존중되어야 한다. 그리고 존중할 수 있다. 그렇지만 평론가의 말 한마디가 없으면 도저히 해석이 불가능한 시, 소설 따위 대중은 좋아하지 않는다. 난해시라는 폭력이 비평가의 무책임한 폭력만은 아닐것이라고 생각된다.            [문학칼럼] 陽谷 조수형 시인의『속주머니에 숨겨둔 사랑』     [문학칼럼] 陽谷 조수형 시인의『속주머니에 숨겨둔 사랑』을 읽고                        陽谷 조수형 시인의 『속주머니에 숨겨둔 사랑』 을 읽고                                                       시인 김형출    陽谷 조수형 시인의 첫 시집 『속주머니에 숨겨둔 사랑』이 세상에 태어났다. 시집이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그 심정은 책을 출간한 사람 많이 안다. 첫 시집 때문에 얼마나 마음 졸이며 긴장했을까, 경험에 의하면 책 출간 뒤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시집을 다시 읽어보면 시집 한 권 안에 내 보일만 시 한 편 없다는 느낌이 들 때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만큼 시에 눈 뜬다는 희소식일 수도 있는 것, 그래서 위안이 된다. 그런데 조수형 시인의 첫 시집은 서정을 노래한 정겨운 시어들이 오랜 친구처럼 정겹게 다가온다. 조수형 시인은 늦깎이에 등단한 열정적인 시인이다. 사관학교 동기요. 문학 카페 회원이며 동료 시인이기도 하다. 군대생활 할 적에 같은 부대에서 몇 개월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당시는 우리가 시인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시 짓는 데는 등단 경력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중요하지는 않다고 본다. 등단 경력보단 열정이 더 중요하다. 시단에는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이름 없이 사라져가는 시인이 많다. 그래서 조수형 시인은 훌륭한 시인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조수형 시인의 시 세계는 서정적이면서 난해하고 난해하면서 이해하기 쉽게 압축해서 좋다.   시가 아름답다는 것에 대하여 그 누구도 섣불리 단정 짓지는 못한다. 그만큼 시를 이해하고 시 맛을 알기란 정말로 어려운 것이다. 요즈음 시도 유행을 타는지 서정적인 짧은 시는 꺼리는 경향이 짙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난해한 시를 써야 만이 좋은 시인지 묻고 싶다. 시인지 산문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이상한 난해한 시들이 활기를 친다. 난해한 시가 다 잘못되었고 나쁜 시란 뜻은 아니다. 이런 현상은 특정 ‘낄끼리 문화’를 만들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한국 문단에도 서정적인 시맥을 이어받기 위해 원료시인들이 주축이 되어 부흥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문제는 문학을 하는 사람, 문학에 종사하는 사람 그리고 독자에게도 해당한다.  조수형 시는 화려하지도, 절대적인 미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순박하고 절박한 미를 추구한다. 나는 조수형 시인의 시집 제목 『속주머니 숨겨둔 사랑』에 대해 호기심과 상상력 때문에 며칠 골머리를 않았다. 그래서 우선 목차를 펼쳤다. ‘속주머니에 숨겨둔 사랑’이란 시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대부분 시집은 시제 중에서 하나를 골라 시집 제목으로 선정한다. 시를 감상하기 전에는 좀 아쉬워했다. 조수형 시인의 시집 『속주머니에 숨겨둔 사랑』 을 몇 번 읽고는 고개가 끄떡여졌다. “아, 그렇구나!”   속주머니는 옷의 안쪽이나 속옷에 단 주머니를 말한다. 하찮은 물건은 속주머니에 절대로 넣어 두지 않는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의 속주머니에는 꼬질꼬질한 지전 몇 장을 꼬깃꼬깃 숨겨져 있다가 응석 부리는 손자, 자식에게 꼭 필요할 때 사랑으로 내밀곤 했다. 조수형 시인의 속주머니에 숨겨둔 사랑은 할머니 어머니 같은 사랑 외에도 호기심과 상상력을 발동하게 하는 숨겨둔 사랑이 가득할 것이다. 그 사랑은 조수형 시인만이 알고 있다. 독자는 유추나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속주머니에 숨겨둔 사랑은 아마 자연과 우주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한 애정이 아니까 생각한다. 그 사랑이 압축되어 이 세상에 태어난 바로 '너희'와 '너'일 것이다.   조수형 시인은 서각이면 서각, 서예면 서예, 전각이면 전각, 한국화면 한국화 등 다재다능하다. 이 모든 것이 시와 연관이 있다. 기회가 된다면 조수형 시집에 대한 시평을 해볼까 한다. 조수형 시인의 첫 시집 출간을 다시 한 번 축하하며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독자에게 사랑받은 시인이기를 여망 한다.            [시창작론]난해시를 위한 변명 입춘 -증상을 앓는 허공 계절은 가장 먼저 허공에 도착한다 허공은 증상을 앓다가 새 떼를 날린다 달을 지나가는 까만 점들의 ㅅ,자 행렬이 잦을 때 계절이 바뀌는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욕하는 것은 용기   별로 감수해야 할 위험도 없는데 비장하게 욕하는 것은 버릇 이 말을 트위터에 올렸더니 갑자기 50명 가까운 사람들이 리트윗을 했다(자랑질이다). 덕분에 팔로워가 1700명을 훌쩍 넘었다. 비장할 것도 없는데 비장한 각오를 밝히거나 택도 아닌 일에도 심각해 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의 솔직하지 못한 행태를 비판한 것인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솔직하다면 유머도 감동이고 까부는 것도 보기 좋다. 시의 솔직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솔직한 시는 아무리 어려워도 용서가 된다. 솔직하지 못한 시는 아무리 쉬워도 용서가 안 된다. 심지어 화가 난다. 이것이 단순한 나의 시론이다. 땅이 진동하고 해일이 일 때 그리고 폭풍우가 몰아쳐 인간의 마을을 휩쓸 때, 인류는 그 공포스러운 사태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해왔다. 사태 속에서 때로 신의 의지를 읽기도 하고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인류의 정신은 눈부시게 발전하였고 삶의 의미는 깊어졌다. 신(우주, 대자연)은 여러 가지 기호로 자신의 뜻을 끊임없이 인간들에게 알려왔다. 난해한 기호일수록 해석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겠지만 의미를 파악하고 난 뒤의 인류의 이성은 늘 한 단계씩 고양되었다. 시도 마찬가지이다. 해석할 필요도, 깊은 의미도 없는 일상적인 중얼거림을 토하고 싶다면 굳이 시라는 형식을 빌려 의미를 드러낼 필요는 적다. 시는 신(우주, 대자연)이 쓴 기호처럼 해석을 기다리고 있는 특별한 사태이다. 해독이 어려운 시의 공포 앞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울림을 만져볼 일이다. 다른 차원의 세계를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기쁜 만큼 세계는 확장되고 이성은 깊어진다. 난해한 시가 늘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난해한 시를 욕하는 것은 유치한 일이다. 난해한 시를 생각없이 심각하게 욕하는 사람들에게 ‘그대들이 알아듣는 시를 쓴다면 그건 초딩 일기장이 될 확률이 높다.’고 귓속말로 얘기해 주고 싶다. 난해한 시는 현실적 쓸모가 없다고 보는, 실용주의적 관점에 선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아마 칼이나 돌이지 시가 아니지 싶다. 그런데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로 쉽사리 파악하기 어려운 시가 그 칼이나 돌보다 더 강력한 칼이나 돌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생각의 범위 안에서만 그렇다. 더 오래 더 강하게 더 깊게 세상을 베어내고 근원적으로 세상을 흔드는 난해한 시가 있다. 시가 중얼거림과 다른 이유는 해석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깊고, 깊기 때문에 오래 간다. 오래 가기 때문에 더 많은 이들의 정신에 광범위한 충격을 줄 수 있고 세계를 바꿀 수 있다. 어떤 이는 말할 것이다,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시를 보여 달라고, 우리는 미래를 살지 않고 현재를 사는 이들이라고. 그 말도 맞다. 그래서 나는 또 그런 이들을 위해 준비해 둔 게 있다. 행사시, 행사시를 준비해 두었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창간일에 실리는 창간 축시가 대표적인 행사시다. 당장의 필요에 의해 쓴 시다. 그런데 그게 시냐? (개소리지) 물론 행사시 중에는 감동스럽고 위대한 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극히 드물다는 게 문제다. 나는 아직 감동스러운 행사시를 본 적이 없다. 아기의 몸짓을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보거나 울음에 귀 기울이면 말하지 못하는 아기의 말이 들려온다. 그 때 엄마는 젖을 물리거나 기저귀를 갈아준다. 현미경과 씨름하고 밤새워 실험을 하면서 현상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과학자에게는 자연의 말이 들려온다. 그 때 과학자는 노트에 새로 발견한 자연의 법칙을 써내려 간다. 사랑하는 이의 말없는 눈을 한없이 깊게 들여다보면 입의 말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말이 눈에서 들려온다. 그 때 연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굴을 내밀어 뜨거운 키스를 한다. 아기의 울음, 현미경 속의 움직임, 사랑하는 이의 눈빛. 이것들은 모두 해석을 기다리는 현상이고 무심하면 파악하기 힘든 난해한 기호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진실하게 기울이면 파악되고 해석되는 감동적인 시들인 것이다. 쉽게 파악되는 시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껍질을 벗길수록 새로운 의미들이 솟아나는 어려운 시를 좋아하는 이들의 뜨거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단순한 나의 시론이다.   난해시의 선조(先朝) 김구용 시인의 시 한 편 고봉준령 설산에 오르기를 거부하고 평지에 앉아 미인과 술과 더불어 노닥거리기를 좋아하는 나는 김구용 시인의 시를 보며, 까마득한 높이에서 비루한 인간을 내려다보는 영혼의 거대한 얼굴을 느낀다. 김구용 선생의 시에 발을 들여놓으려다가 물러나 개새끼처럼 마구 짖어대기를 몇 번, 선생의 시집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기를 몇 번, 더러 욕설을 뱉으며 시의 저수지에 침을 뱉기를 몇 번··· 오늘은 기어코 선생의 표제시 「풍미」를 침범한다. 풍미 / 김구용 나는 판단 이전에 앉는다. 이리하여 돌(石)은 노래한다. 생기기 이전에서 시작하는 잎사귀는  끝난 곳에서 시작하는 엽서였다. 대답은 반문하고 물음은 공간이니 말씀은 썩지 않는다. 낮과 밤의 대면은 거울로 들어간다. 너는 내게로 들어온다. 희생자인 향불. 분명치 못한 정확과 정확한 막연을 아는가. 녹(綠)빛 도피는 아름답다. 그대여 외롭거든 각기 인자하시라. (1970년) “나는 판단 이전에 앉는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게다가 “이리하여 돌은 노래한다” 이건 또 뭔 소린가. 그리고 두 문장이 인과관계로 이어지는 건 또 무슨 이유인가. 심호흡을 하고 다시 들여다 본다. 판단하고 생각하기도 전에 손가락이 먼저 전화기의 번호판을 누르던 기억이 내겐 있다. 사랑하던 여자가 죽고 술만 취하면 그 여자의 번호를 눌렀다. 그것은 분명히 판단 이전의 행동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미쳐서 세상의 모든 사물들(돌, 풀, 길, 먼지)로부터 죽은 여자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따라 거리를 헤매고 술집에 앉아 열흘씩 술을 들이켰다. 미쳤다. ‘나는 판단 이전에 앉’아서 ‘돌’의 노래를 들었다. “생기기 이전에서 시작하는 잎사귀는 / 끝난 속에서 시작하는 엽서였다.” 갈수록 태산이다. 어렵다. 뭔 말인가. ‘생기기 이전에서 시작하는 잎사귀는’ 불교의 인연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잎사귀는’ 우리의 불완전한 눈으로 보는 ‘생김-존재,현상’들 이전에 이미 어떤 근원적 힘(태허, 신, 우주의 원리)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 색과 형태를 말하지만 시인은 그 이전의 것을 느끼고 있다. 그리하여 ‘끝난 것 속에서 시작을 보고 시작 속에서 끝을 보는 윤회’를 말한다. 그리고 끊임없는 ‘물음(의문)’ 속에서 썩지 않는 언어의 다이아몬드를 채굴해 내는 것이다. “대답은 반문하고 / 물음은 공간이니 / 말씀은 썩지 않는다.” “낮과 밤의 대면은 / 거울로 들어간다. / 너는 내게로 들어온다.” 낮과 밤, 음과 양의 이치를 터득한 자는 높은 자기성찰의 단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모든 존재를 이해하고 흡수한다. ‘너’인들 내게로 들어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희생자인 향불.” 희생은 아름답다. 고귀하고 향기롭다. 70년대의 암울했던 시기를 올곧게 살다 간 이들의 희생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향불은 죽은 자의 앞에서 기도처럼 타오르고 시인의 마음 속에는 ‘정확’한 이성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자들에 대한 조소가 일렁인다. 그래서 ‘분명치 못한 정확’과 ‘정확한 막연’으로 한 시대를 분탕질한 자들에 대한 고요한 분노를 호소한다. 자기의 생각을 ‘정확’하다고 맹신하는 것들의 주둥아리를 쥐어박는다. 또한, 불의의 시대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도망이 아니라 당당히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거머리처럼 붙는 간사한 세파를 뚫고 ‘녹빛 도피’를 ‘아름답’게 감행하고 싶었을 것이다. “녹빛 도피는 아름답다. / 그대여 외롭거든 / 각기 인자하시라.” 나는 이 마지막 구절을 읽으며 개처럼 짖던 내 주둥이를 틀어막는다. 독자들이여 외롭거든 각기 인자하시라, 외롭거든 각기 인자하시라.  “그대여 외롭거든 각기 인자하시라.” 문학평론가 김동호는 2001출간된 김구용 선생의 시집『풍미』의 해설에서 이런 지적을 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시는 술술 잘 넘어가는 술 같은 시만 찬미를 받는 것 같다. 자연 예찬의 낭만시나 바보예찬의 천국적 단순시 아니면 대중 앞에 초경을 치르는 듯한 낮 간지러운 감각시만 찬미를 받는 것 같다. 뼈속의 진액으로 쓴 시, 그 진액이 마르도록 쓴 시는 사면초가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전쟁 같은 큰 비극을 겪은 나라, 30년의 군사독재를 치른 나라의 시가 무정란처럼 아프지도 않게 생겨나와 댕글댕글 때깔만 좋아서야 될까. 시의 자존적 위상을 위해서도 깊은 고뇌의 이런 난해시는 깊이 연구, 재음미가 되어야 한다.” 10년 뒤의 오늘에도 딱 맞는 말이다. 나는 고개를 숙인다.         김구용(金丘庸, 1922.2.5.~2001.12.28.) ▶본명은 김영탁이며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4세 때부터 금강산 마하연에서 불교와 한학을 접했으며 19세 되던 해부터 13년 간 동학사에 기거하며 경전 및 수많은 동서 고전을 섭렵한 김구용은 1949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전통 시서화에 조예가 깊고, 특히 추사 김정희의 예술에 대해 독보적인 해석을 지닌 한학자이자 서예가이다. 유장한 우리말로 다수의 동양 고전들을 번역한 번역 문학가이다. 중국 고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시인 특유의 문재가 돋보이는 그의 번역물들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육군사관학교, 서라벌예술대학, 건국대학교, 숙명여대 강사를 역임했으며 1956년부터 1987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저서로 시집「시」「구곡」「송 백팔」「구거」와 산문집「인연」「구용 일기」가 있고, 역서로「삼국지연의」「동주 열국지」「충의 수호전」「옥루몽」「노자」「채근담」과 편서「구운몽」이 있다. 2000년 6월에 시 전집 네 권을 비롯한 산문 전집 두 권을 새로이 교정 편집하여,「김구용 문학 전집」(전6권)을 출간했다. ▶원본 「삼국지연의」의 꾸밈없고 쾌활한 서사성과 웅혼한 문학적 스케일을 정확하고 완전하게 살려낸 국내 유일의 한국어 완역본「삼국지연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단순히 이야기 그 자체만을 즐기는 독자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원문을 읽으면서 나름대로의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자신만의 해석을 내려보고자 하는 진지한 독자들에게는 명백하게 역효과를 초래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삼국지연의」의 원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김구용의「삼국지연의」가 다시 출간되는 점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 특히 이번 김구용의 번역본에는 「삼국지연의」의 원문에 들어 있는 시문詩文이 빠짐없이 유장한 문체로 번역되어 있어서 「삼국지연의」의 본디 모습을 훌륭하게 보여주고 인물의 삽화나 부록으로 묶인 전투지의 지형도 등도 독자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다시 한 번 둘러보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삼국지연의」는 역사 기록을 토대로 해서 씌어진 소설이지만 김구용 선생은 「삼국지연의」를 마치 역사 기록을 다루는 자세로 번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서경호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자의식의 세계를 추구한 시를 썼다. 본명은 영탁(永卓).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를 마치고 1955년 〈현대문학〉 기자, 숙명여자대학교 강사,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일찍이 불교에 귀의하여 해방직전까지 동학사 등에서 유불선(儒佛仙)의 경전과 동서양 고전을 두루 익혔다. 1936년〈회고〉를 시작으로 1949년 〈신천지〉에 시〈산중야〉·〈백탑송〉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1940년에는 관념적이고 한자가 많은 난해한 시를 썼는데〈탈출 脫出〉(문예, 1953. 2)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분광(噴光)의 심장〉(신천지, 1953. 6)·〈오늘〉(문예, 1953. 12)·〈슬픈계절〉(현대문학, 1955. 6) 등에서는 전쟁 뒤의 극도로 불안한 현실을 그렸다. 이어〈관조〉(문학예술, 1956. 2) 등을 발표했는데 이 무렵에는 정교하고 섬세한 언어로 행과 연을 무시한 산문시를 주로 많이 썼다. 6·25전쟁으로 황폐해진 현실에서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자의식의 세계를 추구했다. 1957년 〈현대문학〉에 〈소인〉·〈심장없는 인형〉 등을 발표했으며 뒤이어 발표한〈불협화음의 꽃〉(현대문학, 1960. 1)·〈육곡〉(현대문학, 1969. 2) 등은 원고 100장이 넘는 장시이다. 그밖에도 〈현대문학〉·〈자유문학〉에 동양의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초현실주의 기법을 실험한 시를 발표해 현대시의 범위를 넓혔다. 1955년 제1회 현대문학상을 받았다. 시집으로 〈시집 1〉(1969)·〈구곡〉(1978) 등이 있고, 역서로 〈채근담〉(1955)·〈옥루몽〉(1957)·〈열국지〉(1990) 등이 있다.       선비같은 난해시인 김구용     추재욱교수님의 시는 난해시를 썼던 김구용(전 성대교수, 시인, 나의 친구 외숙)의 시와 공통분모가 많아 이를 소개하며, 김구용 선생님의 추모전에 관련된 기사를 옮겼습니다.     김구용은 그의 시에 대한 물음에는 무언으로 일관하며 일체의 해석과 의견을 피력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추교수님도 그러하실는지? (난해시에 훌륭한 능력이 돋보인다고 소견(?)을 피력하고 싶습니다.)    김구용의 시 - 풍미(風味) -   나는 판단 이전에 앉는다. 이리하여 돌(石)은 노래한다. 생기기 이전에서 시작하는 잎사귀는 끝난 곳에서 시작하는 엽서였다.   대답은 반문하고 물음은 공간이니 말씀은 썩지 않는다.   낮과 밤의 대면은 거울로 들어간다. 너는 내게로 들어온다. 희생자인 향불.   분명치 못한 정확과 정확한 막연을 아는가. 녹(綠)빛 도피는 아름답다.   그대여 외롭거든 각기 인자하시라.   (중앙일보 2002.12.24 자에 인용된 것을 재인용함.)     - "마지막 선비' 김구용 시인 1주기 추모 글씨전 -    "우리는 동양 정신을 말살하면서까지 감성적 유행에 경도하리만큼 부박(浮薄:천박하고 경솔함)하지 않다. ···(중략)···    우리는 끝까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하며, 투시할 줄 알아야 하며 순수한 정신의 원자(原子)를 추출 폭파하여 인간의 무애자성(無碍自性:막히거나 거치는 것이 없는 인간의 본성)을 대오(大悟:크게 깨닫는 것)해야 할 임무에 있다."    2001년 12월 28일 타계한 김구용 시인이 1963년 밝힌 글이다. 이어지는 이 글에서 그는 "신·인간 또는 긍정·부정뿐만 아니라 정신·물질의 일체 양반(兩反)되는 차이와 상대성을 그대로 두고도 분별이 없어지는 날이 이 지구의 미래"라고 예견했다.    그러면서 김구용은 자신의 시와 글씨와 그림으로 그런 무애자성의 세계를 보여줬다. 김구용 1주기를 맞아 동료 문인, 후학들이 '구용 선생 글씨전'을 마련, 서울 사간동 학고재에서 30일까지 전시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김구용이 생전에 동료들에게 써 준 글씨나 그림 80점이 전시되었다. 시·서·화에 거침없이 두루 능했던 김구용은 또 김동리 소설집 '무녀도', 천상병 시집 '새'등 문학 단행본 제자(題字)도 가장 많이 부탁 받은 시인으로 기록된다. 해서 문학평론가 고(故) 김현은 "김구용의 모든 작품은 시간과 공간의 올 속에 끼인 표현될 수 없는 근원적인 경험을 언어로 표백하기 위한 오랜 노력의 결정"이라고 평했다.    일제 말기 10여년 간 절에 있으면서 동서양 고전을 두루 섭렵하면서 스님들에게 강의했던 김구용. 선(禪)적 직관으로 모든 것을 감싸안는 사랑 그리고 그 사랑마저도 초월하려했던 그의 시·서·화 세계를 재평가하기 위해 열린 이번 추모전은 그래서 의미를 더하는 듯하다.              詩의 홍수    詩의 홍수     朴民宇 2012년 3월 5일, 하늘에서 홍수 같은 비가 쏟아진다.  어느 날이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매일 이 비를 맞으며 쏟아진 쓰레기 더미에서 아주 가끔은 천재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내심 詩의 의미를 말하고자 하면 주꾸미 드러누운 솥뚜껑 위에도 한바탕 땟국이 쏟아지는데 쓰레기의 홍수는 연탄불 위에서 지글지글 타오르다 곱창, 막창, 똥집, 소주 그리고 친구, 모두가 뒤엉켜 집으로 간다. 아침이라 하기가 무섭게 홍수는 시작되었다.  밤새도록 내린 詩 때문에 지구촌 곳곳이 홍수에 잠기며 그 운명조차도 작가의 손을 떠나고 이제 종말을 준비한다. 내 평생 사막을 걷다가 곰보를 만나든 째보를 만나든 사람만 보면 반가운 것을 매일 보는 마누라 얼굴은 쓰레기 같더라.  시인은 쓰레기 더미에서 천재성을 발견하지만 변화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쓰레기만 보일 뿐이다.              십팔벽      십팔벽   朴民宇   십팔벽  누운 그대 오십 바람에 니기미  오시미. 오시미  가시미에 에라 오시미 왔다리 갔다리.   십팔벽 2 백팔벽  누운 그대 五十 솟아 너의 모습 詩가 되어 돌아가리니 에라 오시미 왔다리 갔다리.      
815    왕초보 시짓기에서의 비법 댓글:  조회:5013  추천:0  2016-01-01
안녕하세요^^   시는 내마음 내생각을 글로 노래하듯이 표현하면 됩니다.   시를 지을때 필요한 것은'ㅡㅡㅡ   우선 책을 많이 읽어서 다양한 표현 어휘력을 키우는게 좋구요, 다른 분들의 시를 많이 읽어봄으로써 시에 대한 운율이라던가 표현법을 익히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남들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세상과 사물을 보며 생각을 가지는게 좋습니다. 중요한것은 자기 생각에 솔직히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 총 획득 메   답변추천해요1추천자 목록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1) 한 작품에 많은 사연을 담지 말것. 한 편의 시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정서든 이미지든 하나여야 하고, 다른 모티프들은 그것이 뿜는 자장(磁場)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이때 시는 통일성을 얻는다.   2) 비유와 상징을 아낄 것. 비유는 아낄 수 있는 데까지 아껴야 오롯한 품위를 갖는다. 상징은 시인이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 숨결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3) 긴 시를 경계할 것. 시의 참된 맛은 행간에 있다. 행간에는 침묵의 언어와 정서의 긴장이 깃들여 있다. 긴 시는 행간을 매립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4) 시상을 풀어가는 수단으로써, 분명하게 몸으로 감촉할 수 있는 것들을 사용할 것. 불투명한 관념이나 감정을 시 비슷한 문법으로 채색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것   5) 정서의 결을 잘 다듬을 것. 몇 번의 침전과정을 거친 그리움이라면 슬픔 따위가 개운하게 세척된 상태라야 한다. 물기가 없이 잘 마른 상태라면 더욱 좋다.   6) 구문이 거추장스러운 것, 관형구나 부사구가 무거운 것은 금기다. 줄기가 가지를 지탱하기 어렵다. 관형어나 부사어가 상쾌하게 오려진 문장은 조촐하고 산뜻하다.   7) 시로 삶의 각성이나 잠언적인 의도를 노출시키지 말것. 시는 철학이 아니라 미학이다.   [시안] 2002년 봄호에 실린 글을 축약해둔다. 시를 쓰면서 자칫 지나치기 쉬운 일들을 찬찬하게 지적해주었다. 두고 읽을 만 하다.   다음은
814    난해시의 원조 - 산해경 댓글:  조회:4460  추천:0  2016-01-01
  을 제대로 알아보기ㅡ... ...그 비밀 한 조각이라도 파악할 수 있는가? 묻고 싶다...     『산해경』은 난해시의 원조   이 『산해경』에는 동물과 식물이 얽히고 설킨 형태는 신화神話로만 취급할 것이 아니며, 그 지역의 특징적인 본질을 숨겨서 비유한 은유법‧암유법이 가장 많이 쓰였으며, 가장 축약되고 매우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고, 온갖 상상력으로 꾸며져 있어 특별한 언어로 창조하면서까지 서정과 창의를 함께 끌어오는 예술로서 문학의 진수인 시詩/Poetry의 특성을 가장 많이 담고 있기도 하다. 더구나 압축과 비약이나 이항대립적 세계의 인식 속에서 불가해스러운 현대시학의 특성으로 들고 나온 “이종교배적 상상력의 서정”이라든지, 전혀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 새로운 창의적인 것으로 재탄생되는 것으로서 프로 시인과 아마추어 시인으로 구분하는 중요 기준의 절묘한 기법이라 평가되는, “사물의 존재의 현실적인, 합리적인 관계를 박탈해 버리고, 새로운 창조적인 관계를 맺어주는 것을 데뻬이즈망Dépaysement이라고 한다.”는 초현실주의Surréalism 시의 미학이라는 기법도 이미 『산해경』 자체에 녹아 있다는 사실이다. 즉 『산해경』은 현실적 사물들을 전혀 낮선 사물이나 장소에 조합시킴으로써 그 용도‧기능‧의미를 통하여 초현실적인 환상을 창조하여 세상을 낯설게 새롭게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을 세계적 사조思潮에서 보면, 1917년 이후에나 등장하는 쉬르레알리스트Surréalist들의, 마치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의 그림처럼, 어쩜 진정한 난해시難解詩를 바로 이 『산해경』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한문의 해독 능력을 뛰어넘어 역사와 지리와 민속적 개념은 물론 상상력이 풍부한 시적 감각이 없으면 해석이 불가능한 것이 바로 『산해경』이다. 그래서 나는 『산해경』을 가장 오래된 한편의 ‘난해시Difficult Poem’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문학의 어떤 장르를 다루는 사람일지라도 『산해경』을 제대로 읽거나, 개념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문인文人, 특히 진정 시인Poet의 품격을 지녔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의 본질을 말하건대, “시는 교묘한 말로 언어를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천지신명이 하늘 문자로 이미 사물의 만상을 시를 써 놓았으니, 시인은 그 천문을 인간 문자로 해독해 내는 시작 행위를 해야 한다.”고 최근 ‘미학의 시’가 주장됨에 앞서 이미 『산해경』의 이름에서부터 자연 속의 많은 사물의 특성에 관해 유기적으로 문학적 형상화를 잘 소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더구나 신화와 시가 본질적으로 그 고유한 특성 ― 상징·은유 및 인간과 사물 내지 자연과의 공감적 태도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산해경』의 저자는 시인의 소양을 갖추었으며, 문장은 특히 이미지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고, 시언어의 특징 요소로서 운률의 구조는 4자·6자를 기본으로 한 시적 변용變容/Transfiguration이 모색된 기법에 더하여 거의 동일한 문형文型/패턴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는 점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산해경』은 신화로 빙자되는 난해시인 것이다. 더구나 언어기호의 의미는 무엇보다 하나의 시니피앙[signifiant/name/言表]에 그 하나의 시니피에[signifié/sense/言志]를 넘어, 또 다른 시니피에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으며, 이러한 다양성은 특히 고사故事의 비유에서 많으며, 시의 특성의 하나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시어에도 같은 듯하지만, 다른 차별성의 특성,즉 헥시어티haecceity가 분명 존재하고 있으므로, 조어성造語性/새로 말을 만들어내는 성질이 매우 강하며,시적 언어에는 언제나 2개 이상의 의미言志로 읽힌다. 즉 『산해경』은 창조된 수많은 시어로써 나타낸 휫손리더십의 중요한 소재이다. 이 『산해경』을 읽어보면 분명 그러한 의미를 찾을 수가 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웬만한 사람들은 알아보기 어렵게 『산해경』을 썼을까. 그것은 그 지방과 그 제후들의 특성 습성 관습 개성과 핵심 활동 내용을 파악하여 정치 리더십으로 발휘하기 위한 비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밀을 명확하게 제대로 알아내면 정치는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정치는 백성을 마구 부려먹기도 하지만, 정치의 책임에는 어떤 경우에도 임금,즉 국가지도자에게 있기 때문에, 물 흐르듯이 그 백성의 고민을 풀어주고, 행복하게 해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산해경』을 조선의 뿌리와 역사관에 얼룩진 자신감과 자존감을 말끔히 치료하는 시치료Poetherapy의 도구로서 가장 원척적인 텍스트교과서가 될 것으로 믿는다. 전한前漢/西漢의 시중 벼슬이었던 류수劉秀/劉歆가 『산해경』을 통달하고 나서는 이내 민심을 얻어 후한後漢/東漢의 건국자로서 혁명을 일으켜 광무제光武帝/25~57가 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산과 강과 바다에 사는 존재의 특성을 진단하는 능력을! 이제 신선하고 신바람 나는 정치를 하고, 미래의 큰 꿈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산해경』의 비밀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로마 신화』가 줄거리를 만든 가십Gossip이라면, 『산해경』은 시놉시스Synopsis가 없는 신화가 될지라도 그 내면에는 고급의 역사적 사건과 정치 리더십 문화가 은밀하게 녹아 있으므로, 5000년의 비밀이 숨어있는 이 『산해경』의 숨겨진 속뜻을 새롭게 조명하지 않을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이 『산해경』의 지리적 중심에 조선이 있고, 그 문화적 다양성을 공유하기 위하여 접근한 최초의 언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요즘 유명한 배우 최민식이 열연한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2014.7.30. 개봉)이 흥행기록을 깨며 최고 인기를 얻는 것도 충무공 리순신의 리더십의 뿌리 『난중일기』가 전해오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의 리더십 부재를 질타하는 성격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전쟁을 이겨낸 지휘관의 솔직한 고민이 담겨있는 한문 일기를 한글로 번역하여 그 진실의 내막을 알 수 있었기에 크게 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산해경』의 번역과 해석도 역사 창조를 위한 휫손리더십으로 다시 태어날 때에 그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역사 창조라는 말은 역사를 통하여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고, 이를 교훈삼아 미래 발전적 도전을 시도한다는 뜻이다. 『산해경』 속에는 수수께끼 같은 숱한 비밀이 담겨져 있다.그 비밀이 벗겨지는 순간이며, 이 비밀을 알면, 그제야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는 도리어 광활한 고대 조선의 강역을 제외시키고, 웅대한 역사관을 왜곡‧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삭제해야 한다’는 어이없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에도 영국에도 일본에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산해경』이 조선 뿌리와 문화의 터전이고, 유럽과 아프리카까지도 조선의 강역에 넣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여기에 등장하는 토산물이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 동국여지승람』과 함께 열대 지방에서 생산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며, 『환단고기』와 『조선왕조실록』 등의 여러 문헌에 실린 일식 현상에서 아프리카를 통과하는 일식대를 조선 사람들이 보았기 때문이며, 천체관측에서는 극지방에서나 일어나는 오로라Aurora/극광와 백야 및 흑야 현상이 조선 강역에서 숱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료들을 어떤 논문의 논리성을 높이기 위하여 관련 사료의 취사선택 과정에서 스스로 의도적으로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진심으로 반성할 일이다.      
