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돌은 두부모만한 공연 자료라도 쓴데다가 성환 형님이 힘써 준 덕에 문화관으로부터 다시 신문사로 옮겨갔다. 지방기관지는 아니지만 소보 치고는 그래도 영향력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교원사업을 하면서도 계속 보도기사를 썼기에 그는 인차 신문사 기자 생활과 업무에 적응됐다.
그는 요즘 아버지가 자꾸 편찮아서 돼지고기랑 소고기랑 물고기랑 남새랑 한 꾸럭 사서 자전거에 달고 집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됐다. 그는 부모를 잘 모시자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려던 이상도 꺾고 세상에 얽매여 살았는데 기자로 되려는 이상은 실현했지만 부모도 제대로 모시지 못해 속이 적이 걸렸다.
덕돌은 집에 가서 아버지의 더부룩한 수염을 빡빡 말끔히 깎아드렸다.
그때 상순은 고향 명천을 자꾸 외웠다.
“우리 고향 명천에는 바위도 많고 수림도 많았지. 수무살 때 네 어미와 함께 고향에 갔을 때 우리 살던 고향마을 운주동은 없어지고 수림이 무성하더라. 일본 놈들 때 소잔등 같은 바위 돌 틈에 재를 펴놓고 구멍을 내 보리라도 심어 먹던 돌밭에마저 나무를 심으라고 강박했지. 그래서 우린 17대 채 대대로 태를 묻어온 정든 고향을 떠나 풍설이 이는 날에 가마를 빼 메고 누더기를 보에 싸 이고 지고 두만강을 건너 이 만주로 왔다. 공산당 덕분에 이 땅에서 황무지를 개간해 밭을 만들고 밥을 배불리 먹고 살게 됐다. 지금도 눈을 스르르 감으면 고향 마을 뒷산에 그 바위돌이 들어 누운 돌밭이 생각나고 선산에 묻힌 조상들의 산소가 삼삼히 떠오른다. 내 약 담배 장사를 할 때 울고 넘던 고향 명천의 박달령 고개 길이 보이는듯하고 강도들과 싸우던 수림도 보이는 듯하구나. 구름이 흐르는 박달령이랑 치마봉이랑 기운봉이랑 장군봉이랑 눈앞에 선하다."
"지금 조선에서는 명천의 그 산을 칠보산이라고 부른답디다."
덕돌의 말에 상순은 한숨을 땅이 꺼지에 내쉬었다.
"그러데? 이젠 육신을 쓰지 못하게 됐으니 고향으로 다 돌아갔구나. 이전에 삼도만 토비를 숙청하는 전투 때만 해도 난 스물여섯 살이랬지. 그때만 해도 기관총에 쌀과 이불 짐 해서 백 근도 넘어 지고 메고서도 한 미터 넘는 전호를 훌쩍훌쩍 뛰어 넘었지. 세월이라는 게 무섭구나.”
덕돌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위안해 드렸다.
“아버지, 이제 병을 잘 치료한 후 병마를 훌훌 털고 일어나십시오. 그때 꼭 저와 함께 고향에 돌아가 봅시다. 명천 고향 해변 가에 가서 고향의 명태도 구워 자시고 미역국도 끓여 잡숩시다. 치마봉과 기운봉도 구경합시다.”
“고향 문이 열리지 않았는데 갈 수 있겠니? 소문에 라진하구 선봉, 칠보산에는 갈수 있다더구나. 아마 옛날의 웅진이 아니겠는지 모르겠다.”
그때 명옥도 고향을 그리며 말했다.
“우리 고향에는 이전에 운주하 강변 버드나무 숲속에 버들버섯과 딸기가 많았다. 비 온 뒤면 나와 작은고모 계순이랑 할머니를 따라 나가서 버드나무 밑에 새하얗게 돋아난 버들버섯을 캐왔지. 버드나무 숲에는 또 빨간 딸기가 다닥다닥 열렸지. 우린 배고플 때 강변에 가서 딸기를 뜯어먹고 기운봉 기슭에 가서 바위 돌에서 돌버섯도 칼로 긁어내고 도토리랑 뜯어 가져다 먹었지.”
명옥은 원래 말을 참 구수하게 해 운선과 명숙도 귀가 솔깃해 들었다.
“우리 고향 해변 가에는 항상 집채 같은 파도가 하얀 백사장을 툭 치고 나가군 했지. 우린 할머니를 따라 해변 가에 가서 모래에 깊숙한 구덩이를 파놓고 기다렸다. 파도가 치면서 바닷물이 덮쳐 왔다가 나갈 때 어떤 고등어는 물구덩이에서 미처 바다로 빠져나가지 못해 모래구덩이에서 펄떡펄떡 뛰지. 그때 우린 구덩이에서 고등어나 명태를 붙잡아 불을 피워놓고 구워 먹었지. 우리 명천 바다에는 물고기가 많았지. 명태의 고향이라니깐. 옛날 명천의 한 어부가 물고기를 잡아서 왕궁에 바쳤단다. 임금은 그 고기를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 명천에서 난 그 물고기를 명태란 이름을 지어주었단다.”
“오~ 그럼 명태는 아버지와 엄마 고향 명천의 특산물이구먼.”
“그래. 명태를 먹을 때면 우린 고향 생각을 하군 한다.”
덕돌은 아버지가 자꾸 고향을 외우는 것을 보고 별로 쓸쓸한 예감이 들었다. 가고 싶어도 가 볼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아버지의 깊고 깊은 향토애는 덕돌을 안타깝고 서글프게 만들기만 했다.
그는 명숙과 토론하고 그날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자기 새 집으로 모셔 가 치료하기로 했다. 명숙은 전화로 이모사촌동생 경철을 불러 자동차를 몰고 함흥 촌에 달려왔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시아버지를 자동차에 모시고 시내로 달려갔다.
장대 같은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그래도 그들의 효성의 앞길은 막지 못했다. 운전석 뒷좌석에서 혼미가 온 아버지를 부축하는 덕돌은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껴 울었다.
(어쩜 그렇게 날래고 힘도 세던 아버지가 이런 몹쓸 병에 걸렸단 말인가?)
상순을 모셔간 그날부터 하나 밖에 없는 아들과 며느리는 정성을 다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새로 든 벽돌집 윗방에 모시고 살뜰히 보살피고 효성을 다해 모시였다. 명숙은 병원에 출근하면서 용하다는 교수와 말하고 좋다는 약을 여러 가지를 탄 링겔주사를 시아버지께 놓아드렸다. 덕돌은 신문사에 출근했다가도 중간에 집에 돌아와 아버지 대소변을 받아내고 명숙을 도와 똥 묻은 빨래를 씻었다. 후에는 세탁기를 사서 씻으니 훨씬 편리했다.
상순은 한 달 동안 며느리의 지극정성으로 치료한 덕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좀 걸을 수 있게 됐다. 그러자 함흥 촌으로 돌아가겠다고 고집했다.
덕돌과 명숙은 이구동성으로 “이젠 일신을 쓰기 불편한데 윗방에 계십시오. 우리한테도 효성을 할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했다.
허나 상순은 기어이 함흥촌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아버지, 고향 인심이 그렇게 각박한데 뭘 보고 돌아가렵니까?”
“그러니까 내가 더욱 돌아가야 한다. 난 죽어서라도 우리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아버지가 개척한 우리 두번째 고향을 지키련다. 난 일곱 살에 고향을 떠나 두만강을 건너 와서 60여년을 함흥 촌을 개척해왔다. 내 한뉘 피땀이 고인 함흥 촌을 두고 시내에 와서 뭘 한단 말이냐?”
