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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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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3    시인들이여, - 은유를 잡아라... 댓글:  조회:4770  추천:0  2016-01-10
소통, 그 은유의 불빛들 김수우(시인) 1 눈, 그것은 눈이었다. 아니, 눈빛이었다. 빈 나뭇가지에 꽃이삭처럼 조롱조롱 눈들이 걸려 있었다. 수많은 눈빛들이 나를 보고 있고, 그 깊은 눈동자마다 내가 서 있었다. 거미줄에 갇힌 듯 나는 꼼짝없이 서서 그 우물 속의 내 모습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단풍잎 한 장이 날아왔다. 그 바람결에 수많은 내가 흔들렸다. 무수한 내 영혼이 모두 출렁였다. 와르르, 어디선가 쏟아지는 웃음소리. 꿈이었다. 그 날은 종일 안개가 깊었고, 은회색 들길을 걷다가, 온몸에 물방울이 피어난 빈 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나뭇가지를 타고 송송히 열린 물방울이 유난히 투명하더니, 그런 꿈을 꾸었다. 어쨌건 내 몸이 몽땅 젖어버린 느낌. 내가 만난 한 세계가 내 속에서 또다른 세계를 만들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 경이로움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무를 바라보는 동안 나무도 나를 오래 바라보았음이 틀림없으리라. 작은 나무가 보여준 그 은유의 세계. 결국 꿈은 소통으로 가는 긴 터널이던가. 왜 태어나, 왜 늙으며, 왜 아프며, 왜 죽을까. 그 다음의 싯달타의 고뇌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마 '어떻게 말할까'가 아닐까. 아니, 싯달타의 모든 고뇌 자체가 자신과의 소통을 향한 의지였으리라. 소통이 될 때 우리는 삶도 죽음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 다음에야 희망을 낳을 수 있으니까. 바벨탑이 무너진 후, 인간이 추구해온 것은 소통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눌한대로 대답을 하자. 답은 없다고, 모든 대답은 자의적인 것이라고 미루어두기에는 우린 참 슬픈 족속이므로. 세상의 모든 답은 바로 '그대'이다. 그대는 '희망' 자체니까. 그리고 희망은 '이미지'로 존재한다. 2 수많은 질문을 이미지로 열며 내게 다가온 시. 그건 항상 어느 순간, 강렬한 빛으로 내 뒤통수에 닿았다가 돌아보면 청보라빛 노을로 가뭇없이 서산을 넘는 중이었다. 그 이미지들을 언어로 살려야 하는 시인들의 절박함을 나는 사랑했던가. 문득 곁으로 달려온 존재들의 눈빛들과 부딪친다는 건 하나의 희열이고 절망이고, 절망이면서 희망이었다. 사진도 그랬다. 렌즈를 통해 세계를 들여다보는 사진과 영화는 여러 면에서 시와 닮았다. 표현에 앞서 더 본질적으로 사진과 영화의 문법은 시적 사유와 맞닿아 있다. 방치된 대상에게 언어로 그 존재의미를 회복시키는 작업과, 렌즈를 통해 포착한 대상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의미부여 작업은 동일하다. 표현도구는 다르지만 표현양식은 결국 이미지라는 점도 그렇다. 때문에 시인의 눈과 카메라의 눈은 매우 유사하다. 둘다 섬세하고 자유롭게 무한한 내포를 담아 삶의 중층성을 그려내는 눈동자들이다. 버려진 나무토막이 언어나 렌즈를 통해, 갑자기 살아 푸른 숨을 내쉬는 은유가 되어 세상을 건너가는 다리로 놓이는, 그 놀라움.  브레쏭의 사진에서 보이는 도심의 뒷골목, 고양이와 한 부랑자의 소통과 소외. 그것은 꿈의 통로처럼 보인다. 쓸쓸하면서도 내밀한 언어가 들린다. 사방으로 이어진 골목, 그래, 우린 어딘가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아주 조심스런 아우라에 붙들린다. 한 장 종이에 인화된 그 시간의 명암과 질감이 전달하는 삶의 강한 실체. 무심한 일상은 파인더 속에서 비로소 존재의 실루엣을 확연히 드러내며 말을 건넨다.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과 절망과 구원이 은유의 세계로 확장되어 드러나는가.  카메라 파인더 속에서 어떤 대상과 부딪칠 때 나는 면회를 신청한 한 수감자의 애인처럼 서글프면서도 그리웁고 고마운 마음이 된다. 소통에서 오는 다행스러움 때문인지 삶이 더 간절해진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대상이 건네는 눈빛을 따라가다가, 숨겨진 원시의 늪에 닿은 듯 가슴떨리는 신비다. 영화도 마찬가지, 카메라 앵글 속에 있는 거대한 눈동자들에 비친 세상은 분명 일상이면서, 일상이 아닌, 현실이면서 현실이 아닌, 은유의 세계를 보여준다. 꿈이야기를 해보자. 꿈이 가진 무의식적 이미지는 상상계의 큰 바탕이며, 수많은 소통의 음성이며, 눈부신 은유의 창고이다. 어떤 함축이 무한한 내포를 지니거나, 어떤 여백이 낭만적인 서정으로 넘칠 때 우리는 '시적'이라고 한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꿈}은 8개의 에피소드로 나뉜 꿈의 파편들로 매우 시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여든에 만든 구로사와의 마지막 작품인 {꿈}은 매우 일본적이며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비현실적 이미지로 구성된다. 유년의 동화적인 이미지부터 묵시론적 악몽이 포함되어 있는 이 작품은 경이로운 이미지와 상징들로 가득하다. 현실원칙과는 다른 논리의 지배를 받는 꿈을 통해 재창조된 세계가 두렵고도 아름답게 펼쳐지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꿈인 와 , 고호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금빛 보리밭 위로 날으는 까마귀떼를 보는 는 시각적 이미지의 정수를 보여준다. 또한 극적 구조를 초월하고 절제된 이미지로 구성된, 자연주의 세계관은 슬프고 기이하기까지 하다. 은유 속에 작용하는 동일화도 있지만 비논리적으로 뒤섞인 은유를 통해, {꿈}은 일상이 삼킨 우리의 본래를 드러냄과 동시에 인식의 한 영역을 흔들어대는 것이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인간이란 꿈을 꿀 때 천재가 된다고 말한다. 꿈은 과감하고 대담무쌍하게, 천재적인 기술로 희망을 표현해낸다. 한 사람의 꿈은 사실 사람들 모두의 꿈이 된다. 그것이 꿈의 힘이며, 마음 밑바닥에 있는 세계의 무한함일 것이다. 결국 꿈이란 삶의 신비를 드러내는 하나의 암시이며, 인간은 그 상상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명시적이든 잠재적이든 상상계를 구성하는 꿈은 일상을 개별성의 세계로, 다시 진정한 보편적 우주를 획득하는 공간으로 확장시킨다. 그리하여 삶의 이미지는 더 깊어진다. 바람의 길 위에서, 떠도는 푸른 깃털들을 만났습니다. 길 떠나기 전 그대들의 옛집이 어디냐고 물어 보았더니 모두들 하나같이 대답하더군요. 죽은 청호반새가 우리들 옛집이었다고. ―최승호, [떠도는 깃털들] 방안의 쥐구멍으로 들어갔더니 어릴 때 놀던 학교운동장이 나온다던가, 큰 구렁이와 엉겨 놀다가 책꽂이 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어릴 적 꿈은 위 시의 푸른 깃털을 보는 시인의 자연적 깨달음에도 연결될 수 있으리라. 내가 출발한 곳은 어디일까. 죽은 청호반새가 깃털의 실체이듯, 깃털 같은 나의 실체는 청호반새 같은 꿈이 아닐까. 꿈, 그 무한대 상상력의 장은 언제나 현실을 뒤돌아보게 한다. 말하지 못한 것이 꿈으로 나타나듯, 꿈을 통해서 나의 숨은 세계를 마주보게 되는 것이다. 존재에 대한 성찰은 언제나 먼 지평. 나의 옛집은 어디일까. 위의 깃털들처럼 나의 옛집도 죽은 청호반새임이 분명할 듯. 3 상상한다. 인간은 죽음을 의식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꿈을 꾼다. 꿈이 꽃이라면 상상력은 꽃받침이다. 아니 그 반대일까. 어쨌든 인간은 꿈을 꾸기 때문에 소통한다. 소통은 희망이다. 다시 희망은 길이며, 구원이다. 가짜 희망일지라도 필요한 건 희망이 우리를 역동적인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며, 다시 꿈을 꾸게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희망은 모든 이유가 되어준다. 롤랑바르트는 이 시대를 '한 마디로 육체가 없는, 눈만 가진 인간의 사회'라고 정의했다. 이 영상의 세기, 상상력의 그림자는 무수히 분열된다. 끊임없이 확장된 이미지들은 이제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에까지 닿는다. 이미지의 지대는 갈수록 확장되고, 우리는 그 지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탄생과 성장, 죽음까지 이미지로 형성되어 이미지를 통하여 진행된다. 사랑도 희망도 이젠 이미지를 통해 풍경의 몸을 입고서야 우리에게 길도 열리는 것이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안개 속 풍경}도 서정적인 한 편의 영상시이다. 대사를 가능한한 응축시킨, 영상미학이 뛰어난 이 영화를 다 보고나면 가슴 속에 아주 투명한 슬픔 하나가 남는다. 그리스. 아버지를 찾아 독일행 열차를 무임승차로 탄 어린 남매.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여행하는 두 아이는 수많은 사건과 풍경에 부딪친다. 눈에 비친 세상은 매우 서정적인 은유로 가득한 장면들로, 느리게 진행된다. 틈틈이 여자아이는 상상 속의 아버지에게 마음의 편지를 보낸다. "우린 왜 그렇게 오래 기다렸을까요.", "정말 멀리 계시네요. 우리는 여행을 계속해요." 두 아이가 무임승차에 걸려 경찰서로 붙들려갔을 때 눈이 오기 시작한다. '눈이 오네' 중얼거리며 사람들은 거리에 나가 정물처럼 서서 눈오는 하늘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또 얼마나 오랫동안 눈을 기다려온 것일까. 마술에 걸린 듯 모두 정지된 화면처럼 서 있는 거리를 두 아이는 자유를 찾아 뛰쳐나온다. 새로운 세계를 예감하게 하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다. 그리하여 다시 상상 속의 그리움을 향한 여행은 이어진다. 주운 필림조각에서 안개 뒤 멀리에 나무가 있는 풍경을 읽는 유랑극단의 오레스테스. 사실은 아무 것도 없는 필림조각. 그 풀향기 같은 상상력, 그것은 아름다운 은유이다. 꿈과 환상을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작가는 인간에게 구원의 이미지를 선사하고 싶었던 걸까. 한 군인의 적선으로 남매는 다시 기차를 타고, 마침내 국경에 닿는다. 어둠 속에서 국경의 강을 건너는 아이들. 수비대의 불빛, 울리는 총성. 아침이 오고 아이들은 안개 풍경 속에 있는 나무를 발견한다. 동생이 말한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어. 그러다 빛이 생기고……".  남매가 죽었으리라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남매가 달려가는 안개 속 나무밑. 그곳은 결코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상상 속의 그리움, 역설적 희망의 세계이다. 고통스러운 진실을 아름다움으로 간주하려는 것이 비극의 힘이라면, 이는 곧 인간에게 희망을 남겨놓으려는 의지이리라. 그것은 마치 오래 기다린 어둠의 창가에 마침내 오렌지 불빛이 환하게 밝혀진 순간처럼 우리를 따뜻하게 하는 것.  이러한 영상미의 추구는 결국 상상력에 대한 가치 부여에 연결된다. 상상력은 곧 자유와 혁명이며, 탈현실적 상상은 바로 자아의 경계를 뛰어넘게 만든다. 상상력이 인간의 구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예술에서 나온다. 백일몽이라고 정의되었던 예술 자체가 이미지의 왕국이라는 말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인간의 역사는 상상력의 역사인 것을. 수많은 비행기처럼, 수많은 신데렐라처럼 상상 속 꿈들이 현실로 나타난 게 오늘의 문명인 것을.  자연사 박물관에서 찍은 케르테츠의 사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한다. 묵언. 존재의 내면을 비추듯 숙연한 분위기. 고개 돌린 박제된 새 앞에서 고개를 숙인 남자는 무엇을 생각할까. 다시 소통을 꿈꾸는지 모른다. 잃어버린 자기를 박제된 새로부터 보고 있는 걸까. 새가 날던 숲을, 태초의 어떤 언약을 기억하는 걸까. 언어든 영상이든 이미지엔 삶의 직접적인 체험과 내면의 어떤 원형적인 상상력이 작용한다. 일차적 영역을 벗어나 그것의 상징을 해독하려는 노력은 결국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깨닫고, 삶을 사랑하려는 의지이리라. 여기엔 되돌릴 수 없는 시간만큼이나 긴, 새로운 시간이 다시 놓인다.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서정춘, [죽편·1] 대나무 이미지가 아름답다. 굵고 푸른 대나무 마디에서 끌어낸, 깊은 밤을 달리는 기차. 그 기차는 꿈의 고향인 대꽃 피는 마을로 간다. 이 아름다운 은유를 읽으며 영혼의 어떤 해방감을 느낀다. 어두운 현실이 달려가는 곳은 곧 희망 속의 고향. 기차 이미지는 마치 삽화 같은 현실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면서 백년이라는 기다림의 시간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 시간은 푸르다.  자기 마음을 이미지로 드러내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이미지와 말은 서로 교환작용을 하며 더욱 풍부해진다. 이미지는 부단한 움직임으로 언어를 낳고, 언어는 끊임없이 이미지를 낳으며 상상력의 바다를 깊게 한다. 자유로운 상상력은 은유를 통해 사유의 장을 확장시키고, 아름다운 내적 언술을 풀어낸다. 이미지의 언어적 보완성은 우리를 그만큼 자유롭게 하는 것.  결국 소통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어떤 서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났을 때 우리는 우리의 내면 속에 던지는 어떤 울림이다. 그 이미지는 우리 속에서 또 다른 우리를 찾아나서게 되는 표지목이 되고, 그 이미지가 낳는 다른 이미지는 우리를 끊임없이 사막을 여행하는 한 마리 낙타를 닮은 탐험가로 만드는 것이리라. 4 은유,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를 끌여들여, 현실의 거친 벽을 넘어선다. 언어는 오히려 솟아나는 새싹 같은 푸른 마력으로 드러나,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어주는 매듭이 된다. 진실은 더 선명해진다. 이처럼 시적 상상력의 본질을 이루는, 논리 이전의 언어인 은유는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는 열린 사유이다. 언어적 논리를 넘어서서 현실을 더욱 풍요로운 상상력의 세계로 변환시켰다가 다시 창조된 현실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마이클 레드포드의 {일 포스티노} 또한 시적 상상력이 넘치는 한 편의 영상시로 평가된다. 시적인 리듬, 시적인 영상, 시적인 대사 등 시적 표현 양상을 모두 담고 있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건 은유지만 더 우리를 찡하게 하는 것은 은유를 통해 이루어진 네루다와 마리오의 우정과 소통이다. 시에 문외한이었던 마리오는 네루다를 만나면서 삶의 보이지 않는 곳을 응시하는 시적 은유의 세계를 발견한다. 은유가 세계의 또다른 모습, 또다른 환幻의 수많은 단면을 투사하는 무한한 언어의 세계임을 깨달은 것이다. 마치 파도의 포말 하나하나에 비치는 세계처럼 말이다.  마리오의 이러한 시적 체험의 과정은 곧 시가 무엇인지, 시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극적인 질문을 보여준다. '……기타 등등'이 이 세상 다른 것의 은유라면 이 세계는 온통 은유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마리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섬, 작은 파도와 큰 파도, 절벽 위의 바람,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신부님이 울리는 교회의 종, 사랑하는 베아트리체의 뱃속에 있는 아기의 심장소리 등등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큰 은유의 세계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 은유의 눈으로 세상의 진실을 읽으려 했던 마리오는 진정 아름다운 시인의 삶을 살아낸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임시직 우체부였던 마리오는 한편의 시도 쓰지 않았지만 진정한 시인이다. 그는 은유 속에 있는 삶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않았던가. 마리오가 죽고난 다음에야 네루다는 소식이 끊긴 자신에게 보내고자 마리오가 녹음했던 섬의 소리들을 듣는다. 마리오를 생각하며 쓴 한 편의 시는 시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시가 날 찾아왔다. 난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게 겨울이었는지 강가였는지 언제, 어떻게인지 난 모른다. 그건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읽은 것도 아니고 침묵도 아니다. 내가 헤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 자락에서 뜻하지 않는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고독한 귀로에서 그곳에서 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네루다는 마리오를 시인으로 인정했다. 아니, 그는 마리오로부터 새로운 은유의 세계를 읽어내었으리라.  이처럼 은유는 언어적 이미지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 긴밀한 마음의 움직임을 만든다. 결국 시적 사유란 현실에 대한 새로운 욕망이며 아름다움에 대한 개혁의지가 될 것이다. 한 편의 시는 은유를 통해 무의식의 세계에서 빛으로 건져낸 서정의 이미지. 그래서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  조그만 샛강이 하나 흘러왔다고 하면 될까 바람들이 슬하의 식구들을 데리고 내 속눈썹을 스친다고 하면 될까 봉숭아 씨를 얻어다 화분에 묻고 싹이 돋아 문득 그 앞에 쪼그리고 앉는 일이여 돋은 떡잎 위에 어른대는 해와 달에도 겸하여 조심히 물을 뿌리는 일이여 ―장석남, [봉숭아를 심고] 부분 봉숭아 씨앗을 심고, 그 싹 위에 조심조심 물을 뿌리는 마음, 그건 생명을 향한, 아름다움을 향한 시인의 의지이다. 언어로 그려진 이 그림을 통해서 푸르고 따뜻한 진실의 한 풍경에 닿는다. 어떤 마음의 울림이 이미지를 통해 만드는 파문. 여기서 우리는 그 존재조건만으로 주어진 현실을 건너, 샛강이라는 은유에 들어갔다가, 새로운 현실을 경험한다. 하나의 언어가 지닌 사전적 의미는 은유를 통해 그 의미가 확장되어 시인 자신만의 구체적 진리를 형성해낸다. 그것이 서정의 위력을 만든다. 이렇듯 어떤 대상들의 뒷모습을 새롭고도 섬세하게 읽어가는 은유의 불빛이 시의 세계고, 사진의 세계이며 영화의 세계이다.  쿠델카의 손목이 보여주고 있는 시간의 은유는 무엇일까. {안개 속 풍경}, 바다에서 건져올린 거대한 동상의 부러진 손목과 비교해 볼만하다. 그 뒤로 펼쳐진 도심의 풍경은 시간 속을 걷는 우리의 기억일 것이다. 기억은 과거와 그 과거를 향하는 현재의식의 결합으로 창조된다. 사진 이미지가 주는 은유는 흔적, 시간, 죽음 같은 것들로 현재 속 과거이다. 사진은 포착한 순간의 우연성과 필연성을 통해 꿈과 픽션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사진의 미학적이면서도 역사적인 힘이 된다. 거기서 작가는 새로운 진실을 캐어내고, 대상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다. {스모크}라는 영화에서 담배가게 주인은 가게 앞 같은 한 장소를 매일 같은 시간에 십 년 이상을 계속 찍는다. 매일 같아 보이는 일상이지만 그는 그 시간이 얼마나 유일한 순간인지를 알았던 것. 그 시간의 고유성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것이 무엇일까. 찍는 사람과 찍힌 대상이 만나는 찰나적이며 유일한 순간, 그것은 과거의 시간이 아니다. 시간의 풍경 속을 걸어왔고, 걸어가는 중이기에 사진은 지난 일이 아니라, 그 기억이 지시하는 현실을 묻는다. 사진엔 이미 사라진 시간과 존재, 즉 끊임없는 죽음의 이미지가 담겨 있지만, 현재에 이르러 그것은 존재를 재발견하게 의식의 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사진을 찍는다. 5 아이가 물통을 들고와 죽은 나무에 물을 준다. 황량한 들판, 홀로 선 앙상한 나무에 물을 준다. 별다른 이유 없이 말을 할 줄 모르는 아이. 물은 준 아이가 나무 아래 눕는다. 기다리는 것이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희생}의 이 마지막 장면은 유명한 상징으로 알려져 있고, 강한 이미지로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 닿았다. 우리 현실 속 불안과 황무지와 상실의 이미지와, 그에 대한 희망과 기다림과 구원의 이미지가 강하게 맞물려 굵은 수레바퀴자국을 남겼다고나 할까. 아이는 기억한다. 매일 물을 주어 3년 후에 꽃이 온통 만발했다는 죽은 나무이야기를, 끝없이 노력하면 세상을 변하게 한다는 알렉산더의 이야기를 믿는다. 유일한 소통자는 말을 못하던 아들뿐이었던 알렉산더는 정신병원으로 끌려간 뒤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는 {희생}의 마지막 자막은 [안개 속 풍경]의 결말과 비슷하다. 이는 무엇을 암시하는 말일까. 새로운 소통? 새로운 희망?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장면들은 매우 시적이다. 이 영화에서 우체부인 오토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기다리죠. 무엇인가를." 알렉산더도 말한다. "내 삶은 긴 기다림에 불과했지." 평생 기차역에 서서 기다리는 느낌, 그것이 인생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이미지의 마술사인 타르코프스키는 다양하게 변주되는 환상적인 영상 속에서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 내밀한 언어는 절망 속의 희망일 터이다. {희생}은 불안과 단절이라는 구조 속에 있는, 소통과 희망의 한 길목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리라.  황량한 길. 몸뚱이만 남은 나무들이 길을 만들고 있다. 그 길을 두 여인이 서로 기대어 걷는다. 고립되고 단절된 시간과 공간을 '함께' 걷는다. 그래서 사진은 전혀 황량하지 않다. 모순된 충동들 사이로 어떤 조화를 이루는 순간이 작은 믿음을 만들고 있다. 소통은 내 안으로 난 길이고, 또한 함께 가는 길이다. 결국 우리가 찾고자 했던 것은 '함께 걸을 길'이었고, '함께 걸을 그대'였던가. 이렇게 이 사진의 은유는 우리에게 존재의 각성을 가져오고, 또 스스로 위로하는 법을 제시한다. 살아왔고, 살아갈 모든 이유는 '함께'라는 길이었던 것. 이처럼 세계는 카메라의 파인더 속에서 숨겨진 목소리를 낸다. 주변사물과 우리를 이어줌으로 형성되는 수많은 관계와 소통. 그 속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전달하고 전달받으며, 삶을 견디는 방법을 알게 된다. 시나 사진이나 영화에 관한 욕망은 바로 이런 은유의 세계를 통해 한 그리움에 닿고자하는 열망과도 같은 것. 이러한 강렬한 존재를 체험하고자 하는 의지가, 의식보다 원래 시적이라는 무의식의 세계를 통과해 이미지로 전개되는 것이리라.  서정적이며 순수한 예술 영화로 우리가 잃어버린 원초적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들은 소박하면서도, 가슴 밑바닥을 뒤흔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1997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체리 향기}는 일상의 사소한 풍경을 통해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접근한다. 영화 속의 절제된 영상과 단순한 서사구조는 근원적 울림으로 가득하다. 자살을 결심한 40대의 남자가 자신을 묻어줄 사람을 구하기 위해 거리를 헤매는 과정 속에 불거지는 삶의 아름다움. 주인공은 수면제를 먹고 나무구덩이 속에 누워 있을 자신의 시신 위로 흙을 덮어줄 사람을 찾아다닌다. 그의 제의를 받아들인 사람은 세 번째에 만난, 박물관에서 박제를 만드는 노인이다. 제의를 받아들이면서도 노인은 자신이 본 다양한 삶의 아름다움과 살아 있음에 대한 축복을 가르쳐 준다. 노인은 늘 죽음 곁에 사람이라는 것도 하나의 은유이다. 주인공은 결국 삶을 선택한다. 고독과 방황과 기다림은 결국 인간에게 구원이라는 희망을 위하여 있다. 존재의 바닥을 탐구하려는 키아로스타미의 집요한 정신이 내는 커다란 울림. 일상에 숨겨진 삶의 신비를 드러내는 은유의 풀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오마르 카이얌의 4행시에서 더욱 향기로워진다. 인간이여 삶을 즐기려면 죽음이 뒤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체리 향기를 맡아보아라 6 다시 상상한다. 씨앗 위에 흙을 덮는다. 솜털 투명한 떡잎, 줄기에서 벋어나는 가지, 가지에 부푸는 망울들, 경이에 눈을 치뜨는 꽃술, 잎새를 말갛게 통과하는 햇살, 꽃부리에 유희하는 바람, 다시 씨방 안에 맺히는 씨앗들, 그 씨앗을 받는 그대, 그대 앞에 놓인 길. 그리고 잎보라. 눈부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진실에 대한 어떤 가치와 순수. 무엇보다 우리는 우주 속에 있는 무한한 은유의 세계를 상실하고 있다. 부단히 반복되는 삶. 이제 어디에서 그 비밀의 세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모든 답은 '그대'이다. 그대는 '희망' 자체니까. 그대와의 소통이 삶의 이유이다. 모든 풍경의 이유이다. 시를 쓰는, 사진을 찍는, 영화를 보는, 아름다운 이유이다. 소통이 씨앗을 뿌리는 일이고 희망이 꽃을 피우는 일이라면 여기엔 기다림이 필요하다. 상상력은 기다림이라는 열에너지. 수많은 이미지가 피고 진다. 결론적으로 꿈이란 소통에의 의지. 그 꿈은 상상력으로 우리의 삶을 교직하고 채색한다. 이 상상력의 무늬들은 새로운 세계와 인식을 열면서 세상의 풍경을 만든다. 은유의 눈동자들이 만들어낸 이 무늬 속에 희망은 이미 예비되어 있을 것. 사람과 사람들이 이 길목에 선다. 그리고 기다린다.  사유를 제시하는 어떤 이미지들 속에서 오늘도 우리는 울림을 듣는다. 북소리 같은 울림이 아니라, 깊은 동굴 속 어둠 어디선가 떨어지고 있는 물방울 같은, 맑은 울림이다.  김수우(시인) 1 눈, 그것은 눈이었다. 아니, 눈빛이었다. 빈 나뭇가지에 꽃이삭처럼 조롱조롱 눈들이 걸려 있었다. 수많은 눈빛들이 나를 보고 있고, 그 깊은 눈동자마다 내가 서 있었다. 거미줄에 갇힌 듯 나는 꼼짝없이 서서 그 우물 속의 내 모습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단풍잎 한 장이 날아왔다. 그 바람결에 수많은 내가 흔들렸다. 무수한 내 영혼이 모두 출렁였다. 와르르, 어디선가 쏟아지는 웃음소리. 꿈이었다. 그 날은 종일 안개가 깊었고, 은회색 들길을 걷다가, 온몸에 물방울이 피어난 빈 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나뭇가지를 타고 송송히 열린 물방울이 유난히 투명하더니, 그런 꿈을 꾸었다. 어쨌건 내 몸이 몽땅 젖어버린 느낌. 내가 만난 한 세계가 내 속에서 또다른 세계를 만들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 경이로움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무를 바라보는 동안 나무도 나를 오래 바라보았음이 틀림없으리라. 작은 나무가 보여준 그 은유의 세계. 결국 꿈은 소통으로 가는 긴 터널이던가. 왜 태어나, 왜 늙으며, 왜 아프며, 왜 죽을까. 그 다음의 싯달타의 고뇌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마 '어떻게 말할까'가 아닐까. 아니, 싯달타의 모든 고뇌 자체가 자신과의 소통을 향한 의지였으리라. 소통이 될 때 우리는 삶도 죽음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 다음에야 희망을 낳을 수 있으니까. 바벨탑이 무너진 후, 인간이 추구해온 것은 소통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눌한대로 대답을 하자. 답은 없다고, 모든 대답은 자의적인 것이라고 미루어두기에는 우린 참 슬픈 족속이므로. 세상의 모든 답은 바로 '그대'이다. 그대는 '희망' 자체니까. 그리고 희망은 '이미지'로 존재한다. 2 수많은 질문을 이미지로 열며 내게 다가온 시. 그건 항상 어느 순간, 강렬한 빛으로 내 뒤통수에 닿았다가 돌아보면 청보라빛 노을로 가뭇없이 서산을 넘는 중이었다. 그 이미지들을 언어로 살려야 하는 시인들의 절박함을 나는 사랑했던가. 문득 곁으로 달려온 존재들의 눈빛들과 부딪친다는 건 하나의 희열이고 절망이고, 절망이면서 희망이었다. 사진도 그랬다. 렌즈를 통해 세계를 들여다보는 사진과 영화는 여러 면에서 시와 닮았다. 표현에 앞서 더 본질적으로 사진과 영화의 문법은 시적 사유와 맞닿아 있다. 방치된 대상에게 언어로 그 존재의미를 회복시키는 작업과, 렌즈를 통해 포착한 대상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의미부여 작업은 동일하다. 표현도구는 다르지만 표현양식은 결국 이미지라는 점도 그렇다. 때문에 시인의 눈과 카메라의 눈은 매우 유사하다. 둘다 섬세하고 자유롭게 무한한 내포를 담아 삶의 중층성을 그려내는 눈동자들이다. 버려진 나무토막이 언어나 렌즈를 통해, 갑자기 살아 푸른 숨을 내쉬는 은유가 되어 세상을 건너가는 다리로 놓이는, 그 놀라움.  브레쏭의 사진에서 보이는 도심의 뒷골목, 고양이와 한 부랑자의 소통과 소외. 그것은 꿈의 통로처럼 보인다. 쓸쓸하면서도 내밀한 언어가 들린다. 사방으로 이어진 골목, 그래, 우린 어딘가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아주 조심스런 아우라에 붙들린다. 한 장 종이에 인화된 그 시간의 명암과 질감이 전달하는 삶의 강한 실체. 무심한 일상은 파인더 속에서 비로소 존재의 실루엣을 확연히 드러내며 말을 건넨다.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과 절망과 구원이 은유의 세계로 확장되어 드러나는가.  카메라 파인더 속에서 어떤 대상과 부딪칠 때 나는 면회를 신청한 한 수감자의 애인처럼 서글프면서도 그리웁고 고마운 마음이 된다. 소통에서 오는 다행스러움 때문인지 삶이 더 간절해진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대상이 건네는 눈빛을 따라가다가, 숨겨진 원시의 늪에 닿은 듯 가슴떨리는 신비다. 영화도 마찬가지, 카메라 앵글 속에 있는 거대한 눈동자들에 비친 세상은 분명 일상이면서, 일상이 아닌, 현실이면서 현실이 아닌, 은유의 세계를 보여준다. 꿈이야기를 해보자. 꿈이 가진 무의식적 이미지는 상상계의 큰 바탕이며, 수많은 소통의 음성이며, 눈부신 은유의 창고이다. 어떤 함축이 무한한 내포를 지니거나, 어떤 여백이 낭만적인 서정으로 넘칠 때 우리는 '시적'이라고 한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꿈}은 8개의 에피소드로 나뉜 꿈의 파편들로 매우 시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여든에 만든 구로사와의 마지막 작품인 {꿈}은 매우 일본적이며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비현실적 이미지로 구성된다. 유년의 동화적인 이미지부터 묵시론적 악몽이 포함되어 있는 이 작품은 경이로운 이미지와 상징들로 가득하다. 현실원칙과는 다른 논리의 지배를 받는 꿈을 통해 재창조된 세계가 두렵고도 아름답게 펼쳐지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꿈인 와 , 고호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금빛 보리밭 위로 날으는 까마귀떼를 보는 는 시각적 이미지의 정수를 보여준다. 또한 극적 구조를 초월하고 절제된 이미지로 구성된, 자연주의 세계관은 슬프고 기이하기까지 하다. 은유 속에 작용하는 동일화도 있지만 비논리적으로 뒤섞인 은유를 통해, {꿈}은 일상이 삼킨 우리의 본래를 드러냄과 동시에 인식의 한 영역을 흔들어대는 것이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인간이란 꿈을 꿀 때 천재가 된다고 말한다. 꿈은 과감하고 대담무쌍하게, 천재적인 기술로 희망을 표현해낸다. 한 사람의 꿈은 사실 사람들 모두의 꿈이 된다. 그것이 꿈의 힘이며, 마음 밑바닥에 있는 세계의 무한함일 것이다. 결국 꿈이란 삶의 신비를 드러내는 하나의 암시이며, 인간은 그 상상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명시적이든 잠재적이든 상상계를 구성하는 꿈은 일상을 개별성의 세계로, 다시 진정한 보편적 우주를 획득하는 공간으로 확장시킨다. 그리하여 삶의 이미지는 더 깊어진다. 바람의 길 위에서, 떠도는 푸른 깃털들을 만났습니다. 길 떠나기 전 그대들의 옛집이 어디냐고 물어 보았더니 모두들 하나같이 대답하더군요. 죽은 청호반새가 우리들 옛집이었다고. ―최승호, [떠도는 깃털들] 방안의 쥐구멍으로 들어갔더니 어릴 때 놀던 학교운동장이 나온다던가, 큰 구렁이와 엉겨 놀다가 책꽂이 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어릴 적 꿈은 위 시의 푸른 깃털을 보는 시인의 자연적 깨달음에도 연결될 수 있으리라. 내가 출발한 곳은 어디일까. 죽은 청호반새가 깃털의 실체이듯, 깃털 같은 나의 실체는 청호반새 같은 꿈이 아닐까. 꿈, 그 무한대 상상력의 장은 언제나 현실을 뒤돌아보게 한다. 말하지 못한 것이 꿈으로 나타나듯, 꿈을 통해서 나의 숨은 세계를 마주보게 되는 것이다. 존재에 대한 성찰은 언제나 먼 지평. 나의 옛집은 어디일까. 위의 깃털들처럼 나의 옛집도 죽은 청호반새임이 분명할 듯. 3 상상한다. 인간은 죽음을 의식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꿈을 꾼다. 꿈이 꽃이라면 상상력은 꽃받침이다. 아니 그 반대일까. 어쨌든 인간은 꿈을 꾸기 때문에 소통한다. 소통은 희망이다. 다시 희망은 길이며, 구원이다. 가짜 희망일지라도 필요한 건 희망이 우리를 역동적인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며, 다시 꿈을 꾸게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희망은 모든 이유가 되어준다. 롤랑바르트는 이 시대를 '한 마디로 육체가 없는, 눈만 가진 인간의 사회'라고 정의했다. 이 영상의 세기, 상상력의 그림자는 무수히 분열된다. 끊임없이 확장된 이미지들은 이제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에까지 닿는다. 이미지의 지대는 갈수록 확장되고, 우리는 그 지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탄생과 성장, 죽음까지 이미지로 형성되어 이미지를 통하여 진행된다. 사랑도 희망도 이젠 이미지를 통해 풍경의 몸을 입고서야 우리에게 길도 열리는 것이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안개 속 풍경}도 서정적인 한 편의 영상시이다. 대사를 가능한한 응축시킨, 영상미학이 뛰어난 이 영화를 다 보고나면 가슴 속에 아주 투명한 슬픔 하나가 남는다. 그리스. 아버지를 찾아 독일행 열차를 무임승차로 탄 어린 남매.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여행하는 두 아이는 수많은 사건과 풍경에 부딪친다. 눈에 비친 세상은 매우 서정적인 은유로 가득한 장면들로, 느리게 진행된다. 틈틈이 여자아이는 상상 속의 아버지에게 마음의 편지를 보낸다. "우린 왜 그렇게 오래 기다렸을까요.", "정말 멀리 계시네요. 우리는 여행을 계속해요." 두 아이가 무임승차에 걸려 경찰서로 붙들려갔을 때 눈이 오기 시작한다. '눈이 오네' 중얼거리며 사람들은 거리에 나가 정물처럼 서서 눈오는 하늘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또 얼마나 오랫동안 눈을 기다려온 것일까. 마술에 걸린 듯 모두 정지된 화면처럼 서 있는 거리를 두 아이는 자유를 찾아 뛰쳐나온다. 새로운 세계를 예감하게 하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다. 그리하여 다시 상상 속의 그리움을 향한 여행은 이어진다. 주운 필림조각에서 안개 뒤 멀리에 나무가 있는 풍경을 읽는 유랑극단의 오레스테스. 사실은 아무 것도 없는 필림조각. 그 풀향기 같은 상상력, 그것은 아름다운 은유이다. 꿈과 환상을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작가는 인간에게 구원의 이미지를 선사하고 싶었던 걸까. 한 군인의 적선으로 남매는 다시 기차를 타고, 마침내 국경에 닿는다. 어둠 속에서 국경의 강을 건너는 아이들. 수비대의 불빛, 울리는 총성. 아침이 오고 아이들은 안개 풍경 속에 있는 나무를 발견한다. 동생이 말한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어. 그러다 빛이 생기고……".  남매가 죽었으리라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남매가 달려가는 안개 속 나무밑. 그곳은 결코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상상 속의 그리움, 역설적 희망의 세계이다. 고통스러운 진실을 아름다움으로 간주하려는 것이 비극의 힘이라면, 이는 곧 인간에게 희망을 남겨놓으려는 의지이리라. 그것은 마치 오래 기다린 어둠의 창가에 마침내 오렌지 불빛이 환하게 밝혀진 순간처럼 우리를 따뜻하게 하는 것.  이러한 영상미의 추구는 결국 상상력에 대한 가치 부여에 연결된다. 상상력은 곧 자유와 혁명이며, 탈현실적 상상은 바로 자아의 경계를 뛰어넘게 만든다. 상상력이 인간의 구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예술에서 나온다. 백일몽이라고 정의되었던 예술 자체가 이미지의 왕국이라는 말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인간의 역사는 상상력의 역사인 것을. 수많은 비행기처럼, 수많은 신데렐라처럼 상상 속 꿈들이 현실로 나타난 게 오늘의 문명인 것을.  자연사 박물관에서 찍은 케르테츠의 사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한다. 묵언. 존재의 내면을 비추듯 숙연한 분위기. 고개 돌린 박제된 새 앞에서 고개를 숙인 남자는 무엇을 생각할까. 다시 소통을 꿈꾸는지 모른다. 잃어버린 자기를 박제된 새로부터 보고 있는 걸까. 새가 날던 숲을, 태초의 어떤 언약을 기억하는 걸까. 언어든 영상이든 이미지엔 삶의 직접적인 체험과 내면의 어떤 원형적인 상상력이 작용한다. 일차적 영역을 벗어나 그것의 상징을 해독하려는 노력은 결국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깨닫고, 삶을 사랑하려는 의지이리라. 여기엔 되돌릴 수 없는 시간만큼이나 긴, 새로운 시간이 다시 놓인다.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서정춘, [죽편·1] 대나무 이미지가 아름답다. 굵고 푸른 대나무 마디에서 끌어낸, 깊은 밤을 달리는 기차. 그 기차는 꿈의 고향인 대꽃 피는 마을로 간다. 이 아름다운 은유를 읽으며 영혼의 어떤 해방감을 느낀다. 어두운 현실이 달려가는 곳은 곧 희망 속의 고향. 기차 이미지는 마치 삽화 같은 현실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면서 백년이라는 기다림의 시간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 시간은 푸르다.  자기 마음을 이미지로 드러내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이미지와 말은 서로 교환작용을 하며 더욱 풍부해진다. 이미지는 부단한 움직임으로 언어를 낳고, 언어는 끊임없이 이미지를 낳으며 상상력의 바다를 깊게 한다. 자유로운 상상력은 은유를 통해 사유의 장을 확장시키고, 아름다운 내적 언술을 풀어낸다. 이미지의 언어적 보완성은 우리를 그만큼 자유롭게 하는 것.  결국 소통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어떤 서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났을 때 우리는 우리의 내면 속에 던지는 어떤 울림이다. 그 이미지는 우리 속에서 또 다른 우리를 찾아나서게 되는 표지목이 되고, 그 이미지가 낳는 다른 이미지는 우리를 끊임없이 사막을 여행하는 한 마리 낙타를 닮은 탐험가로 만드는 것이리라. 4 은유,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를 끌여들여, 현실의 거친 벽을 넘어선다. 언어는 오히려 솟아나는 새싹 같은 푸른 마력으로 드러나,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어주는 매듭이 된다. 진실은 더 선명해진다. 이처럼 시적 상상력의 본질을 이루는, 논리 이전의 언어인 은유는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는 열린 사유이다. 언어적 논리를 넘어서서 현실을 더욱 풍요로운 상상력의 세계로 변환시켰다가 다시 창조된 현실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마이클 레드포드의 {일 포스티노} 또한 시적 상상력이 넘치는 한 편의 영상시로 평가된다. 시적인 리듬, 시적인 영상, 시적인 대사 등 시적 표현 양상을 모두 담고 있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건 은유지만 더 우리를 찡하게 하는 것은 은유를 통해 이루어진 네루다와 마리오의 우정과 소통이다. 시에 문외한이었던 마리오는 네루다를 만나면서 삶의 보이지 않는 곳을 응시하는 시적 은유의 세계를 발견한다. 은유가 세계의 또다른 모습, 또다른 환幻의 수많은 단면을 투사하는 무한한 언어의 세계임을 깨달은 것이다. 마치 파도의 포말 하나하나에 비치는 세계처럼 말이다.  마리오의 이러한 시적 체험의 과정은 곧 시가 무엇인지, 시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극적인 질문을 보여준다. '……기타 등등'이 이 세상 다른 것의 은유라면 이 세계는 온통 은유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마리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섬, 작은 파도와 큰 파도, 절벽 위의 바람,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신부님이 울리는 교회의 종, 사랑하는 베아트리체의 뱃속에 있는 아기의 심장소리 등등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큰 은유의 세계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 은유의 눈으로 세상의 진실을 읽으려 했던 마리오는 진정 아름다운 시인의 삶을 살아낸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임시직 우체부였던 마리오는 한편의 시도 쓰지 않았지만 진정한 시인이다. 그는 은유 속에 있는 삶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않았던가. 마리오가 죽고난 다음에야 네루다는 소식이 끊긴 자신에게 보내고자 마리오가 녹음했던 섬의 소리들을 듣는다. 마리오를 생각하며 쓴 한 편의 시는 시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시가 날 찾아왔다. 난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게 겨울이었는지 강가였는지 언제, 어떻게인지 난 모른다. 그건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읽은 것도 아니고 침묵도 아니다. 내가 헤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 자락에서 뜻하지 않는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고독한 귀로에서 그곳에서 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네루다는 마리오를 시인으로 인정했다. 아니, 그는 마리오로부터 새로운 은유의 세계를 읽어내었으리라.  이처럼 은유는 언어적 이미지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 긴밀한 마음의 움직임을 만든다. 결국 시적 사유란 현실에 대한 새로운 욕망이며 아름다움에 대한 개혁의지가 될 것이다. 한 편의 시는 은유를 통해 무의식의 세계에서 빛으로 건져낸 서정의 이미지. 그래서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  조그만 샛강이 하나 흘러왔다고 하면 될까 바람들이 슬하의 식구들을 데리고 내 속눈썹을 스친다고 하면 될까 봉숭아 씨를 얻어다 화분에 묻고 싹이 돋아 문득 그 앞에 쪼그리고 앉는 일이여 돋은 떡잎 위에 어른대는 해와 달에도 겸하여 조심히 물을 뿌리는 일이여 ―장석남, [봉숭아를 심고] 부분 봉숭아 씨앗을 심고, 그 싹 위에 조심조심 물을 뿌리는 마음, 그건 생명을 향한, 아름다움을 향한 시인의 의지이다. 언어로 그려진 이 그림을 통해서 푸르고 따뜻한 진실의 한 풍경에 닿는다. 어떤 마음의 울림이 이미지를 통해 만드는 파문. 여기서 우리는 그 존재조건만으로 주어진 현실을 건너, 샛강이라는 은유에 들어갔다가, 새로운 현실을 경험한다. 하나의 언어가 지닌 사전적 의미는 은유를 통해 그 의미가 확장되어 시인 자신만의 구체적 진리를 형성해낸다. 그것이 서정의 위력을 만든다. 이렇듯 어떤 대상들의 뒷모습을 새롭고도 섬세하게 읽어가는 은유의 불빛이 시의 세계고, 사진의 세계이며 영화의 세계이다.  쿠델카의 손목이 보여주고 있는 시간의 은유는 무엇일까. {안개 속 풍경}, 바다에서 건져올린 거대한 동상의 부러진 손목과 비교해 볼만하다. 그 뒤로 펼쳐진 도심의 풍경은 시간 속을 걷는 우리의 기억일 것이다. 기억은 과거와 그 과거를 향하는 현재의식의 결합으로 창조된다. 사진 이미지가 주는 은유는 흔적, 시간, 죽음 같은 것들로 현재 속 과거이다. 사진은 포착한 순간의 우연성과 필연성을 통해 꿈과 픽션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사진의 미학적이면서도 역사적인 힘이 된다. 거기서 작가는 새로운 진실을 캐어내고, 대상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다. {스모크}라는 영화에서 담배가게 주인은 가게 앞 같은 한 장소를 매일 같은 시간에 십 년 이상을 계속 찍는다. 매일 같아 보이는 일상이지만 그는 그 시간이 얼마나 유일한 순간인지를 알았던 것. 그 시간의 고유성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것이 무엇일까. 찍는 사람과 찍힌 대상이 만나는 찰나적이며 유일한 순간, 그것은 과거의 시간이 아니다. 시간의 풍경 속을 걸어왔고, 걸어가는 중이기에 사진은 지난 일이 아니라, 그 기억이 지시하는 현실을 묻는다. 사진엔 이미 사라진 시간과 존재, 즉 끊임없는 죽음의 이미지가 담겨 있지만, 현재에 이르러 그것은 존재를 재발견하게 의식의 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사진을 찍는다. 5 아이가 물통을 들고와 죽은 나무에 물을 준다. 황량한 들판, 홀로 선 앙상한 나무에 물을 준다. 별다른 이유 없이 말을 할 줄 모르는 아이. 물은 준 아이가 나무 아래 눕는다. 기다리는 것이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희생}의 이 마지막 장면은 유명한 상징으로 알려져 있고, 강한 이미지로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 닿았다. 우리 현실 속 불안과 황무지와 상실의 이미지와, 그에 대한 희망과 기다림과 구원의 이미지가 강하게 맞물려 굵은 수레바퀴자국을 남겼다고나 할까. 아이는 기억한다. 매일 물을 주어 3년 후에 꽃이 온통 만발했다는 죽은 나무이야기를, 끝없이 노력하면 세상을 변하게 한다는 알렉산더의 이야기를 믿는다. 유일한 소통자는 말을 못하던 아들뿐이었던 알렉산더는 정신병원으로 끌려간 뒤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는 {희생}의 마지막 자막은 [안개 속 풍경]의 결말과 비슷하다. 이는 무엇을 암시하는 말일까. 새로운 소통? 새로운 희망?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장면들은 매우 시적이다. 이 영화에서 우체부인 오토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기다리죠. 무엇인가를." 알렉산더도 말한다. "내 삶은 긴 기다림에 불과했지." 평생 기차역에 서서 기다리는 느낌, 그것이 인생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이미지의 마술사인 타르코프스키는 다양하게 변주되는 환상적인 영상 속에서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 내밀한 언어는 절망 속의 희망일 터이다. {희생}은 불안과 단절이라는 구조 속에 있는, 소통과 희망의 한 길목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리라.  황량한 길. 몸뚱이만 남은 나무들이 길을 만들고 있다. 그 길을 두 여인이 서로 기대어 걷는다. 고립되고 단절된 시간과 공간을 '함께' 걷는다. 그래서 사진은 전혀 황량하지 않다. 모순된 충동들 사이로 어떤 조화를 이루는 순간이 작은 믿음을 만들고 있다. 소통은 내 안으로 난 길이고, 또한 함께 가는 길이다. 결국 우리가 찾고자 했던 것은 '함께 걸을 길'이었고, '함께 걸을 그대'였던가. 이렇게 이 사진의 은유는 우리에게 존재의 각성을 가져오고, 또 스스로 위로하는 법을 제시한다. 살아왔고, 살아갈 모든 이유는 '함께'라는 길이었던 것. 이처럼 세계는 카메라의 파인더 속에서 숨겨진 목소리를 낸다. 주변사물과 우리를 이어줌으로 형성되는 수많은 관계와 소통. 그 속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전달하고 전달받으며, 삶을 견디는 방법을 알게 된다. 시나 사진이나 영화에 관한 욕망은 바로 이런 은유의 세계를 통해 한 그리움에 닿고자하는 열망과도 같은 것. 이러한 강렬한 존재를 체험하고자 하는 의지가, 의식보다 원래 시적이라는 무의식의 세계를 통과해 이미지로 전개되는 것이리라.  서정적이며 순수한 예술 영화로 우리가 잃어버린 원초적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들은 소박하면서도, 가슴 밑바닥을 뒤흔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1997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체리 향기}는 일상의 사소한 풍경을 통해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접근한다. 영화 속의 절제된 영상과 단순한 서사구조는 근원적 울림으로 가득하다. 자살을 결심한 40대의 남자가 자신을 묻어줄 사람을 구하기 위해 거리를 헤매는 과정 속에 불거지는 삶의 아름다움. 주인공은 수면제를 먹고 나무구덩이 속에 누워 있을 자신의 시신 위로 흙을 덮어줄 사람을 찾아다닌다. 그의 제의를 받아들인 사람은 세 번째에 만난, 박물관에서 박제를 만드는 노인이다. 제의를 받아들이면서도 노인은 자신이 본 다양한 삶의 아름다움과 살아 있음에 대한 축복을 가르쳐 준다. 노인은 늘 죽음 곁에 사람이라는 것도 하나의 은유이다. 주인공은 결국 삶을 선택한다. 고독과 방황과 기다림은 결국 인간에게 구원이라는 희망을 위하여 있다. 존재의 바닥을 탐구하려는 키아로스타미의 집요한 정신이 내는 커다란 울림. 일상에 숨겨진 삶의 신비를 드러내는 은유의 풀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오마르 카이얌의 4행시에서 더욱 향기로워진다. 인간이여 삶을 즐기려면 죽음이 뒤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체리 향기를 맡아보아라 6 다시 상상한다. 씨앗 위에 흙을 덮는다. 솜털 투명한 떡잎, 줄기에서 벋어나는 가지, 가지에 부푸는 망울들, 경이에 눈을 치뜨는 꽃술, 잎새를 말갛게 통과하는 햇살, 꽃부리에 유희하는 바람, 다시 씨방 안에 맺히는 씨앗들, 그 씨앗을 받는 그대, 그대 앞에 놓인 길. 그리고 잎보라. 눈부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진실에 대한 어떤 가치와 순수. 무엇보다 우리는 우주 속에 있는 무한한 은유의 세계를 상실하고 있다. 부단히 반복되는 삶. 이제 어디에서 그 비밀의 세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모든 답은 '그대'이다. 그대는 '희망' 자체니까. 그대와의 소통이 삶의 이유이다. 모든 풍경의 이유이다. 시를 쓰는, 사진을 찍는, 영화를 보는, 아름다운 이유이다. 소통이 씨앗을 뿌리는 일이고 희망이 꽃을 피우는 일이라면 여기엔 기다림이 필요하다. 상상력은 기다림이라는 열에너지. 수많은 이미지가 피고 진다. 결론적으로 꿈이란 소통에의 의지. 그 꿈은 상상력으로 우리의 삶을 교직하고 채색한다. 이 상상력의 무늬들은 새로운 세계와 인식을 열면서 세상의 풍경을 만든다. 은유의 눈동자들이 만들어낸 이 무늬 속에 희망은 이미 예비되어 있을 것. 사람과 사람들이 이 길목에 선다. 그리고 기다린다.  사유를 제시하는 어떤 이미지들 속에서 오늘도 우리는 울림을 듣는다. 북소리 같은 울림이 아니라, 깊은 동굴 속 어둠 어디선가 떨어지고 있는 물방울 같은, 맑은 울림이다.   =================================================================   103. 늦봄에 / 정공채                       늦봄에                                             정공채   이것저것 근심 걱정 털어 버리고 하 좋은 봄날에는 어쩐다? 서로 손목 잡고 허리 껴안기도 하면서 언덕 아래 풀밭에서 뒹굴어 볼까?   꽃도 한창으로 피고 피고 새소리 지즐대고 햇살 좋다고 정말 이래도 좋을지? 아무도 안 본다고 늘어져도 좋을지?      =============================================   104. 먼 길 / 정공채                     먼 길                                            정공채   시나브로 꽃이 피고 지는 일도 먼 길 가는 길 가리키고 있는 이정표(里程標)일세.   봄이 오고 또 봄이 오는 일도 먼 길 가는 길 먼 길에 저무는 세월의 흐름일세.   천만 마디 말 많고 어쩌니 해도 다 소용없고 너도 나도 먼 길로 가고 있는 걸세.   언젠가 지는 꽃 그 지표(指標) 따라 당신 손목도 놓음세.      
