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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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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    모더니즘 詩운동의 선구자 中 한 사람 - 파운드 댓글:  조회:5642  추천:0  2015-11-06
에즈라 파운드 시인의 시인Ezra Pound 폰트확대| 폰트축소| 공유하기|   인쇄 문의   출생 1885년 10월 30일 사망 1972년 11월 01일 국적 미국 작품/저서 《칸토스》, 《피사 칸토스》 등 요약 이미지즘과 보르티시즘 기법을 도입해 20세기 초반의 모더니즘 시 분야를 이끌었다.   원본사이즈보기 에즈라 파운드 에즈라 파운드는 초기 모더니즘 시운동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시인 중 한 사람이다. 20세기 영미 시에 끼친 막강한 영향으로, '시인의 시인'으로도 불린다. 이미지즘(Imagism)과 보티시즘(Vorticism, 소용돌이주의)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시에 도입한 혁신적인 시인이자, 20세기 초 미국 문단에서 영향력 있는 비평가로서 제임스 조이스와 T. S. 엘리엇, 예이츠, 프루스트 등 많은 작가들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소개하여 미국과 영국 문학을 잇는 가교 역할도 했다. 에즈라 웨스턴 루미스 파운드는 1885년 10월 30일 미국 아이다호 헤일리에서 호머 루미스 파운드와 이사벨 웨스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파운드와 웨스턴 집안은 17세기에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미국 독립전쟁에 참가한 유서 깊은 가문이었다. 어린 시절 파운드는 외할머니가 읽어 주는 《가계사》를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할아버지 태디우스 파운드는 철도 건설업자이자 상원의원, 위스콘신 주지사까지 역임한 인물로 상공업계와 정치계에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 호머는 조폐국에서 일했다. 에즈라 파운드는 이런 집안에 자부심을 가지고 자랐다. 15세 때 어머니, 이모와 함께 석 달간 유럽을 여행했는데, 특히 이탈리아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보고 압도되어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6세 때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입학했고, 학창 시절부터 공부보다는 문학, 특히 시 쓰기에 몰두하고, 펜싱, 연극, 고전 영문학 등에 열중해 교수들에게 괴팍한 문제아, 자유주의자로 이름을 날렸다. 21세 때 로망어로 석사 학위를 받고 대학원 연구원에 임명되었는데, 파운드는 연구원에 임명되어 받은 연구비와 월급을 털어 유럽 여행을 다녀오기까지 한다. 1907년 귀국한 후 이로 인해 낙제를 하는 바람에 연구비 지급이 중단되자 그해 여름에 인디애나 주의 워버시 대학에서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전임 강사로 일했다. 그러나 몇 개월 지나지 않은 이듬해 1월 떠돌이 여인을 기숙사에서 재웠다가 스캔들에 휘말려 해고되었고, 아버지에게 자금을 지원받아 다시 한 번 이탈리아로 떠났다. 파운드는 베네치아에 머물면서 시를 쓰고 여러 잡지사에 투고했으나 거절당하고, 몇몇 직업을 전전하다가 첫 시집 《꺼진 촛불》을 자비로 출판했다. 그해 말 파운드는 런던으로 옮겨가 런던에서 시인 클럽과 개인 문학 클럽을 드나들면서 많은 시인, 소설가, 비평가 등을 만났다. 그중에는 조지 버나드 쇼와 신문학 운동을 이끌었던 T. E. 흄, 당시 사교계를 풍미했던 올리비아 셰익스피어 부인 등이 있었다. 파운드는 후일 올리비아 셰익스피어의 딸 도로시 셰익스피어와 결혼한다. 이듬해 런던의 엘킨 메튜스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시집 《페르소나》를 출판했다. 《페르소나》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어 파운드는 시인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당시 유력 문학 잡지 〈잉글리시 리뷰〉에 시를 싣게 된다. 또한 T. E. 흄을 비롯한 작가들과 함께 신문학 운동에 관한 이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파운드는 상징주의와 같은 애매한 표현을 싫어했으며, 언어를 조각과 같이 구상적(具象的)으로 구사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감각할 수 있는 이미지에 의존하여 대상을 직접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여겼으며, 표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새로운 시 운동이 이미지즘이다. 파운드는 1911년경부터 〈신세계〉 지에 이런 논지의 논설들을 기고하고, 자신의 이론이 반영된 시들을 발표했다. 1912년에는 미국의 〈포이트리〉 지를 통해 작품을 발표했고, 이 잡지의 편집인, 해외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많은 영국 시인들을 미국에 소개하기도 했다. 1917년 〈포이트리〉 지와 관계를 끊고 나서는 〈리틀 리뷰〉 지, 1920년부터는 〈다이알〉 지와 함께 일했다. 또한 신문학 운동을 전개하고 비평가로 활동하면서 파운드는 많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했다. 헤밍웨이는 "(파운드는 친구들을) 잡지에 소개해 주고, 감옥에서 꺼내 주고, 돈을 꾸어 주고, 연주회를 알선해 주었다. 병원비를 지불해 주고 자살하지 못하도록 설득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친구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T. S. 엘리엇과 예이츠일 것이다. 파운드는 이들의 생활비를 지원했으며, 첫 작품집을 낼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시대를 앞서 나가는 시인들의 생활을 지원해 주고, 그들의 예술을 문명 세계로부터 인정받게 하는 안내자'가 자신의 역할이라고 여겼다. T. S.엘리엇은 그에 대해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재능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 그만큼 친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원본사이즈보기 예이츠가 파운드에게 보낸 편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파운드는 당대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현대 문명사회에 비판의식을 가졌고, 이에 대한 생각을 다양한 잡지에 기고하면서 문학적 저널리즘 활동을 활발히 했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고대 로마의 시인 프로페르티우스의 작품을 번안한 《섹스투스 프로페르티우스에게 바치는 경의》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프로페르티우스와 로마 제국을 통해 1917년의 대영제국을 논평한 것으로, 그는 자신의 의도를 알지 못한 많은 비평가들, 특히 고전학자들로부터 오역이라는 엄청난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그 후 시집 《휴 셀윈 모벌리》를 펴냈는데, 영국 문단 문화를 세밀하게 복원해 놓은 초상이라는 평을 받으며,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 작품들은 파운드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겪은 일들과 심상을 형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파운드의 가장 큰 위업은 1917년부터 집필하기 시작하여 평생에 걸쳐 쓴 모더니즘적 심상서사시 《칸토스》이다. 첫 편은 1921년에 발표 되었으며, 죽기 2년 전인 1969년에야 비로소 마무리되었다. 이 시편들은 오디세우스, 단테, 공자를 비롯해 미 대통령 존 애덤스, 이탈리아 용병 지기스몬트 말라테스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와 문화적 배경에 속한 신화, 역사, 문학, 문화 등을 인유하고 있는 난해한 작품이다. 파운드는 이 작품을 일컬어 '역사를 내포하고 있는 시'라고 했는데, 제1차 세계대전 후 기존의 가치와 공동체가 붕괴되고 인간의 정체성을 잃어 가던 혼돈의 세계에서 분열된 삶을 통합시키고 역사를 다시 쓰고자 한 시도로 여겨진다. 이상적인 공동체의 확립, 그중에서도 진정한 예술이 가능한 사회를 추구한 파운드의 모습이 담겨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파운드는 1922년 런던을 떠나 이탈리아로 갔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무솔리니를 지지하고 친파시즘 라디오 방송을 했다. 그는 미국 은행가들의 탐욕이야말로 미국이 전쟁에 참전한 이유라고 생각했고, 라디오 방송을 통해 공공연하게 미국을 비방했다. 이 때문에 전후 1946년 전범으로 체포되었는데, 정신병 판정을 받아 가까스로 사형을 면하고 워싱턴의 세인트 엘리자베스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칸토스》의 집필을 계속하여 수감 중이던 1948년 《피사 칸토스》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볼링겐상을 수상하며, 정치적, 문학적 소동을 야기했다. 정신병원에서 파운드는 《피사 칸토스》 집필뿐만 아니라 《중용》, 《대학》, 《시경》, 《소포클레스: 트라키스의 여인들》을 번역했다. 원본사이즈보기 산 미켈레 섬에 있는 파운드 무덤 파운드는 1958년에 방면되었는데, T. S. 엘리엇, 어니스트 헤밍웨이, 로버트 프로스트 등 친구들의 탄원이 작용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풀려난 뒤에도 파운드는 이탈리아로 가서 "미국은 하나의 정신병원이다."라고 비난했다. 파운드는 이탈리아 알프스 근처에 머무르면서 스위스, 아일랜드, 파리, 뉴욕 등으로 친지들을 방문하며 지냈다. 1969년에는 자신이 선집한 《파운드 칸토스 선집》를 펴냈으며, 〈칸토스 CX-CXVII〉도 발표했다. 1972년 11월 1일 베네치아에서 숨을 거두었다. =====================================================================       호수의 섬(The Lake Isle) /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             오 신이여, 비너스여, 도둑떼의 신 머큐리여, 간청하노니, 내게 주소서. 조그만 담배 가게를, 선반들에 가지런히 쌓여 있는 작고 반짝이는 상자들과 함께, 묶이지 않은 향기로운 씹는담배와 독한 살담배와 반짝이는 유리 진열장 아래 흩어진 반짝이는 버지니아 담배가 있고, 너무 번들거리지 않은 천칭 저울도 하나쯤 있는, 잠시 머리를 매만지며, 버릇없는 말로 한두 마디 수작을 거는 매춘부들도 있는.   오 신이여, 비너스여, 도둑떼의 신 머큐리여, 조그만 담배 가게를 빌려 주거나 아니면 다른 일자리라도 주소서, 쉴 새 없이 머리를 써야 하는 이 빌어먹을 글 쓰는 일만 아니라면.           에즈라 파운드 하면 ‘장신(長身)의 백발’이 떠오르고, ‘장신의 백발’ 하면 김종삼 시인이 쓴 ‘백발의 에즈라 파운드’라는 시가 떠오른다. “심야의/ 성채(城砦)/ 덩지가 큰 날짐승이 둘레를 서서히/ 떠돌고 있다/ 가까이 날아와 멎더니/ 장신의 백발이 된다/ 에즈라 파운드이다/ 잠시 후 그 사람은 다른 데로 떠나갔다”라는 짧은 시다. 이 시 때문일까. 에즈라 파운드는 내게 ‘심야의 성채’처럼 견고한 지성과 ‘덩지가 큰 날짐승’처럼 강력한 에너지가 소용돌이치는, 남성적이고 도전적인 시인으로 기억된다.   동시대 문인들 또한 파운드를 일컬어 ‘예측할 수 없는 전류 다발’(제임스 조이스), ‘20세기 시의 혁명 주체’(T. S. 엘리엇), ‘문학의 트로츠키’(윈드햄 루이스), ‘고독한 화산’(W. B. 예이츠)이라 했다. 조이스, 엘리엇, 루이스, 예이츠를 비롯해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로버트 프로스트 등이 파운드의 문학적 지지와 배려 속에서 대가로 성장했으며, 특히 엘리엇의 장시[황무지]가 그에 의해 대담하게 수정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미지스트’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는 등 이미지즘을 주창했으며, 20세기 초 모더니즘 예술운동의 젖줄이었던‘보티시즘(소용돌이주의, vorticism)’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중국 한시와 일본 하이쿠를 번역 소개함은 물론 그 영향을 받아 새로운 시 형식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렇듯 파운드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20세기 시단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1941년 즈음 정치에 개입하면서부터 불우한 삶을 살았다. 그는 신용자본주의(특히 이자)에 반대했기에 반유대주의로 나아갔으며, 나아가 무솔리니의 파시즘적인 사회정책을 부분적으로 지지하게 되었다. 결국 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 라디오 방송에서 친파시즘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인 라디오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전쟁이 끝난 1945년 미국 정부에 의해 반역죄로 체포되었다. 정신이상 범죄자라는 판정을 받아 사형은 면했으나 워싱턴에 있는 성엘리자베스병원에 수용되어 위탁 치료를 받다가, 1955년부터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파운드 석방 운동이 일어나1958년 봄에 반역죄 기소가 기각되었다. 석방된 파운드는 이탈리아로 망명해 87세의 생일을 이틀 넘기고 베네치아에 있는 성존앤드폴병원에서 고단한 생애를 마쳤다. 평생에 걸쳐 신화와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모더니즘 대서사시 [칸토스]를 집필했으며 수감 중이던 1948년에는 [피사 칸토스]로 볼링겐상 첫 회 수상자가 되었다.   파운드의 ‘호수의 섬’은, “나 일어나 이제 가리, 내 고향 이니스프리로 돌아가리,/ 거기 외줄기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아홉 이랑 콩을 심고, 꿀벌 통 하나 두고/ 벌떼 잉잉거리는 숲속에 홀로 살리”로 시작하는 예이츠의 시‘이니스프리 호수의 섬’을 패러디하고 있다. ‘이니스프리’는 아일랜드의 슬라이고라는 마을의 큰 호수의 섬 이름인데 예이츠는 어린 시절 이 호수의 섬에서 아버지와 함께 지냈던 적이 있다고 한다. 아일랜드 태생인 예이츠에게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은 고향 혹은 조국의 대명사이고, 자연 그 자체이자 행복한 유년의 상징이었다.   1910년을 전후한 파운드의 초기 시에 예이츠는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둘의 관계 또한 돈독했다. 미국 시인 파운드가 스무 살 위인 영국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비서 역할을 했고, 예이츠의 아내가 파운드 아내의 사촌이기도 했다. 그러나 둘의 사이는 문학적·정치적으로 점차 벌어지게 되었다. ‘호수의 섬’에서 파운드는 제목, 시행의 배열 및 리듬 등에서 예이츠를 모방하면서도 주제에서는 그와 대조를 이룬다. 예이츠가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에서 목가적인 ‘이니스프리’를 동경했던 것과 달리, 파운드는 복잡하고 살벌한 도시 한가운데 떠 있는‘조그만 담배 가게’를 해학적으로 동경한다.   특히 파운드는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와, 신들의 사자이며 웅변·직공·상인·도적의 수호신인 머큐리를 호명함으로써 현대성의 상징이 여성, 물질, 지식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가 애연가였음은 분명하다. 조그만 담배 가게, 그것도 그 안에 씹는담배나 살담배(칼로 썬 담배)나 버지니아 담배(버지니아 주에서 나는 담배)등 온갖 종류의 담배와 담배를 재는 저울, 그리고 담배 피우는 매춘부들을 간청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니코틴에 대한 몽상은 “나의 안개에 싸인 여왕,/ 니코틴, 하이얀 니코틴, 그대는/ 그대 머릿속에 광휘를 띠고 말을 달려/ 우리의 꿈속 옆길을/ 그대의 큰길로 삼네.”(‘니코틴’)와 같은 시에서도 변주된다. “쉴 새 없이 머리를 써야 하는/ 이 빌어먹을 글 쓰는 일”에 매달려 사는 파운드에게 담배와 담배 가게는 가장 도시적이고 현실적인 ‘이니스프리’였던 것이다. 사실은 담배를 통해 글쓰기의 고통과 지식인의 고뇌를 역설하고 있다.   김종삼의 ‘백발의 에즈라 파운드’는, 파운드의 가장 잘 알려진 단 두 행의 시“군중 속에서 환영처럼 나타난 얼굴들,/ 젖은, 검은 가지 위의 꽃잎들.”(‘지하철역에서’)이라는 시를 닮아 있다. 파리의 콩코르드 지하철역에서 내렸을 때 파운드의 시야에 들어왔던 아름답고 환한 얼굴들에 대한 감정과 의미를 표현한 시라고 한다. 군중 속에 홀연히 나타나는 ‘환영’과, 젖은 가지 위의 ‘꽃잎’은 불완전하고 순간적인 현대인의 불안한 초상이다. 30행의 시를 하이쿠 형식을 빌려 단 두 줄로 압축해 놓음으로써 파운드는 ‘군더더기 없는 시각적 이미지’와 ‘정확한 표현’을 기치로 내세웠던 이미지즘 시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다. 김종삼 또한 그러한 파운드의 시학에 기초해 성채와 날짐승,그리고 백발의 장신으로 파운드를 이미지화한 것이리라. 지금은 예이츠도 엘리엇도, 파운드도 김종삼도, 군중 속에서 환영처럼 나타나 젖은 가지 위의 꽃잎처럼 사라지고 없지만.     에즈라 파운드 (Ezra Pound, 1885. 10. 30. ~ 1972. 11. 1.) 1885년 아이다호 주 헤일리에서 태어났다. 열다섯 살에 펜실베니아 대학에 입학해 2년 동안 공부하다 해밀턴 칼리지로 옮겼다. 열아홉 살에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년 동안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으나 여성 관계로 인한 불상사를 일으켜 학교를 떠났다. 스물두 살에 유럽으로 건너가 베네치아에서 몇 개월 체류한 후 런던에 자리를 잡았다. 영국으로 건너간 뒤 T. S. 엘리엇과 제임스 조이스 등을 세상에 소개했다. 서른세 살에는 파리로 이사해 현대 예술 전반에 혁명을 불러일으키고 있던 예술가들과 함께 활동했다. 동시에 비판적인 산문을 쓰거나 번역했고 오페라 전곡과 바이올린 솔로곡도 작곡했다. 2차 세계대전 중 반미 활동 혐의를 받아 정신 병원에 연금되었으나 시인들의 운동으로 풀려났다. 대표작으로 [가면], [칸토스] 등이 있다.     글 정끝별 | 시인1988년 에 시가, 1994년  신춘 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으로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시론·평론집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파이의 시학] 등이 있다.       에즈라 파운드(Ezra (Loomis) Pound) 1885. 10. 30 미국 아이다호 헤일리 출생  1972. 11. 1 베네치아 사망 미국의 시인·비평가로 20세기 영미시에 끼친 지대한 영향 때문에 '시인의 시인'으로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중 이탈리아에서 파시스트를 지지하는 방송을 하여 전쟁 후에 체포당해 1958년까지 정신병원에서 억류되었다. 아이다호의 작은 광산촌에서 연방 토지사무국 공무원인 위스콘신 출신의 아버지 호머 루미스 파운드와 뉴욕 시 출신 어머니 이사벨 웨스턴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887년경 가족은 동부로 이사했고, 1889년 6월 아버지가 필라델피아에 있는 미국 조폐국에 취직하면서 윈코트 근처에 정착했다. 파운드는 여기서 평범한 중산층 아이로 자랐다. 첼트넘 사관학교에 2년간 다니다가 졸업 전에 그만두고, 지방 고등학교에 다녔다. 그뒤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 2년간(1901~03) 다니면서 평생의 친구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를 만났다. 1905년 뉴욕 주 클린턴의 해밀턴대학에서 철학학사학위를 받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 돌아와 대학원과정을 밟았다. 1906년 6월에 석사학위를 받았고 박사과정을 1년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학교에서 영문학과 영문법은 물론 라틴어·그리스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독일어·스페인어·프로방스어·앵글로색슨어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1907년 가을 인디애나 주 크로퍼즈빌에 있는 워버시장로교대학의 로망스어 교수가 되었다. 대체로 그는 장로교 교육을 받은 사람처럼 행동했으나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자유분방한 태도를 보였다. 첫 직장을 곧 그만두고 1908년 2월 가벼운 짐과 적어도 한 미국 출판업자로부터 출판을 거절당한 시집 원고를 들고 유럽으로 가는 배를 탔다. 그전에도 유럽에는 3번이나 갔었는데, 1898년에는 대고모와, 1902년에는 부모와, 1906년 여름에는 혼자서 방문했다. 이때 모은 자료를 기초로 르네상스 시기 라틴 시인에 대한 〈라파엘풍 라틴 Raphaelite Latin〉과 음유시인에 대한 〈흥미로운 프랑스 출판물 Interesting French Publications〉(둘 다 필라델피아의 〈북 뉴스 먼슬리 Book News Monthly〉 1906년 9월호에 실림), 〈부르고스, 꿈의 도시 옛 카스티야 Burgos, a Dream City of Old Castile〉(〈북 뉴스 먼슬리〉1906년 10월호에 실림)를 썼다. 그러나 이번에는 돈도 별로 없이 떠나 배를 타고 지브롤터와 스페인 남부를 지나 베네치아로 갔다. 1908년 6월 베네치아에서 자비로 첫 시집 〈A lume spento〉를 출판했다. 1908년 9월경에는 런던으로 가서 작가이자 편집자인 포드 매덕스 포드(그가 펴내는 〈잉글리시 리뷰 English Review〉에 파운드의 글을 실어줌)와 사귀었고, 윌리엄 버틀리 예이츠의 문학 서클에 들어갔으며, 철학자 T. E.흄이 주관하는 현대 그룹 '이미지파'에 들어갔다. 영국에서는 곧 성공을 거두었다. 시집 〈페르소나이 Personae〉가 1909년 4월에 출판되었고, 10월에 2번째 시집 〈환희 Exultations〉가 나왔다. 런던에서 한 강의(1909~10)를 바탕으로 쓴 3번째 책 〈로망스의 정신 The Spirit of Romance〉은 1910년에 출판되었다. 고국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필라델피아나 뉴욕 시에서 문단에 진출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자 1911년 2월 유럽으로 돌아갔고, 이탈리아·독일·프랑스를 방문했다. 1911년말 사회주의 주간지 〈뉴 에이지 New Age〉의 편집자이며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앨프레드 R. 오러지를 알게 되었다. 오러지는 파운드에게 〈뉴 에이지〉의 지면을 할애해 이후 9년 동안 적지만 정기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1912년 파운드는 시카고의 작은 잡지사 〈포이트리 Poetry〉의 런던 주재기자가 되었다. 그는 이 잡지의 중요도를 높이는 데 크게 공헌했고, 곧 영미 시단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는 일찍부터 로버트 프로스트와 D.H.로렌스의 재능을 간파하고 그들의 시를 높게 평가한 사람이었으며 모더니스트 조각가 제이콥 엡스타인과 헨리 고디어 브제스카에게 찬사를 보냈다. 1912~14년의 이미지스트 운동의 선구자이자 '이미지파'의 후계자로서 시에서 직접적이고 간결한 언어, 정확한 이미지의 사용을 강조하는 최초의 이미지스트 선언문을 작성했으며, 이미지스트의 첫번째 시선집 〈이미지스트 Des Imagistes〉(1914)를 편집했다. 친구 예이츠는 이미 유명해져 있었지만, 파운드는 그를 설득해 새로 간결한 문체를 쓰도록 했다. 1914년에 예이츠의 친구 올리비아 셰익스피어의 딸 도로시 셰익스피어와 결혼했으며, 같은 해 당시 무명이던 제임스 조이스와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에고이스트 The Egoist〉지 비공식 편집자로서, 그리고 나중에는 뉴욕 시의 〈리틀 리뷰 The Little Review〉 런던판 편집자가 되어 조이스가 〈젊은 예술가의 초상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율리시스 Ulysses〉를 출판하도록 도와 조이스의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재정 보조를 확보해주었다. 또한 1914년 T. S. 엘리엇이 자신처럼 시인이자 비평가로서 출발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한편 계속해서 자신의 시집 〈반격 Ripostes〉(1912)과 〈재계(齋戒) Lustra〉(1916), 산문 비평집 〈파반과 분할 Pavannes and Divisions〉(1918)을 출판했다. 1913년 위대한 동양학자 어니스트 페널로사의 글을 읽게 된 뒤에는 고대 중국 시의 영어판인 〈중국 Cathay〉(1915)과 일본 노극[能劇]에 관한 저서 2권(1916~17)을 출판해 호평을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중의 살육과 전후 영국에 만연한 무력감에 불안을 느껴 파리로 가기로 결정하고, 떠나기 전에 가장 중요한 작품인 〈섹스투스 프로페르티우스에 대한 경의 Homage to Sextus Propertius〉(1919년 〈Quia Pauper Amavi〉에 실림), 〈휴 셀윈 모벌리 Hugh Selwyn Mauberley〉(1920)를 출판했다. 〈섹스투스 프로페르티우스에 대한 경의〉는 프로페르티우스와 로마 제국을 통해 1917년의 대영제국에 대해 논평한 것이며, 〈휴 셀윈 모벌리〉는 1919년 영국 문단문화의 한 측면을 정교하게 새겨놓은 '초상'으로서 20세기에 가장 찬사를 받은 시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1921~24) 젊은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만나 그를 도와주었고, 프랑수아 비용의 시를 바탕으로 오페라 〈유언 Le Testament〉(1926 파리 공연, 1931, 1962 BBC가 런던에서 상연)의 대본을 썼다. T.S.엘리엇을 도와 장시 〈황무지 The Waste Land〉를 편집했으며, 뉴욕 문예지 〈다이얼 The Dial〉의 주재기자로 활동했다. 〈칸토스 The Cantos〉 1924년 파리에 싫증을 느낀 그는 이탈리아 라팔로로 이사해 20년을 살았다. 1925년에 미국 출신의 바이올린 연주자이며 정부인 올가 러지와의 사이에서 딸 마리아가 태어났고, 1926년에 아내 도로시는 아들 오마르를 낳았다. 딸은 이탈리아령 티롤의 한 시골 여인이 길렀고, 아들은 영국에 사는 친척집에서 자랐다. 1927~28년에 자신의 잡지인 〈에그자일 Exile〉을 편집했고, 1930년에는 〈30편의 초고 A Draft of XXX Cantos〉라는 제목으로, 1915년부터 쓰기 시작했던 야심적인 장시 〈칸토스〉의 일부를 다양하게 엮어 출판했다. 1930년대에 〈칸토스〉가 더 증보되어 〈새 칸토스 11편 Eleven New Cantos〉(1934)과 〈5번째 칸토스 10편 The Fifth Decad of Cantos〉(1937)·〈칸토스 52~71 Cantos VXII-ⅦⅩⅠ〉(1940) 등이 나왔고, 걸작 산문집 〈새롭게 하라 Make It New〉(1934)가 나왔다. 점차 음악에 큰 관심을 갖게 되어 1930년대에 라팔로에서 몇 차례 음악회를 기획했으며, 올가 러지의 도움을 받아 17세기 이탈리아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를 재발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 문화와 역사의 지속적인 연구 결과 뛰어난 단문집 〈쿨처 안내 Guide to Kulchur〉(1938)를 출판했다. 1930년대 세계적인 불황이 닥치자 그는 경제사를 비롯한 역사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 1918년 런던에서 사회신용설의 주창자인 C. H. 더글러스를 만난 후 경제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사회신용설은 불충분한 구매력에 따른 부(富)의 부당한 분배가 불황을 초래한다는 경제 이론이다. 파운드는 정부와 일반 대중이 돈과 금융을 잘못 이해하고, 국제 은행가들이 돈을 조종한 결과 세계가 일련의 전쟁에 빠지게 되었다고 믿었다. 그는 화폐개혁에 몰입해 〈경제학 입문 ABC of Economics〉(1933)·〈사회적 신용 Social Credit〉(1935)·〈돈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What Is Money For?〉(1939)를 썼으며, 정치에도 관여해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를 찬양하는 글 〈제퍼슨과 무솔리니 Jefferson and/or Mussolini〉(1935)를 썼다 (→ 색인 : 파시즘). 그가 몰입한 이 주제는 〈칸토스〉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초기작에서도 개인적·역사적 일화들이 통제되지 않은 흔적이 드러난다. 유럽에서 전쟁이 임박하자 그는 이탈리아와 미국이 서로 평화를 유지하는 데 자신이 한몫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1939년 미국에 갔다. 그러나 실망을 안고 이탈리아로 돌아왔고 이탈리아와 미국이 교전한 뒤인 1941~43년에 로마의 라디오를 통해 문학·경제·금융·정치 등의 광범위한 주제를 가지고 수백 회에 걸쳐 방송했고 종종 미국이 전쟁을 벌였다고 공공연하게 비난했다. 그는 1945년 미국군에 체포되어 피사 근처 전범 수용소에 6개월 동안 수감되어 있었다. 열악한 조건인 그곳에서 공자를 영어로 번역했고(〈위대한 학설과 흔들리지 않는 축 The Great Digest & Unwobbling Pivot〉, 1951), 계속 집필중이던 장시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피사 칸토스 The Pisan Cantos〉(1948)를 썼다. 반역죄로 재판을 받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왔으나 '재판을 받을 수 없을 만큼 정신이상'이라는 의사들의 선고를 받고, 정신 질환 죄수를 수용하는 워싱턴 D.C.의 세인트엘리자베스 병원에서 12년(1946~58)을 보냈다. 이 기간에도 〈칸토스〉를 이어나가 〈절단 Section:Rock-Drill〉(1955)· 〈왕관 Thrones〉(1959) 등을 썼으며, 고대 중국의 시와 소포클레스의 〈트라키니아 Trachiniai〉를 각각 〈고전 시선집 The Classic Anthology〉(1954)과 〈트라키스의 여자들 Women of Trachis〉(1956)로 번역했다. 한편 정기적으로 방문객들을 만났으며 여러 나라 사람들과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1949년에 〈피사 칸토스〉로 저명한 볼링겐상을 받으면서 그에 대한 논쟁이 다시 뜨거워졌다. 1958년 4월 18일, 재판을 받기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이 나오고 고소가 기각되면서 세인트엘리자베스 병원에서 풀려났다. 그는 이탈리아로 돌아와 6개월씩 라팔로와 베네치아를 오가며 지냈다. 저술 기간 60년 동안 혼자 70권을 썼으며, 70여 권의 다른 책에 기고하고, 1,500편 이상의 글을 썼다. (N. Stock 글)
762    <시인> 시모음 /// 禪詩(선시) 모음 댓글:  조회:6769  추천:1  2015-10-27
[ 2015년 11월 05일 09시 54분 ]     미국의 한 청년이 자신의 지치(智齿)로 반지를 만들어 녀친에게 바치며 청혼... ================================================   + 시인  시인은  웃어야 된다  벌이 되고 나비가 되고  꽃이 되어야 한다  시인은  바람이 되고 바다도 되고  험준한 산맥이 되어  지켜보아야 한다  시인은 누구보다  마지막에 울어야 한다  한 방울 비가 되어  모두에게 가야 한다  (송정숙·시인) + 시인은  어디서나 문 열고 단 하나의 말을 찾아나선 이여  눈 내리는 빈 숲의 겨울나무처럼 봄을 기다리며 깨어 있는 이여 마음 붙일 언어의 집이 없어 때로는 엉뚱한 곳에 둥지를 트는 새여 즐거운 날에도 약간의 몸살기로 마음 앓는 이여 잠을 자면서도 다는 잠들지 않고 시의 팔을 베는 오늘도  고달픈 순례자여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시인의 영혼 겨울 햇살이 하루를 접고 붉은 석양이 내릴 무렵 나의 언어도 강에 일렁이는 물 비늘 속으로 눕는다 겨울 산 벌거벗은 민둥으로 영혼을 흔드는 시를 날려보내자 돌 틈을 흐르는 계곡물이 사강(沙江)에 다다를 때 이미 사해(死海) 속으로  시인의 언어가 죽어버린다 해도 시는  영혼을 흔들어 태어나고  언젠가는 다시 시인의 영혼으로 돌아온다  시는  인생의 둘도 없는 보물이 되어  보석처럼 빛이 반짝이는 삶을 만들어 간다 시인은 살아있는 영혼 속에서 영혼을 흔드는 시를 노래한다 떠난 후 가난한 영혼의 그림자가 바람처럼 살다간 흔적으로 (조사익·시인) + 시인의 일상  갖는 것은 즐거움 버리는 것은 상쾌함 즐거움을 누린 만큼 쾌감도 느껴야만 한다. 스스로를 비우는 자는 상쾌하다. 내 몸 안의 숙변을 뿜어내듯이, 스스로 버리지 못한 욕심 곽 막힌 체증과도 같다. 담는 즐거움 덜어내는 상쾌함 내 안에만 머무를 때 돈도, 지식도, 음식도 썩고 만다. 먹는 것은 즐거움 배설하는 것은 쾌감 담았을 때의 쾌감만큼 비우는 즐거움을 누리자. 세상 만물 내 안에 담았다가 즐겁게 내어주는 큰 그릇이 되자. 즐거움이 나에게서 상쾌하게 넘치게 하자. 우주의 만물은 모두 즐겁게 상쾌하게 흘러야 맛이다. 오! 나의 하느님! 오늘도 상쾌하게 버릴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나이다. (정환웅·시인) + 시인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아름 팍 안아보지 못해서 전신을 다 담아도 한 편(篇)에 2천원 아니면 3천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릿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 컬컬하면 술 한 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 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앉으면 돌이 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국은 있는데 타는 놀에 가고 없다. (김광섭·시인, 1905-1977) + 미인과 시인 아이들은 나를 보고  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의 눈으로는  미인의 조건이 나 정도인 줄 알았다  어느 날 나보고  이라고 말해 주던  참 귀엽고 예쁜 아이들의  손을 꼬옥 붙들고  물으니  한다  아하, 그랬구나  그러면 그렇지   (권복례·교사 시인, 1951-) + 시인 본색(本色) 누가 듣기 좋은 말을 한답시고  저런 학 같은 시인하고 살면  사는 게 다 시가 아니겠냐고  이 말 듣고 속이 불편해진 마누라가 그 자리에서 내색은 못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구시렁거리는데 학 좋아하네 지가 살아봤냐고 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 닭 중에도 오골계(烏骨鷄)! (정희성·시인, 1945-) + 늙은 시인의 노래 삶의 푸념도 노래가 되고 지워버린 사랑도 추억이 되는 늙은 시인이 되고 싶어라 그리움의 날들이 하늘이 되고 기다림의 날들이 바다가 되어도 초연한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늙은 시인이 되고 싶어라 약속 없는 기다림을 혼자 만들다가 붉은 노을에 눈시울을 적셔도 새겨진 주름을 웃게 만드는 늙은 시인이 되고 싶어라. (박우복·시인) + 어느 시인에게  님께선 다음 생에도 사람되겠다 그러세요  이 세상 힘드셨어도 다시 가겠다 그러세요  세상에 다시 오셔서 시인이 되어 주셔요  사람을 사랑하느라 미처 못다 안아 주신  작은 풀꽃 작은 벌레 작은 돌멩이에게도  하나씩 이름 불러 葉書詩 적어 주셔요  님께선 다음 생에 꼭 다시 돌아오셔요  못다 적은 시가 아직 많다고 그러세요  못다 비운 그리움 두고 오겠다 그러세요 (강인호·시인) + 시인은 모름지기 공원이나 학교나 교회  도시의 네거리 같은 데서  흔해빠진 것이 동상이다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고 나 이날이때까지  왕이라든가 순교자라든가 선비라든가  또 무슨무슨 장군이라든가 하는 것들의 수염 앞에서  칼 앞에서  책 앞에서  가던 길 멈추고 눈을 내리깐 적 없고  고개 들어 우러러본 적 없다  그들이 잘나고 못나고 해서가 아니다  내가 오만해서도 아니다  시인은 그 따위 권위 앞에서  머리를 수그린다거나 허리를 굽혀서는 안 되는 것이다.  모름지기 시인이 다소곳해야 할 것은  삶인 것이다  파란만장한 삶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는 돌아와 마을 어귀 같은 데에  늙은 상수리나무로 서 있는  주름살과 상처자국 투성이의 기구한 삶 앞에서  다소곳하게 서서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도둑놈의 삶일지라도  그것이 비록 패배한 전사의 삶일지라도  (김남주·시인, 1946-1994) ======================================= 선시 모음     이 고  鍊得身形似鶴形 수행하신 그 모습 두루미 같고  연득신형사학형  千株松下兩函經 솔 그늘에 두어 권 경책뿐일세  천주송하양함경  我來問道無餘說 도를 묻는 나에게 다른 말 없고  아래문도무여설  雲在靑天水在甁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에 있다고.  운재청천수재병  이 고(? ∼844)‥‥ 당(唐)나라 때 재상  (宰相). 낭주 자사(郎州刺史)로 있을 때 약  산 유엄 (藥山惟儼) 스님을 만나 깨우침을 받  고 이 게송을 짓다.  학명 선사 (鶴鳴禪師)  妄道始終分兩頭 묵은 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  망도시종분양두  冬經春到似年流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 하지만  동경춘도사년류  試看長天何二相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시간장천하이상  浮生自作夢中遊 우리가 어리석어 꿈 속에 사네.  부생자작몽중유  학명 선사(1867∼1929)‥‥ 영광 불갑사  에 출가. 금화 스님의 법을 잇다.  학명 선사 (鶴鳴禪師)  前生誰是我 전생에는 누가 나며  전생수시아  來生我爲誰 내생에는 내가 누구일까  내생아위수  今生始知我 금생에 나를 집착해서  금생시지아  還迷我外我 참된 나를 잊었구나  환미아외아  경허 선사 (鏡虛禪師)  海印寺 九光樓    經閣對仙巒 우뚝 솟은 장경각과 마주 뵈는 신선봉  의의경각대선만  往事無非一夢間 지난 세월 생각하면 한바탕 꿈속일세  왕사무비일몽간  適有乾坤呑吐客 하늘 땅 마음대로 삼키고 뱉는 객이  적유건곤탄토객  九光樓上秤千山 구광루를 저울삼아 저 산들을 달아보네.  구광루상칭천산  경허 선사 (鏡虛禪師)  與永明和尙 行佛靈道中  摘何爲妄摘何眞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참인고  적하위망적하진  眞妄由來摠不眞 참이고 거짓이고 모두 다 헛것일세  진망유내총불진  霞飛葉落秋容潔 안개 걷히고 낙엽진 맑은 가을날  하비엽낙추용결  依 靑山對面眞 언제나 변함없는 저 산을 보게.  의구청산대면진  무념 화상 (無念和尙)  臨終偈  寂寂本故鄕 고요한 성품이 본 고향이요  적적본고향  惺惺是我家 분명한 마음이 나의 집일세  성성시아가  現前古佛路 옛 부처 오간 길에 흘로 드러나  현전고불로  不昧是何物 꺼지지 않는 놈이 대체 무엇일고,  불매시하물  무념 화상· 일정 (日政) 때 팔공산t  동화사(桐華寺)에서 앉아서 열반 하였음.  승조 법사 (僧肇法師)  臨終偈  四大本非有 이 몸에 모양새 본래 없으니  사대본비유  五蘊畢竟空 마음에 망상분별 그 자체 비었네  오온필경공  將頭臨白刀 저 칼이 내 목을 자른다 해도  장두임백도  猶如斬春風 불어오는 봄바람을 어이 끊으리  유여참춘풍  * 승조 법사(383∼414)‥‥ 구마라습 문하  4철 (哲)의 한 사람. 조론, 보장론의 저자  용운 선사 (龍雲禪師)  新 晴  禽聲隔夢冷 새소리 꿈 밖에 싸늘하고  금성격몽냉  花氣入禪無 꽃 향기 선정 속에 고요하다  화기입선무  禪夢復相忘 선과 꿈을 다 잊으니  선몽복상망  窓前一碧梧 창 앞에 한 그루 벽오동 뿐일세.  창전일벽오  * 용운 선사(1879∼1944)‥‥이름은 봉완(奉琓),  별호는 만해 (만海). 24세 때 백담사에 출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서 잘 알려짐.  저서 (불교 유신론) (님의 침묵) 등.  보조 국사 (普照國師)  頓悟雖同佛 깨치면 부처와 같지만  돈오수동불  多生習氣深 무량겁에 찌든 버릇은 그대로 있네  다생습기심  風定波尙湧 바람은 자도 물결은 아직 출렁이고  풍정파상용  理現念猶侵 이치는 드러나도 망상은 쉽게 없어지지 않네.  이현염유침  보조 국사(1158∼1210)‥‥ 고려 때 스님  이름은 지눌(知訥), 자호는 목우자(牧牛子  고려 불교 현실을 통탄하고 중흥론을 제창,  송광사를 정혜 결사의 근본 도량으로 삼다.  저서 수심결 (修心訣) 절요 정해  결사문 (定혜結社文) 등.  태고 왕사 (太古王師)  文殊讚  提起吹毛利 취모검 뽑아드니  제기취모리  家風妙奇絶 그 집 풍속 유별나네  가풍묘기절  逍遙千聖外 부처도 모르는 곳에 한가히 노니는 양  소요천성외  月映蘆花雪 갈꽃이 달에 비쳐 눈처럼 희다 할까.  월영노화설  작자미상  達摩讚  野鶴閑雲主 자유로운 학이여, 한가한 구름이여  야학한운주  淸風明月身 달처럼 밝다 할까, 바람처럼 맑다 할까  청풍명월신  要知山上路 저 산 위에 높은 길을  요지산상노  須是去來人 안 가보고 어이 알랴.  수시거내인  작자미상  耿耿靑天夜夜星 밤마다 뜨고 지는 저 하늘에 별을  경경청천야야성  瞿曇一見長無明 부처가 괜히 보고 망상을 더했네  구담일견장무명  下山路是上山路 저 산을 오르내림 길 하나 뿐인데  하산노시상산노  欲度衆生無衆生 중생을 건진다니 부질없는 군소리.  욕도중생무중생  작자미상  面上無嗔供養具 성 안내는 웃는 얼굴 참다운 공양구요  면상무진공양구  口裡無嗔吐妙香 성 안내는 부드러운 말 아름다운 향이로다  구리무진토묘향  心裡無垢是眞實 깨끗하고 텅비어 참된 그 마음이  심리무구시진실  無垢無染是眞常 더럽지도 더럽힐 수도 없는 부처님 마음일세.  무구무염시진상  작자미상  江靜月在水 달은 물에 잠기고  강정월재수  山空秋滿亭 가을 빛은 정자에 가득하다  산공추만정  自彈還自罷 내 즐겨 뜯는 가락을  자탄환자파  初不要人聽 남이야 듣거나 말거나.  초불요인청  작자미상  盡日尋春不見春 하루 종일 봄을 찾아도 봄은 안 보여  진일심춘불견춘  芒鞋踏 破頭雲 짚신이 다 닳도록 온 산을 헤매었네  망혜답롱파두운  歸來偶過梅花下 봄 찾는 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니  귀내우과매화하  春在枝頭已十方 울타리에 매화꽃이 한창인 것을.  춘재지두이십방  작자미상  .  是是非非都不關 옳거니 그르거니 상관 말고  시시비비도불관  山山水水任自閑 산이건 물이건 그대로 두라  산산수수임자한  莫間西天安養國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세계라  막간서천안양국  白雲斷處有靑山 횐 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백운단처유청산  청 허 선사 (淸虛禪師)  達摩讚  剪雲爲白衲 횐 구름 오려서 누더기 깁고  전운위백납  割水作靑眸 푸른 물 떠다가 눈동자 삼았네  할수작청모  滿腹懷珠玉 뱃 속에 주옥이 별처럼 빛나네  만복회주옥  神光射斗牛 온몸이 밤 하늘에 빛처럼 빛나네.  신광사두우  청허 선사(1520∼1604)‥‥ 이름은 휴정  (休靜). 자는 현응(玄應).묘향산에 오래 있  었으므로 서산 대사(西山大師)라 한다.  저서 (선가귀감(禪家龜鑑)) (청허당집) 8권 등.  청 허 선사 (淸虛禪師)  臨終偈  千計萬思量 온갖 계획 모든 생각  천계만사량  紅爐一點雪 붉은 화로에 한 송이 눈일세  홍노일점설  泥牛水上行 진흙소가 물 위로 가니  이우수상행  大地虛空裂 하늘 땅이 한꺼번에 갈라지네.  대지허공열  청허 선사 (淸虛禪師)  登白雲山  桂熟香飄月 계수 열매 익은 향기 달에 나부끼고  계숙향표월  松寒影拂雲 소나무의 찬 그림자 구름에 스치네  송한영불운  山中奇特事 이 산중의 기특한 소식을  산중기특사  不許俗人聞 세상 사람에게 들려줄 수 없구나.  불허속인문  청허 선사 (淸虛禪師)  花開洞  花開洞裏花猶落 화개동에 꽃은 벌써 지고  화개동이화유낙  靑鶴巢 鶴不還 청학동에 학은 오지 않네  청학소변학불환  珍重紅流橋下水 홍류교 다리 아래 흐르는 물아  진중홍류교하수  汝皎 海我歸山 너는 바다로 가느냐, 나는 산으로 간다.  여교찬해아귀산  청허 선사(淸虛禪師)  讀罷楞嚴  風靜花猶落 바람은 자도 꽃은 떨어지고  풍정화유낙  鳥鳴山更幽 새가 우니 산이 더욱 고요하구나  조명산갱유  天共白雲曉 새벽은 횐 구름과 함께 지새고  천공백운효  水和明月流 물은 밝은 달 띄워 흘러가네.  수화명월류  청 허 선사 (淸虛禪師)  別小師  臨別忽忽說不盡 서운함이 앞을 가려 총총히 말 못하고  임별홀홀설불진  索然相顧更遲遲 우두커니 서로 보며 머뭇거렸네  색연상고갱지지  平林漠漠烟如織 아득히 푸른 숲에 짙은 안개 서렸는데  평림막막연여직  鶴影飄飄獨往時 떠나는 뒷 모습이 외로운 학이랄까.  학영표표독왕시  청허 선사 (淸虛禪師)  逆旅  唐虞玉帛花含淚 요순의 태평은 꽃에 맺힌 눈물이요  당우옥백화함루  湯武干戈月帶悲 탕무의 풍운은 달에 서린 수심일세  탕무간과월대비  宿客不停空館在 어제 손님 떠나고 빈 객주집  숙객불정공관재  東西門外水空流 문 밖에 시냇물만 부질없이 흘러가네.  동서문외수공류  청허 선사  題釋王寺 李龍眠所畵 千佛幀  奇哉手裡一毫力 장하다 맨손에 붓 한 자루로  기재수리일호력  寫出胸中萬佛身 가슴 속에 일만 부처 그려내다니  사출흉중만불신  若遇丹霞難放過 단하 스님 있었던들 그저 갈 리 없건만  약우단하난방과  擇王門前更無人 다행히도 이 절에는 그 스님이 안 오셨네.  택왕문전갱무인  ● 단하‥‥ 어느 암자에서 목불(木佛)을 불  태워 형상에 집착하는 원주를 깨우쳐 준 일  화로 유명 하다.  청허 선사 (淸虛禪師)  妙 峰  五蘊以爲庵 오온으로 집 삼으니  오온이위암  幾經風與雨 비 바람 얼마런고  기경풍여우  白雲時往來 횐 구름이 오가지만  백운시왕내  不識庵中主 이 집 주인을 알지 못하네.  불식암중주   
761    <촛불 > 시모음 /// 경상도 지방의 사투리 댓글:  조회:8153  추천:0  2015-10-27
[ 2015년 10월 28일 08시 41분 ]     위조 인민페와 명페(冥币)... =================================   == 촛불의 노래 ==  때로 내가 불빛으로 너울너울 흔들릴 때 그것이 감출 수 없는 내 뼈의 노래요 살의 몸부림인 줄을 그대는 아시는가요 하나의 별로 빛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밤의 사막을 달려와야 했는지 비 그친 하늘처럼 눈부시게 그대 속의 어둠을 닦아낼 수만 있다면 내가 한나절 들꽃처럼 세월 속에 어린 등불 하나 잠시 비추다 갈지라도 그것이 내 목숨의 향기인 줄을 그대는 아실른지요  (고명·시인, 전남 광주 출생) == 촛불 == 촛불! 심지에 불을 붙이면 그때부터 종말을 향해 출발하는 것이다. 어두움을 밀어내는 그 연약한 저항 누구의 정신을 배운 조용한 희생일까. 존재할 때 이미 마련되어 있는 시간의 국한을 모르고 있어 운명이다. 한정된 시간을 불태워가도 슬퍼하지 않고 순간을 꽃으로 향유하며 춤추는 촛불.  (황금찬·시인, 1918-) == 우리 가슴에 촛불 하나를 켜요 ==  나는  당신 앞에  촛불 하나를  이런 마음으로 밝힙니다  기도의 마음으로  감사의 마음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은혜의 마음으로  축복의 마음으로  이 마음  따뜻하게 받아 주옵소서 (채바다·해양 탐험가 시인) == 촛불의 기도 == 하느님을 알게 된 이 놀라운 행복을 온몸으로 태우며 살고 싶어요 그분이 주시는 매일매일을 새해 첫날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언제나 설레이며 살고 싶어요 하늘 향해 타오르는 이 뜨거운 불꽃의 기도가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도록 이웃을 위해서도 조국을 위해서도 닫힌 마음 열겠어요 좁은 마음 넓히겠어요 내 키가 작아 드는 아픔을 내 몸이 녹아드는 아픔을 두려워하지 않겠어요 하얗게 물이 되는 따스한 물이 되는 겸손한 맘으로 살고 싶어요 흔들리는 바람에도 똑바로 눈을 뜨며 떳떳하게 살고 싶어요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기도 - 촛불 연가·16 ==  갈대보다 더 약한 것은 이슬이고  이슬보다 더 여린 것은  콧바람 한줄기에도 곧잘 출렁거리는 촛불 그대라지만  그 불길로 세상의 모든 바다와  우리들의 수미산을 태워 녹이는 비법을 가르쳐주십시오  그대의 가슴으로 이 늙은 가슴을 끌어들여  타오르게 하곤 하는  실같은 바람 한줄기에도  꺼지곤 하지만 결코 제 가슴에선 꺼지지 않고  타오르곤 하는 그 비법을 가르쳐주십시오. (한승원·시인, 1939-) == 촛불 == 누구나 마음의 빈 공간을 채울  그 무엇이 필요하다  사랑의 아픔과 그리움으로  마음을 채우는 이는 행복하다  나의 마음은  그대 향한 사랑으로  온통 채워졌고  촛불이 제 몸을 녹여  어둠을 밝히듯  나의 몸과 마음을 태워  그대의 아픔에 희망의 불씨를  심어 주고 싶다  내가 살아 있는 한  그대를 위해  그대의 빈 가슴에  꺼지지 않는 촛불로  남고 싶다 (손선희·시인) == 촛불 앞에서 == 온종일  당신 생각에  몸이 까맣게 타버렸습니다  지난밤에도  당신 생각에  온몸이 조금씩 흔들렸습니다  당신이여  오늘은 바람이 불고  저는 남몰래 울고 싶습니다  당신을 기다려야 하는  당신 침묵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나는  새벽이 올 때까지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있어야 했습니다 (권태원·시인, 1950-) == 촛불에 관하여 == 타오르세 타오르세 눈물일랑 어쩔 수 없는 눈물일랑 부디 그대 안에 숨기지 말고 어차피 제 한 몸 태워 메워야 할 저 암담한 혼돈이라면 저 아득한 약속이라면 되도록이면 쓰디쓰게 마시기로 하세 좁은 어둠 내 몸으로 밝히고 나면 그 심연의 암흑은 뿌리 없으리 마지막 한숨까지 태우고 태워 오로지 나의 것은 태워 버리세 한 줌 재로 끝까지 태워 버리세 그 재로 하여 우리 사랑 완결되기를 내 기다림의 끝까지 그 그리움의 섧고 섧은 대평원까지 눈물일랑 그대 안에 숨기지 말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말없이 나를 태우세  (홍수희·시인) == 촛불시위 == 노오란 눈빛들이  수천 개의 함성을 달고  광장에 나서면  너는 출렁이는 물이 된다  폭포가 된다  소리 없는 분노를 끌고  지구가 닿을 수 있는 행성마다  불을 지피고  문고리 걸어둔 문간마다  노오란 꽃불을 심어놓고  사람 속으로 스며든다  작고 어두운 방에서  몸을 태워  빛이고자 했던 꿈들이  종이컵 안에다 세상을 밝히고  저리 흔들리고 있구나 (정군수·시인, 1945-) == 촛불의 율동 ==  나는 섬에 오면 촛불을 켜 놓고 시를 쓴다  오늘밤에도 열한 자루의 촛불을 켜 놓고 시를 썼다  내가 촛불을 좋아하는 것은  노란 불꽃이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인다는 것  내 입김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같고  나보다 전에 들어온 바람과 내통하는 것도 같고  어쨌든 누군가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 연약함  그로 인해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촛불이 살아 있음이다  자율이든 타율이든 율동은 아름다운 생명의 표출이다  아마도 자기가 만든 빛에 미쳐 신바람이 나는지도 모를 일  분명 누군가와 내통하는 춤이기에  내가 시기어린 눈으로 사방을 둘러본다 (이생진·시인, 1929-) == 촛불 앞에서 == 우리 모두  당신 앞에  숙연히 고개 숙입니다.  흰 살 저며 불 밝히는  당신으로 인해  우리들이 존재함을 깨닫고  당신의 소멸로 인해  점점 어두워짐을 깨닫습니다.  당신 몸에서 내리는  하얀 촛농이  우리들의 뜨거운 눈물입니다.  당신이 타는 이 밤  왜 이리 짧기만 합니까.  하나하나 우리의 얼굴을  분별하시는 당신의 불빛  가슴에 와 닿을 때  우리들의 눈앞이 흐려집니다.  마지막 몸을 태우며  당신이 주시는 말씀  가슴에 깊이깊이 새겨 둡니다. (박덕중·시인, 1942-) + 촛불     꺼져라, 가냘픈 촛불, 꺼져라  흔들리는 촛불,  아픔의 심지를 태우는 마지막의  불꽃아,  천상으로 오르는 음악과  지상으로 내리는 꽃잎이 부딪쳐  튀는 불꽃아,  영원과 찰나를 잇는  실낱같은 그 줄이 끊길 때  너는 드디어 촛불이 된다. (오세영·시인, 1942-) + 촛불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이토록 가슴 시린 아픔이라는 것을  그대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아픔이 하나의 촛불이 된다는 것을  그대를 알고 나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윤수천·시인, 1942-) + 네가 켜는 촛불은  네가 켜는 촛불은 희미하나  촛불을 켜는 네 마음은 하늘이구나.  아무리 늦은 밤 돌아와도  불 밝히고 기다리는 창문이여.  네가 이 세상의 풍경이 되거라.  (김형영·시인, 1945-) + 촛불  얼마나 그리움에 사무쳤길래  흰 눈물을 주야장천 흘리고 있니 (반기룡·시인) + 촛불  견디기 힘든 일들  뜨거운 눈물로 씻어  자신은 캄캄해도  마음은 늘 환하여  기쁘게 자신을 태우는  촛불이면 좋겠다.  (민병도·화가 시인, 1953-) + 촛불  만나면 분명  꽃인데  물러나면  그  자리에 눈물  가  득  지  네  (구재기·시인, 1950-) + 촛불의 미학       한 스푼의 바람과  잘 익은 몇 방울의 눈물  꽃은 그것들의 결합일까  분해일까  여백 위로 떨어지는  타다만 그림자는  또 누구의  가슴인가 (나호열·시인, 1953-) + 촛불의 미학  마침내 굳어버린 가슴을 녹이고  마알갛게 흐르고  이제야 곧은 심지를 따라  기도하듯 하늘 오르는 불빛  내 심지는 저렇듯 곧은가  똑바로 서서  제 이성이나 소망이나 사랑이나  온갖 사유들을 일관되게 태워 올리는가  그래서 세상의 빛인가  파르르한 불빛으로도  제 아래 그림자만은 지우지 못하듯이  더러 흔들리며  더욱 낮아지며  깜깜한 세상을 의혹한다 (김영천·시인, 1948-) + 촛불 하나 켜고                   어둠 밝힐  촛불 하나 켜고  욕기慾氣를 눌러 봅니다  내 몸 태우며  주위에 밝음 주는 몸짓에  겸허謙虛를 배워 봅니다  나의  그 무엇으로  당신에게 따뜻함을  줄 수 있을지... (최원정·시인, 1958-) + 한 자루 촛불로  걸어가는 여자를 바라보다가  문득 치마가 입고 싶었습니다  천진스런 아가를 바라보다가  나도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다정스런 연인을 바라보다가  나도 사랑이 하고 싶었습니다  높고 푸른 하늘을 쳐다보다가  나도 하늘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직 하나  하얀 맨몸 사위어  어둠을 밝혀가는  한 자루 촛불로 살아야 함을  알았습니다 (김옥진·시인, 1962-) + 촛불의 독백  자그마한 접시 위에  나는 홀로 서 있어요  불을 밝히고서  내 몸이 불을 토해  주위가 밝아지면  어둠은 내가 무서워  저만치 도망가요  아주 머얼리로  뜨거움에 뜨겁게  내 몸이 녹아 흘러  내 키를 작게작게 만들어 가도  나는 빛의 요정  행복해요  사르고 또 살라  태우던 몸마저 사루어  내 자태 흔적 없어도  나는 찬란한 빛을 품은  영원한 빛의 요정  행복한 빛의 요정  (김옥진·시인, 1962-) + 촛불 눈물이 승화되어  빛을 발하는가     어둠을 딛는 걸음이  어찌 그리도  활발할 수 있는지     순종의 몸짓이  더욱 더 애닯구나     미처 다하지 못한  사연 때문에  흔적마저 어지럽다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촛불 여덟 개       내 동굴은 깊어서  촛불 한 개로는 어둠을 불사르지 못한다  여덟 자루를 한꺼번에 켰는데  타 내려간 길이가 서로 다르다  길고 짧고 짧고 길고  그것은 불꽃도 그렇다  길고 짧고 짧고 길고  그러나 불꽃의 움직임은 모두 같다  오른쪽으로 다 함께 기울고 하지만  눈물이 흘러내리는 방향은 다른데  감탄할 정도로 조용하다  한 놈도 입을 여는 놈이 없다  불은 말보다 밝고 뜨겁다 (이생진·시인, 1929-) + 촛불에게  누가 빌다 간 꺼진 촛불에 불붙이며  저에게는 한 푼도 복을 주지 마시라고 빕니다.  찬란한 환희의 속세만 있어도 행복이오니  제발 복이 있으시거든  손톱만큼이라도 촛불에게,   땅에 내려앉지 못해 하늘을 넘보는  다만 눈물로 포효하는 촛불에게 주소서.   다시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이미 주신 복락을 다 쓰기에도 불행이오니   작은 바람에도 가물거리는  여린 소망을 보소서.  두 개나 뚫린 눈을  캄캄한 촛불에게,  두 개나 열린 귀를  우두커니 앉은 촛불에게,  두 개나 뻗은 손바닥을  아무것도 만질 수 없는 촛불에게,  천 갈래 만 갈래 펄럭이는 마음 거두어  촛불에게 주소서.  당신의 손길로 끄신 이 촛불은  아무리 그러셔도 한 번 토라지지 않고     불붙이면 또 불붙습니다.  다 타버릴 때까지 타야겠다고  다시 심지를 세웁니다. (최영철·시인, 1956-) + 촛불            희미한 방 환히 밝히는 식탁 위  촛불  한 자루 시끄러운 세상 일 불 지피면서 아픔을 참고 자신을 태우는 너는  길 잃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도우미 작은 가슴 가슴 고운 빛 되어 길 여는 작은 빛 커다란 사랑. (강구중·아동문학가) + 뜨거운 눈물  반가워  눈물을 흘린다고 하지만  슬퍼서  눈물을 흘린다고 하지만  정말로 뜨거운 눈물은  타는 촛불뿐이다.  (신현득·아동문학가, 1933-) + 촛불 두 자루 퀘벡 가는 길에 몬트리올  성 요셉 대성당에서  애들 앞으로 촛불 두 자루 밝혔습니다  세상에 소원이 많아  수많은 촛불 펄럭이는 가운데  불꽃 두 개 늘었습니다  우리 내외의 것은?  그만두었습니다  그 두 자루 환하면 됐지요  (심호택·시인, 1947-2010) + 촛불 네가  스스로 몸을 사름은  인간의 맺힌 한(恨)과 원(願)을  구원자에게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한  성스런 의식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러기에  네가 불을 밝히는 곳은  으레  인간과 신(神)이 공존하는  지성소(至聖所)였다..  그러나  요즘엔  네가 있는 곳이면  맞서는 잇속들이 부딪치는  갈등과 반목의 현장이 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러는   너의 불빛이 꺼지고 사라지기를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인류의 평화와 구원을 위해서  어둠을 비추기 위해서 존재하는  너를 꺼뜨릴 수는 없다.  (김기상·시인) + 촛불 공양 부처님 저의 눈을 밝게 해 주셔요, 촛불의 밝음을 저의 가슴 구석구석 안겨 주셔요. 밝아진 눈으로 밝아진 마음으로 밝은 세상을 바라보게 해 주셔요. 그러면 이 세상 여기저기 극락이 되겠지요. (작자 미상) + 촛불           잠시 흔들렸어도 괜찮다 너의 연약하고도 곧은 심지 바람에 곧잘 휘청이거늘 꺾일 줄이야 도무지 모르나니 창 틈으로 스며든 밤공기에도 한 송이 꽃처럼 화들짝 놀라 불현듯 붉게 휘청이다간  이내 온몸으로 슬피 흐느껴 우는  너 순백(純白)의 눈물이여! 잠시 흔들렸어도 괜찮다 흔들렸어도 다시 서면 괜찮다 이 세상 낡고 곰팡내 나는 궤짝 속에서 내 너를 기어이 찾아서 내어 은밀하고 섬세한 나의 손길이 사랑의 불을 댕기었거늘 투명한 나의 손이  너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리라 마지막 불꽃이 내 안에 녹아 비로소 너와 나 하나를 이루기까지 잠시 흔들렸어도 괜찮다 그래 괜찮다! (홍수희·시인) + 촛불 같은 삶  그리 밝지는 않아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태워  세상을 밝히려는  이제 촛불 같은 삶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두 손으로 촛불을 감싸고  내 가슴에 비치는 양심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보다 겸허한 마음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우리는  한순간 타오르는 모닥불보다도  잔잔한 불빛으로  우리 사는 세상을 밝히려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모든 욕망을  불꽃 속에 태워버리고  세상의 한줄기 큰 빛 되기 위하여  하나의 불꽃으로 피어나야 합니다.  (김낙영·시인) + 마음의 촛불    밤이 되면 밤마다 나의 마음속에 켜지는 조그만 촛불이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꺼질 듯 꺼질 듯  나의 외로운 영혼을 받쳐주는 희미한 불빛 그는 나에게 한없이 깊은 묵상을 가져오고, 한없이 먼 나그네길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고요히 하늘가 그 어데 성스런 곳에까지 나를 인도합니다. 아- 밤이 되어야 눈뜨는 가련한 이 내 몸이여 그리고 어둠 속에서 날 인도하는 외로운 촛불이여 드디어 밝은 새벽이 찾아올 때 나는 이 촛불을 끄고 나의 두 눈을 감아야 합니다. 눈부신 아침 태양을- 그리고 복잡한 아침거리를 보지 않기 위하여- 아 여명을 무서워 떠는 새까만 이 내 눈동자여 (함형수·시인, 1914-1946) + 마늘촛불 삼겹살 함께 싸 먹으라고 얇게 저며 내놓은 마늘쪽 가운데에 초록색 심지 같은 것이 뾰족하니 박혀있다 그러니까 이것이 마늘어미의 태 안에 앉아있는 마늘아기와 같은 것인데 내 비유법이 좀 과하다 싶기도 하지만 알을 잔뜩 품은 굴비를 구워 먹을 때처럼  속이 짜안하니 코끝을 울린다 무심코 된장에 찍어 삼겹살 함께 씹어 삼키는데 들이킨 소주 때문인지 그 초록색 심지에 불이 붙었는지 그 무슨 비애 같은 것이 뉘우침 같은 것이 촛불처럼  내 안의 어둠을 살짝 걷어내면서 헛헛한 속을 밝히는 것 같아서 나도 누구에겐가 싹이 막 돋기 시작한 마늘처럼 조금은 매콤하게 조금은 아릿하면서 그리고 조금은 환하게 불 밝히는 사랑이고 싶은 것이다 (복효근·시인, 1962-) ========================================= 경상도 지방의 사투리       갑자기: 곽제, 각제 어짠 일고... 강아지: 가지. 강생이. *요짐 가지 옷이피 끼안꼬 댕기는 꼬라지 눈시구러워 못보겟구마...                      * 내밤무근 가지 발뒤꿈치 문다꼬.... 강짜; 깡짜. 강철이; 깔철이. 꽝철이. 개구리: 깨구리. 엉머구리. *깨구리 나짜개 물부끼. *깨구리가 띨라꼬 주저안찌? 개구리알: 금탕 개미귀신; 뿌꿈새 개암: 깨곰. 개울; 거랑. 걸. 거꾸로; 꺼꿀로. *인나래는 개가 사람 똥처는대 시상이 꺼꿀로 대어 삼이 개똥치대...                *시모기래는 부지깽이 꺼꿀로 꼬바나도 산다 캔는대 주근 남기 와 이래만                   노? 식모기른 나무 주기는 나리가?                *삼기팔괴(三奇八怪}애‘문천도사(文川到沙)’라쿠는개 인는대 그거는 문처내                    는 무른 아래로흐르는대 모래는꺼꾸로올라간다쿠는이바구아이가. 거냐?: 카나? 끼고?  어짤기고?  갈라카나 안갈라카나? 거미: 거무. *산사람 이배 거무줄칠까, 카느댚머 자븡라꺼 이배다 거무주를 치노?            *아침거무는 보글주고 저넉거무는 재수엄따 앙캐산나. 그캐서 주긴기라... 거역하다????; 서적하다. 거울: 민경. 거적; 끄직때기. 꺼지기. 거즈; 가재. 거지: 거렁뱅이. 걸뱅이, 거러지, 걸빙이. 거품: 방구. 건더기: 껀디기. 건덕지 건지다; 껀지다. 검댕: 껌정. 겁먹다; 시껍묵다. 것: 기, 이게..  꺼   *니꺼는 내꺼고 내꺼는 내꺼아이가 그거 아즈꺼지 몰란나?... 것이니라; 기라. 것이다: 끼다. 것인가?; 끼가. 게: 기. 개. *마바라매 게눈 감추듯한다. 게걸; 기걸. 게염: 게암. 개살. 게으름쟁이; 농땡이. 겨; 등개.   *영 피뜽개다.  *목짤븐개 등개섬 넘바다본다카디... 겨릅대; 재랍. 겨우: 제우, 견주다: 전주다. 겹치다; 접치다. 곁에: 저태. 계; 개추. 계란; 달갈. 달구알. 겨란,  계집; 지집, 가시나. 고갱이: 꼬갱이. 고기: 괴기. *중이 괴기마슬 알믄 법당애 파리가 안남느다 안카나... 고누: 꼰 고단하다: 되다 고둥: 고딩이 고려장: 고래장. 고루: 고리. 고름: 고롬 고무래: 밀개. ??; 곰배. 고물; 꼬물. 고삐; 이까리. *소아지는 이까리잡꼬 아패서 몰고가는대, 와 차는 타고가면서 몰고간다쿠노? 고사리: 꼬사리 고삼: 너삼. 고수머리: 꼬슬머리.고시매. 옹나바기와 고시매카는 말도 하지마라라 안캔나? 고슴도치; 고심도치. 고심도치도 지새기는 귀타쿤다고 안카나? 고양이: 꼬내기. *까망고내기믄 어떠코, 힌괴내기믄 어떠노 쥐만 자브면 대지.... 고염: 꾀양. 고와서; 고바서. 가리는 칠수록 고바지고 말은 할수록 꺼치러진다. 고은; 고븐. 고으다; 꼬다. 고이다; 개비다, 고지랑물: 꾸지렁뭉 고추: 꼬치 고추장: 꼬장. *마시깨 할라고 꼬장 마이 풀어드니 뺄가키만 하고 새구럽개 댓내... 고치:꼬치 고치다; 곤치다. 고함: 괌. 곡괭이: 못괭이. 꺼굉이. 곡식: 곡석 곤두박질: 곤두박질. 곤지곤지; 징징. 곧: 인차. 곧이: 고지. 파트로 매주를 순대도 고지든는다. 골무: 골미. 골짜기; 골째기. 사니 노파야 골째기가 깁찌, 쪼매는 여핀내 심중이 얼매나 깁갠노? 곰보: 꼼보 곰팡이: 곰팽이 곱사: 꼽새. *성한아 자바 꼽사 곤치는 꼬리재... 공기: 살구 . 살구받기. 살구돌. 공기방울; 방구. 공연히: 백재로 곶감; 꽂감. 꼭감. 과자: 까자. 괜찮다; 괘얀타, 개안타. 괴다; 고다. 미태돌 빼다가 우애고코, 우애돌 빼다가 아래돌 고키다. 교만; 조만. 구경: 귀경. 구기자: 고고추 구더기: 쉬. 구데기.구디기. *구디기 무서버 장못담글까? 구덩이: 구딩이. 구다. *수껑구다 드가다 나완나 어애 그래 깜노? 구두쇠: 꾸두쇠 구렁이: 구리. 구랭이, 구렛나루: 구리쇠미. *뽈때기 마즐 때는 구리쇠미도 부조한다. 구멍: 구녕. 구무, 궁. *쥐궁게도 뱉들날 잇다카디, 지거들도 인자 팔자핀네.....            *코궁개 바람너는다는 소릴 들찌만  배꾸무 내노코 바람너는 꼴은 첨보내...            *돌절구도 미꾸머리 빠질때가 이따꼬...            *모구녕이 포도청이라꼬 무꼬 살기 참 바브다....... 구물거리다; 꾸물거리다. 꾸무대다. 구석: 구식. 구수하다; 구시하다, 구워라: 꾸버라.   궈먹다; 꾸버묵다. *번개뿌래 콩꾸버먹기다. 구유: 귀이. 구정물: 꾸정물. *미꾸라지 한바리가 온도랑무래 꾸정물 일밧는다고. 국물; 궁물. 꿍물.  *껀디기 무근노믄 안걸리고 궁물 무근놈만 걸린다꼬.... 국수: 국시. 굳은살; 구두살. 꾸둑살. 굴둑: 꿀뚝. *불안땐 꿀뚜개 연개날까 쿠능거 누가 모르나? 굽다; 꿉따. 궁시렁거리다; 군지렁거리다. 귀신: 구신. *구신 듣는대 떡말 모탄다카디 어째 구신가치 차자완노?            *구신이 고칼 노르시재... 귀이개; 귀쑤시개. 귀하다: 기럽다, 그것; 고거. *고거 묵꼬는 간에 기빌또 아하개따. 그놈의 아이; 그느마. 그동안(짧은사이); 그든사. 그따위: 그따우. 그러면: 그라뭐 그러모우다; 끄러모우다. 그렇게; 그, 구, 그렇게 말하다: 구카다, 니가 구켔지? 누가 구켔겠노? 그렇게하다; 그카다. 그렇게 말하다.; 구카다. 그렇게하지; 그라지. 그렇다; 아이가.  *삼기팔괴(三奇八怪}애불국영지라쿠는거는 영지모새불구사는비치는대서까                    타븐 비치지안는다는 건대 거기서 무영타비라는말이안생갠나. 그렇지; 그치. 그루터기: 끌띠기. 그리마: 시렁거무 그림자: 거렁지 그믐: 그뭄 그사이: 그든사, 그아이: 가, *가가 조맨타고 깔보지마라, 자근꼬치가 더맵다는 이바구 모드러밧나? 그을음: 끄스럼, 끄시럼. 긁다; 끌다. *자다가 나머 다리 끄른다 쿠디마는 야가 꼬라지내.....  금줄: 깅기. 깅구 기관차: 불통, 기둥: 지동. ???; 기라. 기름: 지름 기에; 사서, 캐사서, 길래. 기역자: 기억자. *낫노코 기억자도 모른다카디 그망크미나 눈까매긴줄 몰랏다. 기와; roh아. 기장: 지정. 기저귀기; 기지기. *지지배가 시집또 가기저내 기지기부터 장만는 꼬리내.... 기침; 지침. *허깨비 지침이다. 길: 질. *.뒤꼴 니거 아지매 지배 돌잔채 어더무그러 가는 질이다.         *열질물소근 아라도 한질 사람소근 모른다 안캔나? 길마: 질매 길쌈; 질쌈.  * 삼배질삼 모탄다고, 호랑시모 애린실랑 날가라하내. 김: 짐 김치: 짐치 깁다: 집다. * 다떠러진 오시라도 지버이브믄 조채.... 깊이: 짚이 까끄러기: 까끄래기. 까마귀: 까마구.  *빙자연 까마구 빈 치깐 드려 보드시 무얼 그래 차자대능고?                  *까막깐치.... 까마중: 개멀구. 까막눈이; 까망눈.눈까매기*식자우환이라 안캔나 어쩌면 내 까망눈도 잘댄는가시플 때도 이찌...                   *글 아는 호로놈보다 눈까매기 소자가 낫다 안카나... 까무러치다: 자무술리다, 까뭉개다; 까문테다. 까발리다; 까발키다. 까지: 꺼정. 까치: 깐챙이. *아침깐챙이가우믄 귀한 소노고 지넉가마구울믄 사람중는다캐째... 깍지: 깍데기. 깔때기; 수대. ????: 깜잡잡하다. 깜부기; 깜배기. 깨금: 깨곰 깨우다: 까배다 깻묵: 깨곰 꺾다: 뿌직다 껍데기. 껍질: 껍떼기. 껍띠기. *누내 맹태 껍띠기 낀나? 께름칙하다; 기꿈하다, 꼬락서니: 꼬라지 꼬리: 꼬랑대기. 꼬랑지. 꽁대기. *호미꼬재서 해마지한다캐서 호맹잉가 십디그개아이고 범                                   꼬랑대기란 뜨시더구만                                 *아무리 그래사대도 엄는 꼬랑대기 흔들까? 꼬집다: 째비다. 꼬챙이: 꼬장가리. 꼬쟁이. 꼬투리: 꼰타리 꼴: 꼬라지 꼴찌; 꼬바랭이. 꼽추: 꼽새. 꼿꼿이서다: 꼿발. 꽂다: 꼽다 꽂아두다: 고바두다. 꽹과리; 깽깨미. 꾸짖다; 뭐라칸다. 꿩: 꽁,  *산이 내산이가 꽁이 내꽁이가 포수가 내아들노미가?  *꽁잠는개 매라 앙캔나...          *봄꽁 지우르매 놀란다 앙쿠나... 꿰다; 뀌다. *구스리 서마리라도 뀌야 보배인기라. 꿰메다; 꾸매다. 끄나풀: 끄내끼. 끓이다; 끌리다. 끝머리: 그트머리. 끼니; 끼. 끼다: 찌다. 나귀; 나구. *아부지는 나구타고 장개가고 카는대 아 애비가 장가가면 대나? 나누다: 노누다. 농구다. 나다니다; 나댕기다. *야뱌매는 나댕기지모타개할때(通禁) 골모글가던수꾸니 순사잔태 뿌자피꺼던 순사가‘당신누구요?’ 카니, 난‘빨래다’ 쿠먼서 담빼라개파를버리고 서드란다. 나무라다: 나무래다. *서툰 무당이 장구나무랜다고, 지 잘모슨 모리고 나무 탓만 하노?          *말무드미라쿠는 큰 무드미 인는대 장사가타던 마리주거무채따고도하고 사냐을 질기는인구늘 나무래는 말소리가 들려따는 두가지 이바구가 전해오는대 어는개 만는지 모르재.... 나무에; 남개. *고목남개 매롱부터인는 꼬라지다. *모댄남개 열매만 마니 달린다카드시... 나비; 나부. 낙서: 호작질. 난장이: 난쟁이. 낙지: 낙찌. *세발 낙찌라캐사터니 다리가 여덜갠대 무가 잘못 댓째... 날마다: 맨날. 남기다: 남구다.  **사라믄 주그믄 이르믈 남구코, 버믄 주그믄 껍찌를 남구는기라. 남자아이:머슴애.*손주 노미 나무 호바개 말뚝 바가따 쿠재, 머스마들 다그라믄서 크는기라. 남의; 넘. 납작해지다: 납뜰게지다, 낳다: 노타.  *하늘을 마야 아를 노치 그래가야 팽생 아 몬노는다.             *배가 압산마한거 보니 아 놀 다리 다 대 가능가 보더라...             *처자가 아를 나도 할마리 이따. ???; 내구럽다. 내내: 내두로. 내놓았다. 내나따. 내리치다; 때기장치다. 내버려두다: 냅두다. 내뿌리다. 내삐리다. *재비지매 모개이누날까지 다무그니 머 내삐는 거 하나인나? 냄새; 내미. 너: 니  *서당가지 삼여내 풍얼한다꼬 안캣나? 니도 인재 잘할 때 대따. 너의: 니거. 니검마... *황새야 덕새야 니거지배 불낫따, 니디애 칼간다. 넉장거리; 늑장거리. *빚바드러 완나 와 나매 방애 늑장거리하고 드러누언노? 냉이: 나생이. 넓다; 널따. 넘어지다; 구부러지다. 넷; 너이. 노래기: 노내각시 노루: 놀갱이. *놀갱이 때린 몽딩이 삼년 울거멍는카 캐도 분숙 잇찌... 노을; 뿔새. 아침뿔새는 저녁비고 저녁뿔새는 가뭄든다... 녹두: 녹띠. 녹이다; 노키다. 놓아두다; 놔두다, 놓치다: 띄어버렸다. 누구냐: 누고. 누구십니까?; 눈기요? 누긋하다: 누끼하다 누더기; 두디기, 누리장나무 누리대 누에: 누베 누워라: 누버라 누이: 누부 눈곱: 눈초재기. 눈꼽재기. 눈꼽째기. *그눔 인시미 얼매나 수아칸지 눈꼽째가망큼 돌라캐도             안주는거 아이가? 눈감다; 눈감따. *눈깜고 아웅해도 분수가 이찌... 눈깜작이: 눈깜재기.  * 돌쟁이 눈깜재기부터 배운다.... 눈부시다: 눈새구럽다. 눈시구럽다 눈속임; 호일로.  눈썰미: 눈살미. *난 눈살미가 통엄서서 함분본 절믄니는 몰바는기라... *누웠다: 누버따. *가는 한분 등대고누버따카면 언사 잠들고마는기라... 뉘: 미 느긋하다; 축축이.  *니는 성지리 가랑이패 불이재 와 축추기 시월대고 몬기다리노? 느냐: _노  나? 니까?: 교? 능기요?. 가능기요? 오는기요? 밥묵었는기요? 할밴교? 니다: 니더. *지는 오늘 성내장애 가따완니더.. 다듬이:따듬이. 다리: 다라지. 다리미: 달비. 다부지다: 다구지다.  *가가 보기는 어설피생겨도 얼매나 다구진지 니는 진작 몰라째.. 다슬기:사고딩이.*사고디이주스러가따가 무래빠저주거따카니 고디가 사라믈 자바무근꼬리재. 다식: 단석 다오: 두가, 도, 달걀: 달알. 달맞이; 달보다. 달아나다: 달러가다. 달팽이; 하마. 하마고디.  * 닭: 달.  *암다리울머 지바니 망한다 쿠는거슨 요새는 택도 엄는 소리재? 단단하다: 딴딴한 따에 물 개빈다 캐뜨시 한푼이라도 아끼서라. 단단히: 단딩이. 달래: 달랭이. 달래다; 달개다. *아무리 달개도 달똥가튼 눈물을 허리며 우는거 아이가... 달러: 딸라 달리기: 쪼치바리 달무리: 달집 달팽이: 하마, 하마고딩이. 닭; 달.  *달쪼떤 개 지붕처다본다쿠디 그래가 어짜노? 닳이다. 딸리다. 따리다. 담배피우다; 담배푸다. 담벼락; 담빼락. 이우찝 담빼라근 노파야 조코, 술찝 아지매는 고아야 조치.. 당기다; 땡기다. 당나귀: 당나구.나구. 선배가 나구등더리애 짐을 싯꼬 재를 넘다가, 불상해 짐을 지고 나귀등          더리에 타고가란다. 대다; 사서. 대단히: 대기, 억시기 대장간: 팬수간. 대장장이: 팬수(편수)쟁이 대통: 대꼬바리 더럽다: 추접다. 더위: 더비. * 덕석: 삼정. 덩어리: 듬비기. 등거리. 덩이: 등거리.덩거리. 데다: 디다, 도깨비: 톳재비 도라지: 돌개. 도랑: 또랑. 거랑. 걸. 성내서 뽈때기 마꼬, 서천 거랑애서 눈볼신다 앙캣나? 도령님; 대리미. 도룡뇽: 물용 도리기: 회채. 회치. 도마: 도매. *도매 위애 오른 괴기다. 도막: 돔배기. 도토리: 꿀빰. 독; 도옥. 독사: 독새. 돋보기: 도빼기. 돗뵈기. 돌나물: 돌냉이 돌멩이: 돌삥이. 돗자리; 최시기. 최석자리. 동쩌귀: 돌짜구. 되다: 대다. *어버다 난장 마춘다쿠디 미안캐 댄내...            *저래가 절하는거슨 부채위해카나 지잘대라고 그카지... 된장; 댄장. 댄장애 푸꼬치 바키듯... 됩니까? 대능기요? 사까스 귀경완는대 어대로가면 대능기요? 돼지처럼; 된지가치. 두꺼비: 뚜끼비. *느깨 시지블 가디 떡뚜끼비 가튼 아드를 주리 새시나 안난나? 두껍다: 뚜껍다. 두더지: 뚜지기. 뛰지기. 두드러기: 두드레기. 두들기다; 뚜들기다. 두레박: 다레박. 두루마기; 두루막. 두루매기. 둘매기. 두릅: 둘굽. 두부: 조피.*내이븐 어이댄는지 조피보담 비지가, 무시보담 시래기가 콩보다 콩이파리가 더              땡기니 어이댕기고? *안대는눔은 다아래도 삐 생긴다 안캔나... 둑; 뚝. 뒤웅박: 듬부래기. *여핀내 팔짜는 듬부래기 팔자라 안캔나? 시집만 잘가면 그만이재... 뒤주: 두지 뒤집다: 디배다. 뒤집히다: 디배지다. 들어가다; 드가다. 디가다. *내칼도 나무 칼지배 드가뿌면 내맘대로 안대는기라.... 들여다보다: 들따보다 등: 등더리. *니는 발등더리에 떠러진 부린대도 강건너 불귀경하듯 하노?            *민는 도끼애 발등더리 지키다쿠는 걸 니는와 모르노? 등겨: 등개. *잇마래 등개 석섬 이스문 처가사리 하지말랫다. 따뜻하다; 뜨시다. 딱지: 따까리 딸기: 딸. 딸꾹질; 깔딱질. 땀띠: 땀때기 땅강아지: 논두렁아제비 땅벌: 구무벌 때문에; 땜새, 떨어지다; 널찌다. *삼기팔괴애 ‘금장낙안’이라 쿠는건 나라가던 올기가 금장애기소애 떠러                    진다는 이바구아이가. 떨이: 떠름이 떨치다: 떠덩구치다. 떼다; 띠다. *혹 디러가따가 혹부처온다는 이바구 몬드런나? 똥냄새: 똥꿀내. 똬리: 따뱅이 뚜껑: 뚜벵이. 따까리. 뚜꺼리. 뜨겁다: 띠겁다 뜸부기: 뜸달 뜻밖에(갑자기): 각중에. 각제. 마냥; 애양. 매냥. 마렵다: 누럽다. 마름: 말밤.  *삼기팔괴(三奇八怪}애‘안압부평’이라쿠는거는아납찌애인는말바믄뿌리가엄따쿠                 느거아이가. 마리: 바리, *빈대 한바리 자브려꼬 초가시칸 태운다. 마을; 마실. *을모년 큰무래 온 마시리 다 떠내려가뿌리고 저 당나무 하나만 나맛따 아이가             참말로 구시니 이긴 인는가배.... 마음; 맴. *객지애 자슥놈 보내노니 웅굴가애 아 새워노은 거가치 매미 안노인다. 마흔; 마한. 마은. 막내; 망내. *우리마실칠공주내는 아들노라꼬따라이르믈,누미, 노미, 말자, 말순, 꼭지, 딸그마이. 까지짓고나서 망내는 뚜끼비가튼 머스마안난나... 맑다; 말다. * 운무리 말가야 아래무리 말지.... 만들다: 맹글다. 맨들다. 많이: 만판. 억시기. 마이. *금척이란 고새는 그므로 만든 자(金尺)를 무더다쿠는 고신대, 주근사람도 살린다는 소무니 대구개까지 알려저 타믈내사서 무던는대 어디무든지 모르개 무더             믈 마이 맹그러다 안쿠나.... 말뚝: 말띠기. *마누라가 이쁘먼 처가찝 소말띠기 보고도 절한다 앙캔나? 말랭이: 오가리. 말아라: 마라. 말처럼: 말마따나. 말하다: 구카다. 카다. 쭈끼다.         *숭본이바구구카지마라캐노고,니가먼저구캣지내가먼저 구캣나?         *얼매저내는밀가리음식무그믄머리조아진다캐사트니,요지매는사를무그면조타꼬안하나, 지따낸똑독다쿠는사라드리이래해갈리개주깨사도 갠차는건가? 맏이; 마지. 매구: 미구 매미: 매롱. * 고목남개 참매롱 쇠리 나는걸 보니 여름이 온가배... 매스껍다; 미시껍다. 매우: 억시기, 대기, 디기. 매운; 매븐, 매일: 맨날 머루: 멀구. 머리채; 까댕이. 머리카락: 멀거딩이 머위: 머구 먹다: 묵다. *눈치가 빠르면 저래가서도 저깔어더뭉는다 안캔나?             먹이다; 매기다, 미기다, 멍게: 울뭉치 멍석: 덕식이 메기: 미기 메뚜기: 메때기. 매때기도 오유월 한처리라 캣는대 요짐 장사 잘대나?        *병자년 궁녀내 콩지른갱죽 열아옵그럭무꼬 디노내 새보러가따가 매때기 디다리애          채어주근 불상한 영감아... 멍석; 덕석. 덕시기. 메밀: 메물 며느리: 메느리. 8지바니 망할라카머 만매느리가 쇠미난다카디 어짠 꼬리고? 멱감다: 못감다, 면경: 색경. 민경 멸치: 매래치. 멸치젓; 매쩟. 명주; 맹주. *삼기팔괴(三奇八怪}애남산부석이라쿠는거는 남사내 인는 동개진 돌바우가 떠               이따는건대 방구사이로 맹주시리 빠지더란다. 명태: 맹태 모: 모타리. 모가치; 모가지. 모과: 모개 모기: 모갱이 모깃불: 모갱이불 모두: 마카, 마카 빙시만 있더라.. 모래주머니: 똥집. 모양새: 꼬라지 목욕; 모욕. 몫: 모가지. 못되다; 몬대다. *몬대믄  조상탓 잘대믄 지타시라앙쿠나... 못할: 모탈. *올라가지 모탈 남근 치다보지도 마라라안캔나? 아애 맘 저버라... 못하다; 몬하다. *중시는 잘하믄 수리 석자니고, 몬하믄 빼미 석대라 앙캣나? 몽둥이: 몽딩이. * 도둑노미 주이내깨 들키자 마루미태 수머거든 그래서 쥔이몽딩이로 수서대니가 도두기 ‘여보사람눈다치개꾸만...’ 하드래.   무덤: 무듬.  *일다하고 주근 무듬 업카디, 팽새애 일노코 어애 사노?  무: 무시. *누는 인삼무꼬 누구는 무시 뭉나 시상 참 고르잔타... 무거운; 무거분. *경주는 떠가는 배형구긴대 봉화에 아를(鳳凰臺)너무마니 맹그러노니 무거버서 가라안자 뿌래따 안쿠나←‘신라의멸망’ 무덕시브리하게..... 무릅맞춤: 무릅막음. 무말랭이: 무오가리 무명: 미영. 무서워서; 무서버서. 무엇 때문에; 머땜새. 무엇이고: 뭐,  뭐꼬? 무엇이라고?; 머라꼬? 묶어라; 무까라 .*다큰 처자가 철이 덜드러도 분수가잇찌, 우도슬 이블줄모르고 허리애 무까댕기노? *아무리바빠도 바늘허리매어 몬슨다. 문고리; 문꼬리. 문둥이: 문딩이. 문딩이 쾨궁게 마느를 빼묵지 잿다럽게 거기에 이블대노? 문어; 무내. 물결: 물랑개비 물구나무서기: 물꼰지서기 물꼬: 물끼. 물끼야 어정청 허러노코, 쥔내야 양바는 어디간노? 물수제비뜨다: 물반대치기. 물어주다. 무라주다. 물장구질: 담방구질 물총새: 물새 뭉텅이: 뭉티기. 미우면; 미브면. *매느리가 미브면 발뒤굼치가 달알갓다꼬 나무란다 앙쿠나...                 *조은아 매대리고 미부나 떡준다 카디 그 뜨시 머꼬? 밉살스럽다; 미깔스럽다. 매깔스럽다. 바가지: 바가치. 지배서 새는 바가치 드리라꼬 안새나? 바꾸어라: 바까라, 바귀다; 바끼다. *니 이버내 직자이 바끼따카재 새직자애 가서는 건내터애서 잘사던이바구                   는 안하는기 조은기다 아나? 바느질고리: 바늘당시기, 바위: 방구. 바우. *배르빡 가튼 방구를 오르던 사나가 널저 다친기라, 무심 전나를 처노니                     돌고지 비행기가 와 싣고 병워내 갓다 카더라. 바지: 주.  * 말마한 처자가 떠러진 바지 입고 배꾸무도 모가리는걸 보니 참 불상하대... 바퀴: 바쿠. 동태. 동태바꾸. 바람개비: 팔랑개비. 박; 꼬두박. 박새: 솔새 박쥐: 뽈쥐 박히다; 배키다. 반두: 반대. ???; 반팅이.  * 그 반티이 아내 인는 떡 하나만 주면 안자바묵찌... 발가벗다: 뺄가벗다. 발각; 다든키다.벌검물고        앙캐산나? 발자국; 발자죽.: *서산대사말사미‘눈내린들파늘거를때는허튼거름거찌마라라, 오늘이발자주기뒤애오는사라머길자비가된다’ 꼬 안캔나.... 밝다; 발다. 밤: 빰 밥그릇뚜껑; 밥뚜뱅이. *외놈드리 밥뚜뱅이하고 재가치가지 다 빼아사가사서 어디 나믄거라   고 뭐 이선나?  나쟁애는 처자 자바다 기름짠다 안쿠나 그래서 안대도 갤혼시키기도 해찌.. 밥보자기; 바쁘재, 방귀: 방구. *놀개이새끼 지방구소리애 놀랜다앙캔나... 방동사니: 방동생이 방망이: 방맹이. 방마치. 방아; 바아. * 부지런한 물바아는 얼틈지기도 엄따. 방아깐; 방깐;  *참새가 방간을 그냥 지나치지 안는다. 방아깨비: 황글래비(때때). 홍글래. 방아찍다; 바찍다. 방정맞다; 방정바따. 방패연: 구무연. 배; 배때기. 배경: 찜.  *걔는밸난 지검마와 심신 지히 찜 믿고 까불고 댕기는거 아이가? 배꼽: 배꿈. 배꽁. 배꿍게 피도 안 마른 놈이 내 담배 피다니 ..... 배추: 뱁차. 오늘 자서 산거는 다랄 서른개 천이배건, 뱁차 한패기에 처넌, 고대 한소내 이처넌, 가재미 시바리애 천이배거너치다.... 버들강아지: 오요강아지 버들피리: 호때기, 버리다; 뿌리다. 버리다: 배리다. 뿌다. 삐다. *졸기뿌면 될거 가지고...  번; 분. *열분 찌거 안너머가는 나무 업따 안캔나? 번데기: 뻐디기. 뻔. *그건 뻔디기 아패서 주름잡꼬, 도사아패서 요롱흔드는 꼬리재... 벌레: 버러지. 벌기. 벌써; 하머. 하먼. 법고; 법꾸. 벗기다: 빼끼다. *오래마내 목구녀애 때빼기개 댄내... 벙어리: 버버리 베개 비개 베다: 비다 벼락: 배락. *마른 하늘애 날배락 마자주글 눔이다.            *모진놈 여패이따가 배락만는다Zkel 그꼬라지내... 벼룩: 배래기. *배래기 간을 빼무그면 무것지 고걸 어이 새비가노?               *배래기도 나짜기 이꼬 빈대도 쾨등더리가 이따앙캔나? 벼슬; 배실. *능참봉도 배실이라꼬.... 벽: 배르빡. 빼르빼기. *발엄는 마리 철리가고, 배르빼기에도 귀가 잇다카는 거슨 입조심하                        라쿠는 것 아이가. 변소; 칙간. 사돈내 집과 칙간은 멀수록 조타 앙캔나? 별꽃: 노랑갱이. 별나다; 밸나다. 별로; 밸로. *손자노믄 지배서는 공부안한다 시픈대 지거반애서 반장한다쿠니 머리는 갠차는가 바. 별의별: 빌래빌. *오늘 자애 가서 사돈만나 비리빌 꺼 다 사무것다. 볏가리; 뱃가리. 병; 빙, 빙신,  *빙시니 유깝떨고 잇따 안카나? *몬난매느리 재사날 빙난다앙캣나... 병;비이. *청치매미태다 술비이달고 오동나무수프로 임차자가 간다디...           8 병마개: 빙마개 병싱: 빙신, 빙시이 육갑떤다고... 병아리: 삐가리, * 이 삐가리 쫑지만 빼가무 안되니더, 모두거리로 사가소. 병풍: 팽풍, 보늬: 보내 보리수염: 보리까끄래기, 보시오: 보소. 보이다: 비다. *허깨비와 토재비는 지거 사촌이나 되능가배, 살믈 욕비고 댕기니.... 보충; 볼치기. 볶다: 뽂다 복숭아: 복성 복어: 뽁징이. 본받다; 뽄받다. *미국사람드른 우리마를뽄바다 다라를애그라카고, 모기를모스기또라쿠재... 볼: 뽈. 뽈때기. *우느아 뽈때기 때리고, 불난지배 부채질아는 놈 이따 안캔나... 부각: 튀각 부러: 부로 부러워하다: 불버하다. 부릅뜨다. 불시다. 볼시다. 부리망: 홍오리 부러지다: 뿌직어지다 부서지다: 뿌사지다 부수다: 뿌사 부스러기: 뿌시래기 부엉이: 부행이 부엌: 정지.  *안방가믄 시어머이 마리 마꼬, 정재가면 매느리 마리 만는기라. 부추: 정구지. 부추기다; 추구리다. 부터: 버터. *범도 안보고 똥 버터 산다카디 어째 그리 겁내노? 북더기: 뿍디기 분하다: 도분나다, 불리다: 뿔구다, 붙들다: 뿥뜰다. 붙이다; 부치다. 붙잡다: 뿌짭다.  부짜피다. *외정때 외놈드리 술몬단그개 해사서 몰래 숨카나따가 부짜피믄...   *오는 사람 막지말고, 가는 사람 뿌짭지 마라 앙캔나? 비: 비짜리. 비자루. 비녀: 비네 비누: 사분 비둘기: 삐들기. *삐들기 우는소리-‘지집죽꺼 자석죽꼬 동지섯딸 서답빨래 누가다할꼬?’칸다 비루: 비리. *비리무근 가아지 터래기 갓따. 비비다: 부비다 비비추: 배뱁추. 비키다; 비끼다. 빛; 삧. 빠르다: 사답다, 빨갛다: 뺄가타, 뼈: 빼. *재수엄는 양반 달아래도 빼생긴다쿠디 그 꼬라지재... ???: 빼닮다. 빼앗기다: 뺏끼다. 빼치다; 빼우다. 뺨: 뽈대기.  *성내서 뽈대기마꼬 서천내서 눈알 불시는 겨기재... 뼈: 빼가지. 빼가치 뼈다귀: 빼다구 뽑다: 빼다, 뽀피다. *니거아재는 보국댄가 먼가에 뽀패서 부캐도서 석탄캐다 안주거뿌랜나... 뿌러지다; 뻐지다. 뿌리: 뿌러지. 뿔기. 사금파리; 새굼파리. 사나이: 사나,  사나가 뭐 울기는....  사나답게 사람(셈); 키, 시(3)키.. *니(4)키가 모왔더라...                       *맹모삼천이라쿠는건 압몬보는 어미가 삼처키나 이따 그마리재.... 사례: 새알 사립문: 삽짝 사마귀: 범아제비. 범황글래비 사마귀: 사마구 사발: 사바리. * 사바리가 깨지믄 쪼가리가 나고, 삼팔선 깨지면 한등거리가 대능기라... 사위: 사오.사우. * 사우 덕부내 비잉기타고 대국 귀경 한분 잘햇다.                 *사오는 뱅년 손이라 안캔나?                 *경노당가믄 아들 자랑하는 사람보다 사우자라하는 사라미 마는기라. 사이침; 참. 산마루: 산말랭이. 살강: 살간. *살간 미태 수까를 줏지 그걸 가저가면 대나? 살짝; 사짜기. 삼씨: 열씨 삼우제: 삼오제 삽: 수군포 삽주: 산추 쌍살벌: 땡피. 새벽: 새북. *새북부터 이러나 새빠지개 일하고 배락만 마자스니 .... 새우: 새비. *고래사우매 새비등더리 터진다꼬... 생인손: 생이손 서낭: 당수나무 서캐: 새가리. 새갱이. 서러ㅜ어서; 설버서. 석류: 석로 석유: 왜지름 섬돌: 신방돌 성냥: 당황. 세게: 시게.  *까부러사는 고리 좁살 시개도 못동개갯다. 세다; 시다. 세로: 내리다지. 세차다; 살시다. 시다. *이번 큰무래 압거랑무리 얼매나 살시개 내려가는지 검나드라.. 셋; 시. *시살쩍 버릇 여든까지 간다. 소금: 소곰. *부뚜마개 소곰도 지버너야 짜다고 안캔나? 소나기: 소내기. 소나무; 소남.  *삼기팔괴(三奇八怪}애‘백률송송(百栗松松)’ 이라쿠는거는뱅율삿남근배어도                     배어도다시난다쿠는건기라... 소여물: 소물. 소쿠리: 소구리 솔방울: 솔방구리. 솔빵구 솜: 소개. 소캐. 송사리: 눈챙이 송사리: 눈챙이. 송아지; 소아지. *어근난 소아지 궁디애 뿔난다. *지거지배 금사지 이다고 수깨 +자랑하듯 해사는다. 송이; 쇵이. 솥뚜껑; 소두뱅이, *소두뱅이로 자라잡드시... 쇠스랑: 소랭이 수렁: 시북 수많이: 억수로. 수발: 발바지. +니검마는 빙든 할배 수발하느라 고생 만채. 수수: 수끼 수수깡: 수끼때비. *수끼때비 움마개 꺼찌기 달고 사라도 맘만 팬하믄 제이리지... 수수께끼; 수재재깐. 수염: 쇠미. *쇠미가 석자라도 무거야 양반이재. 수작; 사바사바. 수제비: 수지비 수탉: 장달 숟가락: 수까락. 깔. *첫 수깔에 배안부르다 안캤나. 꾸주이만 하믄 성공할끼다. 술병: 술빙이. 숨겨두다. 숨가노타. *울너머담너머 임숭가노코 호박이파리 나풀나풀 날소기내.... 숨바꼭질: 뿌꿈놀이 숭늉: 숭녕. *보리바태서 숭녕 찬는다카드시 그 그판 성질 고처야재.... 숯: 수껑. 스물; nanf. 슬며시; 시부지기, 습니다: 니더, ????시금털털하다... 시난고난: 시랑고랑 시다; 새구럽다, 시렁: 실건. 시루: 시리 시부렁거리다: 시부리다. 시오; 소. 시장: 자.. 시집보내다; 치우다. 실컷: 실컨. *시장이 반차니라 안캔나? 차는 엄서도 실컨무거라. 심부름: 심바람. 십시오: 소. 십어먹다; 시퍼묵다. 싱거운사람; 싱겁쟁이. 싶다: 잡다 싸라기: 사래기 싸움; 사움, 삼,  *이래는 배도리, 묵는대는 감도리, 사우매는 악도리다. 쌀; 살, 쌍둥이: 쌍딩이. 쌓는다; 동갠다. *까부러사는 거슬 보니 좁살시개도 몬동개개따. 쓰다; 십다; *말마는 지븐 장마또 십다 안캔나? 쓸다: 실다. 십어먿다; 시퍼묵다. 말아라: 마.다; 십다, 싸라기; 사래기. 씨아: 쇄기. 아가위: 아가배 아기: 알라. 얼라. 언나. *얼라 마이 노치마라 칼 때는 언제고, 인자는 마이 나라카이 어짠일                         고? 아궁이: 부직. *드는 부지캐 생나무나 마른나무나....*부지캐 불안때믄 꿀뚜개연개날 택인나? 아귀: 물꽁:  * 물꽁이라 카는 거슨 내삐는 거 하나 업시 다묵는대다 마또 좋타. 아까: 아까제. 아까움: 아까분. 아니; 안. 앤. *법도 지새끼는 안자바뭉는다고... 아니꼽다; 애꼽다. 아인게 아니다; 아이가.(이다) *가들 지븐 지거마시래서 소문난 부자아닌가배 그래노니 지                  돈시고시픈대로 시고댕기는거 아이가. 가 뽄보지마래. 아랑: 아래기. 아무말; 암말. 아버지: 아부지 아저씨: 아제 아주: 억시기. 대기. 디기. 아주많다무지하다; 아주머니: 아지매. 아주버님; 아주범. 아주밤. 아주세가; 빡시다. 아직; 이내, 아침밥; 아칙.  *아치기느저손주노미지가글해능기라,                선상니미: “니와지각핸노?‘                손   주 : ‘느저심더....’                선상니미: 와느전노안쿠나...                손    주: 지각해심더...                선상니미: 허허....   아침에; 아치개. 아지개. 아파트; 아빠또. *얘날애는 사초니 논사면 배아프다 캔느대 요새는 사초니 아빠또 사면 배                   아프다쿠재.. 안:앤. 안경: 앵경. *지누내 앤경이라 안카나? 앙가발; 앙개발. 앙감질: 깨끔발.깨곰발. ] 애먹다; 애묵다. 야바위: 야바우. 야살스럽다; 얍삽하다. 야위다; 얘비다. 야코죽다: 야꾸죽다. 얇다; 얄따. 어느곳: 어디메, 어디메 사노... 어둡다; 어덥다. 어디다; 어따, 어디있는나?; 어딘노?  *유기오는부칸공산구니남침해따쿠는거는왼천하가다알고인는대,요새               누는북침해따캐사는대그런미친소리미들사람어딘노? 어레미: 얼게미. 어렴풋하다. 얼푸시. 어렴풋하다. 어렵다; 애럽다. 어리: 가리. 꽈리. 어리광부리다; 엉정하다. 어머니: 어매, 어마시, 엄매. 어정거리다; 얼렁거리다. 어찌: 우예,  우짠일고?  우짤끼고? 어찌하거나; 우때끼나. 어찌하느냐: 우짜노. 어찌하려느냐; 우얄라카노? 우짤라카노?. 어찌할고: 우짜코. 어치; 내치. *마실애: 송촌할배자애가따오능교?            *할  배; 칼치다.            *마실애: 귀무거따쿠디엉뚱소리다하시내요...            *할  배: 천언내치다..... 어혈; 이얼. *이얼든 토재비 거랑물마시드시 어애그리 무를 펑개대노? 언덕: 엉뚝 얼레: 연자새 얼레미: 얼기미. 얼레빗: 얼개빗. 얼리다; 얼구다. *물맹태 말류믄 부거대고, 얼구믄 동태대는거 아이가... 얼추무던하다; 얼신무던하다. 얽다; 얼다. *갈 콩타작마당애 너머전나 얼기는 그리 얼건노? 엄나무: 엉개나무. 엉개. 엄벙덤벙; 엄펑덤펑. 없느냐; 엄나. 없는; 엄는. *네다리 멀쩡한 말도 천리가기 애러운대, 발엄는 말이 어애 철리간다쿠노?             *재수엄는 누믄 자빠저도 코등더리 깬다 앙캔나? 없다: 엄다. 나물날 골은 입새부터 안다쿠드시 사가지 엄는 노무 암나리 뻔하다. 엉큼하다; 엉꿈하다. 여덟; 여덜. 여드름: 이드름 여물: 소물 여수로: 밀개. 여우: 예수 여치: 앵치 연거푸; 연거푸. 연기: 연개 염소: 얌생이 엿가락: 엿가치 엿기름: 엿질굼, 엿장수: 엿쟁이. * 엿쟁이 마음대로라더니 주고 안구는 지 매미지머? 오가피: 오갈피. 오고가기대문에; 오가사서. 오달지다; 오본순타. 오디: 아두 오리: 올기.*지거들이 달 자바무꼬 올기발 내민다 카느것 그거 아이가. *낙동강 오기아리다. 오소리: 오수리 오이: 물외. 오입; 외입; 외입쟁이 헝갓스고 똥누기 얘사라캐도, 그라믄 안대지... 오줌: 오짐. *오짐누는 새애 심리간다 쿠는거슨 한눈 팔면 디처진다는 마리다.            *야야, 불잔난하믄오짐산다쿠는거모르나?니오좀사가챙이시고소곰어드러가따가앞찝아지매잔태주개로 뺌마즌거안생각나나?   오지랖: 오지렆 옥수수: 강냉이. *이바배 괴기반찬 만몰라 몬묵나, 강낸이밥또  매미 핀함믄 제일이재...   올려는가; 올란가. 올미:올뱅이 올가미; 혹다래끼, 올케: 올깨. 월깨. 올해; 올개. 옮겨적다; 빼끼다. 옹이; 공이. 굉이. 왕골: 왕글 왜; 와. *화로저내 엿 언저난나 그리도 지배 갈라카노? 외로워라; 외로버라. 올가미; 홀치기. 메도야지는 홀치기애 걸리믄 영라겁시죽고, 사라드른 로도에 걸리믄 돈배락만는다쿠재, 그래도 고런 배락한분 마자바스면 얼매나조캔노? 요렁: 요롱. 용마루: 용마름 용수철: 용철. 우리다; 우루다. 우물: 웅굴. *웅구를 파도 한 웅구를 파라 캣는대 이거저거 건드리먼 안대는기라...            *목마른누미 웅굴판다꼬... 우박: 누리. 우습다; 우섭다. 우엉: 우벙 우체부: 체보 워낙: 원청. 원수: 왼수: 오랜 원수 가프러다, 새왼수 맨든다 크더라.... ????: 원수지. 원듬배기. 원등거지. 원등거리. 원수; 왼수.  *왼수는 외나무다리서 만난다꼬 안햇나? 원숭이: 원시이. *원시이도 남게 더러질 때 잇다캣는대, 어쩌노? 위에: 우애. *띠는놈 우에 나는놈 잇다카디 그든사 누가 다 머거버릿노?            *사람우애 사람엄꼬, 사람미태 사람엄따 안쿠나... 윷가락: 윷가치. 응석; 엉정. 의: 거 니거집가? 니검마가 부르더라, 이고; 꼬, 이삭; 이새기. 이상하다: 히안하다. 이아이: 얘. 이야기: 이바구. *보리누름가지 새배한다쿠디 아직도 설이바구가? 이엉: 연개 이제; 인자. 인동초: 윤동초 인두: 윤디. 일흔; 이른. 잃다; 일거뿌리다. 임자; 임재. 동아속 성는거는 밧임재도 모른단다. 입; 아구, 아가리, 아고빠리. 입니까?; 기요? 입술: 입서버리 입혀주다; 입해주다, 자고싶다: 자구럽다 자국: 자죽. 자욱. 자기: 지.  *지거동생은 외가간다쿠고, 지히는 외가찝 간다쿠는걸보니 두리가 따로가능겅가?            *바꾹보다 떠구기 조타앙캔나 지끼 조은기라.            *무당이 지굿 모타고 봉사가 지주글날 모른다 앙캔나? 자기네들: 지거들. 자귀: 짜구. 자꾸; 자꼬. 자라: 자래. *자래보고 놀란가슴 소두뱅이보고도 놀란다고 마이 노래째? 자루; 자리. *빠진 칼자리애 오칠하기. 자르다;짜르다. 자린고비; 자리꼽재기. 자주색: 가지색. 자질구레하다; 자작스럽따. 작다: 쪼만하다. *돌: 고래 소한다 캐사서 드가보니 쪼매는 돌고래가 재주넘더라.... 작대기: 짝때기 작두: 짝두 잔디: 떼딴지, *꼴푸간 먼강 땜새 논밧 다까뭉개뿌고 때딴지밭 맨들어뿌래떠라... 잔소리; 입대다. 잔치: 잔채. *나머 잔채애 감나라 배나라 칸다.. 잠꼬대: 헛소리 잠자리: 철뱅이. *철뱅이 안즌뱅이 지자리애 안자꺼라 멀리가믄 니모가지 떠러진다. 잡초; 기심. 지심. 장: 자. *나미 자-가믄 거름지고 간다크디... 장기: 장구. *대도아날리토애도 일본사라믄 남글심는기라, 까달글 무러보니까내, ‘장구뜨다가 이겨따꼬 장구판빼서가는거바나’ 쿠면서 자꼬 심드란다. 장난질: 저지래. 장다리: 짱다리 장돌뱅이: 장똘뱅이, 장마: 장매. 장승; 장성. *장성 이배 콩꼬물 무처노코 떡갑도 반느다쿠디... 장작: 뚱거리. 잦히다; 잡치다. 까무트리다. 잦히다(밥); 자지다. 자재다. 잦히다; 자지다.(밥) 재갈: 자갈 재촉하다: 깝치다. 잼잼; 쪼막쪼막. 쟁기: 훌찡이. 저고리; 저구리. 저리다: 제럽다. 적: 찍. 어릴 찍에는.... 적삼; 적새미. *모시적새미 입떤 모매 삼배저새미가 어인말고, 은가락찌 지든 소내 호매이가 우짠거고... 전: 찌짐 전부; 논. 오이. 전혀:도통. 전화; 전나. 알아심더, 아애비오믄 전나와떠라 구카게심더. 절이다; 짜리다. 접시: 접시기 젓가락: 잿가락.재까치. 정강이: 정강이.장갱이. *대문턱 노픈지배 장갱이 노픈 매느리 드러온다. 정강이뼈; 초때뼈. 정강다리: 장다리. 정구리; 짱배기. * 짱배기에 피도 안마른노미... 정답다; 인정스럽다. 정수리; 짱배기. *짱배기애 부은 무리 발디꿈치로 흐른다 앙캔나?                *짱배기 버서진 사라믄 어디까지가 머리고 어디까지가 낫짝인지 어얘아노? 젖히다: 재끼다. 제: 지. 제가끔: 지지굼. 제격: 지적. * 보리바배는 꼬장이 지적이라드니 꽁보리바배 꼬장 비배노니 무글만하더구마. 제기: 짱꼴레 제바람에: 지짐에. 제비; 연자. 조: 죄, 조가비: 조갑지 조각: 쪼가리 조금: 쪼끔. 쬐끔. 쪼매. 조리: 조래 조막손이: 쪼맥이 조뱅이: 쪼바리. 조이다; 쪼이다. 쬐다. 족두리; 쪽뚜리. 족제비: 쪽지비. 수꾸래디가따 나완나 깜동쪽지비가 다댄노?. 족집게; 족집게, 졸가리: 쫄가리 졸다: 자불다. *차 아내서 쪼매도 자불지마라 사람 새워노코 코배묵는 세상이라 안카다. 졸리다; 자부럽다. 좁다; 쫍따. 종구라기; 쫑꾸래기. *동냥은 앤주고 남쪽빡만 깨내... 종달새: 종다리 종아리: 장단지. 졸가리. *호잦질하다 할배자태 부자피면 졸가리 뿌지킨다. 종지: 종지기, 종바리, 좋다: 조타. * 뵈기애도 조은 떠기 무끼애도 조타카디 그 떡 맛이떠라.            *조면 조타캐라 캐사서 나도 조타조타 캐찌. 좋으냐: 존노. 좋은지; 존지,. 주걱: 주개 주근깨: 까무딱지 주머니: 주미이.주마. *야드라 내 주마 돈 쪼매 잇는거 탐내지마라,  이건 웃논에 물개빈거                       하고 가튼기라... 주먹: 주묵. *주묵근 가깝고 버븐 멀다 안캔나?.... 주십시오; 주소. 주워오다; 주서오다. 주은: 존. 주인; 쥔. *집파는 쥔내는 모다 배가들 뿌이가. 집파낟는 광고 미태다 모두 주인백이라 서낫노? 주저앉다: 조잔다. 주제꼴에: 따나. 줄기: 쭐기. 대궁이. 쭐거리. 중의; 주. 쥐똥나무: 깨똥나무. 지겹다: 지웁다. 지업다. * 여러시 우모여 일하믄 지우분줄도 모르고 하루해가 가는기라. 지렁; 간장. 지렁이: 지링이. 꺼꾸지. 꺼꿍이. *꺼꿍이가 땅속에 살재, 차가 땅미트로 댕긴다크는 건 어이              댕거고? *꺼꾸지도 발브면 꿈틀거린다. *가글시가 머 꺼꾸이 기가는거 간노? 지짐: 찌짐. 지치: 주치 진드기: 찐디기 진디물: 뜨물 진저리: 엉기. 엉기증. 진저하다; 잔줄거리다. 질경이: 뺍쟁이. 질빵; 짐빠. 짜다: 짭다. *부뚜마거 소곰도 지버너야 짭다. 짜개다: 쪼개다. 찌증; 짜정. 짧다; 짤따, 짭짤하다; 짭질받다. 쭉정이: 쭉디기 찌꺼기: 찌끄래기. 찔래; 질래. 찜질: 뜸질. 눈깔사탕 무글대는 단마스로 무꼬, 몽치미뜸질할때는 하느리 뱅뱅돈다. 찢어지다; 째지다. 찰흙: 또대 참취: 추딩이 창자: 창대기 창출: 산추 창포: 쟁피 채하다: 언친다. 콩지럼 잘 시버무거라 언칠라... 처럼: 맹구로. 매로. 철조망; 말밤쇠. *사방을 말밤쇠를 처노안는대도 어애 뚤코 드러와 훔채가는기라... 촌충: 촌챙이. 최상품: 쫑지. 추은; 추븐. 추접스럽다; 추접따. 취하다: 채다. 측간; 치깐. 치까늘 밴소라고는 핸는대 요시는 와 호장시리라쿠노? 치마: 치매. *숭어가 띠니 망둥어도 딘다쿠디,  니 치매가 와그리 짤노? 치면하다; 치먼하다. 치술령; 지술령. *지술령애가믄 낭구늘바래던 아내가 지처서 돌바우로화한개 아직도 인는대 그걸 망부서기라앙카나.... 친절히; 가끈히. 침: 춤 턱: 택 *아이고 택도 엄는소리 하지마라 가 심이 얼매나 신지 아나? 태: 때기 탱자: 탱주 턱: 택. 텔레비전: 태래비. 태래비애서 미나리아- 제비라 카던대 그거는 미나리-아제비 아이가? 토끼: 토깽이. *소아지 뒤거름치다 쥐잡는다카디 나도 토깽이 한 마리 자밧다. 토막: 동가리. 통가리. 톱: 거두. 투성이; 듬배기. 터빙이. 등거리. 툭박지다; 툼박하다. 트림; 트름. *미꾸라지궁무꼬 용트름한다꼬... 티끌: 티껍지. *한이피라도 아깨서라 티껍지도 모으면 태산된다 안카더나...              *청산은 날보고 말업시 살라하고, 유수는 날보고 티껍지 업시 살라칸다. 코; 쾨. *사나분개 쾨등더리 아물날 엄따꼬.... 코뚜레: 코꼰지, 쾨꼰지. 쾨꼰드래기. 콘크리트: 공굴. 공구루 콩나물: 콩지럼, *콩지름 구글 와 도래미탕이라꼬 하노? 키: 챙이 파리: 파랭이.  *안다이 똥파랭이라고 .. 팽이: 팽댕이. 퍼뜩; 퍼떡. 퍼머; 빠마.*요짐 여자드리 빠마하고 댕기니 국시도 빠마한거 나며니라 쿠면서 맛이따쿠대.. 퍼붓다; 퍼지르다. 펑퍼저앉다.; 퍼질러앉다. 편자: 다갈. *그 꼬라지는 개바래 주석다갈이고, 황새모개 새끼내구다이다 안카나. 편지; 팬지. 편하다: 핀타. 풀무치: 풀뭉치 풍뎅이: 뜽구 하고: 캉, *니캉나캉 같이 갈래?           *하눌니미 뱅날동안 수칸마늘캉만 무꼬 이스라 캔느기라...           * 범은 몬차아 나가고 곰은 전디고나니 이쁜 여자가 대능기라... 하고있다(진행): ~기라, 밥무는기라... 달달아나는기라....  하고인니더, 하다; 카다, * 조은 행실 배우라캐노니 포도청 문고리 뺀다꼬... 하더니: 카디. 그카디 마는.... *강생이 범 무서운줄 모른카디 니가 그꼴이다. 하던: 카던. *히무지래는 거미같다쿠던 개가 물에 바진거슨 구신이 곡할 노르시재? 하루; 하로. 하리. *하리애한가지이상차칸이를하고,열키이상을만나조은이바구나누고,백자넘개스고,천자더일꼬,만보너머거르면건강한살미대능기라. 하물며; 하머. 하십니다; 하심더, 하지요?: 카죠? 학질: 날수거리. 한낮; 방낮. *아침보담 방나지 더 뜨거분 거슨 해가 가갑끼 대문이재? 한테: 잔태. 할머니: 할매.  *할매요 어무이가 아침 무그러 오라카디더, 그만하고 지배 갑시더. 할미꽃: 족두리꽃. 할수없이했다. 안핸나? 할아버지: 할배. *할밴교? *염라대왕이 지 할배라도 어쩔수업지?               *단군할배가 내려오믄 후손 차기어러불끼라? 머리털과 손토배 물디래나서... 함지?; 반티이.   *이비 반티만해도 할말이 엄따. 해대다: 캐사다. *간다 몬간다 캐사트니 나쟁애 한가랭애 두다리 끼고 가더라... 해버렸다; 해뿌랬다. 해수욕; 불뜸질. 허벅다리: 신다리. *신다리보먼 궁딩이 바따쿠는 시상아이가... 허수아비: 허제비. *허재비 아들나따는 소린 몬드런는대 와 허수아비라카노?                  *허깨비와 허재비하고 허풍서니는 다가튼 형쟁가? 허풍선이; 허풍쟁이. 헤엄: 후미질, 히미질, *그건 누어 떡무끼꼬, 땅집꼬 히무질치긴기라....l 헤프다: 히푸다. 혀: 새. *이바내든 새도 물릴때가 이따고... 형: 히. *꼬시래기 지살 뜨더묵는다 쿠디, 지히껄 어찌 그리 빼서 뭉노? 호두: 추자. 호드기: 호때기. 호랑이: 호랭이. *호래이도 지말하문 온다카디 숭보고 이슨깨 용캐 오네... 호미: 호맹이. * 호매이로 마글꺼 가래로도 몬막는다 안캤나, 직시 단도리해스면 조아슬걸. 호밀: 회밀 호사스럽다; 포시랍다, 혹부리: 혹쟁이 혼나다: 시껍묵다. 시껍하다. 홀리다; 홀끼다. 화나다; 천불나다. 화장실: 칙간. 정낭. *어디 갈때가 업서 칙가내 가 화장하나 정안을 화장시리라카노? 화투; 화토. *화토파내 쪽빼기도 엄는대 어찌 바가치 시운다카노?            *돈 딸라고 화토치는대 와 몬무거도 고한다쿠노? 회오리: 호드락. 호드래기. *호드래기 부러대사서 괴기자브러떠난 사공 어애올꼬... 회초리: 회차리. 회추리. *둥치엄는 휘초리 어디 이스머, 애비엄는 자시기 어디인노? 효자; 소자. 아들노면 소자노코, 땅노면 혈녀노치... 훔치다; 새비다. *머니가 머니의 머니를 새빈는대 머니가 보고 머니애개 일러서 머니는 머                   니한태 실컨 어더 마꼬 머니머니하면서 내뺀 거슨? 훼방; 해방. 흉: 숭. *지 숭 열가지가즌 노미 남머숭 한가지 본다쿠더라마는 니가 나머숭보면 대나? 흉년; 숭녕; *좁살 한섬두고 숭년들기 기다리는 좁살뱅이가 사라째..             *숭녀내 농사꾸니 시나락비고 굴머주거따는 소리 몬드럿나? 흉터: 흠터. 흠테 흔하다: 새비랬다. 수타다. *그런거야 우리 마래 가믄 천지고, 사내 가면 새비래심더. 흙; 흘.  *우리는 흘 파무꼬 살라카나... 흥감; 헝감. *헝가미 얼마나신지... 아 놀 o는 온동내 방내가 떠나가능기라.. 흥정; 헝정. *헝정은 부치고 사믄 말리라 캔능기라... 힘: 심: 일꾸는 배시므로 일한다 앙캣나, 밥 마이 무꼬 일 마이 해라.                     ※ 경상도사투리의 압축 능력은 (제주도(의 압축률도 따라올 수없다. ( )는 압축비. 첫번째 표준어 두번째 경상도말                     아래는  어느 사투리 코너에서 자져온 자료임..... -저것은 무엇입니까? =모꼬? - 할아버지 오셨습니까? = 할뱅교?(3:1) - 저기 있는 저 아이는 누구입니까? = 자는 누꼬?(13:4) - 니가 그렇게 말을 하니까 내가 그러는 거지, 니가 안 그러는데 내가 왜 그러겠니? = 니 그카이내그카제 니안그카는데내그카나? - 나 배고파!/ 밥 차려놨어! 밥 먹어! = 밥둬!/무라! - 어,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아? = 우야노~ - 어쭈, 이것 봐라! = 요고보소.. - 너 정말 나한테 이럴 수 있니? = 와그라노? - 왜 그러시는가요? = 와그라노? - 야, 그러지 좀 마! = 쫌~ - 이 물건 당신 건가요? = 니끼가?   네, 그건 제 물건입니다. = 내끼다. - 어디에 숨기셨나요? = 어따놨노? -고등학교 미술선생님. = 고다쿄미술샘 최고의압축률 -거기 가서 본다음 다시 여기 오셔서 말씀해주세요. =거가서보고여와서이바구해라~ *이렇게 따지면 말은 만들면 되는것이오...제주도 사투리가 위대하다느니 최고의 압축률을 자랑한다든지..그런말은 마시오...괜히 지역감정상하니.. *나혼자 살믄 외롭따꼬 큰 따라가 자꼬 지거지배와 가치 살자캐도 가고 앙가고는 내맘이지...  
760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시모음 댓글:  조회:4427  추천:0  2015-10-27
[ 2015년 10월 26일 08시 15분 ]               너를 기다리는 동안/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은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어떤 사랑/정호승   내가 너를 사랑했을 때 너는 이미 숨져 있었고   네가 나를 사랑했을 때 나는 이미 숨져 있었다   너의 일생이 단 한번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라면   나는 언제나 네 푸른 목숨의 하늘이 되고 싶었고   너의 삶이 촛불이라면 나는 너의 붉은 초가 되고 싶었다   너와 나의 짧은 사랑 짧은 노래 사이로 마친내 죽음이 삶의 모습으로 죽을 때   나는 이미 너의 죽음이 되어 있었고 너는 이미 나의 죽음이 되어 있었다.         꽃/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용혜원     모두 다 떠돌이 세상 살이 살면서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엔 누구를 만나야 할까   살아갈수록, 서툴기만한 세상살이 맨몸, 맨손, 맨발로 버틴 삶이 서러워 괜스레 눈물이 나고 고달파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모두 다 제멋에 취해 우정이니 사랑이니 멋진 포장을 해도 때로는 서로의 포장 때문에 만나고 헤어지는 우리들   텅 빈 가슴에 생채기가 찢어지도록 아프다 만나면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데 생각하면 더 눈물만 나는 세상 가슴을 열고 욕심없이 사심없이 같이 웃고 같이 울어줄 누가 있을까   인파속을 헤치며 슬픔에 젖은 몸으로 홀로 낄낄대며 웃어도 보고 꺼이꺼이 울며 생각도 해보았지만   살면서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엔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다       긴 아픔을 가진 사람들은 안다 /배은미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을 때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쳤을 때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하도 서러워 꼬박 며칠 밤을 가슴 쓸어 내리며 울어야 했을 때   그래도 무슨 미련이 남았다고 살고 싶었을 때 어디로든 떠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어   짚시처럼 허공에 발을 내딛은 지난 몇달 동안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사람이 없었으며 사랑받고 싶어도 사랑해 줄 사람이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필요했으며 필요한 누군가가 나의 사랑이어야 했다   그립다는 것이 그래서 아프다는 것이 내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다는 것을 혼자가 되고부터 알았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노라 그 모질게 내 뱉은 말조차 이제는 자신이 없다   긴 아픔을 가진 사람은 안다 그나마 사랑했기에 그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을   그것마저 없었을 땐 숨을 쉬는 고통조차 내 것이 아닌 빈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개나리/이은상     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란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다 '봄'이란 말을 차마 쓰기 어려워서               가난한 사랑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갈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는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기다리는것은 오지 않는다/황경신.     잡으려 손을 뻗을수록 저만치 달아나는 것이 그것이라는 것을.   이젠 믿지 않는다 포기해버렸을 때, 다른것에 시선을 돌려 그것을 보려하지 않고 체념해버렸을 때, 그것은 이따금씩 준비되지 않은 미숙한 나에게 찾아왔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그것에 너무 얽매여 있는 나를 봤다.   이제 그것을 살며시 놓아보려 한다. 나만의 어떤 징크스 같은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러했다는 것을, 나만 그렇다는 지독한 피해망상 속에서 진실을 보지 못했다.     내게 있었건만 잡으려 할수록 그것은 아득히 희미해져갔고 이내 기억 어느 한 구석정도로밖에 치부되어 버린 그것.   내게 항상 그랬다. 사랑이라는 것은.   ===============================================================  정호승(鄭昊昇) 되찾기의 겉과 속       1. 실종문인, 민족적 비극의 표상       문학은 ‘개인’으로부터 그들이 모여 살고 있는 ‘사회’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 볼 수 있다. 본질적으로 사회적 함의(含意)를 띠고 있는 것이 문학인 것이다. 그런대 개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중단위 사회가 민족(국가)사회이다. 그래서 문학은 민족사회를 단위로 구별되어 존재한다. 민족사회는 언어, 혈통, 풍습, 정서 등이 같아서 변별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기문학과 충청문학은 변별력이 없거나 극미하지만, 한국문학과 영국문학은 선명한 변별적 자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민족이나 나라마다 그 문학의 특수성이 검출되는 것인데, 그것은 그들이 처한 고유한 사회·역사적 환경 때문이다. 문학은 기본적으로 민족성을 토대로 피어나는 꽃이다.   한국 근·현대문학의 특수성을 만드는 요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서구문화의 수용’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 수난사’이다. 전자는 주로 근·현대문학의 촉발요인으로 작용했고, 후자는 그것의 특수성을 조성하는 무거운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일제강점’과 ‘민족분단’은 한국 근·현대문학의 특수성을 강하게 통제하고 있는 두 기둥이라고 할 만하다. ‘일제강점’은 민족 주체성의 보존과 관련된 민족문학의 검증요소로서 작동될 뿐만 아니라, 민족 언어의 훼손 및 장애 문제나 검열 문제 등을 내포하면서 한국문학의 민족의식이나 고유성을 확인하는 전제가 된다. 한편 ‘민족분단’은 분단 이후와 그 이전까지도 한구 문학사를 반쪽 문학사를 만들어 놓았으며, 언제 해결될지 모르는 민족문학의 정체성(Identity)을 묻고 있다. 또한 이데올로기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함으로써 한국현대문학의 깊이와 높이를 규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한 마디로 ‘민족분단’은 한국문학의 비극적 특수성의 외연과 내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 수난사’의 흐름 속에서 ‘민족분단’이라는 강물은 비극적 특수성이라는 홍수를 이루면서 민족의 보물인 작품이나 작가가 ‘실종’ 또는 ‘매몰’되는 재해를 불러와 그 비극성을 고조시켰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실종문인’은 그러니까 그 자체가 우리 민족문학사의 비극적 특수성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존재인 것이다. 수많은 문인이 실종되다니, 그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일뿐만 아니라 ‘실종문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거나 생소할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실종문인’은 한국문학사에서 빼내지 못한 가시처럼 미해결의 문제로 아직 아프게 걸려 있는 것을.   한국문학사에서 실종문인은 월북문인을 비롯해서 납북문인, 재북문인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월북문인이다. 월북문인은 월북시기에 따라 3차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차 월북문인은 조선문학건설본부(1945.8.16 설립)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1945.9.17 설립)이 조선문학가동맹(1946.2.)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상실한 카프 맹원들(이기영, 한설야, 송영, 윤기정, 안막, 박세영 등)이 월북함으로써 발생하였다. 제2차 월북문인은 1947년부터 1948년 8월 사이에 생겨나게 되는데, 이는 미군정당국이 박헌영에 대한 체포령을 발표하면서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심인물들(이태준, 임화, 김남천, 이원조, 홍명희, 안회남, 허준, 박찬모, 현덕, 김소엽, 김동석,김영건, 조영출, 조남령, 조벽암, 조허림 등)이 월북한 것을 가리킨다. 제3차 월북문인은 1950년 6.25 한국전쟁 중에 발생하였다. 서울에 남아 있던 조선문학가동맹 문인들은 이를 해체하고 사상전향을 선언한 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전향의지를 실천하던 중 전쟁이 발발하였고, 그 전쟁의 와중에서 자의 또는 타의로 북으로 향했던 것인데, 이용악, 이병철, 이선을, 조운, 김상민, 유종대, 박산운, 김광현, 박태원, 정지용, 설정식, 이흡, 김상훈, 임학수, 여상현, 임호권, 양운한, 지봉문, 엄흥섭 등 실로 다수의 문인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해방과 전쟁이 세상을 뒤흔드는 격동의 시기에 이중 삼중의 사상적 혼란을 겪다가 전화에서 잠시 비껴 있고자 하다가 끝내 분단의 긴 세월 속에서 역사의 고초를 한 몸으로 겪으면서 망각되고 매몰된 비운의 문인들로서 민족사의 비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주인공들이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시인 정호승(鄭昊昇, 1916 ∼ ?)도 제3차 월북문인의 한 사람으로 고난의 문학적 생애가 매몰되었던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필자는 이 글에서 묻혀 있던 정호승 시인을 처음으로 발굴한 사람으로 그 경위와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2. 고향, 그 뽑히지 않는 마목(馬木)       시조시인 정완영은 「버꾸기 소리 떠내려 오는 시냇물에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향이란 그 사람의 가슴엔 사랑의 원류이기도 하고 눈물의 원천이기도 하고, 때로는 보이기도 하고 병이기도 하며, 버리려야 버려지지도 않는 모토(母土)인 것이며, 뽑으려야 뽑아지지도 않는 마목(馬木) 같은 것이라고. 실로 고향은 어머니와 의미 자장을 함께하는 사랑의 이름인 것이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게 되더라도 사람들은 언제나 그 마목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력에 이끌리면서 살아가게 마련이다. 거기에 매여 있는 마음의 고삐를 풀지 못하고 그 주위를 맴돌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매몰되었던 정호승 시인을 필자가 찾아내게 된 것도 이 마목의 덕분이었다. 정호승 시인은 그의 작품 여기저기에 마목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단서를 남겼고, 그의 가족들은 그 마목으로 돌아와 그것을 지키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 또한 그 마목에 이끌려 그곳을 찾았던 것이다.   정호승 시인은 충주 지방 사람이면 금방 알 수 있는 ‘鷄足山’, ‘모시레들’, ‘彈琴臺’, ‘虎岩堤’, ‘合水머리 같은 지명들을 작품 속에 사용하였다. 그리고 ‘풀무고개에서’라고 작품을 쓴 장소를 부기한 것이 여러 편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蜘蛛峰밑 넓은들에 너울치는/ 가난한 모밀꽃 香氣를 마시고/ 아담스런 木花송이에 쌓여/ 풀무고개 기슭 오막사리 초가집 굴앙선에서도/ 북도더 키워지든 이몸이였다우(「잡스러운이몸」)’라는 구절이 있어, 그가 풀무고개 출신임을 추정할 수 있었다. 또한 ‘情겨워 뛰놀든 풀무고개(「노래를 잊은 이몸」)’나 ‘풀무고개 성황나무 가지에/ 내넋은 파랑새되여 앉는다(「故鄕을 떠나며」)’ 등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간접적으로 확인되는 것이었다. 이에 필자는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창동이 정호승 시인의 마목일 것이라고 추단하였던 것이다.   
