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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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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3    이승훈 시모음 댓글:  조회:4649  추천:0  2015-07-18
  이것은 시가 아니다                                                                      이승훈      한양대 교수로 직장을 옮긴 1980년대 초 밤이면 김일성 이 자신의 집을 폭파하겠다고 전화를 하고 밤새도록 지붕 위엔 낯선 비행기가 떠 있다고 편지를 보낸 제자가 있었 다 춘천교육대학을 중퇴하고 결혼에 실패한 그는 대학 시 절 서울 집으로 간다며 철길을 계속 걸어간 적이 있지 어 느 날은 그의 시집을 영국에서 출판하게 되었으니 선생님                                                     이 평론을 쓰셔야 한다는 편지도 보냈다      그 무렵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연구실 문을 열고 웬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나이는 서른 정도 나를 보더니 대뜸 선생님이 불쌍해요 그가 한 말이다 잠바 차림에 무 언가 들고 있었다 그는 전라도 광주에서 시를 공부하는 청년으로 선생님 생각이 나서 도시락을 싸 왔다며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을 풀었다 그때 조교들이 들어와 그는 조교들과 함께 나갔지 1980년대 초엔 왜 이런 일들이 많 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이 시는 이승훈 시인의『이것은 시가 아니다』라는 시집에 실린 시...(?)입니다.^^ 이승훈 시인은 수업 시간에도 몇 번 언급이 됐었는데요.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다 이런 형식으로 쓰여져 있어요. 저는 이런 시를 별로 본 적이 없어서 아주 낯설었습니다. 정말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또 생각해 보게 되네요. 시집 뒤쪽에 이 시에 대해서 쓴 글이 실려 있는데요.    이것은 시가 아니다. 그러나 시지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시로 대접받는다. 휴지통에 넣으면 휴지가 되고 편지로 보내면 편지가 되고 일기로 쓰면 일기가 되고 정신과 의사의 노트에 적으면 병력이 된다. 도대체 시는 어디 있는가? 내가 이런 제목을 달아 시지에 발표한 것은 도대체 당신들이 생각하는 시는 뭐요? 시는 과연 어디 있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정신병의 세계를 그대로 옮긴 것은 이젠 우리 시도 이런 세계를 제대로 수용하고 공부하면서 광기에 대한 새로운 사유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예술은 광기를 먹고 산다. 미치지 않은 시인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정신도 육체도 멀쩡한 시인들은 가짜다. 김소월, 이상, 김수영을 생각하자. 그러니까 광기의 이성에 대해 사유하고 이성의 광기에 대해 사유하자.   그 중 한 부분입니다. 이 외에도 시집에 실린 시들이나 글을 보면 이승훈 시인이 시에 대해서 많은 고민과 연구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안 읽어보신 분은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 이승훈 시인 시모음 사랑 비로소 웃을 수 있고 한가롭게 거리를  걸을 수 있고 비가 와도 비가 와도 비  를 맞을 수 있고 서점에 들려도 마음  이 가벼울 수 있고 책들이 한없이 맑  아지는 걸 볼 수 있게 된 건 투명한 책  들 앞에 두렵지 않게 된 건 모두 어제  네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말했기 때문  이야 네가 있는 곳! 따뜻한 곳! 그곳  으로 오라고!  ~~~~~~~~~~~~~~~~~~~~~~~~  사랑의 시작  피범벅 겨울이 가고  넌 커단 가방 하나 들고 나타났지  아니 커단 기차를 들고 나타났지  그 기차에 타라고 말했지  난 정신없이 기차를 타고 떠났다  지금도 떠난다  계속 떠난다  이 기차, 이 구름, 이 항아리 속에  내가 있으므로  이 방 속엔 내가 없다  이 학교에도 없다  이 거리에도 없다  그럼 어디로 간 거야?  아마 네가 들고 온 기차 속에 있겠지  이건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네가 온 다음  난 아직도 제 정신이 아니야  네가 오다니?  다신 오지 않으리라 믿었지  너, 이 봄, 이 아련한 날들, 이 도취의 날들,  이 피안의 날들,  이제 네 속에 내가 있다  이제 내 밖은 온통 너다  꽃으로 뒤덮인 들판,  바람이 불어도 춥지 않은 날들,  모두가 너다  내가 앉아 있는 이 의자,  내가 몰고 가는 쏘나타,  내가 들고 가는 가방,  내가 들리는 술집,  내가 시를 쓰는 이 볼펜,  이 백지,  지금 차 밖에 내리는 어둠,  왕십리의 불빛,  깊은 밤 의왕 터널을 지나 나타나던  수원의 불빛,  깊은 밤 찾아간 카페,  카페 유리창에 떨어지던 빗방울,  내가 걸치고 간 겨울 바바리,  모두가 너다  피투성이 황혼 다음에  문득 네가 오고  이제 내가 보는 것,  내가 만지는 것,  내가 듣는 것,  모두가 너다 난 사라지고  요란한 폭음 속에 폭음 속에  하얀 비행기 하나 떠 간다  넌 다리 없는 새라고 말했지만  ~~~~~~~~~~~~~~~~~~~~~~~~  난 글쓰는 사람  난 글쓰는 사람  불행이여 우린 실컨 싸웠다  난 위대한 작가가 아니야  난 위대한 시인도 아니야  난 글쓰는 사람  난 글을 사랑하는 사람  난 언어를 사랑하는 사람  언어여 우린 실컨 싸웠다  이제부턴 휴식이다  재를 재떨이에 털고  난 입에 담배를 물고  이 글을 쓴다  난 글쓰는 사람  난 언어가 있기 때문에  난 언어와 노는 사람  난 당신과 노는 사람  나의 병은 글쓰기 나의 병은  나의 건강 오늘도 글을 쓰고 지치고  언어여 당신에게 전화를 했지  내가 쓰는 글은  나의 애인, 나의 정부, 나의 천국  나의 지옥, 나의 숨결, 나의 가슴  나의 가슴의 흉터, 나의 섹스  서지 않는 섹스 오 내 사랑,  나의 항구, 나의 결핍, 나의 몸  이유는 없다  난 그냥 글쓰는 사람  난 그냥 걷는 사람  난 그냥 사랑하는 사람  매미가 울고 햇살이 내리고  나무가 크고 차들이 지나가듯이  그냥 글쓰는 사람  난 글쓰는 사람  내가 쓴 글 속에  헤엄치는 물고기  이 글쓰기가 나를 낳고  나를 키우고 나를 병들게  하고 나를 나이 먹게 한다  오 맙소사!  시집 ; 너라는 햇빛  ~~~~~~~~~~~~~~~~~~  내 친구 개미  넌 카페가 무언지 알 거다 내가 자주 들르는 카페는  두 곳이다 하나는 인사동(천도교 회관 지나 고려원  옆)에 있고 하나는 내가 사는 서초동에 있다 인사동  (아아 아닌지 모른다 인사동이 아닐 거다 난 시를  쓰다 말고 의자에서 일어나 생각해본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승훈 씨가 편집한, 고려원에서 나온 책을  서가에서 뽑아 살펴본다 종로구 경운동 70 그래  경운동이로군) 카페에는 길을 향해 난 커단 유리창이  있고 유리창 앞 나무 의자에 앉으면 유리창 너머 길이  보이고 해가 지는 골목도 보이고 가을 저녁 낙엽이  지는 나무도 보인다 고려원에 들르는 날은 야간  강의가 있는 목요일 저녁이다 시간이 남으면 해질  무렵 그 카페에 앉아 저무는 길을 보고 지나가는  미인들도 보고 나처럼 못생긴 중년 남자들도 보고  책도 보고 담배도 피우고 서초동 카페는 목요일 야간  강의를 마치고 허전해서 들른다 넌 허전하다는 게  무언지 알 거다 작은 카페 벽엔 검은 거울이 있고  빠에 앉으면 거울 속에 내 얼굴이 흐리게 나타난다  흐린 흐린 가을밤 혼자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공상도 한다 술에 취하면 거울 속에 흐린 얼굴이  또렷이 드러나고 난 갑자기 부끄러워 일어선다 이런  밤의 심정을 시로 쓴 적이 있지만 이 시를 읽은  제자는 너무 감상적이라고 발표하지 말라고 했다  난 그의 말을 따랐다 이 시는  술 마시는 밤이 외롭더라  야간 강의를 마치고  동대문을 지날 때  동호대교를 지날 때  사는 게 외롭더라  너무 피곤하더라  아파트 앞 카페에  말없이 앉아  담배를 피우는 밤이 외롭더라  밤 열두시가 외롭더라  1년이 외롭고 10년이 외롭더라  의미가 없으면 없는 대로  만나고 사랑하고 괴로워하고  기뻐하고 후회하고  그렇게 나는 게 외롭더라  처럼 되어 있다 내가 생각해도 감상적이다 아아 난  이다지도 감상적인가? 어린애들도 아닌 대학교수가  이다지도 감상적이라니 쯧쯧 그러나 넌 감상이 무언지  알 거다 벽거울이 있는 카페에 앉아 늦은 밤 맥주를  마시는 이승훈 씨는 지친 모양이다 넌 지쳤다는 말이  무언지 알 거다 지친 다음에 지친 다음에 찾아오던  오한도 웃음도 알 거다 난 지금 보도블록 위에서  만난 너를 생각하며 이 시를 쓴다 넌 내 친구니까  ~~~~~~~~~~~~~~~~~~~~~  흐린 밤 볼펜으로  흐린 밤 볼펜으로  이제 무엇을 쓰랴  흐리게 흐리게 무엇을 쓰랴  무엇을 찾아  무엇을 찾아 쓰랴  서럽던 날들을 쓰랴  사라진 바다를  바다 위의 구름을 쓰랴  용서하랴 부서지랴  축복받은 날들은  모조리 아름답던 날들  이렇게 흐린 밤  목메이는 밤  무엇을 쓰랴  이 백지같은 외롬  마음껏 찢어지는 외롬  하염없는 날들만 하염없으니  영원히 저무는 병원 하나만  노적처럼 흔들리는 방에서  사랑했던 사람아  흐린 밤 볼펜으로  이제 무엇을 쓰랴  떠날 수 없고  머물 수 없으니  바위같은 가슴이나 울리면서  이제 무엇을 쓰랴  시집 ; 환상이라는 이름의 역 / 미래사  ~~~~~~~~~~~~~~~~~~  풍선기 1호  -신동문의 「풍선기 1호」를 모방하여  초원처럼 넓은 강의실에 선 채  나는 아침부터 기진맥진한다  하루 종일 수없이 백묵 가루를  날리고 몇 차례인가 그리움을  하늘로 띄웠으나 교수라는 나  는 끝내 외로웠고 지탱할 수  없이 푸르른 하늘 밑에서 당황  했다 그래도 나는 까닭을 알  수 없는, 너를 위하여 미열을  견디며 끝내 기다리던, 그러나  너라는 애초부터 알 수 없던  고향 대신에 머언 창 너머 지나  가는 솜덩이 같은 기차만을 지  킨다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  너를 만난 날  너를 만난 날은  날개 달린 날이다  현실이 사라지고  다른 현실이  태어난 날  그러니까 그날은  초현실의 날이다 훨훨  새가 날아오던 날  너를 만난 날은  만신창이가 되어  여름을 힘겹게 보내고  문득 가을이 오던 날  너를 만난 날은  필연의 날이다  머리에서 손이 빠져 나오고  다리에서 얼굴이 튀어나오던  허리에서 설탕이 쏟아지던  불안 비참 치욕 따위가  지루하고 맥이 없던 날들이  모조리 일어나 빛이 되던  아아 내 어깨 쭉지에  문득 날개가 돋던 날  너를 만난 날  시집 ; 너라는 환상 ; 세계사  ~~~~~~~~~~~~~~~~~~~~~~~~  쌀가게 앞에 서 있던 너  봄날 오후  쌀가게 앞에  서 있던 너  따신 해  이마에 받으며  서 있던 너  병든 네 옆에 얌전히  자고 있던 고양이  봄날 햇살 속에  말없이 서 있던  네가 보던 건  먹빛 슬픔  바람 속을 지나가던 열차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후리지아  오늘도 쌀가게 앞에 네가  있을 것만 같아  나는 고양이 한 마리 사러  시장으로 간다  후리지아는 너의 이름  후리지아 옆에 잠들던  고양이도 너의 이름  먹빛 슬픔 속에  오늘도 작은 마을  햇살 내리는 골목  어느 쌀가게 앞에  서 있을 것만 같은 너  ~~~~~~~~~~~~~~~~~~~~~~  난 당신의 아저씨  오늘부터 난 아저씨야  가벼운 가벼운 여름이야  아저씨는 지나가는 아저씨  웃는 아저씨  난 겨울 한강에 서 있던 아저씨가 아니야  난 고개를 숙이고 웃는 아저씨  작은 목로집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  아름다운 당신 앞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난 당신 아저씨야  당신 애인이 아니라 당신 아저씨  이름 없는 아저씨  모자를 쓰고 마포 삼겹살집에 앉아  이룬 것도 잃은 것도 없는 황혼 아저씨  비 아저씨  빗물 고인 아스팔트나 바라보는 아저씨  난 당신 아저씨야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묻지 마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묻지 마  난 아저씨가 좋아  끄노 아저씨도 있지  프랑스에서 시를 쓰던  기인 벤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아저씨  인생을 반납한 아저씨  난 당신 아저씨야  그동안의 먹구름도 천둥도 모조리 한강에  버고 온 아저씨!  ~~~~~~~~~~~~~~~~~~~~~  허나 밤이 좋다  허나 밤이 좋다  악몽만 있는 밤이  창백한 망치로 두드리는 밤이  나를 나에게서 분리하는 밤이  나는 좋다  그래도 나는 밤이 좋다  꿈 속에 떠 있는 밤  의식 없는 밤  나는 밤의 주인은 아니지만  밤의 주인은 떠난지 오래다  몇 번이나 돌아누우며  바람 소리만 들리는 밤  아무도 없는 밤  한번도 꿈꾸는 나를  제대로 볼 수 없는 밤  과거만 있는 밤  코도 없는 밤  코만 있는 밤  지남철도 없는 밤  이 구부러진 밤이  나는 좋다 횔더린의 궁핍한  시대도 미래도 모조리 잠든 밤  불빛도 불빛도 죽은 밤  비행기도 없는 밤이  나는 좋다  누가 뭐래도 좋다  영혼 따위가 없는 밤  몽상 따위가 없는 밤  악몽만 있는 밤 한없이  식어가는 육체만 있는  이 밤이 나를 나에게서  분리하는 이 밤이  나는 좋다  너무 좋아서  이윽고 나는 밤을  꽉 깨물어 버린다  시집 ; 환상이라는 이름의 역 / 미래사  ~~~~~~~~~~~~~~~~~  가을  하아얀 해안이 나타난다. 어떤 투명도 보다 투명하지  않다. 떠도는 투명에 이윽고 불이 당겨진다. 그 일대에  가을이 와 머문다. 늘어진 창자로 나는 눕는다. 헤매는  투명, 바람, 보이지 않는 꽃이 하나 시든다. (꺼질 줄 모  르며 타오르는 가을.)  환상이라는 이름의 역 / 미래사  ~~~~~~~~~~~~~~~~~~~~  또 가을이다  피는  불이 되고  불은  연기가 된다  이제  나는 연기다  나는  풀풀풀 날린다  시간이  딸꾹질하는 뇌에는  연기만 가득하다  또 가을이다  환상이라는 이름의 역 / 미래사  ~~~~~~~~~~~~~~~~~~  이곳에서의 삶  죽은 듯이 살았다  빛나는 것은 없었다  하염없이 살았다  땅에 침을 뱉었다  한번 더 뱉었다  머언 데로 한없이  가까운 데로 달려갔다  오오 죽음이 다 된 삶  나를 떠나게 하던 삶  내가 떠나던 삶  나를 위해 기도하던 삶  내가 기도한 삶  그토록 커다랗던 삶  그토록 커다랗게 나를 가둔 삶  내가 크게 크게 가두었던 삶  시방 여름 대지에서  만나면 외면해야 할  흐린 날들의삶  비린내 투성이 삶  한번도 지켜지지 않았던 삶  저 삶이 하루종일  연기만 나는 삶이  허나 영원히 사랑했던 삶이  나를 영원히 사랑했고  내가 영원히 사랑할 삶이  시방 이렇게 불탄다  삶은 삶 속에 나를 가두고  나는 내 속에 삶을 가둔다  환상이라는 이름의 역 / 미래사  ~~~~~~~~~~~~~~~~~~~~  저녁 기차  저녁 기차를 타고  눈발이 날리면  너와 함께  겨울 바다에  가고 싶어  언제나 생각 뿐이지  사는 게 지겹다고  말은 하지만 한번도  떠날 수 없었어  저녁 기차를 타고  떠날 수 없었어  오늘도 저녁  기차를 보면  그동안 살아온 게  치사해 더러워  지겨워 역겨워  거적을 쓰고  살아온 것만 같아  엄살이 아니야  오늘도 저녁  기차를 보며  손을 흔든다  저녁 기차는  들은 척도 않고  오늘도 칙칙퍽퍽  어디로 가는 걸까  오늘도 저녁 기차는  가느다란 아편 같다  시집 ; 너라는 환상 / 세계사  ~~~~~~~~~~~~~~~~~~~~~~~~  작은 방에 대한 회상  겨울 저녁이면 난 버스를 타고 당신의 방에 간다고  시를 쓴다 언제던가 그해 겨울 저녁에도 난 버스를  타고 당신의 방에 갔다고 시를 썼다 당신은 없고 빈  방에 모자를 걸어두고 왔다는 내용이다 그때만 해도  시적이었군! 당신 없는 방에 혼자 앉아 담배를 피우고  밖에는 눈이 내리고 당신 혼자 사는 작은 방 벽에  모자를 걸어놓고 돌아왔다고  그해 겨울 어머니는 개포동 독신자 아파트(13평)에  혼자 사셨다 난 일요일이면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는 작은 방에 앉아 계셨다 어머니는 뒷산에  산책을 나가신 날도 있었다 난 어머니가 없는 빈 방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어머니가 읽다 둔 원불교 경전도  보고 혼자 돌아온 날도 많다 어머니는 지난해 겨울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밤에 난  거리를 떠돌고 있었다  겨울 저녁이면 당신의 방에 간다고 시를 쓴다 당신은  겨울 오후 작은 방에 누워 있었지 밖엔 바람이 불고  난 목에 마후라를 하고 눈 내린 골목을 돌아갔다 아아  옛날 춘천에서다 난 당신을 찾아갔다 어머니도 겨울  오후 작은 방에 누워 계셨지 일요일이면 차를 몰고 갔다  그러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오늘도  난 당신의 방에 간다고 시를 쓴다 물론 당신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모든 당신은 어머니다 춘천은 너무 멀다  개포동도 너무 멀다 아무튼 난 누군가를 따라 이 세상에  왔다 내가 노래한 작은 방은 모두가 어머니를 상징한다  내가 그동안 방에 대해 시를 쓴 건 어머니, 그리고  당신 속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그렇다 모두  어머니 속으로 돌아가자! 어머니 속으로 돌아가자!  어머니 속으로 돌아가자! 난 시를 쓰다 말고 책상에  이마를 처박는다 오 언제나 겨울 저녁이  문제로다  시집 ; 나는 사랑한다 / 세계사  ~~~~~~~~~~~~~~~~~~~~~  너라는 햇빛  나는 네 속에 사라지고 싶었다 바람 부는 세상 너라는  꽃잎 속에 활활 불타고 싶었다 비 오는 세상 너라는  햇빛 속에 너라는 제비 속에 너라는 물결 속에 파묻히  고 싶었다 눈 내리는 세상 너라는 봄날 속에 너라는  안개 속에 너라는 거울 속에 잠들고 싶었다 천둥 치는  세상 너라는 감옥에 갇히고 싶었다 네가 피안이었으  므로  그러나 이제 너는 터미널 겨울저녁 여섯시 서초동에  켜지는 가로등 내가 너를 괴롭혔다 인연은 바람이다  이제 나 같은 인간은 안된다 나 같은 주정뱅이, 취생  몽사, 술 나그네, 황혼 나그네 책을 읽지만 억지로 억  지로 책장을 넘기지만 난 삶을 사랑한 적이 없다 오늘  도 떠돌다 가리라 그래도 생은 아름다웠으므로  ~~~~~~~~~~~~~~~~~~~  우리들의 밤  꿈이란 무엇이며  어둠이란 무엇이며  혁명이란 무엇인가  비 내리는 밤  비 내리는 밤이란 무엇인가  쓸쓸한 사람 곁에 누워 있는  비쩍 마른 나는 무엇이며  흘러간다는 것은 무엇이며  비 내리는 밤  문득 들리는 네 가슴의  시냇물 소리란 무엇인가  치욕이란 무엇이며  추위란 무엇이며  생활이란 무엇인가  어둠 속에 불을 켜고  잠이 안 와 돌아눕는  이 외롬이란 무엇이며  어둔 창을 열고  약을 먹는 나란 무엇인가  그런 게 모두 무엇인가  어둠 속에 잠시 타오르는  불빛 불빛 같은 것  그런 게  모두 무엇인가?  시집 ; 환상이라는 이름의 역 / 미래사  ~~~~~~~~~~~~~~~~~~~~  사는 기쁨  -없는 사람이 없는 물건과 이야기를 나누듯이  -타르디유  없는 사람이  없는 물건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이건 이미지가 아니다  이건 시가 아니다  그런 밤이 있다  그런 새벽이 있다  그런 저녁이 있다  그가 시쓸 때  그가 목욕할 때  그가 술에 취해  앉아 있을 때  없는 사람이  없는 물건과  이야기를 나눈다  과연 그런가?  의심스럽다면  독자들도 연습삼아  없는 사람이  없는 물건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건 힘든 일이 아니지요  수동적인 상태로  기다리는 일이지요  사랑하는 남자의 몸을  조용히 기다리듯이  능동적인 상태로  기다리는 일이지요  그러니까 기다림 속엔  포기와 노력이 있지요  없는 사람과  없는 물건이  이 밤 속에  나타난다  사라진다  나타남과  사라짐은  결국 하나다  이런 생각 때문에  그는 노이로제가  되어 간다  시집 ; 길은 없어도 행복하다 / 세계사  ~~~~~~~~~~~~~~~~~~~~~~  도라지  요만한 여유가 고맙다 여유는 나를 버리는 일 오오 욕  심 욕심 고정관념을 버리고 담배를 피우면서도 담배  피운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러니까 망각이다 처음엔  말보로를 피우다가 도라지로 바꾼 건 인후염 탓이지  만 오늘 저녁 도라지도 있고 파아란 도라지꽃도 있고  갑자기 도라지꽃 생각이 난다 도라지 도라지 산도라  지 내가 피우는 당신 요만한 여유라도 생긴 건 모두가  당신 때문이고 저녁에 마시는 하이트 때문이다  ~~~~~~~~~~~~~~~~~~~~~  너를 만나고  너를 만나고 사랑이 난리라는 걸  배웠다  너한테 너한테 배웠다  사는 게 난리지만 그동안  너를 만나고  난리가 끝난 줄 알았지  그러나 아니야  네가 떠난 다음 또 난리가 나고  이 난리는  내가 만든 난리  겨울저녁에 시작된 난리가  봄이 오는 저녁에도 계속되고  난리는 난리는 불이 아니야  불이라면 끌 수도 있지만  난리는 사랑이야  사랑은 저주받은 사람들의 직업이야  겨울저녁 싯벌건 노을이야  밤새도록 부는 바람이야  너를 만나고 사랑이 난리라는 걸  배웠다  지금도 계속되는 이 고역  이 업보 이 가난  하얀 닭이나 백 마리 기르면  난리가 끝날까?  이 난리가 지금도 계속되는 난리가  끝이 없네  천 마리 닭이나 기르면 끝나리  어젯밤에도 술만 마시고  돌아왔네  ~~~~~~~~~~~~~~~~~~  새로운 눈물  새로운 눈물은  깊은 밤에 왔다  산을 넘어 왔다  불안을 이긴 밤에  문득 찾아왔다  새로운 눈물은  어느날 그립다는 말 속에  불타며 왔다  눈에 덮인 산과 함께  불 꺼진 밤과 함께  갑자기 왔다  새로운 눈물 속에  너는 작은 역(驛)이었고  너는 작은 새였고  너는 작은 바다였다  작은 바다 속에  나는 다시 태어났다  불안을 이긴 밤에  산너머 산너머  갑자기 찾아온  새로운 눈물은  나를 감싸고 가슴에  쾅쾅 못을 박았다  당신의 방 / 문학과지성사, 1986  ~~~~~~~~~~~~~~~~~~~~  풀잎 끝에 이슬  풀잎 끝에 이슬 풀잎 끝에 바람  풀잎 끝에 햇살 오오 풀잎 끝에  나 풀잎 끝에 당신 우린 모두  풀잎 끝에 있네 잠시 반짝이네  잠시 속에 해가 나고 바람 불고  이슬 사라지고 그러나 풀잎 끝  에 풀잎 끝에 한 세상이 빛나네  어느 세월에나 알리요?  시집 ; 인생 / 민음사  ~~~~~~~~~~~~~~~~~~  말의 사랑  그러나 말에 사무치고 말이 가는  곳에 사무치고 말의 헤맴에 사무  칩니다 말의 원한이 아니라 말의  사랑이 뼈에 사무칠 때 우린 깨  어납니다 말을 사랑하십시오 인  간이 아니라 말에 사무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해가 지고 밤이 옵니다 말에 사  무쳐서 말을 여의고 사라진 말  속에 불을 켜십시오 아니 불이  당신을 켭니다 말에 사무칠 때  말은 사라지고 사무침만 남습니  다 사무치는 인생을 사십시오 사  무치는 사랑, 사무치는 슬픔, 사  무치는 리듬, 사무칠 때 깨어납  니다  시집 ; 인생 / 민음사  ~~~~~~~~~~~~~~~~~  학교  그는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학교에는 책상이  많았습니다  그는 책상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의자도  사랑했습니다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가 의자에 앉자  그만 의자가 부서졌습니다  [이런 개새끼들]  그는 중얼거렸습니다  학생들이 마악  웃었습니다  그는 공부할 게  없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하루종일 놀다가  그만 학교를  나왔습니다  [이젠 끝난 거야]  그리고 그는 웃었습니다  세계사시인선  ~~~~~~~~~~~~~~~~~~~~~~  日月  이 신발 너에게 주고  가리라  일월(日月)이여 이 옷도 너에게  주고  눈 내리면 눈도 주고  가리라  흐린 가을 저녁  찬비는 내리고  일월(日月)이여  있음은 무엇이고  없음은 무엇인가  언제나 벼락이 있고  멀쩡한 대낮에 비가 오네  그러므로 일월(日月)이여  좀 더 닦아야 하리  이 책상도 닦고  벽도 닦고 거울도 닦고  가으내 아픈  이 팔도 닦고  책 속의 글자들  오오 글자들도 닦아야 하리  가을 가고  겨울 오는 아침에  눈이 오네  ~~~~~~~~~~~~~~~~~~~~  너를 안으면  너를 안으면  어둠이 사라지고  바람불던 저녁도 사라지고  무슨 정신도 사라진다  너를 안으면  병든 거리도  소리없이 사라진다  너를 안으면  불안도 사라진다  너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면  마흔 개의  어둠이 사라지고  너의 얼굴에  나를 묻으면  마흔 개의  감옥도 사라지고  우울도 사라지고  만성 신경증에 시달리던  밤들도 사라진다  너의 가슴에  손을 대면  나의 손도 사라진다  이젠 네가 있으니까  이젠 네가 나이니까  너의 가슴에  텀벙 뛰어든다  그래서 이젠  너의 얼굴도  볼 수 없다  아름다운 A / 황금북. 2002  ~~~~~~~~~~~~~~~~~~~~~~  무수한 너  길을 가다가  문득 살펴보면  이 팔도  이 머리도  무수한 너로 덮인다  그렇다  내가  걷는 게 아니다  거리를 걸어가는 너  시장을 보러 가는 너  운전을 하는 너  친구들 속에서 더욱  외로워지는 너  해질 무렵 유리창에  물고기를 그리는 너  편지를 쓰는 너  기다리는 너  돌아눕는 너  그런 네가  나를 이룬다  나를 이루고  나를 부수고  다시 이루는  끝없이 돌아가는  무수한 너!  아름다운 A / 황금북. 2002  ~~~~~~~~~~~~~~~~~~~~  쏘파 위치에 대하여  난 쏘파 위치만 바꾸며 세월을 보낸다고  시를 썼다 이런 나를 두고 허혜정은 쏘파  의 배치에 집착하는 편집증은 기이한 것  이며 쏘파는 어떤 위치에 있어도 화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며 그것은 자아를 라  는 쏘파에 이르게 하려는, 끝없는 나라는  주체의 공간에 배치하려는 노력이며 결국  쏘파를 이리저리 옮기는 것은 틈새를 만  드는 일이며 채워넣는 일이며 세계의 틈을  열고 구멍을 메꿔넣는 일이라고 말한다  (허혜정, 「타이어 또는 말 아래의 공간」,  『현대시학』,1997.10) 과연 그렇도다 쏘파  를 옮기며 세월을 보내는 것은 틈새, 어디  에도 없는 나를 만드는 일이다 허혜정의  글을 보충하는 의미에서 나도 이승훈의 시  를 분석한다 그의 시에서 위치 바꾸기를  강조하면 위치는 입장이고 시각이고 중  심이다 그는 끝없이 중심에서 벗어나기,  이탈을 꿈꾼다 그리고 입장은 서는 일이다  서야 한다 그의 몸도 추억도 페니스도 시  체처럼 시체처럼 서야 한다 시체를 잡아  먹으며 서야 하지만 또 위치는 정하기이며  그것은 흐름을 파괴하고 무를 파괴하고 이  흐름의 파괴, 고정이 의미를 낳는다면 그  가 쏘파 위치를 바꾸며 세월을 보내는 것  은 의미에서 벗어나려는 무의식을 상징하  고 거리엔 바람이 불고 겨울저녁 그는  시체처럼 고요히 고요히 고요히 움직인다  쏘파는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 있는 틈새  또다른 동굴이다 오오 동굴! 이 동굴을  들고 그러나 이 동굴에 대해선 말하지 맙  시다 그의 시에 대해서도 쏘파에 대해서도  글쎄 내가 너무 예민하다고 말한 건 수선  소 여인 갑자기 바바리 한쪽 팔 길이가  기인 것 같아 (아내 몰래) 들고 간 나를  보면서 이 추운 저녁 아파트 앞 지하상가  수선소 여인은 글쎄 신경이 너무 예민하다고  그냥 입으라고 돌려보냈지만  ~~~~~~~~~~~~~~~~~~~~~~~~  봄이 오던 날의 대화  여자:다시 태어난다면  무얼 하고 싶어?  남자: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게 죄야  여자:그러니까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남자:그땐 물새만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어  여자:그래 그런 화가  물새만 찾아다니는  남자:언제나 물새만 그리는  여자:밥은 누가 먹여 주고?  남자:그렇군 다시 태어나면  밥 걱정이나 없었으면  여자:한세상 물가에서  오리 뻐꾸기 귀뚜라미  남자:뻐꾸기는 물새가 아니야  여자:왜 아니지?  남자:어째서 뻐꾸기가 물새야?  여자:내가 물새라면  물새가 되는 거야  남자:그렇군 원칙은 없으니까  여자:다시 태어나면 정말  무얼 하고 싶어?  남자:시인은 괴로워  여자:편안한 시인도 있지  남자:그럼 시를 못 쓰지  여자:다시 태어나면  남자:언어는 골치가 아파  여자:과연 우린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남자:난 지은 죄가 너무 많아  여자:그건 나도 그래  남자:나무를 봐  여자:봄이 오려나 봐  남자:벌써 봄이 온다고?  여자와 남자 멍하니  창 밖을 본다  이승훈시선 ; 아름다운 A / 황금북  ~~~~~~~~~~~~~~~~~~~~  아름다운 계절  괴롭지만 신나던 계절  너를 만난 계절  꽃이 피던 계절  그러나 꽃이 지고  갑자기 슬픔이 찾아왔네  오늘 저녁 슬픔이 찾아왔네  어디가 아픈 모양이야  어디가 아픈 모양이야  괴롭지만 신나던 계절  너를 만난 계절  네가 웃던 계절  그러나 너의 미소가 사라지고  갑가지 슬픔이 찾아왔네  오늘 저녁 슬픔이 찾아왔네  살다 보면 슬플 수도 있지  살다 보면 슬플 수도 있지  그러나 네 목소리 들리지 않고  난 휴지조각 위에  시를 쓰네  이 흐린 저녁에  시를 쓰네  하얀 종이 위에 쓰는 게 아니야  난 지금 어둠이 내리는 저녁에  휴지조각 위에  그러니까 휴지가 된 마음 위에  감기에 시달리며  시를 쓰는 거야  너의 미소가 태어나길 바라는  심정으로  시를 쓰는 거야  너를 위해  실의에 빠진 봄 너를 위해  이 시를 쓰는 거야  시집 ; 너라는 햇빛 / 세계사.2000  ~~~~~~~~~~~~~~~~~~~~  당신  고양이처럼 살고 싶어라  엎드려 있고만 싶어라  고운 피 흘리는 마음  복사꽃 복사꽃은 피는데  어디로 가고만 싶어라  이 어두운 마음  밝아오는 해이고 싶어라  아무리 채찍이 갈겨도  그리움은 끝나지 않어라  당신 얼굴에 입맞추고 싶어라  하아얀 돌이고 싶어라  파아란 구름이고 싶어라  모조리 버리고 오늘  바쁘게 명동을 걸어가면  바람부는 왕십리를 걸어가면  고양이처럼 살고 싶어라  언제나 다른 나라에 계신  당신 고개 한번 끄덕이면  복사꽃 복사꽃은 지는데  이승훈시선 ; 아름다운 A / 황금북. 2002  ~~~~~~~~~~~~~~~~~~~~~~  네가 찾는 것  여름날 오후  헌 책방에서  네가 찾은 건  책이 아니다  땀을 흘리며  네가 찾는 건 너의  마음인지 모른다  여름날 오후  모자를 쓰고  먼지 속에서  네가 부지런히 찾는 건  시간인지 모른다  흘러간 시간  헌 잡지를 뒤지며  헌 잡지에 문득  코를 박는 건  너의 가슴을  박는 건지 모른다  길 모퉁이 허름한  책방에서 오늘도  헌 책을 뒤지는  너의 손과 가슴과  부르튼 입술은  달리던 버스에서  갑자기 뛰어내려  헌 책방으로 달려가  헌 책을 뒤지는  너의 얼굴은  문득 흐려진다  ~~~~~~~~~~~~~~~~  고 향  두 시간 버스를 타고  오늘도 문득 내려가면  너는 거기 있구나  옛날처럼 내 상처  다스리며 말없이 서 있구나  가을 해 부서지는 길거리에  사금파리 울음 감추고  너는 나를 맞는구나  술 마시고 보낸 밤들  훌훌 털고 10년 만에 문득  버스 타고 내려가면  너는 들국화처럼 피어 있구나  화만 나던 날들이었다고  너와 마주앉아 말하면  모든 화 말끔히 씻기며  눈내린 겨울 아침  마후라를 하고 찾아가던  골목에 너는 아직도 서 있구나  몸은 야위었지만  하얀 스웨터를 입고  커단 눈으로 웃으며  나를 맞는구나 나를 버리지 않는구나  「옛날에 너를 버린 건 나야」  나직히 말해도 너는 웃고만 있구나  가을 해 너무 고운 아스팔트에  말없이 서 있는 너  두 시간 버스를 타고  오늘도 문득 내려가면  네가 있을 것만 같아  옛날 골목 찾아가면  있는 건 너의 흔적 뿐  오오 고향에 있는 건  언제나 고향의 흔적 뿐  이승훈 시선 ; 환상이라는 이름의 역 / 미래사  ~~~~~~~~~~~~~~~~~~~~~~~~  격 언  난 시를  피로 쓰지 않는다  당신도 시를  피로 쓰지 않는다  우린 시를  피로 쓰지 않는다  그러니까 니체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거야  그래도 좋아  그래도 좋아  우린 빈혈이니까  시집 ; 너라는 햇빛 / 세계사  ~~~~~~~~~~~~~~~~~~~~~~~~~~  인생은 언제나 속였다  인생은 언제나 그를 속였다 그가 다가가면 발로 차고  그가 도망가면 팔을 잡았다 그가 웃으면 울고 그가 울면  웃었다 그가 망하면 웃고 그가 팔을 쳐들면 웃고 그가  걸어가면 웃고 너를 안을 때뿐이다 인생이 그를 속이지  않은 건 너를 안을 때 해가 질 때 너의 눈을 볼 때  너와 차를 마실 때 그러나 너와 헤어지면 인생은 그를  속였다 추운 골목을 돌아가면 골목의 상점에서 담배를  사면 가로등에 불이 켜지면 인생은 속였다 밤이 오면  아파트 계단을 오르면 작은 방에서 잠을 이룰 수 없으면  밖에 바람이 불면 바람 속에 돌아누우면 잠이 안 와  문득 일어나면 새벽 두 시 캄캄한 무덤에 불을 켜면 무덤  속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 책 상 위 전기 스탠드를 켜면  위통이 찾아오면 다시 불을 끄면 캄캄한 무덤 속에 누워  있으면 책상 위의 냉수를 마시면 책상 위의 사과를 먹으면  아아 를 먹으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으면 문득 머언  무적이 울면 새벽 연필을 깎으면 이마에 술기운이 남아  있으면 다시 잠이 안 오면 문득 무섭다는 느낌이 들면  턱을 고이면 떨리는 손으로 일기를 쓰면 돌덩어리  우울 황폐한 새벽 인생은 그를 속였다 인생은 언제나 그를  속였다 그를 속이고 그를 감시하는 이 인생이라는 놈!  ~~~~~~~~~~~~~~~  당신은 그동안  당신은 그동안  너무 무겁게 살았지  이젠 가볍게 살아야 해  어린아이처럼 살아야 해  사람을 사랑하는 건  순진하게 되는 것  아름답게 되는 것  향기롭게 되는 것  고통보다 환희  분노보다 용서  절망보다 희망  복잡한 건 단순하게  당신은 쉰이 넘었지만  어린아이처럼 살아야 해  실수도 많았지만  머리도 세었지만  당신 머리엔 새가 날아와  놀아야 해  봄이 한창일 때  꽃이 한창일 때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낸  당신은 그때를 잊어야 해  오늘은 화창한 날  오늘은 여름이 오는 날  오늘은 당신이 좋아하는  여름이 오는 날  어린아이처럼 살아야 해  시간은 많지 않아  공부할 시간도  술 마실 시간도  좋은 사람과 만날 시간도  그러니까 순진하게  아름답게  아름답게  무엇보다 아름답게  살아야 해  시집 ; 너라는 햇빛 / 세계사  ~~~~~~~~~~~~~~~~~~~~~~  너  캄캄한 밤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너를 만  났을 때도 캄캄했다 캄캄한 밤에 너를 만났고 캄캄한  밤 허공에 글을 쓰며 살았다 오늘도 캄캄한 대낮 마당  에 글을 쓰며 산다 아마 돌들이 읽으리라  ~~~~~~~~~~~~~~~~~~~~~~~~~  너라는 역  어제 저녁 사랑에 도달한 나는 어제 저녁 너라는 역에  도달한 나다 너라는 역에 금잔화 불타는 작은 역에 금  잔화만 불타는 너의 몸에 너의 가슴에 너의 눈에 너의  코에  지금도 도달한다 사고가 극한에 네가 있다 너라는 몸  이 있다 덧없는 순간들이 진리다 이 덧없음 속에 활활  타는 금잔화 속에 포옹 속에 눈물 속에 죽음과 삶 속  에 저무는 가을  ~~~~~~~~~~~~~~~~~~  이 종이에  이 종이에  무얼 쓸까  이 하얀  이 창백한  이 물보라치는  얇은 종이에  너의 이름을 쓸까  가을의 뼈에 대해 쓸까  네가 찾아온 날의  환희에 대해 쓸까  지나가는 가느다란 바람에  날려 버릴까  푸른 건 가냘프다고 쓸까  이 하얀  이 부끄러운  이 죄많은  얇은 가슴에  가을은 스미건만  무슨 목적이 있느냐  오는 부는바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시간이 정지한  가을 햇살에  발을 담그면  발은 그대로  폭포가 되는  이 가을  하얀 종이에  슬픈 에세이를 쓸까  슬픈 독수리 하나  떠 있다고 쓸까  이 병든  이 하얀  이 펄럭이는 가슴에  정말 무얼 쓸까  제4회 소월시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사  ~~~~~~~~~~~~~~~~~~~~  이승훈 시인 소개  1942 강원도 춘천 출생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현대시 동인  1962 에 시 외 2편이 추천되어 등단  1983 제29회 현대문학상 수상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저서명 부서명 총서명 출판사 출판년  시집 1969  시집 일지사 1976  시집 문학사상사 1981  시집 고려원 1983  시집 문학과지성사 1984  시집 영언문화사 1984  시집 [편] 청하 1985  시집 고려원 1987  시집 문학사상사 1987  시집 고려원 1987  시집 탑출판사 1987  시집 세계사 1989 
642    <자본주의> 시모음 댓글:  조회:4536  추천:0  2015-07-18
  정세훈의 '자본주의' 외  + 자본주의 그래 돈 내면 되잖냐. 침 뱉고 싶을 때 침 뱉고, 오줌 깔기고 싶을 때 오줌 깔기고서. (정세훈·시인, 1955-) + 자본주의의 사연  성동구 금호 4가 282번지 네 가구가 사는 우편함 서울특별시의료보험조합 한국전기통신공사전화국장 신세계통신판매프라자장우빌딩 비씨카드주식회사 전화요금납부통지서 자동차세영수증 통합공과금 대한보증보험주식회사 중계유선방송공청료 호텔소피텔엠베서더 통합공과금독촉장 대우전자할부납입통지서 94토지등급정기조정결과통지서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 납부통지서만 날아오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 아닌가 (함민복·시인, 1962-) + 자본주의·1     돈은 아름답다  진리와 도덕보다 부드럽다  그러나 눈과 귀도 없는 그것이  인간의 심장을 파먹고  뼈까지 발라먹는 세상이여  등이 굽은 자도  배불뚝이도 잡아먹고  인간은 온데 간데 없고  종말이 올 때까지  돈은 아름답다. (전홍준·시인, 1954-)  + 자본주의의 밤       이 밤 속에  그는 굴복한다  그는 굴종한다  그는 굴러간다  이 밤은 좋은 밤  이 밤 속에  그를 옮기며  그를 표현하며  그를 기록하며  이 밤이 마치  애인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는 몰두한다  그는 몰입한다  그는 몰락한다  오 빌어먹을  이 밤 속에  그가 배우는 건  허리를 졸라매는 법  요염한 웃음으로 덮인  이 밤 속에  가슴 타는 습기로 덮인  이 밤 속에  그는 먹는다  그는 폭음한다  그는 포식한다  이 밤은 좋은 밤  이 밤은  그를 포위하고  그를 포섭하고  그를 포옹하는  이 밤은  포악한 밤  폭력의 밤  폭로의 밤  폭언의 밤  그는 폭행 당한다  그는 포복한다  그는 포병인지 모른다  (이승훈·시인, 1942-) + 부르도자 부르조아                                                           반이 깎여 나간 산의 반쪽엔 키 작은 나무들만 남아 있었다. 부르도자가 남은 산의 반쪽을 뭉개려고 무쇠 턱을 들고 다가가고 돌과 흙더미를 옮기는 인부들도 보였다. 그때 푸른 잔디 아름다운 숲 속에선 평화롭게 골프 치는 사람들 그들은 골프공을 움직이는 힘으로도 거뜬하게 산을 옮기고 해안선을 움직여 지도를 바꿔 놓는다. 산골짜기 마을을 한꺼번에 인공 호수로 덮어 버리는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누군가의 작은 실수로 엄청난 초능력을 얻게 된 그들을. (최승호·시인, 1954-) + 바보 詩人  제 살 베어  제 뼈 깎아  詩를 쓰고  제 돈으로 책을 찍어  친절하게도  우표까지 붙여  보내주는 바보  경제라고는 모르는 바보  물질 만능  자본주의 시대에  경제원리도 모르는 바보  그 바보가  바로 詩人이라네.  (이문조·시인) + 아름다운 편견 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자동차를 모는 사람보다 더 크다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자신의 노동력으로 지구와 함께 깨끗이 자전하며 자본주의를 넘어선 주인이고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석유를 동력원으로 지구를 착취하고 더럽히는 자본주의에 엎드린 노예라는 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네 발 남의 힘으로 가는 사람 두 발 자기 힘으로 가는 사람 어느 누가 더 진화하고 위대한가? 이 위인은 안다 자전거가 넘어질 때 넘어지는 방향으로 운전대를 꺾어야 바로 선다는 것을 넘어지는 반대쪽으로 운전대를 꺾으면 금방 넘어진다는 것을 작고 느린 길로 핸들을 돌려야 크고 빠른 도로에 패인 상처를 아물게 하고 건강하게 굴러가는 삶이라는 자전거를 타는 농부가 자동차를 모는 회장보다 더 크다는 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때론 편견도 아름답다 (김정원·교사 시인, 1962-) + 밥과 자본주의 - 새 시대 주기도문  권력의 꼭대기에 앉아 계신 우리 자본님  가진 자의 힘을 악랄하게 하옵시매  지상에서 자본이 힘있는 것같이  개인의 삶에서도 막강해지이다  나날에 필요한 먹이사슬을 주옵시매  나보다 힘없는 자가 내 먹이사슬이 되고  내가 나보다 힘있는 자의 먹이사슬이 된 것같이  보다 강한 나라의 축재를 북돋으사  다만 정의나 평화에서 멀어지게 하소서  지배와 권력과 행복의 근본이 영원히 자본의 식민통치에 있사옵니다 (상향∼)  (고정희·시인, 1948-1991) + 밥과 자본주의 - 가진 자의 일곱 가지 복 그때에 예수께서 자본시장을 들러보시고  부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자본을 독점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부자들의 저승에 있게 될 것이다  땅을 독점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땅 없는 하늘나라에 들지 않을 것이다  권력을 독차지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권력 없는 극락에 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배불리 먹고 마시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고픈 식탁에서 멀리 있을 것이다  철없이 웃고 즐기고 떠드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저 세상에서 받을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아첨꾼 때문에 명예를 얻고 칭찬받은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그들의 선조들도 매국노를 그렇게 대하였다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는 행복하다  너 - 희 - 는 불 - 행 - 하 - 다  (고정희·시인, 1948-1991) + 자본주의 혈압이 뚝 떨어졌소  즉시 나는 병동 중병실로 옮겨졌소  고혈압에는 약이 있지만 저혈압에는 약도 없다고 하는  간병의 말에 나는 덜컥 겁이 나는 것이었소  제기랄 까딱하다가는 옥사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오  내가 죽으면 여보(엄살이 아니오)  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전해 주오  자본주의를 저주하다 남주는 죽었다고  그놈과 싸우다 져서 당신 남편은 최후를 마쳤다고  여보 자본주의는 자유의 집단수용소라오  모든 것이 허용되지만 자본가들에게는  인간을 상품처럼 매매할 수 있는 자유  인간을 가축처럼 기계처럼 부려먹을 수 있는 자유  수지타산이 안 맞으면 모가지를 삐틀어 그 인간을  공장 밖으로 추위와 굶주림 속으로 내몰 수 있는 자유까지 허용되지만  노동자에게는 굴욕의 세계를 짊어지고 굶어 죽을 자유 밖에 없다오  시장에서 매매되는 말하는 가축이기를 거부하고  기계처럼 혹사당하는 노예이기를 거부하고 노동자들이  한 사람의 인간성으로 일어서기라도 할라치면  자본가들은 그들이 길러 놓은 경찰견을 풀어 노동자를 물어뜯게 하고  상비군을 무장시켜 노동자들을 대량 학살케 한다오  여보 자본주의 그것은 인간성의 공동묘지  역사가 뛰어넘어야 할 지옥이라오 아비규환이라오  노동자를 깔아뭉개고 마천루(魔天樓)로 솟아올라  천만근 만만근 무게로 찍어누르는 마(魔)의 산(山)이라오  무너져야 할 한시 바삐 무너뜨려야 할. (김남주·시인, 1946-1994) + 삶이 힘겨운 당신을 위한 기도  다이어트를 위해 한 끼의 식사를  애써 참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종일 폐휴지를 줍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늘 아래  같은 땅을 밟고 살면서도  이불 대신 바람을 덮고  내일을 걱정하는 불면의 밤이 있습니다  가난이라는 삶의 한계 앞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힘겨운 삶이 있다면  차라리 눈을 감고, 사람이여!  나는 눈물의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밥상에도  자본주의는 이익을 배당하지 않았고  오늘 저녁 잠자리에도  민주주의는 평온의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법과 도덕은 무엇이며 종교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자유의 신은 말이 없고  평등의 신은 눈을 감은 지 오래라면  사랑의 진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며  희망의 나무는 어느 땅에 심어야 합니까  어차피 끝을 알 수 없어도  사유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삶  내게 과분한 물질이 있다면, 사랑이여!  지친 자에게 한 줌의 햇살이 되게 하시고  목마른 자에게 한 모금의 샘물이 되게 하소서 (이채·시인)  
641    알기 쉬운 현대시 작법 댓글:  조회:4696  추천:0  2015-07-18
  알기 쉬운 현대시 작법(1) -시적 의미를 함축한다는 것  시는 일정한 거리에 오면 행갈이를 하고 신문은 행갈이 없이 계속 진행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다음은 행갈이의 보기.  손발이 시린 날은  일기를 쓴다  무릎까지 시려오면  편지를 쓴다  부치지 못할 기인 사연을  이 시를 산문으로 표기하면 이렇다.  "손발이 시린 날은 일기를 쓴다.  그리고 무릎까지 시려오면 부치지 못할 기인 편지를 쓴다.  " 그러나 시인은 이렇게 표기하지 않고 왜 행을 갈아가며 표기했을까?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리듬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리듬이 함축하는 의미 때문이다.  " 손발이 시린 날은 / 일기를 쓴다"는 시행을 읽는 경우 무엇이 다른가?  전자의 경우 우리는 중간에서 쉬지 않고 비슷한 속도로 리듬 없이 계속 읽어 나간다.  예컨데 "손발이 / 시린 날은 / 일기를 / 쓴다"처럼 중간에서 쉬고  동시에 이런 휴지에 의해 우리는 "손발이"와 일기를"을 강조하게 된다.  이 두 부분, 특히 "손"과 "일"에 강세가 놓인다.  한편 이런 읽기는 산문과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산문의 경우 의미는 "손발이 시린 날", 그러니까 추운 날은 일기을 쓴다는 사실,  곧 하나의 정보뿐이지만 시의 경우 "손발이 시린 날"은 독립적인 의미를 띠면서 다음 행과 연결된다.  따라서 이 시행은 단순히 부사구의 기능, 말하자면 "일기를 쓴다"는 중심 문장에 종속되는 게 아니라  2연의 "무릎까지 시려 오면"과 대립되고,  따라서 추위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시린 손발과 일기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렇지 않은가?  손발이 시린 시간에 어떻게 일기를 쓴다는 말인가?  물론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손발이 시리면 따뜻하게 녹여야지 무슨 일기인가?  그러므로 이런 표현은 아이러니이고 이런 표현이 시적 효과를 준다.  요컨대 행갈이 때문에 "시린 손발"은 추위에 대한 감각, 삶의 추위, 가난, 고독을 의미하고  "일기" 역시 자기 성찰, 자기 고백, 지기와의 만남 같은 여러 의미를 함축한다.  이런 의미는 가슴이 시린 밤이면 시를 찾아 나서고(3연), 등만 보이는 사람을  보이는 사람을 부르고(4연) 마침내 자신을 유월에도 녹지 않는 서리꽃으로 인식하는(5연) 전체 시와 관계된다.  중요한 것은 리듬 때문에 행갈이를 하고 이런 행갈이가 독특한 시적 의미를 함축한다는 것.  그렇다면 리듬rhythm이란 무엇인가?  리듬이란 흔히 율동 혹은 운율로 번역한다.  그러나 좀더 세분하면 첫째로 율동이라는 일반적 개념,  둘째로 운율이라는 문학적 개념,  셋째로 음의 강약을 나타내는 박자라는 음악적 개념,  나는 다른 책에서 리듬을 광의 율동 개념과 협의으의 운율 개념으로 나누어 살핀 바 있다.  율동이란 주기적인 반복 운동이고 운율이란 시의 경우 소리에 의한 주기적 반복 운동을 뜻한다.  따라서 광의의 개념인 율동은 시를 포함하여 일제의 우주현상, 자연현상, 생명현상에 두루 나타난다.  율동은 좀더 부연하면 상이한 요소들이 재현하는 주기적 반복 현상을 말한다.  우주의 경우 일출 / 일몰의 반복, 자연의 경우 바다는 썰물 / 밀물의 반복,  생명의 경우 인간의 호흡이 그렇다.  내쉼/ 들이쉼의 반복이 삶이고 이런 반복이 머추면 인간은 죽는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은 숨쉬기이고 숨쉬기는 호흡이 암시하듯이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일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호흡은 숨결을 거느리고 그것은 숨쉬는, 호흡하는 속도나 높낮이를 뜻한다.  요컨대 호흡과 숨결은 생명의 본질이고 시, 음악, 회화의 리듬도 비스한 의미르 띤다.  시의 고향이 리듬이고 리듬이 숨결이라는 것은 이런 사정을 전제로 한다.  시의 경우 리듬은 크게 정형시와 자유시로 나누어 살필 필요가 있다.  정형시는 말 그대로 리듬이 일정한 형식을 소유하고, 자유시는 그런 형식에서 자유롭다.  정형시의 리듬은 율격meter과 각운rhyme이 대표적이고  자우시의 경우도 작운은 존재하고우리 시의 울격은 흔히 음수율, 음보율,로 나타난다  자유시의 리듬은 정형시의 울격이나 일상어의 억양를 변형시킨 경우와  리드의 단위로 이런 소리 요소를 포기하고 형태소,  낱말, 어귀, 이미지, 어절, 통사 및 그 형식의 반복에 의해 성취되는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리듬의 단위를 소리에 두는 경우와 소리가 아닌 문법적 요소에 두는 경우이다.  전자를 전통적 리듬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현대적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에는 김소월, 박목월, 등이 후자에는 이상, 김수영 등이 포함되고,  나는 자유시의 리듬이 보여주는 이런 양상을 다른 책에서 살핀 바가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다른 문제들을 살피기로 한다  그리고 이런 리듬, 곧 형태소, 낱말, 어구, 어절, 이미지, 통사 형식의 반복에 대해서는 내가  에 이미 발표한 에서도 말한 바 있다.  물론 그때는 리듬이 아니라 시적 효과를 강조했지만 아무튼 반복이 문제이다.  글쓰기도 반복이고 히쓰기도 반복이고 사랑도 반복이고 식사도 반복이고 감기도 반복이고 우울도 반복이다.  반복이 삶이고 삶은 호흡이고 숨휘기이고 이 호흡과 숨결이 강조되면 리듬이 된다.  먼저 어절의 반복에 의한 리듬의 보기.  나는  쿠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만져보고 싶었고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고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_ 체게바라,(이산하 엮음)  어절의 반복이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의 반복을 말하고,  이 시의 경우 '모든 것을 /만져보고 싶었고' 라는 형식이 반복된다.  내용의 반복이 아니라 ' -고 싶었고'라는 형식이 반복된다.  이 시의 내용은 아르헨티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쿠바로 건너가 카스트로와의만남을 계기로 게릴라 혁명 투쟁에 임한 게바라의 쿠바에 대한  애정, 물론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반복되는경우도 있다. 다음은 문장의 내용이 반복되는 경우.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운동주,   시인은 동일한 문장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여덟 번 반복하고  한 행을 비운 다음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라는 문장으로 시를 완성한다.  완성인가?  다시 생각하면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라는 문장은 '슬플 것이다'가 아니기 때문에  침묵을 내포하는 진술 형식에 가깝고,  그러므로 앞에서 반복된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에 대한 아이러니의 효과가 강조된다.  물론 이런 형식은 리듬과 함께 8복이라는 내용을 전제로 한다.  이승훈    알기 쉬운 현대시 작법(2)     -자유시에도 운이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형시뿐만 아니라 자유시의 경우도 각운rhyme에 의해 시의 음악성이 강조된다.  각운은 흔히 낱말의 동일한 위치에서 동일한 소리가 반복되는 현상,  한국어의 낱말은 일반적으로 초성, 중성, 종성으로 되어 있고,  따라서 각운은 초성이 반복되면 두운alliteration, 중성이 반복되면 요운internal rhyme,  종성이 반복되면 말운rhyme이 된다.  각운이란 말은 운율을 맞춘다는 의미와 머리, 허리, 다리에서 다리가 되는 운,  곧 말운이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각운은 광의로 두운, 요운, 말운을 포함하고 협의로는 말운에 해당한다.  물론 각운은 낱말과 낱말 사이에도 적용되고 시행과 시행 사이에도 적용된다.  다음은 낱말과 시행 양자에 걸쳐 두운이 나타나는 경우.  말리지 못할 만치 몸부림치며  마치 천리 만리나 가고도 싶은  맘이라고나 하려볼까  - 김소월   먼저 낱말의 경우 1행에는 "말리지 / 못할 / 만치 / 몸부림치며"에서 알 수 있듯이  네 낱말의 머리에 "ㅁ"이 반복되는 두운 현상이 나타난다.  "만치"를 독립된 낱말로 읽지 않는 경우 1행은 "못할 만치 / 몸부림치며"가 되고 이 때는 "못할 / 몸부림"의 두운 현상 "-만치 / -림치며"의 요운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1행의 첫소리, 2행의 첫소리, 3행의 첫소리는 모두 ㅁ으로 시작되는 두운 효과를 준다.  문제는 말운이고, 정형시의 경우도 우리시에는 말운 현상은 없고 운 대신 형태소나 낱말이 반복된다.  윤동주의 대표작 가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것은 무슨 사상의 깊이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음악성 때문이고,  그것도 두운과 요운 현상 때문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중략)......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먼저 "하늘을 우러러"가 문제이다. "하늘을 우러러"란 무슨 뜻인가?  정확하게 표기하면 "하늘을 쳐다보며"이거나 "하늘을 공경하며"이다.  그러나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라고 표현한다.  "쳐다보며". "공경하며"가 아니라 "우러러"라고 표기한 것은 무엇보다 요운의 효과 때문이다.  "하늘을 / 우러러"의 경우 "-ㄹ-/ -ㄹ-"이 반복되므로써 요운 현상이 나타나고.  따라서 "하늘을 쳐다보며"나 "하늘을 공경하며"가 단순한 의미 전달을 목표로 한다면  이런 표기는 미적 효과를 목표로 하고 시가 예술일 수 있는 것은 이런 미적 책략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한 점"도 문제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이라고 말하지는 않고 "  결코 부끄럼이 없기를" 혹은 "죽어도 부끄러움이 없기를" 이라고 말한다.  혹시 일부에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하는 식으로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서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말에는 시간을 알리는 경우나 점에 대해 말하는 경우가 아니면 "한 점"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그것도 한 점 부끄러움이라니?  그렇다면 두 점 부끄러움도 있고 세 점 부끄러움도 있단 말인가?  이런 표기는 앞에 나온 "하늘"과 관계되는 바.  두 낱말 모두 첫 소리가 ㅎ으로 되어 있고 따라서 두운 효과가 있다.  요운 현상은 2행 "부끄럼이 없기를"에도 나타난다.  "-ㄲ-/-ㄱ-"의 반복이 그렇다. ㄲ과 ㄱ은 다르지만 이 시행이 경우 비슷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마지막 행이 아름다운 것 역시 "-밤-/-별-/-바람-"의 요운 현상 때문이다.  결국 윤동주의 는 사상이 아니라 소리 효과, 음악성,  그것도 섬세한 운의 효과가 감동을 주고 그의 시가 명시인 것은 이런 예술성 때문이다.  우리시에는 정형시든 자유시든 말운 현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각 시행의 끝이 비슷한 혹은 같은 소리로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말운은 아니지만 각 시행의 끝에 비슷한 혹은 같은 소리가 음으로써 미적 효과를 낳는 경우는 많다.  엄격하게 정의하면 앞에서도 말했지만 각운rhyme은 각 시행의 끝소리가 같은 소리로 조직되는 것이고,  따라서 협의로는 말운을 뜻한다.  그러므로 두운 역시 각 시행의 첫 소리가 같은 소리로 조직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위에 인용한 두 편의 시 가운데 김소월의 시가 두운 현상에 적합하고  윤동주의 경우는 변형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요운 현상 역시 각 시행 중간에 같은 소리가 나오는 경우이고  한 시행 속에 나오는 경우는 요운의 변형,  혹은 자음조화consonance나 모음조화assonance로 읽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말하자면 "팔리지 못할 만치 몸부림치며"는 자음조화,  "마치 천리 만리나"는 모음조화로 읽을 수 있다.  우리시의 경우 각 시행이 끝이 같은 소리가 오는 이른바 말운 현상은 없지만 비슷한 소리(?)가 오는 경우는 있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빛이 뻔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듯 눈엔 듯 또 핏줄엔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말운의 정확한 보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시의 미적 효과는 각 시행의 끝에 비슷한 소리가 오기 때문이다.  1행, 3행, 7행은 "끝없는 / 뻔질한 / 끝없는"의 ㄴ소리가 반복되고  2행, 4행, 8행은 "-네 / -네"의 같은 모음이 반복되고  5행, 6행,은 "듯 / 곳"의 ㅅ소리가 반복된다.  그러나 이런 소리의 반복은 말운 현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시의 경우 각 소리들은 각 낱말의 종성에 위치하는 소리가 아니라  낱말이거나 어미 활용에 속하고(끝없는, 흐르네,인 듯)  굳이 종성에 위치하는 소리를 찾자면 "곳"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같은 ㅅ소리를 반복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이 소리는 운이 아니라  "곳"이라는 낱말의 반복이기 때문에 말운이 아니다.  여컨대 우리시의 경우 말운이 아니라 같은 어미나 낱말이 반복되고 이런 반복이 미적 효과를 준다.  이승훈/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3)  -상징과 이미지의 변주 1. 은유냐 상징이냐  직유가 발전하면 은유가 되고 은유는 서로 다른 범주에 있는 두 사물을  동일시하는 기법이라고 말한바 있다.  직유가 상사성을 토대로 두 사물을 비교한다면  은유는 비 상사성을 토대로 비유하고, 그런 점에서  전자에 비해 신비한 느낌을 준다. 말하자면 시적 호소력이 크다.  그러나 두 기법 모두 두 사물을 비교하고 비교되는 두 사물이 시에 나타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예컨대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사랑 빈집에 갇혔네  ㅡㅡ기형도,(빈집)  같은 시행에서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는 직유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말하자면 ‘나는 장님처럼’은 직유이고 따라서 이런 형식은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 시행을 예컨대 ‘나 장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라고 쓴다면  은유가 되고, 직유의 형식에서 비교조사‘ㅡ처럼’을 생략하면 은유가 된다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그러나‘ 나는 장님처럼’이라는 말과  나는 장님’이라는 말은 두 사물을 비교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내용은 매우 다르다 전자가 문을 잠그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만  후자는 그런 설명보다 ‘나’와‘장님’의 동일시가 강조되고 따라서 이때  '나’는 ‘장님’이면서 ‘장님’이 아닌 이상한 특성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기형도는 장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만일 이렇게 쓴다면 그는 장님이고 장님이 아니다. 그리고 은유의 형식으로 시를 쓴다면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 아닌 다른 내용이 나오는게 좋다  한편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의 경우 ‘빈 집’의 이미지는 이 시행만 놓고 보면 무엇을 비유하는지 알 수 없고 따라서  취의 tenor 와 매재 vehicle 의 관계가 시행에 드러나지 않고 취의가 생략된 형식이 된다. 직유나 은유 에서는 취의와 매재의 관계가 드러나지만  이런 이미지의 경우에는 취의가 생략되고 매재만 드러난다.  이런 이미지를 상징 이라고 부른다. 그런 점에서 상징은 은유가 발전한 형식이고 그 의미는 하나가 아니고 분명치 않고 모호하다.  간단히 도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직유] t : v = 1 : 1 (나는 장님처럼)  [은유] t : v = 1 : 1 (나는 장님)  [상징] t : v = ? : 1 (빈 집)  ‘빈집’ 은 무엇인가를 의미하지만 이 시행만 놓고 보면  그 내용,취의 하고자 하는 말을 알 수 없다. 그렇치 않은가?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라는 시행만 놓고 보면  이 ‘빈 집’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분명치 않고 다만 전체 시를 찬찬히 읽을때  그 의미가 드러난다.이‘빈 집’이 무엇을 상징한다는 것은  (상징象徵은 영어로 symbol이고 그리스어로 뜻하는 명사 symbolon 에서오고  이 명사는 짜 맞춘다는 뜻의 동사 symballein 과 관계가 있다.  좀더 자세한 것은 이승훈, 시작법, 탑 출판사,1988,201면 참고바람),  그러니까 다른 무엇과 짜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 이미지가 어떤 관념을 지시한다는 것은 이 ‘빈 집’이 말 그대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빈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가엾은 내 사랑’ 을 의인법으로 읽어  ‘가엾은 내 애인’이 갇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랑이든 애인이든  ‘빈 집’에 갇혔다는 말은 이상한 소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랑의 경우가 그렇다.  사랑이 어떻게 빈 집에 갇힐수 있는가?  요컨대 은유와 비교하면 상징은 비유되는 두 사물 가운데  취의가 생략되는 형식이고 또한 이미지와 관념의 관계로 치환하면  [은유] 이미지 : 관념 = 1 : 1 (장님은 나)  [상징] 이미지 : 관념 = 1 : 다 (빈 집은 무엇?)  와 같다. 이미지와 관념의 관계가 ‘1 ; 다’ 라고할 때 다는 다라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모자란다는 뜻이고 말하자면 상징의 의미는 아무리 퍼내고 쏟아 붓고  계속 의미를 부여해도 모자란다는 뜻이고 그러므로 다多는 다이고 다가 아니다.  그런가하면 또한 다는 다da이다. 이 다는 디자인 dasein,현존재라는 의미의  디자인의 접두사이고 현재 존재하는 나, 지금 여기있는 나의 의미를 강조한다.  현 존재는 존재 sein 와 현da이 결합된 존재이고 그러므로 여기da가 중요하다.  여기는 어디인가? 프로이트는 18개월짜리 손자가 혼자 노는 것을 관찰하며  그 아이가 오/아를 반복 하는것에 주의한 바 있다.  엄마가 없는 빈 방에서 아이는 혼자 실패 놀이를 하고 실패가 멀리가면 ‘오’ ,  실패가 돌아오면‘아’ 라고 소리친다, ‘오’는fort(저기),‘아’는 da(여기)  라고 해석한 것은 프로이트이다. (프로이트,“쾌락 원칙을 넘어서”).  나는 나를 멀리 던지고 그 나는 다시 돌아온다. 나를 던질 때 나는 돌아온다.  무슨 말인가?그러나 나는 떠나고 돌아오고 다시 떠나고 돌아온다.  요컨대 반복이 있을 뿐이고 이 반복, 죽고 싶은 마음이 칼을 찾는다.  칼은 날이 접혀서 펴지지 않으니 날을 노호하는 초조가 절벽에 끊어지려 한다’(이상,“침몰”).  나는 지금 시작법 (그것도 알기 쉬운?)에 대해 글을 쓰는지  1 ; 다’에 나오는 다에 대한 잡념에 시달리는지 잡념을 즐기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마 다ㅡ 콤플렉스가 아니면 다ㅡ 강박증 인가보다.  요컨대 현재는 없기 때문에 현 존재의 다da는 그런 無,  불교식으로는 空 을 지향한다. 그렇다면 이 무,공의 의미는 무엇인가?  모두는 무엇이고 많다는 것은 무엇이고 다 da는 무엇인가?  지난밤에는 밤새도록 비가오고 어두운 새벽 빗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갑자기 무섭고 서럽고 불안한 생각이 들어 작은방, 지금 이글을 쓰는방,  옛날에 딸애가 공부하던 방으로 와서 전등을 켜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돌아가  다시 잠이 든 이런 행위는 무엇을 상징 하는가?  2.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다시 요약하면 상징은 하나의 낱말, 어구, 이미지가  복잡한 추상적 관념을 암시하지만 그 의미는 전체 시를 전제로 알수 있다는 것.  말하자면 그 낱말이 나오는 시행에서는 생략된다는 것.  따라서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상징은 은유보다 고급이고  한편 은유보다 난해한 기법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기법이 나오고  이런 기법, 말하자면 상징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에서 상징을 강조한 것은 19세기 말 상징주의 시인들이고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보들레르 이다. 그는‘교감’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자연은 하나의 신전神殿, 거기 살아 있는 기둥은  이따금 어렴풋한 말소리 내고  인간이 거기 상징의 숲을 지나면  숲은 정다운 눈으로 그를 지켜본다.  밤처럼 그리고 빛처럼 아득한  어둡고 그윽한 통합 속에  긴 메아리 멀리서 어울리듯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상통 한다.  ㅡ 보들레르,[교감](정기수역)  ‘교감’ correspodence 은 ‘만물 조웅’ 으로도 번역된다.  자연은 인간이 모르는 가운데 저희들끼리 무엇인가를 주고 받는다는뜻.  이 시에서 보들레르가 강조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자연이 주고받는 것들이다. 낭만주의자들의 경우  자연의 시인의 정서를 환기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치만 여기서는 ‘  신의 궁전’으로 노래된다. 신의 궁전 이기 때문에  자연은 이 세상을 초월하는 이상의 세계,  혹은 그런 세계로 갈 수 있는 수단이 되고 그런 점에서 자연은 신, 초월자, 절대자의 목소리를 상징하는 ‘상징의 숲’이 된다.  시인은 이런 숲의 목소리를 듣는자 이고, 그 목소리는 만물 조웅, 곧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서로 주고받는, 상통하는 것을 들을때 알 수 있다.  만물 조웅은 향기(후각), 빛깔(시각), 소리(청각), 가 서로 통합 하는 것  이라는 점에서 이른바 감각의 교감이고, 교감의 세계가 된다.  물론, 현대시를 쓰는, 혹은 쓰고자하는 분들은  반드시 이런 상징의 미학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 그  러나 최소한 상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역사적 문맥에 대한 지식이 요구된다.  요컨대 상징을 강조하는 시들은 이 시가 암시 하듯이  관념을 전제로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감각에 의해 사물을 보고 그 감각이 환기하는 혹은 암시하는 여러 관념들을,  자신도 모르는 그런 관념들을 이미지로 전달해야 한다.  앞에서 인용한 기형도의 경우 ‘빈 집’은 상징적 이미지 이고 그는 살아가면서 ‘빈 집’ 을보고 혹은 감각적으로 체험하고 그 체험의 내용을 시로 노래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는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ㅡ 기 형도,[빈 집]  그가 쓰는 것은 ‘사랑을 잃은 마음’이고  따라서 ‘빈 집’ 은 이런 마음을 상징 한다.  상징적 이미지는 시에서 반복되는 수도 있고 이 시처럼 변주되는 수도 있다.  이 시의 경우 ‘빈 집’ 은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는 나’,  그리고‘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로 변주된다. 한편 이런 마음,  그러니까 ‘빈 집’이 상징하는 것들은 ‘짧았던 밤들’, 창밖을 떠돌던 안개들’,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 ‘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로 변주된다.  이런 변주는 상징적 이미지가 보여주는 난해성을 극복하기 위한 시적 책략이고  따라서 상징을 강조하는 시인들은 하나의 상징적 이미지를 선택하면  그 이미지를 시에서 여러번 반복하거나 다양하게 변주 시켜야 된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한 시인이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혹은 상상력에 의해  창조한 이미지를 개인적인 상징 이라고 부른다.  상징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는바  첫째는 개인적 상징, 둘째는 인습적 상징, 셋째는 원형적 상징이다 (좀더 자세하 것은 이승훈, 시론, 고려원, 1979, ‘상징의 유형’, 206ㅡ211면 참고바람).  개인적 상징은 사물에 대한 시인의 개인적 감각을 중심으로 그 내면성 혹은 상상의 세계를 강조하고, 이때는 그 의미가 모호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구조에 의해  혹은 시 전체의 문맥에 의해의미를 암시해야 한다. 인습적 상징과  원형적 상징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다루기로 한다. 개인적 상징을 중심으로  특히 그 상징적 이미지를 변주 하면서  한편의 시를 완성하는 시들을 좀더 살피기로 하자.  결국 그것은 제 몸 치근대는 바람 때문일 거야 큰 송아지만한 사  냥개 절뚝절뚝 저녁 어스름 이끌고 날 찾아왔지 큰 채와 사랑채  이음새 헛간에서 주먹밥을 나누어 먹던 한철을 잊을 수 없네 헛간 고  요에 상처 아물고 주먹밥의 유순柔順에 길들여졌다 할지라도 어느 날  훌쩍 사냥개 사라지고 텅 빈 고요만 비에 젖어 슬펐네  ㅡ 강 현국,[가난한 시절4]  이 시에서 ‘사냥개’는 ‘가난한 시절’을 상징한다.  그러나 '사냥개‘ 라는 이미지에는 단순히 먹이를 사냥하는 동물 이라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공포, 사냥이 암시하는 야수성, 짐승이 짐승을 잡는  아이러니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강현국이 노래하는 가난은  단순히 배가 고프다는, 굶주린다는 의미가 아니고 또한 이 시에서 그는  사냥개가 ’절뚝절뚝 어스름 이끌고 나를 찾아 온다‘고 노래함으로써  그것이 병든 가난, 어스름이 표상하는 무력감을 동반하는 가난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는 현재 ’컹 컹 컹 밀려오는 저녁놀‘을 본다/듣는다.  그 가난은 밀려오며 무너진다. 말하자면 아직도 그를 지배하는 것은  옛날의 가난이다. 그는 지금도 저녁놀에서 사냥개 울음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석탄을 적재한 무개화차들이 굴러가는 철길 너머에 저탄장이 있다. 거대한 재의  무덤, 바람에 석탄 가루들이 일어난다. 그것은 흩어진다. 그것은 바람에 불려간다.  검은 바람, 펄럭이는 검은 작업복, 탄부들이 움직이고 있다  ㅡ최 승호[재]  이 시의 경우‘재’는 석탄 가루를 표상하고 그것이 재라는 점에서  죽음을 상징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불타고 나면 재가 된다.  그러나 이재, 죽음은 이 시에서 일어나고 흩어지고 불려간다.  물론 바람을 매개로 하지만 재의 이미지는 이런 변주에 으해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낳고 개인적 상징의 한 개를 초월한다.  재라는 이미지가 이렇게 변주 됨 으로써 그 상징적 의미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시에서 ‘재’는 죽음을 상징 하지만 그 죽음은 바람에 의해 일어나고  흩어지고 불려간다. 결국 재는 바람과 동일시된다.  바람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속에 바람이 있다.  쾌락으로 가는  길목에 털이 있다. 궁창이 열리고  땅이 혼돈을 멈추었을때,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인간을  가장 나중에 완성 시킨건, 아무래도 털이다. 당신이 떠나고  세상에서 가장 싼값으로  인생을 구겨버리고 싶을 때, 낡은 침대나  주전자 옆에서, 꼼지락거리는  털.  ㅡ 원 구식,[털]  이 시의 지배적 이미지는 ‘털’ 이지만 그 이미는 분명치 않고,  따라서 상징이 된다. 무엇을 상징 하는가? 이 ‘털’은 ‘쾌락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는 점에서 쾌락과 관계되고, 따라서 머리털이나 수염이 아니라  음모를 의미하고, 시인은‘당신이 떠난’ 방에서 낡은 침대와 주전자 옆에 떨어진 음모를 본다. 이 털은 육체에서 떨어진 것이므로 털로서의 기능이 없고,  따라서 죽음을 표상 하지만 이 시에서는 꼼지락거린다. 살아있다.  그리고 이 털은 대지의 풀에 비유된다. 말하자면 풀은 ‘땅의털’ 이다.  도대체 정사가 끝나고 ‘당신이 떠난 다음’ 낡은 침대에 떨어진 털을 보는 것도  이상하고 이 털이 살아 꼼지락거린다고 노래하는것도 이상하고 풀을 땅의 털이라고 노래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러나 모든 진리는 이렇게 이상한데 있고  이상한 것이 진리이다. 상식, 기준, 표준이 깨질때 진리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털은 육체를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고, 머리털은 신체 정상에서 자란다는 점에서  정신적 힘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음모는 생식, 성행위를 돕는다는 의미가 있지만 이 털은 그런 의미를 벗어난다.  그러나 이 털은 죽은 것이 아니라 생명을 상징한다. 죽은털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는 모두 상징적 이미지의 변주를 통해 변주와 함께 변주를 먹고 태어난다.  3.인습적 상징을 이용하라  이상에서 나는 상징의 세 유형 가운데 이른바 개인적 상징에 대해 말했다.  다음은 이른바 인습적 상징. 말 그대로 이런 상징은 이미지와 관념의 관계가  내적 필연성(개인적 상징)이 아니라 오직 인습, 습관, 사회적 약속에 의존한다.  따라서 이런 상징은 일정한 역사적 사회적 특성을 소유한다. 말하자면 한 시대나 한 사회에서만 공유하는 상징이다. 예컨대 십자가는 기독교 정신을 상징하고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고 태극기는 조국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런 상징은  보편성을 띠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인들의 진리이고, 비둘기는  구약의 문맥에서 평화이고, 태극기는 한국인들의(그것도 남한만의) 조국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태극기를 보고 조국을 생각하지 않는다.  시대적 역사적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상징은 인습적으로 습관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난해하지 않고, 난해하지 않기 때문에 알기는 쉽지만  한편 시적 깊이가 사라진다. 오늘 이 시대에 비둘기가 평화를 상징 한다고,  비둘기를 보면서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없고, 그런 생각은  과거의 인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치 않은가? 내가 사는 아파트 약방 앞 보도 블럭에는 언제나 비둘기들이 모여있다. 놀고있나 하고 가까이 다가가보면  평화롭게 놀고있는 것이 아니라 모이를 찾느라고 정신이 없다.  너희들이나 우리나 모두 먹고 살기가 이렇게 어렵구나. 이런 비둘기들은  평화가 아니라 먹고 살기위한 고통, 싸움, 전쟁을 상징 한다. 물론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유념할 것은 이런 인습적 상징을 사용하는 경우 그 상징적 의미를  시의 문맥에 의해 변형 시키고 변주해서 새로운 의미를 보여 주라는 것.  다음은 비둘기라는 이미지를 인습적 의미로 사용하되 변주시킨 보기이다.  비둘기들이 걷고있는 이 고요한 지붕은  반짝거린다, 소나무 사이, 무덤 사이에서  여기 공정한 ‘정오’ 가 불로서 구성 한다  바다를,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바다를!  산들의 고요를 오래 관조하는  오 사색이 받는 보상이여!  ㅡ발레리,[해변의 묘지](민희식, 이재호 역)  시의 표제가 ‘해변의 묘지’ 로 되어있기 때문에‘이 고요한 지붕’은 ‘바다’를 비유한다. 그렇다면 ‘비둘기들’은 바다를 걷고 있는 비둘기로 읽을수 있지만  바다에는 비둘기가 아니라( 물론 조금 미친 비둘기들은 바다에 떠 있을수도 있다. 김기림의{바다와 나비}에는 조금 미친 나비가 바다에 떠있음) 갈매기가  많고 따라서 이 비둘기들은 바다위에 떠있는 ‘고기잡이 배들의 하얀 돛대’를  비유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행은 이중 구조로 되어있다. 하나는 지붕/ 비둘기가  바다/ 하얀 돛대를 비유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고요한 지붕을 비둘기가 걷고있다는 것. 그러므로 이 시행이 주는 시적 효과는 이런 이중 구조가 산출하고  그것은 고요한 지붕(바다)에 하얀 돛대가 비둘기처럼 평화롭게 떠있다는  독특한 의미를 낳는다. 물론 여기서 비둘기의 이미지는 평화라는 인습적 의미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 비둘기는 비둘기 이면서 동시에 하얀 돛대이기 때문에  이중적 의미를 암시한다. 요컨대 비둘기의 평화는 하얀 돛대의 평화가 된다.  이 시의 전경은 소나무 사이, 무덤 사이에서 바다가 반짝이는 풍경이고 후경은  하얀 돛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인습적 상징은 그 의미를 이렇게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은 그 보기.  쫒아오든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려 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수 있었을까요.  ㅡ 윤 동주.[십자가]  4. 원형적 상징  인습적 상징이 시대적 사회적 제약을 받고 그 의미가 사회적 인습에 의존 한다면  이와는 달리 이런 시대적 사회적 제약을 초월하고 상징(이미지)과 관념의 관계가 보편성을 띠는 것이 있다. 이른바 보편적 상징 혹은 원형적 상징 원형 archetype 은 으뜸가는 이미지, 원초적 이미지라는 뜻으로 시인들, 화가들이  수많은 이미지들을 생산 하지만 결국은 몇 가지 원형으로 환원 된다는 점에서  모든 이미지들의 바탕 이라고 부를 수 있다. 융에 의하면 이런 이미지는  사회와 역사를 초월하는 인간의 보편적 무의식이 생산하고 그런 점에서  집단 무의식의 산물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미지(상징)는 개인 무의식  그것도 성적 욕망이 생산 하지만 그의 제자인 융에 의하면 집단 무의식이 생산하고 이런 보편적 상징은 옛날부터 현재까지 인류에게 무의식적으로 계승되는  이미지이다. 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소유하는 인간적 꿈, 소망, 원망을 암시한다. 이런 소망은 지금도 계속된다. 예컨대 이 세계는 물, 불, 바람, 흙의 원형으로  되어 있다거나 자연은 계절적으로 순환하기 때문에 인간도 다시 태어난다는  재생 원형 등이 있고, 재생 원형은 결국 우리 인간들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죽고 싶지 않다는 것, 이른바 불사不死,영원에의 꿈을 상징한다. 그런가 하면  지상의 삶을 초월해서 하늘, 천상의 세계에 닿고 싶은 소망도 있고,  이런 소망은 흔히 계단, 산, 나무, 탑의 이미지로 구현된다. 예컨대 이런 꿈은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 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 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ㅡ김 현승,[플라 타너스]  같은 시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시의 중심적 이미지는 ‘플라 타너스’ 이고  여기서 이 나무는 단순히 가로수를 의미 하는 게 아니라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있다’는 시행이 암시하듯이 하늘과 닿은 나무, 이른바 초월을 상징하고, 이런 초월은 지상으로부터 벗어나 신의 세계에 닿고싶은 인간의 꿈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시의 후반에는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는 시행이  나오고, 이런 시행을 전제로 할때 인간의 꿈이 나무의 꿈이고 이꿈은  신의 세계에 닿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 소망을 의미한다. 한편 인간 에게는 탄생,  창조, 재생에의 꿈이 있고, 이런 꿈은 계절적으로는 봄, 하루의 수준에서는  새벽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봄은 오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는  채 꽃 피기 전에 작은 열매를 맺고  불임의 살구나무는 시들어 갔다  소년들의 성기에는 까닭 없이 고름이 흐르고  의사들은 아프리카 까지 이민을 떠났다 우리는  ㅡ 이 성복,[1959년]  이 시의 경우‘봄’은 오지 않고, 그것도 여름이 되어도 오지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봄은 자연으로서의 봄이면서 동시에 이런 의미를 초월하고 따라서  관념으로서의 봄이고(‘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이런 봄이 암시하는 것은 새로운 삶, 신생, 창조, 계몽 등이다. 말하자면 죽음을 상징하는  겨울’과 대비되는 삶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런 삶, 새로운 삶의 창조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노래한다.  5.상징이냐 알레고리냐  상징과 알레고리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 두 기법모두 이미지를 보여줄뿐  직접 진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취의가 생략되고 매재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징과 알레고리는 다르고, 이 차이가 중요하다. 알레고리allegory 는 흔히 우유㝢兪, 우화偶話, 로 번역되고allegory는 그리스어로  ‘다른것’을 뜻하는 allos 와 ‘말하다’를 뜻하는 agoreuein 이 결합된 말이다. 따라서 알레고리는 어떤말 혹은 이미지가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을 의미 한다는  뜻이고, 우화가 암시하듯이 이런 말하기는 상징과 다른 몇가지 특성을 보여준다.  첫째로 상징이 사물이나 이미지에서 출발해서 관념에 이른다면 알레고리는  거꾸로 관념에서 출발해서 이미지에 이르는 과정을 밟는다.  둘째로 상징의 경우 이미지와 관념의 관계가  1 : 다 로 나타 난다면 알레고리의 경우엔 1 : 1 로 나타나며 시간적  계기성을 띠고 그런점에서 연속성을 띤다.  셋째로 상징의 의미는 모호 하지만 알레고리의 경우엔 분명하고 교훈적이고,  넷째로 알레고리는 이 교훈적인 것과 관계가 있지만 실화성을 띤다는 것이다  ( 좀더 자세한 것은 이승훈, 시작법, 탑 출판사.1988, 201-206면 참고바람).  다음은 알레고리에 의한시.  그는 들어왔다.  그는 앉았다.  그는 빨강 머리의 이 열병은 바라보지도 않는다.  성냥불이 켜지자  그는 떠났다.  ㅡ 아폴리네르,[시](오 증자 역)  ‘그’는 시를 의미하고, 따라서 이 시는 시스기에 대한 시이며, 시쓰기  혹은 시상이 전개되는 과정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노래한다.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른, 혹은 환각으로 나타난 시가 성냥불을 켜자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 다음과 같은 시도 알레고리의 기법에 의존한다.  태양신이라고 불리우던 루이14세는  그의 통치 말기에  종종 구멍 난 의자에 앉곤 했다  지독히 어둡던 어느 날 밤  태양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가 앉더니  사라지고 말았다.  ㅡ 프레베르,[일식](오 증자 역)  루이 14세를 풍자한 시로 일종의 교훈이 있고, 설화성도 있고,  이미지가 시간적으로 발전한다.   이승훈  
