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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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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21)
2018년 08월 02일 09시 27분  조회:1363  추천:0  작성자: 김장혁







                                            40. 강도들의 말로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던 엄동설이 흘러가고 봄이 찾아왔건만 소장사를 한다고 내몽골로 떠난 성호는 소식이 전혀 없었다.
어느 하루 정희는 딸애를 데리고 태평거촌 시집에 왔다. 성호가 떠나간 후 이젠 몇십번 시집에 왔다갔는지 모른다. 시부모도 아들 소식이 없어 속을 태우고 있었다.
“소식이 있소?”
“없어요. 혹시 편지라도 왔는가 해서 왔는데요.”
입이 무거운 상진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 놈이 꼭 살아 돌아오겠지.”
영옥은 눈물을 흘리면서 “살아있기만 했으면 얼마나 좋겠소.” 하고 정희와 손녀를 번갈아보았다.
“꼭 살아 있어요.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죠. 전 그를 믿어요. 꼭 악착스레 살아있을 거예요.”
해지기 전에 정희는 눈물을 훔치면서 시부모와 갈라져 시내로 돌아왔다.
그녀는 실오리만한 희망을 안고 이번에는 시이모부를 찾아가 소식이 있는가 알아보았다.
뜻밖의 소식에 강운룡 과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성호가 잃어지다니? 금시초문인데. 백성지구와 내몽골지구 공안기관에 련계를 달아보지.”
“이모부, 꼭 신랑을 찾아주세요.”
강과장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처조카며느리를 측은히 바라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소식을 기다리오.”
이튿날부터 정희는 사흘이 멀다하게 시집과 강과장한테로 오가면서 혹시 소식이 있는가를 기다렸다.
참말 하루가 삼추 같았다.
며칠 후 정희가 또 공안국에 이모부를 찾아갔을 때다.
“성호 소식이 있소.”
“어디 있대요?”
정희는 굳은 표정을 풀지 못하는 이모부의 입에서 무슨 소식이 전해질가 두렵기만 했다.
강운룡 과장은 무거운 어조로 뒤말을 이었다.
“성호는 소장사를 하다가 강도들에게 소떼를 빼앗겼다오.”
“살아있는가요?”
“살아있구말구. 성호가 어떤 애오? 어려서부터 성호가 자라는 걸 봐서 아오. 돌 우에 올려놓아도 살아날 애지.”
“아이유, 사람도!”
정희는 애나 발까지 동동 굴렀다.
“어쩜 소식도 한마디 전하지 않는대요? 속을 싹 태우면서? 무정해도 정말…”
정희는 뜨거운 눈물을 줄 끊어진 구슬처럼 흘리면서 눈물범벅이 된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지금 날강도들을 나포하고 소를 찾으려고 한창 경찰들과 달아다닌다오.”
“그까지 소야 있으면 어쩌고. 참, 살아 있다니 됐어요.”
“감사해요. 인차 시부모께도 알려드려야 하겠어요. 시부모도 속이 타서 재가루 될 지경인데요.”
“근심하지 말라고 하오. 우리도 몽골에 가서 강도 나포를 협조할 예산이요.”
“예. 알았어요.”
정희가 숨가쁘게 시부모를 찾아 달려갔을 때다. 소식을 전하자 시부모는 기뻐하며 성호한테서 편지 한장이 왔다고 했다.
정희가 시어머니 손에서 받아보니 편지는 아주 간단했다.
 
존경하는 부모님, 그간 속을 태우게 해서 미안합니다. 정희한테도 문안을 전해 주십시오.
저는 날강고들한테 강탈당한 소를 찾아가지고 돌아갈 예산입니다. 당지 공안국에서 나섰기에 꼭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아들은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모든 곤난을 박차고 나갈 것입니다. 만나는 날까지  편안히 계십시오.
아들 리성호
                                                      1988 4 29.
 
