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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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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    이승훈 시론 댓글:  조회:4404  추천:0  2015-09-06
    이승훈 - 시론 Ⅰ. 에이브럼스의 (Oriental of critical theories)  예술작품의 총체적 상황 속에서 우리는 네 요소를 분별한다. 첫째로 사물 그 자체인 work 가 있다. 둘째로 work를 생산하는 artficer, 곧 artist이 있다. 셋째로 work는 직접적이든 우회적이든 존재하는 사물의 세계로부터 어떤 subject를 취한다. 곧 객관적 사태에 관하여 말하든, 그 사태를 의미있게 만들든, 혹은 그 사태를 반영하든, 아무튼 그 사태와 어떤 관계를 맺는다. 이 셋째 요소는 인간과 인간의 행동, 관념과 감정, 물질과 사건, 혹은 초감각적 실체들로 구성되며 nature로 통칭되지만, universe라는 중립적이고 함축적인 용어를 사용함이 좋다. 넷째로 work는 audience를 갖는다. 곧 work는 청자, 관객, 혹은 독자에게 알려지며, audience가 주시함으로써 가치있는 것이 된다.  work와 universe의 관계가 논의되는 것을 mimetic theories, work와 audience의 관계가 논의되는 것을 pragmatic theories, work와 artist의 관계가 논의되는 것을 expressive theories, work rm 자체만이 논의되는 것을 objective theories라 부른다. Ⅱ. 모방론  1. 플라톤의 대화편 「공화국」10권(시인추방론)  ① 침대라는 본질(idea) → 인공적 세계의 침대란 실체 → 감각세계를 반영한 허상이란 작품(예술작품: 그림, 음악, 시)  ② 진리로부터 2단계 멀어짐 → 시인추방론  2. 아리스토텔레스  ① 시학을 기예, 만듦의 세계에 대한 탐구로 봄 → 모방 예술의 세계를 심미적 기예의 세계(fine art)로 봄  ② 그 모방의 대상이 행동의 세계에 있는 인물들이며, 그 인물들을 다시 고상한 인물(비극)과 비천한 인물로 양분함.(인물 또는 인간 행위의 모방)  ③ 모방의 양식을 문제삼음. 모방의 양식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했는데, 혼합적 양식(서사시-설화성, 서정성, 극성이 혼합), 설화-서정적 양식, 극적 양식으로 나눔.  ④ 모방의 목적을 문제삼음. 모방의 기원 혹은 기능: 본능과 쾌락 → 모방의 대상은 통일성의 세계, 개연성의 세계, 특수성의 세계, 보편성의 세계  ⑤ 시인은 통일성이 있는 세계를 형상화함으로써 보편적 진리의 세계를 보여주며 그것은 세계를 형상화함으로써 보편적 진리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것은 작품의 유기적 구조에 의해 제시되어지므로 시가 진리로부터 두 단계 멀어짐으로 인간을 사악하게 만든다는 플라톤적 개념을 불식시킨다.(플라톤적 딜레마 극복)  ⑥ 정화(catharsis)의 이론: 비극은 인간정서의 두 기본인 연민과 공포를 환기함으로써 정서의 세계를 환기시킨다. 환기된 정서에 의해 감정의 평형을 이루게 되므로 마침내 순화된 정서의 체험을 맛보게 된다.  3. 르네상스 시대  ① 카스텔베트로: 모방을 이야기거리를 꾸며내는 것보다는 주워 듣는 것으로 인식. (사실주의적 관점으로 정립)  ② 마조니: 모방은 실존하는 현실을 충실히 보여주는 것(icatic)과 예술가가 마음대로 꾸며 보여주는 것(phantastic)으로 양분.(낭만주의적 관점으로 정립)  4. 18세기 이태리 신플라톤주의자: 시가 단순한 현상의 세계를 모방하지 않고, 영원한 형식(eternal form)을 모방한다고 주장.  5. 쉘리의 「시의 변호」(1821)  ① 시인은 비이성적인 상상력을 사용하지만, 그 상상력으로 인해 플라톤적 절대 관념의 세계와 직접 접촉함으로써 플라톤이 상정했던 실재(reality)의 세계 그 자체를 경험함.  ② 일상적 경험의 세계 배후에 있는 절대 관념의 세계와 접촉할 수 있게 하는 상상력의 작용을 시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음.  ③ 시인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은유적이며, 시인은 존재와 지각, 지각과 표현 사이에 관계적 양상으로 나타나는 진선미를 이해하는 자이다.  ④ 입법자이며 동시에 예언자적 기능을 지님.  ⑤ 시는 그 자체의 영원한 진리 속에 표현된 인생의 이미지 바로 그것이 된다.  ⑥ 시인은 상상력을 강화함으로써 선의 윤리를 마련한다.  6. 비판: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모방할 것(대상)과 모방된 것(작품) 사이의 관계이며, 이 때 시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대상에 대한 진실성이다.  Ⅲ. 효용론  1. 호라티우스의 「시의 기술」(ars poetica)  ① 시인의 목적은 독자에게 이익을 주거나, 독자를 즐겁게 하거나, 혹은 유용성과 쾌락성을 동시에 줌에 있다.  ② 교훈, 쾌락, 정서의 세 명제를 중심으로 다룸.  2. 르네상스 시대  ① 카스텔베트로: 시의 목적이 교훈임을 부정. 극단적인 쾌락론자.  ② 마조니: 시의 사회적 효용성을 강조하지만, 효용이란 바로 교육적 오락적 기능을 뜻함.  3. 필립 시드니의 「시의 옹호」(1595)  ① 고대의 시와, 그 시가 지녔던 문화적 기능을 강조. 그는 시의 우수성을 전달방법에서 찾는데, 그것은 윤리적 내용을 우화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시는 결국 살아 있는 허구가 되며 또한 인간의 정서와 결합된다.  ② 시의 보편성을 논의. 생생한 허구성의 세계임을 강조(진리가 될 수 없는 세계 혹은 진리가 축어적으로 해석될 수 없음)  ③ 시인은 만드는 자(maker)이다. 시인은 허구적 상상력의 고양을 통해 현실보다 아름다운 시인의 이상적 비전을 제시한다. 결국 상상력은 현실의 통찰이 아니라 현실의 전환을 꾀한다. / 시는 역사, 철학과 다르다. 시는 추상적 명제(철학)가 아니면서도 구체적 실제(역사)의 세계를 취급함.  ④ 시의 교훈성과 정서에 대해서 논의하며, 그는 시의 교훈성을 시의 가장 애매한 정서와 결합시킨다./ 정서는 덕성을 도야하는 도구이며 그것은 시인의 이상의 세계가 환기하는 윤리적 선 때문이다.  ⑤ 시가 윤리적으로 보다 나은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독자를 윤리적으로 교화한다고 생각함.  4. 드라이든의 「극시론」  ① 극이란 인간 본질의 정당하고 생생한 이미지로서, 인간본질의 정서와 기질들을 재현하며, 인류에게 기쁨과 교훈적 내용을 주려는 것이 목적이다.  ② 교훈과 확인의 명제가 제시됨/ 극의 교훈서이란 인간 본질의 심리학적 사실들 속에 내포된 지식을 알려줌에서 찾을 수 있다/ 교훈성 강조  ③ 극에 있어서의 표현이 문제됨/ 형식과 내용을 분리하고, 내용이 형식에 우선함을 강조/내용 - 포우프의 "자주 사유되나 결코 잘 표현할 수 없는 것"(wit)  5. 비판  18세기에 이르러 시인의 허구성과 상상력은 주로 시인의 관념이나 이미지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으로 인식되어지나 이러한 주장은 차츰 시인의 자연스러운 본질, 그 개성이나 천분, 창조적 상상력, 정서적 자발성은 예술적 절제나 지성들과 상반되는 개념으로 드러나며, 시인 개인으로의 논의의 대상이 옮겨져야 할 필요가 생김.  Ⅳ. 표현론  1. 정서의 표현  1) 자발성의 시론 (워즈워드의 「서정민요집」 재판 서문)  ① 고요 속에 회상되는 강력한 감정의 자발적 유로(흘러넘침, overflow)/ 시의 근원은 시인 자신 속에 있음이 표명됨/ 시의 제재는 곧 시인의 감정임이 명시/ 시적 과정은 자발적인 것(자발성, spontaneity)  ② 외부적 사실과의 관련성이 배제되는 대신 이 세계에는 정서가 넘치며, 이 정서가 독자의 흉금 속으로 어떤 진리를 운반한다.  ③ 인간의 심리구조는 전체로서의 우주의 활동과 조화된다. (보편적 인간)  ④ 시는 모든 자연현상 속에 나타나는 격정을 표현.  ⑤ 시인은 또한 모든 감각, 감수성, 이면에 있는 공통적인 심리법칙을 노정함으로써 인간사회의 광활한 여러 영역들을 통합한다. ("시는 정서의 타락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2) 독백의 시론(밀의 「시란 무엇인가」, 「시의 두 종류」)  ① 시의 유형 가운데 서정시가 대표적인 유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비극, 신고전주의자-서사시와 비극을 최고로 간주)  ② 시의 평가 기준은 자발성이다/ 자발성 - 인간의 정서적 감수성이 내재적이 현상임을 의미/ 시란 감정 그 자체를 지향  ③ 시와 외부세계와의 관련성은 소멸된다.  ④ 서정시의 독자는 단일 인물로 축소되며, 이 단일 인물은 바로 시인 자신이 된다. 시는 감정의 세계로, 고독한 순간 속에서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3) 자기 표현의 시론(쉴라이어마허)  ① 그의 미학적 체계는 예술이란 자기표현의 세계라는 관점에 서 있다.  ② 예술은 자기 각성의 세계라는 명제가 드러난다./ 예술은 자기각성, 감정 혹은 정조(mood)의 세계이다.  ③ 시는 언어에 의해 창조되는 자유로운 산물로 정의된다. (시적 진리, 내적인 정조의 순수한 주관성을 표현)  2. 상상력의 표현: 코울릿지의 시론 (코울릿지의 「문학평전」) - 상상력과 시의 형식의 관계를 논의  ① 시의 개별적 특성과 이 특성들의 존재이유를 탐구  ② 시가 다른 형식인 산문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를 탐구/ 시는 음악성을 지향하며, 결과적으로 시인이 가정한 어떤 객관적 존재를 구성.  ③ 시의 직접적 목적은 진리의 전달, 혹은 쾌락의 전달이다./ 시에서 언어형식의 조직적 유기성(압운, 율격)이 쾌락을 전달함.(유기체설)  ④ 시작품(poem)과 시(poetry)를 구별.  ⑤ 상상력은 위대한 질서의 원리이며, 제재들을 분별하고 질서화하고 분리하고 통합할 수 있게 하는 능력. (제1상상력-근본적으로 창조적인 능력, 제2상상력-전자의 의식적이며 인간적인 사용을 의미)  ⑥ 시작품은 언어를 특수하게 사용한 것, 곧 특수한 예술작품이다.  ⑦ 이상적으로 훌륭한 시작품은 언어를 적절히 사용해 특수한 쾌락을 성취하며, 그 쾌락은 전체로부터 나오며, 이것은 부분들의 상호조화의 세계이며, 이 조화의 세계는 시인의 종합적이고 마술적인 힘, 곧 제2상상력의 산물이다.  3. 강렬미의 표현  1) 롱기누스의 「숭고함에 대하여」  ① 숭고성은 우수한 표현 속에 나타난다.  ② 그러나 시인은 과장적으로 표현해서는 안된다.  ③ 위대한 관념을 지니기 위하여 시인은 반드시 위대해야 한다.  2) 포우의 「작시철학」(1846), 「시의 원리」(1850)  ①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관념을 심화. (예술의 교훈성 거부)  ② 시는 영혼의 격앙이 아니라, 영혼의 고양, 평온의 세계이다.  ③ 시를 단순히 정서, 상상력, 강렬미의 표현이 아닌 시적 언어의 특수성, 그 특수성이 야기하는 시의 자율적 특성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봄.  4. 표현론의 통일적 관점  ① 예술작품이란 근본적으로 내면세계의 구현이다.  ② 시의 가장 중요한 근원과 제재는 따라서 시인의 고유한 정신적 행동이나 그 속성들이다.  ③ 시의 위대한 존재이유는 시인의 감정과 욕망을 내포하는 충돌의 세계를 표현함에 있다.  ④ 예술은 예술가의 정신력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정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고, 상징으로  드러나는 정신상태 혹은 정신적 특성에 의하여 평가되고 유형화되는 경향이 있다.  ⑤ 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언어적 요소, 특히 비유어가 가장 중요하다.  ⑥ 시를 평가하는 기준은 시를 쓰는 동안 시인이 체험한 실제적인 정신상태, 감정, 의도를 시가 얼마나 진실하게 표현했는가 라는 명제가 중요하다.  Ⅴ. 형식론(존재론)  1. 크로체: 예술 작품의 통일성, 곧 형식과 내용의 동일성 강조.  2. 발레리: 시 속에서 소리와 의미가 협동으로 존재함을 인식한다. 시는 그 두 요소의 일종의 화해이다.  3. 엘리어트: 형식과 내용이 동일하다는 것은 항상 진실이며, 또한 그들이 상이하다는 것도 항상 진실이다.  4. 신비평  1) 버크, (블랙머):맑시즘과 정신분석학, 인류학을 의미론과 결합하여 이제까지 문학의 출발점으로만 생각했던 동기의 체계를 고찰.  2) 랜섬, (윈터스, 테이트): 조직(texture)과 구조(structure)를 구분.  ① 조직: 해설 불가능한 비논리적 요소 - sound, 음향, 음운, 비상관적 세부  ② 구조: 해설 가능한 논리적 요소 - meaning, 사상  3) 브룩스, (윔샡): 시에 대한 유기적 관점을 강조  4) 신비평의 비평 논리  ① 랜섬: 시란 특수한 가치를 지닌 특수한 존재로써 담화 형식과 제재의 유형을 기준으로 각각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 시의 세 가지 기법 제시: 율격(metre), 허구성(fiction), 언어의 비유적 사용(tropes)  ㉠ 사물시(physical poetry) - 이미지스트 시인들의 시. 포괄적으로 물질현상을 노래하는 시, 순수시 등을 포함  ㉡ 관념시(platonic poetry) - 관념을 노래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사물의 세계를 파고 듦(관념의 전달이 목적)  * 형이상시(metaphysical)-관념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인간의 몸짓  ② 언어에의 관심(언어의 잠재력을 계발함으로써 리얼리티를 폭로)  ㉠ 시적 언어는 반어적인 암시와 역설적인 암시를 기초로 한다. 따라서 시적 상황은 이중적인 의미로 표현된다.  ㉡ 시가 시인의 정서적 확인이 아니라 그러한 확신을 위협하는 모든 반대개념들과 충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시는 상반적인 관계, 곧 구조에 의존한다. 이 구조 속에 인간적 경험의 총체성이 드러난다.(워렌)  ㉢ 시의 언어는 역설적 언어이다.(세속적이고 견고하고 명석하고 재치에 넘치는 지성적 언어, 유추와 은유의 중첩, 분열, 모순의 개념으로 시 속에 나타남)  ㉣ 오직 시인의 언어적 기교와 구조적 기교만을 탐구하며, 어떤 눈부신 통찰을 위한 시인의 언어 조작과 시에 대하 인식론을 결합/ 시를 하나의 특수한 지식의 세계로 봄(브룩스)  ㉤ 시의 중심 요소로 은유, 상징, 신화를 듦/ 시적 대상의 구성 양식과 동일성(identity)을 중시(신화 비평)  5. 러시아 형식주의  1) 형식이란 예술 작품을 형성하는 일체의 것이라는 포괄적 개념  2) 형식과 내용의 불가 분리성을 주장/ 내용이란 형식의 한 요소.  3) 쉬클로프스키: 내용을 형식적 양상의 일부로 봄.  4) 쮜르민스키: 모든 내용적인 사실들을 예술 속에서 형식적 현상이 된다고 함.  5) 야콥슨: 예술적 총체성 속에서 기능을 나타내면 그것이 바로 형식이 된다.  6) 러시아 형식주의의 원리  ① 쏘쉬르가 언어학에서 한 것처럼 시의 내재적인 요소를 분리한다.  ② 최초의 운동은 문학 외적인 체계로부터 문학적 체계를 분리했기 때문에 부정적.  ③ 쉬클로프스키의 "낯설게 하기(defamiliarzation, ostranenie)" 이론: 인식의 갱신/ 행위의 기계적인 습관을 파괴하여 새로운 경험의 세계를 인식케 하는 것/ 인식의 갱신이란 현대의 추상적 삶이 사물과 세계에 대한 순수하고 실존적인 접촉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키는 데 대한 일종의 도전을 의미  ④ 서정시의 기교로써 낯설게 하기란 대상을 그 이름으로부터 해방시켜, 순수한 자체의 경험적 차원에서 묘사하는 것, 대상을 어떤 비일상적인 시각으로 제시하며, 대상과 주체의 거리를 극대화하여 바라보는 것, 스위프트처럼 현미경적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 매우 완만한 행위의 체계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 한 대상을 매우 낯설은 다른 대상과 병치함으로써, 주의하지 못했던 대상의 특성들을 날카롭게 부각시키는 것, 원인과 결과라는 인습적 기대를 역전시키는 아이러니의 기법 등을 들 수 있다.      
682    세상은 좋아보이는것뿐, 나쁘게 보이는것뿐... 댓글:  조회:4026  추천:1  2015-09-06
시인이란 이름으로                                             심정자 시인      詩를 쓴다는 것은 내게 더없는 행복이다. 혹여 왜 행복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말할 것이다. 생각을 문장으로 드러낼 수 있는 시인이란 이름에는 흙냄새와 들꽃 냄새가 나기 때문이라고. 시는 닫힌 마음을 열고 멀어졌던 것들 불러들여 가슴으로 품을 힘이 생기게 한다. 시는 마술처럼 황홀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에게 시란 지지리 가난해서 애처로운 애인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들꽃에서 이는 작은 바람 한 점에서도 사랑을 노래하며 자연의 평화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들꽃의 향기로 글을 쓰고 한 점 바람에 사랑과 평화를 띄우는 것이 시인이다.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서도 보석 같은 희망을 건져내는 것이 시인이다. 마음의 때를 씻어 내리는 언어의 발걸음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냄새가 나는 시가 좋다. 나는 내 자신에게 ‘백치 아다다’ 임을 고백한다.     새벽 산책하는 수봉산공원에는 기막히게 예쁜 정신이상인 여자 거지가 살고 있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어김없이 이불 보따리를 옆구리에 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자주 만나는 얼굴에 대고 한마디 한다. “언니 나 김치 부침 좀 해줘! 먹고 싶어 죽겠다.” 어느 해는 “언니 나 감자 좀 쪄다 줘!” 한다. 사람 좋은 이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쟤 또 임신했나 보다” 하면서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면서 해마다 임신하는 그녀를 위해 다음 날 음식을 해다가 먹이는 모습을 여러 해 보았다.   나 역시 잉태하고 있는 詩語들, 달이 차도 나오지 않고 일년 삼백육십오일 품고 있는 것들만 있다. 마음이 급해질 때면 울컥울컥 곧 쏟아 낼 듯 하다가 죽고 마는 것들, 그러나 또 품을 수 있는 가슴이 있으니 행복하다. 깊숙이 들어와 자리 잡고 있는 이러저러한 종자들은 나를 늘 메슥거리게 한다. 건강한 놈으로 빨리 낳기를 바라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늘 멀미를 지병으로 달고 산다. 그래도 행복하다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백치 아다다”임이 확인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시집 에 실은 시 한편을 본다.   밤과 낮이 없다 아무데서나 부스럭거린다 허름한 담 모퉁이 으슥한 골목 아무 데서나 긁적인다 정적이든 동적이든 놓치지 않으려 받아 적는다 간첩으로 신고 당할지도 모른다 좋다 다 좋다 간첩이란 누명 써도 좋다 시 한 줄 누명처럼 남기고 싶 다   -「누명을 써도」전문   속이 메슥거리면 어떻고 늘 멀미를 하면 어떤가. 품고만 있어도 행복한 것을, 더구나 겨울을 건너 봄의 들녘에 닿아 시어를 잉태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회춘으로 수태할 수 있음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이 감사한 마음은 늘 다홍치마에 노랑 저고리를 입고 있다. 찰랑찰랑한 다홍치마 길이만큼 긴 새하얀 앞치마를 지어 입을 것이다. 바쁜 살림살이에 밥을 짓듯이 시어를 짓기 위한 앞치마, 햇살 좋은 날에는 앞치마에 풀을 먹여 다듬이질하련다. 하얗게 빛을 낸 앞치마를 내 생애가 다하는 날까지 입을 것이다. 하늘에서 우리 인간에게 내려준 정을, 그 정이란 것을 실어 나르고 싶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이 세상은 그렇게 좋은 일도 그렇게 궂은일도 없다. 다만, 좋아 보이는 것뿐이고 나쁘게 보이는 것뿐이다. 얼마나 여유로운 세상의 이치인가. 감사한 일이다.    
681    詩人이란??? 댓글:  조회:4973  추천:0  2015-09-06
시인이란 무엇인가 - 신경림 시인이란 무엇인가 신경림 집으로 배달돼오는 시집이 하루에 꼭 한두 권은 된다. 계간지 등 시 전문지에 실린 시와 동인지까지 포함하면 내가 하루에 읽을 시는 백 편을 넘는다. 부담되는 분량이다. 하지만 나는 가능한  한 읽는다. 물론 전부를 읽으 수는 없다. 시집의 경우 대표작으로 보이는 몇편을 뽑아 읽고 전문지 등 잡지에 실린 시는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시인의 작품을 주 로 읽는다. 몇편 뽑아 읽는 것으로 치우고 마는 시집도 적지 않다. 생동 감도 활기도 없는 시집을 끝까지 읽을 인내심은 내게도 없다. 그러나 시 를 읽는 즐거움을 어느정도 맛보게 해주는 시집도 적지 않다. 그중에서 도 정말 괜찮다. 그럴듯하다고 생각되는 시집이면 따로 빼두었다가 뒷날 다시 읽는다. 일년이면 이런 시집이 적어도 열댓권은 된다. 전문지, 잡 지, 동인지에 서도 이런 시는 종종 발견된다. 한데 그 다음이 문제다. 가령 일주일이나 한달 뒤 그 시집을 다시 읽으면 괜찮기는 한데 무언가 울림을 주지 못한다. 최근에 읽은 시집이 거의 그렇다. 왜 그럴까. 생각 해보니 우선 시를 너무 '만들어서' 그런 것 같다.  .  지금 '시란 씌어지는 것이고 시인이란 태어나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가 는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 시란 만드는 것. 이것이 오늘의 시인 누 구나 가지고 있는 시에 대한 생각이고, 시인 역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모두들 말하고 있다. 노력하면 누구나 다 시를 쓸 수 있고 시인이 될수 있다는 것, 이것이 재능을 의심하면서도 시를 공부하거나 계속 시를 쓰 는 많은 사람들의 위안이 되는 소리요, 또 부분적으로는 맞는 소리이기도 하다. 조금 양보하여,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인으로 셰익스피어를 연구한 벤 존슨 (Ben Jonson)의 말을 인용, "시인이란 태어나기도 하지만 만들 어 지기도 한다"라고 말을 해도 구닥다리 소리를 면하기 어렵다.  .  '왜 시인은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안 보일 정도로 쌓는 훈련을 안 쌓아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 ' 라고 한 어떤 시인의 질 문이 본래의 취지와는 다른 쪽으로 편리하게 인용되기도 한다 . 하지만 문제는, 만들어도 억지로 만든다는 데 있다. 하지만 문제는, 만들어도 억지로 만든다는데 있다. 자연스러운 데가 없다는 뜻이다. 처음 읽을 때 는 눈에 쉽게 띄지 않다가도 다시 읽으면 억지가 확연히 눈에 드러나고 또다시 읽으면 바느질자국까지 보인다. 나 자신 높이 평가한 바 있는 꽤 반응이 좋았던 어떤 시집은 처음 읽을 때는 참 근사하다는 느낌을 받았 지만 다시 읽으니 실증이 나고 또다시 읽으니 지겨워졌던 근래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 이것은 오늘의 우리 시에 거의 공통되는 것 같다. 젊은시인이나 중견이나 마찬가지로, 세상의 흐 름이 튀는 쪽으로 가는 것과 무관하지 않겠으나, 이는 요즈음 시인들이 정말 좋은 우리 시를 제대로 읽지 않은 결과라는 한 평자의 말은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한편 요즈음의 시에서 리듬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말도 하지만, 이 또한 시가 자연스럽지 못한 데 연유하는 것임은 더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  .  시를 억지로 만들다보니까 오늘의 우리 시중 많은 것들이 말장난으로 시종하고 있다. 물론 시에는 말장난이 라는 요소가 분명히 있다. 말을 가지고 하는 예술에서 말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싶은 유혹은 누구에게나 있을것이다. 또 그것은 그 나름으로 매우 의미있고 재미있는 시적 동력 이 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 말장난이라는 것이 "이걸 몰랐지 " 식의 천박한 발상에 그치거나 질 낮은 개그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말장나이라고 할 수 없다. 말장난 자체가 적어도 시에서라면 읽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하며 그 즐거움은 분명 천박한 발상이나 질 낮은 개그에서 오는 것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말은 경험의 축적이요 그 구체화로, 말장난에도 삶의 무게가 실려야 한다. 한대 요즈음 시들의 말장난에서는 그것을 찾아 보기가 힘들다. 삶과는 아무 관계 없는 말들을 이리저리 뒤바꾸고 돌리고 비틀고 해서 말의 난 장판을 만들어놓을 뿐이다. 젊은 시인이라면 모험심도 있고 감각에 의존 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또 이해가 될 법도 한 일이다. 한데 나이 많은 시인들이 젊은이 흉내르 내며 경박한 말장난에 동참하는 것은 정말 역겹다. 이는 새로우 것을 향한 탐구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문학저널리즘에의 영합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  .  잇대어 생각나는 것은 가벼움이다. 가벼움이 우리 민족성과 맞는다는, 그래서 인터넷 시대는 바로 우리 시대이기도 하다는 우스개도 있지만, 요즈음의 우리 시 (시뿐 아니라 문학 전반에 걸친 현상이지만)는 너무 가볍다. 또 너무 쉽게, 너무 함부로들 시를 쓴다. 설명할 것도 없이 이는 7,80년대의 이른바 민중시의 무거움에 대한 반동의 결과라는 측면 이 강하다. 민중시인이란 시 한면 얼굴부터 근엄하고 엄숙해지는 웃음이 없는 시인 이라는 야유도 받은 바 있지마, 사실 7,80년대의 민중시 또는 사회시로 불리는 시들은 쓸떼없이 무거웠다. 분단 현실을 다루지 않은 시가, 혹은 노동문제를 다루지 않은 시가, 또는 권위주의에 저항하지 않는 시가 어찌 이시대의 시일 수 있겠는가라는 문학 안팎의 채찍질과 서슬퍼런 눈초리 앞에서 시인들의 상상력이 한껏 위축되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 통에 마치 앞서 말한 것들만 다루면 다 시가 된다는 잘못된 잣대에 따라 불량품이 대량으로 생산되기도 했다. 80년대말, 안으로 권위주의가 패퇴하고 밖으로 사회주의가 몰락하자 이 잣대는 아루아침에 폐기되고 그 자리에 , 앞서의 내용을 다루지 않아야 새로운 시대의 시가 된다는 통념이 들어서게 된 것이 말하자면 가벼움의 시의 출발점이 된다. 7,80년대의 민중시는 실제로 반성할 대목이 많다 . 과연 그 시들 가운데서 좋은 시로 우리 문학사에 남아 독자의 사랑을 받을 시 가 몇편이나 될까. 첫번째로 반성할 것은 일제시대의 가프 시를 거울로 삼지 못했다는 점이다. 카프 시가 역사적 사회적으로 한 역할이 과소평 가 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 많은 카프 시 가운데 오늘 우리에게 기억되는 시는 폋편이나 되는다. 임화의 시를 제하면 박세영이나 이찬 그리고 권환의 시가 있을 정도다. 물론 임화는 말할 것도 없고 박세영 이나 이찬, 권환 다 뛰어난 시인들이다 . 예컨대 북쪽으로 올라가 "김일성 장군의 노래" 를 쓴 이찬의 "오오, 북만의 15도구 말없는 산천이여/ 어서 크낙한 네 비밀의 문을 열어라// 여기 오다가다 깃들인 설움 많은 한 사나이 / 들어 목메던 그 빛, 그 소리로 한껏 즐거워 보려 노니" 로 끝나는 -눈내리는 보성의 밤- (1938) 같은 시는, 모든 사람 들이 김일서으이 보천보전투의 실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을 때 그 역사 적 사실을 입증하려는 노력의 시적 형상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도 , 오늘 의 감각으로 보아도 결코 처지는 시라고 말하기느 어렵다. 그러나 이만한 시는 그 에게서조차 몇편 되지 않는다. 사회성에 치중한 나머지 시가 갖는 말의 예술이라는 점으 소홀히 생각했던 탓이 아닌가 여겨진 다. 7,80년대의 민중시 또는 사회시 쪽의 일부 시도 잩은 잘못을 저질 렀다 . 시는 말로 하는 예술로써 사회성 자ㅔ도 명확한 말에 의해 경험 된 것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터이다.  . 이들 시들을 '사회성은 강하지만'으로 인정하면서 '예술성이 약하다' 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다. 어떠한 사회성도 시에 관한 한 명확한 말에 의해 경험된다는 점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 명확한 말에 의해 경된다는 것이 예술성을 뜻한다면 그것은 시의 필요조건으로, 예술성이 약하다는 것은 말에 의해 경험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요, 아무리 사회 성이 강해도 좋은 시로 인정 될수는 없다는 것이다. 90년대의 시가 7,80 년대의 이러한 점을 반성하고 옳은 길로 나아갔다면 탓할 일이 못 된다. 예술성의 회복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7,80년대의 시에 대해서 올바른 진단이 따르지 못했고 그 처방도 바르지 못했으니, 시인 은 본질적으로 정확한 말을 가지고 하는 존재라는 점을 이들 또한 중시하 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90년대 시의 가벼움은 똑같은 잘못의 반복 으로써, 예술성의 상실과 시정신의 결여로 이어질밖에 다른 길이 없었지 않나 여겨진다.  .  나는 요즈음의 시를 읽으면서 '시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케케묵은 화두를 다시 한번 떠올려보았다. 다 알다시피 이것은 워즈워스(W . Word sworth)와 코울리지 ( S. T. Coleridge)가 공동으로 낸 [성정담시집] (Lyrical Ballads)의 제2판 서문에서 제기했던 질문이다. 이 서문에서 워즈워스와 코울리지는 대답했다, " 시인이란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보다 쉽게, 보다 힘있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고 있는 사람이다 "라고. 나는 이말을 시인의 특성을 한마디로 요약한 살아있는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점이 과연 무엇인가. 시인의 특성으로 튀어난 감수성과 상상력을 말할 수도 있겠으나, 이것은 철학자 나 과학자에게도 필수적인 것이다. 다만 비상히 발달한 언어능력이라는 점에 있어 시인은 분명히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다. 가령 앞의 정의에서 "쉽게" 라는 말 속에 정확하게 , 분명하가게 라는 뉘앙스가 있다고 읽을 때 뜻은 더 명료해진다. 시인이란 결국 남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는 사람이다. 시인이란 결국 남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는 사람이다 . 시도 일종의 대화라는 뜻이다 . 설명이 아니라 표현을 가지고 하는 대화니까 정확하고 분명해야 한다 . 한데 요즘 읽는 시들 중 많은 것은, 비록 말장난의 시라고 말할 수 없는 것까지도, 표현이라는 개념도 대화라는 개념도 없다. 중언부언 도대체 요령부득인, 그래서 안이하고 탄력없는 시가 새로움이란 가면을 쓰고 난무한다.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떠들어도 되는 컴퓨터 탓이 없지 않을 것이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데 그 말이 어찌 힘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 "힘있게" 가 "감동적으로" 를 뜻한다면 이런 유의 시가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은 너무 도 당연한 일이다.  이런 유의 시뿐 아니라 상당한 수준으로 시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어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흠잡을 수 없는, 그래서 정말 그럴듯하다고 느껴지 는 시도 대부분 울림을 주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사회성이 제거된, 거의 개인적인 문제로 시종하고 있는 시들이 두고 하는 말이다 .  . 이 부류의 시에 대한 평자나 독자의 관심의 정도 역시 7,80년대의 사회 성의 강조에 대한 반발로 여겨지는데. 과연 사회성이 사상된 시를 통한 삶의 추구가 가능할까라는 점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물론 사적인 삶은 중요한 것이고, 시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가 개인적 사상이나 감정의 표현이요 내면의 추구라는 사실을 굳이 경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혼자 사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 자기가 사는 삶인만큼 결국에는 자기 자신의 삶일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남과 더불어 살게 마련인 것이 세상이다. 더욱이 말이란 사색이나 자아추구의 방법이기도 하다 본질적으로는 사회적 삶의 소산이다. 말에는 원천적으로 사회성이나 역사성이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도 시를 가지고 개인적 문제 에만 집착한다면 시는 한없이 왜소해져 있다. 이런 시들이 몸을 던져 시 를 쓰는 것과 거리가 있음은 말할것도 없다. 치열함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지나친 독자에의 영합이 더 문제다. 시가 경박해지는 것도, 시를 너무 쉽게 쓰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시도 남에게 하는 말인만큼 듣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사실 독자가 없는 시처럼 비참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 하지만 의식 한다는 것과 영합은 전혀 다르다. 의식한다는 것은 독자에게 마음 을 열어놓고 있다는 뉘앙스를 가진 반면 , 영합은 독자가 듣기 좋아하는 말만 골라서 한다는 뜻이 강하다. 7,80년대의 사회성의 시들은 어쩌면 또다른 형태의 독자와의 영합이었다는 혐의를 둘 수도 있으므로, 사회성 의 시 자체에 독자와의 영합 내지 세속주의적 요소가 있는가의 여부는 한번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  1998년 10월 일본의 카나가와 대학에서 동북아시아 문학에 대한 세미나 가 있었다. 중국 일본 한국 에서 평론가 , 소설가 ,시인이 각각 한 명씩 발표자로 나선 이 세미나에서 나는 '오늘의 한국시'를 주제로 애기를 했는데 , 청중의 하나가 한국시에 있어서의 절규성이란 문제를 가지고 질문을 했다. 나는 그 개념이 분명치 않아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 일본에서 나온 '현대시의 전망' 이라는 책을 그뒤에 보니 이 문제가 주요한 화두였다. 일본시가 전체적을 동인들끼리 즐기는 수공업예술의 수준으로 전락 왜소한한 가장 큰 원인은 시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절 규성의 상실에 있다는 지적이 있고, 한국시에는 아직 그것이 남아 있기 때문에 활기찬 문학이 되고 있다는 진단도 있었다. 최근에 나온 진보적 문학지 '신일본문학'에서도 눈에 띄는 시에 있어 절규성이란, 여러 사람 의 말을 종합해보건대 문자 그대로 시는 본질적으로 부르짖음, 외침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 같았다. 가령 우리가 살수 없는 환경에 봉착했을 때 못 견디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더없는 기쁨에 처했을 때 환호하는 그런 기능과 성격이 시에는 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에 게 위험을 알리기도 하고 기쁨을 즐기게도 하는 것이 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일본 특유의 탐미주의와 사소한 것에 대한 편집광적 집착으로 사회성이 사상되면서 일본시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는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일본시 쪽의 이 진단은 일본시에 관한 한 옳은 것이겠으나 한국시에 대해서는 잘못된 판단이었다. 90년대 들어 우리 시에서도 그러한 절규적인 성격은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  실제로 이 절규성이라는 문제는 우리 시에서도 중요한 화두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우리 시가 억지에 의해 부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말장난 에 시종하고 사소한 것에 매달려 시 자체를 왜소하게 만들고 하는 것이 모두 절규성의 상실과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시가 안이하고 느슨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 물론 우리가 막 들어선 싸이버 디지털 시대에 시가 옛날과 같은 형태로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대체로 활자매체에 의존해온 시에게 탈활자 매체시대의 도래는 분명히 새로운 위기이다. 하지만 기계화와 대량생산 이라는 산업혁명의 폭풍 속에서 시는 왕자의 자리를 산문에 넘겨주기는 했지만, 민중언어의 발견에 의해서 오히려 그 영역을 확대하지 않았던 가. 사람을 극단적으로 개인화하고 파편화하리라 예상했던 인터넷이 오히려 전지구화하면서 국가간 계급간의 빈부격차를 확대하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연결망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도 암시하는 바 크다.  .  시는 어차피 이상주의자의 길에 피는 꽃이다. 억지로 만드는 데서 벗어나 좀더 자연스러워지면서, 잃어버린 절규성을 회복하고, 왜소 해짐으로써 놓친 큰 울림을 되 찾는다는 일은 새로운 세기에 들어선 우리 시가 한번 시도 해볼 일이다.  [출처] [펌] 시인이란 무엇인가/신경림(펌자료)|작성자 자오지천  
680    <퇴직하는 벗들에게> 시모음 댓글:  조회:4461  추천:0  2015-09-06
+ 선생님, 우리들의 선생님 - 교사 퇴임 축시 세상 풍경도 바꾸어 놓는다는 십 년의 세월 그런 십 년을  세 번이나 지나고서도 두 해를 더 보탠 그 오랜 시간 속에   말없이 당신께서 흘리셨을 수많은 땀방울을 생각합니다. 세상 명예를 탐하지 않고 묵묵히 교직의 한 길을 걸어오신  당신의 한 걸음 한 걸음은 고스란히 사랑의 역사입니다.  동심(童心)의 아이들과 함께 나눈 숱한 기쁨과 아픔 속에     어쩌면 당신께선 삶의 진실에 가 닿았을 테지요. 당신과 인연 맺었던 코흘리개 아이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선생님'으로 살아 있을  참 아름답고 복된 당신, 그런 당신이 곁에 있어 우리의 삶도 사랑도 한 치는 키가 자랄 것입니다.  선생님! 우리들의 선생님 + 별 - 전역 축시 만 삼십 육 년 백 마흔 네 번의 계절이 바뀌는 긴 세월 동안 오직 한길 군인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참 자랑스러운 그대 햇살같이 따스한 부하 사랑 달빛 예지를 겸비한 너는 덕장(德將)이며 또 지장(智將)이었지. 그 동안 갈고닦은 인품 강인한 정신, 강철 체력으로 이제 새롭게 펼쳐지는 생 거침없이 내달려  견장에서 반짝이던 그 별 너머 더욱 빛나는 별이 되리라. 네가 있어  세상의 한 구석이 밝아지는 말없이 아름다운   별이 되리라. + 아름다운 사람 - 전역 축시 꽃같이 피어나는 스물 한 살 청춘의 날부터 나이 육십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만 삼십 칠 년  기나긴 세월 동안 투박한 푸른 제복 입고 세상 부귀영화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빛도 없이 자랑도 없이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한 길  묵묵히 걸어온 그대, 아름다운 사람아. 그대는 윗사람의 신뢰를 받는  실력 있고 유능한 군인이었으되 한순간도 자만에 빠지지 않았다 그대는 절도 있는 군인이었으되 비바람 눈보라 속 생사고락 같이하는  부하들에게 엄마같이 자애로웠다 그대는 박봉의 살림살이에도 기죽거나 흔한 불평 한마디 없이 가족사랑 또한 끔찍하여 1남2녀 자녀들을 훌륭히 길렀다. 계절이 수없이 바뀌어도 군문(軍門)에 들어설 때의 그 순결했던 첫 마음 변치 않고 우직한 황소걸음으로 달려갈 길 다 달려 오늘 전역을 맞이하는 그대 그 동안 남몰래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결실 맺어 이제 우리의 마음속 영원히 빛날 별 하나로 뜬다. + 퇴직하는 벗에게  대학 졸업이 코앞이던 어느 날 술집에서 은행에 취직했다며 장난 삼아 어설피  배춧잎 돈다발 세는 모습 보여주던 때가 바로 엊그제 일만 같은데 어느새 만 스물 아홉 해가 지나 자네가 퇴직을 했다니 꿈만 같아 백 열 여섯 번의 계절이 바뀌는 긴 세월 동안 근무지 따라  가족들 데리고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힘든 일도 적지 않았을 텐데 '직장은 내게 밥을 주는 곳'이라며 늘 진심으로 고마워했지. 복스럽던 머리숱에 흰 서리 내린 지 오래지만 슬퍼하거나 기죽지 말게 자네의 반백(半白) 은빛 머리카락은 세월의 훈장처럼 오히려 참 보기 좋지  가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던 말처럼 자네는 백 살을 너끈히 살고도 남을 것 같애   그렇다면 이제 인생의 전반전이 끝났을 뿐 앞으로 남은 날들 창창(蒼蒼)하니 이름 없는 섬 마을 선생이 되고 싶다던 갓 스무 살 무렵의 소박했던 꿈 어쩌면 자네가 능히 이루었을 듯도 싶은 그 추억 속의 꿈에 모닥불 지펴 이제 급할 것 전혀 없는 황소걸음에 동심(童心)의 눈으로   세상 풍경 차근차근 구경하며 하루하루가 소풍놀이같이 흥분되고 하는 일마다 창의(創意)와 재미와 보람 넘치는 행복한 인생 후반전을 맘껏 펼치게나. 지금껏 채송화처럼 겸손히 살아온  자네에게 아무래도 신께선 민들레 홀씨의  자유로운 영혼 하나 선물하실 것이니 남은 세월엔 자네가 되고 싶은  뭐든 되어 보게나.  + 퇴직하는 벗에게 대학 졸업 후 들어간 첫 직장에서 30년 2개월 동안 그야말로 성실히 한 우물을 파고 이윽고 퇴직하는 친구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한눈 팔거나 괜한 욕심 부린 적 한번도 없이 씨 뿌린 만큼 거두는 그저 우직한 농부의 마음으로 강산도 바뀐다는 십 년 그 긴 세월이 세 번이나 흐르도록 맡은 일을 빈틈없이 해내며 숱한 인내의 땀방울 흘렸을 테지만 윗사람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유능하고 꼭 필요한 사람, 또 아랫사람들을 따뜻이 보살피는 자상하고 참 인간적인 상사였을 너는 아마 직장의 보물이었을 게다.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생활의 거처였던 정든 직장을 떠나 이제 새롭게 펼쳐지는 삶이 조금은 낯설고 어색할지 몰라도 틀림없이 너는 뭐든 잘해낼 거다 통트는 햇살 더불어 선물로 주어지는 하루 스물 네 시간의 조각조각  알뜰살뜰 엮어 사랑하는 아내와 더욱 가까워지고    아들딸이랑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나누는  소박한 행복 맘껏 누리렴   산과 들과 바다로 여행을 떠나 자연을 벗삼는 그윽한 기쁨도 맛보고 나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사색의 여유도 네 것으로 하렴.     인생 전반전을 잘 마무리했으니 너의 후반전은 더욱 기대되는구나 지상의 길벗으로 만난 참 믿음직스럽고 소중한 사람 오! 사랑하는 나의 친구여.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679    중국 몽롱시 창시자의 대표 시인 - 北島 댓글:  조회:5281  추천:0  2015-08-31
아물지 않은 상흔을 노래하는 시인 베이다오 모더니즘 시라는 건 서방의 시각일 뿐                   지난 ... ... 소공동 롯데호텔에서는 한국디지털문학가협의회와 한국언어문화원이 공동 주최한 중국의 망명시인 베이다오(北島.56)의 초청강연회가 열렸다. ... ...세종문회회관에서 열린 제 2회 서울 국제문학포럼에 참석차 방한한 베이다오는 중국 몽롱시의 대표 작가로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현대 중국문학에 위대한 변화를 가져다준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1970년대 후반 문화대혁명 직후, 오늘이란 잡지에 실린 그의 시는 집단 실어증 상태로 억눌려 있던 수많은 노동자와 학생들을 고무시켰고 89년 6.4민주화운동 당시에는 톈안먼 광장에 그의 시 이 대자보 형식으로 곳곳에 나붙을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1989년 유럽으로 망명한 이후 7개국을 돌아다니다 현재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는 조국의 전체주의적 현실, 팔레스타인의 학살,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반대 서명에 참여하면서 독자적이고 진보적인 지식인의 길을 걸어왔다. 이번 초청강연회에서 그는 국내 문인들의 관심 속에 출간된 ‘한밤의 가수’(1972년부터 1998년까지 창작한 시를 수록한 시집) 사인회를 가졌다. 시집에 수록된 여러 편의 시와 미 발표작 5편을 직접 낭송하기도 하였다. 이날 그는 필명인 北島(북쪽지방 바다에 있는 침묵의 섬)처럼 차분하고 조용했다. 그는 “1990년 여름 고은 시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한국에도 군사독재시절 옥중시인이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지금 보니 한국은 크게 변화한 것 같다. 한국에 와서 서대문 형무소, 5.18 기념관 등을 둘러보았다. 민주와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은 한 세기의 대가를 치러 이루어졌다. 오늘은 중국에서 6.4가 일어난 지 16주년이 되는 날이다. 언젠가 중국에도 그 간의 세월에 쌓인 먼지를 씻어줄 수 있는 공동묘역이 생기길 희망한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는“20세기는 인류의 황금기이다. 공업혁명과 각종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류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그것은 인류의 어둠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면서 동시대 인류가 가지고 있는 밝음과 어둠의 양면성이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중국의 솔제니친이라고 불린다. 그의 시는 혁명 시로 간주되기도 하고, 모더니즘적 요소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런 시각에 대해 그는 “나의 시는 모더니즘 개념에 속하지 않는다. 이는 다만 서방언론의 시각일 뿐이다. 위대한 시는 거대한 메아리를 낳는다. 시는 세월의 안개를 뚫고 다가와야 한다. 언어는 시의 현실이며, 시는 바뀐 현실을 보여준다. 지금의 우리 언어는 무거운 이데올로기에 의해 공통된 운명의 짐을 지고 있다.”면서 저항적인 이미지에 국한된 그의 시에 대한 평가는 자신의 의도와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의 시에 날짜와 시간이 없는 것도 시를 시대적인 배경에서 해석하기보다는 시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망명 이후 시와 세계관의 변화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 크게 변한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고려대 허세욱 교수는 “베이다오의 시는 회의와 불신, 부정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시대에 대한 개인의 저항과 분노가 시를 만들어냈고, 사물을 직접 투시 하는듯한 그의 작풍은 많은 젊은이들을 격동시켰다. 중국에는 베이다오 말고도 많은 저항 작가들이 있었고, 수많은 지하 간행물도 있었지만, 베이다오가 주목받는 이유는 저항적이고 혁명적인 내용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고도의 승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며 그의 시가 보여주는 예술적 감각을 높이 평가했다. 작가는 책벌레처럼 어둠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라고 베이다오는 말한다. 많은 이들은 그를 저항시인으로, 노벨상 후보로  기억하지만 그는 다만 시인의 길을 갈 뿐이다. 뭐라 이름 할 수 없는 세계,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어둠과 고독, 미처 아물지 않은 상흔들을 그는 기억하고 회상한다. 그리고 끝없는 메아리로 어둠과 안개를 뚫고 빛을 밝힌다. 마치 '한밤의 가수'처럼. 조윤덕 기자    베이다오 시인 약력 △ 1949년 중국 베이징 출생(본명은 자오전카이[趙振開])  △ 1960년대 후반 베이징의 명문 제4중학 재학 중 문화대혁명을 만나 잠시 홍위병 활동. 1968년 졸업  △ 1969년 허베이의 한 농촌에서 의무 노동. 이후 베이징으로 돌아와 건설노동자로 11년간 복무  △ 1970년부터 시 창작 활동. 중국 현대시의 흐름을 바꾼 몽롱(朦朧)시의 주요 창시자.  △ 1976년 저우언라이 총리 사망을 계기로 촉발된 4.5 청명절 시위 주도.  △ 1978년 중국 최초의 민간 문학잡지인 『오늘(今天)』창간. 문혁이후 새로운 문학운동 주도. 단편소설 『파동』발표  △ 1986년 중국에서 『베이다오 시선』, 『6인 시선』출판  △ 1989년 중국의 유명한 민주인사 웨이징성(魏京生) 구명운동 전개. 천안문 사건 직전에 유럽으로 망명. 이후 유럽 6개국과 미국 각지를 방랑하며 강연. 199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정착. 89년 6.4천안문 민주화운동 당시 그의 시 『대답(回答)』이 대자보 형식으로 광장 곳곳에 부착됨.  △ 1992년 노벨 문학상 후보  △ 1995년, 1996년, 1999년에 각각 시집 『한밤의 가수』, 『영도 이상의 풍경』, 『자물쇠 열기』를 대만에서 출판.  △ 2002년 모로코 국제시가상, 2005년 독일 지네트 쇼큰 문학상 수상 .  △ 2004년 산문집『실패한 책』중국에서 출판.   대 답  비겁은 비겁한 자들의 통행증이고 고상함은 고상한 자들의 묘비이다 보라 저 금도금한 하늘에 죽은 자의 일그러져 거꾸로 선 그림자들이 가득 나부끼는 것을. 빙하기는 진즉 지났건만 왜 도처에 얼음뿐인가 희망봉도 발견되었건만 왜 죽음의 바다에는 온갖 배들이 앞을 다투는가   내가 이 세상에 올 때는 다만 종이와 새끼줄 나의 그림자 그리고 심판에 앞서 판결문을 읽기 위한 목소리를 가져왔을 뿐이다.   너에게 고하노니, 세계여! 나는 믿-지-않는다 네 발 아래 천 명의 도전자가 있다면 나를 천한 번째로 생각하라   하늘이 파랗다는 걸 나는 믿지 않는다 천둥의 메아리를 나는 믿지 않는다 꿈이 거짓임을 나는 믿지 않는다 죽으면 보답이 없다는 걸 나는 믿지 않는다   바다가 제방을 무너뜨리고 끝내 터지고 말 것이라면 그 모든 쓴 물들을 내 가슴으로 받아내리라 육지가 솟아오르고 말 것이라면 인류가 생존을 위한 봉우리를 다시금 선택하게 하여라   새로운 조짐과 반짝이는 별들이 훤히 트인 하늘을 수놓고 있다 그것은 오천 년의 상형문자이고 그것은 미래인들의 응시하는 눈동자다. ※1989년 톈안먼 광장에 게시되어 중국 젊은이들을 고무시켰던 베이다오의 대표작 [출처] 아물지 않은 상흔을 노래하는 시인 베이다오 모더니즘 시라는 건 |작성자 난공산당이싫어요  
678    중국 현대 최고 10대 시인 댓글:  조회:5072  추천:0  2015-08-31
ㆍ문학지 ‘종산’ ㅡㅡㅡ10대 시인 선정 발표 ‘중국의 솔제니친’으로 불리는 베이다오(北島·61)가 현존하는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선정됐다.  중국 장쑤성 작가협회가 발간하는 중국문학지 ‘종산(鍾山)’ 최근호는 1979~2009년 작품을 발표한 시인들을 대상으로 ‘중국 10대 시인’을 선정한 결과 베이다오가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교수·시인·평론가 등 12명으로 구성된 중국 10대 시인 선정위원회는 베이다오를 만장일치로 현존 중국 최고시인으로 추천했다. 2~10위에 오른 시인은 시촨(西川), 위젠(于堅), 자이융밍(翟永明), 창야오(昌耀), 하이쯔(海子), 어우양장허(歐陽江河), 양롄(楊煉), 왕샤오니 등이다.   베이다오는 사회주의 선전문학에 반대하며 개인의 서정과 감정을 중시하는 현대 중국 ‘몽롱파’ 문학의 대표자로 꼽힌다. 베이징 출신인 그는 1978년 시인 망커(芒克) 등과 함께 시전문지 ‘오늘(今天)’을 창간하며 중국 내 시 창작운동을 이끌었다. 인권운동에도 참여한 베이다오는 89년 톈안먼 사태에 연루돼 90년대에는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2008년 이후 홍콩 중문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나 아직도 중국 본토 방문은 금지당하고 있다. 자오전카이(趙振開)가 본명인 베이다오는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이 깃든 서정시를 발표해 92년을 비롯해 몇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베이다오의 작품은 낭송하기가 쉬워 독자층이 많다. 그가 30여년 전에 쓴 정치서정시 ‘대답(回答)’의 첫대목 ‘비루는 비루한 자의 통행증이고, 고상은 고상한 자의 묘지명이다’는 구절은 지금도 중국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또 본문이 ‘망’(網)이라는 한 글자로 이뤄진 ‘생활’이란 제목의 시는 독특한 발상으로 주목을 받았다. 한 평론가는 이 시에 대해 “생활의 그물은 속박에서 나오고, 속박은 희망의 그물 구멍을 만들어 낸다”며 “시인은 묶인 그물 안에서 그물 구멍을 통해 희망을 찾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베이다오의 시집 등이 국내에 번역돼 한국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편이다. 그는 창원시가 제정한 ‘창원 KC 국제시문학상’의 수상자 자격으로 한국을 다녀간적이 있다.