640    김소월과 에이츠 댓글:  조회:4845  추천:0  2015-07-17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이 시는 소월시의 -Esprit- 정수(精髓)로, 이별의 슬픔을 인종(忍從)의 의지력으로 극복해 내는 여인을 시적 자아로 하여 전통적 정한(情恨)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이 정한의 세계는  , , , 으로 계승되어 면면히 흘러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전통 정서와 그 맥을 같이한다. 4연 12행의 간결한 시 형식 속에는 한 여인의 임을 향한 절절한 사랑과 희생, 그리고 체념과 극기(克己)의 정신이 함께 용해되어 승화된 지순한 사랑으로 나타난다 즉, 떠나는 임을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겠다는 동양적인 체념과,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는 임이지만, 그를 위해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는 절대적 사랑, 임의 '가시는 걸음 걸음'이 꽃을 '사뿐히 즈려 밟'을 때, 이별의 슬픔을 도리어 축복으로 승화시키는 비애,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유교적 휴머니즘 그리고 그 아픔을 겉으로 표출하지 않고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는 인고(忍苦) 등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진달래꽃'이다. 이 '진달래꽃'은 단순히 '영변 약산'에 피어 있는 어느 꽃이 아니라, 헌신적인 사랑을 표상하기 위하여 선택된 시적 자아의 분신이다. 다시 말해, '진달래꽃'은 시적 자아의 아름답고 강렬한 사랑의 표상이요, 떠나는 임에 대한 원망과 슬픔이며, 끝까지 임에게 자신을 헌신하려는 정성과 순종의 상징이기도 하다. 본인의 시  에서도  산이 앓은 열병의  열꽃처럼  피어난 분홍빛 정념이라  표현했듯이 또한  붉고 아름다운 자기 희생적 사랑이며 전통적 소재로서, '한'과 '슬픈 사랑'의 매개물이다 떠나는 임을 위해 꽃을 뿌리는 행위가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까닭은 임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시적 자아의 사랑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꽃을 뿌리는 행위의 표면적 의미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산화공덕(散華功德)' ― 임이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임의 앞날을 영화롭게 한다는 '축복'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임을 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강한 만류의 뜻이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그저 이별을 노래하는 단순한 차원의 것이 아니라, 이별이라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존재론의 문제로도 확대해 볼 수 있다. 이별의 고통을  임에게도 전달하려는  모순된 내면의식의 표현인 것 이다  소월은 '진달래꽃'의 개화와 낙화를 사랑의 피어남과 떨어짐, 즉 만남과 이별이라는 원리로 설정함으로써 마침내 사랑의 본질을 깨달은 그는 더 나아가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생성과 소멸의 인생의 의미를 깊이 인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본인의  시 에서  산이 열병을 앓으며 긴 날을 기다려온 것은  딱 한번 꽃을 피우려는 절정의 몸떨림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숱한 만남과 이별을  즉 피어남과  떨어짐을  겪어 왔지만  산은 아무런 기억도 하지 않고 절정의 한순간만을 위해 존재 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버림받은 여인과 떠나는 남성 간에 발생하는 비극적 상황이 초점을 이루는 설화적 모티프 를 원형(原型)으로 하고 있는 이 시는 여성 편향(女性偏向)의 '드리오리다'·'뿌리오리다'·'가시옵소서'·'흘리오리다' 등의 종지형을 의도적으로 각 연마다 사용함으로써 더욱 애절하고 간절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표면적 의미와는 달리  피맺힌 슬픔을 극복하려는  시적 자아의 몸부림이 느껴지는  반어적  역설적 표현이다  그러나 피학적(被虐的)이던 시적 자아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라는 마지막 시행과, '걸음 걸음'·'즈려 밟고 가시옵소서'에서 나타나듯이 그저 눈물만 보이며 인종하는 나약한 여성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떠나는 남성이 밟고 가는 '진달래꽃' 한 송이 한 송이는 바로 여성 시적 자아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그가 꽃을 밟을 때마다 자신이 가학자(加虐者)임을 스스로 확인해야 하는 것을 아는 시적 자아는 그러한 고도의 치밀한 시적 장치를 통해 떠나는 사랑을 붙잡아두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아울러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별의 고통을 감수하려는  순종의 전통적 여인상뒤에는  사랑의 독기를 품은 여인의 향기가 같이 있는것이다 이런 야누스적인  여인의 정감의 깊이를  함축하고 있는  고이 보내드리드리우리다,아름 따다 가실길에  뿌리우리다,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등의  시어를 통해 이별이라는 상황에  안타까운  대처가    의  적극적으로 이별을 거부하는 활달한  고려여인과는 대조를 이룬다고 볼 수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이다  하지만  정한(情恨)의 정서는 단순 정서라기보다는 복합 정서에 가깝다고 볼 수있다 비록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상황이지만,그립고 슬픈 정서가 주정서지만  아름다웠던 과거를  떠올리는 것은  기쁨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시의 정서적 흐름은  체념과 축복(영변의 약산 진달래꽃,산화공덕)   그리고 희생(짓밟힌 꽃,즈려밟고등)을 거쳐  절제 극기 승화라는 고도의 정서로 흘러 마무리된다 비록 자기를 배반하고 떠나가는 사람일지라도 변함없이 사랑하겠다는 극기로 승화된 자기희생의 지순한 사랑의 모습이다 전통적이고 여성적이며 역설적 애상적인  소월의 과 현대적이고 남성적이며 역동적인 본인의 에서  공통점을 굳이 밝히고 마무리 하자면  꽃의 개화와 낙화를 사랑의 피어남과 떨어짐으로  만남과 이별이라는 우주적 원리로 설정하여 사랑의 본질을 깨달은  태어남과 죽음까지 확장하여  생성과 소멸이라는 인생의 의미를 깊이 인식한 것으로 생각할 수있게 한다   그리고  덧 붙여  영국의   월리엄 버틀러 에이츠의  과  김소월의  진달래꽃 정서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너무 흡사하여  말미에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하늘의 천을 소망한다 (꿈)                          월리엄 버틀러 에이츠   내게  금빛 은빛으로 수 놓인   하늘의 천이 있다면   밤과 낮의 어스름으로 물들인   파랗고  희부옇고 검은 천이 있다면   그 천을 그대 발밑에 깔아드리련만   허나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꿈뿐이라   내꿈을 그대 발밑에 깔았습니다   사뿐히 밟으소서,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에이츠가 금빛 은빛 화려한 "하늘의 천"을 못 주는 대신 자신의  소중한  꿈을  사랑하는 임에게 바치는 모습이 비록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임에 대한 원망과 함께 축복의 마음으로 진달래꽃을  아름따다 가시는 임 ,사랑하는 임 발아래 까는 모습이  서로 비슷해 보인다 이미지의 표절이니   소월이 진달래꽃 쓰기전에  이시를 읽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정말 중요한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최고의 것을 주고 싶어 한다는것 가장 낮은 자세,희생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꿈이나마 그대 위해  깔아드리고 싶은 비단 한조각  소망하는 금요일   숙제가 많아  쫒기는 마음으로 두서 없이 글 올린다~~     그는 하늘의 천을 소망한다  
639    좋은 시를 쓰는 王道 // 령혼을 노크해주는 글 댓글:  조회:4827  추천:0  2015-07-15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광동촌 이용식 촌민 집) 천 편의 시를 베껴 쓰는 의미 (좋은 시 읽기, 쓰기...  여기까지 오는데 수많은 세월은 흘렀고... 또 흐르고...) --- 편집자 주. 이제 막 시를 쓰기 시작한 분들이라면 읽어보십시오. 시를 쓰기 시작하여 몇 해가 지났으나 정지용, 이용악, 백석, 김관식, 김종삼, 구자운, 전봉건 시인들의 이름이 낯선 분들이라면 더욱 새겨서 읽어보십시오. 시는 단순한 넋두리나 혼자만의 도취에서 우러난 것이라고 잘못 아는 이들도 읽어보십시오. 제대로 된 시, 올바른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이 문제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풀기 어려운 문제는 결코 아닙니다. 끈기와 열정을 가지고 과거의 낡은 버릇을 과감하게 팽개쳐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각오가 있으면 됩니다. 좋은 시들을 손으로 노트에 모두 필사해 보십시오. 평생 몸 바쳐 시를 쓰고야 말리라는 결심을 하고 있다면 두려워 마십시오 [좋은 시 읽기]의 시들 맨 아래의 1번 시인들부터 100번의 시인들까지는 5편씩의 대표작을 다른 데서 찾아서라도 노트에 쓰십시오. 그리고 101번부터 300번까지 시인들 작품은 3편씩 찾아서 쓰십시오. 그 이후부터는 그냥 [좋은 시 읽기]의 시들을 필사하십시오. 하루에 5편 내지 10편을 필사할 경우, 1년이면 그 훈련이 대충 끝나게 될 것입니다. 늦어도 2년이면 그 습작 훈련이 끝나게 될 것입니다. 이만한 노력 없이 올바른 시의 길을 찾는다는 것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찾으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왜 시를 손으로 필사해야 하느냐고 의심합니까? 그 필사하는 과정 안에 시의 비밀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필사하면서 집중하여 생각을 하면 그 시의 심상, 그 이미지를 쓰게 된 시인의 남모를 동기, 행을 바꾼 의도, 시 속의 소리 없이 숨쉬는 운율 등이 은근히 내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읽고 지나쳐버리고 만다면 그 중요한 것들의 눈짓을 알지 못합니다. 또한 시를 쓰는 방법도 자연 그렇게 터득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이론적 습득보다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합니다. 그리고 순서를 좇아 쓰게 되면 아마 여러분은 우리나라 현대시의 역사를 스스로 깨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비평/에세이]의 글들을 맨 아랫것부터 차례로 출력하여 최근의 것까지 하루에 두 꼭지씩 정독을 해 보십시오. 1,200 편의 시를 필사한다고 칩시다. 시집 겨우 20 권에 지나지 않는 분량입니다. 하루에 5 편씩 필사한대도 240일이면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겁내지 마십시오. 아무런 대책 없이, 좋은 시, 제대로 된 시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자기 혼자만의 시 쓰기에 골몰하고 자아도취에 빠져 허송하는 세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필사를 하고 다 하고 나면 그 때 비로소 시의 참맛과 시의 바른 길을 알게 될 것입니다.   * 이 과정을 마친 분은 시 이외의 교양 서적을 섭렵하는 게 좋습니다. 문학, 철학, 신화, 미술, 음악, 역사 등 교양의 축적이 폭넓은 시적 자산이 될 것입니다. 망설이지 마십시오. 지금 바로 시작하십시오. 좋은 시 속에 좋은 시를 쓰는 왕도(王道)가 있습니다.    강 인 한/시인   ================================================= 영혼을 노크해주는 글이어야           선생님, 이번 회지에 주신 글 “선계에 같이 가십시다”를 보고 많이 울었거든요.  여러 번을 봐도 다른 글들과는 느낌이 다르던데요.  본성이 반응을 해서 그런 건가요?    글이라고 다 글이 아니에요.  글을 보면 쓴 사람의 파장이 느껴지기 때문에  어떤 수준에서 나온 글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제일 좋은 글은 본성(本性), 즉 “성”을 때려주는 글입니다.  두 번째는 영혼을 울려주는 글, 영혼을 노크해주는 글입니다.      그런 글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예요.  저는 글을 쓸 때 생각을 많이 안 합니다.  그냥 무심으로 있으면 퍼뜩 떠올라서 쓰는 데는 한 10분 정도 걸려요.      제가 파장으로 텔레파시 할 때도  누구를 만나면 어떤 질문을 해야지 하고 벼르고 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누가 “꼭 이런 질문을 해주십시오” 하고 부탁한 경우에는  잊어버릴까 봐 기억하고 있기는 한데  대개는 그냥 파장이 딱 맞으면 질문이 저절로 나와요.      그리고 그분들도 대답이 즉석에서 나오는 것이지  생각해서 답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랬을 때 본성으로 바로 울려주는 것입니다.      그 글도 그런 식으로 본성을 때려주는, 공감해서 울려주는 글이지요.  말하자면 그렇게 울림이 있어라 해서,  노크하고 싶어서 본성을 때려주고 싶어서 썼던 글이에요.  그 글에 실린 파장도 그렇고요.  울고 싶은 분들은 우십시오.          저는 그 글을 보니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세요?  그런데 대충 들어서는 안 되고요.  수련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확실히 들어야 돼요.  어떻게 하면 그런 생각들이 들 수 있을까 저도 고민입니다.  어떻게 본보기를 보이면 그런 마음이 들까요?          선계수련이 뭐 하는 거냐 하고 누가 질문을 던지면  한 마디로 어떻게 얘기를 해주면 될지요?    책을 한 번도 안 읽어본 사람같이 얘기를 하시네요.  저렇게 우문을 하시는데 현답을 해야 됩니까?      선계수련이란 무슨 수련이냐?  깨달음으로 가는 수련이라고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면 깨달음이란 뭐냐?  깨닫는다는 것은 “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안다는 것은 무엇이냐?  아는 것은 상단에서 하는 일입니다.  지혜의 소관은 상단인데,  그 알기까지의 과정은 하단에서부터 올라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의 앎이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것은  하단에서부터 축적되어서 아는 것이어야 합니다.      과정은 우선 몸에 대해서 알고  다음에 마음에 대해서 알고  그 다음에 지혜의 눈이 열리는 깨달음입니다.     
638    표절과 령혼 댓글:  조회:4801  추천:0  2015-07-15
[ 2015년 07월 16일 10시 07분 ]   표절 문제로 본 '맑은 영혼과 썩은 영혼' 강경호 시인(계간 '시와사람' 발행인 겸 주간)        강인한 시인은 최근 펴낸 자신의 대표시 100선 시집인 '신들의 놀이터' 머리글에서 "시인은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뼈와 살이 있고 피가 돌고, 바늘로 찌르면 아픔을 느낄 줄 알며 한 방울 더운 선혈이 솟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시와 사람'이 하나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 시인의 말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시대이다.  강인한 시인의 말은 시인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모든 예술가, 아니 모든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오늘 우리 문단은 표절시비로 시끄럽다. 작가는 뒤로 숨고 출판사가 나서서 표절을 부인하고 방어하더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작가가 마지못해 '표절한 것 같다'는 애매한 말로 변명했다. 표절 논쟁의 핵심은 자본과 문단 권력을 앞세운 대형 출판사의 폭력성과 상업성 보다도 작가의 순수하지 못한 영혼에 있다고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문학의 기능은 주류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제일의 기능으로 삼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 자신의 영혼이 순결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 문단의 거대 권력이며 자본에 종속되어 이윤추구만을 일삼는 출판사 뒤에 숨어 마치 정치인들처럼 사태의 추이를 봐가며 눈치를 보다가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모습을 드러낸 작가의 행태는 비겁했다.  작가는 맨 처음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던 때를 기억해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자신을 바라보면 자신이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수많은 무명작가들이 지난한 현실을 극복하며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때로는 많은 유혹의 손짓에도 흔들릴 때도 있겠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작가의 정신적 건전성을 지켜나가기 위해 애를 쓴다.  작가적 양심의 순수성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은 비단 문학인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두 달 동안 고생한 대가가 50여만 원 밖에 안 되는 연극인들도 있다. 아니 일년에 단 1점도 그림을 팔지 못하는 화가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 피눈물나는 삶을 살고 있다.  대중적 인기를 업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참으로 호화로운 서재를 가지고 있는 표절작가가 부럽다. 어느 누구도 누릴 수 없는 대중적 권력과 지위가 표절이라는 작가적 양심을 져버린 것이라면, 그러나 나는 그가 꼬박꼬박 받는 어마어마한 인세와 호화로운 서재가 부럽지 않다. 강인한 시인의 말처럼 "시인은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품 전체적인 맥락에서 표절시비에 휩싸인 문장이 차지하는 무게가 아무것이 아니라고 해도 작가의 양심의 문제는 경중을 따질 것이 못 된다. 순수한 영혼을 바탕으로 글을 쓸 때 비로소 작가와 작품에 대한 진정성이 확보되고, 독자들은 그런 작가의 정신을 흠모하게 된다. 다시 말해 맑은 영혼을 지닌 썩지 않은 정신을 독자들은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동안 작가의 작품을 열심히 읽은 독자들은 이번 표절시비 사태로 인해 작가에게 참으로 실망하게 되고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 작가가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겠다는 절필선언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 문단에는 표절뿐만 아니라 대필을 하는 작가들도 있다고 한다. 유명작가나 실력있는 시인들이 작품을 대필하여 출판을 하거나 신춘문예나 문예지에 당선된 예가 심심찮게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인이 그러한 일을 지적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문단구조이다. 불의와 비리를 고발한 문학인을 매장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강인한 시인은 참으로 용기있는 사람이다. 이따금 표절이나 대필로 문단에 나와 활동하는 작가들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아무개가 아무개의 무슨 무슨 작품을 대필했다든가, 또는 표절했다는 것을 조목조목 따져 문단에 알리기로 유명한 사람이 강인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용기있는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피눈물나는 창작과정을 통해 창조해 낸다. 이러한 작가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영혼이 맑고 순수한 작가에게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보낸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 사회는 자본의 폭력과 탐욕에 일그러졌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있는 까닭에 우리의 마음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즉 세상이 썩어 문들어졌어도 그것의 썩지 않은 영혼이 있기에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이리라.
(연합)// '아리랑'의 작가 조정래 소설가가 표절 논란에 휩싸인 신경숙 소설가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신씨가 절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지난 14일 공개된 '인터파크 북DB'와 인터뷰에서 "표절은 예술가가 목숨을 걸어놓고 해서는 안 되는 짓"이라며 "용서가 안 되는 짓"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예술작품을 읽고 나면 '잘 썼네 나도 이렇게 쓰고 싶은데', 여기까지 용납되는 것이고 그걸 그대로 옮겨서 내 것으로 하면 표절"이라며 "자기도 이렇게 쓰고 싶다고 노력을 해서 그걸 넘어섰을 때 창작이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정래 조씨는 신씨를 "그 작가"라고 칭하면서 그가 4가지를 잘못했다고 꼽았다. 첫 번째 잘못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표절을 했다는 점, 두 번째는 발각이 됐으면 진정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하는데 사과하지 않아 독자들을 더 분노하게 하는 점이라고 짚었다. 그는 "세 번째는 (표절이) 한 번이 아니고 누리꾼들에 의해 밝혀진 게 대여섯 번일 정도로 상습범이 돼버렸다는 것"이라며 "네 번째는 왜 하필이면 그 나라의, 그 작가의, 그 작품이냐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신씨가 모티프와 문장을 따왔다는 의혹을 받는 단편 '우국'을 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군국주의를 옹호한 극우 작가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조씨는 "모든 예술가는 최선을 다하고, 그러고도 자기의 능력이 부치면 그만 물러가는 게 정도"라면서 "운동선수만 은퇴가 있는 게 아니라 예술가도 '아 도저히 능력이 안 되겠다' 그러면 깨끗이 돌아서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조씨는 "표절은 자살행위이면서, 그의 작품이 새롭다고 믿고 그의 작품을 통해서 자기 인생의 여러 가지를 구하고 신뢰를 가지고 읽어준 독자들의 영혼을 죽이는 타살행위"라고 덧붙였다.  한편, 신씨를 옹호하는 평론가의 발언도 알려져 문단에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윤지관 문학평론가는 지난 14일 다산연구소가 매주 발행하는 '다산포럼'에 '문학에서 표절이란 무엇인가 - 신경숙 사태를 보는 한 시각'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윤씨는 글에서 "이번 기회에 읽어본 '전설'과 '우국'은 생판 서로 다른 작품"이라며 "몇몇 문장에 그런(표절) 혐의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작품 전체의 내용, 사고, 감수성, 문체 등 문학의 중심 요소들이 확연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국'은 남자가 주도하고 '전설'은 여자가 중심인 점, '우국'에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군국주의 국가 이념을 교육하지만 '전설'의 여자는 사회 요구와는 무관하게 자기만의 세계에 사는 점, '우국'에서 남자가 할복자살하는 반면 '전설'에서는 여자가 떠난 님을 기다리며 늙어간다는 점이 명백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윤씨는 이어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이 "미숙한 시인은 흉내 내지만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고 말했다며 "작품과 작가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전설'에서 신씨는 자신이 엘리엇이 말하는 '좋은 시인'임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윤씨의 발언은 평론가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다. 15일 문화연대와 인문학협동조합이 공동 주최한 '신경숙 표절 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 토론회에서 정문순 문학평론가는 "윤씨는 2000년에 문학 권력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을 때도 문학권력이 어디 있느냐며 옹호했던 보수적인 비평가"라며 "'전설'은 '우국'을 조금 베낀 것이 아니고 그 작가의 작가정신까지 그대로 가져온, 몸체를 다 빌려온 작품"이라고 반박했다.   신씨와 문학 권력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유지해 온 오길영 문학평론가도 윤씨를 비판하고 나섰다.   오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윤씨의 글을 따르면 앞으로 문학계나 학계에서 표절은 말할 수 없게 되며, 다른 사람의 글을 아무 출처 표시도 없이 갖다 써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오씨는 "윤씨의 말은 다른 사람의 글을 '변용'해서 예쁘게, 더 멋지게 만들면 다 용서가 된다는 뜻"이라며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와 똑같다"고 꼬집었다.
636    김억과 김소월 댓글:  조회:5584  추천:0  2015-07-14
안서 김억 선생님에게 (시인 김소월이 스승 김억에게 쓴 편지)   몇 해 만에 선생님의 수적(手跡)을 뵈오니 감개 무량하옵니다. 그 후에 보내 주신 책 『망우초(忘憂草)』는 근심을 잊어 버리란 망우초이옵니까? 잊어 버리라는 망우초이옵니까? 잊자하는 망우초이옵니까? 저의 생각 같아서는, 이 마음 둘 데 없어 잊자 하니 망우초라고 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옵니다. 저 구성(龜城) 와서 명년이면 10년이올시다. 10년도 이럭저럭 짧은 세월이란 모양이외다. 산촌에 와서 10년 있는 동안에 산천은 별로 변함이 없이 뵈여도, 인사(人事)는 아주 글러진 듯하옵니다.   (…중략…)   요전 호(號) 에 이러한 절귀가 있어서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質[부운자체본무질] 生死去如亦如是[생사거여역여시]   라 하였아옵니다. 저 지금 이렇게 생각하옵니다. 초조하지 말자고, 초조하지 말자고,   (…중략…)   자고이래(自古以來)로 중추명월(仲秋明月)을 일컬어 왔읍니다. 오늘밤 창 밖에 달빛(月色) 옛소설에 어느 여자 다리(橋) 난간에 기대여 있어, 흐느껴 울며 또 죽음의 유혹에 박행한 신세를 소스라지게도 울던 그 달빛, 그 월색(月色), 월색이 백주(白晝)와 지지 않게 밝사옵니다. *이 편지는 1934년 번역작품집 [망우초]가 간행된 이후 김소월이 스승인 김억에게 전해진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素月[소월]의 追憶[추억]](김억) 중에 인용돼 있음.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발행된 1934년 번역시집 [망우초] 소월 문광부 복원초상(문화관광부에서 복원한 소월의 초상) [김소월 시선집](1955년 북한에서 출판된 소월시선집의 표지) [망우초](호화판 역시집, 1943.8.1, 김억의 역시집)     [출처] 안서 김억 선생님에게(시인 김소월이 스승 김억에게 쓴 편지)|작성자 독서캠페인  
635    윤동주와 일본 시인 // 시문학의 흐름 댓글:  조회:5479  추천:0  2015-07-12
윤동주에 푹 빠진 일본 시인 [서평] 우에노 미야코, 윤동주 시 일본어 완역 2015.07.01 17:19l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서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 별 헤는 밤, 가운데서 - 僕はなぜだか切なくて このたくさんの星の光が降りそそぐ丘のうえに 自分の名前を書いてみて 土で覆ってしまいました - 星を数える夜 - ▲  우에노미야코 시인의 윤동주 시 일본어 완역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표지. ⓒ 콜삭사 관련사진보기 윤동주 시인의 시를 사랑하고, 윤동주 시인의 삶과 사상을 흠모하는 일본의 중견시인 우에노 미야코(上野都, 68)씨가 이번에  윤동주 전작시를 일본어로 번역하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일본 콜삭사(コ-ルサック社)에서 펴냈다.  그간 윤동주 시인의 단편적인 작품 번역과 논문이나 연구서 등은 일본에서 많이 나왔지만 문학성이 뛰어난 중견 시인이 완역집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이라고 한 것은 '윤동주 시의 원작을 가장 잘 살린 번역'이라는 뜻이다. 25년 전 윤동주 완역본이 이부키 고우(伊吹鄕) 씨에 의해 나온 적이 있다. 그러나 이부키씨의 번역은 그간 의역이 많다는 지적이 있었다. 한 예로, 윤동주의 가운데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부분에 대한 문제가 크게 불거진 적이 있다.  문제의 부분을 보면 이부키 고우씨의 번역은 "生きとし生けるものをいとおしまねば(모든 살아있는 것을 가엾게 여기지 않으면)" 으로 돼 있고, 또 다른 번역으로 아이자와 카쿠씨는 "すべての死にゆくものを愛さねば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하지 않으면)이라고 해놨다. 그런데 우에노 미야코씨의 번역본에서는 그보다 더 깊은 내용이 함축된 "すべて滅びゆくものを慈しまねば"[모든 죽어가는(단순한 죽음이 아닌 소멸해가는 것을 포함) 사랑해야지(같은 사랑이라도 자비심을 포함한 사랑)]으로 번역돼 있다.  "어른이 되면 윤동주 번역 시집을 내리라" 시의 번역은 원작을 누가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일본어 전공자인 나의 생각으로는 우에노 미야코씨의 번역은 '윤동주가 추구하는 시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번역'이라는 생각이다. 같은 죽어가는 것이라 해도 그것이 단순한 '껍데기의 소멸'인지 아니면 껍데기가 담고 있는 '본질'까지를 포함하는 것인지는 매우 심오한 철학적인 문제인지라 낱말 선택도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따라서 시누(死ぬ, 죽다)라는 말을 쓸 것인지 호로비루(滅びる, 죽음을 포함한 멸하다)를 쓸 것인지는 윤동주의 시 세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번역을 아무나 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우에노 미야코 시인의 이번 윤동주 시집 완역이 갖는 의의가 큰 것이며 비로소 윤동주의 완벽한 완역이 나왔다고 일본 문학계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커서 어른이 되면 한국어를 공부하여 윤동주 시인의 번역 시집을 낼 것이라고 중학생 시절부터 별러왔다. 그때 나는 이미 시를 쓰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는 중학생 때의 꿈을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룬 우에노 미야코 시인의 감격어린 일성이다.  우에노 시인의 이번 작업은 시인 자신이 윤동주 시에 매료돼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듯 시심(詩心)을 꿰뚫은 번역으로 일본 문학계는 그 수준 높은 번역에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국어에 조예가 깊기 때문에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자신이 이미 50여 년간 시를 써온 경험과 동시에 일제 침략의 역사를 그 누구보다도 통렬히 가슴 아파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윤동주의 영혼 느끼게 해주는 뛰어난 번역" 이번에 윤동주 시인의 한글 시 117편을 완역한 우에노 시인은 "나에게 있어 한국어라는 외국어의 벽은 매우 높다, 그러나 사전을 곁에 놓고 씨름하면서 낱말 하나하나에 걸맞은 일본어를 찾아나가는 고행 끝에 어느 날 문득 눈앞의 안개가 걷히고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우에노 시인의 '문통(文通)'은 단순한 번역의 차원을 벗어나 시인 윤동주와의 깊은 사상적 교감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일반 연구자가 아닌 시인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다본 윤동주의 시는 그래서 한 작품, 한 작품 원작이 갖고 있는 작품성을 낱말 하나에 이르기까지 잘 살려내고 있다. 일본의 대표 시인 중 하나인 이시카와 이츠코(石川逸子, 83)씨는 "이렇게 일본어로 번역된 시들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윤동주 시인의 섬세한 마음과 영혼까지 느끼게 해주는 뛰어난 번역"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지난 2월 16일, 윤동주 시인이 다니던 교토 동지사대학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시인들이 모여 윤동주 사후 70주기 추모회를 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를 낭송했다. 마침 그때는 겨울 끝자락이라 쌀쌀한 날씨였지만 교정에는 홍매화가 활짝 폈고 하늘도 푸르고 높았다. 마치 윤동주 시인이 그리던 푸른 하늘을 보는 듯 해 가슴이 뭉클했다." 이런 말을 남긴 우에노 시인의 한평생은 윤동주 시인이 노래하던 와의 조우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윤동주 시인이 마지막 거닐었던 교토의 하늘 아래서, 교토의 시인 우에노 미야코가 번역한 윤동주의 시들이 앞으로 한일·일한의 국경을 뛰어 넘는 또 하나의 우정의 시작이자, 서로의 역사와 마음을 이어주는 소통의 다리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에노 미야코 "일본인들에게 윤동주 시인의 죽음을 알리겠다" ▲  우에노 미야코 시인 ⓒ 우에노 미야코 관련사진보기 다음은 우에노 미야코씨와의 대담 내용을 정리한 것. - 언제부터 시를 쓰게 됐고, 어떻게 시작 공부를 했나?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 때이며 본격적인 시 공부는 고등학교 문예부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당시 24살로 요절한 다치하라 미치조우(立原道造, 1914~1939)의 시와 더불어 '사계파'로 불리는 작가들의 시와 소설 등을 읽으며 문학 수업을 받았다. 지금도 시 창작 시절의 마음 그대로를 간직하며 시 작업에 임하고 있다."  - 윤동주를 어떻게 만났고, 윤동주 시의 어떤 점에 매료됐나? "23년 전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윤동주를 알게 됐다. 좋아하는 윤동주 시를 말하라면 '전부'라고 말할 수 있다. 초기에는 윤동주의 기독교신앙과 굴절된 심상풍경(心象風景)을 잘 이해 못했다.  아마도 그의 서정적인 언어의 아름다움과 그 함축성에 이끌렸던 것 같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는 것은 윤동주의 젊고 순수한 언어 속에 담긴 뚜렷한 자아성향과 특히 산문시 다섯 편에서 볼 수 있는 이지적인 유머, 해학성이다. 언제 읽어도 매력적이다." - 시 몇 편도 번역하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완역을 결심하게 됐나? "117편을 번역하면서 내 스스로 한국어 공부에 큰 자극을 받았다. 번역을 계속하면 계속할수록 흥미를 느끼게 됐다. 다만 번역 자체는 여러 면에서 난관이 컸다. 그래도 끝까지 완역할 수 있었던 것은 윤동주를 존경하는 마음에서였으며 '한국어를 공부하는 시인'으로서 자연스러운 도전이었다." - 번역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내 자신이 기독교인도 아니고 시대나, 민족, 환경도 크게 다른 내가 어떻게 윤동주 시인의 가슴 깊숙이에 숨어있는 신앙이나 가족에 대한 사랑 등을 일본어로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 고민은 끝까지 나를 괴롭혔다. 이의 극복은 윤동주 시인에의 공감과 존경심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섣불리 '껍데기만 일본어로 된 시'의 형태로 번역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을 시종일관 유지하면서 번역작업에 임했다."  - 윤동주 시 가운데 가장 가슴에 담아두고 싶은 시는? 그리고 그 까닭은? "'하나' 만 예로 들기는 어렵지만 가장 좋아하는 시는 이다. 한국어로 읽으나 일본어로 읽으나 가슴이 찡하면서 윤동주 시인에 대한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명시라고 생각한다.  특히 시 속에 나오는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은 내 젊은 날의 애독시이기도 해서 더욱 공감이 간다. 마지막 연의 '자랑처럼 푸른 풀(이 무성할 거외다)'을 바라보는 심정은 지구촌에 살아가는 인간의 보편적인 생각을 승화시킨 것으로 생각한다. 요절한 윤동주 시인의 위대함에 그저 가슴이 떨릴 뿐이다." 우에노 미야코 시인은 누구? 1947 일본 도쿄 출생 1970년 후쿠오카현립 기타큐슈대학 영미(英美)학과 졸업 1973년 후쿠오카 시잡지 '아루메' 동인 1992~1994 오사카시 히라가타시교육위원회 조선어교실에서 한국어 수학 1998년 재일한국문인협회 외국인 정회원 1호 1999년 재일한국문인협회 상임간사  2015 일본현대시인협회 회원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일본어판 윤동주 완역 시집을 내면서 일본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 번역 시집을 낸 뒤 많은 일본인들로부터 윤동주라는 이름과 등을 읽은 일이 있다던가, 시집을 본 적이 있다는 반응이 있었다. 그들로부터 한결같은 이야기는 '윤동주 시인이 이렇게 많은 시를 썼으며 그에게 이런 천재성이 있었느냐? 처음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번역시집 후기에도 썼지만 이 번역 시집을 통해 일본인들이 조선의 청년 윤동주 시인이 왜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어가야 했는가, 그리고 패전 뒤 70년 동안 일본은 무엇을 배웠는가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지금 한일관계에 대해 일본은 상대를 매도할 뿐인 폭력적인 언어를 쓰고 있는데, 그런 것 보다는 윤동주 시인의 '시혼'(詩魂)을 통해 그가 호소하는 강렬한 언어의 힘이 한일 양국 사이에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시키고 싶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아직 별다른 계획은 없다. 시집을 읽은 사람들로 부터 '수고했다. 좋은 일을 했다'라는 인사를 받고 있는데 이참에 지친 심신을 쉬고 싶은 생각이다. 다만 윤동주를 추모하는 모임 등에는 꼭 참석하여 윤동주 시집의 완역자로서의 긍지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윤동주 시인의 시 세계를 전하고 싶다." ============================================= 개화기부터 2000년대까지 문학의 흐름    1. 개화기   (1)개화가사 ①개념 : 전통 시가인 가사의 형식에 새로운 개화사상을 담은 가사 ②주제 : 애국, 개화사상, 현실비판 ③형식 : 4음보 연속체를 그대로 유지 ④의의 : 국민계몽의 효과를 높임 ⑤작품 : 이중원‘동심가’이필균의‘애국하는 노래’등   (2)창가 ①개념 : 찬송가 및 서양 음악에 계몽적인 가사를 붙여 놓은 것 ②주제 : 충군, 애국 ③형식 : 대체로 4・4조의 정형성을 띰 ④작품 :‘학도가’‘한양가’‘세계일주가’‘경부철도가’   (3)신체시 ①개념 : 문명 개화를 노래한 시 ②주제 : 계몽사상, 신문명에 대한 동경 ③형식 : 창가와 자유시의 중간 ④의의 : 전통시가양식과 근대시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 ⑤작품 :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       2. 1920년대   (1)감상적 낭만주의 시 ①특징 : 3・1운동 실패 → 어둡고 현실 도피적인 시         허무, 병, 꿈, 눈물 등의 어두운 이미지를 닮음 ②주요 시인 : 주요한, 홍사용 등 ③동인지 : 백조, 폐허 등   (2)저항시 ①배경 : 낭만시에 대한 반성 ②주제 : 나라 잃은 슬픔 → 적극적인 저항 정신 ③작품 :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3)서사시 ①김동환 : 서사시집 ‘국경의 밤’ ②내용 : 일제강점기 우리민족의 애환   (4)시조 부흥 운동 ①의의 : 민족 고유의 언어와 사상을 지키고자 함 ②형식 : 고시조 → 현대시조 ③작가 : 최남선, 이은상, 이병기   (5)독자적인 시 ①한용운 ―주제 : 임을 상실한 슬픔을 기다림의 의졸 승화 ―의의 : 독특한 사상시 ―작품 : ‘임의침묵’‘나룻배와 행인’           ↓임 : 부처, 조국, 사랑하는 사람 …   ②김소월 ―형식적 특징 : 민요적 율격 계승(3, 5, 7…) ―내용상 특징 : 민족고유의 서정을 담아냄 ―의의 : 서정시의 기틀 마련 ―작품 :‘진달래꽃’‘먼 훗날’‘가는 길’   (6)경향시 ① 특징 : 민중의 혁명 의지를 고양시키고자 함 → 선동시로 빠져 문학성을 잃음 ② 주제 : 적극적인 정치 투쟁 의지 ③ 작품 : 임화 ‘우리 오빠와 화로’       3. 1930년대   (1)순수시 ① 배경 : 1920년대 시의 문학의 감상성과 이념성 거부 ② 특징 :          ― 예술적인 언어의 아름다움을 추구          ― 시의 음악성(리듬, 운율)을 중요시          ― 개인적이며 일상적인 정서를 세심하게 표현 ③ 작품 : 박용철, 김영랑 등 ④ 동인지 : ‘시문학’   (2)모더니즘 시 ① 배경 : 감상적 낭만주의 거부 → 현대적인 시의 면모 확립 ② 특징 : 시각적 심상을 많이 사용           감정 표현 억제하고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면 추구 ③ 작품 :          ― 김광균‘와사등’‘데생’          ― 이상‘거울’‘오감도’: 내면세계를 초현실주의              기법을 이용          ― 정지용의 시적 작품 : 서구시의 시각 표현방식 수용                       → 카톨릭주의 동양적세계 자연시쪽으로 전환   4. 1930년대 후반 ~ 1945년 (1)생명파 ① 배경 : 모더니즘 시와 목적시를 거부 ② 특징 : 인간과 생명의 탐구 주력 ③ 작품 :   ― 유치환‘생명의 서’'깃발’등 : 인간의 의지와 사유의                                               문제에 관심 집중  ― 서정주 '화사’‘자화상’등 : 주로 본능과 무의식을 탐구   (2)저항시 ① 윤동주 : ‘서시’ ‘십자가’ ‘쉽게 씌어진 시’ 등               부끄러움의 미학,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자기 성찰               을  보여줌 ② 이육사 : ‘광야’‘청포도’                 조국 독립에의 강한 의지   5. 광복 직후 (1)자연시 ① 특징 : 목적시 거부, 자연을 소재 인간의 염원과 가치를 담음 ② 의의 : 해방 후 서정시의 맥을 이어감 ③ 동인지 : 합동시집‘청록집’간행 → 청록파 ④ 작품 : 조지훈‘승무’박목월‘나그네’박두진‘해’등   6. 1950년대   (1)전쟁 체험의 시 ① 배경 : 6・25라는 비극적 체험이 바탕 ② 특징 : 전쟁시와 애국시가 주류를 이룸, 전쟁의 참담함 고발, 그             속에서도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을 나타냄 ③ 작품 : 유치환‘보병과 더불어’조지훈‘역사앞에서’   (2)모더니즘 시 ① 특징 : 1930년대 모더니즘의 체험 계승 발전 현대 도시문명을             비판적, 감각적 표현 ② 동인지 :‘후반기’(박인환, 김수영, 전봉건) ③ 작품 : 박인환‘목마와 숙녀’(전후의 허무감)   7. 1960년대 (4/19혁명)   (1)참여시 ① 배경 : 1960년대 정치적 격동기를 겪으며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시대 정신 형성 ② 시의 내용 : 부조리한 현실 비판・고발하는 현실 참여시 ③ 작품 : 김수영‘풀’‘거대한 뿌리’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김지하 '오적’등   8. 1970년대(독재정권 경제구축기)   (1)민중시 ① 배경 : 더 암담해진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성이 생기면            서 참여시가 ‘민중’의 편에 서서 글을 씀으로‘민중시’            라는 이름을 얻음 ② 특징 : 정치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 소외된 민중의 삶을             시를 통해 그려냄 ③ 작품 : 김지하 '황토’신경림 '농무’고은 '만인보'     9. 1980년대 (자유화시기)   (1)참여시 1) 배경 : 통금해제, 군정권의 몰락과 올림픽유치등 서구 자유가              도입되면서 개성의 표출이 등장하며 이에 따른 국민의              의사표현이 자유롭게 사회에 참여한다 2) 특징 : 군사 정치의 몰락, 자유의 급속한 접목으로 인한 문화              예술가의 사회 참여가 대두된다. 3) 작품 : 박경리씨의 토지(소설)     10. 1990년대   (1)자유시 1) 배경 : 경제적 발전과 소득 향상에 따른 자아 발견 자유 참여  2) 특징 : 컴퓨터 보급이 사회와 가정에 보급되는 미디어시대 안착              인터넷 등장으로 인한 국민의 사회참여 활발과 개인 의사표현 시작 3) 작품 : 현존작가/작품 평가 못함     11. 2000년대             (1)자유시 서정시              1) 배경 : 자아발전의 성숙기 소득의 증가는 더 넓은 시야를 국민에게 주며                           시야를  넓혀 개인 지상 최고주의로 돌입한다. 명품을 보유하는등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해 나간다              2) 특징 : 미디어 발전으로인한 개인 미디어시대 활동 개인홈피,블러그활용등                           과거의 집착보다는 미래를 더 중요시하는 미디어 세대 등장                           형과 틀이 무시되는 홀로문학등장 및 정착, 순수문학의 퇴보, 문인의                           양산 시대 도래              3) 작품 : 현존작가 평가 못함
634    한국 최초의 자유시 댓글:  조회:4167  추천:0  2015-07-12
정형시(定型詩)「명사」『문학』 : 일정한 형식과 규칙에 맞추어 지은 시. 우리나라의 시조, 한시(漢詩)의 절구와 율시, 서양의 소네트 따위이다 자유시(自由詩)「명사」『문학』 : 정하여진 형식이나 운율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이루어진 시. 아래는 정형시와 자유시 입니다. ○ 정형시 - 이은상의  '성불사의 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홀로 울게 하여라 ○ 최초의 자유시 - 주요한의 ‘불놀이’ [1]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江)물 우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 밀어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2]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우에서 나려다보니, 물냄새, 모래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不足)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過去)의 퍼런 꿈을 찬 강(江)물 우에 내어던지나 무정(無情)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님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버릴까, 이 설움 살라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시원히 오늘밤 이 물 속에…… 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줄 이나 있을까…… 할 적에 퉁, 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精神)을 차리니 우구우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꾸짖는 듯 아아 좀더 강렬(强烈)한 열정(熱情)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煙氣), 숨막히는 불꽃의 고통(苦痛)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3] 사월(四月)달 따스한 바람이 강(江)을 넘으면, 청류벽(淸流碧), 모란봉 높은 언덕 우에 허어옇게 흐늑이는 사람떼, 바람이 와서 불 적마다 불빛에 물든 물결이 미친 웃음을 웃으니, 겁많은 물고기는 모래 밑에 들어박히고, 물결치는 뱃슭에는 졸음 오는 이즘'의 형상(形象)이 오락가락―어른거리는 그림자 일어나는 웃음소리, 달아논 등불 밑에서 목청껏 길게 빼는 여린 기생의 노래, 뜻 밖에 정욕(情慾)을 이끄는 불구경도 이제는 겹고, 한잔 한잔 또 한잔 끝없는 술도 이제는 싫어, 지저분한 배밑창에 맥없이 누우며 까닭 모르는 눈물은 눈을 데우며, 간단없는 장고소리에 겨운 남자(男子)들은 때때로 불 이는 욕심(慾心)에 못 견디어 번뜩이는 눈으로 뱃가에 뛰어나가면, 뒤에 남은 죽어가는 촛불은 우그러진 치마깃 우에 조을 때, 뜻있는 듯이 찌걱거리는 배젓개 소리는 더욱 가슴을 누른다……. [4] 아아 강물이 웃는다, 웃는다, 괴상한, 웃음이다, 차디찬 강물이 껌껌한 하늘을 보고 웃는 웃음이다. 아아 배가 올라온다. 배가 오른다, 바람이 불 적마다 슬프게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 오른다. [5]저어라, 배를 멀리서 잠자는 능라도(綾羅島)까지, 물살 빠른 대동강(大同江)을 저어오르라. 거기 너의 애인(愛人)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곧추 너의 뱃머리를 돌리라 물결 끝에서 일어나는 추운 바람도 무엇이리오 괴이(怪異)한 웃음소리도 무엇이리오, 사랑 잃은 청년(靑年)의 어두운 가슴속도 너에게야 무엇이리오,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 오오 다만 네 확실(確實)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
633    新體詩 시인 - 최남선 / 자유시 선구자 - 주요한 댓글:  조회:5150  추천:0  2015-07-12
신체시는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목차 자유시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형태 근대 자유시의 형성은 1910년대 교과 연계표 교과 연계표 구분 교과 단원 중학교   문학의 갈래 고등학교 국어Ⅱ 한국 문학의 전승과 흐름 ​ ​국문학의 역사를 배울 때 신체시라는 말이 나왔어요. 근대 문학 초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신체시는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자유시가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 자유시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형태 우리나라는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시 문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전통적인 시조와 가사 외에도 다양한 시 형식이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전통적인 가사가 변한 개화가사도 있었고, 서양 찬송가의 영향을 받은 창가도 있었습니다. 개화가사와 창가는 글자수에 엄격한 제약이 존재했습니다. 개화가사는 4 · 4조 2행으로 대구의 형식이었고 창가는 7 · 5조를 기본 율격으로 반드시 글자수를 지켜야 했습니다. 자유로운 형식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차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글자수를 맞추는 정형적인 외형률에서 벗어난 작품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육당 최남선이 주로 창작했던 신체시입니다. 신체시라는 명칭은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시 형식이라는 의미에서 부여했던 이름이지요. 신체시는 형태적인 고정성에서 벗어나 시적 형식의 자유로움과 개방성을 추구했습니다. 비록 뚜렷한 한계는 있었지만 근대 자유시가 형성되는 데에 계기를 만들어준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신체시인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최남선,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중에서  이 작품은 의인화된 ‘바다’가 ‘소년’에게 강한 힘과 기개를 지닐 것을 전하고 있는 시입니다. 표현이 소박하고 내용이 계몽적이어서 본격적인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의 형식은 창가라든가 개화가사와는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1행과 7행은 파도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로 표현되어 있고 2행과 4행과 6행은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처럼 ‘3 · 3 · 5조’ 혹은 3음보 율격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3행은 4자, 3자, 4자, 5자로 총 4음보로 구성되어 있으며 5행은 4자, 3자, 4자, 4자, 3자로 5음보로 되어 있지요. 이렇게 볼 때 이 시에는 정해진 율격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각 행이 서로 다른 글자수로 배열되어 있으니 이전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리듬이 생겨났다고 말할 수 있지요. 이처럼 신체시는 우리 시에서 최초로 정형률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정형률을 깨뜨리기는 했지만 신체시를 근대적인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용된 1연의 리듬이 전체 6연에 계속 반복되어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내용상 차이가 있을 뿐, 시의 형태가 6연까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체시를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신체시는 개인의 정서를 표현하기보다 계몽적인 주제를 전달했다는 점에서도 근대 시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랐지요. 근대 자유시의 형성은 1910년대 우리나라에서 근대 자유시는 1910년대에 들어와서 창작되었습니다. 김억과 주요한 같은 시인들이 『태서문예신보』에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소개하면서 신체시보다 형식적으로 자유로우며 시적 형식과 리듬을 중시한 작품들을 발표했던 것이지요.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우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주요한, 「불놀이」 중에서  이 작품은 한때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로 평가받았던 작품입니다. 1919년 잡지 『창조』의 창간호에 실렸던 작품입니다. 여러분이 눈으로 슬쩍 봐도 알겠지만 이 시는 산문적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글자수의 제한이라든가 연과 행에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지요. 내용을 살펴보아도 전혀 계몽적이지 않습니다.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와 같이 시적 화자의 개인적인 정서가 명확히 드러나 있습니다. 민중 계몽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정서가 시적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이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창작된 시들은 이 작품처럼 형식적인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정서를 담고 있었지요. 따라서 우리나라 근대 자유시는 대략 1910년경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서구 문학을 소개한 잡지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최남선이 만든 『소년』과 이후에 『창조』, 『백조』, 『폐허』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서구 문학을 보다 본격적으로 소개한 잡지로는 김억 등이 창간한 『태서문예신보』가 있습니다. 이 잡지에는 서구의 근대 시를 비롯하여 당대의 최신 시와 시 이론까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김억은 이 잡지에 다양한 서구의 시들을 번역하여 실었는데 그것들을 모아서 『오뇌의 무도』라는 번역 시집을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이퍼텍스트 詩 들여다보기 - 심상운의                                                                이선      밤 12시 05분. 흰 가운의 젊은 의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을지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40대의 사내. 눈을 감고 꼬부리고 누워있는 그의 검붉은 얼굴을 때리며 “재희 아빠 재희 아빠 눈 떠 봐요! 눈 좀 떠 봐요!“ 중년 여자가 울고 있다. 그때 건너편 방에서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소리.     그는 허연 비닐봉지에 싸여진 채 냉동고 구석에서 딱딱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밥을 꺼내 후끈후끈한 수증기가 솟구치는 찜 통에 넣고 녹이고 있다. 얼굴을 가슴에 묻고 웅크리고 있던 밥 덩이는 수증기 속에서 다시 끈적끈적한 입김을 토해 내고, 차 갑고 어두운 기억들이 응고된 검붉은 뼈가 단단히 박혀 있던 밥의 가슴도 끝내 축축하게 풀어지기 시작한다. 푸른 옷을 입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는 그는 나무젓가락으로 밥의 살을 찔러 보며 웃고 있다.     이집트의 미라들은 햇빛 찬란한 잠속에서 물질의 꿈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미라의 얼굴이 검붉은 색으로 그려진 둥근 무화과나무 목관木棺의 사진을 본다. 고대古代의 숲 속에서 날아온 새들이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5월의 청계산 숲을 휘젓고 다니는 오전 11시.                                           ― 심상운,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       심상운의 시 은 하이퍼텍스트 시론에 입각하여 쓴 새로운 시 쓰기 방법을 모색한 시다. 심상운 시인은 컴퓨터의 모듈(module)과 리좀 용어를 시론에 도입하여 하이퍼텍스트 시의 정의를 새롭게 하였다. 아직 하이퍼텍스트 시론은 학계의 학문적인 검증을 거쳐야 하고 더 연구하고 발전할 과제가 많지만 심상운 시인은 하이퍼텍스트 시론을 증명할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 위하여 열심히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도 그의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심상운의 시 에 나타난 하이퍼텍스트적 요소를 살펴보고 하이퍼텍스트 시론을 역으로 추정해 보고자 한다.   하이퍼텍스트 이론은 컴퓨터 용어인 하이퍼와 텍스트를 합한 단어로서 1960년대 컴퓨터 개척자 테오도르 넬슨이 만든 말이다. 미국작가 조지 피 랜도(George P. Landow)의 저서 『Hypertext』(1992)에서 유래된 문학이론이다. 하이퍼링크와 쌍방향성이라는 컴퓨터의 특성을 결합한 용어를 문덕수 시인이 시에 처음 도입하였다. 컴퓨터의 링크는 기존의 텍스트의 선형성, 고정성, 유한성의 제약을 벗어나 마음대로 검색할 수 있다. ‘건너뛰기, 포기하기, 다른 텍스로의 이동’ 등 한 블록에서 다른 블록으로 이동하며 텍스트를 검색한다. 하이퍼텍스트는 한 편의 시 안에서 단어, 행, 연을 동시적으로 나열하여 한 공간에서 공존하게 한다. 리좀이라고 불리는 그물상태를 구축하여 단어와 이미지를 연결한다. 하이퍼텍스트의 병렬구조는 탈중심적으로 텍스트를 링크하며 무한한 상상력을 한 공간에 집합한다.   하이퍼텍스트 시론에 맞게 은 3연이 각각 다른 이야기를 담은 몽타쥬 기법을 쓰고 있다. 1연은 병원 응급실, 2연은 밥, 3연은 이집트 미라, 세 개의 이야기를 짜깁기 하였다. 시적 거리가 먼 각각 독립된 이야기를 한 공간에 펼쳐 놓았다. 소설의 옴니버스 구조를 도입한 짧은 이야기는 극적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시에서 다루고 있는 ‘병’과 ‘밥’, ‘죽음’의 문제는 인간과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큰 관심 주제였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인생’과 ‘인간’이라는 큰 그림 속에 그려진 또 작은 세 개의 그림이다. 시인은 독자에게 작가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객관적으로 사건과 사실을 펼쳐 ‘보여주기’ 하고 있다. 그 그림에 색칠을 하는 것은 독자의 상상력의 몫이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아날로그 시보다 자유로운 상상적 공간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독자는 가상현실의 플롯을 각각 다르게 상상하여 해석하고 감상한다.   ‘병원 응급실’, ‘냉동고의 찬밥’, ‘이집트 미라’는 평범한 듯 보이는 짧은 이야기지만 많은 얘깃거리를 담고 있다. 세 개의 그림은 하이퍼텍스트의 리좀 이론에 따라 다양한 얼개를 가지고 그물망을 짠다. 1연, 2연, 3연 모두 각각의 객체이지만 또한 서로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1연의 ‘재희 아빠’는 2연의 중심 주제인 ‘밥’을 구하려고 피곤한 몸으로 일에 몰입하다 큰 사고를 당했을 것이다. 또한 응급실의 ‘재희 아빠’는 통상적으로 병원 응급실 바로 곁에 붙어 있는 장례식장, 죽음을 연상시킨다. 그러므로 3연의 ‘이집트 미라’인 고대 인간의 주검은 1, 2연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1, 2, 3연이 본질적 인간 생활과 일맥상통하며 연계된다. 동서양을 떠나서 남자는 기본적으로 가족부양이라는 가장의 책임을 떠맡고 있다. 이렇게 한 공간 안에서 세 개의 이야기는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서로 링크되어 공존하면서 연상작용을 하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1연, ‘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40대 사내’라는 객관적 사실을 가지고 시는 출발한다.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화하여 ‘보여주기’ 한다. 극한상황을 제시하여 사건을 구성한다. 그런데 2연에서 생뚱맞게 사물인 ‘밥’이 등장한다. 전혀 다른 이물질들의 결합이다. 병렬적 구조인 ‘사내’와 ‘밥’은 서로 내포적이거나 종속적이지 않으며 등가적이다. 그런데 그 밥은 정상적인 밥이 아니다. ‘허연 비닐봉지에 싸여진 채 냉동고 구석에서 딱딱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밥’이다. 마치 냉동고에 안치된 시체처럼 서늘한 기운이 나는 ‘찬밥’이다. 1연의 ‘사내’는 세상에서 ‘찬밥신세’로 살다가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다. 사내가 세상의 밥이었을 수도 있고 ‘세상’이 사내의 '밥‘이었을 수도 있다. 사내는 ‘재희 엄마’와 ‘재희’에겐 그들을 먹이는 밥일 수도 있다. 가족을 먹이려고 밥을 구하려고 동분서주 뛰어다니다 응급실에 실려온 것이다.. ‘밥’은 냉동고에서 찜통으로 들어가고 여러 단계를 거쳐서 녹는다. 차갑고 어두운 기억이 응고된 밥. 검붉은 뼈가 단단히 박혀 있는 밥의 가슴. 2연의 ‘밥’은 1연의 ‘사내’와 치환되어 동일시된다. 그러나 이 또한 고정적이지 않다. 