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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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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3    풍유시로 사회를 고발한 백거이 댓글:  조회:4643  추천:0  2016-02-10
시와 정치의 밀접한 관계를 역설하였다         백거이白居易(772~846)의 본관은 원래 태원太原이었는데, 그의 6대 조부 건建이 태원에서 한성韓城으로 이주하였으며, 증조부 온溫이 한성에서 하규下邽(지금의 섬서陝西 위남渭南)로 이주하였다. 백거이의 집안은 비록 명문귀족은 아니었지만 대대로 학문을 하며 관리를 지내온 학자집안이었다. 그의 조부는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와 산조酸棗, 공현鞏縣의 현령을 역임했으며, 그의 부친은 소산현위蕭山縣尉, 송주사호참군宋州司戶參軍, 팽성彭城 현령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그의 자술에서 “가련하였다. 소년시절에 가세가 빈천하였으니!( 권2 : 可憐哉 少年時家境適在貧賤中!)”라고 탄식한 것을 보면, 그가 출생할 당시에 집안 상황은 상당히 곤궁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매우 총명하여 출생한지 6~7개월 만에 비록 말은 못하였지만 무無자와 지之자를 구별할 수 있었으며, 5~6세 때에 시 짓는 법을 배우고, 9세에 성운을 알았으며, 15~16세에 진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독서에 열중하였다. 정원貞元 3년(16세)에 그는 장안長安에 가서 대시인 고황顧況의 현실주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지도를 받고, 이라는 시로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정원 10년(23세)에 그의 부친이 양주襄州에서 세상을 떠난 후 어려운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정원 16년(29세)에 비로소 고영高郢이 주관한 진사 시험에 합격하여 관리로 진출하였다.   그는 32세에 비서성교서랑秘書省校書郞을 거쳐, 원화元和 원년(35세)에 원진元稹과 함께 제책制策시험에 응시, 4등으로 합격하여(원진은 3등) 주질현위盩厔縣尉에 임명되었다. 원진은 좌습유左拾遺에 임명되었다. 그해 겨울 12월에 유명한 를 지었다.   백거이가 태어난 때는 이백李白(701~762)이 죽은 지 10년, 원결元結이 죽은 바로 그해였다. 문학혁신의 기풍과 곤궁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한 백거이는 관계에 진출하여 정치의 문란과 관리들의 부패, 과중한 세금에 허덕이는 백성들의 고통 등 불평스러운 사회현상을 목도하고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구세제민救世濟民의 뜻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관직이 그다지 높지도 않았고 실권도 없었으므로 시가詩歌로서 민생의 고통을 대변하고 정치의 부당함을 풍자하여 탐관오리를 공격하는 도구로 삼았다.   백거이는 시가의 이러한 사회적 효용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써 채시관採詩官 제도의 시행을 황제에게 건의하여 시와 정치의 밀접한 관계를 역설하였다.   신이 듣건대 성왕은 다른 사람의 말을 참작하여 자신의 허물을 보완하여 이로써 다스림의 근본을 세우고 교화의 근원을 이끈다고 합니다. 장차 풍속을 살피는 관리를 뽑고 채시관을 설립하여 노래 부르는 소리와 풍자하는 시를 매일 아래에서 채집하고 해마다 위에 바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을 일러 말하는 자는 죄가 없고 그것을 듣는 자는 스스로 경계하기에 족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第69 '採詩': 臣聞, 聖王酌人之言, 補己之過, 所以立理本, 導化源也. 將在乎選觀風之使, 建採詩之官, 俾乎歌詠之聲, 諷刺之興, 日採於下, 歲獻於上者也. 所謂言之者無罪, 聞之者是以自誡   그는 “임금, 신하, 백성, 사물을 위하여 시를 지은 것이지 문체를 위하여 지은 것이 아니며(: 爲君, 爲臣, 爲民, 爲物, 爲事而昨, 不爲文而作)”, “윗사람은 풍風으로써 아랫사람을 교화하고,아랫사람은 풍으로써 윗사람을 풍자해야 한다(: 上以風化下, 下以風刺上)”는 정신에 입각하여 시의 사회적 효용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주장을 실천하기 위하여 정치와 사회를 비판한  172수를 짓고 그것에 최고의 평가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1082    그 누구에게나 가슴속엔 詩가 가득듬뿍... 댓글:  조회:5822  추천:0  2016-02-10
가슴 속의 시를 끄집어내는 능력 있어야 정호승 제 경우를 예로 들겠습니다. 어느 날 퇴근을 해서 집에 갔더니 제 처가 시장에서 무지개떡을 사왔습니다. 무지개떡을 보니까 '아! 무지개떡 옛날에 엄마가 많이 사주셨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으면서 '무지개떡 참 맛있다. 마누라가 사주니까 더 맛있다. 잘 먹었어.' 하고 말면 그 속에는 시가 없다는 거죠. 무지개떡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무지개가 들어 있지요. 무지개떡을 먹을 때는 무엇을 먹었습니까? 저는 무지개를 먹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짧은 시를 하나 썼습니다. 엄마가 사오신 무지개떡을 먹었다 떡은 먹고 무지개는 남겨 놓았다 북한산에 무지개가 걸렸다 마누라가 사온 무지개떡을 먹었다고 하면 재미가 없는데, '엄마가 사온 무지개떡을 먹었다'라고 표현한 데 시의 비밀이 있습니다. 시적 화자가 소년의 마음이 된 거죠. 떡은 먹고 무지개를 남겨놓을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 내 마음속에 있는 시를 그냥 자연스럽게 밖으로 내보낸 거죠. 제가 무지개떡을 먹으면서 시를 발견한 겁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의 눈 속에도 시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이 다 있는데, 스스로 가지고 있는 마음의 눈을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시를 발견하지 못한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린 왕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 거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즉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의 눈을 가진 때에는, 모든 사물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지개떡이니까 분명히 그 속에는 무지개가 있듯이…. 얼마 전에 '종이학'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종이학은 저의 큰 아이가 군에 입대를 하게 된 것을 계기로 씌어졌습니다. 녀석은 군에 입대하기 전날 술에 취해서 제 방에 천 마리의 종이학이 담긴 커다란 유리 항아리를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아빠, 제가 제대할 때까지 이걸 잘 좀 보관해 주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대답했습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이 종이학을 제대하는 그날까지 한 마리도 죽이지 않고 잘 보관했다가 너한테 돌려주겠다." 그런데 녀석이 입대한 후 천 마리의 종이학이 유리 항아리 속에서 사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너무 불쌍해 보였습니다. 아! 저 종이학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갑갑한 항아리 속을 뛰쳐나가서 저 푸른 하늘 속으로 날아가고 싶을 텐데… 종이학은 비상의 꿈을 끊임없이 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잘 간직하라는 말만 듣고, 명색이 시인인 아버지가 종이학들을 날려보내지도 않고 있다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직무를 방기(放棄)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유리 항아리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서 종이학을 날려 보낼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인으로서 가장 치졸한 방법이었습니다. 아주 물리적인 방법이라는 거지요. 마지막으로 시인이 종이학들을 날려 보내는 방법으로 택한 것은 시였습니다. 시를 썼는데 어떻게 하면 종이학이 날아갈까요? 시인이 종이학이 날아간다고 하면 날아가는 거에요. 시인이 꽃이 웃는다고 하면 꽃이 활짝 웃는 거에요. 꽃이 핀 것을 보고 시인이 '꽃이 운다.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을 떨군다.' 하면 꽃이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그것은 시인의 힘입니다. 그래서 내가 '종이학이 날아간다'고 썼더니 종이학들이 막 날아갔습니다. 유리 항아리를 뛰쳐나와서 날아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왕이면 멀리 날려 보냈으면 해서, '관악산을 넘어서' 하고 생각하다가 너무 가까운 것 같아서, '지리산으로 날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종이학이 날아간다. 지리산으로 날아간다'라고 썼습니다. 그러자 지리산을 향해서 날개에 힘을 싣고 천마리나 되는 종이학이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걱정이 되었습니다. 비가 오면 어떡하지? 종이학이 날아가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 어떻게 됩니까? 종이학이 다 젖어서 떨어져서 죽을 것 아닙니까? 종이학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간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비가 오면 종이는 슬쩍 남겨두고 날아간다.' 라고 쓴 거죠. 그러자 비가 와도 아무런 걱정이 없어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좁은 항아리 속에 갇혀 있던 종이학 천 마리를 날려보냈습니다 당신은 시를 쓰는 사람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느냐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여러분들과 제 가슴속에는 누구에게나 시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그 가득 들어 있는 시를 발견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제가 무지개떡과 종이학을 빌어 말씀드렸습니다. 제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1, 2학년 때 저녁 시간이 되었는데 골목에서 '고등어 사려. 금방 바다에서 가져온 싱싱한 고등어 사려!' 하는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저녁에 고등어나 좀 지질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고등어를 사러 나갔는데, 자기 아들이 골목 쪽 창문을 열고 내다보더니, 고등어 장사 아저씨한테 "아저씨, 고등어 얼굴 예쁜 걸로 주세요." 하고 말하더랍니다. 그 말을 들은 제 친구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고등어의 얼굴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아들이 "얼굴이 예쁜 고등어로 달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친구는 너무너무 감동을 받아서 이 아이를 낳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답니다. 친구는 자기 아들의 말 한마디가 바로 시라고 했습니다. 금방 양념이 발라지거나 해서 죽어버릴 고등어이지만, 소년의 마음속에서 이왕이면 예쁜 얼굴인 걸로 달라고 하는 마음이 바로 시의 마음입니다. 어느 봄날 여수까지 가는 기차를 타고 여수역에 내렸습니다. 역에 내린 순간 '아니 왜 기차가 여수역에서 더 가지 않고 멈추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여수역에서 기차가 멈추지 않고 여수 앞바다에서 오동도로 한 바퀴 휙 돌고 저쪽 바다로 기차가 계속 가면 될 텐데 왜 여기서 멈추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제 머리 속에서는 기차가 여수역에 멈추지 않고 그대로 바다속으로 달리는 장면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속에 탄 승객들이 기분이 좋아서 창문을 열고 갈매기들과 손짓도 하고 바다 속으로도 기차가 은하철도 999처럼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물고기들도 함께 타고…. 기차를 타고 수평선 위를 달리는 기차를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현실 속의 기차는 부산역이나 목포역이나 여수역에서 더 이상 앞으로 달리지 못하지만, 우리 마음속의 시는 그 기차를 얼마든지 수평선 위로 달리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 내리고 빈 기차가 달리면, 바다 속에 있는 물고기들이 전부 자기들이 승객이 되어 차창에 기대어 애인 물고기들끼리 서로 손을 잡고 서로 사랑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바로 시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시를 표현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바꾸어서 말하면, 인간의 눈으로만 사물을 바라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시를 어떻게 하면 잘 끄집어 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보다 자극을 주어서 끄집어 낼 수 있을까요. 그 가장 좋은 방법은 눈이 아닌 인간의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또는 어떤 현상만을 바라보지 말라는 말씀을 여러분들한테 드리고 싶습니다. 시계가 있다고 하면, 이 시계의 마음으로 인간을 바라보면은 인간의 모습이 달라지고 시계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안도현이 쓴 「연탄재」라는 짧은 시가 있습니다. 아마 이런 내용이었을 겁니다 '연탄재를 함부로 차지 말아라. 당신은 언제 이 연탄재만큼 뜨겁게 누구를 사랑해 봤느냐?' 그런데 이 시에 감동이 있습니다. 이 시는 어떻게 쓰여졌을까요? 인간의 눈으로 연탄재를 바라보고 썼을까요? 아닙니다. 연탄재의 눈으로 연탄재의 마음으로 쓴 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연탄재가 뜨겁게 누구를 사랑했다'고 쓴 겁니다. 항상 우리는 인간의 눈으로만 사물을 바라보지 말고 사물의 마음이 되어서 인간을 바라보는 그런 마음을 가질 때 우리 마음속에 가득 들어있는 시는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고 또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시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을 따름이지요. 시는 은유의 세계입니다. 시는 은유의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기본입니다. 은유는 시의 본질입니다. 은유를 이해해야만 시가 쉬워집니다. 먼저 국어사전에서 은유를 찾아보면 '비유법의 하나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은 전봇대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라고 씌어 있습니다. 키가 큰 것을 전봇대로 비유한 것이 바로 은유입니다. =================================================================================== 250. 가을 / 강은교 가을 강 은 교 기쁨을 따라갔네 작은 오두막이었네 슬픔과 둘이 살고 있었네 슬픔이 집을 비울 때는 기쁨이 집을 지킨다고 하였네 어느 하루 찬바람 불던 날 살짝 가보았네 작은 마당에는 붉은 감 매달린 나무 한 그루 서성서성 눈물을 줍고 있었고 뒤에 있던 산, 날개를 펴고 있었네 산이 말했네 어서 가 보게, 그대의 집으로…… 강은교 시집 중에서 ------------------------------------------------------------ 251. 빨래 너는 여자 / 강은교 빨래 너는 여자 강 은 교 햇빛이 ‘바리움’처럼 쏟아지는 한낮, 한 여자가 빨래를 널고 있다, 그 여자는 위험스레 지붕 끝을 걷고 있다, 런닝셔츠를 탁탁 털어 허공에 쓰윽 문대기도 한다. 여기서 보니 허공과 그 여자는 무척 가까워 보인다, 그 여자의 일생이 달려와 거기 담요 옆에 펄럭인다, 그 여자가 웃는다, 그 여자의 웃음이 허공을 건너 햇빛을 건너 빨래 통에 담겨 있는 우리의 살에 스며든다, 어물거리는 바람, 어물거리는 구름들. 그 여자는 이제 아기 원피스를 넌다. 무용수처럼 발끝을 곧추세워 서서 허공에 탁탁 털어 빨랫줄에 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그 여자의 무용은 끝났다. 그 여자는 뛰어간다. 구름을 들고. 강은교 시집 중에서 * 바리움은 신경안정제다. 이 약을 평생 동안 복용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인은 그런 아픔 속에서 노동과 무용, 지상과 허공이 근접하는 경이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빗방울 하나가 5 / 강은교 빗방울 하나가·5 강 은 교 무엇인가가 창문을 똑똑 두드린다. 놀라서 소리나는 쪽을 바라본다. 빗방울 하나가 서 있다가 쪼르르륵 떨어져 내린다. 우리는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 강은교 시집 중에서 -------------------------------------------------- 249. 목도리 / 강은교 목도리 강 은 교 목도리를 잃어버렸다 며칠을 눈에 밟혔다, 그러나 아마도…… 그것은 지금 누구인가의 목을 한창 끌어안고 있을 것이다 마치 내 목에 그랬던 것처럼. 강은교 시집 중에서
1081    묘비명 한졸가리 댓글:  조회:5020  추천:0  2016-02-10
묘비명 / 후안 헬만(Juan Gelman)         새 한 마리 내 안에 살았다. 꽃 한 송이 내 피를 떠돌았다. 내 마음은 바이올린이었다.   사랑했다, 사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때로 나를 사랑해주었다. 봄, 맞잡은 두 손, 행복함에 나도 즐거웠다.   내 말은 사람은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새 한 마리 눕는다                                    꽃 한 송이                                                    바이올린 하나)        
1080    남미주 칠레 민중시인 네루다를 다시 만나다 댓글:  조회:4523  추천:0  2016-02-09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한’ 칠레의 민중시인파블로 네루다 “네루다의 시는 언어가 아니라 하나의 생동이다.”라고 정현종 시인은 말했다. 민용태 시인은 네루다 시의 생동감을 한 단어로 ‘열대성’ 또는 ‘다혈성’이라고 표현했다. 실로 네루다의 시를 읽으면, 폭우에 흠뻑 젖는 느낌, 강렬한 태양 아래 벌거벗고 선 느낌, 폭풍우가 내 몸을 뚫고 지나가는 느낌, 그리고 빽빽한 밀림 속에서 공룡 알로 누워 있는 느낌이 교차한다. 공산당 입당, 박수갈채와 가시밭길의 삶 함께 걸어 네루다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파란만장한 삶을 산 만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매우 어렵지만, 1945년 7월 칠레 공산당에 입당한 것이야말로 커다란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 7월 8일, 네루다는 산티아고의 카우폴리칸 경기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칠레 공산당 입당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대는 나에게 낯선 사람들에 대한 형제애를 주었다./ 그대는 나에게 살아 있는 모든 이들의 힘을 보태주었다”라고 노래한 그의 시 ‘나의 당에게’는 바로 이 순간이 그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1948년 1월 6일 의회석상에서 연설하는 네루다. 이 연설은 이후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다. 공산당 입당 이후 그의 생애는 격동의 세월 그 자체였던 칠레의 역사와 더불어 영광과 고난의 길을 번갈아 걸어야만 했다. 시작은 대단한 박수갈채, 바로 그것이었다. 7월 15일 브라질 상파울루의 파카엥부 경기장에서 10만 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서 열린 공산주의 혁명가 프레스테스의 환영 집회에서 네루다는 시를 낭송했고, 그의 시는 대중의 가슴속을 활화산으로 만들었다. 이후 네루다가 가는 곳에는 대중과 시가 있었고, 열렬한 환호가 있었다. 네루다가 공산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오래전 일이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때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희생당하는 등 많은 사람들이 파시스트들에게 쓰러지는 것을 보고 그는 이미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파시스트들이 마드리드 밤거리에서 준동하고 있을 때 오로지 공산주의자들만이 세력을 조직하고 군대를 창설하여 이탈리아인들, 독일인들, 무어인들, 팔랑헤 당원들과 대적하였다. 이와 동시에 공산주의자들은 반파시즘 투쟁과 저항을 지탱해주는 정신적 힘이었다.”라며, 자신이 공산주의자가 된 이유를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나치를 멸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때 그의 신념은 더욱 굳어졌다. 이를 보면 네루다의 공산주의는 파시즘에 대한 반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사실상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에 대한 애정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선택이 그를 평생 가시밭길로 걸어가게 했지만, 그는 그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지성보다 고통에 더 가까우며 잉크보다 피에 더 가까운" 1934년 12월 6일에 마드리드에서 있었던 한 유명한 강연에서 로르카는 네루다를 “철학보다 죽음에 더 가깝고, 지성보다 고통에 더 가까우며, 잉크보다 피에 더 가까운” 가장 위대한 라틴아메리카 시인의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네루다의 시가 이성과 논리를 뛰어넘는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런 에너지는 의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네루다가 살아온 환경과 풍토가 그의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면서 시로 되살아난 것에 다름 아니었다. 파블로 네루다는 자서전 초입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년 시절 얘기를 하자면 잊을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비다. 남반구에서는 비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쏟아진다. 마치 케이프혼이라는 하늘에서 개척지라는 땅을 향해 쏟아지는 폭포수 같다. 나는 이 땅에서, 칠레의 ‘서부’와 같은 개척지에서 삶에 눈을 뜨고, 대지에 눈을 뜨고, 시에 눈을 뜨고, 비에 눈을 떴다.” 네루다는 하늘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비와 같은 삶을 살았고, 그 비와 같은 시를 썼다. 1904년 7월 12일,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 중부의 포도주 산지인 파랄에서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바소알토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당시 네루다의 어머니는 서른여덟 살이었다. 노산이었기 때문에 아이를 낳는 것이 꽤 힘들었던 것 같다. 그녀는 출산하고 나서 두 달 후인 9월 14일 사망했다. 네루다는 자신을 세상에 나오게 해준 여인을 영영 알지 못했다. 네루다가 그토록 절절한 사랑의 시를 썼던 것의 근저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생전에 매우 친절한 여교사로 학생들에게 시와 작문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다. 네루다는 어머니의 이런 면모를 닮았음에 틀림없다. 네루다의 아버지는 자갈 기차 기관사였다. 자갈 기차는 침목 사이에 자갈을 제때 채워주지 않으면 철로가 유실되기 때문에, 그 자갈을 나르는 기차를 말한다. 이런 자갈 기차에서 일하는 인부는 철인이 아니면 버티기 힘들었다. 아버지의 성격은 매우 거칠었다. 아버지가 귀가할 때마다 문이 흔들리고 집 전체가 진동했으며, 계단은 삐걱거렸고, 험한 목소리가 악취를 풍겼다. 이런 아버지가 자식을 홀로 키워야 했다면, 네루다의 어린 시절은 몹시도 험난했을 것이다. 다행히 아버지는 재혼했고, 새어머니는 상냥하고 온화했다. 어린 시절부터 네루다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동정심이 많은 아이였다. 한번은 누군가 상처 입은 고니 한 마리를 네루다에게 주었다. 네루다는 상처를 물로 씻어주고는 빵조각과 생선조각을 부리에 넣어주었는데, 고니는 모두 토해버렸다. 상처가 아물었는데도 고니는 네루다 곁을 떠나지 않았다. 네루다는 고니를 고향으로 보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새를 안고 강가로 갔다. 그러나 고니는 슬픈 눈으로 먼 곳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렇게 20일 이상을 고니를 강으로 데려갔지만, 고니는 늘 너무도 얌전했고 네루다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니를 다시 데리고 집으로 오려고 안았는데, 고니의 목이 축 처졌다. 어머니의 죽음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 어린 소년은 고니를 통해 죽음을 맨가슴으로 받아 안았다. 강압적인 아버지 몰래 필명으로 창작 활동 1915년 6월 3일, 네루다는 어떤 강렬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생애 첫 시를 썼다. 그는 새어머니에게 이 시를 바치기로 했다. 뮤즈의 첫 방문을 맞이한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 그는 부모님한테 가서 시를 적은 종이를 내밀었다. 건성으로 읽어본 아버지가 “어디서 베꼈니?”라고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네루다는 자서전에서 “그때 처음으로 문학비평의 쓴맛을 보았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이미 식을 줄 모르는 독서열로 밤낮을 거의 잊고 살 정도였다. 1945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여성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이 그 고장의 여학교에 부임한 것은 네루다의 문학열을 더욱 부추기는 일이었다. 미스트랄은 네루다가 찾아갈 때마다 러시아 소설책을 주곤 했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체호프 등의 소설을 읽은 네루다의 꿈은 자연스럽게 문학을 향해 직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시인을 꿈꾸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네루다는 이미 학생 시인으로서 필명을 날리고 있었던 때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노트를 창밖으로 던진 후 불태워버렸다. 네루다가 필명을 사용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이러한 탄압 때문이었다. 1920년 10월, 그는 체코의 작가 얀 네루다의 성을 빌리고, 파울로(바오로, 바울)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파블로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파블로 네루다는 처음에는 단지 필명이었으나, 1946년도에는 아예 법적인 이름이 된다. 이 이름은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강압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의 소산이었다. 1921년 산티아고의 사범대학 불어교육과에 입학한 네루다는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뛰어들게 된다. 그의 창작열은 칠레의 자연만큼이나 왕성했다. 1923년 8월 그는 첫 시집 를 펴냈다. 20세가 안 되는 어린 시인의 가슴속에서는 맑고 투명한 정열이 샘솟고 있었다. “하느님, 당신은 하늘을 불 밝히는 이 놀라운/ 구릿빛 황혼을 어디서 찾으셨나요?/ 황혼은 저 자신을 다시 기쁨으로 채우는 법을 가르쳐주었어요”(‘마루리의 황혼’)와 같은 구절은 젊은 영혼의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것이었다. 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학창시절 네루다가 숭배했던 칠레 시인 페드로 프라도는 “확신컨대, 나는 이 땅에서 그 나이에 그만한 높이에 다다른 시인을 따로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칭찬은 네루다의 창작열을 더욱 북돋아 1년 만에 두 번째 시집 (1924)를 펴내게 한다. 이 시집이야말로 네루다를 깊이와 넓이를 확보한 인기 있는 시인으로 만들어주었다. 이 시집의 시들은 흥분제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마음을 들끓게 하면서도, 관능적이고 오묘한 여성의 몸처럼 아늑하고도 화려한 우주의 신비를 담고 있고, 어느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절망의 세계 속으로 깊이 파 들어간다. 여자의 육체, 하얀 구릉, 눈부신 허벅지, 몸을 내맡기는 그대의 자태는 세상을 닮았구나. 내 우악스런 농부의 몸뚱이가 그대를 파헤쳐 땅 속 깊은 곳에서 아이 하나 튀어나오게 한다. 터널처럼 나는 홀로였다. 새들이 내게서 달아났고 밤은 내 가슴으로 거세게 파고들었다. 난 살아남기 위해 그대를 벼렸다, 무기처럼, 내 활의 화살처럼, 내 투석기의 돌멩이처럼. 그러나 이제 복수의 시간은 오고, 난 그대를 사랑한다. 가죽과, 이끼와, 단단하고 목마른 젖의 몸뚱이여. 아 젖가슴의 잔이여! 아 넋 잃은 눈망울이여! 아 불두덩의 장미여! 아 슬프고 느릿한 그대의 목소리여! 내 여인의 육체여, 나 언제까지나 그대의 아름다움 속에 머물러 있으리. 나의 목마름, 끝없는 갈망, 막연한 나의 길이여! 영원한 갈증이 흐르고, 피로가 뒤따르고, 고통이 한없이 계속되는 어두운 강바닥이여. ―‘사랑의 시 1’ 전문(김현균 역) 네루다의 문학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 후의 작품 (1926) (1933)을 거쳐, 초현실주의의 걸작으로 주목 받은 (1935)까지 그야말로 네루다의 시적 행진은 쾌도난마 그 자체였다. 그 사이에 1926년 버마의 랭군(오늘날의 양곤) 주재 명예영사로 임명되면서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등 견문을 넓혔다. 1935년 마드리드 주재 영사로 부임했다가 이듬해 바르셀로나로 옮겨 스페인 내전을 경험한 것이 네루다를 공산당에 입당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의 시도 역사의식을 가슴속 깊이 품게 되었고, 그 결과 (1950) 같은 총체적인 서사시를 생산해낸다. 역마살 낀 보헤미안의 삶, 정치적 행보가 떠돌이 삶 부추겨 네루다처럼 떠돌이 삶을 오래 산 사람도 드물 것이다. 외교관으로서 여러 나라에 거주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오랜 동안 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그는 끊임없이 여행하는 삶을 살았다. 혼인을 세 번이나 한 것도 보헤미안의 삶에 어울린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공산당에 입당함으로써 그의 정치적 입지가 확고해지지만, 보헤미안으로서의 삶은 더욱 강화된다. 공산당에 입당하기 전 1945년 3월 4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네루다의 본격적인 정치 행보가 시작된다. 1946년 대통령에 취임한 곤살레스 비델라 대통령이 공산당과 체결한 협약을 파기하자 파블로 네루다는 격렬하게 비판했다. 특히 1948년 1월 6일의 의회 연설은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이에 대법원은 네루다의 상원의원 면책특권을 박탈하고, 2월 5일 국가원수 모독죄로 체포영장을 발급한다. 네루다의 은둔생활 혹은 방랑생활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2월 24일 안데스 산맥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탈출한 네루다는 파리, 폴란드, 헝가리를 거쳐 멕시코에 체류한다. 세계 곳곳을 거쳐 1952년 카프리 섬에 거주하고 있을 때 칠레 정부는 네루다의 체포영장을 철회한다. 1969년 칠레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네루다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으나, 이듬해 살바도르 아옌데를 단일후보로 추대하고 후보에서 사퇴한다. 1970년 9월 4일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네루다는 파리 주재 칠레 대사로 임명된다. [왼쪽] 1949년 턱수염을 기른 도피 시절의 네루다. [오른쪽] 1949년 4월 15일. 파리 제2차 평화세력 세계회의에서 포옹하는 네루다와 피카소. 네루다는 세계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 받으면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여러 번 올랐지만 수상의 영예는 쉽게 오지 않았다. 1971년 10월 21일 네루다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그해에 전립선암 수술을 해야 했고, 2년 후에는 세상을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 1970년 7월 12일, 예순여섯 살 되는 생일에, 그는 의사인 친구 프란시스코 벨라스코를 따로 불러 이렇게 말했다. “이봐, 나 걱정거리가 있는데 말이야. 오줌에 피가 섞여 나오거든.” 벨라스코는 당장 산티아고 최고의 비뇨기과 의사를 찾아가라고 충고했다. 그는 전문의에게 가서 진찰을 받았다. 의사는 무언가 작은 종양이 하나 보이는데, 한 달 안으로 다시 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가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항상 용감했던 네루다였지만, 죽을병에 대해서는 용감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왼쪽] 1971년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네루다. [오른쪽] 1971년 프랑스 주재 칠레 대사 시절. 엘리제 궁에서.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가운데), 모리스 슈만(오른쪽)과 함께했다. 1973년 건강상의 이유로 대사직을 사임했으면서도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에게 칠레 내전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운명의 때는 오고 있었다. 9월 11일 피노체트 장군이 주도한 군사 쿠데타로 인민전선 정부가 전복되고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피살되었다. 칠레 독립기념일인 9월 18일, 네루다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었다. 아내 마틸데는 구급차를 불러 네루다를 병원으로 옮겼다. 9월 20일 멕시코 대사가 와서 네루다에게 칠레를 떠나도록 설득했다. 네루다에게 바깥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슬픔을 누를 길이 없었고 어디로도 떠날 수 없었다. 그는 아내 마틸데에게 말했다. “그자들이 사람을 죽이고 있어. 산산조각이 난 시신들을 건네주고 있다고. 노래하던 빅토르 하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 몰랐어? 그자들이 하라의 몸도 갈기갈기 찢어 놓았어. 기타를 치던 두 손을 다 뭉개 놓았대.” 그럼에도 네루다는 평생 견지해 온 낙관적인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는 문병 온 화가 네메시오 안투네스에게 말했다. “이 군인이라는 자들이 지금은 끔찍할 만큼 잔인하게 굴고 있지만, 조금 있으면 사람들 마음을 끌어보려고 할걸세.” 그러나 암세포는 끝내 네루다의 생명을 앗아갔다. 1973년 9월 23일 10시 30분이었다. 파란만장한 생애만큼이나 스펙트럼 넓은 시세계 파블로 네루다처럼 다양한 시세계를 선보인 시인도 드물다. 그는 매우 감각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초현실주의 시인이면서 동시에 민중을 선동하는 혁명시인이었다. 그는 열렬한 사랑을 갈구하는 격정적인 연애시인이면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냉철하고 지성적인 시인이기도 했다. 직관으로 쓴 짧은 서정시로부터 아메리카 역사를 노래한 서사시까지 네루다가 보여준 시의 스펙트럼은 칠레의 긴 영토가 대면하고 있는 바다만큼이나 파란만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루다가 유난히 사랑시를 많이 쓴 시인임에는 틀림없다. 사랑시를 쓴 시인의 경우 대중성은 확보하지만 그 질은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네루다는 그렇지 않았다. 사랑이여, 우리는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격자 위로 포도넝쿨이 기어오르는 곳: 당신보다도 앞서 여름이 그 인동넝쿨을 타고 당신 침실에 도착할 것이다. 우리 방랑생활의 키스들은 온 세상을 떠돌았다: 아르메니아, 파낸 꿀 덩어리—: 실론, 초록 비둘기—: 그리고 오랜 참을성으로 낮과 밤을 분리해 온 양자강. 그리고 이제 우리는 돌아간다, 내 사랑, 찰싹이는 바다를 건너 담벽을 향해 가는 두 마리 눈먼 새, 머나먼 봄의 둥지로 가는 그 새들처럼: 사랑은 쉼 없이 항상 날 수 없으므로 우리의 삶은 담벽으로, 바다의 바위로 돌아간다: 우리의 키스들도 그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100편의 사랑 소네트 033’ 전문(정현종 역)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읽으면 마음속에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파도가 치다가 어느 순간 고요해진다. 비든 바람이든 파도든 고요든 그것들은 소름이 되어 살갗에 박힌다. 왜일까? 네루다의 시가 그만큼 격동하는 삶 속에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우리의 심장 박동을 닮았고, 그리하여 우리의 뼈와 살과 피부가 느끼는 감각을 생생하게 옮겼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에 읽으면 그 감동이 태풍처럼 강렬해진다. 그것은 네루다가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 시를 썼기 때문이다. 바로 다음과 같은 마음이다. “고통 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네루다의 자서전 에서 필자가 추천하는 덧붙여 읽으면 좋은 책 100편의 사랑 소네트 파블로 네루다 저 정현종 역 문학동네 2004.07.20 충만한 힘 파블로 네루다 저 정현종 역 문학동네 2007.03.24 파블로 네루다의 시는 많은 출판사에서 번역되었다. 대부분이 선집이지만, 네루다 시의 진경을 살펴보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다만 역자의 눈으로 뽑아서 번역한 선집 외에 네루다가 엮은 시집의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다. 정현종 시인이 옮긴 와 은 시집을 통째로 옮긴 것이어서 한 시점의 네루다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는 네루다가 세 번째 부인 마틸데에게 바친 사랑시를 모은 시집이다. 사랑을 꿈꾸고 있거나 사랑하고 있거나 사랑에 진저리를 치고 있거나 다시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빠블로 네루다 애덤 펜스타인 저 최권행 역 생각의나무 2005.10.28 애덤 펜스타인의 는 자세하게 기술된 평전이다. 일국의 대통령 후보가 된 적도 있었기에 시인으로선 특별한 삶을 살다 간 것 같지만, 누구보다도 시인답게 살다 간 사람이 바로 네루다이다. 섬세한 감각으로 세계 곳곳의 아름다움을 느낀 시인이고, 감정에 충실하기도 한 시인이었다. 외교관으로서 세계 곳곳을 떠돈 것조차 유랑시인의 기질에 딱 맞는 것이었다. 그의 치열한 삶이 곧 시에 다름 아니었음을 확인케 하는 책이다.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파블로 네루다 저 박병규 역 민음사 2008.03.05 파블로 네루다의 자서전 는 네루다의 목소리로 그의 삶에 대한 얘기를 들어볼 기회를 제공한다. 네루다의 산문 또한 시처럼 거침없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약 1년 동안 집필한 이 책은 시인이 가장 시인답게 쓴 자서전이다. 시대 순으로 엮여 있긴 하지만 시인의 자유로운 기질이 한껏 살아 있는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라는 뜻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어느덧 우리는 결코 평범할 수 없었던 한 인간과 시대의 격랑 속으로 휘말려들고 만다. 로르까에서 네루다까지 민용태 저 창비 1995.01.31 스페인과 중남미 시인들의 시세계를 경험하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민용태 시인의 를 권한다. 외국 시의 감동을 우리말로 살리기 위한 시인의 노력이 만들어낸 특별한 책이다. 이 책 속에서 네루다를 다시 읽어보라. 감동의 차원이 달라진다. 네루다 외에도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세사르 바예호, 라몬 로페스 벨라르데, 올리베리오 히론도, 헤라르도 디에고, 마리아노 브룰, 비센테 우이도브로, 호세 후안 타블라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등 스페인어권 시문학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시인들의 시세계에 입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글 차창룡 (시인, 문학평론가) 차창룡은 1989년 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됐으며, 제13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 등 다수의 시집으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1079    詩人은 풍경속을 걷는 者 댓글:  조회:4747  추천:0  2016-02-08
"나는 세상의 풍경을 읽는 자가 아니라 풍경 속의 일부가 되어 풍경과 나란히 걷고 있는 자이다."(김주대 시인)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는 얇디 얇은 울림판 같은 몸을 가진 그는 모든 존재를 의미 있는 기호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는 풍경 속에서, 거대하게는 우주의 근원에서 솟구쳐 오르는 어떤 징후를 감지하고 광인처럼 소리치는 사람이다. 생의 우연한 순간에 마주친 모든 존재가 그에게 가서 그림이 되고 시가 된다. 그의 문인화가 특별한 이유이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아버지요, 제가 아버지를 모를 때에도 저는 이미 아버지의 일부였고, 이제는 돌아가셨지만 지금도 저는 아버지의 일부라요. 아버지요, 미안해요. 몇 해째 산소에 가보지도 못한 못난 아들, 용서하세요. 살아서 아버지는 제게 기대하는 게 참 많았지요. 그래서 저를 못살게 굴고 제 꿈을 꺾고 심지어 저를 때리기까지 하셨지만 그것은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애착이었던 것이었어요. 이제 알 것 같아요. 그래도 참 심했지요. 기억나시나요? 저 두들겨 패서 눈 펑펑 내리는 밤에 쫓아내시던 거. 지금 생각하면 다 아픈 일이라요. 그런 아버지를 이제 저는 저에게서 봐요. 가끔 제가 아버지가 된 느낌이 들어요. 한숨을 쉬다가 한숨 쉬는 제 모습이 아버지를 똑 닮았다는 생각을 하고는 얼마나 소름이 끼쳤던지요. 아버지는 무덤에 계시니 더 이상 나이가 들지 않으시겠지요? 히~ 저도 이제 아버지 나이를 거의 다 따라잡았어요. 너무 외로워 마시고 잘 계세요. 제가 좀 잘 살고, 아버지의 손자 손녀들도 좀 잘 살고, 그게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도 잘 알아요. 나중에 나중에 만나요. 아버지, 아버지는 아버지 누가 뭐래도 우리 아버지. 아버지요, 사랑해요.       사고가 언어를 만든다는 '사고 우위론'이 일차적으로 맞는 말인 것 같다.                 [소야, 울지마 저기 있잖아, 봄]         지식의 스승은 도처에 있지만 삶과 죽음의 스승은 많지 않다.                  [세한도는 여전히 살아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말이 있다. 훌륭한 뜻과 기상은 나라가 어려울 때라야 비로소 나타난다는 뜻일 게다. 이권에 따라 친소를 달리하고 야합이 판치던 시절에도 추사 김정희의 제자 이상적은 유배지에 있는 스승에게 온갖 정성을 다한다. 이상적은 중국에 가서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 120권을 구해 스승에게 보내주기도 한다. 이런 제자에 대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김정희가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이 국보 180호 '세한도'이다. 세한도 속의 집은 원근법이 무시되고 창문만 있다. 만리타관 유배지. 갇혀 지내야 하는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황량한 배경에 채색도 없이 그려진 그림에서는 외로움과, 문인화 특유의 시퍼런 의기가 동시에 느껴진다. 목숨의 바닥에 내려가 본 사람만이 뿜어낼 수 있는 그리움이 절절하다. 죽어도 수직으로 죽겠다는 각오가 추운 겨울 소나무를 꼿꼿하게 서 있게 한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로부터 100년, 지금도 시대의 황량한 마당에는 제법 차가운 바람이 분다. 거짓이 참을 몰아내는 춥고도 긴 바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문 하나 달랑 달린 낡고 초라한 집에서 사람다운 세상에 대한 시퍼런 그리움을 소나무처럼 밀어 올리는 이들이 있다면 그 통절한 그리움과 함께 세한도는 지금도 살아있는 것이겠다. 아니 살아있다.   [ '화엄경']   '위대한 것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다는 우주의 거대한 비밀도 알고 보면 작고 하찮은 것을 통해 드러난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우주니 뭐니 하여 멀리 갈 것도 없이 사람 사이의 관계도 아름답고 소중할수록 사소하게 실현되지 않던가. 이웃과 나누어 먹는 밥 한 그릇, 물 한 모금의 위대한 사랑. 화엄경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가장 훌륭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간주되는 방대한 분량의 대승불교 경전이다. 그리고 '화엄'이란 말은 여러 가지 수행을 하고 만덕을 쌓아 덕과를 장엄하게 하는 일을 이른다. 그런 장엄한 화엄의 세계를 작디작은 새싹에 비유한다는 것은 겁 없이 소박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봄이면 약속이나 한 듯이 피어나서 삭막한 도시의 콘크리트 틈을, 더러운 진흙구덩이를, 폐가의 무너진 담장을 온통 연푸른빛으로 단장하는 작디작은 풀의 싹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데 어쩌랴. 우주를 관통하는 어떤 거대한 물리적 힘이 있다. 우주의 바닥에서 한결같이 흐르는 그 힘을 음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음악에서 음표 하나가 튀어나오듯,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기의 입에서 최초로 '엄마'라는 말이 튀어나오듯 솟아난 봄날의 새싹들. 너무 멀리서 와서 한없이 작아진 연푸른 새싹의 곱고 푸른 말에 귀 기울여볼 일이다.   /////////////////////////////////////////////////////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문자가 온 몸에 가득 찬 사람이 시인뿐일까? 누구나의 몸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쌓여 있어서 문자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을 문자로 드러내는 일이 삶의 전부일 것도 같다. 해독하기 힘든 문자일수록 삶의 근원에 닿아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어쨌거나 자신의 문자로 자신을 표현하는 일, 숭고하다. 문자는 냄새도 색깔도 무게도 부피도 없는 기호이지만 폭탄보다 강하고 강산처럼 유구하다.        
1078    령혼을 깨우는 천재시인의 향기 - 2천여편 : 23편 댓글:  조회:5000  추천:0  2016-02-08
13인의 아해들이 도로로 질주하는 李箱의 시 제1호는 자아를 모르는 채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자아의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는 시입니다.   육신이 죽으면 끝(막다른 골목)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아는 육신의 죽음 후에도 계속된다는 것(뚫린 골목)을 알려줍니다. 그는 또한 세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분류했는데, 자아를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들(무서운아해)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무서워하는아해)로 나누었습니다. 자아체득을 삶의 유일한 목표라 생각한 그에게 다른 분류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뿐이'모였다고 말합니다. 또한 자아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이미 생과 사의 구별이 큰 의미가 없으므로, 뚫린 골목이라고 해도 좋고, 질주하지 않아도 좋은 것입니다.   깨달은 그가 까마귀의 눈으로 육신의 현실만이 모든 것이라 여기며 사는 사람들을 굽어보면서 쓴 시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고있는 것입니다...   고도의 지적 능력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난 의미가 무엇일까요? 오직 남보다 잘 먹고 사는 것일까요? 종족 유지에 기여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살다 죽는다면 동물과 다른 것이 무엇일까요?   李箱시인이 2,000여편의 시 중에서 23(30)편을 '땀을 흘리며' 오감도로 묶은 까닭이 무엇이었을까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들을 추려 뽑느라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23편의 시를 관통하여 흐르는 주제가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 주제는 바로 자아입니다. 오감도 23편은 자아에 관한 이야기로 일맥상통합니다...   오감도의 해설이 일맥상통하는 주제가 없이 횡설수설한다면, 그 해석은 오감도를 제대로 해설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1077    <새해> 시모음 댓글:  조회:4389  추천:0  2016-02-08
.bbs_contents p{margin:0px;}         새해 시 모음.     새해의 노래 / 정인보 온 겨레 정성덩이 해돼 오르니 올 설날 이 아침야 더 찬란하다 뉘라서 겨울더러 춥다더냐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 깃발에 바람 세니 하늘 뜻이다 따르자 옳은길로 물에나 불에 뉘라서 겨울더러 흐른다더냐 한이 없는 우리 할 일은 맘껏 펼쳐 보리라.         새해 인사 / 김현승 오늘은 오늘에만 서 있지 말고, 오늘은 내일과 또 오늘 사이를 발굴러라. 건너 뛰듯 건너 뛰듯 오늘과 또 내일 사이를 뛰어라. 새옷 입고 아니, 헌옷이라도 빨아 입고, 널뛰듯 널뛰듯 이쪽과 저쪽 오늘과 내일의 리듬 사이를 발굴러라 발굴러라. 춤추어라 춤추어라. * 김현승 시전집, 관동출판사, 1974             설날 / 윤극영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우리들의 절받기 좋아하셔요. 우리집 뒤뜰에는 널을 놓고서 상 들이고 잣 까고 호두 까면서 언니하고 정답게 널을 뛰고 나는 나는 좋아요 참말 좋아요 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시고 우지 우지 내 동생 울지 않아요. 이 집 저 집 윷놀이 널뛰는 소리 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 어린이, 1924년 1월호           새해에는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 정진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살아라. 간절한 소원을 밤마다 외쳐라. 지치면 지칠수록 더 크게 외쳐라. 더 큰 용기와 더 큰 꿈을 가져라. 가야될 인연의 길이 엇갈렸다면 후회말고 돌아서라. 꼭 그 길이 아니라도 성공으로 가는 길은 많다. 내 인연과 너의 인연이 평행선을 그으며 달려가지만 결국은 우리도 종점에서 텅빈 손으로 다시 만나리. 너무 많은 꿈을 가지고 덤비지 마라. 세상은 전쟁터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터다. 용서하고 화해하며 더 따뜻한 사람이 되라. 바다보다 넓고, 하늘보다 더 넓은 가슴으로 이 세상을 품어라. 새해에는 지난 날들의 악습을 버려라. 오늘 하지 못한다면 내일도 하지 못하는 법 오늘 조금이나마 전진했다면 일년 후 십년 후에는 꼭 성공하리니 조급함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유로워라. 네 인생의 마지막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애써 설명하지 마라. 세월이 가면 모든게 환하게 드러나는 법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에 집념하라. 날마다 좋은 날이 되게 애써라. 궂은날일수록 더 간절한 기도를 올려라. 날마다 날마다 좋은 날이 되도록 새해에는 심호흡을 크게 하라.     새해 새날은 / 오세영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눈송이를 털고 침묵으로 일어나 햇빛 앞에 선 나무, 나무는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긴 동면의 부리를 털고 그 완전한 정지 속에서 날개를 펴는 새 새들은 비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해 새날이 오는 길목에서 아득히 들리는 함성 그것은 빛과 ?이 부딪혀 내는 소리, 고요가 만들어 내는 가장 큰 소리, 가슴에 얼음장 깨지는 소리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얼어붙은 계곡에 실낱같은 물이 흐르고 숲은 일제히 빛을 향해 나뭇잎을 곧추세운다         새해 새 아침은 / 신동엽 새해 새 아침은 산 너머에서도 달력에서도 오지 않았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대화 우리의 눈빛 속에서 열렸다. 보라 발 밑에 널려진 골짜기 저 높은 억만개의 산봉우리마다 빛나는 눈부신 태양 새해엔 한반도 허리에서 철조망 지뢰들도 씻겨갔으면, 새해엔 아내랑 꼬마아이들 손 이끌고 나도 그 깊은 우주의 바다에 빠져 달나라나 한 바퀴 돌아와 봤으면, 허나 새해 새 아침은 산에서도 바다에서도 오지 않는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안창 영원으로 가는 수도자의 눈빛 속에서 구슬짓는다. * 주간경향, 1959           새롭지 않은 새해의 시 1 /이동순 새해가 왔는가 미처 맞이할 겨를도 없이 불쑥 들이닥친 길손처럼 새해는 와 버렸는가 어제 방구석에 쌓인 먼지도 그대로 내 서가의 해방기념시집의 찢어진 표지 그 위를 번져 가는 곰팡도 아직 못 쓸고 있는데 새해는 불현듯 와 버렸는가 파헤쳐 놓은 수도공사도 끝내지 못했는데 태어나리라던 아기예수도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여지껏 나무에 대룽대룽 매달려 애잔한 잎들은 팔랑이는데 못다 쓴 원고뭉치는 그대로 밀려 있는데 미처 남쪽으로 떠나지 못한 새들도 있는데 불현듯 불현듯 새해는 왔는가 기다리던 첫눈도 나리지 않고 적적한 마당귀를 덮고 있는 김장독 이엉 사이로 시궁쥐만 분주히 쏘다니는데 새해는 왔는가 헛꿈을 잔뜩 안고 돌아와 저 혼자 설레이는 놈팡이처럼 새해는 왔는가 와서 무얼 하려는가 모듬판에서 돌아오는 밤 이미 자정을 넘겨 볼에 스미는 찬 기운 텅 빈 호주머니와 마음 속으로 아무거나 새것이라면 마구 채워야 하는 걸까 해마다 와서 속절없이 가 버리는 것이 새해일까 나라는 깨어지고 깨진 틈서리는 서로 붙을 생각조차 품지 않는데 보리싹 파릇파릇 움 틔우는 저 들판이 후루룩 겨울참새를 허공에 뿌리는 그 속마음은 무엇일까 * 물의 노래, 실천문학, 1983     설일(雪日) / 김남조 겨울 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새해 아침 / 송수권 새해 아침은 불을 껐다 다시 켜듯이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답답하고 화나고 두렵고 또 얼마나 허전하고 가난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지난밤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둔 꿈도 아직 소원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외로웠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억울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슬펐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얼마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습니까? 그 위에 우레와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그 위에 침묵과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낡은 수첩을 새 수첩으로 갈며 떨리는 손으로 잊어야 할 슬픈 이름을 두 줄로 금긋듯 그렇게 당신은 아픈 추억을 지우십시오 새해 아침은 찬란한 태양을 왕관처럼 쓰고 끓어오르는 핏덩이를 쏟아놓으십시오 새해 아침은 첫날밤 시집온 신부가 아침나절에는 저 혼자서도 말문이 터져 콧노래를 부르듯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새해 아침 / 오일도 한겨울 앓던 이 몸 새해라 산(山)에 오르니 새해라 그러온지 햇살도 따스고나 마른 가지에 곧 꽃도 필 듯하네. 멀리 있는 동무가 그리워요 이 몸에 병(病)이 낫고 이 산(山)이 꽃 피거든 날마다 이 산(山)에 올라 파―란 하늘이나 치어다볼까. ―구(舊) 정월(正月) 초하루 아침 계산(桂山)에 올라서― * 동광, 1932.     날마다 새날 새마음 되게 하소서 / 안희두 새해 새날 새아침 학교 운동장에 둥근 해가 떠오른다 날이면 날마다 웃음이 뛰노는 운동장에 둥근 해 품에 앉고 달려오는 보람이와 나래 그리고 … 3월에 입학하는 눈꽃과 새봄이도 삼배하며 그려본다 올해는 마주칠 때마다 한 움큼 사랑을 주자 때마다 한 아름 꿈을 주자 헤어질 때마다 가슴 가득 희망을 심어주자 서해, 서산이 아니어도 아파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밉살스런 영수에게 앙증맞은 지혜에게 다 나누어주지 못한 사랑을, 꿈을, 희망을 첫 다짐을 낙조에 실어 보낸다 날마다 새날 새마음 되게 하소서           다시 새해의 기도 / 박화목 곤욕(困辱)과 아픔의 지난 한 해 그 나날들은 이제 다 지나가고 다시 새해 새날이 밝았다 동창(東窓)에 맑고 환한 저 햇살 함께 열려오는 이 해의 365일 지난밤에 서설(瑞雪) 수북히 내리어 미운 이 땅을 은혜처럼 깨끗이 덮어주듯 하나님, 이 해엘랑 미움이며 남을 업수히 여기는 못된 생각 교만한 마음 따위를 깡그리, 저 게네사렛의 돼지 사귀처럼 벼랑 밑으로 몰아내 떨어지게 하소서. 오직 사랑과 믿음 소망만을 간직하여 고달프나 우리 다시 걸어야할 길을 꿋꿋하게 천성(天城)을 향해 걸어가게 하소서. 이 해에는 정말정말 오직 사랑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난한 마음만이 이 땅에 가득하게 하소서, 하여 서로 외로운 손과 손을 마주 꼭 잡고 이 한 해를 은혜 속에 더불어 굳건히 살아가게 하소서. 동구 밖 저 둔덕 겨울 미루나무에 언제 날아왔을까, 들까치 한 마리, 깟깟깟… 반가운 소식 전해오려나. 하그리 바라던 겨레의 소원, 이 해에는 정녕 이뤄지려나, 이 아침 밝아오는 맑은 햇살 가슴 뿌듯이 가득 안고 새해에 드리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 꼭 이루어 주소서, 하나님 이루어 주소서           새해 아침 / 양현근 눈 부셔라 저 아침 새벽길을 내쳐 달려와 세세년년의 산과 들, 깊은 골짝을 돌고 돌아 넉넉한 강물로 일어서거니 푸른 가슴을 풀고 있거니 이슬, 꽃, 바람, 새 온통 그리운 것들 사이로 이 아침이 넘쳐나거니 남은 날들의 사랑으로 오래 눈부시거니   새해 아침에 / 이해인 창문을 열고 밤새 내린 흰 눈을 바라볼 때의 그 순결한 설레임으로 사랑아 새해 아침에도 나는 제일 먼저 네가 보고 싶다 늘 함께 있으면서도 새로이 샘솟는 그리움으로 네가 보고 싶다 새해에도 너와 함께 긴 여행을 떠나고 가장 정직한 시를 쓰고 가장 뜨거운 기도를 바치겠다. 내가 어둠이어도 빛으로 오는 사랑아 말은 필요 없어 내 손목을 잡고 가는 눈부신 사랑아 겨울에도 돋아나는 내 가슴 속 푸른 잔디 위에 노란 민들레 한 송이로 네가 앉아 웃고 있다 날마다 나의 깊은 잠을 꿈으로 깨우는 아름다운 사랑아 세상에 너 없이는 희망도 없다 새해도 없다 내 영혼 나비처럼 네 안에서 접힐 때 나의 새해는 비로소 색동의 설빔을 차려 입는다 내 묵은 날들의 슬픔도 새 연두 저고리에 자줏빛 끝동을 단다 아름다운 사랑아                   새해 첫 기적 /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설날 아침에 /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險難)하고 각박(刻薄)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첫마음 / 정채봉 1월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학교에 입학하여 새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마음으로 공부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계속된다면, 첫출근하는 날, 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날의 첫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어행을 떠나던 날, 차표를 끊던 가슴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 지며 넓어진다.    
1076    <설날> 시모음 댓글:  조회:4690  추천:0  2016-02-08
    새해 첫 기적 - 반칠환   오늘은 오늘에만 서 있지 말고, 오늘은 내일과 또 오늘 사이를 발굴러라. 건너 뛰듯 건너 뛰듯 오늘과 또 내일 사이를 뛰어라. 새옷 입고 아니, 헌옷이라도 빨아 입고, 널뛰듯 널뛰듯 이쪽과 저쪽 오늘과 내일의 리듬 사이를 발굴러라 발굴러라. 춤추어라 춤추어라.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새해 아침 - 송수권 새해 아침은 불을 껐다 다시 켜듯이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답답하고 화나고 두렵고 또 얼마나 허전하고 가난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지난밤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둔 꿈도 아직 소원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외로웠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억울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슬펐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얼마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습니까? 그 위에 우레와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그 위에 침묵과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낡은 수첩을 새 수첩으로 갈며 떨리는 손으로 잊어야 할 슬픈 이름을 두 줄로 금긋듯 그렇게 당신은 아픈 추억을 지우십시오 새해 아침은 찬란한 태양을 왕관처럼 쓰고 끓어오르는 핏덩이를 쏟아놓으십시오 새해 아침은 첫날밤 시집온 신부가 아침나절에는 저 혼자서도 말문이 터져 콧노래를 부르듯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새해 새 아침 - 이해인 새해의 시작도 새 하루부터 시작됩니다 시작을 잘 해야만 빛나게 될 삶을 위해 겸손히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아침이여 어서 희망의 문을 열고 들어오십시오 사철 내내 변치 않는 소나무빛 옷을 입고 기다리면서 기다리면서 우리를 키워온 희망 힘들어도 웃으라고 잊을 것은 꺠긋이 잊어버리고 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희망은 자꾸만 우리를 재촉하네요 어서 기쁨의 문을 열고 들어 오십시오 오늘은 배추밭에 앉아 차곡차곡 시간을 포개는 기쁨 흙냄새 가득한 싱싱한 목소리로 우리를 부르네요 땅에 충실해야 기쁨이 온다고 기쁨으로 만들 숨은 싹을 찾아서 잘 키워야만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조용조용 일러주네요 어서 사랑의 문을 열고 들어오십시오 언제나 하얀 소금밭에 엎드려 가끔은 울면서 불을 쪼이는 사랑 사랑에 대해 말만 무성했던 날들이 부끄러워 울고 싶은 우리에게 소금들이 통통 튀며 말하네요 사랑이란 이름으로 여기저기 팽개쳐진 상처들을 하얀 붕대로 싸매주라고 새롭게 주어진 시간 만나는 사람들을 한결같은 따듯함으로 대하면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눈부신 소금곷이 말을 하네요 시작을 잘해야만 빛나게 될 삶을 위해 설레이는 첫 감사로 문을 여는 아침 천년의 기다림이 비로서 시작되는 하늘빛 은총의 아침 서로가 복을 빌어주는 동안에도 이미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새해 새 아침이여   새해의 시 1 - 이동순 새해가 왔는가 미처 맞이할 겨를도 없이 불쑥 들이닥친 길손처럼 새해는 와 버렸는가 어제 방구석에 쌓인 먼지도 그대로 내 서가의 해방기념시집의 찢어진 표지 그 위를 번져 가는 곰팡도 아직 못 쓸고 있는데 새해는 불현듯 와 버렸는가 파헤쳐 놓은 수도공사도 끝내지 못했는데 태어나리라던 아기예수도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여지껏 나무에 대룽대룽 매달려 애잔한 잎들은 팔랑이는데 못다 쓴 원고뭉치는 그대로 밀려 있는데 미처 남쪽으로 떠나지 못한 새들도 있는데 불현듯 불현듯 새해는 왔는가 기다리던 첫눈도 나리지 않고 적적한 마당귀를 덮고 있는 김장독 이엉 사이로 시궁쥐만 분주히 쏘다니는데 새해는 왔는가 헛꿈을 잔뜩 안고 돌아와 저 혼자 설레이는 놈팡이처럼 새해는 왔는가 와서 무얼 하려는가 모듬판에서 돌아오는 밤 이미 자정을 넘겨 볼에 스미는 찬 기운 텅 빈 호주머니와 마음 속으로 아무거나 새것이라면 마구 채워야 하는 걸까 해마다 와서 속절없이 가 버리는 것이 새해일까 나라는 깨어지고 깨진 틈서리는 서로 붙을 생각조차 품지 않는데 보리싹 파릇파릇 움 틔우는 저 들판이 후루룩 겨울참새를 허공에 뿌리는 그 속마음은 무엇일까    새해에 부치는 시 /김남조   첫 눈뜸에     눈 내리는 청산을 보게 하소서   초록 소나무들의 청솔바람소리를 듣게 하소서 아득한 날에   예비하여 가꾸신 은총의 누리   다시금 눈부신 상속으로 주시옵고   젊디젊은 심장으로   시대의 주인으로 기름부어 포옹하게 하여 주소서       생명의 생명인 우리네 영혼 안엔   사철 자라나는 과일나무 숲이 무성케 하시고   제일로 단맛나는 열매를   날이 날마다   주님의 음식상에 바치게 하옵소서    새해/황갑윤     새벽에 일어나 파란 하늘을 본다 이슬에 목을 축인 숲들 사이로 방금 배달된 갓-구운-365일에 두 손 모아 감사드린다   해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 나 또한 해로 들어간다 우리가 서로 안에 들어가지 않는 그런 순간은 없다   정월초하루의 우렁찬 발소리 자욱한 새벽의 기운에 가슴이 가득차서 터질듯하다   해야 솟아라 바다마저 흔들리고 땅마저 요동치도록 힘차게 솟구쳐라 그리하여 마셔도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여명의 빛으로 멈추게 하라   뜨겁게 박동치는 심장은 새 삶의 부활을 위해 붉은 피를 끓이고 있다   새해의 시 / 김사랑   새 날이 밝았다 오늘 뜨는 태양이 어제의 그 태양은 아니다 겨울 산등성이로 불어가는 바람이 지난 밤에 불던 바람이 아니다 독수리는 하늘 높은 곳에서 날카로운 눈빛을 땅에 꼿았다 산양은 절벽의 바위를 뛰어 올라 산정을 향한다 우리가 꾸는 행복은 내일을 향해 뻗어있고 사랑하는 심장은 겨울에도 장미처럼 붉었나니 이루지 못할 꿈은 어디에 있던가 나의 하루의 삶이 나의 인생이 되듯 흘러지난 세월은 역사가 되나니 다시 나의 소망을 담아 꿈을 꾸나니 가슴은 뜨겁고 나의 노래는 날개를 매단듯 가볍다 이 아침에 돋는 태양을 보라 이글거리며 타는 태양은 나를 위해 비추나니 고난 속에 시련이 온다해도 나 이겨 내리니 그대 소망하는 바 더디게 올뿐 언젠가 다 이루어 지리니 우리 함께 달려 가보자 "설날"에 대한 시모음 - 10편     1.)설날 - 최경신   아직 살아 새해를 맞으니 고맙다   내 앞에 엎드린 너희들의 듬직한 등이 너희 서로를 바라보는 가슴들이 따뜻해서 고맙다   이것 줘서가 아니고 저것 줘서가 아니고 세상을 바르게 살아 줘서 고맙다   너희가 있는 자리에서 너희가 받는 신뢰와 사랑과 칭찬이 하나같이 이 어미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 주니 이 보다 더 큰 효 어디 있으리   이런 나날이 있어 내 사람이 고맙다       .bbs_contents P { MARGIN: 0px } #uploader_replyWrite-64213 { VISIBILITY: hidden } 2.)설날 아침에 - 김종길 설날 아침에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3)설날 전야/이재무   아부지와 엄미가 죽고 나서 맏이인 내가 제사 모셔온 지 시오년이 넘는다 오늘은 설날 전야 동생네 식구들을 데리고 중국집에 간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저녁을 먹는다 숟가락 젓가락 소리 높고 맑고 환하다 생활은 빨지 않은 이불처럼 눅눅하고 무거운 법이지만 모처럼 이산을 살아온 가족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덕담을 하고 집 떠나 돌아오지 않는 살붙이들 하나하나 떠올리며 호명하다 보면 영하권의 추위도 무섭지 않고 또, 마음은 금세 더운 국물과 함께 후끈 달아오른다     2   돌아와 아홉 시 뉴스를 본다 화면 속으로 모천회귀하는 연어떼 같은 귀성차량 행렬이 어지럽게 지나고 천장에 매달려 곰팡이냄새를 피우는 시골집 오래된 메주같이 누렇게 뜬 얼굴들 클로즈업 되고 있다 '6개월 체불임금 돌려 달라' 절규하는, 연변에서 온 저, 비늘 떨어지고 지느러미 상한 연어들! 달게 먹은 저녁 늦도록 내려가지 않아 더부룩한 아랫배 하릴없이 문질러대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벌린 입 다물지 못하는 아내에게 벌컥 화를 내며 소화제를 찾는다     4) 설날가는 고향 길 / 오광수 * 내 어머니의 체온이 동구밖까지 손짓이 되고 내 아버지의 소망이 먼길까지 마중을 나오는 곳 마당 가운데 수 없이 찍혀있을 종종 걸음들은 먹음직하거나 보암직만해도 목에 걸리셨을 어머니의 흔적 온 세상이 모두 하얗게 되어도 쓸고 또 쓴 이 길은 겉으로 내색하진 않아도 종일 기다렸을 아버지의 숨결 오래 오래 사세요. 건강하시구요 자주 오도록 할께요 그냥 그냥 좋아하시던 내 부모님.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요? 내 어머니, 내 아버지   설날 아침에 (김 남주)   눈이 내린다 싸락눈 소록소록 밤새도록 내린다 뿌리뽑혀 이제는 바싹 마른 댓잎 위에도 내리고 허물어진 장독대 금이 가고 이빨 빠진 옹기 그릇에도 소 잃고 주저앉은 외양간에도 내린다. 더러는 마른자리 골라 눈은 떡가루처럼 하얗게 쌓이기도 하고   닭이 울고 날이 새고 설날 아침이다. 새해 새아침 아침이라그런지 까치도 한 두 마리 잊지 않고 찾아와 대추나무 위에서 운다.   까치야 까치야 뭣하러 왔나 때때옷도 없고 색동저고리도 없는 이마을에 이제 우리집에는 너를 반겨줄 고사리손도 없고 너를 맞아 재롱 피울 강아지도 없단다. 좋은 소식 가지고 왔거들랑까치야 돈이며 명예 같은 것은 그런 것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나 죄다 주고 나이 마흔에 시집올 처녀를 구하지 못하는 우리 아우 덕종이한테는 형이 주눅이 들지 않도록 사랑의 노래나 하나 남겨두고 가렴 눈 부셔라 저 아침 새벽길을 내쳐 달려와 세세년년의 산과 들, 깊은 골짝을 돌고 돌아 넉넉한 강물로 일어서거니 푸른 가슴을 풀고 있거니 이슬, 꽃, 바람, 새 온통 그리운 것들 사이로 이 아침이 넘쳐나거니 남은 날들의 사랑으로 오래 눈부시거니
1075    동시는 童詩 댓글:  조회:4105  추천:0  2016-02-07
영혼의 음악과 영원한 철리를 담은 동시를 쓰자   1. 동시란 동시란 어린이들의 생활 세계나 마음의 생각과 느낌을 노래하듯이 표현한 글을 말한다. 동시는 일정한 형식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쓰지만, 문장에서 운율이 나타나게 쓰며, 행과 연을 구분하여 축소된 문장으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운율은 규칙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2. 동시의 소재와 주제는   동시의 속을 살펴보면 소재와 주제를 볼 수 있다. 동시의 소재는 곧 찾아낼 수 있지만, 주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동시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3. 동시의 요소와 구성은 동시를 이루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말이다. 시에 있어서 운율, 내용, 표현은 모두 말로 이루어진다. 시의 구성은 이 말이 행과 연으로 구분되어 한 편의 시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하나 이상의 행이 모여 연을 이루고, 하나 이상의 연이 모여 시를 이룬다. 시에 있어서 연은 산문에 있어서의 단락과 같다고 하겠다.   4. 동시의 형식과 종류는   동시도 일반 시와 같이 형식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정형시와 자유시 그리고 산문시로 나눌 수 있다. 정형시는 운율을 이루는 형식이 일정하게 고정된 시이고, 자유시는 형식이 자유로우며, 산문시는 산문적으로 쉽고 긴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한 편의 시에는 장면, 생각, 느낌 등을 담고 있는데 동시를 쓸 때는 어른인 시인이 동심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하여 소년이나 소녀가 되기도 한다.   5. 동시의 특징은   1) 생각이나 느낌을 짧은 문장으로 표현한다. 2) 말에 느낌과 감동을 담기 위해서 비유를 많이 쓴다. 3)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며, 음악적인 리듬을 가지고 있다. 4) 말의 앞과 뒤가 바뀌는 도치된 표현이 많다.   6. 경험과 생각의 표현은   1) 경험 + 생각 숲 속에서 다람쥐들이 왔다 갔다 한다. (경험) 내가 무서운가 봐. (생각) 2) 경험 + 생각 + 느낌 밤길을 걸어가면 (경험) 그림자가 따라와요. (생각) 7. 동시를 잘 지으려면   1) 경험이나 생각 또는 느낌을 거짓없이 솔직하게 쓴다. 2) 우리의 세계를 예사로 보아 넘기지 말고, 세심한 관찰력으로 살펴 본다. 3)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감동적인 글감을 찾아서 주제나 의미를 담아 쓴다. 4) 시를 쓸 때는 적절한 낱말을 골라서 짧게 쓴다. 5) 행과 연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쓴다. 6) 운율을 살려서 쓰거나 운율이 글 속에 들어있게 쓴다. 7) 운율을 높이거나 감동을 북돋우고, 강조를 하기 위해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여 쓴다. 8) 내용을 다 쓴 다음에는 작은 소리로 읽어보고, 자연스럽게 고친다.  