962    <<시집을 좀 사주자 >>... 댓글:  조회:4169  추천:0  2016-01-10
시를 읽는 재미   신경림  오늘 강연 제목을 '시를 읽는 재미'라고 붙였지만 사실 요즘 사람들이 시를 읽는 것이 너무 재미없다고 해서 역설적으로 붙인 제목입니다. 오늘 아침 경향신문 책 소개란을 봤더니 한 기자가 걱정을 했어요.  '요즘 시집 얘기를 하는 사람도 없고 시를 읽었다는 사람도 없다. 시집이라는 게 한권에 5천원밖에 안하는 커피 한잔 값인데 왜 이리 인색한가. 시를 읽고 시집을 좀 사주자.'  이런 글을 보고나서 '시를 읽는 재미'라는 강연을 한다는 게 참 비참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시를 읽는 게 재미 없죠? 심지어 시를 읽는 것이 재미없고 신경질나게 한다고까지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시가 옛날보다 영향력을 잃은 것은 틀림없습니다. 시가 30년전, 50년전보다 사람들에게 덜 읽히고 그만큼 영향력을 미치지도 않습니다. 무슨 사이버 시대가 되고 매체가 다양화되다 보니 사람들이 영상매체에 이끌리지, 활자매체에는 이끌리지 않는 복잡한 환경 때문이라는 핑계를 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1930년대 제 1차대전이 끝나고 세계적으로 제일 앞서나간다는 영국, 프랑스 시단에서도 시가 읽히지 않았습니다. 그때 오든이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시인이죠. 노벨상 탄 유명한 T.S 엘리엇보다 조금 뒷 사람인데요, 엘리엇이 어렵고 고전적이고 산업적이고 관념적인 시를 쓸 때, 오든이란 사람은 '시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세상사는 사람속에 여러 사람의 정서와 사상을 그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했던 진보적인 시인이었죠.  그 시인이 그때도 시를 사람들이 안 읽으니까 재미있게 읽힐 만한 시만을 골라서 책을 냈습니다. 그게 무엇이었냐면 '옥스퍼드 북 오브 라이트 버스', 그러니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시 모음입니다. 오든이 그 책 한권을 내면서 한 얘기가 '사람들이 시를 안 읽는데 사회적인, 환경의 변화도 있지만 시인들 자신에게는 죄가 없는가 따져볼 때다. 사람들이 항상 긴장해서 사는 것은 아니니까 어렵게 접근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읽힐 수 있는 시를 가지고 접근해보자'라고 했습니다.  강연 후 청중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신경림 시인.  ⓒ프레시안  시인들의 '자폐성', '소양 부족'이 시를 어렵게 만드는 이유  저도 문득 오늘날 라이트 버스라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발상도 해볼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얘기는 무엇이냐 하면 오늘 우리가 시를 안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사이버 영상매체의 등장으로 인한 매체의 다양화 등 사회환경의 변화도 있겠지만 그러나 다른쪽에서 보면 근본적으로 시인 자신에게도 상당부분의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50년쯤 시를 써왔지만 제가 읽어도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시들이 너무 많아요. 어떤 시를 읽고 나면 처음에 한번 읽어보면 참 어렵다, 한번 더 읽으면 정신이 몽롱해집니다. 너무 어려워서요. 한번 더 읽으면 안동소주 한잔 먹고서 뺑뺑이 친 것 같아요. 더 모르겠어요. 그래서 해설을 읽어보죠. 해설은 좀 이해할 수 있게 썼겠지. 그러나 해설을 읽어보면 안동소주 먹고서 뺑뺑이 친 것을 뒷다리 걸어서 넘어뜨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읽기가 더 어려워져요.  결국 시를 너무 어렵게 쓴다는 것인데, 저는 시를 어렵게 쓰는데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난해시라는 것도 있으니까 우리가 무조건 난해시를 쓰면 안된다고 타박해서는 안되죠. 시인이 복잡한 심리과정이 있어서 도저히 어렵게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형편도 있겠죠. 예컨대 저는 높이 평가하지 않습니다만 이상 같은 시인이 그렇습니다.  이상 시인은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데 사실 거기에는 다 먹고사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상 같은 어려운 시들이 없으면 대학교수들이 학교에서 강의할 것이 없어져요. 이상 같은 사람이 자꾸 있어야죠.  잡담을 좀 하자면 이상은 시인이나 소설가라기 보다는 에세이스트입니다. 산문을 참 잘써요. 그 사람 산문은 우리나라 산문사상 가장 뛰어난 산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김수영 산문이 누구에게 뿌리가 있습니까. 김수영 산문은 본질적으로 뿌리를 이상에게 두고 있는 것이죠. 여하간 뛰어난 산문가이지만 시는 좀 아리까리하고 너무 어렵게 써서 무책임한 면이 있죠. 그래도 우리는 이상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상은 그러한 복잡한 표현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 심리상태에 있었죠.  그러나 최근의 난해시라는 것은 그렇게 부득이하고 불가피한 성격이라기보다는 대체로 자폐성이 있다는 것이예요. 자기 마음을 남들에게 열지 않는다는 거죠. 마음을 꽉 닫아놓고 '좋다, 너희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나대로 혼자 나갈꺼야' 하는 자폐성이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 시를 정확하게 쓰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법 상에서, 재능 부족, 솜씨 부족이라는 거죠.  18세기에 워즈워스란 시인이 있습니다. 워즈워스라는 시인이 서정시집이라는 시집을 냈어요. 공동 시집에서 실명이 아니라 필명으로 낸 시집인데, 냈다가 반응이 좋으니까 30년 뒤에 재판을 했어요. 그 30년 동안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시인이란 무엇인가' 하는 자기 고민을 털어놨어요. 시인이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이것저것 하다가 결론으로는 결국 '시인이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남과 똑같은 사람이다. 다만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남들보다 더 정확하고 분명하게 자기가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는 능력, 정확하고 분명할 뿐 아니라 힘있고 단순화시켜 얘기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우리 시하고 비교해서 얘기하자면 자기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시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되겠죠. 아마도 워즈워스의 이 결론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론이 없는 것 같아요. 일단 그것을 획득해야 하는데 요즘 시인들이 그것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죠.  엉뚱한 말을 좀 하겠습니다. 워즈워스 이전까지는 구어,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고살면서 쓰는 말, 장터에서 쓰는 말을 가지고 시를 쓰지 않았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시는 문어로 이루어졌어요. 처음으로 그것을 깨고 민중어라고 할까, 생활어로 시를 쓰기 시작한 최초의 시인이 워즈워스입니다.  생각도 처음에는 진보적이었죠. 프랑스혁명 당시 그 사람 나이가 스물 셋인가 넷이었을 겁니다. 이 사람이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파리에 혁명이 일어났다고 하니까 파리로 쫓아갑니다.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파리 시민들이 어떻게 혁명을 성취해가는가를 감격스런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영국도 프랑스 같은 혁명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느날 문득 친척이 죽어서 막대한 유산을 받게 됐습니다. 부자가 되니까 우물우물 시를 게을리 했습니다. 온갖 힘을 다해서 시를 쓴다는 게 재미가 없으니까 공주가 시를 써달라 하면 써주고, 왕이 축시를 해달라고 하면 해주면서 보수화됩니다. 그러면서 영국에서 화두가 됐던 모든 국민은 똑같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의무교육, 모든 여성도 똑같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여성교육을 가장 앞장서서 반대를 합니다.  반면 로버트 브라운이라는 영국시인이 있습니다. 워즈워스와는 40년 정도 차이가 나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워즈워스를 비판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평생을 워즈워스 비판하는 데 바친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뭐라고 했냐 하면, '시인은 나이 들어서 시를 쓰면 안된다, 젊어서 쓰고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대상은 워즈워스였죠. 워즈워스는 젊을 때 쓴 시는 괜찮고, 39살까지 쓴 시는 그래도 읽어줄만한데 마흔 넘어서 쓴 시는 화장실에서 찢어버려야 한다고 비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늙어서까지 시를 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여튼 시인이란 무엇인가를 얘기하다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요즘 우리 시가 어려운 까닭중에 하나는 바로 워즈워스가 정의하고 있는 시인의 능력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시인 중에 너무 많아서 그렇다는 얘기가 되는거죠. 그러니까 정말 자기가 쓰고 싶은 것,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시를 어렵게 쓰는 경향이 생기는 겁니다.  결국 시인이 자폐증에 걸려서 시의 소통의 통로를 어렵게 만드는 것 하나와 시인 자신이 능력이 모자라서 자기의 말을 정확히 시로 형상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겁니다.  어려운 시 중에는 복잡한 세상을 살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어려운 시를 쓰는 경향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지금 얘기한 경향이 더 많다는 말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시 읽는 재미 하나, "시는 단 몇 마디로 힘있고 분명하게 하는 대화"  반대로 시를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어려운 시를 한번 더 읽어줄 수 있는 아량이 있는게 좋겠죠. 또 읽어서 모르겠으면 안 읽어도 좋습니다. 그 시집 그래도 5천원 들여서 산 책을 내버리기는 아까우니까 어디 한구석에 뒀다가 1년, 2년쯤 후에 읽어보는 것도 좋겠죠. 그래도 모르겠으면 재활용 하는 곳에 버리면 다른 종이로 탄생할 테니까 버려도 아까운게 없죠.  시가 무슨 일을 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자폐증으로 인한 독자와의 소통을 얘기했는데, 거꾸로 얘기하면 시도 다른 말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대화입니다. 단 몇마디로 힘있고 분명하게 하는 대화죠. 어떻게 보면 짧은 말을 가지고 많은 말을 할 수 있는 대화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짧은 말을 가지고 어떠한 웅변가가 얘기할 수 있는 것보다 힘있고 감동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대화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를 쓰고 읽으면 자폐증은 어느 정도 풀어지겠죠.  예를 들어볼까요. 김종삼 시인의 시가 얼핏 생각납니다. 묵화라는 시가 있습니다. 짧으니까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물먹는 소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오늘 하루도 함께 지냈다고  서로 발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이 시 어떻습니까. 저는 이 시를 읽을 적마다 살기 어려운 것, 노동의 힘든 것, 인간의 고독이 얼마나 사람을 못견디게 만드는가 하는 여러 가지를 몇십 매 몇백 매의 에세이나 웅변보다도 이 시 몇줄이 강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루종일 할머니와 소가 함께 일한거죠.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게 일했으면 소도 발등이 붓고 할머니도 발등이 부었겠습니까. 또 이것을 쓴 때가 1950년대로 알고 있는데 전쟁통에 가족을 다 잃고 혼자 외롭게 살고있는 할머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 시에서 떠오르죠.  이 시는 몇마디 가지고 많은 웅변이나 몇백장이 되는 산문이 가지는 대화보다도 강력한 대화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결국 시라는 것도 대화라는 생각을 하면서 시를 읽으면 좀 더 시를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어려운 시보다는 서로 대화가 될 수 있는 시를 먼저 읽는게 시를 읽는 재미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제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추측컨대 이중섭이라는 화가의 '소'라는 그림을 보고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김종삼 시인과 이중섭 화가는 친하지는 않았지만 김종삼 시인의 형과 이중섭 화가가 친했고 또 이중섭 화가가 그 무렵 시인들과 어울려 놀았다고 해요. 그래서 그 그림을 보고 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 시가 이중섭 화가의 그림보다 값어치가 나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이 시에는 이중섭 화가의 소 그림에는 없는 그림이 이 속에는 많이 있죠. 아무리 그림 잘 그린다 하더라도 발등이 부은 것을 그릴 수 있는 화가가 있습니까. 또 하루종일 일을 한 모습을 그대로 그려넣을 수 있는 화가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시를 읽을 때 한 개의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도 시를 읽는 재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시를 읽는 것은 시인과 서로 대화가 돼서 알아들을 때 재미가 있고 또 다른 하나는 머릿속에 선명한 그림 하나를 그려넣을 수 있을 때 시를 읽는 재미가 있다는 얘기죠.  시 읽는 재미 둘, "머릿속에 그림 한 폭 그려넣을 수 있는 시"  재미난 시라는 것은 어떠한 시라도 머릿속에 뚜렷한 그림 하나를 그리게 만들어 주는 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시를 한편 외운다면 그림을 한 폭 머릿속에 넣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효과가 있겠죠.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는 박목월 시인의 '윤사월'이라는 시 하나 읽어봅시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고 엿듣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면 윤사월 연초록으로 덮인 산이 떠오르고, 노란 송화가루가 날리는 모습, 비록 눈이 멀었지만 아주 아리따운 처녀가 초가집에 앉아있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하나의 그림이 떠오르는 것이죠. 이렇게 시를 읽고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넣을 수 있을 때, 시를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때가 이때라고 할 수 있겠죠.  제가 선배 시인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시인이 조지훈 시인입니다. 지조론이라는 시를 썼을 만큼 지조도 있고 한학에도 조예가 깊고 학자로서도 훌륭한 분입니다. 시인으로서도 대단하죠. 조지훈 시인과 박목월 시인을 시 하나로 단순 비교하면 시가 무엇인지 잘 나타나니까 얘기를 해 봅니다.  여러분들 잘 아시는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란 시가 있습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원래 이 시의 주제는 조지훈 시인이 쓴 '완화삼'이라는 시와 같습니다. 조지훈 시인이 완화삼이라는 시를 써서 친구인 박목월 시인에게 줬는데, '술익는 강마을에 저녁노을이여'이라는 구절을 박목월 시인이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로 바꿔서 나그네를 썼습니다. 그런데 '완화삼'은 유명해지지 않고 '나그네'는 유명해졌습니다.  왜그러냐 하면 완화삼은 뭔가 멋지고 근사한 말로 가득 차 있지만 머릿속에 그림 하나가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반면 '나그네'에는 분명한 그림이 떠오르죠.  '완화삼'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여기서 목월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를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로 살짝 바꿔서 '나그네'라는 시를 썼는데, '완화삼'을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목월의 '나그네'라는 시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국민적인 시가 됐습니다.  왜냐하면 두 시를 비교하면 나그네를 읽으면 머릿속에 뚜렷한 그림 하나가 떠오르지만, 완화삼을 읽으면 분명한 그림이 떠오르지 않고 어딘지 어슴푸레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뚜렷한 그림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때 시에 가까워질 수 있는 이유가 되겠죠. 여러분들도 시를 읽을 때, 일단 그 시를 읽고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는 습관을 붙인다면 시를 읽는 재미가 한결 더해질 것입니다.  시 읽는 재미 셋, "시가 던지는 암시와 비유의 메시지를 읽을 때"  그러나 시가 그런 것만 가지고 있다고 되겠습니까. 워즈워스로 다시 돌아가서 얘기하자면, 워즈워스는 시인이 보통사람과 다른 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 말하고자 하는 것을 분명하고 힘있고 단순화시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을 했지만 덧붙여서 시를 읽는 사람들도 조금씩은 보통사람과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감수성, 직관력이 일반사람보다 뛰어나다는 점만은 분명하다는 말입니다. 직관력 감수성 이런 것은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이미 다 가지고 있다는 얘기지요.  여기에 제 생각을 덧붙이자면 시를 쓰는 사람들은 그 바탕위에서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직관력과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일반인들에게 일정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일반인들이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 즉 어떤 위험을 일반인들이 깨닫지 못할 때 그것을 알려주는 책임이나 의무를 시인이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인이 알려주는 경고나 예감을 읽는 재미가 또한 시를 읽는 재미로 빠뜨릴 수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를 읽으면 도저히 자기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일깨워주는 경보나 예방을 시에서 발견하는 것도 시를 읽는 또 하나의 재미입니다.  이병철이라는 시인이 쓴 시가 있어요. 88년부터 해금되기는 했지만 6.25 전에 월북을 했던 시인입니다. 옛날에 이 시인의 시를 읽으면 반공법으로 잡혀갔었어요. 이병철 시인이 시를 많이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북쪽에서는 조금 발표한 모양이에요. 그런데 그쪽에서 발표한 시를 제가 보니까 도저히 읽어주지 못할만한 시가 많아요. 거기서는 수령에 대한 충성이 없으면 시를 발표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여기서 발표한 시 중에는 뛰어난 시가 있습니다.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나막신'이라는 시입니다.  은하 푸른 물에 머리 좀 감아 빗고  달뜨걸랑 나는 가련다  목숨 수(壽)자 박힌 정한 그릇으로  체할라 버들잎 띄워 물 좀 먹고  달뜨걸랑 나는 가련다  삽살개 앞세우곤 좀 쓸쓸하다만  고운 밤에 딸그락딸그락  달뜨걸랑 나는 가련다  1944년, 1943년 쯤에 썼던 시라고 합니다. 그 무렵이 얼마나 어려운 시절이었습니까. 이 시를 썼을 때 사람들은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한가한 소리를 하느냐는 얘기를 하고 핀잔을 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 속에는 일제의 박해 속에서도 여유를 갖고 우리의 몸과 정신을 온전하게 보전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속에서 우리가 살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온전한 것을 버려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이 시는 던지고 있는 거예요.  이 시를 제가 처음 읽은 것은 6.25 얼마 뒤에요. 미군부대 따라다니는 하우스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때 포성이 들리는 상황에서 먹고사는 가장 속편한 자리는 미군부대를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있으면 굶지만 미군부대 들어가면 배불리 먹고 동생들도 먹고 그랬으니까 모든 중학생들의 꿈이 미군부대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갔습니다.  제가 6.25때 미군부대를 처음 들어간 것은 충청북도 영동이란 곳이었는데 그 부대가 원주에서 홍천으로 이동했어요. 그 부대가 중공군하고 싸움이 붙었을때 저를 관장하고 있는 미군 대위가 나한테 '너 미군하고 함께 다니는 것을 보면 너도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도망가라'며 원주까지 차를 태우고 와서 원주서 나를 놔줘서 충주까지 갔던 기억이 납니다.  이 시를 원주에서 미군부대 근처 헌 서점에서 사가지고 부대에서 읽었어요. 제가 이 시를 읽고 너무 감개가 무량해 하니까 대위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만 제가 영어가 안돼서 대위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리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시를 읽으면서 저는 굉장히 위안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나쁜 환경 아래에서도 조금도 주눅들지 말자는 뜻이 아니냐, 아무리 바빠도 천천히 돌아가고 여유를 갖고, 낭만도 가지고 살자는 얘기로 들렸습니다. 아마 제가 전쟁통에 시를 읽는 여유가 있었던 것은 그 시를 읽은 감동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여하간 시를 읽는 재미중의 또 하나는 지금 우리가 어떠한 곤경에 처해있는가, 또한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직접적인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어떤 암시나 비유를 읽을 수 있는 것이 시를 읽는 재미중의 하나입니다.  역시 월북한 시인의 시를 하나만 더 읽겠습니다. 이용악이라는 시인의 '북쪽'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  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른다  이 시를 발표한 것은 1930년대입니다. 감회가 지금하고는 달랐겠죠. 그러나 상상하건대 그때 이 시를 읽는 독자들, 특히 북쪽에 고향을 둔 독자들은 이 시를 읽으면서 아마도 가슴이 뭉클했을 것입니다. '아 정말 우리가 너무 가난하게 사는구나,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더 북쪽의 나라 중국이나 러시아에 우리의 귀여운 딸을 팔아먹으면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도록 하는 시죠. 지금같은 환경하에서는 우리가 살 수 없으니까 개선해야 한다는 암시가 담겨있습니다.  물론 이 시속에 우리의 역사는 어떻고 오랑캐는 어떻고 하는 직접적인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사는 환경이 우리에게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가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일깨움을 읽는다면 그것도 시를 읽는 재미 중의 하나가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시 읽는 재미 넷, "치열하고 처절한 '사랑의 시'"  처음에 제가 시에 접근하던 때에는 나하고 가장 감정이 처음에 제가 시에 접근하던 때에는 나하고 가장 감정이 통하는 시를 좋아했습니다. 그러한 시는 사춘기 때니까 '막연한 그리움', '이성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었죠. 저는 지금도 가장 아름다운 시는 연애시라고 생각합니다. 연애시를 읽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어떤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시를 보니까 거지 얘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질적 거지가 아니라 정신적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시는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진짜로 '정신과 정신의 작용' 같은 정서를 가진 연애시를 읽는 것도 시를 읽는 재미 중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중의 하나겠죠.  저는 연애시를 가장 잘 쓰는 시인이 유치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양반은 살아서 연애깨나 한 모양이에요. 연애시가 참 많고 절실합니다. 재밌게 읽힐 수 있어요. 연애시를 읽는 재미는 제가 어떠한 말을 해도 시를 읽는 재미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 분의 '그리움'이라는 시를 읽어보겠습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아주 쉬운 것 같으면서도 그리 쉽지 않은, 그래도 쓰기는 굉장히 쉬운 것 같죠. 시를 읽는 사람들이 이건 나도 쓸 수 있는데 빼앗겼구나 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시라는 것이 그런 거예요. 읽는 사람들이 읽고 났을 때 '야 이건 내가 써야 하는데 이 사람이 먼저 썼네' 하는 생각이 있을 때 그 시가 정말 좋은 시죠. '나로서는 도저히 생각도 못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면 재미난 시가 못되죠. 유치환씨는 바로 그렇죠. 파도가 치는 것을 보면서 짝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해보고 파도에 까딱않는 육지를 보면서 마치 내마음 같아서 그런 간단한 시를 쓴 건데, 누구나 쓸 수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 사람의 시 중에서 '그리움'이라는 시가 다른 한편 있습니다.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요즘 이런 연애하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만, 이런 시를 보면 치열하고 처절한 사랑의 시를 읽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경계할 것은 가짜 사랑의 시입니다. 잘 뜯어 읽어보면 사랑을 억지로 만들어서 관념적이고 툭하면 '님이여' 하고 그럽니다. 유행가하고 시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유행가는 남들이 하는 소리를 똑같이 하는 것이고 시는 남들이 할 수 없는 것이죠. 또 한가지는 유행가는 이미지가 식상하고 독창적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에서는 이미지가 독창적입니다. 자기만이 가질 수 있는 얘기라서 다른 것입니다.  가짜 사랑의 시라는 것은 이미지가 독창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하고 대중가요의 중간쯤 속하는 사랑의 시는 읽어서 그다지 도움이 안되고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데에 재미를 들이기 시작하면 진짜 연애시를 읽는 재미를 못붙일 겁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때 쯤 읽고 감동을 받은 연애시가 있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데요, 김영랑의 '언덕에 바로누워'라는 시입니다.  언덕에 바로 누워  아슬한 푸른 하늘 뜻없이 바래다가  나는 잊었습네 눈물 도는 그 노래를  그 하늘 아슬하여 너무도 아슬하여  이 몸이 서러운 줄 미리사 알았거니  마음의 가는 웃음 한때라도 없더라냐  아슬한 하늘 아래 귀여운 맘 질기운 맘  내 눈은 감기었네 감기었네  이런 시는 대중가요가 못가진, 김영랑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에 대한 이미지 같은 것이 있죠. 그런 것을 찾아내는 즐거움도 시를 읽는 재미중의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요. 시도 대중가요 같은 것이 아니냐.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이게 시가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시와 대중가요를 구별을 못한다면 진짜 연애시를 읽는 재미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독특한 재미가 있는 거죠. 다른 사람이 못해본 사랑을 표현한 시를 읽는 재미도 있죠.  서정주의 '동천'이라는 시도 사실은 연애시입니다.   =============================================================   101. 귀향 / 정공채                           귀향                                         정공채   가을은 고향이다 얼굴도 맑은.   오랜 세월 떠났었던 사람에게도 가을 오면 고향 그리움 애타 오르고 흰 구름의 유랑(流浪)도 이젠 멎어서   마을은 이 저편이 다 화안하고 새들도 반짝대며 날아오른다.   마을 앞 시냇물 흐름마저 침잠(沈潛)해져서 그늘 빛 물 위로 저녁이 오면 달빛도 나직이 가라앉는다.   온갖 벌레 소리 생각에 잦아들고 먼 길도 가까이 와 닿는 가을 청명(淸明)한 고향 길이다.         정공채 연보       1934년 12월 12일 경남 하동 출생       1958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부산일보 기자 입사.       1957년 11월부터 1958년 4월까지 《현대문학》 박두진의 3회 추천으로 등단           등단작 : '종이 운다', '여진', '하늘과 아들'       1959년 제5회 현대문학상 수상       1960년 4.19 최초의 저항시 '하늘이여'를 4월 14일 국제신보 조간 제1면 사설란에 발표.           민족일보사 기자 입사. MBC 제1기 프로듀서.       1963년 장시 '미 8군의 차'를《현대문학》에 전재.       1964년 장시 '미 8군의 차'가 일본의 《문학》, 《제3세계의문학》, 《신일본문학》 등 11곳에 번역 발표.           이 여파로 반공법 위반 내지 반미주의 혐의로 7년간 필화의 고통을 당함.       1979년 첫 시집 《정공채 시집 입습니까》 간행.           제4회 시문학상 수상       1980년 스토리에세이 《비에 젖읍시다》 간행.       1981년 제2시집 《海店》 간행.           제1회 한국문학협회상 수상.       1983년 노천명평전  《우리 노천명》 간행.       1984년 역사소설 항우와 유방  《초한지》 3부작 간행.           전헤린평전  《아! 전혜린》 간행.           정공채 에세이  《너를 위해 빈 가슴을 열며》 간행.       1985년  김삿갓의 시와 인생 《오늘은 어찌하랴》 간행.       1986년 제3시집 《아리랑》, 에밀 졸라의 번안소설 《목조주점》 간행.       1988년 에세이《너무늦은 편지》 간행.       1989년 에세이 《너의 아침에서 나의 저녁까지》, 제4시집 《사람 소리》, 이솝 우화집 《정공채 이솝우화》 간행.       1990년 제5시집 《땅에 글을 쓰다》, 제6시집 《미 8군의 차》 간행.       1997년 예술가의 모습들 《노을에 가다》 간행       1998년 PEN클럽 한국본부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제8회 편운문학상 수상       2000년 한국현대시인협회 명예회장, 제7시집 《새로운 우수》 간행.       2004년 제41회 한국문학상 수상.       2005년 제8회 문예한국대상, 제7회 실송문학상 수상.       2008년도 4월 30일 폐암으로 귀천.   ================================================================   102. 빈등(貧燈)에게 / 정공채                            빈등(貧燈)에게                                              정공채   누가 한 잔 술에 눈물 난다고 했지 어두운 귀로(歸路)에 발걸음이 무거운 사람 산번지(山番地) 높은 달동네 외등. 몇 번씩이고 숨차고 몇 갈래이고 모통잇길을 돌아 오르는 사설(辭說)도 다 지워진 바람의 언저릿길 외등 또 하나 고맙네. 몹시 추운 겨울 밤중에도 떨면서 불 켜고 혼자 저립(佇立)한 이 외등. 아, 고맙고 고맙네 한 잔 술에도 눈물 난다 하였거늘……
961    시인들이여, - 시창작 時 혼신을 다 하라... 댓글:  조회:4802  추천:0  2016-01-10
시를 창작하는 정신과 마음  조태일(시인)  시는 고도의 언어예술이기 때문에 시 창작에는 여기에 뒤따르는 수사적 기교나 방법 등이 당연히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손에서 나오는 재주나 방법상의 기교만으로는 좋은 시를 창작할 수 없는 것이다. 저 고려청자의 깊고 오묘한 아름다움이 단지 도공의 손끝에서 나온 재주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그것을 빚어냈던 도공들의 정신과 마음, 숨결, 더 나아가서는 그의 영혼까지 깃들어 있는 것이다.  탐스러운 장미꽃 한 송이를 피워올리는 데도 땅 속 깊이 숨어 있는 뿌리의 수고로움이 있어야 하며, 진실된 사랑 역시 인간의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정작으로 중요한 것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이며 '보이는 것의 건너편'에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시 창작에서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수사적 장치나 기법도 중요하지만 더더욱 중요한 것은 창작에 투신하는 정신과 마음의 자세다.  맹수의 왕이라고 하는 호랑이가 작은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할 때도 거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며 정신을 집중한다고 한다. 시창작에서도 이러한 정신 자세가 요구된다. 창작에 임하는 마음의 투철함이 없다면 그것은 언어유회로 빠져 버리거나 젊은 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분출 정도로 그쳐 버리게 된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그것이 뿌리 내릴 수 있는 대지가 시원치 않으면 훌륭한 열매를 맺기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시의 씨앗을 뿌려야하는 마음의 밭을 옥토로 가꾸어 두는 일이야말로 시 창작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하겠다.  1.맑은 감성, 그 감성의 창조성  앞에서 "시가 갖는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가 '정서 표현'이다'라는 말을 언급한 바 있다. 정서는 어떠 대상이나 사건, 상황에 대한 경험에서 생겨나는 구체적인 감정의 실마리이며 각 개인마다 지니게 되는 주관적인 의식현상으로서 본능을 기초로 한다.  우리는 무수한 경험들을 쌓아 가면서 그 속에서 끊임없는 감정의 변화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슬픈 영화를 보고 가슴이 미어지는가 하면 이름 모를 꽃의 아름다움 때문에 마음이 환해지기도 하고, 남한테 싫은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불쾌해지기도 한다. 기쁜 것도 기뻐할 줄 모르고 슬픈 것도 슬퍼할 줄 모르는 '목석 같은 사람'도 있지만, 우리들의 대부분은 '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감정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면서 동시에 감성의 동물인 것이다.  감성이란 '느끼는 성질'이다. 우리로 하여금 어떤 대상에 대하여 무수한 감정 반응을 일으키게 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며, 대상으로부터 감각되고 지각되어 하나의 표상을 형성하게 되는 인식능력인 것이다. 따라서 감성은 이성과 함께 우리의 정신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두 개의 큰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동안의 인류역사를 살펴보면 이 감성의 기능이나 중요성보다는 이성의 힘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우위에 놓여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합리주의적 사고와 가치관을 중요하게 여기는 서구사회에 그토록 눈부신 과학의 발전과 산업의 발달을 가져오게 한 것이 이성의 힘이었던 만큼, 이러한 이성의 막강한 능력과 비교해 볼 때 감성은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등한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감성의 중요성이 새롭게 각되기 시작했다.'감성지수'니 '감성교육'이니 하며 감성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생긴 요인은 우리의 사회가 산업화, 기계화, 정보화의 시대에서 이제는 창조화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창조화시대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개인의 창조성이며 창의성이다. 그런데 감성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무한한 창조성의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각 개인마다 독특하게 지니고 있는 고유성이며, 끊임없이 사물과 부딪쳐서 다양함 새로움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성의 창조성이 가장 큰 구실을 하는 곳이 바로 학문이며, 그 중에서도 '시'이다. 감성은 시 창작의 바탕인 것이다. 결코 논리적인 사고나 합리적인 사고가 시를 창작케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사물에 닿아서 시인의 가슴에 구체적이니 감정과 느낌을 생생히 불러일으킬 수 있는 투명한 감성이 시를 낳는 것이다.  막 잎 피어나는  푸른 나무 아래 지나면  왜 이렇게 그대가 보고싶고  그리운지  작은 실가지에 바람이라도 불면  왜 이렇게 나는 그대에게 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지  생각해서 돌아서면  다시 생각나고  암만 그대 떠올려도  목이 마르는  이 푸르러지는 나무아래  -김용택,   시인의 깨어있는 감성은 지금 막 돋아나기 시작하는 어린 이파리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새봄이 와서 새롭게 피어나고 있는 어린 잎들을 보면서 부재중인 그대가 더욱 그립기 때문이다. 그 이파리들의 아름다움이 눈부실수록 이런 고운 봄날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없는 안타까움은 더욱더 간절함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작은 이파리며 실가지들, 또 거기에서 살랑대는 바람 한 점까지도 놓치지 않고서 그것을 통하여 이렇듯 지순한 서정을 샘물처럼 퍼 올릴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시인의 맑은 감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시를 창작하려는 사람들은 이러한 감성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감성의 거울에 비춰지는 사물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여기에는 그 누구의 것도 흉내 내지 않은 자신의 마음이 발견하고 포착한 사물의 모습이 있고 진실이 담겨 있다. 감성은 자신의 진심으로 사물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에는 꾸밈도 없고 거짓말도 없다. 사물에 대한 자기 자신의 대한 자기 진실함의 표현만이 있을 뿐이다.  어린 눈발들이 다른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로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도현, < 겨울 강가에서>  위 시의 감동 역시 따뜻한 감성에서 비롯된다고 할 것이다. 시인은 강에 흰 눈발이 떨어지는 사소한 풍경을 일상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지금 막 지상에서 태어난 듯한-천상에서 금방 내려온 것이므로-어린 눈발들이 강물 속으로 떨어져 속절없이 사라져 가는 모습이 시인의 마음과 강물은 서로 통하고 마침내 강물마저 자기 몸들을 바꾸어 눈의 몸들을 받아 낼 수 있도록 얼음을 깔기 시작했다.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면 당연히 물이 얼게 되고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마저도 얼어버리는 것은 겨울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며, 새삼스레 신기하게 여길 필요조차도 없는 과학적 현상이다. 그러나 어린 눈발들이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안타까워서 겨울 강이 제 스스로 몸을 바꾸어-몸을 바꾼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변화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철저히 변화한다는 것은 지극히 고통스러운 일인 까닭에 참된 사랑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얼음을 깔기 시작했다는 것은 시인의 감성이 발견해 낸 시적 진실인 것이다.  독자들이 위 시에서 감동을 받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시적 진실이다. 이것은 시인의 감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조지훈 시인은 "시적 진실은 예술적 가치로서 정서적 감동이다. 감성으로 받아들이고 감성으로 표현하여 감성에 자극하는 것이 시의 정통적 본질이다."라고 하며 감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시 창작에 있어서 이렇게 중요한 바탕이 되는 감성은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지니고 나오는 선천적인 요소이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이 감성도 다르게 갖고 태어난다. 시를 창작하려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남다른 감성도 다르게 갖고 태어난다. 시를 창작하려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남다른 감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소한 풍경이나 사물일지라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고 거기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경이롭게 여긴다.  그러나 우리들의 얼굴 모습과 인상이 삶의 환경이나 질의 의해서 변화하고 바뀌듯이 타고난 감성도 무수히 변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맑고 순수했던 감성도 삶의 온갖 세파 속에 휩쓸리고 거기에 찌들어 버리면 따라서 함께 흐려지고 탁해진다. 샘물처럼 맑게 솟아나던 그것이 메말라 버리고 굳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탁해지고 메말라 버린 감성으로서는 결코 시를 창작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시를 쓰려는 이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샘물처럼 맑게 솟는 자연스런 감성을 지키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들을 더욱 풍성하게 키워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우리의 오관을 통한 사물의 체험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은 사물에 대한 고정적인 인식, 관습적으로 굳어 버린 인식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물을 처음 대하는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한 동심과 경이로운 마음으로 사물을 보고 느껴야 하는 것이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볼 때마다 내 가슴은 뛰노니, 나 어린 시절에도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에도 마찬가지라니...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노래했던 워드워즈의 시 구절처럼 순진무구하고 자연스런 동심을 자신 마음 속에 영원히 지속시켜 나갈 줄 알아야한다.  다음은 사물이 지닌 미지의 세계에 대하여 탐구하는 마음을 갖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현상을 살피고 관찰하는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고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여기려 든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가시적인 것도 많지만 불가시적 부분들이 더 많다. 그것들이 지닌 의미와 비밀들을 찾아내어서 새로움의 세계를 창조해 내는 것이 창작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들이 지니고 있는 미지의 세계를 믿고 그 안에서 내재된 우주적 질서와 본질을 찾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끝으로 욕심이 없는 겸허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온갖 탐욕이 찬 마음에는 그 욕심만이 자리를 꽉 채우고 있어서 다른 사물들은 들어 올 수가 없다. 또한 마음의 눈이 흐려져서 사물의 모습조차 제대로 바라볼 수도 없게 된다. 맑고 겸허한 마음이 사물의 진정한 모습을 비추고, 끝없는 우주로까지 우리의 영혼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 속에서 사물을 보는 눈은 타성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언제나 생생하고 새롭게 그것들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풍부하게 유지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더욱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감수성이 시 창작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일이다. 물론 시 창작이 감성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감정의 노출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 또한 결핍된 상태로도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엘리어트는 '감수성의 분열'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이것은 시인의 사고와 감정이 서로 통일되고 조화되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시인에게 있어 진정한 감수성이란 지성과 감성, 사고와 감정이 융합되어서 통일을 이룬 상태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를 창작하는 모든 시인들이 언제나 희구하는 정신적 상태인 것이며 시 창작에서 매 순간마다 유지시켜 나가야 할 정신적 태도인 것이다  조태일(시인)  시는 고도의 언어예술이기 때문에 시 창작에는 여기에 뒤따르는 수사적 기교나 방법 등이 당연히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손에서 나오는 재주나 방법상의 기교만으로는 좋은 시를 창작할 수 없는 것이다. 저 고려청자의 깊고 오묘한 아름다움이 단지 도공의 손끝에서 나온 재주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그것을 빚어냈던 도공들의 정신과 마음, 숨결, 더 나아가서는 그의 영혼까지 깃들어 있는 것이다.  탐스러운 장미꽃 한 송이를 피워올리는 데도 땅 속 깊이 숨어 있는 뿌리의 수고로움이 있어야 하며, 진실된 사랑 역시 인간의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정작으로 중요한 것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이며 '보이는 것의 건너편'에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시 창작에서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수사적 장치나 기법도 중요하지만 더더욱 중요한 것은 창작에 투신하는 정신과 마음의 자세다.  맹수의 왕이라고 하는 호랑이가 작은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할 때도 거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며 정신을 집중한다고 한다. 사 창작에서도 이러한 정신 자세가 요구된다. 창작에 임하는 마음의 투철함이 없다면 그것은 언어유회로 빠져 버리거나 젊은 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분출 정도로 그쳐 버리게 된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그것이 뿌리 내릴 수 있는 대지가 시원치 않으면 훌륭한 열매를 맺기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시의 씨앗을 뿌려야하는 마음의 밭을 옥토로 가꾸어 두는 일이야말로 시 창작에 가장 중요한일이라고 하겠다.  1.맑은 감성, 그 감성의 창조성  앞에서 "시가 갖는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가 '정서 표현'이다'라는 말을 언급한 바 있다. 정서는 어떠 대상이나 사건, 상황에 대한 경험에서 생겨나는 구체적인 감정의 실마리이며 각 개인마다 지니게 되는 주관적인 의식현상으로서 본능을 기초로 한다.  우리는 무수한 경험들을 쌓아 가면서 그 속에서 끊임없는 감정의 변화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슬픈 영화를 보고 가슴이 미어지는가 하면 이름 모를 꽃의 아름다움 때문에 마음이 환해지기도 하고, 남한테 싫은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불쾌해지기도 한다. 기쁜 것도 기뻐할 줄 모르고 슬픈 것도 슬퍼할 줄 모르는 '목석 같은 사람'도 있지만, 우리들의 대부분은 '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감정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면서 동시에 감성의 동물인 것이다.  감성이란 '느끼는 성질'이다. 우리로 하여금 어떤 대상에 대하여 무수한 감정 반응을 일으키게 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며, 대상으로부터 감각되고 지각되어 하나의 표상을 형성하게 되는 인식능력인 것이다. 따라서 감성은 이성과 함께 우리의 정신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두 개의 큰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동안의 인류역사를 살펴보면 이 감성의 기능이나 중요성보다는 이성의 힘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우위에 놓여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합리주의적 사고와 가치관을 중요하게 여기는 서구사회에 그토록 눈부신 과학의 발전과 산업의 발달을 가져오게 한 것이 이성의 힘이었던 만큼, 이러한 이성의 막강한 능력과 비교해 볼 때 감성은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등한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감성의 중요성이 새롭게 각되기 시작했다.'감성지수'니 '감성교육'이니 하며 감성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생긴 요인은 우리의 사회가 산업화, 기계화, 정보화의 시대에서 이제는 창조화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창조화시대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개인의 창조성이며 창의성이다. 그런데 감성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무한한 창조성의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각 개인마다 독특하게 지니고 있는 고유성이며, 끊임없이 사물과 부딪쳐서 다양함 새로움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성의 창조성이 가장 큰 구실을 하는 곳이 바로 학문이며, 그 중에서도 '시'이다. 감성은 시 창작의 바탕인 것이다. 결코 논리적인 사고나 합리적인 사고가 시를 창작케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사물에 닿아서 시인의 가슴에 구체적이니 감정과 느낌을 생생히 불러일으킬 수 있는 투명한 감성이 시를 낳는 것이다.  막 잎 피어나는  푸른 나무 아래 지나면  왜 이렇게 그대가 보고싶고  그리운지  작은 실가지에 바람이라도 불면  왜 이렇게 나는 그대에게 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지  생각해서 돌아서면  다시 생각나고  암만 그대 떠올려도  목이 마르는  이 푸르러지는 나무아래  -김용택,   시인의 깨어있는 감성은 지금 막 돋아나기 시작하는 어린 이파리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새봄이 와서 새롭게 피어나고 있는 어린 잎들을 보면서 부재중인 그대가 더욱 그립기 때문이다. 그 이파리들의 아름다움이 눈부실수록 이런 고운 봄날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없는 안타까움은 더욱더 간절함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작은 이파리며 실가지들, 또 거기에서 살랑대는 바람 한 점까지도 놓치지 않고서 그것을 통하여 이렇듯 지순한 서정을 샘물처럼 퍼 올릴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시인의 맑은 감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시를 창작하려는 사람들은 이러한 감성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감성의 거울에 비춰지는 사물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여기에는 그 누구의 것도 흉내 내지 않은 자신의 마음이 발견하고 포착한 사물의 모습이 있고 진실이 담겨 있다. 감성은 자신의 진심으로 사물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에는 꾸밈도 없고 거짓말도 없다. 사물에 대한 자기 자신의 대한 자기 진실함의 표현만이 있을 뿐이다.  어린 눈발들이 다른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로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도현, < 겨울 강가에서>  위 시의 감동 역시 따뜻한 감성에서 비롯된다고 할 것이다. 시인은 강에 흰 눈발이 떨어지는 사소한 풍경을 일상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지금 막 지상에서 태어난 듯한-천상에서 금방 내려온 것이므로-어린 눈발들이 강물 속으로 떨어져 속절없이 사라져 가는 모습이 시인의 마음과 강물은 서로 통하고 마침내 강물마저 자기 몸들을 바꾸어 눈의 몸들을 받아 낼 수 있도록 얼음을 깔기 시작했다.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면 당연히 물이 얼게 되고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마저도 얼어버리는 것은 겨울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며, 새삼스레 신기하게 여길 필요조차도 없는 과학적 현상이다. 그러나 어린 눈발들이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안타까워서 겨울 강이 제 스스로 몸을 바꾸어-몸을 바꾼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변화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철저히 변화한다는 것은 지극히 고통스러운 일인 까닭에 참된 사랑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얼음을 깔기 시작했다는 것은 시인의 감성이 발견해 낸 시적 진실인 것이다.  독자들이 위 시에서 감동을 받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시적 진실이다. 이것은 시인의 감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조지훈 시인은 "시적 진실은 예술적 가치로서 정서적 감동이다. 감성으로 받아들이고 감성으로 표현하여 감성에 자극하는 것이 시의 정통적 본질이다."라고 하며 감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시 창작에 있어서 이렇게 중요한 바탕이 되는 감성은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지니고 나오는 선천적인 요소이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이 감성도 다르게 갖고 태어난다. 시를 창작하려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남다른 감성도 다르게 갖고 태어난다. 시를 창작하려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남다른 감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소한 풍경이나 사물일지라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고 거기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경이롭게 여긴다.  그러나 우리들의 얼굴 모습과 인상이 삶의 환경이나 질의 의해서 변화하고 바뀌듯이 타고난 감성도 무수히 변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맑고 순수했던 감성도 삶의 온갖 세파 속에 휩쓸리고 거기에 찌들어 버리면 따라서 함께 흐려지고 탁해진다. 샘물처럼 맑게 솟아나던 그것이 메말라 버리고 굳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탁해지고 메말라 버린 감성으로서는 결코 시를 창작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시를 쓰려는 이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샘물처럼 맑게 솟는 자연스런 감성을 지키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들을 더욱 풍성하게 키워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우리의 오관을 통한 사물의 체험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은 사물에 대한 고정적인 인식, 관습적으로 굳어 버린 인식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물을 처음 대하는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한 동심과 경이로운 마음으로 사물을 보고 느껴야 하는 것이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볼 때마다 내 가슴은 뛰노니, 나 어린 시절에도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에도 마찬가지라니...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노래했던 워드워즈의 시 구절처럼 순진무구하고 자연스런 동심을 자신 마음 속에 영원히 지속시켜 나갈 줄 알아야한다.  다음은 사물이 지닌 미지의 세계에 대하여 탐구하는 마음을 갖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현상을 살피고 관찰하는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고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여기려 든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가시적인 것도 많지만 불가시적 부분들이 더 많다. 그것들이 지닌 의미와 비밀들을 찾아내어서 새로움의 세계를 창조해 내는 것이 창작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들이 지니고 있는 미지의 세계를 믿고 그 안에서 내재된 우주적 질서와 본질을 찾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끝으로 욕심이 없는 겸허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온갖 탐욕이 찬 마음에는 그 욕심만이 자리를 꽉 채우고 있어서 다른 사물들은 들어 올 수가 없다. 또한 마음의 눈이 흐려져서 사물의 모습조차 제대로 바라볼 수도 없게 된다. 맑고 겸허한 마음이 사물의 진정한 모습을 비추고, 끝없는 우주로까지 우리의 영혼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 속에서 사물을 보는 눈은 타성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언제나 생생하고 새롭게 그것들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풍부하게 유지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더욱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감수성이 시 창작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일이다. 물론 시 창작이 감성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감정의 노출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 또한 결핍된 상태로도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엘리어트는 '감수성의 분열'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이것은 시인의 사고와 감정이 서로 통일되고 조화되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시인에게 있어 진정한 감수성이란 지성과 감성, 사고와 감정이 융합되어서 통일을 이룬 상태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를 창작하는 모든 시인들이 언제나 희구하는 정신적 상태인 것이며 시 창작에서 매 순간마다 유지시켜 나가야 할 정신적 태도인 것이다  ===============================================================   100. 동백꽃 / 김완하             동백꽃                                                       김완하     그대에게 나누어줄 고통도 없이   내가 그대에게 바칠 아픔 한 점 없이   이 봄이 진다는 것은   참으로 서러운 일이다   물소리 제 살을 저미고   이웃마을 개가 짖을 때   동백은 어둠 속으로 떨어지며   딱, 한 번 소리를 낸다   그 소리로 땅을 적신다       김완하 시집 ‘허공이 키우는 나무’ 중에서    
960    공부하지 않는 시인들이 문제는 문제로다... 댓글:  조회:4553  추천:0  2016-01-10
[ 2016년 01월 11일 08시 32분 ]         창작의 기본 태도  백현국 (시인. 비평가)       많은 작품들이 인터넷상에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그 습작의 수준은 놀라운 수준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습작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의 창작에 대한 막연한 자신감과 독단적인 태도일 것이다.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문학의 각종 이론과 원론에 대한 견해의 충돌과정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각 시대나 사조, 철학이나 이데올로기의 변화에 따라 문학이 어떠한 노선을 어떻게 걸어왔는가를 배우게 된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과거의 문학적 환경 이해와 문학자들의 행태에 대하여 배우게 되고 나아가 현실에 처한 시인들은 철저한 자기만의 독특한 인식을 작품에 반영하게 된다. 그 인식이란 바로 자신이 처한 현실과 시스템, 그리고 세계관을 새롭게 해석해 내는 힘을 말한다. 각 사이트를 돌아보면서 느끼는 것은 일부 습작들과 일부 기성 시인들의 작품 속에는 다음과 같은 안타까움이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는 내용이 너무 단순성이다. 내용이 창의적이지 못할 경우에는 아무리 시를 잘 썼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는 반감된다고 볼 수 있다. 꽃을 아름답다고 한 시는 시라기 보다 서술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물을 보고 누구나 같은 감성으로 쓰는 것, 그리고 문학적 언어의 측면이 무시된 시어의 구사 등으로 쓴 작품은 내용의 있어 참신성이 없는 글이 되는 만큼 감동을 주지 못한다. 이는 내용에 있어 창의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자신만의 문학세계로 발전시키지 못하면 아류가 되기 쉽다. 비록 글은 세련되지 못하여도 내용은 아주 감동적일 수 있는 작품을 쓰는 것을 말함이다. 깊이를 주지 못하면 가장 유혹 받기 쉬운 것이 바로 형식의 난해다.  둘째는 개인의 총체적인 사유가 뒷받침 되지 않은 작품이다. 깊은 사유의 틀에서 출발 되지 않은 것들은 대부분 말비틀기 즉 언어의 유희적인 측면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시 자체가 가볍게 느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어의 효과음이나 언어의 모사 이미지의 변용은 심각한 오류를 낳게 된다. 깊은 사유란 곧 자신이 갖고 있는 세계관이고 보면 그 세계관이 어느 날 문득 깨달아지는 선禪적인 깨달음과는 다른 것이다. 방대한 독서량과 깊은 천착으로 나타날 문제라는 것이다. 일부 시인들은 자신이 처한 세계관을 해석해 낼만한 사유의 틀이 없어서 오히려 왜곡된 사상寫像과 일탈된 시스템에 역이용 당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식민지를 겪고 독재를 겪은 우리 문학계에 그리고 자본의 논리에 함몰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는 것이다.  셋째는 구체성이나 정확성이 결여된 나머지 관념적인 시를 쓰는 경우이다. 관념이란 개별 시인의 독특한 세계관을 드러내는 아주 요긴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념이란 적절한 시어와 효과적인 비유나 상징에 장애요소이다. 자신의 관념을 시로 옮겨 쓰다보면 각 이미지간 연결이나 시작 속에 나타나야 하는 종결의 거리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관념을 시로 옮기면 알 수 없는 시어들이 혼란스럽게 배치되는 데, 이는 무질서한 시어의 남발이나 무의미를 조장하게 된다. 자신은 자신의 시를 알 수 있으나 독자는 그 시를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형이상학적인 말만 늘어놓고 아주 수준이 높다는 것을 스스로 강요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모호한 표현의 문제요 적절치 않은 시어의 사용이다. 시어를 사용함에 있어 이 시어의 사용이 적절한지, 정확한지는 반드시 따져보고 써야 한다.  넷째는 자기만 감동시키는 시는 독자를 감동시키지 못한다는 문제이다. 습작이 시인의 주관적인 정서에 그치고 말면 독자가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다. 글을 쓴다는 것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습작을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러한 토로는 자신의 감정을 순화시킬지는 모르나 독자들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억지로 끌고 가 마침내 독자의 감성을 박탈시키는 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작을 하는 이들은 대체로 보여주고 싶은 시가 주류가 된다. 보여주고 싶은 시란 결국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 쪽으로 가게 되는데 결국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시로 가게 된다. 심지어는 자신의 컴플렉스를 습작을 통해 폭력적으로 드러내기도 하는데 이는 분명 글의 폭력이다. 남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습작을 할 필요가 없다.  다섯째 공부하지 않는 습작 시인의 문제이다. 습작은 글의 기교적 측면을 배운다는 것이 아니다. 습작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보고, 그들의 작품성에 대한 배경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자신의 글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이상 절대 훌륭한 시를 쓸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시 창작에 관한 공부와 사조 그리고 문학의 개론서 정도는 독파를 하고서야 습작을 하라는 얘기다. 인간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세상에서 시를 쓰지 않는 한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작의 문제보다 모작을 방지하는 문제로 먼저 인식해야 한다. 일부 시인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과 쓰고 싶은 글은 모두 작품이다” 라는 얼토당토 않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이러한 글은 비평조차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여섯째 작품은 구조성이 중요하다. 흔히 문학 작품의 내용구조를 건축물에 비유한다. 건축물에는 그 건물을 지탱하는 철골구조가 대단히 중요하듯 작품에도 구조의 중요성은 중요하다. 작품은 일종의 구조를 갖는다. 일자시가 아닌 이상 반드시 처음/중간/끝이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구조가 부실하면 시로써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말한다. 작품의 전개상 기승전결이나 서/본/결이 단단하지 못할 때, 작품의 질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발전적으로 전개하던지, 하강하던지, 아니면 처음과 끝이 연결되도록 장치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각 내용과 각 연들의 내용이 서로 관련성이 없을수록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보면 된다. 습작을 하는 분들의 가장 큰 문제가 이러한 연결 구조를 잘 정리하지 못하는 문제를 자주 본다.  끝으로 습작은 습작이다. 습작이란 수정을 요하는 작업이라는 뜻이다. 계속적인 습작에 대한 수정과 보완을 통하여 발표되어야 한다. 발표란 세상에 내놓는 것이고 보면 자신의 작품이 영원히 세상에 남는다는 뜻도 된다. 이는 독자들은 물론 평자들의 평가를 영원히 피할 수 없다는 뜻도 된다. 한 때 이미 작고한 시인들의 미발표 시작을 공개하고 책으로 낸 경우가 있었다. 이것은 그 시인을 욕보인 뜻이기도 하다. 피치 못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완성작으로 내놓지 않는 이상 미발표작을 공개하는 것이 얼마나 그 시인의 평가에 악영향을 끼쳤는가는 한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창작이란 늘 자신의 부끄러운 속살을 보이는 아픈 작업이어야 한다는 말은 결코 심한 말은 아니라고 본다.   백현국 詩人 평론가   경북 영천 출생 계간 현대시문학 평론 당선 東國大 國文, 嶺南大 大學院  제 1회 랭보 문학상(작가상)을 수상   ===================================================================== 98. 허공에 매달려보다 / 김완하                     허공에 매달려보다                                                    김완하   곶감 먹다가 허공을 생각한다 우리 일생의 한 자락도 이렇게 달콤한 육질로 남을 수 있을까 얼었다 풀리는 시간만큼 몸은 달고 기다려온 만큼 빛깔 이리 고운 것인가   맨몸으로 빈 가지에 낭창거리더니, 단단하고 떫은 시간의 비탈 벗어나 누군가의 손길에 이끌려 또다시 허공에 몸을 다는 시간   너를 향한 나의 기다림도 이와 같이 익어갈 수 없는 것일까 내가 너에게 건네는 말들도 이처럼 고운 빛깔일 수 없는 것일까   곶감 먹다가 허공을 바라본다 공중에 나를 매달아본다 보이지 않는 힘으로 감싸는 빈 손 내 몸 말랑말랑 달콤해진다     김완하 시집 '허공이 키우는 나무'중에서     =====================================================================     99. 물 / 김완하             물                                               김완하   길 따라 흐르며 그 길 가득 채우는 또 하나의 길 시간과 하나 되는 물이여 절대 뒤돌아서지 않는, 길이여 길 위로 흐르면서 이미 길이 아닌 하나의 길을 비워 내 다시 길을 여는 저 물의 길     김완하 시집 '허공이 키우는 나무'중에서               시를 잘 쓰기 위한 10가지 방법 이승하 (시인, 교수)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원 여러분!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문학을 좋아하는 많은 애독자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의 모국 대한민국의 많은 시인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시인입니다. 이 자리에는 저처럼 시를 쓰면서 이 이승에서의 삶을 꾸려가는 분들이 많이 와 계신 것으로 압니다. 지금 여러분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저의 가장 큰 소망은 지금까지 썼던 그 어떤 시보다 더 좋은 시를 쓰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단 한 편이라도 길이 남을 명시를 쓰고 싶은 소망 때문에 낮에는 전전긍긍하고 밤에는 전전반측하지 않습니까.  이 자리에 와서 여러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드리는 것이 시를 쓰고 계신 여러분께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 여러 날 고민을 했습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좋은 시를 쓰기 위한 방법 10가지 전수입니다. 제가 1984년에 등단한 이후 지금까지 7권의 시집을 내면서, 또 1992년부터 대학 강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시작법을 가르치면서 익힌 노하우를 전해 드리는 것으로 강연을 대신할까 합니다. 거창한 강연이 아니라 아주 소박한 내용이어서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과 함께 시를 감상하면서, 좋은 시를 쓰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제가 인용하는 시는 졸저 {백 년 후에 읽고 싶은 백 편의 시}(시와시학사)에서 다루었던 것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즉, 그 책을 통해 했던 말을 중심으로 강연을 해볼까 합니다.  1. 시는 우리말의 보물창고이다 여러분과 함께 감상해 볼 첫 번째의 시는 김진완이란 젊은 시인의 등단작인 [기찬 딸]입니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증기기관차가 달리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꽤나 옛날 일이겠지요. 시적 화자의 외할머니가 딸을, 즉 자신의 어머니를 분만하는데, 바로 그 장소가 달리는 기차 속이었습니다.  다혜자는 엄마 이름. 귀가 얼어 톡 건들면 쨍그랑 깨져버릴 듯 그 추운 겨울 어데로 왜 갔던고는 담 기회에 하고, 엄마를 가져 싸아한 진통이 시작된 엄마의 엄마가 꼬옥 배를 감싸쥔 곳은 기차 안. 놀란 외할아버지 뚤레뚤레 돌아보니 졸음 겨운 눈, 붉은 코, 갈라터진 입술들뿐이었는데 글쎄 그게, 엄마 뱃속에서 물구나무를 한번 서자, 으왁! 눈 휘둥그런 아낙들이 서둘러 겉치마를 벗어 막을 치자 남정네들 기차 배창시 안에서 기차보다도 빨리 '뜨신 물 뜨신 물' 달리기 시작하고 기적소린지 엄마의 엄마 힘쓰는 소린지 딱 기가 막힌 외할아버지 다리는 후들거리기 시작인데요, 아낙들 생침을 연신 바르는 입술로 '조금만, 조금만 더어' 애가 말라 쥐어트는 목소리의 막간으로 남정네들도 끙차, 생똥을 싸는데 남사시럽고 아프고 춥고 떨리는 거기서 엄마 에라 나도 몰라 으왕! 터지는 울음일 수밖에요. 박수 박수 "욕 봤데이." 외할아버지가 태우신 담배꽁초 수북한 통로에 벙거지가 천정을 향해 입 딱 벌리고 다믄 얼마라도 보태 미역 한 줄거리 해 먹이자, 엄마를 받은 두꺼비상 예편네가 피도 덜 닦은 손으로 치마를 걷자 너도나도 산모보다 더 경황없고 어찌할 바 모르고 고개만 연신 주억였던 건 객지라고 주눅든 외할아버지 짠한 마음이었음에랴 두말하면 숨가쁘겠구요. 암튼 그리하야 엄마의 이름 석 자는 여러 사람들의 은혜를 입어 태어났다고 즉석에서 지어진 것이라. 多惠子. 성원에 보답코자  하는 마음은 맘에만 가득할 뿐 빌린 돈 이자에 치여 만성두통에 시달리는 나의 엄마 다혜자씨는요, 칙칙폭폭 칙칙폭폭 끓어오르는 부아를 소주 한잔으로 다스릴 줄도 알아 "암만 그렇다 캐도 문디, 베라묵을 것. 몸만 건강하모 희망은 있다."  여장부지요 기찬, 기―차― 안 딸이거든요. ―김진완, [기찬 딸] 전문 (창작과비평. 1993년 여름호 신인당선작) 승객이라고는 "졸음 겨운 눈, 붉은 코, 갈라터진 입술"을 가진 농투성이들뿐이지만 이들은 낯선 아주머니의 차내 분만에 한마음으로 동참합니다. 아낙들은 겉치마를 벗어 막을 치고, 남정네들은 뜨신 물을 구해오고, "벙거지"는 미역 살 돈을 내놓고, 두꺼비상 여편네는 산파 노릇을 해 무사히 한 생명은 "으왕!" 울음을 터뜨리며 탄생합니다. 이런 여러 사람의 은혜로 태어났다 하여 엄마 이름이 다혜자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마지막 3연이 보여주는 여성적, 혹은 모성적인 건강함은 가슴 훈훈한 감동을 전하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또한 꽤 긴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1연과 3연 사이에 위치한 "으왁!"이란 의성어가 환기하는 생명 탄생의 고통과 경이로움, "기찬"과 "기―차― 안"이라는 비슷한 음을 이용한 유머 센스 등은 이 시를 명작의 반열에 올리는 데 합심하여 공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이 시의 가장 큰 매력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오신 어머니가 소주 한잔 마시고 내뱉는 말, "암만 그렇다 캐도 문디, 베라묵을 것. 몸만 건강하모 희망은 있다."에 있습니다. 참 한국적인 말이라고 할까요, 서민적인 말이라고 할까요. 어머니의 힘, 아니 한국 아줌마의 힘을 나타내는 그 말이 사투리가 아니라 표준말도 되어 있다면 이 시의 맛은 반 이상 줄어들 것입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면 시야말로 사투리와 순우리말의 보물창고라는 생각을 합니다. 소월과 영랑이, 백석과 정지용이 왜 위대한 시인인가 하면 한국적인 정서를 한국적인 어투와 어조, 사투리와 순우리말로 표현해내는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질료인 언어를 구사할 때, 사투리와 순우리말이 지금은 쓰지도 않는 낡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잘 찾아내어 시에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역만리에서 모국어를 구사하는 문화의 파수꾼이며 창고지기입니다. 언어 학대가 시인의 특권인 양 언어를 못살게 구는 시인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왜 미국에서 살면서 모국어로 시를 쓰고 있습니까? 몸은 비록 미국에 있지만 시인인 이상 모국어를 잘 갈고 닦는 언어의 세공사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2. 시는 특이한 체험의 산물이다 김광림이란 시인이 있지요. 1929년생이시니 올해 연세가 일흔여섯입니다. 함경남도 원상 출생이신 시인은 이른바 이산가족의 일원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가운데 남북분단의 아픔을 남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계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시가 전개되는데, 시인이 겪었던 일이 어떤 영감이나 상상력, 혹은 비유와 상징의 도움 없이 그야말로 곧이곧대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혈압 때문에 술을 끊어야겠다고 결심한 중학 동창은 마지막 대작을 위해 일부러 나를 찾았단다 반세기가 넘어도 상기 '야' '자'로 통하는 사이가 마냥 즐겁기만 하다. 한때는 혀가 굳어져 제대로 말도 못했다며 다시 굳어지기 전에 꼭 해야겠다고 느닷없이 들고 나온 한마디 ----야, 너 집 떠날 때 아버지한테 얘기했니? 국회 청문회인들 이보다 더 가슴에 맺힐까 간신히 기어드는 목소리로 ----아니 라고 대꾸하긴 했지만 금방 가슴속의 응어리가 터질 것만 같다. ----이 자슥아! 너 아버지가 누이동생을 앞세워 우리 집에 찾아오셨단 말야 너 어디 갔느냐고 물으시길래 나도 놀랐지 무슨 말씀이냐고 되물었지만…… ……'제 에미도 동생들도 다 모른다니 이놈이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야' 걱정이 태산 같으시더라. 하긴 그래 어머니는 자식이 잘 되는 일이라면 무슨 짓인들 말렸을까 남행열차를 탄 내게 마냥 손을 흔들어쌌던 누이의 모습이 지금도 삼삼한데 아버지의 노여움에 모두가 모른다고 잡아뗀 모양이다. ----야 이 자슥아 정신차려 올해 부모님 춘추 어떻게 되시니 기세가 등등해진 녀석은  취기까지 가세하여 사뭇 심문조다. ----그래 아버지가 나를 스물하나에 어머니가 열아홉에 두셨으니까 여든여덟에 여든여섯이 되셨을 거야. 그만 울먹이는 소리가 돼버렸는지 '야' '자' 하던 친구가 ----내가 괜한 소리 했나보다 ----아냐 잘했어 내 따귀 실컷 갈겨주지 않을래 이승에선 다시 못 뵈올 부모님 생각에 기어이 울음보를 터뜨리고 싶어 상기된 얼굴을 들이대자 이번엔 '야' '자'가 잘못 눈물단지 건드렸나 싶었던지 시무룩한 목소리로 ----아무래도 내가 괜한 소리 했나보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있는 것을 어쩌랴. ―김광림, [괜한 소리] 전문 제목 '괜한 소리'는 혈압 때문에 술을 끊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마지막 대작을 위해 찾아온 중학 동창의 입에서 나온 두 가지 질문인 동시에, 시인 스스로 자신의 대답을 '괜한 소리'로 규정한 자탄의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동창생 노인은 마지막 대작이겠다, 술을 마신 김에 평소에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 있어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자 늙은 시인 친구는 울먹이는 소리로 대답하고, 급기야 울음보를 터뜨릴 듯 상기된 얼굴이 됩니다. 그러자 노인은 "아무래도 내가 괜한 소리 했나보다"라고 시무룩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려 시의 제목이 '괜한 소리'가 된 것이겠지요.  두 가지 질문은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을 치고, 쓰리게 하고, 결국은 뜨겁게 달아오르게 해 눈시울까지 뜨거워집니다. 수백만 이산가족의 아픔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물음은 "야, 너 집 떠날 때 아버지한테 얘기했니?"입니다. 청년 김광림은 아버지한테 탈향(脫鄕)의 이유를, 이향(離鄕)의 전말을 말씀드리지 않고서 남행 열차에 몸을 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종적을 감춘 아들의 소식을 알아보고자 딸을 앞세워 아들 친구의 집을 찾아 나섭니다. 시인인들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날 귀향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말씀드리지 않았지, 그것이 영원한 생이별의 순간임을 알았더라면 작별의 인사도 고하지 않고 떠나왔겠습니까. "걱정이 태산 같으시더라." 이 한 행 속에는 아버지의 정이 소복이 담겨 있는 정도가 아니라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흘러 넘치는 그 부정(父情)이 독자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야 이 자슥아 정신차려/올해 부모님 춘추 어떻게 되시니"입니다. 마지막 대작을 위해 찾아온 친구는 일신의 안전을 위해, 혹은 시를 쓰겠다고 아버지한테 말씀도 안 드리고 고향을 떠난 시인 친구를 공박하며, 살아 계시면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냐고 묻습니다. 시인은 "그래 아버지가 나를 스물하나에 어머니가 열아홉에 두셨으니까 여든여덟에 여든여섯이 되셨을 거야"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 속에는 살아 계실 확률보다는 돌아가셨을 확률이 훨씬 더 높다는 암시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앞쪽에서 "국회 청문회인들 이보다 더 가슴에 맺힐까"라고 자탄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뒤에 가서는 "내 따귀 실컷 갈겨주지 않을래"라고 자학하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시는 별다른 시적 기교를 동원하지 않고서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것을 솔직히 털어놓아 깊은 감동을 준 경우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 가운데 가슴아픈 경험이 있으면 솔직하게 고백해보십시오. 수치심을 동반한 기억도 좋습니다. 그 체험이 소소한 것이건 대단한 것이건 체험은 여러분이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학적 자산입니다.   ==================================================================================   210. 산정묘지 1 / 조정권                           산정묘지 1 山頂墓地 1                                   조정권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山頂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天上의 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 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하나의 형상 역시 누군가 막대기로 후려치지 않는 한 다른 형상을 취하지 못하리. 육신이란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 것. 헛된 휴식과 잠 속에서의 방황의 나날들. 나의 영혼이 이 침묵 속에서 손뼉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면 어느 형상도 다시 꿈꾸지 않으리. 지금은 결빙하는 계절, 밤이 되면 뭍과 물이 서로 끌어당기며 결빙의 노래를 내 발밑에서 들려주리.   여름 내내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하여 계곡을 울리며 폭포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들은 얼어붙어 있다. 계곡과 계곡 사이 잔뜩 엎드려 있는 얼음덩어리들은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해 있다. 결빙의 바람이여, 내 핏줄 속으로 회오리치라. 나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나의 전신을 관통하라. 점령하라. 도취하게 하라. 山頂의 새들은 마른 나무 꼭대기 위에서 날개를 접은 채 도취의 시간을 꿈꾸고 열매들은 마른 씨앗 몇 개로 남아 껍데기 속에서 도취하고 있다. 여름 내내 빗방울과 입 맞추던 뿌리는 얼어붙은 바위 옆에서 흙을 물어뜯으며 제 이빨에 도취하고 바위는 우둔스런 제 무게에 도취하여 스스로 기쁨에 떨고 있다.   보라, 바위는 스스로의 무거운 등짐에 스스로 도취하고 있다. 허나 하늘은 허공에 바쳐진 무수한 가슴 무수한 가슴들이 소거(消去)된 허공으로, 무수한 손목들이 촛불을 바치면서 빛의 축복이 쌓인 裸木의 계단을 오르지 않았는가. 정결한 씨앗을 품은 불꽃을 天上의 계단마다 하나씩 바치면서 나의 눈은 도취의 시간을 꿈꾸지 않았는가. 나의 시간은 오히려 눈부신 성숙의 무게로 침잠하며 하강하지 않았는가. 밤이여, 이제 출동명령을 내리라. 좀 더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나의 핏줄을 나의 뼈를 점령하라, 압도하라, 관통하라. 한때는 눈비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한때는 바람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그리고 다시 한때는 물과 불의 형상으로 오던 나날의 어둠. 그 어둠 속에서 헛된 휴식과 오랜 기다림 지치고 지친 자의 불면의 밤을 내 나날의 인력으로 맞이하지 않았던가. 어둠은 존재의 處所에 뿌려진 生木의 향기 나의 영혼은 그 향기 속에 얼마나 적셔 두길 갈망해 왔던가. 내 영혼이 나 자신에게 축복을 주는 휘황한 白夜를 내 얼마나 꿈꾸어 왔던가.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 영혼이 그 위를 지긋이 내려 누르지 않는다면.     조정권 시집 < 산정묘지 > 중에서     ----------------------------------------------------------   211. 근성 / 조정권                         근성                                   조정권   배추를 뽑아 보면서 안쓰럽게 버티다가 뽑혀져 나온 뿌리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뿌리들이 여지껏 흙 속에서 악착스럽게 힘을 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뿌리는 결국 제 몸통을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배추를 뽑아 보면서 이렇게 많은 몸뚱이들이 제각기 제 뿌리를 데리고 나옴을 볼 때 뿌리들이 모두 떠난 흙의 숙연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배추는 뽑히더라도 뿌리는 악착스러우리만큼 흙의 혈을 물고 나온다 부러지거나 끊어진 뿌리에 묻어 있는 피 이놈들은 어둠 속에서 흙의 육을 물어뜯고 있었나 보다 이놈들은 흙 속에서 버티다가 버티다가 제 하반신을 독하게 스스로 잘라 버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뽑혀지는 것은 절대로 뿌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뽑혀지더라도 흙 속에는 아직도 뽑혀지지 않은 그 무엇이 악착스럽게 붙어있다 흙의 육을 이빨로 물어뜯은 채     조정권 시집 < 산정묘지 > 중에서
