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릉.
감옥 지하심문실 철문이 아츠러운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류기 경장과 여경이 최정호 국장을 압송해 어둑시그레한 지하심문실에 들어섰다.
최혜영 국장은 류려평과 류덕재 “문화국청사 대부금사건”을 조사하려고 특별히 형사처 리춘희 처장, 류기 경장과 남경 한명을 데리고 긴급히 성감옥에 가서 최정호를 심문하기로 했다. 문화국청사 대부금사건은 당시 문화국 국장이었던 최정호와 떨어질 수 없는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정호가 우멍눈으로 흘끔 쳐다보니 눈이 시리게 비추는 조명등 뒤 정면 좌석에는 저승사자로 소문난 머리 희슥희슥한 최혜영 고문과 감찰국의 40대 초반 녀처장 리춘희가 엄숙히 앉아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청바위처럼 무섭게 굳어진 채 최정호를 쏘아보고 있었다.
최정호가 좌석에 앉기 바쁘게 최혜영 고문은 단도직입해 심문하기 시작했다.
“최정호, 우리 정책을 알지?’
“네, ‘로실히 탄백하면 관대하게 처리한다’. 최국장, 아니, 머리 싯허얀게 아직도 퇴직하지 않았소?”
리춘희 처장이 책상을 꽝 치면서 호통쳤다.
“닥쳣! 어디라고 언감 감찰국 고문을 모욕중상하는가?!”
정호는 쇠고랑이를 찬 손으로 대머리를 슬슬 만지면서 능청을 떨었다.
“저승사자로 소문나더니 좋긴 좋구만. 예순고개 넘어 고문으로 다 초빙되고. 똥별을 서너개 달고 대단한 지도자구만. 최고문동지, 난 탄백할 거 다 탄백하고도 감옥살이 14년이나 해야 하는데. 또 뭘 탄백하란 말입니까? 탄백하나 마나. 흥!”
최혜영은 골려주는 말은 개의치도 않고 정색해 엄숙히 심문했다.
“허튼 소릴 작작 치고 로실히 탄백하라. 문화국 청사 대부금을 낼 때 류려평과 류덕재가 당신과 박나영한테서 얼마나 얻어 먹었는가?”
최정호는 순순히 탄백하려고 들지 않았다.
“전번에도 말했지만 우린 류려평과 류덕재한테 아무 것도 준게 없습니다. 우린 재정정책을 하나도 어기지 않고 대부금을 내왔습니다.”
최혜영은 책상을 꽝 쳤다.
“거짓말! 박나영이 다 탄백했소.”
류기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내 보는 척하면서 록음앱을 꼭 눌렀다.
순간 실시간으로 심문과정이 류덕재 짝통핸드폰 위쳇과 컴퓨터에 전송돼 갔다.
“최국장, 당신은 그날 박나영을 시켜 전람관 돈 5만원을 꺼내가지고 오라고 했어. 당신은 박나영의 손에서 돈봉투 세개를 받아 류려평 부행장한테 3만원을 주었고 류덕재한테 5만원을 준게 분명하다. 류덕재한테 더 준 3만원은 어디서 난 돈인가?”
최정호는 심장을 찔리운듯이 쪽걸상에 앉아 움찔 했다. 류덕재를 더 준 돈은 기실 정호가 문화국 재회과 과장을 시켜 꺼내 가져온 것이었다. 그러나 늙은 너구리는 교활하게 너스레를 떨며 질문을 회피하려고 들었다.
“아니, 이건 생사람을 다 잡는다. 야, 박나영은 날 돈을 준 적도 없습니다.”
최혜영 고문은 서슬이 퍼런 눈길로 정호를 쏘아보면서 질문했다.
“사실이 다 밝혀졌는데도 아직도 로실히 탄백하지 않을텐가?! 어째 형기를 더 연장해줄까?”
“아니, 아니, 제발 그러지 마오. 지금 생지옥에서 막 죽을 거 같은데. 또 연장이라니 무슨 짓이오?”