덕돌은 그래도 아버지를 말렸다.
“아버지 심정은 이해됩니다. 그럼 여기 사시다가도 함흥촌이 보고 싶을 때 드문드문 모시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건 달라. 난 내 눈으로 날마다 변해가고 있는 마을을 지켜 볼 것이다. 비뚤어진 시비와 삭막해가는 인심을 바로 잡고 싶다. 덕돌아, 부탁할 게 있다.”
“뭔데요?”
상순은 아주 흥분돼 있었다.
“네가 날 함흥 촌에 데려다 달라. 함흥촌에 가서 말해주마.”
상순은 며느리 이모사촌오빠 현철이 모는 찌프에 앉아 함흥 촌으로 가면서 덕돌에게 물었다.
“조선에 나간 동선은 어째 오지 못한다니? 그 애들이 오지 못하면 네라도 가보아라. 살기 힘들다는데 좀 도와주렴.”
아버지의 눈귀에 이슬이 맺힌 것을 보고 덕돌은 아버지가 조카를 그리는 진한 그리움을 읽었다.
“아버지, 이제 한번 회룡에 나가 형님을 만나 보겠습니다.”
“그래, 참말 장하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조카야. 내 이 세상에 없어도 너희들은 영원히 친형제처럼 보내야 한다. 물론 국경선이 가로 막혀 불편할지라도 혈육의 정이야 어찌 잊을 수 있느냐?”
“예. 명심하겠습니다.”
덕돌은 자기 집에 부모를 모시지 못하고 시골 고향 마을에 보내는 것에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더구나 멀지 않은 앞날에도 조카를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눈물겨웠다.
고향 마을에 들어서자 덕돌의 마음은 더욱더 비길 데 없이 아려났다. 옛날 담배창고 자리에 30평방미터 되나마나하게 막은 칸에 둘째 매형 경만과 함께 구들을 놓은 초가집에 부모를 모시고 간 아들과 며느리는 마을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그때 병진이 우멍눈을 흘기었다.
“허허허. 아들이 대학을 졸업해도 초가집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구먼. 우리 아들은 나를 벽돌집에 모시는데.”
그러자 철주도 저 아비와 맞장구를 쳤다.
“대학을 졸업시켜 뭘 하오? 농부보다도 부모를 잘 모시지 못하는데. 허허허.”
허나 덕돌은 못 들은 척 할 수밖에 없었다.
놀라운 것은 담배창고자리 앞마당까지 지괴호가 돌담과 벽돌담을 두 키도 넘게 쌓고 있는 것이었다.
덕돌은 창고자리 벽을 바르면서 지괴호를 보고 물었다.
"넌 패용천마을에서 살면서 우리 마을에다 왜 토성을 쌓니?”
지괴호는 커다란 돌로 담 기초를 쌓으면서 코웃음을 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상순이 덕돌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 말했다.
“듣는 말에 의하면 이전에 경주랑 함께 달아난 장리국이 끝내 대만으로 달아났단다. 그 놈 새끼는 대만에 가서 한자리 하는 모양이더라. 장리국은 지괴호에게 돈을 엄청 보내 우리 마을을 몽땅 사라고 했단다. 게다가 지학사네 일본 첩년 야마꼬라던가. 그 일본 첩년이 낳은 지학사의 배다른 아들이 제 에미 부탁대로 지괴호를 형이라고 숱한 일본 돈을 부쳐보냈단다.저걸 봐라. 지괴호는 그 돈으로 우리 마을 조선족들 집을 사서 허물고 새 지주 울안을 만들고 있단다. 토성 안 대대 사무실 자리도 사서 딱 옛날 토성대로 올리 쌓고 토성안집에 들어가 우릴 보란듯이 산단다. 고의로 대대 사무실을 빼앗아내고 뭐라는지 아니? 대대 사무실은 원래 옛날 자기 아버지가 함흥촌 촌장을 할 때 들었던 집이란다. 그래서 기어이 사서 찾아 자기가 들어 산다고 한다. 이게 돈으로 복벽하는 게 아니고 뭐냐? 그 뿐인줄 아니? 저 지괴호는 고의로 이 마을에 기어들어 조선족들이 살던 집을 하나, 하나 사서 허물고 저렇게 커다란 토성을 쌓고 있다.”
상순은 격분해 숨을 바삐 몰아쉬다가 숨을 돌려 다시 뒤말을 이었다.
“장미련은 더 한심하다. 대만으로 달아난 장리국이 보낸 돈으로 함흥중학교 자리를 사서 너네 공부하던 숱한 교실에 돼지와 소를 기르고 있다. 이제 토함산이 용천의 종가집 유산을 계승하는 날이면 미련은 우리 마을을 통째로 사자고 하지 않겠는지 모른다. 미련은 재산상속을 하려고 토함산을 데리고 요즘 한국으로 갔다. 듣는 말에 의하면 용천 대장의 동생이 있는데 아들이 없어 유산을 대부분 토함산에게 주겠다고 한단다. 그래서 미련은 용천이네 경주 김씨 종친회로부터 초청장을 받아 토함산을 데리고 한국으로 갔다. 옛날 지주네 자제들은 목적 있고 의도 있게 우리 조선족 마을과 학교를 점령하고 있다. 이전에 계급투쟁을 할 때 얻어맞은 원한을 내놓고 풀지 못하니 돈으로 우리 마을 땅과 집을 사들이는 걸로 보복하고 있다. 얼마나 격분할 일이냐?”
덕돌은 그저 개탄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쳇, 일본 놈들이 2차 대전 때 전투기로 싸워서는 하와이를 점령하지 못하고 돈으로 사서 4분의 3이나 점령했다더니. 심통하구먼. 진짜 그 놈들이 옛날의 꿈을 꾸고 있구먼. 쯧쯧쯧.”
이튿날 상순은 힘을 내 겨우 걸으면서도 낫을 찾아들고 덕돌에게 삽을 메워 데리고 뒷산 쪽으로 갔다. 덕돌은 아버지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상들의 산소로 간다는 것을 짐작했다.
상순은 맥이 없고 숨이 차 별로 가파르지도 않은 뒷산을 몇 번이고 쉬면서 올라갔다. 옆에서 덕돌이 부축해서야 겨우 뒷산에 오른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산 아래 함흥 촌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하~ 우리 마을이 어떻게 돼 저렇게 황폐해 가는지 모르겠다. 참 마음이 아프다. 학교는 무너지고 조선족들은 우리가 황무지를 애나게 일궈 피땀으로 걸군 밭을 버리고 한국으로, 시내로 다 달아났다. 그러다나니 한족지주들의 자녀들이 우리 마을을 몽땅 먹어치우고 밭을 차지했다. 저 장미란이랑 지괴호랑 숱한 밭을 사들였다. 말로는 양도받았다지만 숱한 밭을 사들여서 조선족농사군들을 고용해 농사를 짓는다. 진짜 신판 지주 같다. 이전에는 머슴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삯전을 주고 머슴이 아닌 머슴을 수태 쓰면서 지주 질을 한다. 요즘 저 지괴호랑 장미란이랑 합작해서 무슨 농업합작사를 꾸린단다. 신판 지주 장원을 꾸리는 게지 뭐야? 흥! 참 모를 일이다.”