677    詩공부를 하며지고... 댓글:  조회:4284  추천:0  2015-08-31
[ 2015년 08월 31일 08시 23분 ]   제15호 태풍 ‘고니’의 위력... 현대주의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중국의 문학사조를 가리키는데, 서구의 모더니즘과 다른 중국적 특색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다르게 부르고자 하는 의도에서 도입된 문학사조의 명칭   모더니즘   민주주의와 소비문화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지속적으로 왜소화되는 개인의 무기력과 허무함을 특유의 스타일로 표현한 20세기 초에 대두한 문학사조     몽롱시 개인성과 자의식을 비일상적인 언어와 상징적인 기호체계를 통해 표현하는 특유의 스타일로 인해 젊은 시인들이 발표한 현대주의 계열의 시는 기성 문인과 평론가들에게는 매우 난해하게 느껴졌는데, 이런 난해성에 착안하여 현대주의 시에 대해 기성문인들이 붙인 희화적인 이름    
676    중국 몽롱파시인 - 수팅 댓글:  조회:5176  추천:0  2015-08-31
충북 영동에서 마주친 수팅과 그녀의 몽롱시편들                                                                                                      김 금용(시인)         수팅은 80년대 중국시단의 대표시인으로 배이다오北岛、꾸청顾城、량샤오빈梁小斌 등과 함께 '몽롱시'파의 중심시인이다. 그녀는 1952년, 복건성 용해시에서 태어나 현재는 복건성 사먼廈門에서 문학평론가이자 교수인 남편과 살고 있다. 10년간 지속되던 문화혁명 당시 지식인들의 정신개조를 위한 농촌지원 학생대대에 배속, 1969 년부터 1972년까지 전구공, 미장공 등을 하다가 1979 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80 년부터는 복건성 문학인연합회에서 근무하면서 전업시인이 되었다. 주요시집으로 《쌍돛단배双桅船》、《노래하는 자주붓꽃会唱歌的鸢尾花》、《시조새始祖鸟》,산문집으로《심연心烟》이 있다. 또한 1980년 시《조국아, 내사랑하는 조국아 祖国呵,我亲爱的祖国》로 전국청년우수시작품상을 받았으며 1993년《쌍돛단배双桅船》로 전국신시우수시집상을 받았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2005년 여름, 계간지 ≪시평≫의 주관으로 8월, 충북 영동에서 가진 “아시아시인대회” 때였다. 당시 나는 중국 칭다오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녀의 남편과 함께 초청을 받아 서울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갑작스런 이 소식에 주관사인 ≪시평≫이나 수팅에게도 사전 연락 없이 그 행사에 참여하기로 작정, 훌쩍 겁 없이 길을 나섰다. 마침 중국 산동성 일조시에서 평택간 항로가 개항되었던 때라 나는 지도상의 빠른 직선코스이기도 한 이 항로를 선택, 혼자  칭다오에서 변방 일조시까지 두 시간 넘게 차로 간 뒤 평택항으로 건너가 다시 충북 영동까지 들어갔다.  평택 가는 배는 보따리 장사꾼들이 많아서인지 배 복도에까지 짐을 부려놓아 어수선했고 나 같이 혼자 여행하는 여자는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하루 밤을 배에서 혼자 자는 게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한 5 년간 수팅과 숨바꼭질을 했던 참이라 한껏 들떴다. 내가 그녀를 찾는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이미 내가 서울로 떠난 일 년 뒤, 중국대사관을 통해 다시 날 찾았다는 걸 들었기 때문에 더욱 설레였다.    처음 수팅의 시를 접한 것은 2001년, 북경 중앙민족대학원에서 중국 현대시를 공부할 때였다. 그 때 처음으로 그녀의 대표적인 시《노래하는 자주붓꽃会唱歌的鸢尾花》를 읽었다. 아주 긴 시였지만, 아름다워서 겁도 없이 며칠을 파고들어 번역했다. 그리곤 전구공이었던 그녀를 세상에 시인으로 처음 알리게 해준, 시 《상수리나무에 부쳐致橡树》를 연이어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이때서야 비로소  “몽롱시”파가 1976년 文革이 끝나면서 80년대를 휩쓴 중국시단의 한 중심 시 경향이었음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졸업논문을 그녀의 시와 한국 80년대 한국여류시인의 시를 비교하는 것으로 잡았다. 그러나 80년대 중국시나 한국시 모두 그 배경엔 정치적 배경을 간과할 수 없다는 이유로 대학측으로부터 그 논문을 거부당했고, 따라서 더 이상 그녀와의 연락 시도를 하지않은 채 2004년 칭다오로 갈 때까지 묻어두었던 것이다.  영동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많은 시인과 독자들 앞에서 그녀가 한 말이 지금도 떠오른다. “한국의 첫인상은 참 푸르다”  “가는 곳곳 숲이 우거져서, 한국이란? 하고 묻는다면, 참 푸른 나라다” 라는 것이다. 그녀와 짧으나마 이 박 삼 일의 만남 동안 나라는 다르지만, 언어도 다르지만, 같은 연대를 살아온 시인의 시선은 같다는 걸 깨달았다. 고단한 역사가 지문으로 새겨진 그들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그 애틋함을 그녀의 시 속에서 발견하면서 한편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그녀의 ‘시힘’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비록 내가 그녀의 시와 그녀의 시세계로 졸업논문을 써내지 못했지만, 그녀의 시집을 첫 번째로 번역, 출판도 못했지만, 나는 그녀와 그녀의 시를 아직도 사랑한다.      상수리나무에 부쳐                                             舒  婷     내가 정말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절대 높은 가지에 기대어 현란하게 피는 능소화처럼 그대만 의지하지는 않을 거예요 내가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절대 녹음아래 단순한 음색으로 노래하는 새처럼 정을 말하지는 않을 거예요 차라리 그치지 않는 샘물처럼 매년 맑고 시원한 위로를 전하겠어요 차라리 멈추지 않는 산봉우리처럼 그대의 고도와 위엄을 받쳐주겠어요 태양조차도 봄비조차도, 아니, 이 모든 수식으로도 부족해요 나는 한 그루 목면나무처럼 분명 그대 곁에 나란히 서 있을 거예요 뿌리는, 땅 밑 깊숙이 박고 잎새는, 구름 위까지 닿은 채로 매번 한 줄기 바람에도 서로 인사 나누며 어떤 누구도 우리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할 거예요 그대는 구리같이 단단한 가지와 철같이 튼튼한 줄기가 있어요 칼 같이, 검 같이, 또한 창 같이: 나에겐 크고 붉은 꽃잎이 있어요 깊은 찬미 같은, 또 영롱한 횃불 같은. 우리는 한파와 폭풍, 번개와 천둥을 서로 나눠요 우리는 이슬과 흐르는 안개, 무지개를 서로 즐겨요 영원히 분리된 것 같이 보이지만 죽을 때까지 서로 의지할 거예요 이것이 위대한 사랑, 확고함, 바로 이것이죠: 사랑______ 그대의 위엄 있는 겉모습 뿐 아니라 그대가 단단히 머무르고 있는 그 자리, 발밑의 대지를 사랑할 거예요.                                               1977 년 3 월 27 일 발표                               후에 1979 년 4 월호에 실림      致  橡  树                                           舒 婷    我如果爱你 / 绝不像攀援的凌소花,/ 借你的高枝炫耀自己;/我如果爱你 ― /绝不学痴情的鸟儿,/为綠荫重复单纯的歌曲;/也不止像泉源,/常年送来清량的慰籍;/增加니的高度,촌托你 的威仪./甚至日光/ 甚至春雨./不,这些都还不구 !/我必须是你近旁的一株木棉,/做为树的形象和你站在一起./根,紧握在地下,/葉,相触在云里./每一阵风过,/我们都互相致意,/但没有人 /听동我们的言语/你有你的铜枝铁干/ 像刀,像剑,/ 也像戟;/我有我红硕的花두/像천重的叹息 /又像英勇的火炬./我们分担寒潮,风雷,霹雳;/我们共享雾霭,流嵐,虹霓 /방佛永远分离 /却又终生相依/ 这才是伟大的爱情/ 坚贞就在这里:爱 ― /不仅爱니伟岸的身躯 /也爱你坚持的位置,足下的土地!                             이 시는 당시 많은 호평을 받았다. 그 덕분에 그녀는 공장의 전구공 작업을 그만 두고 복건성 문학인연합회에 근무하게 되었다. 전업시인이 된 것이다. 왜? 이 시가 호평을 받고 지금까지 주목하는 것일까. 문혁이 막 끝나던 76 년으로부터 일 년 뒤에 발표된 이 시는 바로 남녀 개인의 사랑을 노래한 최초의 시였기 때문이었다.  중국이 공산주의를 받아들이고 더군다나 1966 년 문화혁명이 시작되면서 지식인들과 자본주의적 발상이 되는 것들은 다 비판을 받았다. 따라서 시의 역할은 자기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찬양 일색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극좌 공산주의 선두주자로서 시인의 역할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십 년이나 계속 되었다. 그러므로 76년 문혁이 끝났다고 해도 감히 개인의 감정, 특히 남녀간의 사랑을 감히 드러내놓고 표현하는 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윗 시가 이런 의의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남녀간의 보편적인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높은 가지에 기대어 현란하게 피는 능소화처럼” 남자 등에 기대어 살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단순한 음색으로 노래하는 새처럼/정만을 말하지는 않을 거” 라고 강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왜냐면 진정한 사랑은  “ 한파와 폭풍, 번개와 천둥을 서로 나눠” “이슬과 흐르는 안개, 무지개를 서로 즐”기는 사이여야 하기 때문이다.  “ 그대가 단단히 머무르고 있는 그 자리, 발밑의 대지를 사랑할”줄 알 때 위대한 사랑은 이뤄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점이 그간 공산주의 운동을 통해 터득, 성취한 평등한 남녀 간의 관계이자 사랑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눈치 보지 않고 맘껏 동감하고 감동했던 것이다.               노래하는 자주붓꽃                          나의 애상은 그대의 비침으로 하여 옅은 광한을 떠올린다                                                          ___ 제목에 부쳐__     1.   그대 가슴 앞에서  나는 이미 노래하는 자주붓꽃이에요  그대 호흡의 가벼운 바람소리는  한 줄기 딩동댕 울리는 달빛 아래서 나를 흔들어요   그대의 그 너른 손바닥으로 잠시 나를 덮어 주세요   2 지금 나는 꿈을 꾸어도 될까요 눈 덮인 대지, 대 삼림 오래된 풍경과 기울어진 탑 난 정말 한 그루 크리스마스트리를 갖게 될까요 스케트화, 그리고 마술 피리와 동화를 꼭대기에 가득 달고 폭죽, 그리고 분수처럼 현란한 환희 속에  큰 소리로 웃으며 거리를 내달려도 될까요   3 나의 저 작은 바구니여 나의 비옥한 밭에서 풀을 키우는 추수여 나의 저 오랜 물 항아리여 나의 팔다리 걸이 아래서 말라버린 한낮의 휴식이여 나의 아직 매지 못한 나비 댕기여 나의 영어 연습: I love you, love you 나의 길가 가로등 아래 접혔다 다시 펴지는 내 그림자여 나의 그 수없이 흐르고 또 삼키는 눈물이여   그리고, 그리고 더 묻지 말아요 왜 꿈속에서 조용히 뒤척이는지 지난 일들이여, 담 모퉁이에 숨은 귀뚜라미처럼 작지만 고집스럽게 울고 있어요       ------- 중략------------------     13. 나는 붓처럼 곧게 두려움 없이, 자랑스럽게, 분에 넘치는 젊음으로 서있어요 가슴 저린 폭풍은 내 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요 태양은 내 이마 앞에서 작렬해요 나의 누런 피부는 투명하게 빛나고 나의 검은머리는 깔끔하고도 풍요롭게 흘러요   중국의 어머니여 그대에게 다가오는 그대 딸아이에게 새 이름을 지어 주세요   14. 나를 그대의 "자작나무 싹"이라고 불러주세요 나를 그대의 " 쪽빛 작은 별"이라고 불러주세요, 어머니 만일 총탄이 날아오면 먼저 내가 맞을 거예요 나는 미소지으며, 맑고 투명한 눈빛으로 어머니의 어깨로부터 천천히 흘러 떨어질 거예요 울지 말아요, 붉은 꽃잎이여 붉은 피, 피는 그대의 뾰족한 파도 끝에서부터 타올라요   ----- 중략---------------   16. 그대의 위치는 저 깃발 아래 있어요 고통스럽게 빛나는 이상, 이것은 감람나무에 부쳐 그대에게 남기는 마지막 한 마디 말이에요 비둘기와 함께 나를 찾아오세요 이른 아침에 나를 찾으세요 그대는 사람들의 애정으로부터 나를 찾을 수 있어요 그대의 것을 찾을 수 있어요 노래하는 자주 붓꽃을                                               1981년 10월 28일 발표                         강소(江苏)문예출판사 1997년 간행한 에 수록 됨   윗 시는 모두 16 편의 연으로 꾸며진 장시이다. 여기선 지면상 6 편만 옮겨놓았다. 이 시는 80년대의 의 대표적인 시답게 현실의 방황과 불안을 몽롱한 꿈 속 이미지와 정치적 현실을 점층적 수사법으로 대비시키면서 다양한 이미지를 통한 입체적 정서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시에서는 방황하는 나, 깊이 사색하는 나, 들끓는 나, 그런 "나"가 곳곳에서 보인다. “ 지금 나는 꿈을 꾸어도 될까요” “정말 한 그루 크리스마스트리를 갖게 될까요” 를 정치인들에게, 사회에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고 비인간화 시키던 문혁은 끝났지만, 정말 내 자신의 꿈을 꿔도 좋은지를 묻는다. 정말 “폭죽, 그리고 분수처럼 현란한 환희 속에/ 큰 소리로 웃으며 거리를 내달려도” 되는지 물어본다. 모든 개인의 일상적 삶의 하나하나를 극우로 몰았던 *¹ 4인방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자유로운 개인 간의 소통, 자유로운 꿈, 표현이 다 가능한 것인지를 묻는다.  한편 이 시를 통해 그녀는 개방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히려 방향을 잃은 중국현대인의 모습을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과거로만 끝날 것인지도 의심한다. 그래서 “지난 일들이여, 담 모퉁이에 숨은 귀뚜라미처럼/ 작지만 고집스럽게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괴로워한다. 그럼에도 9 부에서 그녀는 곧 자신의 의지를 밝힌다.    “ 내 정감의 삼각매화여 그대는 차라리 근근히 살다 죽어 바람 불고 비 내리는 산비탈로 돌아갈지언정 화병에 꽂히는 삶은 되지 말아요   내 천성 가운데의 백조여 그대는 총상을 안고 막힘없는 겨울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갈지라도 난간으로 막힌 봄날엔 미련 두지 말아요   나의 이름과 신념은 이미 동시에 달리기 경주에 들어서서 민족을 대표하는 모종의 신기록을 세우려 해요 나는 쉴 권리가 없어요 생명에의 마지막 분발은 끝이 없어요, 오직 속도만 있을 뿐   그녀는  "자작나무 싹"으로, " 쪽빛 작은 별" 로 불러지길 새 중국의 어머니에게 요구한다. “만일 총탄이 날아오면” 맞을 거라고 의기 있게 말한다. 비록 상처 입은 노루처럼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시 안에서 툭툭 튀어나오지만, 이런 자신내부의 모순과 현실의 이상적 꿈을 상충시키면서 대립적 이미지를 통해 중국의 앞날을 모색하는 시로 업그레이드 시킨 점이 당시 시단이나 중국인민들로부터 감동을 준 큰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중국의 앞날은, 중국인민의 앞날은 “바람 불고 비 내리는 산비탈”일지라도 이러한  “몽롱”한 미래 앞에서도 빛을 찾아 피 흘리면서도 날아가겠다는 의지가 잘 드러난 시였기 때문일 것이다. “총상을 안고/막힘없는 겨울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갈“ 때조차 ” 나는 쉴 권리가 없어요/ 생명에의 마지막 분발은/끝이 없어요, 오직 속도만 있을 뿐“을 외치는 인민들의 소리가 쟁쟁하게 한 시이다.       또 하나의 모든 것(这也是一切)      __ 한 청년 시인의 시에 답하여(答一位*² 青年朋友的)__                                                       수팅(舒 婷)           모든 거목들이 다           폭풍에 쓰러진 것은 아니다        모든 씨앗들이 다             뿌리내릴 땅을 찾지 못한 것은 아니다        모든 참사랑이 다           인심의 사막에서 유실된 것은 아니다        모든 꿈들이 다            자청하여 날개를 꺾은 것은 아니다          아니다, 모든 것이        그대가 말한 대로는 아니다          모든 화염이 다             스스로를 태워 버리기만 하고             남을 비춰주지 않는 것만은 아니다       모든 별이 다              단지 어둠만을 가리키며             새벽을 알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든 노래가 다             귓가에 스쳐 지나가             마음에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니다, 모든 것이       그대가 말한 대로는 아니다         모든 호소가 다 반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손실에 다 보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심연이 다 멸망만은 아니다       모든 멸망이 다 약한 자의 머리에만 내리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심령이 다            발에 짓밟혀 진탕 밭에 짓이겨 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결과가 다            눈물과 피에 얼룩져 밝은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게 아니다        모든 현재는 미래를 잉태하며         미래의 모든 것은 어제로부터 자라난 것이다.      희망을 갖고, 그것을 위해 투쟁할 일이다      이 모든 것을 그대의 어깨에 짊어질 일이다.                                                            不是一切大树/都被暴风折断:/不是一切种子,都不到生根的土壤:/不是一切真情              都流失在人心的沙漠里:/不是一切梦想/都甘愿被折掉翅膀./不,不是一切/都像 说的那样!/不是一切火焰,/都只燃烧自己/而不把别人照亮 /不是一切星星,/都仅指示黑夜/而不报告曙光/不是一切歌声,/都掠过耳旁/而不留在心上/不,不是一切/都像 说的那样!/不是一切呼 都没有回响:/不是一切损失都无法补偿:/不是一切深渊都是灭亡/不是一切灭亡都覆盖在弱者头上/不是一切心灵都可以 在脚下,烂在泥里:/不是一切後果/都是眼泪血印, 而不展现欢容/一切的现在都孕育着未来,/未来的一切都生长于 的昨天/希望, 而且为 斗争/请把这一切放在 的肩上/                                                    이 시는 주에서도 밝히듯이 몽롱시파의 한 시인으로 미국으로 망명한 베이다오北岛가 발표한 시«일체 一切» 에 대한 답시이다. 베이다오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그의 시집을 번역, 출판하여 비교적 잘 알려진 시인으로 개방 이후 중국정부에 대한 비판의 글을 발표,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80년대의 *³ ‘천안문 사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까지 고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그가 쓴 시«일체 一切» 의 내용은 중국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정치적 비판이 많이 드러난 시여서 당시 중국에 남아있는 시인들에게는 상당한 정신적 혼란을 야기했다. 그러나 수팅처럼 직접 대놓고 반박하거나 혹은 찬성하는 시인들은 없었기에 이 시를 발표함으로써 당시 상당한 충격과 한편 지지를 많이 받은 시이다.  즉, “ 모든 거목들이 다 / 폭풍에 쓰러진 것은 아니다” “ 모든 씨앗들이 다/ ..중략,../     모든 꿈들이 다/ 자청하여 날개를 꺾은 것은 아니”므로 조국 중국은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 내용이다. 마치 상처받은 아이를 더 껴안아주는 어머니처럼 , 그녀는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점철되었던 문혁기간을 거치면서 절망적이고도 부정적인 조국이지만 그런 조국이어서 더 보듬어줘야 하는 한 시인의 애틋한 모성애적인 사랑을 당시 중국인민들도 동감하고 환영하였을 터, 그녀를 끝내 국민시인이라고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수팅의 시는 이상과 같이 절망하지 않으며 비관하지 않으며 어려운 현실이나 환경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인간적 가치에 대한 갈망과 이상주의적 정념을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그녀의 시는 “몽롱”하지 않다. 다만 많은 시의 수법에서 드러나는 은유나 부분적인 상징주의적 수법이 직접 고백하는 방식 보다는 이미지를 통한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데서 더 연유됨을 알 수 있겠다.                                                          * 주¹ : 4인방: 문화혁명을 극좌주의로 몰아가 원로정치인들을 경험주의로 내몰아 노동개조소나 죽임을 당하게 했던, 네 명의 정치인들을 일컬음. 모택동의 처 강청과 왕홍문, 장춘교, 요문원 , 1976년 9월 모택동의 사망 한 달 뒤, 모두 체포됨으로써 문혁은 막을 내렸다.   * 주² : 한 青年시인은 바로 베이다오北岛를 가리킨다.   *주³ : 천안문 사건: 1989년 4월 15일 급진개혁주의자 후야오방[胡耀邦] 전 당총서기가 심장마비로 죽으면서 불이 붙었던 중국의 민주화 시위. 베이징·상하이[上海]에서 다시 이를 기폭제로 베이징대학교의 학생 수천 명은 톈안먼 광장에 집결, 후야오방의 재평가를 요구하며 연좌시위에 들어갔다. 그러나  6월 4일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군의 무차별 살해로 북경은 물론, 상하이, 선양[瀋陽]·창춘[長春]·창사[長沙] 등 전국적인 시위를 종식시켰다. 결국 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중국사태는 강경보수파의 승리로 끝났으며 정치국원 겸 상하이의 당서기 장쩌민[江澤民]이 자오쯔양의 뒤를 이어 신임 총서기에 선출되었다.     [출처] 영동에서 마주친 수팅과 그녀의 몽롱시편들 /김금용|작성자 푸른섬    
675    중국 현대시 류파 댓글:  조회:4794  추천:0  2015-08-26
중국에서 현대시라고 하면 주로 1919년의 5.4운동 전후부터 시작해서 개혁개방시기까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류파는 주로ㅡㅡㅡ   상식파: 현대시를 시험삼아 했던 사람들의 무리, 호적, 류반농, 류평백 등을 대표로   문학연구회 파:  빙심, 로신, 주작인, 주자청 등을 대표로,   창조사: 곽말약과 성방오를 대표로,   호반파: 왕정지, 응수인, 풍설봉을 대표로,   신월파: 서지마, 문일다를 대표로,   상징파: 리금발, 풍내초를 대표로,   현대파: 대망서, 변지림, 하기방, 서지, 풍지 등을 대표로,   7월파: 애청, 우한, 전간, 호풍을 대표로,   중국신시파: 목단, 정민을 대표로,   사회주의 현실주의: 공목, 하경지, 곽소천 등을 대표로,   현대파: 기현, 양환을 대표로,   남성사: 여광중, 하청 등을 대표로,   창세기: 낙부, 양목을 대표로,   몽롱파: 북도, 서정, 고성, 망극 등을 대표로(개혁개방초기부터, 즉 1970년대 중/후반부터)   신현실주의: 엽연빈, 리소우를 대표로,   신변새시파: 창요, 양목을 대표로,   신성사작: 해자, 낙일화 등을 대표로(1970년대 중/ 후반부터)    등 이 외에도 원명원, 그들, 망한주의, 비비주의, 지식분자사작, 신 향토주의 등 많습니다.    
674    중국 몽롱파시인 - 우한 댓글:  조회:4623  추천:0  2015-08-26
                                                                                                                                      뉴 한牛 汉의 시 읽기     작자소개 : 뉴 한(牛 汉(1923- )     본명은 스청한(史成汉). 중국 산동성(山西省) 정양(定襄)에서 태어났지만 원래 몽고족이다. 뉴 한은 젊어서는 섬서성(陝西省)의 성도(省都)인 서안(西安)의 『류화流火』잡지사에서 편집을 맡아보았었다. 그러나 항일전(抗日戰) 초기에 만들어진 문학 단체 “칠월파(七月派)”에 가입, 아이 칭(艾靑)을 위시한 소군(蕭軍)·호풍(胡風)·소홍(蕭紅)·동평(東平)·전한(田漢) 등과 함께 『칠월문예(七月文藝)』, 『희망 월간(希望月刊)』등을 편집하면서 우파로 몰려 1955년에서 57년까지 감옥생활을 했다. 그러다 문화혁명을 맞아 노동개조소로 쫓겨갔다가 1976년 문혁이 끝난 뒤 돌아와 "귀래파(归来派)"에 가입, 본격적인 시단 활동을 시작했다.   "귀래파(归来派)"는 서구주의적 사상을 지니고 있다고 비판을 받아 문혁 당시에 절필을 선언했던 아이 칭(艾 青)을 위시한 일련의 시인들이 만주와 신장(新藏)서장(西藏) 등 변방의 노동개조소로부터 풀려나와 반쓰(反思)운동에 참여, 정치로부터 독립된 예술의 개성화와 80년대 新诗모색을 시도한 당시 문단의 중심단체였다.  이 “귀래파归来派”엔 뉴 한(牛 汉)을 위시한 7명의 “칠월파”시인들과 50년대 시단을 이끌던 9명의 “구엽시인九叶诗人”들이 포함된다. 이들은 개개인의 굴절 깊은 삶의 경륜과 그 고통스런 체험 속에서 터득한 역사와 개인과의 충돌 및 관계를 시로 표현하려 했다. 이에 정치 찬양 선도적 위치에서 개인의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면서 자유로운 개인의 사고를 표현함으로써 불안한 내일과 오늘의 방황을, 심지어 남녀 간의 사랑까지 표면으로 드러내며  노래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의 미래는 방향을 잃은 배와 같아서 신과 같던 모택동이 비판을 받고 경제개방을 위해 개체호를 인정하는 등, 중국의 모호하고 안개 속 같은 내일에 대한 불안과 시인의 새로운 위상과 선도자적 책임이 다 모호해졌음을 자각, 귀래파에 이어 몽롱파(朦朧派)가 출현하기 시작,  80년대의 문단을 이끌어 나갔다. 이에 뉴 한은 이런 물결에 적극적으로 합세, 1978년에 제작에 참여했으며, 후에 주필이 되었고 몽롱시파에서도 그 중심이 되어 활동했다.      시집으로는 ,,, , 등이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이 시편들은 대부분 문혁 당시의 시편들로 발표 연대는 10년 뒤 문혁이 끝나면 서부터로 되어있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우파로 몰려 감옥생활을 했던 뉴 한 시인은 문화혁명이 끝날 때까지 작품 발표는커녕 시집 출판은 엄두도 못 냈기 때문이다.   류 한이 를 통해서 직접 밝힌 자작시에 대한 소감을 여기에 소개한다. 이를 통해 그를 이해하며 그의 시를 받아들이는 데에 좀 더 접근이 용이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 나는 신장이 190센티로서 우리 고향의 高粱(수수) 만큼이나 키가 크다. 나는 또 뼈다귀가 앙상한 편이지만, 나의 뼈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고상하기까지 하다....나의 뼈가 나를 가련히 여기고, 나를 보호해 주고 있어서.... 내가 인생의 기나긴 역정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동안 나는 수천 개의 크고 작은 뼈마디들이 부득부득 이를 악 물고 나를 액운으로부터 지켜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천지신명께 감사하고, 나의 뼈에 감사하고, 나의 시에 감사할 일이다. 힘든 일을 많이 해서 나의 손바닥에는 딱딱한 못이 적지 않게 박혀 있고, 깊고 가벼운 상흔들도 많다. 수십 년 동안 나는 시시각각으로 은근히 통증이 오는 이 손으로 시를 써 왔고, 시 한 줄, 글자 하나 쓰는 것이 모두 아픔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감각기관이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나의 뼈마디, 그리고 피부와 영혼 속에 깃들인 상흔이다. 이 상흔들은 조금씩 융기한 무덤더미들처럼 그 속에 내가 환멸 할 수 없는 시와 꿈을 묻고 있다."                                          피땀 흘리는 말                                       뉴 한     고비사막은 천리를 달려야 강물이 나오고    황막(荒漠)도 천리를 달려야 초원이 보이네   바람 한 점 없는 칠, 팔월 하늘 고비사막은 이제 불의 땅 오직 날쌔게 달릴 뿐이네 네 다리로 허공을 날아오르며 내달릴 뿐이네 그래야 가슴에 바람기를 느끼고 수 백 리 뜨거운 흙먼지를 빠져나올 수 있네   땀은 갈증 난 모래먼지가 모두 핥아 먹어버렸고  땀은 결정체로 말에게 흰색 무늬를 만들어주네   땀은 흐를 만큼 흘러나왔네 담즙도 흐를 만큼 모두 흘러나왔네 허공을 쏘아보는 눈빛  경련 일으키며 실룩이는 너른 앞가슴 근육 침묵으로 자기생명의 내부를 향해 구원을 청하네 어깨와 엉덩이 넓적다리로부터 한 땀, 한 땀 핏방울이 돋네 세계에서  오직 한혈마(汗血馬)만 혈관과 땀 선이 서로 통하네 어깨 위에 날개를 단 적 없지만 네 말발굽 역시 바람을 만들지 못하지만 한혈마가 인간의 아름다운 신화를 알 리 없네 그는 오직 앞으로 내달리며 온 몸으로 먹구름 같은 혈기를 뿜어낼 뿐이네 흰 눈에 갇힌 거대한 산언덕과 꽁꽁 얼어붙은 구름을 뛰어 넘네 생명이 멈추지 않는 자연을 뛰어넘기 위해 땀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쏟았지만 근육과 뼈만으로 천리는 더 달릴 수 있네   한혈마(汗血馬)  너는 생명의 절정에서 고꾸라져 불사르며 피어나는 한 떨기   흰 눈송이 꽃,                                       *주: 전설에 의하면, 피땀 흘리는 한혈마는 체구가 나날이 작아지고 또 나날이 가벼워져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면 그 때서야 기수는 그 말을 고향으로 데려가 매장한다고 한다.                                                  1986년 8월 발표                                                   汗血馬                                                        跑过一千里戈壁才有河流  跑过一千里荒漠才有草原    无风的七月八月天 戈壁是火的领地  只有飞奔  四脚腾空的飞奔 胸前才感觉有风     才能穿过几白里闷热的浮尘   汗水全被焦渴的尘砂舐光 汗水结晶成马的白色的斑纹    汗水流盡了 胆汁流盡了  向空旷衝刺的目光  宽阔的抽축的胸肌            沈默地向自己生命的内部求援 丛肩胛和臀股  沁出一粒一粒的血珠 世界上 只有汗血马 血管与汗腺相通 肩胛上倂没有翅翼  四蹄也不会生风 汗血马不知道人间美妙的神话 它只向前飞奔 浑身蒸腾出彤云似的血气 为了翻越雪封的大坂 和凝冻的云天 生命不停地自然  流盡了最後一滴血  用筋骨还能飞奔一千里   汗血马 扑倒在生命的顶点  焚化成了一朵 雪白的花                附注: 传说汗血马飞跑到最後,体躯变得很小很轻,骑士把它背回家乡埋葬                          ** 작품 감상   얼마나 기막힌 착취인지, 피를 말리고 땀이 피가 되어 온 몸의 수분이 마를 때까지, 드디어 온 몸이 바싹 줄어들 때까지 달려야 하는 한혈마의 운명,..! 그것은 문화혁명 당시의 인민들의 모습이기도 했음을 이 시인은 한혈마를 통하여 역설하고 있다. 우 한의 라는 글을 참고하면 이 시의 깊은 의도가, 상징성이 살아날 것이다. “나와 나의 시는 한 필의 말이다, 원래 이 땅이 아름다운 목초가 가득하지만 불행히도 난 몇 년간 살아있는 풀을 먹지 못했다. 단지 운명 속에서 살길을 찾을 뿐이다. 뼈가 시리는 통증 속에서 생명 체험을 하며 나를 끌어들이는 환상과 악몽 속에서 난 이미 건전한 인간이 되지 못함을 알 뿐이다. 그저 온 몸의 통증을 몽롱한 꿈속으로 끌고 다닐 뿐이다. 내 예민한 감각이 피폐해질 대로 끌고 다니며 조상 대대로 멀리 돌아다니던 유목민의 습성으로, 일종의 무법자로, 나를 탈속시켜 내 생명을 이어가는 방식을 즐길 뿐이다."   이 시는 원래 1976년에 썼다. 문화혁명이 끝나던 시점이다. 그러나 이 시는 계속 지하에 묻혀 있다가 등소평의 경제개방에 힘입어 文革에 대한 자유비판이 가능해지던 80년 이후에야 비로소 문학지에 발표했던 작품이다.                        