759    <평화통일> 시모음 댓글:  조회:5263  추천:0  2015-10-22
[ 2015년 11월 06일 10시 44분 ]     중윁변경지역 지뢰제거작업 시작, 운남성 마관현에서... ==========================================  [ 2015년 11월 06일 10시 44분 ]     중윁변경지역 지뢰제거작업에 전문지뢰제거용 로봇까지 동원... =============================================================   + 작은 평화  어항 앞에 있으면  우리도 평화롭게 노니는  금붕어가 된다.  화려한 말보다는  아주 작은 말로  사랑하는 마음을 보면  우리도 행복하게 된다.  믿음이 있는 말을 주고받는  정직한 세상에서  우리도 살고 싶다.  금빛 지느러미처럼  아름답고 밝은 마음으로  미움 없이 입 맞추며  우리도 살고 싶다. (권달웅·시인, 1944-) + 평화     텅 빈 겨울 숲  나도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가만히 기도하고 싶다. (김영월·시인, 1948-) + 평화 단칸짜리 방이나마 도배를 하고  방바닥에 큰대(大)자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날이여,  이렇게 마음 편할 줄이야  평화가 거기 숨어 있을 줄이야  (김형영·시인, 1945-) + 평화롭게  하루를 살아도  온 세상이 평화롭게  이틀을 살더라도  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그런 날들이  그 날들이  영원토록 평화롭게  (김종삼·시인, 1921-1984)  + 봄날 아침 때는 봄 아침 일곱 시 이슬 젖은 언덕 기슭에서 종달새 노래하며 하늘에 날고 달팽이 가시나무 위를 기어가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니, 온 누리가 평화롭구나 (로버트 브라우닝·영국 시인, 1812-1889) + 평화로 가는 길은 이 둥근 세계에 평화를 주십사고 기도하지만 가시에 찔려 피나는 아픔은 날로 더해 갑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왜 이리 먼가요. 얼마나 더 어둡게 부서져야 한줄기 빛을 볼 수 있는 건가요. 멀고도 가까운 나의 이웃에게 가깝고도 먼 내 안의 나에게 맑고 깊고 넓은 평화가 흘러 마침내 하나로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울겠습니다. 얼마나 더 낮아지고 선해져야 평화의 열매 하나 얻을지 오늘은 꼭 일러주시면 합니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이 평화를 깨는 것도 흰 눈이 하게 하라  흰 눈이  내리는 흰 눈의 나라는  흰 눈 자체만으로 하얗다, 고요하다, 가득하다  그 누구도 한발자국도 들어서지 못한다  한발자국도  하얗다, 고요하다, 평화스럽다  이 고요를 깨는 것, 내리는 흰 눈이고  이 평화를 깨는 것,  내리는 흰 눈이고  흰 눈이 내리는 흰 눈의 나라는 흰 눈이 하게 하라  흰 눈이 하게 하라  한발자국도 들어서지 못한다  흰 눈이 지우리라. (신현정·시인, 1948-) + 손에 강 같은 평화  사람 손가락이 열 개인 까닭에  십진법이 생겼다고 한다  이 손이 소처럼 뭉툭했다면  번잡한 삶 얼마나 단순하고 평화로웠겠는가  새의 날개 같았다면  가볍게 떨리는 마음으로도  얼마나 멀리 날아갈 수 있었을까  내 손은 나날이 내게서 멀어져 간다  낡은 도자기처럼 은은하게 잔금이 깔리고  푸르렀던 힘줄도  스웨터에서 풀려 나온 실처럼 느슨해져  세상을 움켜쥐기보다  누구나 손잡기 쉽게 되었다  이 손 강 같았으면  남원 어느 샛강처럼  둔덕을 끼고 느리게 돌아가는 강 같았으면  신발 벗어들고 생을 건너다  흰 발등 내려다보며 아득해진 마음이여  그 마음 쓰다듬는 얕은 강이여  내 손 그런 강 같았으면  (장경린·시인, 서울 출생) + 김치찌개 평화론 김치찌개 하나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 식구들의 모습 속에는 하루의 피곤과 침침한 불빛을 넘어서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실한 비계 한 점 아들의 숟가락에 올려 주며 야근 준비는 다 되었니 어머니가 묻고 아버지가 고춧잎을 닮은 딸아이에게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지 그렇게 얘기할 때 이 따뜻하고 푹신한 서정의 힘 앞에서 어둠은 우리들의 마음과 함께 흔들린다 이 소박한 한국의 저녁 시간이 우리는 좋다 거기에는 부패와 좌절과 거짓 화해와 광란하는 십자가와 덥석몰이를 당한 이웃의 신음이 없다 38선도 DMZ도 사령관도 친일파도 염병할, 시래기 한 가닥만 못한 이데올로기의 끝없는 포성도 없다 식탁 위에 시든 김치 고추무릅 동치미 대접 하나 식구들은 눈과 가슴으로 오래 이야기하고 그러한 밤 십자가에 매달린 한 유대 사내의 웃는 얼굴이 점점 커지면서 끝내는 식구들의 웃는 얼굴과 겹쳐졌다 (곽재구·시인, 1954-)
758    <통일평화> 시모음 댓글:  조회:4422  추천:0  2015-10-22
[ 2015년 11월 03일 08시 36분 ]     중국 자주적 연구제조한 첫 대형 려객기 C919, 7년간의 설계연구개발. 상해 중국상용려객기유한책임회사 포동기지에서... ================================================== * 만일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왔으면 좋겠다  여보야  이불 같이 덮자  춥다  만약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따뜻한 솜이불처럼  왔으면 좋겠다  (이선관·시인) + 통일 목사님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한다. 스님은 원수라는 말 자체가 없다고 한다. 넘어갔다 넘어오고 넘어왔다 넘어가고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작자 미상)  + 평화나누기 일상에서 작은 폭력을 거부하며 사는 것 세상과 타인을 비판하듯 내 안을 잘 들여다보는 것 현실에 발을 굳게 딛고 마음의 평화를 키우는 것 경쟁하지 말고 각자 다른 역할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 일을 더 잘 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좀더 친절하고 더 잘 나누며 예의를 지키는 것 전쟁의 세상에 살지만 전쟁이 내 안에 살지 않는 것 총과 폭탄 앞에서도 온유한 미소를 잃지 않는 것 폭력 앞에 비폭력으로, 그러나 끝까지 저항하는 것 전쟁을 반대하는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이 평화의 씨앗을 눈물로 심어 가는 것 (박노해·시인) + 내 손과 발로 무엇을 할까 세끼 밥 굶지 않고 나 혼자 등 따뜻하다고 행복한 게 아닙니다.  지붕에 비 안 새고 바람 들이치지 않는다고 평화로운 게 아닙니다.  내가 배부를 때 누군가 허기져 굶고 있습니다.  내가 등 따뜻할 때 누군가 웅크리고 떨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발걸음 옮길 때 작은 벌레와 풀잎이 발 밑에서 죽어갑니다.  남의 허물을 일일이 가리키던 손가락과  남의 멱살을 무턱대고 잡아당기던 손아귀와  남의 얼굴을 함부로 치던 주먹을 거두어야 할 때입니다.  가진 것을 나누는 게 사랑입니다.  사랑해야 우주가 따뜻해집니다.  내 손을 행복하게 써야 할 때입니다.  내 발을 평화롭게 써야 할 때입니다.  (안도현·시인)  + 평화平和에 대하여  풀어 말하자면  세상이 잔잔한 수면처럼  고르고 평평하여  수확한 벼를 여럿이  나눠 먹는 일이 평화다.  그래서 전쟁을 겪어본 사람만이  벼와 밥이 평화라는 것을 안다.  심각한 얼굴로 승용차를 타고  바삐 달려가는 도시 사람에게  세상은 아직 전쟁 중이고,  올해도 황금 풍년이 찾아온  은현리 들판은 여전히 태평성대다.  농부 한 사람 느릿느릿  논두렁길을 걸어가며 활짝 웃는다.  그 얼굴이 평화다  (정일근·시인) + 애국자가 없는 세상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권정생·아동문학가, 1937-2007) + 간단한 부탁 지구의 한쪽에서 그에 대한 어떤 수식어도 즉시 미사일로 파괴되고 그 어떤 형용사도 즉시 피투성이가 되며 그 어떤 동사도 즉시 참혹하게 정지하는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저녁 먹고 빈들빈들 남녀 두 사람이 동네 상가 꽃집 진열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풍경의 감동이여! 전쟁을 계획하고 비극을 연출하는 사람들이여 저 사람들의 빈들거리는 산보를 방해하지 말아다오. 저 저녁 산보가 내일도 모레도 계속되도록 내버려둬 다오. 꽃집의 유리창을 깨지 말아다오. (정현종·시인, 1939-)  + 평화를 위한 연가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제발 전쟁만은 되풀이되지 않기를 무릎 꿇어 두 손을 모읍니다 이라크의 하늘 가르던 폭격기의 굉음이 이라크의 대지 갈아 짓뭉개던 탱크의 발톱이 이라크의 어린아이 심장을 얼리던 포성이 아아 이라크의 어머니 이 땅 모든 어머니의  가슴을 천만 갈래로 찢었던  저 통곡 저 비명  저 아픔과 저 절망이 이 땅, 다시는 이 땅 한반도에서 되풀이되질 않기를  간절히 천만번 간절히 간구합니다 그러나 나의 기구가  하늘을 울리지 못하여  이 땅에  전쟁의 위협이 피할 수 없게 다가온다면 그 위협 앞에다 제 몸 곱게 누이겠습니다 맑은 물에 몸을 씻고  하얀 옷으로 단장하여 초례청의 새아씨처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평화란  가슴으로 사랑하는 것이고 우리가 서로 둘이 아님을 몸으로 일깨우는 것이겠지요 저 무지 저 탐욕 저 충혈된 광기 앞에서 나의 분노 나의 증오 나의 절규는 또 다른 부질없음임을 압니다 다만 이 몸 송두리째 바쳐  저 굶주린 탐욕을 저 날뛰는 광기를 달랠 수 있다면 이 한 몸으론 모자라서 수십 수백 수천의 제물 더 바쳐야 한다하더라도 기꺼이 그 한 제물로 이 몸 누이겠습니다 내 사랑하는 이와 이 땅의 어머니,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과 우리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길이  이 길 말고 달리 없다면  서둘러 이 몸 누이겠습니다 다시는, 이제 다시는 더 이상  이 땅에서 전쟁이 없을 수 있다면 하얀 옷 곱게 단장하고  웃으며 이 몸 누이겠습니다 이 땅에 떨어지는 그 첫 포탄을  제 가슴에 안고 이 땅을 짓뭉개는 탱크의 그 첫 바퀴자국을  제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저 무지 저 광기 저 탐욕 잠재울 수만 있다면 이 땅에 평화 연둣빛 새순으로 솟구치는 봄날 같은 그 평화 다시 피어낼 수 있다면  당신 사랑으로 이 몸 곱게 누이겠습니다.  (이병철·농민운동가, 1949-)
757    미당 "국화"와 얘기 나누다... 댓글:  조회:4598  추천:0  2015-10-22
국화옆에서                       -미당 서정주 -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해설 : [경향신문](1947.11. 9)에 발표된 미당(未堂)의 대표시. 보들레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첫 시집인 [화사집] 이후, 동양적 유현(幽玄)의 사상으로 회귀한 시인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작품. 총 4연의 자유시로, 단 한 송이의 국화를 피우기 위해서 맺어진 자연의 인연들이 얼마나 깊은가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불교의 인연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1연의 소쩍새, 2연의 천둥, 4연의 무서리 등은 국화를 피우기 위한 자연의 인연들을 계절에 따라 나열한 것이다. 비록 하나의 작은 꽃에 지나지 않지만 국화를 피우기 위해 이 모든 것들의 인연과 기다림이 있었다는 사실은 생명의 신비로움에 대한 감탄과 경외감을 표현한다. 시인은 이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 긴밀한 인연을 맺고 우주의 현상 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이 시에서 특히 주목되는 연은 3연이다. 여기서 국화는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에 비유되고 있으며 여기서 '누님'은 방황과 욕망의 젊은 날을 보내고 인생을 관조하는 중년의 원숙한 여인이다. 이러한 누님의 모습은 [화사집]에서 보였던 관능과 욕망의 세계에서 한걸음 물러선 시인의 변화를 상징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변모를 예상하게 한다. [화사집]이 서구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능과 악마적인 아름다움을 주제로 하고 있다면, 는 불교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전통적인 여인의 모습을 시에 담으려고 함으로써 시인의 관심이 동양적인 것으로 변모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감상 :   이 시는 내가 예전에 책에서도 많이 보아왔던 시이다.. 이 시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다시보고나서 아주 좋은 시라는걸 깨닳았다. 이곳에서 단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모든것들이 도와주고 그런다는 불교의 이야기인것같았다. 내가 아무리 해설을 보고 말했더라도 이 시를보고 많은것을 깨닳았다. 이것은 불교의 인연설이라고 한다고 한다. 이 시는 불교에 좀 관련이 있는 시인것같다. 그리고 한송이 국화꽃를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울었나보다.. 이부분과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이부분이 인연설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국화옆에서.. 정말 좋은시라고 생각된다..  
756    미당 서정주와 대화하기... 댓글:  조회:5017  추천:0  2015-10-22
        서정주님의 생가 마당에서...   까치집 같은데 왜 저렇게 크냐 했더니 옆지기 왈, "해마다 증축공사를 한 모양이지..." 증축공사한 3층짜리 까치집이 그새 다 헐려 나가고 달랑 단칸방 하나.... 누가 그랬을까 ============================================== 서정주 시 모음 41편 ☆★☆★☆★☆★☆★☆★☆★☆★☆★☆★☆★☆★ 가을비 소리  서정주 단풍에 가을비 내리는 소리  늙고 병든 가슴에 울리는구나.  뼈다귀 속까지 울리는구나.  저승에 계신 아버지 생각하며  내가 듣고 있는 가을비 소리.  손톱이 나와 비슷하게 생겼던  아버지 귀신과 둘이서 듣는  단풍에 가을비 가을비 소리! ☆★☆★☆★☆★☆★☆★☆★☆★☆★☆★☆★☆★ 가을에  서정주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門문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오게  低俗저속에 抗拒항거하기에 여울지는 자네.  그 소슬한 시름의 주름살들 그대로 데리고  기러기 잎서서 떠나가야 할  섧게도 빛나는 외로운 雁行안행- 이마와 가슴으로 걸어야 하는  가을 雁行이 비롯해야 할 때는 지금일세.  작년에 피었던 우리 마지막 꽃- 菊花국화꽃이 있던 자리,  올해 또 새 것이 자넬 달래 일어나려고  白露백로는 霜降상강으로우릴 내리 모네.  오게  지금은 가다듬어진 구름.  헤매고 뒹굴다가 가다즘어진 구름은  이제는 楊貴妃양귀비의 피비린내나는 사연으로는 우릴 가로막지 않고,  휘영청한 開闢개벽은 또 한번 뒷門문으로부터  우릴 다지려  아침마다 그 서리 묻은 얼굴들을 추켜들 때일세.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門문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 견우의 노래  서정주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가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홈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 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연 허이연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칠석이 돌아 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 곶감 이야기  서정주 맨드래미 물드리신 무명 핫저고리에,  핫보선에, 꽃다님에, 나막신 신고  감나무집 할머니께 세배를 갔네.  곶감이 먹고싶어 세배를 갔네.  그 할머니 눈창은 고추장 빛이신데  그래도 절을 하면 곶감 한개는 주었네.  "그 할머니 눈창이 왜 그리 붉어?"  집에 와서 내 할머니한테 물어보니까  "도깨비 서방을 얻어 살어서 그래"라고  내 할머니는 내게 말해주셨네.  "도깨비 서방얻어 호강하는게 찔려서  쑥국새 솟작새같이 울고만 지낸다더니  두 눈창자가 그만 그렇게  고추장빛이 다아 되어버렸지  ☆★☆★☆★☆★☆★☆★☆★☆★☆★☆★☆★☆★ 광화문(光化門)  서정주 북악(北岳)과 삼각(三角)이 형과 그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형의 어깨 뒤에 얼굴을 들고 있는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어느새인지 광화문 앞에 다다랐다. 광화문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宗敎). 조선 사람은 흔히 그 머리로부터 왼 몸에 사무쳐 오는 빛을 마침내 버선코에서까지도 떠받들어야 할 마련이지만, 왼 하늘에 넘쳐 흐르는 푸른 광명(光明)을 광화문 - 저같이 의젓이 그 날갯죽지 위에 싣고 있는 자도 드물다. 상하 양층(上下兩層)의 지붕 위에 그득히 그득히 고이는 하늘. 위층엣 것은 드디어 치일치일 넘쳐라도 흐르지만, 지붕과 지붕 사이에는 신방(新房) 같은 다락이 있어 아랫층엣 것은 그리로 왼통 넘나들 마련이다. 옥(玉)같이 고우신 이 그 다락에 하늘 모아 사시라 함이렷다. 고개 숙여 성(城) 옆을 더듬어 가면 시정(市井)의 노랫소리도 오히려 태고(太古) 같고 문득 치켜든 머리 위에선 낮달도 파르르 떨며 흐른다. ☆★☆★☆★☆★☆★☆★☆★☆★☆★☆★☆★☆★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꽃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귀촉도(歸蜀途) 서정주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젓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임아 ☆★☆★☆★☆★☆★☆★☆★☆★☆★☆★☆★☆★ 기다림  성정주 내 기다림은 끝났다.  내 기다리던 마지막 사람이  이 대추 굽이를 넘어간 뒤  인젠 내게는 기다릴 사람이 없으니.  지나간 小滿의 때와 맑은 가을날들을  내 이승의 꿈잎사귀, 보람의 열매였던  이 대추나무를  인제는 저승 쪽으로 들이밀꺼나.  내 기다림은 끝났다.  ☆★☆★☆★☆★☆★☆★☆★☆★☆★☆★☆★☆★ 꽃 서정주 가신 이들의 헐떡이던 숨결로 곱게 곱게 씻기운 꽃이 피었다 흐트러진 머리털 그냥 그대로, 그 몸짓 그 음성 그냥 그대로, 옛사람의 노래는 여기 있어라. 오 ∼ 그 기름 묻은 머릿박 낱낱이 더위 땀 흘리고 간 옛사람들의 노랫소리는 하늘 우에 있어라 쉬여 가자 벗이여 쉬여서 가자 여기 새로 핀 크낙한 꽃 그늘에 벗이여 우리도 쉬여서 가자 맞나는 샘물마닥 목을 축이며 이끼 낀 바윗돌에 턱을 고이고 자칫하면 다시 못볼 하늘을 보자 ☆★☆★☆★☆★☆★☆★☆★☆★☆★☆★☆★☆★ 꽃피는 것 기특해라  서정주 봄이 와 햇빛 속에 꽃피는 것 기특해라  꽃나무에 붉고 흰 꽃 피는 것 기특해라  눈에 삼삼 어리어 물가으로 가면은  가슴에도 수부룩히 드리우노니  봄날에 꽃피는 것 기특하여라.  ☆★☆★☆★☆★☆★☆★☆★☆★☆★☆★☆★☆★ 내 永遠은  서정주 내 永遠은  물 빛  빛과 香의 길이로라.  가다 가단  후미진 굴헝이 있어,  소학교 때 내 女先生님의  키만큼한 굴헝이 있어,  이뿐 女先生님의 키만큼한 굴헝이 있어,  내려 가선 혼자 호젓이 앉아  이마에 솟은 땀도 들이는  물 빛  라일락의  빛과 香의 길이로라  내 永遠은.  ☆★☆★☆★☆★☆★☆★☆★☆★☆★☆★☆★☆★ 노을  서정주 노들강 물은 서쪽으로 흐르고  능수 버들엔 바람이 흐르고  새로 꽃이 ? 들길에 서서  눈물 뿌리며 이별을 허는  우리 머리 우에선 구름이 흐르고  붉은 두볼도  헐덕이든 숨 ㅅ결도  사랑도 맹세도 모두 흐르고  나무 ㅅ닢 지는 가을 황혼에  홀로 봐야할 연지 ㅅ빛 노을.  ☆★☆★☆★☆★☆★☆★☆★☆★☆★☆★☆★☆★ 눈물나네 서정주 눈물 나네 눈물 나네 눈물이 다 나오시네. 이 서울 하늘에 오랜만에 흰 구름 보니 눈물이 다 나오시네. 이틀의 연휴에 공장 쉬고 차 빠져나가 이 서울 하늘에도 참 오랜만에 검은 구름 걷히고 흰 구름이 떠보이니 두 눈에서 눈물이 다 나오시네. ☆★☆★☆★☆★☆★☆★☆★☆★☆★☆★☆★☆★ 늙은 사내의 詩  서정주 내 나이 80을 넘었으니  시를 못쓰는 날은  늙은 내 할망구의 손톱이나 깍어주자  발톱도 또 이쁘게 깍어주자  훈장 여편네로 고생살이 하기에  거칠대로 거칠어진 아내 손발의  손톱 발톱이나 이뿌게 깍어주자  내 시에 나오는 초승달같은  아내 손톱밑에 아직도 떠오르는  초사흘 달 바래보며 마음달래자  마음달래자 마음달래자  ☆★☆★☆★☆★☆★☆★☆★☆★☆★☆★☆★☆★ 대낮  서정주 따서 먹으면 자는듯이 죽는다는  붉은 꽃밭새이 길이 있어  핫슈 먹은 듯 취해 나자빠진  능구렝이같은 등어릿길로,  님은 다라나며 나를 부르고...  强한 향기로 흐르는 코피  두손에 받으며 나는 ?느니  밤처럼 고요한 끌른 대낮에  우리 둘이는 웬몸이 달어...  ☆★☆★☆★☆★☆★☆★☆★☆★☆★☆★☆★☆★ 동천(冬天)  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은 눈섭을  즈문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옴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모란 그늘의 돌  서정주 저녁 술참  모란 그늘  돗자리에 선잠 깨니  바다에 밀물  어느새 턱 아래 밀려와서  가고 말자고  그 떫은 꼬투리를 흔들고,  내가 들다가  놓아 둔 돌  들다가 무거워 놓아 둔 돌  마저 들어 올리고  가겠다고  나는 머리를 가로 젓고 있나니......  ☆★☆★☆★☆★☆★☆★☆★☆★☆★☆★☆★☆★ 무등을 보며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 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위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 무제(無題)  서정주 마리아, 내 사랑은 이젠  네 後光후광을 彩色채색하는 물감이나 될 수 밖에 없네.  어둠을 뚫고 오는 여울과 같이  그대 처음 내 앞에 이르렀을 땐,  초파일 같은 새 보리꽃밭 같은 나의 舞臺무대에  숱한 男寺黨남사당 굿도 놀기사 놀았네만,  피란 결국은 느글거리어 못견딜 노릇,  마리아.  이 춤추고, 電氣전기 울 듯하는 피는 달여서  여름날의 祭酒제주 같은 燒酒소주나 짓거나,  燒酒로도 안 되는 노릇이라면 또 그걸로 먹이나 만들어서,  자네 뒤를 마지막으로 따르는-  허이옇고도 푸르스름한 後光을 彩色하는  물감이나 될 수밖엔 없네.  ☆★☆★☆★☆★☆★☆★☆★☆★☆★☆★☆★☆★ 밤이 깊으면  서정주 밤이 깊으면 淑숙아 너를 생각한다. 달래마눌같이 쬐그만 淑숙아  너의 全身전신을,  낭자언저리, 눈언저리, 코언저리, 허리언저리,  키와 머리털과 목아지의 기럭시를  유난히도 가늘든 그 목아지의 기럭시를  그 속에서 울려나오는 서러운 음성을  서러운서러운 옛날말로 우름우는 한마리의 버꾸기새.  그굳은 바윗속에, 황土황토밭우에,  고이는 우물물과 낡은時計시계ㅅ소리 時計의 바늘소리  허무러진 돌무덱이우에 어머니의時體시체우에 부어오른 네 눈망울우에  빠앍안 노을을남기우며 해는 날마닥 떳다가는 떠러지고  오직 한결 어둠만이적시우는 너의 五藏六腑오장육부. 그러헌 너의 空腹.공복  뒤안 솔밭의 솔나무가지를,  거기 감기는 누우런 새끼줄을,  엉기는 먹구름을, 먹구름먹구름속에서 내이름ㅅ字자부르는 소리를,  꽃의 이름처럼연겊어서연겊어서부르는소리를,  혹은 그러헌 너의 絶命절명을  ☆★☆★☆★☆★☆★☆★☆★☆★☆★☆★☆★☆★ 벽(壁)  서정주 덧없이 바라보던 벽에 지치어  불과 시계를 나란히 죽이고  어제도 내일도 오늘도 아닌  여기도 저기도 거기도 아닌  꺼져드는 어둠 속 반딧불처럼 까물거려  정지한 '나'의  '나'의 설움은 벙어리처럼......  이제 진달래꽃 벼랑 햇볕에 붉게 타오르는 봄날이 오면  벽 차고 나가 목매어 울리라! 벙어리처럼,  오-- 벽아.  ☆★☆★☆★☆★☆★☆★☆★☆★☆★☆★☆★☆★ 뻐꾸기는 섬을 만들고  서정주 뻐꾸기는  강을 만들고,  나루터를 만들고,  우리와 제일 가까운 것들은  나룻배에 태워서 저켠으로 보낸다.  뻐꾸기는  섬을 만들고,  이쁜 것들은  무엇이든 모두 섬을 만들고,  그 섬에단 그렇지  백일홍 꽃나무 하나 심어서  먹기와의 빈 절간을......  그러고는 그 섬들을 모조리  바닷속으로 가라앉힌다.  만 길 바닷속으로 가라앉히곤  다시 끌어올려 백일홍이나 한 번 피우고  또다시 바닷속으로 가라앉힌다.  ☆★☆★☆★☆★☆★☆★☆★☆★☆★☆★☆★☆★ 석류꽃  서정주  춘향이  눈썹  넘어  광한루 넘어  다홍치마 빛으로  피는 꽃을 아시는가?  비 개인  아침 해에  가야금 소리로  피는 꽃을 아시는가  무주 남원 석류꽃을...  석류꽃은  영원으로  시집가는 꽃.  구름 넘어 영원으로  시집가는 꽃.  우리는 뜨내기  나무 기러기  소리도 없이  그 꽃가마  따르고 따르고 또 따르나니...  ☆★☆★☆★☆★☆★☆★☆★☆★☆★☆★☆★☆★ 소곡(小曲)  서정주 뭐라 하느냐  너무 앞에서  아- 미치게  짓푸른 하눌.  나, 항상 나,  배도 안고파  발돋음 하고  돌이 되는데.  ☆★☆★☆★☆★☆★☆★☆★☆★☆★☆★☆★☆★ 시월이라 상달되니  서정주 어머님이 끊여 주던 뜨시한 숭늉,  은근하고 구수하던 그 숭늉 냄새.  시월이라 상달되니 더 안 잊히네.  평양에 둔 아우 생각 하고 있으면  아무래도 안 잊히네, 영 안 잊히네.  고추장에 햇쌀밥을 맵게 비벼 먹어도,  다모토리 쐬주로 마음 도배를 해도,  하누님께 단군님께 꿇어 업드려  미안하요 미안하요 암만 빌어도,  하늘 너무 밝으니 영 안 잊히네.  ☆★☆★☆★☆★☆★☆★☆★☆★☆★☆★☆★☆★ 신부  서정주 新婦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新  郞하고 첫날밤은 아직 앉아 있었는데, 新郞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  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읍니  다. 그것을 新郞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新婦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다리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읍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면 달아나 버렸읍니다.  그러고 나서 四十年인가 五十年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 일  이 생겨 이 新婦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新婦  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新婦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  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읍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제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읍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  아 버렸읍니다.  ☆★☆★☆★☆★☆★☆★☆★☆★☆★☆★☆★☆★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하지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 애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려 가는  바람이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이 아니라 한 두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입맞춤  성정주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콩밭 속으로만 작구 다라나고  울타리는 막우 자빠트려 노코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  사랑 사랑의 石榴석류꽃 낭기 낭기  하누바람 이랑 별이 모다 웃습네요  풋풋한 山노루떼 언덕마다 한마릿식  개고리는 개고리와 머구리는 머구리와  구비 江물은 西天으로 흘러 나려...  땅에 긴 긴 입마춤은 오오 몸서리친  쑥니풀 지근지근 니빨이 히허여케  즘생스런 우슴은 달드라 달드라 우름가치  달드라.  ☆★☆★☆★☆★☆★☆★☆★☆★☆★☆★☆★☆★ 자화상(自畵像)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찬술  서정주 밤새워 긴 글 쓰다 지친 아침은  찬술로 목을 축여 겨우 이어가나니  한 수에 오만 원짜리 회갑시 써 달라던  그 부잣집 마누라 새삼스레 그리워라.  그런 마누라 한 열대여섯 명 줄지어 왔으면 싶어라.  ☆★☆★☆★☆★☆★☆★☆★☆★☆★☆★☆★☆★ 첫사랑의 詩  서정주 초등학교 3학년때  나는 열두살이었는데요.  우리 이쁜 여선생님을  너무나 좋아해서요.  손톱도 그분같이 늘 깨끗이 깍고,  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고,  그러면서 산에가선 산돌을 줏어다가  국화밑에 놓아 두곤  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어요.  ☆★☆★☆★☆★☆★☆★☆★☆★☆★☆★☆★☆★ 추석 서정주 대추 물 들이는 햇볕에 눈 맞추어 두었던 눈썹. 고향 떠나올 때 가슴에 끄리고 왔던 눈썹. 열두 자루 匕首 밑에 숨기어져 살던 눈썹. 匕首를 다 녹슬어 시궁장에 버리던 날, 삼시 세끼 굶는 날에 역력하던 너의 눈썹. 안심찮아 먼 산 바위 박아 넣어두었더니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추석이라 밝은 달아 너 어느 골방에서  한잠도 안 자고 앉었다가 그 눈썹 꺼내들고 기왓장 넘어 오는고. ☆★☆★☆★☆★☆★☆★☆★☆★☆★☆★☆★☆★ 추일미음(秋日微吟)  서정주 울타릿가 감들은 떫은 물이 들었고  맨드라미 촉계는 붉은 물이 들었지만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안해박은 뜰 안에 큰 주먹처럼 놓이고  타래박은 뜰 밖에 작은 주먹처럼 놓였다만  내 주먹은 어디다가 놓았으면 좋을꼬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 추천사 서정주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벼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데미로부터, 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 편지  서정주 내 어릴 때의 친구 淳實이.  생각히는가  아침 山골에 새로 나와 밀리는 밀물살 같던  우리들의 어린 날,  거기에 매어 띄웠던 그네(추韆)의 그리움을?  그리고 淳實이.  시방도 당신은 가지고 있을 테지?  연약하나마 길 가득턴 그 때 그 우리의 사랑을.  그 뒤,  가냘픈 날개의 나비처럼 헤매 다닌 나는  산나무에도 더러 앉았지만,  많이는 죽은 나무와 진펄에 날아 앉아서 지내왔다.  淳實이.  이제는 주름살도 꽤 많이 가졌을 淳實이.  그 잠자리같이 잘 비치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시방은 어느 모래 沙場에 앉아 그 소슬한 翡翠의 별빛을 펴는가.  죽은 나무에도 산 나무에도 거의 다 앉아 왔거든  난들에도 구렁에도 거의 다 앉아 왔거든  이젠 자네와 내 주름살만큼이나 많은 그 골진 사랑의 떼들을 데리고  우리 어린날같이 다시 만나세.  갓트인 蓮봉우리에 낮 미린내도 실었던  우리들의 어린날같이 다시 만나세.  ☆★☆★☆★☆★☆★☆★☆★☆★☆★☆★☆★☆★ 푸르른 날  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피는 꽃  서정주 사발에 냉수도  부셔 버리고  빈 그릇만 남겨요.  아주 엷은 구름하고도 이별 해 버려요.  햇볕에 새 붉은 꽃 피어 나지만  이것은 그저 한낱 당신 눈의 그늘일 뿐,  두 번짼가 세 번 째로 접히는 그늘일뿐,  당신 눈의 작디 작은 그늘일 뿐이어니......  ☆★☆★☆★☆★☆★☆★☆★☆★☆★☆★☆★☆★ 가벼히  서정주 애인이여  너를 맞날 약속을 인젠 그만 어기고  도중에서  한눈이나 좀 팔고 놀다 가기로 한다.  너 대신  무슨 풀잎사귀나 하나  가벼히 생각하면서  너와 나 새이  절깐을 ?더래도  가벼히 한눈 파는  풀잎사귀 절이나 하나 ?어 놓고 가려한다.  ☆★☆★☆★☆★☆★☆★☆★☆★☆★☆★☆★☆★ 학(鶴)  서정주 天年 맺힌 시름을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고운 강물이 흐르듯  鶴이 나른다.  天年을 보던 눈이  天年을 파다거리던 날개가  또한번 天涯에 맞부딪노나  山덩어리 같아야 할 忿怒가  草木도 울려야할 서름이  저리도 조용히 흐르는구나.  보라, 옥빛, 꼭두선이,  보라, 옥빛, 꼭두선이,  누이의 수틀을 보듯  세상은 보자.  누이의 어깨 넘어  누이의 綏틀속의 꽃밭을 보듯  세상을 보자.  울음은 海溢  아니면 크나큰 齊祀와 같이  춤이야 어느 땐들 골라 못추랴.  멍멍히 잦은 목을 제쭉지에 묻을바에야.  춤이야 어느 술참땐들 골라 못추랴.  긴 머리 자진머리 일렁이는 구름속을  저, 우름으로도 춤으로도 참음으로 다하지못한 것이  어루만지듯 어루만지듯  저승 곁을 나른다.  ☆★☆★☆★☆★☆★☆★☆★☆★☆★☆★☆★☆★ 화사(花蛇)  서정주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芳草)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보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 질마재의 노래  서정주 세상 일 고단해서 지칠 때마다,  댓잎으로 말아 부는 피리 소리로  앳되고도 싱싱히는 나를 부르는  질마재. 질마재. 고향 질마재.  소나무에 바람 소리 바로 그대로  한숨 쉬다 돌아가신 할머님 마을.  지붕 위에 바가지꽃 그 하얀 웃음  나를 부르네. 나를 부르네.  도라지꽃 모양으로 가서 살리요?  칡넌출 뻗어가듯 가서 살리요?  솔바람에 이 숨결도 포개어 살다  질마재 그 하늘에 푸르를리요?  ☆★☆★☆★☆★☆★☆★☆★☆★☆★☆★☆★☆  
755    얼굴없는 로동자시인 - 박노해 댓글:  조회:4826  추천:0  2015-10-21
      박노해 1957년 전라남도 함평 출생...본명은 박기평  1976년 서울 선린상고(야간부)를 졸업한 후 섬유, 금속 노동자로 일함.  1984년 버스회사에 입사하여 견습정비공으로 일하던 중 첫 시집 발간.  얼굴없는 노동자 시인으로 알려지기 시작.  1985년결성된 서울노동운동연합에서 활동.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의 결성을 주도.  1993년 두 번째 시집 발간.  1997년 명상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발간.              하늘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 나의 하늘이다.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두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 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시 두려운 하늘이다.   죄인을 만들수도 살릴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높은 사람, 힘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모두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대대로 바닥만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그 사람에게만은 이제 막 아장아장 걸음마 시작하는 미치게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겠지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짖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를 받쳐 주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신혼일기   길고긴 일주일의 노동 끝에 언 가슴 웅크리며 찬 새벽길 더듬어 방안을 들어서면 아내는 벌써 공장 나가고 없다.   지난 일주일의 노동 긴 이별에 한숨지며 쓴 담배연기 어지러이 내어뿜으며 혼자서 밤들을 지낸 외로운 아내 내음에 눈물이 난다.   깊은 잠 속에 떨어져 주체못할 피로에 아프게 눈을 뜨면 야간일 끝내고 온 파랗게 언 아내는 가슴위로 엎으러져 하염없이 쓰다듬고 사랑의 입맞춤에 내 몸은 서서히 생기를 띤다.   밥상을 마주하고 지난 일주일의 밀린 얘기에 소곤소곤 정겨운 우리의 하룻밤이 너무도 짧다.       천생연분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이뻐서가 아니다. 젖은 손이 애처로와서가 아니다. 이쁜걸로야 TV탈렌트 따를 수 없고 세련미로야 종로거리 여자들 견줄수 없고 고상하고 귀티나는 지성미로야 여대생년들 쳐다볼 수도 없겠지 잠자리에서 끝내주는 것은 588 여성동지 발뒤꿈치도 안차고 서비스로야 식모보단 못하지 음식솜씨 꽃꽃이야 강사 따르겠나 그래도 나는 당신이 오지게 좋다. 살아 볼수록 이 세상에서 당신이 최고이고 겁나게 겁나게 좋드라.   내가 동료들과 술망태가 되어 와도 몇일씩 자정 넘어 동료집을 전전해도 건강걱정 일격려에 다시 기운이 솟고 결혼 후 3년 넘게 그 흔한 세일 샤스하나 못사도 짜장면 외식 한번 못하고 로션하나로 1년 넘게 써도 항상 새순처럼 웃는 당신이 좋소.   토요일이면 당신이 무더기로 동료들을 몰고와 피곤해 지친 나는 주방장이 되어도 요즘들어 빨래, 연탄갈이,김치까지 내 몫이 되어도 나는 당신만 있으면 째지게 좋소.   조금만 나태하거나 불성실하면 가차없이 비판하는 진짜 겁나는 당신 죄절하고 지치면 따스한 포옹으로 생명력을 일깨 세우는 당신 나는 쬐그만 당신 몸 어디에서 그 큰 사랑이 , 끝없는 생명력이 나오는가 곤히 잠든 당신 가슴을 열어 보다 멍청하게 웃는다.   못배우고 멍든 공순이와 공돌이로 슬픔과 절망의 밑바닥을 일어서 만난 당신과 나는 천생연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과 억압 속에 시들은 빛나는 대한민국 노동자의 숙명을 당신과 나는 사랑으로 까부스고 밤하늘 별처럼 흐르는 시내처럼 들의 꽃처럼 소곤소곤 평화롭게 살아갈 날을 위햐여 우린 결말도 못보고 눈감을지 몰라 저 거친 발굽 아래 무섭게 소용돌이쳐 오는 탁류 속에 비명조차 못지르고 휩쓸려갈지도 몰라. 그래도 우린 기쁨으로 산다 이 길을 그래도 나는 당신이 눈물나게 좋다 여보야   도중에 깨진다 해도 우리 속에 살아나 죽음의 역사를 넘어서서 이름 봄마다 당신은 개나리 나는 진달래로 삼천리 방방곡곡 흐트러지게 피어나 봄바람에 입맞추며 옛얘기 나누며 일찌기 일 끝내고 쌍쌍이 산에 와서 진달래 개나리 꺽어 물고 푸성귀 같은 웃음 터뜨리는 젊은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윽한 눈물을 짖자 여보야 나는 당신이 좋다. 듬직한 동지며 연인인 당신을 이 세상에서 젤 사랑한다. 나는 당신이 미치게 미치게 좋다.         그리움   공장 뜨락에 따사론 봄볕 내리면 휴일이라 생기 도는 아이들 얼굴 위로 개나리 꽃눈이 춤추며 난다   하늘하늘 그리움으로 노오란 작은 손 꽃바람 자락에 날려 보내도 더 그리워 그리워서 온몸 흔들다 한 방울 눈물로 떨어진다.   바람 드세도 모락모락 아지랑이로 피어나 온 가슴을 적셔 오는 그리움이여 스물다섯 청춘 위로 미싱 바늘처럼 꼭꼭 찍혀 오는 가간에 울며 떠나던 아프도록 그리운 사람아         통박   어느 놈이 커피 한잔 산다 할 때는 뭔가 바라는게 있다는 걸 안다.   고상하신 양반이 부드러운 미소로 내 등을 두드릴 땐 내게 무얼 원하는지 안다.   별스런 대우와 칭찬에 허릴 굽신이며 감격해도 저들이 내게 무얼 노리는지 안다.   우리들이 일어설 때 노사협조를 되뇌이며 물러서는 저 인자한 웃음 뒤의 음모와 칼날을 우리는 안다.   유식하고 높은 양반들만이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일찌기 세상마다 뒹굴며 눈치밥을 익히며 헤아릴 수 없는 배신과 패배 속에 세상 살아가는 통박이 생기드만   세상엔 빡빡 기는 놈들 위해서 신선처럼 너울너울 나는 놈 따로 있어 날개 없이 기름바닥 기는 우리야 움츠리며 통박을 굴리며 살아가지만 통박이 구르다 보면 통박끼리 구르고 합쳐지다 보면 거대한 통박이 된다고   좆도 배운 것 없어도 돈날개 칼날개 달고 설치는 놈들이 무엇인지 이놈의 세상이 어찌된 세상인지 누구를 위한 세상인지 우리들 거대한 통박으로 안다.   쓰라린 눈물과 억압과 패배 속에서 거대한 통박으로 구르고 부딪치고 합치면서 우리들의 통박은 점점 날카롭고 명확하게 가다듬어지는 것이다. 우리들의 통박이 거대한 통박으로 하나의 통박으로 뭉쳐지면서 노동하는 우리들이 새날을 향하여 이놈의 세상을 굴려갈 것이다.       진짜 노동자   한세상 살면서 뼈빠지게 노동하면서 아득바득 조출철야 매달려도 돌아오는 건 쥐씨알만한지   죽어라 생산하는 놈 인간답게 좀 살라고 몸부림쳐도 죽어라 쇳가루만 날아들고 콱콱 막히고 골프채 비껴찬 신선놀음 허는 놈들 불도자처럼 정력좋은 이윤추구에는 비까번쩍 애국갈채 제기랄 세상사가 왜이리 불평등한지   이 땅에 노동자로 태어나서 생각도 못하고 사는 놈은 죽은 송장이여 말도 못하는 놈은 썩은 괴기여 켈레비만 좋아라 믿는 놈은 얼빠진 놈 이빨만 까는 놈은 좆도 헛물 실천하는 사람 동료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노동자만이 진실로 인간이제 진짜 노동자이제   비암이라고 다 비암이 아니여 독이 있어야 비암이지 센방이라고 다 센방이 아녀 바이트가 달려야 센방이지 노동자라고 다 노동자가 아니제 동료와 어깨를 꼭 끼고 성큼성큼 나아가 불도자 밀어제께 우리 것 찾아 담은 포크레인 삽날 정도는 되어야 진짜 노동자지         준비 없는 희망   준비없는 희망이 있습니다 처절한 정진으로 자기를 갈고 닦아 저 거대한 세력을 기어코 뛰어넘을 진정한 자기 실력을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없는 준비가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해 가는데 세상과 자기를 머릿속에 고정시켜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그 해 겨울나무  1. 그해 겨울은 창백했다 사람들은 위기의 어깨를 졸이고 혹은 죽음을 앓기도 하고 온몸 흔들며 아니라고 하고 다시는 이제 다시는 그 푸른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팔락이던 이파리도 새들도 노래소리도 순식간에 떠나 보냈다. 잿빛 하늘에선 까마귀떼가 체포조처럼 낙하하고 지친 육신에 가차없는 포승줄이 감기었다. 그해 겨울,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2. 후회는 없었다 가면 갈수록 부끄러움뿐 다 떨궈주고 모두 발가벗은 채 빚남도 수치도 아닌 몰골 그대로 칼바람 앞에 세워져 있었다. 언 땅에 눈이 내렸다. 숨막히게 쌓이는 눈송이마저 남은 가지를 따닥따닥 분지르고 악다문 비명이 하얗게 골짜기를 울렸다. 아무 말도 아무말도 필요 없었다. 절대적이던 남의 것은 무너져 내렸고 그것은 정해진 추락이었다. 몸뚱이만 깃대로 서서 처절한 눈동자로 자신을 직시하며 낡은 건 떨치고 산 것을 보듬어 살리고 있었다. 땅은 그대로 모순투성이 땅 뿌리는 강인한 목숨으로 변함없는 뿌리일 뿐 여전한 것은 춥고 서러운 사람들아 산다는 것은 살아 움직이며 빛살 틔우는 투쟁이었다.   3. 이 겨울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죽음 같은 자기 비판을 앓고 난 수척한 얼굴들은 아무데도 아무데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디를 긁히며 나이테를 늘리며 부리는 빨갛게 언 손을 세워 들고 오직 핏속으로 뼛속으로 차오르는 푸르름만이 그 겨울의 신념이었다. 한점 욕망의 벌레가 내려와 허리 묶은 동아줄을 기어들고 마침내 겨울나무는 애착의 띠를 뜯어 쿨럭이며 불태웠다.   살점 에이는 밤바람이 몰아쳤고 그 겨울 내내 모두들 말이 없었지만 이 긴 침묵이 새로운 탄생의 첫발임을 귿게 믿고 있었다. 그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           민들레처럼   일주일의 단식 끝에 덥수룩한 수엽 초췌한 몰골로 파란 수의에 검정고무신을 끌고 어질어질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굴비처럼 줄줄이 엮인 잡범들 사이에서   "박노해씨 힘내십시요." 어느 도적놈인지 조직폴력배인지 노란 민들레 한송이 묶인 내 손에 살짝이 주어주며 환한 꽃인사로 스쳐 갑니다.   철커덩, 어둑한 감치방에 넣어져 노란 민들레꽃을 코에도 볼에도 대어보고 눈에도 입에서 ?줘보며 흠흠 포근한 새봄을 애무한 민들레꽃 한 송이로 환하게 번져오는 생명의 향기에 취하여 아~ 산다는 것은 정년 아름다은 것이야   그러다가 문득 내가 무엇이길래 긴장된 마음으로 자세를 바로잡고 민들레꽃을 바로 봅니다. 어디선가 묶인 손으로 이 꽃을 꺾어 정성껏 품에 안고 내 손에까지 쥐어준 그분의 애정과 속뜻을 정신 차려 내 삶에 새깁니다.   민들레처럼 살아야 합니다. 차라리 발길에 짓밟힐지언정 노리개꽃으로 살지 맙시다. 흰 백합 진한 장미의 화려함보다 흔하고 너른 꽃 속에서 자연스레 빛나는 우리 들꽃의 자존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빛나지 않아도 조금도 쓸쓸하지 않고 봄비 뿌리면 그 비를 마시고 바람 불면 맨살 부대끼며 새 눈과 흙무더기 들풀과 어우러져 모두 다 봄의 주체로 서로를 빛나게 하는 민들레의 소박함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그래요. 논두렁이건 무너진 뚝방이건 폐유에 절은 공장 화단 모둥이 쇠창살 너무 후미진 마당까지 그 어느 험난한 생존의 땅 위에서건 끈질긴 생명력으로 당당하게 피어나는 민들레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우리는 보호막 하나 없어도 좋습니다. 말하는 것 깨지는 것도 피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피어나야 할 곳에 거침없이 피어나 온몸으로 부딪치며 봄을 부르는 현장의 민들레 그 치열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자신에게 단 한번 주어진 시절 자신이 아니면 꽃피울 수 없는 거칠은 그 자리에 정직하게 피어나 성심껏 피어나 기꺼이 밟히고 으깨지고 또 일어서며 피를 말리고 살을 말려 봄을 진군하다가 마침내 바람찬 허공중에 수천수백의 꽃씨로 장렬하게 산화하는 아 - 민들레 민들레 그 민들레의 투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고문으로 멍들은 상처투성이 가슴위에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 받아 들고 글썽이는 눈물로 결의합니다. 아- 아- 동지들,형제들 준엄한 고난 속에서도 민들레처럼 민들레처럼 그렇게 저는 다시 설 것입니다.         강철 새 잎   저거 봐라 새잎 돋는다 아가 손마냥 고물고물 잼잼 봄볕에 가느란 눈 부비며 새록새록 고목에 새순 돋는다.   연둣빛 새 이파리 네가 바로 강철이다. 엄흑한 겨울도 두터운 껍질도 제힘으로 뚫었으니 보드라움으로 이겼으니   썩어가는 것들 크게 썩은 위에서 분노처럼 불끈불끈 새싹 돋는구나 부드러운 만큼 강하고 여린 만큼 우람하게 오 눈부신 강철 새잎            마지막 시   거대한 안기부의 지하밀실을 이 시대의 막장이라 부른다.   소리쳐도 절규해도 흡혈귀처럼 남김없이 빨아먹는 저 방음벽의 절망 24시간 눈 부릅뜬 저 새하얀 백열등 불어 불엇! 끝없이 이어지는 폭행과 온 신경이 끊어 터질 듯한 고문의 행진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된다 더이상 무너질 수는 없다. 여기서 무너진다면 아 그것은 우리들 희망의 파괴 우리 민중의 해방출구이 붕괴 차라리 목슴을 주자 앙상한 이 육신을 내던져 불패의 기둥으로 세워두자   서러운 운명 서러운 기름밥의 세월 뼛골시게 노동하고도 짓밟혀 살아온 시간들 면도날처럼 곤두선 긴장의 나날 속에 매순간 결단이 필요했던 암흑한 비밀활동 그 거칠은 혁명투쟁의 고비마다 가슴치며 피논물로 다져온 맹세 천만 노동자와 역사 앞에 깊이 깊이 아로새긴 목숨 건 우리들의 약속 우리들의 결의 지금이 그때라면 여기서 죽자 내 생명을 기꺼이 바쳐주자   사랑하는 동지들 내 모든 것인 살붙이 노동자 동지들 내가 못다 한 엄중한 과제 체포로 이어진 크나큰 나의 오류도 그대들 믿기에 승리를 믿으며 나는간다 죽음을 향해 허청허청 나는 떠나 간다.   이제 그 순간 결행의 순간이다. 서른다섯의 상처투성이 내 인생 떨림으로 피어나는 한줄기 미소 한 노동자의 최후의 사랑과 적개심으로 쓴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 마지막 생의 외침 아 끝끝내 이 땅 위에 들꽃으로 피어나고야 말 내 온 목숨 바친 사랑의 슬로건   "가자 자본가세상, 챙취하자 노동해방"        그대 나 죽거든   아영아영 나 죽거든 강물 위에 뿌리지마 하늘바람에 보내지 말고 땅속에다 묻어주오 비 내리면 진 땅에다 눈 내리면 언 땅에다 까마귀 산짐승도 차마 무시라 뒷걸음쳐 피해가는 혁명가의 주검 그대 봄빛 손길보다 다독다독 묻어주오   나 언 땅 속에 길게 뿌리누워 못다 한 푸른 꿈과 노래로 흐를 테요 겨울 가고 해가 가고 나 흙으로 사라지고 호올로 야위어가는그대.. 어느 봄 새벽, 수련한 함박꽃으로 피어 날 부르시면은 나 목메인 푸르른 깃발 펄럭이면서 잠든 땅 흔들어 깨우며 살아날 테요   아영아영 나 죽거든 손톱 발톱 깎아주고 수염도 다듬어서 그대가 빨아 말린 흰옷 이쁘게 입혀주오 싸늘한 살과 뼈 험한 내 상처도 그대 다순 숨결로다 호야호야 어루만져 하아- 평온한 그대 품안에 꼬옥 보듬어 묻어주오 자지러진 통곡도 피 섞인 눈물도 모질게 거두시고 우리 맹세한 붉은 별 사랑으로, 눈부신 그 봄철로 슬픔 이겨야해. 아영 강인해야 해   어느 날인가 그대 날 찾아 땅속으로 오시는 날 나 보드란 흙가슴에 영원히 그댈 껴안으리니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살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거룩한 사랑   성은 피과 능이다.   어린 시절 방학때마다 서울서 고학하던 형님이 허약해져 내려오면 어머님은 애지중지 길러온 암탉을 잡으셨다 성호를 그은 뒤 손수 닭 모가지를 비틀고 칼로 피를 뭍혀가며 맛난 닭죽을 끓이셨다. 나는 칼질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떨면서 침을 꼴깍이면서 그 살생을 지켜 보았다.   서울 달동네 단칸방 시절에 우리는 김치를 담가 먹을 여유가 없었다 막일 다녀오신 어머님은 지친 그 몸으로 시장에 나가 잠깐 야채를 다듬어 주고 시래깃감을 얻어와 김치를 담고 국을 끊였다. 나는 이 세상에서 그 퍼런 배추 겉잎으로 만든 것보다 더 맛있는 김치와 국을 맛본 적이 없다. 나는 어머님의 삶에서 눈물로 배웠다.   사랑은 자기 손으로 피을 묻혀 보살펴야 한다는 걸   사랑은 가진 것이 없다고 무능해서는 안 된다는 걸   사랑은 자신의 피와 능과 눈물만큼 거룩한 거라는 걸         고난은 자랑이 아니다   고난은 싸워 이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역경은 딛고 일어서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좌절은 뒤어넘으라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맑은 눈 뜨라고!   고통을 피하지 말고 맞서 싸우려들거나 빨리 통과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고통의 심장을 파고들어 그 안에 묻힌 하늘의 얼굴을 찾으리고   고난은 살아낸 그대여 그것은 장한 인간 승리이지만 맑은 눈 뜨지 못하면 철저히 무너지고 깨어져 내려 먼지만큼 작은 자신으리 실상을 보지 못하면 내세운 정의와 진리 속에 숨어있는 자신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면,   고난을 ?고 나온 자랑스러운 그대 역시 또 하나의 닻입니다. 슬픔입니다. 고난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승화시킨 사람이 아니라면 생의 가장 깊은 절망과 허무의 바닥에서 맑은 눈으로 떠오른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 앞을 비추이는 희망의 사람이 아닙니다.   행여 제가 고난받았다고 얼굴을 들거든 침을 뱉어 주십시요 고난받았기에 존경받는다면 그것은 나의 치욕입니다 슬픈 일이지만, 고난이 나를 키웠고 고난이 나를 깨우쳤고 고난 속에서 나는 사랑을 배웠고 그대를 만났습니다. 아- 나에게 고난은 자랑이 아니라 아름다운 슬픔입니다.       줄 끊어진 연   한겨울 바람이 맵찬 어느 날이었어요 창살 너머 어둑한 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줄 끊어진 가오리 연 하나가 뒤척이며 고행중이더군요   스스로를 산채로 파묻고 인연 줄도 다 놓아 버려 깊어가는 감옥이 조금은 적막하지만 한사코 붙잡지 않습니다 탓하지도, 의지하지도, 소망하지도 않습니다.   난 지금 줄 끊어진 연처럼 홀로 빈 하늘 떠도는 듯해도 하하, 나는 나대로 고독한 긴장 속에 생명줄 내건 치열한 날들입니다.   보이는 줄만 줄일까요 세 손으로 거두어야만 삶일까요 이헐게 날면 되는 것을 줄 없는 줄을 타고 허공 찬바람 속에 몸 던져주며   나는 홀로 날았습니다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내 목숨 같은 외줄을 끊고 살아 있는 모든 것과 다시 이어지는 고투의 세월을 참흑한 투쟁과 묵상의 나날이었습니다   아- 눈 맑게 열리고 마침내 내 인연의 때가 오는 날   줄 없는 줄을 통해 아직도 첫마음 밝혀든 그대에게 나 뜨거운 떨림으로 차전할 것입니다.   그래요 희망의 줄은 이미 저마다의 몸 속에 내장되어 있고 좋은 세상은 이미 현실 속에 와 자라고 있고 외줄의 때가 있고 거미줄의 때가 있고   밤새 거미 한 마리가 제 몸 속에서 투명한 줄을 뽑아 쇠창살에 잘 짜인 집을 짓더니 아침 햇살에 이른 영롱한 팽팽한 거미줄망이 그대로 한 우주, 내 삶의 안과 밖이 이어지는 관계 그물망으로 확 비추어 오더군요.       겨울이 온다   와수수 가랑잎 쓰는 바람에 삭발한 머리 쳐드니 하늘은 저만큼 높아져 있다. 나는 이만큼 낮아져 있는데   시린 하늘 흰 구름은 옥담 질러 사라지고 나는 컴컴한 독방으로 사라지고   맑은 가을볕도 잠깐 여위어가는 가을 설움도 잠깐 벌써 독방 마루 바닥이 찹다 의시시 몸 웅크리며 겨울 보따리 풀어 해진 옥 궤맨다   아 어느덧 저만큼 겨울이 온다 겨울이 온다   벽 속에 시퍼렇게 정좌한 채 겨울 정진 깊어가는 날 온다 대낮에도 침침한 독거방 불빛 아래 갑자기 바느질 손 바빠진다.       참혹한 사랑   그대 소식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 못 본지 벌써 7년인데 얼굴이 몹시 안되었더라고 그동안 크레 앓아 몹쓸 수술까지 받았다고 사람들과도 잘 만나지 않는다고 내 얘기 듣고 말없이 울기만 하더라고   바보같이... 바보같이... 그렇게 혹독하게 시대앓이를 하다니 그냥 좀 살지 몸이라도 챙기지 다들 돌아가 따뜻한 자리를 잡는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다 바친 그대가 왜 바보같이 정말 바보같이 나도 가끔은 웃으며 사는데   그래 내가 힘들까 봐 엽서 한장 없었나요 혼자서 여린 몸에 그 패배를, 가혹한 상처를 그렇게 지독히 앓아야만 했나요   누구보다 빛나는 재능과 아름다움이 아까웠어요 맑은 열정과 가능성이 너무 아까웠어요 그래서 그 ?치울 때까지만 좀 떨어져 하라고 했던 거에요 그런데도 울며 꽃 꺾어 던지며 현장으로 수배길로 오시더니 이렇게 쓰러지자고, 피투성이로 망가지자고 한사코 조은 길만 골라 걸으셨나요   이제는 더 울지 마세요 슬픔도 착함도 버리세요 떨리는 기다림도 버리세요 남들처럼 대충 잊어버리세요 그대 안의 나도 지워버리세요 많이 늦었지만 따뜻하게 둥그렇게 이젠 부디 행복하세요.   바보같이... 바보같이 ... 아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꽃같이 싱싱하던 그대가 아니라 다시는 필수 없는 흘러간 꽃이라도 그대의 좌절 그애의 상처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내 남은 목숨이 다하도록 멀리서... 곁에서...    
  시여, 우리 시인이여                                                                                                          임 동 윤(시인)   1 시가 짧은 형식의 언어예술이라고 한다면 시를 언어의 정수라고 말해도 무방하리라. 따라서 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언어를 이해하는 일이며 나아가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동물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또한 시의 효용성을 놓고 볼 때, 시 한 편이 우리 삶에 있어서 즐거움과 가르침을 동시에 준다는 점에서도 그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시가 널리 수용되거나 회자되지 못하고 있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왜 그럴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봇물처럼 쏟아지는 시의 홍수 속에서 를 만나지 못하는 데 그 큰 까닭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와 를 가려낼 수 있단 말인가? 그 기준은 무엇일까? 시를 구별하는 눈은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다르기 때문에 이의 구분은 참으로 어렵다. 이것도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시를 읽을 때 사사로운 개인적인 감정이나 경험에 근거하여, 다시 말해 자신의 연상이나 기억에 의지하여 때때로 과도한 반응을 보여 ,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시를 바르게 이해하는 온당한 태도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보다는 문맥 속에서의 ‘언어 조직에 얼마나 충실을 도모했는가?’ 하는 점에서 시를 평가하는 기본으로 삼아야 온당하리라고 본다.     가끔 나더러 ‘왜, 시를 쓰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척 곤혹스럽다. 하지만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어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가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도 그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다시 되물어온다. ‘시가 돈이 되고 밥이 되느냐?’고 말이다. 그럴 때 나는 또 대답한다. ‘내 정신의 밥이 곧 시’라고 말이다. 그렇다. 하얀 쌀밥은 사람들의 배를 부르게 하지만, 시는 ‘정신을 살찌우는 나의 밥’이기 때문이다. 한 편의 시를 가슴에 넣고 하루를 너끈히 살아가는 시인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 편의 좋은 시를 가슴에 품고 평생을 그 향기에 취해 풍요롭게 살아가는 시인도 있다고 들었다.   이렇게 볼 때, 시를 쓰는 행위는 어쩌면 구원의 한 의식인지도 모르겠다. 한 끼 밥은 굶을 수 있어도 시인에겐, 정신의 허기는 참을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시가 없는 삶이란 시인을 황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가 ‘밥의 길’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시로써 ‘배가 부르는 시인’은 분명 있을 것이다. 사실 시 한 편을 쓰고, 또 어렵게 시집 한 권 내보아야 돈도 밥도 되지 않는다. 또한 명예나 지위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시인이 스스로 시 짓기를 주저하고 두려워한다면 아예 다른 길로 가야지 시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피나는 노력 없이, 좋은 시를 쓰겠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애초부터 그런 생각은 버려야만 할 것이다.     일찍이 니체는 ‘좋은 글은 피의 여로를 거쳐야 하며, 피로 쓴 글만이 진실하다.’ 고 말한바 있다. 그리고 불멸의 명작을 남긴 플로베르도 글 쓰기의 어려움을 가리켜, ‘내 심장과 두뇌를 짜서 그걸 고갈시키는 과정이며, 한 마디의 말을 찾기 위해서 하루 종일 내 머리를 쥐어짰다.’ 라고 말한바 있다. 그만큼 글 쓰기가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걸 나타내는 말들이다. 그래서 가끔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나는 과연 피의 여로를 거쳤을까? 내 심장과 두뇌를 쥐어짜서 토로하는 과정을 얼마나 거쳤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면 그만 말문이 콱 막힌다. 나름대로는 많은 밤을 피 흘리는 것처럼 지샌 적도 있고 또 실제 수많은 파지를 만들기도 했다. 수많은 파지를 만든다는 게 어찌 그렇게 쉬운 일인가? 그렇게 해서 겨우 겨우 만든 한 편의 시, 그 시를 만나기 위해서 몇 달이 걸리기도 하고 혹은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이렇게 시는 피를 짜내는 고통이 있어야만 탄생하는 것일 게다. 그렇다고 위대한 시, 훌륭한 시, 좋은 시가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결국 어떤 시를 몇 편 만드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시를 쓰느냐가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컴퓨터를 이용해 시를 쓰는 일이 많아졌는데,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면 모니터의 깜박이는 커서가 ‘빨리 써, 빨리!’ 하고 나를 막 보채곤 한다. 그러나 시의 첫 행조차 쉽게 시작할 수 없어서 나는 늘 막막하고 불안하다. 어쩌면 저 아득히 높은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날마다 안간힘을 쓴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게. 허물 벗는 고통 없이 어찌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내 시에 대해서 치열해지자고 오늘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 치열함이야말로 새로운 삶의 기폭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 치열한 깨우침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만들면서 동시에 정신의 밥을 제공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잘 산다는 것은, 우리 시인에겐 시로 된 정신의 밥을 제대로 먹으면서 살아야 비로소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 편의 감동을 주는 시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그 시를 쓴 시인의 아픈 삶이 그대로 녹아있어야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가슴으로 쓴 시, 즉 시의 진정성이 곧 감동으로 연결된다고 나는 굳게 믿어보는 것이다.     2 시인은 많다. 그래서 그 시인의 숫자만큼 시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시 앞에서 두려움과 외경을 느끼지 못하는 현상의 반영’이라는 추측도 가능해 진다. 자신의 감수성은 뒷전으로 돌려놓고 대세와 풍문과 눈치에 의존하여 시를 창작한다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시의 가치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요즘 시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독자들은 말한다. 정말 와 가 있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와 가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에서 대부분의 독자들이 어렵다고 토로할 것이다. 시의 역사도 피라미드와 같다. 먼저 태어난 작품을 딛고 후대 작품이 올라서는 것이다. 따라서 시를 대충대충 마무리짓고 건성으로 넘어가는 일이 있다면 이는 부단히 경계해야할 일이다. 언어에 대한 엄밀성은 우리 시인이 가꾸어야 할 첫 번째 기율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 이러한 시는 어떠한 웅변보다도, 어떤 대화보다도 심금을 흔들 수 있는 예술, 문학예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시를 통하여 경험을 얻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시를 바르게 쓰고 또 이해하도록 해야만 한다.   이 글을 맺으면서 아래의 몇 가지 말들을 나 자신과 시를 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고하고 싶다. 좋은 시를 쓰려면 아래의 몇 가지를 늘 염두에 두고 그것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자고 말이다. 이를 지키는 일이 를 쓰는 첫 번째 비결이요, 독자들을 다시 시 앞으로 모이게 하는 최첨단 비법이기 때문이다.     [아래]   첫째, 시의 언어에서 되도록 관습적인 표현은 버리도록 합시다. 둘째, 추상적이고 모호한 관념적인 언어의 사용도 자제하도록 합시다. 셋째, 비유와 상징, 새로운 상상력으로 시의 완성도를 높이도록 합시다. 넷째, 시에서도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도입해 재미를 느끼도록 해봅시다. 다섯째, 시의 배열과 조화를 바둑의 포석처럼 치밀하게 짜봅시다. 여섯째, 시는 사실의 진술(설명)이 아니라 이미지(묘사를 통한)임을 명심합시다.  