1074    詩쓰기에서 상징, 알레고리를 리용하기 댓글:  조회:5087  추천:0  2016-02-07
상징과 알레고리는 모두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방법은 전혀 다릅니다. 상징이 추상적인 것을 눈에 보이는 사물로 표현한다면 알레고리는 보다 은유적이고 의인화된 것으로 표현합니다. 상징의 예를 들면, 십자가 => 기독교, 태극기=> 한국, 흰 드레스 => 순결, 빨강 파랑 노랑 => 교통신호.... 그에 비해, 알레고리는 대개 은유나 풍유, 의인화된 사물로 표현됩니다. , , 등은 추상적 개념이나 동물이 의인화되어 나오는데, 이런 경우가 바로 알레고리에 해당합니다. 또 상징처럼 알기 쉽게 기호나 사물로 표현되지 않고 수수께끼처럼 이면에 감춰져 표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이 무인도에 갇힌 아이들을 통해 정치, 선과 악, 인간본성에 대해 풍자하는 경우죠. 발터 벤야민은 알레고리가 텍스트나 회화에 신화적이고 역사화된 배경을 설정하기 때문에 상징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알레고리에 비하면 상징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죠. 그만큼 어려운 개념이라는 얘기겠죠. 1. 상징 ① 상징의 본질 -상징이란 어원은 (한데 던지다.비교하다, 표시)라는 의미다. -한 심상과 한 관념을 상상에 의하여 연결시킬수 있는 방법 -상징은 불가시적이고 형이상적인 실재를 드러내는 가시적형 또는 대상을 뜻하는 것으로 파악되어야 할 것 -은유는 1:1의 유추적 관계에 의존하지만 상징은 아니다. -상징은 확장된 은유이다. -캇시러: 신호는 조작자, 상징은 지시자 : 인간을 상징적 동물로 정의 -신호는 동물적 존재 세계 일부, 상징은 인간의 의미세계일부 -william York Tindall - 신호와 상징의 차이점 ㄱ.신호는 명확한 것. 상징은 불명확한 것 ㄴ.상징은 어떤 것을 남김없이 나타낼 수 없고 우리가 말할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사상과 감정을 암시 ㄷ.신호는 본의에 관심을 상징은 유의 자체에 관심을 갖는다. ㄹ.신호는 작자와 독자 사이의 의사소통을 중시, 상징은 그것 자체와 독자 사이의 의사소통에 있다. -시인의 임무 ㄱ.의미를 관념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구체적인 심상으로 형상화 시켜 전달 ㄴ.시가 상징을 그 표현의 가장 직접적인 질료로 삼게 된 이유는 관념 이전의 근본적인 의미를 전달해 주는 것 ㄷ.시인은 감동과 생기, 염감으로써 힘을 북돋아 주는 동시에 기쁨을 주는 것 ② 상징과 시 -이미지가 지니는 언어적 한계를 무한히 넓혀, 언어 이상의 본질적 , 실체적 세계로 이끌어 가는 작용이 시에 있어서의 상징화 작용이다. -비둘기가 (평화)를 상징한다고 말할수 있는 것은 (연상작용) 때문이다. -개인적 상징 - 윤동주(십자가), 이육사(절정) -관습적 상징(비유) - 이장희(봄은 고양이로다.) -유치환(깃발) - 확장된 은유 상징 2. 알레고리 ① 알레고리의 본질 -하나를 말하여 다른 것을 의미할 때 알레고리가 나타난다고 한다. -비유는 유의와 본의가 유사 관계를 가지며 이들이 문면에 확연히 드로나는 경우에 볼 수 있다. -자의적 이질관계(유의가 생략된 본의를 지시하는 관계): 기호 -연상적 이질 관계(유의가 생략된 본의를 암시하는 관계): 알레고리.상징 -유의가 본의를 번역해 내면: 알레고리 -유의와 본의가 통합되어 의미를 현현시키면 : 상징 -알레고리는 비유와 기호처럼 유의와 본의가 구별된다. 상징은 그것이 통합되어 분리되지 않는다. -알레고리의 본의는 기성의 도덕과 윤리의 추상적 개념을 갖는다. -상징 우월론은 낭만주의 이후 대두되었고 상대적으로 알레고리는 위축 -프라이- 모든 비평은 알레고리이다. -알레고리의 범주에서 작품을 해석할 때 나타나는 특질 ㄱ.수사적 측면에서 주로 의인화와 문답법의 기법을 나타낸다. ㄴ.인식론 측면에서 이원론과 상반성을 갖는다. ㄷ.의미론적 측면에서 현세성과 교훈성을 갖는다. 3. 상징적 표현의 방법 (개인적, 관습적, 제도적, 원형적 상징) ① 작품전체가 하나의 상징을 이루는 경우 -윤동주(슬픈족석) -시의 본문 전체가 하나의 뭉뚱그려진 상징을 이루고 있다. -한용운(알수 없어요) -김춘수(이중섭) -이상(최후), 마광수(신) ② 어떤 상징적 시어가 의도적으로 쓰여져 상징적 의미를 환기시키는 경우 -조병화(의자): 지금 어드께 쯤.... -이작품에 나오는 (의자)는 일상적 의미가 아니라 상징적 의미로 쓰였다. (아침)과 (묵은의자)가 서로 대비되면서 시간이 흘러가면서 세대가 교체되고 모든 것이 역사적으로 변해간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암시 -김수영(눈) -김춘수(꽃) -이러한 (의자, 눈, 꽃)같은 보편적인 소재를 상징적 시어로 승화 시킬 때 거기서 상징의 확산과 승화작용을 일으킬수 있다. ③ 원형적 상징을 응용하는 경우 -원형의 이론은 문학의 해석에 있어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기한다. ㄱ.꿈과 신화의 의식은 근본적으로 보편적인 정서적 욕구를 충족 시키거나 보편적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간접적으로 변장된 비공리적 방법 ㄴ.상징은 실제로는 그 행위를 초월한 다른 관념의 세계를 보여주는 암시적이고 간접적인 방법 ㄷ.결국 원형이란 가장 보편적인 상징이다. ㄹ.이때 시인은 일시적이고 현상적인 세계를 초월하여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원형적 상징들의 예 바람: 호흡, 영감, 생기, 정신, 시련 원: 통일성,전체성, 의식과 무의식의 결합, 영원한 회귀 강물: 시간의 흐름, 생의 윤회 -성적 상징 - 구두를 신는 행위 - 뱀 -꽃을 밟고 지나가다. (사디스틱한 마조키즘) -서정주(화사) -마광수: 자궁 회귀 본능을 원형적 상징의 소재로 한시 → 불편한 가운데서 미의식을 충족 → 무거은 귀걸이, 목걸이, 긴손톱, 뾰족구두 -김춘수(봄바다) 4. 알레고리적 표현의 방법 ① 알레고리적 주제를 상징적 기법으로 표현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삼아서 시 창작에 알레고리를 응용해야 한다. ② 알레고리는 결국 어떤 교훈적 메시지를 독자에게 은근하게 전달하려고 할 때 쓰이는 방법 ③ 정치풍자적 알레고리 시 -김수영(폭포) /김진학 시창작론
1073    동시창작론 댓글:  조회:4618  추천:1  2016-02-07
동시 창작론 유창근   1. 동시의 개념 동시란 어린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로써 어른이 썼든 어린이가 썼든 동심을 바탕으로 생각이나 느낌을 가장 적절한 언어로 가장 함축성 있게 표현한 운문이다. 내용면에서는 동요와 흡사한 점이 있으나 형식면에서는 음악성이 떨어지고 그 표현이 훨씬 자유롭다. 즉, 내재율로 감흥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글이 동시라고 할 수 있다. 유경환은 ‘동시란 어린이도 읽을 수 있고 어른도 읽을 수 있는 시문학의 한 장르’로써 우선 문학성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동시인도 먼저 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성을 갖추지 못한 동시가 남발됨으로써 동시의 질은 형편없이 떨어지게 되고, 아동문학이 푸대접을 받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시와 성인 시는 시라는 차원에서 동일한데 다만 동시는 ‘어린이도 대상 독자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쓴 시’이고, 성인 시는 ‘그 대상 독자에 어린이를 의식하지 않고 쓴 시’라는 점에서 구분이 된다.     2. 동시의 종류 동시는 일반적으로 형식상 분류와 내용상 분류에 의해 여러 가지 양상으로 논의되어 오고 있으나 논자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1) 형식상 분류 먼저 형식상 대략 다음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① 자유동시 : 형식의 구애 없이 자유롭게 쓰는 시의 양식으로 1930년대부터 김영일·박목월 등에 의해 처음 시도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동요보다 훨씬 널리 창작되어 읽혀지고 있다. 당시 자유 시론의 주창자로서 우리나라 동시단에 신경지를 개척한 김영일의 시는 특히 단시적 간결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수양버들 / 봄바람에 / 머리 빗는다. / 언니 생각난다. ──김영일, 「수양버들」 전문   ② 산문동시 : 형식상으로 자유시에 속하면서도 산문적 서술의 성격이 강한 편이다. 말하자면 어디까지나 시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표현 양식은 산문적 형태를 취한 시이다.   살구나무 새순에 봄빛이 묻어 있다. 껍질 속에 갇혀 있던 파란 빛깔 집어 들고 마당가 한 귀퉁이에 우뚝 선 살구나무 ──노원호, 「살구나무 새순에」 일부 ③ 장동시 : 자유 동시처럼 매우 함축성이 있고, 상징 또는 비유적인 방법으로 씌어지면서 그 시의 길이가 길다는 점이 특징이다. 산문시보다 산문성은 부족하나 작품의 길이가 산문시보다 비교적 긴 편이라는 점이 산문 동시와 장동시의 차이가 된다. ④ 동화시 : 동화시는 시이면서도 우선 형식면에서 양적으로 길고, 내용면에서는 동화처럼 어떤 사건의 전개나 이야기성이 있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새 집으로 이사 온 밤 비 오고, 바람 불고, 천둥하던 밤. 뒷산에 뒷산에 도깨비가 나와 우리 집 지붕에 돌팔매질 하던 밤. 덧문을 닫고, 이불을 쓰고, 엄마한테 붙어 앉어 덜덜 떨다가 잘랴고 잘랴고 마악 들어누면 또, 탕 탕 떼구루루…… 퉁! 귀를 막고, 눈을 감고, 그래두 탕 탕 떼구루루……퉁! ──윤석중, 「도깨비 열두 형제」 일부   (2) 내용상 분류 내용상 분류는 일반적으로 다음 4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① 서정동시 : 본디 서정시는 노래 부를 수 있는 시이므로 음악성을 중요시하는 것이며, 인류의 보편적인 정감에 호소하는 개인적인 정감과 체험의 예각적 표출 형식을 취한다. 시의 소재나 내용이 자연과의 교감이나 자연과의 시적 감동을 주로 하여 형상화한 시이다. 눈밭에서 아이들이 / 햇살을 당긴다. / 언 손을 모아 / 소리를 모아// 모두모두 매달려 / 발을 구르면 / 겨울 해가 풍선처럼 / 끌려온단다. ──이상현, 「햇살」 전문   ② 생활동시 : 어린이의 실제 생활이 그대로 사실적인 표현에 의해 씌어진 시이다.   한 사람이 방에서 / 나오면서 하는 말이, / “어제보다 날이 좀 풀렸는데요.”// 한 사람이 밖에서 / 들어오면서 하는 말이, / “어제보다 훨씬 더 쌀쌀해졌는걸요.” ──윤석중, 「추위」 전문   ③ 관념동시 : 어떤 사물이나 그 사물을 통해 인식된 결과를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마음 속에서 다시 여과되고 걸러진 이미지를 위주로 형상화한 추상성이 강한 작품이다.   귤 / 한 개가 / 방을 가득 채운다. / 짜릿하고 향긋한 / 냄새로 / 물들이고// 양지 짝의 화안한 / 빛으로 / 물들이고, 사르르 군침 도는 / 맛으로// 물들이고, 귤 / 한 개가 / 방보다 크다. ──박경용, 「귤 한 개」 전문   ④ 서사동시 : 서사시는 사건을 운문으로 읊는 장시이다.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행동을 중심으로 한 파란만장한 사건과 이야기를 읊은 것이다.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서사시의 대표작이고 밀턴의 『실락원』도 서사시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승휴의 『제왕운기』나 이규보의 『동명왕편』이 서사시에 속한다. 바다에 그물을 놓을 때나 당길 때 알기를 보는데,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섬 하나 없는 동해바다 가운데에서 그물을 찾아내는 시루뫼 어부들은 언제나 큰 산을 바라보며 바라보며 살지, 시루뫼 어부들은 참말 용하기두 하지. ──김진광, 「시루뫼 마실 이야기」 일부     3. 동시창작 방법 첫째, 쓰고 싶은 동기를 잡아야 한다. 시를 쓰고 싶은 생각이 떠오를 경우는 무슨 일로 인해서 마음이 크게 움직일 때인데, 그것은 반드시 아름다움에서 오는 기쁨만이 아니라,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의 슬픔일 수도 있고, 괴로운 일에서 오는 아픔이기도 하고, 또 불의한 일을 보았을 때의 노여움일 수도 있다.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은 모두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내부로 들어오는데, 이와 같은 감각 체험을 통해서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상상을 하고, 또 어떤 생각들을 낳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감정의 기복을 눈여겨보아야 하고 감수성을 항상 열어 놓아야 한다. 마음이 강퍅하거나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결코 동시를 쓸 수 없다. 마음을 부드럽게 가지고 마음의 문을 항상 열어 놓아야 한다. 둘째, 자신의 눈으로 관찰하고 스스로 마음에 느낀 바를 정직하게 써야 한다. 마음에 느끼고 어떤 움직임을 경험한다는 일은 감각 체험을 통해 심상에 비쳐진 것이 다시 형상화의 단계에 넘겨지고 있음을 말한다. 이 형상화의 표현이 바로 시의 표현이고 시를 쓰는 기법에 있어서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하고 까다롭다. 이 형상화 과정에서 남의 것을 슬쩍 빌려 온다거나, 심상에 비쳐지지 않는 것을 억지로 꾸며대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그럴싸하게 아름다운 말만 찾아 시를 쓰려고 하지 말고, 오직 진실 된 표현만이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마음의 느낌을 진실 되게, 소박하게 나타내도록 쓰는 일은 동시 창작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셋째, 일상용어 중에서 시어를 잘 찾아야 한다. 동시는 되도록 어린이들의 일상용어에서 시의 용어를 찾아내는 것이 바람직하나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동시가 일차적으로 어린이를 대상 독자로 하기 때문에 정서 순화에도 그 기능이 있지만, 자라는 어린이의 지능이나 언어 발달에 크게 영향을 준다는 효용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린이들이 알 수 있는 말을 쓴다고 해서 혀 짧은 유아어를 흉내 내거나 말재주를 부리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엄마, 아빠, 해님, 달님, ~했어요, ~했습니다. 등의 언어를 즐겨 쓰고, 의태어나 의성어를 반복하여 쓴다고 동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어는 자기의 느낌이나 감동을 나타내는 데 가장 중요한 말, 가장 적당한 말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시어를 선택하는 작업은 대단히 어렵다. 동시이기 때문에 그저 쉬운 말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넷째, 풍부한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써야 한다. 동시를 쓰기 위해서는 실제로 자신의 삶이 겪어 낸 그 체험도 물론 작품의 바탕이 되지만, 그보다 상상적인 체험이 더 중요하다. 동시는 동심적 심상에 비쳐진 감각 체험의 재현이기 때문에 성인인 아동문학가들이 쓰는 동시에서 실제 동심 세계의 형상화가 이루어지려면 어린이의 실제 생활에 파고 들어가 항상 그들을 관찰함으로써 상상적 체험을 얻어내야 한다. 처음 동시를 쓰려는 사람은 가급적 어려운 사상을 나타낸 동시를 쓰기보다는 가까운 생활 주변에서 동시의 소재를 찾아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동심의 눈으로 사물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다섯째, 교육적 효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성인시와 달리 동시는 대상 독자 속에 어린이를 포함하기 때문에 교육성을 무시할 수 없다. 죽음이나 절망을 나타낸 것이라든가, 비인간적인 행위나 비도덕적인 내용, 어두운 사회의 이면을 파헤치는 일, 순화되지 않은 언어 사용 등은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라는 어린이들에게 좀더 밝고 희망을 줄 수 있는 시, 보람 있고 참다운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건전한 시를 써야 한다. 여섯째, 제목 붙이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한 편의 동시를 쓸 때, 제목을 붙이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제목을 보면 작품의 소재가 무엇이며, 어떤 생각을 나타내려고 하는가를 대충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시의 제목을 먼저 정해 놓고 나서 시를 쓰고, 어떤 사람은 시를 다 써놓고 나서도 제목을 정하지 못하여 고심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제목을 붙이는 시기가 다르기 마련이다. 다만 동시에 제목을 붙일 때는 되도록 쉽고 사물적인 것이 좋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일곱째, 행과 연 가르기를 바르게 해야 한다. 산문동시는 형태 자체가 산문적이지만, 정형동시나 자유동시는 행과 연을 제대로 갈라놓아야 시인의 정감이 고르고 바르게 전달된다. 시인에 따라서 한 행의 길이가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하지만, 한 행의 길이가 너무 길어지면 어린이들의 호흡에 무리가 간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아울러 한 연의 행수도 너무 많아 무리가 되지 않도록 적절하게 연 가르기를 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한 편의 동시가 다 되었을 때는 다시 읽고, 고치고, 매만지고, 다듬어야 한다. 시어를 제대로 찾아 썼나, 제자리를 잡았나, 군더더기가 없나 등에 대해서 신경질적으로 깎고 다듬고 하는 것이 좋은 시를 쓰는 요령이다. 4. 이미지 만들기 이미지란 시작품 속에 구성된 언어조직이 우리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어떤 영상을 말한다. 그러니까 이 영상은 우리 마음속에 나타나는 어떤 형태라는 점에서 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미지는 정신적Mental 이미지, 비유적Figurative 이미지, 상징적Symbolic 이미지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심리학자들은 웰렉과 워렌Wellek & Warren의 분류와 비슷하게 정신적 이미지를 다시 시각적·청각적·후각적·미각적·촉각적·기관적·근육감각적 이미지로 나누기도 한다.   1) 정신적 이미지 만들기 초가지붕 마루엔 / 밤낮 꽃 핀다. / 낮에는 화안히 / 호박꽃 피고 // 밤에는 소롯이 / 박꽃이 피고 / 호박꽃은 낮에 피니 / 해와 같이 붉은 꽃, // 박꽃은 밤에 피니 / 달과 같이 하얀 꽃, / 호박꽃 지며는 / 해와 같이 붉은 호박 // 박꽃이 지며는 / 달과 같이 하얀 박, /초가지붕 마루엔 / 해와 달이 열린다. ──김종상, 「박과 호박」 전문   호박꽃과 박꽃을 소재로 쓴 시이다. 호박꽃과 박꽃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했고, 이 두 꽃들이 진 뒤의 상황까지 상상한 점, 호박과 박을 해와 달이라고 비유한 점 등이 이 시를 훌륭하게 만들었다고 하겠다.   귀뚜라미 또르또르 / 섬돌 밑에서 / 귀뚜라미 또르또르 / 시렁 위에서 // 또록또록 눈이 밝아 / 책을 읽고 있으면 / 또르또르 / 또르또르 / 밤이 깊는다. ──임인수, 「가을 밤」 전문 이 시의 전체가 귀뚜라미의 소리로 가득 차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처럼 청각적 이미지를 시에 끌어 들일 때 시의 분위기는 독자에게 훨씬 실감을 준다. 또 한 가지 덧붙여 말하면 위의 시에서는 소리의 상징으로 리듬을 잘 살려 음악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물새알은 / 간간하고 짭조름한 / 미역 냄새, / 바람 냄새. 산새 알은 / 달콤하고 향긋한 / 풀꽃 냄새, / 이슬 냄새. ──박목월, 「물새알 산새알」 3·4연   물새알 냄새와 산새알 냄새를 후각적 이미지로 형성하고 있다. 또한 같은 말이나 같은 음, 같은 짜임의 되풀이에 의하여 운율을 이루고 있는 시이다. 물새는 물새알을, 산새는 산새알을 나으며, 또 신기하게도 물새알에서는 물새가 태어나고 산새알에서는 산새가 태어난다는 생명의 엄숙한 법칙을 이 시는 아름다운 말과 리듬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다.   비는 달콤한 젖 / 눈은 솜이불 / 바람은 엄마 입김. 아! 우리는 / 자란다, 눈 속에서 / 바람 속에서. ──이원수, 「새눈의 얘기」 2연   비를 달콤한 젖에 비유하고 눈은 솜이불에, 바람은 엄마 입김에 각각 비유한 점이 훌륭하다. 특히 비를 달콤한 젖이라고 미각적 이미지를 빌어 표현했기 때문에 이 시는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첫 서리 내렸다 / 전기 줄에 / 아기 참새들 / 쫑쫑쫑 / 발이 시리대. // 첫 서리 내렸다 / 감나무에 / 홍시감이 / 빠알갛게 / 볼이 시리대. // 첫 서리는 겨울 소식 / 눈사람의 편지 / 세수할 때 / 울 아기 손이 시리대. ──송명호, 「첫서리」 전문   ‘발이 시리대’처럼 촉각적 이미지는 뜨겁다거나, 차겁다는 등의 감각을 표상한다.   앗! 푸른 하늘이 / 숨을 쉬는 것일까? // 잠자리를 빨아들이기도 하고 / 내뱉기도 하고! ──장만영, 「잠자리」 4연   마치 하늘이 숨을 쉬면서 잠자리를 빨아들이기도 하고 내뱉기도 하는 것처럼 느낀 지은이의 기관적 이미지 착상은 놀라울 정도이다. 기관적 이미지는 대체로 고동, 맥박, 호흡, 소화 등의 감각을 표상한다. 따라서 흐느끼는, 할딱이는, 답답한, 숨이 차는 따위의 관형어에 조응한다.   2) 비유적 이미지 만들기 별을 보았다.// 깊은 밤 / 혼자 / 바라보는 별 하나,저 별은 / 하늘 아이들이 / 사는 집의// 쬐그만 / 초인종 / 문득 / 가만히 / 누르고 싶었다. ──이준관, 「별 하나」 전문   깊은 밤하늘에 보이는 별을 하늘나라 아이들이 사는 집의 초인종으로 비유한 점이 재미있다. 이 시에서 ‘별’은 ‘초인종’이라는 전혀 다른 낱말과 밀착되어 ‘별’과 ‘초인종’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사실로써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곧 하나의 사물이 다른 하나의 사물로 치환된 하나의 증거이다.   3) 상징적 이미지 만들기 아침과 같이 고요한 나라가 있었다. / 그 나라에는 한 그루의 커다란 꿈나무가 있었다. / 꿈나무는 5월이면 / 잎사귀 대신 주렁주렁 꿈을 피워놓는 나무다.// 이상한 꿈나무의 그림자는 / 저 먼 달 속까지 비치어 계수나무가 되었다. ──김요섭, 「꿈나무」 전문   이 시에서 ‘아침과 같이 고요한 나라’는 주지하는바 우리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말이고, ‘꿈나무’는 곧 ‘어린이’를 상징하는 말이다. 시에 있어서의 상징은 전통적이거나 개인적으로 미리 정해진 것과 그리고 시의 문맥 중에서 비로소 정해지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비둘기’가 ‘평화’를, ‘무궁화’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것은 전자의 경우요, ‘하늘’이 자기만의 높은 이상의 세계라면 이는 후자에 속한다.     5. 창작상의 유의점 동시를 창작할 때는 다음 몇 가지 유의 사항을 반드시 숙독해야 한다. ① 제재 : 어린이의 생각이나 동심의 세계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지 동시의 제재가 될 수 있다. ② 감정정리 : 제재를 동시로 쓰기 전에 표현과 구성 등을 깊이 생각하는 감정의 정리를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해야 주제가 성숙해지고 사고와 감정의 통일이 이루어진다. ③ 이미지 : 어떤 정경을 그릴 때에는 그 이미지가 명확하게 떠오르도록 써야 한다. ④ 언어의 절약 : 시는 설명이 아닌 암시의 세계다. 되도록 짧은 말 속에 모든 의미가 간직되도록 해야 한다. ⑤ 행과 연의 구분 : 행과 연을 구분할 때에는 리듬의 단락을 짓기 위해서, 또는 이미지를 선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행과 연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 ⑥ 언어의 선택 : 언어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도록 알맞고 시적인 언어를 가려 써야 한다. ⑦ 비유 : 동시에 직유나 은유를 쓰되 될 수 있으면 시인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고 싱싱한 비유를 골라 써야 한다. ⑧ 생동감 : 동시는 특별히 생동감이 넘쳐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생동감이란 어린이의 마음과 일치하거나 어린이의 부단한 행동성에 자극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⑨ 사상과 감정의 조화 : 동시는 표현에서 느낌으로 그리고 느낌에서 감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창작되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작가의 사상과 감정이 통일 내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쓰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감정을 여러 각도로 어루만진 다음, 표현과 구성에 대한 정리를 하면서 사상과 감정이 조화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작가의 사상과 감정의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이미지는 선명할 수 없다.       유창근 / 시인·문학평론가·교수. 저서 『문학을 보는 눈』, 『차세대문학의 이해』 , 『문학비평연구』, 『한국 현대시의 위상』 등 40여 권이 있으며 (사)한국어문능력개발원 이사장, 계간 「창조문학」 주간.
1072    동요창작론 댓글:  조회:4096  추천:0  2016-02-07
I. 동요란 무엇인가? 1. 동요의 의의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감정이나 사상을 표현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표현의 한 형태로서 노래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전래 동요는 대부분 외형률을 중심으로 한 정형시 형태로 나타나는데 뜻 있는 성인이 전래 동요를 개작하고, 나아가 그것에 새로운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여 창작 동요 내지는 예술 동요라는 장르를 개척하기에 이른 것이다. 2. 동요의 특질 가. 형태에서 오는 선명한 리듬이 있다. 동요가 정형시여야 한다는 것은 노래로 불리워질 수 있는 성질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 동요는 내용이 쉽고 간단하고 소박하다. 동요에 쓰여지는 시의 말은 회화적(繪畵的)이거나 상징적(象徵的)이기 이전에, 동요를 읽거나 곡을 붙여 불러서 리듬에서 오는 정서를 마음에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기본이다. 즉 어린이들에게 쉽고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의 용어를 선택하면 좋다. 베티나 휼리만은 '동요는 가장 순수하고 가장 무사기(無邪氣)한 말로 조립하는 형식이다. 그래도 만약 시라는 말을 써야 한다면 일상의 詩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어버이와 어린이를 잇는 놀이와 한가로운 즐거움을 주는 수단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동요의 생명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타고 들려오는 말의 소리, 어머니의 음성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부드럽고 그리운 마음을 감싸주는 일상의 어린이 말에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동요는 소재를 의인화시킬 수 있다. '오래 된 훌륭한 동요는 현대와는 전혀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 그런 동요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동요가 태어난 시대는 해와 달은 물론 비까지 의인화되어 불리워졌다.'라고 베티나는 말했듯이 의인화는 동요에서 중요한 특성이 되고 있다. Ⅱ. 동요의 형식 1. 동요의 요건 동요는 정형시이므로 형식적으로 외형률을 중심으로 한다. 그 형식이란 분절(分節), 대구(對句), 음수율(音數律) 등인데 이는 보통 가요에도 있는 형식이므로 동요에서는 내용을 하나의 요건으로 더 첨가할 수 있다. 즉 내용이 어린이 생활이나 감각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어린이를 찬양 고무하는 건전한 내용의 노래도 동요로 볼 수 있다. 가. 분절(分節) 동요를 몇 개의 節로 나눔을 분절이라 한다. 1절을 작곡하여 2절, 3절을 같은 곡으로 불러야 하기 때문에 분절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분절은 작곡을 위한 요건이 된다. 나. 대구(對句) 동요에 있어서 절의 경계선을 기준으로 하여 대칭되는 자리에 같은 글자 수의 말이 놓임을 말한다. 對句는 원래 한시(漢詩)의 결구(結句)의 방법으로 詩句의 사이에 대칭되는 자리에 어격(語格)이나 의미가 상대되는 글자나 낱말이 놓임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한시와는 구조가 다른 우리말 동요의 대구는 낱말의 글자 수만을 같게 하면 된다. 대구법은 동요 창작에 있어서 가장 까다로운 요건이며 제약이다. 음수율 대구법, 무음수율 대구법 등의 방법이 있다. 다. 음수율(音數律) 우리 나라 전래 동요는 4.4조를 바탕으로 한 4.3조, 3.4조 등이 기본 음수율이었다. 그러다가 육당 최남선의 「경부철도가」이후, 창가 형식이 창작 동요에 영향을 주면서 7.5조가 동요의 음수율이 되었다. 그러나 음수율법은 근래에 와서 잘 쓰이지 않고 있어서 창작 동요의 필수 요건에서 제외되고 있다. 라. 내용 (內容) 동요는 자유시인 동시보다 노래에 가까운 문학 형식이다. 작곡될 노래를 전제로 하여 작품이 씌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동요는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동시와는 달라야 한다. 동요는 어린이의 노래라는 뜻을 지녔으므로 아동 생활과 감정에 잘 맞아서 어린이들에게 수용될 수 있어야 한다. 자유시인 동시가 아동문학의 부문으로 정착되기 이전에는 정형시인 동요가 시(詩)와 요(謠)의 기능을 다 가지고 있었으나, 동시 부문이 개발되자 시의 기능은 동시가 맡고 동요는 요의 기능만을 지니게 되었다. 노래를 위해서만 동요 작품을 쓰는 시대가 되고부터는 더욱 동요의 성격이 분명해졌다. (1) 보다 노래에 가까울 것 형식도 노래가 되어야 하지만 내용도 노래에 가까워야 한다. 즉 악상(樂想)을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이 되어야 하기에 딱딱하고 긴장된 내용이거나 끔찍한 내용을 배제한다. (2) 즐거움을 담을 것 전래 동요에는 슬픔을 달래는 노래가 있었고 전통적으로 우리 동요가 슬픈 서정을 노래한 것이 많았으나 현대 동요는 그렇지 않다. 즐거운 동요가 되기 위해서는 재미나 즐거운 생활 등을 담아야 한다. (3) 동적(動的)일 것 웃고 이야기하고 뛰는 것이 어린이 생활의 전부다. 그러므로 움직임이 없는 정적이고 회고적인 노래보다 활동이 있는 동요가 더 어린이 정서에 맞다. 경쾌한 내용이 되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4) 내용이 밖으로 발산되어야 한다. 동시를 안으로 생각하게 하는 시라고 한다면 동요는 밖으로 발산되어야 한다. 그리고 노래하는 동안에 그 내용이 이해되어야 한다. 2. 동요의 형식 가. 동요의 분절법 동요의 절은 노래의 단위이므로 자유시의 연과는 성격이 다르다. 자유시에서 여러 개의 연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동요에서는 하나의 절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동요에서는 1절만으로 동요의 성격을 지녔다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음수율이 있는 운문은 1절만으로도 동요로 인정될 수 있다. 나. 동요의 음수율 우리 전통의 음수율은 4.4 조를 중심으로 한 4.3조, 3.4조였다. 4.4조는 우리 민요 뿐만 아니라 가사 문학의 외형률로서 우리 나라 서사시의 형식 요건이 되어 왔다. 그 후, 1944년 육당에 의해 창가가 창작되면서 7.5조가 우리 아동 문학에 도입되었다. 7.5조는 일본식 음수율이었으나 이것이 우리의 언어 구조에 잘 맞아들었기 때문에 별 저항 없이 우리 나라의 가요와 동요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한국 최초의 작곡 동요 '설날'부터 7.5조 4행을 1절로 하는 창가식 동요였다. 해방 후, 방정환의 '늙은 잠자리', 한정동의 '따오기', 윤석중의 '오뚜기', 최순애의 '오빠 생각', 이원수의 '고향의 봄' 이 모두 창가의 영향인 7.5조, 또는 8.5조였다. 이러한 7.5조는 오늘날까지 영향을 주고 있지만 점차 쇠퇴해가고 있다. 다. 동요의 대구(對句) 동요에서 분절과 대구는 묶어서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분절은 대구를 전제로 해서 이루어지며 대구 역시 분절과 함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요가 음수율을 두느냐 두지 않느냐에 따라 방법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데 전자의 방법을 음수율 대구법, 후자를 무음수율 대구법이라 한다. (1) 음수율 대구법 동요의 외형을 4.4조나 7.5조 등 음수율에 맞추는 작법이다. ① 먼저 어떤 음수율로 작품을 쓸 것인가를 정한다. ② 몇 행의 노래에 담을 것인가를 정한다. (예문 방정환 '늙은 잠자리', 유지영 '고드름', 김종상 '봄비') (2) 무음수율 대구법 동요의 외형 요건인 음수율의 굴레를 벗어버린 작법으로 보다 자유롭다. 초기의 창작 동요는 음수율 대구로 쓴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차츰 무음수율로 발전하게 되었다. 무음수율은 행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으므로 작곡에서 변화를 둘 수 있다. 보다 문학성을 담을 수 있는 것도 무음수율 대구의 장점이다. Ⅲ. 동요의 구성 1. 동요의 구성적 기법 가. 연작법 앞절의 내용이 다음 절로 이어지는 방법이다. 창작 동요에서 가장 흔한 작법이다. 윤극영의 '반달'을 보면 1절의 내용이 2절로 흘러 이어지고 있다. 1,2절을 합쳐야 하나의 기승전결이 이루어진다. 음수율 대구법으로 쓰는 작품은 거의 연작법 구성이다. 나. 대칭법 절마다 하나의 단락을 짓는 것이 대칭법이다. 절마다 서로 맞서는 내용이 담기게 되며 하나의 절이 기승전결을 이루게 된다. 무음수율로 쓰는 작품은 대부분 대칭법 작품이 된다. 대칭법으로 쓴 동요에는 대칭되는 자리에 같거나 비슷하거나 반대되는 대구로 놓이게 되므로 정형시로서 묘미를 살릴 수 있다. 2. 동요의 표현적 기법 가. 반복법 자유시인 동시와는 달리 음악성을 지닌 동요는 운율을 맞추고 뜻을 강조하기 위해 문장을 반복하는 기법이 동시보다 많이 쓰이고 있다. (예문 강소천 '호박꽃 초롱') 나. 대화법 대화법에는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대화를 거는 독백법과 묻고 답하는 형식인 문답법이 있는데 동시의 기법으로도 쓰이지만 동요에서 시작된 것이다. (1) 문답법 대화 상대에게 수작을 걸면 응답이 오게 되는데 묻고 답함이 1행씩 계속되기도 하지만 1절의 절반, 또는 1절씩 진행된다. (예문 이종구 '시냇물') (2) 독백법 독백법은 가상의 대화자에게 뜻을 전할 뿐 대답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애국가도 이런 성격의 노래이지만, 한국 최초의 동요 형식 시가인 龜旨歌 역시 독백의 성격을 띠고 있다. Ⅳ. 동요 창작의 실제 1. 동요 창작의 실제 가. 동요의 문학성 훌륭한 문학이면서 훌륭한 음악이 되어야 하는 동요의 양면성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 나. 동요의 음악성 정형시가 외형률을 지닌 것은 노래가 되기 위해서지만 자유시의 내재율 역시 시의 음악성에서 나온 것이다. 동요의 음악성은 작곡가의 樂想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다. 동요의 소재 동시가 동요에서 분화되기 이전에는 동요가 아동 문학의 운문 분야를 모두 맡고 있어 謠의 성격과 詩의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가 동요에서 분화된 현 시점에서는 동시는 보다 詩적이고, 동요는 보다 謠의 성격을 지녀야 한다. 요의 성격을 지닌 동요는 생활성을 지녀야 하고, 재미를 이끌 수 있어야 하며, 활동적이고, 경쾌해야 한다. 한 작품이 이런 성격을 모두 갖추기는 어렵지만 이 중 몇 가지는 지니고 있어야 한다. 깊이 생각해야 알 수 있는 소재, 너무 딱딱한 내용의 소재, 슬픔을 자아내거나 비교육적인 것은 동요의 소재로 맞지 않다. 라. 착상에서 완성까지 (1) 착상 단계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활동적인 면을 노래해 보겠다는 생각에서 동요의 소재를 찾아야 한다. (2) 완성 단계 하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단계 ① 문장과 내용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한다. ② 군더더기는 떼어낸다. ③ 리듬이 맞지 않을 때는 낱말의 반복을 시도한다. ④ 너무 긴 행은 줄이고 짧은 행은 늘인다. ⑤ 낱말을 알맞게 바꾼다. ⑥ 첫 절을 다듬어 보고, 둘째 절을 첫 절에 맞추어 대구가 되게 한다. 그것이 잘 되지 않을 때는 첫 절을 둘째 절에 맞추어 대구를 조정한다. 2. 동요를 보는 눈 좋은 글을 쓰려면 자기 글을 써 놓고 스스로 평가하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3. 동요시(童謠詩) 동요와 동시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는 율문이 많이 있다. 이런 시는 동요의 형식을 지키지 않은 내재율 속에 노래를 담고 있다. 형식은 자유시이면서 내용은 동요인 것이다. 박화목의 '과수원 길'은 자유시의 형식이지만 음악성을 깊이 지니고 있다. 작곡은 외형률과 무관하다. 그러므로 어떤 시나 산문에도 곡을 붙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동시나 음악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악상을 일으키는 음악성이 내재해야 되는데 그런 시가 바로 동요시다. 동요시가 노래말이 되자면 문장이 노래의 흐름에 맞아야 되며 길이가 알맞아야 한다. 신현득 「동요 창작론」,『아동문학 창작론』, 학연사, 1999. 이재철, 『아동문학개론』, 서문당, 1992. 박화목, 『아동문학개론』, 민문고, 1993. 동시  동시   어린이들의 심리를 바탕으로 어른들이 어린이를 위해 쓴 시.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소박한 감정을 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어린이가 쓴 시를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는 어른이 쓴 것만을 가리킨다. 성인시(成人詩)와 다른 점은 '어린이답다'는 점이다. 동시의 모태는 동요(童謠)로서, 동요의 정형률에서 벗어난 내재율과 산문율이 있는 시에서 비롯되었다. 1925년 이전까지는 주로 창가 형식의 동요뿐이었고, 1933년 윤석중(尹石重)의 동시집 잃어버린 댕기〉가 나온 이후에 비로소 동시의 바탕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요적(謠的) 동요', '시적(詩的) 동요'라는 과도기적 형식에 머물러 있었다. 1937년 박목월·김영일 등이 자유시론을 내세웠으며, 이원수·강소천·박화목 등이 본격적으로 자유로운 형식의 동시를 썼다. 1950년대 이후 최계락·박경용·김종상·이석현·권오순·이오덕 등이 동시창작에 참여했다   동요 노랫말뿐만 아니라 곡조도 동요라고 한다. 동시가 정형적인 형식이나 리듬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반면 동요는 일종의 정형시로 볼 수 있다. 1920년대 이전에는 구전동요(전래동요)가 4·4조, 7·5조의 운율을 지켜오다가 그 이후 창작동요가 모습을 보이면서 내용과 형식면에서 보다 신선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어린이들이 직접지어 부를 수도 있으나 어린이를 위해 어른이 지어주는 것이 대부분이며 이런 작품들이 일정한 문학적 성향을 띠어 아동문학의 한 장르를 이룬다.  
1071    세계기행詩 쓰기 댓글:  조회:4395  추천:0  2016-02-06
현대시에 나타난 ‘외국 여행’ 이승하 1. 외국 여행과 우리 시 여행 체험은 시인들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한다. 낯선 곳에 갔는데 문학적 감흥이 일어나지 않을 리 없고, 그것을 시로 쓰지 않으면 병이 된다. 미지의 세계로 날아가 낯선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음식을 먹고, 이색적인 풍경을 보고, 색다른 체험을 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 현대문학사를 면밀히 살펴보면 전국 방방곡곡, 문학인의 펜이 가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1950~70년대까지는 해외의 자연 풍광이 우리 시문학의 공간이 된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광복 이후부터 1981년 8월 1일 해외여행자유화조치가 이루어지기 이전까지는 외국 여행을 해본 시인이 많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이국의 풍광과 풍물이, 주거지와 유적지가, 인물과 인심이 시에 그려진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외국 여행을 자유롭게 하게 되고 국민의 생활 수준이 향상된 80년대부터 우리 시문학에 있어 달라진 현상이 바로 외국 여행의 결과물로 시가 씌어지게 된 것이다. 지구본을 놓고 보면 대한민국은 참으로 작은 나라다. 하지만 대륙에 붙어 있고 삼면이 바다라는 지정학적 특성은 자고이래 우리 민족의 시야를 광활한 만주 벌판과 수평선 저 너머에 두게 하였다. 우리 고전문학을 살펴보아도 이국으로의 여행이 작품 창작의 모티브가 된 예가 드물지 않았다. 신라시대 때 당나라에 유학을 갔던 승려 혜초는 『往五天竺國傳』이라는 기행문을 남겼는데, 그 양피지 책자에 나타나 있는 여행의 경로는 인도 전역과 서역과 중국 서북부에 걸친 엄청난 거리였다. 『往五天竺國傳』의 가치가 기행문에서 끝나지 않았음은 거기에 실려 있는 자작시 5편을 통해 알 수 있다. 여행의 산물은 아니었지만 헌강왕 5년(879) 작품인 「討黃巢檄文」은 최치원이 당나라 유학 당시 황소의 난을 평정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쓴 격문으로서 당나라 사람들로부터 큰 평가를 받았다. 조선조 영조 40년(1764)에 나온 「日東壯遊歌」는 김인겸이 일본에 사신으로 가는 정사(正使) 조엄의 서장관으로 따라가 견문한 것을 바탕으로 쓴 장편 기행가사이다. 고종 3년(1866)에 나온 「燕行歌」는 홍순학이 청나라에 가는 사신의 서장관이 되어 북경에 다녀온 뒤에 쓴 기행가사이다. 시가 아닌 산문 기행문학은 숙종 39년(1713)에 김창업이 지은 「燕行日記」와 정조 22년(1798)에 서유문이 지은 「戊午燕行錄」이 있다. 이들 작품은 한글로 씌어진 데 반해 기행문학 가운데 가장 유명한 박지원의 「熱河日記」는 한문으로 씌어져 아쉬운 바도 있지만 그 문학적 가치는 앞의 작품들을 단연 압도한다. 외국 여행의 결과가 문학 작품이 되는 전통은 개화기에 나온 창가 「세계일주가」로 이어지고, 일제 강점기 때의 시작품 가운데에도 작품의 무대가 이국인 것은 적지 않다. 이육사의 「절정」과 「꽃」,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故鄕」「北關」 등은 북방(북만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정지용의 「카페 프란스」, 안용만의 「강동의 봄」, 임화의 「우산 받은 요꼬하마의 부두」,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 등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전체 편수는 그리 많지 않았고, 나라도 중국과 일본에 치우쳐 있다. 그나마 이러한 전통은 해방 이후 그 명맥이 끊어지고 만다. 그러다 해외여행자유화조치 이후 다시 외국 여행이 봇물처럼 이루어짐에 따라 그 경험이 수많은 시를 통해 형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2.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 외국 여행의 목적은 대개의 경우 관광 내지는 답사이다. 그밖에 연구를 위한 여행일 수도 있고, 일정 기간 체류하면서 느낀 점을 시에 담을 수도 있다. 시인의 외국 여행 체험 가운데 한민족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 것을 우선 살펴보도록 한다. 내가 누구냐고 자문하는 것은 노령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로프스크쯤에서는 질문이 아닌지 모른다, 내가 누군지 알려고 부질없이 애쓰지 않아도 이곳에서의 삶은 저렇게 바닥이 드러나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길로 저물 뿐, 끝간 데 없는 지평을 바라보거나 하루 종일 말이 없다, 시장 귀퉁이에 몇 봉지 김치를 내놓은 저 동포 아낙네도! 동족이라는 이름으로 이제 누구에게도 말 건넬 필요가 없다, 일찍이 이곳이 하바로프스크의 지하 감옥이라도! 조명희는 소비에트 비밀경찰에게 고문당하면서 끝끝내 신분을 감추고 무산자 계급으로 남았을까 영웅적인 파르티잔을 낳지 않아야 혁명이 혁명다웁고 안타깝게 쳐다보아도 이념의 푯대 때문에 차라리 믿음이 남던 시절은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연해주 詩篇 2」 부분 김명인은 현재 러시아 영토인 연해주에 교환교수로 가 있으면서 몇 편의 시를 쓴다. 그러므로 「연해주 詩篇」 연작시는 외국 여행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일정 기간 체류하면서 쓴 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시사를 통틀어 연해주가 작품의 무대가 된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기에 이 자리에서 그 의의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은 연해주 어느 도시(이 시의 무대가 블라디보스토크인지 하바로프스크인지 확실하지 않다)의 거리와 시장통을 거닐면서 자신의 정체성 탐구에 골몰해 있다. 내가 누구냐고 자문하는 것이 부질없는 이유는, 시장 귀퉁이에서 봉지 김치를 팔며 살아가는 동포 아낙네를 만났기 때문이다. 동포일지언정 아낙네와 나는 국적이 다르다. 그래서 “동족이라는 이름으로 이제 누구에게도/ 말 건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국에서의 감회가 뼈저린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소설가 조명희가 일본 스파이로 몰려 스탈린 통치 시대에 소비에트 비밀경찰의 고문을 받다 죽은 곳이 바로 하바로프스크이다. 조명희가 죽은 지하 감옥을 떠올려보며 시인은 우울해한다. 그래서 시의 후반부는 이렇게 전개된다. 조명희를 기념하다 팽개치고 싶은 절망 말고는 무엇 하나 남은 것 없이 변방까지 밀려와 철 지난 겨울이 온몸을 고문하는 바람 속에 서서 언제부터 내 생각의 結氷 이렇게 두터웠는지 다시 닿을 종착도 예 아니라는 듯이 저렇게 지구 끝쯤으로 떠나는 기차에게 물어보는 일도 이곳에서는 이미 부질없다. 세찬 바람이 온몸을 고문하듯이(!) 불어대고 있다. 바람 속에 북방의 풍경도 얼어붙어 버렸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조명희에 대한 생각으로 얼어붙어 있다. 이주를 했건 도망을 갔건 그곳은 이국 땅, 이민족의 땅이기에 받아온 설움이 오죽했으랴. 민족의 슬픔과 시인 자신의 외로움이라는 두 색깔의 물감을 풀어 쓴 이 시에는 우리 민족이 이국에서 당한 고초가 은은히 배어 있다. 그 연해주에서도 살지 못하고 화물 열차로 오래오래 실려와 카자흐 지방에 뿌리를 내리고 산 우리 조상의 슬픈 역사가 있다. 김씨임을 잊지 않는다는 그는 고뇌 끝에 음울한 모스크바 하늘 아래로 돌아갔다. 아름다운 러시아어를 등지고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 나라는 그에게 인자스럽지 못했다. 연해주에서 화물 열차에 실려와 뿌리내린 카자흐 구릉 마을의 아들, 다시 유랑민이 되어 캄차카와 시베리아, 그리고 변방 사할린에다 소년기를 묻어놓았다는 사내의 키는 작다. 이때의 눈물이 오늘에 이르러선 ‘초원, 내 푸른 영혼’이라고 노래하게끔 되었나보다. 그의 내면으로 우러나는 이미지를 통해서 나 또한 초원, 내 푸른 영혼이라고 화답한다. ―「초원, 내 푸른 영혼」 앞 연 신중신이 쓴 이 시의 제목은 재러시아 동포 작가 김아나톨리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하다. 스탈린은 연해주에 사는 조선족(그들은 고려인이라고 불렸다)을 러시아 민족에게 해를 끼칠 화근으로 간주하고는 대대적인 이주 작업을 전개하였다. 아무 영문도 모른 채 화물 열차로 실려와 내린 곳이 시베리아의 한 귀퉁이, 카자흐 구릉지대였다. 그 황무지를 악착같이 일구어 농작물을 수확한 조선족의 후예가 바로 한민족 러시아 작가 김아나톨리이다. 이 시에는 한 사람의 성장기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제의 탄압을 견디지 못해 연해주로 갔다가 거기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카자흐, 캄차카 반도, 시베리아, 사할린 등지로 떠돌 수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의 처절한 수난사가 담겨 있다. 시인이 김아나톨리의 자서전을 읽고 이 시를 썼다면 여행 체험의 시화(詩化)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집 『카프카의 집』에는 러시아와 동구권 일대를 여행했음을 알게 하는 시가 여러 편 있다. 예컨대 “동방정교회 구원의 표지가/ 목 없는 형체로 어렴풋이 드러나는/ 전람회장의 그림”(「전람회장의 그림」), “간절함을 퍼올리는 한낮 거리에/ 선연한 빛깔로 나선 우즈베크 처녀, 젖은 눈동자.”(「우즈베크 옛 마을」), “古都의 빛은 책갈피에서 창연할 테지만/ 그것은 멀리 돌아앉아/ 안개만 자욱한 크라코프 역,”(「잿빛 안개」) 등이 그렇다. 문학적으로 거의 미지의 세계였던 연해주가 우리 시의 공간으로 들어온 것은 뜻 깊은 일이고, 그런 점에서 또 하나의 미지의 세계인 사할린이 우리 시에서 다루어지기를 소망해본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쿠릴 열도와 함께 사할린 섬의 남반부를 얻었다. 1956년 일본이 소련과 국교를 회복하면서 사할린에 있는 일본인은 다 귀국했지만 한인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으로 귀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1930~40년대 초반에 일본은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조선인을 무더기로 사할린에 징용으로 끌고 갔는데, 전쟁이 끝났을 때 그 수가 6만 명이었다. 후손들 4만 3000명이 아직 그곳에 살고 있고, 최근에 들어서야 영구 귀국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미 1세대는 거의 다 죽었고, 2~3세대는 삶의 뿌리를 그곳에 내려 귀국이 어려운 상태이다.) 고구려의 유민이었던 대조영이 세운 발해는 남아 있는 기록이 부실하여 한민족이 세운 국가다 아니라고 하는 중국과 우리 쪽 의견이 팽팽히 맞서 있다. 문자로 적힌 기록은 별반 남아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 계속 출토되고 있는 유물과 통치 지역의 유적으로 미루어보건대 한민족이 세운 국가라고 여겨진다. ‘여겨진다’가 아니라 확신을 갖고 발해 지역에 가서 자료 조사를 하고, 수많은 관련 사적을 뒤적이며 시를 써온 시인이 있다. 상희구의 시집 『발해기행』과 『요하의 달―발해기행ㆍ2』는 역사의 흔적을 문학적으로 복원하려는 원대한 꿈을 펼친 시집이다. 그쪽에서 출토되었다는 깨어진 발해 銅鏡을 닦다가 이가 빠진 때묻은 발[簾]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아카시아 향기에 취하여 펀듯 낮잠에 든 지도 꽤 오래다. 느닷없이 朱雀大路에 들었다. 글자 그대로 가로변의 집들은 호화스러웠고 지붕들은 붉었다. 山勢는 민화투의 그림처럼 끝의 선들이 매끄럽지 못하였으나 신비로웠다. ―「발해기행ㆍ1」 첫 부분 발해에 대한 시인의 무한한 동경은 한낮의 꿈속에 발해의 주작대로가 펼쳐지게 한다. 발해 영토에서 출토된 구리거울을 보다가 잠에 들어 그 시대의 거리를 거닐어본 시인은 아예 발해 현지답사에 나선다. 첫 번째 시집에는 「발해기행」이 10편 실려 있지만 두 번째 시집에는 무려 56편이 실려 있다. 발해의 유적지를 답사하고 연구를 한 결과물이 한 권의 시집이 된 것이다. 시인은 요하의 강둑을 거닐며 시상을 떠올린다. 동짓날 열사흐렛날 자정, 같은 날 같은 時에 나는 꽁꽁 얼어붙은 요하의 강둑에서, 아내는 잠실본동 310번지 우리 집 베란다에서, 달 표면 중 「고요의 바다」 쪽을 동시에 바라보기로 약조했다. ―「발해기행 20」 앞부분 발해 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동묘(東廟)를 관람하고, 돈화(敦化) 육정산에 있는 정혜공주의 무덤을 돌아보고, 월희(越喜, 발해에 있던 도시 이름) 번화가를 거닐어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발해의 설화를 수집하고, 문자를 연구하고, 당시의 영토를 상상하여 지도를 그린다. 시인의 발해 기행은 잊혀진 고대사의 현대적 복원 및 시적 상상이라는 점에서 우리 문학사에 있어 새로운 이정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역사의 흔적이 묻어 있는 시는 또 다른 시를 본다. 무덤 속에서도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무덤 속에서도 바라보고 싶은 별들이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은 잠이 들고 바다는 조용히 땅에 눕는다 그 얼마나 어둠이 깊어갔기에 아침도 없이 또 밤은 오는가 무덤 속에서도 열어보고 싶은 창문이 있다 무덤 속에서도 불러보고 싶은 노래가 있다 ―정호승, 「詩人 尹東柱之墓」 전문 사람이 묻혀 있는 곳이라고 꽃밭 아니랴 그 무덤에 더더욱 시인이 산다면 꽃밭보다 더 황홀한 새벽江 아니랴 청천대낮에도 별들은 내려와 서럽도록 따뜻한 꽃밭을 이루나니 잎새에 이는 바람도 여기서만큼은 벌 나비 되었으라 아아, 천지가 북망산천이래도 그곳에 시인이 산다면 시퍼런 빛살로 드러눕는 새벽江도 이리 황홀한 것을 ―허형만, 「윤동주의 무덤」 전문 윤동주의 묘는 북간도 용정의 교회 묘지 터에 자리잡고 있다. 정호승이 그곳에 가보고 와서 이 시를 썼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무덤의 소재지가 중국 땅임이 분명하므로 외국 여행의 산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해방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일본의 복강형무소에서 운명한 윤동주의 묘를 소재로 했다는 것 자체가 역사의 흔적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또한 나라 바깥으로 나가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시로 써 현장감을 전하는 시적 경향을 대변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허형만 시인은 윤동주의 무덤 앞에서 애도의 뜻을 표하는 한편 부러움도 느낀다. 시인의 생애는 짧고 불행했음에 틀림없지만 그 무덤은 시퍼런 빛살로 드러눕는 “황홀한 새벽江”이다. 그 강이 황홀한 이유는 시인의 생애가 너무나 청청했기 때문이며, 그의 시가 위대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고작 27년을 살다 일제의 인체 실험에 희생양이 되어 죽고 말았지만 그의 시는 위대하기 때문에 영원하리라고 허형만은 윤동주의 무덤 앞에서 생각해본 것이다. 백두산을 한참 돌아서 갈 수밖에 없는 것도 국토의 허리가 동강난 우리 역사의 슬픈 질곡 때문이다. 다음날엔 장춘(長春)으로 두 시간 반의 비행. 양자강 하구가 바다나 다름없데. 가도가도 끝없는 대해(大海) 아니면 대평원이로구나. 길림성(吉林省)에 들어서자 마치 낯익은 고향에 돌아온 듯, 산들이 여기저기 엎디어 있고, 구석구석 가꾸어진 기름진 농토…… 하기야 저 고구려 옛적부터 우리의 조상들이 살았던 곳 아니던가. 녹음 우거진 장춘에서 만난 총각 가이드는 그곳 길림대학생, 석별의 정을 한국 유행가로 멋지게 달래더라. ―박희진, 「백두산 가는 길」 부분 나도 돌아서 갔다 돌아서 가는 길이 생생하고 가쁘다 長春에서 밤도와 延吉로 가는 열차도 숨이 차 열이 나는지 어둠을 한 켜씩 벗고 달린다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는 산과 들 조붓조붓 웅크린 마을이며 낯익은 옥수수밭 호박밭이 환하다 하! 이곳에도 혈육이…… 아무튼 살아줘서 고맙다 ―임영조, 「백두산 가는 길」 부분 두 시인이 쓴 시는 제목도 같지만 느낌도 비슷하다. 아마 다른 시인이 썼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한 사람이 백두산 구경을 하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타고 장춘까지 가야 하고, 장춘에서 열차를 타고 밤을 넘겨 연길로 달려가야 하고, 연길에서는 또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한다. 두 시인은 백두산 가는 길에 한인을 만나 몹시 반가워한다. 총각 가이드와 옥수수와 호박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조선족을 만나 반가워하지만 여기에도 일제의 모진 압제를 피해 만주로 연해주로 사할린으로 남부여대하여 떠났던 우리 민족의 수난사가 얼비친다. 박희진은 2001년에 『박희진 세계기행시집』을 펴내 랭보처럼 자유인으로 살아온 생의 이력을 총정리한 바 있다.  