813    난해시와 목장의 목동 댓글:  조회:4136  추천:0  2016-01-01
  난해시의 불가사의와 자의적(恣意的)태도                                                                  ///김상현   1. 글에 들어가며      일상의 기쁨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나는 시인들로부터 배달되어 온 시집을 읽는 재미이다. 시집을 읽다보면 수 백리, 수 천리 밖에서 시집을 보내 준 시인의 삶은 물론 따뜻한 숨결까지도 느낄 수가 있어서 좋다. 그것은 소설을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르다. 소설은 글을 쓴 작가 보다는 등장인물과 줄거리가 떠오르지만 시집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예리한 지각과 삶의 열정이 담겨져 있어서 마치 인격체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것이 독자가 시인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근자에 정독을 거듭해도 시집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조차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는 난해한 시들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암호화된 언어의 퍼즐과도 같아서 어렵게 한 편의 시를 이해하고 나면(물론 나의 자의적인 이해는 작가의 의도와는 거리가 멀 수도 있겠지만) 다음 페이지에서 다시 지독하게 어려운 퍼즐이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라서 시집이라기보다는 암호를 해독해야하는 무슨 게임과도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시인의 삶이 독야청청하는 것은 보기가 좋은데 은유와 비유와 상징으로만 표기된 난해한 시로 인해 독자가 없이 고답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모름지기 좋은 시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다는 말에서 시인과 독자 간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엿볼 수 있다. "존재는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규정하는 것"이라는 하이데거의 실존의식에서와 같이 시인의 존재를 독자가 인식할 때 비로소 시인은 시인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영향을 받은 김춘수의 '꽃'이 시인과 독자와의 관계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바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는 시의 내용처럼 독자가 시를 이해했을 때만 시는 비로소 시가 되는 것이라는 실존의식을 갖게 된다. 물론 은유와 상징과 같은 표현상의 기법이 다양한 현대시를 일반대중이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시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시를 써온 시인이 이해할 수 없다면 우선 시의 난해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 난해성에 대한 이해와 몰이해     시의 난해성에 대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제1차 세계대전 후 기성의 전통과 질서를 파괴한 다다이즘1)과 데카탕2)의 예술사조와 함께 초현실주의가 등장한 이래 시의 난해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의 기계문명의 발달과 함께 과학기술의 만능화 의식과 경제발전 제일주의의 의식이 만연되면서 인간이 노동에너지로 계량화 되어지는 현실에서 새롭게 등장한 해체주의의 영향은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쳐 시의 난해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등장한 미래파의 특징은 매우 개인적인 일상을 비트는 것 외에 뚜렷한 의식을 찾을 수가 없다. 원래 미래파라는 용어는 이탈리아 시인이며 잡지의 편집인인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가 프랑스의 신문 〈피가로〉에 "박물관과 도서관을 파괴할 것이며 도덕주의, 여성다움, 모든 공리주의적 비겁함에 대항해서 싸울 것"을 선언한 기고에서부터 출발되었는데 1909년에 사용한 '미래파'라는 용어는 미래 예술에 대한 새로운 발상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었다. 최근 한국에 나타난 소위 미래파는 앞서 언급한 이탈리아의 미래파와 어떤 공통점이나 상이점을 분명히 지니고 있을 것이다. 다만 획일적인 전자정보사회, 경제지상주의사회에 대한 반항으로 등장하지 않았는가 싶다. 이들은 남과 다르게 쓰면 쾌감을 느낀다며 시인이 얻는 만족도가 중요하지 독자나 평론가는 그 다음이라는 말을 한다. 관심을 끌기 위한 극히 의도적인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솔직히 독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는 시인이 자기만족을 위한 배설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엽기적, 자극적이고, 환상적이고, 소통되지 않는 의식구조와 낯선 언어들이 난무하는 이들 시는 내가 보기에 시시껄렁한 개인사적인 넋두리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현대인의 삶이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들 시는 난해하기는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가 고민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문제는 정말 이해되지 않는, 소통이 부재한 다른 쪽의 난해시이다. 현자의 입장에서 계몽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아 시집이라기보다는 지혜서 같기도 하고 절대자를 대변하여 계시를 하는 듯한 시편들을 보면 묵시록 같기도 한, 전체적으로 난해한 시집이 던지는 의미는 내게는 생게망게하여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시는 삶에 대한 진지한 인식인 동시에 언어로 불러지는 노래인데 삶의 현장과는 동떨어진 시편들이 독자에게 따뜻하게 다가설 수 있겠는가. 언어는 예언적, 주사적, 치유적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언어를 다루는 시인의 행위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우주의 생명의 숨결이 스며있는 언어, 그것에 대한 통찰이 없이 단순한 언표화의 도구로서만 언어를 대해서는 안 된다.3) 는 말은 언어에 대한 시인의 막중한 책임을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시에는 시인의 생생한 체험이 담겨져 있어야 함은 시인의 진정성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이다. 시 이전에 시인은 기능적, 사회적 책무에 대해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3. 무엇이 문제인가     이 시대 민중이 시와 멀어지는 이유는 소통부재에 있다. 시니피앙이 되었든, 시니피에가 되었든 간에 시가 삶의 중심에서 멀어져 있다면 의미가 없다는 말과 같다. 이런 무의미는 일종의 분열증적 사고를 낳는다. 해체시가 곧 난해시라고 볼 수는 없다. 자칫 시의 경건성을 저해할 수는 있지만 해체시에는 전통서정시가 간과한 해학과 현실에 대한 저항이 들어있다. 난해시의 특징은 독자가 전혀 이해할 수 없도록 이중, 삼중의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작가만의 심오한 뜻은 헤아리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유의 배경에는 시인의 철학적, 심리학적, 종교적, 인류학적 사고가 담겨져 있는데 체계화되지 않은 난해시를 과연 대중이 읽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감동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의구심이 든다. 보다 이해가 되지 않은 점은 평자들이 왜 열광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솔직하게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나에게는 시를 해부하는 기술은 없다. 이 같은 시를 해부하는 것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위험성이 있을 뿐 아니라 자칫 얄팍한 지식을 뭉텅 거리로 포장해서 늘어놓는 것처럼 보여 독자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기에 조심스럽기도 하다. 나는 이 난해한 시집들에 대해 몇 가지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시인과 독자와의 소통부재이다. 실로 난해함이란 독자가 지각할 수 없음을 말한다. 시가 인식과 표현이라고 볼 때 시인 개인이 지고한 깨달음에 도달했다 하더라고 독자가 지각할 수 없는 표현이라면 이는 보편적 진리를 벗어나 개인적인 상징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독자는 시인에게 잠언이나 묵시를 요구하지 않는다. 삶의 이해와 사랑의 발견, 사람과 사람끼리의 어우러짐과 따뜻함을 요구한다. 시는 예수의 산상보훈처럼 산위에서 외치는 소리가 아니다. 그것이 비록 진리라 할지라도 민중의 삶을 떠난 외침은 한낱 소리에 불과하며 시작의 본류에서의 일탈된 행위이다. 시인은 삶이 똥밭이면 민중과 함께 똥밭을 구르면서 반 발짝씩 앞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시를 배태하는 것은 민중에 대한 지적 오만 내지 경멸이 그 밑바탕에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난해시는 극소수의 선택된 자들에 의해서만 소유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반역사적이며 반민중적 엘리트주의가 깔려있는 이점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4) 결국 난해한 시는 대중적 바탕을 잃게 되며 종래에는 시의 사막화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둘째로 시인과 시인과의 거리두기이다. 장차 살아남는 시는 이것일 뿐이라는 오만은 경계해야 할 독소이다. 갑작스런 천지개벽은 오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느리게 변한다. 생물의 유전자를 포함해서 진화의 속도는 아주 느리다. 시도 시대적 환경에 따라 아주 완만히 변화한다. 인류역사에 시는 상고시대로부터 존재했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난해한 시를 쓰면서 시대가 천재를 요구하는 시대에 천재가 없다고 하는 말 속에는 천재를 몰라본다는 오만이 숨겨져 있다. 이 같은 독선의 뿌리는 모든 시인들은 엇비슷하다는 생각에서 기인한 듯하다. 하지만 시인이 사유하는 세계는 다양하며 그 다양성은 모두가 길이다. 하이데거가 말한 근원적세계에서 타인을 본다면 모두에게서 낯섦과 경이로움을 갖게 될 것이다.5) 한 권의 시집에는 한 권 분량의 시인의 삶이 녹아져 있다. 고뇌와 희락 그리고 성찰이 종이에서 발원한 강물이 되어 읽은 이의 심금을 적시며 공명(共鳴)하게 한다. 시인이 시집을 펴내는 행위는 배설이 아니라 시인의 가슴을 열어보여 주는 행위예술이다. 시인은 가슴 속에 있는 밀어들을 그냥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며 가난을 털어 자비(自費)로 시집을 낸다. 이렇게 출간 된 시집을 두고 이 속에서 나름의 가치를 지닌 시가 없다는 식의 평가절하는 시인에 대한 모독이다.     세 번째로 시적감수성을 간과한 가르침이다. 시는 정서적 함축성과 직관력이 아주 중요하므로 지적학습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시 교육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지적한바 있다. 즉 한 편의 시를 놓고서 학교교육은 살아 숨 쉬는 시의 생명력을 느끼게 하기보다 은유법과 상징법을 찾아 낱낱이 해부해 버리고 만다. 시를 대할 때에는 시인이 언어 속에 숨겨 둔 비밀의 열쇠를 찾아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시는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고 맥박이 뛰고 따듯한 피가 흐르는 언어로 된 생명체다.6) 타고난 감수성과 감각적 지각을 갖춘 좋은 시인으로서 자질을 갖춘 사람에게 환상과 시적상상력을 강요하고 언어의 뒤틀기 기술을 가르침으로서 오히려 생명의 싹을 잘라버리는 과오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시인은 언어를 지키고 키우는 목장의 목동과 같다. 목동이 지켜야 할 가축을 잡아 이 부위는 등심, 저 부위는 목살, 이 편은 등골이라고 해부해버리는 순간 가축은 생명이 없는 한낱 고깃덩이가 되고 만다. 이것은 생명을 지키는 목동이 아니라 생명을 죽이는 도축업자나 할 일이다. 시를 해부하는 기술만을 가르침으로써 시도 죽고 시인도 죽게 하는 죽음의 학습은 깊은 반성을 요구 한다.     4. 글을 맺으며     문제는 시에 있지 않다. 사람이다. 인식과 표현 모두 시인이 몫이기 때문에 시를 배태한 시인의 책임이 크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난해한 시를 의식적으로 내보이는 행위는 폭력이다. 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는 것인가? 바로 보편적 진리에 대한 경건함이 사라졌다는데 근원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신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인간에 대한 신뢰감이 사라지자 보편적 진리를 야유하고 조롱하는 부류들이 팽배하게 되었다. 이 사회현상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모든 진리를 배척하고 삼라만상을 통틀어 오직 '나'의 주장만이 정당하다는 왜곡된 인간주의, 나는 이것을 '극인간주의(極人間主義)hype humanism'로 이해하고 싶다. 이들 부류들은 시인으로서 겸허함이나 자중함이 없이 '내 자신이 하는 말이 최고다'하는 극단적 개인주의로 '내 시를 모르면 무식하다'는 식의 지적테러를 도처에서 자행하고 있다. 환상과 환청, 그것은 종교적 신비체험이나 정신분열 증세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으로 보편적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시가 바로 이것이다'라는 이 떨림은 키에르케고르는 신과의 조우로 보았으며, 하이데거는 죽음에 대한 불안을 넘는 순간으로 생각했다. 바라건대 난해시의 열쇠가 될 수 있는 '작가의 순간(?)'을 제시해 주는 것은 작가를 아끼는 시인이나 독자를 위해 당연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사상가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의미는 사용이다" 즉 하나의 사물의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사용 속에 있다고 강조했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는 삶과 괴리되어 존재할 수 없으며 특히 시어로서 사용될 때에는 시인의 치열한 삶의 경험적 기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야 한다. 하이데거는 언어의 요소를 네 가지로 구분했는데 언어의 대상(말걸이)과 밖으로 말해진 언어, 전달코자 하는 내용 그리고 화자의 의사표현을 들고 있다8) 시에 있어서 이는 곧 언어의 대상인 독자와 표현수단인 문자와 시인의 인식과 표현으로써 시작에 있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할 문제이다. 아무튼 난해시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모호성과 혼돈 속에 방치된 언어의 실타래를 명징하게 풀어 보이면서 존재의 심연을 진지하게 드러내는 시인이 다시 이 땅의 중심에 서 있게 되는 것을 목도하는 일이다.     1) 사회적, 예술적 전통을 부정하고 반이성, 반도덕, 반예술을 표방한 예술운동.   2) 기존사회의 도덕을 무시하고 예술의 목적을 일시적인 육체적 향락추구에 둔 19세기 낭만주의 쇠퇴에 따른 문학사조. 3) 이진엽 「존재의 놀라움」북랜드 2006. 16쪽   4)신경림 "나는 왜 시를 쓰는가"   5) 박찬국, 「들길의 사상가 하이테커」동녁 2004. 95쪽   6) 나탈리 골드버그 저, 권진옥 역,「뻣속까지 내려가 써라」한문화 2006, 64쪽   7)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살림 2007. 61쪽   8)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살림 2007. 200쪽    
812    난해시와 오세영 댓글:  조회:4356  추천:0  2016-01-01
◈ 소금의 말   난해 시에 대한 생각     ■__오세영(시인 ․ 서울대 명예교수)   ■ 오세영 시인                        요즘 우리 문단에는 난해시가 범람하고 있다. 난해시가 아니면 현대시가 아니라는 생각도 만연한 듯하다. 그래서인지 일부러 시를 난해하게 쓰는 것이 유행인 것 같고 심지어 어떤 시 창작교실에서는 시는 난해하게 써야 한다고 부추긴다고 한다. 시 창작지도서에서 당당히 아예 시란 아무 것이나 쓰면 모두 시가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보았다. 과연 그런 것일까.        현대에 들어 시가 난해해진 것은 다만 우리나라만의 추세는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범세계적인 트렌드로 문명사적 의미를 지닌 성격이기도 하다. 따라서 난해시를 무작정 배척하거나 폄하해서 될 일은 아니다. 그 장점은 살리되 단점은 배격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나는 왜 현대에 들어 난해시가 이처럼 기승을 부리게 되었을까를 문명사적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보기로 한다.        다른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요한 것 가운데는 사회사(역사)의 문제가 가로 놓여 있다. 근대(혹은 현대)의 사회구조라는 특성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문학의 구조란 그것을 탄생시킨 사회구조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니까 한 마디로 시(혹은 예술 전반)의 난해성은 근대라는 사회구조의 어떤 특성이 문학적(예술적)으로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근대 사회구조의 어떤 측면이 이처럼 시의 난해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일까?        역사가 대개 세 시기 즉 고대(古代), 중세(中世), 근대(近代)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학계의 통설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토대(경제) —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짓는다는 사회 역사철학의 관점에서 고대는 경제적으로 노예경제, 정치적으로는 신정정치, 중세는 경제적으로 장원경제, 정치적으로는 봉건주의, 그리고 근대는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시대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오늘의 문화예술이란 본질적으로 현대라는 역사성(歷史性) 즉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라는 사회구조적 특성 위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특성은 시의 난해성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그것은 근본적으로 고대나 중세가 이 세계를 수직적으로 인식하고자 하는데 반하여 — 경제적 자본주의와 정치적 민주주의에 토대한 — 근대는 그것을 수평적으로 인식하려한다는 명제로 귀납될 수 있다. 이는 달리 세계를 시간의 축으로 보느냐 혹은 공간의 축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세계에 대한 수직적 인식이란 이 세계를 선조적, 시간적(linear form)으로 파악한다는 뜻이며 수평적 인식이란 병렬적, 공간적(spatial form)으로 파악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이 세계를 수직적으로 — 선조적이나 시간적으로 — 인식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이 세계란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예정한 길을 따라, 달리 말해 신의 섭리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우리는 그것을 섭리(Providence — 기독교적 세계관의 경우) 혹은 정도(定道 — 동양적 세계관의 경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 세계를 이성의 분석적,합리적, 비판적 사고가 아니라 어떤 운명적인 힘이나 절대적 권위 혹은 선악과 같은 가치관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시간의 운행이 지닌 필연성은 삶의 중요한 규준이 되며 그에 따라 군주(君主=왕)를 정점으로 한 수직적 신분계급이 사회 구성의 기본 원리가 되는 봉건 왕정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예컨대 똑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어떤 자는 왕이나 귀족이 되고 또 어떤 자는 평민이 되어 전가 후자를 지배하는 사회체제는 과학적, 이성적 사유로 설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이 시기는 이를 권위나 어떤 신성성(神聖性Divinity)이나 선악과 같은 가치관으로 합리화 하고자 했다. 가령 ‘내가 왕이 된 것은 신으로부터 그 권위를 위임 받았’기 때문이라거나 심지어는 ‘내 자신이 바로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 — 정치적으로는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 — 계몽주의 세계관과 그에 토대한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하자 이같은 세계관은 일시에 깨져버렸다. 그리하여 이 새로운 시대는 세계를 이제 수직으로서가 아니라, 수평으로 바라보기 시작하게 된다. 이성적, 합리적, 비판적 사유의 관점에서 보니 세계란 그것을 구성하는 각개 기능적인 요소들의 합리적 구조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계는 더 이상 어떤 절대적 힘이나 섭리가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근대는 섭리나 정도 혹은 선악과 같은 가치관이 추방되고 그 대신 이성적 합리주의와 효율성을 전제로 한 과학적 기능주의가 지배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사회구조 역시 왕, 귀족, 평민 농노 등으로 조직된 수직적 신분사회 대신 모든 구성인들의 지위가 동등한 수평적 민주사회로 전도되었다. 예컨대 오늘의 시대가 추구하는 기본적 가치관은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생각 즉 인권이다. 이제 그 누구도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치지도자를 왕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든 평등한 인민이 자유롭게 투표하여 자신의 대리자를 선택할 뿐이다. 그런데 이처럼 세계를 어떤 절대적인 힘의 구현으로 보지 않고 그것을 구성하는 제 요소들의 구조적 결합체로 보는 관점은 간단히 공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근대를 수평적,병렬적, 공간적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라고 말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역사주의가 퇴조하고 그 대신 구조주의가 등장하였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그 공간성까지도 파괴하는 해체주의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수직적, 시간적으로 보지 않고 수평적, 공간적으로 바라보는 세계관에서는 왜 시(더 아나가 모든 예술)가 난해해질 수 밖에 없는가. 그것은 문학의 매재라 할 언어문제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언어 역시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질서 위에서 구현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가령 ‘나는 오늘 학교에 갔습니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하자. 이 문장은 ‘나’, ‘오늘’, ‘학교에’, ‘갔습니다’라는 네게의 어귀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네 어귀들을 연결시키는 원리즉 어순(語順 order of words)이라고도 하는 통사론적(統辭論的 syntax) 질서는 간단히 말해 시간적이다. 왜냐하면 화자가 ‘학교’를 발음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할 때 ‘나는’, ‘오늘’은 이미 발음이 끝나 사라져 버렸음으로 과거에 해당하고(더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은 대과거 ‘오늘’은 소과거), ‘갔습니다’는 아직 발음되지 않은 상태 즉 앞으로 발음해야 될 어휘임으로 미래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적 — 그러니까 선조적 질서를 따른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이의 등가적(等價的) 문장을 성립시킴에 있어 ‘나’라는 위치에 올 수 있는 단어는 꼭 ‘나’ 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대신에 ‘너’, ‘당신’, ‘우리’, ‘그’, ‘학생’, ‘선생님’……등과 같은 단어도 올 수 있는 까닭이다. 우리는 이를 등가성(equivalence)을 갖춘 어휘들이라고 한다. 예컨대 우리는 이 문장에서 ‘너’, ‘당신’, ‘우리’, ‘그’, ‘학생’, ‘선생님’ 과 같은 단어는 사용할 수 있지만 엉뚱하게도 ‘돌멩이’, ‘유리창’, ‘칼‘과 같은 따위의 단어를 사용할 수는 없다. 등가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론 ‘오늘’이나 ‘학교’ ‘갔습니다.’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늘’ 대신에 ‘어제’ , ‘내일’, ‘아침’, ‘저녁’……등이, ‘학교’대신에 ‘공원’, ‘극장’, ‘역전’, ‘백화점’……등이, ‘갔습니다’ 대신에 ‘왔습니다.’ ‘찾았습니다.’…… 따위가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이 문장에 동원할 수 있는 여러 단어들 가운데서 그 중 ‘나’, ‘오늘’, ‘학교에’, ‘갔습니다’의 네 단어만을 선택해 문장을 만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많은 단어들 가운데서 이렇듯 유독 한 특별한 단어들만을 선택해 문장을 만드는 원리는 공간적이다. ‘학교’, ‘공원’, ‘극장’, ‘역전’, ‘백화점’…… 등은 일종의 수평적 배열인데 이 중에서 화자가 ‘학교’를 선택할 경우 — 내가 만일 ‘학교’에 있다면 ‘공원’이나 ‘극장’엔 있을 수 없으므로 — ‘공원’, ‘극장’, ‘역전’, ‘백화점’…… 등은 폐기시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공간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한 존재는 동시에 여러 공간을 점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 살펴본 언어의 두 가지 질서는 근대에 들어 그 평형이 깨져버렸다. 근대 의식에 민감한, 혹은 근대 의식이라는 강박관념에 편승코자하는 대부분의 시인들이 기존의 통사론적 논리 즉 선조적, 시간적 원리를 따르지 않고 앞 다투어 수평적, 공간적인 질서의 언어를 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는 문학의 구조는 필연적으로 그것을 배태한 사회구조를 반영한다는 관점에서 분명 이 세계를 수평적 공간적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근대의 세계관이 문학의 언어에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전통적으로 시가 산문과 달리 공간적 원리의 언어질서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시대가 수직적, 선조적인 세계 인식에서 수평적, 공간적 세계인식으로 전도되니까 시 역시 이 같은 시대의식에 편승하여 기왕에 지녔던 일반적 특성까지도 거부한 채 하나의 극단을 치닫고 있다는 바로 그 점이다. 즉 더 적극적, 더 궁극적으로 아예 시간적, 선조적 질서까지도 폐기시켜 언어라고도 볼 수 없는 어떤 단말마적 기호 차원으로까지 내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소위 현대를 표방한 시들은 통사론적 질서나 등가성 자체를 무시한 단어들의 무작위적 배열을 일삼아 그같은 언어의 아노미적 현상을 서슴없이 시라 부르게까지 되었다.          예컨대 하나의 문장은 그 문장을 구성하는 각개 어휘들이 지닌 통사론적 상호 인접성(contiguity)에 의해서 성립된다. 앞에서 예를 든 “나는 오늘 학교에 갔습니다”라는 진술의 경우 ‘나’, ‘오늘’, ‘학교에’, ‘갔습니다’라는 네게의 어귀는 그들 상호간에 어떤 인접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상호 연결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똑 같은 등가성과 인접성을 지닌 다른 어휘들과 상호 교환이 된다. 그러나 “나는 사슴 강물 갔습니다”라는 진술이 있다 하자. 이는 경우는 다르다. ‘사슴’과 ‘강물’이라는 단어는 ‘나’나 ‘갔습니다’라는 단어와 아무런 인접성을 지니지 못해 상호연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그래서 문장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시인이 시를 쓰면서 그 문장의 논리를 “나는 오늘 학교에 갔습니다”와 같은 형식을 취하지 않고 “나는 사슴 강물 갔습니다”와 같은 형식을 취한다면 독자들은 아마 그 의미를 전혀 해독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는 언어의 공간적 질서 지향이 그 자신을 지탱해주는 토대 자체를 깨버리고 이제 막다른 곳까지 갔다는 것을 뜻한다. 오늘의 시가 필연적으로 난해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산문: “나는 오늘 학교에 갔습니다”.   전통적인 시: “사슴이 오늘 과수원에 갔습니다” 혹은 “사슴 한 마리가 학교에 갔습니다.” 이 경우 ‘사슴’과 ‘과수원’, ‘나’와‘학교’는 각각 등가성을 가진 단어들로 ‘나’를 ‘사슴’으로, ‘학교’ 를 ‘과수원’으로 환치시킨 것이다. 즉 ‘사슴’은 ‘나', '과수원’은 ‘학교’의 은유가 된다. 이는 공간적 원리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비록 단어들을 등가성을 지닌 다른 단어들 바꾸어 놓긴 했으나 아직 선조적 질서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   난해시: “사슴, 하늘, 나무, 달린다”. 우리는 이 같은 형식의 문장에서(우리의 상식적인 관점에선 문장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그 내면화된 의미를 읽어내기가 어렵다. 등가성과 인접상이 배제된 언어들의 무분별한 공간적 나열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아예 언어의 선조적 질서까지도 폐기시켜버렸다.            그렇다면 오늘의 시대의식이 이 세계를 수평적, 공간적으로 인식한다는 선입관 내지 강박관념에 쫓기어 시 조차 무작정 이를 따라 아예 언어의 통사론적 질서나 등가성을 무시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현상일까. 필자로서는 승복하기 힘든 명제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어떻든 본질적으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그 사회성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 — 일찍이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규정한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지적한 바와 같이 — 언어라 할 때 그 언어의 기본적 속성에는 분명 그것이 지닌 시간적, 혹은 선조적인 논리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사회성이라는 것은 언어를 지배하는 두 가지 원리 즉 시간적, 선조적 원리와 공간적, 병렬적 원리 중에서도 그 전자가 지닌 기능에 보다 많이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간적, 선조적인 질서와 공간적, 병렬적 질서가 등가성에 의해 조화를 이룬 언어에서 일방적으로 전자를 배제한 오늘의 문학은 마치 신을 배제한(혹은 타살한) 오늘의 물질 문명이 결과적으로는 인간 그 자신조차 비인간화시키게 된 결과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비록 근대적 세계관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우리가 비록 난해시를 지향한다 하더라도 거기에 깨버려서는 안 되는 금기와 지켜야 할 금도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우리들이 수직적, 시간적 질서 대신에 수평적, 공간적 질서의 세계관을 지향하게 된 것은 그 어떤 절대적 당위성 때문이 아니다. 중세라는 인간 억압사회에 대한 근대인들의 각성과 안티테제 때문이다. 우리는 그 같은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진정한 삶 혹은 건설해야 할 이상적 세계는 이 세계를 지배하는 수직적인 원리와 수평적 원리의 조화로운 질서를 구현하는 데에 있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그 어느 하나를 폐기시키는데 있는 것은 아니다. 비유컨대 그것은 신이 없는 인간의 세계나 인간이 없는 신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과 신이 공존과 조화를 이루는 바로 그러한 세계이다. 그 같은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문학의 언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더 이상 언어의 본질을 훼손한 언어, 소통 불능의 난해한 언어를 지향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811    난해시와 김수영 댓글:  조회:4962  추천:1  2016-01-01