상순은 덕돌을 데리고 아버지 산소 앞으로 다가갔다. 쓸쓸한 묘지 주위에는 한 키씩이나 되는 쑥대가 자라나 있어 더욱 처량했다.
상순은 낫으로 쑥대를 베고 덕돌은 삽으로 흙을 퍼 올렸다.
우르릉, 우르르릉.
불시에 고개 넘어 저쪽에서 트랙터 엔진 소리가 울렸다. 영길에 나타난 트랙터를 보니 지괴호가 운전석에 앉아 다가왔다. 트랙터 위에는 숱한 한족 농사꾼들이 실려 있었다.
트랙터가 산소 옆에 턱 멈춰 섰다.
애비를 닮은 지괴호가 삐죽한 개턱을 쳐들고 비웃음이 가득 찬 우멍눈을 부라리며 장갑을 벗어 탁탁 털면서 빈정거렸다.
“어우, 김 서기 어르신님, 안녕하십니까? 눈이 있어도 태산을 알아보지 못해 미안합네다. 헤헤헤.”
상순은 거들떠도 보지도 않았다.
“아무리 바빠도 어찌 천하를 호령하던 김 서기를 못 본체 하고 그저 지나가겠습니까?”
덕돌의 눈길이 곱지 않은 것을 보면서 지괴호는 조심스레 상순한테 다가서면서 횡설수설 지껄였다.
“사람이 늙는 건 별 수 없구먼. 우리 마을을 쥐락펴락하던 김 대머리도 이젠 함흥촌 광범한 사원들을 다 잃어버려서 얼마나 쪽쪽하겠습니까? 허나 나를 보십시오. 옛날 김 서기 영도하던 사원들이 이젠 다 내 말을 듣습니다. 무슨 지주 아들이고 뭐고 잘 사는 게 영웅이지. 옛날 김 서기랑 혁명을 한답시고 토지개혁 때 우리 집 밭을 몽땅 빼앗아 빈농들에게 나눠줬지. 건데 우리 집 밭을 몽땅 사서 내 걸로 만들었습니다. 나는 옛날 우리 아버지 때 지은 집보다 더 크고 더 멋있는 고래등 같은 벽돌집을 짓고 김 서기 보란 듯이 삽니다. 어떻습니까?”
상순은 그제야 지괴호의 심보를 알 것 같았다. 며칠 전에 그가 창고 앞에 있는 옛날 자기 집 자리를 사려고 하자 기어이 비싼 값으로 사버리지 않았는가.
“그래 나와 기 싸움을 할 예산이냐? 넌 친일주구 촌장놈의 새끼야!”
상순은 지괴호를 무섭게 쏘아보았다.
그러자 지괴호는 능글거리며 두 손을 높이 추겨들었다.
“투항, 투항! 지금도 지주를 타도하고 재산을 청산해 빈농들에게 나눠주는 토지개혁 땐가 하오? 지금은 경제시대라던가? 아, 시장경제시대지. 참 좋은 세월이 왔지. 허허허. 계급투쟁시대가 아니오. 나와 미련은 장리국 동생 덕에 대만, 향항, 오문 연합회에 들 거요. 세상에서 대만동포를 지지하는데 내가 왜 정부를 옹호하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한뉘 혁명을 해봤자 김 서기는 어쩜 늘그막에 그럴듯한 집도 없습니까? 지금은 자기 능력에 따라 돈을 버는 세월이니까. 이제야 우리 지씨가 앞선 경제 의식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흥!”
그는 트랙터 쪽으로 가서 핸들을 잡고 툭툭 치며 연설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머리가 좋아 경제 의식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땅의 주인, 아니 지주로 된 게 아닙니까? 김 서기? 아니오? 허허허. 안녕히!”
이때 덕돌이 삽으로 흙을 푹 퍼서 트랙터 위에 높이 올라앉은 지괴호의 여우상에 탁 쳤다.
“친일주구 개놈새끼! 우쭐거렸다간 뼈대를 분질러 놓겠다.”
질겁한 지괴호는 트랙터를 몰고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며 달아났다.
“참 이해되지 않는다. 저런 새끼들이 우쭐거리니.”
덕돌은 아버지를 위로하면서 설명해주었다.
“계급투쟁을 기본 고리로 하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지금 경제건설을 중심공작으로 삼아 번영하고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려면 이전의 원한을 잊고 일체 단결할 수 있는 역량을 다 단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주들의 모자를 벗겨준 겁니다.”
허나 상순은 풀을 베면서 거친 숨을 씩씩 톱아 올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총까지 쥐고 덤벼들던 놈들을 어찌 용서한단 말이냐? 장리국은 분명 나라를 배반하고 국민당이 득실거리는 대만으로 도망한 도주범이야. 미란이나 지괴호 같은 새끼들이 돈이 있다고 정협에 들어가 우쭐거리게 해선 안 돼.”
덕돌은 아버지를 위안해 드렸다.
“아버지, 미란이나 지괴호 헛소릴 믿지 마십시오. 그 놈이 아무리 돈이 있다고 해도 정협 위원으로 되는가 보십시오. 정부가 눈이 멀었다고 그런 역사문제 있는 무식쟁이 놈을 정협 위원으로 쓰겠습니까? 꼭 엄격히 위원자격을 심사할 겁니다.”
“글쎄 그럼 그렇겠지.”
상순은 풀을 다 베자 허리를 펴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 개놈새끼 기를 채우는 바람에 할 말을 잊을 번했다.”
덕돌도 삽을 놓고 아버지를 따라 할아버지 산소에 절을 올리고 곡을 했다.
뒤이어 상순은 덕돌을 데리고 아버지 산소 뒤쪽으로 300미터 떨어진 둔덕에 있는 어머니 산소로 갔다. 딱 예전에 하듯이 그는 덕돌을 데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산소를 찾아갔다.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지금 우리 조선민족 전통이 다 깨졌다. 산소를 아무 때나 다치지 말아야 한다는 건 다 게으른 놈들의 개소리다. 자기 조상들의 산소로 아무 때나 찾아보면 어떠냐? 귀신이 물어 간다니? 자식들이 부모를 찾아 뵙는데 무슨 시간표가 따로 있니?”
상순은 할머니 산소 북쪽으로 10미터도 되나마나한 둔덕아래 양지바른 곳으로 스적스적 걸어갔다. 뒤이어 그는 덕돌의 손에서 삽을 받아 쥐더니 너럭바위 옆을 파는 것이었다. 허나 잔디와 쑥대가 뒤엉켜 삽질이 잘 되지 않았다.
“제가 팝시다.”
덕돌이 몇 삽 푹푹 파자 상순은 무릎을 꿇고 앉더니 “조심해 파라.”라고 하면 손으로 두루 누런 흙을 파보는 것이었다.
누런 흙속에 거꾸로 파묻은 오지단지가 나졌다.
상순과 덕돌이 조심스레 삽으로 살살 오지단지 옆의 흙을 파내고 손으로 오지단지를 꺼냈다.
상순은 오지단지 옆에 묻은 누런 흙을 손으로 쓱쓱 씻어버리고 꽉 동인 기름종이를 조심스레 뜯어냈다. 오지단지 안에서 기름종이로 싼 누런 책 세권이나 나왔다.
“이게 뭡니까?”
“다행이다. 우리 집안 족보가 살아남았구나.”
“예? 족보입니까?”
“응. 그래. 우리 집에 건 문화혁명 때 태우고 큰집에 걸 상길 형님을 보고 잘 건사하라고 했던 거다. 이걸 내가 철봉을 보고 달라고 해서 여기다 파묻어 뒀다. 썩지 않고 남았구나.”