1070    소설가로만 알았던 포석 조명희, 시인으로 만나다... 댓글:  조회:5323  추천:0  2016-02-06
진천 민족문학작가 포석 조명희 시인 조벽암 태어난곳 이 표지석은 진천읍 수암부락에 세워진 것으로 포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1994년 8월10일에 세웠다. 포석 조명희 선생은 진천 벽암리 수암부락에서 태어났다. 한국 최초의 창작시집 봄 잔디밧 위에를 시작으로 민족민중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 단편소설 낙동강을 발표하였다.     ============================================= 시인·극작가·소설가. 호는 포석(抱石). 충청북도 진천(鎭川) 출생. 처음에는 낭만적인 시를 썼으나, 뒷날 연극운동가, 소설가로서 활약하였다. 1920년 도쿄[東京]에서 극예술협회 창립동인으로 참가, 이듬해 동우회(同友會)의 일원으로 전국순회 공연 때 《김영일(金英一)의 사(死)》을 써서 선풍적 인기를 얻었고, 23년 간접적인 현실비판 역사극 《파사(婆娑)》를 발표하였다. 후기에 쓴 단편소설로는 《땅속으로》 《R군에게》 《농촌사람들》 《아들의 마음》 등이 대표적이다. 20년대 중반 신경향파 작가로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의 결성과 함께 두각을 나타내 단편집 《낙동강》을 남겼고, 이때부터 급진적인 경향의 작품을 썼다. 28년 시베리아로 망명한 뒤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낭만적 경향의 시, 궁핍한 식민지시대의 현실고발과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인습타파·자유평등을 그린 희곡, 사회주의 사상이 나타난 소설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20년대 최초의 문제성을 띤 작가로 평가된다. ========================================== 포석선생 /김소운 (김명기 동양일보 기자) 내 숙소에 抱石이 찾아 온 것은 그 때가 단 한 번이다. 집을 어떻게 찾아왔는지, 누구에게 물었는지, 날만 새면 ‘帝通’으로 전화라도 하면 되련만, 抱石은 ‘모레’라고 한 그 날자를 지키려고 아닌 밤중에 눈보라를 뿌리는 10리길을 그나마 모르는 집을 물어 가면서 찾아온 것이다. 抱石은 자신에게 이렇게 엄한 분이었다. 安國洞(안국동)에 있는 圖書出版(도서출판)과 책가게를 겸한 平文館(평문관)이란 자그마한 서점이 있었다. 해방 후 慶北知事(경북지사)를 한 金喆壽(김철수)씨가 그때 그 平文館 주인이었다. 抱石의 단 한 券(권) 남긴 ‘봄 잔디밭 위에’란 詩集(시집)이 平文館에서 나왔을 때 나는 抱石의 심부름으로 거기서 原稿料(원고료) 80원을 받아온 일이 있다. 印稅(인세)도 아니요, 온통 떠넘기는 詩集 한 券의 稿料가 80원-원고료라는 것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내게도 그 80원은 군색하고 녹록한 액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抱石은 그래도 早稻田大(조도전대·와세다대학)를 다닌 東京留學生(동경유학생)인데 부인은 新敎育(신교육)을 모르는 구식 여자였다. 쌀이 없어지면 종이와 ‘펜’을 갖고와 아무 말 없이 남편 앞에 두고 나간다는 부인(소개자인 吳澤(오택)씨에게서 들은 이야기)- 그 부인에게는 남편의 붓끝으로 생겨진 그 80원이 몇 해 만에 쥐어보는 큰 돈이기도 했다. 空超 서재에서, 抱石댁에서 얼굴을 대한 이는 많으나, 그중에도 가장 인상에 남는 이가 樹州(수주) 卞榮魯(변영로)씨다. 空超나 抱石같은 이와 달라 입이 험한 데다 술이 고래였다. 하루는 樹州가 酒量(주량) 자랑을 하면서 큰 바가지 하나를 단숨에 마실 수 있다고 장담하자 좌중이 “그럼 해보자”고 그 자리에서 술을 사다가 서너 되 드는 바가지에 하나 가득 채웠다. 樹州는 豪言(호언)한 그대로 그 바가지 술을 입도 떼지 않고 단숨에 들이켰는데 뒤에 들으니 사흘인가를 꼼짝 못하고 抱石댁에서 누워지냈다는 얘기다. 釜山(부산)으로 온 지 얼마 안되어 金水山(김수산)·尹心德(윤심덕)의 情事(정사)사건이 생겼다. 連絡船(연락선)에서 몸을 던진 이 두 사람-더구나 尹心德은 ‘死(사)의 讚美(찬미)’란 노래로 해서 이름이 높던 女流聲樂家(여류성악가)다. 水山과 막역이던 抱石이 아쉬운 마음에 투신한 날의 상황이나 알아보려고 釜山까지 내려와서 나와 재회를 했다. 현해탄 물결이 삼켜간 두 사람을 어디서 찾으랴-. 抱石은 며칠밤을 신문 支局(지국) 2층에서 나와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 한숨을 지었다. 그해 정월 초하루, 時代日報(시대일보) 文藝欄(문예란)에 抱石은 全面(전면) 4, 5단의 긴 詩評(시평)을 쓰면서 맨끝에 역시 時代日報에 실렸던 내 抒情詩(서정시) 하나를 들어서 ‘베를렌’이 부럽지 않다고 극구 찬양해 주었다. 그런 詩篇(시편)들을 모아 ‘出帆(출범)’이란 첫 詩集(시집) 하나를 釜山에서 내었을 때 抱石은 거기다 50∼60행의 긴 序詩(서시)를 붙여주었다. “바다와 푸른 하늘, 흙과 햇빛-” 이런 서두로 시작된 그 詩의 중간 중간에는 “사랑을 나누고 싶구나! 목숨을 같이 누리고 싶구나!”, “굴레벗은 말같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 自由(자유)를 만나기 위해서 그 사랑을 다시 찾기 위해서-” 그런 詩句(시구)들이 있었다. 抱石의 냉엄하게 보이는 표정과는 딴판으로, 인간에 대한 끓어오르는 사랑, 복받치는 자유에의 갈망이 내게 주는 序詩를 빙자해서 거기 약동하고 噴出(분출)한 느낌이었다. 釜山에서 작별한 지 얼마 안되어 抱石이 종적을 감추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처자를 버리고-자유없는 故土(고토)를 버리고. 抱石이 간 곳을 나는 모른다. 땅끝인지-저 하늘 구름 속인지-. 그후 5, 6년이 지나 버스 차장 노릇을 한다는 抱石의 딸과 가난에 찌든 그의 부인을 서울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런 지도 벌써 45~46년-重男(중남)이란 사내 이름같은 그 딸이 어디서 살고 있다더라도 벌써 60대의 할머니다. 抱石이 序詩를 붙여준 ‘出帆’ 속표지에 그림을 그려 준 이는 당시 女流畵家(여류화가)로 令名(영명)이 자자하던 羅憲錫(나헌석)여사였다. 상처 입은 비둘기 한 마리와 ‘퓨리턴’ 詩人-美談(미담)일 수 있고 佳話(가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世人(세인)들은 그렇게만은 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더우기 抱石 趙明熙(詩集 ‘봄 잔디밭 위에’의 著者) 같은 이는 性情(성정)이 강직한 분이라 空超선생을 위선자라고 해서 두터웠던 친분인데도 그 후 일체 상종치를 않았다. 과연 어느 쪽일까? 樹州 卞榮魯씨는 空超 抱石 사이를 구애없이 왕래하던 분이다. 그 분은 이들 중 어느 쪽으로 치부했을까-. - 김소운, ‘포석 조명희’, 1981년 1월 30일 중앙일보 =================================           조명희의 생애   진천읍 벽암리 숫말에는 작가 포석 조명희와 시인 조벽암       (본명은 중흡) 두 분의 문인이 태어난 생가터가 있다. 숙질간인 이들은 우리 근대문학, 현대문학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훌륭한 작가다. 김흥식 교수의 ‘조명희 연구’ 논문에서는 포석 집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실상 조명희의 집안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은 조선 후기 권문세가의 하나로, 그의 부친 조병행만 하더라도 인동 부사를 지냈다. 그는 원래 산수를 좋아하여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지내다가 1854년 전격 발탁되어 여러 군데 고을살이를 하면서 청백리로 상하간에 칭송이 대단했다’고 한다. 포석의 큰아버지와 셋째아버지 두 분이 이조판서, 둘째아버지는 진주 목사이고 할아버지는 청주 목사였으니 대단한 집안이었다. 그런 집안이 진천으로 이전한 데 대해 김 교수는 그의 부친이 ‘조정에서 입조를 명하나 오히려 벼슬을 내놓고 당시 한양 장흥방을 떠나 충북 진천으로 내려가서 내내 안빈낙도로 자식들을 훈도하다 종신했다. 이 진천 이주는 병인양요로 말미암은 피난 소개였다’고 한다. 당시는 내우 외환의 난세여서 영달보다는 시골에서 난을 피하고자 한 뜻으로 본다. 더구나 진천은 살기 좋다는 ‘생거 진천’이 아닌가. 포석이 태어난 1894년인 갑오년은 갑오동학혁명이 농민전쟁을 벌이며 전국을 휩쓸고, 외세의 물결이 밀려오고 혁신의 기치를 올린 갑오개혁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 조병행과 어머니 연일 정씨 사이의 네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부친이 칠순에 낳았다 하여 ‘칠석’이란 아명을 얻고 총명하여 ‘신동’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다섯 살에 부친이 별세하고, 둘째형과 함께 살면서 진천 신명학원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마쳤는데 작가의 회고에 한일합방이 되던 때의 분위기가 나온다. 국가를 빼앗긴 비통함을 선생님이 웅변조로 연설한 것을 집에 와서 흉내를 내어 어머니와 누나를 울렸다고 한다. 서울에서 중앙고보를 다녔는데 영웅 숭배열에 들떠, 독립의 길을 찾아 북경사관학교에 가려고 가출하였으나 평양에서 뒤쫓아온 둘째형에게 붙들려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 그는 탈출하려던 뜻이 꺾인 울분을 소설 읽는 것으로 달랬다. 신소설류와 삼국지, 옥루몽 등 닥치는 대로 읽었는데, ‘레미제라블’에 큰 감명을 받고 소설을 써 보기로 작정하고 습작을 하기도 했다. 일본 소설, 문예잡지를 구독하기도 하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3·1운동 때는 만세운동을 하여 구속되어 몇 달 옥고를 치르고, 군내 순회 연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북경행 실패 후에 동경행을 결행했는데 이때는 극심한 가난으로 고통을 받고 있어 남진우란 친구 덕분에 유학의 길에 오른다. 타골에 심취하여 동경의 동양대학 동양철학과에 입학했다. 우리 나라 최초의 학생극 서클인 동경의 ‘극예술협회’에 참여하여 연극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우진을 만나 1921년에는 포석의 첫 희곡 작품 ‘김영일의 사’가 그의 권유로 급히 씌여진다. 유학생들로 구성된 고국 순회공연단인 ‘동우회’에서 올릴 작품이 필요했던 것이다. 7월 17일부터 40일 간 전국 공연에 들어갔는데 청주에서는 7월 29일 개연되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대단한 성황이었음을 보도하고 있는데 김영일이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대목에서는 그대로 초상집을 이룬 듯하였다고 한다. 졸업을 앞두고 가난에 못 이겨 귀국했다. 조선일보에 1년 정도 기자로 근무한 적이 있을 뿐 일생을 가장으로서 생활에 큰 역할을 못한 채 작품 활동에만 전념한 전문 작가였다. 1923년에는 문학사상 최초의 희곡집이 되는 ‘김영일의 사(死)’가 출판되었고 이 해에 ‘파사’라는 희곡을 발표하여 민족극의 경지를 펼쳐 보였다. 1924년에는 ‘경이’, ‘영원의 애소’, ‘무제’, ‘고독자’ 등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의 위치를 확보했는데 이 해에 ‘봄 잔디밭 위에’란 우리 문학사상 첫 창작 시집을 발간했다. 1925년 ‘카프’ 결성 때에 창립 멤버로 참가했다. 이 해에 단편소설 ‘땅 속으로’를 발표하며 소설가로서 본격적인 민족 민중문학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인 ‘낙동강’을 1927년 발표하여 평단의 활발한 논란을 불러 일으킬 만큼 인기가 있었다. 프로문학의 새 지평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한창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던 1928년 8월 소련으로 망명하였다. ‘망명작가’란 의식을 가지고 빼앗긴 조국을 떠난 최초의 망명작가였다. 당시는 ‘카프’에 대한 탄압이 점차 강화되기 시작하는 시점이고, 작가의 새로움으로 향한 탈출 시도의 실현이었다. 소련에 도착해서 발표한 첫 작품인 항일 레지스땅스 산문시 ‘짓밟힌 고려’는 국내에서는 감히 쓸 엄두를 내지 못할 훌륭한 저항작품인 것이다. 저급한 문화 수준의 한인사회에서 그의 고답한 작품 활동이 꽃 피우기에는 무리였을 것이고, 하여 문학의 기초 교육에 더 열성이었고 여러 제자를 키우는 장기적인 포석을 마련하였는데 이 예상이 적중하여 그의 제자들이 인물이 되어 문학을 하기도 하고 소련에서나 해방 조국에서 큰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망명 10년 동안의 성과물이지만 실종된 원고인 ‘만주 빨찌산’ ‘붉은 깃발 아래서’ 두 장편소설이 아직도 발견되지 못한 안타까움이 절실함은 이 작품이 곧 우리 저항문학의 독보적 존재일 수 있으리라는 확신 때문이다. 망명 10년만에 스탈린이 소수 민족 말살책인 ‘37년 사건’을 조작하여 지식인들을 처형하는 과정에서 포석은 우선적으로 체포되고, 1938년 5월 11일 하바로프스크에서 일본 간첩이란 누명으로 처형되었다. 56년에 무혐의로 복권되긴 했으나. ‘소련작가연맹’ 맹원으로 ‘작가의 집’에서 유명한 작가 파제예프와 함께 살며 그의 추천을 받아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하며 활발한 작가 활동을 할 44년의 생애 끝막음은 아쉬움만 안겨준다. 포석 조명희의 생애는 한마디로 파란만장이요, 그야말로 비장미 깃든 한 편의 서사시요, 드라마틱한 우리 근대사의 한 단면이었다고 보겠다.   탈출 의지의 문학   희곡과 시, 소설, 수필에 걸쳐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작가의 다양성은 일종의 탈출 의지의 몸부림이 아닌가 한다. 처음에 민족주의 연극으로 ‘김영일의 사’, ‘파사’로 민중의지를 표현하다가 여기서 탈출하여 현실 비판 의식의 시로 전환한다.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번에는 소설로 탈출하여 마음 놓고 자신의 의식세계를 펼치는 일련의 과정이 끊임없는 탈출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그의 생애 자체도 부단한 탈출의 시도였듯이. 시골 소학교에 다니다가 서울로 탈출하여 중앙고보라는 새로운 세계로 진출한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안주하지 않고, 재학중에 북경사관학교로 가겠다고 탈출을 시도한다. 무력으로 독립 의지를 불태우겠다는 투지에서였을 터인데 보통 학생이라면 감히 엄두가 나지 않을 일이다. 패망한 나라의 몰락한 양반 후예로서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동경행으로의 탈출을 결행한다. 무력보다는 타골 같은 인도 정신이 암담한 당시의 시대를 구출할 수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거기에서 고리끼류의 사실주의에 접근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혜안을 얻는다. 안정된 기자 생활도 팽개치는 생활의 탈출은 동료 기자의 비리를 참지 못하는 정의감에서였지만 무엇보다 구속되지 않으려는 자유분방함의 추구였을 것이다. 일생에서 가장 큰 탈출은 역시 소련 망명임은 말할 나위 없다. 새로운 희망의 나라인 사회주의 국가로 탈출하는 모험은 참담하던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낙동강’에서 박상운이 탈출했던 길, 그 길따라 로사가 탈출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나고 작가도 그 길을 따라 떠났다. 그러나 그 탈출은 돌아옴을 전제로 한 것이다. 소설 끝구절처럼. ‘그러나 필경에는 그도 멀지 않아서 잊지 못할 이 땅으로 돌아올 날이 있겠지.’ ‘춘선이’는 간도로 탈출하려던 뜻을 접어들이는 것으로 끝난다. 떠나는 것보다 여기서 남아 삶의 투쟁을 벌이자고 설득하는 응칠이와 딸을 팔아서라도 이 가난에서 탈출하고픈 춘선이의 절실함이 어우러져 있다. 빈곤층과 부유층을 대비한 ‘김영일의 사’에서 김영일의 죽음은 영원한 탈출을 보이면서 관객에게 호소력을 이끌어낸다. 권력자와 피지배 계급과의 갈등 구조에서 민중의 탈출이 기득권측을 무너뜨리는 ‘파사’도 작가의 탈출 취향을 표출한다.   망명지에서 떠돌던 외로운 혼이 이제는 많은 이들의 기림 속에 잊지 못할 이 땅으로 돌아오고 있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1994년 작가의 고향 진천에서 ‘포석 조명희 문학제’가 열리면서 해마다 연중 행사가 되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사는 작가의 자녀들이 참석하여 하바로프스크 묘지의 흙을 뿌리며 외롭던 넋의 환향을 빛내주었다. ‘태어난 곳’ 표지비가 서고, 문학비가 들어선 ‘포석공원’이 2003년에 조성되고, ‘포석의 길’ 이름이 불려지게 되었다. 타슈켄트에서는 이미 ‘조명희 기념실’ 문학관이 1988년 설립되고, 1992년에는 고려인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의 거리도 ‘조명희 거리’ 이름이 붙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기술대학교에는 ‘조명희 문학비’가 2005년 세워지고 제막식을 올렸다. ‘잃어버린 민족문학사를 찾아가는 작가 모임’에서 앞장선 행사였다. 중국 연변 연길시에서도 2002년부터 ‘1회 연변 포석 조명희 문학제’를 연 이후 해마다 열고 있다. 많은 논문들이 그의 작품을 분석하여 재조명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남한은 물론 북한과 중국의 조선족 교과서와 옛 소련에서도 읽히고 있다. 우리 모국어를 여러 나라에서 익히면서 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통일시대를 대비한 통일문학의 디딤돌이 되고 있다. 치열한 작가 정신을 발휘했던 포석 조명희의 문학은 이제 우리 문학사의 중요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인간 조명희 포석 조명희는 작가로서의 열정이 대단했다. 대표작인 ‘낙동강’을 쓰기 위하여 낙동강 구포벌에서 3개월 동안이나 작품의 현장에 머물었음은 리얼리즘 작가로서 얼마나 리얼리티에 충실했는가를 보여준 일화라고 보겠다. 경상도 사투리를 적절히 쓰고, 지방 민요 가락을 잘 살려 자칫 저항과 투쟁만을 부각하여 딱딱하기 쉬운 분위기를 문학적 향기로 감싸 훌륭한 작품을 이루고 있다. 러시아에 망명해서도 원동의 육성촌 시골 농민의 현장에서 그들의 삶을 체험하기 위해 얼마 동안 머물기도 했다. 수필가 김소운의 수필에 나오는 회고담에서 ‘포석을 처음 만난 그 날부터 그의 인간적인 매력은 나를 압도했다.’ ‘털끝만큼도 타협을 모르는 꼿꼿한 성품이었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준엄한 시인’이었음을 간조하고, 겪었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김소운이 선배 시인인 포석의 집을 방문하여 하룻밤 묵었는데 자신을 대접하기 위해 5원을 빌렸고, 모레 갚는다는 날 어김없이 그의 집에 찾아가 전달하였다는 이야기는 당연한 일이지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어 신선한 느낌을 준다. 눈이 무릎까지 쌓인 10리 길을 걸어서 약속한 날을 넘기지 않으려고 밤 10시나 되어서야 어찌 집을 알아내어 용케 찾아온 포석, 극심한 가난에서 그 돈은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지만 꼭 약속을 지키고 떠나가던 선배 시인의 ‘뒷모습을 눈물겨운 감동으로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여러 편의 포석 회고담을 쓴 민촌 이기영은 수산 김우진과 함께 가장 친했던 친구로서 애정어린 글을 남기고 있다. 포석이 망명하기 두 달 전에는 포석의 소설집 ‘낙동강’과 민촌의 소설집 ‘민촌’의 합동 출판기념회를 30여 문우들과 함께 열었음이 당시의 동아일보에 사진과 같이 나와 있다. 막상 망명하던 전날도 내일이면 떠난다는 귀띔을 주고 떠날 만큼 믿는 친구였고 같은 집에도 2, 3년을 함께 세 들었을 정도였다. 포석이 자기를 ‘조선지광’사에 취직시켜 주었는데 포석 자신은 일 년 정도 신문사에 근무하며 일생에서 가장 풍족한 생활을 누리다가 사표를 냈다면서 그 이유를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월급과 뚜르게네프의 장편 ‘그 전날 밤’을 번역한 번역료를 합치면 한 달에 100원의 거금 수입이 되는 괜찮은 직장인데 ‘웬만한 사람 같으면 그런 취직자리는 떼울까봐 겁이 나서 어떤 수모를 받든지 참고 월급에 매달려 살았겠는데 포석은 차라리 굶어 죽으면 죽었지 양심의 가책을 받아가며 비열하게 살 수는 없었다’고 한다. 일제에 아첨하고 동료간에는 교만하게 굴며 중상과 이간을 일삼는 그 자의 비행을 폭로 규탄하고 당장 신문사를 그만 두었다니 ‘정의감이 강했다’는 표현이 알맞겠다. 모처럼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김우진에게 빌린 200원으로 팥죽장사를 시작했는데 거덜나는데는 두세 달도 버티지 못했다고 한다. 장사가 팔고 이문을 남겨야 하는데, 사먹는 사람 입장에서 배고픈 이에게는 덤으로 더 퍼주고, 돈이 없는 이에게는 외상을 주니 장사가 잘 될 턱이 없을 것이다. 한번은 포석, 송영, 한설야, 이기영이 윷놀이로 내기를 하였는데 아무도 술값 낼 능력이 없으니까 포석이 자기 두루마기를 전당포에 잡히고 일금 30전을 빚내 한 잔에 5전짜리 막걸리를 나눈 적이 있었다고 한설야는 회고하기도 한다. 어쩌다 원고료를 타서 가져오는 날 거지에게 잔돈이 없어 1원이란 거금을 선뜻 내어주니 집에서는 굶기가 십상이고 책을 판 돈도 다리 밑 거지에게 나누어 주기를 즐겼으니 경제력이 있을 리 없겠다. 러시아의 최금순이 쓴 황동민 모스크바대학 교수의 회고에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우쑤리스크에서 포석은 길가의 신문팔이에게서 날마다 고려신문 ‘선봉’, 러시아신문, 중국신문들을 사서 보곤 했는데 하루는 늦어서 다 팔려 살 수가 없었다. 마침 중국신문에 연재하던 루신(노신)의 소설을 보던 중이라 여간 애석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문팔이가 이를 보고 어렵사리 사흘 후에 그 신문을 구해 주니 포석은 기뻐하며 고마움의 표시로 배급 식량인 흘레브(빵)를 그에게 덥석 주고 갔다고 한다. 물론 집에서는 가족들이 그것을 고대하고 있던 중이었다. 또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열차간에서 아이를 데리고 탄 부인을 만났는데 남편이 독립운동으로 고국의 감옥에서 신음한다는 말을 듣고는 자세히 소식을 물어보았다. 무엇으로 위로할까 하다가 자신의 팔목시계를 끌러 부인에게 주었다. 그 후로 포석은 시계 없이 일하러 다녔다. 그때는 시계가 귀하고 시장에서는 값이 세어서 구하기 어려웠다. 그는 마지막 생명이 다할 때까지 시계 없이 살았다. 황동민이 1937년에 계몽 강연을 마치고 우쑤리스크 역에서 모스크바로 떠날 때에 포석이 배웅하면서 “나도 머지 않아 모스크바로 가겠소. 여기 하바로프스크에서 나의 선집이 이 가을에 출판되면 로어로 번역하겠소. 그러니 모스크바에서 만날 때까지 … “ 하면서 기차에서 내렸고 ‘이것이 나의 마지막 이별이었다.’고 황동민이 회상하였다고 최금순은 전한다. 그때 곧바로 모스크바로 갔더라면 그 악명 높은 ‘37년 사건’에 휘말리지 않고 살아 남아 높은 수준의 문학과 만나는 행운을 얻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험악한 시대에 태어나 탄압을 받으며 살다가 억울한 죽음을 맞았으나 한평생을 뜨거운 인간애로 모범적인 삶을 살았으니 작가 이전에 인간으로서도 우리의 본보기가 아니었던가 한다. .   .    
1069    詩의 벼랑길위에서 만나는 시인들 - 이용악 댓글:  조회:5067  추천:0  2016-02-06
    이용악 시인, 김지하 시인   그리움   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에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  취흥(醉興)이 가슴을 타고 손끝으로 흘렀다. 통음(痛飮)하는 와중에 시인은 까만 매직을 뽑아들었다. 그러고는 선배가 취기 오르면 늘 읊어달라 하던 시(詩), 그래서 읊어주면 눈물 줄줄 흘리던 시, 그 시를 휘갈겼다.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우에/ …/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 월북 시인 이용악의 '그리움'이었다. 20여년 전 시인 김지하는 이렇게 서울 인사동의 주점 '평화만들기' 벽에 낙서를 남겼다. 빈속에 깡소주 몇 병 들이켜고 한달음에 외워 토해낸 시다. 1990년대 평화만들기는 당대 문사(文士)와 좌우를 넘어선 언론인들이 주로 찾던 문화 살롱 같은 곳이었다. 김지하의 낙서는 "이름은 평화만들기였지만 좀처럼 평화는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모 단골 문인의 증언대로 밤마다 날 선 논쟁이 오가던 그곳을 늘 지켰다. 이 낙서시가 돌고 돌아 경매에 나왔다. 고미술 전문 경매 회사 옥션단이 26일 서울 인사동 전시장에서 여는 제17회 메이저 경매에서다. 평화만들기는 인사동 내에서 두 번 더 자리를 옮겼다가 얼마 전 문을 닫았고, 그 사이 주인도 바뀌었지만 낙서는 살아남았다. 첫 번째 주인이 가게를 옮기며 김지하의 낙서가 쓰인 벽을 아예 떼 가지고 갔다. 주인이 바뀐 다음 또 한 차례 이사를 갔지만 새 주인도 낙서를 걸어놨다가 이번에 경매에 내놨다. 마침 경매를 맡게 된 옥션단 김영복 대표는 시인과 오랜 친분을 쌓아온 사이였다. 김 대표는 강원도 원주에 사는 시인을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고 발문(跋文)을 받았다.   .par:after{display:block; clear:both; content:"";} 시인은 기억하지 못한다 하나 시인이 휘갈긴 낙서는 세월을 견뎠다. 김지하가 20여년 전 서울 인사동 주점 평화만들기에서 술 취해 벽지에 휘갈겨 쓴 이용악의 시 ‘그리움’(가로 119cm, 세로 103cm). 이용악 시의 원문과는 약간 다르다. 김지하는 “내 글씨가 아니라 이용악의 글을 봐달라”고 했다. /김미리 기자 '언제였던가/ 술 취했던가/ 용악의 詩行(시행)을 벽에 갈겨쓰고 지금 기억도 못 한다/ …/ 이 詩(시)가 어떻게 이렇게 나타나는가?/ 중요한 사건이다/ …/ 허허허/ 한 번 더 웃자/ 허허허허허/ 왜?/ 난 요즘 술을 못하니 웃음밖에 허!' 놀라움과 반가움과 그리움이 해학 속에 뭉그러진 시 한 편이었다. 알코올 빠진 시인의 필체는 20년 전 매직으로 거침없이 써내려갔던 낙서와는 달리 차분하다. 지난주 시인의 원주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내가 쓴 시도 아니고, 술 취해 쓴 건데 경매 부친다니 웃기는구먼. 아니, 뭐 종로에 김지하가 오줌 누는 거 누가 찍으면 그것도 팔겠네그려. 허허. 분명히 해둡시다. 이 시는 이용악 거요." 이 사건의 주인공은 이용악이란 점을 수화기 건너편 시인은 몇 차례 말했다. 껄껄 웃던 김지하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낙서를) 파는 건 파는 거고, 이 일을 계기로 두 가지가 확실히 알려졌으면 좋겠소. 하나는 이용악이라는 훌륭한 시인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민족 통일을 생각해야 할 때라는 것이오." '그리움'은 광복이 되자 함경도 무산 처가에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상경한 이용악이 1945년 겨울 어느 눈 내리는 밤 가족을 그리워하며 쓴 시다. "이용악은 진짜 위대한 시인이오. 예세닌, 미당과 맞먹소. 우리 민족의 서러움을 이토록 우아하게 담다니. 그런데 반세기가 흘렀는데 우리 민족은 여전히 갈라져 있소. 이제 이런 슬픔 털어낼 때 아니겠소?" ☞이용악(1914~1971) 함북 경성 출생. 일본 조치(上智)대 신문학과를 졸업했고, ‘인문평론’ 기자로 근무했다. 일제 치하 민중의 고뇌를 서정적으로 그린 시를 썼다.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회원으로 활약하다가 군정 당국에 의해 수감됐고, 6·25 때 월북했다. 대표작 ‘북국의 가을’ ‘오랑캐꽃’ 등. -----------------------------------------   그리움 (이용악)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제재 : 작은 마을의 가족 ▶주제 : 그리움 @@ 구성 1.가족이 있는 북쪽을 그림 2.그리운 작은 마을의 가족들 3.밤잠을 못 자고 가족을 그리는 마음 4.가족이 있는 북쪽을 그림 @@ 감상과 이해 1945년 겨울에 창작되고 네 번째 시집 {이용악집}에 수록된 이 시는 이용악의 시에서는 보기 드문 연가풍의 작품이다. 1939년 이용악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최재서가 주관하던 {인문평론}의 편집 기자로 근무하다가 1942년 고향 경성(鏡城)에 돌아가 있던 중, 1945년 해방되자마자 귀경(歸京)하여 그 이듬해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게 된다. 이 시는, 해방 직후 혼자 상경하여 서울에서 외롭게 생활하던 그가 무산(茂山)의 처가에 두고 온 그의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5연으로 이루어진 자유시이지만, 의미상으로는 기·승·전·결의 전형적 형식에 수미 상관의 구조를 곁들인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연[기]에서 시인은 '북쪽 작은 마을'에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하고 자신에게 묻고 있으며, 2∼3연[승]에서는 어느덧 시인이 상상의 날개를 펴고 북쪽의 가족을 찾아가는 모습이 제시되어 있다. 그 곳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 백무선 철길'을 이용해 '느릿느릿 밤새어 달려'야 다다르는 깊은 산골이다. 지금쯤이면 그 곳으로 향하는 화물열차의 검은 지붕에도 눈이 내릴 것이며, 가족들이 사는 작은 마을에도 눈이 내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4연[전]에서 화자는 그들이 못견디게 그리워진다. 그러므로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이라는 시행의 '차마'라는 시어 속에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이 응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 어쩌자고 잠을 깨어'라는 구절은 바로 시인이 머물고 있는 서울도 잉크병마저 얼게 할 정도로 추운데, 그 곳 무산의 가족들은 얼마나 추울까, 하는 화자의 가족들에 대한 염려가 잘 드러나 있다. 5연[결]에는 '북쪽 마을'에 함박눈이 쏟아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1연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묻는 단순한 질문이라면, 5연은 동일한 시행이면서도 시인의 그리움 내지 가족에 대한 사랑이 마침내 눈으로 화하여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잉크도 얼어붙게 할 정도의 추위를 몰아오는 '함박눈'임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그것을 '복된 눈'으로 생각하는 인식의 태도이다. 해방이 되자마자 그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가족들을 처가에 남겨 두고 상경하였던 그로서는 '눈'을 새 시대를 위한 하늘의 축복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이 시는 '북쪽'에 두고 온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함박눈'과 추위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으며, 잉크마저 얼어붙게 하는 모진 추위는 역설적으로 시인의 따뜻한 가족애를 보여 주는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 ㅡ1930년대 일제 식민치하의 비극적인 민중의 삶과 이로 인해 일어난 대규모 유이민 문제를 비극적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깊이 있게 통찰하고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이를 빼어나게 형상화한 ‘북방의 시인’ 이용악(李庸岳,1914~1971)의 전집이 발간되었다. 대표적인 중견 이용악 연구자들인 곽효환,이경수,이현승 3인이 2014년 이용악 탄생 100주년을 맞아 2년여의 작업 끝에 완성한『이용악 전집』(곽효환 이경수 이현승 편,소명출판,2015)은 북에서 발표한 이용악의 시 전편과 북에서 발간한 유일한 산문집『보람찬 청춘』을 비롯한 몇 편의 발굴 산문과 좌담 자료까지 총망라하고 있다.『이용악 전집』은 백석과 함께 1930년대 중후반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이용악의 작품세계 전모를 사실상 처음으로 정본화로 집대성한 것이다.  ‘북방의 시인’ 이용악  1930년대 후반의 대표 시인으로 우리는 백석과 이용악을 주목할 수 있다. 백석이 자기 고향인 평북지방에 토착한 삶과 언어들로 독창적인 시세계를 이루었다면, 이용악은 일제에 의해 절멸한 현실주의와 서정성을 한데 아우른 시적 성취로서 돌올하다. 특별히 1930년대가 우리 근대시의 몸이 완성된 시기라는 문학사적 관점에서 이러한 성취는 더욱 값지다. 요컨대 그 몸은 정신적인 자유의 추구와 모국어의 미학적 충동이 지양된 몸으로서 우뚝하다. 따지고 보면 이용악과 같은 시인이 있어 시가 사회 역사적인 현실과 개인적인 내면을 마주세울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용악의 시는 1930년대 후반에서 해방기에 이르는 시기의 시적 성취가 문학사적 지형 위에서 중요하고, 분단 시대에는 서로 다른 정치 체제 위에서 자신의 시를 우뚝 세워 놓은 것으로서 더욱 주목을 요한다. ​이용악(李庸岳, 1914~1971) 시인  이처럼 이용악이 1930년대 중후반 한국시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시인이면서도 월북 후 북한 시단에서도 주류로 활동한 보기 드문 시인인 점을 고려해 볼 때, 한국전쟁 이후 북을 택한 이용악의 작품과 행적까지 망라한 이 전집은 이용악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백석에 비해 후속 연구가 활발하지 못했던 이용악 연구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이용악의 작품은 한국전쟁 이전에 발간한 시집『분수령』(1937),『낡은 집』(1938),『오랑캐꽃』(1947),『이용악집』(1949) 등과 해방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 정도만 책으로 묶여졌으며, 그마저도 절판된 상태이다. 이용악의 문학적 위상에 비해 공백으로 있던 이용악 전집의 부재와 정본의 부재를 해결한『이용악 전집』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이용악의 시 전체의 원문을 시집 발간 순서대로 싣고, 시집 미수록시를 월북 이전과 월북 이후로 나누어 발표 순서대로 실었다.  2부는 동일한 시를 동일한 순서대로 현대어 정본의 형태로 실었다. 3부는 확보 가능한 이용악의 산문과 좌담회 자료 등을 원문대로 발표순으로 싣되, 산문과 기타 자료(좌담 및 설문 등)를 구분하였다. 아울러 부록 편에 정밀한 이용악 생애 연보, 작품 연보, 이용악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관련 화보, 참고문헌 및 이용악 전집 관련 부기사항을 담았다.  비로소 ‘온전한’ 이용악을 만나다  2014년은 이용악 시인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 이용악 문학의 의의와 재조명의 필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터이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현저히 그 활기를 잃어가고 있는 이용악 시 연구의 가장 큰 원인은 새로운 연구 지평에 어울리는 이용악 전집의 부재, 무엇보다 정본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1988년 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 조치와 함께 출간된 윤영천 편『이용악시전집』은 이용악 시를 독자 대중에게 알리는 데 기여했지만, 월북 이후의 이용악의 발자취를 보여줄 수 없다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고, 그마저도 현재 절판된 상태로 있다. 2015년 벽두에 소명출판에서 새롭게 출간된『이용악 전집』은 앞선 전집이 가지고 있었던 한계를 보완하고, 연구자들 사이에서 요구되어 온 온전한 이용악 전집의 발간에 대한 요구와 정본에 대한 갈망을 충실히 반영하고자 한 결과물이다. ​이번에 새로 발간된『이용악 전집』의 특징은 시를 포함해 산문과 좌담회 원고 및 설문과 같은 기타 자료를 모두 망라하였다는 데 있다. 이용악이 출간한 다섯 권의 시집,『분수령』(1937),『낡은 집』(1938),『오랑캐꽃』(1947),『이용악집』(1949),『리용악시선집』(1957) 등은 물론 시집 미수록 시, 이번에 새로 발굴한 산문집『보람찬 청춘』(1955)을 비롯한 몇 편의 발굴 산문과 좌담 자료까지 망라된 새 전집은 이용악의 전모를 보고 싶어하는 연구자들에게는 횡재라도 만난 듯한 기쁨을 줄 것이다. 새로운 전집은 이용악 시 연구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용악의 시를 사랑하는 일반 독자에게도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이용악 전집』의 엮은이들은 ‘현대어 정본을 수록한 것은 이용악의 시가 다른 시인들의 경우처럼 문학사적 연구 대상을 넘어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사랑받는 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고 말한다.  그러한 마음을 담아, 이 전집의 체제는 전체적으로 시와 산문으로 나누고, 시는 원문과 현대어 정본으로 나누어 각각을 다시 시집의 체제에 따라 싣고, 시집 미수록 시의 경우에는 월북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싣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용악의 경우는 월북 이전에 이미 시선집을 간행하는 등 선집 작업이 시인 스스로에 의해서 두 번이나 이루어졌는데, 이를 시집 단위로 전집에 포함시킴으로써 중복 작품을 판본별로 비교 가능하도록 하였다. 특별히 시는 원문과 현대어 정본으로 나누어서 제시했는데, 원문은 연구자들이 편자의 가감 없이 수록 지면을 그대로 볼 수 있도록 차별화하였다. 또한 정본화 작업과 함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요한 어휘에는 주석 작업도 진행하였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연구자들의 만만찮은 노력과 품이 들었다. 공동 편자 곽효환, 이경수, 이현승 외에도 중앙대학교와 고려대학교, 한양대학교, 동국대학교의 여러 연구자들이 자료 수집과 입력과 교정 작업에 함께 참여하였다. 이번에 새로 발간된『이용악 전집』은 전집의 발간이 일종의 집단 지성의 결과물임을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 이용악이 남쪽에서 펴낸 시집 ‘분수령’ ‘낡은 집’ ‘오랑캐꽃’.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 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 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 감을 줄 모르다”(‘북쪽’) 이용악 시인 이용악(1914∼1971)의 이 시를 신경림 시인이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2, 3학년 무렵이었다. 그는 “읽으면서 가슴 속으로 찡하는 울림 같은 것을 받았다”면서 “그때는 이용악 시인이 월북을 했는지조차 몰랐고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그분의 시집을 구해 시집 맨 앞에 실려 있던 이 시를 읽고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대취한 김지하 시인이 20여년 전 인사동 주점 ‘평화 만들기’ 벽에 매직펜으로 휘갈겼던 이용악의 ‘그리움’은 지난해 경매 물품으로 나오기까지 했다.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우에/ 느릿느릿 밤 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내리는가”(‘그리움’) 김지하는 “이용악은 예세닌이나 미당과 맞먹는 진짜 위대한 시인”이라면서 “우리 민족의 서러움을 이토록 우아하게 담다니”라고 찬탄하기도 했다. 내로라하는 시인들이 주저없이 인정하는 이용악은 1930년대 중후반 백석 오장환 등과 더불어 한국 시를 대표한 인물이다.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넘나드는 서정적이면서도 현실을 직시하는 시를 써서 빼어난 명편들을 생산해냈다. 그렇지만 동시대의 월북 시인 백석에 비해 이용악은 연구자들도 적고 대중에게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다. 이용악 전집 표지 이용악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곽효환(대산문화재단 상무) 시인과 이경수(중앙대 국문과 교수), 이현승(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등 3인이 주축이 되어 2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이용악 전집’(소명출판)을 펴낸 이유다. 곽효환 시인은 “문학적 중요성에 비해 이용악은 제대로 된 전집이 없어 소홀하게 다루어졌다”면서 “근대시에서 너무나 중요한 시인에게 이제야 비로소 자리를 찾아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용악이 6·25전쟁 때 월북하기 전까지 남쪽에서 남긴 시집 ‘분수령’ ‘낡은 집’ ‘오랑캐꽃’에는 서정적이면서도 현실에 발을 딛고 높은 기품을 내보이는 북방정서가 잘 스며들었다. 고려대에서 ‘한국 근대시의 북방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곽효환 시인은 “백석이 지적인 시인이라면 이용악은 가슴으로 쓴 시인”이라면서 “남쪽에서 마지막으로 펴낸 ‘오랑캐꽃’이야말로 그중 가장 빛나는 절정의 시집”이라고 평가했다. 신경림 김지하가 좋아한 ‘북쪽’이나 ‘그리움’과 더불어 많은 이들이 애송하는 ‘전라도 가시내’ 같은 작품은 이용악 시를 상징하는 명편이다. 남쪽 곡창지대에서 북간도까지 팔려온 ‘전라도 가시내’를 주막에서 만난 함경도 사내의 연민이 눈보라 속에서 서럽다.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 ‘문학신문’에 실린 시편.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싹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이경수, 이현승 교수와 함께 이용악 전집을 엮어낸 곽효환 시인. 그는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이용악에게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집에는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을 배려해 출간 당시의 표기법을 그대로 살린 원문과 현대 맞춤법에 맞게 고친 ‘현대어 정본’을 함께 수록했다. 월북 이후 북에서 펴낸 시집과 산문, 좌담 자료까지 모두 망라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 그동안 남쪽에서 나온 시집들만 알려져 있어 연구자들이 월북 이후 21년을 더 살다 간 이용악의 반쪽 모습만 붙들고 있었던 셈이다. 북에서 이용악은 체제에 순응하며 김일성 찬양시와 노동 영웅을 부추기는 ‘보람찬 청춘’ 같은 산문까지 쓰면서 삶을 이었다. 남쪽에서 생산했던 빼어난 시들에 비하면 문학적으로 평가할 가치는 적지만 일제 강점기와 해방과 분단을 거치면서 한 시인이 어떤 질곡의 삶을 살다 갔는지 선명하게 드러내는 자료라 할 만하다. 전집을 엮은 이들은 서문에서 “월북 이전 이용악의 시적 성취 때문에 이용악의 시적 전모도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면서 “통일시대의 문학사적 굴절을 이용악의 시보다 더 잘 담고 있는 텍스트는 없을 것”이라고 썼다. ///////////////////////////////////////////////////////////////////////   이용악(李庸岳)의 ‘오랑캐꽃’ 주제(主題)   오랑캐 꽃 주제 : ①유랑민(流浪民)들의 비극적인 삶과 비애. ②정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유랑민들의 비극적인 삶과 비애 ③국경을 넘어 유랑을 떠나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 수난과 비애   해설 : 오랑캐꽃은 사실 알고 보면 오랑캐의 혈통이나 풍습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야생화(野生花)이지만, 그 뒷모습이 머리채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 유사해 우리 민족이 그 꽃 이름을 ‘오랑캐꽃’이라 붙였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어쩔 수 없이 우리 민족 중 상당수가 왜놈의 탄압을 피해 유랑민이 되어 국경선에 흐르는 강을 건너 옛날 오랑캐 땅으로 쫓겨 가 살게 되었는데, 함경북도 경성 출신인 이용악(李庸岳) 시인(詩人)은 마치 고려 때 우리 나라 북쪽에 정착해 살던 여진족(女眞族)들이 윤관(尹瓘) 장군을 비롯한 고려 장군들에 의해 쫓겨 가는 모습을 길가에 핀 ‘오랑캐꽃’을 보고 떠올리게 되며[연상(聯想)],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옛날 여진족 오랑캐들이 오래 정들어 살고 있던 함경도 땅에서 쫓겨 간 것처럼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쫓겨나 유랑민(流浪民)의 신세가 된 것을 목놓아 울고 싶을 만큼 몹시 슬퍼하고 있습니다.   제1연에 나오는 시어(詩語) ‘오랑캐’는 우리 민족에게 쫓겨난 북방(北方) 오랑캐 뜻하는 것이지만, 제3연에 보이는 ‘오랑캐꽃’은 사람이 아닌 꽃(식물) 자체를 나타내는 시어(詩語)로서, 삶의 터전을 빼앗긴 힘없는 우리 민족의 상황을 비유하는 이미지로 형상화(形象化)되어, 이 시인을 울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에서의 ‘오랑캐꽃’은 고려 시대(高麗時代)와 일제 치하(日帝治下)의 시공(時空)을 넘나들며, ‘약(弱)한 자(者)’ 내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나는 유랑민’을 연상(聯想)하게 하는 매개체(媒介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랑캐꽃’을 의인화(擬人化)하여, 왜놈들의 등쌀을 피해 이 땅을 떠나가야 하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 운명(현실 상황)과 비애(悲哀)를 그 꽃에 가까이 다가가 독백(獨白)하는 형식으로 노래한 이 시는 오늘날 파인(巴人) 김동환(金東煥)의 장시(長詩) ‘국경의 밤’과 더불어 일제치하(日帝治下)에서의 우리 민족의 수난을 잘 표현한 대표적인 ‘절창시(絶唱詩)’로 인구(人口)에 널리 회자(膾炙)되고 있습니다. ////////////////////////////////////////////////////// 오랑캐꽃 : 이용악 오랑캐꽃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 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졸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 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 시의 서두 해설 : 시인 자신의 해설적 설명이 붙어 있는데, 먼 옛날 오랑캐(여진족)가 고려와의 싸움에서 무참히 패주해 간 역사적 사실이 드러나 있다. 윤관(尹瓘)의 여진정벌로 인해 장정들은 전쟁터에서 대부분 죽고, 남은 사람들은 머리를 깎인 채 종으로 전락하게 되며 후에 그들은 천민 집단으로 고립되어 자기들끼리만 결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머리를 깎은 탓에 세상사람들은 이들을 ‘재가승(在家僧)’이라 불렀다. * 감상 : 망국민의 한 사람으로 괄시를 받으면서도 오랑캐족에 인간애를 느끼는 것은 3자 입장에서 그들의 한을 노래하면서도, 곧 우리의 한을 노래하는 것이며 시인의 깊은 인간미를 짐작할 수 있다. * 구성 · 프롤로그 : 오랑캐꽃의 어원을 역사적으로 설명(민족 승리의 감정) · 제1행~제4행 : 과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서술(쫓겨가는 오랑캐의 뒷모습) · 제5행~끝 : 현재의 상황(유랑민의 이미지와 결부) * 주제 : 망국민과 유랑민들의 비극적 삶 * 출전 : 시집 [오랑캐꽃](1947)   * 도래샘 : 빙 돌아서 흐르는 샘물. ‘도래’는 도랑의 함경도 방언. < 감상의 길잡이 > 일제의 수탈로 말미암아 소위 오랑캐땅으로 쫓겨난 유이민들의 비극적 삶을 고도의 상징적 수법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서정주로부터 “망국민의 절망과 비애를 잘도 표했다.”는 절찬을 받은 바 있다. 이 시는 ‘오랑캐꽃’이라는 자연물을 통해 민족이 처한 비통한 현실에 대한 연민과 비애를 노래한 작품이다. 복잡한 비유 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그 의미를 쉽사리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연약하고 가냘픈 오랑캐꽃의 이미지와 그에 대한 연민을 통해 이민족의 지배 하에서 노예적인 삶을 살아가는 민족의 삶과 운명을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시는 오랑캐꽃의 이미지와 고통받는 민족의 현실을 등치(等値)시킴으로써 개인적인 서정을 그 시대의 보편적인 서정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꽃의 형태가 오랑캐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는 외형적인 유사성 때문에 오랑캐꽃이라 불리는 것이나,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인해 그 옛날의 오랑캐나 다를 바 없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해 버린 민족의 처지가 동일하다는 현실 인식이 이 시의 주요 모티프를 이루고 있으며, 그에 기초하여 오랑캐꽃이라는 구체적인 사물에 대한 연민의 정을 민족이 처한 객관적 현실에로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 이 시의 기본적 구조가 된다. 이 시는 첫머리에서 ‘오랑캐꽃’의 명명(命名)에 대한 유래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오랑캐와의 싸움에 시달렸던 우리 조상들이 ‘오랑캐’의 뒷 모습과 ‘오랑캐꽃’의 뒷 모습이 서로 닮아 그 꽃을 ‘오랑캐꽃’이라 했다는 설명이다. 즉, 그 명명은 과거의 전쟁 체험 및 모습의 유사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랑캐꽃’의 명명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앞머리에 제시해 놓고 전개되는 작품 내용은 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먼저 1연은 오랑캐와 고려와의 싸움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이어 2연에서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이 상당 기간 지났음을 묘사적 표현으로 제시하고 있다. 3연은 화자의 주관적 인식과 그로부터 촉발되는 화자의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화자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고, 또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에 대해 극도의 비애감을 느끼고 있다. 즉, 오랑캐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면서도 ‘오랑캐꽃’이라 불리게 된 데 대해 화자는 극도의 슬픔을 느끼고 있다. 그러한 감정은 마침내 ‘울어 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이라는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 화자의 감정은 폭발되고 만다. ‘오랑캐꽃’이라는 잘못된 명명이 일종의 억울함이라면, 화자의 슬픔은 이러한 억울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일제에 의해 오랑캐라고 천대받던 유이민들이자, 더 나아가 전 조선 민중의 억울함과 비통함을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 1연에서 쫒은 자와 쫒겨난 자를 지적해 봅시다 ☞ 쫒은 자 : 구려 장군님 ☞ 쫒겨난 자 : 오랑캐 2. 쫒겨난 자의 상황을 짐작해 봅시다. ☞ 경황없이, 정신없이... 구려 장군님의 표현대로라면 혼비백산해서... 3. 왜 그렇게 생각했습니까? ☞ 돌봐야 할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낙(약한 자)과 지켜야 할 자존심 (우두머리)도 버리고 가야 할 절박한 상황. ☞ 맑게 흐르는 도래샘도 정든 초가집도 미련없이 버려야 하는 위태로 상황 가랑잎처럼 4. 오랑캐가 쫒겨간 뒤 구려민들의 삶은? ☞ 구름이 태평스럽게 골짜기를 흐르듯, 평온한 삶이 수백년 동안 계속 되었다. 5. 3연을 통해서 볼 때 말하는 이는 누구에게 말하고 있나? ☞ 너, 오랑캐꽃 6. 허고 많은 이름 놔두고 왜 하필 오랑캐 꽃인가? ☞ 너의 뒷 모양이 머리테를 드리인 오랑캐와의 뒷머리와도 같기 때문 7. 오랑캐와 오랑캐 꽃의 차이점이 있다면? ☞ 오랑캐의 피한방울 받지 않았고,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른다. 8. 오랑캐의 피한방울 받지 않은 채 오랑캐라 불린다면 어떤 심정이겠는 가? ☞ 기가 막혀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다. 9. 그렇다면 이 작품이 나온 시대적 상황(1939년)을 고려할 때 그 시대의 오랑캐 꽃은 누구이겠는가? ☞ 우리민족 10. 말하는 이가 오랑캐 꽃에게 해 주고 있는 행동이나 말이 있다면? ☞ 두 팔로 햋 빛을 막아 줄께, 울어 보렴 목 놓아 울어 보렴 11. 오랑캐꽃(우리 민족)이 울 수없었던 이유와 오랑캐꽃(우리 민족)에 대 한 작중 화자의 태도는? ☞ 고구려 장군님이 오랑캐로 부터 오랜 투쟁 끝에 지켜내고 대대로 삶을 이어오던 이 땅을 어이 없이 빼앗긴 기막힌 심정으로 인해 울 수 도 없음. 작중 화자는 오랑캐 꽃의 처지를 같이 슬퍼하고 오랑캐꽃의 슬 픔을 토로하도록 유도해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려 한다. 12. 결국이 시는 누가 무엇을 노래한 시인가? ☞ 작중 화자는 외세로부터 삶의 터전을 빼앗긴 민중의 아픔을 오랑캐꽃을 통여 노래하고 있다.      
1068    젊은 나이에 요절한 시인 오장환을 기리며 댓글:  조회:4440  추천:0  2016-02-06
시인 오장환은 모더니스트와 리얼리스트의 면모를 동시에 갖추고 있는데, 그는 보은군 회인면 출신으로 한국 아방가르드 시단의 흐름에서 김수영과 황지우로 이어지는 하나의 길을 개척한 시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용악·백석과 함께 193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평가받는 오 시인은 우리 시문학사에서 서정주·유치환과 함께 생명파 시인으로 불리어 왔다. 그러나 인생의 토대인 식민지 현실, 생명이 발현되는 토대인 이 땅과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생명파 시인들과 시적 지향이 다르다. 오 시인은 모더니즘 시인이기도 하다. 근대도시의 문제를 다룬 도시문학의 성격을 보이기도 하고, 현대적인 감각과 기법이 두드러진 표현양식을 보이기도 하고, 도시를 배회하는 보헤미안의 퇴폐적인 삶의 모습이 드러나 있기도 하다. 그의 시에서 발견되는 절망과 퇴폐와 방황은 속악한 식민지 근대에 저항할 수도 동화될 수도 없던 시인의 여린 자아가 분열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오 시인의 시가 보여준 치열한 현실인식은 생명파에 속하면서도 생명파와 구분되는 독자성을 보여주며 모더니즘 시에 속하면서도 모더니즘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적 성취를 보여준다. 이 점이 시인 오장환을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시단의 3대 천재로 불리게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 소재지 : 충청북도 보은군 회인면 회인로 5길 12 [문학관 들어가는 골목] [골목 담 벽에 그려진 해바라기 그림과 詩(시)] [해바라기 / 오장환 詩(시) 전문] [문학관이 보이는 골목길] [종이비행기 벽화] [종이 비행기 / 오장환 詩(시) 전문] [주차장에서 담은 오장환 문학관과 생가 전경] 2006년에 개관한 오장환문학관은 오장환 생가 옆에 있다. [생가 와 안내표석비] 오장환은 1918년 아버지 오학근과 어머니 한학수 사이에서 4남 4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유년시절의 오장환은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을 지녔지만, 귀염성 있고 진실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회인공립보통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다가 경기도 안성 공립보통학교로 전학하여 그곳에서 졸업했다. [표석비와 생가 전경] 1931년 4월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오장환은 이곳에서 정지용시인을 만나 詩(시)를 배우고된다. 그리고 문에반 활동을 하며 '휘문'이라는 교지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다. 1933년 2월 22일에 발간된 '휘문' 임시호에는 오장환의 첫 작품인 '아침'과 '화염'이라는 두 편이 詩(시)가 실려 있다. [생가 표석비] [생가] 이 후 오장환은 '시인부락', '낭만', '자오선' 등의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에 발표한 시집 '성벽'과 '헌사'를 통하여 '시단의 새로운 왕이 나왔다.'는 찬사를 듣게 된다. [나의 노래 詩碑(시비)] [시비에 적힌 나의 노래 전문] [오장환 문학관 현판] [오장환 문학관] [퍔프렛속의 전시관 내부 소개도] [입구쪽 구입할 수 있는 책자와 기념품등...] [안내데스크 안의 친절하신 안내원] 혹시나 하고 정면으로 담지 못하고 약간 비켜 담았지만,... 그래도 여쭈어 보았지요. 사진을 문학관 소개와 함께 올려도 되느냐고... 그랬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럴줄 알았다면 정면 모습을 더 곱게 담아 올렸을텐데.... [전시관 입구 좌측 오장환 시인님의 모형] 의자 옆자리가 비어있었지만, 혼자라... 마음속으로만 가만히 옆자리에 앉았다 생각하고 디카로 담아 올려봅니다. [정면에서 담은 오장환 시인] [전시실 옆벽에 걸려 있던 詩(시) 고향앞에서] [시인 오장환] [전시실 입구]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보실까요. [입구에서 담은 전시실 내부] [오장환의 문학 친구들(퍔플렛에서 담음)] [오장환의 문학 친구들(퍔플렛에서 담음) 2] [오장환이 年譜(연보)] [퍔플렛에서 담은 안내 글 내용] [시단의 3대 천재] [한국 근대문학 최조의 장시 '전쟁'] [한국 근대문학 최조의 장시 '전쟁' 안내 글] [전시된 시인의 출판한 책] [전시실 내부] [오장환 문학의 재 발견 안내 글 내용] [오장환의 동화적 상상 동시] [전시된 동시 작품들] [종이비행기] [바다] [정거장] [섬골] [가는 비] [기러기] [내생일] [섬골] [애기꿈] [오장환의 동화적 상상 동네(동시) 작품들] [작품이 수록된 자료] [아, 나의 노래는 당신의 것입니다.] [나의 노래 전문] [문학사랑방] [문학사랑방 체험공간] [어릴적과 젊은 날의 오장환 시인 모습] [시세계 변천 연구] [오장환 시인의 가계] [오장환 시인의 회인공립보통학교 학적부] [일제에 의해 검열 삭제 당한 오장환 시인의 육필 원고] [문학사랑방 쪽에서 담은 전경] [휘문고 시절의 사진] [육사에게 보낸 엽서] [오장환 문학제 기념공연 포스트] [문학관 앞에서 담은 생가 전경] 병상에서 해방을 맞이한 오장환은 '병든 서울'을 통해 해방의 기쁨을 감격적으로 노래했다. '병든 서울'은 '해방기념조선문학상' 최종후보에 오르는 등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또한 시 '석탑의 노래'는 1947년 중학교 5,6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하였다 합니다. 석탑의 노래 탑이 있다 누구의 손으로 쌓았는가, 지금은 거친 들판. 모두다 까맣게 잊혀진 속에, 무거운 입 다물고 한없이 서 있는 탑. 나는 아노라, 뭇 천백 사람 미지와 신비속에서 보드러운 구름 밟고, 별과 별들에게 기울이는 속삭임. 순시라도 아 젊은 가슴 무여지는 덧없는 바라옴 탑이여, 하늘을 찌르는 제일 높은 탑이여. 어느 때부터인가? 스스로 나는 무게 아득한 들판에 홀로 가없는 적막을 누르고..... 몇 차례나 가려다는 돌아서는가. 고이 다듬은 끌이며 자자하던 이름들 설운 이는 모두다 흙으로 갔으나, 다만 고요함의 끝 가는 곳에 이제도 한층 또 한층 주소로 애처로운 단념의 지붕 위에로 천년 아니 이천 년 발돋음 하듯 탑이여, 머리 드는 탑신이요, 너로 돌이여.... 어느 곳에 두 팔을 젓는가? [다시 담아 본 문학관과 생가 전경] 1988년 광복 후 40여 년간 논의 조차 불가능했던 월북문인에 대한 해금조치가 이루어졌다 그 뒤부터 오장환 문학세계에 대한 연구논문을 비롯하여 전집, 평론, 시집등이 발간되었으며, 오장환의 문학세계를 보다 폭 넓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오장환 문학관 전경] 옥천의 정지용 시인과 함께 충북을 대표하는 시인인 오장환 시인은 3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지만 우리 문단에 한 획을 긋는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1067    詩의 벼랑길위에서 만나는 시인들 - 오장환 댓글:  조회:4422  추천:0  2016-02-05
오장환(吳章煥.1918.5.5∼1948) 시인. 충북 보은군(報恩郡) 회북면 중앙리 출생. 안성보통학교(安城普通學校)를 거쳐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에서 수학했으며(중퇴),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 동경 지산중학교 수료. 시지(詩誌) [낭만] [시인부락(詩人部落)] [자오선(子午線)] 등의 동인으로 활약했다. 1933년 [조선문학(朝鮮文學)]에 을 발표하였다. 1936년 [낭만], [시인부락]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1937년에는 [자오선] 동인이 되었다. 문단에 등단한 이래 1937∼47년 등 4권의 시집을 차례로 냈다. 8ㆍ15광복 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 문학 대중화운동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하다가 1946년 이태준, 임화 등과 함께 월북하였다. 【문학 인생】 오장환은 1918년 충북 보은에서 비교적 부유한 가정의 삼남(서자)으로 태어났다. 이후 잠시 경기도 안성에 이주하였다가 학업을 위하여 상경한다. 그 후 일시적인 동경 유학시기를 제외하고는 주로 서울에서 외토리로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였다. 그리고 1933년 [조선문학]에 을 발표하여 등단한 후, 1936년 [시인부락]의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한다.   이후 일제 강점 말기의 폭압적 상황에서도 절필하지 않으면서, 친일적인 작품활동을 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시인군의 한 사람이 된다. 특히 신장병으로 병상에서 해방을 맞은 그는, 좌익 쪽의 문학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조선문학가동맹]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1948년 2월경 월북한다. 그러나 이렇게 남한에서의 짧은 활동기간에도 불구하고, 오장환은 시집 을 간행하는 등 비교적 왕성한 창작적 실천력을 보인다.   그리고 일제말에서 해방정국에 이르는 격동의 상황 속에서, 오장환의 삶과 시 창작은 밀접한 상관관계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즉 서자라는 신분적 제약과 도시에서의 타향살이, 이에 따른 사상적 지향이 그의 시작품에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 그의 시 창작들은 시대적 상황에 대응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연대순으로 시집으로 묶여서 간행되었다.   즉 그가 남긴 기록에 의존하여 시세계의 변모를 살펴보면 1936∼1939년의 과 , 1939∼1945년의 , 그리고 1945년 이후의 로 시의 경향이 구별된다. 그러나 이런 속에서도 그의 시작에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그 양상이 경우에 따라서는 유교적 전통과 관습을 부정하면서도 도시와 항구의 신문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비판적 정신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어떤 때에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 사상과 정신의 지향점에 바탕을 둔 새로운 조국 건설의 민중적 열망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작품 경향】 그는 청각적 이미지와 서정의 양면을 두루 갖춘 시를 썼다. 그러나 회화에 경도되어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또 감상에 몰입하여 값싼 영탄에 머물지도 않으면서, 직접 현실 속에 들어가서 현대적인 심연을 형상화했다. 또한 그의 관심은 시적 사실주의를 탐구하는 데에도 미쳐 독특한 성취를 남겼다. 그의 시는 전통의 거부, 나그네 의식, 허무주의 등으로 나타났으나 광복 직후에는 현실문제에 관한 시를 썼다.   오장환의 시 세계는 대개 세 경향으로 나뉘어진다.   첫째는 에서 보여 주는 비애와 퇴폐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모더니즘 지향의 세계요, 둘째는 의 향토적 삶을 배경으로 한 순수 서정시의 세계요, 셋째는 이 보여 주는 계급의식이 드러난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세계이다.   그의 문학은 과거의 관습과 전통의 계승을 부정하고 서구적 취향에 몰두하였다가 다시 고향을 발견하는 도정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오장환의 시 세계는 순수 모더니즘의 성격에 훨씬 가깝다.   【시】(1933.조선문학) *(40) *《The Last Train》   【시집】(1937.풍림사) (1939.남만서관) (1946.정음사) (1947.헌문사)   【평론】 //////////////////////////////////////         1930년대,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비운의 천재시인 ‘고향에 잠들다’ 오장환 문학관&생가   보은군 출신의 시인으로 알려진 오장환(1918~1951). 그의 생을 기리기 위한 문학관이 지난 2006년 10월에 개관하였다. 월북시인으로서 처음 개관된 문학관이다. 문학관과 함께 담장 안에는 오장환이 태어난 생가가 복원되어 함께 보전되고 있다. 비록 짧은 삶이었지만, 문학의 큰 획을 그엇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시인 오장환. 그의 모든 것이 전시되어 있는 오장환 문학관을 통해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자.   시인 오장환(吳章煥)   오장환은 1918년 아버지 오학근과 어머니 한학수 사이에서 4남 4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조용한 성격의 말수가 적은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는 대신 귀염성과 진실된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회인공립보통학교를 3학년까지 다녔고 경기도 안성 공립보통학교로 전학하여 그 곳에서 졸업했다.       1931년 4월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오장환은 이곳에서 정지용시인을 만나 시를 처음 접한다. 그리고 문예반 활동을 하며 [휘문]이라는 교지를 만드는 일에 참여한다. 1933년 2월 22일에 발간된 [휘문]임시호에서는 오장환의 첫 작품인 과 두 시가 실렸다.   < 아 침 > 까마귀 한 마리 / 게을리 노래하며 / 감나무에 앉엇다. 자숫물 그릇엔 / 어름덩이 물   < 화 염 > 한낮에 불이야! / 황홀한 소방수 나러든다. 만개한 장미에 호접   이후 오장환은 시인부락, 낭만, 자오선 등의 동인으로 참가하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전개하였고 같은 시기 발표한 시집 과 를 통하여 ‘시단에 새로운 왕이 나왔다’라는 찬사를 듣는다. 당시 서정주, 정지용, 박두진, 이육사, 김광균 및 화가 이중섭과도 두터운 친분관계를 유지하며 문학담을 나눈 시인 오장환.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시인으로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했던 오장환은 식민지 현실을 예리하고 통찰력 깊게 짚어나간 진보적 리얼리즘 시인이었다.       병상에서 해방을 맞은 오장환은 을 통해 해방의 기쁨을 감격적으로 노래했다. 은 ‘해방기념조선문학상’ 최종후보에 오르는 등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그의 또 다른 작품 는 1947년 중학교 5, 6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이후 병든 몸으로도 전국을 돌며 몸을 아끼지 않는 문화활동을 펴쳤지만 결국 북한과 소련에서 지병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련기행시집 를 마지막으로 그는 1951년 당시 34세 나이로 한국 전쟁 당시 사망했다.   그의 일대기를 담은 문학관&생가 오장환문학관은 600미터가 넘는 구불구불 고갯길인 피반령을 넘어야 닿을 수 있다. 작은 마을인 회인면에 자리잡고 있는 이 곳은 오장환문학관과 그의 생가를 복원해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의 태생부터 그의 노래가 끝나던 날까지, 단층의 문학관은 넘침 없이, 부족함 없이 그를 담아내고 있다. 단막극을 통해 그의 대표시 12편은 관람할 수도 있고 차례대로 전시된 그의 생을 훔쳐볼 수도 있다.       문학관 내에는 전시실, 영상실, 홀 등이 갖추어져 있으며, 전시실에는 동시 액자 11점, 사진자료 20점, 시인 기증시 9점, 도서 등이 전시되어 있다. 문학관 내 마련된 문학사랑방은 지역민들의 시 강좌, 시 토론, 문학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지역민들에 문학적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해마다 9월이 되면 이곳에서 가 열려 백일장, 시그림그리기대회, 시낭송대회, 문학강연 등이 열린다고 한다.   비운의 시인, 세기 넘어 천재 시인으로 남다   1947년(추정) 오장환은 월북을 하게 된다. 미소공동위원회 이후 문화예술인들의 대한 탄압과 테러를 피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그의 건강문제였다. 1948년 북한에서 숙청되었다는 설도 있었으나 월북 후 그는 남포적십자병원, 모스크바 볼킨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신장쪽에 난치병을 앓던 그는 결국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대한 반대와 전쟁의 비참한 현실 고발, 봉건적 인습에 대한 비판과 고발, 식민지 근대도시에 대한 비판, 농촌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줬고 한국 아방가르드 시단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오장환. 그가 요즘 시대의 시인으로 태어났으면 한국 문학에 어떤 족적을 남겼을까.       어둡고 비판적인 시대에 태어나 조국의 평화를 늘 꿈꿔왔던 비운의 천재. 죽는 순간에도 고향에 남아있던 어머니를 그리워했다는 시인 오장환.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그는 위대한 시인이었음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민족으로서 오늘날 고향 문학관에 편히 잠들어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월요일, 신정, 설, 추석 등은 휴관한다.     주소 : 충북 보은군 회인면 회인로 5길 12      
1066    산문시를 확실하게 알아보기 댓글:  조회:5532  추천:1  2016-02-05
1.산문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산문시(prose poetry)란 무엇인가? -리듬을 의식하지 않는 운(韻)이 없는 줄글로 된 시형식 -서정시의 특징을 대부분 갖고 있는 산문 형태의 시 -자유시와 시적 산문과 구별 되는 차이점을 인정 --자유시 : 정형시의 엄격한 운율을 해체해 가는 과정에서 발전 --산문시 : 산문이 시에 보다 가까이 접근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남 --시적 산문 : 시적 특징(요소)을 부분적으로 갖고 있지만 시의 본질적 요소가 불비 *산문시의 특징 -시적 산문보다 짧고 요약적이다 -시적 요소(은유, 상징, 이미지, 역설)를 구비한 산문 형태 -행 구분이 전혀 없는 점에서 자유시와 구별(행과 연이 아닌 단락에 의존) -운율적 특성이 강조된 산문이나 자유로운 율격을 갖는 자유시와 구별 *산문시의 역사적 고찰 -최초의 산문시 : 프랑스 시인 “베르랑”의 시집 (1842) -최초의 산문시 용어 : 보들레르의 시집 에서 사용 됨 -시 장르로 인식된 시기 : 프랑스 상징주의 시대(1850년대) --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 클로렐, 투루게네프 등에 의해 활발하게 창작 *우리의 산문시 -주요한의 “불놀이“이후 이상화, 한용운, 정지용, 이 상, 백 석, 오장환, 윤동주, 서정주, 박두진 등의 시인이 산문시를 많이 발표함 -주목되는 산문 시집들 : --정진규의 --최승호의 --김춘수의 --이성복의 등의 시집들이 산문시 영역을 확대 시킴 2.산문시 *포장술집에는 두 꾼이, 멀리 뒷산에는 단풍 쓴 나무들이 가을비에 흔들린다. 흔들려, 흔들릴 때마다 한잔씩 , 도무지 취하지 않는 막걸리에서 막걸리로, 소주에서 소주로 한 얼굴을 더 쓰고 다시 소주 로, 꾼 옆에는 반쯤 죽은 주모가 살아 있는 참새를 굽고 있다. 한 놈은 너고 한 놈은 나다. 접시 위에 차레로 놓이는 날개를 씹으며, 꾼 옆에는 꾼이 판 없이 떠도는 마음에 또 한잔, 젖은 담배에 몇 번이나 성냥불을 댕긴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포장 사이로 나간 길은 빗속에 흐늘흐늘 이리저리 풀리고, 풀린 꾼들은 빈 술병에도 얽히며 술집 밖으로 사라진다 가뭇한 연기처럼 사라져야 별 수 없이, 다만 다같이 풀리는 기쁨, 멀리 뒷산에는 문득 나무들이 손 처들고 일어서서 단풍을 털고 있다. --감태준 전문 **(분석) 소외받는 자의 흔들리는 삶을 풍자적으로 묘사하면서 인간 존재의 내면 세계를 감각적으로 형상화. ‘반쯤 죽은 주모가 살아 있는 참새를 굽고 있다“ 라는 반어법과 나무를 의인화 시킨 비유법. * (1)그대가 결혼을 하면 여인은 외부로 열린 그대의 창 그 풍경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보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 그대가 그 여인에게서 아이를 얻으면 그대의 창은 하나둘 늘어난다 그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그대는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처럼 또한 그대는 아내와 아이들의 외부로 열린 창 그대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도 그대를 만나지 않을 때 그대는 벽이고 누구나 벽이 된다 -이성복 전문 *(2) 세상에는 아내가 있고 아이들이 있다 이런 세상에, 어쩌자고, 이럴 수가 세상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내가 보는 들판에는 깨알만한 작은 희 꽃들이 잠들었는지, 보채는지 널브러져 있다 그 길을 나는 보이지 않는 아내와 아이들과 더불어 걷고 있다 언제는 혼자 가는 길인 줄 알았는데 깊이 묶여 떨어질 수가 없구나 이런 세상에, 어쩌자고, 세상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 -이성복 전문 --(분석) (1)의 중요한 의미는 가족 관계가 구속이 아니라 세계를 향해 열린 통로이자 자유이고 빛이 된다는 점이며, 가족이 없는 상태의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 벽이며 어둠이라는 것이다. (2)는 길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 길이 삶의 길이건 몽상의 길이건 그 길을 “보이지 않는 아내와 아이들과 더불어 걷고“ 있었다는 인식을 들어내 보이고 있다. 시인은 혼자가 아니고 현실 속에서 가족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아의 세계가 넓어지고 깊어지는 복합적인 의미를 표현해 준다. * *(3) 무너진 고향집 흙담 곁에 고요로 멈추어 선 우물 속을 들여다 본다. 물을 퍼올리다 두레박 줄이 끊긴 자리. 우물 둘레는 황망히 뒤엉킨 잡초로 무성하다. 그 오래 올려지고 내려지다 시신경이 눌린 곳, 깜깜한 어둠만 가득 고여 지루한 여름을 헹구어낸다. 하품이 포물선처럼 그려졌다 사라진다. 내가 서서 바라보던 맑은 거울은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몇 겹인지 모를 시간의 더께만 켜켜이 깊다. 지금처럼 태양이 불 지피는 삼복더위에 물 한 두레박의 부드러움이란, 지나간 날 육신의 목소리로 청춘의 갈증이 녹는 우물 속이라도 휘젓고 싶은 것. 거친 물결 미끈적이는 이끼의 돌벽에 머리 부딪히며 퍼올린 땅바닥의 모래알과 물이 모자란 땅울림은, 어린 시절 나를 놀라게 하고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과 물로 아프게 꼬여 간 끈, 땅 속으로 비오듯 돌아치는 투명한 숨결들 하얗게 퍼올리는 소녀, 시리도록 차가운 두레 우물은 한 여자로 파문 지는 순간부터 태양을 열정으로 씻고 마시게 된 것이었다. 밤이면 하늘의 구름 한 조각도 외면한 채 거울 속으로 흐르는 달빛, 가로 세로 금물져 가는 별똥별의 춤만 담았다. 그 속에 늘 서 있는 처녀 총각, 어느 날 조각이 난 물거울 속 목숨은 바로 그런 게 아름다움이라고 물결치며 오래 오래 바라보게 했다. 고인 물은 멈추지 않고, 시간의 때를 축적한 만큼 새까맣게 썩어갔다. 소녀가 한 여인으로 생을 도둑질당하는 동안, 우물도 부끄러운 모습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퍼올리고 내리던 수다한 꿈들이 새로운 물갈이의 충격으로 흐르다 모두 빼앗긴 젊은 날의 물빛 가슴, 습한 이끼류 뒤집어쓴 채 나를 바라본다. 쉼없이 태어나고 흘러가는 것도 아닌, 우물 속의 달빛을 깔고 앉아서. 무너진 고향집 흙담 곁에 그리움으로 멈추어 선 우물 속, 젊은 날의 얼굴을 비춰본다. 생은 시 한 줄 길어 올리기 위해 두레박 줄이 필요했던가. 인적이 끊어지고 잡초만 무성타 한들 그 아래 퍼올려지고 내려지던 환영들, 물그리메의 허사로 증발하는가. 깜깜한 우물 속 어디선가 끝없는 고행의 길로 일생을 바친 소녀의 빈 웃음들이 둥글게 받는 하늘에 기러기 한 줄 풀어 놓고 있었다. 그대의 우물은 아직도 갈증의 덫에 걸려 있는가? 최영신< 우물> 전문 (200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 (분석) 문제의식을 집요하게 끌고가면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시정신이 돋보이는 시. 관찰과 경험을 시적 대상에 투사시켜 삶 전체를 용해시킨 정열. * *열대여섯 살짜리 소년이 작약꽃을 한 아름 안고 자전거 뒤에 실어 끌고 이조의 낡은 먹기와집 골목길을 지내가면서 연계 같은 소리로 꽃 사라고 웨치오. 세계에서 제일 잘 물들여진 옥색의 공기 속에 그 소리의 맥이 담기오. 뒤에서 꽃을 찾는 아주머니가 백지의 창을 열고 꽃장수 꽃장수 일루와요 불러도 통 못알아듣고. 꽃사려 꽃사려 소년은 그냥 열심히 웨치고만 가오. 먹기와집들이 다 끝나는 언덕위에 올라선 작약꽃 앞자리에 넹큼 올라타서 방울을 울리며 내달아 가오. -- 서정주 “漢陽好日” 전문 * 내가 언제나 무서운 외갓집은 초저녁이면 안팍마당이 그득하니 하이얀 나비수염을 물은 보득지근한 북쪽 제비들이 씨굴씨굴 모여서는 쨩쨩쨩쨩 쇳스럽게 울어대고 밤이면 무엇이 기와골에 무리돌을 던지고 뒤울안 배나무에 째듯하니 줄등을 헤여 달고 부뚜막의 큰 솥 적은 솥을 모조리 뽑아놓고 재통에 간 사람의 목덜미를 그냥그냥 나려 눌러선 잿다리 아래로 처박고 그리고 새벽녘이면 고방 시렁에 채국채국 얹어둔 모랭이 목판 시루며 함지가 땅바닥에 넘너른히 널리는 집이다 ---백석 “외갓집” 전문 *봄철날 한종일내 노곤하니 벌불 장난을 한 날 밤이면 으레히 싸개동당을 지나는데 잘망하니 누어 싸는 오줌이 넙적다리를 흐르는 따끈따끈한 맛 자리에 펑하니 괴이는 척척한 맛 첫 여름 이른 저녁을 해치우고 인간들이 모두 터앞에 나와서 물외포기에 당콩포기에 오줌을 주는 때 터앞에 발마당에 샛길에 떠도는 오줌의 매캐한 재릿한 내음새 긴긴 겨울밤 인간들이 모두 한잠이 들은 재밤중에 나 혼자 일어나서 머리맡 쥐발 같은 새끼 요강에 한없이 누는 잘 매럽던 오줌의 사르릉 쪼로록 하는 소리 그리고 또 엄매의 말엔 내가 아직 굳은 밥을 모르던 때 살갗 퍼런 막내고모가 잘도 세수를 하였다는 내 오줌빛은 이슬같이 샛말갛기도 샛맑았다는 것이다 -- 백석 “동뇨부(童尿賦)” 전문 *한 십년 만에 남쪽 섬에도 눈이 내린 이튿날이다. 사방이 나를 지켜보는 듯싶은 황홀한 푼수로는 꼭 십년 전의 그때의 그지없이 설레이던 것과 상당히 비슷하다. 하나 엄살도 없는 지엄(至嚴)한 기운은 바다마저 잠잠히 눈부셔 오는데...... 그렇다며, 한 십년 전의 이런 날에 흐르던 바람의 한 자락이, 또는 햇살의 묵은 것이, 또는 저 갈매기가, 이 근처 소리 없이 죽고 있다가, 눈물 글썽여 되살아나는지는 어느 누가 알 것인가. 만일에도 그렇다면, 우리의 어리고 풋풋한 마음도 세월따라 온전히 구김살져오는 것만은 아니다. 헤아릴 수 없는 바람의, 또한 햇살의, 또한 갈매기의 그 중에도 어떤 것은 고스란히 십년 후에 살아남았을 것처럼, 흔히는 그 구김살져오게 마련인 마음의 외진 한 구석에 어리고 풋풋한 마음이 곁자리하여 숨었다가 기껏해야 칠십년의 그 속에서도 그야말로 이런 때는 희희낙락해지는 그것인지도 모른다.