순간 최정호는 손사래를 치며 낯에 식은 땀을 줄줄 흘렸다.
“최국장, 무인도에서 내 목숨을 내걸고 당신을 구해준 일을 벌써 다 잊었소? 최국장네 아버지나 최국장이나 다 당년에 시당위 서기인 내 가시아버지 덕분에 제발됐다는 걸 벌써 다 잊었소?”
최정호는 적반하장격으로 나왔다.
“배은망덕한 배신자들 같은게. 책상까지 꽝꽝 치면서. 그게 뭐요? 건방지게. 깜짝 깜짝 놀라 간이 다 떨어지겠다이.”
최혜영 고문은 허구픈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는 정호를 슬슬 정치공세를 하면서 탄백하게 유도했다.
“쓸데 없는 소릴 작작 하고 로실히 탄백하오. 우린 류려평과 류덕재 죄행을 기본상 장악했소. 다만 당신과 증실할뿐이오. 당신의 태도를 보자게오. 다른 부배분자 죄행을 적발하면 당신의 형기를 단축할 수도 있소. 헌데 안되겠구만.”
최정호도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 너구리었다.
그는 우멍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한참 궁리했다. 그도 저승사자 손에 걸리면 뛸 데 없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류려평과 류덕재는 저승사자한테 꼬리를 밟혔어. 증거를 딱딱 들이대는데 어쩌는가? 류덕재가 아무리 뿌리 깊고 날고 뛰어도 저승사자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해. 감옥에 있으면 편안한데. 여자가 없는게 젤 고통스럽지. 아까운 변강쇠 다 썩어빠진다. 14년 형기를 채우고나면 팔순이 될 판인데. 그땐 이쁜 아가씨 있어도 맥이 없어 못 놀겠는데. 에라, 다 불어버리고 형기나 단축하는게 상책이야. 하루라도 빨리 이 생지옥에서 나가 아가씨 야들야들한 엉덩이나 매만지면서 실컷 놀아야지.)
정호는 마른 헛기침을 깇더니 빗장을 질렀던 입을 끝내 무겁게 열었다.
“최국장, 난 다 적발하겠소. 내 형기를 진짜 단축해 줄 수 있소?”
정호는 기대에 찬 눈빛이 번쩍이는 우멍눈으로 “저승사자”를 쳐다보았다.
최국장의 어글어글한 쌍겹눈에도 대번에 활기 넘쳤다. 기대에 찬 눈길로 정호의 우멍눈을 마주 바라보며 똑똑히 말해주었다.
“우리 사법부에서는 당신의 탄백 정도에 근거해 성감옥당국과 토론해 형기를 단축해 재판결(개판)할 수도 있소. 모든 건 당신의 태도와 탄백 정도에 달렸소. 어서 탄백하오.”
정호는 류기 쪽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물을 한사발 주오.”
여경이 음료기에서 뜨거운 물 한 컵을 받아 주었다.
정호는 물을 한 컵 다 들이켜고 빈 컵을 탁자 위에 달랑 내려놓고 나서 두툼한 입술을 감빨더니 입을 무겁게 열었다.
“나와 박나영은 문화국과 전람관 청사와 아파트 건축용 대부금을 내오자고 류덕재 행장에게 5만원, 류려평 부행장한테 3만원 주었소.”
최혜영 고문은 코방귀를 뀌었다.
“흥, 그뿐인가?”
정호는 꼬리를 밟힌 건 떼를 쓸 방법없어 탄백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뿐이오.”
최혜영은 서슬이 퍼래 책상을 꽝 쳤다.
“류려평과 류덕재한테 집을 몇채씩 줬는가? 어째 우리 모르고 심문하는 거 같애?!”
정호는 속으로는 화들짝 놀랐지만 겉으로는 침착한 척 하면서 시치미를 땄다.
“무슨 소리오? 금시초문인데.”