673    중국 몽롱파시인 - 고성 댓글:  조회:4898  추천:0  2015-08-26
   37세에 자살한 시인 꾸청顾城                                                      김금용(시인)         몽롱파 시인 꾸청의 방황과 사랑      ‘우연’ 이라는 말을 극히 싫어하지만, 때론 나도 내 삶 속에서 ‘우연’을 받아들이게 된다.  우연히, 나는 꾸청顾城(1956- 1993)의 일생을 그린 영화 《꾸청의 이별과 사랑 顾城别恋》을 보게 됐다. 그것도 올 6월 초 홍콩에서, 아주 우연히,..!  마치 내가 ‘시와 세계’의 원고청탁을 받고 어떤 시인을 소개해야 할까, 고민하는 걸 알고 계시해 준 것처럼, 밤늦게 혼자 리모콘을 돌리던 내 눈길을 사로잡는 영상이 있었다. 물론 알아들을 수 없는 광동어였지만, 분명 몇 년 전 내가 읽었던 한 시인의 사진 속 얼굴이 똑똑하게 들어왔다. 창백한 피부 아래 눈이 휑할 정도로 동그란, 피리 부는 소년 같은 남자의 영상, 주방장 모자 같은 흰 모자를 높이 쓴 그 모습이 왠지 그를 슬프게 하던, 드라마 속의 주인공은 바로 중국 몽롱시의 대표시인, 꾸청이었다. 뉴질랜드 북쪽의 한 작은 섬을 배경으로 꾸청과 그의 아내 시에예谢烨, 그리고 그를 좋아하며 두 부부 사이의 갈등을 만들어내던 한 여인 ‘잉얼英儿’과 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던 뉴질랜드 이웃들과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왜 그가 그의 아내를 죽이고 스스로 자살할 수밖에 없었는지, 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호 수팅舒婷과 그녀의 시편을 소개할 때 이미 거론한 것처럼, 꾸청은 몽롱시의 대표시인이다. 또한 당대의 낭만주의 시인이기도 하다. 초기의 그의 시는 아이들처럼 천진한 풍격과 몽환의 정서를 갖고 있었다. 직감과 인상적인 어휘를 사용, 영탄 섞인 동화 속 소년생활을 엿보이게 했다. 두 행으로 이뤄진 시《일대인一代人》 “어둠은 나에게 까만 눈동자를 주었다 / 나는 그것을 통해 광명을 찾는다 ”는 지금까지 중국현대시의 경전이 되고 있다.   꾸청은 1956년 9월 24일, 북경에서 태어났다. 문혁이 일어나던 해인 1969년에 비판을 받아 산동성 광베이廣北농장으로 쫓겨간 아버지 꾸공顾工을 따라 그는 12세에 학업을 중퇴하고 돼지를 키웠다. 1973년부터는 그림을 배우다가 1974年 북경으로 돌아와 운반공과 목공일을 하며 가끔 차출되어 편집을 도우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문혁이 끝나면서 1980년 초 직장은 해체되고 한 때 표류생활을 하면서도 21세인 1977年《민들레蒲公英》라는 시를 발표하여 각광을 받았으며 24세이던 1980년엔 《별들(星星)》이라는 잡지에 이란 시를 발표, 역시 시단의 강렬한 반향과 큰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몽롱시파의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베이징문예北京文艺》、《산동문예山东文艺》、《소년문예少年文艺》등에 시를 발표하며 80년대 주류를 이뤘던 파의 아이 칭艾 青, 수 팅舒婷에 이어 3대 대표시인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1985년 그는 중국작가협회에 가입, 87년엔 구미문화교류방문단에 끼어 창작 강의 활동을 하다가 88년엔 뉴질랜드로 가서 중국고전문학을 가르쳤으며 오크란 대학의 아시아언어 연구원으로 초빙,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누렸지만 곧 사직하고 섬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한편 1992년, 그는 독일학술교류중심(DAAD) 창작기금을 받으며 잠시 독일에서 시작생활을 시작했으나 현실과 이상사이의 갭을 허물지 못한 그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결국 그마저 사직하고 뉴질랜드 북방의 한 작은 섬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그러나 근 일 년 만에 생활고와 심약한 그의 정신상태 등을 이유로 그의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1993年10月8日 급기야 아내를 도끼로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다. 당시 이 사건은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많은 매체에선 “꾸청이 도끼로 부인을 살해하다”라고 보도하면서, 동화시인이었던 그가 악마에 의해 정신이상을 일으켜 살인자가 되었다고 했다. 물론 사후 일부 그 누명은 벗겨졌지만 (꾸청의 누나 꾸샹顾鄕은 “꾸청최후의 14일”이라는 기획물에서 말하길, 도끼는 우연히 그 장소에 있었을 뿐이며,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 참혹한 사건은 중국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몇 달 전인 1993年 3月 그들 부부는 중국으로 귀국하여 가족과 문인들을 만나고 다시 독일을 거쳐 뉴질랜드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아내 시예예와 꾸청은 1979년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4년간 연애를 하다가 1983년 결혼했다. 1987년 같이 조국을 떠나 자살을 할 때까지 그의 아내는 그의 잦은 실직과 이사, 가난, 그리고 꾸청을 쫓아다니며 함께 살기도 했던 여인,‘잉얼’ 등으로 많은 심리적 고초를 견뎌내는 중에도 관용과 미덕을 겸비했던 여인이었다. 하지만, 극단의 자기 중심적이었던 꾸청으로서는 그의 어머니이자 누나 노릇을 해오던 그녀를 떠나가게 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내가 보았던 홍콩에서 찍은 《꾸청의 이별과 사랑 顾城别恋》이란 영화는 꾸청 자신이 남긴 《잉얼英儿》라는 소설 내용이 반영된 것이었다. 꾸청이 최후에 보여준 광폭한 모습은 그의시를 좋아해 쫓아다니던 한 여인 때문이라는 항간의 추측도 있었는데, 그 ‘잉얼’이란 여인의 실제 본명은 리잉李英으로 현재《시간诗刊》잡지사의 편집을 맡아보는 마이치麦琪라는 필명의 여인이다. 그러나 마이치는 꾸청이 죽은 후 그녀에게 남겨진 이런 주홍글씨를 명확히 거부하고 있다. 한편 1993년 12월22일 뉴질랜드 경찰국을 통해 중국영사관에 전달된 그의 유서는 모두 네 통이었다. 부모님에게, 엄마에게, 누나에게, 아들 무얼木耳에게,..! 이 유서들은 사건현장에서 경찰이 취합했는데, 통합해서 보면, 그는 길이 끊어진 막다른 곳에 스스로 몰려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어린 아들木耳(三木Sam)에게만은 눈물을 보이며 아빠를 이해해달라는 문구가 있었다. 꾸청은 사진과 원고 등을 누이에게 부탁했으며 굳이 보관하지 않아도 되며 집이나 그 밖의 것 역시 아들에게 굳이 남기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후 모든 원고나 모든 꾸청의 것들은 자연스레 누나가 보관, 최근 꾸청의 사후 50년에 즈음하여 북방문예출판사에서 4권의 “꾸청문학계열顾城文学系列”을 냈는데 그 첫 권《꾸청문학선: 다른 세계 顾城文选别有天地》은 꾸청이 1987년 5월 독일 밍스터明斯特에서 가진 “국제시축제”에 참가하면서부터 1993년 10월 8일 그의 아내와 한 섬으로 도피했을 때까지 쓴 작품들을  “꾸청의 성顾城之城”이라는 웹싸이트의 장샤오민江晓敏과 함께 편집한 것이다. 총 150만 여개의 문자로 산문 및 시를 실었다.     꾸청은 많은 시와 문장, 서법, 그림 등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저서로는 시집 《검은 눈동자黑眼睛》(1986年 인민문학출판)《한낮의 달빛白昼的月亮》、《수팅, 꾸청서정시선집舒婷、顾城抒情诗选》、《북방의 고독한 노래北方的孤独者之歌》、《쇠방울铁铃》、《베이다오,꾸청시선北岛、顾城诗选》、《꾸청의 시顾城的诗》、《꾸청의 동화우화 시선顾城童话寓言诗选》、《꾸청현대시자선집顾城新诗自选集》과 그의 사후 부친이 편집해서 출판한 《꾸청시전편顾城诗全编》이 있다.。그 밖에 1998년 인민문학출판사에서 낸 《꾸청의 시顾城的诗》와 소설《영자英子》(1994年 1월 북경 화예사출판 그의 아내 시에예 합작)、《성城》등 작품들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되었으며 그 외 문집《생명이 정지된 곳, 영혼이 나간다 生命停止的地方,灵魂在前进》,조합시집《성城》、《귀신이성으로 들어간다鬼进城》、 《나로부터 자연에 도달하기까지从自我到自然》、《목적이 없는 나 没有目的的我》가 있다。     높고 흰 모자를 쓴 ‘동화시인’     문화혁명 중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낸 그의 작품세계는 자연 반사상反思想이 깃들어 있다. 물론 그런 반항과 부정적 비판의식을 통해서 생명의 고귀함, 인간본연의 영혼 찾기로 그 귀결점을 찾고 있지만 말이다. 따라서 누구보다도 몽환의 세계, 동화적인 순수 미의 생명의식을 찾는 데 역점을 두었으며, 그만의 독특한 인문주의적 시세계를 보여줘 그를 통칭 ‘동화시인’이라고도 부른다. 그의 시는 수팅의 고상하고 단정하면서도 미려한 우울함을 드러내는 것과는 비교되는 순진무구함, 암수가 구별되지 않는 몽롱함이 있다. 그만큼 그의 시엔 몽환과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는 천진함이 넘친다. 성인의 우울한 상처가 아니어서, 시인 개인의 우울한 상흔이 아니기 때문에, 한 세대가 각성한 상처이기 때문에, 그 각성한 한 세대들이 바라보는 현실로부터 파생된 상처이기 때문에, 그의 시는 담담하며 때론 납처럼 깊고 무겁다. 그의 시《 나는 제멋대로인 아이我是一个任性的孩子》는 자신이 바로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에 버릇없어진 아이 ”임을 선포하고 있다. 자기만의 생각에 맞춰 자기만의 꿈을 고집하는 건 그의 집착이기도 하지만, 한편 그의 매력이기도 하다. 복잡하고 억압된 성인세계 속에서 꾸청의 의식은 “눈을 감으면 세계와 나는 관련이 없어진다 ”고 보았으니 말이다。《我是一个任性的孩子》에서 차용한 아이들의 시각은 아동의 이상 안에서 개조된 성인세계다. 꾸청이 이 시에서 보여준 아이들 형상은 맑은 바람처럼 성인세계의 오염된 땅을 뒤흔들었다. 또 하나 몽롱시의 대표시인 베이다오北岛도 한탄하며 말하길 “비천함은 비천한 이들의 통행증이 되고 고상함은 고상한 자의 묘비명이 될 때, 꾸청은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서툴지만 ‘자유’를 찾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꾸청의 성顾城之城”의 장샤오민은 저장성浙江省의 한 중학교의 고3 어문교사이다. 그녀는 1993년 시집《海篮바다 광주리》에 실린 꾸청의 시를 처음 읽고 감동을 받아 1994년엔 《시탐색诗探索》에 꾸청의 친구가 쓴 《최후의 꾸청最后的顾城》을 읽으면서 꾸청과 그의 시에 빠져들면서 지금까지 그에 대한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지금까지 꾸청에 대한 모든 자료를 수집, 관리하고 있다. 초기의 《생명환상곡生命幻想曲》、《구별되는 바다分别的海》와 후기의 《노래는 나무들을 헤엄치게 한다颂歌世界?是树木游泳的力量》를 좋아했다는데 그 이유는 “진실”이 담겨져 있으며 “자연순화”의 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만들어진 게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자연스레 흘러나온 것들이어서 시를 읽으면 너와 나를 잊게 되고 충돌되는 게 너이기도 하고 네가 흐르는 물인가 하면 돌이기도 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보고 美에 대해 말하라면 그것은 일종의 상태일 뿐, 비현실적인 허황한 세계로 받아들여진다. 왜냐면 미가 그 모습을 드러날 땐 너무 진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 아직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은, 단지 나만 그렇게 바라보는 것에 희열을 맛보는 동시에 일종의 비밀감과 공포도 느낀다.  난 미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두렵다. 혹여 그것을 파괴할까봐 두렵다. 그리고 난 또 다른 공포를 갖고 있다. 일종의 미라는 것을 내가 바라볼 때 다른 사람들 역시 그 훼손된 미를 미라고 알까봐 두렵다.                       __꾸청의 에서 _   “몽롱시朦胧诗”를 이끌던 《오늘今天》의 편집진인 쉬샤오徐晓는 자신이 쓴 《반평생半生为人》에서 꾸청에 대해서는 진실로 “자기만의 성안에서 살던 사람”이었다고 토로했다. 꾸청보다 2 년 2 개월 먼저 태어난 누이 꾸샹顾乡 역시 동생에 대해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한 살 되기 전부터 걸었는데, 큰 옷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곤 하던 게 기억이 새롭다, 유치원 다니던 때의 꾸청은 여전히 침착한 아이였으며 다른 아이들과 놀지 않고 누나 꾸샹만 찾곤 했다”고 회상한다. 많은 책 속에 파묻혔던 그는 자신을 따돌리곤 하는 친구들에게 《삼국연의三国演义》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야기꾼”이란 별명을 갖게 되었지만 친구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여들 때마다 그는 포위되는 걸 못참았기 때문에 그는 늘 혼자였다. 외부와의 교류를 갈망하면서도 안으로 숨어드는 그는 누나가 유일한 그의 관중이었으며 그녀가 없을 땐 도리 없이 빈 방에 들어가 담장을 마주하고 이야기했다한다. 이처럼 그는 문혁의 거친 풍랑 속에서도 여전히 홀로 햇살 아래 있거나 낙엽 속에 파묻혀 있었으며 찬바람을 맞으며 고성 담장에 붙은 귀뚜라미나 황량한 풀숲 중의 메뚜기를 찾고 있었다. 높은 나팔소리나 인파가 그의 주위를 덮어도 그는 홀로였다. 꾸샹은 또 회상하길 “내가 그런 집단이나 사회 여러 행사 등에 참석하는 것도 반대했으며 안타까워했다. 그런 일들은 아무 가치가 없다고, 친구들은 모두 통속적이라고 조롱했다. ” 반면, 사람들은 “스스로 성에 갇힌” 그를 이상하게 보았으며 항상 높은 모자를 씀으로써 색다른 인상을 주었다. 1992년 6월 네덜란드에서 강의를 할 때도 이 모자를 썼으며 1992년 12월 독일에서 강의를 할 때도 변함이 없었는데 외국인들에게도 그는 신비한 ‘동화 시인’이었다. 그들에게 이 높고 높은 모자는 시인의 나라를 상징하는 것으로 짐작케 했으며 또한 왕관은 아닌가 하는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왜 자신을 “왕”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기실 꾸청은 독일에서 주는 안정적인 직업을 거부했다. 그리곤 그의 아내 시에예谢烨와 뉴질랜드의 한 섬으로 들어가 닭을 키우고 채소를 키우며 살았다. 이는 물론 그의 집은 자신만의 독립왕국이며 자급자족을 뜻하는 것이었지만, 뉴질랜드 이웃들에겐 이해되지 않는 점이었다. 왜냐면, 여러 마리의 닭을 임의로 키우고 죽여 요리에 쓰곤 하는 행위가 비위생적으로 비춰졌으며 위생국에 당연히 검색을 받아야 하는 불법행위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이런 동양과 서양간의 사고 차이에서 오는 마찰 때문에도 그는 더 폐쇄적이고 이상한 사람이 되었으며 부인과의 다툼도 이런 환경에서 더 두드려졌다하겠다.  북경의 영화학원 교수인 추이웨이핑의 눈엔 “꾸청은 담이 적은 사람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뒤로 물러서 있길 좋아해서 뒷줄에 앉는 걸 즐기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꾸청을 몽롱시파 중에 “최대로 공헌한 시인”이라고 말한다, 다만 《한세대 一代人》에서 야기되는 의심은 “암흑이란 환경을 자기 광명으로 표현하는 건 일종의 임의의 표현이다.” “사회를 관조할 때 자신을 거꾸로 돌려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오늘今天》잡지의 임원인 류즈리刘自立도 꾸청의 시에 대해 혹평을 하면서도 그가 “동화시인”임을 다시 한 번 주지시켰다. “그는 어린아이같이 시를 쓴다, 때론 노숙한 아이의 성숙함도 보이나 어른이 쓴 시는 아니다. ” 그가 인식하는 꾸청의 창작은 문혁에 대한 강경한 사유모색의 반발일 뿐, 단순한 반항 의식으로서 일종의 어린아이식 사고를 완성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왜냐면, ‘개구쟁이’란 통제력을 잃고 있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엔 이런 인격결여와 사회소통의 중단과 관련이 있다.          꾸청 시의 예술적 특징   꾸청의 시에 대한 전반적인 특징이자 우수성은 첫 째,비교적 우화적 의미와 상징성을 신중하게 지니고 있으며 시의 음악성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모종의 동화 색채가 엿보이며 그것도 소위 개구쟁이 성격을 띤다는 것이었다. 꾸청 시의 최대 특징은 이미지의 실현이다 그 실현을 위해 제일 많이 사용한 표현은 상징은유법이었다. 이 수사법은 진실 그대로 그리거나 내심을 직접 토로하는 전통 방식을 깼으며, 서정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놓았다. 그의 시 중의 상징은 표면상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심층적으론 무한한 함축을 내포하고 있어서 시의 감염력이 매우 크다. 조기 상징주의의 대가 마라메이가 반복 강조한 대로 “ 시는 단지 암시여야 한다. 직접 그 이름을 부르는 것과 같다. 따라서 4분의 3을 생략하여 느끼도록 해야 즐길 수 있다.” 시의 매력은 직관으로 다 드러내지 않고 마치 그림을 그리듯 해야 하며 무언가 증명할 게 없어야 한다. 즉 시는 총괄적으로 뭔가를 암시만 해야 한다.“ 이같이 상징성의 추구는 현대시의 한 특징이 된다. 상징수법은 중국 고전시의 비흥比兴수법과도 아주 가깝다. 상징은 일종의 비흥이며 비흥은 상징의 일종표현기법으로 비比는 시의 형상화를 구하는 것이며 흥兴은 시의 언어 너머의 의미를 구한다고 보았다. 다른 것이라면 상징수법은 대부분 교묘하게 비교 대상 사물을 감추고 시 주제 역시 다의성多义性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짧은 단시《한세대一代人》에서 “까만 밤黑夜”,“나我”“까만 눈동자黑色的眼睛”등은 감성 형성 구성을 위한 이미지의 조합이다. 이 시어들은 이미 그 단어 자체로 객관적 의의를 갖고 있다. 더불어 제목에서 주는 암시 때문에 더더욱 강렬한 상징성을 가진다.   즉, “까만 밤黑夜”은 한 세대의 정신세계의 암울한 배경을 상징한다. “눈동자眼睛”는 광명을 갈망하는 한 세대의 눈동자를 상징하며 시 중의 “나”는 바로 가장 고통받고 인간의 말로까지 가보았던 문혁세대들, 그 세대를 가리킨다. 이로 인해 시 상징의 심미적 특성은 실제 이미지의 내재의 미학 특성이기도 하다. 꾸청의 시의 이미지 세계 중에 드러나는 은유법과 상징은 역시 그 암시성을 갖고 있다.  꾸청 시의 두 번째로 많이 사용한 수사법은 추상변형수법이다. 현대생활의 진전으로 사람들의 감상과 기호는 부단히 변화되어왔다. 예술변형도 가면 갈수록 다채로워졌다. 이에 “변형이 없는 건 예술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서구 현대파의 예술강령은 “묘사가 불확실한 것이 진실이다 ”“형태를 벗어날 때 더 진실에 가깝다” 약속이나 한 듯 이미지 창조에 대한 신시의 흐름은 늘 고전주의의 과대수식을  벗어난 “변형”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쓴 《생명환상곡生命幻想曲》중에 이런 글이 있다.   “ 빛의 폭포에/나의 피부를 검게 씻는다 /……/ 태양은 나의 인부/그는 날 잡아당긴다 /강렬한 빛의 밧줄로/……/ 让阳光的瀑布/洗黑我的皮肤/..../ 太阳是我的纤夫/它拉着我/ 用强光的绳索 .....) ”   여기서  “폭포瀑布”는 “햇볕阳光”을 은유한다,또 폭포로 검은 얼굴을 씻어줌으로써 햇볕은 내 피부를 검게 타게 함을 은유한다. 원래 검은 피부는 건강미의 표시이다. 그러나 그 검은 색은 어둠을 뜻하고 절망을 낳는다. 강렬한 생명력이 그를 잡아당기지만, 태양인 인부가 밧줄로 묶어 잡아당기는 데서 그는 오히려 속박으로 받아들여진다. 선택 없는 어둠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까닭에 이들 간의 복잡하고도 교묘한 본질구성은 시인의 주관적 직시와 감각에 의해 단순해지고 ‘변형’된다.  직감과 환각, 착각, 순간감각에 대한 인상은 대상을 쉽게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작가의 주관이 객관적 사실에 대립되면서 교묘히 대상을 변형 “무의식 중의 적절한 이치와 존재이유”를 밝히게 한다. 그의 숨겨진 속내를 드러나게 된다. 이로써 시인 눈앞에서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도 내재한 속내를 드러내게 할 수 있고 시인 안중의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한 줄기 피로 보일 수도 있는 이유이다. 세 번째로 많이 사용한 이미지 표현수법은 감각의 소통이다. 이를 우리는 일반적으로 통감痛感이라고 하는데, 일찍이 이 통감법은 중국고전시에서도 늘 써왔던 수사법이기도 하다. 즉, 중국의 옛 선조들은 일찍이 “소리유형听声类型”을 숙지하여 예로 들면, ‘수愁’라는 글자 하나에 “물 한 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근심이 만리까지 간다一水牵愁万里长”,고 뜻을 담아 물소리에 그 음감을 넣었으니 현대시의 통감범위 역시 고전시의 범주를 크게 초과하지 못하고 있다. 좋은 시일수록 안색은 온도를, 소리는 형상을, 차갑고 따뜻함은 중량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이런 오관의 상호소통은 서로의 공감각을 이끌어 시의 연상공간을 더욱 크게 한다. 또한 통감의 운용은 객관 세계를 풍부하게 변화시켜 준다. 더불어 대상끼리 상통, 각종 오감을 통해 시의 세계를 광활하게 창조하게 한다.  꾸청의 시에 사용한 이미지 표현법에는 이 밖에도 대상끼리 겹치면서 사물을 사람으로 전이시키는 것이나 상상을 통해 대상을 취하는 수법과 생략도약법도 많이 사용되었다. 총정리하면 시의 이미지는 본래 언어라는 기호를 본체로 벗어날 수는 없지만, 늘 그는 공식화된 언어를 초월하기를 꿈꿨다. 따라서 꾸청 시의 이미지는 그만의 독특한 천진함과 단순하고도 직선적인 표현 아래 자아비판적이고도 풍자성이 농후한 예술풍격을 낳았다고 본다.     꾸청의 대표시 6 편     한 세대   까만 어둠은 내게 까만 눈동자를 주었다 나는 이를 통하지 않고는 빛을 찾아낼 수가 없다   一代人   黑夜给了我黑色的眼睛 / 我却用它寻找光明   문혁“文革”을 거친 한 세대 청년이었던 꾸청은 윗 시 두 행으로 몽롱시의 대표시인(1956年9月∼1993年10月)이 되었다. 20세기 70년대 말에서 80년 대 초의 몽롱시는 당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으며  “해방解放”이라는 중요한 한 문학 조류를 만들었는데 그는 바로 이 당대 현대시의 혁신의 기점이 되었던 것이다. 윗 시에 대해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파란만장한 문혁시대의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 역시 이 세대에 속한 자로서 “까만 어둠”은 그 시대를 반영한 것으로 우리의 눈동자가 까만 이유가 역설적으로 표현되었다. 더군다나 광명조차 이 까만 어둠을 건너지 않고는 다가오지 않음을, 그것도 까만 눈동자 아니면 바라볼 수 없음을 극명하게 아이러니컬하게 밝히고 있다. 어찌 보면 단순한 이 표현 속에 감춰진 당시 중국 정치적 현실에 대한 냉소와 反思想이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을지 짐작이 간다.           눈을 깜박이기만 하면 ____저  착오의 시대에 나는 이런 "착시"를 일으켰다______     나는 굳게 믿는다 내가 눈 깜박이지 않고 지켜보기 때문에   무지개, 분수 속에서 아른거리며    부드럽게 행인들 바라보다가도 내가 눈 한 번 깜박이기만 하면 곧 독사의 그림자로 변해버린다   괘종시계, 교회당에 은거하면서 고요한 새벽시간을 갉다가도 내가 눈 한 번 깜박이기만 하면 곧 깊은 우물로 변해버린다   붉은 꽃, 화려한 무대 위에서 봉우리 피우며 흥분 속에 봄바람 맞다가도 내가 눈 한 번 깜박이기만 하면 곧 피비린내로 변해버린다   굳게 믿으려고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본다                                           80년 4월호 발표     贬 眼      __ 在那错的年代里, 我产生了这样的 "错误"____     我坚信, / 我目不转睛. // 彩虹, / 在喷泉中游动, / 温柔地顾昐行人, / 我一贬眼____ / 就变成了一团蛇影.// 时锺, / 在教堂里棲息, / 浸静地嗌着时辰, / 我一贬眼_____/ 就变成了一口深井.// 红花, / 在银幕上绽开, / 兴奋地迎接春风, / 我___ 贬眼____ / 就变成了一片血腥. // 为了坚信, / 我 目圆 //                             80. 4 发表   위 작품은 80년 꾸청 시인이 24세 때 발표한 것이다. 즉, 문화혁명이 막 끝난 직후 착오의 시대를 살아온 중국인민들의 반역사적인 "착각"과 그 "오류"를 치기 섞인 반어적 역설적 기법으로 표현, 기막힌 냉소를 보여주고 있다. 눈을 깜박거릴 수 없는 한 세대의 긴장감, 그러나 깜박거릴 수밖에 없어 지켜내지 못한 나의 과오이자 인민들의 과오는 ‘무지개’가 독사의 그림자로, ‘교회당 시계’는 시간을 쏠아대는 깊은 침묵의 우물 속으로, ‘붉은 꽃’은 문혁을 질풍노도로 피비린내를 일으켰던 홍위군의 봄바람으로 변하고 말았음을, 폭로하고 있다. 신처럼 받들어졌던 모택동에 대한 개인숭배와, 문혁을 주도했던 4인방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났을 때, 이런 천지개벽의 변화를 시인은 과연 어떻게 시로 표현할 수 있으며 이율배반적 현실에 적응할 수 있었겠는가?  반어적 농담으로 내뱉는 아픈 시선이 이 시 곳곳에서 발견된다.                       나는 버릇없는 아이   ___ 난 대지에 창문을 가득히 그려놓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동자가 빛에도 익숙해지도록 하고 싶다._____                                                                                   어쩌면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에 버릇없어진 아이처럼 난 제멋대로인지 모른다   나는 매 시각이 색깔 예쁜 크레용처럼 아름답기를 바란다 나는  내 맘에 드는 흰 종이에 서툴고 거친 자유를 그려내거나 영원히 눈물 흘리지 않는 눈동자를 그려내길 바란다 넓은 하늘 그 하늘의 깃털과 나뭇잎 그리고 엷은 녹색의 어둔 저녁과 사과를 그려내기를 바란다   난 새벽을 그리거나 이슬을 그리거나 눈에 보이는 미소를 그리고 싶다 가장 젊고 가장 고통스러운 사랑을 그리고 싶다 그녀는 검은 구름을 본 적이 없다 그녀의 눈은 하늘빛 그녀는 영원히 나를 바라본다 영원히, 바라본다 절대로 머리 돌려 홀연히 가지 않는다 난 요원한 풍경을 그리고 싶다 또렷한 지평선과 물결을 그리고 싶다 많고 많은 쾌락의 시냇물을 그리고 싶다 구름을 그려본다______ 잔털이 잔잔하게 가득 찬, 난 그들을 아주 가까이 붙게 하고 그들 서로를 사랑하게 한다 모든 묵계와 봄날의 모든 조용한 격동이 한 송이 작은 꽃의 생일이 되게 한다   난 또 미래를 그려보고 싶다 난 그녀를 만난 적이 없고, 또 그럴 리도 없다 그러나 그녀가 아주 아름답다는 건 안다. 난 그녀의 가을코트를 그리고 타오르는 촛불과 단풍잎을 그리고 수없이 그녀를 사랑하기에 재가 돼버린 마음을 그린다 결혼식을 그리고 일찌감치 깨어난 경축일을 그린다 그 위에 유리 빛 사탕종이와 북방동화의 삽화를 붙여 넣는다   난 제멋대로인 아이 모든 불행을 지워버리고 싶다 나는 대지 위에 창문을 가득히 그려놓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동자들이 빛에도 익숙해지도록 하고 싶다. 난 바람을 그리고 싶다 하나하나 점점 높아지는 산들을 그리고 동방민족의 갈망을 그리고 막힐 것 없는 큰 바다의 유쾌한 소리를 그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종이 한 모퉁이에 나는 또 나 자신을 그리고 싶다 한 마리 코알라를 그린다 빅토리아의 깊은 숲 속에 조용한 나뭇가지에 앉아서 넋을 놓고 있는, 그는 집이 없고 한 조각 마음은 먼 곳에 나가 있다 그는 단지 수많은 장과(浆果)와 같은 꿈과 아주 아주 큰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나는 바라고 있다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러나 왠지 모르지만 나는 크레용을 받지 못했고 색깔 있는 시각을 얻지 못했다 단지 나 자신만이 있을 뿐 나의 손가락과 상처의 아픔 한 장 한 장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으로 아끼던 백지만 있을 뿐 그들이 나비를 찾아가게 하고 그들이 오늘부터 사라지게 할 뿐이다.   나는 어린 아이 환상 속 엄마로부터 지나친 사랑에 버릇없어진   나는 제멋대로인 아이다   我是一个任性的孩子 ____ 我想在大地上畵满窓子, 让所有习惯黑暗的眼睛都习惯光明                                              也许/我是被妈妈宠坏的孩子/我任性//                     我希望/ 每一个时刻 /都像彩色蜡笔那样美丽/我希望/能在心爱的白纸上畵畵/ 畵出笨拙的自由/畵下一只永远不会/流泪的眼睛/一片天空/一片属于天空的羽毛和树叶/一个淡绿的夜晚和苹果// 我想畵下早晨/畵下露水/所能看见的微笑/畵下所有最年轻的/最有痛苦的爱情/她没有见过阴云/她的眼睛是睛空的颜色/她永远看着我/永远, 看着/绝不会忽然棹过头去/我想畵下遥远的风景/畵下清晳的地平线和水波/畵下许许多多快樂的小河// 畵下丘陵_____ 长满淡淡的耸毛/我让他们挨得很近/让他们相爱/让每一个默许// 每一陈静静的春天激动/都成为一朵小花的生日// 我还想畵下未来/我没见过她,也不可能/但知道她很美/我畵下她秋天的风衣/畵下那訾燃烧的烛火和枫叶/畵下许多因为爱她/而熄灭的心/畵下婚礼/畵下一个个早早醒来的节日______/上面贴着玻璃糖纸/和北方童话的插图// 我是一个任性的孩子/我想涂去一切不幸/我想在大地上/畵满窓子/让所有习惯黑暗的眼睛/都习惯光明/我想畵下风/畵下一架比一架更高大的山岭/畵下东方民族的渴望/畵下大海___/无边无际愉快的声音// 最後, 在纸角上/我还想畵下自己/畵下一只树能/他座在维多利亚深色的丛林里/座在安安静静的树枝上/发愕/他没有家/没有一颗留在远处的心/他只有,许许多多/奖果一样的梦/和很大很大的眼睛// 我在希望/在想/但不知为甚麽/我没有領到蜡笔/没有得到一个彩色的时刻/我只有我/我的手指和创痛/只有撕碎那一张张/心爱的白纸/让它们去寻找胡蝶/让它们从今天消失// 我是一个孩子/一个被幻想妈妈宠坏的孩子/我任性//   이 시는 그야말로 꾸청의 성격과 그만의 색깔이 드러난 시이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잉얼英儿≫에서도 나오지만, 그는 안정적인 독일에서의 생활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리곤 누구의 간섭도 필요 없는 섬으로 들어가지만 여전히 사회성이 없는 그를 괴롭힌다. 그는 철없는 아이로 살고 싶어한다.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러나 왠지 모르지만 ”나는 크레용을 받지 못했고/ ..생략../ 단지 나 자신만이 있을 뿐/..생략.../마음으로 아끼던 백지만 있을 뿐“이다. 문혁은 끝났으나 뉴질랜드까지 도피해 왔으나 그가 살아남는 길은, 천진한, 개구쟁이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색깔을 찾아 그리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백지’만 있고 ‘크레용’이 없다. ‘손가락도 다쳤다’ 이것이 그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먼 것과 가까운 것                         당신은                                                 , 한 번은 나를 바라보다가                    한 번은 구름을 보고 있어요                     난 이제 느껴져요                               당신이 나를 볼 땐 아주 멀리 느껴지고           당신이 구름을 볼 땐 아주 가깝게 느껴져요        远 和 近   你 / 一会看我 / 一会看云   我觉得, / 看我时很远 / 看云时很近                                                 1980년 발표작   진실이란 무엇인가, 정말 가까이 다가가면 보이는 것일까, 단절은 지금 이렇게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고 말하는 중에도 일어나고 있다. 정작 먼 구름은 가깝게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함께 사랑을 나눈 너와 나 사이에서는 여전히 먼 거리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 틈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 우린 느낀다, 깨닫는다.     봄날   _나는 손수건을 가볍게 흔든다___     봄날,  너는 손수건을 가볍게 흔드는구나 내게 멀리 가라고 하지만 곧 돌아오라는 건가 아니, 어떤 것도 아니지, 어떤 것도 이유가 아니지, 꼭 물위로 지는 꽃 같구나 꼭 꽃잎 위의 이슬 같구나,.. 그림자만 아는구나  바람만 느끼는구나 채색나비만 놀라 탄식하는구나 여전히 마음 가운데 꽃은 분분히 날아가는데,..     《别》         (在春天,我把手帕轻挥)    在春天,/ 你把手帕轻挥,/ 是让我远去,/ 还是马上返回? / 不,什么也不是,/ 什么也不因为,/ 就象水中的落花,/ 就象花上的露水……/ 只有影子懂得,/ 只有风能体会,/ 只有叹息惊起的彩蝶,/ 还在心花中纷飞……   이별이 이리 가벼울 수 있을까, 단지 손수건 한 장 흔들듯 그대는 가고 어떤 이유도 댈 수 없는 채로 그렇게 봄날 속에 우리들 이별은 바람 한 점 남기며 떠난다. 그것도 봄날에, 아무도 귀 기울여 아는 체도 없는데, 오직 채색나비가 꽃잎 떨어지듯 그림자를 잠시 남기며 바람인듯 날아가는 그 가벼운 탄식 아래 그렇게 우리의 이별은 가볍고 또 가볍게 봄을 풀어내고 있다니,..!      작은 항구     작은 항구 굽이굽이 길구나       문도 없고 창문도 없어   난 오래된 열쇠를 들고 두터운 담장을 두들긴다     小巷                小巷/ 又弯又长 // 没有门 / 没有窗  //  我拿把旧钥匙 /  敲着厚厚的墙  //     아주 작은 항구에 몸을 숨겨도 여전히 창도 없고 문도 없다. 그를 가려줄 현관문 열쇠를 찾아보지만, 너무 녹슬어 쓸모가 없다. 별수 없이 막힌 담장에 가서 두들긴다. 자기 안의 성안에서 그만의 소통을 꿈꾼다. 그의 말을 들어주던 누이처럼 누군가 자신에게 걸어 들어와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꿈꾼다. 마지막으로 찾아든 뉴질랜드의 아주 작은 섬, 그곳에서 그는 숨어 살고자 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과 생활을 맡은 그의 아내의 질책이 뒤따른다. 숨 막히는 그의 막다른 골목을 ‘小巷’ 이 두 글자에서 찾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                                                        [출처] 37세에 자살한 시인 꾸청顾城/ 김금용 |작성자 푸른섬        중국 몽롱파시의 황제-고성 신금철—문학살롱 진행을 맡은 신금철입니다. 네 지난시간에는 3.8절을 맞으면서 여성시인들과 그들의 시들을 감상했는데요 오늘시간에는  중국몽롱시의 황제-고성시인과 그의 일부 대표작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부회장 림금산시인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금산—네 수고하십니다. 신금철—고성이라고 하면 지난번 북도시인을 얘기할때 북도시인이랑 서정시인이란 함께 중국몽롱시파의 대표적 시인이라고 했죠? 몽롱시의 황제라고 한데는 어떤 리유라도 있나요? 림금산—네 북도는 몽롱시파의 선구자라 할수있고 고성은 시의 량이나 시적인 삶이나. 또 그 작품수로 보나 황제라고 함이 맞먹을 것 같은데요 마지막 생명을 다할때 까지도 계속 시창작상태에 빠져있었고 국내적이나 국제적으로 그 파워가 너무나 컸다. 전문적인 고성카페가 건립되였고 영화, 장편소설, 팬들의 활동. 거기다 왕관같은 높은 모자를 계속 썼고 …물론 황제란 어디까지나 독자들이나 학계에서 그렇게 불러주었기 때문일것이고 아무튼 제일 말밥에 많이 오르고 강렬하게 올라 차츰 몽롱파의 중심으로 솟아올랐다. 처음엔 부차적 인물이였으나 나중에는 중심인물로 서서히 올라오게 되였다. 아미 이런 여러가지 원인으로 그를 몽롱파의 황제라고 일컬은것 같다. 신금철—그럼 37세밖에 못살았다는데 좀 구체적으로 생평에 대해서 소개해주시죠 림금산--고성의 짧은 생애 고성은 1956년 9월 24일, 북경에서 태어났다.  1969년에 비판을 받아 산동성 광북(廣北)농장으로 쫓겨간 아버지 고공(顾工)을 따라 그는 12세에 학업을 중퇴하고 돼지를 키웠다. 1973년부터는 그림을 배우다가 1974年 북경으로 돌아와 운반공과 목수일을 하며 가끔 차출되어 편집을 도우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문혁이 끝나면서 1980년초 직장은 해체되고 한 때 표류생활을 하면서도 21세인 1977年《민들레蒲公英》라는 시를 발표하여 각광을 받았으며 24세이던 1980년엔 《별들(星星)》이라는 잡지에 이란 시를 발표, 역시 시단의 강렬한 반향과 큰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몽롱시파의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北京文艺》、《산동문예》、《소년문예》등에 시를 발표하며 80년대 주류를 이뤘던 파의 애청, 북도, 서정에 이어 4대 대표시인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1985년 그는 중국작가협회에 가입, 87년엔 구미문화교류방문단에 끼어 창작강의활동을 하다가 88년엔 뉴질랜드로 가서 중국고전문학을 가르쳤으며 오크란대학의 아시아언어연구원으로 초빙,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누렸지만 곧 사직하고 섬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한편 1992년, 그는 독일학술교류중심(DAAD) 창작기금을 받으며 잠시 독일에서 시작생활을 시작했으나 현실과 이상사이의 갭을 허물지 못한 그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결국 그마저 사직하고 뉴질랜드북방의 한 작은 섬(격류도激流岛)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닭도 키우고... 신금철-안해를 도끼로 죽인 끔직한 일을 벌렸다면서요? 사실입니까? 원인은 무엇입니까? 림금산-네, 생활고로 인한 리혼제기, 시창작고조기, 사회적인 압력, 정신착락,영아와의 리별 등이 주되는 원인인것 같다고 나름대로 생각함. 그러나 근 일년만에 생활고와 섬약한 그의 정신상태 등을 이유로 그의 아내(사엽)가 이혼을 요구하자 1993年10月8日 급기야 아내를 도끼로 죽이고 자신도 목을 매서 자살했다. 당시 이 사건은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많은 매체에선 “고성이 도끼로 부인을 살해하다”라고 보도하면서, 동화시인이었던 그가 악마에 의해 정신이상을 일으켜 살인자가 되었다고 했다. 물론 사후 일부 그 누명은 벗겨졌지만 (고성의 누나 고향顾鄕은 “고성최후의 14일”이라는 기획물에서 말하길, 도끼는 우연히 그 장소에 있었을 뿐이며,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 참혹한 사건은 중국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1993年 3月 그들 부부는 중국으로 귀국하여 가족과 문인들을 만나고 다시 독일을 거쳐 뉴질랜드로 돌아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아내 사엽과 고성은 1979년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4년간 연애를 하다가 1983년 결혼했다. 1987년 같이 조국을 떠나 자살을 할 때까지 그의 아내는 그의 잦은 실직과 이사, 가난, 그리고 고성을 쫓아다니며 함께 살기도 했던 여인,‘영아’ 등으로 많은 심리적 고초를 견뎌내는 중에도 관용과 미덕을 겸비했던 여인이었다. 하지만, 극단의 자기 중심적이었던 고성으로서는 그의 어머니이자 누나 노릇을 해오던 그녀를 떠나가게 할수 없었는지 모른다.  신금철—홍콩에서 고성시인의 이야기로 영화도 찍었다면서요? 림금산—네, 홍콩에서 찍은 《고성의 이별과 사랑 》이란 영화는 고성자신이 남긴 《영아英儿》라는 소설내용이 반영된 것이었다. 고성이 최후에 보여준 광폭한 모습은 그의 시를 좋아해 쫓아다니던 한 여인때문이라는 항간의 추측도 있었는데, 그 ‘영아란 여인의 실제 본명은 리잉李英으로 현재《시간诗刊》잡지사의 편집을 맡아보는 매기麦琪라는 필명의 여인이다. 그러나 매기는 고성이 죽은후 그녀에게 남겨진 이런 주홍글씨를 명확히 거부하고 있다. 신금철—유서도 여러통 남겼다고 들었는데요? 한편 1993년 12월 22일 뉴질랜드 경찰국을 통해 중국영사관에 전달된 그의 유서는 모두 네통이었다. 부모님에게, 엄마에게, 누나에게, 아들 무얼木耳에게,..! 이 유서들은 사건현장에서 경찰이 취합했는데, 통합해서 보면, 그는 길이 끊어진 막다른 곳에 스스로 몰려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어린 아들木耳(三木Sam)에게만은 눈물을 보이며 아빠를 이해해달라는 문구가 있었다. 고성은 사진과 원고 등을 누이에게 부탁했으며 굳이 보관하지 않아도 되며 집이나 그밖의 것 역시 아들에게 굳이 남기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후 모든 원고나 모든 고성의 것들은 자연스레 누나가 보관, 최근 고성의 탄신 50년에 즈음하여 북방문예출판사에서 4권의 “고성문학계열顾城文学系列”을 냈는데 그 첫 권《고성문학선: 다른 세계 顾城文选别有天地》은 고성이 1987년 5월 독일 밍스터明斯特에서 가진 “국제시가축제”에 참가하면서부터 1993년 10월 8일 그의 아내와 한 섬으로 도피했을 때까지 쓴 작품들을  “고성의 성顾城之城”이라는 웹싸이트의 강소민江晓敏과 함께 편집한 것이다. 총 150만 여개의 문자로 산문 및 시를 실었다.     신금철-고성은 많은 시와 문장, 서법, 그림 등을 남겼다면서요? 어떤 작품들이 있습니까? 림금산—네 방금 우에서 소개한 4권의 고성문학계절작품집이 있는가 하면 고성의 성이란 웹사이트가 있고 …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저서로는 시집 《검은 눈동자》(1986年 인민문학출판)《한낮의 달빛》、《서정, 고성서정시선집》、《북방의 고독한 노래》、《쇠방울》、《북도,고성시선》、《고성의 시》、《고성의 동화우화 시선》、《고성현대시자선집》과 그의 사후 부친 고공이 편집해서 출판한 《고성시전편》이 있다.。그 밖에 1998년 인민문학출판사에서 낸 《고성의 시》와 장편소설《잉얼》(1994年 1월 북경 화예사출판 그의 아내 시에예 합작)、《성城》등 작품들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되었으며 그외 문집《생명이 정지된 곳, 영혼이 나간다 》,조합시집《성城》、《귀신이 성으로 들어간다》、 《자아로부터 자연》、《목적없는 나》가 있다。 고성시의 예술적 특징 첫 째, 비교적 우화적 의미와 상징성을 신중하게 지니고 있으며 시의 음악성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모종의 동화 색채가 엿보이며 그것도 소위 개구쟁이 성격을 띤다는 것이었다. 고성시의 최대 특징은 이미지의 실현이다 그 실현을 위해 제일 많이 사용한 표현은 상징은유법이었다. 이 수사법은 진실 그대로 그리거나 내심을 직접 토로하는 전통 방식을 깼으며, 서정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놓았다. 그의 시중의 상징은 표면상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심층적으론 무한한 함축을 내포하고 있어서 시의 감염력이 매우 크다. 예를 들어 짧은 단시《한세대사람》에서 “까만 밤”,“나”“까만 눈동자”등은 감성 형성 구성을 위한 이미지의 조합이다. 이 시어들은 이미 그 단어 자체로 객관적 의의를 갖고 있다. 더불어 제목에서 주는 암시 때문에 더더욱 강렬한 상징성을 가진다.   즉, “까만 밤黑夜”은 한 세대의 정신세계의 암울한 배경을 상징한다. “눈동자”는 광명을 갈망하는 한 세대의 눈동자를 상징하며 시 중의 “나”는 바로 가장 고통받고 인간의 말로까지 가보았던 문혁세대들, 그 세대를 가리킨다. 이로 인해 시 상징의 심미적 특성은 실제 이미지의 내재의 미학 특성이기도 하다. 총정리하면 시의 이미지는 본래 언어라는 기호를 본체로 벗어날 수는 없지만, 늘 그는 공식화된 언어를 초월하기를 꿈꿨다. 따라서 고성시의 이미지는 그만의 독특한 천진함과 단순하고도 직선적인 표현 아래 자아비판적이고도 풍자성이 농후한 예술풍격을 낳았다고 본다. 신금철—그럼 고성시인의 대표적 시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그의 짧은 명시 “한 세대 사람”을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한 세대 사람                     고성 캄캄한 밤은 나에게 까만 눈동자를 주었지만 허나, 나는 그 눈으로 되려 광명을 찾는다     림금산-이 시는 “시간”에 발표되여 당시 큰 센세이숀을 일으켰다.  문혁을 거친 한 세대 청년이었던 고성은 웃 시 두 행으로 몽롱시의 대표시인(1956年9月∼1993年10月)이 되었다. 20세기 70년대 말에서 80년 대 초의 몽롱시는 당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으며  “해방”이라는 중요한 한 문학 조류를 만들었는데 그는 바로 이 당대 현대시의 혁신의 기점이 되었던 것이다. 웃 시에 대해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파란만장한 문혁시대의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 역시 이 세대에 속한 자로서 “까만 어둠”은 그 시대를 반영한 것으로 우리의 눈동자가 까만 이유가 역설적으로 표현되었다. 더군다나 광명조차 이 까만 어둠을 건너지 않고는 다가오지 않음을, 그것도 까만 눈동자 아니면 바라볼수 없음을 극명하게 아이러니컬하게 밝히고 있다. 어찌 보면 단순한 이 표현속에 감춰진 당시  현실에 대한 냉소와 反思想이 시인에게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을지 짐작이 간다. 신금철—다음은 역시 대표적 시 “눈을 깜박이기만 하면”을 함께 감상하고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눈을 깜박이기만 하면 ____저  착오의 시대에 나는 이런 "착시"를 일으켰다______   나는 굳게 믿으련다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지켜보련다   고운 무지개는 분수 속에서 아른거리며    부드러이 행인들을 반기다가도 내가 눈 한번 깜박이기만 하면 곧 독사의 그림자로 변해버리겠지   괘종시계도 교회당에 은거하면서 고요한 새벽시간을 갉다가도 내가 눈 한번 깜박이기만 하면 곧 깊은 우물로 변해버릴거야   붉은 꽃은 화려한 무대위에서 봉우리 터치며 흥분속에 봄바람 맞다가도 내가 눈 한번 깜박이기만 하면 곧 피비린내로 변해버릴테지   하지만 굳게 믿으려고 믿어보려고 나는 두 눈을 그냥 부릅뜨고 있다    - 80년 4월호 발표   림금산-이 작품은 80년 4월 “시간” 잡지에 고성시인이 24세 때 발표한 것이다. 즉, 문화혁명이 막 끝난 직후 착오의 시대를 살아온 인민들의 반력사적인 "착각"과 그 "오류"를 치기(유치한 기가)섞인 반어적, 역설적 기법으로 표현, 기막힌 냉소를 보여주고 있다. 눈을 깜박거릴수 없는 한 세대의 긴장감, 그러나 깜박거릴 수밖에 없어 지켜내지 못한 나의 과오이자 인민들의 과오는 ‘무지개’가 독사의 그림자로, ‘교회당 시계’는 시간을 쏠아대는 깊은 침묵의 우물 속으로, ‘붉은 꽃’은 문혁을 질풍노도로 피비린내를 일으켰던 홍위병의 봄바람으로 변하고 말았음을, 폭로하고 있다. 신처럼 받들어졌던 틀린 개념에 대한 숭배와, 문혁을 주도했던 4인방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났을 때, 이런 천지개벽의 변화를 시인은 과연 어떻게 시로 표현할수 있으며 이율배반적 현실에 적응할수 있었겠는가?  반어적 농담으로 내뱉는 아픈 시선이 이 시 곳곳에서 발견된다.   나는 고집센 아이   ___ 난 대지에 창문을 가득히 그려놓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동자가 빛에도 익숙해지도록 하고 싶다._____                                       어쩌면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에 버릇없어진 아이처럼 난 제멋대로인지 모른다   나는 매 시각이 색깔 예쁜 크레용처럼 아름답기를 바란다 나는  내 맘에 드는 흰 종이에 서툴고 거친 자유를 그려내거나 영원히 눈물 흘리지 않는 눈동자를 그려내길 바란다 넓은 하늘 그 하늘의 깃털과 나뭇잎 그리고 엷은 녹색의 어둔 저녁과 사과를 그려내기를 바란다   난 새벽을 그리거나 이슬을 그리거나 눈에 보이는 미소를 그리고 싶다 가장 젊고 가장 고통스러운 사랑을 그리고 싶다 그녀는 검은 구름을 본적이 없다 그녀의 눈은 하늘빛 그녀는 영원히 나를 바라본다 영원히, 바라본다 절대로 머리 돌려 홀연히 가지 않는다 난 요원한 풍경을 그리고 싶다 또렷한 지평선과 물결을 그리고 싶다 많고 많은 쾌락의 시냇물을 그리고 싶다 구름을 그려본다______ 잔털이 잔잔하게 가득 찬, 난 그들을 아주 가까이 붙게 하고 그들 서로를 사랑하게 한다 모든 묵계와 봄날의 모든 조용한 격동이 한송이 작은 꽃의 생일이 되게 한다   난 또 미래를 그려보고 싶다 난 그녀를 만난 적이 없고, 또 그럴리도 없다 그러나 그녀가 아주 아름답다는건 안다. 난 그녀의 가을코트를 그리고 타오르는 촛불과 단풍잎을 그리고 수없이 그녀를 사랑하기에 재가 돼버린 마음을 그린다 결혼식을 그리고 일찌감치 깨어난 경축일을 그린다 그위에 유리빛 사탕종이와 북방동화의 삽화를 붙여 넣는다 난 제멋대로인 아이 모든 불행을 지워버리고 싶다 나는 대지위에 창문을 가득히 그려놓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동자들이 빛에도 익숙해지도록 하고 싶다. 난 바람을 그리고 싶다 하나하나 점점 높아지는 산들을 그리고 동방민족의 갈망을 그리고 막힐것 없는 큰 바다의 유쾌한 소리를 그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종이 한 모퉁이에 나는 또 나자신을 그리고 싶다 한마리 코알라를 그린다 빅토리아의 깊은 숲속에 조용한 나뭇가지에 앉아서 넋을 놓고 있는, 그는 집이 없고 한 조각 마음은 먼곳에 나가 있다 그는 단지 수많은 장과(浆果)와 같은 꿈과 아주 아주 큰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나는 바라고 있다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러나 왠지 모르지만 나는 크레용을 받지 못했고 색깔있는 시각을 얻지 못했다 단지 나 자신만이 있을뿐 나의 손가락과 상처의 아픔 한장 한장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으로 아끼던 백지만 있을뿐 그들이 나비를 찾아가게 하고 그들이 오늘부터 사라지게 할뿐이다.   나는 어린 아이 환상속 엄마로부터 지나친 사랑에 버릇없어진   나는 고집센 아이다 림금산—해설: 시《 나는 고집센 아이》는 자신이 바로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에 버릇없어진 아이 ”임을 선포하고 있다. 자기만의 생각에 맞춰 자기만의 꿈을 고집하는 건 그의 집착이기도 하지만, 한편 그의 매력이기도 하다. 복잡하고 억압된 성인세계 속에서 고성의 의식은 “눈을 감으면 세계와 나는 관련이 없어진다 ”고 보았으니 말이다。. 《나는 고집센 아이》에서 차용한 아이들의 시각은 아동의 이상 안에서 개조된 성인세계다. 고성은 이 시에서 보여준 아이들 형상은 맑은 바람처럼 성인세계의 오염된 땅을 뒤흔들었다. 또 하나 몽롱시의 대표시인 북도北岛도 한탄하며 말하길 “비천함은 비천한 이들의 통행증이 되고 고상함은 고상한 자의 묘비명이 될 때, 고성은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서툴지만 ‘자유’를 찾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시는 그야말로 고성의 성격과 그만의 색깔이 드러난 시이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영아英儿≫에서도 나오지만, 그는 안정적인 독일에서의 생활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리곤 누구의 간섭도 필요 없는 섬으로 들어가지만 여전히 사회성이 없는 그를 괴롭힌다. 그는 철없는 아이로 살고 싶어한다.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러나 왠지 모르지만 ”나는 크레용을 받지 못했고/ ..생략../ 단지 나 자신만이 있을 뿐/..생략.../마음으로 아끼던 백지만 있을 뿐“이다. 문혁은 끝났으나 뉴질랜드까지 도피해 왔으나 그가 살아남는 길은, 천진한, 개구쟁이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색깔을 찾아 그리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백지’만 있고 ‘크레용’이 없다. ‘손가락도 다쳤다’ 이것이 그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신—다음은 고성의 “먼것과 가까운 것”이란 시를 감상하겠습니다. 아주 짦은 시인데요 먼 것과 가까운 것                    당신은                                                 , 나를 한번 바라보다                   또 구름을 한번 쳐다보고                      난 이제 알것같아요                               당신이 나를 볼 땐 아주 멀리 느껴지겠죠           당신이 구름을 볼 땐 아주 가까이 느껴지고       1980년 발표작 림—해설: 진실이란 무엇인가, 정말 가까이 다가가면 보이는 것일까, 단절은 지금 이렇게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고 말하는 중에도 일어나고 있다. 정작 먼 구름은 가깝게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함께 사랑을 나눈 너와 나 사이에서는 여전히 먼 거리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 틈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 우린 느낀다, 깨닫는다. 신금철—다음은 고성의 시 “리별”을 함께 감상하시죠 리별          고성 봄의 한가운데서  너는 손수건을 가볍게 흔드는구나 나더러 멀리 가라는 뜻일가 아니면 곧 돌아오라는 뜻일가 아니, 아무뜻도 아닐거야 별다른 뜻이 없을테지 마치도 물우에 지는 꽃잎과 같고 꽃잎에 떨어지는 이슬과 같을거야 그림자만이 그뜻을 알수 있을가  바람만이 느낄수 있을가 오직 탄식으로 놀란 꽃나비만이 아직도 내 마음의 꽃밭에서 분분히 날고있구나  림금산—해설: 이별이 이리 가벼울 수 있을까, 단지 손수건 한 장 흔들듯 그대는 가고 어떤 이유도 댈 수 없는 채로 그렇게 봄날속에 우리들 이별은 바람 한점 남기며 떠난다. 그것도 봄날에, 아무도 귀 기울여 아는 체도 없는데, 오직 채색나비가 꽃잎 떨어지듯 그림자를 잠시 남기며 바람인듯 날아가는 그 가벼운 탄식아래 그렇게 우리의 이별은 가볍고 또 가볍게 봄을 풀어내고 있다니,..!  신금철—다음은 시 “작은 항구”입니다. 작은 골목 작은 골목 굽이굽이 길구나       문도 없고 창도 없어   난 오래된 열쇠를 들고 두터운 담장을 두들긴다   림금산—해설:   아주 작은 항구에 몸을 숨겨도 여전히 창도 없고 문도 없다. 그를 가려줄 현관문 열쇠를 찾아보지만, 너무 녹슬어 쓸모가 없다. 별수 없이 막힌 담장에 가서 두들긴다. 자기 안의 성안에서 그만의 소통을 꿈꾼다. 그의 말을 들어주던 누이처럼 누군가 자신에게 걸어 들어와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꿈꾼다. 마지막으로 찾아든 뉴질랜드의 아주 작은 섬, 그곳에서 그는 숨어 살고자 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과 생활을 맡은 그의 아내의 질책이 뒤따른다. 숨 막히는 그의 막다른 골목을 “작은 골목”이란 이 두 글자에서 찾는게 그리 어렵지않다.              신금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도 림금산선생을 모시고 중국몽롱파 시의 황제 고성시인과 그의 일부 대표적 작품을 감상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중국을 놀래운 시인이면서 또 세계적인 시인인 고성시인에 대해서 어느정도 료해가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림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림금산—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금철—그럼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림금산약력: 중국조선족시인 . 중국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 부주임. 중국연변시가학회 부회장. 현중국조선족소년보사 기자부 주임. 주소:중국길림성연길시광명가 89호 중국조선족소년보사. 전화 (0433)2518894. 핸폰: 159-4339-8225 메일: ,  