1065    참 재미있는 산문시 댓글:  조회:4494  추천:0  2016-02-05
산문시란 용어는 1869년 '파리의 우울 (Le Spleen de Paris)' 이란 시집에서 보들레르(C.P.Baudelaire)가 제일 처음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 시집 서문에서 산문시를 "리듬이나 운이 없어도 마음속의 서정의 움직임이나 몽상의 물결, 의식의 비약에 순응할 수 있는 유연하고 강직하며 시적인 산문"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산문시는 시적인 내용을 산문적 형식으로 표현한 시이기 때문에 시행을 나누지 않습니다. 비록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운율은 없으나 형태상의 압축과 응결이 필요하고, 시 정신이 압축되고 응결되어야 하는 운문시와 다르지 않습니다. 자유시가 리듬의 단위를 행에다 둔 데 반해 산문시는 한 문장 또는 한 문단에다 리듬의 단위를 두고 있습니다. 예로 조지훈의 봉황수(鳳凰愁)를 들겠습니다.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쌍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하리라.     서정시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또는 모든 특징을 다 가지고 있되 산문의 형태로 쓰여진 시라고 보면 된 다. 산문시는 시적 산문(poetic prose)보다 짧고 간결하며, 자유시와 같은 행의 끊어짐(line breaks)이 없고 내재율(inner rhyme)과 운율적 흐름을 지닌다. 조지훈은 그의 [시의 원리]에서 - 산문시는 자유시의 일부분으로서 거기서 출발하여 자립한 것이니 표현력이 왕성한 시인에 있어서만 걸작이 기대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산문시는 그 형식에서보다 내용에서 시가 되느냐, 하나의 평범한 산문이 되느냐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묘한 음악의 미는 발휘되지 않더라도 내용의 조리는 산문과는 달리 시 정신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야 비로소 산문시가 되는 것이다. 라고 했다. 산문시의 생성 동기는 대개 그 시인 개인의 독특한 사정과 시적 방법의 문제에 달렸다고 하겠으나, 그 시 인으로 하여금 처해있는 그 사회가 치열한 시 정신을 부여할 때 흔히 쓰여진다 예를 한번 볼까요 1) 조지훈 주제 : (퇴락한 고궁을 보며)망국(亡國)의 비애를 노래함.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쌍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하리라. 2) 신동엽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갯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곤가 불리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하지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탱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산문시.. 참 재미있는것 같습니다.
1064    산문시를 다시 알아보기 댓글:  조회:5025  추천:0  2016-02-05
  -산문시는 영어로 'prose poem', 프랑스어로 'Poeme en prose', 독일어로 'Gedicht in Prosa'로 산문체 형식을 지닌 서정시입니다. -정형시와 같이 명확한 운율형식은 없고 자유시와 같은 뚜렷한 리듬이 없다. 리듬은 없어도 시의 형태상 압축과 응결에 의한 시정신을 필요 조건으로 해야 한다. 형식상으로는 산문의 요소를 지녔지만 내용은 시적 제반 요소를 갖추고 리듬의 단위를 시의 행에 두기 보다 문장의 한 문단에 둔다. 자유시는 행을 나누어 구분하지만 산문시는 행을 바꾸지 않아도 시 전체의 음절과 문장에 의해 통일적으로 구성한다. 자유시나 정형시는 행에 의한 구분으로 인하여 시를 읽기 위해서는 다소 호흡의 율동이 늦게 간격을 두고 나타나기도 하지만, 산문시는 그 속도와 간격이 이어지기 때문에 거침없이 진행되어 호흡이 빠르거나 가빠질 수도 있다. -라풍텐(Jean de La Fontaine), 루소(Jean-Jacques Rousseau), 베르트랑(Louis Bertrand)은 근대 산문시의 선구자이며,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가 시집 『파리의 우울(La Spleen de Paris)』을 발표한 이래 산문시란 명칭을 썼다. 시집 서문에서 이라고 특질을 말하고 있다. ----------------------------------=================-------------------------- 산문시는 영어로 'prose poem', 프랑스어로 'Poeme en prose', 독일어로 'Gedicht in Prosa'로 산문체 형식을 지닌 서정시를 의미합니다   ㅡ정형시와 같이 명확한 운율형식은 없고 자유시와 같은 뚜렷한 리듬이 없으며 리듬은 없어도 시의 형태상 압축과 응결에 의한 시정신을 필요 조건으로 해야 한다.   형식상으로는 산문의 요소를 지녔지만 내용은 시적 제반 요소를 갖추고 리듬의 단위를 시의 행에 두기 보다 문장의 한 문단에 둔다.   ㅡ자유시는 행을 나누어 구분하지만 산문시는 행을 바꾸지 않아도 시 전체의 음절과 문장에 의해 통일적으로 구성한다. 자유시나 정형시는 행에 의한 구분으로 인하여 시를 읽기 위해서는 다소 호흡의 율동이 늦게 간격을 두고 나타나기도 하지만, 산문시는 그 속도와 간격이 이어지기 때문에 거침없이 진행되어 호흡이 빠르거나 가빠질 수도 있다.   ㅡ라풍텐(Jean de La Fontaine), 루소(Jean-Jacques Rousseau), 베르트랑(Louis Bertrand)은 근대 산문시의 선구자이며,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가 시집 『파리의 우울(La Spleen de Paris)』을 발표한 이래 산문시란 명칭을 썼다.   ㅡ시집 서문에서 이라고 특질을 말하고 있다.   ㅡ이후 자코브(Max Jacob), 르베르디(Pierre Reverdy), 앙드레 지드(Andre Gide), 투르게네프(Ivan Turgenev), 휘트먼(Walt Whitman)은 산문시인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김억이 번역한 투르게네프의 작품 「비렁뱅이」를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에 게재한 것이 산문시로 처음이며, 이후에 한용운(韓龍雲)의 「임의 침묵」, 정지용의 「백록담(白鹿潭)」, 주요한(朱耀翰)의 「불놀이」등이 있다.
1063    산문시를 아십니까... 댓글:  조회:4940  추천:0  2016-02-05
산문시 형식은 자크 베르트랑(알로이시우스)의 〈밤의 가스파르 Gaspard de la nuit〉(1842)를 통해 프랑스 문학에 소개되었다. 베르트랑의 시는 그당시에는 별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그가 19세기말 상징파 시인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보들레르의 〈소산문시 Petits Poèmes en prose〉(1869, 뒤에 〈파리의 우울 Le Spleen de Paris〉이라는 제목이 붙음)로 입증되었다. 산문시라는 명칭은 이 작품에서 유래한 것이며, 스테판 말라르메의 〈여담 Divagations〉(1897)과 아르튀르 랭보의 〈일뤼미나시옹 Illuminations〉(1886)은 프랑스에서 산문시를 확고하게 정착시켰다. 이밖에도 20세기로 넘어갈 무렵 산문시를 쓴 시인들로는 폴 발레리, 폴 포르, 폴 클로델 등이 있다. 독일에서는 19세기초에 횔덜린과 노발리스가, 19세기말에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산문시를 썼다. 20세기에는 프랑스의 시인 피에르 르베르디의 〈산문시 Poèmes en prose〉(1915)와 생종 페르스의 작품들에서 산문시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1) 형식에 따른 갈래 ① 정형시(定型試) : 한시나 시조처럼 일정한 운율적 형식의 제약을 받는 시. 외형률을 주축으로 한다. ② 자유시(自由詩) : 정형시가 지닌 형식적 제약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형식의 시. 행과 연의 구별이 있고 내재율을 가진 시로 현대시의 주류를 이룬다. ③ 산문시(散文詩) : 최근에 나타난 형태이고, 자유시보다 형식상 더 자유로워진 시로서 외형상 산문과 다름 없는 시. 내재율을 지니며 연과 행의 구별은 없다. 조지훈의『봉황수』, 정지용의『백록담』등이 이에 속한다. (2) 내용에 따른 갈래 ① 서정시(抒情詩) : 개인의 주관적 정서를 표현한 시. 주관시라고도 함 ② 서사시(敍事詩) : 일정한 사건을 서술하는 장편의 서사적 구조의 시. 객관시라고도 함. 유명한 서사시로는 서양의 호머(Homer)의『일리아드』와『오딧세이』등이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김동환의『국경의 밤』등이 있다. ③ 극시(劇詩) : 운문으로 표현된 희곡 형태의 시. 세익스피어의 희곡은 대부분 극시로 씌어졌다. (3) 문예 사조에 따른 갈래 ① 낭만시(浪漫詩) : 전통에 대한 반발로 개인의 자유로운 정서를 중요시한 시. 영국의 워즈워드가 대표적 시인이다. ② 상징시(象徵詩) : 언어가 지닌 모호성, 상징성, 음악성에 깊은 관심을 보인 시로 난해한 시를 낳게 됨. 프랑스의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 등이 대표적 시인이다 ③ 주지시(主知詩) : 냉철한 지성을 바탕으로 해서 씌어진 시. T.S.엘리어트가 대표적 시인이다. ④ 초현실시(超現實詩) : 인간의 내면 세계를 중시하여 자동 기술법을 바탕으로 씌어진 시. 이상의『오감도』등이 이에 속한다. (4) 작품 경향에 따른 갈래 ① 순수시(純粹詩) : 개인의 주관적 정서나 언어의 아름다움에 집착한 시. 우리나라 '시문학파'의 시들이 이에 속한다. ② 경향시(목적시) : 특정한 이념이나 목적을 뚜렷이 나타낸 시. 우리나라 '경향파,프로문학파'의 시들이 이에 속한다. (5) 주제의 내용에 따른 갈래 ① 주정시(主情詩) :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를 주된 내용으로 한 시 ② 주지시(主知詩) : 인간의 지적인 면을 주된 내용으로 한 시 ③ 주의시(主意詩) : 인간의 의지적인 측면을 주된 내용으로 한 시 (6) 시대에 따른 갈래 ① 창가(唱歌) : 1896년 독립 신문에 처음 나타난 시 형식 ② 신체시(新體詩) : 1908∼1919년 사이에 지어졌던 시 ③ 자유시(自由詩) : 1919년 이후에 지어진 시 ...
1062    詩창작의 최고의 교과서는 詩와 詩集 댓글:  조회:4940  추천:0  2016-02-05
             - 멸치야! 막걸리야! -         술이 고파 막걸리를 받아 마시면 아주 잘 익은 곡식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더니 금방 한 양재기를 뚝딱 하고 만다   멸치를 몇개 집어 먹고 또 한잔 마셔보니 순간 다가오는 뒷 맛은 역겨운 비린내 그 자체라 멸치 이눔아! 너의 맛이 왜 이리도 형편 없는고   호통치고 째려보고 다시 입맛 다시다 멸치야 막걸리야 미안하구나 니들이 죄가 있더냐 살랑살랑 꼬리치는 혓바닥이 오늘따라 역겹구나.                  시 잘 쓰는 법  '첫 생각'을 놓치지 말라  * 손을 계속 움직이라. 방금 쓴 글을 읽기 위해 손을 멈추지 말라. 그렇게 되면 지금 쓰는 글을 조절하려고 머뭇거리게 된다.  * 편집하려 들지 말라. 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가라.  * 철자법이나 구두점 등 문법에 얽매이지 말라. 여백을 남기고 종이에 그려진 줄에 맞출려고 애쓸 필요 없다.  *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 마음 가는대로 내버려 두어라.  * 생각하려 들지 말라. 논리적 사고는 버려라.  * 더 깊은 핏줄로 자꾸 파고들라.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 거기에 바로 에너지가 있다.  멈추지 말고 계속 써라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 것을 배운 다음 글을 쓰게 되면 그 글에 힘이 실리게 된다. 자신의 깊은 자아를 믿게 되면, 이제 그곳에는 글쓰기를 회피하려는 목소리가 설 자리는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이 달려가는 곳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적어 내려가라. 제발 어떤 기준에 의해 글을 조절하지는 말라.  습작을 위한 이야깃거리를 묶어 보자  1. 방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빛의 성질에 대해 써 보자. 10분, 15분, 30분, 시간을 정해 놓고 멈추지 말고 계속 적어가라.  2. '기억이 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보자. 아주 작고 사소한 기억이라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모두 적어본다. 그러다가 중요한 기억이나 선명한 기억이 떠오르면 바로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어 내려간다. 만약 막히면 '기억이 난다'라는 첫 구절로 다시 돌아가 계속 적어보라.  3.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아주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을 하나 골라서 아주 사랑하는 것처럼 적어보라. 다음에는 같은 것을 두고 싫어하는 시각으로 새롭게 써보라. 그런 다음 이번에는 완전히 중립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글을 써보라.  4. 한 가지 색만을 생각하며 15분 동안 산책해 보자. 산책하는 동안 주변의 자연과 사물에서 그 색을 발견할 수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자. 그리고 이제 노트를 펼치고 15분 동안 적어보라.  5. 오늘 아침 당신의 모습을 적어 보라. 아침 식사로 뭘 먹었는지, 잠에서 깨어날 때 기분이 어땠는지,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에 무엇을 보았는지 등등 가능한 구체적으로 서술하라.  6. 당신이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장소를 시각화시켜 보자. 그곳은 주로 어떤 색으로 채워져 있는가?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가? 또 어떤 냄새가 나는가?  7. '떠남'에 대해 써보자. 내용은 어떤 것이라도 상관이 없으며 단지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8. 당신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  9.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10. 당신이 몸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써보라.  11. 당신의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 묘사해 보라.  12. 다음과 같은 것들에 대해 적어 보라. 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은 금물이다. 실제로 있는 그대로 적어라. 솔직하고 상세하게 접근해야 한다.(수영하기, 하늘에 떠있는 별, 당신이 경험했던 가장 무서웠던 일, 초록빛으로 기억되는 장소, 性에 대한 의식이 생기게 된 동기 혹은 최초의 성 경험, 신의 존재나 자연의 위대함을 깨달았던 개인적 체험, 당신의 인생을 바꾼 책이나 문구, 육체가 가진 한계와 인내, 당신이 스승으로 섬기는 인물)  13. 시집 한 권을 꺼낸다. 아무 데나 책장을 열고, 마음에 드는 한 줄을 골라 적은 다음, 거기서부터 계속 이어서 글을 써보자. 쓰다가 막히면 첫 줄을 다시 적은 다음 새로 이어서 쓴다. 다시 쓰는 글은 좀전에 썼던 글과 완전히 방향이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써본다.  14. 당신이 동물이 되었다고 상상해보라. 당신은 어떤 동물인가?  나태함과의 싸움  텅 빈 노트 또한 에고가 끊임없이 싸우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이다. 당신 속에서 싸움을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싸우도록 내버려 두라. 말할 때는 오로지 말 속으로 들어가라. 걸을 때는 걷는 그 자체가 되어라. 죽을 때는 죽음이 되어라. 밑도 끝도 없는 죄의식과 회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편집자의 목소리를 무시하라  만약 당신이 열심히 창조적 목소리를 내려는데 편집자가 성가시게 달라붙는 느낌이 들어 작업을 진행시키기 힘들다면 편집자 입에서 나올 법한 소리를 한번 적어보라. 편집자를 정확히 알면 알수록 편집자를 무시해 버리기도 한결 수월해진다.  바로 당신 앞에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  만일 내가 겁을 낸다면, 내가 쓰는 글도 왜곡되어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지 못하게 된다. 작가는 작품을 쓸 때 모든 것을 항상 처음 대하는 기분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당신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하라.  내면의 잠재능력에 가 닿아라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믿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목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곧장 나가라. 시의 온기에서는 발을 떼고 시에 '대하여' 말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시인과 시는 다르다  우리가 쓰는 글은 순간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내가 만들어낸 시는 그 시를 쓰고 있을 때의 내 생각, 내 손, 나를 둘러싼 공간과 내가 느낀 감정들일 뿐이다. 당신은 좋은 시를 쓰고, 그 시에서 떠나라. 시에 들어가 있는 단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 몸을 빌어 밖으로 표출되었던 '위대한 순간'이다.  논리를 뛰어넘어 모든 것을 수용하라  우리 마음은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정도로 수용적이어야 한다. 개미 한 마리와 코끼리 한 마리 안에서 공통된 다른 하나를 볼 수 있는 폭넓고 열린 시각을 가져야 하며 그것을 거리낌없이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은유는 이러한 진실을 반영한 것이기에 종교적이다.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다  글을 쓸 때 모든 것을 풀어주라. 글쓰기는 자신의 에고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대로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의 인간 존재임을 드러내보이는 것이다. 바보가 되어 시작하라. 고통에 울부짖는 짐승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시작하라.  강박증의 힘을 이용하라  작가란 종국에는 자신의 강박증을 쓰게 되어있다.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강박증에는 힘이 있다. 그 힘을 거부하지 말고 이용하라. 창작에 대한 강박증은 무언가 가치있는 길을 찾아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술을 마시는 것은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아닌 일종의 회피이고 게으름이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라  우리의 삶 모든 순간순간이 귀하다. 이것을 알리는 일이 바로 작가가 해야 할 일이다. 한 모금의 물, 식탁에 묻어있는 커피 얼룩에 대해서까지 "그래!"하고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세부묘사는 우리가 만나는 세상 모든 것들, 모든 순간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하는 것과 같다.  케이크를 구우려면  당신 마음에서 나오는 열과 에너지를 첨가하라. 강에 대해 쓰고 있다면 그 강에 온몸을 적시라. 글이 글을 쓰도록 하라. 당신은 사라진다.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말라. 열을 가하다 중단한다면 그것은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글쓰기는 듣기에서 시작된다  만약 당신이 사물의 이치를 잡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시를 쓰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은 것이다. 좋은 작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많이 읽고, 열심히 들어주고, 많이 써보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파리와 결혼하지 말라  문학의 책임은 사람들을 깨어있게 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하고, 살아 숨쉬도록 하는 것이다. 글을 쓸 때는 마음 속에 무수한 길들이 열리는 법이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들판으로 달려가서는 안 된다. 파리의 존재를 인식하고, 더 나아가 원한다면 파리를 사랑할 수도 있겠지만, 파리와 결혼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글쓰기는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자신이 글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기 체면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한 방편이나 도구로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 자신의 재능에 대해, 작품에 대해 보내는 칭찬에 기대 살아가는 한 그 작가는 다른 이들의 비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보다는 우리의 근원적인 원조자에 대해 아는 편이 작품성을 높이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당신의 깊은 꿈은 무엇인가?  소망들을 글로 적는 것은 우리 인식의 한가운데에 그 소망을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꿈은 우리가 삶 속으로 관통해 들어가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때론 문장 구조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사고 방식은 문장 구조에 맞추어져 있고 사물을 보는 관점도 그 안에서 제한된다. 당신이 결국에는 인간이 만든 언어 체계 속으로 돌아가겠지만, 당신과 이 세상을 이루고 지탱하며 관통하고 아우르는 그 근원적인 큰 흐름을 알고 있어야 한다.  말하지 말고 보여달라  독자들에게 당신의 감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감정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자신의 작가라는 사실을 잊고 비판적인 편집자 행세를 할 필요는 없다.  그냥 꽃이 아니라 그 꽃의 이름을 불러주라  사물의 이름을 불러주어 그 사물의 존엄성을 지켜주라.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근원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꽃' 대신 '제라늄'을 말할 때 당신은 현재 속으로 더 깊게 뚫고 들어가게 된다.  평범과 비범  우리는 세부묘사를 대단하지 않게 여기거나 개미나 파리같은 것에만 사용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이미 평범함과 비범함을 가지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세부묘사와 우주는 서로를 변화시켜 준다.  이야기 친구를 만들라  작가는 모든 소문과 지나가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책임이 있다. 작가는 어떤 사건에 대해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를 원한다.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우리는 앞서 있었던 모든 작가들의 짐을 나르고 있다. 작가들은 다른 작가들과 사랑에 빠진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사랑하게 되는 능력이 당신 안에 있는 능력을 흔들어 깨운다. 그들도 훌륭하고 나도 훌륭하다. 예술가는 외롭고 고통받는 존재라는 생각 같은 것은 떨쳐버려라.  동물적인 감각으로  고양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다. 길을 잃어버릴까 하는 두려움이 바로 항상 길을 잃어버리는 이유인 것이다. 언어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끼라. 머리를 위 속으로 끌어내리고 소화시키라. 정맥에서부터 곧장 펜을 통해 종이 위에 토해 놓게 만들라. 제일 좋은 글은 당신의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것이 실린 글이다.  자기 마음을 믿어라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의 사고 속에 똑바로 서 있는 훈련이 따라야 한다. 자신의 만들어낸 질문에는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종이 위에 안개를 옮겨 놓지 말라.  변덕스러운 마음을 길들이는 법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이 작업보다 훨씬 재미있는 일들이 백 가지도 넘게 나를 유혹하는 것을 항상 느낀다. 마음은 항상 일과 집중력에 대해 저항하려 든다. '오, 그건 그냥 게으름일 뿐입니다. 어서 가서 일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 오히려 당신을 혼자가 될 수 있게 해준다.  성, 그 거창한 주제에 대하여  우리는 먼저 긴장을 풀어야 한다. 화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당신과 그 화제와의 관계를 발견하라. '에로티시즘'이라는 단어를 다루기가 벅차다면, 이렇게 해보라.  * 무엇이 당신 몸을 뜨겁게 만드는가?  * 성과 관련된 과일 이름을 아는대로 모두 적어보라.  * 당신이 사랑에 빠졌을 때 먹는 음식은 무엇인가?  * 당신의 신체 중에서 가장 성적인 곳은 어디인가?  * 당신이 맨 처음 성애를 느꼈던 기억은?  글쓰기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라  그렇다. 그냥 쓰라. "그래! 좋아!"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우리가 글쓰기의 심장 안에 있다면 장소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 더 멀리  당신이 끝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멈추었던 곳에서 조금 더 멀리 나갔을 때 제어할 수 없는 아주 강한 감정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최고의 글을 쓰고 있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낀다. 충분히 자신을 밀고 나갔고 철저하게 에고가 깨졌다고 느낄 때조차도 조금 더 앞으로 밀고 나가라.  인생에 대한 연민  우리에게 두려움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무지와 암흑의 장소에서 출발한 글쓰기가 결국에는 우리를 깨우치게 할 것이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사물은 그냥 있는 것이다. 당신이 글을 쓰기 원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라. 그러니 계속 쓰라.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또는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하는가?"라고 묻되, 깊이 생각하지는 말라.  작가로서 살아남는 길  작가로서는 강하고 용감하지만 한 인간으로 돌아오면 한없이 무기력하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위대한 사랑과 생활인으로서 우리 등에 달라붙은 불명예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종이에는 멋진 시를 적지만 자기의 삶에는 침을 뱉거나, 자동차를 저주하거나,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매도하지 말라. 책상에서 시를 치우고 부엌으로 돌아가라.  자신이 쓴 글을 완전히 떠나보내라  자기가 만들어낸 작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즉흥 글쓰기 창구는 바로 이러한 위대한 전사가 될 수 있는 기회이다. 자신이 쓴 글을 완전히 떠나보내는 것, 그럴 수 있을 때 작가로서 완전하게 설 수 있다.  방랑을 위해 들판으로 나가라  한번쯤은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분별력을 놓아버린 천치가 되고 낯선 들판을 헤매는 방랑자가 되기를. 당신이 말을 겁내는 사람이라면, 말 한 마리를 사서 말과 친구가 되어라. 스스로에게 방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허용하라.  시간이 작가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는 목숨 전체를 기꺼이 그 글 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병이 날 것 같을 때까지 기다리라. 법에 얽매이기보다는 살아있는 존재를 향해 친구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심장 전체로 글을 쓰라. 종이에서부터 걸어나와 우리의 인생 전체로 들어가는 것이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예정되어진 운명이 글쓰기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 이제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게 된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전술의 변화와 상관없이 무슨 일이 있어도 글쓰기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외로움을 이용하라  익숙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 서 있을 수 있는 법을 배우기 위해 고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의 글이 또 다른 외로운 영혼에게 닿을 수 있도록 손을 뻗으라.  더 큰 자유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라  당신이 내면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당신은 당신으로 된다. 당신이 집에 가는 이유는, 더 큰 자유를 얻기 위해서다. 뿌리로 돌아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뿌리에 고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뿌리가 묻힌 곳에서 발견되는 고통을 견디기 싫어서 그것을 외면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도망치려 한다. 단 한 사람과 접촉하고 교제하면서도 인간 전체에 대한 연민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독자에게 당신 심장 더 깊은 속으로 들어오는 기회를 만들어 주라.  사무라이가 되어 글을 쓰라  만약 그 시에 한 줄이라도 에너지가 있다면, 그 한 줄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잘라버려도 좋다. 우리의 글이 계속 타들어가 환한 빛을 내는 지점이 결국 하나의 시와 산문이 된다. 미적지근한 글은 사람을 잠들게 만든다.  다시 읽기와 고쳐 쓰기  산만한 정신을 뚫고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훈련이다. 지금 이 순간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잘라버릴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전사, 사무라이가 되어야 한다.    독자를 위한 시 읽기 1) 시란 무엇인가?    시를 읽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문제가 있다. 시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그것은 시 독자들이 시의 정체를 이미 다 밝혀내어 터득하고 있어서 일까? 아니면 알고 싶지 않아서 일까?: 아마도 정확한 대답을 도출해내지 못해서 일 것이다. 시는 정답이 없다 는 것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많은 시인이나 시 연구가들이 시에 대한 각각 자기 나름의 개성 있는 정의를 피력해 왔다. 그러나 그 정의가 시의 얼굴에 각양각색으로 색칠을 해 놓고 있어 어느 한 지점에 통일시키기가 어렵다. 그만큼 통일한 한 개의 해답을 산출해 낼수 있을 만큼 시가 단순하거나 간단한 것이 아니다. 아주 다양한 무한다면체 또는 철면 조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개의 정확한 해답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시의 특성이다.    동서양의 시의 원조로 알려진 두 사람의 시의 정의를 보자. 먼저 동양의 대 석학인 공자(孔子)는 시를 사무사(思無邪), 즉 생각에 사투함이 없는 것으로 해석했으며 서양의 대 철학자 아리스도텔레스(Atistoteles)는 시를 운율적 언어에 의한 모방 즉 사물의 형상을 운율적 언어에 담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보면 동양의 공자는 시의 정신면에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의 기법면에서 치우친 인상이 짙다. 따라서 동양의 그것이 관념적이라면 서양의 그것은 실제적임을 알 수 있다. 이 두 사람만의 해석을 놓고 볼 때도 보는 관점이 이렇게 차이가 있는데 열사람 의 해석은 열 가지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해답은 아니다. 다면체 시의 어느 일면의 해명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면체 시 전면을 해명하는 정의가 나오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시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 정답일 수 밖에 없다. 시는 시대와 개인의 시각에 따라 편차를 보일뿐 아니라 그 다양한 성질과 요소가 모두 인간의 체험을 담아내는 그릇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시는 인간에 대한 천작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시의 제재가 자연이든 우주이든 결국 인간 문제에 귀결되며 인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수 많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시인들은 인간존재의 근원인 삶을 탐색하게 되면 그러한 과정 속에 시는 삶을 반영하는 도구로 원용된다. 따라서 시는 인간에게 카다르시스를 제공해야 하며 이러한 정화적용은 인간의 정서를 순화하고 감동과 진실을 공급하며 상상력을 통한 추경험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의미에서 시는 궁극적으로 보다 향상된 삶보다 풍요로운 인생을 위한 양식이며 토양이며 자극제가 된다. 그러므로 시가 진정한 생명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삶 속에 표출되는 인간의 진실을 포착하는데 있다. 말하자면 시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고 나아가 카다르시스를 통해 성숙된 의식의 소유자로 완성되어 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는 절제된 언어 속에 인간의 진실을 함축 시켜야 하므로 흔히 시인을 언어의 발견자, 또는 창조가로 지칭한다.  2) 시의 형태    무한다면체의 시는 논작에 따라 여러 갈래의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운율적인 면 내용적인 면 시대적인 면 등으로 대변 될 수 있다. 운율적인 면에서는 정형시, 자유시로 구분할 수 있으며 내용적인 면을 기준으로 대변한다면 서정시, 서사시로 그리고 시대를 원칙4으로 나눌 때는 고대, 근대, 현대등으로 대변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고정불변의(관례에 따른) 원칙은 아니다. 구분자에 따라 얼마든지 상이하게 또는 세부적으로 나눌 수가 있다. 그러나 팔자가 섬세하게 세분하지 않는 것은 여러분의 시 읽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혼란스러워 현낙적 세분을 퇴하고 간략하게 분류한 것이다. 따라서 편의상 정형시와 자유시의 형태에 국한시키고자 한다. (가) 정형시    운율을 기반으로 하는 고정된 틀을 갖춘 시를 말한다. 운율은 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요소 중 하나로서 시의 형태미를 이루는 기본 틀이 된다. 이것은 또한 서정시의 기반이 되는 요체이며 언어질서를 제한하는 언어의 율동이다, 정형시의 기반을 이룬 이 운율(음악성)은 고조선 시대의 여성 여옥이 공후라는 악기에 실은 애절한 가락의 노래말로부터 시작된 공무도하가를 출발점으로 삼고 잇다. 이러한 노랫말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형시로 장착이 되었으며 정형시의 자구나 음수율이 일정하게 고정된 것도 노랴 가사에 알맞은 짜임새에 기인한 다고 볼 수 있다. 이 짧은 형태의 정형시는 3 4 4 4, 3 4 4 4, 3 5 4 3 의 자수율을 기본형태로 삼는다. 그러나 반드시 이러한 기분형태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종창의 초구 3자와 다음의 5자는 지키도록 지키도록 되어있는 것이 시조다.   정형시(시조)의 운율이 오늘날 자유시의 바탕이 되어있다. 자유시의 시행이나 언어배열을 운율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보자들은 정형시를 먼저 익힌 후에 자유시로 가는 것이 운율 훈련을 위해선 자연스런 순서가 될 것이다. 여운과 완결의 면에서 정형시를 능가할 시가 없기 때문이다.  (나)자유시    정형시가 전통적인 일정한 형태적 틀에 얽매여 있다면 자유시는 이름 그대로 일정한 형태적 구속에서 벗어난 시를 말한다. 말하자면 외적 형태에 구애 받지 않고 체험내용에 따라 독자적인 형태를 갖게 된다. 즉 정형시가 작은 고정된 형, 고정된 운, 고정된 억양율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시인 각자의 선택에 따라 각자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형태의 시다. 그러나 시적인 요소를 완벽하게 구비해야 할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행이나 연 구 분은 물론 중요한 요소인 운율(내재율)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문명의 발달로 인간체험의 폭이 증폭되고 다원화됨에 따라 작은 그릇의 한정된 정형시에 만족하지 못한 시인들이 자유시를 개발해 냈으나 자유시에도 다양한 체험을 완전히 담아 낼 수 없다. 자유시라고 해서 무한히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무한히 자유롭고 싶은 사람들로 하여 산문시라는 것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행 연의 구분이나 운율의 구속까지 모두 벗어버린 이름 그대로 가까운 것이다. 말하자면 자유시와 산문 사이의 모호한 위치에 있다. 전혀 시의 매력을 느낄 수 없는 시다.  3) 시의 요소    시가 되려면 구유 해야 할 요소들이 있다. 이를 자잘하게 세분한다면 역시 삶속에 체험되는 모든 사물에 명칭을 부여하여 열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관례대로 몇 가지 즉 언어, 상상, 비유 등으로 간략하게 정리하려고 한다.  (가) 언어    시는 말의 예술이며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라고도 한다. 그만큼 언어가 시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어에 의해 죽은 시 살아 있는 시로 가름 된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시속에서 일상어와 시어를 구분하도 있다. 그러나 언어가 처음부터 시어와 일상어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모두가 일상어이고 시에 쓰이는 언어도 일상어로 적조 된다. 따라서 그 일상어는 하나 하나 명확한 독자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시 속에 도입된 일상어, 그 자체로는 시적가치를 말하지 못한다. 다만 그것이 문맥사이에 놓여서 특수한 작용을 하기 위해 다른 언어와 연결되어 특수한 수법으로 특수하게 사용 될 때 비로소 시어로 전이되어 특수한 효과를 나타내게 된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일상어를 시어화 하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독자들은 시어화 된 언어를 통해 시인의 체험을 추경화하게 된다. 그러나 주의 할 것은 시 읽기 에 있어 시어로 전이 되기 이전의 일상적 의미, 즉 낱말의 외연적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나서 전이된 시어 속의 효과 즉 상징성, 암시성 또는 함축성(내포적 의미)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시어로 전이된 언어(시)를 읽을 때 가장 두드러진 현상 즉 표현이 매우 구체적이며 미적기능을 지향하고 있으며 논리적 관계가 표면화되지 않고 표현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 쌓인 비  울이 풀렸다.  터진 실밥이 날리다가  와르르 치마폭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려 땅 위의 무덤 같은 내 초막을 덮쳤다 졸시 < 봄꿈.1호> 중에서    올 이란 낱말은 일상적으로 실이나 줄의 가닥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것을 일상어로 읽으려면 이 시에선 합리성이 없다. 비는 실이나 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대신에 빗방울 이라고 쓴다면 합리성은 있어도 암시성은 없어진다. 따라서 올이 풀렸다 라든가 터진 실밥이 날리다가 와르르 치마폭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려 라는 표현은 폭우가 쏟아지는 현상을 묘사한 것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고뇌 라는 일상어 대신 비 라는 상징성을 거느린 언어로 묘사함으로써 미적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 심상(Image)    복합 구조물인 시의 몇 가지 요소 중 비교적 비중이 큰 것이 심상이다. 심상을 영상(暎像) 또는 사상(寫像)이라고도 하며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감각적 체험을 해석하는데 사용된 용어 로 풀이 하고 있다. 그러나 문학이 전용한 이래, 문학에서는 사물을 지칭하는 언어로 해석하고 있다. 가령, 백합꽃 이라는 말을 할 때 우리 의식 속에 하얀 꽃송이가 감각적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므로 백합꽃 이라는 이 언어가 심삼 곧 이미지인 셈이다. 문학용어 사전에도 이미지를 어떤 사물을 감각적으로 정신 속에 재생되도록 자극하는 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구상어 는 모두 이미지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이미지를 두 갈래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포괄적 개념적 개념과 협의적 개념이 그것이다. 포괄적 개념은 모든 대상의 윤곽을 의식 속에 환기시키는 것을 말하고 협의적 개념은 시각적 대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협의적 개념의 그것은 눈썹 이라는 언어는 이미지가 될 수 없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달 같은 눈썹 한다면 이미지가 된다. 눈썹이 반달에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각적 체험을 재생시키는 언어는 모두 이미지에 속하지만, 비유적 표현이 시로써는 생동감이 지배하는 이미지에 와 있다. 그것은 문명의 발달로 인간의 지능도 듣기 보다 보기 쪽으로 발달한 연유로 보인다. 그러므로 보여주는 이미지가 현대시의 육체라 할만 하다. 그리고 보여주는 시는 감각적 체험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이다. 가령 비가 온다 라고 하면 이미지가 없는 사실기록의 직접진술에 불과하다. 비가 어떻게 오는지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집 전체를 차지하고도 배가 고픈/  비가/ 사방으로 갈기를 뻗어/ 떠 내 려오는 비명을 걷어 감키고도 배가 고픈/ 비가/ 등줄기를 치켜들고 바람이 되어 달린다// 라고 한다면 폭우가 쏟아지는 현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시는 직접진술을 피하고 그림을 그려 보여주듯하는 묘사로 일관 시켜야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A사물을 끝까지 A사물로 끌고 가는 것보다 B사물로 바꿔버리는 쪽이 매력을 더한다. 여기서는 비가 바람으로 전이된 사실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재구성이나 전이 시키지 않으면 사실의 기록 이 될 수 밖에 없다. 사실의 기록은 시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재구성과 전이 는 시의 중요한 수사적 기능이다. 여기서 다양한 이미지의 기능을 요약정리 하자면  구체적 묘사를 위한 사물성  환상적 기능  감각적 호소력  개념, 관념, 상사의 산물화 등이다.  그리고 이미지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지만 지면상 생략하기로 한다. (다) 비유    우리의 언어는 한정적인데 반해 사물의 종류는 무한정적이다. 게다가 사물은 모두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 개성을 제대로 나타내려면 비유법을 통하지 않을 수 없다. 비유란 비교를 통해서 사물의 특성을 드러내는 수사의 일종이다. 다시 말하면 비유는 한정적인 언어가 비유에 의해 언어의 한계성을 초월하여 무한한 의미를 표현하는 수사법이라 할 수 있으며 시에서는 중요한 기능으로 꼽힌다. 이러한 방법은 간접표현이기 때문에 매우 암시적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사물을 표현 하려고 할 때, 우리는 이미 알고있는 기지의 사물을(객관적 상관물)끌어와서 비교함으로써 미지의 사물을 파악 하게 하는 방법을 말한다. 그러므로 비유는 비교를 통한 사물해명의 수사법이다. (유의)이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비유의 요소는 본의, 유의, 유사성, 이질성 등이며 본의, 유의가 유사성, 이질성을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비유의 사명은 독특한 인식과 새로운 발전을 기성품인 언어를 가지고 비교를 통해 의미의 변화 또는 언어전이를 모색함으로써 새로움을 획득하는 데에 있다. 또한 비유에는 직유, 은유, 제유, 환유, 인유, 의성어, 의태어, 의인법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은유다.  (라)직유    사상(寫像)을 선명히 드러내는 강의적 효과가 있어 명유라고도 하는 이 직유는 유사하지 않은 두 개의 사물에 대한 직접적인 비교의 언술을 말한다. 이러한 형식은 비교하는 사물과 비교되는 사물이 처럼, 마냥, 같이, 듯이, 만큼, 보다 등이 비교조사에 의해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결합되는 경우이다. 관념과 보조관념이 결합되는 경우이다. 따라서 비유의 네 요소가 모두 표현화 되며 또한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직유의 종류는 기술적 직유(단일, 확장)와 강의적 직유가 있으며 구성에 있어서는 대체로 3단계의 구성법을 지니고 있다. 그 1단계는 무덤같은 초막 처럼 원관념, 보조관념이 한 단어로 결합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2단계는 바아뒤 점같은 나를 싸악, 쓸어 줘며, / 비가 땅끝으로 가는 중이다, 와 같이 한 문장으로 결합되는 경우이고 3단계는 기둥과 함께 나둥그러져/ 머리에 대못으로 박히는 비의 부리를 / 두 주먹으로 짓 으깼지만 / 머리칼 하난 남기지 않고 / 벌초나 하듯 싸악. 쓸어 쥐며 / 바다 위 점 같은 나를 싸악 쓸어 줘며 / 비가 땅끝으로 가는 중이다, // 와 같이 한 연으로 이뤄지는 경우이다. 따라서 비유는 비교하는 두 사물이 동직성이기 보다 이질성 속의 동질성을 발견하여 연결하는 것이 더욱 효과가 있다.  (마)은유    메타퍼(metaphor)라고도 말하는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연결이 없이 바로 직결하는 수사법이다. 그러므로 암시성이 강하며 암유(闇喩), 간유(肝油)라고도 한다. 그것은 비유의 요소 중 원관념, 보조관념만 밖으로 드러나고 이질성, 유사성은 숨겨져 있기 때문에 매우 함축적이다, 따라서 현대사에서 압도적으로 쓰이는 가장 비중이 큰 요소인 만큼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비유의 세계를 넓게 열어놓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원형을 유지하지 않는 것도 비유와 다른 점이다. 그것은 보조관념이 원관념을 다른 의미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제3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이것을 언어적이 라고 하며 전이된 언어 속에 함축된 상징적 의미는 독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은유야 말로 독자의 상상력 개발에 기여할 뿐 아니라 시인의 능력을 가름하는 척도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언어전이로 이뤄지는 새로운 의미의 언어는 언제나 1회적이란 점이다. 그 속은 같은 언어를 반복 사용할 땐 아무리 새로운 언어였더라도 낡은 언어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언제나 예리한 언어감각으로 비유의 기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새롭고 참신한 언어를 계속 창출해 내야 한다. 은유의 종류는 병치, 치환, 확장 등 여러 가지가 있다. 4) 시의 경향    시대변천에 따라 인간의 감수성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인간의 감수성에 따라 시의 흐름도 변화를 보이게 마련이다. 인간의 감수성은 낡은 것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움을 찾아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메마르고 딱딱한 고전주의에 만족하지 않고 거기에 반대되는 몽환적인 감정의 세계인 낭만주의를 발견해 낸 것이다. 이것은 영접을 지향하는 무한의 세계를 노래하며, 이러한 꿈과 이상이 현실에 실현되지 않을 땐 허무에 빠지게 되고 허무의식으로 탄식과 통곡을 거느린 우울한 정서에 탐닉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이러한 세계에 오래 있지 못한다. 또 다른 세계로 비약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서의 강렬성을 작품 속에 담아내던 낭만주의에서 구성의 강렬성을 강조한 이미지즘 시가 고개를 내밀게 된 것이다. 감정이나 관념 등의 대상을 객관적으로 사물화 시켜서 사물의 유추에 의해 이미지를 전개 시켜 나가는 방법을 사용한다. 여기서 머물지 않고 시인은 새로운 세계를 시도하게 된다.   인간의 경험은 복잡하고 다원적이며 이러한 다원적인 경험을 우리는 모두 정신 속에 저축하게 되는데, 이런 한 이질적인 여러 경험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예술적 정서로 승화시켜 형이상 시를 만들어 내게 된다. 형이상 시는 상상력이 크게 작용한다. 그것은 형이상적 세계, 즉 영적세계를 탐색하게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초현실주의 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현실 세계와 대비되는 꿈 과 자동연상 의 세계인 것이다. 현실은 거짓으로 가려져 있어 진실성이 없기 때문에 무가치하다는 인식에서 나온 발상이다. 그러므로 현실을 떠나 초월적인 우주와 관계를 맺는 4차원의 세계인 것이다. 여기엔 의식적인 논리나 계산이 개입될 수 없으며 완전히 무의식이 이미지를 과감하게 그대로 기술토록 방치하는 자동기술법에 의존한 시다. 그러므로 특수한 인간 정신의 내부를 투사한 시로 볼 수 있다. 이어서 단명하지만, 실험적인 경향의 시도 순환궤도를 스쳐 지나가고 있다. 젊은 계층에 유행되던 포멸, 투사, 해체 등의 유형이 그것이다. 해체 시는 한 때 젊은 시인들을 매료시킨 적이 있다. 이름 그대로 형태의 해체, 언어의 해체, 의식의 해체 등으로 기형적인 시 형태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시 속에 단편적인 스토리를 삽입하는 시 소설 이란 시도 시도되고 있다. 어떻든 시는 시여야 하고 시는 결국 인간탐구 라는 인식에 촛점을 맞추어 읽어야 한다.     시 창작의 최고의 교과서는 시이고, 시집이다. 그것도 좋은 시이고 시집이어야 한다.  앞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시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좋은 시집을 권하고 무조건 필사할 것을 숙제로 내준다. 눈으로 읽는 리듬과 손으로 쓰며 배우는 리듬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도 신춘문예 당선 전까지 참으로 많은 선배시인들의 시를 옮겨 쓰며 시 쓰는 법을 배웠다. 시인이 되려는 제일 마지막 관문은 선배들의 좋은 시와 시집이 나에게 시가 무엇이며, 시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내 친구 최영철 시인은 내 시집 발문에 나를 ‘타고난 시인’이라고 쓴 적이 있다. 너무 일찍 배운 슬픔으로 감성은 타고 났을지 몰라도 나 역시 ‘만들어진 시인’임을 고백한다. 손에 펜혹이 생기도록 좋은 시를 옮겨 적는 연습을 통해 시를 배웠다.  시인이 되는 교과서는 시인들의 시에 있고, 시집에 모여 있다. 시인은 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받는 것이 아니다. 선배 시인들의 인정을 통해 시인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멀리서 혹은 엉뚱한 곳에서 시인의 길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이다.  나는 앞에서 많은 것들이 시인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 그런 것들 중 제일 마지막에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 준 것은 시다. 시인이 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후배라 할지라도 좋은 시를 발표하면 한 번 옮겨 적어보며 그 시의 비밀을 찾으려고 한다.  시인을 꿈꾸거나, 시인인 그대여. 시를 읽자. 시집을 읽자. 그것이 시인을 만들고, 시인의 깊이를 더욱 깊게 만들어준다.     체험적 시창작론      최영철                                                                    - 제1장 -  다른 모든 일도 그렇지만 시를 쓰는 데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나는 시를 잘 쓸 수 있다'정도로는 안되고 '나는 시를 잘 쓴다'고 자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기란 쉽지 않다. 습작시절에는 자기 시의 어줍잖음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시의 완벽함에 곧잘 절망한다. 그래도 자신감을 가지자. 안되면 매일 아침 '나는 정말 미치도록 시를 잘 쓰는 놈이야'하는 자기 최면을 반복해도 좋다.    그러나 자만심은 금물이다. 자신감은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만 필요한 강정제 같은 것이다. 일단 다 쓴 작품에는 일이 끝난 뒤 거시기가 스르르 풀이 죽듯이 기가 죽어 있어야 한다. 그것을 긍휼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더 나은 작품을 쓸 수 있다. 출판 일을 하다 보면, 가끔 대학노트 몇 권 분량의 시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천재시인들이 있다. 하루에도 수십 편을 갈겨 쓰며 집에는 이만한 분량의 작품이 또 있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혼자 떠벌린다. 이런 시인일수록 자기 시가 한국시사를 바꾸어 놓거나 출간만 하면 공전의 대히트를 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만이다. 자기 시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흥에 겨워서 계속 써 갈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천재시인들에게는 약도 없다. 계속 천재로 착각하며 살도록 내버려두는 방법뿐이다. 그 천재시인 출판사 문을 나서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아, 천재는 외로워.'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자신감은 없고 자만심만 있는 엉터리 시인인지 모른다.  아니 나는 아직 그런 알량한 자만심조차 없다. 쓰기 전이나 쓰고 나서나 내 재능에 대한 의심 때문에 주눅이 든다. 그러나 이런 의심조차도 없었다면 지금까지 버티기나 했을까.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계속 턱걸이하며 낙방의 쓴잔을 마시고 있을 때 가장 나를 괴롭힌 것이 '나는 도대체 시를 쓸 재주나 있는 놈인가?'하는 의문이었다. 그때마다 나의 자문자답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했다. 10년을 하면 사법고시라도 붙을 판인데 돈도 명예도 안 되는 시인 자격증 하나 못 따는 걸 보면 글렀구나 싶다가도, 사법고시에 되는 것보다 시인이 되고 싶었으니 이런 초지일관이면 뭐가 되도 되지 않겠는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재능이란 말의 뜻을, 하고자 하는 일에 집착하는 능력이라고 새롭게 정의 해 버렸다. 즉, 재능은 그 분야의 특별한 재주를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의지를 부여받는 것이라고 결론지은 것이다. 그것 때문이라면 추위와 굶주림도 참을 수 있고 멸시와 외로움의 고통도 참을 수 있는 것, 그것 이외에는 세상 모든 것이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것, 이런 경지가 바로 천부적인 재능이 부여된 경지라고 나는 믿기로 했다.  그때는 그랬는데, 재능도 세월 따라 닳아 없어지는 모양이다. 지금은 그 믿음이 조금밖에 없다. 그 시절은 시 때문에 겪는 고통이 즐거웠는데 이제는 그 고통이 조금씩 고통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요즘 나는 반성하고 있다.   1.자신의 재능을 추호도 의심해 본 일 없는 천재시인들은 이제   부터 자신의 재능을 열심히 의심하라. 2.자신의 재능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나 같은 어중개비 시인들   은 매일 아침마다 '나는 시를 너무 미치도록 잘 쓴다'는 최면   을 걸어라. 그 최면이 통하지 않으면 계속 절망하라. 시 때문   에 절망하는 한 당신은 누구보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시인   이다.                              - 제2장 - 시 창작 강좌 같은 데 어쩔 수 없이 나가서 씨뿌릴 때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낀다. 우선 내가 지독히도 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내 체형이 숏다리이기 때문이고, 남에게 시를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할 만큼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더럽게 '시를 못 쓰기 때문이다. 되지도 않는 말을 한참 떠들다가 말문이 막힐 대는 수강생 중에 누가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린다.  '야, 그만해라. 너는 뭐 짜다라 잘 쓰니.'  그러나 나도 할말은 있다. '시는 배우는 게 아닙니다. 배워서 쓰는 시는 엉터립니다. 배워서 쓰는 시는 자기 게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대충 주워섬기고 나는 단에서 내려온다. 이것이 우둔한 강의를 은폐하는 비법이다.  나는 순전히 혼자서 시를 썼다. 그 흔한 문예반도 백일장도 한번 해보지 않았다.  시 잘 쓰는 법에 대한 책을 읽은 적도 없다. 유치한 대로 써 나가다 보니 그런대로 최영철적인 언어와 최영철적인 어법이 자리를 잡았다. 남의 시의 장점을 흉내내고 고운 말을 달달 외우기라도 했다면 내 시가 지금처럼 험악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시 잘 써서 100점 받으려고 한 게 아니니까. 시는 몸 전체에서 우러나는 것을 받아쓰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는 소설처럼  작업이 될 수 없다.  시를 잘 쓰려는 노력보다 무엇을 쓸 것인지에 대해 노력하는 게 좋다.  자기 몸 전체가, 생의 편편들이, 웅웅거리는 가슴이,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주목하는 게 좋다. 자신의 변덕스러운 마음이 주로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슬퍼하고 무엇에 분노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좋다. 남들이 무수히 쏟아놓은 애찬과 탄식의 언어를 동어 반복할 것이 아니라 많고 많은 시인 중에 '내가 또 있어야  하는'이유를 빨리 찾는 게 좋다. 그것이 자기 것이며 자신이 가장 잘 써낼 수 있는 것이며 자신의 주제에 어울리는 것이다. 고상하지도 않으면서 고상한 시를 쓰는  시인들이 우리나라에는 너무 많다. 1.시는 배우는 것이 아니다.  자기 몸이 부르는 대로 받아 적어라.  그래도 시가 안되면 자기 몸에 이상이 있는 것. 2.시를 알기 전에 자신의 주제부터 알아라.  자기 주체가 성스러우면 성스러운 시를 쓰라...        
1061    散文詩이냐 산문(수필)이냐 댓글:  조회:4419  추천:0  2016-02-05
산문시이냐 산문(수필)이냐          강 인 한            산문시는 시입니다. 산문 형태를 취했을 뿐 본디 시가 지니고 있는 운율, 함축성, 센스, 이미지, 모호성, 알레고리 등의 요소를 두루 갖춘 산문 형태라면 그것은 시입니다. 산문시입니다. 산문시를 읽는 건 매우 신중하고 치밀하게 읽어봐야 하지요. 그래서 그 산문 형태를 대하자마자 빽빽한 그 형태에 질려서 공연히 어렵겠구나, 하고 곤란을 느끼게 되지요. 약삭빠른 얼치기 시인들이 그러한 점을 노려 시도 아닌 산문을 써서 시(산문시)라고 위장하여 발표하는 경우가 곧잘 눈에 띕니다. 이를테면 하수가 고수인 척 겉모습만 흉내를 내는 것이지요. 대략 어설픈 자기 시의 실력을 감추기 위해 산문시라고 포장해 봤자 잘 뜯어보면 금세 들통이 나게 마련입니다.    다음의 산문시는 이번 겨울호 계간지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퍽 재미있는 산문시입니다. 일견 산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새겨 읽어볼수록 시의 맛이 새록새록 우러나는 빼어난  시입니다.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가 날아간다 나비는 잘 접힌다 또 금방 펴진다 나비가 될까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를 깜빡인다 나비는 몸이 가볍다 생각이 가볍다 마음먹은 대로 날아가는 적이 드물다 줄인형처럼 공중에 매달려 나비에게서 달아난다 나비에게로 돌아온다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를 닮아간다 옥타브를 벗어나는 나비 따라 부르기 어려운 나비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를 넘어선다 높아지는 나비 어머나 비가 온다 어머나 비가 간다 나비가 버리고 간 나비 나비가 채우는 나비 줄인형처럼 꽃밭 속에 나비를 담근다 나비가 될까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가 발생한다 나비를 서성이며 나비가 날아간다       —심언주, 「나비가 쓰고 남은 나비」(《시로여는세상》2015, 겨울호)     이 산문시를 일반적인 자유시 형태로 바꿔서 읽어보도록 합니다. 행을 가르고 기왕이면 연도 구분해 볼까요. 이걸 읽어보면 위의 산문시가 바탕이 시였음을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가 날아간다 나비는 잘 접힌다 또 금방 펴진다 나비가 될까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를 깜빡인다   나비는 몸이 가볍다 생각이 가볍다 마음먹은 대로 날아가는 적이 드물다  줄인형처럼 공중에 매달려 나비에게서 달아난다 나비에게로 돌아온다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를 닮아간다 옥타브를 벗어나는 나비 따라 부르기 어려운 나비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를 넘어선다 높아지는 나비   어머나 비가 온다 어머나 비가 간다 나비가 버리고 간 나비 나비가 채우는 나비 줄인형처럼 꽃밭 속에 나비를 담근다   나비가 될까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가 발생한다 나비를 서성이며 나비가 날아간다        이와는 반대로 서정적인 산문이 시가 될까, 그냥 산문일까 잘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산문은 산문일 뿐입니다. 다음의 글을 읽어봅니다. 널리 알려진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도 마치 아름다운 시에 나옴직한 비유나 감각적 이미지가 가장 빛나는 부분입니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게로 흘러간다.   이것을 자유시 형태로 다음과 같이 바꿔봅니다. 요즘 유행하는 시들처럼 마침표도 빼고 행과 연을 구분하여 변형시킨 다음의 글이 비록 시인 것처럼 보일는지 모르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고 그냥 산문입니다. 이러한 산문을 시라고 쓰는 시인들이 적잖이 있는 게 오늘의 우리 시단입니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게로 흘러간다        시 아닌 산문이 그럼 어떤 글인지 '국어국문학자료사전'에서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산문형식으로 엮어지는 소설 · 수필 · 일기문 · 기행문 등은 산문정신에서 기초한다. 이것은 인생과 직결되어 있으며 운율이나 조형미에 의거하지 않고 인생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어디까지나 내용 자체의 전달로 독자에게 감명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작자가 걸어온 인생의 체험에서 비롯되는 현실의 묘사나 서술에 그 예술성이 보존된다. 특히 산문정신을 작가정신의 요체(要諦)로서 시정신과 대립시켜 제창하는 까닭은 소설의 리얼리티가 시나 운문과는 별도로 그 문예성을 보유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럼 문제를 하나 제시해 보겠습니다. 다음 글은 산문일까요, 산문시일까요?      용은 날개가 없지만 난다. 개천은 용의 홈타운이고, 개천이 용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날개도 없이 날게하는 힘은 개천에 있다. 개천은 뿌리치고 가버린 용이 섭섭하다? 사무치게 그립다? 에이, 개천은 아무 생각이 없어, 개천은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을 뿐이야.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용은 벌컥 화를 낼 자격이 있다는 듯 입에서 불을 뿜는다. 역린을 건드리지 마, 이런 말도 있다. 그러나 범상한 우리 같은 자들이야 용의 어디쯤에 거꾸로 난 비늘이 박혀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있나.     신촌에 있는 장례식장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햇빛 너무 강렬해 싫다. 버스 한대 놓치고, 그다음 버스 안 온다, 안 오네, 안 오네……  세상이 날 홀대해도 용서하고 공평무사한 맘으로 대하자. 내가 왜 이런 생각을? 문득 제 말에 울컥, 자기연민? 세상이 언제 너를 홀대했니? 그냥 네 길을 가, 세상은 원래 공정하지도 무사하지도 않아, 뭔가를 바라지 마, 개떡에 개떡을 얹어주더라도 개떡은 원래 개떡끼리 끈적여야 하니까 넘겨버려, 그래? 그것 때문이었어? 다행히 선글라스가 울컥을 가려준다 히히.     참새, 쥐, 모기, 벼룩 이런 것들은 4대 해악이라고 다 없애야 한다고 그들은 믿었단다. 그래서 참새를 몽땅 잡아들이기로 했다지? 수억마리의 참새를 잡아 좋아하고 잔치했더니, 다음 해 온 세상의 해충이 창궐하여 다시 그들의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 않니,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어, 영원히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린다 해도 넌 벌컥 화를 낼 자격은 없어, 그래도 개천은 용의 홈타운, 그건 그래도 괜찮은 꿈 아니었니?        —최정례, 「개천은 용의 홈타운」        글을 쓴 이는 이것을 과감하게 '시'라고 내놓고 있지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서 판단하건대 어디까지나 이 글은 치기만만한 산문일 뿐입니다. 아무리 높은 거액의 상금을 받았을지라도 그게 내 눈에는 기지와 해학을 앞세운 산문에 지나지 않아 보입니다. 산문정신에 충실한, 산문치고는 센스가 있는 수필이라 하겠습니다.  (요즘 수필 쓰는 이들 가운데에는 5매 안팎의 짧은 수필 쓰는 경향도 있다고 들었습니다.)저런 수필을 모아놓은 책은 그러므로 수필집으로 대우하는 게 정당할 것입니다. 시인이 '시'라고 생각하고 써서 발표한 글이 모두 시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시인이 자기 양심을 기만한 것이며, 독자 위에 군림하는 오만입니다.       
1060    산문시 쓰기전 공부하기 댓글:  조회:5311  추천:0  2016-02-05
     산문시 쓰기ㅡ                  일제강점기 시대의 여러 산문시                              1. 1920년대의 산문시   1920년대에 김소월이 향토적인 정서를 민요형의 정형시로 풀어냈다면, 한용운은 불교적인 사상을 바탕에 깔고 여성의 입장에서 조국해방을 주로 산문적인 연시 형태로 노래하였습니다. ‘님의 침묵’, ‘알 수 없어요’ 같은 시가 대표적입니다. 반면 임화는 사회개혁의 이념을 산문시로 썼는데, ‘우산 받은 요코하마 부두’, ‘우리 오빠와 화로’ 같은 시가 그러합니다.       민들레교실 1.   1920년대 사회주의 이상을 추구하던 카프 계열의 시인들 중 대표적인 시인 중의 하나가 임화입니다. ‘우리 오빠와 화로’를 감상하고 시의 특징을 찾아보세요.         우리 오빠와 화로                               임화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 ...........네 몸에선 누에 냄새가 나지 않니 - 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 말 한 마디 없이 담배 여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지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었어요........ ....... 오빠 - 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 한 계집애이고 / 영남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는 쇠 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온 오빠의 / 동생이 아니예요 / 그리고 참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 화로는 깨졌어도 화 적 같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소년 운동단원) 영남이가 있고 /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뜻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도 더웁습니다 .........                                                                                 이 시는 1980년대 후반기의 박노해나 백무산 등 민중시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산의 김진숙은 크레인에 올라가 200여일을 저항하고 있습니다. 요즘 이를 지원하는 희망버스가 그곳에 가고 있습니다. 김진숙과 희망버스를 중심으로 산문시를 한 편 써 보세요.                                             2. 1930년대의 산문시   1930년대에 독특한 산문시를 쓴 이는 백석, 오장환, 함형수 같은 시인입니다. 백석은 향토적인 정서를 함경도 토속어로 말 맛 나는 시를 썼고, 노동판을 전전한 함형수는 띄어쓰기조차 거부한 산문시를 썼으며, 오장환은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식민지시대를 벗어나려는 소망을 산문적이고 이야기체 식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한 편씩 감상해 봅시다.         민들레교실 1.   백석의 산문시 모닥불을 감상하면서 산문시적인 요소를 찾아보세요.     모닥불                                         백석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헝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갓신창 : 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질긴 끈의 한 종류 *개니빠디 : 개의 이빨 *재당 : 서당의 주인. 또는 향촌의 최고 어른 *초시 : 초시에 합격한 사람으로 늙은 양반을 이르는 말 *갓사둔 : 새사돈 *붓장사 : 붓을 파는 직업의 장사꾼 *몽둥발이 : 손발이 불에 타버려 몸뚱아리만 남은 상태의 물건)     갑오경상 이전의 서사적인 긴 시가로는 한문으로 된 사(辭), 부(賦), 그리고 음악보다 내용이 중심이었던 가사, 노래로 불려졌던 판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백석의 ‘모닥불’ 은 판소리의 특징인 늘어놓는 형식을 추구하여 시의 맛을 내고 있습니다. 판소리 ‘흥부가’ 중 박타령처럼 나열, 반복의 묘미를 살리면서 산문시를 한 편 써 보세요.     민들레교실 2.   함형수의 '신기루'를 감상하고 왜 띄어쓰기까지 거부하면서 산문적인 시를 썼는지 감상해 보세요.         신기루(蜃氣樓)                                                 함형수   멀―리안개낀나루끝에어느날인가소년(少年)들이보았다는그이상(異常)한혼례(婚禮)의행렬(行列)은그후한번도나타나지않았다우두머니모래불에섰다가도하―얀파도가밀려와서발을벗으면그만아모것도잊어버리고소년(少年)은물에뛰어들었다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과 꿈을 신기루로 비유하여 상징적인 산문시를 한 편 써 보세요.       접시꽃교실 1.   1930년대에 가장 각광 받던 시인은 서정주, 백석, 오장환이었다고 합니다. 오장환의 ‘성벽’을 감상하고 오장환 시의 특징을 파악해 보세요.       성벽(城壁)                                                     오장환   세세전대만년성(世世傳代萬年盛)하리라는 성벽은 편협한 야심처럼 검고 빽빽하거니 그러나 보수(保守)는 진보(進步)를 허락치 않어 뜨거운 물 끼얹고 고춧가루 뿌리든 성벽은 오래인 휴식에 인제는 이끼와 등 넝쿨이 서로 엉키어 면도 않은 턱어리처럼 지저분하도다.     강남의 보수와 강북의 진보를 중심으로 ‘자기 성벽’을 소재로 하여 산문시를 한 편 써 보세요.     쑥부쟁이교실 1.   정지용은 ‘백록담’이란 기행 산문시를 썼습니다. 감상해 보고 그 특징을 파악해 보세요.       백록담(白鹿潭)                                         정지용                                 1   절정에 가까울수록 뻑국채 꽃 키가 점점 소모된다. 한 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마루 위에서 모가지가 없고 나중에는 얼굴만 갸웃 내다본다. 화문(花紋)처럼 판 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 끝과 맞서는 데서 뻑국채 키는 아주 없어지고도 팔월 한철엔 흩어진 성신(星辰)처럼 난만하다. 산 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렇지 않아도 뻑국채 꽃밭에는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기서 기진했다.                                     2   엄고란(巖古蘭), 환약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아 일어섰다.                                    3   백화(白樺) 옆에서 백화(白樺)가 촉루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 것이 숭 없지 않다.                                    4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 모롱이, 도체비 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5   바야흐로 해발 육천 척 위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아니 여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망아지가 어미 소를 송아지가 어미 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어진다.                                    6   첫 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산길 백리를 돌아 서귀포로 달아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윈 송아지는 움매- 움매- 울었다. 말을 보고도 등산객을 보고도 마구 매어 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모색이 다른 어미한테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                                     7   풍란이 풍기는 향기,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제주 휘파람새 휘파람 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구르는 소리, 먼데서 바다가 구길 때 솨- 솨- 솔 소리, 물푸레 동백 떡갈나무 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칡넌출 기여간 흰 돌바기 고부랑길로 나섰다. 문득 마주친 아롱점말이 피하지 않는다.                                    8   고비 고사리 더덕순 도라지꽃 취 삿갓나물 대풀 석용(石茸) 별과 같은 방울을 달은 고산식물을 색이며 취하며 자며 한다. 백록담 조촐한 물을 그리어 산맥 위에서 짓는 행렬이 구름보다 장엄하다. 소나기 놋낫 맞으며 무지개에 말리우며 궁둥이에 꽃물 익여 붙인 채로 살이 붓는다.                              9   가재도 기지 않는 백록담 푸른 물에 하늘이 돈다. 불구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쫓겨 온 실구름 일말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굴에 한나절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조차 잊었더니라.       자기의 감동적인 여행을 산문시로 써 보세요. 대신 서정과 묘사를 섞어서 윤율이 살아나게 해 보세요.                                           3. 1940년대의 산문시   1940년대 우리 문단은 암흑기라고 불렸습니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붓을 꺾거나, 아니면 친일적인 작품을 쓰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이 시기에 민족적인 자세를 보인 시인은 이육사와 윤동주입니다. 이육사는 한시의 선비 기질이 표출된 자유시를 썼고, 윤동주는 다양한 서정시를 썼습니다.     민들레교실 1.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은 퍽 자유로운 시입니다. 고독과 그리움, 비애, 그리고 광복에 대한 동경이 산문적이면서도 서정적으로 잘 녹아 있습니다. 감상해 보세요.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랜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고독과 그리움을 주제로 자유로운 산문시를 한 편 써 보세요.                                                                               *    
1059    동시야 동시야 나와 놀자... 댓글:  조회:4350  추천:0  2016-02-05
1. 동시는 어떤 글인가?   마음 속이 일어난 깊은 느낌을 짧은 말로 노래한 글을 詩라고 한다. 그 중에서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어린이를 위해 지은 시가 동시이다. 마음 속의 느낌이란 기쁜 일, 슬픈 일, 재미있는 일 신기한 일 등을 보거나 겪었을 때의 느낌을 말한다.   2. 동시의 종류   1) 형식 * 정형시 : 일정한 글자의 수나 형식을 갖춘 시(동요, 민요, 시조) * 자유시 :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시이거나 행과 연의 구별이 있는 시 * 산문시 : 행이나 연의 구분이 없이 산문(줄글)처럼 쓴 詩   2) 내용 * 서정시 : 지은이의 느낌이나 생각을 나타낸 시 * 서경시 : 자연의 경치를 읊는 시 * 서사시 : 역사적인 사건이나 전설 등을 객관적으로 나타낸 시 * 생활동시 : 어린이들의 실제 생활이 사실적인 표현에 의해 쓰여진 시 * 관념동시 : 어떤 사물이나 그 사물을 통해 인식된 결과를 직접적인 표현 보다는 마음 속에서 다시 여과되어 걸러진 이미지를 형상화한 추상성이 강한 시   3. 동시는 무엇을 쓸까?   1) 본 것을 쓴다. 2) 들은 것을 쓴다. 3) 상상한 것을 쓴다. 4) 직접 경험한 것을 쓴다. 5) 떠오른 생각이나 느낌을 쓴다.   4. 동시는 어떻게 써야할까?   1) 자기만의 독특한 생각이나 느낌을 가져야 한다. 2) 느낌이나 생각을 정리하여 연과 행을 정한다. 3) 자기가 느낀 감정을 다른 사람도 느낄 수 있도록 알맞은 쉬운 말을 찾아 쓴다. 4) 운율(리듬)을 살려서 쓴다. 5) 사람에 빗대어 쓴다. 6) 소리나 모양 흉내말을 쓴다. 7) 은유법과 비유법을 쓴다. 8) 솔직하고 분명하게 쓴다. 9) 간결하고 짧지만 그 속에 나타내고자 하는 뜻이 담기도록 쓴다.   산은 초록 피라밋 같다.          거인의 고깔모자       큰 무덤       트라이앵글     아이는 하나님이다. 사랑은 용광로이다. 여름은 짠맛 나는 풍선껌이다. 추억은 말린 장미꽃이다.   5. 동시 짓기의 여러 가지 방법   1) 혼자 속으로 갈들을 겪은 일을 표현하기 2) 의인화해서 쓰기 : 동물이나 식물 무생물까지도 사람처럼 똑같이 말을 하고 생각한다고 믿고 우리 주변에 있는 동, 식물, 무생물을 사람에 빗대 어 쓰는 것 3) 리듬을 살려 쓰기 4) 도치법으로 쓰기 : 나열해 놓은 문장들을 그대로 쓰지 말고 앞뒤문장을 바꿔 놓으면 색다른 느낌이 든다. 시에서는 도치법을 활용하면 시가 훨씬 돋보인다. 5) 의성어, 의태어로 쓰기 : 소리나 모습 모양을 흉내낸 말이 동시에 들어가면 운율이 살아나 명랑하고 경쾌한 느낌을 주며 읽는 사람들의 이해가 빠르다. 6) 생략법으로 쓰기 : 문장을 쓰다가 뒷말을 안 씀으로써 여운을 남기는 것 읽는 사람 각자가 앞뒤의 내용을 상상하게 한다. 7) 재미있는 생각 쓰기 : 가끔 아주 기발하거나 엉뚱한 생각이 시의 글감이 될 때가 있다. 이 때 주의할 점은 읽는 사람들이 '그렇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8) 직유법으로 쓰기 : 어떤 사물이나 다른 사물에 빗대어 쓰는 것이다. ~와 같이. ~처럼, ~인양, ~듯이, ~모양 같은 말을 쓰는데 나타내고자 하는 사물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토란잎과 연잎   토란잎은 곤충들의  우산 같지요. 후두둑 비가 오면 여치, 메뚜기, 호랑나비 우산 밑에 숨어요.   연잎은 개구리들의  보트 같아요. 살랑살랑 연못물이 춤을 춰도 개구리는 연잎 위에서 보트놀이만 해요. @초등학교 동시 지도안 -----------------------   여러분이 어릴때 노랫말을 제멋대로 지어서 불러본적 있나요? 혹은 자신도 모르게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적이 있는지요? 이처럼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짧게 노래하듯이 표현하여글쓰기를  시라고 합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아동문학가나 어린이들이 지은시를 동시라고 하지요. 여러분들이 동시를 쓸때는 꾸미지말고 보고,듣고 경험한대로 써야만 귀엽고 재미있어요. 너무 허풍을떨면 알맹이가 없어지고 어른들 흉내를내어 너무 꾸미면  화장을 한것 같이 천해보이거든요. 동시에는 어린이다운 귀여움과 앳된맛이 담겨 있어야 한담니다.  ... ...먼저 무엇에 대한 시를 쓸 것인지 생각해 보세요. 최근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나 물건에서 글감을 찾으세요.  그 글감을 일기나 생활글처럼 길게 자세히 쓰기보다는 군말이 없이 꼭 할 말만으로 줄여서 짧게 표현하세요. 다음의 두 가지 보기글을 비교해 보면 동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요요라는 장난감이 유행이다. 가느다란 줄을 둥근 요요의 몸체에 감아서 던지면, 실이 감겼다 풀리는 대로 요요도 빙글빙글 돌면서 오르락내리락 한다. 우리는 요요 묘기에 깔깔대며 웃으며 신나 한다 빙그르르 빙그르르  가느다란 줄을 타는  요요. 돌고돌아도 어지럽지 않아요  요요. 요요 묘기에  나도 웃고 너도 웃고   같은 요요에 대해서 쓴 글이라도 보기글 1은 줄글로 풀어쓴 것이고, 보기글 2는 시로 짧게 표현한 것이에요. 느낌이 다르지요?  이처럼 동시는 짧게 줄여서 군더더기 없이 쓰는 것이 좋아요  ... ...시는 정직하게 마음을 그대로 내보여야 합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털어 놓을 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시가 된답니다. 다음 보기의 두 시를 읽고 어떤 시가 더 마음에 닿는지 느껴 보세요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  나는 나비는 어디로 날아갈까  생각하지요. 숲속에 가 보니  나뭇가지에 나비가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발자국 소리가 나니까  나비가 도망갑니다.   .. ..두 시를 읽어 보았나요? 어떤 시가 더 느낌이 오나요? 첫 번째 시는 자신의 속마음을 정직하게 느끼는 대로 썼다는 느낌이 들지요. 두 번째 시도 생각한 대로는 썼지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내용 같지 않나요?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데 덧붙여 자신만의 독특한 느낌을 쓰는 것도 중요하답니다.  ------------------------------------------------- @7학년 동시 쓰는법지도안 ------------------------ 동시란? 마음속의 느낌을 노래 부르듯이 쓴글입니다. 길이가 짧으며 읽을때 가락이 생김니다. 동시쓰는 요령 ------------ 1.짧고 생생한 내용을 잡아 씁니다 예)단풍잎을 쫙 펼친 아기 손가락 2.소리나 모양을 흉내내는 말을 씀니다. 3.사물을 사람인것 처럼 씀니다 4,같은 말을 반복하면 가락이 살아 남니다. 예)아빠 배/하마 배/아빠 배/ 풍선 배 5.알기 쉽게 씁니다. *체크하고 넘어 갈것 -------------------- 1.이글의 글감은 무엇 입니까? 2.동시는 몇연,몇행인가? 3.동시에서 사람이 아니데.-사람인것 처럼 표현된것은 어느것 입니까? 4.흉내내는 말은 무엇 입니까? 예)재잘 재잘.깔깔.껄껄, 5.특징잡아 다른것에 빗대어 하는것 연습하기 예)*우리 선생님/ 무섭다 *일학년동생/귀엽다 *군인아저씨/씩씩하다 *시계/부지런하다- 개미처람 부지런한 시계 *연필깍기/매일매일 배가 고프다 - 돼지 같은 연필깍기 *우리 엄마/노래를 잘부른다 - 꾀꼬리 같은우리 엄마. @다음 줄글의 내용을 동시로 만들어 보자 *눈은 솜이불 같다.흰눈을 나무 들이 덮어 쓰고 쿨쿨자고. --------------------------------------------------- 항아리와 이불들도 덮어 쓰고 단잠을 잔다. -------------------------------------- 예문)송이 송이 내린 눈은 나무들의 솜이불 항아리도 덮어 쿨쿨쿨... 집들도 덮어 쓰고  쿨쿨쿨.. *참고:글감에 대하여 -------------------- *모양 -한손에 쏙 들어 갈것 처럼 귀엽다 *색깔 -막 피어난 개나리꽃 같은 노란 병아리 *느낌 -귀엽고 예쁘다. 동시는 대상의 특징을 담아 명료하게 표현해야 한다. 먼저 사물의 특징을 정리하고 짧은글로 표현 합니다. [주제별 문장 만들기 연습] ---------------------- 오늘의 문제 ------------ 1.읽기를 쓴 다음....동시로 바꾸어 써 보셔요 2.그림을 보고 한 문장으로 써보셔요 3그림을 보고 여러 문장으로 설명을 해보셔요 4.[상민이는 학원에 가기 싫었다. 주머니를 만저 보니 동그란 동전이 잡혔다 오락실을 갈까? 바람이 살랑 살랑 부드럽게 속삭였다 오늘만 딱 한번만 하고 안하면 되지..... 게임을 하기 시작하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밤 열두시였다.큰일 났다.....화내는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위의 문장을 읽고 그림을 그려보셔요. 5*[가족들은 모두 피서를 갔다 원두막에 빙 둘러 앉아 수박을 먹었다 즐거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위의 문장을 읽고 그림을 그려 보셔요. @소리나 모양을 흉내내는 말을 넣어서 문장 완성하기 1.아기가 (아장 아장 )걷고.... 2.개나리 새순이 (파릇파릇 ) 돋아 남니다. 3.해가 (둥실) 떴읍니다. 4.아빠가 (뚜벅뚜벅 )걸어 옵니다. 5.가랑비가 (보슬보슬)내림니다. 6.흰구름이( 두둥실) 떠 가고 있읍니다. 7. (뭉게뭉게) 피어 오름니다. 8.형아가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며 잔다 @흉내내는 말을넣어 문장 만들기 ------------------------------- *나풀나풀 -나비가 나풀나풀 날아갑니다. *쏴아 -소나기가 쏴-아 쏟아 집니다. *뻘뻘 -땀을 뻘뻘 흘리며 거북이가 기어 옵니다 @다음글을 대화글이 들어간 문장으로 바꾸기 ------------------------------------------- !.나는 어머니께 머리가 아프다고 엄살을부렸다 -------"엄마!, 머리가 아파요" 나는 엄살을 부렸다 2*나는 몸도 아픈데 숙제를 꼭해야 되느냐고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몸도 아픈데 꼭해야 되요?"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오늘 연습할 단어들 ------------------- .@착한 엄마.스르르잠들다.달콤한향기.자박바박 발자국 소리. 아리따운 처녀.생글생글웃으며......여기에 있는말들로 각각 짧은 문장을 만들어 보셔요.  
