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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6권 108 김장혁
2023년 06월 30일 11시 51분  조회:1366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제6권


                   김장혁

 

        108. 하영의 흐느낌소리

 

하영은 일주일간의 한국 공연을 끝마치자 회사에 돌아왔다.   그녀는 코로나가 풀린데다가 회사에 별로 할 일도 없는지라 대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로 답답한 마음을  힐링하고 싶었다. 하여 군철 총경리와 인사과에 휴가를 내고 남방으로 관광하러 떠났다. 

4월 초였지만 남방은 가는 곳마다 화초가 우거지고 신록이 짙었다. 

광서 계림 부근에 무릉도원은 진짜 명승이었다. 

무릉도원은 일찍 도언명의 “도원기”에도 나온 천하 명승고적이였다. 

하영 등 유람객들이 유람선을 타고 첩첩산중에 난 자연석굴의 기암괴석을 꿰뚫고 나가자  사면이 자그마한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잡은 무릉도원이 나타났다. 

무릉도원 복판에 강을 끼고 평평한 분지에 게딱지처럼 여기저기 목조초가집이 드문드문 들어앉아 있었다. 민족복장을 곱게 입은 이쁜 뚱족녀인들이 참대루각에서 은빛두관과 목걸이, 팔찌를 반짝이며 춤 추면서 유람객들을 환영했다.

무릉도원에는 봄을 맞아 연분홍 복숭아꽃이 활짝 피여 황홀경을 이루었다. 물로 씻어낸듯이 청초한 참대숲이 봄바람에 설레이면서 아름다운 운치와 의경을 진하게 더 해주었다.

유람객들이 유람선에서 내려 한 2층 뚱족목조다락집에 들어서자 뚱족복장을 입은 남편은 해금을 켜면서 노래부르며 유람객들을 맞이했다. 

뚱족가옥은 보통 2층 목조다락집이였다. 남방은 습하기에 보통 1층은 창고나 부엌으로 쓰고 2층에 침실과 객실이 있었다.

하영이 바라보니 뚱족안해의 머리에 쓴 은관과 목에 건 은테에서 안해의  지위와 부를 자랑하는듯이 은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뚱족안해는 남편 옆에 나란히 앉아  연분홍천에 바느실로 꽃을 수를 놓으면서 남편의 노래에 화답해 화음으로 노래를 우아하게 불렀다. 

뚱족녀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똥족은 모계씨족이라고 하였다. 모든 건 안해가 주관한다고 하였다. 

뚱족에게는 독특한 혼인풍속이 있었다. 청혼할 때 뚱족총각은 처녀의 집루각 아래에서 산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고 했다. 뚱족총각이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면 아무 재간도 없다고 처녀가 퇴짜를 놓는다고 하였다. 뚱족처녀가 총각이 마음에 들면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간다고 하였다. 그때 뚱족총각은 꼭 자체로 수가공한 은빗을 가지고 와서 처녀 머리에 꽂아주어야 한다고 했다. 보통 뚱족녀성의 머리에 은빗이 꽂혀 있으면 결혼한 녀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처녀의 부모가 총각을 자기 집에서 지내보고 아무런 재간도 없는 것을 발견하면 은빗을 되돌려주고 집에서 축객령을 내린다고 하였다.

하영은 뚱족관광액세서리점에서 은빗을 하나 골라 사서 뚱족녀성처럼 머리에 비스듬히 꽂았다. 

그러자 뚱족가이드는 눈이 휘둥그래서 물었다.

“결혼했는가요?”

하영은 능청스러운 말을 해 웃겼다.

“아니, 한평생 결혼하지 않을텐데요. 은빗을 꽂으면 혹시 아무도 달려들지 않을지 누가 알아요?”

가이드는 어안이 벙벙해 한참 하영을 쳐다보았다.

“진짜, 웃기네요. 이렇게 이쁜 처녀가 결혼하지 않겠다면 누가 믿어요? 호호호.”