정호는 류덕재와 류려평한테 아파트를 준 사실을 탄백하면 자기도 집을 공짜로 가진 사실이 들킬가 봐 겁났던 것이다.
“우린 류려평과 류덕재가 공짜로 가진 숱한 아파트 있다는 걸 다 장악하고 있어. 최정호, 지금 가옥관리는 모두 전자화하고 있다는 걸 당신도 알겠지? 누굴 속이려고?”
최정호는 번대머리를 숙이고 우멍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저승사자는 증거 없이 허망 심문하진 않을 거야. 오, 망했다, 망했어. 내 아파트 가진 것도 알고 있는 거 같아. 이거 혹을 떼러 왔다가 혹을 더 붙이게 생겼는데. 어쩌는가? 형기를 줄이기는커녕 늘어날 거 같다. 아이고, 이 일을 어쩌는가?)
순간, 대부금을 내자고 나영과 함께 돈봉투를 가지고 은행 행장실에 찾아 갔을 때 류려평의 째려보던 퉁사발눈이 떠올랐다.
(그때 류려평은 돈봉투 세개를 꺼내 줄 때 어쨌던가. 퉁사발눈이 다 째지게 부릅뜨고 나를 째려보더니 돈봉투를 활 밀어버렸지. 뭐? ‘요따위 걸 가지고 와서 대부금을 내려고 하는가?! 최국장, 째째하게 놀지 마오.’ 이렇게 고아댔지? 류려평, 네년 얼마나 엉큼한 악어냐? 모두 네년을 암펌이라더니 그른데 없구나. 어떻게 지은 아파튼데 네년은 한채를 가지고서도 모자라 숱한 아파트를 돌아보면서 욕심냈느냐? 탐욕스러운 녀탐관년아, 어디 살아남는가 보자.)
그는 독한 마음을 먹었다.
(류려평이 아파트 한채 가진 걸 활 불어버리자. 내 형기나 단축해야지.”
정호는 번대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다 적발하겠소. 대부금을 내주자고 문화국과 전람관 지도부 성원들과 토론하고 류려평 부행장한테 집 한채 주었소.”
최정호 뒤에 서고 있던 류기가 깜짝 놀라면서 뒤주춤하기까지 했다.
(아니, 저 놈이! 류려평 고모를 물어먹다니? 고모는 끝장이야, 끝장! 살인미수죄를 졌지. 아파트까지 가진 일이 터졌지. 이 일을 어쩌나?)
류기는 평소에 자기를 친딸처럼 고와하던 류려평 고모의 처지를 생각하자 속이 곪아터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일도 없는듯이 평온을 되찾으면서 놀란 기색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최헤영 고문의 예리한 눈길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류기의 반상적인 거동에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류기 경장, 어째 몸이 불편하오?”
“아니, 괜찮아요. 눈앞이 불시에 깜빡해서 좀…”
“그래요? 남경한테 경계를 맡겨도 되오. 휴계실에 가서 좀 쉬든지?”
류기는 척 똑바로 서더니 손사래를 쳤다.
“아니, 괜찮아요. 경계는 저의 임무니깐요.”
류기는 경계보다도 심문록음을 해 재빨리 류덕재 큰아버지한테 전송해야 했다. 때문에 그녀는 이 관건적인 심문자리를 절대 떠날 수 없었다.
“좋소.”
최혜영 국장은 날카로운 쌍까풀눈을 류기 몸에서 정호한테 돌렸다.
“최정호, 오늘 적발하는 태도가 참 좋소. 계속 적발하오.”
정호는 가랑잎으로 눈을 가리고 야옹 하기 시작했다.
“난 이젠 다 탄백했소. 류려평은 대부금 주관부행장이오. 류려평 부행장이 직접 비준해 대부금계약서에 싸인까지 하고 은행 공장을 꽝 찍었단 말이오. 이만하면 다 적발했소.”
최혜영 고문은 허구픈 미소를 지었다.