1058    우리도 산문시 써보자... 댓글:  조회:5208  추천:0  2016-02-05
 현대적인 산문시ㅡ                             해방 이후 산문시의 다양한 시도                          1946년에 간행된 에는 조지훈의 ‘봉황수’, 박두진의 ‘해’ 같은 산문시가 실려 있습니다. 이용악은 ‘전라도 가시내’, ‘빈 집’ 같은 산문적인 경향의 시를 썼는데, 해방이 되어 ‘하늘만 곱구나’를 썼습니다. 이는 해방이 되어 귀환했으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동포의 고통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산문시입니다.      1.   조지훈의 ‘봉황수(鳳凰愁)’는 멸망한 조국에 대한 비판적인 역사의식이 한탄과 허무를 통하여 암시되어 있습니다.        봉황수(鳳凰愁)                                     조지훈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 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상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佩玉)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 종구품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     자기는 고궁의 몇 품 품계에 서 있고 싶은 지 이를 중심으로 산문시를 한 편 써 보세요.     2.    박두진의 ‘향현’에는 그가 그리는 이상세계가 산에서 어울려 사는 자연적인 소재들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암시되어 식민지 시대의 암담함과 희망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산문시입니다.     향현(香峴)                                       박두진   아랫도리 다박솔 깔린 산 넘어 큰 산 그 넘엇 산 안 보이어,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타다.     우뚝 솟은 산, 묵중히 엎드린 산, 골골이 장송(長松) 늘어섰고, 머루 다랫넝쿨 바위 엉서리에 얽혔고 샅샅이 떡갈나무 억새풀 우거진 데 너구리, 여우, 사슴, 산토끼, 오소리, 도마뱀, 능구리 등 실로 무수한 짐승을 지니인,     산, 산, 산들! 누거만년(累巨萬年) 너희들 침묵이 흠뻑 지리함즉 하매,     산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우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확 치밀어 오를 화염(火焰)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     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리 순 칡 순을 찾아 함께 즐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길이 기다려도 좋으랴?     요즘 절맘을 암시하는 검은 옷을 입고 산으로 많이 들어갑니다. ‘산과 자유’를 중심으로 하여 산문시를 한 편 써 보세요.       3.   일제강점기에 살길을 찾아 연해주, 만주, 일본 등으로 흘러나갔던 동포들이 해방이 되어 조국에 돌아와도 조국의 현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가 이용악의 ‘하늘만 곱구나’입니다. 감상해 보세요.       하늘만 곱구나                                                                       이용악   집도 많은 집도 많은 남대문턱 움 속에서 두 손 오그려 혹혹 입김 불며 이따금씩 쳐다보는 하늘이사 아마 하늘이기 혼자만 곱구나     거북 네는 만주서 왔단다 두터운 얼음장과 거센 바람 속을 세월은 흘러 거북이는 만주서 나고 할배는 만주에     묻히고 세월이 무심 찮아 봄을 본다고 쫓겨서 울면서 가던 길 돌아왔단다     띠팡을 떠날 때 강을 건널 때 조선으로 돌아가면 빼앗겼던 땅에서 농사지으며 가 갸 거 겨 배운다더니 조선으로 돌아와도 집도 고향도 없고     거북이는 배추꼬리를 씹으며 달디 달구나 배추꼬리를 씹으며 거무테테한 아배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배추꼬리를 씹으며 거북이는 무엇을 생각하누     첫눈 이미 내리고 이윽고 새해가 온다는데 집도 많은 집도 많은 남대문턱 움 속에서 이따금씩 쳐다보는 하늘이사 아마 하늘이기 혼자만 곱구나      6.25 전쟁의 원인을 일제 식민지, 이념의 갈등, 외세의 개입으로 보고 산문시를 한 편 써 보세요.    1.   1970년대에 김수영은 퍽 현대적이고 서술적이면서 직설적인 산문시를 썼습니다. 물론 엄격한 의미에서 행갈이를 하지 않아 형식적으로 산문시는 아닙니다만 산문적인 경향이 강합니다.   이 시에서는 흔히 전통적인 서정시의 여성적인 어조, 잘 다듬어진 언어의 사용보다는 거침없는 직설적인 표현과 비속어를 사용하여 격정적인 정서를 표현하였습니다. 특히 외래적인 것들에 대한 격렬한 저항 의식과 우리 것에 대한 자각이 거대한 뿌리처럼 전개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감상해 보세요.     거대한 뿌리                                 김수영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앉는다. 나는 어느새 남(南)쪽 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 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8.15 후에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4년 동안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 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3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학회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劇的)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 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 들 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하던 민비는 한번도 장안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 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여사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 관리   이아이스크림은 미국 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 제3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기괴 영화의 매머드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직설적이고 비속어를 사용하여 요즘 정치 행태 중 ‘무상급식의 서울시장 선거’를 중심으로 역설적인 산문시로 써 보세요.                              1.   이성복의 ‘그 날’ 은 1970년대 병든 사회를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행을 나눴지만 산문적인 호흡에 변화를 주기 위한 시도일 뿐 산문시로 볼 수 있습니다. 감상해 보고 보들레르의 산문시 중 콩트와 비슷한 산문시와  비교해 보세요.     그날                                                     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미수금(未收金)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占)치는 노인과 변통(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신문 사회면에서 이 시대의 ‘병든 모습’을 찾아내어 객관적으로 정리해 보고 행갈이를 조절하여 호흡을 변화시켜 보세요. 그리고 ‘그들은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로 마쳐 보세요.     2.   최두호는 1980년대 우리나라 군인들이 정치에 관여한 사회 풍자를 암시를 통하여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감상해 보세요.      전쟁놀이                                                               최두호   삼성산엔 늘 상도동 봉천동 신림동의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논다. 어른들도 달려와 역기를 들고 평행봉에 오른다. 사자암 약수터를 찾는 노인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자못 부지런한 한 시민의 일생이 여기저기 눈부시게 펼쳐지는 것이다. 오리나무 아카시아 백양 도토리나무 등속이 무리를 이루거나 혹은 섞여서 적자생존이요 인공도태다. 어개를 부딪치며 들어앉은 집 사이로 수많은 교회들이 십자가를 높이 달려고 안달이다. 가까이 공사 연병장이 보이고 청소년들은 사관학교에 진학해서 정치를 하겠다고 벼른다. 그러나 열 살 아이 박근중의 죽음은 너무 사소해 모른다. 전쟁놀이하다 포로로 잡혀 구두끈으로 목 졸린 사고의 의미에 대하여는. 잊어버린다, 전쟁이 어떻게 놀이가 되며 한반도에서 전쟁을 왜 하는지에 관하여는.     어린이들의 잘못 된 꿈이 그를 어떻게 망치는지 정의, 평등, 자유와 연관지어 산문시를 써 보세요.     3.   다음 시는 무당이 신들린 음성으로 웅얼거리는 산문시입니다. 와리의 졸저 중의 7편의 산문시 ‘이모 무지개 빛깔’ 중의 하나입니다. 감상해 보세요.     들 고양이 쓰인 가시내                                          이원구   밤 마실 간 가시내가 설익은 호두나무를 댓가지로 후린다고 홀 애비네만 골라 목화 훔쳤다고 뚝 쇠 성질난 외할아버지에게 볼 싸대기를 얻어맞은 그런 번갯불이었던 게지. 뉜가 탱자가시 울타리 밑에 쪼그리고 앉은 봉숭아 가슴 죈 꽃씨를 누구냐. 회초리로 건드려, 터져서, 눈앞이 캄캄했던 게여.     쌔한 메밀밭 피 묻은 왼쪽 눈에 들 고양이 퍼런 불이 쓰였고만.     높새바람 미쳐 기는 논두렁길 너울너울 불 지르면서 쥐구멍 들쥐구멍 들여다 보다 회초리 들고 들쥐를 뒤쫓아 가고 끄슬려 나풀나풀 돌아와 히뜩히뜩 하늘을 베어 먹다 구들장 속에 드나든 도둑고양이와 눈싸움 하려고 달진 밤이면 외짝 눈에 고양이 퍼런 불을 켜는 고만.     그래도 사람 새끼 오른쪽 눈을 가끔은 뜨지만 호적에 없는 죽은 딸 아니었는가.     외할아버지가 외약다리 걸어 넘긴 빚으로 어느 육시를 헐 놈이 넋 빼내 갔고만. 굽이굽이 황토길 논두렁길을 놀라 나간 쥐처럼 제 혼 불에 끌려 다니다 불탄 공동묘지에 앉아서 키들키들 웃더니만, 불볕 쏟아지는 네거리 치마만 들추더니, 피 묻은 회초리 들고 안쓰럽게, 안스러웁게 벼락이 떨어지는 산 날맹이로 올라간 게여.        요즘 자기 신세를 타령조의 무가가락으로 산문시로 한 번 써 보세요.                                                             
1057    산문시를 공부하기 댓글:  조회:4580  추천:0  2016-02-05
산문시를 써 볼까요                                        보들레르의 산문시, 파리의 우울                                        희곡의 특징을 빌려온 산문시         1. 희곡적인 요소를 도입한 산문시                       두 번째 계열은 희곡의 요소인 대화로써 독백을 한 시입니다. 「이방인」을 감상해 봅시자.     이방인(異邦人)                                                   보를레르      너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느냐, 수수께끼 같은 사람아.   응? 아버지냐, 어머니냐? 또는 누이냐? 아우냐?   -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아우도 없다.   -친구들은?   -당신이 지금 한 말은 나는 오늘날까지 그 뜻조차도 모른다.   -조국은?   -그게 무슨 위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지도 나는 몰라   -미인은?   -그것이 불멸의 여신이라면 기꺼이 사랑하겠지만.   -돈은?   -당신이 하느님을 싫어하듯 나는 그것을 싫어한다.   -그래! 그럼 너는 대관절 무얼 사랑하느냐. 괴상한 이방인아?     ‘이방인’을 제목으로 하여 이러한 시 형식에 맞춰 자신의 갈등을 내적 독백 형식의 산문시로 써 보세요.      2. 극적 구성을 중시한 꽁트 같은 산문시    세번째 계열은 극적 구성을 중시한 콩트 같은 산문시로 그 중 하나인「가난뱅이를 후려치자」를 감상해 봅시다.      가난뱅이를 후려치자!                                                      보들레르    나는 보름 동안이나 방 안에 틀어박혀서 당시(십육 년 전의 일이었다) 유행하고 있었던 책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즉 스물네 시간 내에 민중을 행복하고 슬기롭고 부유하게 만드는 방법이 다루어져 있는 책들이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일반 대중의 행복에 관한 그 모든 기업가들의 - 다시 말하자면, 모든 가난뱅이들에게 노예가 되라고 충고하시고, 가난뱅이들은 모두가 왕좌에서 쫓겨난 왕이라고 설복하고 있는 사람들의 노작(勞作)을 샅샅이 소화하였다. 아니, 차라리 삼켰다고나 할까. 그러므로 그때 내가 혼미(昏迷) 또는 우둔(愚鈍)에 가까운 정신 상태에 있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다만 내 지성의 안쪽에, 내가 요즘에 사전 속에서 훑어 본, 모든 착한 여성을 위한 상투어보다는 더 훌륭한 관념이 어렴풋이 싹터 오름을 느끼는 듯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관념의 관념이요, 한없이 막연한 것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나는 심한 갈등을 느끼면서 밖으로 나왔다. 왜냐하면 나쁜 책을 읽는다는 이 정열적인 취미는, 그에 비례하여, 신선한 공기와 청량제(淸涼劑)를 필요하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술집에 막 들어가려고 했을 때, 거지 하나가 나에게 모자를 내밀었다. 그 눈초리야말로, 만약에 정신이 물질을 움직이고 최면술자의 눈이 포도를 익게 한다면 왕좌라도 전복시킴직한 그런 잊지 못할 눈초리였다.   동시에 나는 내 귀에 속삭이는 목소리를, 내 귀에 잘 익은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어디든지 나를 따라다니는 ‘수호신’ 의 목소리 또는 ‘수호의 악마’의 목소리였다. 소크라테스도 그의 ‘수호의 악마’ 를 가지고 있었으니, 난들 왜 ‘수호신’ 을 갖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난들 왜, 소크라테스처럼, 노련한 레뤼와 신중한 바야르제가 서명한 내 광증(狂症)의 증명서를 얻을 영광을 갖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소크라테스의 악마와 내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즉 소크라테스의 것은 방어하고 경고하고 금지하기 위해서밖에는 그에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내 것은 충고하고 암시하고 설복하여 준다는 점이다. 저 가엾은 소크라테스는 금지주의자인 ‘악마’ 밖에 안 가지고 있었지만, 내 것은 위대한 긍정주의자며, 행동의 ‘악마’또는 투쟁의 ‘악마’이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평등함을 증명하는 자만이 남과 평등하며, 자유를 정복할 수 있는 자만이 자유를 누릴 가치가 있다.”   나는 즉시 거지에게 덤벼들었다. 그의 한쪽 눈에 주먹을 한 대 먹였더니, 그 눈은 대번에 공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의 이를 둘 부숴 주었으나, 덕분에 나도 손톱 하나가 부러졌다. 그리고 나는 태어나기를 연약할 뿐만 아니라 권투도 잘 한다고 할 수 없는 터인지라, 이 늙은이를 당장에 때려죽일 만큼 기운이 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한 손으로 그의 옷깃을 잡고, 또 한 손으로는 그의 멱살을 움켜쥐어, 그의 머리를 힘껏 벽에 부딪치기를 시작하였다. 털어 놓고 말해야겠는데, 나는 미리 주위를 한번 둘러보아, 이 호젓한 교외에서는, 꽤 오랫동안, 경관들의 눈에 띄지 않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 두었던 것이다.   그런 다음, 견갑골도 부러지도록 힘껏 등을 한 대 차서, 이 기진한 육십 노인을 쓰러뜨려 놓고서, 땅에 떨어져 있는 굵은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 비프스테이크를 보드랍게 하려는 요리사처럼 끈덕진 기운으로 늙은이를 두드려 팼다.   갑자기, - 오 기적이로다! 오 자기 학설의 훌륭함을 증명한 철학자의 기쁨이 바로 이러하겠지! - 이 송장 같은 늙다리가, 그토록 기구하게 망그러진 기계 속에 그런 힘이 들어 있으리라곤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그런 힘을 내어, 몸을 홱 돌려 벌떡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내가 이건 좋은 징조로구나 하고 생각할 만큼 원망스런 눈을 하고, 이 늙어빠진 불한당은 나에게 덤벼들어 내 두 눈을 후려치고, 이를 네 개나 부러뜨리고, 같은 나뭇가지로 나를 북치듯 사뭇 후려 팼다. - 그러니, 내 과감한 치료법으로, 나는 그에게 긍지와 생기(生氣)를 되돌려 주었던 셈이다.   그러자 나는 온갖 손짓 몸짓 다하여, 인제 싸움이 끝난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는 것을 그에게 알리고, 스토아파(派)의 궤변가 같은 만족을 느끼면서 일어나 그에게 말하였다. “여보, 당신은 나와 평등하오! 부디 나에게 내 지갑의 돈을 당신과 나누어 갖는 영광을 베풀어 주오. 그리고 당신이 정말 박애주의자라면, 잊지 말고 당신의 모든 동료들에게 적용해야만 하오. 그들이 당신에게 적선을 바라는 날엔, 내가 가슴 아프게도 당신 등 위에서 시험했던 이 학설을 말이오.”   그는 내 학설을 이해했다는 것과 내 충고에 복종하겠다는 것을 나에게 똑똑히 맹세하였다.     보들레르가 왜 가난뱅이를 후려치자고 했는지 그 이유를 가지고 극적 구성을 중시한 콩트 같은 산문시를 써 보세요.                                                                                             *            
1056    詩와 산문시, 수필의 차이점 댓글:  조회:4903  추천:0  2016-02-05
      배달메, 김상철 시인 시(일반 시) 산문시 산문(그중, 수필) 4, 5월의 들녘 /       눈보라 속에서 생사 넘나들다 살아난 들풀들 아지랑이 아롱거리는 들녘에 봄볕마다 손잡고, 재잘거리고 껑충거리며 상봉의 기쁨 나눈다     오우, 자전거 타고 바람 가르는 내게도 보내는 저 환호! 앗! 속옷까지 보이도록 껑충껑충 뛰는 저 몸짓! 아오, 인간의 부활은 기쁨이 얼마나 더 클까!     철아, 들리니? 동장군의 고문 속에서도 님 보고파 견뎌냈다는 이 노래?   흐미! 눈 감아라 밝은 대낮, 저기 들꽃들은 아예 입맞춤까지다 철아, 넌 아니? 죽을 고비 넘나들다 처음 뽀뽀해보는 이 맛? 2015. 4/1   4, 5월의 들녘 /     눈보라 속에서 생사 넘나들다가 아지랑이 아롱거리는 들녘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들풀들이  봄볕마다 손잡고 재잘거리고 껑충거리며 상봉의 기쁨 나누고 있다. 오우, 자전거 타고 바람 가르는 내게도 보내는 저 환호! 앗! 속옷까지 보이도록 껑충껑충 뛰는 저 몸짓! 아오, 인간의 부활은 기쁨이 얼마나 더 클까!,철아, 들리니? 동장군의 고문 속에서도 님이너무 보고파, 이 악물고 견뎌 냈다는 이 노래?  흐미! 눈감아라 밝은 대낮에 저기 들꽃들은 봄볕과 아예 입맞춤까지한다 철아, 넌 아니? 죽을 고비 넘나들다가 처음 뽀뽀해보는 이 맛? 4, 5월의 들녘 /     오늘은 유난히 화창한 날씨라서 자전거 타고 들에 나가보았다. 봄철이면 황사 때문에 외출 시엔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하기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갔다. 물론 모자도 쓰고 나갔다.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목에 단단히 동여맸다. 4월의 날씨가 어찌나 좋은지 들풀들이 저마다 환한 얼굴이다. 삶과 죽음 넘나들다가아지랑이 아롱거리는 들녘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파란(1) 들풀들이 상봉한 기쁨으로 인하여(2) 우르르 달려가 내려앉는 봄볕마다 손잡고 좋아라 재잘거리고 있었다. 앗! 저기 저쪽은 상봉한 게(3) 너무 좋아 속옷이 보이도록(4) 껑충껑충 뛸 기세다. 바람 가르고 달리는 내 자전걸 따라다니며 환호하는 저 몸짓은 퇴근하고 돌아오는 나를 맞이하는 우리 멍멍이 보다 유별나다! 아오, 사람이 죽었다 살아 날 땐 부활의 기쁨은 저보다 얼마나 더 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철아, 너도 들리니? 저승문턱까지 갔다가너무 보고파, 이 악물고 견뎌 냈다는 이 노래가? 하고, 들풀들이 나에게 묻는다. 또 재차 묻는다, 동장군의 군화 발에 채이면서도, 기어코 살아나 부르는 이 찬가 들리니? 하고 말이다. 한편 저쪽에서는, “흐미! 눈감아라 밝은 대낮에저기 들꽃들은 봄볕과 아예 입맞춤까지 한다.”고, 어느 들풀이 알려주는 것만 같다. 연이여,“철아, 넌 아니? 죽을 고비 넘나들다가 처음 뽀뽀해보는 이 맛?” 하고, 재차 또 들꽃들이  묻는 것 같다.     산문시는 위처럼 그 형식에 있어,     -.대체적으로  행과 연을 안 나누고 산문처럼 계속 이어서 쓰는 형식을 취한다(연은 나누기도 함).   -.일반 시보다는 조사를 생략하지 않고 쓰는 경향이 있으며, 조사의 양과 수에 거의 제한을 받지 않고 산문처럼 써도 된다(적색'조사' 참조).   -.뒤에 오는 체언을 한정하는 관형사(구)나, 꾸며 주는 語句를 사용하여 표현하면 안 되는 경우가 있으며, 또한, 이유을 나열하거나,  필자가 아는 지식을 삽입설명하는 식으로 쓰면 감점이 된다, 또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는다.(일반 시와 동일).   -.마침표를 생략하고 쓰는 경향이 많다(일반 시와 동일).   -.운율과 상관없이 쓰기도 한다.   -.종결어미의 처리가 중요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생각하는 이도 있는 것 같다.    -. 산문이란, 운율이나 음절의 수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글을 말하는데, 수필은 산문 문학의 대표적 양식으로,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 따위를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본대로 느낀대로 자유롭게 쓰는 산문 형식의 글이다. 수필은 수상(隨想), 일기, 편지, 논문, 논설문, 신문사설, 전기 등, 창작적 요소를 지닌 모든 산문 문학적 문장을 총칭한다. 즉, 산문 중에서 소설, 희곡을 제외한 문학이 수필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행을 나누지 않고, 연을 나누지 않고 일반 문장처럼 계속 이어 쓴다(연을 나눠 쓰는 분도 있음).   -.일반 문장처럼 조사의 양과 수에 제한을 받지 않고 써도 된다(붉은 조사 참조).   -.뒤에 오는 체언을 한정하는 관형사(구)나, 꾸며 주는 語句를 사용해도 된다. 또한, 어떤 걸 설명하며 써도 되며(위 2, 3) 필자가 아는 지식을 동원하여 체험한 것을 음율과 상관 없이 사실대로 구체적으로 쓰며(붉은 어구 참조), 본인의 지식을 곁들여  본대로 느낀대로 쓴다.   -.마침표 부호를 생략하지 않고 쓴다. 원고지 쓰기 법에 맞게 쓴다. -.절의 끝맺음(종결어미)이 일반 문장형식이다.   시(일반 시)는 위처럼 그 형식에 있어,     -. 행과 연의 구별이 있다. -. 운율 땜에 조사를 생략하는 경우 많다( 쓸데 없이 조사 많으면 감점이다) -.뒤에 오는 체언을 한정하는 관형사(구)나, 꾸며 주는 語句를 사용하여 표현하면 안 되는 경우가 있으며, 또한, 이유 등을 나열하거나,  필자가 아는 지식을 삽입설명하는 식으로 쓰면 감점이 된다, 또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는다. -.마침표를 생략하고 쓰는 경향이 많다. -.운율에 신경쓰며 써야 한다(지금은 내재율에). -.종결어미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시의 가치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1055    무감각해진 詩의 하체를 톡톡 건드려봅시다 댓글:  조회:5469  추천:0  2016-02-05
흔히 사람들은 시 창작을 전문적이며 특별한 훈련이나 지식이 필요하고 천성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되는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시라는 것은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져 있어서 평범한 생활인의 경험이나 생각으로는 범접할 수 없다고 아예 담을 쌓아 버린 분도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학교에서의 문학 교육이 잘못된 탓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대부분의 시들이 비일상적인 것인데다 그것을 획일적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배웠으니 시를 골치 아픈 존재로 여길만도 합니다. 그러나 시가 생성된 배경이나 본래의 기능은 오히려 골치 아픈 것을 해소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또 갈수록 일상적인 소재와 평이한 화법을 구사하며 발전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쁠 때나 슬플 때 노래를 흥얼거리듯이 눈물과 함성과 탄식을 토하듯이 시 역시 인간의 마음 속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희로애락을 담고 해소하는 기능을 합니다. 다른 감정 표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발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노래를 예로 들면  자신이 창조한 가락을 흥얼거리는 것이지요. 여러분도 아마 무의식적으로 그런 즉흥곡을 콧노래로 흥얼거렸던 경험이 있을 줄 압니다.   그것처럼 시를 쓸 수 있는 마음도 이미 모든 사람이 갖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아직 발견해 내지 못한 것이지요. 시의 마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느낌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수많은 느낌에 휩싸여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상쾌하다는 느낌, 잠을 좀 더 자고 싶다는 느낌, 물이 차갑다는 느낌, 이빨이 시리다는 느낌, 음식이 짜다는 느낌… 또 밖으로 나가면, 바람이 시원하다는 느낌, 하늘이 푸르다는 느낌, 누군가 보고 싶다는 느낌… 그뿐 아니라 잠든 시간에도 우리는 꿈을 꾸며 어떤 느낌들에 계속 사로잡혀 있습니다.   시를 쓰기 위한 첫 단계는 우선 이런 느낌들을 그냥 흘려 버리지 말고 마음 속으로 되새겨 보라는 것입니다. 바람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면 속으로 ‘바람이 시원하다’고 한 번 중얼거려 보십시오. 그러면 짧은 느낌으로 그냥 흘려 버렸을 때보다 바람의 시원함을 몇 곱절 더 강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바람이 시원하다’는 느낌은 누구나 갖는 것이니까 바람이 어떻게 시원한지를 느껴 보기 바랍니다. ‘막혔던 가슴 속 응어리를 뚫어 주듯이 시원하다‘ ’바람에 실려 그리운 사람의 향기가 전해져 오는 것 같다‘ … 이와 같은 방식으로 순간 순간의 느낌을 반추하는 습관을 가진다면 여러분은 다른 사람보다 몇 곱절 더 풍부한 인생을 사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계속하다 보면 느낌의 양이나 질이 점차 향상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눈 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 모두에게 어떤 느낌을 가지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대문 앞의 쓰레기통을 보며 ‘너는 매일 그렇게 음식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구나.’ 라든지, 이리저리 뒹구는 휴지 조각을 보며 ‘너는 아직도 이렇게 배회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부여해 보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여러분은 저도 모르게, 우주 삼라만상과 대화하고 그것들에게 새로운 가치와 생명을 부여하는 시인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남과 다른 글쓰기  문학지망생들을 만나면 예외없이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기성문인들은 뭔가 자기 나름대로 글을 잘 쓰는 비법이 있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글 쓰는 일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막연한 작업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비법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세상 모든 일처럼 정도가 있을 뿐이지요.  그 정도라는 것은 여러분도 다 알다시피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그런 과정에서 자신만의 내밀한 요령을 터득하는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주 미세한 경험과 깨달음들의 결과이기 때문에 남에게 뭐라고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이 못됩니다.  대학마다 문학에 관한 전공학과가 설치되어 있고 시중에는 많은 문예창작 지침서들이 나와ㅏ 있지만 그런 것들이 정작 자기 글을 쓰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글쓰기는 정해진 공식이나 이론에 대입시킨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글쓰기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행착오를 통해 얻어지는 필연과 우연의 만남입니다. 여기에 글쓰기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그저 우직하게 우리가 다 알고 있는 3多의 과정을 좇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가’하는 문학지망행들의 질문이 ‘어떻게 하면 글을 남과 다르게 쓸 수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삭합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봄이 오면 산과 들에 온갖 꽃들이 피어납니다. 아름답습니다. 그 꽃을 보고 글을 쓴다고 합시다. 여러분 중의 대부분은 꽃의 아름다움게 감탄하여 그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꽃의 아름다움은 문학이라는 형식이 존재하고부터 수많은 문장가들이 온갖 미사여구로 찬탄한 것이어서 여간해서는 그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 꽃이 아름답다는 발견은 이미 일반화된 사실이어서 다른 이에게 쓰는 것이 관건이 되는 것입니다. ‘꽃이 기지개를 편다’든지 ‘꽃이 하늘로 가고 있다’ 든지……  이렇게 남과 다르게 쓰려면 남과 다르게 볼 줄 알아야 하는 데 그것이 어렵지 않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글쓰기가 단순히 좋은 말로 미끈한 문장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는 것만 깨달으시면 가능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세계를 보는 자기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남과 다르게 본다는 것은 남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은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다른 정도가 남과 비교해 판이하게 다를 때도 있고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만큼 미세할 때도 있지만 분명 여러분은 이 지구상의 모든 일간들과 비교해 다릅니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아무리 닮은 일란성 쌍동이라도 다른 부분이 있기 마련이지요. 생김해도 그렇지만 생각에 있어 다른 사람과 내가 다른 것은 성장한 환경과 그동안의 체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의 과저어에서 생성된 여러 독특한 생각들을 우리가 글로 쓰려고 하는 대상 속에 투영하면 자신만의 글, 남과 다른 글쓰기가 가능해 집니다.  무엇부터 써야 할까  평소에 줄곧 독서를 해온 분들은 누구나 자기 글을 한 번 써 보고 싶은 욕구를 가집니다. 그런 욕구를 부추기는 동기는 대략 몇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첫번째는 나도 이런 멋진 글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막연한 기대감이고, 두번째는 내가 쓰면 이보다는 더 잘 쓸 것이라는 자만심이고 세번째는 이런 이야기도 글이 되는 걸 보면 내 인생도 충분히 글이 되겠구나 하는 자신감입니다.  그러나 이런 동기를 가졌다 해도 대부분은 시작도 해 보지 않고 포기하는 수가 많습니다. 첫번째 경우는 기대감이 열등감으로 바뀌어서 그렇고, 두번째 경우는 욕심과의욕만 앞서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쳐서 그렇고, 세번째 경우는 게으르거나 용기가 없어서 그렇게 됩니다.  그래도 이 중에서는 마지막 경우가 가장 성실하게 글쓰기를 해 나갈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습니다. 앞의 두 경우는 막연한 동경이나 지나친 자만심 때문에 특별한경우가 아니고는 제동 장치가 없는 자동차가 되기 쉽습니다. 저는 출판 일을 오래 해 온 탓에 그런 유형의 분들을 더러 만났습니다. 대부분 자기 글에 대한 맹신을 갖고 있어서 책으로 출판하기만 하면 곧 베스트셀러가 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단순한 열정이나 치기로 글쓰기를 시작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남의 글을 읽으며 우리는 오만해지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 문학작품은 절대적인 평가가 불가능합니다. 어떤이에게는 눈물을 쏟게 하는 감동일수 있지만 또다른 이에게는 유치한 신파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모든 독자를 감동시키는 글이란 그만큼 어려운 것이지요.  그렇지만 최대치는 항상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고 감동을 받은 글들은 주제나 소재가 유별나서가 아니라 대체로 자신의 세계를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에 깊은 울림을 준 것들입니다. 부끄럽고 추한 부분,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치미는 미세한 감정의 변화까지도 숨김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독자는 흥미와 감동을 느끼는 것입니다.  글이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이거나 원대하고 초월적인 세계를 쓰는 것이 아니라 대수롭지 않은 자기 이야기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있어 내 경험은 진부하고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타인에게는 그것이 새로운 충격과 간접 경험의 단서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생각들이지만 타인에게는 남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주는 것입니다.  글감을 먼 곳에서 찾지 말고 자기 주변에서부터 찾아보십시오. 빨래하고 설거지한 일, 친구를 만나고 시장을 한바퀴돌아보면서 느낀 것, 남을 증오하고 시기한 것, 그런 것들을 우선 하나도 놓치지 말고 단 한 두 줄이라도 좋으니 적어보십시오. 형시기은 일기나 편지가 되어도 좋고 문장 구조를 갖추지 않은 메모가 되어도 좋습니다.  지금부터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디에 있더라도 필기구를 늘 가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필기구는 꿈속에라도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어떤 세계관을 가질 것인가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옮기는 작업입니다. 아무리 풍부한 지식과 아름다운 언어들을 알고 있다 해도 창조적인생각이나 느낌이 없는 사람은 문학적인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논리적이고 실용적인글을 쓸 수 있을 뿐이지요. 그러므로 글을 잘 쓸 수 있느냐 없느냐는 높은 학식과 많은 경험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자신의 내부에서 저도 모르게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어떤 생각과 느낌들이 많고 적으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글쓰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좀 비정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잡념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멍청해보이기도 하고 건망증이 심하다는 놀림을 받기도 합니다. 여러분 중에 그런 증세를 가진 분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글을 잘 쓸 수 있는 가능성이므로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또 어줍잖은 연속극이나 신문기사 한 줄에도 쉽게 눈시울을 적시는 분이 있는데 그런 분들도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자신이 남보다 뜨거운 가슴을 갖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며 그만큼 이 세계를 절실하게 느끼고 받아들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컴퓨터가 시를 쓸 수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시를 쓰라고 지시하면 미리 입력된 사랑과 관련된 여러 단어들을 불러들여서 컴퓨터가 조합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사람보다 훨씬 완벽하게 ‘사랑’과 관련된 언어들을 시의 형식으로 조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유와 느낌이 결여된 공산품의 가치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혼이 없기 때문입니다.  길에 아무렇게나 놓여 사람들의 발길에 채이는 돌멩이가 있다고 합시다. 보통 사람들은 이 돌멩이를 아무 생각없이 지나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귀찮은 존재로 여기기도 할 것이고 기껏 관심을 갖는다고 해 봐야 주어다가 어디 써먹을 데가 없을까를 생각할 것입니다. 자기 중심, 더 나아가 인간중심으로 그 돌멩이를 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긴 것입니다.  만약 돌멩이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요. 무심코 걷어차는 사람들의 발길이 입기도 할 것이고 흙과 풀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할 것입니다. 또 대굴대굴 굴러서 자기 짝을 찾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점점 돌멩이의 시각으로 생각을 확대해 나간다면 하찮게 보이는 돌멩이 하나를 통해 이 세계 전체를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같이 삼라만상의 모든 물질들에게 생명을 부여하면 엄청나게 신비하고 새로운 상상의 세계가 열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생물까지를 포함하여 세계 전체를 내가 지닌 자아와 동등하게 보는 시각은 글쓰기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사는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요즘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환경문제라는 것도 다 인간중심의 사고방식이 빚어낸 무서운 결과가 아니겠어요.  그러나 이런 범신론적 세계관이 마음만 먹는다고 금방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대상을 향한 열린 시각, 치우침없는 균형 감각, 부분을 보더라도 전체 속에서의 관계를 조망하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어휘 문장 구성의 기본기  늦은 나이에 글쓰기를 시작하는 분들일수록 조급하게 서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축적된 자기 이야기가 태산같이 쌓여 있다 보니 그것들을 단번에 그럴듯한 작품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서러이나 시창작으로 바로 들어가는 경우를 흔히 보는데 십중팔구는 뚜렷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늦을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글쓰기는 이야기거리가 두둑하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 아무리 좋은 재료가 준비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버무리고 조리할 줄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지요. 음식의 만이 손끝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글스기도 글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우선 제가 권해드리고 싶은 방법은 간단하나산문 형식의 글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운문부터 시작하는 것은 축약과 비약의 요소에 먼저 길들여질 우려가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데생을 충분히 해두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문을 통해 기본적인 어휘력과 문장력, 구성력을 터득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모든 문학 장르의 기본이 되는 요소입니다. 수필과 고설 같은 산문 장르는 말할 것도 없지만 시나 극본 같은 장르 역시 어휘력과 문장력, 구성력이 바탕이 되어 있어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습니다.이런 기본기가 충분히 습득되지 않은 채 시를 쓰면 생경하고 난해한 시가 되기 쉽고 거칠고 짜임새없는 극본이 되기 쉽습니다.  어휘력은 단어를 풍부하게 알고 그것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말은 워낙 그 표현이 풍부해서 한가지 뜻에서 여러 가지 단어군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어휘들을 충분히 자기것으로 소화하고 있어야 하며 또같은 종류의 말이라도 전체 문맥의 흐름과 분위기에 맞게 잘 골라 쓸 줄 알아야 하바니다. 이를테면 ‘쓸쓸하다’고 해야 할 자리에 ‘고독하다’고 하면 의미의 단절과 과장을 불러오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지요. 한 문장 속에 스며들어 빛을 발하는 가장 적절한 어휘는 단 하나 뿐입니다. 가장 적절한 말을 골라서 쓸 줄 아는 능력이 어휘력인 것이지요.  어떤 분들은 이 어휘력 배양을 위해 국어사전을 외우기도 하는데 문학에 있어서의 어휘는 문장 속에 융화되어 있어야 제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므로 뛰어난 작품을 많이 읽는 것이 어휘력 향상의 가장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그 말들이 자신의 무의식 속에 육화되도록 해야 합니다.  문장력은 어휘력이 바탕이 되고 남의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됩니다. 좋은 문장은 필요없는 군더더기가 없고 읽기에 편하도록 적절한 호흡을 가진 것입니다. 너무 긴 문장이 장황하게 계속되면 문맥의 의미가 불투명해지고, 너무 짧은 문장이 반복되면 단조로운 느낌을 주게 됩니다. 탄력있는 문장은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듯이 길고 짧은 문장이 적당하게 섞이면서 이어져야 합니다.  구성력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능력입니다. 글감의 대상으르 기능전결로 배치하는 것은 너무 흔한 방식이므로 때에 따라 결말을 먼저 제시하거나 절정 부분을 글머리에 내세우는 등 여러 가지 구성의 변화를 시도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시와 산문은 어떻게 다른가      앞으로 각 장르마다의 특성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시와 산문이 어떻게 다른 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형식적인 면으로 보면 산문은 긴 줄글로 되어 있고 운문은 짧고 리듬이 있으며 행과 연을 나눕니다. 담는 내용에 있어서도 산문이 일관된 흐름을 갖춘 이야기 구조를 가진다면 운문은 주관적인 감정을 드러낸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서사와 서정의 차이라고 합니다.   물론 운문에도 서사적인 요소를 도입할 수 있고 산문에도 서정적인 문체를 구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시 소설이 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정착한 오늘날에는 시는 서정적인 특성을, 소설은 서사적인 특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쪽으로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습작기에는 이런 시와 산문의 차이를 정확히 인식하여 자신의 감성이 어느 장르에 적합한지를 빨리 간파하는 것이 좋습니다.     흔히들, 시는 춤에, 산문은 도보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도보는 일정한 보폭으로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한 결음씩 나아가는 것이지만 춤은 아무런 형식의 구애 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느리고 빠르기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가 심하며 공중을 향해 훌쩍 솟구치기도 하고 쓰러지며 뒹굴기도 합니다. 춤은 일정한 방향을 염두에 두지 않으므로 제자리걸음이나 뒷걸음질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춤과 도보의 차이점을 시와 산문에 대입하여 생각해 보면 어렴풋이나마 그 특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런 형식적인 차이는 시 정신과 산문 정신의 차이에서 나오는 결과들입니다. 시 정신이 주관적 인 진실을 추구한다면 산문 정신은 객관적인 진실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주관적인 진실은 말 그대로 자기 자신에게만 진실인 것이고 객관적인 진실은 누구나 합의할 수 있는 진실입니다. ‘만년필 속에 잉크가 들어 있다’고 쓰면 객관적인 진실을 드러낸 것이지만 ‘만년필 속에 옛사랑의 추억이 있다’고 쓰면 주관적인 진실을 드러낸 것이 됩니다. 만년필에서 옛사랑의 추억을 읽는 것은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인식이 발동한 것이므로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인식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사적인 바탕이 없이 서정적인 요소를 무리하게 도입한 산문은 생경하고 황당무게한 서술이 되고 마는 것이며, 반대로 서정적인 바탕이 없이 서사적인 요소를 도입한 시는 감칠 맛이 전혀 없는 상식 수준의 뻔한 이야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행과 연을 나누어 형식을 갖추 어도 이것은 시가 될 수 없습니다. 시 정신과 산문 정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지지 못한 예를 초보자들의 작품에서 흔히 발견합니다.   저는 이것을 나무와 꽃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뿌리에서 몸통이 자라고 거기서 가지와 잎이 뻗어 가는데 여기까지는 나무 본연의 모습과 색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누가 보아도 뿌리와 몸통과 가지와 잎이 하나의 계통으로 일관된 연관성을 갖고 뻗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가끔 피워 내는 꽃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 나무에서 어떻게 저런 꽃이 피워났을까 싶을 정도로 형태와 색깔과 질감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빨강 노랑 하양의 색색으로 보드랍기 그지없는 꽃망울을 터트립니다. 앞의 과정이 산문의 세계라면 뒤의 과정이 시의 세계일 것입니다.     시의 언어를 찾아  흔히 시를 언어 예술이라고 합니다. 시적인 체험과 느낌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니까요. 최근에는 실험적인 시의 한 양상으로 사진 그림 악보 등이 시의 한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자가 주가 된 상황을 보조하는 차원이지 그 차제가 주 표현방식이 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시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갈지 모르지만 언어를 주 표현수단으로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사상을 제한된 언어를 통해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색깔이나 소리도 없고 움직임이나 형상도 없는 말들을 조합해서 이 세계의 복잡다단한 결들을 드러내는 일은 너무 막연하고 난감하게만 느껴집니다. 초보자들이 시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춤과 노래와 그림처럼 언어에도 희로애락이 있고 색깔과 소리, 형상과 움직임이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시 한 편을 읽고 환희와 격정과 비애을 느끼며 어떤 소리와 색채와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때로은 색채와 소리로 형상화된 예술보다 더 큰 진폭으로 그런 것들을 느끼기도 합니다. 또 더 나아가 우리의 모든 감각을 총체적으로 건드려 주는데 시가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합니다.    인간의 모든 감각을 언어를 통해 총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시의 장점이며 매력이겠지만 처음 시를 쓰려는 분들에게는 대단한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어를 캐내고 다듬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언어가 곧 시의 재료인 만큼 멋진 말들을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시 쓰기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더러는 국어사전이나 남의 작품 속에 있는 좋은 말들을 밑줄을 쳐 가며 외우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말만 번드레한 사람이 남에게 오히려 거부감을 주는 것처럼 자신의 진심이 실리지 않은 언어는 남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문학에서의 언어는 곧 자신의 세계관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이 가진 현재의 언어 밑천만을 가지고 시 쓰기를 시도하라고 권합니다. 시 쓰는 데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 분 속에 녹아 있는 언어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시 쓰기가 가능합니다.  개인이 가진 언어군은 그 사람이 나고 자란 환경과 영향을 미친 사람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전라도에서 자란 사람과 경상도에서 자란 사람, 산골이나 바닷가에서 자란 사람과 도시에서 자란 사람의 언어군은 분명히 다릅니다. 이엏게 어떤 상황에 반응하고 갈등하면서 형성된 것이 그 사람의 언어 습관입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학습된 것이 아닌 오랜 시간 서서히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축적된 것들입니다.  그 언어들만 가지고도 일상 생활의 의사소통에 아무 문제가 없듯이 시를 쓰는데도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시를 쓰는데 사용되는 별도의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자신의 몸 속에 육화된 언어야말로 남이 흉내낼 수 없는 자신만의 개성적인 언어이며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가장 적절한 시의 언어인 것입니다.  단풍나무가 되는 나  너 보고 싶은 마음 눌러죽여야겠다고/가을 산 중턱에서 찬비를 맞네/ 오도가도 못하고 주저앉지도 못하고/ 너하고 나 사이에 속수무책 내리는/ 빗소리 몸으로 받고 서 있는 동안/ 이것 봐, 이것 봐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네/단풍나무 혼자서 온몸 벌겋게 달아오르네  안도현 시인의 ‘단풍나무 한 그루’라는 시입니다. 온 산이 붉게 물든 이 늦가을에 무척 어울리는 아름다운 시입니다. 가을은 그리운 누군가가 절실하게 더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곧 퇴락의 겨울을 맞게 될 것이므로 지금 만나지 않으면 영영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드는 것이지요.  시 쓰기에 앞서 남이 쓴 좋은 시를 많이 읽어 보는 것이 꼭 필요한데 이는 남의 좋은 부분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이며 시의 발상에서완성까지의 구체적인 방법을 익히는 공부가됩니다. 남의 시를 읽다가 자기 마음에 와 닿는 작품을 만나면 그 시인의 시집을 구해서 꼼꼼히 읽는 게 좋습니다. 자신이 공감한 시를 쓴 시인은 자신의 체질이나 성향에 맞는 시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므로 그만큼 배울 점이 많습니다. 문학의 스승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만나집니다.  그렇게 선택된 시를 읽을 때는 그 시를 쓸 당시의 시인의 마음이 되어서 읽어보십시오. 그 시인이 처한 환경 조건이나 심정을 유추하며 한 행 한 행 같이 시를 써 나가는 기분으로 읽는 것이지요. 위의 시 같은 경우는 가을비가오는 날 단풍나무 아래 서 보는 것입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온통 몸이 달아 벌겋게 된 단풍잎, 그 사이에서 알절부절 못하고  찬비를 맞고 있는 나... 목석이 아니라면 누구나 처연한 심정이 될 것입니다. 처연한 심정이 되면 모든 것이 간절해지는 법이고 그러면 누군가가 못견디게 그리워질 것입니다.  여기까지의 수순은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도달할 수 있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그 정황들을 어떤 식으로 엮어 구체적으로 드러낼 것인가를 생각하면 그만 막연해집니다. 이제 그 한 해답을 시인에게 얻어봅시다. 우선 가을산 찬비와 나의 관계를 엮는 고리로 시인은 ‘너 보고 싶은 마음을 눌러 죽’이려고 가을산에서 청승맞게 찬비를 맞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없는 가을산에서 찬비를 맞고 있은 자신에게 무엇인가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이런 발상이 떠올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의도적이라고 해도 그런 발상을 거쳐 그런 마음을 먹은 시인은 더욱 처연한 심정이 됩니다. 빗소리만 들리는 고적한 산중턱, 그리운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나. 이 정황은 비장한 정적이며 폭발 직전의 절정과도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이 ‘너 보고 싶은 마음 눌러 죽’이려고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입니다. 그 하나의 발상이 가을산과 빗소리의 분위기를 시적인 정황으로 창조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단풍나무와 나의 관계는 어떻게 엮고 있습니까. ‘너 하고 나 사이에 속수무책 내리는/ 밋소리 몸으로 받고 서 있는 동안/ 이것 봐,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네’에서 드러나듯이 보고 싶은 마음을 더이상 어쩌지 못해 몸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비장한 인내와 비오는 가을산의 정적이 드디어 단풍으로 폭발하고 만 것입니다. 시적 대상과 시 쓰는 자아가 동일시되는 서정시의 전형적인 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개속에 묻힌 나를 찾아  어느새 일 년의 마지막 달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때쯤이면 늘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의 속도와 티끌만큼 남은 시간의 유한함에 몸을 떨게 됩니다. 한 장만 달랑 남아 있는 달력을 보며 괜스레 마음이 바빠지고 다 이루지 못한 일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달이기도 합니다. 정말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잠시도 멈추거나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문학은 이런 세계의 유한함에 대항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한한 시간을 인정해 버리고 거기에 무방비로 던져진 상태의 인간은 무력해지거나 즉물적인 쾌락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종말을 앞두고도 나무 한 그루를 심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끝나더라도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끝나면 세상도 끝나는 것으로 압니다.  문학은 이를테면 그런 현세적인 가치체계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입니다. 자기만의 것에 골몰한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의 인생과 사고방식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 우리와 함께 공존하고 있는 삼라만상에 눈을 돌리도록 하는 것, 유한한 것이라고 믿는 인간의 시간을 무한한 순환의 수레바퀴로 돌려놓는 작업이 곧 문학이 추구하는 일입니다. 자기 살기도 바쁜 세상에 남의 인생까지를 참견해야 하는 문학은 그래서 고통스럽고 복잡다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강의 물을 따라가며 안개가 일었다/ 안개를 따라가며 강이 사라졌다 강의/ 물 밖으로 오래 전에 나온/ 돌들까지 안개를 따라 사라졌다/ 돌밭을 지나 초지를 지나 둑에까지 올라온 안개가 망초를 지우더니/ 곧 나의 하체를 지웠다/ 하체 없는 나의 상체가/ 허공에 떠 있었다/ 나는 이미 나의 지워진 두 손으로/ 지워진 하체를 툭툭 쳤다/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강변에서 툭툭 소리를 냈다.  위의 시는 오규원 시인의 「안개」라는 시입니다. 여기서 우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안개가 나를 가린다’가 아니라 ‘안개가 나를 지운다’고 말한 점입니다. 나 위주로 판단하면 안개는 분명히 나의 시야를 가리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나’는 강과 돌, 초지와 둑, 망초같은 것들과 동격입니다. 그런 사물들과 함께 내 육체도 안개에 의해 서서히 지워지고 있습니다. 나의 의식은 내 몸을 강둑에 버려둔 채 팔짱을 끼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자기자신까지도 객관하시켜 전체의 맥락 속에 놓을 수 있어야 참다운 글쓰기가 가능해집니다.  여기서의 안개는 무심히 우리 앞을 스쳐 지나가는 시간일 수도 있고 우리의 존재를 갉고 지배하는 외부적인 힘이나 나태한 관습, 고정관념 따위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안개에 가려 길을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때 위기 상황을 인식한 내가, 내 존재의 여부를 확인해 보기 위해 하체를 손으로 툭툭 쳐 보는 것입니다.  문학은 이렇게 끝없이 자기 존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형체없는 안개가 자기 몸을 잠식해 들어오는 것까지도 감지할 수 있는 예민한 촉수로 무감각해진 자기 존재의 하체를 한 번 툭툭 건드려보시기 바랍니다. //////////////////////////////////////////////////   poetry , 詩란? 요약 ㅡ 언어의 의미·소리·운율 등에 맞게 선택·배열한 언어를 통해 경험에 대한 심상적인 자각과 특별한 정서를 일으키는 문학의 한 장르.   일반적으로 시라 할 때는 주로 그 형식적 측면을 가리켜 문학의 한 장르로서의 시 작품(poem)을 말하는 경우와,    그 작품이 주는 예술적 감동의 내실적(內實的)인 시정(詩情) 및 시적 요소(poetry)를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전자는 좁은 의미의 시로서 일정한 형식에 의하여 통합된 언어의 메아리·리듬·하모니 등의 음악적(청각적) 요소와 언어에 의한 이미지·시각 등의 회화적(시각적) 요소에 의해서 독자의 감각이나 감정 또는 그 상상력에 작용하여 깊은 감명이나 고양된 존재감을 제공하는 것을 의도하는 문학작품의 일종이다. 여기에서는 언어의 감화적(感化的)·정동적(情動的)인 기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언어의 선택·배열·구성이 요구된다.   후자는 넓은 의미의 시를 말하는데, 시작품뿐만 아니라 소설·희곡·수필 등의 문학작품에서 미술·음악·무용·연극· 사진·영화·건축 등의 예술작품, 더 나아가서는 자연이나 인간사, 사회현상에 이르기까지 그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의미에서의 시는 대부분 일반적인 본질 그 자체이므로 그들 사이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다.   시쓰기 방법 1. 소재와 주제 선정 - 겪은 여러 가지 일들을 되살려서, 소재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본다. 2. 글감 고르기 - 가장 또렷하게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을 하나 고른다. 3. 구성하기 - 정해진 글감을 가지고, 글의 맥락대로 구성한다. 4. 표현하기 - 글의 유형과 표현 기법을 정해서 원고지에 기록한다. 5. 글 다듬기 - 부족한 것은 보충하고, 불필요 없는 것은 뺀다   .1.시의 행과 연   형태상으로 보자면 시의 구조는 행(行)과 연(聯)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행과 연은 시의 형태를 만들어주는 구조의 기본골격이란 말과 같겠지요. 행은 단어, 구(句), 절(節) 또는 그 것들의 연합으로 되어 있고 연은 하나의 행, 또는 행의 연합으로 구성 됩니다. 그러므로 이론상으로는 단 하나의 단어만으로도 한 편의 시가 될 수도 있겠지요.   아마, 여러분들도 자기 집을 새로 지으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아니 아파트에 사신다고 해도 마찬가지이지요. 아무리 훌륭한 재료를 썼다 하더라도 구조가 좋지 못하면 형태가 온전하지 못하지요.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시상과 좋은 시어를 사용하여 시를 쓴다 고 하더라도 행과 연을 잘 이루지 못하면 시적 성공률은 그만큼 떨어질 것이 자명한 일입니다. 처음 시를 쓰거나 아직 많은 시를 써보지 않으신 분들은 아무런 필연성이나 계산성도 없이 뗐다 붙였다 행과 연을 구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행과 연의 구성은 전적으로 작가 개인의 마음대로 입니다.   그러나 행과 연의 잘못으로 시적 전달이 잘 못 되거나 시적 감응을 반감시킬 염려가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는 불필요한 행과 연을 구분해서 오히려 전체적인 형태마저 기형적으로 만드는 것을 볼 수 가 있습니다. 시의 구조는 매우 치밀한 것입니다.   2.첫 행은 어떻게 시작하는가 우리는 시작이 절반이란 말을 늘 합니다. 그만큼 시작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여러분들도 시를 쓰거나, 꼭 시가 아니고 편지를 쓸 때도 첫 번 화두를 펴기가 제일 힘들다는 경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첫 줄만 시작하면 그 뒤로는 줄줄이 나오는 글들도 늘 그 첫 마디 한 마디에서 막히거든요. 그만큼 처음 시작이 중요합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그 다음 단추도 바로 끼어지는 것이 여기에서도 그대로 적용 이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시에서 첫 행은 독자들의 관심과 호기심까지 유도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라는 이상화의 시에서는 이 첫 행에 시 전체의 주제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시 전체 주제가 첫 행에 압축되어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시의 첫 행은 전체 시의 내용과 직결된다는 점을 늘 마음에 두셔야 할 것입니다. 그 첫 행의 이미지가 무척 중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   1.시작 기법(詩作 技法) (行(행)과 聯(연)에 대하여)   가) 行(행) 시에서 行(행)의 역할은 의미와 心象(심상),리듬의 段落(단락)을 선명하게 나타낸다, 定型詩(정형시)에서는 행이 음수율(音數律)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만 自由詩(자유시)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이 행이 훨씬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윤동주 :서시“에서   위에서 밑줄 그어진 시행을 만약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이렇게 한 행으로 고쳐 적는다면 의미와 심상, 리듬의 템포(한 행은 음악의 한 소절과 같아서 음수가 많으면 그만큼 템포가 빨라짐)가 생기고 말 것이다.   저, 가슴깊이 따뜻한 삼월의 하늘가에 인제 바로 숨쉬는 꽃봉오릴 보아라.   서정주님의 “밀어”의 마지막 聯(연)인데 “저”라는 한 음절의 낱말이 한 행으로 독립되어 배치된 것은 보통의 산문에서 보기 보기드믄 일이다 이 시의 경우 “저”라는 말이 다음에 배치된 행과 비겨질만한 의미의 중량을 지니고 있다고 보겠으며 작자는 이를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聯(연) 한편 聯(연)은 의미와 심상, 리듬(內在律,내재율)의 단락을 행보다 더 크게 보여준다. 연과 연사이의 관계는 서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그리고 행은 단어가 한 행을 이룬 경우와 句(구)가 또는 節(절)이 한 행을 이룬 경우가 있으며 연은 행 하나가 동시에 연인 경우도 있다.   시 창작 강의 1   1)어떤 감정, 상황을 낙서하듯 부담없이 써볼 것 누군가 애타게 그리워할 때, 즉 사랑할 때, 마음에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한번 살펴보세요. 예를 들면 잠이 안온다, 목이 마르다, 입술이 탄다, 머릿속이 텅 빈다, 책을 읽을 수 없다, 온통 그 사람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그런 걸 발견하고 한번 써보세요. 사랑에 대한 설명은 하지 말고, 예를 들면 장마에도 내 가슴은 가뭄 든 천수답이다   2).시속에 그림이 있을 것 시의 그림을 통해서 독자가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詩中之畵, 畵中之詩) 즉 시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   3).묘사와 설명(설명을 하지 말고 묘사를 하라)- 미역국 없는 생일 상 - 묘사(시)고 쓸쓸한 생일 상. _ 설명입니다.   4).시어 선택과 관념어를 색출하라(관념어를 쓰지 말자) 단어 하나에도 필연성이 있어야 합니다. 관념어란? 구체적인 대상이 아닌 추상적인 생각이나 심리를 나타내는 말 관념어의 예: 그 친구는 일가친척 호칭은 잘 몰라도 민주적, 민중적 같은 관념어는 오히려 잘 안다     제 2강 비유법의 종류   ***** 비유법의 종류 ******* 1. 직유법: ~처럼, ~같이, ~듯이, ~인 양 등의 조사를 붙여서 글을 꾸미는 방법. 예 ) 파뿌리같이 늙은 할아버지, 새순같은 아이의 손, 닭장 같은 아파트   2. 은유법 : 조사 없이 (A는 B이다) 단언하듯 표현하는 방법 . 예) 내 마음은 호수, 책은 마음의 양식, 스마트폰은 현대인의 동반자   3. 의인법 :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처럼 표현하는 방법. 예) 노래하는 꾀꼬리, 내 귀를 간지럽히는 목소리, 미소 짓는 해님   4. 활유법 : 무생물을 생물처럼 표현하는 기법 예)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가을빛과 함께 길거리에서 서서     제 3강  시의 함축성 1. 시는 말을 많이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될 수 있는 대로 말을 줄인다는 생각으로 써야 합니다.  2. 깊은 숨과 얕은 숨의 조화가 있을 때 시는 더 절창이 됩니다.  3. 이미지를 물고 물고 가는 이런 시일수로 더 선명해져야 합니다.  4. 산문시라고 산문만으로 쓰는 시는 아닙니다.  산문시일수록 그 속에 운율과 긴장과 반복과 점층이 다양하게 있어야 합니다.  5. 호흡을 조절해야 합니다. 강한 이미지끼리 부딪치면 파열음이 납니다.   * 노래가사를 음미해보면 그 속에도 시가 있습다. *처음부터 멋진 시를 쓰겠다고 덤비면 오히려 시상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문득 멋진 시상이 떠오르면 곧장 메모를 하면 아주 좋습니다. *자주 습작을 하는 습관이 되면 어느땐가는 시가 보입니다.   제4강 독자의 상상력을 남겨라(12/20)   투명하다, 순수하다, 티 없다, 평화롭다, 맑디맑다, 아름답다 등등 혼자서 다 설명해 버리면 독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림은 보여주지 않고 감상만을 말해주는 게 됩니다. ' 뜨거운 그대 입술이 나의 입술에 녹아내릴 때 나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그렇게 황홀했다 비록 길지 않은 인연으로 일회용 종이컵 속에 버려질 담배꽁초 같은'을 제목을   [사랑]이라 하고 ' 일회용 종이컵 속에 버려질 담배꽁초 같은' 로 바꾸면 더욱 시의 맛이 납니다. 그러면 뜨거운 키스나 아픔이나 별별 것들이 독자의 기억 속에서 녹아져 나옵니다.        