753    시여, 똥을 싸라... 시는 詩치료로 쓰자... 댓글:  조회:4748  추천:0  2015-10-20
시여 똥을 싸라 ​ ​ 글 / 유병근 (시인, 수필가) ​ ​ ​ 시를 두고 콩이니 팥이니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많다. 심지어는 시집 한 권 읽어볼 생각조차 없는 사람도 시는 무엇이다 하며 지나가는 투로 입을 댄다. ​ 하기에 시의 가슴은 저마다 주절거리는 입에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는 처참한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게 뜯길수록 시는 오히려 더 건강해짐을 볼 수 있으니 주절거림과의 끈질긴 인연이라고 하겠다. ​ 시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시 속에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며 어림짐작으로 말한다. 그 '무엇이'라는 것에 끌려 심심풀이로나마 시나 읽어볼까 하고 도시철도 승강장에 걸린 시 앞에서 우두커니 서기도 한다. ​ 그런데 읽어도 알 수 없는 구절에 걸려 그냥 발길을 돌린다. 시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시는 고상한 척 멋을 부리는 자의 장식품이다. 시는 생각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호사가의 악취미다. 시는 허무맹랑한 말장난이다. 그런즉 시인은 요상한 거짓말쟁이다. 이런 생각들을 혹 가슴 깊이 깔고 있는지도 모른다. ​ 시를 하면서 들을 수 있는 갖가지 언사들은 그래도 시에 관심을 가졌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관심이 없으면 시 따위에 입을 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시인을 추방하라고 한 플라톤 역시 시에 관심을 가졌기에 시인 추방이란 폭언을 거침없이 내뱉었으리라. ​ 생각해 보면 시는 똥이다. 몸에서 빠져나가는 배설물을 시에 끌어댄다는 것은 어쩌면 시를 지나치게 비하하는 일이다. 그러나 막혔던 시가 마음에서 빠져나갈 때의 후련함과 배설물인 똥이 몸에서 빠져나갈 때의 시원함은 엇비슷하다. 막힌 젖이 빠져나갈 때 느끼는 희열은 한 편의 시를 완성했을 때의 희열에 견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시는 똥이다. 이런 말이 새삼스런 것은 결코 아니다. 똥은 거름이 되어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작물 성장에 도움이 된다. 시는 인간 정서에 거름이 된다. 거름이란 처지에서 볼 때 시이건 똥이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건 분명하다. ​ 시는 돈이 되지 않는다고 경제지상주의 사회에서 주눅이 든다. 하지만 돈 이상의 값어치를 시가 한다면 혼자만의 착각일까. 음악치료 미술치료가 있듯이 시치료에 의하여 피폐한 인간 정서를 보다 기름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착각만은 아니겠다. 꿈에 똥을 주무르면 황금이 생긴다는 해몽을 시에 끌어들여도 좋을 성싶다. ​ 그래 시를 하면서 용기를 내어보자는 것이다. 남이야 뭐라고 하던 귀를 기울이지 않는 옹고집쟁이가 되자. 기왕 시작한 고집이니 죽이든 밥이든 끝나는 날까지 가보자는 오기로 나가는 길 밖에 딴 도리는 전혀 없다는 일방적이 융통성 없는 아집에 칵 닫힌다. 그것이 때로는 어리석고 괴로운 짓이기는 하다. 오죽 못났으면 하필이면 그런 서툰 오기나 부리는가 하고 손가락질을 받을 것은 뻔하다. ​ 시는 소중한 보물이다. 하루도 만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가슴 태우는 어여쁜 애인이다. 이리 쓰다듬고 저리 쓰다듬으며 밤을 새도 싫증 나지 않는 사랑스런 모습니다. 처음 시를 할 때의 생각은 늘 이랬다. ​ 그러나 세월이 지날수록 마음의 빛깔이라는 것이 조금씩 빛을 바래는지 때로는 시에 없는 투정을 부렸다. 시를 만나지 않았으면 더 눈부신 일로 호의호식하면서 보다 위풍당당하게 지낼 것인데 하고 마음으로 시를  쿡쿡 쥐어박았다. 차라리 결별하자. 이런 생각으로 한동안 시에 눈을 두지 않았다. ​ ​ 다정하다고 하는 부부 사이도 때로는 이런저런 언성을 높이는 권태기라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시와의 권태기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 했다. 뭔가 놓치고 산다는 허전한 생각이 들어 그 이유가 뭘까 하고 잔머리를 굴렸다. 그랬더니 아주 철저히 잊고자 했던 시의 끈이 엉뚱하게도 떠올랐다. 그때 탁 머리를 치는 것이 있었다. 시와 조금 더 가까이 지내라며 타이르는 죽비소리였다. 다소 쑥스럽기는 하지만 시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랬더니 마음에 따뜻한 약발이 섰다. 토라져 있던 시 역시 한 걸음씩 돌아와 주었다. 그것은 웅숭깊은 기쁨이며 소통이었다. ​ 그러나 권태기라는 것을 겪은 다음 내 안에서 또 다른 이상 증후가 은근히 내다보고 있었다. 시에 굳이 안달복달하지 않아야겠다는 나름대로의 약은 계산이 그것이다. 처음의 열정은 식고 이제 덤덤한 것만이 심중에 들앉아 나를 통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활화산은 언젠가 식기 마련이다. 시에 성급하게 덤비던 활화산도 이제는 연기나 이따금 솔소 피우는 다소 느슨한 처지로 어느새 변해버렸다. ​ 그런 약은 속셈에 서둘지 말자는 생각이 눈을 떴다. 서둔다고 뭐가 금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랬더니 세계란 것이 차차 새로운 모습으로 떠오르는 어떤 실루엣 같은 요요현상이 망막에서 일다가 사라지곤 했다. 길을 가도 천천히 가는 걸음에는 사방의 풍경이 조금 더 자세히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서두르며 숨 가쁘게 설치는 걸음에는 어디로 간다는 생각만이 마음속에 들앉아 주변의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한다. ​ 천천히 사는 것이 확실하게 사는 것이다. 확실하다는 것에는 세계를 촘촘하게 볼 수 있는 길이 있다. 가령 길가에 핀 꽃송이에서 꽃의 세계를 보는 재미에 끌리기도 한다. 꽃 속에는 꽃이 가는 길이 있다. 그 길에 꽃바구니를 든 소녀가 꽃을 뿌리고 있다. 진달래로 울긋불긋하던 고향 마을이 길 너머에 보인다. 그것은 나름 새로운 세상 보기라며 혼자 멋없이 들뜨기도 한다. 서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이 어느새 물거품이 된다. ​ 누구나 그렇지만 이렇게 꽃을 본다는 것은 꽃의 마음과 눈이 부딪치는 작은 충격이다. 그런데 꽃의 겉모양만 볼 경우 꽃잎이 몇 개, 빛깔은 어떻고 꽃술이 어떻고 하는 것 외는 달리 볼 것도 없는 어제 보던 그대로의 꽃이다. 하기에 꽃을 보면서 꽃그늘에 앉았다 간 사람도 떠올라 꽃을 보는 눈에 지나간 시간을 보고 읽는 새로운 감흥에 젖기도 한다. 고향 까마귀만 보아도 고향 생각에 가슴 설렌다고 하지 않는가. ​ 어느 한 가지에만 시선을 둘 경우 본다는 것의 의미가 제한된다. 시선 돌리기는 시의 주변을 보다 다양하게 표출하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어느 한 개인의 이모저모를 알고자 할 적에도 그 개인만이 아닌 그가 처한 주위 환경을 두루 살피게 된다. 가령 교우관계는 어떠며 특기와 취미는 어떤가 하고 그를 재어 본다. 그렇다고 문제가 순순히 풀리는 것은 아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도 아니 되는 사람 속은 자칫 안개 속이라고 한다. ​ 언젠가 티브이 화면에서 본 허리케인은 거대한 나사못이었다. 지상에 있는 나무며 자동차를 뽑아 다른 곳으로 옮기는 힘을 그것이 갖고 있었다. 건물을 뜯어 옮기고 건물 속에 숨죽이고 있는 온갖 집기什器를 끌어내어 천공으로 삐라처럼 흩뿌렸다. 첨단과학시대라고는 하지만 허리케인의 힘은 막지 못 했다. 안하무인인 허리케인은 세계 어느 독재자보다 더 막강한 싹쓸이를 즐기는 세도가였다. ​ 허리케인 속에는 변용을 시도하려는 힘이 있다.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크든 작든 일단 허리케인이 되어보자는 약은 속셈에 찬다. 그러면 마음 밑바닥에 갈앉아 있던 케케묵은 옹고집이 깨끗이 쓸려 나가고 텅 빈 황무지 같은 자리가 새로 생길 것이다. 그 자리에 새로운 감각 새로운 무장武裝을 갖춘 정신으로 시의 마당에 뛰어들어 보자는 요량에 잠기기도 한다. ​ ​ 김현승 시인은 "시여 침을 뱉어라​"며 일갈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덩달아 "시여 똥을 싸라"고 엉겁결에 토를 달면서 바짓가랑이를 살핀다. ​ ​
752    보리피리시인 - 한하운 댓글:  조회:5555  추천:0  2015-10-17
  나병(문둥병)환자였던 시인은 의 한하운 시인.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때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주요 시어 및 시구 풀이 * 보리피리 → 시적 자아가 고향과 유년 시절, 인간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리게 해주는 매개체임. * 피 ― ㄹ 닐니리 → 비애와 한이 서린 의성어. * 인환 → 인간의 세계 * 인간사 그리워 → 정상인들과의 거리에서 오는 비애와, 정상인이 되고 싶다는 시인의 열망이 드러남. * 방랑의 기산하 → 방랑하며 돌아다닌 산하가 그 몇해뇨? * 눈물의 언덕 → 나병환자로서 겪었던 시인의 숱한 방랑과 한이 스며 있는 표현                        방랑생활의 서러움을 단적으로 표현한 시구. ◆ 주제 : 인생에 대한 향수와 삶의 인고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고향에 대한 그리움 ◆ 2연 :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 ◆ 3연 : 인간사에 대한 그리움 ◆ 4연 : 방랑 생활의 한과 고독  총 획득메 달 |   채택된 답변답변추천해요3추천자 목록 한하운(韓何雲, 1920.3.20 ~ 1975.2.28)  나병에 걸려 화제가 되었던 시인으로 자신의 천형(天刑)의 병고를 구슬프게 읊은 그의 시는 애조 띤 가락으로 하여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주요 작품으로 《황토길》, 《보리피리》 등이 있습니다   보리 피리                     - 한하운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 ㄹ 닐니리 총 획득메 달   답변추천해요2추천자 목록 나병(문둥병)환자였던 유명한 시인이 있다는데 누구인가요? -한하운:나병에 걸려 화제가 되었던 시인입니다.(1920.3.20 ~ 1975.2.28)  자신의 천형(天刑)의 병고를 구슬프게 읊은 그의 시는 애조 띤 가락으로 하여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주요 작품으로 《황토길》, 《보리피리》 등이 있다.  -1948년에 월남, 1949년 제1시집 《한하운 시초(詩抄)》를 간행하여 나병시인으로서 화제를 낳았다. 이어 제2시집 《보리피리》를 간행하고, 1956년 《한하운시전집》을 출간하였다. 1958년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 1960년 자작시 해설집 《황토(黃土) 길》을 냈다.     총 획득메 달   답변추천해요1추천자 목록 한국의 원로시인들[고인이 된 이들도 포함] 중에 나병환자 출신으로 알려진 유명한 시인(詩人)이 있습니다. 故 한하운 시인님입니다.    한하운 선생님은 1919년생으로 함경남도 함주군 출신이며  중국 북경대학 농학원을(농과대학) 졸업하셨습니다.    이 분은 17세 되던 해 나병(한센병) 진단을 받았고  26세 전후로 세상을 등지고 살았던 때가 있으셨지만,  한센병의 고통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여러 유명한 시를 쓰셨습니다.  
751    詩여, 침을 뱉어라 댓글:  조회:5546  추천:0  2015-10-16
  시인들을 위한 진혼곡   **《詩여, 침을 뱉어라》/ 김수영 / 1975   나는 솔직히 시(詩)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 시는 확실히 규정짓기 힘들고 이해하기 어려운 문학 장르에 속한다. 어렸을 때 처음 시라는 것을 접하고 나서 한 번 어렵다고 생각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시를 잘 읽지 않게 되었다. 그땐 너무 어렸을 때라서 시가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겁부터 먹었던 거다. 시에 대한 두려움은 어른이 되고도 사라지지 않고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그런 내게 특별한 공감을 선물해 준 시인이 있다. 바로 김수영이다.   시인 김수영은 1921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을 일제 강점기로 모두 보낸 그는 광복 후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 징집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되는 등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미8군 통역, 모교인 선린상고 영어교사와 평화신문사 문화부 차장 등을 맡으며 여러 직장을 돌아다녔다. 틈틈이 시를 쓰던 김수영은 1947년 에 라는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뒤 마지막 시인 에 이르기까지 200여 편의 시와 많은 시론을 발표했다.   김수영을 평가하는 시선은 그의 초기 시들을 ‘모더니즘’ 계열에 둔다. 솔직히 나는 그의 시가 왜 모더니즘이며, 심지어 시에 있어서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사실 한국 전쟁 이후 조금만 특별한 작품을 발표하면 평론가들은 그 작품을 두고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애매한 옷을 입혀줬다. 김수영의 초기 시들은 대부분 ‘느낀다’, ‘생각한다’, ‘본다’ 같은 틀 속에 있었다.(실제로 그의 시에 이런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사물이나 현상을 대하는 태도는 시인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소질이다. , 같은 김수영의 초기 시를 보면 그가 대단히 ‘모던한’ 태도로 세상을 보았다는 걸 안다. 이런 시들은 지금 보아도 상당히 진보적인 기법으로 가득하다.   그러던 김수영이 1960년대 이후 갑자기 변한다. 시인의 시가 변했다는 건 그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거다. 모더니스트인 김수영은 세상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시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도리를 찾기를 원한다. 그는 이제 리얼리즘을 담은 시를 쓰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있던 자신을 버리고 현실과 역사, 시대와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저 유명한 말 ‘시여, 침을 뱉어라’가 나온다.        그가 죽고 난 후 민음사에서 펴낸 《시여, 침을 뱉어라(1975)》는 이러한 그의 ‘반시론(反詩論)’에 대한 해석이다. 1960년대부터 그가 갑자기 생을 마감하기까지 썼던 시들은 확실히 초기에 나타났던 세련된 간접표현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 대신 독설과 풍자로 가득한 시를 선보였다. 1960년 4월 19일, 영구집권을 노리던 이승만과 자유당정권을 종식시킨 시민혁명으로 이 사회는 무언가 새로운 빛을 맞이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후에 들어선 제2공화국은 그야말로 허무했다. 대통령에 윤보선, 국무총리에 장면이 임명됐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뒤를 이어 박정희 대통령 체제는 이 사회를 더욱 비참한 독재국가로 몰아갔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가장 빛을 발했던 건 시인들이었다. 사회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말 할 수 없었던 분위기에서 시인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사회에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 그것은 ‘자유, 민주, 정의, 혁명’으로 대변되는 4.19정신이었다. 시인이 해야 할 일, 시가 노래해야 할 대상, 시를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한 절박한 요청과 욕구가 《시여, 침을 뱉어라》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사실 《시여, 침을 뱉어라》는 독립된 책이 아니라 김수영이 죽기 전에 썼던 일기와 수필, 시론 등을 모아서 책을 엮은 것이다. 그 내용 중에 라는 짧은 시론 제목을 따서 책에 이름을 붙였다. 그가 했던 시 창작 작업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내용일 수 있지만 이 책은 그의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나침반이다.   내가 지금ㅡ바로 지금 이 순간에ㅡ해야 할 일은 이 지루한 횡설수설을 그치고,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 당신이, 당신이, 당신이, 당신이 내 얼굴에 침을 뱉기 전에…….(시여, 침을 뱉어라 中)   는 연설문이다. 1968년 4월 익산에서 팬클럽 주최로 열린 문학 세미나에서 발표했던 원고를 그대로 실은 것이다. 그는 이 세미나를 마친 뒤 6월에 집 앞에 있는 도로에서 버스에 치이는 사고를 당해 생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48세 때 일이다.   《시여, 침을 뱉어라》가 그가 죽고 난 이후에 나왔지만 소중한 책으로 대접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의 시를 읽어보지 못한 독자라고 하더라도 그가 죽기 두 달 전에 말했던 저 내용을 보면 정말 그의 죽음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마음에 와 닿게 된다. 이처럼 그의 시 세계는 이제 막 힘찬 나래를 펼칠 준비를 하고 있던 터였다.   같은 연설문에서 김수영은 더욱 유명한 말을 한다. 이 말은 ‘침을 뱉는 시’와 더불어 그의 사상을 오롯이 보여주는 것이고, 후에 많은 후배 시인들이 가슴에 두었던 교훈이 된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나가는 것이다.(시여, 침을 뱉어라 中)   그의 말에서 ‘머리’는 행동이 없는 사상이다. 머리에 생각만 가득하고 그 생각을 실천하지 못하는 시는 죽은 시이다. ‘심장’은 감정이다. 감정에만 치우쳐서 현실을 보지 못하는 시 역시 죽어서 땅속에 들어가 누운 것과 다르지 않다. 김수영은 시를 쓰려면 머리, 심장, 손, 발 -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밀고 나가면서 쓰라고 권한다. 온몸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게 바로 시다.   나는 가끔 김수영이 그 때 어이없이 죽지 않고 살았더라면 세상이 바뀌어도 몇 번은 바뀌었을 거라는 공상에 빠질 때가 있다. 김지하의 이 아니더라도, 박노해의 이 아니더라도 그보다 더 강력한 힘인 ‘온몸’으로 이 세상에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김수영이 아니었을까? 사실은 바로 지금 이런 시인이 필요하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中)’이라고 말하며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릴 시인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확실히 말했다. 세상을 향해 침을 뱉는 사람은 바로 ‘당신, 당신들’이라고. 시인의 입에서 나오는 침은 거룩한 침이 아니다. 그가 말한 숭고한 침은 민중들의 입에서 나오는 마른 침이다. 마지막 부분은 바로 그런 우리들이 작은 소리일지라도 이제부터 내어달라는 그의 유언 같은 당부의 말로 끝을 내고 있다.   그는 오래전에 죽고 없지만 그의 시와 시 정신은 여전히 남아서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1981년부터는 유족들과 민음사가 김수영 문학상을 제정해 매년 젊은 시인들을 배출한다. 2001년에는 금관문화훈장이 수여됐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시 은 교과서에 실려서 어린 학생들에게도 아주 익숙하다.   《시여, 침을 뱉어라》는 1975년에 민음사에서 처음 펴낸 것을 마지막으로 1977년에 중판까지 나왔다가 판이 끊겨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책이다. 초판이건 중판이건 할 것 없이 중고 책 시장에서 하드커버가 깨끗하게 보존된 책을 구입하려면 웃돈을 들여야 구할 수 있는 책이 된 건 당연한 일이다. 김수영의 시는 전집으로 엮여 많이 나오는데 그의 시론이 담겨있는 이 책이 여전히 판이 끊긴 채로 있다는 건 아쉽다.       [출처] 《시여, 침을 뱉어라》- 김수영|작성자 달콤사서
750    詩人人生 댓글:  조회:5294  추천:0  2015-10-16
리(이)사가족상봉을 위하여... [ 2015년 10월 19일 11시 44분 ]     멕시코의 한 저수지 밑에서 400년 된 교회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 박인환   서구적 감수성과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면서 어두운 현실을 서정적으로 읊은 후기 모더니즘의 기수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 광선(光善)과 어머니 함숙형(咸淑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1939년 서울 덕수초등학교를 마쳤다. 이어 경기중학교에 입학했다가 1941년 자퇴하고 한성학교를 거쳐 1944년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했다. 같은 해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해방이 되자 학업을 중단했다. 서울로 와서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 여러 시인들과 사귀었고, 서점을 그만두고는 〈자유신문〉·〈경향신문〉 기자로 근무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육군 소속 종군작가단에 참여하고 피난지 부산에서 김규동·이봉래 등과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했다. 1955년 대한해운공사에서 일하면서 미국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심장마비로 30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1946년 〈국제신보〉에 시 〈거리〉를 발표해 문단에 나온 뒤 〈남풍〉(신천지, 1947. 7)·〈지하실〉(민성, 1948. 3) 등을 발표하고, 1949년 김수영·김경린·양병식 등과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는 합동 시집을 펴냈다. 모더니즘 시를 지향했던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 〈검은 강〉·〈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목마와 숙녀〉 등을 발표했는데, 이들 시는 8·15해방직후의 혼란과 6·25전쟁의 황폐함을 겪으면서 느꼈던 도시문명의 불안과 시대의 고뇌를 감성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특히 "한 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로 시작되는 〈목마와 숙녀〉는 그의 시의 특색을 잘 보여주면서도 참신하고 감각적 면모와 지적 절제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1955년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번역해서 공연하기도 했다. 시집으로 생전에 〈박인환 시선집〉(1955)이 나왔고, 이어 〈목마와 숙녀〉(1976) 등이 발행되었다. 죽기 1주일 전에 지었다는 〈세월이 가면〉은 뒤에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리고 있다.   김수영   1941년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가서 동경상과대학 전문부에 입학하였다.   1943년 징집을 피해 귀국하여, 1944년 가족과 함께 만주 길림성(吉林省)으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교원생활과 연극운동을 하였다. 광복 후 연희전문학교 영문과 4년에 편입하였으나 중퇴하였다.   북한의 남침으로 미처 피난하지 못한 그는 북한군에 징집되었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그뒤 미군통역생활도 하고 평화신문사 문화부차장 등 여러 직장을 전전하였으나, 1956년 이후부터는 시작과 번역에만 전념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그의 작품활동은 1945년 문예지 ≪예술부락 藝術部落≫에 시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뒤 김경린(金璟麟)·박인환(朴寅煥)·임호권(林虎權)·양병식(梁炳植) 등과 함께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1949)을 간행하여 모더니스트로 각광을 받았다.   이 때의 시들은 <공자의 생활난>(1945)·<가까이할 수 없는 서적>(1947)·<아메리카타임지>(1947)·<웃음>(1948)·<이[虱]>(1947)·<토끼>(1949) 등이 있다.   초기에는 모더니스트의 일반적 경향인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적으로 노래했으나, 서구사조를 뒤쫓는 일시적이고 시사적인 유행성에 탐닉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의 전진로를 개척하려고 하였다는 점에서 서구취향의 모더니스트의 자기극복과정을 보여준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모더니스트들이 지닌 관념적 생경성을 벗어나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겪어야 했던 지적 방황과 번민을 풍자적이며 지적인 언어로 시화하였다. 1959년에 간행된 ≪달나라의 장난≫은 이 시기의 시적 성과를 수록한 첫 개인시집이다.   수록된 대표적 작품들은 <달나라의 장난>(1953)·<헬리콥터>(1955)·<병풍>(1956)·<눈>(1957)·<폭포>(1957) 등을 꼽을 수 있다. 1950년대의 지적 번민 속에서 성숙해온 그가 본격적인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은 1960년의 4월의거이다.   여기서 그는 평등한 삶을 실현하고자 하는 자유를 위한 혁명에서 시적 열정을 얻는다. 강렬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에 뿌리박은 시적 탐구는 그로 하여금 1960년대 참여파 시인들의 전위적 구실을 담당하게 했다.   이 때의 대표작품으로 <푸른 하늘을>(1960)·<후란넬저고리>(1963)·<강가에서>(1964)·<거대(巨大)한 뿌리>(1964)·<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엔 카운터지(誌)>(1966)·<풀>(1968)을 들 수 있다.   그는 현실의 억압과 좌절 속에서 일어서고자 하였던 196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의 한 사람이며 현실참여의 생경하지 않은 목소리를 보여줌으로써 1970년대는 물론 1980년대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1958년 제1회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죽은 뒤 출판된 시집으로는 ≪거대한 뿌리≫(1974)·≪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1976)와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1975)·≪퓨리턴의 초상≫ 등이 있다.   저서·역서로는 ≪20세기 문학평론≫(柳玲·蘇斗永共著, 1953)·≪카뮈의 사상과 문학≫(金鵬九共譯, 1958)·≪현대문학의 영역≫(Tate,A. 原著, 李相沃共譯, 1962) 등이 있다.   총 획득 메  
749    空手來空手去 - 독서가 만권에 달하여도 律은 읽지 않는다 댓글:  조회:4791  추천:0  2015-10-13
  和子由憫池懷舊(화자유민지회구)                                                                 /蘇軾(소식) (子由(소식의 아우)의 시에 화답하여 (민지(澠池)=하남성의 땅이름)   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踏雪泥 인생도처지하사 응사비홍답설니   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記東西 니상우연류지조 홍비나부기동서   老僧已死成新塔 壞壁無由見舊題 로승이사성신탑 괴벽무유견구제   往日崎嶇還知否 路長人困蹇驢嘶 왕일기구환지부 로장인곤건려시   사람의 인생이 무엇과 같은가 기러기가 땅에 내려섰음 같은 것. 진흙위에 발자국 남겼으로되 기러기 하늘을 날음에 어찌 동서를 가렸으랴. 노승은 이미 죽어 새로 탑하나 생겼는데 무너진 벽에는 옛 글귀를 찾아볼 길 없네. 예전의 기구했던 때를 아직 기억하느냐? 길은 멀고 사람은 지쳤는데 당나귀 절름거리며 그리도 울던 것을   우리 인생이란 마치 기러기가 땅에 내려앉다가 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踏雪泥) 날아가던 기러기가 잠시 내려앉아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나 그 기러기가 다시 날아가는 기러기는 꼭 정해놓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리라. 그때그때 東으로도, 또는 西로도 갈 수 있을 것이다. 기러기가 날아간 뒤 눈 위에 남아있던 발자국마저도 눈이 녹으면 흔적(痕迹)도 없이 사라지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 바로 人生인데.   원래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인 것이 인생인데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그것만으로 만족(滿足)할 줄 모르고 무언가 흔적을 남기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세월(歲月)과 시간 속에 묻혀 버리는 것도 우리 인생인데   이 시대 지성인(知性人)이라고 자부하는 이들 특히 위정자(爲政者)들 자기만은 무엇을 남겨야겠다는 지나친 욕심(慾心)으로 진실(眞實)하지 못하고 남을 헐뜯고 없는 것을 만들어 남을 짓밟는 것은 인생을  욕(慾)되게 사는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이 되려면 욕심을 버리고, 진실(眞實)한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양심에 자신을 비쳐 보아도 한점 부끄럽지 않은 人生, 그것이 참다운 삶이 아니겠는가?     소동파 [蘇東坡, 1036.~1101] 메이산(眉山:지금의 四川省) 출생. 자 자첨(子瞻), 호 동파거사(東坡居士), 애칭(愛稱) 파공(坡公) ·파선(坡仙), 이름 식(軾). 소순(蘇洵)의 아들이며 소철(蘇轍)의 형으로 대소(大蘇)라고도 불리었다. 송나라 제1의 시인이며, 문장에 있어서도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다. 22세 때 진사에 급제하고, 과거시험의 위원장이었던 구양 수(歐陽修)에게 인정을 받아 그의 후원으로 문단에 등장하였다.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이 실시되자 구법당(舊法黨)’에 속했던 그는 지방관으로 전출되었다.   천성이 자유인이었으므로 기질적으로도 신법을 싫어하였으며 “독서가 만 권에 달하여도 율(律)은 읽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일이 재앙을 불러 사상 초유의 필화사건을 일으켜 서울로 호송되어 어사대(御史臺)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며, 이 때 나이 44세였다. 심한 취조를 받은 뒤에 후베이성[湖北省]의 황주(黃州)로 유배되었으나, 50세가 되던 해 철종(哲宗)이 즉위함과 동시에 구법당이 득세하여 예부상서(禮部尙書) 등의 대관(大官)을 역임하였다. 황태후(皇太后)의 죽음을 계기로 신법당이 다시 세력을 잡자 그는 중국 최남단의 하이난섬[海南島]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7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던 중, 휘종(徽宗)의 즉위와 함께 귀양살이가 풀렸으나 돌아오던 도중 장쑤성[江蘇省]의 상주(常州)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폭넓은 재능을 발휘하여 시문서화(詩文書畵) 등에 훌륭한 작품을 남겼으며 좌담(座談)을 잘하고 유머를 좋아하여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었으므로 많은 문인들이 모여들었다. 당시(唐詩)가 서정적인 데 대하여 그의 시는 철학적 요소가 짙었고 새로운 시경(詩境)을 개척하였다. 대표작인 적벽부(赤壁賦)는 불후의 명작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다.    
748    쉬여가는 페이지 - 중국 10개 비경 댓글:  조회:5016  추천:0  2015-10-13
 제1경 만리장성(万里长城)     춘추 전국시대부터 구역별로 쌓기 시작했으나 체계적으로 규모가 되기는 진시황시절부터이다.진이 기타 6국을 멸한 후 기원전 214년에 진,조,연의 장성을 잇기 시작했고 한무제때 기마민족인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다시 장성을 보수 및 연장했으며 명나라때 와서 기본상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만리장성은  동쪽의 하북성 산해관(山海关)으로부터 서쪽의 감숙성 가욕관(嘉峪关)에 이르기까지 총길이가 6400킬로이다.장성의 유명 관광 코스로는 북경 팔달령,모전욕,하북 산해관(1381년),감숙 가욕관(명나라시기) 등을 들 수 있다.   1987년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는데 유명 고사로는 맹강녀가 울음으로 장성을 무너뜨렸다는 얘기가 있다.      제2경 계림산수(桂林山水)       광서쫭족자치구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예로부터 수려한 이강,기묘한 동굴,아름다운 바위 등으로 하여 "계림산수 갑천하"란 미명을 얻었다.      제3경 서호(西湖)       절강성 항주시 서쪽에 있는 호수로 남북의 길이는 3.3킬로,남북의 지름은 2.8킬로이며 면적은 6.5평방킬로미터이다.서호엔 당송 8대가중 한사람인 북송때 유명 시인인 소동파가 주도하여 쌓은 소제,당나라때 시인 백낙천의 이름으로 명명된 백제,청나라 양씨가 쌓은 양공제 등 제방이 3개가 있으며 소영주,호심정,원공돈 등 인공섬이 세개가 있다. 서호는 나름대로 또 "서호 10경"이 있는데 이를테면 소제춘효,곡원풍하,평호추월,단교잔설,화항관어,뢰봉석조,남병만종,유랑문앵,쌍봉삽운,삼담인월이다.그리고 서호는 중국 4대 민간전설중 "백사전","양산백과 축영대"의 두 전설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제4경  자금성(紫金城)       중국에서는 고궁으로 더 잘 알려진 북경 자금성은 북두성의 북쪽에 위치한 자금성이 천자가 거처하는 곳이라는데서 유래된 말로 북경 내성 중앙에 위치한다.1407년 명나라 영락제가 남경으로부터 북경으로 천도하면서 건설하기 시작하여 1420년에 완성되었다.근 600년간 15명 명나라 황제와 9명 청나라 황제가 거처하였으며 전체 면적은 72만 평방미터이고 총 9999개의 방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궁전 건축물이다.자금성 성벽의 길이는 3400미터이며 성벽밖으로 52미터 넓이의 호성하가 있다.주요 대전으로 태화(太和),중화(中和),보화(保和) 등 3대전이 있다.1925년에 세워진 고궁박물관에는 역대 문물 91만 건이 소장되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에 속한다.    자금성은 1987년에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제5경 소주정원(苏州园林)      강소성 소주시는 중국 춘추 전국시대 오나라 도읍지로 지금도 오나라 임금 함려의 무덤으로 알려진 호구가 있다.무덤으로 보기엔 무리일 정도로 거의 산에 가까운 호구가 선례가 되어서인가.소주시  정원은 예로부터 명성이 높아 소주는 그대로 정원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도시 곳곳에 200여개의 개인 정원이 조성되여 있는건 물론 중국 4대 정원중 두개인 졸정원(1509년)과 유원(1525년)이 소주에 자리 잡고 있다.4대 정원중 나머지 두개는 북경의 이화원과 하북성 승덕 피서산장인데 이 둘은 황제의 전용 정원이다.   개인 정원으로 임금의 정원과 명성을 같이 하게 된 졸정원 유원 등을 대표로 하는 소주 정원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제6경 황산(黄山)       명나라때 유명한 여행객 서하객(徐霞客)이 한 말이 있다."오악을 보고 돌아오면 다른 산은 볼 마음이 없어진다(五岳归来不看山)".오악하면 동악은 태산이요 중악은 숭산이요 서악은 화산이라 북악은 항산이요 남악은 형산이다. 거기에 맞추어 새로이 만든 말이 있는데 "황산을 보면 오악을 보지 않는다(黄山归来不看岳)"이다.   안휘성 황산은 중국 제1산으로 중국 전설적인 선조인 황제가 수련했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 황산은 해발 1864미터인 연화봉을 비롯 천미터이상 봉우리만 72개나 된다.기송(기이한 솔나무),괴석(이상한 암석),운해(구름바다),온천 등으로 특징 지어지는 황산은 1990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제7경 장강삼협(长江三峡)       서쪽 중경 봉절의 백제성에서 동쪽에 있는 호북성 의창의 남진관에 이르는 총 길이 193킬로인 계곡구간을 가리킨다.웅장하고 깍아지른듯한 절벽으로 이루어진 구당협,산봉우리가 수려하고 협곡이 깊은 무협,물살이 깊고 여울이 많은 서릉협을 삼협이라 하는데 구당협과 무협사이에는 삼협과 삐어닮은 소삼협이 있어 더욱 흥취를 돋운다.1994년에 착공한 삼협댐때문에 더욱 세인의 눈길을 끌고 있는 장강삼협은 2009년에 가서 길이 2300미터,높이 181미터 총저수량이 393억 립방미터,댐 수위가 해발 135미터인 삼협댐의 영향으로 적잖은 문화재들이 소실되게 된다.               제8경 피서산장(避暑山庄)       하북성 승덕(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열하)에 위치한 피서산장은 청나라 강희제때인 1703년에 조성하기 시작하여 옹정제를 거쳐 건륭제때인 1790년에 마무리지었다.면적이 564헥타르이며 궁전지구,호수지구,평원지구,산간지구 등으로 나눈다.피서산장은 북경의 자금성에 이어 제2의 정치중심이며 동시에 중국 4대 정원에 속한다.   피서산장은 1994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제9경 일월담(日月潭)        대만 대중시 남투현에 위치한 산정 호수로 해발 758미터에 둘레가 27킬로미터이다.호수 북쪽이 달을 닮고 남쪽이 해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일월담이다.대만내의 가장 큰 천연호수로 대만 정 중앙에 있어 "대만의 눈"이란 애칭으로도 불리운다.호수변에는 현장사가 있는데 당나라때 천축국에 불경 구하러 갔던 당삼장 법사의 사리를 안장한 사찰로 이 사리는 중국 남경에 있던 것이 중일전쟁때 일본에 건너갔다가 전쟁후 대만에 반환된 것이다.   제10경 병마용(兵马俑)        섬서성 서안시 임동현에 위치한 병마용 유적지는 1974년 가뭄에 견디기 어려웠던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발견한 것이다.병마용이란 흙으로 빚어진 병사와 말을 가리킨다.진시황이 죽은 후 그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상징적인 것이다.지금까지 계속 발굴중인데 제4갱까지 발굴,그중 4호갱은 시작하자마자 페기된 상태었다.1호갱은 가장 규모가 큰 갱으로 깊이가 5미터,면적14260평방킬로미터에 약 6000여개의 사람 모습을 한 노병과 말이 있다.2호갱은 기마병,보병,궁병과 전차들이 혼합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 병마용은 약 1300여건,전차가 80여 량이다.3호갱은 규모가 가장 작으나 관건적인 구역임을 알수 있는데 지휘기관을 보위하는 경위부대의 모습을 닮아있다.면적은 520평방킬로미터이다.   병마용은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글꼴조정 공유하기 북마크
747    소동파 = 소식 시세계 댓글:  조회:5326  추천:1  2015-10-13
소동파(蘇東坡)의 시 세계 호방한 작풍, 거침없는 필치        올해도 서른 명의 소동파가 나왔다   "올해도 서른 명의 소동파가 나왔다." 이것은 고려 시대의 문학가 이규보가 그의 「전이지(全履之)에게 답하여 문장에 관하여 논하는 편지」에 인용한 것으로 당시 과거 시험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이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던 말이라고 한다. 서른 명이라고 한 것은 과거 시험 합격자의 수인 33명을 개략적인 숫자로 나타낸 것이니 당시 젊은 학자들이 과거에 합격하기만 하면 모두 소동파(蘇東坡)의 시풍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과거에 합격하기 전에는 시험 준비로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부득이하지만 일단 과거에 합격하기만 하면 그때부터 너도나도 소동파의 시풍을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던 고려 문단의 기풍을 엿보게 하거니와, 조선 시대의 대학자 김종직도 『청구풍아(靑丘風雅)』의 서문에서 "고려 중엽에는 소동파 시만 배웠다"고 한 것을 보면 고려 중엽 이후 우리나라 문인들 사이에 소동파의 시풍을 배우려는 기풍이 만연해 있었음을 잘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의 문인 김부식(金富軾)의 이름에는 소동파의 본명인 '식(軾)'자가 들어 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그의 부친일 것으로 추정되는 작명자가 소동파를 너무나 추앙한 나머지 그렇게 한 것임에 틀림없다. 김부식의 동생 김부철(金富轍)의 이름에도 소동파의 동생 소철(蘇轍)의 이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이것을 증명한다. 당시 소동파와 소철 그리고 그 부친 소순(蘇洵) 등 삼부자가 모두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손꼽히고 있었던 것이다.   소동파의 시문이 우리나라 문인들 사이에서만 이토록 추앙을 받았을 리가 없거니와, 그는 과연 금나라 문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추앙을 받고 있었다. 이처럼 다른 나라에서도 널리 추앙을 받고 있었으니 그의 위상이 본국인 송나라 문단에서는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중국 문단에 있어서의 그의 위상은 송나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 지금까지 줄곧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도처에서 이러한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사형제도 폐지론의 선구자   스물두 살 되던 해인 1057년 소동파는 과거 시험 중의 2차 시험인 예부시(禮部試)에 응시했다. 예부시란 1차로 각 지방에서 실시하는 향시(鄕試)에 합격한 사람들을 모아 도성에 있는 예부에서 치르는 시험이었다. 그해 예부시의 고시관리위원장은 구양수(歐陽修)였다. 구양수는 소동파의 답안지를 보고 망설일 것도 없이 대뜸 그것을 수석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다시 그것을 2등으로 바꾸었다. 당시 답안지는 응시자의 이름은 물론 필적조차 알아볼 수 없도록 고시관리관이 옮겨 써놓은 것이어서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그것이 증공(曾鞏)의 답안지일 것만 같아서 그랬다. 증공은 구양수가 직접 가르친 제자였는데 자기 제자를 수석으로 합격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로 인하여 소동파는 억울하게 수석 합격을 못하게 되었지만 사실상 당시 문단의 맹주인 구양수에게 이미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셈이었다.     소동파가 제출한 답안지에 이런 말이 있었다.   요임금 때에 고요(皐陶)가 법관이 되었는데 한 사람을 사형에 처할 일이 생겼다. 고요가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라고 하자 요임금은 용서하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고요는 세 번이나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요임금은 세 번이나 용서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므로 천하가 고요의 법 집행이 준엄함을 두려워하고 요임금의 형벌 적용이 관대함을 좋아한다. ··· 상을 줄 수도 있고 상을 안 줄 수도 있을 때 상을 주는 것은 지나치게 인자한 것이고, 벌을 줄 수도 있고 벌을 안줄 수도 있을 때 벌을 주는 것은 지나치게 정의로운 것이다. 인자함은 지나쳐도 군자로서 문제가 없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치면 그것이 발전하여 잔인한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인자함은 지나쳐도 되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     채점관인 구양수와 매요신은 모두 뛰어난 문인이요 학자였는데 이 부분이 어느 책에서 인용된 것인지 출전을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나중에 소동파가 합격 인사를 갔을 때 매요신이 창피함을 무릅쓰고 소동파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소동파는 뜻밖에도 "꼭 출전이 있어야만 합니까?"하고 반문했다. 요임금처럼 인자한 성군과 고요처럼 엄정한 법관이라면 그들의 천성과 위인으로 미루어볼 때 능히 그럴만하지 않느냐는 것이 소동파의 대답이었다. 그것은 소동파 자신이 즉석에서 지어낸 허구적인 이야기였던 것이다. 가히 소동파의 성격을 짐작게 하고 앞으로 지어질 그의 시문이 얼마나 시원스럽고 호방한 작풍을 지니게 될 것인지를 예고하는 대목이었다.     이 문장에서 소동파는 인자함은 지나쳐도 무방하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상을 줄 때와 달리 벌을 줄 때는 특별히 신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판결에 오류가 있을 경우 죄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죽는다는 이유로 사형제도폐지론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거니와 소동파는 천 년 전에 벌써 사형제도 폐지의 필요성을 깨달았던 셈이다.     제과(制科)란 특출한 인재를 발굴하기 위하여 황제가 특명을 내려 친히 시행하는 특별시험인데 소동파는 동생과 나란히 제과에도 합격했다. 제과에서 소동파 형제를 선발하고 난 뒤 인종황제는 희색이 만면하여 "나는 오늘 자손을 위하여 태평성대를 이룩할 재상 두 사람을 얻었소"하고 황후에게 말했다. 그들 형제는 일시에 재상감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었다.        ​소동파의 글씨 『한식첩寒食帖』/ 세로 34센티 가로 199센티로 소식蘇軾(호 동파)이 황주黃州로 좌천되어 가서 3년째 되던 1082년 한식절寒食節에 동파설당東坡雪堂에서 쓴 두 수의 시다. 이는 평생에 가장 잘 쓴 서법의 작품으로 ‘소동파의 글씨 중 첫째[蘇書第一]’이라는 칭송을 받는다. 이 첩帖은 행서로써 필법이 자유분방하며 왼편(아래쪽)에 황정견黃庭堅의 발문이 실려 있다. 원조元朝 때 서법가 선우추鮮于樞는 칭찬하기를 “《한식첩寒食帖》은 왕희지의 《난정집서蘭亭集序》와 《제질문고祭姪文稿》의 다음으로 천하에 세 번째 글이 된다”라고 하였음.      잘되는 사람 곁에는 항상 그를 시기하여 발목을 붙잡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소동파는 일거에 구양수로부터 문학적 재능이 최고라고 인정받고 인종황제에게 정치적 재능이 최고라고 칭송받았으니 그에게 정적이 많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당시 왕안석을 중심으로 한 신법파 인사들이 무리하게 신법을 강행하고 있었는데 소동파는 많은 대신들과 마찬가지로 신법의 강행이 부당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사사건건 왕안석 일파와 의견이 충돌했다.     그가 만년에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지은 시 「금산사(金山寺)에 있는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에서 "너의 평생 공적이 무엇이더냐? 황주, 혜주 그리고 담주뿐이네"라고 한 바와 같이 중간에 잠깐씩 조정의 요직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그의 생애는 대부분 신법파 인사들의 모함에 의한 지방관 생활과 유배 생활로 점철되었다.     그러나 이렇듯 힘든 그의 인생역정이 단순히 인생의 낭비였다고만 할 수는 없다.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역정이 그로 하여금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했고,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부닥치게 했으며, 각지의 풍토와 풍속과 인정을 맛보게 했던 것이다. 더욱이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었던 여러 가지 경험은 그의 탁월한 재능과 호방한 성격을 만나 천고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으로 승화되었던 것이다.     자리를 내주지 않을 수 없소   "이 늙은이는 이제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을 수 없소." 이 말은 구양수가 예부시에서 소동파를 선발해놓고 동료인 매요신에게 한 말이었다. 구양수는 당시 문단의 맹주로서 당시의 문인들이 형벌도 무서워하지 않고 죽음이 닥쳐와도 담담하지만 구양수의 평가만은 두려워한다고 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한 구양수가 소동파를 두고 이런 말을 했으니 소동파는 일거에 구양수를 능가하는 최고의 문장가가 된 셈이었다. 구양수는 나중에 또 자기 아들과 함께 문장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다가 이야기가 소동파에게 미치자 "내 말을 잘 기억해두어라.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하니 그의 이 말이 결코 생각없이 내뱉은 말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바, 구양수의 예상대로 소동파는 마침내 송나라 최고의 문장가가 되었음은 물론 당송팔대가 중에서도 으뜸가는 문장가가 되었다.      황주의 동파적벽 / 황저우츠비[黄州赤壁, 황주적벽] 또는 원츠비[文赤壁, 문적벽]라고도 한다. 황강시[黄冈市] 시내의 시먼[西门] 외곽에 위치한다.  성벽처럼 돌출된 바위의 색이 붉은 색이어서 츠비[赤壁]라는 명칭이 부여되었다. 고적의 대부분은 소동파와 관련된 것으로 얼푸탕[二赋堂], 포셴팅[坡仙亭], 류셴거[留仙阁], 베이거[碑阁] 등이 그 예이다. 포셴팅[坡仙亭] 내부에는 소동파의 유명한 《念奴娇 · 赤壁怀古(념노교 ·  적벽회고)》의 초서체가 적힌 석각이 있다.     소동파의 문장은 다양한 작풍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것을 일일이 다 거론할 수는 없고 단지 몇 개의 편린을 살펴봄으로써 그 전모를 엿볼 수밖에 없다.   후뻬이성 우한(武漢)에서 장강을 따라 동남쪽으로 백 리쯤 내려간 곳에 시뻘건 바위 절벽이 하나 있다. 이른바 적벽이다. 그러나 여기는 삼국시대에 오나라 장수 주유(周瑜)가 위나라 군사를 대파한 적벽대전의 현장이 아니다. 여기는 바로 소동파가 저 유명한 「적벽부(赤壁賦)」와 「적벽사(赤壁詞)」를 지은 곳으로 동파적벽이라고 한다. 적벽대전의 현장은 우한에서 서남쪽으로 장강을 삼백 리가량 거슬러 올라간 후뻬이성 푸치(蒲圻)에 있는데 삼국적벽이라는 이름을 붙여 이 동파적벽과 구분한다.     동파적벽 옆에는 동파공원이라는 공원이 만들어져 있고 공원 안에 이부당(二賦堂), 파선정(坡仙亭), 뇌강정(酹江亭), 수선정(睡仙亭) 등 소동파와 관련된 이름을 가진 많은 부속 건물이 지어져 있으며 건물 안에는 소동파의 시문이 빼곡히 걸려 있다. '이부'는 소동파가 지은 「적벽부」와 「후적벽부」를 가리키는 말이니 이부당 안에는 당연히 그의 부(賦)1) 두 편이 나란히 걸려서 관광객의 발을 붙잡는다. 벽에 걸린 「적벽부」를 읽어보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소동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손님도 저 물과 달을 아시오? 물은 이처럼 밤낮없이 흐르지만 한 번도 저 강이 가버린 적이 없고, 달이 저처럼 찼다가 기울지만 끝내 조금도 없어지거나 더 자란 적이 없다오. 변한다는 관점에서 볼라치면 천지는 한순간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고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볼라치면 만물과 내가 모두 무궁하다오. 그렇거늘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오? 그리고 저 천지간의 만물은 저마다 주인이 있으니 내 것이 아니면 비록 터럭 하나일지라도 가져서는 안 된다오. 다만 강위에 부는 산들바람과 산 위의 밝은 달만은 귀에 들어오면 소리가 되고 눈에 닿으면 색깔이 되는데 아무리 가져도 금하지 않고 써도 써도 없어지지 않는다오. 이것은 조물주의 무진장한 보물이니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라오.     영원히 변하지 않는 대자연 앞에서 아무리 난다 긴다 하던 영웅도 죽고 나면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것, 인간은 이렇게 천지에 붙어사는 한 마리의 하루살이나 망망대해에 떨어진 한 알의 곡식에 불과한 것, 인생이란 이와 같이 보잘것없는 것이니 슬프지 않느냐고 함께 놀던 사람이 소동파에게 물었다. 이 물음에 대하여 소동파는, 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자연이나 사람이나 한시도 쉬지 않고 변한다고 할 수 있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자연도 사람도 변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니 세속적인 가치에 연연하지 말고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향유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소식의 「적벽부(赤壁賦)」/ 필화(筆禍) 사건으로 죄를 얻어 황저우[黃州:湖北省]에 유배되었던 소동파가 1082년(원풍 5)의 가을(7월)과 겨울(10월)에 황저우성 밖의 적벽에서 놀다가 지은 것이다. 7월에 지은 것을 《전(前)적벽부》, 10월에 지은 것을 《후적벽부》라 한다.  ‘부’란 운문(韻文)의 하나인 문체의 명칭인데, 사물의 서술을 중심으로 한 한대(漢代)의 장려한 작품에서부터 육조(六朝) ·당(唐)시대의 형식적인 소형 작품으로 쇠퇴한 ‘부’의 장르를 생동하는 묘사로, 서정과 사상을 겸비한 문장으로 부활, 완성시킨 작품이 이 《적벽부》이다. 삼국시대의 옛 싸움터 적벽의 아름다운 경치와 역사의 대비, 자연과 일체화하려는 소동파의 제물(齊物)의 철학이 결부되어, 유려(流麗)한 표현과 함께 문학으로서 높은 경지를 이루었다.          마흔일곱 살 때 지은 이 「적벽부」는 적벽의 가을 경치를 배경으로 경물을 통해 우주와 인생의 이치를 설파하고 있다. 그는 이로부터 석 달 뒤에 다시 「후적벽부」를 지어 적벽의 겨울 경치와 도사를 만나는 꿈을 통해 자신의 초탈한 인생관을 서술했다. 이처럼 그의 문장 중에는 인생철학을 노래한 작품이 많다. 인생철학을 노래한 이런 문장들은 시공을 초월한 항구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다 할 것이니 지금 읽어도 여전히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굉장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으므로 이러한 사고방식 역시 자연스럽게 그의 시문에 반영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먼 사람이 해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여 눈이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해의 모양은 구리쟁반과 같다"고 말해주자 그는 쟁반을 두드려 그 소리를 들었다. 나중에 종소리를 듣고는 그것을 해라고 여겼다. 또 어떤 사람이 "해의 빛은 촛불과 같다"고 말해주자 그는 초를 더듬어서 그 모양을 알았다. 나중에 피리를 만져보고는 해라고 여겼다. 해는 역시 종이나 피리와는 거리가 먼데 장님이 그 다름을 알지 못한 것은 자기가 직접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기 때문이다. 도를 알기 어려움은 해의 경우보다 더 심하니 사람들이 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장님이 해를 알지 못하는 것과 다를 리가 없다. 터득한 자가 일러줌에 있어서 비록 멋진 비유로 잘 가르쳐준다고 할지라도 역시 해를 쟁반과 초에 비유하는 것보다 나을 수가 없다. 쟁반에서 종에 이르고, 초에서 피리에 이르는 것처럼 바꾸어가며 형상화한다면 어찌 끝이 있겠는가?     그의 문장 가운데는 생동적인 비유와 명쾌한 논리로써 언어의 불완전성과 실습을 통한 체득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나아가 당시 과거제도의 문제점을 넌지시 꼬집은 이 「해의 비유」와 같은 논변문(論辯文)2)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치를 설파한 것인 만큼 이러한 문장 역시 시대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마힐의 시를 음미해보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살펴보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 이것은 소동파가 당나라 때의 시인 겸 화가인 왕유(王維)의 「남전연우도(藍田煙雨圖)」라는 그림을 본 소감을 피력한 문장의 일부로 시와 그림의 관계를 극명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흔히 시는 말하는 그림이요 그림은 말 없는 시라고 하거니와 소동파는 일찍이 이 이치를 스스로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동파의 문장 중에는 이처럼 문예이론을 설파한 것도 많다.     대표적인 예로, "나의 글은 만 섬이나 되는 많은 샘물이 땅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마구 솟아나와 평지에서는 도도하게 콸콸 흘러서 하루에 천 리라도 어렵지 않으며 바위와 만나면 그 모양대로 구부러지고 물체를 따라 형체를 이루는 일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알 수 있는 것은 항상 가야만 할 곳으로 가고 항상 멈추지 않을 수 없는 곳에서 멈춘다는 것, 이런 것뿐이다"라고 하여 문장이란 마땅히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지어야 한다고 역설한 「문장론(文說)」이 있다.        
746    이순신 장군 시모음 댓글:  조회:4710  추천:0  2015-10-13
    한산도가(閑山島歌)   寒山島月明夜(한산도월명야) 上戍樓撫大刀(상수루무대도) 深愁時何處(심수시하처) 一聲羌笛更添愁(일성강적경첨수)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올라 큰 칼 불끈 잡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피리소리, 이내 시름 더해 주네   원본보기 한산도 수루(좌). 우측에 보이는 것이 활쏘는 과녁 터   이순신 장군의 장검(국립중앙박물관 '류성룡기획전')   1597년 8월 15일, 열선루(전남 보성 관아에 있던 누각)에 앉아 지어 읊은 날이다. 한산도의 원래 한자명은‘한가(閑暇)하다’는 뜻의‘閑’자로 쓴다. 이순신은 ‘한산도가’의 제목은 이 ‘閑’자로 그대로 하고, 서두는‘寒’(춥다, 쓸쓸하다) 자로 썼다(친필 시조에는 ‘寒’자로 되어 있음). 왜 그랬을까?   칠천량에서 전멸한 조선 수군, 전장을 함께 했던 동지들의 죽음... 통제사에 복권되었지만 모병을 위해 고을들을 둘러보니 관아와 민가는 폐허가 되어 텅 비어 있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보성 관아의 군기를 모아서 말에 싣게 했는데, 곧 들이닥칠 12만의 왜군에 비해 너무도 초라했다. 그러한 심경을 ‘寒’자로 표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무제(無題)   비바람 부슬부슬 흩뿌리는 밤       蕭蕭風雨夜(소소풍우야) 생각만 아물아물 잠 못 이루고      耿耿不寐時(경경불매시) 간담이 찢어질 듯 아픈 이 가슴     懷痛如嶊膽(회통여최담) 살이 에이듯 쓰라린 이 마음         傷心似割肌(상심사할기)   강산은 참혹한 모습 그대로이고    山河猶帶慘 (산하유대참) 물고기와 새들도 슬피 우네          魚鳥亦吟悲(어조역음비) 나라는 허둥지둥 어지럽건만        國有蒼黃勢(국유창황세) 바로잡아 세울 이 아무도 없네      人無任轉危(인무임전위)       제갈량 중원 회복 어찌했던고       恢復思諸葛(회복사제갈) 말 달리던 곽자의 그립구나          長驅慕子儀(장구모자의) 원수 막으려 여러 해 했던 일들이  經年防備策(경년방비책) 이제 와 돌아보니 임금만 속였네   今作聖君欺(금작성군기) -1594년 9월 3일-   이 한시를 지은 때는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1594년 9월이다. 1593년 5월, 남해안으로 전격 퇴각해 내려온 왜군들은 이순신의 조선 함대가 견내량을 막아서서 자신들의 서해 및 전라도 진출을 봉쇄하자 남해안 요해처에 왜성을 쌓고 장기전에 돌입하는 한편, 명-왜 간의 강화협상을 통해 모종의 변화를 모색하려 했다,   견내량 남단. 앞에 보이는 섬이 해간도. 해간도를 넘어서면 한산도 앞바다이다. 이순신은 해간도를 등지고 왜군들의 서해 진출을 원천 봉쇄했다.   강화협상에 적극적이던 명군은 “강화협상 중에는 전쟁행위를 일체 중단하자”는 왜군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조선 수군에게 전쟁금지령을 내렸고, 선조 임금은 (명군 몰래) 조선 수륙군 장수들에게 거제도 일대에 주둔해 있는 왜적을 공격하라는 밀지(密旨)를 하달하게 된다. 이순신에게도 밀지가 전달되었는데, 아래는 그날의  이다.   9월 3일. 비가 왔다. 새벽에 밀지가 들어왔는데 ‘바다와 육지의 여러 장수들은 팔짱을 끼고 서로 바라보기만 하고 한 가지라도 계책을 세워서 적을 치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3년 동안이나 바다 위에 있었는데 그럴 리 만무하다.   여러 장수들과 함께 죽음으로써 원수를 갚자고 맹세하고 날을 보내고 있지만 험한 곳에 소굴을 파놓고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적들을 경솔하게 나가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병법에서도)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초저녁에 불을 밝히고 혼자 앉아 나라 일을 생각하는데 (작금의 상황은) 엎어지고 자빠지고 위태롭기 그지없건만 구제할 대책이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어찌하랴.  (1594. 9. 3.)   이순신은 전략적 차원에서 왜군들의 발목을 한려수도 이동에 묶어두기 위해 그동안 견내량 방어선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질책성 밀지를 받자 황망하고 답답했다.  ‘이제 와 돌아보니 임금만 속였네’라는 싯귀는 자신의 전략적 의지와는 달리 ‘팔짱만 끼고 바라보기만 하고...’라는 인식을 낳았기에 결과적으로는 임금을 속인 것이라는 자책과 한탄의 표현으로 보인다.   선거이 수사와 작별하며..   북쪽에 갔을 때도 같이 일했고          北去同勤苦(북거동근고) 남쪽에 와서도 생사를 같이 했지       南來共死生(남래공사생) 오늘 밤 달 아래 한 잔 술 나누지만    一杯今夜月(일배금야월) 내일엔 우리 서로 헤어져야 하네       明日別離精(명일별리정) -1595년 9월 14일-   한산도 야음(閑山島 夜吟)   한바다에 가을 빛 저물었는데            水國秋光暮(수국추광모)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驚寒雁陣高(경한안진고)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이루는 밤      憂心轉輾夜(우심전전야) 새벽 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네          殘月照弓刀(잔월조궁도) -1595년 10월 20일-   한산도 앞바다 야경   동틀 무렵의 한산도   무제(無題)   병서도 못 읽고 반생 지내느라        不讀龍韜過半生(불독용도과반생) 위태한 때 충성 바칠 길 없네           時危無路展葵誠(시위무로전규성) 지난날엔 큰 갓 쓰고 글 읽다가        峩冠曾此治鉛槧(아관증차치연참) 오늘은 큰 칼 들고 싸움을 하네        大劍如今事戰爭(대검여금사전쟁) 마을의 저녁 연기에 눈물 흘리고      墟落晩烟人下淚(허락만연인하루) 진중의 새벽 호각 마음 아프다         轅門曉角客傷情(원문효각객상정) 개선의 그 날 산으로 가기 바빠        凱歌他日還山急(개가타일환산급) 공적 기록 신경 쓸 겨를 없으리        肯向燕然勒姓名 (긍향연연륵성명)     통영 충렬사 외벽 틈 사이로 피어난 꽃     무제(無題)   북쪽 소식 아득히 들을 길 없어       北來消息杳無因(북래소식묘무인) 외로운 신하 시절을 한탄하네         白髮孤臣恨不辰(백발고신한불신) 소매 속엔 적 꺾을 병법 있건만       袖裡有韜摧勁敵(수리유도최경적) 가슴속엔 백성 구할 방책이 없네     胸中無策濟生民(흉중무책제생민) 천지는 캄캄한데 서리 엉기고         乾坤黯黲霜凝甲(건곤암참상응갑) 산하에 비린 피가 티끌 적시네        關海腥膻血浥塵(관해성전혈읍진) 말 풀어 목장으로 돌려보낸 뒤        待得華陽歸馬後(대득화양귀마후) 두건 쓴 처사 되어 살아가리라        幅巾還作枕溪人(폭건환작침계인)   진중음(陣中吟)   님의 수레 서쪽으로 멀리 가시고      天步西門遠(천보서문원) 왕자들 북녘으로 위태로우니           君儲北地危(군저북지위) 나라를 근심하는 외로운 신하          孤臣憂國日(고신우국일) 장수들은 공로를 세울 때로다          壯士樹勳時(장사수훈시) 바다에 맹세함에 어룡이 감동하고    誓海魚龍動(서해어룡동) 산에 맹세함에 초목이 알아주네       盟山草木知(맹산초목지) 이 원수 모조리 무찌를 수 있다면     讐夷如盡滅(수이여진멸) 이 한 목숨 죽음을 어찌 사양하리오  雖死不爲辭(수사불위사) 글꼴조정 공유하기 북마크
745    노벨상 이모저모 댓글:  조회:5337  추천:0  2015-10-09
  알프레드 노벨 노벨상(스웨덴어: Nobelpriset, 노르웨이어: Nobelprisen, 영어: Nobel Prize)은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인 스웨덴의 알프레드 노벨이 1895년 작성한 유언에 따라 매년 인류의 문명 발달에 학문적으로 기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1901년부터 노벨 물리학상, 노벨 화학상, 노벨 생리학·의학상, 노벨 문학상, 노벨 평화상이 수여되었다. 다른 상들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수여되는 반면,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수여된다. 각 상은 모두 그 분야에서 매우 권위있게 여겨진다. 1968년, 스웨덴 중앙은행은 흔히 노벨 경제학상 이라고 불리는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을 만들었다. 이 상은 1969년에 처음 수여되었고 수상자 발표와 시상은 다른 노벨상과 같이 행해진다. 스웨덴 왕립 과학원이 노벨 물리학상과 노벨 화학상,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의 수상자를 결정한다. 카로린스카 의과대학교 노벨총회에서 노벨 생리학·의학상의 수상자를 결정한다.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노벨 문학상을 수여한다. 다른 상들과 달리 노벨 평화상은 스웨덴의 기구가 아닌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에서 수여한다. 노벨상 수상자는 금으로된 메달과 표창장, 그리고 노벨 재단의 당해 수익금에 따라 달라지는 상금을 받는다. 2011년 상금은 스웨덴 크로나로 1천만kr(약 145만$)정도였다. 노벨상은 이미 사망한 사람에게는 수여되지 않지만, 수상자로 정해진 뒤 상을 받기 전에 사망한 사람은 그대로 수상자로 유지된다. 4명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공동수상되지 않는다.   목차    1 노벨상의 유래 2 노벨상 시상 분야 및 결정 3 노벨상 수상자 3.1 노벨상 다중 수상자 3.2 노벨상 가족 3.3 최연소 수상자와 최고령 수상자 3.4 수상 거부     노벨상의 유래 노벨상은 스웨덴의 화학자이자 산업가 알프레드 노벨이 남긴 유언에 따라 만들었다. 그는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이다. 그는 생전에 몇 번의 유언을 하였지만 마지막 유언은 그가 죽기 바로 전 해인 1895년 11월 27일 파리에 있는 스웨덴인-노르웨이인 클럽에서 쓰였다. 다이너마이트의 군사적 사용의 증가에 그는 심기가 불편했다. 그러던 중 그의 형 루드비히 노벨이 죽었을 때 프랑스의 한 신문에 실수로 알프레드 노벨의 부고기사가 실렸다. 그의 때이른 부고기사에서 알프레드 노벨은 ‘죽음의 상인’이라고 불렸다. 이것이 노벨상을 만든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의 유산의 94%인 3200만 스웨덴 크로나(340만 유로, 440만 달러)를 노벨상 설립에 남겼다. 노벨상은 1901년부터 수여되었다. 노벨평화상만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수여되며, 나머지 상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수여된다. 경제학상은 1968년부터 스웨덴 은행에 의해 제정되었고 나머지 5개 상은 처음부터 있었다. 그가 노벨 평화상을 노르웨이에서 수여하게 한 이유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이웃에서 경쟁과 협조를 해온 미묘한 관계였다. 노벨상 시상 분야 및 결정 노벨 평화상 (노르웨이 국회 스토르팅의 추천에 의해 구성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결정) 노벨 물리학상 (스웨덴 왕립 고등 과학원에서 결정) 노벨 문학상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결정) 노벨 화학상 (스웨덴 왕립 고등 과학원에서 결정) 노벨 생리학·의학상 (카롤린 의학연구소에서 결정) 노벨 경제학상 (스웨덴 왕립 고등 과학원에서 결정,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 노벨상은 독창성을 중시한다. 인류에 큰 기여를 한 연구, 발명이 있을 경우 그 아이디어를 맨 처음 만든 사람에게 상을 준다. 즉, 원리를 만든 사람에게 상을 주지 그에 바탕을 둔 생산이나 응용에 큰 기여를 한 사람에게는 주지 않는다는 식이다. 노벨상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그래서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남겼어도 사후 수여는 하지 않는다. 단, 수상자로 지정된 후 사망한 경우에는 수상받을 수 있다. 일례로, 다그 함마르셸드의 경우 1961년에 최초로 사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노벨상을 거부하거나 사퇴한 사람들도 있다. 그 예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소련),  장폴 사르트르 (프랑스),  레득토 (베트남)가 있다. 노벨상 수상자 노벨상 다중 수상자 2013년 3월 15일 기준으로 노벨상 다중 수상자 및 단체는 모두 6명이다. 특히, 국제적십자위원회는 박애정신 실천의 공로가 큰 것이 인정되어 총 3회를 수상함으로써 역대 최다 수상단체가 되었다. 국제적십자위원회 1917년 평화상 - 전쟁 및 재해에서 인간을 보호하고 구제하기 위한 활동 전개   1944년 평화상 - 전쟁 및 재해에서 인간을 보호하고 구제하기 위한 활동 전개   1963년 평화상 - 전쟁 및 재해에서 인간을 보호하고 구제하기 위한 활동 전개 마리 퀴리 1903년 물리학상 - 방사선의 연구 1911년 화학상 - 라듐과 폴로늄의 발견 라이너스 폴링 1954년 화학상 - 화학 결합의 성질에 관한 연구 1962년 평화상 - 핵실험 반대 운동 존 바딘 1956년 물리학상 - 반도체 연구와 트랜지스터의 발명 1972년 물리학상 - 초전도 현상의 연구 프레더릭 생어 1958년 화학상 - 인슐린의 구조에 대한 연구 1980년 화학상 - 핵산의 염기 서열에 대한 연구 UN 난민고등판무관실 1954년 평화상 - 난민들에 대한 정지적 법적 보호 1981년 평화상 - 난민들의 이주와 정착 및 처우 개선에 이바지 노벨상 가족 노벨상을 가족이 함께 받은 경우도 있다. 닐스 보어(아버지, 1922년 물리학상)와 오게 닐스 보어(아들, 1975년 물리학상) 윌리엄 헨리 브래그(아버지)와 윌리엄 로런스 브래그(아들), 1915년 물리학상 공동 수상 칼 만네 예오리 시그반(아버지, 1924년 물리학상)과 카이 만네 뵈리에 시그반(아들, 1981년 물리학상) 한스 폰 오일러켈핀 (아버지, 1929년 화학상)과 울프 폰 오일러(아들, 1970년 생리의학상) 칼 퍼디낸드 코리·거티 테리사 코리 부부 (1947년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 조지프 존 톰슨 (아버지, 1906년 물리학상)과 조지 패짓 톰슨(아들, 1937년 물리학상) 피에르 퀴리·마리 퀴리 부부(1903년 물리학상 공동 수상)와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이렌 졸리오퀴리 부부(딸·사위, 1935년 화학상 공동 수상) 얀 틴베르헌(형, 1969년 경제학상), 니콜라스 틴베르헌(동생, 1973년 생리학·의학상) 아서 콘버그(아버지, 1959년 생리의학상), 로저 콘버그(아들, 2006년 화학상) 최연소 수상자와 최고령 수상자 1915년, 윌리엄 로런스 브래그는 25세에 아버지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여 최연소 수상자로 기록되었으나 2014년,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17세의 나이에 역대 최연소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여 99년 만에 기록이 깨졌다. 최고령 수상자는 2007년, 90세의 나이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레오니트 후르비치이다. 수상 거부 장 폴 사르트르는 1964년 문학상을, 레득토는 1973년 평화상을 거절했다. 나치 독일 치하의 있던 리하르트 쿤, 아돌프 부테난트, 게르하르트 도마크는 나치 정권의 방해로 2차 대전이 끝난 후에서야 비로소 노벨상과 상금을 받았다. 1958년, 소련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정부의 압력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부했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그의 수상 거부를 인정하지 않고 그 해의 수상식을 보류하였으나 1989년 파스테르나크의 아들이 그를 대신하여 노벨상을 대리 수령했다.