“최정호, 당신 세살짜리 애들처럼 떼를 쓰지 말고 다 탄백하란 말이오. 당신은 아직도 류덕재 행장과 도시건설전망국 국장의 죄행을 적발하지 않았단 말이오. 우리 모르는가 해 가랑잎으로 눈을 가리고 아옹하오?”
(아차, 이걸 어쩌나? 류려평이 한국에서 인터폴에 나포돼 인도돼 국내에 압송됐다던게. 그년이 다 탄백했어? 류덕재는 무서운 놈인데. 그 놈 호랑이 궁둥이를 들춰내서야 뼈다귀도 남을 수 있겠는가? 류덕재 애비는 사망해서 이젠 힘이 없지만. 류덕재는 뿌리 깊은 교활한 호랑이인데. 류덕재 아들 놈새끼는 온 시내에 이름이 자자한 깡패(조직폭력배) 우두머린데…)
정호는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 봐도 무리 승냥이 같은 류씨네 집안 우두머리만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진짜 그 놈 무서운 호랑이와 원쑤를 맺고 싶지 않았다.
정호는 번대머리에 돋은 식은 땀을 손으로 쓱 쓷더니 우멍눈을 판들거리면서 번개처럼 속궁리를 굴렸다.
(그 놈 류덕재를 적발해 형길 몇년 단축받겠는지? 감옥에서 앞당겨 나가도 승냥이 무리들한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호랑이 궁둥이를 들춰 봤자 좋은 끝장 있겠는가? 차라리 감옥에 조용히 갇혀 있는게 편안하지. 내 감옥에 들어올 때까지 여직껏 대부금문제는 터져나오지도 않았는데. 괜히 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까는 격이 되지나 않을까? 내 집을 얻어먹은 일까지 터지면 형기를 단축하기는커녕 연장될 수 있지 않을까? 역은 새 방아간을 날아지나가는 격이 되지 않을까? 어쩐담? 으흠, 아이고.)
최혜영 고문과 리춘희 처장은 당황해 하는 정호의 표정과 거동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정호의 복잡한 내심갈등과 심리변화를 불 보듯 환히 다 꿰뚫어 보고 있었다.
“정호, 로실히 탄백하오. 우린 류덕재 행장의 죄악도 다 장악하고 있소.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적발해 립공속죄하길 바라오.”
최혜영 고문의 말에 정호의 우멍눈에는 무서운 빛이 번뜩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피뜩 류덕재 괘씸한 일이 떠올랐다.
(개자식, 네 애비 서기로 되고 네놈이 조직부장에 행장으로 승급한게 다 누구 덕인데. 개새끼, 내 가시아버지 서기질할 때 너네 부자 제발시킨게 아니고 뭐야? 그때 청렴한 가시아버지는 너네 부자한테서 집을 얻어먹었니? 돈을 얻어먹었니? 고잘난 모태주 몇병 들고 와 가지고. 흥, 배은망덕한 놈들, 그 애비에 그 아들새끼지. 나를 시장을 좀 시켜달라고 찾아가니 너네 부자들 날 다 개 닭 보듯 했지? 내게서도 얻어먹자고 했잖았니? 개씨끼들, 누구 덕에 기어올라가고 우리 가시아버지 사망하니 배은망덕해? 괘씸한 놈 새끼들. 몽땅 량심짝도 의리심도 없는 배신자 놈새끼들이야.)
정호는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그의 우멍눈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다 불어치워고 내 형기를 줄이고 보자. 감옥에서 나간 다음 무리승냥이들은 그때 다시 대처할 판이지.)
정호는 이렇게 마음먹자 인차 번대머리를 번쩍 쳐들고 저승사자를 쳐다보더니 포문을 열었다.
“다 적발하겠소. 대부금을 내자고 류덕재와 도시전망국 국장한테도 아파트 한채씩 주었소. 또 당시 시당위 서기질한 류덕재 애비한테도 한채 더 주었소.”
류기는 놀란 기색도 없이 침착하게 핸드폰으로 심문을 록음해 전송하기에 열중했다.