1054    散文詩에 대하여 댓글:  조회:6704  추천:0  2016-02-05
산문시(散文詩)에 대하여                                /임 보  현대시를 외형률의 유무와 행의 표기 형태를 기준으로 따져 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가) 운문형식이며 행 구분이 있는 시  나) 산문형식이며 행 구분이 있는 시 다) 운문형식이며 행 구분이 없는 시  라) 산문형식이며 행 구분이 없는 시 가)와 다)는 운율적인 요소 곧 율격이나 압운 같은 외형률을 지닌 시이고 나)와 라)는 그런 외형률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가)는 우리가 흔히 만나는 일반적인 자유시다. 나)는 문체로 볼 때 산문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행 구분이 되어 있다.  金洙暎의 라든지 徐廷柱의 후기 기행시 같은 작품들이 이에 해당한다. 다)는 운율을 지닌 작품이지만 산문처럼 행 구분이 되어 있지 않는 경우다. 등 朴斗鎭의 초기 작품들에서 쉽게 그 예를 찾아불 수 있다. 라)는 운율도 없으면서 행 구분도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李箱의 같은 작품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가)와 나)를 分行自由詩, 다)와 라)를 非分行自由詩라고 구분해 명명키로 한다. 산문시는 바로 이 비분행자유시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산문시는 자유시의 하위 개념이다.  운율의 유무 등 그 내적 구조로 따져 본다면 나)가 다)보다 더 산문성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지만, 산문시를 분별하는 기준을 내적 특성으로 잡는다는 것은 여간 곤혹스런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산문성과 비산문성의 한계를 따지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문시는 그 외형적인 형태를 기준으로 규정하는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산문시는 분행의식이 없이 산문처럼 잇대어 쓴 자유시'라고 정의한다. 韓龍雲의 자유시들은 행이 산문처럼 길지만 산문시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왜냐하면 萬海의 시는 분행의식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만해의 시처럼 그렇게 행이 긴 시들을 長行詩라고 달리 부르고자 한다. 그런데 분행의식을 기준으로 산문시를 규정해 놓고 보아도 역시 문제는 없지 않다. 라)의 산문시와 산문(짧은 길이의)을 어떻게 구분하느냐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즉 산문시와 산문의 한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것이 산문이 아닌 시로 불릴 수 있는 변별성은 무엇인가. 산문시와 산문의 차이를 논하는 것은 결국 詩와 非詩를 따지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나는 바람직한 시란 '시정신이 시적 장치를 통해 표현된 글'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러면 시정신이란 무엇이며 시적 장치는 어떤 것인가가 또한 문제로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무릇 모든 글은 작자의 소망한 바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시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시 속에 담긴 시인의 소망은 보통인의 일상적인 것과는 다르다고 본다. 훌륭한 시작품들 속에 서려 있는 시인의 소망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격이 높은 것이다. 말하자면 승화된 소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이를 시정신이라고 부른다. 시정신은 眞, 善, 美, 廉潔, 志操를 소중히 생각하는 초연한 선비정신과 뿌리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가 되도록 표현하는 기법 곧 시적 장치 역시 단순한 것이 아니어서 이를 몇 가지로 요약해서 제시하기란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굳이 지적을 해 보자면, 감춤(象徵, 寓意, 轉移, persona), 불림(誇張, 逆說, 比喩) 그리고 꾸밈(韻律, 對偶, 雅語) 등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들을 한마디로 '엄살'이라는 말로 집약해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시는 시인의 승화된 소망(시정신)이 엄살스럽게 표현된 짧은 글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리라. 산문시도 그것이 바람직한 시가 되기 위해서는 시정신이 시적 장치를 통해 표현된 글이어야만 한다. 伐木丁丁 이랬거니 아람도리 큰솔이 베허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맹아리 소리 찌르릉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좇지 않고 묏새도  울지 않어 깊은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 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골을 걸음 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히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듸랸다 차고 兀然히 슬픔도 꿈 도 없이 長壽山 속 겨울 한밤내ㅡ ―鄭芝溶 전문 에 담긴 鄭芝溶의 소망은 무엇인가. 無垢寂寥한 자연 속에 들어 세속적인 시름을 씻어 버리고 청정한 마음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리라. 그러니 이 작품에 담긴 시정신은 '親自然 求平靜'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일상적인 욕망을 넘어선 승화된 정신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또한 이 작품에서의 주된 시적 장치는 대구의 조화로운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맨 앞의 '∼하이'로 종결되는 두 문장이 대우의 관계에 있고, 짐승인 '다람쥐'와 새인 '묏새'의 관계가 또한 그러하며, '달'과 '중'을 서술하는 두 문장 역시 그러하다. 또한 의도적인 古語體의 구사로 우아하고 장중한 맛을 살리고 있다.  은 일반적인 산문과는 달리 시정신과 그런 대로 시적 장치를 지닌, 詩의 자격을 갖춘 글이라고 할 만하다. 산문시는 운율을 거부한 시로 잘못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산문시도 율격이나 압운 등을 얼마든지 담을 수 있고, 그런 외형률이 아니더라도 내재율에 실려 표현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여타의 시적 장치들 역시 산문시 속에 어떻게 적절히 구사되느냐에 따라 그 글을 시의 반열에 올려놓기고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산문시는 외형상 산문의 형태를 지니고 있을 뿐이지 결코 시에 미달한 글이어서는 곤란하다. ------------------------------------------------------ * 산문시 몇 편을 아래에 예시함 - 강인한. 봉황수(鳳凰愁) / 조지훈  벌레 먹은 두리 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風磬) 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  (佩玉)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  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 純金 / 정진규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다 손님께서 다녀가셨다고 아내는 말했다 나의 금거북이와 금열쇠를 가져가느라고 온통 온 집안을 들쑤셔 놓은 채로 돌아갔다 아내는 손님이라고 했고 다녀가셨다고 말했다 놀라운 秘方이다 나도 얼른 다른 생각이 끼여들지 못하게 잘하셨다고 말했다 조금 아까웠지만 이 손재수가 더는 나를 흔들지는 못했다 이를테면 순금으로 순도 백 프로로 나의 행운을 열 수 있는 열쇠의 힘을 내가 잃었다거나, 순금으로 순도 백 프로로 내가 거북이처럼 장생할 수 있는 시간의 행운들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손님께서도 그가 훔친 건 나의 행운이 아니었다고 강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큰 죄가 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상징의 무게가 늘 함께 있다 몸이 깊다 나는 그걸 이 세상에서도 더 잘 믿게 되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상징은 언제나 우리를 머뭇거리게 한다 금방 우리를 등돌리지 못하게 어깨를 잡는 손, 손의 무게를 나는 안다 지는 동백꽃잎에도 이 손의 무게가 있다 머뭇거린다 이윽고 져내릴 때는 슬픔의 무게를 제 몸에 더욱 가득 채운다 슬픔이 몸이다 그때 가라, 누가 그에게 허락하신다 어머니도 그렇게 가셨다 내게 손님이 다녀가셨다 순금으로 다녀가셨다 램프의 시 / 강인한 사랑하는 이여, 당신의 마음이 마른 붓끝처럼 갈라질 때, 램프에 불을 당기십시오. 그러면 오렌지 빛깔의 나직한 꽃잎들은 하염없이 유리의 밖으로 걸어나오고, 어디선가 문득 짤랑거리는 금방울 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 희미한 옛 성이 흘러나오고 그 속에서 장난감 말 두 마리가 청색의 어둠을 펄럭이며 달려오는 것을 당신은 또 보실 수 있습니다. 검은 갈기를 물결치며 물결치며 달려오는 이 작은 쌍두마차의 뜻하지 않은 출현에 몇 파운드의 눈발조차 공중에 튀고 있습니다. 램프에 불을 당기십시오. 어둠에 얼어붙었던 모든 평화의 장식물들을 그래서 훈훈히 녹여주십시오. 성에가 끼기 시작하는 유리창에는 알 수 없는 나라의 상형문자가 나타나 램프의 요정에게 말해줄 것입니다. 비단뱀이 땅속에서 꾸는 이 긴 겨울 밤의 천 가지 꿈에 대해서, 에로스가 쏘아 부친 보이지 않는 금화살의 행방에 대해서, 아아 당신 생의 의미에 대해서 말해줄 것입니다. 램프의 요정을 찾아오는 어떤 바람결에는 당신의 이름이 섞여서 나부끼는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램프에 불을 당기십시오. 일에 시달려 당신의 온몸이 은박지처럼 피곤하여질 때, 뜨거운 차라도 한 잔 끓이고 있노라면 아주 먼 데서 미다스 왕의 장미꽃들이 눈 속에서 무거운 금빛을 툭툭 터는 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 찻잔 속에 피보다 진한 밤의 거품이 가라앉고, 당신의 부름에 좇아 그리운 흑발의 머리칼이 떠올라선 어두운 당신의 얼굴을 포근히 감싸줄 것입니다. 찻잔 밖으로는 돛대를 높이 단 배 한 척이 눈보라 속을 홀린 듯 흘러나오고, 고운 가락의 옛 노래와 같이 어떤 두 사람의 끝없는 발자국이 먼 해안의 모래밭 속에 가만가만 감춰지고 맙니다. 끊을 수 없는 욕심에 사로잡혀, 사랑하는 이여, 당신의 영혼이 끓어오를 때 램프에 불을 당기십시오. 그 조용한 불길의 칼에 지나온 눈물을 더하십시오. 그러면 고요의 은빛 바다가 말없이 열리고, 빨간 루비의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은 가슴 설레며 몰려가 저마다의 정다운 꽃등을 높이 든 채 바다로 나가고……. 아 그럼 사랑하는 이여, 당신도 이 겨울이 다 가도록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나의 램프를 밝혀 들고 조용히 흔들어주시렵니까. 꺼지지 않는 루비의 램프를. ===================================================================     246.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강 은 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라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강은교 시집 중에서       강은교 연보  ----------------------------------------------   247. 사랑법 / 강은교                       사랑법                         강 은 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리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 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강은교 시집 중에서    
1053    은유에 관한 보고서 댓글:  조회:4572  추천:0  2016-02-05
치환은유와 병치은유         ㅡ(은유에 관한 보고서)  - 홍문균선생의 '시어론'에서  1) 옮겨놓기  비유가 단순히 유츄에 의한 유사성의 발견이나 말의 효과적 전달을 위한 장식이거나 새로운 말의 창조라는 수사학적 논리로는 미흡한 것이며 차라리 비유의 현대적 논의에서 보여주고 있는 언어의 상호작용이나 긴장관계에서 그 가능성의 단서를 발견케 되는 것이다.  동일성이니 유추적이니 하는 사고나 상상의 범주에서 이해하려는 비유의 기능이란 결코 시어법의 전유물이 아니라 산문을 포함한 일반적 어법에서도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유의 본질은 어떤 사물을 드러내기 위해 그와 유사한 다른 사물을 비교하여 설명하는 어법이다. 비교를 위해서는 먼저 설명하려는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그것과 빗대어 볼 보조대상도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두 사물간의 유사성이나 이질성을 통하여 대상을 보다 확실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비유를 의미의 전이로 설명했고 이러한 의미의 이동을 대치론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 대치론의 맥락에 치환은유, 즉 옮겨놓기 은유가 있다. 치환은유란 두 사물간의 비교가 아니라 A라는 사물의 의미가 B라는 사물에 의해 자리바꿈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형태상으로 보면 'A는B이다'라는 구문이 성립한다.  이상은  아름다운 꽃다발을 가득 실은  쌍두마차였습니다.  현실은  갈갈이 찢겨진 두개의  장송의 만가였습니다.  아하! 내 청춘은  이 두 바위 틈에 난  고민의 싹이었습니다.  - 김용호의 '싹'  이 시는 옮겨놓기의 일반적 전형이라 할수 있다. 제목이나 관념자체가 일상적인데다 이를 해명하는 유추의 매체도 현실에서 선택한 옮겨놓기의 형태다. 첫연에서는 이상은 쌍두마차, 둘째연에서는 현실은 만가,  셋째연에서는 매체 상호간에 어떤 유사성을 토대로 해서 그 의미를 전환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유사성이란 덜알려진 것과 잘 알려진 것의 종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상, 현실, 청춘이란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 모호한 관념의 세계다.  그러나 쌍두마차, 만가, 싹은 구체적으로 실감할수 있는 사물들이다.  이와같이 모호하고 불확실한 원관념이 상대적으로 구체적이고 이미 잘알려진 여러개의 보조관념으로 전이되어 의미의 변용 내지 확대를 가져온다.  그러나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결합도 물론 동일성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이며 이 동일성은 단순한 외형상의 근사한 특질이라기 보다 정신적이고 정서적이며 가치적인 동일성이다.                  2) 마주놓기  그러나 휠라이트는 시에서 은유의 진수는 의미의 옮겨놓기가 아니라 병치, 즉 마주놓기의 관계에서만 보다 철저히 밝혀질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치환과 병치 은유를 epiphor 와 diaphor로 표기한다. 여기서 phor가 의미론적 전환change를 뜻하며 접두사인epi 는 포개어짐,dia는 통과함 through라고 할때 치환과 병치의 근본적 속성을 확인케 된다.  그는 의미론적 전이가 신선한 방법으로 어떤 경험, 실제적이거나 상상적인 것의 특수성을 통과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것은 치환에서 처럼 어느 한쪽으로의 합침이 아니라 서로 각각 대결 상태를 유지하면서 제 3의 효과나 의미나 정서를 자아내게 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예술의 형식 가운데 비 대상 음악과 추상회화가 추구하는 의미의 공간이라 할수 있다.  이들은 수단으로서의 리듬이나 선 혹은 색채가 거의 완벽하게 목적으로서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시의 경우 이러한 견해는 일찌기 사르트르에게서 천명된바가 있다.  그는 시는 수단으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사물로서의 언어를 특질로 한다는 것이다.  식당의문깐에방금도착한X웅같은붕우가헤어진다.  잉크가엎질러진각설탕이삼륜차에적하된다.  명각을짓밟는군용장화~(한자가 어려워 더이상못쓰겠음)  -이상의 '건축무한육면체각체'에서  이시는 X웅같은 붕우의 헤어짐' '삼륜차에 적하되는 각설탕','명각을 짓밟는 군용장화'라는 전혀 유사성없는 사건들이 폭력적으로 병치되어있는 시다.  따라서 이러한 시에서는 의미를 암시한다기 보다 존재를 표상하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이질적인 사물들이 이렇게 대치하여 무질서하게 병치됨으로써 의미나 정서의 충돌을 느끼게 한다.  병치 은유의 진가는 이처럼 시 속에서 새롭게 고안된 배열, 곧 병치의 형식에 의해서만 드러나는 어떤 다양한 특수성의 세계 인식에 있다.  한 모퉁이는 달빛 드는 낡은 구조의  대리석, 그 마당(사원) 한 구석  잎사귀가 한잎 두잎 내려 앉는다.  - 김 종삼의 '주름간 대리석'  이 시는 마당을 무대로 하여 두 개의 상반된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마당 한모퉁이에 '달빛드는 낡은 구조의 대리석'이고 다른 하나는 마당 한 구석에 내려 앉는 한잎 두잎의 잎사귀이다.  이처럼 마당 모퉁이와 마당 구석이 대칭된 자리에 대리석과 낙엽이 당돌하게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유사성이나 동일성으로 옮겨보기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전혀 이질적인 사물들이 마주보기 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병치의 상황은 결코 한 사물을 쉽게 설명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새로운 분위기나 의미를 창조하려는 계획이다.  여기서 존재의 리얼리티를 새롭게 인식할수 있는 것이다.  군중 속에 낀 이 얼굴들의 환영  비에 젖은 검은 나뭇가지에 걸린 꽃잎들  - 파운드의 '지하철 정류장'에서  첫행의 '얼굴들'과 둘째행의 '꽃잎들'이라는 이미지는 단순히 하나의 인상적 대조를 보일 뿐이다. 이들 두 이미지의 관계는 표시적이라기 보다는 제시적이라 하겠다. 두 이미지의 사이에서 독자가 포착하거나 포착한다고 생각하는 유사성은 전체적이 아니라 귀납적이다.  그러나 대조적인 시행임에도 불구하고 옮겨보기의 뉘앙스가 어느 정도 내포되었다고 볼수 있다. 얼굴들의 환영과 나뭇가지에 걸린 꽃잎들은 서로 병치된 인상을 주면서도 얼굴이 꽃잎으로 대치된 치환적 구성임을 알수 있다.  따라서 병치와 치환의 어법은 엄격히 구분될 것이 아니라 병치에 가까운 치환의 시법을 요구하게 된다.  그래서 병치 은유 자체가 치환은유적 배음(Over Tone)을 환기하거나 상이한 치환은유들이 단순한 관념을 위한 매체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매재적 이미지들의 신선한 병치를 통해 독자의 세계를 보여주거나 병치 은유처럼 고립된 거싱 시 전체의 문맥에 따라 치환은유가 되며 그 역도 가능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치환은유가 시 속에서 맡는 역할은 의미 significance를 제시함에 있고 병치은유의 역할은 존재 presence를 창조함에 있다 할수 있다. 따라서 이상적 시어의 은유적 어법은 치환과 병치 양자를 동시에 조화하는 것이라 할수 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에 있어 비유어의 정당한 의미는 비교나 대조나 유추에 의한 동일성의 발견이라는 차원을 넘어 비동일성에 의한 폭력적 결합과 창조에 있으며 어떤 사물을 쉽게 인식하고 표현하려고 원관념에 보조관념을 동원하거나 주지와 매체의 형식을 빌었던 수사학적 방식이 아니라 이질적 언어를 병치시켜 언어의 상호작용, 긴장관계를 조성하고 이로써 새로운 의미와 정서와 리얼리티를 창조하는 독특한 어법에 있음을 알수 있는 것이다.        
1052    詩쓰기와 자아찾기 댓글:  조회:5020  추천:0  2016-02-05
 시쓰기와 자아찾기                                                                                                             이은봉(시인, 광주대 교수)       1. 언어, 나, 자아발견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지 2년이 지나면 말을 하기 시작한다. 직접 발화를 하지 못하는 농아도 두 살이 넘으면 말, 곧 언어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두 살이 넘으면 말을 한다는 것,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언어로 상징되는 사회현실 속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현실을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는 말이다. 말이라는 도구가 없는 사회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캉은 언어 이전의 삶을 가리켜 상상계라고 하고, 언어 이후의 삶을 가리켜 상징계라고 한다. 결국 전자는 요람의 삶을 뜻하고, 후자는 사회현실의 삶을 뜻한다. 요람의 삶에는 내가 없다. 내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주체로 자각되어 있지 않은 '나'라고 해야 옳다. 따라서 상처도 고통도 지각할 수 없는 천국을 살고 있는 것이 요람에서의 '나'의 삶이다.   요람에서의 '나'와 사회현실에서의 '나'는 삶의 존재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회현실은 요람과는 달리 생존경쟁이 냉혹하고 살벌하게 전개되는 곳이다. 사회현실을 이처럼 냉혹하고 살벌하게 만드는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이론의 여지없이 그것은 언어이다. 언어는 화살촉이 되기도 하고 폭탄이 되기도 하며 '나'의, 개인의 삶을 결정한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언어 때문에 무서워 떨고, 아파 신음하고 있다.   물론 그 반대로 언어 때문에 즐거워 환호하고 기뻐 웃는 사람들도 많다. 이처럼 말은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기도 하고 붙여놓기도 한다. 시의 언어도 다를 바 없다. 어떤 시는 '나'라는 존재를 고통에 빠지게도 하고 어떤 시는 '나'라는 존재를 '행복'에 젖게도 한다.   이처럼 사회현실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던 언어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사회현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넘치는 언어에 치어 살고 있다. 물론 언어에 치지 않고 언어를 즐기고 향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누구나 언어의 칼날에 찔려 오랫동안 신음을 해본 체험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누구인가.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는 당연히 '나'일 수밖에 없다. 언제나 나는 '말'을 통해 나 자신 밖의 사회현실 속으로, 곧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세상도 언어를 통해 내 속으로 들어오기는 마찬가지이다. 흔히 이 때의 나를 개념화하여 '자아'라고 하고, 세상을 개념화하여 세계라고 한다.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가 나, 곧 자아라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언어를 통해 자아는 그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해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체성을 확보해간다는 것은 내가 나라는 의식, 곧 자아의식을 형성해간다는 것을 뜻한다. 자아의식이라는 용어는 자아개념이라는 용어로 불리기도 한다.   자아개념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더없이 중요한 작용과 역할을 한다. 모든 자아는 자신의 정체성, 곧 자아개념에 맞게 사회현실과 관계하고 사회현실에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자아개념은 본래 나란 무엇이고 누구인가, 나란 있는가 없는가 등의 질문과 함께 형성되어 가기 마련이다. 이런 질문과 함께 하는 자아의 탐구는 우선 자아를 발견하도록 한다.   자아를 발견하도록 하는 자아탐구는 타자탐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나의 개인으로서 자아가 가장 먼저 인식하는 타자는 가족이다.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동생들로부터 자아는 처음 타자를 인식하고 경험한다. 타자를 인식하고 경험한다는 것은 주체가 저 자신을 작동시킨다는 뜻이다.   죽는 순간까지도 저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지 반문해보지 못한 사람도 없지는 않으리라. 특히 지난 봉건 시대에는 그런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미처 개인으로서의 자아가 계발되어 있지 못했던 것이 그 시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 자본주의사회에 와서는 그런 사람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고 해야 옳다. 개인의식, 곧 자아의식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것이 근대 자본주의사회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근대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 '나'는 누구이고 무엇인가 하는 자아에 대한 반문과 인식은 따라서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오늘의 근대 자본주의사회를 결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 개인으로서의 '나', 곧 주체가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나, 곧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전면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회가 근대자본주의 사회이다.   근대 자본주의사회에 와서 자아에 대한 반문과 인식은 대강 사춘기를 거치면서 구체화된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개인으로서 '나'라는 자아는 타자를 인식하게 되고, 그 타자를 통해서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한 인간의 성장과정에 비추어 볼 때 사춘기만큼 중요한 시기는 없다. 사춘기는 자아가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독립된 주체로 바로 서게 되는 시기이다. 사춘기에 방황이 심한 것도 사실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아와 세계에 대한 반문과 인식을 통해 저 자신의 관점을 만들어 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자아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누구라도 저 자신을 실현하도록 부추기기 마련이다. 여기서 저 자신을 실현한다는 것은 사회현실 속에 저 자신을 투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사회현실 속에 저 자신을 바로 세우려고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아실현은 '나'에 대해 반문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 그리하여 자아를 발견해 가는 사람에게는 숙명적으로 뒤따라오는 성장의 과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아발견과 자아실현이 시간적 순차에 의해 線條的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아실현의 과정에 처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저 자신의 자아를 새롭게 발견하고 깨달아 가는 것이 주체로서의 개인이다. 그것은 시를 쓰는 주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시를 쓰는 자아, 곧 시인도 계속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깨닫는 동시에 발견하고 깨달은 것을 실현하는 과정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2. 시 속에서의 나, 가공된 자아   그렇다면 시를 쓰는 자아, 곧 시인에 의해 씌어지는 시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의적 대답은 단일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는 시에 대한 정의가 수없이 많고 다양하다는 것이 잘 증명해준다. 돌이켜 보면 시에 대한 정의는 시를 바라보는 개인의 관점의 산물이거나 시를 둘러싸고 있는 시대의 상황의 산물일 따름이다. T. S 엘리오트가 시에 관한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라고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시에 대한 정의가 이처럼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가 잘 닦여진, 잘 가공된 언어의 集積物인 것만은 사실이다.   언어를 질료로 하지 않는 시란 있을 수 없다. 물론 시가 아닌 '시적인 것'은 언어 이외의 질료에 의해서도 표현이 가능하다. 영상물에 의해서도, 음악에 의해서도 '시적인 것', 이른바 서정적인 것은 생산될 수 있다. 따라서 시적인 욕구, 즉 서정적인 욕구는 언어 이외의 매체에 의해서도 충분히 향유가 가능하다. 시적인 욕구, 즉 서정적인 욕구는 인간의 심미적 通全의 욕구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본능의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야 옳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시는 반드시 언어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언어를 떠난 '시적인 것'은 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시적인 것'일 따름이다. 시라는 말에는 이미 그것의 질료가 언어라는 뜻이 들어 있다. 여기서 언어를 강조하는 까닭은 시의 언어를 창조하는 주체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당연히 이 때의 시는 서사시나 극시가 아니라 서정시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 서정시를 쓰는 주체는 누구인가. 당연히 그것은 '나'라는 이름의, 자아라는 이름의 개인이다. 그렇다. '나'라는 개인이 발화한 내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서정시이다. 이 때의 개인, 곧 시를 발화하는 주체를 흔히 '화자'라고 부른다. 연구자나 비평가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부르면 '화자'이지만 시인 자신의 시각에서 부르면 말 그대로의 '나'일 따름이다. 다름 아닌 '나', 곧 자아가 쓰는 것이 시라는 것이다.   새삼스러운 얘기이기는 하지만 이 때의 '나'가 시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시의 안에 들어와 있는 '나'도 나이지만 시의 안에 들어오지 않은 나, 시에 들어오기 이전의 '나'도 나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이 때의 '나'가 오히려 훨씬 더 의미를 갖는 '나'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제의 삶에서 '나'라는 것이 있기는 있는가. 있다면 '나'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나의 존재유무를 논의하기 전에 일단은 '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할 필요가 있다. '나'라는 존재의 실체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란 무엇인가. 사람인가. 짐승인가. 짐승이기보다는 사람인가. 아니 사람이면서도 짐승? '나'란 무엇인가. 정신인가. 물질인가. 물질이기보다는 정신인가. 정신이면서도 물질? 나를 구성하고 있는 질료는 이처럼 단일하지 않다.   다시 물어보자. '나'란 누구인가. 시인인가. 학자인가. 학자이기보다는 시인인가. 시인이면서도 학자? '나'란 누구인가. 교수인가. 선생인가. 교수이기보다는 선생인가. 선생이면서도 교수? '나'란 누구인가. 아들인가. 아빠인가. 아빠이기보다는 아들인가. 아들이면서도 아빠? '나'란 누구인가. 형인가. 오빠인가. 형이고 오빠이기보다는 장남인가. 장남이면서도 형이고 오빠? 나란 누구인가. 악마이기보다는 천사인가. 천사이면서 악마?   이처럼 어떠한 '나'도 양자택일적으로, 이분법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나는 언제나 복합적으로, 양가적으로, 이중적으로, 다의적으로 흔들리며 존재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아가 갖는 이런 복합성, 양가성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아' 밖의 가치를 단일하게 받아들여왔듯이 '자아' 안의 가치도 단일하게 받아들여야 심리적인 안정을 얻는 것이 지금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처럼 흔들리며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나'는 정말 가시적으로 있는가. 있다면 언제나 나는 항상 그렇게 있는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말할 것도 없이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 '나'이다. 본래 '나'라는 존재는 주체에 의해 인식되는 모든 객관 존재가 그렇듯이 멈춰 있거나 고여 있지 않다.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모습을 바꾸며 겨우 존재하는 것이 '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나'는 변하고 움직인다.   다시 물어보자. '나'는 정말 가시적으로 없는가. 없다면 나는 언제나 항상 그렇게 없는가. 어제도 없고, 오늘도 없고, 내일도 없는가. 없다면 어떻게 없는가. 이미 나는 광어회처럼 엷게 저며져 당신의 입 속에, 위 속에, 장 속에, 살 속에, 핏속에 흐르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미 한 줌 흙으로, 한 가닥 꽃잎으로, 한 마리 여우로 몸을 바꾸고 있지 않은가.   본래 나는 타자와 관계하면서 단지 그 관계의 양상을 통해 존재하기 마련이다. 타자와 접촉하지 않고서는 결코 현현되지 않는 것이 '나'이다. 이처럼 나는 언제나 타자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법이다. 내가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나의 현상으로 내가 드러난다는 것은 이미 내가 타자 속에 스며든다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내가 타자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시에서의 나는 언제나 타자와 관계를 하는 '나'이이다.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자아가 시에서의 나이다.   시에서 나는 타자를 내 속으로 끌어들이기도 하지만 나를 타자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따라서 시에서 나와 타자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시에서는 이 때의 관계가 하나됨의 세계, 곧 동일성의 세계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의 시에는 조화와 균형으로서의 동일성의 세계가 이루어져 있지 않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동일성의 세계에 대한 열망조차 드러나 있지 않은 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일성에 대한 열망은 나와 타자가 갈등하고 대립하지 않는 세계, 참된 평화의 세계를 목표로 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러한 세계는 자유가 흘러 넘치는 파라다이스나 유토피아의 세계를 전제로 한다. 과거의 공간인 파라다이스나 미래의 공간인 유토피아의 세계는 인간이 오랫동안 꿈꾸어온 이상세계를 가리킨다.   이상세계를 꿈꾸어온 주체는 말할 것도 없이 개별적인 자아, 곧 '나'이다. 실제의 삶을 돌아보면 이 때의 '나'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내 속에는 나만이 아닌 수많은 존재들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 속에 누가 살고 있다는 것인가. 가족이? 이웃이? 민족이? 자연이? 나아가 하느님이?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 아니 하느님의 또 다른 아들 사탄이? 이들과는 다른 코드의 존재들, 그리하여 부처님이 살고 있으면 어떤가? 아니 악귀들이? 아니 이들 모두가 살고 있으면 또 어떤가.   내 속에 이렇게 많은 존재들이 살고 있으면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어지럽고 혼란스럽지 않은 자아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본래 '나'라는 존재는 움직이는 혼돈 그 자체라고 해야 옳다.             3. 참된 나 : 없는 나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이 '나'라는 이 혼돈에 구태여 질서를 세울 필요가 있을까. '나'라는 존재는 본래부터 혼돈 그 자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혼돈 그 자체를 '나'라는 존재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대부분의 '나'는 나 자신을 혼돈 그 자체로 내버려두지 못한다. 혼돈은 내가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 혼돈이 주는 무질서, 무질서가 만드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게 끊임없이 이름을 붙여 '나'라는 질서를 만든다. '나'라는 질서를 만들면서 나는 비로소 '나'를 살아간다.   이 때의 '나'라는 질서로 하여 '나'는 무수한 상처를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어쩌다 보면 '나'는 상처 자체가 되기도 한다. 여기서의 상처는 '나'에게도 작용하고 '남'에게도 작용한다. 나를 억압하고 남을 억압하는 것이 '나'라는 질서, 상처로서의 질서이다.   내가 만든 '나'라는 질서 속에서 상처를 받으며 허우적대며 살아가는 '내'가 참된 '나'일까. 참된 '나'이기 어렵다. 이 때의 '나'는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래 '나'라는 존재는 없으니까. 이미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순간 너이고, 그이고, 세상 자체라는 점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이렇게 변용되는 것은 시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시 속에서도 내가 등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매 편의 시는 매 편의 '나'를 만들기 마련이다. 따라서 한 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한 편의 나를 만든다는 것이 된다.   서정시는 본래 '나'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독백의 형식이다. 독백의 형식이라는 것은 시적 화자인 '나'의 혼잣말로 시의 언어가 진술된다는 것을 뜻한다. '나'는 혼자서 지껄이고 독자는 몰래 엿듣는 화법으로 전개되는 것이 서정시이다.   시를 통해 만들어진 '나'는 시 밖의 '나'가 아니라 시 속의 '나'라고 해야 옳다. 시 속에도 시 밖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분열된 '자아'가 존재한다. 시 속의 '나'가 시 밖의 '나'와 얼마간 다른 '나'라는 것은 이제 의심할 바 없다. 이 때의 '나'는 나에 의해 만들진, 가공된 '나'라는 점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이지만 시 밖의 '나'와 시 속의 '나'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닌 '나', 내가 만든 '나'……, 시 속에 존재하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그를 알면서도 모르겠다. 이 때의 '나'는 마땅히 '나'이면서도 '나'가 아니고, '나'가 아니면서도 '나'이다. 시 속의 '나' 역시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이기 마련이다. 10년 전에 쓴 시 속의 '나'와 지금 막 쓴 시 속의 '나'는 다를 수밖에 없다. 시 속의 '나' 역시 정지되어 있는 존재로서의 '나'는 아니다.   하지만 시 속의 '나'가 가공되고 제작된 '나', 꾸며지고 장식된 '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시 속에 존재하는 '나'는 참 '나'가 아니고 시 밖에 존재하는 '나'가 참 '나'인가. 그렇지는 않다. 시 밖에서도 끊임없이 흐르고 움직이며 가공되고 꾸며지는 것이 '나'이다. 시 속에서든 시 밖에서든 고정된 실제로서의 나는 없다. 시 속에서처럼 시 밖에서도 계속해서 저 스스로를 변모시켜 가는 것이 '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 속에서의 '나'는 본래 이처럼 꾸며지고 장식된 채로 존재한다. 시 속에는 내가 창조한 무수한 내가 散開된 채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시를 통해 내가 '나'를 지속적으로 꾸미고 장식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이미 '나'는 이렇게 저렇게 가공되고 제작될 수밖에 없으니까.   이런 점에서 생각하면 시 속에서의 '나'는 하나의 기교이고, 허구일 따름이다. 허구와 기교로서의 나, 일종의 장식으로서의 나……. 시 속에서 나는 항상 대상으로 분산되고 스며들면서 존재한다. 따라서 시인이 선택하는 대상은 그 자체로 나라고 할 수 있다. 시 속에서 내가 이처럼 타자화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 속으로 들어오는 풍경이나 화폭이 그 자체로 세계관의 선택이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저 자신을 이렇게 수식하고 위장하는 '나'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삶의 본질, 아니 '나'의 본질이 본래 그렇기 때문이다. 시 속에서의 '나'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시 밖의 내가 시 속의 '나'를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시 속의 내가 시 밖의 '나'를 만드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대답하기가 매우 어렵다. 실제로는 시 밖의 내가 시 속의 '나'를 만들기도 하고, 시 속의 내가 시 밖의 '나'를 만들기도 한다. 전자의 나와 후자의 내가 상호 상생시켜 가는 것이거니와, 詩作過程이 수양의 한 방법이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시의 안팎에서 '내'가 이처럼 상호 유추되고 전이되는 것은 매우 흔히 있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순간순간 '나'는 나 밖의 '너'로, 나아가 '그'로 변환되는 가운데 존재한다. '너'로, 나아가 '그'로 존재하면서도 '나'는 '나'로 존재한다. 이것이 시의 안팎에서 '내'가 존재하는 역설이다.   이처럼 시의 안팎에서 '나'는 '나'일 수도 있지만 '나'가 아닐 수도 있다. 가공된 인물로서의 나, 제작된 존재로서의 나, 장식되고 꾸며진 주체로서의 나……. 욕망에 쫓기는 나, 허위로 위장된 나……. 그런가 하면 진실로 포장된 나…….   이들 '나' 역시 수많은 '나' 중의 하나이다. 수많은 '나' 중의 나……. 물론 그 '나'는 흔히 시 속에서 '진실'을 포획하기 위해 희생되기 일쑤이다.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허구로 존재하기도 하는 것이 '나'라는 뜻이다. 이 때의 '나'가 詩作過程에 끊임없이 저 자신을 깎고 덧붙이고 공글려진 '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시가 완성되었을 때 발화자로서의 '나'는 정작의 '나'이든, 배역(시인이 임의로 창조한 화자)의 '나'이든 말갛게 세면을 하고, 곱게 화장을 하기 마련이다.         4. 너이면서도 그인 나   '나'일 수도 있고 '나'가 아닐 수도 있는 '나', 그런 '나'를 나는 주저 없이 시에 등장시킨다. 시를 쓰기 시작하는 순간 이미 '나'는 '나'가 아니라 '너'이면서 '그'라는 점을 항상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니, 시를 쓰기 시작하는 순간 이미 '나'는 '너'이기도 하고 '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이기도 하다는 점을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시를 쓰기 시작하는 순간 벌써 '나'는 '너'이면서도 '그'이고 나이다. '나'는 나이면서도 너이고 동시에 그인 셈이다. 적어도 시를 쓰는 순간만은 나는 너로, 동시에 그로, 동시에 나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시작의 과정에서 '나'는 不二의 존재인 셈이다.   이는 시 속에 등장하는 '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그'는 이른바 시적 대상을 가리킨다. 시적 대상으로서의 '그' 역시 '그'이면서 '나'이고, '나'이면서 '그'이다. 물론 이 때의 그와 나는 너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는 '나'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하고 '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 속의 '그'는 단순히 거기 서 있는 '그', 거기 그렇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그'가 아니다. 시 속에서의 '그'는 충분히 나로서의 '그'이고, '너'로서의 '그'이다. '그'라고 3인칭으로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일인칭의 '나'이고 이인칭의 '너'인 것이다. 이미 '그' 속에는 '나'와 '너'가 투영되어 있고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시 속에서 나로서의 너, 너로서의 나, 나로서의 그, 그로서의 나, 나로서의 나는 때로 여장을 하고 나타나기도 하고, 남장을 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여자이면서도 남자인 나, 남자이면서도 여자인 나, 시 속에서 '나'는 이처럼 탈을 쓰고 끊임없이 '나'를 뒤섞는다.   시에서 '나'는 단지 말하는 사람으로만 존재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시에서 언어를 풀어 나가는 사람, 이른바 시적 화자로서 말이다. 시에서 '나'가 '나'의 모습을 하든, '너'의 모습을 하든, '그'의 모습을 하든, 멀리 떨어져서 굽어보는 전지적인 '신'의 모습을 하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나'가 되고 싶기도 하고, '너'가 되고 싶기도 하고, '그'가 되고 싶기도 하고, '신'이 되고 싶기도 하는 것이 시에서의 '나'이다. 1인칭의 나, 2인칭의 나, 3인칭의 나, 나아가 전지자로서의 나로도 변신이 가능한 것이 시에서의 '나'이다. 불가해한 욕망덩어리가 실제로는 '나'라는 인간이 아닌가.   어린애가 되어 있는 나, 여성 노동자가 되어 있는 나, 지식인 되어 있는 나, 철공소 황씨가 되어 있는 나, 囚人이 되어 있는 나, 목사가 되어 있는 나, 수녀가 되어 있는 나, 어머니가 되어 있는 나, 할아버지가 되어 있는 나, 창녀가 되어 있는 나, 암탉이 되어 있는 나, 꾀꼬리가 되어 있는 나, 산까치가 되어 있는 나, 암소가 되어 있는 나, 호랑이가 되어 있는 나, 돌멩이가 되어 있는 나, 라면봉지가 되어 있는 나, 강아지풀이 되어 있는 나, 풀여치가 되어 있는 나, 맨드라미꽃이 되어 있는 나……. 시에서 '나'는 감히 어떤 누구도, 어떤 무엇도 감히 될 수 있으면서도 또한 될 수 없다.   시 속에는 언제나 이처럼 누구의 목소리로도, 무엇의 목소리로도 등장할 수 있는 내가 흩어져 녹아 있다. 그렇게 녹아 있는 '나'는 무엇을 찾아 움직이고 있는가. 어떤 시간의 물결을 타고 헤엄쳐 다니고 있는가. 중요한 것은 이 때의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것)이다. 그곳(것)을 일러 '나'는 진실 혹은 진리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의 사회현실에서 진실 혹은 진리라는 것이 있기는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돈을, 곧 재화를 진실 혹은 진리라고 믿고 있지 않은가. 진실 혹은 진리라는 것이 없으면 또 어떤가. 마음의 순수한 지향이 다름 아닌 진실 혹은 진리가 아닌가. 그것(그곳)을 구체화한 것이 파라다이스이고 유토피아라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흩어져 있는 나, 녹아 있는 나……. 강조하거니와 시 속에는 이처럼 수많은 '나'가 살고 있다. 꼬리를 달고 이리저리 헤엄치는 나, 뱀처럼 잽싸게 미끄러지는 나, 끊임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나, 춤추고 노래하는 나, 제멋대로 변신하는 나……. 진리를 찾아, 진실을 향해 끊임없이 방황하고 흔들리는 나, 저 수많은 나, 이미 내가 아닌 나, 남이 되어버린 나, 저들은 누구인가. 도무지 알 수 없다.   이처럼 혼잡한 나, 복수(複數)의 나, 열 개, 스무 개, 서른 개의 목소리를 가진, 머리를 가진 나, 끊임없이 뒤섞이는 수많은 나를 '나'는 생각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 때의 '나'는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 나아가 '생각'에 대해 생각한다. 생각들이 불러일으키는, 그리하여 생각들과 함께 하는 언어에 대해, 언어들이 만드는 時空(시간과 공간, 역사와 사회)에 대해, 그리고 時空이 만드는 진실 혹은 진리에 대해 '나'는 생각한다.   또한 '나'는 진리의 껍질에 대해, 껍질들이 만드는 소리에 대해, 소리들이 만드는 리듬에 대해, 리듬들이 만드는 정서에 대해, 정서들과 함께 하는 시의 運氣에 대해 생각한다. 이처럼 시 속에서 '나'는 생각하는 '나'로 존재한다. 생각하는 '나'는 늘 성찰하고 반성한다. 성찰하고 반성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고쳐 나가고, 바꿔나간다는 것을 뜻한다. 시 속에서의 '나'는 이처럼 끊임없이 '나'를 향상시켜 나간다. 시 쓰기가 자아 찾기, 나아가 자아를 琢磨하는 일이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하여 다시 '나'는 생각한다, '나'가 뒤죽박죽 만드는, 뒤얽혀 만드는 시라는 존재에 대해, 시라는 예술에 대해……. 이런 과정에 '나'는 세련되고 정련되어 가는 법이다. 이처럼 시 쓰기는 자기를 훈련시키고 단련시키는 한 방법, 곧 자기수양의 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1051    풍경이 곧 시인의 재산 댓글:  조회:4506  추천:0  2016-02-03
나는 이렇게 쓴다:ㅡ 풍경 만들기의 방법과 의미                              /이은봉  1. 여는 말  제대로 된 시인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시와 관련하여 저 나름의 표현방법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특별히 스타일리스트나 기교파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작의 시인이라면 시의 표현방법에 대한 자기 나름의 運算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에서는 내가 응용하고 있는 아주 초보적인 표현방법 몇 가지를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려고 한다. 언젠가는 시적 대상을 인식하고 응용하는 나 나름의 기법적 탐구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좀더 큰 글자리가 만들어지기를 빈다.  시인에게는 풍경이 곧 재산이라는 말이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시를 '풍경 만들기'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때의 풍경은 단지 하나의 서정적 컷일 수도 있고, 서사적 동영상일 수도 있고, 이미지들이 마구 혼재되어 있는 무의식적 장면일 수도 있다. 그렇다. 풍경이 만드는 화폭의 질감은 그것이 담아내는 상황에 따라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일단 따뜻하고 정겨운, 다시 말해 溫柔敦厚한 아우라를 불러일으키기를 바란다.  이 때의 풍경이 반드시 선명하고 명징한 구상일 필요는 없다. 아예 접근이 불가능한 추상이나 관념일 필요도 없지만 구태여 지나칠 정도로 선명한 형상을 만들 까닭도 없다. 실제로는 드러내기와 감추기를 적절히 조절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작품이 선택하는 대상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단정적으로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풍경들은 당연히 그 자체로 우리 시대의 제반 문제들을 상징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사이든 세계사이든 움직이는 보편적인 역사와 무관한, 오늘 이곳의 삶과 무관한 풍경을 만들려고 하지는 않는다. 말할 것도 없이 풍경의 선택은 세계관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지금 이곳의 삶에 대해 무엇인가 말할 것이 있어 그려내는 것이 시에서의 풍경이다.  그러나 내가 쓴 시에 드러나 있는 풍경은 말 그대로 선택된 것이 아니다. 시에 함유되어 있는 풍경이 선택된 풍경 자체를 객관적으로 묘사해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손을 떠난 시가 담아내고 있는 풍경은 그 동안의 관찰과 경험을 토대로 내가 만들어낸, 창조해낸 것일 따름이다. 내 시에 포유되어 있는 풍경은 있는 것을 그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자의로 창조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이 때의 창조가 경험이나 체험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창조라고는 하지만 결국 그것은 경험을 재조립하는 과정에 태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상대적으로 진전된 실감을 획득하기 위해 풍경의 대상을 섬세한 사실화로 그려내기도 하고 몽롱한 半抽象畵로 그려내기도 한다. 이는 당연히 시의 소재와 주제가 지니고 있는 특징에 따라 그때 그때의 상황과 연관되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각설하고, 표현방법과 관련한 풍경 만들기의 내포를 좀더 구체적으로 진전시켜 보기로 하자. 단일한 체험을 곧바로 하나의 풍경으로 만드는 적은 별로 없다. 두 개 이상의 경험이 만드는 장면을 중첩시켜 재구성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2. 체험의 중첩화  1) 장면 모으기  일단은 각각의 체험에서 비롯된 중첩되는 장면을 단일한 풍경으로 재구성하여 묘사하는 방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두 개 이상의 장면을 하나의 장면으로 통일시켜 독립된 풍경을 만드는 기법을 가리킨다. 시인으로서 세계에 대한 나의 사유를 肉化하기 위해 다양한 체험으로부터 기인하는 여러 장면들을 재구성해 새로운 하나의 풍경으로 재창조해 내려는 것인 셈이다.  구체적으로 졸시 [사이, 소리]를 예로 들어보자. 어린 시절 고향집 뒤란에는 장독대가 있었고, 감나무가 있었고, 대숲이 있었다. 이런 풍경 속에서 나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 대숲은 6·25 직후 입대를 했던 아버지가 군생활을 견디지 못해 잠시 탈영해 숨어 있던 곳이기도 하다. 물론 아버지는 나중에 재입대하여 군생활을 마친다. 내 뇌리 속에는 언제나 이러한 고향집 뒤란의 풍경이 박혀 있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오랜 친구인 이영진 시인이 잠시 전남 화순의 어느 시골마을로 내려와 산 적이 있다. 소설을 쓰는 김훈 씨가 거주하며 {칼의 노래}를 쓴 곳이기도 하다. 이영진 시인이 거주하던 화순의 이 시골집에 방문했을 때 나는 감전이 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 집의 풍경이 순식간에 나를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했기 때문이다. 이 집은 동신대학교 미술과의 김경주 교수가 화실로 사용하던 곳이기도 하다.  고향집과 이 집의 풍경을 바탕으로 이곳저곳에서 경험한 풍경을 재조립해서 단일한 풍경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래의 시이다.  뒤란 대나무 숲 울타리  뭉게구름 잠시 멈춰 선 자리  장독들 옴죽옴죽 비켜선 사이  푸드득, 숨죽이는 바람 소리  낯부끄러운 홍시들  얼싸안고 뺨 비비는 소리  오조조, 보조개 피우는 사이  포르르, 날아가는 박새 한 마리  흙바닥 위 호두알만한 그림자  또로록, 떨어져 내리는 사이  제 울음 하얗게 되씹는 소리  뭉게구름 우줄우줄 걸어 내려오는 자리  마른 감나무 잎사귀  아하, 저 혼자 팔랑거리는 소리.  ―{사이, 소리} 전문  이 시에는 별다른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다. 굳이 말하자면 무의미의 순수 서정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를 쓰게 된 데는 지난 1980년대 시들이 지나고 있던 무거운 역사의식, 다시 말해 시에 대한 그 무렵의 획일적 시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작용을 한다.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해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던 것이 이 시를 쓰던 무렵의 나이다. 당시에는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 끊이지를 않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서정시인이다. 그렇다면 순수서정만으로 이루어진 시도 써야 하지 않을까. 정신의 깊이가 살아 있는 순수서정시 만큼 생명력이 긴 것도 없다. 그 즈음 나는 늘 이러한 생각에 쫓겨다녔다.  어쩌다 보니 서정시 자체가 너무도 귀한 시대를 살게 된 것이다. 근래에 들어 부쩍 강화된 현상이기는 하지만 순수 서정시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 또한 내게는 바람직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이 시대를 가리켜 잡종의 시대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잡종이야말로 신생이 이루어지는 첩경이다. 하지만 순수 토종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이가 들다 보니 이러한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의지와는 무관하게 나는 지금 10여 년 가까이 광주에, 이른바 빛고을에 살고 있다. 빛고을은 말 그대로 햇빛이 아름다운 고장이다. 이 고장의 햇빛은 무수한 아우라를 동반하고 있어 특히 주목이 된다. 나는 시를 통해 빛고을의 햇빛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연 일반이 지니고 있는 소리며 파동, 색이며 질감(결)까지 시로 살려내고 싶었던 것이다.  2) 장면 뒤섞기  시에 수용되는 중첩되는 장면을 해체하여 반드시 단일한 풍경으로 재조립할 필요는 없다. 중첩되는 풍경을 있는 그대로 중첩시켜 표현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면들을 오버랩시켜 드러내 보이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영화의 기법을 시창작의 기법으로 응용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다.  시는 일종의 언어그림이다. 시를 그림과 비교해 논의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너무 사실적인 그림, 즉 구상화는 금방 싫증을 느끼기 마련이다. 약간의 추상이 가미된 그림, 다시 말해 半抽象의 그림이 두고두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재미를 주는 경우가 많다. 시라고 해도 이는 다를 바 없다. 서너 개의 풍경을 덧씌워 창작한 시의 경우 오히려 양파껍질을 벗기는 것과 같은 재미와 호기심을 줄 수도 있다. 다름 아닌 바로 이러한 점에서 나는 시에 여러 풍경을 중첩시켜 환상적 이미지를 만드는 기법을 선호한다. 약간의 비현실적인, 비의적인 분위기를 담아내려고 하는 것인데, 당연히 이 때의 중첩된 풍경은 중첩된 의미를 생산할 수밖에 없다.  현대시의 모호성은 현대사회의 불확정성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시어 자체의 특수성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시인이 지니고 있는 인식능력의 무능성을 반영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아래의 예는 이러한 생각에서 시의 풍경을 단일하게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몇 개의 풍경을 오버랩시켜 표현해본 작품이다.  허겁지겁 몇 숟가락 점심 떠먹고 마악, 일터로 돌아오는 길, 환하게 거리를 메우는 것들, 배꼽티를 입고 날렵하게 여기저기 다리 쭈욱 뻗는 것들, 백양나무 하얀 우듬지들, 그것들 아랫도리 후둘후들 흔드는 것들  석간을 사기 위해  잠시 머뭇거리고 서 있는데  정신들이 없군 우르르 흩어 퍼지는  아흐, 치자꽃 향기라니!  흠흠 말 더듬으며 돌아보니 원시의 숲들, 신비를 만들며 솟구쳐 오르는 생령덩어리들, 그렇지 풀무질로 커 오르던 고향 마을 유년의 에너지들, 시원도 하지 킁킁, 코 훌쩍이며 몇 숟가락 점심 떠먹고 마악, 일터로 돌아오는 길  석간을 사기 위해  잠시 머뭇거리고 서 있는데  정신들이 없군 우르르 뿜어져 나오는  하여튼 저 젊어터진 향기라니!  ―{아흐, 치자꽃 향기라니!} 전문  이 시를 가리켜 의미를 갖지 않는 순수 서정시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시의 풍경이 내포하고 있는 정서와 이미지는 공히 그 나름의 의미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이 시의 중첩되는 장면을 통해 자연과 인간이 지니고 있는 원초적 생명력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것이 얼마나 잘 형상화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초봄에 엿볼 수 있는 자연의 활기와, 막 대학에 입학한 젊은이들의 활기는 본원적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이 시에서 나는 바로 이러한 점, 즉 인간과 자연이 지니고 있는 지칠 줄 모르는 생명력을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이나 자연이나 신생하는 것들은 늘 아름답다.  이 시에는 몇 가지 장면이 혼재되어 있다. 당연히 이들 장면은 시인인 나의 체험에서 기인한다. 전체적인 계절의 배경은 초봄이다. a)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가판대에서 석간을 사고 있는 시인, b) 가로수로 서 있는 한참 물이 오르는 백양나무 가지들, c) 짧은 치마를 입고 다리를 쭉쭉 뻗으며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여대생들, c) 시인인 내가 통과해온 젊은 시절의 몇몇 체험, 이 네 가지 것들이 이 시에 혼재되어 있는 이미지 혹은 영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이 뒤섞여 약간은 추상적인 풍경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 이 시인 셈이다.  이 시의 전체적인 공간적 배경은 서울 어디쯤으로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초봄의 존재들이 지니고 있는 생명력에 대한 어떤 감흥(영감)을 실제로 느꼈던 것은 우리 대학의 정문 앞에서다. 물론 점심식사를 하고 연구실로 돌아오면서다. 현재의 구체적인 체험과 관련된 장면을 과거의 경험과 관련된 가상적인 장면에 떼다 붙이며 새로운 반추상의 풍경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3) 장면 겹치기  이러한 논의에 따르면 시 역시 하나의 허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험에서 비롯되는 장면들을 표나지 않게 짜깁기해내는 것이, 그렇게 사기를 치는 것이 시가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풍경이기 때문이다. 시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模寫해내는 것이 아니라 허구적으로 새로운 풍경을 창조해내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풍경 만들기를 진실이 아니라 허구라고 낯설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시가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원래 리얼리스트들이 그려내는 삶의 풍경은 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도에 맞게 재구성한 것, 말하자면 새롭게 허구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리얼리스트의 경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다름 아닌 그렇기 때문에 예술을 가리켜, 시를 가리켜 창조라고 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풍경과, 풍경의 안에 자리잡고 있는 풍경을 다르게 그려내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겉으로는 단일한 풍경처럼 보이도록 하면서도 속으로는 두 개 이상의 장면(체험)을 숨겨 두는 방법이 그것이다. 전경화되어 있는 풍경과 후경화되어 있는 풍경이 서로 다르게 시를 구성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때 후경화되어 있는 풍경은 전경화되어 있는 풍경과는 달리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양동작전이고, 위장전술인 셈이다.  실제로는 이러한 방법으로 시를 쓰기가 가장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풍경과는 달리 속으로 감추어져 있는 풍경을 통해 시인이 역사, 사회적 진실 전반을 종합적으로 압축해낼 수 있는 안목을 지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의 시는 시인이 그 나름의 세계관을 지니고 각각의 풍경이 함유하고 있는 문명사적 의미를 바르게 해석해내고 비판해낼 수 있어야 가능해진다. 시인 자신이 랭보가 말하는 見者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그럴 때 비로소 풍경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우겨우 가슴으로 모시고 다니는 집, 전쟁통에 허겁지겁 정신 없이 지은 집, 너무 낡았네  걸핏하면 굴뚝 밑 무너지는 집, 함부로 방고래 막히는 집 아궁이 가득 불덩이 처먹고도 방구들 뜨뜻하질 않네  사람들 아랫목 이불 속 손 넣어보곤 아이, 차가워라 마음까지 얼어붙곤 하네  청솔가지 타는 냄새 매캐한 집, 도둑고양이들 우르르 몰려다니는 집, 고방 밑까지 우수수 무너지고 있네  전쟁통에 지은 집, 다들 그러하네 이 집 수리하느라고 병원엘 다니는 내게, 현일 스님은 그만 다 버리라고 하네  ……버리면 어쩌지 이 낡은 집, 그래도 그 동안 나를 키워준 집.  ―{낡은 집} 전문  이 시에서 집은 일단 말 그대로의 집, 곧 주거공간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냥 집으로, 주거공간으로 읽어도 충분히 일정한 시적 형상, 즉 시적 풍경을 펼쳐 보여준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일단 낡은 집으로 읽히도록 장치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읽으며 키를 열고 들어가면 이 시에서의 집이 이내 시인의 시원찮은 몸, 아픈 육체를 가리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시가 내포하는 의미망은 그 뿐만이 아니다. 눈을 밝혀 읽으면 여기서의 집은 시인의 몸뿐만 아니라 시인의 계집, 즉 시인의 아내의 아픈 몸을 가리키기도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도 읽힐 수 있도록 몇몇 심미적 장치를 숨겨 두려고 했다. 시인이든 시인의 아내든 나로서는 집을 몸으로 읽었을 경우 신통치 않은 몸을 지켜내기 위해 시인이 이런저런 애를 쓰는 풍경이 떠오르도록 몇몇 징후들을 장치해 두려 했던 것이다. "이 집 수리하느라고 병원엘 다니는 내게" 등이 그 구체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에도 나는 이 몸이 역사적 산물임을, 6·25 전쟁의 산물임을 암시하려고 했다. 전쟁통에 대를 잇기 위해 우발적으로 만들어진 몸, 곧 "전쟁통에 허겁지겁 정신없이 지은 집", 즉 그렇게 해서 태어난 몸이라는 것을 드러내려 했다는 뜻이다. 요컨대 겉으로는 단일한 풍경처럼 보이도록 했지만 속으로는 두개 이상의 풍경(체험)을 중첩시키려 한 것이다.  당연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방법적 자각이 방법적 자각 자체만으로 머무는 것은 아니다. 형식이 곧 내용이라는 역설적 정의를 떠나서라도 나로서는 이러한 방법적 고려를 통해 우리 시의 내포를 확장시키기 위해 많은 애를 써본 것이다. 물론 그것은 역사적 전망과 함께 하는 시대가 만드는 양심에 충실하려는 의지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3. 닫는 말  평소에 나는 기법에 대한 자각이 없는 단지 내용 위주의 시인들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온 바 있다. 한국의 現代詩史에서도 자기 형식이 없이 힘만으로 밀어붙여 시를 써온 시인들을 수용하는 데는 매우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들이 생산한 시의 경우 예술 이전의 줄글의 차원에서 멈춰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 우리 시단에서 따끈따끈하게 생산되고 있는 시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문예지가 쏟아져 나오고 수많은 시가 씌어지고 있지만 세월의 긴 여과를 거치고도 살아남을 작품이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우발적 영감만으로 시가 탄탄한 심미적 형식으로 영그는 것은 아니다.  새삼스러운 얘기이기는 하지만 기법에 대한 자각은 곧바로 예술적 심미의식에 대한 자각과 통한다. 뿐만 아니라 기법의 계발은 곧바로 내용의 계발을 낳는다. 기법에 대한 고민이 없는 시인이 제대로 된 시인의 반열에 들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심미적 형식의 하나인 기법에 대한 자각은 비평가들에 의해 조명을 받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비평가들의 경우 언어들이 이루는 맛이며 멋과 관련하여 머리에서 쥐가 나도록 몰두하는 시인들의 심미적 고뇌를 제대로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평가들이 집착하는 것은 시의 언어들이 이루는 형식이기보다는 내용이기 쉽다는 뜻이다.  시가 풍경 만들기라는 것은 시가 이미지 만들기라는 것을 가리킨다. 묘사적인 것이든 비유적인 것이든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시라고 주장하기가 힘들다. 장면의 중첩과 해체, 그리고 재구성을 통해 이루어지는 풍경들을 바탕으로 하는 시들 역시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하여 문화적 재부로 축적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 때의 문화적 재부는 이론의 말할 것도 없이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의 것이다.    