30대 초반의 뚱족가이드는 대학을 졸업하자 심수에 진출해 한 회사에서 일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나라에서 고향에 뚱족관광마을을 건설한다고 하자 남편과 애를 데리고 고향에 돌아와 뚱족관광마을에서 가이드를 한다고 하였다.

초면강산인 그녀가 어찌 새파란 하영한테 곡절적인 소설 같은 비극적인 인생사가 있다는 것을 알랴.  

하영이랑 광광뻐스를 타고 귀주 동남쪽에 산골에 있는 서강천년묘족마을에도 가보았다. 

묘족녀성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묘족은 원래 황하 류역인 하남성 락양 일대와 호남성과 호북성 장강상류 일대에서 위주로 살았다고 한다. 

몇천년 전에 묘왕 차유는 황제와 염제 형제의 련합진공에 의해 전패해 살해되였다. 그러자 차유 묘왕의 후대는 묘족 한무리를 이끌고 남하하여 지금의 귀주와 광서,사천 동부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귀주와 광서의 원 본토배기 동족(侗族)은 외지에서 온 묘족들이 자기들의 지반을 차지한다고 묘족과 수천년 동안 갈등을 겼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새 중국을 건설한 후 호남성과 귀주성, 광서 등지에 묘족과 동족  련합 자치주와 자치현을 여러개 설치해주고 민족단결을 강화하는 여러가지 유력한 정책을 실시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금 묘족과 동족, 요족 등 형제소수민족들은 민족자치를 향수하면서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   

하영 등 유람객 일행이 관광뻐스에서 내려 묘족마을 대문에 들어서자 이쁜 묘족녀성들이 은빛 은관과 목걸이, 흉패를 번쩍이며 두줄로 쭉 늘어서서 흥겨운 꽹과리와 피리 소리에 맞춰 묘족군무를 추며 반갑게 환영했다. 

묘족녀성들은 유람객들한테 묘주를 권하면서 열정적으로 맞이했다. 

한 묘족녀성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하영을 보고 반갑게 인사하면서 술잔을 내밀었다.

"어느 민족인가요?"

"조선족인데요."

"네- 조선족 한복은 아주 이쁜데요.우린 다 같은 소수민족인데요.묘주룰 마셔 보세요."

"감사합니다."

하영은 묘족녀성의 손에서 술잔을 받아 앵두입에 대고 살짝 마셔보았다.꽤나 목구멍이 쨍해났다.

위대한 묘족은 손님을 열정적으로 대하는 례의민족임에 틀림없었다. 

묙족녀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귀주 일대 묘족은 모계씨족이라고 하였다. 모든 건 녀자의 말이면 다라고 하였다. 남편은 그저 집에서 안해의 지령에 따라 안팎 일을  할뿐이라고 하였다. 애의 성도 안해 성을 따를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하영이 장가계를 가면서 호남성 상서 묘족자치주 봉황성 일대에 가보니 상서 묘족의 풍속은 판판 달랐다. 상서 묘족은 대남자주의가 농후했다. 애를 낳아도 녀자애를 낳으면 "밑질애(赔钱货)"를 낳았다고 욕하고 남자애를 낳으면 "돈벌애"(赚钱货)를 낳았다고 비단보에 싸 이고 다닌다고 한다. 녀자애들을 낳은 녀자는 시집에서 발언권이 없고 남자애들을 많이 낳은 며느리가 집안에서 말이 선다고 한다.
    상서토가족묘족자치주 지역에 들어서자 미목이 청수하게 생긴 묘족남성가이드가 관광뻐스에 올랐다. 훤칠한 미남자 묘족남성가이드는 호남대학을 졸업하고 10년 전부터 가이드를 했다고 하였다.
   관광뻐스는 호기심에 찬 하영이랑 싣고 토가족지역인 부용진으로부터 묘죽지역인 봉황성으로 달려갔다.
   묘족남성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그의 할머니는 아들 여섯이나 낳았기에 집 안에서뿐만 아니라 마을에서도 턱을 쳐들고 우쭐거리면서 남들을 이래라저래라고 삿대질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가의드의 어머니가 시집와서 딸을 줄줄 넷을 낳자 할머니는 "어디서 저런 상문년(伤门货)을 데려왔는가고 욕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맛있는 음식이거나 선물은 
 어머니를 하나도 주지 않았다. 선물을 들고 집 앞을 지나면서도 어머니한테 눈만 흘기면서 지나가 아들 넷이나 낳은 삼촌댁을 가져다 주군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남자애(남성가이드)를 낳자 할머니 태도는 확 바뀌였다고 한다. 그때 부터 흘기던 얼굴을 사라지고 웃는 얼굴로 어머니를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때부터 어머니도 "괜찮은 며느리"라고 하면서 불쌍해하면서 동정했다고 한다.  