진정한 난해시를 위하여 ─ 김수영에 관한 몇가지 단상 진이정   1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가는 소란을 ─ 부분   김수영이 일찍이 간파했듯이, 시의 대중성 따위는 진정한 시인이 걱정할 바가 아닐지도 모른다. 진정한 시인이었던 그는, 어느새 자신도 주체 못할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비록 사후의 일이지만,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해마다 번창하고 있으며, 문학에 입문하는 청년들의 손에는 으례 그의 두툼한 전집이 들려 있기 일쑤이다. 나는 지금 김수영의 성공을 질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감격하고 때로는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어느새 김수영의 시는, 독자들에게 낯익은 그 무엇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그렇다면, 이제 그의 시는 더 이상 난해하지 않단 말인가. 읽기에 편한가. 나는 오래된 그의 시집을 다시 펴본다. 금이 간 노란 꽃이 내 망막 위에 흩날린다. 어렵다. 난해하다. 그의 시를 정독할수록 내 마음의 한구석에선 시끌시끌한 혼돈이 기승을 부린다. 바로 넓어져가는 소란이다.     2 김수영은 아직도 소수의 정예화된 독자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소수들 뒤에는 시인의 명성을 쫓는 꽤 많은 수의 부화뇌동 독자들이 포진하고 있기도 하다. 바로 그 부화뇌동 독자들의 수효가 김수영의 시를 예전보다 덜 난해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3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소음이 바로 들어오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다시 비뚤어지게 ─ 부분   살아 있는 시인의 좋은 시는, 죽은 시인의 시조차 의미 있게 한다. 그것은 죽은 시인을 찾기 전의 일이기도 하다.   4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種苗商,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은 여자, 無識쟁이, 이 모든 無數한 反動이 좋다 ─ 부분   내가 발견한 김수영의 데페이즈망. 그가 말한 것처럼 ‘이 무수한 반동’은 아직도 안성 유기처럼 빛을 발하고 있다. 배열된 재료들의 성질과는 달리, 그 빛은 의외로 모던하고 난해하기조차 하다. 그의 당대에 신물나도록 볼 수 있었던 가짜 데페이즈망을, 그는 멋지게 뒤엎은 것이다.   5 나는 지금보다 시를 더 어렵게 쓰고 싶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자꾸 눈치가 뵌다. 나의 시는 아직도 ‘문학 이전’에 있는 듯싶다.   6 시집이 너무 많이 팔려서 문제이다. 전문적인 시집조차도 재판 삼판 찍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 엘리어트의 우려를 빌리자면, 혹 우리 시인들이 독자들에게 진정으로 새로운 일을 하고 있기를 포기한 것은 아닌지, 이미 대중들에게 익숙한 것, 그들에게 낯익은 것을 포장만 새롭게 해서 공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라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생전의 김수영은, 자신의 시를 제대로 해독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고 개탄했다.  지금 우리가 진정 걱정해야 할 것은, 창조적인 시를 제대로 간파할 능력이 있는 소수의 명민한 독자들이 존재하느냐, 바로 그 점일 터이다.   [출처] 진이정/ 진정한 난해시를 위하여(김수영론)|작성자 헌책  
810    난해시와 김춘수 댓글:  조회:4952  추천:0  2016-01-01
질문/// 저는 나름 상위권 학생으로 나름 언어영역을 좋아하기도 하는 학생입니다. 논리를 찾아 내는 걸 좋아하고 분석 하는걸 좋아하기 때문이죠. 그런 저를 괴롭히는 최대의 난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시입니다. 저는 독서량도 상당히 많았고 문학을 좋아하며 나름 시도 많이 읽었습니다. 웬만한 시는 얼추 해석할 줄 알며 해석까진 안 돼도 분위기라든지 화자 상황 정서 어조 태도 정도는 느낄 수 있는 수준입니다. 시의 표현 기법과 수사법 등도 익숙한 편이고요. 그런데 정말 짜증나게 만드는 것이 뭐냐면 이른바 힌트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시 있죠? 이른바 진리탐구에 관한 시들. 인생에 관한시보다 어떤면에서 더 어렵더군요.   예를 들어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여.       이 시를 보면... 화자가 나란건 알겠는데 도무지 상황 태도 정서는 알 길이 없군요-_-;;물론 제가 못찾는 건지도 모릅니다만. 선택지를 보니 뜬금없이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나오더군요. 대체 어디서 그런 분위기나 뉘앙스를 찾을 수 있는 것인가요? 존재라는 단어는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라는 부분에서만 한 번 나왔을뿐인데 이게 어떤 연관성을 가지게 되는 거죠? 저는 정말 미치겠습니다. 언어영역 항상 다른 걸 다 맞추고 시에서만 2~3개씩 틀립니다. 정말 대기권 돌파의 실력인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시는 대체 어떻게 공부하느냐고.. 그 친구가 딱 하는 말이 뭐냐면.   "시란 건 원래 젖같은 거야. 솔직히 이런 걸 똑같은 기준을 두고 해석한다는 게 미친짓이지. 사실 시 따위는 수능 같이 공정한 변별력을 가리는데 나와선 안되는 장르야. 그래도 내는 건 교수들 마음이니 어쩔 수 없고 점수는 받아야하기에 난 그냥 시는 보이는대로 닥치는 대로 다 분석해서 외워버리고 있어." 이러더군요.   저는 그말을 듣고 나름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단 저는 외우는건 질색이거든요 -_-;정말 시라는걸 해석하는 올바른 논리구조는 없는 것일까요?     답변자///     현대시가 독자들에게 난해성을 안고,  접근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시가 본질상 머리로 이해하는 글이라기보다는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글이라고 하는 점에서 본다면, 오늘의 시가  그 본질에서 멀어져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시를 어떤 수학적 공식과도 같은 등식으로 이해 하려고 한다면, 그 해답은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 난해성으로 유명한, 이상의 시나, 님이 지적하신 김춘수 시인의 꽃을 위한 서시, 또한 그러합니다. 독자의 가슴에 감동으로 와 닿으려면, 먼저 머리에서부터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시가 되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가 난해한 시로 둔갑한 것은 현대에 이르러서부터 입니다. 시는 대중적 비위를 맟추려 아부해서도 아니되고, 독자로부터, 홀로 고립되어서도 아니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춘수 시인 자신은, 자기의 난해시에 대해서 말하기를, 분석하려 들지말고 그냥 그대로 가슴으로 느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가 가슴에 와 닿기 이전에, 머리를 먼저 통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현대시가 지향해 나아가야할 방향이, 보다  더 , 독자의 가슴에 쉬운 이해와 감동의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는 시로, 변신해 가야할 것입니다. ============================================================================================     난해시란 쉽게 말하자면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시이지요. 예를 들면 이상의 '오감도'와 같은 시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너무나도 난해하고 낯설어서 신문 연재당시 독자들의 항의에 의해 연제가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시인들이 시를 이렇게 난해하게 만드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형식의 타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험정신이 강한 시인들이 기존의 모든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를 원하는 바람에서 이러한 시들이 태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또 한가지 이유는 '낯설게 하기 수법'으로서 사람들이 시의 내용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것이지요... [출처] 난해시|작성자 헌책 ...   [출처] 난해시/ 머리를 먼저 통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작성자 헌책    
809    난해시와 조영남가수 댓글:  조회:4447  추천:0  2015-12-31
조영남의 이상한(?) 이상 詩독법          전천후 엔터테이너 조영남(가수, 화가)이 시 해석에 도전했다. 그것도 ‘해독불가’로 낙인 찍힌 시인 이상(李箱)이다. 그의 해독은 무슨 이론을 적용해 분석해낸 전문가들의 평과 다르다.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리고 그 특유의 재미가 있다. 가령 이상의 난해시 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이상한 가역반응’의 경우 남녀 사이의 관계로 이를 해석한다. 폐결핵에 걸린 시인의 남성이 만들어낸 센티멘탈한 시라는 얘기다. 이상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오감도’를 외국 시인과 비교한 대목은 압권이다. 랭보의 ‘나쁜 혈통’, 보들레르의 ‘축복’, 엘리엇의 ‘죽은 자의 매장’ 등을 하나하나 비교하며 각 시인의 특이점, 장단점을 분석하면서 이상을 노벨문학상감으로 추켜세운다. 이상의 시 100여편을 자유분방하게 상식과 지식, 미학, 감성, 직관을 총동원해 분석한 이 책은 이상이란 시인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일반인에게 시를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조영남/한길사 [출처] 조영남/ 조영남의 이상한(?) 이상 詩독법 |작성자 헌책  
808    난해성과 현대성 댓글:  조회:4607  추천:0  2015-12-31
1, 현대성[現代性] [명사] 현대에 알맞은 특성.  modernity  현대-성 現代性  명사 발음〔현ː대썽〕   예문) 그 화가는 서구 현대 회화의 방법을 빌리면서도 서구의 정서에 빠지지 않고 우리 것을 견지해 한국 회화에 현대성을 구현했다고 평가받았다.   관련서적)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홍신문화사) / 위르겐 하버마스(저자) 이 책은 하버마스 자신이 고백하고 있듯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응답으로 생겨났기 때문에 하버마스 철학의 근본성격을 다른 어느 책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은 하버마스가 옹호하고자 하는 현대의 세가지 성격들, 즉 비판성,합리성, 규범성을 내면적으로 상호 결합시키는 유토피아 정신을 조심스럽게 탐측하고 있다.   2.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   1960년에 일어난 문화운동이면서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과 관련되는 한 시대의 이념.  이 운동은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학생운동 ·여성운동 ·흑인민권운동 ·제3세계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전위예술, 그리고 해체(Deconstruction) 혹은 후기구조주의 사상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 점검과 반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구에서 근대 혹은 모던(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니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거친 후 포스트모던 시대는 J.데리다, M.푸코, J.라캉, J.리오타르에 이르러 시작된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합리주의를 되돌아보며 하나의 논리가 서기 위해 어떻게 반대논리를 억압해왔는지 드러낸다. 데리다는 어떻게 말하기가 글쓰기를 억압했고, 이성이 감성을,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는지 이분법을 해체시켜 보여주었다. 푸코는 지식이 권력에 저항해왔다는 계몽주의 이후 발전논리의 허상을 보여주고 지식과 권력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였다. 둘다 인간에 내재된 본능으로 권력은 위에서의 억압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생겨나는 생산이어서 이성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캉은 데카르트의 합리적 절대자아에 반기를 들고 프로이트를 귀환시켜 주체를 해체한다. 주체는 상상계와 상징계로 되어 있고 그 차이 때문에 이성에는 환상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리오타르 역시 숭엄(the Sublime)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합리주의의 도그마를 해체한다. 따라서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도그마에 대한 반기였다. 문화예술의 경우는 시기구분이 좀더 세분화된다. 19세기 사실주의(Realism)에 대한 반발이 20세기 전반 모더니즘(Modernism)이었고 다시 이에 대한 반발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사실주의는 대상을 그대로 옮길 수 있다는 재현(representation)에 대한 믿음으로 미술에서는 원근법을 중시하고 어떻게 하면 실물처럼 그릴까 고심했다. 문학에서는 저자가 객관적인 실재를 그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줄거리가 인물을 조정하여 원근법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었다. 이런 사실주의는 20세기에 들어서 베르그송의 시간의 철학 ·실존주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객관진리, 단 하나의 재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면서 도전받는다. 대상은 보는 자의 주관에 따라 다르다는 전제도 미술에서는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되어 입체파 등 구상보다 추상으로 옮아가고 문학에서는 저자의 서술 대신 인물의 서술인 독백(‘의식의 흐름’이라고도 함)형식이 나온다. 모더니즘은 혁신이었으나 역설적으로 보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재현에 대한 회의로 개성 대신에 신화와 전통 등 보편성을 중시했고 피카소, 프루스트, 포크너, 조이스 등 거장을 낳았으나 난해하고 추상적인 기법으로 대중과 유리되었다. 개인의 음성을 되찾고 대중과 친근하면서 모더니즘의 거장을 거부하는 다양성의 실험이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따라서 철학에서는 모던과 포스트모던 상황이 반발의 측면이 강하지만 예술에서는 연속의 측면도 함께 지닌다. 비록 이성과 보편성에 의지했지만 이미 재현에 대한 회의가 모더니즘(현대성)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각 영역에서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술에서는 추상 대신에 대중성을 띄고 다시 구상이 등장하였다. 그런데 팝아트처럼 같은 대상을 여러 번 찍어 ‘다르게 반복하기’를 선보이는 경우, 모나리자 등 친숙하고 고유한 원본을 패러디하여 ‘다양한 재현들’을 선보이는 경우, 예술가의 권한을 축소한 미니멀 아트(미니아튀르) 등, 단 하나의 절대재현을 거부한다. 문학에서는 인물의 독백이 사라지고 다시 저자가 등장하는데 더이상 19세기 사실주의와 같은 절대재현을 못 한다. 작가가 자신의 서술을 되돌아보고 의심하는 자의식적 서술(메타 픽션), 현실과 허구의 경계와해, 인물과 독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열린 소설, 보도가 그대로 허구가 되는 뉴저널리즘, 작가의 권한을 최소화한 미니멀리즘 기법 등이 쓰인다. 영화와 연극 역시 사실주의의 패러디로서 환상적 기법, 자의식적 기법을 사용한다. 무용에서는 토슈즈를 신었던 19세기 발레에서 맨발의 자유로움과 기법을 중시한 모더니즘, 그리고 다시 운동화를 신는 포스트모던 댄스로 대중성과 개성이 중시된다. 서사(narrative), 기호학 등 비평이론의 경계와해는 공연예술에서 탈장르로 나타난다. 포스트모던 건축은 기능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밋밋한 건축에서 장식과 열린 공간을 중시하고 분산적이며 옛것에 현대를 접합시킨 패러디가 유행한다. 개성 ·자율성 ·다양성 ·대중성을 중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이념을 거부했기에 탈이념이라는 이 시대 정치이론을 낳는다. 또한 후기산업사회 문화논리로 비판받기도 한다. 산업사회는 분업과 대량생산으로 수요에 의해 공급이 이루어지던 시대이다. 이제 컴퓨터 ·서비스산업 등 정보화시대에 이르면 공급이 넘치고 수요는 광고와 패션에 의해 인위적으로 부추겨진다. 빗나간 소비사회는 때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탈이념, 광고와 패션에 의한 소비문화, 여성운동, 제3세계운동 등 포스트모던시대의 사회정치현상은 한국사회와도 무관하지 않다. 미술 ·건축 ·무용 ·연극에서는 실험과 저항이 맞물려왔고 1980년대 말 동구권의 사회주의 몰락과 문민정부의 출현은 한국 문학과 예술에도 포스트모던 바람을 일게 하였다. 근대나 현대는 서유럽에 비하여 짧고 급속히 이루어졌기에 시민의식과 기술산업사회가 균형을 이룰 수 없었다. 서유럽과 한국사회를 똑같이 볼 수 없는 여러 상황에 의해 한국사회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영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출처]난해성/ 현대성|작성자 헌책  
807    난해시와 어설픈 평론 / 나와 나도 난해시가 좋다... 댓글:  조회:4557  추천:0  2015-12-31
난해시와 평론에 관한 어설픈 에세이         아래 시를 감상해보자. 어느 유명 일간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나는 독수리를 먹는 인간이다. 내 입에서 독수리가 나온다 독수리 입에서 구렁이가 나온다 구렁이 입에서 개구리가 나온다 개구리 입에서 파리가 나온다 파리 입에서 미생물이 나온다   우주의 유기적 연관관계 나는 감탄한다.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다못해 수능 시험 선지에 나오는 “통사구조의 반복” 같은 말이나 떠올렸을 수도 있겠다. 이 때문에 나름 자신의 예술적 심미안에 자책하실 분도 계실 것 같다. 물론 나름 여기서 철학적 의미를 캐치해 낸 명석한 독자도 있을 것이다. 만약 철학적 의미를 캐치하셨다면 낚인 거다. 이 시는 일간신문 신춘문예 당선작도 아닌 내가 10초만에 아무 말이나 써놓은 시이다. 한 마디로 낙서란 얘기다.  그런데 요즘 이와 같이 낙서 같은 시들이 범람한다. 거기엔 평론가들이 온갖 찬사가 덧붙여진다.   지금은 버린 꿈이지만 나는 한 때 문인의 꿈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경기도의 모 예술고등학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문예창작과니깐 당연히 일반 인문계와 다르게 전공수업이 있다. 전공수업은 문학개론, 문장론, 현대문학, 고전문학, 문학사, 시 창작, 소설 창작 등등. 나름 체계적인 커리를 가지고 있다.   어쨌거나 전공 수업의 백미는 시창작과 소설창작이었다. 더욱이 시창작과 소설창작 시간에는 각자가 쓴 시와 소설을 가지고 토론하는 합평시간 있었다. 합평시간은 전공 수업의 백미 중의 백미였다. 내가 2학년 때 시창작 합평 시간마다 포스트모던한 난해시(?)를 써오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애의 시는 자글자글 씹혔다. 비유가 작위적이다. 시어 간에 개연성이 떨어진다. 의미가 불명확하다. 중얼중얼 하여튼 이런 말들이었는데, 나도 이 대열에 끼어들어서 같이 자글자글 씹었다. 나도 언젠가 심심해서 난해시를 써서 제출한 적이 있었다. 제대로 씹혔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난 자글자글 씹으면서도 씹히면서도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요즘 현대시인들 특히 미래파라 일컬어지는 부류들. 그 시인들도 그 애 만큼 난해한 시를 쓴다. 그런 사람들 시집을 놓고 그냥 읽으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여기에 시의 기본적 요소라 할 수 있는 은유나 상징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비유는 너무 작위적인 것 같고, 시어 간에 개연성도 찾을 수 없다.  근데 왜 그 시인들은 나름 대학 교수에 문학평론가 명함 단 사람들이 한국문학의 역작이니 가능성이니 어쩌구니 하면서 찬양받고, 그 애는 왜 한낮 고삐리들한테 자글자글 씹혀야할까?   물론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 애의 시를 씹은 나를 탓할지도 모르겠다. 치졸한 변명을 하자면 씹지 않으면 수업 시간에 할 말이 없다. 합평시간에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 선생님의 눈초리를 받기에 처지가 곤란해진다. 물론 그 문제에 대해 선생님이나 우연히 만난 시인들에게 질문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으나 답변은 대개 모호하거나 불성실했다. 그냥 뭔가가 있다? 그 수준이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사실 시인이란 부류들은 너무 불성실해서 자기 시집에 한 줄 자리 시를 써놓기도 한다. 심지어 모 문예지에서 단어 하나만 써놓고 시라는 시인도 봤다. 거기에 평론가는 뭐가 어쩌구니 해서 온갖 찬사의 코멘트를 붙였다.  만약 내가 그런 시를 써서 합평 시간에 들고 갔으면 이게 무슨 시냐고 자글자글 씹혔을 것이다. 또한 선생님은 나를 불성실하다고 혼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대충 몇 마디 써놓고 유명 시인 이름으로 발표한다면 어떨까? 아마 자크 데리다의 “해체”니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이니 온갖 철학적 개념을 가지고 와서 찬사를 할 것이다.   여기에 미술의 사례를 끌어와도 될지 모르겠다. 사실 현대미학에서 이 문제는 골칫거리였다. 전시관에 변기 달랑 놓고 샘이라는 예술가가 있는 반면, 대충 붓으로 낙서만 해놓은 그림도 예술이라는 예술가가 있다. 도대체 그렇다면 예술의 기준은 무엇일까? 무언가를 정의하려면 공동적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예술마다 중구난방이니 도무지 공통적 요소를 뽑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와이츠는 예술은 유사성을 가진 열린 개념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주목할 만한 견해는 미국의 분석 미학자 조지 디카의 견해다. 그는 예술이란 “예술계”라는 집단이 자격을 쥐어준 작품이 예술 작품이라고 했다. 이와 다소 관련있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미국의 몰래카메라 방송에서 침팬지 두 마리에게 붓으로 그림을 그리게 했다. 침팬지는 신나서 물감을 이용해 붓으로 도화지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 그림은 “제3세계에서 온 젊은 미개인” 전시회에 출품되었다. 그 작품을 본 평론가들은 온갖 찬사를 내렸다. 어느 유명한 평론가는 지에 “유럽화가 말레비치와 미로의 영향을 부인할 수 없지만 나는 만족과 존경심을 가지고 이 그림을 감생했다”는 평론을 남기기도 했다.   만약 유치원생에게 작문을 하라고 한 뒤, 유명한 시인의 시라고 발표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평론가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유년 시기를 추억하는 계보학적 탐색? 알 수 없는 일이다. ============================================================= 난해시 사랑 / 복효근       난 난해시가 좋다 난해시는 쉬워서 좋다 처음만 읽어도 된다 처음은 건너뛰고 중간만 읽어도 한 구절만 읽어도 끝부분만 읽어도 된다 똑같이 난해하니까 느낌도 같으니까   난 난해시가 좋다 난해시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 사람도 나하고 같이 느낄 테니까 인상적인 한 구절만 언급하면 된다 더구나 지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니까 그런 시를 쓰는 시인은 많이 배웠겠다 싶다 그런 시를 언급할 정도면, 더구나 좋다 말할 정도면 고급독자이겠다 싶다   난 난해시가 좋다 독자가 어떻게 이해하든 독자의 몫이라고 존중해주니까 내 느낌 내 생각 다 옳다잖아 나도 그 정도는 시는 쓰겠다 싶어 나를 턱없이 자신감에 넘치게 하는 시 나도 시인이 될 수 있겠다 하고 용기를 갖게 하는 시 개성 있어 보이잖아 남 눈치 안 보고 얼마나 자유로운지 적당히 상대를 무시해 보이는, 그래서 있어 보이는 시 단숨에 두보도 미당도 뛰어넘어 보이는 시   난 난해시가 난해시인이 좋다 죽었다 깨나도 나는 갖지 못할 보석을 걸친 여인처럼 나는 못 가진 것을, 못하는 것을 갖고 하니까 나도 난해시를 써보고 싶다 그들처럼 주목 받고 싶다 평론가들이, 매우 지적인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그들이 나는 부럽다 그런 것도 못하는 치들을 내려다보며 어깨에 당당히 힘을 모으며 살아가는 그들이 부럽다                                             -『우리詩』2011년 1월호   복효근 / 1962년 전북 남원 출생.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버마재비 사랑』『새에 대한 반성문』『누우 떼가 강를 건너는 법』『목련꽃 브라자』『마늘촛불』.   ----------------------------------------------------------------     나도 난해시가 참 좋다                                  - 복효근 시인의 詩, '난해시 사랑'을 읽고         자꾸, 시를 읽는다. 오래 전 시집을 읽다가, 어떤 시가 너무 좋아서, 그 한 편의 시를 수십 번 이상 읽고 또 읽었던 때가 있었다. 어떤 날은 지나칠 수 없는 시를 만나, 그만 그 시에 걸려 넘어져 나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이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무작정 시인을 꿈꾸던 날들이었다.   그때처럼 또, 시를 읽는다. 어떤 시집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한 번도 눈길을 멈추지 않을 정도로 그 흔한 돌부리 하나 없는 것도 있다. 어떤 시집은 시 한 편을 만날 때마다 생각을 하고 또 해 가며 읽어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천재성(?)을 발휘하는 것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인을 꿈꾸는 날들이다.   시에 호好, 불호不好가 어디 있을까? 평소 가깝게 지내는 어떤 시인이 즐겨하는 말대로, 나 또한 좋은 시와 나쁜 시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렵다거나 쉽다거나 하는 것도 마찬가지, 나 같은 사람이 쓴 시조차도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독자들을 만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다 인정한다고 해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들도 있는 법. 이 시인은 지금까지 꾹 참고 있던 말을, 더는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툭, 꺼내 보이고 만다. 「난해시 사랑」에는 복효근 시인의 목소리뿐 아니라, 지금까지 하고 싶었던 말을 꾹 참고 있었던 수많은 시인, 독자들의 목소리가 함께 실려 있다. 나도 은근슬쩍 엉덩이를 들이밀며 그 자리에 끼어든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나도, 이 시인처럼, 난해시가 참 좋다. 나도, 이 시인처럼, 난해시를 쓰는 시인들이 참 부럽다. 하지만 이 시인은 결코 난해시를 쓰는 시인은 못될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박완호 )                                                                         - [주변인과 시]    [출처] 난해시/ 난해시와 평론에 관한 어설픈 에세이 /크누트|작성자 헌책  