상순은 족보를 어루만지더니 덕돌에게 두 손으로 넘겨주었다.
“잘 건사해라. 조상들이 2천년이나 대대로 내리 보관한 대물림 보배 족보이다. 넌 대학문을 나왔으니 한자를 잘 알지 않니? 이담 시간이 있으면 잘 읽어보고 조선어로 번역해 책을 찍어라. 네 대에서 자손들을 이 책에 계속 적지 않으면 우리 집안 역사가 대를 잇지 못하고 끝나는 거야. 우리 자손들이 자기 조상들이 누군지도 몰라서야 되겠니? 족보가 있어도 대체 자기는 어느 분의 자손인지도 볼 줄 몰라.”
상순은 직접 덕돌에게 족보를 보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덕돌이 여겨 보니 자기는 알지의 후손이고 천년 신라를 통치한 경주 김 씨의 후손이었다. 놀라운 것은 자기는 경순대왕의 후손이었다.
시조 알지로부터 경순대왕까지 29대나 왕 아니면 각한이 아니었겠는가.
“오, 그래 내가 왕의 후손이란 말입니까?”
“그래, 이전에 형내가 하는 말이 우리 가문이 왕의 후손이라고 하더라.”
덕돌은 누렇게 색 바랜 족보를 들고 보며 가슴이 높뛰면서 부풀어 올랐다.
뒤이어 상순은 덕돌에게 족보를 파낸 자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여긴 옛날 사람들이 부처님과 하느님께 빌던 상공단 자리다. 진짜 명당자리지. 내가 죽으면 될 수 있으면 여기다 묻어 달라. 난 여기 묻혀서 저 아래 우리 마을과 이 뒷산에 묻힌 조상들과 부모의 산소를 지키겠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잘 사는 모습과 앞날을 지켜보겠다. 저쪽 천지꽃산 중턱에는 네 증조부 산소가 있다. 내 걷지 못해 너를 데리고 가지는 못하지만 네가 잘 모셔라.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상순은 숨이 차 좀 쉬어 뒷말을 이었다.
“내 조부모와 부모, 나까지 모두 일본 놈들의 핍박에 못 이겨 조선의 정든 고향을 떠나 이 땅에 들어와 두 번째 고향 함흥 촌을 개척했다. 모두 고향을 그리다가 돌아가지도 못하고 여기서 눈을 감았다. 우리 조손 3대가 살아온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산 역사다. 넌 조상들 산소를 잘 모셔라. 그게 우리 집안의 역사를 존중하고 민족의 역사를 존중하는 거야. 조상들이 살아온 역사와 지혜를 대대로 전해야 자손들도 잘 된다. 나라와 민족에게 역사전통이 있어야 하고 한 집안도 역사전통을 세워야 한다. 그게 바로 집안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고 나라를 구하는 정신기둥이 될 수 있는 거다. 알만하니?”
덕돌은 의미심장한 아버지 말을 들으면서 눈물을 머금고 조부모의 산소와 저 골짜기 건너 천지꽃산 중턱의 증조부 산소 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는 백세를 넘어 앉을 수 있습니다. 이제 운선의 어미와 제가 좋은 약을 가져다 대접하겠습니다.”
허나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갈 사람은 가게 됐다. 내가 가더라도 기회가 있으면 조선의 내 고향 명천에 꼭 가봐라. 될 수 있으면 조선 함흥에 있는 동선이랑 만나봐라. 너희들 둘 다 친형제가 없지 않니? 사촌형님 동선과 친형제처럼 지내라. 이담 운선이가 큰 다음 동선의 애들과도 친형제처럼 지내라.”
아버지가 너무 비장하게 말씀해 덕돌은 저도 몰래 눈물이 글썽해졌다. 그는 족보를 담은 오지단지를 품에 안고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며 고향을 두고 착잡한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전번에 고향에 돌아왔을 때 촌 회계가 불러 가보니 촌장부에 부모가 빚 500원을 지고 있지 않겠는가.
(아버지는 한뉘 촌과 촌민들을 위해 대공무사하게 고생했는데 마지막엔 빚만 남지 않았는가. 참 억이 막힌 일이다.)
상순은 그 일을 알고 결연히 말했다.
"얘야, 이 헌 집을 팔아서라도 촌 빚을 갚아라. 공산당원인 난 집체에 미안하게 빚을 지고 북망산에 갈 순 없다."
"알았습구마."
며칠 후 덕돌은 아버지한테 오는 로군관 무휼금(영장 무휼금)에서 남은 돈과 자기 돈으로 빚을 다 갚았다. 그제야 상순은 시름을 놓은 듯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상순은 그렇게 청렴하고 철저하고 대공무사한 보통공산당원이었다. 그는 당시 자기에게 내려오는 로군인, 로군관 무휼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왜 그럽니까?"
민정일군이 묻자 상순은 이렇게 대답했다.
"난 무휼금을 타려고 참군한게 아니오. 내가 뭘 했다고 무휼금을 다 주오? 우리 마을 옥선이 오빠, 오병선은 삼도만토비숙청전투에서 나팔수였소. 오병선은 내 눈앞에서 토비 흉탄에 가슴을 맞고 처참하게 희생됐소. 지금도 눈앞에 선하오. 오병선 같은 숱한 렬사들 유가족들이 무휼금도 타지 못하는데 눈을 펀히 뜨고 살아 있는 내가 무슨 리유로 무휼금을 탄단 말이오? 그 무휼금을 의지가지 없는 병선이 부모 같은 렬사유가족들에 주오."
"병선이 부모한테도 국가에서 렬사유가족무휼금을 드립니다. 이건 로군인 무휼금입니다. 국가 규정입니다. 꼭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상순은 무휼금을 타러 가지 않았다. 별수 없어 대신 명옥이 타왔다. 상순은 노발대발하며 되가져가라고 했다. 그러자 명옥은 령감과 토론하고 무휼금을 병선의 부모 등 렬사유가족들한테 나눠주고 나머지로 상순의 병을 치료하기로 했다.
상순은 림종 전까지도 당비를 꼭꼭 냈고 당조직의 기률을 지켰다. 그는 교하 딸집으로 병치료를 가면서도 촌당지부에 청가서를 써냈다. 병치료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는 촌당지부에 청가 맡은 기일이 찼다면서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딸 홍자는 리해되지 않아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버지, 이젠 아버지 촌에서 할 일도 없는데 청가를 맡지 않아도 됩니다. 뭐 직장에 다닌다고 농촌 당원은 청가를 다 맡아야 되는가요?"
"안된다. 농촌 보통당원이라고 조직기률을 지키지 않아서야 되느냐? 그게 보통백성과 다른 점이야."
딸 홍자는 못내 감탄하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아버지한테서 한차례 심각한 당과학습을 하고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아버지 뜻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상순은 딸이 청가서를 써서 우편으로 보내는 걸 보고서야 마지못해 딸집에 눌러 앉아 치료를 계속했다.
상순은 그처럼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도 중국 공산당에 충성했다.
어느 날, 웬 머리 새하얀 로파와 훤칠한 중년사나이를 데리고 상순네 창고집에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김지도원."
로파는 서투른 한어로 인사하면서 허리굽혀 인사했다. 뒤이어 로파는 데리고 온 중년사내를 돌아보면서 일본말로 말했다.
"고노까다와 와디시노 스구호시다.(이 분은 내 구성이다.)"