자유롭게 독자는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 그것이 사물시의 장점이다.   심상운 시에서의 ‘밥’은 무생물이 아닌, 생각과 고통을 느끼며 가슴이 얼어붙은 활유화된 밥이다. ‘밥’과 ‘사내’의 아픔을 병치시켜 사내의 극단적으로 어려웠던 삶을 상상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단순한 밥이 아니다. 이 ‘밥’은 먹을 수 있도록 녹기까지 상당히 복잡한 사연을 가진 밥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또한 2연은 ‘그’라는 3인칭을 써서 1연의 ‘사내’와 ‘그’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는 여지를 준다. ‘밥’의 살을 찔러보며 웃는 ‘그’는 전혀 1연과 다른 사내일 것이다. 2연의 ‘그’는 1연의 ‘사내’를 진찰하는 의사일 수도 있다. 의사는 사내를 찔러보며 관찰하고, 진찰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검진한다. 또 어쩌면 2연의 ‘그’는 관을 꺼내서 염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렇게 1연과 2연은 다초점, 다원화된 구조의 그물망을 짜서 독자에게 복잡한 리좀을 만들고 있다. ‘그’는 여러 정황적 상황과 상징성을 가지며 독자에게 상상력을 제공한다. 지금까지의 의미시보다 해석의 폭이 넓다. 이렇게 하이퍼텍스트 시는 아날로그 시의 단선구조를 다선구조로 바꾸었다. 이미지와 이미지를 링크하여 관념에 묶이지 않고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또한 그 상상력은 사실에서부터 출발한 객관화된 상상력이다.   그런데 3연은 1, 2연과 또 동떨어진 소재 ‘이집트 미라’가 등장한다. 1연과 2연과 3연은 각각 다른 이야기로 ‘낯설게하기’를 극대화하고 있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지금까지 연과 연이 결합하여 의미를 생산하던 시 쓰기 방법을 버리고 연과 연의 연결을 일부러 끊어버린다. 시적 거리가 먼 사물을 등장시켜 시적 논리와 질서를 파괴한다. 인간인 ‘사내’와 무생물인 ‘밥’, ‘사진’을 한 공간에 병렬 배치하여 같은 값을 준다. 지금까지 시의 연에서 이뤄지던 내포와 종속의 관계를 부정한다. 3연의 미라는 실제의 미라가 아니라 사진에서 본 ‘목관’ 속의 ‘미라’다. 고대의 숲에서 날아온 새들이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현대의 ‘5월 청계산 숲을 휘젓고’ 다닌다. ‘오전 11시’라는 시간을 제시함으로써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현재성을 제공하여 실감을 더하고 있다.   1연- 객관적 사실. 2연- 객관적 사물과 상상력. 독자를 연상작용으로 유도한다. 3연- 객관적 사물인 사진. 다시 사진에서 상상력을 더하여 현재로 이동. 심상운 시인은 거실 벽에 걸린 ‘사진’ 한 장을 보고 위의 시를 썼을 수도 있다. 시인은 벽에 걸린 이집트 미라의 목관 사진을 보면서 주검을 생각하고, 죽음은 병원응급실에 대한 심상운 시인의 사전지식인 기억과 만난다. 죽음은 다시 직업과 연결되고 직업은 밥을 구하기 위한 과정이다. 단순한 이집트 미라 목관 사진 한 장이 병원, 밥을 연상작용으로 연결하여 이야기를 꾸민 것이다. 또한 현재의 ‘새소리’를 등장시켜 화자인 시인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시간과 공간으로 돌아온다. 흡사 영화의 회상 기법처럼 현재와 과거를 넘나든다. 사진을 ‘본다’는 작은 사실에서 출발하여 ‘바라본다 - 관찰한다 - 상상한다 - 이야기를 조립한다 - 뼈대를 세운다 - 꾸민다’는 시적 발상과 완성까지, 시 쓰기의 전 과정을 심상운 시인은 여과 없이 시로써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눈을 감고 상상력의 가지를 뻗어 ‘무화과나무 목관- 무화과나무 숲- 숲에 사는 고대의 새-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새소리- 현대 청계산- 오전 11시의 화자인 나’까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연상을 한다. 시간과 공간, 인간과 사물에 같은 값을 주고 병렬 배치한다. 사진에서 생물과 사건이 뛰쳐나오게 만들었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상상력의 줄기를 잡고 우주 끝까지 연상작용을 하는 상상력을 중시한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논리성을 파괴하며 무의미를 추구한다. 논리를 버리고 의미찾기를 버린다. 연과 연의 연결고리를 일부러 끊어버린다. 연과 연의 지시, 명령을 받지 않은 언어는 상상력의 폭이 넓어져 독자는 감각적이며 청량한 정서적 미의식을 경험한다. 또한 하이퍼텍스트 시는 사물시의 본질, 사물에서 파생된 상징과 본질적 이미지와 만나게 된다. 2연의 ‘밥’처럼, 밥이라는 사물은 일과 직업이라는 묵계된 상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찬밥’을 녹이는 과정은 ‘찬밥’이 아웃사이더 인간을 의미하는 단어로 변이된 것처럼 굳어버린 변형된 의미체계나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 또한 ‘병원 응급실’과 ‘미라’도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학습된 섬뜩한 무서운 이미지가 독자에게 연상작용을 하여 상상력을 증폭시킨다. 독자는 상상력의 범주를 넓혀 1, 2, 3연을 조합하여 극적으로 사건을 만들고 이야기를 꾸민다. 스스로 사건을 구성하는 토대는 경험과 지식, 극적구조물을 짜는 능력에 따라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이것이 하이퍼텍스트 시가 추구하는 텍스트의 명령과 지시, 패턴에 얽매이지 않는 시 감상의 매력이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무의미를 추구한다. 무의미한 단어와 무의미한 사실들을 혼합시켜 미술의 표현기법처럼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보는 것이다. 젝슨 플록의 페인팅 기법처럼 독립된 연과 단어를 나열하여 독자가 각기 다른 감상을 할 수 있도록 상상력의 여지를 남겨주는 것이다. 각각의 연들은 병렬적으로 널브러져 있지만 서로 말을 하고 연관을 갖는다. 리좀이 되어 단어와 이미지들이 그물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하이퍼텍스트 시론의 모듈(module) 이론은 최소 독립된 단위인 단어들이 연속적으로 연계되어 한 공간에 나열된다. 그 단어나 문장, 연은 바꾸거나 버려도 전체에 전혀 영향을 미치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모듈 이론이다. 교환 가능한 이미지, 독립된 기능을 가지면서도 분리될 수 있는 덩어리들이 하이퍼텍스트 시 쓰기 방법론이다. 또한 시는 작가의 의도성에서 이탈하여 독립된 생명력을 가지고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모듈의 객체지향성은 시를 새롭고 감각적이게 한다.     또한 연과 연은 병렬배치 되어 있지만 각 연들은 서로 링크된다. 블록과 블록은 서로 연계성을 가지고 검색된다. 또한 각 연의 단어와 단어, 이미지와 이미지들도 병렬 배치되어 있지만 서로 링크된다. 모듈처럼 단어와 이미지, 사건들이 한 연 안에서 모자이크처럼 내밀한 구조로 연합되어 있다. 단어와 단어, 연과 연, 이미지와 이미지는 동시다발적 구도를 가지고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의존적이며 주장적이다.   하이퍼텍스트는 컴퓨터 용어로서 한 개의 모티브를 검색하기 위해서 여러 번 클릭한다. 이 시의 화자는 ‘검붉은 색의 그림’을 클릭한다. 또한 디지털의 모자이크 기능처럼 ‘을지병원 응급실’이라는 절박한 상황과 ‘밤 12시 05분’이라는 시간을 클릭하고, ‘재희 아빠, 울고 있는 중년 여자,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 를 클릭하여 모자이크 하여 빠르게 빤짝빤짝 보여주고 있다.   2년에서도 ‘허연 비닐봉지, 냉동고, 딱딱, 후끈후끈, 찜통, 얼굴, 가슴, 밥덩이, 수증기, 끈적끈적, 입김, 차갑고, 어둡고, 기억, 응고, 뼈, 가슴, 축축, 푸른, 옷, 가스레인지, 나무젓가락 등, 밥의 살, 찔러본다, 웃다’ 등 많은 명사와 형용사들이 모자이크 되어 있다.   3연에서는 ‘이집트, 미이라, 햇빛, 찬란, 꿈, 무화과나무, 목관, 사진, 고대 숲, 날다, 새,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5월, 청계산, 숲, 오전 11시’ 등 시간, 사물, 공간, 시대를 짜깁기 하여 종적, 횡적으로 모자이크하였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추상화와 같다. 연과 연은 흩어져 있지만 전체로 집합된다. 단어와 단어는 모듈과 리좀으로 얽혀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여러 색깔이 섞인 구성과 같다. 그 구성의 덩어리들이 떠다니는 것이 연이다. 여러 개의 연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의 인상을 결정한다. 독자는 추상화를 일일이 색깔을 분석하여 해석하려고 하지 않고 전체적인 인상으로 감상한다. 즉 하이퍼텍스트 시는 상황시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유기체의 결합은 모자이크처럼 여러 색깔이 모여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다. 하나의 그림 속에는 여러 개의 구성물과 색들이 혼합되어 있다. 그러나 일일이 의미를 분석하지 않고 전체적인 상황으로 그림을 받아들인다. 즉 추상화는 감상자의 직관과 느낌이 중요하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의성어와 의태어, 무의미한 단어 나열로 가볍다는 지적을 받았다. 의미를 추구하던 아날로그 시를 버리고 하이퍼텍스트 시가 무의미를 추구하면서 경박하고 진정성이 없다는 비난을 계속 받아왔다. 상황제시만 있지 인간 삶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없는 철학의 부재가 하이퍼텍스트 시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또한 똑같은 형태의 시가 난립하여 개성적인 작품생산이 어렵고 자기 상표가 없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름만 가리면 누구 작품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단어 던지기는 어떤 단어로 대체하여도 되기 때문에 절실함과 진정성이 없다고 부정적 시각으로 보았다. 그에 반하여 심상운의 에서는 하이퍼텍스트 시에서 실현하기 어려웠던 사유와 철학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심상운 시인은 ‘죽음’과 ‘병’, ‘밥’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질문을 던짐으로써 하이퍼텍스트 시에서 치명적인 결함으로 지적된 사유의 부재와 무작위 단어들을 연결하여 만들어낸 무의미한 이미지 나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진정성의 결여를 극복하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는 것이 ‘밥’이다. 또한 ‘밥’을 얻기 위해서 죽도록 일하다가 병과 죽음을 얻는다. 인간생활에서 죽음과 밥, 병이라는 테마는 ‘전쟁과 사랑’만큼 절실한 문제다. 인간이 영원히 관심을 가지고 추구해야 하는 예술의 테마다.     심상운은 에서 하이퍼텍스트 시의 한계성으로 지적된 사유와 철학의 부재를 극복하고 있다. 또한 하이퍼텍스트 시가 단어 던지기와 무의미 단어 나열로 가볍고 정신없다는 비난을 무력화시켰다. 위의 시는 여러 상황을 모자이크하여 보여주면서도 산만하거나 어지럽지 않고 질서정연한 폼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퍼 시의 문제점은 바로 그 파괴된 형태를 보여주는 시 쓰기를 실현하면서 보여주는 단어던지기와 무분별한 단어의 조합과 나열, 각각 다른 연의 ‘낯설게하기’ 기법이 무작위적으로 여러 편의 시를 생산했을 때 그 새로운 방법론이 시인의 목을 조이는 올가미가 될 수 있다. 천편일률적인 방법으로 양산된 시가 과연 새로움을 가질 수 있는지, 창조성과 유일성, 철학을 가진 예술의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하이퍼텍스트 시론이 새로운 문예사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표현기법으로 쓰여진 하이퍼텍스트 시로써 시론을 증명하여야 한다. 이 문제는 필자를 포함하여 하이퍼텍스트 시를 쓴다고 주장하는 시인들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   현대시의 흐름 현대시의 흐름   1. 3 ·1운동 무렵 ∼ 1920년대의 시   1. 시대 배경 민족의 최대 희망이었던 3·1운동의 좌절은 민족 전체에게 절망과 방향 상실의 비애를 안겨 주었다. 국권 상실 이후, 정치적 좌절감에 빠져 있던 우리 민족은 경제적으로는 일제의 식민지 착취와 세계 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궁핍화 현상의 심화로 민족 생존의 위협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몇몇 선각자들은 민중을 계몽하고 민족 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2. 특 징 (1) 자유시형(自由詩形)의 확립 : 최남선(崔南善)의 신체시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의 계몽성, 개념성, 비예술성을 극복한 본격적인 자유시가 창작되었다. 주요한(朱耀翰), 김억(金億), 김여제(金輿濟) 등이 그 선구자다.     시 인 작 품 실린 곳 연대 김여제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 학지광(學之光) 10호 1917 주요한 시내, 봄, 눈, 샘물이 혼자서 학우(學友) 창간호 1919 김 억 겨울의 황혼 태서문예신보 13호 1919 주요한 불놀이 창조(創造) 창간호 1919 (2) 동인지(同人誌) 문단의 형성 :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신문의 창간, , 등의 잡지의 출현과 때를 같이 하여 많은 문예 동인지가 나와 동인지 문단 시대를 열었다. ① 창조(創造)     연 대 1919. 2. 1 ∼ 1921. 5. 30(통권 9호) 동 인 김동인, 전영택, 주요한, 김동환 의 의 - 최초의 순 문예 동인지 - 근대 문학 개척에 이바지 - 완전한 언문일치체 문장 확립 - 최초의 근대시인 '불놀이(주요한)', 사실주의 단편 소설 '약한 자의 슬픔(김동인)'을 실음 경 향 - 시 : 상징적 / - 소설 : 사실적 ② 폐허(廢墟)     연 대 1920. 7. 25 ∼ 1921. 1. 20(통권 2호) 동 인 황석우, 염상섭, 김억, 남궁벽, 오상순 경 향 퇴폐적, 상징적 ③ 장미촌(薔薇村)     연 대 1921 동 인 박종화, 변영로, 노자영, 박영희 의 의 - 시 동인지의 효시 - 의 전신 - 현대시 창작에 이바지함 경 향 낭만적 ④ 백조(白潮)     연 대 1922. 1. 9 ∼ 1922. 9. 6(통권 3호) 동 인 현진건, 나도향, 이상화, 홍사용, 박종화 의 의 - 순 문예 동인지 - 가장 활발한 시 창작 활동이 이루어짐. - 투르게네프 산문시 소개(나도향) 경 향 낭만적 ⑤ 금성(金星)     연 대 1923 동 인 양주동, 유엽, 백기만, 이장희 의 의 시 동인지 경 향 낭만적 ⑥ 영대(靈臺)     연 대 1924(평양) 동 인 김소월, 주요한, 김억, 전영택, 이광수 의 의 순 문예지, 의 후신 경 향 일정치 않음 (3) 감상적 낭만주의, 상징주의, 계급주의, 민족주의, 해외문학파 시의 전개 ① 초기 : 감상적(퇴폐적) 낭만주의 김억과 황석우가 를 통해 프랑수 상징주의 시를 번역 소개했으며 3ㅗ1운동의 실패로 인한 좌절감, 프랑수 상징주의 시의 퇴폐적 경향(특히 C.P.보들레르 풍), 우울한 분위기의 러시아 문학의 영향, 당시 청년들의 치기(稚氣)어린 감상성 등이 어울려 애상(哀想), 탄식(歎息), 절망(絶望), 도피(逃避), 죽음의 찬미(讚美) 등 감정의 과잉 노출 현상을 빚었다. ② 중기 이후 : 서사시, 계급주의 시ㅗ시조와 민요시의 출현, 해외문학파의 순수시 소개 3ㅗ1운동 실패의 충격이 다소 가라앉게 된 1920년대 중반부터 문인들은 민족의 갈 길이 나라 찾기와 민족의 생존권 회복에 있음을 재인식, 새로운 삶의 전망을 품게 되었다. 이에 파인(巴人) 김동환(金東煥)은 3편의 서사시를 썼고, 중심의 계급주의파 시와 중심의 민족주의파의 문학이 대립했다. 최남선, 이은상, 이병기 등이 시조 부흥운동을 폈고, 김소월, 김동환, 주요한 등이 민요시를 썼다. 한편 계급주의 시의 개념성, 전투성, 공격성을 비판하여 해외문학파가 순수시를 소개했다. ㉠ 김동환의 서사시(敍事詩)     시 집 발행처(실린 곳) 연 대 국경 (國境)의 밤 한성도서 1925. 3. 우리 사남매(四男妹) 조선문단 1925. 11. 승천(昇天)하는 청춘(靑春 신문화사 1925. 11. 이 시들의 서사시 여부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 ㉡ 개벽(開闢)     연 대 1920. 6. 25 ∼ 1926. 8. 1(통권 72호, 발행 금지) 동 인 박영희, 김기진 의 의 - 월간 종합지(천도교 후원) - 신문지법에 따른 첫 잡지 - 근대 문학에 이바지함 경 향 계급주의 ㉢ 조선문단(朝鮮文壇)     연 대 1924. 9 ∼ (통권 25호), 1927년 속간, 1935년 복간, 1936년 폐간 동 인 이광수, 방인근 의 의 - 순 문예지 - 최초의 신인 등용 추천제 실시 - 박화성, 최학송, 채만식, 계용묵 등 많은 신인 배출 경 향 민족주의, 반계급주의 ㉣ 해외문학파(海外文學派)와     연 대 1927 ∼ 1931 동 인 김진섭, 정인섭, 손우성, 이하윤, 이선근, 이헌구, 함대훈, 김광섭 의 의 - 최초의 번역 문학지 - 해외문학연구회(1926)의 기관지 - 연극(번역) 공연의 모체 경 향 순수 문학, 반계급주의 ㉤ 민요시(전통시에의 관심) 뒷동산에 꽃 캐러 언니 따라 갔더니, 솥가지에 걸리어 다홍치마 찢었습네. 누가 행여 볼까 하여 지름길로 왔더니, 오늘따라 새 베는 임이 지름길로 나왔습네. 뽕밭 옆에 김 안 매고 새 베러 나왔습네, ( 주요한, '부끄러움' ) 이같은 소박한 민요시를 김소월만이 성공적인 자유시로 승화 발전시켰다. (4) 김소월과 한용운의 등장 : 한국시의 전통성과 서구적 현대시의 기법을 조화시켜 현대시의 기반을 다진 소월(素月) 김정식(金廷湜)과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의 시집 (1925)과 (1926)으로 등단한 것도 이 시기이다. 2. 1930년대의 시   1. 시대 배경 만주 사변(1931), 중일 전쟁(1937) 등으로 일제가 전시 체제를 구축하면서 민족 문화를 탄압, 말살하기 위한 억압 정책을 가속화해 가던 시기로서, 세계의 경제 공황(1929)과 전체주의 파시즘(fascism)이 대두하던 위기의 시대가 1930년대였다. 이 때는 탈이념(脫理念)이 등장하게 마련이었다.   2. 특 징 (1) 계급주의 문학의 퇴조와 순수시의 대두 : 발표 지면은 확대되었으나, 일제의 검열과 계급주의(KAPF)파의 검거와 자진 해체, 목적 문학인 계급주의 시의 무장ㅗ전파ㅗ선동의 전략적 행태(行態)와 도식적(圖式的)이고 이념 지향적(理念指向的)인 경향에 대한 독자의 반발 등을 계기로 하여 순수시가 대두했다. (2) 현대시 유파(流派)의 형성과 실험 : 1930년대 초기에는 순수시파, 중기에 모더니즘파, 후기에는 생명파가 다분히 의도적인 시 운동을 전재하여 본격적인 현대시의 기틀을 잡았고, 청록파가 30년대 말을 장식했다. ① 순수시파 : 순수시는 넓게 보아 (1927), , (1931), (1934), (1935) 등의 문예지를 중심으로 발표된 시를 가리키며, 좁게는 파 시인인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을 시를 지칭한다. ②     연 대 1930 ∼ 1931(통권 3호) 동 인 박용철, 김영랑, 정지용, 이하윤, 변영로, 정인보 의 의 - 시 동인지 - 순수시 운동의 모체(母體) 경 향 - 반목적적 순수시, 시에 대한 현대적 인식 - 모국어의 조탁(彫琢)과 순화(醇化)된 정서, 음악적 율격의 강조 ③ 모더니즘파 : 모더니즘(modernism)은 니체, 마르크스, 다윈이 제시한 시대 이념에서 유래하는 서구 사조이다. 근대 서구 사회의 정신적 지주이던 기독교 사상과 휴머니즘이 설득력을 잃고, 뉴턴 물리학의 합리성이 세계를 구원하리라는 가냘픈 기대가 19세기 서구 사회를 지탱해 왔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여러 과학적 징후들은 과학 자체마저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입증하게 되었다. 프랑크의 양자론(量子論),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돌연변이성, 방사선 방출, DNA의 합성 등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서구의 정신사(精神史)는 세계의 구원을 위해 새로운 휴머니즘을 모색(摸索)하게 되었고, 이에 부응하여 추구된 것이 모더니즘이다. 넓은 의미의 모더니즘은 이미지즘(imagism), 다다이즘(dadaism), 초현실주의(sur-realism), 입체파(cubism), 미래파(futurism), 주지주의(intellectualism) 등을 포괄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주로 이미지즘의 김광균(金光均), 장만영(張萬榮) 등의 시를 가리킨다. 즉 이미지즘과 주지주의 문학이 우리 나라 모더니즘 시의 핵이다. 이상(李箱)의 다다이즘 내지 초현실주의의 시를 비롯한 동인들의 시는 넓은 의미의 모더니즘 시이다. 모더니즘(주지주의)은 최재서(崔載瑞), 백철(白鐵), 김기림(金起林)이 소개했다. 김기림은 평론을 쓰고 시를 실험했으며, 김광균은 이를 실현했다. ④ 생명파(生命派) : 1930년대 초반 순수시파의 유미주의(唯美主義), 중반 모더니즘파의 감각적 기교주의가 인생 문제를 도외시한 데 대한 반발을 보이며 등장한 1930년대 후반의 문인들 일파가 이른바 '생명파'이다. 1936년에 발간된 의 동인인 시인 서정주, 소설가 김동리를 선두로 하여 이와는 다른 처지에서 등장한 시인 유치환이 이 유파의 문인을 대표한다. 생명파의 대다수는 동인 중의 시인이며, 김동리는 그 중 소설가이다. 유치환과 윤곤강, 신석초는 동인이 아니면서도 경향의 유사성 때문에 '생명파'라 불린다.     연 대 1930년대 후반 동 인 유치환, 서정주, 오장환, 함형수, 김달진 김상원, 김동리, 윤곤강, 신석초 의 의 생명의 본질, 본능적 조건을 기초로 한 인간의 이해와 인식을 추구함. 경 향 - 순수시파 유미주의의 관념성, 모더니즘 시의 반생명성에 대한 도전 - 시적 성공을 거두어 오늘날의 한국 문학에 영향을 끼침 - 휴머니즘 문학(김동리의 주장)은 순수 문학론으로 발전, 계급주의 문학과 대결하게 됨. - ⑤     연 대 1936 ∼ 1937(통권 5호) 편집, 발행 서정주(1호), 오장환(2호 이후) 동 인 서정주, 김동리, 함형수, 김달진, 김상원 경 향 생명과 인간의 구경(究竟) 탐구 3. 암흑기의 시   1. 시대 배경 중일 전쟁(1937) 이후 태평양 전쟁(1941)이 일어나기까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하였으나, 이 시기에는 오히려 많은 시집이 간행되고, 예술적으로 괄목할 만한 작품들이 빛을 보았다. 그러나 1941년에 들어 일제는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물론, 과 인문평론(人文評論)>의 두 문예지마저 폐간하였으며, 한국어, 한국 문자의 사용을 금지시켜 그야말로 역사와 문화의 암흑기를 맞이하였다.   2. 특 징 (1) '청록파(靑鹿派)'와 자연 회귀 : 지 추천을 거쳐 등단한 이 시인들은 자연에 회귀하여 위안을 찾으며 밝아올 새날의 역사를 노래했다. 1946년에 을 내었다. ① 박목월 : 동양의 이상향인 도화원(桃花園)과 같은 선경(仙境)을 추구했다. '청노루', '산도화(山桃花)', '불국사(佛國寺)' 등이 그 예이다. ② 박두진 : 기독교(구약성서 이사야서)적 평화 사상으로 자연을 추구하며 밝아올 새 역사의 소망을 노래했다. '향현(香峴)', '해', '어서 너는 오너라' 등이 그 예이다. ③ 조지훈 : 우리 전통 - 멸망하는 것에 대한 짙은 향수(鄕愁), 선(禪)과 은일(隱逸)의 경지에 침잠했다. '고풍의상(古風衣裳)', '봉황수(鳳凰愁)', '완화삼(玩花衫)', '낙화('落花)', '고사('古寺)', '범종('梵鍾)' 등이 그 예이다. (2) 암흑기의 별 - 저항 : 육사(陸史) 이원록(李源祿)과 윤동주(尹東柱)의 시는 암흑기의마지막 밤을 밝히는 불멸의 별이다. ① 이육사 : 유교적 선비 정신으로 지절(志節)의 표상이 된 대륙적 기질의 시인. (語調)가 남성적이어서 도도하고 당당하다. '광야(曠野)', '절정(絶頂)' 등이 그 예이며, '청포도'는 인구에 회자되는 애송시이다. ② 윤동주 : 기독교적 속죄양 의식으로 순결과 참회와 그리움의 시를 썼다. '서시(序詩)', '십자가', '참회록', '또 다른 고향', '쉽게 씌어진 시' 등이 그 예이다.   4. 광복 후의 시   1. 시대 배경 1945년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은 이 땅에 정치적 선동과 파쟁을 빗었다. 좌익 문인 단체인 '조선 문학 동맹'(1945. 2) 소속의 시인들이 낸 시집은 경직된 좌익 이념만 노출, 선전하였을 뿐 예술성의 확보와는 먼 거리에 있었다. '조선 문학가 협회'를 중심으로 한 우익 계통의 시인들의 시도 해방을 맞이한 격정과 소박한 찬가풍(讚歌風)의 어조로 하여 긴장을 잃은 행사시(行事詩)들을 양산했다.   2. 특 징 (1) 전통의 계승 : 이런 가운데 출현한 목월(木月) 박영종(朴泳鍾), 지훈(芝薰) 조동탁(趙東卓), 혜산(兮山) 박두진(朴斗鎭)의 공동 시집 (1946)과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의 (1947),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1948), 윤동주의 (1948) 등은 광복된 조국의 시사(詩史)를 빛낸 기념비적 업적이다. 그러나 청록파의 시는 전통적 자연 서정주의에 지나치게 편중된 흠이 있다. (2) 시단에서 활동한 시인들 ① 광복 전 : 김광섭, 노천명, 모윤숙, 신석초, 김광균, 신석정, 장만영, 김현승, 김상옥, 윤곤강 등 ② 광복 후 : 구상, 정한모, 조병화, 김춘수, 김경린, 김수영, 김윤성, 설창수, 이경순, 한하운 등 (3) 6·25 직전에 발간한 는 전쟁 전후의 문단에 크게 공헌 했다.   순문예지 주재자 연대 등단 문인 문예(文藝) 발행인 : 모윤순 편집인 : 김동리 조연현 1949 ∼1954 .3 (통권 21호) - 시인 : 손도인, 이동주, 송 욱, 전봉건, 천상병, 이형기 - 소설가 : 강신재, 장용학, 최일남, 서근배 - 평론가 : 김양수 5. 1950년대의 시   1. 시대 배경 1948년 8월 15일 대한 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한국 문학은 분단의 비극을 연출하며, 북한의 남침으로 6ㅗ25의 대참화를 체험한다.   2. 특 징 (1) 새 시인군(詩人群)의 등장 : 신동집, 김구용, 김요섭, 장호, 김남조, 홍윤숙, 이인석, 김종문 등과 지 출신 이원섭, 이동주, 송욱, 전봉건, 이형기, 한성기, 박양균, 천상병, 이수복 등 역량 있는 시인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2) '후반기(後半期)' 동인의 모더니즘 : 김경린, 박인환, 김규동, 조향 등은 시의 소재를 현대의 도시 문명에 두고 주지적, 감각적 기법으로 처리했다.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인 김기림이 밝고 건강한 '오전의 시'를 썼음에 비해 이들은 짙은 불안감과 위기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3) 반서정주의의 상황파 시 : 6ㅗ25 전란의 참담한 상황을 몸소 체험하여 강렬한 생명 의식ㅗ민족애ㅗ조국애ㅗ인류애를 노래한 시인들이 등장하여 새와 바람, 푸나무와 냇물, 달과 꽃만 노래하는 전통적 자연ㅗ서정주의를 극복하려 했다. 유치환, 구상, 박남수, 전봉건, 송욱, 신동문 등이 반서정주의 시인이다. 특히 유치환의 종군 체험 시집 (1922), 강렬한 조국애와 민족애, 인류애, 원죄 의식을 노래한 구상의 연작시 '초토(焦土)의 시'(1956)가 이런 경향의 시를 대표한다. 또, 존재의 탐구에 골몰한 김춘수, 도시인의 애수를 직설적으로 노래한 조병화, 내향적 자아 의식을 추구한 김구용 등의 시도 반서정주의의 특성을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자연 발생적 감정을 거부하고 언어를 지성적으로 조작하여 시를 구성하려 한 주지적 심상파 김종삼, 성찬경, 문덕수, 김광림, 김요섭 등의 시도 빼어 놓을 수 없다. (4) 전통적 서정파의 자기 수호의 시 : 위와 같은 도전을 받으면서 전통적 서정파는 자기 정체성을 지켰다. 서정주를 필두로 박재삼, 황금찬, 구자운, 김관식, 이동주, 박용래, 박성룡, 박희진 등이 이 계?!--" =============================================== 바벨론 강가에 앉아 우리는 울었도다 By the Rivers of Babylon 우리 둘 헤어질 때 When We Two Parted 길 없는 숲에 기쁨이 있다 There Is A Pleasure in The Pathless Woods 아테네 아가씨여, 우리 헤어지기 전에 Maid of Athens, ere we part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Beauty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A-Roving 바벨론 강가에서 앉아서 우리는 울었도다. - 바이런 우리는 바벨의 물가에 앉아서 울었도다. 우리 원수들이 살육의 고함을 지르며  예루살렘의 지성소를 약탈하던 그 날을 생각하였도다. 그리고 오 예루살렘의 슬픈 딸들이여! 모두가 흩어져서 울면서 살았구나. 우리가 자유롭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볼 때에 그들은 노래를 강요하였지만,  우리 승리하는 노래는 아니었도다. 우리의 오른 손, 영원히 말라버릴지어다! 원수를 위하여 우리의 고귀한 하프를 연주하기 전에 버드나무에 하프는 걸려있고 그 소리는 울리지 않는구나. 오 예루살렘아!  너의 영광이 끝나던 시간에 하지만 너는 징조를 남겼다. 나는 결코 그 부드러운 곡조를  약탈자의 노래에 맞추지 않겠노라고. By the Rivers of Babylon We Sat Down and Wept - George, Gordon, Lord Byron  We sat down and wept by the waters  Of Babel, and thought of the day  When our foe, in the hue of his slaughters,  Made Salem's high places his prey;  And ye, oh her desolate daughters!  Were scattered all weeping away.  While sadly we gazed on the river  Which rolled on in freedom below,  They demanded the song; but, oh never  That triumph the stranger shall know!  May this right hand be withered for ever,  Ere it string our high harp for the foe!  On the willow that harp is suspended,  Oh Salem! its sound should be free;  And the hour when thy glories were  ended  But left me that token of thee:  And ne'er shall its soft tones be blended  With the voice of the spoiler by me!  우리 둘 헤어질 때  - 조지 고든 바이런 말없이 눈물 흘리며 우리 둘 헤어질 때 여러 해 떨어질 생각에 가슴 찢어졌었지 그대 뺨 파랗게 식고  그대 키스 차가웠어 이 같은 슬픔 그때 벌써 마련돼 있었지  내 이마에 싸늘했던 그 날 아침 이슬 바로 지금 이 느낌을  경고한 조짐이었어 그대 맹세 다 깨지고 그대 평판 가벼워져 누가 그대 이름 말하면 나도 같이 부끄럽네 남들 내게 그대 이름 말하면 그 이름 조종처럼 들리고 온몸이 한 바탕 떨리는데 왜 그리 그대 사랑스러웠을까 내 그대 알았던 것 남들은 몰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걸 오래 오래 난 그댈 슬퍼하리 말로는 못할 만큼 너무나 깊이 남몰래 만났던 우리-- 이제 난 말없이 슬퍼하네 잊기 잘하는 그대 마음 속이기 잘하는 그대 영혼을 오랜 세월 지난 뒤 그대 다시 만나면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까? 말없이 눈물 흘리며 When We Two Parted  - George Gordon, Lord Byron  When we two parted  In silence and tears,  Half broken-hearted  To sever for years,  Pale grew thy cheek and cold,  Colder thy kiss;  Truly that hour foretold  Sorrow to this. The dew of the morning  Sunk chill on my brow--  It felt like the warning  Of what I feel now.  Thy vows are all broken,  And light is thy fame;  I hear thy name spoken,  And share in its shame. They name thee before me,  A knell to mine ear;  A shudder comes o'er me--  Why wert thou so dear?  They know not I knew thee,  Who knew thee too well:--  Long, long shall I rue thee,  Too deeply to tell. In secret we met--  In silence I grieve  That thy heart could forget,  Thy spirit deceive.  If I should meet thee  After long years,  How should I greet thee?--  With silence and tears.  길 없는 숲에 기쁨이 있다  '해럴드 공자의 편력' 중에서, 캔토 4, 시 178  - 로드 바이런 길 없는 숲에 기쁨이 있다 외로운 바닷가에 황홀이 있다 아무도 침범치 않는 곳 깊은 바다 곁, 그 함성의 음악에 사귐이 있다. 난 사람을 덜 사랑하기보다 자연을 더 사랑한다  이러한 우리의 만남을 통해  현재나 과거의 나로부터 물러나 우주와 뒤섞이며, 표현할 수는 없으나  온전히 숨길 수 없는 바를 느끼기에 There Is A Pleasure in The Pathless Woods  from Childe Harold, Canto iv, Verse 178  - George Gordon Lord Byron There is a pleasure in the pathless woods,  There is a rapture on the lonely shore,  There is society, where none intrudes,  By the deep sea, and music in its roar:  I love not man the less, but Nature more,  From these our interviews, in which I steal  From all I may be, or have been before,  To mingle with the Universe, and feel  What I can ne'er express, yet cannot all conceal.  아테네의 아가씨여, 우리 헤어지기 전에 - 바이런  아테네의 아가씨여 우리 헤어지기 전에 돌려주오, 오, 내 마음 돌려주오 아니 기왕에 내 마음 떠난 바엔 이젠 그걸 가지고 나머지도 가져가오 나 떠나기 전 내 언챡 들어주오 "내 생명이여, 나 그대 사랑하오" 에게해 바람마다 애무한 흘러내린 그대 머리칼에 맹세코 그대의 부드러우 뺨에 피어나는 홍조에 입마주는 까만 속눈썹이 술 장식한 그대 눈에 맹세코 어린 사슴처럼 순수한 그대 눈망울에 맹세코 "내 생명이여, 나 그대 사랑하오" 애타게 맛보고 싶은 그대 입술에 맹세코 저 허리띠 두른 날씬한 허리에 맹세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사연도 전해주는 온갖 꽃에 맹세코 교차되는 사랑의 기쁨과 슬픔에 맹세코 "내 생명이여, 나 그대 사랑하오" 아테네의 아가씨여! 나는 떠나가리라 님이여! 홀로 있을 땐 날 생각하오 몸은 비록 이스탄불로 달려갈지라도 내 마음과 여혼은 아테네에 있소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까? 천만에요! "내 생명이여, 나 그대 사랑하오" Maid of Athens, ere we part - George Gordon, Lord Byron Maid of Athens, ere we part,  Give, oh, give back my heart!  Or, since that has left my breast,  Keep it now, and take the rest!  Hear my vow before I go,  Zoe mou sas agapo.  By those tresses unconfined,  Wooed by each Aegean wind;  By those lids whose jetty fringe  Kiss thy soft cheeks' blooming tinge;  By those wild eyes like the roe,  Zoe mou sas agapo.  By that lip I long to taste;  By that zone-encircled waist;  By all the token-flowers that tell  What words can never speak so well;  By love's alternate joy and woe,  Zoe mou sas agapo.  Maid of Athens! I am gone:  Think of me, sweet! when alone.  Though I fly to Istambol,  Athens holds my heart and soul:  Can I cease to love thee? No!  Zoe mou sas agapo.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 바이런 별이 총총한 구름 한점 없는 밤하늘처럼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어둠과 빛의 순수는 모두 그녀의 얼굴과 눈 속에서 만나고, 하늘이 찬연히 빛나는 낮에는 주지 않는 부드러운 빛으로 무르익는다. 그늘 한 점이 더하고 빛이 한 줄기만 덜했어도  새까만 머리칼마다 물결치고 혹은 부드럽게 그녀의 얼굴을 밝혀 주는  형언할 바이 없는 그 우아함을 반은 해쳤으리라. 그녀의 얼굴에선 사념이 고요히 감미롭게 솟아나 그 보금자리, 그 얼굴이 얼마나 순결하고 사랑스런가를 말해 주노라.  저 뺨과 이마 위에서 상냥하고 침착하나 힘차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미소, 환히 피어나는 얼굴빛은 말해 준다. 착하게 보낸 지난날을 이 땅의 모든 것과 화목한 마음, 순결한 사랑이 깃든 마음을.  Beauty - George Gordon,Lord Byron  She walks in beauty, like the night Of cloudless climes and starry skies; And all that's best of dark and bright Meet in her aspect and her eyes: Thus mellowed to that tender light Which heaven to gaudy day denies. One shade the more, one ray the less, Had half impaired the nameless grace Which waves in every raven tress; Or softly lightens o'er her face; Where thoughts serenely sweet express How pure, how dear their dwelling place. And on that cheek, and o'er that brow, So soft, so calm, yet eloquent, The smiles that win, the tints that glow, But tell of days in goodness spent, A mind at peace with all below, A heart whose love is innocent.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 바이런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이토록 늦은 한밤중에 지금도 사랑은 가슴 속에 깃들고 지금도 달빛은 훤하지만. 칼을 쓰면 칼집이 해어지고 정신을 쓰면 가슴이 헐고 심장도 숨 쉬려면 쉬어야 하고 사랑도 때로는 쉬어야 하니.  밤은 사랑을 위해 있고 낮은 너무 빨리 돌아오지만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아련히 흐르는 달빛 사이를...... A-Roving - George Gordon, Lord Byron  So, we'll go no more a-roving So late into the night, Though the heart be still as loving, And the moon be still as bright. For the sword outwears its sheath, And the soul wears out the breast,  And the heart must pause to breathe, And love itself have rest. Though the night was made for loving, And the day returns too soon, Yet we'll go no more a-roving By the light of the moon.    
631    <<死愛>> 댓글:  조회:5406  추천:0  2015-07-09
사랑 - 박철(1960~ )  나 죽도록 사랑했건만, 죽지 않았네 내 사랑 고만큼 모자랐던 것이다 “너를 사랑해”라는 말은 “언제 어디서나 너를 기다릴 수 있어”라는 고백이고 다짐이다. 사랑에 빠진 자는 늘 기다린다. 사랑해서 기다리는 게 아니다. 기다리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다. 기다림에의 종속은 사랑의 유력한 징표다. 그토록 사랑하건만 기다림은 종종 모든 것을 지연시킨다. 기다림이 키스와 애무와 교합의 설렘을 뒤로 미룬다. 공허를 품은 기다림이 이 사랑을 살찌게 만들지만 어떤 경우엔 사랑을 마르게 하고 파멸로 이끈다. 기다림이 파멸적인 것은 욕망을 냉각시키고 존재 자체를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630    어둠의 아이들과 햇빛의 아이들이... 댓글:  조회:5661  추천:0  2015-07-09
시간 -김승희(1952~ ) 어둠의 아이들과 햇빛의 아이들이 흑색 금색 창을 들고 사유의 들판에서 싸움을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 것을 편들지는 않으리. 죽음과 生을 모조리 나의 심장 속에 놓아 먹이리. 그러나 그때에는 달랐었다. 내가 아직 내 말[馬]의 고삐 쥔 손을 느끼지 않았을 그때에는, (하략) 어렸을 때 시간은 신비 그 자체이고, 삶을 비옥한 꿈의 대지로 가꾼다. 어떤 악에도 물들지 않아 옳은 행동만을 일삼는 어린 인류는 천진무구한 채로 시간이란 말[馬]의 고삐를 틀어쥐고 달린다. 시간은 “금색의 깃발”로 나부꼈다. 나이가 들면 시간의 고삐를 틀어쥘 수가 없다. 순간들의 연쇄는 질서를 잃은 채 엉킨다.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제멋대로 달려가는 시간들! 누구나 시간이란 유한자원을 까먹으며 나이를 먹는다.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유한자산을 강탈하고, 노화와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닿으면서 생의 주기라는 원을 닫는다. 김승희 시모음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이제 듣기가 싫다.  죽도록 사랑해서  가을 나뭇가지에 매달려 익고 있는  붉은 감이 되었다는 이야기며  옥상 정원에서 까맣게 여물고 있는  분꽃 씨앗이 되었다는 이야기며  한계령 천길 낭떠러지 아래 서서  머나먼 하늘까지 불지르고 있는  타오르는 단풍나무가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로  이제 가을은 남고 싶다.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핏방울 하나하나까지 남김없이  셀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투명한 가을햇살 아래 앉아  사랑의 창세기를 다시 쓰고 싶다.  또 다시 사랑의 빅뱅으로 돌아가고 싶다.  시집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 세계사.1995.  ~~~~~~~~~~~~~~~~~~~~~~~~~~~~~~~~~~~~~~~~~~~~~~~~~~~~~~~  늑대를 타고 달아난 여인  나는 새로운 것이 보고 싶었다.  설거지가 끝나지 않은 역사말고 ,정말 새로운 것.설거  지감 냄새가 묻지 않은 그런 새로운 것.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마구마구 올라갔다.  투명 유리 엘리베이터 창 아래로  하늘이 마구마구 내려갔다.  믿을 수 없는 높이까지 내가 올라갔어도 믿을 수 없으  리만큼 새로운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넝마 한 벌---하  늘과 설거지감---산하.환멸만큼 정숙한 칼이 또 있을까.  있음을 무자비하게 잘라버리니까.  아아,난 새로운 것을 보려면  그 믿을 수 없는 높이의 옥상 꼭대기에서  뛰어내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뛰--어--내--려?  뛰--어--내--려!  시집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 세계사.  ~~~~~~~~~~~~~~~~~~~~~~~~~~~~~~~~~~~~~~~~~~~~~~~~  장미와 가시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어찌 가시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해도  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요.  눈먼 손으로  삶을 어루만지며  나는 가시투성이를 지나  장미꽃을 기다렸네.  그의 몸에는 많은 가시가  돋아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  그러니, 그대, 이제 말해주오,  삶은 가시장미인가 장미가시인가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 .  시집 ; 달걀속의 생  ~~~~~~~~~~~~~~~~~~~~~~~~~~~~~~~~~~~~  달걀 속의 生.2  냉장고 문을 열면 달걀 한 줄이  온순히 꽂혀 있지,  차고 희고 순결한 것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난 그것들을 쉽게 먹을 순 없을 것 같애  교외선을 타고 갈곳없이 방황하던 무렵,  어느 시골 국민학교 앞에서  초라한 행상아줌마가 팔고 있던  수십 마리의 그 노란 병아리들,  마분지곽 속에서 바글바글 끓다가  마분지곽 위로 보글보글 기어오르던  그런 노란 것들이  (생명의 중심은 그렇게 따스한 것)  살아서 즐겁다고 꼬물거리던 모습이  살아서 불행하다고 늘상 암송하고 있던  나의 눈에 문득 눈물처럼 다가와 고이고  그렇다면 나는 여태 부화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을까,  아아,얼마나 슬픈가,  차가운 냉장칸 맨 윗줄에서  달걀껍질 속의 흰자위와 노른자위는  무슨 꿈들을 꾸고 있을까,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병실에서  입원비 걱정을 하고 있는 우리 가난한 형제들처럼  흰자위와 노른자위도  무슨 그런 절망의 의논들을 하고 있을 것인가  사계절 전천후 냉장고  하얀 문을 조용히 열면  추운 달걀들의 속삭임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엄마 엄마 안아줘요 따스한 품속에  어미닭에 안기지 못하고 만 달걀들처럼  희망소비자 가격보다 더 싸게 팔려온  너희들처럼  나도 역시 여권이 분실된 사람  희망의 온도가 차츰 내려갈 때  오히려 절망은 조용하고 초연해지는 것 같지.  시집 ; 달걀속의 生 / 문학사상사.  ~~~~~~~~~~~~~~~~~~~~~~~~~~~~~~~~~~~~~~~~~~~~~~~~~~~  달걀 속의 生5  달걀을 보면  알 수 있지.  아, 저렇게 해방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구나.  조그맣게 차갑게  두 눈을 감고  아, 어찌해,  저리도 못다한  벙어리사랑을.  외치고 싶고  깨지고 싶어도  시간의 실금이 온 몸에 강물처럼 퍼지기를  기다려, 배꼽 같은 씨눈이  노른자위를 먹어치워  아, 그 안에서 원무처럼 일어서는  열애 같은 혁명을 기다려.  달걀을 보면  눈물이 어리지.  아, 저렇게 미해방의 절벽 위에서  꿈꾸는 사람!  시집 ;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 미래사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아침에 눈뜨면 세계가 있다  아침에 눈뜨면 당연의 세계가 있다  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있다  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거기에 있다  당연의 세계는 왜, 거기에,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처럼,  왜, 맨날, 당연히, 거기에 있는 것일까,  당연의 세계는 거기에 너무도 당연히 있어서  그 두꺼운 껍질을 벗겨보지도 못하고  당연히 거기에 존재하고 있다  당연의 세계는 누가 만들었을까  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당연한 사람이 만들었겠지,  당연히 그것을 만들만한 사람,  그것을 만들어도 당연한 사람,  그러므로, 당연의 세계는 물론 옳다,  당연은 언제나 물론 옳기 때문에  다연의 세계의 껍질을 벗기려다가는  물론의 손에 맞고 쫓겨난다  당연한 손은 보이지 않은 손이면서  왜 그렇게 당연한 물론의 손일까,  당연한 세계에서 나만 당연하지 못하여  당연의 세계가 항상 낯선 나는  물론의 세계의 말은 또한 믿을 수 가 없다  물론의 세계 또한  정녕 나를 좋아하진 않겠지  당연의 세계는 물론의 세계를 길들이고,  물론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를 길들이고 있다  당연의 세계에 소송을 걸어라  물론의 세계에 소소을 걸어라  나날이 다가오는 모래의 점령군,  하루종일 발이 푹푹 빠지는 당연의 세계를  생사불명, 힘들여 걸어오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은 그와의 싸움임을 알았다  물론의 모래가 콘크리트로 굳기 전에  당연의 감옥이 온 세상 끝까지 먹어치우기 전에  당연과 물론을 양손에 들고  아삭아삭 내가 먼저 뜯어먹었으면.  ~~~~~~~~~~~~~~~~~~~~~~~~~~~~~~~~~~~  바늘 뗏목  바늘 하나로 만든 뗏목이다  바늘 하나의 뗏목을 타고  반도가 흔들린다  바늘 하나의 뗏목에 오천만이  매어달려  우르르 출렁거린다  바늘 하나의 뗏목으로 아디까지 갈 수 있을까  바늘 하나의 뗏목으로 내일에 도착할 수 있을까  나팔꽃 모가지같이 시든 오천만 나팔꽃 내 모가지가  바늘 하나의 뗏목에 매어달려 표류하고 있다  모가지까지 물이 차오르는 시간  누가 나를 세기말의 홍수 위에 꽃꽂이를 했는가  ~~~~~~~~~~~~~~~~~~~~~~~~~~~~~~~~~~~~~~~~~~~~~~~~~~~~~~~~~  시계풀의 편지 * 4  사랑이여  나는 그대의 하얀 손발에 박힌  못을 빼주고 싶다  그러나  못박힌 사람은 못박힌 사람에게로  갈 수가 없다.  ~~~~~~~~~~~~~~~~~~~~~~~~~~~~~~~~~~~  너에게  너는 산이 되어라  산이 되어 달아나지 마라  산이 되어 다가오지 마라  너는  너는  산이 되어  산이 되어  달아나지 마라  다가오지 마라  산이 되어 그렇게 그렇게  한국문학 / 1999 겨울호  ~~~~~~~~~~~~~~~~~~~~~~~~~~~~~~~~~~~~  그림 속의 물  사랑스런 플란다스의 소년과 함께  벨지움의 들판에서  나는 예술의 말[馬]을 타고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은 손을 들어  내가 그린 그림의 얼굴을  찢고 또 찢고  울고 있었고.  나는 당황한 현대의 이마를 바로잡으며  캔버스에  물빛 물감을 칠하고, 칠하고,  나의 미학 상식으로서는  그림은 아름답기만 하면 되었다.  그림은 거칠어서도 안 되고  또 주제넘게 말을 해서도 안 되었다.  소년은 앞머리를 날리며  귀엽게, 귀엽게  나무다리를 깎고  그의 귀는 바람에 날리는  銀잎삭.  그는 내가 그리는 그림을 쳐다보며  하늘의 물감이 부족하다고,  화폭 아래에는  반드시 강이 흘러야 하고  또 꽃을 길러야 한다고 노래했다.  그는 나를 탓하지는 않았다.  현대의 고장난 수신기와 목마름.  그것이 어찌 내 죄일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내 죄라고  소년은 조용히  칸나를 내밀며 말했다  칸나 위에 사과가 돋고  사과의 튼튼한 과육이  웬일인지 힘없이  툭, 하고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소년은 나에게 강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강은 깊이깊이 흘러가  떨어진 사과를 붙이고  싹트고  꽃피게 하였다  그리고 그림엔 노래가 돋아나고  울려퍼져  그것은 벨지움을 넘어  멀리멀리 아시아로까지 가는 게 보였다.  소년은 강을 불러  내 그림에 다시 들어가라고 말했다.  화폭 아래엔 강이 흐르고  금세 금세  훤한 이마의 꽃들이 웃으며 일어났다.  피어난 몇 송이 꽃대를 꺾어  나는 잃어버린 내 친구에게로 간다.  그리고 강이 되어  스며들어  친구가 그리는 그림  그곳을 꽃피우는 물이 되려고 한다.  물이 되어 친구의 꽃을 꽃피우고  그리고 우리의 죽은 그림들을 꽃피우는  넓고 따스한 바다가 되려고 한다.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무거움 가벼움 솟아오름  무거움을 버리고  무거움을 도망쳐서  이르는 어느 가벼움이 있다 해도  무거움을 버리고  무거움을 도망쳐서 이르는  가벼움에서 어느 날개를 이룰 것인가  무거움을 다하여  손톱이 빠지도록 무거움을 다한 다음  업이 스러질 때  업이 스러진 그 빈자리에  솟아오르는 가벼움의 날갯짓이 있으면  그러므로 바닥이여  바닥에서  바닥에 닿은 다음에야 올라갈 수 있음이니  바닥에 닿았다가  다시 올라갈 수 있도록  바닥이여 바닥에서 고통의, 상처의  장대 높이뛰기를 할 수 있도록  업을 다하여, 업 때문에 , 업을 다하도록  누덕누덕 수천 번 꿰맨 날개만이 더 진실하리니  쓰러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바닥이여 바닥에서  무거움의 사슬들이  짤랑짤랑 가벼운 빛의 음악이 되는 그날까지  시집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 세계사  ~~~~~~~~~~~~~~~~~~~~~~~~~~~~~~~~~~~~~~~~~~  눈물의 노래  네 눈물은 아름답구나, 다이아몬드 같다.  밤의 검은 이파리가 너울거리는  나무 아래서  나는 너에게 말했다.  이 눈물은 다이아몬드가 아니에요.  석탄입니다.  너는 고통으로 초췌한 얼굴을 들어  나에게 말했다.  석탄만한 절망이 없다면  다이아몬드가 나올 리 없지, 이런 말을  너에게 했는지 안했는지  어렴풋한 기억의 모서리가 지워져 있다.  조그만 빨래집게 두 개가  물먹은 솜 같은 커다란 빨래를  가냘픈 손가락으로 꽉 잡고 있다.  하나 둘 셋 넷  앙상한 네개의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면서  빨래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혼신을 다하고 있는 것 같다.  무슨 벌을 받고 있는 중일까.  그때 나는 너의 눈물을 기억해 낸 거야.  다이아몬드 두 방울이  석탄덩어리를 꽉 잡고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그렁그렁 눈가에 매달려 있던  눈물 두 방울.  눈물은 꿈을 닮는다는데  네 눈물은 탄광 속에 이글거리는 생명의 불꽃  다이아몬드 날개를 가진 것 같다.  시집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 세계사.  ~~~~~~~~~~~~~~~~~~~~~~~~~~~~~~~~~~~~~~~~~~  장미와 가시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의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어찌 가시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해도  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요.  눈먼 손으로  삶을 어루만지며  나는 가시투성이를 지나  장미꽃을 기다렸네.  그의 몸에는 많은 가시가  돋아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  그러니, 그대 , 이제 말해주오.  삶은 가시장미인가 장미가시인가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  시집 ;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 미래사.  ~~~~~~~~~~~~~~~~~~~~~~~  멍  비닐 하우스에서 생산되어 팔려온  시금치는  그렇게 푸르지가 않다.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어  심하게 멍든 것 같은 표정을 줄 뿐이다.  바람이 되다만 사랑이  희망이 되다만 낙망이  새벽이 되다만 절벽이  혁명이 되다만 울부짖음이  저런 정박의 멍이 된 것일까?  푸른 멍이 자신의 상처를 이길 수  없을 때  멍은 멍에가 되어  한밤을 개집 속에서 슬프게 울부짖어야 한다.  멍  멍.멍  멍.멍.멍.  멍멍멍 울부짖는 엄을 나는 기르고  싶지는 않았다.  사랑이 되다만 멍들이  새벽이 되다만 절벽들이  개벽이 되다만 희망들이  다른 언어로 꽃피어남(울기)을  찾을 때까지  나는 더 멍들의 멍에를 걸머지고  이 토막난 변시체 같은  희망의 빈민굴을 좀더 사랑할  작정이다.  멍들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를 멍들게  하는 것들을 좀더 질기게  비웃어 주어야만 하기 때문에  멍이 멍.멍을 초월하는  그 어떤 아름다운 반동을 낳을 때까지.  ~~~~~~~~~~~~~~~~~~~~~~~~~~~~~~~~~~~~~  아네모네 꽃이 핀 날부터.1  죽도록 사랑하면  죽도록 사랑하면  그렇게 神氣가 오릅니까?  죽도록 사랑하면  죽도록 사랑하면  그토록 검은 질료에서 주황빛 신이 불려 나옵니까?  옛날부터 늘 그래 왔습니까?  목숨을 지나서도 타오르는  무슨 한 덩어리 불이 있겠습니까?  너무 모욕받았는데 너무 큰 모욕이 내려왔는데  울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괴로운데 이렇게 괴로워도  토막난 늑대의 이글거리는 횃불처럼  뭉쳐서 뭉쳐서 화려하게 꿈을 꿔도 되겠습니까?  시집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 세계사.1995.  ~~~~~~~~~~~~~~~~~~~~~~~~~~~~~~~~~  하나를 위하여  나는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단지 하나가 되고 싶을 뿐이다.  살았던 것들 중  그 중 아름다운 하나가,  슬펐던 것들 중  그 중 화사한 하나가,  괴로웠던 것들 중  그 중 순결한 하나가 되고 싶을 뿐이다.  나는 많은 길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길을 버리고 싶고  더 많은 꿈을 지우고 싶고  다만 하나의 길과  다만 하나의 꿈을 통하여  물방울이 물이 되고  불꽃들이 불이 되는  그 하나의 비밀을 알고 싶을 뿐이다.  하나를 이루기 위하여  그 하나에 닿기 위하여  나는, 하나 하나, 소등 연습을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가로등이 다 꺼진 어둠 속으로  솜처럼 착하게 다 적셔져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타오르는  하나의 봉화가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  시집 ; 달걀속의 生 / 문학사상사.  ~~~~~~~~~~~~~~~~~~~~~~~~~~~~~~~~~~~~  견딤의 형식  모두 저기, 저, 강을 쳐다본다  산골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저기, 저,  산을 쳐다본다  평원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벌판의 끝,  저기, 저 지평선을 바라본다  강과 산과 지평선-그곳에서 언제나 무한이 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무한이 오는 곳을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한 번 태어나서  한번은 꼭 죽기 때문이다  한번만 사는 삶인데  한 번밖에 못사는 삶인데  여기, 이렇게, 아무래도 남루한 냄비 속이  너무 좁지 않는냐 하고  물음 대신, 울음 대신으로 저기, 저, 먼 곳을 끝없이 힘을 다해  훨, 훨, 바라보는 것이 아니냐?  비행기가 날아가는 저 하늘을, 구름이 흘러가는 저기  저곳을,  저기, 저, 방금 사라지는 휘트니 휴스턴의  노랫가락 사이를.  시집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 공옥진에게  나는 병신입니다.  우리는 병신입니다.  이 슬픈 몸을 움직여  이 절뚝거리고 비비적대는  우스운 몸뚱아리를 움직여  한 판 춤을 추다가  서리맞은 이 목숨이 허,허,웃을  진한 춤을 추다가 가야 합니다.  어디까지 놀아야  어디까지 놀아야  우리는 가는 것인가  춤이란 뭐냐하면  곱게 가다듬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장육부가 움직여줘야  징그럽게 이뻐지는 것입니다.  당신의 오장육부가 건드리는대로  춤을 추시오,  팔자병신은 팔자병신대로  문둥병신은 문둥병신대로  육갑이 풀리는대로 춤을 추시오,  뒤엉키는 살아 있음의  신명나는 곡선대로-  生卽願이요,  生卽怨이니,  여기는 아쟁과 장고가 부르는  미친 살풀이판이요  히,히-  ~~~~~~~~~~~~~~~~~~~~~~~~~~~~~~~~~~~  떠도는 환유 . 1  몇 장마인지 알지 못할  장마비가 연일연일 내리고 있다,  창이 좁아서인지  세상이 위태하리만치 어두워진다,  어둡고 긴, 무슨 포식의,  동물 창자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  ㅡ여보세요, 여보세요,  여긴 너무 어두워요, 말 좀 해봐요,  ㅡ말하면 뭘하니? 넌 날 볼 수가 없잖아.  ㅡ그래도 괜찮아요, 말하면 밝아질 테니까요.  *  세상엔 벽이 되려는 창과 싸우는 사람과  창이 되려는 벽과 싸우는 사람,  그렇게 두 진영의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자택인 듯이  살고 있는 것 같다,  나, 나, 나라는 나가비는  영구 임대주택인 듯이, 아니, 아니,  임시 임대주택인 듯이 生을 대하며  조만간 흘러가 버리고 말 것 같다,  너무 쉽게 흘러가 주는 것은 아닐까?  가끔씩 조명이 너무 어둡다고  투덜대기나 하면서 .....  위조여권 같은 말을 따라서  출렁출렁.....글썽글썽.....  ~~~~~~~~~~~~~~~~~~~~~~~~~~~~~~~~~~~~~~~~  얼굴  검은 눈  고요한 입  발가벗은 피부  비 내리는 산  한계선  예민한, 슬픔, 이마, 가득 찬 모래,  신경이 푸른 신경이 훤히 드러난  양쪽 뇌관  눈썹  미세한 파도, 구름 울음, 속눈썹  코  입, 상처  얼굴  벌거벗은  항상 바람이 지나가는......  너를 한번도 더듬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손가락에 묻어 있는  피, 바람이 지나가며......피  얼굴의 피.....  항상 노출된, 바람 속, 덧없이, 벌거벗은  결코 달아날 수가 없는  피  얼굴  뿌리칠 수 없는  진달래  1999다층,여름호  ~~~~~~~~~~~~~~~~~~~~~~~~~~~  미완성을 위한 연가  하나의 아름다움이 익어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슬픔이  시작되어야 하리  하나의 슬픔이 시작되려는  저물 무렵 단애 위에 서서  이제 우리는 연옥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는  서로에게 깊이 말하고 있었네  하나의 손과 손이  어둠 속을 헤매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스치기만 할 때  그 외로운 손목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무엇인지 알아?  하나의 밀알이 비로소 썩을 때  별들의 씨앗이  우주의 맥박 가득히 새처럼  깃을 쳐오르는 것을  그대는 알아?  하늘과 강물은 말없이 수천 년을 두고  그렇게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네  쳐다보는 마음이 나무를 만들고  쳐다보는 마음이 별빛을 만들었네  우리는 몹시 빨리 더욱 빨리  재가 되고 싶은 마음뿐이었기에  어디에선가, 분명,  멈추지 않으면 안 되었네  수갑을 찬 손목들끼리  성좌에 묶인 사람들끼리  하나의 아름다움이 익어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그리움이 시작되어야 하리  하나의 긴 그리움이 시작되려는  깊은 밤 단애 위에 서서  우리는 이제 연옥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필요치가 않다고  각자 제 어둠을 향햐여 조용히 헤어지고 있었네....  ~~~~~~~~~~~~~~~~~~~~~~~~~  솟구쳐 오르기 1  억압을 뚫지 않으면  억압을  억압을  억압을  악업이 되어  악업이  악업이  악업이  두려 우리라  절벽 모서리에 뜀틀을 짓고  절벽의 모서리에 뜀틀을 짓고  내 옆구리를 찌른 창을 장대로 삼아  하늘 높이  장대 높이 뛰기를 해 보았으면  눈썹이 푸른 하늘에 닿을 때까지  푸른 하늘에 속눈썹이 젖을 때까지  아, 삶이란 그런 장대 높이 뛰기의 날개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상처의 그물을 피할 수도 없지만  상처의 그물 아래 갇혀 살 수도 없어  내 옆구리를 찌른 창을 장대로 삼아  장대 높이뛰기를 해보았으면  억압을 악업을  그렇게 솟아올라  아, 한 번 푸르게 물리칠 수 있다면  ~~~~~~~~~~~~~~~~~~~~~~~~~~~~~~~~~~~~~~~~~~~~~~~  솟구쳐 오르기. 10  황금의 별을 나는 배웠다,  어린 시절의 별자리여,  마음속 어느 혼 속에  고통의 상처가 있어  그 혼돈 속에서 태어나는 별,  혼돈과 함께 태어나는 황금의 별이 있다고  나는 배웠고  그 말은 나를 매혹하였다  혼 속에 상처를 간직하지 않으면  무엇이 나를 별이게 하겠는가?  나는 고요히, 울면서,  인생이 나에게 주는 모든 쓰디쓴 혼돈  모든 쓰디쓴 상처  그 상처의 악령들을 나는 사랑하였다,  인생을 구제하는 건  상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상처의  오케스트라,  그 상처의 오케스트라 속에서만 터져나오는  황금의 별들의 찬란한 음악  상처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데  봉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상처의 장대 높이뛰기를 하는  존재의 곡예만큼  장엄한 것이 있을까?  불의 운명을 피하니 물의 운명이 나오고  물의 운명을 피하니  가시덤불 언덕을 구르는 형벌이 나왔던  옛날이야기가 있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처음 만난 운명을 피하지 말라던  황금의 별의 잉태를 믿으라던  가끔은 운명의 길이 텅 비고  아무것도 광채나는 것은 없어  공허가 길을 메우고  허공이 길 위에 내려와  내 길을 지우니  어디로 갈까  갈 곳도 없는 지평선이 나를 가두더라  사랑도 나침반을 잃고  슬픔은 바다의 파도와도 같고  기억은 곪은 상처와도 같이  무거운 독거미의 액을 뿌리고 있으니  무엇을 보고 존재의 황금의 별을 믿어야  할 것인가,  홀로 고통으로만 가득 차 있을 때  모든 것은 아프고 아프다  모든 존재는 아프고  아픈 것은 나쁜 것을 뛰어넘지 못할 때  꿈은 사악해지기도 하더라  내 옆구리를 찌른 장대창을 나에게  다오,  그것을 쥐고 하늘 높이  뛰어올라  황금의 별을 만지리라,  혼 속에 있는 고통이여  혼돈 속에 있는 황금의 별이여  시집"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세계사.  ~~~~~~~~~~~~~~~~~~~~~~~~~~~~~~~~~~~~~~~~  사랑 4  -눈보라 속에는  눈보라 속에는 손이 들어 있다 하얗게 나부끼며 다가오  는 손 누가 추워하나 누가 아파하나 하얀 눈보라 속에는  따스한 손들이 들어 있다 눈보라 속에는 눈들이 들어 있  다 환부를 읽으려고 다가오는 눈 누가 아파하나 누가 다  쳤는가 하얀 눈보라 속에는 고요한 눈들이 들어 있다 눈  보라 속에는 귀들이 들어 있다 하얗게 나부끼며 달려오는  귀 누가 울고 있나 누가 빌고 있나 눈보라 속에는 따스한  귀들이 들어 있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천수  천안관세음 숭숭 구멍 뚫린 가슴에서 하얀 눈보라 깃털  같은 붕대가 화안히 화안히 흩어져 나오는.....  시집 ;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 민음사.2000.11.  ~~~~~~~~~~~~~~~~~~~~~~~~~~~~~~~~~~~~~~~  주전자의 물이 끓을 때  주전자의 물이 끓을 때  거친 파도가 바위섬을 삼킬 듯이 몰아칠 때  세계의 집에서 지붕들이 고요히 벗겨지고  유리창들이 환상의 격투로 부서질 때  주전자의 물이 끓을 때  삶은 거기에서 발레리나, 발뒤꿈치를 힘껏 높여들고  두 팔을 하늘로 쳐들고, 춤추는 발레리나,  관절이 연결된 척추 마디에 삐걱거림의 꽃송이가  벙글어지듯 솟아나고  바알갛게 신음하는 복숭아뼈를 견디며  바닥을 차고 올라가는 하얀 높이로의 힘겨운 이행  벌레리나의 춤이 그 연루된 뼈들의 고통을 잊을 때  꽃이 고통의 연루로 피어난다는 것을 잊을 수 있을 때  주전자의 물이 끓을 때  목 없는 닭이 어두운 구름을 앞질러 날아가는  새떼들을 쳐다보는 시선으로  주전자 입에서 펄펄 날아가는 흰 김을 바라볼 때  혁명은 힘겨운 척추뼈와 복사뼈 사이의 연루에 있고  목 없는 닭의 떨리는 눈 속에 있고  하얀 김이 펄펄 나며 하늘을 조금 밀어내고 있는  그 공기의 힘겨운 파장 속에 있고  환상이 상심과 더불어 솟구쳐 일어나고  사랑이 한번만 사랑일 때  혁명이 한번만 혁명일 때  주전자 뚜껑이 팔팔 끓어오르는 김의 힘에 밀려  딱, 하고 저절로 벗겨져 떨어질 때  시집 ;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 민음사  ~~~~~~~~~~~~~~~~~~~~~~~~~~~~~~~~~~~~~~~~~~~~  사랑 3  - 고엽제 이야기  나르키서스는 자신만을 사랑하는 남자  에코는 그만을 사랑하는 여자  그가 말한다  왜 너는 나를 사랑하는 거야?  에코는 따라서 말한다  사랑해줘요.  그가 말한다  제발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아!  그녀는 말한다  가까이 오세요!  나르키서스는 자기 말을 할 줄 아는 남자  에코는 그의 말을 (잘못) 따라하는 여자  모든 사랑에는 혀의 고엽제가 들어 있다  혀를 말리는 하얀 약이 키스할 때마다 배급된다  ~~~~~~~~~~~~~~~~~~~~~~~~~~~~~~~~~~~~~~~~~~~~~~~~~  사랑 4  - 눈보라 속에는  눈보라 속에는 손이 들어 있다 하얗게 나부끼며 다가오  는 손 누가 추워하나 누가 아파하나 하얀 눈보라 속에는  따스한 손들이 들어 있다 눈보라 속에는 눈들이 들어 있  다 환부를 읽으려고 다가오는 눈 누가 아파하나 누가 다  쳤는가 하얀 눈보라 속에는 고요한 눈들이 들어 있다 눈  보라 속에는 귀들이 들어 있다 하얗게 나부끼며 달려오는  귀 누가 울고 있나 누가 빌고 있나 눈보라 속에는 따스한  귀들이 들어 있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춘수  천안관세음 숭숭 구멍 뚫린 가슴에서 하얀 눈보라 깃털  같은 붕대가 화안히 화안히 흩어져 나오는······  당신이 말하는 사랑이란...  ~~~~~~~~~~~~~~~~~~~~~~~~~  꿈과 상처  나대로 살고싶다  나대로 살고싶다  어린 시절 그것은 꿈이였는데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이 드니 그것은 절망이구나  ~~~~~~~~~~~~~~~~~~~~~~~~~~~~~  시 간  어둠의 아이들과 햇빛의 아이들이  흑색 금색 창을 들고  사유의 들판에서 싸움을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 것을 편들지 않으리.  죽음과 생을  모조리 나의 심장 속에 놓아 먹이리.  그러나 그때에는 달랐었다.  내가 아직 내 말(馬)의  고삐쥔 손을 느끼지 않았을  그때에는,  더 이상 생각지 말아라.  지금은 빛나고 휘날리는 金색의 깃발.  그러나 곧  정적이 와버리는 것을.  시선집 ;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 미래사.  ~~~~~~~~~~~~~~~~~~~~~~~~~~~~~  낙 오  살면 살수록  왜 자꾸만 더 낙제하는 기분이 되나.  봄에 꽃이 피는 것을 보아도 그렇고  세탁소 창문 앞에 내걸린  깨끗하게 건조세탁된 옷들을  바라볼 때도 그렇지.  혼자만 나 혼자서만  왜 마감기일이 넘은 원고를 붙들고 있나.  내가 갔을 때는  왜 언제나 백화점의 바겐세일 기간은  끝나 있어야 하나.  가을이 되어 꽃잎이 떨어질 때도,  광화문을 지나다가  회전꼬챙이에 꿰여 빙빙 돌아가는  캔터키 후라이드 치킨을 바라볼 때도,  시인 황지우가 선거 후 낙향을 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도  왜 나는 자꾸만 더 낙제하는 기분이 되나.  사랑에도  꿈에도  난 늘 낙제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삶은 더한층 눈부시고  내 것이 아닌 연인을 바라볼 때처럼  울고싶도록 더욱 다가들고만 싶은가.  시집 ; 달걀속의 生 ; 문학사상사.  ~~~~~~~~~~~~~~~~~~~~~~~~~~~~~~~~~~~~~~  흰구름의 주소  내가 나를 버려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아직 나 속에  머무른다  내가 아직 나와 헤어지지 못했기에  나는 나라는 고유명사 속에  숙박처럼 묵고 있다.  안으로 들어오고 싶은 바깥과  바깥으로 들어나가고 싶은 안이  서로를 더욱 그리워하는 듯  하늘과 나무가  미친 듯이 서로를 불지르고 있는 여름  전생에서 오는 디딤돌 같은  흰구름과  내 생으로 가는 디딤돌 같은  흰구름이  잠시 만나  모두 나를 혈연인 듯 내려다보고 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  구름의 숙박소  그 안에 깃들인 흰 여름의 성하 같은  나의 목숨을  일박이일쯤 되나,  아니, 어쩌면,  혹은, 삼박사일쯤 되는지도.....?  모르겠다고.....  시집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싸움 / 세계사  ~~~~~~~~~~~~~~~~~~~~~~~~~~~~~~~~~~~~~~~~~~~~  사랑 5  -결혼식의 사랑  성채를 흔들며 신부가 가고  그 뒤에 칼을 든 군인이 따라가면서  제국주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부케를 흔들며 신부가 가고  그 뒤에 흰 장갑을 낀 신랑이 따라가면서  결혼 예식은 끝난다고 한다  모든 결혼에는 흰 장갑을 낀 제국주의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시집 ;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 민음사.2000.  ~~~~~~~~~~~~~~~~~~~~~~~~~~~~~~  시계풀의 편지 3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은 하늘이라고  말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얼마나 철이 없었을까.  그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어떤 사람에겐 하늘이 액자만하다는 것을  액자보다 더 작은 하늘이  있다는 것을  그는 몰랐을까  그는 정말 몰랐을까.  상처 안에 또 하나의 상처  그 안에 골목같은 상처. 그 안에  창살만한 상처.  그 아래 몽고반점만한 사랑.  하늘이 푸른 것은 아직도 꿈꾸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얼마나 철이 없었을까.  그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어떤 하늘은 때때로 몽고반점처럼  푸르르고  죽고 싶도록 멍든 사람들이  멍든 빛깔로만  사랑을 칠하고 있는  살고 싶도록 푸르른 하늘  하늘이 푸르른 것은  그런 멍든 사람들이  하늘을 등지고  푸른 언덕 위에 가슴을 대고  아아 가만가만  자신의 파아란 상처를 울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  식탁이 밥을 차린다  식탁이 밥을 차린다  밥이 나를 먹는다  칫솔이 나를 양치질한다  거울이 나를 잡는다 그 순간 나는 극장이 되고  쎄미나 룸이 되고  흡혈귀의 키스가 되고  극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거울이 된다  캘빈 클라인이 나를 입고  니나리찌가 나를 뿌린다  CNN이 나를 시청한다  타임즈가 나를 구독한다  신발이 나를 신는다  길이 나를 걸어간다  신용카드가 나를 소비하고  신용카드가 나를 분실신고 한다  시계가 나를 몰아 간다 저속 기어로 혹은 고속 기어로  내 몸은 갈 데까지 가 보자고 한다  비타민 외판원을 나는 거절한다  낮에는 진통제를 먹고  밤에는 수면제를 먹으면 된다  부두에 서 있고 싶다  다시 부두에...  씨티은행 지점장이 한강변에 음독자살을 하고  시력이 나쁜 나는 그 기사를 읽기 위해  신문지를 얼굴 가까이에 댄다  신문지가 얼굴을 와락 잡아당겨  내 피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 신문이 된다  몸에서 활자가 벗겨지지 않는다  ~~~~~~~~~~~~~~~~~~~~~~~~~~~~~~~~~~~  13월 13일의 사랑  그런 사랑  13월 13일 같은 그런 사랑  토끼와 거북이가 뒤로 달리는 경주를 하고  싱그러운 초원 위에 뒹굴고 노는 그런 사랑  동서남북 어디인지 알 수 없게  방향을 지우고 놀다가  끝내는 이름도 얼굴도 잃어버리는  낙원 같은 그런 사랑  토마토 한복판을 가운데로 잘라내  똑똑 떨어지는 붉은 태양혈을 배꼽에 칠하고  응애 놀이를 하며 다시 태어나는 그런 사랑  우리는 세계와 국가의 요구에 부응해야 합니다  당신은 세계와 국가의 요구에 부응.....  