959    시인들이여, - 시작메모를 하라... 댓글:  조회:4736  추천:0  2016-01-10
시와 이미지  하 재 영  오늘 이미지(Image)란 주제는 어쩌면 감당하기 힘든 내용이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미지는 모든 종류의 예술에 마치 한약방의 감초처럼 끼지 않으면 안될 용어입니다. 그림, 조각, 사진, 춤, 음악, 하물며 스포츠에서도 이미지는 작품성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독자, 청중들에게 전해지는, 그리하여 느끼게끔 하는 그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특히 시를 공부하는 한 과정에 필수조건으로 ‘이미지’가 들어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기 때문에 커리큐럼 속에 ‘이미지’를 넣은 것 같습니다.  이미지에 대한 언어적 개념을 파악한 후, 시인은 시속에 이미지를 어떻게 담고 있으며, 여러분이 시를 쓸 때, 시의 이미지 처리를 어떻게 끌고 나가야 할 것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지를 사전적 의미로 파악해보자면 ‘형상. 영상 또는 마음속에 그리는 상. 심상’입니다. 즉 우리가 겪은 여러 체험의 관념이나 정서를 사물로 바꿔 보여주는 형태를 이미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원래 심리학의 용어로 ‘머리에 떠오른 것으로서 감각적 성질을 지닌 것’ 이라 정의되기도 했습니다.  문예사조의 한 분야에 반영된 이미지즘(Imagism) 은 제 1차 세계 대전 말기로부터 재래된 전통적 시풍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영국과 미국의 시인들이 일으킨 신시 모더니즘 운동을 말합니다. 시각적 효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 그룹은 영상의 색채와 율동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애매한 일반 개념을 피하여 일상 적확한 용어로 새로운 운율을 창조하려 한 데에 특징이 있습니다. 문학의 갈래에서 이러한 작품을 쓴 사람들을 ‘이미지스트’라 말합니다.  좀 더 깊이 이야기하자면 이미지스트(Imagist)는 1912년 에즈라 파운드에 의해 형식화된 시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일단의 영미시인들을 일컫습니다. 당시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할 수 있는 감정의 표현을 최대한 작품에 반영하는, 즉 풍미했던 방만한 사고방식과 낭만주의적 낙관론에 반기를 든 T. E. 흄의 비판적 견해에 고무되어, 파운드 이외에도 동료 시인인 힐다 둘리틀, 리처드 알링턴, F.S.플린트 등이 이미지스트의 대표적 인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시인들의 특징은 정확한 시각적 이미지가 시적 표현의 전부를 이루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명료하고 딱딱한 형식의 간결한 시를 썼습니다. 이미지즘은 프랑스의 상징주의 운동을 이어받은 것이었으나, 상징주의가 음악과 유사성을 지닌 반면 이미지즘은 조각과의 유사성을 추구했습니다.  후일 이미지스트라 일컫는 알링턴(R.Aldington)이 쓰고 로우얼(Amy Lowell)이 수정한 ‘이미지즘 선언’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1. 일상어 사용, 수식적인 말은 사용하지 말 것  2. 새로운 창조의 표현으로써 새로운 리듬을 창조할 것. 새로운 운율은 새로운 사상을 추구.  3. 주제의 선택을 절대로 자유롭게 할 것.  4. 막연하고 보편적인 것을 사용하지 말고, 명확하고 정확하게 표현할 것.  5. 조각같이 확고하고, 눈에 명백히 보이는 시를 지을 것  6. 긴축(집중)의 시가 정수임을 명심할 것.  여기서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이미지란 개념이 들어온 이후 이미지스트들에 의해 씌여지는 시는 어떤 것이 있나 짚어보고자 합니다. 우리 문학사에 김기림이라는 시인, 평론가가 있습니다.  1930년대 일본에서 신학문을 접한 이 시인에 의하면  『시인의 정신의 포즈는 대체로 세 가지로 가정할 수 있다.  1. 내 자신을 노려봄.  2. 나에게 반영된 세계를 굽어봄.  3. 나를 통하여 세계를 바라봄.  이미지스트 이전의 모든 유파와 시인의 정신적 포즈는 대체로 1의 것이었다. 이미지스트의 정신적 포즈는 제 2의 것이었다. 』  김기림의 시론 ‘시인의 정신의 포즈’에서  작품 한 편 감상하면서 우리는 이미지에 조금 더 접근토록 하겠습니다.  정한모의 ‘아가’란 시를 분석하기 위해 쓴 아래 평론을 통해 이미지에 대한 접근은 보다 용이해집니다.  『이미지가 한 시에 있어서 얼마나 큰 비중을 지니는가 하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쉽게 이미지스트라고 부를 만한 뛰어난 시인들(박남수,김광림같은)과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미지 시론의 암시를 담은 시이며 대표적 시의 하나로 소개되는 흄의 ‘가을’을 읽을 때면 발언된 물상으로서가 아니라 시각적 상징에 머물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A touch of cold in the Autumn night - 가을밤의 싸늘한 감촉.  I walked abroad, 나는 밖을 걷고 있다.  And saw the ruddy moon lean over a hedge 불그스름한 달이 생나무 울타리에  Like a red-faced farmer. 기댄 것을 보았다.  I did not stop to speak, but wistful stars 벌건 얼굴을 한 농부와 같이  With white faces like town children 나는 멈춰서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무엇인가 바라는 것 같은 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도회지의 아이들처럼 흰 얼굴을 하고  이 시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달과 농부의 얼굴, 별과 도회지 아이들의 얼굴을 통해서 가을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미지의 강조로 해서 물상과 물상 사이의 다른 표현(어휘)을 제거하고 있다. 고전적 방법이나 이미지 제시를 위한 암시적 작품으로는 수작일지 모르나, 한 낱말이 이미 대화의 개념을 지니고 있다고 함으로써 설득되어질지는 모르나, 물상 그 자체로 머물 수밖에 없는 경우, 그 시인이 지닌 구술적 가치를 소흘히 하는 경우를 포함할 소지를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가을’과 같은 작품이다.』  - 김형필의 평론집 “현대시와 상징”의 ‘시인의 음성세계’에서  일반적인 이미지에 대한 윤곽을 우리는 우리 문학사에서 훑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현대, 우리 시인들의 시에 용해된, 시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는 어떤 것이 있는가 최근 우리 문학에 드러난 ‘이미지’ 용어를 몇 개 찾아보며 이미지에 대한 개념을 접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황동규의 초기 시는 인간의 절대를 향한 비극적인 자세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그것은 지극한 내면적 고뇌이며 따라서 그의 치열한 개인적 정서이고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그 비극과 대결하려는 지적 의지를 이룬다.  ……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 ‘즐거운 편지’  나는 갔었다. 너의 문 닫는 집으로/얼은 벽에 머리 부비고 선 사내에게로/너의 입가에서 웃음으로 바뀌는 너의 서 있는 자세에로 -‘얼음의 비밀’  ……당신이 나에게 바람 부는 강변을 보여주며는 나는 거기에서 얼마든지 쓰러지는 갈대의 자세를 보여주겠습니다. -‘기도’  기다림, 기대서 있음, 쓰러짐과 같은 황동규의 몸짓은 삶의 외향, 의식의 바깥으로부터 자기를 폐쇄시켜 피할 수 없는 스스로의 내부와 치열한 씨름을 벌일 태세를 예비한다. 그것은 따라서 명징한 영혼의 부르짖음, 거의 운명적으로 치솟는 갈구, 그것에 대한 안타까운 사랑을 내포한다. 20대 초에 씌어진 그의 시들은 ‘겨울노래’ ‘겨울날 단장’ ‘얼음의 비밀’ ‘눈’과 같은, 그리고 ‘겨울밤 노래’와 같은 추위에 내맡긴 한밤을 노래했다는 것이 이와 깊이 관련을 맺는다. 얼음, 눈, 언 땅과 같은 이미지들은 어두운 밤의 이미지와 어울려 정신의 고통을, 그 고통과 대결하는 엄격한 정신을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인은 이 추움과 어두움의 힘을 빌려 자신의 영혼을 채찍질하여 비극적인 정서를 극대화시킨다.』  -황동규의 시집 ‘삼남에 내리는 눈’ 김병익의 해설에서  『서울은 어디를 가도 간판이 /많다 4월의 개나리나 전경보다/더 많다 더러는 건물의 마빡이나 심장/한가운데 못으로 꽝꽝 박아놓고/ 더러는 문이란 문 모두가 간판이다/ 밥 한 그릇 먹기 위해서도 우리는/간판 밑으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한다 소주 한잔을 마시기 위해서도 우리는/간판 밑으로 또는 간판의 두 다리 사이로/허리를 구부리고/들어가서는 사전에 배치해놓은 자리에/ 앉아야 한다 마빡에 달린 간판을/ 보기 위해서는 두 눈을 들어/우러러보아야 한다 간판이 있는 곳에는/무엇이 있다 간판이 있는 곳에는/무슨 일이 있다 좌와 우 앞과 뒤/ 무수한 간판이 그대를 기다리며 버젓이/가로로 누워서 세로로 서서 지켜보고 있다/간판이 많은 길은 수상하다 자세히/보라 간판이 많은 집은 수상하다  -‘간판이 많은 길은 수상하다’ 전문  자본주의적으로 기능화된 가장 첨예한 언어 양식인 광고 언어의 저 현란하고 감각적인 언어적 기교들, 그 매끄럽고 그윽한 상상력과 감수성들, 그 넘치는 쾌적과 안락과 풍요의 환상들. 그러한 언어들의 끊임없는 수사학에 의해, 우리는 그것들이 던져주는 따뜻하고 나른한 행복의 이미지들과 그 상품 자체를 동일시하는 매몰된 의식에 머물게 된다. 시인(오규원)은 이제 이러한 자본주의적 언어의 도구성을 폭로하는 데 주력한다. 』  - 오규원의 시집 ‘사랑의 감옥’ 이광호의 해설에서  『시인인 겸손하게 언급한 ‘조선시대 아낙들이 만든 조각보’의 시학이 첫시집에 이어서 여기서도 주도적 동기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빨강색,주홍색,노랑색,초록색,파랑색,자투리 헝겊을 모아 조각보를 만들 듯, 김영무 시인은 아름답고 참신한 이미지를 통하여 소박한 향토의 서정과 선인들의 지혜, 자연의 순리와 존재의 진상, 환경파괴의 현실과 공동체적 삶의 회복을 노래한다. 이러한 노래의 말과 가락은 그러나 우리의 상투적 기대를 벗어나고 있다.  파란불이 켜졌다./꽃무늬 실크 미니스커트에 선글라스 끼고/횡단보도 흑백 건반 탕탕 퉁기며/오월이 종종걸음으로 건너오면//아,천지사방 출렁이는/금빛 노래 초록 물결/누에들 뽕잎 먹는 소낙비 소리/또 다른 고향 강변에 잉어가 뛴다 - 「아,오월」전문』  -김영무의 시집 ‘산은 새소리마저 쌓아두지 않는구나’ 김광규의 해설에서 우리는 시를 통해, 시에서 해설한 평론가들의 말을 통해 이미지의 의미를 느낌(feeling)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미지란 결국 시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형상 또는 의미라 여길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미지’는 흔쾌히 모든 단어 아래, 상상력과 결부시켜 쓸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존 러스킨(John Ruskin)은 이미지와 관련 맺어 상상력을 직관적 상상력,연합적 상상력, 정관적 상상력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상상의 결과가 언어로써 나타나는 것이 이미지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이미지를 복수의 개념으로 몇 가지로 구분해 보면  첫째, 외부의 사물에 대한 체험을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 지각할 수 있는 사물의 상을 감각적 ‘이미저리’라 이야기 합니다. 여기에는  시각적 이미지 - 현대시는 전달이 아닌 구체적 드러냄을 시의 본질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가장 많이 의지하는 시각적 활동(사물의 형태, 빛깔, 대소 등)에 그 의미를 두는 시각적 이미지는 시에 있어 대표적 이미지라 할 수 있습니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김광균,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정한모 등  청각적 이미지 - 소리(동물 웃음, 울음, 무생물 부딪치는 소리 -의성어 등)  후각적 이미지 - 냄새(상긋함, 향긋함, 달콤함, 커피향 등)  미각적 이미지 - 맛 (단맛, 쓴맛, 소금맛 등)  촉각적 이미지 - 부드러움,  둘째, 내용면에서  정신적 이미지 - 시각적, 청각적, 미각적 등의 것이 다 포함되며  비유적 이미지 - 제유, 환유, 직유, 은유 등  상징적 이미지 - 상징  심리적 이미지 - 외로움이나 마음의 한 상태를 상상의 세계 속에서 언어로 표출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살아 있음으로 체험하게 되는 모든 이미지는 시에서 결국 본질을 나타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편의 작품이 주는 이미지는 시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최소 단위의 낱말에서, 한 행, 한 연 그리하여 한편의 시 전체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시를 가다듬고 있는 시인을 통해 등장하는 시는 결국 시인의 이미지가 실루엣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이미지의 의미적 분석, 이미지와 시와의 관계를 살펴볼 때 중요하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주지적, 회화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를 쓰고자 하는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 이런 학문적 이론보다 시를 쓰는 시인의 체험적 시 접근 방법일 것입니다. 이미지의 접근을 위해 제가 쓴 부족한 작품 ‘돌’ 하나를 놓고, 시적 이미지를 깊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4월 5일(월)이었습니다. 그날은 식목일로 길을 걷는데 돌이 눈에 띄었습니다. 살아오며 무수히 보았고, 만졌고, 밟았고, 어쩌면 흔하기에 별볼일 없었던 돌이 이날은 굉장한 보물처럼 보였습니다. 돌, 돌, 돌, 그리고 돌-. 걸으면서 돌에 대한 상(이미지)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돌은 흔하다.’, ‘돌은 무게를 가졌다.’ ‘돌은 멈추고 있다.’, ‘돌은 움직인다.’ ‘돌은 부식한다.’ ‘돌은 다양하다.’ ‘돌은 무식하다.’, ‘돌은 쓸모가 있다.’, “김동리의 ‘바위’란 소설은 돌을 소재로 했다.”, “박두진 시인은 ‘수석열전’이란 시집을 냈다.” ‘돌은 우주에도 있다.’, ‘돌은 따뜻하다.’, ‘돌은 차갑다.’ ‘돌은 늙었다.’, ‘돌은 ?’ -  그날은 이상하게도 ‘돌’이란 물체에 시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종이에 ‘시작메모’를 했습니다. 그날 초안을 보면  「돌은 무게를 끌고 다닌다/ 강바닥 자갈에서 산 하나로 이룬 바위까지/ 지구 중심으로 향한 돌의 무게/돌은 고행하는 성자의 번뇌를 갖고 있다/천년 전쯤이면 짧을까?/ 우주 먼 곳에서 달려온 빛/ 그 빛의 찰라적 욕망 바라보며/ 선의 경지로 좌선하며/지구 중심으로 향하고 싶은 욕망/ 흐르는 세월에 닦고 있는/ 아 돌의 단단함」  이 시를 만나고 밤낮으로 며칠 끌어안았습니다. 어쩌면 그런 대로 흡족한 이미지시가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시어, 행의 구성에 손을 조금씩 대기 시작한 후 일주일쯤 지나 이 시는 다음과 같이 바뀌었습니다. 바뀌었다고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시에 담으려 했던 이미지, 즉 이미지의 본질이 다치지 않는 상태로 시는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강변 자갈에서 산 하나를 이룬 바위까지/ 돌은 무게를 끌고 다닌다//고행하는 성자의 모습//천년이라면 짧을까?/우주 먼 곳에서 달려온 빛/ 그 빛의 찰라적 욕망 끌어안으며/지구 중심으로 향하고 싶은/끊임없는 열정/차갑게 식히는/아! 무념무상의 세계」  매일 물을 마셔야하는 그런 식물이 있다면, 단 하루 물을 주지 않으면 죽게 되는 식물이 있다면, 그 식물을 꼭 길러야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이라면-. 마치 이 시는 그 식물을 닮아 내게 물을 요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을 주듯, 시를 들여다보며, 시어 몇 개를 다독거리고, 흡족해하다가 실망하고, 다시 만지작거렸습니다. 예를 든다면 처음 시는 연 구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작품은 연구별이 생겼고, 시어도 많이 다듬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런 상태로 만족할 수 없어.’ 결국 어딘가 나의 손을 요구하는 부분을 다시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길바닥에 있는, 산에 있는, 내 마음속에 있는 돌을 찾아 관찰해보았습니다.  1연의 1행 ‘강변 자갈에서 산 하나를 이룬 바위까지’를 조금 더 세분화시켜, 시각적 이미지를 추구하게 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강변 자갈에서/ 산 하나를 이룬/바위까지’ 이렇게 고치고 나니 길게 쓴 앞의 시행보다 정경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결국 이 시는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돌  하 재 영  강변 자갈에서  산 하나를 이룬  바위까지  돌은 무게를 끌고 다닌다.  고행하는 모습  때론 풀과 나무의 뿌리  수염처럼 길게 기르고  천년이라면 짧을까?  우주 먼 곳에서 달려온 빛  그 빛의 찰라적 욕망 끌어안으며  지구 중심으로 향하고 싶은 열정  끊임없이 삭이는  아!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성자여  어떤 의미에서 이미지는 시적 화자와 독자와의 공감대 형성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를 ‘아내’ 또는 ‘남편’감이라 합시다. 당신은 어느 스타일의 ‘아내’,‘남편’의 이미지를 찾으며, 당신에게 맞은 이미지의 배우자를 만들어 나가고(만들어지고) 있습니까? 만약 결혼을 앞둔 20대의 여자(남자)가 원하는 스타일이 이렇다 칩시다. 그가 원하는 배우자 감은 키가 크고, 지적이며, 특히 음악을 좋아하는 이지적이 사람이라 합시다. 주변에서 찾아보면 그런 사람을 쉽게 찾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 여자(남자)는 그런 사람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습니다.  시 역시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분명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만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감각과 낯선 이미지를 추구한다는 것이 시에 있어서, 예술에 있어서 중요합니다.  20대가 지나고, 30대, 40대, 50대 그 이후 사람은 쌓인 연륜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시에 있어서의 이미지는 시인의 주관적이지만, 그 주관적인 이미지는 객관성을 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작품 속에 녹아있는 새로운 이미지를 객관화시키느냐가 시를 쓰는 데 성공의 요인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수필의 향기  빈남수  1. 수필은 어떻게 쓸것인가?  수필은 생활(生活)을 바탕한 사상이요, 생활적인 사건을 문학적 차원에서 관조(觀照)하고 채색한 것이다. 즉 수필은 관조라는 여과(濾過)과정을 거쳐 표출된 생활의 지혜요 철학이다.  모든 문학 장르가 그러하듯이 글은 인간의 감정을 고향하는 힘이 있어야 하고, 하나의 이상향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통론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생각을 작품으로 형상화한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흔치 않다.  흔히 수필은 붓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쓰는 글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써 보면 사뭇 그 어원적(語源的) 의미와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수필은 삶의 영위를 과정에서 우러나는 진실의 기록이다.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공감할 수 있는 세계를 구축하고 독자로 하여금 감동의 세계로 몰입시키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을 솔직히 이야기하되 결코 푸념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 수필의 세계다.  작가는 언제나 사명의식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한다.  수필 작품 속에는 그 나름대로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 현실적인 것 같지만 그 속에는 반짝이는 멋이 있어야 하고 싱그러운 사건이 있어야 한다.  수필은 만사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생각을 응축하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고마움과 끈끈한 정, 인생에 대한 관조, 과거에 대한 회상과 미래에 기대가 엉겨 하나의 글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수필을 중년 이후의 문학이라고 한다.  2. 수필의 이해와 생활화  수필은 예술적인 형식에 자기 사상을 농축시키는 작업이다.  가장 힘들게 쓰여지면서도 가장 쉽게 읽혀져야 하는 글이 수필이다.  누구든 자신을 드러내 보인다는 것은 쉬운 일일 수는 없다.  작가가 글을 쓰고자 할 때 무엇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일은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일과 자신을 단순한 자기 존재만으로 귀착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확대시켜보는 안목을 갖는 일일 것이다.   좋은 글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할 것인가  ① 우선 수필은 개성이 드러나 있어야 한다. 글은 곧 그 사람이다.  ② 수필을 읽으면 글쓴이의 사유, 생활태도, 성품, 취미, 말투까지도 알 수 있다.   ==================================================================      96. 별 1 / 김완하                                                    별1   김완하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가 서로의 거리를 빛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허리가 휘어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 발 아래로 구르는 별빛, 어둠의 순간 제 빛을 남김없이 뿌려 사람들은 고개를 꺾어 올려 하늘을 살핀다 같이 걷는 이웃에게 손을 내민다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의 빛 속으로 스스로를 파묻기 때문이다 한밤의 잠이 고단해 문득, 깨어난 사람들이 새벽을 질러가는 별을 본다 창밖으로 환하게 피어 있는 별꽃을 꺾어 부서지는 별빛에 누워 들판을 건너간다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새벽이면 모두 제 빛을 거두어 지상의 가장 낮은 골목으로 눕기 때문이다     김완하 시집 '길은 마을에 닿는다'중에서             1958년 경기도 안성 출생 한남대 국문과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87년 '문학사상' 신인상 등단   2005년, 2006년 소월시문학상 우수상 2007년 제12회 시와시학 젊은신인상 2010년 제22회 대전시문화상   전 '시와정신' 편집인 겸 주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편집기획위원, UC 버클리 대학교 객원교수 역임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재직   길은 마을에 닿는다 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 네가 밟고 가는 바다 허공이 키우는 나무 어둠만이 빛을 지킨다(김완하 시선집)   < 연구서> '신동엽 시 연구', 비평집 '한국 현대시의 지평과 심층', '한국 현대시와 시정신', '중부의 시학' 등   '긍정적인 밥', '현대시의 이해', '현대문학의 이해와 감상' 등   =======================================================   97. 나팔꽃의 꿈 / 김완하             나팔꽃의 꿈                                                          김완하   그래, 나도 손을 뻗고 싶다 저 하늘, 너희들이 꿈꾸는 세상으로 나도 차 오르고 싶다   기대지 않고는 설 수 없는 땅에서 서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하나의 기둥으로 서고 싶다   휘감지 않고는 버틸 수도 없는 비탈 가파른 바지랑대에 몸을 묶어서 단 한 번만이라도, 나팔 소리 힘차게 불어 올릴 수 있다면     김완하 시집 '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중에서                
958    시인들이여,- 시 첫행에 승부를 걸어라... 댓글:  조회:4529  추천:1  2016-01-10
▣ 시창작법                                                                1. 글쓰기는 말걸기이다(듣기가 읽기인 것처럼)  누구에겐가 말을 건다는 것은 첫 마디를 던진다는 것이다. 처음 몇 마디가 뒤엉켜 버리면 끝장이다. 내 후배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이 말을 꺼내는 친구가 있다. “저어, 있잖아요, 제가, 며칠 전부터 생각한 것인데요, 선배에게도 전에 한 번 말씀을 드린 사항인데……” 그래서 그 후배가 다가오면 나는 이렇게 쐐기부터 박는다. “너, 결론부터 말해.”  글도 마찬가지다. 모든 글쓰기는 첫 문장 쓰기이다. 나는 후배 기자들에게, 기사의 첫 문장은 ‘호객 행위’라고 말한다. 단편소설은 물론이고,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 필름도 도입부를 매우 중시한다. 리모콘이 등장한 이후, 텔레비전 프로그램, CF 제작자들은 강박증이 생겼다. 첫 장면에 승부를 걸어라. 처음 몇 초 안에, 시청자를 붙잡지 못하면, 채널을 바꾸기 때문이다. 모든 글은 첫 문장이다! 이 지면을 통해, 글 잘 쓰는 비결을 하나 공개한다. 내가 잘 아는(이름 석 자 가운데 한 자만 대도 독자들 대부분이 알 수 있는) 시인은 시를 한 편 완성하고 나면, 첫 문장을 백 번 이상 소리내어 읽는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다시 읽어 본다. 첫 문장이 흡족해야 시를 발표하는 것이다. 거듭 반복한다. 첫 문장에 목숨을 어떨지 몰라도 ‘나’는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에 시(쓰기)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의 시(쓰기)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절실한 것이며, 절실하기 때문에 생명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문창과 학생들,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도 시(쓰기)가 자신에게 왜 필요한 것인지 명쾌하게 정돈하지 못하고 있었다. 열에 일고여덟은 ‘나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서’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가까운 이들과 좋은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시를 쓰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 학생은 거의 없었다. 상대적으로 글쓰기와는 무관한 젊은이들에게 두 번째 질문(꿈이 있다면, 그걸 한 문장으로 말해 보라)을 던졌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출판사에 다니는 젊은 편집자들과 술을 마시다가 꿈을 물어 보았더니, 몇몇은 당혹스러워했고, 몇몇은 ‘있는데 말할 수 없다’고 했으며, 한둘은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했다고 여기는 기색이었다. 한 문장으로 만들 수 없는 꿈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내 지론을 강요했다간 싸움이 날 판이었다. 나는 ‘우리는 꿈꾼 것만을 이룰 수 있다’는 무하마드 유누스(〈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의 저자. 방글라데시의 대안 운동가)의 잠언을 들려 주고 싶었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시는 왜 필요한가? 나는 ‘마지막 개인’으로서의 나를 확인하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시(쓰기)가 필요하다. 시(쓰기)를 벗어나는 순간, 나는 단독자가 아니다. 완전한 포로다. 나는 이 거대 도시가 요구하는 온갖 제도와 가치로부터 이탈해 자립, 자존, 자족할 수 없다. 나는 이 반인간적인 문명과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시 말해 늘 깨어 있기 위해 시(쓰기)를 필요로 한다. 시를 쓰는 순간, 시를 읽고 시를 생각하는 시간만큼, 나는 이 우주 안에서 자립, 자존, 자족할 수 있는 것이다. 악기이기를 지향하면서도 나의 시는 아직, 수시로 무기이다(이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지만 지면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내가 바라마지 않는, 한 문장의 꿈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쁘게 가난을 선택할 수 있게 하소서’이다. 산업 문명으로부터 완벽하게 이탈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도시에서 스스로 아무 것도 생산할 수 없는 ‘기생의 존재’가 도시를 떠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생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쌀 한 톨을 일궈내는 데도 삼라만상이 참여해야 한다). 야생조차도 인간 문명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과학적 보고서가 있는 터에, 함부로 도시의 바깥을 상정하는 것도 유아적으로 보인다. 시를 통해 자기 삶과 존재를 확인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동시에, 도시적 삶의 그늘로부터 한 뼘씩이나마 벗어나고 싶은 독자가 ‘아직도’ 있다면, 감히 한 권의 책을 권한다. 나탈리 골드버그가 쓴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권진욱 옮김, 한문화). 이 책을 한 번 읽어 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면, 당신은 이미 이전의 당신이 아니다. 미국의 글쓰기 지도 전문가인 나탈리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권하고 있다. ‘여러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꿈에 대해서 5분 동안 써 보십시오’.  2. 문제는 감각이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축구 경기를 보다 보면, 간혹 ‘감각적인 플레이’라는 멘트가 나온다.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선수’라는 표현도 자주 접한다. 최상의 기량이라는 찬사다. 지난 해 6월, 월드컵 축구대회 대 폴란드 전에서 황선홍 선수가 이을용 선수의 패스를 받아 성공시킨 골 같은 경우 말이다. 황선홍은 골대를 보지 않고 슛을 날렸다.  스포츠에서는 ‘감각적’이라는 수사가 극찬이지만, 시에서는 그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시에서 감각적이라는 평가 앞에는 대개 ‘지나치게’라는 부사가 붙는다. 감각이 승한 시는 깊이가 없다는 전통적인 잣대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같은 ‘비평’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나치면 그르치는 것이 어디 감각뿐이랴. 상상력에서부터 이미지, 리듬, 관념어, 주제의식 등 시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 가운데 지나침이 허용되는 것은 없다. 나는 감각적인 시를 옹호하는 편이다. 감각없는 축구 선수가 드리블이 좋지 않듯이, 감각적 형상화가 서툰 시는 생생하지 않다. 감각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가벼운 감각이 가벼울 따름이다. 감각에는 깊이가 없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감각은 몸과 마음의 경계이다. 감각은 자아와 타자 사이에 있는 가교이다. 시인은 감각을 통해 (자아를 포함한) 세계와 만나고, 독자는 감각을 통해 시와 교감한다.  실존은 감각의 실존이다. 감각의 실존 가운데 가장 앞서 가 있거나 높이 있는 것, 그러니까 감각의 극단이 시이다(‘잠수함 속의 토끼’라는 비유가 있다). 감각의 제국 안에서 제왕은 단연 시각이다. 인간이 외부 세계를 인지할 때 사용하는 감각은 시각이 대부분이다(80퍼센트). 그런데 시인은 여기서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간다(혹은 비켜선다). 보통의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쓰기는 단순한 보기(見)가 아니라 꿰뚫어보기(觀)이다. “북쪽은 고향/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다시 풀릴 때/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마음은 눈 감을 줄 모른다.”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시인 이용악(1914-1971)의 초기 시 〈북쪽〉 전문이다. 시 속에서 국경 근처 고향을 그리워하는, 국경 너머 팔려간 여인을 염려하는 시인의 눈은 마음의 눈이다. 그 마음의 눈은 ‘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는 지경까지 꿰뚫어보는 놀라운 시력을 가지고 있다. 시인은 육체의 눈이 아니라 이처럼 언제나 깨어 있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 존재다. 그러나 시각이 감각의 전부는 아니다. 시각은 오히려 흘러넘치고 있다. 이용악 시대의 시각과 21세기 후기 산업 시대의 시각은 크게 달라져 있다. 시각은 대량 소비 시대, 대중 문화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혹사당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광고와 매체를 통해 인간의 눈을 포섭해, 인간을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있다. ‘시각 패권주의’ 시대이다. 시는 시각으로부터 출발했지만, 이제 시는 저 왜곡돼 있는 시각과 맞서 싸워야 한다. 소비자의 눈을 인간의 눈으로 돌려 놓아야 한다. 주로 시각에 의한, 시각을 위한 인지와 소통은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배제하거나 왜곡한다. 시각 과잉은 인간을 인간 자신과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정현종의 시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던, 그리하여 그 섬에 가고 싶어하던 시대는 행복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인터넷과 휴대 전화가 있는 이 시대에 인간을 시각 과잉으로부터 ‘구원’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가, 시각 패권주의에 희생당하고 있는 나머지 다른 감각을 복원하는 것이다.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들은 시각이 활동하지 않을 때에라야 활발해진다. 깊은 어둠 속에 누워 있어 보라, 얼마나 많은 소리가 들리는가. 제대로 맛을 낸 음식을 음미하는 미식가의 얼굴을 보라, 미식가는 눈을 감고 ‘음~’하는 탄성을 내지른다. 손가락도 촉감에 충실하고자 할 때는 지그시 눈을 감는다. 최근 젊은 시인들이 발표하는 시들에는 소리와 향기가 자주 등장한다. 나는 이 같은 변화를 시각 패권주의에 대한 시의 저항이라고 이해하고자 한다. 차창룡 시인이 최근에 펴낸 시집 〈나무 물고기〉에는 ‘똥은 꽃처럼 향기로워’(〈트리베니 가트에서 누는 똥〉)라는 놀라운 대목이 나온다.  이 시는 꽃을 똥의 차원으로 추락시킨다. (아름다운) 꽃이 상승이라면 (추한) 똥은 하강의 이미지인데, 이 상승과 하강을 똥의 형상(하강하면서도 결국은 상승을 의미하는 생김새)으로 일치시켰다가, 급기야 똥의 냄새를 꽃의 향기로 격상시킨다. 아, 얼마나 통쾌한가. 시각 패권주의의 대표적인 아이콘인 꽃에서 똥의 향기를 ‘맡는’ 시인의 감각이라니. 황선홍의 월드컵 첫 골에 못지 않은 ‘감각적인 시’이다.  3 . 짧은 글을 읽어라 봄이여 눈을 감아라/ 꽃보다/ 우울한 것은 없다 전문 여기저기서 보내오는 시집이 많다. 내가 가만히 앉아서 시집을 받아 볼 높은 위치에 있다는 소리가 아니다. 시사주간지에서 오랫동안 문학 담당 기자를 했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보도 자료’로 보내오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다 동료, 선후배 시인들이 ‘부채의식’ 때문에 보내는 시집들도 제법 있다. 시인들은 시집 받는 것을 ‘빚’으로 여긴다. 그래서 새 시집을 펴낸 시인들은 그동안 시집을 보내온 시인들의 명단을 놓고 한 나절 넘게 주소를 쓴다. 그동안 밀린 ‘시집 빚’을 갚는 것이다.  보름달은 어둠을 깨울 수 있지만 초승달은 어둠의 벗이 되어 줍니다. 전문 우편으로 시집을 많이 받다 보니, 몇 가지 요령이 생겼다. 출판사와 시집 장정을 보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시집 맨 처음에 실린 시를 먼저 보게 된다. 그러고 나서 시집 맨 뒤에 자리잡고 있는 시를 본다. 그 다음에 눈여겨보는 시가 짧은 시들이다. 시집 맨 처음과 맨 나중에 위치하는 시에 신경을 쓰지 않는 시인은 거의 없다. 첫번째 실린 시는 시집 전체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고(서시 분위기가 많이 난다), 마지막 시는 이른바 ‘앞으로의 계획’쯤에 해당한다. 이렇게 두 편의 시를 읽고 나서, 짧은 시들을 골라 읽는다. 그러니까 서너 편 정도 일별하면 시집의 높낮이를 웬만큼 측정할 수 있다. 왜 짧은 시인가? 짧은 시 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짧은 시에는 시인의 시력과 시야가 압축되어 있다. 사물과 사태, 삶과 세계의 핵심을 치고 들어가는 직관력은 물론이고 직관한 내용을 최소한의 어휘로 형상화하는 솜씨. 장악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파스칼이었던가? ‘시간이 없어서 짧게 쓰지 못했다’라고 말한 이가. 흔히 장시를 쓰는 데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줄 알고 있는데, 모든 장시가 그런 것은 아니다. 서너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를 쓰는 데 평생이 걸리기도 한다(일본의 전통적인 정형시 하이쿠를 쓰는 시인들은 수도승 못지 않은 삶을 살았다. 두 행짜리 하이쿠를 쓰기 위해 엄격한 규율을 지켰다. 4행짜리 게송을 읊은 선승들은 또 어떻고). ‘봄이여 눈을 감아라/꽃보다/우울한 것은 없다.’() ‘보름달은/어둠을 깨울 수 있지만/초승달은 어둠의 벗이 되어 줍니다.’() 두 편 다 3행으로 이루어진 지극히 짧은 시이다. 앞의 것은 김초혜 시인이 계간 2002년 겨울호에 발표한 작품이고, 뒤의 것은 최종수 시인의 첫시집 에 실린 시이다. 짧은 시는 비수라기보다는 번개에 가깝다. 하지만 사람들은 번개와 천둥이라고 하지 않고, 천둥과 번개라고 말한다. 번개와 천둥은 사실 동시에 발생하는데, 빛보다는 소리를 더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짧은 시는 번개다. 번갯불에 벼락을 맞기도 하지만, 한참 뒤에야 세상을 뒤흔드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를 보자. 봄은 꽃의 계절인데, 봄으로 하여금 꽃을 보지 말라고 한다. 생명의 한 절정인 꽃에서 ‘우울’을 보았기 때문이다. 절정인 꽃은 곧 시들게 마련. 만개한 꽃 속에서 꽃의 죽음을 본 것이다. 짧은 시는 이처럼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온갖 고정관념(선입견)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의식을 뒤흔드는 것이다. 살아 있는 것(꽃, 기쁨)에서 죽음(우울)을 발견하는 눈! 시의 위력은 그 눈에서 나온다.  은 또 어떤가. 달을 빛의 양(동그란 정도)으로만 규정하고, 어둠을 빛으로 물리쳐야 할 악으로만 이해해 오던 우리에게 시인은 아주 새로운 견해를 제출한다. 어둠을 깨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어둠과 함께 하는 벗 또한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 순간 어둠은 빛의 반대 진영에 있는 악이 아니라, 빛과 더불어 존재하는 동반자로 거듭난다. 어둠의 입장이 되어 보자. 자신에게 위압적인 큰 빛(보름달)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작은 빛(초승달)이 훨씬 더 애틋하지 않을까. 보름달이 혁명이라면 초승달은 연민(공감)의, 혹은 연대의 은유이리라. 짧은 시를 많이 읽자. 짧은 시는 서너 번 읽으면 외어진다. 그렇게 외운 시는 삶의 여러 국면, 구체적인 삶의 문제와 접점을 가지면, 시의 의미가 부풀어오른다. 이룰 수 없는 사랑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친구가 있다면 ‘꽃보다 우울한 것은 없다’라고 말해 보라. 큰 것, 힘센 것만을 추구하는 선배가 있다면 어둠과 벗이 되어 주는 초승달 이야기를 꺼내 보라. 좋은 시는 짧은 시이고, 짧은 시는 우리들 구체적인 삶의 안쪽에 들어와 있다.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 이메일을 띄울 때, 외우고 있는 짧은 시를 전송해 보자. 보내는 이나 받는 이의 일상 속에서 아름다운 스파크가 일어날 것이다.  4. 은유, 그 아슬아슬한 거리 지중해가 맑은 이유가 그 청년 때문인 것 같았다. 몇 년 전,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고 나왔을 때, 주인공 마리오에 대한 기억이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말라터진 바게뜨 빵을 연상시켰던 마리오는 너무 섬약하고 또 너무 순수했다. 그가 지중해의 청정함을 지키는 정수기처럼 보였다. 마리오가, 잠시 섬에 체류하게 된 세계적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전속 우체부’가 되면서 시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네루다를 영웅화했다면, 네루다가 떠난 이후, 마리오가 네루다에게 보낸 별이 반짝이는 소리까지 담은 ‘녹음 편지’는 전통적인 시(활자)의 시대를 마감하는 징후로 보였다. 시위 현장에서 마리오가 스러져가는 장면은, 네루다 혹은 시의 시대에 대한 비판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래 전에 본 영화여서 몇몇 장면만 남아 있다. 그 중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마리오가 네루다에게 ‘시란 무엇인가?’라고 묻자, 네루다가 거두절미하고 ‘메타포’라고 답하는 대목이다. 메타포, 은유. 그렇다. 은유가 시의 전부는 아니지만, 은유를 빼 놓고서는 시를 쓸 수도, 읽어내기도 쉽지가 않다. 은유는 시와 시쓰기, 시읽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동력(전달 장치)이다. 직유를 거쳐 은유를 웬만큼 구사/해독할 수 있다면, 그는 괜찮은 시인/독자이다. 직유는 주종 관계이다. ‘그는 바람처럼 달렸다’라고 쓸 때(결코 좋은 비유라고는 할 수 없지만), 바람은 그가 달리는 상태를 구체화하는 보조 역할에 머문다. 하지만 ‘비가 쇠못처럼 내렸다’라는 표현에서는 약간 달라진다. ‘그’와 ‘바람’ 사이도 그렇게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비’와 ‘쇠못’ 사이처럼 스파크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비와 쇠못 사이는 매우 먼 거리다. 일상적 차원에서 비와 쇠못은 거의 무관한 관계이다.  ‘비둘기는 평화다’와 같은 상징은 아예 주종 관계에서 종이 사라진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으로 쓰이는 순간, 비둘기 고유의 정체성은 지워져 버린다. 상징은 상징에 동원되는 수단을 지워 버리는, 매우 폭력적인 비유법이다.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으로 내세울 때, 비둘기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 상징이 종교와 신화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징은 권력의 도구이다. 직유에서 주종 관계가 희박해질 때, 나는 그것이 바로 은유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직유가 술어(동사)를 거부할 때, 예컨대 ‘비가 쇠못처럼 달렸다’가 아니고, ‘비는 쇠못이다’로 변화할 때, 직유는 은유로 한 차원 승격한다. 그래서 나는 비유법을 자주 은유법이라고 이해한다.  ‘그대는 꽃이다’라고 쓸 때, 그대는 꽃을 지배하려 들지 않는다. 그대가 꽃을, 또는 꽃이 그대를 없애려고 하지도 않는다. 은유의 차원에서 그대와 꽃은 그대도 아니고, 꽃도 아닌 전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이것이 은유의 위력이다. 내가 지지하는 은유는 다원주의에 바탕한 은유이다. 즉 하나의 절대적 중심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모든 존재와 의미가 각자 하나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은유이다. 직유가 수직의 상상력이라면, 은유는 수평의 상상력이다. 직유(혹은 상징)가 과거의 세계관이라면, 은유는 미래의 세계관이다. 공존, 상생의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직유도 그렇지만 은유의 생명력은 비유되는 두 이미지 사이의 거리에서 나온다. 앞에서 예로 든 문장을 다시 불러와 보자. ‘그는 바람처럼 달렸다’ 혹은 ‘그는 바람이다’라고 했을 때, ‘그’의 이미지가 선명해지지 않는 것은 바람이 갖고 있는 모호성 때문이다. 여기서 바람은 주어를 도와 주지도 못하고 동사에 기여하지도 못한다. 참신하거나 구체적이지 않은 직유는 구사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낫다. 상투성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비가 쇠못처럼 내렸다’ 혹은 ‘비는 쇠못이었다’라는 표현이 위의 경우보다 조금 산뜻한 까닭은 쇠못이 갖고 있는 구체성 덕분이다. 은유를 ‘A는 B이다’라고 흔히 말하는데, A와 B의 사이가 너무 가까울 때 상투성으로 전락하고, A와 B 사이가 너무 멀면 난해함으로 빠진다.  네루다와 마리오 사이의 대화를 흉내낸다면, 시란 저 A와 B 사이의 아슬아슬한 긴장이다. 그리고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저 A와 B를 결합시키는 비결은 (전에도 말했지만) 평소의 관찰력과 상상력에서 나온다. A와 B를 난데없이 연결시켜 강한 스파크를 일으키는 직관력은 갑자기 나오지 않는다. 관찰과 상상의 누적이 없다면 은유의 직관은 불가능하다. 사족 같은데, 한 마디만 덧붙여야겠다(은유를 말하고 있으니까). 팽팽하게 부풀어 있는 풍선에 바늘을 찔러야, 풍선은 강렬하게 터진다. 팽팽하게 부풀어 있는 풍선, 그것이 관찰과 상상의 상태이다. 그것이 깨어 있는 정신이다. 그렇게 깨어 있다면, 바늘(직관)은 얼마든지 있다. 불지 않은 풍선은 풍선이 아니다. 탄생 이전이거나 죽음 이후다.  [이문재시인]   『시사저널』편집위원. 시운동으로 등단.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 줄 때』『산책시편』『마음의 오지』등이 있다 ======================================================================   94. 파꽃 / 이채민               파꽃                                                   이채민   누구의 가슴에 뜨겁게 안겨본 적 있던가 누구의 머리에 공손히 꽂혀본 적 있던가 한 아름 꽃다발이 되어 뼈가 시리도록 그리운 창가에 닿아본 적 있던가 그림자 길어지는 유월의 풀숲에서 초록의 향기로 날아본 적 없지만 허리가 꺾이는 초조와 불안을 알지 못하는 평화로운 그들만의 세상 젊어야만 피는 것이 아니라고 예뻐야만 꽃이 아니라고 하늘 향해 옹골지게 주먹질하고 있는 저 꽃     이채민 시집 '동백을 뒤적이다' 중에서     =============================================================   95. 금강제비꽃 / 이채민                         금강제비꽃                                              이채민   노을에 잠긴 암벽에 기대어   구원의 기도문을 풀고 있는   아슬한 목숨 하나   몇 번의 삭풍을 견디어 낸 것일까   파르르 생채기 난 꽃잎에   오랑캐의 오字가 티눈처럼 박혀 있다     이채민 시집 '동백을 뒤적이다' 중에서        
957    시인들이여, - 세상의 바보들과 웃어라... 댓글:  조회:5318  추천:0  2016-01-10
세상의 바보들을 보고 웃는 방법 ― 시 속의 유머 정신 14세기 이탈리아의 산악지대. 영국의 수도사 윌리엄은 요새처럼 견고하고 폐쇄적인 어느 수도원에 들어간다. 그 수도원에서 날마다 '묵시록'의 예언에 맞춰 발생하는 연쇄 살인 사건. 현대 이탈리아의 철학자이며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 원작의 을 장 자크 아노가 감독을 맡은 미스터리 영화다. 윌리엄으로 분장한 숀 코네리의 중후한 연기가 돋보였고, 아드소 역의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앳된 모습을 보인다. 이 수도원에서는 절대로 웃음이 허용되지 않는다. "웃음은 두려움을 없애며 이는 악마에 대한 두려움까지 없애는데, 두려움이 없이는 신에 대한 믿음조차 없어진다."는 이유로 수도원에 깊숙이 간직된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에코의 상상이 만들어 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 2권. 그 1권이 '비극론'이다.)은 금서(禁書)가 되고 문제의 책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그리고 해괴하기 짝이 없는 살인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는 것이다.  이라는 원작의 소설은 무척 난해하지만, 그것을 나름대로의 영화로 해석한 프랑스 출신 감독 장 자크 아노는 역시 거장답다. 벌써 십오년 전 영화다. 웃음이란 인간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에코의 이론에 따르면 웃음은 선을 지향하는 힘이며, 인간에게 각성을 주는 장치다. 고대 그리스에서 비극은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 당시에 있었으나 희극은 훨씬 뒤에 나타난다. 희극은 넓은 의미로는 웃음을 유발하는 모든 연극을 일컫는다. 하지만 문학적으로는 수준 높은 해학극을 가리킨다. 희극은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축제 때 풍자적인 노래를 부르면서 평소에 불쾌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을 비꼬기 위한 수단으로 흉내를 내거나 주위의 구경꾼과 간단한 응답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듯하다. 희극의 특징을 알기 위해서는 그 범위를 세분해 보아야 한다.  상황희극(comedy of situation)은 인물들을 우스꽝스러운 상황 속에 놓이게 할 때 일어나는 희극이다. 이러한 희극에서는 인물의 성격이나 사상은 그다지 중요시되지 않는다. 성격희극(comedy of character)은 인물의 괴팍한 성격에 의해 진행되는 희극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우울증, 위선자, 인간 혐오자의 어리석음에 대한 풍자가 가득 찬 몰리에르의 희극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사상희극(comedy of ideas)은 버나드 쇼의 작품처럼 개념의 충돌에서 생기는 희극이고, 그밖에 절망희극(black comedy)은 부조리한 현실 또는 비합리적인 구성에서 비극적인 웃음을 끌어내는 희극이다. 이 밖에 풍속희극, 사회희극, 낭만희극을 더 찾아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세밀한 분류는 어떠한 연극에서도 불가능한 것으로 실제로는 모든 특징들이 상호보완적으로 교차된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건이나 인물의 성격 또는 사상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지고, 그것이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 관객들은 웃게 된다.  이런 경우에 관객들이 무대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반응하는 웃음은 무대와 너무 밀착되면 그 웃음은 불가능해진다. 요컨대 웃음이란 무대, 즉 자신의 현실이라는 무대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때 일어나는 감정 반응이다. 칸트는 '무엇인가 중대한 것을 기대하고 긴장해 있을 때에 예상 밖의 결과가 나타나서 갑자기 긴장이 풀려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의 표현'을 웃음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 웃음을 유발하는 방법에는 문학에서 풍자(satire), 역설(paradox), 반어(irony), 위트(wit), 패러디(parody) 등이 많이 쓰인다. 풍자란 정치적 현실과 세상 풍조, 기타 일반적으로는 인간생활의 결함, 불합리성, 허위 등에 대하여 가해지는 기지 넘치는 비판이다. 스위프트의 , 1930년대 이기영의 , 채만식의 , 1960년대 김지하의 , 1970년대 윤흥길의 , 등을 예로 들 수가 있을 것이다. 대체로 풍자적인 작품은 억압적 현실 상황에서 걸작이 나오는 경향이 많다. 역설은 일반적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모순되거나 불합리하지만 실제 의미상으로는 참다움을 안에 담고 있는 표현 방식이다. 역설은 주로 독자에게 충격과 즐거움을 주는 의도로 사용된다. 모순 어법, 역리(逆理) 또는 이율배반(二律背反)이라고 할 수도 있다. 유치환의 시 에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든지 한용운의 시 에서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같은 표현 방법이 그것이다. 반어(아이러니)는 은폐를 뜻하는 말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반어는 '의미하고자 하는 것과 반대의 표현을 하는 것' 그리고 '비난하기 위해서 칭찬하고, 칭찬하기 위해서 비난하는 것', 때로는 시치미를 떼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아침 늦게 지각하여 어슬렁거리며 교실에 들어온 학생에게 선생님이 "너는 참 일찍 오는구나."라고 말하는 것이 반어적 표현이다.  위트에 대하여 영국 시인 드라이든은 '발상의 예리함'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기지(機智), 재치라고 할 수 있는 위트의 방법은 어떤 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비범하고 신기하고 기발한 발상으로 적절하게 표현하는 재빠른 지적 활동이다. 위트란 말이나 글을 즐겁고 재치 있게 그리고 능란하게 구사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오래 전 서부 활극 영화로 가 생각난다. 악당들에게 붙잡혀서 오른손을 다친 주인공 리처드 위드마크는 어쩔 수 없이 왼손으로 권총을 뽑는 연습을 한다. 웬만큼 숙달되고 나서 그는 싱긋 웃으며 친구에게 말한다. "어때, 나쁘지 않지?" 그러자 곧바로 그의 동료가 이렇게 대꾸한다. "좋지도 않아." 그 대답이 바로 위트가 넘치는 말이다. 패러디는 먼저 텍스트가 전제되고 그것에 대한 모방을 뜻한다. 본디 패러디는 '곁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그리스어 패로디아에 어원을 두고 있다. 패러디는 저명한 시인의 시구나 문장을 모방하여 내용을 변형시켜서 웃음을 자아내는 방법이다. 요즘은 영화나 텔레비전광고에도 이 방법이 많이 사용되어 대중들에게 친숙해진 상태가 되어 있다. 패러디는 문학에서 독자에게 일정한 교양과 지식을 요구하면서, 독자에게는 화자의 교묘한 말재주를 알고 있다는 식의 지적 만족감을 주기도 한다. 이제 우리 시문학에서 위에 말한 웃음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누가 말했는지 확실치 않지만, 만일 조선 시대의 방랑 시인 김삿갓(김병연)이 서구에 태어났더라면 셰익스피어나 괴테를 능가하리만큼 온 세계를 놀라게 했으리라고 한다. 김삿갓의 본관은 안동이며 호는 난고라 한다. 1811년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로 있던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한 죄로 폐족(廢族)이 되었다. 당시 김병연의 나이 여섯 살이었다. 홀어머니가 병연 형제를 데리고 여기저기 떠돌며 살다가 영월에 살 무렵이다. 김병연이 스무 살이 되던 해(순조 32년) 영월읍내의 동헌 뜰에서 백일장이 있었다.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이라는 시제를 받고 그는 정의감에 불타 김익순의 불충한 죄에 대하여 만 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추상같은 탄핵의 시를 써서 장원을 하였다. 집에 돌아와 그 이야기를 듣고 그의 어머니는 그 동안 숨겨왔던 집안의 내력을 들려주었다. 너무나 기막힌 사실에 그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반란군의 괴수 홍경래에게 비겁하게 항복한 김익순이 나의 할아버지라니…. 그는 자신이 그 조부를 다시 죽인, 천륜을 어긴 죄인이라 스스로 단죄하고 차마 하늘을 보기가 부끄럽다고 삿갓을 쓰고서 방랑을 시작하였다. 김삿갓이라는 별명도 이로 인한 것인데, 그는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도처에 많은 즉흥시를 남겼다. 그의 시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한 것이 많으며 그런 시들 가운데 걸작이 많아 민중시인으로 기림을 받았다. 그의 시에서 우리는 기가 막힌 웃음을 볼 수가 있다. 스무나무 아래 스무나무 아래 서른 나그네가 ( 二十樹下三十客 ) 마흔 집안에서 쉰 밥을 먹네. ( 四十家中五十食 ) 인간 세상에 어찌 일흔 일이 있으랴. ( 人間豈有七十事 )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서른 밥을 먹으리. ( 不如歸家三十食 ) 스무나무란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의 이름이다. 삼십객(三十客)에서 삼십은 '서른'이니 '서러운'의 뜻으로 서러운 나그네. 사십가(四十家)에서 사십은 '마흔'이므로 '망할'의 뜻이다. 망할 놈의 집이라는 의미다. 오십식(五十食)은 '쉰(상한) 밥'이고, 칠십사(七十事)란 '이런 일'을 말한다. 삼십식(三十食)은 '서른 밥' 즉 '선(설익은) 밥'이다. 이 시는 김삿갓이 함경도 지방의 어느 부잣집에서 냉대를 받고 나그네의 설움을 한문 숫자의 뜻을 이용하여 익살스럽게 표현한 시이다. 다시 제대로의 의미로만 새기자면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가/ 망할 놈의 집안에서 쉰 밥을 먹네./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선 밥을 먹으리." 김삿갓은 희화적인 시만 능한 건 아니었다. 눈[雪]을 시제로 주고 누가 봄철의 '나비'와 초여름의 '개구리'를 넣어서 시를 지어보라는 청을 받고 지었다는 다음의 시를 보면 얼마나 위트가 출중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비래편편삼춘접, 답거성성오월와 ( 飛來片片三春蝶 踏去聲聲五月蛙 ) 날아오는 조각조각은 봄철의 나비요, 밟고 가는 소리소리는 오월의 개구리 울음이라.  겨울 속에서 봄, 여름의 이미지를 찾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펄펄 날리는 눈송이를 흰나비로 보고, 눈을 밟는 소리에서 그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유추해내고 있다.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의 그 절묘한 배치를 한 번 음미해 볼 일이다. 대체로 우리 나라 현대시는 주요한의 이후 소월을 거치고 청록파를 지나오면서 동양적 관조나 엄숙주의로 일관해오고 있다. 심지어 어떤 시인은 가장 슬픈 시가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까지 말하기도 하였다. 눈물과 한, 설움의 정조가 들어가지 않으면 그건 마치 한국적인 시가 아닌 양 이른바 순수 전통시의 흐름이 그것을 말해준다.  6·25 전쟁이 우리에게 가져온 변화는 시에도 엄청난 변화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삼월은 가고 사월은 돌아와 있어도 모두다 남들은 소위 대학교수가 되어 꼬까옷에 과자 부스레기를 사들고 모두 다 자랑 많은 나라에 태어나서 산으로 바다로 금의환향을 하는데 걸레 쪼각 같은 얼굴이나마 갖추고 돌아가야 하는 고향도 집도 방향도 없이 오늘도 남대문 막바지에서 또다시 바지저고리가 되어보는 것은  배가 아픈 까닭이 아니라 또다시 봄은 돌아와 꽃은 피어도 뒤 받쳐주는 힘 없고 딱지 없고 주변머리가 없기 때문에 소위 대학교수도 꼬까옷도 과자 부스레기 하나 몸에 지니지 못하고 쓸개빠진 사나이들 틈에 끼어 간간이 마른 손이나마 설레설레 흔들며 떠나보내야 하는  남대문 막바지에서 우리 모두 다 막다른 골목에서 우리 모두 다 밑천을 털고 보면 다 똑같은 책상물림이올시다  삼월은 가고 사월은 돌아와 있어도 봄을 싣고 산으로 바다로 아스라히 멀어만 가는 기적소리 못다 울 설움에 목이 메인 기적소리를  뒤로 힘없이 맥없이 내딛힌 발끝에 채이는 것은 어머니 돈도 명예도 지위도 권세도 자유도 아무것도 아닌 아무 것도 아닌 돌멩이뿐이올시다 ―전영경 「봄 소동(騷動)」 신구문화사의 『한국 전후 문제 시집』에서 작자는 말한다. "이 작품은 1956년의 것이오. (…) 형하고 서대문 주변에서 청춘을 연소시키던 계절의 것이오. 번민과 방황, 그리고 어쩌자는 것인지도 모를 좌충우돌 시대의 유산이오. 일언이폐지하면 고독이라는 박래품(舶來品)에 병들었던 때의 것으로 내 딴에는 퍽 아끼고 소중한 작품이오." 이라든가 , 등 세태를 풍자하는 그의 시는 그 당시 젊은 문학도들에게는 즐거운 충격이었다. 1930년대 이상(李箱)의 다다이즘 혹은 조향의 쉬르 리얼리즘에는 한 번 눈길을 주고 지나칠 뿐이었을 그 때 전영경이 요설체로 풀어내는 시들에는 모두들 환호하였다. '모두 다 자랑 많은 나라에서 태어나 산으로 바다로 금의환향을 하는' 상황적인 아이러니, 돈(딱지)도 없고 빽(뒤 받쳐주는 힘)도 없는 힘없는 지식인 청년의 발길에 채이는 건 지위도 권세도 명예도 아닌 돌멩이뿐이라는 자조적(自嘲的) 표현에 깃들인 것은 웃음 이상의 페이소스일시 분명하다. 막다른 골목에서 서로 마주치는, 똑같은 책상물림의 지식인들의 절망이 예리한 냉소 속에서 빛을 발한다.  내가 먹다 남기면 할머니는 그것을 당신이 먹었다. 지금 내가 먹다 남기면 아내는 그것을 개에게 준다. 내가 코를 흘리면 할머니는 입으로 빨아먹었다. 지금 내가 코를 흘리면 아내는 외면하거나 짜증을 낸다. 나는 할머니를 사랑한 적이 없다. 일편단심 다만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범대순 「일편단심」 '60년대 사화집' 동인으로 출발한 범대순 시인은 우리 나라 최장수 동인지 '원탁시'의 창립회원이다. 흰 수염을 보기 좋게 기르고 늘 멋지게 운전도 잘하는 시인이다. '원탁시'의 장로이면서 항상 그는 젊다. 그가 있는 곳에서는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동인지가 나오고 그 날 전체 동인들이 모임을 가지는 자리에서 다른 시인이 이 시를 일어서서 낭독을 했는데 나는 들으면서 박장대소를 하였다. 시의 제목이 이라고 할 때 모두들 숙연한 자세로 고려말 정몽주나 안중근 의사를 떠올렸을 것이다.  옛날에 어린 손자인 내가 먹다 남긴 코 묻은 밥을 할머니가 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먹다 남긴 밥을 아무도 안 먹는다. 아내는 그것을 개밥으로 처리한다. 그 대목에서 나는 눈물이 나게 웃었다. 시인은 시치미를 떼고 "나는 할머니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 당시에는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할머니의 나이가 되어서 시인은 그 옛날의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그렇게 완곡하게 말한다. '일편단심'으로 아내만을 사랑할 뿐이라는 마지막의 강조는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위트와 역설의 조화 속에서 빚어지는 건강한 웃음이 이 시 속에 들어 있다. 심장병 예방에 웃음이 효과가 있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건강을 위해서도 되도록 많이 웃을 일이다. 시인은 본인이 장난기가 좀 있노라고 엄숙하게 변명하였다. 하지만 나는 범대순 시인이 이런 시를 더 많이 우리에게 보여주길 기대하고 싶다.  한 줄의 詩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굳굳히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 남아 귀중한 史料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詩人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 김광규 「묘비명(墓碑銘)」 돈 많은 재벌의 총수들이 다투어 자서전을 내던 시기가 있었다. 아니 요즘에는 이른바 '떴다'고 하는 연예인들조차 자서전을 내기도 하는데 소문에 의하면 직업적인 대필 작가들이 그 일을 해준다고 한다. 이 시에서도 하나의 훌륭한 묘비가 등장한다. 아마도 당대의 유명한 문인이 그의 행장을 기리는 묘비명을 썼을 것이다. 붓글씨 잘 쓰는 사람들은 항상 붓글씨 못 쓰는 사람들 밑에서 글씨를 써주게 마련이라 하던가. 여기 한 사람의 세속적으로 출세한 졸부가 있다. 그는 생전에 책 한 권 읽은 바 없이, 정신적 가치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사람이다. 돈과 높은 지위를 얻어 행복하게 살다가 죽은 그를 위하여,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문인이 동원되어 훌륭한 비문을 새긴 비석이 세워졌다. 속물적 근성에 입각한 자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물질의 권위를 앞세우고 거들먹거린다. 시인은 이 시의 이면에 숨어서 그들을 마음껏 조롱하고 있다. 아이러니가 독자들에게 역사의 허무함, 위선의 가면을 벗겨내면서 조소와 고소를 터뜨리게 하는 시이다. 겉으로 표현된 진술과 시 속에 내재된 의미 사이의 깊은 골 사이에 매복된 풍자와 아이러니가 이 시를 높은 정신 세계로 고양시키고 있다. 개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의 밑바닥을 핥고 또 핥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몇 번 핥다가 그만둘까 싶었으나 혓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수백 번은 더 핥는다 나는 언제 저토록 열심히 내 밥그릇을 핥아보았나 밥그릇의 밑바닥까지 먹어보았나 개는 내가 먹다 남긴 밥을 언제나 싫어하는 기색 없이 다 먹었으나 나는 언제 개가 먹다 남긴 밥을 맛있게 먹어보았나 개가 핥던 밥그릇을 나도 핥는다 그릇에도 맛이 있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 정호승「밥그릇」 앞서 범대순의 에서는 내가 남긴 밥을 아내가 개에게 주어버린다 하였는데, 여기서는 그 개가 밥을 먹는 모양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개가 밥을 다 먹고 나서도 빈 밥그릇을 지치지 않고 씩씩하게 핥는다는 진술에 이르면 폭소가 터진다.  시적 화자는 한 순간 개와 자신의 위치를 전도시켜 본다. 뼈아픈 자기 반성이다. 나는 언제 저와 같이 끝까지 일을 추구한 적이 있었던가 시적 화자는 반문한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란 끝까지 밀고 나가는 작업의 순수함, 그 도저함을 이르는 표현이지 실제 상황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세상에 개 밥그릇을 핥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끝까지 열심히 해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밥그릇'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가치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 시가 읽는 이에게 단순한 폭소만 유발하지 않고 웃음 끝에 슬며시 얹혀지는 각성의 눈물 한 방울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 한 방울의 눈물은 별빛처럼 아름답다. 김종수 80년 5월 이후 가출 소식 두절 11월 3일 입대 영장 나왔음 귀가 요 아는 분 연락 바람 누나 829-1551 이광필 광필아 모든 것을 묻지 않겠다 돌아와서 이야기하자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 …… ) 나는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눈다 ― 황지우 「심인(尋人)」의 일부 황지우는 이와 같이 활달한 어법으로 시를 쓸 때라야 성공적인 시를 보여준다. 그의 시에서 화자가 근엄한 표정으로 표면에 나타나는 시들은 십중팔구 실패작에 가깝다. 평론가들이 그런 시들 앞에서도 설설 기는 것은 그의 이름에 기가 죽어서이지 압도적인 정신 세계에 짓눌려서가 아니다. 그의 실험적인 기법은 무척 매력적이다. 위트가 번뜩인다. 이 시는 신문기사를 패스티쉬라는 '짜깁기'의 방법으로 나열하고 나서 끝에 가서야 비로소 시적 화자를 등장시킨다. 시적 화자 '나'는 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지금 용변을 보고 있다. 그의 유명한 라는 시에서의 결구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에서처럼 베이소스(안티 클라이맥스) 기법을 구사하여 웃음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단순히 그의 실험적 성공만을 담고 있는 시가 아니다. 1980년 5월이라는 시대 배경에 유의해야 한다. 그 기사들은 당시에 사라진 실종자들을 찾고 있는 광고 기사라는 점이다. 황지우와 가까우면서도 먼 거리에 의 유하가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시를 읽으면 웃음이 없다. 재기 발랄함과 패러디의 표현과 요설 말고는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다. 압구정동에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라는 까페가 생겼다 온통 나무 나무로 인테리어한 나무랄 데 없는 이라는 이 첫 도입 부분부터 황지우의 패러디다. 그리고 그는 계속하여 '배꼽→배→배나무'와 같은 식의 어휘 연상을 이어나갈 뿐, 웃음도 없고 감동도 없고 미감도 없는 도시 풍경을 좌충우돌 묘사할 뿐이다. 환장허겄네 환장허겄어 아, 농사는 우리가 쌔빠지게 짓고 쌀금은 저그덜이 편히 앉아 올리고 내리면서 며루 땜시 농사 망치는 줄 모르고 나락도 베기 전에 풍년이라고 입맛 다시며 장구 치고 북 치며 풍년 잔치는 저그덜이 먼저 지랄이니 우리는 글먼 뭐여 신작로 내어 놓응게 문둥이가 먼저 지나간다고 기가 차고 어안이 벙벙혀서 원 아, 저 지랄들 헌게 될 일도 안 된다고 올 농사도 진즉 떡 쪄먹고 시루 엎었어 ― 김용택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의 일부 전라도 구어의 능란한 구사와 속담의 파격적 인용, 그리고 그런 속담의 패러디와 풍자가 뒤섞여 있는 김용택의 유장한 이 시를 나는 그의 연작보다 우위에 두고 싶다. 이 작품은 농민의 분노가 단순한 분노를 넘어 기막힌 익살과 비극적 카타르시스로까지 승화된 시라 할 것이다. 그가 이 시 말고 또 다른 어떠한 시로 높이 평가받는다 해도 이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근 김용택이 보여주는 투명하고 서정성이 강한 시들도 충분히 그의 역량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그가 이 시에서 보여준 걸쭉하고 활달한 시의 세계로 다시 돌아와 주었으면 싶다. 삼년 전 월부로 사들인 냉장고 아래층에  달걀 한 줄과 김치 한 단지, 곯아버릴 수도 없고 시어버릴 수도 없이 억지로 억지로 싱싱한 체함. 이층에는 오십원 짜리 싸구려 아이스크림 세 개 학교에서 돌아올 우리 아이들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음. 내가 마실 맥주 몇 병과 아내가 마실 오렌지주스는 처음부터 부재중. 아내와 나는 이 대형 냉장고 곁에 쪼그리고 앉아 미소 지으며 사진 찍기를 좋아함. 문을 열면 짜고 매운 한국의 냄새뿐이지만 그러나 문을 닫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하염없이 냉장고를 사랑함. 열려라 냉장고, 열려라 냉장고, 아이들은 열렬히 마술의 문에 매달려 꿈꾸며 노래함. ― 졸시 「냉장고를 노래함」 이 시는 내가 1980년 6월에 발표한 작품이다. 제목은 이란 가곡의 패러디이다. 5·18을 불러오기까지 박정희 군사 정부가 이룩해 놓은 우리 나라 경제 발전의 허상을 이 시에서 나는 풍자해 본 것이었다. 빛 좋은 개살구로서의 대형 냉장고는 월부로 산 것이니 외상이다. 우리의 외채가 당시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를 미국에 살고 있는 교민들로부터 들은 바 있었다. 거의 절망적인 실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었다. '억지로 억지로 싱싱한' 체하지만 냉장고 안에서도 썩을 것은 썩고야 만다.  그리고 냉장고 앞에서 보란 듯이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당시 전시효과만을 내세우는 속 빈 강정의 우리 나라의 전시 행정을 은근히 풍자하고자 함이었다. '열려라, 참깨'라는 마술의 주문에 의해 열리는 알리바바의 동굴 앞에서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아니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순진하기만 한 것이었던가. 그 허울 좋은 경제 발전의 미명 아래 자행된 인권의 유린이며 퇴행으로만 치닫던 민주주의의 아픔이 이 시에는 차마 '곯아버릴 수도 없고 시어버릴 수도 없이'라고 표현된 것이었다.  많은 독자들은 이 시를 다만 웃음으로 읽는다. 그러나 그 웃음 속의 진실은 눈물 이상이었다. 다시 움베르토 에코를 생각한다. 그가 소설 을 쓴 것은 웃음의 진정한 효용성을 강조하고자 함이었으며, 그 연장선상에 얼마 전 그는 속물 근성이 만연한 이 세상을 비틀어 보기 위하여 이라는 비평적 에세이집을 내놓고 있다. 우리의 현대시도 세상의 바보들을 웃게 하면서 넌지시 자기 반성의 깨우침으로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제 그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 94. 파꽃 / 이채민               파꽃                                                   이채민   누구의 가슴에 뜨겁게 안겨본 적 있던가 누구의 머리에 공손히 꽂혀본 적 있던가 한 아름 꽃다발이 되어 뼈가 시리도록 그리운 창가에 닿아본 적 있던가 그림자 길어지는 유월의 풀숲에서 초록의 향기로 날아본 적 없지만 허리가 꺾이는 초조와 불안을 알지 못하는 평화로운 그들만의 세상 젊어야만 피는 것이 아니라고 예뻐야만 꽃이 아니라고 하늘 향해 옹골지게 주먹질하고 있는 저 꽃     이채민 시집 '동백을 뒤적이다' 중에서   =======================================================   95. 금강제비꽃 / 이채민                         금강제비꽃                                              이채민   노을에 잠긴 암벽에 기대어   구원의 기도문을 풀고 있는   아슬한 목숨 하나   몇 번의 삭풍을 견디어 낸 것일까   파르르 생채기 난 꽃잎에   오랑캐의 오字가 티눈처럼 박혀 있다     이채민 시집 '동백을 뒤적이다' 중에서      
956    名詩 속의 "옥에 티" 댓글:  조회:5885  추천:0  2016-01-10
명시(名詩) 속의 '옥에 티'  -- 올바른 시어의 선택을 위하여  1  요즘 들어 영화다운 영화를 본 적이 거의 없다. 기억에 남는 여운 있는 영화가 드물다. 그래도 작년에 본 가 제일 나은 것 같다. 영화가 거의 끝나 갈 무렵 반전의 묘미를 가장 잘 살린 영화로 꼽을 수 있는 것으로 나는 단연 를 들고 싶다. 내내 공포 심리 영화로 일관하다가 일순간 애절한 멜로드라마로 바꿔 놓는 인도 출신 젊은 감독의 연출 역량은 탁월한 것이었다.  그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마이크'가 떠오른다. 배우의 대사를 동시 녹음하기 위한 마이크가 화면에 비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 소년이 공부하는 교실의 천장 가까이 내려온 마이크가 보이고, 심리학자 브루스 윌리스가 침대에 누운 소년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그 마이크가 화면에 훤히 보이는 것이었다.  글로 치자면 퇴고의 과정이라 할 편집이 소홀했다는 증거이다. 그 사소한 '옥에 티'가 지금도 내 마음에 걸린다. 예술 작품이 어디 절대적으로 완벽할 수야 있을까마는 적어도 눈에 거슬리는 아쉬운 대목을 그냥 지나치는 건 철저한 장인정신(匠人精神)에 어긋난다.  2  어린 시절에 배운 두 편의 동요를 생각해 본다. 윤석중 선생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① 학교 종이 땡땡 친다/ 어서 모이자.  ②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지금은 ①이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로 ②는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으로 고쳐져서 노래로 불리고 있다. "학교 종이 땡땡 친다."에서 '치다'는 타동사이다. 타동사는 목적어를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학교 종을'이라고 해야 맞고, '학교 종이'라는 주어를 앞에 내세워야 한다면 '땡땡 울린다'고 해야 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고쳐졌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런 대로 수긍이 가는 얘기다.  그러나 두 번째 동요에서 '담배 먹고 맴맴'을 '달래 먹고 맴맴'으로 고친 것에 대해서 나는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동요가 쓰여진 시기가 1940년대쯤이 아닐까. 아기를 혼자 집에 놔두고 어른들이 외출한 그 심심하고 지루한 한나절을 견디다 못해 아기는 이것저것 장난감을 찾아보지만 그 시절엔 적당한 놀잇감이나 간식거리가 없었다. 나귀를 타고 장에 가야 하는 가난한 시골집이라 아기는 부엌도 기웃거려 보고, 사랑방도 기웃거려 본다. 부엌에서 풋고추를 발견한 아기는 냉큼 그것을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아, 매워라. 퉤퉤. 또 사랑에 건너가서 아기는 나이 많은 어른들이 맛있게 피우는 쌈지 담배― 곰방대나 기다란 담뱃대에 꾹꾹 눌러 담아 피우는 그것을 발견한다. 호기심에 아기는 거친 쌈지 담배를 무심코 입에 넣어본다. 에이 쓰고 매워라. 퉤퉤. 작자는 이와 같이 귀엽고 장난스러운 장면을 그 노래에서 그려내었던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그냥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동요를 불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담배'가 그만 '달래'로 바뀌어버렸다. 구체적인 이유는 잘 모르지만 어린이가 어른 몰래 흡연하고 매워하는 것이라 지레짐작한 어느 근엄한 교육학자의 고지식한 편견이 그렇게 고쳐 부르게 하였을 것 같다. 하지만 '달래'라는 봄나물을 혼자 집어먹고 맵다고 한다는 발상에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봄나물이란 것이 밑반찬으로 항상 부엌에 마련돼 있다는 전제가 우습고 또한 고추와 맞먹을 정도로 과연 달래가 매운 것일까. 단순히 원작의 '담배'와 '달래'의 어감이 비슷한 데서 무책임하게 고쳤다는 혐의를 벗을 길이 없다.  물론 담배란 피우는 것이지, 먹는 건 아니다. 항용 담배 피우는 일을 담배 먹는다고 일상적 대화에서는 허용된다 치더라도 그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나라 청소년의 흡연 문제를 염려하는 차원에서의 충정에서 비롯된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차라리 '마늘 먹고 맴맴'으로 고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본다.  3  우리 모두가 잘 아는 김소월의 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것도 뜻 있을 것 같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이 시 속의 서정적 자아는 김소월이라는 남성이 아니라 전통적인 한국의 여성이다. 그래서 전체적인 시어들도 여성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진달래꽃, 아름 따다, 뿌리우리다, 걸음걸음,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눈물, 흘리우리다.  어느 강의실에서 김종길 시인은 이 시의 전반적인 여성적 어조 및 분위기를 말하면서 딱 한 개의 시어 '죽어도'가 쌀 속의 뉘처럼 몹시 거슬린다고 지적하였다. '죽어도'라는 결사 항쟁(決死抗爭) 식의 표현은 지극히 남성적이며 표독한 어김을 풍긴다는 연유에서였다. 소월이 못내 다정다감한 듯하면서도 눈에 띄지 않는 독한 일면도 간직하고 있었음은 그의 음독 자살에서도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다. 여성적인 어휘들 속에 낀 이 '죽어도'를 어떻게 시 전체의 흐름을 다치지 않으면서 여성적 어휘로 대체할 수는 없을는지.  김소월 시의 연구에 단연 뛰어난 업적을 보인 오하근씨의 저서 《김소월 시어법 연구》를 찾아서 나는 '허투로, 다말고'라는 독특한 소월의 어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허투로'는 "아무렇지 않게 되는 대로", '다말고'는 "'모두 다 말고'에서 '모두'가 생략된 말이며, 다 그만두고"라는 뜻으로 밝혀져 있다. 덧붙여, 연구의 결과가 아직도 미지수라 할 시어 '즈려밟고'를 오하근씨는 "지레 밟다. 지리밟다. 발 밑에 있는 것을 힘주어 밟다."라고 밝혀 놓고 있는데 그 앞의 가벼운 동작의 표현인 '사뿐히'라는 말과의 관계를 살펴본다면 "힘주어 밟다"는 의미가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움을 떨치기 어려운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의 끝 연을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다말고/ 허투로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로 맺었더라면 '죽어도'의 서릿발 치는 느낌이 곱게 가셔지면서 시의 여성적 분위기를 일관되게 살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4  "윤동주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가 즐겨 거닐던 서강(西江) 일대에는 고층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창냇벌을 꿰뚫고 흐르던 창내가 자취를 감추어 버릴 만큼, 오늘날 신촌(新村)은 그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  윤동주 시인의 연희전문 2년 후배인 정병욱씨가 1976년 《나라 사랑》23호에 발표한 회고담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글 가운데 시인의 시작 태도에 대한 언급이 문득 눈길을 끈다.  "그는 한 마디의 시어 때문에도 몇 달을 고민하기도 했다. 유명한 에서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  백골(白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라는 구절에서 '풍화작용'이란 말을 놓고, 그것이 시어답지 못하다고 매우 불만스러워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고칠 수 있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그대로 두었지만, 끝내 만족하지를 않았다."  국어 사전에는 '풍화 작용'의 뜻을 "지표의 암석이 공기·물·온도 따위에 의해 차츰 부서지는 작용. 결정수(結晶水)가 있는 결정 따위가 공기 중에서 차츰 수분을 잃고 부서져 가루로 변하는 작용"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십대 청년 시인으로서 과학에 주로 사용되는 말인 '풍화작용'이 지닌 미약한 정서의 함축성 때문에 고심하는 모습이 충분히 짐작된다. 그는 단지 시에서 그 말 한 마디만 고쳐보려 하다가 스스로 포기한 것 같다. 그 시어 하나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가령 그 한 줄의 시행을 "검은 바람에 곱게 바스러지는"으로 바꿔 썼더라면 어떠했을까. 그러면 '검은 바람'이 '어둠'을 함축하면서 동시에 풍화작용의 의미에도 쉽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이었다. 아울러 '검은 바람'과 '백골'의 색채 이미지의 선명한 대비도 본질적 자아를 상징하는 백골과 현실적 존재인 '나'와의 갈등이라는 주제 의식을 강조하는 데도 도움이 될 법하지 않을까.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검은 바람에 곱게 바스러지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고쳐 써 본 「또 다른 고향」  윤동주의 대표시 중의 하나인 의 마지막 연에서도 역시 미숙한 시어 하나가 눈에 걸린다.  푸로메디어쓰, 불쌍한 푸로메디어쓰,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푸로메디어쓰.  침전하는 푸로메디어쓰. '침전'은 "액체 속에 섞인 작은 고체가 밑바닥에 가라앉음, 또는 그 앙금"을 뜻한다.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푸로메디어쓰가 그렇게 작은 고체 덩어리밖에 안 될까. 이십대 청년 윤동주가 , 두 편을 요즘의 신춘문예나 권위 있는 잡지의 신인상에 응모한다면… 아마 낙선하고 말 것이다. '풍화작용', '침전'과 같은 적확성(的確性)이 결여된 표현이 치명적 결점으로 지적되었을 게 뻔하다.  푸로메디어쓰, 불쌍한 푸로메디어쓰,  불 도적한 죄로 맷돌을 지고  바닷속 깊이 가라앉는 푸로메디어쓰.  라고 퇴고해 볼 것을 청년 윤동주에게 나는 권하고 싶다.  5  현대시는 문자의 옷을 입어야만 그 생명을 얻는다. 구어(口語)가 아니라 문어(文語)로 표현되는 점이 고대의 시가와 현대시가 다른 차이점일 것이다. 문장의 규칙이 현대시에서도 올바르게 지켜져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바른 문장 표현이 언어 생활의 기초가 된다는 관점에서 근래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언어영역에서도 비문(非文)과 부자연스러운 문장을 경계하는 문제를 매년 출제하고 있다. 요즘 세인들에게 회자(膾炙)되는 널리 알려진 시에서도 그런 어설픈 문장이 이따금 발견된다.  ①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②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①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로 고쳐져야 바르고, ②에서의 '群'이라는 한자는 '대열' 혹은 '무리'로 바뀌어졌으면 싶다. 이 시 전체는 모두 한글로 쓰여졌는데 굳이 '群'만 한자로 쓴 것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다. 이 시가 발표된 시대상과 관련해서 혹시 '軍'이라는 이음동의어를 연상시키기 위한 시인의 조심스런 배려였을까.  이 시는 한두 군데의 작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고, 눈물 나게 통쾌한 시임에는 틀림없다. 극장에서까지 애국가를 상영하며 애국심을 강요하던 그 시절에 특히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라고 한 냉소적 베이소스(bathos) 표현 기법은 감히 당대의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으리만큼 훌륭하다.  유명한 시가 단지 유명하다는 한 가지 이유로 신성 불가침의 턱없이 높은 평가와 옹호를 받는 일은 이제 재고돼야 한다. 좋은 점은 장양되어야 하며 좋지 않은 결점은 제대로 바로잡는 바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시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어떠한 선입견도 배제하고 거울같이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 작품을 대해야 마땅할 것이다. 시의 어법도 결국은 합리적, 보편적 상식과 바른 문장 표현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기본을 떠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92.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 김소월             김소월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원작             93. 구름 속의 집 / 이채민              이채민 시인 프로필   충남 논산 출생 2004 계간《미네르바》로 등단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첫 시집 《기다림은 별보다 반짝인다》 두번째 시집 《동백을 뒤적이다》 현재 계간미네르바 작가회장 및 편집위원       구름 속의 집                                 이채민   56층에서 살고 있다 가끔 지나가던 새털구름이 창틀에서 쉬어가고 관악산 연주대에 걸쳐 있던 삿갓구름이 주인 없는 거실에서 슬며시 앉았다 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시인의 집이라 하지만 구름 위에서 시 쓰는 일도 땅에서 헤엄치는 것만큼 어렵다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시는 이래저래 밥이 되긴 글렀다 구름 위의 집에서도 밥은 언제나 내가 한다 시를 팔아야 하는데 먹장구름이 안방에서 거실로 부엌으로 따라다닌다     이채민 시집 '동백을 뒤적이다' 중에서
955    현대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댓글:  조회:7783  추천:0  2016-01-10