1050    "스물여덟 삶" ㅡ 영화 "동주" 이달 18일 개봉 댓글:  조회:4470  추천:0  2016-02-03
‘스물여덟 삶’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뭐였을까  |  PDF인쇄기사 보관함(스크랩)글자 작게글자 크게 기자 고석희 기자 SNS 공유 및 댓글 SNS 클릭 수 페이스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댓글 수0 영화 ‘동주’에서 배우 강하늘(왼쪽)과 박정민(오른쪽)은 각각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 열사를 연기했다. 형무소에 갇힌 송몽규를 면회 간 윤동주. 사촌지간인 두 사람은 친구이자 문학적 라이벌이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이준익 감독, 강하늘 주연 맡아 고종사촌 송몽규 열사 통해 조명 6억원 저예산 흑백 영화로 제작 “소박했던 고인의 삶에 대한 예의” 국민 애송시라고 해야 할 시인 윤동주(1917∼45)의 대표작인 ‘서시’의 앞 부분이다. 일제 강점기, 암울한 시대의 희망과 절망을 온몸으로 표현한 윤동주. 그의 길지 않은 삶을 스크린에 복원한 영화 ‘동주’(이준익 감독)가 18일 개봉한다. 지금까지 윤동주에 대한 연구서나 평전은 여러 권 출간됐다. 하지만 그의 삶이 영화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0대와 연희전문 시절, 일본 유학,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물여덟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까지를 다룬다. 영화는 윤동주 자신의 시선뿐 아니라, 그와 막역했던 고종사촌 형이자 독립운동가인 송몽규(1917~45) 열사의 눈을 통해 인간 윤동주의 삶을 바라본다. 지난해 영화 ‘사도’(2015)에서 파국으로 치달았던 영조와 사도세자의 부자 관계를 그렸던 이준익(57) 감독은 이번엔 서로 거울 같은 존재이자 라이벌이었던 두 청춘에 초점을 맞춰 비극의 서사를 그려냈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같은 해 중국 용정에서 태어나 운명처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나란히 삶을 마감했다. 영화는 불나방처럼 항일 투쟁에 몸을 던졌던 송몽규(박정민)와 그의 거침없는 행동이나 용기와 달리 그저 시로서 시대의 아픔을 그리는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윤동주(강하늘)의 속마음을 대비해 보여준다. 부끄러움은 윤동주의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두드러진 내면 심리다.   고향에서 동주(왼쪽)와 몽규(가운데)가 함께 문예지를 만드는 장면. [사진 메가박스플러스엠] 영화는 윤동주의 눈에 비친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삶을 통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단 한 권의 시집을 남긴 윤동주가 어떤 심정으로 그토록 아름다운 글을 남겨왔는지를 담담하게 되짚는다. ‘동주’는 6억 원 규모의 저예산 흑백 영화로 제작됐다. 이준익 감독은 “막대한 자본을 들여 윤동주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게 소박한 삶을 지향했던 고인의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흑백 사진으로만 전해지는 윤동주와 송몽규 열사의 모습을 흑백 영상으로 재현했다. 윤동주 역을 맡은 드라마 ‘미생’의 스타 강하늘(26)은 지난해 영화 ‘스물’에 출연한 데 이어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tvN)에서 풋풋한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에는 순수하고 예민한 시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연기했다. DA 300   송몽규 역의 박정민(29)은 독립영화 ‘파수꾼’(2011)으로 데뷔한 뒤 영화·드라마를 오가며 연기력을 다져온 신예. 조선의 독립을 꿈꾸며 자신을 위험에 내몰면서도, 동주 만큼은 극진히 보살피는 인물로 출연해 선 굵은 연기를 보여줬다. 두 배우는 마지막 촬영에서 고등형사의 심문을 받던 장면을 찍다가 눈물을 흘렸고, 결국 이를 지켜보던 이준익 감독도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강하늘, 박정민의 혼신의 연기가 압권”이라는 게 이준익 감독의 설명이다. 화려한 액션 등 볼거리가 많지는 않지만 ‘동주’는 어두운 시대의 한가운데서 “부끄러움 없기를” 소망했던 두 청춘의 삶을 잔잔하게 되살린다. 영화 중간 중간에는 ‘별 헤는 밤’ ‘서시’ 등 윤동주가 남긴 시 열한 편이 강하늘의 목소리로 낭독된다. 시조차 자유롭게 쓸 수 없었던 어두운 시대, 두 청춘의 소망과 고통을 대변하는 듯한 아름다운 싯귀들은 먹먹한 울림으로 가슴을 친다... [출처: 중앙일보] ‘스물여덟 삶’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뭐였을까
1049    詩의 언어운용에 관하여 댓글:  조회:5741  추천:0  2016-02-03
  시의 언어운용에 대한 몇 가지 요점/이은봉   1. 시의 언어도 문장의 언어다. 안정되고, 세련되고, 격조 있는 문장을 구사해야 좋은 시가 된다. 문장 혹은 문체에 대한 자각이 없는 사람은 좋은 시인, 좋은 작가가 되지 못한다.   2. 안정되고, 세련되고, 격조 있는 문장을 이루려면 길이가 알맞아야 한다. 그래야 문장들 사이의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진다. 덧붙여 말하면 시의 문장은 짧을수록 좋다. 그래야 완벽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안정되고 세련되고 격조 있는 문장은 안정되고, 세련되고, 격조 있는 리듬에 의해 확보된다.   3. 문장은 형식이다. 문장이 형식이라는 말에는 문장이 문법이라는 질서를 따르기 때문이다. 문법이라는 질서는 언제나 당대의 지배질서를, 통치질서를 반영한다. 이 말은 동시에 문장에 그 시대의 윤리와 도덕이, 윤리와 도덕이라는 틀이, 리듬이 들어 있다는 뜻이 된다.   4. 현대시의 문장이 짧고 경쾌한 것은 오늘의 이 시대, 즉 현대가 속도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5. 시에서 리듬의 기본 단위는 행이다. 행 단위로 리듬이 발화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3음보, 4음보라고 할 때의 음보도 행을 단위로 발화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6. 행의 리듬은 행의 끝에서 좀 더 생생하게 현현된다. 따라서 시의 행 처리, 특히 행의 끝처리에 유의해야 한다. 한글로 쓰여지는 시행은 기본적으로 그 길이가 일정하지 않다. 시행에 수용되는 글자 수가 일정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행의 길이를 잘 안배하면 시의 효과를 다 높일 수 있다.   7. 시에서 리듬의 확장 단위는 문장이다. 문장은 처음이 있고 끝이 있는데, 시의 리듬은 문장의 끝에서, 즉 종결어미에서 훨씬 더 구체적으로 현현된다. 따라서 항상 문장의 종결어미에 대해 유의해야 한다.   8. 종결어미만이 아니라 연결어미에 대해서도 유의해야 한다. 어미는 허사이지만 허사인 이 어미에 의해 리듬과 의미의 방향이 지시된다. 조사의 사용도 연결어미의 사용과 마찬가지로 깊이 유의해야 한다.   9. 조사도 허사이지만 리듬과 의미의 방향이 이 허사인 조사에 의해 지시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많은 시인들이 조사나 어미를 생략하는 일을 통해 리듬을 만드는 것도 실은 이 때문이다.   10. 리듬이 시의 결(질감)을 만든다. 결(질감)의 편차가 정서의 편차를 만든다. 따라서 시의 개성과 품위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리듬이다. 시의 아우라도 여기서 구체화된다.   11. 리듬은 고저, 장단, 강약 등의 음운만이 아니라 음보의 반복, 소리의 질과 결 등까지 가리킨다. 리듬, 즉 정서의 세련된 품격을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시어의 기표(소리)를 갈고 닦아야 한다. 갈고 닦는 일은 끊임없이 소리 내어 읽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그 과정에 태어나는 것이 시의 아우라이다.   12. 새로운 내용, 절실한 내용이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면 내용이 형식을 구축할 수도 있다. 시인의 의도와 함께 하는 내적 긴장이 엄청난 에너지로 시의 형식을 완성할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무엇을 쓸 것인가라는 것이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것이 선행한다고 생각한다.       생태환경의 현실, 그리고 우주와의 연대 ―졸시집 『걸레옷을 입은 구름』(실천문학사, 2013)을 말한다.     이은봉     1. 생태환경의식의 두 차원   생명을 얻는 일과 생명을 잃는 일만큼, 즉 생사(生死)의 일만큼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없다. 생명을 얻는 일은 태어나는 일이고, 생명을 잃는 일은 사라지는 일이다. 그렇다. 생명을 얻는 일은 신생이고, 생명을 잃는 일은 사망이다. 모든 유기체의 일생이 생명을 얻고 잃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병들고, 죽기 마련인 것이 모든 유기체의 존재과정인 것이다. 유기체로서의 생명이 갖는 이러한 과정, 곧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순환과정을 바로 깨달으려는 일은 석가모니 이래 수많은 부처님들이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탐구해온 화두이다. 최근에는 생태환경의 관점에서 흔히 연기의 과정이라고 부르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순환과정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되고 있어 주목이 된다. 2000년대 들어 대한민국 사회에는 생태환경의 모순에 대한 논의가 매우 집중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생태환경의 모순은 말할 것도 없이 자본주의적 근대의 대두와 더불어 보편화된 모순, 곧 산업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모순 중의 하나이다. 이는 당연히 생태환경의 모순이 산업사회의 대두에 따라 일반화된 민족모순(제국주의 모순) 및 계급모순과 서로 뒤얽혀 존재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근대적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3대 모순을 계급모순, 민족모순, 생태환경모순이라고 부르는 것이리라. 2013년 6월에 간행된 내 시집 『걸레옷을 입은 구름』(실천문학사)은 자연, 생명, 생태, 서정, 환경, 상처, 나, 욕망, 죽음 등의 키워드를 거느리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집은 2002년 3월에 간행된 내 시집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창비, 2002년 3월)의 문제의식을 좀 더 많이 계승하고 있다.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를 간행한 2002년 2월과 『걸레옷을 입은 구름』를 간행한 2013년 6월 사이에 나는 모두 세 권의 시집을 발간한 바 있는데, 『길은 당나귀를 타고』(실천문학사, 2005년 2월),『책바위』(천년의 시작, 2008년 2월), 『첫눈 아침』(푸른사상)이 그것이다. 주지하다시피 2002년 2월에 간행한 내 시집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의 문제의식은 지금 이곳의 생태환경에 대한 나 나름의 근심과 걱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시집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 이후 10여년을 두고 계속되어온 지금 이곳의 생태환경의 문제에 관한 이런저런 내 고민을 담고 있는 것이 이번 시집 『걸레옷을 입은 구름』이라는 것이다. 생태환경의 문제에 관한 이런저런 내 고민은 지금의 시대, 곧 자본주의적 근대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무관하지 않다. 생태환경과 관련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가 자본주의적 근대의 대두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렇다면 생태환경에 관련한 이런저런 내 고민은 지금의 이 시대, 곧 자본주의적 근대를 극복하고 좀 더 진전된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물론 이때의 생태환경에 대한 이런저런 내 고민은 이번 시집의 시들에 발견이나 깨달음의 형태로 들어 있다. 지금의 현실이 안고 있는 생태환경의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내가 발견하고 깨달아온 이런저런 생각을 담고 있는 것이 이번 시집의 시들이라는 것이다.이 시집의 시들에 『시경』에서 운위(云謂)되고 있는 조수초목지명(鳥獸草木之名)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자연물의 이름, 사물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늘의 이 시대, 곧 자본주의적 근대가 직면해 있는 생태환경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찍이 「시와 생태적 상상력」(『시와 생태적 상상력』, 소명, 2000)라는 글에서 그 대강의 윤곽을 밝힌 바 있다. 물론 이번 시집의 시들이 이 글 「시와 생태적 상상력」에 담겨 있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좀 더 앞으로 나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시집의 시들이 이 글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식의 밖에 외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백낙청의 견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글 「시와 생태적 상상력」에 의하면 생태환경에 관한 이 시대의 문제의식은 단기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의 공해나 오염에 관한 것이 있을 수 있고, 근원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의 자연 혹은 우주와의 조화에 관한 것이 있을 수 있다. 오늘의 생태환경에 대한 이러한 장단기적인 문제의식은 이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시들의 경우에도 별로 다를 바 없다. 다음의 시는 겉으로는 단기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의 생태환경 의식을 담으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생태환경 의식을 담으려고 한 예이다.   돌 속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온 후 너무 오랫동안 돌을 잊고 살았다   쭈글쭈글 속이 빈 돌의 껍데기가 어머니의 뱃가죽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세상의 시간이 이미 허옇게 늙어 있었다   돌도 벌써 불그죽죽 녹슬어 있었다 수은 납 카드늄 따위가 스며들어 늦가을 두엄더미 위로 나뒹구는 썩은 밤송이만큼이나 몰골이 지저분했다   저 돌이 언젠가는 내가 되돌아가야 할 집이라니…… 아무 생각 없이 세상을 걷어차 온 아랫도리가 싫었다 미웠다 역겨웠다   시간의 회초리에 종아리를 맞다 보면 늦었어, 늦었어 혀를 차는 소리나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미처 악수를 청하기 전이지만 이 모든 일이 내 거친 아랫도리에서 비롯되는 일이라는 것을 안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쭈글쭈글 껍데기뿐인 돌은 그래도 반갑게 내 손을 잡아주었다 돌의 손은 어머니의 젖가슴만큼이나 따뜻해 찔끔찔끔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직도 모래알로 잘게 부서져 내리고 있는 저 돌의 껍데기이라니   더는 돌 속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아예 온몸을 바람에게 맡기고 싶을 때도 있었다.   ―「돌 속의 집」 전문   기본적으로 이 시는 돌이 부서져 모래가 되고, 모래가 부서져 흙이 되는 자연현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돌과 모래와 흙은 하나의 존재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시집 『걸레옷을 입은 구름』의 시들은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흙을‘생명의 집’으로 발상하고 있다. 다른 시 「생명의 집」에서 노래하고 있듯이 “부서져 흙이 되는 돌”의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 다시 말해 흙에서 태어나는 것이 생명이다. 이 시 「생명의 집」의 표현을 빌리면 “마늘과 양파를 키우는” 것이, “벼와 보리를 키우는” 것이, “암탉과 칠면조를 키우는” 것이, “소와 돼지를 키우는” 것이 다름 아닌 돌이고 모래이고 흙이다. 이를테면 흙(돌, 모래)에서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인데, 또 다른 시 「강아지 풀」에서 “밭두둑의 흙”이 “강아지풀의 집”이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때의 ‘돌’이 앞의 시 「돌 속의 집」에서 노래하고 있듯이 “불그죽죽 녹슬어 있”다는 점이다. “수은 납 카드늄 따위가 스며들어 늦가을 두엄더미 위로 나뒹구는 썩은 밤송이만큼이나 몰골이 지저분”해진 것이 지금 이 시대의 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이 시에서 이러한 “돌이 언젠가는 내가 되돌아가야 할 집이라니”라고 하며 크게 한탄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겉으로는 토양오염의 현실을 문제로 삼으면서도 속으로는 오늘 이 시대가 처해 있는 생태환경의 문제 일반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 이 시이다. 이 시집에는 공해나 오염의 실태를 증언하고 있는 시들, 즉 “생태환경의 문제에 대한 단기적이고 미시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시들”도 당연히 실려 있다. 물론 “생태환경의 문제 일반에 관한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시들”(『시와 생태적 상상력』, 62면)이 좀 더 많은 비중을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 이 시집에는 생태환경의 문제에 대한 단기적이고 미시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시들보다 근원적이고 거시적인 접근을 꾀하는 시들, 자연 혹은 우주와의 연대를 시도하는 시들이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이 시집에서 내가 지구의 생태환경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과 관련해, 곧 자연 혹은 우주가 처해 있는 문제들과 관련해 앞에서 말한 미시적인 차원과 거시적인 차원을 동시에 밀고 나가려고 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내 의도에는 지금의 이 시대, 곧 자본주의적 근대가 자신의 안에 감추고 있는 생태환경의 문제를 바르게 지양, 극복하고 좀 더 나은 사회,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근대 밖으로 나아가기 위한 내 의지와 열정이 담겨 있다.   2. 자연의 시공(時空)과 인간의 시공(時空)   인간과 자연은 항상 주체와 객체로 존재하며 상호 대립하고 조화한다. 이는 자아와 세계가 늘 주체와 객체로 존재하면서 상호 대립하고 조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객체로부터, 곧 어머니 대지, 다시 말해 자연으로부터 분리되면서 인간은 자신의 퍼스넬러티(personality)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 속에서 주체와 객체, 자아와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가 항상 똑같았던 것은 아니다. 석가모니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할 때의 ‘아(我)’와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할 때의 ‘나’는 다르다. 석가모니의 ‘나’는 곧 ‘너’이고, ‘너’는 곧 ‘그’이니만큼 석가모니에게 주체와 객체, 자아와 세계의 관계가 다소 비의적일 만큼 상호 착종되어 있다고 해야 옳다. 석가모니의 ‘나’는 물심일여의 ‘나’, 주객일체의 ‘나’인 것이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나’는 세계를 대상으로 객관화시키면서 존재하는 ‘나’이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나’는 대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나’, 세계로부터 유리되어 있는 ‘나’일 수밖에 없다. 물론 데카르트의 ‘나’가 자본주의적 근대를 성립시킨 역사적인 ‘나’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의 ‘나’가 석가모니가 말하는 무자기(無自己) 혹은 무자성(無自性)을 미처 깨닫고 있지 못한 ‘나’인 것은 사실이다. 무자기(無自己) 혹은 무자성(無自性)을 깨닫고 있지 못한 ‘나’는 인간과 자연이 이루는 근원적인 상호관계를 바로 알기가 어렵다. 무자기(無自己) 혹은 무자성(無自性)을 깨닫고 있지 못한 ‘나’는 언제나 세계, 곧 자연이나 우주와 분리된 채로, 고립된 채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계, 곧 자연이나 우주와 분리된 채로 존재하는 ‘나’가 이른바 근대적 주체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근대적 주체로서의 ‘나’의 눈으로는 세계라고 하는 자연이나 우주라는 객체를 바로 깨닫기가 어렵다. 인간과 자연, 곧 주체와 객체가 불이(不二)의 관계, 이이일(二而一)의 관계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바로 알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주체와 객체,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바로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가 구체적으로 서술되다 보면 주체이든 객체이든, 자아이든 세계이든 어느 하나를 좀 더 중점적으로 취할 수밖에 없다. 이는 시가 주체의 ‘진술’을 중심으로 서술되느냐, 객체의 ‘묘사’를 중심으로 서술되느냐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주체의 ‘진술’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시는 아무래도 ‘나’, 즉 주체를 드러내는 일이 중심이 되기 쉽고, 객체의 묘사를 중심으로 서술되는 시는 아무래도 ‘그’, 즉 객체를 드러내는 일이 중심이 되기 쉽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들 각각의 태도가 뒤섞인 채로 서술되지만 말이다. 물론 본인의 이번 시집 『걸레옷을 입은 구름』에 실려 있는 시들은 좀 더 ‘그’에, 다시 말해 객체에 중심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 이는 이 시집에서 내가 자연의 사물들 자체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세계를 받아들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물권의 가치 자체를 좀 더 널리 선양하려는 의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이번 시집의 기본의도라는 것이다. 당연히 이에는 ‘주객일치(主客一致)’의 차원보다는 ‘물심일여(物心一如)’의 차원에 이르려는 정신이 담겨 있다. 물론 이러한 논의는 ‘나’를 좀 더 중심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주객일치(主客一致)’의 차원이고, ‘그’를 좀 더 중심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물심일여(物心一如)’의 차원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그러나 ‘주객일치(主客一致)’의 차원과 ‘물심일여(物心一如)’의 차원이 이루는 차이를 어찌 이처럼 쉽게 변별할 수 있겠는가.   버려진 폐타이어는 검다 검게 저무는 지장보살이다   반쯤 땅 속에 묻힌 채 세상의 질병 온몸으로 앓고 있는 지장보살은 둥글다   둥근 마음으로 그는 시방 아스팔트 위를 달리며 만든 피고름 죄 삭이고 있다   지장보살이 아프니 땅도 아프다 검게 저무는 것은 다 아프다   아픈 몸으로 그는 다시 거름을 만들고 있다 사루비아 몇 송이 빨갛게 꽃피울 꿈꾸고 있다. ―「폐타이어」 전문   이 시는 토양오염을 일으키기 쉬운 ‘폐타이어’를 소재로 하고 있다. “반쯤 땅 속에 묻힌 채/세상의 질병 온몸으로 앓고 있는” 것이 이 시에서의 폐타이어이다. “둥근 마음으로” “아스팔트 위를 달리며 만든/피고름 죄 삭이고 있”는 것이 폐타이어인 것이다. 이처럼‘나’는 여기서 무생물인 폐타이어에게 뜨거운 생명을 부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는 폐타이어를 “검게 저무는 지장보살”로 은유해 “아픈 몸으로” 그가 “거름을 만들고 있다”고 노래한다. 버려진 폐타이어에게 인격을 부여해 그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공무사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 시에서 ‘나’는 버려진 폐타이어의 물권을 십분 긍정할 뿐만 아니라 십분 선양하고 있다. 물론 폐타이어의 “사루비아 몇 송이/빨갛게 꽃피울 꿈”에는 창작자인 내 바람이 들어 있다. 시에서의 ‘풍경의 선택’은‘세계관의 선택’이라고 하거니와, 나로서는 이들 풍경의 선택을 통해 나 나름의 의지를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시에서 폐타이어가 그러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단지 폐타이어만을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저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버려지는 것이 폐타이어만은 아니다. 일상의 삶에서 폐타이어처럼 버려졌지만 버려지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역할을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기는 별로 어렵지 않다. 나로서는 폐타이어의 의미망 안에 그러한 현실도 담으려고 했다. 따라서 자연 혹은 우주와의 조화를 추구하는 시가 좀 더 객관적인 존재, 곧 사물 자체를 중심으로 형상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자연 혹은 우주와의 조화를 꾀하는 시는 그것이 이루는 질서나 시공(時空)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자연 혹은 우주가 갖는 질서나 시공(時空)은 얼핏 변하지 않는 원리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의 자연 혹은 우주의 질서가 인간이 만들어가는 나날의 현실과 전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인간이 자연 혹은 우주에 대하는 태도와 행위에 따라 얼마든지 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질서나 시공을 바꾸는 것이 자연 혹은 우주이기 때문이다. ‘도구적 이성’의 산물이겠지만 오늘의 인간에게 자연 혹은 우주는 한갓 이용후생의 대상일 따름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도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든 도시는 개발과 건설의 미덕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개발과 건설이 정말 미덕일까. 개발과 건설은 파괴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땅의 수많은 도시는 지구를 파괴하고 건설한 디스토피아에 지나지 않는다. 개발과 건설이라는 미명으로 지금도 이 땅에는 굉장한 신도시가 세워지고 있고, 그에 따라 엄청난 자연 혹은 우주가 파괴되고 있다. 자연 혹은 우주를 파괴하는 것은 수많은 신도시의 개발과 건설만이 아니다. 끝없이 세워지는 산업단지도 자연 혹은 우주를 파괴하기는 다를 것이 없다. 이들 산업단지가 내놓는 엄청난 폐기물, 곧 공해물질의 폐해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다. 자본주의적 근대를 구성하는 수많은 산업현장이 모두 공해물질을 배출해 자연 혹은 우주를 망가뜨리는 기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연 혹은 우주를 형편없이 파괴하고 있는 것이 개발과 건설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개발과 건설이 모두 좋은 것이 아닌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개발과 건설은 자본주적 근대를 사는 오늘의 인간이 갖는 시공의 겉모습이다. 이는 개발과 건설을 가리켜 문화나 문명이라고 불러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적 근대 이후 인간의 시공은 자연 혹은 우주의 시공과 많이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자본주의적 근대 이후의 인간의 시공은 언제나 자연 혹은 우주의 시공에 대립, 갈등하며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근대 이후 자연 혹은 우주의 시공은 언제나 과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과학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자연 혹은 우주의 시공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인식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인식이라는 것이 본래 대상을 객관화하는 과정의, 대상과의 거리를 확보하는 과정의 정신작용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상과의 거리를 확보하는 과정에 언어를 매개로 해 획득하는 인간의 인식이 과학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학이 개입되지 않은 자연 혹은 우주 그 자체의 시공은 본래 치유와 복원의 미덕을 갖고 있다. 자연 혹은 우주는 항상 순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치유와 복원의 미덕을 바탕으로 운동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운동하는 가운데 언제나 개발과 건설의 욕망에 취해 있는 인간들에게 항거하고 저항하는 것이 자연 혹은 우주의 시공이다.   바람이 제 작은 부리로 물어다 놓은 깃털들이다 바람의 부푼 자궁이 오밀조밀 낳은 자식들이다   산비탈 절개지, 붉게 상처 난 사타구니 한 구석 오조조, 씨앗털들 모여 구름묘지 만들고 있다   반짝이는 햇살들, 은쟁반 두드리며 짤랑대는 시간들 밤꽃향기 밀려와 그것들의 가슴 후끈 달아오른다   바람이 제 작은 부리로 쪼아 쌓은 깃털들이다 바람의 잘 익은 젖을 먹고 자란 솜사탕 어린 아기들이다. ―「구름 묘지」 전문   이 시는 개발과 건설의 이름으로 파괴된 “산비탈 절개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붉게 상처 난 사타구니”라고 명명된 “산비탈 절개지”는 지금 “바람이 제 작은 부리로 물어다 놓은 깃털들”, 곧 씨앗털들로 덮여 있다. 이들 오밀조밀 몰려 있는 “씨앗털들”은 이 시에서 “구름묘지”로 인식되어 있다. 이들 씨앗털은 동시에 여기서 “바람의 잘 익은 젖을 먹고 자란 솜사탕 어린 아기들”로 인식되고 있다. 죽음의 실재로 보이는가 하면 생명의 실재로 보이는 것이 이들 “붉게 상처 난” “산비탈 절개지”를 덮고 있는 씨앗털들인 것이다. “붉게 상처 난” “산비탈 절개지”에 대한 씨앗털들의 사랑은 어머니 대지가 지니고 있는 근원적인 모성과 다르지 않다. 어머니 대지의 근원적인 모성이 갖고 있는 시간과, 함부로 파괴를 일삼는 인간의 우발적 욕망이 갖고 있는 시간은 본래 다르다.자연의 시간은 굳건하고 건강하게 자신의 질서를 운용하며 순환하고 전진하지만 인간의 시간은 저 자신과 자연을 파괴해 상처를 만들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제자리걸음? 어쩌면 뒷걸음질을 하는 것이 오늘의 인간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로서는 인간의 시간이 만드는 이러한 반동의 현실에 대해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시간이 축적되면서 만들어온 자본주의적 근대의 너절하고 추악한 모습을 보면 이러한 우려는 더욱 커진다.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손을 맞잡고 동일한 궤적을 만드는 일은 이제 원천적으로 불가능할는지도 모른다.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인간의 시간은 급기야 지구라는 이름의 대지 자연의 시간은 물론 우주, 곧 달이며 별의 시간까지 멋대로 파괴하고 있을 정도이다. 달과의 관계는 더욱 일그러져 있어 지구 생태계의 운명을 아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는 이번의 시집 『걸레옷을 입은 구름』에 ‘달’의 이미지가 유난히 많이 나오는 것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3. ‘나’와 달의 호흡   지구 생태계의 모든 생명은 달과의 호흡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재생산해나간다. 자신의 짝인 달과 주고받는 특별한 호흡 및 운기(運氣) 속에서 탄생, 성장, 소멸의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지구 생태계의 생명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과 주고받아온 호흡 및 운기(運氣)에 이상이 생겨 지구 생태계 전체가 심한 위협을 받고 있다. 지구 생태계를 보호하고, 지구 생태계와 지구 생태계 밖의 우주 생태계를 잇는 것이 구름이고 오존층이거니와, 이제는 그것들조차 오염되고 파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금의 구름은 납과 수은, 카드뮴 등 중금속으로 뒤범벅이 된 걸레옷을 입고 있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물론 이는 다 지구 공동체 안의 인간이 저지른 죄악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지구 생태계의 생명들이 제대로 된 생식의 과정을 밟을 리 만무하다. 지구 생태계의 적잖은 생명들이 지금 온전한 몸을 지니고 있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지구 생태계의 생명들이 재생산되는 데에 오직 달과의 호흡만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태양계 안팎의 무수한 행성들과도 호흡을 하는 가운데 자기 존재를 재생산해나가는 것이 지구 생태계의 생명들이다. 이처럼 지구 생태계를 이루는 존재들은 우주 생태계를 이루는 존재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특히 태양 생태계의 별들과는 겹으로 뒤얽혀 있는 것이 지구 생태계의 존재들이다. 태양 생태계의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 태양 자체와 이런저런 인력과 기운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존재를 운용해가는 것이 지구 생태계의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이 시집에서 내가 달을 비롯한 우주 생태계와의 조화를 꾀하고 있는 시들을 싣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生의 알」 「꾀꼬리 달」 「안마사」 「기상대」 「날이 흐려서」 「달의 가출」 「걸레옷을 입은 구름」 등의 시가 그 구체적인 예이다.   달은 너무 멀리 있다 아득히 구름 뒤에 숨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달은 내 몸을 잘 알고 있다 몸의 구석구석 긴 손가락을 뻗어 어루만진다 달은 안마사다 구름이 낮아져 기압이라도 오르면 저도 힘들어 심장의 박동, 가로막는다 흐르는 피의 속도, 무너뜨린다 그러면 너무 어지러워 마음 갈피를 잃는다 그녀도 그걸 잘 알고 있다 다가올 때보다는 멀어질 때 몸이 훨씬 가벼워진다는 것도 떠오를 때보다는 질 때 발걸음 더욱 힘차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달은 지금도 몸속 주춤주춤 흐르고 있다 괜한 욕심에 쫓겨 과식을 하기라도 하면 그녀는 잠시 황당해 흐르기를 늦춘다 그러면 그만 어지러워져 아무데나 주저앉아야 한다 그녀는 아득히 멀리 있다 구름 뒤에 숨어 내 몸의 구석구석 잘도 밟고 다닌다. ―「안마사」전문   이 시 「안마사」는 구름을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나’와 달의 상호 관계를 그리고 있다. 달은 “아득히 멀리” “구름 뒤에 숨어” 있으면서도 내 “몸의 구석구석 잘도 밟고 다”니는 등 상호 소통한다. 하지만 구름이 낮게 내려와 기압이 오르기라도 하면 ‘나’는 달과의 관계가 헝클어져 고통을 겪게 된다. “구름이 낮아져/기압이라도 오르면” 달 “저도 힘들어/심장의 박동,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너무 어지러워/마음 갈피를 잃”을 수밖에 없다. 이 시집의 표제시인 「걸레옷을 입은 구름」에서 “구름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자꾸 나와 달 사이의 교신을 끊는다 걸레옷을 입은 구름……/교신이 끊기면 나는 달에 살고 있는 잠의 여신을 부르지 못한다 옛날 구름은 그냥 수증기, (…중략…) 오늘 구름은 고름덩어리, 걸레옷을 입은 구름은 제 뱃속 가득 납과 수은과 카드뮴을 감추고 있다/이제 내 숨결은 달에게로 가지 못한다 달의 숨결도 내게로 오지 못한다”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나’의 몸은 달을 비롯한 태양계 내외의 행성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태양의 흑점활동이 강화되면 X선, 고에너지 입자,코로라 등이 과도하게 방출되어 지구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때에는 단파방송이나 통신이 일시적으로 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장애를 일으키는 것은 단파방송이나 통신만이 아니라 내 몸이기도 하다. 달을 비롯한 우주의 여러 행성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내 몸, 그리고 그곳에서 잉태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제5시집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에 실려 있는 시 「휘파람 부는 저녁」에서 내가 “몇 억 광년을 두고 날아왔으면서도, 타는 제 가슴 미처 식히지 못하는” 별을 노래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4. 불이의 생(生)과 사(死)   앞에서 나는 이 시집의 시들이 좀 더 많은 부분에서 근원적이고 거시적인 측면의 생태환경에 대한 문재의식을 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이 시집의 시들에 실려 있는 근원적이고 거시적인 측면에서의 생태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내가 우주와 맺는 관계에만 그쳐 있는 것은 아니다. 생태환경의 실재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을 지니고 있는 내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바른 연기(緣起)의 과정을 깨달아가면서 얻는 일련의 질문이나 소식(小識) 등도 들어 있는 것이 이 시집의 시들이다. 그렇다. 이 시집의 시들은 생명 자체에 대한 호기심, 나아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질문과 소식 등도 중요한 내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생명과 서로 대척되면서도 서로 보완되는 죽음의 문제도 이 시집의 시들에는 깊이 천착되어 있다. 생명의 문제에 대한 자각과, 그에 따른 죽음의 문제에 대한 자각을 담지 않고서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연기(緣起) 과정을 형상화하기가 어렵다. 생로병사의 연기 과정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결국 생(生)과 사(死)가 얼마나, 어떻게 상호 혼재되어 있고, 상호 착종되어 있는가를 깨닫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 시집의 시들은 생(生)과 사(死)가 이루는 불이(不二)의 모습 또한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 시집의 시들에서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은 생과 사의 상호 혼재와 상호 착종을 구체적인 삶의 과정을 통해 형상화하는 일이다. 생과 사의 상호 침투와 상호 혼종을 실제로 영위되는 나날의 삶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생생한 시의 언어로 드러내는 일 또한 중요하게 다루려고 했다는 것이다. 졸시 「生의 알」 「생명의 집」「살아 있는 것들의 집」「시체창고」 「살아 있는 죽음」「죽음들」「오늘치의 죽음」등이 다름 아닌 그러한 시의 대표적인 예이다. 일상의 나날에 생과 사가 어떻게 혼재되어 있고 착종되어 있는가를 실감 있게 보여주려고 한 것은 다음의 시 「오늘치의 죽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손톱을 깎는다 내 안에서 자라는 죽음을 깎는다 수염을 깎는다 내 속에서 자라는 어제를 깎는다   뾰쪽뾰쪽 밀어올리는 오늘치의 죽음   오늘도 나는 오늘치의 어제를 키운다 내일도 나는 내일치의 죽음을 키운다   덥수룩이 자라오르는 내일치의 머리카락   내 안에는 뭇 죽음을 먹고 뭇 생명이 크고 있다 내 속에는 뭇 생명을 먹고 뭇 죽음이 자라고 있다. ―「오늘치의 죽음」 전문   이 시에서 다루고 있는 손톱이나 수염, 머리카락 등은 ‘나’의 ‘살아 있는’ 몸을 구성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자질들이다. 하지만 심장이나 취장 등과는 달리 이것들은 살아 있는 것들이라고 하기가 곤란하다. 이것들이 이미 ‘나’의 ‘살아 있는’ 몸이 뱉어내는 주검들이기 때문이다. 손톱이나 수염, 머리카락이나 살비듬 등이야말로 내 속에서 “뭇 생명을 먹고” 자라고 있는 “뭇 죽음”의 구체적인 모습이라는 뜻이다. ‘나’의 몸이 매일 이러한 생사의 소통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에서 ‘나’는 지금 “내 안에는 뭇 죽음을 먹고/뭇 생명이 크고 있다”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리라. 여기서 말하는 “뭇 생명”이 내 몸과 함께 하는 것이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내가 나 자신의 몸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몸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야말로 생과 사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몸을 토대로 하고 있는 생과 사는 본래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다. 생과 사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불이성(不二性)은 인간과 사물(자연) 사이에도 다름없이 존재한다. 인간과 사물(자연)의 사이에도 얼마든지 불이(不二)의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 시집의 시들에서 나는 이들 가치에 대해서도 다소 적극적인 탐구를 보여주고 있다. 민들레꽃과 낯빛 뽀얀 계집애(「민들레꽃」), 봄꽃들과 책(「봄꽃들」), 사람들과 봄꽃들(「나바위성당」) 등이 바로 그러한 뜻에서 추구해온 불이의 관계, 즉 양가적 관계를 보여주는 예이다. 물론 이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가치가 지니고 있는 불이성(不二性)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고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중의적 가치는 오늘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체험하는 보편적인 진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5. 볕과 빛의 촉기   개성이 있는 시인은 누구나 저 나름의 정서적 특징을 갖고 있다. 그동안 내가 써온 시도 나 나름의 정서적 특징을 갖고 있기를 바란다. 이때의 정서적 특징을 가리켜 의미 있는 심미적 아우라 혹은 예술적 분위기라고 해도 좋다. 이번의 시집 『걸레옷을 입은 구름』의 시들이 보여주는 정서적 특징, 곧 심미적 아우라는 내 마음이 지니고 있는 심미적 정서를 반영한다. 물론 이때의 심미적 정서는 내가 만든 ‘시’라는 언어조직의 산물이다. 내가 만든 시라는 언어조직에는 나 나름의 심미적 언어의식이 들어 있다. 나 나름의 심미적 언어의식은 나도 모르게 드러내는 ㄴ, ㄹ, ㅁ, ㅇ 등의 유성자음 및 모음 지향성을 가리킨다. 말소리의 울림에 대한 자각이 없이 심미적 언어의식을 갖기는 어렵다. 이번의 시집의 시들에 드러나 있는 심미적 언어의식에는 당연히 나 나름의 심미적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나 나름의 심미적 정서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내가 살아온 삶의 과정에는 내가 경험해온 공간의 특징, 곧 자연의 특징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 내 시의 배경이 되는 공간, 곧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광주 전남의 산천이 지니고 있는 볕과 빛으로부터 유리되어 있지 않은 것이 이번 시집의 시들이 갖고 있는 정서적 특징이다. 지금까지의 삶의 과정에 내가 경험한 산천의 볕과 빛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이번 시집의 시들에 함유되어 있는 정서적 특징이라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충청남도 공주군 장기면 당암리 막은골이다. 지금의 행정지명으로는 세종시 다정동이다. 공주, 대전,서울 등지로 떠돌며 살다가 요즈음은 광주 전남을 중심으로 대전과 서울 등을 오가며 살고 있다. 흔히 빛고을이라고 불리는 광주 전남을 중심으로 떠돌며 살기 시작한지도 벌써 20여년이다. 그래서일까. 내 마음에는 대전 충남의 산천이 지니고 있는 볕과 빛만이 아니라 광주 전남의 산천이 지니고 볕과 빛도 한껏 들어와 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내가 쓰는 시에도 십분 반영되고 있다.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시들은 많은 경우 광주 전남의 볕과 빛을 바탕으로 창작된 것들이다. 광주 전남 주변의 자연과 풍경을 중심 자양분으로 하고 있는 것이 이번 시집의 시들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정서적 특징은 각기 다르다. 개중에는 볕과 빛의 밝기와 온기에 특별히 민감한 사람이 있다. 나도 그러한 편에 속한다.서울에서 고속버스나 승용차를 타고 광주나 여수, 목포를 향해 가다보면 전주 부근의 비산비야를 지나면서 볕과 빛의 촉기가 현저하게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달라지는 볕과 빛의 촉기가 이른바 남도의 정서를 만드는 중요한 자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남도의 정서는 기본적으로 밝고 환하다. 이때의 밝고 환한 남도의 정서가 오직 빛고을이라고도 불리는 광주가 갖는 심미적 분위기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 지역에는 빛고을 광주만이 아니라 특별히 볕과 빛을 강조하는 광산, 담양, 춘양, 이양, 광양, 화양 등의 이름을 갖고 있는 곳도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더는 참을 수 없어 오월에는 고인돌도 꽃을 피우지 고인돌이 제 가슴에 남몰래 피워올리는 연보랏빛 제비꽃 따라 춘양 가는 길   봄볕 너무 밝아 오월에는 꾀꼬리도 꽃을 피우지 꾀꼬리가 산골짜기에 은근히 감춰 피우는 병아리빛 붓꽃 따라 춘양 가는 길   길 위에 서면 꽃들의 보조개 너무 어지러워 가슴 활짝 열고 숨 고르고 다듬어야 하지 문득 이 세상 텅, 비어 올지라도   초록 잎새들 아주 환해 이 봄에는 당신의 마음 자꾸만 들떠오르지 걸음걸음 고인돌 밟고 불어오는 바람 따라 춘양 가는 길. ―「춘양 가는 길」 전문   이 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밝고 환한 남도의 정서, 곧 밝고 환한 광주 전남의 빛과 볕은 늘 그늘을 거느리고 있다. 이때의 그늘은 서럽고 슬프면서도 밝고 환하다. 이때의 그늘은 밝고 환하면서도 서럽고 슬프다. 밝고 환한 볕과 빛이 감추고 있는 그윽한 어둠, 그윽한 어둠을 감추고 있는 밝고 환한 볕과 빛이야말로 남도의 정서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판소리의 미학에서는 이를 가리켜 흔히 ‘흰그늘’이라고 한다. 흰그늘의 정서를 아주 잘 보여주는 것이 송강과 고산의 시가이고, 영랑의 시이다. 내 시에는 이들의 문학이 지니고 있는 양가적 정서, 이른바 남도의 정서도 스미어 있는 듯싶다. 광주 전남에서 오래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곳의 불이(不二)의 정서가 몸에 스미게 된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충남 공주(세종)이다. 따라서 내 시의 정서적인 기저에는 충남 공주(세종)의 지리적 특징과 함께 하는 심미적 정서가 배어 있으리라. 그렇다. 내 시에는 얼마간 고향의 선배들, 곧 정지용, 신동엽, 박용래 등의 시가 지니고 있는 정서적 특징이 들어 있는 듯싶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광주, 전남의 정서적 특징, 특히 영랑의 시의 정서적 특징이 덧씌워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학부 때의 스승이었던 김현승의 시, 학부와 석사 때에 골몰했던 김수영의 시, 박사 때에 골몰했던 백석, 이용악, 오장환의 시의 정서적 특징도 십분 받아들였으리라. 이러한 영향관계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내 시의 정서적 특징에 밝고 환한 것들이 숨기고 있는 서럽고 슬픈 것들, 서럽고 슬픈 것들이 숨기고 있는 밝고 환한 것들이 상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 가리켜 슬픔과 기쁨, 서러움과 즐거움이 상호 착종되어 있다고 해도 좋다. 이들 양가적 정서가 가능한 것은 내가 서러움과 슬픔에 처해 있더라도 늘 밝은 순수와 환한 무구를 잃지 않으려고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의(義)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긍휼히 여기려는 마음, 곧 측은지심, 다시 말해 인(仁)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 정서, 이들 마음을 담아내고 있는 이 시집의 시들이 이루는 풍경들, 곧 이미지, 이야기, 정서가 내가 경험해온 형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거개의 풍경은 이런저런 언어를 매개로 언어가 지니고 있는 이미지, 이야기, 정서를 매개로 내가 만들어낸, 내가 꾸며낸 것들이다. 이는 언어 자체가 허구이기도 하지만 내가 이들 풍경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꾸며내는 과정에 수많은 허구를 응용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번 시집의 시들이 펼쳐내는 풍경을 꾸며낸, 만들어낸 ‘나’(주체, 자아, 화자) 자신도 있는 그대로의 ‘나’가 아니라 내가 꾸며낸, 곧 만들어낸 ‘나’이다. 좀 더 면밀히 따져보면 시쓰기의 과정에 “있는 그대로”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없다. 그렇다. 나는 없다. 본래의 ‘나’라는 것이 없기도 하지만 ‘나는’ 시를 쓸 때마다 그때그때의 시어 속에서 잠시 허구적으로 꾸며지고, 만들어질 따름이다.   
1048    겁없이 쓰는 詩와 겁먹으며 씌여지는 詩 댓글:  조회:5218  추천:0  2016-02-03
쓰는 시에서 쓰여지는 시로     겁없이 시를 쓰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내 20대 때였다. 정신 없이 쓰고 또 썼다. 그것만이 내 삶의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되어서였다. 30대에 들면서 시 쓰는 일이 그렇게 신바람 나고 즐겁기만 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시를 쓴다는 일이 조금씩 힘에 겨워지고 감각이 둔해지는 것을 점점 구체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꿈속에서도 시를 생각하던 지난 20대의 열정이 이젠 아득한 옛날같이만 생각된다. -- 내 죽은 뒤에도 나는 내 시를 걱정하리라. 그런 치기 만만하던 시절이 새삼 그리워진다. 시대 상황이 내 시에 역설적으로 힘이 돼 준 것은 옛날 시 노트를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악몽 같은 시월 유신(維新). 그 어두운 상황 속에서 나는 이런 시를 쓴 적이 있다. 절망으로 가는 길만이 터널처럼 뚫린다. 겨울밤을 달리는 버스의 전방 아우성처럼 부딪쳐 오는 눈보라 속을 벌거벗고 뛰어가는 우리들의 마음. 흉칙하고 거대한 손이 이 시대의 하늘에 떠서 주시하고 있다. 벗어날 생각은 말라, 너털웃음을 날리면서 날리면서 떠 있다. -- '밤 버스를 타고' 전문 누구의 그림인가 기억이 확실하진 않다. 살바도르 달리였던가. 화면의 삼분의 이를 하늘이 차지하고 있는데 음산하고 불길한 구름이 흐른다. 어디선지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붉은 손이 악마의 저주처럼 지상을 장악하고 있는 초현실주의의 그림인데 그것이 이 시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겨울 밤의 눈보라 속을 달리는 버스의 기억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눈은 버스의 헤드라이트 불빛 속으로만 마구 펑펑 퍼붓는 것이었고, 어둠 속엔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하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 이 시를 썼다. 1974년의 일이다. 불의와 왜곡된 시대 상황은 말하자면 그 무렵 내 시의 어쩔 수 없는 에너지가 되었고, 나는 거기에 어떤 설명을 부연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80년대까지도 이어졌다. 그렇다고 내가 소리 높여 민중시를 쓴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렇게 의식한 적도 없다. 의식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시 스스로의 길을 구속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시가 스스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나는 나의 언어를 조종할 뿐. 그러면서도 나는 비교적 보수적인 태도를 잊지 않고 있었다. 시가 지나치게 신기에 빠지거나 전위를 앞세운 황당한 실험형식의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그것이다. 나의 시가 수많은 독자를 만나 공감을 얻고 오래 읽힌다면 그야 더 말할 수 없는 영광이겠지만, 나는 그런 소망을 가진다는 게 헛된 욕심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그저 시인은 제가 좋아서 천성으로 시를 쓰면 족하다. 사후(死後)의 평가에 기대어 보고자 함도 또한 허욕이다. 사람마다 키가 다르고 얼굴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듯, 시인들의 시 또한 마찬가지다. 잣나무 같은 시, 싸리나무 같은 시, 장미꽃 같은 시, 난초 같은 시...... 내 시가 이름 없는 풀꽃 같은 시라 해도 좋고 그만도 못한 한 포기 잡초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나는 타인의 눈을 따갑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내 재주가 허용하는 시의 길이 그렇게밖에 되지 않음에랴. 시의 길과 삶의 길에 대하여 요즘 많이 생각해 본다. 될 수 있으면 나는 그 두 길이 하나로 일치하기를 바라며 살지만 욕이나 얻어먹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어떤 시인은 간드러진 시로 사람들을 홀리는 기술이 대단하건만 그가 살아가는 삶의 길이 구역질나는 것을 보게 된다. 시인이 너무 많아서일까. 요즘 개방의 물결을 타고 저질의 싸구려 외국 농산물이 곧잘 국산 농산물로 둔갑하는 경우와 어쩌면 그리도 흡사한지. 자기 이익을 취하기 위해 삶의 길조차 손바닥 뒤집듯하는 그런 시인은 아무리 큰 상을 받는다 하더라도 솔직히 시정 잡배에 다름아닐 것이다. 시인은 평범한 인간보다 우위에 있다. 그래야 마땅할 시인이 인간 수준 미만의 삶을 택하고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은 아무리 당대의 비평가들이 침이 마르도록 그의 시를 칭찬한다 해도 그건 값싼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시는 언어의 기교가 아니다. 명예와 출세를 위해서 언어의 기교를 습득한 경우, 그것은 향기 아닌 악취를 풍긴다. 오늘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1930년대가 아니다. 단지 '시인'이라는 이유로 부도덕과 파렴치가 용인될 수는 없다. 기행과 만용이 시인의 면책 특권 같은 낭만적 기질일 수는 없다. 시인의 길은 보다 준엄한 인간의 길일 것을 요구한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면서 나는 남들이 보면 쓸데없는 그런 군말을 덧붙일 때가 종종 있다. "이 사람의 시는 이 사람의 삶 자체와는 다르다." 같은 시의 길을 걷는 후배로서 선배 시인을 폄하하면서도 못내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럴 때마다 만해(萬海)나 육사(陸史)나 석정(夕汀) 시인의 시가 더욱 휘황한 불기둥으로 솟아오름을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시를 쓰는 것과 쓰여지는 것 사이의 차이. 오래 전에 나는 시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할 수만 있다면 여러 번 퇴고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경우엔 열 번 이상 옮겨 쓰고 옮겨 쓰면서 완성되는 경우도 있었다. 갈가마귀 북풍 속을 떼지어 날아가는 남행 길 반도의 하반신에 어루만지듯 눈이 내린다. 1975년에 쓴 '남행(南行) 길'이란 제목의 졸시 끝 부분이다. 시 노트에는 마지막 한 행이 더 있었는데 지워져 있다. '눈이 내린다.'의 반복적인 끝맺음. 그런데 나는 억지스런 그 반복을 지워버린 모양이다. 메모된 10년 전의 초고를 고쳐서 다시 쓴 경우도 물론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요즘은 사정이 조금씩 달라졌다. 시가 '쓰여지기'를 기다리게 된 것이다. 예전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다. 어쩌면 그만큼 내 시는 메말라 가고 있는 반증이 될 것도 같다. 시월은 안사돈들이 나란히 나와서 혼례의 촛불을 밝히는 달, 우리나리의 단풍은 이 한 달을 북에서 남으로 걸어서 내려오느니 -- '거리에 비를 세워두고' 부분 여기서 단풍이 남하하는 이미지 같은 것이 '쓰는' 경우가 아닌 '쓰여진' 경우에 해당한다. 이제 나는 시가 내 안에서 저절로 익어 우러나기를 기대한다. 잘 쓰여지지 않더라도 천연의 언어가 스스로 발효할 때까지 나는 조급해 하지 않고 기다린다. 그만큼 열정이 식었다고나 해야 할까. 좀 부끄러운 고백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럴 때 시가 언어 이상으로 빛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   242. 겹 / 이병률                                    겹                                           이 병 률     나에겐 쉰이 넘은 형이 하나 있다   그가 사촌인지 육촌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 모른다     태백 어디쯤에서, 봉화 어디쯤에서 돌아갈 차비가 없다며   돈을 부치라고 하면 나에게 돌아오지도 않을 형에게   삼만원도 부치고 오만원도 부친다     돌아와서도 나에게 전화 한통 하지 않는 형에게   또 아주 먼 곳에서 돈이 떨어졌다며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나는     나는 그가 관계인지 높이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 잘 모른다     단지 그가 더 멀리 먼 곳으로 갔으면 하고 바랄 뿐   그래서 오만원을 부치라 하면 부치고   십만원을 부치라 하면 부치며   그의 갈라진 말소리에 대답하고 싶은 것이다     그가 어느 먼 바닷가에서 행려병자 되어 있다고   누군가 연락해왔을 땐 그의 낡은 지갑 속에   내 전화번호 적힌 오래된 종이가 있더라는 것   종이 뒤에는 내게서 받은 돈과 날짜 들이   깨알같이 적혀 있더라는 것     어수룩하게 그를 데리러 가는 나는 도착하지도 않아   그에게 종아리이거나 두툼한 옷이거나   그도 아니면 겹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 뿐   어디 더 더 먼 곳에서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고 했으면 하고   자꾸 바라고 또 바랄 뿐       이병률 시집 중에서         이병률 약력   1967년 충북 제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 두편의 시가 당선.(등단)   2003년 첫 시집 발간.   2005년 산문집 발간.   2006년 시집 발간. 제11회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   2010년 시집 발간.   2012년 산문집 발간. -----------------------------------------------------------     243. 여전히 남아 있는 야생의 습관 / 이병률                                여전히 남아 있는 야생의 습관                                             이 병 률     서너 달에 한번쯤 잠시 거처를 옮겼다가 되돌아오는 습관을 버거워하면 안 된다     서너 달에 한번쯤, 한 세 시간쯤 시간을 내어 버스를 타고 시흥이나 의정부 같은 곳으로 짬뽕 한 그릇 먹으러 가는 시간을 미루면 안 된다     죽을 것 같은 세 시간쯤을 잘라낸 시간의 뭉치에다 자신의 끝을 찢어 묶어두려면 한 대접의 붉은 물을 흘려야 하는 운명을 모른 체하면 안 된다     자신이 먹는 것이 짬뽕이 아니라 몰입이라는 사실도, 짬뽕 한 그릇으로 배를 부르게 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을 타이르는 중이라는 사실까지도       이병률 시집 중에서      
1047    태양아래 새로운 것 없다?!... 있다?!... 댓글:  조회:4928  추천:0  2016-02-03
패러디, 모방, 표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 말은 대체로 모든 창조적인 결과물이 어떤 영향 관계에서 생성되게 마련이므로 하늘로부터 뚝 떨어진 것인 양 새로운 것이 있을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창작에 대하여 지나치게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는 관점이 아닐까 싶다.  최근 연예가에 서태지와 이재수라는 두 사람 사이에 심상치 않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서태지의 노래를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열광적으로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른다. 그만큼 세대간의 간극이 크기 때문일까. 기껏 내가 기억하는 서태지는 「난 알아요」라는 곡 말고는 우스꽝스러운 복장과 국적 불명의 춤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서태지의 「컴백 홈」이라는 노래를 이재수라는 음치가수('음치'와 '가수'란 두 단어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가 자신의 스타일로 패러디하여 부른 노래 「컴배콤」이 저작권 침해, 인격권 침해의 문제가 되어 법정 공방으로까지 번졌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잠깐 패러디에 대한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패러디란 어떤 저명한 시인/작가의 시의 문체나 운율을 모방하여 그것을 풍자적으로 또는 조롱 삼아 꾸민 익살스러운 시문(詩文)을 말한다. 유명한 작품의 한 단어, 한 구절을 비틀어 바꾸거나 과장하여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그 본질이다. 넓은 개념으로 보면 모방의 일종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언론에서는 현직 대통령도 희화화(戱畵化)되고, 텔레비전에서는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낸 코미디가 나오기도 한다. 도올 김용옥 교수의 논어(論語) 강의가 인기를 끌자 코미디언 서 아무개의 '돌 선생 강의'라는 패러디가 나온 적도 있었다. 그래도 대통령이나 도올 선생이 인격권 침해로 그들을 소송했다는 얘기는 없다. 그렇다면 서태지는 그보다 위의 어떤 신성 불가침의 존재일까. 패러디는 단순히 웃자는 데서 출발한다. 대중들이 보고 웃으면 그게 바로 패러디의 효과일 뿐이다. 영화에서도 패러디의 경우가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007 제임스 본드, 람보를 흉내낸 백발의 코미디 배우는 「못 말리는…」시리즈 영화의 단골 주역이다. 그가 「탑건」,「사랑과 영혼」,「타이타닉」 등을 혼성 모방한 영화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베토벤의 유명한 피아노곡 「엘리제를 위하여」를 우리 나라에서 오래 전 김용선이 편곡한 대중가요 「정열의 꽃」이 있다. 아마 70년대일 것이다. 당시 이화여대 미대 출신의 가수 정미조가 그 노래를 불렀고, 요즘은 다시 김수희가 가사를 바꿔 부른 「정열의 꽃」을 들을 수 있다. 혹시 베토벤의 유족들이 저작권 운운하며 항의하러 오지 않을까. 음악에서는 일반적으로 한 음률에 다른 가사를 붙이는 경우를 패러디라고 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특히 16세기에는 어떤 악곡의 선율이나 구성법을 빌어 작곡한 유사한 악곡을 패러디라 하였다. 그것은 풍자나 익살이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경의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문학의 경우와는 다르다. '패러디 미사곡'이라는 게 있을 정도였다. 문학에서의 패러디, 또는 모방을 생각해 본다. 패러디의 시조는 멀리 고대 그리스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의 풍자시인 히포낙스가 그 패러디의 시조라 한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도 실은 중세시대 기사도 전설의 패러디인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독백이 있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텔레비전의 역기능이 심각히 우려되었던 미국의 1960년대에는 이것을 패러디한 "텔레비전을 보느냐 마느냐, 이것이 문제로다(TV or not TV that is the question.)."라는 말이 유행했다던가. 패러디에 대하여 언급한 이사라 시인의 말을 들어본다. 린다 허천(Linda Hutcheon)에 의하면 패러디는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주제와 형식을 표현하는 주요한 기법이며 모방의 한 형식이다. 그런데 패러디는 단순히 패러디된 작품을 희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러닉하고 장난스러운 것에서부터 경멸적이고 조롱조인 것까지를 포함한 전도(顚倒)에 의한 모방이다. 그러나 패러디는 더 나아가 이전의 예술작품을 재편집하고 재구성하고 전도시킬 뿐만 아니라 초맥락화하는 통합된 구조적 모방의 과정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협의로 볼 때는 하나의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를 '조롱하거나 희화화' 시키는 것이지만 광의로 볼 때는 텍스트와 텍스트 간의 반복과 차이를 의미한다. 패러디라는 용어는 '대응하다' 또는 '반(反)하다'의 뜻인 'para'와 노래의 뜻인 'odia'의 합성어 parodia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선행의 텍스트와 대응하거나 반한다는 데 있어서 패러디와 풍자, 패스티쉬, 상호텍스트성은 엄격한 구분이 불가능할 만큼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패러디와 패스티쉬(pastish, 긁어모은 것)는 양자 모두 모방을 뜻한다. 그렇지만 패러디가 다른 텍스트와의 관계에서 차이와 변형을 강조하는 데 비해 패스티쉬는 모방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 그친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eric Jameson)은 중성 모방 또는 혼성 모방인 패스티쉬가 숨은 동기나 풍자적 충동, 웃음이 없는 공허한 패러디이며, 스타일상의 가면이고, 내부 깊이가 없는 표피적 모방이며, 여기저기 원전들을 차용하는 짜깁기라고 설명한다.  ―「실험적 기법」『시창작 이론과 실제』(1998, 시와시학사) 널리 알려진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은 많은 패러디 작품을 거느리고 있다. 황지우는 "내가 꽃에게 다가가 '꽃'이라고 불러도 꽃이 되지 않았다. 플라스틱 造花였다."라고 쓴 것도 있고, 오규원의 「'꽃'의 패러디」, 장경린의 「김춘수의 꽃」도 있지만 다음과 같은 장정일의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는 기발하며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 장정일의 시 일부 인용 남의 창작물 중 한두 군데라도 자신의 독창적인 작품인 양 슬쩍 훔쳐 넣는 것을 표절(剽竊)이라고 한다. 그건 모방이라 할 수가 없다. 대중가요 쪽에서 이따금 일본 노래 한두 소절을 표절했다고 말썽이 나기도 하고, 문단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곧잘 불거져 나온다. 쉽게 말하면 남의 시가·문장·학설 따위를 자기 것으로 발표하는 일이 곧 표절이다. 최근 젊은 평론가가 저명한 평론가의 글에 대하여 감히 표절 사실을 밝히고, 그 문제로 인하여 오히려 자신이 피해를 당한 해괴한 사건이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금년도 신춘문예 당선 시 가운데도 그런 의심을 받은 작품이 있어서 어느 계간지의 홈페이지 게시판이 정월 한 달 내내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H일보의 당선작이 문제의 표절 의혹을 받은 시였다. 내 개인적인 견해를 말한다면 그건 분명한 표절이라고 생각한다. 심사위원들이 당선작이라고 이미 지상에 발표한 이후라서 철회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 전년도 어느 잡지에 발표된 텍스트의 시와 발상이 비슷하고 영향을 받은 듯하지만 표절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궁색한 변명이 뒤따랐다. 그가 투고한 다른 시들의 수준도 충분히 고려해서 확정된 결론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감때사나운 눈총을 받은 시 말고 다른 그의 시를 당선작으로 발표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하긴 그렇다면 표절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난처한 입장이 될 수도 있으리라.  이미 고인이 되어서 그의 시를 거론하는 일이 좀 마음에 꺼려지긴 하지만, 분명한 평가와 정리를 해야 마땅하리라는 뜻에서 박정만의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시에 대하여 이제는 말할 때가 된 것 같다. 나는 1966년에 동아일보의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가 그 작품이 일개 지방대학신문에 보름쯤 먼저 발표되었다는 사유로 당선이 취소되는 쓰라림을 맛보아야 했었다. 표절과는 관계없는 사안이었다. 다만 거대 신문사의 권위가 문제였다. 억울하게 낙선(?)의 고배를 든 나는 당선될 뻔한 시와 다른 시들을 묶어서 1966년 여름에 처녀시집 『이상기후』를 발간하였다. 그리고 1967년 조선일보에 당선되었다.  그 이듬해 1968년 박정만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하였는데 신문에 발표된 그의 시 「겨울 속의 봄 이야기」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겨울 속의 봄 이야기 Ⅰ 뒷울안에 눈이 온다. ①[죽은 그림자 머언 記憶 밖에서] 무수한 어둠을 쓸어 내리는  구원한 하늘의 說話. 나는 지금 어둠이 잘려나가는 瞬間의 ②[분분한 落下 속에서] 눈뜨는 하나의 나무 눈을 뜨는 풀꽃들의 ③[건강한 죽음의 蘇生을 듣는다.] 무수히 작은 아이들의 손뼉소리가 사무쳐 있는 暗黑의 깊은 땅속에서 몸살난 昆蟲들은 얼마나 앓고 있는가. 四方에 思惟의 蟲齒를 거느리고 밋밋한 樹海를 건너오는 찬란한 아침 光線. 受胎한 女子의 房門 앞에서 나는, 靑솔과 반짝이는 銅錢 몇 잎을  흔들며 자꾸만 서성대고 있다. Ⅱ 아침 한때 純金의 부리로 빨갛게 새들은 남은 殘雪을 쪼아대고 그때 무어라 귓속말로 읽고 가는 바람의 傳言. 수런거리며 은빛 비늘이 돋아 나는 樹皮의 깊은 안쪽에서부터 몇 개 새순이 자라나고 있는가. ④[사랑의 品詞들로 점점이 물들어 가는 나의 눈과 목소리]처럼 ⑤[예지의 光彩가 가지 끝에 엉기어] 비쭉비쭉 푸른 血管이 일어서면, 저 유난히 커오르는 숨소리를 내 아내의 어린 살빛은 듣고 있다. ⑥[자꾸만 바람 뜨거운 나뭇가지 끝에서] 까치들은 한 小節의 노랠 부르며 있고. Ⅲ ⑦[홀연 도련님 눈썹 위에 내려앉는 淸雅한 뻐꾸기 울음소리.] 봄의 젖줄을 잡아당기는 따스한 母情의 觸感을 한 줄기씩 내리어 꽃대의 燈心을 밝히고 섰는 어머니의 祝福을 누가 알까. ⑧[家家戶戶의 문전마다] ⑨[新春大吉이라 榜을 붙이고,]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옮겨 앉는 메아리. 時間은 상처 난 손을 떨어뜨리며 지나가고 ⑩[겨울 冷氣는 땅강아지 발목 앞에서 바쁘게 무너지고 있었다.] 이 시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교묘한 혼성 모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표절이라 생각하지만. 박정만은 경희대에 재학 중이었는데, 그 때 국문과 대표인 친구가 내 절친한 동창이었고 그로부터 내 처녀시집을 받아 탐독한 것이었다. 그래서 내 시에서 많이 영향받았다는 얘기인데, '영향'과 '표절'은 엄연히 다르다. 여기 시행의 앞에 번호를 매긴 것들 아홉 군데가 말하자면 내 처녀시집 『이상기후』에 들어 있는 시들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 된다.  ① 죽은 사람들의 그림자/ 머언 記憶 밖에서 ―'겨울 나무'에서 ② 純金의 비가 내린다./ 하늘에서의 분분한 落下 ―'市民들'에서 ③ 뛰어다니며 예감하는/ 건강한 우리들의 죽음. ―'市民들'에서 ④ 문을 두드리는/ 나의 손가락까지 점점이 물들어/ 파아란 잎사귀로 하늘대다 ―'人形'에서 ⑤ 봄철의 예지/ 스미어 있음인가,/ 빗속에/ 비 젖는 나무 줄기 속에 ―'겨울 나무'에서 ⑥ 미친 듯이 나부끼는 가슴 속의/ 바람 뜨거운/ 나무 ―'겨울 나무'에서 ⑦ 도련님 눈썹에 눈 내리는 돌개바람/ 돌개바람 속에 북소리/ 쇠북 소리/  冥界를 길어내는 피리 소리 ―'紙燈說話'에서 ⑧ 家家戶戶의 뜨락에서 ―'市民들'에서 ⑨ 吉兆. 吉兆,/ 紙燈을 걸어두었던 문설주에 ―'紙燈說話'에서  (신춘대길? '입춘대길'은 들어보았지만 그런 말도 대문에 써붙인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⑩ 여름이/ 땅강아지 앞다리에서/ 바쁘게 무너져 오는 것을 본다. ―이상렬 '씨 뿌리는 마음'에서 미리 밝혀 둘 일이 있다. 나와 이가림은 고교 동기동창이고, 이상렬은 고교 2년 후배, 박정만은 3년 후배라는 사실이다. 이상렬, 그는 불운한 무명 시인이었다. 신인상에 최종선까지 올랐다가 강서화(강은교)에게 밀려 떨어진 후 끝내 일어서지 못하였고, 지금 그는 고인이 된 사람이다. 신춘 당선시에 대하여 박정만은 내게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으며, 오랜 세월 뒤 갖은 고초 끝에 불행한 생을 마감하였다. 어쩌면 내게 뿐만 아니라 다른 시인들에게도 빌려 쓴 구절에 대하여 용서를 구했어야 할 시가 바로 이 작품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나는 그가 죽음을 앞두고 한꺼번에 수많은 시들을 쓴 것에 대하여서는 경탄을 금치 못한다. 박정만 시인이 죽고 난 뒤 어느 잡지사가 앞장서서 그의 시비를 세우자고 하였을 때 나는 그의 사과를 끝끝내 듣지 못했으므로 냉담하였다. 나는 지금도 문제의 그 시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못한다. 그것은 표절, 아니면 교묘한 혼성 모방의 시이기 때문이다. 정녕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은 진리인가.   ===========================================================   241. 사과밭에서 / 문태준                            사과밭에서                                                 문태준   가을 수도사들의 붉고 고운 입술 사과를 보고 있으니 퇴원하고 싶다 문득 이 병원에서 퇴원하고 싶다 상한 정신을 환자복과 함께 하얀 침대 위에 곱게 개켜놓고서     문태준 시집 중에서       
1046    生态詩 공부하기 댓글:  조회:4454  추천:0  2016-02-02
시창작 교실의 현장 학습과 實技論 강의 주제: 생태詩 무엇을 쓰고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ecotopia와 tecnopia의 이론과 실제                                                                                  /송수권(시인, 순천대 교수)    일찍이 제임스 러블럭은 유기체와 무기체의 생명현상에서 무기체에도 생명현상이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돌멩이 하나도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생성되기까지의 기억의 흔적을 담고 있으며. 그때의 바람소리, 물소리, 생명의 리듬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무기체의 생명론인 셈이다. 쉽게 말하면 「논어」에 보이는 유물유칙(有物有則)인 "제 자리에 있을 것이 없으면 시끄러워진다"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그러므로 생명현상은 우주질서의 순환법칙이며 불교에서 말하는 "色卽空"의 윤회법칙이다. 도가에서 말하는 청정(허정)의 세계에 윤회법칙(연기법칙)이 있을 뿐이다.    테크노에 앞서 다행히 우리에겐 에코노를 지향할 수 있는 "曲卽全"의 정신적 자양분이 충분하다고 본다. 장자의 제물론, 노자의 도덕경, 선불교, 토속신앙에 이르기까지 이런 애니미즘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천년왕국을 지향해 온 테크노의 자본론이나 인간욕망 중심주의에 통제를 가할 수 있는 여유있는 공간이 보인다. 보살행이나 무소유는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가진 것을 비워간다"는 뜻이며 "좋은 삶은 물과 같다(上善若水)"는 순환현상을 오랜 전통 속에 그 피를 갈무리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에코토피아 시론에서 최근에 주목되고 있는 시집 「우포늪의 왁새 2002, 시와 시학사」를 텍스트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에코토피아 시론에 의하여 총 56편의 연작이 "우포늪"이라는 단일공간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모두에서 나는 "아름다움이란 곧 시적 진실을 말한다"고 정의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아름다운 "진실" 즉 "깨달음의 미학"이 투철한 인식소에 의해 그 정체성이 가장 확실한 시집으로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 그는 우포늪지기로서의 삶을 살면서 체험과 깊이 또는 직관력의 통찰(total view)로 이루어낸 시집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1억 년 전의 사서史書를 읽고 있다  빗방울은 대지에 스며들 뿐만 아니라  돌 속에 북두칠성을 박아놓고 우주의 거리를 잰다  신호처럼 일제히 귀뚜리의 푸른 송신이 그치고  들국 몇 송이 나즉한 바람에 휘어질 때  세상의 젖이 되었던 비는 마지막 몇 방울의 힘으로  돌 속에 들어가 긴 잠을 청했으리라  구름 이전, 미세한 수증기로 태어나기 전의 블랙홀처럼  시간은 그리움과 기다림을 새면 화석이 되었으리라  나는 지금 시詩의 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1억 년 전의 생명선線 빗방울을 만난다.  사서史書에 새겨진 원시적 우주의 별자리를 읽는다.    이 시는 "빗방울 화석"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1억년 전의 사서(史書)란  "살아있는 고문서(古文書)"라는 "우포늪"에 대한 암유적인 표현이면서 동시에 박물관에 들어 있는 실제의 화석 표본을 말한다. 대표적인 화소는 물론 빗방울이지만 이 빗방울이 화석에 연결되어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로 우주의 별자리까지 읽어내는 데뻬이지망이 잘 걸린 작품이라 할 것이다. 하나의 돌멩이에 불과한 무기체에 시인의 호흡을 불어넣어 아니마에서 아니무스가 탄생되는 이미지의 연속성이 율동감, 즉 살아있는 생명의 "춤"으로 상승적 구조의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다. 러블럭의 가이아(Gaia) 가설에 적중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시인이 이 빗방울을 만나기까지는 1억년이 상기한 셈이다.    따라서 시란 랑그의 세계, 다시 말하면 국어사전적인 유통언어로 써진 것이 아니라 침묵의 언어란 것, 그 침묵 속에 잠들어 있는 1억 년 전의 침묵의 세계를 언어로 끌어내는 창작 행위란 것도 알 수 있다. 릴케식으로 말한다면 "시인이 오기 전까지 이 세계에 완성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것이 곧 고백적이고 시적이며 주술적인 언어가 담당하는 감수성의 세계인 빠롤인 셈이다. 따라서 우포늪은 살아 있는 화석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고문서"라는 단초가 된다. 이 단초는 "史書" 라는 전체적인 인식소에 의해 생명 현상이 낱낱의 생체 리듬으로 환유의 시법에 의해 춤판인 "우주공동체의 정신(identity)"을 드러낸다. 이것이 시인의 정체성이며 특히 생태시학에서는 믿음과 구원에 이르게 된다. 다음은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고 있는 "우포늪의 왁새(왜가리)"다.  득음은 못하고, 그저 시골장이나 떠돌던  소리꾼이 있었다. 신명 한 가락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그만이던 흰 두루마기의 그 사내  꿈 속에서도 폭포 물줄기로 내리치는  한 대목 절창을 찾아 떠돌더니  오늘은 왁새 울음되어 우항상 솔밭을 다 적시고  우포늪 둔치, 그 눈부신  봄빛 위에 자운영 꽃불 질러 놓는다.  살아서는 근본마저 알 길 없었던 혈혈단신  텁텁한 얼굴에 달빛 같은 슬픔이 엉겨 수염을 흔들고는 했다.  늙은 고수라도 만나면  어깨 들썩 산 하나를 흔들었다.  필생 동안 그가 찾아 해맸던 소리가  적막한 늪 뒷산 솔바람 맑은 가락속에 있었던가.  소목 장재 토평마을 양파들이 시퍼런 물살 몰아칠 때  일제히 깃을 치며 동편제 넘어가는  저 왁새들  완창 한 판 끝냈다고 하늘 선회하는  그 소리꾼 영혼의 심연이  우포늪 꽃잔치를 자지러지도록 무르익힌다.    왜가리는 백로과의 "나그네 새"로서 여름 철새다. 우항산(牛項山) 솔숲을 깔고 먹이사냥에 바쁜 왜가리떼가 "떠돌이 소리꾼(귀명창, 떡목)"에 겹쳐진 이미지로 읽히는 시다. 여름 철새라는 이미지와 함께 시끄럽게 울어대는 청각현상이 동편제 소리꾼으로 변용되어 우포늪의 생명의 춤으로 재현되고 있다. 지구의 온실 가스로 요즘은 이 왜가리도 텃새화 되어가지만 "텁텁한 얼굴에 달빛같은 슬픔이 엉겨 수염을 흔들고"는 "흰 두루마기의 그 사내(소리꾼)"와 어울려 사뭇 안쓰러운 정조를 끌어내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한다. 백로는 흰 몸빛깔이고 왜가리는 등이 잿빛이고 배가 흰빛깔로 설명되지만 흰두루마기건 때절은 잿빛 두루마기이건 간에 2차 정서를 흔드는 데는 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듯 싶다. "빗방울 화석"에서 견고한 원시적 이미지를 찾을 수 있다면 "우포늪 왁새"에서는 전통서정의 표본적인 정서를 읽을 수 있다. 이 시인의 경우는 이미지의 선명성과 전통정서의 수용으로 시쓰기에서 인지적 충격과 정서적 충격을 동시에 노출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지로 경도되는 시는 그만큼 드라이 해져서 정서 유발의 물끼에 문제가 있기 때문으르 판단되는데, 전통 정서를 사용하므로서 그것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쓰기에 있어서 방법적인 면을 검증할 수 있는 작품으로 "암벽 틈 제비꽃"을 예시해도 좋을 듯하다.  세진리 공룡화석 새겨진 암벽 틈에  나란히 꽃 핀 제비꽃 두 포기  너희는 어떻게 여기다 뿌리를 박았느냐!  오한과 허기 어떻게 견디며  새 잎 피워내고, 보랏빛 환한 얼굴로  섬세한 사랑의 촉수를 변함없이 흔들 수 있느냐!          (중략)  오늘부터 내게도 어떤 그리움 생겨 잠들지 못한다면  그 아픈 영혼의 반쯤은 그대들 책임이라    이른 봄 공룡화석에다 백리를 박고 된 제비꽃 두 송이야말로 시인의 "견고한 이미지 잡기"와 "전통정서"가 어떻게 만나 시인의 시 정신(정체성)이 극기와 사랑의 생명력을 붙잡아 내는가를 알 수 있어 그 통로를 다시 말하면 그 비의(秘義)를 들여다보게 한다. "섬세한 사랑의 촉소"가 화석에 닿아 보랏빛 생명력의 "제비꽃"을 피우낸다. 이것이 극기와 사랑의 풍경인 것이며 56편은 이 치밀한 "극기의 풍경"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인 것이다. 예시한 "암벽 틈 제비꽃"의 "오늘부터 내게도 어떤 그리움 생겨 잠들지 못한다면/ 그 아픈 영혼의 반쯤은 그대들 책임이라"는 능청스런 건너뛰기로 고통을 드러내는데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따라서 는 시 쓰기의 책략(策略)으로 면밀 극도하게 "이미지와 정서의 구조화"에 공을 들였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즉 우포늪이라는 "살아 있는 古文書"를 빈틈없이 섬세한 촉수의 언어들로 文書化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위에서 나는 "섬세한 촉수의 언어들"이란 말로 이 시집을 정리하였는데 보다 더 구체적인 감각을 흔들어 놓은 다음 시 한 편을 텍스트로 내보이고자 한다.  바람 불고 잎들이  뒤척거린다  그 아래 잎들의 신음이 쌓여  그림자가 얼룩지고 있다  산책 나온 아침, 눈이 동그래진다  나뭇잎에 허공 길이 뚫리고  거기 헛발 디딘 햇빛  금싸라기를 쏟아 세상이 다 환해진다  아 나뭇잎 허공  벌레 먹은 이 자리가  우화를 기다리는 은유의 길이라니,  허공에 빠진 내 생각 뜯어먹으며  또 살찐 벌레 한 마리 지나간다.    "푸른 힘이 은유의 길을 만든다"의 전문(全文)이다. 흔히 하는 말로 시인은 "병아리가 이빨 닦는 소리"와 "지리산 반달곰이 뭣터는 소리까지도 들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말테의 수기"에 쓰여 있는 릴케식으로 말한다면 "모든 사물은 가슴을 열어 놓고 울면서 호소하는데 그것을 받아적을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 하라"고 충고한다. 이는 곧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영혼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feeling)작용을 이름이다. 이는 곧〈色, 受, 想, 行, 識〉의 오온(五蘊)의 현상인 바 실체가 없는 허상만 있는 형상세계의 해석을 이름이라. 보들레르 시학으로 가면 이것이 삼라만상의 조응(상응)관계다.    위의 시에서 제시된 것은 "벌레 먹은 한 잎의 허공"을 들여다 보고 깜짝 놀라 깨달음을 얻는 시인 나름대로의 큰 인식소가 숨어 있다. 그것은 "아 나뭇잎 허공"이란 감탄 어법에 이어진 "벌레 먹은 이 자리가/ 우화(羽化)를 기다리는 은유의 길" 이란 사실에서 기인한다.    1연을 읽어보면  바람 →  일들의 뒤척임 →  (포개진) 그 아래 일들의 신음 →  그림자의 얼룩 →  눈이 동그래짐, 인데 선명한 이미지로서 그려진 음영(그늘)관계다. 여기에서 시인은 아침 햇빛을 받지 못한 그늘진 잎들의 "신음"을 듣게 된다.    제 2연은 1연에 의한 시상 전개로서  나뭇잎에 뚫린 구멍 →  헛발을 딛는 햇빛 →  밝아지는 세상 → (아 나뭇잎 허공)→  벌레 먹은 자리 →  우화를 기다리는 은유의 길로 깨달음의 통로를 열면서 결구연에 가서 그 나뭇잎 허공에서 비로소 "살찐 벌레" 한 마리를 발견한다. 그것이 다름 아닌 탈각을 하고 어느 날 "우화등선(羽化登仙)"을 할 수 있는 "생명의 춤"이란 에코체인(eco-chain)을 발견한다. 더 축소한다면 윌리엄 루켓이 말한 푸드체인(food-chain)으로서 구멍(허공)을 들여다보고 허공의 진리, 즉 공(空)에서 색(色)을 끌어내는 시적 진리야말로 눈부시지 아니한가. 그리고 이 정신이 바로 티벳인들의 "음식은 음식으로 돌린다"는 그 몸시학인 조장정신과 맞닿아 있다. 벌레 한 마리가 나뭇잎에 구멍을 파며 야금야금 아침 식사를 하고, 그 허공의 길을 가는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놀랍고 충격적인 사실인가? 새로운 발견의 미학없이 "영원히 아름다운 것은 이제 우리를 질리게 한다" 는 그 창조적 발단에 불을 지핀 보들레르 시학을 다시 한번 곱씹게 한다. 그러므로 "섬세한 언어의 촉수"없이 시를 쓴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행위인가? 또 이 촉수(觸手)없이 삶을 해석하는 일이야말로 혀 뽑힐 일이 아니겠는가.    끝으로 우리 생태詩는 1970년대에 발화하여 지금은 그 체험론의 깊이가 이만큼 완숙해졌다는 사실을 배한봉 시인의 에서 들여다보는 즐거움에 해당된다. 동시에 이 시편들은 현재의 이 시점에서 보면 가장 잘 써진 텍스트로 원용되어도 무방하리라. 우포늪은 물론 곰마을 은빛 고개(能村面 銀峴里) 솔발산에 있는 식충식물의 보고인 무제치늪이나 화엄늪의 기행이나 생태詩도 나와야 할 것을 첨언한다.         