사실 그날, 강도들은 징글스레 웃으며 말에 올라 소떼를 몰고 떠나갔다. 성호는 초원의 고목에 결박당해 사선에서 헤맸다.
해가 어둑어둑 져서 어둠의 공포가 조수처럼 밀려오고 만리 초원 마가을바람의 울부짖음소리가 악마처럼 엄습해왔다. 어둠컴컴한 하늘에 애처로운 초생달이 떠서 대지를 쓸쓸히 비추었다. 고목에 결박당한 성호의 애간장을 태웠다. 여기저기서 굶주린 이리떼들의 울음소리가 저승사자의 북소리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성호는 고향의 부모형제들과 처자들을 떠올리자  속으로 부르짖었다.
“절대 이렇게 초원에서 죽을 순 없어.”
저 멀리 강도들의 검은 그림자가 흑점으로 아물거리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는 피뜩 종아리 각반에 꽂아둔 비수가 떠올랐다.
(살았어.)
그는 안간힘을 다해 오른다리를 얼굴 가까이에까지 쳐들었다. 다리가 입가에 다가오자 이빨로 조심스레 비수자루를 꼭 깨물어 쓱 빼냈다.
그는 입으로 비수를 꽉 깨문 채 가슴과 팔을 얽맨 바줄을 싹싹싹 베기 시작했다. 한식경이나 역사질한 끝에 바줄이 발 앞에 주르르 흘러내렸다.
성호는 한숨을 후- 길게 내쉬었다.
고목 뒤로 꽁꽁 묶은 손목의 바줄을 끊을 방법이 없어 답답했다.
쨩!
이때 채찍소리와 함께 요란한 말발굽소리가 들렸다.
“꼼짝 못하고 죽겠구나.”
성호가 중얼거리며 마지막으로 입에 문 비수를 날려 복수하려고 할 때다.
“이 부근입니다.”
귀에 익은 몽골족 목소리 아닌가.
“아, 저기 고목에 있구나!”
검은 그림자들이 다가왔다.
“성호!”
성호가 희미한 달빛을 빌어 살펴보니 뜻밖에도 어둠 속에서 운두라바한과 쑤싼나, 테무치가 말에서 뛰여내리지 않겠는가.
“개놈 새끼들!”
운두라바한은 옆구리에서 서슬푸른 반달도를 쓱 뽑아 조심스레 성호의 손목을 묶은 포승줄을 하나, 하나 베버렸다.
“됐네.”
성호는 아픈 손목을 매만지면서 “구명은혜 백골난망입니다.”라고 했다.
“미안하네. 재수없이 강도를 만나다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에이, 참.”
운두라바한은 성호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통쾌하게 말했다.
“소와 말을 찾는게 급선무네.”
쑤싼나는 손수건을 꺼내 성호한테 내밀었다.
“상처를 닦아요.”
성호가 미안해 손수건을 받지 못했다. 그러자 쑤싼나는 손수건으로 손수 성호 얼굴에 난 채찍 피자국을 닦아주었다.
“그 놈들이 소떼를 몰았기에 멀리 가지 못했을거예요. 그 많은 소를 하루 밤새에 다 잡아 처리하기도 힘들게고요.”
그녀는 성호를 위로했다.
“소귀마다 구멍을 뚫어놓았으니까. 어떻게 팔아먹는가 두고 보지.”
이윽고 운두라바한은 홰불을 해들고 강도들이 몰고간 소발자국을 따라 뒤쫓아갔다.
한참 눈덮인 초원을 누비며 말을 달려 갈 때였다.
앞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절주있게 말발굽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그들은 말에서 뛰어내려 눈덮인 둔덕에 납짝 엎드려 어둠 속을 눈뿌리 빠지게 살폈다. 운두라바한은 옆구리에서 반월도을 빼들었다. 성호도 비수를 뽑아들었다. 쑤싼나와 테무치는 사냥총에 절컥 장탄했다.
말 한필이 이쪽으로 쏜살같이 뛰여왔다.
“우리 집 말이 아냐?”
운두라한이 품에서 소라를 뽑아 들어 불었다. 그러자 백마는 앞발을 쳐들고 “오호홍~” 하고 울더니 네굽을 안고 곧추 이쪽으로 뛰여왔다.
“우리 룡혈말이야!”
운두라바한은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이 놈이 어떻게 돼 도망쳐왔을가?”
쑤싼나의 말은 더 귀맛을 돋구었다.
“말도 배필을 찾아 돌아온 거죠.”
아닌게 아니라 룡혈말은 쑤싼나가 탄 암말한테로 다가와 좋다고 서로 핥고 야단쳤다.
“멀지 않은 곳에 그놈들이 있을 거 같아.”
운두라바한은 말에 올라 룡혈말을 성호한테 넘겨주고 채찍을 휘둘렀다.
“가자!”
도망쳐온 룡혈말은 성호를 태우고 네굽을 안고 쏜살같이 달렸다. 룡혈말은 강도들이 적토마를 끌고 도망친 곳으로 달리는 것 같았다.
“아마 우리한테 적토마가 끌려간 곳을 알려주는거 같애. 이전에도 적토마가 잃어졌을 때 룡혈말이 적토마가 사라진 곳으로 데리고 간 적이 있네.”
그들은 룡혈말을 따라 눈덮인 초원을 한창 달렸다. 저 멀리 시내 전등불빛이 보였다. 초원에 잔설도 보이지 않고 누런 사막의 잔등이 드러났다.
이때 갑자기 룡혈말이 우뚝 멈춰서더니 앞발을 쳐들고 요란하게 울부짖었다.
그들은 말을 달려 나가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래불이 흩날리는 모래바닥에 소대가리와 갈비뼈가 무더기로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이게 웬 일이야?”
운두라바한이 말 잔등에서 굴러떨어지더니 풀썩 땅바닥에 내렸다.
쑤산나와 테무치도 아버지를 따라 뛰여내렸다.
“늦었구나!”
성호가 뛰어내렸을 때 운두르바한은 무릎을 꿇고 소대가리를 매만지더니 장탄식했다. 강도들은 단서를 잡힐까봐 소를 잡아 고기만 도려내 가져갔던 것이다.
“한두놈이 아닌 것 같아.”
성호는 소 귀를 일일이 살폈다. 몽땅 귀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이고!”
성호는 주먹으로 모래바닥을 꽝꽝 쳤다.
그는 눈앞이 깜깜해났다. 어떻게 번 돈인가? 자존심을 다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 몇해 동안 소똥을 온 몸에 바르며 번 돈이 아닌가. 그런데 하루 새에 몽땅 날려 버리지 않았겠는가.
쑤싼나가 옆에서 위안해주었다.
“오빠, 근심하지 말아요. 공안기관에 강탈사건을 신고하면 몽땅 나포할 수 있을 거예요.”
운두라바한이 벌떡 일어났다.
“맞아, 빨리 파출소로 가자.”
그들은 말에 올라 곧추 진파출소로 달려갔다.
20분도 안돼 파출소 소장에게서 특대강탈사건을 제보받은 형사수사대대  수사대원들이 파출소에 모였다.