그러자 그 꺽다리 중년사내는 코를 싸쥐고 두리번거리다가 마지못해 반색하면서 허리굽혀 인사했다.
"곤니찌와(안녕하십니까)?"
뒤이어 로파는 중년사나이를 데리고 구들에 올라왔다. 그 중년사내는 어지러운 구들을 보고 올라오기 싫어 우먹눈을 슴벅이면서 서성거렸다.
"하야꾸!(발리)"
로파는 중년사내를 마구 끌고 상순의 앞에 와 꿇어앉았다. 그녀는 앓아누운 상순의 손을 잡고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한어로 말했다.
"김지도원, 난 김지도원이 삼도만에서 구해준 야마꼬입니다. 그때 김지도원이 저를 구해 일본에 보내주지 않았더라면 이 애도 세상에 태여나기 전에 우리 모자가 다 죽었을 겁니다... 흐흐흑."
그제야 상순은 안간힘을 다해 일어나 앉았다.
"야마꼬? 야마꼬 살아서 일본에 돌아갔댔구나. 살아있어 고맙소. 이 앤 그때 뱃 속 애요?"
야마꼬는 머리를 끄덕였다.
"하이(네). 저의 아들 야마다예요."
야마다는 우먹눈이라던가, 심통히도 지학사를 떼닮지 않았겠는가.
상순은 야마꼬 모자를 보고 감격해 울먹였다. 그는 생강처럼 마른 손을 내밀어 일본 중년사내의 손을 잡았다.
"그래, 그게 45년도 해방날 때였으니까. 이젠 마흔도 썩 넘었겠구나. 얘야, 너희들 모자는 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피해자들이다."
야마꼬가 일본말로 통역해주자 아들애 야마다는 머리를 끄덕였다.
"일본 인민들은 세세대대로 다신 일본 제국주의나 군국주의자들 전쟁의 피해자로 되지 말고 중국 인민과 함께 평화흘 옹호하고 서로 화목하게 살아야 한다."
그때 뒤에 지괴호가 우먹눈을 부라리며 들어섰다.
"하하(엄마), 돌아갑시다. 썩은 내 나는 여길 와 뭘 합니까?"
"빠까모노(바보 같은 놈)! 이 분은 날 구해준 은인이야."
지괴호는 일본 청년을 보고 두덜거렸다.
"쳇, 동생, 이 늙은인 우리 아버질 죽인 원쑤라고나 해라. 엄마하구 동생한테 또 빨갱이물을 먹이자고 그러오."
명옥은 지괴호가 들어서자 좀 경계했다. 그는 바깥에 나가 사위 영만과 서기 숭길을 데려와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바삐 자리를 떴다.
야마꼬는 지괴호를 흘겨보면서 훈계했다.
"네 애비는 우리 모자간의 죄인이야. 이 분이 우리 모자를 구해줫으니 말이지. 토비들과 장학사지주한테 릉욕당하고 자살햇을거야."
"흥!"
지괴호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 늙은이 한평생 공산당 간부 했지만 얻은게 뭐요? 늘그막에 사는게 이게 무슨 꼴이오?"
"닥쳐라!"
야마꼬는 지괴호를 욕하면서 가방에서 상순이 벤 목침만큼 두툼한 걸 꺼냈다.
"내 오늘 우리 모자 구명은인을 벼락부자로 만들테다!"
야마꼬는 말을 마치자 빨간 종이에 싼 걸 상순에게 두 손으로 드렸다.
"받으세요. 5만딸라예요. 이걸로 새 벽돌집도 짓고 가구도 몽땅 새 걸로 갖추세요. 그리고 보모도 고용해 만년을 행복하게 보내세요."
"엄마!"
지괴호는 두툼한 딸라 뭉치를 보고 아까와 마구 구들에 올라와 말리면서 지어 채가려고까지 날뛰었다.
"닥쳐! 이건 은인의 은정을 갚자고 우리 모자간이 모은 거야. 넌 일전한푼 다치지 못해!"
그때 경만과 숭길이 들어섰다.
상순은 깡마른 손으로 딸라뭉치를 스르르 야마꼬 앞에 되밀어주었다.
"이 돈은 받을 수 없소. "
야마꼬는 애원했다.
"아니, 꼭 받아야 해요. 저는 당신의 은정을 갚으려고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찾아왔는데요."
"받읍소."
"받아도 됩구마."
경만과 숭길도 받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상순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성의만은 받겠소. 감사하오. 난 그때 전쟁 피해자 모자를 구해줬을 뿐이오. 절대 대가를 받을 순 없소."
이윽고 상순은 야마꼬를 보고 말했다.
"이 돈을 마련하느라고 홀로 아들애를 데리고 얼마나 고생 많이 했겠소. 가지고 돌아가 가정살림에 보태오. 감사하오."
야마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일본에 귀국한 후 처음엔 나가사끼가 원폭에 날아나서 집도 없이 고생 많았어요. 그러나 지금은 아들이 기업을 잘 꾸려서 이젠 살기 괜찮아요. 근심없이 잘 사는데요. 어서 받으세요."
그러나 상순의 태도는 일관하였다.
"아니, 절대 대가를 받을 수 없소."
야마꼬는 한어를 아직도 제대로 하였다.
"절대 대가 아니죠. 보은인데요. 세상에 이렇게 량심적인 은인을 어찌 늙어서도 이 지경으로 살게 할 수 있겠는가요? 세상이 각박해져 모든 사람들이 다 당신을 포기해도 저만은 당신을, 구명은인을 잊을 수 없어요."
그러나 상순은 기어이 그 딸라뭉치를 받지 않았다. 다만 야마꼬가 사온 일본 과자와 사탕, 그리고 돼지고기만은 받았다.
"우리 당원은 자기 안위나 차례진 리익을 따지는 게 아니라 세상 백성들을 위해 해놓은 일이 뭔가를 따지면서 사오. 나는 세상에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해놓은 일도 없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을 아쉽게 생각할 뿐이오."
야마꼬는 떠나가면서 상순의 손을 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결국 그 딸라뭉치는 지괴호가 채다가 토성안 대대사무실도 사갔고 함흥촌과 조개덕의 숱한 조선족들의 초가집을 사서 허물고 토성을 쌓았던 것이다...
상순은 림종의 시각에 덕돌과 자식들을 곁에 오라고 한 후 나직이 말했다.
" 우리 가족은 일본 놈들의 핍박에 의해 조선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들어왔다.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 나까지 모두 한평생 중국 공산당을 따라 혁명했고 당에 충성했다. 오직 중국 공산당을 믿고 따라 나가야 가난한 백성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너희들도 대대로 중국 공산당에 충성하고 당을 따라 영원히 나가야 한다."
덕돌은 아버지 손을 잡고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상순은 생강처럼 마른 손으로 덕돌의 손을 힘겹게 잡고 신신당부했다.
"덕돌아, 사내대장부가 눈물을 헤프게 흘리지 말라. 너도 하루 빨리 입당해라. 기자니깐 당과 백성들을 위한 글을 많이 써라."
덕돌은 목메여 대답했다.
"아버지, 아버지 말씀 꼭 명심하겠습니다."
상순은 한평생 당에 충성하였으며 "빚을 지고 살아도 시비 지고 못 산다."는 그의 인생좌우명처럼 원칙을 지키면서 당을 따라 백성들을 위해 일하였으며 벼슬을 초개처럼 여기면서 청렴하고 결백하게 살았다. 그는 자기 결백한 삶처럼 티없이 새하얀 상시옷을 입고 조상들의 곁으로 조용히 떠나갔다.