744    시에서 비유적 이미저리 댓글:  조회:5324  추천:1  2015-10-08
    비유적 이미저리       어떤 사람의 인상을 설명하는데 ‘눈이 부리부리 하고, 코가 뭉뚝하며, 입이 크고, 몸집이 비대하며, 성미가 급한 편이다’라고 한다면 한참을 생각해 봐야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마디로 ‘그 사람은 돼지 같아’ 라고 말한다면 쉽게 그 형상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그 사람의 특징적인 모습을 가장 일반화된 사물에 빗대어 설명한다면 쉽게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런 표현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사람들 간에 부르기도 하는 별명이 바로 이러한 비유법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표현할 때도 ‘백합 같은 여인’ ‘장미 같은 여인’ ‘달맞이꽃 같은 여인’ ‘코스모스 같은 여인’ ‘박꽃 같은 여인’ 등 수많은 비유를 할 수 있겠지요. 말로써 설명하려 한다면 그것을 완벽하게 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방법이 그 원관념을 잘 드러내 주는 보조관념을 차용해 오는 것입니다. ‘하얀 피부의 여인’이 원관념이라면 ‘백합’은 보조관념이 됩니다. 보조관념이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모습으로 얼굴 하얀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빠른 전달을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박꽃 같은 여인’과 ‘장미 같은 여인’은 전달되는 이미지가 다를 것입니다. 전자가 한국적이며 소박한 시골 연인을 표현했다면 후자는 서구적이고 도시적인 세련된 여인상을 드러내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느낌을 매제를 통해 드러내 주는 것이 비유적 이미저리인 것입니다. 시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이미저리는 비유적 이미저리입니다. 잊는 어떤 유파의 시에서도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기법인 것입니다. 비유에 의해 형성되는 이미지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전통적 수사학에서 말하는 직유법, 은유법, 의인법, 우화법, 제유법, 환유법, 상징들이 대표적인 비유의 모습입니다. 비유법은 서로 다른 두 사물(대상)을 병치함으로써 과학적 인식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세계의 진리를 시가 통찰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몇 가지 유형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라는 은유법에서 두 사물 즉 ‘별’과 ‘꽃’이 서로 대등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 예는 논리적인 접근이나 과학적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적 이미지에 의한 대등한 관계로 이해한다면 접근은 가능할 것입니다. 별이 가지는 찬란함과 꽃이 가진 화려함이라는 이미지가 서로 두 사물을 연결 짓는 고리가 됩니다. 두 사물의 이미지에 의해 연결되는 비유입니다.   라는 표현은 감정이 결합된 비유이며 강물이라는 사물과 슬픔이라는 정감이 서로 일치되면서 이루어진 비유로 사물에 감정이입을 시키면서 시인의 내면의식을 표출시키는 방법이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슬픔의 크기를 확대시킬 수가 있고 끊임없는 연속성 내지는 지울 수 없는 깊은 곳에서 연유함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이라는 표현에서 취의는 이미지이나 매재가 감정이나 관념인 유형입니다. 남쪽 밝은 창에 어리는 빛은 어떤 이미지를 나타냅니다. 그것이 유년시절에 꾸었던 꿈이라는 것입니다. 유년의 꿈은 밝고 따뜻한 모습이며 미래의 행복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이런 비유는 란 표현에서 ‘햇살이 내린 강’이 주는 이미지는 밝고 찬란함입니다. 이것이 ‘웃음이 쏟아지는 분수’와 연결되면서 기쁨의 정감을 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는 표현에서 취의는 감정이나 관념이지만 매재가 이미지인 경우입니다. ‘외로움’은 감정이며 관념에 불과합니다. 외로움의 느낌은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차별을 가져 올 수가 없는 관념인 것입니다. 내가 느끼는 외로움과 그대가 느끼는 외로움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이 느끼는 외로움과 독자가 느끼는 외로움을 일치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런 관념을 일치시키는 것은 ‘서녁 하늘의 저물 무렵’ 이라는 풍경, 그 풍경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어느 정도 범주를 마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산술적으로 구획할 수는 없겠지만 정감적인 의미망으로 일치 시킬 수 있겠지요. 저물 무렵 서쪽 하늘을 가만히 쳐다보면 마음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알 수 없는 외로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관념을 전달하기 위해 이미지를 이용하는 경우가 되겠습니다.   어둠 속에 살고 있던 나는 이곳을 영원한 나의 보금자리 삼아 가만히 가만히 그 어둠을 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이 나의 세상 전부였고 외로움이란 전혀 알지도 못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의 세상은 허물어졌고 그 세상은 점점 좁아져 갔습니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인줄 알고 발버둥 쳤습니다 그러나 나의 숨통을 조이던 세상은 다시 넓어 졌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밝은 빛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몸속 깊숙이 숨같은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그 빛 속에는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건 두 개의 동그란 눈동자였습니다 그 눈동자 속에는 두 개의 눈동자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나는 나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내가 살던 어둠 속에서도 느꼈던 따뜻함은 달아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독자의 시 앞부분   위 시는 비유적 이미저리가 사용되고 있지 않음로써 막연한 모습입니다. 핵심적인 단어가 되고 있는 어둠에 대한 형상화가 되어 있지 않아 독자들의 이해가 어렵게 보입니다. 이해가 어려운 시를 설명할 때 가끔 아파트 분양을 예로 들기를 좋아합니다. 당신이 아파트를 분양 받았다고 합시다. 건물이 완공되어 자신 앞으로 등기까지 마쳤는데 열쇠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아파트에는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받아야 할 것은 열쇠입니다. 독자가 한 편의 시를 읽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시를 앞에 둔 것은 아파트를 분양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시를 이해하기 위한 정보가 제공되어 있지 않다면 그 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시는 열쇠와 같은 정보를 제공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파트는 방마다 따로 열쇠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시에도 의미의 전개에 따라 여러 가지 방이 있을 수 있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많은 정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시인은 독자들이 시에 들어가 이 방 저 방을 자유로이 드나들며 아파트 구조를 이해하듯 시를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정보를 시에 담아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추측건대 위 작품은 자궁 속에 있다가 탄생의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오는 모습을 사건의 전개 순서로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어둠은 어머니 뱃속에 있던 때의 어둠인 것 같은데 그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아서 독자들이 쉽게 접근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정보를 가지고 이 시를 다시 읽어 본다면 정말 이 작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어져가는 세상의 모습, 또는 신생아가 접하는 세상의 모습을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형상화라는 과정을 거쳐 탄생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가 어려울 뿐입니다.   내게는 밝은 어둠 자궁 속 어둠이 나를 키웠습니다 나는 따뜻한 어둠을 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이 나의 세상이었고 내겐 홀로였지만 외로움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세상이 허물어졌고 세상이 점차 좁아져 오고 좁은 통로를 따라 달렸습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빛에 눈이 부셔      …이하 생략   이렇게 몇 가지 정보를 제공하고 비유를 쓴다면 이 시를 이해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비유적 이미저리의 활용은 시를 시다운 표현으로 이끄는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두 사물을 필요성에 의해 만나게 할 때 만남에 대한 수사학적 접근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형이상학적 명제로 수용되는 것이며, 특히 과학적 진술이나 산문의 진술과 근본적으로 다른 인식의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이해의 양식으로 비유적 이미저리가 드러나게 되며 이 때 가장 중심이 되는 비유는 은유가 됩니다. 비평의 한 그룹에서 시적 언어의 특성과 시적 상상력의 특성이 은유적 인식을 토대로 논의되면서 이미저리란 말은 문학비평의 중요한 어휘가 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뮐러에 의하면 인간은 비물질적인 것들을 물질적인 것에 의하여 강제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언어는 그 필요성에 언제나 뒤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엘리어트에 의하면 현대는 감수성이 분열된 과학의 시대라고 정의하면서 시는 통합된 감수성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통합된 감수성은 과학의 세계가 가지고 있는 기계적이며 추상적이고 비인간적인 측면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견해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훌륭한 시인은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 사상과 감정, 이성과 상상력을 시키며, 졸렬한 시인은 과학자처럼 이들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모든 훌륭한 시는 시적 상상력을 수단으로 경험의 전체성을 노린다고 말한 리챠즈는 경험의 전체성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이 은유적 인식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은유적 특성을 아이러니, 역설, 긴장, 구조라는 다양한 개념으로 부연합니다. 이들 개념은 이라는 말을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비평형식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지의 유형이 작품 속에서 시인의 내면, 혹은 시적 현실을 나타내는 숨은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뒤에 은유법을 이야기할 때 자세하게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743    시인의 에스프리 /강영환 댓글:  조회:4546  추천:0  2015-10-08
  ▪시인의 에스프리   행복한 인형놀이     강 영 환         시가 뭘까? 무엇이어야 할까. 알 수 없다. 몇 십 년을 묻고 답해도 모르겠다. 변화무쌍한 시에 언제나 농락당한다. 그러고도 또 미련이 남아 버리지 못하고 달려간다. 그게 행복이다. 이루지 못할 영원한 짝사랑이기에 늘 목마른 행복감이다. 고통이 주는 어불성설 행복이랄까.     시가 무엇인지 답을 모를 때 또는 답을 알려고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시가 의식되지 않는다. 시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의미다. 나에게 갇힌 시가 자유를 잃지 않게 되었을 때 시에 갇혀 나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다. 내가 시에 빠져 허우적대는 일도 없다. 시가 지닌 권위로부터 객관적 거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내게 필요했던 것인지 모른다. 나는 그 관계를 오래 지속하고 싶다. 순전히 일방적인 나의 결정일지 모르지만.     피카소는 아이처럼 그림을 그리게 되기까지 60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도 아마 그림을 의식하지 않고 그릴 수 있게 된 사실을 말한 것이리라. 비교가 될지 모르겠지만 피카소가 그림에 쫒기지 않는 것처럼 나도 시에 쫒기지 않게 된 때문일 거라 생각이 든다. 이제는 원고청탁이 오지 않아도, 시가 씌여지지 않아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 연유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딱히 시의 소재 선택을 위해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사람의 일이든 자연의 일이든 그것들은 모두 내게 사랑스러운 일이며 내 삶의 일부이기에 취사선택할 독선은 사라지고 말았다. 내가 시에게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가 내게 올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다. 그러나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기다림에 온갖 정성을 쏟아 집을 정리하고 시에게 온 마음을 열어 둔다. 시와 잘 놀기 위해서 그래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나 사물들은 모두 내 시의 주인공이 된다. 그러기에 시 쓰기가 한층 밝아졌다. 나는 지금 시와 함께 잘 놀고 있다. 누가 뭐래도 시는 내 인형놀이다. 어떤 옷을 입힐 것인가 즐거워하고 놓아두고 싶은 곳에 둘 수 있는 나만의 자유를 만끽한다.     2012년에 펴낸 란 시집 뒤에 ‘분노의 시론’을 말한 적이 있다. 내 시는 분노가 낳은 산물이라고 했다. 지금도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내 시는 분노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분노가 삭혀지고 절여져 젓갈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다. 격한 감정이 지나간 뒤에 남는 그 허무 속에서 시를 기다리는 일에 또한 조급하지 않는다. 시가 세상을 바꾸는 혁명이 될 수 없고, 시가 시 이외는 그 무엇이 될 수 없다는 오든의 말을 잘 알고 있기에 내 영혼을 울리고 가는 작은 소리까지 경청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내 시는 분노가 지나간 길에 남는 티끌이며 세찬 비가 남긴 바위 위 자국인 것이다.     언젠가 시를 공부하는 사람으로부터 ‘어렵고 힘들면 까짓 거 시를 쓰지 않으면 된다’라는 말을 들었다. 처음엔 흥분하였다가 나중에는 그래 시가 생에서 대수가 아니라는 거다. 딸아이도 아빠가 시를 쓴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시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시란 결국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시는 내게 그동안 젊은 시간들을 투자하여 혼자만 않는 가슴앓이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시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자신이 없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시와 노는 일이다. 즐겁게 희희낙락하며 함께 고민하기도 하고, 함께 울기도 하고, 여행을 함께 떠나기도 하며 자유롭고 싶은 내 멋대로인 시를 만나는 것이다.     시를 벗어나야 진정한 시가 보일 것이고, 멋진 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며, 그를 지상에 불러 낼 수 있을 것이다. 시를 의식하지 않고 쓰게 된 것도 이와 같은 연유일 것이다.          
742    시에서 정신적 이미저리 댓글:  조회:4501  추천:0  2015-10-08
정신적 이미저리       인간이 세상과 교감을 주고받는 통로는 바로 감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지닌 오감과 그 외 다른 신체적 활동에 의해 느껴지는 세상을 시인은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감각에 의해 감지되는 의미들은 시인의 정신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고 그것을 독자에게 언어로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체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에 의해 쓰여지기 때문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표현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그것은 잘 못 표현되면 저속하거나 경박스러운 표현에 빠질 우려가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더 많은 경험과 더 깊은 사색에 의해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려 주는 정신적 이미저리가 요구되는 것도 그것입니다.   정신적 이미저리는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정신에 작용하는 감각적 경험에 일어나는 상을 강조합니다. 육체를 통해서 느껴지는 정신의 작용 그것은 오감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과 그 외 기관, 근육감각 등에 의해 일어나는 의미들일 것입니다.   ‘바다는/ 사나운 짐승처럼 다가온다’ 라고 했을 때, 또는 김광균 시인의 에 나오는 ‘구름은 보랏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와 같은 표현이 시각에 의해 드러낸 이미지인 것이며,   ’바다는 철썩 철썩/ 육지의 따귀를 때린다‘는 표현과 김소월의 에서 ’어제도 하루 밤/나그네 집에/ 까마귀 까악까악 울며 세었소‘는 청각적 이미저리이며,   ‘산에서는/ 어머니 냄새가 난다’는 표현이나 ‘그녀는 밤꽃 냄새로/ 오르가즘에 닿고/ 그 남자는 생선 비린내로/ 수심에 가라 앉는다’는 후각적 이미저리입니다.   ‘그대 입술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미각적 이미저리이며,   ‘비단결 같은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대’는 촉각적 이미저리입니다.   기관적 이미지란 고통, 맥박, 호흡, 소화 등의 자각을 말하며 ‘거친 내 호흡 끝에/ 벌판이 놓여 있다’ 나 ‘조국! / 이 말만 들어도/ 내 가슴은 뛴다’ 나 같은 표현들입니다.   근육 감각적 이미저리는 근육의 긴장과 움직임의 자각을 지시하는 것입니다. ‘문을 열었을 때/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와 같은 표현이 그것입니다. 어떻게 정신에 자극하는 감각적 작용들은 실제 예를 들어 가면서 훈련해 본다면 더 좋은 표현에 닿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시의 한 부분으로 작용할 뿐 전체는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는 어디까지나 단선적인 사고에 의해 구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 여러 가지 이미지들은 서로 교호하거나 복합적으로 연결되면서 복잡한 양상을 지니게 됩니다. 이는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되며, 또한 이의 해석도 독자의 수준에 따라 그 폭을 달리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같은 시의 구절을 해석함에 따라 이런 편차는 바로 인간에 작용하는 그런 감각적 기능의 정도가 문제 아니라 객체가 느끼는 정도의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에 감각적 이미저리를 차용할 때는 좀 더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독자의 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남들은 비 온 뒤 죽순처럼/ 잘도 쭉쭉 미끈하게 커 가는데   의지할 지팡이가 없으면/ 바로 서지도 못한다   용트림하듯 아프게 배배 꼬여/ 간신히 올라간 그곳에/ 육신을 맡기고   꼭꼭 다진 한숨/ 넓은 하늘에 푸르게 내 뿜는다   다정한 오월의 미풍이/ 초록빛 훈장을/ 자랑스레 흔들고   사리처럼 영롱한/ 그대의 향기로운 등은/ 지친 길손의 가슴을/ 환히 밝혀 주는/ 보랏빛 그리움이 되었어라                            독자의 시 전문   이 작품은 대상인 등나무를 눈으로 관찰하여 느낀 이미지를 가지고 형상화 시킨 시각적 이미저리를 주로 차용하여 구성한 작품임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그 예를 찾아보면 ‘쭉쭉 미끈하게’ ‘용트림하듯 아프게 배배 꼬여’ ‘초록빛 훈장’ ‘사리처럼 영롱한’ ‘보랏빛 그리움’ 과 같은 표현들이 그것입니다. 그 외 ‘꾹꾹 다진 한숨‘은 기관적 이미저리이며 ’그대의 향기로운 등‘은 후각적 이미저리이며,  ’육신을 맡기고‘는 촉각적 이미저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에서 많은 이미저리가 차용된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시각적 이미저리가 너무 많이 차용됨으로써 그 신선함을 느낄 수 없음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정신적 이미저리는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시 작업이 되어서는 안 되고 전체 주제를 되살리는 한 방편으로서 사용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좀 더 함축하여 본다면 어떨까요.   비 온 뒤 죽순은/ 미끈하게 솟아오르는데 의지할 기둥이 없으면/ 바로 서지도 못한다   용트림하듯 아프게 꼬인/ 육신을 맡기고 올라 선 곳 참내 하던 깊은 숨을 토하면/ 넓은 하늘이 멍이 든다   오월의 미풍은/ 초록빛 훈장으로 자랑스럽고 영롱한 사리로 향기로운/ 그대 등은/ 지친 길손의 가슴을 밝혀 주는 보랏빛 그리움    다른 이의 작품을 개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나 미흡한 부분을 지적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안내하기 위한 방편이라 생각한다면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최종의 결정은 본인의 뜻에 따라야 함은 어쩔 수 없습니다. 원래의 작품이 더 낫다고 이야기한다면 그에 합당한 변명의 말이 없습니다. 시는 개인적 창작의 소산물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성공한 다른 작품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언제나/ 당신을 기억하는 나의 열병은/ 수평선 같은 그리움   가끔씩은/ 그 만큼의 간격으로/ 푸른 미소를 날리며/ 깊은 눈짓에 익숙해 있어도/ 바라만 보아야 할 거리   시퍼렇게 멍들지 않고서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가르치며/ 침묵으로 빛나는 가슴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잃었습니다 서툰 발길들이/ 흔적을 남기고 간 자리에는/ 오래 전부터 시작된/ 나의 고질병이/ 박꽃 같은 눈물로 흔들리고   가슴을 쓸어 내려도/ 잠들지 않는 바람은/ 또 다른 거리로 질주하는데/오늘도 마주 서서/눈빛을 맞추는 우리는/ 숨바꼭질 같은 사랑입니다.                                                 독자 김정순 씨의 전문   위 작품은 바다를 바라보며 남에게 다가갈 수 없는 안타까움과 멀리 떨어져서 그리는 애틋한 그리움을 형상화시키고 있습니다. 바라보기 즉 시각적 이미저리에 의해 구축한 이 작품에서 ‘수평선 같은 그리움’ 이나 ‘푸른 미소’ ‘박꽃 같은 눈물’ 같은 표현이 시각적 이미저리입니다. 이 작품은 4연과 5연이 앞부분과 필연성을 가지지 못하고 돌출되어 있기에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정신적 이미저리에도 몇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이미지 창조력이 시인마다 다르듯 그것을 읽는 독자들의 이미지 창조력이 다릅니다. 그래서 해석의 차이에 따라 시의 전달이 정확히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정신적 이미저리를 너무 강조하게 되면 시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과 시에서 구현하고자하는 세계와는 멀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미지 자체의 감각적 특질만을 강조함으로써 시의 문맥 속에 놓이는 그 이미지의 기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적 이미지의 기능은 독자나 시인의 정신 속에 생산되는 감각의 유형, 즉 정신적 이미저리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시적 언어의 장치로서 그것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물음으로써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741    시에서 이미저리의 기능 댓글:  조회:4546  추천:0  2015-10-08
    이미저리의 기능       우리는 지금껏 이미저리의 여러 유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이미저리들은 개별적으로 시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이며 여러 가지 시의 기법들과 어울려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미저리는 시 속에서 시를 형성하는 다른 요소들과 유기적으로 결합되면서 그 기능이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이미저리는 시의 율격, 음율, 리듬, 문체, 문법의 체계, 시점, 압축방식과 확대방식, 선택과 생략의 방법, 인물, 행동, 사상의 양상들과 적절히 통합하여 새로운 의미구조를 드러내는데 적합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미저리가 갖는 기능은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 곤란하지만 그것이 갖는 영역은 시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정신현상으로서의 이미저리, 언어현상으로의 이미저리, 상징현상으로서의 이미저리가 시 속에서 무엇을 얻고 어떻게 작용하는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미저리가 시 속에서 나타내는 기능을 몇 가지로 대별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이미저리는 시 속의 화자가 말하고 있는 제재(사물, 대상)를 지시한다.  2) 제재는 축어적 이미저리에서 비유적 혹은 상징적 이미저리로 전환된다.  3) 이미지들은 시 속에서 하나의 유추가 된다.   이러한 기능이 시에 어떻게 드러나는지 실제 작품을 가지고 살펴보겠습니다.      햇살 거두운 들녘엔    억새풀 시린 몸짓    낙엽의 서러운 한숨    분명    힘겹게 달려 온    계절의 끝.      남아 있는 한 자락 햇살에    기쁨에 들뜬 마른 가지    그리움 안고 꿈꾸는    분명    노을 빛 따스한    계절의 시작.                                 독자의 시  전문   ‘햇살 거두운 들녘’이 갖는 이미저리는 소멸하는 공간, 퇴행하는 시간입니다. 그것은 또 다른 이미저리 즉 ‘억새풀 시린 몸짓’이 드러내는 차가움과 ‘낙엽의 서러운 한숨’이 지칭하는 죽음의 정조와 무관하지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계절의 끝에 걸리는 제재이기 때문입니다. 2연에서도 ‘남아있는 햇살’이 주는 이미저리는 곧바로 ‘기쁨’으로 연결되고 이는 다시 ‘꿈꾸기’라는 희망적인 이미저리로 비유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계절의 시작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미저리들은 이 시의 제재인 ‘겨울’을 지시하며 그것의 의미를 유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의 구조는 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계절의 끝’ 과 ‘계절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이 구조를 가지고 접근해 보면 이 시는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겨울을 인식하는 작자의 태도가 바로 손쉽게 드러나는 구조이며 이 시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미저리는 바로 겨울이 가진 이중성이라는 것입니다. 겨울이기 때문에 끝이고, 그러기에 슬픈 이미지가 서려 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지은이는 봄을 간직하고 있는 출발이 가까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미저리는 누구나 손쉽게 유추해 낼 수 있는 평이한 이미저리이며 평면적인 이미저리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미저리가 위와 같은 세 가지 기능을 수행하면서 얻는 것은 다음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시 속의 화자가 말하는 것을 보다 명료하게 깨닫게 해 줍니다. 겨울이 춥다든가  쓸쓸하다든가 하는 관념적인 표현보다는 몇 개의 이미저리로 그 분위기를 드러냄으로써 한결 독자들의 이해에 쉽게 부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시 속의 화자의 반응은 자신의 정서와 연결되며 따라서 시의 독특한 정조를 깨닫게 합니다. 위 시에서 ‘힘겹게 달려 온/ 계절의 끝’이 바로 시 속에서 말하려는 화자의 정서인 것입니다. 셋째로 이미저리는 시 속의 화자의 의식성을 환기함으로써 화자의 정신활동을 자극하고 그 활동을 표출시켜 줍니다. 시 속의 화자가 가진 생각을 드러나게 한다는 것이며 그에 반응하는 화자의 태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시인이 이미저리를 취급하는 것은 세부의 선택과 비교를 통해 독자에게 시적 상황을 암시하려는 것입니다. 동시에 시적 상황 속의 다양한 여러 요소들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유인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독자의 기대감을 이끌어 가면서 의미를 환기하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이미저리가 얻는 이익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제재의 환기, 화자의 정조, 사상의 외면화, 독자의 태도를 지시한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불허의 가시로 지은 집에     가을햇살 초연히 문 두드리면     윤기 있는 맑은 이마     빛이 돋는다       비바람 세어도 푸른 이지로     동자 고이 숨겨 놓고     들국화 향기 드러나는     금빛 들녘이면       비로소 땅 위로 내려와     이 가을 스며 오는     모든 의미 속에서     그리움 하나가 된다.                          독자 김남영의 시  전문   위 작품은 밤이 익어 가는 과정을 형상화시키고 있습니다. 알밤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그것이 가진 특징적인 이미저리를 차용하여 알밤이 가진 의미를 재구성하여 펼쳐 보인 작품입니다. 물론 마지막 연에서 ‘모든 의미 속에서/ 그리움 하나가 된다’와 같은 불투명한 이미저리가 이 시를 단단하게 매어놓지 못하게 하는 부분  이기도 하지만 지은이는 이미저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미저리가 획득하는 내용 혹은 그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각 이미지들은 화자의 말을 매우 명료하게 만든다. 시적 화자가 말하는 내용을 분명하게 말하며, 물질이 가진 특성이 섬세하고도 정확하게 기록된다. 2) 명료한 이미지들이 시적 정서의 등가물로 나타남으로써 (화자의 정서와 결합됨으로써) 시의 독특한 어조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3) 이미지들의 결합은 시 속의 화자의 의식성을 환기한다. 그 말은 곧 화자의 의식성을 현실화한다는 것이다. 4) 이미지들이 그 디테일의 선택과 대조를 통하여 시적 상황을 암시한다. 5) 각 이미지들의 유기적 결합, 곧 이미저리는 우리의 기대를 인도하거나 환기한다. 이미지들의 전개에 따라 우리는 어떤 정서적 태도를 예기하며 동시에 시가 우리에게 주는 시적 메시지를 이해하게 된다.     소스라치게 긴 인고의 세월을   잘 인내하며 참아온 한 송이의 꽃처럼   당신의 굵은 주름은 눈물의 계곡으로 피어났고   황금빛 노란 물결의 벼는 당신의 모습이어라                                        독자의 시   이 시는 비유적 이미저리로 구성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한 송이 꽃 = 어머니’와 ‘굵은 주름 = 눈물의 계곡’ 같은 비유는 안이한 비유에 속합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비유이기에 새로운 모습을 제공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미저리가 신선하지 못할 때 그 시가 갖는 생명력은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이미저리를 갖기 위해서는 사물(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언어의 유기적 결합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미저리는 그것만의 문제가 아니라 총체적인 시의 접근을 의미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740    시를 잘 쓰는 궤도 / 시와 상징 / 靑馬 댓글:  조회:4544  추천:0  2015-10-08
  추천자 목록 1. 사물을 깊이 보고 해석하는 능력을 기른다. 지식이나 관찬이 아닌 지혜(지식+경험)의 눈으로 보고 통찰하는 직관력이 필요하다. 2.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그 가치에 대한 ‘의미부여’가 있을 때 소재를 붙잡아야 한다. 단순한 회상이나 추억,    채택된 답변답변추천해요1추천자 목록 사랑 등 퇴행적인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3. 머릿속에 떠로은 추상적 관념을 구체화 할 수 있는 이미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미지+이미지= 이미저리 -> 주제(가치와 정신) 확정. 4.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정서의 구조화가   답변추천해요0 필요하다. 추상적 관념을 이미지로 만들고 정서를 쳬계화 하기 위하여 ‘객관적 상관물’을 찾아내야 한다. 또한 1차적 정서를 2차적 정서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하여 ‘객관적 상관물’을 쓴다. 이것을 ‘정서적 객관화’ ‘감수성의 통일’ 등으로 부른다.   답변추천해요0 5. 현대시는 ‘노래의 단절에서 비평의 체계’로 넘어와 있다는 파스의 말을 상기하라. ‘-네’ ‘-오리다’ ‘-구나’ 등의 봉적적 리듬을 탈피하다. 연과 행을 구분을 무시하고 산물 형태로 시도해 보는 것.   답변추천해요0 6. 초월적이고 달관적인 시는 깊이는 있어도 새로움이 약화되기 쉬우니 프로 근성을 버리고 아마추어의 패기와 도전적인 시의 정신을 붙잡아라. 이는 ‘시 쓰기’를 익히기 위한 방법이며, 늙은 시가 아니라 젊은 시를 쓰는 방법이다.   답변추천해요0 7. 단편적인 작품보다는 항상 길게 쓰는 습관을 길러라. 8. 지금까지의 전통적 상정이나 기법이 아닌 개인 상징이 나오지 않으면 신인의 자격이 없다.   답변추천해요1추천자 목록 9. 좋은시 (언어+정신+리듬=3합의 정신)보다는 서툴고 거친 문제시(현대의 삶)에 먼저 눈을 돌려라. 10. 현대시는 낭송을 하거나 읽기 위한 시가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도록 만드는 시이니 엉뚱한 제목(진술적 제목), 엉뚱한 발상, 내용 시상 필요. ================================================ 시와 상징. /김영천  3)암시성  상징의 특성으로 일체성, 복합성에 이어서 암시성을 들 수가  있습니다. 상징언어는 보조관념으로 표현되어 원관념을 암시  함으로써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일체화합니다.  이 원섭님의 을 읽어보겠습니다.  머언 어느 나라로 가자  例(예)를 들자면 모로코나 에치오피아 같은 곳,  나의 형제나 친구가 아무도 없는,  될 수 있으면 專制(전제)하는 王이 있고  봄 가을이면 人肉市場(인육시장)이 장엄히 벌어지는  그러한 나라에 가  나는 한 마리 奴隸(노예)가 되자.  이 거추장한 옷일랑 벗어 동댕이치고  개모양 陳列(진열)되어  商人(상인)들이 내 값을 흥정하게 내버려두자.  나는 나를 時價(시가)대로 판 다음  어느 主人(주인)을 개처럼 섬기자.  가실 뉘 없는 한 조각 丹心(단심)!  피 튀는 채찍도 은혜로 받자  어느날 나는 죽자. 나의 筋力(근력)을  하나도 남김없이 主人에게 바친 다음  늙어빠진 개모양 고요히 눈을 감자.  그리하여 아무의 기억에도 남지 말자.  永遠(영원)히 내 이름 숨긴채로  노창선 교수의 해설을 옮겨봅니다.  "이 시에서 우린 시적 화자의 매우 비밀스러운 내면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비밀스러운 마음 그 자체가 이 시를 통하여  시인이 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이 아님을 곧 알게 된다. '  머언 나라'라든지 '거추장스러운 옷일랑 벗어 동댕이치고',  '형제나 친구나 아무도 없는'곳이라는 등의 시어는 시적화자  의 현실이탈 의욕을 통하여 초월적 의지를 암시한다고 본다"  즉 현실을 벗어나려는 화자의 마음이 암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자학과 구속, 어떤 이념에 대한 순응이나 굴종을  의식하는 시어들로 되어있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시 설명하자면 상징이란 존재 양식이 본래적으로 원관념이 숨고  보조관념만 제시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감춤(concealment)과  드러냄(revealation)의 양면성을 필연적으로 지닌다는 것이지요.  바꾸어 말하면 상징에서는 침묵과 담화가 함께 작용해서 2중의  의의를 가져 옵니다.  신동집님의 를 읽어보겠습니다.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오렌지는 여기 있는대로의 오렌지다.  더도 덜도 할 수 없는 오렌지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나는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을 벗길 수도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만 낸다며  오렌지 찹잘한 속살을 깔 수도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는 순간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에 있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에 있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렌지의 포들한 가죽엔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오 누구인지 아직 잘은 몰라도.  상징은 감춤의 성질만도 아니고 드러냄의 성질 만도 아닙니다.  이 작품은 상징의 양면성 자체를 테마로 한 것을 보입니다. 오렌지  에 대한 화자의 태도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감추어진 작가의 의도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화자는 오렌지의 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화자는 이미  오렌지으로 껍질을 벗겨 그 속살을 깔려고 손을 대면 그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라고 두려워 합니다. 여기에서 오렌지는 무엇일까  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작가의 설명이 없어서 알 수는 없지만  김준오 같은 분은 인간의 지적 욕구로 보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적  욕구는 모든 사물의 내면을 다 들추어 내어 밝히려고 하지만 그 결과  는 사물에 대한 흥미도 가치감도 다 소멸되고 말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화자는 이 지적 욕구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오렌지를 새로 만나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고  연인으로 정할 수도 있겠지요. 사람은 적당히 모를 때 존경하다가도  너무 친해져 단점까지 다 알게 되면 그 동안 마음 속에 품었던 흠모의  정이 산산히 부서지고 말 수도 있어 두렵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이 이 오렌지의 상징성은 무엇일까? 무엇을 암시하였을까?  궁리하여 보십시오.  그 것이 우리에게 다가온 삶을 뜻하는 것인지, 또는 알지못할 미래에  대한 상징은 아닌 것인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약속대로 이런 것 있다고만 알고  마지막으로 긴장성을 살펴보겠습니다.  4)긴장성  여러분들이 위의 시를 읽으면서 도대체 무슨 뜻인지를 파악  하기위해서 무척 긴장하셨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상징의 감춤과 드러냄, 복합성, 암시성 때문에  독자들로 하여금 정신적 긴장감을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를 한 편 소개해보겠습니다.  김명수님의 을 읽겠습니다.  달 그늘에 잠긴  비인 마을의 잠  사나이 하나가 지나갔다.  붉게 물들어  발자국 성큼  성큼  남겨 놓은 채  개는 다시 짖지 않았다  목이 쉬어 짖어 대던  외로운 개  그 뒤로 누님은  말이 없었다  달이  커다랗게  불끈 솟은 달이  슬슬 마을을 가려주던 저녁  상징의 언어가 긴장의 언어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시의 언어가  우리가 일상으로 쓰는 문맥과 같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위의 시에서 달은 어둠에 대한 빛의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삶  의 애환과 고통의 분위기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잠들어 빈 듯  한 마을과 다시는 짖지 않는 외로운 개와 말이 없어진 누님의  이미지는 무언가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연상시키면서 이 시의  내용의 중요한 암시적 모티프가 되고 있습니다. 비밀스런 분  위기를 배경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내의 정체와 누님의 관계  는 어떤 사건을 암시할 뿐이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습  니다. 제목으로 보아서는 무슨 역사적 상황 아닌가 하면서도  극히 개인적인 사건으로 압축되어버립니다.  2.상징의 유형  이 과목은 제목만 소개하는 것으로 끝내겠습니다.  1)개인상징  2)집단상징  3)원형상징  참고로 노드롭 프라이란 학자는 묵시적, 악마적, 로만스적,  사실적, 상위모방적으로 다섯 개로 분류하였습니다.  이형기님의 입니다.  그해 겨울의 눈은  언제나 한밤중 바다에 내렸다  희부옇게 한밤중 어둠을 밝히듯  죽은 여름의 반디벌레들이 일제히  싸늘한 불빛으로 어지럽게 흩날렸다  눈송이는 바다에 녹지 않았다  녹기전에 또 다른 송이가 떨어졌다  사라짐과 나타남  나타남과 사라짐이 함께 돌아가는  무성영화 시대의 환상의 필름  덧없는 목숨을  혼신의 힘으로 확인하는 드라마  클라이맥스밖에 없는 화면들이  관객없는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언제나 한밤중 바다에 내린  그해 겨울의 눈  그것은 꽃보다도 화려한 낭비였다  (참고로 제가 올리는 시들은 띄여쓰기나 부호 등, 책에  나온대로 옮기니 맞춤법과 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유안진님의 을 읽어볼까요?  이제는 사랑도  추억이 되어라  꽃내음보다도  마른 풀이 향기롭고  함께 걷던 길도  홀로 걷고 싶어라  침묵으로 말하며  눈 감은 채 고즈너기  그려보고 싶어라  어둠이 땅 속까지 적시기를 기다려  비로소 등불 하나  켜 놓고 싶어라  서 있는 이들은 앉아야 할 때  앉아서 두 손 안에 얼굴을 묻고 싶을 때  두 귀만 동굴처럼 길게 열리거라  이가람님의 을 읽어보겠습니다.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모래알 같은 이름 하나 불러 본다.  기어이 끊어 낼 수 없는 죄의 탯줄을  깊은 땅에 묻고 돌아선 날의  막막한 벌판 끝에 열리는 밤  내가 일천 번도 더 입 맞춘 별이 있었음을  이 지상의 사람들은 모르리라  날마다 잃었다가 되찾은 눈동자  먼 부재(不在)의 저 편에서 오는 빛이기에  끝내 아무도 볼 수 없으리라  어디서 이 투명한 이슬은 오는가  얼굴을 가리우는 차가운 입김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물방울 같은 이름 하나 불러본다.  마지막으로 김후란님의 를 읽어보겠습니다.  산이 산을  에워싸고  비켜 가라네 강보고  지난 가을  끝내 불질러 버렸던 상처에  기나긴 겨울  참회하는 침묵뿐이더니  저 강  뫼뿌리에 잠든 언어  다 깨워 놓고  깊은 산  가슴에  강물소리 절로  차오르네        ▲  일러스트=이정학 기자       신달자/시인 연초 갑오년을 맞이하면서 사람들은 청마(靑馬)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는 듯했다. 설이 지나고 입춘, 우수까지 지난 지금도 청마에 대한 얘기가 그치지 않는다. 내 주변에도 청말띠 아기를 가지려는 여성이 몇 있다. 다 좋은 일이다. 불임을 임신으로, 실직을 취업으로, 미혼은 결혼으로, 지지부진한 사업은 급성장으로, 환자는 회복으로 바뀌는 기적을 갑오년 청말띠 해에 걸어 보는 일 나쁘지 않다. 어쩌면 바람직한 기대감이 살짝 기분을 상승시키는 일로서 권장할 만하다. 청말띠는 경기회복에도 청신호가 켜진다는 마음으로 모두들 두 손을 모으고 올해에는 진심으로 소망이 이뤄지기를 뼛속 기운을 다해서 빌어 보는 것이다. 땅을 울리는 역동적 기운과 진취적인 기운이 우리에게, 아니 내 안으로 깊이 들어오는 긍정의 꽃향기가 피어나는 것은 진정으로 바람직하다. 바라면 이뤄진다는 법칙을 다 알고 있지 않은가. 며칠 전에도 몇몇 후배들과 만나 차를 마시는 시간에 청마가 과연 있느냐로 한 시간 넘게 수다를 떨었다. 사실은, 있다고 해도 되고 없다고 해도 괜찮은 일이다. 다 마음에 달린 것 아니겠는가. 옛날 같으면 청말띠라면 여자아이는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임신부들의 마음을 태웠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은 소리없이 흘러 지금은 오히려 그런 훨훨 나는 딸을 낳고 싶어 안달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12지에 맞는 말띠이지만 청말은 실제로는 없다는 쪽으로 자꾸만 흘러간다. 나는 ‘청노루’를 생각했다. 박목월의 시에 나타나는 그 환상적이고도 아름다운 청노루, 그리고 자하산, 그리고 청운사 청밀밭…. 그것도 실제로는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박목월 시인이 있다면 있는 것이다.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 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이 기막힌 상상력의 현실화는 우리에게 청노루며 자하산이며 청운사가 왜 없다고 생각하겠는가. 박목월 시인의 초기 시에 해당하는 이 ‘청노루’는 언제나 우리에게 희망과 비밀스러운 언약을 준비하게 한다. 때론 외로울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나는 이 시를 가만히 외워 본다. 모든 군살을 빼고 행간마저 깊고 넓은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 이 간결한 시는 따뜻한 어머니의 손길처럼 마음을 녹인다. 그리고 멀리멀리 보이지 않는 세계에까지 마음이 가 닿으려는 의지를 북돋아 주기도 하는 것이다. 시는, 예술은 우리들 마음속에 청노루가 있다고 믿음을 갖게 하는 내적 힘을 촉발하는 게 아닌가. 실지로 우리나라에는 순전히 검은빛으로 빛나는 두 필의 말이 있다고 들었다. 너무 검어 윤이 자르르 흐르는 이 두 필의 말은 값도 어마어마하지만 그 관리도 어렵다고 했다. 그 검은빛 말을 보노라면 이상하게도 푸른빛이 감돈다는 것이다. 검은빛 속에 어른거리는 도도한 푸른빛! 나는 알고 있다. 저녁 무렵 어둠이 밀려오는 순간 나는 본다. 어둠의 속살은 푸른빛이라는 것을, 어둠 속에는 유려하고 깊이 있는 아름다운 청색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본다. 그 어둠 속의 깊은 속살의, 푸른빛의 힘으로 어둠은 세상을 감싸고 새벽 여명의 또 다른 눈부심을 탄생시킨다는 것을 안다. 검은 말을 두고 ‘짙푸른 말’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갈기를 드높게 날리며 달리는 검은 말의 속도 속에 비쳐나는 맑고 유려한 푸른빛을 보는 사람은 안다.  해가 지고 밀려오는 어둠의 날개 속에서도 주변은 푸른 생명 빛이 감돈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은 어떤 고통, 어떤 실망 앞에 있더라도 우리는 그 안에서 청마를 타고 달린다는 의지만 있다면 우리의 지금의 고통은 청마처럼 달려갈 자신감으로 빛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무거운 현실을 안고 결코 쓰러지지 않고 그 무게를 지고 나르는 의지를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우리도 저벅저벅 그렇게 안고 왔던 것이다. ‘어느 가시덤풀 쑥굴헝에 뇌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玉)돌 같이 호젓이 무쳤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서정주 시인의 ‘무등을 보며’의 한 대목이다. 초기 시에 나타나는 ‘싸늘한 바위에 푸른 숨결 불어 넣기’와 같은 이미지로 이 옥돌의 색깔이야말로 싸늘한 바위 속 푸른 숨결의 생명 빛 아니겠는가. 이 생명 빛 옥돌을 품고 청마로 가볍게 날아 볼 일 아닌가. 마음에 있으면 이미 날개를 펼 일이다. 두 팔을 벌리자, 그리고 날아오르자. 번민을 거두고 날아오르자. 훨훨 날자 손끝, 발끝에 힘을 주자. 눈을 감고 생각해 보자. 옥돌을 안고 청마 타고 나는, 그래서 광야를 달리듯 희망의 갈기를 날리며 달려 보는 2014년의 그림을 그리자. 그렇지 않은가. 마음을 이끄는 시, 마음을 부풀리는 그림, 마음을 다스리는 음악이 있다는 것은 바로 우리 마음속에 청노루를, 청마를, 그리고 옥돌 같은 의지를 품는 일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청마는 있다.  
739    ...이어서 댓글:  조회:5254  추천:0  2015-10-08
詩의 要素[Ⅱ]:이미지와 이미저리 /벽파 김철진  3. 이미지 이미저리야!  우리가 여기서 아무리 '이미지 이미저리야!' 하고 소리쳐 불러봐도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일 뿐' 아무도 대답해 줄 이는 없습니다. 허니 우리가 찾아 나서야지요. 그럼 슬슬 찾아 나서 볼까요? 여기서도 무작정 찾아 나서기보다는 나침반이라도 하나 가지고 나서야 하겠지요.  존 러스킨이란 작자는 우리 머리를 또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왜인고 하니, 그가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가장 중요한 정신 능력의 하나인 '상상력(想像力)'을 직관적(直觀的) 상상력과 연합적(聯合的) 상상력 그리고 정관적(靜觀的) 상상력으로 분류하였기 때문이지요.  내야 뭐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서 직관적 상상력이란 '사물의 정신적·내면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것'을 뜻하며, 연합적 상상력이란 '이미지[心象]를 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하며, 정관적 상상력이란 '대상의 본질을 마음의 눈으로 조용히 관찰하여 나타나는 사상과 정서로 체험 전체를 통일시키는 것'을 뜻한다고 하더군요.  머리 아프지만 알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것도 (문학아카데미)에서 빌려 왔지요.  그렇다고 동문 선배인 박제천 시인이 저작권 운운이야 하겠습니까?  그럼 이제 이미지를 사용한 시들을 살펴보기로 할까요?  여러분 작년 흰눈 펑펑 쏟아지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늘이 쓰는 시가 좋아서 신선되어 눈 타고 하늘 오르신 미당 서정주 시인 아시죠? 그 미당 선생님ㅡ 내게는 은사님이시기에 ㅡ의 '국화 옆에서' 모르시는 분 있으시면 손 들어 보세요. 그 시 둘째 연 한번 먼저 볼까요?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여기서 시인은 가을에 노랗게 핀 '국화꽃'의 이미지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온 중년의 '누님'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얼굴에 이제는 주름이 잡히기 시작한 중년의 누님이 지닌 '원숙한 아름다움'이 바로 시인이 상상력으로 노래한 '국화꽃의 아름다움'이지요.  이 번에는 회화적 이미지를 많이 구사했던 김광균 시인의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설야(雪夜)'의 전체 6연 중 4연까지를 한번 살펴볼까요?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에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여기서 시인은 '눈[雪]'의 이미지를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과 '서글픈 옛 자취'로, 어둠 속에 '눈이 내리는 소리'를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모두 시인의 상상력의 산물이지요.  이처럼 이미지는 시인의 상상력에 의하여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상상력은 이미지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그러나 상상력은 어디까지나 상상력일 뿐, 이미지 그 자체는 아니지요. 따라서 상상력은 어떠한 상상력이든 그 결과가 언어로 표현되어야만 이미지가 됩니다.  여러분, 제2강의 일화에서 드가에게 한 S.말라르메의 말 기억하시지요? 잊어버리신 분들은 돌아가셔서 다시 한번 읽어보고 오세요. 집으로 아주 가시지는 말구요.  그럼 마지막으로 이미저리를 찾아볼까요?  이미저리는 하나의 시구(詩句)에서도 찾을 수 있고, 한 편의 시 전체에서도 찾을 수 있지요.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던 청각을 시각으로 변화시켜 표현한 시구인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김광균의 )와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정한모의 ) 같은 것이 있는데, 이 시구들은 잘 알고 계시죠.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공감각적 심상'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설명하셨을 테니까요.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에서는 종소리의 청각을 푸른 빛깔로 시각화함으로써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를 결합하였고,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에서는 종소리의 파장을 동그라미로 시각화함으로써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를 결합하였습니다.  이처럼 이미지를 결합하여 만들어 내는 이미지군(群)이 이미저리가 되지요.  그럼 이번에는 시 전체에서 이미저리를 찾아봐야 하겠는데, 본디 내가 주변머리도 없고 발도 마당발이 못 되고 겁도 많고 실력도 없다 보니 유명한 시인들의 글은 인용을 못 하겠고 해서 내 졸작 '얼굴'에서 찾아보기로 하겠으니 과히 허물치 마시기를 바랍니다.  "두 눈썹  한 획  가로 그으면  은어(銀魚)떼처럼  몰려 오는 빛살  아침으로 모도아 고이  영원에 뿌리면  사랑으로 피는  둥근 미소(微笑)  오, 빛살도 미소도  머무는 거울아  어릴 적 내가  꿈으로 써 둔  시(詩)."  여기에 대한 것은 평론가인 서울대 권영민 교수가 내 첫 시집의 발문에서 썼던 시평으로 대신하는 것이 더 신뢰성이 있을 것 같아 그로 대신합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시적 대상에 대한 감각적 인식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채롭기조차 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각적 심상들의 시적 결합을 통해 시인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맑고 깨끗한 것, 순수 그 자체이다. '얼굴'이라는 시의 제목을 염두에 두고 다시 이 시를 읽으면, 시인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구체성이 '빛살'·'미소'·'거울' 등의 시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와 내적으로 긴밀하게 결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쑥스럽네요. 내 뒤퉁수 긁적이는 것 보이십니까? 동영상 이미지가 없어서 안타깝군요.  아무튼 너무 길어졌지만 여기까지 읽어 오신 분들은 이제 다 끝났으니 내게 욕할 일만 남았겠군요. 그래도 이 부분은 워낙 중요한 부분이니 두어 번은 읽어보시고 이미지와 이미저리에 대해서 이해를 대충이라도 하고 넘어 가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738    詩의 이미지와 이미저리 댓글:  조회:4225  추천:0  2015-10-08
詩의 要素[Ⅱ]:이미지와 이미저리  자, 여러분, 정말로 시를 짓고 싶으시다면 지금부터는 정신 좀 바짝 차리고 강의안을 읽으셔야 합니다.  왜냐구요?  시가 자신의 넋두리가 되거나 자기 도취에 빠져서 감상으로만 흐르지 않고 '시다운 시', '자신의 혼을 불어넣은 시', 그래서 '타인의 영혼을 울릴 수 있는 시'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공부해 나갈 '이미지(Image)'와 '이미저리(Imagery)'는 물론, '비유'와 '상징' 등도 기본적으로 꼭 알아야 하니까요.  여기서부터는 게으름을 피우면 '시 창작 교실'의 영원한 낙오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 여러분! 나태가 행여 있었다면 과감히 떨쳐 버리시고 정신 바짝 차리세요.  다시 한 번 말씀 드리는데 제5강까지는 깡그리 잊어버려도 좋습니다만 여기서부터는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물론 '어휴ㅡ 시 짓기도 골치 아프군. 까짓 시 안 쓴다고 세상 안 굴러가나!' 하실 분이라면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만 손해보고, 아예 여기서 만세 부르세요.  그게 여러분이 아까운 시간 덜 손해 보는 길입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너무 겁을 주고 있나요? 아닙니다. 나는 거짓말은 안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집에 내려오는 가훈은 '사무사(思無邪)'이지만, 나는 여기에 더하여 내 아이들에게까지도 '거짓말을 하지 마라'는 가르침을 하나 더 얹어 준 사람입니다.  이러다간 얘기가 삼천포로 빠지겠군요.  다시 본디로 돌아가서 말씀 드리지요. 겁주려는 게 아닙니다. 허나 여기서도 부담은 갖지 마세요. 이제까지보다는 좀 정신을 집중해서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하기사 막말로 해서 시 못 짓는다고 사람 구실 못합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데 시 못 짓는다고 어디 밥 못 먹고 삽니까?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세상 살기는 다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러나 남보다 더 잘 살고 싶은 게 인간의 욕심입니다. 돈도 남보다 많이 벌고 싶고, 자식들도 남보다 훌륭하게 키우고 싶고...... 등등 얼마나 많습니까?  그 중에서 여러분들은 다른 것 다 두고라도 남보다 더 넉넉한 영혼을 가지고 살고 싶어하시는 분들 아닙니까. 그래서 이 '시 창작 교실'의 문도 두드리신 것이구요. 그렇다면 여기서 포기하신 데서야 어디 쓰겠습니까? 자존심도 많이 상하실 것이구요. 그러니 한 번 뽑은 칼 썩은 호박이라도 내리치고 칼집에 넣어야지요.  그럼 마음 편안히 가지시고 이미지와 이미저리에 대한 공부 함께 시작해 볼까요?  1. 이미지, 이 놈 너 누구냐?  P.발레리는 현대시의 80%가 이미지로 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이미지는 시에 있어서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이미지는 그에 비례하여 또 그만큼 골치 아픈 존재이기도 하지요.  한 번 물어 볼까요? '이미지, 이 놈 너 누구냐?' 'ㅡㅡㅡㅡㅡㅡ'  어, 대답이 없네요. 아마 벙어리인가 봅니다.  하는 수 없으니 우리가 사전을 찾아보고 스스로 터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이미지(Image)'를 사전에서 찾아봅시다.  이미지는 '마음속에 그려지는 사물의 감각적 영상(映像)'이라고 나와 있군요. 그럼 '영상(映像)'은 또 무엇일까요? '영상'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물의 모습. 이미지. 심상' 이렇게 나와 있네요. 그럼 또 '심상(心象)'은 무엇인지 찾아봐야 하겠군요. 어, 이게 어쩐 일입니까? '심상'은 또 '감각 기관의 자극 없이 의식 속에 떠오르는 상. 영상. 표상'으로 나와 있네요.  그럼 여기서 또 '표상(表象)'을 찾아봐야 하겠군요. 그런데 여기는 또 뜻풀이가 왜 이렇게 많습니까? 하나는 '대표적인 상징'이고 두 번째는 '철학에서의 이데아(Idea)', 세 번째는 '심리학에서, 감각을 요소로 하는 심적 복합체를 이르는 말. 의식 중 과거의 인상이 재현된 것, 또는 어떤 대상을 지향하는 의식 내용을 가리킴. 심상(心象)' 이렇게 나와 있군요.  어휴우ㅡ 이러다가는 사전 찾다가 날 새는 게 아니라 사전 찾다가 삶이 끝나겠군요. '이미지→영상→이미지, 심상→영상, 표상→(상징, 이데아),(심적 복합체, 과거의 인상이 재현된 것), 심상'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고 있으니 정신이 다 어지럽네요.  '제기랄(죄송)' 상말이 막 나오려 하네요. 아, 지금 여러분이나 나나 욕 안 나오게 생겼습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적어도 영혼이 풍요로운 삶을 위해 '시 짓기' 공부를 하는 문화인들이니 욕을 할 수도 없고, 참자니 속이 끓고 그저 '북북' 할밖에요.  그래도 조금은 얻은 것이 있는 것 같으네요.  사전의 뜻풀이를 종합해서 분석해 보니 이미지란 간단하게 말해서 '심상(心象), 영상(映像), 표상(表象)3'인 것 같군요.  그렇다면 이제 다시 한 번 물어봅시다.  '이미지, 이 놈 너 누구냐?'  '나는 어떤 대상(對象)이나 사물(事物)에 대한 너의 지각이나 기억, 상상, 환상, 느낌 등이 영화의 화면처럼 재생되어 너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이다. 왜 어쩔래? '  어허, 뭐 뀐 놈이 성낸다더니 제 녀석이 되려 화를 내네요. 그렇지만 우리가 참읍시다. 그리고 이제 우리 나름대로 정리를 해서 이미지의 정의를 간략하게 내려봅시다. 물론 여기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계시죠?  '이미지란 대상(對象)에 대한 지각, 기억, 상상, 환상, 느낌 등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ㅡ  이 정도로 '이미지'를 정리해 두면 되겠습니까? 그럼 이제 이미저리 만나보러 갑시다.  2. 이미저리(Imagery), 너는 또 누구냐?  '이미지' 그 녀석에게서 고생을 많이 했으니 이제 '이미저리'란 녀석은 쉽게 만나봅시다.  그게 좋겠지요, 여러분? 잘 안 들리는데 큰 소리로 대답해 주세요. 그게 좋겠지요, 여러분!  그래도 아직 목소리가 작군요. 더 크게 해 보세요. 젖 먹은 힘까지 다 해서요.  '그게 좋겠지요, 여러부운ㅡ!' '네에에에ㅡ!' 이제 됐습니다. 그럼 물어봅시다.  '이미저리야, 너는 또 누구냐?' 'ㅡㅡㅡㅡㅡㅡ'. 허허, 이 녀석도 대답이 없네요.  우리 다른 사이트에서 좋은 글이나 음악, 그림 퍼오는 실력 있지요? 갈 길이 바쁘니 이 녀석은 (문학아카데미)에서 인용해 놓은 프리스톤대학 에 나온 글을 퍼와서 읽어볼까요?  '이미지는 신체적 지각에 일어난 감각이 마음속에 재생된 것이다. ...... 한때 지각되었으나 현재는 지각되지 않는 어떤 것을 기억하려고 하는 경우나 체험상 마음의 무방향적 표류의 경우나 상상력에 의해서 지각 내용을 결합하는 경우나 꿈과 열병에서 나타나는 환각 등의 경우처럼 직접적인 신체적 지각이 아니더라도 마음은 역시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다. 한층 특수한 문학적 용법으로서의 이미저리는 언어에 의하여 마음속에 생산된 이미지군(群)들을 가리킨다.'  역시가 역시나지요? 이렇게 유식한 사람들이 써 놓은 글들을 보면 어렵다니까요. 우리는 쉽게 생각해 봅시다. 위의 글에서 몇 마디만 기억해 둡시다. 그것이 이미저리 같으니까요.  '이미저리는 언어에 의하여 마음속에 생산된 이미지군(群)들을 가리킨다.'  이 구절만 기억하세요.  여러분, 장미꽃 좋아하시죠?  '장미꽃 송이가 이미지라면, 장미꽃 다발[묶음]이 이미저리다.'  그러니 우리처럼 무식한(?) 사람들은 이렇게 무식하고 간단하게 기억합시다.  그럼 여기서 다시 한 번 '이미저리'에게도 물어 볼까요?  '이미저리, 너는 또 누구냐?'  '나는 이미지의 집합체이다. 이미지와 이미지가 모여서 내가 된다. 알겠니?'  어! 얘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인가 보네요. 이제 아시겠지요?  '이미저리는 이미지의 집합체이다.'  어린 왕자가 기억하기 위해서 되뇌듯 우리도 되뇌어 봅시다.  그리고 이제는 작품 속에서 이미지와 이미저리를 공부해 볼까요?  3. 이미지 이미저리야!  우리가 여기서 아무리 '이미지 이미저리야!' 하고 소리쳐 불러봐도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일 뿐' 아무도 대답해 줄 이는 없습니다. 허니 우리가 찾아 나서야지요. 그럼 슬슬 찾아 나서 볼까요? 여기서도 무작정 찾아 나서기보다는 나침반이라도 하나 가지고 나서야 하겠지요.  존 러스킨이란 작자는 우리 머리를 또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왜인고 하니, 그가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가장 중요한 정신 능력의 하나인 '상상력(想像力)'을 직관적(直觀的) 상상력과 연합적(聯合的) 상상력 그리고 정관적(靜觀的) 상상력으로 분류하였기 때문이지요.  내야 뭐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서 직관적 상상력이란 '사물의 정신적·내면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것'을 뜻하며, 연합적 상상력이란 '이미지[心象]를 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하며, 정관적 상상력이란 '대상의 본질을 마음의 눈으로 조용히 관찰하여 나타나는 사상과 정서로 체험 전체를 통일시키는 것'을 뜻한다고 하더군요.  머리 아프지만 알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것도 (문학아카데미)에서 빌려 왔지요.  그렇다고 동문 선배인 박제천 시인이 저작권 운운이야 하겠습니까?  그럼 이제 이미지를 사용한 시들을 살펴보기로 할까요?  여러분 작년 흰눈 펑펑 쏟아지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늘이 쓰는 시가 좋아서 신선되어 눈 타고 하늘 오르신 미당 서정주 시인 아시죠? 그 미당 선생님ㅡ 내게는 은사님이시기에 ㅡ의 '국화 옆에서' 모르시는 분 있으시면 손 들어 보세요. 그 시 둘째 연 한번 먼저 볼까요?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여기서 시인은 가을에 노랗게 핀 '국화꽃'의 이미지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온 중년의 '누님'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얼굴에 이제는 주름이 잡히기 시작한 중년의 누님이 지닌 '원숙한 아름다움'이 바로 시인이 상상력으로 노래한 '국화꽃의 아름다움'이지요.  이 번에는 회화적 이미지를 많이 구사했던 김광균 시인의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설야(雪夜)'의 전체 6연 중 4연까지를 한번 살펴볼까요?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에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여기서 시인은 '눈[雪]'의 이미지를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과 '서글픈 옛 자취'로, 어둠 속에 '눈이 내리는 소리'를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모두 시인의 상상력의 산물이지요.  이처럼 이미지는 시인의 상상력에 의하여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상상력은 이미지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그러나 상상력은 어디까지나 상상력일 뿐, 이미지 그 자체는 아니지요. 따라서 상상력은 어떠한 상상력이든 그 결과가 언어로 표현되어야만 이미지가 됩니다.  여러분, 제2강의 일화에서 드가에게 한 S.말라르메의 말 기억하시지요? 잊어버리신 분들은 돌아가셔서 다시 한번 읽어보고 오세요. 집으로 아주 가시지는 말구요.  그럼 마지막으로 이미저리를 찾아볼까요?  이미저리는 하나의 시구(詩句)에서도 찾을 수 있고, 한 편의 시 전체에서도 찾을 수 있지요.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던 청각을 시각으로 변화시켜 표현한 시구인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김광균의 )와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정한모의 ) 같은 것이 있는데, 이 시구들은 잘 알고 계시죠.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공감각적 심상'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설명하셨을 테니까요.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에서는 종소리의 청각을 푸른 빛깔로 시각화함으로써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를 결합하였고,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에서는 종소리의 파장을 동그라미로 시각화함으로써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를 결합하였습니다.  이처럼 이미지를 결합하여 만들어 내는 이미지군(群)이 이미저리가 되지요.  그럼 이번에는 시 전체에서 이미저리를 찾아봐야 하겠는데, 본디 내가 주변머리도 없고 발도 마당발이 못 되고 겁도 많고 실력도 없다 보니 유명한 시인들의 글은 인용을 못 하겠고 해서 내 졸작 '얼굴'에서 찾아보기로 하겠으니 과히 허물치 마시기를 바랍니다.  "두 눈썹  한 획  가로 그으면  은어(銀魚)떼처럼  몰려 오는 빛살  아침으로 모도아 고이  영원에 뿌리면  사랑으로 피는  둥근 미소(微笑)  오, 빛살도 미소도  머무는 거울아  어릴 적 내가  꿈으로 써 둔  시(詩)."  여기에 대한 것은 평론가인 서울대 권영민 교수가 내 첫 시집의 발문에서 썼던 시평으로 대신하는 것이 더 신뢰성이 있을 것 같아 그로 대신합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시적 대상에 대한 감각적 인식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채롭기조차 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각적 심상들의 시적 결합을 통해 시인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맑고 깨끗한 것, 순수 그 자체이다. '얼굴'이라는 시의 제목을 염두에 두고 다시 이 시를 읽으면, 시인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구체성이 '빛살'·'미소'·'거울' 등의 시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와 내적으로 긴밀하게 결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737    시인의 령감은? 댓글:  조회:4559  추천:0  2015-10-07
      시인에게 영감은 무엇인가                                   / 이창배 흔히 시인에겐 영감의 순간이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그 전광석화 같은 '신의 계시'가 내려 시인은 신들린 무당처럼 영감의 힘으로 자동적으로 시를 써내려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시는 결코 그렇게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할 생각인데, 그 얘기는 뒤로 미루고 우선, 그 영감에 대해 말해보자. 영감이란 말은 'inspiration'을 옮긴 말이지만 원어 이상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본래 서구문학에서 희랍 로마시대 이래, 시인은 시작 과정에서 자력이 아닌 초월자의 힘으로 시의 소재나 언어, 리듬 같은 것이 주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호머나 버질 같은 서사시인들은 그들의 서사시의 첫머리에서 반드시 뮤즈신에게 영감을 기원하는 시구를 읊는다. 이것이 서사시의 기법상의 관행이 되어, 비근한 예로 고전 서사시의 전통을 잇는 존 밀튼은 그의 불후의 명작 [실락원]의 첫머리에서 "하늘의 뮤즈여...... 청하노니 나의 모험스런 노래를 도우시라"고 신의 영감을 간구한다.  시가 신의 입김으로 쓰여진다는 생각은 17세기, 18세기 초 근대과학문명의 대두로 인간들의 의식구조가 달라질 때까지 이어졌고, 그후 낭만주의 문학 시대에 이르러서는 시인의 영감의 원천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샘솟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어?. 그러나 시의 원천에 대한 생각이 외부로부터 내부로 바뀌고 난 후에도 시인의 '시심'에 대한 신비스런 생각은 여전히 이어져 오늘날에도 약간 그 흔적이 남아 있었서 시인은 이슬을 먹고 사는 툭스한 사람으로, 그리고 시인의 체험은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것은 비단 시인뿐 아니라 예술가 전반에 해당하는 말이어서 예술가들을 현실세계에서 유리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그 때문에 그들의 기이한 행동거지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시인 卞榮魯는 자서전 [酩酊 40년]에서 술에 취해 살아온 평생의 기행, 기담을 고백했고, 중국의 시성 이태백 또한 술과 더불어 살면서 수많은 명시를 남겼다. 기타 동서고금 예술가들에 얽힌 기담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는 영감이니 신비니 초월 따위를 결코 인정히 않는 의식 속에서 살아온 지 오래다. 과학의 영원한 프론티어로 생각되던 인간 마음의 세계도 심리학의 발달로 그 신비가 허물어졌다. 일찍이 1920년대에 이미 I.A.리차즈는 인간의 정신세계에서 심리학으로 다룰 수 없는 영역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시인이 체험하는 세계가 우리의 일상체험과 결코 다른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은 물론, 미적 체험이라는 것도 망상이라고 주장했다.  리차즈에 의하여 시인이 겪는 체험은 우리가 조반을 먹고 신문을 읽는 일상체험과 똑같은 레벨로 격하된 셈이다. 그러면 무엇이 다른가. 리차즈는 말하기를 시인이 다루는 체험은 '일상적인 경험이 한층 전개된 것이고 한층 섬세하게 조직된 것일뿐'이라는 것이다. 리차즈가 말하는 체험의 '전개'와 '섬세화'는 정신력의 집중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집중력이야말로 천재의 비밀이다. 한 가지 시상이나 이미지를 붙들고 더욱 깊이 파고들면서 그 생각을 관찰하고 전개시키고 섬세하게 조직해나가는 힘은 시인 자신의 몫이다. 폴 발레리는 '주어진 1행'은 신이나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고, 나머지는 그가 자기 힘으로 발견한다고 말한 일이 있다.  영국시인 스티븐 스펜서가 [작시법]이란 글 속에서 소개하는 바에 의하면 천재 음악가 베토벤은 주제가 되는 악상의 단편을 옆에 있는 노트에 적어두고 거기에 매달려 여러 해에 걸쳐 그것을 전개시켰다고 한다. 처음 그가 적어 놓은 악상은 아주 미숙하여 학자들은 이런 것을 가지고 어떻게 그런 기적적인 결과로 발전시켰는가 하고 놀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모차르트는 교향곡이나 사중주나 심지어는 오페라의 장면을 여행 중에, 혹은 급한 용무를 보면서 순전히 자기 머리 속에서 생각해낸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그가 평생 음악에 몰두하고 그 속에서 갈등, 고민한 수많은 시간이 있었기에 하나의 악상을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스펜더는 자신의 체험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는 어느 때 어떤 생활의 구체적 장면에서 한 마디의 단어나 몇 마디의 어구, 문장 같은 형식으로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노트에 적어 놓는다. 그것을 그는 '상상적 사고방식'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그 착상은 상상적 사고를 전개시킬 수잇는 단서여서 그것을 산문으로 설명하기는 쉽지만, 막연한 추상에 불과한 이러한 사상을 이미지로써 구상화하기 위하여서는 오랜 인내와 관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영감'으로 떠오르는 한 마디 단어나 문장은 별로 매력이 없고, 그것이 과잉 상태에 이르면 시를 쓰지도 못하고 생각만으로 그치고 만다고 한다. 써보려고 손을 대는 것 중에서도 일곱, 여덟은 완성을 못 보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택하는 방법은 되도록 많은 사상을 아무리 엉터리 형식으로라도 노트에 적어둔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서재의 선반에는 지난 15년 동안에 모아진 그런 노트가 20권은 족히 쌓여 있고, 그중에서 시를 쓸 때 어떤 것을 이용하고서 나머지는 버려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스펜더의 경우 어쩌다 떠오르는 착상(영감)이 시로 살아나는 경우는 드물고, 시로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의 노트에 산적한 많은 경험의 스케치 중에서 이것과 저것이 결합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겪는다고 보아야 한다.  이 변형 과정을 엘리엇은 화학적 변화라고 했는데, 이 비유적 표현은 매우 설득력 있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엘리엇은 그 유명한 '몰개성 시론'에서 시인의 마음 속에 쌓이는 수많은 생각과 체험의 조각들이 시인의 '제작과정'중에 새로운 형태로 모양을 갖추어 나타난다고 하였고, 그 나타난 작품 속의 체험은 시인 자신의 체험과는 다른 '만들어진 체험' 즉, 시인 자신의 개성에서 벗어난 '몰개성'의 '예술적 체험'이라는 것이다. 즉 그것은 화학적 변화를 통한 새로운 체험인 것이다.  