672    대만 현대시의 흐름 댓글:  조회:4497  추천:0  2015-08-26
대만 현대시의 흐름                    ㅡ田原 시인을 중심으로               _한성례 옮김     1. 대만의 현대시 하면 대학시절에 처음 읽었던『대만현대시선』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간체자판으로 중국에서 출판된 시 선집이었다. 대만 당국과 중국과의 정치적 대립과 적대 정책이 오랫동안 이어진 탓에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내세우기 전까지 대만의 현대시인과 작가들의 작품은 중국에서 출판이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그래서인지 대만 현대시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신선함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같은 중국인이고 같은 중국어로 시를 쓰는데 왜 이리도 대만 시와 중국 시는 다를까. 번체자와 간체자의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내용은 전혀 달라서 몹시 놀라웠다. 이때가 내가 대학에 들어가 막 시를 쓰기 시작한 1980년대 초였다. 얼마 후에 중국 시인의 현대시와 대만의 현대시가 왜 다른지 알게 되었다. 그건 중국과 대만은 체제도 다르고 시를 창작하는 인문적·정치적 환경이 상이했기 때문이었다. 대만 현대시인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만의 현대시는 중국과 달리 건전한 문화 환경과 언론의 자유로 인해 일찍부터 유럽 현대시를 음미할 수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처럼 대만 현대시는 유럽 현대시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한편으로 한시와 같은 중국의 전통적 고전문학을 중시하고 계승하는 노력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른바 동서고금을 융합하여 그들 나름의 시혼詩魂을 형성한 것이다. 이 점이 대만 현대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렇긴 하지만 대만의 현대시를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대만 현대시의 탄생은 일반적으로 1920년대부터라고 파악한다. 따라서 대만에서 현대시라고 하면 1920년부터 1945년까지의 작품을 가리킨다. 1895년부터 1945년까지 대만은 반세기 동안 일본의 식민지 시대와 장제스蔣介石 정권의 친미노선 시기를 거쳤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통해 대만의 시인을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일본의 식민지 시대 일본어 교육을 받은 시인들’이며, 이들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을 당시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장제스와 함께 중국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이른바 ‘외성인 시인’이다. 이 외성인 시인은 다시 두 갈래로 나뉜다. ‘대만에 오기 전부터 이미 중국에서 시를 쓴 경험이 있는 시인’과 ‘대만에 건너온 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이다. 그리고 ‘본성인 시인’이 존재한다. 본성인이란 중국에서 온 외래자가 아니라 대만에서 태어나 자란 시인을 말한다. 일본 식민지 시대부터 시를 써온 대만 국적의 본성인 시인으로는 초기에 활동한 라이허頼和, 양서우위楊守愚, 양화楊華 등이 있다. 그 후에 등장한 이가 왕바이옌王白淵, 린시우얼林修二, 천챤우陳千武, 잔빙詹氷 등이다. 그밖에 린우푸林巫福, 바이디白萩, 황허성黄荷生, 린헝타이林亨泰, 양무楊牧도 본성인 시인에 속한다. 이 시인들이 식민지 시대에는 어떤 언어로 시를 썼을까. 첫 번째는 백화문이다. 백화문은 그때까지 사용해온 고문을 뒤엎고 탄생한 새로운 중국어다. 이들은 분명 1920년대를 전후해서 베이징北京에서 시작된 백화문 운동에서 영향을 받았으리라. 두 번째는 대만어인데, 대만 원주민의 방언을 사용하여 시를 썼다. 세 번째는 식민지 지배자의 언어인 일본어이다. 이 무렵 대만의 현대시는 비판적 리얼리즘과 전위 모더니즘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와 동시에 반제국주의적인 식민지 통치와 반봉건적 사상, 대만의 풍토와 인정人情을 주제로 한 작품도 많다. 식민지 지배자의 언어뿐 아니라 일본 현대시의 새로운 관념과 표현법 등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이 시대와 관련하여 동인 시문학지〈풍차Le Moulin〉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1933년 10월부터 1934년 9월까지 발간된 이 동인지의 멤버 중 일부는 일본인이었다. 당시의 대만 현대시에서 이들 일본인 시인들은 일본과 대만의 시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자연스럽게 일본의 현대시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일본의 패전으로 식민지 시대가 끝난 1945년부터 장제스 정권이 대만에 들어온 1949년까지 대만의 현대시는 고적한 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이는 그동안 사용해온 일본어와 대만어를 국어인 ‘중국어’로 교체하는 언어의 과도기 탓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대만의 현대시는 195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50년대 대만의 시단은 중국에서 건너온 시인들이 주도했다. 이 무렵 대만 현대시는 중국과의 정치적 대립에 따른 반공산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띠는 정치적 서정시가 등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시인들이 순수시와 비슷한 모더니즘 작품을 중심으로 창작했다. 이 무렵 활약한 대표 시인은 지샨紀弦, 종딩원鐘鼎文, 위광종余光中, 러우푸洛夫, 야샨瘂弦, 저우멍뎨周夢蝶, 정처우위鄭愁予 등이 있다. 특히 지샨이 1953년 2월 1일 창간한 동인 시문학지〈현대시〉는 이후 대만의 모더니즘 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대만 시인의 3분의 2에 달하는 103명이 ‘현대파’ 멤버였을 정도로 영향력은 대단했다. 이후 1953년 6월 친찌하오覃子豪, 종딩원, 위광종 등이 동인 시문학지〈남성藍星〉을 창간한다. 1954년에는 국민당의 건국기념일(10월 10일)에 맞춰 러우푸, 야샨을 중심으로 동인 시문학지〈창세기〉를 창간한다. 특히〈창세기〉는 대만 현대시단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초기에 보여준 ‘신민족 시형新民族詩型’에서 전환한 후기의 ‘초현실주의’라는 창작 기법은 당시 시단의 다른 그룹과 존재를 구분 지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지금도 대만의 뛰어난 시인을 거론할 때면 이〈창세기〉에 소속된 시인들이 많다.     2. 일반적으로 전후 대만 현대시의 발자취는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a. 1940년대 후반~1950년대 초반 :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끝난 후부터 장제스 정권의 초기까지로, 대만 현대시가 잠시 부활했다가 정치적 속박과 제압으로 침묵한 시기 b. 1950년대 초기~1960년대 중반 : 모더니즘 시운동이 활약했던 시기 c. 1960년대 중반~1970년대 : 현대시의 리얼리즘 사조가 활발해지고 모더니즘 시에 대한 제고와 조정이 이뤄진 시기 d. 1980년대 이후 : 낭만주의, 사실주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등 서로 다른 다양한 예술 경향이 다원적으로 불어난 시기.     사실 처음 대만의 현대시를 접했을 때 나는 이런 구분법을 알지 못했다. 시인이 어디 출신인지, 그들이 개인적으로 어떤 삶의 태도를 지향하고 있는지 등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내 관심은 그들의 시가 얼마나 내 마음을 파고들지, 나를 계발시킬 힘은 있는지, 혹은 공부가 될 만한 수준인지에 있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서 현대시가 발전한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대만의 현대시는 내가 일본에 오기 전에 읽었던 그 상황과 그 시대에 머물러 있지 않다. 내가 일본에 유학 온 후, 특히 최근 몇 년간 대만 시인의 작품을 보면 상당히 다원적으로 발전해 왔음을 파악할 수 있다. 유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주로 신문 잡지 등 종이 매체에 실리던 시를 인터넷 세계의 확장에 따라 인터넷과 자신의 블로그 등에 활발하게 발표하여 종이 매체의 시와 인터넷 시가 공존하는 시대가 되었다. ‘인터넷 시’는 그 질감의 옥석 수준을 가리기 힘들다는 점을 제외하면 어느 면에서는 현대시가 퍼져나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에 태어난 대만의 시인들에게 외성인과 본성인이라는 정체성의 경계는 사라졌다. 중국에서 건너온 부모에게서 태어난 시인도 마찬가지다. 일부 외성인 시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던 지워지지 않는 향수 콤플렉스는 대만에서 태어나 자란 시인들의 작품에서는 사라지고 없다. 대만 출생의 시인에게는 고향이나 머나먼 방랑, 그리움에 대한 표현보다는 자신의 정신적 고향 또는 진정한 뮤즈를 갈구하는 것이 더 중요한 책무인지도 모른다. 1950년대〈현대시〉라는 시문학지의 창간은 혈기 넘치는 현대시의 한 시기를 이끌었다. 1950년대 말〈창세기〉는 개정판을 내고 ‘세계성과 초현실성, 오리지널과 순수성’을 제창하며 초현실주의시라는 현대시 붐을 일으켰다. 아울러 대만의 현대시사에 두 가지 논쟁도 발자취를 남겼다. 하나는 1957년에 일어난 논쟁으로, ‘횡적 이식移植’을 추진하고 ‘종적 계승’을 반대하는 지샨의 주장에〈남성〉의 멤버가 극렬히 반발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1959년부터 1960년까지의 작가 쑤쉐린蘇雪林과 친찌하오가 벌인 ‘전통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3. 1960년에 들어서면 다시 여러 시문학지가 창간된다. 그 중〈포도원葡萄園〉이라는 동인지가 1962년 7월에 시인 원샤오춘文曉村, 천민화陳敏華, 구딩古丁 등에 의해 탄생한다. 그 뒤를 이어 일본의 식민지 시대 리얼리즘 정신의 연장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동인지〈립笠〉도 1964년에 시인 천챤우, 두궈칭杜国清, 리퀘이샨李魁賢 등에 의해 세상에 나온다. 아울러 이 시기에는 수많은 현대시집이 출판되었다. 이 무렵 맹활약한 시인과 화제가 된 시집은 야샨의『심연深淵』, 러우푸의『석실지사망石室之死亡』, 상친商禽의『꿈 또는 여명』, 저우멍뎨의『환혼초還魂草』, 러우먼羅門의『아흐레의 저류底流』, 위광종의『고타악敲打楽』등 무수히 많다. 1970년대에 접어들자 향토 상상鄕土想像과 본토 의식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쟝순蒋勲, 샹양向陽, 두예渡也, 리민용李敏勇 등이 대표적 시인이다. 시 평론가 샹양은 1970년대 대만 현대시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전통을 바꾸고 민족적 시풍을 재건했다. 2. 사회로 환원하고 현실생활을 배려했다 3. 대지를 수용하고 본토 의식을 수긍했다. 4. 세속을 중시하여 대중의 마음속 목소리를 반영했다. 5. 자유를 존중하여 다원적 사상을 격려했다.     이 시기에 등장한 대표적 시인은 샹양, 뤄지청羅智成, 천커화陳克華, 양무, 천리陳黎등이 있다. 1980년대부터 나는 대만의 몇몇 시인과 함께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 현대시 축제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들의 시를 접하고서 작풍의 다원성과 언어의 불확실성이 점점 선명해져간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가장 인상에 남는 시인은 정신과 의사인 징샹하이鯨向海와 안과 전문의 양커화楊克華다. 그밖에 쟌정전簡政珍, 링위零雨, 천리, 샤위夏宇, 러우칭羅青, 린야요더林耀徳, 양쟈샨楊佳嫺, 양쩌楊澤 등이 있다. 실험성 강한 시를 비롯하여 영상과 시를 융합하여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 낸 작품들을 처음 접하고서 굉장히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만 한정된 시론이 아니고 현대시의 사명이란 무엇보다도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움과 신비감을 지닌 언어를 창조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릇 현대시라는 장르는 시간과 공간, 시공을 꿰뚫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정치 운동으로 얼룩진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시대, 특히 잔혹했던 10년간의 문화대혁명 시대는 중국에 있어 진정한 현대시의 공백기였다. 그 시기에 대만의 현대시가 건강하게 발전하고 존재했다는 것은 중국어로 쓰인 현대시에 있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다.     2014년 10월 11일 이나게稲毛해안에서         티엔 위안田原 1965년 중국 허난성河南省 출생. 시인, 번역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허난河南대학교 재학 중에 첫 중국어시집 출간. 대학 졸업 후 1991년에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2003년 리쓰메이칸立命館 대학 대학원에서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郞론’으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 다니카와 슌타로의 작품에서 감명을 받아『다니카와 슌타로 시선집』4권을 중국어로 편역하여 중국에서 일본 시가와 다니카와 슌타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중국어와 일본어로 시 창작을 계속하는 한편으로 일본 현대시인의 작품을 중국어로 다수 번역하였고, 동시에 일본과 중국 시인들의 본격적이고 폭넓은 문학교류에 앞장서 왔다. 중국어 번역서『다니카와 슌타로 시선집』, 편저『다니카와 슌타로 시선집』1~3권, 박사논문집 『다니카와 슌타로 론』등이 있다. 그 외에도 다무라 류이치田村隆一, 쓰지이 다카시辻井喬 등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시인의 작품을 다수 중국에 번역 소개했다. 리쓰메이칸 대학 대학원생이던 2001년 제1회 유학생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일본어로 시 창작을 시작했으며, 2004년에 첫 일본어시집『그리하여 낭떠러지가 탄생했다』를 출간했고, 2009년에는 중국 스촨四川대지진의 슬픔 등을 쓴 제2시집『돌의 기억』을 출간하여 이 시집으로 2010년도 제60회 ‘H씨 상’을 수상했다. 당시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이 상을 외국인이 수상하여 크게 화제를 모았다. 2011년에는『티엔 위안 시집』이 시초샤思潮社의 ‘겐다이시분코現代詩文庫’시리즈 205권 째로서 출간되었는데 이 또한 외국인으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그 외에도 2005년에 번역한『다니카와 슌타로 시집』으로 중국 북경에서 제2회 ‘21세기 딩준鼎鈞문학상’과 2011년에 여러 권의 중국어시집 번역서로서 제3회 ‘종쿤中坤시가상’을 수상했으며, 중국어, 영어 시집으로 중국, 미국, 대만 등에서 여러 시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 일본 도쿄의 조사이城西대학 중문과 교수.       한성례 (번역) 1986년 〈시와 의식〉 등단 한국어 시집 『실험실의 미인』 외 일본어 시집 『감색치마폭의 하늘은』 외 현 세종사이버대 겸임교수    
671    중국 현대시 여러 류파를 중심으로 댓글:  조회:5224  추천:0  2015-08-26
  격동의 20세기를 이겨낸 중국 현대시         _ 문화혁명 이전의 여러 유파를 중심으로 -                 김 금용 시인    중국은 청나라 말기부터 외세침입에 의한 봉건주의 붕괴와 함께 서구 세계의 문예사조가 일시에 들이닥쳤기 때문에 신시와 근대시, 그리고 현대시의 시대 구분이 모호하다. 일반적으로 중국문단에서는 1917년에 문어체에서 구어체로 탈바꿈한 白話운동을 포함한 신 문학운동을 기점으로 반제국, 반봉건주의 혁명운동인 ‘5.4운동’이 일어난 1919년까지를 현대시의 발생기로 본다. 즉, 백화운동으로 중국문자혁명이 일어난 1910년대부터 개인과 문학이 말살된 문화혁명이 끝난 1976년까지를 통틀어 현대시라고 부르는 게 중론이다. 따라서 필자는 중국문단의 통설에 따라 1907년 루쉰魯迅이 서구의 셀리, 바이런, 키이츠, 푸슈킨 등의 시들을 白話로 소개함으로써 시작된 중국의 신시와 문화혁명 이전까지를 ‘현대시’로 소개하고자 한다. 또한 7,80년대 이후의 시를 중국문단에서는 ‘당대시當代詩’라고 부르고 있으므로 필자는 중국 당대시를 크게는 현대시의 범주에 넣어서, 각 시대별 유파들의 특성과 그 시정신을 짚어보려 한다   “白話”를 매개로 한 신문학운동   본격적인 신시운동은후스胡適(1891~1962)가 1917년《신청년》 2월호에서 “한정된 형식에는 무한한 내용을 담을 수 없다”며, 시의 형식 타파를 주창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단순히 전통적 정형시 형식으로부터 이론적 탈바꿈만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현대시의 특징이 되는 낭만성, 상징성, 산문성 및 사회성을 도입함으로써 일약 시의 혁명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후스胡適가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 유학할 때 접하게 된 서구 문예사조는 후스 뿐만 아니라 중국 신지식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했으며 그들은 앞다퉈 전문 시지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시의 유파를 형성하면서 활발한 시 운동을 전개했다. 따라서 국,공 내란의 정치적 압박과 항일전쟁이 시작되기 전인 1920,30년대는 중국 시문학사상 유례가 없는 자유롭고도 치열한 심도의 시 전성기를 이뤘다고 할 것이다.   까마귀                후스*   나는새벽같이 일찍 일어나 사람들 지붕 모서리에 서서 시끄럽게 소리지르네 사람들은 내가 불길하다고 미워하네 나는 그네들 사랑 받자고 재잘거릴 줄 모르네 몹시 춥고 바람센 날에도 돌아가 쉴 곳이 없네 …후략… 『상시집嘗試集』에 수록   老鴉                                  胡適 我大清站在人家屋角上啞啞的啼/人家討嫌我,說我不吉利;--/我不能呢呢喃喃 寒風緊,無枝可棲。/我整日裏飛去飛回,整日裏又寒又飢。---/                                                              윗 시는 후스가 1924년(32세)에 발표한 시이다. 까마귀는 시인 자신을 비유하는 한편, 당시 중국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봉건왕조가 붕괴된 새 체제의 불안 속에서 자신이 품고있는 이상과 현실의 갭을 잘 투사하고 있다. 시인은 항상 군중 " 群" 과 나 자신 "己" 속에서 갈등하면서 자신만의 자유를 추구하려 한다. 첫 행은 많은 사람 가운데서 홀로 고립된 자신의 모습이며, 또한 깨어나 먼저 나라의 앞날을 짊어진 젊은이의 고뇌의 모습이기도 하다. 4.5행의 "無枝可棲""又寒又飢" 역시 춥고 배고파도 돌아가 쉴, 혹은 머물 나뭇가지 하나 없는 자신의 선구자적 존재의 고뇌와 고독을 표현하고 있다. 완전한 백화문으로 쓰여지고, 격률시의 정형성에서도 벗어나 있으며, 20년대 초기 작품이지만, 상징과 은유, 역설적 표현이 잘 드러난 최근 현대시로도 손색이 없는 수작이다.   쉬즈뭐徐志摩, 리진파李金髮 등과 함께 의 대표적인 시인인 원이둬聞一多는 시“여신의 地方色彩”에서 음악미와 건축미를 내세우며 현대시 리듬을 주창했으며, 리진파李金髮 는 프랑스의 상징시에 영향을 받아 를 이끌었다. 중국인들이 오늘날도 애송하는 국민시인 궈뭐루어郭沫若 역시 이 시인으로 를 통해 유미서정 경향의 시를 다수 발표했다. 또한 , 가 루쉰魯迅과 빙신氷心, 주즈칭朱自淸, 조우줘런周作人 등을 중심으로 모더니즘을 수용, 비약을 시작했다.   상징파 시의 출현   상징은 현대시의 대표적인 특징의 하나이다. 중국 고대 시에서도 종종 눈에 띄는 창작법이나, 5.4운동 당시 『소년중국』『소년월보』『신청년』『창조주보創造週報』『어사語絲』등을 통해 소개된 프랑스의 상징주의와 상징시가 소개된 이후 본격적으로 창작되었다. 리진파李金髮 시인은 『어사語絲』에 상징주의 수법의 시를 처음 소개, 가장 왕성한 상징시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1925년부터 27년까지 3년간 《이슬비微雨》,《행복을 위한 노래爲幸福而歌》, 《식객과 흉년食客與凶年》등 세 권의 시집에 총 450 여편을 발표했다.      버림받은 여인                            李金髮리진파   긴 머리칼이 내 눈앞을 가리자 일체의 부끄러운 질시와 붉은 피의 급류, 앙상한 뼈다귀의 깊은 잠과 단절되었다. 칠흑의 밤이 모기떼를 몰고 천천히 다가와 낮은 담 모서리를 넘어와 결백한 내 귀에 대고 울부짖는다 황야를 휘돌며 노호하는 광풍이 무수한 목자들을 전율케 하듯   棄婦 長髮披遍我眼之前/ 遂隔斷了一切羞惡之疾視/ 與鮮血之急流, 枯骨之沉/黑夜與蚊蟲聯步徐來 /越此短墻之角/ 狂呼在我淸白之耳後,/如荒野狂風怒號./戰慓了無數遊牧   윗 시는 《이슬비微雨》에 수록된 대표시 중 하나로서 고국을 떠나 프랑스에 거주한 스무 살의 리진파의 문화적 충격과 이방인으로서의 방황을 그리고 있다. ‘棄婦’는 삶의 고달픈 숙명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기실 리진파 자신이 유학 중에 겪지 않을 수 없었던 외로움, 조국에 대한 고뇌, 방황, 절망에 이르는 비극성을 토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당시 프랑스에서 팽배하던 보들레르의 상징주의와 퇴폐성의 영향을 받아 그의 시 전반에는 현실에 대한 허무, 비애, 무능, 권태 등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모기떼를 몰고 오는 칠흑 같은 밤은 무고한 그의 귀에 와서 울부짖으며 그를 괴롭힌다. 외우내환으로 들끓는 조국의 현실 앞에서 미약하기 그지없는 시인의 자화상을 호소력 있게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를 ‘詩怪’라고도 부르는데, 아마도 그가 외교관 등의 직업을 갖고 부유한 생활을 했음에도 시에선 상당한 퇴폐성과 삶의 절망 등을 보여줬기 때문인 것 같다.   당시 新詩운동을 전개시키며 서구의 문예사조를 재빨리 흡수, 바로 현대시로 발전시킨 당대 시인들에겐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대부분이 구미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들이라는 점이다. 상징파 대표시인인 리진파는 홍콩에서 영국식 교육을 받고 프랑스, 독일에서 유학했으며 후에 외교관이 되어 미국에도 건너갔다가 뉴욕에서 70세에 세상을 떠났다. 삼대 상징파시인의 하나라고 불리던 왕두칭王獨淸 일본과 프랑스에서, 무무티엔穆木天은 일본 동경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펑나이차오馮乃超 역시 동경대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공부하며 자연스레 외국문물을 접했던 시인들이었다. 이들은 프랑스의 상징주의의 영향 아래 순수시를 표방하고 신비주의, 유미주의 경향을 나타냈는데, 리진파는 베를렌을, 무무티엔穆木天은 라파르그(Lafargue)를, 다이왕수戴望舒는 야메스(Jammes)를, 스민石民은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았음을 모두 인정하였다. 이들의 시에선 공통적으로 상징수법의 하나인 강렬한 암시와 음감과 색감을 동시에 결합시킨 기법을 활용하였는데, 특히 왕두칭王獨淸(정+힘) + (음 + 색)=라는 공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즉, 라마틴(Lamartin)으로부터 情을, 베를렌에게선 音을, 랭보(Arthur Rlmbaud)에게선 色을, 라파르그(Lafargue)에게선 ‘힘’을 전승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의 대두   중국인민들이 지금까지 애송하는 국민시인, 원이둬聞一多와 쉬즈뭐徐志摩, 리진파李金髮 시인은 모두 신월파 동인들이기도 했다. 그들의 정치색은 대체적으로 마르크스시즘에 대항하며 우파 노선을 견지하면서도 국민당의 독재와 부정부패에는 저항하였다. 때문에 한때 국민당의 사찰을 받기도 했지만, 중국전국이 공산주의 국가체제로 바뀌자 5,60년대 중국학자들로부터는 ‘매판자본주의 문학단체’ 혹은 ‘반동적집단’이라고 비판을 받다가, 80년대 이후에서야 비로소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는 사실 인도의 타고르의 시집『초승달』(중국어로 新月)이란 이름에 매료되어 滿月이 되자고 1923년 북경에서 쉬즈뭐徐志摩가 발기한 사교 모임이었다. 원이둬聞一多와 쉬즈뭐徐志摩는 해외유학파였으므로 여러 계층의 신사들을 모아 자유롭게 연극을 감상하고 문학을 품평하다가 사회개혁을 시도하자는 뜻으로 동인들의 자본을 모아 1924년 12월에 『현대평론』을 창간하였다. 1927년, 북벌군에 쫓겨 상해로 온 시인들과 남경이나 해외에서 들어온 전국시인들이 모여    후스胡適를 세워 도 열고 19세기 말 영국의 문예지 『Yellow Book』을 닮은 정사각형 종합지도 발간했다. 의 공동신념은 자유주의, 인도주의, 개성해방이었으며 격율시를 제창했다. ‘격율시’란 시행의 장단이나 시의 韻의 위치를 조절함으로써 시의 균형을 도모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전통시가 무너지면서 실험시가 넘쳐 만 여 편 이상이 발표되었으며, 방만한 낭만주의나 산문시가 만연하였다. 이러한 혼란상을 극복하고 전통시의 절구시나 율시의 형식을 일부 이식, 조화롭게 정리, 발전시킨다는 목적이 있었다. 또한 시어의 음악화, 방언의 시어화를 시도했다. 원이둬聞一多는 특히 음악미, 회화미, 형식상 균형을 지키자는 건축미를 주창했다. 일부는 를 ‘말린두부시(豆腐乾詩)’‘모꼴시(方塊詩)’ 라고 비아냥을 하기도 하였으나, 인권, 자유, 민주, 법치 등을 강조하는 서구 영향 아래 ‘中體西用’을 실험적으로 응용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어쨌든 혁명문학의 팽배와 항일운동의 봉기, 후에 좌익작가연맹으로 조직화된 사회주의 문학의 등장으로 이들이 이끌던 『현대평론』은 1928년 정간이 되었다. 다시 쉬즈뭐徐志摩가 『詩刊』을 매주 한 번씩 발간하기도 하였으나, 그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요절함으로써, 동년 6월, 11호로 정간되고 말아 회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고요한 밤                             원이둬    이 등불, 등불은 사방의 벽을 하얗게 씻어내고 점잖게 놓인 탁자와 의자는 친구처럼 친밀하다 고서의 종이 향내가 간간이 밀려오는데 소중한 찻잔들은 정숙한 여인처럼 청결하다 젖먹이는 엄마 품에서 홀짝홀짝 젖을 빨고 큰아이는 건강하다고 알리는 듯 코를 곤다   這燈光, 這燈光漂白了的四壁 / 這賢良的卓椅, 朋友似的親密, / 這古書的紙香, 一陣陣的襲來/   要好的茶杯, 貞女一般的潔白,/ 受哺的小兒, 接呷在母親懷裏/鼾聲報導我大兒健康的消息...//                                             聞一多 中 一部   윗 시에선 그의 주장대로 각 행 머리를 ‘這’로 시작하였으며 행의 중간마다 ‘的’을 넣어줌으로써 ‘節의 균형’과 ‘句의 규제’가 반복적으로 쓰여 리듬과 일정한 건축미를 나타내 주고 있다. ‘격율’이란 단순한 음률상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적, 회화적, 건축적인 복합 차원의 형식의 규제이다. 따라서 자연대로의 수용이 아닌, 예술의 구성을 통한 唯美性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와 를 수용한   1930년대 대표적인 유파는 현대파이다. 는 본질적으로 를 계승, 발전했다. 두 파간의 상호 인적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시의 생명을 표현에 두고 시의 궁극목표를 순수시에 두었다는 점에서 그 공통점이 있다. 는 1932년 5월, 의 출자와 시저춘施蟄存. 두헝杜衡의 편집으로 간행된 종합문예지 《현대》에서 시작되어 다이왕수戴望舒가 본격적으로 현대주의의 기치를 들고 『新詩』를 창간하면서부터 전 중국시단을 휩쓸게 된다. 와 의 쇠퇴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종전의 인물이었던 다이왕수戴望舒가 를 접수하고 여기저기에서 현대파 경향의 신 잡지들이 탄생하게 된다. 36년부터 37년까지 중일전쟁으로 말미암아 전 시단이 항전체제로 전환되기까지 는 최고의 성숙기를 맞아 다이왕수戴望舒는 비엔즈린卞之琳, 펑즈馮至, 쑨다이위孫大雨, 등과 공동편집으로 현대시의 조류를 강렬하게 펼침으로써 5.4운동 이래 중국 시 최고의 황금시기를 맞았다. 가 궁극에 둔 것은 순수시였다. 프랑스의 상징주의의 영향 아래 중국전역이 의 낭만과 신비로움, 난해한 시가 넘쳐 난데 대한 반발로 ‘자각적인 상징파’*3로 불리던 다이왕수戴望舒에 의해  中.西의 조화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즉, 밖으로는 프랑스의 상징주의와 의 암시법과 상징법, 의 낭만성과 격율시 등을 조화시켜 몽롱미와 복합적 이미지의 조합을 이뤘다. 또한 순수시정, 시의 산문미의 특성을 갖춤으로써 를 수정, 계승하고 있다. 이로써 현대파는 상징파보다 훨씬 화해적이고 통일적이며 주지적이고 의 지나친 암시와 상징으로 인한 난해함을 벗어나 좀더 직관적이고도 단순적 이미지로 시의 영역을 훨씬 명랑하고 격율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느끼게 했다. 다만, 당시 정치적 상황 등으로 인해 비관적 서정풍과 이미지 조합에 실험성을 가미한 심상풍, 직설이나 격정을 유보하면서도 현실비판에 맘을 둔 사실풍, 초현실적인 수법으로 첨예화된 현대의식을 표현하려던 회화풍 등 여러 가지 경향들이 혼재되어 나타났다. "현대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서정적 낭만과 격율적 형식을 배제하지 못했으며 고전적 이성으로 현대적 상징과 심상의 융합을 꾀하는 시인들도 많았다.  이런 의미에선 는 지성과 이성을 강조하는 영미계 현대주의와는 그 특징을 조금 달리한다고 볼 수 있겠다.     비 내리는 골목                                 다이왕수戴望舒   종이우산을 받들고, 혼자 길고 긴, 텅 빈 비 내리는 골목을 방황하면서 나는 희망한다 라일락처럼 근심과 원한을 맺은 소녀와 만나게 되기를   撑着油紙傘, 獨自 / 彷徨在悠長, 悠長 / 叉寂寥的雨巷,我喜望逢着 / 一個丁香一樣地 / 結着愁怨的姑娘//                                               中 一章   윗 시는 다이왕수가1927년 4.12사태에 연루되어 스저춘施蟄存 시인의 집에 숨어 지낼 때, 프랑스 시인 베를렌에 도취되어 쓴 시로 이 시는 1928년 《소설월보》에 발표되면서 일약 유명해진 작품이다. 베르렌의 와 견주어지곤 하는데, 슬픈 리듬이 노래처럼 강물처럼 흐느끼는 걸 느끼게 한다. 종이우산이나 긴 방황이 끝나지 않는 골목, 빗속에 남보라 빛 그늘을 드리우는 라일락, 그 라일락처럼 향과 슬픔을 함께 지닌 소녀와의 마주침 등이 ‘이슬비’ 속에 연결되어 창으로 번지는 빗물같이 물안개같이 읽는 독자들 가슴 속으로 스며든다. 인식이나 설명이 없이도 응축된 서정이 흐르며 시어가 절제되어 해이하지 않고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현대파의 특성 중, 애원적 정서를 바탕으로 고독과 우울을 서정풍이면서 삽화풍으로 그려낸 초창기 다이왕수의 대표시이다.     단장                                   비엔즈린   그대는 다리에 서서 풍경을 바라본다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은 누각에서 그대를 바라본다 밝은 달은 그대의 창을 장식하고 그대는 다른 사람의 꿈을 장식한다   断章                              卞之琳 你在桥上看风景/看风景的人在樓上看你/ 明月装饰了你的窗子/ 你装饰了别人的梦.   1935년 10월에 발표된 이 시는 장시의 한 부분으로 후에 독립시켜 《断章》 제목을 달았는데, 중국 현대문학사상  짧으면서도 내포한 함의가 풍부한 명시라 할 수 있다. 이 시가 품고 있는 철학은, 사람들은 사물에 대해 자기 입장에서 각기 다른 이해를 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시인 스스로도 "나의 의도는 ‘상대적’이라는 개념을 중시하자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 시는 응축과 절제가 잘 이뤄진 현대파의 대표적인 시이다.    의 출현   시의 열풍이 강해질수록 독자들과는 소원해지는 당시 중국 상황은 일부 시인들이 복잡다단한 외세와 내부의 정치적 현실을 무시하고 개인의 감성과 우울한 정서에만 치중한 데 중요한 원인이 있었다. 이러한 괴리가 한창 심각해질 때, 마침 일본의 침략으로 중국 전체가 항일전쟁 수행이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그 바람에 상징파, 신월파, 현대파 시인들도 모두 밖으로 나왔다. 유파와 관계없이 항일을 위한 민족적 위기감으로 그들은 뭉쳐서 시 낭송회와 좌담으로 민심을 모으는데 앞장섰다. 그러나 당시 국민당정권의 "외세를 축출하기 전에 먼저 국내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반공 주장 때문에, 그들은 반공 열기 속에서 항일전쟁보다는 국.공 대립에 밀려 좌.우익으로 갈리고, 갈등과 분쟁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문예를 위한 문예가 아니라’ ‘붓을 무기로 삼아’ ‘거리로, 시골로 뻗치는’ 가두시나 선동적 낭송시를 쓰게 되었다. 따라서 8년간(1937, 7월- 1945.8월)이나 계속된 항전은 급기야 시의 변화를 가져왔다. 낭송시의 단소화, 민족형식의 장편서사화, 정치시의 대중화의 색채가 두드러졌다. 이 때부터 낭송시, 가두시, 전단시라는 단어가 생겼으며 1938년엔 ‘가두시가운동선언’까지 나왔다. 이렇게 왜곡되기 시작한 항전문학도 1942년 공산화가 자리 잡히고, 모택동이 ‘연안 문예좌담회에서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문예정책’은 모든 인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시여야 하고 정치노선을 찬양하며 정치보다 더 우위에 설 수는 없다’고 연설하면서는 사실상 모든 예술은 파괴되었다.   시인들은 외국의 침략과 좌파와의 충돌이란 두 가지 짐을 져야 했다. 한창 누렸던 민주화 물결 속의 개인의 사상이나 사고, 자유의지 등은 국민당의 부패로 인해 상대적으로 호응을 받기 시작한 공산주의 운동으로 정치색을 드러내며 대중화되고 통속적, 산문적이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항전시기의 시는 20여 년의 신문학을 계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좌익 정치노선의 구호에 내밀리며 대중화 시가 되었으며 민족화의 요구로 인한 개념화, 공식화의 현상을 가져와 예술성의 조잡함과 과도한 사상의 노출 등 결함을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항전초기엔 애국애족의 민족사상과 함께 불붙어 모든 시들이 다 그렇지는 않았다. 즉,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국민과 위기의 조국을 위해 국민당과 공산당이 단합하여 ‘내전을 중단하고 모두 대외투쟁에 나서자’고 ‘항일민족통일전선’이 형성된 뒤, 시인들 중에는 항일정신으로 민족정기를 일으키는 시를 쓴 아이칭艾靑 같은, 후세까지 존경받는 시인이 있었으며, 다이왕수戴望舒와 비엔즈린卞之琳, 허치방何其芳, 무무티엔,穆木天, 좡커자臧克家, 루이스路易士, 루위엔綠原, 무단穆旦, 신디辛笛, 자오링이趙令儀 시인들도 시의 형상화, 심오한 경지화, 내성적인 시를 씀으로써 끝까지 순수시를 지켜내려 노력했다. 국가의 위기는 시인들을 더 많이 고무시키고 단합하게 만들어 한편에선 항전과 무관한 순수예술이 계속 발표되었다.   나는 이 대지를 사랑한다  아이 칭 내가 만일 한 마리 새라면 나는 응당 목이 쉬도록 노래할 것이다 저 거센 폭풍우가 휩쓸고 지나간 대지, 저 우리들의 비분이 영원히 용솟음치는 강줄기, 저 멈추지 않고 불어대는 격노한 바람, 그리고 숲 사이로 다가오는 더할나위 없이 부드러운 여명,..... _____ 그 후에야 난 죽을 것이다 깃털조차 토지 속으로 썩어 들 것이다   왜 나의 눈엔 항상 눈물이 고이는 걸까 내가 이 대지를 그토록 깊이 사랑하기 때문일까,......   我爱这土地                               艾 青 仮如我是一只鸟, / 我也应该用嘶哑的喉咙歌唱:/ 这被暴风雨所打击着的土地 / 这永远汹涌着我们的悲愤的河流 / 这无止息地吹刮着的激怒的风, /和那来自林间的无比温柔的黎明..... /___然後我死了,/ 连羽毛也腐烂在土地里面 // 为什麽我的眼里常含泪水? /因为我对这土地爱得深沈........   아이칭의 이 시는 일본이 중국 대륙을 침략하고, 전국이 항일전쟁의 기치 하에 뭉쳤던 1938년 작으로서 절절히 표현된 조국애로 말미암아 지금까지도 중국인민들이 사랑하는 애송시이기도 하다. 이 시 외에 라는 시에서도 절절하게 애국애민의 순애보를 느낄 수 있다. 아이칭은 원래는 프랑스 미술유학생이었으나 중국좌익미술가연맹에 연루, 좌익으로 몰려 투옥되면서, 이 때부터 시를 전념했다. 그런 만큼 정치적 갈등과 그 사이에서 고통을 받는 중국인민들을 위한 열렬한 시를 발표했다. 아이칭은 국민당이 몰려난 즉 후에 다시 우익으로 몰려 노동개조소로 끌려가면서 절필선언을 했다. 장장 10여 년의 문혁이 끝난 뒤에야 신분회복이 이뤄져 북경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생활을 한 민족시인이다. 당시 외세의 침략과 정치 대립 사이에서 고통 받으면서도 민족을 위해 한 줄의 시로 목쉬도록 아침을 깨우는 새 한 마리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음을 이 시는 절규하고 있다.    시의 암흑기: " 정치는 모든 예술에 앞선다"   일찍이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의 부정부패의 토양 위에서 자라난 중국 공산주의는 한창 서구 문예사조를 일시에 섭렵한 시인들의 자유분방함에 대해 일갈을 가했다. 즉, 시인들에게 정치 노선에 봉사하는 찬양 선동적 역할을 강요한 것이다. 즉, 모택동의 “연안문예강화”(1942년 5월) 발표와 함께 시는 “정치적 표준이 예술적 표준에 앞선다”는 강령 아래 개인의 자유로운 사고나 의지, 남.녀간의 사랑표현 등, 시인의 개성과 인성을 중시하는 표현은 지하로 숨어들었고 시 정신이나 시인의 지위는 왜곡되고 말았다. 더군다나 1949년 공산주의 신중국이 성립되고 곧 이은 한국전쟁 참전으로 정치와 군사가 압도하면서 중국 시단은 함께 선동의 깃발을 들고 전선으로 나가야 했다. 특히 이상적 공산주의의 실현을 내걸고 정권 탈취와 연장을 위해 1966년부터 10여 년간 실시된 문화혁명은 인간성 말살의 극치를 보여줬으며 모든 예술의 암흑시대를 초래하였다.정치선전을 위한 목적시가 우선되면서 진정한 시 정신을 퇴보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현대시의 경계를 다시 문혁 그 이후로 잡아야 하느냐는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화남호랑이(华南虎)                           뉴 한牛 汉*⁴ 너의 건장한 다리는 꼿꼿이 서서 사방으로 뻗쳐나가네 내가 보는 너의 발가락은 하나하나가 모두 깨지고 망가져 짙고 짙은 선혈이 응고되어 있네 너의 발가락은 사람들에게 묶여서생으로 잘려나갔는가 아니면 비통한 분노 때문에 그 부숴진 이빨로 뜨거운 피가 나도록 물어뜯은 것인가   나는 철창우리를 바라보네 회색 시멘트 담장 위 한 길 한 길 피 묻힌 도랑이 있어 섬광처럼 현란하게 눈 찌르는 것을   마침내 알았네,..... 부끄러운 마음으로 동물원을 떠날 때 갑자기 외치는 한 소리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외침, 속박할 수 없는 영혼이 내 정수리를 내리치고 허공으로 사라지네 나는 보았네, 불타오를 듯한 무늬와 불 타오르는 눈동자를 1976년 6월, 1982년2월호에 실림    你的健壮的腿/ 直挺挺地向四方伸开 / 我看见 的每 趾瓜 / 全都是破碎的,/ 凝结着浓浓的鲜血! / 你的趾瓜 / 是被人綑綁着 / 活活地鉸掉的 ? /还是由于悲愤/ 用同样破碎的牙齿/ 把他们和着热血咬碎的.....//     我看见铁籠里 / 灰灰的水泥墙壁上/ 有一道一道的血淋淋的溝壑 / 像闪电电那般耀眼刺目! //       我终于明白....../ 我羞愧地離开了动物园, / 恍惚之中听见一声 / 石破天驚的咆哮 /有一不羁的灵魂//      掠过我的斗顶/ 腾空而去, / 我看见了火焰似的斑纹 / 火焰似的眼睛!//               윗 시를 쓴 뉴한牛汉이 를 통해서 밝힌 시정신은 아래와 같다. " 나는 신장이 190센티로 우리 고향의 고량 나무 만큼이나 키가 크다. 그만큼 나의 뼈가 나를 가련히 여기고, 나를 보호해 주고 있다..내가 힘들게 살아가는 동안 수 천 개의 크고 작은 뼈마디들이 이를 악 물고 나를 액운으로부터 지켜주는 소리를 들었다. 천지신명께 감사하고, 나의 뼈에 감사하고, 나의 시에 감사할 일이다. 노동을 많이 해서 손바닥에는 딱딱한 못이 적지 않게 박혀 있고, 깊고 가벼운 상처들도 많다. 수십 년 동안 나는 아픈 손으로  시를 써 왔고, 시 한 줄, 글자 하나 쓰는 것이 모두 아픔이었다....나는 다른 사람보다 감각기관이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나의 뼈마디, 그리고 외관과 영혼 속의 상흔이다." 윗 시는 물론 汗血马(피땀 흘리는 말), 悼念一棵樹(한 그루 단풍나무를 애도함),半棵树(반쪽나무) 같은 시들은 오랜 전쟁과 공산주의 혁명, 그리고 문화혁명까지 닥치면서 휘돌아 치는 격랑에 지치고 다친 중국인민들의 상흔을 그리고 있다. 이 시도 뉴한이 감옥에서 나와 노동개조소에 오래 노동을 하다가1976년, 문혁이 끝나는 시점에서야 쓰여진 것으로 6년 뒤에야 발표를 했다는 데서도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이가 빠지고 발톱이 생으로 빠져나가 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구경꾼들의 조롱에 아랑곳하지 않고 끝내 외마디 포효를 함으로써 불 타오르는 그의 눈빛과 분노를 통한 그 절절한 삶에의 의지와 지켜내고자 하는 마지막 자존심을 발견할 수 있다. 인성의 말살을 실험하였던 문혁기간 중에도 견뎌낸 그의 시정신도 바로 이 화남호랑이 같았으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6,70년대 文革 기간 중 감옥이나 노동개조소로 끌려가면서도 문학은 지하에서도 지속되어, 중국 현대시사는 결코 정치로 인해 중단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왜냐면, 70년대까지 이어진 정치서정시는 가송시, 생산시를 낳았지만, 예술성의 실험은 버리지 않고 지켜내어 80년 이후 다양한 새 영역으로 중국 현대시의 명맥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고난과 핍박 속에서 시인의 정신은 더욱 단단히 단련되는 것일까, 노동개조소나 감옥에 수감되었던 시인들에 의해, 문혁 이후에는 새로 탄생된 젊은 시인들에 의해, 고매한 시 정신과 시의 예술성, 순수성이 지켜져 오다가, 개혁개방이 시작된 8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정치 홍보용 꼭두각시가 아닌 ‘현대시’가 새로운 시각으로 발표되었다. 거기에 실험성도 가미되면서 현재 중국시는 보다 자유로운 풍토에서 2,30년대를 방불케하는 시적 열기가 다양한 개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존엄한 인성을 찾는 발걸음도 늦추지 않고 분투하고 있다.                                                     ** 참조, 1) : 후스: 1891년 상해 따칭大清태어나 시인으로 학자로 철학가로 많은 저서를 남겼다. 5.4 운동의 중심인물로서 제일 먼저 백화문으로 신시를 썼으며 모택동에게 제안하여 湖南自修대학을 설립하게 했다. 후엔 《자유중국》잡지의 발행인으로 있으면서 민주사상을 흠모, 언론의 자유가 있는 대만에서 살다가 1962년 70세 때 세상을 떠났다. 2) 李金髮(1900年11月21日-1976年12月25日) 현대상징주의 시인으로 조각가이며 교수, 외교관 등을 역임했다. 그 역시 1919년에 프랑스에서  조각과 유화를 배웠다. 1920년 프랑스의 상징주의를 받아들여 시를 쓰기 시작, 중국상징주의 대표시인이 되었다. 1925년 귀국, 항주국립미술원, 중산대학미대교수로 있다가 1932년《현대》잡지를 통해 현대파 시인이 되었다. 1941년 항일문예운동에 뛰어들어 《문단文坛》창간을 도왔으나 그 해 이란, 이라크 등의 외교관으로 나가면서 후엔 아예 미국으로 이민, 뉴욕에서 76세에 생을 마감했다. 3) 盧斯飛, 劉會文 《馮至戴望舒的詩歌創作》 廣西敎育出版, 南寧,1989, 6月   이 책에서 인용함. 서구문화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중국 전통에서부터 이어져 온 상징수법을 다이왕수戴望舒에 의해 中.西의 조화를 창안했다는 뜻. 4) 뉴 한 (1923- ) : 원명은 史 成汉 山西省 定襄에서 태어남. 몽고족으로 1980년대 "칠월"파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였다. 문화혁명이 끝난 뒤 아이 칭(艾 青을 위시한 일련의 시인들이 복귀하자 "귀래(归来"파에 흡수되어 80년대부터 시작된 현대시의 주류가 되었다. 그도 우파로 몰려 1955년에서 57년까지 감옥생활을 했으므로 발표나 시집 출판이 한동안 금지되었다.   ** 참고문헌 :   1, 『中國現代文學史』 上,下 冊 : 朱棟 丁 帆 朱曉進 主編  《高等敎育》出版 2000년 6월 2, 『20世紀 漢語 詩選 』: 康 耕玉 選編  上海敎育出版社 1999. 12월  3.『중국현대시 연구』,허세욱, 1992년 6월 《명문당》 4.『중국 현대문학사_ 혁명과 문학운동_ 』 菊地三郞 저, 정유중, 이유여 옮김, 1986년, 《동녘》출판사  3. 『문혁이 낳은 중국 현대시』 김금용, 2006.4월, 《찾기》츨판사 4. 『中国现代诗歌史』 维基百科 自由的百科全书중에서     ** 필자, 김금용 : 시인.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광화문 쟈콥』『넘치는 그늘』, 번역시집 『문혁이 낳은 중국현대시』,『나의 시에게』로 2008년 펜번역문학상 수상.                                                                 겨울호에 발표        
670    중국문화 - 중국 詩의 발달 댓글:  조회:6080  추천:0  2015-08-26