최혜영 고문은 희슥희슥한 단발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정호한테 물었다.
“류서기한텐 왜 아파트를 주었소.”
“당시 시건설전망국 국장은 문화국 청사 뒤에 있는 유치원 해빛을 가리운다고 9층 이상 짓지 못한다면서 문턱을 올렸지. 분명 얻어먹으려는 개수작이었지. 우린 류서기 보고 좀 도시건설전망국 국자과 말해 층수를 올리게 해달고 집 한채를 주기로 하고 사정했댔소. 건설전망국 국장한테도 한채 주었소. 류서기 한마디 말에 9층으로부터 일약 29층으로 올라가지 않았소? 류서기 말을 듣지 않고 국장은커녕 훅 어디로 날아가 처벅힐지도 모른 판인데. 누가 감히 류서기 말을 듣잖겠소? 흥! 세상 일이 모두 이렇소.”
“참 좋소.”
최혜영은 그래도 만족하지 않았다.
“정호, 당신은 절반도 적발하지 않았소. 로실히 탄백하오.”
“또 뭘 말이오? 잘 생각나지 않는데…”
최혜영 고문은 날카롭게 정호희 우멍눈을 쏘아보았다.
“어째 내 일일이 말해야 탄백하겠소? 문화국 청사와 직원 아파트를 짓고 최정호 국장과 해당 부문 간부들은 집을 몇채씩 가졌소? 우린 다 알고 있소. 어서 로실히 탄백하오.”
정호는 저승사자의 칼날처럼 서슬이 퍼렇고 예리한 눈길을 피해 머리를 뚝 떨어뜨리었다.
그는 우멍눈을 팬들거리면서 속궁리를 했다.
(나영이 다 불었는가? 아니야, 나영은 분 거 같잖은데. 나영도 한채 얻어가졌는데 감히? 그럼 문화국과 부직들과 전람관 관장이 불었을까? 그 놈들도 한채씩 가졌으니깐. 차마 불었을까? 아니야. 저 저승사자는 지금 썰매뛰기를 하고 있어. 내 아파트 가진 일을 들고 나가면 끝장이야. 형기를 단축하기는 고사하고 연장될 수도 있어. 절대 안돼.)
그는 나영을 잡기는 싫었다.
(나영은 내 조강지처는 아니지만 필경 나를 따라 일본과 한국에까지 따라다니지 않았는가? 내 젤 어려울 때 내 정욕을 말려준 여자 아닌가? 남녀간에도 신뢰와 의리를 지켜야지. 최저한도의 량심도 지키지 않으면 사람인가? 나영을 실컷 데리고 논 변강쇤가? 이건 최후방아선이야. )
정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나서 머리를 쳐들었다.
“최국장, 아무리 저승사자라도 너무 강요하지 마오. 내 아는 건 다 적발했으니까. 이젠 더 묻지 마오. 이젠 때려죽이든지, 무기징역에 처하든지 해도, 진짜 탄백할게 더 없소.”
최혜영 고문과 리춘희 처장이 아무리 따지고 들어도 정호는 대머리를 푹 숙이고 우멍눈을 딱 감아버렸다.
“가만!”
갑자기 정호가 우멍눈을 번쩍 떴다.
“최국장, 다시 만나지 못할가 봐 한가지 부탁하는데. 내 형기 단축돼 감옥에서 나가면 후처감을 하나 미리 알선해 주오.”
“픽!”
최혜영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는 우멍눈을 쏘아보면서 다그쳐 물었다.
“지금 그런 걸 말할 때오? 박나영은 집 한채씩 가졌소? 안 가졌소?”
옆에 앉은 리춘희 처장도 한마디 질문했다.
“부관장인 박나영이 한채 가진 걸로 아는데 전람관 관장은 한채 안 가졌는가?”
그러나 최정호는 우멍눈을 다시 내리감고 두툼한 입에 빗장을 지르고 한마디 말도 더 대답하지 않았다.