806    난해시와 신경림 댓글:  조회:4970  추천:0  2015-12-31
김예리(문학박사)   1935년 충청북도 충주군(현 청주시) 노은면 연하리에서 4남 2녀 중 맏이로 태어난 신경림은 1955년 12월 〈문학예술〉에 「낮달」을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한다. 1957년에는 돌연 낙향하여 농사를 짓거나 광산, 공사장에서 일하고 방물장수, 아편거간꾼들을 방랑하는데, 이때의 경험이 이후 작품세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농무』(1973), 『새재』(1979), 『달넘세』(1985), 『남한강』(1987), 『씻김굿』(1987), 『가난한 사랑노래』(1988), 『우리들의 북』(1988), 『길』(1990), 『여름날』(1991), 『쓰러진 자의 꿈』(1993), 『갈대』(1996),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1998), 『뿔』(2002) 등의 시집을 발표했다.   신경림에 대한 시천기(詩薦記)는 “움직이고 있는 시대를 무시 내지는 한각(閑却)”하고 있으며 “시대정신의 반영은 그 흔적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다고 되어 있다. 실제로 이 시기의 신경림에게서 ‘민중문학론의 기수’로서의 면모를 찾기는 힘들고, 존재론의 차원을 더듬는 서정시인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때의 평단은 신경림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신경림은 56년부터 근 십 년 동안의 공백 이후 1965년 〈한국일보〉에 「겨울밤」을 발표하면서 시작활동을 재개한다. 널리 알려진바, 이 시기의 작품들은 대부분 농촌의 현실을 소재로 삼고 있으며, 초기 시편들과 함께 73년 3월 자비(自費)로『농무』(이후 75년 3월 5일 창작과 비평사에서 증보판이 발행된다)가 출판된다.  당시 문단에서는 이미 리얼리즘 논쟁이 더욱 활성화되고, 71년에는 황석영의 「객지」가 발표되어 리얼리즘 문학론 진영이 더 이상 추상적인 이론이 아닌 구체적인 ‘작품으로서의’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신경림은 기존의 모더니즘 시, 난해시를 일거에 물리치면서 민중의 정서와 목소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70년대 리얼리즘 문학의 분출을 여유있게 증명한 기념비적 작업”으로 평가된다. 《문장》  [출처]신경림/ 난해시를 일거에 물리치면서,|작성자 헌책  
805    난해시와 李箱 댓글:  조회:4916  추천:0  2015-12-31
  이상은 서구 모더니즘을 제대로 이해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수학과 건축학에 능통했으므로 기하학적인 시, 숫자시를 낳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우리 나라는 식민사회였기 때문에 자율이 우선시되는 모더니즘이 꽃피기에는 너무 억압이 많았죠.    그리고 이상은 유아기때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박탈당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여성도 믿지 않았고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던 불우한 일생을 보냈죠. 그래서 그는 문학에 의지한 것일 수도 있고요.   이상은 어렸을 적부터 친부모가 아닌 백부의 집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실제로 장손이 아니면서도 그 의무를 지녀야 했고.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그 의무감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면, 문벌과 가계의 중요성을 내세우는 조부와 백부의 억압 때문에 조상에 대한 증오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든 단편적으로든 그의 작품에 계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는 커녕 비난을 받아 결국 도일하고 맙니다.    이상은 이런 독자들에게 서운함까지 느끼는데 그것은 다음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년 씩 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결국 그는 일본에서 셋방을 얻어 동경생활을 시작하는데, 동경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결국 귀향할 뜻을 김기림에게 밝힙니다. "동경이란 참 치사스런 도십디다. 예다 대면 경성이란 얼마나 인심 좋고 살기 좋고 '한적한 농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병이 악화되어 결국 죽고 맙니다. 결핵이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나, 매독이었다는 설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19세기와 20세기에 끼어 절규하는 사람이었고, 자신이 낳은 기교 덕분에 절망하여 서울 생활을 접었고, 너무 시대를 앞서갔던 선구자였습니다. 이상의 생애에 대한 것은 자료가 흔하니 더 찾아보시면 좋을 자료를 찿을 수 있을 겁니다. ... ... =========================================================================================== 이상   생몰년 : 1910-1937 시대 : 항일기 본명 : 김해경(金海卿) 본관  : 강릉 출생 : 서울 분야 : 문학 > 시/시조인 > 시인, 소설가 이상(李箱)에 대하여   1. 가계와 수학 아버지는 연창이며, 어머니는 박세창으로 2남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3세 때부터 부모슬하를 떠나 통인동 본가 큰아버지 연필의 집에서 성장하였다. 1921년 누상동에 있는 신명학교를 거쳐 1926년 동광학교(뒤에 보성고등보통학교에 병합),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였다.   2. 사업과 문학수업 그해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근무하면서 조선건축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도안 현상모집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1933년에는 각혈로 기수의 직을 버리고 황해도 배천온천에 요양갔다가 돌아온 뒤 종로에서 다방 ‘제비’를 차려 경영하였다. 이무렵 이곳에 이태준·박태원·김기림·윤태영·조용만 등이 출입하여 이상의 문단교우가 시작되었고, 1934년에 구인회에 가입하여 특히 박태원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1일〉에 삽화를 그려주기도 하였다. 그 뒤 1935년 다방을 폐업하고 카페 ‘쓰루(학)’, 다방 ‘무기’ 등을 개업하였으나 경영에 실패하고 1936년 구본웅의 아버지가 경영하던 창문사에 취직하였으나 얼마 안 가서 퇴사하였다. 그해 6월을 전후하여 변동림과 혼인한 뒤 곧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나 1937년 사상불온혐의로 구속되었다. 이로 인하여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그해 4월 동경대학 부속병원에서 죽었다.   3. 작품발표 그의 작품활동은 1930년 《조선》에 첫 장편소설 〈12월 12일〉을 연재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뒤 1931년 일문시(日文詩)〈이상한 가역반응〉·〈파편의 경치〉·〈▽의 유희〉·〈공복〉·〈삼차각설계도〉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하였다. 이어 1933년 《가톨릭청년》에 시 〈1933년 6월 1일〉·〈꽃나무〉·〈이런 시〉·〈거울〉 등을, 1934년 《월간매신》에 〈보통기념〉·〈지팽이 역사〉를, 《조선중앙일보》에 국문시 〈오감도〉 등 다수의 시작품을 발표하였다.   특히 〈오감도〉는 난해시로서 당시 문학계에 큰 충격을 일으켜 독자들의 강력한 항의로 연재를 중단하였던 그의 대표시이다. 시뿐만 아니라 〈날개〉(1936)·〈지주회시〉(1936)·〈동해〉(1937) 등의 소설도 발표하였다.   4. 문학세계 이상은 1930년대를 전후하여 세계를 풍미하던 자의식문학시대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의식문학의 선구자인 동시에 초현실주의적 시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의 문학에 스며 있는 감각의 착란, 객관적 우연의 모색 등 비상식적인 세계는 그의 시를 난해한 것으로 성격짓는 요인으로서 그의 개인적인 기질이나 환경, 그리고 자전적인 체험과 무관한 것은 아니나, 근본적으로는 현실에 대한 그의 비극적이고 지적인 반응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러한 지적 반응은 당대의 시적 상황에 비추어볼 때 한국시의 주지적 변화를 대변함과 동시에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그러한 지적 태도는 의식의 내면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명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무의식의 메커니즘을 시세계에 도입하여 시상의 영토를 확장하게 하였다. 그의 시는 전반적으로 억압된 의식과 욕구좌절의 현실에서 새로운 대상세계에로의 탈출을 시도하는 초현실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정신을 논리적 사고과정에서 해방시키고자 함으로써 그의 문학에서는 무력한 자아가 주요한 주제로 나타나게 된다. 시 〈거울〉이나 소설 〈날개〉 등은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대표적 작품이다.   또한, 시 〈오감도〉는 육체적 정력의 과잉, 말하자면 발산되어야 하면서도 발산되지 못한 채 억압된 리비도(libido)의 발작으로 인한 자의식과잉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대상을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고 역설적으로 파악하는 시적 현실이 잘 드러나 있다.   바로 이같은 역설에서 비롯되는 언어적 유희는 그의 인식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동시에 독특한 시각방법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억압받은 성년의 욕구가 나르시시즘(narcis- sism)의 원고향인 유년시대로 퇴행함으로써 욕구충족을 위한 자기방어의 메커니즘을 마련하였고, 유희로서의 시작은 그러한 욕구충족의 한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인간모순을 언어적 유희와 역설로 표현함으로써 시적 구제를 꾀한 시인이었다.   기타 시작품으로 〈소영위제〉(1934)·〈정식〉(1935)·〈명경〉(1936) 등과, 소설 〈봉별기〉(1936)·〈종생기〉(1937), 수필 〈권태〉(1937)·〈산촌여정〉(1935) 등이 있다. 유저로 이상의 시·산문·소설을 총정리한 《이상전집》 3권이 1966년에 간행되었다. [출처]김해경/ (金海卿)|작성자 헌책   [출처] 난해시/ 다이상   생몰년 : 1910-1937 시대 : 항일기 본명 : 김해경(金海卿) 본관  : 강릉 출생 : 서울 분야 : 문학 > 시/시조인 > 시인, 소설가 이상(李箱)에 대하여   1. 가계와 수학 아버지는 연창이며, 어머니는 박세창으로 2남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3세 때부터 부모슬하를 떠나 통인동 본가 큰아버지 연필의 집에서 성장하였다. 1921년 누상동에 있는 신명학교를 거쳐 1926년 동광학교(뒤에 보성고등보통학교에 병합),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였다.   2. 사업과 문학수업 그해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근무하면서 조선건축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도안 현상모집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1933년에는 각혈로 기수의 직을 버리고 황해도 배천온천에 요양갔다가 돌아온 뒤 종로에서 다방 ‘제비’를 차려 경영하였다. 이무렵 이곳에 이태준·박태원·김기림·윤태영·조용만 등이 출입하여 이상의 문단교우가 시작되었고, 1934년에 구인회에 가입하여 특히 박태원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1일〉에 삽화를 그려주기도 하였다. 그 뒤 1935년 다방을 폐업하고 카페 ‘쓰루(학)’, 다방 ‘무기’ 등을 개업하였으나 경영에 실패하고 1936년 구본웅의 아버지가 경영하던 창문사에 취직하였으나 얼마 안 가서 퇴사하였다. 그해 6월을 전후하여 변동림과 혼인한 뒤 곧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나 1937년 사상불온혐의로 구속되었다. 이로 인하여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그해 4월 동경대학 부속병원에서 죽었다.   3. 작품발표 그의 작품활동은 1930년 《조선》에 첫 장편소설 〈12월 12일〉을 연재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뒤 1931년 일문시(日文詩)〈이상한 가역반응〉·〈파편의 경치〉·〈▽의 유희〉·〈공복〉·〈삼차각설계도〉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하였다. 이어 1933년 《가톨릭청년》에 시 〈1933년 6월 1일〉·〈꽃나무〉·〈이런 시〉·〈거울〉 등을, 1934년 《월간매신》에 〈보통기념〉·〈지팽이 역사〉를, 《조선중앙일보》에 국문시 〈오감도〉 등 다수의 시작품을 발표하였다.   특히 〈오감도〉는 난해시로서 당시 문학계에 큰 충격을 일으켜 독자들의 강력한 항의로 연재를 중단하였던 그의 대표시이다. 시뿐만 아니라 〈날개〉(1936)·〈지주회시〉(1936)·〈동해〉(1937) 등의 소설도 발표하였다.   4. 문학세계 이상은 1930년대를 전후하여 세계를 풍미하던 자의식문학시대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의식문학의 선구자인 동시에 초현실주의적 시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의 문학에 스며 있는 감각의 착란, 객관적 우연의 모색 등 비상식적인 세계는 그의 시를 난해한 것으로 성격짓는 요인으로서 그의 개인적인 기질이나 환경, 그리고 자전적인 체험과 무관한 것은 아니나, 근본적으로는 현실에 대한 그의 비극적이고 지적인 반응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러한 지적 반응은 당대의 시적 상황에 비추어볼 때 한국시의 주지적 변화를 대변함과 동시에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그러한 지적 태도는 의식의 내면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명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무의식의 메커니즘을 시세계에 도입하여 시상의 영토를 확장하게 하였다. 그의 시는 전반적으로 억압된 의식과 욕구좌절의 현실에서 새로운 대상세계에로의 탈출을 시도하는 초현실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정신을 논리적 사고과정에서 해방시키고자 함으로써 그의 문학에서는 무력한 자아가 주요한 주제로 나타나게 된다. 시 〈거울〉이나 소설 〈날개〉 등은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대표적 작품이다.   또한, 시 〈오감도〉는 육체적 정력의 과잉, 말하자면 발산되어야 하면서도 발산되지 못한 채 억압된 리비도(libido)의 발작으로 인한 자의식과잉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대상을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고 역설적으로 파악하는 시적 현실이 잘 드러나 있다.   바로 이같은 역설에서 비롯되는 언어적 유희는 그의 인식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동시에 독특한 시각방법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억압받은 성년의 욕구가 나르시시즘(narcis- sism)의 원고향인 유년시대로 퇴행함으로써 욕구충족을 위한 자기방어의 메커니즘을 마련하였고, 유희로서의 시작은 그러한 욕구충족의 한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인간모순을 언어적 유희와 역설로 표현함으로써 시적 구제를 꾀한 시인이었다.   기타 시작품으로 〈소영위제〉(1934)·〈정식〉(1935)·〈명경〉(1936) 등과, 소설 〈봉별기〉(1936)·〈종생기〉(1937), 수필 〈권태〉(1937)·〈산촌여정〉(1935) 등이 있다. 유저로 이상의 시·산문·소설을 총정리한 《이상전집》 3권이 1966년에 간행되었다. [출처]김해경/ (金海卿)|작성자 헌책   시 이상/ poetic94|작성자 헌책         이상(李箱, 1910년 9월 14일 - 1937년 4월 17일)  한국의 근대 작가.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이상(작가)   1910년 이발업에 종사하던 부 김연창(金演昌)과 모 박세창(朴世昌)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1912년부모를 떠나 아들이 없던 백부 김연필(金演弼)집에서 장손으로 성장하였다. 그는 백부의 교육열에 힘입어 신명학교, 보성고등보통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거쳤고 졸업 후에는 총독부 건축과 기수로 취직하였다. 1931년 처녀시 ‘이상한가역반응’, ‘BOITEUX·BOITEUSE’, ‘오감도’ 등을 에 발표했고, 1932년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에 발표하면서 비구(比久)라는 익명을 사용했으며,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면서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1934년 에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여 시 ‘오감도’를 에 연재하지만 난해시라는 독자들의 항의로 30회로 예정되어 있었던 분량을15회로 중단하였다. 1936년  동인지 의 편집을 맡아 1집만 내고 그만두고, 에 ‘지주회시’, 에 '날개', '동해'를 발표하였다. 이해, 결혼하여 일본 도쿄로 가게 되는데, 그 곳에서 '종생기' ,'권태', '환시기' 등을 쓰고, '봉별기'가 에 발표되었다. 1937년 사상불온 혐의로 도쿄 니시칸다경찰서에 유치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하였지만, 지병인 폐병이 악화되어 향년 만26년 7개월에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객사하였다. 유해는 화장하여, 경성으로 돌아왔으며, 같은 해에 숨진 김유정과 합동영결식을 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치되었으나, 후에 유실되었다. 필명 유래 이상에게는 신명(新明)학교 동기동창생인 친구가 있었다. 친구의 이름은 구본웅(具本雄). 구본웅은 몸이 불구이고 약해서 학교에 꾸준히 나가지 못해 나이는 이상보다 4살이나 위지만 같은 학년 같은 반에 편성되었다. 꼽추이고 4살이나 나이가 많은 구본웅과 아무도 친하게 지내려 하지 않았지만 이상은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친구가 되었으며 이상은 구본웅을 4년 선배로 깍듯이 예우했다. 그렇게 그들은 특별하고도 아주 진지한 우정을 쌓아갔다. 동광학교를 거쳐 1927년 3월에 보성고보를 졸업한 김해경은 현재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진학했다. 그의 졸업과 대학입학의 축하선물로 구본웅은 사생상(寫生箱)을 선물했다. 사생상이란 스케치박스를 말한다. 그간 사생상을 무척이나 가지고 싶어했던 이상이 사생상을 선물 받고 날아갈 듯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구본웅에게 고마운 나머지 자신의 필명에 사생상의 '상자'를 의미하는 箱자를 넣겠다고 흥분했다. 김해경은 아호와 필명을 함께 쓸 수 있게 호의 첫 자는 흔한 성씨(姓氏)를 따오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고 구본웅도 흔쾌히 동의하자 김해경은 사생상이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니 나무 목(木)자가 들어간 성씨 중에서 그 성씨를 찾기로 했다. 두 사람은 권(權)씨, 박(朴)씨, 송(宋)씨, 양(楊)씨, 양(梁)씨, 유(柳)씨, 이(李)씨, 임(林)씨, 주(朱)씨 등을 검토했다. 김해경은 그 중에서 다양성과 함축성을 지닌 것이 이씨와 상자를 합친 '李箱'이라 생각했고 구본웅도 그 절묘한 배합에 감탄했다. 이상의 연애에 관해 그를 키워준 백부에게서 유산을 물려받자 그는 적선동의 가난을 정리한 후 효자동으로 옮겨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 살았던 그는 가족들의 무지와 가난에 곧 질려서 보름만에 나와버렸다. 1933년, 무질서한 생활로 폐병이 심해져 각혈까지 한 그는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고 구본웅과 함께 황해도 백천에서 요양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한량기질이 가만히 잠들어 있을 리 없었다. 사흘을 못 참고 장고 소리 나는 곳으로 찾아간 그는 바로 이곳에서 운명의 여인인 금홍을 만났다. 그는 금홍에 대해 '보들레르의 흑인 혼혈 정부 잔느 뒤발을 닮은 데다가, 모든 남자들이 한 번 정도 안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여자'라 찬사를 늘어 놓았다. 여자에 대한 호평에 박한 그가 금홍에 대해 이 정도로 평한 것은 그가 얼마나 그녀에게 빠져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천성적으로 예쁜여자를 좋아하던 그는 그녀의 매력에 금새 도취되었다. 열렬히 사랑했던 금홍을 비롯해 이상은 전생애를 통해 여러 여급과 사랑을 나누었다 .금홍과 헤어진 다음 만났던 권순희 역시 미모를 자랑하는 여급이었고, 또 유일한 정식 아내였던 변동림도 이상의 묵인 하에 그의 절친한 친구들과 간통 사건을 일으켰고, 후에 여급으로 일했다. 이상은 이들을 무척 사랑하긴 했지만 그 행복이 오래간 적은 없었다. 이들은 그에게 잠시 동안 위안을 주는 여급일 뿐, 그를 오랫동안 지탱해주는 반려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여급하고만 사랑에 빠졌던 것일까? 또 애인과 다른 남자들과이 관계를 방관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에대한 답은 그가 여자를 자신의 소유로 하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다시말해 그는 여자를 가지려고도, 또 믿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보통남자들이 바라는 열녀형의 양처를 가진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가 그녀들에게 바랬던 것은 생활의 안정이나, 안정된 사랑 따위가 아니었다 .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는 여자들에게 문학 소재 혹은 아이디어를 원했다 .이들은 실행활에서 그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문학적인 면에서는 그가 문학 속으로 침잠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이었다. 실제로 그가 그녀들과 나누었던 경험은 소설과 시 속에 그대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금홍은 '날개', '봉별기', '지주회시' 등에, 또 마지막 여자였던 변동림은 '동해', '단발', 구필 '행복', '종생기'의 '선', '실화'의 '연' 등에서 지금까지 살아 숨쉬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끝까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비 정상적인 직업의 여성들을 택했고, 또 성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던 그는 그녀들의 외도를 묵인해주어야 했다. 더구나 이상의 여자들은 그의 특이한 습성을 이해할정도로 너그러웠고 그중에서도 금홍은 그와 이러한 성향을 완벽하게 충족시켜 그의 사랑을 비교적 오랫동안 독차지했다. 그는 서울에 올라와서도 금홍을 못잊고 방황 하다가 '제비'다방을 마련해 그녀를 마담자리에 앉혔다. 다방 뒷골방에 마련했던 조그만 살림방은 그의 대표작인 '날개'의 무대가 되었다. 한동안 금홍은 마담으로 '제비' 카운터에서 일하고, 이상은 골방에 처박혀 있다가 밤에 밖으로 기어나오는 생활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그의 제비다방 시대는 1933년 7월 14일 개업으로부터 1935년 9일, 파산하기까지 2년간 지속되었다. 가장 격렬한 사랑마저 이렇게 금방 끝나고 만 것은 폐병 때문에 성기능도, 보석을 사줄 만한 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한 여자에게 얽매이는 것을 두려워 했던 그는 1933년 여름부터 1934년 여름까지 이상이외의 남자를 만난 적인 없을 정도로 자신에게 몰입했던 금홍에게조차 불성실하게 행동했다. 같이 산 지 1년이 지나자 금홍은 이상에 대해 '쓸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는 병신이야. 게다가 돈도 벌어올 줄 모르고'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닐 정도로 그에게 쌀쌀맞게 굴었다. 금홍에게 천대를 받던 1934년 그는 에 발표한 '오감도'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 미친수작, 정신병자의 잡문이라는 혹평을 받아 결국 연재가 중단되었지만 열화와 같은 찬반양론을 일으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1933년과1934년은 화려한 문단 등단뿐 아니라 파산, 금홍과의 파경으로 가득찬 해였다. 당시 그가 느꼈던 좌절은 다음의 글에 잘 드러나 있다. "하루는 나는 이유없이 금홍에게 몹시 얻어맞았다. 나는 아파서 울고 나가서 사흘을 들어오지 못했다. 금홍이가 너무 무서웠다. 나흘 만에 와보니까 금홍이는 때묻은 버선을 윗목에다 벗어놓고 나가버린 뒤였다." 금홍과 서먹해질 즈음 그는 동인들과의 만남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금홍이 나간 직후 그는 잠시 카페 '쓰루'에 있었던 여급 권순희에게서 위안을 얻었다, 그러나 여복 없는 그에게 이도 오래갈 리 없었다. 그녀를 짝사랑 하다 자살소동까지 일으킨 친구 정인택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한 채 둘의 결혼을 성사시키고 결혼식의 사회까지 맡아주었던 것. 그후 그는 박태원, 김유정과 어울려 다니면 여러 카페를 전전하며 심신을 소모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당시 그가 했던 한마디는 그의 생활을 잘 드러내준다. "어느 시대에도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절망한다."     '제비'다방과 금홍을 잃은 후 그는 아버지의 집을 저당잡혀 인사동에 카페 '쓰루'와 광교 근처에 다방 '69'를 개업했다가 곤 망해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명동의 '무기'를 설계해 개업하려했으나 중도금이 없어 도중 하차하고 말았다. 빈민촌으로 가족을 이사시킨 이상은 묵묵히 따르는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의 무능력 사이에서 방황했다. 금홍에 이어 권순희와도 실연하고만 그는 패배감에 젖어 잠시 시골로 잠적했다. 그곳에서 그는 갑자기 생각이라도 난듯수많은 작품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그는 금홍과 권순희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가면 '봉별기', '날개', '지주회시', 그리고 '종생기'등과 전문시 음화시, 문명 비평류의 수필 등을 산더미처럼 쏟아내어 이 수많은 작품들이 술에 절어있던 한밤 중에 쓰여졌다는 사실은 '천재 이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1936년, 이상은 이화여전 출신인 여류문인 변동림(이상이 죽은 뒤 순화 김환기의 부인이 된 김향안 씨)과 결혼해 새로운 인생을 맞는 듯했다. 그녀는 단편과 수필을 몇편 발표했던 신인이자, 이상의 지기인 구본웅의 배다른 동생이기도 했다. 그녀는 이상이 가까이 했었던 여성 중 유일하게 정상적인 여성인 셈이었지만, 이것도 이상의 운명이었을까? 간단한 결혼식을 거친 후 곧 동거에 들어간 그녀는 이상의 가족과 전혀 교류가 없었던 금홍과는 달리 빈민굴에서 고생하는 그의 가족과 깊은 친분을 맺었다. 하지만 그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 결국 그녀는 카페의 여급으로 일하며 입에 풀칠을 하게 되었다. 이는 이상의 여자는 모두 여급이었다는 전설을 다시 확인 시켜주는 셈이었다. 건강악화와 어려운 경제적 여건 등, 국내에서의 비참한 현실과 마주친 이상은 도피하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대로 가족과 변동림을 남겨둔 채 1936년에 동경행을 선택했다. 하지만 동경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가난을 절절히 겪던 그는 '종생기', '환상기', '실락원', '실화', '동경'등의 수많은 작품을 엮어냈다. 이듬해 2월, 극도로 악화된 건강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이상은 운 나쁘게도 일본 경찰에게 검거되어 옥살이를 치렀다. 건강이 악화되어 거의 시체나 다름없게 된 그는 보석을 허가받아 평소 너무나도 동경하던 동경제대의 부속병원에 입원했다. 항상 여자와 문학에 빠져 살던 이상은 결국 날지 못한 채 변동림이 구해온 레몬의 향기를 맡으며 짧은 생을 마감했다. 태어나자마자 20대였던 조숙한 천재시인 이상은 스믈여덟 살의 젊은 나이에 '종생기'를 끝으로 자신의 생을 마쳤다. 작품 목록 소설 《십이월 십이일》1930.02~12 조선 《지도의 암실》1932.03 조선 《휴업과 사정》1932.04 조선 《지팽이 역사 : 희문》1934.08 월간매신 《지주회시》1936.06 중앙 《날개》1936.09 조광 《봉별기》 1936.12 여성 《동해》1937.02 조광 《황소와 도깨비 : 동화》1937.03 매일신보 《공포의 기록》1937.04~05 매일신보 《종생기》1937.05 조광 《환시기》1938.06 청색지 《실화》1939.03 문장 《단발》1939.04 조선문학 《김유정 : 소설체로 쓴 김유정론》1939.05 청색지 《불행한 계승》1976.07 문학사상 수필 《권태》 시 《오감도》 《건축무한육면각체》 《거울》 《꽃나무》 《실화》 《개미》 《백화(白畵)》 《역단 (易斷)]》 《[위독 (危篤)]》 《[이상한 가역반응 (異常한 可逆反應)]》 《[삼차각설계도 (三次角設計圖) ]》 《이런 시 (이런 詩)》 《1933, 6, 1 (一九三三, 六, 一)》 《보통기념 (普通記念)》 《소영위제 (素榮爲題)》 《정식 (正式)》 《지비 (紙碑)》 《I WED A TOY BRIDE》 《파첩 (破帖)》 《청령》 《한개의 밤 (한個의 밤)》 《척각 (隻脚)》 《거리 (距離)》 《수인이만들은소정원 (囚人이만들은小庭園)》 《육친의장 (肉親의章)》 《내과 (內科)》 《골편에관한무제 (骨片에關한無題)》 《가구의추위 (街衢의추위)》 《아침》 《최후 (最後)》 《유고 (遺稿)》 《1931년 (一九三一年)》 《습작쇼오윈도우수점 (習作쇼오윈도우數點)》 《회한의 장 (悔恨의 章)》 《여전준일 (與田準一)》 《월원등일랑 (月原橙一郞)》     烏瞰圖 詩第一號 / 오감도 시제1호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길이適當하오.)