그들은 성호와 테무치한테서 사건경과를 상세히 료해한 후 즉시 찌프차를 타고 사건현지로 달려갔다.
모래불이 흩날리는 사막에 이르러 그들은 숱한 소 대가리와 뼈다귀들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수사대대장은 한참 현장을 수사한 후 무겁게 입을 열었다.
“보십시요. 여기 자동차 바퀴자국이 나 있지 않습니까.”
모두 여겨보니 잔설이 뒤덮인 모래불 우에 확실히 자동차 바퀴자국이 시내 쪽으로 쭉 나있었다.
“강도들은 여기서 소를 잡아 고기만 싣고 달아났습니다. 말고기는 팔아도 얼마 받지 못해 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수사대원들을 둘러보았다.
“우린 즉시 교통을 차단하고 일체 차량을 수색해 소고기를 밀반출하는 것을 막아야 하오. 내일부터 식당과 시장에 돌아다니면서 소고기를 파는 걸 수사해야겠소.”
“옛!”
수사대원들은 분조를 나눠 시내와 교외 교통요로로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성호, 우리 집으로 갑세.”
운두라바한이 뜨거운 손을 내밀었다.
성호는 따라가려고 하지 않았다.
“어찌 계속 페를 끼치겠습니까? 구명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운두라바한은 사람좋게 성호의 손을 잡아끌었다.
“에이, 사람이. 우린 다 같은 소수민족이요. 한 집안 사람이야. 자네 우리 집 소를 샀다가 이런 봉변을 당했는데 우리 어찌 팔짱 끼고 구경한단 말인가? 날강도들을 잡기 전까지 우리 집에 있게나.”
“그래요. 오빠, 우리 집에 가자요.”
쑤싼나에 뒤이어 테무치도 성호를 가자고 했다.
“형님과 난 생사를 같이 한 형제요. 가기요.”
운두라바한 일가가 부모형제처럼 열정적으로 대하는 바람에 성호는 운두라바한의 집으로 가서 눌러 있으면서 공안국의 사건수사를 협조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동장군이 물러가고 초원에 신록이 짙어갔다. 그러나 사건수사는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교활한 강도들은 단번에 많은 소고기를 팔면 꼬리를 밟힌다는 것을 알고 장물을 감추고 천천히 처리했거나 당지에서 처리하지 않고 외지에 가져다 팔았을 수 있었다.
몇달 동안 성호는 그저 남의 밥축을 낼 수 없었다. 그는 경찰들을 협조하는 한편  테무치를 도와 말을 타고 초원에서 양과 소를 몰아주었다.
“계속 이렇게 눌러있을 순 업지.”
그는 말잔등에 앉아 소떼를 몰면서도 자기를 애타게 기다릴 부모형제와 처자들이 눈 앞에 선히 떠올랐다. 편지를 써놓고서도 우편국에 갈 새마저 없어 미처 인차 고향에 띄우지 못했다.
딸애를 업고 눈물이 그렁그렁해 자기를 바라보는 색시 정희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삼삼히 떠올랐다.
성호는 인차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어찌 알거지 신세로 고향으로 돌아간단 말인가. 날강도들을 잡기전엔 절대 돌아갈 수 없어.”
그는 말머리를 돌려 저쪽에서 양을 방목하는 테무치를 향해 고함쳤다.
“시내 갔다 올게~!”
“그래오. 조심하오, 형님~!”
성호는 말을 달려 곧추 진파출소로 달려갔다.
파출소 소장은 이젠 성호와 구면이 됐다. 그는 성호를 보고 땀에 흠뻑 젖은 얼굴을 닦으라고 수건을 주었다.
“무슨 새로운 단서라도 있소?”
성호는 수건으로 얼굴을 대충 닦고 벽에 걸어놓았다.
“제 보건데 기차역에 가서 더 수사했으면 좋겠습니다.”
“뭘?”
소장은 성호한테 김이 몰몰 나는 물컵을 내밀며 눈을 치켜떴다.
“강탈사건이 발생한 후 소고기를 외지에 부친 놈이 없는가 수사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파출소 소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또 한가지. 려관 주인이 의심됩니다.”
성호의 말에 소장은 주춤 걸음을 멈췄다.
“어느 려관 주인?”
“매려관 주인.”
“뭣 때문에?”
성호는 소장을 마주 바라보면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제가 소를 사러 온거 아는 사람은 매려관 주인 밖에 없습니다.”
소장은 한걸음 다가서며 물었다.
“매려관 주인과 소를 사러 왔다는 걸 말했댔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성호는 물컵을 들어 한모금 마시고나서 뒤말을 이었다.
“매려관 주인은 제가 장사하러 온 걸 알 수도 있습니다.”
“참, 그럴 듯한데. 자네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장백산 기슭의 목동출신입니다.”
소장은 도리머리를 젓더니 홱 돌아섰다.
“좋소. 돌아가오.”
성호가 파출소에서 나오면서 볼라니 소장은 다른 칸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뒤이어 숱한 경찰들이 소장과 함께 찌프와 자전거에 갈라타더니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갔다.
한참 후 경찰들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교활한 날강도들은 기차역에 가서 소고기를 부치지 않았던 것이다. 사복한 경찰들이 매려관방에 가서 몰래 여기저기 살펴보고 려관방 주인의 눈치를 관찰해봐도 털끝만한 단서도 잡지 못했다.
난항을 겪게 돼 수사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게 됐다.
운두라바한은 성호를 보고 “소값을 절반 돌려주겠네. 자네나 나나 그저 재수없다고 생각하면 되오.”라고 하더니 궤짝에서 돈묶음을 꺼냈다.
“이러지 마십시오.”