736    (시)괴짜괴짜괴짜 / 최흔 댓글:  조회:4554  추천:0  2015-10-04
최흔 / 괴짜詩모음 시어들의 환희 수중기가 하늘에 올라가 무리를 짓자 산과  으쓱했다. 난 물도 아니고 수중기도 아니고 구름이야! 하늘과 가장 가까운 산자가 제일 먼저 구름의 말을 듣고 머리가 팽글 돌았다. 산자가 웨친다. 내 뜻은 인제 산만 가리키는것이 아니야 산이란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의미가 없어 해방해방해방이야 나는 나 독립적인 나야 나도 생명이 있어. 이제부터 나는 요술쟁이란 말이야 나는 위인도 될수 있고 무골충도 될수 있고 허깨비도 될수 있고 사상도 될수있고 개 소 말 양도 될수 있고 굼벵이 신선 룡 파도 메뚜기 새 꽃 우산 투고 아유 너무도 많아 또 새것도 만들어 낼수 있어 장편소설을 써도 다 못쓰겠구나 . 얘 니 금방 뭐랬니 으응 알았다  어디 니만 그렇니 나도 그래 나도 그래 나도 그래 모든 체언들이 악마구리 터진듯 와짝 고아대였다. 용언이며 부사며 토들도 곁불에 무진장한 활무대가 생겼다고 부글부글 끓는다 북이 징이 가야금 새장구 젓대들이 저들도 좋다고 잎제히 아리랑 옹헤야 노들강변 가락을 줄줄이 뽑는다. 모든 글자들이 뛰쳐나와 덩실덩실 춤을 춘다  흥야라 붕야라 노래부른다 우야 와야 고함친다 하늘이 와르르 내려앉을 지경 짜장 경사로구나      단풍잎도 새로 만드는 하늘은 무궁하다 현대시  이제 언어는 어머니 배꼽에서 금방 떨어진 영아 눈깜박할사이도 없이 진짜 그럴사이도 없이 당당한 어른이 되여 기습전을 벌인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태여난다태여난다 태여난다  노주빨초 파남보 눈뿌리 아찔한 소용돌이 혼돈혼돈혼돈 신기신기신기 은유의 숲 상징의 숲 빙글빙글 빙글 돌아돌아돌아 사람은 하늘을 밟고 뛰여다니고 해는 개미가 똥 차올리고 구름은 뜰에 내려와 열두발 상모로 하늘을 휘휘 젓는다 감는다감는다 감는다 어제어제어제 뜬다뜬다 뜬다 래일래일래일어디 갔냐갔냐갔냐 오늘오늘 오늘 자식 현대시 정말정말정말 무무무 시시하다 언어 내가 부르면 상상의 나무가지에  파랗게 날아와  앉는 파랑새무리 새들의 노래에 괜히 신들리는 나 아야어여 가갸거겨 한낮이면 구름 되고  한밤이면 별이 되는  너희들 내 몸에서 흐르는 방방울울 피다 손가락끝에서 피빛만 보여도 아아. 온 몸에 전률이 이는것을 너의 채찍을 맞으며  상상이여 나의 막역지우겨  그대 언제 날 떠난적이 있었던가 당신은 채찍이 되여 언제나 날 뚜드리였다 피 터져야 정신을 춘적이 어디 한두번이였던가 나는 평생 너의 푸른 마차에 앉아 너의 채찍을 맞으며 무딘 칼을 갈아야 할 우스운 남자 다시 언어 누가 나한테 이리 고운 애들을 보낼가요  피리를 불면 양떼처럼 모여오고 또 피리를 불면 해살처럼 흩어지는 애들을 마음따라 고운 노래를 튕겨주는 피아니스트 푸른 하늘에 비둘기 날리는 보동진 손 누가 나한테 이리 좋은 사랑을 주었을가요 비속을 걸어도 젖지 않는 옷 바위 튀는 찬 바람에도  항상 따스함만 느끼는 마음 누가 나한테 이리 희한한 마술을 부여할가요 내 옷소매속에서  나는 슬슬 만들어 내거든요  꽃이며 나비며 태양이며 궁전이며 누구일가요 정녕 누구일가요 상징. 1 나는 너의 숲을 걸어가는 아이 잎새들의 친절한 속삭임 울긋불긋 웃고있는 꽃들의 향기향기 새들의 날개짓에 오르내리는 신비경  기의 경 끝은 어디 꿀벌을 타고 날아날아 날아도 날아도 푸르른 바다 아이는 망망한 바다에서  외로운 돛배를 타고 노를 젓는다 상징. 2 하얀 저 하늘끝에 깜장 별 하나 나는 그별을 따고 싶어 목이 마르다 마침 하늘에서 줄사다리 하나 내려온다 파란 줄 누시린 은빛 가름대 나는 총알처럼 달려가 사다리를 잡고 별따러 올라간다 이걸 어쩌지 두층게 오르면 한층게 떨어져 나가고 열층게 오르면 아홉층게 떨어져 나가고 아득한 구중천 깜장별에 목을 건 인생 어느새 물자루가 되다 드디여 깜장별을 잡았다 홀제 별껍질이 벗겨지면서 별이 황홀을 드러내다 나는 빛에 화뜰 놀라서 잡았던 손을 푼다 천야만야 떨어지면서 나는 한점 연기로 사라지고 푸른 하늘에 별 하나... 다시 상상 시의 위대한 어머니여  내 피의 꽃이여 파편(문체) 어디 갔다 인제 오니  요 각성받이 진주들아 너는 풀이불 덮고 한잠 잤지 너는 별의 코밑을 닦고 있었지 너는 사슴을 타고 뛰여다녔지  너는 대돌밑에서 볕쬐임을 했지 내 발톱밑을 살그머니 간질인것은 네지 얘들아 저기저 가람을 봐 그름등을 타고 흐르는 저 가람을 유유히 날아예는 저 고니떼들 누시린 은빛으로 물결을 희롱한다 하늘이 진동하는구나 자, 인제 진주팔찌나 만들어 가지고 아가씨 구경이나 가볼가 이미지  넌  내 손잡고 어디로 가니 조물주야 말짱 첨보는것들이구나 진달랜가 하면 진달래가 아니고 바윈가 하면 바위가 아니고 강아진가 하면 강아지가 아니고 죄다 이생저생에도 없는것들 불과 물의 살놀이로 태여난 이쁨들아 령감 어쩜 요렇게 여위였나 앙상이들아 무슨 피를 줄가  무슨 살을 줄가 무슨 옷을 줄가 음 넌 개구리가 제격이겠다 푸른 피 푸른 살 줄테니 논에 가 벌레나 잡아 허허, 넌 뚝곰이 들어났어 곰피 곰살 곰털을 줄테니 산에 가서 밤알이나 주어먹어 빼빼 말라도 넌 곱상이구나 해가 되여 하늘이나 닦아 미안해 네 상은 미친개상이구나 몸둥이 찜질이 닥치겠으니 미안해 아무것도 줄수 없구나 예술이여 다시는 이런 밉상을 보내지 마소서 열삭이나 잉태하였다 낳는건데 괴물스러우면 얼마나 민망스럽다구요 야 , 그게 어디 맘대로 되나 상관물 괴짜괴짜괴짜 보들레르 몸에다 랭보옷 입고 말라르메 안경에다 발레리 지팡이를 짚고 로르까 장갑에다 준자부로 신을 신도 뚜걱뚜걱뚜걱 요귀요귀요귀 하늘 천장에다 돌멩이를 붙여놓고 함박꽃네 집이랬지 어제밤 불과 물이 한 침대에서 꼬옥 끌어안고 잤다고 그랬지 산파산파산파 물속에 들어가 메새를 낳는 바위속에 들어가 망아지는 낳는 풀잎속에 들어가 궁궐을 지어내오는 으하하 미쳐미쳐서 미쳐 사는 꽃이야 또다시 상상 누가 내 발을 묶으려 하는가 누가 내 손을 묶으려 하는가 나는 고삐 없는 말이다 바람이다 모든 장벽을 물보라로 휘날리고 모든 천정을 분수로 뿜어버린다 썩는 묵밭을 쓸어버리고 나이 오붓한 터전을 닦는다 구리빛 팔에 안긴  아가씨 하얀 배가 뿜어내는 울음소리 무지개정글에서 무성하는 키스 오, 나의 천사들이여  때려라 부셔라 낳아라 시인  뒤에는 발자국 앞에는 가시밭 발자국에선 물 한방울 해를 모욕시키고 가시밭엔 가시 우거져 바람도 피 터질가 들어서기 저어한다 시인은 잔혹한 짐승이라더라 가마뚜껑같은 발바닥으로 가시밭을 쓸어버리고 한뙈기 땅위에  찬란한 묘비 하나 세운다 시인은 리스트라더라  언어의 피아노에 앉아 짐승의 울부짖음에 청자빛을 반죽하여  아침 빛소리를  새긴다  나의 수의를 짜고있다 시는 나의 수의를 짜고있다 나는 씨실날실을 보내주어야 한다 무릎에 빨간 꽃이 커다랗게 피여있다 눈이 찡그러지게 손목이 아프다 비비는 씨실이 고르지 않아 꼴불견이다 그나마 바람이 숭숭 나들게 짜여져 어쩌는가 나의 시신에 수의를 입히며 사람들은 말하리라 무슨 수의 를 이따위로 지었는가 발가락도 눈도 그것도 다 가릴수 없게  자식 못나게 살더니 수의도 못나게 갖췄네 나의 노래 . 1 사람들은 나를 시인이라고 한다 나는 시인이 아니라 바람쟁이이다 나는 언어와 바람을 피운다 언어는 내 즙을 맛있게 쫄쫄 빨아먹고 꽃을 낳는다 언어보다 꽃은 얼마나 더 고운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언어를 버리고 꽃과 바람을 피운다 언어는 옆에서 낄낄거린다 웃으라면 웃으라지 나는 성난 짐승이 되여 꽃을 짓뭉갠다 꽃잎은 나를 갈갈이 찢고 내 령혼을 말끔히 쪼아먹고 황금열매를 낳는다 나는 사리를 얻은 중이 되여 땀을 훔치고 또 바람 피울 궁리를 한다    
735    "괴짜시인 공화국" 댓글:  조회:4457  추천:0  2015-10-03
*출생연도순으로 배열.   김시습(金時習·1435∼1493)  멀리 조선조로 올라가면 중의 신분으로 문득 성안에 거지차림으로 나타나 지나가던 고관들에게 욕지거리를 서슴지 않았던 김시습이 방외문인의 한 전범으로 꼽힌다.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는 것을 보고 세상에 등을 돌려 왕까지도 안중에 안두고 사대부 출신이면서 유교도, 또 중이면서 불교도 훌쩍 뛰어넘은 그의 자유혼이 웅혼한 시와 [금오신화]를 낳게 했다.  김병연(김삿갓, 金炳淵·1807∼1863)  풍자시의 진면목을 보인 김병연의 기행(奇行)은 가위 전설적이다. 철종시대의 방랑시인 김삿갓이 바로 그다. 할아버지가 홍경래난에 투항한 사실을 부끄러이 여기며 구름을 이불삼고 시 한 수로 밥을 빌며 전국을 떠돌다 첩첩산중 강원도 영월에 묻힌 그도 우리 문학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괴짜, 아웃사이더 문인이다.  한용운(韓龍雲·1879∼1944)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연인과의 이별을 절절하면서도 단아하게 읊은 듯한 [님의 침묵]의 시인 한용운은 근대문학사의 최초의 방외문인으로 볼 수 있다. 만삭의 아내를 저버리면서까지 출가(出家), 속세와 인연을 끊은 그는 어디에도 구속되거나 굴하지 않은 숱한 기행을 남기고 있다. 변절한 최남선이 아는체 하자 '당신을 장례치른지 오래다'며 죽은 사람 취급했던 일이나 언 방에서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세상의 도움을 거절했던 그다.   오상순(吳相淳·1893∼1963)  오상순은 시대와의 불화가 빚어낸 대자유인이었다. 목재상 아들로 태어나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을 나와 전도사 활동을 하던 그는 1920년 김억·남궁벽·황석우·변영로등과 함께 [폐허]동인으로 참가, 창간호에 이란 평론을 발표하면서 식민 치하의 허무주의자로 돌아선다. 불교에 귀의, 허무의 극한에서 공(空)을 깨치고 속세로 돌아와 동 가식서가숙하며 70평생을 문학도들에게 시의 순수를 자신의 삶 자체로 깨우쳐주다 갔다. 기독교도, 불교의 공사상도 초월해 「공초(空超)」라 한 오상순은 하루 2백개비씩 줄담배를 피운「꽁초」로도 유명하다. 오상순같이 세상과의 불화를 견뎌낼 수 없는 타고난 순정한 기질로 세 상 어디에도 편입하지 못하고 오직 자유혼으로 문학을 일군 방외(方外) 문인들. 이들의 맥은 우리 문학사에 깊은 골을 이루고 있다.  이상(李箱, 본성명 김해경·1910∼1937)  문단의 봉우리에 올랐으면서도 일체의 문단 출입도 없었다. 박제(剝製)된 천재 이상)은 대책 없는 자유혼으로 그의 문학을 한국 문학사에 문학의 영원한 「원형」, 속인이 쉽게 풀 수 없는 비의(秘意)로 각인시켜 놓았다. 건축기사 출신 이상(김해경 金海卿)은 인부가 잘못 부른 「이-상(李氏 이씨)」을 그대로 필명으로 쓰며 문단에 들어왔다. 기생 금홍과 기괴하고 방만한 풍문을 뿌리며 27세로 요절한 이 상. 청춘의 무한한 실험과 가능성 그 자체로의 요절이 오늘도 그의 문학을 푸르게 흘러들게하고 있다.  한하운(韓何雲·1920∼1975)  김관식과는 정반대편에서 천형의 나병에 걸려 전국을 떠돌면서도 「보리피리」같은 아름다운  서정시를 남긴 한하운도 빼놓을 수 없는 방외문인이다. "맑은 생시의 / 속 깊은 슬픔은 / 어떻게 무엇으로 / 어떻게 달래나 / 나는 취했다 / 명동에서 취했다 / 종로에서 취했다 / 나는 / 나는 / 이런 것이 아니다」( 중에서).  박용래(朴龍來·1925∼1980)  「오오냐, 오오냐 적당히 살거라 시인들아!」라며 세상을 온통 긍정하면서도 눈물로 시적 에스프리(프랑스어로 esprit, 즉 기지, 재치, 정신)를 캐냈던 박용래는 천성적 순수로 현실에는 도저히 편입될 수 없는 시인이었다. 강경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갔으나 돈 세는 것에 염증나 그만둬버린 박용래는 돈·사회와는 영영 등을 돌리고 술로만 살았다. 술을 마시면서도 울고, 별을 보고도 울고, 봄 햇살에 날리는 장닭 꼬리를 보고도 울고, 울면서 또울던 박용래는 삼라만상에서 한 (恨)의 원형을 끌어올린 극순수의 서정시인이다.  "골목에서 골목으로 / 거기 조그만 주막집. /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인 것을… / 흐리멍텅한 눈에 이 세상은 다 만 / 순하기 순하기 마련인가,」(중).  신동문(辛東門·1928∼1993)  56년에 등단, 65년 절필할 때까지 참여시인으로 필명을 날렸던 신동문도 시인의 결벽성으로 시대와의 불화를 이겨낸 시인이다. 5·16군사정권에 맞서는 자신의 시도, 자기 자신도 결국은 아무 것도 「아니다」며 신동문은 세상을 등져버리고 충북 단양의 초야에 묻혀버렸다. 거기서 그는 침술로 주민의 병을 치료,「단양의 신(辛)바이처」로 인술을 떨치다 자신의 암은 치유치 못하고 세상을 영원히 등졌다.  천상병(千祥炳, 1930∼1993)  천상병 시인도 대책 없는 순수로 이 세상을 가난하게만 살다간 천상의 시인이다. 서울대 상대를 나와 보장된 그 좋은 직장도 다 마다하고 천상병은 술로써만 시를 지키다 갔다. 그는 무직·방랑·구걸·주벽으로 우리시대 마지막으로 숱한 화제 를 뿌리다 쓰러져가는 철거민촌 오두막에서 외로이 숨져갔다. 그러한 삶도 좋았노라고, 마치 소풍놀이 같았다며 하늘로 돌아갔다. 그가 죽자 문학평론가 김재홍(金載弘)씨는 다음과 같이 추모했다. [곤궁한 삶의 극한 속에서도 세속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하여 인생의 의미를 깊이있게 일깨워준 참자유인, 진짜 시인의 타계로 이제 이 땅에서 시인의 신화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 「참자유인」은 천상병만이 아니라 「진짜 괴짜문인」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세속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한 아웃사이더 문인들을 우리가 기리는 것은 시공을 초월한 인생의 깊은 의미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또 바로 이것이 문학의 핵심 아닌가. 시절이 수상해지면 방외자로서 숨어 있는 문인들이 우리의 시야에 다시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참자유가 무엇인가를 깨우칠 것이다 김관식(金冠植·1934∼1970)  "좌충우돌의 미학은 / 너로 말미암아 비롯하고, / 드디어 끝난다. / 구슬도 먼지도 못되는 / 점잖은 친구들아, / 이제는 당하지 않을 것이니 / 되려 기뻐해다오. / 김관식의 가을바람 이는 이 입관을"  천상병(千祥炳) 시인의 시 일부분이다. 55년 서정주(徐廷柱)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온 김관식은 타계할 때까지 거칠 것없는 행동으로 문단에 숱한 화제를 뿌렸다. 어려서 신동으로 불리며 시 1천수를 줄줄 외웠던 김관식은 한학에도 밝아 시의 세계가 깊고 그윽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문단에서 그의 행태는 광기를 띨만큼 호탕해 「미친 아이」로 불리기도 했다. 문단 대선배도「군(君)」  자를 붙여 제자 다루듯 했으며 시 세계에 가식이 섞였거나 조금만 삐뚤어져 있으면 독설(毒舌)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던 김관식이 4·1 9로 열린 민주국가에 기여하겠다며 서울종로 국회의 원후보로 나서 당시 거물급 정치인 장면(張勉)과 맞붙은 일화는 유명하다. 또 홍은동 산동네에다 무허가 판잣집을 지어 멋대로 팔고 가난한 시인들에게는 거져 주기도 했다. 세상 거칠 것없이 몸으로 「좌충우돌의 시학」을 가르치다 죽었으니 시도 아닌 시로 점잔을 빼던 시인들이 기뻐했을 법도 하다.   
734    "못난 놈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 - "괴짜시인 - 김관식" 댓글:  조회:4834  추천:0  2015-10-03
어려서 신동으로 불리며 시 1천 수를 줄줄 외웠던 김관식은 한학에도 밝아 시의 세계가 깊고 그윽하다는 평을 들었다. 육당 최남선이 제자로 받아들이면서 천재성을 인정받았던 김관식은 어려서부터 한학과 서예를 익히고 성리학과 동양학을 배웠다. 1968년에는 ‘사서삼경’ 중 가장 어렵다는 《서경》을 완역 출판했다. 한학자로서 뛰어난 한문 실력을 발휘했던 김관식은 문단에서는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괴짜 시인"으로 통했다.   김관식은 17세 때 《현대문학》 추천을 받기 위해 미당 서정주의 집에 드나들었다. 어느 날 미당의 처제 방옥례를 본 김관식은 첫눈에 반해 청혼한다. 은행원이었던 방옥례는 처음에 김관식의 청혼을 거절했으나 3년 동안의 끈질긴 구애와 ‘결혼해 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라는 협박에 못 이겨 결혼에 응한다. 1954년 1월 1일 최남선의 주례로 부부가 됐을 때 김관식은 스물, 방옥례는 스물넷이었다.   김관식은 스무 살 때부터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다른 과목은 모두 낙제점이던 학생에게 그가 가르치던 국어 점수만은 99점을 준 적이 있었다. 이를 알게 된 교장이 그를 불러 이유를 따지고 선생의 자율적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하자 그는 말없이 학교 앞 텃밭으로 가서 무를 몇 개 뽑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이윽고 크게 취한 김관식은 교장실로 주저 없이 걸어가 교장이 집무하는 탁자 위에다 구토물을 쏟아 놓았다. 그러고는 두 눈을 부라리며 외친다. “일찍이 내 양심에 벗어나는 일을 나는 한 적이 없소. 그런 나에게 이런 모욕을…….” 기가 질린 교장은 이후 김관식의 결정에 관해서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무를 안주 삼은 이유는 그걸 먹고 토하면 냄새가 아주 지독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란다.   김관식은 자신의 나이를 열 살이나 올려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사석이나 술자리에서만이 아니라 쓴 책의 약력 소개란에도 그는 1934년인 출생연도를 1924년이라 적었다. 그는 당시 문단에서 존경과 흠모를 한 몸에 받는 평론가 조연현과 백철 등에게 반말을 쓴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1960년대 초반 월탄 박종화가 참가한 문학상 시상식에서 월탄의 축사가 길어지자 “어이, 박 군 자네 이야기가 너무 길어. 나도 한마디 하겠으니 이제 그만 내려오지.”라고 큰 소리로 외쳐 시상식장을 일순간 긴장과 웃음이 교차하게 한 일은 전설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는 후배들에게 깍듯이 예의를 지키며 존칭을 썼고, 자신이 가난한데도 더 가난한 후배 시인들을 챙기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         신경림 시인이 《못난 놈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에서 밝힌 김관식의 일화도 흥미롭다.   “내가 김관식 시인을 따라다니다가 아주 난처한 꼴을 당한 일이 한 번 더 있다. 서울서 맞는 첫 설이었다. 역시 그날은 내가 그를 찾아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침 잘 왔다면서 함께 세배를 가자고 했다.   첫 행선지를 조지훈 시인 댁으로 정한 것도 그였다. ‘미당 선생은 내 형님이지만 첫 세배를 미당한테야 할 수 없지. 지훈 선생한테 먼저 가야지.’ 한학에 조예가 깊은 그는 본디 지조를 가장 높은 덕목으로 쳤던 터였다. 이렇게 해서 성북동의 지훈 시인 댁에 가서 밤늦도록 술을 마신 것까지는 좋았는데 다음이 문제였다. 마포의 서정주 시인 댁으로 옮겨 가기 위해서 나와 보니 눈이 발목을 덮을 만큼 쌓여 있었다. 택시를 탔는데 그는 양말 발이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오는 줄 알고 신을 벗었는데 아직도 택시 속이구먼.’ 택시를 타면서 신을 눈 위에 벗어 놓고 올라온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미당 댁에 세배를 드리고 술 한 잔을 하게 되었는데 김 시인이 양말이 젖은 이유를 설명하자 미당이 술 좀 작작하라고 타일렀던 것 같다. 이 말에 비위가 상한 그가 삐딱하게 나갔다. ‘첫 세배를 형님한테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행적으로 보아서도 말이지요. 그래서 지훈 선생한테 먼저 세배하고 오는 길입니다.’ 막걸리가 담긴 술 주전자가 날아와 그의 머리를 갈겼다. ‘이놈을 당장 개똥 떠다 버리듯 삽으로 떠다 버리거라.’ 미당은 노발대발했다. 그리고 내게도 충고를 잊지 않았다. ‘미친놈 따라다니다가는 똑같은 미친놈 되니까 저런 놈은 아예 상종을 말게.’ 그래도 미당이 그를 미워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해 여름 나는 그의 집에서 나와 시장 가까이에 사글셋방을 얻어 살고 있었는데, 동부인해서 닭이나 과일을 사 들고 병석에 누워 있는 김관식 시인을 찾아가는 미당을 두어 번 본 일이 있다.”   술로 병을 얻은 김관식은 1970년 8월 30일, 서른일곱의 나이에 요절했다... --------------------- 제일 유명한 일화중에 하나지만... 그는... 그 시대에 대항할수 없는  권위에 항상 안티하게 나가는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그런  대단한 분이였죠.. 그러나 그는 그런 말과 행동에서만 그런것이 아닙니  다. 지금도 `시경(詩經)`의 번역판 텍스트로도 쓰이고 가장 번역이  잘된 책중에 하나인 현암사판 `詩經`의 번역자이기도 합니다..  그 `詩經`은 2년여에 걸쳐 번역되었고 그 당시 원고료로 2채의 집을  살수 있는 금액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만큼 그는 실력 또한 그 어떤 문인보다 뛰어났었던 인물입니다..  결국 그는..그의 실력에 대변하는 자신감과 자만감을 가져있었던것이죠.  그의 시를 뒤로 한체...이야기를 끝을 냅니다..  새파란 하늘 피로 물든 햇무리  미쳐서 지랄났나 울고 가는 구름아  짓밟힌 내 청춘의 슬픈 사연이길래  언덕배기에 올라서서 중얼거린다....(``황토현에서`` 첫 연)  바위야 바위야 눌러라  황소 같은 바위야  천근 같은 무게로  네가 아무리 눌러도  죽순은 뾰족뾰족  자꾸만 자꾸만 솟더라....(``풍요조`` 전문)  ------------------------------------- "대한민국(大韓民國) 김관식(金冠植)"명함에 그렇게 새기고 다니던 시인 김관식(1934~1970)이 4.19 직후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했다는 소문이 문단에 파다하게 퍼졌다. 어떤 사람은 껄껄 웃으며 김관식답다고 했고,어떤 사람은 무슨 돼먹지 못한 망발이냐는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쨌든 하늘을 찌르는 자만심과 호방한 기개에 넘쳐있던 26세의 김관식은 서울 용산구에 출마했다. 상대는 민주당 신파의 거물인 장면(張勉)이었다. 결과는 자명하였다. 김관식은 떨어졌고 선거를 치르느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을 남김없이 털어먹고 말았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기와 술과 기행(奇行)뿐이었다. 지금은 연립주택 등이 빽빽하게 들어선 주택지이지만 당시에는 그 일대가 능금이며 자두나무가 심어져 있던 과수원과 잡목들이 우거진 채 방치된 주인 없는 땅이었다. 시인의 눈에 저 귀한 땅을 쓸데없이 놀리는 것은 낭비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날 시인은 그 국유지에 목수와 인부들을 동원해 여러 채의 집을 한꺼번에짓기 시작했다. 판잣집은 한나절에 한 채씩 생겨났다. 무허가 불법가옥이었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구청 직원들에 의해 그 판잣집들은 철거되었다. 김관식은 이튿날 다시 목수와 인부를 동원해 집을 지었다. 한 채 두 채가 아니고 십여 채의 집을 지었다. "보옥(寶玉)을 갖고도 자랑하지 않는 겸허한 산"에 시인들만 사는 마을을 건설하고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며" 살려 했던 것이다. 한때 황명걸.조태일 같은 시인들이 실제로 시인이 지은 집에 살기도 했다. "산에 가 살래./팔밭을 일궈 곡식(穀食)도 심구고/질그릇이나 구워 먹고/가끔,날씨 청명(淸明)하면 동해(東海)에 나가/물고기 몇 놈 데리고 오고/작록(爵祿)도 싫으니 산에 가 살래."("거산호(居山好).1") 시인의 삶은 고달팠다. "가난! 가난! 가난 아니면/고생! 고생! 고생이랬다" 낮거미가 집을 짓는 홍은동산비탈의 누옥 바람벽에는 썩은 새끼에 시래기 두어 타래가 내걸린 채 바람에흔들렸다. 끼니마다 감자를 삶아 먹고,호랑이표 시멘트 종이로 도배를 한 방에서 한미간의우정과 신뢰의 악수 문양이 새겨진 밀가루 포대로 호청을 한 이불을 덮는 누추한 삶이지만,"화옥(華屋)에 고차(高車).금의(錦衣).옥식(玉食)을 꿈에도 기루어하지를 않았다"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게으르게 일어나 조로에 물을담뿍 퍼 들고 텃밭에 심은 상치 쑥갓 아욱들에 물을 주었다. 그가 꿈꾼 것은 여름 저녁때 생모시 옷고름 고의적삼 바람에 합죽선으로 해를가리고 산책할 수 있는 여유가 허락되는 청빈낙도의 삶이다. 그런 청심과욕(淸心寡慾)으로 하루 세끼의 끼니에 자족하는 삶을 두고 "왕(王).후(候).장(將).상(相)이 부럽지 않고 백악관(白堊館) 청와대(靑瓦臺) 주어도 싫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는 호구지책으로 서울상고(지금의 경기상고)에서 잠시 교편생활을 하기도 하고 세계일보의 논설위원직에도 있었으나,그의 파천황(破天荒)적인 기행과 면모를 오래 참고 받아줄 직장은 이 세상에 없었다. 어느 출판기념회에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인 장기영이 축사를 하고 있었다. 술에 취해 뒤늦게 출판기념회에 모습을 나타낸 김관식은 씩씩하게 장기영 앞으로 나서며 그를 밀쳐냈다. "자네는 그만 하게.내가 할 말이 좀 있으니까."라고 말문을 연 그는 직정적인 육두문자를 펼쳐냈다. 그는 낭인이 되어 문단의 이러저러한 술자리나 출판기념회 따위를 누비고 다니며 도발과 공격을 일삼고 종횡무진으로 오연한 자긍심과 호방한 기개를 뽐냈다. 그는 가난했으나 거기에 주눅들어 비굴한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출처] [장석주의 '한국문단 비사'] (2) '괴짜 시인 김관식'  |작성자 와치워즈   [출처] 괴짜 시인 "대한민국(大韓民國) 김관식(金冠植)"명함에 그렇게 새기고 다니던 시인 김관식(1934~1970)이 4.19 직후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했다는 소문이 문단에 파다하게 퍼졌다. 어떤 사람은 껄껄 웃으며 김관식답다고 했고,어떤 사람은 무슨 돼먹지 못한 망발이냐는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쨌든 하늘을 찌르는 자만심과 호방한 기개에 넘쳐있던 26세의 김관식은 서울 용산구에 출마했다. 상대는 민주당 신파의 거물인 장면(張勉)이었다. 결과는 자명하였다. 김관식은 떨어졌고 선거를 치르느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을 남김없이 털어먹고 말았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기와 술과 기행(奇行)뿐이었다. 지금은 연립주택 등이 빽빽하게 들어선 주택지이지만 당시에는 그 일대가 능금이며 자두나무가 심어져 있던 과수원과 잡목들이 우거진 채 방치된 주인 없는 땅이었다. 시인의 눈에 저 귀한 땅을 쓸데없이 놀리는 것은 낭비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날 시인은 그 국유지에 목수와 인부들을 동원해 여러 채의 집을 한꺼번에짓기 시작했다. 판잣집은 한나절에 한 채씩 생겨났다. 무허가 불법가옥이었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구청 직원들에 의해 그 판잣집들은 철거되었다. 김관식은 이튿날 다시 목수와 인부를 동원해 집을 지었다. 한 채 두 채가 아니고 십여 채의 집을 지었다. "보옥(寶玉)을 갖고도 자랑하지 않는 겸허한 산"에 시인들만 사는 마을을 건설하고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며" 살려 했던 것이다. 한때 황명걸.조태일 같은 시인들이 실제로 시인이 지은 집에 살기도 했다. "산에 가 살래./팔밭을 일궈 곡식(穀食)도 심구고/질그릇이나 구워 먹고/가끔,날씨 청명(淸明)하면 동해(東海)에 나가/물고기 몇 놈 데리고 오고/작록(爵祿)도 싫으니 산에 가 살래."("거산호(居山好).1") 시인의 삶은 고달팠다. "가난! 가난! 가난 아니면/고생! 고생! 고생이랬다" 낮거미가 집을 짓는 홍은동산비탈의 누옥 바람벽에는 썩은 새끼에 시래기 두어 타래가 내걸린 채 바람에흔들렸다. 끼니마다 감자를 삶아 먹고,호랑이표 시멘트 종이로 도배를 한 방에서 한미간의우정과 신뢰의 악수 문양이 새겨진 밀가루 포대로 호청을 한 이불을 덮는 누추한 삶이지만,"화옥(華屋)에 고차(高車).금의(錦衣).옥식(玉食)을 꿈에도 기루어하지를 않았다"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게으르게 일어나 조로에 물을담뿍 퍼 들고 텃밭에 심은 상치 쑥갓 아욱들에 물을 주었다. 그가 꿈꾼 것은 여름 저녁때 생모시 옷고름 고의적삼 바람에 합죽선으로 해를가리고 산책할 수 있는 여유가 허락되는 청빈낙도의 삶이다. 그런 청심과욕(淸心寡慾)으로 하루 세끼의 끼니에 자족하는 삶을 두고 "왕(王).후(候).장(將).상(相)이 부럽지 않고 백악관(白堊館) 청와대(靑瓦臺) 주어도 싫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는 호구지책으로 서울상고(지금의 경기상고)에서 잠시 교편생활을 하기도 하고 세계일보의 논설위원직에도 있었으나,그의 파천황(破天荒)적인 기행과 면모를 오래 참고 받아줄 직장은 이 세상에 없었다. 어느 출판기념회에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인 장기영이 축사를 하고 있었다. 술에 취해 뒤늦게 출판기념회에 모습을 나타낸 김관식은 씩씩하게 장기영 앞으로 나서며 그를 밀쳐냈다. "자네는 그만 하게.내가 할 말이 좀 있으니까."라고 말문을 연 그는 직정적인 육두문자를 펼쳐냈다. 그는 낭인이 되어 문단의 이러저러한 술자리나 출판기념회 따위를 누비고 다니며 도발과 공격을 일삼고 종횡무진으로 오연한 자긍심과 호방한 기개를 뽐냈다. 그는 가난했으나 거기에 주눅들어 비굴한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출처] [장석주의 '한국문단 비사'] (2) '괴짜 시인 김관식'  |작성자 와치워즈   김관식 |작성자 이향
733    重慶 烏江 - 절벽에 올라 시구를 구상하는 "괴짜시인" 댓글:  조회:4497  추천:0  2015-10-03
    절벽에 매달려야 시가 써진다?   중국의 한 시인이 시구를 떠올리기 위한 자신만의 독특한 습관을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썩 지난번 어느 날, 이(李)씨는 오강(烏江)근처를 관광하다 60m 높이의 절벽에 한 남자가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씨는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1시간 동안 내려오라고 소리쳤지만 결국 2시간이 지나서야 절벽에서 내려왔다.”며 “절벽을 오르고 있는 남자의 안색이 매우 창백하고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날 절벽을 타고 있던 남자는 충칭(重慶)일대에서 ‘괴짜 시인’으로 유명한 장(張)씨.  장씨는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절벽을 탔더니 시구들이 마구 떠올랐다.”며 “그 이후 시를 쓰기 위해 술을 마신 후 절벽을 타는 습관이 생겼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 12개의 절벽을 오르내리며 시를 써왔다. 한 절벽은 높이가 70m쯤 됐다.”고 덧붙였다.   장씨는 절벽에 올라 시구를 떠올리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괴짜 시인’으로 유명해 지기 시작했다.   장씨의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창작 활동도 좋지만 생명을 경시하는 잘못된 습관”이라며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장씨는 “시를 쓰는 것은 나의 직업이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절벽을 타는 것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라며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732    김철호 / 김관웅 댓글:  조회:4175  추천:0  2015-10-03
[평론] 한국 동시와 연변 김철호의 동시                                                   /김관웅 성인시에 못지 않게 한국 동시도 중국조선족 동시창작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최룡관씨는《한국 명동시 감상시리즈》라는 글에서 한국의 김완기, 신현득, 김진태, 최춘애, 허동인, 오순택, 김희정, 리효선, 리건호, 서덕출, 김사림, 강현호, 리국재, 문삼석, 리석장, 김종영, 리동식, 정형택, 정춘자, 서효석, 리화주, 최장길, 김용웅,우두섭, 최계락, 황애경, 정혜진, 김구연, 리은용, 리상문, 황베드로 등 수십명의 한국 동신인들의 명동시들을 중국조선족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그리고 한국의 단체나 개인들이 기증한 도서들에도 동시들이 상당수 포함되여있다. 이리하여 한국 동시는 중국조선족의 동시창작에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되였는데 김철호의 사례 하나만 들기로 한다. 먼저 연변 김철호의 동시집《꽃씨의 이야기》(2002년)에 수록되여있는《시내물》을 보기로 하자.   건너 골짜기에서 흘러온 이야기와 이웃 골짜기에서 흘러온 이야기가 다리목에서 만나 더 큰 이야기 주고받으면서 더 큰 이야기 만들어간다 ㅡ김철호《시내물》전문   (이 례문에서의《더 큰 이야기 만들어간다》는《더 큰 이야기 만들러 간다》이다. ㅡ김철호)   이 시는 김철호의 대표작중의 하나로 절찬을 받은 시였다. 김철호의 동시탐구호에서 많은 시우들이 입을 모아서 칭찬했던 시이다. 김철호의 시는 한국 박두순의《말하는 비와 산과 하늘》의 마지막 련에서 그 어떤 힌트를 받지 않았는가 추측케 한다.   …… 건너 골짜기에서 실려온 이야기와 이웃 골짜기에서 걸어온 이야기가 내 몸의 푸른 대문을 활짝 열고 맑은 음성으로 걸어 들어온다. ㅡ박두순《말하는 비와 산과 하늘》의 일부   이 시련에서의 핵은 바로 “건너 골짜기에서 실려온 이야기와/이웃 골짜기에서 걸어온 이야기”이다. 김철호는 이 핵을 점철성금(点鐵成金)의 수법으로 슬쩍 에돌려서 교묘하게 부연하여 시를 만들어냈지 않았을가. 김철호씨의 동시《메아리》도 한국 동시의 핵을 빼어다가 점철성금의 수법으로 묘하게 에돌린 시가 아니겠는가 하는 의심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미워 미워 하니 미워 미워 한다 나빠 나빠 하니 나빠 나빠 한다   한마디도 지려하지 않고 콕콕 쏘아대는 심술꾸러기 내 동생같구나 ㅡ김철호《메아리》전문   이 작품은 한국 박두순의 동시집《누군가 나를 지우개로 지우고있다》에 수록된《메아리》와 아주 류사하다.   산을 향해 사랑한다 소리치면 산의 가슴에 갸웃 귀대여보고 사랑한다! 산의 마음 전하는 메아리 ㅡ박두순《메아리 1》   산을 향해 미워한다 소리치면 산의 가슴에 갸웃 귀대여보고 미워한다! 산의 마음 전하는 메아리 ㅡ박두순《메아리 2》전문   박두순은 아이들에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이 시적인 주제를 메아리라는 이 청각적이미지에 담아서 표현했다. 김철호는 바로 이 주제에서 어떤 힌트를 받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김철호가 한국동시에서 힌트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실례를 하나 더 보기로 하자.   가지 없어도 노랗게 피고   뿌리 없어도 하얗게 핀다 ㅡ김철호《나비》전문 (이 례문에서의《가지 없어도》와《뿌리 없어도》는《가지 없이도》와《뿌리 없이도》이다. ㅡ김철호)   김철호가 모본(募本)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되는 한국 선용의《동심시집》에 수록된《벚꽃》을 보기로 하자.   가지마다 날개를 파닥이는   나비 나비 흰나비   어제밤 놀러나왔다가 돌아가지 않는   별 별 하얀 별 ㅡ선용《벚꽃》   김철호는 “나비를 가지도 없고 뿌리도 없어도 피는 꽃”이라고 비유를 했다면 선용은 “벚꽃을 공중에서 나는 흰 나비와 하늘에 떠있는 하얀 별”에 비교했는데, 이 두 시에서는 다만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서로 바꾸었을따름이다. 녀자는 꽃이라는것을 꽃은 녀자라고 바꾼것이나 별반 다름이 없다. 시적인 주제에서 힌트를 받는것도 문학영향의 중요한 종류의 하나이다. 그 가장 전형적인 실례를 김철호동시집“연필 숨쉬는 소리”에 실려있는 김철호의 련작동시《뿌리.1》과《뿌리.2》에서 찾아볼수 있다.   꽃이 아파하는걸 뿌리는 안다.   줄기가 괴로워하는걸 뿌리는 안다.   이파리가 고뿔에 걸린걸 뿌리는 안다.   열매가 벌레 먹는걸 뿌리는 안다.   깊은 땅속에서도 다 알고 속 태우며 헤매인다. ㅡ김철호《뿌리.1》전문     꽃들이 자기가 젤이라고 우줄렁 거릴 때 뿌리는 눈감아준다   줄기며 열매들이 제노라고 다툴 때에도 뿌리는 못들은체 한다.   씨앗이 떨어져 뿌리내리면 모든 사연 알겟는데 뭐   그래서 뿌리는 금시 모르는체 한다 ㅡ김철호 《뿌리.2》전문   우리는 김철호의 련작동시《뿌리.1》과《뿌리.2》의 주제를 다음과 같이 리해할수 있다. 즉 뿌리는 줄기가 자라게 하고 꽃이 피게 하고 열매가 맺히게 하는 생명의 근본이지만 언제나 숨어서 자기를 나타내지 않는  “숨은 영웅”이라는것이다. 이러한 시적인 주제를 우리는 한국시단의 최고어른이였던 구상의 시집《인류의 맹점에서》에 살려있는 련작시《뿌리頌.1》과《뿌리頌.2》에서 발견할수 있다. 아래에 구상으 련작시 원문을 그대로 옮긴다.   《뿌리頌.1》   구상   한겨울 아파트 뜰에 크고 작은 나무들이 빈 가지를 뻗치고 서있다   말할 나위도 없지만 저 해골처럼 뻣뻣하고 앙상한 가지의 나무들이 오늘의 생명을 유지하는것은 꽁꽁 얼어붙고 굳어버린 땅밑의 뿌리들이 살아있기때문이다.   만일 그 뿌리들이 말라죽고 얼어죽고 썩어버려서는 오는 봄부터의 새순도, 새잎도 새 가지와 새 꽃과 새 열매도 어찌 바랄수 있으랴   그리고 뿌리는 저런 땅위 계절의 조화와 그 번성속에서도 자신의 떡잎새나 마른 나무가지나 빙충이 꽃이나 쭉정이 열매를 탓하거나 아랑곳하지 않으며 락화나 락과나 락엽에도 미련 없이 오직 시간의 흐름을 묵묵히 기다린다.   또한 뿌리는 기둥이나 줄기의 권력과 같은 위력이나 위세, 무성한 잎새의 재물과 같은 풍요, 꽃의 영화나 열매의 공적과 보응에 집착하거나 탐함이 없이 실로 무심히 오직 자기 생명의 영위와 그 확충에 휴식을 모르는 전력을 기울이고있다.   오오, 뿌이릐 더할 나위 없는 숨은 공덕   우리 인간의 마음의 뿌리도 저 나무의 뿌리를 닮을진저 ㅡ구상《뿌리頌.1》전문     나는 아파트 봄 뜨락 등나무 밑 벤치에 앉아 서로가 함성을 지르듯 늘어서있는   느티, 은행, 벚, 매화, 목련, 오동, 포플러, 버들, 플라타너스, 자귀, 온사시, 개나리, 진달래, 철쭉, 라일락 나무들과 앞뒤 잔디밭에 제풀에 돋아있는 민들레, 제비꽃, 씀바귀, 물망초 냉이, 토끼풀, 돗나물, 질경이, 강아지풀들의 새순과 새잎, 새 꽃과 새 가지들을 바라보며   지난 三冬 내내 그 어둡고 차거운 땅밑에서 저 초목들의 목숨을 지탱해온 뿌리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 뿌리들으 숨은 인고가 없었던들 저 초목들의 오늘의 소생이 어찌 있으며 그 뿌리들의 줄기찬 활동이 없다며 저초목들의 래일의 결실과 번식을 어찌 이루랴?   저렇듯 뿌리들은 隱者의 헌신과 공덕을 함께 지닌다 이제 나의 상념은 이 나라의 무궁화란 나무를 떠올린다.   이 나라 겨레중에서 그 나무의 줄기나 가지가 되려는 자 잎이나 꽃이나 열매가 도려는 자는 서로 다투어 많고 많으나 이 나무의 생명을 공급하는 땅밑의 뿌리가 도려는 이는 왜 이다지도 적단 말인가?   뿌리가 되자! 우리 나라의 꽃나무 무궁화의 뿌리가 되자!   저 땅위의 모든것은 계절마다 나고 죽고 스러지지만 그 뿌리는 조국의 운명과 더불어 언제나 함께하고 또 영워나리라. ㅡ구상《뿌리頌.1》전문   김철호의 시와 구상의 시는 편폭의 차이가 나고 동시와 성인시라는 구별이 있기는 하지만 시적인 주제는 동일하다. 성인시를 동시로 탈바꿈시키고 큰 편폭을 작게 축약시킨 전자의 노력은 충분히 긍정해주어야 하겠지만 후자의 힌트가 없었더라면 전자는 생겨날수 없었을것이라고 사료된다. 비유를 할것 같으면 품위있는 어른의 두루마기를 가위로 썩뚝썩뚝 베여서 아기의 꼬까옷을 만들어버렸다고나 할가. 그러므로 김철호의《뿌리.1》과《뿌리.2》가 구상의《뿌리송.1》, 《뿌리송.2》를 표절했다고는 못박을수 없으나 창의력이 있는 작품이라고 칭찬할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단언하는것은 적어도 김철호가 구상의 련작시《뿌리송》을 보았다는 사실적근거는 있기때문이다. 한국 동시책에서 힌트를 받았음직한 김철호의 동시《이슬.1》을 아래에 옮긴다.   이 나무의 이슬 다ㅡ아 모이면 참외만한 큰 이슬 될거야!   이 산의 이슬을 다ㅡ아 모아보면 집만한 큰 이슬 될거야!   이 세상의 이슬 다ㅡ아 모아보면 호수만한 큰 이슬 될거야! ㅡ김철호《이슬.1》전문   (이 례문에서의 《이 나무의 이슬/다ㅡ아 모이면》은《이 나무의 이슬/다ㅡ아 모아보면》이다. ㅡ김철호.)   김철호《이슬.1》은 유명한 영국 전래동시《만일 온 세계의 바다가…》와 시적인 론리면에서 아주 류사하다.   온 세계의 바다가 하나의 바다라면 얼마나 큰 바다가 될가!   온 세계의 나무가 하나의 나무라면 얼마나 큰 나무가 될가!   온 세계의 도끼가 하나의 도끼라면 얼마나 큰 도끼가 될가!   온 세계의 사람이 하나의 사람이라면 얼마나 큰 사람이 될가!   그 커다란 사람이 그 커다란 도끼로 그 커다란 나무를 잘라   그 커다란 바다에 던지면 풍덩, 얼마나 큰 소리가 날가! ㅡ영국 전래동요《만일 온 세계의 바다가…》전문   영국 전래동요《만일 온 세계의 바다가…》는 2000년에 한국 청동거울출판사에 의해 출판된《신선득 시력 40년 동시선》에 실려있는데 연변에서 일찍 연길에 전해들어와서 적잖은 사람들의 손에서 옮아다니면서 널리 읽힌 책이다. 그러므로 김철호가 이 시집을 접했을 가능성은 아주 많다. 즉 영향관계의 설정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김철호의《이슬.1》과 영국 전래동요《만일 온 세계의 바다가…》는 그 시적인 착상이 완전히 같다. 즉 “동일한 물건을 한데 모이면 얼마나 커질까!”하는 어린애들의 천진란만한 상상이 착상의 근간으로 된것이다. 때문에 시적구조가 동일하다. 오로지 후자에서의 바다, 나무, 도끼, 사람이란 대상이 단순한 이슬이라는 하나의 대상으로 축약되였을뿐이다. 그리고 점진적인 시의 론리적인 전개도 량자가 완전히 비슷하다. 다르다면 후자에서는 “바다ㅡ나무ㅡ도끼ㅡ사람ㅡ바다ㅡ풍덩ㅡ큰 소리”라는 점진적인 형태를 취한데 반해 전자는 “나무ㅡ산ㅡ온 세상ㅡ호수만한 큰 이슬”이라는 론리적인 형태를 취했다. 이를 도작이나 완전한 표절로 볼 근거는 없지만 적어도 그 어떤 힌트에 의한 모방이거나 개작일 가능성은 충분하게 있는것이다. 김철호의 동시창작에 미친 한국 동시의 영향은 부지중 중국 송나라시기 황정견(黃庭堅)의 “점철성금(点鐵成金)”설을 련상케 한다. 혹자는 김철호의 이런 동시창작법을 모방 흑은 표절이라고 혹평하고있지만 나이가 들어서 동시창작을 시작한지 고작 1ㅡ2년도 안되는 김철호에게 있어서 한국 동시의 구성, 주제, 언어표현수법 등에서 골자만 추려내서 나름대로 새롭게 동시를 만들어내는것은 곤경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책략이였을수도 있다.   (여기에서 김철호가《동시창작을 시작한지 고작 1ㅡ2년도 안되는》는 표현은 잘못된것이다. 나는1987년에《꽃동산》잡지에 첫 동시를 발표했고 동시로써 1996년에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ㅡ김철호.)   《문학과 예술》2007년 제2기《중한수교이후 중국조선족시문학에 끼친 한국시문학의 영향(3)》에서.   
731    김철호 / 김응룡 댓글:  조회:5079  추천:0  2015-10-01
동심에 푹 젖은 시인                            /김응룡 불혹의 나이에 혜성같이 우리 아동문학 동시단에 나타난 김철호군이 또 한묶음의 콩알같이 동글동글 영근 기름기 짜르르한 동시를 보내왔다. 교원생활도 해본적이 없고 더우기는 아동문학과 접촉해본적도 없는 김철호군이 어찌하여 불현듯 동시를 이처럼 잘 쓸수 있을가? 원천이 없는 강이 없고 뿌리가 없는 나무가 없다.   우연하 기회가 동시인을 만들었다   한시기 나는 김철호군과 연변인민방송국 문학부에서 함께 편집사업을 한적이 있다. 그때 그는 이미 소설, 수필, 실화 등 문학작품을 많이 발표했고 또 연변대학 문학반까지 졸업했기에 높은 문학수양을 갖춘 작가였다. 하지만 아동문학은 그와 십만팔천리나 거리가 있었다. 더우기는 동시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이였다. 운명의 작간이라 할가 그는 돌연히 연변일보사의 가자로 자리를 옮겼다. 기자사업이란 세인들이 다 알다싶이 일년 365일 동분서주하는 직업이다. 그런 연고에서인지 그는 연변일보사에 임직한후 아주 드물게 문학작품을 썼다. 그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동시와 접촉했다고 말했다. 몇년전(1995년), 하루는 중국조선족소년보사의 아동문학편집을 담당하고있는 림금산씨가 갑자기 그한테 동시 몇수 써달라고 청탁했다는것이다. 그는 아이들처럼 약속을 어기면 반역자라는 생각이 들어 일요일의 휴가를 리용해서 어린 시절의 동심을 찾아헤매이면서 동시 3수를 써서 월요일에 바쳤는데 뜻밖에도 아주 훌륭하다는 평판을 받았다고 했다. 그중의 한수인《봄잔치》는 행운스럽게도《백두아동문학상》(1996년)까지 받았다.   이 강산 오실 봄 파란 잎 애처녀   산너머 고개너머 캐득이는 아기웃음   아직은 채 안 영근 애기녀한테   애꿎은 바람총각 잔치하러 오신대   이상은 동시《봄잔치》의 전문이다. 이 동시가 동심이 팔딱팔딱 뛰고 너무너무 생동한것은 그가 아이들의 심령속에 들어가 아이들이 하고싶어하면서도 번질수 없는 언어를 끄집어낸것이다. 이를 테면《파란 앞 애처녀》, 《캐득이는 아기웃음》, 《채 안 영근 애기녀한테》, 《잔치하러 오신대》 등의 이쁜 언어조합은 아이들의 시각으로 보아야만이 아장아장 마음에 다가오는 봄을 비로소 잡아낼수 있는 금싸락같은 시어들이다. 아이들의 세계는 끝없고 엉뚱하고 기발하고 신선하고 참신하며 거짓이 없다. 이런 아이들의 심령속으로 들어가는것은 아주 힘들고 간고한 작업이다. 김철호의 동시재주가 갑자기 빛을 뿜은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의 성격을 보면 아이들처럼 생활속에서 모든것이 그처럼 단순하다. 쉽게 격동되고 쉽게 실망하고 쉽게 즐거워하고 쉽게 비애에 잠기고… 때문에 그는 복잡한것을 싫어하고 활기롭고 유쾌한것을 좋아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동심에 묻혀 살아온 사람이다. 그가 어느곳, 어느 주택구역에서 살든지간에 그의 이웃집들의 아이들은 모두 그와 다정한 벗으로 되군 했다. 그가 퇴근하여 집에 돌아올 때는 마을의 아이들이《우야!》하고 그한테로 달려와 스스럼없이 어깨에 등에 가슴에 매달려 참새들처럼 재잘거렸다. 그는 이런 아이들이 싫을대신 언제나 한없는 즐거움을 느끼였다. 그는 아이들속에 들어가면 하루동안의 온갖 번뇌와 시름을 잊고 활락속에 잠기군 했다. 이런 생활속에서 그는 저도모르게 한발작한발작 아이들의 동심속으로 깊이 빠져들어갔고 따라서 아이들의 언어를 마음속에 차곡차곡 챙겼다고 했다. 전국권선생은《시창작리론연구》라는 저서에서《생활속에서 소재, 주제에서 감정, 형상에서 언어까지 이러루한것은 다 장기적으로 육성하고 축적한것이 우연한 기회에 령감이 돌연히 몰려와 그것의 부추킴을 받아 머리속에 간직했던 재료들이 신속히 기묘하게 예술의 전일체로 된것이다》라고 썼다. 김철호의 경우가 바로 그런것이다. 아마 림금산씨가 그에게 동시를 써달라고 청탁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아무리 많은 동시의 재부를 갖고있다고 해도 그것이 분출되여 해볕을 보기가 어려웠을것이다. 그는 림금산씨의 청탁을 받고 동시를 쓰면서 자기의 천부적재질을 놀랍게 발견한것이다. 특히 동시《봄잔치》가《백두아동문학상》을 받은것은 그에게 있어서 큰 충격으로 되였고 따라서 그것을 계기로 동시창작에 심혈을 몰붓게 되였을것이다.   김철호의 동시 특점   그의 동시의 특점은 강한 형상성에 있다. 어느 비가 오는 날 아침이였다. 그가 창문가에 서서 바깥을 내다보는데 갑자기 시야에 갖가지 색갈의 비옷을 입은 아이들, 갖가지 색갈의 우산을 든 아이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희희락락거리며 지나가고있는 모습이 안겨왔다. 그 행복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온몸이 찡해나는 감동의 전률을 받고 기발한 착상이 머리에 떠올라 단숨에 다음과 같은 동시를 썼다.;   노란 비옷 아이는 노란 꽃아이   빨간 우산 아이는 빨간 꽃아이   비오는 날 우리 모두 예쁜 꽃아이   ㅡ《꽃아이》전문   우리는 이 동시를 읊노라면 한폭의 동화가 아름다운 수채화속에서 반짝반짝 빛을 뿜는 감을 느끼게 된다. 그 수채화속에서 우리는 방글거리는 아이들의 얼굴과 비바람의 세례를 받으며 우썩우썩 커가는 그 애들의 모습 및 그 애들의 찬란한 미래를 보는듯하다. 이 동시에서《노란》, 《빨간》, 《꽃아이》 등 낟말들을 빼면 다른 언어가 극히 적다. 얼핏 보면 매우 따분한것 같지만 우리는 그런 감을 느낄대신 너무 황홀함에 어쩔수 없다… 자꾸 반복되는 낱말들이기는 하지만 마치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 자꾸 빨간, 파란색갈의 크레용을 덧칠해서 그 색갈, 그 동심이 뚜렷이 드러나듯이 이런 언어들이 반복도 역겨울대신 너무너무 감미로운것이다. 여기에 또 그의 다른 한수의 동시《도토리》가 있다.   도토리는 별라 갑옷속에 꼭 숨어 눈도 코도 다ㅡ아 감추고 빤질빤질한 엉뎅이만 뽈끈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뎅이 드러낸채 콜콜 늦잠자는 내 동생 같구나   이 동시의 핵이고 형상인것은《갑옷속에 꼭 숨어/눈도 코도/다 감추고/빤질빤질한/엉뎅이만 불끈》하는 시어들에 있다. 시인은 아마도 짜개바지 개구쟁이가 놀음에 지쳐 포동포동한 빨간 엉뎅이를 불끈 드러내놓고 너무 곤해 새우처럼 꼬부리고 자는 모습을 보고 불현듯 터실터실한 껍데기밖으로 불끈 엉뎅이를 내민 도토리를 련상하고 그것과 사랑스런 개구쟁이의 엉뎅이를 련계시켜 이 동시를 썼으리라는것을 어럽지 않게 생각하게 된다. 이런 형상창조는 아무나 다할수 있는것이 아니다. 다만 아이들에 대한 다함없는 사랑이 동심에 푹 젖었을 때만이 나타날수 있는것이다. 김철호의 동시의 다른 하나의 특징은 반복인듯하면서도 점층적인 승화에 있다.   ㅡ삐약삐약 병아리 울음소리는 친구 찾는 소리   ㅡ꿀꿀 꿀꿀이 웨침소리는 배고프다는 소리   ㅡ멍멍 강아지 짖는 소리는 심심하다는 소리   ㅡ음매음매 송아지 부름소리는 엄마없다는 소리   ㅡ응아응아 꽃순이 울음소리는 쉬ㅡ했다는 소리   이상은 동시《이기들의 말》이다. 이 동시에서《삐약삐약》, 《꿀꿀》, 《멍멍》, 《음매음매》 등 의성의태어들을 반복하다가 마지막에《응아응아》하는 아기의 의성의태어를 불쑥 끄집어내서 주제를 홀딱 발가놓았다. 뿐만아니라 련마다 두번씩《소리》를 반복해오다가 마지막에《쉬ㅡ했다는 소리》로 승화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김철호의 많은 동시에서 이런 수법을 읽을수 있다. 바로 이런데서 시인의 재질이 돋보인다. 한국의 한 동시인은 성인이 쓴 동시가 아이들이 쓴 동시처럼 엉뚱하고 쉬워야 아이들에게 잘 먹힐수 있다고 말했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사실 김철호의 동시가 이런것이다. 그는 머리속의 추상이나 상상으로 동시를 쓰는것이 아니라 생활속에서 어떤 경우에 부딪쳐 령감의 불꽃이 반짝 튕기는 순간을 포착하고 아이들 같이 단순한 생각으로 엉뚱한 동시를 써내는것이다.   아들애와 함께 키운 동시   김철호는 남의 집 아이들을 사랑할뿐만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자기 아들을 더없이 극진히 사랑한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에 뛰여난 장끼를 보인 그의 아들애는 역시 개구쟁이였고 감정이 풍부한 애였다 장기간 어머니가 외국에 가 있은탓으로 그 애의 그림에는 자주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 고독한 마음이 내비치군 했다. 어느 을씨년스러운 날, 아들애는 창문에 마주서서 유리에 낀 뜬김에 그림을 그리고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시인은 아버지로서 마음이 뭉클해났다. 그래서 인차《비오는 날 창문에 마주서서》란 동시를 눈물을 머금고 썼다. 그의 아들애가 처음 그림을 배울 때 커다란 도화지에 가득 차게 한 머슴애을 대강 그려놓은것이 시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어딘지 모르게 짚이는데가 있어《괴로운 도화지》라는 동시를 써서 아들애를 깨우쳤다. 그뿐이 아니다. 《엄마 때리는 매》, 《친구》, 《그림속에 들어간 아이》, 《강아지》 등 많은 동시가 아들을 모델로 쓴 동시들이다. 이 세상에 수많은 이름난 동시인들이 모두  자기 자식을 키우는 과정에서, 소학교 애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유명한 동시를 써냈다. 그들이 그렇게 할수 있은것은 두말할것 없이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동심세계로 깊이 빠져들어가야 한다는것을 말해준다. 김철호는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동시를 발표하기 시작해서 몇년사이에 350여수의 동시를 창작했다. 1999년에는 한해사이에 무려 50여수나 창작, 발표했다. 김철호는 자기 속심을 이렇게 터놓는다. 《나는 기자이다. 때문에 긴 소설을 쓸 시간적여유가 없다. 그렇다고 작가인 내가 글을 쓰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이것이 아마 작가의 사명감인것 같다. 늦게나마 동시창작에 재미를 붙인것은 나의 마음과 격에 맞는 일이다. 동시는 짧은 글이기에 창작할 때 시간을 많이 허비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동시라는 이 쟝르를 뚫고나갈 예산이다.》 참으로 자아를 잘 찾은것 같다. 나는 그가 동시창작에 더욱 정진하여 보다 휘황한 성과를 안아오기를 바라마지않는다. 끝으로 한가지 짚고넘어갈것은 아직도 그의 어떤 동시는 성인의 시각으로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쓴것이 확연히 알리는것이다. 물론 한국의 많은 동시인들이 지금 아이들을 대상한 동시보다 성인을 대상해서 동시를 쓰고있는 현실이기는 하지만 동시라 할 때는 어디까지나 아이들에게 읽히고 그들의 사랑을 받아야 한는것이다.