현대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좀 심한 말을 하자면 요즘 우리 나라에 시인은 많지만 독자들이 읽어주는 시인의 작품은 드물다고 한다. 또 시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고들 말한다. 과연 오늘의 시는 소월이나 한하운의 시보다 어렵고, 그러므로 읽히지 않고 독자로부터 외면 당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대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고, 현대시의 이해 요령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현대시에 무심코 접근하고자 하는 젊은 독자들을 위하여 여기에 한 가지 이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20 세기 최대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는 시의 요소를 네 가지로 설명한 바 있다. 센스, 사운드, 이미지, 톤이 그것이다. 이 네 가지 요소에 대한 이해가 해결되면 어느 정도 현대시에 접근하는 하나의 요령에 자연히 터득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1. 센스(sense)  흔히들 "그 친구, 센스가 제법이야." 하는 말을 곧잘 한다. 바로 그것이다. 단순한 감각으로서가 아니라 지적(知的)인 감각을 현대시의 한 요소로 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한다  사람들은 입에서 거미줄을 꺼낸다  그 거미줄에 걸려 죽은 사람의 그림자가  눈감은 것처럼 어두운 세상  …… 그래도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본다  꿈으로 우는 거리를 꿈꾼다  ―정현종의 '꿈으로 우는 거리'  사람들의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말. 그 말로 인해서 그 자신이 죽기도 하는 시대. 그것은 바로 자기도 모르게 허공을 날아가다 거미줄에 걸려 목숨을 잃은 작은 날벌레로 비유되고 있다. 사람들은 입에서 거미줄을 꺼낸다. 그 거미줄에 걸려서 죽은 사람의 그림자가 어두운 세상. 말(언어)과 거미줄의 유추라는 이 뛰어난 감각으로 후반의 약간 모호하고 처진 가락조차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시이다. 대체로 현대시는 범속한 상투적 표현을 멀리하고 참신한 감각을 즐겨 표현한다. 봄에 관한 글에서 아지랑이 운운, 한다든가 가을의 시에서 낙엽이 뒹구는 무상한 삶, 운운하는 따위는 우리가 혐오해 마지않는 상투적인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참신한 감각에 갈채를 보낼 수 있는 독자들의 이해력이 요청되는 까닭에 더러는 난해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2. 사운드(sound)  시의 표현 재료는 언어다. 언어는 그러므로 단순한 사상 전달의 매개체가 아닌 음악성을 띤 언어라야 시어가 된다. 많은 현대시가 오로지 현대시라는 이유로 해서 음악성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반성을 요한다고 본다. 언어의 음악성은 독자에게 예술적인 흥분과 쾌감을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좋은 시들이 이러한 음악성, 곧 운율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정형시나 동요의 가락과 같은 외형률보다 미묘한 내재율에 현대시의 묘미가 있다.  허리띠 매는 시악시의 마음실같이  꽃가지에 은은한 그늘이 지면  흰날의 내 가슴 아즈랑이 낀다  흰날의 내 가슴 아즈랑이 낀다.  ―김영랑의 '4행시'  다 아는 바와 같이 영랑의 시는 음악적인 점에서 가장 아름답다. 물론 위에서 보인 시는 7.5조라는 운율 자체가 이 시의 주된 리듬이기도 하지만 나는 영랑의 시에서 그보다는 섬세한 언어 감각을 취하고 싶다. 영랑의 시는 얼핏 보면 여성적이고 가냘파서 우수를 느끼게도 하지만 그 우수가 사실은 매우 밝고 화사한 편이다. 왜냐 하면 대부분의 그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시어들이 비음 ㄴ, ㅁ, ㅇ 이나 유음 ㄹ의 구사가 유려하기 때문이다. 비음이나 유음은 밝은 어감을 주는 것으로 ㄱ, ㄷ, ㅂ, ㅅ, ㅈ, ㅊ 등의 무성음 자음이 주는 어둡고 격한 어감과는 대조적이라 할 것이다. 마음실, 은은한, 그늘이 지면, 흰날, 아즈랑이… 이러한 단어들은 입술에서 구르는 영롱한 방울 소리와 같은 음악성을 느끼기에 족한 것이다.  3. 이미지(image)  이미지란 심상(心象) 또는 영상(映像), 형상(形象)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말로 시를 읽어 가는 동안 우리의 마음속에 그려지는 그림을 말한다. 현대시는 곧 이미지라고까지 극단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만큼 현대시에서 비중이 큰 요소라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하여 이 이미지를 함부로 남용하거나 혹사하면 시를 망칠 우려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요리에 맛을 내는 양념과 같은 구실을 하는 것이 현대시의 이미지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이미지는 대체로 비유로써 형성되는데 이에는 직유와 은유가 대표적이다.  직유(simile)는 가장 초보적인 단계로 '앵두 같은 입술', '타는 듯한 눈빛'과 같은 비유를 말하며, 은유(metaphor)는 나타내고자 하는 본래의 뜻이 감춰진다는 데서 시가 함축적 의미를 띤다. 일반적으로 은유는 A는 B이다, B의 A, 또는 구체어+추상어 등으로써 나타난다. '괴로움을 질겅질겅 씹는 표정이었다.', '파아란 슬픔이 내리는 거리', '눈물의 빵', '꽃은 한 떨기 거울' 등과 같이 두 가지 이상의 개념이 결합되는 것인데 이게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무턱대고 혼자만이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이미지를 표현한다고 하여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비밀 암호 같은 비유를 써서는 곤란할 것이다.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어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麝香) 방초(芳草)ㅅ 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 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 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  스며라 배암!  ―서정주의 '화사(花蛇)'  미당 서정주의 초기를 대표하는 시 중의 하나이다.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뱀이 되었을까. 이 시는 도입부터 충격적인 이미지를 제시한다. 푸른 하늘 아래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달변의 혓바닥 혹은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은 입술. 이러한 색채 이미지는 대단히 강렬한 원색적인 것이다. 마치 에드거 앨런 포의 환상적이며 음울한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시라 하겠다.  이미지 그 자체가 단순히 현대시라는 틀을 고수하기 위해서 쓰여진 시라면 그 시는 이미지 이상일 수 없다. 그런 시는 시가 아니라 이미지에 그치고 마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현대시라고 해서 무조건 난해해야 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4. 톤(tone)  어조(語調), 시인의 말하는 자세. 똑같은 세 끼 밥을 먹고 살아가면서 우리 인간은 모두 다 똑같은 생활,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지는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인들도 시인들 나름대로 인생을 보는 눈이 다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떠한 자세로 인생 또는 세계를 보는가, 어떠한 어조로 말하는가 하는 따위를 '톤'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 편의 시 속에서도 어조에 변화를 주어 표현하는 기교적인 시도를 때로 볼 수도 있다. 가령 처음부터 중반까지는 엄숙한 어조로 말하다가 종반에 이르러 갑자기 톤을 바꾸어 익살스럽게 끝내는 베이소스(bathos) 혹은 안티 클라이맥스(anti climax)라는 방법이 그러한 것이다.  누가 흘렸을까  막내딸을 찾아가는  다 쭈그러진 시골 할머니의  구멍난 보따리에서  빠져 떨어졌을까  역전(驛前) 광장  아스팔트 위에  밟히며 뒹구는  파아란 콩알 하나  나는 그 엄청난 생명을 집어들어  도회지 밖으로 나가  강 건너 밭이랑에  깊숙이 깊숙이 심어주었다  그 때 사방팔방에서  저녁 노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준태의 '콩알 하나'  이 시인의 작품 속에는 현대시에 으레 나타나는 이미지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낡은 시인가? 그렇지 않다. 기교적인 이미지나참신한 감각이 구사되지 않은 데서 역설적으로 새로움을 찾을 수도 있다. 도시의 역전 광장 아스팔트에 떨어진 콩알 하나. 도회지의 아스팔트로 대표되는 현대 문명의 거대한 폭력 앞에 떨어져 뒹구는 한 개의 콩알은 하나의 생명이며 진실한 인간이다. 그런데 이 콩알은 짓밟히며 잊혀지는 처참한 상황 속에 놓여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 생명의 존재를 알아줄 사람을. 어쩌면 그는 우리가 떠나온 농촌의 쭈글쭈글한 주름 투성이의 시골 할머니인지도 모른다. 농촌과 도시, 혹은 현대의 비인간적 폭력과 인간적 각성의 대비를 이 시는 대단히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이러한 비정한 상황 속에서 시인은 밟히며 뒹구는 소중한 생명을 안고 가서 강 건너 밭이랑에 인간성의 씨앗을 심는다. 강 이쪽의 살벌한 곳을 떠난 강 건너 저쪽이란 의미도 퍽 상징적이다. 이 시는 참다운 삶의 자세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인이 지닌 생명에의 외경 내지 존엄성 인식이 세계를 바라보는 이 시의 톤이다. 한 편의 시가 꽃의 아름다움이나 말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우울한 비인간화의 시대에 있어서 꽃은 아름다움 이상의 하나의 생명으로써 표현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말한 현대시의 네 가지 요소 ―센스, 사운드, 이미지, 톤을 고루 조화시킨 그러한 시를 우리는 훌륭한 시라고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90. 진달래꽃 / 김소월               김소월 진달래꽃 원작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91. 산유화 / 김소월           김소월 산유화 원작       산유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954    비대상시를 창조하라 댓글:  조회:7709  추천:0  2016-01-10
창조하는 시 쓰기 절차와 방법3  강사/윤석산  우리 시단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꾸준히 실험해온 이승훈(李昇薰)은 김춘수와 달리 애초부터 무엇인가 창조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합니다. 그것은 자기 시를 라고 명명한 것으로 미루어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대상"이란 모방의 대상을 갖지 않는다는 뜻으로서, 무엇인가 창조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그의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계는 열 두 점, 열 세 점, 열 네 점을 치더라. 시린 벽에 못을 박고 엎드려 나는 이름을 부른다. 이름은 가혹하다. 바람에 휘날리는 집이여. 손가락들이 고통을 견디는 집에서, 한밤의 경련 속에서, 금이 가는 애정 속에서 이름 부른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계속된다. 계속되는 밤, 더욱 시린 밤은 참을 수는 없는 강가에서 배를 부르며 나는 일어나야 한다. 누우런 아침 해 몰려오는 집에서 나는 포복한다. 진득진득한 목소리로 이름 부른다. 펄럭이는 잿빛, 어긋나기만 하는 사랑, 경련하는 존재여, 너의 이름을 이제 내가 펄럭이게 한다.  - 이승훈(李昇薰), [이름 부른다] 전문  일반적으로 벽시계는 열두 번 이상 울리지 않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열세 점, 열네 점"까지 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과 "이름"이 종잇장처럼 휘날리는가 하면, "밤"이 경련하면서 균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그린 게 아니라 창조한 세계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김춘수의 에피소드 병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의 사물을 여러 사물로 바꿔 쓰는 방법이 있다.  그 다음, 원관념을 드러내는 방식은 어떨까 검토해보기로 합시다. 원관념을 잠재시킬 경우, 독자들은 그를 찾기 위하여 텍스트를 주목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길어진 만큼 기존 사물들을 지칭하는 언어로 사고를 진행하여 존재의 구각(舊殼)을 강조하고, 전체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요소가 없어 때문에 조각난 그림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작품을 써봤습니다.  달아 달아/밝은 달아/이태백이 놀던 달아  --달빛은 굵은 동아줄/나는 달빛을 타고  --  금도끼로 찍어 내어/옥도끼는 과분하니 대충 무쇠도끼로 다듬어서  굵은 둥치는 기둥 삼고, 잔가지는 처어척 걸쳐 석가래로 삼고/쓰다 남은 달빛은 주렴으로 둘러쳐  을 세웠다.  논리만 앞세우던 내 관념이 달빛으로 어떻게 집을 짓느냐고 투덜댔지만 불쑥 내민 주둥이를 다독다독 밀어넣고 뜨락이 너무 허전하여 한림(翰林) 앞 바다 비양도(飛揚島)를 끌어다 놓았다.  -[말의 오두막집에서·15]  이 작품은 전체가 27편으로 이뤄진 연작시(連作詩)입니다. 어때요? 어떤 사람은 장난스럽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재미있다고도 하던데. 앞에서 인용한 김춘수의 병치은유 시와는 확실히 다르잖아요?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 전체가 하나로 통일되면서도 달빛이 동아줄도 되고 석가래도 되고…  이 시의 발상 과정을 말씀드리면 어느 달 밝은 밤, 하늘에서 쏟아지는 달빛을 보니까 꼭 동아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로 치환했지요. 그리고 아주 굵고 튼튼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내친 김에 다시 나무로 치환하고, 주렴으로 치환하고, 그런 마술적 분위기를 빌어 관념이 내민 "주둥이"를 밀어넣는가 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비양도"라는 섬을 마치 정원의 작은 돌처럼 끌어다 놨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이라는 원관념을 그대로 드러내되 보조관념군을 이질적인 것으로 잡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사물을 다른 사물로 바꿔 쓰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다음 작품도 이런 방식으로 쓴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앞의 작품과는 또 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말 속에는 말이 있고/말 밖에는 말이 있다.  말과 말 사이에는 빌딩이 있고 /빌딩과 빌딩 사이에는 구멍 가게가 있고/구멍 가게 한 가운데에는 꿈을 담은 사탕 항아리가 있고/그 뒤 쪽 지하실 계단 아래에는 빨간 장화를 신은 고양이가 있고/그 고양이는 밤마다 층계 위에 올라와 밤새도록 운다.  말과 말 사이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숲이 있고/발랑발랑 뒤집히는 물푸레나무 이파리들 뒤엔 명털 뽀얀 소녀들이 있고/깔깔대는 그 소녀들의 웃음은 화살이 되어/산등성이를 달리는 사슴 정갱이를 꺼꾸러뜨린다.  그러나 /지상의 말과 말 사이에는 또 다른 말이 있고/또 다른 말 내부에는 눈부신 이데오르기가 있고/이데오르기는 도시 상공에서 펄럭이는 깃발이 되고/펄럭이는 깃발은 저를 위해 다른 말들을 공격하고/사랑하는 사람들은 간혹 전쟁터에서 혼자 죽는다.  말과 말 사이에는/쓸쓸히 비가 내리는 바다가 있고/비내리는 바다에는 죽은 고래 한 마리가 있고/그 고래는 밤마다 제 짝을 찾아 울며 지구 저쪽으로 떠나고 /그래서 지상의 우리 사랑은 언제나 슬프다.  -[지상의 말과 말 사이에는]  이 작품은 어느 날 무심코 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뼈" 대신 "말" 바꿔 보았습니다. 그러자 말은 단순한 음성 기호가 아니라 입체적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말 밖에는 말이 있다."라고 하고, 말과 말 사이에 빌딩을 세우고, 구멍 가게도 만들고, 그 가게 밑바닥에 지하실도 만들고, 가게 밖으로 도시와 산과 바다 등을 만들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발랑발랑 뒤집히는 물푸레나무 이파리" 뒤에 "명털 뽀얀 소녀들"도 만들고, 깔깔대는 소녀들의 웃음이 "화살이 되어/산등성이를 달리는 사슴 정갱이를 꺼꾸러뜨"리는 세상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작품에서는 사랑하는 여인의 손등에서 팔락거리는 핏줄을 타고 그녀 속으로 드나들기도 하고, 주물럭주물럭 관념을 주물러 미인으로 만들고, 껴안고 뒹굴기도 하였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던 저는 한 동안 이런 방식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며 아주 흐뭇해하였습니다. 하느님처럼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게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를 의사 전달의 도구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존재나 에너지 차원으로 이끌어 올리며, 단순한 상상력의 놀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논리와 철학을 생각하는 수단으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 작품을 쓰는 것도 시들해 하고 있습니다. 매일 똑 같은 작품을 쓰는 것도 그렇구…. 그래서 음향과 문자와 영상을 결합시킨 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길랑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이만 줄일까 합니다.   -------------------------------------------------------------------------------------     80. 군말 / 한용운           이 시는‘님의 침묵’의 서시에 해당하는 서문이다. 매우 파격적 산문시로, 내재율이 충만한 작품이다.‘군말’이라는 작품 속에서 한용운이 뜻하는 님이 들어 있다.           한용운 연보     1879년(1세)  2월 29일 충청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1, 한응준과 온양방씨 차남의 출생.                   (본관 : 청주, 자 : 정옥, 속명 : 유천), (계명 : 봉완, 법명 : 용운, 법호 : 만해)    1884년(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 수학.   1892년(14세) 전정숙씨와 결혼.   1904년(26세) 12월 21일 맏아들 보국 출생(6.25때 월북 후 북한에서 사망).   1905년(27세) 1월 26일 백담사에서 김연곡 스승에게 사사.                    백담사 전영제 스승 밑에 들어가 정지, 수계(受戒)                    백담사 이학암 스승에게 '대승기신론, 능엄경, 원각경'을 배움.   1907년(29세) 4월 15일 강원도 건봉사에서 수선안거, 선수업 시작.                    만화 선사로부터 법을 받고 법호로 만해(卍海)를 쓰기 시작.                    세계여행을 위하여 백담사에서 하산.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건너갔으나 일진회 첩자로 오해받아서 추방됨.                    (귀국하여 안변 석왕사 등 여기저기를 전전함.)    1908년(30세) 강원도 유점사에서 서월화 스승에게 '화엄경' 수학.                   일본(마관, 궁도, 경도, 동경, 일광 등) 시찰, 동경 조동종 대학에서 불교와 서양철학을 익힌 후 10월 귀국.                   12월 서울에 경성 영진 측량강습소 개설 후 소장 취임(목적 : 일제 강점하에서 개인 및 사찰의 토지 수호)   1909년(31세) 7월 강원도 표훈사 불교 불교 강사로 취임.   1910년(32세) 9월 경기도 장단군 화산강숙 강사로 취임. '조선불교유신론' 탈고.   1911년(33세) 1월 박한영, 진진응 등과 순천 송광사에서 승려 궐기대회 개최(한일불교동맹 조약을 규탄).                    3월 송광사에서 조선 임제종 종무원 설치 후 서무부장 취임, 조선임제종 관장에 취임.                    가을, 중국 동북 삼성에서 독립군 정세를 살피던 중 일본 첩자로 오인되어 총상(마취없이 총알 제거).   1913년(35세) 5월 통도사 불교강사 취임. '조선불교 유신론' 발행.                    1914년(36세) 4월 불교강구회 총재 취임. 범어사에서 '불교대전' 발행.                    8월 조선불교회 회장 취임.   1915년(37년) 영호남 사찰 순회강연(내장사, 화엄사,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범어사, 쌍계사, 백양사, 선암사 등)                    10월 조선선종 중앙포교당 포교사 취임.   1917년(39세) 4월 6일 '정선강의 채근담' 발행.   1918년(40세) 9월 월간지 창간(편집 겸 발행인), 12월까지 3권을 발행하고 중단.                   12월 중앙학림(동국대학 전신) 강사 취임.   1919년(41세) 1~2월 최남선과 함께 독립선언서 작성.                    3월 1일 경성 명월관 지점 태화관에서 민족을 대표하여 독립선언 연설을 하고 일제에게 체포.   1920년(42세) 10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손병희 등 민족대표 48인에게 판결선고.                     한용운, 손병희, 최린, 권동진, 오세창, 이종일, 이승훈, 함태영 등 8인이 최고형인 3년형을 언도 받음.   1921년(43세) 12월 만해, 최린, 함태영, 오세창, 권동진, 이종일, 김창준 등 민족대표가 경성감옥에서 출옥(가석방).     1922년(44세) 3월 불교 대중화를 위하여 법보회 발기.   1924년(46세) 11월 한국불교운동의 활성화를 위하여 대한불교 청년회 초대 총재에 추대.   1925년(47세) 6월 오세암에서 '십현담주해' 탈고.                    8월 사화집 '님의 침묵' 탈고   1926년(48세) 5월  '십현담주해' 및 '님의 침묵' 간행.   1927년(49세) 1월 민족단일전선 신간회에 발기인으로 참여.                    6월 신간회 경성지회장 취임.   1928년(50세) 7월 26일 '건봉사 및 건봉사 본말사 사적' 간행.   1930년(52세) 5월 김법린, 김상호, 이용조, 최범술 등이 조직한 승려비밀결사 만당(卍黨)에 영수로 추대.   1931년(53세) 권상로가 주재한 '불교'가 경영난에 빠지자 인수하여 불교사 사장으로 취임.   1933년(55세) 1월 유숙원과 재혼.   1937년(59세) 3월 재정난으로 휴간된 '불교'지 속간.   1944년(66세) 6월 29일 심우장에서 영양실조로 입적. 만해의 친필원고는 남정 박광이 보관.   1960년 9월 박노준, 인권환이 '한용운연구' 출간.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 수여.   1973년 7월 '한용운전집(전 6권)' 출간.   1980년 6월 만해사상연구회에서 '만해사상연구' 제1집 간행.                조계사에서 '만해 탄생 100주년 기념강연회' 개최.   1981년 10월 서울시 성북동 심우장에 만해기념관 개관.   1990년 성북동 심우장의 만해기념관을 남한산성 내로 이전 개관.   1991년 '만해학회' 결성.   1992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박철 마을에 만해 생가를 복원.   1996년 만해사상실천선양회 결성.           8월 15일 대한불교청년회 주최로 독립기념관에 만해어록비를 다시 세움.   1997년 11월 설악산 백담사에 만해 기념관을 세움.   1999년 8월 13일~16일 설악산 백담사에서 제1회 만해축전 '만해학 국제학술대회' 개최(학술대회는 매년 개최)   2003년 9월 23일 백담사 만해마을 개관.   2007년 10월 19일 홍성군 만해생가 앞에 만해체험관 개관.  ========================================================================   81. 님의 침묵 / 한용운                    '아 亽'에서 亽은 '구결자(口訣字) 라'이다. 구결자는 기본적으로 한문 문장에서 구두점을 찍는 곳에 붙이던 약호이고 또 다른 용도로는 한문문장의 이해를 돕고, 읽기 편하게 하기 위하여 한문 구절 아래에 달아 읽는 토의 역할을 한다. 주로 사용되는 토는 伊(이), 隱(은/는), 乙(을/를), 厓(에), 爲古(하고), 爲尼(하니), 爲良(하야), 是面(이면), 是羅(이라) 등을 사용한다.    그러나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는 사용된 亽는 이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국어의 격 또는 활용 어미를 달아서 읽는 것으로 사용되는데, 한용운의 작품에서는 달아서 읽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한용운의 원작 표기 중, 님의침묵에서 '아亽'는 '아아'로, '스亽로'는 '스스로'로, 리별은미의창조에서 '오亽'는 '오오'로 읽고, 알ㅅ수업서요에서 '구븨亽亽'는 구비구비'로 읽어야 한다.            필리핀 블랙 나자렌(黑耶稣节) [ 2016년 01월 11일 08시 32분 ]    
953    詩쓰기에서 다양한 어법을 사용하라... 댓글:  조회:6734  추천:0  2016-01-10
창조하는 시 쓰기 절차와 방법2  강사/윤석산  ◆ 비인과적 병치가 관건이다  하지만, 좀더 생각해 보면 잠재형 복합치환은유에는 이런 결과를 가져올 두 가지 요인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나는 원관념을 잠재시키는 문제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잠재시킬 경우가 훨씬 더 독자의 사고활동을 조장하여 새로운 사물을 창조하는 데 도움이 될 것같이 생각됩니다. 하지만, 무엇인가 창조한다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라고 할 때, 원관념을 잠재시키면 그를 추론해내기 위해 보조관념 중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에 신경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원관념을 잠재쳔객?것은 좀 더 검토해봐야 할 방법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열한 보조관념끼리 유사성 문제입니다. 유사성이 있는 것을 골라 조직하는 것은 그들끼리 결합하여 화자가 의도하는 풍경을 떠올리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지만, 추론 과정에서 언어가 일상적인 것으로 끌고 가려는 힘 때문에 오히려 일상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인과적이고 이질적인 보조관념들을 나열하는 방법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휠라이트(P. Wheelright)는 이와 같이 원관념을 숨긴 보조관념들을 비인과적으로 전시하는 어법을 라고 합니다. 좀 더 확실하게 병치은유의 구조가 드러나도록 이제까지 논의한 어법들과 대조하여 그려볼까요?  현시형 단순치환은유 잠재형 복합치환은유 병치은유  (원문자 : 의미가 잠재되어 있는 경우, □ 문자 : 의미를 형성할 수 없는 경우)  위 그림에서 원문자는 의미가 잠재된 경우를, 네모 문자는 뭔가 의미하는 게 있지만 짐작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원관념(T) 자리를 점선으로 그린 것은 잠재된 경우를, 보조관념(V)의 자리를 점선으로 그린 것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어 하나로 수렴되는 경우를, 실선으로 그린 것은 이질적이라서 수렴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와 같은 병치은유와 잠재형 복합치환은유의 차이는 보조관념들끼리 유사성을 지니는가 이질적인가 하는 차이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차이는 엄청난 차이로 이어집니다. 유사 관계를 지닐 때는 전체가 하나로 묶이어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가 로 바뀌고, 전체 의미를 확정지을 수 있지만, 이질적일 때는 하나로 수렴이 되지 않아 보조관념들이 암시하는 풍경이 무엇인가를 짐작할 수 없고, 독자들이 의미 있는 그 무엇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보조관념으로 제시한 사물들의 의미와 감각이 뒤섞이어 새로운 사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병치은유는 병치한 자질들의 성격에 따라 , , , ,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와 는 이론상으로만 가능할 뿐, 이들만으로는 의미를 형성할 수 없어 실제 창작에는 이용하기 어려운 유형입니다.  그럼 이 가운데 어떤 유형이 유리한 지 6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이 어법으로 [처용단장(處容斷章)]이라는 연작시를 써온 김춘수(金春洙) 시인의 작품을 통해 알아보기로 할까요?  ⓐ남자와 여자의/아랫도리가 젖어 있다./밤에 보는 오갈피나무,/오갈피나무의 아랫도리가/젖어 있다./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은 /새가 되었다고 한다./발바닥만 젖어 있었다고 한다.  - [눈물]에서  ⓑ태초/무정부주의가 있었다. 무정부주의는/발이 없다./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바쿠닌은 입이 크고/크로포트킨은 수염이 아름답다. 가을에는/모과빛이 난다./시베리아 오지에는 일년 내내/눈이 오고/예예족(芮芮族)의 마을은 너무 멀다./죽은 늑대의 목뼈가/부러져 있다./모든 것 다 잊으라고 눈이/쉬지 않고 온다.  - [처용단장] 제3부 31  ⓒ불러다오./멕시코는 어디 있는가,/사바다는 사바다, 멕시코는 어디 있는가,/사바다 누이는 어디 있는가,/말더듬이 일자무식 사바다는 사바다/멕시코는 어디 있는가,/사바다 누이는 어디 있는가,/불러다오./멕시코 옥수수는 어디 있는가,  - [처용단장] 제2부 5  ⓐ는 , , 이라는 비인과적인 이미지를 병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는 , , , 이라는 에피소드를 병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는 좀 다릅니다. "불러 다오"와 "어디 있는가"라는 말을 규칙적으로 제시하고 있을 뿐, 어떤 의미나 이미지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대신 리듬이 두드러집니다. 따라서, ⓐ는 , ⓑ는 로, 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와 ⓒ는 그리 적합하지 않은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는 너무 의미중심이고, ⓒ는 무의미한 리듬만 제시할 뿐, 창조적인 풍경도 관념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가 가장 바람직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그리 만족스런 유형은 못 됩니다. 완벽한 창조라면 그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면서도 새로운 풍경이 되어야 할텐데 아무런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만들어낸 풍경이 너무 정적(靜的)이며, 이미지를 연결한 부위가 로봇의 움직임이나 쪼가리 그림의 연결처럼 부자연스럽습니다.  아니, 병치은유 유형 자체가 문제가 있습니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은 자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고, 독자가 작품을 읽는 것은 무엇인가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유형은 독자가 마음대로 재구(再構)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이이라서, 시인은 자기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독자는 자기가 찾아낸 의미를 확신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비인과적인 비유를 자주 채택하는 현대시로 접어들면서 시의 독자가 산문 쪽으로 옮겨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춘수가 이 기법을 실험한 것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역사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온 것들을 회의하고, 자기 작품에서 의미를 추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기 시를 "무의미시(無意味詩)"라고 명명한 것으로 미뤄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구 시론에 따라 실험한 게 아닙니다. 휠라이트가 {은유와 실재(Metaphor and Realty)}를 통해 병치은유 이론을 발표한 것이 1962년이고, 김춘수가 이 어법으로 쓴 [눈물]이라는 작품을 발표한 것이 1959년이므로, 그 스스로 발견해낸 어법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   72. 편지 / 윤동주                       편지   누나! 이겨을에도 눈이가득이 왓슴니다。       ×  × 흰봉투에 눈을 한줌옇고 글씨도 쓰지말고 우표도 부치지말고 말숙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가요       ×  × 누나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온다기에。         안치환씨의 편지라는 노래가 있는데, 작사(작시)가 윤동주 시인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왜곡되었는지 원은은 불명확하지만 잘못은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정덕수 시인의 한계령을 하덕규 씨가 작사한 것처럼 발표하고, 박인희의 노래 중 얼굴이 마치 박인환 시인의 작품으로 왜곡된 것처럼, 이 편지라는 노래의 작사가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이 노랫말 유행가 가사일 뿐이지 윤동주 시인의 작품으로 보기에는 순도가 너무 떨어집니다. 말 그대로 신파이고 통속 그 자체입니다.             편지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잠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   79. 기적 / 마종기                   < 기적 원문 >       기적     추운 밤 참아낸 여명을 지켜보다 새벽이 천천히 문 여는 소리 들으면 하루의 모든 시작은 기적이로구나.   지난날 나를 지켜준 마지막 별자리, 환해오는 하늘 향해 먼 길 떠날 때 누구는 하고 싶었던 말 다 하고 가리 또 보세, 그래, 이런 거야, 잠시 만나고―   길든 개울물 소리 흐려지는 방향에서 안개의 혼들이 기지개 켜며 깨어나고 작고 여린 무지개 몇 개씩 골라 이 아침의 두 손을 씻어주고 있다.     마종기 시집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중에서                                                         
952    창조는 비유적 어법에서 시작된다... 댓글:  조회:4918  추천:0  2016-01-10
창조하는 시 쓰기 절차와 방법1  강사/윤석산  안녕하세요? 벌써 여름이 오고 있네요. 올 여름엘랑 제주도로 놀러 오세요. 해마다 그랬듯이 남태평양에서 파도들이 몰려와 환상적인 무도회를 열 거예요. 쭉쭉 뻗는 파도의 다리, 아으, 까르르 까르르 쏟아지는 별들의 웃음, 사랑하는 사람이랑 팔랑 팔랑 하양 팔랑 치자꽃 지는 언덕에 앉아 흐느끼는 트럼펫 소리를 들으며 캉캉 춤을 추는 바다를 내려다보면 그야말로 뿅 가요.  꼭 오시는 거지요? 그럼 이번 호에는 쓰기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창조하는 시"가 뭐냐구요? 제가 만들어낸 용어니까 개념부터 말씀 드려야겠군요. 지난 호에 말씀드렸듯이, 우리의 시작(詩作) 동기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말하려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대상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려는 경우이고, 나머지 하나는 무엇인가 창조하려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자기 느낌이나 대상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려는 시는 들을 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내부에 존재하는 관념이나 무의식을 대상으로 삼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작품만 해도 그렇습니다.  열 오른 눈초리, 한잔한 입 모습으로 소년은 가만히 총을 겨누었다.  소녀의 손바닥이 나비처럼 총 끝에 와서 사뿐히 앉는다.  이윽고 총 끝에선 파아란 연기가 물씬 올랐다  뚫린 손바닥의 구멍으로 소녀는 바다를 내다보았다.  ---아이! 어쩜 바다가 이처럼 똥그랗니?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 산태바기에다 연달아 머릴 처박곤 하이얗게 화석(化石)이 되어 갔다.  - 조향, [EPISODE] 전문  이 작품은 중 한 사람인 조향(趙鄕)의 작품입니다. 무의식 속에 드려진 풍경을 그린 것으로서, 일반 독자들에게는 아주 낯설게 보일 겁니다. 소녀가 손으로 총구를 가리고 있는데 그냥 쐈다던가, 총알로 뚫린 손바닥 구멍으로 바라보며 "아이! 어쩜 바다가 이처럼 똥그랗니?"라고 한다던가, 갈매기들이 산태바기에 머리를 처박고 화석이 되어간다는 것은 상식으로는 납득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소년·소녀·총·바다·갈매기 등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로서, 무의식에 의하여 모티프와 모티프의 연결이 비일상적인 것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아니, 이들이 전혀 새로운 것이라고 해도 우리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끄집어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낯선 풍경이 되었느냐구요? 무의식은 우리의 본능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쾌락의 원리(principle of pleasure)"에 의하여 움직이며 도덕이나 질서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서 이성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위치를 바뀌거나 뒤집고, 생략·압축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치된 상태라서 비논리적인 것처럼 보일 뿐이지요. 그러므로, 이와 같은 시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창조라기보다는 모방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그릴 수는 없을까요?  ◆ 창조는 비유적 어법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처럼 존재하지 않는 사물을 창조하기란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상상력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의 특수한 관계 때문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까요? 우리는 언어를 가지고 사고합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사랑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상대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그 말에 해당하는 상황(관련 사물), 그러니까 "사랑하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인가 창조하려고 해도 기존의 언어를 가지고 사고하고, 그 과정에서 사용한 언어가 거느리고 있는 의미나 상황이 개입되어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만들어내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 해도 그에 적합한 언어가 없어 존재하는 다시 기존의 언어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독자들은 기존의 언어가 지시하는 사물과 연결시키면서 시인이 창조한 사물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인가 창조하려는 시인은 이런 언어적 제약에서 벗어나는 방법부터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는 언어의 기능부터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의 경우, 결론부터 말하면 이 어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예컨대, 조용한 유월의 언덕에 하이얀 능금꽃이 피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시다. 그래서, 라고 하면, "능금꽃이 핀"이라는 관형어를 붙여 좀 더 구체화했을 뿐, < 언덕→언덕>이라고 동어반복(同語反覆)을 하여 기존의 언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은 어떨까요?  ⓐ언덕은 꿈을 꾸는 짐승  언덕을 깨우지 않으려고  유월이  능금꽃 속 숨어 있었다.  - 김요섭(金耀燮), [옛날]에서  이 작품에서 으로 치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치환함에 따라 원관념(tenor)인 에 보조관념(vehicle)인 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마치 어깨를 달싹거리며 잠을 자는 짐승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원관념과 보조관념에 동일성(同一性)을 부여하면서 보조관념 쪽으로 의미를 이동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유적 어법은 아주 다양합니다. 커다란 유형만 따져도, 지난 호에 말씀드렸듯이 말하려는 것을 그 무엇으로 바꾸는 , 어떤 사물을 내세우고 그 사물이 지닌 의미 가운데 말하려는 것과 일치하는 것만 골라 쓰는 확장은유(extensive metaphor), 원관념을 숨긴 여러 개의 치환은유를 전시(展示)하는 병치은유(diaphor)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여러 개의 하위 유형으로 나눱니다.  이 가운데 우선 제외해야 할 유형은 상징(symbol)이라고 불리는 확장은유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문학 작품에서 새로운 사물은 시인에 의해 창조된다기보다 독서 과정에서 독자가 떠올리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들의 "습관적 반응"을 깨뜨려야 하는데, 상징은 이미 알려진 의미를 이용하는 방식으로서, 이런 방식을 택할 경우에는 곧 바로 원관념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검토해볼 유형은 으로 바꾸는 치환은유입니다. 이와 같은 치환은유는 원관념이 문맥의 표면에 드러나느냐 잠재(潛在)되느냐에 따라 과 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는 현시형, 다음 작품은 잠재형에 속합니다.  ⓑ경춘선을 타고/한 시간쯤 가다가/문득 어느 산협촌(山峽村)에/내렸다. 늙은 역장과/ 코스모스, 그리고/나무로 만든 긴 벤치가/있었다. 거기 앉아,/담배나 피다 가기로 했다./ 모두들 잠든 탓일까./이 그림 속의 세계는/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결국 나는 혼자 내렸듯/혼자서 떠나야겠지.  -김시태(金時泰), [우리들의 간이역(簡易驛)] 전문  앞의 작품에서는 원관념(언덕)이 문맥의 표면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짐승"이 "언덕"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간이역"이라는 보조관념이 지시하는 이란 의미는 숨겨져 있습니다. 그로 인해 원관념은 보조관념과 전체 문맥을 종합하여 추론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현시형보다 잠재형이 새로운 사물을 창조하는 데 더 유리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숨겨진 원관념을 유추하는 과정에서 이것저것을 떠올리고, 그것들을 결합시켜 새로운 사물을 만들어낼 기회를 잡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치환은유는 보조관념의 수효에 따라 과 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작품들은 모두 으로서 이고, 아래에 인용하는 한용운(韓龍雲)의 작품은 로서 에 해당됩니다.  ⓒ바람도 없이 공중에서 수직으로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  타고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한용운, [알 수 없어요]  이 작품은 생략한 부분까지 합치면 , 을 비롯하여 6개의 보조관념을 채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자연물 가운데에서 선택되고, "누구"의 것에 해당합니다. 그로 인해, 전체의 의미가 하나로 수렴되면서 또는 이나 라는 원관념을 환기시킵니다.  이와 같은 두 유형 가운데 새로운 사물을 창조하는 데 유리한 것은 복합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인 단순형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내 연결할 수 있지만, 인 복합형은 보조관념 수(N)만큼 원관념과 연결해야 하고, 또 그들끼리 조절해야 하며, 보조관념으로 동원한 수만큼의 이질적 감각을 합쳐 새로운 사물로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 < 현시형 복합치환은유>, , 중 가장 유리한 것은 마지막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작품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앞에서 인용한 작품들만 해도 그렇습니다. < 잠재형(ⓑ)>보다는 오히려 이 더 새롭고, 가 가장 일상적인 풍경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   77. 꽃의 이유 / 마종기                   < 꽃의 이유 원문 >       꽃의 이유  꽃이 피는 이유를  전에는 몰랐다.  꽃이 필 적마다 꽃나무 전체가  작게 떠는 것도 몰랐다.  꽃이 지는 이유도  전에는 몰랐다.  꽃이 질 적마다 나무 주위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물 젖은 바람 소리.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 보면 어쩔까.    마종기 시집 '그 나라 하늘빛' 중에서   ============================================================   78.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 마종기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오랫동안 별을 싫어했다. 내가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인지 너무나 멀리 있는 현실의 바깥에서,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안쓰러움이 싫었다. 외로워 보이는 게 싫었다. 그러나 지난 여름 북부 산맥의 높은 한밤에 만난 별들은 밝고 크고 수려했다. 손이 담길 것같이 가까운 은하수 속에서 편안히 누워 잠자고 있는 맑은 별들의 숨소리도 정다웠다.    사람만이 얼굴을 들어 하늘의 별을 볼 수 있었던 옛날에는 아무데서나 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요즘음, 사람들은 더 이상 별을 믿지 않고 희망에서도 등을 돌리고 산다. 그 여름 얼마 동안 밤새껏, 착하고 신기한 별밭을 보다가 나는 문득 돌아가신 내 아버지와 죽은 동생의 얼굴을 보고 반가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여,    세상의 모든 모순 위에서 당신을 부른다.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아라    순간적이 아닌 인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게도 지난 몇 해는 어렵게 왔다.    그 어려움과 지친 몸에 의지하여 당신을 보느니    별이여, 아직 끝나지 않은 애통한 미련이여,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사는 기쁨을 만나라.    당신의 반응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도 당신의 별을 만진다.      마종기 시집 '이슬의 눈' 중에서  
951    시인들이여,- 시의 위기탈출구를 찾아라 댓글:  조회:5749  추천:0  2016-01-10
창작 강의 및 감상평(9)       ☞ 시어 선택 시 고려해야 할 두 가지   필자는 요즘 문단에서 가끔 문학의 위기니, 시의 위기니 하고 왈가왈부하는 모습을 보면 조금 답답하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시의 위기가 어디에서 왔고, 그 해결방안은 어디에 있는 지 떠드는 내용을 보면..... 더욱이 그 원인을 독자층에 돌리고 그 해결방안도 독자층에서 찾을 땐. 그러나 필자는 그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한 생각은 이와 정 반대입니다. 그 원인은 시를 생산해 제공하는 시인에게서 왔고, 그 해결방안도 시인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를 포함해 이 땅의 모든 시인들은 대중들, 특히 문학 수요자의 환경변화를 하루 빨리 깊게 인식해야 합니다. 예전에 대중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데는 문학이 중심 매체이었고 핵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대체할만한 마땅한 대체매체도 없어 늘 대중들의 수요에 공급이 모자랐습니다. 따라서 그 당시는 공급만 하면 수요는 절로 보장되어 있는 상황이었죠. 즉 시라는 제품의 효용성, 편리성, 유익성 등을 크게 고려하지 않더라도 시라는 제품에 언제나 충분한 수요가 있었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나라가 산업화로 치달으면서 대중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할만한 대체매체가 많이 출현하게 되었고, 또한 대중들의 욕구도 다양해졌습니다. 이젠 특별한 흥미가 없고 독자들을 유인할만한 내용이 아니면 독자들이 절로 찾아오리라는 건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겁니다. 다시 말해 기존의 방식대로는 이젠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대다수 시인들이 이런 환경변화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아직도 기존 사고에 갇혀 시의 위기를 수요자인 독자 탓으로 돌리고 있는데 이건 번지수를 잘 못 짚고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공급자인 시인 스스로가 빨리 변해 독자의 환경변화에 적응해야지요. 지금 정치도, 경제도, 행정도, 교육도, TV도, 영화도, 체육도. 모든 것이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즉 독자 위주로 바뀐 지 오래인데 오직 시만큼은 권위주의 귀족주의 전통주의에 너무 깊게 빠져 독자를 고려하면 마치 3류 시인인양 취급하고 전문가가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시를 해설서를 곁에 놓고 감상하라는 식의 합리화에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는 달라진 독자들의 욕구환경을 고려해 시도 하나의 상품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감상하기 쉽고, 재미있고, 음악성 있고, 유익해서 독자들이 스스로 찾을 수 있을만한 시를 만들어 제공해야죠. 그렇다고 품질이 형편없는 싸구려 제품을 만들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싸구려 제품과 사용하기 편리한 제품과는 그 기준이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그 동안 이용자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고 제작자의 일방적인 생각으로 시 쓰는 방식은 수요자 위주로 하루빨리 변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요즘 발표되는 시들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특별한 내용도, 흥미도 없으면서 작자의 일방적인 생각으로 한 장도 아닌 두 장 세 장으로 늘어놓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일반 독자들이 읽어 주리라는 걸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요? 이제는 시를 생각하는 방식, 시를 만드는 방식이 종전과 하루 빨리 달라져야 합니다. 그래야 시의 위기라는 말이 사라지죠.   하여, 초보자들이 이상의 내용을 고려해 기본적으로 유의할 점 두 가지만 소개할까 합니다. 첫째로 초보자 시절에는 老티 나는 시어를 쓰지 말기 바랍니다. 특히 , 등 혼자 술취해 영탄하는 듯한 용어는 절대 쓰지 말기 바랍니다. 이런 용어들을 보면 독자들이 바쁘고 바쁜 세상에 혼자 술 취해 영탄하고 돌아다니는 소리로 여겨 그런 시는 그냥 넘겨버리게 됩니다. 즉 독자들은 이런 용어를 보면 할 일없고 배부른 소리로 생각해 기분 나빠하기 쉽다는 거죠. 그리고 , 식의 명령투도 지양하시기 바랍니다. 독자들은 기본적으로 자기보다 불행한 이야기, 슬픈 이야기, 즐겁게 하는 이야기, 유익한 이야기 등에 관심이 있고 또 이걸 읽으면서 스스로를 위로 받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보다 잘난 체하는 이야기, 친구 가족 등 주변 자랑 이야기, 명령 투의 이야기 등을 들을 땐 아주 기분 나빠하게 됩니다. 실제로 필자는 아주 젊은 시인들 중에도 이런 노티 나는 용어와 명령 투의 시를 자주 쓰는 걸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 창작 강의를 듣는 사람은 이런 노티 나는 용어대신 가능한 한 확신에 차 있고 박력 있고 싱싱한 용어를 구사하기 바라고, 명령투 대신 청유형을 구사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고어(古語), 사어(死語), 상투어 등은 가능한 한 사용하지 말기 바랍니다. 시도 그 시대의 문화를 즐기는 하나의 매체입니다. 따라서 그 시대의 사용언어와 무관하지 않죠. 그런데 이 첨단 시대에 살면서 아직도 화랑, 신라의 달밤, 정읍사의 노래, 달구지, 신작로, 물레방아, 수틀, 바느질, 낮달, 이승, 저승 등등 그 옛날 시절의 풍경과 풍물, 남들이 지겨울 정도로 써먹는 낡은 시어를 들먹이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그러나 이 용어들에 특별한 관심이 있거나 사연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대다수 독자들은 이런 용어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싫어하게 됩니다. 시속에 나타나는 시간, 장소, 풍물들의 거리도 독자들에게는 현실의 거리만큼 멀고도 가깝게 느껴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막연하게 먼 시간 속으로 끌고 가는 건 귀찮아해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하늘에 UFO가 날아다니는 세상인데 아직도 낮달 운운하는 걸 보면 독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겠습니까? 더군다나 남이 자주 쓰는 시어를 보면 '이 사람 노력도 하지 않고 맨 날 남이 쓴 시어나 갖다 쓰는 참 게으른 시인이구나!' 하고 독자들이 판단하지 않겠어요?   하여, 이 게시판 독자들 중 이런 것에 그 동안 관심이 있었다면 잠시 이를 접어두고 현재의 우리 생활 속에서 매력적인 소재를 찾아 시를 쓰도록 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독자들이 기본적으로 가능한 한 현재의 시간 속에서 울고 웃고 놀기를 좋아한다는 걸 명심하기 바랍니다. 아울러 사투리를 쓰더라도 옛것보다는 현재의 것을 쓰기 바랍니다.   이런 것들이 공급자 위주가 아닌 수요자, 즉 독자를 고려한 전략적 시 쓰기 방법의 한 예입니다.   ************************************************************************   게시판에 올라온 시를 감상해 보도록 합시다.   를 쓴 서담 님은 언어를 다루는 것을 보니 기성 시인이 아닌가 싶군요. 제 추측이 맞는다면 이렇게 찾아주신 데에 대해서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제가 크게 잘난 것도 없지만 제가 이 교실을 담당하기 때문에 만났고, 그 인연으로 필자의 창작 경험을 듣게 된다고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서담 님이 풍자시, 위트시, 드라마틱 시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여겨져서 남들보다 한 발 앞서가는 생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시를 유창하게 구사할 정도가 되면 시의 테크닉은 정점에 달한 것으로 저는 봅니다. 그 이유는 이런 시는 기본적으로 소설적인 기법인 극적구조, 즉 기승전결 구조를 요하고 이걸 효과적으로 구축하려면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면서 독자들을 꽉 휘어잡고 몰고 다니는 능력과 반전상황을 상상력으로 창조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소설도 역동적인 반전상황을 창조하기 힘든데 더군다나 시에서 독자들을 몰고 다니며 효과적으로 반전상황을 창조한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쉽습니까?   서담 님의 를 읽고 나니 서담 님이 어떤 풍자시를 쓰고자 하는지 그 의도는 충분히 알겠는데 서담 님이 의도한만큼 풍자가 되지 않았어요. 우선 라는 소재 자체부터 충분하게 풍자성 있는 소재가 아닙니다. 풍자시로 성공하려면 먼저 소재 자체가 충분하게 풍자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게 낯설어요. 그렇게 되면 가 어떤 것이다라는 의미를 서두에서 창조한 다음 시를 전개해야 하니깐 그만큼 풍자성이 풍부한 소재보다 전략적으로 긴장이 뒤떨어지게 되는 거죠. 만약 같은 프로이지만 로 소재를 선택했다고 해보세요.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이건 웃기는 프로다라고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의미를 다시 강조할 필요가 없잖아요. 왜 이게 중요하냐면 처음부터 독자의 의식을 한쪽으로 확실하게 굳혀놓아야 독자를 쉽게 끌고 다닐 수 있기 때문이에요.   두 번째는 배경과 무대를 가능한 한 한군데로 하는 게 효과적이에요. 두 군데를 하더라도 반전부에서 반드시 이를 모아야 해요. 그 이상을 벗어나면 긴장과 집중도가 떨어지게 되어 반전도 용이지 않을뿐더러 반전을 시도하더라도 김이 다 빠진 상태가 되는 거죠. 예컨데 술좌석에서 어떤 사람이 자기는 정말 웃기는 이야기라고 말하는데 자꾸 여기저기를 이야기하다보니 초점이 흐려지고 내용이 산만해져 웃음이 하나도 나오지 않은 경우와 똑같은 이치이죠. 하여 서담 님의 시에는 고시촌, 골프장, 시창작반으로 세군데로 장소가 흩어져 있어서 독자들이 갈수록 긴장하기보다는 장소를 따라다니기에 바빠요. 그래서 이미 김이 다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셋째로는 반전부에서는 기본적인 형식이 이제까지의 내용을 뒤집는 겁니다. 따라서 이제까지 내용이 이었으면 반전부에서는 가 되는 거죠. 그리고 접속어를 사용할 경우에는 그러나, 그런데, 하여 등등이 되는 거죠. 그리고 나서 결론부분에 가서는 서두의 의미를 한번 더 리플레이 한다는 생각을 갖고 전개와 반전으로 벌어진 의미를 모아주고 자기 생각이나 새로운 의미를 첨가하면서 끝내는 겁니다. 그런데 서담 님의 시는 반전부의 형식과 내용이 크게 역동적이지 못하고 결론부분도 없이 끝냈어요. 그래서 풍자도 흥미도 의도했던 것만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근간으로 해서 필자가 서담 님의 시를 바로 고쳐 쓴다면 이런 형식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   닭장프로   서 담   골프연습장에는 닭장프로가 있다네. 아직까지 날지 못하는 자에게 유용한 프로.   그 프로에 의하면 실내에선 되지 않는 게 없다네. 늙다리 할아버지도 옆집 아줌마도 힘을 빼고 부드러운 자세로 기본기에 충실하면 신문 인터뷰 난에 크게 날 수 있다네. 서로 연인도 될 수 있다네.   그러나, 야외 연습장으로 나가면 이 모든 게 아무짝 쓸모 없네.   ====================================================   기도 / 마종기                             < 기도 원문 >     기도     하느님, 나를 이유 없이 울게 하소서.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게 하시고 눈물 속에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죽어서는 그들의 눈물로 지내게 하소서.     마종기 시집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중에서  ==================================================================   76. 우화의 강 / 마종기                           < 우화의 강 원문 >       우화의 강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결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마종기 시집 '그 나라 하늘빛' 중에서     
950    詩쓰기 뒤집어 쓰기 댓글:  조회:5928  추천:2  2016-01-10
창작 강의 및 감상평(8)       필자의 강의를 중간부터 듣는 사람은 필자의 강의 (1)부터 반드시 읽어볼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그래야 빠른 시간에 효과적으로 시창작법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 효과적이고 매력적인 시적 표현 얻는 방식 두 가지   초보자 시절은 시 쓰는 것에 대하여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고, 설사 알겠다 여겨지더라도 쓰려고 하면 또 막막하기 이를 데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때는 되든지 않되든지간에 상관하지 말고 바로 무조건 끼적거려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여, 바로 끼적거려도 남보다 몇 곱절 빠르게 시적 표현을 얻는 방법 두 가지만 공개할까 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이 두 가지만이라도 잘 활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남과 다른 표현을 새롭고 독특하게 효과적으로 구사할 수 있을까? 이걸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면 라는 개념을 알아야 하는데 이걸 또 설명하려면 한 학기 내내 설명해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서 필자의 개발한 용어로 그 방법을 설명할까 합니다.   그 첫 번째 방법은 입니다. 시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의 사고와 인식 방향이 주로 한쪽으로 쏠려있습니다. 그러니까 먹고 마시고 행동하고 또 사물을 보고 느끼고 감탄하고 슬퍼하는 방식이 대동소이하고, 우리의 인식구조도 주로 그 쪽으로 익숙해 있습니다. 따라서 그 쪽에서 새로운 표현을 구하려면 지금까지의 방식보다 몇 곱절 노력과 탐구로 새로운 표현을 발견하지 못하면 결코 효과적으로 다가오지 못합니다. 이때는 거꾸로 접근해 보는 겁니다. 남들의 시선이 다 한쪽으로 쏠려있을 때 자기는 거꾸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겁니다. 그러면 남들이 전에 자주 보지 못했던 사고와 행동이니깐 우선 시선을 끌게 되고 새롭게 느껴지게 되는 거죠. 다시 말해서 고스톱도 여태껏 쳐왔던 방식으로 쳐 잘 안 풀릴 땐 거꾸로 치면 의외로 잘 풀리는 이치와 같은 전략이지요.   그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어떤 시인이 로 표현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똑같은 내용이지만 이걸 거꾸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 또는 이렇게 되는 거죠. 를 거꾸로 표현하면 . 는 , 는 가 되는 거죠. 어떻습니까? 똑같은 내용이지만 어떤 게 우리에게 더 참신하게 다가옵니까? 후자이지요. 전자가 설명이라면, 후자는 묘사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묘사란 그 동안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는 인식체계로 대상에 접근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방법을 구사할 때 유의할 점은 시 전편에 걸쳐서 다 이렇게 표현하면 안 되요. 전편에 걸쳐서 구사하면 이것 또한 한쪽 체계의 인식구조로 전락하고 굳어지기 때문에 군데군데 양념 치듯 구사해야 되요. 특히 첫연 첫 구절에 이걸 효과적으로 구사하면 독자들을 아주 매료시킬 수 있습니다. 현 문단에서 이걸 잘 구사하는 시인이 바로 오규원 시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을 쓴 김수영 시인도 이 기법을 즐겨 구사했고요.   두 번째 방법은 입니다. 이 방법은 필자가 깊이 탐구해 작품에 실제 많이 응용했고 현재도 아주 즐겨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즉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 또는 풍경 내에 있는 주변 소재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입니다. 이걸 잘 활용하면 시가 그림처럼 아주 선명하게 되고 초점도 또렷하게 됨을 금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특히 풍물, 풍경시를 쓸 때 이 방법은 아주 효과적입니다.   예를 한번 들어봅시다. 가령 어떤 사람이 형광등, 침대, 커튼, 그림 등이 있는 방에 갇혀 한 여자를 그리워하며 책상에 골똘히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렇게 표현하는 겁니다. 이렇게 한 남자가 한 여자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방 속에 있는 소재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그 이미지와 초점이 선명하게 되고 할 이야기도 금세 많아지게 됩니다. 대부분이 이걸 잘 모르고 방밖을 벗어나 거창한 소재와 이야기를 자꾸 끌어오려 하다보니깐 시가 초점이 흐려지고 난해해 지게 되는 거죠. 이것만 잘 해도 시가 아주 유창해 집니다.   실제로 이 기법 하나만으로도 신춘문예 당선한 필자의 시 한 편을 그 예로 살펴보고 이번 강좌를 마치겠습니다. *****************************************************************************   정동진驛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 그 마을에 가면 정동진이라는 억새꽃 같은 간이역이 있다.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 가끔 두 칸 열차 가득 조개껍질이 되어버린 몸들을 싣고 떠나는 역. 여기에는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이 있고,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 아름다운 천정도 볼 수 있다.   강릉에서 20분, 7번국도를 따라가면 바닷바람에 철로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와 푸른 깃발로 열차를 세우는 驛舍,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 ************************************   필자는 정동진역 풍경을 그리는데 모두 정동진역 근처에 있는 소재들로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소재들은 실제로 정동진역에 다 있던 것들입니다. 억새꽃, 벤치, 모래사장, 라면집, 소주집, 소나무 등등... 그래서 열차가 들어오는 역이니까 겨울이 오는 것도 으로 생각했고, 역도 으로 표현했고, 라면집도 삼양라면을 끓이는 라면집이 아니라 이고, 소주집도 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필자가 실제로 라면집을 묘사해야 하겠는데 구불구불한 주변 소재를 찾으니까 산 능선, 도로, 해안선 등이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이중에서 가장 주변 소재에 어울리는 게 바로 해안선이었어요. 그래서 이걸 차용한 겁니다. 또한 마주보고 술잔을 나누는 소주집도 묘사해야겠는데 쓸만한 주변 소재들을 밖을 내다보며 살펴봤더니 배, 수평선, 갈매기, 파도 등이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이 소재들이 다 어울리지만 이중에서 파도가 가장 운치 있는 소재로 생각되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주변 소재로 둘러댔더니 읽는 사람마다 다 반하더군요. 만약 이걸 라고 표현했다고 해 봅시다. 얼마나 평범하고 싱겁겠어요?   위시는 시의 템포를 한 단계 높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삽입한 마지막 구절을 제외하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동진역을 벗어나지 않고 철저하게 정동진역 주변 소재로만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래도 신춘문예에까지 당선되고 성공한 시로 여기잖아요? ***********************************************************************   게시판에 올라온 시를 감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영이 님의 를 감상해 보도록 합시다. 우선 이영이 님의 시를 읽으니 양파를 가지고 나름대로 상상을 펼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물겹게 느껴지는군요. 아주 장래가 기대되는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다 이렇게 몸부림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자기도 모르게 시 창작법을 습득하게 됩니다. 아주 정상적인 과정입니다. 초보자 시절에는 이렇게 되는 상상이든 안 되는 상상이든 천방지축 날뛰며 시행착오를 거듭하게 되고 이런 몸부림치는 과정이 치열할수록 크게 발전할 수 있는 여지도 많게 됩니다.   이영이 님은 쌩상의 음악을 틀어놓고 양파를 벗기며 단순히 느낀 소감을 적었군요. 그래서 이 시는 내용이 쌩상의 음악이 흐르고 있고, 양파 껍질을 벗기다 보니 매워 눈물나는 모습 두 가지 밖에 없군요. 그리고 마지막 구절은 앞의 내용과 조응하지 못하는 동떨어진 시로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 시는 내용적으로 아직 여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초보자가 이렇게 몸부림치는 모습은 크게 인정해 줄만 하고 아주 좋은 징조로 여겨집니다.   우선 이영이 님은 이 시를 그대로 놔두고 이렇게 다시 써 보시기 바랍니다. 소재를 양파에 한정하고 이렇게 첫줄을 써 놓고 쌩상의 음악을 양파의 속성과 우리에게 이용되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빗대어 표현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때도 물론 상상으로 접근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맨 마지막에 가서 로 서두의 구절에 의미를 첨해 한 번 더 리플레이 하면서 시를 마무리 지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그때 필자가 앞에서 설명한 '효과적인 제목 붙이는 요령'을 참고해 제목을 한번 붙여보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필자의 창작 강의 및 감상평 (5)에 예로 든 윤문자의 을 로 바꾼 다음 수박의 속성에 해당하는 내용을 전부 양파로 바꾸어 시를 써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금세 훌륭한 시로 탄생함을 절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초보자 시절에는 이렇게 앞서간 사람들의 시 창작 방법을 모방하면서 자신의 시 창작법을 습득하게 되는 겁니다. 절대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써서 다음에 다시 한번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효과적인 시창작법을 이 게시판 독자들이 함께 공유해야 하니깐 요. ****************************************************************************   눈아수 님의 을 감상해 보도록 합시다. 눈아수 님도 나름대로 몸부림 쳤습니다만 문제가 많군요. 우선 시 내용의 시점이 첫 연에서는 아침이었다가 두 번째 연부터 갑자기 저녁으로 변했어요. 작품에서 이러면 안 되지요. 시점이 갑자기 바뀌고 장소가 바뀌면 독자들이 못 따라와요. 그러면 시가 갑자기 산만해지고 난해해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작자 혼자 내킨 대로 쓴 형국이 되는 겁니다. 시간이 바뀌고 장소가 갑자기 바뀌면 독자들이 충분히 따라올 수 있도록 배려를 해야 해요. 이것까지 고려하면서 시를 쓴다니... 시 쓰기가 갑자기 어려워지죠? 그래서 초보자 시절에는 가능한 한 한 장소와 한 시점으로 통일해 시를 써야 하는 겁니다. 독자들이 따라올 정도로 배려를 해 시를 쓸려면 테크닉이 충분히 붙은 다음에라야 가능해요.   하여, 눈아수 님의 시는 시점이 첫 연과 맞지 않고 내용도 참신한 내용이 아닌 진부한 서사이오니 더 참신한 내용으로 다시 써 보시기 바랍니다. 제목에 구애받지 말고 필자의 창작 강의 (1)부터 꼼꼼히 읽은 다음 상상하기 쉬운 소재를 하나를 갖다놓고 시를 한번 다시 써 보시기 바랍니다. 이때는 시 한편을 얻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쓰는지를 체득하는 게 눈아수 님에게 더 중요합니다. 더불어 연을 전개할 땐 앞 연의 핵심어, 또는 핵심 의미를 가지고 뒷 연을 전개해야 시의 논리성과 전달력을 갖게 됨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이 시 첫연을 로 고쳐 쓴 다음 '열리는 꿈' 이야기로 두 번째 연부터 상상을 한번 펼쳐 시를 완성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시 창작이란 체험과 경험을 직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소재를 통해 체험과 경험, 가공 이야기를 새롭게 꾸며내고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창작인 것입니다 (김영남).   ==============================================================   73. 전화 / 마종기                                       전화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를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    다시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마종기 시집 '변경의 꽃' 중에서     < 마종기 시인 약력 >   출생 : 1939년 일본 동경          아버지 마해송은 아동문학가이며, 어머니 박외선은 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서양무용가.   학력 : 서울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의대          서울대학교 대학원(의학과) 졸업          등단 : 1959년 《현대문학》에서 '해부학 교실', '나도 꽃으로 서서' 등으로 박두진의 추천(3회)으로 등단.   경력 : 1966년 결혼 후, 서울대 대학원박사과정 이수중에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방사선과 수련의 생활.          오하이오 의대소아과와 방사선과 조교수겸 동위원소실 실장.          오하이오 의대소아과 임상 정교수와 오하이오 아동병원 초대 부원장 겸 방사선과 과장 역임.          2002년 의사 및 교수직에서 완전히 은퇴.   시집 : 1960년 첫시집 《조용한 개선》 출간. - 연세문학상 수상.          1965년 시집 《두 번째 겨울》출간.          1968년 김영태, 황동규와 함께 평균률 동인시집 《평균률 1》 출간.          1972년 평균률 동인시집 《평균율 2》 출간.          1976년 시집 《변경의 꽃》 출간. -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80년 시집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출간.          1982년 시선집 《그리고 평화한 시대가》 출간.          1989년 시집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출간. - 미주문학상 수상.          1991년 시집 《그 나라 하늘빛》 출간.          1992년 박남수, 고은과 함께 3인 시선집 《새소리》 출간.           1997년 시집 《이슬의 눈》 출간. - 편운문학상, 아산문학상 수상.          1999년 《마종기 시 전집(문학과지성사)》, 《마종기 깊이 읽기》  출간. - 환갑 기념집.                       2002년 시집 《새들의 꿈에는 나무 냄새가 난다》 출간.          2003년 첫 산문집《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출간.                   《새들의 꿈에는 나무 냄새가 난다》 출간. - 동서문학상 수상.          2004년 시선집《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출간.          수상 : 1976년 한국문학작가상          1989년 미주문학상          1997년 제7회 편운문학상, 제9회 이산문학상          2003년 제16회 동서문학상          2008년 제54회 현대문학상          2011년 제6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      ====================================================== 74. 바람의 말 / 마종기                     < 바람의 말 원문 >           바람의 말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미종기 시집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중에서    
949    詩에 옳바른 <<이름>> 붙혀주자... 댓글:  조회:6093  추천:0  2016-01-10
창작 강의 및 감상평(7)     ☞ "엉뚱하게 제목 붙이는 법" 상세 강좌   이전 창작 강의 및 감상평(6)과 관련하여 효과적인 제목 붙이는 법중 세 번째인 "엉뚱하게 붙이는 방법"에 관하여 여러 군데에서 전화가 와 이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여겨 보충합니다.   엉뚱하게 제목 붙이는 법은 전통적인 방법보다 그 수준과 기교가 한결 세련을 요하는 방법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걸 잘 못 붙이면 시가 난해해져 무엇을 썼는지 독자가 잘 모르게 됩니다. 가끔 시 전문잡지에도 본문과 관련지어 전혀 이해가 안가는 이상한 제목의 시를 종종 볼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이런 경우에 이에 해당할 겁니다. 그러나 제목을 제대로 찾아 붙이면 매우 뛰어난 시로 금세 둔갑하게 됩니다.   그 원리는 이렇습니다. 시의 제목과 본문이 기본적으로 메타포, 즉 은유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시의 제목과 본문이 참신한 은유관계가 형성될 때 그 시는 그만큼 참신한 시로 거듭 태어나게 됩니다. 이때 방법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A는 B이다"라는 은유관계가 있는 문장을 가져와 A를 제목으로 올리고 B에 해당하는 내용을 창조해 시를 만드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B에 해당하는 것을 먼저 써놓은 다음, 나중에 A에 해당하는 제목을 발견해 시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이중 첫 번째는 상당한 수준을 요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가 쉽게 구사할 수 있는 방법이어서 지난 강좌 때 이 방법을 소개한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 번 예로 든 시를 다시 읽고 난 다음에 설명하겠습니다. ************************************************************************   사춘기   강순   여울에는   밀어,꼬치동자개,버들매치,버들치,배가사리,감돌고기,가는돌고기,점몰개,참마자,송사리,갈문망둑,눈동자개,연준모치,버들개,모래주사,새미,누치,흰수마자,납자루,열목어,꺽저기,수수미구리지,금강모치,돌상어,왜매치,꺽지,쌀미구리,점줄종개,돌마자,둑중개,왕종개,버들가지,꾸구리,모샘치,어름치,돌고기,부안종개,자가시리 등이 살았다.   나는 가끔 물살이 빠른 그곳에 발을 담근다.   ************************************************************************   위시는 제목과 본문이 은유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습니다. 즉 '사춘기'는 물살 빠른 '여울'이다는 훌륭한 메타포가 들어있는 시인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방법을 설명한다면 첫 번째 방법은 이렇습니다. 자신이 "사춘기는 물살 빠른 여울이다"라는 메타포가 눈에 번쩍 띄는 문장을 발견하고 이걸 갖다놓고 제목을 로 올리고 본문에 해당하는 에 관한 내용만 창조하는 방법입니다. 즉 사춘기를 특징지을 수 있는 물살 빠른 여울만 구체적으로 창조하는 것이죠. 하여 이 방법은 상상력으로 B에 해당하는 내용을 창조해야 하니까 테크닉과 능력이 일정 수준에 달하지 않으면 여간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눈에 번쩍 띄는 물살 빠른 여울을 묘사해 놓은 다음, 그 내용에 메타포가 잘 조응되는 제목을 찾아 올리는 방법입니다. 위시의 작자는 아마 자신의 기억 속에서 인상 깊은 여울을 먼저 상상으로 묘사한 다음에 그에 잘 조응하는 제목인 '사춘기'를 붙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위 시는 제목을 굳이 '사춘기'로 하지 않더라도 물살 빠른 여울에 조응하는 제목이면 다 성립합니다. 즉 제목을 '나의 대학시절' '80년대' '고교시절' '어린 시절' '신혼기' 등 과도기적 상황의 제목이면 다 잘 어울려 시로 훌륭하게 성립합니다.   하여, 엉뚱하게 제목 붙이는 방법 중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두 번째 방법이 첫 번째 방법보다 좋은 시를 더 쉽게 많이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 특히 퇴고 과정 중에 버리기 아까운 대목을 다로 떼어내어 보강한 다음 이 방법을 한번 활용해 보세요. 의외로 좋은 시를 아주 쉽게 건질 수 있을 겁니다.   ************************************************************************   게시판에 올라온 시를 감상하겠습니다.   배용진 님의 를 감상해 봅시다. 배용진 님은 소나기 오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포착하는데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게 시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다만 그러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만약 이게 시가 될 수 있다면 사진이 제일 훌륭한 시가 되는 거죠. 이는 무얼 뜻하느냐 하면 대상을 포착하되 자기가 들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들어가려면 이 강좌 맨 처음부터 줄기차게 강조한 상상으로 대상을 포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소나기가 오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느낌을 말하는 것이고 상상을 한 것이 아니죠. 즉 상상은 소나기 오는 모습이 내게 무얼 떠오르게 했느냐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상상을 하는 지는 이 창작 강의 처음에서 님이 배용진 님처럼 시를 썼다가 제게 지적을 받고 비 오는 모습을 편지오는 모습으로, 또 씨뿌리는 모습으로 상상을 한 것을 보면 금세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하여, 공기욱 님의 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한번 참고해 배용진 님도 상상으로 다시 써 보세요.   기성 시인중 소나기 오는 모습을 인상 깊은 상상으로 포착한 예를 들면 조정권 시인은 소나기 오는 모습을 '대못이 떨어지는' 모습으로 포착했고, 또 이대흠 시인은 하늘과 땅이 섹스하는 모습, 즉 '땅이 엉덩이를 들썩들썩' 하는 모습으로 포착하지 않았습니까?   배용진 님이 올린 시를 가지고 상상한 시로 필자가 고치자면 를 로만 바꾸면 금세 시가 되요. 즉 소나기가 오는 모습을 내 추억 속의 여자들이 오는 모습으로 상상을 해보는 겁니다. 다 같이 필자가 고친 시로 한번 확인해 봅시다 시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   소나기     여자들이 온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여섯......   모두를 볼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다.   ********************************************************************************   박미라 님의 를 감상해 봅시다. 이 시는 시를 많이 써 본 사람의 시이거나, 아니면 기성 시인의 시로 여겨지는군요. 그러나 이 창작교실에 올렸다는 것은 제게 무언가 얻을 정보가 있다고 여겨 올렸다고 믿기 때문에 제가 의도한 목표에 빗나간 시는 그 시 작자가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과감하게 지적할 것임을 밝힙니다. 왜냐하면 목표는 제가 설정한 것이고, 또 제가 지적한 내용에 수긍할 수 없으면 제 지적에 따르지 않고 자기식대로 계속 시를 쓰면 되니깐 요.   우선 필자가 박미라 님의 시를 읽고 난 느낌은 이렇습니다. 시가 너무나 뻔한 내용으로 필요 없이 길다. 다 읽고 나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눈길을 끄는 표현과 감감도 보이지 않는다. 하여, 우선 독자에게 이런 느낌을 주었다면 그 시는 실패했다고 봐야지요. 필자를 포함하여 이 지상 모든 작가들은 독자들에게 어떤 유익함을 주지 못했다면 독자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은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기본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작가와 독자들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거죠.   시학의 시작인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빠지지 않고 시문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내용이 상상력과 텐스, 즉 긴장입니다. 상상력은 시의 내용을 좌우하고, 텐스는 시의 표현력, 구성력, 형상력 등 시의 외형을 좌우지 않나 싶습니다. 필자가 이 강좌 맨 처음부터 상상력, 상상력 했던 게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여 이 시는 바로 이 두 가지 것 중 상상력에서부터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독도를 어떻게 상상력으로 접근할 것인가를 먼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잘 되지 않을 때는 우선 상상을 펼치기 쉬운 소재부터 갖다놓고 시를 쓰는 한번 습관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필자의 창작 강의도 (1)에서부터 쭉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시 소재를 상상으로 접근을 하지 않으니까 자꾸 자기주장과 진부한 자기 넋두리가 들어가게 됩니다. 자기 넋두리, 즉 자기 서사가 들어가 효과를 보려면 특별한 이야기이거나 조금 들어가든지, 아니면 아주 뛰어난 테크닉으로 접근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시가 형편없이 늘어지거나 진부한 넋두리로 전락하게 됩니다. 서사적인 내용으로 성공한 시, 백석 시를 한번 잘 관찰해 보세요. 시의 뒤에 괭장한 기교가 숨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서사가 들어가도 시가 진부하지 않고 긴장도 훌륭하게 살아있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하여 서사가 많이 들어가는 시를 쓸려면 시의 테크닉을 충분히 읽힌 다음 쓰고 초보자 시절에는 상상력 위주의 시를 쓰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더라도 상상력으로 시를 쓴 사람은 젊은 사람 뺨치게 잘 쓰는 걸 필자는 주변에서 자주 봅니다.   ************************************************************************   이소빈 님의 을 감상해 봅시다. 님은 금천장날의 한 풍경을 그냥 그리는데에 끝났군요. 많은 말을 했는데도 내용적으로는 큰 진척이 없이 시를 쓰다 만 기분이에요. 여기에서 더 깊이 상상력으로 들어가야지요. 정경 묘사는 1연 수준으로 충분합니다. 2연부터는 더 깊게 들어가 상상력을 발휘해야지요. 일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당선작 봉숭아를 다시 한번 잘 읽어보세요. 풍경에 어떻게 상상력을 덧붙이는 가를....   하여 이소빈님은 2연에서 할머니들 얼굴에서 나팔꽃을 발견했으니깐 그 나팔꽃 이야기로 전개해야하지 않나요? 1연과 2연을 합쳐서 더 간결하게 추려 금천장날 할머니들 정경 묘사를 하고 2연부터 할머니들 얼굴에서 발견한 나팔꽃 이야기로 더 상상력을 펼치기 바랍니다. 망해도 좋으니 맘 놓고 상상을 해 보세요. 이소빈님은 이제 사고가 자유롭게 활발하게 터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그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이때는 정말 망해도 좋다는 아주 적극적인 사고를 갖기 바랍니다.(김영남) =================================================     70. 참회록 / 윤동주                                                                                 懺悔錄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속에 내얼골이 남어있는것은 어느王朝의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나의懺悔의글을 한줄에 주리자、 ―― 滿二十四年一個月을      무슨깁븜을바라살아왔든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어느 즐거운날에 나는 또 한줄의 懺悔錄을 써야한다。 ―― 그때그 젊은나이에      웨그런 부끄런 告白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닦어보자 그러면 어느 隕石밑으로 홀로거러가는 슬픈사람의 뒷모양이 거울속에 나타나온다。      ==================================================================   71. 또 다른 고향 / 윤동주                                      또다른故鄕   내 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엇다。 어둔 房은 宇宙로 通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속에 곱게 風化作用하는 白骨을 드려다 보며 눈물 짓는것이 내가 우는것이냐 白骨이 우는것이냐 아름다운 魂이 우는것이냐 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몰래 아름다운 또다른 故鄕에가자.      