인심이 후한 운두라바한은 기어이 다 받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우리 몽골족들은 의리를 중히 여기네. 이 돈을 받지 않으면 당장 우리 집을 떠나게나. 사람이 남의 마음을 받아줄도 알아야지.”
성호는 기어이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 급선무는 날강도를 붙잡는 겁니다.”
운두라바한은 주춤 손을 멈추며 잠간 궁리하더니 무겁게 입을 뗐다.
“날강도를 붙잡으려면 아마 시간이 걸릴 거 같네. 이걸로 수사경비로 쓰게나.”
운두라바한이 고집하자 성호는 더는 사양할 수 없게 됐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3천원만 먼저 선대주세요.”
“아니, 다 받게. 우리 집에 와서 방목하느라고 수고했네.”
성호는 기어이 3천원만 받았다.
“공안국에선 날 보고 매려관방에 가 주숙하면서 날강도들의 행방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이 돈을 주숙비와 식비로 잘 쓰겠습니다.”
“그래, 진작 그래야지.”
운두라바한은 사막의 풍설에 시달린 얼굴의 주름살마저 쭉 펴지게 웃음을 지었다.
공안국에서는 사복한 경찰들이 매려관에 장기적으로 주숙해 수사할 수 없었다. 그들은 대신 성호를 보내 매려관을 감시하게 했다.
“안되네.”
“예?”
뜻밖에 운두라바한이 손사래를 쳤다.
“생각해보게나. 만약 그 놈들이 강도라면 자네가 나타나면 경계할게 아닌가? 위험하네.”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예~ 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합세.”
운두라바한이 나섰다.
“내 가서 살피면 어떨가?”
“아무리 위험해도 제가 가야 합니다.”
성호가 고집을 쓰자 운두라바한은 한참이나 창문가에 서서 바깥의 푸르른 초원을 내다보면서 궁리했다.
“됐네!”
운두라바한이 무릎을 탁 쳤다.
“어째 생각이 돌지 않았을가? 매려관 뒤집에 내 매형이 있네. 매형집에 가서 주숙하면서 감시하든지 아니면 내 매형을 시켜 감시하게 하든지?”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해가 지기를 기다려 성호는 운두라바한과 함께 어두운 밤장막을 헤가르면서 운두라바한의 매형 집에 들어갔다.
운두라바한의 누이 운드라나와 매형 우란크한은 성호를 반갑게 맞았다. 애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외지 대도시에서 일한다고 했다. 세칸 벽돌집은 꽤나 널직고 방이 여러개 돼서 성호가 들어 있어도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성호는 그날 밤부터 어둠컴컴한 골목에 숨어서 매려관방 주인 조발귀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이른 봄인지라 새벽녘에는 꽤나 쌀쌀했다.
첫날 밤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튿날 밤 9시만에 뚱뚱하게 생긴 사람 둘이 려관방에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밤중에도 려관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경계심이 든 성호는 발볌발볌 려관방 토성 가까이에 다가가 몸을 훌 날려 토성을 날아넘어갔다.
그는 고양이처럼 울 안에 살짝 날아내려 전등불이 환한 려관방 창문께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벽에 착 붙어서서 려관방 창문으로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뚱뚱하게 생긴 두 사람은 방 안에서 량 침대에 갈라누워 뭐라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선말로 대화하는 것 같았다.
성호는 벽에 몸을 찰싹 붙이고 귀를 도사려 방안의 말소리를 들었다.
“참 재수없어. 요즘 소장사를 하러 다니는 놈들도 없지. 우린 뭘 뺏아먹고 산다오?”
“주인집 령감은 숱한 소고기를 김치움에 숨겨두고 안줘.”
“개자식, 정 더럽게 놀면 저 놈부터 털어 먹자.”
“얘, 토끼도 굴어귀 풀을 먹지 않는다. 괜히 꼬리 밟히겠어.”
“목장에 가서 룡혈말을 둬마리 훔쳐내오면 어떨가?”
순간 성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날강도들이구나!”
성호는 하마트면 고함칠번했다.
그는 슬금슬금 마당에 있는 김치움에 다가갔다. 덮개에 자그마한 자물쇠가 당그라니 채워져 있지 않겠는가.
그는 사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품에서 쇠집게를 꺼내 자물쇠 고리를 비틀어 뜯어버린 후 덮개를 슬쩍 열고 김치움에 손쉽게 들어갔다.
손전지로 여기저기 비추었다.
“아니!”
성호는 깜짝 놀랐다.
어둑컴컴한 김치움에 엄청 큰 랭장궤가 줄느런히 늘어서 있었다. 랭장궤를 열어보니 언 소고기가 차고 넘치지 않겠는가. 다른 랭장궤도 일일이 열어보아도 몽땅 언 소고기로 채워져 있었다.
성호가 김치움에서 나왔을 때까지도 방 안에서는 계속 두런두런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고 듣는다는데. 헛소릴 작작 쳐라!”
“별 소릴! 형님, 여기 몽골초원에서 누가 우리 말을 알아듣는답데. 흥!”
“전탕 도깨비 궁리만 해? 이제 꼬릴 잡히면 총살당할 판인데. 숱한 돈을 해서 뭘 해? 목숨이 더 커.”
“돈이 있어야 살지. 사막에서 누가 공 먹여준대?”
“야, 벽에도 귀 있어.”
“사람이 한번 죽지 두번 죽소?”
“계속 개소릴 치겠어?”
“하, 곤하구나. 자자.”
보아하니 그 자들은 형제간 같았다.
“오줌이나 누구 자자.”
한 놈이 일어나 복도로 나갔다. 그런데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저게?!”
깜짝 놀란 성호는 구새목으로 돌아가 옆구리에서 대화기를 꺼내 들었다. 파출소 몽골소장이 유사시에 쓰라고 준 대화기였다.