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四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五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六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七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八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九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十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十三人의兒孩는무서운兒孩와무서워하는兒孩와그렇게뿐이모혓소. (다른事情은업는것이차라리나앗소)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좃소.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좃소.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좃소.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좃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適當하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지아니하야도좃소.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길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人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烏瞰圖 詩第二號 / 오감도 시제2호 1934년 7월 25일 조선중앙일보   나의아버지가나의겨테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느냐나는웨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웨드듸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나의아버지가나의곁에서졸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느냐나는왜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烏瞰圖 詩第三號 / 오감도 시제3호 1934년 7월 25일 조선중앙일보   싸흠하는사람은즉싸흠하지아니하던사람이고또싸흠하는사람은싸흠하지아니하는사람이엇기도하니까싸흠하는사람이싸흠하는구경을하고싶거든싸흠하지아니하던아니하던사람이싸흠하는것을구경하든지싸흠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흠하는구경을하든지싸흠하지아니하던사람이나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흠하지아니하는것을구경하든지하였으면그만이다 싸움하는사람은즉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고또싸움하는사람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엇기도하니까싸움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고싶거든싸움하지아니하던아니하던사람이싸움하는것을구경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나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지아니하는것을구경하든지하였으면그만이다     烏瞰圖 詩第四號 / 오감도 시제4호 1934년 7월 28일 조선중앙일보   患者의容態에관한문제. ㆍ0987654321 0ㆍ987654321 09ㆍ87654321 098ㆍ7654321 0987ㆍ654321 09876ㆍ54321 098765ㆍ4321 0987654ㆍ321 09876543ㆍ21 098765432ㆍ1 0987654321ㆍ 謬斷 0 : 1 26.10.1931 以上 責任醫師 李 箱 환자의용태에관한문제. ㆍ0987654321 0ㆍ987654321 09ㆍ87654321 098ㆍ7654321 0987ㆍ654321 09876ㆍ54321 098765ㆍ4321 0987654ㆍ321 09876543ㆍ21 098765432ㆍ1 0987654321ㆍ 진단 0 : 1 26.10.1931 이상 책임의사 이 상     烏瞰圖 詩第五號 / 오감도 시제5호 1934년 7월 28일 조선중앙일보   某後左右를除하는唯一의痕跡에잇서서 翼殷不逝 目不大覩 반矮小形의神의眼前에我前落傷한故事를有함. 臟腑라는것은浸水된畜舍와區別될수잇슬는가. 모후좌우를 제하는 유일의 흔적에 있어서 익은불서 목불대도 반외소형의 신의 안전에 아전낙상한 고사를 유함. 장부라는것은 침수된 축사와 구별될 수 있을는가.     烏瞰圖 詩第六號 / 오감도 시제6호 1934년 7월 31일 조선중앙일보   鸚鵡 ※ 二匹     二匹 ※ 鸚鵡는포유류에속하느니라. 내가二匹을아아는것은내가二匹을아알지못하는것이니라. 물론나는희망할것이니라. 앵무   二匹 『이소저는신사이상의부인이냐』 『그러타』 나는거기서앵무가노한것을보았느니라. 나는붓그러워서 얼골이붉어젓섯겠느니라. 앵무   二匹     二匹 물론나는追放당하였느니라.추방당할것까지도없이自退하얏느니라.나의체구는중축을상실하고또상당히창랑하여그랫든지나는미미하게체읍하얏느니라. 『저기가저기지』『나』『나의-아-너와나』 『나』 sCANDAL이라는것은무엇이냐.『너』『너구나』 『너지』『너다』『아니다 너로구나』나는함뿍저저서그래서獸類처럼도망하얏느니라.물론그것을아아는사람은혹은보는사람은업섯지만그러나과연그럴는지그것조차그럴는지. 앵무 ※ 이필     이필 ※ 앵무는포유류에속하느니라. 내가이필을아아는것은내가이필을아알지못하는것이니라. 물론나는희망할것이니라. 앵무   二匹 『이소저는신사이상의부인이냐』 『그렇다』 나는거기서앵무가노한것을보았느니라. 나는부끄러워서 얼골이붉어졌었겠느니라. 앵무   二匹     二匹 물론나는추방당하였느니라.추방당할것까지도없이자퇴하였느니라.나의체구는중축을상실하고또상당히창랑하여그랫든지나는미미하게체읍하였느니라. 『저기가저기지』『나』『나의-아-너와나』 『나』 sCANDAL이라는것은무엇이냐.『너』『너구나』 『너지』『너다』『아니다 너로구나』나는함뿍젖어서그래서수류처럼도망하였느니라.물론그것을아아는사람은혹은보는사람은없었지만그러나과연그럴는지그것조차그럴는지.     烏瞰圖 詩第七號 / 오감도 시제7호 1934년 8월 1일 조선중앙일보   久遠謫居의地의一枝·一枝에피는顯化·特異한四月의花草·三十輪·三十輪에前後되는兩側의明鏡·맹芽와갓치戱戱하는地平을向하야금시금시落魄하는 滿月·淸간의氣가운데 滿身瘡痍의滿月이의刑當하야渾淪하는·謫居의地를貫流하는一封家信·나는僅僅히遮戴하얏드라·몽몽한月芽·靜謐을蓋掩하는大氣圈의遙遠·巨大한困憊가운데의一年四月의空洞·槃散顚도하는星座와星座의千裂된死胡同을포逃하는巨大한風雪·降매·血紅으로染色된岩염의粉碎·나의腦를避雷針삼아沈下搬過되는光彩淋리한亡骸·나는塔配하는독사와가치地平에植樹되어다시는起動할수업섯드라·天亮이올때까지 구원적거의지의일지·일지에피는현화·특이한사월의화초·삼십륜·삼십륜에전후되는양측의명경·맹아와같이희희하는지평을향하여금시금시낙백하는 만월·청간의기가운데 만신창이의만월이의형당하여혼륜하는·적거의지를관류하는잉일봉가신·나는근근히차대하였더라·몽몽한월아·정밀을개엄하는대기권의요원·거대한곤비가운데의일년사월의공동·반산전도하는성좌와성좌의천열된사호동을포도하는거대한풍설·강매·혈홍으로염색된암염의분쇄· 나의뇌를피뢰침삼아침하반과되는광채임리한망해·나는탑배하는독사와같이지평에식수되어다시는기동할수없었더라·천량이올때까지     烏瞰圖 詩第八號 解剖 / 오감도 시제8호 해부 1934년 8월 2일 조선중앙일보   第一部試驗 手術臺 一   水銀途沫平面鏡 一   氣壓 二倍의平均氣壓   溫度 皆無 爲先麻醉된正面으로부터立體와立體를위한立體가具備된全部를平面鏡에映像식힘. 平面鏡에水銀을現在와反對側面에途沫移轉함. (光線侵入防止에注意하야)서서히麻醉를解毒함. 一軸鐵筆과一張白紙를支給함.(試驗擔任人은被試驗人과抱擁함을絶對忌避할것) 順次手術室로부터被試驗人을解放함. 翌日. 平面鏡의縱軸을通過하여平面鏡을二片에切斷함. 水銀塗沫二回. ETC 아즉그滿足한結果를收得치못하얏슴. 第二部試驗 直立한平面鏡 一   助手 數名 野外의眞實을選擇함. 爲先麻醉된上肢의尖端을鏡面에附着식힘. 平面鏡의水銀을剝落함. 平面鏡을 後退시킴. (이때映像된上脂는반드시硝子를無事通過하겠다는것으로假設함) 上脂의終端까지. 다음水銀途沫. (在來面에)이瞬間公轉과自轉으로부터그眞空을降車식힘. 완전히二個의上脂를접수하기까지. 翌日. 硝子를前進식힘. 連하여水銀柱를在來面에途沫함(上脂의處分)(혹은滅形)其他. 水銀途沫面의變更과前進後退의重複等. ETC 以下未詳 제1부실험 수술대 일   수은도말평면경 일   기압 이배의평균기압   온도 개무 위선마취된정면으로부터입체와입체를위한입체가구비된전부를평면경에영상시킴. 평면경에수은현재와반대측면에도말이전함. (광선침입방지에주의하여)서서히마취를해독함. 일축철필과일장백지를지급함.(시험담임인은피시험인과포옹함을절대기피할것) 순차수술실로부터피시험인을해방함. 익일. 평면경의종축을통과하여평면경을이편에절단함. 수은도말이회. ETC 아즉그만족한결과를수득치못하였음. 제이부시험 직립한평면경 일   조수 수명 야외의진실을선택함. 위선마취된상지의첨단을경면에부착시킴. 평면경의수은을박락함. 평면경을 후퇴시킴. (이때영상된상지는반드시초자를무사통과하겠다는것으로가설함) 상지의종단까지. 다음수은도말. (재래면에)이순간공전과자전으로부터그진공을강차시킴. 완전히이개의상지를접수하기까지. 익일. 초자를전진시킴. 연하여수은주를재래면에도말함(상지의처분) (혹은멸형)기타. 수은도말면의변경과전진후퇴의중복등. ETC 이하미상     烏瞰圖 詩第九號 銃口 / 오감도 시제9호 총구 1934년 8월 3일 조선중앙일보   每日가치烈風이불드니드듸여내허리에큼직한손이와닷는다. 恍惚한指紋골작이로내땀내가스며드자마자쏘아라.쏘으리로다. 나는내消化器管에묵직한銃身을느끼고내다물은입에맥근맥근환銃口를늣긴다. 그리드니나는銃쏘으드키눈을감으며한방銃彈대신에나는참나의입으로무엇을내배앗헛드냐. 매일같이열풍이불더니드디어내허리에큼직한손이와닿는다. 황홀한지문골짜기로내땀내가스며드자마자쏘아라.쏘으리로다. 나는내소화기관에묵직한총신을느끼고내다물은입에매끈매끈환총구를느낀다. 그리더니나는총쏘으드키눈을감으며한방총탄대신에나는참나의입으로무엇을내배앗헛드냐.     烏瞰圖 詩第十號 나비 / 오감도 시제10호 나비 1934년 8월 3일 조선중앙일보   찌저진壁紙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그것은幽界에絡繹되는秘密한通話口다.어느날거울가운데의鬚髥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날개축처어진나비는입김에어리는가난한이슬을먹는다.通話口를손바닥으로꼭막으면서내가죽으면안젓다일어서듯키나비도날아가리라.이런말이決코밖으로새여나가지는안케한다. 찢어진벽지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그것은유계에낙역되는비밀한통화구다.어느날거울가운데의수염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날개축처어진나비는입김에어리는가난한이슬을먹는다.통화구를손바닥으로꼭막으면서내가죽으면앉았다일어서듯키나비도날아가리라.이런말이결코밖으로새어나가지는않게한다.     烏瞰圖 詩第十一號 / 오감도 시제11호 1934년 8월 4일 조선중앙일보   그사기컵은내骸骨과흡사하다. 내가그컵을손으로꼭쥐엿슬때내팔에서는난데없는팔하나가接木처럼도치더니그팔에달린손은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룻바닥에메여부딧는다. 내팔은그사기컵을死守하고잇스니散散이깨어진것은그럼그사기컵과흡사한내骸骨이다. 가지낫든팔은배암과같이내팔로기어들기前에내팔이或움즉엿든들洪水를막은白紙는찌저젓으리라. 그러나내팔은如前히그사기컵을死守한다. 그사기컵은내해골과흡사하다. 내가그컵을손으로꼭쥐었을때내팔에서는난데없는팔하나가접목처럼돋히더니그팔에달린손은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룻바닥에메어부딪는다. 내팔은그사기컵을사수하고있으니산산이깨어진것은그럼그사기컵과흡사한내해골이다. 가지났던팔은배암과같이내팔로기어들기전에내팔이혹움직였던들홍수를막은백지는찢어졌으리라. 그러나내팔은여전히그사기컵을사수한다.     烏瞰圖 詩第十二號 / 오감도 시제12호 1934년 8월 4일 조선중앙일보   때묻은빨래조각이한뭉텅이空中으로날너떠러진다. 그것은흰비닭이의떼다. 이손바닥만한한조각하늘저편에戰爭이끗나고平和가왓다는宣傳이다. 한무덕이비닭이의떼가깃에무든때를씻는다. 이손바닥만한하늘이편에방맹이로흰비닭이의떼를따려죽이는不潔한戰爭이始作된다. 空氣에숯검정이가지저분하게무드면흰비닭이의떼는또한번이손바닥만한하늘저편으로날아간다. 때묻은빨래조각이한뭉텅이공중으로날라떨어진다. 그것은흰비둘기의떼다. 이손바닥만한한조각하늘저편에전쟁이끝나고평화가왔다는선전이다. 한무더기비둘기의떼가깃에묻은때를씻는다. 이손바닥만한하늘이편에방망이로흰비둘기의떼를때려죽이는불결한전쟁이시작된다. 공기에숯검정이가지저분하게묻으면흰비둘기의떼는또한번이손바닥만한하늘저편으로날아간다.     烏瞰圖 詩第十三號 / 오감도 시제13호 1934년 8월 7일 조선중앙일보   내팔이면도칼을든채로끊어져떨어젓다. 자세히보면무엇에몹시威脅당하는것처럼샛팔앗타. 이렇게하여일허버린내두개팔을나는燭臺세음으로내방안에裝飾하여노앗다. 팔은죽어서도오히려나에게怯을내이는것만갓다. 나는이런얇다란禮儀를花草盆보다도사량스레녁인다. 내팔이면도칼을든채로끊어져떨어졌다. 자세히보면무엇에몹시위협당하는것처럼새파랗다. 이렇게하여잃어버린내두개팔을나는촉대세움으로내방안에장식하여놓았다. 팔은죽어서도오히려나에게겁을내이는것만같다. 나는이러한얇다란예의를화초분보다도사랑스레여긴다.     烏瞰圖 詩第十四號 / 오감도 시제14호 1934년 8월 7일 조선중앙일보   古城앞에풀밭이있고풀밭위에나는帽子를벗어노앗다. 城위에서나는내記憶에꽤묵어운돌을매어달아서는내힘과距離껏팔매질첫다. 捕物線을역행하는歷史의슬픈울음소리. 문득城밑내帽子겻헤한사람의乞人이장승과가티서잇는것을나려다보앗다. 乞人은성밋헤서오히려내위에잇다. 或은綜合된歷史의亡靈인가. 空中을향하야노힌내帽子의깁히는切迫한하늘을부른다. 별안간乞人은율률한風彩를허리굽혀한개의돌을내帽子속에치뜨러넛는다. 나는벌써氣絶하얏다. 심장이頭蓋骨속으로옴겨가는地圖가보인다. 싸늘한손이내니마에닷는다. 내니마에는싸늘한손자옥이烙印되어언제까지지어지지안앗다. 고성앞에풀밭이있고풀밭위에나는모자를벗어놓았다. 성위에서나는내기억에꽤무거운돌을매어달아서는내힘과거리 껏팔매질쳤다. 포물선을역행하는역사의슬픈울음소리. 문득성밑내모자곁에한사람의걸인이장승과같니서있는것을내려다보았다. 걸인은성밑에서오히려내위에있다. 혹은종합된역사의망령인가. 공중을향하여놓인내모자의깊이는절박한하늘을부른다. 별안간걸인은율률한풍채를허리굽혀한개의돌을내모자속에치뜨려넣는다. 나는벌써기절하였다. 심장이두개골속으로옮겨가는지도가보인다. 싸늘한손이내이마에닿는다. 내이마에는싸늘한손자국이낙인되어언제까지지어지지않았다.     烏瞰圖 詩第十五號 / 오감도 시제15호 1934년 8월 8일 조선중앙일보   1 나는거울업는室內에잇다. 거울속의나는역시外出中이다. 나는至今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덜고잇다.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陰謨를하는中일까. 2 罪를품고식은寢床에서잣다. 確實한내꿈에나는缺席하얏고義足을담은軍用長靴가내꿈의白紙를더럽혀노앗다. 3 나는거울속에잇는室內로몰래들어간다. 나를거울에서解放하려고.그러나거울속의나는沈鬱한얼골로同時에꼭들어온다. 거울속의나는내게未安한뜻을傳한다. 내가그때문에囹圄되어잇드키그도나때문에囹圄되여떨고잇다. 4 내가缺席한나의꿈.내僞造가登場하지않는내거울. 無能이라도조흔나의孤獨의渴望者다. 나는드듸여거울속의나에게自殺을勸誘하기로決心하얏다. 나는그에게視野도업는들窓을가르치엇다. 그들窓은自殺만을爲한들窓이다. 그러나내가自殺하지아니하면그가自殺할수없음을그는내게가르친다. 거울속의나는不死鳥에갓갑다. 5 내왼편가슴心臟의位置를防彈金屬으로掩蔽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겨누어券銃을發射하였다.彈丸은그의왼편가슴을貫通하얏스나그의心臟은바른편에잇다. 6 模型心臟에서붉은잉크가업즐러젓다.내가遲刻한내꿈에서나는極形을바닷다. 내꿈을支配하는者는내가아니다. 握手할수조차업는두사람을封鎖한巨大한罪가잇다. 1 나는거울없는실내에있다. 거울속의나는역시외출중이다. 나는지금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덜고있다.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음모를하는중일까. 2 죄를품고식은침상에서잤다. 확실한내꿈에나는결석하였고의족을담은군용장화가내꿈의백지를더럽혀놓았다. 3 나는거울속에있는실내로몰래들어간다. 나를거울에서해방하려고,그러나거울속의나는침울한얼굴로동시에꼭들어온다. 거울속의나는내게미안한뜻을전한다. 내가그때문에영어되어있드키그도나때문에영어되어떨고있다. 4 내가결석한나의꿈.내위조가등장하지않는내거울. 무능이라도좋은나의고독의갈망자다. 나는드디어거울속의나에게자살을권유하기로결심하였다. 나는그에게시야도없는들창을가리키었다. 그들창은자살만을위한들창이다. 그러나내가자살하지아니하면그가자살할수없음을그는내게가르친다. 거울속의나는불사조에가깝다. 5 내왼편가슴심장의위치를방탄금속으로엄폐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겨누어권총을발사하였다. 탄환은그의왼편가슴을통과하였으나그의심장은바른편에있다. 6 모형심장에서붉은잉크가엎질러졌다. 내가지각한내꿈에서나는극형을받았다. 내꿈을지배하는자는내가아니다. 악수할수조차없는두사람을봉쇄한거대한죄가있다.     作者의 말 / 작자의 말 미발표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 십 년씩 떨어지고도 마음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 빠지게 놀고 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 봐야 아니 하느냐. 여남은 개쯤 써 보고서 시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二千點에서 三十點을 고르는데 땀을 흘렸다. 31년 32년 일에서 용대가리를 딱 꺼내어 놓고 하도들 야단에 배암 꼬랑지커녕 쥐꼬랑지도 못 달고 그냥 두니 서운하다. 깜박 신문이라는 답답한 조건을 잊어버린 것도 실수지만 李泰俊 朴泰遠 두 형이 끔찍이도 편을 들어 준 데는 절한다. 鐵 ― 이것은 내 새길의 암시요 앞으로 제 아무에게도 屈하지 않겠지만 호령하여도 에코 ― 가 없는 무인지경은 딱하다. 다시는 이런 ― 물론 다시는 무슨 다른 방도가 있을 것이고 위선 그만둔다. 한동안 조용하게 공부나 하고 따는 정신병이나 고치겠다.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 십 년씩 떨어지고도 마음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 빠지게 놀고 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 봐야 아니 하느냐. 여남은 개쯤 써 보고서 시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이천점에서 삼십점을 고르는데 땀을 흘렸다. 31년 32년 일에서 용대가리를 딱 꺼내어 놓고 하도들 야단에 배암 꼬랑지커녕 쥐꼬랑지도 못 달고 그냥 두니 서운하다. 깜박 신문이라는 답답한 조건을 잊어버린 것도 실수지만 이태준 박태원 두 형이 끔찍이도 편을 들어 준 데는 절한다. 철 ― 이것은 내 새길의 암시요 앞으로 제 아무에게도 굴하지 않겠지만 호령하여도 에코 ― 가 없는 무인지경은 딱하다. 다시는 이런 ― 물론 다시는 무슨 다른 방도가 있을 것이고 위선 그만둔다. 한동안 조용하게 공부나 하고 따는 정신병이나 고치겠다 [출처]김해경/ (金海卿) 2|작성자 헌책   ================================================================================== 오감도 - 시제3호  이상 싸움하는사람은즉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고또싸움하는사람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었기도하니까싸움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고싶거든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싸움하는것을구경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나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지아니하는것을구경하든지하였으면그만이다   오감도ㅡ시제3호                               이상 싸움하는 사람은/ 즉 싸움하지 아니하던 사람이고                                     또 싸움하는 사람은/ 싸움하지 아니하는 사람이었기도 하니까                                        싸움하는 사람이/ 싸움하는 구경을 하고 싶거든                                싸움하지 아니하던 사람이/ 싸움하는 것을 구경하든지                                                                     싸움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싸움하는 구경을 하든지                                          싸움하지 아니하던 사람이나/ 싸움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싸움하지 아니하는 것을 구경하든지/                                                                             하였으면 그만이다 =============================================이상, 이상 시 다시보기==================================== 꽃나무         벌판한복판에꽃나무하나가있소.근처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열심으로생각하는것처럼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나는막달아났소.한꽃나무를위하여그러는것처럼나는참그런이상스런흉내를내었소.     거울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최후(最後)       능금한알이墜落하였다.地球는부서질程度만큼傷했다. 最後. 이미如河한情神도發芽하지아니한다.     지비(祗碑) 2         안해는 정말 조류(鳥類)였던가 보다 안해가 그렇게 수척(瘦瘠)하고 가벼워졌는데도 날으지 못한 것은 그 손가락에 낑기웠던 반지 때문이다 오후(午後)에는 늘 분(粉)을 바를 때 벽(壁) 한 겹 걸러서 나는 조롱(鳥籠)을 느낀다 얼마 안가서 없어질 때까지 그 파르스레한 주둥이로 한 번도 쌀알을 쪼으려들지 않았다 또 가끔 미닫이를 열고 창공(蒼空)을 쳐다보면서도 고운목소리로 지저귀려 들지 않았다 안해는 날을 줄과 죽을 줄이나 알았지 지상(地上)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비밀(秘密)한 발을 늘 버선 신고 남에게 안보이다가 어느날 정말 안해는 없어졌다 그제야 처음 방(房)안에 조분(鳥糞)내음새가 풍기고 날개 퍼덕이던 상처(傷處)가 도배위에 은근하다 헤뜨러진 깃부시러기를 쓸어 모으면서 나는 세상(世上)에도 이상스러운 것을 얻었다 산탄(散彈) 아아 안해는 조류(鳥類)이면서 염체 닫과 같은 쇠를 삼켰더라 그리고 주저앉았었더라 산탄(散彈)은 녹슬었고 솜털 내음새도 나고 천근(千斤) 무게더라 아아     * 지비 : 이상(李箱)의 조어(造語)로서, 석비(石碑)의 돌을 '종이'로 환치한 것. 이로써 '기념(紀念)'에 대한 반어적 태도를 보여 준다.     가정(家庭)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문(門)을열려고안열리는문(門)을열려고.     운동(運動)         일층(一層)우에있는이층(二層)우에있는삼층(三層)우에있는옥상정원(屋上庭園)에올라서남(南)쪽을보아도아무것도없고북(北)쪽을보아도아무것도없고해서옥상정원(屋上庭園)밑에있는삼층(三層)밑에있는이층(二層)밑에있는일층(一層)으로내려간즉동(東)쪽으로솟아오른태양(太陽)이서(西)쪽에떨어지고동(東)쪽으로솟아올라서(西)쪽에떨어지고동(東)쪽으로솟아올라서(西)쪽에떨어지고동(東)쪽으로솟아올라하늘한복판에와있기때문에시계(時計)를꺼내본즉서기는했으나시간(時間)은맞는것이지만시계(時計)는나보담도젋지않으나하는것보담은나는시계(時計)보다는늙지아니하였다고아무리해도믿어지는것은필시그럴것임에틀림없는고로나는시계(時計)를내동댕이쳐버리고말았다.     명경       여기 한 페─지 거울이 있으니 잊은 季節에서는 얹은 머리가 瀑布처럼 내리우고 울어도 젖지 않고 맞대고 웃어도 휘지 않고 薔薇처럼 착착 접힌 귀 들여다 보아도 들여다 보아도 조용한 世上이 맑기만 하고 코로는 疲勞한 香氣가 오지 않는다. 만적 만적하는대로 愁心이 平行하는 부러 그러는 것 같은 拒絶 右편으로 옮겨앉은 心臟일망정 고동이 없으란 법 없으니 설마 그러랴? 어디 觸診…… 하고 손이 갈 때 指紋이 指紋을 가로 막으며 선뜩하는 遮斷 뿐이다. 五月이면 하루 한번이고 열번이고 外出하고 싶어 하더니 나갔던 길에 안 돌아오는 수도 있는 법 거울이 책장 같으면 한 장 넘겨서 맞섰던 季節을 만나련만 여기 있는 한 페─지 거울은 페─지의 그냥 表紙 ─       자화상(自畵像)             여기는도무지 어느나라인지 분간할수없다. 거기는 태고와 계승하는 판도가있을뿐이다. 여기는 폐허다. 피라밋드와같은 코가있다. 그구녕으로는 「유구한것」이드나들고있다. 공기는 퇴색되지않는다. 그것은선조가或은 내전신이 호흡하던바도그것이다. 동공에는창공이 의고하여있으니 태고의영상의약도다. 여기는아무기억도유언되어있지는않다. 문자가 닳아없어진석비처럼문명의 「잡담한것」이 귀를 그냥지나갈뿐이다. 누구는 이것이 떼드마스크(死面)라고 그랬다. 또누구는 떼드마스크는 도적맞었다고도 그랬다. 주검은서리와같이 내려있다 풀이말러버리듯이 수염은자라지않는채거칠어갈뿐이다. 그리고 천기모양에 따라 서입은 커다란소리로 외우친다----수류처럼       오감도(烏瞰圖)   시 제1호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시 제2호 나의아버지가나의곁에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니나는왜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시 제3호 싸움하는사람은즉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고또싸움하는사람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었기도하니까싸움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고싶거든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싸움하는것을구경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나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지아니하는것을구경하든지하였으면그만이다.   시 제4호 ㅡ환자의용태(容態)에관한문제 ㆍ1111111111 1ㆍ222222222 22ㆍ33333333 333ㆍ4444444 4444ㆍ555555 55555ㆍ66666 666666ㆍ7777 7777777ㆍ888 88888888ㆍ99 999999999ㆍ0 0000000000ㆍ 진단 0,1 26.10.1931 이상(以上) 책임의사(責任醫師) 이상(李箱)       시 제5호 전후좌우(前後左右)를재(除)하는유일(唯一)의흔적(痕跡)에있어서 익은불서(翼殷不逝)목불대도(目不大覩) 반왜소형(矮小形)의신(神)의안전(眼前)에아전낙상(我前落傷)한고사(故事)를유(有)함. 장부(臟腑)라는것은침수(浸水)된축사(畜舍)와구별(區別)될수있을는가.   시 제6호 앵무(鸚鵡) ※ 2필 2필 ※ 앵무는 포유류에 속하느니라. 내가2필을아아는것은내가2필을아알지못하는것이니라. 물론나는희망할것이니라. 앵무 2필 "이소저(小姐)는시사이상(李箱)의부인이냐""그렇다" 나는거기서앵무가노한것을보았느니라. 나는부끄러워서얼굴이붉어졌었겠느니라. 앵무 2필 2필 물론나는추방당하였느니라. 추방당할것까지도없이자퇴하였느니라. 나의체구는중추(中軸)를상실하고또상당히창량하여그랬든지나는미미하게체읍(涕泣)하였느니라. "저기가저기지""나""나의-아-너와나" "나" sCANDAL이라는것은무엇이냐."너""너구나" "너지""너다""아니다너로구나" 나는함뿍젖어서그래서수류(獸類)처럼도망하였느니라. 물론그것을아아는사람혹은보는사람은없었지만그러나과연그럴는지그것조차그럴는지.     시 제7호 구원적거(久遠謫居)의지(地)의일지(一枝)일지(一枝)에피는현화(顯花)특이(特異)한사월(四月)의화초(花草)·삼십륜(三十輪)·삼십륜(三十輪)에전후(前後)되는양측(兩側)의명경(明鏡)·맹아(萌芽)와같이희희(戱戱)하는지평(地平)을향(向)하여금시금시낙백(落魄)하는만월(滿月)·청간(淸澗)의기(氣)가운데만신창이(滿身瘡痍)의만월(滿月)이의형당(刑當)하여혼륜(渾淪)하는·적거(謫居)의지(地)를관류(貫流)하는일봉가신(一封家信)·나는근근(僅僅)히차대(遮戴)하였더라·몽몽 한월아(月芽)·정밀(靜謐)을개엄(蓋掩)하는대기권(大氣圈)의요원(遙遠)·거대(巨大)한곤비(困憊)가운데의일년사월(一年四月)의공동(空洞)·반산전도(槃散顚倒)하는성좌(星座)와성좌(星座)의천열(千裂)된사호동(死胡洞)을포도(逋逃)하는거대(巨大)한풍설(風雪)·강매·혈홍(血紅)으로염색(染色)된암염(岩鹽)의분쇄(粉碎)나의뇌(腦)를피뢰침(避雷針)삼아침하반과(沈下搬過)되는광채(光彩)임리한망해(亡骸)·나는탑배(塔配)하는독사(毒蛇)와같이지평(地平)에식수(植樹)되어다시는기동(起動)할수없었더라·천량(天亮)이올때까지   시 제8호 일해부(ㅡ 解剖) 제일부시험第一部試驗 수술대手術臺 일一 수은도말평면경水銀塗抹平面鏡 일一 기압氣壓 이배二倍의평균기압 온도溫度 개무皆無 위선마취爲先痲醉된정면正面으로부터입체立體와입체立體를위爲한입체立體가구비具備된전부全部를평면경平面鏡에영상映像시킴. 평면경平面鏡에수은水銀을현재現在와반대측면反對側面에도말이전塗沫移轉함. (광선침입방지光線侵入防止에주의注意하여)서서徐徐히마취痲醉를해독解毒함. 일축철필一軸鐵筆과 일장백지一張白紙를지급支給함.(시험담임인試驗擔任人은피시험인被試驗人과포옹抱擁함을절대기피絶對忌避할것)순차수술실順次手術室로부터피시험인被試驗人을해방解放함.익일翌日.평면경平面鏡의종축縱軸을통과通過하여평면경平面鏡을이편二片에절단切斷함. 수은도말이회水銀塗抹二回. ETC 아직그만족滿足한결과結果를수득收得치못하였음. 제이부시험第二部試驗 직립直立한평면경平面鏡 일一 조수助手 수명數名 야외野外의진공眞空을선택選擇함. 위선마취爲先痲醉된상지上肢의첨단尖端을경면鏡面에부착附着시킴. 평면경平面鏡의수은水銀을박락剝落함. 평면경平面鏡을후퇴後退시킴.(이때영상映像된상지上肢는반드시초자硝子를무사통과無事通過하겠다는것으로가설假說함)상지上肢의종단終端까지. 다음수은도말水銀塗抹.(재래면在來面에)이순간공전瞬間公轉과자전自轉으로부터그진공眞空을강차降車시킴. 완전히이개二個의상지上肢를접수接受하기까지.익일翌日.초자硝字를전진前進시킴.연連하여수은주水銀柱를재래면在來面에도말塗抹함.(상지上肢의처분處分)[혹은멸형滅形]기타其他.수은도말면水銀塗抹面의변경變更과전진후퇴前進後退의중복重複등等. ETC 이하以下미상未詳 진단 0,1 26.10.1931 책임의사 이상   시 제9호 ㅡ 총구 매일每日같이열풍烈風이불더니드디어내허리에큼직한손이와닿는다.황홀恍惚한지문指紋골짜기로내땀내가스며드자마자쏘아라.쏘으리로다.나는내소화기관消化器管에묵직한총신銃身을느끼고내다물은입에매끈매끈한총구銃口를느낀다. 그리더니나는총銃쏘으드키눈을감으며한방총탄銃彈대신에나는참나의입으로무엇을내배앝었더냐.     시 제10호 ㅡ 나비 찢어진벽지壁紙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그것은유계幽界에낙역絡繹되는비밀秘密한통화구通話口다.어느날거울가운데의수염鬚髥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날개축처어진나비는입김에어리는가난한이슬을먹는다.통화구通話口를손바닥으로꼭막으면서내가죽으면앉았다일어서드키나비도날아가리라.이런말이결決코밖으로새어나가지는않게한다.   시제11호 그사기컵은내해골(骸骨)과흡사하다. 내가그컵을손으로꼭쥐엿슬때 내팔에서는난데없는팔하나가접목(接木)처럼도치더니그팔에달린손은 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룻바닥에메여부딧는다. 내팔은그사기컵을사수(死守)하고잇스니산산(散散)이깨어진것은그럼그사기컵과흡사한내해골(骸骨)이다. 가지낫든팔은배암과같이내팔로기어들기전(前)에내팔이혹(或)움즉엿든들홍수(洪水)를막은백지(白紙)는찌저젓으리라. 그러나내팔은여전(如前)히그사기컵을사수(死守)한다.   시 제12호 때묻은빨래조각이한뭉텅이공중空中으로날라떨어진다.그것은흰비둘기의떼다.이손바닥만한한조각하늘저편에전쟁戰爭이끝나고평화平和가왔다는선전宣傳이다.한무더기비둘기의떼가깃에묻은때를씻는다.이손바닥만한하늘이편에방망이로흰비둘기의떼를때려죽이는불결不潔한전쟁戰爭이시작始作된다.공기空氣에숯검정이가지저분하게묻으면흰비둘기의떼는또한번이손바닥만한하늘저편으로날아간다.   시 제13호 내팔이면도칼을든채로끊어져떨어졌다.자세히보면무엇에몹시위협威脅당하는것처럼새파랗다.이렇게하여잃어버린내두개팔을나는촉대燭臺세움으로내방안에장식裝飾하여놓았다.팔은죽어서도오히려나에게겁怯을내이는것만같다.나는니러한얇다란예의禮儀를화초분花草盆보다도사랑스레여긴다.     시 제14호 고성앞에풀밭이있고풀밭위에나는모자를벗어놓았다.성위에서나는내기억에꽤무거운돌을매어달아서는내힘과거리껏팔매질쳤다.포물선을역행하는역사의슬픈울음소리.문득성밑내모자곁에한사람의걸인이장승과같니서있는것을내려다보았다.걸인은성밑에서오히려내위에있다.혹은종합된역사의망령인가.공중을향하여놓안모자의깊이는절박한하늘을부른다.별안간걸인은율률한풍채를허리굽혀한개의돌을내모자속에치뜨려넣는다.나는벌써기절하였다.심장이두개골속으로옮겨가는지도가보인다.싸늘한손이내이마에닿는다.내이마에는싸늘한손자국이낙인되어언제까지지어지지않았다.   시 제15호 1 나는거울없는실내室內에있다.거울속의나는역시외출중外出中이다.나는지금至今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덜고있다.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음모陰謨를하는중中일까.   2 죄罪를품고식은침상寢床에서잤다.확실確實한내꿈에나는결석缺席하였고의족義足을담은군용장화軍用長靴가내꿈의백지白紙를더럽혀놓았다.   3 나는거울속에있는실내室內로몰래들어간다.나를거울에서해방解放하려고.그러나거울속의나는침울沈鬱한얼굴로동시同時에꼭들어온다.거울속의나는내게미안未安한뜻을전傳한다.내가그때문에영어囹圄되어있드키그도나때문에영어囹圄되어떨고있다.   4 내가결석缺席한나의꿈.내위조僞造가등장登場하지않는내거울.무능無能이라도좋은나의고독孤獨의갈망자渴望者다.나는드디어거울속의나에게자살自殺을권유勸誘하기로결심決心하였다.나는그에게시야視野도없는들창窓을가리키었다.그들창窓은자살自殺만을위爲한들창窓이다.그러나내가자살自殺하지아니하면그가자살自殺할수없음을그는내게가르친다.거울속의나는불사조不死鳥에가깝다.   5 내왼편가슴심장心臟의위치位置를방탄금속防彈金屬으로엄폐掩蔽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겨누어권총券銃을발사發射하였다.탄환彈丸은그의왼편가슴을관통貫通하였으나그의심장心臟은바른편에있다.   6 모형심장模型心臟에서붉은잉크가엎질러졌다.내가지각遲刻한내꿈에서나는극형極形을받았다.내꿈을지배支配하는자者는내가아니다.악수握手할수조차없는두사람을봉쇄封鎖한거대巨大한죄罪가있다.       .  