1045    "생태시" 시론을 공부하고 생태시 쓰자... 댓글:  조회:4451  추천:0  2016-02-02
“생태시와 생태주의 시학” / 신진 . 송용구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에 걸쳐 환경파괴의 심각성과 더불어 ‘생태시’라는 새로운 장르가 등장했습니다만, 이 장르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주제의 중요성을 화제로 신진과 송용구 두 시인의 이메일 대담을 마련했습니다.   송용구(1965~ , 고려대 독문학과 연구교수) 시인은 독일 생태시를 번역한 (시문학사, 1998)를 비롯하여 ?독일의 생태시?(1995) 등 많은 논문과 작품을 발표하여 이 방면의 대표적 선구자의 위치를 굳혔습니다. 한편 신진(1949~ , 동아대 교수) 시인은 시집 (시와 시학사, 1994)을 비롯하여 많은 시집을 상재했지만, 특히 시집 에 수록된 일련의 리얼한 생태시는 생명존중과 환경보호 문제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두 시인은 생태주의의 ‘시적 복음(福音)’의 중심점에 서 있는 사도적(使徒的) 에콜로지 시인이라고 할까요. 다음과 같은 화제로 두 시인의 대담을 마련합니다. - 편집자.   (1) ‘생태시’(生態詩)의 지향점에 대하여 말씀해 주세요. 송용구: ‘생태시’는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한 현대인들의 의식구조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생태시’는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을 불러 일으키는 정치적 원인 및 사회적 원인들을 고발함으로써 독자의 비판의식을 일깨우려는 목적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생태시’를 ‘정치시’의 일종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제가 생각하는 ‘생태시’의 지향점을 네 가지로 제시해보겠습니다.   첫째, ‘생태시’는 자연과 인간의 생명이 파괴되어가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둘째, ‘생태시’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로부터 생명파괴의 원인을 찾아내고 규명합니다.   셋째, ‘생태시’는 환경오염의 원인들을 비판하면서 그 원인들에 대한 개혁과 극복을 호소합니다.   넷째, ‘생태시’는 현실극복의 과정을 통하여 인간과 자연 간의 상생(相生)이 이루어지는 대안사회를 모색합니다.    제가 제시한 ‘생태시’의 4가지 지향점을 놓고 볼 때, ‘생태시’는 자연의 생명력을 객관적으로 진단함으로써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사실적으로 인식하는 문학입니다. 또한, ‘생태시’는 생태계 파괴의 원인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인간과 자연 간의 상생(相生)의 출구를 모색하는 사회참여의 문학으로 볼 수 있겠지요. 미국의 생태철학자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이 “생태문제는 곧 사회문제”라고 말하였듯이 ‘생태시’는 ‘자연’이라는 거울을 통해 정치의 현실을 비추어보고, 언어의 청진기로써 사회의 병리현상들을 진단하고자 합니다. 정치 및 사회의 부조리로부터 환경오염의 원인들을 찾아내려는 시인들의 현실인식이 ‘생태시’의 사회참여적 지향성을 확고히 노정(路程)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신진 : 서구의 기계론적 과학과 자본주의는 지난 몇 백 년 동안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지배 가능한 대상으로 인식해왔습니다. 이윤을 얻기 위해 과학지식과 기술의 힘으로 지구를 통제했을 뿐 아니라 미립자 세계와 인간생명, 우주 세계마저 통제하려 들 만큼 거대한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도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번영과 풍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만 자연훼손으로 인한 이웃생명의 상실감과 위기의식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들 실감하시는 바이겠습니다만 축복이 저주의 형상으로 얼굴을 바꾼 것입니다. 공기와 하천, 바다와 하늘의 오염, 자원고갈과 지구의 온난화 그리고 기상이변 등 탐욕 어린 개발과 소비가 불러온 재앙들은 어떤 과학기술로도 극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현재의 패러다임을 백팔십도 전환하지 않는다면 1천년 내에 자연과 인간은 파멸하고 말 것이라는 예측은 공상과학이 아닌, 실제 상황에 가까운 일이 되었습니다. 자연을 오직 인간의 기술적 조작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버리고, 갖은 재앙에 직면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여 진정한 관계를 찾으려는 것. 다시 말해 왜곡된 근대적 삶의 양식을 끊임없이 비판하면서, 근본적으로 인간에 자연을, 자연에 인간을 포괄하여 바라보는 관점이 생태주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고, 생태시는 이를 시적으로 실천한다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생태학적 세계관은 1990년대 들면서 본격적으로 파급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들어 생태의식을 담은 시, 소설, 비평들이 본격적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이 중론에 동감합니다. 시 장르에서 가장 선도하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시 장르의 순발력과 시인의 섬세한 촉수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정시 자체가 본원적으로 역동적 생명력의 소산이자 그를 지향하는 유기성을 지향점으로 하기 때문일 터입니다. 이렇게 보면 생태시는 인간과 자연의 합일, 자아와 세계의 합일, 세계와 세계의 합일을 지향하는 시라 할 수 있습니다. 생태계를 총체성, 유기성을 가진 것으로 형상화하는데, 이는 서정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계와도 맞닿은 지점이라 하겠습니다.   (2) 생태시가 가지는 문제점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송용구: ‘생태시’의 문학적 수준은 한 차원 더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술방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미학적 장치 혹은 예술적 기교가 매우 부족한 ‘생태시’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같은 현상은 생태계 파괴의 실상이 은폐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시인들의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비유, 상징, 수사(修辭) 등을 풍부하게 가미할 경우에 환경오염의 실태를 독자에게 알리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작가들의 편견이 아닐까요? 예술성과 미학을 포기한다면 ‘생태시’의 교육 목적을 실현하기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독자로 하여금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파수꾼이 되게 하려면 독자의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언술방식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생태시’에서 도외시되었던 미학적 언어와 예술적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은유, 상징, 수사(修辭), 리듬, 음향 등은 독자의 감동을 이끌어낼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태시’를 쓰는 작가들은 자연의 현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메시지의 예술적 표현에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현실인식과 정서적 감동이 결합될 때에 독자의 저항의식도 강화될 수 있을테니까요.   신진: 생태시가 다른 시에 비해 특별한 문제점을 지닌다 하기는 어렵습니다. 나름의 딜레마가 있다면 생태주의 사유체계와 문명사회의 현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요즈음의 인간은 결실을 얻기 위해 계절적 생산주기를 지키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배아복제를 통해 불로장생을 꿈꾸기도 하는 정도로 편의성과 풍요로움에 길들여져 있지 않습니까. 이 손쉬움과 풍요로움이라는 주술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생태주의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인간이 지금부터 과거를 반성하고 자연의 일부로, 겸허한 태도로 존재하겠다 하더라고 어느 정도는 문명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릅니다. 싫든 좋든 인간은 본래적으로 문명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문명은 인간의 생태적 속성의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어떤 생물? 무생물을 어느 정도 보호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상존합니다. 생태의 세계를 염원한다 할지라도 그 지경과 기준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시에 한정해서 말씀드리자면 이러한 문제는 시인의 개인차를 허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당장 파리나 모기, 들쥐 같은 동물들의 생명도 존중하면서 공생할 것인가, 손바닥이나 몽둥이로 퇴치할 것인가. 보다 화학적인 과학으로 퇴치해야 마땅한 것인가 하는 문제에는 개인차가 어쩔 수 없다는 말입니다. 같은 선상에서 시 창작상의 문제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근대시가 제고하여온 미사여구나 기법적 장치들을 생태시는 어느 정도 허용하고 어느 정도를 버려야 할 것인가. 시에 있어 어디까지가 조작적인 장치이며 어디까지가 인간의 생태에 준하는 진솔한 언어인지. 아니 도대체 시라는 장르 자체가 인간의 생태적 정신을 자동화하고 조절하는, 작위적 문화 조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나 아닐지. 고민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시의 발상과 상호간의 교환은 분명 인간 본래의 생태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자연발생이 아닌, 기술과 전략으로 오염된 시를 거론할 수 있는 것도 현실이고 그 기준을 마련하는 일도 지금으로서는 극히 어렵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저의 개인적 고민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생태문제에 고민해본 시인들에게는 응당 고민을 주는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문명을 등진다거나 생태환경을 복원한다는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생태시는 끝없는 탐색만이 반복되어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유와 인식과 가치관의 혁명적인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언제나 이상일 수밖에 없는, 추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3) 생태시의 방법이나 기법에 대하여 말씀해 주세요. 송용구: ‘생태시’의 사회적 역할은 생태파괴의 원인들에 대하여 독자의 비판의식을 이끌어내고 독자와 시인 간의 연대의식을 유도해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역할을 감당하기 위하여 시인들은 독자에게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인류의 파멸을 경고하는 선지자의 소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1970년대 이후 독일어권 지역의 ‘생태시’에서 르포, 다큐멘타리와 더불어 묵시록(?示錄)의 언술방식이 자주 사용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르포와 다큐멘타리는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될 수 없는 비문학적(非文學的) 언술방식인 까닭에 예술성과 미학을 포기하는 문학적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육적 효과를 높이는 데 주력하다 보니 예술성이 상실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나 독일의 시인들은 ‘묵시록’이라는 언술방식을 사용하여 미학적 실험을 꾸준히 시도하였습니다. 생태시의 예술성을 회복하고 현대시의 영역 안에서 미학과 교육을 조화시키는 작업을 강화해나갔습니다. 랄프 슈넬(Ralf Schnell)이 언급했던 “미학의 저항”을 실현하는 길을 걸어가게 된 것입니다. 종교의 묵시록과 ‘생태시’의 묵시록은 그 의도와 성격에 있어서 상이합니다. 종교의 묵시록이 인류의 종말을 선포하는 ‘예언’ 그 자체에 내용의 중심을 두고 있다면, ‘생태시’의 묵시록은 교육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언어적 수단으로써 ‘예언’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 시인 귄터 쿠네르트(Gunter Kunert: 1929~생존)의 「라이카」는 ‘묵시록’적 기법을 사용한 대표적 ‘생태시’입니다.   “우리가 소유한/ 가장 좋은 금속으로 만든/ 공 안에서/ 죽은 개 한 마리/ 날마다 우리의 지구 주변을 돌고 있다./ 우리가 소유한 가장 좋은 위성/ 지구가/ 어느 날 저렇게/ 죽은 인류를 싣고/ 해마다 태양 주변을/ 돌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보내면서.” - 귄터 쿠네르트의 「라이카」전문.   1957년 ‘라이카’라는 이름의 개 한 마리를 인공위성 ‘슈프트닉 2호’에 태워 역사상 최초로 우주 공간에 생명체를 띄워 보냈던 사건이 시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이 역사적 사건은 지구의 종말을 나타내는 은유의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개’를 싣고 ‘지구 주변을 도는’ 인공위성은, 멸망한 인류를 싣고 ‘태양 주변을 돌게 될 지도 모르는’ 지구의 은유인 것입니다. 시인은 ‘죽은 개’를 통해 ‘죽은 인류’의 미래를 예언함으로써 ‘지구’의 죽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위성’이었던 ‘지구’안에서 모든 생물들이 시체로 변해버리는 종말의 상황을 ‘묵시록’적 기법으로써 묘사한 것이죠. 이러한 묵시록적 기법은 한국 시인들의 ‘생태시’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 그곳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들이 일어날 때의 시간인데도/ 산의 그늘만이 길게 뻗쳐 있다/ 햇빛이 해골의 눈 속을 통과하여/ 바람이 불고 오늘은 눈이 내린다/ 지구는 혼자 외로이 겨울을/ 빠져나가면서 공중에 떠 있을 뿐/ 인류는 모두 어디에 갔는가/ 빈 지구만이 태양을 돌면서 또/ 태양은 지구를 데리고 멀고도 먼/ 움직이는 우주를 따라가는 은하/ 그 은하계를 따라 사라져 간다/ 지구는 모든 조상의 묘를 싣고/ 밤과 낮을 끊임없이 통과하리라” - 고형렬의 「지구墓」 전문.   “인간도 언젠가는 멸종하리라는 것/ 그 숱한 생명체들을 멸종시킨 죄로// 지구는 도는데 나는 사라지고 없으리/ 지구는 도는데 나는 무덤 속에 누워 있으리/ 지구는 도는데 나는 흙먼지가 되어 날리고 있으리/ 언젠가는 반드시” - 이승하의 「생명체에 관하여」 일부.    귄터 쿠네르트의 「라이카」에서 묘사되었던 ‘죽은 인류’의 공동묘지인 ‘지구’를 고형렬과 이승하의 시에서 또다시 만나게 됩니다. ‘지구’는 인류의 ‘해골’과 ‘멸종’된 ‘생명체들’을 싣고 ‘태양’ 주변을 도는 거대한 ‘묘(墓)’로 전락하리라는 예언이 한국 시인들의 목소리로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지구의 종말을 예언하는 시인들의 비관적인 목소리가 슬픔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이처럼 비관적인 예언은 현대인들을 향해 ‘경고’의 옐로우 카드를 뽑아들어 ‘종말’을 막아내자고 호소하는 반어적(反語的)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묵시록적 표현기법에서 나타나는 ‘반어’의 기능이 독자의 의식을 각성시키는 효과를 증폭시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신진: 생태시라 해서 특별히 다른 방법이나 기법으로 창작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생태시는 순수시(pure poem)라기보다 의미전달의 의도를 가지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100년 전의 아방가르드들처럼 내면의 음성, 본래적이고 역동적인 음절 배열의 시를 쓸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느 시처럼 묘사적일 수도 있고, 서술적일 수도 있고, 풍자ㆍ비판적일 수도, 긍정ㆍ낙관적일 수도 있겠습니다. 단지 시적 사유와 표현상의 진정성과 긴장성이 문제될 뿐입니다.   저 개인적인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자연생태적 언어를 위하여 가능한 한 이미 세속화된 기법이나 표현방법을 버리고, 수식어는 물론 텍스트의 언어를 최소화 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노자에 의하면 우리의 삶은 “배움을 더하면 나날이 더해가지만 도를 행하면 매일 줄어든다. 줄고 또 줄어 무위에 이르게 된다.(僞學日益, 爲道日損. 損至又損, 以至於無爲.)”고 합니다. 의도적인 학습으로 익힌 전략보다 무위적인 표현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원래적 생태에의 꿈은 무엇보다 탐욕 버리기에서 비롯되듯 그를 향한 시 쓰기에 있어서도 가장 생래적이고 절제된 언어를 쓰는 것이 옳겠다 싶은 것입니다. 현실생활에서도 가능한 한 문명의 이기와 명리(名利)를 위한 전략을 버리고자 노력해야하듯 시작(詩作)에 있어서도 특정 문예사조를 고집하거나 그 제작 방법을 빌어와 써먹는 데서 위안을 삼는 일은 작위적인 허세요, 장식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또하나 생태시와 관련하여 주의를 환기하고 싶은 점은 생태주의 담론이란 계층간 억압과 수탈의 문제와도 긴밀히 얽혀있다는 것입니다. 여성문제, 빈부의 문제, 제3세계와 같은 국가간의 문제, 인간의 욕망과 지배/피지배와 관련한 문제 등이 얽혀있습니다. 따라서 생태시는 사회적 비판과 사회적 변혁에 확고한 신념의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라야 생산될 수 있다 하겠습니다. 역사적? 사회적 상상력과 생태적? 본원적 상상력 사이의 긴장 위에서 우러나야 하리라 생각됩니다.   (4) 한국의 생태시의 계보나 중요한 생태시인들의 작품 경향을 말씀해 주세요. 송용구: 1950년대와 60년대 한국의 시단에서는 전통적 서정시풍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박두진의 시집 『인간밀림』,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등 소수의 작품만이 생태의식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도 이하석, 이건청 등 소수의 시인들만이 환경오염의 문제를 작품의 소재로 수용하였을 뿐, 환경 및 생태문제에 대한 작가들의 연대의식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고 봅니다. 이러한 현상은 1960년대 이후 1980년대 말까지 한국이 안고 있었던 군사정권하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 말 이후에 비로소 국민들은 환경문제에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지요. 이 시기에 군사정권의 지배력이 약화되면서 언론 통제와 여론 조작이 다소 완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은폐되어 왔던 환경오염의 현상들이 속속 드러나는 분위기를 따라 한국 문단에서도 생태계의 위기를 경고하는 작품들이 속출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들어 ‘생태시’의 창작과 문학적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으나 범문단적 문학운동으로 상승하진 못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창작과 평론 양 분야에서 생태문제에 대한 문인들의 공감대가 확산된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문학의 풍토를 반영하듯, 1991년에 시인 고진하와 평론가 이경호가 엮은 생태사화집 『새들은 왜 녹색별을 떠나는가』(다산글방)의 출간은 ‘생태시’ 가 한국 문단에서 현대시의 조류를 형성하는 데 큰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이 사화집의 출간이 자극제가 되어 지금까지 환경오염의 문제를 소재로 다룬 시집들이 지속적으로 문단에 반향을 일으켜 왔습니다. 생명의 연결고리를 강조하는 김지하의 『중심의 괴로움』?고진하의 『우주배꼽』, 생존의 위기의식을 일깨우는 이선관의 『지구촌에 주인은 없다』? 고형렬의 『서울은 안녕한가』?최승호의 『세속 도시의 즐거움』?이승하의 『생명에서 물건으로』?신진의 『강』?강남주의 『흐르지 못하는 강』 등의 출간은 생태문제를 문학의 테마로 다루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확증시켜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 들어 《시문학》, 《현대시학》, 《현대시》,《시와사람》, 《시와생명》등 각종 시전문지들이 ‘생태시’에 관한 창작과 평론 특집을 지속적으로 다루어 왔습니다. 저는 문예지들의 ‘생태시’ 특집을 읽어가면서 한국의 참여문학의 성격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인간의 자유와 생존권을 유린하는 지배세력에 맞서 싸우던 1990년대 이전의 참여문학이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파괴하는 사회적 요인들에 대해 저항해야만 하는 새로운 참여문학의 유형으로 바뀐 것입니다.참여문학의 성격을 변화시킨 가장 큰 이유는 자연과 인간의 공생(共生)을 지켜내야 한다는 작가들의 위기의식이었죠. 고형렬의 다음과 같은 시작품은 생존의 위기에 대한 작가들의 연대의식을 반영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강은 거대한 하수구이다/ 저 팔당 아래에서부터/ 저 아래 성산다리 행주다리까지는/ 드넓은 쓰레기의 강이다// 한강은 강이 아니다/ 그저 우리들의 오물을 실어나르는/ 콘베이어 벨트다/ 잠실에서 난지도까지는// 한강은 죽었다/ 그것은 내장이다 죽어서도 우리들의/ 삶을 옮겨다주는 물체다/ 눈 먼 마음이다// 복개하지 않은 거대한 하수구/ 한강은 흐르고/ 한강은 멈추지 않아도/ 서울에 와서 죽는다.”- 고형렬의 「한강 下水」전문.   고형렬의 생태시에서 자연은 인간에게 앙갚음을 가하는 복수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생명의 젖줄로 예찬 받던 ‘강’은 어제의 ‘강’이 아닙니다. 외관상으로는 생명의 자양분을 실어 나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들의 ‘오물’과 ‘쓰레기’를 실어 나르는 ‘콘베이어 벨트’로 변한 것입니다. ‘강’을 죽음의 ‘하수구’로 타락시킨 ‘오물’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현대인들의 물질적 욕망이 아닐까요? 시인은 생태계를 타락시키는 원인으로 인간의 물질적 탐욕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한강은 멈추지 않아도 서울에 와서 죽는다’ 라는 발언은 자연의 보복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우리의 현실을 암시합니다. 최승호의 생태시는 생태계 파괴로 인하여 자연과 인간에게 닥쳐온 위기상황을 더욱 충격적으로 재생해주었습니다.   “무뇌아를 낳고 보니 산모는/ 몸 안에 공장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다/ 젖을 짜면 흘러내리는 허연 폐수와/ 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끈들/ 저 굴뚝들과 나는 간통한 게 분명해”- 최승호의 「공장지대」일부.   최승호의 생태시는 독일의 시인 위르겐 베커가 말하였듯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을 증언해주었습니다. ‘산모’의 모유는 아이를 키워낼 수 있는 생명력을 상실해버린 모유입니다. 중금속으로 오염된 강물처럼 철저히 변질된 모유입니다. 시인은 이 객관적 사실을 독자에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독자에게 충격을 안겨줌으로써 의식을 각성시키는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모유’를 ‘허연 폐수’로 변용(變容)시켰습니다. 생명을 이어주는 끈의 역할을 하는 탯줄이 생명의 연결고리로서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탯줄을 ‘비닐끈’으로 변용시킨 것입니다. 최승호의 생태시는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두면서 생명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생태시’의 교육적 성격을 명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고형렬, 최승호 등의 생태시에서 노출된 자연의 실체는 위르겐 베커의 말처럼 철저하게 “망가진 자연”입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Nemesis)로 변한 것이 아닐까요?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들의 시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제까지 읽혀졌던 시가 ‘한강’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찬가였다면 오늘부터 읽어야 할 시는 ‘한강’의 죽음을 슬퍼하는 비가(悲歌)가 되겠지요. ‘자연시’에서 ‘생태시’로 변이(變異)를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요?   신진: 저로서는 난감한 질문입니다. 저는 아직 한국 생태시의 계보나 중요 시인을 거론할 만한 독서나 연구를 하지 못했습니다. 대다수 시인이 생태주의적인시를 몇 편씩은 쓰고 있는 현실에서, 극히 제한된 수의 독서에 만족해온 제가 한정된 몇 몇 시인을 거론한다는 일이 마땅해 보이지도 않고요.    오래전에 「녹색시와 그 가설적 유형」(『시문학』,1995.5)에서 유형을 분류해본 적은 있으나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서 해석의 4유형에서 빌어온, 함축적인 의미전달시의 언술적 장치에 관한 가설일 뿐 생태시의 계보학적 고찰을 위한 것은 못된다 하겠습니다. 근래에 생각하기는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생태시’ 즉 생태주의(ecologism) 시는 다시 좁은 의미의 생태시, 생명시, 환경시, 자연생활시 등으로 나누어질 수 있고, 이는 우리나라 생태시의 계보를 마련하는 데에도 유용한 기본항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는 했습니다. 이중 생태시는 인간중심적, 개발위주의 사유를 비판하고 인간과 자연환경의 유기적 관련성을 찾습니다. 자연 혹은 우주적 현상의 생태 질서와 정신과 미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생명시는 일체 사물의 생명성, 생명 현상의 존귀함과 본질과 가치를 추구한다 하겠습니다. 환경시는 문명으로 인한 자연환경의 파괴에 따르는 소외감과 위기감을 통해 생태회복을 지향하는 시로 생태적 환경 개선을 목표로 한다 할 수 있습니다. 자연생활시란 제가 설정해본 생태시의 한 갈래입니다. 생태시란 추상적인 차원에 머문다기보다 실제 실천에 의해 그 진정성이 고양되지 않겠습니까. 자연 또는 전원(田園)에 완전히 묻혀 살지는 못한다 해도 그 체험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생태시가 실제로 적잖게 발표되고 있고 생태적 감응도 키우고 있습니다. 반세기 너머 전에 있는 김상용의  신석정의 같은 데서도 근대적 원형을 찾을 수 있겠습니다. 음풍농월이나 안빈낙도를 추구한 전통적 서정의 자연시, 회화적 이미지즘 혹은 사물시적인 자연시 같은 데서는 생태적 가능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으나 저는 일부 수긍하면서도 이에 견해를 달리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이들은 모두 당대적 문명에 대한 회의? 절망을 딛고 자연 생태의 품에 포용되고자하는 염원에서 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까닭에서입니다. 자연시의 관점에서 보면 생태시도 자연시의 범주에 넣어 생태적 자연시라 할 수 있는 문제이겠습니다만 이 자리에서 더이상 언급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을 듯해서 줄이겠습니다.   아무튼 생태시, 생명시, 환경시, 자연(생활)시 등 세 항과 세계에 대한 서정적 반응의 네 유형-대립, 교통(交通), 동화, 거부 등을 이용한다면[문덕수,『시론』(시문학사), 27-29면, 신진,「시의 4유형 고」,『한국시학연구』제16호 참조] 생태시의 계보 파악을 위한 체계를 마련하는 데 참고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생태의식을 담고 있다 할지라도 자아 또는 화자가 현실세계에 대립? 갈등하는가, 적응을 위해 상호 교통하고 있는가, 세계와 자아가 온전 동화, 일체화 되었는가, 아예 현실을 거부? 외면하는가에 따라 시적 계보가 나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5) 국내에 소개된 외국의 생태시집이나 논저에 대하여 말씀해 주세요. 저서나 시집의 경우, 출판사와 연대를 밝혀주십시오.   송용구: ‘생태시’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최초의 단행본은 생태사화집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독일의 생태시 1950-1980』입니다. 독일 뮌헨 대학교의 ‘정치생태학’ 전문가인 페터 코르넬리우스 마이어-타쉬 교수가 단독으로 편찬한 이 생태사화집은 독일어권 지역의 대표적 생태시집입니다. 1981년에 뮌헨의 체 하 베크(C. H. Beck)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1950년대 이후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생태시’의 문학적 성격, 주제의식, 언술방식, 사회참여의 양상 등을 총체적으로 분석해볼 수 있는 중요한 시집입니다. 저는 이 생태사화집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하여 ‘생태시’의 유형과 성격을 문단에 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1995년부터 월간《시문학》지에 6월부터 11월까지 詩論「독일의 생태시」를 5회 연재하였죠. 이 연재 시론에서 저는 두어스 그륀바인, 위르겐 베커, 에리히 프리트 등 독일어권 지역의 대표적 생태시인들과 작품세계를 소개하면서 생태시의 주제의식과 표현방식을 구체적으로 부각시켜 보았습니다. 또한,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에 실려 있는 약 50여편의 생태시를 우리말로 옮기고 분석함으로써 1998년 1월부터 3월까지 월간《시문학》에 詩論 「독일 생태시의 지평」을3회 연재하였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98년 4월 ‘시문학사’에서 생태사화집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독일의 생태시 1950-1980』의 번역본을 국내에선 처음으로 출간하게 된 것입니다. 생태시 206편 중 대표시 50여편을 번역하고 주해(註解)와 해설을 통해 ‘생태시’의 다양한 테마들을 소개해보았습니다. 또한, 개별적인 테마와 언술방식 간의 상관성을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두어 학술적 가치를 확보하고자 애를 써보았는데 저의 의도대로 독자층에 수용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 ‘생태시’에서 드러나는 사회비판적 메시지들은 어떤 언술방식들에 의해 독자에게 전달되고 있는가? 2. 시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실험적 언술방식이 ‘생태시’의 메시지를 파급시키려는 교육적 의도를 얼마나 충족시켜 주는가? 저는 이 두 가지 관점에 천착하여 ‘생태시’의 테마와 언술방식 간의 상관성을 분석하면서 ‘생태시’와 사회운동 간의 연계 가능성을 전망해보았습니다. 시문학사에서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독일의 생태시 1950~1980』을 출간한 이후에도 저는 ‘생태시’의 문학적 함의(含意)를 더욱 확장해야 한다고 판단하여 나름대로 의욕을 가지고 ‘생태시’ 평론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왔습니다. 1999년 6월부터 월간《시문학》지에 5회 연재된 시론「새로운 문학운동으로서의 생태시」, 1999년 7월《시와생명》창간호에 발표된 평론 「서유럽의 생태시」, 2000년 2월 월간《현대시》에 발표된「생명주의와 자연 -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2001년 《시와사상》지에 3회 연재된 「독일의 생태시와 시론」, 2007년 《시와반시》봄호에 발표된 평론 「독일의 생태시에 나타난 엽기적 묘사와 아이러니 - 한국 생태시와의 비교」등입니다. ‘생태시’가 갖는 참여문학의 함의(含意)를 개방하고 확대하려는 저의 문학적 비전에 의해 이루어진 작업이었다고 회고해봅니다.   신진: 역시 미안하고 부끄러운 답이 됩니다만 저의 독서량은 얼마 되지 않아서 생태시와 관련해서 외국의 시집이나 저서를 통째 읽은 일이 없습니다. 1990년경부터 지금까지 짤막한 북리뷰나 평론 몇 편을 통해서 생태시에 관한 나름의 정리를 해왔을 뿐입니다. 단지 1971년과 2년 사이. 대학 시절의 저는 학보 편집의 일과 데모, 그리고 사회적 갈등에 치여 무척이나 바쁘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낸 편인데 그 와중에 노자와 장자 그리고 불교는 저에게 크나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에리히 프롬의『존재양식인가 소유양식인가』에도 깊이 젖은 경험이 있습니다. 1974년 저의 『시문학』초회 추천시 은 “이젠 오너라/ 잠시 의자를 밀어놓고// 이름 있는 것들의 낭하를 건너/ 이젠 오너라// 올 때는 아무도 더하지 말고/ 강만 보면서 오너라” 하고 시작되어 문명사회를 건넌 자연 속에서 나뭇잎처럼 흔들리기도 하고 음악이 되기도 하라고 권유하는, 생태시적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생각됩니다. 첫시집 『목저 있는 풍경』(1978)도 자연 만물의 생명성과 인간이 교류하는 생태적 질서, 그리고 억압받는 인권에 대한 풍자와 연민으로 엮어졌었는데 저는 당시에 ‘절대의 개체적 자유와 절대의 공동체적 평등이 절대의 질서에 의해 통합되는 세계’를 꿈꾼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면 70년대 젊은이로서의 고통과 비애, 독서 취향을 볼 때 내면에 그럴만한 까닭을 안고 있었다고 자인합니다.   제가 생태주의를 직접 거론하는 글들을 본 것은 1990년대에 와서입니다. 지금껏 평론, 논문 몇 편을 읽은 것이 고작이지만 필요할 때 읽어야겠다 하고 메모를 남긴 외국의 생태주의 관련 저서가 몇 권 있기는 합니다. 『시문학』 독자들을 위해 굳이 소개하자면 미적인 것이란 이질적인 것들을 연결시키는 패턴, 즉 생태적 패턴에 예민하게 감응하는 것이라 한 예지의 과학자 배이트슨(G.Bateson)의『정신과 자연』,(박지동 역, 까치, 1990). 환경보호와 함께 사회, 정치적 생활양식에 근본적인 변혁을 전제할 때라야 생태적 삶에 다가갈 수 있다는 관점의 앤드류 돕슨(Andrew Dobson)이 쓴 『녹색정치사상』,(정용화 역, 민음사, 1993). 사회적 실현이란 일대 변혁을 거치지 않으면 생태주의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을 전제하는 머레이 북친의 『사회생태론의 철학』(솔출판사, 1997), 그리고 같은 저자의 『사회생태주의란 무엇인가』(민음사,1998). 모든 존재들 내부의 영성(靈性)을 인정하는 데서 심층생태학(deep ecology)의 출발을 보고 생태학적 인식을 영적? 종교적 인식으로, 나아가 우주적 소속감으로 본 카프라(F. Capra)의 『생명의 그물』, (김용정 역. 범양사. 1998)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6) 생태시 또는 생태주의와 종교(기독교나 불교)의 교리와의 관계를 말씀해 주세요. 송용구: 살생(殺生)을 금하고 사람의 식생활에서도 육식을 금하는 등 불교는 자연의 생명권(生命權)을 존중하는 종교로 인정받아 왔습니다. 이런 까닭에 생태계 파괴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종교가 불교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에 대한 언급은 훗날로 미루고 오늘은 생태파괴의 책임에 있어서 무수한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는 기독교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967년 린 화이트는 자신의 논문에서 오늘날 생태적 위기를 낳은 인간중심주의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세상의 만물을 다스리라’고 했던 기독교의 성경 창세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린 화이트의 논문이 발표된 이후 생태파괴와 환경오염의 근본 원인이 기독교에 있다는 견해는 적잖은 동조자들을 확보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독교가 인간중심주의를 낳았다는 지배적 견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영어 성경과 한글 성경에서 번역상의 미흡함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본질적 의미를 재고함으로써 기독교와 환경문제에 관한 패러다임을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현대 독일어 성경에서는 기독교의 神이 ‘물고기와 새들과 그 밖의 모든 생물들을 보호할 책임을 너희 인간들에게 맡긴다(Ich vertraue sie eurer Fursorge an)’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 및 한글 성경과 비교해볼 때 내용상의 상당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독일어 성경에 따르면, 기독교의 神은 인간을 자연의 주인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며 자연에 대한 소유권을 정당화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식주 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자연으로부터 가져올 것을 인간에게 허락하면서 동시에 자연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청지기의 권한을 인간에게 위탁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공생의 관계를 유지해나갈 것을 인간에게 명령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자연과 인간이 상생(相生)의 울타리 안에서 동등한 생명권(生命權)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죠..    기독교가 ‘생태주의’적 사고방식을 옹호하고 있다는 견해는 『성경』에서 객관적 근거를 얻습니다. 로마서 8장 18절 이하에서 사도 바울은 “피조물(동식물)도 죽음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습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들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해산의 고통을 함께 겪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발언은 독일어 성경 창세기 1장 28절의 내용과 의미의 연결성을 갖습니다. 神으로부터 부여받은 청지기의 권한을 망각하고서, 인간이 자연을 노예로 지배하는 주인의 행세를 했기 때문에 자연의 생명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神은 인간의 손으로부터 ‘피조물들’을 구원하여 이들에게도 영생(永生)의 권한을 인간과 동등하게 부여하겠다는 약속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자연 속의 모든 피조물을 神의 자녀로 인정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생태학적 낙원을 건설할 계획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누우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 젖 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이사야서 11장 6-9절)     이사야서 11장에서 기독교의 神은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젖 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는 묘사에서 드러나듯이, 기독교에서 지향하는 이상향은 생태학적 낙원인 ‘에코토피아’와 일치합니다. 에덴 동산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에코토피아’는 자연과 인간이 서로 혜택과 보호를 주고받는 상호의존(相互依存)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1963년에 발표된 박두진의 시 「인간밀림」은 기독교 정신에 근거하여 에코토피아를 회복하려는 전망을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암표범이여!/ 내가 너를 사랑하는/ 암표범이여!// 숫사자와 능구리와/ 두꺼비와 독나비/ 모두가 모두 내 새끼 같은/ 내 새끼 같은 사랑이어!// 암표범을 쓰다듬어/ 자장갈 불러 잠재우고/ 숫사자들을 나란히 거느리고/ 산책을 한다.// 능구리와는 햇볕에 누워/ 창세기를 읽고/ 독나비 나래를/이마로 먹고/ 폭포 앞에 가/ 씻는다.” - 박두진의 「인간밀림」중에서.   신진: 종교는 생태주의적 사유에 다가서는 교량이 되기도 하고, 그 정신적 원천을 제공하기도 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소중한 자산이라 생각합니다. 한 인간이 종교성을 가질 때, 그는 자신을 개인적인 존재에서 사회적인 존재로, 사회적인 존재에서 자연적인 존재로, 자연적인 존재에서 우주적인 존재로 확대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이 우주 속에서 가장 화해롭고 조화롭게 사는 것인가 고민하고 답을 구하고자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지구상의 환경오염과 생태 파괴의 주요 원인인 근대의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정신적 근거는 상당부분 기독교에서 제공했다고 보는 견해에도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기독교가 근대의 인간/자연, 주관/객관, 이성/감성, 정의/불의 등 이분법적 합리주의을 이끈 원동력이며, 따라서 생태파괴의 주요원천의 하나란 견해도 성립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생명창조 과정-“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의 생력이 된지라.”에서도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는 이원론적 관점이 내재되어 있어보입니다만 그리스도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한 데 대한 부작용이라 할만한 것도 있습니다.인간에 대한 신의 권위를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권위로 전이시킨 나머지 자연을 마음껏 이용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서구적 사고를 조장했다는 것입니다. 성경 곳곳에서 인간의 귀중함에 비해 새나 들풀들의 물권(物權)은 훨씬 격하되고 있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생태주의 세계관에서는 조물주도 피조물도 언제나 이웃일 뿐입니다. 서로가 존중되고 서로가 나누며 서로가 서로에게 생명을 부여하며 함께 오늘이 되고 내일이 되는 세계입니다. 기독교가 오늘의 화를 자초한 원천의 하나인 동시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생태적 세계관의 제공처요, 그 실천을 독려하는 힘이 되고 있는 것도 종교이기에 가능한 역설이라 하겠습니다. 기독교의 생명사상은 바로 부활의 사상이 아닙니까. 단순히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이라기보다 부활의 사상은 이 땅의 삶에서 인간이 겪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긍정적인 것으로 전환시키는 근원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정신은 사랑, 섭리, 구원의 역사를 바탕으로 합니다. 파멸과 타락을 방치하지 않습니다. 신의 창조의 정신-사랑과 구원의 뜻에 비추어 변질되고 타락한 이 세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고 훼손된 신성을 이 땅에서 부활하려는 노력이 기독교 시인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비해 불교는 원래 현실욕망의 덧없음을 일깨움으로써 버림과 비움의 윤리를 가르쳐 왔거니와 이는 생태주의와 관련, 불교가 보여주는 태생적 미덕이라 하겠습니다. 나누어지고 떨어져 있는 일체의 것이 삼세윤회 속에서 얼기설기 관계 맺어진 존재들이라는 생각은 나와 남의 구별이나, 자아와 대상, 주체와 객체라는, 명료한 이분법적 사고를 애초에 부정합니다. 생명중시 사상은 불살생(不殺生)의 정신으로도 요약됩니다. 불살인(不殺人)이 아닌 불살생입니다. 동양문화의 바탕이 된 불교적 윤리는 애당초 자연생명과 인간 생명의 가치를 차등화하지 않고, 생명 그 자체의 존엄함을 가르쳐 왔습니다. 선사(禪師)들은 산하대지와 자연 속의 무수한 무정물(無情物)에게도 생명이 있는 것으로 보았을 뿐 아니라 진리를 설법하는 존재들로 여겼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닌 하나라고 하는 의정불이(依正不二)의 사   유는 모든 존재들이 인간과 같은 법성을 가진 존재라는 인식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불교의 생태 중심적 윤리에서는 모든 존재들이 연기적(緣起的) 관계성에 눈 뜸으로써 자연 속의 모든 존재의 가치가 새롭게 발견됩니다. 산천초목과 유정물, 무정물이 모두 살아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보여줍니다. 나무나 돌에도 불성(佛性)이 있고, 무정들에게도 지혜가 있고, 무정들도 진리를 설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불교는 도교와 함께 우리가 오늘날 꿈꾸는 생태주의적 세계관과 맥락을 같이하는, ‘버림’과 ‘비움’, ‘낮춤’ 같은 교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태주의는 삶의 모든 것을 찰나에 지나지 않는 공허(空虛)로 치부하는 데 그치지 않는, 자족과 상생으로 어울린 삶을 지향합니다.함께 버리고 비우자는 관념이 아니라 그야말로 상생(相生)하는 이웃으로서 살기 위한 실천적인 덕목이라는 점이 유념될 필요가 있다 하겠습니다.   (7) 생태시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은? 송용구: 21세기에 ‘생태시’는 세계적 보편성을 지닌 문학의 형태로 발돌움할 것입니다. ‘생태시’는 서구세계의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고 저개발국을 비롯한 제3세계 내에서도 “참여문학”으로서의 문학적 함의를 갖게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저의 이러한 전망에 대해 객관적 근거들을 제시해보겠습니다.   저개발국들과 개발도상국들이 서방세계의 군사적 기지로 이용되는 상황 속에서 반복되는 군사훈련과 무기실험 등은 제3세계의 생태계를 크게 위협해왔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바람에 휩쓸려 수많은 약소국가들이 강대국의 문화시장(文化市場)으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도 생태계 파괴를 야기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문화’를 상품화하여 제3세계에서 자본주의 시장을 확대하고 저개발국들을 경제적 식민지와 문화적 식민지로 전락시키는 현상이 ‘신자유주의’의 얼굴입니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의 격랑은 개별 국가들의 문화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생태계까지도 파괴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현시대의 생태문제는 사회문제로부터 파생되었다’고 주장한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의 견해는 오늘의 지구사회를 비판적 시각으로 보게 만듭니다. 제3세계의 환경오염은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정치적 역학관계 및 경제적 이해관계에 원인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 ‘생태문제’의 심각성이 완화된 반면에 제3세계 지역의 환경오염은 증폭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볼 때 ‘생태시’는 비서구 사회 혹은 제3세계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생태문제’들을 창작의 소재로 수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계화’의 폐단으로부터 파생되는 ‘사회문제’가 각국의 생태계 파괴와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를 분석하면서 테마의 범주를 이전보다 더 폭넓게 확대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고견을 들려주신 신진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신진: 현대사회는 수행성과 효율성을 기분으로 인간을 판단하고 서열화합니다. 그로써 개인적? 집단적 경쟁력이 평가되는 사회입니다. 시민들의 생태 환경의식이 높아지면서 어느 정도는 제동이 걸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인간 복제를 위한 은밀한 경쟁에서 보듯 개발과 건설, 핵과 전쟁, 기아와 인권 침탈의 문제는 더욱 교묘하게, 대규모로 진전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오존층의 파괴,해일, 지진 같은 자연재앙도 말 그대로 자연의 현상이라기보다 인간의 탐욕에 의한 재앙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연의 모든 존재들이 인간과 함께 평등한 권리와 가치를 지닌다는 인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생태시가 오래동안 쓰여질 것이란 전망은 위기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시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가 할까. 생태시는 어떤 기능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에 착안하여, 분수에 넘는 일이긴 하지만 중? 단기적인 범위에서 그 진로를 몇 개 항에 나누어 예측해 보겠습니다.    먼저, 물질위주의 삶을 정신적 가치위주의 삶으로 전환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일상시가 쓰일 수 있습니다. 번영과 축복의 문명사회에서 생태적인 정신과 꿈을 탈환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우선 정신적 가치를 존중하는 가족 시, 연시, 우정 시 등이 발표되고 주목받게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둘째, 금욕의 아름다움, 나눔의 미덕이 많은 시의 주제로 부상하리라 생각됩니다. 인간사회에 생태 회복을 위한 자제력과 욕망을 갖추는 시스템이 가능할지, 가능하다 해도 그것이 얼마나 지속가능할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태의 회복을 위한 과정에는 절제와 나눔을 통해 인간과 자연, 자연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게 되기 마련인 바 이 단계의 생태시라 하겠습니다.    셋째, 사회? 역사적 상상력에 의한 생태시도 쓰일 것입니다.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장벽, 즉 문화 제국주의의 형태, 불평등한 경제구조, 모순적인 정치구조 등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 역사적 상상력이 동원된 시도 마땅히 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그리고 탈근대주의 등도 이분법적인 근대성을 극복하기 위해 이미 생태주의와 긴밀한 상관성을 갖고 있다 하겠습니다.   넷째, 자연과의 동화를 통한 생태공동체의식의 회복은 몇 마디 관념적인 교훈이나 추상적인 탐색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생태 생활자, 또는 자연생활을 실천하는 시인들이 많이 나와야 하고 또 그렇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실생활에서 실천적으로 행해지지 않는 생태의식이란 또 하나의 자동화된 논리에 그칠 수 있습니다. 전원생활 내지 자연 생활에서 육체적인 노동마저 본래적인 것으로 기꺼이 안고 사는 시인들이 늘고, 그들의 언어가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 주리라 기대됩니다.     다섯째, 생태시에도 심미적 차원의 전위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즈음 일군의 시인들이 미래파의 역동주의와 자유언어를 새삼 들고 나와, 언어적 동작성, 의성어, 의태어 등을 이용하여 음운의 실제 감각성을 자유롭게 부려놓습니다만 이는 시의 원천적인 생명성을 지향하는 시 양식으로 재탄생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반면에 일체 무정물은 물론 모기나 바퀴벌레, 바이러스의 생명마저 보호하고자 하는 극단의 생명시도 나타날 것입니다. 그 자체 생태적 사건이고 시적 충격이며 시인의 개성이 다다를 지점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질문에 답하느라고 항목화해보기는 했습니다만 예측은 언제나 예측일 뿐입니다.저로서는 가능성 있다고 생각되는 시들, 또는 개인적으로 기대되는 생태시의 얼굴들을 늘어 보았습니다. 시문학사의 청으로 대담에 힘들게 응하긴 했습니다만 원래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만한 깜냥이 되지 못해서 여러 가지로 송구할 따름입니다. 우리 생태시의 든든한 한 버팀목이신 송용구 교수님의 건강과 건필을 기원하겠습니다.  
1044    유교사회 조선시대 녀류시인들 댓글:  조회:5786  추천:0  2016-02-01
유교 사회가 철저했던 조선시대 자유롭지 못한 여성의 몸으로 치열하게 살아낸 5명의 시인 황진이, 허난설헌, 이옥봉, 이매창, 김운초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황진이   정이란 그 대상이 가까이 있을 때보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더욱 그리워지는 법이다. 떠나려는 임을 만류할 수도 있었건만, 떠나게 두어 두고는 그리워서 애달파하는 심정을 라는 구조를 보이면서 넋두리하듯 읊었다. 명기 황진이의 자존심과 연정의 사이에서 겪는 오묘한 심리적 갈등이 고운 우리말의 절묘한 구사를 통해서 섬세하고 곡진하게 표현되었다.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다냐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난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난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아, 내가 한 일이여! 이렇게 그리워 할 줄을 몰랐단 말인가 있으라고 말씀드리면 임께서 굳이 가셨겠는가 보내놓고 나서 그리워하는 정은 나도 모르겠구나   아, 내가 한 짓을 좀 보아라, 이게 무슨 꼴이람. 막상 보내 놓고 나면 이렇게 더욱 그리워질 줄을 미처 몰랐단 말이냐. 제발 나를 버리고 가지 말고, 있으라고 만류하였던들 이렇게 뿌리치고 가 버리지는 않았을 것을. 하필, 말리지 못하고 보내놓고 나서 더욱 그리워하는 이 심정은 또 무엇이란 말이냐. 당혹해서 마음에도 없는 엉뚱한 행동을 하기가 일쑤인 것이 사랑의 생리임을, 사랑을 해 본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초장과 중장은 임을 보낸 후의 후회를 나타내고 있으며, 종장에서는 떠나보낸 후에 더욱 간절해지는 임에 대한 그리움을 애써 체념조로 가라앉히고 있다.   문두에 등장하는 '아'라는 말은 이별을 하자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던 그리움을 깨닫게 되었다는 표현과 더불어 생생하게 표현한 신선한 감각이 느껴진다. 특히 이 시조의 표현상의 절조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제 구태여'의 행간 걸림이다. '제 구태여'는 앞뒤에 걸리는 말로서 앞에 걸려서는 '자기(임)가 구태여 가랴마는'의 도치형을 만들고, 뒤에 걸려서는 '자기가 구태여 보내고'라는 뜻을 가져 황진이 자기 자신을 일컫고 있다. 이 시는 고려 속요인 '가시리', '서경별곡'과 현대의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매개하는 이별시의 절조라 하겠다.   황진이는 조선 중종(1506~1544 재위)때의 기생, 시조시인으로 황진사의 서녀라고도 하고 맹인의 딸이라고도 하는데, 일찍이 개성의 관기가 되었다. 15세 때 이웃의 한 서생이 황진이를 사모하다 병으로 죽게 되었는데, 영구가 황진이의 집 앞에 당도했을 때 말이 슬피 울며 나가지 않았다. 황진이가 속적삼으로 관을 덮어주자 말이 움직여 나갔다. 이 일이 있은 후 기생이 되었다는 야담이 전한다. 기생이 된 후 뛰어난 미모, 활달한 성격, 청아한 소리, 예술적 재능으로 인해 명기로 이름을 날렸다. 다정다감하면서 기예에 두루 뛰어난 명기였던 황진이는 시조를 통하여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冬至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春風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임 오신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가운데를 둘로 나누어서 따뜻한 이불아래에 서리서리 간직해 두었다가 정든 임이 오시는 날 밤이면 굽이굽이 펴리라   기녀 시조의 본격화를 이루었고, 시조 문학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황진이의 절창 중의 하나이다. 임이 오시지 않는 동짓달의 기나긴 밤을 외로이 홀로 지내는 여인의 마음이, 임이 오시는 짧은 봄밤을 연장시키기 위해서, 동짓달의 기나긴 밤을 보관해 두자는 기발한 착상을 하기에 이른다. 또한 중장과 종장에서는 '서리서리', '구뷔구뷔'와 같은 의태어를 사용하여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을 매우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가 있었다. 혼자임을 기다리며 지내야 하는 긴 겨울밤과 낮이 길어 임과 함께 하는 밤이 짧은 봄이 서로 대조가 되어, 임과 오래 있고 싶은 화자의 심정이 잘 묘사되어 나타난다. 문학성을 띤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예술적 향취를 풍기는 작품으로, 기교적이면서도 애틋한 정념이 잘 나타나 있다.   주로 사랑에 얽힌 내용을 담은 그의 작품들은 사대부 시조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표현을 갖춤으로써 관습화되어 가던 시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평가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체념을 '청산은 내 뜻'이라고 역설적인 자기 과시로 표현하거나, 왕족인 벽계수를 벽계수에 견주어 유혹할 수 있는 등의 재치는 황진이만이 할 수 있는 독보적인 것이었다. 황진이의 시조에 이르러서야 기녀 시조가 본격화되는 동시에 시조문학이 높은 수준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황진이의 작품으로 "동짓달 기나긴 밤을…"로 시작하는 시조를 포함해 모두 8수 가량의 한글시조를 남겼고 〈별김경원 別金慶元〉〈영반월 詠半月〉〈송별소양곡〉〈등만월대회고 登滿月臺懷古〉〈박연 朴淵〉〈송도 松都〉 등 6수의 한시를 남겼다. 황진이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글시조 분야에 있어 일인자라 할 수 있다.      난초같이 살다간 시인, 허난설헌   아래 시는 '나의 느낌'이라는 뜻의 연작시 가운데 첫 작품인 “난초를 바라보며”이다. 빼어난 그 자태는 시들어 파리해져도 맑은 향기만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 난초의 모습에서 자신을 본 것이다. 눈물로 옷소매를 적시며 자신의 현실을 어찌하지 못했던 그녀가 너무나 측은하다.   창가에 난초 어여쁘게 피어나 잎과 줄기 어찌나 향기롭던지 하지만 서녘바람이 한 번 스쳐 흩날리자 슬프게도 가을 서릿발에 다 시들고 마네 빼어난 그 자태는 시들어 파리해져도 맑은 향기만은 끝내 사라지지 않으리니 그 모습 바라보다 내 마음이 쓰라려 눈물이 뚝뚝 떨어져 옷소매를 적시네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은 조선 중기의 시인으로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초희이며 호는 난설헌이다. 성리학 이념에 고착되지 않고 열린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아들 허성, 허봉, 허균과 같이 딸인 그녀에게도 똑 같은 교육기회를 주었다. 그녀는 8세의 나이에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라는 한시를 지어 주변을 놀라게 했다. 허난설헌은 이 시를 통해 현실의 어린이의 한계와 여성의 굴레를 모두 벗어버리고 가상의 신선세계에서 주인공이 되는 자신을 과감히 표현하여 신동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조선시대 규중의 유일한 여류 시인으로 성장한 그녀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가문으로 시집을 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다. 뛰어난 오빠와 남동생을 보고 자란 그녀에게 남편은 너무도 평범한 인물이었으며 시어머니조차 며느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객사를 하게 되고, 두 명의 아이마저 잃었다. 시어머니의 학대와 무능한 남편, 몰락하는 친정, 여기에 정신적 지주였던 오빠 허봉마저 객사하자 허난설헌은 점점 쇠약해져 갔고 그녀의 나이 26세 때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시 ‘몽유광산산’을 지었다. 27세가 되던 날 아무런 연유도 없이 옷을 갈아입고 “오늘은 연꽃이 서리에 맞아 붉게 되었다”는 말을 남기고 젊은 나이에 눈을 감았다.   허난설헌은 한국문학사 위에 불꽃같은 존재이다. 여성에게는 이름도 허락하지 않던 시대에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만들어 가졌을 뿐만 아니라, 호와 자까지도 만들어 가졌다. '초희'와 '경번'은 난설헌 자신이 현실 세계에 대해 아직 충만한 기대를 가졌던 시기에 만든 이름과 자이다. 그녀의 청춘은 꿈과 희망이 있었다. 현실은 여성에게 꿈과 미래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새로운 미래를 꿈꾸었다. 그래서 자신의 희망과 미래를 담아 이름을 만들어 가졌다. 그녀의 이름과 자는 그녀가 소망했던 자유와 이상을 향한 자신의 인생가치를 담고 있으며, 짧았던 인생에서 반짝였던 청춘에 활력을 불어넣어준 삶의 좌표요, 상징이었다. 또한 여성에게는 창작의 권리가 없던 시대에 그녀는 시를 지었으며, 여성 최초의 단독 전문시집인 『난설헌집』을 갖고 있다.   허난설헌은 죽을 때 유언으로 자신이 쓴 시를 모두 태우라고 하였지만 동생 허균이 누이의 작품이 스러지는 것이 안타까워 그녀가 친정집에 남겨놓고 간 시와 자신이 암송하는 시들을 모아 을 펴냈다.  후에 허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시를 보여주어 중국에서〈난설헌집〉이 발간되는 계기가 되었다. 은 1711년에는 일본인 분다이(文台屋次郎)가 간행해 일본 열도에서도 애송돼 격찬을 받았고, 여성에게 가장 혹독했던 시기에 주옥같은 시를 남기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그녀의 삶은 오늘날 다시 회자되고 있다. 그녀의 시는 봉건적 현실을 초월한 도가사상의 신선시와 삶의 고민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으로 대별된다. 비록 그녀의 삶은 짧았지만 향기를 담은 그녀의 아름다운 시는 후세에도 끝없이 읽혀질 것이다     온몸을 시로 감고 죽은 여인, 이옥봉   요즘 누가 사랑에 목을 매겠나. 뜨거웠던 사랑도 식을 때는 야속할 만큼 빠르다. 두 번 다시 시를 짓지 않겠다던 맹세를 깨고 한순간의 방심으로 산지기의 아내에게 시를 지어준 옥봉은 운강에게 버림받는다. 거리로 내쫓긴 옥봉은 중국행 선박에서 바다에 몸을 던지지만 그 죽음이야말로 사랑의 마지막 표현이었던 것이다. 온몸을 시를 쓴 한지로 염을 하듯 둘둘 감은 채 떠오른 옥봉의 시신. 한 중국인이 시신을 거두고 시를 수습해 한 권의 시집을 발간했으니 아래 “홀로 읊노니”를 포함한 32편의 이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나요 사창에 달이 뜨니 한만 서려요 꿈 속에 오고간 길 흔적이 난다면 그대 문 앞 돌길은 모래가 되겠네요   그 꿈길에 흔적이 남는다면 남자 집 문 앞의 돌길이 모래가 되었을 거라는, 이토록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시를 쓴 여인은 누구일까? 이옥봉(李玉峯: 1560?~?)은 16세기 후반 선조대왕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후손으로, 충북 옥천군수를 지낸 이봉(李逢)의 서녀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부친에게 글과 시를 배웠으며 영특하고 명민하여 그녀가 지은 시는 부친을 놀라게 하였다. 성년이 되어서 조원(趙瑗: 1544년∼1595년)이라는 선비를 흠모해 그의 첩을 자청했는데, 조원은 옥봉을 받아들이는 대신 여염의 여인이 시를 짓는 건 지아비의 얼굴을 깎아 내리는 일이라며 다시는 시를 쓰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그녀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이옥봉은 10여 년의 세월 동안 시혼을 억누르고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조원 집안의 산지기 아내가 도둑 누명을 쓴 남편을 도와달라는 사정을 외면하지 못하고 그녀는 10여 년 만에 단 한번 파주목사에게 보내는 시 한 수를 지어 이들 부부를 도왔다. “세숫대야로 거울을 삼고/ 참빗에 바를 물로 기름 삼아 쓰옵니다/ 첩의 신세가 직녀가 아닐진대/ 어찌 낭군께서 견우가 되리까” 이렇게 그녀가 써준 시 한편이 관가의 사법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필화사건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조원의 화를 사게 되어 결국 친정으로 내쳐지고 말았다.   닷새 길 고개 넘어, 사흘 걸어 영월에 오니(五日長關三日越) 단종의 애가소리 노릉 위 구름을 끊어놓네(哀歌唱斷魯陵雲) 첩의 몸도 왕손의 딸(妾身亦是王孫女) 이곳 두견의 울음은 차마 듣지 못할레라(此地鵑聲不忍聞)   허균은 “성수시화”에서 나의 누님 난설헌과 같은 시기에 이옥봉이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의 시 역시 청장(淸壯: 투명하고 장대함)하여 지분(脂粉: 기생이 화장하고 교태를 부리듯 말을 꾸며내는 모양)의 태(態)가 없다. 특히 두견새는 단종의 넋을 싣고 단종의 시를 읊듯 울어대니, 단종의 무덤 위 구름은 창자가 끊어지듯 갈라진다고 표현한 애가창단노릉운(哀歌唱斷魯陵雲)은 우리말로 번역하려고 해도 그 맛을 살릴 수가 없다. 기가 막힌 표현이다. 이런 표현은 마음이 청장할 때 천기와 만나서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한 구절! 경대 앞에서 눈썹을 그리고 분을 바르고 입술을 칠하는 말의 수식적 기교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라고 썼다.   이밤, 우리 이별 너무 아쉬워 달은 멀리 저 물결 속으로 지고 묻고 싶어요, 이 밤 어디서 주무시는지 구름 속 날아가는 기러기 울음소리에 잠 못 이루시리   그녀는 어떻게든 조원의 마음을 돌려보려 했지만 돌릴 수 없었던 옥봉은 자신의 외로움과 허망함을 시로 읊으며 밤마다 꿈속에서 그리워하다 세상을 떴다. 그녀가 죽은 지 40년쯤 뒤, 조원의 아들 조희일이 중국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곳의 원로대신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조원을 아느냐는 원로대신의 질문에 부친이라고 대답하니, 서가에서 책 한 권을 보여주었는데「이옥봉 시집」이라 씌어 있었다. 아버지의 첩으로 생사를 모른 지 벌써 40여 년이 된 옥봉의 시집이 어찌하여 머나먼 명나라 땅에 있는지 조희일로선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 시문을 온 몸에 말고 강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중국 명나라에까지 시명이 알려진 여류시인으로서 여인의 시답지 않게 맑고 씩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과 조선에서 펴낸 시선집에는 허난설헌의 시와 그녀의 시가 나란히 실려 있다.     탁월한 비유와 상상력을 지신 시인, 이매창   이매창이 첫사랑 유희경을 그리며 쓴 유명한 한글시조 '이화우 흩날릴 제'다. 조선 선조 때의 기생이며 여류시인인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은 1573년에 당시 부안현리였던 이탕종의 서녀로 태어났다. 아버지에게서 한문을 배웠으며, 시문과 거문고를 익히며 기생이 되었다. 그가 태어난 해가 계유년이었기에 계생(癸生), 또는 계랑(癸娘)이라 하였으며, 향금(香今)이라는 본명도 가지고 있으나 매화의 절개를 사랑해 매창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녀는 황진이와 쌍벽을 이룬 당대의 여인이었지만 만 37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라   시인 신석정은 황진이 서경덕 박연폭포의 '송도삼절'에 견주어 이매창과 유희경 직소폭포를 '부안삼절'이라 칭했다. 당시 한시와 시조 가무 등에 다재다능한 매창의 소문은 전국에 알려졌고 같은 천민 출신으로 시재(詩材)에 출중한 유희경이 매창을 찾으면서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동병상련이랄까. 스무 살 꽃다운 매창과 스물여덟이나 더 많은 유희경은 첫 눈에 반해 시(詩)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노래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희경은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고 면천을 받아 양반으로 신분상승과 함께 관직에 나가 종2품 가의대부까지 승승장구했다.   취하신 임 사정없이 날 끌어당겨 (醉客執羅衫) 끝내는 비단저고리 찢어놓았지 (羅衫隨手裂) 비단저고리 아까워 그러는 게 아니어요 (不惜一羅衫) 임이 주신 정마저 찢어질까 두려워요 (但恐恩情絶)   그런 유희경에 대한 소식을 접한 매창은 마음의 거리가 갈수록 더 멀어짐을 느끼면서 사무치는 그리움과 회한을 시로 승화시켰다. 15년의 긴 기다림 끝에 다시 만난 유희경은 열흘간의 짧은 재회를 뒤로하고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한 남자와의 만남을 잊지 못하고 10년 동안 유희경을 그리워한 매창의 시는 보편적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속되거나 평범하지 않으며 탁월한 비유를 통해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수백 수의 한시를 쓴 매창은 조선 최고의 한시(漢詩) 작가였다. 현재 남아있는 58수를 보면 매창이 얼마나 다양한 의식지향을 보여주었는지 알 수 있다.   그녀가 죽은 후 몇 년 뒤에 그의 수백 편의 시들 중 고을 사람들에 의해 전해 외던 시 58편을 부안 고을 아전들이 모아 1668년 목판에 새겨 을 간행하였다. 당시 세계 어느 나라를 둘러보아도 한 여인의 시집이 이러한 단행본으로 나온 예는 없다. 그녀는 부안읍 남쪽에 있는 봉덕리 공동묘지에 그와 동고동락했던 거문고와 함께 묻혔다. 그 뒤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곳을 ‘매창이뜸’이라고 부른다. 매창의 작품은 500여편이 넘는다고 전하지만 현재까지 한시 70여 수와 시조 1수가 전해지고 있다.     내유의 세계를 지향한 시인, 김운초   김운초(1812~1861?)는 조선시대 기생·여류시인이다. 본명은 부용(芙蓉)이고 호는 운초(雲楚)이다. 조선 순조12년(1812) 평안도 성천(成川)에서 가난한 선비의 딸로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퇴기의 양녀가 되었다. 조선의 3대 명기(송도 황진이, 부안 이매창, 성천 김부용)중 한 사람으로 뛰어난 미모와 우아한 자태, 그리고 가무와 시문에 뛰어났다. 당대 권세가였던 김이양(金履陽)의 인정을 받아 종유하다가 1831년(순조 31)에 기생생활을 청산하고 김이양의 소실이 되면서 신분적 변화를 가져왔고, 이에 따르는 다양한 삶을 체험한 독특한 시인의 한 사람이다.   운초와 김이양의 운명적인 만남은 순조31년(1831)에 일어난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때는 평양감사를 역임하고 있던 김이양의 나이 77세, 운초의 나이 19세였다. 시문을 통해 일찍이 김이양의 인품을 흠모하던 운초는 “뜻이 같고 마음이 통한다면 연세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라며 김이양을 따랐다고 한다. 김이양이 호조판서로 한양으로 부임하게 되자, 운초는 재회의 날만 기다리며 애절한 시를 썼다. 운초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조선 시문학에 혁기적인 삼각형 층시(層詩)를 남긴다. 그 유명한 “부용상사곡(芙蓉相思曲)”이다.   이별 하오니 (別) 그립습니다. (思) 길이 멀고 (路遠) 글월은 더디옵니다. (信遲) 생각은 님께 있으나 (念在彼) 몸은 이곳에 머뭅니다 (信留玆).   김이양의 나이 92세가 되던 해 김이양은 운초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는데, 그녀의 나이 33세였다. 운초는 그 후 일체 외부와의 교류를 끊고 고인의 명복을 빌며 16년을 더 살았고, 임을 보낸 녹천당에서 눈을 감았다. 그가 죽은 후, 그와의 추억을 더듬이며 상사에 가까운 “곡연천노야(哭淵泉老爺)”라는 그리움의 시를 짓는다. 풍류기개는 호수와 산을 아우르고, 경륜과 문장은 재상의 재목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김이양을 그녀의 나이 열아홉에 만나, 서른셋에 떠나보냈으니 15년 쌓인 정이었다.   풍류의 기개는 호산(湖山)의 주인이요 경술(經術)과 문장은 재상의 기틀이다. 십오 년 정든 임은 오늘의 눈물 끊어진 우리 인연 누가 다시 어이 주려나   운초는 19세기 전반기에 살면서 많은 시를 남겼는데, 민병도가 편찬한 에 한시 240제 329수가 실려 있다. 운초는 그 시재(詩才)가 천부적이라는 평을 들으며 황진이•이매창과 함께 삼대시기(三大時妓)로 꼽히기도 하고,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여성한문학사의 발흥기와 난숙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평가 받을 만큼 인정받는 시인이었다. 이러한 운초의 시명은 고향인 성천 서도로부터 출발하여 한양에까지 드날렸다. 또한 운초는 동료 소실들과 함께 ‘삼호정 시사’를 결성하고 시회를 열었으며, 이 때문에 운초는 연구자들에게 의해 최초의 여성문단인으로 평가된다. 운초는 반상의 구별이 매우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존재하던 매력적인 기생이었으며, 당돌하고 호기가 있는 시정(詩情)을 표출하는 감성의 시인이었다. 조선의 여류시인들이 연약과 병적 애상의 시를 표했다면, 운초는 여장부 같은 시정을 읊었다. 그녀의 문집은 운초시(雲楚詩; 일명 芙蓉集)에는 약 150여수의 시가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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