    묘족녀자들은 일단 시집가면 다신 본가집에 돌아오지 못한다고 한다. 심지어 본가집 부모가 세상 떠도 돌아오지 못한다고 한다. 하여 상서지구 묘족녀자들은 봉건 때 값이 없이 천대받았다고 한다. 하여 묘족녀자들은 시집가면 본가집 식구들을 다신 생전에 볼 수 없게 되기에 결혼날자 정해지면 련며칠이고 부모형제를 붙안고 통곡친다고 한다. 그리하여 당지 묘족들에게는 哭婚풍속이 수천년 성행하였다고 한다.
    하영이 장가계를 가면서 호남성 상서에 가보니 
哭婚은 토가족한테도 있었다. 토가족들은 결혼 첫날에 대부분 대성통곡치면서 결혼한다고 한다. 그것은 결혼첫날이면 첫날색시는 신랑과 동방화촉을 밝히지 못하고 토가족왕한테 압송돼가서 토가왕의 침대에 올라 온밤 동반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토가족들은 토가왕이 결혼하는 소식을 알면 결혼 첫날 밤에 색시를 빼앗길가 봐 겁나 토가왕을 속이려고 상사나 난 것처럼 대성통곡치면서 결혼한다고 한다. 그것도 한두번이지 통공치면서 결혼한다고 토가왕의 졸속들을 속일 수 있겠는가. 토가왕은 그런 통곡결혼해 왕을 기만한 가족을 옥에 가두고 노예로 삼았고  통곡결혼한 집 색시를 빼앗아 왕궁에 데려다 시녀로 쓰거나 이쁘면 궁녀 혹은 첩년으로 데리고 살았다고 한다.
   토가족녀성들은 남편이 외지에 가서 일하면서 변신할가봐 묘수를 궁리해냈다고 한다. 집에 독사와 당지 벌레를 한 초롱 속에 넣어 키운다. 뱀과 벌레가 서로 물고 뜨고 싸우다가 독사가 이기면 토가족 녀성들은 자기 손가락을 물어 뜯어 흐르는 피로 그 독사를 먹여 키운다고 한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혹시 변심했으면 독사가 남편을 물어죽인다고 한단다. 그리하여 대부분 남편은 집에서 독사를 키우면서 자기를 기다리는 안해가 두려워 감히 외지에 나가 다른 녀성을 보지도 못한다고 한다.   

묘족의 혼인풍속은 뚱족 혼인풍속과도 달리 독특했다. 다만 뚱족들처럼 처녀 머리에 은빗을 꽂아주는 대신 은관이나 은테를 사 주는 풍속이 있다고 했다. 

묘족 처녀총각들은 명절 때 마을 광장에 모여 독특하게 선을 보는 풍속이 있었다. 

마을 광장에서 한떼의 총각들은 한떼의 처녀들과 마주 서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맞선을 본다고 한다. 

총각은 처녀 무리 속에서 어느 처녀가 마음에 들면 그 처녀한테 다가가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오빠는 녀동생한테 정이 깊다네

녀동생은 절세미인이라 천생배필이죠.

 

만약 총각이 마음에 들면 처녀는 총각의 노래에 대창을 한단다.

 

녀동생은 오빠한테 정이 간다오.