804    詩의 넋두리 댓글:  조회:4446  추천:1  2015-12-31
                                    전위적인(avantgarde) 시(시론)의 비극적 종말                                                                                                                                                                                             - 최 이 인   * 글 머리   우리 한국의 현대 문학사를 되돌아 보면, 해방후(1950년대) 조 향 시인을 중심으로 “초현실주의” 시작품 활동이 있었고, 나중에(1960년대 이르러) 김춘수 시인을 대표로 하는 “무의미 -탈관념” 시 운동이 있었다. 그 뒤를 이어 문덕수 시인이 사물시 이론을 근거로 시작품을 내놓았었는데, 최근에(2000년대) 이르러 월간 “詩文學“지와 ”현대시인협회“의 일부 회원들을 중심으로 ”디지털 시“ 운동에 이어서 ”하이퍼 시“ 운동을 적극 펼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라 안에서 시작품의 창작활동이 오로지 시문학 본연의 전통에만 매달려서 천편 일률적으로 고정되어 있다면, 말이 옳든 그르든 예술활동의 정체성을 느끼게 해줄 것이고, 진부한 일상성에 싫증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탈(脫) 모던이즘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적극적으로 실험적인 시짓기를 통해 시의 소재와 내용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또 한편으로는 이른 바 아방가르드(avantgarde)라고 하는 전위적인 시작활동을 통해 현대적 사고의 흐름에 부응하며 인터넷 정보화시대의 기술과 그것을 이용하는 젊은 세대의 독자 수준에 부응하는 전달 방식을 찾아서 다양한 방향으로 시도해 보는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여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하고 거침없는 시 창작활동에 비판적인 검토를 수행하여 문학 정신의 적절성을 따져보며 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넓은 철학적 식견을 가지고 그 운동 경향에 반성할 여건을 마련해주지 않는다면, 언어의 예술인 시문학이 예술창작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실로 겉잡을 수 없이 “무-의-미”한 “말놀이, 언어의 유희”에 그칠 위기에 빠지고, 가뜩이나 독자가 떠나간 시 마당에서 시인이라는 이들만이 더욱 외롭게 웅크리고 서로만 바라보고 살 위험이 도사리게 될 것이란 사실은 많이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저들 곧 “초현실주의 시- 무의미(탈관념) 시- 디지털 시- 하이퍼 시” 라는 전위적인, 앞서나가는, 시작(詩作) 운동을 주의깊이 관찰하면, 주장하는 사람이나 시기의 앞뒤 그리고 사용된 소재와 용어만 조금 다를 뿐, 심상운시인의 주장처럼 “탈관념을 지향한다”는*1) 관점에서 한 통속에 넣어놓고 분류를 해도 좋을 만큼, 많은 닮은 꼴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것들이 정신병환자들을 많이 상대해본 시인의 체험적 입장에서 냉철하게 분석해 볼 때, 정신병 환자 정확하게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이른 바 자유연상에 의한 환상적 이미지들로 풀어놓는 홀로 떠들음, 중얼거림, 지껄임 짓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아래서 이 논평문은 먼저 이른바 “무의미(탈관념) 시-초현실주의 시- 디지털 시- 하이퍼 시”운동을 주도한 시인들의 주장을 제시해서 그 유사한 점을 드러내어 한 통속에 넣어 분류할 수 있음을 밝힌다. 다음으로 그 주장하는 이론과 견해 그리고 시작품들이 단순한 의구심을 넘어서, 정신분열증 환자의 증상과 표현에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아 쉬 구별을 할 수가 없을 정도라는 사실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시(문학) 일반의 보편적 정신과 이상을 환기하면서 그에 반성의 자리를 마련해본다. 이 때 각 시(詩)운동의 주의나 주장, 발생 연원(淵源)이나 주도하는 시인들의 활동과 추구하는 이념 그리고 작품에 관련한 자세한 논의는 주제의 목표를 벗어나는 것이라 판단하여 최소한의 언급에 그치는 것으로 한계를 설정한다.  1.무 의미(탈 관념) 시, 초현실주의 시 , 디지털 시, 하이퍼 시의 공통점   무 의미(탈 관념) 시, 초현실주의 시 , 디지털 시, 하이퍼 시는 얼핏 그 제명(題名)만으로 보면 어떤 공통점이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국제적으로 출발한 초현실주의부터 최근에 국내에서 대두한 디지털과 하이퍼-라는 IT기술용어의 낯설음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고찰하면 이 모두를 한 영역(통속)안에 분류할 수 있는 공통의 근거를 찾아낼 수 있는 데, 무엇보다 그러한 시운동을 펼치며 적극적인 주장을 내세우는 시인, 문학평론가들의 입을 통해 직접 그 공통점을 모아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겠다.   하이퍼 시운동을 주도하는 (시인, 문학평론가) 심 상운은 “극소수의 시인들이 관념을 거부하는 시운동을 펼치고 있다”면서 ”관념이 침범할 수 없는 의미의 제로 포인트 지점영역으로서“, ① 언어유희의 무의미의 시 ②초현실주의 시 ③ 순수이미지의 사물시 ④ 21세기 아방가르드 전면에 선 디지털리즘 시를 들었다. 여기에다가 그이는 ⑤ 하이퍼 시라는 것을 포함시킨다.*2)   덧붙이기를: [...] 일상생활에 밀착된 사실적인 이미지와 환상적이고 초월적인(-초현실적인;글쓴이) 이미지의 뒤섞임을 즐기고자 한다. 이 뒤섞임은 그들에게 관념이나 의미를 넘어선(-무의미:글쓴이) 비약의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환상적인 디지털의 감각을 선호하는(-디지털리즘:글쓴이) 현대시의 변화로 파악된다. 따라서 그들의 경향은 과거의 인습적인 사유나 관념에 대한 거부,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것보다 기존관념에 집착하지 않을 때 더 큰 세계가 열리게 된다. 그것이 살아 움직이는 탈관념의 세계이며, 현실과 상상이 결합된 새로움으로 가득한 하이퍼(hyper)의 세계다. 따라서 하이퍼시에서 중요한 것은기존관념으로부터 과감한 탈출과 창의적인 상상력의 발현이다. 거기에는 우주적인 개안이 들어있다.*3) 곧 하이퍼 시라는 것이 앞의 세가지 유형의 시 경향과 공통하면서도 오히려 모두를 통합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와같은 시각에서 하이퍼 시론을 펼치며 주장을 내세우는 이들의 입장을 덧붙이면 다음과 같다:   (시인, 문학평론가) 손해일의 주장*4): 하이퍼 시가 음소, 단어, 문장, 의미 단락 간 마디마디에 해체와 단절을 거치고 이를 취사, 선택, 가공해 복합적으로 재구성하는 하이퍼적 기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상상, 공상, 환상을 망라하고,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가상현실도 넘나드는 첨단 글쓰기. [...]크고 작은 마디인 시어와 행과 연, 의미단락 등 기본 유니트(unit)들이 거미망처럼 하이퍼링크(hyper link)로 연결돼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을 이룬다. [...]비논리적, 비선조직이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첨단 글쓰기. [,,,]난해한 암호풀이 하듯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골똘히 캐기보다는 디지털매체의 그림 감상이나 댓글달기처럼 비선형적, 비선조직으로 독자 나름대로 상상하거나 언어이전의 언어로 작자가 보여주는 대로 그저 따라가 볼 일이다. 이 시에서의 하이퍼링크는 ·의식의 흐름을 매개로 시공간 순서없이 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사라지는 이미지의 집합적 덩이들이다.   (시인, 문학평론가) 조 명 제 의 주장*5): [...]우리 현대시가 여전히 ‘2천여 년 전 예수나 석가 시대의 비유, 상징의 기법으로 정서와 관념을 표현해’ 오고 있는 현실에 일침을 가하며 하이퍼텍스트 시운동에 과감히 뛰어든 김규화 시인은 디지털 시대의 하이퍼적 시쓰기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해 가고 있어 주목된다. [...]의식과 무의식, 시공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인간의 뇌 구조의 복잡한 그물망처럼 하이퍼시는 합리주의의 근본인 인과적 논리성이나 순차적 질서, 혹은 위계적 시스템을 벗어나 탈중심의 리좀(rhizome) 형태를 구축하며, 일방향적 단선구조에서 쌍방향적 혹은 다방향적 다선구조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관계론적 체계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유연상과 공상적 상상력으로 현실과 비현실의 가상공간을 가릴 것 없이 점핑해 가며 텍스트의 마디들을 연결짓거나 병치, 혹은 나열 등의 방법으로 공존시킴으로써 기계론적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한한(4차원적) 상상력과 환상의 세계를 맛보게 한다.   (시인,목사) 최 진연의 주장*6): 하이퍼시를 쓰는 시인들이 추구하는 바는, 기본적으로 탈 관념적인 사물시와 같은 입장에서 시를 쓰되, 그 구성 양식에 있어서 초월, 건너뜀의 기법을 쓴다. 연과 연, 또는 한 연 속의 문장과 문장을 인과적 관계의 논리성 없이 구성하며, 상상력의 비약에 의해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초월한 언어 단위(unit)들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Hyper하다고 하겠다. [...]아무튼 상관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이미지들의 불연속적 결합이 하이퍼시의 중요한 특성이다. [...]논리적 인과관계가 없는 이미지들은 연과 연, 행과 행은 순서를 바꿔놓아도 상관없다. 이미지 단위들이 각기 독립성을 갖기 때문이다. [...]의미론적 혹은 정서적 통일성을 찾을 수 없는 게 하이퍼시의 특징이다.그러나 화자의 의식 혹은 무의식의 흐름이 시의 저변에 깔려 있으며, 이것이 하이퍼텍스트문학에서 링크 역할을 하는 유사한 소리나 단어, 구문의 반복 등과 함께 연상에 의해 시의 통일성을 유지해준다. [...]이 가상현실의 세계로 문학적 공간을 상상에 의해 무한하게 확대하자는 것이다. 과거 시적 이미지는 현실세계를 따오는(Sampling) 데 그쳤으나, 하이퍼시에서는 그 이미지들이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드는 자유의 자성(自性)을 갖게 되었다. 단순한 상상을 넘어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공상에 의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경계가 무너지고, 공간도 자기로부터 세계와 우주에까지 제한 없이 넘나드는 이미지창출을 보여준다.   이로써 우리는 위의 시들이 연과 연, 또는 한 연 속의 문장과 문장을 인과적 관계의 논리성 없이 구성하며, 무의미한 탈관념에 의존하여 현실을 떠난 환상적 이미지들의 자동기술적 연결에 의하여 상상, 공상, 환상을 망라하고,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가상현실도 넘나드는 글쓰기라는 사실에 의해 한 통속에 넣을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짓기가 정신병 환자 정확하게 말하면 정신분열증 환자의 (보통 “넋두리”라고 불리는) 특정 증상과 아주 유사하다고 보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2. 정신분열병 증상의 특이성    나는 여러 해 전에 어느 정신병 환자 요양원에서 상당기간 종교활동과 상담 책임자로 근무한 바 있다. 당시 열악한 수용시설에서 300여명에 가까운 천차 만별의 정신병환자들은 상태나 학력과 나이와 남녀의 가정배경에서 각양각색으로 대부분은 우울증 (manic depressive illness, 躁鬱症)을 함께 가지고 있었는데 15% 내외로(30여명) 이른바 조(躁)증 환자가 있었다. ( 내가 여러 정신병 의원과 정신병요양소를 돌아보며 확인한 바로는, 정신병 환자들 대부분은 말이 없이 우울한 상태로 지내나,- 그들 중 심한 중증의 환시 환청 환자들을 빼고- 약 20 % 내외는 홀로 돌아다니며 지껄이고 떠들었다.) 이들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혼자 중얼거리고 지껄였다(떠들었다). 이들 가운데서도 환청(幻聽 Auditory hallucinations,홀로 이상한소리를 듣고 대꾸하며 중얼거림)과 환시(幻視 visual hallucination,홀로 이상한 현상을 보고 대꾸하며 중얼거림)에 고통을 받는 심한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실내에 갇혀 지내야 했으나, 홀로 중얼거리고 지껄여대는 증상만 있지 다른 활동에는 별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이들은 밖의 취사장에서 일을 하며 잔 심부름도 맡곤 하였다. 취사장에서 일을 하는 이들 가운데 강씨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온순한 성격으로 말이 거의 없고 어쩌다 물어보는 말에만 간단히 대답을 하는 이였으나(- 꼭 조울증 환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동생은 간 밤 취침전에 모든 수용자들에게 관리실에서 주는 신경안정제의 약기운이 떨어질 무렵인 오전 10경 부터는 저 혼자서 또는 옆에 사람이 있으면 제 말을 들어주건 말건 그 쪽 사람을 향해 (홀로) 말하고 뇌까리기를 계속하는 이였다. 위쪽 병동의 취사장과 아래쪽 병동의 취사장을 오가며 심부름을 해주는 21살의 여성 김귀선은 하루 종일 홀로 중얼거리고 다녔으나 말 소리가 작아서,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았던데 반해, 이 28살 된 강형구의 ‘홀로 중얼거림’은 이른바 “초현실주의(슈르 레알리즘) 시” 라고 할 수 있는 것, 또는 무 의미시라고도 불리우는 것 과 아주 비슷해서 (오늘날의 하이퍼시라는 것과 거의 똑같다) 놀라움을 주었다.   먼저 강 씨의 “지껄임(넋두리)” 을 여기 옮기고 한 마디로 결론을 맺기 이전에*7), 강씨가 지껄인 말씨에서 진단할 수 있었던 정신분열병 환자의 병적증상으로서 일반적으로(사전적으로) 알려진 조증(躁症) 환자의 특이성을 알아보자*8).   정신분열병 환자의 일반적 증상: 정신분열병은 환자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증상을 나타내는 듯하지만 최대공약수로 집약해 보면, 사고과정(思考過程), 즉 연상(聯想)을 하는 데 있어서 정상적인 논리과정이 파탄되어 논리적 연결을 잃거나, 토막토막으로 단절되며, 감정표현의 조화가 안 되고, 기분과 생각 사이가 유리되어 일치되지 않는다. 감정이 둔마되며 양면(兩面)의 극단적인 감정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이런 기본적인 증상의 복합으로 복잡한 증상이 생겨나서, 정상인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묘한 사고와 행동 등의 증세를 나타내게 된다. *정신분열증 특징:(1) 망상 (2) 환각 (3) 와해된 언어 (예: 대화의 주제에서 빈번한 탈선 또는 지리멸렬한 지껄임) (4) 심하게 와해된 행동이나 긴장증적 행동 (5) 음성증상, 즉 정서적 둔마, 무 논리증 * 정신병중 조(躁)증 환자의 증상:조증 환자는 흥분되어 있고 이야기가 많으며 과잉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말할 때 목소리가 크고 비정상적인 사고의 흐름으로 심한 경우 말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망상이나 환각이 나타나기도 한다. (1) 팽창된 자존심 또는 심하게 과장된 자신감 (2)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거나 계속 말을 하게 됨 (3) 대화와 사고의 비약 또는 사고가 연달아 일어나는 의식적 -무의식적(잠재적) 표출  3. 위 두 부류의 동일성 및 유사성    위의 1 (하이퍼 시 짓기를 주창하는 시인들의 요지)과 2 (정신분열증 환자의 일반적증상과 보기로 든 강씨의 특이성)에서 각각 밑줄을 그은 데를 비교하여 보면 핵심적인 상태나 증상에서 양쪽은 대부분 일치함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최대한 간추려 적시한 2항의 정신분열증 환자의 증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좀 더 설명을 붙여서 ( 하이퍼 시적 용어로) 해설해 풀어보면 다음과 같은 1항의 증상과 같은 상태를 유추할 수 있다.   *환상적이고 초월적인 이미지의 뒤섞임. 관념이나 의미를 넘어선 비약의 세계, 현실과 상상이 결합된 새로움으로 가득한 세계, 기존관념으로부터 과감한 탈출과 창의적인 상상력의 발현. 음소, 단어, 문장, 의미 단락 간 마디마디에 해체와 단절을 거치고 상상, 공상, 환상을 망라하고,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가상현실도 넘나드는, 비논리적, 비선조직이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첨단 말하기. * 나름대로 상상하거나 언어이전의 언어. 의식의 흐름을 매개로 시공간 순서없이 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사라지는 이미지의 집합적 덩이들. 의식과 무의식, 시공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인간의 뇌 구조의 복잡한 그물망처럼 합리주의의 근본인 인과적 논리성이나 순차적 질서를 벗어남, *자유연상과 공상적 상상력으로 현실과 비현실의 가상공간을 가릴 것 없이 점핑해 가며 마디들을 연결짓거나 병치, 혹은 나열 등의 방법으로 공존시킴으로써 기계론적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한한(4차원적) 상상력과 환상의 세계를 맛보게 함. *초월, 건너뜀의 기법으로 단락과 단락, 또는 한 단락 속의 말과 말을 인과적 관계의 논리성 없이 구성하며, 상상력의 비약에 의해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초월한 언어 들로 구성 *단락 상호간에 별 관계가 없는 이미지들. 거기에 ‘건너 뜀 초월’이 있게 된다. [...]아무튼 상관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이미지들의 불연속적 결합 *논리적 인과관계가 없는 이미지들은 순서를 바꿔놓아도 상관없다. 이미지 단위들이 각기 독립성을 갖기 때문이다. [...] 의미론적 혹은 정서적 통일성을 찾을 수 없는 특징 *유사한 소리나 단어, 구문의 반복 등과 함께 연상, 가상현실의 세계로 공간을 상상에 의해 무한하게 확대, 이미지들이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드는 자유의 자성(自性)을 갖게 되었다. 단순한 상상을 넘어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공상에 의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경계가 무너지고, 공간도 자기로부터 세계와 우주에까지 제한 없이 넘나드는 이미지창출을 보여준다.   의학사전에 기술된 정신분열증 환자의 특이성에 이렇게 조금 살을 붙여 놓으면, 우리는 양쪽(위 1과 2)의 차이를 얼른 구별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흡사하다거나 형식 및 방법론적 동일성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도대체 그 정신분열증 환자 강씨와 같은 사람들의 지껄임이 어떠하기에 이들 시인들의 시작품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일까 ? 굳이 앞에서 그이의 뇌까림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다음에서 인용한 시 작품들을 지은 시인들의 이름만 빼고 보면, 그 정신병 환자의 지껄임과 말 그대로 형식에 있어서 거의 대동소이(大同小異)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정신 분열증 환자의 독백을 옮겨보겠다.     나팔 꽃이 하늘로 솟아오른다. 오늘은 참 많이 컸다. 시집갈만하다 그쟈? 팔이 아플텐데, 나비를 잡고 싶은가 보다 나팔 소리가 시끄럽다. 조용히 좀 하래이 나비가 기뻐서 하늘로 춤추고 올라간다 그쟈?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끓어오른다. 어디 저 먼 나라로 여행가나 보다. 나도 엄마랑 놀러가고 싶대이. 비행기가 나비를 싣고 서해바다를 지나간다 우리도 신나게 날아간다. 중국 땅에는 짜장면이 덮여있다. 모택동이 좋아해서 맛있게 먹었다. 인도의 갠지스강을 지나갈 때 시체 타는 냄새를 맡는다. 죽으면 지옥불에 왜 심판받는다고 안카나? 히말라야 눈덮힌 산을 넘어서 나비는 추워서 얼어죽고, 온 땅을 하얗게 덮었다. 몬살겠다. 아라비야 사막으로 가자. 덥다 옷벗고 자자. 않좋나? 네 치마속이 더 뜨겁다. 너도 추우면 못살기라. 그쟈? 지중해는 하늘보다 더 푸르다. 푸른 것은 깨끗하다고 안카나? 제우스 신전에는 깨끗한 사람만 들어간다카이. 물속에서 빨가벗고 고래처럼 놀아보자. 너도 몸 좀 깨긋이 씻고 흰 옷만 입어라. 빤스가 되게 더럽다. 네가 신전에 절 할 줄을 모르니 사람들이 미쳤다고 안카나? 이태리 로마에 곧 도착한다. 바티칸 사원에 너도 가고 싶으면 돈 좀 내놔라. 호떡이라도 사먹고 배불러야 걷지 굶고는 거기 못간다. 국수좀 많이 끓이라 내일에는 스페인에 도착한다. 소싸움은 볼 것 이 없다 안카나? 투우사놈들은 나쁜 놈들이데이. 동물 학대하는 것은 동물보호법 3조에 따라 형법으로다가 의법 처치해야 한다. 민법은 구리다. 그쟈? 말을 타고 달려가야 할텐데 ...말 좀 찾아봐라. 힘센 말 저기 온다. 그만 됐다....   위와 같이 “그쟈? ... 안카나?”를 자주 후렴구처럼 넣어서, 운율감 넘치게 이른바 하이퍼 링크로 연결되는 텍스트처럼 끝없이 이미지를 이어서 사람의 잠재의식의 표출이나 자동기술적으로 역동적 상상력의 세계를 아낌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하이퍼 싯귀를, 초현실주의 시(싯귀)를, 디지털 시를, 무의미 탈관념 시작품(?)을 만들어 냈다.   다음은 2010년 봄 철 2개월 쯤 서울 남산 도서관 정문 마당앞 벤취옆에 거의 매일 서서 (홀로 중얼거리는 수준이 아니라 마치 꽤 큰 목소리로 연설하듯이) 홀로 떠들어대던 42살의 서울 대방동에서 산다던 김형문이라고 자신을 밝힌( 겉보기 멀쩡한 회사원 같던 ) 한 사내의 지껄임을 간략히 옮긴다.  내일의 날씨는 전국적으로 맑겠고 곳에 따라 소나기가 내리는 곳도 있겠습니다.   시베리아 대륙의 건조한 대기와 북 태평양 고기압이 부딪쳐서 한반도에는 살벌한 전쟁의 기운이 감돌겠고 봄 기운도 점차 북상하면서 개나리 진달래 철쭉 꽃 소식이 온 땅을 무섭게 수놓겠습니다. 새학기 등교하는 우리 어린이들의 책가방에서 꽃들이 새싹을 피우기 다투는데 새 나라의 어린이는 꽃나무에 앉아서 지저귀는 새들, 트로트로다가 노래를 부르며 전진하겠습니다. 김일성이 죽은후 북반부에서는 김정일 장군님이 위대한 교시를 받들고 강성대국 건설에 한창인데 옆 벤취의 두 젊은 남녀 대학생은 오늘도 공부를 않하고 연애에 열을 올리며 입술을 새빨갛게 빨아대서 피가 흐르고 사회주의 와 자본주의의 개념조차 모른채 자유민주주의의 통일 정책에 무조건 찬성할 따름임니다. 봄이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내 마음속에도 피었는데 이명박 정권의 친미 정책을 나는 적극적으로 지지한 탓에 일찍이 시들어버리고, 북한의 사주를 받은 학생들에 의해 민주투사가 되어 조만간 감방으로 사라지겠습니다. 삼천만이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좃나발 불지마 아버지는 노조운동에 다리 부러져 북해도 탄광에 끌려가고 배가 곺아도 신나게 별보기 운동을 했고, 비가 오고 날 흐리면 동해 바다로 가서 파도와 애기를 나눴습니다. 아 다시 못 올 이 땅의 내 청춘... 다음에는 청춘이 좀먹어서 대머리가 다 된 김형문 기자가 빠리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치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처럼 형식은 시사 보도적이었으나, 내용의 갖춤과 마디 마디는 저 1의 주장자들의 바로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 여기서 다시 정신분열증 환자의 병 증상과 “하이퍼” 시론을 펴는 위 네 사람들의 주장하는 요지와 방법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이다.   다음에 각각의 시론들을 인용된 시작품을 중심으로 논평한다.  4.무 의미(탈 관념) 시, 초현실주의 시 , 디지털 시, 하이퍼 시(시론) 비판  1.무 의미- 탈 관념 시론   도대체 의미가 없는 시와 관념을 벗어난 시라는 것이 존재할 수가 있단 말인가?   시라는 문학적 활동을 떠나서도, 언어와 사고행위를 통한 정상적인 사람의 의식의 세계에서조차 불가능하고 말이 성립되지 않는(語不成說) 이 무의미와 탈관념이라는 언어행위를 분석해 보는 것이 먼저 터닦아놓을 일이 되겠다.   “의미”가 무엇인가? 언어학적으로 의미론에 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반 상식에 따른 보편적 통용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의미란 사전적으로 우리말 “뜻”의 한자어이다. 사람이 “말(언어행위)”을 할 때 형식은 소리(발성)와 내용(지시)을 갖는다. 이 경우 내용(지시)이 뜻(의미)이다. 특별한 경우에 소리 자체 만으로도 고저 강약의 발성에 따라 지시기능을 하기 때문에 소리도 뜻을 갖는다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언어”는 반드시 의미를 갖는다. 말(언어)를 문자로 표현할 때 형식은 문자기호와 내용(지시)으로 구성되는데 내용이 바로 뜻이지만, 교통신호처럼 사회적 약속과 같은 특별한 경우에는 문자 기호만으로도 뜻이 된다. 따라서 사람이 행하는 모든 표현수단은 뜻(의미)을 갖는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의미가 없다(무의미)”라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사람이 의식활동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의미의 부여이고 의미의 추구의 행동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 이미는 목적을 지향하고 욕구하는 “의도”나 “의지”와는 다른 것이다.   “관념(觀念)”이란 무엇인가? 사전에 따른 일차적인 뜻은 “사고”, 생각(영어 idea, 동사 think, 독일어 denken)“이다. 한자말로도 본것(觀)을 마음속에 담아두기(念)이다.   사람이 대상(객체)을 감각에 의해서 받아들인 것(감각 자료)을 생각(사고)하여 정리 구별해 놓는 것을 말한다. 사고하여 구별하고 정리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언어에 의해서 수행한다. 언어로 수행한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의미있게 분별한다는 것이다. 만일 언어로 감각자료를 구별하고 구분하여 우리 뇌속에서 정리를 하지 않는다면(곧 관념화가 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단지 막연한 감각(眼耳鼻舌身에 의한 느낌)에 지나지 않으며, 지렁이가 밟으면 꿈틀거리거나 짐승이 본능적으로 먹이를 보면 달라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관념이 없으면 의미가 형성이 않되고, 의미가 없으면 관념이 생성이 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탈관념(관념을 벗어나기)”하겠다고 한다면 의식적 활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곧 죽겠다는 것)이거나 언어를 모르는 짐승이나 하등 동물이 되겠다고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의미가 없고(무의미) 관념을 떠난(탈관념) 시를 쓴다고 하고 그렇게 쓰자는 시인이 있다.  가. 그 주장자와 시작품   김춘수 시인은 「事物詩와 觀念詩의 問題」*9)에서 사물을 감각적으로 그대로 수용해서 쓰는 곧 사물의 세계를 아무런 설명이나 哲學 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事物詩와 의지적이고 비유적으로 세계를 관념으로 묶어 보는 관념시로 구분하면서, 앞의 것은 탈 관념적으로 서술적(=묘사적-글쓴이) 이고 순수한데 반해 뒤의 것은 도덕적 교훈이나 판단의 목적을 위해 사물을 수단시하고 독자를 강요한다고 지적하면서 보기로서 다음과 같이 든 시 작품(1연)을 김춘수는 탈관념 이고 그래서 무의미한 시라고 하였다:  산은/九江山/보랏빛 石山//山桃花/두어 송이/송이 버는데        이 시가 정말 김춘수의 주장처럼 무의미 하고 탈관념이 된 시란 말인가? 우리는 그렇게 이 작품을 이해해야만 하는가? 새삼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언어로 쓰여진 모든 시가 ”뜻이 없이“( 무 의미) 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관념시라고 비판하며 주장하는 이들의 견해를 한마디로 통일을 할 수가 없는데, 김춘수는 “관념”이란 단어를 앞에서 풀이한 대로 일상적이고도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곧 사전적 의미인 “사고”, 생각이라고 이해를 하지 않고, 주체의 ”의도“나 ”일정한 의지“ 또는 ”목적적인 의식“을 일컫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관념이란 것에서 의미가 나오는 것인 데, 의미= 뜻 이란 1차 사전적이고 통념적인 단어풀이에서라면 ”무 의미“라는 용어가 있을 수가 없으나 ”의미“를 ”의도“나 ”일정한 의지“ 또는 ”목적적인 의식“을 일컫는 것으로 김춘수가 바꾸어서 이해하고 사용하는 한, 비 학문적이고 비 상식적이긴 하지만 거기서는 무의미라는 용어를 납득할 수 있다. 의미란 용어를 이렇게 이해하고 사용하는 한에서 관념을 벗어난다는 ”탈 관념“이란 말도 납득될 수가 있다.   아무리 김춘수 방식으로 의미라는 단어를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사람이 사용하는 모든 언어와 취사선택한 단어에 의미(=의도나 의지)와 관념이 배제될 수가 있단 말인가? 관념에서 벗어나(脫)있으니, 무 의미하다는 이 주장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김춘수는 지은이가 (어떤 의미-의도부여가 없이) 사물에 단순한 이름만 붙여서 단어를 나열한 것처럼 했기 때문에 사물시요 탈관념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인 박목월이 무의미(無意味)한 시를 쓰려고 이 시를 지은 것은 아니라는 추론을 하기에 앞서, 시라는 것과 거기 사용된 시언어라는 것에 대한 김춘수의 혼란된 인식을 엿볼 수가 있다.   이 시는 [구강이란 산이 있는데, 보랏빛을 띈 돌산(석산)이다. 거기에 산복숭아 꽃이 두어 송이 막 꽃 봉우리를 트고 있다]라는 것을 압축한 문장이다. 그렇게 볼 때 이 시는 김춘수의 말처럼 “사물을 감각적으로 그대로 수용해서 쓴 곧 사물의 세계를 아무런 설명이나 哲學 없이 그대로 드러낸” 것이 아니다. 그리고 독자는 사물 이름으로서의 단어만 나열한 그것을 그대로 감상하지 않는다.   그와는 정 반대로, 시인은 구강이란 산이 하얀색이나 황토색 돌(석)산이 아니라 보랏색을 띈 돌산이고 그 산에 진달래꽃이 아니라 산복숭아꽃이 피었는데 아직 만발해 있지는 않고 두어송이 막 꽃봉우리를 트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이는 무르익은 봄의 시기가 아니라 겨우 겨울 기운이 가신 이른 봄의 시기를 보여준다. 봄눈녹아 흐르는/ 옥같은 물에//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2연과 끝 연인 3연을 종합해서 감상하면, 구강산이라는 노장사상의 신선교에서 희구하는 도원경(桃源境)은 속세의 사람들이 더럽히지 않은 이상향으로서 옥같이 순수한 물을 새끼를 거느릴(린) 악의 없는 암사슴이 몸을 더욱 깨끗이 가꾸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표출해 내서, 시 지은이는 그러한 순수 자연관의 철학과 그런 생활을 꿈꾸는 의도를 보여주며 속세의 우리 네 삶의 질곡과는 다른 순수한 자연생활의 모습에 대한 희구라는 의미부여를 산도화의 배경에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럴진대 김춘수가 보기로 거든 사물시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관념시인 것이다. 한 마디로 사물 이름만(단어만) 나열한 시라고 해도, 지은 시인이나 독자는 압축된 행간의 단어와 생략한 의미를 염두에 두고 짓기를 하는 것이며, 감상을 해야하는 것이 시에 대한 바른 도리(이해)가 아니던가? 이를 부정하고 의미연결이 않되는 단어들만의 나열이라면 앞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정신분열병 환자의 지껄임이나 보고 읽은 셈이 될 것이다.   그러면 다시 심상운의 “탈관념 시에 대한 이해”라는 논문을 들여다 보자. 이 논문은 시인 오남구(옛 이름, 진현)와 심상운의 탈 관념시론에 대한 최진연의 비판에 관해 심상운이 다시 반박하다시피 하면서 “탈관념에 대한 논쟁을 잠재우고 탈-관념의 이론을 새로 정립한 글 [...] 이 글의 논리를 바탕으로해서 아방가르드의 시론이 성립된다”고 자신만만하게 주장하였는데*10), 최진연은 자신의 논문에 대한 심상운의 이같은 반박 논문을 읽은 후, 화자의 주관적 생각이 들어간 것이면 관념이고 인지적 사실에 그치면 탈관념이라고 이해하였음을 밝히면서 “내가 제기한 관념문제에 명료한 답을 제시해주었다.”고 대답하였다. 과연 올바른 말일까?  나 . 그 주장의 오류   김춘수처럼 탈관념을 주장하는 시인 심상운은 그 논문에서 독자적인 많은 연구의 노력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릇된 이해로써 자신의 주장을 펴내고 있다.   먼저 불교의 인지론을 거론하면서 1.감지(6식의 초기작용) 2.인지(의식의 분별작용) 3. 의미형성(사고와 연관에 의해)의 단계에서, 순수인지는 2항 까지를 일컫고, 이를 직관이라고 정리한다. 그러나 우리 사람이 대상을 인지한다는 것이(의식의 분별작용은) 지렁이처럼 조금만 손(촉각)을 대도 꿈틀거리며 반응하는 것(지각)에서가 아니요, 끈끈이 주걱(잡초 식물)이나 호랑이(동물)처럼 어떤 것을 잡으면 뜯어먹는 욕구충동에 따른 본능적 활동이 아니다. 