안하는 그런 사랑  인디언 추장을 만나 손을 잡고  바람의 질주를 그리며 달리는 그런 사랑  세상의 달력을 잊어버리는  총, 성경, 질병을 잊어버리는 그런 사랑  탈주하는 사랑  탈주를 웃는 사랑  탈주조차를 잊어버리는 사랑  눈보라처럼 부웅할 방향 자체가 없는 그런 사랑  반대로 달려가면서도 웃을 수 있는  즐거운 즐거워서 원기 왕성해지는  13월 13일만 같은 그런 사랑  13월 13일의 사랑  ~~~~~~~~~~~~~~~~~~~~~~~~~~~~~~~~~~~  보리수 나무 아래로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나무 아래 길이 있을까,  난 그런 것을 잊어버렸어,  아니 차라리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욱 정직하겠지,  잊어버린 사람은 잃어버린 사람  잃어버린 것을 쉽게 되찾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나는 한밤중에 일어나  시간 속에 종종 성냥불을 그어보지,  내가 잃어버린 무슨 나무 아래 길이  혹여 나타나지 않을까 하고.  혹시 장미나무 아래로 가는 길이  물푸레 나무 아래 휘여진 히아신스 꽃길이  어디 어둠의 담 저 너머  흔적 같은 향기로  날 부르러 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난 청춘을 졸업한 게  아니라  청춘을 중퇴한 듯해.  청춘에서 휴학하고 있는 듯한  그래서 곧 청춘에 복학해야 할 듯한  그런 위태로운 아편길 위에서  난 정말 미친 듯이 뛰었지, 아, 그래,  정말이야,꼭 미친 듯이 뛰는 것,  그것이 나의 인생이었어.  그래서 난 새해 같은 것이 오면  더욱 피로해지는 것 같아.  그런 시간에는 문득 멈춰서서  자신을 봐야 하니까.  누구의 삶에나 실수는 있는 법이고  ~~~~~~~~~~~~~~~~~~~~~~~~~~~~  萬波息笛(만파식적)  -남편에게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 같이,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간격을 지키면서  외롭지 않게,  외롭지 않으면서  방해받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두 개의 대나무가 묶이어 있다  서로간의 기댐이 없기에  이음과 이음 사이엔  투명한 빈자리가 생기지,  그 빈자리에서만  불멸의 금빛 음악이 태어난다  그 음악이 없다면  결혼이란 악천후,  영원한 원생동물들처럼  서로의 돌기를 뻗쳐  자기의 근심으로  서로의 목을 조르는 것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우리 사이엔 투명한 빈자리가 놓이고  풍금의 내부처럼 그 사이로는  바람이 흐르고  별들이 나부껴,  그대여, 저 신비로운 대나무피리의  전설을 들은 적이 있는가?....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 같이  죽순처럼 광명한 아이는 자라고  악보를 모르는 오선지 위로는  자비처럼 서러운 음악이 흘러라....  시집 : 왼손을 위한 협주곡 / 문학사상사  ~~~~~~~~~~~~~~~~~~~~~~~~~~~~~~~~~~~~~~~~~~~~~~  솟구쳐 오르기  허우적대다  허우적대다  허우적대다  허우적대다  허우적대다  죽었는가  이젠 정말 죽었구나  했을 때  나는  떠  오  르  고  있었다  지상의 가장 끝에서  혼자 본  아침  해  백경의 장엄한 숨쉬기처럼  물방울 분수를 조용히 내뿜으며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어  고통의 신의 하사품을 받는 것처럼  고  요  하  게  가라앉는 행복조차 빼앗기고  아아, 또 살아났구나  휴우~ ~ ~ 하고 말하려는 것처럼  솟구치는  ~~~~~~~~~~~~~~~~~~~~~~~~~~~~~~~~~~~~  솟구쳐오르기10  황금의 별을 나는 배웠다,  어린 시절의 별자리여,  마음속 어느 혼 속에  고통의 상처가 있어  그 혼돈 속에서 태어나는 별,  혼돈과 함께 태어나는 황금의 별이 있다고  나는 배웠고  그 말은 나를 매혹하였다.  혼 속에 상처를 간직하지 않으면  무엇이 나를 별이게 하겠는가?  나는 고요히, 울면서,  인생이 나에게 주는 모든 쓰디쓴 혼돈  모든 쓰디쓴 상처  그 상처의 악령들을 나는 사랑하였다,  인생을 구제하는 건  상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상처의  오케스트라,  그 상처의 오케스트라 속에서만 터져 나오는  황금의 별들의 찬란한 음악  상처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데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상처의 장대 높이 뛰기를 하는  존재의 곡예만큼  장엄한 것이 있을까?  불의 운명을 피하니 물의 운명이 나오고  물의 운명을 피하니  가시덤불 언덕을 구르는 형벌이 나왔던  옛날이야기가 있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처음 만난 운명을 피하지 말라던  황금의 별의 잉태를 믿으라던  가끔은 운명의 길이 텅 비고  아무것도 광채 나는 것은 없어  공허가 길을 메우고  허공이 길 위에 내려와  내 길을 지우니  어디로 갈까  갈 곳도 없는 지평선이 나를 가두더라  사랑도 나침반을 잃고  슬픔은 바다의 파도와도 같고  기억은 곪은 상처와도 같이  무거운 독거미의 액을 뿌리고 있으니  무엇을 보고 존재의 황금의 별을 믿어야  할 것인가,  홀로 고통으로만 가득 차 있을 때  모든 것은 아프고 아프다  모든 존재는 아프고  아픈 것은 나쁜 것을 뛰어 넘지 못할 때  꿈은 사악해지기도 하더라  내 옆구리를 찌른 장대창을 나에게  다오,  그것을 쥐고 하늘 높이  뛰어 올라  황금의 별을 만지리라,  혼 속에 있는 고통이여  혼돈 속에 있는 황금의 별이여  ~~~~~~~~~~~~~~~~~~~~~~~~~~~~~~~~~~~~  황혼이면  황혼이면  밥상을 부수고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다던  한 여류작가가  생각나지,  언제부턴가 하루하루란 사는 것이 아니었고  힘껏 견뎌야만 하는  무엇이었지,  푸른 목숨의 그리움  있는 대로 선혈처럼 다 배어나오는  저 미친 하늘  일그러진 얼굴을 원흉처럼 거느린 채  치마폭일랑은 치렁치렁  난파의 깃발처럼 펄럭이며  아아, 머리칼은 욱조아 묶은 채로  그대로 두고 말까,  괴물의 마수처럼 훨훨 이글거리며  제 슬픔의 또아리를  힘껏 틀고 있으라고,  밤은 모르는 남자로부터 매일 오는  연서처럼  상냥하고도 은밀한 것,  두근거리며 드럼, 드럼, 드럼,  위험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인가  행복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인가  나는  더이상 산이 안 보이는  그런 산 위에 서 있고 싶다.  가라, 가서  루마니아 폴카를  피가 절이도록 루마니아폴카를  추며 잊으며 돌아오지 말까,  음악이 공범이 될 때까지  춤이 정사가 될 때까지  나는 더 이상  절벽이 안 보이는 그런 절벽 위에  춤추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며  오래 서 있었다,  춤을 추지는 않고  별빛이 내내 뼈에 시릴 때까지-  시집 : 미완성을 위한 연가 / 나남.1987.  ~~~~~~~~~~~~~~~~~~~~~~~~~~~~~~~~~~~~~~~~~~  유서를 쓰며  내 뼈에 가득 찬  죄악을 비우기 위하여  나는 유서를 씁니다,  독한 청산가리 같은 잉크에  내 넋의 봇을 적셔  한 자 한 자 공들여 적어봅니다,  선언합니다,  내 몸의 모든 세포들에게,  시시한 추억들,  못 잊을 가족들에게  이것저것 유품을 나누어놓고  이것이 최후라고  단호히 선언합니다,  그리고 부엌으로 들어가  문틈을 샅샅이 레이스로 봉합니다,  그리고 가스마개를 틀고  더러운 부엌바닥에  냉정히 드러눕습니다,  그리고 아직 너무나 젊기에  더 살고 싶다는 푸르른 나의 육신에  못을 탕--탕--박고  망치를 허공으로 던져버립니다,  살점이 튀고  아까운 피가 양수처럼 따뜻이 고입니다,  이제야 생각납니다,  기역--니은--디귿! --하고  어머님께 매를 맞으면서  처음 글씨를 배웠던 일이,  첫애를 낳을 때의  그 무시무시한 고통과  현란을 극한 사랑의 고마움이,  번개처럼 일어나  창문을 열어봅니다,  달빛이 初雪처럼 흘러내립니다,  나의 해골을 집어들고  달빛을 한 바가지 가득 떠서 마십니다,  고해를 하고 성찬을 받은 것처럼  목숨이 더없이 맑아진 것 같습니다.  유서를 쓰며  詩集 ;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  흰 노트를 사러 가며  외로운 날엔  흰 노트를 사러 갑니다.  소복소복 흰 종이 위에  넋을 묻고 울어야 합니다.  황혼이 무서운 곡조로  저벅저벅 자살미사를 집전하는  우리의 불길한 도회의 지붕밑을 지나  나는 흰 노트를 사러 갑니다.  면죄부를 잔뜩 사는  탐욕스런 노파처럼  나는 흰 노트를 무섭도록 많이 삽니다.  간호부-수녀-어머니-  흰 노트는 피에 젖은 나의 정수리를  자기의 가슴으로 자애롭게 껴안고  하얀 붕대로 환부를 감아주듯  조심조심 물어봅니다.  고독이 두렵지 않다면  너는 과연 무엇이 두려운가.  무엇이 고통스러운가고  세상에는 너무나 무능하여  성스럽게 보이는 것도 있는 법입니다.  무능한 순정으로  무능한 순정으로  흰 노트는 나를 위해  정말 몸을 바칩니다.  외로운 날엔  흰 노트를 사러 갑니다.  미칠 듯한 순정으로  미칠 듯한 순정으로  또박또박 흰 종이 위에  나는 또 내 슬픔의 새끼들을 수북이 낳아야 합니다.  ~~~~~~~~~~~~~~~~~~~~~~~~~~~~~~~~~  눈부신 유언 한 채  110층 화염의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여자는 한점 화엄같이 전화기를 껴안고  목숨은 그냥 두고 전화기를 그보다 더 껴안고  사랑했다, 사랑한다고 말하며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두 신발에 오렌지색 불이 붙은 것도 모른 채  너를 사랑했다,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꼭두서니 빛 불타오르는 화염에 치마를 물들이면서  너를 사랑했으며 너를 사랑한다, 영원히 사랑한다고  한 잎 화엄 잎사귀에 매달려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엉덩이를 다 먹고  허리 한복판을 너울너울 화염이 베어먹는 것을 느끼면서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이 불타는 허리 이 불타는 척추 이 불타는 모가지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불꽃이 머리쪽으로 진군하는 것을 느끼며  너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여자는  불타는 머리카락 난폭한 두 귀가 갈기처럼 일어서는 것을 느끼며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펄럭거리는 화염이 얼굴을 와락 베어먹는 것을 느끼며  여자는  일생을, 그 한 마디,  사랑한다는  그 말속에  묻으며  여자는  그 한마디에  결혼식과 장례식과 묘지명을  순식간에 다 쓰고  떨  어  지  는  순  간  의  그  여  자  는  ~~~~~~~~~~~~~~~~~~  사랑 8  -프라이데이가 로빈슨 크루소를 만난 날/김승희  당신은― 날-― 금요일에 구해 주셨지요  식인종들로부터―  그래서 주인님은 나의 이름을 프라이데이라고 붙이셨지요  주인님을― 만난― 날이  내 이름이 되었어요  주인님을 만나기 전엔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기에  그 날이 나의 이름이고 출생이고  영광이었어요  이제 나는 프라이데이예요  맨발에는 가죽 신발이 덮이었고  순진무구한 눈동자에는 벌레 같은 문자들이  기어들어 왔어요  내 이름은 프라이데이  그 날이 나의 이름이고 출생이고 종언이고  저주였어요  그 날부터 나는 애도 중입니다  뉴멕시코 광활한 땅, 망망대지에 푸에블로 인디언  그 날부터 나는 애도 중이에요  보호 구역에서 애도 중인 폐선 자기를 애도하는……  과도한 애도 중……  ~~~~~~~~~~~~~~~~~~~~~~~~~~~~~~~  사랑 11  붉은 신호등을 바라보며  한 여자가 횡단보도 건너 저편에  핸들을 잡고 멈추어 있다,  나는 붉은 신호등을 바라보며  횡단보도 이편에 핸들을 잡고 멈추어 앉아 있다,  붉은 신호등이 이렇게 모르는 두 여자를  잠잠히 마주보게 만든 그 고유의 순간  초침이 두 여자의 얼굴 위로 사각사각 지나가며  사과껍질을 얇게 벗겨내듯  과도 칼의 저미는 움직임이 얼굴 위에 느껴진다  유의해서 보아야 할 아무 특이한 점이 없는데도  무언가에 끌려서  벙어리 지뢰처럼 서로를 긴장에 차서 바라본 그 순간  붉은 신호등이 푸른 신호등으로 바뀌고  급히 전진을 해야 할 시간이 왔다  모든 인연을 끊고 질주해 나가야 할 이 진군의 시간  얼핏 스치며 나는 움직이지 않는 그녀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그녀의 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뒷차들은 빵빵 경적을 울려대며  일 분 일 초에 일생을 건 사람들처럼 미친 늑대의 소리를 내지른다  사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일 분 일 초에 목숨을 건 미친 늑대들인 것이다  그녀의 차는 그래도 움직이지 않는다  스치면서 그녀의 얼굴을 흘깃 들여다본다  백합처럼 하얗게 굳은 얼굴,  왼쪽 콧구멍에서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붉은 피는 아까 전부터 흘러내렸는지  미색 가을 정장 윗도리 가슴 편에  아르다운 꽃다발이 뭉클뭉클 피어올라 있다  급성 뇌출혈,  가슴에서 뭉게뭉게 꽃피어 올라가는 꽃다발 헌정의 순간  그녀도 집에 닦지 못한 식기를 한아름 싱크대 위에  버려두고 도망치듯 나온 여자였을까,  강의 준비를 못하여 발을 동동 구르며  아홉시 수업에 늦지 않게 당도하려고  미친 듯 페달을 밟던 여자였을까,  더이상 경쟁려기 없다는 말을 그저께 들었던,  시부모로부터 네가 인간이냐는 말을 어저께 들었던,  친정 어머니로부터 전세값이 올랐는데  이사 날짜는 다가오고 어쩌면 좋으냐는 말을  아침에 들었던  그 여자였을까,  당신의 사랑은 거기서 더 기어갈 수가 없었을까  사람들은 모두 다 끝나지 않는 사랑의 이야기를 가진다  내 차는 그녀의 차를 스쳐 지나가며  소리쳐 물어본다  왜 그렇게 핸들을 꽉 잡고 있는 거냐고,  당신의 사랑은 더 갈 수 없었던 거냐고,  거기서 멈추어버린 어떤 피로, 어떤 갈망,  미친 코다에 대한 그리움이  또 내 차를 미친듯이 몰아간다  ~~~~~~~~~~~~~~~~~~~~~~~~~~~~~~~~~~~~~~~~~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웃음이란 상징적 사과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씨앗 중의 하나---보들레르  바보 산수  정자에서 네 팔을 벌리고 낮잠을 즐기는  바보 산수  빨래하는 여인을 훔쳐보는 동네 영감이 있는  바보 산수  엿장수를 반기는 즐거운 아이들의 웃는  바보 산수  중력의 악마를 뿌리 채 뽑아내려는 듯  질질 끌고 가다가  휘두른 듯이 내려친 자루 걸레  그 봉 걸레에 먹을 듬뿍 찍어  병풍 위로 질질 끌고 다니며  불굴의 한 획으로  웃고 달려가는 잇달아 파고들며 웃고 달려가는  달아날수록 웃고 덤벼드는 뭉클뭉클한 천千의 산맥을  그린  걸레 수묵  후려치는 봉 걸레  빗자루를 타고 달려가는  웃는 웃음  그 웃음의 산맥을 타고 달려가는  꿈틀대는 웃는 웃음  그 웃음  빗자루가 휘갈리는 그 웃음  바보 웃음  시집 ;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 민음사.2000  ~~~~~~~~~~~~~~~~~~~~~~~~~~~~~~~~~~~~~~~~~~~~~~~~  푸른 상치들이 있는 풍경  도시의 창가에 유리창 가에 상치들이 상치들이 상치들  이 푸른 귀를 맛대고 푸른 뺨을 맞대고 푸른 숨 맞대고  푸른 입을 맞대고 팔 하얗게 드러난 팔 파랗게 드러난 힘  줄 팔 하얗게 드러난 팔꿈치들을 맞대고 뺨 한곳엔 흙이  묻어 뺨 한곳엔 물이 묻어 뺨 한곳엔 햇살이 묻어.....무  언가 옹알이 내 귀가 아알지 못할 옹알이 나른한 말들 숨  결들 꿈결들인 양......상치 밭에서 깜박 잠들었네 내 뺨  에 절 한 채 지어놓고 내가 도망갔네 도망간 나를 찾아  굳이 길을 떠나야 할 것은 뭔가?  시집 ;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 민음사.2000  ~~~~~~~~~~~~~~~~~~~~~~~~~~~~~~~~~~~~~~~~~~~~~~~~~~~~~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  하얀 문이  관뚜껑처럼 닫혀 버린다  아직, 얼굴 위에서  미처 미소가 지워지기도 전에,  일방적인 해고통고와도 같이  하얀 문이  관뚜껑처럼  닫혀 버린다  아, 아, 안녕......하고  말을 맺기도 전에,  사랑하는 이여,  이것이 마지막 인사라면  정녕 그럴 수는 없다,  우린 좀더 사랑했어야 하고  우린 좀더 진지한 고통을  나누어야 했지,  사랑하는 이여, 그대와 나,  우린 좀더 불을 통과하는 뜨거운  길들을 함께  다녀보았어야 했다  언젠가 하얀 문이  그렇게 닫혀지고 말겠지,  불가사의하고도 불가항력적인 - 하얀-  단절이-우리의-  얼굴 위에 수면마스크처럼  조용히 드리워지고,  비단끈으로 된 하얀 망사처럼  보슬보슬한 음악이  엘리베이터 천정 위에서  세뇌라도 하듯이, 자근자근 소근소근  속삭여대겠지,  잊어버려, 이젠 다 끝장이 났어,  잊어버리라고, 낄, 낄, 낄......  사랑하는 이여,  그대와 나, 이것이 마지막 인사라면  정녕 나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데  언제나 마지막 문은  그렇게 닫혀지고 마는 법,  언제나 지고 있는 노름패처럼  열쇠도 없다,  열쇠도 없이  그렇게 우리 홀로 승천의 문 안에 갇혀져야 하는가,  그렇게 홀로 갇혀  멍청히 승천의 길로 올라가야 하는가......  시집 : 미완성을 위한 연가.나남.1987.  ~~~~~~~~~~~~~~~~~~~~~~~~~~~~~~~~~~~~~~~~~~~~~  꿈과 상처  나대로 살고싶다  나대로 살고싶다  어린 시절 그것은 꿈이였는데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이 드니 그것은 절망이구나  ~~~~~~~~~~~~~~~~~~~~~~~~~~~  이카루스의 잠  어느 날  새들의 임금님이  우리의 땅에 내려왔다  황금빛 햇살을 맞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자, 누가 이카루스인가.  모두들 한 번 날아보아라」  태양 가까이 날아  날개가 불태워져버린 아이에게만  불멸의 날개를 주겠다.  납이 아니고  뼈와 뼈의 날개,  녹을 수 없고 썩지도 않는 날개  그러나 지상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어느 아이가 귀가 있어  그것을 듣겠으며  어느 날개가 천재가 있어  태양까지 날겠는가  우리들은 모두 가만히 있었다.  「이카루스만이 영원하다  그것을 모르고 사는 者는  이 지상에서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오, 지금은  시인도 청년도  사슴도 독수리도 아무도 날을 수 없음을  우리는 아무도 날지 않는 것을  그는 모르는 것일까?  그는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하늘 속에서 태양은 아름답고  태양 속에서 생명은 불타지만  그러나 이카루스,  이카루스는 잠을 자네  파도와 회색바위 위에서  이카루스,  모든 이카루스는 아무도 잠깨지 않네  아무도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 미래사  ~~~~~~~~~~~~~~~~~~~~~~~~~~~~~~~~~~~~~~~~  나는 밤마다 거울 속에 물을 준다  나는 밤마다 거울 속에 물을 준다,  거울 속에, 아니 아니,  화분 속에  나는 밤마다 화분 속에 나를 심고  거울 속에 물을 준다,  내가 죽어 있을 동안이라도  더욱더욱 자라야 한다고,  환상이란 상심이지만  내가 잠들어 있을 동안이라도  몰래몰래 자라야 한다고  나는 밤마다  화분 속에 나를 묻고  거울 속에 물을 준다,  도괴된 복도 속에 통조림 깡통이 하나 파묻혀 있다,  미를 헤치고 통조림 깡통을 들여다보면 인스턴트  평화라고 뚜껑에 대문자로 적히어 있다, 통조림 깡통  속에 장조림된 나, 통조림 깡통 속에 장조림 된 너,  평화는 불사신과 같이 방부처리되어 있어서 당신이 통  조림 깡통을 땄을 때는 화두처럼 목 없는 닭 한 마리  평화롭게 온 세상 그지없이 평화롭게 누워 있었으니  나는 밤마다 거울 속에 물을 준다,  거울 속에, 아니 아니,  화분 속에  나는 밤마다 화분 속에 나를 심고  거울 속에 물을 준다,  환상이란천벌 같은 거지만  화분 속에는 사막식물이라는  선인장 화초가 심겨져 있고  화초인지 아닌지  그 선인장은 백년 동안에 한 번만  꽃피울 수 있다는 약속이 있다,  선인장 몸 위엔  갈퀴쇠 같은 물음표만 녹색으로 가시 돋쳐  왜? 왜? 왜? 라고  눈동자를 찌를 듯이 거울면으로  육박한다,  난수표 같은 절망은 자금회전이 안 됩니다,이곳에선  희망만이 현금유통되고 있어요, 희망을 환불하려고 거  울창구 앞으로 다가서면 희망이란 얼마나 하잘것없는  돈푼인지, 거대한 절망의 허물 수 없는 어음에 비한  다면 희망이란 얼마나 소소한 푼돈인지, 나는 밤마다  화분 속에 물을 준다, 이 생에선 그 꽃을 볼 수 없다  하여도, 나는 밤마다 거울 속에 물을 주고, 절망에 죽  음을 보탠 그 몸짓으로밖에 나는 그 선인장 꽃을 가꿀  줄을 모르니  ~~~~~~~~~~~~~~~~~~~~~~~~  어머니가 나에게 가르쳐 주신 말  인연은 재앙이니라-  내가 너무 배가 고파  어두움 속에서  달덩이같이 삭발한 그리움을  하나 걸어두었더니  꿈인듯 생시인듯  이상한 향기나는 白馬가 날아와  내가 하늘을 타고 갔느니라-  오색 구름 속에 황금궤가 홀연히  걸려 있는데  너무 곱고 너무 신령하여  내가 그만 외상으로 너희들을  사오고 말았더니라-  인연은 재앙이니라-  뭉게뭉게 퍼져가는 암세포처럼  시시각각 외상값은 계속 불어나  강아지같이 불쌍한 내 새끼들아,  너희가 갚아야 하느니라,  맷돌을 목에 걸고 여기저기 쏘다니다  광견병 든 개처럼 맞아서 죽더라도  잔인한 것은 내가 아니다  흡혈귀는 -나는-아니다  고문처럼 질긴  철천지의 사랑-  이 무슨 원한의 달콤한  피냄새-나는  아니다-내 착한 새끼들아  인연은 후환이니라-  시집 : 큰소리로 살아있다 외쳐라 / 청하/1984  ~~~~~~~~~~~~~~~~~~~~~~~~~~~~~~~~~~  오후 세 시의 식당  오후 세 시의 식당은  들숨과 날숨이 뒤바뀐 시간  폐에 바람이 가득찬 풍금 건반이 저절로 홀로  유령의 건반을 눌러보는 시간  의사 가운을 입은 주방 아주머니들이  하얀 빵 모자에 빨간 앞치마를 두른 채  식당 테이블에 나와 앉아 밥을 먹는 시간  큰 양푼에 맛있게 무친 나물을 넣고  한번 더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고  여러개의 김나는 팔뚝들이 들락날락하며  함께 나누어 맛인는 시간  의사가 환자가 되는 시간  환자가 의사가 되는 시간  링겔꽅은 왼팔을 흔들며 무어라 말을 하려  ......ㄱ ㄴ ㄷ ㄹ...... 하던 마지막 임종의 얼굴이 스치는데  남에게 국그릇을 퍼주던 김나는 팔뚝들이  자기 입으로 숟가락을 가져가는  여인들의 맛있는 시간  이사도라 덩컨이 차를 출발시키다 스카프에 목이 졸려  죽은 나이, 마흔 아홉, 오후 3시,  혼자 앉아 점심이나 먹는 나의 시간  정신박약의 당나귀가 어흥어흥 우는 시간  주방에선 양배추 끓이는 냄새가 자욱 올라오고  양배추들이 요오드크롬을 바르며 혼자 죽는 시간  알듯 말듯한 애도의 시간  활짝 펼쳐진 절정의 부채처럼  다 펼쳐진 부재의 시간  시인세계 ; 2002 가을 창간호-문학세계사  ~~~~~~~~~~~~~~~~~~~~~~~~~~~~~~~~~~~~~~~~~~  흰 나무 아래의 즉흥  하얗고 단단하고 깨끗한 여름날  우리들은 게오르그 브라끄의 해안에 있으면서  사유 안에  하나의 급한 흰 나무를 갖는다.  흰 나무는 그네다.  불꽃의 날아가는 맨발에 올라  내 일상은 훨훨 비늘이 되고  바람이 되고.  우리는 하나의 붉은 사과를 나눠먹으며  타오르는 해안의 태양 옆길을 간다.  아아,나는 너와 오래오래 만나고 싶어.  십오 분. 이십 분.  한 시간이 아닌  죽음과도 같이 긴 시간을,꿈의 시간을  예쁜 칼처럼 너를 지니고  헤어지지 않고 있고 싶어  언제나 서로 함께  불꽃 속에 살아  언제나 서로 함께 살아있고 싶어.  사랑은 죽음을 사랑하고 있다.  우리는 전속력으로 푸른 바람을 달리며  대양을 횡단하고  대양을 버린다.  밝은 아이들의 목소리에  오후 바다의 빛나는 머리칼은 와 감기고  돌아온 해안에서  우리는 보다 직접적이고 견고한 죽음과 만난다.  검게 그을은 얼굴을 들고  우리의 입술은  이제 보다 우수한 미소를 간직한다.  ~~~~~~~~~~~~~~~~~~~~~~~~~  時間  어둠의 아이들과 햇빛의 아이들이  흑색 금식 창을 들고  사유의 들판에서 쌍무를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 거슬 편들지는 않으리.  죽음과 生을  모조리 나의 심장 속에 놓아 먹이리.  그러나 그때에는 달랐었다.  내가 아직 내 말[馬]의  고삐쥔 손을 느끼지 않았을  그때에는,  더 이상 생각지 말아라.  지금은 빛나고 휘날리는 金색의 깃발.  그러나 곧  정적이 와버리는 것을.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 미래사  ~~~~~~~~~~~~~~~~~~~~~~~~~~~~~~~~~~~~~~~~~  피난 계단  계단은 올라가는 것이거나 내려가는 것이지만  어느쪽으로 가야만 피난이 되는지를 알 수 없을 때  냉담신자처럼  아직 어떤 방향에도 확실히 속하지 않는다면  불과  불  사이  세상은 온통 연기가 앞을 가리운  최루탄 장막의 무성영화  에취 에에취 기침을 하면서  엉엉 훌쩍훌쩍 눈물 닦으며  이쪽으로 가본들  저쪽으로 가본들  피난은 멀고  불은 가까우니  ~~~~~~~~~~~~~~~~~~~~~~~~~~~~~~~~~~~~  가까운 사람을 멀리 사랑하기 위하여  관계와 관계 사이에서  내가 온통 벌거숭이로 피를 칠하고 있을 때  난 알 것 같았어,  왜 별이 아름다운지를,  난 알아질 것 같았어,  만일 구름의 너울이 없다면  어떻게 감히 태양을  사랑이라고 부르겠는가를,  밤에 마지막 외침처럼 황량한 마음으로  지붕 위에 서 있으면  먼데 있는 사람아, 말하려므나  내가 평화처럼 혹은 구원처럼  금빛이더라고,  신비한 금선이 아득히 흘러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꿈꾸게 되는지를,  관계와 관계 사이에서  내가 울부짖는 하나의 욕설처럼 추악해질 때  난 알고 말았어  별과 神은 왜 그토록 멀리 있어야 하는지를,  모든 성당의 창문에는  왜 천연색의 색유리가 끼여 있는지를,  오늘 애가 여기 천벌의 화형으로  지새우는 불이  어디엔가 먼 사람에겐  아마도 위안처럼 정다우리니  생각해 보아,  멀리 있어서 아름다운 별은, 하느님은  우리가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왜 우리에겐 그토록 간격의 탐닉이  필요한 것인가를  ~~~~~~~~~~~~~~~~~~~  호텔 자유로  자유로는 이제 호텔이 되었다  자유로에서 자유는 이렇게도 많이 밀리고 있다.  싱싱한 브로콜리 같은 아침의 얼굴이여  누가 이 아침의 얼굴을 식물인간으로 눌러 놓았나  자유로에서 밀리는 것은 정말 자유만이 아니다  때묻은 얼굴에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맨발로  조그만 베개를 가슴에 안고  아가야, 아가야, 젖 줄까, 베개를 토닥이며 돌아다니던  그 미친년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붉은 그리움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리움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을 때  그리움이 앞으로도 뒤로도 다 막혀 있을 때  나도 얼마든지 그렇게 미칠 수 있을 것 같다  미치거나 식물인간이 되어서 반쯤 졸거나 반쯤 자는 길.  서울로 가는 전봉준도 그랫으리라. 깃발은 들었고  자유는 밀리고. 황토재 떠나 황룡촌 지나  첩첩 그리움은 막혀가고. 보은 지나 금강이여.  서울로 가는 길목마다 그렇게도 어려웠으리라  자유로에 점점 떨어진 푸른 알들이여  녹두 꽃잎들이여......  호텔 자유로. 인디언 담요에 몸을 두르고  김밥과 샌드우위치를 찬합에 놓고 먹으며  그렇게도 싫어했던 실려가는 삶에 대해  실려갈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해  밀려 있는 자유에 대해  밀려 가는 자유에 대해.  그리고 또다시 언젠가 피어날 녹두꽃에 대해  피기도 전에 탄환에 스러진  카불 소녀의 녹슨 녹두빛 눈동자에 대해......  실린 곳 : 2002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시  ~~~~~~~~~~~~~~~~~~~~~~~~~~~~~~~~~~~~~~~~~~~~~~~~~~~~  모든 신발이 불편하다  모든 신발이 불편하다 나는 신발장을 연다  모든 신발이 가혹하다 나는 신발장을 닫는다  신발을 신고 나설 때마다 난 어떤 본능을 다치는  것만 같아, 골절, 뼈 뼈 뼈가 어긋 물린 것 같고 어떤 때는  도에 지나쳐 피 피 피가  길 위에 흘러내려 나의 길을 모가지로 감고 엉겨 저지하는 것 같아,  신발에서 길을 갈라내지 못하면  미친 듯이 신발의 길에 먹힐지도 모른다  신발에서 발을 추려내지 못하면  어쩌면 신발에서 발목을 잘라내야 할지도 모른다  거기다 또 신발의 중독에서 깨어난 발  발가죽의 중독에서 깨어난 뼈들조차  더 시끄러운 이 내란의 길목에 서서  꿈이여, 잠시 잠시만 더, 그래도, 이 가죽 부대 같은 신발 안에  뭉쳐 있지 않겠니? 신발을 들고 날아가는 저 눈부신 태고의 날개가  하얀 자갈밭에서 알을 깨치고 날아가는  태양빛의 뜨거운 새처럼  고요히 중심의 원시 신화 속으로 솟구쳐 오를 때까지  나의 발은 아직 할 일이 많고  나의 발은 아직 더 가고 싶은 길이 있단다  그리하여 엘칸토 금강 에스콰이어 비제바노 브랑누아를 넘어  레스모아 미스미스터 엘레강스 허쉬파피 랜드로바를 지나  갔습니다  구두 대(大) 바겐에 가면 나에게 맞는 신발을 어쩌면 구할 수 있으리라~  모두 신발이 뼈에 마치고 근육은 구두에 대들고  발톱은 구두 가죽을 찢고 한 발 가득 무성한 털은  솟구쳐 나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범주를 벗어난 모래와 엉긴 피가  나의 신발 너머 길 가득 수북이 넘치고 있으니  모든 신발이 수상하다 나는 신발장을 연다  모든 신발은 천적이다 나는 신발장을 닫는다  ~~~~~~~~~~~~~~~~~~~~~~~~~~~~~~~~  길이 없는 길 위에서  역촌동 →상도동 구간을 오늘도 내일도 달리는  저 시내 버스는  어쩌면 나보다 더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  승객들이 오르고 나면  재빨리 문이 닫히고  시간이 없다고 갈 길이 멀다고  오늘도 내일도  의심 없이 그 길을 달려가는  저 노선 버스는  나보다 더 고뇌가 없는 씩씩한  길을 가진 것이라 해도 좋다  매일매일  떠나야 할 분명한 시점과 닿아야 할 분명한  종점을 가진 것이  부럽다 해도  난 벌써 서른다섯 살.  아스팔트 위를 먼지와 함께 불어 가는  가을바람  처럼  그 바람에 흩어져 날아가는  어제 저녁의 구겨진 신문지 조각  처럼  나에겐 떠나야 할 곳도 닿아야 할 곳도  언제나처럼 분명치가 않다는 느낌이다  행복한 길을 가지기 위하여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행복한 길을 가져야 할까  나는 아직도 아마 모른다.  다만 아침저녁으로 종점에서 닿고  떠나는  행복한 시내 버스들을 바라다보며  다만 나에겐 길이 없다는 절망과  길을 원하는 갈증이  우울증같이 멀미같이  환상의 외침이 되어 다가든다는 것뿐이다  ~~~~~~~~~~~~~~~~~~~~~~~~~~~~~~~~~~~~~~~  천년을 목에 걸고  내 마음에 한 그림자 있으니  천년을 기다려도 다 지워지지 않아라  마음을 묘비의 뚜껑삼아  밤마다 그림자의 획을 새기니,  죽어가는 인형을 안고 병원 복도를 서성이는  여인이여, 여인의 품안에  병든 꽃의 목숨은 너무도 희미하여  물 한 모금 달라고  끝으로 말하지도 못했노라,  넋나간 유령처럼  아직도 서성이고 있는 여인의 가슴에  십자처럼 선명한 유혈의 검은 장미는  한 잎 두 잎  독 묻은 꽃 이파리 너울댈 때마다  뭉텅뭉텅 여인의 살을 베혀갔노라,  아직도 다 가지 못했노라,  천년을 더 한다 해도 다 가지는 못할,  내 마음에 한 그림자 있으니  마음을 묘비의 뚜껑삼아 밤마다 그리노라  ~~~~~~~~~~~~~~~~~~~~~~~~~~~~~~~~~~~~~~~~~~~~  우표 한 장의 사랑  가을이면 문득 작년에 넣어둔  옷장 속의 긴 코트를 꺼내 입고  바람처럼 괜히  길 모퉁이로 나서지,  하얀 장미꽃 그림자 같이  초췌한 양광陽光 속을 걸어가다 보면  호주머니 속에 작게 접힌  작년의 종이쪽지가 손에 잡히지,  나프탈린 냄새로 절여진  불쌍한 내 사랑,  하얀 방부제 속에 파묻혀  일 년이나 일년동안이나  창백하게 봉인된 금지된 내 사랑,  가을 햇빛 아래  이 종이쪽지를 건네준 사람이  누구였던가 난 잊어버렸지만  이 종이쪽지를 쓴 사람의 손길이  얼마나 덧없이 향기로왔던지를  난 기억할 수 없지만  가을 햇빛 아래  가을 햇빛 아래  차마 그 종이쪽지를 꺼내  그리운 전화번호를 읽어볼 수 없다 하여도  국립박물관 4층 불교회화실  진열장 속에 보관되 있던  은으로 쓴 화엄경을 난 기억할 수 있네,  어두운 청색 감지 위에  은으로 쓴 화엄경,  너무도 풍부한 슬픔 위에  화려하게 자수된  불멸의 은빛 극락조,  그렇게 영원한 것은  어둠 속에 차디차게 빛나며  작년의 긴 코트 호주머니 속에  반짝반짝 금석문처럼 남아  하얀 장미꽃 그림자 같이  초췌한 가을햇빛 속을 걸어가다 보면  그대여-그대는 어디로 갔을까  그대여-그대는 어떻게 갔을까  알고 싶지만 알 수가 없고  보고 싶지만 다시 볼 수가 없어  여름 사랑이면 힘껏  껴안을 수가 있지만  여름사랑이면 뜨겁게 부딪칠 수가 있지만  가을사랑이여 가을사랑이여  나뭇잎 그림자 아래 종적조차 없으니  그대여-어디로 가야 그대를  그대여- 어디로 가야 그대를,  어찌해도 그대에게 가는 길을  알 수가 없어  우표 한 장의 그리움으로  막막히 집을 나서  천지사방 바람처럼 허공을 헤매일지라도  난 호주머니 속의 그 종이쪽지를  결코 꺼내어 읽지 않으니  가을이면  내 얼굴은  점점 더 비석을 닮아가고  가을이면 내 사랑은  점점 더  우표 한 장의 그리움을 닮아  정처없이 정처없이  바람의 가출을 일삼고 있음이여  시집 : 미완성을 위한 연가 / 나남  ~~~~~~~~~~~~~~~~~~~~~~~~~~~~~~~~~~~~  땅에 떨어진 눈썹  신의 연습장 위에  나는 하나의 희미한 물음표,  어느 하늘, 덧없는 공책 위에,  신이 쓰다 버린 모호한 문장처럼  영원히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  나는 하나의 물음표,  뒤주 안에 갇힌 왕자가  어둠 속에 날아다니는 들불 도깨비불에  홀려  퍼얼펄 옷을 찢어버릴 때의  피의 급류처럼  때때로 내 몸속으로도 그런 광기 젖은  물음표의 급류들이 뚫고  지나가느니---  신령님이 세상과 하늘에 대해  가장 붉은 글을 적으실 때에  흰 뼈  내 두개골의 가장 무심한 흰 뼈를  그의 연필심으로 바치고 싶었었지,  그리고 나머지 나의 몸은  강물 어느 모든 강물 위에 누워  말없음표처럼  평화를 사랑하리라고......  나는 하나의 초라한 물음표,  신의 나라에는, 물음표 가진 문장이  필요없다 하여서,  나는 하나의  더디 지워지는...... 울음표......  왼손을 위한 협주곡 / 민음사, 2002  ~~~~~~~~~~~~~~~~~~~~~~~~~~~~~~~~~~~~~~~  촛 불  하얀 무지개,  전신에 온통 흰 멍이 들어서--------  침묵으로 견디며  채찍을 맞고있는 사람처럼  화려하여라----------  너를 보고 있으면  내 몸속의 부처가 눈을 뜰 것처럼,  슬픔이 성대해진다----------  시집 : 왼손을 위한 협주곡  ~~~~~~~~~~~~~~~~~~~~~~~~~~~~~~~~~~~  슬픔의 날품팔이  나는 열심히 살고 있어요,  열심히 날품을 팔면서,  돌아오는 것은 없지만  돌아오는 것을 믿는 것은 야비한 일이라는  정신적인 금언까지 믿으면서  나는 열심히 살고 있어요,  바퀴벌레처럼 순정적으로  시대는 바야흐로 교환의 시대여서 내가 가진 것으로 품을 팔아야 남이 가진 것을 얻어낼 수가 있지요, 나는 무엇을 가졌던가, 무엇을 가졌길래 무엇으로 나를 팔아넘길 수가 있을까, 나는 교환가치도 없고 생산가치도 없고 소비가치도 없는 그리하여 어디 가서도 교환이 안 되는, 교환불능의 순정이라는 자본만을 가진, 한 마리의 저능한 바퀴벌레처럼  나는 열심히 살고 있어요,  되는 대로 날품을 팔면서  팔 것이 없어서 슬픔을 팔면서,  하얀 적십자병원 뜨락에  힘없이 서서  자기 피를 팔려고  서성이는 사람들,  어서어서 피를 팔아  국밥 한 그릇 사먹기가 소원인 사람들,  그것조차 아슬아슬 차례가 안 오는  사람들,  그렇게 살고 있어요,  슬픔을 팔아 끼니를 사고  슬픔을 팔아 별빛을 사며  나는 열심히 살고 있어요,  바퀴벌레처럼 굴욕적으로  시집 ;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  1952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  대학원에서 국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  시집  「태양 미사」「왼손을 위한 협주곡」「달걀 속의 생」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등을 냈으며,  산문집  「33세의 팡세」「남자들은 모른다」「냄비는 둥둥」  소설집  「산타페로 가는 사람」「왼쪽 날개가 약간 무거운 새」등을 펴냈다  김승희:1952년 광주출생.  시집(1979)  (1983)  (1987)  (1989)  (1991)  제 5회 수상(1991)    
629    그 누구나 시의 전파자가 되는 날을 위하여... 댓글:  조회:4625  추천:0  2015-07-08
“시인은 보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는 사람” 시 읽기의 즐거움 전파하는 장석주 시인 ———————————————————————————————                                                                  글 : 임현선 / 사진 : 김선아         ‘스무 살에 등단해 예순이 된 지금까지 시를 쓰는 사람, 읽을 수 있는 것에서 읽을 수 없는 것까지 읽어내는 독서광, 읽고 쓰는 것에 모든 것을 건 문장노동자’….  2007년부터 본지에 매달 ‘시와 시인을 찾아서’를 연재하는 시인 장석주는 ‘날마다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다. 그동안 100명에 가까운 시와 시인을 소개했지만 단 한 회도 거른 적이 없다. 그는 “9년간 연재를 하면서 지겨운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항상 즐거웠다”고 말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옥타비오 파스의 말처럼 “선택받은 자들의 빵이자 저주받은 양식”인 시의 즐거움, 시의 정수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의욕은 여전히 강했다. 오히려 영상물이 대중문화의 주류가 되면서 ‘소수자의 위치’로 전락한 시 문학과 독자들이 잘 교감할 수 있도록 매개자가 되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은 더 커진 듯했다.  “시와 친해질 기회가 없었던 젊은 벗들이 더 많이 읽으면 좋겠어요. 천 편의 시는 천 가지의 방식으로 읽을 수 있어요. 저는 전문가적인 논리보다는 독자의 눈높이에서 사물을 보고 감성의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최근 장석주 시인은 본지에 기고한 글을 엮어 책으로 펴냈다.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에게》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21세기북스) 두 권이다. 첫 번째 책에는 사랑과 이별, 청춘을 주제로 삼은 시들을, 두 번째 책에는 삶과 죽음, 인생을 주제로 한 시들을 소개했다. 시 읽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곡진한 마음이 곳곳에서 읽혔다.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농부, 화물차 운전사, 교사, 의사 등 폭넓은 경험과 경력을 지닌 시인 60명의 시 60편이 장 시인의 감성적 해설과 더불어 펼쳐져 있다. 장 시인은 시인을 먼저 선택하고 그 시인의 시집을 전부 읽은 뒤 시를 정하고 글을 쓴다고 했다. 되도록 알려지지 않은 시인의 좋은 시를 찾아 소개할 때 더 보람이 크다고 말한다.  시는 ‘지적 근육’을 만드는 수단   장석주 시인은 열네 살 때 처음 시를 접하고 열다섯 살 때 〈겨울〉이란 시를 써서 〈학원〉지에 발표했다. 스물다섯 살 때 일간지 신춘문예에 시와 문학평론이 당선한 뒤 15권의 개인 시집을 냈다. 평론을 겸업하며 낸 평론집만도 10여 권에 이른다. 40년 동안 시를 읽고 썼지만, 그는 겸허하게 “시를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만큼 시는 모호하고 심오한 것이라는 말인데,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또렷하게 대답한다.  “시는 전적으로 무의식에서 솟구치는 우연의 산물입니다. 아직도 시를 잘 모르겠지만 시인의 일이 영업판촉 분야 일과는 다르다는 것은 알죠. 영업판촉 인력은 자기가 팔아야 할 제품을 친절하게 설명하지만 시인들은 제가 쓰는 시의 소재인 사물과 세계, 그리고 현상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의 것들을 시를 통해 보여줄 뿐이죠.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시를 읽지 않는 삶보다 시를 읽는 삶이 조금이라도 더 좋다는 겁니다.” 장 시인은 시를 “지적 근육을 만드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시를 자주 읽으면 직관력이 생기고 직관을 훈련하면 통찰력과 투시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장 시인에게 시는 앎이고 구원이며 지혜이고 용기다. 시의 기능은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데에 있으며 더 넓게는 세계를 바꾸는 혁명적인 것이지만, 그 이전 무지에서 깨어나는 기쁨을 주고, 정신 수련으로서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존재의 약동을 위해서나 정신의 유연함을 키우는 데 시는 반드시 필요해요. 시인은 상형문자와 같은 경험의 낱낱을 해독하고,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하도록 독자를 이끌죠.”  장 시인 역시 시를 읽고 쓰면서 직관을 키우고, 자아의 점진적 진화를 이룬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새벽 3시부터 4시 사이,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에 시를 쓴다.  “이성이 깨어나기 전 무의식 상태에서 시를 써요. 제 생각의 아주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언어들과 이미지들을 붙잡아내는 것이지요. 나중에 새벽에 끼적인 것을 읽어보면 제가 썼는데도 왜 이것을 썼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구절들이 있어요. 시의 초고는 이렇듯 비논리, 초논리 문구들이 산만하게 펼쳐져 엉망이죠(웃음). 그걸 이성적 사고가 활발한 낮에 리듬을 만들고 구조화될 수 있도록 다듬고 정리합니다.”  장 시인에게 좋은 시란 어떤 시일까? 좋은 시는 사물과 존재의 핵심을 성찰하되, 그 진실과 마주치는 고통의 순간을 미적 쾌감의 순간으로 바꿔놓는다. 아무리 끔찍한 내용이 담겼더라도 좋은 시를 읽고 난 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그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독서는 나의 삶, 나의 힘   장석주 시인은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된 해인 1979년 1월에 출판사 편집부에 취업한다. 몇 년 뒤 독립해 13여 년 동안 출판사 경영인으로 살았다. 그동안 출판편집자로 살며 만든 책이 총 800여 권이다. 숱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의 손을 거친 시집 《홀로서기》는 200만 부 이상 팔렸다. 30대 중반 출판사 경영에도 크게 성공해서 강남에 5층짜리 건물을 샀다. 출판사가 커지면서 직원도 몇 배나 늘었다. 그에게 ‘출판기획의 천재’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운도 따랐지만 정말 일에 미친 듯이 자신을 다 바쳤죠. 눈뜨고 있는 동안은 오직 무슨 책을 어떻게 만들까 하는 생각만 했어요. 놀 줄도 몰랐고, 개인 시간도 없었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거의 없었죠. 어느 날 제 인생의 초안이 떠올랐어요. 마음껏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전업작가로 사는 게 제 인생의 목표였거든요. 출퇴근하는 생활이 더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지겨워졌어요. 그래서 미련 없이 사업을 접었습니다.” 출판사를 접은 뒤 시공사와 계약을 맺고 《20세기 한국문학의 탐구》 다섯 권을 서교동의 한 낡은 오피스텔에서 썼다. 1993년에 시작해서 2000년 11월에 완간했으니 7년이나 걸린 큰 작업이었다. 장 시인이 쓴 원고는 200자 원고지 1만5000장에 달했다. “7년 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글쓰기를 하면서 쓰는 것에 대한 공포감을 완전히 떨쳐냈어요. 그 이후 글쓰기에 탄력을 받아 전업작가가 될 수 있었죠.” 마흔 살에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한적한 시골로 터전을 옮겼다. 사업을 정리하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이 없었다. 출판사가 번창할 때 노후를 위해 사놓은 경기도 안성의 호수가 바라보이는 땅에 근처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지었다.  “출판사를 정리할 때 몸만 나왔어요. 아무 생계수단도 없이 출판사를 접었으니 굉장히 막막했죠. 시골로 온 것은 실존적 결단이었어요. 스스로 낙후와 고립과 유폐를 선택한 거죠. 컨베이어 벨트처럼 돌아가는 문명세계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난 겁니다. 가난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시골에 내려와 두 해 동안은 물(호수)만 바라보고 살았어요.” 장 시인은 시골에서 노자·장자 철학과 주역을 공부하며 새로운 지적 충전의 기회를 가졌다. 그에게 동양철학은 지적인 신세계였다. 동양철학과 더불어 니체와 하이데거, 그리고 들뢰즈·벤야민· 지그문트 바우만 등 서양 철학자들의 책에 빠져 살았다. 장 시인은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책을 읽는다. 이런 독서 편력이 지적 자양분이 되어 전업작가로 나선 뒤 숱한 책을 쓰게 했다. 최근 그의 저술활동은 가히 활화산같이 폭발적이다. 올해 신작 10여 권이 나올 예정이다. 책의 종류는 문학평론·철학서·에세이·그림책 등 다양하다.  “올해 말 저서가 80권을 넘어설 거예요. 읽은 책들이 제 내면에서 융합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솟아나죠. 왕성한 글쓰기가 가능한 이유입니다.” 장 시인은 날마다 눈뜨면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새로 나온 책들의 목록을 훑어보고 필요한 책들을 주문한다. 매주 1~2회 책을 주문하는데, 해마다 새 책이 1000여 권씩 는다고 한다. 책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읽고 분류해서 서가에 꽂는다. 어떤 책은 두세 번 거듭해서 읽기도 한다. ‘날마다 읽고 쓰는 사람’ 혹은 ‘독서광’이란 말이 과하지 않다.  “제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사과를 지하창고에 가득 갖고 있는 사람보다 손에 사과를 들고 씹어 먹는 사람이 더 행복합니다. 소유 욕심을 버리면 사는 일은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어요. 저는 문학과 철학에서 낙관주의를 배웠습니다. 시와 문학이 새롭게 세계와 마주하는 젊은이에게도 용기를 줄 거라고 믿어요.”  장 시인은 책의 서문에서 “어린 아들이 있다면 등을 곧게 펴고 앉아 시를 읽게 하라”고 썼다. 그다음 단호한 문장이 이어진다. “허무에 쉬이 감염되는 나약한 아들 따위는 키울 필요 없다. 선승이 좌선하듯 시를 읽어라. 시와 좌선은 다 같이 본래 자기를 여미고, 여린 마음을 단련하도록 이끈다.” 날마다 ‘좌선하듯’ 시를 읽고 쓰는 장 시인의 모습이 두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628    우리 민족 문단 최초의 시인 댓글:  조회:4700  추천:0  2015-07-06
해방전 최초의 조선족 시인- 리욱     시인 리욱(1907-1984)은 중국조선족문단과 한국문단에 널리 알려진 저명한 시인이다. 그는 간도문학의 개척자이며 대표자로서 널리 추앙 받고있는 민족시인이다. 그는 간도문학을 한국문학이 아닌 중국내 조선인문학으로서 자리를 잡게 한 최초의 문학인으로서 일생동안 그 터전을 갈고 닦아왔다. 리욱시인은 중국조선인문학의 몇개의 《최초》를 독점함으로서 그  가치를 빛내고 있다.  리욱은 중국조선족문학의 터닦기를 시작한 최초의 문학인으로서 1924년에 《생명의 례물》을 《간도일보》에 발표하였으며 1947년 광복직후 최초로 개인시집 《북두성》을 출판하였으며 1956년 북경에서 최초로 중국작가협회 정식 회원으로 됐으며 1957년 최초로 북경 작가출판사에서 중문시집 《장백산하》를 출판하였으며 최초로 《중국현대문학사》의 한페지를 장식하였다.  리욱은 1907년 7월 25일 로씨야 부라디보스톡 신안촌(고려촌)에서 출생, 소학교를 졸업하고 사숙공부를 하며 소시적부터 조부의 슬항서 사서오경과 절구를 배웠다. 1923년 4월 룡정 동흥중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공부했으며 1924년 훈춘 창동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는 한편 계몽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1924년 처녀작 《생명의 례물》을 《간도일보》에 발표한 뒤를 이어 20년대에 성정시 《눈》, 《봄비》등을 쓰고 30년대를 잡아들어 《님 찾는 마음》(1930),《송년사》(1935), 《금붕어》(1938) 등을 《조선문학》, 《만가일보》, 《만선일보》,  《조광》잡지들에 발표했고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조선일보》의 만주특파기자로 있었기에 일제 간도헌병대의 검은 당안에는 리성학을 위험인물로 지목했다.  이 시기 리욱은 월촌, 월파, 월초, 월추, 단립, 백파, 춘파 등 십여가지 필명을 사용하였다.  1940년 8월 일제에 의해 《조선일보》가 《동아일보》와 함께 강제로 페간되자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조양천, 화룡 일대에서 광석탐사를 했다. 이 시기 리욱의 시를 당시  평론가  김우철은 1940년 5월 15일자 《만선일보》에 이렇게 적었다.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그 지향! 그것만으로 신전시인의 명예를 차줄수있지 않을까.ㅁㅁ과 케케묵은 감각의 울타리안에서 시를 창조하는 대신 시를 복제(모방)하는  이미 퇴색한 청년시인들에 비해 볼 때 아직 체내에 미숙한 오관을 가지고 떠리는 두손과 두팔을 한껏 벌리어 새로운 의 세계로! 항시 비상을 익망하는 젊은 시인—신세대, 시인들의 활기를 나는 놉히  사고 싶다. 그러나 지나친 바상은 오히려 허망과 를 동반하는수가 있자 않을까? 무의미의 탐미성을 강조하는 슐레알리스트들의 시로에는 경복할수 없으므로 의미의 혼란으로 충만되여 그것이 반대로 무의미한 시작품으로 화해버리는 이런 류의 시를 쓰는 무의미를 월촌씨에게 삼가 경고하고 싶다. 의미의 람용으로 시인자신이 나중엔 판타지병에 걸려 자기도 리해하지 못하는 무의미한 푸념과 넉두리와 언어의 유희로 충만된 시를 쓰는 수가 많고 이런 시를 우리를 재ㅗ있는 신인들에게서 간혹 볼수 있다. 그러나 월촌씨는 아직 그런 환상병에 걸림지 안흘만한 자성과 건강을 가지고 있다.》  리욱의 해방전 서정시는 한시 12수를 포괄하여 민족적 특성이 짙고 랑만주의색채가 농후한것이 특징적이다.《그리고 그의 시에서는 상징주의적이며 은유적인 기법들을 재치있게 운용함으로써 자기나름의 시풍을 보여주고 있다》  광복후 리욱은 리학성이란 이름 대신 리욱이란 이름을 사용하였다.그의 창작은 사회주의, 사실주의 경향으로 발돋음하게 되였으며 시집《고향사람들》(민족출판사, 1957), 《연변의 노래》(작가출판사, 1957),《장백산하》(작가출판사, 1959) 등 시집들을 조, 한 두가지 문자로 북경에서 출판하였다. 서사시《고향사람들》은 중국조선족문단에서 최초로 창작된 서사시이다.  이는 리욱의 시창작의 고봉을 이루는 성과작이며 건국후 조선족시문학에 있어서는 하나의 리정표로 되고있다.  리욱의 한시를 보면 해방전에는 주로 절구를 쓰고 간혹 률시도 썼다. 해방후에는 대체로 사를 위주로 썼다. 그의 해방전 한시에는 애환과 향유가 섞여 있다.유고로 남긴 한시집 《협중시사》는 108수가 수록되여 있다. 김동훈은 《리욱선생은 우리 민족 한시문학의 마지막장을 휘황하게 장식한 자랑스러운 시인이다》고 말했고 조규익은 《그의 한시문학은 결코 중국문학의 아류거나 단순한 습작품이 아니라 중국현대상류문학에 속하는, 선명한 독자적개성을 띤 하나의 정신적재부이다》고 주장하고있다.  시인 리욱은 1984년 2월 26일 별세, 연변대학 학부4층 강당에서 전례없이 륭성히 추도식을 거행했다. 그의 시비는 화룡현 로과향 호곡령정상에 세워졌다. 맞은 켠은 조선 무산, 시《할아버지 마음》(1957)이 시비에 새겨져 특수한 의의를 갖게 되였다.  주성화 기자        무    제     민상의 길을 더듬는 고원 시달린 내맘 조립니다  아롱진 봄꿈 깨기전에 갈니페 찬서리 매치거니  푸른 호수에 잠드는 님의 넉시여! 저달의 기움 알것이로다  피는 꽃도 서름이 잇고 지는 님도 희망이 잇다  오! 숨차게 달리는 내맘 애닯은 옛자취 차즘인지      
627    우리 민족 문단 최초의 시선집 댓글:  조회:4458  추천:0  2015-07-06
  광복전 우리 민족 문단 둘러보기 우리 민족 문단 최초의 시선집 과     과 은 우리 민족 문단이 형성되어 최초로 간행된 시선집들입니다. 처음 이 두 시선집 복사본을 읽는 저의 마음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 연구는 비록 저의 전문 연구분야는 아니지만 적어도 시를 보는 눈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오늘날의 우리 시선집마저 거기에 비견될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이었습니다. 그때가 아마도 1995년인 것으로 기억됩니다. 지금 시선집을 편집한다면 모르겠습니다만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시의 수준은 아직도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라 더 이상 전개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그만큼 저에게 큰 충격을 줄 정도로 상당히 좋은 시들이 많았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은 康德九年(1942년) 9월 29일 第一協和俱樂部文化部에 의해 간행되었습니다. 먼저 편집자인 朴八陽이 쓴 「序」를 읽어보면 대략적인 편집 취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滿洲를 사랑하는 心情은 이땅 이 나라의 大氣를 呼吸하고 살아온 우리가 아니면 想像하기도 어려우리라. 남이야 무어라 하거나 滿洲는우리를 길러준 어머비요 사랑하여 안어준 안해이다.   이 나라의 單調로운 퍼언한 地平線 紅柿가치 새빨간 저녁해 모양 새 업는 우리 部落의 土城, 머언 白楊나무숩 적은 개울물 하나 하잘것 업는 돌덩이, 흑덩이 하나하나에도 우리네 歷史와 傳說과 限업는 愛情이 속속드리 숨여잇다. 그뿐이랴. 우리는    「거기서 새로운 言語를 배웟고     새로운 行動을 배웟고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世界와     새로운 肉體와를 어텃나니」                     (咸亨洙氏「歸國」의 一節)   그럼으로 이땅 이 나라의 自然과 사람은 完全히 愛撫하는 우리 肉體의 한 部分이다.   長白靈峰의 품미를 의지하고 살은 우리요 黑龍長江의 울타리 안에서 살은 우리가 아닌가? 松花江언덕 杏花村에 情드리고 살고 海蘭江 白砂場에 옛이야기를 주으며 귀로 「오랑캐고개」의 傳說과 눈으로 「渤海古址 六宮의 남은 자최 주춧돌도 느근것」(尹海榮)을 듯고 보고 살어온 우리다.   아아 滿洲땅! 꿈에도 못닛는 우리 故鄕 우리 나라가 안인가?    「언제든지 고읍고 아름다운     장미꼿 송이를 안고     머ꠏꠏꠏㄴ 동산으로     시들지 안는 세월을 차저 왓읍니다」              (趙鶴來氏「滿洲에서」의 一節)    「漆夜에 불빗 思慕하듯     誠實하고 바른길 思慕케하소서     깨끗한 空氣 呼吸하며     健全한 生의塔 싸케 하소서」              (張起善氏「새날의 祈願」의 一節)   시들지 안는 歲月을 차저와서 健全한 生의 塔을 싸흐려는 우리들의 祈願이 이땅 이 나라의 한울과 별과 개울과 密林과 바람과 部落속에 서리여 잇는것을 이곳에 사는 사람으로 누가 是認하지 아니하랴?   愛誦하지 아니할수 업는 이 한 卷의 冊子 “滿洲詩人集”이 上梓되는것은 滿洲朝鮮人 辛酸한 한世紀 살림에 잇서서 可謂 最初의 花壇에 핀 꼬치요 또 生活文化의 結實이니 이것이 주는바 無量한 感懷를 무엇으로 表示하랴?   이에 깃쁨을 스스로 못이기여 敢히 拙筆을 들어 猥濫하게도 序에 代하는 所以다.   널리 江湖에 推擧하야 마지 안는다.   (康德九年六月二十五日 於新京 朴八陽識)     이주민의 문학 즉 조선족 문학의 특수성과 정체성을 충분히 인식한 글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목차에 이어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어 참고로 제시합니다. 시집답게 인사말도 행을 나누어 해놓았네요.   建國十週年을 마저 이 詩集을 刊行함에 際하야     序文을 執筆해주신 朴八陽氏와     玉稿를 惠送해주신 詩友諸兄과     經費를 援助해주신 大山基行 江川龍祚 兩氏와     出版의 便宜를 돌보아주신 安田觀祐 平川塋澈 宗方龍雄 諸氏와     印刷로 犧牲을 돌보지 안흐신 靑山茂夫氏와     아울러 勞苦를 아끼지 안흔 印刷所 松田秀吉氏 外 從業員諸兄과     끈임업이 刊行을 督勵해주신 江湖諸賢에게 삼가 衷心으로 深謝의 意를 表하나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잘 아는 박팔양 시인 외에 나오는 이름들은 일본식 이름인데 그렇다고 이들이 꼭 일본인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이미 강압에 의해 창씨개명이 된 때였으니까요. 다수가 조선인일 가능성이 오히려 더 많겠지요. 글의 성격상 작품 전부를 소개할 수 없으므로 목차의 순서에 따라 제목들만 올려 놓습니다.   柳致環篇: 편지/歸故/哈爾濱道裡公園 尹海榮篇: 海蘭江/오랑캐고개/四季/渤海古址 申尙寶篇: 흑과갓치살갯소/沙漠/旅人宿/乞人 宋鐵利篇: 爐邊吟/도라지/북쪽하늘엔/追憶 趙鶴來篇: 驛/心紋/彷徨/滿洲에서 金朝奎篇: 少年一代記/*胡弓/室內 咸亨洙篇: 나의 神은/歸國/나는하나의/悲哀 張起善篇: 새날의 祈願/아츰/구름/꿈 蔡禎麟篇: 별/북으로간다/밤 千靑松篇: 先驅民/古畵 朴八陽篇: 季節의 幻像/사랑함     보시는 바와 같이 11명 시인의 시 40편이 수록된 얄팍한 시선집입니다만 이것이 1942년에 간행된 우리 시집임을 감안하면 참으로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들 시인들 중에서 유치환, 윤해영, 김조규, 함형수, 박팔양 등은 한국현대문학사에서도 거론되는 인물들이지요.     다음은 그 다음해인 康德九年(1943년) 10월 10일 間島省 延吉街 (株)藝文堂 發行으로 된 을 살펴 보겠습니다. 이 시집은 金朝奎가 편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의 는 아무래도 金朝奎의 글이 되겠지요.     建國 十週年의 聖典. 우리는 敬虔한 世紀의 奇蹟을 가지고 있다. 神恷와 計劃과 經綸, 그리고 生活, 이속에 道義의 나라 滿洲國의 建設이 있었고 그러므로 또한 우리들의 자랑도 크다.   이 奇蹟과 자랑속에 뮤-즈도 자랐다. 不幸한 産聲을 울린 流浪의 夜宿으로볼어 거룩한 建設우에 絢爛한 花環을 걸기까지 二十年, 츤도라의 괴로운 旅程속에서도 우리 뮤-즈는 歷史的인 自己의 位相과 方向에 銳敏하기에 怠慢치 않었다. 이곳 大陸의 雄圖에서 一大浪漫을 創作하며 呼吸하는 거록한 情熱과 새로운 意慾―詞華集의 要求도 바로 여기에 있으며 우리는 이 微誠으로나마 빛난 建國十週年을 慶祝함과 아울러 大東亞新秋序文化建設에 參與하련다.   化裝이 매끈치 못하다면 울든 凍土를 가르치겠다. 목소리가 거츨다면 密林과 平原을 보이겠다. 이제 不幸하였든 뮤-즈는 天衣를 입고 雪原우으로 도로이카를 달려도 좋을겄이다.   南風이 불면 꽃씨를 뿌리겠노라   눈이 나리면 설매에 무지개를 달겠노라                壬午 여름, 編者 識.     서문의 취지는 앞의 에 나오는 박팔양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비록 더러 친일적 혹은 친만주국적인 문구들이 보이지만 일제의 검열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액면 그대로만 이해해서는 안 될 줄 압니다.   역시 수록 시인과 작품 목록을 제시해 보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金達鎭: 龍井/뜰/菊花/꼬아리 열매 金北原: 봄을 기다린다/看護婦/山/旗/그 넓은 드을에 金朝奎: 延吉驛 가는길/胡弓/밤의 倫理/葬列/南風 南勝景: 北滿素描/井蛙/奇童/海賊 李琇馨: 人間 나르시스/娼婦의 命令的 海洋圖/未明의 노래 李鶴城: 나의 노래/철쭉花/五月/落葉/별 李豪男: 신장노/애기와 코스모스/팽이와 팽이채/촌 정거장/葡萄 넝쿨 孫素熙: 밤車/어둠 속에서/失題 宋鐵利: 나의 노래가 담길/落鄕/五月 柳致環: 生命의 書/怒한 山/陰獸 趙鶴來: 流域/거리로 가는 마음/憧憬/街燈/春詞 千靑松: 드메/무덤/書堂 咸亨洙: 家族/化石의 고개/개아미와 같이/胡蝶夢     이 시집에는 13명 시인의 작품 52편이 수록되었습니다. 보다는 시인 수나 작품 양적으로 조금 더 많은 셈이지요. 그리고 여기서 앞의 시집에 같이 수록된 시인 외에 김북원, 손소희 등도 한국문학사에 자주 거론되는 시인들이지요.     그런데 세심한 독자들은 이 두 시집에 6명의 시인이 중복 수록되었음을 발견하였을 것입니다. 柳致環, 宋鐵利, 趙鶴來, 金朝奎, 咸亨洙, 千靑松이 그에 속하는데 작품은 김조규의 「胡弓」 외에는 모두 다른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두 시집에 수록된 시인은 모두 18명이 되고 작품은 91편 되는 셈이군요.     이 정도의 시인과 작품이라면 당시 우리 시단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여기에는 한국 현대문학사에서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시인들도 여러 명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우리 문학은 시 분야에서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셈이 된다 하겠습니다.     이것은 시의 장르적 특성 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두 시집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당시 에 게재되었던 것인데 비록 소설가들 중에서도 당시 한국 문단에서 중견역할을 하던 이들이 상당 수 이주해왔었지만 소설의 창작 주기나 현실 반영의 특징들 때문에, 그리고 지면의 한계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진한 반면 시작품은 분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신문에 많은 양을 수용할 수가 있었고 또 현실 재현의 즉각성이라는 장르적 특징 때문에 좋은 시들이 많이 게재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컨대 과 은 광복전 우리 시문학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두 시집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이 시집들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들 중에서 나 다른 지면에 게재된 작품들도 좋은 작품들이 더러 있지만 이 두 시집이 대표성을 띤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쉬움은 이 두 시집에 시인들의 약력이 올라 있지 않은 것입니다. 다음에 소개하게 될 재만조선인작품집 의 경우처럼 짧게나마 문인들의 약력을 올렸더라면 연구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을텐데 말이죠. 앞으로 이 두 시집의 작품들이 우리 문학전집에 수록되어 새로 간행됨으로써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626    <<풀보다 먼저 눕고 먼저 울고 먼저 일어서는>> -"국민시인" 댓글:  조회:5068  추천:0  2015-07-05
  김수영         -거대한 뿌리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8. 15 이후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4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 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3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 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들 뿐이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 번도 장안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 진창을 연상하고 寅煥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시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는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아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제3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지금은 이어령 선생의 책을 보면서 교양수준이나 높일 궁리를 하지만 대학 다닐때에는 김수영이나 김지하 김남주 같은 이들의 시를 열심히 외웠다. 그 중 김수영 선생은 문장이 김지하나 김남주 같이 강렬하진 않아도 읽다보면 '세상이 어떤 것이고 그래서 지식인은 무엇을 할까 한다'라는 도발적인 발언이 상당히 인상깊었다. 더욱이 김수영의 시처럼 육두문자를 시적인 은유 나 상징 속에 섞어 써도 천박하지 않게 느껴지는 시는 거의 드물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이어령 선생과 대조적이다. 지식인의 교양으로 무장한 이어령 선생은 순수문학을 주장하며 국어의 세련미를 갉고 닦았고, 김수영 선생은 순수를 약간 비웃으며 참여시의 부흥을 가져왔으니. 그 둘 사이의 순수문학논쟁이 어떤 것인지 대충 느낌이 간다.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이들이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라는 박영희의 언술을 인용할때 김수영은 "나는 더러운 진창을 사랑한다. 진창을 사랑하지 않는 넘들은 미국넘 XXX나 빨아라 "라고 말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등학교 국어 책은 김수영을 모더니즘 시인으로 분류하지만 그의 시 거대한 뿌리는 마치 탈근대론의 개론서를 읽는 듯 하다. 원래 모더니즘, 즉 근대는 사회를 합리적으로 재조정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한다. 근대는 그런 믿음으로 인류를 봉건적 폭력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탈근대관점에서는 그런 믿음 또한 폭력적이다. 계몽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부정하고 청산하려는 시도는  또 다른 폭력을 잉태하기 마련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분명 근대정신의 전형이다. 하지만 김수영은 그들에게 '네에미 X'라는 육두문자를 날려준다. 아마 김수영이 보기엔 그들은 진창을 사랑하지 않는 계몽의 화신들이고 통일도 학구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요강, 신전, 무식쟁이 등 무수히 많은 반동에 대한 애정이 이념의 폭력성으로 부터 그들을 구해내리라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대한 뿌리'의 가장 큰 미덕은 그 애정이 맹목적이지 않다는데 있다. 아래의 싯구처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그가 어떤 면에선 잔소리 많은 역사선생님같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그들은 아무도 상상 못하는 거대한 뿌리 그 자체이기에   개인적으로 '거대한 뿌리'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비숍 여사의 등장이다. 비숍은 분명 서구적 근대화의 상징이다. 그것도 가장 악랄한 근대정신으로 평가받는 제국주의의 화신이다. 그런데 김수영은 비숍의 시선으로 조선역사를 이해한 후 진창에 대한 애정이 깊어만 간다. 어쩌면 김수영은 우리가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학문체계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심각하게 생각했고 그 사실을 그냥 인정하기로 마음 먹었는지도 모를일이다. 서구인의 시선으로 조선을 바라볼 수 밖에 없더라도 애정을 팔아 먹지 말라달라는 당부를 하려고 '거대한 뿌리'를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소월, 한용운, 윤동주, 서정주 등과는 너무나 다른 색깔과 목소리를 지니고 있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주저 없이 ‘국민시인’으로 불리는 김수영(1921-1968)이 한때 소설을 쓰고 싶어 했고, 실제 소설을 썼다는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물론 그의 소설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고 그는 다시 시 쓰기에 매진했다. (짧은 분량의 소설 몇 편은 김수영 스스로 불태워버렸고, 계획했던 장편소설은 서두만을 쓰는데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어쨌든 ‘시인 김수영’이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은 김수영과 김수영의 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서울, 서울, 서울에 오래 살면서 나는 서울이 무엇인지 모른다. 내가 소설을 써보려는 것도 이 알 수 없는 서울을 알려고 하는 괴로운 몸부림일 것이다. 알 듯 알 듯 하면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서울은 무엇인가? 이 결론 없는 인생 같은 서울, 괴상하고 불쌍한 서울, 이 길고 긴 ‘서울’에서까지의 숨 가쁜 노정에서 잠시 땀이라도 씻고 가기 위한 짧고 안타까운 휴식 같은 것이 나의 소설일 것이다.” 이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돌아온 김수영이 억지춘향격인 신문기자로, 번역료를 떼이기 일쑤인 번역가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던 무렵에 쓴 메모의 일부다. ‘서울을 알려고 하는 괴로운 몸부림’, ‘서울에서까지의 숨 가쁜 노정’이란 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김수영은 일제 식민지배가 완전히 고착된 후인 192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환경 덕에 비록 병약하기는 했지만 부족함 없이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성장했다. 해방 전에는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가 징병을 피해 만주로 피신, 다시 해방 후에 서울로 돌아와 여러 문인들과 교류하며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문물을 향유하고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피난을 떠나지 못한 채 서울에 남아 있던 김수영은 인민군에 의해 다른 문인들과 함께 북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강제 징병되어 훈련을 받고 의용군으로 전장에 배치됐다.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유엔군의 포로 신세가 된 김수영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억류된다.  영어에 능통했던 덕에 통역 담당이 되었지만 포로수용소에서의 체험은 진저리처지는 지옥 그 자체였다. 피난지인 부산에 머물다 전쟁이 끝난 후 가까스로 서울로 돌아왔지만, 완전히 폐허가 된 서울은 그에게 ‘아늑하고 푸근한 고향’일 수 없었다.  집안 대대로 서울토박이인 김수영에게 서울은 고향, 그러나 언제나 ‘낯선 고향’이었다. 남의 나라의 식민지가 된 고향에서 그는 남의 나라의 말을 모국어처럼 읽고 쓰며 성장기를 보냈다. 유학으로, 피신으로, 전쟁으로 고향을 등졌다가 천신만고 끝에 다시 고향에 돌아와도 서울은 그에게 어머니의 따뜻한 품과 같은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대신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혼란과 혼돈, 아귀다툼 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대립, 사회적 모순과 경제적 불안뿐이었다. 김수영은 환멸과 무기력에 빠져들었다. 서울은 그 자신이 표현한대로 ‘결론 없는 인생’, ‘괴상하고 불쌍한’, 타향보다 낯선 고향이었던 것이다.  ‘서울을 알려고 하는 괴로운 몸부림’과 일제강점기-해방공간-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그 ‘숨 가쁜 노정’은 과연 시보다는 소설에 어울릴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설을 쓰려던 김수영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속의 ‘산문적 열망’을 ‘시’로 승화시키는 일이었다. 시가 김수영의 진정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서울에서 안락함과 푸근함을 느낄 수 없었지만(자신의 고향을 찬미하는 시를 지은 시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모순과 부조리로 점철된 인간과 역사의 모습을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김수영은 특유의 커다란 두 눈을 부릅뜨고, 분노와 자유를 가슴에 담고, 고향인 서울을, 그 격동의 현장을 지켜보았다. 그것이 우리가 “어째서 자유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 가를”이나 “혁명은 /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등의 싯귀를 기억하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처럼 결국 혁명은 미완으로 그쳤고, 김수영은 절망 속에서 군사독재의 시작을 지켜봐야 했다.  김수영은 불 같이 뜨거운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넘치는 에너지와 매력의 소유자이기도 했지만 정서적으로 불안정했으며 극단적인 성격과 폭음, 기행 등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적잖이 힘겹게 했다.  반복되는 우울과 무력감으로 스스로도 고통 받았다. 물론 그러한 것들은 창작의 동력이 되어 불멸의 시를 탄생시켰고 빛나는 예술적 성취도 이뤘다. 그러나 ‘시인 김수영’이 아닌 ‘인간 김수영’은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외롭고 불완전한 인간이었다.  은 뜨거운 격정과 치열한 예술정신을 지닌 시인 김수영을 그리면서도, 동시에 객관적인 시선과 균형 잡힌 목소리로 인간 김수영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이 책이 역시 당대의 시인인 최하림에 의해서 쓰여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평전의 행간 곳곳에서 김수영을 향한 최하림의 지극한 애정과, 같은 시인으로서 고민하고 공감하는 삶의 진실들이 묻어난다.  그러나 최하림은 김수영을 찬양하지는 않는다. “시는 새로운 면만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시대를 증명하는 목소리도 아니다. 시는 인간의 정서적이며 지적인 어떤 정신과 기능의 통일체다”라고 말하며 그는 숨는 듯 드러나는 저자로 시인으로서의 김수영과 인간으로서의 김수영을 조화롭게 아우르고 있다.  나아가 이 평전은 한 인간의 전부, 그 모든 것을 온전하고 완벽하게 재현하고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독자에게 신뢰를 얻고 평전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김수영은 한때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 또한 김수영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남편이었고, 형제였고, 연인이었고, 친구였다.  직장을 그만둔 후 집에 닭장을 짓고 양계를 업으로 삼기도 했고, 신문을 통해 문사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술에 취해 서울의 쓸쓸한 밤거리를 비틀비틀 걸어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분명 시인이었다. 이름뿐인, 허울뿐인 시인이 아니라 가슴으로 시를 쓰는 진정한 시인이었다. 그의 시들과 이 책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가 쓴 시처럼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선다.’ 그러나 그런 풀보다 먼저 눕고 먼저 울고 먼저 일어서는, 김수영, 그는 시인이다.     