  [ 2015년 08월 28일 09시 01분 ]       중국인민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시즘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대회 중국 시의 발달   중국에서 운문 장르를 대표하는 것은 『시경』에서 연원하여 당·송대에 극치를 이룬 시다. 원래 '시(詩)'라는 말은 춘추전국시대에는 『시경』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였다. 그것은 마치 '서(書)'가 『상서(尙書)』를 가리키고 '하(河)'가 황하(黃河)를 가리키며, '강(江)'이 장강(長江)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였던 것과 같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시는 『시경』에서 연원한 하나의 운문 장르를 가리키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중국 고전시라고 하면 대부분 5언시와 7언시고, 그 가운데서도 5언시가 가장 대표적인 형식이다. 원래 『시경』의 시들은 앞에서도 보았듯이 4언이 위주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5언 위주로 변했을까? 그것은 음악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대 이전까지 중국 시의 기본은 4언이었다. 그런데 한대에 들어 국력의 융성에 힘입어 정복 전쟁과 해외교역이 활발해지면서 많은 종류의 외래 음악이 중국으로 물밀듯이 수입되었다. 한대에는 음악을 관장하던 악부(樂府)라는 관청이 있어 민간에서 유행하던 다양한 음악들을 수집하여 정리했는데 이를 악부시(樂府詩)라고 한다. 악부시에는 전통적인 4언 리듬과는 다른 들쑥날쑥한 자구에 다양한 리듬의 시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자구가 정제되어 있으면서도 빠르고 경쾌한 5언 리듬의 노래들이 점차 환영을 받으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4언에 비해 5언이 빠르고 경쾌하다고 함은 4언시에서는 두 구가 합쳐서 한 의미 단락이 되는 것에 비해 5언시에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의미 단락이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본 「관저」편을 예를 들면 앞의 구절 '꾸억꾸억 우는 물수리새(關關雎鳩)'가 주어가 되고 '황하의 모래톱에 있네(在河之州)'가 술어가 된다. 5언시는 대체로 두 자, 세 자(○○/○○○)로 나뉘는데 이것만으로 충분히 하나의 문장이 된다. 뒤의 예문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7언시는 5언시의 앞에다 두 글자를 첨가한 형태로 네 자, 세 자(○○○○/○○○)로 나뉜다. 5언시에 비해서 조금 무겁다고 할 수 있다. 5언시의 정확한 성립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많이 있는데 대체로 동한 시기에는 확실하게 정착되었다고 본다. 초기의 5언시는 물론 매우 소박한 형태였다. 5언시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지어졌다고 하는 「고시 19수」의 한 작품을 보자. 行行重行行 가고 또 가니 與君生別離 그대와 생이별이네. 相去萬餘里 서로 만여 리나 떨어져서 各在天一涯 각기 하늘가에 있네. 道路阻且長 길은 험하고도 머니 會面安可知 만날 수 있을지 어찌 알까? 胡馬依北風 오랑캐 말은 북풍에 의지하고 越鳥巢南枝 월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깃드네. 相去日已遠 서로 떨어진 것이 날로 멀어지고 衣帶日已緩 옷과 허리띠는 날로 느슨해지네. 浮雲蔽白日 뜬 구름이 밝은 해를 가려서 游子不顧反 나그네는 돌아오지 못하네. 思君令人老 그대 생각에 사람은 늙어가는데 歲月忽已晩 세월은 벌써 이미 느즈막하네. 棄捐勿復道 다 버려두고 다시 말하지 않겠으니 努力加餐飯 부디 밥이나 잘 드소서. 멀리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낙의 애절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시는 수사기교가 별로 없는 매우 소박한 시다. 첫 구부터 '행'자가 여러 번 반복되고 전반적으로 구어체에 가깝다. 이 시에서 가장 멋있는 구절은 '오랑캐 말은 북풍에 의지하고 월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깃드네(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 부분이다. '말이나 새 같은 미물들도 고향을 그리워하는데 집 떠난 그대는 고향이 그립지 않느냐'는 뜻이다. 앞 구절과 뒤 구절이 문법적으로 비슷하게 배열되면서 단어들이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의미에서 서로 짝을 이루면서 어법으로도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을 대구(對句)라고 한다. 대구는 중국 시에서 매우 중요한 수사기교 가운데 하나다. 이 시 전체에 대구는 이 구절밖에 없다. 한나라 때의 시는 대부분 이런 수준이었다. 그러나 중국 문예사조에서 기교를 추구하던 위진남북조에 이르면 대구는 극도로 발전한다. 남조 송나라 때의 귀족시인인 사령운(謝靈運)이라는 시인의 시를 한 수 보도록 하자. 사령운은 중국문학사에서 본격적으로 산수시를 개척한 시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산수를 좋아하여 호화로운 산천유람을 많이 다니면서 귀족적이고 세련된 감각과 언어로 아름다운 산수를 표현하는 시를 많이 지었다. 그의 산수시 가운데 「어남산왕북산경호중첨조(於南山往北山經湖中瞻眺)」라는 시를 보도록 하자. 제목은 '남산에서 북산으로 가다가 호수를 지나면서 바라다보다'는 뜻이다. 朝旦發陽崖 아침 밝아올 때 남쪽 언덕을 출발하여 景落憩陰峰 해질 무렵 북쪽 산봉우리에서 쉰다. 舍舟眺逈渚 배를 버리고 멀리 잔 물섬을 바라보다 停策倚茂松 지팡이 멈추고 우거진 소나무에 기댄다. 側逕旣窈窕 비탈진 길은 이미 그윽한데 環州亦玲瓏 동그란 물섬 또한 영롱하다. 傘視喬木杪 고개 숙여 큰 나무 끝을 바라보다 仰聆大壑淙 고개 들어 큰 골짜기 물소리 듣는다. 石橫水分流 바위 가로 놓여 있어 물은 나뉘어 흐르고 林密磎絶踪 숲은 빽빽하여 길에는 발자취 끊기었네. 解作竟何感 비가 내리면 결국 무엇이 감응하는가? 升長皆丰容 자라나니 모두 무성한 모습들이네. 初篁苞綠籜 갓 자란 대나무는 푸른 죽순 껍질을 감싸고 新蒲含紫茸 새로 자란 부들은 붉은 싹을 머금고 있네. 海鷗戱春岸 바다 갈매기는 봄 언덕에서 장난하고 天鷄弄和風 들꿩은 부드러운 봄바람을 희롱하네. 撫化心無厭 조화를 느끼는데 마음에 실증 없고 覽物眷彌重 경물을 바라보니 사랑이 더욱 두터워지네. 不惜去人遠 떠난 사람 멀다 애석해하지 않지만 但恨莫與同 다만 함께 노닐 벗 없음이 한스럽네. 孤遊非情歎 외로운 유람길 마음으로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네. 賞廢理誰通 감상이 사라지면 깊은 이치를 누가 통하겠는가? 앞의 시와 비교하면 수사기교의 차이가 뚜렷하다. 일단 이 시는 앞의 시보다 훨씬 길지만 중복되는 글자가 한 자도 없다. 게다가 중간중간 평소 잘 쓰지 않는 한자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만큼 글자 한 자 한 자에 신경을 썼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전체가 모두 대구를 이루고 있다. 온갖 종류의 다양한 형식의 대구를 이용하여 산수의 경치와 산수 속에서 노니는 시인의 심경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압운(押韻)에서도 엄청난 진보를 보여준다. 압운이란 시의 운을 맞추는 것으로 중국 시의 가장 기초적인 수사기교다. 한자의 발음은 성모(聲母)와 운모(韻母)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모는 우리말의 초성에 해당하는데 예를 들면 '초'나 '성'에서 'ㅊ'과 'ㅅ'이 바로 성모고 나머지 부분이 운모다. 중국 시에서는 대개 매 연의 끝 글자들은 성모는 다르되 운모는 같은 글자를 써서 발음에서의 조화를 추구한다. 앞의 시에서는 압운이 중간에 변하지만 이 시에는 압운이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다. '봉(蜂)', '송(松)', '농(瓏)', '종(淙)' 등 압운하는 글자들이 모두 같은 운모에 속한다. '용(容)'이나 '용(茸)', '풍(風)', '중(重)' 등은 우리나라 한자음으로는 운모가 다르지만, 고대 중국의 한자음에서는 같은 운모에 속하는 글자들이다. 이 시의 가장 큰 단점은 수사기교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표현은 화려하지만 내용이 부실하다는 것이다. 그저 멋들어진 대구로 이런저런 아름다운 경치를 나열하고만 있지 작자의 진솔한 감정이나 깊은 사상은 전혀 없다. 이 시는 전형적인 외화내빈(外華內貧)의 시다. 중국 시가사(詩歌史)에서 위진남북조시대는 화려한 형식주의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중국 시의 수사기교의 발전에는 상당한 공헌을 했다. 위진남북조시대에 크게 발전한 시의 수사기교는 대구와 압운 외에 평측(平仄)과 전고(典故)가 있다. 평측이란 중국어의 특징인 사성(四聲)을 이용하여 발음에서의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고, 전고는 시 속에 경전(經典)이나 고사(故事)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가운데 더 중요한 것은 평측이다. 평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성을 알아야 한다. 사성이란 성조의 고저장단에 따른 네 가지 유형을 말한다. 사성은 중국어를 중국어답게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외국인에게는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현재 중국의 표준어인 북경어의 사성은 1, 2, 3, 4성을 가리키지만 고대 중국어의 사성은 평성(平聲), 상성(上聲), 거성(去聲), 입성(入聲) 네 가지였다. 고대의 사성을 현대의 사성과 비교해서 간단하게 살펴보자. 평성은 음과 양으로 나누어진다. 음평은 지금의 1성으로 줄곧 높은 소리를 내는 것이고, 양평은 지금의 2성으로 중간쯤 높이에서 아주 높은 소리로 올라가는 것이다. 상성은 지금의 3성으로, 낮은 데서 더 낮은 데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소리로 변화가 가장 심한 성조다. 거성은 4성으로 아주 높은 데서 가장 낮은 데로 소리를 떨어트리는 것이다. 사실 음의 고저장단의 네 가지 종류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다. 입성은 음의 고저장단과 상관없이 발음상 끝을 촉박하게 닫는 받침이 있는 소리를 가리키는데, 현대 북경어의 발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의 방언 가운데는 입성 발음을 보존하고 있는 방언이 많고 우리나라 한자음에도 입성이 남아 있다. 예를 들면 '국(國)'자나 '입(入)'자, '불(不)'자 등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한자음에서 받침이 'ㄱ, ㅂ, ㄹ'로 끝나는 한자는 모두 입성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중국 고전시의 평측법에서는 평성만 평성에 해당하고 나머지 상성, 거성, 입성은 모두 측성에 해당한다. 평성은 평탄하면서도 유장한 느낌을 주는 반면 측성은 모두 변화가 많고 급격하고 촉박한 느낌을 준다. 평이 양이라면 측은 음에 해당한다. 평측을 잘 배합하면 성조가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청각적으로 매우 아름답게 들린다. 앞에서 말한 수사기교 가운데 중국 시의 특징을 가장 두드러지게 만들어주는 것은 대구와 평측이다. 사실 운을 맞추는 것은 중국 시뿐만 아니라 서양 시에서도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영시에서는 이를 '라임(rhyme)'이라고 하는데 시라면 반드시 라임을 맞추어야 하고 노래 가사 또한 대부분 라임이 있어야 한다. 시 속에 고전의 구절이나 유명한 고사를 활용하는 전고 기법은 서양 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시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에 비해 대구와 평측은 중국어의 언어적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수사기교다. 물론 서양 시에서도 대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 시만큼 그렇게 중시되지 않고 치밀하지도 않다. 일단 중국 시처럼 그렇게 글자 수가 정제되어 있지 않다. 중국 시의 대구는 일단 글자 수가 완전하게 대칭이어야 하고 또한 문법구조도 비슷해야 한다. 이것은 중국어가 글자 한 자 한 자가 독립된 고립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평측은 사성에서 나온 음양의 조화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중국 시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중국 시에서는 평측 또한 대구의 한 수단으로 발전했다. 중국 시의 역사에서 위진남북조시기, 특히 남조시기는 화려한 수사기교에 지나치게 치우쳐 외화내빈의 시기라고 한다. 후대의 많은 시인들은 이 시기의 시에 그리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형식미의 추구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중국 시의 정화라고 할 수 있는 근체시(近體詩)를 탄생시키는 역할을 했다. 근체시는 남북조시대가 끝나고 수나라를 거쳐 당나라 초기에 완성되었다. 근체시라는 말은 고체시에 대비되는 말로 중국 고전시의 형식미를 집대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근체시에는 여러 가지 까다로운 규칙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바로 대구와 평측이었다. 이제 중국 시의 형식미는 완성되었고 남은 것은 그 속에 진실한 내용을 담는 것이었다. 그 일은 성당(盛唐)시대의 시인들에게 맡겨졌다. 성당시기란 현종 대에서 숙종을 거쳐 대종 초기까지 약 50여 년을 말하는데, 대략 전반 30년은 현종의 훌륭한 정치로 당나라의 번영이 극에 이르렀던 시기고, 다음 10년은 양귀비와 사랑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아 서서히 내부적 모순이 심해지는 시기며, 마지막 10년은 안록산(安綠山)과 그의 부하 사사명(史思明)이 일으킨 안사(安史)의 난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던 시기다. 짧은 시기에 최고의 번영과 처참한 파국을 모두 체험했기에 시인들의 삶의 폭은 매우 컸고 감정의 변화도 많았다. 이런 풍부한 삶의 체험과 다양한 감정의 색깔들이 시에 담기면서 중국 시는 전례 없이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우게 된다. 흔히들 이 시기를 중국 시가사(詩歌史)에서 최고의 황금기라고 부른다. 먼저 중국 시의 수준을 최고의 정점에 올린 두보(杜甫)의 시를 보도록 하자. 「春望」 봄의 바람 國破山河在 나라는 망가졌어도 산하는 여전한데 城春草木深 성은 봄이 되니 초목이 무성하구나. 感時花濺淚 시절을 느끼니 꽃에도 눈물을 뿌리고 恨別鳥驚心 이별을 서러워하여 새소리에도 마음 놀랜다. 烽火連三月 봉화는 석 달을 이어가는데 家書抵萬金 집의 편지는 만금 값에 달하네. 白頭搔更短 흰머리 긁으니 더욱 짧아져 渾欲不勝簪 비녀도 전혀 지탱하지 못할 듯이 되었네. 이 시는 안록산의 난이 일어난 뒤 장안에 잡혀 있던 두보가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쓴 시다. 앞에서 든 사령운의 시에 비해 훨씬 평이한 글자들을 사용하고 있고 문장도 훨씬 평이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실제로는 훨씬 치밀하고 정교한 시다. 이 시는 8구 4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대구와 평측의 법칙이 매우 잘 들어맞는 전형적인 근체시다. 이런 시를 5언 율시(律詩)라고 한다. 기는 전란으로 장안은 무너졌지만 봄이 오니 초목이 무성해졌다는 말로 시작하고, 이를 이어받은 승에서는 봄이 오니 피어나는 꽃과 찾아드는 새를 이야기하면서 시절에 대한 감상과 이별의 아픔을 말하고 있다. 전에서는 분위기를 약간 바꾸어 전쟁의 상황과 가족들의 소식을 걱정하는 마음을 보이고, 나라에 대한 근심과 가족에 대한 걱정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신의 심경을 드러내면서 결을 맺고 있다. 이 시는 마지막 연을 제하고는 모두 대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평측이 매우 정교하다. 근체시의 기법을 하나하나 다 설명하기는 어렵고 우선 첫째 연만이라도 좀더 심도 있게 분석하여 중국 시의 맛을 한 번 느껴보도록 하자. 첫째 연은 일단 먼저 10자밖에 되지 않는 짧은 구절 속에 참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구절이 두 개의 단문이 합쳐진 복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모두 네 개의 문장이 들어 있다. 그만큼 글자 한 자 한 자의 역할이 다 살아 있고 압축된 느낌이 있다. 그리고 첫째 구절과 둘째 구절은 어법이나 의미에서 완벽하게 대구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절묘한 기교로는 평측에서도 대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글자 하나씩 뜯어보도록 하자. 현재 북경 표준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평측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현대 중국어에는 입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 발음에 관련된 운서(韻書)를 보지 않으면 평측을 가릴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한자음에는 입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현대 중국어의 성조만 알고 있으면 평측을 쉽게 가릴 수 있다. 만약 중국어도 알고 우리나라 한자음도 아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중국 시를 읽을 때는 평측을 따져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중국 시의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國破'는 입성과 4성이기 때문에 모두 측성이다. 그러나 다음 글자인 '山河'는 1성과 2성이므로 모두 평성이다. 그리고 '在'는 4성이므로 측성이다. 아래 연에서 '城春'은 2성과 1성이므로 모두 평성이고 매우 울림이 유장한 소리다. '草木'은 3성과 입성이므로 측성이고, '深'은 1성이므로 평성이다. 평성을 ○으로, 측성을 ●으로 표시해서 첫째 연의 평측을 보자. 國破山河在 ●●○○● 城春草木深 ○○●●○ 이렇게 시각적으로 표시하니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평측은 단순히 서로 대조를 이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의(詩意)와도 잘 어우러지고 있다. '國破'는 뜻도 그렇지만 발음에서도 측성이기 때문에 매우 다급하고 촉박한 느낌을 준다. 다음으로 평성인 '山河'로 분위기를 약간 풀어주고, 다시 측성 '在'로 끝을 맺는다. 첫째 구는 전체적으로 측성이 주조를 이루고 있어 암울한 느낌이다. 둘째 구의 '城春'은 앞 구절의 '國破'와 대조를 이루는 단어다. 일단 뜻에서 강한 대비를 이룬다. 나라는 망가졌지만 그래도 계절의 순환은 어김이 없어 봄이 찾아온다는 뜻이다. 발음에서도 정반대로 평성이다. 게다가 이 발음들은 비음이 있기 때문에 더욱 유장하게 들린다. 다음에는 다시 측성인 '草木'을 배열하고 마지막으로 평성이자 비음이 있는 '深'을 써서 깊고 유장한 느낌을 이어간다. 전란으로 망가진 장안의 황폐함과 세상사와는 무관한 자연의 유장함이 평측의 효과로 인해 더욱 강하게 대비되고 있다. 글자 한 자 한 자에 실로 심오한 공력이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두보는 흔히 시성(詩聖)이라고 일컬어진다. 그의 시 속에 우국충정과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 등 유교적 윤리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글자 한 자 한 자에 심혈을 기울이는 성실한 태도가 유교적 성인에 가깝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다음에는 두보의 7언 율시 한 수를 감상하도록 하자. 7언 율시는 5언 율시보다 조금 늦게 발달했는데 두보가 가장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보이고 있는 영역이다. 「登高」 높은 데 올라 風急天高猿嘯哀 바람이 빠르고 하늘은 높은데 원숭이 휘파람 슬프고 渚淸沙白鳥飛廻 물가 맑고 모래 흰데 새는 날아 돌아오는구나. 無邊落木蕭蕭下 끝없이 낙엽은 쓸쓸히 떨어지고 不盡長江滾滾來 다함없는 장강은 도도히 흘러오는구나. 萬里悲秋常作客 만 리에 가을을 슬퍼하며 항상 나그네되어 百年多病獨登臺 한평생 병이 많아 홀로 누대에 오르는구나. 艱難苦恨繁霜鬢 가난에 서리 같은 귀밑머리 무성한 것을 슬퍼하는데 潦倒新停濁酒杯 늙고 지쳐 새 탁주잔을 다시 멈추었노라. 이 시는 두보의 만년에 가족들과 헤어져 장강을 정처 없이 떠돌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지은 시다. 이 시 또한 앞의 5언 율시와 마찬가지로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는 풍경을 묘사하고 승에서는 그 풍경 묘사를 심화하고 있다. 사실 기와 승을 풍경 묘사로 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전에서는 풍경 묘사에서 일변하여 작자 자신의 심경을 드러내고 있고 마지막으로 그 심경을 심화하면서 결을 맺는다. 그러나 기와 승에서 풍경을 묘사했다고 해서 작자의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풍경 하나하나에 작자의 감정이 짙게 묻어나고 있다. 원숭이 울음소리에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고 새가 날아 돌아오는 광경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심경이 담겨 있다. 쓸쓸히 떨어지는 낙엽에는 유한한 인생에 대한 비애가 담겨 있고, 도도히 흘러가는 장강에는 자연의 무한함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 시의 마지막 장면은 탁주잔을 잡고 머뭇거리고 있는 시인의 늙고 지친 손이다. 높은 하늘, 광활한 장강에서 시작한 시야는 점차 시인 한 사람에게 집중되더니 결국 술잔을 잡은 시인의 손에서 끝이 난다. 이 시는 전체적인 구도도 정교하고 대구도 기가 막히지만 평측법 또한 절묘하다. 그 가운데서 가장 압권은 둘째 연이다. 평측을 따져보면서 감상해보자. 먼저 '無邊'은 2성과 1성이므로 둘 다 평성이다. 다음에 '落木'은 둘 다 입성이므로 측성이다. '蕭蕭'는 평성이고, '下'는 4성이므로 측성이다. '不盡'은 입성과 4성이므로 둘 다 측성이다. '長江'은 2성과 1성이므로 둘 다 평성이다. '滾滾'은 3성이므로 측성이다. '來'는 2성이므로 평성이다. 이것을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기호로 표시해보자. 無邊落木蕭蕭下 ○○●●○○● 不盡長江滾滾來 ●●○○●●○ 이 연의 문장구조는 앞에서 든 「춘망」의 첫째 연에 비해 단순하다. 한 구에 단문 하나씩밖에 없다. 첫 구에서 '無邊'과 '蕭蕭'는 수식어고, 중심어는 '落木'이라는 주어와 '下'라는 동사다. 이 구절은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는 장면이다. 이런 시의와 어울리게 이 구절의 중심어는 모두 촉박한 느낌의 측성이다. '낙목'은 입성인 동시에 성조 또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4성이기 때문에 더욱 촉박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동사인 '下' 또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4성이다. 아래 구절은 인생의 유한함과 대비되는 자연의 무한함을 노래하는 것으로 중심어는 '長江'과 '來'다. 첫 구절과는 반대로 편안한 느낌의 평성이다. 특히 '長江'은 둘 다 매우 유장한 느낌을 주는 발음들이고, '來' 또한 상쾌하게 올라가는 소리다. 위아래가 얼마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사실 모든 구절에서 이렇게 다 평측과 시의의 조화를 이루기란 쉽지 않다. 이런 구절들은 완성도가 특히 높은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평측의 배열을 통해 근체시의 구성미를 감상하도록 하자. 원래 근체시에서 평측법을 쓸 때 모든 글자를 다 평측의 틀에 맞출 수가 없기 때문에 5언에서는 둘째와 넷째 글자를 반드시 지키고 나머지는 융통성 있게 했다. 7언에서는 둘째, 넷째, 여섯째 글자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7언의 평측 배열을 보면 5언은 저절로 알 수 있으니, 여기서는 7언의 배열을 보도록 하자. 「등고」의 둘째, 넷째, 여섯째 글자의 평측을 기호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평측의 기본 원칙은 같은 연 안에서는 무조건 서로 엇갈리게 하는 것이다. 측으로 시작했으면 다음은 무조건 평을 써야 하고, 다음은 다시 측, 이런 식이다. 그런데 연을 바꿀 때는 앞 연의 틀을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 앞의 연에서 측으로 시작했다면 다음 연에서는 평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 결과 앞의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대칭도가 나오게 된다. 평측법에는 「등고」와 같이 측으로 시작하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평으로 시작하는 것도 있다. 그러면 정반대의 구조가 될 것이다. 당대 이후 시인들이 근체시만 썼던 것은 아니다. 고체시도 여전히 유행했는데 고체시는 특히 시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근엄하고 치밀한 성격의 두보가 근체시에 최고의 기량을 보여준 반면, 같은 시대의 또 한 사람의 천재시인인 이백(李白)은 고체시에 매우 능숙했다. 그의 시를 한 수 보도록 하자. 「月下獨酌二」 달 아래의 독작 2 天若不愛酒 하늘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酒星不在天 주성이 하늘에 있지 않았을 것이고 地若不愛酒 땅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地應無酒泉 땅에는 마땅히 주천이 없었으리라. 天地旣愛酒 하늘과 땅이 이미 술을 사랑하고 있으니 愛酒不愧天 술을 사랑하는 것은 천지에 부끄럽지 않다. 已聞淸比聖 이미 청주를 성인에 비유하고 復道濁如賢 또한 탁주를 현인에 비유하여 말하기도 하네. 聖賢旣已飮 성인과 현자를 이미 마셨으니 何必求神仙 어찌 구태여 신선이 되기를 구하겠는가? 三盃通大道 석 잔을 마시면 큰 도에 통하게 되고 一斗合自然 한 말을 마시면 자연에 합하게 된다. 但得醉中趣 다만 술 취해 얻은 정취이니 勿謂醒者傳 깨어 있는 사람에게 말하여 전하지 마라. 참으로 호방하다. 이백은 흔히 시선(詩仙)이라고 불리고 주선(酒仙)이라고도 불린다. 그는 신선사상에 심취하여 현실을 초월한 낭만주의를 구가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술에 취해 천자가 불러도 응하지 않을 정도의 호방함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에게도 정치적 야망은 있었고 어지러운 세상에 대한 격분을 노래한 시도 있지만 그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시들은 바로 술에 관련된 시다. 주성은 하늘에 있는 별자리 이름이고 주천은 장안에서 서역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에 있는 땅 이름이다. 모두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지만 그것들이 하늘과 땅이 이미 술을 사랑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궤변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청주를 성인에, 탁주를 현인에 비유하는 술꾼들의 이야기를 들어 자신은 이미 성현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굳이 신선을 추구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넉살을 부리고 있다. 가장 정채로운 구절은 그 다음 구절이다. 석 잔을 마시면 큰 도에 통하고 한 말을 마시면 자연에 합한다는 이 구절은 후세 주당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천하의 명구가 되었다. 대도보다는 자연을 더 중시하는 이유는 노자의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는 구절 때문일 것이다. 이 시는 한눈에 보아도 앞에서 보았던 근체시와는 전혀 다르게 매우 자유로운 형식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구나 평측에 구애받지 않고 단순 반복도 꺼리지 않으며 거침없이 시상을 펼치고 있다. 두보는 이백에 대해 “술 한 말에 시 백 편”이라고 찬탄했고 “붓을 대면 비바람도 놀라게 하고 시가 완성되면 귀신도 울린다”고 극찬했다. 이백의 호탕한 기상은 다음의 시에 잘 드러나고 있다. 「將進酒」 술 권하는 노래 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 그대는 보지 않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奔流到海不復廻 바다로 바삐 흘러 들어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君不見高堂明鏡悲白髮 그대는 보지 않는가? 좋은 집, 밝은 거울 앞에서 백발을 슬퍼하나니 朝如靑絲暮成雪 아침에 검은 머리 저녁에 하얗게 세는 것을……. 人生得意須盡歡 인생살이는 모름지기 뜻을 얻었을 때 마음껏 즐겨야 하나니 莫使金樽空對月 금 술동이로 하여금 홀로 달을 보게 하지 마라. 天生我才必有用 하늘이 나 같은 인재를 낳은 것은 반드시 쓸 데가 있어서이니 千金散盡還復來 천금의 돈도 다 쓰면 다시 돌아오는 것. 烹羊宰牛且爲樂 양을 삶고 소를 잡아 그저 즐겨야 하나니 會須一飮三百杯 한 번 마시면 반드시 삼 백 잔은 마셔야 한다네. 岑夫子, 丹丘生 잠부자, 단구생이여 將進酒, 君莫停 술을 권하노니 멈추지 말고 드시오. 與君歌一曲 그대들과 더불어 노래 한 곡 부를 터이니, 請君爲我側耳聽 그대들은 나에게 귀를 기울여 들어보시오. 鐘鼓饌玉不足貴 화려한 음악에 좋은 음식 귀한 것이 아니고 但願長醉不願醒 다만 오래도록 취해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네. 古來聖賢皆寂寞 고래의 성현들 모두 적막하고 唯有飮者留其名 다만 술꾼들만 그 이름을 남겼네. 陳王昔時宴平樂 진사왕(陳思王)이 옛날 연회를 즐길 때는 斗酒十千恣讙謔 말술에 만금짜리를 마음껏 즐기게 했지. 主人何爲言少錢 주인은 어찌 돈이 적다고 하시오. 徑須沽取對君酌 즉시 술을 사 와서 그대들과 대작하리라. 五花馬, 千金裘 다섯 빛깔 말, 천금의 털옷 呼兒將出換美酒 아이를 불러 빨리 좋은 술로 바꾸어 與爾同銷萬古愁 그대들과 함께 만고의 시름을 풀어보리라. 이 시는 한대 이래로 유행한 악부시로 앞의 고체시보다 더 자유분방한 형식이다. 글자의 자수도 변화가 많지만 압운도 변화무쌍하고 자유롭다. 이 시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호쾌한 기상에 있다. 술에 관한 시 가운데서 이처럼 거침없이 호방한 시는 전무후무하다고 할 수 있다. 한 번 흘러갔다가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황하처럼 인생도 흘러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것, 그래서 시인은 기회가 닿을 때 마음껏 즐기라고 소리친다. 천금도 아까워하지 말고 양도 소도 다 잡아먹고 한 번 마시면 최소 삼백 잔이다. 부귀와 영화도 소용없고 다만 늘 취해 있는 것이 최고이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성현도 부질없고 다만 술꾼으로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이야기다. 호방하다 못해 방자한 느낌을 주는 정도다. 그러나 최고급 명마, 천금의 털옷도 다 팔아서 밤을 새워 술을 마시겠다는 그 호쾌함 속에는 만고의 시름이 숨어 있다. 어찌할 수 없는 비애감이 숨겨져 있다. 다음으로 들 시인은 시불(詩佛)이라고 불리는 왕유(王維)다. 그의 자는 마힐(摩詰)인데 이름과 합치면 『유마경(維摩經)』의 주인공인 유마힐(維摩詰) 거사가 된다. 그는 불교를 사랑하여 평생 수도를 했고 만년에는 장안 근처에 별장을 짓고 산수 속에서 고요한 여생을 보냈다. 그는 주로 고요하고 관조적인 마음으로 한적한 전원생활과 산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데 능했다. 그의 근체시 가운데 5언 절구에서 높은 문학적 성취도를 보이고 있다. 5언 절구는 가장 짧은 형식의 시로 은근한 함축미를 표현하기에 좋은 시형이다. 「鹿柴」 사슴 우리 空山不見人 빈 산 사람 보이지 않고 但聞人語響 다만 사람 말소리 울림만 들리네. 返景入深林 저무는 햇빛 깊은 숲으로 들어와 復照靑苔上 다시 파란 이끼 위에 비추네. 빈 산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디선가 사람 말소리의 은은한 울림이 들리기 때문이다. 분명 가까이 사람이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숲이 깊기 때문이다. 깊은 숲은 어찌 보면 참선을 통해 쌓아올린 마음의 보호막인지도 모른다. 그 보호막은 세속의 번거로움도 뚫고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나 해질 무렵의 햇살이 살며시 비집고 들어온다. 그리고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파아란 이끼 위를 비춘다. 은은한 저녁 햇살은 참선을 통해 얻은 관조의 힘을 상징하고, 푸른 이끼는 시인의 마음 깊은 곳의 태고의 정적을 비유한다. 짧은 시지만 매우 함축적이고 특히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그의 시를 한 수 더 보도록 하자. 「鳥鳴澗」 시냇물에서 지저귀는 새 人閑桂花落 인적 드문데 계수나무꽃 떨어지니 夜靜春山空 밤은 고요하고 봄 산은 비어 있네. 月出驚山鳥 달이 떠올라 산새를 놀라게 하니 時鳴春澗中 봄 시냇물에서 간간히 지저귀네. 저녁 무렵 사람의 자취는 없다. 계수나무꽃만이 저 홀로 떨어질 따름이다. 밤은 고요하고 봄 산은 텅 비어 있다. 어둠과 적막의 극치다. 그러나 사실 봄이란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 아닌가? 정적의 극치는 달이 솟아오름으로써 깨진다. 어둠 속에 은은한 달빛이 비춤으로써 만물은 감추어진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달빛에 놀란 산새가 잠에서 깨어나 갑자기 지저귄다. 그 전까지 들리던 소리는 오직 졸졸졸 흐르던 봄 시냇물 소리였다. 그러나 이제 산새 소리가 더해지면서 새로운 생동감이 더해진다. 이 시의 압운은 빌 '공(空)'과 가운데 '중(中)'이다. 그야말로 텅 빈 고요 가운데 움직임의 찰나를 매우 잘 포착한 시로 정중동(靜中動)의 운치가 잘 드러나 있다. 왕유 시의 또 하나의 특징은 시 속에 회화적인 구도가 잘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앞의 시에서도 깊은 산속에 해질 무렵의 햇살이 비추어 들어오는 것을 잘 묘사하고 있고, 이 시에서도 어둔 밤의 산속에서 달빛이 비춤으로써 나타나는 숲속 풍경의 생동감이 회화적으로 잘 묘사되고 있다. 실제로 왕유는 산수화가로 흔히 남종화의 시조라고 한다. 그래서 송대의 소동파(蘇東坡)는 왕유의 시를 두고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고 했다. 이상으로 중국 시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성당의 세 대가들의 시를 감상해보았다. 당나라의 시는 화려하고 까다로운 수사기교를 추구하던 위진남북조시대의 시에 비해 전반적으로 평이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앞에서 보았듯이 까다로운 글자나 특이한 문구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기교는 기교대로 최고의 수준에 올라 있었다. 어설프게 기교를 자랑하지 않을 따름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 시 속에는 깊고도 다채로운 사상과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전란 중에 우국충정의 마음을, 어떤 사람은 호방하고도 방자한 술기운을, 어떤 사람은 대자연 속에서의 관조의 경지를 담았다. 그리고 시의 내용과 형식이 서로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것은 분명 작은 기교를 넘어서 큰 기교를 이해하게 된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당대의 시는 위진남북조시대의 시에 비해 확실히 나선형적 발전을 이룬 대교약졸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당의 시를 최고로 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문화사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볼 때 대교약졸의 미학은 안사의 난이 끝난 중당 이후부터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하여 송대에 이르러서 본격적으로 활짝 피어났다. 시는 다른 분야에 비해 조금 일찍 대교약졸의 아름다움이 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시가 다른 문학 장르나 예술 분야에 비해 가장 일찍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시는 당대에 이르러 이미 내용과 형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기 때문에 송대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관점에서 대교약졸의 미학을 추구했다. 그것은 바로 풍격상의 새로운 변화이다. 송시(宋詩)와 당시(唐詩)는 풍격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당대의 시는 전반적으로 감정의 표현이 다채롭고 화사한 맛이 있다. 마치 울긋불긋한 온갖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 찬 봄날의 정원과도 같다. 북송 초만 해도 당대의 시풍을 그대로 따랐고 특히 만당시기의 화려하고 농염한 시가 유행했다. 이런 화려하고 농염한 시풍을 배격하고 송시의 분위기를 일신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은 매요신(梅堯臣)이다. 그는 일찍이 “시를 짓는 데는 고금을 막론하고 평담하게 쓰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해 평담의 시풍을 제창했다. 물론 이 평담이 그냥 무미건조한 평담이 아니라 농염한 맛을 안으로 숙성시킨 평담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송대 고문운동(古文運動)의 제창자로 유명한 구양수(歐陽修)는 그를 감람시인이라고 불렀다. 감람 열매는 처음에는 떨떠름하고 쓴맛이 있지만 씹을수록 나중에는 달콤한 맛이 나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평담이라는 말은 송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용어가 되었다. 송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문인인 소동파 역시 시에서 숙성된 평담미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메마르고 담담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그 바깥은 메마르면서도 속은 기름지고, 담담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 만약 안과 겉이 모두 메마르고 담담하다고 하면 또 무슨 말을 할 값어치가 있겠는가? 당시에 대한 송시의 차이를 설명하는 말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당나라 사람은 정(情)으로 시를 썼지만 송나라 사람은 이치로 시를 썼다는 말 따위다. 그러나 가장 적절하고 포괄적인 말이 바로 평담미다. 다음의 평(評)은 당시와 송시의 풍격을 잘 묘사한 유명한 글이다. 당시의 아름다움은 다정한 시어에 있으니 그래서 풍부하고 기름지다. 송시의 아름다움은 기세와 뼈대에 있으니 그래서 메마르면서도 굳세다. 당시는 작약이나 해당처럼 농염하면서도 화려하다. 송시는 겨울 매화나 가을 국화처럼 그윽한 운치와 차분한 향기가 있다. 당시는 여지를 씹는 것처럼 한 알을 입안에 넣으면 단맛과 향기가 양 볼에 가득 찬다. 송시는 감람나무 열매를 씹는 것처럼 처음엔 떨떠름한 맛을 느끼지만 뒷맛이 빼어나고 오래간다. 이밖에 당시는 봄날 온갖 꽃들이 만발하는 정원을 다정한 연인과 함께 거니는 기분으로, 송시는 마치 가을날 국화꽃이 피어 있는 쓸쓸한 들판을 홀로 산책하는 느낌에 비유하는 학자도 있고, 당시는 마시면 사람을 얼큰하게 취하게 하는 술에, 송시는 마시면 사람을 차분하게 하는 차에 비교한 사람도 있다. 당시가 위진남북조시대의 번화한 수사기교를 안으로 머금고 새로운 차원의 대교약졸의 경지를 이루었다면, 송시는 당시의 화사하고 농염한 풍격을 안으로 심화시켜서 새로운 차원의 대교약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와 송시의 차이를 설명할 때 흔히 나오는 시를 예로 둘이 지닌 맛의 차이를 느껴보도록 하자. 「望廬山瀑布」 여산폭포를 바라보며 日照香爐生紫煙 향로봉에 햇빛 비쳐 안개 어리고 遙看瀑布掛長天 멀리 폭포는 하늘에 매달려 있는 듯, 飛流直下三千尺 날라 떨어지는 삼천 척 물줄기 疑是銀河落九天 마치 은하수가 구천에서 떨어지는 듯. 「題西林壁」 서림사 벽에 쓰다 橫看成嶺側成峯 비스듬히 보면 고개요, 옆에서 보면 봉우리 遠近高低各不同 멀리 가까이 높게 낮게 제각기 다르구나! 不識廬山眞面目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는 것은 只緣身在此山中 다만 내가 이 산중에 있기 때문이리라. 앞의 시는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인 이백이 여산폭포를 바라보며 쓴 시고, 뒤의 시는 송대를 대표하는 시인 소동파가 여산의 전체 모습을 노래한 것이다. 하나는 부분적인 풍경을 노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산 전체의 모습을 노래한 것이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의 비교는 어렵지만 다 같이 여산이라는 대상을 노래한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비교는 가능하다. 전자가 호방한 기상으로 여산폭포의 웅장함을 노래한 것이라면, 후자는 보는 관점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하는 여산의 모습을 노래한 것이다. 전자가 과장 기법을 동원하여 여산폭포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발산형이라면, 후자는 이리저리 다양한 각도를 제시하며 여산의 모습이 보는 각도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사변적으로 설명하면서 차분하게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남겨두는 수렴형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고전시의 발전은 사실 송대가 마지막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 그 뒤로도 시는 중국 지식인들의 필수 교양의 하나로서 꾸준히 창작되어졌지만 미학적으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지는 못했다. 몽골족이 다스렸던 원대에는 중국 정통문학의 꽃인 시는 크게 쇠퇴했고 명대에는 다시 시를 되살리는 운동이 일어났지만 그것은 새로운 차원의 발달로 나아간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려는 수준의 복고주의에 머물렀다. 명대 이후 청말에 이르기까지 중국 시는 대부분 당시를 추종하는 종당파(從唐派)와 송시를 추종하는 종송파(從宋派)로 나뉘어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은 복고주의에 반대하고 개인의 독창성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미학적으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지는 못했다. 중국 시의 발달 (중국문화 대교약졸)
669    시론저 소개 - 禪과 아방가르드 댓글:  조회:4674  추천:0  2015-08-26
[이승훈 지음 《선과 아방가르드》 (푸른사상 펴냄) / 이덕주  선(禪)과 현대시의 만남, 그 당위성 1. 선과의 인연 선의 시각으로 현대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이승훈의 시론집 《선과 아방가르드》(푸른사상)가 지난 8월 출간되었다. 이 시론집은 현대 선시의 이론적 토대의 깊이를 더하는 선사상 연구의 결과물이다. 인간 본성으로 회귀하고자 그 대안으로 선을 앞세우는 시기에 시의적절한 이론서라고 할 수 있다.  책을 펼치면 저자가 선을 중시하며 선의 세계관이 시의 지평을 넓혀간다고 강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선사상과 시학을 폭넓게 접목하며 현대 선시의 나아갈 방향을 정립하기 위해 나름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지금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은 시대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자성의 성찰’의 지침으로 ‘선적인 삶’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사유체계를 부정하고 해체하면서 전혀 새로운 직관을 통한 대상 파악은 선이 목적하는 사유의 혁명이다. 이런 선은 아방가르드 예술 정신을 추종하는 시인들에게 무한한 창조력을 배가시킨다고 할 수 있다.  선의 정신은 창조적 작업의 종사자, 특히 시인들을 높은 깨달음의 정신세계로 인도한다. 때문에 선시는 깨달음의 시 쓰기라고 할 수 있다. 즉 선시는 깨달음과 시의 미학이 동시에 존재하는 특별한 문학 장르이다. 그런 면에서 선에 침잠하는 창조적 시인들은 선에 몰입하는 자체로 독창성과 창조성을 생생하게 구현한다고 할 수 있다.  《선과 아방가르드》는 이승훈이 제12시집 《인생》(민음사, 2002) 이후 시도했던 자신의 시 특히 현대 선시에 대한 이론적 배경이다. 그는 《인생》이 발간되기 전 1990년대 말에 자아탐구와 자아소멸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활로를 찾고자 고심했었다.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를 거쳐 새로운 시학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때 우연한 기회에 《금강경》 〈대승정종분〉의 “약보살(若菩薩) 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즉비보살(卽非菩薩)”이라는 구절을 접하게 된다. 마침 ‘아상(我相)을 버려야만 보살’이라는 그 구절에서 자신이 40여 년간 분별적 자아에 대한 집착에 빠져 있었음을 충격적으로 인식하고, 자아불이(自我不二), 자아불이(自我不異)의 세계로 다가가는 전기로 삼는다.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 있었는지 분명하게 깨닫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렇게 맺은 《금강경》과 기연을 시작으로 자신의 시 세계를 불교적 사상인 선으로 전환한다. 자신이 그토록 추동했던 아방가르드 정신이 선을 접하면서 선의 정신이 시와 시론의 전형이 된 것이다.  이승훈은 “시론이 없는 시인은 시인이 아니다.”라는 그의 지론대로 《반인간》(조광출판사, 1975) 이후 《영도의 시쓰기》(푸른사상, 2013)까지 35권의 시론과 이론서를 저술했다. 시집 역시 《사물A》(삼애사, 1969)에서 최근 시집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시와세계, 2014)까지 24권의 시집과 시선집을 출간했다. 수필과 번역집 등 기타 저술까지 합하면 약 70여 권의 저서이다.  196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그의 필력은 오직 선행적 시인이며 시 이론가로서 행로를 잠시도 멈추지 않고 아방가르드 정신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는 이 책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기호학의 관점에서 선사들의 공안을 해석한 《선과 기호학》(한양대출판부, 2005), 선의 시각에서 아방가르드 예술을 해석한 《아방가르드는 없다》(태학사, 2009), 하이데거 철학을 선시를 중심으로 해석한 《선과 하이데거》(황금알, 2011), 선의 시학을 모색한 《영도의 시쓰기》 등 현대적 선학을 시와 접목시키는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진력했다. 《선과 아방가르드》는 그런 면에서 불교와 인연을 맺은 저자가 《인생》 이후 시도한 시 이론서의 연장선에서 필연적으로 쓸 수밖에 없는 종합 시 이론서라고 할 수 있다. 2. 선의 구분을 통한 현대시의 방향 이승훈 시인은 선과 현대시의 만남, 그 당위성을 나름 시학적 체계를 세우며 제1장과 2장에서 밝혀 나간다. 지금까지 시단에서 볼 수 없는 그만의 이론체계다. 선과 시를 모두 잘 이해하고 있으면 《선과 아방가르드》를 읽기가 편해진다.  제1장과 2장에서 송대(宋代) 언어 인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선시의 발전과정을 통해 선시가 돈오(頓悟) 시학의 범주이며 선의 시 쓰기는 점수(漸修) 시학의 범주에 든다고 구분한다. 경계가 해체되는 불립문자, 논리 밖의 선은 선이 강조하는 중도, 불이, 공사상과 통하는 데 기초하여 ‘선의 시학’ 측면에서 현대시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나아가 선을 매개로 현대 선시가 서구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3장에서는 인도불교가 중국에 수용되면서 노장사상, 유학과 결합되어 발전하는 선종을 중심으로 선을 여래선과 조사선으로 구분하고 있다. 6조 혜능 이전(북종 포함)을 여래선으로, 혜능 이후 정립된 남종을 조사선으로 선종의 발전과정과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다. 능가선, 우두선, 유식사상도 다루면서 선이 그만큼 발전하기 위해서는 단계가 있음을 예시한다.  제5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시의 전환이 여래선 시학에서 시작되었음을 밝힌다. 여래선의 시 쓰기는 달마의 면벽과 혜가의 자연지심을 강조하는 간심간정(看心看靜), 도신의 섭심수심(攝心守心), 홍인의 수본진심(守本眞心) 등(p.138)에 상응하는 시 쓰기가 필요하다는 입장임을 드러낸다. 여래선과 시, 여래선과 동시(童詩)를 예로 들며 자아가 없는 청정심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청정심과 평상심, 무위자재로 서정주의 〈동천〉을 살펴보며 김춘수의 〈깜냥〉 역시 시인이 대상을 소멸시키는 청정심을 지녔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시임을 간파한다. 오규원의 〈봄과 밤〉 또한 청정심과 중도가 시 속에 스며 있음을 내세운다. 이런 것은 결국 무심, 무아, 선적 깨달음, 혹은 자성청정심을 그대로 말하는 ‘보여주기’라고 말한다. 제6장에서 연이어 조사선 시학이 무념식정(無念息情)을 강조하는 데 연관이 된다고 기술한다. 마찬가지로 평상심이 도임이 제7장 마조선 시학이라고 강조한다. 이승훈은 자신의 시 〈속초에서〉 전문을 인용하며 백담사 하안거 해제일에 설악무산 스님에게서 전당게를 받은 인연 때문에 임운자연(任運自然)에 따른 선의 일상화가 이루어졌음을 고백한다. 임제선 시학은 이 책에서 언급한 전통적 인습과 권위, 곧 근대 시학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아방가르드 시학과 밀접하게 연관이 된다. 선의 시각에서는 이름, 형상 등 일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대자유인이 되라는 즉 분별과 조작을 버리는 행위와 통한다. 저자는 무위진인, 수처작주, 입처개진이 시인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며 시의 정신임을 계속 강조한다. 3. 현대시와 선의 세계 이승훈은 지금까지 자신이 깨달은 선의 세계가 설악무산 스님의 시집 《절간이야기》(고요아침, 2003)에 그대로 시현됨을 보면서 충격을 받는다(p.293). 〈절간 이야기 2〉의 “어제는 바다가 울었는데 오늘은 바다가 울지 않는군요”라는 문면에 무주(無住)의 시학이 녹아 있음을 깊게 인식한다. 선이 강조하는 무분별에 기초하여 무아의 경지에서 나오는 지극한 무위의 미학이 현시되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선을 매개로 선과 함께 선을 지향하지만 끝내 선 그 자체도 없다는 설악무산이 자신의 시를 통해 현대 선시의 아방가르드를 보여주고 있음에 주목한다.  〈신사와 갈매기〉에서 일상어로 쓴 설악무산의 시가 일상어와 시어가 해체되며 아이러니와 함께 선시가 되고 있다고 저자는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자갈치 아즈매와 갈매기〉는 역시 설봉 스님과 자갈치 시장의 아주머니가 갖는 지극히 순수한 정경을 통해 일상과 선의 구별이 없는 경지를 보여주는 시라고 말한다. 선의 극한에는 선이 없고 일상 자체가 선임을 그는 덧붙인다.  설악무산의 〈백장과 들오리〉 또한 객관적 인식에 의한 양변을 버리라는 일상어/선어/시어의 경계가 해체되었음을 보여주는 선시라고 강조한다. 〈절간 청개구리〉에서 설악무산이 ‘시를 지으려다가 못 지었다’는 고백 자체가 그대로 언어를 초월하는 선시 그 자체였음을 파악한다. 나아가 〈불국사가 나를 따라와서〉는 두두물물이 화엄법계에 녹아든 정경을 무애의 경지에서 노래하고 있다고 설파한다. 하나와 일체가 융합하여 하나 속에 우주의 모든 활동이 전개되는 융통무애(融通無碍)를 노래했다는 것이다.  이승훈은 설악무산의 시를 현대적 전위시인 동시에 현대 선시의 전형으로 간주한다. 설악무산 스님이 무아와 무애를 자신의 시와 시조 속에 여시하게 녹여냈다고 찬하면서 ‘아방가르드가 선이고 선이 아방가르드’라는 자기 의견을 덧붙인다.  이승훈은 제9장에서 현재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선시에 대해 과거의 고정된 격식과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 때문에 현대 선시의 새로운 출구 즉 현대 선시가 올바르게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선이 보여주는 파격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선과 아방가르드의 회통이 가능함을 역설한다.  선시라고는 할 수 없지만 김수영의 시 〈등나무〉처럼 일체의 시적 규칙이나 표현방법을 부정하는 무위진인의 시가 되어야 한다고 김수영의 시 정신을 높인다(p.330). 시간도 해체되고 공간도 해체된다며 〈등나무〉의 파격이 선과 통한다고 예찬하는 이승훈에게서 그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4. 선과 아방가르드 이승훈은 평생 아방가르드 정신을 앞세웠다. 등단 이후 잠시도 쉬지 않고 새로운 시를 쓰기 위해 골몰했고 새로운 시를 뒷받침하는 시론을 정립하기 위한 연구에 매진해왔다. 자신의 시를 위해 스스로 자신을 향해 독려의 채찍을 가해 왔으며 자기진화를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70여 저서 목록이 그가 평생 기울여온 그간의 열정과 결실을 반증한다. 그는 《선과 아방가르드》를 출간하기 두 달 전 시집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시와 세계)를 발간했다. 이승훈의 《선과 아방가르드》 이론이 유효하게 실증된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무작(無作), 무설(無說), 무학(無學)이 자신의 시작(詩作) 방식이며 그 또한 자신의 시론임을 그는 주장한다. 그 역시 《선과 아방가르드》에서 전개된 시론이다. 시집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를 보며 그의 시론에 동의를 보낸다. 《선과 아방가르드》를 주의 깊게 읽은 독자라면 이승훈의 시작 방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짐작하게 될 것이다. 선의 중심사상을 통한 시학에 대한 새로운 선적 접근이 이 책을 발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선의 시각으로 현대시가 지닌 문제를 고찰하고 마조, 임제시학 등 선의 다양한 적용과 실증을 통시적으로 예시하며 현대시의 발전 방향을 탐색한 것이다.  이승훈은 시력 50년이 넘는 시인이며 동시에 시 이론가이다. 그를 아는 시단의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부인하지 못한다. 오랜 기간 그는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아방가르드 정신으로 우리 시단의 첨병에 서서 전진기지를 구축해왔다. 선과 아방가르드를 접목해서 시단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 공로도 그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승훈의 역저 《선과 아방가르드》는 앞으로 우리나라 현대시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을 것이다. 눈 밝은 독자들의 구전에 의해 이 책의 독자들이 점진적으로 늘어날 것임을 예견해본다. 전위적 사유를 앞세우며 아방가르드 예술정신을 선을 통해 시현하는 저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