함흥촌 백성들은 항상 집체와 백성들의 리익을 위해 한뉘 자기 직위나 안위, 리익을 돌보지 않고 발벗고 분투해온 대공무사한 코기러기를 잃었다. 마을 사람들은 함흥촌을 건설하려고 아글타글 애쓰던 우수한 보통당원을 잃은 것으로 해 더 없는 슬픔에 잠겼다. 그들은 뜨거운 눈물과 함께 뒷산에 자기들이 존경하는 촌 서기, 생산대 대장을 묻어주었다.
덕돌은 아버지 산소를 보면서 피눈물을 흘렸다. 덕돌은 그런 아버지, 대공무사한 보통당원 아버지를 잃고 목놓아 대성통곡쳤다.
"아, 아버지! 아버진 진짜 하늘땅에 티뜰만치도 미안한 점 없는 량심적인 중국 공산당 당원입니다."
상순은 구천에 묻혀서도 자기가 한뉘 건설하고 일해온 함흥촌을 굽어보고 있었다. 저기 뻘건 벽돌로 지은 대대사무청사, 그의 일가가 대대로 일군 함흥촌 서북쪽 소서구 사래긴 황무지 밭, 저기 마을 서쪽 멍지뫼산 앞 산종논밭, 비새는 함흥학교, 저기 동쪽 조개덕의 벽돌공장, 저기 서쪽 칼산의 과수원을 지키고 있다. 그의 혼은 마을 상공을 날아예면서 마을을 철석처럼 지키고 있다. 그는 염라전에 갔지만 의연히 조선족들의 삶과 앞날을 근심하고 계신다.
... ...
장미련은 계급투쟁 때 투쟁 맞고 가난하게 살던 지주의 딸 같지도 않았다. 대만으로 달아난 둘째오빠 장리국과 한국 경주에 있는 경주의 삼촌들이 숱한 돈을 보내와서 덕돌의 모교인 함흥중학교를 사서 들고 둘레에 덕돌이랑 학생 때 심은 백양나무들을 마구 찍어내고 높다란 토성을 지었다. 그녀는 고향 농민들을 삯 내여 옛날 소서구 어구에 있던 토성보다도 얼마나 높고 둘레 길이가 열배도 되는 농장의 새 벽돌토성을 쌓았다.
덕돌은 장미련이 모교 함흥중학교를 무슨 꼴로 만들었는가 둘러보러 갔다.
농장주 장미련과 아들 김토함산은 한국 경주로 가고 없고 대신 대문 어귀에서 사냥개가 “왕, 왕, 왕!” 요란하게 짖어댔다.
이윽고 고용된 농공이 대문의 자그마한 문을 열고 바깥을 기웃거렸다.
덕돌이 찾아간 연유를 말하자 고용농공이 그를 들여 놓으면서 구경하고 인차 나가라고 각박하게 굴었다.
덕돌은 고용된 농공의 안내 하에 학교 자리를 돌아보았다.
학교 단층 교수청사의 빨갛던 기와는 거멓게 그은 것처럼 돼버렸다.
이전에 애들과 함께 뛰놀던 학교 운동장에는 소를 가득 매놓아 풀을 뜯게 하고 있었다. 소똥이 여기저기 널려 덕돌은 조심조심 발을 옮겨 놓지 않으면 안 됐다.
교수청사 중간에 높이 모셨던, 미술선생이 그린 모택동 주석 초상화는 온데간데없었다. 창문과 문이 너덜거리는 옛날 자기 학급 교실 자리를 들여다보니 교실 벽에 간장물 같은 빗물이 흘러 얼럭덜럭해 꼴불견이었다. 우글거리는 돼지들이 주둥이로 돼지 똥이 물렁거리는 땅바닥을 뒤지고 있었다. 역한 돼지 똥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른 교실 자리를 들여다보니 소똥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황소들이 “음-메” 하고 영각하며 내다보는가 하면 닭이 푸닥닥 풍기어 오르고 거위와 오리가 괙괙 거렸다.
마을에는 조선족 청년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구나 조선족색시와 처녀들은 찾아 볼길이 없었고 골목에서 뛰노는 애들을 구경할 수 없었다. 다만 한족 애들이 뛰노는 것은 드문드문 보였다. 마을에는 덕돌의 둘째매형 경만과 대대 당지부 서기 겸 촌 주임을 하는 숭길을 내놓고는 조선족들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숭길도 한족색시와 살기에 색시가 본가 집 식구들과 떨어져서 살기 싫어하기에 진수해로 잠시 가지 않고 있었다.
조선족들은 모두 진수해로 가지 않으면 자식들을 관내 북경, 천진, 청도, 위해, 연태, 상해, 소주, 항주 일대로 나갔다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은 한국에 나가 일하고 있었고 돈을 벌어가지고 돌아오면 연길이거나 용정, 진수해에 새 집을 사고 살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다나니 마을은 지괴호와 장학산 등 지주 자제들이 조선족 집을 사서 허물고 새로운 장원을 차리고 점령해버렸던 것이다. 일부 조선족들이 시내에서 살기 어려워 마을로 돌아오려고 해도 이젠 집을 지을 손바닥만 한 땅마저 없어 돌아올 길이 전혀 없었다.
덕돌의 둘째누나 은숙이 한국에 나간지 몇 해 돼 매형이 혼자 면내를 자주 먹으면서도 조선족 말동무도 없는 이 쓸쓸한 마을에서 외롭게 살고 있었다. 요즘 둘째딸 주옥이 연길에 내려와 자기 집에서 살자고 자주 졸라대서 경만은 한창 집문에 널장을 대고 대못을 땅땅 치고 있었다.
“정말 한심한 판이구나. 어쩜 내 고향이 이 모양으로 됐단 말인가?”
덕돌의 마음은 아주 쓸쓸하고 무거웠다. 고향을 그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절절한 마음을 읽을수록 그는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어깨가 점점 무거워 지는 것을 심심히 느꼈다…
9. 미로
비단결로 얼굴을 만지는 듯한 부드러운 봄바람이 뒷동산에 봄 아가씨를 모시고 조용히 다가왔다. 화창한 봄날을 맞아 연분홍 진달래꽃과 살구꽃이 활짝 꽃피었다.
덕돌은 설레게 하는 봄빛을 담뿍 받으며 시내 골목길을 걷다가 고독을 몰아내려고 조용한 다방에 들어갔다.
으리으리하게 서양식으로 장식한 다방에서는 은은한 음악이 부드럽게 흐르고 있어 우아한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정다운 밤거리” 노래 흐르고 있지 않는가? 저 노래는 내가 제일 사랑하던 여학생 선화가 부른 노래 아닌가?)
예쁘게 생긴 처녀가 생글 웃음 지으며 다가와 허리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뭘로 시킬까요?”
“원두커피 주오.”
덕돌은 커피와 맥주에 건과를 주문했다.
“예, 알았어요. 잠간 기다려 주세요.”
이윽하여 그 처녀가 원두커피를 갈아가지고 사뿐사뿐 다가왔다.
“맛있게 드세요.”
“가만!”
쟁반을 들고 돌아서던 처녀가 의아해하며 탄력 있는 몸을 되돌리며 생글 웃음 지어보이었다.
“이 집 주인 저 노래 즐기는 모양이죠?”
그제야 처녀는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저 노래는 저의 주인이 처녀시절에 부른 노랜데요.”