그는 어둑컴컴한 울안 주위를 둘러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매려관에 쥐가 있다. 속히 출마하라.”
“누구얏!”
갑자기 창문이 벌컥 열리면서 뚱뚱한 놈이 뛰쳐나왔다.
성호는 구새목에서 날아나가 그 자를 차넘겼다.
땅!
야무진 총소리가 고즈넉하던 밤정적을 깨뜨렸다.
그 자가 총을 쏘았다.
성호는 몸을 날려 토성 밖으로 날아넘어갔다.
“도적이야!”
총을 쏜 자가 고함쳤다.
“쳇, 도적이 ‘도적이야’를 고함쳐?”
성호는 두덜거리면서 옆구리에서 비수를 뽑아들고 매려관을 노려보았다.
이때 경찰들이 우르르 뛰여왔다.
파출소 소장은 매려관방 대문어귀에서 성호를 만나 간단히 정황을 들었다.
땅! 땅!
“돌격!”
십여명 경찰들은 일제히 대문 안으로 쳐들어갔다.
“경찰이야!”
“투항하면 관대히 처리한다!”
경찰들은 매려관을 포위하고 고함쳤다.
총을 쏜 자들은 독 안의 쥐 신세로 됐다.
려관방 안에서 고함쳤다.
“우리도 경찰이야!”
“오해하지 말고 총을 거둬라!”
 “경찰?! 그럼 총을 내던지고 나오라!”
파출소 소장은 의아해 머리를 버릇처럼 갸우뚱했다.
“그러지. 우린 흑룡강성에서 온 경찰이야!”
“뭘 하려고 여기 왔어?”
“소도적을 붙잡으려고 왔습니다.”
“총은 왜 쐈어?”
“웬 수상한 놈이 려관방을 기웃거리다가 오줌 누러 나간 동생을, 아니, 동료를 다짜고짜로  발길로 찼어…”
파출소 소장은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 그럼 경찰증을 내던져!”
“그러지.”
방 안에서 창문을 열고 뭔가 내던졌다.
한 경찰이 창문 전등불빛을 빌어 어둠 속을 헤집고 손바닥만한 종이쪼박을 주어왔다.
소장이 전지불을 켜들고 그 종이쪼박을 찬찬히 보니 소개신이였다.
“뭐? 파출소 소장 리봉수와 리성수?”
그는 중얼거리면서 소개신을 재차 확인하였다. 틀림없었다. 공안국에서 떼준 소개신이였다.
“오해했군. 미안해.”
파출소 소장은 총을 옆구리에 찔러넣고 뒤를 돌아보았다.
“안으로 들어가 봅세.”
경찰들은 총을 거두고 매려관에 들어갔다.
조발귀는 경찰들을 보자 반색했다.
“야, 간이 다 떨어지겠어. 밤중에 웬 총소린가 했지.”
소장은 옆에 선 경찰을 보고 뭐라고 귀띰했다. 그러자 그 경찰은 조발귀를 데리고 저쪽으로 갔다.
소장 일행이 매려관방 안에 들어섰을 때 확실히 경찰복을 입은 뚱뚱한 두 사람이 총을 옆구리에 찌른채 서 있었다. 옆구리를 여겨보니 분명 77식자동권총이였다.
“당신들은 왜 우릴 진공했는가?”
뚱뚱한 자의 항의에 소장은 “하하하.” 하고 통쾌하게 웃었다.
“미안하오. 오해했구만.”
“려관 주인이 우릴 파아먹었단 말이요?”
“형님! 무슨 말이요? 신고했겠지.”
동생이란 자가 소장한테 물었다.
“뭐라고 신고했는가? 온 파출소가 다 출동했구만.”
성호는 자기 추측을 의심하지 않았다.
(금방 동료라더니 “형님”, “동생?” “소장사군이 없어 뭘 뺏아먹고 살겠는가?”)
동생인 듯한 사람이 말을 받아 얼렁뚱땅 둘러댔다.
“실은 이 근방에서 소강탈사건이 발생했다더구먼. 그런데 들어보니 우리 고장에서 생긴 소강탈사건과 범죄수단이 비슷하단 말입니다. 그런 놈을 잡자면 소장사군이 있어야 미끼를 늘여서 강도들을 잡을 수 있지요.”
형이란 사람이 맞장구를 쳤다.
“예~ 그렇죠. 절대 오해하지 마십시오.”
“려관방 주인네 김치움에 숱한 소고기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아오?”
동생인 듯한 사람이 대답했다.
“어느 하루 김치생각이 너무 나 주인 몰래 가만히 김치움에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
소장은 경찰들을 둘러보고 “됐군. 갑세.” 하고나서 그 두 사람을 놔두고 경찰들을 데리고 김치움으로 갔다.
김치움 덮개를 열고 전지불로 비춰보던 소장은 깜짝 놀랐다. 글쎄 지하창고 같은 널다란 김치움에 숱한 냉장고까지 갖춰놓았다.
경찰들이 사닥다리를 타고 들어가 랭장고마다 돌아가면서 문을 열고 보니 숱한 소고기를 무더기로 쌓아둔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모두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그들은 려관방 주인 조발귀를 파출소에 련행했다.
“아니, 무슨 죄 있다고 이러는가?”
“파출소에 가면 알 거요.”
 옆에서 흑룡강성에서 왔다는 두 경찰은 시무룩이 웃었다.
조발귀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경찰들을 따라 가면서 자기 집에 들었던 파출소 소장이란 사람을 흘겨보았다.
흘겨보는 그 눈길은 마치 “네 놈들이 뭐라고 고발했지?” 하고 말하는 상 싶었다.
흑룡강성의 두 경찰은 씨무룩이 웃으면서 몽골족소장을 힐끔 곁눈질했다.
그때 어둠의 장막 속에 숨었던 성호가 흑룡강성에서 왔다는 경찰 둘을 찬찬히  뜯어보다가 자기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놀랐다.
(아니, 저자가 혹시…)
아무리 재차 눈여겨보아도 맞는 것 같았다.
그는 당지 파출소 소장의 곁에 다가갔다.
그는 소장의 귀에 손을 대고 뭐라고 귀속말을 했다.
“뭐라고?”
소장은 흑룡강성에서 온 두 경찰을 보고 뜻밖의 말을 했다.
“당신들도 파출소에 가야겠소.”
“예?”
의아해하는 두 경찰을 보고 소장은 분명히 말했다.
“확인할게 있소.”
“뭘?”
그 자는 성호를 쏘아보더니 조선말로 “당신 뭐라고 했기에 이 자들이 이러오? 조선사람끼리 물어먹겠는가?” 하고 따지고 들었다.
“귀신은 속여도 날 못 속여. 순순히 쇠고랑이를 차지 못해?”
두 놈은 불찌가 튀는 눈길로 성호를 쏘아보았다.
“파출소로 가자!”
소장이 손을 홱 휘두르며 몽골말로 웨치자 몽골족경찰들이 그 자들을 에워싸며 파출소로 련행했다. 
조발귀는 억울하다고 꽥꽥 고함쳤다.
“무슨 죄 있다고 이래?”
“파출소에 가서도 억울하다고 고함치겠는가?”
구경 어떤 놈들인지?
숱한 의문부호가 어둑컴컴한 초원의 하늘에 날아내려 꽂혔다.
 