625    윤동주와 정지용, 리륙사와 로신 // <<향수>>와 <<추억>> 댓글:  조회:6414  추천:0  2015-07-04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이다. 아명은 윤해환(尹海煥),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중화민국 지린 성 연변 용정에서 출생,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숭실중학교 때 처음 시작을 발표하였고,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일본 유학 후 도시샤 대학 재학 중,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사인은 일본의 소금물 생체실험으로 인한 사망인 것으로 사료된다는 견해가 있고 또한 그의 사후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이 제기되었으나 불확실하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일본식 창씨개명은 히라누마 도슈(平沼東柱)이다.    일제 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시는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 등을 소재로 하였다. 그의 친구이자 사촌인 송몽규 역시 독립운동에 가담하려다가 체포되어 일제의 생체 실험 대상자로 분류되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1990년대 후반 이후 그의 창씨개명 '히라누마'가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송몽규는 고종 사촌이었고, 가수 윤형주는 6촌 재종형제간이기도 하다.    생애 초반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당시 북간도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明東村, 지금의 지린 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용정시 지신진)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으로 간도 이주민 3세였다.    19세기 말,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에 기근이 심해지자 조선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간도와 연해주 등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윤동주의 증조부인 윤재옥도 집안을 이끌고 1886년경 함경도에서 만주로 이주하였다. 윤동주의 증조부인 윤재옥은 함경북도 종서군 동풍면 상장포에 살다가 1886년 북간도 자동으로 이주하였으며 할아버지 윤하현은 밍둥춘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3] 아버지 윤영석은 1910년 독립지사인 김약연의 누이동생 김용과 결혼하여 명동촌에 정착하게 된다.    그는 어려서 기독교인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한다. 그의 고모 윤씨는 송신영에게 시집갔는데, 고모의 아들이 독립운동가이자 그의 친구였던 송몽규였다. 당숙은 윤영춘으로 후일 가수가 되는 윤형주는 그의 6촌 재종이었다.    소년 시절  1925년 명동소학교(明東小學校)에 입학하여 재학 시절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을 발간하였다.[4]    중학 시절  1931년 14세에 명동소학교(明東小學校)를 졸업하고, 중국인 관립학교인 대랍자학교(大拉子學校)에 다니다 가족이 용정으로 이사하여, 용정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935년 소학교 동창인 문익환이 다니고 있는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전학하였다. 그해 10월, 숭실중학교 학생회가 간행한 학우지 숭실활천(崇實活泉) 제15호에 시 공상(空想)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신사참배 거부로 숭실중학교가 폐교되어, 문익환과 함께 용정에 있는 광명중학교로 편입하였다. 광명중에서 그는 [정일권]] 등을 만나게 된다.    연희전문 시절.  1937년 광명중학교 졸업반일 무렵, 상급학교 진학문제를 놓고 부친(의학과 진학 희망)과 갈등하나, 조부의 개입으로 연전 문과 진학을 결정한다. 1938년 2월 17일 광명중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京城)으로 유학, 그해 4월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하숙생활을 하며 그는 저녁밤 하숙집 근처를 산책하며 시상을 떠올리고 시를 짓거나 담론을 하였다.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기숙사를 나와 북아현동, 서소문 등지에서 하숙생활을 했다. 이때 그는 친구 라사행과 함께 정지용 등을 방문, 시에 관한 토론을 하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 해 《소년(少年)》지에 시를 발표하며 처음으로 원고료를 받기도 했다.    1941년 12월 27일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이 때에 틈틈이 썼던 시들 중 19편을 골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일본 유학  1942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교대학(立敎)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10월 도쿄 도시샤대학(同志社) 영문학과에 편입하였다.[5] 도시샤대학은 윤동주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정지용이 다닌 학교로 일본 조합교회에서 경영하는 기독교계 학교였다.[6]    창씨개명  윤동주 집안은 1941년 말 '히라누마'(平沼)로 창씨한 것으로 돼 있다. 일본 유학에 뜻을 둔 윤동주의 도일을 위해선 성씨를 히라누마로 창씨를 개명하게 되었다.    윤동주의 창씨개명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 없는 것이었다. 그의 연보에 의하면 윤동주가 전시의 학제 단축으로 3개월 앞당겨 연희전문학교 4학년을 졸업하면서 1941년 연말에 "고향 집에서 일제의 탄압과 동주의 도일 수속을 위해 성씨를 '히라누마'로 창씨했다. 창씨개명계를 내기 닷새 전에 그는 창씨개명에 따른 고통과 참담한 비애를 그린 시 참회록을 썼다.    윤동주의 창씨개명설은 해방 이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가 1990년대에 와서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 유학생활과 체포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立教大学)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중퇴하여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그러나 그는 불령선인으로 지목되어 일본경찰의 감시를 당하고 있었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4년 3월 31일 교토지방재판소 제1 형사부 이시이 히라오 재판장 명의로 된 판결문은 징역 2년형을 선고하면서 “윤동주는 어릴 적부터 민족학교 교육을 받고 사상적 문화적으로 심독했으며 친구 감화 등에 의해 대단한 민족의식을 갖고 내선(일본과 조선)의 차별 문제에 대하여 깊은 원망의 뜻을 품고 있었고, 조선 독립의 야망을 실현시키려 하는 망동을 했다.”라고 적혀 있다.[11] 교토지방 재판소에서 송몽규와 함께 치안유지법 제5조 위반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되었다.    투옥과 최후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시신은 가족들에게 인도되어 그 해 3월 장례식을 치룬 후 간도 용정에 유해가 묻혔다. 당시 그의 나이 27세였다.    그가 죽고 10일 뒤 '2월 16일 동주 사망, 시체 가지러오라' 는 전보가 고향집에 배달되었다. 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이 시신을 인수, 수습하러 일본으로 건너간 후, 그런데 뒤늦게 '동주 위독하니 보석할 수 있음. 만일 사망시에는 시체를 가져가거나 아니면 큐슈제대(九州帝大) 의학부에 해부용으로 제공할 것임. 속답 바람' 이라는 우편 통지서가 고향집에 배달되었다. 후일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는 이를 두고 "사망 전보보다 10일이나 늦게 온 이것을 본 집안 사람들의 원통함은 이를 갈고도 남음이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옥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았다는 주장 등 그의 죽음은 일제 말기에 있었던 생체실험에 의한 것이라는 의문이 수차례 제기되었다.    사후  1947년 2월 정지용의 소개로 경향신문에 유작이 처음 소개되고 함께 추도회가 거행된다.    1948년 1월, 윤동주의 유작 31편과 정지용의 서문으로 이루어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정음사에서 간행하였다. 이후 1962년 3월부터 독립유공자를 대량으로 발굴 포상할 때, 그에게도 건국공로훈장 서훈이 신청되었으나 유족들이 사양하였다. 1990년 8월 15일에야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85년에는 그의 시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윤동주문학상이 한국문인협회에의해 제정되었다.    작품  윤동주의 시집은 사후에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새 명동》  《서시(序詩)》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이 유고시집에 실려 있다. 1948년의 초간본은 31편이 수록되었으나, 유족들이 보관하고 있던 시를 추가하여 1976년 3판에서는 모두 116편이 실리게 되었다.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경향 및 평가  민족적 저항시인, 강인한 의지와 부드러운 서정을 지닌 시인으로 평가되며, 1986년에는 20대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선정되었다.조선에서는 ‘일제말기 독립의식을 고취한 애국적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시는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내용을 서정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은 사색,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진실한 자기성찰의 의식이 담겨 있다고 평가된다.    학력  명동소학교 졸업  지린 다라쯔 중학교 수료  은진중학교 수료  평안남도 평양 숭실고등보통학교 수료  광명중학교  졸업  경성 연희전문학교 졸업  일본 릿쿄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중퇴  일본 도시샤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제적  상훈 경력[편집]  서울 숭실고등학교 명예 졸업장 추서  1990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  국민훈장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    이육사(李陸史, 1904년 5월 18일 - 1944년 1월 16일)는 한국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본명은 이활(李活)이며 개명하기 전의 이름은 이원록(李源祿)·이원삼(李源三)이다. 육사(陸史)는 그의 아호로 대구형무소 수감생활 중 수감번호인 264를 후일 아호로 썼다.    생애    이육사 동상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진보)이며,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한학을 수학하다가 도산공립보통학교에 진학하여 신학문을 배웠다.    1925년 10대 후반에 가족이 대구로 이사한 뒤 형제들과 함께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7년 10월 18일 일어난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큰형인 원기, 맏동생 원일과 함께 처음 투옥되었다.    이원록의 필명은 여러가지가 있고, 호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가 있어 기재한다. 하나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받은 수인 번호 '264'의 음을 딴 '二六四'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며,'李活'과 '戮史', '肉瀉'를 거쳐 '陸史'로 고쳤다고 전해진다. 1929년 이육사가 대구형무소에서 출옥한 후 요양을 위해 집안어른인 이영우의 집이 있는 포항으로 가서 머문 적이 있었는데, 이육사가 어느 날 이영우에게 "저는 "戮史"란 필명을 가지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말은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라는 의미였다. 당시 역사가 일제 역사이니까 일제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 즉 일본을 패망시키겠다는 의미였다. 이에 이영우는 "표현이 혁명적인 의미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니, 같은 의미를 가지면서도 온건한 '陸史를 쓰라'고 권고하였고, 이를 받아들여 '陸史'로 바꿔 썼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肉瀉'라는 이름은 고기 먹고 설사한다는 뜻으로 당시 일제 강점 상황을 비아냥거리는 의미로, 1932년 조선일보 대구지국 기자로 근무했을 적 대구 약령시에 대한 기사를 네 차례 연재할 때 사용되었다. 이육사의 필명이나 호를 순서대로 정리하면 李活(1926-1939), 大邱二六四(1930), 戮史(1930), 肉瀉(1932), 陸史(1932-1944)와 같고 이원록이 '陸史'로 불리게 된 연유이다.    문단 등단 시기는 《조선일보》에 〈말〉을 발표한 1930년이며,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중국과 대구, 경성부를 오가면서 항일 운동을 하고 시인부락, 자오선 동인으로 작품도 발표했다. 그동안 대구 격문 사건 등으로 수차례 체포, 구금되었다.    1932년 6월 초 중국 베이핑의 만국빈의사에서 대문호 로신을 만나, 동양의 정세를 논하였다. 후일 로신이 사망하자 조선일보에 추도문을 게재하고 그의 작품 《고향》을 번역하여 한국내에 소개하였다.    1943년 어머니와 큰형의 소상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체포되어 베이핑(베이징)으로 압송되었고, 다음해인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주재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 구금 중 순국했다. 둘째동생이 그의 유해를 수습하여 서울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했고, 광복 후 1960년 안동시에 이장했다. 유고시집 《육사시집》(1946)이 동생이자 문학평론가인 이원조에 의해 출간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 강점기 하의 그의 항일 투쟁 활동과 일제 강점기 하의 詩作활동을 기려 '건국포장', '건국훈장 애국장',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탄신 100주년과 순국 60주년을 기념하여 2004년에는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촌마을에 '이육사 문학관'이 건립되었으며 시문학상이 제정되었다. 또한 안동시는 안동 강변도로를 '육사로'로 명명하였다.  ==========================================================================================     창조적 모방을 위하여              -정지용의 [鄕愁]를 중심으로  이병렬(숭실대 국문과 강사)  I. 모방과 표절  예술 행위 혹은 예술 작품의 표절시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저질 시비가 종종 있는 대중가요로부터 소위 국전의 수상작이라는 고급 예술작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심심찮게 이 표절시비를 보아 왔으며, 이러한 현상은 문학작품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이 얼마 후 외국 작가의 작품을 모방한 것으로 된다든지, 베스트셀러 대열에 낀 어느 소설이 국내 몇몇 작가의 작품을 조사 하나 틀리지 않게 짜집기한 것으로 독자에 의해 고발된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근년의 일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일은 모방과 표절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방은 말 그대로 모방이다. 남의 것을 본 떠서 하는 행위이다. 즉 남의 것을 이용하되 결과는 그것과 똑같지 않다는 것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격언처럼 모방은 또 다른 창조를 전제로 해야한다. 모방이 이러한 창조로 나아가지 못하고 단순한 모방에 그칠 때, 우리는 그것을 아류라고 부르며 폄하하게 됨은 물론 나아가 표절이라고 한다.  표절은 글자 그대로 남의 것을 허락없이 베끼는 행위이다. 근래에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어색한 사조 아래 남의 것을 그대로 베끼는 행위가 모든 예술작품에 성행하다시피 하고 있으나, 그러한 행위를 통해 또 다른 예술적 창조를 하지 못하면 그것은 단순한 베끼기에 불과할 것이며, 이는 바로 무슨 무슨 사조라는 그럴싸한 이름아래 숨겨진 표절에 해당하는 것이다.  모방이든 표절이든 예술가에게는 특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남의 영감을 이용하여 나의 작품을 완성하겠다는 것은 결국 남의 피와 땀을 그저 먹겠다는 도둑 심보에 다름 아니다. 이는 법의 문제보다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남의 것을 모방 혹은 표절하여 또 다른 예술적 창조를 이루었는지의 여부를 가리는 것은 비평가나 독자의 몫이지만, 근본적으로 모방이나 표절은 한 당사자가 더욱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표절시비의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예술가의 예술행위는 모방이나 표절에서 시작한다는 데에 있다. 모든 예술행위, 예술작품이 자연을 모방한 것이라는 문학에서의 모방론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천재가 아닌 이상, 공자가 이른대로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가 아닌 이상 예술가들의 학습기 혹은 습작기 작품은 앞선 예술 작품을 모방하거나 표절하면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그가 문학 소년 혹은 문학 소녀였을 시절에, 소월이나 윤동주, 혹은 만해나 미당의 여러 시에서 따온 구절들을 적당히 배열해 놓고 시를 썼다는 쾌감에 젖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방과 표절을 통한 학습기와 습작기를 거치면서 예술가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되고, 그 목소리가 뚜렷하면 뚜렷할수록 그는 개성있는 예술가로 평가받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예술행위에서 모방과 표절은 있을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모방이나 표절이어서는 참다운 예술행위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모방과 표절은, 그것을 빌어 또 다른 예술적 창조를 이루어낼 때에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창조적인 모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이제 문제는 어떻게 모방하고 표절을 하여 예술적인 창조로까지 나아가느냐에 있다. 이러한 물음에 적절한 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정지용의 와 이 작품을 모방한 작품(필자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인 트럼블 스티크니의 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답을 대신하려 한다. 먼저 트럼블 스티크니의 이란 작품을 소개하고, 이어서 정지용의 생애와 를 제시한 다음, 두 작품의 비교 분석을 통해 창조적 모방의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하고자 한다.  II. 트러블 스티크니의   미국의 시인 트럼블 스티크니(Joseph Trumbull Stickney)는 1874년 6월 20일 제네바에서 태어나 다섯 살까지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살다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왔다. 그의 아버지(Austin Stickney)는 트리니티 대학의 라틴학과장이었고, 어머니(Harriet champion Stickney)는 코네티컷 주지사의 직계 후손이었다. 그의 부모가 오랜 동안 주로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클리브돈과 뉴욕에서의 1, 2년을 제외하면, 스티크니는 어린 시절을 주로 유럽에서 보냈다. 게다가 하바드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의 유일한 선생이었다.  1895년 문학사학위를 받은 스티크니는 곧 프랑스로 가 소르본느 대학에서 7년 동안 희랍 문학과 산스크리트 문학을 공부했으며, 1903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그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은 후 3개월 간 그리스에 있다가 하바드 대학 희랍문학과의 강사로 돌아왔는데, 이때 이미 그는 한 권의 시집을 출간( 1902년)했으며, 또 계속적으로 시작을 하는 한편 그리스의 비극시인인 이스킬러스(Aeschvlus)의 시를 번역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티크니는 하바드 대학의 강사이자 결혼을 앞 둔, 온 세상이 그의 앞에 활짝 열려있던 30세의 나이에 아깝게도 뇌종양으로 죽고 만다. 이 때가 1904년 10월 11일이었다.  그가 죽은 이듬해인 1905년 그의 친구들이 스티크니가 생전에 출간한 시집에 그의 유작들을 미완성인 채로 묶어 ()이란 제목으로 다시 출간했는데, 이것이 그가 남긴 작품 전부이다. 흔히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요절한 시인들에게 올바른 평가가 아닌 잘못된 동정을 보내는 경향이 있으나, 스티크니의 경우에는 빈틈없는 비평가로 알려진 브룩스(Van Wyck Brooks)나 윌슨(Edmund Wilson)으로부터도 [약속의 시인이자 실행의 시인]이라고 칭송될 정도로 찬사를 받았다.  친지들의 회고에 의하면 스티크니는 키가 크로 말랐으며 아름다운 음성을 소유한 우아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부끄러움을 잘 타고 친구들 간에는 인정 많은 사람으로, 자연에 대한 우울함이 있었으나 유머로 넘친, 청년 시인의 한 본보기였다고 한다. 반면 그는 진정한 학자이자 음악가로서, 그의 바이올린 솜씨는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 거의 천재적이었으며, 아름다운 회색 눈과 당황해 하는 슬픈 얼굴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특히 문학의 경우 '내가 진실로 관심을 두는 것은 바로 시'라고 말할 정도로 스티크니는 시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스티크니의 친구이자 유고시집의 편집에 참여했던 무디(William V. Moody)의 말에 따르면 '그는 동서양의 사고를 새로이 종합한 자신만의 시를 쓰기를 꿈꾸어 왔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포우(Poe)와 스윈번(Swimburne)의 시에서 빌려오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은 그의 대표작인 이란 시이다. (시의 번호는 분석의 편의상 필자가 붙인 것임)  Mnemosyne  A- It's autumn in the country I remember.  B- How warm a wind blew here about the ways!  And shadows on the hillside lay to slumber.  During the long sun-sweetened summer-days.  It's cold abroad the country I remember.  C- The swallows veering skimmed the golden grain  At midday with a wing aslant and limber ;  And yellow cattle browsed upon the plain.  It's empty down the country I remember.  D- I had a sister lovely in my sight:  Her hair was dark, her eyes were very sombre;  We sang together in the woods at night.  It's lonely the country I remember.  E- The babble of our chuldren fills my ears,  And on our hearth I stare the perished ember  To flames that show all starry thro' my tears.  It's dark about the country I remember.  시의 제목인 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뮤즈신의 어머니이자 [기억의 여신]의 이름이다. 우리말로 옮길 때, [기억]보다는 [추억]이라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즉,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이다. 어설프게나마 이 시를 우리말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추 억  지금은 가을이 오는 내 추억의 고향  따사로운 바람결 길모퉁이 스치고  향그러운 태양의 긴 여름날  산마루에 누운 그림자 졸던 곳  지금은 추운 내 추억의 고향  한낮에 금빛 곡식물결 박차고 소소떠는  날씬하게 기울은 제비 날개  누런 소 넓은 들에 풀 뜯던 곳  지금은 비인 땅 내 추억의 고향  칡빛 머릿단에 수심 짙은 눈망울  내가 보아도 사랑스러운 내 누이와  밤이면 숲 속에서 함께 노래부르던 곳  지금은 쓸쓸한 내 추억의 고향  어린 자식들 도란거리는 소리 내 귀에 가득한데  난로 속 남은 재 응시하면  눈물 속에 별인양 불꽃이 반짝이던 곳  지금은 어두운 내 추억의 고향  번역이기에 원작의 형식과 각운의 맛을 살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엉성한 번역이었지만 향토적인 고향의 모습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시를 김현승은 그의 수필에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그 많은 추억의 시편들 가운데서도 생각나는 것은 미국 시인 트럼블 스티크니의 걸작 이다. (중략) 얼마나 다사롭고 눈물겹게 만드는 추억의 시편인가? 이 시 한 줄 한 줄은 민감한 독자들의 추억을 오래도록 사로잡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끝 연 마지막 두 행은 얼마나 눈물겹고 감각적인 표현인가?  김현승이 지적한 것은 [가을]에 생각나는 시이다. 그의 가을과 관련한 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가 이 시를 택한 것은 라는 제목과 함께 [It's autumn in the country I remember.]라는 시행, 그리고 시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만큼 이 시는 가을과 고향에 대한 [추억]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시이다.  III. 정지용의   정지용은 1902년 5월 15일(음력) 충북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 농가에서 아버지 정태국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한약상을 경영하여 농촌에서는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불의에 밀어닥친 홍수의 피해로 가세가 갑자기 기울어져 가난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학동이 정지용의 시를 빌면서 소개한 정지용의 고향은 이런 곳이다.  재담과 독설로 숱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던 천재 시인 정지용이 태어난 곳은 실개천이 지즐대며 흐르는 농가마을이다. 지금은 문명의 때를 타고 그 원초적인 자연조차도 과도기적인 열병으로 진통하는 마을로 변해가고 있으나, 그 당시로는 소박하고 인정미 넘치는 그런 마을로 온통 전설의 바다를 이루어 출렁이고 있었다.  정지용이 태어나서 자란 마을 뒤로는 높은 한 일자로 뻗어간 이 있다. 그 산의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실개천을 이루고 청석교 밑을 지나 들판을 가로질러 동쪽 끝으로 흐르고 있다. 그 산기슭에 자리한, 그가 태어나서 자란 집은 일자산의 계곡에서 이어지는 개천을 따라 산 정기가 곧바로 뻗어있는 것도 같지만, 범상의 눈엔 그것이 잘 보이질 않는다.  1913년 그의 나이 12세 때에 혼인을 하여 이곳에 살았고, 옥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1914년)하고 4년간 한문을 수학하면서도 이곳에서 살았다. 어쨌거나 정지용은 그가 태어난 이곳에서 유년기는 물론, 휘문고보를 거쳐 동지사대학을 마치고 모교인 휘문고보에 교사로 취임하여 서울로 이사할 때까지 살았다. 그러나 이는 주소지일 뿐, 실제는 14세이후 고향을 떠나 객지의 고달픈 삶을 영위했다.  정지용의 문학적 재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18년 4월 휘문보통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이다. 선배로 홍사용, 박종화, 김영랑 등이 있었고, 후배로는 이태준이 같은 학교에 다녔다. 1학년 때의 성적이 88명 중 1등을 할 정도로, 창가나 체조 등 실기과목을 제외하면 전 과목에 걸쳐 고루 성적이 우수했으며, 특히 영어와 작문에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었다. 이는 후에 동지사대 영문학부에 진학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집안이 넉넉하지 못한 그는 교비생으로 휘문고보를 다녔다.  박팔양의 기록에 의하면 이 때(1918년) 이미 휘문고보, 중앙고보, 일고, 고상, 법전 등의 학생들이 모여 문학동인을 결성, 등사판 문예동인지인 을 발간하기도 했다는데, 휘문고보의 중심 학생이 정지용이었다고 한다. 이 을 통해 정지용은 많은 습작을 발표하였다고 한다.  한편 1922년에는 휘문고보의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 하는 문우회의 학예부장을 맡아 창간호의 편집위원이 된다. 이듬해 3월 휘문고보 5년제를 졸업하고, 4월에는 일본 경도에 있는 동지사대학 영문학부에 진학한다.(이하 정지용의 생애는 이 글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에 생략한다)  이러한 정지용의 삶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먼저 그는 농촌 출신이라는 것이다. 이는 자연과 벗삼아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것이 된다. 다음으로 그는 14세 이후 객지 생활을 통해 누구보다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컸으리라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휘문고보 시절 이미 시인의 자질을 보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영어와 작문에 능통하여 영문학부를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는 사실은 이 글에서 밝히고자 하는 사실과 깊은 연관이 있다.  정지용이 초기 시의 대표작인 는 1927년 3월 에 발표되지만 작품 말미에 1913년 3월에 쓴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팔양의 기록에 의하면 1918년에 시작한 은 동인지가 1923년까지 약 10호 정도 나왔으며, 여기에 를 비롯한 그의 여러 작품이 실렸다는데, 현재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정지용의 동시나 민요풍의 여러 시편들이 와 함께 이미 동인지 시대인 1918년부터 1923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할 수는 있다.  에 발표된 는 이렇다. (철자법과 띄어쓰기 모두 에 실려있는 그대로이며, 시행의 번호는 분석의 편의상 필자가 붙인 것임)  鄕 愁  I- 넓은 벌 동쪽 끄트로  넷니야기 지줄대는 실개천 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빗 게으른 우름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 엔들 니칠니야.  II- 질화로에 재가 식어 지면  뷔인 바 테 밤 ㅅ 바람 소리 말을 달니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  집벼개를 도다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 엔들 니칠니야.  III-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한울 비치 그립어 서  되는대로 쏜 화살을 차지러  풀섭 이슬에 한추룸 휘적시 든 곳,  -------그곳이 참하 꿈 엔들 니칠니야.  IV- 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가튼  검은 귀밋머리 날니는 누의와  아무러치도 안코 엽블것도 업는  사철 발 버슨 안해 가  따가운 해쌀을 지고 이삭 줏 든 곳,  -------그곳이 참하 꿈 엔들 니칠니야.  V- 한울에는 석근 별  알수도 업는 모래성으로 발을 옴기고,  서리 까막이 우지짓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비체 돌아안저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참하 꿈 엔들 니칠니야.  유행가의 노랫말로도 쓰일 정도로 친숙해진 이 시에서 우리는 정지용의 고향을 그리는 마음과 함께, 그가 그리워했던 고향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즉, 평화롭고, 사랑스럽고, 정겨운, 지극히 향토적 서경이 그것이다. 유년 시절의 추억이 담겨져 있으며, 한가로운 서경과 함께 아버지, 누이, 그리고 안해와 그들이 [돌아안저 도란도란거리는]는 행복한 모습이 바로 정지용의 고향인 것이다. 서경과 서정이 어우러져 평화로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하는 이 시는 정지용 개인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마음의 고향이라 할 만큼 우리들의 정서에 부합되는 것이다.  IV. 과 의 거리  앞에 소개한 트럼블 스티크니의 과 정지용의 는 우연의 일치라고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다. 두 시인의 생애와 관련하여 두 작품의 창작 연대와 그 구조를 분석해 보면 이는 분명해진다.  우선 생애와 관련지어 볼 때, 정지용의 습작기는 그가 휘문고보에 입학하던 1918년에서 일본 경도의 동지사대 영문학부에 수학하던 1925년 사이가 된다. 당시 문학도로서 접할 수 있는 현대시는 대략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엽의 국내외 시이다. 식민지 시대인 만큼 일본 시인과 함께, 서구시의 대표라 할 프랑스 상징주의 시는 물론 영미시를 접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더구나 앞에서 소개한 트럼블 스티크니는 미국의 근대시가 현대시로 전환하고 있던 1900년대의 과도기에 나와 활동한 대표적인 시인의 한사람임은 물론, 요절한 시인으로 젊은이들에게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던 시인이었다. 게다가 정지용은 영어에 능통하고 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1923년 에 를 발표하기 전에 정지용은 스티크니의 을 읽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다음으로, 이러한 추측은 앞에 소개한 과 의 구조 및 기법을 견주어 보면 더욱 신빙성을 획득하게 된다. 우선 외형상으로 무척 닮아 있다. 전체 5연의 구성은 물론 매 연이 끝나며 후렴구의 형식 1 행이 반복되는 것이 그렇다.  먼저 스티크니의 을 보자. 형식 면으로 볼 때, 시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한 행(A)을 독립된 하나의 연으로 처리하면서 전체를 5연으로, 한 연은 3행과 후렴구 형식의 1행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는 19세기 말고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음송형식의 시의 전형이다.  이러한 음송형식은 각운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매 연의 끝에 나오는 후렴 형식의 1행(B- , C- , E-123)은 It's로 시작하여 항상 remember로 끝난다. 게다가 B연에서는 way와 3행의 days, C연에서는 grain과 plain, D연에서는 sight와 night, 그리고 E에서는 ears와 tears를 통해 매 연마다 1행과 3행의 각운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행 구분과 동음어의 반복을 통해 정형시 혹은 음성시의 전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정지용의 역시 전체 5연으로 구성된 하나의 정형을 이루고 있다. 스티크니의 처럼 시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독립된 연은 없다. 그러나 매 연마다 4(5)행으로 묘사하고 있는 고향의 모습은 모두 [``````는(든) 곳]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렴구 형식의 1행은 그러한 고향의 모습, [그 곳에 참하 꿈 엔들 니칠리야.]의 반복이다.  따라서 의 전체적인 시형식은 의 한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의 5연 형식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그 모습을 5개의 연에 균등하게 분배했고, 각운의 맛을 살리려 매 연의 끝에 나오는 후렴형식의 1행은 It's로 시작하여 항상 remember로 끝나지만 그 내용은 서로 상이한데, 는 이를 하나로 통일하여 5회에 걸쳐 반복함으로써 를 더욱 절실하게 표현하며 운을 살리고 있다. 결국 의 형식은 의 그것을 빌어 나름대로 변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시의 내용을 보자. 의 전체적인 내용은 내가 기억하는 고향의 가을은 이러이러한 곳(각연의 )이었는데 지금은 춥고 cold(B-④), 텅 비어있고 empty(C-④), 외롭고 lonely(D-④), 어두운 dark(E-④)곳이라는 것이다. 즉, 과거 기억 속의 고향과 현재의 고향이 대조를 이루며 흔히 가을이란 이미지가 주는 쓸쓸함을 더해주고 있다. 문제는 기억 속의 고향이다.  김현승이 지적한 것처럼 의 고향은 다사롭고 눈물겨운 곳이다. 지극히 평화롭고 서정적 자아의 행복이 가득한 곳이다. 길모퉁이를 돌아 부는 바람, 졸고 있는 언덕의 그림자, 향기로운 여름날, 황금들판을 나는 제비, 풀을 뜯는 소, 검은 머리의 누이, 숲 속의 노래, 어린 자식들의 재잘거림, 별빛 같은 불꽃, 이 모든 것을 서정적 자아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고향의 모습이다. 그런 곳이 지금은 춥고, 텅 비어있고, 외롭고 어두운 곳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러기에 [추억]처럼 눈물겨울 수밖에 없다.  정지용의 는 바로 에서 서정적 자아의 기억에 내재라는 고향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황소가 게으른 울음을 울고, 질화로에 재가 식고, 아버지가 졸고 있고, 검은 머리 누이, 안해, 따가운 햇살, 하늘의 별, 흐릿한 불빛, 도란거리는 소리, 이 모두는 의 고향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바로 소재와 이미지의 차용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소재 혹은 이미지가 유사한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I - 꿈 엔들 니칠리야. A- I remember  I - 회돌아 나가고 B- blew here about the ways  I - 황소 C- yellow cattle  II-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E- the perished ember  II- 뷔인 바테 C- empty down  II- 엷은 조름 B- lay to slumber  IV- 검은 귀밋머리 날니는 D- hair was dark  IV- 누의 D- a sister  IV- 따가운 해쌀 B- the long sun-sweetened  V- 별 E- starry  V- 우지짓고 지나가는 C- veering skimmed  V- 흐릿한 불비체 E- the perished ember  V- 도란도란거리는 E- babble  한 편의 시에서 이렇게 많은 유사점을 찾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예는 바로 가 을 모방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특히 V- 과 V- 의 소재와 분위기는 E- 을 그대로 빌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III연을 제외하면 모든 연이 의 전 연의 여러 행에서 그 소재와 분위기 혹은 이미지를 빌어 온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는 분명 의 형식을 빌었고, 소재와 이미지를 차용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의 구조와 기법을 빌었을지언정 그 주제와 감흥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서정적 자아의 모습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과거와 현재의 대조이다. 서정적 자아는 현재 고향에 돌아와 있다. 그리고 지금은 가을이다. 그런데 고향의 모습이 너무 변해버렸다.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고향의 모습은 평화롭고, 아름답고, 따뜻한 곳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구태여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을씨년스럽고, 공허하고, 외롭고 어두운 곳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기에 김현승의 지적대로 다사로우면서도 눈물겨운 모습이다.  그러나 는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음에도 이를 현재와 대조시키지 않는다. 서정적 자아도 고향이 아닌 타향에 있다. 타향에서 고향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적 자아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고향의 평화롭고, 아름답고, 정겨운 모습들만을 생생하게 그리면서 이를 현재까지 지속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그곳 이 참하 꿈엔들 니칠리야.]를 반복함으로서 [향수]를 더욱 절실하게 할 뿐이다.  또한 서정적 자아의 시각의 경우 은 B, C, D, E로 진행하면서 원경에서 근경으로 집중된다. 그러나 는 원경과 근경이 혼합되어 있다. I연은 원경, II연은 근경, III연은 다시 원경으로 나가다가 IV연과 V연은 다시 근경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원경과 근경의 혼합을 통해 처럼 서정적 자아의 시각이 자연에서 인간으로, 즉 고향의 모습에서 가족의 모습으로 집중된다. 특히 는 의 누이와 어린 자식들만이 아니라, 아버지, 누이, 안해 그리고 그들이 모여 앉아 도란거리는 모습을 통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정겨운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비록 정지용의 실제 고향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다소 서구적인 [말] 달리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지만 당시 조선의 농촌에서 느낄 수 있는 향토적인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깔려있는 즉 정지용은 비록 의 여러 면을 모방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조선의 농촌에 걸맞는 분위기와 감흥을 창조해 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창조적인 모방인 것이다.  V. 창조적 모방을 위하여  앞에서 정지용의 는 미국의 시인 트럼블 스티크니의 을 모방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단순한 모방도 아님을 아울러 밝혔다.  두 작품의 발표 연대와 정지용의 생애로 미루어 분명 정지용은 습작기에 트럼블 스티크니의 을 접했고, 그는 이 시를 매우 감명 깊게 읽은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는 분명 이 시를 염두에 두고 를 썼을 것이다. 시의 형식이나 소재 그리고 이미지를 빌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더욱 분명한 것은 스티크니의 시를 단순히 번역이나 번안만 한 것이 아니라, 스티크니가 사용한 시의 구성 기법, 행과 연의 구분, 후렴구의 기능, 그리고 소재와 이미지를 완전한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 이를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조선의 농촌, 자신의 고향의 서경과 서정에 맞게 재창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는 에서 읽을 수 있는 cold, empty, lonely 그리고 dark와 같은 춥고, 공허하고, 쓸쓸하고, 어두운 가을을 찾을 수 없다. 언제 읽어도 정겹고, 따뜻한 고향이 머리 속에 그려지는 것은, 비록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모방 혹은 표절을 했다고 하더라도, 정지용은 이를 통해 조선에 어울리는 서경과 서정을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단순한 모방이나 표절이 아니라 창조적인 모방을 하였다는 것이다.  정지용의 가 미국 시인의 시를 모방하였다는 것을 밝히면서도, 가 아름다운 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스티크니의 을 읽고, 이를 통해 자신의 고향을 생각했고, 정지용은 의 제요소를 빌어 자신의 고향을 그렸다. 구성기법, 소재, 리듬, 이미지는 물론 구체적인 단어까지 빌면서도 그는 이를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고향을 그렸다. 그리하여 전혀 새로운 조선의 서경과 서정을 읊었다. 모방은 하되 단순한 모방이 아니며, 하다못해 단어까지 그대로 빌면서도 그 단어의 쓰임이 시 전체의 내용 속에 용해되어 있도록 만들었다. 스티크니가 창조해 놓은 을 통해, 정지용은 그가 느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재창조해 낸 것이다. 이는 바로 창조적인 모방인 것이다.  창조적인 모방, 그것은 모든 예술행위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 향수(鄕愁) - 꿈에도 못 잊는 인간의 본향     지금은 도시로 변해버린 뉴욕 퀸즈 카운티의 1920년대 전원 풍경. 농가의 생김새만 다를 뿐 한국의 시골 풍경과 매우 유사하다.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먹고 사는 게 힘들수록 향수(鄕愁)가 커지는 것은 인지상정, 한자 ‘鄕愁’도 그래서 생겨났다. 시골 향(鄕)은 밥상을 마주하고 앉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본뜬 것으로서 본래 의미는 ‘함께 밥을 먹다’, 그게 훗날 ‘마을’ ‘시골’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자 거기에 먹을 식(食)을 더해 ‘잔치’라는 의미로 썼다. 가을 추(秋) 아래 마음 심(心)이 붙은 시름 수(愁)도 마찬가지다. 가을 추(秋)는 벼 화(禾)에 불 화(火)가 붙은 것으로서 추수를 앞두고 곡식을 좀먹는 메뚜기들을 잡아 불태우는 모양을 그린 것이라는 게 정설, 겨울을 날 양식이 모자랄까봐 걱정하는 마음을 그린 것인 바, 농경문화권에서 밥을 같이 먹던 혈연․지연에 대한 그리움 또한 시름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감정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걸 거꾸로 말하자면, 향수는 ‘너’와 ‘나’의 성분과 사상과 다름을 극복해주는 공통분모로써, 향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감성으로 돌아가는 것인 바, 인간애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시인들이 고향을 노래했던 것도 ‘향수’를 통해 인간애의 근원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기독교에서 인간의 본향을 아담과 이브가 죄 짓기 이전에 살았던 에덴동산으로 설정해놨듯이, 시골출신이 도회지의 물질만능주의에 타락한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고향에서의 순수를 그리워하는 것 또한 매우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이지만, 사는 게 고달프고 외로울수록 향수가 더욱 증폭된다는 것을 누구라서 부인하랴. 아예 돌아갈 고향이 없는 경우도 많다. 자고 일어나면 논밭이 고층 아파트 단지로 변해가는 요즘 고향 또한 예전의 그 때 그 모습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고 보면 현대인의 고향은 자신의 가슴 속이나 꿈속에만 남아있는 실루엣 같은 것이라고 해도 아무도 토를 달지 않으리라.    어떤 의미에서 보면 현대인은 모두 다 실향민(失鄕民), 시인 정지용(鄭芝溶; 1902년-1950년)도 ‘현대인이 상실한, 상실할 수밖에 없는 고향’을 주목했던 것 같다. 1903년 충북 옥천에서 출생한 정지용이 ‘향수’를 발표한 것은 그의 나이 20세 때인 1923년 경, 휘문고보 재학시절인 1919년 ‘서광’ 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면서 문학활동을 시작했으므로 ‘향수’는 도시샤 대학[同志社大學] 유학 시절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바, 당시 일본에 유학 갔던 대부분의 조선 젊은이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정지용 또한 낯선 타관에서 나라를 빼앗긴 2등 국민으로서 서러움을 톡톡히 겪으면서 ‘향수’의 시상을 가다듬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왼쪽부터, 1946년 건설출판사에서 펴낸 정지용 시집, 정지용, 스티크니 최남선(崔南善)이 한국 최초의 신체시로 일컬어지는 ‘해(海)에게서 소년에게’을 발표한 게 1908년이고 주요한(朱耀翰)이 최초의 자유시 ‘불놀이’를 발표한 게 1919년, 그 이후 불과 4년만에 정지용이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라든지 ‘금빛 게으른 울음’ 등의 공감각적(共感覺的) 표현을 자유자재로 구사해가며 지금의 어느 현대시에 비겨도 모자람이 없는 작품을 발표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래서 혹자는 정지용이 도시샤 대학 영문과 재학 중에 접했을 구미 영시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머지 시상과 시적 기교를 습관적으로 차용(?)했을 거라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 포털을 중심으로 ‘향수’가 하버드대 출신으로서 30세 때 뇌종양으로 숨진 미국 시인 조셉 트럼블 스티크니(Joseph Trumbull Stickney; 1874∼1904)의 ‘추억(Mnemosyne)’를 모방 또는 번안했다는 글이 나돌기도 했었다. 실제로 ‘향수’와 ‘추억’은 구조와 시상의 전개가 똑같을 뿐만 아니라, 매 연마다 ‘the country I remember’(추억)과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향수)가 반복된 것도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고, ‘소’ ‘누이’ 등의 소재들이 공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지용이 스티크니의 것을 한국말로 살짝 고쳐 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령 ‘향수’가 ‘추억’을 베낀 것이라고 해도, ‘향수’의 문학적 가치는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아니 될 듯싶다. ‘향수’와 ‘추억’의 프레임과 테크닉은 같을망정 ‘향수’는 조선인의 가슴 속에 따뜻하게 묻혀 있는 ‘고향’을 그린 것인 반면 ‘추억’은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불안을 그렸다는 점에서 확연히 구별될 뿐만 아니라 정지용이 한국 현대시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런 사소한 시시비비를 뛰어넘고도 남음이 있어 보인다. 한국전쟁 때 월북했던 탓에 정지용은 누군가가 평했던 것처럼 “살아서는 불우한 시인이었고 죽어서는 사상적 금기 대상”이었지만,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면서 많은 기라성 같은 후배 문인들을 등단시킴으로써 한국시단의 씨알을 굵게 만든 탁월한 문학가였다. 1933년 ‘가톨릭 청년’의 편집고문으로 있을 때 젊은 천재 시인 이상의 시를 실어 길을 터줬고, 1939년 ‘문장(文章)’ 편집인으로 있을 때는 조지훈․박두진․박목월 등 세칭 ‘청록파’를 등단시켰으며,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이화여전교수와 경향신문 편집국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많은 후배들을 길러냈었다. 그런 그가 한창 문학적 감수성이 예민하던 스무 살 시절에 서양시인의 시 하나 모방했다고 해서 손가락질한다면 그게 더 비문학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나 ‘사철 발 벗은 안해’를 두고 있는 사람들만큼은 정지용을 너그러이 이해해주리라고 믿는다. 왜? 한국인들의 ‘고향 인심’은 그렇게 야박하지 않으니까. ============================================================= 정지용이 표절했다는 '향수'의 영문시 원본  Mnemosyne[nim?s?ni]?(추억) ( Joseph Trumbull Stickney(1874~1904) 스위스 태생 미국인 It's autumn in the country I remember. How warm a wind blew here about the ways! And shadows on the hillside lay to slumber. During the long sun-sweetened summer-days. It's cold abroad the country I remember. The swallows veering skimmed the golden grain At midday with a wing aslant and limber ; And yellow cattle browsed upon the plain. It's empty down the country I remember. I had a sister lovely in my sight: Her hair was dark, her eyes were very sombre; We sang together in the woods at night. It's lonely the country I remember. The babble of our children fills my ears, And on our hearth I stare the perished ember To flames that show all starry thro' my tears. It's dark about the country I remember.     원본시 번역 추 억 요셉 트럼블 스티크니 지금은 가을이 오는 내 추억의 고향 따사로운 바람결 길모퉁이 스치고 향그러운 태양의 긴 여름날 산마루에 누운 그림자 졸던 곳 지금은 추운 내 추억의 고향 한낮에 금빛 곡식물결 박차고 소소떠는 날씬하게 기울은 제비 날개 누런 소 넓은 들에 풀 뜯던 곳 지금은 비인 땅 내 추억의 고향 칡빛 머릿단에 수심 짙은 눈망울 내가 보아도 사랑스러운 내 누이와 밤이면 숲 속에서 함께 노래 부르던 곳 지금은 쓸쓸한 내 추억의 고향 어린 자식들 도란거리는 소리 내 귀에 가득한데 난로 속 남은 재 응시하면 눈물 속에 별인양 불꽃이 반짝이던 곳 지금은 어두운 내 추억의 고향 향수(鄕愁)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註釋) 1.헤설피 : 소리가 느릿하고 길며 약간 슬픈 느낌이 드는 것을 가리키는 말/해가 질 때 빛이 약해지는 모양 2.함초롬 : 가지런하고 고운 모양 3.아무렇지도 않고 : 덤덤하고 4.성근 : 드문 드문 5.서리까마귀 : 가을까마귀 ?鄭芝容(1902-?)?아명 지용(池龍). ①충북 옥천, 12세 결혼, 천주교신자,부친은 한의사 ②옥천보통학교, 휘문고보 졸업 ③일본 도시샤(同志社)대 영문과 졸 ④휘문고 영어교사, 이화여대 교수, 경향신문(카토릭계신문),주간, 출판사 ‘문장’에 있으면서 청록파 박목월,박두진, 조지훈을 등단 시킴. ⑤保導聯盟(도울보,이끌도)에 가입하여 공산주의자들의 전향 강연에 큰 역할 했음. ⑥1950. 6.25 전쟁 이후 행방이 묘연. ●정지용의 詩 ?향수?의 표절 시비에 대한 나의 반론 (다음은 정지용의 시 향수에 대한 폄하(貶下) 및 폄훼(貶毁) 글에 대해 제가 해당 카페에 반론으로 올렸던 글입니다.) 정지용이 詩 ?향수?를 미국 詩에서 표절했다는 논란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대전 지방에서는 공주대 국어교육과 구중회 교수가 자기 소견을 발표 했었고 그 외에도 理論詩(評論)를 하는 사람 중에 상당수가 정지용의 ?향수?를 문제시 하려고 시비를 붙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다수의 시인 아니 시의 대가들은 ?향수?를 현재 우리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 훌륭한 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詩가 순수한 창작시가 아니고 표절시라 할지라도 ?향수?는 누구도 표절 할 수 없는 훌륭한 표절이므로 이 詩가 주는 엄청난 효과를 인정해야 한다. 또한 ?향수?가 표절작’이라고 그 가치를 격하하려해도 이미 ?향수?는 우리 가슴속 깊이 자리 잡아 격하의 의미가 없는 것 같다. 표절이면 어떻고 번역시면 어떤가. 읽어서 감동이 오고 들어서 기쁘면 되는 것 아닌가? 사기(詐欺)를 친 정지용은 우리 곁에 없고 정지용의 사기가 우리에게 손해 입힌 사실이 없으니 우리는 이 표절시가 주는 감동만 우리의 것으로 하면 되지 않겠는가. 두 시를 잘 비교해 보라. 지용이 스티크니의 추억을 읽은 후 향수를 썼다면 그는 추억을 통해 향수의 영감을 얻은 것이지 분명 표절은 아니다. 향수를 표절시라고 한다면 이 땅에 진정한 창작시는 없는 것이다.  표절시비를 일으켜 자기 이름을 빛내려는 당신들은 어느모로보나 순수성이 없는 나쁜 사람들이다. 이미 마신 꿀물 속에 침 뱉었다고 말해 꿀물을 토하게 하려는 치사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최고의 노래방? repertory?하나를 빼앗아 가려는 치한들과 다름 없는 인간들이다. 남을 깎아 내리려 하지 말고 나도 노력해서 그만큼 되도록 최선을 다 하거나 아니면 잠자코 있어라. 하기사 그런 왜곡된 마음을 가진 자가 제대로 된 한 줄의 글이라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Richard Carlson이 쓴 "우리는 왜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가?" 라는 책에서 그가 말한 "침묵의 힘을 믿어라" 라는 명언을 그대들에게 팁으로 전하며, 정지용의 티없고 순수한 마음을 담은 시 한 편을 더불어 선사 하노니 그대들도 님처럼 순박한 마음으로 붓을 놀려 어두운 세상을 밝혀 주길 바란다. 영국의 재사 죠지 버나드 쇼의 회한의 절규가 당신들의 절규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버나드 쇼- 별똥 정지용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 날 가 보려 벼르고 벼르다 이젠 다 자랐소. ?어린 날 내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수많은 별똥들은 지금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 때, 별똥이 떨어질 때 바로 언덕을 넘어 별똥 떨어진 곳으로 갔어야 했는데... 다음에, 다음에.... 벼르기만 하다가 다 자라고 말았다. 그러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 별똥은 그저 물체가 대기권에서 타고난 흔적일 뿐이란 슬픈 지식의 소유자가 되고 말았다.    
624    두 시인의 마음속 "고향"은...? 댓글:  조회:4462  추천:0  2015-07-04
오픈지식 백석 "고향"과 정지용 "고향"  * 백석의 "고향"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氏)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 정지용의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냐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해설 - 백석의 시 '고향'에서, 시적 자아는 낯선 타향에서의 힘든 삶에서 병을 얻어 의원을 찾는다. 우연히 의원으로부터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을 받고 , 시적 자아는 자신의 부친과 의원의 부친이 막역한 친구임을 확인한다. 낯선 타향에서 외로운 신세에 놓여 있던 시적 자아는 그 순간 잊고 있던 고향을 떠올린다. 순간 고향은 자신의 출생지이며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이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유대로 묶인 상징적인 공간으로 확대된다. 한편, 정지용의 시 '고향'에서, 고향은 시적 자아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관념적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 곳은 현실적 공간으로서의 고향과 대비되면서 시적 자아의 의식 속에서 상실되기에 이른다. 이 순간 현실 속의 힘든 삶을 극복하는 계기로서 시적 자아의 현재와 과거를 이어 주던 관념적 공간으로서의 고향은, 현실과의 단절을 겪고 기억 속의 공간으로 후퇴한다.   
623    다시 알아보는 시인 백석 댓글:  조회:4748  추천:0  2015-07-04
백석(白石, 1912.7.1 - 1995 )  한국의 시인, 수필가, 번역가  1. 서 론  백석(白石)은 1912년 평북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에서 부친 수원백씩 백용삼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본명은 백기행이지만 작품을 발표할 때는 백석 이라는 필명을 애용하였다. 오산소학교를 거쳐 오산학교에 입학한 그는 1929년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그가 문단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30년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그 모와 아들」이 당선되어서 인데 그는 곧 후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동경의 청산학원에서 영문학을 수학하였다. 1934년 청산학원을 졸업한 그는 에 입사하여 출판부 일과 계열사인 지를 편집을 하면서 수필 「耳說 귀ㅅ고리」를 쓰고,「臨終 체흡의 6월」이라는 서간문을 번역 소개하였고,「죠이스와 애란문학」이라는 티 에스 마르키 스의 논문을 번역하였고, 단편소설「마을의 유화」와「닭을 채인 이야기」를 발표하였다.  즉 그는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외국문학과 관계된 글을 번역.소개하였고, 등단 장르였던 소설을 두편 발표하였으며 수필을 한 편 썼다. 이것으로 보면 문필활동 초기에 그는 산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발표한 첫 시는 1935년 1월 20일, 33편의 시를 묶어 시집 『사슴』을 상재하였다.  시를 처음 발표한 시기부터 시집을 낼 때까지의 기간이 다섯 달도 채 되지 않는 것이다. 이때부터 1941년까지 그는 집중적으로 시작활동을 전개하였다. 시집을 낸 직후인 1936년 4월초 백석은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흥에 있는 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부임하였으나 1938년엔 영생고보를 사임하고 다시 조선일보사에 입사했다가 이듬해 만주의 신경으로 떠나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에서 일하기도 했다.  북만주 산간 오지를 여행하기도 하며 측량보조원 측량서기 소작인 생활 만주 안동에서 세관원 생활등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다 해방후 신의주를 거쳐 고향 정주로 돌아왔고 그대로 북한에 남아 있었다. 해방후 발표된 그의 시는 친구인 허준이 가지고 있다 발표한 것이고 그 이후 확인된 작품을 보면 백석은 1961년 까지는 조선작가동맹에 소속되어 창작을 하고 번역을 하였으며 아동문학평론을 발표하였다.  이렇게 보면 그의 시세계는 시집「사슴」을 내던 시기와 사슴 이후 시기, 그리고 북한에서의 활동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전개한 문학활동은 당의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선전하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어 해방직후까지 발표한 시만을 대상으로 그의 시세계를 고찰한다.  2. 묘사의 시학  첫 작품을 발표하고 첫시집 「사슴」을 낼 무렵 백석이 견지하고 있는 시작 방법은 묘사이다. 그 방법이 지니고 있는 모더니티를 가장 먼저 지적한 사람은 김기림이다. 모더니즘 운동의 기수였던 그는 백석이 시집「사슴」을 낼때 같은 조선일보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시집이 발간되자 제일 먼서 서평을《조선일보》에 실었다.  백석은 우리를 충분히 애상적이게 만들 수 있는 세계를 주무르면서도 그것 속에 빠져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이 얼마나 추태라는 것을 가장 절실하게 깨달은 시인이다. 차라리 거의 철석(鐵石)의 냉담에 필적하는 불발한 정신을 가지고 대상과 마조 선다. 그 점에「사슴」은 그 외관의 철저한 향토 취미에도 불구하고 주착없는 일련의 향토주의와는 명료하게 구별되는 '모더니티'를 품고 있는 것이다.  김기림「사슴을 안고」,1936. 1. 29.  모더니즘 시인들이 그야말로 신선한 감각으로서 문명이 던지는 인상을 붙잡고 음으로서 말의 가치, 시각적 영상, 의미의 가치도 여러가지 가치의 상호작용에 의한 전체적 효과를 의식하고 일종의 건축학적 설계 아래서 시를 쓰는 것이라면 백석은 고향의 풍물과 민속,인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즉 백석은 모더니스트 시인들과 달리 시의 대상은 고향의 풍물과 민속에 두었지만 감정과 정서는 철저하게 절제했는데 그 방법이 묘사인 것이다.  백석이 묘사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그가 소설로 등단하였고 시를 발표하기 전까지 소설을 두 편이나 발표하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되기도 한다. 소설은 서술자의 의도나 감정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행동, 인물의 성격,또는 풍경 등을 통해 이야기하는, 즉 간접화시키는 장르인데 대상에 대한 생각과 정서를 직접 서술하지 않고 대상을 묘사함으로서 간접화시키는 백석의 시작 방법론은 시를 창작하기 전 훈련한 소설의 장르적 성격에서 연원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소설은 사건을 서술하는 장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에서는 인물,풍경, 심리, 행동 등 묘사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풍물 묘사만으로 시적 깊이를 획득하기 어렵자 사건을 끌어들이면서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하는 지적도 타당성이 있지만 이때 이 사건은 소설에서 다루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즉 백석이 시에서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묘사인 것이다.  아배는 타관가서 오지 않고 산비탈 외딴집에 엄매와 나와 단둘이서 누가 죽이는듯이 무서운밤 딥뒤로는 어느 산골짝이에서 소를 잡아 먹는 노나리군들이 도적놈들같이 쿵쿵거리며 다닌다.  날기 멍석을 저간다는 닭보는 할미를 차굴린다는 땅아래 고래같은 기와집에는 언제나 니차떡에 청밀에 은금보화가 그득하다는 외발가진 조마구 뒷산 어늬뫼도 조마구네 나라가 있어서 오줌누러 깨는 재밤 머리맡의 문살에 대인 유리창으로 조마구군병의 새깜안대가리 새깜안 눈알이 들여다 보는때 나는 이불 속에 자르러붙어 숨도 쉬지 못한다.  중략  섯달에 내빌날이드러서 비빌날 밤에 눈이오면 이밤엔 쌔하얀 할미귀신의 눈귀신도 내빌눈을 받노라 못난다는 말을 든든히녁이며 엄매와 아는 앙궁옿에 떡돌옿에 곱새담옿에 함지에 버치며 대낭푼을 놓고 치성이나 들이듯이 정한 마음으로 내빌 눈약 눈을 받는다.  이눈세기물을 내빌물이라고 제주병에 진상항아리에 채워두고는 해를 묵여 가며 고뿔이와도 배앓이를 해도 갑피기를 앓아도 먹을 물이다.  -「고야」전문  이 시는 제목 그대로 '옛밤'을 소재로 한 것인데 밤이면 기억나는 어린 날의 밤풍경 다섯 개를 병렬시켜 놓은 것이다. 한 마디로 하면 밤풍경이지만 밤이라는 시간을 풍경화로 제시하여 공간화시키는 이 시는 바로 그 기법의 측면에서도 모더니즘적이다.  백석의 시를 처음 대할 때 느끼는 곤혹감은 낯선 평북 방언 때문이다. 그러나 방언이 주는 곤혹감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말하듯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지니며 독자들에게 언술 자체에 관심을 집중하게 만들고 그 정확한 의미는 모른다 해도 환기하는 정조에 젖어들게 만든다.  백석시가 보인 관심 중의 하나는 고향 산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인데 특히 다음 시에서는 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3. 독백의 시학  시집 「사슴」의 발행일자는 1936년 1월 20일인데 백석은 그 직후인 1월 23일자 에 시「통영」을 발표하였다. 이 시는 물론 이제까지의 시의 기법인 묘사를 통해 통영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마지막 연에서 시적 화자의 상태를 진술하고 있는데 이 점이 시집에 실린 시들과의 차이이다. 이전의 시에서 생각이란 시어가 보이는 것은「고야」에서인데 그것은 없어도 기본 의미에서는 차이가 없는 보조서술어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통영」의 마지막 연에 보이는 '녕 낮은 집 담 맞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에서 '생각한다'는 그 앞에 묘사된 통영의 풍물과 대조시켜 시적 화자의 상태, 그 중에서도 생각을 직접 진술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백석이 발표하는 시에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시어 중의 하나가 '생각하다'이다.  36년 3월1호에 발표한 「탕약」에 사용된 '생각하다'는 시어에는 보다 역사적이고 시간적인 의미가 포괄되어 있다.뿐만 아니라 이 시간성은 연 구성의 원리로도 작용한다.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웋에 곱돌탕관에 약이 끓는다  삼에 숙변에 목단에 백봉령에 산약에 택사의 몸을 보한다는 육미탕이다  약탕관에서는 김이올으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나고  약이 끓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그리고 다딸인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여 만년 옛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손으로 곻이 약그릇을 들고 이약을 내인 옛 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어진다.  -「탕약」전문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고백하는 방식은 이제까지의 시에서 보여주던 간접제시의 방식과는 다른 방법론으로 시인의 관심이 객관적인 대상을 묘사하는 것에서 주관적인 생각과 마음의 세계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백석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낭만주의적 시작태도를 가지면서 시간성과 역사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낭만주의의 기본 속성으로 볼때 당연한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세계를 감성적으로 인식할 뿐만 아니라 유기체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다. 유기체적 세계관은 생명체적 자연인식인데 생명체란 탄생,성장, 소멸의 지속성이 그 본질을 이루는 것이기에 낭만주의자들은 시간과 역사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4. 결 론  첫 작품을 발표하고 첫 시집 을 낼 무렵 백석은 감정과 정서를 철저하게 배제하면서 어린 화자의 시선으로, 평북방언으로, 고향의 풍물과 민속,인물을 묘사하고 있다. 이 시기의 시학을 묘사의 시학이라 이름 붙였는데 이것은 당시 문단을 풍미하였던 모더니즘의 영향이면서 동시에 소설 장르의 영향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시집을 발표한 이후 백석의 시작 방향은 생각과 정서를 직접 술회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어 이 시기의 시학을 독백의 시학이라 이름 붙였다. 물론 이 시기에도 많은 기행시는 여전히 여행지의 풍물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감정과 정서를 철저하게 배제하던「사슴」시기와 다르게 이 시기는 화자의 생각과 감정에 기울여져 있음을 볼 수 있다.  36년에서 38년 사이에는 단순히 생각과 마음의 세계를 발견한 화자의 모습만 나타나 있다면 그 이후의 시는 화자의 생각과 감정을 진술하거나 토로하고 있음을 불 수 있다. 이런 낭만주의적 시작태도를 보이면서 백석은 공간성보다는 시간성과 역사성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시기가 시인 개인으로서도 어렵고 굴곡 많았던 시기이면서 동시에 민족 전체로서도 어려웠던 시기였기에 제어하기 어려운 쓸쓸하고 외로운 감정을 그대로 토로하면서도 자신을 추스리기 위해 애쓰는 시를 많이 남겼지만 그런 중에도 자연과 대지의 생명력에 힘입어 생기는 회복해 보려는 시도 남기고 있다.  백석은 한국이 낳은 가장 자랑스러운 시인이며 수필가이며 번역가이다. 이러한 위대한 백석이 진정 우리들 곁에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필자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백석은 시인으로만 평가하더라도 세계의 어느 유수한 시인들과 비교를 하여 볼 때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수하다.  백석이 점차로 알려지던 그 때 보다는 오히려 그들보다 월등한 수준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분단이라는 많은 제약과 굴레 그리고 억압속에서 그러한 사실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백석은 그 동안 꾸준히 적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평가를 받아왔다. 이러한 사실은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평가를 받으리라는 예견이 이미 시인이자 평론가인 박용철에 의해서 동시대에 대두되었다.  문학은 우리의 역사와 운명을 같이 하면서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 문학은 생업으로 삼은 백석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백석은 이러한 고난을 온몸으로 체감하여 한 시대를 누구보다도 치령하게 살아왔다. 최고의 시인이면서도 언제나 평범한 기자로 또한 교사로 공무원으로 농부로 변역가로 독립운동가로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해방이 되기 전까지는 광산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으며 세관원까지 하였다. 해방후에는 민족지도자 고당 조만식 선생의 통역비서를 하기도 하였으며 세계적인 소설문학가로 활동했다. 그와중에도 몇번의 결혼 실패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석은 언제나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 이 훌륭한 시들은 고난의 시기를 비껴나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시들이며 또한 고난 그 자체를 포용하는 놀라운 작품들이다 또한 지조있고 고결한 작품들은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길잡이가 되고 있다. 우선 백석은 우리 학문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 또한 어설픈 외래와보다 내실있고 한국화를 요구하고 있다.  백석은 자신의 첫시집 에서 33편을 실음으로서 보이지 않는 항일을 하고 있다. 그의 시는 대부분 민족적 자존심이 가득한 시들을 발표하고 있다. 극도로 자신에게 엄격한 백석은 자신의 삶 전부를 청렴결백으로 일관했다.