730    김철호 / 최삼룡 댓글:  조회:4600  추천:0  2015-10-01
평론   김철호, 시의 새 지평에 서다 ㅡ“김철호미시시집”에 붙여                                    /최삼룡   아동문학가인줄로만 알었던 김철호가 성인시의 새 지평선에 우뚝 선것은 참으로 예측밖이다. 근년에 그의 시는 눈부신 빛과 즐거운 소리와 독창적인 발상과 새로운 이미지로 시의 지평선을 달리며 우리 앞으로 떠오르고있으니 놀랍지 않은가. 이것은 “김철호미니시집”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다. 그런데 “김철호미니시집”의 시 6수는 모두 비교적 난해하다고 할수 있다. 필자에게 있어서는 난해하다는것이 결코 부정적인 결론이 아니다. 명확하고 명백하고 명랑한 시로 길들여졌으니까 아직도 우리들중에는 난해한 시를 일률적으로 부정하는 독자가 있을뿐더러 편집인, 시인, 시평가, 교수들도 있다. 그러므로 김철호의 이 6수의 시와 같이 난해한 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오해를 피하고 불의를 덜 일으키기 위해 되도록이면 상세한 해석을 시도했지만 또 편폭이 제한되여있으니 제대로 되겠는지 모르겠다. 1. 시 6수를 차례로 읽어보자. 첫전째 시 “룰”,  “룰”이란 영어에서 “법칙”이란 뜻의 명사다. 이 시의 첫련 “작은 생명이래도/그건 하늘보다 더 큰 숨”은 난해하지 않게 이 시의 주제를 제시하고있다. 그것은 즉 작은 생명이래도 하늘과 평등하다는것이다. 시에서는 작은 생명은 하늘보다 더 큰 숨이라고 과장하였다. 아래에서 시골 어느 이름없는 나무끝에 매달린 재난이라 해도 “스나미”로 일어선다고 한발자국 더 내디디였다. 그런데 제목은 어떻게 되여 “룰”인가? 잘 생각해보면 여기서 말하려는것은 하늘은 작은 생명과 같이 놀아야 하며 일단 같이 놀자면 공정한 유희규칙이 있어야 한다는것이다. “하늘”이란 동양에서는 지고무상의 존재, 세상만물의 창조신인데 서양에서는 “하느님”, “조물주” 상제로 통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시에서는 생명의 절대적가치를 강조하였다. 두번째 시 “희나리”, “희나리”란 “채 마르지 아니한 장작”이라는 뜻의 우리 말이다. 인생의 중년에 들어선 시적화자는 깊은 성적고민에 빠졌다. 즉 마른 장작처럼 활활 타오르던것이 희나리처럼 되여버린것이다. 희한한 놀음에 들떠있던 소년으로부터 어느새 중년이 되여버린것이다. 총적으로 이 시에는 인생의 중대한 고민에 처한 시적화자의 성적고민과 더불어 생명재생의 꿈이 담겨져있다. 세번째 시 “희담(戱談)”, “희담”에서 시인은 감히 생명의 결과이며 생명의 연장인 죽음과 희담을 하고있다. 누군가 스위치를 눌러 빛이 다 꺼져저린 곳이다. 시적화자는 허공을 딛고 허공에 걸리고 우아래가 없는 세상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도 만나고 동네 아이들도 만난다. 이 시에서 흥미로운것은 시적화자가 있는 곳이 구경 천당인지 지옥인지 분명하지 않는것이며 심지어는 이승의 생활인지 저승의 생활인지도 분명하지 않다는것이다. 총적으로 이 시에서 시인은 생명과 죽음의 변증법적인 사고를 진행하면서 죽음과 희언(戱言)을 벌리고있다. 네번째 시 “12월 맨 마지막 날 일기”, 제목이 직접 알려주는바 섣달그믐날 밤 송구영신의 심정을 시화하고있다. 세말의 정서를 “생리가 끝났다/붉은 피가 멈췄다”라고 내성적으로 표현하고 그 아래에서 그믐밤의 정경으로 세말의 분위기를 나타낸후 마지막에는 다시 “생리가 시작되였다/붉은 피줄 일어선다”라는 시구로 일출의 새해아침을 그리고있다. 총적으로 이 시에서 송구영신, 신진대사 혹은 광명과 암흑의 교체는 대자연의 법칙임을 확신하면서 광명한 미래에 대한 굳은 믿음을 특색있게 읊조리였다. 다섯번째 시 “개미의 꿈”은 정말 난해한 시이다. 개미들이 감히 인간의 얼굴에 있는 일곱개의 구멍(눈 둘, 귀 둘, 코구멍 둘, 입 하나)을 탐사하고 천착하려는 꿈을 꾸고있으며 그 꿈을 이룩하려는 노력을 하고있다. 1련, 천착을 시작하기 전의 일곱 동굴에 대한 정보분석, 2련, 일곱 동굴을 천착하는 로동현장, 3련, 일곱개의 동굴에 가득 차있는것들, 그 중에는 “꿀”과 “금괴”같은 욕심을 불러일으키는것들도 있으며 “우수((雨水) ”, “바람”, “귀지”같은 장애를 조성하는것도 있다. 나중에 화자는 개미가 “바다를 품었다”, “하늘을 안았다”고 하면서 “개미”의 생각을 직토하는 시구 “씨ㅡ꿈이야 못 꾸겠니”로 시를 끝냈다. 이 시를 접할 때 “개미”를 “인간”으로 바꾸어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보면 이채로운 해독이 나올수도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인간만화경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가질수도 있잖을가 사료된다. 여섯번째 시 “장고지몽(長鼓之夢)”에서 시인은 장고소리를 들으면서 떠올리는 이미지들을 시로 정리하고있다. 처음에는 장고를 치는 녀인의 아름다움과 거룩함과 성스러움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이라고 확인하였으며 그 아래에서는 시원스러운 장고소리를 칼에 비기면서 비단을 베인다고, 간드러진 소리에 맺혔던 매듭이 풀린다고, 말의 효용소리, 소의 영각소리를 낸다고 상상한다. 제5련 “아리아리 아라리요 둥둥둥/아리아리 아라리요 둥둥둥”은 장고소리에서 힘차게 울려오는 백의민족의 심성을 돌출하게 부각하고 마지막 련에서는 첫련과 호응하면서 녀인의 가슴으로부터 울리기 시작한 선률이 아득한 강에 빠져 익사하는것으로 태양을 떠올렸다고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고있다. 여기에서 태양은 태양계의 알로서의 해가 아니라 사람들의 가슴에 떠오르는 희망과 광명의 상징으로서의 태양이다. 총적으로 이 시에서는 장고의 꿈을 통하여 장고를 대표하는 모든 민족음악, 나아가서 모든 민족문예의 소리와 빛과 향기와 힘, 감화력과 매력을 독창적으로 노래하였다. 2. 시 6수에서 낯설게 하기와 상관물창조. 이상 분석에서 보았지만 김철호의 6수의 시는 주제파악이 쉽지 않다. 어째서 그렇게 되는가? 그 해답을 한마디로 말하면 김철호의 시는 방법과 수법 및 기교상에서 모더니즘시와 포스트모더니즘시의 영향을 많이 받고있기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이것들에 대해여 리론적으로 해명할수 없으므로 김철호 시 6수와 련계시켜 몇마디 더 하려고 한다. 서양시학에 데뻬이즈망(Depaysent)이라는 개념이 있다. 전혀 이질적인것들이 모여 새로운 창조적인것으로 재탄생되는것, 혹은 기존의 의미를 버리고 전혀 새로운 의미를, 지어는 변화를 시도하는것을 가리킨다. 시창작에서 낯설게 하기, 소외기법, 몽따쥬, 콜라쥬, 자동기술법, 병치조각내기, 폭력조합 등등 시적기교의 목적 혹은 결과는 결국 모두 시의 데뻬이즈망에 귀속된다고 할수 있다. “김철호미니시집”에서 우리는 데뻬이즈망수법과 기교를 많이 찾아볼수 있는데 여기서는 먼저 낯설게 하기를 보자. 낯설게 하기란 로씨야 형식주의의 핵심개념의 하나인데 스콜로프스키(shklovsky)가 처음으로 제기한 개념이다. 그에 의하면 지각이 인습화된 틀속에서 영위되는 일상의 삶은 본래의 의미를 잃기 쉬운데 예술은 바로 이러한 일상적인식의 틀을 깨고 낯설게 하는것으로 사물의 본래 모습을 회복심키려는것이다. 스콜로프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술의 목적은 사물을 알려진 그대로가 아니라 지각되는대로 그에 감각을 부여하는것이다. 예술의 여러가지 기교는 사물을 낯설게 하고 형태를 어렵게 하고 이를 지각하는데 시간이 걸리게 한다. 지각과정 그 자체로서 하나의 심리목적으로 가능한 연장시켜야 한다. 예술이란 한 대상이 예술적임을 의식적으로 경험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로부터 알수 있는바 낯설게 하기란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 위하여 일상화되여 친숙하거나 반복되여 참신하지 않는 사물이나 관념을 특수화하고 생소하게 하여 새로운 느낌을 가지게 하는 수법이다. 이제 김철호 시 6수에서 낯설게 하기의 례를 몇개 들어본다. 첫번째 시(“룰”) 2련의 “은빛 향기로운 세상”을 보면 시각적으로 감지하는 감각과 후각으로 감지하는 감각을 련계시킴으로서 공감각에 의한 낯설게 하기를 하였다. 4련의 “넓고 깊은 그물”은 문법을 고의적으로 파괴한 폭력조합으로 낯설게 하기를 하였다. 그물은 넓을수 있어도 깊을수는 없다. 문법적규칙대로 하면 “넓은 그물을 깊이 던져”로 되여야 할것인데 시인은 고의적으로 문법을 파괴하는것이다. 두번째 시(“희나리”) 3련에서 “고독이 떨고있다”는 시구도 “고독”이라는 단어와 “떨고있다”는 단어는 주술관계가 형성될수 없는것인데 폭력조합으로 낯설게 하기를 하고있다. 다섯번째 시(“개미의 꿈”)에서 “개미가 바다를 품었다/개미가 하늘을 안았다” 이것은 수사법으로 과장에 속하지만 바다와 개미의 비교, 하늘과 개미의 비교속에서 보면 이 시구는 절대적인 불가능을 시인의 상상으로 낯설게 하기를 한것이다. 여섯번째 시(“장고지몽”)에서 “살에 배인 색”, “소리보다 더 선들선들한 칼”, “비단 베이는 섹시한 가락”, “음(音)의 향기 깃을 꼬며 눕는다”, “매듭이 스르르 맥을 놓는다”, “아득한 강에 빠진 선률”, “즐거운 익사로 붉은 태양 받쳐든다” 등등 시구는 모두 언어의 폭력조합, 혹은 이미지의 폭력조합을 시도한 낯설게 하기이다. 이밖에도 6수의 시에는 현실과 상상을 뒤집고 시간의 전과 후를 전도시키고 원인과 결과를 혼돈시키고 천당과 지옥, 이승과 저승을 섞어놓는 수법으로 낯설게 하기를 시도한 곳이 많다. 다음 6수의 시에서의 상관물창조에 대하여 살펴보자. 객관적상관물창조의 개념은 엘리어트가 제일 처음 제기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정서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객관적상관물을 발견하고 창조하는것이다. 문학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나 사상을 그대로 나타낼수 없다. 어떤 사물, 정황 또는 일련의 사건을 통하여 그것을 표현하여야 한다. 일상생활중의 개인감정은 시작품에 그대로 로출되는것이 아니라 시문과 관계있는 어떤 심상, 상징, 사건을 통하여 구현된다는것이다. 이제 이 6수의 시를 보면 김철호시인의 상관물창조에서의 뛰여난 시재를 보아낼수 있다. 우선 시의 제목들이 창조주체의 감정이나 가치관을 나타낼수 있는 상관물로 창조되였다. 례를 들면 중년남자의 성고민과 더불어 생명재생의 꿈을 나타내기 위하여 “희나리”라는 객관적상관물을 창조하였으며 소인, 범인, 속인의 소망을 나타내기 위하여 “개미의 꿈”이라는 객관적상관물을 창조하였으며 문학예술작품의 매력과 가치를 강조하기 위하여 “장고지몽”이라는 객관적상관물을 창조하였다. 6수의 시문중에는 객관적상관물이 아주 많다. 례를 들면 “희나리”에서의  “녹쓴 수도꼭지”, “웅크린 힘”, “젖은 팬티속에 무서운 힘”, “자음과 모음이 섞여야 완정한 글자”, “희한한 놀음”, “갑자기 사라지는 우주”, “시작만 있을뿐인 추락”, “개미의 꿈”에서의 “일곱개의 동굴”, “장고지몽”에서의 “높고 가까운 두 언덕” 등등인데 창조된 객관적상관물들의 시적내포에 대하여서는 독자들이 하나하나 음미해보기를 바란다. 3. 시의 새 지평에 선 김철호에게 박수. 낯설게 하기와 상관물창조외에 6수의 시에는 시적인 아이러니와 역설 그리고 해학 등 수법이 필자의 눈길을 끌고 태양, 하늘, 꿈, 바람, 숨 등 반복되는 이미지들이 입맛을 당기지만 편폭관계로 더 펼치지 않기로 한다. 총적으로 이 6수의 시는 난해하지만 해석이 가능하다. 이것은 시에 그래도 선명한 가치추구가 있기때문이다. 난해한것은 시의 창작방법과 기교에서 우리가 습관된 직토, 직설법이 아니라 낯설게 하기와 객관적상관물창조, 아이러니, 역설 등 현대적인 수법과 기교를 많이 쓰기때문이다. 이러한 수법과 기교는 결코 김철호의 발명이 아니며 이러한 수법과 기법에 대한 실험은 우리 시단의 많은 시인들이 견지하고있다. 단지 김철호의 작품활동을 회고해보면 최근의 시창작이 새로운 지평선에로 올라선 느낌을 준다는것이다. 김철호의 생활에 대한 심도파악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자신감이 넘치고 자아에 대한 투시는 여유로우면서도 진솔하다. 김철호의 현대시에 대한 공부는 시 “개미의 꿈”의 개미처럼 부지런하고 끈질기다. 이제 김철호의 시도 “장고지몽”의 그 장고소리처럼 사람들의 마음의 하늘에 붉은 태양을 받쳐올리려는지, 기대해본다. 시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시창조의 새로운 지평선에 우뚝 선 김철호에게 박수를 보낸다.   2013넌 6월 10일 대련 소평도 림해원에서 2013년 제4기                          
729    김철호 근작시 시평 댓글:  조회:4569  추천:0  2015-10-01
평론 기수(旗手)는 바람이 없으면 달려간다           ㅡ2014년 장백산 제2기  김철호시인의 근작시를 읽고                                                                  /허인               머리글   요즘 신문잡지를 펼쳐들면 심상찮게 자주 마주치는것이 아마도 김철호시인님의 주옥같은 시작품들인것 같다. 어찌보면 오늘날 줄거리가 없고 한낱 표백된 아픔마저 버젓이 상품이라는 브랜드 마크를 달고서 콩나물이나 숙취나물처럼 슈퍼에 나란히 진렬되는 그런 무병신음의 가짜시가 아니라 읽을수록 알맹이가 꽉 차서 마침내 읽는 이 혼자서는 그 모든것을 감당하고 만끽하기엔 너무 아름차고 또한 즐겁기도 한 ㅡ 그래서 누구라도 상관없이 독자들과 함께 조금이라도 나누고싶은 심정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알건대 김철호시인님은 저명한 아동문학작가님이시다. 그런 그가 최근 들어 이 몇년사이 우리 조선족시단치고는 제일 먼저ㅡ 어쩌면 남들보다는 한발 앞서 파편문체와 포스트모더니즘을 깊이있게 연구를 끝마치고서 마침내 자신의 깔끔한 성미에 알맞게 개성있게 현대시를 쓰고 있는 그런 시인이 아닐가 필자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매번 김시인이 자신있게 내여놓는 한수 또 한수의 무게감이 있고 테마가 굵직한 시작품앞에서는 오래동안 외곬인생을 고집하면서 수십년째 시를 써온 허다한 시인들마저도 손발을 내밀기가 저어되여가고 있는 그런 느낌이 들며 그 신비한 마력은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쭈욱 이어질것만 같다. 그럼 여기서 2014년 잡지 제2기에 실린 김철호시인님의 주옥같은 시 7수를 우리함께 손에 손잡고 잠간 즐거운 려행을 다녀와보자   링크와 네트워크구축으로 스스로 아름답고 좋은 시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조대, 어느 시대에서나ㅡ 시인의 사상의식은 항상 미래 지향적이였으며 또한 드레시(漂亮, 幽雅)하게 자신만의 독특한 시어들을 창출,  랜덤하고도 더욱 디테일하게 드라이브코스(自驾游线路)를 스스로 구축해왔으며 더우기 새로운 언어조합속에서의 자률, 또한 지극히 러브 시(示好)한 이률배반속에서도 마스터피스(杰作)와 함께 항상 개혁이 동일시되여 왔었다는것을 누구나 쉽게 알수가 있다. 그리하여 그러한 미래 지향적인 행보는 오늘도 조심스러울수밖에 없으며 또한 과감한 개혁의 리론과 그 기능을 불러오는 중요한 단서가 곧바로 시인의 더없이 정확한 의사전달로써 길게 설명자면 멘트(话语, 台词)가 필요없는 기획적인 자아도전과 저돌적인 돌파, 즉 새로운 시어창출과 함께 변화한 자신의 모습을 여러모로 독자들앞에서 검증 받아야 하는 그런 데스트가 아닐가 필자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아직 필자의 좁은 소견일지도 모르겠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정석으로, 또는 기초로 하여 단단히 밟고 더욱 높이 올라서려고 하는 기획적인 발전이지 결코 지극히 이률배반적이지는 않다는것이다. 그럼 우리 함께 김철호시인은 링크와 네트워크구축으로 어떻게 이미지즘을 완성해 가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건 흠결이 아니였다 이중로출도 아니였다 틀림없는 유령의 그림자였다   물앉는다 요즘 그녀는 자주 물앉는다 복도에서도 거리에서도 벌렁벌렁 물앉는다   회사청사를 어깨에 메였다 19층청사가 어깨를 누른다 벌렁 물앉는다 8촌사진은 하나의 세상이다 그속에 19층청사,그녀의 어깨… 그녀는 어떤 유령에게 업혀있었다 그녀가 어떤 유령을 업고 있었다   이승너머에 숨은 삶이 보였다 그곳으로 가는 문이 보였다   새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가서 죽는다고 했다   전문이다   이 시를 읽고나면 김철호시인님은 남달리 수판알을 튕겨가면서 계산적으로ㅡ 혹은 의도적로 독자들을 위한 배려심이 크다는 것을 인츰 알수가 있다. 란 우리 말로 직역하면 귀혼(鬼魂), 혹은 유령(幽灵)인데 ㅡ 즉 을 읽고나면 마치 산 사람이 허다한 스트레스, 콜플렉스, 혹은 무수한 폴더, 아건강(亚健康)에 짓눌리워 유령처럼 이 세상을 허우적거리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방불히 우리들 눈앞에 보이는듯이 그려놓고 있기때문이다. 첫련에서 과 이라는 단단한 부정뒤에 더욱 단단해져가는 긍정어 즉 /틀림없는 유령의 로출이였다/를 재치있게 등장시킨 이 시에서는 이미 전반 시적 흐름의 또렷한 륜곽을 벌써 독자들에게 명확히 잡아주고 있는 그런 특징이 있다. 그리하여 제 2련에서는 마침내 /물앉는다/요즘 그녀는 자주 물앉는다/복도에서도 거리에서도/벌렁벌렁 물앉는다/로 독자들에게 다시한번 암시의 태도를 슬쩍 더 보태주었으며 여기서부터 가 시적화두로 대두된 이 시의 흐름 즉 그 루트를ㅡ 의식과 무의식의 딸깍거리는 구두소리를 따라서 조심스레 걸어가노라면 더욱 큰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의 이중구조속으로 독자들은 저도모르게 냉큼 빨려 들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뒤에 더욱 큰 이미지즘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기때문이다. 제3련에서 /회사청사를 어깨에 메였다/19층청사가 어깨를 누른다/에서 볼수 있다싶이 새로운 이미지로 등장한 , 정확히 를 어깨에 메였고ㅡ또한 /어깨를 누르고 있기때문에/그녀는 벌렁 물앉는다/는것을 누구나 쉽게 알수가 있다. 다음 가상현실속(혹은 영정사진과도 같은)의 클로즈업된 또 다른 하나의 색다른 세계ㅡ 즉 /8촌사진은 하나의 세상이다/그속에 19층청사, 그녀의 어깨…/가 있고 여기에서 다시금 첫련에서부터 강한 힌트를 주었던 그 유령을 재치있게 재등장시키면서 /그녀는 어떤 유령에게 업혀있었다/그녀는 어떤 유령을 업고 있었다/면서 어딘가 19층청사를 소유하고 있음직한 정도면 그냥 보통 인물이 아닌듯한 어떤 녀인의 전쟁과도 같은 치렬한 삶의 한장면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의 본능적인 도전정신, 또는 그러한 삶의 애환을 반복구사법, 겹쳐 그리기기법을 동원하여 시어와 시어사이를 재치있게 링크(련결), 또는 의식과 무의식의 조용한 흐름을 통하여 자의도 타의도 아닌 늘쌍 객관적인 립장에서 시종여일하게 한폭ㅡ 또 한폭의 그림을 완성해왔음을 우리는 비로소 알수가 있다.   특히 제4련과 제5련에서는 한술을 더 떠서/이승너머에 숨은 삶이 보였다/그곳으로 가는 문이 보였다/새들은 보이지 않는곳에 가서 죽는다/고 했다/면서 결국 삶과 죽음의 사이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것이며 또한 종이 한장 차이일뿐ㅡ 어쩌면 죽음마저도 삶의 또다른 연장선일수도 있다는것과 현시대 삶의 치렬한 경쟁의식을 시인은 비관도 긍정도, 부정도 아닌 제3자의 립장에 서서 담담하게 토로하고 있는 그런 양상 보여주고 있다. 이 시의 특징은 다선이 고리이기때문에 시인의 의식은 그 어떠한 관념에도 묶이지 않고 있으며 또한 시인은 연출자인 동시에 제작자이기때문에 읽을수록 호흡이 자유로운  그런 장점이 있는것 같다. 아무튼 김철호시인님의 은 오랜간만에 읽어볼수 있는 속이 꽉 차고 통통 잘 여문 좋은 시라고 필자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그럼 아래에 은유의 상징으로 이미지집성을  완성시킨 이라는 시 한수 더 보고 가자.   벽에 기대앉았는데 벽이 무너진다 벽체에 깔려 납죽해진 그를 잡아당긴다 납죽한 다리가 뽑혀나오고 납죽한 팔이 뽑혀나오고 납죽한 가슴, 배 ,머리는 그냥 벽체밑에 깔려있다 두렵지도 않은가보다 누군가 또 벽에 기대인다 벽이 쿵 무너진다 누가 또 벽에 기대인다 벽이 쿵 무너진다 누가 또 벽에 기대인다 벽이 쿵 무너진다 무너진 벽체에 그가 깔려있다 잊어졌던 그가 있다 나도 있다 납죽 깔려 납죽해져 있다   의 전문이다.   여기서 은 무엇을 의미할가? 필자가 보건대 그건  아마도 어디엔가에 자꾸 기대고싶어하는 인간의 나약한 요행심리와 껌딱지처럼 다닥다닥 심장에 와붙는 상표도 아닌 무정한 들을 은유적으로 상징한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첫련에서 /벽에 기대앉았는데 벽이 무너진다/로부터 시작하여 이 시는 줄곧 /벽이 쿵 무너진다/를 여러차례 반복해가면서 나역시도 피해자가 될수 있임을, 결국 이 세상 그 누구라도 자칫하면 똑같은 피해자가 될수 있음을 깔끔하고 간결하게 표현한것 같다. 조지p 란도의 《하이퍼텍스트3.0>> 말씀중에서의 한마디다. 댓글을 받아본 사람이면 아마 누구라도 쉽게 동감이 가는 그런 좋은시 라는 생각이 저절로 첨부되여가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예술이란 한 대상이 예술적임을 의식적으로 경험하기 위한 수단일수록 더욱 아름답다.   너는 왜 하늘 향해 누워있니? 너는 왜 땅을 보며 누워있니?   하늘엔 뭐가 있니? 별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밝은 별 하나 있다 그럼 땅엔 뭐가 있니? 별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은근한 별 하나 있다   하늘의 별과 땅의 별이 만나려고 무지개 통로로 마주 달려간다 너무 빨리 달리다보니 그만 서로 부딪쳐 산산조각난다   별의 파편 수많은 별이 되여 흩날린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은하수가 펼쳐진다 별들의 원무가 시작된다   전문이다. 이 시는 브레인스토밍과도 같은 자문자답과 럭셔리한 역설로써 수많은 새로운 들의 탄생과정을 그림으로 그려놓고 있으며 더불어 우주의 진면목 즉 시인의 세계관을 독자들로 하여금 엿볼수 있게끔 하고 있는것 같다. 특히 제1련에서 /너는 왜 하늘을 향해 누워있니?/로부터 시작하여 와 가 서로 만나려고 마주 달려가다가 그만 부딪치면서 산산조각이 나며 드디여 별의 아름다운 원무를 연출자가 아닌 관중이 되여 희망으로 지켜보고 있는 작자의 성숙된 모습을 엿볼수가 있게끔 시야를 넓혀주고 있는상 싶다. 그럼 여기서 은 도대체 무엇일가? 그건 희망이래도 좋고 또한 미래라도 좋고 아무튼 독자가 선정하기 나름이니깐 구태여 더 길게 설명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음 (秀吟)과 는 맥락을 같이하는 그런 파워플한 시라고 해도 아마도 무방할것 같다./정글엔 길이 없다/그러나 그녀는 그곳에 발을 내디뎠다/로부터 시작하여 제일 마지막 결구에서 볼수 있다싶이 /정글에 그녀의 길이 생겼다/로 마무리되였고 에서는 /이제는 녀자가 없는 그, 바다로 간다/로 멋지게 캐릭터를 시작하여 제1련 4행에서 다시금 자연스럽게 /수평선을 베고 누워있는 붉은 녀인/즉 언덕 ,혹은 사막을 떠올리게 하였으며 /그러나 이제는 녀자보다 높은 바다가 있다/그는, 바다는 실패를 모를것이라고 생각했다/로 인생행로의 이러저러한 고달픔과 또한 각근한 노력은 반드시 리상적인 결실을 맺기 마련이라는 작자의 독특한 진리를 이 두수의 시에서는 펼쳐 보이고 있는듯 싶다   남자라고 생각해도 틀린다 녀자라고 생각해도 틀린다   누에고치가 퍼렇게 익어 헐벗은 떡갈나무 그늘 잃은 큰 나무,뿌리 살아숨쉬는데 태양은 구름우에 숨어 찬 입김 뱉는구나   밤, 그 힘찬 몸부림 새벽, 그 벅찬 울부짖음 한낮, 그 거창한 춤…   파도는 저 거창한 바다를 만난다 파도는 높은 하늘을 만난다   절름발이 양잠인 50원에 황성옛터 잘 팔아먹고 누에고치줏는  계집들의 웃음소리 언덕 허무는데 대석하에 비낀 장수의 그림자파도따라 춤추누나 강물은 날 선 칼이 되여 력사를 두쪽으로 가르누나   태양은 언제나 동쪽에서 뜬것만이 아니다 별은 어두운 하늘에서만 반짝인것이 아니다 하늘 만리서 무지개 나래펴고 바람은 손가락 튕기는 사이에 천리땅을 씻는구나   그러니 남자라고 생각해도 된다 녀자라고 생각해도 된다 힘과 힘의 만남 숨과 숨의 겨룸   푸른 누에 기여온다   전문이다. 다시 봐도 거대하게 느껴지는 아름찬 몸집, 제1련에서 단단한 부정과 함께ㅡ 정물화기법, 모자이크기법으로 씌여진 이 한수의 시가 갖는 함의는 참으로 방대하다는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럼 우리함께  이 한수의 시에서 링크(련결)와 네트워크(리좀)가 어떻게 이미지즘을 형성하고 있으며 또한 텍스트를 어떻게 조성해가고있는가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첫련에서 이미/ 남자라고 생각해도 틀린다/녀자라고 생각해도 틀린다/는 단단한 부정으로 시작된 이 시에서는 남자, 녀자, 누에고치, 떡갈나무, 그늘, 나무, 뿌리, 태양, 구름, 입김, 밤, 몸부림, 새벽, 울부짖음, 한낮, 거창한 춤, 파도,바다, 하늘, 절름발이, 양잠인, 황성옛터, 계집, 웃음소리, 대석하, 그림자, 강물, 칼, 력사, 동쪽, 별, 무지개, 바람, 손가락, 천리땅, 힘, 만남, 숨, 푸른 누에 등 40여개의 명사뒤에 접사 혹은 동사를 붙여 력사속의 을 현실속의 과 그 해학적인 50원, 그리고 로 조금은 익살스럽게 완성시킨 그런 느낌이 든다. 앞에서도 이미 말을 했지만 제 1련에서 단단한 부정어/남자라고 생각해도 틀린다/녀자라고 생각해도 틀린다/로 시작된 이 시의 제일 마지막 결구에서는 /그러니 남자라고 생각해도 된다/ 녀자라고 생각해도 된다/로 다시금 재치있게 부정했던것들을 다시금 재긍정해가면서 /힘과 힘의 만남 숨과 숨의 겨룸/ 을/푸른 누에가 기여온다/는 자연현상으로 아이러니하게 마무리하고 있다. 모두 알수가 있듯이 시제가 이고보니 력사와 현실을 하나 또 하나의 참조물로 관조해가면서 객관적으로 이미지완성을 집대성시킨 한폭의 좋은 그림, 방대한 이미지즘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일 마지막 시인 (冬至)에서 /하늘에 /수만개의 달/뜨는 날/슬픈 이에겐 /너무너무 긴/기쁜이에게는/길어도 짧은/이런 표현은 참으로 특이하고 기발한 착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김철호시인님의 근작시들을 읽노라면 마치 화면이 깨끗한 고화질의 티비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너무 좋다    마무리하면서   오래동안 우리 시단을 지배해온 단선구조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 다선구조의 틀로, 어젯날 시인의 독백적인 서술을 객관적인 이미지로, 정적인 이미지를 또한 동적인 이미지로, 시의 주체에서 시인자체를 이미지의 편집자로 바꾸어보려는 김철호시인님의 개혁성(改革性)은 그야말로 놀라울만큼 계획적이고 또한 그 기초가 믿음직하게 단단한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이 시대의 개혁은 누가 뭐라해도 언제나 소수의 사람들이 앞장서기 마련이다. 그럼으로 하여 기수는 바람이 없으면 앞장서 달려 가야 하는것이 오늘날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그 기치가 더욱 선명하지 않을가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아무튼 이번 2014년 제2기에 실린 김철호시인의 7수의 시작품은 마치 방대한 시리즈가 되여 거대한 이미지즘을 이루고 있는듯한 그런 느낌을 주며 또한 난해한듯하면서도 읽을수록 가슴에 와닿는 그런 공명감이 크고 한수 또 한수의 시가 꼭마치 통통 잘 여문 볍씨와도 같다는 그런 느낌을 주고 있다. 미숙한 점이라면 지나치게 완전무결을 추구하는 느낌이 들며 또한 무엇을 강조하려고 하는데서 부피가 커져가는듯한 그런 양상이 더러 있는것 같다. 아무튼 새로운 한해 새로운 시점에서 김철호시인님이 더욱 좋은 성과를 이룩하여 가시길 심양에서 두손 모아 진심으로 축원해본다    2014년4월5일 심양에서
728    김철호 / 허인 댓글:  조회:4385  추천:0  2015-10-01
[평론]사상과 령혼의 화려한 불꽃놀이, 그리고 점점 무르익어가는 김철호주의                                                                                     비평/허인   사상과 령혼의 화려한 불꽃놀이, 그리고 점점 무르익어가는 김철호주의   시가 아프다. 우리 시대의 시가 이래저래 여러모로 너무나도 아프다. 그런데 이러한 병페적인 시들의 치유를 목적으로 근근히 짧디짧은 몇년사이 파격적인 화려한 변신을 륙속 꿈꿔왔고 또한 근래에 보기 드문 성과를 이룩한 시인이 있으니 그가 바로 김철호시인님이시다. 또한 김철호시인만큼 적극적으로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해왔고 또한 그 거창한 행로에 걸맞게 주렁주렁한 성과를 이룩한 시인은 극히 드문줄로 안다. 시에서의 화려한 변신이나 파격적인 변화를 두고서 평론가들은 한단계 더 높여 흔히 도약, 혹은 비약이 크다거나 의경(意境)이 새롭다고 표현한다. 필자가 보건대 시의 핵심은 이제 더는 조촐한 이미지와 이미지즘의 강박적인 조합, 구조주의적인 서두, 발전, 내용, 결과 등 그 따분한 의경속에 있는것이 아니라 폭넓게 령혼과 사상, 더 나아가서는 확고한 리념과 개인주의(主義)적인 품격과 풍격, 관용과 포용에 있는듯 하다. 시체에 아무리 좋은 수의를 입혀봐야 결국 시체이듯이 시에서의 시인의 언행은 곧바로 그 시인의 풍격이 되기도 한다. 겉이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사상이 없는 시들은 결국 시체에 불과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 여기서 김철호시인님의 주옥같은 근작시 8수를 조심스레 살펴보며 가도록 하자.   포스트모더니스트의 글쓰기에 나타나는 창발적 경향의 한 특징   지금까지 우리의 시들은 단일성, 동일성의 원리에만 의존하여 구성되여 왔다. 현재의 시들도 대부분이 그러하다. 이를테면 꽃이면 꽃, 들이면 들, 별이면 별, 즉 대상, 주제, 내용, 정서 등등 모두가 동일성 원리에 의거하여 발상되여 왔었고 효과면에서도 지나치게 단일성을 강조해온것이다. 헌데 여기서 필자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의 글쓰기에 나타나는 창발적 경향의 한 특징과 불쑥 맞닥뜨리게 되며 킨넬이 말했듯이 “계속해서 깊이깊이 파고들어가노라면 너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며 하나의 동물일것이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더욱 깊이있게 파고 들어가노라면 너는 아예 풀잎이거나 한그루의 나무일수도 있을것이다…”와 같이 심상(心相)시에서의 의식과 무의식을 훌쩍 뛰여넘어 너무나도 자연스레 자연과 결부시켜 새롭게 령혼과 사상을 탄생시키려 하는 하나의 개인주의 표현방식을 절감하게 되였다. 그렇다고 인간적인것을 굳이 무너뜨리려는것이 아니다. “해시계의 음특한 그림자가/몸을 뻗어 담장에 기여오른다”에서 쉽게 살펴볼수 있는것이 곧바로 한점의 오차도 용허치 않는 해시계의 작용이다. 시제가 “고궁”이고 보니 눈앞에 자연스레 펼쳐지는 첫번째 그림이 곧바로 이제는 해 질 무렵 높다란 담장을 슬금슬금 기여오르려고 아득바득 몸부림치는, 아직은 가물가물한 어느 조그마한 그늘의 작은 모습이다. 그 그늘이 있었기에 우리들 눈앞에 펼쳐진 고궁의 모습은 더욱 고색찬연한것이 아닐가싶다. 다음 “굵고 주름 깊은 고목이 나이테에 묶여 숨을 헐떡인다”에서 어느사이 “담장”에서 “고목”으로 모습이 뒤바뀐 고궁의 모습은 이제 아름찬 나이테에 저절로 숨이 차 헐떡이기도 한다. 허나 그 모습은 비참한 결과가 아니라 어딘가 긍지에 찬 모습이기도 하다. 이렇듯 거창하고 주렁진 성과들은 어디에서 오게 됐을가? “개미떼들이 백두봉을 지고왔다/개미떼들이 고비사막 날라왔다”에서와 “붉은 물결/붉은 구호”에서 눈여겨 살펴볼수 있다싶이 이 세상 한낱 미물인 개미떼들마저 어기영차 어김없이 이곳으로 지고온 그 백두봉과 고비사막에서 현란하게 눈이 부신 력사의 한 장면을 백문의 불여일견이라고 피부로 직접 부딪치고 엿볼수 있도록 시인은 배려심으로 설정해놓은듯 싶다. 이러한 배려심이  있었기에 “발자국에 고인 붉은 구토물의 납함/천년을 살아 피를 먹은 거인”에서 발자국에 고인 력사는 구토물마저 결국 붉은색일수밖에 없으며 또한 아우성도 아닌 이 세상의 납함으로써 그 영향력을 더욱 뚜렷하게 상징시킨듯싶다. 그렇게 오랜 세월 밝고 조금 어눌한 그늘속에서 싱싱한 피를 꿀꺽꿀꺽 삼켜가며 배불리 먹고 천년을 살아온 “거인”이였기에 “쿵쿵쿵/쿵쿵쿵/걷는다//광장엔 황금의 금자탑이 있다//걷는다/쿵쿵쿵/쿵쿵쿵/만년후에도 살질 거인”이며, 또한 여기에서는 다선을 목적으로 단순한 한두개의 이미지나 이미지즘의 라렬이 아니라 특정된 한 사물에 공간과 시공(時空)을 아예 훌쩍 뛰여넘으려는 풍격, 품격, 인격, 그리고 사상, 력사, 언행, 령혼을 시인이 재치있는 솜씨로 아낌없이 투영시켜놓은듯싶다. 이 시는 사상과 령혼의 화려한 불꽃놀이, 그리고 점차 무르익어가는 김철호주의가 뚜렷이 한눈에 잘 엿보여 마치 한편의 방대한 시리즈를 읽는듯하여 저도 몰래 감탄을 련발하게 된다. 포스트모던시 가운데서 가장 많은 론의가 이루어졌던것이 곧바로 고백시이다. 뢰트기, 로월, 프라스, 섹스톤, 베리만 등이 모더니즘의 전통을 무너뜨렸던것은 브레슬린이 지적한대로 “예술이 인간적이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의 상징적, 신화적, 추상적인 질서들을 추구하는 미학을 버려야 했기때문이다.” 김철호시인의 시는 자기 패러디적이고 자기 파괴적이라는 점에서 상징주의 시와는 확연히 중요한 차이점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 아래에서 감성과 리성, 의식과 무의식중의 발로에서 김철호시인은 어느 곳에 더욱 비중을 두었는지 우리 다 함께 “바다”, “설(雪)”, “일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 시들의 공통점은 시인 자체의 적극적인 참여의식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더욱 세심한 관찰을 통하여 조준이 된 랭철한 사유 끝에 명중이 된 가장 인간적인 즉 인격적인 근로한 사상을 부여시켜 그 공명감이 더욱 큰듯싶다. “바다”의 경우 “일몰은 죽음이 아니다/서서히 오는 탄생은 어둠/새로운 생명이 숨어있다”에서 시인은 어쩌면 예언에 가까운 미래 지향적이고 긍정적인 인간의 지혜로운 자세로 포용의 자세를 멋진 모습으로 보여주는가 하면 “설”의 경우 “은혜같았던 초설(初雪) /뼈다귀가 생기고/살이 붙고/피가 돌고/하더니”에서도 슬그머니 인격화를 완성시켜 놓았으며 “일기”의 경우 “한자깊이의 땅속에서/녹쓴 철갑모들이/해볕 보기 싫다면서/삽질을 멈추라고 눈짓한다”로 인간 대 인간, 인격 대 인격이라는 사상으로 소통을 시도하려고 하는 지혜가 엿보이기도 한다. 이 시들은 한수한수가 모두 걸작이며 또한 이 세상 그 어디에 내놓아도 결코 한점의 부끄럼없는 훌륭한 우수작품이 틀림없다.   삶 자체에 대한 우울한 반항과 기술복제적 인간에 대한 자각   이번에 발표된 김철호시인의 대부분 시들은 시에서의 새로운 문법을 라침판처럼 뚜렷하게 보여주는듯싶다. 여기서 필자는 간단히 문법이라고는 했지만 그것은 결코 단순히 문법의 범주로만 끝나는것이 아니다. 즉 리성보다는 본능, 질서보다는 충동,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찬연한 그 세계,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전통적인 시문법을 사정없이 파괴함으로써 시인이 노리는것은 과연 무엇일가? 시인은 시의 화자의 피줄에 와닿는 초감각적인 리성적인 세계에 의식과 무의식으로 피와 살, 령혼을 불어넣고 지혜롭게 노래하고있는듯싶다. 그러한 시니피앙들은 읽는이들 마음속의 커다란 흔들림과 함께, 어쩌면 뼈속까지 오싹오싹해날 정도의 크나큰 공명감과 함께 공감속의 그 짜릿짜릿한 전률들을 독자들에게 핫이슈로 선물하고있는듯싶다. 시니피앙이란 무엇인가? 소쉬르의 견해에 따르면 그것은 언어기호를 형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이다. 즉 흔히 말하는 소리심상이나 기표이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개념, 혹은 기의)는 마치 동전의 앞뒤 관계처럼 짝을 이루면서 존재하는것이라고 해야 할것 같다.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에서나 시인의 사상의식은 항상 미래지향적이였으며 드레시(漂亮, 幽雅)한 자신만의 독특한 시어들을 창출, 랜덤하고 더 나아가서는 세부묘사에서 드라이브코스(自駕游線路)를 스스로 구축해왔다. 더우기 새로운 언어조합속에서의 자률은 지극히 러브시(示好)한 이률배반속에서도 걸작(杰作)과 함께 항상 개혁이 동일시되여 왔었다는것을 누구나 쉬베 알수가 있다. 그리하여 그러한 미래지향적인 행보는 오늘도 조심스러울수밖에 없으며 또한 과감한 개혁의 리론과 그 기능을 불러오는 중요한 단서가 곧바로 시인의 더없이 정확한 의사전달로서 맨트(話語, 臺詞)가 필요없는 기획적인 자아도전과 저돌적인 돌파, 즉 새로운 시어창출과 함께 변화한 자신의 모습을 여러모로 독자들앞에서 검증받아야 하는 그런 데스트가 아닐가. 어쩌면 련작시의 서두이고 시작일지도 모르는 “설레임 1, 2”를 읽고나면 하이퍼시의 방향인 현실과 초월을 불쑥 머리속에 떠올리게 되며 데리다의 해체개념 가운데서 “모든 언어기호는 공간적대립과 시간적지연이라는 특성을 나타내기때문에 결국 현존이 아니라 흔적으로만 인식된다”는 그 말이 떠오른다. “설레임 1”의 “18층 빌딩에서/커다란 새 한마리가 뛰여내린다/콩크리트바닥과 만나 춤추는 피아노파편들” 중에서 “새”와 “피아노파편들”은 언어기호학적인 척도에서 살펴보면 마음의 흔적들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18층 빌딩”이라는 특정된 장소와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인격화를 완성하여 “명예란 공중루각이라고 소리친다”로 그 사상을 납함할수 있었던것 같다. 다음 “자판기우에서 혈흔들이 날뛴다/불바람이 어슬렁거린다/스마트폰이 사람들 얼굴을/뭉청뭉청 뜯어먹는다/머리 없는 그림자들이 활처럼 휘여졌다”에서 볼수 있는것은 그 어떤 외계인이나 괴물의 모습이 아니라 곧바로 과거와 현실을 외계인이나 괴물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의 실제 모습들이며 결국 삶의 울타리는 너무 좁아 “검은 새, 흰새들이 서로를 찾아 부르짖고”로 부딪치고 부대끼며 가끔 아우성치더라도 흩어지면 죽고 모여야만 살수 있음을 설파한듯 하다. “설레임 2” 역시 같은 도리로 “찢어진 기와”를 “물구나무 선 미소”로 인격화하면서 진보적인 사상, 즉 “만족한 빛/도망친 숨…”으로부터 민족적인 색채가 다분한 “백두의 큰 잔으로/동해물 푹 떠 음부(音符)에 뿌렸다”를 견인해내였으며 “먼지 낀 먼지가 빛속으로 사라지다/우주를 삼킨 우주가 점속으로 들어가다”로 세상사는 새옹지마와 같은것이며 우주마저도 작다면 결국 한개 점에 불과한것이다는 시인의 높은 경지를 종교도 철학도 아닌 사상과 령혼으로 지혜롭게 드러낸듯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정석으로, 또한 기초로 하여 단단히 밟고 더욱 높이 올라서려고 하는 기획적인 발전이지 결코 지극히 이률배반적이지는 않다는것이다. 그럼 우리 함께 김철호시인은 링크와 내트워크구축으로 어떻게 이미지즘을 완성해 가고있는가를 더 살펴보기로 하자. “뇌출혈 1”의 경우 “기적소리 들린다”는 환각장애인들의 병적인 심호흡을 간결함의 극치, 즉 기적소리로 표현하여 그 묘미를 더해주고있으며 “환승/탈선한 렬차/시골에서 불던 바람 도시로 왔다”로 더이상 안전지대가 없음을 하이브리드로 집결시킨듯 하다. “눈빛이 깊다/투명한 사유는 더 려과될것 없다”에서 살펴볼수 있는것은 삶의 우수(優愁)이다. “뇌출현 2” 역시 기적소리가 한수의 시로 바뀌였을뿐 의식과 무의식만이 아닌 감각, 초감각적으로 령혼이 부르는대로 따라 읽노라면 리해하는데 별다른 장애가 없을줄로 알고있다. 한수의 시로부터 시작하여 바람, 바다, 암수, 콩크리트, 피아노, 할망구, “흰머리카락들이 강선이 되여/땡땡 소리친다/음악이 나봐라 얼굴 내밀었다가/너 죽는다 주먹질이다”, “석간신문이 벽돌장이 되여/웃는 얼굴에 가 박힌다” 등은 기막힌 표현들이며 결구에서 “독자는 한명도 없다” 역시 시제 뇌출혈과 미묘한 입맞춤을 하면서 싱싱한 사람이라면 마주서기가 아연해지도록 머쓱하게 하였다. 시행은 박자와 강약의 음절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시인의 숨결로 이루어진다. 즉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나 내면세계와 외면세계가 구분이 없는 세계에서 약동하는 생명의 이미지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마무리하면서   이상으로 살펴본 김철호시인의 근작시 8수에서는 포스트모더니스트다운 시인의 더욱 적극적이고 더욱 화고해진 창작자세와 점점 맑은 령혼속에서 사상으로 무르익어가는 시인의 새로운 풍격, 품격, 그리고 아주 깔끔하게 새롭게 완성이 된 김철호주의의 피와 살, 얼과 넋이 하아얀 뼈짬으로 시퍼런 소금처럼 뚜렷이 보여줘 읽는이들로 하여금 더욱 감탄을 련발켜 하는듯싶다. 포스트모도니즘은 모더니즘을 부정하는것도 그렇다고 계승하는것도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비판한다는 모순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끝으로 김철호시인은 새로운 한해 더욱 큰 정진이 있으시길 기대해본다.   《도라지》2015년 제4기
727    토템문화와 조화세계 댓글:  조회:5061  추천:0  2015-09-29
    나사가 공개한 극과 극의 한반도 사진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신두(新都)구 천년구이후(千年桂湖) 공원에는 각각 120년, 400년, 500년 된 세 그루의 자등나무가 있다. 나무넝쿨이 자라 휘감기며 100m 길이의 자등나무 회랑을 만들어 절경을 이루었다. 이중 500년 된 나무는 명나라 시기 장원 양승암(楊升庵)이 직접 심은 것으로 알려졌다     “토템문화”와 조화세계            남영전 前 길림신문사 사장               前 장백산잡지사 사장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 3, 단군신화의 발상지 4, 토템은 씨족의 개념 5, 민족은 문화의 개념 6, 토템관념의 현실의의 7, 나오는 말           들어가는 말 필자의 짧은 글 《토템문화가 현대인류에게 주는 중요한 계시》가 2004년 10월부터 《문예보》, 《중국민족보》등 10여개 중국주류 간행물과 우리 말 간행물인 《문학과 예술》, 《도라지》와 한국의 문예지인 《문예시대》에 발표된 후 근간 몇 개월동안 우리 문단의 일부 지식인들이 이 글의 관련 내용에 대해 질의(質疑)가 있었다. 토템문화에 대한 관심과 흥취는 참으로 좋은 일이다. 본고는 상기의 짧은 글의 관련 내용에 대한 다소 상세한 담론이다.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   영국의 생물학자 다윈(達爾文)의 진화론이 발표된 후 인류의 기원과 이동에 관한 과제는 줄곧 국제과학연구계의 하나의 열점화제다. 현생 인류의 조상은 누구인가? 중국학계에는 두가지 주장이 있다. 하나는 아프리카 기원설이고 하나는 본토기원과 아프리카기원의 융합설이다. 융합설을 주장하는 인류학자의 증거는 주로 아래의 몇 가지다. 1929년 북경 주구점에서 발견된 50만년전의 북경원인 두개골은 아세아에서도 인류가 기원했다는 증거다. 1972년부터 하북 니하만(河北泥河灣)에서 구석기시기 인류유적 80여 개가 발굴되었는데 호두량유적(虎頭梁遺跡), 소장량유적(小長梁遺跡)은 몇 십만년, 심지어 200여 만년 전의 문화유적지로서 돌도끼, 돌망치 등 구석기(舊石器)가 출토되었다. 30여년의 연구로 전문가들은 이곳의 인류활동은 260만 년전부터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아프리카 대륙의 인류활동과 동일시기라고 한다. 그리고 역시 하북 울현(蔚縣)에서 300만 년 전의 석기를 발견했는데 이것은 아프리카에서 260만 년을 한계로 하는것에 대한 초월이라고 보고있다. 20세기 80년대 운남 원모지역에서 170만년 전의 원모인을 발굴할 때 석기도 함께 출토되여 학자들은 원모인을 “동방인”으로 이름을 지어주기에 이르렀다. 또한 중국에서 발견된 제 3빙천세기의 삼림고원(森林古猿), 녹풍고원(綠豊古猿), 상신원(上新猿), 강소성에서 발견된 4000만 년 전후의 고급 영장유화석 등은 아세아에서도 인류가 기원했다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2007년 4월 2일, 중국신화사통신은 중국과학원고척주동물 및 고인류연구소가 “중국인의 조상은 전부 아프리카에서 온 것만이 아니다”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이 연구소는 북경 주구점 유적지 서남쪽 6Km 거리의 전원동(田園洞)인류화석의 연구를 완성했는데 전원동인의 특징은 절대다수의 현대형 인류와 일치하다는것이다. 이것은 곧 아프리카현대형인이 중국의 고로형인을 대체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하였다.① 현생 인류가 어디에서 왔는가?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곤혹에 빠지게 하는 난제다. 이 난제를 풀기 위하여 세계 각국의 과학가들은 여러 가지 추리와 논증을 내놓았다. 1991년 9월, 오스트랄리아와 이탈리아 국경지대의 알프스 산맥에서 미이라 한 구가 발견되었다. 방사선 년대측정 결과 약 5천년 전의 시체로 판명됐지만 누군가 남미의 미이라를 옮겨다 알프스의 눈밑에 묻은 것이라는 조작론이 끊이지 않았다. 1995년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설인의 미트콘드리아 DNA를 분석한 결과 유럽인이 분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의 DNA는 현재의 유럽인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연구진은 나아가 영국 남부지방의 경영 컨설틴트인 마리 모슬리라는 녀인이 설인의 후손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런 결과들을 통해 DNA가 인류의 계보를 탐구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떠오르자, 20세기 90년대 후로부터 인류학자와 분자생물학자들은 전세계 민족들의 DNA를 수집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보통의 DNA는 세대가 지남에 따라 부모의 것들이 섞여 복잡하게 변하지만, 미토콘드리아와 Y염색체의 일부 유전자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미트콘드리아의 유전자는 어머니로부터, Y염색체는 아버지로부터만 물려받아 뒤섞임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어쩌다 돌연변이가 일어나 하나 둘 정도가 변할 뿐이다. 또 여러 민족간의 DNA의 유사성을 살피면, 가까운 친척인지 먼 친척인지 하는 “근연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사촌은 아버지대에서 육촌은 할아버지대에서 갈려나오듯, DNA가 많이 다른 두 민족은 더 먼 옛날에 관계가 끊어진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전체 민족간에 이런 근연관계를 파악하면, 종내에는 현생인류가 언제쯤 공동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는지를 알 수 있다는게 진화인류학자들의 생각이다. 인류기원연구프로젝트 총지휘인 미국의 스펜서 월즈의 저서 《인류전사(人類前史)》(동방출판사, 2006년판)는인류의 유전인자 보고서이다. 그의 보고에 따르면 오늘날 세계 각지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는 하나의 공동한 조상을 갖고 있는데 바로 6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한 남성이라는 것이다. 5만년 전 장시간에 걸려 가뭄과 기황이 지속되면서 그들 중 한무리가 고향을 떠나 모험적 이동을 시작, 수만년에 걸쳐 사람이 살만한 지구우의 거의 모든 것을 차지한다. 현재 지구상 모든 사람들은 지역에 따라 문화, 체형, 생김새, 피부색이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만 과학연구결과는 85%의 유전인자변이는 전반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며 약 8%만이 인종획분의 증거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서로 다른 인종의 차별은 8%에 그칠 뿐이라는 것이다. 인류는 공동한 생물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종에는 우렬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스펜서 월즈는 여러 나라 과학자들과 합동연구를 진행한 결과 화석으로 발견된 2백만년전의 오스트랄로피테구스나, 50만년 전의 북경인, 30만년 전의 네안데르탈인 등은 모두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현생 인류가 도착하기전에 멸종됐음을 밝혀냈다. 고고학의 고증으로 보면 조선반도에는 60만년전부터 인류가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생 인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스펜서 월즈는 조선민족은 약 4만년전 중앙 아시아에서 동으로 이동해와 형성된 것으로 최첨단 DNA분석 결과를 통해 밝히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발원한 현생 인류가 중앙 아시아 일대에 옮겨와 살다가 3-4만년 전에 갈라진 원주민 가운데 서북쪽으로 이동한 일파가 유라시아인종이 됐고 등으로 몽골을 지나간 일파는 중국 북부, 한국 등에 퍼졌으며 또 한 일파는 남쪽으로 해서 중국 남부와 동남아로 퍼졌다는 것이다. 유전적으로 한국인은 북방한족과 가장 가깝고 다음으로 일본, 몽골, 남방 한족순으로 가깝다는 것이 한국단국대 생물학과 김욱교수의 견해다. 한국 카돌릭대학의 한훈교수가 한국인과 여러 민족을 대상으로 항원을 검사한 결과 한국인들은 일본인, 미르마인, 인도 동북부의 소수민족, 운남성주민, 화북 한족, 동북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실험결과가 확인되었다.(2004년 5월 11일자 한국 연합뉴스)  필자가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접하게 된 시기는 1989년 5월 캐나다와 미국을 방문할때였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 한인 작가의 수필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여 신선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후 의도적으로 많은 자료들을 접했는데 한국에서 인류의 본토기원설을 주장하는 학자는 단 한사람도 없었으며 모두다 아프리카 기원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학계의 현실이었다. 중국학계에서는 미국, 영국, 호주, 인도네시아 등 외국 연구기구와 합작연구 결과 본토기원설로부터 아프리카 기원설을 수용하는 현상이 우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일부 본토기원설을 주장했던 학자들도 아프리카 이민설을 배제하지 않고 본토인류기원과의 융합을 주장하는데 도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류기원 연구에서 DNA의 측정방법은 현생인류는 아프리카, 아세아, 유럽, 미주 각 대륙에서 동시에 진화되었다는 상대이론(相對理論)을 흔들어 놓았고 아프리카 기원설을 수용하는것이 세계학계의 보편적인 추세다.     단군신화의 발상지 필자가 단군신화의 발상지가 돈황부근의 삼위산이란 말을 들게 된것은 지난 세기 90년대 초반 연변대학에서 개최된 한중문학심포지엄 때었다. 이번 심포지엄에 한국학자 10여 명이 참석했는데 한국 월간 문예사조사의 안수길선생이 한국측 주체발표자로 “동이족의 우월성”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단군신화와 관련되는 내용을 풀이하면서 “동이의 조상은 막고골로 유명한 돈황에 있는 삼위산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지금 막고굴 어구 좌측 ‘막구굴박물관’이 있는 삼위산의 몇 백메터 지하에 관심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인가 묻혀 있을 가망성은 있다”고 하였다.  단군신화의 발상지가 돈황의 삼위산? 나로서는 다소 어리둥절한 문제였다. 나의 상식으로는 단군신화의 발상지가 줄곧 조선반도였지 중국쪽으로는 생각조차 못한 일이였다.  1987년부터 1992년 세 번이나 조선을 방문하여 묘향산에 올라 단군굴의 전설을 들었기에 조선의 학자들은 단군신화발상지에 대해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63년 2월, 조선과학원 출판사에서 출판 발행한 리지린선생의 저서 《고조선연구》에는 이렇게 씌어있다.-- 조선 《고기》에 의하면 단군의 출생지는 《삼위태백(三危太伯)》이다. 이 《삼위태백》은 한 개의 지명이 아니라 삼위와 태백의 두 개의 지명을 결부시킨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동국여지승람》의 저자는 삼위태백을 황해도 구월산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설은 후세 사람들의 부회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삼위》라는 지명을 우리 나라 지리 문헌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태백산은 《삼국유사》에서 묘향산이라고 쓰고 있으나 이것은 후세의 부회된 명칭이며 고조선 국가형성시의 명칭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이다. 요컨대 삼위와 태백은 별개의 지명인데 후세의 불도들이 이 양자를 억지로 결부시킨것에 불과하다.  《삼위》란 지명은 중국 고대문헌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산이다. 그러면 이 삼위산이 어디 있는 산인가? 고힐강교수는 《우공평》의 삼위산의 위치를 고증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三危山,左傳昭公九年杜預汽說, 이하 략, 필자)이에 의하면 고대의 《삼위산》은 오늘 중국의 서쪽 맨 끝에 있는 산이라는 것은 확실하나 오늘의 어느 산인가는 불명확하다. 일본의 어떤 사가는 삼위산을 알타이산으로 비정하고있다. 일본 사가의 설은 부정확하기는 하나 삼위산이 대체로 알타이산과 련결되는 현 중국 서북방의 산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면 어찌하여 단군신화에 이러한 산이 관계되어 있는가? 이 문제를 고찰함에 있어서 우리는 단군신화의 가장 이른 기록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위서》에는 이 산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삼국유사》에 인용되어 있는 《고기》에 이 산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기》의 편찬자들이 《삼위》(三危)를 고대 중국의 유명한 산임을 모르고 썼다고 보기는 곤난하다. 진술한 바와 같이 기원 1세기로 낙랑사람들이 《서경》을 통달했다는것이 확증되니 고조선인들이 《삼위》가 《서경》에 보이는 산명임을 알았을 것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고기》의 편자들이 어찌하여 그 먼곳에 있는 산 이름을 단군신화와 결부시켰는가? 이것은 《고기》편자들의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사상의 표현이라고 지적할 근거는 없다. 그들은 단군을 고조선의 창건자로 인정한 것이며… 단군이 구체적 인물의 이름이 아닐진대 고조선족의 선조가 《삼위산》과 관련되고있었다는 것을 《고기》편자들이 인정했다고 볼수 있을것이다.... 단군신화에 《삼위산》이 관련되어 있는 사실은 주목하여야 할 문제로 남는다.② 45년 전에 조선의 학자 리지린선생이 단군신화의 발상지에 대해 이렇게 선명한 견해를 펴냈다는 것은 실로 그는 실사구시적이고 학문연구가 깊으며 양지가 있는 학자임을 말해준다. 돋보이는 학자가 아닐 수 없다.  리지린선생의 말마따나 단군신화에 《삼위산》이 관련되어있는 사실은 주목하여야 할 문제로 남았다. 이 몇 년간 한국의 학자들도 《삼위산》에 대해 관심을 돌리고 있다.  한국 효성여대 박은용교수는 30년전 일본 도꾜대 객원교수 시절 우여곡절 끝에 한자, 만족어, 몽골어, 아라미아어, 타밀어, 장족문자 등으로 된 청나라 건륭 28년(1763년)에 편찬된 지리서 《흠정서역동문지(欽定西域同文志)》를 입수했는데 이 고서에 “삼위”에 대한 기록을 인용하면서 “삼위산이 곧 천산이며 이를 백산이라고 한다고”하였다. 그는 “지금까지 ‘삼위태백(三危太伯)’이란 글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하지 못했던게 우리 학계의 실정이다.”면서 “우리 학계가 민족의 기원 신화에 나오는 ‘삼위’란 글자가 태백을 수식하는 관용어인지 별도의 지명인지에 대한 학술적인 규명도 못하고 있다”며 “천산 일대의 위글족 등과 우리 민족은 인종적, 언어풍속학적으로 유사점도 많아 역사, 언어, 문화인류학계의 연구가 뒤따라야 할것”이라고 견해를 피력하였다.③  한국상고사학회 회장 율곤 이중재선생은《신시개천경(神市開天經)》(원저 神志赫德)을 입수해 공개했는데 관련 원문에 “下視三危太白,三危山名,非今外興安嶺也,又非今文化九月山也,乃今甘肅界敦煌縣所在地三危山也,本黎苗祖盤古初降之地是也”(아래를 내려다보니 삼위태백이 보였다. 삼위란 산의 이름, 지금의 흥안령이 아니고, 지금의 문화구월산도 아니며 지금의 감숙성 경계이다. 이곳은 돈황현에 있는 삼위산이다. 본려 묘족의 조상 반고가 처음 내려왔던 땅이다.)라고 적혀 있는 것을 지적하고 나서 “三苗 三危山의 관계에 대해서는 堯典,山海經,愚責,韓非子,管子,呂氏春秋,呂刑,繆鳳林 등 많은 사서에서 밝히고있다”면서 “삼위산은 동북아 전체를 놓고 중국의 서쪽 감숙성의 삼위산 한 곳 밖에 없”는 이상 “‘삼국유사’의 환웅에 대한 기록에서 삼위산을 언급한 것은 함부로 넘겨 버릴수 없는 앞으로 우리 민족의 근원을 찾는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삼위산의 서북쪽엔 천산산맥이 있으며 우랄알타이 이족의 근거지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율곤선생은 이 지역을 《삼국유사》에서 말한 태백산 일대라고 보고 있다.  단군신화의 발상지를 놓고 한국 학계는 구월산설, 태백산설(묘향산), 백악산설이 있고 감숙 돈황 삼위산설이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새로 발견된 문헌자료와 고고학자료도 조선반도를 벗어나 중국의 요동, 요서, 산동, 하북, 산서, 섬서 등 지로 부단히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무엇 때문에 단군신화의 발상지가 이렇듯 범위가 넓어지고 복잡해지는가? 그 원인을 필자는 다음과 같이 귀납해보았다. 첫째, 단군신화 발상지에 관심을 가진 연구가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문헌자료와 고고학자료도 점점 더 확보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둘째, 단군신화의 유전범위가 넓고 영향력이 크며 그 때의 여타 씨족, 부족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셋째, “삼위태백”이 적혀 있는 일연의 《삼국유사》와 일연과 동시대인인 이승휴의 《제왕운기》의 내용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학자들의 이해와 해설이 각기 달라졌다.  상기의 현상을 보면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신화는 설화(說話)로서 사람들의 입을 통해 유전되고 또 기록을 통해 문헌에 남긴다.  사람과 더불어 이동하는 신화는 세대의 바뀜, 시대의 변천, 환경의 지배로 변화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신화의 흐름은 역사의 흐름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때문에 한 신화를 연구함에 있어서 그 신화의 탄생과 유전궤적을 통 털어 연구함이 타탕성을 가진다고 생각해 본다. 예를 들어 현존의 연구를 보면 단군굴이 있는 묘향산은 단군신화의 최후 정착지의 한곳일수 있다. 그런데 왜서 이곳을 단군신화의 최초의 발상지로 말하는가? 만약 틀렸다면 어디가 어떻게 틀렸는지 차분하게 연구하고 논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토템은 씨족의 개념 토템이란 용어가 언제 나왔는가?  현재 학계에서 보편적 인정을 받는 것은 1791년 영국의 상인 요한랑그의 저서 《번역원 겸 상인인 한 인디안인의 항해와 여행》인데 이 저서에서 미주 인디안어의 방언인 totem(토템)이란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학자 정원자는 1725년에 출판된 이탈리아 학자 비꼬(維柯)의 저서 《신과학》의 내용이 만약 주광잠(朱光潛)선생의 번역오차가 없다면 “토템”용어의 등장시간을 140여년 앞당길 수 있다고 하였다.④  토템의 정의는 무엇인가?  북미 인디안어의 방언 totem의 뜻은 “형제 자매 친척관계”다.  학계에서 토템에 대한 정의는 각이하다.  미국학자 모르간은 토템은 한 개 씨족의 표지 또는 도휘라 하였고 프레이저는 토템은 친척이며 조상이라 하였고 오지리학자 프로이드는 토템은 종족의 조상인 동시에 수호자라고 하였다. 토템의 정의, 혹은 토템의 내함 문제는 문화인류학, 종교학, 민족학, 민속학 등 학계의 뚜렷한 하나의 큰 과제다. 하지만 학자들이 토템에 대한 이해와 해설은 지금까지도 통일적인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실정이다.  필자가 공부를 하면서 토템은 전사시기 인류최초의 우주관이고 전사시기 인류의 제일 고로한 원시종교형식이란 것을 인식하였다. 원시인들은 자신들과 더불어 사는 동물, 식물과 천체를 영물이고 신이라고 믿었다. 자신의 조상의 탄생은 어느 동물이나 식물, 혹은 천체와 관계가 있다고 여겼는데 이 관계가 있는 물체는 곧 그들의 토템물로 숭배를 했다. 이렇듯 원시인들은 지(知)적과 지(智)적이 아닌 영(靈)적인 사유방식이었다. 때문에 원시인들은 조상의 탄생과 관련이 있는 물체를 친척으로 생각했고 조상으로 모셨으며, 또한 영물이고 신인 그들(토템)이 후대들인 자신을 보호해준다고 믿었다. 씨족사회에 와서 이러한 토템은 또 씨족과 씨족을 구분하는 표지 혹은 도휘로 되었다. 이렇게 상기 토템에 관한 각가지 설을 종합해놓으면 상대적으로 완정한 토템의 정의 혹은 내포가 아닐가 싶다. “토템” 두 글자의 본질, 혹은 핵심은 “친척”이라고 필자는 보고 있다. 하여 “토템”을 “친척”으로 바꾸어 말해도 전혀 문제가 될것이 없으며 더 쉽게 마음에 와 닿을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토템의 산생시기는 언제인가? 지금까지 발굴된 고고학의 증거는 토템의 산생시기는 지인(智人)시대인 25-20만년전이란 것을 말해 준다. 실제로 토템 의식의 발생시기는 이 년대보다 훨씬 더 이른 40만년전일것으로 추정하지만 아직까지 고고학적 발견이 없다는 이유로 이 설을 부정하는 학자도 있다.⑤  이렇듯 까마아득한 옛날에 발생한 토템은 인류의 진화, 발전과정에서 하나의 자연실체였고 또 하나의 문화실체였다. 자연실체로 말하면 토템은 신비로운 영적 힘이고 문화실체로 말하면 토템은 인성을 담은 현실적인 힘이다. 인류의 발전과정에서 토템의 작용은 무엇인가? 필자는 나름대로 다음 세가지가 특별히 중요하다고 본다.  첫째, 토템은 인류문화의 시원이다.  원시인들은 토템숭배를 했기에 자신이 살고 있는 동굴이나 암벽에 토템형상을 그리거나 새겼고 자신의 몸에 문신(紋身)을 하였으며 도자기에 토템물을 그려 구웠다. 이것이 곧 인류 최초의 미술의 탄생이다.  원시인들은 또 자신들이 숭배하는 토템동물을 잡아 고기를 먹고 배고픔을 달래면서 그 동물의 가죽과 뼈를 모아 놓고 둘러서서 참회, 혹은 양해를 구하는 모임을 가졌는데 그런 참회의 뜻을 높고 낮은 말의 음조로 표현하다보니 노래가 되었고 토템물의 동작을 모방하다보니 춤(무용)이 되었다. 이것이 곧 인류최초의 노래와 춤의 탄생이다.  토템물의 가죽과 뼈를 놓고 원시인들이 참회의 모임을 가졌다는 것은 그들은 이미 참회를 할 줄 아는 사유를 가졌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곧 철학적 사유의 탄생을 의미하며 이런 모임은 곧 하나의 제의(祭儀)로서 원시 종교의 탄생이 아닐 수 없다.  이로 보아 예술, 철학, 종교의 탄생은 토템숭배를 그 기원으로 하는것이다. 그래서 토템숭배는 인류문화의 시원(始原)이라고 한다.  둘째, 토템은 씨족사회의 헌법이다.  씨족사회보다 20만년 좌우 더 일찌기 발생한 토템숭배는 원시공사(原始公社)단계를 거쳐 4만년 전인 씨족사회에 와서는 씨족사회 성원들의 행동의 지침이 되었다. 한 토템을 숭배하는 씨족은 가까운 친적관계를 가진 한 집안이기에 서로 서로 보살피며 살아야 한다. 자신들의 토템은 그들의 친척이고 조상이고 그들을 보호해주는 수호신이기에 살해하지 말고 존경하고 숭배하여야 하며 그들의 거주지에는 어떤 형식으로 표시를 해놓는다. 한 토템씨족은 한집안이기에 통혼은 금기시되었다. 다른 토템씨족과 혼인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러한 규정과 금기는 실상 씨족사회의 헌법으로 그 위력이 대단하여 사회질서의 유지와 인류의 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하였다.  셋째, 토템은 성씨의 내원이다.  인류는 태어나자마자 성을 가진 것이 아니다. 원시 인류에게는 원래 성이란 부호가 없었다. 원시가족시대에 발생한 토템의 최후형태는 씨족사회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가족토템의 간단없는 확장과 더불어 씨족사회가 형성되었고 나아가 토템의 분화(分化)를 가져왔다. 때문에 동일한 부족내부에 하나의 토템이 아니라 여러 개의 토템을 가지는 현상이 불가피하게 나타났다. 토템이 씨족의 표지가 되면서 씨족성원들은 토템과 관련되는 성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들이 잘 알고있는 동의족의 시조 복희(伏羲)는 성이 풍(風)씨다. 문일다선생의 《복희고(伏羲考)》에 의하면 고대 번자체의 바람“風”자와 벌레 “蟲”자는 원래 한글자였다. 벌레“蟲”자는 뱀을 말하는데 풍씨는 뱀의 소생이라고 한다. 실지로 복희가 풍씨인것은 그의 토템이 뱀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또 우뢰신의 아들이라고 해서 우뢰도 그의 토템이 되여 그는 한쌍의 토템을 가진셈이다. ⑥ 부여(夫餘)는 역시 동이족의 한갈래로 소, 말, 돼지, 개, 닭, 양 등 육축을 토템으로 하였고 또한 토템을 관직의 칭호로 하였다. 그리고 흑룡강류역에 소호(少昊, 동이족)의 후예라고 불리우는 한무리는 개를 조상으로 모셔 구국(狗國)이란 나라가 생기기도 하였다.⑦현존사회에서 牛씨, 馬씨, 狗씨가 있고 鷄씨, 羊씨, 豬씨는 찾아볼수 없는데 이 鷄, 羊, 豬와 동일음인 姬, 楊, 朱 세개 성씨와 관련이 있지 않는가 하는 문제를 필자는 《부족문화와 선진문학》의 저자 이병해선생과 담론한적이 있었는데 그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그와 나의 똑같은 생각이었다. 황제(黃帝)는 토템이 곰이기에 그는 웅(熊)씨라고 불리웠다.  우리 민족성원과 토템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우리 민족도 씨족사회, 부족사회를 거쳐 지금의 조선민족으로 형성되였다. 토템이 씨족사회이전의 산생물이지만 씨족사회의 표지로 되었고 씨족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작용을 하였기에 우리 선조의 씨족, 부족사회에 토템이 없을수 없다.  문제는 씨족, 부족사회 때 매 개인의 숭배대상물이었던 토템이 민족이 형성되면서, 특히 사람들이 새로운 종교들 받아들이고 공업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토템숭배는 광채를 잃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아리숭한 옛날 이야기로 되었다는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4만년 전부터 흥성했던 토템숭배의 문화를 재현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고고학 발견, 고서의 기록, 신화전설은 우리가 선조들이 숭배했던 토템물을 얼마만이라도 찾을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준다.  씨족, 부족사회 때 토템숭배가 얼마나 흥성했는가 하는 것은 민속학자 우병안선생의 저서 《중국민속학》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호주에서 700개가 넘는 토템 표기를 발견했다. 한 부족내부의 각 씨족은 각기 부동한 토템표기를 가지고 있었다. 조사에 따르면 호주의 알란트(阿蘭特)부족과 놀리노(露裏惹)부족은 모두 442종의 토템을 가졌다.⑧ 상대적으로 과거가 잘 보존되어 있는 호주에서 한 부족내부에 이렇게 많은 토템물을 가졌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점이 적지 않다.  2만5천년전부터 현생 인류의 조상들이 조선반도로 이민왔다는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또 그 때 사람들은 틀림없이 씨족, 부족들의 성원이었기에 그들 각자의 토템물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고려 때 일연이 쓴 《삼국유사》가 조선민족의 최초의 고서라고 하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선조들이 실제로 숭배했던 토템물은 그들의 몸과 함께 땅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지금 우리가 능히 찾을 수 있는 것은 쌀에 뉘 찾기에 불과하다.  보통 조선민족은 동이족(씨족, 부족)의 후예라고 하는데 조선민족을 형성시킴에 있어서 동이족(씨족, 부족)이 주종을 이루었을수 있지만 여타 여러민족(씨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동이족(씨족, 부족)에 속하는 토템물은 어떤 것이 있는가? 이병해선생의 저서《부족문화와 선진문학》에 동이족(씨족, 부족)의 토템물이 거론되었다. 태양, 새, 뱀, 용, 여우, 닭, 개, 돼지, 양, 소, 말, 제비, 꿩, 봉황, 비둘기, 소리개, 뻐꾹새, 까치, 물고기, 수달, 사슴, 우뢰, 구름 등이 동이족(씨족, 부족)의 토템물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곰이나 범은 동이족(씨족, 부족)의 토템물이 아니라 황제(黃帝)를 대표로 하는 서북 고대민족의 토템물이었다. 우리 민족의 조상탄생신화로 믿는 《단군신화》에 곰과 범이 등장한 것은 우리 민족의 조상도 황제를 대표로 하는 서북 고대민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병해선생은 황제집단의 토템문화에 대해서는 선배학자들이 일찌기 연구를 시작했고 일정한 진전을 가져 왔지만 이 영역은 진일보 개척할 여지가 있고 허다한 문제는 다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 민족성원의 토템물을 연구할 때 반고(盤古)의 후예는 동이계통, 소호씨의 후예가 부여(夫餘),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으며 은나라의 왕실이 동이족, 진시황도 동이족, 그리고 여진(女眞)족도 후기의 동이계성원임을 념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인류사는 우리 민족도 여타 민족과 같이 여러 부동한 씨족, 부족의 융합체라는 것을 말해준다. 때문에 우리 민족의 조상들이 수많은 토템물을 가질수밖에 없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지금에 와서 학자들이 토템문화에 관심을 돌리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의 한국학중앙연구원 허흥식교수는 《단군신화와 동아시아 민족신화의 토템에서 범의 위상》이란 논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고대신화의 토템은 범, 곰, 사슴, 고니 등 야생동물 뿐 아니라, 해와 달과 북극성 등 천체를 내포한 천신이 있고, 말과 소, 돼지 등 가축과 산천과 바위와 고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과 무생물이 포함되었다. 이 가운데서 맹수인 곰과 범은 불교에 의해서도 소멸되지 않는 대표적인 토템이고, 그 가운데서 범은 곰보다 실제로 우세한 토템이었을 가능성이 크다.⑨  토템을 어떻게 찾는가? 선조들의 탄생신화는 우리가 토템을 찾는 근거로 된다. 토템물은 모체감응(母體感應), 입거(入居), 직접 선조들을 생육, 혹은 변한 동식물과 기타 객체 대상물이다. 