최혜영은 심문을 마무리지으면서 쇠덩이 구으은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탄백태도 좋았소. 꼭 사법부와 감옥당국에 회보해 형기를 단축하도록 하겠소. 당신한테 시간을 줄테니 곰곰히 생각해 보고 낱낱이 탄백하오.”
…
속담에 화는 눈섭 끝에서 떨어진다고 했다.
최혜영 고문과 리춘희 처장이 성감옥에서 다급히 돌아와 녀자감옥 소장실로 찾아갔을 때였다.
그녀들은 뜻밖의 일에 부딪치게 됐다.
소장실에는 김천선 소장이 보이지 않고 대신 류기가 도고히 앉아 있었다.
류기는 높으직한 의자에 거만하게 앉은 채 최혜영과 리춘희를 째려보면서 물었다.
“무슨 일로 또 찾아 왔습니까?”
리춘희 처장이 찾아온 사연을 말했다.
“김천선 소장을 부탁드립니다. 류려평을 긴급히 심문해 증실해야겠습니다.”
픽!
류기는 코웃음쳤다.
“김천선 소장은 년령관계로 이젠 소장자리에서 물러나 퇴직했습니다. ”
최혜형은 류기한테 다가서면서 다급히 물었다.
“그럼 김호 대대장을 찾을 수 없겠소?”
류기는 쌀쌀하게 대답했다.
“최로인, 좀 똑똑히 알아두십시오. 김호는 치안대대 부대대장으로 강급돼 전근해 갔습니다. 여기 감관대대 대대장 겸 녀자감옥 소장은 내, 류기란 말입니다.”
최혜영은 반색하면서 류기 사무상 옆에 다가섰다.
“류기 대대장, 류려평을 심문실에 데려다 주오.”
류기는 책상을 꽝 쳤다.
“최혜영 로인님, 이젠 다신 여기와서 내게 이래라 저래자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이젠 이 사건을 수사할 권리 없습니다. 흥!”
최혜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소리오?”
류기는 틀스레 의자등받이에 기대 앉아 몸까지 흔들거리면서 득의양양해 말했다.
“감찰국에 돌아가 해임문건이나 찾아보고 심문인지 뭔지 할거나 말거나. 쳇,”
“뭐라고?!”
최혜영은 류기 앞에서 가까스로 침착성과 인새성을 잃지 않고 자리를 떴다.
그녀는 감찰국으로 부랴부랴 돌아갔다.
그의 책상머리에 확실히 해임문건이 달랑 놓여 있었다.
“…년령관계로 이미 퇴직한 최혜영동지 고문직을 해임하고 영광스럽게 퇴직시킨다. 리춘희동지는 수사실무능력이 차하고 실직행위가 있기에 처장직무를 해임하고 은행 신대처 처장으로 전근시킨다. 최혜영동지와 리춘희동지는 사흘 내에 지금까지 류려평과 류덕재 대부금 사건에 관계되는 모든 수사자료를 신임 처장 왕춘영에게 인계해야 한다.…”
최혜영은 마른 하늘에서 생벼락을 얻어맞은 기분에 잠겨 눈앞이 깜깜해났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마수가 자기한테 뻗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문건은 류덕재의 부탁대로 최혜영이나 리춘희나 너무 자극하지 않고 자리만 내놓게 아량있게 작성된 것이었다.
(왕춘영은 류덕재 행장시절 여비서 아닌가? 후에 신태처 처장질 한 거 같은데 일약 감찰국 처장으로 돼? 실무도 하나도 모르는 생떼기를 데려다 수하하게 한다고?)
진짜 악세력과의 대결이었다.
최헤영은 문건을 책상 위에 활 뿌리치고 주먹을 불끈 쥐더니 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어글어글한 쌍겹눈에서는 이상한 빛이 번개쳤다. 머리속 에서는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우르릉 꽝꽝 울렸다.
최혜영은 서리내린 단발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이를 악물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누가 최종승리자인가는 아직 미지수다. 이 세상에는 정의가 살아 있고 법이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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