 
 
 
 
 
 
 
 
 
 
 
 
 
 
 
 
 
 
 
 
 
 
 
 
 
 
 
 
 
 
 
 
 
 
 
 
 
 
       41.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쑤
무시무시한 공포가 반죽된 칠흑같은 어둠이 해살을 다 갉아먹었다. 달도 어둠에 핥키워 처참하게 반쪽 얼굴 밖에 남지 않았다. 당장 뭔가 폭발할 듯한 위기일발의 순간이 긴장한 심장박동들과 함께 높뛰며 흘러가고 있다.
푸르른 초원으로 부엉이 한마리가 어둠 속에서 깃을 치며 푸드득 날아옛다. 쥐들과 뱀은 질겁해 어둠 속에 숨어버렸다. 그러나 어찌 부엉이의 예리한 눈길을 피할 수 있겠는가! 부엉이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어둠 속에서 할딱거리며 요리조리 도망치는 노랑쥐를 탁 챘다. 또 다른 부엉이가 나무에 기어올라가는 뱀의 허리를 날카로운 발로 탁 채 하늘로 올라갔다.
땅! 땅!
야무진 총소리가 고요한 어둠의 정적을 깨드렸다.
소장이라고 자처하던 자가 불시에 옆구리에서 권총을 뽑아 성호를 쏘았다.
성호는 허리를 굽히며 발길을 날려 권총을 걷어찼다. 그 놈이 재차 성호를 겨누는 순간 경찰들이 쏘았다.
땅!
“아이쿠!”
그 놈이 총을 떨어뜨리며 손목을 부여잡았다.
땅!
그 놈이 허벅지를 잡으며 쓰러지더니 재차 총을 쏘았다.
땅!
동시에 다른 놈도 권총으로 몽골족소장을 겨누었다. 그 찰나 경찰들이 욱 몰려들어 그 자들을 사격했다.
그 놈들은 땅바닥에 쓰러져서도 연속 방아쇠를 당겼다.
절컥!
절컥!
그러나 격침소리만 들릴뿐.
몽골족소장은 그 놈을 깔고 들어앉아 권총을 빼앗아냈다. 성호가 잽싸게 덮쳐들어 동생이란 놈의 손목을 꽉 밟고 권총을 빼앗아냈다.
이 두 놈은 어떤 놈들일가?
파출소에 끌려간 그 놈들은 헐레벌떡거리다가도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여기까지 쫓아왔어? ‘정의용사’. 허허허. 이런 내몽골 초원에서 네놈을  만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구나.”
소장이라고 자처하던 놈이 성호를 쏘아보면서 조선말로 한탄했다.
“허튼 소릴 작작 쳐. 죄행이나 낱낱이 탄백해.”
성호는 한어로 호통쳤다.
그 놈은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내 저승에서 염라대왕이 돼서라도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거야.”
성호는 너털웃음을 웃었다.
“내몽골초원이 아니라 하늘끝까지 도망쳐봐. 염라대왕도 용서하지 않아.”
몽골족 소장은 경찰들을 보고 두 놈의 몸을 샅샅이 수색하라고 지시했다.
경찰들은 두 놈의 허리춤에서 총알을 촘촘히 박아넣은 탄띠를 수색해냈다. 또 려관에서 숱한 돈묶음을 넣은 가방도 수색해냈다.
몽골족소장은 지명수배령을 꺼내 흉수 초상화와 소장이라는 자의 퉁퉁한 낯을 한참 대조해보고나서 77식권총을 뽑아 사무상에 꽝 내려놓았다.
“네 놈들이 바로 YJ시 백화청사에서 살인강탈하고 도망친 날강도놈들이구나.”
“뭐라고?”
소장이라는 자가 짐짓 놀라는 척했다.
“백화청사 보위 과장 조흥수! 쥐새끼 같은 놈, 껍대기를 벗겨놔도 초원의 매 눈을 속이지 못해. 뭐? 흑룡강성에서 온 파출소 소장? 퉤!”
몽골족소장은 77식권총을 쳐들었다.
“이건 어데서?”
“…”
몽골족소장의 얼굴에 비웃음이 반죽돼 흘렀다.
“조흥수, 비겁하게 놀지 말고 사실대로 탄백해라. 며칠이라도 발편잠을 자라구.”
조흥수는 코방귀를 “흥!” 뀌였다.
“자, 어때? 밤도 깊었으니 툭 털어놓고 푹 자게나.”
조흥수는 마른 입술을 감빨더니 입에 꽂은 빗장을 천천히 뺐다.
“찬물이나 주게.”
“그래!”
조흥수는 경찰이 호로박에 퍼온 찬물을 받아 꿀떡꿀떡 들이켰다.
“다리 총상을 처치해주면 말하지.”
몽골족소장은 경찰한테 몽골어로 뭐라고 부탁했다.
이윽고 법의가 들어와 흥수의 총상을 처치했다.
“자, 시작하지. 저자는 누군가?”
그 자가 끝내 입을 열었다.
“조길수요.”
“형젠가?”
조흥수가 대답했다.
“내 동생이야. 난 백화청사 살인강탈사건과 관계없네.”
“아직도 떼를 쓸텐가?”
몽골족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흥수한테 다가갔다.
“죄 없는 자가 왜 총을 휘둘러? 권총은 어디서 난 건가?”
몽골족소장은 조흥수 낯빤대기에 대고 삿대질했다.
“네놈은 권총으로 나하구 조선족증인을 죽이려 했어. 이미 살인미수죄를 졌어.”
“흥! 어느 사람이 한번 죽지 않는가? 다만 사내대장부로서 승냥이무리과 멋지게 싸우다 죽지 못하는 것이 한일뿐.”
“누가 흉수인가?”
몽골족소장이 아무리 심문해도 조흥수와 조길수는 한마디도 탄백하지 않았다.
“참 지독한 놈들이구나.”
경찰들은 조흥수 형제를 류치장에 처넣고 주먹만큼한 자물쇠를 절컥 채워놓았다.
몽골족소장은 두덜거리더니 안방으로 들어가 즉시 상급 공안국에 전화로 사건해명정황을 회보했다.
뒤이어 그는 매려관 주인 조발귀를 끌어냈다.
“낱낱이 탄백햇!”
“무슨 죄 있다고 이러는가?”
몽골족소장은 조발귀를 쏘아보았다.
“김치움의 숱한 소고기는 어디서 난 건가?”
뚱뚱한 조발귀는 벌떡 일어났다.
“손님을 대접하려고 사둔 거요.”
“누구한테서 샀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많이 감춰뒀어?”
“감춰두다니? 생 사람을 작작 잡으라고.”
“로실히 탄백햇! 소고기 어데서 난 건가?”
“아니, 건 확실히 산 거요.”
꽝!
“식당도 아닌데 웬 숱한 소고긴가?! ”
“눅게 팔기에 샀소. 정말이네.”
“소고기를 판 놈들을 대라.”
“모를 사람인데 어떻게 대라는가?”
조발귀는 황급히 둘러댔다.
“면목 모를 사람이 당신 곱다고 숱한 소고길 눅게 팔아?”
몽골족소장은 사무상을 꽝 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누구와 공모해 소를 강탈했어?”
“공모했다고? 진짜 생사람 잡네.”
몽골족소장은 태연한 척하는 조발귀의 삐죽한 코대에 대고 삿대질했다.
“분명 네놈이 강도무리에 저 조선족청년이 소 사러 간다는 걸 알렸지?”