“오- 그래요? 유명한 가수였지.”
처녀는 또 의아해했다.
“혹시 우리 주인 알아요?”
“아, 아니, 그저 그렇다는 말이오.”
덕돌은 부담을 줄까봐 손사래를 치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선생님!”
그때 청아한 부름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덕돌은 머리를 들어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선화?”
“선생님, 제가 갓 다방을 차려놓고 인사 늦어 미안해요. 저의 다방에서 이렇게 만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선화는 옛날 빨간 등산복을 입고 문화관에 노래공부하러 다니던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빨간 등산복을 입고 학교에 갔다가 무지한 황승연이 가위로 바지 가랑이를 찢어놓은 후 모욕감을 느껴 초중을 중퇴하고 예술학원 소년성악반에 입학해 노래공부를 했다. 하여 일약 동북 3성 청년가수 노래콩쿠르에서 1등을 따내고 시예술단 가수로 맹활약했다.
선화는 고급양주와 맥주에 안주를 몇 접시 올리게 하고 덕돌의 맞은편에 앉았다.
언제나 생글거리는 쌍까풀눈에 애수에 잠긴 듯 했지만 걀쭉한 얼굴에 가수의 가느다랗고 긴 목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은은한 음악 속에 훤칠하고 풍만한 선화의 몸매를 보는 순간 처음으로 여학생이 아니라 한 처녀와 마주 앉은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 오늘 제가 은사님께 한잔 드리겠어요.”
그녀는 맥주를 찰찰 넘치게 부어 올리고 잔을 들었다.
“선생님은 저한테 가수 꿈을 심어주고 도와주셨지요. 제가 등산복 때문에 곡절을 겪을 때도 저를 동정하고 앞길을 비춰준 등대와 같은 분이었어요. 오늘 제자가 드리는 감정 술을 마음껏 드세요.”
덕돌은 아주 기쁜 마음으로 잔을 기울였다.
선화는 처녀를 불러다가 인사시켰다.
“인사하오. 저를 젤 예뻐해 준 선생님이시오.”
“언니가 항상 외우던 선생님이시군요. 내내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고맙소. 선화한테 여동생이 있었던가? 남동생이 있었잖았소?”
“예, 사촌여동생인데요.”
그날 덕돌은 선화가 권하는 술을 마시면서 그녀의 이왕지사를 들었다. 선화는 시 예술단에서 활약하다가 예술학원 성악학부 성악 강사로 사업하다가 한국으로 갔었다. 후에 한국에서 고향에 돌아와 다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제가 낙후한 고향의 특정된 환경에서 한동안 다방이 잘 되지 않았다. 그녀는 손님들을 위해 어떤 때에는 직접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높은 차원의 서비스를 했다. 그리하여 손님들이 점점 많아졌다…
성호는 집에 돌아와서도 선화를 두고 옛 추억의 돛배를 타고 미끄러져 가다가도 별의별 현실적인 낭만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선화 생각만 나면 다방으로 달려가 선화와 마주 앉아 맥주도 마시고 추억도 마시고 노래감상도 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덕돌과 선화는 사생간의 한계를 넘어 청춘로맨스를 엮어갔다. 그러나 덕돌은 생활의 부렉끼를 밟아야 하겠다고 자책했다.
그는 밤중에 서재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들리지 않는 은은한 음악 속에 감정의 파도를 헤가르고 피아노 건판을 두드리듯 했다. 현광판에는 기막힌 서정수필이 흘러가고 있었다.
미스 화야, 어제날 우리는 네가 제일 좋아하는 해물관에 가서 골뱅이 살도 이쑤시개로 뽁뽁 뽑아 먹으면서 생글방글 싱글방글 즐겼다. 빠알간 포도술잔을 댕 마주치며 가는 눈웃음을 짓는 너의 예쁜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마냥 흥겨웠다. 우리는 찜질방에서 시원히 목욕도 하고 적외선체험실에서 땀을 흘리며 자지러진 쟈즈곡에 맞춰 처녀총각들과 함께 미칠듯이 디스코를 추었지. 서늘한 찜질방의 구들에 나란히 누워 소설 같은 인생살이도 이야기하고 세상 못하는 말이 없이 밤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우리는 이상야릇한 감정에 폭 빠져 다방의 희미한 불빛아래에, 공원의 드높은 밤하늘에 격조 높은 사랑의 서정시를 쓰고 또 썼다. 너는 나를 보고 한번쯤은 취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댔지. 그러나 나는 영원히 너의 스승이라는 것을 지켰다. 그건 아주 힘들게 지킨 영예이다. 또 너의 순결한 마음과 그 옛날의 수양 있는 여학생의 섹시한 모습을 지켜주었고 한 남자의 색시, 한 딸애의 위대한 조선족어머니라는 숭고한 명예와 위신을 지켜주었다. 너는 나를 미워하였을 수도 있다. 나도 몰라, 너는 정한 나를 존경하고 따랐을 수도 있는데 나는 너를 순결하지 못한 마음으로 대한 것이나 아닌지? 네가 나와 더불어 이 밤을 새우고 싶다고 조용히 속삭일 때 혹시 나를 스승이 아니라 남자로 보지나 않았는지? 나는 네가 의연히 옛날 빨간 골덴옷을 입고 글을 지어가지고 찾아오던 그때의 그 천진한 소녀로만 보였다. 너의 처녀작수필이 발표됐을 때 우리는 애들처럼 입이 합박만해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그러나 나는 점차 네가 예쁜 여자로, 섹시한 미스로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러는 내가 미웠고 불쌍하였다. 어데 여자가 없어서 자기 옛 학생을 그러는가고 자기를 책망하기도 하였다. 그러는 내가 두려웠고 스스로 도리머리질을 하면서 “그러면 안되지.” 하고 중얼거리였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을 죽이려고 하여도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런 나를 욕하지 말아 달라. 점차 네가 옛 학생이라기보다도 아주 가까운 여자 친구로 보였고 지어 애인을 하면 어떨가고 망연하게 생각하기도 하였다. 네가 다른 남자와 핸드폰으로 친절히 대화하는 것을 보아도 속이 별스럽더라. 마치 네가 내 색시거나 애인이기나 한듯이 다른 남자와 노는것이 축나는 것처럼 좋지 않더라. 그러나 네가 모든 사내친구들의 요청도 다 뿌리치고 나와 친구들이 노는 노래방에 찾아와서 밤새껏 나와 함께 춤을 추고 노래부를 때 나는 사춘기소년으로 된 나를 볼고 깜짝 놀랐다. 해물관의 유리창문 옆에 너와 마주앉아 빨간 포도주를 마실 때 나는 너를 흐리마리하게 애인으로 착각하기도 하였다. 얼마나 엉뚱하였니? 예쁘고 섹시한 너를 마주 바라보며 음미하면서 한수 또 한수의 사랑의 노래를 엮는 것이 아주 유쾌하였다. 참 우습지? 사내들의 마음이란 왜 이래? 산꼭대기에 부어놓은 물과 같이 산산이 부서져 산기슭으로 내달리지. 어느 때인가는 부서지고 흩어졌던 마음이 한곬으로 흘러 강을 이루고 나중에 저수지로 되고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이겠지. 네가 내 팔을 정겹게 끼고 귀가 간지럽게 어깨너머 파도치는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네온등이 반짝이는 정다운 밤거리를 거닐 때, 시내 제일 동쪽으로부터 서쪽 끝까지 택시도 타지 않고 걸어가면서 웃고 떠들 때, 난 어쩐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였지. 