오빠는 재간 많고 힘도 세다지오

 

처녀총각들은 노래로 대창면서 련애한다고 한다.

처녀총각들은 그렇게 처음 만나 서로 눈이 맞아 마음에 들면 본격적으로 련애를 시작하고 약혼하고 나중에 결혼하기에 이른다고 했다.

묘족녀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묘족은 강탈혼인하는 혼인풍속도 있었다고 하였다.말하자면, 뉘네 집 처녀가 마음에 들면 처녀가 시집가는 날에 한무리 친척이나 친구들을 데리고 가서 색시를 빼앗아 결혼한다고 한다. 때문에 묘족들은 결혼식날에는 색시를 빼앗길가 봐 마을의 끌끌한 사내들로 색시 가마를 옹위한다고 하였다. 

묘족녀가이드는 한숨을 후 길게 내쉬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저의 할아버지가 바로 저의 할어머니 결혼식 날에 빼앗아다가  략탈결혼하였습니다."

유람객들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묘족녀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물론 강탈혼인은 해방전 봉건사회 때 있은 혼인풍속이고 지금 새 중국이 건설된 후에는 강탈혼인풍속은 묘족사회에서 점차 사라졌다고 하였다.

사실, 지금 “강탈혼인”은 명색뿐 연극에 불과하였다. 처녀총각이 서로 사랑해 혼약을 정한 후 처녀쪽 부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총각 쪽에서 마을 청년들이거나 친척사내들을 보내 처녀가 집에서 나오기를 기다려 마구 빼앗아온다. 본가집 오빠 등은 녀동생을 찾아오려고 쫓아간다. 그러면 총각네 집에서는 은장신구나 은전을 오빠한테 주면서 얼려보내고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하영은 묘족가이드에게서 독특한 묘족혼인풍속을 듣고 어쩐지 마음이 별스레 설레이는 감을 느꼈다.어쩐지 이상하게 저도 몰래 묘족들처럼 강제결혼이라도 당해 결혼하고 싶어졌다.

(왜 이다지도 싱숭생숭해 나지? 나어린 탓인가? ㅎㅎ. 누가 내 같은 더러운 년한테 장가 들려고 하겠는가? 눈먹쟁이 아니고서야?)

여기까지 생각하자 하영은 괴롭기만 하였다. 

묘족마을 복판에는 커다란 광장이 있었다. 저녁에 묘족들은 마을 복판의 널다란 광장에 커다란 우등불을 피우고 정채로운 우등불야회를 열었다. 

하영은 광서나 귀주나 어느 명승고적에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조선어안내간판글씨를 보고 민족의 긍지감을 느꼈다.마을 광장 우등불야회 전자현광막에도 한어,영어와 함께 조선어가 나타나 빛발쳤다. 

묘족녀성들은 우등불을 에워싸고 돌아가면서 다채로운 묘족군무를 추면서 유람객들로 하여금 휴식의 한때를 즐기게 하였다. 

묘족녀성가이드의 소개를 받고 조선족인 림하영이 가수라는 것을 알고 사회자는 특별히 림하영을 우등불야회에서 노래를 부를 것을 요청했다.

"우리 묘족과 조선족은 모두 같은 소수민족입니다. 아래에 조선족명가수 림하영녀사를 무대에 모십니다. 열렬한 박수로 환영합시다."

림하영은 사양하지 않고 우등불가에 나가서 청아한 목소리로 조선족노래 “아리랑”을 조, 한 두가지 언어로 구성지게 불렀다.

  당지 묘족들과 전국 각지 유람객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면서 재청했다.

우등불은 밤이 가는줄 모르고 피여올랐다. 묘족마을에는 임하영의 조선족 노래소리가 료량하게 울러퍼지였다. 

무릉도원과 천년묘족마을에 조선어로 력력히 새겨진 조선어안내글도 하영의  노래소리에 흥겨워 활짝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묘족 가이드나 사회자나 관중들은 모두 하영이 노래를 부르면서 속으로 자기 불운한 처지에 흐느끼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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