948    詩에서 제목은 왕관 댓글:  조회:4835  추천:0  2016-01-10
창작 강의 및 감상평(6)     ☞ 제목을 효과적으로 잘 붙이는 데에도 요령이 있습니다.   시의 제목을 제대로 붙일 줄 알려면 그 기법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제목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한 편의 시가 성립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고, 또 독자들이 이 시를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게 하는 것도 바로 이 제목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이 문제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연구해 그동안 시 창작에 응용한 사람이 의외로 없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었습니다. 하여 이 문제에 관한 한 필자가 문단에서 맨 처음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같은 제목을 붙이더라도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제목이 되고, 보다 생산적인 제목이 될 수 있을까? 필자가 그 방법을 개발해서 그동안 작품에 실제로 구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제목 붙이는 법, 세 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그 첫 번째 방법은 화장실에 관한 내용으로 시를 써 놓고 제목을 로 붙이는 경우입니다. 이 방법은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방법입니다. 더욱이 시 뿐만 아니라, 소설, 논문, 일반 문서에까지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는 제일 고전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시에 있어서는 이걸 제대로 써야지 그렇지 않으면 시의 역기능으로 작용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많은 시들이 제목을 로 해놓고 화장실에 대한 내용으로 시를 쓰거나, 해놓고 서울역에 관하여 온갖 수사와 기교를 동원해 시를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들은 화장실과 서울역에 대한 정보를 이미 많이 갖고 있어서(어쩌면 필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름) 그 시를 쓴 사람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저 그렇고 그런 내용의 화장실과 서울역에 관한 시는 읽으려 하지 않고 쉽게 외면하지 않나 싶습니다. 작자는 정말 열심히 최고로 좋은 시를 썼다고 여기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작자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하여, 화장실에 관한 내용으로 시를 쓰고 제목을 로 붙여 효과적인 제목이 되려면, 다음의 요건에 해당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즉 그 화장실이 우리가 전에 거의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특별한 모습의 화장실이거나, 아니면 그 화장실에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새롭게 의미가 창조된 화장실이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다시 말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내용이어야 그 시를 읽어줄 이유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유형의 시로 성공한 작품들을 한번 예로 몇 들어볼까요? 김춘수의 , 김수영의 . 곽재구의 등을 한번 봅시다. 내가 불러줄 때 내게로 와 핀 꽃을 본적이 있습니까?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을 본적이 있습니까, 사평역이란 시를 보기 전에 사평역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 사평역을 목포역이라고 제목을 붙였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때도 이 시의 감동이 사평역만큼 올까요?   하여, 화장실에 관한 내용으로 시를 쓰고 제목을 로 붙여 효과적인 제목이 되려면 위와 같이 우리가 전에 거의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특별한 화장실이거나, 아니면 그 화장실에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새로운 의미가 창조된 화장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독자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때 효과적인 제목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두 번째 방법은 시 내용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센텐스, 키 센텐스를 제목으로 올리되 전체 내용을 아우를 수 있도록 약간 변용해서 붙이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필자가 즐겨 사용했던 방법으로 필자의 시집 정동진역을 읽어보면 금세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필자가 이 방법을 개발하게 된 배경은 평소 광고 카피와 신문 기사의 헤드라인을 유심히 살피는 데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즉 기사와 광고 카피의 헤드라인이란 시로 여기면 제목에 해당하는데 이걸 잘 뽑느냐 잘 못 뽑느냐에 따라 그 기사 또는 광고의 첫 인상 뿐만 아니라 여운까지 전혀 다르다는 데에 착안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헤드라인이 그 카피, 기사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내용이다라는 것도 주목하게 된 것입니다. 이걸 시에 한번 적용해봤더니 제대로 맞아떨어지더군요. 이때 붙이는 제목의 형식은 서술형이 되기 쉽고, 내용은 시 전체를 장악할 수 있도록 약간 변용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세 번째 방법은 시 내용 중 가장 근간이 되는 내용의 속성을 가진 전혀 엉뚱한 것으로 제목을 붙이는 방법입니다. 위의 내용으로 설명을 하자면 화장실 내용으로 시를 쭉 써놓고 제목을 으로 붙이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시의 내용과 제목을 연관 지어 설명하자면 "김영남은 화장실이다" 라는 시를 쓴 거가 되는 거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어떤 글을 아름다운 여자에 대해서 그럴싸하게 묘사 해놓고 제목을 으로 붙이는 경우입니다. 만약 아름다운 여자에 대해 쭉 묘사해 놓고 제목을 로 붙인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이 글이 아름다운 여자를 설명하고 묘사한 글이지 어떻게 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제목을 이라고 붙인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순간 메타포가 형성되어 시로 떠오르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제목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시가 되고 안 되고 까지 하게 됩니다. 이 방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시를 하나 소개하고 지면상 한계로 인해 강의를 마칠까 합니다. 소개하는 시는 98년(?) 현대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이고 아주 하찮은 여울을 하나 묘사해 놓고 제목을 엉뚱하게 붙여 성공한 시입니다. 만약 이 시 제목을 < XXX 여울>.로 붙였을 경우 시가 될 수 있는지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사춘기   강순   여울에는   밀어,꼬치동자개,버들매치,버들치,배가사리,감돌고기,가는돌고기,점몰개,참마자,송사리,갈문망둑,눈동자개,연준모치,버들개,모래주사,새미,누치,흰수마자,납자루,열목어,꺽저기,수수미구리지,금강모치,돌상어,왜매치,꺽지,쌀미구리,점줄종개,돌마자,둑중개,왕종개,버들가지,꾸구리,모샘치,어름치,돌고기,부안종개,자가시리 등이 살았다.   나는 가끔 물살이 빠른 그곳에 발을 담근다.   ******************************************************************************   게시판에 올라온 시를 한번 감상해 보도록 합시다.   박현 님의 라는 시를 읽으면 이제까지 강의한 내용중 어디에 걸려 시로 성공할 수 없는지를 금세 알 수 있을 겁니다.   나름대로 제목에도 멋을 부렸는데 위에서 제가 설명한 내용을 참고하면 제목을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를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겠죠? 그리고 돌탑도 독자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소재 아닙니까? 독자들이 이 시를 읽고 뭔가 얻었다 뭔가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는 느낌을 주려면 돌탑에 관하여 가공으로 만들어서라도 새로운 이야기, 정보를 제공해야죠. 그러지 않으면 시간도 돈이기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여 읽어봤는데 그렇고 그런 이야기라 판단되면 독자는 다시 그 사람 시를 읽지 않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현재 님의 시중에서 필자에게 어필할만한 구절과 감각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군요.   박현 님은 필자의 창작 강의1,2,3,4,5를 읽어보고, 또 게시판에 올라온 독자들 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유심히 살핀 다음, 다른 소재로 시를 한번 써서 올려보시기 바랍니다.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제부터 시작이다 생각하고 차근차근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덧붙여 바라자면 그 동안 써왔던 방식을 잠시 접어두고 제가 창작 강의(1)에서부터 설명한 방식으로 시를 한번 새롭게 써 보시기 바랍니다. 뭔가 달라지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세상일 모든 게 다 그렇지만 유연한 사고를 갖는 자가 빨리 성공할 수 있습니다(김영남).   ====================================================================== 68. 서시 / 윤동주                      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안테 주어진 길을 거러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원문에는 이 시의 제목이 붙어 있지 않다. 그러나 윤동주 육필원고에는 '서시(序詩)'라는 제목이 쓰여 있다고, 운동주의 동생 윤일주가 증언한 바 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서시라는 제목으로 부른다.             윤동주 시인 연보 1917년(1세) : 12월 30일에 중화민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부친 윤영석, 모친 김용(金龍, 1891~1948) 사이의 맏아들로 태어나다.                       (본관 : 파평. 아명 : 해환(海煥).                       윤동주의 호적을 비롯한 각종 공식 기록에 그의 출생이 으로 되어 있는 것은 출생신고가 1년 늦었기 때문이다. 1924년(8세) : 12월, 누이 혜원(惠媛, 아명 貴女) 출생. 1925년(9세) : 4월 4일, 명동소학교 입학. 1927년(11세) : 12월, 동생 일주(一柱, 아명 달환) 출생. 1928년(12세) : 서울에서 간행되던 어린이 잡지 『아이생활』을 정기구독 시작. 급우들과 『새명동』이란 등사판 잡지를 만듬. 1931년(15세) : 3월 20일, 명동 소학교 졸업. 명동에서 10리 남쪽에 있는 대랍자의 중국인 소학교 6학년에 편입하여 1년간 수학.                        이 해 늦가을 용정으로 이사. 1932년(16세) : 4월, 용정 미션계 교육기관인 은진(恩眞)중학교에 송몽규, 문익환과 함께 입학. 부친 인쇄소 차렸으나 사업이 부진하다. 1933년(17세) : 4월, 동생 광주(光柱) 태어나다. 1934년(18세) : 12월 24일, 최초의 작품인 시 3편(초한대, 삶과 죽음, 내일은 없다)을 제작 기일 명기하여 보관 시작. 1935년(19세) : 9월 1일,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친 다음 평양숭실중학교로 전학(편입시험 실패로 3학년 편입)                        10월, 숭실중학교 학생회 간행의 학우지 『숭실활천』 제 15호에 시 「공상」 게재, 최초로 작품 활자화되다. 1936년(20세) : 3월, 숭실중학교에 대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항의표시로 자퇴. 문익환과 함께 용정으로 돌아오다.                        (윤동주는 용정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문익환은 5학년에 편입.) 1937년(21세) : 8월, 백석 시집 『사슴』을 배껴 필사본을 만들어 가지다. 이 무렵 광명중학교 농구선수로 활약.                        상급학교 진학문제를 놓고 부친과 심하게 대립, 결국 조부의 개입으로 본인이 원하는 로 진학 결정. 1938년(22세) : 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 졸업. 4월 9일, 서울 연전 문과 입학.                        연전 기숙사 3층 지붕 밑 방에서 송몽규, 강처중과 함께 3인이 한방을 쓰면서 연전생활 시작 1939년(23세) : 기숙사를 나와서 북아현동, 서소문 등지에서 하숙생활. 북아현동에서 살 때, 라사행과 함께 정지용을 방문,                      『조선일보』 학생란에 산문 「달을 쏘다」, 시 「유언」, 「아우의 인상화」를 尹東柱 및 윤주(尹柱)란 이름으로 발표.                        동시 「산울림」을 『少年』에 윤동주(尹童柱)란 이름으로 발표. 1940년(24세) : 다시 기숙사로 돌아오다. 하동 출신 정병욱(1922~1982)과 깊이 사귀다.                        1939년 9월 이후 절필하다가 이해 12월에 가서 3편의 시(八福, 慰勞, 病院)을 씀. 1941년(25세) : 5월에 정병욱과 함께 기숙사를 나와 종로구 누상동 소설가 김송 씨 집에서 하숙. 9월, 북아현동으로 하숙집 옮기다.                        12월 27일, 전시 학제 단축으로 3개월 앞당겨 연전 4년을 졸업하다.                        (졸업기념으로 19편의 시를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란 제목의 시집을 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음) 1942년(26세) : 연전 졸업 후 한달 반 정도 고향집에 머무르다. 부친이 일본 유학을 권한다.                        도일수속을 위해 1월 19일에 연전에 라고 창씨한 이름을 계출하다.                        1월 24일에 쓴 시 「懺悔錄」이 고국에서 마지막 작품이 되다.                        4월 2일, 동경 입교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 10월 1일, 경도 동지사대학 영문학과에 전입학. 1943년(27세) : 7월 10일, 송몽규 특고경찰에 의해 경도 하압경찰서에 독립운동혐의로 검거되다.                        7월 14일, 윤동주, 고희욱도 검거되다. 12월 6일, 송몽규, 윤동주, 고희욱 검찰국에 송국되다. 1944년(28세) : 1월 19일, 고희욱은 기소유예로 석방되다. 2월 22일, 윤동주 · 송몽규 기소되다.                        3월 31일, 경도지방재판소 제2형사부는 윤동주에게 을 선고                        (확정: 1944년 4월 1일, 출감예정일 1945년 11월 30일).                        이들은 판결 확정 뒤에 복강형무소로 이송되어 복역 시작. 매달 일어로 쓴 엽서 한 장씩만 허락되다. 1945(29세) :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윤동주, 복강형무소 안에서 외마디 비명을 높이 지르고 운명.                     2월 18일, 북간도의 고향집에 사망통지 전보 도착 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이 시신을 가져오려고 도일, 복강 형무소에 도착                     하여 먼저 송몽규를 면회.(자신들이 이름 모를 주사를 강제로 맞고 있으며 동주가 그래서 죽었다는 증언을 듣다.)                     3월 6일, 북간도 용정동산의 중앙교회 묘지에 윤동주 유해 안장.                     3월 7일, 복강형무소에서 송몽규 눈을 뜬 채 운명. . 1947년 : 2월 13일, 유작 「쉽게 씌어진 詩」가 당시 주간이던 시인 정지용의 소개문을 붙여 『경향신문』 지상에 발표됨.               2월 16일, 서울 에서 첫 추도회 거행. 1948년 : 1월, 유고 31편을 모아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정지용의 서문과 강처중의 발문을 붙여서 정음사(正音社)에서 출간. 1955년 : 2월, 서거 10주년 기념으로 유고를 더 보충한 증보판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가 정음사에서 출간.   1985년 : 일본의 윤동주 연구가인 조도전대학의 대촌익부(大村益夫) 교수에 의해 북간도 용정에 있는 윤동주의 묘와 비석의 존재가               한국의 학계와 언론에 소개되다. 1990년 : 광복절에 대한민국 정부는 윤동주에게 건국훈장 을 수여했다.               4월 5일에 북간도의 유지들이 명동 장재촌에 있던 송몽규의 묘를 용정 윤동주 묘소 근처로 이장. 1995년 : 광복절에 대한민국 정부는 송몽규에게 건국훈장 을 수여했다(애국장은 독립장보다 한 등급 아래 훈장이다.) 1998년 : 8월에는 윤동주의 작품을 모두 수록한 사진판 시집이 민음사 판으로 나왔다.              현재 윤동주의 시집은 여러 나라에서 여러 판본으로 번역되었고, 그의 전기를 비롯한 연구서적도 수십권에 이르고,              박사학위 논문을 비롯한 학술논문들은 3백 편을 상회한다 . ================================================================= 69. 별 헤는 밤 / 윤동주                                         별헤는밤       季節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색여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것은 쉬이 아츰이 오는 까닭이오、 來日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靑春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   니다。 별하나에 追憶과 별하나에 사랑과 별하나에 쓸쓸함과 별하나에 憧憬과 별하나에 詩와 별하나에 어머니、어머니、 어머님、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식 불러봅니다。 小學校때 冊床을 같이 햇든 아이들의 일홈과、佩、鏡、玉 이런 異國少女들의 일홈과 벌서 애기   어머니 된 게집애들의 일홈과、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일홈과、비둘기、강아지、토 끼、노새、노루、「랑시쓰․쨤」 「라이넬․마 리아․릴케」 이런 詩人의 일홈을 불러봅 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北間島에 게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러워 이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우에 내 일홈자를 써보고、 흙으로 덥허 버리엿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버레는 부끄러운 일홈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一九四一、十一、五.) 그러나 겨을이 지나고 나의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여나듯이 내일홈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 할게외다。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  -상징과 이미지의 변주 1. 은유냐 상징이냐  직유가 발전하면 은유가 되고 은유는 서로 다른 범주에 있는 두 사물을  동일시하는 기법이라고 말한바 있다.  직유가 상사성을 토대로 두 사물을 비교한다면  은유는 비 상사성을 토대로 비유하고, 그런 점에서  전자에 비해 신비한 느낌을 준다. 말하자면 시적 호소력이 크다.  그러나 두 기법 모두 두 사물을 비교하고 비교되는 두 사물이 시에 나타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예컨대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사랑 빈집에 갇혔네  ㅡㅡ기형도,(빈집)  같은 시행에서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는 직유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말하자면 ‘나는 장님처럼’은 직유이고 따라서 이런 형식은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 시행을 예컨대 ‘나 장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라고 쓴다면  은유가 되고, 직유의 형식에서 비교조사‘ㅡ처럼’을 생략하면 은유가 된다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그러나‘ 나는 장님처럼’이라는 말과  나는 장님’이라는 말은 두 사물을 비교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내용은 매우 다르다 전자가 문을 잠그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만  후자는 그런 설명보다 ‘나’와‘장님’의 동일시가 강조되고 따라서 이때  '나’는 ‘장님’이면서 ‘장님’이 아닌 이상한 특성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기형도는 장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만일 이렇게 쓴다면 그는 장님이고 장님이 아니다. 그리고 은유의 형식으로 시를 쓴다면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 아닌 다른 내용이 나오는게 좋다  한편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의 경우 ‘빈 집’의 이미지는 이 시행만 놓고 보면 무엇을 비유하는지 알 수 없고 따라서  취의 tenor 와 매재 vehicle 의 관계가 시행에 드러나지 않고 취의가 생략된 형식이 된다. 직유나 은유 에서는 취의와 매재의 관계가 드러나지만  이런 이미지의 경우에는 취의가 생략되고 매재만 드러난다.  이런 이미지를 상징 이라고 부른다. 그런 점에서 상징은 은유가 발전한 형식이고 그 의미는 하나가 아니고 분명치 않고 모호하다.  간단히 도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직유] t : v = 1 : 1 (나는 장님처럼)  [은유] t : v = 1 : 1 (나는 장님)  [상징] t : v = ? : 1 (빈 집)  ‘빈집’ 은 무엇인가를 의미하지만 이 시행만 놓고 보면  그 내용,취의 하고자 하는 말을 알 수 없다. 그렇치 않은가?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라는 시행만 놓고 보면  이 ‘빈 집’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분명치 않고 다만 전체 시를 찬찬히 읽을때  그 의미가 드러난다.이‘빈 집’이 무엇을 상징한다는 것은  (상징象徵은 영어로 symbol이고 그리스어로 뜻하는 명사 symbolon 에서오고  이 명사는 짜 맞춘다는 뜻의 동사 symballein 과 관계가 있다.  좀더 자세한 것은 이승훈, 시작법, 탑 출판사,1988,201면 참고바람),  그러니까 다른 무엇과 짜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 이미지가 어떤 관념을 지시한다는 것은 이 ‘빈 집’이 말 그대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빈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가엾은 내 사랑’ 을 의인법으로 읽어  ‘가엾은 내 애인’이 갇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랑이든 애인이든  ‘빈 집’에 갇혔다는 말은 이상한 소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랑의 경우가 그렇다.  사랑이 어떻게 빈 집에 갇힐수 있는가?  요컨대 은유와 비교하면 상징은 비유되는 두 사물 가운데  취의가 생략되는 형식이고 또한 이미지와 관념의 관계로 치환하면  [은유] 이미지 : 관념 = 1 : 1 (장님은 나)  [상징] 이미지 : 관념 = 1 : 다 (빈 집은 무엇?)  와 같다. 이미지와 관념의 관계가 ‘1 ; 다’ 라고할 때 다는 다라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모자란다는 뜻이고 말하자면 상징의 의미는 아무리 퍼내고 쏟아 붓고  계속 의미를 부여해도 모자란다는 뜻이고 그러므로 다多는 다이고 다가 아니다.  그런가하면 또한 다는 다da이다. 이 다는 디자인 dasein,현존재라는 의미의  디자인의 접두사이고 현재 존재하는 나, 지금 여기있는 나의 의미를 강조한다.  현 존재는 존재 sein 와 현da이 결합된 존재이고 그러므로 여기da가 중요하다.  여기는 어디인가? 프로이트는 18개월짜리 손자가 혼자 노는 것을 관찰하며  그 아이가 오/아를 반복 하는것에 주의한 바 있다.  엄마가 없는 빈 방에서 아이는 혼자 실패 놀이를 하고 실패가 멀리가면 ‘오’ ,  실패가 돌아오면‘아’ 라고 소리친다, ‘오’는fort(저기),‘아’는 da(여기)  라고 해석한 것은 프로이트이다. (프로이트,“쾌락 원칙을 넘어서”).  나는 나를 멀리 던지고 그 나는 다시 돌아온다. 나를 던질 때 나는 돌아온다.  무슨 말인가?그러나 나는 떠나고 돌아오고 다시 떠나고 돌아온다.  요컨대 반복이 있을 뿐이고 이 반복, 죽고 싶은 마음이 칼을 찾는다.  칼은 날이 접혀서 펴지지 않으니 날을 노호하는 초조가 절벽에 끊어지려 한다’(이상,“침몰”).  나는 지금 시작법 (그것도 알기 쉬운?)에 대해 글을 쓰는지  1 ; 다’에 나오는 다에 대한 잡념에 시달리는지 잡념을 즐기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마 다ㅡ 콤플렉스가 아니면 다ㅡ 강박증 인가보다.  요컨대 현재는 없기 때문에 현 존재의 다da는 그런 無,  불교식으로는 空 을 지향한다. 그렇다면 이 무,공의 의미는 무엇인가?  모두는 무엇이고 많다는 것은 무엇이고 다 da는 무엇인가?  지난밤에는 밤새도록 비가오고 어두운 새벽 빗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갑자기 무섭고 서럽고 불안한 생각이 들어 작은방, 지금 이글을 쓰는방,  옛날에 딸애가 공부하던 방으로 와서 전등을 켜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돌아가  다시 잠이 든 이런 행위는 무엇을 상징 하는가?  2.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다시 요약하면 상징은 하나의 낱말, 어구, 이미지가  복잡한 추상적 관념을 암시하지만 그 의미는 전체 시를 전제로 알수 있다는 것.  말하자면 그 낱말이 나오는 시행에서는 생략된다는 것.  따라서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상징은 은유보다 고급이고  한편 은유보다 난해한 기법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기법이 나오고  이런 기법, 말하자면 상징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에서 상징을 강조한 것은 19세기 말 상징주의 시인들이고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보들레르 이다. 그는‘교감’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자연은 하나의 신전神殿, 거기 살아 있는 기둥은  이따금 어렴풋한 말소리 내고  인간이 거기 상징의 숲을 지나면  숲은 정다운 눈으로 그를 지켜본다.  밤처럼 그리고 빛처럼 아득한  어둡고 그윽한 통합 속에  긴 메아리 멀리서 어울리듯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상통 한다.  ㅡ 보들레르,[교감](정기수역)  ‘교감’ correspodence 은 ‘만물 조웅’ 으로도 번역된다.  자연은 인간이 모르는 가운데 저희들끼리 무엇인가를 주고 받는다는뜻.  이 시에서 보들레르가 강조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자연이 주고받는 것들이다. 낭만주의자들의 경우  자연의 시인의 정서를 환기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치만 여기서는 ‘  신의 궁전’으로 노래된다. 신의 궁전 이기 때문에  자연은 이 세상을 초월하는 이상의 세계,  혹은 그런 세계로 갈 수 있는 수단이 되고 그런 점에서 자연은 신, 초월자, 절대자의 목소리를 상징하는 ‘상징의 숲’이 된다.  시인은 이런 숲의 목소리를 듣는자 이고, 그 목소리는 만물 조웅, 곧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서로 주고받는, 상통하는 것을 들을때 알 수 있다.  만물 조웅은 향기(후각), 빛깔(시각), 소리(청각), 가 서로 통합 하는 것  이라는 점에서 이른바 감각의 교감이고, 교감의 세계가 된다.  물론, 현대시를 쓰는, 혹은 쓰고자하는 분들은  반드시 이런 상징의 미학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 그  러나 최소한 상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역사적 문맥에 대한 지식이 요구된다.  요컨대 상징을 강조하는 시들은 이 시가 암시 하듯이  관념을 전제로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감각에 의해 사물을 보고 그 감각이 환기하는 혹은 암시하는 여러 관념들을,  자신도 모르는 그런 관념들을 이미지로 전달해야 한다.  앞에서 인용한 기형도의 경우 ‘빈 집’은 상징적 이미지 이고 그는 살아가면서 ‘빈 집’ 을보고 혹은 감각적으로 체험하고 그 체험의 내용을 시로 노래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는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ㅡ 기 형도,[빈 집]  그가 쓰는 것은 ‘사랑을 잃은 마음’이고  따라서 ‘빈 집’ 은 이런 마음을 상징 한다.  상징적 이미지는 시에서 반복되는 수도 있고 이 시처럼 변주되는 수도 있다.  이 시의 경우 ‘빈 집’ 은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는 나’,  그리고‘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로 변주된다. 한편 이런 마음,  그러니까 ‘빈 집’이 상징하는 것들은 ‘짧았던 밤들’, 창밖을 떠돌던 안개들’,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 ‘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로 변주된다.  이런 변주는 상징적 이미지가 보여주는 난해성을 극복하기 위한 시적 책략이고  따라서 상징을 강조하는 시인들은 하나의 상징적 이미지를 선택하면  그 이미지를 시에서 여러번 반복하거나 다양하게 변주 시켜야 된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한 시인이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혹은 상상력에 의해  창조한 이미지를 개인적인 상징 이라고 부른다.  상징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는바  첫째는 개인적 상징, 둘째는 인습적 상징, 셋째는 원형적 상징이다 (좀더 자세하 것은 이승훈, 시론, 고려원, 1979, ‘상징의 유형’, 206ㅡ211면 참고바람).  개인적 상징은 사물에 대한 시인의 개인적 감각을 중심으로 그 내면성 혹은 상상의 세계를 강조하고, 이때는 그 의미가 모호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구조에 의해  혹은 시 전체의 문맥에 의해의미를 암시해야 한다. 인습적 상징과  원형적 상징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다루기로 한다. 개인적 상징을 중심으로  특히 그 상징적 이미지를 변주 하면서  한편의 시를 완성하는 시들을 좀더 살피기로 하자.  결국 그것은 제 몸 치근대는 바람 때문일 거야 큰 송아지만한 사  냥개 절뚝절뚝 저녁 어스름 이끌고 날 찾아왔지 큰 채와 사랑채  이음새 헛간에서 주먹밥을 나누어 먹던 한철을 잊을 수 없네 헛간 고  요에 상처 아물고 주먹밥의 유순柔順에 길들여졌다 할지라도 어느 날  훌쩍 사냥개 사라지고 텅 빈 고요만 비에 젖어 슬펐네  ㅡ 강 현국,[가난한 시절4]  이 시에서 ‘사냥개’는 ‘가난한 시절’을 상징한다.  그러나 '사냥개‘ 라는 이미지에는 단순히 먹이를 사냥하는 동물 이라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공포, 사냥이 암시하는 야수성, 짐승이 짐승을 잡는  아이러니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강현국이 노래하는 가난은  단순히 배가 고프다는, 굶주린다는 의미가 아니고 또한 이 시에서 그는  사냥개가 ’절뚝절뚝 어스름 이끌고 나를 찾아 온다‘고 노래함으로써  그것이 병든 가난, 어스름이 표상하는 무력감을 동반하는 가난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는 현재 ’컹 컹 컹 밀려오는 저녁놀‘을 본다/듣는다.  그 가난은 밀려오며 무너진다. 말하자면 아직도 그를 지배하는 것은  옛날의 가난이다. 그는 지금도 저녁놀에서 사냥개 울음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석탄을 적재한 무개화차들이 굴러가는 철길 너머에 저탄장이 있다. 거대한 재의  무덤, 바람에 석탄 가루들이 일어난다. 그것은 흩어진다. 그것은 바람에 불려간다.  검은 바람, 펄럭이는 검은 작업복, 탄부들이 움직이고 있다  ㅡ최 승호[재]  이 시의 경우‘재’는 석탄 가루를 표상하고 그것이 재라는 점에서  죽음을 상징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불타고 나면 재가 된다.  그러나 이재, 죽음은 이 시에서 일어나고 흩어지고 불려간다.  물론 바람을 매개로 하지만 재의 이미지는 이런 변주에 으해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낳고 개인적 상징의 한 개를 초월한다.  재라는 이미지가 이렇게 변주 됨 으로써 그 상징적 의미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시에서 ‘재’는 죽음을 상징 하지만 그 죽음은 바람에 의해 일어나고  흩어지고 불려간다. 결국 재는 바람과 동일시된다.  바람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속에 바람이 있다.  쾌락으로 가는  길목에 털이 있다. 궁창이 열리고  땅이 혼돈을 멈추었을때,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인간을  가장 나중에 완성 시킨건, 아무래도 털이다. 당신이 떠나고  세상에서 가장 싼값으로  인생을 구겨버리고 싶을 때, 낡은 침대나  주전자 옆에서, 꼼지락거리는  털.  ㅡ 원 구식,[털]  이 시의 지배적 이미지는 ‘털’ 이지만 그 이미는 분명치 않고,  따라서 상징이 된다. 무엇을 상징 하는가? 이 ‘털’은 ‘쾌락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는 점에서 쾌락과 관계되고, 따라서 머리털이나 수염이 아니라  음모를 의미하고, 시인은‘당신이 떠난’ 방에서 낡은 침대와 주전자 옆에 떨어진 음모를 본다. 이 털은 육체에서 떨어진 것이므로 털로서의 기능이 없고,  따라서 죽음을 표상 하지만 이 시에서는 꼼지락거린다. 살아있다.  그리고 이 털은 대지의 풀에 비유된다. 말하자면 풀은 ‘땅의털’ 이다.  도대체 정사가 끝나고 ‘당신이 떠난 다음’ 낡은 침대에 떨어진 털을 보는 것도  이상하고 이 털이 살아 꼼지락거린다고 노래하는것도 이상하고 풀을 땅의 털이라고 노래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러나 모든 진리는 이렇게 이상한데 있고  이상한 것이 진리이다. 상식, 기준, 표준이 깨질때 진리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털은 육체를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고, 머리털은 신체 정상에서 자란다는 점에서  정신적 힘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음모는 생식, 성행위를 돕는다는 의미가 있지만 이 털은 그런 의미를 벗어난다.  그러나 이 털은 죽은 것이 아니라 생명을 상징한다. 죽은털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는 모두 상징적 이미지의 변주를 통해 변주와 함께 변주를 먹고 태어난다.  3.인습적 상징을 이용하라  이상에서 나는 상징의 세 유형 가운데 이른바 개인적 상징에 대해 말했다.  다음은 이른바 인습적 상징. 말 그대로 이런 상징은 이미지와 관념의 관계가  내적 필연성(개인적 상징)이 아니라 오직 인습, 습관, 사회적 약속에 의존한다.  따라서 이런 상징은 일정한 역사적 사회적 특성을 소유한다. 말하자면 한 시대나 한 사회에서만 공유하는 상징이다. 예컨대 십자가는 기독교 정신을 상징하고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고 태극기는 조국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런 상징은  보편성을 띠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인들의 진리이고, 비둘기는  구약의 문맥에서 평화이고, 태극기는 한국인들의(그것도 남한만의) 조국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태극기를 보고 조국을 생각하지 않는다.  시대적 역사적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상징은 인습적으로 습관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난해하지 않고, 난해하지 않기 때문에 알기는 쉽지만  한편 시적 깊이가 사라진다. 오늘 이 시대에 비둘기가 평화를 상징 한다고,  비둘기를 보면서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없고, 그런 생각은  과거의 인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치 않은가? 내가 사는 아파트 약방 앞 보도 블럭에는 언제나 비둘기들이 모여있다. 놀고있나 하고 가까이 다가가보면  평화롭게 놀고있는 것이 아니라 모이를 찾느라고 정신이 없다.  너희들이나 우리나 모두 먹고 살기가 이렇게 어렵구나. 이런 비둘기들은  평화가 아니라 먹고 살기위한 고통, 싸움, 전쟁을 상징 한다. 물론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유념할 것은 이런 인습적 상징을 사용하는 경우 그 상징적 의미를  시의 문맥에 의해 변형 시키고 변주해서 새로운 의미를 보여 주라는 것.  다음은 비둘기라는 이미지를 인습적 의미로 사용하되 변주시킨 보기이다.  비둘기들이 걷고있는 이 고요한 지붕은  반짝거린다, 소나무 사이, 무덤 사이에서  여기 공정한 ‘정오’ 가 불로서 구성 한다  바다를,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바다를!  산들의 고요를 오래 관조하는  오 사색이 받는 보상이여!  ㅡ발레리,[해변의 묘지](민희식, 이재호 역)  시의 표제가 ‘해변의 묘지’ 로 되어있기 때문에‘이 고요한 지붕’은 ‘바다’를 비유한다. 그렇다면 ‘비둘기들’은 바다를 걷고 있는 비둘기로 읽을수 있지만  바다에는 비둘기가 아니라( 물론 조금 미친 비둘기들은 바다에 떠 있을수도 있다. 김기림의{바다와 나비}에는 조금 미친 나비가 바다에 떠있음) 갈매기가  많고 따라서 이 비둘기들은 바다위에 떠있는 ‘고기잡이 배들의 하얀 돛대’를  비유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행은 이중 구조로 되어있다. 하나는 지붕/ 비둘기가  바다/ 하얀 돛대를 비유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고요한 지붕을 비둘기가 걷고있다는 것. 그러므로 이 시행이 주는 시적 효과는 이런 이중 구조가 산출하고  그것은 고요한 지붕(바다)에 하얀 돛대가 비둘기처럼 평화롭게 떠있다는  독특한 의미를 낳는다. 물론 여기서 비둘기의 이미지는 평화라는 인습적 의미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 비둘기는 비둘기 이면서 동시에 하얀 돛대이기 때문에  이중적 의미를 암시한다. 요컨대 비둘기의 평화는 하얀 돛대의 평화가 된다.  이 시의 전경은 소나무 사이, 무덤 사이에서 바다가 반짝이는 풍경이고 후경은  하얀 돛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인습적 상징은 그 의미를 이렇게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은 그 보기.  쫒아오든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려 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수 있었을까요.  ㅡ 윤 동주.[십자가]  4. 원형적 상징  인습적 상징이 시대적 사회적 제약을 받고 그 의미가 사회적 인습에 의존 한다면  이와는 달리 이런 시대적 사회적 제약을 초월하고 상징(이미지)과 관념의 관계가 보편성을 띠는 것이 있다. 이른바 보편적 상징 혹은 원형적 상징 원형 archetype 은 으뜸가는 이미지, 원초적 이미지라는 뜻으로 시인들, 화가들이  수많은 이미지들을 생산 하지만 결국은 몇 가지 원형으로 환원 된다는 점에서  모든 이미지들의 바탕 이라고 부를 수 있다. 융에 의하면 이런 이미지는  사회와 역사를 초월하는 인간의 보편적 무의식이 생산하고 그런 점에서  집단 무의식의 산물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미지(상징)는 개인 무의식  그것도 성적 욕망이 생산 하지만 그의 제자인 융에 의하면 집단 무의식이 생산하고 이런 보편적 상징은 옛날부터 현재까지 인류에게 무의식적으로 계승되는  이미지이다. 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소유하는 인간적 꿈, 소망, 원망을 암시한다. 이런 소망은 지금도 계속된다. 예컨대 이 세계는 물, 불, 바람, 흙의 원형으로  되어 있다거나 자연은 계절적으로 순환하기 때문에 인간도 다시 태어난다는  재생 원형 등이 있고, 재생 원형은 결국 우리 인간들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죽고 싶지 않다는 것, 이른바 불사不死,영원에의 꿈을 상징한다. 그런가 하면  지상의 삶을 초월해서 하늘, 천상의 세계에 닿고 싶은 소망도 있고,  이런 소망은 흔히 계단, 산, 나무, 탑의 이미지로 구현된다. 예컨대 이런 꿈은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 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 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ㅡ김 현승,[플라 타너스]  같은 시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시의 중심적 이미지는 ‘플라 타너스’ 이고  여기서 이 나무는 단순히 가로수를 의미 하는 게 아니라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있다’는 시행이 암시하듯이 하늘과 닿은 나무, 이른바 초월을 상징하고, 이런 초월은 지상으로부터 벗어나 신의 세계에 닿고싶은 인간의 꿈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시의 후반에는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는 시행이  나오고, 이런 시행을 전제로 할때 인간의 꿈이 나무의 꿈이고 이꿈은  신의 세계에 닿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 소망을 의미한다. 한편 인간 에게는 탄생,  창조, 재생에의 꿈이 있고, 이런 꿈은 계절적으로는 봄, 하루의 수준에서는  새벽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봄은 오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는  채 꽃 피기 전에 작은 열매를 맺고  불임의 살구나무는 시들어 갔다  소년들의 성기에는 까닭 없이 고름이 흐르고  의사들은 아프리카 까지 이민을 떠났다 우리는  ㅡ 이 성복,[1959년]  이 시의 경우‘봄’은 오지 않고, 그것도 여름이 되어도 오지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봄은 자연으로서의 봄이면서 동시에 이런 의미를 초월하고 따라서  관념으로서의 봄이고(‘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이런 봄이 암시하는 것은 새로운 삶, 신생, 창조, 계몽 등이다. 말하자면 죽음을 상징하는  겨울’과 대비되는 삶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런 삶, 새로운 삶의 창조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노래한다.  5.상징이냐 알레고리냐  상징과 알레고리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 두 기법모두 이미지를 보여줄뿐  직접 진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취의가 생략되고 매재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징과 알레고리는 다르고, 이 차이가 중요하다. 알레고리allegory 는 흔히 우유㝢兪, 우화偶話, 로 번역되고allegory는 그리스어로  ‘다른것’을 뜻하는 allos 와 ‘말하다’를 뜻하는 agoreuein 이 결합된 말이다. 따라서 알레고리는 어떤말 혹은 이미지가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을 의미 한다는  뜻이고, 우화가 암시하듯이 이런 말하기는 상징과 다른 몇가지 특성을 보여준다.  첫째로 상징이 사물이나 이미지에서 출발해서 관념에 이른다면 알레고리는  거꾸로 관념에서 출발해서 이미지에 이르는 과정을 밟는다.  둘째로 상징의 경우 이미지와 관념의 관계가  1 : 다 로 나타 난다면 알레고리의 경우엔 1 : 1 로 나타나며 시간적  계기성을 띠고 그런점에서 연속성을 띤다.  셋째로 상징의 의미는 모호 하지만 알레고리의 경우엔 분명하고 교훈적이고,  넷째로 알레고리는 이 교훈적인 것과 관계가 있지만 실화성을 띤다는 것이다  ( 좀더 자세한 것은 이승훈, 시작법, 탑 출판사.1988, 201-206면 참고바람).  다음은 알레고리에 의한시.  그는 들어왔다.  그는 앉았다.  그는 빨강 머리의 이 열병은 바라보지도 않는다.  성냥불이 켜지자  그는 떠났다.  ㅡ 아폴리네르,[시](오 증자 역)  ‘그’는 시를 의미하고, 따라서 이 시는 시스기에 대한 시이며, 시쓰기  혹은 시상이 전개되는 과정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노래한다.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른, 혹은 환각으로 나타난 시가 성냥불을 켜자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 다음과 같은 시도 알레고리의 기법에 의존한다.  태양신이라고 불리우던 루이14세는  그의 통치 말기에  종종 구멍 난 의자에 앉곤 했다  지독히 어둡던 어느 날 밤  태양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가 앉더니  사라지고 말았다.  ㅡ 프레베르,[일식](오 증자 역)  루이 14세를 풍자한 시로 일종의 교훈이 있고, 설화성도 있고,  이미지가 시간적으로 발전한다.   ============================================================   88. 부모 / 김소월                                  김소월 부모 원작 부모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김소월 연보  1902년 9월 7일 평북 구성군 서산면 왕인동 외가에서 父 金性壽와 母 張景淑의 장남 출생(金氏문중의 종손)                (본명 : 김정식, 필명 : 소월)                    ※ 조부가 대지주였고 광산업도 하여 집안이 부유했으며 유교적 가풍이 있었음.  1904년 (2세) 정주와 곽산 사이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에게 폭행을 당한 부친이 정신이상 증세를 일으킴.  1907년 (5세) 조부가 독서당을 개설하고 훈장을 초빙하여 한문 공부 시작.  1909년 (7세) 공주 김씨 문중에서 세운 남산소학교에 입학.                   서춘 선생의 문학수업을 받고 동네 친구인 오순을 만나 이성에 눈뜸.  1915년 (13세) 남산소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4월 오산중학에 입학.                     교장 이승훈, 교사 조만식의 영향으로 민족의식을 키움.                     스승 안서 김억을 만나 본격적인 문학 수업 시작.  1916년 (14세) 조부의 뜻에 의해 홍실단과 결혼. 오순과의 이별로 심리적 갈등을 겪음.  1920년 (18세) 안서의 지도로 창작에 매진하고 『창조』에 '낭인의 봄, 그리워, 춘강' 등을 발표하여 문단 등단.  1922년 (20세) 배재고보 5학년에 편입  1923(년 21세) 3월 교지 『배제』에 '길손, 달밤, 점동새' 등을 발표.                      배재고보 졸업 후 일본 유학길에 오름. 10월 관동대지진으로 귀국.                     (조부의 반대로 다시 일본 유학은 가지 못함)  1924년(22세) 귀향해서 조부의 광산일을 도움.                    영변 여행을 다녀와서 김동인, 김찬영, 임장화 등과 함께 『영대』동인이 됨.  1925년 (23세) 시집『진달래꽃』(매문사) 상재. 시론 「시혼」을 『개벽』(5호)에 발표.  1926년 (24세) 마음속의 연인이던 오순의 죽음으로 충격받음. 시작에서 거의 손을 떼고 방탕한 생활을 함.                      7월 평안북도 구성군에 동아일보 구성지국 개설, 지국장 역임. 1927년 (25세) 3월 동아일보 지국 폐쇄. '팔베개 노래' 발표.                    나도향의 요절로 충격을 받고 자살충동을 느낌. 술로 지새는 날이 많아짐. 고리대금업에 손댐.  1929년 (27세) '조선 시가협회' 회원 가입                     이 협회는 이광수, 주요한, 김억 등 10명으로 구성, 저속한 가요의 가사 혁신을 위하여 조직 됨.  1932년 (30세) 독립운동가 배찬경의 망명자금을 대주고 일경의 감시를 받음. 만주행을 꿈꿨으나 실패함.  1934년 (32세) 8월 '제이,엠,에쓰', '돈타령" 등 발표.                     9월 21일 추석 전날밤에 김억에게 절망적임 편지를 씀.                     12월23일 장에서 아편을 사가지고 와 음독함. 다음날 아침 8시경 시체로 발견됨.                      평북 구성군 서산면 평지동 터진고개에 안장됐다가 후에 서산면 평지동 왕릉산으로 이장.  1935년 김억이 『신동아』 2월호에 「김소월시행장」발표  1939년 김억 선의 『소월시집』이 박문서관에서 간행됨.  1956년 완본 『소월시집』이 정음사에서 간행됨.  1961년 김영삼씨가 『소월정전』을 성문각에서 간행함.  1968년 3월에 한국일보사 주관으로 서울 남산에 소월시비가 건립됨.  1970년 숙모 계희영이 『소월선집』과 『내가 기른 소월』을 장문각에서 간행함.  ==========================================================================   89. 못 잊어 / 김소월                                  김소월 못 잊어 원작          못 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끝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947    詩쓰기에서 2중구조를 잘 틀어쥐라... 댓글:  조회:4630  추천:0  2016-01-10
  ☞ 시를 쉽게 잘 쓰려면 2중 구조에 대해 먼저 눈을 뜹시다.   이중구조란 글자 그대로 두 가지 그림을 거느리는 구조를 말합니다. 예를 들자면 현실의 나와 의식 속의 나, 현재의 나와 과거ㆍ미래ㆍ 또는 추억 속의 나, 현실의 나와 거울 속의 나, 현실의 나와 그림 속의 나....등 이런 관계를 말합니다. 이런 관계의 시를 가장 선명하게 제일 먼저 제시한 시인이 바로 시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상 시인은 주로 거울을 매개체로 해서 현실의 나와 의식 속의 나를 잘 조응했었습니다. 사실 이중구조 이치만 잘 이해하고 소화한 사람이면 이런 유형의 시가 쓰기도 쉽고 참 재미있다는 걸 금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남들은 난해하고 쓰기 어렵다고 하는데...   그 로직은 의외로 쉽지 않나 생각합니다. 현실의 나와 거울 속의 나와 대화를 계속 나누면서 온갖 장난과 행동을 다 해보는 겁니다. "현실의 나와 거울 속의 나"로 예를 들면 < 내가 눈빛을 시퍼렇게 뽑으니까/ 거울 속의 녀석도 눈빛을 시퍼렇게 뽑는다./ 내가 쫓아가니까 그 녀석은 도망간다. 화장실로 숨는다/ 내가 다시 돌아서니깐 녀석은 다시 기어 나온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와 행동을 이 둘에만 초점을 맞추어 전개해 나가면 시적 공간이 나와 거울 속의 나로 한정되기 때문에 그 이미지가 아주 선명하게 되고 이야기도 풀어나가기가 한결 쉽게 됩니다. 제 시집 '정동진역'에 실려 있는 라는 시도 참고로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상상의 시작도 이런 데에서부터 시작하고, 고정관념을 벗어나 사고의 자유로움을 쉽게 느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데에부터 시작하지 않나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마인드를 갖고 이상, 김기림, 김수영, 오규원 등 이런 시인들의 시를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시가 참 재미있다는 걸 금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위에서 예를 든 이중구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재의 이중구조라는 것이 있는데 이걸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즉 어떤 오브제를 갖다놓고 그 소재와 나와의 관계 둘로 보고 시를 써 나가는 것입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때 시를 끌어내는 방식이 세 가지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 첫째는 내가 아예 그 소재가 되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고, 둘째는 거꾸로 그 소재가 나로 되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고, 셋째로는 그 소재와 내가 서로 마주보고서 떨어져 앉아 대화를 나누며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그 첫 번째 방법은 이렇습니다.< 나는 엉덩이에 찌그러진 상호를 붙였지만/ 발로 차면 크게 소리를 지른다/ 밟으면 시커먼 침을 뱉을 수도 있고/ 잘 돌봐주면 난 그대 책상을 꾸미는 꽃병이 될 수도....>이런 식으로 내가 깡통이 되어 깡통의 속성을 가지고 계속 생각하고 행동한 다음에 제목을 으로 붙이는 경우입니다. 이때 유의할 점은 본문 내용에 절대 '깡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안 됩니다. '깡통'이란 말이 들어가면 깡통이란 단어를 보는 순간 내가 깡통이라는 환상이 갑자기 확 깨져버립니다. 이것만 잘 소화해도 현상문예 예선을 거뜬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가 감각적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거꾸로 깡통이 내가 되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 이 깡통은 목소리가 크고/ 속에 든 것은 아무 것도 없고/ 하루 종일 거리에서 빈둥거리며 놀고/그리하여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깡통/ 가끔 앞집 아저씨의 발에 채여/ 아프다고 소리치는 깡통.....> 이렇게 깡통이 내가 되어 생각하고 행동한 다음에 제목을 으로 붙이는 경우입니다. 이때는 또 반대로 '나의' 라는 말이나 '나'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절대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단어를 보는 순간 환상이 확 깨져버립니다.   세 번째 방법은 지면상 설명이 좀 길어질 것 같아 다음 기회로 미루고 첫 번째 방법에 충실한 시 한편을 소개하고 게시판 시 감상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첫 번째 방법만 잘 활용해도 눈에 확 나는 좋은 시를 금세 쓸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   수박   윤문자   나는 성질이 둥글둥글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허리가 없는 나는 그래도 줄무늬 비단 옷만 골라 입는다 마음속은 언제나 뜨겁고 붉은 속살은 달콤하지만 책임져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배꼽을 보여주지 않는다 목말라 하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겉모양하고는 다르게 관능적이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오장육부를 다 빼 주고도 살 속에 뼛속에 묻어 두었던 보석까지 내 놓는다   *****************************************************************************   게시판에 올라온 시들을 감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소빈 님의 시는 몇 군데만 고치면 상상력이 풍부한 아주 좋은 시가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번 지적을 받고 금세 상상력을 이렇게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님이 똑똑한 건지, 필자의 강의가 훌륭한지 모르겠습니만 여하튼 필자의 의도를 쉽게 알고 따라오는 것이 대견스럽습니다. 이소빈 님은 제가 위에서 설명한 소재의 이중구조를 잘 읽어보면 이 시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 지를 금세 알 수 있을 겁니다. 즉 이 시는 소재의 이중구조 첫 번째 경우이지만 "유리와 나"의 이중구조가 아니라 "유리와 그"와의 이중구조로 파악해야 이 시의 내용에 맞지 않나 싶습니다. 하여 본문 속에 나오는 라는 말을 전부 로 바꾸어 보세요. 훌륭한 시가 되죠? 하여 필자가 바꾸어 고치면 다음과 같은 훌륭한 시가 탄생하겠습니다... ***************************************************************************** 유리   날카로운 모서리를 반짝이는 그는 살아 있다 빛나는 피부는 분명 날카로움이 응집된 광채이다 갈대처럼 휘어질 줄 모르는 성질을 가진 그는 어디를 두드려도 물방울 떨어지듯 맑은 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주고 긁혀 다쳐도 아파하지 않는다. 그는 분명 속을 꿰뚫어 보는 섬뜩하게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언제든 몸을 날려 날카롭게 변신할 수 있는 그는 틀에 갇혀 살아간다 오랜 시간 단단하게 버티고 있어야 하는 고행도 견딘다 한낮 몸통을 흔들어 대는 바람의 유혹에도 쉽게 제 몸을 부수어 자유를 갈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돌팔매질에는 단번에 날카로움을 드러낼 그는 반짝이는 모서리를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 ****************************************************************************   공기욱 님도 시를 잘 썼군요. 그러나 ,를 빼세요. 를 로 바꾸어 보세요. 그 이유는 이소빈 님처럼 전화를 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를 반영하면 다음과 같은 시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공기욱 님은 시의 방향을 이제 제대로 잡은 것 같으니 더 고심해서 시를 써 당분간 시를 올리지 말고 다른 독자들에게 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비축해 두시기 바랍니다.   ****************************************************************************   봄비   누군가 호미질 하는 소리에 눈이 떠져요 톡톡톡 소리 나는, 이른 아침 밭으로 나가요 누군가 호미질 하고 있어요 밭이랑마다 깊이로 넓이로 골고루 씨앗을 뿌리고 있어요 바람에 날려가지 않게 흙으로 덮어주며 다독거리며 누군가 이렇게 부지런한 손놀림을 하고 있어요   내 이마 위에 맺힌 새말간 땀방울을 좀 보세요 밭고랑 씨앗들도 파도처럼 나에게로 퍼져와요 나도 누군가에게로 씨앗들을 퍼트리고 싶어요   *******************************************************************************   chr486님은 올린 글의 내용으로 보아 시를 잘 쓸 수 있는 감각과 사고의 소유자로 여겨집니다. 제대로 배우면 폭발적으로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여, 우선 기본적인 것부터 하나씩 익히시길 바랍니다. 기성 시인들의 시중 구조가 잘 짜여있고 감각적인 시를 많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필자의 감상평1,2,3,4도 반드시 여러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김영남)   ======================================================================   66. 더 깊은 눈물 속으로 / 이외수                       67. 장마전선 / 이외수                        
946    왕초보시습작자들은 기본에 충실하라... 댓글:  조회:5339  추천:0  2016-01-10
창작강의 및 감상평(4)     ☞ 시의 길이는 20행 정도를 목표로 하는 게 좋습니다.   초보자 시절에 시의 퇴고와 관련하여 자주 고민하는 것이 연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시의 길이는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입니다. 여기에는 내용에 따라 전개하는 형식에 따라 각각 다르겠지만 행갈이를 정상적으로 한다고 할 때 시의 길이는 대체적으로 20행정도를 목표로 하고, 시의 연은 의미가 달라지는 부분에서 연을 구분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가 시를 읽을 때 통상적으로 20행이 넘어 시가 길어지면 우선 시각적으로도 질리게 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 시를 읽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게 됩니다. 시가 길어질 땐 길어지는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우선 그 시가 아주 재미있다든지, 아니면 호흡이 길어도 독자들이 지루함을 못 느끼도록 하는 특별한 기교와 내용이 있든지 해야 합니다. 이젠 독자들도 영악해서 별로 의미 없고 특별한 내용도 없으면서 작자만의 생각으로 길게 쓴 시는 두 번 다시 읽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시가 문학의 어느 분야보다도 언어의 함축성과 경제성을 추구하는 예술이라는 걸 생각하면 금세 이해가 가리라 여깁니다. 그러나 요즘 시 잡지에 발표되는 시들을 보면 필자가 말하는 내용과 너무나 다르다는 걸 느낄 겁니다. 좋은 시란 적당한 길이에 음악성과 함축성을 겸비하고 이미지가 선명한 시가 좋은 시입니다. 하여, 초보자 시절에는 상상은 끝없이 해놓고 나중에 작품을 다듬어 퇴고할 때 이 정도의 길이로 지향하는 게 바람직할 겁니다.   연을 나눌 때에는 대체적으로 의미가 달라질 때 나누게 됩니다. 그러니까 상상의 내용이 건너 뛸 때. 변칙도 있습니다만 초보자 시절에는 여하튼 기본에 충실하는 게 발전이 빠릅니다. 그리고 1, 2, 3 등으로 구분하는 것은 내용이 거의 연작시 수준이거나, 연을 구분하기에는 보폭이 너무 클 때 통상 사용하는 것으로 초보자 시절에는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는 게 바람직합니다.   *******************************************************************************   게시판에 올라온 공기욱 님의 시를 감상하겠습니다.   를 쓴 공기욱은 제게 한 번 지적을 받고 시가 이렇게 달라졌구나 하는 걸 이 게시판 독자들은 금세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시란 바로 이렇게 쓰는 겁니다. 시 쓰는 방법을 제대로 알면 시 쓰는 게 이렇게 쉽습니다. 벌써 한 편의 시를 쉽게 건진 공기욱 님! 축하합니다.   좀 수정할 부분을 지적하겠습니다. 우선 연을 에서 연을 나누고 쉼표를 없애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 속에 란 단어를 모두 빼기 바랍니다. 비 오는 걸 편지 오는 걸로 상상하는 것은 이미 마음속을 이야기 하고 있는 거니깐 란 단어가 들어가면 안 되겠지요?   두 번째 구절의 에서 을 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첫째 연 마지막 를 로 바꾸기 바랍니다. 마지막 연의 를 로 바꾸어 문장 속으로 집어넣기 바라고, 에서 누구의 편지인지 불분명하죠? 그래서 앞에 란 말과 편지 다음에 란 말도 집어넣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렇게 되겠죠? 그리고 맨 앞에 집어넣어 시 서두의 의미를 리플레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에 서두의 구절을 한번 리플레이 해 주면 상상의 초점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독자가 시의 처음을 다시 되새기면서 감상을 마치게 됩니다. 이상을 정리하면 마지막 연이 이렇게 되겠죠?   그리고 제목을 로 바꾸기 바랍니다. 이 시의 내용에 가을비가 가장 잘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이상의 지적을 반영해 시를 고치면 다음과 같이 되겠습니다.   ********************************************************************************   가을비     이렇게 편지가 오는 날은 방안에 불을 켜둔다 이렇게 편지가 오는 날은 문도 열어둔다 먼데서 오는 그 편지 나의 집을 수월히 찾아오도록   밤새 멎지 않는 무수한 발자국자국소리에 잠 못 이룬 나는 길눈 밤눈 다 어둔 내어머니, 혹 딴 번지를 헤매시나 한참을 문 밖에서 서성이다가 귓속으로 한 발짝 두 발짝 파고드는, 어머니의 동여맨 사랑을 풀다보니 풀다보니 그 사랑 금세 문지방을 넘어 바닥 깊숙이 흘러가서 금세 빛바랜 편지함마저 흥건하게 잠긴다 어머니, 나를 매만지는 손길에 잠이 든다.   이렇게 편지가 오는 날은 어머니 생전에 드리지 못한 안부, 내 편지 한 통도 하늘로 급히 부쳐야 하리.   ================================================================   64.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 이외수                                이외수 연보   1946 경남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에서 태어남 1958 강원도 인제군 기린국민학교 졸업 1961 강원도 인제군 인제중학교 졸업 1964 강원도 인제군 인제고등학교 졸업 1965 춘천교육대학 입학 1968 육군 입대 1971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 1972 춘천교육대학 중퇴 1972 강원일보 신춘문예 [견습어린이들] 당선 1973 강원도 인제 남국민학교 객골분교 소사로 근무 1975 《世代》지에 중편 [훈장勳章]으로 신인문학상 수상, 강원일보에 잠시 근무 1976 단편 [꽃과 사냥꾼] 발표 11월 26일 전영자와 결혼 1977 춘천 세종학원 강사로 근무 장남 이한얼 출생 1978 원주 원일학원 강사로 근무 장편 [꿈꾸는 식물] 출간 1979 단편 [고수高手] [개미귀신] 발표 모든 직장을 포기하고 창작에만 전념 1980 창작집 [겨울나기] 출간 단편 [박제剝製] [언젠가는 다시 만나리] [붙잡혀 온 남자] 발표 차남 이진얼 출생 1981 중편 [장수하늘소] 단편 [틈] [자객열전] 발표 장편 [들개] 출간 1982 장편 [칼] 출간 1983 우화집 [사부님 싸부님] Ⅰ,Ⅱ 출간 1985 산문집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 출간 1986 산문집 [말더듬이의 겨울수첩] 출간 1987 서정시집 [풀꽃 술잔 나비] 출간 1990 4인의 에로틱 아트전-나우갤러리 1992 장편 [벽오금학도] 출간 1994 산문집 [감성사전] 출간 仙畵 개인전-신세계 미술관 1997 장편 [황금비늘] 1, 2 출간 1998 산문집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출간 2000 시화집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출간 2001 우화집 [외뿔] 출간 2002 장편 [괴물] 1, 2 출간 2003 사색상자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출간 2003 산문집 [뼈] 출간 2005 장편 [장외인간] 1, 2 출간   2006 강원도 화천군 다목리 [감성마을] 입주   문장비법서 [글쓰기의 공중부양] 출간   중단편모음집 [장수하늘소] [겨울나기] [훈장] 출간   선화집 [숨결] 출간   시집 [그대 이름 내 가슴에 숨쉴 때까지] 출간 2007 산문집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출간   문장비법서 [글쓰기의 공중부양] 재출간   [사랑 두 글자만 쓰다가 다 닳은 연필] 출간 (뼈 개정판) 2008 산문집 [하악하악] 출간   仙畵 개인전 - 포항 포스코갤러리   ================================================ 65. 성냥개비 / 이외수                                   알기 쉬운 현대시 작법 -자유시에도 운이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형시뿐만 아니라 자유시의 경우도 각운rhyme에 의해 시의 음악성이 강조된다.  각운은 흔히 낱말의 동일한 위치에서 동일한 소리가 반복되는 현상,  한국어의 낱말은 일반적으로 초성, 중성, 종성으로 되어 있고,  따라서 각운은 초성이 반복되면 두운alliteration, 중성이 반복되면 요운internal rhyme,  종성이 반복되면 말운rhyme이 된다.  각운이란 말은 운율을 맞춘다는 의미와 머리, 허리, 다리에서 다리가 되는 운,  곧 말운이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각운은 광의로 두운, 요운, 말운을 포함하고 협의로는 말운에 해당한다.  물론 각운은 낱말과 낱말 사이에도 적용되고 시행과 시행 사이에도 적용된다.  다음은 낱말과 시행 양자에 걸쳐 두운이 나타나는 경우.  말리지 못할 만치 몸부림치며  마치 천리 만리나 가고도 싶은  맘이라고나 하려볼까  - 김소월   먼저 낱말의 경우 1행에는 "말리지 / 못할 / 만치 / 몸부림치며"에서 알 수 있듯이  네 낱말의 머리에 "ㅁ"이 반복되는 두운 현상이 나타난다.  "만치"를 독립된 낱말로 읽지 않는 경우 1행은 "못할 만치 / 몸부림치며"가 되고 이 때는 "못할 / 몸부림"의 두운 현상 "-만치 / -림치며"의 요운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1행의 첫소리, 2행의 첫소리, 3행의 첫소리는 모두 ㅁ으로 시작되는 두운 효과를 준다.  문제는 말운이고, 정형시의 경우도 우리시에는 말운 현상은 없고 운 대신 형태소나 낱말이 반복된다.  윤동주의 대표작 가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것은 무슨 사상의 깊이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음악성 때문이고,  그것도 두운과 요운 현상 때문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중략)......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먼저 "하늘을 우러러"가 문제이다. "하늘을 우러러"란 무슨 뜻인가?  정확하게 표기하면 "하늘을 쳐다보며"이거나 "하늘을 공경하며"이다.  그러나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라고 표현한다.  "쳐다보며". "공경하며"가 아니라 "우러러"라고 표기한 것은 무엇보다 요운의 효과 때문이다.  "하늘을 / 우러러"의 경우 "-ㄹ-/ -ㄹ-"이 반복되므로써 요운 현상이 나타나고.  따라서 "하늘을 쳐다보며"나 "하늘을 공경하며"가 단순한 의미 전달을 목표로 한다면  이런 표기는 미적 효과를 목표로 하고 시가 예술일 수 있는 것은 이런 미적 책략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한 점"도 문제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이라고 말하지는 않고 "  결코 부끄럼이 없기를" 혹은 "죽어도 부끄러움이 없기를" 이라고 말한다.  혹시 일부에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하는 식으로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서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말에는 시간을 알리는 경우나 점에 대해 말하는 경우가 아니면 "한 점"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그것도 한 점 부끄러움이라니?  그렇다면 두 점 부끄러움도 있고 세 점 부끄러움도 있단 말인가?  이런 표기는 앞에 나온 "하늘"과 관계되는 바.  두 낱말 모두 첫 소리가 ㅎ으로 되어 있고 따라서 두운 효과가 있다.  요운 현상은 2행 "부끄럼이 없기를"에도 나타난다.  "-ㄲ-/-ㄱ-"의 반복이 그렇다. ㄲ과 ㄱ은 다르지만 이 시행이 경우 비슷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마지막 행이 아름다운 것 역시 "-밤-/-별-/-바람-"의 요운 현상 때문이다.  결국 윤동주의 는 사상이 아니라 소리 효과, 음악성,  그것도 섬세한 운의 효과가 감동을 주고 그의 시가 명시인 것은 이런 예술성 때문이다.  우리시에는 정형시든 자유시든 말운 현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각 시행의 끝이 비슷한 혹은 같은 소리로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말운은 아니지만 각 시행의 끝에 비슷한 혹은 같은 소리가 음으로써 미적 효과를 낳는 경우는 많다.  엄격하게 정의하면 앞에서도 말했지만 각운rhyme은 각 시행의 끝소리가 같은 소리로 조직되는 것이고,  따라서 협의로는 말운을 뜻한다.  그러므로 두운 역시 각 시행의 첫 소리가 같은 소리로 조직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위에 인용한 두 편의 시 가운데 김소월의 시가 두운 현상에 적합하고  윤동주의 경우는 변형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요운 현상 역시 각 시행 중간에 같은 소리가 나오는 경우이고  한 시행 속에 나오는 경우는 요운의 변형,  혹은 자음조화consonance나 모음조화assonance로 읽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말하자면 "팔리지 못할 만치 몸부림치며"는 자음조화,  "마치 천리 만리나"는 모음조화로 읽을 수 있다.  우리시의 경우 각 시행이 끝이 같은 소리가 오는 이른바 말운 현상은 없지만 비슷한 소리(?)가 오는 경우는 있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빛이 뻔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듯 눈엔 듯 또 핏줄엔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말운의 정확한 보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시의 미적 효과는 각 시행의 끝에 비슷한 소리가 오기 때문이다.  1행, 3행, 7행은 "끝없는 / 뻔질한 / 끝없는"의 ㄴ소리가 반복되고  2행, 4행, 8행은 "-네 / -네"의 같은 모음이 반복되고  5행, 6행,은 "듯 / 곳"의 ㅅ소리가 반복된다.  그러나 이런 소리의 반복은 말운 현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시의 경우 각 소리들은 각 낱말의 종성에 위치하는 소리가 아니라  낱말이거나 어미 활용에 속하고(끝없는, 흐르네,인 듯)  굳이 종성에 위치하는 소리를 찾자면 "곳"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같은 ㅅ소리를 반복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이 소리는 운이 아니라  "곳"이라는 낱말의 반복이기 때문에 말운이 아니다.  여컨대 우리시의 경우 말운이 아니라 같은 어미나 낱말이 반복되고 이런 반복이 미적 효과를 준다.    ========================================================================   86.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김영랑                 이 시는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으로 발표하였다가,   에서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로 수정함. 현재 발표된 자료에는 대부분 2행의 '아침˘ 날˘ 빛이' 라고 표기되어 있어나,  '아침˘ 날빛이'이 바르게 적은 것이다.     ※ 날빛 : ‘햇빛을 받아서 나는, 또는 온 세상의 빛'이라는 뜻이다.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원문             87. 오-매 단풍 들것네 / 김영랑                           이 시는 '누이의마음아 나를보아라'로 발표하였다가, 에서는 '오-매 단풍 들것네'로 수정함.       오-매 단풍 들것네 원문              