사람이 대상을 서로 달리 분별하여 인지하고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식상태 또는 기본 욕구적 충동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말(언어)을 갖고 자기를 표현하며 의식활동을 하고 사는 사람(호모 사피엔스)은 이미 언어(말)로 지칭된 사물(사람)이나 사태를 통해서 서로를 지각하고 구분하고 구별하는 것이다. “이미 언어로 지칭된 사물”이라 할 때, 거기에는 기표(시니피앙)와 기의(시니피애)라는 유의미화가 자동적으로 속성화 되어 있다. 쉽게 말하면 관념화 되어있는 것이다. 이름자유연상은 정신의 본도(本道), 간도(間道)를 통하여, 의식의 제한에 방해 당하는 법 없이 사고(思考)와 인상(印象)을 모아서, 그것을 가지가지로 결합시키면서, 드디어 새로운 관계나 형(型) 이 생겨나도록까지, 심리과정을 자유스럽게 헤메도록하는 것이다.[...]자유연상 상태란 곧 자아(ego) 초자아(super ego)의 간섭이 없거나 극히 약해서 상상의 자유가 보장되어 [...] 이런 방심상태에서는 무의식(無意識) 혹은 전의식(前意識)의 세계, 곧 심층심리면(深層心理面)에 잠겨 있던 것들이 순서도 없이 곡두(환영幻影)처럼 의식면에 떠올랐다간 가뭇없이 스러지고 스러져버리곤 한다. [...]그것을, 적당한 시기에 바리아송(variation, 變奏)을 주어 가면서 몽따쥬(montage)를 하면 한 편의 시가 되곤 한다.   조향은 자신의 시가 시간성이 산산이 끊어져 버리고, 돌발적인 신기한 이미지들이 단층을 이루고 있는 자유연상에 따라 의식의 제한에 방해 당하는 법 없이 사고(思考)와 인상(印象)을 모아서, 그것을 가지가지로 결합시키면서, 드디어 새로운 관계나 형(型)이 생겨나도록까지, 심리과정을 자유스럽게 헤메도록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조향시인이 주장하는 바에 따라 아래의 시(바다의 층계, 1연)  낡은 아코뎡은 대화를 관뒀습니다/-- 여보세요 --//// -- 왜 그러십니까  를 읽는다면, 그야말로 어느 정신 분열증 환자의 뇌깔임(넋두리)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떠돌고 다니며 사는  정신병 환자의 지껄임을 옮겨 놓으면, 조향의 초현실주의 시편 이론을 따르는 이와 똑같은 것을 누구든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 초현실주의 문제점을 다음에서 자세히 짚어보자.  나. 그 주장의 문제점과 비판   초현실주의에 관하여 또 그 시가 목표(시의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다음의 심상운과 조병무의 시론을 통한 해설에서 간단 명료하게 엿 볼 수가 있으며 동시에 그 안에 담겨진 문제점도 들춰낼 수가 있다.   “시를 교훈이나 쾌락 또는 서정의 표현 정도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초현실의 시들은 난해하기만 하고 존재가치가 없는 무질서한 언어의 집합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고 심상운은 스스로 그 단점을 지적 하고 있다. 나아가 심상운이 중에서 조향시인의 초현실주의 시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보기를 든 양준호 시작품을 보자.  꽃잎을 짓밟고 간다. 문득 저승에서 뻐꾸기 세 번 울고/간다.너는 뭐니 너는 뭐니. 노란 파도가 노란 파도를/ 따라간다. 비이슬에 젖은 철조망, 메뚜기의 눈이 등대처/럼 설레고 간다.(양준호 시, 문득. 전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18) 서술 기법은 현대시만의 특별한 기법은 아니다. 고대 소설에서도 꿈을 통한 암시나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상투적이라고 할 만큼 흔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통해서 보여 주는 시인의 내면의식[잠재의식]이 현대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식의 총체적인 파악을 위해서는 빙산의 일각 같이 겉에 드러난 의식보다는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무의식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하기 때문이다. 양준호 시인의 시편 속에 들어 있는 상식을 뛰어넘는 언어들의 현란함은 단순한 언어유희의 차원이 아닌 의식과 무의식의 교직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무늬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평가속에서 심상운은 한국 현대시에서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꼽혀지는 조향(趙鄕)의 시를 무의식 상태에서의 자동기술로 "망각의 강 깊숙한 저변에서 건져 올리는 고향의 언어‘ 라고 했다. 무의식은 의식의 고향이며 가장 본질적이고 원형적인 순수의식의 세계여서 그것은 자연히 탈현실, 탈관념의 세계가 되는 것이라 한다.   같은 시각에서 평론가 조병무도 “양준호의 시세계 ”이라는 논평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일기 시작한 초현실주의에 많은 예술이 공감한 바가 있었다. 비합리적 인식과 잠재의식의 세계를 추구하여 새로운 세계에 정착하고팠던 운동의 하나였다. 양준호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 있었던 문학의 한 명맥을 보는 것 같다. 정신의 바닥에 내재해 있는 수많은 의식의 한 덩어리를 실상의 형태에 몰입시키면서 새로운 해석의 차원을 넘나들려는 의도는 다른 면이 있다. 그에게는 잠재의식이라는 세계를 실제의 실상에서 이를 해체하여 새로운 의식의 면모를 구축하려는 데 있다. 그에게 부딪치는 모든 것은 경이로운 것이며 그 경이가 실상의 합리적인 것에서 비이성적 형태의 상태로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양준호의 시를 여기서 어떤 사상적 이즘에 한정시키려는 것은 아니나 몇 가지 그의 시에서 특이한 점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의식의 변화 및 해체, 잠재의식과 실제 실상의 변모에 따른 차이, 강박관념의 몰입 등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조병무의 해석은 심상운의 다음의 해명 글에서 크게 부각된다. “ ”간다“라는 동사가 이끄는 네 개의 문장이 병렬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네 개의 문장은 논리적(객관적)인 의미의 연결이 안된다 어떤 의미의 형성이 불가능하다. 네 개의 문장이 담고 있는 영상은 그의 무의식의 내면에서 포착된 영상같기도 하다.”   이렇게 논평하는 두 사람이 시인이란 것을 모르는 이라면, 어느 의사가 정신 분열증 환자의 증상을 설명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말 것이다.  여기에 조향의 노트를 참조해서 말하면, 내가 맨 앞에서 정신 분열증 환자의 한 증상으로서의 홀로 중얼거림현상과 거의 일치하는 설명에 해당한다. “현실을 벗어나서, 초월해서” 라는 초- 현실(sur- réal)이란 말은 * “(현실인식의)실재,사실 (réal) 를 벗어나서,넘어서 (sur -)”, 달리 말하면   ”현재의 사실을 그대로 보지도 못하고  보지도 않아 정신이 -미쳐서, 돌아서“, ”제 정신이- 아니어서“ 라는 뜻과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초현실주의 시작품 이라는 것도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냥 정신분열증 환자의 떠벌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이 점을 프랑스 쉬르레알리즘 문학가들이 미쳐 생각지 못한 것처럼 지금까지 한국의 문학가들도 그 불행한 증상을 아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아니라, 신경정신과 의학을 공부한 의사들도 시문학의 이런 초현실주의의 현상을 비교적으로 제대로 간파하거나 지적할 줄을 몰랐다.  이제 주체의 사상과 감정이란 관념을 개입시키지 않고 순수하게 대상의 이미지만을 드러낸다고 보아서 “사물 시”라고 규정이 된 시작품들을 검토해보자.  III . 순수 이미지의 사물시   사물시란 무엇인가? 최진연시인은 [...] 엄밀한 의미에서 사물시란 대상을 주체의 사상과 감정이란 관념을 개입시키지 않고 관찰한 현상들을 이미지로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시는 ‘탈 관념(무의미)’의 시이다 라고 정의를 한다. 이러한 사물시 이론은 먼저 무의미 탈관념 시쓰기와 그 이론을 주창한 김춘수에게서 제시되었는데, 그이에게서 무의미(탈관념) 시를 잘 쓰기 위한 한 방법론처럼 모색된 것이 사물시 이론으로 발전된 것이 라고 여겨진다. 이를 나중에 문덕수시인이 뒤따르고 있는데 둘 사이의 차이점을 굳이 들자면 문덕수에게서는 무의미 탈관념이 아니라 사물 대상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현저하게 눈에 띈다.  가. 주장자들과 그 시작품   최진연 시인은 문덕수 시인의 이른바 사물시의 특징을 무의미-탈관념의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하이퍼시와의 깊은 연관성을 간추려서 아래와 같이 지적한다*19).: “관념시는 개화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100년이 넘게 주류로 군림해왔다.” [...]이런 한국시의 관념성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시의 모색은 문덕수에 의해 주창되어왔다. [...]그는 2천 년대 들어와서 탈 관념의 사물시를 비롯한 새로운 시 쓰기 운동에 열정을 쏟기 시작했다. [...] 문덕수 시인이 오래 전부터 주창하고 그의 시에서 적용해온 시적 방법으로서 “집합적 결합” 이론[...] 예컨대 컴퓨터, 책, 확대경, 볼펜, 찻잔, Secret Card, … 이런 물품들은서로 필연적 인과 관계가 없으나[...] 이와 같이 시에서 행과 행, 연과 연 상호간에 별 관계가 없는 이미지들로 한 편의 시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   위 인용문에서 우리는 사물시의 특징을 탈관념의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하이퍼시와의 깊은 관련성을 제시했다고 간주할 수 있다.  빨간 저녁놀이 반쯤 담긴/유리컵 세 개./휑하니 열린문으로는/바람처럼 들이닥치듯이 차들이/힐끗힐끗지나간다./ 세 유리 컵/ 그 세 지점을 이으면 삼각형이 되는/ 그 속에 재떨이는 오롯이 앉아있었다./ 열린 문으로는/서있는 한 사나이,/ 길건너 어느 고층으로 뛰어오를 듯이/ 서있는 그 신사의 등이 실은/ 유리컵을 노려보고 있었다./세 유리 컵/ 그 세 지점을 이으면 삼각형이 되는/ 그 금 밖으로 밀려나/ 금박의 청자 담배와 육각형 성냥갑이 앉아있고/ 그 틈새에 조그만 라이터가/발딱발딱 숨을 쉬고 있었다./ (문덕수 시, 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 전부)    보기로 든 윗 시를 심상운은 사고 이전의 언어들 모음이기에 어떤 의미도 내포하지 않는다. 아무런 의미(의도)를 띄지 않고 사물의 놓여있는 상태와 주변 정경만을 객관적인 눈으로 묘사하여 사물성의 존재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시인의 지각작용이 포착한 생동하는 사물성과 한 순간에 집중된 감각적인 순수이미지를 보여줄 뿐이라고 한다. 덧붙여 시도 관념이전의 순수한 사물성만을 제시해주는 기능을 함으로써 창조적인 사물시의 가능성을 확인케 해준다며 이 솔 시인의 시를 지적한다.  욕조가득 비누거품이 부풀고 있다/거품속에 색들이 팔딱거린다/거울속에서 허물이 흘러내린다/구석구석 비누거푸을 벗겨낸다/동그랗게 굴러가는 색깔들//텃밭에서 갓 따온 가지빛깔/ 처음 우러나온 치자빛깔/옥수수 수염색깔/샘물바닥에서 솟아나는 모래빛깔/청심환을 싸고 있는 금박지/씨가 환히 비치는 청포도 빛깔// 바구니 가득한 캔디/ 눈에 담기는 색깔부터 입속에 넣는다/달콤하다가 시다가 씁쓰레하기도/켄디 맛인지,색깔맛인지/욕조가득 넘치는 맛과 색/맛으로 빛으로 춤춘다 (이솔 시, 맛의 빛, 빛의 맛, 전부)   정말 이들 시작품이 관념을 벗어나서(탈-) 사물성만을 제시하고 마는가?  나. 그 주장의 문제점과 비판   시를 지은 문덕수가 의도한 바가 심상운의 주장 그대로 무의미하게 탈관념을 노리고 詩作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독자)는 그 작품속에 든 문덕수의 (비의식층인 잠재적인) 온갖 의도를 케어 볼 수가 있어야 하고 끌어내어 밝혀보아야 한다. 왜냐면 앞에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작가가 선택하여 사용한 언어는 그것 자체로 나름의 질서와 의미(관념)을 지니고 예술작품으로서 객체화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윗 시에서는 사람이 서로 만나서 대화하고 웃고 떠들며 인정을 나누게 마련 된 의자는 텅 비어있고, 탁자위에는 유리잔과 라이타와 잿털이만 모여있는 사물위주의 퐁경을 우선 보여준다. 대화가 단절된 고독한 도시인의 삶의 울타리 안에 어느덧 저녁 황혼기의 황량한 기운만 기웃거리고 있다. 이를 묘사함으로서 빌딩으로 둘러쌓여 갇힌 현대인의 낭만이나 우정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바로 이를 탁자를 주변으로 하는 풍경이 지적하고 있다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때, 이 작품은 그런대로 관념을- 의미를 지닌 값을 다하는 작품이다. 무엇을 쓰고 그리느냐(표현하느냐)? 의 문제 보다 어떻게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감상하느냐?)가 예술의 본래 면목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것이 최종적이고 작가의 손을 떠난 일반대중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도구화된 사물들만의 기하학적 위상을 묘사함으로써 대화의 단절로 인한 도시인의 고독과 상호 이해부족이나 오해 속에 사는 인간성의 소외현상을 극명하게 드러내준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물이 주체가 되고 사람이 객체가 된 이 시대의 비극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솔의 시-이를 사물시로 보든, 하이퍼시로 보든 상관없이-에서도 심상운처럼 관념이 없이 사물의 사물성만을 감지하고 비누거품의 빛과 맛의 세계만을 감상하는 소수의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자들은 욕조에 비누거품처럼 넘치는 관념과 그것의 상징적인 의미를 되새김하며 다양한 일상적 활동에 이를 적용해 보기도 하는 것이다. 곧 1연의 더러운 욕조(안에서의)와 그것(어떤 것 y)의 비누 세척 하기. 2연의 비누거품들(x)의 갖가지 색깔(빛)의 열거를 통한 그 깨끗한 모습. 3연에서 욕조가 바구니로, 비누거품(x)은 켄디로 지칭 전환되어서 빛(색깔)을 맛으로 치환하여 입에 들어갈 만큼 깨끗하게 씻겨진(정화된) 어떤 것(y)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더럽혀져서 손으로 만진 것이- 눈으로 들어오고 -다시 입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가 된 어떤 (Y)것의 오염- 세탁-정화의 단계가 1연의 촉각화 2연의 시각화 3연의 미각화를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고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철학자 M. 하이데거가 예술이란 것도 철학(존재론)처럼 존재자의 존재 양태를 그대로 밝혀서 보이는(드러내는=현상) 것이라 했는데*20), 만일 문덕수가 이 철학에 근거하여 자신의 “순수이미지-사물시” 이론을 시도하였다면, 심상운이 말하듯이 무의미나 탈관념이 아니라, 그와 정반대로 내가 바로 위에서 해석한 대로, 존재양태의 의미를 현상시키려 한 것이라고 봐야한다. 하이데거는 사물들(존재자들)의 존재상태나 양태에서 도구성과 정황성을 통하여 의미연관성을 드러내주고 실존적인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또 케낸다. 존재하는 사물(대상,객체)의 상태나 상황을 그대로 묘사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준다고 할 때, 무의미나 탈관념을 시키는 것으로 이해하면 큰 오류이다. 그것은 본질을 케내는 일이 아니라 현상을 은폐하지 않고 드러내어 존재(있음), 또는 있는데 어떻게 있는가? 를 더 뚜렷하게 보임으로써 그 자체가 가진 의미를 밝혀준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시가 언어로서 존재를 건립하는 것이라고 하이데거가 규정을 했을 때 거기에는 필연코 존재자와 언어를 선택하고 사용하는 순간에 의미화와 관념이 생기고 짓는 이의 심상이 투영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의미있는 관념화된 시작품이 창작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보기를 들어, 하이데거가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구두”를 해명하듯이, 화가 고흐가 구두를 가장 그럴듯하게 사실적으로 그려냈을 때, 그 구두가 어느 농부의 가난과 일상화된 노고와 뼈아픈 가족의 생계부양의 짐이 투영된 것을 보여주고자 화가가 그림을 그렸고, 감상자는 또한 이를 잡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동하는 사물성과 순수 이미지의 시라고 주장하는 심상운의 논평은 시 제명인 “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이라는 풍경에만 사로잡혔거나 이솔의 “맛의 빛, 빛의 맛”이라는 그 사용된 언어와 관련된 의미의 심층적 맥락과 시인의 창작과정에서 이면에 놓여지는 잠재의식을 간과했거나 무시한데서 발생된 것이라 추측된다. 만일 이를 부정한다면 특히 이솔의 작품에서 드러나듯이 정신분열증환자의 두서없는 말지껄임에 불과할 것이거나, 정상인이 자신도 잘 알아차릴 수가 없는 잠재의식속의 정신병적 징후를 그대로 토로한 것이 될 뿐이다. 이를 변호해서 말한다면, 의학적 식견이나 정신병적 증상을 잘 알지 못하는 이가, 현실을 넘어선 자유로운 의식-잠재의식적 사고를 표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다음으로 탈관념과 디지털리즘시를 주장하는 현대적 시운동의 전위에 서있다고 일컬어지는 오남구시인의 시를 검토해보자.  IV. 디지털 시론    디지털 시란 무엇일까? 디지털리즘 선언이란 글에서 밝히는 오남구의 정의를 직접 들어보자. “지금까지 아날로그 시대의 시가 기술 또는 자동기술하는 것이라면, 미래 디지털시대의 시는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염사(念寫) 또는 접사(接寫) 곧 ‘찍는다’는 행위로 구분짓는다.[...]시인의 생각과 의식을 배재시키는 방법으로 나는 언어 이전의 언어(사물언어)로 사물을 사진찍듯이 찍는다”*21)고 했다.  가. 주장자들과 그 시작품   오남구의 이 디지털 시론을 최진연은 같은 논평에서 오남구의 탈관념시에 관한 설명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다. 즉 오남구가 말하는 디지털시가 탈관념시와 같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덧붙이기를, “전통적인 시가 대체로 연속적인 사유의 산물이란 점에서 아날로그방식이라 한다면, 그의 디지털시는 단속적인 직관에 의해 찍는다”는 점에서 구별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 ‘찍는다’는 말은 관념을 배제하고 보이는 현상 그대로를 직관적으로 옮겨놓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최진연은 탈관념시=디지탈 시= 하이퍼 시의 등식을 상정한다. 강조하건대, 그들 시작품이 큰 틀에서 크게 차별이 않되고 같다는 것이다. 다음의 오남구의 시 작품을 보자.   겨울 조소리 천태산 달이 비껴가고/바람 소소히 고라실 억샐 베는 머슴 심심한 머슴이/도리께 명당 솔밭 후미 으슥한 골마릴 풀고/무당네 골방 선반 지른 시렁가레 깊은 어둠을/밤새 봉준이는 과년한 계집을 안고 운다.//(오남구 시, 조소리 구름밭, 전부)   심상운은 이 시를 “어떤 논리적인 설명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토착적이며 전통적인 가락과 호흡 그리고 토착어에 깃들인 민족 心靈의 흐름은 첫 새벽 淸水를 앞에 놓고 한울님과 接神하는 맑은 영혼이 아니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법이다”라고 하였다. 얼핏 피상적으로만 생각하자면 “겨울- 조소리- 천태산- 달이 비껴 감-바람-고라실- 머슴-도리께-골마릴 풀고- 무당네 골방- 시렁가레- 어둠- 봉준이- 과년한 계집” 이런 단어들 만이 두서 없이 늘어놓은 느낌이 든다.   심상운은 또 오남구의 “부드러움의 단상”이란 시에서도 “비- 파란 신호등-부드러운 선- 녹색 빗물-나무들-빨간 신호등-차다 단단하다 날카롭다”에서 어떤 지각의 속도만 있을 뿐 의미가 없다고 논평을 했다.  비, 비, 파란 신호등이 켜지자, 부드러운 선들이 팔딱팔딱 숨을 쉰다. 에워싸 나를 가둔다. 금시 차다 단단하다 날카롭게 날을 세운다. 수로 솟으면서 수평으로 퍼지면서 나무들이 솟아오르고 녹색이 번지고 빗물이 번지고 속도가 날을 세운다. 빨간 신호등이 켜지자, 모두 갇혀 버린 빗길, 팔딱팔딱 선들이 곡선을 그리다가 부서져 떨어진다. 흘깃 보는, 조각 허공에서 뿌리는 부스러기 무지개 ( 오남구 시, 부드러움의 단상, 전부)  나아가 송시월의 시에서도 비 그친 날의 풍경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그려낸” 이 아닌 “찍어낸” 시라는 것이다.  비 그친후, 물 웅덩이/붉은 하늘 한 조각/하늘 속의 물구나무선 가로수/거꾸로 처박힌 빌딩의 모서리와/육교 한 토막./그 틈새에 납작이 끼인 나/ 한 조각/언뜻 맷새 한 마리가 획 일렁이며 간다 (송시월 시, 물 웅덩이, 전부)  물웅덩이, 하늘 한조각, 하늘속의 물구나무선 가로수, 거꾸로 처박힌 빌딩의 모서리, 육교 한토막, 그 틈새에 납작이 끼인 나, 한조각, 멧새한마리가 동시적으로 눈에 포착되어서, 관념을 벗어났고 직관을 통한 엽사,접사의 기법이 적용된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나. 그 주장의 문제점과 비판   “시인의 ①생각과 의식을 배재시키는 방법으로, ②언어 이전의 언어(사물언어)로 사물을 ③사진찍듯이 찍는다”는 오남구의 주장에는 시문학 일반개념과 언어행위에 관한 오해나 무시에서 오는 억지가 깃들어있고, 시와 그림(사진)간의 예술 분야의 혼동이 내재한다. 시인에게서 생각과 의식을 배재시킨다는 것은 시체나 되라는 말이나 다름없고, 언어이전의 사물언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을뿐더러, 사물을 사진을 찍듯이 한다면 굳이 시란 것이 왜 필요할까? 무용지물이 될 뿐이다. 시는 대상 사물을 있는 그대로 찍는 예술이 되어서도 않되고 될 수도 없다. 시인에게서 재 창조가 되어 나와야하는 창작물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만일 심상운처럼 우리가 오남구의 작품 “조소리 구름밭”의 시적 배경과 쓰인 지명과 인명에 대해 알지 못하고 감상하려 든다면, 어떤 논리적 설명을 할 수가 없고 단어들의 나열속에서 “토착적이며 전통적인 가락과 호흡”만을 볼 것이다. 그러나 조소리 천태산이 동학군의 지도자 전봉준이 태어난 고향땅 이름이고 그 전봉준이 겨울 긴긴 밤을 단잠 못이루고 과년한 계집을 끌어안고 울음운다는 장면을 이어놓으면, 우리는 “관념을 벗어난 장면만을 다양하게 엮어서 찍은 것”이 아니라, 동학혁명운동에 떨쳐일어선 농민군들과 지도자 전봉준이 청나라 군대와 일본 군대의 협공에 시달리며 머슴처럼 노예살이 신세였던 농민들과의 생사를 건 봉기가 일시에 꺾이고 절망적인 형편에 괴로워하는, 구름밭의 새울음(조소리) 소리를 헤아려 감상할 수가 있는 것이다. 깊은 민족사적 비애를 품고 종교적 천지개벽을 꿈꾸던 이들의 슬픔이 절망을 감싸서 자아낸다 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송시월도 순간의 물웅덩이를 포착하여 그 상황을 재현했는지 모르겠으나, 감상자는 물웅덩이 같은 세상과 거기에 처박힌 “나”의 몰골을 반사해보면서 멧새 한 마리가 상징하는 자유와 비상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아직은 꿈과 희망을 품을 수가 있는 삶을 보여주었다고 음미할 수가 있는 것이며, 그것은 나쁜지 않은 독법에 해당한다. 만일 그렇지 않고 송시월이나 오남구 시를 손해일이나 조명제의 주장에 따라서 읽는다면, 우리는 그저 정신병 환자의 뇌깔임이나 다름없는 소리를 보고 들은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전혀 의미연결이 않되는 단어와 어휘들의 진열과 이미지들을 지껄인 수준이외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상운이 “종이(책) 문화의 시대에 본질적이었던 의미의 예술에서 디지털시대에 맞는 영상(이미지)의 예술에로 전환을 주장하고 특정한 경계를 벗어난 상상과 공상(fancy)을 중요한 표현수단으로” 삼고자 했을 때, 언어의 예술인 시문학의 본질적 특성을 망각한데서 이처럼 암초에 좌초하고 말 항해의 운명은 예정된 것이었다. 영상의 예술로 전환 했을 때, 언어예술인 시라는 고유의 영역은 사라지고 디지털시대의 영상속 한 부수적인 설명귀나 장식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마치 신문지 나 TV의 광고판 속에 나오는 설명귀쯤으로 한쪽을 차지하고 말 것이다.  V. 하이퍼 시론   나는 맨 앞에서 전위적인 몇몇 시론들의 시가 하이퍼시에 공속하고 공통적인 요소를 나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하여, 심상운,손해일,조명제,최진연의 하이퍼 시론의 핵심을 간추려서 이미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몇몇 하이퍼 시 작품을 읽어가면서 앞의 평론가들의 해설을 곁들여 감상하고, 지금까지 내가 비판하면서 정신병적 증상과 다름없다고 예증한 바를 전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으로 삼고자 한다.  가. 주장자들과 그 시작품   최진연에 의하면, 하이퍼시론을 처음 주창한 이는, 오남구시인과 “탈관념- 디지털 시론”을 함께 전개한 심상운 이다. 심상운은 “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라는 논문(책)에서 하이퍼 시론을 터닦아 놓았는데, ‘디지털의 특성과 디지털시대의 감각에 호응하려는 시운동’에 따라서 ‘순수한 영상언어를 지향하고 추상화적 기법과 오남구의 염사와 접사의 사진찍기 기법 그리고 사물성의 강조와 다양한 시점에서의 순간포착에 의한 감각적 이미지의 표현(기법)에 중점을 둔 언어단위들의 집합적 결합방법을 제시하였다’ 고 하였다. 이것이 하이퍼 시론의 출발점이면서 종착점이다. 먼저 심상운이 하이퍼시라고 규정하는 오남구의 시작품을 눈여겨 보자.  싹이 트려나, 배낭을 벗어 놓고 양지 볕에 앉아 몸이 근질근질하다. 긴다리로 떼지어 서있는 계곡의 진달래며 철쭉 싹이 트려나, 아른아른 기척 없이 날아든 작은 새, 까맣게 잠이 든 앙상한 가지 부리를 부비어 흔들다가, 새싹에 대고 내 어머니의 맑은 목소리 깍궁! 소리치고 포르르 다른 가지로 날아간다. 또 한 마리 뒤따라 깍궁! 하고 포르~ 포르~ 포르르 ~ 포르~ 앞을 서거니 뒤를 서거니 두 마리 작은 새 깍궁! 깍 궁! 소리치고 새싹의 잠을 깨우며 날아다닌다. 싹이 트려나, 진달래 철쭉의 앙상한 가지들이 꽃샘바람에 흔들리어 이~잉~잉 울어댄다. 일시에 아가야 깍궁! 깍궁! 계곡에서 일어나는 맑은 목소리 환청이 돈다.   (오남구 시, 깍궁, 전부)    위의 시에 관해 심상운은 “이 시의 화자는 늦겨울 산행중에 대지가 혼곤한 잠속에서 새싹을 피우려 기지개켜는 듯한 초 봄의 정경을 의식과 무의식간 상상으로 넘나들고 있다. 소재나 정서는 지극히 한국적이지만 기법은 매끄러운 언어구사와 하이퍼텍스트적 구성이다. [...]이 시의 연상 고리는 양지에 앉은 화자-계곡의 진달래, 철쭉- 작은 새의 재재거림-어머니의 깍궁! -새싹을 어르는 작은 새들의 깍궁! -이에 화답하는 진달래 철쭉들의 잉잉거림 등 엄마와 새들의 깍궁을 회상하는 리드미칼한 환청 하머니이다. 그리고 시상의 각 유니티들을 매끄럽게 하는 하이퍼링크로 ‘깍궁!’ ‘ 포르~포르르~’ ‘이~잉~잉’ 같은 의성어들이 유려한 테크닉을 보여주고 있다.” 고 해설한다.   바깥 세계 정경을 의식과 무의식간 상상으로 넘나들고 있고, 리드미칼한 환청 하머니라고 지적한것을, 우리는 정신분열병 환자의 지껄임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고 더구나 (시)상의 각 유니티들을 매끄럽게 하는 하이퍼링크로 ‘깍궁!’ ‘ 포르~포르르~’ ‘이~잉~잉’ 같은 의성어들이 유려한 테크닉을 보여주고 있다 고 한데서는 그 환자가 지껄이면서 리드미컬하게 내뱉는 특정한 의성어 “...그쟈?, 안카나? ” 또는 “ 퉤, 씨팔” 같은 테크닉(?)을 생각케 한다. 다만 정신병 환자의 그것에서는 문장?(말)이 세련되게 보이지 않고 다소 투박해서 배움이 많지 않은 티가 나 는 것이 하이퍼 시와 차이점이라고 비판이 될까?  햇빛은 무색이다가도 단풍나무에 가 닿으면 단풍잎이 된다/ 노랑은 노랑금빛 빨강은 빨강금빛/ 갠지스강가에 쌓아놓은 나무더미에 빨간 불꽃을 당긴다/ 빨간 불꽃에 금빛 영혼이 하루종일 번쩍이며 탄다/ 아무 말 없이 타는 시체 위로 허공에 고루 숨어 사는 햇빛이/ 모조리 몰리어간다. 타다닥 탁탁 단풍무더기/ 햇빛은 단풍을 좋아해, 단풍에 닿자 마자 크게 웃어/ 마릴린 몬로는 입을 약간 벌리고 금빛 머리칼을 / 신사의 가슴에 올려 놓는다 <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포스터를 보는 18살 소녀도 크게 웃어/ 학교가 끝 나면 곧바로 동방극장엘 갔지 내친구와 몰래/ 웃음소리가 크게 퍼지고 먼 마을로 간 마 릴린 몬로가 /타는 단풍속으로 들어와 앉는다 , 햇빛이 심지를 돋운다 ( 김규화 시, 햇빛과 단풍, 전부)   심상운은 “위 인용 시에서는 햇빛과 단풍을 매개로 한 자유연상과 의식. 무의식의 가지치기, 청소년 시절 추억 등이 행간에 배어 있다. 시상전개의 각 유니트와 연상단락의 하이퍼링크적 징검다리로 동서양과 현재, 과거를 넘나들고 있다. 무색인 햇빛이 단풍잎이 되는 것을 시작으로 -노랑 빨강 금빛-갠지스강 나무더미- 빨간 불꽃-금빛 영혼 -타는 시체-단풍무더기 -단풍에 웃는 햇빛으로 확산된다.” [...] 여기서 하이퍼링크적 연결고리는 햇빛과 단풍의 교호작용을 통해 마치 끝말잇기 놀이하듯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미지군이며, 이것이 매끄러운 시읽기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독자로서는 이런 하이퍼시에서 의미나 결론을 애써 찾기보다는 파노라마 경관 감상하듯 화자의 자유분방한 공상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 즐기며 음미할 일“이라고 한다.   여기서도 우리는 하이퍼 시라는 것의 정신분열병적 증상에 관한 설명을 다시 보게 된다. 곧 자유연상과 의식- 무의식의 가지치기, 전개의 각 유니트와 연상단락의 하이퍼링크적 징검다리로 동 -서양과 현재 와 과거를 넘나들고 있고, 마치 끝말잇기 놀이하듯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미지군들이 나오니, 거기서 의미나 결론을 애써 찾기보다는 화자의 자유분방한 공상과 의식의 흐름을 그저 따라 즐기며 음미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의 방 우측 벽에 걸려 있는 첫 번째 그림-검은 철제 의자위에 사람 대신 활활 불타는 붉은 꽃 한 다발이 앉아있고, 그 밑엔 “ 죽은 뱀의 영혼은 발가숭이로 꿈틀거리며 꽃 밭의 환한 햇빛속으로 들어 갔을까? 라는 글이 붙어있다. 나는 그 글 밑에 ” 영하 10도의 겨울 밤 시멘트 도로 바닥에 귤장수가 떨어 뜨리고 간 노란 색종이 같은 귤의 꿈을 보았느냐?고 쓴다. 그는 그밑에 “시인들은 밤마다 죽은 언어가 새로 태어나는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고? ”라고 또 쓴다. (2연 생략) 그때 그의 두 번째 그림 속에서 나온 파랑 공, 초록 공, 노랑 공, 빨강 공, 하양 공이 거실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점점 부풀어 식탁이 되고 놀이터가 되고, 침대가 되고, 의자가 되고, 남자 여자 어른 아이들과 들판을 통통통통 신나게 튀어가고, 마을 언덕에 봄빛이 눈부신 한낮 하늘을 나는 마차가 되어 지붕 위를 둥둥 떠간다. 나는 찬란한 햇빛속에서 공이 터지는 환상에 전율한다. (심상운 시, 미완성의 시, 그림 감상하기, 1연, 3연 )   최진연에 따르면, 이 시는 “ [...]자유연상과 분방한 의식, 무의식의 흐름을 환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난해한 암호풀이 하듯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골똘히 캐기보다는 디지털매체의 그림 감상이나 댓글달기처럼 비선형적, 비순조적으로 독자 나름대로 상상하거나 언어이전의 언어로 작자가 보여주는 대로 그저 따라가 볼 일이다. 이시에서의 하이퍼링크는 의식의 흐름을 매개로 시공간 순서없이 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사라지는 이미지의 집합적 덩이들이다 “ 라고 하였다.   위에서 김규화 시작품에 관해 심상운이 해설한 것이나, 심상운의 시작품에 관해 최진연이 해설하는 것이나 양쪽에서 동일한 표현기법이나 해설을 다시 읽을 수 있는데, 이는 하이퍼 시 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들에 공통적이라서 새삼스럽지가 않다. 그 때문에 정신분열증 환자의 다양한 병적증상에 관한 임상의학 병실 의사의 일관된 진단 소견서를 읽는 기분이 드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가 않을 노릇이다.   이 때문에 최진연이 인용한 논문에서 “일반 독자입장에서는 난해하고 생경한 이 시에서 어떤 특정한 의미나 순서, 상식적 질서, 교훈을 찾으러 들지 않는다면 오히려 디지털적 하이퍼시의 특성을 따라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지금 이 시공간에도 미쳐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다차원적 상황들이 앞뒤 없이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천지만물의 존재나 사건, 사물들이 불가측, 불연속적이어서 어찌 보면 뒤죽박죽이지만 나름대로 혼돈 속에 우주순행의 질서가 있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뒷풀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최진연의 해석에서 우리는 이미 앞에서 보아온 정신분열병 환자의 조(躁)증 증상을 다시 겹쳐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증 환자는 흥분되어 있고 이야기가 많으며 과잉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데, 목소리가 크고 비정상적인 사고의 흐름으로 심한 경우 말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고, 망상이나 환각이 나타나기도 한다. 