622    <소주> 시모음 / 김소월시인과 담배, 술, 진달래꽃 댓글:  조회:5504  추천:0  2015-07-04
621    포스트/모더니즘시론의 력사 댓글:  조회:4623  추천:0  2015-07-04
[ 2015년 07월 06일 11시 00분 ]     (남아프리카 더반주에서...)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시론의 역사     이만식     1.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시론의 역사     『시와 표현』에서 특집의 원고를 청탁하면서, 5~60년대와 80~90년대의 시적변모를 이미 다루었으니 2000년대에 주목받은 시인들의 시를 분석하여 시와 시적 표현이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차이를 드러내어 제시해달라는 주문을 하였다. 과거와 달라진 2000년대의 대표적인 유파 중의 하나가 소위 미래파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시와 시적 표현에 대한 선호 여부에 따라 산발적이고 제한적인 분석은 있었지만 한국문학사를 관통하는 관점에서 거시적이며 체계적으로 검토된 바는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2000년대 시인들의 시작업의 주요한 특징들 중 하나가 소박한 감상주의를 벗어나서 현대문학이론의 성과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 시론의 역사,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시론의 역사 속에서 이를 바라보면 최근의 시와 시적 표현의 특징을 뚜렷하게 구별·분석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1930년대의 김기림에서 시작된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시론이 1960년대의 김수영에서 실질적인 결실을 맺고, 1980~90년대의 오규원, 김준오와 이승훈의 시론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었으며, 2010년에 발간된 소위 미래파의 이론가 권혁웅의 시론에 이르러전환점을 맞는 과정을 읽어보는 것이 이런 관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2. 모더니티/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티/포스트모더니즘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시론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분석하기 전에 모더니즘, 모더니티,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티를 둘러싼 개념의 혼란을 정리하면서 서구 포스트/모더니즘 시론의 역사를 개괄하는 것이 논리전개의 기반이 될 것이다. 모더니티modernity가 근대성이라고 번역될 수 있다면, 모더니즘modernism은 19세기말의 예술운동을 지칭한다. 이 두 개의 용어는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모더니티, 즉 근대성은 르네상스 시대에 중세적 사고체계를 벗어나면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온 근대화의 기본 논리를 뜻한다. 이러한 모더니티는 프랑스혁명에서구체화된다. 문학을 중심으로 한 문화적 대중교육을 통하여 천부인권설天賦人權說이 사회의 주류 이론이 되고, 이러한 인권 개념을 기반으로 근대국가가 수립되게 되는데, 이 근대국가 체제가 서세동점의 과정에 의하여 현재까지도 비서구권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인간, 즉 개개인의 권리는 하늘이 부여한 것으로서 인간은 누구나 동일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천부인권설에 가정되었던 인간의 개념 속에 남성이 아닌 여성, 백인이 아닌 유색인, 인간이 아닌 자연 등의 타자他者가 배제되어 있다는 1960년대 이후의 깨달음이 모더니티에 대한 본격적인 반성을 유도하면서 포스트모더니티postmodernity, 즉 탈근대성이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검토해보지 않을수 없게 되었던 저간의 사정은 현대문학이론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조금씩은 알게 된 사실이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이러한 포스트모더니티의 인식에서 기인하는 1960년대 이후의 예술운동인데, 19세기말에 있었던 모더니즘 예술운동에 이후以後라는 뜻의 포스트post를 붙여서 사용하는 바람에 개념의 혼란이 가중되었다. 르네상스에서부터 전개되어 온 모더니티에 대한 반성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던 것이 모더니즘 예술운동이니까 포스트모더니즘과 거의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더니즘 예술운동의 경우에는 모더니티에 대한 본격적이고 철저한 철학적 반성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 예술적이며 본능적인 반발이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미래파Futurist처럼 근대의 기계문명이란 모더니티를 찬양하는 예술운동과 근대적인 인식의 이면에 있는 무의식에 대한 깨달음을 소개하는 초현실주의처럼 당대의 모더니티의 모순을 지적하는 예술운동이 혼재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19세기말의 모더니즘이나 196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이 각자 나름대로 당대의 모더니티에대한 반성 행위이기는 하지만, 모더니즘은 그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철학적 인식에 기반을 둔 근본적이며 본격적인 반성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이 역사적 발전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철학적 연구로부터 도움을받은 예술운동이기 때문에 그 인식의 깊이에 있어서 문제점을 드러낸다. 이런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작품들보다 모더니즘의 예술작품들이 아직까지도 그 의의를 상실하지 않고 힘 있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의 논의에 있어서 잊지 않아야 할 전제조건은 모더니티의 시대가 가고 포스트모더니티의 시대가 왔다는 식의 단선적인 역사전개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근대국가라는 체제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유엔 등의 국제기구가 대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정치적인 현실을 생각해보면, 모더니티의 효용성이 약화된 것은 틀림없으며 그래서 모더니티에대한 반성이 철저하게 제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는 있지만, 포스트모더니티의 논리가 모더니티를 대체한다고 말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역사전개의 과정을 고려할 때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이 모더니즘의 이론을 대체한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단지 모더니즘 예술운동을 계승하면서도 문제적인 국면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근대화의 전개과정을 시론의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프랑스혁명의 기반이 되었던 천부인권설은 19세기 초 영국 낭만주의에서 꽃을 피우게 되는데, 낭만적 상상력의 철학적 기반이 바로 인간 개개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낭만적 상상력이 갖고 있었던 문제점이 인식되면서 19세기 말에 이르러 모더니즘 예술운동이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더니즘에서 암시적으로 제시되었지만 196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인식된 인간 개념의 문제점을 시론의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자아의 완전성에 대한 반성일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낭만적 사랑에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나’와 ‘너’라는 자아의 이면에 무의식이 있다는 것이 모더니즘 예술운동에서 발견되었다면, 196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서는 과연 ‘나’와 ‘너’라는 자아가 독자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3. 김기림의 『시론』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시론의 역사는, 아니 한국 시론의 역사는 김기림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김기림의 『시론』의 분석은 한국문학사의 시작을 이론적인 측면에서 점검하는 것이 된다. 김기림이 “한일합병으로 끝나는 이조 최후의 약 반세기간은 조선이 그 자신의 근대화를 필사적으로 회피하려고 하여 빚어낸 세계문화사상 침통한 「동·키호테」의 재연이었다.”라고 지적하는 바와 같이 한국의 근대화는 자생적인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한국문학은 초기 신문학에서부터 현재까지 청산되지 않은 “봉건적·유교적 구사상”의 잔재와 싸우고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시조의 부활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싸움의 양상이 배타적인 투쟁이라기보다는 포월包越에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문학의 또 하나의 결정적인 약점은 “극히 짧은 기간 동안에 모방 혹은 수입의 형식을 거쳐 속성해야 하는 동양적 후진성”과 “근대화의 과정이 지지할 뿐 아니라 정상적이 아니었다는 것”에서 기인하는다음과 같은 근대문학의 기형성이다.     그러나 우리 신문학의 「이데」는 결코 이 초기의 단계에 그리 오래는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서구가 이미 5세기나 6세기를 두고 걸어온 근대문학의 형성과정을 그대로 더듬어 속성해야 했다. 실로 30년이라는 짧은 동안에 그것을 졸업해야 할 벅찬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신문학사가 나이로는 극히 어리면서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서구제국의 근대문학사 전부에 필적하는 복잡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중략]   그러면 오늘의 우리 문학은 근대정신을 완전히 붙잡았으며 그것을 재현하였는가. 그래서 20세기적 단계에까지 도달하였는가. 이렇게 스스로 물어볼 때에 유감이나마 우리 생활과 사고, 사고와 생활 사이에는 중세와 근대의 틈바귀가 그대로 남아 있는 구석이 있으며 또 한 정신 속에도 봉건사상과 인문주의가 동서하며 한 작가나 시인의 문학 속에 19세기와 20세기가 뒤섞여 있으며 한 상징시인 속에 낭만파와 민요 시인과 유행가수가 겹쳐 있는 것조차 도처에서 쉽사리 구경한다. 이를 김현이 ‘새것 콤플렉스’라고 정의한 바 있는데, 지금의 포스트모던시대에 이르러서는 문학의 혼재성이 결함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김기림은 1950년 4월에 『시의 이해―I. A. 리차즈를 중심하여』를 쓰게될 정도로 모더니즘의 시운동에 이론적 근거가 되었던 리차즈의 이론을 한국문학에 도입하려고 노력한다. 심리학에 기반을 두고 시의 경험의 과학적 분석을 도입하여 영문학과의 창설에 기여한 리차즈의 이론은 모더니즘의 이론이 되어 현재까지도 영문학과의 표준 교육과정인 뉴크리티시즘New Criticism 비평이론을 창설하는 데 공헌한다. 한국문학 현장의 후진성에도 불구하고 이론적으로는 서구와 보조를 맞추려고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김기림의 선구적 기여를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조선에 있어서 「모더니즘」은 집단적 시운동의 모양은 갖지 못했다. 또 위에서 말한 특징을 개개의 시인이 모조리 갖춘 것은 아니었다. 오직 대부분은 부분적으로만 「모더니즘」의 징후를 나타냈다. 또 그것이 반드시 의식적인 것도 아니고 시인적 민감에 의한 천재적 발현인경우가 많았다. 김기림이 명민하게 이론적 측면에서나마 한국문학에 모더니즘을 도입하려고 하였지만, 모더니즘이 탄생한 서구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하면서 이론만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이론적으로도 드러내 보이고 있으며, 이는 결국 한국문학의 큰 약점이 된 것 같아 보인다. 「모더니즘」은 우선 오늘의 문명 속에서 나서 신선한 감각으로써 문명이 던지는 인상을 붙잡았다. 그것은 현대의 문명을 도피하려고 하는 모든 태도와는 달리 문명 그것 속에서 자라난 문명의 아들이었다. 그 일은 바꾸어 말하면 우리 신사상에 비로소 도회의 아들이 탄생했던 것이다. 題材부터 우선 도회에서 구했고 문명의 뭇면이 풍월 대신에 등장했다. 문명 속에서 형성되어가는 새로운 감각·정서·사고가 나타났다. 김기림의 모더니즘은 후진국에서 경험하는 모더니티일 뿐이었다. 서구의 모더니즘이 르네상스 이후 19세기말까지의 모더니티의 전개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이며 반성의 모색이었다면, 후진국 지식인 김기림의 경우에는 도시문명이라는 르네상스적인 모더니티에 대한 감탄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근대의 과정을 아직 현실적으로 겪어보지 못한 후진국의 지식인이 근대에 대한 본질적인 반성의 논리인 모더니즘을 이론적인 측면에서나마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의 표현일 것이다. 문제는 김기림의 이런 약점이 지금도 무반성적으로 계승되고 있는 측면이 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작품분석에 있어서 작품의 전체적인 측면을 고려하고 평가하기 보다는 작품의 부분일 뿐인 인상적인 측면이나 이미지들을 강조하는 평론이 현재 한국문학의 대세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4. 김수영의 시론     김기림은 시대적 한계 때문에 육화된 근대문학이론을 전개하지 못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반면에 김수영은 다음과 같이 번역작업 등을 통하여 서구의 근대문학을 체험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시론에는 현장감이 있다.   그러나 현대시로서의 진정한 자질을 갖춘 처녀작이 무엇인가하고 생각해볼 때 나는 얼른 생각이 안 난다. 요즘 나는 리오넬 트릴링의 「쾌락의 운명」이란 논문을 번역하면서, 트릴링의 수준으로 본다면 나의 현대시의 출발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나하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얼른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10여년전에 쓴 「병풍」과 「폭포」다. 「병풍」은 죽음을 노래한 시이고, 「폭포」는 나태와 안정을 배격한 시다. 트릴링은 쾌락의 부르죠아적 원칙을 배격하고 고통과 불쾌와 죽음을 현대성의 자각의 요인으로 들고 있으니까 그의 주장에 따른다면 나의 현대시의 출발은 「병풍」 정도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고, 나의 진정한 시력은 불과 10년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김수영이 자괴감이나 선입견 없이 서구의 문학이론을 자신의 시세계에위와 같이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근대문학이 갖고 있었던 모방과 수입일변도란 한계적인 국면을 벗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김수영은 다른 곳에서 “죽음이 없으면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죽음이 없다. 詩에 다소나마 교양이 있는 사람이면 나의 이러한 연애관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키이츠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실제의 체험에서 배운 것이니까 어디까지나 나의 것이다. 새로운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나의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요컨대 김수영의 강 점은 근대문화나 근대문학을 서구에 일방적으로 의존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체험적으로 형성해나가고 있다는 데에 있다. 서구의 모더니티와 모더니즘이 한국에 제대로 정착한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우리의 현대시는 아직도 제대로의 발언을 못하고 있다. 자기의 언어를 못 갖고 있다. 피부 속까지 스며드는 뼈저린 언어를 못 갖고 있다.”라고 김수영이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얼마 전에 비하면 소위 모더니스트들의 비현대적인 시도 많이 줄어진 것 같고, 詠月派의 색채가 진한 젊은 시인들의 모더니티에 접근하려는 은근한 기도가 엿보이게 된 것도 같은데, 이 달의 시만 보더라도 확고한 우리의 모더니티의 기반에서 우러나온 시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없다. 시의 모더니티란 외부로부터 부과하는 감각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지성의 火焰이며, 따라서 그것은 시인이 -육체로서― 추구할것이지 詩가 ―기술면으로― 추구할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시인들의 모더니티에 대한 태도가 근본적으로 안이한 것 같다.   김수영이 시의 기교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시인의 세계관의 측면에서 근대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선배의 허세가 아니라 울림이 있는 강력한 주장이 되는데, 이는 김수영이 한국적인 상황에서 확보해낸 모더니티의 시론이 다음과 같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이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 이다.   김수영은 온몸시론 등 자생적 모더니즘 문학이론을 확립하면서 한국문학사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게 된다.     5. 오규원의 『현대시작법』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시론의 역사를 검토하면서 오규원의 『현대시작법』을 언급하는 이유는 김수영의 다음과 같은 지적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대시가 서구시의 식민지대로부터 해방을 하려는 노력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서구의 현대시의 교육을 먼저 받아야한다. 그것도 철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교육이 모자라기 때문에「참여파」고 「예술파」고를 막론하고 그들의 작품이 거의 전부가 위태롭게 보인다. 이런 의구심은 2,30대의 시인들의 오히려 좋은 작품을 대할 때에 더 커진다.   1990년에 발행된 오규원의 이 책은 그 이후 여러 곳에 개설된 대학과정의 문예창작과의 기본교재가 되었는데, 이로 인해 한국근대시의 근대성에 대한 의구심을 더 이상 제기할 필요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란 감정의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세계가 숨기고 있는 모든 가치로운 것들을 감지하고 표현하는 예술 형식이다. 그런 까닭으로 시에는 푸념이나 혼잣소리가 끼어들 틈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그런 감정의 세계이다.”라는 오규원의 설명을 통과하면서 한국시의 중세적 잔재는 우려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6. 김준오의 『시론』     김준오는 “개성을 남에게 드러내 보이기에는 아직 미숙하고 또 쑥스러웠기 때문”에 자신의 저서인 『시론』에다 “‘同一性의 詩論’이라는 제목을 붙이고자 했으나 결과는 그냥 『詩論』이라 해버렸다.”라고 말한다. 김준오가시의 원리를 논하는 자신의 저서에서 동일성identity이라는 개념을 핵심으로 삼는 이유는 “詩는 同一性이다”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서사나 극과 구분되는 서정시의 장르적 특징은 무엇보다도 “자아와 세계의 일체감”과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이라는 “시 정신 또는 시적 세계관이나 비전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의식의 차원에서, 즉 실제의 현실에서 자아와 세계는 엄연히 분리되어 있다. 나는 타인과 다르며 나 아닌 모든 사물과도 엄연히 구분된다. 그러나 서정적 자아는 세계를 내면화(자아화 또는 인간화)한다. 이런 서정적 자아의 작용에 의해서 서정시에서 자아와 세계는 동일성·일체감의 상상적 공간 속에 놓인다. 이것이 서정시의 원형이다. 세계를 내면화하는 서정적 자아의 행위 자체는 현실의 차원에서 상실된 동일성을 회복하는 일이 된다. 김준오는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은 시의 원래의 모습이자 시인이 몽상하고 갈망하는 고향”이며 이런 자아를 ‘서정적 자아’라고 부른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서정시는 극과 서사와 달리 자아와 세계 사이의 거리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의 서정적 결핍’lyric lack of distance이 서정시의 본질이라고 김준오는 강조한다. 이런 서정적 자아는 “세계를 자아화한다는 점에서” “어디까지나 ‘단일한 의미자’다. 다시 말하면 서정시는 ‘한’의식의, ‘한’ 목소리의 독백이다.” 김준오의 서정적 자아를 위한 동일성의 시론은 현재까지도 한국시단의 주류 이론이다. 한국시단에서 ‘시’란 대부분의 경우 ‘서정시’를 말하는데, 그 근저에 있는 대표적인 이론이 바로 지금까지 설명한 김준오의 서정적 자아의 시론일 것이다. 이런 김준오의 시론은 뉴크리티시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김기림이 1930년대에 도입하려고 시도하였던 뉴크리티시즘 이론을 김준오가 1980년대에 이르러 제대로 전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I. A. 리차즈에 의해 시작된 뉴크리티시즘 이론은 T. S. 엘리엇이 비판하는 바와 같이 모더니티에 대한 비판이었던 모더니즘 예술운동을 문학비평의 한 측면에 국한하여 축소시킨 과오가 있다. 김준오가 1993년 『도시시와 해체시』를 쓰면서 이런 축소지향의 과오를 극복하려고 노력한 바 있지만, 그의 동일성의 시론이 1960년대 서구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된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운동을 포괄할 수 없었다는 현실로 나타난다. 사실 많은 현대시들에서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대립·갈등이 지배적이다. 이기철학의 용어를 빌린다면 차이·분별의 원리인 氣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세계의 자아화라는 서정장르 이론과 전면적으로 일치하지 않으며 이 불일치 자체는 서정시 이론의 불충분함을 시사한다. 김준오의 위와 같은 자기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론』에서는 이에 대한 대응책, 즉 동일성의 시론에 기반을 둔 서정적 자아가 어떻게 변해야하는지 제시해내지 못하고 있다. 단지 “서정시의 한 순간은 ‘충만한 현재’다. 비록 인생의 줄거리가 없도 시는 한 순간 속에 오히려 강렬하고 집약된 형태로 자아를 표현한다.”라고 설명하면서 새로운 시문학을 위한 총체적 연구의 과제를 피하고 있다.     7. 이승훈의 시론     이승훈은 시 같은 평론 그리고 평론 같은 시를 쓰면서 이제 65권째의 저서를 냈다. 이승훈이 이렇게도 많은 글을 쓰는 이유는 자신의 존재가 모더니티의 시대와 포스트모더니티의 시대 사이에 걸쳐져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춘수는 모더니티의 시대의 끝자락에 위치하면서 자신의 시세계의 언어가 새로운 시대 속에서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런 반면에 이승훈의 시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불안’의 정서는 두 시대 사이에 어쩔 수 없이 걸쳐 있어서 정착할 수 없게 된 자신의 자아를 끊임없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이승훈이 최근에 보내온 두 권의 저서는 평론집 『선과 하이데거』 그리고 해방시학 『라캉으로 시읽기』인데, 그 제목만으로도 김준오가 회피했던 새로운 시문학을 위한 총체적 연구의 과제를 자신이 떠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연구 자세는 이승훈으로 하여금 한국문단의 주류 이론인 서정적 자아를 위한 동일성의 시론에 대한 전면 공격을 감행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이승훈은 『현대시의 종말과 미학』이나 『시적인 것도 없고 시도 없다』 등의 제목에서처럼 주장하게 된다. 여기서 이승훈은 ‘시’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문단의 주류 시론이 중심으로 삼는 ‘서정시’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승훈은 ‘서정시’만 ‘시’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이런 해방적인 시론의 전개가 한국문학에 새로운 시문학을 창출해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8. 권혁웅의 『시론』     권혁웅은 2000년대 한국시단의 새로운 경향인 미래파라는 용어를 제시한 이론가로서 2010년 664쪽에 이르는 『시론』을 상재하였다. 권혁웅의 『시론』은 2000년대에 주목받은 시인들의 시를 분석하여 시와 시적 표현이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설명해달라는 『시와표현』뿐만 아니라 한국문단 전체의 주문에 대한 중요한 대답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승훈이 자신의 내면에서 얼핏 발견되는 서정시적인 측면을 무시할수 없어서 다소 흥분된 어조로 소위 한국의 서정시 일변도에 대해 공격하였다면, 권혁웅은 그런 관습과 전통에서 자유롭기 때문인지 차분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분석을 시작한다.     세계의 자아화가 서정시라는 주장이 있다. 자아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투사, 세계가 자아로 들어오는 것을 동화라고 한다. 세계를 관통하고 수렴하는 주체의 환원적 운동이 동화라면, 세계에 스며들고 확장해가는 주체의 분산적 운동이 투사다. 어느 쪽이든 서정시는 동일시의 산물이며, 이때 세계는 주체의 모노드라마가 된다. 시적인 대상이 주체의 발언을 대신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주체와 대상이 융합되는 체험, 곧 각각의 자리가 소멸되어 통전하는 체험이 서정적 체험이다. 권혁웅은 이와 같은 동일성의 시론이 “장르론에서 말하는 서정을 서정시의 영역으로 전유”한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다고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시 장르를 일컫는 서정과 시의 하위장 르로서의 서정이 교착交錯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것들은 좌표상의 기준점이지 범주가 아니다. 다시 말해 서정적인 것, 서사적인 것, 극적인 것, 교술적인 것이 있지, 서정과 서사와 극과 교술이라는 실체가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장르를 언술을 나누고 가르는 형식화된 체계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체계가 차이와 배제를 속성으로 삼고 있으므로 이 때의 서정은 서사와 극과 교술 장르의 잉여이거나 분할로 정의될 수밖 에 없다. 서정을 이렇게 정의하면 시 가운데 서정시 아닌 게 없게 된다. 모든 문학이 시였고, 그중에서 어떤 것들이 소설로 희곡으로 수필로 분화해갔기에 지금의 시가 모두 서정시라는 주장이 그래서 나왔다. 이 주장은 틀린 주장은 아니지만, 무의미한 주장이다. 그로써 해명되는 시적특질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서정 장르와 서정시의 위와 같은 개념적인 혼란을 제외한다면, 김준오가 주장한 동일성의 시론에 대한 검토가 서정시에 대한 반론의 핵심이 될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운동을 시론의 관점에서 정리하자면 동일성의 시론이 전제로 하고 있는 자아의 완전성에 대한 반성의 표현일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서는 과연 자아가 독자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권혁웅은 이를 시론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하는데 한국 미래파의 시들을 이해하는 한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목소리를 대상을 지배하는 자아나 화자의 문제로 환원하지 말고, 대상과의 관련에서 생겨나는 주체의 문제로 간주하자. 대상의 본질과 배열을 검토해야 목소리를 온전히 해명할 수 있다. 시의 의미론적 국면을 검토하지 않으면 주체의 위치와 정체를 살필 수 없다. 다시 말해 시적 발언들을 에오라지 자아의 것으로 간주하면, 대상끼리의 관계와 거기에서 생겨나는 발화의 주체를 해명할 수 없다. 자아를 분석의 전제로삼는다는 것은 ‘나는 내가 한 발언들을 알고 있으며, 그 발언의 주인으로서 발언들을 온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가정을 수락하는 것이다. 차라리 ‘나는 제출된 발언의 결과로 생겨나는 목소리이며, 그 발언의 결과로서 발언들에 온전히 속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시와 시인과 화자를 혼동하는 악무한에서 벗어날 길이 열린다.   김준오의 동일성의 시론의 핵심이 자아의 완전성의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그런 논리로는 현대시의 목소리를 온전히 해명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권혁웅은 “자아나 화자 개념 대신에 주체 개념을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면 첫째, “시 장르 역시 세계의 실상을 온전히 드러내는 장르라는 점이 증명”될 것이며, 둘째, “어조의 기저형을 탐색할 수”있으며, 셋째, “의미론을 시 해명의 중심 과제로 설정할 수” 있으며, 넷째, “감각의 운용 방식을 살필 수” 있다는 것, 즉 새로운 시론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모든 대상을 장악한다는 가정으로는 발화 의 심층적 층위가 드러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주체 개념을 활용하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바로) 이것을 말한다’는 형식에 다음과 같은 전언들을 추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모르는) 이것을 말한다.’ ‘나는 (내가 모르는 척하는) 이것을 말한다.’ ‘나는 내가 말한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내가 말하지 않은) 이것을 말한다.’ 권혁웅이 지금 개척해나가고 있는 새로운 시론은 한국문학을 포스트모더니즘을 포함한 세계의 문학과 같이 발맞추어나갈 수 있게 할 것인 바,이러한 권혁웅의 시론을 둘러싼 미래파의 개척 작업이 한국문학의 중요한 미래를 배태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만식 1992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 『시론』, 『하느님의 야구장 입장권』, 『아내의 문학』 외 『나는 정말 아주 다르다』, 평론집 : 『해체론의 시대』 외 현 : 경원대 영문과 교수    
620    2015년 7월 4일자 한국 중앙일보 윤동주 시한편 등고해설 댓글:  조회:4634  추천:0  2015-07-04
빨래      - 윤동주(1917~1945)  빨랫줄에 두 다리를 드리우고 흰 빨래들이 귓속이야기 하는 오후(午後), 쨍쨍한 칠월 햇발은 고요히도 아담한 빨래에만 달린다. ---------------------- 빨래를 미루는 일은 어리석다. 빨래는 머리를 쓰지 않고, 자기 쇄신의 명랑함과 정신적 성숙을 드러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심신이 무료하면 빨래를 하고 마르기를 기다려 보라. 빨래가 마르는 오후, 비활성화된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사방은 고요하다. 수정 같은 고요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용을 키우며 홀연 모욕과 수치에서 벗어난다. 빨래가 뽀송뽀송 마르는 오후가 주는 선물은 심심함과 먼 곳의 아우라에 대한 예감이다. 이 심심함 속에서 우리는 제가 나아갈 바를 혼자서 결정하고 생의 침묵들을 견뎌낸다.
619    다시 알아보는 시인 조기천 댓글:  조회:5200  추천:0  2015-07-03
조기천의 서사시   1. 조기천의 생애  분단이후 북한 문학사가 "평화적 건설시기"(1945. 8-1950. 6)의 걸작으로 꼽고있는 조기천의 서사시 『백두산』은 제주 4·3사건을 다룬 강승한의 서사시 『한라산』과 함께 가장 알려진 작품이다. 이 서사시는 비단 이 시기의 걸작일 뿐만 아니라 분단시대의 북한문학 전시기를 통틀어서도 이념적 경직성이 지나치지 않는 8·15직후의 빈약했던 우리 문학가에서 드물게 보는 성과로 평가받을만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른바 1970년대를 전후해서 본격화된 주체이념의 유일사상화 시기를 북한문학의 이해와 평가의 시대적 분수령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일반적인 방법론인데 이런 관점에서 볼 때도 『백두산』은 오히려 주체사상을 담고 있으면서도 예술작품이 지닌 그 부정적 측면을 잘 극복한 뛰어난 형상성을 지니고 있다.  시인 조기천은 1913년 11월 6일 함경북도 회령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이내 시베리아로 이주해 갔다. 소련에서 그는 소년시절부터 지방신문이나 잡지를 통하여 짤막한 시들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옴스끄의 고리끼사범대학을 졸업한 그는 중앙 아시아 끄실 오르따 조선사범대학에서 약2년간 교직에 있었는데 이 시기에 그는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전개했다. 8·15때 조기천은 중국 동북지방에 들어왔던 소련군에 참여했다가 이내 북한으로 오게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당시 북한 문단의 구성요인이었던 재북·월북파,연안파,소련파 등의 구분에 따르면 소련파의 일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 조기천은『조선신무넬에서 일하면서 1946년 3월 서정시「두만강」을 발표하여 처음 시인으로서의 얼굴을 나타낸다. 이 시는 일제 식민지 시대 때의 수난받는 민중상과 항일투사들의 투지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 8·15의 감격을 노래한「울밑대에서 부른 노래」,토지개혁을 읊은「땅의 노래」등을 거쳐 1947년 『백두산』을 쓰게된다.  소련파였던 조기천이 이 시기에 가장 먼저 항일유격전을 소재로 하여 김일성을 부각시키는 작품에 손을 댄 사실은 여러 가지를 상정할 수 있으나 어쨌건 이 시로써 그는 일약 북한문단의 일급으로 부상한다. 1948년 여순사건을 소재로 한「항쟁의 려수」를 발표하여 그는 북한당국으로부터 공로메달을 받았는가 하면 8·15기념예술축전에서 연 세 번이나 수석 표창을 받았다고 전한다.  1949년 여름에는 휴가를 이용하여 흥남인민공장을 방문하여 약20일간 노동자들과 함께 한 체험을 바탕삼아 1950년6월에 장편 서사시『생의 노래』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2개년 경제계획에 나서도록 노동자들을 독려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6·25가 일어나자 조기천은 9월에 종군작가로 나서서 낙동강까지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간중에 저 유명한「조선은 싸운다」를 비롯하여「불타는 거리에서」「죽음을 우너수에게」「나의 고지」등 시작품을 썼다. 특히 "세계의 정직한 사람들이여!/ 지도를 펼치라/ 싸우는 조선을 찾으라"로 시작되는「조선은 싸운다」는 시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지도에서 도시와 마을은 폭격으로 불타고 없으니 찾지 말아라는 이 시는 선전과 서정이 조화된 반전시로 세계문학사에 알려져 있다.  1951년 3월 조기천은 조선문학예술 총동맹 부위원장으로 피선된다. 그 해 5월 그에게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국기훈장 2급이 수여되기도 한다. 그 두 달 뒤인 7월 31일 조기천은 39세로 평양에서 폭격으로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품 속에서는 유고『비행기 사냥군』이란 서정서사시가 있어 사후에 발표되었다고 전한다.  조기천의 생애는 짧았기에 북한의 어떤 정치적 격변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애국적 시인"으로 남았고, 또한 그의 작품활동 기간은 "평화적 건설시기"와 "위대한 조국 해방전쟁시기"에 제한되었기 때문에 그 뒤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조기천은『생의 노래』에서 투철한 자신의 문학관을 토로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마 소련 시절부터 익혔던 사회주의 미학관의 한 표출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옛날엔/ 시가를 풍월이라 불렀다/ 그래서 시인이라 자처한 무리들은/ 화조월석을 찾았고/ 초로인생을 설어했는가?/ 그래서 그들에겐/ 외적의 나팔소리보다/ 꾀꼬리소리 더 높이 들리었고/ 달이 둥그는 걸 잘 알았는가?/ 시인이라 자처한 무리들은/ 병든 마음을 파고들며/ 인생의 비애를 찬미하며--/ 무엇 때문이었느냐?/ 지는 곷이 서러웠드냐?/ 조선의 가슴에/ 일제의 칼이 박혔는데--  『생의 노래』에서  8·15뒤 북한문학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창조를 그 바탕으로 삼으면서 민족형식을 강조하는 경향이었는데 비록 소련에서 소년기를 보낸 조기천 일지언정 이런 원칙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던성 싶다.  2.『백두산』의 주제로서의 보천보 전투  8·15직후 남북한은 문학적으로 다 일제잔재 청산과 새 사회 건설을 위한 완전독립을 이루려는 반외세운동 등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친일파에 대한 처벌문제와 반제·반봉건 의식의 문학이 가장 긴박한 과제로 등장했으며 이를 다룬 작품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어 남북한에서 다 토지문제를 다룬 작품이 상당량에 이르며 그 뒤로 오면서 사회적 혼란 속에서 인간의 내면적 탐구를 주로 다루는 한국문학과 사회주의 개혁의지를 다룬 북한 문학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조기천의 『백두산』은 바로 그 갈림길에 이르는 길목에 있으면서 그 당시로서는 직접적으로 당면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항일빨치산을 소재로 했다는데서 이 시인의 특이한 역사적 감각을 느끼게 한다.  이 서사시의 소재인 보천보 전투에 대해서는 항일투쟁사에서 여러 각도에 걸쳐 고찰된 것이 많은데 최근 소개된 와다 하루키(和母春樹)의「김일성과 만주의 항일무장투쟁」(『사회와 사상』1988.11-12 연재)에 따르면 조국광복회 조직이 시작되면서 국내로까지 손을 뻗는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그 지휘자는 김일성이었다고 한다. 커민테른 제7차대회의 새방침에 따라 항일연군 제1로군의 힘으로 조선독립투쟁을 수행한다는 결정이 이루어져 3개사가 공동으로 국내 진입작전을 입안하게 된 것이라고 와다 교수는 보고 있다.  즉 제6사는 장백에서 보천보를 공격하고, 제4사는 무송-안도-화룡으로 돌아서서 조선의 무산을 치며, 제2사는 임진강 일대에서 장백으로 향하도록 계획을 세웠는데 이런 제안은 김일성이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초적으로 간삼봉(間三峯)에서 만나기로 한 이 3개사 합동작전은 제4사의 최현의 이름을 유명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김의 제6사는 근대 민족해방 투쟁사에서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북한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이하 와다 교수의 글을 그대로 옮긴다.  김일성의 제6사는 무산에서의 행동을 통보받고 6월 4일밤, 100여명이 강을 건너고, 대안에서 조국광복회 청년 80여 명과 합류하여 보천면 보전(保田)을 공격했다. 보건은 일본인 26호, 조선인 280호, 중국인 2호, 합계 308호인 소읍으로서 조재소에는 5명의 경관이 있었다. 이 주재소를 비롯하여 면사무소·삼림구(森林區)·우체국·관공서 건물들이 불타버렸다. 부대는 〈10강령〉의 삐라를 뿌리고 철수했다. 철수할 때 혜산서(署)의 오가와(大川)의 경부가 이끄는 병력의 추격을 받자 이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물러갔다.  보천보 작전을 성공리에 끝마친 제6사는 장백의 밀영으로 일단 철수했다가 제4사·제2사의 도착을 기다려 간삼봉으로 이동했다. 총인원 400이라고도 하고 600이라고도 한다. 그 사이 조선 침입사건으로 초조해진 일본군은 함흥의 제74연대를 김석원 소좌의 지휘하에 출동시켜 국경 일대의 토벌전을 시도했다. 이 군대에 6월 30일, 간삼봉에서 기다리고 있던 3사 연합군의 타격을 가했다.  『사회와 사상』1988. 11. 187쪽  이어 와다 교수는 이 사건으로 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신원이 일제 기관에 의하여 분명히 드러나게 되었다고 쓴다(보다 자세한 자료는 남현우 엮음『항일무장 투쟁사』대동, 253-266쪽 참고)  이 1937년 6월4일 사건을 주제로 한 것이 조기천의 『백두산』으로 이는 북한에서 항일 빨치산 투쟁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많은 예술작품이 다뤄온 역사적인 한 전형이 되었다.  그러나 조기천의 『백두산』은 이 보천보 사건을 다루면서도 결코 이 사건 하나만에 국한시키지 않는 항일빨치산 투쟁의 보편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서가고 있다. 즉 이 시에서는 김을 비롯한 몇몇 고유명사만 빼면 어떤 특수한 사건이 아닌 항일 투쟁의 민족적 보편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창작했다고 풀이한다. 예술적인 일반화를 시도하려는 동기에서 이 시는 사건발생의 명확한 연도와 지명을 밝히지 않았는데 예컨데 H시로 표기한 것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영웅주의를 벗어난 영웅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특정 사건의 특정 인물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민족적으로 일반화된 민중주체의 항일투쟁을 전형화 시킨다는 의도로 평범한 농민투사들을 내세우고 있다. 다만 김만은 예외적 구상으로 이뤄져 있다.  3. 『백두산』의 구성과 특질  머리시와 1-7장에다 맺음시로 이루어져 있는『백두산』은 조기천 자신의 서정시「두만강」을 그 원형으로 삼고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즉「두만강」에 나오는 국토와 민족애가 『백두산』에 그대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째진 가난 속에 부대껴도/ 말 한마디 틀리랴 겁내며/ 눈물에 치마고름 썩어도/ 앞날을 바라고 한숨을 주이는/ 두만강이여. 이것이/ 그대 그려둔 조선의 여인이 아닌가?"(「두만강」)에 나타난 여인상이 그대로『백두산』의 꽃분이로 승화한다는 해석이 있다. 이렇게 볼 때 결국 우리의 민족문학에 나타난 여인상은 모두가 꽃분이일 수밖에 없다는 민족적 보편성이 성립할 소지도 있을 것이다.  왜 이런 보편성을 먼저 내세우느냐 하면 분단 44년이 지나서 남북한의 이질화 현상을 공공연히 거론하고 있지만 민족문학사의 긴 뿌리에서 본다면 결국은 동질성으로 볼 수 밖에 없음을 대전제로 삼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백두산』의 모든 인물들은 근대 이후 우리 민족문학사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반성을 지닌 인간상이 아닐까? 예컨데 꽃분이는 가난 속에서 민족의식을 지닌 채 자라나 빨치산 활동에 투신하여 박철호와 위험을 무릎 쓰고 항일선전 및 무장투쟁에 까지 가담한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 박철호가 죽어간 뒤에도 미래의 조국 건설을 위한 후비대로 눈물을 삼키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상정된다. 이런 한 여인상의 고난은 우리 민족문학사에서 너무나 많은 변형으로 나타난다. 신동엽의 시에서는 아사녀로 상징되며, 소월의 시에서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며 님을 보내드리는 그 여인상 모두가 우리의 꽃분이가 아닐까.  『백두산』은 그 앞머리부터 역사적인 현실성으로서의 평범성(곧 민중성)과 초자연적인 영웅성이 조화를 이룬 채 장엄하게 묘사된다. 이 조화로운 자연묘사는 영웅주의와 민중성을 하나의 역사적 진보의 작용으로 보려는 시인의 의도가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시에 나타난 영웅상은 한 개인적인 위대성의 표현이 아니라 집단적 영웅상으로 그려진다. 물론 시에는 김을 그 정점으로 삼아 짤막하나마 초인화시키고 있으나, 그것은 다른 빨치산 개개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함께 있는 것이지 초자연적인 홀로인 영웅주의로 우뚝 솟은 인물로 부각된 것은 아니다.  민중적 영웅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시적 구도로 『백두산』은 가장 민중적 형식인 구비문학의 각종 자료를 활용하고 있다. 이는 철저한 전통적 민중성을 혁명의 기초로 삼으려는 의도된 문학적 형식이기도 한데 민요조로 이루어진 가락은 독자들에게 한결 친근감을 준다.  시적 사건 전개방법은 오히려 극히 단조롭다. 아내를 일본인에게 잃은 김운칠은 혜산에서 솔개 마을로 옮겨와 화전농으로 어렵게 살아간다. 딸 꽃분이는 조선광복회 회원일시 분명한 박철호가 정치공작원으로 국내에 잠입해 왔을 때 그에게서 1년동안 지도를 받는다. (2장) 꽃분이와 철호는 유인물을 만들다 일본경찰에게 들킬뻔 했으나 꽃분의 기지로 위기를 넘긴다. (3장) 임무를 끝낸 철호는 16세 소년 영남이와 떠났으나 압록강을 건너다 영남은 사살되고 만다. (5장) 이미 국내에 조직되어 있는 과옥회 회원들과 연계하여 잠입한 빨치산은 쉽게 폭동에 성공한 후 각종 정치사업을 끝내고는 물러간다. 폭동 성공은 물론 꽃분이와 철호가 그 앞장을 선다. (6장) 그러나 압록강 뗏목을 타고 국경을 넘어가던 중 철호와 청년빨치산 중 가장 용감했던 석준이 총에 맞아 전사한다. (7장)  이미 밝힌 것처럼 보천보 전투를 그대로 묘사하면서도 특정 지명을 쓰지 않은 것은 항일투쟁의 보편성을 전형화하기 위한 의도이다. 그러나 투쟁의 전형성은 먼저 투철한 조직의 부각으로 분명히 드러난다. H시에 들어온 빨치산들은 이미 만들어진 조직을 통하여 힘들이지 않고 잠입하여 쉽게 폭동을 일으킨 후 여유있게 물러간다. 그리고 이런 힘이 원천을 이 시에서는 민중의 편에 선 민중을 위한 조직으로 풀이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의 하나인 제4장은 나흘째 굶은 빨치산 대원들이 소 두 마리를 끌고 오자 그 소가 일본의 것이 아닌 조선과 중국 농민의 것임을 알고는 되돌려 주려다 실패하곤 그 대가라도 치뤄야 한다는 철의 규율이 나오는 대목이다. 제4장의 5절에 나오는 민중성의 강조는 근대이래 우리 민족문학사에서도 드물게 보는 구절이다.  항일빨치산이 지닌 현재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추구하기 위하여 『백두산』의 맺음시는 "그러면 백두야/ 조선의 산아 말하라!/ 오늘은 무엇을 보느냐?/ 오늘은 누구를 보느냐?"고 묻도록 만든다. 바로 8·15직후의 한반도로 항일의 의지를 끌어들여 역사적 진로를 모색코자 하면서 이시는 끝난다. 물론 문학의 당시 입장이 선명하게 스며있다, 그러나 8·15직후의 북한 입장이란 오늘의 분단고직화 시대의 그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자유의 나라!/ 독립의 나라!/ 인민의 나라!/ 백두산은 이렇게 외친다!/ 백성은 이렇게 외친다!"는 마지막 구절은 당시 남북한 어디에도 들어맞는 말이었기도 하다.  이래서『백두산』은 분단시대 초기의 남북한 이질화가 옹고되기 이전의 동질성을 재확인할 수 있는 작품의 하나로 주목할 가치가 있는 서사시로 평가받아 마땅할 것이다.  물론 오늘의 우리 입장에서 말한다면 일제 식민지 아래서의 구체적인 민중적 삶의 실체가 좀 약하다든가 하는 나대로의 비판이 따를 수도 있지만 8·15직후의 작품수준을 감안할 때 우리 문학의 수확인 점은 누구도 부인 못할 것이다.     
618    전쟁과 화폐살포작전 / 짧은 시 모음 댓글:  조회:5439  추천:0  2015-07-03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피해를 남긴 제2차 세계대전, 포탄과 총알 뿐 아니라 '조개껍데기'도 무기로 쓰였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상대의 생명을 앗아가거나 공격을 방어하는 도구로써의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적국의 금융을 교란시키기 위한 방책이었습니다. 1942년 2차 대전이 한창이던 태평양 한가운데 섬나라 뉴기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일본군은 뉴기니의 상공에서 포탄과 함께 조개껍데기를 마구 흩날렸습니다. 바로 그곳의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화폐가 조개껍데기였기 때문이지요. 하늘에서 돈을 내리는 방법으로 현지의 화폐 가치를 폭락시키는 공격이었습니다. 이후 뉴기니는 상당기간 금융불안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전쟁에서 화폐를 무기로 삼아 '인플레이션'을 의도적으로 일으키려한 경우는 또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베른하르트 작전'이 대표적이지요. 친위대 중령 베른하르트 크루거가 총 책임자로, 작전명도 그의 이름을 땄습니다. 1942년 독일군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영국 파운드화를 대량으로 위조해 영국 상공에 투하시킬 계획을 수립합니다. 수용소에 잡아들인 유대인 화폐위조범과 인쇄공, 회계사 등 140여명을 동원했습니다. 이들은 당시 포로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개인침대, 담배, 스포츠 등을 제공받았습니다. 독일은 베른하르트 작전을 충실히 실행해 2년간 1억3000만파운드 규모의 위조 파운드화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합니다. 정밀도에 따라 4등급으로 분류된 위폐들은 공작금, 무역결제용, 살포용 등으로 분류됐지요. 하지만 영국 상공에 살포한다는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전쟁이 후반부에 치달았던 1944년 독일은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영국상공에 비행기조차 띄우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위폐와 장비는 모두 오스트리아 토플리츠 호수에 버려졌습니다. 이후 수십년간 이 호수 근처에는 위폐를 건져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합니다. 이외에 지폐의 모습을 한 프로파간다 전단지를 뿌리는 방법도 전쟁에서는 종종 사용됐습니다. 사람들이 지폐로 착각해 집어들게 만들거나, 전단지를 지폐로 위장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짧은 시]  모음|     덫에 걸린 쥐에게  --에리히 케스트너  원을 긋고 달리면서 너는 빠져 나갈 구멍을 찾느냐?  알겠느냐? 네가 달리는 것은 헛일이라는 것을.  정신차려. 열린 출구는 단 하나밖에 없다.  네 속으로 파고 들어가거라.  後記  --천양희  시는 내 自作나무  네가 내 全集이다.  그러니 시여, 제발 날 좀 덮어다오  木星  --박용하  확실히, 영혼도 중력을 느낀다.  쏟아지는 중력의 대양에서  삶과 죽음을 희롱하는 시를 그대는 썼는가.  삶이 시에 빚지는 그런 시를 말이다  마른 나뭇잎  --정현종  마른 나뭇잎을 본다.  살아서, 사람이 어떻게  마른 나뭇잎처럼 깨끗할 수 있으랴  그리고 삶  --이상희  입술을 깨물어도  참을 수 없이 터져나오는  재채기 삼창  에잇!  집어쳐!  kitsch!  시멘트  --유용주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  자신이 가루가 될 때까지 철저하게  부서져 본 사람만이 그걸 안다.  서시  --나희덕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도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사이  --박덕규  사람들 사이에  사이가 있었다 그  사이에 있고 싶었다  양편에서 돌이 날아왔다  정신은 한번 깨지면 붙이기 어렵다  후회  --황인숙  깊고 깊어라  행동 뒤 나의 생각.  내 혀는 마음 보다  정직했느니  별  --곽재구  모든 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머리칼을 지녔는지  난 알고 있다네  그 머리칼에 한번 영혼을 스친 사람이  어떤 노래를 부르게 되는지도  아침이슬  --고은  여기 어이할 수 없는 황홀!  아아 끝끝내 아침이슬 한방울로 돌아가야 할  내 욕망이여  연탄재  --안도현  발로 차지는 말아라  네가 언제 남을 위해 그렇게 타오른 적이 있었더냐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황지우  긴 외다리로 서 있는 물새가 졸리운 옆눈으로  맹하게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를  꿈  --황인숙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빵  --장석주  누군가 이 육체의 삶,  더 이상 뜯어먹을 것이 없을 때 까지  아귀 아귀 뜯어먹고 있다!  이스트로 한없이 부풀어 오른 내 몸을  뜯어먹고 있다!  방(榜)  --함성호  천불 천탑 세우기  내 詩 쓰기는 그런 것이다.  첫사랑  --이윤학  그대가 꺾어준 꽃  시들 때 까지 들여다 보았네  그대가 남기고 간 시든 꽃  다시 필 때 까지  우주를 건너는 법  --박찬일  달팽이와 함께!  달팽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도달할 뿐이다  일기  --김형영  잘 익은 똥을 누고 난 다음  너, 가련한 육체여  살 것 같으니 술 생각 나냐?  사랑  --정호승  무너지는  폭포 속에  탑 하나 서 있네  그 여자  치마를 걷어 올리고  폭포 속으로 걸어 들어가  탑이 되어  무너지네  사랑  --김명수  바다는 섬을 낳아 제 곁에 두고  파도와 바람에 맡겨 키우네  눈물  --정희성  초식동물 같이 착한 눈을 가진  아침 풀섶 이슬 같은 그녀  눈가에 언뜻 비친  자화상  --신현림  울음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  울음은 사람이 만드는 아주 작은 창문인것  창문 밖에서  한 여자가 삶의 극락을 꿈꾸며  잊을 수 없는 저녁 바다를 낚는다.  전집  --최승호  놀라워라. 조개는 오직 조개 껍질만을 남겼다.  내 청춘의 영원한  --최승자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 앵글  세상에서 멀리 가려던  --최하림  세상에서 멀리 가려던 寒山 같은 시인도  길위에서 비오면 걸음을 멈추고 오던  길을 돌아본다 지난 시간들이 축축히  젖은 채로 길바닥에 깔려있다  꽃  --조은  오래 울어본 사람은  체념할 때 터져 나오는  저 슬픔과도 닿을 수 있다.  수묵 정원 -暮色  --장석남  귀똘이들이  별의 운행을 맡아가지고는  수고로운 저녁입니다. 가끔 단추처럼 핑글  떨어지는 별도 있습니다  간 봄  --천상병  한 때는 우주 끝까지 갔단다.  사랑했던 여인  한 봄의 산 나무 뿌리에서  뜻 아니한 십 센티쯤의 뱀 새끼같이  사랑했던 여인.  그러나 이젠  나는 좀 잠자야겠다.  겨울산  --황지우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반성 16  -------  김영승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반성 187  --------  김영승  茶道니 酒道니 무릎 꿇고 정신 가다듬고  PT체조 한 뒤에 한 모금씩 꼴깍꼴깍 마신다.  차 한잔 술 한잔을 놓고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이  나한테 그 무슨 오도방정을 또 떨까  잡념된다.  지겹다.  반성 906  --------  김영승  손등 위에 손등 위에 손등 위에 손등을 얹어놓고  주먹으로 때리면  때리면 쌱 피한다  맨밑의 나만 맞는다  칼로 찍힌다.  죽음  ----  김영승  창밖엔 비가 내린다.  더 이상 내 손에 만져보고 싶은 게 없게 되었을 때  그래서 권태스러워하고 있을 때  노아의 방주처럼  잠시 동안만 더 고독해 하면 되리라고 생각했다.  창밖엔 빗소리가 정답다.   
617    항상 취해 있으라... 댓글:  조회:4751  추천:0  2015-07-03
조금 취해서 - 김형영(1944~ ) 남 칭찬하고 술 한 잔 마시고, 많이는 아니고 조금, 마시고 취해서 비틀거리니                                         행복하구나.                                         갈 길 몰라도                                         행복하구나. 취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술, 시, 음악, 고양이, 아름다움에 취하면 인생이 보다 풍부해진다. 보들레르는 항상 취해 있으라고 썼다. 취하면 평범한 악들의 번성은 물론이거니와 인생 자체의 권태와 느글거림마저도 견딜 만해지니까. 술에 취하면 나는 자꾸 웃음이 나온다. 술은 고통을 잠재우고 기쁨을 일깨우는 묘약이다. 적당히 취한 뒤 비틀거리니 행복하구나! 아아, “갈 길 몰라도” 행복하구나. 밤이면 밤마다 그토록 많은 술집들에 술꾼들이 붐비는 것은 술 한 잔의 환락과 젊음, 술 한 잔의 망각과 행복을 사기 위해서다. 헛것을 따라다니다*     김형영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산다. 내가 꽃인데 꽃을 찾아다니는가 하면, 내가 바람인데 한 발짝도 나를 떠나지 못하고 스스로 울안에 갇혀 산다.   내가 만물과 함께 주인인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한평생도 모자란 듯 기웃거리다가 나를 바로 보지 못하고 나는 나를 떠나 떠돌아다닌다.   내가 나무이고 내가 꽃이고 내가 향기인데 끝내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헛것을 따라다니다 그만 헛것이 되어 떠돌아다닌다. 나 없는 내가 되어 떠돌아다닌다.      
616    <지렁이> 시모음 댓글:  조회:4851  추천:0  2015-07-01
        지렁이의 일생   한상순·(아동문학가)     한평생  감자밭에서 고추밭에서 좋은 땅 일구느라 수고한 지렁이 죽어서도 선뜻 선행의 끈 놓지 못합니다. 이제 막 숨을 거둔 지렁이 한 마리 밭고랑 너머 개미네 집으로 실려 갑니다. 지렁이에게 주는 상장   신현득     너는 흙을 깨물지 않고  온몸으로 주물러서만 일구었느니라.  빗물 스미기 좋게 하고  거름 스미기 좋게 하고  민들레 뿌리 뻗기 좋게 하여  그 그늘에 귀뚜라미 숨어살게 하였느니라.  도꼬마리 씨 떨어지면 싹트기 좋게 하고  온갖 벌레알 잠자기 좋게 하고…….  좋게, 좋게만 하다 보니  총으로 서로 쏘던 사람들도  ―어, 지렁이 보게!  ―지렁이에게 배워야 한다니까!  놀라고 느껴 쏘던 대포도 그리고 해서  좋게만 되었느니라.  네가 발바닥 하나 없이  배밀이로만 기면서 이룬 일이  우리 백두산 높이라, 오늘  인간의 국무총리가 큼직한 도장으로  주는 상장보다도  나무와 햇빛과 흙이 나란히 서서  몇 줄 칭찬을 적어  주느니라.   흙에 생명을 주는 주인공   조춘구     또르륵 또르륵 한여름 밤 고요 속에  풀밭에서  아주 작으나 청량하고 또렷한 소리 그러나 그 소리가  이젠 점점 사라져 간다 그리고 흙의 생명도 잃어간다. 농약과 제초제가 주범이다. 흙이 살아야 인간도 살텐데... 지렁이의 걱정이다.     지렁이와 터널   나호열     시력이 약해지고 있다  끊겨질 길에 대한 불안  감히 뛰어가지도 못한다  너를 통과하는 동안  기쁨은 너무 짧은 마취였다 넝쿨장미가 상처처럼  아득하게 피어났다     지렁이론   오만환·     침묵으로 말한다  드러내지 않는 게 사는 길  꿈틀거린다  꿈틀대도 어쩔 수 없다  고기밥으로 맛있는 지렁이  허리가 잘려도 살아남는 게 지렁이다  암수가 하나  약한 것이 힘  자연스러운 게 지렁이다  눈물 콧물 구정물 섞여서  주변을 기름지게  주면서 사는 게 지렁이다  내버려두세요  사람은 사람, 지렁이는 지렁이  흙내음 맡으며  축축하게 땀 흘리는  지렁 지렁 우리 지렁이  낮은 곳에서  사람들도 지렁이처럼 산다     지렁이   주근옥·     아스팔트 위를  지렁이가 기어가네  비와 자동차 사이로  지렁이   김종익·     억울하게 조사 받은 지렁이  맑은 날 길에 빠져 자살했다 모든 체액을 햇빛에 빨리고  검불이 되는 먼지로 흙으로 돌아가는  소멸 무죄 주장하는  마지막 저항 나와 지렁이   백석·     내 지렁이는  커서 구렁이가 되었습니다  천년 동안만 밤마다 흙에 물을 주면 그 흙이 지렁이가 되었습니다.  장마 지면 비와 같이 하늘에서 나려왔습니다.  뒤에 붕어와 농다리의 미끼가 되었습니다.  내 이과책에서는 암컷과 수컷이 있어서 새끼를 낳았습니다.  지렁이의 눈이 보고 싶습니다.  지렁이의 밤과 집이 부럽습니다 1935년 11월 「朝光」발표   지렁이의 詩   김신용·     그저 온몸으로 꿈틀거릴 뿐, 나의 노동은  머리가 없어 그대 위한 기교는 알지 못한다  구더기도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를 만들지만  내 땀 다 짜내어도 그대 입힐 눈물  한 방울일 수 없어  햇살 한 잎의 고뇌에도 내 몸은 하얗게 마르고  天刑이듯, 그대 뱉는 침 벗삼아 내 울음  알몸 한 벌 지어 오직 꿈틀거림의 노래를 들려주겠다  이 세상의 모든 빛,  그대 사랑에게 겸허히 잡혀 먹히어 주겠다  나를 지킬 무기는 없어  비록 어둡고 음울한 습지에 숨어 징그러운  몸뚱이끼리 얽혀 산다 해도 어둠은 결코  謫所가 아니다 몸뚱이가 흙을 품고 있는 한  간음처럼, 대지를 품고 있는 한  우리 암수의 성기가  사흘 밤 사흘 낮을 몸 섞는 풍요로운 꿈으로  모든 버려진 것을 사랑하는 몸짓으로  그대의 땅을 은밀히 잉태하고 있는 한    지렁이가 따라 올라오다   신현정     조금 남은 공한지에 구덩이를 파서 호박씨 묻으려고  흙 한 삽 떠올렸는데  지렁이가 따라 올라오다  흙 한 삽이 이다지 무거운가 하다  지렁이가 따라 올라오다  흙 한 삽이 저절로 명랑하다  지렁이가 따라 올라오다  흙 한 삽에 포오란 지진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지렁이가 따라 올라오다  아서라 나는 흙 한 삽 도루 내려놓고  구덩이를 포기하다. 지렁이 같은 세상   유일하     핏줄기의 몸으로 울어야했던  죽음의 사투를 난 바라본다. 어이해 갑옷을 벗어던지고  아스팔트 위에서 고뇌하는가! 갑옷 속에서 흐느적거릴 때  따스했던 흙덩이의 사랑은  매몰된 구덩이로 돌변했다. 아스팔트 위에서 처참한 생은  하늘의 눈물 때문이었으리라. 개미들의 악착같은 이빨로  붉게 물들어간 너의 삭신. 자연을 정화하고 자연 속을 향해  거룩한 행진을 하고 있구나. 우리의 분신도 그때가 되면 알겠지! 지렁이   정일남       적갈색 고무줄로 된 몸이더라  뼈가 다 녹아 반죽이 되어 고무줄이 된 거지  한 몸에 암수가 같이 껴안고 살아  금실이 너무 잘 다듬어졌다  부부간의 진정한 애무의 전범이다 자네, 지렁이 우는소리 들어봤어?  비닐하우스를 하는 친구가 느닷없이 묻는다  지렁이가 운다고?  아침에 비닐하우스의 문을 열면 공간에  자욱하던 지렁이 울음소리가 갑자기 뚝 끊어진다고 했다  귀가 그렇게 밝은 지렁이  지렁이가 살지 않는 땅은 죽은 땅이다  장마 뒤 공기 구멍을 물이 막으면 지렁이는 땅위로 올라와야 산다  악착같이 살려고 헤매다가 햇볕에 말라죽는다  개미들이 몰려와 장례를 치르는 것을 보았다  어릴 때 달밤에 마당 한쪽에서  풀벌레보다 작은 이상한 소리 들었다  그것이 지렁이의 울음소리가 맞을까  그것이 세상을 원망하는 소리라면 더 들어주었어야 했는데  척추는 없어도 슬픔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렁이와 나는 사는 방식이 달랐다 어느 날 아스팔트길을 건너려고  지렁이는 온몸이 발이 되어  긴 고무줄을 이끌고 갔다  차량이 줄을 이어 오고 가는 그 길을 · 지렁이의 울음을 누가 들었을까   김정희       소낙비 그친 뒤  수 시간 걸려 아스팔트로 올라왔을 지렁이가  후진하던 자동차에 깔린다 수 초 전까지 살아  꿈틀거리던 그가 금세 한 장의 전개도처럼 펼쳐진다  그때, 누가 들었을까? 그 지렁이의 마지막 울음소리를  409호 베란다에 사는 비둘기들이 새파랗게 눈독들이는 소리를  비둘기들이 재빨리 내려가 축축한 전개도를 떼어 물고 간다  아스팔트에 복사된 지렁이의 생이 붉은 우표처럼 붙어있다  바로 그 자리에 짐차 한 대 들어선다 지렁이의 서울   김수우     가을장마가 끝난 오후  흙먼지를 뒤집어쓴 지렁이를 본다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저기 저만치 꽃밭이 보인다 벗겨진 살갗을 찌르는 햇살보다  앞만 보고 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더 아찔하다  쥐똥나무가 있는 화단은 턱이 높다 수 미터 아래서는  지하철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그날 이후 밤마다  왝왝 토해낸 슬픔들이  모두 흙투성이가 되어 꿈틀거린다  화단은 날마다 가위질로 다듬어지고    
615    미친 시문학도와 싸구려 커피 댓글:  조회:4568  추천:0  2015-06-30
빗방울 -오규원(1942~2007) 빗방울이 개나리 울타리에 솝-솝-솝-솝 떨어진다 빗방울이 어린 모과나무 가지에 롭-롭-롭-롭 떨어진다 빗방울이 무성한 수국 잎에 톱-톱-톱-톱                                         떨어진다                                         빗방울이 잔디밭에                                         홉-홉-홉-홉                                         떨어진다                                         빗방울이 현관 앞 강아지 머리통에                                         돕-돕-돕-돕                                         떨어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때는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낮잠을 잘 때다. 파초 잎의 빗소리를 들으며 파초 꿈을 꾼다. 빗방울은 어디에서나 노래하고 춤춘다. 당신은 빗방울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자, 가만히 귀 기울여 보라. 개나리 울타리에서 솝-솝-솝-솝, 어린 모과나무 가지에서 롭-롭-롭-롭, 무성한 수국 잎에서 톱-톱-톱-톱, 잔디밭에서 홉-홉-홉-홉, 강아지 머리통에서 돕-돕-돕-돕 하고 빗방울들은 실로폰 두드리듯 그것들을 두드리며 노래한다. 귀 밝은 시인 덕분에 들을 수 없는 비의 노래를 듣는다.       간판이 많은 길은 수상하다                      서울은 어디를 가도 간판이 많다. 4월의 개나리나 전경(全景)보다 더 많다. 더러는 건물이 마빡이나 심장 한가운데 못으로 꽝꽝 박아 놓고 더러는 문이란 문 모두가 간판이다. 밥 한 그릇 먹기 위해서도 우리는 간판 밑으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 소주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도 우리는 간판 밑으로 또는 간판의 두 다리 사이로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서는 사전에 배치해 놓은 자리에 앉아야 한다. 마빡에 달린 간판을 보기 위해서는 두 눈을 들어 우러러보아야 한다. 간판이 있는 곳에는 무슨 일이 있다 좌와 우 앞과 뒤 무수한 간판이 그대를 기다리며 버젓이 가로로 누워서 세로로 서서 지켜보고 있다. 간판이 많은 길은 수상하다. 자세히 보라 간판이 많은 집은 수상하다.       개봉동과 장미                                    개봉동 입구의 길은 한 송이 장미 때문에 왼쪽으로 굽고, 굽은 길 어디에선가 빠져나와 장미는 길을 제 혼자 가게 하고 아직 흔들리는 가지 그대로 길 밖에 선다. 보라 가끔 몸을 흔들며 잎들이 제 마음대로 시간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장미는 이곳 주민이 아니어서 시간 밖의 서울의 일부이고, 그대와 나는 사촌(四寸)들 얘기 속의 한 토막으로 비 오는 지상의 어느 발자국에나 고인다. 말해 보라 무엇으로 장미와 닿을 수 있는가를. 저 불편한 의문, 저 불편한 비밀의 꽃 장미와 닿을 수 없을 때, 두드려 보라 개봉동 집들의 문은 어느 곳이나 열리지 않는다.       프란츠 카프카                                    -MENU- 샤를르 보들레르    800원 칼 샌드버그          800원 프란츠 카프카       800원 이브 본느프와    1,000원 에리카 종          1,000원 가스통 바슐라드  1,200원 이하브 핫산       1,200원 제레미 리프킨    1,200원 위르겐 하버마스 1,200원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와 앉아 커피를 마신다 제일 값싼 프란츠 카프카       한잎의 여자(女子) 1                               나는 한 여자(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女子), 그 한 잎의 여자(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 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女子)를 사랑했네. 여자(女子)만을 가진 여자(女子), 여자(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女子), 여자(女子)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여자(女子), 눈물 같은 여자(女子), 슬픔 같은 여자(女子), 병신(病 身) 같은 여자(女子), 시집(詩集) 같은 여자(女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 는 여자(女子), 그래서 불행한 여자(女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女子).       겨울 숲을 바라보며                              겨울 숲을 바라보며 완전히 벗어버린 이 스산한 그러나 느닷없이 죄를 얻어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겨울의 한 순간을 들판에서 만난다. 누구나 함부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누구나 함부로 완전히 벗어버릴 수 없는 이 처참한 선택을 겨울 숲을 바라보며, 벗어버린 나무들을 보며, 나는 이곳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한 벌의 죄를 더 겹쳐 입고 겨울의 들판에 선 나는 종일 죄, 죄 하며 내리는 눈보라 속에 놓인다.       버스정거장에서                                        노점의 빈 의자를 그냥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노점을 지키는 저 여자를 버스를 타려고 뛰는 저 남자의 엉덩이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나는 내가 무거워 시가 무거워 배운 작시법을 버리고 버스 정거장에서 견딘다 경찰의 불심 검문에 내미는 내 주민등록증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주민등록증 번호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안 된다면 안 되는 모두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나는 어리석은 독자를 배반하는 방법을 오늘도 궁리하고 있다 내가 버스를 기다리며 오지 않는 버스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시를 모르는 사람들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배반을 모르는 시가 있다면 말해보라 의미하는 모든 것은 배반을 안다 시대의 시가 배반을 알 때까지 쮸쮸바를 빨고 있는 저 여자의 입술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                               죽음은 버스를 타러 가다가 걷기가 귀찮아서 택시를 탔다 나는 할 일이 많아 죽음은 쉽게 택시를 탄 이유를 찾았다 죽음은 일을 하다가 일보다 우선 한 잔 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기 전에 우선 한 잔 하고 한 잔 하다가 취하면 내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가 무슨 충신이라고 죽음은 쉽게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이유를 찾았다 술을 한 잔 하다가 죽음은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것도 귀찮아서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생각도 그만두기로 했다 술이 약간 된 죽음은 집에 와서 TV를 켜놓고 내일은 주말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건강이 제일이지― 죽음은 자기 말에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그래, 신문에도 그렇게 났었지 하고 중얼거렸다         새                                                             커튼 한쪽의 쇠고리를 털털털 왼쪽으로 잡아당긴다 세계의 일부가 차단된 다 그 세계의 일부가 방 안의 光度를 가져가버린다 액자속에 담아놓은 세계 의 그림도 명징성을 박탈당한다 내 안이 반쯤 닫힌다 닫힌 커튼의 하복부가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다른 한쪽 커튼을 쥐고 있는 내 손이 아직 닫히지 않 고 열려 있는 세계에 노출되어 있다 그 세계에 사는 맞은편의 사람들이 보 이지 않는다 집의 門들이 닫혀 있다 열린 세계의 닫힌 창이 하늘을 내 앞으 로 반사한다 태양이 없는 파란 공간이다 그래도 눈부시다 낯선 새 한 마리 가 울지 않고 다리를 숨기고 그곳에 묻힌다 봉분 없는 하늘이 아름답다       거리의 시간                                         감동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한 사내가 간다 감동할 시간도 주지 않고 뒷머리를 질끈 동여맨 여자의 모가지 하나가 여러 사내 어깨 사이에 끼인다 급히 여자가 자기의 모가지를 남의 몸에 붙인다 두 발짝 가더니 다시 사람들을 비키며 제자리에 붙인다 감동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한 여자의 핸드백과 한 여자의 아랫도리 사이 하얀 성모 마리아의 가슴에 주전자가 올라붙는다 마리아의 한쪽 가슴에서 물이 줄줄 흐른다 놀란 여자 하나 그 자리에 멈춘다 아스팔트가 꿈틀한다 꾹꾹 아스팔트를 제압하며 승용차가 간다 또 한 대 두 대의 트럭이 이런 사내와 저런 여자들을 썩썩 뭉개며 간다 사내와 여자들이 뭉개지며 감동할 시간을 주지 않고 나는 시간을 따로 잘라내어 만든다       빈자리가 필요하다                                    빈자리도 빈자리가 드나들  빈자리가 필요하다  질서도 문화도  질서와 문화가 드나들 질서와 문화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지식도 지식이 드나들 지식의  빈자리가 필요하고  나도 내가 드나들 나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친구들이여  내가 드나들 자리가 없으면  나의 어리석음이라도 드나들  빈자리가 어디 한구석 필요하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 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空想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많은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사랑의 감옥                                           뱃속의 아이야 너를 뱃속에 넣고 난장의 리어카에 붙어서서 엄마는 털옷을 고르고 있단다 털옷도 사랑만큼 다르단다 바깥 세상은 곧 겨울이란다 엄마는 털옷을 하나씩 골라 손으로 뺨으로 문질러보면서 그것 하나로 추운 세상 안으로 따뜻하게 세상 하나 감추려 한단다 뱃속의 아이야 아직도 엄마는 옷을 골라잡지 못하고 얼굴에는 땀이 배어나오고 있단다 털옷으로 어찌 이 추운 세상을 다 막고 가릴 수 있겠느냐 있다고 엄마가 믿겠느냐 그러나 엄마는 털옷 안의 털옷 안의 집으로 오 그래 그 구멍 숭숭한 사랑의 감옥으로 너를 데리고 가려 한단다 그렇게 한동안 견뎌야 하는 곳에 엄마가 산단다 언젠가는 털옷조차 벗어야 한다는 사실을 뱃속의 아이야 너도 태어나서 알게 되고 이 세상의 부드러운 바람이나 햇볕 하나로 너도 울며 세상의 것을 사랑하게 되리라 되리라만         이 시대의 순수시                                    자유에 관해서라면 나는 칸트주의자입니다. 아시겠지만, 서로의 자유를 방 해하 지 않는 한도 안에서 나의 자유를 확장하는, 남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 기 위해 남몰래(이 점이 중요합니다.) 나의 자유를 확장하는 방법은 나는 사 랑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게 하는 사랑, 그 사랑의 이름으로.   내가 이렇게 자유를 사랑하므로, 세상의 모든 자유도 나의 품 속에서 나를 사랑 합니다. 사랑으로 얻은 나의 자유. 나는 사랑을 많이 했으므로 참 많은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주 주택복권을 사는 자유, 주택복권에 미래를 거는 자유, 금주의 운세를 믿는 자유, 운세가 나쁘면 안 믿는 자유, 사기를 치고는 술 먹는 자유, 술 먹고 웃어 버리는 자유, 오입하고 빨리 잊어 버리 는 자유.  나의 사랑스런 자유는 종류도 많습니다. 걸어다니는 자유, 앉아다니는 자 유(택시 타고 말입니다). 월급 도둑질 상사들 모르게 하는 자유, 들키면 뒤 에서 욕질하 는 자유, 술로 적당히 하는 자유, 지각 안하고 출세 좀 해볼까 하고 봉급 봉투 털 어 기세 좋게 택시 타고 출근하는 자유, 찰칵찰칵 택시 요금이 오를 때마다 택시 탄 것을 후회하는 자유, 그리고 점심 시간에는 남 은 몇 개의 동전으로 늠름하게 라면을 먹을 수 있는 자유.   이 세상은 나의 자유투성이입니다. 사랑이란 말을 팔아서 공순이의 옷을 벗기는 자유, 시대라는 말을 팔아서 여대생의 옷을 벗기는 자유, 꿈을 팔아 서 편안을 사 는 자유, 편한 것이 좋아 편한 것을 좋아하는 자유, 쓴 것보다 달콤한 게 역시 달 콤한 자유, 쓴 것도 커피 정도면 알맞게 맛있는 맛의 자 유.   세상에는 사랑스런 자유가 참 많습니다. 당신도 혹 자유를 사랑하신다면 좀 드 릴 수는 있습니다만.   밖에는 비가 옵니다.   시대의 순수시가 음흉하게 불순해지듯  우리의 장난, 우리의 언어가 음흉하게 불순해지듯  저 음흉함이 드러나는 의미의 미망(미망), 무의미한 순결의 뭄뚱이, 비의 몸뚱이들……  조심하시기를  무식하지도 못한 저 수많은 순결의 몸뚱이들.        호수와 나무                                              잔물결 일으키는 고기를 낚아채 어망에 넣고 호수가 다시 호수가 되도록 기다리는 한 사내와 귀는 접고 눈은 뜨고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개 한 마리 물가에 앉아 있다   사내는 턱을 허공에 박고 개는 사내의 그림자에 코를 박고   건너편에서 높이로 서 있던 나무는 물속에 와서 깊이로 다시 서 있다         하늘과 두께                                               투명한 햇살 창창 떨어지는 봄날 새 한 마리 햇살에 찔리며 붉나무에 앉아 있더니 허공을 힘차게 위로 위로 솟구치더니 하늘을 열고 들어가 뚫고 들어가 그곳에서 파랗게 하늘이 되었습니다 오늘 생긴 하늘의 또다른 두께가 되었습니다  허공과 구멍                                               나무가 있으면 허공은 나무가 됩니다  나무에 새가 와 앉으면 허공은 새가 앉은 나무가 됩니다  새가 날아가면 새가 앉았던 가지만 흔들리는 나무가 됩니다  새가 혼자 날면 허공은 새가 됩니다 새의 속도가 됩니다.  새가 지붕에 앉으면 새의 속도의 끝이 됩니다 허공은 새가 앉은 지붕이 됩 니다  지붕 밑의 거미가 됩니다 거미줄에 날개 한쪽만 남은 잠자리가 됩니다  지붕 밑에 창이 있으면 허공은 창이 있는 집이 됩니다  방 안에 침대가 있으면 허공은 침대가 됩니다  침대 위에 남녀가 껴안고 있으면 껴안고 있는 남녀의 입술이 되고 가슴이 되고 사타구니가 됩니다  여자의 발가락이 되고 발톱이 되고 남자의 발바닥이 됩니다  삐걱이는 침대를 이탈한 나사못이 되고 침대 바퀴에 깔린 꼬불꼬불한 음모 가 됩니다  침대 위의 벽에 시계가 있으면 시계가 되고 멈춘 시계의 시간이 되기도 합 니다  사람이 죽으면 허공은 사람이 되지 않고 시체가 됩니다  시체가 되어 들어갈 관이 되고 뚜껑이 꽝 닫히는 소리가 되고 땅속이 되고 땅속에 묻혀서는 봉분이 됩니다  인부들이 일손을 털고 돌아가면 허공은 돌아가는 인부가 되어 뿔뿔이 흩어 집니다  상주가 봉분을 떠나면 모지를 떠나는 상주가 됩니다  흩어져 있는 담배꽁초와 페트병과 신문지와 누구의 주머니에서 잘못 나온 구겨진 천원짜리와 부서진 각목과 함께 비로소 혼자만의 오롯한 봉분이 됩 니다  얼마 후 새로 생긴 봉분 앞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달라져 잠시 놀라는 뱀이 됩니다  뱀이 두리번거리며 봉분을 돌아서 돌틈의 어두운 구멍 속으로 사라지면 허 공은 어두운 구멍이 됩니다  어두운 구멍 앞에서 발을 멈춘 빛이 됩니다  어두운 구멍을 가까운 나무 위에서 보고 있는 새가 됩니다.  강과 둑                                                    강과 둑 사이 강의 물과 둑의 길 사이 강의 물과 강의 물소리 사이 그림자 를 내려놓고 서 있는 미루나무와 미루나무의 그림자를 몸에 붙이고 누워있 는 둑 사이 미루나무에 붙어서 강으로 가는 길을 보고 있는 한 사내와 강물 을 밟고서 강 건너의 길을 보고 있는 망아지 사이 망아지와 낭미초 사이 낭 미초와 들찔레 사이 들찔레 위의 허공과 물 위의 허공 사이 그림자가 먼저 가 있는 강 건너를 향해 퍼득퍼득 날고 있는 새 두 마리와 허덕허덕 강을 건 너오는 나비 한 마리 사이         