나는 청춘을 되찾은듯이 더운 피가 온몸에서 끓어번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예쁜 미스 화야, 넌 정말 기막히게 귀여운 미스야. 네가 그 쌍까풀 깜장눈으로 나를 정겹게 마주 바라보면서 생글 웃을 때, “선생님”, “우리 선생님” 하고 애교섞인 어조로 나를 부를 때, 나를 마주하고 포도술잔을 마주치고 빨간 립스틱이 진한 작은 입으로 굽을 낸 후 깔깔 웃어대며 못하는 말이 없을 때 나는 온 몸의 세포가 흥분에 떠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너도 알았지? 난 그렇게 훌륭한 아들을 두었건만 딸비위를 얼마나 하였더냐? 그런 나를 동정하던 너를 고맙다고 하여야 할가? 어쩌면 좋을가? 내가 이런 엉뚱한 질문을 건넸던 거 기억나느냐? 넌 만약 너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어떤 남자와 재혼하게 되면 딸애 하나 낳아줄수 있는가? 그때 넌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들었던 포도술잔을 내려놓고 한동안 놀란 표정을 지었더랬지. 나중에 너는 생글 웃으면서 뭐라고 하였더냐? “감정이 깊어지고 행복하면 딸 하나겠어요? 아들까지 하나 척 낳아줄 수도 있지요.” 그 말에 나는 전율하였다. 네가 두렵고 부풀어 오르는 내 마음이 두려워지더라. 너를 자주 만날수록 네앞에서 엉뚱한 꿈도 많아지고 말이 빨라지고 많아지고 혈액순환이 숨이 바쁘게 빨라지고 옴 몸이 해나른해지는 감을 느꼈다. 나는 너와 나를 이길 것 같지 못하였다. 너의 매력에 취해 너를 멍하니 마주 바라볼 때가 많아졌고 언젠가는 네 앞에 맥없이 쓰러질 것 같더라. 나는 너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온 몸과 마음으로 느꼈다. 지어 너를 마구 애인으로, 후처로 만들고도 싶어졌다. 그러는 내가 스스로 참 두려웠다. 하기에 나는 너를 떠나야만 하였다. 만나고 싶어질수록 너를 기어이 떠나야만 하였다. 너를 내 사람으로 만들지 못할 바에야 엉뚱한 마음을 혹독하게 죽이고 또 죽여야 하였다. 마치 콩물이 부글부글 끓어 가마를 넘치려고 할 때면 찬물을 끼얹듯이 말이다. 아니, 콩물이 끓지 못하게 불을 때지도 말고 물을 쳐서 불을 죽여 버려야 하였다. 계속 그대로 끓어 번지면 너와 내가 언제든지 마음을 크게 다칠 것만 같았다.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않는 것은 갈라지기 아쉬워서였다. 혹독한 이별의 아픔을 받아 당할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런 독한 마음을 먹은 나를 너는 몰랐다. 기분이 엉망이 되여 마지막으로 너의 다방을 쓸쓸하고 무거운 심정으로 떠나는 나를 보고 너는 어째 선생님은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하면서 자기가 잘못한 일이 있잖는가고 물었다. 그래, 화야, 누군들 만나기만 하면 좋고 갈라지기만 하면 아쉬운 여자를 떠나야만 할 때 기분이 좋겠느냐? 나는 그런 이별의 아픔이 싫어서 다시는 너를 포함한 미스들을 만나지도 사귀려고도 하지 않는다. 차라리 내 홀로 외롭게 실련 같은 쓸쓸하고 비참한 기분을 안고 한숨 속에서 살더라도 너같은 미스들에게 리별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아무리 섹시한 미스라고 해도 더는 사귀고 싶지 않다. 만남의 기쁨과 즐거움 끝에 언젠가는 눈물어린 리별의 슬픔과 아픔을 맛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미스들에게 환상으로 가슴이 부풀게 하고 싶지 않고 환락 뒤에 외로움의 심연 속에 몰아놓고 살짝 빠져나오기 싫었다. 나는 “빠이빠이!”라는 말을 제일 듣기 싫어한다. 그만큼 이별이 싫고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리라. 아, 리별이란 이다지도 마음이 아픈줄을 몰랐다. 리별의 아픔을 해소하려고 너의 약속대로 택시를 타고 항상 만나던 너의 다방 앞에까지 달려갔다가도 , 택시문고리에 식지를 걸고 열려고 하다가도 마음을 죽이고 그대로 되돌아오군 하였다. 너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전화로 나무랐지만 나는 만나고 싶어도 만나서는 안되었다. 너의 그 정답고 부드러운 전화마저 받지 않으려고 전화번호마저 바꿔버렸다. 그럴수록 이전에 너를 수수한 음식점에 끌고 다니면서 잘 챙겨주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된다. 자주 만나도 싫어지는 사람이 있지만 한평생 다시 만나지 않아도 잊지 못할 미스가 있지 않는가! 너를 오래동안 만나지 않았지만 내 마음속에 항상 날씬하고 예쁘고 섹시하고 수양있고 활발한 미스 네가 있는 것으로 하여 마냥 즐겁고 기쁘다. 너와 함께 엮은 아름다운 추억의 멜로디를 고독하게 홀로 감상하면서 추억 속에 잠겨 사는 것이 행복하고 즐겁기만 하다. 그것이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갈망과 망상으로 엮은 비극적인 사랑의 멜로디라고 하여도 우리의 비할 바 없이 순결하고 아름다운 서정시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떳떳하고 한가슴 뿌듯하다. 미스 화야, 너에게 혹독하고 비참한 이별의 아픔을 준 이 못난 스승을 용서해 달라. 이 못난 스승을 외로운 심연 속에 그냥 놔 달라. 래세가 있다면 근사한 해물관에 예쁘고 섹시한 너를 데리고 가서 빨간 포도술을 마시자. 세속에서 벗어나 낭만적으로 사랑도 해보자.
화야, 한가지 깜빡 잊을 번했구나.
나한테는 연인이 많았어. 첫사랑 은숙, 순희, 그리고 영희, 영자, 봉선, 명숙, 예화가 있어. 난 언젠가 너희들을 한 연회석에 불러 연인파티를 하고 싶다. 생각해봐라. 꽃 같은 연인들로 꽃다발을 엮어 내 목에, 아니 내 온몸에 감고 또 감고 싶구나. 연인 꽃다발을 감고 죽어도 후회 없을 것 같아. 허허허.
연인파티, 상상만 해봐라. 얼마나 환상적이고 황홀하고 낭만적이겠는가!
화야, 한가지 부탁하자. 염치없는 부탁이더라도 꼭 들어 달라. 내 연인들 가운데서 네가 제일 어리지 않니? 내가 죽으면 묘지 위에 내 평생 사랑해온 연인들로 엮은 꽃다발을 얹어 달라. 나는 구천에서도 내가 사랑해온 연인들 꽃다발 속에 누워 연영원히 너희들의 체취를 맡으면서 행복하게 살리라.
이것이 네가 그렇게 따르던 못난 스승의 마음 아픈 고별인사이고 한동안 너로 하여 청춘의 꿈으로 가슴이 부풀었던 나의 페부 속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이다. 아, 좋아하면서도 혹독하게 정을 떼야 하고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말아야 하는 마음의 아픔이 오죽하랴. 그리워도 그리지 말아야 하고 사랑하면서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그 지독한 내 마음의 고통을 그 누가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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