팽창된 자존심 또는 심하게 과장된 자신감을 나타내며,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거나 계속 말을 하게 되고, 대화와 사고의 비약 또는 사고가 연달아 일어나는 의식적 -무의식적(잠재적) 표출이라는 점에서 저 시라는 것의 해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 10시, 그녀는 파란 의자에 앉는다// 앉아 있는 그녀를 하얀 구름이 휩싸고/빨간 버스가 그녀와 구름을 싣고 달린다 /(TV 속에서는 굶주린 하이에나 두 마리가 뚝뚝 뻘건 피 떨어지는 누우새끼의 허벅지를 입에 물고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고 있다 )//그녀는 구름이 만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고 /무거운 가방을 든 검은 외투의 사내에게 손을 흔든다/ 사내도 그녀를 보고 웃으며 손짓한다 //버스 안은 침묵들이 움직이고 있는 빈 악보 속 같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음표들이 투명한 물방울로/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녀는 그 방울들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터뜨린다/ 그럴 때마다 방울 속에서 나온 노란 알몸의 소리들이/ 쪼로롱거리며 버스 안에서 뛰어놀다가 바람에 실려서/도시의 하늘로 줄지어 날아간다 //도시를 빠져나온 빨간 버스는/ 돌고래들이 솟구치는 태평양 바다 위를 달린다// 출렁이는 바닷물이 그녀를 덮친다 /그때 그녀의 가슴 속에서 뛰쳐나온 물고기 한 마리가 / 은빛 지느러미를 퍼들거리며 튀어오른다 //순간 그녀의 눈 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2001년 9월 11일 아침, 뉴욕 무역센타 쌍둥이 빌딩/ 눈부신 유리창 속으로 날아 들어가 굉음을 내며 /폭발하는 은빛 비행기 //(그 은빛 비행기에는 검은 외투를 벗어버린 알몸의 사내가 타고 있었고?)//아침 11시, 빨간 버스는 아마존 숲 위를 날아가고/그녀의 파란 의자는 더 반짝이기 시작한다 ( 심상운 시, 파란 의자, 전부)   이들 하이퍼 시가 장차 세계무대에서 한국시인들에 의해 독창적으로 창안된 새로운 시 모형들의 큰 성과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최진연은 위 인용한 논문에서 이 시작품에 관해 “이런 표현은 현실을 벗어난 공상의 산물이다. 그(심상운)는 현실세계뿐 아니라 가상현실에서도 시적 공간을 공상에 의해 확장하고 있다. 문학에서 공상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어본 사람이면 실감할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상세계를 무대로 전개되는 그 소설뿐 아니라 그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 7편이 평균 7억 달러쯤 벌어들였다니 엔터테인먼트 측면에서도 문학에서 공상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심상운이 공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시에 도입하여 시적 공간을 획기적으로 넓힌 최초의 시인이 아닌가 한다.[...] 그가 현실과 가상현실을 아울러 감각적인 시적 공간을 공상세계로 확장하고 있음은 일찍이 우리 시사에 볼 수 없었던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의 공상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은 우리가 종래의 시에서 흔히 말하는 기상(奇想conceit)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그 범위에 현실과 가상현실의 제한이 없다“고 논평을 한다.   최진연의 해설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과 공상과 환상의 세계에서 얘기 줄거리를 따라 주인공들의 행동이 묘사되며, 어둠과 밝음- 순수한 어린이 세계와 흉악한 어른들의 세계를 대조하여 수수께끼같은 사람의 삶의 다양성을 제시해서 깨닫게 해주고 한층 성장-성숙케 해주는 소설과 영화와 달리, 저 시는 그저 “현실을 벗어난 공상의 산물로서, 가상현실에서 공상만을 확장하고 있기에“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 아닌, 시인이라고 할 수가 있는 이의 시작품으로 보아줄 수가 없다는 진단에서만 그렇다. 불행하게도 위 시를 정신분열병 조울증 증상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으나, 어느 시인이 쓴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사람이 읽었다면, 결코 시라는 예술 작품이라고 인정해주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반문을 할 수 있다:   공상, 망상, 환상의 세계를 시인이 말하면 한편의 시-예술 작품이 되고, 정신이 미쳤다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말하면 “현실과 가상현실을 아울러 감각적인 (시적) 공간을 공상세계로 확장하고 있음은 일찍이 우리 시사에 볼 수 없었던 놀라운 일” 이 아니되는 것인가? 어떤 이는 이렇게 변명을 할지 모르겠다.: “개 장난같은 모형이라도 피카소가 그리면 수백억원짜리 값나가는 그림이 되지만, 어린애가 그리면 욕먹는 낙서가 된다.” -말되는 소리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는대로 느껴서 그리는 그림(畵)과 달리, 시라는 것은 언어로 창작하는 2차적인(철학적인 말로 “메타-”) 예술행위이다. 언어의 취사 선택이라는 고도의 사고작용의 산물이기에 단순한 시각예술과 구별이 되는 것이고 그만큼 지적판단 행위가 따르는 짓인 것이다. 언어의 취사선택이 없이 의미를 저버린 문장 나열하기는 글장난이나 말장난에 다름없는 짓일 뿐이다. 바로 이것이 정신이 건강하냐 병들었느냐의 판가름이 된다.  나. 그 주장에 대한 비판   바로 위에서 하이퍼 시작품을 감상하면서 나는 동시에 그 문제점도 정신분열증환자의 증상과 나란히 비교하여 지적한 바 있는데, 이제 그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을 할 차례이다.   최진연은 앞에서 언급한 논문에서 디지털 시, 탈관념 시, 사물 시, 하이퍼 시 간의 차별성이 없음을 다음과 같이 짧게 정리한다.: 하이퍼시와 디지털시의 차별성은 없어 보인다. 사이버 공간의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현실성을 지적하면서 사이버시대의 시에 있어서 탈관념의 근거를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이미지의 실재성을 가스통 바술라르의 시학에서 찾은 그(심상운)는 ‘의미의 예술’에서 ‘영상(이미지)의 예술’로 전환해야 함을 강조한다. 디지털 공학적 세계에서 구현되는 현상을 탈관념의 원초적 언어로 쓰는 디지털 시 쓰기에서 상상과 공상을 강조하는데, 이는 오남구의 탈관념시에서 영감(inspiration)과 관찰에 의한 ’직관을 강조한‘ 것과 다른 면이라 하겠다. 상상과 공상(fancy)을 강조하는 점이 심상운의 하이퍼시론의 차별성으로 보인다. 심상운이 사물에 대한 감각과 인지에 그치는 ’관념의 그림자‘ ’지장수 같은 의미‘를 인정하는 감각적 이미지의 표현은 한마디로 말해서 사물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시화(詩化)하자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고정관념을 벗어난 새로운 언어(의미)창조로서 사물시(physical poetry)에서도 강조하는 바이고, 하이퍼시에도 그대로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최진연의 차별성에 관한 비교 발언에는 디지털 시론을 주창한 오남구와 하이퍼 시론을 주창한 심상운간의 차별성을 중심으로 탈관념시와 사물시론의 불가분리성이 언급되어있을 뿐, 이들 시론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비판하는 데에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독자에게 감상의 태도 전환만을 요구하고 일방적인 희망적 예측만을 내놓는다. “[...]의미론적인 소통의 독해보다 읽고 느끼는 감성적 소통에 그쳐야 할 것이다. 읽고 느끼는 재미 이상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상상과 공상을 통해서 현실에서 볼 수 없거나 있을 수 없는 가상의 세계를 영상언어의 투명한 이미지로 그려 확장해보이는 것은 시인 자신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세계를 떠난 신선한 해방감을 주므로 환영하리라 생각된다.” 과연 그런 시를 읽는 독자들 중에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세계를 떠난 신선한 해방감을 맛보고 환영하게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이퍼 시쓰기를 적극 옹호하며 지지하는 조명제도 앞서 언급한 자신의 논문에서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는 막연한 기대점에서는 동일하다. “지금까지 하이퍼시 텍스트를 접해 온 시인들 가운데는 이념과 용어, 이론과 작품, 자기 모방과 유행어, 감동 부재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는 이들이 없지 않다. 이런 문제는 하이퍼 시를 쓰고 있는 당사자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논의되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난관을 차근차근 극복해 나갈 때 하이퍼 모더니즘의 시대는 보다 빨리 열릴 것이다.”   그에 지지하는 점에서는 뒤쳐져있지 않지만, 문제의 주요한 맥락만은 언급된 논문에서 손해일이 잘 짚어냈다. “하이퍼 시가 비논리적, 비선조적이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첨단 글쓰기라 해도 이를 어느 정도 조정하는 하이퍼링크적 기능이 없다면 현대시의 ‘낯설게 하기’를 넘어 난삽한 글쓰기나 시인 개인의 극히 편향되고 혼란스런 의식의 나열에 그치고 말 것이다. 아무리 복잡한 시대라 하더라도 인간의 기본욕구는 혼돈과 무질서보다는 정서적 안정과 예술적 즐거움을 선호할 것이다. 이미 수 십 년 전에 선보인 이상(李箱) 시인의 난해한 문제작들이 호사가들의 지적 호기심과 분석 텍스트로는 적합할지 몰라도 일반 독자대중들의 애송시는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독자를 먼저 의식하고 첨단을 리드한다는 하이퍼시가 수위 조절없이 의욕이 지나쳐 난해시로 편향될 경우 오히려 독자들의 외면을 자초할 위험이 크다.”   그러면서도 손해일은 다음과 같이 비상식적인 시 쓰기를 통해서 시작품의 일반적인 고정된 개념과 틀을 허물려고 시도한다.  “셔블 발기다래 빔드리 노니다가” 을지로-충무로통 골뱅이 골목 번개팅, 을지문덕-이순신장군,살수-한산대첩 축하연,생백주에 골뱅이 안주로 우리가 남이가! 나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e-mail을 날린다.클릭! 골뱅이복음@KOREA.COM, 오픈 세사미! 오우,베리 굳! 그란데 억수로 유감인기라,구텐베르그선생! 당신의 튻허 활자체를 1972년 미굴 BBN사 레이텀 린슨이 이메일 발신자 표시 약호로 처음 썼다 카는데...앹 사인(at sign) 앹심볼(at sinbol)이라나 뭐라카나,오우,노우! 바벨탑의 징벌! 나라마다 말쌈이 달라 헷갈리기 짝없으니 X-Y@#&{^6^}-(/+$)%=??? 줄줄이 사탕-링크-링크- 프랑스,이태리는 별미 끝내주는 달팽이- 됙일은 귀바퀴 동그란 오이-네델란드는 앞에 스라지(ape slaggi) 원숭이 꼬리-폴란드,루마니아는 똥구녁 뻘건 원슁이-스웨덴은 두르르말린 코끼리 코 [다음 생략...] *22)   위에 든 글을 나의 체험적인 정신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떤 진단을 내릴 수가 있을까? 정신병 초기에서 최악의 상태까지를 1-10 단계로 구분해본다면, 무의미(탈관념) 시- 1~2단계, 디지털 시– 3~5 단계, 초현실주의 시– 6~8단계, 그리고 위에 인용한 손해일의 하이퍼 시 는 9~10단계 에 해당한다고 보겠다. 이러한 단계는 죽음을 최소한 5~6개월을 앞에 둔 환자의 말기상태인데, 극심한 환시(幻視)증 정신분열 환자가 간헐적으로 토해내는 말씨들을 주워 모아 놓으면 저런 글이 나올 수 있다.   저런 상태일 경우 환자는 거의 음식을 먹지를 못하기 때문에 신체는 말라서 뼈만 남아 뵌다. 깍두기가 사람 손톱처럼 보인다거나 얼큰하게 끓인 찌개가 피를 흘린 살점으로 보이고 김치가 돼지 창자처럼 보여서 아무 것도 먹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여자 환자의 경우 치마도 팬티도 다 벗어던지고 펄쩍 펄쩍 날뛰다가 자절하기에 손발을 묶어서 독방에 가두고 안정제를 투여하여야만 어느 정도 주변사람이 여유를 가질 수가 있는 때이다. 사물과 사람이 그 형체나 활동이 혼동되고 혼난스러워서 자신의 감각기관이 주체를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 쯤 되면 주변의 건강한 사람이 볼 때 하염없이 인간으로서 무력감을 느끼고 전혀 도움의 손길을 뻗칠 수가 없어 절망감과 자괴감을 갖고 괴로워하게 되는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하이퍼 시짓기를 주장하고 고집하는 이유는 “비논리적, 비선조직이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첨단 글쓰기”가 정신분열병 환자의 “비논리적, 비선조직이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첨단 말하기” 나 다름없음을 알지 못한데서 기인하고, “개인의 극히 편향되고 혼란스런 의식의 나열에 그치고 말 것” 이 정신분열병 환자의 증상에서 나오는 지껄임투와 다름없다는 사실에 무지하여 그런 병자와 같은 짓을 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 날 의(醫)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신경계통의 질병치료수단에 관해서는 아직도 커다란 진보를 하지 못하였다. 왜 신체가 멀쩡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정신 이상상태를 보여서 완전히 비상식적인 말과 행동을 하고 나중엔 불행한 생애로 마감하게 되는 것인지, 그것이 유전적인 요인인가 아니면 충격받은 환경적 요인인가가 아직도 뚜렷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수많은 정신 병의원이 있지만 모든 정신병을 말끔히 완치시키는 곳은 없고 의사도 신경을 안정시키는 선에서 개선을 많이 하느냐 않하느냐에 치료효과를 두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업무를 보던 정신병자 요양원은 이름난 정신병원을 많이 돌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으나 완쾌를 못보고, 많은 치료비로 재산을 거의 바닥을 내서, 지친 가족이나 환자나 이제 마지막으로 신체를 위탁하는 곳이었다. 이 병은 사람의 뇌와 심리상태의 미묘한 시스템에서 기인하기에 의과학을 공부한 의사들도 뇌 신경 조직을 다 뜯어 살펴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두 손을 들고만 있는 지경이다. 그리하여 차라리 종교적인 신비하고 기적적인 카리스마에 의한 치료술을 기대하는 것인데 이는 전통적으로 무속에 의해서 무당들이 굿으로 악귀를 축출하여 본래의 심리를 되찾으려한 방법과 비슷한 것이기도 하였다. 이 말은 달리 신앙지도에 의해서 심신을 추스르고 정신건강을 회복시키는 종교교육자의 능력도 정신과 의사 에 못지않은 치료효과를 거두기도 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60년대에 새로운 시적 실험으로서 ”무의미 시“운동을 하게 된 김춘수가 ”무의미 시“의 막다른 골목에서 다시 ”의미의 시“세계로 돌아와 고백한 말을 경청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나의 무의미시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 또 의미의 세계로 발을 되돌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23)    이는 그 시 이론을 다루면서 처음에 내가 지적한  모순성을 늦게야 깨달았다는 자기 고백이요 솔직한 증언이다.  그 러면서 늦게야 철이 든 사람처럼 김춘수는 전위적인 시 쓰기를 하는 시인들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우선 내가 봐도 이해 안 되는 시들이 있다. 박상순, 송찬호의 시 같은 시들이다. 이들의 시는 전위적이다. 이들에게는 이미지가 그려내는 환상세계만 있을 뿐이다. 허무적이다. 의식상태가 그런 거 같다. 믿고 기대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철저한 비대상 세계, 말하고 싶은 대상이 없는 거다. 환상세계가 이미지를 통해서만 펼쳐지고 있는데, 아무 의미없는 세계다. 그 허무를 언제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허무는 견뎌내기 어렵다. 뭔가 기대는 게 있어야 된다. 사람이라고 하는 육체를 가진 이상, 허무를 이겨내지 못한다. 허무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자유, 완전히 해방된 상태다. 그 자유를 견디지 못한다. 내가 무의미시를 견디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계속 이런 시만 못 쓴다. [...]의식이라고 하는 건 언어다. 언어와 의식은 동일한 것이다. 언어에서 해방된다고 하는 것은 모든 것에서 해방된다고 하는 건데 결국 언어에서 완전히 해방된다는 건 시를 못쓴다는 것이다[...]시적 진일보라는 게 어느 한계에 가면 막다른 골목이다. 우리 시도 막다른 골목에 가 있다. 시가 없어지는 단계에까지 와있다.”*24)   여기서 전위적인 실험시, 무의미시에 대한 솔직한 김춘수의 비판은 하이퍼 시 뿐만이 아니라 거기 공속한다고 지적한 다른 전위적인 시-이론들에도 해당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시가 없어지는 단계에까지 와 있다.”  * 글 맺음   지금까지 나는 이른 바 무의미(탈관념) 시, 초현실주의 시, 디지털 시, 하이퍼 시라고 또 불리는 것들을 평론하였다. 이들 시론을 펴는 이들의 공통된 주장으로부터 우리는 그것들이 이름을 달리하고 있음에도 (1) 전위적인 실험적 시, 또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해체론에 입각한 시류(詩流)에 속한다는 점 (2) 무의미는 탈 관념적이고 그러는 한 현실을 벗어난 가상적인 공간과 이미지를 중시하여 의식과 잠재의식(=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고 연과 연, 또는 한 연 속의 문장과 문장을 인과적 관계의 논리성 없이 구성하며, 상상력의 비약에 의해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초월한 언어 단위(unit)들로 구성된다는 있다는 점이며, 바로 그런 수단과 방법들로 인하여 아날로그의 시대를 마감하고 디지털의 기술 시대에 걸맞는 시 운동이고 이 디지털 기술을 응용한 문자, 동영상, 이미지, 시적 상상력 등이 쌍방향 또는 방사형 네트워크로 가지를 치고 얽히고 설켜 복합구성을 이루고, 크고 작은 마디인 시어와 행과 연, 의미단락 등 기본 유니트(unit)들이 거미망처럼 하이퍼링크(hyper link)로 연결돼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을 이룬다는 점에서 하이퍼 텍스트(링크)적 글 쓰기로 하이퍼 시작법 이라는 것과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다는 방식에서 한 통속에 넣을 수가 있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가 있음을 알았다.   뒤돌아보면, 일찍이 프랑스에서 일단의 예술가들이 “쉬르레알리즘(surrealism, 초현실주의)” 운동을 선언한 때부터 오늘날까지도, 창조적인 상상력과 자유로운 이미지의 구현이라는 목표에만 이성(理性)이 함몰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와 같은 아류로서 무의미 시니 디지털 시니 하이퍼 시니 하면서 전위적인 시운동과 그런 이론들이 아무런 반성이 없이 마구 내뱉어졌다. 심지어 차 영한 시인처럼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처럼 허무적이거나 파괴적인 격렬한 반응이 아닌 초현실과 정신, 신비한 꿈이 결합한 가장 위대한 정신의 자유”라는 극 찬양까지 서슴없이 하기에 이르렀다*25). 이럴진대 지금까지(나의 이 비판 논평문이 나오기 까지) 아무도 그것의 부정적이고 치유되지 않는 병적인 이면까지 파헤쳐 보는 노력도 없었고 아무도 이를 밝힌 이도 없었다.   어떤 이들은 강 건너편(피안)을 동경하고 그리로 가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며 산다. 지금 이곳(차안)의 일상적 생활이 불편해서이기도 하고, 너무 안락한 나머지 싫증이 나서 모험심을 가지고 여기와는 또 다른 경험을 해보고자 하는 이유도 있다. 온갖 상상과 공상으로 저쪽 강건너 쪽을 묘사하고 꿈을 꾸어 채색하고 황당한 이야기도 해댄다. 그러나 강 저쪽을 건너간 사람들은 다시는 강 이쪽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이 강을 건너간 후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말하고 행동을 했고 더는 이 쪽 세상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 저쪽의 비참한 생활은 강 이 쪽 사람들도 알 수가 없었다. 오직 단 한 사람만이 강 저쪽의 세상을 가 보았다. 가서 보고 이쪽으로 건너와서 지금 저쪽의 세계의 불행과 슬픔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말을 무시하거나 믿지를 않으려들고 여전히 자신의 상상과 공상과 망상이 만들어 낸 저쪽 세계만을 동경하고 그 쪽을 찬탄하며 계속 글쓰기를 고집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고뇌에 찬 독창적인 시 예술작품을 정신분열증 환자의 넋두리라느니 지껄임이라느니... 하여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고 달라들지도 모른다. 구원할 수 없는 인간의 자만행위에 마침내 이 글쓰는 이는 고통스럽게도 침묵하기로 할지 모른다. 그러나 비판의 정당성이 별처럼 밝다면 이를 막으려는 어떤 횡포의 암흑도 당해낼 수가 없을 것이란 사실은 이성을 신뢰하는 역사의 징표이다.   상상(imagination)과 공상(fancy)은 예술(문학) 창작의 바탕이 되는 세계이다. 그것이 없이는 예술이 설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가치있는) 주제를 표현해내고자 사용하는 수단이 되어야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고 단지 오락(유희)를 위한 방법이 될 때는 문학이든 예술이든 한갓 만화책같은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뿐이다.   이제 우리는 결국에 와서 본질적인 질문앞에 당도하였다. 불행한 정신병자들이 지껄이는 짓을 왜 그토록 배운 지식층 시인과 평론한다는 이들이 흉내내려고 안달을 하는가? 애지중지 키워서 많은 돈을 들여 대학교를 보내고 세상에서 출세하기를 바랬는데, 시인인가 평론가인가 되어서 외롭게 글짓기를 하고 함께 모여 연구하고 기를 쓰고 공부하더니, 한다는 소리가 기껏 “ 쯪쯪... 젊은 놈이 사지는 멀쩡해가지고, 정신이 돌아서 미친 넋두리나 지껄이고 다니다니...”하는 탄식의 소리를 듣는 정신분열증환자의 지껄임짓이나 하겠다는 말인가? 도대체 왜 이 지경에 이르고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온갖 미사여귀를 동원한 수식어를 앞세워 시문학의 예술에 전위대요 선구자요 창조적인 활동가라는 허위의식속에 자기를 망각하고 독자를 우롱케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일까? 그 이유는 첫째로 사태의 한쪽 면만을 보고 이를 전부로 생각하고 눈딱감고 덤벼들어서 다른 쪽 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탓이고 둘째로는 특수한 개성있는 시작품을 선보여서 남의 이목을 집중해보자는  시선끌기 예술의 의도적 일탈일 수도 있고 셋째로는 창작활동에 나침판 구실을 할 문학의 이념에 대한 정립 곧 문학의 오랜 세월에 걸쳐 확립된 정의에 관한 확고한 인식이 결여된 탓이라고 비판해야 하겠다. 그러므로 시(문학)의 이상과 가치관 확립하기가 마지막에 와서도 우리의 제일의 관심사가 되기에 이르렀다.   문학이란, 웰렉과 워렌(R. Wellek & A. Warren)이 그들의 저서 『문학의 이론」*26)에서 주장하듯이, 작가의 체험을 통해 얻은 진실을 함축적·내포적이며 비유·상징 등의 언어를 통해 표현하는 예술로서 인생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창조의 세계이다. 비록 허구화된 현실일지라도 실제 현실의 모방이며, 현실의 모습중 의미있는 내용을 선택하여 상상력과 작가의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인데, 이 때 문학은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제시하고 현실의 문제를 바로잡는 힘으로 작용하는 기능을 한다. 여기서 사상과 정서의 표현 의식이 생기는데, 미의식이 정서와 관련이 있는 형성적 요소라면, 윤리성이나 이념의 문제는 문학의 내용을 이루는 사상과 관련이 있다고 할 것이다. 곧 미적(美的)으로 정화되고 정서화된 사상의 표현만이 문학일 수 있다. 문학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로서 미적인 즐거움(오락성)을 주지만, 동시에 거기에는 언제나감동을 주고 삶의 바람직한 의미를 줄 수 있는 사상을 상징적으로 그려내어 Paul Ricceur가 말한바 처럼, “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해서 달리는 포착되지 않는 우리의 존재상황에 대한 깨달음을 가능케 하는 힘을 주는 것이” *27)어야 한다.   인류 역사에 불멸의 영원성을 띠고 시대와 장소와 인종을 초월하여 독자들에게 늘 읽히는 문학서들- 소설이든 시이든 희곡이든 -은 재미(오락성)와 감동(깨달음)을 함깨 지닌 것들이었다. 여기서 재미(오락성)을 단순히 유희나 장난같은 놀이로 착각해서 이해하지 말라. 감동을 주는 웃음 울음이나 감정의 진폭을 다스려서 카타르시스(치유)를 겪게 하는 그런 재미를 말한다. 그러한 카타르시스적 오락성(재미)이 유감스럽게도 하이퍼 시라는 것에는 들어있지도 않고 들어올 수가 없다.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에서 시 짓기의 실험 정신과 다양한 기법에 대한 욕구는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무의미(탈관념) 시, 초현실주의 시, 사물 시, 디지털 시, 하이퍼 시라는 것들은 감동(깨달음)성을 교훈적인 것이거나 의도적인 것이라 하여 문학에서 배제하고, 단순히 사물성이나 오락성만을 강조하여 이를 무의미 또는 유희화 하려는 유혹에 빠져 있다. 시가 꼭 교훈적이거나 교육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또 모두가 그러한 시만 쓴다면 시는 도덕 과목이거나 윤리과목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시가 단순히 오락성과 유희의 도구로 전락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문학 예술이 될 수가 없고, 놀이(게임)의 한 가지로 추락해버릴 것이다. 언어를 수단으로 하는 시문학은 영화(영상)나 그림(회화)이나 건축이나 조형예술을 흉내 낼 수도 없고 따라갈 수도 없는 것이다. 만일 그것을 노린다면 시문학은 다른 영상매체의 보조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최진연은 상상력과 환상속에 펼쳐지는 오락성으로 한 시대를 석권한 영국의 환타지 소년소설 해리포터를 보기로 들면서 시짓기도 그에 따라하기를 권고하나 그 환타지 작품의 겉 맛을 파고 들어가 숨겨진 권선징악(또는 어두운 어른들의 세력에 대한 순수한 동심의 세계의 극복)의 측면까지 엿보지 못하여서 유감이다. 소설과 달리 詩가 하이퍼 시인들이 주장하듯이 사이버시대에 걸맞는 현대인들에게 오락성을 주자고 그 쪽으로 경도된다면, 엄청나게 다양한 오락을 주는 기기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서 외면받고,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자신들의 시와 함께 파묻히고 말 것이다. 그들에게 굳이 하이퍼시와 같이 이해가 어렵고 까다롭고 고통스런 글을 읽겠다고 돈을 들여 시집을 사거나 시간을 낼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김춘수가 자기 삶의 말년에 와서 시문학계에 권고하는 다음의 말을 경청해보자.:시에 대한 자의식이 있어야 된다. 자기 시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왜 이런 시를 썼는가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냥 충동적으로(전위적인 詩들 처럼-글쓴이) 쓰고 마는 것은 아마추어가 하는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떤 예술가적 자의식이 있어야 한다. 시는 자연발생적으로 나올 수가 있지만 그걸 의식하고 제어하는 이성이 있어야 한다. 19세기 시대의 로맨티스트들처럼 자연발생적으로 부르짓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28) 이같이 김춘수가 시인 자신의 시작활동에 반성과 비판을 요구하는 것은 문학의 본질적인 전통적인 정신을 향해 깨어있으라는 주문이나 다를 게 없다.   시(문학)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가치를 매겨서 의미있는 세계, 가치있는 세계를 건립하여, 인간성을 회복하는데 기여하고 인본주의를 고양시킴으로서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새로울수록 우리의 삶은 건강하고 우리의 내일은 더욱 정신적으로 풍요로울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 이래,아니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같은, 중세 암흑기를 거쳐 르네상스운동에 목숨을 바쳐온 인류의 고귀한 재산은 문학을 통한 휴메니즘의 구축 -바로 그것이 아니었던가? 시 창작의 자유에 바로 이 근본 정신은 깃발처럼 늘 펄럭여서 살아있어야만 한다.                                                                                           끝.   ......................................................................................................                                                                                                                           *곁 풀이     1)심상운, 탈관념 시에 대한 이해, 월간,시문학 2006.8월호, 시문학사 2)심상운, 위의 논문 , 같은 곳 3)심상운“21세기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형태를 추구하는 젊은 시 운동-‘하이퍼시’-기존관념에서 해방, 자유로운 상상력의 발현, 우주적 개안”  4)손해일, “의식- 무의식-언어의 징검다리와 하이퍼 링크” 월간. 시문학 2008.6월호 .시문학사 5)조명제, “하이퍼모더니즘의 시대는 오는가”. 월간.시문학 2008.10월호  6)최진연, “하이퍼시(hyper poetry)의 이해” . 월간. 시문학 2010.10월호 7)당시 글쓴이의 경험에 의하면, 김양이나 강씨는 조증(=기분의 고양상태,흥분)의 상태에 빠져있지 않고 성격적으로도 차분한 편인인데도, 홀로 중얼거리며 돌아다니거나 옆에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지껄여댔는데, 그런 이들이 꽤 있었다. 8)이홍식,정신분열증, 진수출판사,1995, 88쪽,94,  Pychopathology, Milyn R.Zide & Susan W. Gray. (역) 전석균, 권구영, 서미경 , 71,72쪽. 하나 의학사,2003.  학원 세계대백과사전26. 12쪽 정신분열병. 학원사,1993.  그밖에, 포탈- 네이버 관련항 참조 9)심상운: “이 글은 1981년 12월호 월간 에 김춘수 시인의 現代詩의 探究로 발표된 글로서 현대시를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되는 매우 중요한 논문이다.”라고 하면서 심상운 시인이 옮긴 것이다. 10)심상운: “이 글은 1981년 12월호 월간 에 김춘수 시인의 現代詩의 探究로 발표된 글로서 현대시를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되는 매우 중요한 논문이다.”라고 하면서 심상운 시인이 옮긴 것이다. 11)M. Heidegger, HU。S。313 12)M. Heidegger,HW。S。310.  13)최이인( 엣이름; 최성도), 시작적 사유(사고). 연세대학교 대학원, 1990, 석사학위 논문 참고 14)최진연, 탈관념은 가능한가? 월간,시문학 2006. 7월호 15)M. Heidegger,US. S. 208. 16)심상운.위의 논문, 같은 곳 17)심상운; “이 글은 (신구문화사 1961년11월)의 "시작노트"에 실려 있는 시인 조향의 시작노트를 원문 그대로 수록한 글입니다. 앞서 감상문에서 언급했던, "바다의 층계"에 관한 시인 자신의 해설도 있고 해서 그의 시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이라고 생각되어 옮겨 봅니다”. 18)여기서 無意識 이란 용어 자체가 성립 될 수가 없는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의식과 잠재의식 이라고 바꾸어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무의식 이란 의식이 없다는 말인데, 혼절했거나,죽은 상태인데 어떻게 경계를 넘나드나? 19)최진연, 하이퍼시의 이해, 월간, 시문학 2010.9월호 20)마르틴 하이데거 철학에서 존재론의 핵심임 21)최진연, 위 논문, 같은 곳 22) 현대시인협회 발행, 2011년 사화집 23) 김춘수 시전집, 서문, 현대문학사, 2004  24) 김춘수- 이재훈과의 인터뷰, 현대시 2004년 4월호  25) 차영한, 초현실주의 시와 시론, 한국문연, 2011 26) 웰렉과 워렌(R. Wellek & A. Warren), 『문학의 이론』 ,김병철 역, 서울 을유문화사,1993 27) Paul Ricceur, Interpretation Theory, Fort Worth, Texas, 1976, p. 37. 28) 김춘수- 이재훈과의 인터뷰, 현대시 200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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