그리고 선조들이 탄생할 때 필요한 전제조건, 혹은 도움이 되었던 물체도 토템과 무관하지 않다.  사례의 하나로 고주몽의 탄생신화가 전형적이다. 《위서》(魏書)의 기록에 의하면 주몽의 어머니 하백녀를 부여왕이 방안에 가두어 놓았다. 하루는 해빛이 하백녀의 몸을 비추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해빛을 피했지만 해의 그림자는 또 그녀를 따랐다. 그로하여 그녀는 곧 임신이 되었다. 그녀가 낳은 것은 알이었는데 크기가 다섯되나 되였다. 부여왕은 그것을 꺼리어 그 알을 개에게 던졌지만 개는 이 알을 먹지 않았다. 또 돼지에게 주었지만 돼지도 먹지 않았다. 또 길에 버렸지만 소와 말은 이 알을 피했다. 후에는 들판에 버렸는데 여러 새들이 날개로 이 알을 감싸주었다. 부여왕은 이 알을 쪼개려고 했지만 알은 쪼개지지를 않아 할 수 없이 이 알을 하백녀에게 돌려주었다. 하백녀는 이 알을 이불로 덮어 따뜻한 곳에 두었다. 한 남자애가 알에서 나왔다. 이 아이가 커서 고주몽으로 불리웠다.  고주몽의 탄생신화에서 보듯이 하백녀 류화는 해빛으로 인해 임신되였고 낳은 것이 알이었다. 여기에서 해빛(태양), 알(새)는 곧 고주몽의 토템이다. 그 시대 태양과 알은 다 둥글었기에 새와 태양을 다 동일시하였다. 그리고 이 신화에서 왜 개, 돼지, 소, 말 등 짐승들은 알을 해치지 않았고 여러 새들은 또 알을 보호해주었는가? 이들은 다 고주몽의 친척, 즉 토템이였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서 일연이 쓴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를 간추려 보자. 환인의 서자 환웅이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삼위 태백산정 신단수아래에 내렸다. 그는 풍백, 우사, 운사들로 하여금 인간세상의 3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게 하였다. 한 동굴에 사는 곰과 범이 환웅이 내린 신단수 아래에 가서 사람되기를 빌었다. 곰은 수련을 거쳐 사람으로 되였지만 범은 금기를 지키지 못했기에 념원을 이루지 못했다. 사람으로 된 웅녀는 또 신단수 아래에서 애기 갖기를 기원했다. 천신 환웅이 사람으로 변신해 웅녀와 혼인을 하였다. 그들이 낳은 아들이 단군 왕검이다. 일연과 동시대인인 이승휴의 《제왕운기》의 단군신화는 환인을 상제(上帝)라 하였고 환웅을 단웅(檀雄) 단수신(檀樹神)이라고 했으나 왕검은 그저 檀君이라고 지칭했다.  학계에서는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을 보편적으로 우리 민족의 토템으로 인정한다. 필자는 신단수, 범, 그리고 풍맥, 우사, 운사도 토템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단군 왕검의 탄생은 신단수와 깊은 인연이 있다. 환웅이 신단수 아래에 내렸고 곰이 신단수 아래에서 사람이 되기를 기원했으며 또 아기를 가지려고 빌었다. 그리고 이승휴의《제왕운기》에서 단수신(檀雄)의 아들을 단군(檀君)이라고도 함은 단군신화에서 신단수는 아버지 역할을 한 것이다. 곰과 범이 한 동굴에 살았다는 것은 곰토템씨족과 범토템씨족지간에 혼인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단군 왕검의 할아버지는 상제(上帝)라고 하는 하늘신이다. 하늘신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원시인들의 관념으로 하늘신이란 보이지 않고 감지할 수 없는 허무한 것이 아니다. 하늘신이란 해, 달, 별, 바람, 구름, 비, 우뢰 등 천체와 직결된 존재이다. 단군 왕검의 아버지가 천왕(天王)으로 불리우고 그가 풍백, 우사, 운사로 하여금 지상의 일을 주관하게 했다고 하는 것은 풍신, 우신, 운신 이 세 신과도 남이 아닌 한 집안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고대원시인들의 관념으로 바람, 비, 구름도 단군 왕검의 친척(토템)으로 보는 것은 부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신화, 왕비 알영의 탄생신화, 신라 석탈해왕의 탄생신화, 미추왕의 조상 김알지의 탄생신화, 고려시조 왕건의 조상에 관한 신화, 작제건의 안해에 관한 신화, 아달라 왕때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에 관한 신화들은 우리가 역사인물들의 토템을 찾는 근거로 된다. 백제왕 견훤의 탄생은 지렁이와 관련이 있는데 지렁이는 곧 견훤의 토템인것이다.  매개 성씨의 시조탄생이나 어떤 특정 인물의 탄생을 두고 왕왕 신화전설이 류전돼 왔는데 이런 신화전설속에 해당 인물의 토템이 내포되어 있는것이다.  중국, 조선, 한국 등 동남아의 여러 민족은 지금도 사람이 태어난 해의 띠(屬)를 가지는 풍속을 유지하는데 12개의 띠(12生肖), 즉 쥐, 소, 범,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는 모두 토템인 것이다.  중국 광주 해주구 관주가 륜두촌(廣州海珠區官州街侖頭村)에는 중화토템박물관과 중화성명박물관이 서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토템박물관에는 화하토템기원, 성씨토템, 가족토템, 띠(生肖)토템과 상표토템 천여건이 진렬되어 있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끄는 이 토템박물관에 전시된 토템자료는 우리 민족토템연구에 대해서도 큰 참고가치를 가지고있다.  한개 민족의 토템의 풍부함과 빈약함은 그 민족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신화에 의해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풍부한 신화를 보존하고 있는 민족은 토템물도 풍부하지만 신화가 없는 민족은 토템물도 빈약한 것이다.  용과 봉황이 분명 우리민족에게도 속하는 토템물이지만 학자들은 왕왕 이것을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민속전통으로 보면 우리민족은 용과 봉황에 대한 숭배는 대단하다. 남자들의 이름에 용자, 여자들의 이름에 봉자를 쓰는 빈도는 여타민족보다 높다. 주위를 돌아보면 남자는 김용, 박용, 이용, 용남, 성용, 명용, 복용, 억용, 운용, 금용, 용운 허다하며 여자는 봉자, 봉녀, 봉순, 봉선,봉옥, 봉화, 봉련 등 수두룩하다.  현, 당대에 와서 왕왕 한 개 민족에 한 개의 대표적인 토템을 내세우는 것은 토템이 가지고 있는 기발(旗幟)작용과 응집력 때문이다. 모든 국가들에 국기, 국가, 국회가 하나씩 있듯이 토템을 하나의 기치로 하기 위해서이다.  한개 민족의 형성과정을 보면 민족은 부동한 토템물을 가진 씨족, 부족의 집합체이다. 민족을 하나의 그릇으로 비유한다면 이 그릇 안에는 여러 씨족 부족 성원들이 담겨있다. 토템은 매개 씨족의 성원과 관계되는 물체로 개개인의 부호인 것이다. 때문에 토템은 어디까지나 씨족의 개념이지 민족의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민족사회에 와서 우리가 민족토템을 운운하는 것은 민족이 형성된 다음 씨족 부족이 사라졌기에 그 민족에 속하는 각 부족, 씨족들의 토템을 통털어 말하는 것이다.     민족은 문화의 개념 이 세상에는 원래 민족이란 개념과 단어가 없었다.  민족이란 인류발전의 산생물이다.  인류사를 보면 원시공동체사회로부터 가족사회, 씨족사회와 부족사회가 나타났으며 또 여러 씨족, 부족들의 끊임없는 융합과정에서 공동한 지역, 공동한 경제생활, 공동한 언어, 공동한 심리소질 이 네 가지 요소가 상호 작용하여 하나하나의 민족을 산생시켰다.  민족은 단일혈통의 집합체가 아니라 여러 부동한 혈통의 집합체로서 민족의 본질은 공유한 문화다.  조선민족도 여타 민족과 마찬가지로 단일 혈통의 민족일 수 없다.  한국 건국대학 정치외교학과 신복용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 민족은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형성되었을가? 정확하게 말한다면 우리 민족은 북방계와 남방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그 밖의 소수민족으로서는 내침족(來侵族)과 귀화인의 네 종족으로 이뤄지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유전자를 따져보면 적어도 35개이상의 혈통으로 이뤄져 있다. 태초에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태여난 이후 그들은 동이 트는 곳을 향해 한없이 이주를 하였다.”⑩  그러면 왜서 우리 민족을 하나의 혈통으로 보는 현상이 나타나는가? 한국 고려대학 정호영교수는 《민족공동체의 형성과 변화: 력사적, 이론적 접근》이란 논문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중요한 것은 민족은 실제로 같은 혈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렇다는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합”이라고 하였다. ⑪ “그렇다는 ‘믿음’”이란 문화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생물학적인 근거는 아니라는 뜻이다.  민족을 혈통으로 논의하는 현상에 대해 신복용교수는 이런 비판을 하였다. “현대 민족주의에서 이미 혈통은 대체로 부인되고 있으며 역사적 운명의 공유와 일체감, 그리고 언어의 통질성을 민족의 본질로 삼는 것이 지금의 추세인 점에서 보면 혈통이 같거나 다름은 민족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는 인순이도 할리도 주현미도 윤수일도 모두 우리가 보듬고 사는 세계화 시대인데 더 이상 내 피줄만을 따져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⑫  민족을 문화의 개념으로 보는 것은 민족개념의 본질, 핵심을 꿰뚫은 논리이지만 만약 민족을 혈통으로 논의한다면 오히려 민족의 정체성확보에 불리한 페단이 생긴다.  필자가 1989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그 당시 미국 본토에는 120만이요, 130만이요 하는 한국 이민이 살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한국인 이민 3세는 자신을 미국인이라고 생각하지 한국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국에는 우리 민족 학교가 없다. 이민 3세들이 받은 교육은 미국학교에서 받은 서양교육이고 그들 대부분은 우리 말을 모르는 후대들로 미국문화에 아주 푹 젖어 있다고 하였다. 한국인 이민 3세가 이러할진데 이들의 후대들은 어떠하겠는가? 후에 한국 방문시 또 이런 일이 있었다. 한 한국인 회사에 갔을 때 전형적인 한국인 생김새의 접대원 아가씨가 커피를 대접하면서 하는 한국말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옆에 있는 친구가 필자를 보고 이 아가씨가 어느 민족이겠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왔다. 실은 물음과 동시에 답안이 나온 것이다. 이 아가씨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석사과정까지 마친 한족 처녀였다. 만약 이 아가씨가 계속 한국인 직장에서 일하고 한국청년과 결혼한다면 그들의 후예는 물론, 지금 이 아가씨도 한국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주위로부터 종종 이런 현상을 목격한다. 우리 민족 후대들이지만 유치원 때부터 한족들의 교육을 받았기에 우리 말을 전혀 모르고 심지어 민족풍속과 예절을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한족들과 결혼한다. 그들의 후예를 어느 민족으로 보아야 하는가?  상기의 현상을 놓고 민족을 혈통으로 운운한다는 것은 이미 의의를 상실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우리들게 시사해주는 점이 있다. 실상 매개인의 민족신분은 자신이 어느 민족의 문화를 고수하는가 하는 문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후예라 할지라도 우리민족의 말을 못하고 풍속습관과 예의 범절 등 문화를 잃어 버린다면 그는 타민족이 되는것이고 타민족성원이지만 그가 우리민족문화를 받아들이고 고수한다면 그는 우리민족성원이 되는것이다. 그래서 민족성원은 고정불변하는것이 아니다.  글로벌시대라고 하는 현시대, 국제적인 인적교류가 날로 빈번해지는 현시대, 그리고 타민족과의 결혼, 국제 결혼이 점점 늘고있는 현시점, 한개 민족의 흥망성쇄는 혈통이 아니라 문화에 의해 결정되는것이다. 우리는 늘상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잘한다. “피”를 말함에 있어서 응당 “문화의 피”가 더 중요시 되어야 한다.  인류의 융합발전과 민족의 형상과정, 민족성원의 전이와 변화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토템문화가 현대인류에 주는 중요한 계시》란 글에서 이런 결론을 내리지 않을수 없었다.  네속에 내가 있고 내속에 네가 있는것이 인류사이고 민족사다.  민족은 문화의 개념이지 혈통의 개념이 아니다.  민족은 혈통으로 구분되는것이 아니라 문화로 구분된다.  혈통으로 말하면 각 민족은 모두 형제다.     토템관념의 현실의의 토템관념은 인간과 자연지간의 혈연관계, 인간과 인간지간의 혈연관계를 확인하는 관념으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지간의 조화를 이루는 관념이다.  민족전통문화의 정수는 바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천(天), 지(地), 인(人), 신(神) 합일의 사상이다.  하지만 인간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할수록 인간은 민족전통문화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인성을 상실하고 자아를 잃고 있다.  현대인류에 있어서 상기의 두 가지 조화를 이룩하느냐 않느냐는 인류의 생사존망과 직결되는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다.  오늘 날, 공업문명과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함과 더불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파괴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의 생존환경이 갈수록 렬악해지고 있다. 그에 따른 인간의 도덕성상실은 인간지간의 “랭담”을 초래하여 인간의 삶의 안정성마저 위협하고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인류의 삶의 터전인 지구를 놓고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지구도 살아 숨쉬고 희로애락이 있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이다. 지구는 지금 자신의 품속에 살고 있는 60억인구의 온갖 시달림을 받고 있다. 지구는 자신의 몸우에 수풀처럼 일떠선 무수한 콩크리트 건축물과 공장으로 인해 숨쉬기도 가쁘다. 몸속으로 파고드는 지하철, 지하축조물과 각종 광산의 개발로 기막힌 상처를 입고 있다. 또한 온몸에 들씌운 오염물로 만신창이 되었다. 지구는 앓고있고 신음하고 있고 몸부림 치고 있다. 그래서 무서운 광풍이 자주 오고 홍수가 자주 오고 지진이 자주 와서 무수한 사람들이 생명을 앗아가고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자연현상이라고 말할뿐 그 책임을 자신으로부터 찾지 않는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60억 인구는 모두 지구란 이 거대한 어머니가 낳아키운 형제자매다. 하지만 국가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종교가 다름을 이유로 각자의 리익과 목표를 위해 매일매시각 서로 각축전을 벌리고 있다. 현대전쟁에 있어서는 승자도 결국은 패자다. 한순간 승리자이지만 전쟁으로 인한 생태파괴와 패자의 반발과 복수가 가져다주는 악과는 패자의 손실과 다름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쌍롱과 팔레스티나의 알라파트는 천년 전에 한 할아버지를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두 개의 국가, 두개의 종교로 나누어지면서 서로 죽기내기로 싸웠다. 결과 그들 둘은 서로 다 크게 다치고 말았다. 만약 그들의 할아버지가 하늘에서 눈을 뜨고 천년후의 두 손자를 굽어본다면 그 감회가 어떠하겠는가?  인류의 삶의 터전인 이 지구는 무수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생물 고고학가의 화석발견에 의하면 나이가 50억년인 이 지구에는 현생인류이전에도 수차례 인류의 발생과 멸망이 거듭되었다고 한다. 인구의 대폭팔, 생태균형의 파괴, 자원의 고갈, 핵전쟁은 인류멸망의 원인이 될수 있다. 몇백만년 혹은 몇천만년후, 지구상의 생존조건이 회복될 때 인류는 다시 태어나서 원시사회, 노예사회, 봉건사회 등 단계를 거쳐 또 고도의 문명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⑬  현생 인류가 지구에서 생존하려면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계선, 인간지간의 관계 계선이 유일한 길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자연이 조화적인 관계를 이루고 인간과 인간이 조화적 관계를 이루는 길만이 현생 인류의 살 길이다.  현대인들의 이러한 실정을 감안하여 서방철학가들은 문제해결의 희망을 토템관념회복에 걸면서 새로운 사회질서구축을 호소하고있다.     나오는 말 세계 최초의 토템문화연구는 1791년에 시작되었고 19세기 하반기부터 20세기 상반기까지 서방학계에서는 토템문화연구 열조가 일어났다. 중국에서 맨처음 토템문화를 연구한 사람은 엄복(厳複)선생이다. 1903년 그가 번역한 《사회통전(社會通詮)》이란 책에서 처음으로 “totem”을 “図騰”으로 번역한 후 “토템”이란 단어가 있게 되었다. 엄복선생 이후 곽말약, 문일다 등 학자들도 토템을 연구하였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토템연구는 그닥 활발하게 진행되지는 못했다. 근간에 《용토템》, 《곰토템》 등 연구저서들이 출판되고 신화학학술토론회를 가지는 등 일은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문제점도 없지 않다.  필자는  시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서 지난 세기 80년대 중반부터 토템문화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여러 가지 자료들을 찾아 읽으면서 이른 바 “토템문화”의 진수를 터득하기 위해 힘써 왔다.  안타까웠던 것은 지금까지도 우리 민족에게는 우리 민족의 토템문화를 론한 체계적인 전문저서가 없다는 것이다. 몇몇 학자들의 토템관련 론문이 간혹 눈에 띄이지만 체계적이고 계통적인 연구와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는 타민족학자와 국외 학자들의 연구성과를 흡수하면서 나름대로 진위를 판단하고 우리 민족신화와 토템물에 접근하였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모종 의미에서 말한다면 한 이론의 생명력의 강약은 이 이론이 역사의 약점을 얼마나 극복했는가를 보는 것이고 또 무형중 후세 사람들이 초월하여 재구축할 수 있는 약점을 얼마나 묻어두었는가를 보는 것이다. 약점은 창조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어차피 민족토템문화에 대한 연구는 학계의 중요한 과제가 아닐수 없다. 여러 학자들이 관심을 돌리면 연구는 활성화 될 것이다. 우리 학계에 토템문화연구붐이 일어날것을 희망하면서 졸문에 대한 기탄없는 비평을 기대한다. =============================================================== 1) 《신문화보》2007년 4월 3일.  2) 리지린 저 《고조선연구》조선과학원출판사, 1963년 2월, P119-121. 3) 2002년 3월 21일자 한국 대구 《매일신문》 4) 이원저 저《토템미학과 현대인류》,학림출판사, 1992년 3월 제1판, P27-28, P21-23. 5) 위와 같음.  6) 이병해 저 《부족문화와 선진문학》,고등교육출판사, 1995년 11월, 제1판, P87, P135.  7) 위와 같음.  8) 우병안 저《중국민속학》,료녕대학출판사, 1985년 8월 제1판, P263.  9) 허흥식 “단군신화와 동아시아 민족신화의 토템에서의 범의 위상”《만주 북방 민족의 요람》, 만주학회 제11차 학술대회 발표 논문집, 2005년 9월 2일, P70-76.  10) 신복용《한국인은 단일민족이 아니다》, 2001년 5월 8일자 료녕조선문보.  11) 정호영《민족공동체의 형성과 변화: 력사적, 이론적 접근》  12) 신복용《한국인은 단일민족이 아니다》  13) 곽패명 편저《풀리지 않은 인류의 수수께끼》(人類未解之謎), 길림문사출판사, 2004년 12월 P17-24.  --(태평무 주필, 민족출판사, 2008년 9월 출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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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2월 01일 10시 03분 ]     사천성 몸무게 395kg(부부의 합산한 몸무게) = 임신 못해... ============================================== [ 2015년 11월 30일 08시 50분 ]     =========================================================   조향(趙鄕) 시인의 시,         /에스뀌스   ESQUISSE                                 ―조향(趙鄕)               1 눈을 감으며. SUNA는 내 손을 찾는다. 손을 사뿐 포개어 본다. 따스한 것이. ―――― 그저 그런 거예요! ―――― 뭐가? ―――― 세상이. SUNA의 이마가 하아얗다. 넓다.              2 SUNA의. 눈망울엔. 내 잃어버린 호수가 있다. 백조가 한 마리. 내 그 날의 산맥을 넘는다.              3 가느다랗게. 스물다섯 살이 한숨을 한다. ―――― 또 나일 한 살 더 먹었어요! SUNA는 다시 눈을 감고. ―――― 그저 그런 거예요! 아미에 하얀 수심이 어린다.                 4 ―――― 속치마 바람인데.…… ―――― 돌아서 줄까? ―――― 응! 유리창 너머 찬 하늘이 내 이마에 차다.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됐어요.                 5 SUNA가 화장을 한다. ―――― 화장도 예술 아녜요? SUNA의 어깨 넘으로 내 얼굴이 쏘옥 돋아난다. 나란히 나와 SUNA의 얼굴이. 거울 안에서. ―――― 꼭 아버지와 딸 같아요.              6 SUNA의 하얀 모가지에 목걸이. 목걸이에 예쁜 노란 열쇠가 달려 있다. ―――― 이걸로 당신의 비밀을 열어 보겠어요.              7 STEFANO의 목청에 취하면서. 눈으로 SUNA를 만져 본다. 오랜 동안. ―――― 왜 그렇게 빤히 보세요? ―――― 이뻐서. ―――― 그저 그런 거예요!              8 나의 SUNA와 헤어진다. 까아만 밤 ․ 거리 . 택시 프론트 그라스에 마구 달겨드는. 진눈깨비 같은 나비떼 같은. 내 허망의 쪼각 쪼각들. 앙가슴에 마구 받아 안으며. SUNA의 눈망울이. 검은 하늘에 참은 많이 박혀 있다. 깜박인다. 「그저 그런 거예요」                自由文學, 4월호(1960년) *조향(趙鄕)전집 1994년 간행(刊行).          [출처] 시인 조향(趙鄕)의 시 (그의 시는 내게 혁명, 그 이상이었다)|작성자 banyantree 조향 시비 부산 용두산 공원 내에 있는 시인 조향의 시비, 작품 중 "에피소드" 각석되어 있다.     검은 전설   조향     하얀 종이 조각처럼 밝은 너의 오전의 공백(空白)에서 내가 그즘 잠시를 놀았더니라 허겁지겁 하얀 층층계를 올라버린 다음 또아리빛 달을 너와 나는 의좋게 나눠 먹었지 옛날에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고대(古代)의 원주(圓柱)가 늘어선 여기 내 주름 잡힌 반생을 낭독하는 청승맞은 소리 밤이 까아만 비로오드의 기침을 또박또박 흘리면서 내 곁에 서 있고 진흙빛 말갈(靺鞨)의 바람이 설레는 하늘엔 전갈이 따악들 붙여 있다 참새 발자국 모양한 글자들이 마구 찍혀 있는 어느 황토 빛 영토의 변두리에서 검은 나비는 맴을 돌고 아으 다롱디리! 안타까비의 포복(匍匐)이 너의 나의 육체에 의상(衣裳)처럼 화려하구나 나는 골고다의 스산한 언덕에서 마지막 피를 흘린다 나의 손바닥에서 하얀 네가 멸형(滅形)하고 나면 물보라 치는 나의 시커먼 종점에서 앙상하게 걸려 있는 세월의 갈비뼈 사이로 레테의 강물이 흐른다 나는 검은 수선꽃을 건져 든다 쌕스폰처럼 흰 팔을 흔드는 것은 누굴까! 팔목에 까만 시계줄이 감겨 있다 인공위성 이야길 주고 받으면서 으슥한 골목길로 피해 가는 소년들의 뒤를 밟아 가니까 볼이 옴폭 파인 아낙네들이 누더기처럼 웃고 섰다 병든 풍금이 언제나 목쉰 소리로 오후의 교정을 괴롭히던 국민학교가 서 있는 마을에 아침마다 파아란 우유차를 끌고 오던 늙은이는 지금은 없다 바알간 석양 비스듬히 십자가 교회당 하얀 꼬리를 흔들면서 지나가는 바람결에 항가리아 소녀 탱크에 깔려 간 소녀들의 프란네르 치맛자락이 명멸한다 소롯한 것이 있다 아쉬운 것이 있다 내 어두운 마음의 갤러리에 불을 밝히러 너는 온다 지도를 펴 놓고 이 논샤란스의 지구의 레이아웃(layout)를 가만히 생각해 보자 내일이면 늦으리 눈이 자꾸 쌓인다.       작가 : 조향(1917-1984) 본명 섭제(燮濟). 경남 사천 출생. 일본에 유학, 니혼[日本]대 상경과 수학. 유학중 반일사상의 혐의를 받고 일경에 체포. 194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첫날밤」이 당선되어 등단. 광복 후 마산상고 재직시에 『노만파』를 주재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고, 이어 부산에서 『후반기』 동인으로 참가했으며 한편 『가이거』, 『일요문학』등의 동인지 주재. 동아대 문리대학장 명지대 강사 등을 역임.   그는 시에 외래어를 대담하게 도입하고, 산문적․설명적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면서, 상상의 영역에 절대적 자유를 부여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의식의 심상을 발굴한 후 그것들을 비약․충돌하게 하는 초현실주의적 시풍을 우리 현대시에 실험한 대표적 시인이다.   생전에 시집을 남기지 않았다.     < 감상의 길잡이 >   조향은 기성의 문학적 질서와 권위를 철저히 부정하고 새로운 작품의 창작을 선언한 동인의 일원이다. 전후세대 시인들의, 전세대의 암울하고 상투적인 문학에서 벗어나 1950년대 즉 20세기의 후반기 문학을 선도한다는 선언과 함께 시작된 동인의 시에서도 역시 식민지 시대의 암울과 해방공간의 혼란, 전쟁의 참혹한 기억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시는 일몰 시간에 일어나는 사물의 변화와 화자의 심경의 변화가 검은색을 주조로 하여 암울하게 묘사되어 있다. `까아만 비로오드', `진흙빛 말갈', `검은 나비', `시커먼 종점', `검은 수선꽃', `까만 시곗줄', `어두운 마음' 등의 검은색이 당시의 음울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오전의 공백(空白)'이 `바알간 석양'으로 바뀌는 저녁 나절에 깃든 것은 마치 `골고다의 스산한 언덕'과 같은 스산함이며 `마지막 피'가 연상시키는 절망과 희생뿐이다. 멀리 `항가리아'에서 소녀들이 `탱크에 깔려 간'다는 절망적인 소식이 전해지는 `지구'와 `내일'에 대한 불길한 상상과 묘사가 이 시의 주제이다.   `내일이면 늦'을듯이 눈이 자꾸 쌓이는 암담한 석양 풍경이 곧 화자의 내면풍경일 것이다. 시간의 흐름은 `레테의 강물'로 흐르면서 망각을 일으키고, 이러한 망각의 흐름 속에서 시간과 인생이란 `잠시 놀았'다가 `허겁지겁' 석양이 되는 해의 모습처럼 늘 조급하고 무의미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시간에 화자는 `지구의 레이아웃' 즉 `지도'를 펴놓고 우울한 미래와 같은 `검은 전설'을 예감하고 있다.   시인이 검은 색과 우울한 풍경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인간성과 일상의 평화가 존재 조건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폐허 의식으로 확대되는 도시 풍경일 것이다. 전후의 세상이란 시민들의 합창이 가득한 새로운 도시를 꿈꾸었던 젊은 시인들도 벗어나기 힘든 마치 늪과 같은 침체이며 우울이었음을 우리는 이 시를 통해 느껴볼 수 있다.              ///[해설: 이상숙]   [출처]  모더니즘 시인조향에 대하여|작성자 유목의꿈       조향(趙鄕 1917.12.9~1985.7.12) 시인     1917년 경남 사천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섭제(燮濟). 시인 봉제(鳳濟)는 그의 동생이다. 진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대구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한 뒤, 1941년 일본대학 상경과를 중퇴했다. 8·15해방 후 마산상업고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노만파 魯漫派〉를 주재했다. 이어 동아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가이거 Geiger〉·〈일요문학〉 등을 주재했고 모더니즘 시를 내세웠던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했다. 1953년 국어국문학회 상임위원과 현대문학연구회 회장, 1974년 한국초현실주의 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1941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시 〈첫날밤〉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뒤, 〈Sara de Espera〉(문화세계, 1953. 8)·〈녹색의 지층〉(자유문학, 1956. 5)·〈검은 신화〉(문학예술, 1956. 12)·〈바다의 층계〉(신문예, 1958. 10)·〈장미와 수녀의 오브제〉(현대문학, 1958. 12) 등을 발표했다. 특히 〈바다의 층계〉는 낯설고 이질적인 사물들을 통해 바다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읊은 작품이다. 평론으로 〈시의 감각성〉(문학, 1950. 6)·〈20세기의 문예사조〉(사상, 1952. 8~12)·〈DADA 운동의 회고〉(신호문학, 1958. 5) 등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현대국문학수 現代國文學粹』·『고전문학수 古典文學粹』 등을 펴냈다.             전후 실험적 글쓰기와 초현실주의 시학                    -조향論 ​       조향 시인은 20세기를 살다간 부산의 문학인으로 초현실주의를 통한 실험적 시세계의 구축에 몰두한 시인이었다. 그는 괴팍하고 유별난 성격으로 인해 문단의 독불장군으로 평생을 살았지만 시인이자 평론가로서 50~60년대 한국 초현실주의를 주도해 나갔던 문학인이었다. 그는 부산 문학인임에도 불구하고 부산에서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현재까지도 그에 대한 문학사적 연구는 아주 미미한 편이다.     조향은 1917년 경상남도 사천군 곤양면에서 출생했다. 그의 본명은 섭제(燮濟)였고, 그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고 자란 까닭으로 인해 모국어보다 일본어에 능통했으며, 그런 이유로 해방 전부터 시작활동을 한 그는 한국 문단보다는 해방 전부터 이미 「일본 시단」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41년「초야」이라는 시가『매일신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한 조향은 진주고보를 졸업하고 대구사범 강습과를 거쳐, 일본 니혼(日本)대 상경과에 다니던 중 반일(反日)사상의 혐의를 받고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대학을 중퇴한 뒤 귀국했다. 8․15광복 후에는 마산상업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며, 시동인지 『노만파(魯漫派)』를 주재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고, 전후 부산에서 박인환이 주도하던『후반기』 동인으로도 참가하였다.     조향의 삶은 세 단계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940~1949년은 전기에 해당하는 시기로써, 그는 이 시기에 초등학교 교사와 교감, 그리고 동아대 강사 등으로 활동하였고, 그 후 6년간 도일(渡日)을 하기도 하였고, 잦은 스캔들로 인해 사회적 물의를 빚고 좌천을 당하기도 했다.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 「초야」를 정점으로 한 이 시기의 시들은 주로 연애 시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시들은 혼돈과 절망의 내면세계를 표출하고 있으며, 시각적이고 회화적인 이미지를 통한 강렬하고 서정적인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중  기에 해당하는 1950~1965년 사이에, 조향은 부산에 정착하여「後半紀」동인과 전위극단「藝術小劇場」의 대표를 맡아 활동하였고,「gamma」 동인회 대표 등으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또한 부산 문총 지부 대표위원, 한국대학야구연맹 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문학 외적인 활동에도 정열을 쏟았다. 특히 이 시기는 그가 초현실주의에 대한 이론을 열정적으로 탐구한 때였고, 그로 인해 39편이라는 시를 쓰게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는 그의 시적 열정이 최고도에 달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중기에 쓴 조향의 시들은 6․25 전쟁 영향으로 인한 부조리하고 절망적인 인식과 실존주의적 내면의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전쟁으로 인한 실존적 불안의식은 검은 색 이미지로, 인간 구원으로서의 여성성의 추구는 흰색 이미지로 표출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연애 시는 에로티시즘의 세계로 전환되고, 에로스적 행위는 신비주의의 이미지를 띤 구체성으로 형상화된다. 이러한 형상화 속에는 두 가지의 병리적 현상인 사디즘과 마조히즘적 징후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들은 기존의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는 것이었음으로 그의 실험적 의도와는 달리 그의 시는 독자나 문단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후  기에 해당하는 1968~1984년의 시기에, 그는 동아대 교수직을 사임하고 1966년 서울로 이주하였다. 그 이후부터 그는 MBC 문화부분 해설위원, 명지대 강사, 연구 동인회인 「초현실주의연구회」에서 적극 활동하면서 문학 외적인 삶에 치중하게 되었다. 이 시기 3년간 그는 단 한 편의 작품도 발표하지 않았으며,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그는 새로운 시세계의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후  기에 해당하는 1968년부터 작고하던 1984년까지의 시기는 그의 시세계의 완숙기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그는 약 25편의 시를 썼는데, 이 작품들은 기존의 에로티시즘적 성향을 탈피하여 다소 밀교적 징후를 표출하였다. 더불어 실험적 시도인 ‘CINE POEM’과 ‘Intermedia’라고 명명한 시 작품들은 영화와 시를 접목시키려는 그의 실험정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이는 그의 정열적인 탐구와 모색의 결정물이며, 끊임없는 실험정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조향은 기성문학의 질서와 권위를 타파며, 20세기의 후반기 문학을 선도한다는 야심찬 신세대 그룹인 『후반기』 동인에 적극 참가하였다. 그러나 그는 전후세대 시인들의 한 특질인 허무주주의 시세계에서 탈피하여 외래어의 도입, 산문적․설명적 요소의 철저한 배격, 무의식과 상상 영역의 절대적 자율성 등을 주장하며, 무의식의 세계라는 전후 시문학의 독보적인 시세계를 펼쳐 보였다. 특히 그는 「장미와 수녀의 오브제」(1958) 「바다의 층계」(1958) 등의 시를 통해 무의식과 상상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초현실주의적이고 실험적 시세계를 표출하였다.     이러한 실험적 글쓰기와 초현실주의의 지향의식은 조향이 44년 동안 줄곧 견지해온 하나의 시적 방법론이었으며, 한국 시단의 초현실주의를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일제 식민지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의 온갖 수모를 겪은 당시 문학인들의 의식은 한국인으로 태어나서도 모국어를 쓸 줄 모르는 척박한 현실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갈등과 혼란의 상황을 연출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해방 후 모국어보다 일본어에 능통한 현실의 한계 상황을 직시하면서 한글로 글을 써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조향의 초현실주의의 창작 기법은 그의 암울한 내면의식을 시 속에 투영시켜 구체화하는 과정의 주요한 방법론이었다. 등단 이후부터 세상을 뜨기 전까지 그는 110 여 편의 시를 발표했지만, 단 한 권의 시집이나 평론집도 발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시론과 시의 일치를 위해 부단한 노력과 탐구, 그리고 모색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발표한 시론인 「시의 감각성」,「10세기 문예사조」(1952), 「현대시론」(1961) 등은 그 자신만의 고유하고 새로운 문학의 추구의 결정물이며, 『가이거(Geiger)』(1956), 『일요문학』(1962) 등의 동인지를 통한 활발한 문단 활동은 그에 대한 문학사적 재조명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중요한 이력이다.     조향의 전기적 고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례는 ‘거침없는 연애론자’, ‘고독한 별’, ‘여교수와 팔짱끼고 광복동 거리 활보하기’, ‘문단에서의 냉대’, ‘쓸쓸한 말년’, ‘장례식 때 젊은 여교사가 관 붙들기도 한 사건’ 등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향의 연애론은 그의 시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초현실주의적인 것이었다. 사랑은 위선을 버리고 투명하고 당당하게 초현실주의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적 신념 또한 그의 연애론과 마찬가지로 ‘극우’에 가까울 만큼 정열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열정은 5․16 이후 맡은 민족 계몽위원회장의 일을 하면서, 당시 부산의 저명한 문인 몇몇에게 "육체적,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겨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 1966년 그는 서울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조향의 실험적 글쓰기와 초현실주의에 대한 탐구와 모색이 어떻게 그의 시 작품에서 형상화되고 내면화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하얀 종이 조각처럼 밝은 너의 오전의 공백(空白)에서 내가 그 즘 잠시를 놀았더니라 허겁지겁 하얀 층층계를 올라버린 다음 또아리빛 달을 너와 나는 의좋게 나눠 먹었지 옛날에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고대(古代)의 원주(圓柱)가 늘어선 여기 내 주름 잡힌 반생을 낭독하는 청승맞은 소리 밤이 까아만 비로오드의 기침을 또박또박 흘리면서 내 곁에 서 있고 진흙 빛 말갈(靺鞨)의 바람이 설레는 하늘엔 전갈이 따악들 붙여 있다 참새 발자국 모양 한 글자들이 마구 찍혀 있는 어느 황토 빛 영토의 변두리에서 검은 나비는 맴을 돌고 아으 다롱디리! 안타까비의 포복(匍匐)이 너의 나의 육체에 의상(衣裳)처럼 화려하구나 나는 골고다의 스산한 언덕에서 마지막 피를 흘린다 나의 손바닥에서 하얀 네가 멸형(滅形)하고 나면 물보라 치는 나의 시커먼 종점에서 앙상하게 걸려 있는 세월의 갈비뼈 사이로 레테의 강물이 흐른다 나는 검은 수선 꽃을 건져 든다 쌕스폰처럼 흰 팔을 흔드는 것은 누굴까! 팔목에 까만 시계줄이 감겨 있다 인공위성 이야길 주고받으면서 으슥한 골목길로 피해 가는 소년들의 뒤를 밟아 가니까 볼이 옴폭 파인 아낙네들이 누더기처럼 웃고 섰다 병든 풍금이 언제나 목쉰 소리로 오후의 교정을 괴롭히던 국민학교가 서 있는 마을에 아침마다 파아란 우유차를 끌고 오던 늙은이는 지금은 없다 바알간 석양 비스듬히 십자가 교회당 하얀 꼬리를 흔들면서 지나가는 바람결에 항가리아 소녀 탱크에 깔려 간 소녀들의 프란네르 치맛자락이 명멸한다 소롯한 것이 있다 아쉬운 것이 있다 내 어두운 마음의 갤러리에 불을 밝히러 너는 온다 지도를 펴 놓고 이 논샤란스의 지구의 레이아웃(layout)를 가만히 생각해 보자 내일이면 늦으리 눈이 자꾸 쌓인다. - 조향,「검은 전실」전문,『조향 전집 1』, 열음사, 1994.      이 시는 전후의 일몰 풍경을 검은 색의 이미지에 투영시켜 시인의 암울한 내면세계를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까아만 비로오드”, “검은 나비”, “검은 수선 꽃”, “까만 시곗줄”, “어두운 마음” 등의 검은 색조의 이미지는 전후의 절망적인 분위기를 한층 부각시키는 이미지로 환기되고 있다. 또한 “오전의 공백(空白)”이 “바알간 석양”으로 전환되는 저녁의 풍경은 “골고다의 스산한 언덕”, “까아만 비로오드의 기침”, “진흙 빛 말갈(靺鞨)의 바람이 설레는 하늘”, “안타까비의 포복(匍匐)”, “레테의 강물”, “으슥한 골목길”, “항가리아 소녀 탱크에 깔려 간 소녀들의 프란네르 치맛자락”, “이 논샤란스의 지구의 레이아웃(layout)” 같은 암울한 죽음을 상징하는 이미지와 심층적 메타포로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죽음’의 메타포는 “나는 골고다의 스산한 언덕에서 마지막 피를 흘린다”라는 구절이 암시하듯이 시인은 자신을 ‘예수’로 치환시키며 자신의 “손바닥에서 하얀 네가 멸형(滅形)”하고 있다는 시구를 탄생시킨다. 또한 그의 “마지막 피”는 지옥과 연옥의 사이에 흐르는 “레테의 강물”로 흘러들어, “항가리아 소녀”들이 “탱크에 깔려“가는 절망적인 풍경과 합쳐지면서 불행한 ”지구“'와 불모의 ”내일“로 변주되고 있다.     따라서 첫 행의 “밝은 너의 오전의 공백(空白)”은 죽음의 이미지인 “검은 나비”, “시커먼 종점”, “병든 풍금”, “십자가” 등의 의미의 치환으로 점층적으로 발전하며, 그것은 또 다시 “자꾸 눈이 쌓인다”라는 시구를 통해 참담하고 절망적인 시인의 내면의식의 구체성을 획득하게 해준다. 이 시에 나타나는 “너”는 사랑하는 대상일 수도 있고 어떤 이상적인 존재, 혹은 신적인 존재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시에 나타나는 죽음의식은 개별자로서의 시인의 의식뿐만 아니라 민족 공동체로서의 시의식의 표출로서 표상된다.     그러므로 시인은 “내일이면 늦으리”라는 전언을 통해 망각의 강인 “레테의 강”이 암시하는 ‘죽음’으로 흐르는 현존재의 시간의식을 망각하지 말자고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망각은 검은 색의 이미지로 대변되는 ‘죽음’을 부르고 “검은 전설”을 각인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인은 망각의 강을 흐르는 현존재에게 주어진 시간과 삶을 “잠시 놀”다가 “허겁지겁” 석양으로 화하는 태양의 모습처럼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 말고 “내 어두운 마음의 갤러리에 불을 밝히러” 올 이상적인 ‘너’를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 나타난 도시 풍경은 시인의 내면의식을 대표하는 검은 색과 우울의 이미지로 표출되고 있으며,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 된 인간성과 평화에 대한 근원적인 본래성은 검은 색조의 폐허 의식으로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전후 시인들이 모두 겪던 공통된 정서였지만, 조향은 이러한 의식세계를 도시적 풍경과 외래어의 적극 활용, 그리고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실험정신으로 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는 시적 낭만성에도 관심을 지속시켰는데, 다음과 같은 글은 그의 낭만성에 대한 시론을 담지하고 있다.     나는 항상 시에다가 이러한 (bounding) 곧 「-넘실거림」을 끼워 두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로 하고 있다. 나의 밑창에 romanticist가 살고 있다는 증  거다. -조향, 「1959년 시단 총평」(1959) 부분, 『조향전집 2』, 열음사, 1994.     위의 글에서 나타나듯이 조향은 초현실주의의 시세계를 꾸준히 밀고 나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적 낭만성을 굳건하게 견지하였다. 그에게 ‘낭만’은 현실도피적인 것의 추구가 아니라 현실과의 부조화와 갈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하나의 “바운딩”(bounding) 혹은 「-넘실거림」이며, 시적 상상력과 신비감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서 기능하고 있다. 옥타비오 빠스가 “사회와 시의 부조화에 대한 반응과 인식은 낭만주의 시대 이래 핵심적이면서도 종종 비밀스러운 시의 논지”가 되었다고 말한 것처럼 조향 시의 낭만성은 시적 신비화와 초현실주의의 시적 형상화를 위한 밑그림으로써 추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낭만성의 지향은 전쟁체험과 공포체험으로 인한 내적 충격을 초현실주의로 전환함으로써 그러한 의식을 떨쳐버리고자 하는 시인의 희구로부터 비롯된다. 이러한 실험적이고 전위(前衛)적인 시 정신은 다음 시에도 나타난다.   저물어 가는 이 아름다운 花園에 하얀 愁心의 騎士들이 따가닥따가닥 달려들 온다. 고대의 병법으로 다가서듯이.   나는 한 개비 담배에 불을 붙인다. 손가락처럼 하이얀 담배 담배는 누군가의 손가락 맛이 난다.   오랜 세월 忘却의 늪에 잠겼던 것이 가슴에 되살아나면서. 추억의 프레스코(壁畵)에 불이 들왔다간 古風으로 스러져 가고 아슴한 푸른 領土에의 電線에 박꽃이 하야하얗게 켜지면서…… ― 조향,「황혼과 담배와」전문,『조향 전집 1』, 열음사, 1994.     이 시는 해질 무렵, 시대의 울분과 고뇌에 찬 한 사내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 시의 주된 색채 이미지는 붉은 색으로, 이 색조는 담배와 담배 연기를 배경으로 한 황혼의 다가옴을 묘사하기 위한 중요한 시적 이미지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조향이 실험적으로 추구한 초현실주의적 기법 중 하나로써, 이는 이 시에 환상적이고 새로운 미적 모더니티를 발현하도록 추동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 시 첫 행의 “愁心의 병사들이 따가닥따가닥 달려들 온다.”라는 시구는 다소 장식적인 수사임에도 불구하고, “저물어 가는 이 아름다운 花園”에 전쟁이라는 암울한 사태가 다가옴을 암시하는 메타포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병치는 시인이 느끼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표상하는 것으로, 이 시의 제목인 “황혼과 담배와”에서 “황혼”은 전쟁과 공포를, “담배”는 전쟁과 공포에 대한 망각을 상징한다. “황혼”은 시기적으로 음양(陰陽)이 교차하는 시기로써, 음양의 결합은 전쟁과 평화의 시간을 함축한다.     또한 이 시의 주 메시지를 담고 있는 2연에서 “담배는 누군가의 손가락 맛이 난다.”라는 시구는 에로스적 상징성을 드러내며,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오랜 세월 忘却의 늪에 잠겼던” 에로티시즘을 “가슴에 되살아나”게 하는 기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손가락처럼 하이얀 담배”라는 시구는 자신이 언젠가 사랑했던 한 여자의 손가락을 은유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담배의 맛”과 “누군가의 손가락의 맛”은 에로스적 메타포를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 나타나는 초현실주의 이미지는 “하얀 愁心의 騎士들”, “忘却의 늪”, “추억의 프레스코(壁畵)”, “아슴한 푸른 領土” 등으로, 이러한 이미지의 병치는 시인이 추구하던 새로운 실험의식의 발현으로부터 표출된 것이며, 이는 미래와 과거, 현재와 과거의 혼융적 이미지로부터 발생하는 충돌적이고 기이한 이미지의 폭력적 결합을 내면화 혹은 구체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하얀 愁心”, “하이얀 담배”, “박꽃이 하야하얗게 켜지면서”와 같은 시구는 담배 연기가 불러일으키는 상승 이미지와 뒤섞이면서 “고대의 병법”, “古風” 등의 시어와 어우러져 순수하고 엄결한 시인의 시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흰색과 붉은 색의 어울림은 시인의 “수심(愁心)”에 잠긴 내면의식을 환상화․신비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3연의 이미지는 황혼이 지난 어둠이 주조를 이루면서, 동시에 “추억의 프레스코(壁畵)에 불이 들왔다간/古風으로 스러져 가고”라는 시구가 암시하듯이 시인의 반추가 담배 연기에 스러져가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반추의 불가능성은 “박꽃이 하야하얗게 켜지면서”라는 시구를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그것은 ‘하야하얗게’라는 시어가 환기하듯이, 시인의 추억이 반짝 명멸하는 모습으로 은유되면서, 동시에 시인이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두려움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이 시에서 추구하는 시인의 시 의식에는 전쟁이 가져다주는 죽음과 공포에 대한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관조를 통해 허무와 갈등으로 대표되는 당대의 허무주의적 세계의식을 평화와 안정이라는 정서로 바꾸고자 하는 열망이 내포되어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향은 과거 이상(李箱)이 개척한 초현실주의의 시세계를 자신만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새롭게 탐구하고 조명하면서, 이러한 시의식을 인간 실존의 문제와 결합하여 새로운 실험으로써의 초현실주의를 강력하게 밀고 나갔던 것이다.     나는 순수시만 쓰지는 않는다. 꼭 같은 방법으로서 현대의 사회나 세계의 상황 악을 그린다. 곧 나의 「검은 DRAMA」, 「검은 날의 지구의 밤」, 「검은 신화」, 「검은 전설」, 「검은 series」등 일련의 작품들이 그것이다. 상황 악이란 곧 「현대의 암흑」(Modern karkness)을 말한다. - 조향, 「데뻬이즈망의 美學」(1958)부분,『한국 전후 문제 시집』, 신구문화사, 1964.     오세영은 “「후반기」동인의 고창한 문학적 이념과 그들 작품에 나타난 여러 특징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며, 더더욱 30년대 모더니즘의 한계성을 극복한 것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문학운동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기」동인의 한 일원이었던 조향의 시는 이러한 관점에선 예외적인 시인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판단된다. 물론 당대의「후반기」동인의 시들이 포즈만 취한 모더니즘으로 일관된 시세계를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조향의 초현실주의의 실험적 시세계는 다른 동인들과는 다른 변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후반기」동인이었던 김경린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는「국제 열차는 타자기처럼」에서 김기림의 ‘명랑한 속도’의 이미지를 차용하면서, 근대를 표상하는 열차의 속도감과 암울하게 살아가는 한국의 소시민들의 모습을 병치시킴으로써 문명에 대한 소극적 비판과 실존의 허무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시세계는 이미 과거 김기림이 보여준 근대성의 시의식의 반복에 불과하며, 또한 「후반기」동인 모두가 공통적으로 차용했던 이미지이기도 하다. 도시성의 추구와 문명비판을 주요 모티프로 삼았던「후반기」동인의 김경린이나 박인환은 당대 모더니즘의 특성인 불안과 허무의식을 문명/자연, 기계/인간의 표피적인 대립의식으로 단순화시켰을 뿐이다.     조향 시의 에너지로서 기능하던 실험정신의 토대인 초현실주의 기법은 후기 시에 이르러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것은 그의 시의 한 특질인 에로티시즘이 좌도 밀교를 배경으로 한 정신적 해방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경사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향은 ‘CINE POEM'이나 ’Intermedia'라는 새로운 계열의 시를 탄생시켰으며, 또한 서구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패러디한 꼴라쥬 기법의 회화적 이미지는 당대의 다른 시인들과의 변별점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실험적인 시도는 조향의 시에 대한 새로운 문학적 재평가를 촉발시키고 있다.   조향 시인은 서정주나 김수영, 박인환처럼 시대나 유행에 민감한 대중적 시인이 아니었다. 그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냉혹했고, 그로 인해 그에게는 ‘비주류’ 시인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붙었다. 따라서 그의 말년은 무척 쓸쓸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문단 쪽에서조차 그를 반기는 이가 거의 없다시피 했으므로, 그는 서울로 생활터전을 옮긴 뒤에도 초현실주의 시학에 동조하는 모임에만 열정을 기울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모임이 있던 1984년의 봄, 강릉 해변에서 심장마비로 67세의 생을 마감하였다.     조향은 당대에 걸맞지 않은 비운의 천재로서, 살아생전 오로지 자신의 작품성과 순수성에 심혈을 기울였고, 시에 대한 순수성과 초현실주의의 지향만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진지하고 외골수적인 시적 모색은 현재까지 미완성으로 남아 있지만, 그는 온갖 명예를 버리고 홀로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였다. 따라서 그는 한국 시단에서 초현실주의적으로 고독한 별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그의 시 『바다의 층계』의 “나비는/기중기의/허리에 붙어서/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에서와 같이 한 마리 ‘검은 나비’가 되어 ‘죽음’의 공간, ‘바다’에서 한없이 이어지는 죽음의 층계를 헤아리고 또 헤아리고 있을 것이다.                          정원숙  시인       충남 금산에서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창과와 경희사이버대학교 문창과 졸업. 강원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2004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바람의 서(書)』(천년의시작, 2008)가 있음.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강원대학교 국문과 출강.    
725    조향시인님을 그리며(꼭 찾아 뵙고저 했건만...)... 댓글:  조회:4350  추천:0  2015-09-17
  EPISODE 외 2       열 오른 눈초리 하잔한 입모습으로 소년은 가만히 총을 겨누었다. 소녀의 손바닥이 나비처럼 총 끝에 와서 사뿐 앉는다. 이윽고 총 끝에선 파아란 연기가 물씬 올랐다. 뚫린 손바닥의 구멍으로 소녀는 바다를 내다보았다.     ---아이! 어쩜 바다가 이렇게 똥구랗니?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 산태바기에다 연달아 머리를 처박곤 하얗게 화석이 되어 갔다.     - 개정증보판 現代國文學粹, 자유장 (1952)             ✽1연 1행과 3연 2행을 필자가 행 가름했음.       바다의 層階           낡은 아코오뎡은 대화를 관뒀습니다     ―――여보세요?     폰폰따리아 마주르카 디이젤 ―엔진에 피는 들국화,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受話器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깃폭들       나비는 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 개정증보판 現代國文學粹, 자유장 (1952)       砂丘의 古典           木版 古書를 넘기는 孔子 蒼然한 시간의 上流에서 침침한 咿 唔     伽藍 병머리에 석양이 퇴색하고 외로운 文王鼎     東坡冠 고쳐 쓰고 때묻은 보선 銀長竹 빼어 물고 모두 양반이었다.     Magi는 西쪽으로만……     砂丘를 靑午 타고 「아라비아」로 가는 老子 달이 파아란 구역질을 한다.     캐라방은 희미한 童話를 싣고 가고 오고,     새지 않는 밤 東洋, 밤 다음 페에지에서 낭랑한 지각생 點呼 소리     - 韓國戰後問題詩集, 新丘文化社(1961)       아버님 영전에                                              조유정(조향 시인 장녀)          코스모스 핀 언덕길.    아버지가 가신다. 담배를 피워 무신다.    돌아다보신다. 유체幽體 자락에 바람이 감긴다.        가슴 한 부분 어두운 모서리에 접혀 오래 지우고 싶었던 아버지의 죽음, 그러나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나의 아버지, 모두들 두고 가시지 못하리라는 어떤 강박증이 사슴처럼 나를 묶고 있었고 그 사슬이 어쩜 아버지 가시는 길을 막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눈을 감으면 언제나 까만 어둠에 싸여 약간 처진 어른 쪽 어깨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혼자 걸어가시던 모습.       ―아버지 글을 쓰고 싶어요. 단어를 잃어버린 일상의 벽 속에 전 갇혀 있어요. 언제나처럼 용 기를 주시고 잘리운 감각이 새 순 돋게 해 주세요. 우리에게 방종이 아닌 자유를 주셨고 어 디에서건 비굴하지 않고 당당함과 자신감을 심어 주시던 아버지. 돌아봐도 다만 빈자리뿐.       아버진 무거운 돌을 가슴에 안은 채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다. 봄이 오던 푸른 능선 들풀 사이로 키 작은 민들레.       ―나의 무덤은 공원처럼 만들고 싶어. 넓은 뜰엔 잔디와 꽃나무를 심고 너희들이 날 보러 오 면 공원에 소풍 와서 쉬었다 가는 마음이 들 수 있게 말이야.        죽음을 말씀하시던 말년에 들꽃처럼 쓸쓸하시던 나의 아버지. 이름 모를 들꽃과 바람과 그리고 별과 노래하며 누워 계실 아버지. 이제 까만 어둠을 버리고 빛이 되십시오. 빛의 천사를 따라 하얀 무지개를 타세요.    아버지를 기억하고 사랑하시는 분들 잊지않고 아버지 곁에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모든 미련 훌훌 벗어 던지고 참 빛이 되시어 하늘을 길어 올리십시오. 남은 저희 모두가 작은 두레박이 되어 드릴 테니.    그 푸르른 날들 말없이 지나고 내 안의 아버진 예전의 그대로인데 어느 새 그 연륜 내게로 와 아버지 돌아가실 즈음 연배가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 아끼고 기억해 주신 남강문학회 후배님들 정성에 감사드리며 새삼 아버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724    잊혀진 시조시인 - 조운 댓글:  조회:4969  추천:0  2015-09-17
봄볕이 호도독호독 내려쬐는 담머리에 한올기 채송화 발돋움하고 서서 드높은 하늘을 우러러 빨가장히 피었다 조운이 쓴 < 채송화 > 라는 시조이다. '채송화'는 시조거리가 아니었다. 양반 사대부들이 읊조렸던 시조는 거지반 매화·난초·국화 같은 폼나는 꽃 아니면 소나무·대나무같이 끼끗한 나무들이었다. 채송화 따위는 하찮은 들꽃 나부랭이였던 것이다. 조운(曹雲)은 1900년 전남 영광(靈光)에서 태어났다. 본이름은 주현(柱絃)이고 자는 중빈(重彬)이다. 1940년 필명이었던 '운(雲)'을 본이름으로 고쳤다. 조운 아버지는 아전이었고 어머니는 해어화(解語花), 곧 '말을 알아듣는 꽃'인 기생이었다. 어머니 광산(光山) 김씨가 고마(소실)로 들어와 낳은 칠남매 가운데 외아들이었으니, 그때 형편으로 보자면 사람들한테 손가락질 받는 '천출(賤出)'이었다. 문학동아리 만들어 시조부흥운동 3·1운동에 들었다가 만주로 도망갔는데, 만주벌판 어디서 떠돌뱅이 문학청년 최서해(崔曙海, 1901~1932)를 만난다. 자치동갑으로 뜻이 맞은 두 문학청년은 북풍한설 몰아치는 만주와 시베리아벌판을 갈팡질팡하다가 국내로 들어와 금강산과 해주와 개성에 있는 옛자취들을 돌아본다. 1922년 지방문예운동에 앞장이었던 < 자유예원(自由藝苑) > 을 등사판으로 박아내며, < 추인회(秋蚓會) > 라는 문학동아리를 만들어 시조부흥운동을 벌인다. 조운이 했던 시조부흥운동은 최남선(崔南善) 같은 이들이 했던 시조부흥운동과는 그 본바탕이 다르다. 그들이 했던 것은 관념적 복고주의로 민족을 초역사적으로 생각하여 민족을 절대화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나중에 가장 먼저 친일로 돌아서게 되는 것이 그것을 웅변하여 준다. 조운이 벌였던 운동은 일제를 통하여 밀려들어 우리의 전통적인 것을 짓밟는 서구제국주의 물결에 대한 앙버팀이었다. 무엇보다도 작품 자체가 그것을 말해준다. 24년 < 조선문단 > 에 '초승달이 재 넘을 때'를 넣은 자유시 세닢을 선보이며 문학동네에 나왔고, '영광체육단사건'으로 1년 7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하다가 광복이 되면서 건국준비위원회 영광 부위원장을 하였다. 47년 식구들과 함께 서울로 옮겨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으로 있으며 '인민의 행복에 복무하는 문학'을 힘주어 말하다가, 49년 식구들을 데리고 북조선으로 올라갔다. 그때부터 조운은 우리 문학사에서 아주 잊혀진 사람이 된다. 이른바 '치안'을 맡았다는 관공리들 말고는 그 누구도 그를 입에 올릴 수 없었으며, 그가 남긴 시조를 읊는 사람은 이른바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감옥살이를 하여야만 되었다. 그는 같은 시대에 같은 시조시인이던 이은상(李殷相)과는 여러 가지로 두드러지게 다른 사람이었다. 이은상이 세상에서 말하는 바 '성공한 시조시인'으로 분수에 넘치는 대접을 받으며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면, 조운은 월북과 함께 가뭇없이 잊혀지고 말았다. 뜻있는 이들 사이에서만 변(암호)처럼 떠돌았을 뿐이다. '인민의 나라'로 올라간 남조선 출신 문학인들 거의 모두가 그렇지만 조운 경우는 더구나 그러하니, 그가 택한 문학 갈래가 시조였던 까닭에서였다. '반동지배계급인 량반놈들이 근로하는 인민대중의 구체적 삶과는 관계없이 음풍농월하던 것'을 '시조'로 보는 사회주의 문학관 탓이었다. 사회주의 문학 갈래에는 아예 시조라는 것이 없다. 조운이 '공화국 문학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갈래 자체를 바꿔야 한다. 49년 홍명희와 함께 월북한 듯 그러나 천운순환(天運循環)이 무왕불복(無往不復)이라고 하였다. < 대학장구(大學章句) > 서(序)에 나오는 말이니, '하늘 운수는 돌고 돌아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이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은 주희(朱熹)가 < 예기(禮記) > 라는 책에서 뽑아 쓴 것이다.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에 밀려 장강 밑 남송(南宋)으로 오그라든 한족 지배이데올로기인 유학(儒學)을 되살려 여진족을 몰아내 보자는 슬픈 바람에서였다. 이런 문자가 생겨나게 된 뒷그림과는 상관없이 '무왕불복'이 주는 울림은 아주 애젖하다. 이제 곧바로는 이긴 것 같지만 참으로는 이긴 것이 아니고, 진 것 같아도 길게 보면 진 것이 아니다. 하늘 밑에 벌레들이 아귀다툼하는 곳에서 가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말 또한 '패자의 넋두리'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갈피가 그렇다는 말이다. 전라도 출신으로는 맨처음 중앙문단에 이름을 올린 문인이었고, 영광중학원 작문선생으로 있으며 동료 교사였던 박화성(朴花城, 1904~1988)이 지닌 소설 솜씨를 보고 < 추석전야 > 를 춘원 이광수에게 보여 < 조선문단 > 에 실리게 하였다. < 석류 > 라는 시조 네 번째 수이다.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님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 한국문학통사 > 라는 책에서 지은이 조동일(趙東一)은 이렇게 말한다. "조운은 이은상이나 이병기보다도 더 시조를 알뜰하게 가꾸려고 했다. 이은상처럼 감각이 예민해 말을 잘 다듬는 것을 장기로 삼는 듯하지만 기교에 빠지지 않았다. 애틋한 인정을 감명 깊게 드러내려고 한 점에서는 이병기와 비슷하면서 미묘한 느낌을 또렷하게 하는데 남다른 장기가 있었다. (…) 다음에 드는 < 어느 밤 > 은 < 신가정 > 1934년 3월호에 낸 대수롭지 않은 작품 같지만, 읽을수록 산뜻하다." 눈우에 달이 밝다 가는대로 가고 싶다 이 길로 가고 가면 어데까지 가지는고 먼 말에 개 컹컹 짖고 밤은 도로 깊어져. 28살 때 3살 밑인 누이 분려(芬麗)를 최서해한테 시집보냈는데, 1살 밑인 매제 서해가 죽자 < 서해야 분려야 > 라는 시조를 썼다. 조운(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 ○1900년 전남 영광군 영광읍에서 출생했다. ○상업학교를 나와 영광읍 사립학교 교사로 복무했다. ○1926년 청년운동에 가담했고 청년동맹 조직부장으로 일했다. ○문학활동을 하면서 자기 작품에 청년동맹 좌익파의 견해를 반영하고 있다. ○반일운동 때문에 1937년부터 1940년까지 감옥생활을 했다. ○해방 후 인민위원회 조직에 적극 참여했고 영광군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1946년부터 현재까지 작가동맹 중앙위원으로 활동했다. 초대 내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 1948년 7월 31일 평양 주둔 소련군정 레베데프 정치사령관이 하바로프스크 극동군구 사령부와 모스크바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보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초대 내각 및 최고인민회의의장단 소속 주요 인사 평정서'에 나오는 대문이다. 최고인민회의 의장단은 모두 20명인데, 이 가운데 남조선 출신은 모두 11명이다. 상임위원회 위원장 김두봉(金枓奉), 부위원장 홍남표(洪南杓), 상임위원 장권(張權)·이기영(李箕永)·김창준(金昌俊)·이능종·유영준·조운·라승규·성주식·구재수. 최고인민회의는 남조선으로 치면 국회이고 상임위원이면 장관급이다. 문학인으로는 < 고향 > 작가 이기영과 조운 두 사람뿐이다. 내각 쪽에 < 임꺽정 > 작가 홍명희(洪命熹)가 제2부수상이다. 2000년 복간된 < 조운 시조집 > 에 나오는 연보에 따르면 49년 식구와 월북한 것으로 되어 있다. 47년 식구와 함께 서울로 이주, 5월 5일 < 조운 시조집 > 을 < 조선사 > 에서 간행. 동국대학 출강, 시조론과 시조사 강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평정서'에 따르면 늦어도 48년 5?10단선이 끝난 다음 월북한 홍명희 일행과 함께 간 것으로 보인다. 남녘에서도 그랬지만 조운 삶은 북녘에서도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장관급 우러름을 받았다지만 그것이 얼마나 이어졌는지도 알 수 없으려니와, 무엇보다도 작품이 없다. 남로당 숙청 피바람에서 살아 남았다고 하더라도 작품을 쓸 수 없는 삶이라면 그것은 부질없는 알몸뚱이 삶일 뿐이다. 김재용 교수가 보는 시조시인 조운이다. "짐작컨대 그는 우리의 것을 무조건 버려야 할 것으로 간주하고 구미의 것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사유가 병이 들어도 뼛속 깊이 든 것임을 깨달았을 것이고 이에 저항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시조를 택했다. 거기에는 자신의 무의식 밑바닥에 깔려 있는 식민지성을 목도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치열한 노력이 뒤따랐다. 그렇기 때문에 시조를 깔보는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시조로 자신의 사상을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러한 근본적 성찰이 없었다면 당대의 지적 유행의 흐름을 거스르는 형식실험은 도저히 시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분명 식민지적 무의식으로부터 해방된 몇 안되는 지식인 중의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조운 마지막 작품이다. < 문학평론 > 1947년 4월호. < 얼굴의 바다 > (어느 대회장에서) 얼굴 얼굴의 바다 늠실거리는 이 얼굴들 모도 몰으는 얼굴 허나 모도 미쁜얼굴 시선이 마조칠 때 그만 끼어안고 싶고나. 전에 보든 얼굴 오 너도 동지더냐 쪼차가 손을 잡어 꽉쥐고 흔들었다 그리고 눈으로 눈으로만 하던 말을 다 했다. 김성동| 1947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19세에 출가, 10여 년간 스님으로 정진했다. 1978년 소설 '만다라'로 '한국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소설집 '집' '길' '국수' 등을 냈다. 현재 경기 양평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 본지를 통해 님 웨일즈의 '아리랑'보다 훨씬 감동적인 필체로 현대사에서 사라진 인물을 찾아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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