945    詩란 모방에서 출발?!...!?... 댓글:  조회:3982  추천:0  2016-01-10
창작강의 및 감상평(3)   초보자 시절에는 시 창작 방법을 아무리 들어도 시작하려면 정작 막막하기 이를 데 없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좀 더 구체적인 방법, 두 가지를 추천할까 합니다.   첫째로 왕 초보 시절에는 기성 시인의 작품 중 구조적으로 잘 짜여진 작품을 갖다놓고 그 작품 구조에 맞추어 자기 생각을 끼워보는 연습을 먼저 해보라고 권장하고 싶습니다. 즉 그 시를 한번 모방해보라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고 했습니다. 사실 어느 시인이 누구의 영향을 받았다는 건 좋게 말해서 영향이지, 액면 그대로 표현하면 그 사람을 모방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모든 창작은 모방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미술학도 지망생에게 제일먼저 시키는 것이 석고데생, 즉 모사연습이고 외국어를 습득하는데 어떤 이론, 문법공부보다도 말을 실제로 따라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음미해보면 금세 이해가 갈 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이렇게 급속도로 선진대열에 올라 설 수 있었다는 것도 외국, 특히 인접 일본의 앞선 기술, 문화, 제도 등을 그대로 모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우리나라의 색깔과 독자성이 문제이지만...   하여, 왕초보 시절에는 구조적으로(기,승,전,결) 잘 짜여진 작품이나, 독특한 표현이 많이 들어있는 작품을 갖다놓고 자기 생각을 끼워보는 연습을 많이 해보기 바랍니다. 내용과 감각을 모방하라는 것이 아니라, 구조와 전개방법과 표현기술을 따라서 해보라는 뜻입니다. 이걸 능수능란하게 하다보면 나중에 자기도 모르게 표현을 뒤틀어보고 싶고 독특하게 펼치고 싶어져 자기 색깔이 선명하게 나오는 걸 보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 감각은 있는데 될만한 시의 소재를 못 찾아 시를 제대로 쓸 수 없는 사람은 잡지를 많이 보라고 권장하고 싶습니다. 특히 여성지, 패선 잡지, 디자인 잡지, 건축 잡지, 미술잡지 등 사진과 그림이 많이 담긴 잡지를. 시란 기본적으로 심상, 이미지 즉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니까 그림이 많은 잡지를 넘기다보면 언뜻 시로 표현하고 싶은 소재가 스치게 됩니다. 잡지를 깊게 읽지 말고 눈요 기식으로 넘기고 광고 카피도 눈여겨보기 바랍니다. 문득 힌트를 얻게 됩니다. 광고장이들도 시를 많이 읽고 쓴다는 걸 참고해 가면서 말입니다. 이때 얻은 힌트를 가지고 감상평(1),(2)을 참고해서 상상을 펼쳐보기 바랍니다. 나중에 또 언급하겠지만 제목에 신경을 쓰지 말고 문득 얻은 힌트, 그 소재를 가지고 상상을 해 다듬어 보기 바랍니다. 상상을 자꾸 새롭게 하고 고치다가 보면 처음 의도했던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의 시가 탄생하거든요. 그래서 제목을 맨 나중에 붙이는 겁니다.   이상을 참고해서 초보자 시절에는 가능한한 이미지 즉 글로 그림을 그리는 연습을 많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걸 잘하다 보면 나중에 의미 있는 말, 표현, 자기철학 등도 요령 있게 양념 치듯 넣는 기술을 알게 됩니다. 여하튼 처음에는 거창한 자기의 말, 주장을 하려하지 말고 힘을 완전히 뺀 상태에서 감각과 상상으로 접근해 그림을 그리는 연습을 많이 해보기 바랍니다.   *******************************************************************   게시판에 올라온 시들을 한번 감상해 보겠습니다.   이소빈 님의 시 은 거의 시의 근처에 와 있습니다. 즉 시적 사고가 이제 시작의 단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이 시로 성립하기에는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몇 군데 눈에 띄는 구절이 있지만 이란 이미지가 전혀 그려지지 않았어요. 단지 유리의 속성(이건 좋은 표현)과 유리를 끼우는 사람만 있지 유리의 관이란 이미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선 유리의 관이란 소재가 낯설고 독자의 상상을 자극할만한 매력적인 물건도 아니거든요. 차라리 유리 벽, 유리 등, 유리 인형 등이 더 상상력을 펼치기 쉽고 독자들의 상상도 매력적으로 자극할 물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여 이 시를 유리의 속성 하나에 초점을 맞추어 시를 다시 쓰면 좋은 시가 탄생할 것 같습니다 이소빈 님은 기본적으로 소재를 어떻게 상상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 같거든요. 우선 첫줄을 라고 두 번째 줄의 내용을 변용해 놓고 이소빈 님이 발견해 낸 유리의 속성들, 즉 광채, 맑은 영혼 등을 가지고 다시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상상을 전개하는데 참고가 될지 모르겠지만 올 연초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를 한번 찾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유리의 속성들을 발견하는 데에는 이기철의 문학과 지성사간 시집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공기욱 님은 아직도 제가 설명한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쓰면 발전이 더디니까 당분간 제가 과제를 내 준대로 시를 써서 올리시기 바랍니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차근차근 따라간다는 자세를 갖기 바랍니다.   다음에 시를 올릴 때 공기욱 님의 애인 방을 시로 그려서 올리시기 바랍니다. 애인이 없다면 임의로 하나 만들어서라도, 그거마저 없다면 친구의 방이라도 시로 멋지게 그려서 올리기 바랍니다. 필자가 공기욱 님의 시만 읽고서도 애인의 방을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그리기 바랍니다.   이섭 님의 시도 시로 건질 수 있는 표현은 맨 마지막 두 줄 뿐입니다. 나머지 표현은 설명과 느낌을 적은 것이고 상상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필자의 감상평(1),(2)를 다시 한번 읽어보기 바랍니다.   하여 이섭 님도 공기욱 님처럼 애인의 방을 한번 멋지게 시로 그려서 올려보기 바랍니다. 이섭님은 위 시를 가지고 이렇게 시작해서 말입니다 이렇게 시작하고 나서 애인의 방을 꾸며서라도 멋들어지게 그려내 보기 바랍니다.   참고 시를 하나 소개 합니다. ****************************************************************************   방     그 방은 창을 통해 안이 훤히 드러난다. 연둣빛 레이스 커튼을 드리웠고 널린 브래지어가 한결같이 희망표이다. 고개를 들면 갤럭시 손목시계, 악어가죽 핸드백이 한눈에 확 들어온다. 바닥은 아담하고 천장은 유난히 높고 알록달록한 박달나무 숲속 같은 분위기가 달려오는 방. 저렇게 꾸미는 데는 몇 년이 걸렸을까. 그 방에 닿으려면 창동역에서 도봉산 쪽으로 날아가는 화살표를 두 번 따라가야 하고 909국 다이얼을 돌려야 한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만큼 그 방 밖도 늘 매혹적이고 불안하다. 항상 불이 켜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불이 꺼져 있으면 그 방 밖은 가을이고 수상하다. 그리고 낙엽이 뒹굴고 바람이 불면 그 방은 사정없이 흔들린다. 방은 흔들릴 때가 아름답다. 흔들릴 때마다 굳게 잠긴 자물통이 침묵의 장식처럼 중심을 잡아주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돌아다보면 그 방은 다시 불이 켜진다.   참으로 이상한 방. 한번 쓱 들어가 맘껏 뒹굴어보고 싶은 방. 브래지어가 창인 그녀.   ===============================================================================   62. 바보사막 / 신현정            
944    詩는 재창조의 산물 댓글:  조회:3829  추천:0  2016-01-10
밑에 관하여       나는 위보다는 밑을 사랑한다. 밑이 큰 나무, 밑이 큰 그릇, 밑이 큰 여자.... 그 탄탄한 밑동을 사랑한다.   위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밑동도 다 넓은 것은 아니지만 참나무처럼 튼튼한 사람, 그 사람 밑을 내려가보면 넓은 뿌리가 바닥을 악착같이 끌어안고 있다.   밑을 잘 다지고 가꾸는 사람들.... 우리도 밑을 논밭처럼 잘 일궈야 똑바로 설 수 있다. 가로수처럼 확실한 밑을 믿고 대로를 당당하게 걸을 수 있다. 거리에서 명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밑이 구린 것들, 밑이 썩은 것들은 내일로 얼굴을 내밀 수 없고 옆 사람에게도 가지를 칠 수 없다.   나는 밑을 사랑한다. 밑이 넓은 말, 밑이 넓은 행동, 밑이 넓은 일... 그 근본을 사랑한다. 근본이 없어도 근본을 이루려는 아랫도리를 사랑한다.     **************************************************************************   아름다운 모퉁이에 관하여       모퉁이가 아름다운 건물을 보면 사람도 모름지기 모퉁이가 아름다워야 아름다운 입체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향기로운 내부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퉁이가 둥근 말, 모퉁이가 귀여운 사랑 이들에게는 한결같이 모난 부분을 둥그렇게 구부린 흔적이 바라보는 사람을 황홀하게 한다. 나는 이 아름다운 옆구리를 한번 돌아가보면서 모퉁이란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될 건물의 중요한 한 분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부까지 품위 있게 해주는 의식의 요긴한 한 얼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퉁이를 가꾸는 사람들... 경제학적으로 검토하면 비효율적 투자이겠지만 모두가 모퉁이를 가꾸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또 어디를 돌아가보고 살아야 하나? 향기로운 넓이와 높이를 가진 입체물들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   벽       가려보고 드러내봐도 내 앞뒤 골목은 온통 벽이로구나. 한 발로 뻥 찼을 땐 여지없이 되튕기며 발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벽.   야, 벽에도 이단 옆차기가 있고, 돌려차기가 있구나. 속이 훤히 드러난 유리벽이 있고, 보초를 세워야 하는 철조망 벽이 있구나. 그러면 벽에도 나이가 있고 학벌이 있고 지위가 있다는 것인데, 맘에 안 든 벽을 마구 감옥에 잡아넣는다면 누가 경쟁을 하나? 벽 없이도 세상을 이룰 수 있나? 우리들 마지막 버팀목이 벽이라면 벽 없이도 희망은 존재할까? 벽을 쌓으려면 스폰지를 넣거나 변경이 용이하도록 조립형으로 설계해야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견고하게 구축하더라도 잦은 발길질과 교묘한 철거 전략에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벽은 융통성 있게 존재해야 하리라.   지금 나의 말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한 사나이가 망치를 들고 힘차게 걸어가고 있다.   ***********************************************************************       창작강의 및 감상평(2)   ☞초보자 시절에는 상상하기에 좋은 소재들을 골라 상상하도록 합시다.   초보자 시절에 일단 상상하는 요령을 알게 되면 어떤 소재를 고를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상상력이 일정 수준에 달한 사람은 어떤 소재를 갖다놓더라도 즉각 상상력을 기발하게 발휘할 수 있습니다만 초보자 시절에는 막막하기 이를 데 없죠. 그래서 초기에는 상상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이 담긴 소재, 언어들을 고르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우선 공간이 존재하는 소재들을 고르는 게 상상하기 쉽습니다. 구체적이지 않고 평면적이고 추상적인 소재들은 수준급의 상상력 소유자가 아니면 상상의 단서를 잡기가 여간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사랑, 미움, 과거, 미래, 종이... 등 이런 소재들로 시를 쓴다고 해봅시다. 그냥 숨이 콱 막힐 겁니다. 그러나 공간이 있는 것들 문, 벽, 창, 천장, 집....등 이걸로 상상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상상이 한결 쉬울 겁니다. 이건 상상이란 기본적으로 이미지, 즉 머리 속에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고 그 그림은 공간이 있는 것이 평면적인 것보다 훨씬 그리기 쉽고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한번 들어 봅시다. 을 가지고 상상한다면 현실의 문(사립문,철문,미닫이문,파란문,빨간문...), 추억의 문, 사랑의 문, 지식의 문...등 상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가령 그 추억의 문 하나로만 상상을 해보더라도 그 추억의 문에 문고리를 달아보고, 자물통도 달아보고, 발로 한 번 뻥 차보고, 파란 페인트, 아니 빨간 페인트도 칠해보고 온갖 상상을 다 해볼 수 있잖아요?   또 이란 소재로 한번 해 볼까요? 처럼 의미적 공간 말고, 이번에는 실제적 공간으로 , 즉 어느 초가집을 한번 그려본다고 해 봅시다. 두 눈 딱 감고 어릴 적에 보았던 초가집 하나를 머리 속에 담고 < 그 집에 들어가려면 싸립문을 밀어야 하고/ 문 왼쪽에는 나팔꽃 화단/오른 쪽에는 토끼장이 딸린 닭장/ 거기에는 줄을 잡고 변을 보는 화장실이 있다/.....뒤란에는 대나무 숲이 있고/ 앞마당에는 삽살개 한 마리/ ....신발을 벗고 방문을 열면/ 펜티 차림의 한 어린이가/ 만화책을 보고 있다> 이렇게 묘사해 놓고 제목을 으로 붙인다고 해 보세요. 정말 김영남의 어린 시절 집을 그린 훌륭한 시가 되지 않습니까?   여기서 유의할 점은 초가집을 그리는데 자기가 실제적으로 본 초가집을 그린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상상이 당장 막혀요. 상상은 기본적으로 허구이고 가공입니다. 즉 그 초가집을 그리는데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기억 속에서 모두 불러와 한번 그럴싸하게 둘러대는 겁니다. 즉 상상 속에서 초가집을 새롭게 창조하는 거죠. 이게 바로 참신한 그림이요, 참신한 이미지요, 참신한 시가 되는 겁니다.   이상에서 언급한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초보자 시절에는 가능한 한 공간이 존재하는 소재들을 골라 상상을 해 시를 써보도록 하고, 상상은 체험, 허구, 가공까지 드나들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시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허구, 가공까지 동원해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라는 걸 유념하고 게시판에 올라온 공기욱 님의 를 감상해보도록 합시다.   *******************************************************************   공기욱 님의 란 시는 발상, 즉 상상의 단서는 참 좋습니다. 비가 오는 것을 편지가 오는 걸로 상상하는 것은 훌륭한 시로 탄생할 여지가 매우 높습니다. 일단 상상이 참신하니깐 요. 그러나 현재로써는 시로 여물지 못했어요. 단지 시로 건질 수 있는 표현은 네 번째 연 이것뿐입니다. 나머지는 비 오는 걸 편지 오는 걸로 상상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구절들이에요. 한 시에서 초점을 모으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면 그런 표현들은 버려야지요.   하여, 공기욱 님은 나머지 연은 다 버리고 네쩨연을 첫연으로 내걸고 거기서부터 다시 상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소소한 표현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상상을 어떻게 펼치는가가 앞으로의 장래를 보장하니깐 의 요령을 참고하시어 다시 써보기 바랍니다. 당분간 상상을 참신하게 하는 데에 중점 지도를 할 것입니다.   공기욱 님에게 위 시에서 상상을 펼치는데 참고가 될만한 이야기를 하자면 첫 연에서 비가 오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편지가 오는 걸로 생각했으니깐 둘째 연에서부터는 나한테 오는 편지로 끌어와야 이야기를 전개하기가 쉬워질 겁니다. 그리고 나선 슬픈 편지, 기쁜 편지, 빨간 편지 파란 편지, 애인 편지, 친구 편지, 문안편지, 위로편지 등등....쓸 내용이 많아질 겁니다. 상상하는 데 참고해 보세요.(김영남) =================================================== 60. 커브 / 신현정                          61. 빨간 우체통 앞에서 / 신현정                    
943    詩를 쉽게 쓰려면 상상력 키우라... 댓글:  조회:5055  추천:0  2016-01-10
창작 강의 및 감상평                                                                          김영남     ☞ 시를 쉽게 쓰는 요령은 상상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초보자들이 시를 쓸 때 제일 먼저 봉착하는 것이 어떻게 시를 써야하며, 또한 어떻게 쓰는 게 시적 표현이 되는 것일까 하는 점입니다. 필자도 초보자 시절 이러한 문제에 부딪혀 이를 극복하는 데에 거의 10년이 걸렸습니다. 그 동안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거죠.   필자가 이와 같이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이유는 시란 ' 자기가 경험했고, 보고 느낀 것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게 시다' 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좋은 시를 힘들이지 않고, 개성적으로, 재미있게 쓰는 데에는 이게 바로 함정이라는 걸 나중에야 깨닫게 된 거죠. 경험과 느낌은 모든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합니다. 그러나 상상은 천차만별이죠.   하여, 시를 힘들이지 않고, 개성적으로 잘 쓰려면 상상으로 써야 합니다. 상상으로 써야 발전이 빠르고 좋은 시를 계속 양산할 수 있습니다. 즉 시란 자기가 쓰고자 하는 소재를 두 눈 딱 감고 상상해서 쓰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초보자 시절에는. 보고, 느낀 걸 쓰는 게 시다라는 고정관념에 빠지니깐 시를 한 줄도 제대로 전개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게 되는 겁니다. 즉 보고 느낀 것이 다 떨어지면 그때부터 허둥대기 시작하는 거죠. 기껏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게 자기 주변 친구, 부모, 어린 시절 이야기 등을 둘러대는 정도. 그리곤 스스로 훌륭한 시를 썼다고 자기도취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시가 되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만 99%가 그렇고 그런 이야기, 누구나 다 보고 느끼는 형편없는 넋두리, 서사, 풍경 나열이 되기가 일쑤죠.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시를 써왔다면 이 순간부터 기존 쓰는 방식을 잠시 접어두고 필자가 안내한 대로 석 달만 같이 공부해 보도록 합시다. 글이 달라지는 걸 본인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우선 상상하는 것부터 배우도록 합시다. 그러면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   우선 상상할 소재, 즉 상상할 대상을 구체적인 것 하나를 고르세요. 자신이 있는 곳이 지금 사무실이라고 하면 주변에 있는 꽃병, 벽, 창, 하늘, 노을 등이 있을 겁니다. 이중 어느 하나를 골라 봅시다.   필자가 먼저 어떻게 상상하는지 그 방법의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로 한번 해볼까요? 기존 방식대로 이란 소재로 시를 한번 시를 써 보라고 하면 대다수가 노을을 쳐다보며 < 피 빛 노을이 아름답구나/ 나는 저 노을 아래로 걸어간다/ 친구와 함께...> 대다수가 아마 이런 식으로 글을 시작하지 않았겠나 여깁니다. 그러나 이건 느낌을 적은 것이고 상상한 게 아닙니다.   상상을 이렇게 해보는 겁니다. 만약 자신이 현재 에로틱한 감정상태에 있다면 을 바라보며, 또는 을 머리 속에 담고서 이렇게 눈부신 상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한 여자가 옷을 벗고 있다/ 그녀가 옷을 벗으니까 눈부셔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나도 저렇게 발가벗고 그 곁으로 가고 싶다/ 아니다, 그녀를 데리고 여관으로 가고 싶다/ 가서 같이 포도주 한 잔을 건넨 다음 껴안고 뒹굴고 싶다........> 이렇게 노을을 발가벗고 있어서 눈부신 여자로 여기고 계속 상상해 가는 겁니다. 이땐 순서를 생각하지 말고 앞 상상의 핵심어를 가지고 다음 상상을 유치하든 품위 있든 따지지 말고 계속 해보는 겁니다. 그리고 이걸 나중에 논리적으로 순서를 다시 잡아 정리, 수정해 가면서 다듬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제목을 로 붙여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정말 근사한 한 편의 시가 탄생할 것 같잖아요?   이번에는 을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고 한다면 빨간 노을을 머리 속에 담고서 이렇게 상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아이들이 모닥불을 피고 있다/ 그 모닥불은 연기가 없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저 불에 나는/ 고구마를 구어 먹고 싶다/ 제일 잘 익은 것을 꺼내/ 이웃 동네 창수에게 건네주고 싶다/....난 저 모닥불에 오줌을 갈겨 피식 소리가 나게 끄고 싶다....> 이렇게 을 로 여기고 모닥불과 관련된 온갖 경험, 추억, 익살스런 행동, 우스꽝스런 생각, 이야기들을 계속 꺼내가면서 상상을 하는 겁니다. 이때 유의할 점은 을 로 치환했으면 을 멀리 떠나서 상상을 하면 안 됩니다. 모닥불과 관련이 있는 내용으로 상상을 펼쳐야지 그렇지 않으면 시의 초점이 흐려지고, 내용이 난해해 지게 됩니다.   다른 소재들로 상상하는 것도 위와 같은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 더 다양하고 구체적인 방법, 다듬는 법, 순서를 잡는 법, 제목을 붙이는 법…….등등은 그때그때 하나씩 계속 예를 들기로 하고 오늘은 상상하는 요령만 익혀두기로 합시다. 시를 쉽게 쓰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상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며 게시판에 올라온 시를 한번 감상해 보도록 합시다.   *******************************************************************   방승일 님의 라는 시를 먼저 감상해 봅시다. 필자가 위에서 말한 내용을 새기면서 이 시를 읽으면 방승일 님의 시가 왜 시가 될 수 없는지를 금세 알 수 있을 겁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말을 무수히 하였는데도 하나도 우리의 눈길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건 상상을 하지 않고 느낌을 적었기 때문입니다. 느낌이라도 참신한 느낌을 쓰면 한두 줄 시로 성립할 수 있지만 그것마저도 찾아볼 수 없군요. 본인이 섭섭해 할까봐 구체적으로 한번 지적해 볼까요?   첫줄에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서른 즈음에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이게 내용적으로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서른 나이에 아직도 사람이 되지 못하고 서른 나이에서야 사람이 되겠다는 게 남에게 얼마나 공감을 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사람이 되고 싶다고 선언해 놓고서 두 번째 줄에서 왜 갑자기 이야기가 나무로 변했습니까? 두 번째 줄의 내용이 성립하려면 첫줄의 표현이 라고 표현했어야 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남에게 공감을 주거나 눈길을 잡으려면 의미 있는 말, 남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말을 개발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서른 즈음에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말을 거꾸로 '서른 즈음에 황소가 되고 싶다' 라고 말해 보세요. 이게 독자의 눈을 훨씬 더 끌지 않을까요. 우선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왜 이 작자가 사람도 아닌, 황소가 되려할까 궁금해 하지 않겠어요?   하여, 방승일 님은 첫줄을 , 또는 라고 선언해 놓고 나무의 좋은 점, 이로운 점(그늘,목재,땔감,기둥... 등등)과 황소의 어진 점, 부지런한 점, 묵묵한 성격..등등을 위에서 설명한 상상의 요령에 따라 시를 다시 써 보기 바랍니다.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처음에는 시적 표현을 한 줄 얻어도 큰 소득이다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기본기를 착실히 다져놓으면 시 쓰는 건 금방입니다. 제시한 과제로 시를 다시 써서 올리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윤주님의 를 감상해 보도록 합시다. 윤주님은 방승일 님보다 더 쉽게 상상으로 빠질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뵙니다. 그러나 느낌과 생각을 중구난방 해서 내용이 가슴에 와 닿는 게 없습니다. 라는 소재를 어떤 것 하나로 비유해 놓고 그 하나의 속성, 내용, 사상 등을 집중해서 파고들기 바랍니다. 그래야 글에 초점이 생기고 내용이 깊이를 갖고 설득력도 있게 됩니다.   여기에서 끝내기가 아쉬우니깐 윤주님의 시 첫줄 하나만 봅시다. 첫줄에서 비가 라고 했습니다. 추측컨대 가랑비가 부드럽게 내리는 걸 표현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근데 표현이 어설퍼요. 의 이미지는 통상 달콤한 이미지입니다. 근데 부드러움을 표현하는데 둘러댔어요. 그래서 이 비유가 어설프고 미숙한 겁니다. 부드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는 건 통상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천이 아닙니까. 더 나아가 비단 천? 그렇다면 부드럽게 내리는 비를 표현하려면 이렇게 하면 되죠. < 지금 내리는 비에는 비단 천이 들어 있다 >라고 말이죠. 그리고 나서 비단 천으로 묘사했으니깐 그 비단 천하나로 위에서 설명한 방식으로 집중해서 상상을 펼쳐보는 겁니다.   그리고 비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소낙비, 우박비, 여우비, 보슬비, 봄비, 가을비 등등.. 그래서 표현하고자 하는 비도 이중에서 어느 하나를 골라서 시로 쓰려고 해야지 모든 비를 아울러서 시로 표현하려고 하면 1급 시인도 쓰기 힘듭니다. 따라서 윤주님도 봄비나 보슬비 하나를 골라 위에 제시한 표현을 첫줄로 놓고 시를 다시 쓰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두 달, 아니 반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고민해서 쓰기 바랍니다. 깊고 넓게 고민하는 자만이 크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땐 뭐든지 막막합니다. 그래서 참고가 될만한 시를 첨부하오니 , , 이란 낱말 하나를 가지고 어떻게 끈덕지게 물고 늘어져 상상력을 발휘하였는지를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김영남)   ========================================================   58. 염소와 풀밭 / 신현정                             신현정 시인 연보       1948년 서울 왕십리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태어남.           부잣집 아이란 소리도 듣기 싫어, 사뭇 무학산이 있는 피난촌 아이들과 어울리며 쌈박질 꽤나 했음 1964년 경동중학교에서 본고교 진학에 실패하고 왕십리 및 근처 뚝 섬 유원지 등지에서 배회함.           빈번한 가출과 비행으로 어머 니와 누님들의 속을 무던히 썩여드린 시절임.            ― 중학교 ‘경동’이 인연이 되어 당시 경동고 1학년이던 문학소년 윤석산과 양정고의 조정권과 만남.              첫만남은 미성년 자불가 『흑맥』을 상영중인 광무극장이었음.              모자를 바지 뒷 주머니에 꾸겨넣고 교복 상의를 뒤집어 입고 영화를 봤음.           ― 이후 수시로 만나 시에 대한 사모와 열정을 불태웠음. 1966년 모 야간고등학교를 월반 진학하여 가까스로 고교 졸업장을 땄음. 남들보다 1년 먼저 고등학교를 나옴          ― 서울대학교 사범대 주최 전국고교문예콩쿨대회에 시 「아 기새와 능금나무」로 최우수상을 받음 1967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입학. 1974년 중앙대학교(1972년 서라벌예술대학을 인수)  문예창작과에서 군 입대로 중도했던 4학년 가을학기를 마저 다님            ― 이 해 봄, 군 제대와 함께 시 〈그믐밤의 수(繡)〉로 《월간문학》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1975년 중앙대학교문예창작과를 졸업 후, 서라벌고등학교 등에서 국어교사로 재직.             ― 서라벌 고교 등에서 국어 선생을 함. 아무래도 선생이란 교육적 소신도 부족했거니와 요령없이 목을 혹사시키다 보니               배추장사만도 못하다는 결론을 내림. 그리고 내심은 이 틀에 박힌 학교 생활을 깨고 나가면 보다 시를 자유롭게,               또 시를 잘 쓰게 되리라는 기대감이 컸던 것이 사실임.   1977년 김동리 선생의 주례로  문예창작과 후배였던 이정휘와 결혼함(두 딸 혜율, 혜빈 얻음.)             ― 이정휘가 1975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일어서는 소리」로 당선하여 오늘껏 부부 시인이란 소리를 듣기는 들음.   1983년 첫 시집 《대립》을 출간.   1980년대 초에 교단을 떠난 뒤 약 20년간 미국의 다국적 홍보회사인 버슨마스텔라 등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함.           ― 다국적 홍보 회사인 버슨마스텔라 등에 카피라이터 로 있던 20년 세월은 오히려 시를 좀 먹는 꼴이 되었음. 2003년 시집 《염소와 풀밭》을 출간하면서 다시 시작(詩作)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 이 시집에서 첫시집 이후 20년이란 세월은 박빙薄氷의 빈사嚬死, 그것이었음을 고백하였음.            ― 이 시집으로 서라벌 문학상(2003년), 제4회 한국시문학상(2004년)을 받음. 2005년 시집 《자전거 도둑》을 출간.           ― 이 시집으로 한국시인협회상(2006년) 수상   2008년 시집 《바보 사막》 출간.   2009년 계간《미네르바》 겨울호에서 강우식 시인과 함께 신인상 심사(최윤희 등 3명의 시인 배출)           ―《현대문학》 10월호에 육필시 〈해바라기〉를 마지막으로 발표.           ― 그해 10월 16일 간암으로 귀천.           ― 신현정 시인 시선집《난쟁이와 저녁식사를》 출간.   2010년 신현정 1주기 때 추모집 《화창한 날》 출간. -----------------------------------------------------   59. 자전거 도둑 / 신현정                 홀로와 더불어 / 구상                           홀로와 더불어   구상   나는 홀로다. 너와는 넘지 못할 담벽이 있고 너와는 건너지 못할 강이 있고 너와는 헤아릴 바 없는 거리가 있다.   나는 더불어다. 나의 옷에 너희의 일손이 담겨 있고 나의 먹이에 너희의 땀이 배어 있고 나의 거처에 너희의 정성이 스며 있다.   이렇듯 나는 홀로서 또한 더불어서 산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의 삶에 그 평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구상 시집  중에서                                       구상 연보   1919년 9월 16일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 구종진과 이정자의 3남 중 막내로 출생. (본명 : 구상중 具常逡, 어려서부터 집에서‘常아’라고 불러서 구상 이라함.)   1923년 함경남도 문천군 덕원면 어운리로 이주. (1955년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동으로 본적 이전 등기)   1938년 원산 덕원 성베네딕트수도원 부설 신학교 중등과 수료. ※ 15살에 가톨릭 사제를 지망하고 수도원 부설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3년만에 환속.   1941년 일본(니혼)대학 전문부 종교과 졸업.   1942~1945년 북선매일신문사 기자.   1946년 원산에서 시집 에 , ,  등이 수록되어 필화사건 발생.   1948~1950년 연합신문사 문화부장.   1950~1952년 국방부 기관지 승리일보사 주간.   1951년 시집  출간.   1952~1955년 영남일보사 주필 겸 편집국장.   1952~1956년 효성여자대학교 문리과 대학 부교수.   1953년 시화평론집  출간. 경북 칠곡군 왜관에 정착.   1955년 민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금성화랑 무공훈장 받음.   1955~1959년 대구매일신문 상임고문.   1956년 시집  출간.   1957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   1959년 민권수호 국민총연맹이라는 범국민조직체의 부화부장으로 체포 감금(8개월).   1960년 수상집  출간. 서강대학교 강사(1년간).   1961~1965년 경향신문사 논설위원 겸 동경지국장.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받음.   1970~1974년 하와이대학교 극동어문학과 교수.   1973~1975년 카톨릭대학 신학부 대학원 강사.   1975년  출간.   1976년 수상집  출간.   1976~1999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대우교수.   1977년 수필집  출간.   1978년 신앙 에세이  출간.   1979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묵상집  출간.   1980년 대한민국 문학상 본상 수상. 시집  출간.   1981년 시집 , 시문집  출간.   1982년 수상집  출간.   1982~1983년 하와이대학교 극동어문학과 교수.   1984년 자선 시집  출간.   1985년 수상집 , 서간집 ,  출간.   1985~1986년 하와이대학교 부설 동서문화연구소 예우작가.   1986년 제2차 아시아 시인대회 서울대회장. , 수상집 , 파리에서 拂譯 시집  출간.   1987년 시집  출간.   1988년 수상집 , 시집 , 시론집 , 이야기시집  출간.   1989년 영국 런던에서 英譯 시집 , 시화집  출간.   1990년 韓英對譯 시집 , 시화집  출간.   1991년 세계시인대회 명예대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고문. 런던에서 英譯 연작시집 , 시선집  출간.   1992년  출간.   1993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 제5차 아세아시인대회의 서울대회장. 自傳 시문집  출간.   1994년 독일 아흔에서 獨譯시집 , 희곡·시나리오집  출간.   1995년 수필집  출간.   1996년 연작 시선집  출간.   1997년 파리에서 韓佛對譯 시집 , 스웨던어 번역 시집  출간.   1998년 도쿄에서 日譯 , 시집  출간.   2000년 한국문학영역총서 , 이탈리아 시에나대학교에서  출간.   2001년 한국문인협회 고문. 신앙시집  출간.   2002년 시집  출간. 경북 칠곡군 왜관동에  개관. 한국대표시인선집  출간.   2004년 5월 11일 폐질환 투병 끝에 귀천. 금관문화훈장 받음. ----------------------------------------------------------   170. 고요 / 구상                         고요                                            구상   평일 한낮 명동성당 안에는 고요만이 있었다.   온 세상이 일체 멈춤과 같은 침묵과 정적 속에 제단 위에 드리운 聖體燈*이 이 역시 고요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修羅場을 방불케 하는 문 밖 거리의 인파와 소음은 마치 딴 세상 정경인 듯 오직 죽음과 같은 고요 속에 고요가 깃들어 있었다.   그 고요 속에 나 또한 고요히 잠겼노라니 그 고요가 고요히 속삭였다.   이제 너의 참 마음을 열어보라고!   그러나 나는 말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 예수의 몸의 상징물인 가톨릭 전례에 쓰이는 성화된 빵을 제단의 함 속에 모시는데, 이를 알리기 위해 그 위나 옆에 켜 놓은 초나 등.     구상 시집  중에서                                      
942    철학서, 력사서 한권을 압축해 시 한편을 쓰라... 댓글:  조회:5060  추천:0  2016-01-10
연장論 [마지막 연]                                최영철   몽키 스패너의 아름다운 이름으로 바이스 프라이어의 꽉 다문 입술로 오밀조밀하게 도사린 내부를 더듬으며 세상은 반드시 만나야 할 곳에서 만나 제나름으로 굳게 맞물려 돌고 있음을 본다 그대들이 힘 빠져 비척거릴 때 낡고 녹슬어 부질없을 때 우리의 건강한 팔뚝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누가 달려와 쓰다듬을 것인가 상심한 가슴 잠시라도 두드리고 절단하고 헤쳐놓지 않으면 누가 나아와 부단한 오늘을 일으켜 세울 것인가       타일 벽 [앞 2연]                                   주강홍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난다 반듯한 네 귀들이 날카롭게 모진 눈인사를 나누고 같은 방향 바라보며 살아가라는 고무망치의 등 두들김에도 끝내 흰 금을 긋고 서로의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붙박인 모서리 단단히 잡고 살아야 하는 세월 화목이란 말은 그저 교과서에나 살아 있는 법 모와 모가 만나고 선과 선이 바르게만 살아 있어 어디 한구석 넘나들 수 있는 인정은 없었다 이가 딱 맞다     나사 [전문]                                     송승환   산과 산 사이에는 골이 흐른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골과 왼쪽으로 돌아가는 산이 만나는 곳에서는 눈부신 햇살도 죄어들기 시작한다 안으로 파고드는 나선은 새들을 몰고 와 쇳소리를 낸다 그 속에 기름 묻은 저녁이 떠오른다 한 바퀴 돌 때마다 그만큼 깊어지는 어둠 한번 맞물리면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떠올랐던 별빛마저 쇳가루로 떨어진다 얼어붙어 녹슬어간다   봄날 빈 구멍에 새로운 산골이 차 오른다       ▣ [연장論]은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고 [타일 벽]은 2003년 계간 {문학과 경계} 신인상 공모 당선작이며 [나사]는 2003년 계간 {문학동네} 신인상 공모 당선작입니다.  ◦ 3편 다 '충격'과 '감동'의 차원에서는 운위하기 어렵고, 결국 '깨달음'을 지향하는 시라고 여겨집니다.   - [연장論]은 건설현장의 공구를 소재로 삼은 시인데 궁극적으로는 이웃과의 연대와 화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 많이 배웠건 많이 가졌건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무인도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 인간의 결국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이타적인 삶을 살지 않으면 고립되고 만다는 주제가 숨겨져 있습니다.   - 우리 각자가 이 사회를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연장의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주제도 유추해볼 수 있지요.    ◦ [타일 벽]을 쓴 사람은 건설회사 사장입니다.   - 그래서 이 분이 쓴 시는 다 현장성이 두드러집니다.   - 타일을 의인화한 이 시는 공사현장에서 펼치는 인생론입니다.   - 욕실 타일 벽 공사를 하면서 시인이 깨달은 것은 고무망치의 두들김에도 "흰 금을 긋고 서로의 경계를 늦추지 않는" 타일의 저항과 "붙박인 모서리 단단히 잡고 살아야 하는 세월"의 의미입니다.   - 공사현장에서 타일 벽은 이가 딱 맞아야 하지만 우리 인생이란 것이 어디 그렇습니까.   - 때로는 언밸런스이고 때로는 뒤죽박죽이고 때로는 오리무중이지요.   - 하지만 타일 벽이 그래서는 안 되지요.   - 규칙과 규율을, 감독과 관리의 세계에 있습니다.   - 그래서 시는 제4연에 가서 역전을 시도합니다.     낙수의 파형(波形)만 공간 가득하다 물살이 흔들릴 때마다 욕실 속은 쏴아쏴아 실금을 허무는 소리를 낸다 욕실을 지배하는 건 모서리들끼리 이가 모두 딱 맞는 타일 벽이 아니었다     ▣ 이가 모두 딱 맞는 타일 벽에 반항하려고 욕실의 물살이 "쏴아쏴아/실금을 허무는 소리"를 냅니다.  ◦ 세상 너무 모나게 살 필요가 없는 법, 때로는 두루뭉실하게, 때로는 비스듬하게 살아가자고 시인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송승환의 시는 나사의 의미를 확장하여 당선작이 되었습니다.   - 시인은 사물의 본질을 파고들어 미세하게 그려내기도 하지만 내포(內包)보다는 외연(外延)을 지향하기도 합니다.   - 이미지 연상작용은 초현실주의자들의 전유물이었는데 송 시인은 그 기법을 멋지게 사용하여 독자에게 깨달음을 줍니다.   - 나사는 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가는 과정에서 일종의 화두가 되었던 것입니다.   - 나사의 사전적인 의미 고찰에 머물지 않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을 갖추었기에 그는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안다는 것과 깨닫는다는 것은 다릅니다.  ◦ 앎은 지식의 영역이고 깨달음은 지혜의 영역입니다.   - 시는 우리에게 충격과 감동과 함께 깨달음을 줄 수 있습니다.   - 철학서 한 권, 역사책 한 권에 들어 있는 내용을 압축하여 한 편의 시로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세상에서는 시인이라고 합니다.   - 깨달음이란 '크게 느낀다'는 뜻이 아닐까요?    ◦ 우리가 사물과 인간에 대한 관찰의 안테나를 계속 세우고 있으면 시로 쓸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합니다.    ◦ 좋은 시는 늘 우리 주변의 사물을 잘 살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의 손에 의해 씌어지는 것입니다.   - 일기나 수기는 자신이 체험한 것을 곧이곧대로 쓰면 되지만 시는 축소지향의 장르입니다.   - 구질구질 설명하지 않고 몇 마디로 줄여서 쓰면 그것이 바로 촌철살인이고 정문일침입니다.    ◦ 시는 '충격'과 '감동' 혹은 '깨달음'을 지향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하면서 강연을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 제 강연을 경청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48. 숲속에 서서 / 정희성                          49. 태백산행 / 정희성                           
941    詩쓰기에서 어려운 시어는 금물 댓글:  조회:5709  추천:0  2016-01-10
즐거운 한가위! 올 가을엔 풍요롭고 행복한 시들 쓰십시요. 건강하고 웃음이 활짝 핀 추석보내시길 기원합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추석 어릴적엔 주전부리로 반갑고 나이 들어 찾아오는 손들있어 기쁘다   밤송이 세상살이 번데기 주름 접힌 가슴에도 나뭇잎되어 호수를 안아 볼 수있는 날있으니   손가락 구부려보아도 몇 번 뿐인데 흰머리 달 속에 가득하다   달 기울면 추억은 한 페이지 늘어나고 보내는 마음 등 뒤로 그림자 진다 또 볼 수있을 까 두근거린다   --------------시도 아닌 저의 글 올려봅니다------------   ▣ 1993년, 계간 {창작과 비평}은 김진완이 쓴 아래의 시를 투고된 많은 작품 가운데 신인 추천작으로 뽑습니다.  ◦ 대학생이었던 김 시인이 어쩜 이렇게 옛날 이야기를 구사하게 하는지, 읽고 감탄해마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 화자의 외할머니가 기차를 타고 가다가 어머니를 출산하는 광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깨어나게 한다                                            김진완   다혜자는 엄마 이름. 귀가 얼어 톡 건들면 쨍그랑 깨져버릴 듯 그 추운 겨울 어데로 왜 갔던고는 담 기회에 하고, 엄마를 가져 싸아한 진통이 시작된 엄마의 엄마가 꼬옥 배를 감싸쥔 곳은 기차 안. 놀란 외할아버지 뚤레뚤레 돌아보니 졸음 겨운 눈, 붉은 코, 갈라터진 입술들뿐이었는데 글쎄 그게, 엄마 뱃속에서 물구나무를 한번 서자,   으왁!   눈 휘둥그런 아낙들이 서둘러 겉치마를 벗어 막을 치자 남정네들 기차 배창시 안에서 기차보다도 빨리 '뜨신 물 뜨신 물' 달리기 시작하고 기적소린지 엄마의 엄마 힘쓰는 소린지 딱 기가 막힌 외할아버지 다리는 후들거리기 시작인데요, 아낙들 생침을 연신 바르는 입술로 '조금만, 조금만 더어' 애가 말라 쥐어트는 목소리의 막간으로 남정네들도 끙차, 생똥을 싸는데 남사시럽고 아프고 춥고 떨리는 거기서 엄마 에라 나도 몰라 으왕! 터지는 울음일 수밖에요.   박수 박수 "욕 봤데이." 외할아버지가 태우신 담배꽁초 수북한 통로에 벙거지가 천정을 향해 입 딱 벌리고 다믄 얼마라도 보태 미역 한 줄거리 해 먹이자, 엄마를 받은 두꺼비상 예편네가 피도 덜 닦은 손으로 치마를 걷자 너도나도 산모보다 더 경황없고 어찌할 바 모르고 고개만 연신 주억였던 건 객지라고 주눅든 외할아버지 짠한 마음이었음에랴 두말하면 숨가쁘겠구요. 암튼 그리하야 엄마의 이름 석 자는 여러 사람들의 은혜를 입어 태어났다고 즉석에서 지어진 것이라.     多惠子.   성원에 보답코자 하는 마음은 맘에만 가득할 뿐   빌린 돈 이자에 치여 만성두통에 시달리는 나의 엄마 다혜자씨는요,   칙칙폭폭 칙칙폭폭 끓어오르는 부아를 소주 한잔으로 다스릴 줄도 알아 "암만 그렇다 캐도 문디, 베라묵을 것. 몸만 건강하모 희망은 있다."   여장부지요 기찬, 기―차― 안 딸이거든요.     ▣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제가 연전에 시와시학사를 통해 낸 {백 년 후에 읽고 싶은 백 편의 시}라는 시 해설서에서 한 적이 있으므로 그것을 그냥 적습니다.  ◦ 시는 화자의 외할머니가 하필이면 한겨울에 칙칙 폭폭 칙칙 폭폭 달리는 기차 안에서 엄마를 낳게 된 광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 승객이라고는 "졸음 겨운 눈, 붉은 코, 갈라터진 입술"을 가진 농투성이들뿐이지만 이들은 낯선 아주머니의 차내 분만에 한마음으로 동참합니다.   - 아낙들은 겉치마를 벗어 막을 치고, 남정네들은 뜨신 물을 구해오고, '벙거지'는 미역 살 돈을 내놓고,   - 두꺼비상 여편네는 산파 노릇을 해 무사히 한 생명은 '으왕!' 울음을 터뜨리며 탄생합니다.    ◦ 이런 여러 사람의 은혜로 태어났다 하여 엄마 이름이 다혜자가 되었다는 것이나, 마지막 3연이 보여주는 모성적, 혹은 한국적 건강함은 가슴 훈훈한 감동을 전하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 또한 꽤 긴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1연과 3연 사이에 위치한 '으왁!'이란 의성어가 환기하는 생명 탄생의 고통(낳은 고통만이 고통이랴, 태어나는 고통도 고통이며 지켜보는 안타까움도 고통이리)과 경이로움,   - "기찬"과 "기―차― 안"이라는 비슷한 음을 이용한 유머 감각 등은 이 시를 명작의 반열에 올리는 데 합심하여 공헌하고 있습니다.       ▣ 이상 4편 시에는 가족애라는 숭고한 사랑이 담겨 있어 감동을 줍니다.  ◦ 하지만 밑바닥 인생의 불결한 섹스조차 시인의 손에서 잘만 묘사된다면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 이 시도 [어머니가 나를 깨어나게 한다]와 같이 등단작은 아닙니다.   공중변소 속에서 [전문]                                       김신용   공중변소 속에서 만났지. 그녀 구겨버린 휴지조각으로 쪼그려 앉아 떨고 있었어. 가는 눈발 들릴 듯 말 듯 흐느낌 흩날리는 겨울밤 무작정 고향 떠나온 소녀는 아니었네. 통금시간을 지나온 바람은 가슴속 경적소리로 파고들고 나 또한 고향에서 고향을 잃어버린 미아, 배고픔의 손에 휴지처럼 구겨져, 역 앞 그 작은 네모꼴 공간 속에 웅크려 있었지. 사방 벽으로 차단된 변소 속, 이 잿빛 풍경이 내 고향 내 밀폐된 가슴속에 그 눈발 흩날려와, 어지러워 그 흐느낌 찾아갔네. 그녀는 왜 마약중독자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어도 새벽털이를 위해 숨어 있는 게 분명했어. 난 눈 부릅떴지. 그리고 등불을 켜듯, 그녀의 몸에 내 몸을 심었네. 사방 막힌 벽에 기대서서, 추위 때문일까 살은 콘크리트처럼 굳어 있었지만 솜털 한 오라기 철조망처럼 아팠지만 내 뻥 뚫린 가슴에 얼굴을 묻은 그녀의 머리 위 작은 창에는, 거미줄에 죽은 날벌레가 흔들리고 있었어. 그 밤. 내 몸에서 풍기던, 그녀의 몸에서 피어나던 악취는 그 밀폐의 공간 속에 고인 악취는 얼마나 포근했던지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있네. 마약처럼 하얀 백색가루로 녹아서 내 핏줄 속으로 사라져간 그녀, 독한 시멘트 바람에 중독된 그녀.   지금도 내 돌아가야 할 고향, 그 악취 꽃핀 곳 그녀의 품속밖에 없네.     ▣ 이 시를 쓴 김신용 시인은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으니 무학입니다.  ◦ 공사판을 전전하며 생을 영위해온 시인의 젊은 날의 로맨스인지 모르겠습니다.   - 88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의 공중변소가 많이 청결해졌는데 그 전에는 그다지 깨끗  하지 못했습니다.   - 공중변소에서 화자는 한 여자를 만나 정사의 시간을 갖습니다.   - 그녀는 마약중독자였고 도둑이었습니다.   - 거지 행색을 하고 있었을 텐데 악취를 풍기기까지 했으니 보통사람 같았으면 가까이 가기도 싫었을 것입니다.    ◦ 그런데 두 사람은 그날 무엇에 홀린 듯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았던 것이고, 화자는 두고두고 그날을 못 잊어합니다.   - 그래서 "지금도 내 돌아가야 할 고향, 그 악취 꽃핀 곳/그녀의 품속밖에 없다"고 애틋해하는 것입니다. 독자에 따라서 이 시를 읽고 역겨움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저는 가슴 찡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 이성간의 사랑이 반드시 플라토닉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 밑바닥 인생들의 하룻밤 풋사랑도 당사자에게는 애틋한 추억일 수 있는 것입니다.   - 시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음습한 그곳에 희미한 빛을 비춰보고자 했고, 두 사람이 나눈 사랑도 충분히 따뜻한 것이었다고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 감동의 결은 다르지만 저는 이 시를 감동적인 시라고 말합니다.       3. '깨달음'을 주는 시   ▣ 인간사와 사물의 특징을 세심히 관찰하여 제대로 묘사하면 모종의 깨달음을 전해줄 수 있습니다.  ◦ 이 점에 대해서는 1996년 조선일보 당선작 [부의(賻儀)]를 갖고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부의(賻儀) [전문]                                  최영규   봉투를 꺼내어 부의(賻儀)라고 그리듯 겨우 쓰고는 입김으로 후― 불어 봉투의 주둥이를 열었다 봉투에선 느닷없이 한 움큼의 꽃씨가 쏟아져 책상 위에 흩어졌다 채송화 씨앗 씨앗들은 저마다 심호흡을 해대더니 금세 당당하고 반짝이는 모습들이 되었다 책상은 이른 아침 뜨락처럼 분홍 노랑 보랏빛으로 싱싱해졌다 씨앗들은 자신보다 백 배나 큰 꽃들을 여름내 계속 피워낸다 그리고 그 많은 꽃들은 다시 반짝이는 껍질의 씨앗 속으로 숨어들고 또다시 꽃피우고 씨앗으로 돌아오고 나는 씨앗 속의 꽃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 알도 빠짐없이 주워 봉투에 넣었다   할머님 마실 다니시라고 다듬어 드린 뒷길로 문상을 갔다 영정 앞엔 늘 갖고 계시던 호두 알이 반짝이며 입다문 꽃씨마냥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옆에 봉투를 가만히 올려놓았다.     ▣ 어려운 시어도 없고 난해한 표현도 없습니다.  ◦ 잘 알고 지내던 이웃집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하러 간 것이 내용의 전부입니다.   - 하지만 이 시에는 생명 옹호의 정신과 불교적 깨달음, 측은지심 같은 고차원적인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 불가에서는 말합니다.   - 생로병사는 인간이 이상 어찌할 수 없지만 윤회전생(輪廻轉生)을 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고요.   - 전생의 업보니 인연이니 억겁이니 하는 불가의 용어를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할머니가 늘 갖고 계시던 호두 알이 입다문 꽃씨마냥 놓여 있다는 것은, 꽃이 씨를 남겨 자신의 목숨을 이어간다는 것과 의미의 맥이 이어집니다.   - 한마디로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이지요.   - 최영규 시인처럼 생명의 의미를 종교적 차원에서 다뤄볼 수도 있겠지만 사물의 의미는 어떤 차원에서 다뤄볼 수 있을까요? --------------------------------------   46. 민지의 꽃 / 정희성               47. 갠지즈 강 / 정희성                   
940    詩를 찾아서... 댓글:  조회:4975  추천:0  2016-01-10
이사 [전문]                                  원동우   아이의 장난감을 꾸리면서 아내가 운다 반지하의 네 평 방을 방을 모두 치우고 문턱에 새겨진 아이의 키 눈금을 만질 때 풀썩 습기 찬 천장벽지가 떨어졌다   아직 떼지 않은 아이의 그림 속에 우주복을 입은 아내와 나 잠잘 때는 무중력이 되었으면 아버님은 아랫목에서 주무시고 이쪽 벽에서는 당신과 나 그리고 천장은 동생들 차지 지난번처럼 연탄가스가 새면 아랫목은 안 되잖아, 아, 아버지,   생활의 빈 서랍들을 싣고 짐차는 어두워지는 한강을 건넌다 (닻을 올리기엔 주인집 아들의 제대가 너무 빠르다) 갑자기 중력을 벗어난 새 떼처럼 눈이 날린다 아내가 울음을 그치고 아이가 웃음을 그치면 중력을 잃고 휘청거리는 많은 날들 위에 덜컹거리는 사람들이 떠다니고 있다   눈발에 흐려지는 다리를 건널 때 아내가 고개를 돌렸다, 아참 장판 밑에 장판 밑에 복권 두 장이 있음을 안다 강을 건너 마악 변두리로 우리가 또 다른 피안으로 들어서는 것임을 눈물 뽀드득 닦아주는 손바닥처럼 쉽게 살아지는 것임을   성냥불을 그으며 아내의 작은 손이 바람을 막으러 온다 손바닥만큼 환한 불빛       ▣ 요즈음에는 한국도 포장이사를 하기 때문에 가재도구를 잔뜩 싣고 이사하는 광경은 궁벽한 시골이 아닌 다음에야 보기 어렵습니다.    ◦ 셋방살이를 하던 가난한 일가가 주인집 아들의 이른 제대로 말미암아 황급히 방을 비워주게 됩니다.   - 눈발이 날리니 초겨울인가요, 서울 변두리에서 더 변두리로 이사를 하는 풍경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 습기 찬 천장 벽지가 떨어지는 반지하의 네 평 방, 그나마 연탄가스가 새던 방을 비워주게 되었으니 일가의 마음이 참담할 수밖에요.   - 장판 밑에 두고 온 복권에 연연할 정도로 이들 가족의 경제적 상황은 절박합니다.    ◦ 그런데 이 시의 매력은 이런 비극적 상황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고 진한 감동을 주는 한 장면에 있습니다.   - 남편이 담배를 피우려고 성냥불을 키자 바람이 방해를 합니다.   - 차창이 조금 열려 있었던 것이지요.   - 그때 아내의 작은 손이 다가와 성냥불을 꺼트리려고 하는 바람을 막습니다.   - 가족간의 끈끈한 정이 을씨년스런 이사 풍경을 따뜻하게 밝히고, 독자는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 아무리 세상살이가 험해도 가족 상호간에 사랑과 정이 변치 않는다면 극복 불가능한 어려움이란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 이 시는 마지막 연이 백미입니다.     ▣ 그런데 이 시로 등단한 원동우 시인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은행에 입사하여 10년 정도 근무하였고, 퇴사한 뒤에는 벤처기업을 꾸려갔습니다.  ◦ 벤처기업이 잘 안 되어 한동안 방황하다가 지금은 어떤 회사에 들어가 잘 다니고 있습니다.   - 시 속의 상황 중에 본인이 직접적으로 체험한 부분은 1%나 될까요? 이 작품은 시인의 완벽한 허구와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 퇴근길에 차를 몰고 가면서 무심코 본 광경이 바로 이삿짐을 싣고 달리는 소형 트럭 한 대였던 것입니다.   - 사람들이 무심코 보며 지나쳤던 이삿짐 실은 트럭을 원동우는 유심히 보았던 것이고, 곰곰이 생각했던 것이며, 상상력을 발휘하여 시로 써보았던 것입니다.    ◦ 시는 이렇게도 탄생할 수 있습니다.   - 실체험보다 간접체험이 더욱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례를 [이사]라는 신춘문예 당선작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은 등단작이 아닙니다.   - 함민복 시인이 시골에 계신 귀가 어두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대화가 좀체 이뤄지지 않습니다.   - 이 시는 앞의 시처럼 비장하거나([영산포]) 을씨년스럽지([이사]) 않고 구수한 사투리와 유머 감각을 보여주어 아주 은근하게 감동을 줍니다.   - '쇠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도 적절히 사용되어 재미를 배가시키지요.   어머니가 나를 깨어나게 한다 [전문]                                   함민복   여보시오―누구시유― 예, 저예요― 누구시유, 누구시유― 아들, 막내아들― 잘 안 들려유―잘. 저라구요, 민보기― 예, 잘 안 들려유― 몸은 좀 괜찮으세요― 당최 안 들려서― 어머니― 예, 애비가 동네 볼일 보러 갔어유― 두 내우 다 그러니까 이따 다시 걸어유― 예, 죄송합니다. 안 들려서 털컥.   어머니 저예요― 전화 끊지 마세요― 예. 애비가 동네 볼일 보러 갔어유― 두 내우 다 예, 저라니까요! 그러니까 이따 다시 걸어유 어머니. 예,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안어들머려니서 털컥.   달포 만에 집에 전화를 걸었네 어머니가 자동응답기처럼 전화를 받았네 전화를 받으시며 쇠귀에 경을 읽어주시네 내 슬픔이 맑게 깨어나네     ▣ 달포 만에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그만 끝끝내 대화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아니, 모자가 일종의 동문서답을 했지요.  ◦ 시인은 아무튼 어머니의 목소리는 들었던 것이고, 소처럼 무심한(미련한?) 나에게 귀 어두운 어머니가 경을 읽어주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 가슴 찡한 감동은 아닐지라도 이 시를 읽으면 '아, 어머니!' 하고 마음속으로 한번쯤 외쳐보게 됩니다.   - 충격도 주지 않고,   - 이런 작은 감동도 주지 않는 시는 좋은 시가 되기 어렵습니다.   -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44. 시를 찾아서 / 정희성           45. 세상이 달라졌다 / 정희성                       거울 / 이상                       김해경(金海卿)이 이상(李箱)을 필명으로 정한 유래 김해경(金海卿)과 화가 구본웅(具本雄) 은 신명학교(新明學校) 동기동창이자 학창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구본웅은 몸이 불편하여 정상적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김해경보다 4살이나 많았지만, 같은 학년 같은 반에 편성되었다. 구본웅은 몸도 불편하고 4살이나 나이가 많아서 같은 반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려 하지 않았지만 해경은 구본웅에게 4년 선배로서의 예우를 갖추고 특별한 관심을 보이자 그 둘은 특별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동광학교 이후 1927년 3월에 보성고보를 졸업한 김해경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진학했다. 구본웅은 김해경의 졸업과 대학입학을 축하하는 선물로 사생상(寫生箱 = 스케치박스)을 선물했다. 어릴적부터 유난히 그림을 좋아했던 해경은 사생상을 선물 받고 날아갈 듯 기뻐했다.   그때 그는 구본웅에게 고마운 나머지 자신의 필명에 사생상의 '상자'를 의미하는 상(箱)자를 넣겠다고 말했다. 또한 김해경은 아호와 필명을 함께 쓸 수 있게 호의 첫 자는 흔한 성씨(姓氏)를 따오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고 구본웅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김해경)는 사생상이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니 나무 목(木)자가 들어간 성씨 중에서 하나를 택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권(權), 박(朴), 송(宋), 양(楊), 양(梁), 유(柳), 이(李), 임(林), 주(朱) 등을 검토하다가, 김해경은 그 중에서 다양성과 함축성을 지닌 것이 이씨와 상자를 합친 '李箱'이라 생각했고 구본웅도 그 절묘한 배합에 감탄했다. -----------------------------------------------------------------------------   57. 꽃나무 / 이상                                    이상의 작품 목록         < 소설 > 《십이월 십이일》1930.02~12 조선 《지도의 암실》1932.03 조선 《휴업과 사정》1932.04 조선 《지팽이 역사 : 희문》1934.08 월간매신 《지주회시》1936.06 중앙 《날개》1936.09 조광 《봉별기》 1936.12 여성 《동해》1937.02 조광 《황소와 도깨비 : 동화》1937.03 매일신보 《공포의 기록》1937.04~05 매일신보 《종생기》1937.05 조광 《환시기》1938.06 청색지 《실화》1939.03 문장 《단발》1939.04 조선문학 《김유정 : 소설체로 쓴 김유정론》1939.05 청색지 《불행한 계승》1976.07 문학사상         < 수필 > : 《권태》         < 시 > 《오감도》 《건축무한육면각체》 《거울》 《꽃나무》 《실화》 《개미》 《백화(白畵)》 《역단 (易斷)]》 《[위독 (危篤)]》 《[이상한 가역반응 (異常한 可逆反應)]》 《[삼차각설계도 (三次角設計圖) ]》 《이런 시 (이런 詩)》 《1933, 6, 1 (一九三三, 六, 一)》 《보통기념 (普通記念)》 《소영위제 (素榮爲題)》 《정식 (正式)》 《지비 (紙碑)》 《I WED A TOY BRIDE》 《파첩 (破帖)》 《청령》 《한개의 밤 (한個의 밤)》 《척각 (隻脚)》 《거리 (距離)》 《수인이만들은소정원 (囚人이만들은小庭園)》 《육친의장 (肉親의章)》 《내과 (內科)》 《골편에관한무제 (骨片에關한無題)》 《가구의추위 (街衢의추위)》 《아침》 《최후 (最後)》 《유고 (遺稿)》 《1931년 (一九三一年)》 《습작쇼오윈도우수점 (習作쇼오윈도우數點)》 《회한의 장 (悔恨의 章)》 《여전준일 (與田準一)》 《월원등일랑 (月原橙一郞)》    
939    詩에서 체험의 진실성 댓글:  조회:5165  추천:0  2016-01-10
2. '감동'을 주는 시 ▣ 신춘문예 당선작 중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 시로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를 흔히 꼽습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이 자리에서는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영산포]를 감상해볼까 합니다.   영산포 [전문]                           나해철   1 배가 들어 멸치젓 향내에 읍내의 바람이 달디달 때 누님은 영산포를 떠나며 울었다.   가난은 강물 곁에 누워 늘 같이 흐르고 개나리꽃처럼 여윈 누님과 나는 청무우를 먹으며 강둑에 잡풀로 넘어지곤 했지.   빈손의 설움 속에 어머니는 묻히시고 열여섯 나이로 토종개처럼 열심이던 누님은 호남선을 오르며 울었다.   강물이 되는 숨죽인 슬픔 강으로 오는 눈물의 소금기는 쌓여 강심을 높이고 황시리젓배는 곧 들지 않았다.   포구가 막히고부터 누님은 입술과 살을 팔았을까 천한 몸의 아픔, 그 부끄럽지 않은 죄가 그리운 고향, 꿈의 하행선을 막았을까 누님은 오지 않았다. 잔칫날도 큰집의 제삿날도 누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들은 비워지고 강은 바람으로 들어찰 때 갈꽃이 쓰러진 젖은 창의 얼굴이었지/십년 세월에 살며시 아버님을 뵙고 오래도록 소리 죽일 때 누님은 그냥 강물로 흐르는 것 같았지.   버려진 선창을 바라보며 누님은 남자와 살다가 그만 멀어졌다고 말했지.   갈꽃이 쓰러진 얼굴로 영산강을 걷다가 누님은 어둠에 그냥 강물이 되었지. 강물이 되어 호남선을 오르며 파도처럼 산불처럼 흐느끼며 울었지.   2 개산 큰집의 쥐똥바퀴새는 뒷산 깊숙이에 가서 운다. 병호 형님의 닭들은 병들어 넘어지고 술 취한 형님은 강물을 보러 아망바위를 오른다 배가 들지 않는 강은 상류와 하류의 슬픔이 모여 은빛으로 한 사람 눈시울을 흐르고 노을 속에 雲谷里를 적신다. 冷山에 누운 아버님은 물결 소리로 말씀하시고 돌절벽 끝에서 형님은 잠들지 않기 위해 잡풀처럼 바람에 흔들린다. 어머님 南平아짐은 마른 밭에서 돌아오셨을까, 귀를 적시는 강물 소리에 늦은 치마품을 움켜잡으셨을까, 그늘이 내린 九津浦/형님은 아버님을 만나 오래 기쁘고 먼발치에서 어머님은 숨죽여 어둠에 엎드린다.     ▣ 이 시의 강점은 체험의 진실성입니다.  ◦ 경기가 제법 좋았던 영산포가 근대화 과정에서 낙후되고 마는데, 한 가족이 그 여파로 절대빈곤에 노출되면서 몰락하고 맙니다.   - 특히 화자의 누님은 몸을 파는 신세로 전락하고(1번),   - 다른 식구들도 죄다 비극적인 상황에 봉착합니다(2번).    ◦ 참담한 현실상황을 들려주면서도 이 시는 시종일관 서정성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 한 가족의 비극이 잔잔하게 기술됨으로써 비극성이 더욱 강하게 드러납니다.   - 특히 2번 시에는 많은 지명이 제시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시의 구체성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 시의 내용은 어느 일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산업화 시대였던 60년대와 70년대를 통과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그 시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농촌이나 어촌에서 살아갈 수가 없어 이농의 대열에 섰습니다.   - 도시에 와서 산동네 주민이 되어 살길을 찾았지만 허기는 여전합니다.   - 농촌사회에서는 그나마 가족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는데 도시에 나와서는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 가족이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한 관계가 되고 만 것이 더 큰 비극일 수 있습니다.   - 남자는 노동판에 가서 일용직 노무자라도 할 수 있었지만 여자는 그 시절에 공장 노동자가 아니면 버스 차장, 그도 아니면 직업여성이라도 되어 살길을 찾아야 했었지요.    ◦ 이 시는 가족사와 사회사가 함께 다뤄지고 있으며, '체험의 진실성'에 서정성과 비극성이 보태져 진한 감동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 이 시를 쓴 나해철 시인은 전남의대를 나와 지금은 서울 강남에서 성형외과 의사를 하고 있습니다.   - 보통 얼굴의 여성을 미모의 여성으로 탈바꿈시키는 재주를 지닌 의사 시인이기에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을지 모르지요.    ◦ 하지만 시인의 직업이 무엇이든 간에, 연간 수입이 얼마인지 간에, 그 사실로 인해 이 시가 지닌 체험의 진실성이 흔들릴 수는 없습니다.   - 자기 자신의 체험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시인은 이웃 혹은 일가친척 중 누군가의 체험을 진솔하게 묘사해 냈기 때문입니다.   - 199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는 제 후배여서 시 창작의 내밀한 부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   43. 청명 / 정희성           44. 시를 찾아서 / 정희성              
938    詩에서 낚시질 하기... 댓글:  조회:5570  추천:0  2016-01-10