668    아방가르드 시의 실험 댓글:  조회:5961  추천:0  2015-08-26
  일본의 모더니즘 시, 아방가르드 시의 실험                                  / 한성례 한성례의 현대 일본시 탐색             한성례 세종사이버대 겸임교수 일본 미래파·다다이즘 운동  미래파 운동은 1902년 이탈리아 시인 마리네티가 ‘미래주의 제1선언서’를 발표하고 회화상의 속도의 미를 정리해서 시간 의식 내에서 나타나는 일체의 기억과 연상, 음향까지도 공간화해서 모든 감정, 모든 의식을 동일 화면에 그려내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일본에서는 종래의 민중시파에 대한 반대 운동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1921년 전후의 히라토 렌키치(平戶廉吉, 1893~1922) 등의 일본 미래파 운동은 후에 이어지는 일본 시단의 흐름에서 볼 때,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일본 미래파는 서구보다 조금 늦게 도입되었는데, ‘일본 미래파 운동 제1차 선언’은 도회미라든가 기계미를 노래하고, 의성어나 의태어 또는 수학적 기호까지도 채용해서 문체상의 형식 파괴를 꾀했다. 공간적 입체시라고 칭했듯이 시각을 중시해서 글자의 크기를 크고 작게 구분하거나 글자 배열을 다르게 하는 등 표기의 형식이나 소재에 중점을 두고 시각적인 변화를 꾀했는데, 이 또한 마리네티를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로는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히라토 렌키치 겐이치의 시를 살펴보자. 새가 난다  마음도 모습도              검푸르다  검은 새  말라비틀어져서  난다                           만(卍)자로  뒤엉켜서  자기성(磁氣性)의 깊은 못 위                              소용돌이에 삼켜진다  빙빙 돈다                 빙빙 돈다  물레방아의 날개  한 마리의 뒤를                        한 마리                                           한 마리                                      한 마리 ― 히라토 렌키치 〈날고 있는 새〉 전문                               이 같은 표기법의 새로운 운동은 기성의 의식을 파괴하고 종래의 자유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일본 미래파 운동이 전개되던 이 무렵부터 유럽의 제1차 세계대전과 대전 직후의 전위(前衛)예술이었던 다다이즘 운동이 서서히 일본에 소개되기 시작한다. 다다이즘은 근대생활의 권태와 무가치에 대한 반발이었고, 니힐리즘과 페시미즘을 보강한 정신이었는데, 세계대전으로 인해 생겨난 정신상 폐허의 산물이었다. 그것이 세계대전 후의 일본사회의 공황이나 불안, 더욱이 관동대지진의 충격과 함께 자연스럽게 일본사회에도 스며들었다.  아나키즘의 시운동  이러한 다다이즘의 시인으로서 가장 먼저 등장한 시인이 다카하시 신키치(高橋新吉, 1901~1987)였고, 자신의 《다다이스트 신키치(新吉)의 시》라는 시집에 실험작들을 소개했다. 그의 시는 권태와 피로, 자포자기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노골적인 에로티시즘과 퇴폐적인 감정 속에 적나라한 사랑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진실성의 단면을 예리하게 그려냈다. 히라토 렌키치와도 교류가 있었던 그는 아래와 같은 제목의 시가 있다. 접시접시접시접시접시접시접시접시접시접시  권태  얼굴에 지렁이가 기어가는 정열  흰쌀색의 앞치마를 입고  접시를 닦는 여자  코의 둥지가 검은 여자  모처에도 해학이 연기 나고 있다  인생을 물로 녹여라  차가운 스튜냄비에  따분함이 뜬다  접시를 깨라  접시를 깨면  권태 소리가 난다 ―다카하시 신키치 〈신DA렌키치〉 전문     다카하시 신키치     쓰보이 시게지 이 시는 그가 식당에서 접시닦이를 하고 있던 무렵의 시라고 하는데, 비교적 얌전하게 쓴 작품이었는데도, “광기와 치매, 넌센스와 엑센트릭과의 교향곡” “축농증과 변태성욕과의 디스콜드”라는 평을 받았다. 이것을 바꿔 말하면 ‘근대적 고뇌의 둔화’였다. 자신의 관능적 향락 외에는 가치를 두지 않고, 모든 권위를 부정하며 철저하게 무도덕함이 그들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다다이즘 시에서 선두에 선 시인은 하기와라 교지로(萩原恭次郞, 1899~1938)였다. 그는 쓰보이 시게지(壺井繁治, 1897~ 1975) 등과 함께 《적과 흑》을 내고, 제1회 선언에서 “……예술의 우상적(偶像的) 가치를 파괴하라! 그 공허한 ‘언어’의 개념을 방산시켜 버려라! 불을 질러 버려라!”라고 외쳤고, 기존의 존재 일체를 부정하면서 ‘아나키스트적인 파괴를 위한 파괴’를 부르짖었다. 그들은 기호나 부호를 시에 도입하고, 크고 작은 글자를 자유로이 배치하고, 읽어도 들어도 느낌이 이상한 시를 계속해서 발표했다. 그것은 전통 서정과의 철저한 결별이었다. 그러한 시의 한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움푹 패인 배(腹) 속에서 톱니바퀴가 돌고 있다  손도 발도 목도 없는 동체가 신음하고 있다  일체의 존재가 장님이고 귀머거리다  지붕 밑에 갇힌 태양이 연기를 내고 있다 ―쓰보이 시게지 〈지붕 밑의 태양〉 전문 하기와라 쿄지로의 《사형선고》는 크게 주목받은 시집이었다. 그의 시에 관통하고 있는 것은 다카하시 신키치 등에서 보이는 무기력한 데카당스의 정신과는 달리 아나키스트적인 절규이고 단말마적인 도회 문명의 거부와 비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다카하시 신키치 등에서 보이는 향락적 요소가 적고 방향이 불분명한 분노와 절망, 불안과 초조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 시집에서 시 한 편을 감상하자. ――매일 밤  · · · · 폐는 검푸른 출혈을 했다  어둠 속으로!  검 달린 철포를 든 병사가 직립한다  함석 파편의 폐장이 헐떡인다  ―――손을 들었다  남자 위를  자동차는 휙 올라타고 달려갔다  빵! 빠―앙!!!  군집(群集)이  단번에 확  ―――남자를 잡아올렸다!  피투성이 얼굴이  군집과 함께  선로 위를 질질 끌려간다――― ―하기와라 쿄지로 〈어둔 밤의 기록〉 전문       하기와라 쿄지로의 시집 《사형선고》는 장정, 지면 구성, 삽화 등에 구성파, 입체파의 그림을 넣어서 신기함을 더해 놓았다. 이처럼 일본에서 새로운 시운동과 함께 새로운 예술이 발생했던 것이다. 즉, 1922년 전위화가, 입체파, 미래파, 표현파 등의 그룹인 ‘아크시온’이 결성되었다. 그다음 해에는 독일 표현파를 받아들여 조직한 ‘마보(MAVO)’의 신운동이 일어났다. 마보는 다다이즘의 조형예술상의 표현으로서 관동대지진 후의 불안한 시대에 크게 유행하여, ‘3과 조형예술협회’를 만들어 전람회를 개최했다. 그 ‘의식적 구성주의’의 데몬스트레이션은 짧은 시간에 일본사회의 문화에 대한 눈높이를 크게 높여 놓았다. 이것은 세계대전 후의 세계의 불안과 그에 따라 어지러운 일본사회의 반영이었고, 또한 직접적으로는 개인주의의 사상과 감정이 막다른 길에 이르면서 생겨난 개성 붕괴 현상이 반영된 것이었다.       사회적인 불안과 어려움을 직접 헤치고 나갈 수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는 곳에 무기력한 데카당스가 움트고, 해결할 방향을 찾지 못하는 곳에 아나키스트적인 반항이 생겨났던 것이다. 이들 시인들의 활동에 대한 그 가치는 별도로 하고, 시대감각을 문자로서 가장 날카롭게 표현한 시인들이었다. 이 시운동이 직접 목표로 한 것은 시단의 중추적인 존재였던 민중파 시인 중심의 ‘시화회’였다. 또한 ‘일본시인’의 흐리멍덩하고 미적지근한 민주주의, 자유주의 정신과 그것을 근저로 한 지루한 표현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었다. 이에 대립은 깊어지고 서로 협조하자는 슬로건은 이미 힘을 잃고만 시대에 민중파 시인의 해체는 시간문제였다. 그들의 사상적 모태가 되었던 《시라카바(白樺)》도 1923년에 폐간되었고, 1926년에는 ‘시화회’도 해체되고, 연간으로 출간하던 《일본시집》은 제8집을 끝으로 발행을 멈춘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고, 모더니즘의 뒤를 이어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이 시작된다. 조선 시인 이상(李箱)과 일본 시인 나카하라 츄야(中原中也) 시 제1호  제13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달은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  였소.(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오。)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원문의 한자는 모두 한글로 바꿔 썼음 ―필자 주. ―이상(李箱) 〈오감도(烏瞰圖)〉 이상(李箱, 1910~1937)의 문제작 《오감도》는 당초에는 30회 연재 예정이었으나 독자들의 빗발치는 거센 항의 속에 15회로 끝을 맺었다. 이 시의 난해함으로 인해 “〈오(烏)감도〉는 〈조(鳥)감도〉의 오자가 아니냐” “미친놈의 잠꼬대가 아니냐” “이 무슨 개수작이냐”라는 등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사실 당시 우리 시단이나 독자들의 수준에서 볼 때, 이와 같은 항의에도 전혀 이유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사적인 작품 〈오감도〉는 〈시 제1호〉에서 〈시 제15호〉까지 이상의 나이 25세이던 1934년 7월 23일부터 8월 8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게재되었다. 그런데 일본제국주의하의 식민지 조선의 젊은 시인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이상 역시 많은 작품들을 일본어로 썼다. 한국 모더니즘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이상의 이 작품은 “무서운 아해는 가해자, 무서워하는 아해는 피해자, 13인의 아해는 불길스럽고 타락한 무리, 막다른 골목은 절망적이고 암담한 현실적 상황, 뚫린 골목은 현대인의 유일한 희망이며, 띄어쓰기를 무시한 까닭은 모든 형식에 대한 부정이나 반발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시 제1호〉 끝줄에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라고 한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자동기술법으로 표현한 초현실주의적인 시이다.”라고 《한국의 명시》(김희보 엮음)에 정리되어 있다. 또한 이상에 대한 평가와 견해에서, 조선 모더니즘의 선두 주자인 김기림 시인은 “이상의 죽음은 한국문학을 50년 후퇴시켰다.”고 극찬했고, 최재서는 “이상의 문학은 독자의 곤혹이 있음에도 단연히 환영해야 할 경향이다. 현대의 분열과 모순에 이만큼 고민한 개성도 없다. 그는 풍자, 위트, 야유, 기소(譏笑), 과장, 패러독스, 자조(自嘲), 기타 모든 지적 수단을 가지고 가족생활과 금전과 성(性)과 상식과 안일에 대한 모독을 감행하였다. 이상의 예술은 미완성이다.”라고 이상의 시를 모더니즘의 시각적인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전위성(前衛性)과 한국 주지시의 풍토를 만든 시인으로도 손꼽았다. 〈오감도〉를 소리 내어 읽어 보면, 시의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리듬감이 있어서 재즈 연주나 랩을 듣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도시인의 수줍은 감성이 아른댄다. 어두운 전쟁의 예감을 품고 있으면서도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젊은 시인들이 새로운 자기표현의 실험을 모색했던 그 시대의 공기가 이 시에 독특한 음영을 드리우고 있다. 경성(서울)의 골목길을 질주하는 13명의 아해의 이미지와 ‘무섭다, 무서워하다’라는 말의 반복은 왠지 불길하고 기분 나쁜 느낌이 들지만, 마지막 절에서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라고 그때까지 끌고 왔던 이미지를 모두 부정한다. 이는 구성상의 테크닉으로도 보이지만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로운 사고를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이상은 〈오감도〉 연재가 중단되고 난 2년 후에 도쿄(東京)로 떠난다. 그리고 ‘사상불온’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건강 악화로 석방되지만 같은 해에 도쿄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27세로 생을 마감하였고, 유해는 돌아와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이상     나카하라 츄야 그런데, 이상이 27세로 도쿄에서 세상을 떠난 1937년에 동시대의 일본시인 나카하라 츄야(中原中也, 1907~1937)가 30세로 요절한다. 일본 모더니스트 시인으로서 나카하라 츄야는 시의 이단아라고 일컬어질 만큼 일본 시단에서 혁명적인 존재이다. 이상과 츄야는 성장 과정이나 처해 있는 상황은 크게 달랐지만 도쿄와 경성이라는 두 도시의 길모퉁이에 선 젊은 두 시인이 길 가는 이들에게 던졌을 시선을 상상해보면 아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사람을 좋아하고 인생을 사랑하면서도 그 말을 입 밖에 내면 왠지 비틀리고 엉뚱한 방향으로 꼬여 버리고, 도시의 고독을 섬뜩해 하면서도 결국은 그곳을 가장 편한 장소로 택하고 마는 그런 젊은이의 모습이다. 아아, 12시의 사이렌이다, 사이렌이다 사이렌이다  줄줄줄줄 나오고 있어, 나오고 있어 나오고 있어  월급날 점심시간, 흔들흔들 팔을 흔들면서  뒤를 이어 뒤를 이어 나오고 있어, 나오고 있어 나오고 있어  크고 높은 빌딩의 새까맣고 작디작은 출입문  하늘은 널따랗게 펼쳐져 약간 흐리고, 약간 흐리고, 먼지도 조금 일고 있다  야릇한 눈길로 위를 올려다봐도, 아래로 내려도……  그것은 벚꽃인가, 벚꽃인가 벚꽃인가  아아, 12시의 사이렌이다, 사이렌이다 사이렌이다  줄줄줄줄 나오고 있어, 나오고 있어 나오고 있어  높고 큰 빌딩의 새까맣고 작디작은 출입문  산들바람에 사이렌은 울려 퍼지고 울려 퍼지면서 사라져 갈까 ―나카하라 츄야(中原中也) 〈정오, 마루(丸)빌딩 풍경〉 전문 단어의 반복과 거기에서 빚어지는 독특한 리듬, 그리고 거기에 감도는 적요감이 이상과 나카하라 츄야 두 시인의 시에 공통되는 점이다. 도회의 최신 건축에서 일하는 샐러리맨의 느긋하고 건강한 소시민 의식을 자기 밖의 세계로서 객관화하면서, 보이지 않는 유리창 너머 거리의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애정과 눈길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일종의 문병 비판이라는 감이 든다. 오히려 시인은 ‘생’에서 멀리 떨어져 ‘생’과 ‘사’의 경계에 서서, 그리운 듯 ‘생’을 뒤돌아보고 있는 것 같다. 시인은 결코 샐러리맨을 야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시인의 눈길은 한없이 슬프면서도 한없이 따스함이 가득 차 있다.”라고 말한 평자도 있다. 나카하라 츄야가 이 시에서 노래한 일본 샐러리맨의 점심시간 풍경은 지금도 거의 변함이 없다. 이 시는 나날의 단조로운 반복을 잘 견디어내는 서민들에 합류할 수도 없고 그 일원이 될 수도 없는 자신의 고독과 허무를 유머로 포장해서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죽음과 파괴가 금방이라도 세상을 송두리째 뒤덮어 버릴 듯한 불길한 예감이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시대, 표면은 모더니즘 문화에 들뜬 도시, 그 도시에서 마지막까지 새로운 자기표현 방식을 추구했던 한일의 두 젊은 시인이 같은 해에 요절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금방 두 사람의 연관성으로 상상이 이어진다. 이상이 세상을 뜨기 전 도쿄에서 지냈던 그 2년 동안, 이 두 시인은 어쩌면 도쿄의 길모퉁이에서 우연히 스쳐 지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시에는 가장 높고 큰 빌딩이었던 도쿄역 앞 ‘마루(丸)빌딩’을 올려다보면서 도회적 사고로 시상을 떠올렸을 것 같다. 이상의 대표적인 소설 《날개》에서는 주인공이 경성의 미쓰코시(三越)백화점 옥상에서 잃었던 날개로 비상하는 꿈을 꾼다. 이상은 빌딩 위에서 비상하는 꿈을 꾸고, 나카하라 츄야는 빌딩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식민지 청년 이상의 비상을 알았다면 나카하라 츄야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상과 츄야가 세상을 떠난 지 7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이 두 시인에 대한 열기는 한국 시단이나 일본 시단이나 변함이 없다. 츄야 신화라고 할 만큼 에피소드나 일화가 많고 한국에서도 이상은 독보적인 존재이다. 여전히 젊은 시인들은 그들을 추종하고 있으며, 이 두 시인이 각각의 시단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이상의 비상은 정신의 자유이든 육체의 자유이든 자유로움을 위한 비상이었을 것이고, 독자적이고 싶은 비상이었을 것이다. 시공을 초월해서 어떤 시대에도 젊은이들에게 존재할 법한 본질적인 고뇌와 갈등이 이들 두 시인의 시에는 포함되어 있다. 이상과 츄야의 시가 울림을 주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우리 누구나가 젊은 시절에 경험했으나 끝내 해결하지 못한 채 밀쳐두었던 뭔가를 독특한 방식으로 되살려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카하라 츄야의 또 다른 시 한 편을 감상해보자. 조선여자 저고리의 끈  가을바람에 펄럭이네  거리를 걸어가면서  아이의 손을 억지로 잡아끌고  그대는 얼굴을 찡그리고  검게 그을린 피부는 말라서 푸석이고  그 표정, 무엇을 생각했을까  ―――나도 실은 몹시 추레한 몰골이고  멍하니 바라보았을 뿐인데  나를 힐끔 바라보고 괴이한 듯  아이의 걸음을 재촉해서 지나가네……  가볍게 이는 먼지인지도  무엇을 안쓰러워했을까  가볍게 이는 먼지인지도  무엇을 안쓰러워했을까……  ·· · · · · · · · · · · · · ·  ―나카하라 츄야 〈조선여자〉 전문 계절풍에 날리는 흙먼지와 눈송이가 얼굴을 때리는 차가운 오후의 거리에서 우연히 조우한 조선여자는 야위어 푸석거리는 피부에,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간다. 그리고 마르고 이상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달아나듯이 급히 걸어간다. 자신은 그저 멍하니 공허한 눈으로 가련한 젊은 조선여자를 바라보았을 뿐인데 그녀는 자신에 대해 괴이해 하면서 어떤 동정과 불쌍한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두 사람에게 공통된 생활의 피로가 서로를 동정하는 마음으로 묶은 것일까. 먼지 속에서 서둘러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얼굴을 찡그리면서 가버렸지만 그녀에게 뭔가 묻고 싶어 한다. 이 시는 다다이즘과 폴 베를렌느의 세계가 혼합된 시이다. 이런 시를 쓸 만큼 당시 츄야의 마음은 추레하고 늘 추웠으며 공허한 절망감이 가득했다. 더러워진 슬픔에  오늘도 눈이 날린다  더러워진 슬픔에  오늘도 바람마저 불어재낀다  더러워진 슬픔은  예를 들어 털옷  더러워진 슬픔은  소설(小雪)에 덮여 움츠러든다  더러워진 슬픔은  뭘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고  더러워진 슬픔은  권태 속에서 죽음을 꿈꾼다  더러워진 슬픔은  애처롭게 겁이 나서  더러워진 슬픔은  되돌릴 곳도 없이 날이 저문다…… ―나카하라 츄야 〈더러워진 슬픔에……〉 전문  《시와 시론(詩と詩論)》과 《아(亞)》의 모더니즘 시인들  《아(亞)》와 단시(短詩)운동 모더니즘은 일본 시에 혁명을 일으켰고, 그 결과 근대시가 현대시로 바뀐다. 그것은 《시와 시론(시토시론, 詩と詩論)》(이하 《시와 시론》으로 통칭. 이 잡지는 후에 《문학》으로 이름이 바뀜)과 《아(亞)》가 구심점이 되었다. 이들은 당시 일본의 시 풍토와 확연히 구분을 두고, 주지적인 시적 공간에 서정과 자연을 배제한 선명한 이미지의 신시운동의 전개를 꾀했다. 안자이 후유에(安西冬衛, 1898~1965)가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중국 대련에서 다키구치 다케시(口武士, 1904~1982), 기타가와 후유히코(北川冬彦, 1900~1990) 등과 함께 시문학지 《아(亞)》를 창간한 것은 1924년이었다. 이 신시 운동은 이미지즘 시운동과 일맥상통하는 단시(短詩)운동과 산문시의 시도였는데, 당시의 실험적인 여러 동인지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개성이 두드러진 시문학지였다. 도쿄(東京)보다는 좀 더 새로운 세계를 향해 있고 감각성이 살아 있는 중국의 대련에서 발신되던 《아(亞)》는 일본의 젊은 시인들에게 큰 자극이었다.  조선 시인 김기림(金起林)과 일본 시인 안자이 후유에(安西冬衛) てふてふが一匹海峽を渡って行った.  나비 한 마리가 닷탄()해협을 건너갔다.  ―안자이 후유에(安西冬衛) 〈봄〉 전문 닷탄해협은 사할린 북부와 시베리아 동부 사이에 있는 해협으로, 동해에 접해 있다. 단시 〈봄〉은 하이쿠(俳句)의 5·7·5라는 음수율과 형식을 따르지 않았는데도 원문을 읽으면 독특한 리듬이 있다. 그리고 이 시는 구어체의 새로운 내재율이 있는 데다 큰 스케일의 영상을 보여 주고 있어서 짧은 시임에도 결코 짧아 보이지 않는다. 낱말과 영상이 하나가 되어 한 편의 시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봄이 온 닷탄해협에 얼음이 서로 부딪치고 있고, 바다가 파도치는지 잔잔한지는 알 수 없지만 하얀 바다 위를 한 마리 희고 작은 나비가 팔랑팔랑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이 시를 읽으면, 조선의 모더니즘 시인 김기림(金起林, 1908~?)의 1946년에 간행된 시집의 표제작 〈바다와 나비〉가 오버랩된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 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젖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전문 모더니스트로서 이상과 함께 한국의 모더니즘 시에 많은 영향을 미친 시인 중 한 사람인 김기림은 일본에서 모더니즘 시인으로서 활동했고, 1930년에 평론가 최재서 등과 함께 주지주의 이론을 한국문학에 정착시켰으며,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안자이 후유에     김기림 그것은 1920년 전반기 한국시단의 주류였던 낭만주의에 대치하고, 또한 1920년대 후반기 한국 시단의 주류였던 사회주의적 경향에도 대치하는 것이었다. 김기림은 자신의 시집 ‘작가의 말’에서 “이제부터의 시인은 시인들의 노력에 의하여 발견된 새로운 방법들을 종합하여 한 개의 전체로서의 시를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기술에의 새로운 인식은 능동적인 시정신과 그리고 또한 불타는 인간 정신과 함께 있지 아니하면 아니된다.”라고 썼다. 안자이 후유에는 유년기에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중국문학 고전을 탐독하면서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중학생 때는 하이쿠에 열중했고, 졸업 후에도 하이쿠 형식에 의한 시의 스케치를 연구한다. 1920년에 교사로 근무하던 부친을 따라 중국의 대련에 건너간다. 하지만 다음 해에 지독한 추위로 인해 오른쪽 무릎 관절염을 앓게 되고 결국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다. 투병 생활 1년 6개월 만에 퇴원한 후로는 〈대련신문〉 〈만주일일신문〉 등에 단시를 발표하기 시작한다. 다음은 안자이 후유에와 함께 《아(亞)》를 창간한 기타가와 후유히코와 다키구치 다케시의 시를 감상해보자. 군항(軍港)을 내장하고 있다. ―기타가와 후유히코(北川冬彦) 〈말〉 전문 이 〈말〉은 안자이 후유에의 〈봄〉과 함께 유명한 시이다. 그러나 〈봄〉과는 달리 침울한 공기가 감돌고 있다. ‘말’ ‘군항’ ‘내장’이라는 3개의 단어가 충돌해서 환기하는 영상은 쉬르리얼리즘 화가가 그리는 한 장의 그림과 같다. 그러나 그 영상에서 감지되는 것은 전쟁의 섬뜩한 공기이다.     기타가와 후유히코 ‘말’은 군마가 되고, ‘군항’에 군함이 정박해 있는 광경이 떠오른다. 또한 ‘말’이 시대나 세계를 상징하는 비유라고 한다면 이 시는 세계의 위기를 잉태하고 있으며,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안자이 후유에의 〈봄〉이 서정적인 영상의 시라면 기타가와 후유히코의 〈말〉은 첨단적인 풍자성이 녹아 있는 리얼리즘의 시이다. 기타가와 후유히코의 시 〈동백꽃〉을 한 편 더 감상해보자. 여자8백미터 릴레이. 그녀는 제3코너에서 톡 하고 넘어졌다.  낙화. ―기타가와 후유히코 〈동백꽃〉 전문 기타가와 후유히코는 초등학교 입학 후에 만주철도로 전근 가는 부친을 따라 중국에 건너가 현지 학교에서 청소년기를 마치고, 1919년에는 대학 입학을 위해 일본에 돌아온다. 그 무렵에는 문학에 관심이 없었으나 뤼순중학교의 동급생인 키도코로 에이치(城所英一)의 권유에 의해 번역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 대련의 집에 돌아가 있던 중에 안자이 후유에 등과 의기투합해서 《아(亞)》의 창간 멤버에 참가한다. 비 내리는 날     그들은 몰래 첫 잠을 자고, 터진 피부를 바꿨다.  오후의 방에서 잠부(蠶婦)가 병든 누에를 주우면  척추 속의 무늬가 단추처럼 떨어졌다  그 지친 잠부의 어깨 주변에 더러워진 불탄 흔적이 사라져 있었다.  날이 약간 흐린 날 아침  그들은 일찍 눈을 뜨고, 슬픈 식욕을 생각했다.  습기 찬 잠포(蠶布)에 뽕을 뿌려주면  주둥이 끈으로 푸른 목금을 두드려 소나기의 악보를 연주하고 있다  그 습기 찬 소리를 의아하게 여기면서, 당목(撞木)* 같은 금붕어가 잠실(蠶室)의 창에서 하늘의 날씨를 엿보고 있다.  구름이 많은 밤  그것들은 마지막 잠을 끝내고, 거울마냥 새파래져 있다.  램프를 비추이면,  차가운 피부 아래 장미색 혈관과 내장이 멀찍하게 구부러져 있다.  그 너머의 해협을, 등불을 켠 군함이 줄지어 지나가고 있다.  어느 날 밤  그처럼 잠식된 병의 이력을 알고 있다는 듯  죽순이 솟은 농가의 지붕 위에  비 갠 뒤의 초승달이 짝 갈라져 있다.  *당목(撞木) : 종을 치는 T 자형의 막대 ―필자 주. ―다키구치 다케시 〈누에〉 전문       《아(亞)》의 또 한 사람의 창간 멤버 다키구치 다케시의 〈누에〉는 착 가라앉은 맑은 호수처럼 깊은 고요가 가득한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이미지가 명확하고 신선하다. 누에와 군함이라는 전혀 이질적인 이미지를 조합해서 표출시킨 시의 영상은 오히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리얼리티가 있다. 이 시에서는 군함의 실루엣을 배치해서, 안정되고 평온한 일상이 전쟁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비춰준다.  《시와 시론》의 시인들 1928년 9월, 레스플리 누보(신잡지 정신운동)를 표방하여 하루야마 유키오(春山行夫)가 편집인으로 《시와 시론》이 창간되었다. 이 운동은 사회적, 정치적인 것, 그리고 사상이라고 불리는 모든 관념의 속박이나 중압으로부터 순수하게 시세계를 해방시키고자 한 운동이었다. 그것은 시로서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 하는 것보다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이 순수한 예술 창작을 모든 지적인 활동에 맡기는 것에 주목적을 둔 것이었다. 이 운동은 그 이전의 상징시의 낡은 미학을 부정하고 민중파의 세계관에 절망하며, 시에 과중한 효용을 강요하는 프롤레타리아시파에 이의를 주창한 젊은 시인들에게 새로운 예술성 추구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것은 그보다 5년 앞서 앙드레 브르통이 발표한 ‘쉬르리얼리즘 예술운동 선언’에서 영향을 받는 것이었다. 그 후 《시와 시론》은 쉬르리얼리즘 예술운동을 주축으로서 전개해 나간다.     하루야마 유키로     시토시론 창간 동인은 하루야마 유키오(春山行夫), 기타가와 후유히코(北川冬彦), 안자이 후유에(安西冬衛), 다키구치 다케시(口武士) 이지마 다다시(飯島正), 우에다 도시오(上田敏雄), 간바라 야스시(神原泰), 곤도 아주마(近藤東), 다케나카 이쿠(竹中郁), 도야마 우사부로(外山卯三郞), 미요시 다쓰지(三好達治)였는데, 1929년 9월의 제5권부터는 기고자 제도로 바뀌어, 차츰 니시와키 준자부로(西脇順三郞), 다키구치 슈조(口修造), 사사자와 요시아키라(笹美明), 요시타 잇스이(吉田一)、기타조노 가쓰에(北園克衛), 호리 타쓰오(堀辰雄), 마루야마 가오루(丸山), 무라노 시로(村野四郞) 등이 참가했다. 이들 모두가 일본 시단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거성들이어서 일부러 모두 열거했다. 그 중에서 《시와 시론》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하루야마 유키오의 시를 살펴보자.     *  정직한 개는 짖지 않는다  떨기 장미가 피어 있는       마을     사람이 지나가면서  문을 닫거나 열거나 한다     *  흰 유보장(遊步場)입니다  흰 의자입니다  흰 향수입니다  흰 고양이입니다  흰 양말입니다  흰 목덜미입니다  흰 하늘입니다  흰 구름입니다  그리고 물구나무 선  흰 아가씨입니다  나의 Kodak입니다     *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흰 소녀       *  모든 하늘에서 유쾌해질 수 없다  모든 창에서 슬픔을 센다  수국꽃은 책 위에 그림자를 떨어뜨린다  피아노의 일부분에 햇살이 닿는다  정오가 마차를 나무 그늘로 옮긴다  노란 빵을 먹는 개개비새  포도의 방을 지키는 풀벌  배나무 잎을 먹는 양  붉은 술의 유리병에  소녀를 옮기는 소녀의 흰옷  벽이 연못에 사라지고, 연못이 수련에 사라지고  수련이 물에 사라지고, 물이 안개에 사라진다 ―하루야마 유키오(春山行夫) 〈ALBUM〉 전문 ‘흰 소녀’라는 단어를 84개나 늘어놓은 연은 ‘어떤 하나의 관념을 전달하거나 묘사한 것이 아니고, 포름이 기술되는 것에 의해 의미의 세계가 나온다’라고 한 포르말리즘(형식주의)이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 시는 포름만으로 시에 의한 이화(異化) 혹은 비일상화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즉, 여기에는 이화나 비일상의 현실이 없기 때문에 의미 없는 외형적인 포름만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현재 일본에서 비주얼 시 혹은 콘크리트 시의 장르에 들어가 있지만 “발표 당시는 ‘포르말리즘의 정신은 여기서 극한까지 도달했다’라는 평을 받았을 만큼 기념비적인 실험작이었다.”라고 안자이 후유에는 말년에 논했다. 안자이 후유에의 말대로 이 시는 당시 시의 혁신 운동에서 거대한 영향력이 있었고, 현대시의 발전 단계에서 기념해야 할 모뉴먼트였다. 그러나 하루야마 유키오의 공적은 그의 시 작품보다는 《시와 시론》의 편집자, 시운동의 주도적 이론가로서 일본 시사(詩史)에서 엄청난 공적을 남겼다. 그리고 하루야마의 시단에서의 활동은 그 후 일본 현대시의 전개에서 큰 획을 그었다. 그것은 《시와 시론》과 병행해서 출간한 《현대예술과 비평총서》 전21권, 계간 《문학》 《신영토》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으며, 그만큼 그는 서구 문화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식견을 지니고 있었다.  1930년 3월의 제7권부터는 기타가와 후유히코 등 3인이 하루야마 유키오의 주지주의적 편집 방침이 현실과 동떨어진 프티부르주아(중산계급) 취미라고 비판하고 탈퇴해서 《시현실》을 창간한다. 그러나 하루야마는 그 후로도 신진 외국 문학자를 동원하는 등, 기성 시단에 끊임없이 도전해 나간다. 조직적인 실험의 장으로서 신(新)산문시, 쉬르리얼리즘, 포르말리즘, 시네(cine)시 등의 시운동을 전개하면서 쇼와(昭和, 1926년에서 1989년까지, 일본 쇼와 천황 때의 연호)시대 시문학지의 골격을 형성해 나간다. 그 활동에서 중심적인 존재였고, 모더니즘 운동을 카리스마적으로 이끌었던 니시와키 준자부로(西脇順三郞, 1894~1982)의 시를 감상해 보자. (엎어진 보석) 같은 아침  몇 사람이 문 앞에서 누군가와 속삭인다  그것은 신의 탄생일 ―니시와키 준자부로 〈날씨〉 전문 고대 그리스 신들의 세계를 상상해 보면 고대 그리스적 풍경이 환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맑은 햇살과 신선한 공기가 충만한 눈부신 아침이 눈앞에 펼쳐진다. ‘(엎어진 보석) 같은 아침’이라는 1행의 비유는 3행의 ‘신의 탄생일’로 이어지고, 그 ‘신의 탄생’을 집 앞에서 신들이 속삭인다. 엎어진 보석처럼 투명하고 맑은 ‘날씨’, 아침은 밤의 (엎어진 보석)에 의해서 빛난다. 이 시에는 일본 근대시에 감도는 일본식 정서나 탐미적, 환상적인 정서가 없고, 드라이하고 지적인 서정이 있다. 니시와키는 청년기부터 그리스 문학이나 로마 문학 등의 고전문학을 애호했고, 또한 프랑스의 보들레르나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프랑스의 새로운 시인들의 시를 좋아했는데 그러한 문학 서적과 시를 많이 읽으면서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니시와키 자신도 1963년에 나온 시집 말미에 이렇게 썼다.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郞)의 시집 《달에 짖다》를 읽고, 처음으로 일본어로 쓰는 시 창작 충동을 느꼈다. 그전까지는 일본어의 문어체, 우아한 문체에 대한 저항감으로 인해 일본어로 시를 쓰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대부분 영문이나 불문으로 시를 썼다. 그러나 《달에 짖다》의 구어 자유시를 읽고부터는 거기에 전면적으로 찬의(贊意)를 품고, 다시 일본어로 시를 쓰기로 결의 ……  하기와라 사쿠타로가 인간 존재의 그림자 부분을 짙게 반영시킨 시인이라면 니시와키 준자부로는 그 그림자로서 빛을 조형한 시인이다. 니시와키의 시적 출발은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 유학한 시기에 플로베르를 탐독하면서부터였다. 30세 전후에는 런던에서 모더니즘 문학예술을 가까이 접하면서 그에 파고들었고, 32세 때에는 영어로 쓴 시집 《SPEOTRNM》(1925년 간행)을, 40세에는 일본어로 쓴 첫 시집 《Ambarvalia》를 출간한다. 〈날씨〉라는 시는 이 《Ambarvalia》에 수록되어 유명해진 단시이다. 니시와키 준자부로를 ‘초현실주의 시론’을 썼다고 해서 쉬르리얼리즘 시인이라고 단정하기 쉽지만 자신은 프랑스적인 쉬르리얼리스트가 아니고 오히려 쉬르내추럴리스트(초자연주의자)이고 싶어 했다.  프랑스의 쉬르리얼리즘은 꿈의 기록이나 형이상학적, 혹은 병적인 현상으로 구성되어 있고 기이한 감각에 집착했다. 그것을 회화나 조각처럼 조립했지만 그 심리는 일종의 형이상학이었다. 쉬르리얼리스트들은 현실감과 지성을 뛰어넘는 구체적인 요소 속에 초현실적인 관계를 설정했고, 메커니즘은 인스피레이션(영감)이나 직감에 의한 것이었다. 따라서 리얼리즘이나 심리문학에 비해 자유로운 상상을 중시했다. 일본에서도 꿈속의 잠재의식을 분열적으로 기술한 우에다 도시오(上田敏雄)라든가 심리적 자동성의 순수한 표현을 남긴 다키구치 슈조(口修造) 등이 있다. 그러나 기타가와 후유히코, 하루야마 유키오, 니시와키 준자부로 등은 주지적인 형식의 독립을 주장했고, 대상의 감성적인 세계를 중요시했다. 이 점에서 그들은 진정한 쉬르리얼리즘과는 약간 방향이 달랐다. 니시와키 준자부로는 시집 《Ambarvalia》를 내면서부터 전후에는 유럽풍에서 동양풍으로 돌아온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쳐서 일본 시인들이 도전한 모더니즘 문학 운동은 마치 신종 개발의 실험장과 같았고, 어느 면에서는 혼란스럽고 비문학적인 측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시나 시론은 21세기인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시적인 현실성과 현재성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모더니즘 시인들의 여러 작품을 감상해보자. ‘의미 없는 시를 쓰는 것에 의해 포에지의 순수는 실천된다’고 했던 기타조노 가쓰에(北園克衛, 1902~1978)는 정서도 의미도 배제하고 감각만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순수한 실험적 모더니즘 시인인지도 모른다. 그는 전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모더니즘 운동의 산실 《VOU》를 창간했다. 그의 시 〈기호설〉은 추상화 같은 세계가 펼쳐진다. 이 시는 주지적이고 이미지적인 시의 방법을 확립한 시라고 일컬어진다. 기호설  기타조노 가쓰에  *  흰 식기  꽃  스푼  봄 오후 3시  희다  희다  빨갛다  *  프리즘의 건축  흰 건물  공간  *  푸른 깃발  사과와 귀부인  흰 풍경  (후략) ―시집 《흰 앨범》(1927년 출간)에서   다리  기타조노 가쓰에  조릿대 낙엽이 어깨에 떨어진다  미라보다리의 아폴리네르처럼 지나가는 빈한한 계절의  어느 날은 그 시냇물의 흐름을 따라 뽕밭이 쓰러지고  개도 소년들도 만년필을 먹은 것처럼 푸른 혀를 내민다  이 소년들은 제각각 머위의 잎을 받치고 있지만  그 머위 잎 속에서 뽕나무 열매가 챔피언 잉크처럼 빛난다            ―시집 《불의 뿌리》(1939년 출간)에서   날아들다  무라노 시로(村野四郞, 1901~1975)  나는 흰 구름 속에서 걸어온다  한 장의 거리 끝까지  크게 나는 휜다  시간이 거기서 주름진다  찬다, 나는 찼다  이미 하늘 속이다  하늘이 나를 끌어안는다  하늘에 걸리는 근육  하지만 탈락한다  따라와 들러붙어 찌른다     나는 투명한 촉각 속에서 바둥거린다  머리 위의 거품 밖에서  여자들의 웃음이나 허리가 보인다  나는 붉은 해안 우산의     거대한 줄무늬를 쥐려고 안달한다            ―시집 《체조 시집》(1939년 출간)에서  레다  다키구치 슈조(口修造, 1903~1982)  돌풍은 조개껍질을 컵처럼 공허하게 한다  등불은 꺼졌다!  달 아래는 수렵구역이 흰 부채처럼 누워 있다  그녀의 가봉바늘은 쉬고 있다  혼자서 걸으면 장미향이 난다  레다는 매달려 있다            ―시집 《요정의 거리》(1937년 출간)에서   한성례 | 1955년 전북 정읍 출생. 세종대학교 일어일문과 졸업. 1986년 《시와 의식》 신인상. 시집으로 《실험실의 미인》 《감색치마폭의 하늘은》 (일본어시집)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1리터의 눈물》 등 다수. 허난설헌 문학상 수상. 현재 한일 두 나라의 문학지에 교차해서 시를 번역 소개하며 시인·번역가로 활동 중. 현재 세종사이버대학교 겸임 교수.
■ 방송 : CBS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장은수 (문학평론가)  출근길 만원 지하철을 기다리시면서 지금 이 시간에 라디오 들으시는 분들 많으시죠? 지하철을 기다리는 무료함을 달래주는 게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지하철 내의 스크린도어에 실린 시 한편인데요. 대부분 읽기도, 이해하기도 쉬운 시들이죠. 보시면서 '덕분에 웃는다, 또 위로를 받는다' 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런데 일각에서는 '그래도 시인데 수준이 좀 떨어지는 건 아닌가?'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는 출판사 민음사의 전 대표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은수 씨를 연결해서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실린 시에 대해서 말씀 나눠봅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 장은수> 네, 안녕하세요.  ◇ 박재홍> 사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광고를 실으면 굉장히 수익이 남을 텐데요. 대신 시를 실었다는 말이죠? 취지는 참 좋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 장은수> 광고 같은 것들을 실으면 수익성에 도움이 되고 그러겠죠. 하지만 시민들이 시를 쉽게 접할 수 있고 그것으로부터 생각의 지평이 넓혀지고 그다음에 기쁨도 얻고, 그런 정신적 행복의 공간으로 지하철의 일부가 할애된 건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박재홍> 그런데 최근에 스크린 도어에 실린 시들의 수준이 ‘함량 미달이다' 이런 지적도 나오고 있어요.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적힌 시 (사진=유튜브 영상 캡쳐) ◆ 장은수> 좋은 시들은 약간의 감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감추거든요. 감춰서 어떤 생각할 여지를 만들어주는데요.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실린 시들은, 생각할 여운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들을 남겨주지 않는 그런 작품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 정도 수준의 작품이 실려야 하나’ 이런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는거죠.  ◇ 박재홍> 그런데 사실, 시를 보고 읽을 때 ‘좋다, 나쁘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생각할 여지라든가, 여운 같은 건 굉장히 주관적인 요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객관적 기준으로 재단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 장은수> 시의 평가에는 객관적 평가가 있을 수 없죠. 주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거니까요 그런데 '어떤 시가 좋은 시냐?' 라고 한다면,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감각을 조금 더 확장시켜주고, 생각을 좀 더 깊게 만들어주고 어떤 대체적인 합의가 가능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만한 수준의 작품들도 게재가 되어 있지만, 상당수의 시들이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거죠. 그런 시들은 교체해야 되는 건 아니냐,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 박재홍> 만약에 이런 시들이 문학상 같은 곳에 투고를 한다면 수상기준으로 봤을 때는 어떤 정도 수준으로 평가하세요?  ◆ 장은수> 어렵죠. (웃음) 문학성을 논의하기에 힘든 수준의 작품들이 굉장히 많고요. 그러니까 평범한 시민들이 써서 실리는 시도 있지만, 일부 기성시인의 작품에서도 상당한 수준미달 작품 같은 게 많이 있는 거죠.  ◇ 박재홍> 기성 시인들의 시와, 시민들의 시민공모전을 통해서 시가 실리고 있는데요.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잖아요. 그러면 문학성이 조금 떨어져도, 시민들의 시가 실리는것도 의미있는 일은 아니냐?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장은수> 네. 물론이죠. 그런데 시민들의 공모전으로 실린 시가, 제가 알기로는 많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시민들의 시가 실리는 건 문제없죠. 시민들에게도 어떤 즐거운 어떤 경험인데요. 그런데 시민 공모작도 좀 지나치게 많으면 오히려 조금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그 공간이 공적인 공간이잖아요. 조금 더 수준이 높고 사람들한테 좀 더 기쁨을 줄 수 있는 시가 많아지면 훨씬 좋지 않겠나, 그런 생각입니다.  ◇ 박재홍> 그렇다면 어떤 시가 스크린도어에 실려야 한다고 보시는 거죠?  ◆ 장은수> 고전들이 실려야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몇천년의 문학사가 있고요. 사람들이 공감하기도 좋고, 사람들한테 기쁨을 줄 수 있는 그런 시들도 많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황진이 작품도 있고 허난설헌의 작품도 있고 다산 선생님 작품도 있고 김소월, 윤동주의 시, 다 좋은 작품들이잖아요. 그런 작품들로 좀 더 개방돼서, 시민들한테 좀 널리 읽히면 스크린도어 공간이 좀 더 공공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 박재홍> 그러니까 오랜 시간 동안 고전으로 사랑 받아왔던 우리의 보편적인 시들이 실리면, 더 좋은 문화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인데요. 그러면 지금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실리는 시는 어떤 과정을 통해 실리나요? 논란이 나오는 이유가 있습니까?  ◆ 장은수> 7개의 문학단체에 의뢰를 하고요. 그다음에 시민공모전을 통해서 11명 정도의 심사위원들이 그 작품을 골라서 싣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대부분의 단체들이 활동은 실질적으로 하지 않거나, 한다하더라도 아주 수준 높은 작품을 생산하는 그런 분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라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그 단체들의 회원들의 시도 굉장히 많이 올라오고 있는데요. 그중에 일부는 지하철에 실리는 것이 본인 스스로한테 명예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명예가 되는 걸 이용해서, 문단 내부에서 약간 좀 장사를 한다고 해야 하나요? 그런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 합니다.  자기들이 추천한 시를 자기가 올리는 거잖아요. 자기가 자기를 심사하면 문제가 된다고 생각 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자기 작품을 게재했을 때 생기는 폐단 같은 것들은 항상 나올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돌아가신 분들의 시, 그리고 문학적으로 검증된 시들이 좀 더 많이 실려주면 시민 공모작하고 서로 어울려서 좋은 문학적 향유 공간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입니다.  ◇ 박재홍> 좀 더 면밀한 기준을 통해서 실어야 된다는 말씀이신 것 같네요.  ◆ 장은수> 네. 너무 주관적으로 자기 단체 회원 중에서 뽑는다? 이런 건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그리고 또 시뿐만 아니라 일각에서는, 고전 소설이나 명작 속에 좋은 문장이나 구절을 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장은수> 좋은 의견입니다. 광화문 교보빌딩에 있는 글판은 가끔씩 산문에서 글을 따오기도 합니다. 모든 문학작품에는 시가 들어있거든요. 그런 어떤 아름다운 구절들, 이런 것들이 게재가 되면 어떨까, 만약 시 작품 수가 부족하다면 이 역시 좋은 대안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 박재홍> 많은 시민들이 접하는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실리는 시인 만큼, 좀 더 면밀한 검토를 해서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가 실리면 좋겠습니다. 말씀 여기까지 들을게요. 고맙습니다. 