614    체 게바라 시모음 댓글:  조회:4742  추천:0  2015-06-28
          체 게바라   본명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 Ernesto Guevara de la Serna, 1928-1967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칭송한 바 있던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는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위대한 게릴라 혁명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2002년 겨울 한국의 독자들 앞에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깊은 서정을 품은 시인’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선조 때부터 보헤미안 기질이 다분한 아르헨티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체 게바라는 프랑스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교양 있는 어머니 셀리아 데 라 세르나의 영향을 크게 받아 9살 경부터 소포클레스, 랭보, 세익스피어에 심취했고 잭 런던과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글귀를 암송하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후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의대에 들어가 졸업한 후, 그는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며 나환자들의 삶과 궁핍한 농민들의 생활상을 접하고는 수많은 번민과 고뇌 속에서 결국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인생관을 펼칠 것을 결심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민중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각오이자 결심이었다.  그 후 체 게바라는 쿠바로 건너가 게릴라로서 혁명운동에 동참하게 되는 데, 목숨을 내 건 게릴라 전투 기간 동안에도 그의 배낭 속에는 괴테, 보들레르, 모택동, 랭보와 네루다, 마르크스, 레닌 등의 책이 떠나질 않았다.   일기에는 수많은 전투기록과 그 기록 곳곳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시(詩) 같은 글귀들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이 적혀 있었다. 그만큼 역사와 민중에 대한 체 게바라의 인식은 치열했으며, 사물에 대한 깊은 의식과 인간애에 대한 서정은 뜨거웠다. 쿠바 혁명 성공 후 체 게바라는 눈앞에 열린 권력의 열매를 따기보다는 고통 받고 있는 민중의 편을 택하여 콩고와 볼리비아로 건너가 다시 게릴라 복을 입고 혁명운동을 주도한다.   이로써, 혁명 후 권력을 분배하여 또 다른 통치자의 권좌에 선 혁명 지도자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며 그는 위대한 혁명적 순수성을 지켜 간다.   아내와 자식에게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은 채, 쿠바의 권력도 모두 다 돌려준 채, 체 게바라는 자신의 초심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볼리비아에서 싸우다 포로가 되어 39살의 생을 마감한다.                     미래의 착취자가 될지도 모를 동지에게                          체 게바라  지금까지 나는 나의 동지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 결코 적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오늘 다시 이 총대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은 어쩌면 내가 동지들을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멀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것을 맹세했었다 하지만그 맹세가 하나 둘씩 무너져갈 때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보다도 차라리 가슴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 누군들 힘겹고 고단하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별빛 같은 그리움이 없었겠는가 그것을 우리 어찌 세월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비록 그대들이 떠나 어느 자리에 있든 이 하나만은 꼭 약속해다오 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 한 줌도 안되는 독재와 제국주의의 착취자처럼 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 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 말아다오 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그 슬픔만큼은 참을 수가 없구나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빈 산은 너무 넓구나 밤하늘의 별들이 여전히 저렇게 반짝이고 나무들도 여전히 저렇게 제 자리에 있는데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산은 너무 적막하구나 먼 저편에서 별빛이 나를 부른다 ..                 나의 삶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하는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는  가장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잭 런던이 쓴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속으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 같은 곳에서 혼자 나무에 기댄 채 외로이 죽어가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선택 적의 급습을 받은 동지 하나가  상황이 위급하다며 지고 가던  상자 두 개를 버리고  사탕수수밭 속으로 도망가버렸다 하나는 탄약상자였고 또 하나는 구급상자였다  그런데  총탄에 중상을 입은 지금의 나는 그 두 개의 상자 가운데  하나밖에 옮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연, 의사로서의 의무와  혁명가로서의 의무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깊은 갈등에 빠졌다 너는 진정 누구인가? 의사인가? 아니면,  혁명가인가? 지금  내 발 앞에 있는 두 개의 상자가 그것을 묻고 있다 나는 결국 구급상자 대신 탄약상자를 등에 짊어졌다  절망    대원들은 모두 물이 부족해 자기 오줌을 받아마셨다  동굴 속에 감춰둔 비상식량과 의약품도 다 발각되었다  사살된 다른 부대원들의 시체들이 강물 위로 떠내려왔다  돌아가는 정세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대원들도 가끔씩 사냥을 하며 밀림 속을 배회할 뿐이었다  난 더욱 악화된 천식발작으로 말꼬리를 붙잡고 행군해야 했다  게다가 불시에 극심한 호흡장애까지 일을켜 숨이 막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대원이 소총 개머리판으로 내 가슴을 힘껏 쳐야 숨통이 트였다  숨통이 트이면 이번엔 또 복통이 찾아와 바닥을 기었다  대원들도 모두 영양실조와 병에다가 전의마저도 상실한 듯 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부지할 마지막 기회를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적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생일 오늘은  어머니의 생신이다 나 때문에 언제나 두 손 모아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애처로운 모습이 자꾸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 언제쯤이면, 꽃처럼 환하게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이틀 내내  이빨이 아픈 대원들을 치료했다 그리고  오후에 출발해 1시간 정도 행군했다 이 전투에서 나는 처음으로 노새를 탔다 여기는  해발 1,200미터 생각만큼 밤이 춥지 않아서 다행이다 의약품이 또 부족하다 피를 토할 듯 밤새도록 기침을 했다 잠은 별빛처럼 쏟아지는데  끝내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 시계 오늘은 우울하고 슬픈 날이다 총알이 뚜마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가 죽음으로써 나는 지난날 결코 서로 떨어질 수 없었던  한 동지를 잃었다 모진 고난 속에서도 그는 나에게 늘 진실했었다 지금도 내 자식을 잃은 듯한 심정이다 그는 죽을 때  곁에 있던 동지들에게 나에게 자기 시계를 주라고 부탁하였다 그 말이 그의 유언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그의 시신을 말에 태워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  땅속에 묻고 돌아왔다 나는  이 전투 중에도 항상 그의 시계를 차고 있다 전쟁이 끝나면 그의 아들에게 꼭 전해주리라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먼 저편 -미래의 착취자가 될지도 모를 동지들에게 지금까지 나는 나의 동지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 결코 적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오늘 다시 이 총대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은  어쩌면 내가 동지들을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멀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것을 맹세했었다 하지만  그 맹세가 하나둘씩 무너져갈 때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보다도  차라리 가슴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 누군들 힘겹고 고단하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별빛 같은 그리움이 없었겠는가 그것을  우리 어찌 세월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비록 그대들이 떠나 어느 자리에 있든  이 하나만은 꼭 약속해다오 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 한줌도 안 되는 독재와 제국주의 착취자처럼  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 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 말아다오  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그 슬픔만큼은 참을 수가 없구나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빈 산은 너무 넓구나 밤하늘의 별들은 여전히 저렇게 반짝이고 나무들도 여전히 저렇게 제 자리에 있는데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산은 너무 적막하구나 먼 저편에서 별빛이 나를 부른다      가자 새벽을 여는 뜨거운 가슴의 선지자들이여 감춰지고 버려진 외딴길을 따라 그대가 그토록 사랑하는 인민을 해방시키러   가자 우리를 치욕스럽게 하는 자, 정복자들아 분연히 봉기하여 마르티의 별들이 되어 승리를 다짐하며 죽음을 불사하나니,   세상 모든 처녀림에 동요를 일으키는 총성의 첫발이 울려퍼질 때 그대의 곁에서 싸우니 우리 그 곳에 있으리  토지개혁, 정의, 빵, 자유를 외치는 그대의 목소리, 사방에 울려 퍼질때 우리 그대 곁에 남으리 최후의 전투를 기다리며   압제에 항거하는 의로운 임무가 끝날 때까지 그대 곁에서 최후의 싸움을 기다리며 우리 그곳에 있으리   국유화라는 화살로 상처 입은 야수가 옆구리 핥게 되는 날 그대와 함께 강건한 심장으로 우리 그 곳에 있으리   선심으로 치장한 압제자들도 우리의 강건함을 약화시킬 수는 없으리   우리가 바라는 건 총과 탄약, 그리고 몸을 숨길 수 있는 계곡 더 이상 바랄 것 없네   아무리 험한 불길이 우리의 여정을 가로 막아도 단지 우리에겐 아메리카 역사의 한편으로 사라진 게릴라들의 뼈를 감싸줄 쿠바인의 눈물로 지은 수의 한 벌뿐      
613    파블로 네루다 시모음 댓글:  조회:4660  추천:0  2015-06-28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당신은  해질 무렵  붉은 석양에 걸려 있는  그리움입니다  빛과 모양 그대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름입니다.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부드러운 입술을 가진 그대여  그대의 생명 속에는  나의 꿈이 살아 있습니다  그대를 향한  변치 않는 꿈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사랑에 물든  내 영혼의 빛은  그대의 발 밑을  붉은 장밋빛으로 물들입니다  오, 내 황혼의 노래를 거두는 사람이여  내 외로운 꿈속 깊이 사무쳐 있는  그리운 사람이여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그대는 나의 모든 것입니다  석양이 지는 저녁  고요히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나는 소리 높여 노래하며  길을 걸어갑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내 영혼은  그대의 슬픈 눈가에서 다시 태어나고  그대의 슬픈 눈빛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               나는 밤새 세상에서 가장 슾른 시를 쓸 수 있네.     예를 들면 밤하늘을 가득 채운 파랗고 멀리서 반짝이는 별들에 대하여 하늘을 휘감고 노래하는 밤바람에 대해서.   나는 밤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네.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나를 사랑한 때 있었네.  이런 밤에, 나는 그녀를 내 팔에 안았네.  무한한 밤하늘 아래 그녀에게 무수히 키스했었네.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나도 그녀를 사랑한 때 있었네.  그녀의 크고 조용한 눈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밤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네.  더이상 그녀가 곁에 있지 않은 것을 생각하며 내가 그녀를 잃은 것을 느끼며   거대한 밤을 들으며 그녀 없이 더욱 거대한  그리고 시는 풀잎에 떨어지는 이슬처럼 영혼으로 떨어지네.   내 사랑을 지키지 못했는데 무엇이 중요할까.  밤하늘은 별로 가득 찼어도 그녀는 나와 함께 있지 못한데.   그게 다야. 멀리 누군가 노래하는 멀리 내 영혼은 그녀 없이는 없어.  그녀를 내 곁에 데리고 올 것처럼 내 눈은 그녀를 찾아 헤매지.   내 심장도 그녀를 찾아 헤매지만 그녀는 내 곁에 없지.  똑같은 나무를 더욱 희게 만드는 그날 같은 밤   우리 예전의 우리 우리는 더이상 같지 않지.  나 역시 그녀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지만 예전에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던가   내 목소리는 바람 속을 헤매다가 그녀의 귀를 매만질 수 있겠지.  누군가 다른 사람을 그녀는 누군가 다른 사람의 사랑이겠지.  예전에 그녀가 나의 사랑이였던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가벼운 육체 그녀의 무한한 눈동자   나는 그녀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지만 어쩌면 나는 아직 그녀를 사랑해.  사랑은 짧게 지속되고 망각은 먼 것이니.  이런 밤에 내가 그녀를 내 팔에 안았던 것처럼.  내 영혼은 그녀 없이는 더 이상 없네.   어쩌면 이것이 그녀가 내게 주는 마지막 고통일지라도  어쩌면 이것이 내가 그녀를 위해 쓰는 마지막 시일지라도...             충만한 힘     나는 쓴다 밝은 햇빛 속에서, 사람들 넘치는 거리에서, 만조 때, 내가 노래할 수 있는 곳에서; 제멋대로인 밤만이 나를 억누르지만, 허나 그것의 방해로 나는 공간을 되찾고, 오래가는 그늘들을 모은다   밤의 검은 작물은 자란다 내 눈이 평야를 측량하는 동안. 그리하여, 태양으로만, 나는 열쇠들을 버린다. 불충분한 빛 속에서는 자물쇠를 찾으며 바다로 가는 부서진 문들을 열어놓는다 찬장을 거품으로 채울 때까지,   나는 가고 돌아오는 데 지치는 법이 없고, 돌 모양의 죽음은 나를 막지 못하며, 존재에도 비존재에도 싫증나지 않는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내 모든 광물성의 의무를 어디에서 물려받았을까 아버지나 어머니일까 아니면 산들일까,   생명줄들이 불타는 바다로부터 펼쳐진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가 계속 가니까 나는 가고 또 간다는 것 또 내가 노래를 하고 또 하니까 나는 노래한다는 걸.   두 개의 수로 사이에서 그러듯 내가 눈을 감고 비틀거릴 때 일어난 일을 설명할 길이 없다 한쪽은 죽음으로 향하는 그 지맥속에서 나를 들어올리고 다른 쪽은 내가 노래하게 하기 위해 노래한다.   그리하여 나는 비존재로부터 만들어지고, 바다가 짜고 흰 물마루의 파도로 암초를 연타하고 썰물 때 돌들을 다시 끌고 가듯이 나를 둘러싼 죽음으로 된 것이 내 속에서 삶을 향한 창을 열며, 그리고, 존재의 경련 속에서, 나는 잠든다. 낮의 환한 빛 속에서, 나는 그늘 속을 걷는다.       건축가   나는 나 자신의 환상을 선택했고, 얼어붙은 소금에서 그것과 닮은 걸 만들었다 나는 큰비에다 내 시간의 기초를 만들었고  그리고,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내 오랜 숙련이 꿈들을 분할한 게 사실이고 내가 알지 못하는 채 벽들, 분리된 장소들이 끝없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나서 나는 바닷가로 갔다.   나는 조선의 처음을 보았고, 신성한 물고기처럼 매끄러운 그걸 만져보았다- 그건 천상의 하프처럼 떨었고, 목공작업은 깨끗했으며,   꿀 향기를 갖고 있었다. 그 향기가 돌아오지 않을 때는 그 배가 돌아오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눈물 속에 익사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별처럼 벌거벗은 도끼를 가지고 숲으로 돌아갔고.   내 믿음은 그 배들 속에 있다.   나는 사는 것 외에 다른 대책이 없다.       작별들     안녕, 안녕, 한 곳에게 또는 다른 곳에게, 모든 입에게, 모든 슬픔에게, 무례한 달에게, 날들로 구불구불 이어지다가 사라지는 주週들에게, 이 목소리와 적자색으로 물든 저 목소리에 안녕, 늘 쓰는 침대와 접시에게 안녕, 모든 작별들의 어슴푸레한 무대에게, 그 희미함의 일부인 의자에게, 내 구두가 만든 길에게.   나는 나를 펼친다, 의문의 여지 없이; 나는 전 생애를 숙고한다, 달라진 피부, 램프들, 그리고 증오들을, 그건 내가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규칙이나 변덕에 의해서가 아니고 일련의 반작용하고도 다르다; 새로운 여행은 매번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장소를, 모든 장소들을 즐겼다.   그리고, 도착하자 또 즉시 새로 생긴 다감함으로 작별을 고했다 마치 빵이 날개를 펴 갑자기 식탁의 세계에서 날개를 펴 갑자기 식탁의 세계에서 달아나듯이. 그리하여 나는 모든 언어들을 뒤에 남겼고, 오래된 문처럼 작별을 되풀이했으며, 영화관과 이유들과 무덤들을 바꾸었고, 어떤 다른 곳으로 가려고 모든 곳을 떠났다; 나는 존재하기를 계속했고, 그리고 항상 기쁨으로 반쯤 황폐해 있었다, 슬픔들 속의 신랑, 어떻게 언제인지도 모르는 채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고, 돌아가지 않은.   돌아가는 사람은 떠난 적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나는 내 삶을 밟고 되밟았으며, 옷과 행성을 바꾸고, 점점 동행에 익숙해지고, 유배의 큰 회오리바람에, 종소리의 크나큰 고독에 익숙해졌다.        죽은 가난한 사람에게   오늘 우리는 우리의 가난한 사람을 묻는다; 우리의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   그는 너무도 어렵게 지낸 나머지  그가 사람으로서 인격을 지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집도 땅도 없었고, 알파벳도 이불도  구운 고기도 없었으며,  그리하여 여기저기로 노상 옮겨다녔고, 생활의 결핍으로 죽어갔다,  죽어갔다 조금씩 조금씩- 그게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살아온 삶이다.   다행히도(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들은 마음이 똑같았다, 주교에서부터 판사에 이르기까지 그가 천국에 갈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은 죽었다, 나무랄 데 없이 죽었다, 우리의 가나한 사람,  오 우리의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  그는 그 많은 하늘을 갖고 뭘 할지 모를 것이다. 그는 그걸 일굴 수 있을까, 씨 뿌리고 거둘 수 있을까?   그는 항상 그걸 했다; 잔혹하게  그는 미개지와 싸웠다,  그리고 이제 하늘이 그가 일구도록 완만히 놓여 있다,  나중에, 하늘의 수확 중에  그는 자기 몫을 가질 것이고, 그렇게 높은 데서  그의 식탁에는, 하늘에서 배부르기 위해  모든 게 차려진다,  우리의 가난한 사람은, 아래 세상에서의  운명으로, 약 60년의 굶주림을 갖고 왔다,  마침내, 당연하게도,  삶으로부터 더 이상 두들겨맞지 않고  먹기 위해 제물이 되지 않은 채 만족스럽기 위하여,  땅 밑 상자 속에서 집처럼 안전해  이제 그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고,  임금 투쟁을 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는 그런 정의를 바라지 못했다, 이 사람은. 갑자기 그들은 그의 컵을 채워주었고 그게 그는 좋았다; 이제 그는 행복에 겨워 벙어리가 되었다.   이제 그는 얼마나 무거운가, 그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은! 그는 뼈 자루였다, 검은 눈을 가진,  그리고 이제 우리는 안다, 그의 무게 하나만으로,  너무 많은 걸 갖지 못했었다는 걸,  만일 이 힘이 계속 쓰여서  미개지를 갈아엎고, 돌을 골라내고,  밀을 거두고, 땅에 물을 주고,  유황을 갈아 가루로 만들고, 땔나무를 운반했다면,  그리고 이렇게 무거운 사람이 구두가 없었다면,  아, 비참하다, 이 힘줄과 근육이 완전히 분리된 인간이, 사는 동안 정의를  누린 적이 없다면,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를 때리고  모든 사람이 그를 넘어뜨리며, 그런데도  노동을 계속했고, 이제, 관에 든 그를  우리 어깨로 들어올리고 있다면, 이제 우리는 적어도 안다 그가 얼마나 갖지 못했는지를,  그가 지상에 살 때 우리가 그를 돕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우리가 그에게 주지 않은 모든 걸 우리가 짊어지고 있음을, 그리고 때가 늦었음을;  그는 우리한테 무게를 달고, 우리는 그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 우리의 죽은 사람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무게를 달까? 그는 이 세상이 하는 만큼 많이 무게를 단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이 죽은 사람을 어깨에 메고 간다. 분명히  하늘은 빵을 풍부하게 구우시리라.        물     지상의 모든 건 빽빽하게 서 있었다, 가시나무는 찔렀고 초록 줄기는 갉아먹혔으며, 잎은 떨어졌다, 낙하 자체가 유일한 꽃일 때까지, 물은 또다른 일이다, 그건 그 자신의 빛나는 아름다움 외에 방향이 없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색깔 속을 흐르며, 돌에서 명쾌한 교훈을 얻고, 그런 노릇들 속에서 거품의 실현되지 않은 야망을 이루어낸다.       그건 태어난다   여기 바로 끝에 나는 왔다 그 무엇도 도대체 말할 필요가 없는 곳, 모든 게 날씨와 바다를 익혔고 달은 다시 돌아왔으며, 그 빛은 온통 은빛, 그리고 어둠은 부서지는 파도에 되풀이하여 부서지고, 바다의 발코니의 나날, 날개는 열리고, 불은 태어나고, 그리고 모든 게 아침처럼 또 푸르르다.         탑에서     이 장엄한 탑에는 투쟁이 없다. 안개, 공기, 날이 그걸 둘러쌌고 떠났으며 나는 하늘과 종이와 더불어 머물렀다, 고독한 기쁨과 부채와 함께. 증오가 있는 지상의 투명한 탑 그리고 하늘의 파동으로 움직이는 먼 바다. 그 구절에는 얼마나 많은 음절이 있는가, 그 단어에는? 내가 말했던가?   이슬의 불안은 아름다워라- 그건 아침에 떨어진다 새벽에서 밤을 분리하며 그리고 그 차가운 선물은 불확실하게 매달려 있다 강렬한 태양이 그걸 죽게 하기를 기다리며, 말하기 어렵다 우리가 눈을 감는 건지 아니면 밤이 우리 속에서 별 박힌 눈을 뜨는 건지, 어떤 문이 열릴 때까지 그게 우리 꿈의 벽에 구멍을 파는 건지. 그러나 꿈은 한순간의 휙 지나가는 의복일 뿐, 어둠의 한 번의 고동 속에 소모되고, 우리 발 앞에 떨어져, 벗어던진다 날이 움직여 우리와 함께 출범할 때. 이게 거기서 내가 내려다보는 탑이다, 빛과 말수가 적은 물 사이, 칼을 지닌 시간, 그러고 나서 나는 살기 위해 서두른다, 나는 온 공기를 마시고 도시에 들어찬 불모의 빌딩들에 간담이 서늘하며,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 혼잣말을 한다, 높은 곳들의 침묵에서 한 잎씩 떼어내며.              시인의 의무   이 금요일 아침, 바다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간에, 집이나 사무실에 갇혀 있거나 공장이나 여자, 거리나 광산 또는 메마른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간에 나는 그에게 왔다, 그리고 말하거나 보지 않고 도착해서 그의 감옥문을 연다, 희미하나 뚜렷한 동요가 시작되고, 천둥의 긴 우르릉 소리가 이 행성의 무게와 거품에 스스로를 더하며, 바다의 신음하는 물흐름은 물결을 일으키고, 별은 그 광관光冠 속에서 급속히 진동하며, 바다는 파도치고, 꺼지고 또 파도치기를 계속한다.   그리하여, 내 운명에 이끌려, 나는 바다의 비탄을 듣고 그걸 내 의식에 간직해야 하며, 거친 물의 굉음을 느끼고 그걸 영원한 잔에 모아, 그들이 수감되어 있는 데가 어디이든, 그들이 가을의 선고로 고통받는 데가 어디이든 나는 유랑하는 파도와 함께 있고, 창문으로 드나들며, 내가 "어떻게 그 바다에 닿을 수 있지?" 하고 두 눈은 치켜뜬 채, 묻는 소리를 스스로 들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말없이, 파도의 별빛 밝은 메아리를 건넬 것이다, 거품과 유사의 부서짐을, 움츠러드는 소금의 바삭거림, 해변 바닷새들의 음울한 울음을,   그리하여, 나를 통해, 자유와 바다는 어두운 가슴에 대답해줄 것이다.       말   말은 피 속에서 태어났고, 어두운 몸속에서 자랐으며, 날개 치면서, 입술과 입을 통해 비상했다.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서 여전히, 여전히 그건 왔다 죽은 아버지들과 유랑하는 종족들에서, 돌이 된 땅들에서, 그 가난한 부족들로 지친 땅, 슬픔이 길이 되었을 때 그 사람들은 떠나서 새로운 땅과 물에 도착하고 결혼하여 그들의 말을 다시 키웠느니. 그리하여 이것이 유산이다; 이것이 우리를 죽은 사람과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새로운 존재들을 연결하는 대기大氣   대기는 아직 공포와 한숨을 차려입은 처음 말해진 말로 떨린다. 그건 어둠에서 솟아났고 지금까지 어떤 천둥도 그 말, 처음 말해진 그 말의 철鐵 같은 목소리 와 함께 우르렁거리지 못했다- 그건 다만 하나의 잔물결, 한 방울의 물이었을지 모르나 그 큰 폭포는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그러다가, 말은 의미로 채워진다. 언제나 아이와 함께, 그건 생명으로 채워진다. 모든 게 탄생이고 소리이다- 긍정, 명확성, 힘, 부정, 파괴, 죽음- 동사는 모든 힘을 얻어 그 우아함의 강렬한 긴장 속에서 실존을 본질과 혼합한다.   인간의 말, 음절, 퍼지는 빛의 측면과 순은세공, 피의 전언을 받아들이는 물려받은 술잔- 여기서 침묵은 인간의 말의 온전함과 함께한다, 인간에게, 말하지 않는 건 죽는 것이니- 언어는 머리카락에까지 미치며, 입은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말하고, 문득, 눈은 말이다.   나는 말을 취해서 그걸 내 감각들을 통해 보낸다 마치 그게 인간의 형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그것의 배열은 경외감을 느끼게 하고 나는 말해진 말의 울림을 통해 나의 길을 찾는다- 나는 말하고 그리고 나는 존재하며 또한, 말없이, 말들의 침묵 자체의 가장자리를 가로지르며 접근한다.   나는 한마디 말이나 빛나는 잔을 들어올리며 말과 건배한다; 나는 거기 들어 있는 언어의 순수한 포도주나 마르지 않는 물을 마신다, 말의 모성적 원천을, 그리고 컵과 물과 와인은 내 노래를 솟아오르게 한다 왜냐하면 동사는 원천이며 생생한 생명이므로-그건 피이다 그 참뜻을 표현하는 피, 그리하여 스스로 뻗어나가는. 말은 잔에 잔다움을, 피에 피다움을, 그리고 생명에 생명다움을 준다.       파블로 네루다 / 1904년 남칠레 국경 지방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아홉 살 때 '스무 편의 사랑과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출간하여 남미 전역에서 사랑을 받았고, 스물세 살 때 극동 주재 영사를 맡은 이후 스페인,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지의 영사를 지냈다. 프랑코의 파시스트 반란이 일어나자 파리에서 스페인인들의 망명을 적극적으로 돕는 등 정치활동을 했으며, 칠레 공산당 상원의원으로도 활동했다. 곤살레스 비델라 독재 정권의 탄압을 받자 망명길에 올랐다가, 귀국 후 아옌데정권이 들어서면서 프랑스 주재 칠레 대사에 임명되었다. 1973년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젊음 -파블로 네루다(1904~73) 길가에 서 있는 자두나무 가지로 만든 매운 칼 같은 냄새,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손가락 끝에서 미끄러지는 생기의 방울들, 달콤한 성적(性的) 과일, (…) 빗속에서 뒤집어엎은 램프처럼 탁탁 튀며 타오르는 한창 때.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은 오직 젊은이들의 몫이다. “달콤한 성적 과일”을 딸 수 있는 것도 이들의 권리다. 젊은이들은 안뜰, 건초더미, 으슥한 데를 선호하는데, 키스하기 좋고 성적 과일을 따기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오, 젊은이들이여, 망설이지 마라. 붉고 탐스러운 자두를 깨물 듯 젊음을 깨물고 그 달콤한 과즙을 마셔라. 젊음이 지난 뒤 그 설탕 같은 키스들과 환락에 대한 청구서가 날아오리니, 야생 초록의 골짜기이고, 뒤집은 램프같이 “탁탁 튀며 타오르는 한창 때”를 만끽하라! 어차피 노력 없이 얻은 젊음이란 지불 유예된 ‘노년’일 테니까!
612    <시인들이 이야기하는> 시모음 댓글:  조회:5143  추천:0  2015-06-27
[ 2015년 07월 01일 08시 05분 ]     세계에서 유일하게 양팔이 없는 비행기 조종사 - '제시카 콕스(Jessica Cox)' ,     + 詩  아무리 하찮게 산  사람의 生과 견주어보아도  詩는 삶의 蛇足에 불과하네  허나,  뱀의 발로 사람의 마음을 그리니  詩는 사족인 만큼 아름답네  (함민복·시인, 1962-) + 시의 근육 시의 근육은 먹이를 쫓는 사자의 근육보다는 죽음과 경주하는 사슴의 근육이다. 아니 그보다는 사슴에게 꼼짝없이 먹히지만 어느새 초원을 뒤덮어버리는 풀이 시의 근육이다 (채호기·시인, 1957-) + 벌새가 사는 법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  파도는 하루에 70만 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낸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내 몸을 쳐서 시를 쓰나  (천양희·시인, 1942-) + 불쌍하도다 詩를 썼으면 그걸 그냥 땅에 묻어두거나 하늘에 묻어둘 일이거늘 부랴부랴 발표라고 하고 있으니 불쌍하도다 나여 숨어도 가난한 옷자락 보이도다 (정현종·시인, 1939-) +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  발표 안 된 시 두 편만  가슴에 품고 있어도 나는 부자다  부자로 살고 싶어서  발표도 안 한다  시 두 편 가지고 있는 동안은  어느 부자 부럽지 않지만  시를 털어버리고 나면  거지가 될 게 뻔하니  잡지사에서 청탁이 와도 안 주고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  거지는 나의 생리에 맞지 않으므로  나도 좀 잘 살고 싶으므로  (정희성·시인, 1945-) + 시(詩)는 이슬이야 시란 하늘과 땅이 뿜어낸 이슬이지 시는 이슬을 먹고  이슬을 말하고 이슬을 숨쉬며 살지 저 수평선에서 이슬을 느낄 때 그건 시를 느끼는 거야 한라산도 시가 되고 외돌개도 시가 되는 것은 그곳에 이슬이 살기 때문이야 별도 이슬이고  달도 이슬이고 달팽이도 이슬이지. 달팽이는 가난해 보여 날 때부터 짊어지고 다니는 가난이 처량해 보여 나도 이슬이 되고 싶어 달팽이처럼 배낭을 메고 다니는 이슬 (이생진·시인, 1929-) + 위안 시를 쓴다는 건 하늘에다 무지개를 그리는 일이다 고단한 일상의 삶에 지쳐 하늘을 보지 못하는 이에게 아직 하늘을 볼 만한 무엇이 있다고 가르쳐 주기도 하고 너무 많은 욕심으로 무지개마저 차지하려는 이에게 그것이 오히려 허상이라고 지워 버리기도 한다 메마른 사람들의 가슴에 물방울을 뿌려 무지개를 만들어 하늘로 올리는 시 시인은 그런 시를 쓰고 있다 (서정윤·시인, 1957-) + 거룩한 허기  피네스테레*, 세상의 끝에 닿은 순례자들은  바닷가 외진 절벽에 서서  그들이 신고 온 신발을 불태운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나는  청둥오리 떼 날아가는 미촌 못 방죽에서  매캐한 연기에 눈을 붉히며  내가 쓴 시를 불태운다  (전동균·시인, 1962-) * 스페인 서쪽 끝 바닷가 마을 + 시 읽는 시간 시는 녹색 대문에서 울리는 초인종 소리를 낸다 시는 맑은 영혼을 담은 풀벌레 소리를 낸다 누구의 생인들 한 편의 시 아닌 사람 있으랴 그가 걸어온 길 그가 든 수저소리 그가 열었던 창의 커튼 그가 만졌던 생각들이 실타래 실타래로 모여 마침내 한 편의 시가 된다 누가 시를 읽으며 내일을 근심하랴 누가 시를 읽으며 적금통장을 생각하랴 첫 구절에서는 풀피리 소리 둘째 구절에서는 동요 한 구절 마지막 구절에서는 교향곡으로 넘실대는 싯발들 행마다 영혼이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들 나를 적시고 너를 적시는 초록 위를 뛰어다니는 이슬방울들 (이기철·시인, 1943-)  + 시의 경제학 시 한 편 순산하려고 온몸 비틀다가  깜박 잊어 삶던 빨래를 까맣게 태워버렸네요  남편의 속옷 세 벌과 수건 다섯 장을  내 시 한 편과 바꿔버렸네요  어떤 시인은 시 한 편으로 문학상을 받고  어떤 시인은 꽤 많은 원고료를 받았다는데  나는 시 써서 벌기는커녕  어림잡아 오만 원 이상을 날려버렸네요  태워버린 것은 빨래뿐만이 아니라  빨래 삶는 대야까지 새까맣게 태워 버려  그걸 닦을 생각에 머릿속이 더 새까맣게 타네요  원고료는 잡지구독으로 대체되는  시인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시의 경제는 언제나 마이너스  오늘은 빨래를 태워버렸지만  다음엔 무얼 태워버릴지  속은 속대로 타는데요  혹시 이 시 수록해주고 원고료 대신  남편 속옷 세 벌과 수건 다섯 장 보내줄  착한 사마리안 어디 없나요   (정다혜·시인, 1955-) + 가두의 시 길거리 구둣방 손님 없는 틈에 무뎌진 손톱을 가죽 자르는 쪽가위로 자르고 있는 사내의 뭉툭한 손을 훔쳐본다 그의 손톱 밑에 검은 시(詩)가 있다 종로5가 봉제골목 헤매다 방 한 칸이 부업방이고 집이고 놀이터인 미싱사 가족의 저녁식사를 넘겨본다 다락에서 내려온 아이가 베어먹는 노란 단무지 조각에 짜디짠 눈물의 시가 있다 해질녘 영등포역 앞 무슨 판촉행사 줄인가 싶어 기웃거린 텐트 안 시루 속  콩나물처럼 선 채로 국밥 한 그릇 뚝딱 말아먹는 노숙인들 긴 행렬 속에 끝내 내가 서보지 못한 직립의 시가 있다 고등어 있어요 싼 고등어 있어요 저물녘 "떨이 떨이"를 외치는 재래시장 골목 간절한 외침 속에 내가 아직 질러보지 못한 절규의 시가 있다 그 길바닥의 시들이 사랑이다 (송경동·시인, 1967-) + 착한 詩 우리나라 어린 물고기들의 이름 배우다 무릎을 치고 만다. 가오리 새끼는 간자미, 고등어 새끼는 고도리, 청어 새끼는 굴뚝청어, 농어 새끼는 껄떼기, 조기 새끼는 꽝다리, 명태 새끼는 노가리, 방어 새끼는 마래미, 누치 새끼는 모롱이, 숭어 새끼는 모쟁이, 잉어 새끼는 발강이, 괴도라치 새끼는 설치, 작은 붕어 새끼는 쌀붕어, 전어 새끼는 전어사리, 열목어 새끼는 팽팽이, 갈치 새끼는 풀치…, 그 작고 어린 새끼들이 시인의 이름보다 더 빛나는 시인의 이름을 달고 있다. 그 어린 시인들이 시냇물이면 시냇물을 바다면 바다를 원고지 삼아 태어나면서부터 꼼지락 꼼지락 시를 쓰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 생명들이 다 시다. 참 착한 시다 (정일근·시인, 1958-)
611    <夏至> 시모음 댓글:  조회:4505  추천:0  2015-06-22
        최원정의 '하지(夏至)' 외 +== 하지(夏至) == 장맛비 잠시 멈춘  하늘 사이로  자귀나무 붉은  꽃등을 켰다  주먹만 한 하지감자  뽀얀 분 나게 찌고  아껴 두었던 묵은지  꺼내는 순간  어디선가 들리는  매미의 첫 울음소리  놋요강도 깨질듯 쟁쟁하다 (최원정·시인, 1958-) +== 夏至하지 ==  창문을 열고 집어낸다  무릎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만큼 덜어지는  나의 죄  바늘강 같은 매미울음 속으로  떠가는구나  시름없이 육체를 벗어나는  내 혼의 실오라기  어제의 바람이  어제의 하늘이  하지감자알로 굵었는데. (김수우·시인, 부산 출생) +== 하지夏至 == 밤이라고 하기엔 밖이 너무 밝고  낮이라고 하기엔  저녁 시간이 꽤나 깊어있다  백야白夜같은 하지夏至  낮이 가장 길다함은  밤이 가장 짧다는 말  하루의 주어진 같은 시간  시계는 멈추지 않고 제 갈 길을 가건만  태양은 저 혼자 밤을 즐기려는 듯  가던 길을 멈추고  태연히 지구촌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홀로 따갑게 미소 짓는다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밤은 짧고 짧은데… (오정방·재미 시인, 1941-) +== 하 지  ==  어머니 눈물져 떠나온 고향집에선  이 여름도  봉숭아가 주머니를 부풀립니다.  간장 항아리 놓였던 자리에  잡초 무성한 마당귀 우물가에  화르르, 화르르  석류처럼 꼬투리를 터뜨립니다.  인적 끊긴 집 둘레로  고추잠자리만 비행할 뿐,  먼지 낀 헛간에는 녹스는 농기구들.  허물어진 돌담을 끼고  해바라기만 줄지어 서 있고  그 무표정한 그늘을 딛고  토실토실 물이 오른 봉숭아 몇 그루,  듬성듬성 버짐이 핀 기와집 처마 밑에  해마다 둥지 트는 제비와 놀며  흰색 분홍색으로  여름을 부지런히 피워올립니다.  그런 날,  어머님 손톱에도  문득 바알간 꽃물이 돕니다. (임동윤·시인, 1948-) +== 낮에게 ==  양력 6월 22일 오늘은 하지(夏至) 일년 중  네가 제일 긴 날. 동짓날부터 살금살금  발돋움하더니  마침내 너의 키 방금 최고조에 달하였네. 그 동안  참 많이 애썼구나 정상을 밟았으니 이제 내려와야 하겠지만 다시 키가 짧아짐을  슬퍼하지 말렴.  너를 대신하여 차츰 길어질 밤의 그림자 속에서 지금껏 쌓인 피로 말끔히 씻으렴. 내년 이맘때  기쁘게 재회할 것을  우리 새끼손가락 걸어 굳게 약속하자. (정연복·시인, 1957-)
달팽이 약전(略傳)            - 서정춘(1941~ )   내 안의 뼈란 뼈 죄다 녹여서 몸 밖으로 빚어낸 둥글고 아름다운 유골 한 채를 들쳐 업고 명부전이 올려다 보이는 뜨락을 슬몃슬몃 핥아가는 온몸이 혓바닥뿐인 생이 있었다 혓바닥뿐인 생이라니! 달팽이의 한 생은 고달팠으리라. 달팽이는 제 뼈를 녹여 만든 누옥(陋屋) 한 채를 등에 짊어지고 끌며 일생을 보낸다. 등에 얹은 집의 무게는 달팽이가 감당해야 할 평생의 수고다. 온 뜨락을 혓바닥으로 핥으며 드난살이하는 처지라도 달팽이를 부러워하는 이 없지 않으리! 집 없는 설움에 눈시울이 붉어진 적이 있는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내 콧날이 시큰해진 것은 ‘달팽이 약전’이 집 없이 한세상 떠돈 내 ‘아버지 약전’이었던 탓이다. <장석주·시인> 서정춘 시인   1941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순천 매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1년 제3회 박용래문학상과 2004년 제1회 순천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竹篇』(동학사, 1996)『봄, 파르티잔』(시와시학사. 2001)『귀』(시와시학사. 2005)가 있다. -------------------------------------------- 죽편(竹篇) 1           - 여행           여기서부터, ――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빨랫줄     그것은, 하늘 아래 처음 본 문장의 첫줄 닽다 그것은, 하늘 아래 이쪽과 저쪽에서 길게 당겨주는 힘줄 같은 것 이 한 줄에 걸린 것은 빨래만이 아니다 봄바람이 걸리면 연분홍 치마가 휘날려도 좋고 비가 와서 걸리면 떨어질까 말까 물망울은 즐겁다 그러나, 하늘 아래 이쪽과 저쪽에서 당겨주는 힘 그 첫 줄에 걸린 것은 바람이 옷 벗는 소리 한 줄뿐이다   -현대시학.2005년 11월호-         텅     범종이 울더라   벙어리로 울더라   허공에서    허공에서     허공은   벙어리가 울기 좋은 곳   허공 없으면   울 곳 없으리     계간 『유심』 2009년 3~4월호 발표   초로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돋보기까지 갖고 싶어진다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돋보기만한 이슬방울이고  이슬방울 속의 살점이고 싶다  나보다 어리디 어린 이슬방울에게  나의 살점을 보태 버리고 싶다  보태버릴 수록 차고 달디단 나의 살점이  투명한 돋보기 속의 샘물이고 싶다  나는 샘물이 보일 때까지 돋보기로  이슬방울을 들어올리기도 하고 들어 내리기도 하면서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타래박까지 갖고 싶어진다.     혼불 1     오, 불아 누가 훅 불어버린 불아 눈감고 눈 준 명목暝目도 버려놓고 겁도 없이 겂도 없이 일확천금 허공만을 훔쳐서 떠돌이로 달아나는 너, 마지막 처음인 불아   계간 창작과 비평2006년 여름호[창비]에서         돌의 시간   자네가 너무 많은 시간을 여의고 나서 그때 온전한 허심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지나간 시간 위로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세차게 몰아쳐서 눈을 뜰 수 없고 온몸을 안으로 안으로 웅크리며 신음과 고통만을 삭이고 있는 그동안이 자네가 비로소 돌이 되고 있음이네    자네가 돌이 되고 돌 속으로 스며서 벙어리가 된 시간을 한 뭉치 녹여 본다면 자네 마음속 고요 한 뭉치는 동굴 속의 까마득한 금이 되어 시간의 누런 여물을 되씹고 있음이네         오늘, 그 푸른 말똥이 그립다   나는 아버지가 이끄는 말구루마 앞자리에 쭈굴쳐 타고 앉  아 아버지만큼 젊은 조랑말이 말꼬리를 쳐들고 내놓은 푸른  말똥에서 확 풍겨오는 볏집 삭은 냄새가 좀 좋았다고 말똥  이 춥고 배고픈 나에게는 따뜻한 풀빵 같았다고 1951년 하  필이면 어린 나의 생일날 일기장에 침 발린 연필 글씨로 씌  어 있었다   오늘, 그 푸른 말똥이 그립다     종소리    한 번을 울어서 여러 산 너머 가루 가루 울어서 여러 산 너머 돌아오지 말아라 돌아오지 말아라 어디 거기 앉아서 둥근 괄호 열고 둥근 괄호 닫고 항아리 되어 있어라 종소리들아                                                                                                                                                                      저수지에서 생긴 일 2     어느 날 저수지 낚시터엘 갔었더랍니다 처음에는 저수지 물이 아주 잔잔해서 마치 잘 닦인 거울 속 마음 같아 보였는데 거기다가 길게 날숨 쉬듯 낚싯줄을 드리웠는데 때마침 저수지 물이 심각하게 들숨 날숨으로 술렁거렸고 난데없는 왜가리의 울음방울 소리엔 듯 화들짝 놀란 물고기가 저수지 전체를 들어 올렸다가 풍덩풍덩 놓쳐버렸기 때문에 나 역시 낚싯줄에 간신히 걸린 한 무게를 깜짝깜짝 놓쳐버릴 수밖에 없었더랍니다 그러자 저수지 물은 다시 잔잔해졌고 아 이렇게 한순간에 일어난 "긴장감 속에 깃든 평화"를 나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아직 맛본 일이 없었더랍니다.     화음(和音)      햇볕이 질화로처럼 따뜻한 봄날이다    일전, 쑥밭골 미나리꽝에서는 새순 돋아 일어나는 미나리의 연약한 힘에 받혀 살얼음 바스러지는 소리가 사금파리처럼 반짝거리다가 홰를 치는 장닭울음 소리에 채여 지리산 화개철쭉으로 사라지는 화음이 멀기도 하였다     낡은 집 돌담각에 등을 대고 오돌오돌 앉아서 실성한 듯 투덜거리는 저 홀할머니의 아들 하나는 빨치산이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푸른 시 (2006년 제8호)       수평선              하늘 밑 바다 위에 빨랫줄이 보인다.  빨랫줄 위에는                 다른 하늘이 없고  빨랫줄에  빨래는 파도뿐이다  봄, 파르티잔                          서정춘     꽃 그려 새 울려 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   빨래줄       그것은, 하늘 아래 처음 본 문장의 첫줄 같다 그것은, 하늘 아래 이쪽과 저쪽에서 길게 당겨주는 힘줄 같은 것 이 한 줄에 걸린 것은 빨래만이 아니다 봄바람이 걸리면 연분홍 치마가 휘날려도 좋고 비가 와서 걸리면 떨어질까 말까 물방울은 즐겁다 그러나, 하늘 아래 당겨주는 힘 그 첫 줄에 걸린 것은 바람이 옷 벗는 소리     한 줄 뿐이다   ------------------     고추잠자리       저! 일획으로 커진 성냥개비만한 것 저것이 여러번씩 내 속눈썹 지지는 마른 번갯불이네     ------------------     꽃신       어느 길 잃은 어린 여자아이가 한 손의 손가락에 꽃신발 한 짝만을 걸쳐서 들고 걸어서 맨발로 울고는 가고 나는 그 아이 뒤 곁에서 제자리 걸음을 걸었습니다 전생 같은 수수년 저 오래 전에 서럽게 떠나버린 그녀일까고 그녀일까고     -----------------     쪽박       밤이더라 먼 데 별빛 아래 빈 나뭇가지에 쪽박 하나이 걸쳐 있더라 걸쳐서 별빛 받아든 별거지더라 초승달이더라     나는     ----------------- 서정춘 : 시인의 시  *竹篇·1  ―여행  서정춘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초로(草露)  나는 이슬 방울만 보면 돋보기까지 갖고 싶어진다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돋보기만한 이슬방울이고  이슬방울 속의 살점이고 싶다  보태 버릴수록 차고 달디단 나의 살점이  투명한 돋보기 속의 샘물이고 싶다  나는 샘물이 보일 때까지 돋보기로  이슬방울을 들어 올리기도 하고 들어 내리기도 하면서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타래박까지 갖고 싶어진다  *기러기  허드레  허드레  빨래줄을  높이 들어올리는  가을 하늘  늦비  올까  말까  가을걷이  들판을  도르래  도르래 소리로  날아오른 기러기떼  허드레  빨랫줄에  빨래를 걷어가는  분주한 저물녘  먼  어머니  *단풍놀이  여러 새가 울었단다  여러 산을 넘었단다  저승까지 갔다가 돌아왔단다.  *성화(聖畵)  별빛은 제일 많이 어두운 어두운 오두막 지붕 위에 뜨고  귀뚜리는 제일 많이 어두운 어 두운 오두막 부엌에서 울고  철없이 늙어버린 숯빛 두 그림자, 귤빛 봉창에 비쳐지고 있었다  *난(蘭)  난을 기르듯  여자를 기른다면  오지게 귀 밝은  요즘 여자가 와서  내 뺨을 치고서  파르르 떨겠지  *낙화시절  누군가가    문밖 세상 나온 기념으로  사진이나 한 방 찍고 가자 해  사진을 찍다가 끽다거를 생각했다  그 순간의 빈틈에  카메라의 셔터가 터지고  나도 터진다  빈몸 터진다    *백석 시집에 관한 추억  아버지는 새 봄맞이 남새밭에 똥 찌끌고 있고  어머니는 언덕배기 구덩이에 호박씨 놓고 있고  땋머리 정순이는 떽끼칼로 떽끼칼로 나물 캐고 있고  할머니는 복구를 불러서 손자 놈 똥이나 핥아 먹이고  나는 나는 나는  몽당손이 몽당손이 아재비를 따라  백석 시집 얻어보러 고개를 넘고  *낙차(落差)  -해우소에서  마음 놓고 듣네  나 똥 떨어지는 소리  대웅전 뒤뜰에 동백나무 똥꽃 떨어지는 소리  노스님 주장자가 텅텅 바닥을 치는 소리  다 떨어지고 없는 소리  *늦꽃  들국화는 오래 참고  늦꽃으로 핀다  그러나  말없이 이름 없는  佳人 같아 좋다  아주 조그맣고  예쁘다  예쁘다를 위하여  늦가을 햇볕이  아직 따뜻했음 좋겠는데,  이 꽃이  바람의 무게를 달고  홀린 듯 사방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 꽃이  가장 오랜 늦꽃이고  꽃이지만 중생 같다  *죽편. 2  - 공법  하늘은 텅 빈 노다지로구나  노다지를 조심해야지  조심하기 전에도  한 마디 비워 놓고  조심하고 나서도  한 마디 비워 놓고  잣대 눈금으로  죽절 바로 세워  허허실실 올라가 봐  노다지도 문제 없어  빈 칸 닫고  빈 칸 오르는  푸른  아파트 공법  **서정춘 시인은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죽편》(1996) 《봄, 파르티잔》(2001), 등의 시집을 냈다.  한 편의 시집을 아껴 내고, 28년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내면서 한 시인의 말이 부드럽고 날카롭다.  “그렇게 설사하듯 시를 쓰는 거라면 나도 못 쓸 것 없지요.  시 천 편이 함형수의 한 편을 못 당할 걸 아는데  어떻게 함부로 시를 쓴다요.  천천히 쓰지요. 좋은 시 다섯 편만 남길라요.”  ( 인사동에서 차를 마시며 백석 시인의 추억을 들려주시고  열심으로 사는 것이,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 단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들려주시던 시인의 모습이 그립다)     
609    연변 작가계렬 취재 1 댓글:  조회:4745  추천:0  2015-06-22
  [중국조선인60세이상작가계열취재1]  “황혼이 다가와도 저녁놀은 아름답게”         “나의 인생은 어언 석양길에 들어섰고 글쓰기에서도 오래잖아 황혼이 다가올 것이다. 최후의 피 한방울까지 불 태워 쓰는 글로써 내 인생의 저녁놀을 조금이라도 어여쁘게 물들이고 싶은 욕망, 아직도 살아있다.” _김응준     김응준, 그의 숙명은 문학이요, 그의 천명은 시인이다. 광풍이 련련히 몰아치고 고패치는 그 세월에 한때 억울한 서리를 맞고 변강 벽지에 가서 움츠러들어 거의 절필하다시피 했던 시절에도 그는 마음속 깊이 알게모르게 움틀거리는 문학에 대한 욕망을 앞으로 언젠가는 터치울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때는 일찍 그가 뿌리를 내린 중국 변강의 땅 훈춘으로 이른다.        가난한 학창시절   그는 1934년 10월 14일(음력) 길림성 훈춘시 밀강향 태평구(현 해방촌)의 한 농민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12살적 월사금을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났는데 그때 아버지는 검정귀버섯을 팔아 공부를 계속시키려는 목적으로 산에 갔다가 전염병(왜놈들이 패망하기 직전 동북대륙을 휩쓸던 그 몹쓸 전염병 콜레라로 인해)에 걸려 결국 열흘만에 사망하고 연이어 삼촌과 여동생을 모두 잃었다. 태평소학교를 다녔던 그는 어릴적부터 공부를 유난히 잘하였지만 가난한 살림때문에 부득불 학교를 중퇴했어야만 했다. 이젠 농사를 하려고 하던 찰나, 1942년 로을룡선생의 간곡한 권고 하에 그는 2년간 짚신을 신고서 밀강소학교에 통학을 하게 된다. 그 시절, 가난한 살림에 도시락을 싸갖고 가지 못하여 배고픔을 달래러 마을 관자집에 들어가서 타래떡 냄새를 맡군 하였는데 그렇게 향기로울 수가 없었다. 5,6학년을 밀강소학교에서 마치고 또 다시 집안일을 도우려고 다짐을 하였다가 초중입학시험 일주일 전 전학손선생의 “초중에 입학하면 5원의 조학금을 받을 수 있고 또한 기숙사에도 들어갈 수 있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공부를 계속하라”는 의미심장한 얘기에 생각을 바꾸었다. 후에야 그는 그때 전학손선생이 통신학부에 “앞으로 계속 노력하면 우수한 머리에 무한한 발전을 기할 것이다.”라는 글을 쓴 것을 보고 희망찬 앞날에 대한 신심을 가지게 되었다. 초중입학시험 결과 12명중 2명이 입학하게 되었는데 그도 포함되었다.    훈춘중학에 입학하여 과외독서와 글쓰기에 매진한 그는 작문경색에 나가 우수상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앞으로 걷게 될 문학의 길에서 재능과 소질이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라 할수 있다.    고중에 올라갈 무렵인 1952년, 그는 리학용 담임선생님의 권고로 학비가 안드는 연변한어사범학교(로동자문화궁 서켠에 있는 공상은행 사무소 자리에 허름한 단층 벽돌집)에 입학하였다. 이는 나중에 연변대학 중문계로 입학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 학교에서는 자연과를 설치하지 않고 주로 중문을 몇개 과목으로 나누어 배우는 외에 조선어, 정치, 력사, 지리, 음악 등 과목을 더불어 가르쳐주었다. 자연과학을 전공할 길은 막히고 문과를 전공하는 길밖에 없었다. 초중시절 문학에 흥취를 갖고있었고 작문 경색에서 입상한적도 있었던 그는 그곳에서 문학의 길을 가려고 다짐하였으며 고리끼와 푸쉬킨, 조기천 등 문학거인들의 작품을 남김없이 열독하였다. 드디어 1954년 초 처녀작  이 연변문예에 발표되었다. 그 이듬해인 1955년 5월에는 작품 가 역시 연변문예에 발표 되었는데 1956년 8월 연변작가협회 창립시 학생신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문예상과 함께80원의 상금까지 받아안았다. 그 80원의 상금으로 그는 여동생을 데리고 볼품없는 초가집에서 살고있는 어머니에게 50원을 보내여 새로이 집을 장만하게 하였다. 1955년 그는 연변대학 중문계로 입학하게 되는데 1956년 말부터 1958년 7월까지 북경대학 중문계로 연수를 떠난다. 이러한 좋은 기회가 따라준 것은 연변한어사범학교 시절인1955년의 사연이 계기가 되었다. 그해 5월, 교도주임은 우수한 학생들을 불러 연변대학 중문학부에 입학할 자격에 부합되는 학생들을 선발하겠다고 선포하였던 것이다. 운동대회에서 문예대회, 졸업생대표발언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우수한 학생이었던 그는 마침내 연변대학 중문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가 북경대에 연수를 가게 된 첫걸음이었다.    연변대학 중문학부에서 그는 , ,  등 작품을 발표하였고 북경대학 시절에는  등 다수의 글을 써냈다. 북경대학은 중국 최고의 학부인만큼 일류의 학습환경을 구비하였고 동방어문학부에는 도서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는 이 자원을 충분히 이용하여 열람식에서 2년동안이나 폐문독서를 하며 문학지식을 늘였다. 고문과 열독에 몰두하였으며 라는 한문으로 된 7언시도 발표하였다.        훈춘에서의 20년 세월   시작이 좋아 한창 부풀어오르던 이 시절, 반우파투쟁이 일어나 기술실무만능주의(白专道路: 문학에만 열중하고 정치적활동에 적극적이지 못하였다.)로 “우파언론이 있고, 공청단원 1년간 보류, 사용제한”(有右派言论, 留团查看1年, 限制使用)이라는 처분을 받고 1959년 8월 훈춘시 제2고중에 분배받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14년동안 한어교원사업에 충성하였고 모범공청단원이 되면서 사회주의 교양운동으로 인해 공작대대장 리용눌으로부터 1965년 6월에 재해방 되면서 입당을 하였고 부교무주임으로 승진하였다. 문학에 대한 욕구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했을 그때, 리상각과 김성휘, 김철 등 문학친구들의 권고로 다시 필을 든 그는 , , ,  등 작품을 써냈다. 1973년, 그는 훈춘시 서기 김성화의 추천으로 훈춘시 외사반공실 주임으로 전근하게 되어어 6년간 그곳에 있었다. 그후 1978년 즈음 훈춘시 진교향당위서기로 1년간 종사하다가 1979년 3월 훈춘을 떠나 연변작가협회 부비서장으로 임명되었지만 편제가 없어 1년간 연변군중예술관 “해란강”잡지(문예지)의 편집을 맡게 되었고 1980년 3월부터는 연변인민출판사에 30년의 청춘을 바쳤다.        문학의 봄날   문학의 꽃망울을 틔우려다 사그러든 그는 다시 문학의 봄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1980년대 말, 지식분자들이 걸어온 역사를 돌이키며 해방받지 못한 울분을 토한150행에 이르는 를 발표하였고, 1984년 10월에는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쓴 연변문학상을 수상한 (대표작가운데의 하나)를, 1980년대 말에는 100수에 달하는 인생3부작인 연작시 (연변문학상 수상작품), 사랑주제 , 겨례의 역사 를 써냈다. 이 시기에 쓴 가요 은 2007년도 장백산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1993년 해외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그는 1993년에는 러시아, 1996년, 1997년, 2000년 3차례에 거쳐 약 2년간 미국에 머물었다. 그 시기 그는 여행을 하고 글을 쓰며 손군들을 키우는 등 일들을 하였으며 사랑하는 딸을 잃은 아픔으로 라는 기행시집을 써냈다. 그리고 자본가의 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맑스의 중 잉여가치의 이론을 직접 체험하기도 하였다. 그곳의 선진문화를 폭넓게 받아들여 문학의 전통에서부터 현대에로의 탈바꿈을 시도한 그를 평론가 우상렬은 “인류를 내다보는 시인”이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2006년 3월, 그는 연변시인협회를 창립하여 현지창작과 도서출간, 시상식 등과 같은 활동들을 활발히 펼치고있다. 그는 장백산의 웅위함은 수많은 여러 봉우리들에 있다고 말한다. 시인협회의 창립 역시 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좋은 시를 뽑아 웅기중기 솟아서 이채를 돋구어 새로운 각자의 향기를 풍기게 하기 위함에 있다고 한다.      돌아보면 아득한 세월, 류수처럼 구름처럼 무정한 세월은 흘러흘러 그의 생에도 어언 황혼의 석양무렵이 다가왔다. 이팔청춘에 아침노을을 곱게 짜보려고 직기에 올라탔다가 때아닌 서리를 맞고 광풍에 휘말려 가슴깊이 상흔을 남긴적도 있었다만 문학에로의 사랑, 시에로의 사랑은 올곧이 인이 박혀 그한테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좋은 시절을 맞이하여 봄바람을 타고 꽃노을을 짜는 직기에 다시 오른지도 30년의 세월, 그리고 지금도 짜고있는 저녁노을쪼각이 앞으로 우리의 겨례가 나아가는 앞길에 한송이 꽃댕이나 한오리 옷고름으로 날릴수만 있다면 그는 흔쾌히 웃을 것이다. “시쟁이”인 그는 인생의 황혼이 바득바득 다가오는 석양무렵에도 그냥 분초를 다투어 연소하고 있다.        김응준시인 략력   u 1934년 10월 14일(음력) 길림성 훈춘시 밀강향 태평구 출생   u 1959년 연변대학교 중문학부 졸업후 훈춘시 제2고중, 훈춘시외사판공실 근무   u 1979년이래 문학편집, 연변인민출판사 편심, 중국작가협회 회원, 연변시인협회 회장, 시총서  주필 력임   u 1954년 처녀작 발표, 시집 ≪별찌≫, ≪남자와 녀자와 사랑과 시≫, ≪김응준시선집≫ 등 17부 출간, 편저 ≪세계명언≫(공저), ≪문학묘사사전≫(공저), ≪문학명작소개≫(공저) 등 출판   u 수필 “솜저고리에 깃든 이야기” (1962), “진달래꽃”(2005) 등 60여편 발표   u 시초 “사랑의 애가”, 련작시 “불타는 황혼”, 련작시 “연변사람”, 가요 “사랑아 어찌 늙으랴”, “두만강천리” 등 60여편 수상     김응준시인 출판시집   1. ≪별찌≫(1988년)   2. 장시집≪사랑의 향토≫(1994)   3. ≪남자와 녀자와 사랑과 시≫(1999년)   4. ≪그리움 삼만리≫(2002년)   5. ≪사랑새를 기다린다≫(2004년)   6. ≪남으로 나는 기러기떼≫(2005년)   7. ≪최후의 밀회≫(2005)   8. ≪깊은 뿌리≫(2006년)   9. ≪불타는 황혼≫(2006년)   10. ≪사랑별곡≫(2006년)   11. ≪어머니 장백산≫(2006년)   12. ≪사랑은 날개≫(2006년)   13. ≪장미꽃 함께 있으면≫(2006년)   14. ≪마감 웃는 꽃≫(2006년)   15. ≪하얀 손수건≫(2006년)   16. ≪연변사람≫(2009년)   17. ≪김응준시선집≫(2009년)   18. ≪외로운 마을≫(2009년)   19. ≪사랑으로 가는 길≫(2014년)                                                                                                                                                       해란강닷콤 류설화 기자    
608    다시 읽는 우리 문학 2 댓글:  조회:5006  추천:0  2015-06-22
  “다시 읽는 우리 문학” 김창걸 편               (행사는 연길고려원식당과 한규닷컴유한회사의 협찬으로 진행) 중국 해란강닷콤에서 주최하고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협조한“다시 읽는 우리 문학” 계렬세미나 (2) “소설가 김창걸을 다시 읽다”  지난 3월 27일 오전 연변도서관 에서 있었다. “다시 읽는 우리 문학”은 중국조선족문학발전의 흐름을 더듬어 보면서 지금까지 연구가 미흡한 대표적 작가들과 만나는 행사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서지학적 접근으로 들여다보는 김창걸의 작품” (최삼룡) , “중국조선족 문학의 정초자-김창걸” (우상렬), “김창걸의 소설 무빈골전설의 문학사적 가치” (강철영)  등 세편의 론문이 발표되였다. 이어 연변TV라디오 방송국 3명의 아나운서 (서태문, 신금철, 남경언) 이 현장에서 직접 김창걸 소설가의 대표작 “암야” (暗夜) 의 일부분을 낭독하였다. 김창걸 소설가의 문학비에 직접 다녀온 해란강 닷컴 취재진의 동영상에는 함께 김창걸의 생전 생활사진들도 함께 현장에서 감상할수 있었다.  우광훈 소설가는 “기대이상의 감동을 느꼈다. 문학이 빛바래 가고 있는 시점에 문학의 참된 의미를 다시 짚어볼수 있는 의미있는 행사에 참여할수 있어서 영광이다. 앞으로 계속되는 성장을 부탁한다” 고 소감을 주셨고 허련순 소설가는 “좋은 작품, 훌륭한 문학가를 재조명 할수 있다는 이 시간이 큰 영광이고 감동이다.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더 크게 안고 나중에 우리 후대들중 누군가가 우리를 이렇게 고맙게 기억해줄수 있는 시간이 꼭 있게 노력해야겠다” 고 소감을 마쳤다.  김창걸은  1936년에 처녀작 «무빈골전설» 을 창작. 1942년 “싹트는 대지” 에 수록된  (暗夜) 를 비롯해 30여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그의 소설들은 당시 현실에 대한 작가의 진실한 감수에 기초하여 사실주의창작방법으로 20세기 초엽으로부터 30년대에 이르는 조선족인민들의 비참한 생활처지를 리얼하게 전시함과 아울러 일제통차하의 암흑속에서 새날을 지향하는 민중들의 투쟁념원과 동경을 생동하게 반영하였다는 학계의 평가를 받고있다.  행사의 마무리로 연길시고려원 림룡춘 사장과 연길시 한규닷컴유한회사 김향 사장의 발언이 있었다. 림룡춘은 “기업문화를 창출해가는 기업인중 일원으로 이런 자리에 함께 할수 있어서 영광이다. 민족문학의 발자취와 함께 조선족 기업문화를 활성화 시키는데 힘을 도모하겠다” 고 밝혔다.  연길시한규닷컴유한회사 김향은 “해란강 사이트의 골수네티즌으로 시작하여 오늘 이런 자리에 참석하면서 민족문학을 다시 되새길수 있는 기회가 생긴것이 가장 큰 영광이다. 벅찬만큼 그 힘을 다하여 함께 노력하고 성장하겠다” 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연길시고려원 (사장 림룡춘), 연길시한규닷컴유한회사 (사장 김향)  후원, “다시 보는 문학인” 계렬세미나 (1) 시인 – 리욱편은 지난2월 6일, 연변도서관에서 있었다.      해란강닷컴 박군걸,류현/영상제작   정필단/글    
607    다시 읽는 우리 문학 1 댓글:  조회:4540  추천:0  2015-06-22
    “다시 읽는 우리 문학” 계열세미나 연변도서관서                 중국 해란강닷콤에서 주최하고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협조, 연길고려원 후원으로 된 “다시 읽는 우리 문학” 계렬세미나가 “시인 리욱을 다시 읽다”라는 주제로 지난 2월 6일 오전 연변도서관 회의실에서 첫막을 올렸다.     이날 세미나에서 연변대학 박사생도사 우상렬교수가 “리욱시의 민족성연구”,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석화가 “중국조선족 시문학 정초자 리욱”, 장춘리공대학 한국어학과 교수 김인향이“해방전 리욱 시세계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론문을 발표해 시인 리욱의 시세계에 대해 분석했다.     이어 현장 세미나에 참석한 연길시 중앙소학교 교원 림혜경이 고인의 시작품 “북두성”을,연변TV아나운서 연영미가 “척촉화”, 연변사범학원 단지부서기 리련이 “금붕어”, 사범학원 교수 김애화가 “새화원”, 연변TV아나운서 윤걸이 “생명의 예물”을 배경음악과 함께 직접 읊어 차분했던 토론현장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날 행사를 위해 아낌없는 후원을 해준 연길 고려원 림룡춘 사장은 “기업가로서 이같은 문학행사에 참가할수 있어서 영광이다. 또한 이같은 뜻깊은 행사에 후원하게 된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지속적으로 힘을 보탤것을 약속했다.     이어진 좌담회에서 연변대학 김호웅 교수는 “리욱은 생명의 시인이다. 암담한 시절에 인간을 노래하고 자연을 노래하고 생명을 노래한 시인, 새로운 리상과 민족의 앞날을 갈구하고 탐구했던 시인, 우리 조선족문단의 ‘단떼’이다”라고 고인을 평가했다.     작가협회 최국철주석은 “큰 기대를 안했던 세미나 현장에서 뜻밖의 수확을 얻은 기분이다.문학세미나의 새로운 형식에 박수를 보낸다. 적극 참석하겠다”고 짧은 소감을 마쳤으며 시인 리임원 역시 “상상이상의 좋은 성과를 이룬 행사라고 생각된다. 이런 좋은 행사를 기획해준 해란강측에 감사하다. 제2회 세미나에서는 더 많은 현대 문인들이 참석해 잊혀져가는1세대 시인들을 다시 되새기고 현대파 문단에 문학의 뿌리를 되새기며 접목, 교류하는 과정이 필요한것 같다”고 소감을 발표했다.       시인 리욱의 아들 리선호는 “아버지는 슬하에 10명의 자녀를 두었다. 어머니가 일자무식이였지만 항상 어머니를 존중해주셨다. 자식들이 책을 사고싶어 할 때마다 기꺼이 사주셨다.아버지와 함께 문학상을 받은적 있다. 모두들 우리 집에 쌍봉황이 날아들어온다고 기뻐해주셨다. 너무 틀에만 얽매이지 말고 틀을 벗어나 사는것도 좋다”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셨다”며 30여년전에 고인이 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주최측에 대한 고마움을 토로했다.       연변 조간신문사 채영춘 고문은 “오늘 행사에서 많은 학습을 한것 같다. 현대파시인들이 더 많이 참석해 오늘 이 느낌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 아울러 현대인의 많은 사유를 인터넷의 발전템포에 맞춰 우리 문학을 잘 전수하고 우리 문학의 영구한 발전과 진보를 이뤄내야 한다”고 피력했다.     한편 중국조선족시문학의 정초자로 불리우는 리욱시인(1907.7.15-1984.2.6)은 1924년 처녀작 《생명의 례물》을 《간도일보》에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창작활동을 시작하여 1930년대에 이미 《북두성》, 《모아산》, 《님 찾는 마음》 등 대표적인 시들을 창작하였다. 1945년부터 필명을 리욱으로 고치고 새롭게 문단에 등장한다. 이 시기 그는 《간도예문협회》, 《동라문인동맹》, 《연길중소한문회협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활약하였다. 1947년 동북군정대학을 다니면서 첫 서정시집 《북두성》을 출간하고 군정대학을 졸업한후 《대중》잡지 주필 겸 연변도서관 관장을 맡았으며 1949년 두번째 서정시집 《북륜의 서정》을 출간하였다. 1951년부터 연변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시인과 교육자의 길을 걸으면서 중국조선족문학의 후대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문화대혁명시기 시인은 《반동문인》, 《반동학술권위》 등으로 몰려 박해를 받았다. 건국후 《고향사람들》(1957), 《연변의 노래》(한문 1959), 《장백산하》(1959) , 《리욱시선집》(1980) 등을 출간하였으며 장편서사시 《풍운기(1부)》(1982)를 펴내고 제2부를 집필하다가 뇌익혈로 타계하였다.       해란강닷콤 박홍화/글 박군걸 류현/사진,동영상 제작       
606    리임원 시집 출간 댓글:  조회:4405  추천:0  2015-06-21
리임원 시집 “바다가 육지로 되지 않는 까닭은” 정식 출간                   원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리임원 시인의 시집 “바다가 륙지로 되지 않는 까닭은”(민족출판사, )이 정식 출간됐다.     “나에게 있어서 시는 몹시 춥고 시릴 때 볕을 쪼일수 있는 무더운 삼복철에 서느러운 나무잎 하나의 그늘이 되여주고 아프고 힘들 때 작은 희망이 되여주는 빛이 되듯이 나 또한 나의 시가 타인에게도 그런 작은 감동으로 되여줄수 있을가를 늘 고민하군 한다.”   출간의 기쁨을 맞은 시인 리임원의 말이다.     연변의 저명한 평론가 최삼룡 선생은 이번 시집의 출간에 대해 “시인 리임원의 일관된 시적추구를 잘 체현하고있는바 한결같이 아름답고 순수하고 정결한것이 특징적이다. 시가 아름답다. 내용이 꽃처럼 아름다울뿐만아니라 형식도 꽃처럼 아름답다.”고 평가하면서 “앞으로 민생에 대하여 관조하는 시도 쓰고 력사상상력도 발휘하여 아름다움에 웅장함을 더한 시가 창출되길 바란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총 79수의 작품으로 묶어진 이번 시집은 제1부 “가을편지”, 제2부 “바다가 륙지로 되지 않는 까닭”, 제3부 “사랑을 찾습니다”, 제4부 “페허의 노래”, 제5부 “꽃의 이야기” 등 부분으로 나뉘여진다.     리임원 저자 약력   ◎ 1958년 연길 출생.   ◎ 1979년 연변대학 사범학원 조문학과 졸업.   ◎ 1981년 연변일보사 입사, 정채생활부 부주임, 문화체육부 주임, 총편판공실 주임 등을 력임.   ◎ 2006년-현재까지 연변문화예술연구센터 주임.   ◎ 1998-2007년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 2007-201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제11기 정치협상회의 위원.   ◎현재 연변 포석문학회 회장   ◎“윤동주문학상”, “해란강문학상”, “도라지 문학상”, “장백산문학상”, “두만강여울소리 시인상”, “지용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인민정부 “진달래문예상”, 제4회 한국 “농촌문학상” 등 다수 수상.   ◎시집 “사랑, 그리고 바보들의 이야기”(제1회 연변지용시문학상 수상), “작은 시 한수로 사랑한다는것은…” 등 출간.   ◎서정시 “진달래” 등 3수가 초급중학교, 고급중학교의 중국 “조선어문’교과서에 수록.        