▣ 1997년 계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 여성학 강좌를 지도한 교수가 이제 여성은 자신의 신체를 부끄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랑스럽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었나 봅니다.   - 여성의 자궁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 출산하는 거룩한 곳이기에 위대한 모성의 상징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 강좌를 들은 여대생 진수미는 화장실 바닥에 거울을 놓고 양다리를 활짝 열어 자신의 성기를 비춰보고 감탄을 합니다.   - 아랫배 깊숙이 숨겨져 있던 자궁의 입구인 외음부를 보고 "철따라/점점이 피꽃 게우며", "울컥울컥/목젖 헹구며" 운운하는 내용으로 시를 써 당당히 시인이 되었습니다.   - 시인의 부모님은 이 시를 읽고 조금은 놀랐을 것입니다.    ◦ 이 시 역시 후세에 남을 명시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하지만 진수미라는 사람은 남들 다 아는, 혹은 다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남들보다 한 발 앞서서 색다르게 자신의 신체 일부에 대해 담론을 펼쳤기에 당선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시인의 관찰력이 무뎌서는 안 되며, 상상력이 진부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 사물과 이 세계, 인간과 자연, 이 사회와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고 재구성해 내는 자가 바로 시인이기 때문입니다.   - 계간지 당선작을 봤으니 이번에는 월간 문예지 {현대시}의 2000년도 신인추천 작품상 수상작을 봅시다.   블랙 후라이데이 [전문]                                    이명훈   블랙 먼데이에서 블랙 후라이데이까지 시간은 검은 칠로 보디 페인팅한다 아프리카 흑인들의 영혼의 춤, 그보다는 조용한 몸짓, 창백한 미소와 예리한 눈빛, 추락하는 펀드매니저는 자기 운명을 손가락 끝에 건다. 자기 몸의 끄트머리에 그의 믿음의 섬이 있다. 배반의 해일.   닉 리슨이 니께이 선물로 베어링 사를 망가뜨릴 때 나는 (주)대우의 해외 DR을 팔아먹으려고 자정까지 야근했다. 검은 하늘에 뜬 달이 파리하게 아름다웠다.   블랙 후라이데이의 후장(後場), 주식시장이 설사했다. 주루룩 흘러내리는 블루칩. 미수에 걸려 있는 나의 심장에 지진의 자장(磁場)이 흐른다. 펀드매니저의 몸에서 몸으로 흐르는 검은 영혼의 전류, 아랫배가 짜르르 아프고 허한 가운데 어떤 알 수 없는 후련함도 지나갔다   깊게 아프게 패일수록 그곳에 진한 자장(磁場)도 고인다. 그 독한 취기로 내일도 금융시장의 페달을 돌릴 빠른 손놀림들. 세계의 비틀거리는 자전거는 어느 내리막길을 지나 평지에 다다를까. 낡은 페달과 고장난 브레이크를 달고.   블랙 먼데이에서 블랙 후라이데이까지 매일 번갈아 피는 목련, 장미, 난초, 국화, 동백 주말에는 견디기 어려운 폭설이 내릴지 모른다 너희들은 독한 자장(磁場)의 술을 마셔두렴.   ▣ 한국 금융시장의 현실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습니다.  ◦ 수많은 사람이 선물시세·주식시세·외환시세 따위에 울고 웃습니다. 유가는 또 어떻고 금리는 또 어떤가요. 이런 것들은 우리의 일상적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우리는 바로 현대인입니다.   -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일상성'과 '현대성'입니다.   - 시인이 '나와 내 이웃의 삶'을 외면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한다면 일단 10대와 20대는 시를 읽지 않습니다.    ◦ 컴퓨터 온라인 게임과 인터넷 채팅을 하며 살아가는 오늘의 젊은이가 시를 읽지 않는 데는 기성세대 우리 시인들의 잘못도 조금은 있는 것입니다.   - 우리는 혹 그 동안 현실감 없는 시를 써온 것이 아닐까요?   -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유년기의 추억을 더듬고 인정 미담을 소개하는 것도 좋지만 때때로 이렇게 일상성과 현대성을, 현실의 잡사와 생활의 이모저모를 시에 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 2000년도 월간 {현대시학} 신인작품 공모 당선작을 봅니다.   무등산 2000 [전문]   무등산에 올라 바다를 만나지 못하는 이들은 광주 사람은 아니다   슬픔이 목까지 부풀어 숨이 막힌 광주를 대신 울어주려고 산짐승의 작은 것까지도 다 파도 한 음절씩 들메주는 바다   아무리 어두운 밤에도 태양을 품속에 꼭 껴안아 재우고는 첫 새벽이면 흔적 없이 서석대 위에 올려놓는 바다   아직도 가파른 능선을 타고 역류하는 산 자와 죽은 자의 합창, 한 물결 아니었으면 이미 불모의 사막이 되어 있을 바다   장불재 억새 한 잎, 세인봉 노송 한 그루 고인 이슬이 한여름에 소신공양하여 일군 칠산바다 천일염 맛인지 모르는 이들은 옷깃 여미고 다시 무등산에 올라가 보라       ▣ 무등산을 역사의 수난지로 설정하여 애향의 의지를 담은 이 시는 소재며 주제가 무난합니다.  ◦ 문제는 표현에 있어 새로운 구석이 없다는 것입니다.   - 어찌 보면 너무도 뻔한 이야기를 뻔한 방식으로 하고 있기에 저에게는 별다른 울림을 주지 않습니다.   - 시가 가슴을 벅차게 하고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잔잔한 울림으로 와 닿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할 정도의 공감대는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 [얼음을 주세요]와 [바기날 플라워]는 적어도 동년배의 독자에게는 공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 시인이 독자에게 감동과 공감을 주지 않는다면 기발한 상상력을 펼쳐 보여주거나 자기만의 독특한 언어 감각으로 시를 읽는 묘미,   - 즉 언어의 맛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하고 있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 시인은 사물의 이면을 볼 줄 아는 견자이며, 이 세계의 온갖 사물에 새롭게 이름을 붙이는 명명자입니다. 또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기꾼이며 '역설'과 '반어'를 종횡무진으로 구사하는 희대의 범죄자입니다.   - 소재와 주제가 낡디낡은 것, 혹은 너무나 뻔한 것이라면 표현이라도 좀 새로워야 할 것입니다.   - 다음에 소개해 드릴 시는 소재가 낚시여서 별로 새로울 것은 없지만 표현에 있어서는 확실하게 새로움을 추구한 시입니다.   감성돔을 찾아서 [전문]                              윤성학   홀로 바위에 몸을 묶었다   바다가 변한다 영등철이 지나 바다가 몸을 바꿔 체온을 올리고 파도가 깃을 세우면 그들은 산란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빠른 물살이 곶부리를 휘어감는 곳 빠른 리듬을 타고 온다 영등 감생이의 시즌이다       바닷물의 출렁거림은 흐름과 갈래를 지녔다 가장 강한 놈은 가장 빠른 곳에서만 논다 릴을 던져라 저기 분류대를 향해 가쁜 숨 참으며 마음속 깊이로 채비를 흘려라 거칠고 빠른 그곳 거기 비늘을 펄떡이는 완강함 릴을 던져라   바다는 몸을 뒤채며 이리저리 본류대를 끌고 움직이지만 큰 놈은 언제나 본류에 있다 본류는 멀고 먼 데서부터 입질은 온다 바다의 마개를 뽑아 올릴 힘으로 나를 잡아채야 한다 팽팽한 포물선을 그리며 발밑에까지 끌려온 마찰저항 마지막 순간이 올 때   언제나 거기 있다 막, 채비를 흘려보냈다   온다     ▣ 강 낚시이건 바다 낚시이건 낚싯줄은 팽팽한 포물선을 그리지요.  ◦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이 시의 강점은 행과 행 사이, 연과 연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과 꽉 짜인 플롯입니다.   - 짧은 문장이 연속되고 명령형이 적절히 구사됩니다.   - 첫 연은 "홀로 바위에 몸을 묶었다"는 짧은 문장인데 끝 연은 "온다"라는 단 두 음절의 문장입니다.   - 언어를 어떻게 배치하는가에 따라 시를 갓 잡힌 물고기처럼 퍼덕거리게 할 수도 있고 배를 뒤집고 죽어 있는 물고기처럼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이 시는 충격까지는 아니지만 언어가 지닌 싱싱한 힘을 십분 느끼게 해줍니다.   - [감성돔을 찾아서]는 언어의 선택과 배치가 시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 여러분은 소재와 주제가 그다지 새롭지 않을지라도 표현을 잘만 하면 얼마든지 좋은 시를 쓸 수 있습니다.   - 감칠맛 나는 표현은 치밀한 묘사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 41. 저 산이 날더러 / 정희성             42.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 정희성                   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방법  1. 발견, 그 새로운 눈 발견이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발명과는 달리 고작해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수 많은 삶의 편린(대상)들 속에서 시가 될 수 있는 특정한 편린(대상)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사실 발견적 상상력은 소재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한편의 문학작품을 읽을 때 독자들은 前理解을 갖기 마련이다 전이해는 작품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전이해란 일종의 선입견으로 , 동시대의 삶의 상황과, 시와 시인에 대한 기대 그리고 언어지식, 자신의 인생관 등등이 얼크러져있는 인식의 배경이다 한 편의 시를 읽을 대 그 시에 대한 전이해가 중요한 해석의 수단이 된다 그러나 전이해가 그대로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작품 속의 구체적인 사실들의 의미를 전이해를 통하여 해명하지만, 그 부분들의 의미는 다시 전체의 의미를 변환시킨다 그러므로 독자가 가지고 있는 전이해(상식)에 아무런 변화를 요구할 수 없는 시는 새로움이 없는 시다 설령 시인에겐 아무리 절실한 체험일지라도 보편성을 가질 수 없는 체험과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체험은 진실한 체험이 될 수 없다 시인의 체험은 늘 독자의 기대보다 조금은 앞서서 독자의 전이해에 변화를 줌과 동시에 독자들의 창조적 상상력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하여야 한다 이상 고재종선생님의 강의록을 요략해 본다 오늘 아침 저는 평소와 다름없이 전철을 타고 출근을 했습니다 매일보는 문구이며 평범하여 크게 부각되지 않았는데, 발견이라는 시적상상력을 발휘해 본 결과, 문구 '비상시에는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의자아래 핸들을 돌리면 수동으로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승무원은 늘 부재중입니다 전철 승무원은 앞만 보고 갑니다 저의 간단한 상상력입니다 늘 승무원의 지시를 받으라하지만 막상 급할 때 승무원(선도자, 윗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들은 앞에서 달려가기만 할 뿐이다 즉 발견은 우리의 일상에서 알고있지만 느끼지 못하던 것들을 발견하여 시에 인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발견의 눈을 갖기위해서는 늘 시인의 눈을 갖어야합니다 보통사람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인용하는 힘을 키울줄 알아야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힘 또한 관찰의 힘입니다 2. 떨어지는 병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정말 그럴까 별이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 소원을 빌기 위해서는 그 바램을 언제라도 가슴에 담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갑작스런 유성의 낙하 앞에서 간절하게 그 바램을 간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와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언제라도 기원할 수 있는 그 갈망, 그 열망이야말로 희망을 현실로 바꾸는 원동력이다 그 갈망이 있을 때에야 늘 범속한 사물과 일상 속에서도 생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관찰해낼 수 있는 것이다 관찰만 예리하게 잘 하여도 시의 절만은 이룬 셈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관찰은 시적 묘사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묘사가 없는 시가 있을 수없듯이 관찰이 없는 묘사 또한 있을 수 없다 방법 1의 발견이나 관찰은 묘사에 의해 주로 표현된다 묘사란 객관화된 표현 방식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에서 주관적 토로인 진술보다는 묘사를 많이 사용하여야만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또한 관찰이란 발견보다는 더 긴 시간을 요구한다 즉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금방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전에 함께 시를 쓰던 문우가 개에 대해 시를 쓰려고, 황소만한 개의 뒤를 하루종일 쫓아다녔다고 한다 개의 습관, 생리 등 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되었는데, 그것은 개에 대한 깊은 관찰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자신이 어떤 소재를 통하여 시를 쓰려할 때, 오랫동안 관찰한 다음에 시를 쓰면 훨씬 깊이가 묻어나오는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졌던 관심 만큼 우리는 시의 소재를 관찰하고 들여다 보아야할 것이다 나비 (오규원) 작약꽃이 한창인 아파트 단지의 화단을 나비 한 마리가 날고 있다 어린 후박나무를 지나 향나무를 지나 목단을 넘고 화단 가장자리의 쥐똥나무를 넘어 밖으로 가더니 다시 속으로 들어와 한창인 작약꽃을 빙글빙글 돌더니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혼자 훌쩍 날아올라 넘더니 비칠대는 온 몸의 균형을 바로잡고 날아넘는 허공을 뒤돌아본다 뒤돌아보며 몸을 부풀린다 아마 시인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나비 한 마리를 발견하고 나비를 오래 관찰하였을 것이다 위의 시는 순전히 관찰만으로 막막한 아파트 단지의 생명성과 존재의 비의를 환하게 드러내주는 시이다 3. 연상, 사랑에 관한 단상 사랑은 시와 흡사하다 사랑이 시와 흡사한 것은 양자가 모두 논리의 대척점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이 남자가 누구의 남자인가는 아랑곳없이 마음의 길이 언제나 그에게 향하고, 그에게 맞닿아 있듯, 남들이 보기에는 하잘 것 없는 왜소한 존재임에도 바닥 모를 깊이로 몰두한 채 시의 길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콩깍지가 씌어도 몇 겹으로 덧씌웠는지 알 수 없을만치 혼미한 가운데 연인들과 시는 앞다투어 마음의 길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오직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계를 보는 완벽한 주관성, 자신의 세계를 방기할 정도로 타자에 몰두하는 전적인 몰아, 그 어떤 언어로도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는 절망과 모색 등이야말로 시와 사랑의 교차점이다 이들 특성은 견고한 세계의 질서를 모두 자신의 열망 안으로 끌어들이며, 외적 대상 자체로부터 사유를 시작하는 바탕을 이루며, 직접적인 제시 대신 함축적인 은폐를 기도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독특한 갈망들을 연상은 너끈히 감당한다 연상이야말로 의미를 은폐하고 세계를 내부로 끓어들이는 유효한 방법이며 모든 세계를 한 곳으로 끌어모으는 힘인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모든 존재하는 대상들을 그 남자와 연결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연상기법을 사랑에 비유한 것은 적절해 보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어떤 것에 자꾸 연상하여 생각하는 힘을 준다 그래서 시인들은 감성이 풍부해지기 위해서는 연애를 하라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감성이 풍요로워지면서 시인은 연상의 반복을 하게끔 되고 그것은 시상을 연결하게 해 주는 힘이 된다 4. 투사, 삶의 본질에로의 날카로운 진입 시적 대상이 있다 그 대상을 바라보는 서정적 주체가 있다 주체는 반드시 주체의 관점을 통하여 대상을 바라본다 그 관점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럼에도 그 주관은 삶의 본질을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주관이자, 어떤 객관적인 언술로도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향해 비약하는 주관이다 그 주관은 일체의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함으로써 획득된 것이며 순간적으로 지각된 느낌을 명징하게 드러냄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논증적인 결론에 뒤지지 않는 심정적인 깨우침을 안겨준다 그리고 독자는 이 당연한 주관성을 엿봄으로써 공감을 느끼거나 부적절함에 대한 반감을 토로함으로써 시적 상상력에 개입한다 무엇보다 이 내밀하고 주관적인 관점이 우리에게 건네는 공감이야말로 시의 아름다움이 갖는 본질적인 표딱지인 것이다 여기에서 이 주관을 가능케 하는 힘을 투사라고 한다. 이 투사는 또 직관력을 절대로 필요로 한다. * 투사라함은 시적대상에 시인의 삶이 용해되어 그 본질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시를 쓸 때 사물의 겉면만을 보고 쓴다면 깊이 있는 시를 쓸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의 연륜이나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함께 동화되어 신선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투사일 것이다 墨畵 김 종 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自尊 화창한 가을날 벌판 끝에 밝고 환한 나무 한 그루 우뚝 솟아 있다 모든 새들이 그곳에서 난다 시 묵화는 회화적이다 이는 첫 행과 두 번째 행을 통해 누구의 눈에라도 확연히 그 풍경을 지각할 수 있다 저물무렵 아마도 깡마른 손임에 분명한 할머니 손이 물억고 있는 소의 목덜미를 어루만지고 있는 외딴집 울타리 속의 풍경. 제목이 묵화이듯이 어떤 묵화를 바라보고 썼거나, 거꾸로 풍경과 人事의 여러 자잘한 가지를 생략해버리고 고단위의 긴장과 절제의 방법으로 여백과 농담의 미가 충만한 묵화의 세계를 지향앴거나 상관없다 이 시는 묘사적 풍경에서 멈추지 않는다 3행으로 넘어가면서 직바로 본질로 진입해 가는 시인의 날카로운 주관적 투사, 즉 진술 곧 " 이 하루도/함께 지났다고/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서로 적막하다고" 말해버림으로 무먹는 소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지는 단순하고도 객관적인 풍경이 소와 할머니 사이에 지극한 교감으로 바뀌고, 또 단순하고 객관적인 풍경이 생의 비애, 존재가 맞닥뜨린 생에 대한 자각과 그에 반응하는 섬세한 존재의 울림을 고스란히 확인케 함으로써 우리를 천박하고 저열한 우리의 그저 놓여있는 일상을 새롭게 충전하는 것이다. 시 자존도 이 점에선 시 묵화에 한 점도 뒤지지 않은 시이다 오히려 묵화가 3행부터의 투사적 진술이 우리를 깨우치긴 하지만 존재와 풍경이 감추고 있는 아득한 비의를 약간은 깨버린듯한 인상을 주는 데 비해 자존은 그렇지 않다 이 시에서도 너무나 확연한 그림 하나를 볼 수 있다 화창한 가을날이면 하늘은 높고 햇살은 순금빛으로 쏟아지고 대기는 맑다 못해 푸르른 날일 것이다 그런 날 벌판 끝에 그 햇살을 받고 나무는 역시 황금빛으로 빛나는 은행나무도 좋겠고 투명한 갈색으로 빛나는 느티나무도 좋겠다 얼마나 밝고 환할 것인가 그것이 우쑥 솟아있다 황금나무다 세계수다 은행나무라면 땅에서 하늘로 팔 벌린 상태일 것이고 느티나무라면 둥그렇게 마을을 감싸는 모습일 것이다 은행나무나 느티나무나 모두 지상과 하늘을 매개하는 영매이다 어쨋든 그것은 얼마나 신비롭고 아늑하고 정정하고 성성하고 밝고 환할 것인가 여기까지는 객관적 풍경의 언어적 그림이다 이에 덧붙여 연을 나눈 마지막 한 줄이 투사적 진술을 감행한다 /모든 새들이 그곳에서 난다/라고 객관적 사실은 모든 새들은 그곳에서 날 수도 있고 날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밝고 환한 나무에서 새가 날지 않고 어디서 날겠는가 새는 자유 순수 평화 등 모든 것을 상징한다 그 새는 인간의 비상의 꿈을 하늘로 치솟음을으로 상징해 준다 그러나 들판의 새는 대개 옆으로 난다 여기 밝고 환한 나무에서 나는 새도 그 나무에서 솟는 새이기도 해야 하지만 그 나무를 가로질러 나는 새이기도 해야한다 그래야 나무의 수직과 새의 수평이 이루어지는 것을 상상치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시는 이런 모든 췌사를 불필요하게 만든다 풍경에 대한 언어의 선연한 그림과 이에 날카로운 투사적 상상력을 보탬으로 존재의 비의를 한층 더 깊게 만드는, 말을 침묵에 가깝게 줄임으로 되레 수 많은 말을 가능케 하는 시의 진경이 여기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5. 유추, 빗대어 말하기 시란 다른 질서 안에서 존재하는 사물을 자신의 질서로 바라보는 것이다. 시는 타자를 자신의 질서 안에 재편할 뿐 아니라 타자의 질서를 자신의 존재가 뿌리내리고 있는 본질적 의미를 역설적으로 깨닫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타자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혹은 자신의 질서 안으로 타자를 끌어들이는 시적 관계 양상을 유추라고 명명할 수 있다 유추는 두 대상을 나란히 마주 세움으로써 시작된다. 물론 그 한편에는 항상 인간의 삶이 있다.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여우는 여우가 아니라 사람이다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나폴레옹이라는 시커먼 돼지 역시 탐욕스러운 인간의 상징적 대체물이다 이 두 상징이 얼마나 엄밀히 조응하는 가에 따라 유추의 효과는 그 빛을 발한다 일반적으로 유추를 통해 획득되는 시적인식은 계몽적이거나 풍자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유추의 대상을 통해 삶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말하고 싶거나, 삶이 얼마나 비루한 것인지 잔뜩 조롱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유추가 삶 전체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열려 있지만은 않다 시가 문제삼는 삶은 특정한 삶이지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추사으로서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가 어떠한 삶을 풍자하거나 외경스러워하는지를 무엇보다 명료하게 인식해야 한다 오징어 3 최 승 호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부둥켜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 릇이 있다 이 짧은 시의 대상은 오징어부부이다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남 다르다 '부둥켜 안고 목을 조르는 버룻'은 결코 사랑의 자연스러운 방식이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표현은 오징어의 여러 개의 긴발의 형상에서 취한 상상력인데, 그러나 이러한 부부는 그 오징어부부만이 아니라는 현실 때문에 표현의 성공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류의 사랑은 많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은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목을 조르고 있지는 않았던가 교묘하게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속하고 억압하고, 풍부한 인간적 감성을 마모시키지나 않았던가 결국 그 오징어 부부는 우리들 사랑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욕망으로 뒤덮인 인간이며 그 사랑의 방식은 우리들이 하용 지니고 있던 버릇이었던 것이다 근래에는 이렇게 다른 사물에 빗대어 말하기, 즉 시를 쓰는 유형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봅니다 예전에 억압적인 시대에 많이 쓰던 기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아닐지라도 무언가를 통렬하게 이야기하고 싶을 때, 유추의 상상력은 커다란 깃발이 될 것이다 6. 전복, 뒤집어보기 꿰뚫어보기 전복 또한 상상력의 일종이다 현상을 통하여 현상의 이면에 숨죽이며 떨고있는 본질을 드러내는 힘, 그것이 꿰뚫어보는 상상력이며 뒤집어보는 상상력이며, 일체의 허위를 전복하는 상상력인 것이다 북어 최 승 호 밤의 식료품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은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러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한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열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이 시는 참 재미있는 시이다 식료품가게 꼬챙이에 꿰어진 채 널부러져 있는 북어를 직접 들여다보고 있는 듯이 형상화하고 있다. 더욱 세밀한 묘사가 계속 이어지다가 '가슴속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꿈꾸는 가운데 교묘하게 북어가 사름으로 대체되어 있다 헤엄쳐 가기를 원하는 것은 북어가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그 순간 느닷없이 커다란 입을 벌린 북어들이 큰소리로 '너도 북어지'라고 귀를 먹먹하도록 계속 부르짖는 눈부신 전복으로 시를 끝맺고 있나.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말라 찌부러진 요즈음의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 뒤틀린 현실을 전복하고자할 때, 전복적 상상력은 비판적 세계인식을 드러내는 유효한 무기가 된다 따라서 이것은 앞의 발견적 상상력과 함께 리얼리스트들의 중심적 상상력을 형성한다 7. 종합, 상상력의 유대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시적 상상력의 개진 방식들은 사실 추상화되어 있다. 한 편의 시는 모름지기 단 하나의 주독적인 상상력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섬세한 발견과 관찰, 날카롭게 대상의 본질을 길어 올리는 투사와 유추, 분리된 것을 결합하는 연상과 현실을 부정의 눈으로 확인하는 전복의 상상력들은 사실 한 편의 시에 긴밀하게 습합되고 용해된 채, 하나의 시적 세계를 튼실하게 엮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편의상 이런 분리는 상상력의 실체를 더욱 선명하게 들여다보기 위한 장치라는 점에서 놓칠 수 없는 이점들을 갖는다 더욱이 상상력들은 동일한 깊이로 시적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독적인 상상력이 전면에 배치된 채 여타의 상상력들은 후경에서 마치 삼각형의 꼭지점을 위한 밑변과 옆변을 형성하는 것처럼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시들을 보면 이러한 결합의 양상은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 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열 이열 삼열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끼리 낄낄대면서 깔죽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이시에서는 다채로운 상상력이 사용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 시의 모티브로 존재하는 것은 현실에서의 겸험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 시를 쓴 80년 대는 영화가 시작되기에 앞서 줄곡 애국가를틀어주었다 어쩌면 김남주의 말대로 세금고지서와 징병통지서 밖에 가져다주지 않는 조국에 대한 애정을 강요하기라도 하는 듯 틀어주던 애국가였다 그런데 이 일상적 경험은 사실 발견적 상상력에 속한다 영화 속의 한 화면을 그대로 시적 경험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시의 중심적 시상에는 이 발견에 대한, 시적 인식으로서의 투사가 중핵을 이루고 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날아오르는 새들이 '어디론가 날아간다'는 객관적 사실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주관적인 인식으로 슬그머니 환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명백히 주관적인 의식의 투영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투사가 가능하며 이는 과연 공감을 자아내는가? 이 시가 1981년에 발표되었음을 생각해 보라 광주항쟁을 겪었고, 군사독재가 한층 더 강화되고 있던 그 때, 시인을 비롯한 깨어있는모두가 시의 이면에 그 아픔의 흔적과 고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고통 안에서 심지어는 그 고통의 현실과 무관한 새들조차 이 한반도의 남쪽을 벗어나고자 할 것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끼룩거리면서" "낄낄대면서"로 투사된 채, 이런한 웃음 역시 남겨두고 떠나는 세상에 대한 빈정거림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없는 모멸을 남긴 채 새들이 "자기들의 세상을/이 세상에서 떼어 매고" 앞 화면에서 비추었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뜨는 것이다 그런데 이 투사는 시의 후반부에서 짝을 이루는 유추로 정교하게 반복된다 우리 역시 낄낄대면서, 깔쭉되면서, 다시 말해 빈정거리면서, 야유를 퍼부으면서 썩어빠진 세상을 떠나 깨어있는 우리들끼리라도 "우리들의 대열을 이루며" " 이 세상 밖"의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들은 날아 갈 수 있으나 우리들은 날아가지 못한다 그 부푼 꿈이 애국가가 끝나자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 그냥 앉는 것이 아니라 어쩌지 못해 채 주저앉는다 영화관의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광주에, 현대사의 고통의 심부에, 썩은 세상에 주저 앉는 것이다 한마디로 의식에서의 꿈이 애국가가 끝나는 현실로 돌아오면서 그만 전복이 되는 것이다 전복적 상상력인 것이다 뜬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결코 낄낄거리거나 깔쭉대지 못한 채 고통과 누물로 우리들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한편의 시에는 발견과 투사, 유추와 전복이 다채롭게 융화되어 있다. 지금까지 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몇 가지 방법들에 대하여 간략한 설명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미천하여 상상력을 중첩시키거나 확대하는 데, 어려움이 많으므로 하나, 둘의 상상력만으로 시작업을 해보시기 바란다 시가 체험과 상상력의 결합이라할 때, 사실 상상력은 무한 공간이다 무한대로 그 상상력을 지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무의 뿌리가 되는 실체(체험)를 바탕으로 하기에 그 상상력의 한계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점점 확대해나가는 것이 시인의 길일 것이다 ==========================================================================================   82.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83. 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                        
937    "충격"을 주는 詩를 쓰라... 댓글:  조회:4498  추천:0  2016-01-10
좋은 시가 갖고 있는 덕목들     이승하 교수     ▣ 계간평을 죽 써오면서 제가 느낀 아쉬움 중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 {미주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는 시인들은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부족하구나 하는 점입니다.   - 연세도 대개 높고, 새로운 자극을 받을 기회도 적고, 한국 현대시의 동향에 대해서도 어둡고, 남들보다 뛰어난 시를 써야겠다는 경쟁의식도 적고, 미국에서 살기에 신간 시집이나 문예지를 사서 보기도 쉽지 않고…….   - 뭐 이런 이유들로 고국에 있을 때 보았던 그 시풍으로 지금껏 쓰고 계신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한국인의 애송시며 명시는 아직도 1920∼30년대의 시입니다.   - 만해와 미당, 소월과 영랑, 백석과 상화, 윤동주와 이육사, 청록파 3인 등.   - 그런데 우리 시단에는 모더니즘의 세례를 확실히 받은 김수영과 김춘수가 있었고   - '후반기' 동인으로 대표되는 모더니스트들도 있었고,    ◦ 80년대의 해체시가 있었습니다.   - 해체시는 실험시, 포스트모더니즘 시, 형태파괴시 등의 명칭으로 불리면서 80년대를 풍미하였고 90년대에도 적지 않은 작품이 씌어졌습니다.   - 천재시인 이상(李箱) 이래 새로움에 대한 갈망은 뭇 시인이 시 창작을 하는 데 원동력이 되어 왔습니다.    ◦ 그런데 미주한국문인협회의 일원으로 시를 쓰고 계시는 여러분은 과거의 시 창작 방법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날로 새로워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과거로 도피하거나 현재에 안주한다면 여러분의 시는 답보상태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 {미주문학}이 동인지의 성격에 머물지 않고 한국 시단에도 신선한 충격을 주어야만 그 값어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1. '충격'을 주는 시   ▣ 시가 지향하는 것에는 '감동', '충격', '깨달음' 같은 것이 있을진대 우선 '충격'에 무게중심을 둔 것을 몇 편 살펴보겠습니다.  ◦ 고국의 일간지 가운데 중앙일보는 여름에 신춘문예 작품을 공모하는데, 지난해에 당선작으로 뽑힌 시를 읽어보겠습니다.   얼음을 주세요 [전문]                                       박연준   이제 나는 남자와 자고 나서 홀로 걷는 새벽길 여린 풀잎들, 기울어지는 고개를 마주하고도 울지 않아요 공원 바닥에 커피우유, 그 모래 빛 눈물을 흩뿌리며 이게 나였으면, 이게 나였으면! 하고 장난질도 안 쳐요 더 이상 날아가는 초승달 잡으려고 손을 내뻗지도 걸어가는 꿈을 쫓아 신발 끈을 묶지도 오렌지주스가 시큼하다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아요, 나는 무럭무럭 늙느라   케이크 위에 내 건조한 몸을 찔러 넣고 싶어요 조명을 끄고 누군가 내 머리칼에 불을 붙이면 경건하게 타들어 갈지도 늙은 봄을 위해 박수를 치는 관객들이 보일지도 몰라요, 모르겠어요   추억은 칼과 같아 반짝 하며 나를 찌르겠죠 그러면 나는 흐르는 내 생리혈을 손에 묻혀 속살 구석구석에 붉은 도장을 찍으며 혼자 놀래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새벽길들이 내 몸에 흘러와 머물지 모르죠, 해바라기들이 모가지를 꺾는 가을도 궁금해하며 몇 번은 내 안부를 묻겠죠 그러나 이제 나는 멍든 새벽길, 휘어진 계단에서 늙은 신문배달원과 마주쳐도 울지 않아요   ▣ 저는 이 시가 수천 편이 투고된다는 신춘문예에 당당히 당선될 만큼 뛰어난 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시, 혹은 좋은 시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 하지만 방황하는 젊은이의 내면세계를 다룬 시로서, 신세대적인 감각과 문체, 발랄한 어법과 상상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무척 신선한 느낌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 "생리혈을 손에 묻혀/속살 구석구석에 붉은 도장을 찍으며 혼자 놀래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만큼 뻔뻔하다고 해야 할까요, 도발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기는 하지만 성욕은 함부로 이야기하기에는 부끄러운 본능입니다.    ◦ 그런데 성 담론을 하면서 박연준은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떳떳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 시인의 자기독백체의 어투에는 당당함과 아울러 반항기도 배어 있습니다.   - 기성세대를 향한, 기성시인을 향한 반항기 말입니다.   - 따뜻한 차 대신에 얼음을 달라고 하는 신세대의 어법 속에는 분명히 도발적인 것이 있습니다.   - 심사위원은 이런 도발과 반항기를 높이 샀을 것입니다.   - 이번에는 문예지 당선작을 보겠습니다.   바기날 플라워 [전문]                         진수미   여름 학기 여성학 종강한 뒤, 화장실 바닥에 거울 놓고 양다리 활짝 열었다. 선분홍 꽃잎 한 점 보았다. 이럴 수가! 오, 모르게 꽃이었다니 아랫배 깊숙이 이렇게 숨겨져 있었구나 하얀 크리넥스 잎잎으로 피워낸 꽃잎처럼 철따라 점점(點點)이 피꽃 게우며, 울컥울컥 목젖 헹구며, 나 물오른 한 줄기 꽃대였다네.   ----------------------------------   39. 새벽이 오기까지는 / 정희성               40. 진달래 / 정희성       진달래는 1975년 계간 에 처음으로 발표한 작품이며 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해 할복한 서울농대생 김상진씨로 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또한 노래로도 즐겨 부르는 작품이기도 하다.           알기 쉬운 현대시 작법 -시적 의미를 함축한다는 것  시는 일정한 거리에 오면 행갈이를 하고 신문은 행갈이 없이 계속 진행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다음은 행갈이의 보기.  손발이 시린 날은  일기를 쓴다  무릎까지 시려오면  편지를 쓴다  부치지 못할 기인 사연을  이 시를 산문으로 표기하면 이렇다.  "손발이 시린 날은 일기를 쓴다.  그리고 무릎까지 시려오면 부치지 못할 기인 편지를 쓴다.  " 그러나 시인은 이렇게 표기하지 않고 왜 행을 갈아가며 표기했을까?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리듬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리듬이 함축하는 의미 때문이다.  " 손발이 시린 날은 / 일기를 쓴다"는 시행을 읽는 경우 무엇이 다른가?  전자의 경우 우리는 중간에서 쉬지 않고 비슷한 속도로 리듬 없이 계속 읽어 나간다.  예컨데 "손발이 / 시린 날은 / 일기를 / 쓴다"처럼 중간에서 쉬고  동시에 이런 휴지에 의해 우리는 "손발이"와 일기를"을 강조하게 된다.  이 두 부분, 특히 "손"과 "일"에 강세가 놓인다.  한편 이런 읽기는 산문과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산문의 경우 의미는 "손발이 시린 날", 그러니까 추운 날은 일기을 쓴다는 사실,  곧 하나의 정보뿐이지만 시의 경우 "손발이 시린 날"은 독립적인 의미를 띠면서 다음 행과 연결된다.  따라서 이 시행은 단순히 부사구의 기능, 말하자면 "일기를 쓴다"는 중심 문장에 종속되는 게 아니라  2연의 "무릎까지 시려 오면"과 대립되고,  따라서 추위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시린 손발과 일기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렇지 않은가?  손발이 시린 시간에 어떻게 일기를 쓴다는 말인가?  물론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손발이 시리면 따뜻하게 녹여야지 무슨 일기인가?  그러므로 이런 표현은 아이러니이고 이런 표현이 시적 효과를 준다.  요컨대 행갈이 때문에 "시린 손발"은 추위에 대한 감각, 삶의 추위, 가난, 고독을 의미하고  "일기" 역시 자기 성찰, 자기 고백, 지기와의 만남 같은 여러 의미를 함축한다.  이런 의미는 가슴이 시린 밤이면 시를 찾아 나서고(3연), 등만 보이는 사람을  보이는 사람을 부르고(4연) 마침내 자신을 유월에도 녹지 않는 서리꽃으로 인식하는(5연) 전체 시와 관계된다.  중요한 것은 리듬 때문에 행갈이를 하고 이런 행갈이가 독특한 시적 의미를 함축한다는 것.  그렇다면 리듬rhythm이란 무엇인가?  리듬이란 흔히 율동 혹은 운율로 번역한다.  그러나 좀더 세분하면 첫째로 율동이라는 일반적 개념,  둘째로 운율이라는 문학적 개념,  셋째로 음의 강약을 나타내는 박자라는 음악적 개념,  나는 다른 책에서 리듬을 광의 율동 개념과 협의으의 운율 개념으로 나누어 살핀 바 있다.  율동이란 주기적인 반복 운동이고 운율이란 시의 경우 소리에 의한 주기적 반복 운동을 뜻한다.  따라서 광의의 개념인 율동은 시를 포함하여 일제의 우주현상, 자연현상, 생명현상에 두루 나타난다.  율동은 좀더 부연하면 상이한 요소들이 재현하는 주기적 반복 현상을 말한다.  우주의 경우 일출 / 일몰의 반복, 자연의 경우 바다는 썰물 / 밀물의 반복,  생명의 경우 인간의 호흡이 그렇다.  내쉼/ 들이쉼의 반복이 삶이고 이런 반복이 머추면 인간은 죽는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은 숨쉬기이고 숨쉬기는 호흡이 암시하듯이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일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호흡은 숨결을 거느리고 그것은 숨쉬는, 호흡하는 속도나 높낮이를 뜻한다.  요컨대 호흡과 숨결은 생명의 본질이고 시, 음악, 회화의 리듬도 비스한 의미르 띤다.  시의 고향이 리듬이고 리듬이 숨결이라는 것은 이런 사정을 전제로 한다.  시의 경우 리듬은 크게 정형시와 자유시로 나누어 살필 필요가 있다.  정형시는 말 그대로 리듬이 일정한 형식을 소유하고, 자유시는 그런 형식에서 자유롭다.  정형시의 리듬은 율격meter과 각운rhyme이 대표적이고  자우시의 경우도 작운은 존재하고우리 시의 울격은 흔히 음수율, 음보율,로 나타난다  자유시의 리듬은 정형시의 울격이나 일상어의 억양를 변형시킨 경우와  리드의 단위로 이런 소리 요소를 포기하고 형태소,  낱말, 어귀, 이미지, 어절, 통사 및 그 형식의 반복에 의해 성취되는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리듬의 단위를 소리에 두는 경우와 소리가 아닌 문법적 요소에 두는 경우이다.  전자를 전통적 리듬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현대적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에는 김소월, 박목월, 등이 후자에는 이상, 김수영 등이 포함되고,  나는 자유시의 리듬이 보여주는 이런 양상을 다른 책에서 살핀 바가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다른 문제들을 살피기로 한다  그리고 이런 리듬, 곧 형태소, 낱말, 어구, 어절, 이미지, 통사 형식의 반복에 대해서는 내가  에 이미 발표한 에서도 말한 바 있다.  물론 그때는 리듬이 아니라 시적 효과를 강조했지만 아무튼 반복이 문제이다.  글쓰기도 반복이고 히쓰기도 반복이고 사랑도 반복이고 식사도 반복이고 감기도 반복이고 우울도 반복이다.  반복이 삶이고 삶은 호흡이고 숨휘기이고 이 호흡과 숨결이 강조되면 리듬이 된다.  먼저 어절의 반복에 의한 리듬의 보기.  나는  쿠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만져보고 싶었고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고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_ 체게바라,(이산하 엮음)  어절의 반복이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의 반복을 말하고,  이 시의 경우 '모든 것을 /만져보고 싶었고' 라는 형식이 반복된다.  내용의 반복이 아니라 ' -고 싶었고'라는 형식이 반복된다.  이 시의 내용은 아르헨티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쿠바로 건너가 카스트로와의만남을 계기로 게릴라 혁명 투쟁에 임한 게바라의 쿠바에 대한  애정, 물론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반복되는경우도 있다. 다음은 문장의 내용이 반복되는 경우.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운동주,   시인은 동일한 문장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여덟 번 반복하고  한 행을 비운 다음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라는 문장으로 시를 완성한다.  완성인가?  다시 생각하면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라는 문장은 '슬플 것이다'가 아니기 때문에  침묵을 내포하는 진술 형식에 가깝고,  그러므로 앞에서 반복된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에 대한 아이러니의 효과가 강조된다.  물론 이런 형식은 리듬과 함께 8복이라는 내용을 전제로 한다.  이승훈   ==================================================================   84.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원작       김영랑 연보   1903년 1월 16일 전남 강진읍 남성리(탑골) 221에서 김종호의 장남의로 출생.             본명은 윤식(允植), 아호는 영랑(永郞)   1909년 강진보통학교 입학 1915년 졸업   1916년 15세의 김해 김씨와 결혼, 상경하여 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영어를 배움.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 = 휘문고) 입학. 부인 사망.   1919년 3·1운동 직후 휘문의숙 중퇴, 강진에서 3·1운동을 모의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   1920년 도일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 편입.            혁명가 박열, 박용철 등과 친교.   1922년 아오야마학원 영문과 입학.   1923년 광동 대지진으로 학업중단 귀국. 개성 호수돈(여고) 출신의 김귀련과 결혼.  1930년 박용철 주재로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등과 동인으로 참가.   1935년 박용철의 후원으로 간행.    1945년 강진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결성, 강진대한청년단장 역임, 우익 운동 주도.   1949년 공보처 출판국장 취임, 6개월만에 사임.             10월 간행(중앙문화협회).               1950년 한국 전쟁 때 서울에 은신하다가, 9월 27일 복부에 포탄 파편을 맞고 9월 29일 사망.   1954년 11월 망우리에 이장.   김영랑이 출간한 두 권의 시집 중 에는 시의 제목이 없고 일련번호만 있고, 의 차례에만 그가 직접 시 제목을 붙여 놓았다. 이 때문에 제목이 없는 작품은 통상 시의 본문 첫 대목에서 제목을 따온 경우가 많이 있다.  ===========================================================================   85.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김영랑                              이 시는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로 발표하였다가, 에서 '돌담에 속색이는 햇발'로 수정.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원본             
936    좋은 詩를 쓰고 詩에서 떠나라 댓글:  조회:6762  추천:0  2016-01-10
□ 나태함과의 싸움 텅 빈 노트 또한 에고가 끊임없이 싸우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이다. 당신 속에서 싸움을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싸우도록 내버려 두라. 말할 때는 오로지 말 속으로 들어가라. 걸을 때는 걷는 그 자체가 되어라. 죽을 때는 죽음이 되어라. 밑도 끝도 없는 죄의식과 회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 편집자의 목소리를 무시하라 만약 당신이 열심히 창조적 목소리를 내려는데 편집자가 성가시게 달라붙는 느낌이 들어 작업을 진행시키기 힘들다면 편집자 입에서 나올 법한 소리를 한번 적어보라. 편집자를 정확히 알면 알수록 편집자를 무시해 버리기도 한결 수월해진다.   □ 바로 당신 앞에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 만일 내가 겁을 낸다면, 내가 쓰는 글도 왜곡되어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지 못하게 된다. 작가는 작품을 쓸 때 모든 것을 항상 처음 대하는 기분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당신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하라.   □ 내면의 잠재능력에 가 닿아라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믿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목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곧장 나가라. 시의 온기에서는 발을 떼고 시에 '대하여' 말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 시인과 시는 다르다 우리가 쓰는 글은 순간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내가 만들어낸 시는 그 시를 쓰고 있을 때의 내 생각, 내 손, 나를 둘러싼 공간과 내가 느낀 감정들일 뿐이다. 당신은 좋은 시를 쓰고, 그 시에서 떠나라. 시에 들어가 있는 단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 몸을 빌려 밖으로 표출되었던 '위대한 순간'이다.   □ 논리를 뛰어넘어 모든 것을 수용하라 우리 마음은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정도로 수용적이어야 한다. 개미 한 마리와 코끼리 한 마리 안에서 공통된 다른 하나를 볼 수 있는 폭넓고 열린 시각을 가져야 하며 그것을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은유는 이러한 진실을 반영한 것이기에 종교적이다.   □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다 글을 쓸 때 모든 것을 풀어주라. 글쓰기는 자신의 에고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대로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의 인간 존재임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바보가 되어 시작하라. 고통에 울부짖는 짐승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시작하라.   □ 강박증의 힘을 이용하라 작가란 종국에는 자신의 강박증을 쓰게 되어있다.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강박증에는 힘이 있다. 그 힘을 거부하지 말고 이용하라. 창작에 대한 강박증은 무언가 가치 있는 길을 찾아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술을 마시는 것은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아닌 일종의 회피이고 게으름이다.   □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라 우리의 삶 모든 순간순간이 귀하다. 이것을 알리는 일이 바로 작가가 해야 할 일이다. 한 모금의 물, 식탁에 묻어있는 커피 얼룩에 대해서까지 "그래!"하고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세부묘사는 우리가 만나는 세상 모든 것들, 모든 순간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하는 것과 같다.   □ 케이크를 구우려면 당신 마음에서 나오는 열과 에너지를 첨가하라. 강에 대해 쓰고 있다면 그 강에 온몸을 적시라. 글이 글을 쓰도록 하라. 당신은 사라진다.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말라. 열을 가하다 중단한다면 그것은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 글쓰기는 듣기에서 시작된다 만약 당신이 사물의 이치를 잡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시를 쓰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은 것이다. 좋은 작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많이 읽고, 열심히 들어주고, 많이 써보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 파리와 결혼하지 말라 문학의 책임은 사람들을 깨어있게 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하고, 살아 숨쉬도록 하는 것이다. 글을 쓸 때는 마음속에 무수한 길들이 열리는 법이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들판으로 달려가서는 안 된다. 파리의 존재를 인식하고, 더 나아가 원한다면 파리를 사랑할 수도 있겠지만, 파리와 결혼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 글쓰기는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자신이 글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기 체면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한 방편이나 도구로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 자신의 재능에 대해, 작품에 대해 보내는 칭찬에 기대 살아가는 한 그 작가는 다른 이들의 비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보다는 우리의 근원적인 원조자에 대해 아는 편이 작품성을 높이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 당신의 깊은 꿈은 무엇인가? 소망들을 글로 적는 것은 우리 인식의 한가운데에 그 소망을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꿈은 우리가 삶 속으로 관통해 들어가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 때론 문장 구조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사고방식은 문장 구조에 맞추어져 있고 사물을 보는 관점도 그 안에서 제한된다. 당신이 결국에는 인간이 만든 언어 체계 속으로 돌아가겠지만, 당신과 이 세상을 이루고 지탱하며 관통하고 아우르는 그 근원적인 큰 흐름을 알고 있어야 한다.   □ 말하지 말고 보여 달라 독자들에게 당신의 감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감정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자신의 작가라는 사실을 잊고 비판적인 편집자 행세를 할 필요는 없다.   □ 그냥 꽃이 아니라 그 꽃의 이름을 불러주라 사물의 이름을 불러주어 그 사물의 존엄성을 지켜주라.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근원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꽃' 대신 '제라늄'을 말할 때 당신은 현재 속으로 더 깊게 뚫고 들어가게 된다.   □ 평범과 비범 우리는 세부묘사를 대단하지 않게 여기거나 개미나 파리 같은 것에만 사용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이미 평범함과 비범함을 가지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세부묘사와 우주는 서로를 변화시켜 준다.   □ 이야기 친구를 만들라 작가는 모든 소문과 지나가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책임이 있다. 작가는 어떤 사건에 대해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를 원한다.   □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우리는 앞서 있었던 모든 작가들의 짐을 나르고 있다. 작가들은 다른 작가들과 사랑에 빠진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사랑하게 되는 능력이 당신 안에 있는 능력을 흔들어 깨운다. 그들도 훌륭하고 나도 훌륭하다. 예술가는 외롭고 고통 받는 존재라는 생각 같은 것은 떨쳐버려라.   □ 동물적인 감각으로 고양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다. 길을 잃어버릴까 하는 두려움이 바로 항상 길을 잃어버리는 이유인 것이다. 언어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끼라. 머리를 위 속으로 끌어내리고 소화시키라. 정맥에서부터 곧장 펜을 통해 종이 위에 토해 놓게 만들라. 제일 좋은 글은 당신의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것이 실린 글이다.   □ 자기 마음을 믿어라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의 사고 속에 똑바로 서 있는 훈련이 따라야 한다. 자신의 만들어낸 질문에는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종이 위에 안개를 옮겨 놓지 말라.   □ 변덕스러운 마음을 길들이는 법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이 작업보다 훨씬 재미있는 일들이 백 가지도 넘게 나를 유혹하는 것을 항상 느낀다. 마음은 항상 일과 집중력에 대해 저항하려 든다. '오, 그건 그냥 게으름일 뿐입니다. 어서 가서 일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 오히려 당신을 혼자가 될 수 있게 해준다.   □ 성, 그 거창한 주제에 대하여 우리는 먼저 긴장을 풀어야 한다. 화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당신과 그 화제와의 관계를 발견하라. '에로티시즘'이라는 단어를 다루기가 벅차다면, 이렇게 해보라. * 무엇이 당신 몸을 뜨겁게 만드는가? * 성과 관련된 과일 이름을 아는 대로 모두 적어보라. * 당신이 사랑에 빠졌을 때 먹는 음식은 무엇인가? * 당신의 신체 중에서 가장 성적인 곳은 어디인가? * 당신이 맨 처음 성애를 느꼈던 기억은?   □ 글쓰기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라 그렇다. 그냥 쓰라. "그래! 좋아!"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우리가 글쓰기의 심장 안에 있다면 장소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앞으로, 더 멀리 당신이 끝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멈추었던 곳에서 조금 더 멀리 나갔을 때 제어할 수 없는 아주 강한 감정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최고의 글을 쓰고 있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낀다. 충분히 자신을 밀고 나갔고 철저하게 에고가 깨졌다고 느낄 때조차도 조금 더 앞으로 밀고 나가라.   □ 인생에 대한 연민 우리에게 두려움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무지와 암흑의 장소에서 출발한 글쓰기가 결국에는 우리를 깨우치게 할 것이다.   □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사물은 그냥 있는 것이다. 당신이 글을 쓰기 원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라. 그러니 계속 쓰라.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또는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는가?"라고 묻되, 깊이 생각하지는 말라.   □ 작가로서 살아남는 길 작가로서는 강하고 용감하지만 한 인간으로 돌아오면 한없이 무기력하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위대한 사랑과 생활인으로서 우리 등에 달라붙은 불명예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종이에는 멋진 시를 적지만 자기의 삶에는 침을 뱉거나, 자동차를 저주하거나,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매도하지 말라. 책상에서 시를 치우고 부엌으로 돌아가라.   □ 자신이 쓴 글을 완전히 떠나보내라 자기가 만들어낸 작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즉흥 글쓰기 창구는 바로 이러한 위대한 전사가 될 수 있는 기회이다. 자신이 쓴 글을 완전히 떠나보내는 것, 그럴 수 있을 때 작가로서 완전하게 설 수 있다.   □ 방랑을 위해 들판으로 나가라 한번쯤은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분별력을 놓아버린 천치가 되고 낯선 들판을 헤매는 방랑자가 되기를. 당신이 말을 겁내는 사람이라면, 말 한 마리를 사서 말과 친구가 되어라. 스스로에게 방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허용하라.   □ 시간이 작가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는 목숨 전체를 기꺼이 그 글 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병이 날 것 같을 때까지 기다리라. 법에 얽매이기보다는 살아있는 존재를 향해 친구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심장 전체로 글을 쓰라. 종이에서부터 걸어 나와 우리의 인생 전체로 들어가는 것이다.   □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예정되어진 운명이 글쓰기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 이제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게 된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전술의 변화와 상관없이 무슨 일이 있어도 글쓰기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 외로움을 이용하라 익숙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 서 있을 수 있는 법을 배우기 위해 고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의 글이 또 다른 외로운 영혼에게 닿을 수 있도록 손을 뻗으라.   □ 더 큰 자유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라 당신이 내면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당신은 당신으로 된다. 당신이 집에 가는 이유는, 더 큰 자유를 얻기 위해서다. 뿌리로 돌아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뿌리에 고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뿌리가 묻힌 곳에서 발견되는 고통을 견디기 싫어서 그것을 외면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도망치려 한다. 단 한 사람과 접촉하고 교제하면서도 인간 전체에 대한 연민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독자에게 당신 심장 더 깊은 속으로 들어오는 기회를 만들어 주라.   □ 사무라이가 되어 글을 쓰라 만약 그 시에 한 줄이라도 에너지가 있다면, 그 한 줄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잘라버려도 좋다. 우리의 글이 계속 타들어가 환한 빛을 내는 지점이 결국 하나의 시와 산문이 된다. 미적지근한 글은 사람을 잠들게 만든다.   □ 다시 읽기와 고쳐 쓰기 산만한 정신을 뚫고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훈련이다. 지금 이 순간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잘라버릴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전사, 사무라이가 되어야 한다. ------------------------------------------------------------   37.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정희성(鄭喜成, 1945년 ~ ) 시인 연보     1945년 경남 창원 출생 용산고등학교 졸업 1968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력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등단 1972~2007년 숭문고등학교 국어 교사 1998년 대기고등학교 이사 1999년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2001년 평양 815평화축전 남측 대표 2006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제16대 이사장   시집 1974년 《답청》(문학동네) 1978년 《저문 강에 삽을 씻고》(창작과비평사) 1991년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창작과비평사) 2011년 《詩를 찾아서》(창작과비평사) 2008년 《돌아다보면 문득》(창비) 신경림과 공편한 〈한국현대시선 1,2〉(1985), 〈역사기생시선〉(1991)     수상내역 1981년 제1회 김수영 문학상 1997년 제2회 시와 시학상 2001년 제16회 만해 문학상 2003년 제8회 현대불교문학상 2008년 제5회 육사시문학상(시집 ‘돌아다보면 문득’)   -------------------------------------------------------------- 38. 아버님의 말씀 / 정희성                             정지용이 이상을 처음 발견하고 카도릭 청년지에 작품발표의 기회를 주는 한편 9인회에 가입시키고, 또한 이태준은 이상의 오감도를 조선 중앙일보에 연재하게 하였다.   문제작 는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에 당초 30회 예정이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로 말미암아 15회로 끝을 맺었다. 독자들의 항의는 과격하여 "시는 의 오자가 아니냐" "미친놈의 잠꼬대가 아니냐" "무슨 개수작이냐" ""그게 대체 어쩌자는 시냐" "당장 집어치워라" 등등의 투였다. 사실 당시 우리 시단이나 독자들의 수준에서 볼 때 이와 같은 항의에도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이 때 조선중앙 학예부장으로 있으면서 오감도의 연재를 기획했던 이태준은 독자들의 항의 때문에 사표를 써서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15회까지 연재를 밀고 나갔지만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하고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일화가 있다.     미발표된 作者(이상)의 말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 십년씩 떨어지고도 마음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 빠지게 놀고 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 봐야 아니 하느냐. 여남은 개쯤 써 보고서 시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글과는 물건이 아르다. 二千點에서 三千點을 고르는데 땀을 흘렸다. 31년 32년 일에서 용대가리를 딱 꺼내어 놓고 하도들 야단에 배암 꼬랑지커녕 쥐꼬랑지도 못 달고 그냥 두니 서운하다. 깜박 신문이라는 답답한 조건을 잊어버린 것도 실수지만 李泰俊 朴泰遠 두 형이 끔찍이도 편을 들어 준 데는 절한다.     鐵 - 이것은 내 새길의 암시요 앞으로 제 아무에게도 屈하지 않겠지만 호령하여도 에코ㅡ 가 없는 무인지경은 딱하다. 다시는 이런 ㅡ 물론 다시는 무슨 다른 방도가 있을 것이고 위선 그만둔다. 한동안 조용하게 공부나 하고 따는 정신병이나 고치겠다.   -----------------------------------------------------------------   55. 오감도 시 제4호 / 이상                  
935    뻐속에서 쓰는 詩 댓글:  조회:6534  추천:0  2016-01-10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 '첫 생각'을 놓치지 말라 * 손을 계속 움직이라. 방금 쓴 글을 읽기 위해 손을 멈추지 말라. 그렇게 되면 지금   쓰는 글을 조절하려고 머뭇거리게 된다.   * 편집하려 들지 말라. 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가라.   * 철자법이나 구두점 등 문법에 얽매이지 말라. 여백을 남기고 종이에 그려진 줄에 맞출    려고 애쓸 필요 없다.   *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 마음 가는대로 내버려 두어라.   * 생각하려 들지 말라. 논리적 사고는 버려라.   * 더 깊은 핏줄로 자꾸 파고들라.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 거기에 바로 에너지가 있다.     □ 멈추지 말고 계속 써라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 것을 배운 다음 글을 쓰게 되면 그 글에 힘이 실리게 된다. 자신의 깊은 자아를 믿게 되면, 이제 그곳에는 글쓰기를 회피하려는 목소리가 설 자리는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이 달려가는 곳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적어 내려가라. 제발 어떤 기준에 의해 글을 조절하지는 말라.     □ 습작을 위한 이야깃거리를 묶어 보자 1. 방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빛의 성질에 대해 써 보자. 10분, 15분, 30분, 시간을 정해     놓고 멈추지 말고 계속 적어가라.   2. '기억이 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보자. 아주 작고 사소한 기억이라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모두 적어본다. 그러다가 중요한 기억이나 선명한 기억이 떠오르면 바로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어 내려간다. 만약 막히면 '기억이 난다'라는 첫 구절로 다시 돌아가 계속 적어보라.   3.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아주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을 하나 골라서 아주 사랑하는 것처럼 적어보라. 다음에는 같은 것을 두고 싫어하는 시각으로 새롭게 써보라. 그런 다음 이번에는 완전히 중립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글을 써보라.   4. 한 가지 색만을 생각하며 15분 동안 산책해 보자. 산책하는 동안 주변의 자연과 사물에서 그 색을 발견할 수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자. 그리고 이제 노트를 펼치고 15분 동안 적어보라.   5. 오늘 아침 당신의 모습을 적어 보라. 아침 식사로 뭘 먹었는지, 잠에서 깨어날 때 기분이 어땠는지,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에 무엇을 보았는지 등등 가능한 구체적으로 서술하라.   6. 당신이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장소를 시각화시켜 보자. 그곳은 주로 어떤 색으로 채워져 있는가?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가? 또 어떤 냄새가 나는가?   7. '떠남'에 대해 써보자. 내용은 어떤 것이라도 상관이 없으며 단지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8. 당신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   9.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10. 당신이 몸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써보라.   11. 당신의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 묘사해 보라.   12. 다음과 같은 것들에 대해 적어 보라. 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은 금물이다. 실제로 있는 그대로 적어라. 솔직하고 상세하게 접근해야 한다.(수영하기, 하늘에 떠있는 별, 당신이 경험했던 가장 무서웠던 일, 초록빛으로 기억되는 장소, 性에 대한 의식이 생기게 된 동기 혹은 최초의 성 경험, 신의 존재나 자연의 위대함을 깨달았던 개인적 체험, 당신의 인생을 바꾼 책이나 문구, 육체가 가진 한계와 인내, 당신이 스승으로 섬기는 인물)   13. 시집 한 권을 꺼낸다. 아무 데나 책장을 열고, 마음에 드는 한 줄을 골라 적은 다음, 거기서부터 계속 이어서 글을 써보자. 쓰다가 막히면 첫 줄을 다시 적은 다음 새로 이어서 쓴다. 다시 쓰는 글은 좀 전에 썼던 글과 완전히 방향이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써본다.   14. 당신이 동물이 되었다고 상상해보라. 당신은 어떤 동물인가?   ----------------------------------------------------------   35. 푸른 하늘을 / 김수영                           36. 눈 / 김수영                    
934    詩작법 질질질... 댓글:  조회:3965  추천:0  2016-01-10
    1. 이미지의 개념  ◦ 감각 기관에 의해 떠오르는 대상에 대한 영상이나 대상을 감각적으로 인식하도록 자극하는 말이다.   - 즉 감각을 재현하는 감각적인 표현을 일컫는다. 심상ㆍ형상이라고도 한다.     ⇒ 예) 그는 용감하게 싸웠다. (추상적 의미) 그는 성난 사자처럼 싸웠다. (이미지)       2. 이미지의 기능  ◦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을 갖는다.   - 김수영의 '풀'이란 시에서 '풀'은 단순한 식물로서의 '풀'이 아닌 저항적인 인간, 민중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 이처럼 이미지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해 준다.    ◦ 대상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표현한다.   - "그 꽃 참 곱군."과 같은 개념적 서술보다는 "그 녀석 눈이 샛별 같아."와 같이 구체적으로 비유함으로써 눈의 빛남을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 보통의 언어로써 풀이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태를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 김동명의 '내 마음은' 이란 시에서는 '나'의 마음을 '호수'라는 비유적 이미지를 통해 나타내고 있다.   - '그대'가 노를 저어 올 수 있고, '나'는 '그대'의 뱃전에 부서질 수 있는 '나'의 내면 상태가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3. 이미지의 표현 방법  ◦ 묘사적 심상 : 대상을 묘사로 통해 제시되는 심상   ⇒ 예) 박목월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 한 폭의 그림을 떠올릴 수 있도록 외딴 봉우리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 비유적 심상 : 대상을 매개물에 비겨서 표현하는 심상   ⇒ 예) 박두진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 꽃을 '속삭임', '울음'에 비유하고 있다.       4. 이미지의 갈래  ◦ 시각적 이미지 : 색채, 움직임을 제시한 이미지   ⇒ 예) 김광균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 청각적 이미지 : 소리, 음성, 음향 등을 제시한 이미지   ⇒ 예) 김소월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 후각적 이미지 : 냄새, 향기 등을 제시한 이미지   ⇒ 예) 이육사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 미각적 이미지 : 음식의 맛, 맛을 보는 행위 등을 제시한 이미지   ⇒ 예) 김상옥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 촉각적 이미지 : 만짐에 의한 것으로 차가움과 뜨거움, 피부결 등으로 세분됨.   ⇒ 예) 김종길         젊은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        ※ 공감각 : 하나의 감각이 다른 감각으로 전이 되는 것   ⇒ 예) 김광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 소리         →청각(종소리)의 시각화(푸른)     ⇒ 예) 유치환         동해 쪽빛 바람에 / 항시 사념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촉각(바람의 시각화(쪽빛)   -----------------------------------------------------------   33. 야간산행 - 아들에게 / 이성부                           ------------------------------------------------------- 34.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 이성부                      
933    詩작법 마마마... 댓글:  조회:4573  추천:0  2016-01-10