666    라틴아메리카 시문학 댓글:  조회:5634  추천:0  2015-08-22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 지식리스트는 바로 '이것'  자동완성 켜기   담기수정문의보내기인쇄하기 글꼴설정말 라틴 아메리카 문화의 이해 시   호세 마르띠 초상화 호르헤 아르체의 유화 (1) 선구자들 시가 중심이 된 모데르니스모의 선구자로는 마누엘 곤살레스 쁘라다(Manuel González Prada), 호세 마르띠, 마누엘 구띠에레스 나헤라(Manuel Gutiérrez Nájera), 훌리안 델 까살(Julián del Casal), 호세 아순시온 실바(José Asunción Silva) 등을 들 수 있다. 페루의 곤살레스 쁘라다(1848.-1918.)는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사회악, 고통 그리고 존재의 부조리 등을 노래했으며 시형식에 있어서 자유로운 운율과 외국의 시형식을 빌어왔다. 호세 마르띠(1853.-95.)는 독립전쟁에서 전사하여 쿠바 독립의 아버지로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모든 장르의 문학을 썼다. 특히 그가 남긴 편지, 에세이, 연설, 일기, 신문기사 등은 그를 모데르니스모 산문의 진정한 창시자로 간주하게 한다. 그의 시 역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스마엘리요(Ismaelillo)』, 『간결한 시(Versos sencillos)』 그리고 『자유로운 시(Versos libres)』 등 세 권의 시집에 담겨 있다. 구띠에레스 나헤라(1859.-95.)는 멕시코 모데르니스모의 창시자로서 주로 죽음과 같은 철학적인 주제의 시를 썼으며 이미지, 메타포, 비교법 등의 수사법에서 독창성을 보여준다. 훌리안 델 까살(1863.-93.)은 마르띠와 마찬가지로 쿠바의 시인이지만 정치적인 주제도 마다하지 않았던 마르띠와는 정반대로 순수한 '상아탑'의 시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시는 동양적인 분위기가 물씬한 이국취향적 시를 즐겨 썼으며 완벽하게 자유로운 시 형식을 택하였다. 아순시온 실바(1865.-96.)는 평생을 죽음의 강박관념 아래 살았던 콜롬비아 시인이다. 때문에 그의 시에는 죽음과 연관된 밤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며 즐겨 회상하는 유년시절은 잃어버린 낙원을 상징한다. 그는 전통적인 시 형식을 거부하고 매력적인 음악성을 추구하였다. 루벤 다리오 초상 (2) 루벤 다리오(1867.-1916.) 니카라과 출신의 루벤 다리오는 진정으로 모데르니스모 시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13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고 15세가 되던 해에 엘살바도르에서 만난 프란시스꼬 가비디아를 통해 프랑스 낭만주의와 고답파 시인들을 알게 되어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초기 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시인은 깜뽀아모르(Campoamor), 소리야(Zorrilla), 베께르(Béquer) 등 스페인 낭만주의 시인들과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였다. 그는 1898년 아르헨티나의 『라 나시온(La Nación)』의 특파원으로 스페인에 가서 모데르니스모 운동을 출발시키며 가장 널리 알려진 중남미 작가가 되었다. 시와 산문이 실려 있는 『푸름(Azul)』(1888.)은 새로운 감수성을 보여주면서 모데르니스모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 된다. 1896년에 나온 『세속 산문집과 다른 시 모음(Prosas profanas y otros poemas)』는 이 시운동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 시집이다. 그의 시어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섬세하고 관능적인 언어, 귀족주의, 혁신적인 운율, 음악성, 비정치성, 이국정취, 고전 찬양 등을 들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아 상아탑 속에 갇힌 모데르니스모 시의 전형을 보여준다. 사회성과 동떨어진 이러한 시적 성향은 흔히 백조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오 백조여! 오 신성한 새여! 그 옛날 고운 헬레나가 은총을 받아 레다의 푸르름으로부터 나와 아름다움의 불멸의 여왕이 되었다면 너의 하얀 날개 아래 새로운 시가 빛과 조화의 영광 안에 품고 있구나 이상을 구현하는 영원하고 순수한 헬레나를.1) 한편 『삶과 희망의 찬가(Cantos de vida y esperanza)』(1905.)는 이전의 수사적 경향보다는 더 내밀하고 심오한 차원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여기에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강박관념, 종교적인 주제, 형이상학적 고뇌가 드러나 있다. 또한 이전의 코스모폴리턴적 시각에서 벗어나, 「루스벨트에게 보내는 편지」, 「스페인에서의 시라노」, 「돈키호테에 바치는 연도」 등의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스페인어를 쓰는 아메리카 인으로서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시인은 미국의 자유주의 시인이었던 월트 휘트먼의 목소리를 빌어 미국 제국주의를 고발한다. 루스벨트, 당신은 무서운 포수와 사나운 사냥꾼이 되야 하리, 우리를 그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는2) 이러한 의식은 후에 나온 시집, 『아르헨티나 찬가와 다른 시 모음(Canto a la Argentina y otros poemas)』(1914.)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즉 시인은 스스로를 아메리카의 시인이라면서 가우초의 이야기도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을의 시와 다른 시 모음(Poema del otoño y otros poemas)』(1910.)에서 보듯이 후기시에서 사랑과 같은 인간적인 주제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루벤 다리오가 이후 스페인어권 문학에 남긴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대하며 특히 20세기 중반의 풍요로운 시 전통과 붐소설의 기반이 된다고 할 수 있다. (3) 루벤 다리오 이후 멕시코의 아마도 네르보는 스페인에서 루벤 다리오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시인이다. 특히 그의 동반자였던 아나 마리아 다이예스의 죽음을 노래한 『움직이지 않는 연인(La amada inmvil)』(1912.)은 오늘날 보기에는 다소 센티멘털리즘에 빠져 있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시집이다. 이 밖에도 「작은 목소리로(En voz baja)」, 「고즈넉함(Serenidad)」 등의 시는 시인의 정신적인 위기와 종교 체험을 반영하고 있다. 우루과이의 훌리오 에레라 이 레이시그(Julio Herrera y Reissig, 1875.-1910.)는 훌리안 델 까살과 마찬가지로 환멸의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를 썼다. 특히 비인간적인 도시생활과 대비되는 농촌의 평화로운 삶과 순수했던 과거를 애상적으로 그린다. 『산의 엑스타시스(Los éxtasis de la montaña)』, 『바스크 소네트(Sonetos vascos)』, 『스핑크스의 탑(La torre de las esfinges)』 등의 시집이 있다. 한편 아르헨티나의 레오뽈도 루고네스(Leopoldo Lugones, 1874.-1942.)는 모데르니스모 시운동의 후기에 속하면서 아방가르드 시의 선구자로 꼽히는 시인이다. 독학을 했으나 매우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리스도교 신자이면서 다양한 사상을 섭취했다. 미학적으로도 서정시에 바탕을 두고 다양한 미학적 실험을 하였다. 초기에는 상징주의로 출발해 신고전주의를 받아들였으며 다시 민족주의적 성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황금 산(Las montañas del oro)』, 『정원의 황혼(Los crepúsculos del jardín)』, 『메마른 강의 로만세(Romances delRío Seco)』 등의 시집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 (라틴 아메리카 문화의 이해, 2000. 8. 15., 학문사)  
665    칠월칠석 시모음 댓글:  조회:5606  추천:0  2015-08-20
칠석요(七夕謠) · 칠월칠석 오늘밤은 은 하 수 오작교에 견우직녀 일년만에 서로반겨 만날세라 애야애야 애야좋네 칠석놀이 좀더좋네 · 은하수의 잔별들은 종알종알 속삭이며 무슨말을 속삭이나 반작반작 웃는구나 애야애야 애야좋네 칠석놀이 좀더좋네 · 까치까치 까막까치 어서빨리 날러와서 은하수에 다리놓아 견우직녀 상봉시켜 일년동안 맛본서름 만단설화 하게하소 애야애야 애야좋네 칠석놀이 좀더좋네 · 은 하 수 한허리에 채색다리 놓으렬제 까막까막 까치들이 오작교를 놓았구나 애야애야 애야좋네 칠석놀이 좀더좋네 · ……(중략)…… · 은하수를 못메워주나 우리서로 사랑타가 옥황님께 죄를지어 님은강건너 서쪽마을 이내몸은 동쪽에서 일년한번 만날날이 오날밖에 없었구나 전생차생 무슨죄로 각분동서 헤어져서 일년일도 상봉인가 · ……(중략)…… · 닭아닭아 우지말아 네가울면 날이새고 날이새면 임은간다 이제다시 이별하고 일년삼백 육십일에 임그리워 어이살지 우지말아 우지말아 무정하게 우지말아 원수로다 원수로다 은하수가 원수로다. · · 『한국민요집』1에 전하는 칠석요 자료 일부 · · · · 칠월칠석(七夕) 시 모음 · · · * 칠석에 비를 읊다 - 이규보(李奎報)   칠석날에 비 안 오는 일이 적은데 나는 그 까닭을 모르네. 신령한 배필이 기쁨 이루려 하니 비의 신이 응당 질투할 것이로다 * · · · * 칠석우서(七夕偶書) - 권벽(權擘)[조선 중기 문신] 浮世紛紛樂與悲 -부세분분락여비 人生聚散動相隨 -인생취산동상수 莫言天上渾無事 -막언천상혼무사 會合俄時又別離 -회합아시우별리 -칠석 날에 우연히 적다 기쁘다, 슬프다로 허망한 세상살이 분분하고 인생살이 모이고 흩어짐이 일마다 서로 따르는구나 하늘나라에는 이별이 전혀 없다 말하지 말게나 만남은 잠시일 뿐 또다시 서로 이별하려하는구나 · · · * 七夕 - 양박(楊璞)[宋] 未會牽牛意若何 - 미회견우의약하 須邀織女弄金梭 - 수요직녀롱금사 年年乞與人間巧 - 연년걸여인간교 不道人間巧已多 - 부도인간교이다 - 칠석 견우의 뜻이 어떠한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마땅히 직녀로 하여금 금으로 만든 북을 다루게 하여야 하리 해마다 사람들은 길쌈을 잘하게 해달라고 비는데 인간세상의 교예가 얼마나 늘었는지는 알지 못하는구나 · · · * 七夕 - 이응희(李應禧)[조선 중기 문신] 天中七月七 織女會牽牛 歲歲橋頭別 年年河上遊 悲歡同一夕 離合幾千秋 此恨何時歇 天崩地拆休 -칠석 하늘에서는 칠월 칠석에만, 직녀가 견우와 만난다 하지. 해마다 오작교에서 이별하고, 해마다 은하수 가를 노니는구나, 슬픔과 기쁨이 하룻밤에 교차하니, 이별과 만남이 몇 천 년 있어 왔던가, 이 한(恨)은 어느 때나 끝날거나, 하늘 무너지고 땅 갈라져야 끝나리. * · · · * 칠석소작(七夕小酌) - 이곡(李穀)[고려말 문신] 平生蹤迹等雲浮 - 평생종적등운부 萬里相逢信有由 - 만리상봉신유유 天上風流牛女夕 - 천상풍류우여석 人間佳麗帝王州 - 인간가려제왕주 笑談款款罇如海 - 소담관관준여해 簾幕深深雨送秋 - 렴막심심우송추 乞巧曝衣非我事 - 걸교폭의비아사 且憑詩句遣閒愁 - 차빙시구견한수 -칠석에 조금 술을 마시며 한평생 발자취가 구름처럼 떠도는데 만리 밖에서 서로 만남 진실로 까닭 있으리. 저 천상의 풍류는 이 저녁의 견우 직녀 인간의 아름다움 제왕의 나라이다. 정성스런 담소에 술그릇은 바다 같고 깊속한 염막에는 비가 가을 보낸다. 솜씨 빌고 옷쬐이기 원래 내 일 아니니 또 시구로써 한가한 시름 보낸다. * · · * 한국한시-김달진역-민음사 · · · · * 七夕 - 이곡(李穀) 이 명절에 누가 내 집을 찾아오려고나 할까 - 佳節無人肯見過 인간 세상에 세월만 북처럼 빨리도 내달리네 - 人間歲月逐飛梭 아득히 하늘의 신선들 합환하는 짧은 시간에 - 神仙杳杳合歡少 아녀자들은 분분하게 걸교하기에 바빠라 - 兒女紛紛乞巧多 맑기가 물과 같은 객사의 가을빛이라면 - 客舍秋光淸似水 물결 없이 고요한 은하의 밤 색깔이로다 - 天河夜色淨無波 일어나서 시구 찾다 괜히 머리만 긁적긁적 - 起來覓句空搔首 풍로 어린 뜨락의 이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 奈此一庭風露何 · ~> 걸교(乞巧) -칠월 칠석날 밤에 부녀자들이 과일과 떡을 차려 놓고 직녀와 견우에게 길쌈과 바느질 솜씨가 좋아지게 해 달라고 빌던 풍속이다. · · · * 七夕 - 李玉峯 無窮會合豈愁思 - 무궁회합기수사 不比浮生有別離 - 불비부생유별리 天上却成朝暮會 - 천상각성조모회 人間謾作一年期 - 인간만작일년기 -칠월칠석 만나고 또 만나고 수없이 만나는데 걱정은 무슨 걱정 뜬구름 같은 우리 삶에 이별 있음과는 견줄 것도 아니라네 하늘 위에서는 아침저녁 만나는 것을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이라고 호들갑을 떠네 * · · ·
664    단편 시모음 댓글:  조회:4903  추천:0  2015-08-16
    착하게  살았는데  우리가  왜 이곳에  - 하상욱 단편시집 '지옥철' 중에서 -  니가  문제일까  내가  문제일까  - 하상욱 단편시집 '신용카드' 중에서 -  끝이  어딜까  너의  잠재력  - 하상욱 단편시집 '다 쓴 치약' 중에서-  너인줄  알았는데  너라면 좋았을걸  - 하상욱 단편시집 '금요일 같은데 목요일' 중에서-  내가 다른걸까  내가 속은걸까  - 하상욱 단편시집 '맛집' 중에서 -  꼭 온다더니  또 속인거니  - 하상욱 단편시집 '지구종말' 중에서 -  두근  두근  두근  두근  - 하상욱 단편시집 '빈속에 커피' 중에서 -  나한테  니가 해준게 뭔데  - 하상욱 단편시집 '수수료' 중에서 -  알콩달콩  좋아보여  재밌게도  사는구나  - 하상욱 단편시집 '옆 사람 카톡' 중에서 -  너의 진짜 모습  나의 진짜 모습  사라졌어  - 하상욱 단편시집 '포토샵' 중에서 -  가끔씩  깨닫는  너라는  고마움  - 하상욱 단편시집 '재부팅' 중에서 -  생각의  차이일까  오해의  문제일까  - 하상욱 단편시집 '미용실' 중에서 -  걱정  접어둬  내가  있잖아  - 하상욱 단편시집 '무이자할부' 중에서 -  뭐가  뭔지  - 하상욱 단편시집 '연말정산' 중에서 -  인기는  영원히 머물지 않아요  - 하상욱 단편시집 '인기 가요' 중에서 -  어디갔어 - 하상욱 단편시집 '월급' 중에서 -  정해진  이별  새로운  시작  - 하상욱 단편시집 '2년 약정' 중에서 -  다  잊고 싶은데  더  또렷해지네  - 하상욱 단편시집 '스포일러' 중에서 -  서로가  소홀했는데  덕분에  소식듣게돼  -하상욱 단편시집 '애니팡' 중에서 -  잘못된 선택  뒤늦은 후회  - 하상욱 단편시집 '내 앞자리만 안내림' 중에서 -  고민하게 돼  우리둘사이  - 하상욱 단편시집 '축의금' 중에서 -  늘 고마운 당신인데  바보처럼 짜증내요  - 하상욱 단편시집 '알람' 중에서- 나는 했는데 너는 몰랐네 - 하상욱 단편시집 '밀당' 중에서- 안 좋은 척 안 기쁜 척 - 하상욱 단편시집 '택배 받을 때' 중에서-  
663    <국수> 시모음 댓글:  조회:4503  추천:0  2015-08-15
[ 2015년 08월 14일 09시 51분 ]         +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싶다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싶다 (이상국·시인, 1946-) + 봉평에서 국수를 먹다      봉평에서 국수를 먹는다  삐걱이는 평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한 그릇에 천원 짜리 국수를 먹는다  올챙이처럼 꼬물거리는 면발에  우리나라 가을 햇살처럼 매운 고추  숭숭 썰어 넣은 간장 한 숟가락 넣고  오가는 이들과 눈을 맞추며 국수를 먹는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들  또 어디선가 살아본 듯한 세상의  장바닥에 앉아 올챙이국수*를 먹는다  국수 마는 아주머니의 가락지처럼 터진 손가락과  헐렁한 티셔츠 안에서 출렁이는 젖통을 보며  먹어도 배고픈 국수를 먹는다  왁자지껄 만났다 흩어지는 바람과  흙 묻은 안부를 말아 국수를 먹는다  (이상국·시인, 1946-) * 옥수수로 만든 국수 + 황홀한 국수 반죽을 누르면 국수틀에서 국수가 빠져나와 받쳐놓은 끓는 솥으로 가만히 들어가 국수가 익듯, 익은 국수를 커다란 소쿠리째 건져 철썩철썩,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내듯, 손 큰 내 어머니가 한 손씩 국수를 동그랗게 말아 그릇에 얌전히 앉히고 뜨거운 국물을 붓듯, 고명을 얹듯, 쫄깃쫄깃, 말랑말랑 그 매끄러운 국숫발을 허기진 누군가가 후루룩 빨아들이듯, 이마의 젖은 땀을 문지르고 허, 허 감탄사를 연발하며 국물을 다 들이키고 나서는 빈 그릇을 가만히 내려놓은 검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듯, 살다 갔으면 좋겠다 (고영민·시인, 1968-) + 향연, 잔치국수  어수룩하게 넓은 국사발에 물에 삶아 찬물에 헹궈 소반에 건져놓은 하이얗게 사리 지은 국수를 양껏 담고 그 위에 금빛 해 같은 노오란 달걀 지단 채 썰어 놓고 하이얀 달걀 지단 따로 채 썰어 올려놓고 파아란 애호박, 주황빛 당근도 채 썰어 볶아 올려놓고 빠알간 실고추도 몇개 올려드릴 때 무럭무럭 김나는 양은 국자로 잘 우려낸 따스한 멸치장국을 양껏 부어 양념장을 곁들여내면 헤어진 것들이 국물 안에서 만나는 그리운 환호성 반갑고 반갑다는 축하의 아우성 금방 어우러지는 사랑의 놀라움 노오란 지단은 더 노랗고 새파란 애호박은 더 새파랗고 빠알간 실고추는 더 빠알갛고 따스한 멸치장국  아픈 자. 배고픈 자. 추운 자. 지친 자 찬란한 채색고명과 어울려 한 사발 기쁘게 모든 모두 잔치국수 한 사발 두 손으로 들어올릴 때 무럭무럭 김나는 사랑 가운데 화려한 한 그릇의 사랑 그 가운데로 오시는 분.... 마침내 우리 앞에도 놓이는 잔치 국수 한 사발 (여자와 아이들을 제외하고 오천 명을 그렇게 먹이셨다) (오늘도 그렇게 하셨다) (김승희·시인, 1952-) + 그 날의 국수     아침, 점심,  두끼 굶던 날  벽에 걸린 괘종시계 떼어내어  보자기에 싸던 아버지  말없이 손을 잡고  길을 나섰네  전당포도 문 닫은  일요일  한참을 걸어가  시계 잡히고 받은 돈 이천 원  시장에 들러  국수를 샀네  길다란 막대에 걸려  말려지던 국수  고추장 푼 냄비 안에서  끓고 있었네  온 식구가 둘러앉아 나누어 먹던  뜨거운 국수  곯은 배를 훈훈하게 채우고  기분 좋게 드러누웠던 저녁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떠 있는  그 날, 그 국수   (이창윤·시인, 경북 대구 출생) + 종로 2가 막국수 지성을 파고 있는 종로 2가 뒷골목에서 300원짜리 막국수를 먹어본 사람들 중에는 보기보다 험난한 회사라는 보험회사를 다니며 점심값을 아끼던 사람도 있었고 남들은 레스토랑에서 칼질을 할 때에 사랑을 위하여 함께하는 가난한 연인들도 있었다 허기진 창자에서 들려오는 피리소리를 낮추려는 남루한 옷차림의 인생 나그네도 있었고 무얼 먹어도 맛있기만 한 시골에서 올라온 자취하는 학생이 한 끼를 때우고 있었고 이런 것도 먹어 두어야 기억에 남는다고 킥킥거리며 한 사발 후딱 먹어 치우던 낭만파도 있었고 웬 사내가 마른 눈물 훔치며 속앓이를 하며 내일을 기약하며 하루를 넘기려 후루룩 소리도 죽여가며 먹기도 하였는데 종로 2가 뒷골목 뜨거운 김 힘차게 오르던 300원짜리 막국수가 지금은 세상 인심에 밀려 사라졌다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콧등치기국수  깊은 산골의 춘궁기엔  밀가루도 귀하였네  시래기를 보태 삶은 칼국수를  쇠죽과 다름없는 칼국수를  가물가물 호롱불 아래 콧물 훌쩍이는  노오랗게 부황 든 아이들이  후루룩 쪽쪽 빨아들이면  태어난 죄 밖에 없는 여린 콧등  냅다 한번 후려치고  입 속으로 빨려들던  뭉툭한 면발  콧등에 흐르는 국물과 콧물  어머니 손가락으로 훑어 먹이던  짭짤하고 따끈한 그 맛  정신없이 먹다보면  뱃가죽이 벌떡 솟아  올챙이배가 되나  참으라던 오줌을 누고 나니  도로 푹 꺼지더라  동지섣달 기나긴 밤  자다가도 배고파  '어~메 밥 주게' 하고 조를 때  이웃집 외양간 송아지도  '움~메'하고 길게  따라 울었지 (김내식·시인, 경북 영주 출생) + 비빔국수를 먹으며  동대문 시장  옷가게와 꽃가게 사이  비좁은 분식집에서  비빔국수를 먹는다  혼자 먹는 것이 쑥스러워  비빔국수만 쳐다보고 먹는데  푸른빛 상추, 채질된 당근  시큼한 김치와 고추장에 버물려진  국수가 맛깔스럽다  버스, 자가용,  퀵서비스 오토바이가 뒤엉킨 거리  옷감 파는 사람과 박음질하는 사람  단추, 고무줄, 장식품을 파는  크고 작은 상점이 빼곡한 곳  가난과 부유가 버물려져 사는  동대문 시장  가족과 동료, 시댁과 친정  세월의 수레바퀴 속에  나와 버물려져 사는 사람들  새콤하고 달콤하고 맵고  눈물 나고 웃음 나고  화나고 삐지고 아프고  그렇게 버물려진 시간들  울컥 목구멍에 걸린다 (목필균·시인) + 여름 시편·9 -콩국수  맷돌에서 나오는 母乳같은 콩국을 찬 우물물에 타서  삶아 건진 칼국수를 메운 위에 오이채를 얹어 먹는  구수하고 서늘함이 흐르는 땀을 빨아들이고. 말랑거리는 가슴의 어머니 냄새 할머니 어머니 아내의 손과 가슴으로 이어지는  혈맥 같은 그 맛 하얀 오존이 하늘을 뒤덮는 이 도시의 여름을 나자면  어머니를 느끼며 콩국을 먹어야 하고. 궂은 날 어머니를 졸라 솥뚜껑 지짐질로 빚으시던  밀전병 생각이 간절하면 먼 하늘이나 바라보고. (최진연·시인, 경북 예천 출생) + 칼국수  불같이 화가 나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는데  칼국수만한 게 어디 있을까  밀가루를 얇게 반죽을 해서  칼로 죽죽 찢어 한 냄비 끓이면서  굵은 바지락 몇 개 집어넣고  파 숭숭 잘라넣고  잘게 썰은 매운 고추에  붉은 고춧가루를  한 숟가락 풍덩 빠뜨린 다음에  흐물흐물해진 칼을 후후 불면서  방금 버무린 김치와 엮어  입안으로 넘기면  속이 다 시원해지는 것인데  굳었던 혀가 얼얼해지고  뻣뻣한 뒷목이 허물어지면서  얼굴에 땀방울이 돋아나기 시작하는데  그릇을 통째 들고  뜨겁게 달아오른 저 붉고 푸른 국물을  목구멍으로 한 모금 넘기면  눈앞이 환해지면서  온몸에 칭칭 감긴 쇠사슬이 풀어지는데  뼈가 나긋나긋해지고  눈물이 절로 나는 것인데  칼국수 다 비우고  뜨거워진 마음을  빈 그릇에 떡 하니 올려놓는 것이다 (김종제·교사 시인, 강원도 출생)
662    나는 시를 너무 함부로 쓴다... 댓글:  조회:5189  추천:0  2015-08-15
[ 2015년 08월 16일 09시 56분 ]     천진항 폭발중심현장.   이상국 약력   1946년 강원 양양군 출생 1976년 심상지 시 '겨울추상화' 발표 데뮈   경력 유심지 주간. 백담사만해마을 운영위원장. 한국작가회의 자문위원. 한국작가회의 강원지회장. 민예총 강원지회장.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설악신문 대표이사   수상 백석문학상. 민족예술상. 유심작품상. 강원민족예술상.   시집 동해별곡. 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   집은 아직 따뜻하다     흐르는 물이 무얼 알랴 어성천이 큰 산 그림자 싣고 제 목소리 따라 양양 가는 길 부소치 다리 건너 함석집 기둥에 흰 문패 하나 눈물처럼 매달렸다   나무 이파리 같은 그리움을 덮고 입동 하늘의 별이 묵어갔을까 방구들마다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어둠을 입은 사람들 어른거리고 이 집 어른 세상 출입하던 갓이 비료포대 속에 들어 바람벽 높이 걸렸다   저 만리 물길 따라 해마다 연어들 돌아오는데 흐르는 물에 혼은 실어보내고 몸만 남아 사진액자 속 일가붙이들 데리고 아직 따뜻한 집   어느 시절엔들 슬픔이 없으랴먄 늙은 가을볕 아래 오래 된 삶도 짚가리처럼 무너졌다 그래도 집은 문을 닫지 못하고 다리 건너오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 창작과비평사, 1998    ~~~~~~~~~~~~~~   산속에서의 하룻밤  해지고 어두워지자  산도 그만 문을 닫는다  나무들은 이파리 속의 집으로 들어가고  큰 바위들도 팔베개를 하고  물소리 듣다 잠이 든다  어디선가 작은 버러지들 끝없이 바스락거리고  이파리에서 이파리로 굴러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새들은 몇번씩 꿈을 고쳐 꾼다  커다란 어둠의 이불로 봉우리들을 덮어주고  숲에 들어가 쉬는 산을  별이 내려다보고 있다  저 별들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기나 하는지  저항령 어둠속에서  나는 가슴이 시리도록 별을 쳐다본다  시집 ; 집은 아직 따뜻하다 / 창작과 비평사    ~~~~~~~~~~~~~~~~~   달동네  사람이 사는 동네에  달이 와 사는 건  울타리가 없어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의 지붕 꼭대기에  달의 문패를 달아주었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 창작과비평사, 2005    ~~~~~~~~~~~~~~~~~~    별     큰 산이 작은 산을 업고 놀빛 속을 걸어 미시령을 넘어간 뒤 별은 얼마나 먼 곳에서 오는지   처음엔 옛사랑처럼 희미하게 보이다가 울산바위가 푸른 어둠에 잠기고 나면 너는 수줍은 듯 반짝이기 시작한다   별에서는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별을 닦으면 캄캄함 그리움이 묻어난다 별을 쳐다보면 눈물이 떨어진다   세상의 모든 어두움은 너에게로 가는 길이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 창작과비평사, 1998   ~~~~~~~~~~~~~~~~~~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감자를 묻고 나서  삽등으로 구덩이를 다지면  뒷산이 꽝꽝 울리던 별  겨울은 해마다 닥나무 글거리에 몸을 다치며  짐승처럼 와서는  헛간이나 덕석가리 아래 자리를 잡았는데  천방 너머 개울은 물고기들 다친다고  두터운 얼음옷을 꺼내 입히고는  달빛 아래 먼길을 떠나고는 했다  어떤 날은 잠이 안 와  입김으로 봉창 유리를 닦고 내다보면  별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봄을 기다리던 마을의 어른들이  별똥이 되어 더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하늘에서는 다른 별도 반짝였지만  우리 별처럼 부지런한 별도 없었다  그래도 소한만 지나면 벌써 거름지게 세워놓고  아버지는 별이 빨리 돌지 않는다며  가래를 돋워대고는 했는데  그런 날 새벽 여물 끓이는 아랫목에서  지게 작대기처럼 빳빳한 자지를 주물럭거리다 나가보면  마당에 눈이 가득했다  나는 그 별에서 소년으로 살았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  2005 창비    ~~~~~~~~~~~~~~~~~~~~~   이 별에서 내리면  이 별에서 내리면  다른 별에 가 살 수는 없을까  이렇게 푸른별이  하늘에 단 하나뿐이고  때가 되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 별에서 내려야 한다면  우리가 술도 못 먹고  시 같은 건 안 써도 좋으니  또 다른 별에서 만날 수는 없는지  사람이 너무 많아 불편하다면  이 보다는 좀 못하더라도  내리는 사람끼리 만나 사는 별은 없는지    계간 포에지 2000 겨울호, 나남출판, 2000. 11   ~~~~~~~~~~~~~~~   별에게로 가는 길  별 보면 섧다  첫새벽 볏바리 가는 소 눈빛에 어리고  저물어 돌아오는 어머니  호미날에도 비치던 그 별  어둠의 거울이었던  고향집 우물은 메워지고  이제 내 사는 곳에서는  별에게로 가는 길이 없어  오래 전부터  내가 소를 잊고 살듯  별쯤 잊고 살아도  밤마다 별은  머나먼 마음의 어둠 지고 떠올라  기우는 집들의 굴뚝과  속삭이는 개울을 지나와  아직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 창작과비평사   ~~~~~~~~~~~~~~~~   에프킬라를 뿌라며     자다 일어나 에프킬라를 뿌린다   향긋한 안개가 퍼지고 나를 공격하던 모기들은 입이 무너지고 날개가 녹아내리고 죽었다.   싸움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수십만이 하루살이처럼 죽었다   그들은 다시 베트남에 고엽제를 살포하여 초목의 씨가 마르고 수백만의 인민들이 죽거나 천천히 썩었다   나는 모기에게 이긴 게 아니라 그가 공격하면 나도 맨손으로 싸워야 했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   어느 미친 여인에게   지난 가을  우체국 돌계단에  은행나무 이파리 모아놓고  히죽히죽 살림살 때 벌써 허리가 절구통 같더니  모진 겨울 어디 가 몸풀고  거뜬하게 나왔느냐  어느 천벌을 받을 놈이 몹쓸 짓 했느냐며  눈발 날리고 얼음 어는데  저 간나 어쩌겠냐며  온 시민이 걱정했는데  이 봄  햇살 수북하게 쌓인  전매서 울타리 아래 앉아  머리 풀어헤치고 빗질하는 네가 고마워서  사람들은 가다가 보고  또 돌아보는 구나  ~~~~~~~~~~~~~~~~~~   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개울물이 밤새 닦아놓은 하늘로  일찍 깬 새들이  어둠을 물고 날아간다  산꼭대기까지  물 길어 올리느라  나무들은 몸이 흠뻑 젖었지만  햇빛은 그 정수리에서 깨어난다  이기고 지는 사람의 일로  이 산 밖에  삼겹살 같은 세상을 두고  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나는 벌레처럼 잠들었던 모양이다  이파리에서 떨어지는 이슬이었을까  또다른 벌레였을까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   있는 힘을 다해         해가 지는데  왜가리 한마리  물속을 들여다 보고 있다  저녁 자시러 나온 것 같은데  그 우아한 목을 길게 빼고  아주 오래 숨을 죽였다가  가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에 머릴 처박는 걸 보면  사는 게 다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   희망에 대하여  사북에 가서  그렇게 많이 캐냈는데도  우리나라 땅속에 아직 무진장 묻혀 있는 석탄처럼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을 다 써버린 때는 없었다  그 불이  아주 오랫동안 세상의 밤을 밝히고  나라의 등을 따뜻하게 해주었는데  이제 사는 게 좀 번지르르해졌다고  아무도 불 캐던 사람들의 어둠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섭섭해서  우리는 폐석더미에 모여 앉아  머리를 깎았다  한번 깎인 머리털이 그렇듯  더 숱 많고 억세게 자라라고  실은 서로의 희망을 깎아주었다  우리가 아무리 퍼 써도  희망이 모자란 세상은 없었다    ~~~~~~~~~~~~~~~~~~~~~~~~~   연민   흐르는 강이 나이를 자시면  무엇이 되는지  양양 남대천 물너름에 와서 보아라  한때는 살을 내줄 것 같던 사랑이나  몸을 내던지며 울던 슬픔도  생의 굽이굽이를 돌며 치이고 닳아  이제는 모래처럼 순해졌으니  산그림자 속으로 새들 돌아가고  저무는 강둑에서 제 몸 비춰보는 저것,  자식낳이 다한 어머니처럼  거대한 자궁을 열어놓고  혼잣노래 하는  저 오래된 연민을 보아라"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  2005 창비  ~~~~~~~~~~~~~~~~~~~~~~~   백담 가는 길 / 이상국  1  물은 산을 내려가기 싫어서  못마다 들러 쉬고  쉬었다가 가는데  나는 낫살이나 먹고  이미 깎을 머리도 없는데  어디서 본 듯한 면상(面相)을 자꾸 물에 비춰보며  산으로 들어가네  어디 짓다 만 절이 없을까  아버지처럼 한번 산에 들어가면 나오지 말자  다시는 오지 말자  나무들처럼  중처럼  슬퍼도 나오지 말자  2  만해(萬海)도 이 길을 갔겠지  어린 님을 보내고 울면서 갔겠지  인제 원통쯤의 노래방에서  땡초들과 폭탄주를 마시며  조선의 노래란 노래는 다 불러버리고  이 길 갔겠지  그렇게 님은 언제나 간다  그러나 이 좋은 시절에  누가 그깟 님 때문에 몸을 망치겠는가  내 오늘 세상이 같잖다며  누더기 같은 마음을 감추고 백담(百潭) 들어서는데  늙은 고로쇠나무가 속을 들여다보며  빙긋이 웃는다  나도 님이 너무 많았던 모양이다  3  백담을 다 돌아 한 절이 있다 하나  개울바닥에서 성불한 듯 이미  몸이 흰 돌멩이들아  물이 절이겠네  그러나 이 추운 날  종아리 높게 걷고  그 물 건너는 나무들,  평생 땅에 등 한번 못 대보고  마음을 세웠으면서도  흐르는 물살로 몸을 망친 다음에야  겨우 저를 비춰보는데  나 그 나무의 몸에 슬쩍 기대 서니  물 아래 웬 등신 하나 보이네  4  그러나 산은 산끼리 서로 측은하고  물은 제 몸을 씻고 또 씻을 뿐이니  저 산 저 물 밖  누명이 아름다운 나의 세속  살아 못 지고 일어날 부채(負債)와  치정 같은 사랑으로 눈물나는 그곳  나는 누군가가 벌써 그립구나  절집도 짐승처럼 엎드려 먼산 바라보고 선  서기 이천년 첫 정월 설악  눈이 오려나  나무들이 어둠처럼 산의 품을 파고드는데  여기서 더 들어간들  물은 이미 더할 것도 낼 것도 없으니  기왕 왔으면 마음이나 비춰보고 가라고  백담은 가다가 멈추고 멈추었다 또 가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 창비. 2005   ~~~~~~~~~~~~~~~~~~~   미시령 편지  -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백담사 큰 스님이 그러는데  설악산 꼭대기에서도 샘이 나는 건  지구가 도니까  가장 높은 데가  가장 낮기 때문이란다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시안 / 2005, 겨울호   ~~~~~~~~~~~~~~~~   국수가 먹고 싶다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 창작과비평사,1998   ~~~~~~~~~~~~~~~~~   하늘의 집  전깃줄에 닿는다고  인부들이 느티나무를 베던 날  아파트가 있기 전부터 동네를 지키던 나무는  전기톱이 돌아가자 순식간에 쓰러졌다  옛날 사람들은 가지 하나를 꺾어도 미안하다고  나무 밑동에 돌멩이를 던져주었고  뒤란 밤나무를 베던 날  아버지는 연신 헛기침하며  흙으로 그 몸을 덮어주는 걸 보았는데  느티나무의 숨이 끊어지자 인부들은  그 커다란 몸을 생선처럼 토막내어 싣고 갔다  이파리들의 그늘에 와 쉬어가던 무성한 여름과  동네 새들이 깃들이던 하늘의 집을  그렇게 어디론가 싣고 가버렸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 창비. 2005   ~~~~~~~~~~~~~~~~~~~~   혜화역 4번 출구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 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大地)의 소작(小作)이다 내 조상은 수백 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 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 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 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 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그것은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 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월간『문학사상』(2010, 5월호)   ~~~~~~~~~~~~~~~~   그곳   나무들도 엉덩이가 있다  새벽 숲에 가면 군데군데 쭈그리고 앉아  볼일 보는 나무들을 볼 수 있는데  그런 날 아침은 산이 향기로 가득하다  내 사는 설악산의 엉덩이는 얼마나 깊고 털이 무성한지  내 그것과는 감히 견줄 수가 없다  또 어떤 날은 미시령을 넘어가며  달도 엉덩이를 보일 때가 있는데  그 모습이 아름답고 섹시해서  나는 어둠 속에서 용두질을 할 때도 있다  모든 것들은 엉덩이가 있고  우리는 모두 그곳에서 왔는데  하늘은 발 딛을 데가 없으므로  더러 구름이나 물새들을 보내거나  오줌 소나기로 강을 닦아놓고는  자신의 엉덩이를 비춰보고는 한다  문학사상 / 2002.12    ~~~~~~~~~~~~~~~   싸 움  여러 해 전이다.  내설악 영시암에서 봉정 가는 길에  아름드리 전나무와 등칡넝쿨이  엉켜 붙어 싸우고 있는 걸 보고는  귀가 먹먹하도록 조용한 산중에서  목숨을 건 그들의 한판 싸움에  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적어도 싸움은 저쯤 돼야 한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었다  산속에서는 옳고 그름이 없듯  잘나고 못나고가 없다. 다만  하늘에게 잘 보이려고 저들은  꽃이 피거나 눈이 내리거나  밤낮없이 살을 맞대고  황홀하게 싸우고 있었던 것인데  올 여름 그곳에 다시 가보니  누군가 넝쿨의 아랫도리를 잘라  전나무에 업힌 채 죽어 있었다  나는 등찱넝쿨이 얼마나 분했을까 생각했지만  싸움이 저렇게도 끝나는구나 하고  다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 창비   ~~~~~~~~~~~~~~~~~~~~   그늘       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     강가에서 새들은 날아가고    때로는 횡재처럼 눈이 내려도    사는 일은 대부분 악착같고 또 쪼잔하다  그걸 혼자 버려두면 가엾으니까  누가 뭐라던 그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나의 시는 나의 그늘이다     시와시학 / 2010, 봄   ~~~~~~~~~~~~~~~ 리필   나는 나의 생을, 아름다운 하루하루를 두루마리 휴지처럼 풀어 쓰고 버린다 우주는 그걸 다시 리필해서 보내는데 그래서 해마다 봄은 새봄이고 늘 새것 같은  사랑을 하고 죽음마저 아직 첫물이니 나는 나의 생을 부지런히 풀어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달자 편저/ 눈송이와 부딪쳐도 그대 상처 입으리 / 문학의문학, 2011   ~~~~~~~~~~~~   달려라 도둑   도둑이 뛰어내렸다 추석 전날 밤 앞집을 털려다가 퉁기자 높다란 담벼락에서 우리 차 지붕으로 뛰어내렸다. 집집이 불을 환하게 켜놓고 이웃들은 골목에 모였다. ―글세 서울 작은 집, 강릉 큰애네랑 거실에서 술을 마시며 고스톱을 치는데 거길 어디라고 들어오냔 말야. 앞집 아저씨는 아직 제 정신이 아니다. ―그러게, 그리고 요즘 현금 가지고 있는 집이 어딨어, 다 카드 쓰지. 거 돌대가리 아냐?라고 거드는 피아노집 주인 말끝에 명절내가 난다.  한참 있다가 누군가 이랬다. ―여북 딱했으면 그랬을라고……, 이웃들은 하나 둘 흩어졌다. 밤이슬 내린 차 지붕에 화석처럼 찍혀있는 도둑의 족적을 바라보던 나는 그때 허름한 추리닝 바람에 낭떠러지 같은 세상에서 뛰어내린 한 사내가 열나흘 달빛 아래 골목길을 죽을 둥 살 둥 달려가는 걸 언뜻 본 것 같았다.     내일을 여는 작가 / 2008년 여름호   ~~~~~~~~~~~~~~~~~   나는 시를 너무 함부로 쓴다                                                  그전에 몸이 많이 아픈 사람이 꼭 새벽으로 전화했다 너무 아파서 시인과 이야기 하고 싶다고 했다 한두 해 지나자 전화가 끊겼다 늘 죽고 싶다던 그 사람 죽었을까 털고 일어났을까   몇 년째 감옥에 있는 사람이 꽤 오래 동안 시를 써 보내왔다 시가 늘 부끄럽다고 했는데 마음의 알몸 같은 거 눈물 같은 거였다   사람이 살다가 누구에겐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몇 사람이라도 꼭 들어줬으면 하는 말이 시라면   나는 시를 너무 함부로 쓴다               계간 / 문학의 문학 / 2009년 여름호   ~~~~~~~~~~~~~~~~   꽃     노래하면 몸이 아파  그러한 그리움으로 한 서른 해 앓다 일어  피는 꽃을 보면 눈물 나네  노래로는 노래에 이르지 못해  먼 강 푸른 기슭에서 만났다 헤어지던 바람은  흐린 날 서쪽으로만 가고  작고 작은 말을 타고 삶의 거리를 가며  아름다운 것을 소유할 수 없다는 걸 알기까진  나는 너무 많이 울었네  한 서른 해 아픔으로도  사랑 하나 깨우지 못하여  그러한 그리움으로  마당귀 피는 꽃을 보면 눈물나네   ~~~~~~~~~~~~~~~~~   남대천으로 가는 길 1      물소리가  이집 저집 문을 닫아주며 가는데  텃밭에서 고구마가 붉게 여물고  물새들은 알을 품고 누웠다  연어처럼 등때기 푸른 아이들이  물가에 나와  엉덩짝에 풀물을 들이거나  물수제비를 띄우며  그립다고 떠드는 소리를  물소리가 얼른 들쳐업고 간다  집 떠나 오래 된 이들도  물소리 들으면  새처럼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저녁  풀이파리 끝 이슬등마다  환하게 불이 켜지고  어디서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 들린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 창작과비평사, 1998   ~~~~~~~~~~~~~~~~~~~~~   한  로(寒 露)     가을 비 끝에 몸이 피라미처럼 투명해진다   한 보름 앓고 나서 마당가 물수국 보니 꽃잎들이 눈물 자국 같다   날마다 자고 나면 어떻게 사나 걱정했는데 아프니까 좋다 헐렁한 옷을 입고   나뭇잎이 쇠는 세상에서 술을 마신다     마른 잎 서걱이는 바람소리 스산하다. 언뜻 비 한 번에도 기온은 쑥쑥 떨어질 게다. 이슬도 엷은 얼음물 밑 피라미처럼 투명하고 차갑다는 한로. 여름내 물가에 방울방울 꽃 피워 시원함 탐스럽게 자랑하던 수국도 이제 오들오들 춥고 가난하다. 이 가난한 계절 어찌 날까 염려 걱정 차라리 병들어 털어버리니 홀가분하다. 투명한 조락(凋落)의 계절 마음 또한 투명하게 비워 음미하시길.     중앙일보  / 시가 있는 아침   ~~~~~~~~~~~~~~~~   있는 힘을 다해     해가 지는데 왜가리 한 마리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저녁 자시러 나온 것 같은데   그 우아한 목을 길게 빼고 아주 오래 숨을 죽였다가 가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에 머릴 처박는 걸 보면   사는 게 다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 창비,2005   ~~~~~~~~~~~~~~~~~~   실내 포장마차     마차는 달린다 흙먼지 속에 채찍을 휘두르며 밤새 달린다 누우런 알전구에 제 그림자를 비추며 덜컹덜컹 역전 같은 데를 달리는데 울퉁불퉁 변두리만 달리는데 말이 쓰러졌는데 마차만 남아서 계속 달리다가 배고파서 우동이나 말아 먹이며 달리다가 주꾸미에 소주나 마시며 달리다가 아무리 달려 봤자 개척할 땅도 없고 네비게이션도 없고 딱지만 떼이니까 마침내 우리 동네 아파트 앞 가게 한 칸을 얻어들고는 대머리 인디언 같은 주인은 그래도 갈 길이 멀다고 제 몸에다 밤새 채찍질을 해대는데……   문학 ·선 /  가을호 ~~~~~~~~~~~~~~~   저녁의 집      해 떨어지면  나무들은 이파리 속의 집으로 들어가고  먼 개울물 흐르는 소리  울타리 너머 밥 잦는 냄새 속으로  꼴짐 높게 진 사람들 두런두런 혼잣말하며  배가 장구통 같은 소 앞세우고 돌아오네  제 새끼 안 보인다고 아갈질해대는 소울음 사이로  박쥐떼들 아무렇게나 날아간다  고등빼기 우리집에서는  어여 와 저녁 먹으라고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  어머니도 딱하다  나도 이젠 자식을 둘이나 두었는데  아직 내 이름을 알몸뚱이로 동네방네 불러대다니  하늘 뒤에서 별이 어둠을 씻고 나온다  키 큰 밤나무 꼭대기까지 차오르는 어둠속에서  새는 보이지 않고 울음소리만 들리고  변소 지붕 위의 박이 엉덩이처럼 희게 떠오른다  부엌문 여닫힐 때마다 불빛에 어리는 마당 식구들  어둠에 잠겨 찰랑거리는 마을에서  이파리들의 소곤거림  쇠똥 냄새  먼데 집 펌프대 삐걱거리며 물 올리는 소리  멍석가로 펄쩍펄쩍 개구리들 덤벼드는  그 머나먼 집 마당에서  나는 아직 저녁을 먹고 있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 창작과비평사   ~~~~~~~~~~~~~~~~   기러기 가족     - 아버지 송지호에서 좀 쉬었다 가요 - 시베리아는 멀다 - 아버지 우리는 왜 이렇게 날아야 해요 - 그런 소리 말아라 저 밑에는 날개도  없는 것들이 많단다     백담사 만해마을엔 내로라하는 시들이 돌로 세워져, 혹은 동판에 새겨져 심혼 그윽하게 울리는데. 이 마을 토박이 촌장 시인의 이 시 한소식 읽히 면서 씁쓸한 웃음 자아내니. 코스모폴리턴 자식 키우려 이역만리 떨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 눈물 보이나니. 날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날고 또 날아 야 되는 이승의 삶 돌아보려 십이선녀 멱 감는 심산유곡 찾아도 세파의 홍진(紅塵) 씻기지 않으니.     중앙일보 / 시가 있는 아침   ~~~~~~~~~~~~~~~~~~   봄날 옛집에 가서     봄날 옛집에 갔지요 푸르디푸른 하늘 아래 머위 이파리만한 생을 펼쳐들고 제대하는 군인처럼 갔지요 어머니는 파 속 같은 그늘에서 아직 빨래를 개시고 야야 돈 아껴 쓰거라 하셨는데 나는 말벌처럼 윙윙거리며 술이 점점 맛있디고 했지요 반갑다고 온몸을 흔드는 나무들의 손을 잡고 젊어서는 바빠 못 오고 이제는 너무 멀어서 못 온다니까 아무리 멀어도 자기는 봄만 되면 온다고 원추리꽃이 소년처럼 웃었지요 계간 / 유심 / 2004년 봄호 ~~~~~~~~~~~~~~~~~   *가라피의 밤  가라피의 어둠은 짐승 같아서  외딴 곳에서 마주치면 서로 놀라기도 하고  서늘하고 퀴퀴한 냄새까지 난다  나는 그 옆구리에 누워 털을 뽑아보기도 하고  목덜미에 올라타보기도 하는데  이 산속에서는 그가 제왕이고  상당한 세월과 재산을 불야성에 바치고  어느날 앞이 캄캄해서야 나는  겨우 그의 버러지 같은 신하가 되었다  날마다 저녁 밥숟갈을 빼기 무섭게  산을 내려오는 시커먼 밤에게  구렁이처럼 친친 감겨 숨이 막히거나  커다란 젖통에 눌린 남자처럼 허우적거리면서도  나는 전깃불에 겁먹은 어둠들이 모여 사는  산 너머 후레자식 같은 세상을 생각하고는 했다  또 어떤 날은 산이 노루새끼처럼 낑낑거리는 바람에 나가보면  늙은 어둠이 수천 길 제 몸속의 벼랑에서 몸을 던지거나  햇어둠이 옻처럼 검은 피칠을 하고 태어나는 걸 보기도 했는데  나는 그것들과 냇가에서 서로 몸을 씻어주기도 했다  나는 너무 밝은 세상에서 눈을 버렸고  생각과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어둠을 옷처럼 입고 다녔으므로  나도 나를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밤마다 어둠이 더운 고기를 삼키듯 나를 삼키면  그 큰 짐승 안에서 캄캄한 무지를 꿈꾸거나  내 속에 차오르는 어둠으로  나는 때로 반딧불이처럼 깜박거리며  가라피를 날아다니고는 했다  * 양양 오색에 있는 산골마을.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 창비   ~~~~~~~~~~~~~~~~~~~~~~   나는 왼손이 조금 길다      나는 왼손잡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오른손잡이고  대부분의 길조차 좌회전이 금지되어 있어  왼손잡이는 불편하다  그래서 감옥에는 왼손잡이가 많다  세상의 시계는 오른쪽으로 돌고  모든 문도 오른쪽으로 열리지만  왼손으로 거수하고  왼쪽으로 생각하다보니  나의 왼손은 조금씩 길어진다  경제적으로는 물론  유전적으로 보더라도  오른손은 대세다  그런데도 왼손잡이를 조심하라고  왼손잡이들이 온다고  밤낮없이 소리지르는 오른손잡이들은  왼손의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그 모든 오른손과의 형평을 위하여  나의 왼손은 조금 길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 창작과비평사   ~~~~~~~~~~~~~~~~~~~~   샛령을 넘으며      영을 넘는다  동해 어염 지고  인제 원통 바꿈이 다니던 사람들의  길은 지워지고  고래등처럼 푸른 영만 남았는데  이렇게 험한 곳에서도  나무들은 문중을 이뤘구나  북설악 한여름에 무슨 잔치가 있었는지  골짝 물마다 얼굴이 벌건 가재들이 어슬렁거리고  벙치매미도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비탈이 험한 곳일수록 꼿꼿한 나무들이  그들 말로  오늘은 꽤 지저분한 짐승 하나가  지나간다고 하는 것 같은데  물소리가 얼른 지우며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 창작과 비평사   ~~~~~~~~~~~~~~~   내원암 가는 길      산수유 숨어 피는  돌부리 산길  사다리만한 구름다리 건너  전경초소 같은 새시 집에서  구리 기와 시주 받는 파마머리 보살아  내 그것으로  암병 든 우리 형님 일으킬 수 있다면  니네 절지붕을 모두 내가 이겠다  이런 마음이 흙탕물 같았는지  울산바위 쪽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에라 이 되다 만 눔아" 소리치며  소나무 가지 눈을 털어  목덜미를 후려치네    집은 아직 따뜻하다 / 창작과비평사 ~~~~~~~~~~~~~~~~~~~~~~~~   산속에서의 하룻밤  해지고 어두워지자  산도 그만 문을 닫는다  나무들은 이파리 속의 집으로 들어가고  큰 바위들도 팔베개를 하고  물소리 듣다 잠이 든다  어디선가 작은 버러지들 끝없이 바스락거리고  이파리에서 이파리로 굴러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새들은 몇번씩 꿈을 고쳐 꾼다  커다란 어둠의 이불로 봉우리들을 덮어주고  숲에 들어가 쉬는 산을  별이 내려다보고 있다  저 별들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기나 하는지  저항령 어둠속에서  나는 가슴이 시리도록 별을 쳐다본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 창작과 비평사 ~~~~~~~~~~~~~~~~~~ 봄 밤  진전사지 가는 길  산죽숲 댓이파리처럼  새파랗던 겨울이 가고  봄이 되자  나뭇가지들도 눈을 털고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항암제를 맞고  머리가 다 빠져버린 형님네 마당에서  별 쳐다보다가  울었네    ~~~~~~~~~~~~~~~~~~~~   대결   큰눈 온 날 아침  부러져 나간 소나무들 보면 눈부시다  그들은 밤새 뭔가와 맞서다가  무참하게 꺾였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바치기 위하여  공손하게 몸을 내맡겼던 게 아닐까  조금씩조금씩 쌓이는 눈의 무게를 받으며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 빛나는 自害  혹은 아름다운 마감  나도 때로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     
661    <어머니>시모음 3 댓글:  조회:4856  추천:0  2015-08-15
        어머니와 관련된 시모음     이 시 영 / 어머니     어머니 이 높고 높은 아파트 꼭대기에서 조심조심 살아가시는 당신을 보면 슬픈 생각이 듭니다 죽어도 이곳으론 이사 오지 않겠다고 봉천동 산마루에서 버티시던게 벌써 삼년 전인가요? 덜컥거리며 사람을 실어 나르는 엘리베이터에 아직도 더럭 겁이 나지만 안경 쓴 아들 내외가 다급히 출근하고 나면 아침마다 손주년 유치원 길을 손목 잡고 바래다주는 것이 당신의 유일한 하루 일거리 파출부가 와서 청소하고 빨래해주고 가고 요쿠르트 아줌마가 외치고 가고 계단 청소하는 아줌마가 탁탁 쓸고 가버리면 무덤처럼 고요한 14층 7호 당신은 창을 열고 숨을 쉬어보지만 저 낯선 하늘 구름조각 말고는 아무도 당신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닌데 허리 펴고 일을 해보려 해도 먹던 밥 치우는 것 말고는 없어 어디 나가 걸어보려 해도 깨끗한 낭하 아래론 까마득한 낭떠러지 발 붙일 사람도  걸어볼 사람도 아예 없는 격절의 숨 막힌 공간 철컥거리다간 꽝 하고 닫히는 철문소리 어머니 차라리 창문을 닫으세요 그리고 눈을 감고 당신이 지나쳐온 수많은 자죽 그 갈림길마다 흘린 피눈물들을 기억하세요 없는 집 농사꾼의 맏달로 태어나 광주 종방의 방직여공이 되었던 게 추운 열여덟 살 겨울이었지요? 이 틀 저 틀을 옮겨 다니며 먼지구덕에서 전쟁 물자를 짜다 해방이 되어 돌아와 보니 시집이라 보내준 것이 마름 집 병신아들 그 길로 내차고 타향을 떠돌다 손 귀한 어느 양반집 후살이로 들어가 다 잃고 서른이 되어서야 저를 낳아다지요 인공 때는 밤짐을 이고 끌려갔다 하마터면 영 돌아오지 못했을 어머니 죽창으로 당하고 양총으로 당한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요 국군이 들어오면 국군에게 밥해주고 밤 사람이 들어오면 밤 사람에게 밥해주고 이리 뺏기고 저리 뜯기고 쑥국새 울음 들으며 송피를 벗겨 저를 키우셨다지요 모진 세월도 가고 들판에 벼이삭이 자라 오르면 처녀 적 공장노래 흥얼거리며 이 논 저 논에 파묻혀 초벌만벌 상일꾼처럼 일하다 끙 달을 이고 돌아오셨지요 비가 오면 덕석 걷이, 타작 때면 홀태앗이 누에 처엔 뽕 걷이, 풀진 철엔 먼 산 가기 여름 내내 삼 삼기, 겨우 내내 무명 잣기 씨 뿌릴 땐 망태메기, 땅 고를 땐 가래잡기 억세고 거칠다고 아버지에게 야단도 맞았지만 머슴들 속에 서면 머슴 벝고랑에 엎드리면 여름 흙내음 물씬 나던 아 좋았던 어머니 그 너른 들 다 팔고 고향을 아주 떠나올 땐 몇 번씩이나 뒤돌아보며 눈물 훔치시며 나 죽으면 저 일하던 진새미 밭가에 묻어 달라고 다짐 다짐하시더니 오늘은 이 도시 고층 아파트의 꼭대기가 당신을 새처럼 가둘 줄이야 어찌 아셨겠습니까 엘리베이터가 무겁게 열리고 닫히고 어두운 복도 끝에 아들의 구둣발 소리가 들리면 오늘도 구석방 조그만 창을 닫고 조심조심 참았던 숨을 몰아내쉬는 흰머리 파뿌리 같은 늙으신 어머니         김규동/ 어머님전 상서   솔개 한 마리 나지막히 상공을 돌거든 어린 날의 모습같이 그가 지금 조그맣게 어딘가 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세요   움직이는 그림자는 영원에 가려 돌아오지 않지만 달빛에 묻어서라도 그 목소리는 돌아오는 것이라 여겨주세요   이제 생각하면 운명이라고 잊혀도 지건만 겨레의 허리에 잠긴 사슬 너무나 무거우니 아직도 우리들은 조그맣게 조그맣게 걸어가고만 있나 봐요   아무리 애써도 닿지 못하는 서투른 이 발 걸음 죽은 자와 더불어 헤매어 봅니다   솔개 한마리 빈 하늘을 돌거든 차가운 흙 속에서라도 어여삐 웃어주세요         이 정/ 어머니   어머니 몸에선 언제나 생선 비린내가 났다 등록금 봉투에서도 났다 포마드 향내를 풍기는선생님 책상 위에 어머니의 눅눅한 돈이 든 봉투를 올려놓고 얼굴이 빨개져서 돌아왔다 밤늦게 녹초가 된 어머니 곁에 누우면 살아서 튀어오르는 싱싱한 갯비린내가 우리 육남매 홑이불이 되어 덮였다         기형도/ 엄마 걱정   열무 삼십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이성복/ 어머니 1            가건물 신축 공사장 한편에 쌓인 각목 더미에서 상체보다 긴 장도리로 각목에 붙은 못을 빼는 여 인은 남성, 여성 구분으로서의 여인이다  시커멓게 탄 광대뼈에 퍼질러 앉은 엉덩이는 언제 처녀였을까 싶 다  아직 바랜 핏자국이 꽃더미로 피어오르는 오월, 나는 스물해 전 고향 뒷산의 키 큰 소나무 너머, 구 름 너머로 차올라가는 그녀를 다시 본다  내가 그네를 높이 차 올려 그녀를 따라잡으려 하면 그녀는 벌써 풀밭위에 내려앉고 아직도 점심시간이 멀어 힘겹게 정도리로 못을 빼는여인.       어머니       촛불과 안개 꽁 사이로 올라오는 온갖 하소연을 한쪽 귀로 흘리시면서, 오늘도 화장지 행상에 지친 아들의 손발에, 가슴에 깊이 못을 뽑으시는 어머니....    