“그날 근본 려관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래, 아직도 강탈사건이 벌어진 날을 기억할 수 있어?”
“난 똑똑히 기억합니다. 믿지 못하겠으면 우리 려관에 가서 조사해보십시오. 려관 명세장에도 똑똑히 적혀 있습니다. 그날 손님이 어찌나 많은지 려관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뺑뺑 맴돌았댔습니다.”
“그래, 날강도들을 불러들였으니까. 손님이 많았을테지.”
“아이구, 왜 이럽니까?”
몽골족소장은 손끝으로 조발귀 턱을 쳐들면서 을러멨다.
“로실히 탄백해. 아무리 떼를 써도 이 어른께 꼬리를 밟혔어. 강도들 용모파기를 다 기억하는 증인이 둘이나 살아 있어? 이제 면접하면 몽땅 드러날 걸.”
조발귀는 점점 대가리를 숙였다.
“어떤가?”
몽골족소장은 하품을 하더니 “에이, 탄백하지 않겠으면 말아. 곤해 죽겠다.”라고 하더니 고함쳤다.
“이 놈을 류치장에 처넣게. 관대히 처리받기 싫으면 말라지.”
“저 소장님!”
“왜?”
조발귀는 뭔가 말할 상 싶었다. 그러나 몽골족소장의 무서운 얼굴이 돌아서는 순간 침을 목구멍으로 꿀꺽 삼켰다.
몽골족 소장은 “총살당하고 싶으면 그만둬.” 하고 끌어내라고 손짓했다.
조발귀는 흘끔 몽골족소장을 훔쳐보더니 류치장으로 순순히 들어갔다.
그날 밤으로 수사대대에서 수사대원들이 달려왔다. 한어와 몽골어가 뒤섞여 들렸다.
몽골족소장한테서 회보받은 수사대대 지도부에서는 정황을 분석하고 성호와 테무치가 제공한 강탈범들의 용모파기에 근거해 모이초상화를 그린 후 수사대원들과 파출소 경찰들에게 나눠주고 구체적인 수사임무를 포치했다.
수사범위는 축소돼 조발귀 친척과 친구들 그리고 그와 사회관계가 있는 자들한테로 집중됐다.
다른 한편 수사대원들은 류치장에서 백화청사 특대살인강탈참사 중요 혐의자 조흥수와 조길수를 압송해 감옥에 처넣었다. 그들은 YJ시 공안국에 통지해 조흥수와 조길수를 이송하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 푸르른 초원에 아침해가 어둠을 불사르며 불끈 솟아올라 대지에 밝은 해살을 눈부시게 비추었다.
몽골족소장과 경찰은 우전국에 가서 참사발생 당날에 매려관의 전화와 통화한 전화번호부터 일일이 장악했다. 이웃 맹에서 걸어온 전화가 제일 많았다. 수사초점은 즉시 이웃 맹에로 집중됐다. 그들은 이웃 맹공안국 협조하에 즉시 자그마한 진에 있는 그 전화의 주인을 찾아냈다.
천라지망이 범죄혐의자들을 점점 조여갔다.
몽골족대대장은 새로운 정황에 근거해 직접 조발귀를 심문했다.
“탄백햇! 우린 모든 증거를 장악했다.”
“모르오. 소고기를 샀을뿐이라니까.”
조발귀는 퉁퉁한 낯빤대기마저 바위돌처럼 땅땅 굳어 있었다. 그는 낯빤대기 수수떡처럼 지지벌개서 단마디에 딱 잡아뗐다.
“리귀, 칭키싸치, 마룡, 잘 알지?”
“예?!”
조발귀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
“앉엇!”
몽골족대대장은 날카로운 심문의 비수를 찔렀다.
“리귀랑 몽땅 탄백했네. 아직도 생떼를 쓸텐가?”
조발귀는 낯에 흐르는 식은 땀을 쓱쓱 닦았다. 무릎 우에 놓은 두 손이 사시나무 떨듯 했다.
“왜 탄백하지 않는가? 한평생 감옥에서 징역살이를 하겠는가? ”
조발귀는 땅바닥에 넙쩍 꿇어앉았다.
“죄다 탄백하겠습니다. 관대히 처리해주십시오.”
조발귀는 개기름이 번드르한 퉁퉁한 낯빤대기에 돋은 식은땀을 팔소매로 연신 닦으면서 탄백하기 시작했다.
“사실 난 소떼를 직접 강탈하진 않았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조발귀는 리귀랑 나포됐다는 말에 탄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우리 려관에 온 조선족청년이 별로 큰 장사군인 것 같아 강탈할 궁리를 했습니다. 때마침 외사촌동생 마룡과 그의 친구들인 칭키싸치와 리귀가 찾아왔댔습니다. 그들은 술만 처마시면 시내에서 싸움질이나 하는 건달들입니다.  우리 려관에 진 주숙비와 식사비라도 받자고 그들을 보고 성호 뒤를 밟아 강탈하면 어떤가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셋은 초원으로 가는 성호를 미행해 강탈했습니다.”
조발귀는 여기까지 말하고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장관, 제발 살려주십시오. 난 진짜 강도질하지 않았습니다. 마룡을 보고 소떼만 빼앗고 절대 성호랑 죽이진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잖으면 성호 지금까지 살아있었겠습니까?”
소뿔은 당긴 김에 빼라고 이때라고 몽골족대대장은 다잡아 심문했다.
“숱한 소고기를 어디로 빼돌렸는가?”
“예, 예, 다 탄백하겠습니다.”
조발귀는 입이 터진 바에 낱낱이 탄백했다.
“나는 숱한 소를 통채로 팔면 꼭 꼬리를 밟힐 것 같아 그날 밤으로 몽땅 잡아서 고기만 자동차에 실어 왔습니다. 일부는 려관 김치움에 감췄고 나머진 몽땅 마룡이네 집에 실어갔습니다.”
“적토마는 어쨌는가?”
몽골족소장의 심문에 조발귀는 속임없이 탄백했다.
“마룡이 제 집으로 끌어갔습니다. 룡혈말은 우리 소를 잡는 새에 달아났습니다.”
조발귀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더 탄백할게 없는가?”
조발귀는 몽골족대대장을 흘끔 쳐다보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없습니다.”
“탄백하지 않은 죄행이 있으면 낱낱이 탄백해라.”
“예, 예.”
조발귀는 류치실에 끌려갔다.
몽골족대대장은 사무실에 돌아가 즉시 이웃 맹공안국에 전화로 강탈범죄혐의자 리귀와 마룡, 칭키싸치 등의 죄행을 통보했다.
며칠 후이웃 맹공안국의 협조하에 경찰들은 강탈범들을 몽땅 나포했다. 심문한 결과 조발귀의 탄백과 똑 같았다.
뒤이어 경찰들은 그 자들의 집에서 아직도 팔다 남은  소고기를 들춰냈으며 마룡이네 집에서 적토마도 찾아냈다.
강탈범들인 조발귀, 마룡, 리귀, 칭키싸치를 기다리는 것은 인민법률의 호된 엄벌뿐이였다.
성호는 시내 미술가게에 가서 축기를 만들어 형사수사대대와 파출소에 각각 드렸다.
그 축기에는 몽골어와 조선어로 다음과 같은 금빛 글발이 새겨져 있었다.
 