2) 표현 방법에 따른 이미지  ◦ 이미지를 형성하는 방법에는 묘사에 의한 방법, 비유적 표현에 의한 방법, 상징에 의한 방법이 있다.   - 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 형성 방법은 비유적 표현에 의한 것이다.     ① 묘사에 의한 이미지 형성(묘사적 심상)   - 묘사 또는 감각적인 수식어의 구사를 통하여 사물의 영상을 직접 표현하는 심상.    ⇒ 예시) 김종길, 에서              어두운 방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 이 시에서는 대상을 서술하거나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심상이 훌륭하게 제시되었다.     ② 비유에 의한 이미지 형성(비유적 심상)   - 직유, 은유, 대유, 의인 등의 수사적 표현 방법에 의해 형성되는 심상을 말한다.    ⇒ 예시)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하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가 들을 달린다.   ⇒ 이 시에서는 '비유'에 의한 심상의 제시 방법을 사용하였다. 원관념 낙엽 길 日光 담배연기 보조 관념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 폭포 기차의 증기       ③ 상징에 의한 이미지 형성(상징적 심상)   - 이미지의 기본적인 기능은 감각적 인상을 생생하게 재현해 내는 데 있다.   -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 이미지는 어떤 대상의 감각적 인상을 전해 줄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그 대상과 관련된 여러 가지 관념들을 연상시킨다.   - 이와 같이 '관념을 연상 시키는 기능을 가지는 이미지'를 상징적 이미지라 한다.      가. [공무도하가]에서의 '물'의 이미지    ⇒ 물에 휩쓸려 남편이 죽었으니, 물이란 곧 남편과의 사별을 가져온 사물이다.    → 이 때 물의 이미지는 당연히 , 좀더 일반화하면 이다.      나. 다음 시조에서의 '못'의 이미지(작자 미상의 시)        압못세 든 고기들아 뉘라셔 너를 모라다가 넉커늘 든다.        북해 청소(北海淸沼)를 어듸 두고 이 못세 와 든다.        들고도 못나는 정(情)은 네오 鏡오 다르랴.      ⇒ 이 시조는 어느 궁녀가 대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 내용이다.    → 그런데 누가 잡아다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북해의 맑은 물에서 놀아야 할 물고기들이 앞뜰의 못에 가두어져 있다.    → 그러므로 이 때의 '못'은 자유로운 세계와 단절된 공간으로서 화자의 생활공간과 동질적 관계에 있는 부정적 이미지임을 알 수 있다.      다. [동동]에서의 '불의 이미지        二月걁 보로매, 아으 노피 현 燈등불 다호라.        萬人 비취실 즈지샷다. / 아으 動動다리 ―에서―      ⇒ 위에서의 '높이 켠 등불'은 높은 곳에 켜 놓은 등불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 이것이 다음 구절에서 '만인을 비추실 모습'으로 부연 설명되고 있다.    → '등불'은 일반적으로 '광명, 인도자, 지도자' 등의 뜻을 연상 시키지만, 이 시에서는 '높이 매달려 있는 것',    → 그리고 '많은 사람을 비추는 모습 → 뭇사람을 깨우쳐 주는 모습'으로 제시되어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 따라서, 등불의 상징적 이미지는 이라 할 수 있다.       ※ 우리 시의 회화성   - 현대시에서 심상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현대시가 음악성보다는 회화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 우리 시에서는 1930년대 중반의 주지시파(主知詩派)가 서구 이미지즘이 영향을 받아 주로 시각적심상에 의한 시의 회화성을 추구했다.    (예시 1)  김광균       ① 향료를 뿌린듯 곱단한 노을 우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먼 고가선 위에 밤이 켜진다.       ② 구름은 보라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목장의 깃발도 능금 나무도        불면 꺼질듯이 외로운 들길.      → 김광균의 시는 한폭의 수채화처럼 시각적 이미지를 살리고 있는데, 여기 인용한『뎃상』에서도 '구름은 보라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등과 같이 회화적인 이미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 그리고 '향료를 뿌린듯 곱단한 노을'에서와 같이, 김광균은 특히 색채적 이미져리를 잘 쓰기로 유명한 사람이어서, 『외인촌』,『오후의 구도』,『와사등』,『가로수』,『설야』 등에는 색채적 이미져리와 시각적 이미지가 눈이 부실 정도로 나타나 있다.     (예시 2)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보면,    → 첫 연에는 소쩍새 울음소리라는 청각적 이미지가 나타나 있고,    → 둘째 연에도 천둥소리라는 청각적 이미지가 나타나 있으며,    → 세째 연에는 거울 앞에 선 내 누님이라는 시각적 이미지가 그려졌고,    → 네째 연에는 무서리라는 시각적인 이미지와 잠도 오지 않는 나의 불면이라는 내면적인 체험이 나타나 있는데,      → 문제는 이것들이 따로 떨어져 있지를 않고 전체적인 시의 주제 아래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점이다.    → 즉, 국화에 비겨서 생명의 탄생 과정의 어려움을 노래한 이 시의 주제는 곧 각 연의 구체적인 이미지 속에 용해되어 있고, 이들이 유기적인 연관을 맺어서 비로소 뛰어난 한 편의 시를 이룬다고 할 것이다.       (예시 3)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푸라타나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푸라타나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느린다.          먼 길을 올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푸라타나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푸라타나스        너는 나와 함께 신이 아니다.          수고론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날        푸라타나스        너를 맞을 검은 흙이 어느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 지배적 심상과 주제의 암시 기능   - 이미지의 기본적인 기능은 감각적 체험을 되살리는 데 있다.   - 이런 기본적 기능 이외에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 관념들을 구체적 형상을 통해 암시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이미지를 지배적 심상(이미지)이라고 한다.     - 지배적 심상이란 작품과 직결되는 구체적 형상 또는 그 형상에 내포된 관념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배적 이미지는 작품 전체를 통하여 반복 등장하여 시상의 흐름을 지배하며,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준다.   - 그리고 시의 주제를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   31. 시를 떠나서 / 이성부                                                ----------------------------------------------------   32. 봄 / 이성부                        
932    詩작법 추추추... 댓글:  조회:4809  추천:0  2016-01-10
시의 심상(image)       1. 심상(image)의 개념  ◦ 시에 있어서의 '이미지[心象]'란 언어를 통해 표현된 구체적 형상이나 그와 관련되는 추상적인 관념들을 말한다.   - 즉 시적 언어를 통해 어떤 형상이 우리의 머리 속에 그려질 수 있으며,   - 나아가 그 형상과 관련된 여러 가지 관념이 함께 연상될 수도 있다.   - 이러한 구체적 형상 또는 그와 관련된 추상적 관념들이 바로 '이미지'다.    ∙ 연상되는 감각적 인상 → 감각적 이미지   /   연상되는 추상적 관념 → 상징적 이미지    ◦ 감각적·직관적으로 주어지는 구체적인 상(象). 반드시 오관(五官)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지각되지 않더라도 뇌리에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이면 된다.   - 개념적 사고에 의하여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직관적인 존재이어야 한다.   - 예컨대 삼각형의 형상은 그려져 있는 삼각형의 그림 그 자체이어야 하며, ‘평행하지 않는 세개의 직선에 의하여 둘러싸인 도형’ 등의 개념적 설명이 아니다.    ◦ 일반적으로 형상은 예술을 성립시키는 데 기초가 되는 것이며, 의도적으로 미적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형상이라는 말은 특히 수사학적 용어로서 좁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내용이 표현에 의하여 생생하게 감각화된 것을 가리킨다.   - 상징(象徵)은 단순한 수사보다 더 깊은 의의를 가지고 있는 예술적 표현방식이며, 어떤 감각적 대상으로 그 본래의 의미 뒤에 암시되어 있는 더 깊고 큰 내용을 구상화하는 점에서는 역시 일종의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① '그리고 나의 작은 冥想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 '새 새끼'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통해, 관념적 존재인 '명상'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말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인 '명상'을 '새 새끼'라는 구체적 형상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런 구체적 형상이 바로 이미지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관념'을 '시각적으로' 이미지화하였다.     ② 김상옥의 시조 '사향'에서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이란 구절    ⇒ 이 구절은 시적 자아의 정서를 직접 표현하지 않고 자신의 체험 속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사물의 형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것은 순수한 지적 작용도 아니고, 관념이나 정서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형상이며, 그 형상에 의한 정서의 표출이다. 이와 같은 것을 이미지라고 한다.       2. 심상의 기능  ◦ 이미지는 독자에게 감각적 인상을 불러일으켜 추상적인 관념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사물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며, 사물의 인상과 영상을 더욱 뚜렷하게 보이는  기능을 한다.   - N. Frye : 심상이 제재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독자의 내면세계를 자극하며, 독자의 반응을 유도하여 시를 정서와 연결시켜 주는 구실을 한다고 보았다.   - C. Day Lewis : 심상이 일상적인 언어를 통해서는 맛볼 수 없는 신선미를 빚어내게 하고, 시어에 탄력감과 긴축미를 부여하여 강렬성을 가져오며, 정서를 환기시키는 구실을 한다고 설명했다.   □ 심상의 기능   ① 표현의 구체성을 높인다.             ② 표현의 독창성을 살린다.   ③ 정서 환기의 장치가 된다.            ④ 주제를 추적하는 지표가 된다.   ⑤ 경험을 구체적으로 재생한다.         ⑥ 감각적 인상을 재현한다.   ⑦ 추상적 관념을 구체화한다.            ※ 심상의 기능(보충 자료)   ① 구체성 : 추상적 관념을 구체적 언어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 『그 여인은 아름답다』는 개념적 서술보다는『그 여인은 아침 이슬을 머금은 한송이 백합이었다』(은유에 의한 이미지)는 표현이 더 구체적이다.   ② 함축성 : 여러 가지 의미와 느낌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준다.    -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이라는 시구에서 모란이 떨어짐은 보람의 상실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③ 직접성 : 감각적 경험과 구체적 사물을 나타내는 언어로써 이루어진 이미지는 뚜렷하고 직접적인 인상을 준다     3. 심상의 종류  ◦ 심상은 묘사적 심상과 비유적 심상으로 나뉘기도 하고, 감각적 심상, 상징적 심상으로 나뉘기도 한다.   - 이미지는 마음속에 재생, 제시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감각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우리에게 친근한 것은 감각적 심상이다.   - 감각적 심상에는 시각적, 청각적, 미각적, 후각적, 근육 감각적, 역동적, 색채적 심상과 이들 심상들이 섞여서 시적 효과를 보여 주는 공감각적 심상이 있다.     1) 감각적 이미지  ◦ 이미지의 기본적 기능은 감각적 체험을 되살리는 것이다.   - 이미지란 말의 세속적인 의미 때문에 우리는 흔히 시각과 관련된 표현 또는 인상만을 이미지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이미지는 모든 종류의 감각과 관련된다.   - 주로 시각, 청각이 중심이 되지만 후각, 미각, 촉각 등이 있고, 심지어는 무게 감각, 운동 감각(대상의 움직임의 지각), 기관 감각(고동, 맥박, 호흡, 소화 따위의 지각), 근육 감각(근육의 긴장의 자각) 등도 이미지로 제시될 수 있다.   - 이런 것들을 통틀어 감각적 이미지라고 부른다.     ① 시각적 심상   - 시각적인 감각 형상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심상으로 독자들의 심리적 체험 속에 회화적 인상을 부각시키고 시 전체의 특징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 모양, 색채, 명암, 움직임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 예시)     → 김광균, : 비는 하이얀 진주 목걸이를 사랑한다.     → 장만영, :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② 청각적 심상   - 청각적인 감각 현상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심상으로 때로는 음성 상징어를 활용해서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 소리, 음성, 음향    ⇒ 예시)     → 김소월, : 접동 / 접동 / 아우래비 접동     → 이완영, :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 삼간 달이 뜨고     → : 머리맡에 찬물을 솨아 퍼붓고는     ③ 후각적·미각적 심상   - 이 두 심상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맛과 냄새가 대체로 혼합되어 감지되기 때문이다.   ⇒ 냄새, 향기    ⇒ 예시)     → 서정주, : 강한 향기로 흐르는 코피     → 김소월, : 물새알은 간간하고 짭조름한 미역 냄새     → 김상옥, :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     ④ 촉각적 심상   - 피부 감각적 심상과 전신 감각적 심상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촉각적 심상은 신체의 부분들과 결합되어 근육 감각적 심상을 형성하기도 한다.    ⇒ 예시) 김종길,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⑤ 역동적 심상   - 역동적 심상은 격렬한 시어와 동작적인 용언을 활용함으로써 제시된다.    ⇒ 예시) 박두진,                푸름 속에 펄럭이는 피깃발의 외침     ⑥ 공감각적 심상   - 감각적 이미지를 가장 이상적으로 창조하는 것으로 공감각적 이미지가 있다.   - 이것은 한 종류의 감각을 다른 종류의 감각으로 전이시켜 표현하는 것이다.   - 공감각적 이미지는 감각적 인상을 개성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다.    ⇒ 감각의 전이     → 김광균, :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     → 김광균, :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 서정주, :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 유치환, :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 김광균, :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 소리(청각의 시각화)     → 박남수, :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시각의 청각화)      ※ 기타     → 관이 향기로운 너는(시각의 후각화)     → 동해 쪽빛 바람에(촉각의 시각화)     →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청각의 후각화)     →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촉각의 미각화) -----------------------------------------------------------------------   29. 시(詩) / 이성부                          이성부 시인은 현실참여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서정성과 시적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을 발표해 참여적 서정시인으로 불리는 중견시인이자 언론인이다. 1942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아버지 이근봉(李根奉)과 어머니 김덕례(金德禮) 사이의 4남 2녀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960년 
931    詩작법 쌔애앵... 댓글:  조회:4768  추천:0  2016-01-10
□ 시 흐름  - 시적 흐름의 변형  - 명사로 흘러가다가 뒤에 어투를 바꾸어 봅니다  - 지루하게 한가지 기법으로 쓰지 말고  - 여러 가지 기법으로 써 봅니다  - 시는 경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자기가 최선을 다해 쓸 뿐이지 타인의 시와 비교해서 보다 좋은 시 쓰려고 하지 맙시다   □ 표기법과 시어  - 사전 따라 하지 맙시다  - 혹 표기법이 장맛비가 맞아도    (예)    장맛비 //  장맛비 보다 장마비가 훨씬 부드럽고 좋으니           시어를 장마비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 시엔 절대적인 것이 없습니다   □ 시적 진술  - 솔직한 진술도 좋은데 대상을 통해서 은유 합니다  - 21세기 시는 은유의 시입니다  - 공부 할 때는 실패를 자행해 봅시다  - 졸렬한 성공보다 위대한 실패가 좋습니다  - 실패해도 고급스럽게 실패합시다  - 거대한 것을 압축해보고  - 아무것도 아닌 것을 거대함으로 표현해 봅시다   □ 시인의 독서법  - 시인은 지식을 쌓아 놓은 것이 아니다  - 머리에 저장말고 가슴에 저장합시다  - 시인의 가슴엔 화학작용이 일어나야 합니다  - 남들은 a 할 때에 c가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 화학작용: 심리의 화학작용, 영혼의 화학작용   □ 소재주의  - 빤한 것 쓰지 말고 연습을 합시다  - 시는 소재주의가 아닌 창조적인 행위입니다    (예)    오늘은 오늘인걸            오늘은 오늘이다  -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은 과감하게 삭제합니다      (예)    개미에 대하여 쓰고 싶을 때            곤충도감보고 쓰지 말고 직접 부딪쳐 보고 써야 합니다            소재주의 버리는데 너무 버리지 말고 약간씩만 적용합니다   □ 시 쓸 때 주의할 점  - 시 쓸 때에 실명을 안쓰는 것이 좋습니다    이유인즉 : 그 사람에게 못 박혀 버리니까  - 몇 시인지  - 계절  - 몇 월인지    이런 것은 구체적으로 쓰지 않는다   □ 너무 많이 쓴 시어는 피합니다  - 흔한 시어는 버리고 개발합시다    (예)    잉태, 고독, 사랑, 그리움, 사연, 눈물, 등등...  - ~~처럼 ~~인양 등 직유법도 진보 하다는 소리들을 수 있습니다.  - 흔한 것 같지만 흔하지 않는 것을 사용합니다   □ 장황하게 쓰지 않는다  - 늘어놓지 않고 뼈만 앙상한 시를 써봅시다    (예)    두 동생과 조카, 남편이   □ 정치, 경제, 사회에서 사라질 것 쓰지 맙시다  - 시의 생명은 시간성입니다  - 몇 년이면 없어지는 것 쓰지 말고 일과성, 소모성은 피합니다  - 한번 지나가 버리는 것에 대하여 쓰지 맙시다    (예)    롯또의 빈 껍질            ⇒ 세월이 지나면 모르는 것 ( 롯또 복권 같은 종류)   □ 시적 흐름  - 말투를 달리 해 보는 것 아주 좋습니다  - 죽었더이다: 약간의 높임말로 시적 흐름의 변조    (예)    내 동댕이쳐진 편육 껍데기에서            삭아 내린 자존심이 걸어나온다. 죽었더이다   □ 한자어  - 한 행에 한자어 3번 이상 들어가면 무거운 느낌 듭니다  - 이성적인 시일수록 관념어에 매달리지 말고 좀더 부드럽게 풀어서 써야 함   ------------------------------------------------------------   27. 사랑 1 / 김남주   김남주 시인의 시는 말 그대로 불타오르는 사상의 참여시이다. 모두 이점에는 쉽게 동의 하겠지만 다들 가장 중요한 시적 가치를 모르고 있다.   김남주 시인와 양성우 시인의 시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노래시이다. 그 이후 우리나라 시인의 노래시는 대가 끊긴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간혹 몇편 정도의 노래시를 쓰는 시인은 있었지만 ......                                                 노무현 대통령이 재야 인권변호사에서 민주화 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한 첫날 우리 학교에서 6월 항쟁 툴정식 겸 노무현 대통령의 초청강연이 있었다. 끄 때 그분이 한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강연을 하는 중에 전두환씨, 노태우씨 하면서 씨자를 붙여서 계속 강연했는데, 그가 강연 마지막에 한 말이 있다. "내가 말하는 도중에 자꾸 전두환씨, 노태우씨 라고 했는데, 여러분은 내가 왜 이 사람들한테 ~씨자를 붙이는지, 여러분은 '씨'자의 의미를 아세요? 내가 말한 씨는 '씨발놈 씨자'입니다." 라고 말씀한 노무현 대통령의 초청 강연이 기억에 남는다.                                   ----------------------------------------- 28. 노래 / 김남주                                                  
930    詩작법 팔씹일... 댓글:  조회:5542  추천:0  2016-01-09
□ 비유법  - 비유법 중에서 직유법이 가장 하치입니다  - 전에부터 너무 많이 사용해서 그렇습니다  - 현대시는 은유의 시입니다   □ 시속의 비어  - 비어를 쓸 것인가 안 쓸 것인가 논란이 많습니다    황금찬 선생님은 미학 주의자입니다    시는 아름답게 써야 한다고 늘 말씀하지시죠  - 그러나 시엔 구조 속에 비어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구조 속에서 시적 승화되면 비어가 안됩니다    시적 타당성, 예술의 타당성이 있을 때 비어 사용은 괜찮습니다      (예)    춘향전 작품은 구조 속에서 시적 승화된 작품입니다            ⇒ 시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 시가 좋다 나쁘다 판단할 때에    분석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구조와 직접 연관되어 좋다 또는 나쁘다 판단이 납니다  - 시는 분석주의가 아닙니다   □ 시의 스케일  - 시도 스케일이 크게 써야합니다  - 때려 부수는 글 써 봅시다  - 시인은 누구나 자기 마음의 결이 있지만  - 시에는 자기 파괴 미의 시가 있습니다  - 얽매이지 말고 자기 시 쓰는 스타일을 파괴해 봅시다   □ 마음의 눈 - 대상에 관하여 내면의 눈을 떠야 합니다    (예)    하얀 그리움 눈처럼 쌓여진 거리              그리움을 무엇으로 그릴까            내면의 세계에 눈을 떠야 합니다            대상을 마음의 눈으로 봅니다            대상을 통해서 내 놓을 수 있는 시가 되도록 합시다    - 가장 천박한 시는    자기의 푸념이나 넑두리 늘어놓은 시입니다    시는 푸념이나 넑두리가 아닌 절실함을 써야합니다              오늘 정리를 하며 올리면서            제게도 공부가 됩니다            본인의 시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보면서            타인의 시까지 함께 살펴보니 참 유익합니다              우리가 배운 2~3 가지 정도만 기억하고 실제적인 시 쓸 때에 적용하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적용이 힘든 것이기 때문에 반복해서 배워야 합니다     □ 사실주의 문학  - 민중문학, 목적성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을 사실주의문학이라 함  - 민중문학의 반대는 순수문학이 아니라 반 민중문학입니다   □ 상징의 종류  - 두 개의 상징이 있는데   1. 객관적인 상징:    (예)    비둘기...평화의 상징입니다    (예)    색깔이 주는 이미지            검정...어둠, 빨강...정열, 회색...슬픔, 초록...희망            이렇게 색이 주는 이미지상징도 있습니다     2. 개인적인 상징:    (예)    김현승 시인님의 시속에서 까마귀가 자주 나오는데            그 까마귀는 절대고독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상징에는 객관적인 상징과 시인의 개인적인 상징이 있습니다   □ 은유  - 현대시는 은유의 시다 라고 합니다  - 은유라 하면 알면서도 확실하게 어떤 것인지 말을 잘 못할 때가 있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예)    볼펜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볼펜이 우는구나 뭘 은유 하는가?            볼펜이 운다고 할 때 (인간의 상실)            볼펜은...............운다      (예)    산에는 꽃이 피는데            가을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는데            여기서            잠재의식 속에서 꽃은 무엇일까?            생각하는 것 그것이 은유입니다     ※ 은유란 간접적이며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비유가 은유입니다      (예)    내 마음은 호수요            어떤 사물을 그와 비슷한 특징을 가진            다른 사물로 나타내는 낱말    (예)    미련퉁이를 곰으로            키다리를 전봇대로 일컫는 것을 은유라 합니다   □ 모더니즘  - 요즘 시는 모더니즘 시라고 합니다  - 모더니즘 아닌 시가 없습니다     ※ 모더니즘이란 새로운 취미나 유행을 좇는 경향.     ․ 새로운 기계문명과 도시적 감각을 중시하고, 지성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현대문학의 한 경향.   □ 난해한 시  - 시는 어렵게 의미 있게 쓰려고 하면 안됩니다    신경림 시인님은    시인이 쓰고 시인도 모르는 시 쓰고 잘난 척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 시속의 아라비아 숫자    (예)    7월의 뜨거운            칠월의 뜨거운.... 가급적 아라비아 숫자보다            한글로 쓰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시엔 절대적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가급적)      (예)    7월의 뜨거운            여기에서 계절에 못을 박았습니다            7월의........            그냥 여름으로 쓰면 더 포괄적입니다            가급적 시적 느낌을 테두리 두르지 맙시다   □ 시어  - 우리나라 어휘수가 풍부하지 않습니다  - 한글사전 시어가 부족합니다    한자가 .........7:  고유어가.......3    결론은 시인은 새로운 말을 만들어야 합니다    -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적극적인 자세로    표준말 맞춤법에 못 박지 말고    엉뚱하게 만들어 봅시다 그것이 시인의 자세입니다    - 시적 수련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 의문형 많이 사용합니다    ․ 명령어 사용 많이 합니다   □ 교훈적인 시  - 조선시대 시는 가르쳐 주는 시였으나  - 시는 가르쳐 주는 분야가 아닙니다  - 교훈적인 시를 쓰기 엔 시가 아깝습니다     조선시대 많이 써먹은 것이니 이젠 있는 그대로 시 써 봅시다     혹 가르쳐 주더라도 직접 표현이 아닌 간접 표현을 합시다      (예)    개들의 싸움을 보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길을 가다가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질문했습니다            할아버지 개들이 뭐라고 하면서 싸워요?            할아버지 말씀하시길.....!!            사람만도 못한 개놈아 하면서 싸운다...라고 대답했답니다            이렇게 문학을 합니다   □ 시 제목  - 제목은 시의 얼굴입니다    (예)    고향            고향이란 제목이 있을 경우            정감을 줄 수 있는 다른 제목으로 써 봅니다   ----------------------------------------   자유 / 김남주   내 젊은 날을 함께한 시인이다. 1985년도에 나는 대학 신입생이었는데,   그 해 봄에 그의 시를 만나서 나의 푸른 날을 함께 했다. 만약에 그의 이 시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그렇고 그런 시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김남주 시인         1946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으며, 전남대 영문과에 입학하여 3선개헌 반대운동과 교련반대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앞장섬. 이후 고향 해남에서 농민문제에 깊은 관심을 쏟기 시작했으며 1974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서 「잿더미」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15년 형을 선고받았고 9년째 복역 중 1988년 12월 가석방 조치로 출소. 그 다음해 1989년 1월에는 고은 시인의 주례로 그의 오랜 동지이자 약혼자였던 박광숙 씨와 결혼했으며 열정적인 시작(詩作) 활동을 함. 그러나 오랜 감옥생활에서 얻은 병으로 1994년 2월 13일 작고함. 시집 『진혼가』,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 『솔직히 말하자』, 시선집 『사랑의 무기』가 있고 옮긴책으로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프란츠 파농), 『아타 트롤』(하이네) 등이 있음.         --------------------------------------------------------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 김남주   김남주 시인의 시 중에서 몇몇 작품은 스스로 수정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작품이 혼란스럽게 발표되었다.   특히 옥중에서 발표한 시를 중심으로 엮은 '나의 칼 나의 피(1988년)'에 수록된 작품과 그 이후에 발표된 시집의 작품은 조금 다른데   이 작품 또한 나는 원작을 실었다.  시인 최윤희 배상.                          □ 김남주 시인 연보   ▶1946년 전남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535번지에서 출생.   ▶1969년 대입검정고시를 거쳐 전남대 문리대 영문과 입학.   ▶1972년 전남대 법대 재학중이던 친구 이강과 함께 전국 최초의 반유신투쟁 지하신문 『함성』을 제작.   ▶1974년 계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진혼가」, 「잿더미」 등 8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   ▶1975년 사회과학서점 ‘카프카’를 개설해 광주사회문화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함.   ▶1980년 남민전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15년 실형확정, 광주교도소에 수감됨.   ▶1994년 2월13일 새벽 2시30분 고려병원에서 췌장암으로 별세.    유족으로 부인 박광숙 여사와 아들 토일(土日)군이 있음.   ▶시집으로 「진혼가」, 「나의 칼 나의 피」,「조국은 하나다」, 「사상의 거처」등이 있음.   ▶제6회 단재상 문학상· 제3회 윤상원문화상 수상.                               
929    詩작법 찰싸닥... 댓글:  조회:4088  추천:0  2016-01-09
□ 시속의 한자사용에 대하여  - 현대시는 한자 사용을 안 합니다    (예)    4월의 斷想                             朴素姸  - 이름이나 제목 등 한자 사용을 금하고 꼭 써야할 경우엔 가로 안에 씀  - 한자도 무언의 무거운 언어입니다    무거운 느낌을 주는 한자는 될 수 있는 대로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 요즘 원고 청탁 시 한자 쓰지 말고 한글로 쓰라는 부탁을 많이 하는 추세입니다   □ 시를 쓸 때  - 던지는 시가 아닌 가슴에 들어오는 시를 써야합니다  - 감동적인 시가 가슴에 들어오는 시입니다  - 던지는 시란    (예)    항일시, 민중시, 사실주의적인 시를 말하는데 이런 시가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최남선, 이남선, 이광수님은 20 대에 대한민국 현대 문학의 장을 연 분들입니다  -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시를 쓸 것인가 나가야 할 방향을 설정해야 함              시는 설명의 세계가 아닙니다            시는 지식의 세계가 아닙니다            시는 시입니다            시 는 완성이 없습니다            시는 첨가하는 것이 아니요            빼는 것이 힘입니다              거짓 없는 시가 좋습니다            무거운 소재를 가볍게            가벼운 소재를 무겁게 써 봅니다            시의 공간성도 좋은 것입니다      (예)    하늘에 걸어 말리 우니            저 높은 기암절벽도 벙어리가 되어 섰구나              여기에서            하늘과 기암절벽 사이            공간성 확보가 좋습니다   □ 표기법에 대하여  - 표기법 정말 중요시 여겨야 합니다  - 원고 심사 시 아무리 시 잘 써도 표기법 오류가 있으면 무조건 버립니다  - 시는 숫자, 번호, 점하나 잘 신경 써야 합니다  - 구조주의 적인 면에서 잘 생각해서 써야 합니다    (예)    콘센트에 플러그를 꼿는 순간            ⇒ 꽂는 순간이 맞습니다   □ 시는 절대적인 1인칭입니다    (예)    내 인생의 가해자라는 판결을 내린다            ⇒ 내.... 여기에서 내를 빼면               너와 나와 우리가 됩니다               더 큰 세계로 나 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라는 말을 안 써도 시는 1인칭이므로 독자가 다 압니다   □ 주체의식의 시  - 시는 꼭 주체의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 테마가 있는 시이지만  - 주체의식은 조심해서 써야합니다  - 좋은 시는 삶의 뿌리를 내리는 시입니다   □ 시어 함축  - 꼭 있어야 하는 시어 넣고  -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면 그 시어는 뺍니다    시는 방심하면 안 됩니다    (예)    하얀 백지 위에 머무는            까만 점 하나            ⇒ 어차피 까만 백지, 파란 백지는 없으니 하얀 백지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 없는 시어 사용을 금합니다 - 또한 이별, 사랑, 고독, 그리움 등 많이 사용하는 시어인데 이런 시어들은 간접적인 표현을 합니다    - 이별을 대신할 다른 시어가 무엇이 있을까? 하고 한시간이고 두시간 고민하고 생각하여 여운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 한자어 사용  - 고유어가 좋으냐 아니면 한자어가 좋으냐를 잘 생각해서 사용합니다    (예)    화폭에 채색된 사랑            ⇒ 채색대신..... 물든 사랑으로써도 됩니다            ⇒ 이것저것 넣었다 빼보고 더 좋고 어울리는 시어로 사용함   □ 존대어  - 존대를 쓸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합니다    한용운 선생님은 존대어를 많이 썼습니다    (예)    흔적을 지우기 시작합니다            ⇒ 시작합니다 시작한다 써 봅니다 느낌이 많이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    나도 아파 울었습니다            나도 아파 울었다            ⇒ 존대를 사용하므로 훨씬 애절한 느낌을 더해줍니다 그러므로 존대를 쓸 것인지 아닌지 그 시의 성격을 잘 파악해서 결정함   □ 시 세계  - 시 세계는 항상 현재형입니다  - 아무리 과거의 일 이라고 하더라도 현재로 써야합니다    김소월 선생님이 현재형의 시가 많습니다   □ 시 모방은 금물  - 시는 인격입니다  - 내 시가 모자라도 자기 스타일이 있어야 합니다  - 시의 악덕은 모방 즉 닮는 것입니다  - 남의 시 절대 흉내내지 말아야 합니다  - 철저하게 내 시를 쓰고 멋있다고 따라하지 맙시다  - 노래 가사가 시에 들어가면 지적 분위기 시적 소제의 모사성에 협의 받습니다  - 그러나 자기는 전혀 모방한 것이 아닌데 한국적인 정서에 의해 혹 다른 시랑 같다는 협의를 받들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괜찮습니다   □ 반복법  - 반복법은 시의 내용을 약화시킵니다    (예)    한 꺼풀에는 눈물을            한 꺼풀에는 외로움을            ⇒ 보통 사람들이 반복법을 많이 사용하는데            ⇒ 시의 내용을 약화시킵니다    - 반복법에 성공한 사람은 딱 한사람 있습니다    (예)    박두진 시인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 띄어쓰기  - 본명은 붙여씁니다  - 필명은 띄어씁니다 (보기 좋게 하기 위해서)   □ 제목 정할 때  - 제목도 여운이 있어야 합니다  - 제목을 보고 포괄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합니다  - 제목과 시를 너무 구체화하지 않도록 합시다  - 시에 항상 여운을 남기는 것 중요합니다    (예)    편운 조병화님의 시비 제막식에 다녀오며 이런 제목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제목을 만약 시비란 제목이나 시비 앞에서라고 한다면 어떨까?            독자들이 읽을 때 무슨 시비일까 하고 궁금해하지 않을까요            제목을 구체적으로 다 쓰면 아! 조병화님의 시비 제막식이구나 하고 호기심이 덜합니다   □ 의미확대   편운 조병화님의 시비 제막식에 다녀오며 에서    (예)    님이시여            한 조각 구름 타고 가시는 가 했는데            온 하늘 머리에 이고 편운이라 하셨군요            당신의 구름 한 조각으로 천지를 감싸니            사랑이 큰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에서 님이시여란 시어와 당신의이란 시어가 있으므로            독자들이 읽기에 조병화 선생님을 말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당신이란 시어를 빼면 의미가 확대됩니다              혹 조병화 선생님을 놓고 쓴 시라고 하더라도 의미를 확대하는 방향의 시를 써야 합니다      (예)    물위에 함부로 휩쓸리는 나뭇잎이거나            종이배처럼            지구는 돌든지 멈추든지            ⇒ 여기에서 종이배처럼 직유법 (~처럼, ~같이 ~인양 등등 )을 써서 구체화하려고 하는데 구체화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 그냥 종이배로 끝나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 (처럼 삭제)      (예)    지구는 돌든지 멈추든지            ⇒ 지구가 도니까 멈춘다는 것을 생각하는데            여기에서 지구는 돌든지 말든지 라고 하면 어떨까요?            훨씬 느낌이 다르지요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하고 시어를 선택합니다 -------------------------------------------------------   24. 내린천을 지나 / 최하림                   시인 최하림   1939년 3월 7일 전남 목포 출생.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빈약한 올페의 회상' 당선, 2005년 올해의예술인상 문학부문 최우수상 수상, 조연현문학상, 이산문학상, 불교문학상 수상. 저서로는 '최하림 시 전집', '이야기 주머니', '우리들을 위하여', '작은 마을에서', '겨울 깊은 물소리',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 '사랑의 변주곡', '한국의 멋', 김수영 평전인 '자유인의 초상', 어린이들을 위한 역사서 '즐거운 한국사 1~5' 등이 있다.                                          
928    詩작법 통통통... 댓글:  조회:4250  추천:0  2016-01-09
시 창작 실무이론     1. 시를 쓰고서 2~3개의 문제점을 발견하여 고치도록 노력을 합니다   2. 시는 절대적인 1인칭이다    시는 절대적인 1인칭입니다    시를 쓰고자 할 때에는 주체의식이 강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너는, 내, 너의, 뭐 이런 종류의 시어들) 불필요 합니다    (예)    내 향기 담아            어디로 가는지 묻지를 마라            에서 내 향기 담아 는 없어도 좋은 불필요한 말이다   3. 시의 속성을 먼저 알고 써야합니다   4. 시는 설명을 하려고 하지 말고 물처럼 흘러가도록 써야합니다    (예)    고즈넉이 내려앉고 에서 고            부드러운 미풍            산골여인 가슴 마냥 설레고 에서 고            “고" 자가 많이 들어가는 이유는 설명이 필요해서 그런 것입니다   □ 연 나누기  - 연을 나눌 때 상투적으로 연을 나누지 말고  - 연을 나누어서 좋은지 아니면 단열시가 좋은지를 스스로 파악해서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면 연을 눔   □ 시의 대상  - 시는 독자를 대상으로 써야 합니다  - 독자를 의식한 후에 써야 합니다   □ 시 압축 조병화 선생님 시는 짧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 시는 가급적이면 압축하는 것이 좋습니다  - 시의 생명은 함축입니다    ․ 시의 힘은 넣은 것이 아니라 빼는 것에 있습니다    ․ 시가 길어질수록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 표현의 욕심을 버리고 가급적이면 짧게 써서 독자에게 즐거움을 줘야 함    - 시는 문학의 한 장르이고 문학은 예술의 한 장르입니다  - 시는 가장 경제적인 장르입니다   □ 시적 호흡  - 시의 호흡은 짧은 것, 긴 것이 있는데  - 시의 속성상 짧은 것이 많으며  - 시의 호흡이 긴 산문시에서는 길게 써보는 연습이 필요함   □ 시의 목적  - 시의 목적은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 시는 시입니다 시는 시로써 즐거움, 쾌감을 주어야 하고  - 지식이나 목적을 위주로 쓰지 않아야 합니다     한용운 선생님은 항일적인 글을 많이 쓰신 분입니다   "조국이 통일되면 내 시를 안 읽어도 좋다"라고 말씀하심으로 미래를 미리 짐작하신 분입니다    - 민중 문학하는 사람들도  - 결국엔 서정시를 쓰고 있고 서정시가 시의 생명입니다    - 현대시를 씁시다   김소월, 윤동주, 김영랑, 서정주님은   세월이 흘러도 시가 남고 사랑 받고 있습니다    - 시의 객관성이 있어야합니다    - 현대시는 은유의 시입니다    그리움이란 시를 쓸데에 그리움이란 단어를 직접 쓰지 말고 대상을 통해서 말해줍니다  - 독자들이 그리움을 생각할 수 있도록 여운을 남기는 것이 필요함    (예)    모란이 피기까지에서 모란이 대상이 되었듯이            직접표현이 아닌 간접으로 대상으로 표현한다    - 수식어 사용을 절제합니다    (예)    별이 되는 그리움            갈 곳을 잃어            휭 한 밤바람에 에서 휭 이란 시어            ⇒ 수식어를 절제해야 합니다            ⇒ 너무 아름답고 효과적인 장식을 하지 맙시다   □ 시의 부호  - 미숙할수록 의문형을 많이 사용합니다  의문형은 극히 절제합시다  - 의문부호나 일반 부호사용은 시에게 무거운 언어입니다  - 모든 부호(감탄사나.! 쉼표, 생략법..... 등등.. 물음표 ?)는 될 수 있는 대로 부호사용은 금합니다    - 요즘은 한문 쓰고 ( ) 부호도 안 쓰고 있습니다  - 대신 주해를 달아 줍니다  - 감탄사는 시를 천박하게 합니다 함부로 사용하지 맙시다   □ 시 낭송  - 제목과 이름을 꼭 먼저 낭송한다   □ 유사음에 대하여  - 유사 음 반복을 피합니다  - 반복법은 시를 악화시킵니다    (예)    나비가 나른다            춤추며 나른다            ⇒ "나" 자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 의성어 의태어도 가장 불완전한 언어입니다    (예)    추적추적, 살랑살랑, 너울너울            ⇒ 모양을 흉내내거나 소리내는 언어 가급적이면 시속에 함부로 넣지 않도록 합니다   □ 관념시  - 관념시를 쓸 때에는 생각이 많이 필요합니다  - 쉽게 풀어서 써야하며  - 사유성 관념성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 너무 시를 잘 쓰려고 하면 경직되므로 힘들지 않게 편하고 쉽게 쓰도록 노력합니다  - 시는 인격이므로 마음가짐 그대로 쓰며 자연스러움이 중요합니다   □ 시 제목  - 시의 제목은 아주 중요합니다    (예)    아픈 사연이란 제목과 사연이란 제목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 독자들이 읽을 때 아픈 사연 하면 벌써 아픈 사연이구나 하고 짐작하여 호기심이 떨어집니다            ⇒ 그러나 사연이란 제목을 쓰면 무슨 사연일까 궁금해합니다  그러므로 시 제목 결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해서 결정합니다            ⇒ 그러나 이토록 사연, 고구마, 바다 등 이런 명사만 사용하게 되면 시집을 낼 때에 제목이 너무 경직되어 있어서 부드럽지 못하니까 시집 낼 때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길게도 써 봅니다    - 시인이 시를 쓸 때에는    뱀처럼 차갑고 불처럼 뜨겁게 써야 합니다    이성은 차갑고 감성은 뜨겁게    이 두 가지가 잘 교류가 되어야 합니다    너무 이성적이거나 감성적으로 치우치면 안 됨   □ 감정이입  - 시는 대상이 있어야 함  - 대상에 내 마음을 넣어 마음을 표현한 시를 감정이입이라 함    (예)    선인장 꽃이란 시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 선인장꽃이 바로 내가 되는것, 선인장을 보며 단순하게 아프다 라고 끝나서는 안되고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 철두철미하게 창조하고 자기언어로 표현해 봅니다    상투성에서 벗어나고 탈피해야 합니다 엉뚱함도 아주 중요함  - 추한 것도 아름다운 것의 일종이란 생각으로    미적 감각을 때려 부스는 작업도 필요함   □ 비 시적 시어    (예)    산림 속 호수 깊이에            몽땅 푸른 이파리            ⇒ 몽땅 이란 시어              내 맘 한 올            오날            햇살아래 세워 놓았나니            ⇒ 오날이란 시어              그 다음날도            햇발처럼            길 우에            ⇒ 길 우에 란 시어    - 이처럼 깡패성 시어나 표기법에 맞지 않는 사투리, 은어를 사용할 때에는 언어에 통달한 사람 이여야 가능합니다    - 시적 허용이란 말이 있습니다    시에선 그것이 용납되는데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언어에 통달한 사람이 가능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시로 언어를 때려부숨이 용납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그런 시어사용을 금합니다   --------------------------------------------------- 23. 한계령에서 1 / 정덕수             한계령 / 노래 양희은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버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한계령에서 1                                                              정 덕 수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메일지.  삼만육천오백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메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愛憎)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 1981년 10월 3일 한계령에서 고향 오색을 보며         양희은이 노래한 한계령은 한때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가 마치 자신이 작곡한 작품으로 표절(?)하여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으로 알고 있으나, 실은 정덕수 시인의 연작시인 '한계령에서 1'에서 차용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하덕규의 한계령에는 원작의 깊음을 이끌어 내지 못함 아쉬움이 많다.       현재, 하덕규는 음악 활동을 접고 개신교 목사로 활동하고 있다.  
927    詩작법 후ㅜㅠ... 댓글:  조회:4613  추천:0  2016-01-09
□ 시의 심상 (이미지, image)     (1) 심상(image)의 개념 시에 있어서의 '이미지[心象]'란 언어를 통해 표현된 구체적 형상이나 그와 관련되는 추상적인 관념들을 말한다. 즉 시적 언어를 통해 어떤 형상이 우리의 머리 속에 그려질 수 있으며, 나아가 그 형상과 관련된 여러 가지 관념이 함께 연상될 수도 있다. 이러한 구체적 형상 또는 그와 관련된 추상적 관념들이 바로 시에서 '이미지'라고 불리는 것이다.    - 연상되는 감각적 인상 → 감각적 이미지  - 연상되는 추상적 관념 → 상징적 이미지   감각적·직관적으로 주어지는 구체적인 상(象). 반드시 오관(五官)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지각되지 않더라도 뇌리에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이면 된다.   개념적 사고에 의하여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감각적·직관적인 존재이어야 한다. 예컨대 삼각형의 형상은 그려져 있는 삼각형의 그림 그 자체이어야 하며, ‘ 평행하지 않는 세 개의 직선에 의하여 둘러싸인 도형’ 등의 개념적 설명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형상은 예술을 성립시키는 데 기초가 되는 것이며, 의도적으로 미적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형상이라는 말은 특히 수사학적 용어로서 좁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내용이 표현에 의하여 생생하게 감각화된 것을 가리킨다.   상징(象徵)은 단순한 수사보다 더 깊은 의의를 가지고 있는 예술적 표현방식이며, 어떤 감각적 대상으로 그 본래의 의미 뒤에 암시되어 있는 더 깊고 큰 내용을 구상화하는 점에서는 역시 일종의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① '그리고 나의 작은 冥想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 '새 새끼'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통해, 관념적 존재인 '명상'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말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인 '명상'을 '새 새끼'라는 구체적 형상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런 구체적 형상이 바로 이미지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관념'을 '시각적으로' 이미지화하였다.     ② 김상옥의 시조 '사향'에서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이란 구절   ⇒ 이 구절은 시적 자아의 정서를 직접 표현하지 않고 자신의 체험 속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사물의 형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것은 순수한 지적 작용도 아니고, 관념이나 정서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형상이며, 그 형상에 의한 정서의 표출이다. 이와 같은 것을 이미지라고 한다.       (2) 심상의 기능. 이미지는 독자에게 감각적 인상을 불러일으켜 추상적인 관념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사물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며, 사물의 인상과 영상을 더욱 뚜렷이 하는 기능을 한다.    - N. Frye는 심상이 제재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독자의 내면 세계를 자극하며, 독자의 반응을 유도하여 시를 정서와 연결시켜 주는 구실을 한다고 보았다.  - C. Day Lewis는 심상이 일상적인 언어를 통해서는 맛볼 수 없는 신선미를 빚어 내게 하고, 시어에 탄력감과 긴축미를 부여하여 강렬성을 가져오며, 정서를 환기시키는 구실을 한다고 설명했다.      ① 표현의 구체성을 높인다.    ② 표현의 독창성을 살린다.    ③ 정서 환기의 장치가 된다.    ④ 주제를 추적하는 지표가 된다.    ⑤ 경험을 구체적으로 재생한다.    ⑥ 감각적 인상을 재현한다.    ⑦ 추상적 관념을 구체화한다.      □ 이미지의 기능    ① 구체성 : 추상적 관념을 구체적 언어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 여인은 아름답다』는 개념적 서술보다는『그 여인은 아침 이슬을 머금은 한송이 백합이었다』(은유에 의한 이미지)는 표현이 더 구체적이다.      ② 함축성 : 여러 가지 의미와 느낌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준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이라는 시구에서 모란이 떨어짐은 보람의 상실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③ 직접성 : 감각적 경험과 구체적 사물을 나타내는 언어로써 이루어진 이미지는 뚜렷하고 직접적인 인상을 준다     (3) 심상의 종류 심상은 묘사적 심상과 비유적 심상으로 나뉘기도 하고, 감각적 심상, 상징적 심상으로 나뉘기도 한다. 이미지는 마음 속에 재생, 제시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감각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우리에게 친근한 것은 감각적 심상이다.   감각적 심상에는 시각적, 청각적, 미각적, 후각적, 근육 감각적, 역동적, 색채적 심상과 이들 심상들이 섞여서 시적 효과를 보여 주는 공감각적 심상이 있다.      □ 감각적 이미지 이미지의 기본적 기능은 감각적 체험을 되살리는 것이다. 이미지란 말이 던져 주는 세속적인 의미 때문에 우리는 흔히 시각과 관련된 표현 또는 인상만을 이미지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이미지는 모든 종류의 감각과 관련된다. 주로 시각, 청각이 중심이 되지만 후각, 미각, 촉각 등이 있고, 심지어는 무게 감각, 운동 감각(대상의 움직임의 지각), 기관 감각(고동, 맥박, 호흡, 소화 따위의 지각), 근육 감각(근육의 긴장의 자각) 등도 이미지로 제시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통틀어 감각적 이미지라고 부른다.      ① 시각적 심상 : 시각적인 감각 형상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심상으로 독자들의 심리적 체험 속에 회화적 인상을 부각시키고 시 전체의 특징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 모양, 색채, 명암, 움직임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 김광균, 에서 비는 하이얀 진주 목걸이를 사랑한다. ― 장만영, 에서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 신석정,      ② 청각적 심상 : 청각적인 감각 현상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심상으로 때로는 음성 상징어를 활용해서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 소리, 음성, 음향           접동 / 접동 / 아우래비 접동 ― 김소월, 에서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 삼간 달이 뜨고 ― 이완영, 에서         머리맡에 찬물을 솨아 퍼붓고는 ― 김동환, 에서      ③ 후각적·미각적 심상 : 이 두 심상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맛과 냄새가 대체로 혼합되어 감지되기 때문이다. ⇒ 냄새, 향기           강한 향기로 흐르는 코피 ― 서정주, 에서         물새알은 간간하고 짭조름한 미역 냄새 ― 김소월, 에서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 ― 김상옥, 에서      ④ ~촉각적 심상 : 피부 감각적 심상과 전신 감각적 심상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촉각적 심상은 신체의 부분들과 결합되어 근육 감각적 심상을 형성하기도 한다.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 김종길, 에서      ⑤ 역동적 심상 : 역동적 심상은 격렬한 시어와 동작적인 용언을 활용함으로써 제시된다.           푸름 속에 펄럭이는 피깃발의 외침 ―박두진, 에서      ⑥ 공감각적 심상 : 감각적 이미지를 가장 이상적으로 창조하는 것으로 공감각적 이미지가 있다. 이것은 한 종류의 감각을 다른 종류의 감각으로 전이시켜 표현하는 것이다. 공감각적 이미지는 감각적 인상을 개성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다. ⇒ 감각의 전이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 ― 김광균,   ----------------------------------------------------- 21. 무명도(無名島) / 이생진                                   ------------------------------------------------------------- 22. 보고 싶은 것 / 이생진                            
926    詩작법 지라리... 댓글:  조회:4245  추천:0  2016-01-09
□ 성유(聲喩) 의성어(onomatopoeia)라든지 의태어는 곧 음성을 되풀이 하여 효과를 내는 표현법이다. 전자는 자연이나 인간의 소리 등을 흉내내어 표현한 것이고, 후자는 사물의 모습이나 태도 등을 흉내내어 적는 표현법이다.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골어 흰 구름 걷는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너멋 골짜기서 울어오는 뻐꾸기.   박두진     박두진의『청산도』라든지 『해』에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이 씌어졌다.      □ 상징 비유(은유)와 비교해서 말하면 상징은 원관념을 떼어 버리고 보조관념만 남아 있는 형태이다.     사과 한 알이 떨어졌다. 지구는 부셔질 그런 정도로 아팠다. 이내 어떤 정신도 발아하지 않았다.     '사과'는 도입해온 보조관념이다. 원관념도 쉽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상상력을 통해서 사과의 의미는 '죽음'을 암시할 뿐이다. '떨어지다' '부서지다' '움트지 않음' '아픔'은 다 죽음에 가까운 의미를 지닌 동일성이다. 그래서 원관념의 '최후'인 죽음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감춰져 있을 뿐이다.   상징의 본질적 성격으로서 동일성을 든다.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     눈이 살아있다는 생명을 느낀다. 눈과 기침의 내부관계는 공통성의 일치를 찾지 못한다. 다만 상상력으로 '눈'과 '기침'은 상징으로서, 이 감각적 이미지는 순결과 진실성이라는 관념과 밀착된 상징이다. 3연의 눈의 생명성은 이 순결의 생명성이며 기침을 하는 행위는 화자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진실성의 관념과 밀착되어 있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     이 시에서 '문둥이'는 시인 자신의 정신적 고뇌 자학을 상징하며 그것은 이 시의 문맥 속에서만 의의를 지닌 개인적 상징이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이 시의 리듬은 상징의 암시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소리의 신비감으로써 무엇인가를 우리의 영혼에 공명케 하려는 것이 상징주의 순수시가 노린 상징의 기능이라면, 이 시의 리듬이 이미지와 결합되어 시인이 전달하고자 한 관념을 노출시키지 않고 상징의 암시성을 효과적이게 한다.   '풀'이 지닌 드러냄은 감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조화는 리듬이 빠른 템포로 흐르면서 주술성의 어떤 오묘한 맛을 내고 있는 데서 발생한다. 특히 풀이 바람보다 빨리 눕고 울고 일어난다는 반복되는 논리적 모순과 융합되어 이 시의 리듬은 주술성을 느낀다. 이 주술의 리듬 속에 풀은 민중을 감추고 바람은 그 민중이 살고 있는 실존적 상황을 감추고 있는 상징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바람과 대비된 풀의 동작에서 민중의 끈질기고 활발한 삶의 양식만을 시인과 독자가 다같이 관심을 두었다면 이 시도 영락없이 드러남의 알레고리시가 되었거나 단순한 알레고리로서만 수용되었을 것이다. '풀'을 삶의 움직임의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동력'으로 느끼게 한 것은 주술적 리듬, 음악적 성격의 개입으로 드러남과 감춤의 조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만물은 흔들리면서 흔들리는 만큼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있는 잎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의 잎은 제각기 잎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들판의 고독, 들판의 고통 그리고 들판의 말똥도 다른 곳에서 각각 자기와 만나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들에 가서 비로소 깨닫는 그것 우리도 늘 흔들리고 있음을   오규원     '만물의 흔들림'은 상징이다. 역동적 이미지는 "잎은 흔들려서" "바람은 오늘도 분다" "우리도 늘 흔들리고 있음을" 등 여러 장면과 결합되어서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 곧 '흔들림'의 역동성은 작품 전체를 확산, 생의 여러 감각을 일깨운 상징이다.      □ 상징과 은유  - 은유는 두 대상간의 유사성을 통한 유추적 결합을 추구하는 데 반하여  - 상징은 상관성이 먼 상징어를 연결함으로써 의미가 확대, 심화되는 언어 사용의 방법이다.     (3) 현대시의 표현 기교    ① 반어(反語, irony) : 작가가 의도와는 전혀 다른 표현을 하여 날카로운 멋과 예리한 감각을 발휘하는 기법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반어적 구조를 통해 주제를 형상화하였다.      ② 역설(逆說, paradox) : 본질적으로는 참이나 외견상으로는 모순, 충돌되는 진술 형태, 모순되는 사물이나 관념을 연결하여 경이감, 신선감을 주는 기법. 모순 어법, 모순 형용의 표현 등이 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얐습니다 - 모순어법,       찬란한 슬픔의 봄 - 모순 형용      ③ 자동 기술법 : 인간 내면의 깊은 생각, 관념을 아무런 제재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표출시키는 것이 인간의 진실에 가장 가까운 길이라 믿고 꿈을 꾸는 자가 그 순간 그대로 스스로의 내면 세계를 표출하듯이 무의식의 세계를 기술하는 기법이다.   ---------------------------------------------------------   19. 바다의 오후 / 이생진                     ------------------------------------------------------------------ 20. 고독/ 이생진                              
925    詩작법 촐라당... 댓글:  조회:5552  추천:0  2016-01-09
광화문은 한 채의 소슬한 종교.   서정주     바다는 대낮에 등불을 켜고 추억의 꽃물결 우에 소북이 지다.   김광균     보드레한 에머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김영랑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玉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燭불이요. 그대 저 門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 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에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落葉이요. 잠깐 그대의 뜯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 같이, 외로이 그네를 떠나리다.   김동명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도 그림자 지는 곳.   김광섭     위에 든 시들은 단순한 은유가 나타나 있는 비교적 성공한 작품이다. 따라서 '내 마음은 호수요' '내마음은 燭불이요'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등의 은유에서 '내 마음'이라는 원관념과 '호수', '燭불', '나그네','낙엽', '물결'이라는 보조관념은 분명하게 나타나 있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鳥籠도 없이 原罪의 噴水가 넘치는 입에서 한 마리 두 마리 띄워 보낸 다. 들은 울지도 않는다. 시간은 앞에 서서 달음박질하고 는 항상 시간의 뒤안에서 나고 있다가는 파다닥 파다닥 날개쭉지를 뒤채기고는 시간 위에 머리 박고 죽어가는 다.   신기선     이 시에는 '새'라는 보조관념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 있지만 원관념은 없어서 매우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탄식』이라는 시제목이 곧 원관념인 것을 알게 되고, 구체적으로 그 『탄식』이 무늬 놓는 이미지를 깨닫게 된다.      □ 의인법(personification)  - 활유 사물이나 사람이 아닌 생물에서 사람과 같은 성질을 부여해서 표현하는 비유로서, 활유라고도 부른다. 예로부터 많이 쓰던 이 수사법은 메타포(metaphor)의 한 변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성난 파도', '시냇물이 소근댄다', '구름이 달린다'등 자연물을 인간화해서 그 성질과 동작을 표현하는 이러한 의인법은 얼마든지 우리 주변에서 씌어지고 있다.   우리의 조선소설 중에는『장끼전』,『별주부전』,『서동지전』과 같이 전체가 의인법으로 되어진 작품들이 있다. 시에 있어서도 이 의인법은 널리 씌어지고 있다.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을 향한 불타는 향수. 너의 넛은 수녀보다도 더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너의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김동오     동명의 파초는 김현승의『푸라타나스』, 이육사의『광야』와 더불어 의인법을 써서 성공한 대표적인 시다. 그밖에도 시 속에 부분적으로 의인법이 씌어진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이상의 시에서     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 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 나는우리집내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 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滅해간다. 食口야封한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 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鍼처럼月光이묻었다. 우리집이앓나보다. 그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 壽命을헐어서典當잡히나보다. 나는그냥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여달렸다. 門을열려고안열리는門을열려고   이상     라고 한 것은 띄어쓰기를 전혀 안한 시로 '밤이 사나운 꾸지람으로 나를 졸른다'라든지 '우리 집이 앓나보다' 등은 곧 의인법으로 수식되어 있는 시구이다 다음의 시도 활유법을 적절히 구사하고 있다.     먹구름이  몰고온 여름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판으로 모여 든다. 할아버지 수염을 달고 익어가는 옥수수가 치마폭에 감싸여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알맹이 하나 하나에 이쁘디 이쁜 개구장이 꼬마들이 웃음소리가 가득차 있다. 신나는 것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멋진 노래가 되어 입안 가득히 살아져 내리는 것이다. 여름이 오면 멋진 하모니카를 신나게 불고 싶어진다.   용혜원     '이야기들' '옥수수'를 의인화하여, 동심에 어린 생활의 서정이 옥수수에 이입되어 해학미를 더하고 있다.      □ 인유(引喩, allusion) 인유라는 것은 고대의 신화, 전설이라든지 고전, 역사, 성서, 고사 등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 스토리, 시구 등을 인용하여 쓰는 비유를 말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이 인유는 널리 씌어진 표현법으로서 동양에서 고대 중국의 문헌이라든지 서양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 및 성경 등은 시와 산문을 통털어서 널리 사용되어 왔다.     껍데기는 가라. 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漢拏에서 白頭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위 시 중 첫 연의 '4월'은 4 19학생혁명을 비유한 것이고, 둘째 연의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은 민중의 자각이 봉기했던 동학혁명의 함성을 뜻하며, 세째 연의 '아사달 아사녀'는 신라 시대에 불국사의 무영탑을 조각하느라고 비연을 감수한 석수와 그 아내를 두고 말한 인유이고, '한라에서 백두'는 한반도 3천리강산을, '쇠붙이'는 모든 무기를 말한 대유이다. 신동엽은 특히『진달래 산천』을 노래하고, 평화를 추구한 레지스탕스 시인이었다. ------------------------------------------------------------   17. 바다를 본다 / 이생진                     --------------------------------------------------------------   18. 술에 취한 바다 / 이생진                      
924    詩작법 걀걀걀... 댓글:  조회:4509  추천:0  2016-01-09
□ 상징과 은유의 차이점   은유는 두 대상간의 유사성을 통한 유추적 결합을 추구하는 데 반하여 상징은 상관성이 먼 상징어를 연결함으로써 의미가 확대, 심화되는 언어 사용의 방법이다.      □ 비유와 상징의 차이   비유와 상징은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비유는 그 구조가 아무리 복잡한 것일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원관념에 해당하는 뜻의 파악이 가능하나, 상징은 원칙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비유가 원관념과 보조관념간에 1:1의 대응 관계를 지니지만 상징은 보조 관념이 여러 가지 원관념으로 쓰일 수 있는 다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솜이불을 덮고 선 겨울 나무'라는 표현에서 솜이불의 원관념은 '눈[雪]'이 분명하므로 이것은 비유적 표현이다.   하지만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의 '님'은 연인이나 조국에 한정되지 않고 여러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 상징    ① 암시적, 다의적이다    ② 한 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③ 상징 의미가 상징 뒤에 숨어 있다.      □ 은유    ① 비교, 유추적이다.    ② 한 편의 작품에서 1회적으로 나타난다.    ③ 원관념과 보조 관념의 관계가 명확하다.      □ 직유   직유와 은유의 차이는 비유의 효과적인 차이이다. 따라서, 시밀리가 축적된 것이 메타퍼이고, 그와 반대로 메타퍼가 부연된 것이 시밀리라고 말할 수 있다. 시밀리가 두 사물을 직접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메타퍼는 두 사물중 하나를 다른 것과 순간적으로 동일시하거나, 한 사물을 통해서 말하거나 하는 것이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변영로     이 시는 전적으로 직유에 의하여 이루어진 시로서 분노와 종교, 정열과 사랑, 강낭콩 꽃과 푸른 물결, 양귀비 꽃과 붉은 마음 등이 모두 유사한 것으로 비교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는 매우 쉽고 독자들이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경우지만, 현대의 어려운 시에서는 원관념과 보조 관념의 관계가 불분명하고 비논리적 이어서 어리둥절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너무 작위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비유는 기발은 할지언정 결코 좋은 비유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갑시다. 그대와 나는 저녁이 하늘을 향해 퍼져가고 있으니 마치 수술대 위에 마취된 환자처럼.   T.S.Eliot     여기에서는 저녁과 마취된 환자를 비교하고 있는 직유의 기법을 쓰고 있지만, 저녁(evening)과 환자(patient)가 어떻게 해서 유사성을 지니는지 독자들은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저녁의 어두움이 퍼져가고 있는 모습은 곧 마취되어 몽롱해지는 환자의 의식과 비슷함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엘리어트가 쓴 비유의 참뜻을 이해하게 된다. 현대시의 이미지나 비유가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직유는 그 형태에 따라서 단일직유(simple simile)와 확충직유(enlarged simile or expanded simile)의 둘로 나누는데,  - 전자는 단어 사이의 비교이고  - 후자는 문장이나 구절 사이의 비교이다. 앞에 인용한 『논개』에서 씌여진 비유라든지 서정주의 『문둥이』에는 단일 직유가 나타나 있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     특히 '꽃처럼 붉은 울음'은 공감각적 이미지가 나타난 직유로서 매우 독창적이다.   다음의 영랑시는 확충직유의 한 예이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르는 부끄럼 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김영랑      □ 은유   은유의 구조적 특질은 다음과 같다.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한 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 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커질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 펼치며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아.   박두진     이 시에서 시인이 표현하고자 한 원관념은 꽃이다. 그 꽃은 여러가지 다양한 사물에 바로 맺어져 있다. 그리하여 시적인 긴장을 고조시킴과 동시에 의미의 함축성도 높여주고 있다. 원관념인 꽃은 모호하고 불확실한 꽃의 개념이지만, 이것이 '속삭임', '울음', '피흘림', '핏방울', '정적', '호심' 등 상대적으로 구체적이고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여러 개의 보조관념과 동일성을 근거로 결합되어져 있다. 그러나, 꽃과 이상의 보조관념들은 내부 관계의 공통성의 불일치를 가져와 정적 은유를 형성한다. 未堂시의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처럼 외형상의 유사나 동일성보다는 정신적이고 정서적이며 가치적인 동일성이다. 이렇게 시에 있어서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동일성이 희박할수록 좋은 시가 된다.   현대시는 두 사물 사이의 유사성이 없이 이질적인 사물과 결합시키는 경향이 더욱 시의 성과를 얻는다. 현대시의 특징이 바로 은유의 독창적인 사용에 있음을 생각할 때 시에 있어서 은유의 비중은 크다.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여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먼 곳의 여인의 옷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김광균     이 시에서 눈은 '그리운 소식' '여인의 옷벗는 소리' '추억의 조각' 등으로 정적인 은유가 된다.     은행나무 그늘엔 노오란 音符들이 떨어진다. 은행 잎파리들에다 내 귀여운 語彙들을 적어 본다 적어 놓은 어휘들은 제법 노오란 발음을 한다.   양명문     원관념 은행잎은 보조관념인 '노오란 音符'로, '제법 노오란 발음'은 공감각으로 표현되어 복합은유(mixed metaphor)로 구성되어 있다.   ----------------------------------------   15. 야채사(野菜史) / 김경미                                                  -------------------------------------   16. 이기적인 슬픔들을 위하여 /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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