605    李仁老 漢詩 댓글:  조회:6778  추천:0  2015-06-20
      이인로 1152(의종 6)~1220(고종 7) 고려 중기 무신집권기의 문인. 본관은 인주(仁州). 초명은 득옥(得玉). 자는 미수(眉叟), 호는 쌍명재(雙明齋). 평장사 오()의 증손으로 문벌귀족의 가문 출신이지만,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화엄승통(華嚴僧統) 요일(寥一) 밑에서 자랐다. 1170년(의종 24) 정중부의 난을 피해 승려가 되기도 했다. 환속하여 1180년(명종 10) 문과에 급제한 뒤 문극겸의 천거로 한림원에 보직되어 14년간 사국과 한림원에 출입했다. 당시의 이름난 선비인 오세재·임춘 등과 죽림고회를 만들고 시와 술을 즐겼는데, 중국의 죽림7현(竹林七賢)을 흠모한 문학 모임이었다.   그의 문학세계는 선명한 회화성을 통하여 탈속의 경지를 모색했으며, 문은 한유의 고문을 따랐고 시는 소식을 숭상했다. 최초의 시화집인 〈파한집 破閑集〉을 저술하여 한국문학사에 본격적인 비평문학의 길을 열었다. 이 책에는 자작시가 많이 들어 있는데, 자작시만 들어 있는 것도 13화(話)에 이르고 있다. 또한 그는 용사(用事) 위주의 시론을 전개했다. 즉 시를 지음에 있어서 용사의 정묘함을 제일로 쳤으나, 그에 상응하는 여러 가지 요소가 갖추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험벽(險辟 : 뜻이 어렵고 잘 쓰지 않는 글자로, 이런 글자가 들어 있으면 시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함)한 용사는 배격했으며, 남의 문장을 본떠서 형식을 바꾸어도 새로운 뜻을 낼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좋은 시란 표현기교가 뜻을 따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갈고 닦는 공을 더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가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천연미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저서로 〈은대집 銀臺集〉 20권, 〈후집 後集〉 4권, 〈쌍명재집〉 3권, 〈파한집〉 3권을 저술했다고 하나, 현재 〈파한집〉만 전하며, 〈동문선〉과 〈보한집〉에 120여 편의 시문이 남아 있다.     李仁老 漢詩   1 崔太尉雙明亭(최태위쌍명정) - 李仁老(이인로) 최태위의 쌍명정에서   謂公巢許寓城郭(위공소허우성곽) : 소부와 허유와 같은 숨어사는 선비라 하려니 성안에 살고있고 謂公虁龍愛林壑(위공기룡애림학) : 기룡 같은 현달한 재상이라 하려니 자연을 너무 사랑했네 千金買斷數畝陰(천금매단수무음) : 천금으로 몇 이랑의 땅을 사서 碧瓦朱欄開小閣(벽와주란개소각) : 푸른 기와 붉은 난간 갖춘 작은 집을 지었네 淸風冷冷午枕凉(청풍냉냉오침량) : 맑은 바람 시원하고 낮잠은 시원하고 蒼雲陣陣空庭落(창운진진공정락) : 두둥실 떠 있는 푸른 하늘의 구름, 그림자 뜰에 드리우네 求閑得閑識閑味(구한득한식한미) : 한가함 찾아 한가함을 얻으니 한가한 맛 알아 舊遊不夢翻階藥(구유불몽번계약) : 지난 날 놀던 섬돌 약초 뒤집을 꿈꾸지 않으리 用東坡語寄貞之上人(용동파어기정지상인) - 이인로(李仁老) 동파의 말을 써서 정지 스님에게 부치다 歲律旣云暮(세률기운모) : 한 해도 이미 저무는데 凄風生戶牖(처풍생호유) : 찬 바람이 남쪽 창에 이는구나 竹窓燈火靑(죽창등화청) : 죽창의 등불 푸른 불빛 一叚有佳趣(일가유가취) : 한 가지 아름다운 풍취를 與君分一半(여군분일반) : 절반을 나누어 그대에게 보내주노니 愼勿輕受授(신물경수수) : 조심해 함부로 남에게 주거나 받지 마오 所與苟非人(소여구비인) : 줄 곳이 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면 火迫當還取(화박당환취) : 부리나케 도로 받아 와야 합니다     2 早起梳頭效東坡(조기소두효동파) - 이인로(李仁老) 동파를 본받아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를 빗으며   燈殘綴玊葩(등잔철숙파) : 등불이 꺼져가니 심지를 이어 주고 海闊涵金鴉(해활함금아) : 바다는 넓어 처음 뜨는 해를 머금었구나 默坐久閉息(묵좌구폐식) : 묵묵히 앉아 한참 숨을 참고 丹田手自摩(단전수자마) : 단전을 손으로 어루만지노라 衰鬢千絲亂(쇠빈천사란) : 쇠한 귀밑털 일천 실 어지럽고 舊梳新月斜(구소신월사) : 묵은 빗은 초승달이 비낀 듯 하도다 逐手落霏霏(축수락비비) : 손을 따라 소록소록 떨어지는 것이 輕風掃雪華(경풍소설화) : 산들바람이 눈을 쓸어버리는 듯 하구나 如金鍊益精(여금련익정) : 마치 금을 담금질하여 더욱 정한 것처럼 百鍊未爲多(백련미위다) : 백 번을 담금질해도 많다 할 수 없구나 豈唯身得快(기유신득쾌) : 어찌 몸만 가뜬하리오 亦使壽無涯(역사수무애) : 수명 또한 길어지는 것을 老鷄浴糞土(로계욕분토) : 늙은 닭은 거름 밭에 목욕하고 倦馬饇風沙(권마어풍사) : 피곤한 말도 모래에 장치는구나 此亦能自養(차역능자양) : 이것도 몸 수양하는 것이라 하는 것이라고 聞之自東坡(문지자동파) : 나는 동파에게서 들었노라   3 煙寺晩鐘(연사만종) - 이인로(李仁老;1152-1220) 연사에서의 저녁 종소리   千回石徑白雲封(천회석경백운봉) : 천 구비 구불어진 돌길 흰 구름에 가려있고 巖樹蒼蒼晩色濃(암수창창만색농) : 바위 위 나무는 푸르고 황혼이 짙어가네 知有蓮坊藏翠壁(지유연방장취벽) : 부처님 극락세계 푸른 벽 속에 있음을 알고 好風吹落一聲鐘(호풍취락일성종) : 좋은 바람 불어와 종소리 울리네   4 山居 산거 산골   春去花猶在 춘거화유재 봄은 갔어도 꽃은 아직 남아있고 天晴谷自陰 천청곡자음 하늘 맑아도 골짜기엔 그늘 있어 杜鵑啼白晝 두견제백주 대낮에도 두견새 우는 것을 보니 始覺卜居深 시각복거심 깊은 산골에 사는 것을 깨닫겠네   5 題草書簇子(제초서족자) - 이인로(李仁老) 초서족자에 쓰다   紅葉題詩出鳳城(홍엽제시출봉성) : 단풍잎에 시를 써서 봉성 밖으로 보내니 淚痕和墨尙分明(루흔화묵상분명) : 눈물 자국이 먹에 얼룩져 아직도 선명하도다 御溝流水渾無賴(어구류수혼무뢰) : 궁중 개울 흐르는 물 도무지 믿지 못하나니 漏洩宮娥一片情(누설궁아일편정) : 궁녀의 한 조각 정을 바깥으로 흘려보내는구나   6 西塞風雨(서새풍우) - 이인로(李仁老) 서새의 비바람   秋深笠澤紫鱗肥(추심립택자린비) : 가을이 깊으니 구리때 연못에 자색 고기비늘 살찌고 雲盡西山片月輝(운진서산편월휘) : 구름 걷히자 서산에 조각달이 빛나는구나. 十幅蒲帆千頃玉(십폭포범천경옥) : 열 폭 부들 돛은 천 이랑 옥 물결 위에 떠있고 紅塵應不到蓑衣(홍진응불도사의) : 세상 티끌이야 도롱이 입은 사람에게는 이르지 않으리라   7 扈從放牓(호종방방) - 이인로(李仁老) 방방을 호종하며   半簾紅日黃金闕(반렴홍일황금궐) : 황금 대궐, 반쯤 걷은 주렴에 붉은 해가 비춰들고 多士三千雁成列(다사삼천안성렬) : 많은 선비 삼천이나 기러기처럼 떼 지어 모여들었다. 忽從丹陛姓名傳(홀종단폐성명전) : 총총히 붉은 뜰에 올라 성명을 전하고 縱步靑雲岐路闊(종보청운기로활) : 푸른 구름에 걸음을 걸으니 길도 넓어지는구나. 吐鳳成文價益高(토봉성문가익고) : 봉을 토해 글을 만드니 값은 더욱 높고 畫蛇着足難藏拙(화사착족난장졸) : 화사첨족 하다니 졸렬한 것 감추기 어려워라. 老手曾經百戰餘(로수증경백전여) : 익숙한 솜씨가 일찍 백 여 회 싸움 겪었는데 今怪吳牛虛喘月(금괴오우허천월) : 오나라 소가 보고 헐떡이는 것이 지금은 이상구나.         8 用東坡韻寄貞之上人(용동파운기정지상인) - 李仁老(이인로) 동파의 운으로 지정 스님에게   歲律旣云暮(세률기운모) : 일년이 이미 저물어 凄風生戶窓(처풍생호창) : 싸늘한 바람 문틈으로 찾아든다 竹窓燈火靑(죽창등화청) : 죽창에는 파란 등 불빛 一段有佳趣(일단유가취) : 한 줄기 아름다운 멋이 흐르네 與君分一半(여군분일반) : 그대와 절반 나누었으니 愼勿輕受授(신물경수수) : 쉽게 누구에게 주거나 받지 마소 所與苟非人(소여구비인) : 나누어 준 사람이 진실로 바르지 않으면 火迫當還取(화박당환취) : 화급히 따라가 찾아오소서   9 謾興(만흥) - 李仁老(이인로) 흥겨워서   境僻人誰到(경벽인수도) : 사는 곳 궁벽하여 누가 찾을까 春深酒半酣(춘심주반감) : 봄은 무르익고 술은 반이나 익었네 花光迷杜曲(화광미두곡) : 꽃 경치 두곡 마을인 듯 하고 竹影似城南(죽영사성남) : 대나무 그늘 성남 땅 같구나 長嘯愁無四(장소수무사) : 장형의 수무사를 길게 읊조리고 行歌樂有三(행가악유삼) : 맹자의 인생삼락 걸으며 노래하네 靜中滋味永(정중자미영) : 고요한 가운데 재미는 끝없으니 豈是世人諳(기시세인암) : 세상 사람들 어찌 이 즐거움 알겠는가   10 平沙落雁(평사낙안) - 李仁老(이인로)   모래톱에 내려앉는 기러기 水遠天長日脚斜(수원천장일각사) : 긴 강 높은 하늘, 햇살 비치고 隨陽征雁下汀沙(수양정안하정사) : 햇살 따라 기러기 모래톱에 내린다 行行點破秋空碧(행행점파추공벽) : 줄지어 날며 가을 푸른 하늘을 점점이 가르네 低拂黃蘆動雪花(저불황로동설화) : 나직하게 갈대밭 스치자, 눈꽃이 흩날린다   11 贈四友1(증사우1) - 이인로(李仁老) 네 친구에게   昔在文陣間(석재문진간) : 옛날에는 문인들 속에 이름을 다고 爭名勇先購(쟁명용선구) : 이름 다투어 용맹하게 먼저 날뛰었다 吾嘗避銳鋒(오상피예봉) : 나는 일찌기 날카로운 칼날을 피했지만 君亦飽毒手(군역포독수) : 그대 또한 독한 손에 지쳐버렸구나 如今厭矛楯(여금염모순) : 지금은 창과 방패 싫어하여 相逢但呼酒(상봉단호주) : 서로 만나면 술만 달라고 하노라 宜停雙鳥鳴(의정쌍조명) : 마땅히 두 새 울음 그치게 하고 須念兩虎鬪(수념량호투) : 모름지기 두 호랑 싸움을 조심하여라.     12 贈四友2(증사우2) - 이인로(李仁老) 네 친구에게   陶朱雖相越(도주수상월) : 도주는 월나라 제상이지만 一舸泛溟渤(일가범명발) : 넓은 바다에 조각배 하나 띄웠다네 安石在晉朝(안석재진조) : 안석은 진나라 조정에 있으면서 雅賞東山月(아상동산월) : 동산 달을 운치있게 즐기었도다 今我與夫子(금아여부자) : 오늘날 그대와 나 豈是愛簪紱(기시애잠불) : 내가 어찌 벼슬을 사랑하리오 散盡東海金(산진동해금) : 동해의 금을 모두다 흩어버리고 行採西山蕨(행채서산궐) : 서산의 고사리나 캐러 가리라.   13 贈四友3(증사우3) - 이인로(李仁老) 네 친구에게 我飮止數杯(아음지수배) : 나는 겨우 술 몇 잔에 그치고 君飮須一石(군음수일석) : 그대는 반드시 한 섬 술을 마신다 及當醉陶陶(급당취도도) : 그러나 거나하게 취함에 이르러 至樂相與敵(지악상여적) : 아주 즐거워하기는 서로 다름없도다 兩臉若春融(량검약춘융) : 두 볼은 마치 봄이 무르익은 듯 하고 千愁盡氷釋(천수진빙석) : 일천 시름은 얼음인 듯 녹아버리는구나 何須校少多(하수교소다) : 어찌 구태어 많고 적음 따질까보냐 且得適其適(차득적기적) : 제각기 멋을 얻으면 그만인 것을.   14 贈四友4(증사우4) - 이인로(李仁老) 네 친구에게   支遁從安石(지둔종안석) : 지둔 스님은 사안석을 따랐고 鮑昭愛惠休(포소애혜휴) : 포소는 시를 쓰는 혜휴를 사랑하였다 自古龍象流(자고룡상류) : 예부터 고승들은 時與麟鳳遊(시여린봉유) : 항상 귀인들과 한께 놀았도다 詩法不相妨(시법불상방) : 시와 불법이 서로 방해되지 않거니 古今同一丘(고금동일구) : 고금이 한 언덕이 되었도다 共在圓寂光(공재원적광) : 원적광 빛속에 함께 있으니 寧見別離愁(녕견별리수) : 어찌 서로 이별할 근심 있으리오.     15 寶石亭(보석정) - 李仁老     石虎宮中有棘生(석호궁중유극생) : 대궐의 석호에는 멧대추나무 나 있고 銅駝陌上無人行(동타맥상무인행) : 번화했던 동타 거리엔 다니는 사람 하나 없네 危亭寶石半零落(위정보석반영락) : 우뚝한 보석정은 반이나 허물어지고 殘月依依照古城(잔월의의조고성) : 지는 달 희미하게 옛 성을 비추네 當時絲管盡悽咽(당시사관진처열) : 당시의 음악소리 한 결 같이 슬프고 목 메인데 泛泛金觴隨曲折(범범금상수곡절) : 물 위에 띄운 술잔 굽이 따라 오갔네 中流空惜魏山河(중류공석위산하) : 위 무후는 강 중류에서 공연히 산하를 아까워했고 醉鄕不管陳日月(취향불관진일월) : 진 후주는 술에 빠져 나라를 다스리지 않았다네.   16 扈從放榜(호종방방) - 李仁老 임금을 모시고 과거의 방을 붙이며   半簾紅日黃金闕(반렴홍일황금궐) : 주렴이 반만 걷힌 황금빛 찬란한 대궐 多士三千雁成列(다사삼천안성열) : 삼천 명 많은 선비 줄지어 늘어섰네 怱從丹階姓名傳(총종단계성명전) : 총총히 임금님 앞 계단에 나와 성명을 아뢰고 縱步靑雲岐路闊(종보청운기로활) : 청운의 뜻을 좇아 갈림길 밝히네 吐鳳成文價益高(토봉성문가익고) : 아름다운 문장을 지으니 가치 더욱 높아지고 畫寫着足難藏拙(화사착족난장졸) : 뱀을 그리는데 발 그리는 어리석음 감추기 어렵구나 老手曾經百戰餘(노수증경백전여) : 익숙한 솜씨 이미 백전의 노련한 사람들인데 今怪吳牛虛喘日(금괴오우허천일) : 시험날인 오늘은 오나라의 소처럼 헐떡이네.   17 續 行路難3(속 행로난3) - 이인로(李仁老)   顔巷枕肱食一簞(안항침굉식일단) : 안회는 누항에서 팔을 베고 한 바구니 밥을 먹었으며 東陵晝膳脯人肝(등릉주선포인간) : 동릉은 낮에 사람의 간을 회를 쳐서 먹었다 世間萬事眞悠悠(세간만사진유유) : 세상의 모든 일이 진실로 유유하여 直道由來作人難(직도유래작인난) : 곧은 길엔 원래 사람 노릇 어렵도다 我欲伸曲鉤斬曲几(아욕신곡구참곡궤) : 나는 굽은 갈고리를 펴고 굽은 책상을 베고자 하니 要須平直如金矢(요수평직여금시) : 바르고 곧기가 쇠 화살 같아야 하느니라 黃河正漲碧琉璃(황하정창벽유리) : 황하를 푸른 유리 같이 맑게 하여 不著一點秋毫累(부저일점추루루) : 추호의 더러움도 묻지 않게 하고 싶다.   18 煙寺晩鐘(연사만경) - 李仁老(이인로) 안개 낀 정의 저녁 종소리   千回石徑白雲封(천회석경백운봉) : 돌고 돈 아득한 돌 길, 흰 구름 속에 잠기고 巖樹蒼蒼晩色濃(암수창창만색농) : 창창한 바위 숲에 어스름 짙어지네 知有運坊藏翠壁(지유운방장취벽) : 푸른 절벽에 절 하나 好風吹落一鐘聲(호풍취락일종성) : 때맞춘 바람에 종소리 울려온다.             19 遠浦歸帆(원포귀범) - 李仁老 먼 포구로 돌아가는 배   渡頭煙樹碧童童(도두연수벽동동) : 부두가 이내 낀 나무, 우뚝 푸르고 十幅編蒲萬里風(십폭편포만리풍) : 열 폭 엮인 부들에 멀리서 부는 바람 玉鱠銀蓴秋正美(옥회은순추정미) : 노어회, 순채국 가을에 별미네 故牽歸興向江東(고견귀흥향강동) : 돌아 갈 흥에 끌려 강동으로 향하는 배.     20 喜僧惠文得寺(희승혜문득사) - 李仁老(이인로) 혜문이 주지가 됨을 기뻐함   文也禪林秀(문야선림수) : 혜문이야 선문에서 뛰어난 인물 知名二十春(지명이십춘) : 알고 지낸지 이미 이십년 久聞詩摠好(구문시총호) : 시 잘 짓는 소문 이미 들었지만 爭及貌彌眞(쟁급모미진) : 풍모의 진실 됨에 어찌 미칠까 旣住靑蓮宇(기주청련우) : 이미 청련사의 주지가 되었으니 應分白氎巾(응분백첩건) : 당연히 흰 옷감이라도 나누어 주시겠지 通宵喜不寐(통소희불매) : 밤새도록 기뻐서 잠 못 자며 亦有玉堂人(역유옥당인) : 옥당의 친구 있는 줄 잊지 마오.     21 暮春(모춘) - 李仁老(이인로) 저무는 봄   老來心事向春慵(노래심사향춘용) : 늙어감에 심사가 봄에 더욱 게을러져 睡起空鷺落絮風(수기공로락서풍) : 벼들 꽃 흩는 바람에 자다가 공연히 놀라깨네 紅雨濛濛簾捲處(홍우몽몽렴권처) : 주렴 걷힌 곳에, 꽃비가 몽롱하고 靑陰漠漠鳥啼中(청음막막조제중) : 새들의 울음 속에 푸른 그늘 아득하다   22 用東坡語寄貞之上人(용동파어기정지상인) - 이인로(李仁老) 동파의 말을 써서 정지 스님에게 부치다   歲律旣云暮(세률기운모) : 한 해도 이미 저무는데 凄風生戶牖(처풍생호유) : 찬 바람이 남쪽 창에 이는구나 竹窓燈火靑(죽창등화청) : 죽창의 등불 푸른 불빛 一叚有佳趣(일가유가취) : 한 가지 아름다운 풍취를 與君分一半(여군분일반) : 절반을 나누어 그대에게 보내주노니 愼勿輕受授(신물경수수) : 조심해 함부로 남에게 주거나 받지 마오 所與苟非人(소여구비인) : 줄 곳이 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면 火迫當還取(화박당환취) : 부리나케 도로 받아 와야 합니다.   23書天壽僧院(서천수승원) - (李仁老) 천수승원에 적다   待客客未到(대객객미도) : 기다려도 손님은 오지 않고 尋僧僧亦無(심승승역무) : 스님을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惟餘林外鳥(유여림외조) : 다만, 숲 밖의 산새 있어 款曲勸提壺(관곡권제호) : 간곡히 술 가져오라 권하고 있다.   24 竹醉日移竹1(죽취일이죽1) - 李仁老 죽취일에 대를 옮겨 심으며   古今一丘貂(고금일구초) : 진리는 고금이 같아 天地眞蘧廬(천지진거려) : 천지가 정말 같은 집이네 此君獨酩酊(차군독명정) : 그대는 혼자 취하여 兀兀忘所如(올올망소여) : 올올이 갈 곳을 잊었구나 江山雖有異(강산수유이) : 강산은 비록 다르나 風景本無特(풍경본무특) : 대나무 풍경이야 본래 다르지 않으리 不用更醒悟(불용갱성오) : 다시 술 깰 필요 없으니 操戈便逐儒(조과편축유) : 창 잡아 헛된 선비들 쫓아버리세.   25 竹醉日移竹2(죽취일이죽2) - 李仁老(이인로) 죽취일에 대를 옮겨 심으며   司馬賞客遊(사마상객유) : 사마천도 나그네로 떠돌고 夫子亦旅㝢(부자역여우) : 공자님도 천하를 떠돌았다네 新亭相對泣(신정상대읍) : 새 집에 와 서로 눈물 흘리니 數子眞兒女(수자진아녀) : 그대들 몇몇, 정말 아녀자구려 此君恥匏繫(차군치포계) : 박처럼 매달려 있는 것 부끄러워 所適天不阻(소적천부조) : 가는 곳이 어디라도 하늘은 막지 않네 何必登樓吟(하필등루음) : 어찌 반드시 누대에 올라 읊조려야하는가 信美亦吾土(신미역오토) : 진실로 아름다워라, 이곳도 내 살 땅이네   26 竹醉日移竹3(죽취일이죽3) - 李仁老(이인로) 죽취일에 대를 옮겨 심으며   我飮止數杯(아음지수배) : 내야 마셔야 몇 잔에 그치지만 君飮須一石(군음수일석) : 그대는 마신다면 한 섬을 다 마시네 及當醉陶陶(급당취도도) : 당연히 거나하게 취하면 至樂相與敵(지락상여적) : 지극한 즐거움이야 서로가 맞수였지 兩臉若春融(양검약춘융) : 두 뺨은 봄기운처럼 무르녹고 千愁盡氷釋(천수진빙석) : 온갖 근심 얼음 녹듯 없어진다네 何須校少多(하수교소다) : 어찌 반드시 많고 적음을 헤아리랴 且得適其適(차득적기적) : 자기 주량에 따라 마시리라.   27 竹醉日移竹4(죽취일이죽4) - 李仁老(이인로) 죽취일에 대를 옮겨 심으며   支遁從安石(지둔종안석) : 승려 지둔도 사안석과 교유하였고 飽照愛惠林(포조애혜림) : 포조도 승려 혜림을 좋아했다네 自古龍象流(자고룡상유) : 예부터 시인은 스님과 교류했고 時與麟鳳遊(시여린봉유) : 수시로 스님은 시인과 놀았다네 詩法不相妨(시법불상방) : 시와 불법은 서로 꺼리지 않았으니 古今同一丘(고금동일구) :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네 共在圓寂光(공재원적광) : 다 같이 원숙하고 고요한 진리의 빛에 있으니 寧見別離愁(녕견별리수) : 어찌 자리 떠남에 근심하겠소.   28 用東坡韻寄貞之上人(용동파운기정지상인) - 李仁老(이인로) 동파의 운으로 지정 스님에게   歲律旣云暮(세률기운모) : 일년이 이미 저물어 凄風生戶窓(처풍생호창) : 싸늘한 바람 문틈으로 찾아든다 竹窓燈火靑(죽창등화청) : 죽창에는 파란 등 불빛 一段有佳趣(일단유가취) : 한 줄기 아름다운 멋이 흐르네 與君分一半(여군분일반) : 그대와 절반 나누었으니 愼勿輕受授(신물경수수) : 쉽게 누구에게 주거나 받지 마소 所與苟非人(소여구비인) : 나누어 준 사람이 진실로 바르지 않으면 火迫當還取(화박당환취) : 화급히 따라가 찾아오소서.   29 瀟湘夜雨(소상야우) - 李仁老(이인로) 소상강 밤비   一帶滄波兩岸秋(일대창파양안추) : 한 줄기 푸른 물결, 양 언덕엔 가을 짙고 風吹細雨灑歸舟(풍취세우쇄귀주) : 강바람 불어오고, 돌아오는 배전에 가랑비 뿌리네 夜來泊近江邊竹(야래박근강변죽) : 밤에 강변 대숲에 배를 대니 葉葉寒聲總是愁(엽엽한성총시수) : 대나무 입에 떨어지는 찬 빗소리는 모두의 수심이네.     30 內庭寫批有感(내정사비유감) - 李仁老(이인로) 대권에서 비지를 쓰며   孔雀屛深燭影微(공작병심촉영미) : 공작 병풍 깊숙하고 촛불 그림자 희미한데 鴛鴦睡美豈分飛(원앙수미기분비) : 잠자는 고운 원앙새 어찌 나누어 날겠는가 自憐憔悴靑樓女(자연초췌청루여) : 가련하다, 초췌한 청루의 여인이여 長爲他人作嫁衣(장위타인작가의) : 오랫동안 남 위해 혼수 옷만 짓는다네     31 續行路難1(속행로난1) - 李仁老(이인로) 속행로난   登山莫編怒虎鬢(등산막편노호빈) : 산에 올라서는 성난 호랑이의 수염 만지지 말고 蹈海莫採眠龍珠(도해막채면룡주) : 바다에 가서는 잠든 용의 여의주 구슬 캐지 마라 人間寸步千里阻(인간촌보천리조) : 인간의 잘못된 작은 한 걸음 천리를 망치고 大行孟門眞坦途(대행맹문진탄도) : 대행과 맹문 같은 험한 길, 오리려 평탄한 길 蝸角戰酣閙蠻觸(와각전감료만촉) : 작은 싸움에 오랑캐만 시끄럽게 한고 路岐多處泣楊朱(노기다처읍양주) : 갈림길 많아 양주도 울었다   32 續行路難2(속행로난2) - 李仁老(이인로)   我欲飇車叩閶闔(아욕표거고창합) : 나는 바람수레로 하늘의 문을 두드리고 싶고 請挽大河洗六合(청만대하세육합) : 은하수를 당겨다 우주를 씻어내고 싶소 狂謀謬算一不試(광모류산일불시) : 어리석고 잘못된 계산이라 한번도 시험하고 싶지 않고 蹄涔幾歲藏鱗甲(제잠기세장린갑) : 자국에 고인 물처럼 작은 일에 몇 년이나 마음 버렸던가 峨洋未入子期聽(아양미입자기청) : 산과 바다 같은 이상, 받아줄 종자기 같은 친구 없고 熊虎難逢周后獵(웅호난봉주후렵) : 웅호는 주후의 사냥 행열 만나지 못 하였네 行路難歌正悲(행로난가정비) : 행로난 노래는 정말 서글픈 것 匣中雙劍蛟龍泣(갑중쌍검교룡읍) : 갑속의 쌍검에 교룡이 우는구나.     33 續 行路難3(속 행로난3) - 이인로(李仁老) 顔巷枕肱食一簞(안항침굉식일단) : 안회는 누항에서 팔을 베고 한 바구니 밥을 먹었으며 東陵晝膳脯人肝(등릉주선포인간) : 동릉은 낮에 사람의 간을 회를 쳐서 먹었다 世間萬事眞悠悠(세간만사진유유) : 세상의 모든 일이 진실로 유유하여 直道由來作人難(직도유래작인난) : 곧은 길엔 원래 사람 노릇 어렵도다 我欲伸曲鉤斬曲几(아욕신곡구참곡궤) : 나는 굽은 갈고리를 펴고 굽은 책상을 베고자 하니 要須平直如金矢(요수평직여금시) : 바르고 곧기가 쇠 화살 같아야 하느니라 黃河正漲碧琉璃(황하정창벽유리) : 황하를 푸른 유리 같이 맑게 하여 不著一點秋毫累(부저일점추루루) : 추호의 더러움도 묻지 않게 하고 싶다.   34 江天暮雪(강천모설) - 李仁老(이인로) 강 하늘 저녁 눈   雪意嬌多著水遲(설의교다저수지) : 흩날리는 눈은 교태를 띠고 강물에 내리기 싫어하고 千林遠影已離離(천림원영이이이) : 온 숲에는 멀리 이미 그림자 어른어른 蓑翁未識天將暮(사옹미식천장모) : 도롱이 쓴 늙은이 날 저무는 줄 모르고 醉道東風柳絮時(취도동풍유서시) : 취하여 말하기를, 봄바람에 버들 꽃 날리는 때라 하네   35漁村落照(어촌낙조) - 李仁老(이인로) 어촌 저녁놀 草屋半依垂柳岸(초옥반의수류안) : 초가집 반쯤 걸친 버들 늘어진 언덕 板橋橫斷白蘋汀(판교횡단백빈정) : 외다리 가로 놓인 흰 마름 물가 日斜悠覺江山勝(일사유각강산승) : 저무는 햇살에 강산 더욱 아름다워라 萬頃紅淨數點靑(만경홍정수점청) : 맑고 푸른 만 이랑 물결 속, 몇 점의 푸른 산.   36杏花鸜鵒圖(행화구욕도) - 李仁老(이인로) 살구꽃 속의 구관조 새 그림 欲雨不憂春陰垂(욕우불우춘음수) : 올 듯 한 비는 오지 않고, 봄 구름만 자욱하고 杏花一枝復兩枝(행화일지복양지) : 살구꽃 한 가지 또 두 가지 問誰領得春消息(문수령득춘소식) : 누가 봄소식 받았는지 물어보니 唯有鸜之與鵒之(유유구지여욕지) : 오직 구관조와 구관조가 꽃가지에 있구나 .   37.山居(산거) - 李仁老(이인로)   春去花猶在(춘거화유재) : 봄은 갔어도 꽃은 아직 남아있고 天晴谷自陰(천청곡자음) : 하늘 맑아도 골짜기엔 그늘 있어 杜鵑啼白晝(두견제백주) : 대낮에도 두견새 우는 것을 보니 始覺卜居深(시각복거심) : 깊은 산골에 사는 것을 깨닫겠네   38. 瀟湘夜雨(소상야우) - 李仁老(이인로)   一帶滄波兩岸秋(일대창파양안추) : 한 줄기 푸른 물결, 양켠 언덕 가을인데 風吹細雨灑歸舟(풍취세우쇄귀주) : 바람 불자 보슬비 가는 배에 흩뿌리네 夜來泊近江邊竹(야래박근강변죽) : 밤이 되어 江邊의 대나무 숲 가까이 배를 대니 葉葉寒聲摠是愁(엽엽한성총시수) : 잎마다 차가운 소리, 모두 다 수심일세.   39. 詠雪(영설) - 李仁老(이인로)   千林欲瞑已棲鴉(천림욕명이서아) : 온 숲이 저물어 갈가마귀 깃드는데 燦燦明珠尙照車(찬찬명주상조거) : 찬란히 반짝이며 수레를 비추는 눈 仙骨共驚如處子(선골공경여처자) : 신선도 놀랄 만큼 깨끗한 순수세상 春風無計管光花(춘풍무계관광화) : 봄바람도 저 꽃들은 어쩌지 못하네 聲迷細雨鳴窓紙(성미세우명창지) : 가랑비 소리인 듯 창호지를 울리고 寒引羈愁到酒家(한인기수도주가) : 추위에 시름은 주막으로 발길 끌어 萬里都盧銀作界(만리도로은작계) : 만리천지 은으로 만들어 놓은 세상 渾敎路口沒三叉(혼교로구몰삼차) : 뿌여니 동구 앞 세 갈래 길 덮였네.     40蟻(의) - 이인로(李仁老) 개미   身動牛應鬪(신동우응투) : 몸을 움직이면 소처럼 싸우게 되고 穴深山恐頹(혈심산공퇴) : 구멍이 깊으면 산이 무너질까 두려워하네 功名珠幾曲(공명주기곡) : 공명은 구슬이 몇 굽인가 富貴夢初回(부귀몽초회) : 부귀는 꿈이 처음 돌기 시작하는 것이라오.   41眼(안) - 이인로(李仁老) 눈 不安劉琨紫(불안유곤자) : 유곤의 붉은 눈도 가지지 못했으니 何須阮籍靑(하수완적청) : 어찌 반드시 완적의 푸른 눈을 바리오 冥然在一室(명연재일실) : 어둑하게 한 방에 있으려니 萬事見無形(만사견무형) : 만사를 무형으로 보는구나.   42鼻(비) - 이인로(李仁老) 코 長作洛生詠(장작낙생영) : 낙생 서생들은 길이 코 맨 소리로 읊고 思揖隆準公(사읍륭준공) : 역이기가 융준공에게 읍하던 일 생각난다 何時郢中質(하시영중질) : 어느 때 영중을 바탕으로 一遇運斤風(일우운근풍) : 한 번 자귀질하는 장인을 만나보리오.   43讀韓信傳(독한신전) - 李仁老(이인로) 한신전을 읽고   王孫朝飢依漂母(왕손조기의표모) : 왕손이 아침도 굶어 빨래하는 노파에게 의탁하고 國士無雙心自許(국사무쌍심자허) : 나라에 둘도 없는 선비라 마음속으로 인정 받았네 不將一劒驚少年(부장일검경소년) : 단 한 칼로 아이들을 놀라게 하지 않고 還把千金購降虜(환파천금구강로) : 도리어 천금을 주어 항복한 포로를 구하였네 當時破齊足自王(당시파제족자왕) : 그 당시 제나라 쳐부술 때 스스로 임금 되기 충분했지만 可憐與噲生爲伍(가련여쾌생위오) : 가련하구나, 번쾌와 함께 같은 편이 되다니 從來鳥盡弓必藏(종래조진궁필장) : 종래부터 새를 다잡으면 활은 반드시 감추는데 不用追思蒯生語(불용추사괴생어) : 깊이 생각해 괴생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네.   44半月城(반월성) - 李仁老(이인로) 반월성   孤城微灣像半月(고성미만상반월) : 완만히 굽은 외로운 성, 반달을 닮고 荊棘半掩猩㹳穴(형극반엄성㹳혈) : 가시덩굴에 절반만 가려진 다람쥐 굴 鵠嶺靑松氣鬱菍(곡령청송기울념) : 곡령에는 푸른 소나무 기운이 울창하고 鷄林黃葉秋蕭瑟(계림황엽추소슬) : 계림의 노란 나뭇잎에 가을이 소슬하다 自從太阿倒柄後(자종태아도병후) : 이때부터 태아가 칼자루를 거꾸로 내 주었지 中原鹿死何人手(중원녹사하인수) : 중원의 사슴은 누구 손에 죽었는가 江女空傳玉樹花(강여공전옥수화) : 강 마을 여자들은 공연히 옥수화 곡조를 전하고 春風幾拂金堤柳(춘풍기불금제류) : 봄바람은 몇 번이나 김제의 버들가지를 흔들었나.       45山房(산방) - 李仁老(이인로) 산방에서 春去花猶在(춘거화유재) : 봄은 가도 꽃은 피어있고 天晴谷自陰(천청곡자음) : 하늘이 맑으니 골짜기에 그늘이 진다 杜鵑啼白晝(두견제백주) : 대낮에 두견새 우니 始覺卜居深(시각복거심) : 비로소 내 사는 곳이 깊은 산속인 줄 알겠다   46讀陶潛傳戲成呈崔太尉(독도잠전희성정최태위) - 이인로(李仁老) 도잠전을 일고 장난삼아 최태위에게 주다 酒中有何好(주중유하호) : 술에 속에 좋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此語近眞趣(차어근진취) : 이 말은 정말 진리에 가깝다네 可笑陶淵明(가소도연명) : 우스워라, 도연명은 無錢尙嗜酒(무전상기주) : 돈은 하나 없으면서 술만 즐기었다니 我性淡無欲(아성담무욕) : 내 성질 담박하고 욕심 없어 於物不見囿(어물불견유) : 어떤 사물에도 얽매이지 않노리 不醉亦不醒(불취역불성) : 취하지 않고 또한 깨어있지도 않아 徑到無何有(경도무하유) : 어느 사이에 무하유 이상 세계에 이르렀도다.     47 偶吟(우음) - 이인로(李仁老)   우연히 짓다   買斷煙林理小園(매단연림리소원) : 자욱한 안개 숲을 사팔아 작은 동산 관하니 南窓睡起負朝暄(남창수기부조훤) : 잠 깨어 남창에서 일어나 따스한 아침볕을 받는다 白頭不悔儒冠誤(백두불회유관오) : 선비되어 신세 그르친 것 흰머리 되어서도 후회 않아 尙把塵編敎子孫(상파진편교자손) : 오히려 먼지 앉은 책을 펴 들고 자손을 가르치노라.         48梅花(매화) - 이인로(李仁老) 매화꽃   姑射氷膚雪作衣(고사빙부설작의) : 고야산 신선 고운 살결에 눈으로 옷 지어 입고 香唇曉露吸珠璣(향진효로흡주기) : 향기로운 입술로 새벽 이슬에 구슬을 마시는구나 應嫌俗蘂春紅染(응혐속예춘홍염) : 속된 꽃술이 봄철 붉은 꽃에 물드는 것 싫어서 欲向瑤臺駕鶴飛(욕향요대가학비) : 신선 사는 요대 향해 학 타고 날아가려 하는구나.   49月季花(월계화) - 이인로(李仁老) 월계화 萬斛丹砂問葛洪(만곡단사문갈홍) : 선약 찾은 갈홍에게 만 곡의 단사를 묻노니 何年深窖小園中(하년심교소원중) : 어느 해 이 작은 동산에 땅 파고 감추었는가 芳根染晩雲霞色(방근염만운하색) : 꽃다운 뿌리가 저문 구름 노을빛에 물들어 故作仙葩不老紅(고작선파불로홍) : 짐짓 신선 꽃송이로 늙지 않는 붉음 만들었구나.   50野步1(야보1) - 이인로(李仁老) 들판을 거닐며   十里煙村際碧蕪(십리연촌제벽무) : 십 리 안개 낀 마을 푸른 들에 닿으니 獨遊仍佩紫微壺(독유잉패자미호) : 혼자 노닐다가 두자미처럼 술을 샀도다 雲拖雨脚斜陽外(운타우각사양외) : 구름은 사양 밖으로 빗줄기를 끌어가 掩却前山半有無(엄각전산반유무) : 앞 산을 덮어버려 절반이나 보일 듯 말 듯 하다.   52野步2(야보2) - 이인로(李仁老) 들판을 거닐며   郭外人家路盡蕪(곽외인가로진무) : 성 밖의 인가 거리마다 풀이 무성하고 隔林啼鳥勸提壺(격림제조권제호) : 숲 건너 우는 새는 술병 들라 권하구나 未成數句前山暮(미성수구전산모) : 몇 귀의 시도 짓지 못했는데 앞 산은 저무니 老覺詩情澁欲無(로각시정삽욕무) : 시정이 무디어 없어지려는 것 늙어서야 알겠다.   早53春江行1(조춘강행1) - 이인로(李仁老) 이른 봄 강을 걸으며   54花遲未放千金笑(화지미방천금소) : 꽃은 늦어 피어 천금 웃음 터뜨리지 않았는데 柳早先搖一搦腰(류조선요일닉요) : 일찍 핀 버들은 한 웅큼 허리를 먼저 흔드는구나 魚躍波間紅閃閃(어약파간홍섬섬) : 물고기는 물결 속으로 뛰어들어 붉은 빛 번쩍거리고 鷺飛天外白飄飄(로비천외백표표) : 하늘 가에 해오라기 날아 흰빛이 표표하구나.     55早春江行2(조춘강행2) - 이인로(李仁老)   이른 봄 강을 걸으며 碧岫巉巉攢筆刃(벽수참참찬필인) : 푸른 봉우리는 우뚝 솟아 붓끝을 세운 듯 蒼江杳杳漲松煙(창강묘묘창송연) : 짙푸른 강은 아득히 소나무에 안개 자욱하구나 暗雲陣陣成奇字(암운진진성기자) : 어두운 구름은 뭉게뭉게 이상한 글자 만들고 萬里靑天一幅牋(만리청천일폭전) : 만 리의 먼 푸른 하늘은 한 폭의 그림이로구나.   56燈夕1(등석1) - 이인로(李仁老)   등불 켜진 저녁 風細不敎金燼落(풍세불교금신락) : 바람이 잦아들어 금불똥을 떨어지지 않더니 更長漸見玉蟲生(경장점견옥충생) : 밤이 깊으니 차츰 촛불 심지가 생기는구나 須知一片丹心在(수지일편단심재) : 한 조각 붉은 신하의 마음을 알아야 欲助重瞳日月明(욕조중동일월명) : 순임금 겹눈동자는 일월 같은 밝음을 도우려함이네.     57燈夕2(등석2) - 이인로(李仁老)   등불 켜진 저녁 谷寒未放金鶯囀(곡한미방금앵전) : 골짜기 차가워 황금빛 꾀꼬리 지저귀지 못하고 風峭難敎海燕來(풍초난교해연래) : 바람이 사나워서 바다제비 오기 어렵게 하는구나 須信帝城春色早(수신제성춘색조) : 모름지기 믿나니 제성에는 봄빛이 일러서 銀花千樹徹宵開(은화천수철소개) : 수많은 나무의 은빛 꽃들이 밤 새워 피겠구나.     58書豐壤縣公舍(서풍양현공사) - 이인로(李仁老)   풍양현 공사에 적다 峯下人家陽朔境(봉하인가양삭경) : 봉우리 밑의 인가들은 양삭의 경계인데 雲間鷄犬武陵源(운간계견무릉원) : 구름 사이의 닭과 개 소리는 무릉도원이로다 使君不許黃牛佩(사군불허황우패) : 사군은 도둑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나니 喜見風前麥浪翻(희견풍전맥랑번) : 바람 앞에 물결치는 보리밭 보는 것을 기뻐하노라.   59內庭寫批有感(내정사비유감) - 이인로(李仁老)   내정에서 비지를 쓰면서 孔雀屛深燭影微(공작병심촉영미) : 공작 병풍 깊숙한 곳에 촛불 그림자 희미하고 鴛鴦睡美豈分飛(원앙수미기분비) : 원앙 잠든 모습 행복한데 어찌 나누어 날겠는가 自憐憔悴靑樓女(자련초췌청루녀) : 스스로 불쌍하구나, 초췌한 청루의 처녀가 長爲他人作嫁衣(장위타인작가의) : 늘 남을 위해 시집갈 옷만 지어 주는 처지임을. 60 宿韓相國書齋(숙한상국서재) - 이인로(李仁老) 한상국 서제에 묵으며 二水溶溶分燕尾(이수용용분연미) : 흐르는 두 갈래 물길 제비 꼬리 갈라 놓고 三山杳杳駕鰲頭(삼산묘묘가오두) : 아득한 세 개의 산들은 자라머리를 타고 있구나 他年若許陪鳩杖(타년약허배구장) : 후일에 비둘기 장식 지팡이 짝하기를 허락하면 共向蒼波狎白鷗(공향창파압백구) : 우리 함께 푸른 물결 향하여 흰 갈매기 벗하리라.   61燈夕(등석) - 이인로(李仁老)   관등하는 저녁 電鞭初報一聲雷(전편초보일성뢰) : 번개채찍에 처음 우뢰소리 나자 春色先凝萬歲杯(춘색선응만세배) : 봄빛이 먼저 만수술잔에 엉기는구나 銀燭影中寒漏永(은촉영중한루영) : 은촛불 그림자 속에 누수는 차갑고 玉簫聲裏暖風催(옥소성리난풍최) : 옥피리 소리속에 따스한 바람 제촉하는구나 仙桃帶露枝偏重(선도대로지편중) : 이슬을 머금은 복숭아는 가지가 무겁고 瑞莢含煙葉盡開(서협함연엽진개) : 연기를 머금은 상스러운 명협은 잎 활짝 피었다 輦路月明絲管沸(련로월명사관비) : 수레가는 길에 달이 밝고 온갖 풍악 들끓는데 翠蛾爭唱紫雲回(취아쟁창자운회) : 궁녀들 자운곡을 다투어 부르는구나.   62傷杜相宅(상두상댁) - 이인로(李仁老)   두 제상의 집을 슬퍼하며   藥階會賞謝公苔(약계회상사공태) : 작약꽃 뜰에서 제상인 사공의 이끼를 감상했을 때 金鼎親調傅說梅(금정친조부설매) : 부열의 매실을 금 솥에서 친히 조리했었다 自許披雲開日月(자허피운개일월) : 구름을 헤치고 해와 달을 열라 스스로 허락했건만 時稱無地起樓臺(시칭무지기루대) : 누대 지을 땅 없다고 사람들 말했었다 炎州忽被蒼蠅弔(염주홀피창승조) : 염주에서 문득 파리 떼를 조상함을 보았단 말인가 華表難逢白鶴回(화표난봉백학회) : 화표로 돌아오는 백학을 만나기 어렵겠구나 新壁未乾三易主(신벽미건삼역주) : 새 벽이 마르기도 전에 세 번이나 바뀌는 주인 一聲隣笛不勝哀(일성린적불승애) : 이웃집 한 가닥 피리소리에 슬픈 마음 이길 수 없도다.   63送朴察院赴西都留臺(송박찰원부서도류대) - 이인로(李仁老)   서도 유수로 부임하는 박찰원을 보내며   百雉城盤九仭巖(백치성반구인암) : 아홉 길 암벽 위에 백 가퀴 둘린 성 繞城流水碧恬恬(요성류수벽념념) : 성을 둘러 흐르는 물 푸르고 잔잔하도다 垂楊古驛煙迷路(수양고역연미로) : 수양버들 늘어선 옛 역은 연기에 길이 아득하고 隔岸人家水拍簷(격안인가수박첨) : 강 건너 인가엔 물이 처마 끝에 닿은 듯 하도다 往事如波山獨在(왕사여파산독재) : 지난일은 물결같은데 산만 호로 남았고 夕陽聞笛淚應霑(석양문적루응점) : 석양에 피리소리 들으면 눈물을 금치 못하리라 風霜十月乘驄去(풍상십월승총거) : 바람서리 치는 10월에 총마 타고 그대 가리니 始覺寒威倍舊嚴(시각한위배구엄) : 추위가 지난 번보나 갑절이나 엄함을 비로소 깨닫도다.   64飮中八仙歌(음중팔선가) - 이인로(李仁老) 음중 팔 신선을 노래하다   長齋蘇晉愛逃禪(장재소진애도선) : 장재하는 소진은 선으로 달아나기 좋아하고 脫帽張顚草聖傅(탈모장전초성부) : 모자 벗은 장전은 초서로 성인이로다 賀老眼花眠水底(하로안화면수저) : 하지장은 눈이 아찔하여 물속에서 잠자고 宗之玉樹倚風前(종지옥수의풍전) : 최종지는 옥수가 바람 앞에 기대고 汝陽日飮須三斗(여양일음수삼두) : 여양왕 진은 하루에 반드시 술 서말은 마셨고 左相晨興費萬錢(좌상신흥비만전) : 좌상 이적지는 새벽부터 만전을 썼도다 太白千篇焦遂辯(태백천편초수변) : 이태백의 시 천 수와 초수의 웅변 八人眞箇飮中仙(팔인진개음중선) : 여덟이 참으로 술 마시는 신선이로구나.   65韓相國江居(한상국강거) - 이인로(李仁老) 한상국의 강변 거처 鑿破雲根構小樓(착파운근구소루) : 바위를 뚫어 작은 다락을 얽어놓으니 江山無限入簾鉤(강산무한입렴구) : 무한한 강산이 발 갈퀴에 들어오는구나 謝公不惜千金費(사공불석천금비) : 사공은 천금 비용도 아끼지 않았고 范相應將一舸遊(범상응장일가유) : 범제상이 응당 쪽배 타고 노닐 것 이니라 二水溶溶分燕尾(이수용용분연미) : 두 강물이 금실금실 제비꼬리처럼 갈라지고 三山杳杳隔鼇頭(삼산묘묘격오두) : 세 산은 가물가물 자라머리처럼 떨어져있구나 他年若許陪鳩杖(타년약허배구장) : 지팡이 뒤를 따르기를 다른 해에 허락하면 共向滄洲狎白鷗(공향창주압백구) : 함께 바다로 가서 갈매기와 친하겠습니다.   66崔尙書命樂府送耆老會侑歡(최상서명악부송기로회유환) - 이인로(李仁老) 최상서가 악사들을 기로회에 보내어 놀이를 돕다 白髮相懽笑語開(백발상환소어개) : 백발노인들 모여 서로 즐기며 담소하니 只餘風月侑金盃(지여풍월유금배) : 오직 남은 바람과 달이 금빛 술잔을 권하는구나却愁軒騎悤悤散(각수헌기총총산) : 도리어 수레와 말탄 손님 총총히 헤어질까 근심되어 故遺笙歌得得來(고유생가득득래) : 피리와 노래를 일부러 덩실덩실 보냈구나 醉倒始知天幕闊(취도시지천막활) : 유령은 취해 넘어져 하늘 막이 넓은 줄 알았고 歸時爭見玉山頹(귀시쟁견옥산퇴) : 비틀거리며 돌아갈 때, 옥산이 무너짐을 다투어 보았도다 夜闌草屋眠初覺(야란초옥면초각) : 밤 깊어 초갓집에서 자다가 깨어나니 正似瑤臺曉夢回(정사요대효몽회) : 신선 사는 요대의 새벽 꿈결에서 깨어난 듯 하도다.   67 拾栗(습률) - 이인로(李仁老)   밤을 주우며   霜餘脫實亦斕斑(상여탈실역란반) : 서리 뒤에 터진 염매 반짝거리고 曉濕林間露未乾(효습림간로미건) : 새벽 습한 숲엔 이슬 아직 마르지 않았다. 喚起兒童開宿火(환기아동개숙화) : 어린아이 불러 묵은 불씨 헤쳐 보니 燒殘玉殼迸金丸(소잔옥각병금환) : 옥 껍질 다 탄 재에 황금 탄환 터진다.     68梅花(매화) - 이인로(李仁老) 매화꽃   姑射氷膚雪作衣(고사빙부설작의) : 고야산 신선 고운 살결에 눈으로 옷 지어 입고 香唇曉露吸珠璣(향진효로흡주기) : 향기로운 입술로 새벽 이슬에 구슬을 마시는구나 應嫌俗蘂春紅染(응혐속예춘홍염) : 속된 꽃술이 봄철 붉은 꽃에 물드는 것 싫어서 欲向瑤臺駕鶴飛(욕향요대가학비) : 신선 사는 요대 향해 학 타고 날아가려 하는구나.   69題草書簇子(제초서족자) - 이인로(李仁老)   초서족자에 쓰다 紅葉題詩出鳳城(홍엽제시출봉성) : 단풍잎에 시를 써서 봉성 밖으로 보내니 淚痕和墨尙分明(루흔화묵상분명) : 눈물 자국이 먹에 얼룩져 아직도 선명하도다 御溝流水渾無賴(어구류수혼무뢰) : 궁중 개울 흐르는 물 도무지 믿지 못하나니 漏洩宮娥一片情(누설궁아일편정) : 궁녀의 한 조각 정을 바깥으로 흘려 보내는구나.     70題草書簇子(제초서족자) - 이인로(李仁老)   초서족자에 쓰다   紅葉題詩出鳳城(홍엽제시출봉성) : 단풍잎에 시를 써서 봉성 밖으로 보내니 淚痕和墨尙分明(루흔화묵상분명) : 눈물 자국이 먹에 얼룩져 아직도 선명하도다 御溝流水渾無賴(어구류수혼무뢰) : 궁중 개울 흐르는 물 도무지 믿지 못하나니 漏洩宮娥一片情(누설궁아일편정) : 궁녀의 한 조각 정을 바깥으로 흘려 보내는구나   71西塞風雨(서새풍우) - 이인로(李仁老) 서새의 비바람   秋深笠澤紫鱗肥(추심립택자린비) : 가을이 깊으니 구릿대 연못에 자색 고기비늘 살찌고 雲盡西山片月輝(운진서산편월휘) : 구름 걷히자 서산에 조각달이 빛나는구나. 十幅蒲帆千頃玉(십폭포범천경옥) : 열 폭 부들 돛은 천 이랑 옥 물결 위에 떠있고 紅塵應不到蓑衣(홍진응불도사의) : 세상 티끌이야 도롱이 입은 사람에게는 이르지 않으리라.   72 扈從放牓(호종방방) - 이인로(李仁老)   방방을 호종하며 半簾紅日黃金闕(반렴홍일황금궐) : 황금 대궐, 반쯤 걷은 주렴에 붉은 해가 비춰들고 多士三千雁成列(다사삼천안성렬) : 많은 선비 삼천이나 기러기처럼 떼 지어 모여들었다. 忽從丹陛姓名傳(홀종단폐성명전) : 총총히 붉은 뜰에 올라 성명을 전하고 縱步靑雲岐路闊(종보청운기로활) : 푸른 구름에 걸음을 걸으니 길도 넓어지는구나. 吐鳳成文價益高(토봉성문가익고) : 봉을 토해 글을 만드니 값은 더욱 높고 畫蛇着足難藏拙(화사착족난장졸) : 화사첨족 하다니 졸렬한 것 감추기 어려워라. 老手曾經百戰餘(로수증경백전여) : 익숙한 솜씨가 일찍 백 여 회 싸움 겪었는데 今怪吳牛虛喘月(금괴오우허천월) : 오나라 소가 보고 헐떡이는 것이 지금은 이상구나.   73憩炭軒村二老翁携酒見尋(게탄헌촌이로옹휴주견심) - 김극기(金克己)   탄헌촌에 쉬는데 두 첨지가 술을 가지고 찾아 와서   幽尋荒草徑(유심황초경) : 잡초 우거진 길을 그윽히 찾아나서 下馬繫枯柳(하마계고류) : 버들가지에 말을 매어놓았다네 何處白頭翁(하처백두옹) : 어디 사는 늙은인지 竝肩來貿貿(병견래무무) : 어깨를 나란히 터벅터벅 걸어오네 山盤獻枯魚(산반헌고어) : 소반에는 마른 고기 올렸고 野榼供濁酒(야합공탁주) : 물통에는 막걸리 채워 있져있다네 荒狂便濡首(황광편유수) : 골목에서 미친 듯이 정신없이 취해 떨어져 笑傲虛落間(소오허락간) : 오만함을 비웃는 듯이 빈 곳에 처하도다 雖慙禮數薄(수참례수박) : 비록 예절에는 보잘 것 없어도 尙倚恩情厚(상의은정후) : 그 정의 두터움은 오히려 고맙도다 倒載赴前程(도재부전정) : 거꾸로 말을 타고 앞길 말리니 村童齊拍手(촌동제박수) : 마을 아이들 일제히 손뼉을 친다.   74 贈四友1(증사우1) - 이인로(李仁老)   네 친구에게   昔在文陣間(석재문진간) : 옛날에는 문인들 속에 이름을 다고 爭名勇先購(쟁명용선구) : 이름 다투어 용맹하게 먼저 날뛰었다 吾嘗避銳鋒(오상피예봉) : 나는 일찌기 날카로운 칼날을 피했지만 君亦飽毒手(군역포독수) : 그대 또한 독한 손에 지쳐버렸구나 如今厭矛楯(여금염모순) : 지금은 창과 방패 싫어하여 相逢但呼酒(상봉단호주) : 서로 만나면 술만 달라고 하노라 宜停雙鳥鳴(의정쌍조명) : 마땅히 두 새 울음 그치게 하고 須念兩虎鬪(수념량호투) : 모름지기 두 호랑 싸움을 조심하여라.   75贈四友2(증사우2) - 이인로(李仁老) 네 친구에게   陶朱雖相越(도주수상월) : 도주는 월나라 제상이지만 一舸泛溟渤(일가범명발) : 넓은 바다에 조각배 하나 띄웠다네 安石在晉朝(안석재진조) : 안석은 진나라 조정에 있으면서 雅賞東山月(아상동산월) : 동산 달을 운치있게 즐기었도다 今我與夫子(금아여부자) : 오늘날 그대와 나 豈是愛簪紱(기시애잠불) : 내가 어찌 벼슬을 사랑하리오 散盡東海金(산진동해금) : 동해의 금을 모두다 흩어버리고 行採西山蕨(행채서산궐) : 서산의 고사리나 캐러 가리라   76贈四友3(증사우3) - 이인로(李仁老)   네 친구에게   我飮止數杯(아음지수배) : 나는 겨우 술 몇 잔에 그치고 君飮須一石(군음수일석) : 그대는 반드시 한 섬 술을 마신다 及當醉陶陶(급당취도도) : 그러나 거나하게 취함에 이르러 至樂相與敵(지악상여적) : 아주 즐거워하기는 서로 다름없도다 兩臉若春融(량검약춘융) : 두 볼은 마치 봄이 무르익은 듯 하고 千愁盡氷釋(천수진빙석) : 일천 시름은 얼음인 듯 녹아버리는구나 何須校少多(하수교소다) : 어찌 구태어 많고 적음 따질까보냐 且得適其適(차득적기적) : 제각기 멋을 얻으면 그만인 것을.   77贈四友4(증사우4) - 이인로(李仁老)   네 친구에게   支遁從安石(지둔종안석) : 지둔 스님은 사안석을 따랐고 鮑昭愛惠休(포소애혜휴) : 포소는 시를 쓰는 혜휴를 사랑하였다 自古龍象流(자고룡상류) : 예부터 고승들은 時與麟鳳遊(시여린봉유) : 항상 귀인들과 한께 놀았도다 詩法不相妨(시법불상방) : 시와 불법이 서로 방해되지 않거니 古今同一丘(고금동일구) : 고금이 한 언덕이 되었도다 共在圓寂光(공재원적광) : 원적광 빛속에 함께 있으니 寧見別離愁(녕견별리수) : 어찌 서로 이별할 근심 있으리오.     78暮春(모춘) - 李仁老(이인로) 저무는 봄   老來心事向春慵(노래심사향춘용) : 늙어감에 심사가 봄에 더욱 게을러져 睡起空鷺落絮風(수기공로락서풍) : 벼들 꽃 흩는 바람에 자다가 공연히 놀라깨네 紅雨濛濛簾捲處(홍우몽몽렴권처) : 주렴 걷힌 곳에, 꽃비가 몽롱하고 靑陰漠漠鳥啼中(청음막막조제중) : 새들의 울음 속에 푸른 그늘 아득하다.   79 山居(산거) - 李仁老(이인로) 산에 살며   春去花猶在(춘거화유재) : 봄은 갔는데 꽃은 아직 남아 있고 天晴谷自陰(천晴곡자음) : 하늘은 개었어도 골짜기는 어둑하구나 杜鵑啼白晝(두견제백주) : 두견이 한낮에도 구슬피 우니 始覺卜居深(시각복거심) : 비로소 깨달았소, 내가 깊은 산에 사는 걸을   煙寺晩鐘(연사만종) - 이인로(李仁老) 연사에서의 저녁 종소리   千回石徑白雲封(천회석경백운봉) : 천 구비 구불어진 돌길 흰 구름에 가려있고 巖樹蒼蒼晩色濃(암수창창만색농) : 바위 위 나무는 푸르고 황혼이 짙어가네 知有蓮坊藏翠壁(지유연방장취벽) : 부처님 극락세계 푸른 벽 속에 있음을 알고 好風吹落一聲鐘(호풍취락일성종) : 좋은 바람 불어와 종소리 울리네   竹醉日移竹1(죽취일이죽1) - 李仁老(이인로)   죽취일에 대를 옮겨 심으며       古今一丘貂(고금일구초) : 진리는 고금이 같아 天地眞蘧廬(천지진거려) : 천지가 정말 같은 집이네 此君獨酩酊(차군독명정) : 그대는 혼자 취하여 兀兀忘所如(올올망소여) : 올올이 갈 곳을 잊었구나 江山雖有異(강산수유이) : 강산은 비록 다르나 風景本無特(풍경본무특) : 대나무 풍경이야 본래 다르지 않으리 不用更醒悟(불용갱성오) : 다시 술 깰 필요 없으니 操戈便逐儒(조과편축유) : 창 잡아 헛된 선비들 쫓아버리세.   竹醉日移竹2(죽취일이죽2) - 李仁老(이인로)   죽취일에 대를 옮겨 심으며 司馬賞客遊(사마상객유) : 사마천도 나그네로 떠돌고 夫子亦旅㝢(부자역여우) : 공자님도 천하를 떠돌았다네 新亭相對泣(신정상대읍) : 새 집에 와 서로 눈물 흘리니 數子眞兒女(수자진아녀) : 그대들 몇몇, 정말 아녀자구려 此君恥匏繫(차군치포계) : 박처럼 매달려 있는 것 부끄러워 所適天不阻(소적천부조) : 가는 곳이 어디라도 하늘은 막지 않네 何必登樓吟(하필등루음) : 어찌 반드시 누대에 올라 읊조려야하는가 信美亦吾土(신미역오토) : 진실로 아름다워라, 이곳도 내 살 땅이네.       贈四友(증사우) - 李仁老(이인로)       昔在文陣間。   爭名勇先購。   吾甞避銳鋒。   君亦飽毒手。   如今厭矛楯。   相逢但呼酒。   宜停雙鳥鳴。   須念兩虎闘。   右詩友林耆之       옛날 문진 사이에 있을 때,   이름과 용맹 다퉈 앞장섰네.   나는 일찍이 예봉을 피했으나,   그대는 또 독수를 당했구나.   오늘 같은 모순이 싫어,   만나면 그냥 술이나 부르세.   마땅히 두 새 울음을 그치고,   모름지기 두 호랑이 싸움 생각하세.   - 이 시는 벗 임기지에게 -           陶朱雖相越。   一舸泛溟渤。   安石在晉朝。   雅賞東山月。   今我與夫子。   豈是愛簪紱。   散盡東海金。   行採西山蕨。       右山水友趙亦樂       도주는 비록 월나라 재상이지만,   큰 배를 발해 바다에 띄웠네.   안석은 진나라 조정에 있으나,   우아하게 동산의 달을 감상했네.   지금 나는 그대와 더불어,   어찌 이 비녀(관모)와 인끈을 아끼리오.   동해의 금을 다 흩뿌리고,   서산의 고사리나 캐러 가세.   - 위 시 산수는 벗 조역락에게 -           我飮止數杯。   君飮須一石。   及當醉陶陶。   至樂相與敵。   兩臉若春融。   千愁盡氷釋。   何須較少多。   且得適其適。   右酒友李湛之       나는 몇 잔 마시고 그쳤지만,   자네는 무려 한 섬을 마셨네.   마땅히 취하여 도도하게 되었는데,   즐거워야 하건만 서로 적이 되었구나.   양 뺨은 봄빛과 같이 융성하니,   천 가지 근심 얼음처럼 풀어지리.   어찌 잠깐이라도 많고 적음을 견줄까,   또 갈 곳을 알았으면 그게 그곳이네.   - 이 시는 술 벗 이담지이게 -     支遁從安石 지둔은 안석을 따랐고, 鮑昭愛惠休 포소는 혜휴를 아꼈네. 自古龍象流 예부터 용상(高僧)의 부류는 時與麟鳳遊 때로 기린과 봉황을 더불어 놀았네 詩法不相妨 시법은 서로 방해할 수 없지만 古今同一丘 예나 지금이나 같은 한 언덕. 共在圓寂光 함께 원적의 빛에 있으면서, 寧見別離愁 이별의 근심을 편안히 보네. 右空門友宗聆이 시는 공문(禪家)의 벗 종령에게   次張學士未開牡丹 - 李仁老 장학사의 모란이 피지 않고를 차운하여 春寒勒却小園花: 봄추위가 동산에 꽃피는 것을 억제하니 舞蝶遊蜂欲戀何: 춤추는 벌 나비 그리워한들 어이하리 楚雨未飄三峽暮: 삼협 저문 날에 초나라 비 안 내린 듯 吳娃尙阻五湖波: 오호 물결에 오나라 미인 길이 막힌 듯 苦遮丹口晨粧嬾: 빨간 입술을 꼭 다무니 새벽 단장 게으르고 深鎖紅房睡味多: 붉은 방을 꽉 잠그고 단잠만 자는구나 自是含嬙呼不出: 애교의 수줍음으로 불러도 안 나오는 게지 豈緣銷瘦却羞他: 여위어 대하기 부끄러운 때문이야 아니겠지   雪用東坡韻 - 李仁老 동파의 눈을 운으로 사용하다. 霽色稜稜欲曉鴉: 빛 개고 환해지니 갈가마귀 새벽을 바라고, 雷聲陣陣逐香車: 뇌성이 요란하니 香車를 버리네. 寒侵綠酒難生暈: 綠酒에 한기 드니 무리가 되기 어렵고, 威逼紅燈未放花: 홍등은 위엄 잃어 꽃을 피기 어렵다. 一棹去時知客興: 한 번 배 저어 가니 나그네 흥을 알겠고, 孤烟起處認山家: 외로운 노을 일어나는 곳에 山家 있음을 알겠네. 閉門高臥無人到: 문 닫고 높이 누워도 사람 오지 않으니, 留得銅錢任畵叉:머물러 동전 벌어 그림이나 그리세,      
604    녀성詩 어디까지 왔나ㅠ... 댓글:  조회:4090  추천:0  2015-06-19
[ 2015년 06월 29일 11시 20분 ]         한국 여성시 어디까지 왔나 1920년대 金明淳 시인 이후 김남조·문정희 시의 이해 함께   한택수     1. 한국 문단의 1세대 여성 김명순   한국 최초의 여성소설가이며 여성시인은 김명순(金明淳, 1896∼1951)입니다. 그녀는 1917년 22세에 소설가로 등단했고, 1925년엔 시집 『생명의 과실』을 펴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첫 여성 시집이 됩니다. 이후 그녀는 창작시, 번역시,소설, 산문, 희곡 등 대단한 분량의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습니다. 그녀와 비교되는 여인으로 평론가와 수필가 김원주(金元周, 一葉), 화가 나혜석(羅蕙錫)을 자주 꼽습니다. 이 세 여성은 모두 일제 말 암흑기에 여성해방과 자유연애를 주창한 당대의 ‘신여성(新女性)’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삼종지도(三從之道), 칠거지악(七去之惡) 등 남성에게 종속된 여성의 현실을 고발하면서 평등한 관계를 요구한 선구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봉건적 가치관에 대한 도전은 문단의 냉대와 세상의 조롱을 받았고, 끝내 비참한 삶을 마감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입니다.   이후 한국문학에서 여성문학은 오랫동안 ‘여류(女流)’, ‘여류문학(女流文學)’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러나 문학에도 자유와 민주의 사상적 정착과 함께 여성문학도 여성성(feminity)의 자각과 ‘페미니즘 문학’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자연스럽게 전개되었습니다. 이제 여성 문인들은 문단의 한 축을 형성하면서, 되레 남성 작가들보다 더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2. 여성 시단의 한 표정(表情), 최영미   # 최영미(崔泳美 1961∼ ). 1992년 『창작과비평지』(誌)로 등단,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 『꿈의 페달을 밟고』(1998), 『돼지들에게』(2005) 등의 시집을 냈습니다. 최영미 시인은 엉큼 떨지 않는 서울내기 여성시인으로, 1980년대 운동권의 시대를 마감하고 자신이 느꼈던 사랑과 욕망을 진솔하게 드러냈다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茶와 同情   최영미   내 마음을 받아달라고 밑구녁까지 보이며 애원했건만 네가 준 것은 차와 동정뿐.   내 마음은 허겁지겁 미지근한 동정에도 입술을 데었고 너덜너덜 해진 자존심을 붙들고 오늘도 거울 앞에 섰다   봄이라고 개나리가 피었다 지는 줄도 모르고......     마지막 섹스의 추억     아침상 오른 굴비 한 마리 발르다 나는 보았네 마침내 드러난 육신의 비밀 파헤쳐진 오장육부, 산산이 부서진 살점들 진실이란 이런 것인가 한 꺼풀 벗기면 뼈와 살로만 수습돼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 사연 죽은 살 찢으며 나는 알았네 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더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그런 사랑 여러 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 햇살 그 투명함에 놀라 껍질째 오그라들던 너와 나 누가 먼저 없이, 주섬주섬 온몸에 차가운 비늘을 꽂았지   살아서 팔딱이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3. 김남조·문정희 시의 이해     # 김남조(金南祚, 1927∼ ) 시인은 우리 여성 시단의 가장 웃어른의 한 분입니다. 굳이 여성 시단이라 할 것 없이 우리 시단의 큰 어른이지요. 1950년, 그러니까 제가 태어나던 해이면서 6·25 동란으로 국토가 폐허가 되던 그해 『연합신문』에 시 「성수(星宿)」, 「잔상(殘像)」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했고,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상자(上梓)했습니다.이후 기독교적 인간애와 윤리 의식을 강조하는 시를 써왔습니다.   김남조 시인은 모윤숙(毛允淑), 노천명(盧天命)의 뒤를 이어 1960년대 여성 시단의 기틀을 마련한 분으로 평가됩니다.   첫 시집 『목숨』 이후 『나아드의 향유(香油)』, 『정념의 기(旗)』, 『겨울 바다』, 『사랑초서(草書)』 등의 시집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30여 권이 넘는 시집을 출판, 다작(多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살아 있음의 아픔과 희열을 섞어 마시는 잔(盞)이 곧 시”(자작시 해설「나의 시적 진실」)라는 김 시인입니다.     想思     金南祚     언젠가 물어보리 기쁘거나 슬프거나 성한 날 병든 날에 꿈에도 생시에도 영혼의 철삿줄 윙윙 울리는 그대 생각, 천 번 만 번 이상하여라 다른 이는 모르는 이 메아리 사시사철 내 한평생 골수에 전화 오는 그대 음성,   언젠가 물어보리 죽기 전에 단 한 번 물어보리 그대 혹시 나와 같았는지를       그대 세월     그대 헐벗었던 유년기 전란의 소년기 돌을 져 나르던 청년기 불과 얼음이 번갈아 손을 잡던 형벌의 긴 장년기 그 풍진 다하여 마침내 보통 날씨 그대 初老   그러나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그 모든 세월에 허리 굽혀 절하는 여자 하나 있잖니     # 문정희(文貞姬, 1947∼ )시인은 조숙한 시적 출발로 문단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진명여고 재학 시절 전국의 백일장 대회를 휩쓸었으며, 이에 힘입어 당시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발문을 실은 첫 시집을 간행,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더욱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은 시적 재기(才氣)를 조로(早老)에 파묻지 않고 지칠 줄 모르는 창작 열기로 활기차게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1969년 『월간문학』을 통해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편 그녀는 40여 년 간 십여 권의 시집과 시선집, 시극집 등을 펴냈고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및 레바논의 나지 나만(Naji Naaman) 문학상, 스웨덴의 시카다 상(賞) 등을 수상했습니다.   문정희 시인의 시세계는 건강한 여성성이 자각하는 삶의 결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타락한 현실을 질타하면서, 순수하고 건강한 삶에 대한 열망을 시로써 펼칩니다. 특히 잘 짜낸 시적 구조(構造, structure)는 본받을 만 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탯줄   文貞姬     대학병원 분만실 의자는 Y자였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새끼 밴 짐승으로 두 다리를 벌리고 하늘 향해 누웠다   성스러운 순간이라 말하지 마라 하늘이 뒤집히는 날카로운 공포 이빨 사이마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불인두로 생살 찢기었다   드디어 내 속에서 내가 분리되었다 생명과 생명이 되었다   두 생명 사이에는 지상의 가위로는 자를 수 없는 긴 탯줄이 이어져 있었다   가장 처음이자 가장 오래인 땅 위의 끈 이보다 확실하고 질긴 이름을 사람의 일로는 더 만들지 못하리라   얼마 후 환속한 성자처럼 피 냄새나는 분만실을 한 에미와 새끼가 어기적거리며 걸어나왔다     “응”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해와 달 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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