인민 위해 날강도들을 나포해
인민경찰의 위엄을 만천하에 떨쳤네
 
성호는 강운룡 과장의 귀띰을 듣고 당지 법원에 조발귀, 리귀, 마룡, 칭키싸치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에 관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당지 공안국에서는 백화청사 살인강탈사건과 소강탈사건을 해명하는 전역에서 중대한 공훈을 세운 리성호에게 “정의용사” 상패를 수여했다.
당지 법원에서는 또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강탈범 조발귀, 리귀, 마룡, 칭키싸치는 성호에게 손해금 도합 1만 5천원 배상해야 한다”.
법원에서는 강탈범들의 려관과 집을 강제판매해 일주일도 안돼 성호의 손에 배상금을 쥐워주었다.
법원에서는 또 강탈범들에게 각각 집단강탈형사범죄에 대한 상응한 징역형으로 엄벌에 처했다.
당시 이름이 더럽혀진 매려관을 사려는 사람이 인차 나지지 않아 운두라바한이 선뜻이 나섰다.
그는 성호를 보고 말했다.
“이젠 소나 양만 키워선 살기 어려운데 려관방을 사야겠네. 쑤싼나 대학을  나오면 고향에서 려관이나 경영하게 할 예산이네.”
때마침 방학이기에 쑤싼나가 고향 초원에 돌아왔다.
그녀는 생글방글 웃음꽃을 피우면서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오빠, 이담 우리 초원에 또 놀러 오세요. 그땐 저의 려관에 잘 모실게요. 따끈따끈한 쑤유차도 드릴테요.”
“감사해.”
성호도 운드라바한을 돌아보더니 통큰 속셈을 내놓았다.
“이러면 어떻습니까? 제가 려관에서 나온 배상금으로 소를 더 사겠습니다.”
“또?”
“예. 난 이번  걸음에 꼭 소를 사다가 성공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고향에 계시는 부모형제들과 마을사람들을 볼 면목이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럼 서로 좋지.”
성호는 수사비용으로 받았던 3천원에 감사비로 천원도 운두라바한한테 돌려주었다.
“아니, 이거 되받을 수 없어.”
“감사합니다. 정말 이번에 아저씨 일가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사건을 해명하는 날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성호는 운두라바한 일가에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렸다.
“이담 우리 고향에 놀러 오십시오. 꼭 장백산을 구경시켜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하네.”
이튿날 성호는 룡혈말을 타고 운두라바한 일가와 함께 소떼를 몰고 역으로 나갔다.
당지 공안국에서 나서서 화물차바곤을 미리 련계해 주어 아주 손쉽게 30여마리 소를 화물차에 부쳐보낼 수 있게 됐다.
성호는 눈물이 글썽해 운두라바한과 악수를 나누었다.
“이제 갈라지면 언제 다시 보겠는가?”
운두라바한의 말에 성호는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꼭 만날 날이 있을 겁니다.”
그는 량손으로 쑤싼나와 테무치의 손을 꼭 잡고 흔들었다.
“꼭 우리 고향에 놀러오너라.”
성호는 품 속에서 비수를 뽑아 테무치한테 주었다.
“기념으로 받아라. 이 비수를 보면 날 보는 것과 같아.”
“감사하오. 형님.”
테무치는 성호의 손을 잡고 놓을줄을 몰랐다.
쑤싼나는 쌍까풀눈에 글썽했던 눈물을 외씨같이 걀죽한 얼굴에 주르르 흘리면서 새하얀 하다를 성호의 목에  걸어주었다.
“오빠, 우리 초원을 잊지 마세요. 아주머님이 얼마나 속이 탔겠어요. 아주머님한테 우리 몽골족일가의 문안을 전해주십시오.”
“그래. 조선족청년의 절을 받으십시오.”
성호는 운두라바한 일가를 향해 태산이 무너지듯 넙쩍 엎드려 절을 꾸벅 올렸다. 초원의 풍설에 부대껴 터실터실한 주름살이 밭고랑같이 깊이 패인 운두라바한의 자애로운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이 찡해나 뜨거운 눈물로 두 볼을 적셨다.
룡혈말에 오른 성호는 귀로에 올랐다. 그는 눈덮인 초원에 왔다가 반년 넘어 록음이 짙은 푸르른 초원을 떠나게 됐다.
푸르른 초원의 하늘을 훨훨 날아예는 매를 방불케 하는 운두라바한, 그의 깊은 은정과 의리에 저으기 감동됐다.
쑤산나와 테무치, 운두르바한은 룡혈말을 타고 먼지를 뽀얗게 흩날리면서  달려가는 성호가 흑점으로 돼 아물거릴 때까지 손을 저었다.
푸르른 초원을 배경으로 성호와 쑤싼나 일가의 석별의 정이 무더위를 부시면서  빛나고 있었다.
푸른 초원으로 매가 나래를 쫙 펴고 푸르른 하늘을 헤가르며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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