660    그리고 또 李箱 댓글:  조회:5148  추천:1  2015-08-15
''''나는 여성보다는 남성이 좋다. 남성도 중년 신사보다는 청년이 좋다.   가다가 낯선 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거기 하나 가득 청년 장정들이 어깨를 버티고 앉아 담소하고 있은 것을 볼 때,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후끈해지고 미소가 절로 부풀어 오르며 무엇인지 나도 모르게 자신이 만만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설혹 그들의 담소가 유치하고 가다가는 지나치게 건방진 때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조금도 탓할 바 없는 무관한 일이다. 정의와 용맹과 이상에 불타는 그들의 젊음은 오늘날 그들의 조국이 낡고 병들었어도 내일 다시 그 위에 새로운 조국을 세울 수 있는 건전한 반석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김향안 수필집, 에서   앵그르에서 칸딘스키까지의 전시회에서 김환기의 27-11-70 작품을 보며 오래전 그의 부인인 김향안여사가 종로구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열었고 2004년에 뉴욕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가 생각이 났다. 그 당시에도 참 대단한 여성이구나하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일연수요문화데이 회원들에게 김향안에 대해서 정리해 보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며... 김향안(본명은 변동림)을 알아 보려면 그녀의 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서양화가 구본웅(1906~1953)은 한성부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출판사인 창문사(彰文社) 사장을 지낸 언론인이자 기업인 구자혁이고, 숙부가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 총무로 활동한 기독교 계열의 유력 인사 구자옥이다. 어머니가 구본웅(발레리나 강수진의 외조부)을 낳고 일찍 사망한 뒤 어릴때 돌보는 사람의 실수로 척추를 다쳐서 불구(곱추)가 되었다. 구본웅은 계모 변동숙의 손에 자라게 되는데, 변동숙의 아버지가 훗날 새장가를 들어 낳은, 언니와 26살 차이나는 이복 여동생이 변동림이다. 구본웅은 장애 때문에 소학교에 제 때 들어가지 못했고 몇 년 늦깎이로 입학하고 반 친구들이 곱추 구본웅을 멸시하였지만 김해경(필명 이상)만은 구본웅에게 예의를 잃지 않았고 이후 둘은 학교를 함께 다니며 더욱 친해졌다.   2. 이상(李箱)은 한일합방이 되던 해 가을 서울 사직동에서 이발소를 경영하던 아버지와 일자무학의 고아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해경. 생가의 위치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 없으나 궁내부 활판소에 근무하다 활판 기계에 손가락을 잘린 뒤 차렸다는 아버지의 이발소는 운영이 신통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상은 두 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데다가 큰아버지에게 대이을 아들이 없어 통인동 154번지의 큰아버지 집으로 옮겨 살았던 것이다. 총독부의 기술 관리였던 큰아버지 집에서의 생활은 윤택했지만 고종 때 증조부가 정3품 벼슬을 지낸 강릉 김씨 문중의 증손이 된 사실은 이상에게 적잖은 갈등을 안겨 준 듯하다. "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와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제2호) 이상이 스물세 살 때까지 살았던 통인동 본가는 그가 에서 "10대조의 고성"이라고 한 것처럼 꽤나 큰 한옥이었던 모양이다. 본채에 행랑채와 사랑채까지 딸린 300여 평의 넓은 집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집의 옛모습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광화문에서 사직터널 쪽으로 꺾어 300미터쯤 가다 보면 길 왼편에 상업은행 지점이 있다. 은행 왼편 골목길로 20미터쯤 들어간 곳의 오른편이 바로 이상이 이십일 년 간 살았던 통인동 154번지다. 이 집은 현재 십여 개의 필지로 분할되어 여러 채의 한옥들이 들어서 있고 길가 쪽으로는 인쇄소, 책 대여방, 열쇠 가게 등이 영업중이다. 이들 가게는 물론이고 골목안 복덕방에서도 이 일대가 일세를 풍미했던 천재 시인 이상의 옛 집터였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각혈을 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된 이상은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고 황해도 백천 온천으로 요양을 떠난다. 그러나 이 곳 술집에서 기생 금홍을 만난 이상은 청진동 조선광무소 1층을 사글세로 얻어 '제비' 다방을 차리고 금홍을 마담으로 앉혔다.다방 뒷골목에 금홍과 살림까지 차려 훗날 그의 대표작이 된 의 무대를 만들었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한 는 이상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미친 수작' '정신병자의 잡문' 등의 혹평과 비난 때문에 연재는 중단되었지만 열화 같은 찬반 양론이 일었고 '구인회' 가입 후에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다. 하지만 '제비' 다방은 경영난으로 폐업하여야 했고 인사동의 카페 '쓰루(학)' 광교다리 근처의 다방 '69'와 명동의 '무기(맥)'를 잇달아 개업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때 나이 많은 조카 구본웅의 소개로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경기여고)를 거쳐 이화여전 영문과를 중퇴한 변동림은 이상을 만나게 되고 둘은 1936년 6월 결혼하기에 이른다. 신혼을 즐기기에는 이상은 너무 피폐해 있었고, 햇볕 하나 안 들어오는 셋방에서 이상은 내내 누워 있었고 변동림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바에 나갈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았다. 보다못한 구본웅이 이상(이모부)에게 일본에 가서 요양이라도 좀 하고 오라고 경제적 도움을 준다. 결혼 석달만에 이상은 일본으로 혼자 떠나게 된다 이듬해 2월 죽음 직전의 혼곤한 상태에서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일경에 체포된 이상은 신병 악화로 한 달여 만에 석방되어 동경제대 부속병원에 입원했고 일본으로 달려간 변동림 앞에서 이상은 유명한 유언을 남긴다. 김향안(변동림)의 회고를 보면 “나는 철없이 천필옥에 멜론을 사러 나갔다. 안 나갔으면 상은 몇 마디 더 낱말을 중얼거렸을지도 모르는데. 멜론을 들고 와 깎아서 대접했지만 상은 받아넘기지 못했다. 향취가 좋다고 미소 짓는 듯 표정이 한 번 더 움직였을 뿐 눈은 감겨진 채로. 나는 다시 손을 잡고 가끔 눈을 크게 뜨는 것을 지켜보고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김향안 에세이 ‘월하의 마음’ 중)   “그(이상)는 가장 천재적인 황홀한 일생을 마쳤다. 그가 살다간 27년은 천재가 완성되어 소멸되는 충분한 시간이다" 김향안(변동림)은 회고했다.   그녀가 새로이 찾은 사랑은 서양화가 김환기. 육척 장신에 악기도 잘 다루고 글도 잘 쓰고, 서울대 미대, 홍익대 미대교수였는데, 문제는 그는 유부남에 세 딸까지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 그녀의 스물 여섯 연상 언니, 엄마같은 언니 변동숙은 결혼을 엄청 반대하게 된다. 변동림은 결혼 반대에 부딫이자, 이름을 바꾸게 된다. 변씨에서 김씨가 된다. 그리고 김환기에게 말한다. “당신의 아호 향안(鄕岸)을 나한테 줘요 그러면 평생 그 이름으로 살겠어요.” 그래서 ‘김향안’으로 김환기와 재혼(1944년)하게 된다.   한국 근대 회화의 선구자 김환기(1913∼1974) 화백이 세계적인 작가로 평가받기까지에는 부인 김향안(1916∼2004)여사의 물심양면 내조가 있었다.   두사람은 55년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하다 63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줄곧 뉴욕에서 살았다. 74년 김 화백이 세상을 떠나자 김향안 여사는 남편의 유작과 유품을 돌보는 한편, 78년 환기재단을 설립해 김환기의 예술을 알리는 데 힘썼다. 92년 서울 부암동에 사재를 털어 건립한 환기미술관은 사설 개인 기념미술관으로는 국내 최초이다.   예술과 열정으로 부부애를 과시한 두 사람의 유해가 김 화백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안좌도에 안치된다. 김 화백이 세상을 떠난 지 36년 만이다. 고인의 아들 화영(54·환기재단 이사장)씨는 11월 2일 부모의 유해를 안좌면으로 이장하는 협약을 신안군과 체결할 예정이다.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김 화백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뒤 뉴욕 시립공동묘지에 안장됐으며 부인은 2004년 타계해 남편 곁에 묻혔다.   3. 김환기(1913~1974)전남 신안 안좌도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수화(樹話). 추상적 조형언어로 한국적 정서를 양식화한 대표적 서양화가이다. 도쿄에서 중학교를 졸업했고 일본대학 미술부에 재학중 아방가르드 미술연구소에서 미술수업을 하는가 하면 자유미술협회에 참가했다. 이과회전(二科會展)에 〈종달새가 울 때〉·〈25호실의 기념〉을 출품해 입선했으며, 1936년 11월 도쿄 천성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일본의 자유미술협회전 회원으로 추천되어 적극적으로 출품하면서 193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추상미술의 길로 나아갔다. 그는 큐비즘적 시각을 받아들이면서 순수조형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더욱 기울었고 1930년대 고전적인 화풍이 자리잡고 있었던 우리나라 화단에 새로운 기운을 불러일으켰다.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취임했고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추상미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유영국·이규상 등과 함께 1948년 신사실파라는 그룹을 조직하였고, 한국 현대미술의 초기 시절을 장식했다. 1952년 피난시절에 부산 뉴서울다방에서 〈달밤〉·〈산〉 등으로 개인전을 열고 이어 홍익대학교 교수로 취임했다. 1956~59년까지는 프랑스에서 체류하면서 몇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다. 1962년에는 홍익대 학장에 취임하고 1963년에는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에 피선되어 미술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해에 뉴욕으로 간 그는 이때부터 종전의 향토적인 서정성이 더해진 추상에서 오로지 선과 점의 질서와 균형을 표현하는 작업으로 화풍을 바꾸었다. 이때의 대표작이 한국일보사 주최의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서, 화면 가득히 점을 찍어나간 작품이다. 뉴욕에서 뇌일혈로 죽은 다음해인 1975년 뉴욕에서 회고전이 열렸으며,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는 50점의 작품으로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다.      
659    다시 보는 李箱 댓글:  조회:5873  추천:0  2015-08-15
김해경은 이상인데, 여기서 '이상'은 지정된 한자가 있지만 쓰지 않기로 하자. 그는 1910년, 대동아 공영이라는 예쁜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일본이 조선을 정식으로 식민통치하겠다고 계약을 한 그 해에 태어나, 고작 스물 일곱해를 살고 뭔가 있을 줄 알고 갔지만 서구 흉내나 내는 비속한 물건이라고 했던 그 일본땅에서 햇볕없는 싸구려 셋방과 감옥과 병원을 전전하다 폐결핵으로 세상을 뜬 남자다. 작가로는 이상한 시와 소설를 써서 독자들의 항의와 협박으로 연재를 할 수 없었고 화가로는 꼬맹이 때부터 그림에 특출난 재능을 보였고 잡지 표지를 '근대적인' 그렸으나 따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식민지 열등 민족의 족속인 그가 일본 사람들에게도 선망이었던 공업학교를 들어가 수석으로 졸업하고 식민을 총괄하는 총독부에 엘리트 건축기사로 직행한 것은 건축가였던 그의 재능이 빛나서였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따라 살지 않았다. (못했다라고 나는 쓰고 싶지만, 니 주제를 알아라, 하고는 않았다라고만 쓴다.)   오늘 저녁에 할 강연에 몇 컷을 넣기로 하고 이상의 시집을 빌려 일부만 보았다. 오늘도 비가 추적추적 오니, 감상을 섞어 말하면 20년만의 짧은 만남이랄까, 그렇다.      이런저런 연구자들이 모여서 엮은 전집 중에서 시집을 빌려 왔으나 읽기는 어려워서 그냥 보았다. '읽을' 수 없어서 못 읽었다.   예를들면, 이런 거.     왼쪽은 연작시 중 2이다. 이걸 어떻게 '읽느냐' 말이다. 어떤 환자의 용태에 관한 문제 일이삼사오륙칠팔구음 일이삼사오륙칠팔음구 일이삼사오륙칠음팔구 .... 이렇게 읽을까, 아니면 그가 처음에 썼던 일본어로 읽을까. 게다가 오른쪽은 몇 년 뒤 연작시 중 4이다. 이미 썼던 것을 나중에 '뒤집어' 다시 썼다.  이것은 더 '읽기' 어렵다.   그래서 봤다.   이상이 나온 경성고등공업학교는 지금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전신이다. 이상이 식민지 열등인으로 거기를 뚫고 들어가 최우수로 졸업한 데에는 수학적인 재능이 별났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이상이 수학 기호들을 시의 용어로 채용한 것은 어찌보면 그다지 이상할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래도 수학 기호를 시 기호로 적용한 것은 매우 특별하다. 시를 좋아하고 시를 썼던 유명한 수학자 중에 수학 기호를 시 기호로 한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매우 드물다.     아무튼, 위에 나온 저런 이상의 이싱한 시는 당연히 무수한 해석들의 표적이 되었다. 70년대 초 수학교수 한 분은, 수학 천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상, 이라고 짠한 얼굴로 보태서 해석하고 칭송하였고 90년대 말 수학 교수 한분은 수학을 합리주의의 총아로 삼아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았다. 그런가 하면 장관직을 지낸 문학 교수는 그러지 말고 순수하게 기호로 보자고 하였고 내가 읽지 못한 다른 글들에는 저자마다 그들이 삶의 무기로 삼고 있는 것으로 cut하여 단면을 보여준다.   김해경이자 이상인 이 남자는 여자들을 전전하였다. 실제 생활이 그랬다고 보이지는 않으나 그가 지은 소설로만 보면 얻어 맞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혹시 모르지만, 나는, 안 그랬겠지 한다. 방구석을 뒹굴뒹굴 장말 그랬을까.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에 재능이란 오히려 독이었을까, 이런 실험 저런 실험... 삶은 잘 모르겠지만 생활은 얻지 못했다,아닐까.   지금도 있나, 몇십년 전에 프랑스에서 똑똑한(?) 젊은이들이 모여 문학실험 집단을 만들어 헤집고 다녔던 적이 있다. 그들은 주로 수학자나 물리학자들이었는데, 이상처럼 이상한 시를 쓰거나 기계가 시를 쓰도록 하기도 하였다. (기계가 쓴 시라면 앨런 튜링이 그들의 의젓한 선배이시다. 먼 훗날 인조인간의 시대가 오면 '그들'은 이들을 아브라함으로 드높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상의 이상한 시와 이들의 이상한 시는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할 것 같다. 그 선이 무엇인지, 무슨 색깔과 형태로 얼마나 선명하게 그어야 하는지는 알 수 없고 양쪽을 다 모르니 근거도 희박하지만 어쩐지 그럴 것 같다. 그래야 할 것  같다.     흠. 이상한 글을 썼군. 컴퓨터를 켤 때만 해도... 이 글을 쓸 참이 아니었는데... 입만 아프고 머리만 멍해지는 말을 왜 할까 도대체?   어느새 비가 제법 온다. 오늘 강연장은 대중 교통수단이 안 좋았는데. 흠.   이제 강연 준비 몇 시간 해야겠다. 같은 내용으로 세번째 하는 것인데, 할 때마다 바뀌었다. 두번째 할 때보다 프레젠테이션 40페이지를 덜어냈는데 60페이지가 늘었다. 지금부터 두시간 동안 50페이지 줄이기를 목표로 한다. 절대, 한 페이지도 늘리지 않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과연 될까? 일부러 강연 준비를 구석으로 몰아서 최대한 적게 하도록 했다. 내 생활의 기본 선을 지키도록. 그러나 그렇게 몰아세웠는데도, 컴퓨터 조작 시간만 최소 10시간은 되었다. 이제 이제는 그만.     ====   이상 김해경은 좀 특별해 보이는 저 남자고, 옆?뒤?는 문학과 예술의 동지 박태원    
658    詩는 農村을 對相하라... 댓글:  조회:4747  추천:0  2015-08-07
[ 2015년 08월 04일 08시 36분 ]     음력 6월 15일, 조선족의 전통 명절인 ‘류터우제(流頭節)’. 헤이룽장(黑龍江)성 닝안(寧安)시 보하이(渤海)진의 많은 조선족은 이날 장시(江西)촌에 모여 전통 풍습대로 제사, 머리 감기, ‘류터우옌(流頭宴)’ 연회 등 행사에 참가했으며, 가무 공연과 스포츠 시합을 열어 조선족의 명절을 축하했다. ‘류터우제’는 고대 농경사회에서 기원한 명절로서 ‘류터우’라는 단어는 ‘둥류수이터우무위(東流水頭沐浴,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를 줄인 말이다. 매년 음력 6월 15일마다 조선족 부녀자들은 동쪽으로 흐르는 하류에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며, 농경신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몸을 정갈하게 하여 잡귀를 쫓고, 풍년과 건강을 기원한다. =========================================================== 신경림의 시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 것이 대부분으로 1960년대 중반에 들어 신경림(申庚林)  예술가명 : 신경림(申庚林)    생몰년도 : 1935년~    전공 : 시 신경림의 시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 것이 대부분으로 1960년대 중반에 들어 , , , , 등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끌었다. 초기의 등에서 보인 인간존재를 다룬 관념적인 세계를 말끔히 씻고 주관적인 표현에서 객관적인 표현법을 사용함으로써 단편소설적인 이야기시의 성격을 진하게 풍긴다. 그의 시 는 그의 작품 경향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죽음의 현장인 도수장 앞에 와서야 겨우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고 고갯짓을 하며 어깨를 흔드는 농민들의 발버둥을 통해서 인간의 숙명적 정한의 새로운 질서와 조화를 형성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시적 대상은 막연하고 평면적인 농촌현실이 아니라 우리의 정서, 한, 울분, 고뇌 등이 끈질기게 깔려 있는 장소로서의 농촌현실이며, 때문에 생명력이 넘치는 농촌의 제현상이 구체적으로 파헤쳐진다. 원시적인 리듬의 무리없는 구사에 있어서도 평범한 토속어를 기반으로 현재의 경험에 의해 재생시킨 밀도있는 시어로 표현함으로써 토속어의 새로운 감각을 창출시킨다. 이는 역사 속에서 잊혀져 가는 사실들을 재발견하여 현재의 특성을 점검하는 데 매우 긴요한 요소가 되며, 객관적 세계로 시를 끌어감으로써 한국의 시를 민중현실 및 민중감정과 격리시켜 온 과거의 여러 불투명한 형태들을 청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장시집인 은 농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리 역사를 바라보고자 한 시도로서, 서사적인 스케일을 보여주는 방대한 작품이다. 그는 이것을 기초로 민중현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  - 참고: ,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 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 편, 한국사전연구사, 1995         생애     충북 중원에서 출생한 신경림은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했으며, 1956년 에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건강상 낙향해 초등학교 교사, 요양생활 등을 하다가 상경, 한때 붓을 꺾기도 했다가 1965년에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 첫 시집 를 간행하였고, 이어 여러 시집과 평론집 등을 펴냈다. 1974년 시집 로 만해문학상을 수상했고, 1981년 한국문학작가상, 1990년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04년 현재 민족예술인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약력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1955년 동국대학교 영문과 입학 1956년 지에 이한식의 추천으로 ·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 1965년 한국일보에 을 발표함으로써 작품활동 재개 1967년 동국대학교 영문과 졸업 1975년 고은, 백낙청, 이문구 등과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 19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수감 1984년 정희성 등과 민요연구회 결성 · 1989년까지 의장으로 활동 /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 1988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에 참여 1989년 김윤수, 황석영 등과 민족예술인총연합 창립 · 사무총장 취임 1992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 민족예술인총연합 공동대표 1993년 출국금지가 풀려 연변, 백두산 등 중국 동북지방 여행 1995년 파리에서 열린 한국문학의 해 행사에 박완서, 고은, 조세희 등과 참석 1997년 동국대학교 석좌교수에 위촉 1998년 콜롬비아 세계시인대회 참석 1999년 독일 함부르크 한국문학의 날 행사에 이문열, 김원일 등과 참석 200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피선      상훈   1974년 만해문학상(창작과비평사 제정) 1982년 한국문학작가상(한국문학사 제정) 1988년 동국문학상(동국문인회 제정) 1990년 이산문학상(문학과지성사 제정) 1994년 단재문학상(한길사 제정) 1998년 공초문학상(서울신문사 제정) / 대산문학상(대산문화재단 제정) 2001년 현대불교문학상 2002년 만해시문학상         저서       • 시집  (1973) (1979) (1985) (1987) (1987) (1988)  (1990) (1991) (1993) (1996) (1998)  (2002)  • 평론집  (1977) (1981) (1982) (1986)  • 수필집 (1985) (1985) (1986) (1989) (1998) (2000) (2002)   [새재 (창작과비평사,1979)]   [가난한 사랑노래 (실천문학사,1988)]   [쓰러진 자의 꿈 (창작과비평사,1993)]         작품세계        작가의 말   (……) 우선 급한 것은 시를 통해서, 소설을 통해서 발언하고 운동을 하고 그 시와 소설이 운동성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그 다음의 것이 그 시나 소설에 걸맞는 행동으로서의 운동입니다. 다시 말해, 문학이 살아 있기 위해서는 운동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 운동성은 두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가령 시낭송회와 같은 데서 얻은 운동성, 즉 현장에서의 운동성이요, 또 하나는 현장성을 떠났을 때의 독립적으로 갖는 운동성입니다. 그렇다면 독립적으로 갖는 운동성은 어떻게 획득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문학작품이 예술적으로 뛰어날 때 가능해집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운동성이 획득되는 것이지요. 톨스토이의 소설이 바로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제 얘기는, 시인의 운동이란 ‘운동, 운동’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또 그것만 너무 강조하지 말고 무엇보다 뛰어난 시를 쓰는 것이 운동에 큰 보탬이 된다는 것입니다. (……) 첫째로, 우리 시가 좋은 시가 되려면 서정성이란 걸 다시 해석을 해서 그 참된 서정성을 우리 시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시는 재미있고 올바른 서정시가 되어 갈 것입니다.  둘째로, 민중언어를 찾아내어 올바른 민중시가 되는 한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예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끝으로, 민족적 동질성과 순수성을 회복하는 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지향의 문학을 해야 한다는 것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이러한 구체적인 작업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지요.  제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바로 이러한 몇 가지 측면에서 반성을 하고 극복해나갈 때 우리 시가 다시 참다운 재미를 회복하게 되고, 그래서 우리 역사의 나아가는 길에서 시가 시답게 한몫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 ‘우리 시의 올바른 길’, 신경림, , 문학세계사 1988      평론   [농무 (창작과비평사,1975)] 처녀시집 이후 신경림은 적지 않은 수효의 시편과 시집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일관되게 에서 보여준 시적 특징을 유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고향노래만을 부르고 있는 고향의 터주노래꾼이다. 고향을 노래하지 않는 시인이 어디 있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노래를 잃어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상소리와 독설과 재담의 시는 재미있고 실감나지만 벌써 노래는 아니다. 오늘의 도시적인 삶이 제기하는 여러 상황에 괴로워하고 속상해하고 그 아픔과 극복에 관해서 생각하는 시도 많고 그러한 시가 우리에게 호소하는 바도 크다. 그러나 그것은 노래라기보다 토막생각이나 사고의 비명인 경우가 많다. 외마디 아픔의 비명은 노래로 이어지지 않는 법이다. (……) 그의 고향노래는 구체적인 사회역사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늘 서사적 충동을 가지고 있다. (……) 신경림 시의 또 하나의 특징으로 우리는 진한 서정성을 들 수 있다. 서사적 충동도 이 진한 서정 속에 용해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초기작품에서 후기작품까지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서정성은 쓸쓸하다든가 슬프다든가 하는 감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개체적인 삶에 대한 충실에서 나온 것이지만, 울분과 노여움의 시에서마저 우리는 서정이 울분과 노여움을 감싸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가 그를 고향의 터주노래꾼이라 부르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날 우리 고향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지극한 가난이었다. 오늘에 있어서도 가난이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 긍정적인 방향에서건, 부정적인 방향에서건, 신경림의 시는 많은 비평가, 시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 관심의 깊이와 넓이에 반하여, 그의 시세계를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해석하는 작업은 유종호의 매우 뛰어난 한 편의 글에서밖에는 거의 행해지지 않았다. 그의 시는 대개 농민문학론의 수일한 예로 제시되거나, 아니면 시대착오적인 농촌 묘사의 한 예로 제시되어, 문학이론의 시녀노릇만을 해왔다. 그것은 시인 신경림에서는 득이 될 수도 있었고, 실이 될 수도 있었다. 그는 그것 때문에, 여하튼, 농민문학론의 기수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그것은 득이다. 그것 때문에 그의 시적 움직임의 폭은 크게 줄어들었다-그것은 실이다. (……) 초기 신경림에게 있어, 삶이란 내면화된 정적 울음이다. 그 인식론적 각성 때문에 신경림이 수동적, 체념적 세계관을 수락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삶이란 내면화된 정적 울음이지만, 그 울음들이 같이 울릴 때 그것을 통곡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 나의 울음이 개별적이고 단독적일 때 그것은 울음으로 끝나지만, 그것이 집단적이고 집합적일 때 그것은 통곡이 되어 큰 외침이 된다. 그러나 신경림의 특이한 점은-이것이 시인으로서의 그의 성공을 보장해준 것이라 나는 생각하는데-그것이 울음이든, 통곡이든, 신경림까지도 울고 통곡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울음, 통곡의 현장에 우는 사람, 통곡하는 사람과 같이 있지만, 같이 울지는 않는다. 그는 같이 울고 통곡하는 대신에, 울고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노래한다.         연계정보        관련도서   , 창작과비평사, 2004 , 신경림 외, 웅진닷컴, 2002 , 구중서·백낙청·염무웅 편, 창작과비평사, 1995 , 신경림 외, 웅진출판, 1992 , 신경림 외, 문학세계사 1988 , 강정구, 경희대 박사논문, 2003 , 성기각, 경남대 박사논문, 1999
657    詩作을 위한 10가지 방법 댓글:  조회:5071  추천:0  2015-08-03
 詩作을 위한 열가지 방법                테즈 휴즈    1. 동물의 이름을 머리와 가슴속에 넣고 다녀라. (조류,곤충류,어패류,동물들의 이름을 가령 종달새,굴뚝새, 파리,물거미,달이, 소라고동, 바다사자, 고양이 등) 2.바람과 쉼 없이 마주하라. (동서남북 바람, 강바람, 산바람,의인화한 바람까지도) 3.기후와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라. (안개,폭풍,빗소리,구름, 4계절의풍경 등) 4.사람들의 이름을 항상 불러 보라. (옛 사람이든 오늘 살고 있는 사람이든, 모두) 5. 무엇이든지 뒤집어서 생각하라. (발상의 전환을 위해 가령 열정과 불의 상징인 태양을 달과 바꾸어서 생각한다든지 또 그것을 냉랭함과 얼음의 상징으로 뒤집어 보는 것이 그 방법 그리고 정지된 나무가 걸어다니다고 표현단다든지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상식을 비상식으로 구상을 추상으로 추상을 구상으로 유기물을 무기물로 무기물을 우기물로 뒤집어서 생각하라. 이것이 은유와 상징 넌센스와 알레고리의 미학이며 파라독스에 접근하는 길이다) 6. 타인의 경험도 내 경험으로 이끌어 들여라. (어머니와 친구들의 경험, 혹은 성인이나 신화속의 인물들의 경험이나 악마들이나 신들의 경험까지도) 7. 문제의식을 늘 가져라. (어떤 사물을 대할 때나, 어떤 생각을 할 때 그리고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적 현상을 접할 때 이것이 시정신이며 작가정신이다.) 8.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안 보이는 것까지 손으로 만지면서 살아라 (이 우주 만물 그리고 지상위의 모든 사물과 생명체들은 다 눈과 귀, 입과 코가 달려 있으며 뚫여있다고 생각하라. 나뭇잎도 이목구비가 있고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의자도 이목구비가 있고 여러분이 매일 무심코 사용하넌 연필과 손수건에도 눈과 귀 입과 코가 달려있는 사실을 생각하라. 우주안에선 모든 것이 생명체이다) 9. 문체와 문장에 겁을 먹지 말아라. (하얀 백지 위에선 혹은 여러분 컴퓨터 모니터에 들어가선 몇 십번을 되풀이 해 자유자재로 문장 훈련을 쌓아가라.) 10. 고독을 줄기차게 벗 삼아라. (고독은 시와 소설의 창작에 있어서 최고의 창작환경이다. 물론 자신의 창작을 늘 가까이 읽어주며 충고해 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656    詩人을 만드는 9가지 댓글:  조회:4912  추천:0  2015-08-03
    시인을 만드는 9가지   정 일 근 슬픔이 시인을 만든다  나를 시인으로 만든 것은 ‘슬픔’이었다. 그 슬픔에 힘입어 처음 “시인이 돼야겠다”는 꿈을 가진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 전 해 4월, 벚꽃의 도시 진해에서 나는 ‘아비 없는 자식’이 되었다.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에 제일 먼저 슬픔이 찾아왔다.  아버지의 생몰 연대는 길 위에서 끝이 났다. 그 날 아버지는 당신의 오토바이에 어머니를 태워 마산에 있는 친척 댁에 다녀오시는 길이었는데, 길 위에서 택시가 아버지의 생을 덮치고 뺑소니쳐 버렸다.  의식불명이 되어 안방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고통스럽게 숨을 쉬고 계셨지만, 군의관이었던 아버지 친구는 단호하게 사망진단을 내렸다. 사인은 뇌진탕. 마산에서 진해로 출발하며 아버지는 자신의 헬멧을 어머니에게 씌어주셨다. 그 헬멧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운명은 바뀌었다. 두 분 다 허공으로 솟구쳤다 도로 위로 내동댕이쳐졌지만 아버지의 헬멧이 어머니를 구했다. 그것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베푼 마지막 사랑이었다.  아버지의 부재만이 나를 슬프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 가난도 찾아왔다. '돈 갚으러 오는 사람 보다 빚 받으러 오는 사람이 많아’ 아버지의 재산은 소위 ‘빚잔치’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TV도 사라지고 집도 사라지고 할아버지의 논과 밭도 사라졌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고모는 남루한 일곱 평 반 홉의 양철지붕 아래로 숨어들었고, 어머니는 연탄 부뚜막에 나와 여동생을 재우며 밤늦게까지 술을 팔았다. 친구들이 TV를 보는 시간 나는 술을 날랐다. 친구들이 고급 양장의 동화책을 읽던 시간 나는 안주를 날랐다. 우리 반 고 계집애가 피아노를 치던 시간 나는 손님들이 술자리에서 부르던 이미자, 배 호, 나훈아의 슬픈 유행가나 군인들의 군가를 배웠다.  아버지가 없다는 슬픔이 나를 눈물 많은 아이로 만들었고, 그 눈물이 나를 세상에 대해 조숙하게 처신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 내가 친구들보다 뛰어난 것은 도박과 교과서에 나오는 시나 시조 외우기였다. 두 장의 화투 ‘끗발’로 승자로 가리는 도박으로 친구들의 돈을 따면 만화방에 하루종일 처박혀 있거나 중국집에서 자장면이나 군만두를 사먹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시나 시조를 잘 외운다는 이유 하나로 담임 선생님에 의해 문예반으로 보내졌다. 문예반 지도 선생님은 나에게 시조를 가르쳤다.  뜻밖에도 경남도 대회에 참가할 진해시 대표를 뽑는 백일장에서 나는 장원을 했다. ‘산’이란 제목이었다. 고백하자면,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개근상 외에 처음 “상”이라는 것을 받은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 월부로 안데르센 동화전집까지 사주시며 기뻐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시인이 되어 서른 초반에 홀로 되어 남매를 키우는 슬픈 어머니의 삶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미워했다. 아버지의 부재로 우리 가족이 해체됐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내 시 속에 등장하는 것을 금기했다. 아버지는 그 때 내 손등에 났던 사마귀처럼 감추고 싶은 상처였다. 시인이 되어서도 그 상처가 시의 소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 내 시가 아버지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미워한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너무 일찍 길 위에서 끝나버린 아버지의 생이었다. 나는 시로써 아버지와 화해를 시도하며 “아버지의 달걀 속에서 내가 태어나고/내 달걀 속에서 아버지가 태어난다”고 썼다. 아버지란 큰 슬픔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사랑도 시인을 만든다 그대, 4월의 진해를 기억하는가. 눈이 귀한 남쪽의 부동항 진해는 4월이면 눈이 내렸다. 그 작은 도시의 인구수와 비슷한 벚나무들은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4월이 오면 일시에 꽃을 피우고 바람이 불면 꽃잎을 눈처럼 뿌려주었다.  꽃이 피어서 질 때까지, 그 기간 동안 ‘군항제’란 잔치가 열렸다. 그랬다. 그것은 축제라는 현대성을 띤 이름보다 잔치였다.  내가 5학년 1학기까지 다녔던 도천초등학교 주변에 만들어 진 벚나무 숲. 어른들이 ‘사쿠라 마찌’라 부르던 그 곳이 벚꽃 잔치의 장이었다.  잔치의 하객은 후줄근한 양복에 중절모를 쓴 남자들과 한복과 고무신을 신은 여자들. 그들은 장구와 꽹과리로도 최신 유행가의 가락을 맞추고 잔치의 끝은 언제나 술과 노래였다. 그리고 잔치가 끝나면 그 파장 위로 자주 봄비가 내렸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새로운 봄이 찾아올 때마다 도시의 증가하는 인구처럼 늘어나는 벚나무들은 더욱 화사한 설국을 만들고 잔치는 축제로 변했다. 분수탑 로터리에서 해군 군악대 연주와 의장대의 시범이 열리고 그 모습에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축제의 밤이 찾아와 도심의 벚나무에 걸린 축등에 불이 켜지고, 밤하늘에는 현란한 폭죽이 터졌다.  흑백TV도 귀했던 시절, 4월이면 밤하늘에 상영되는 총천연색의 불꽃놀이를 보면서 유년을 보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생의 축복. 그 4월에 나는 첫사랑을 했다.  중3이 되었다. 나는 ‘눈물이 많던 아이’에서 ‘시를 쓰는 소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버지를 잃은 나는 사람들이 꽃이 피는 축제의 기쁨만 알 뿐, 꽃이 지는 축제 뒤의 슬픔은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축제의 즐거움 보다 축제가 끝난 뒤의 비 내리는 파장을 좋아했다.  축제의 항구도시를 찾아 밀물처럼 몰려온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만들어 놓는 또 다른 바다에서 나는 작고 외로운 섬이 되어 홀로 있는 것을 좋아했다.  바람에, 혹은 비에 떨어진 꽃잎을 밟으며 슬픔의 시를 쓰는 소년으로 변해버려, 문예반 선생님은 나이보다 조숙한 눈물의 시를 쓰는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시곤 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 진해남중은 바다가 보이는 산중턱에 자리한 하얀 건물이었다. 나는 교실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남쪽으로 열린 창문을 통해 빛나던 푸른 바다와 작은 섬들. 무시로 찾아오던 건강한 소금 바람. 봄이면 운동장 아래 보리가 누렇게 익고, 가을이면 등교길이 되던 코스모스 꽃길. 그 시절 내가 한 첫사랑은 나에게 기쁨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S.영문 이니셜로 호명할 수밖에 없는 그녀. 그 때까지 내 감정의 전부였던 슬픔을 비워내고 그 자리에 기쁨을 채워주었던 소녀.  우리는 4월, 벚나무 아래에서 처음 만났다. 진해역 옆 청산학원 앞에 서있던 벚나무였다.(불행하게도 그 나무는 지금은 베어지고 없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우리는 단숨에 가까워졌다.  나는 시를 쓰듯 사랑의 편지를 보냈다. 그 동안 내가 썼던 어느 글보다 아름다운 글을 소녀의 주소로 보냈다. 그 편지들은 내 최초의 사랑시편들이었고 소녀는 최초며, 유일한 독자였다. 같은 도시에 살고 있었지만 멀리 떨어져 있었던 우리는 그 때 아름다운 약속 하나를 했다. 아침마다 라디오에서 알리는 7시 시보 소리에 맞춰 서로를 그리워하는 성냥불을 켜기로 했다. 성냥불을 밝히며 나는 그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모든 첫사랑이 그러하듯 나의 첫사랑도 이별로 끝나버렸다. 기쁨이 자리했던 가슴에 다시 슬픔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 슬픔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의 슬픔처럼 나를 눈물 많은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눈물대신 나는 시를 택했다. 사랑이, 첫사랑이 내 시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 주었다. 펜혹이 시인을 만든다 펜혹이란 말이 있다. 컴퓨터 세대에게는 생소한 말일 것이다.  펜이나 연필로 글을 쓰는 사람의 손에는 반듯이 펜혹이 남아 있다. 오래 글을 쓰다보면 펜을 받치는 가운데 손가락에 혹 같은 굳은 살이 박힌다. 그것이 펜혹이다. 펜혹은 글쓰기의 상처다. 그러나 그 상처는 시인을 만들어 주는 통과의례와 같다. 나는 펜혹이 없는 시인의 손은 신뢰하지 않는다. 펜혹은 시인에게만 남는 상처가 아니다. 무릇 필업을 사는 사람들은 펜혹의 두께가 문학과 정신의 두께를 말해 준다.  대학시절 나는 내 손에 생기는 그 굳은 살의 이름을 몰랐다. 단지 보기 싫고, 불편했을 뿐이다. 어느 날 스승을 뵈러갔다 놀라운 모습과 조우하고 말았다. 스승은 칼로 펜혹을 깎아내고 계셨다. 사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스승의 방에는 작은 판 하나가 놓여져 있고 그 위에 2백자 원고지가 펼쳐져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었고, 스승은 그 때 ‘한국문학사’를 집필하고 계셨다.  푸른 칼날을 가진 연필깎이 칼로 가운데 손가락의 굳은 살을 베어내며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생 펜으로 글을 쓰다보니 장지에 펜혹이 생겼어. 자주 깎아내지 않으면 글을 쓸 수가 없어.”  스승의 글쓰기는 그 펜혹이 대변해주었으며 스승은 펜혹으로 글쓰기가 불편해지면 칼로 굳은살을 깎아내고 다시 글을 쓰셨다. 한 편의 논문이 완성되기까지,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스승은 얼마나 많은 당신의 살을 깎아내셨을까. 나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느꼈다. 스승의 펜혹은 산과 같은 모습이었고, 내 펜혹은 흔적에 지나지 않았다. 스승의 펜혹은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글쓰기는 자신의 살을 깎아내는 고통이며, 그 고통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그 이후 펜혹은 내 습작시대의 화두였다. 나도 펜혹이 생기도록 시를 썼고, 펜혹을 깎아내며 시를 썼다.  진해시 여좌동 3가 844번지. ‘옛집 진해’에서 습작시대를 보냈다. 나는 대학생이었으며,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가장이었다. 시대는 질곡의 80년대 초였다. 역사는 표류하고 있었고, 미래는 불투명하고 불안했다. 취하지 않는 밤이면 연습장 위에, 노트 위에 시를 적었다. 모나미 볼펜을 꼭 잡은 손가락에 펜혹이 자라고 새벽이면 머리 위에 파지가 무더기로 쌓였다. 그 시절 모든 문학도의 꿈이 그러했듯이 나도 신문사로부터 노란색 신춘문예 당선전보를 받고 싶었다. 그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였고 그 목표점에 도달하기 위한 글쓰기가 내 삶의 전부였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학년말 시험을 포기하고 원고지 위에 피 같은 시를 써 투고를 했다. 그리고 오래 동안 집에서 당선 전보를 배달해 줄 우체부의 오토바이 소리를 기다렸다. 우체부는 찾아오지 않았다. 새해 첫날이면 진해의 6개 중앙일간지 신문지국을 돌며 1월1일자 신문을 빠짐없이 구해 당선자 명단을 확인하며 절망했다. 그 당시 유행했던 대학생 현상문예에서 함께 활동했던 하재봉 안재찬(류시화) 안도현 등이 신춘문예를 통해 화려하게 시인으로 등단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더욱 절망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시를 쓸 수밖에 없었다. 시를 쓰는 일이 나에게는 전부였다. 습작시대였던 대학시절, 나는 시만 썼다. 강의실에서도 고개 숙여 시를 썼으며 자면서도 시를 생각했다. 펜혹은 점점 커졌으며 그 상처를 자주 깎아냈다. 그리고 펜혹 덕분에 대학 4학년 겨울, 나는 신춘문예 당선 전화를 받았다.  문예창작과 첫 강의에서 나는 언제나 학생들에게 ‘책을 손으로 읽어라’고 가르친다. 펜으로 문학작품을 옮겨 적으며 손가락에 펜혹이 생기도록 문학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컴퓨터 시대라해도 누구도 펜혹이라는 상처가 없이 시인을 꿈꿀 수 없기에. 분노도 시인을 만든다 지난 91년 도서출판 빛남에서 묶은 내 두 번째 시집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에 수록된 시편들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 숨막히는 더위 고물 선풍기가 뿜어주는 더운 바람 앞에서 나는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적의로 괴로워했다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미성숙의 벽에는 우울한 시대의 푸른 곰팡이가 피고 숨어서 김지하의 시들을 몰래 읽으며 늘 혁명 전야처럼 살고 싶었다  적의, 우울한 시대, 김지하, 혁명 전야,.그런 말들과 함께 나의 성년식이 시작됐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담임선생님이 권유하셨던 K은행 입행 대신 대학진학을 선택했다. 가장인 어머니의 가계는 여전히 가난했지만 아들의 장래가 걱정되셨는지 대학진학을 허락하셨다.  대학에 입학하고 내가 맨 처음 눈을 뜬 것은 시와 역사의 현주소였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만이 시의 전부라고 알고 있었다. 문예부장까지 지냈던 상고시절 진해에서 마산까지 버스 통학길이 지루해 가끔 박인환의 시들을 외웠고, 내가 가지고 있던 시집은 김소월 시집과 백일장에서 부상으로 받은 윤동주 시집, 단 두 권뿐이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오던 시집들을 읽고 쇠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같은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시도 있으며, 시는 이렇게도 쓰는구나. 나는 비로소 작은 우물 밖을 나온 개구리였다. 그 개구리에게 시의 세상은 참으로 넓고 험했다. 그리고 그 때까지 내가 받은 문학교육이 편협됐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그런 현실에 절망하기 시작했다. 판금된 김지하 시집 필사본을 숨어서 읽으며 내가 살고 있던 시대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눈을 떠보니 교과서의 문학교육만 편협된 것이 아니었다. 역사는 왜곡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시월의 유신은 김유신과 같아서 삼국통일 되듯이 남북통일 되지요 라고 신나게 불렀던 유신의 실체는 남북통일을 막는 최대 장애였으며, 유신 시대는 그 때도 계속되고 있었다.  진해에 있던 대통령 별장 덕에 어린 시절 대통령 행차 길에 나가 고사리 같은 환영의 손을 흔들며 좋아했던, 중절모를 쓴 박정희는 일본 육사출신의 독재자였다. 절망은 분노를 낳는다.그 분노 앞에서 나는 시와 역사에 복무할 것을 선서했다.  대학 1학년 나는 야학 선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과정이었다.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대부분 현장 노동자였던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들에게서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대학 강의실보다 야학에서 배운 것이 더 많았다. 야학의 동료교사들 중에는 해군에 근무하는 학․석사장교들이 많았다. 그들에게서도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문학평론가 정과리 형도 야학에서 만났다. 그는 대학원을 마치고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군복무를 했는데 야학에 동참했다. 마산 양덕에 있던 그의 아파트 서재는 내 문학수업의 바다였다. 사면을 빼곡이 채운 그의 이론서들이 나를 가르쳤으며 그와 밤을 새워 마시던 술이 나를 성숙시켰다.  그 시절 나는 자주 분노했다. 그리고 분노는 혁명의 꿈으로 이어졌다. 혁명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꿈은 꿈일 뿐, 내가 택할 수 있는 혁명의 방법은 시일 수밖에 없었다.  돌아보면 뒤틀린 현실과 바르게 흘러가지 않는 역사에 대한 분노가 시를 쓰게 만들었다. 시로써 현실에, 역사에 대해 혁명하고 싶었다. 야학 7년을 보내고 나는 야학일기 란 연작시로 당시 무크지였던 을 통해 분노의 시인이 되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분노도 없는 법.조국과 역사에 대한 사랑이 분노를 낳고 그 분노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그대, 분노가 일면 터트려라. 분노도 시인을 만들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이 시인을 만든다 습작시절 누구에게나 병이 생긴다. 이름하여 ‘신춘문예 병’. 그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손에 아름다운 상처 ‘펜혹’이 생기듯, 이 병도 아름다운 병이다.  신춘문예. 굳이 말뜻을 풀이하자면 ‘새봄의 문학예술’이다. 그러나 신춘문예는 풀이하는 말이 아니라 그 자체로 뜻을 갖는 말이다. 문학을 지망하는 사람이라면 습작시절이라는 통과의례가 있고, 신춘문예는 그 통과의례 중 가장 치열한 과정의 다름 아니다. 그 치열함의 끝에 당도하는 사람만이 누리는 영광의 다름 아니다.  신춘문예 병은 신문사마다 1면에 신춘문예 현상공모 사고를 내는 11월초쯤 발병한다. 신춘문예라는 활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가슴이 뛴다. 혈관 속에서 문학의 피가 끓는 소리가 들린다. 문제는 그런 흥분된 상태가 응모 마감일 까지 계속된다는 것이다.  계절은 언제나 가을이 끝나가고 겨울이 서서히 찾아오는 때쯤이다. 심장과 피는 더워지지만 몸은 추워지고 등은 불안감으로 굽어진다. 말수도 줄어들고 침묵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가끔씩 왜 그렇게 긴 한숨이 터져 나오던지.  그 시절을 겪은 나의 대학성적표는 감추고 싶은 흉터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신춘문예 병이 준 후유증이었다. 고백하자면 아슬아슬하게 낙제를 면한 점수다. 졸업학점이 1백60학점이었던 시절, 신춘문예 병 때문에 펑크난 학점을 맞춘다고 4학년 2학기에도 21학점을 신청해야만 했었다.  신춘문예의 마감과 학년말 시험기간은 늘 일치했다. 나는 그 두 길 앞에서 늘 미련도 없이 신춘문예의 길을 택했다. 친구들이 도서관에서 학년말 시험준비로 밤을 새울 때 나는 신춘문예 응모작품을 준비한다고 밤을 새웠다. 유신 시대, 군사독재 시대에서 학점을 얻기보다 신춘문예 당선시인 이란 이름을 얻고 싶었다. 언젠가 가지게 될 내 첫 시집의 약력에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빛나는 한 줄을 남기고 싶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면 누구에게나 나오는 2급 정교사 자격증보다 먼저 시인이 되고 싶었다. 아직 그 시험답안지들이 남아있을까. 시험문제와는 무관한 글들만 써놓거나 백지로 제출했던 답안지들. 월영동 449번지, 나의 사랑 나의 대학. 사범대학으로 오르던 돌계단, 지칠 때마다 바라보던 푸른 합포만. 내 기억 속의 풍경들의 계절은 언제나 그 겨울이다. 사범대학 빈 강의실 한 구석에서 웅크리고 시를 쓰던 동면 직전의 곰 같았던 내 모습. 오지 않는 편지를 기다리며 우편함을 찾아가면 복도 쪽으로 눕던 긴 그림자. 환청처럼 갈가마귀 울음소리 들리던 시절.  더워졌던 피가 얼음처럼 차갑게 식는 기다림의 시간이 찾아오는 것도 신춘문예 병 후유증이다. 마감도 끝나고 시험도 끝나면 할 수 있는 일이란 낮에는 당선통지를 기다리는 일과 밤이면 술을 마시는 일 뿐이었다. 우체국에서 작품을 보내고 돌아와서부터 당선연락이 올 때까지의 그 막연한 기다림. 폭음과 함께 했던 확신과 장담은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고 불안해지고 마침내 허탈해진다.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당선 연락이 오지 않으면 더 이상 기다리지 말라는 동병상련 하는 도반들의 충고에도 혹시, 혹시 하며 기다리다 절망하다 받아보는 1월 1일자 신문. 그 신문에 실린 그 해 당선자들의 얼굴사진과 빛나는 작품들. 당선 시들을 읽은 뒤에는 지금까지의 기다림 보다 더 큰 부끄러움이 엄습했다.  그렇다. 그 부끄러움이 나를 성숙시켰다. 현재의 내 시가 어떤 자리쯤에 서있는지를 확인시켜주었던 부끄러움이 내 시의 뺨을 후려쳤다. 그리고 혹독한 추위의 겨울이 시작되고 뛰어난 그해 당선 시들을 읽으며 언젠가는 찾아올 내 문학의 봄인 신춘 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대, 그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문학을 꿈꾼다면 그 꿈은 욕심에 불과한 것이니, 다시는 신춘을 기다리지 마라.  바람도 시인을 만든다 왜 그렇게 바람이 좋았는지 몰라.  열네 살 중학생이 걸어서 학교 가는 길이다. 보리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간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 가는 오월이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소년의 이마를 짚는다. 바람의 손은 언제나 서늘하다. 소년은 멈추어 선다.  그 때 소년은 보았다, 바람의 몸을. 무형인줄로만 알았던 바람이 보리밭 위로 달아나며 드러내는 몸의 흔적을. “저게 바람의 몸이구나”라는 깨달음. 그것은 세상의 비밀 하나에 눈 뜬 기쁨이었다. 그러한 세상의 비밀을 찾는 것이 시고,그 일은 내가 해야하는 일이다고 생각했다. 열네 살 중학생이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시 오 리쯤 되는 길이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 가는 오월이다. 다시 바람이 분다. 함께 돌아가는 친구들은 보지 못하는 바람의 몸을 나 혼자 지켜보며 소년은 바람이 되고 싶었다. 온 몸으로 부는 바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바람이 나에게 절망이었던 시간이 있었다.  열네 살 중학생은 열일곱 살 고등학생이 되어 백일장에 참석한다. 백일장의 시제가 ‘바람’이다. 열일곱 살은 자신에 차 있다. 일찍 바람의 몸을 보았기에. 이윽고 심사가 끝나고 입상자 명단이 방으로 붙는다. 열일곱 살은 실망한다. 자신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장원자가 호명되어 단상으로 나간다. 뜻밖에도 기라성 같은 상급생들을 모두 제치고 동급생 여학생이 장원이다. 단발머리 그 여학생은 당당하게 서서 자신의 바람을 노래한다.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 첫줄에 나는 몸이 얼어붙는 충격을 받았다. 동급생 계집아이가 어떻게 저런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일까. 충격은 부끄러움으로 이어졌다. 부끄러움은 또 절망을 낳았다.  내가 바람의 몸을 보았을 때 바람의 존재를 생각하는, 같은 나이의 여학생의 정신세계와 언어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백일장이 끝나고 열일곱 살은 호수 곁에 앉아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동급생 계집아이와 같은 시를 쓸 수 있을까.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열일곱 살은 자신에게 결여돼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는 표정이다.  열네 살과 열일곱 살에 만난 바람은 분명 다른 바람이었다. 나는 어제 불던 바람이 오늘 다시 분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바람은 매일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 새로 태어나는 바람에게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 그것이 오늘의 시다. 그리고 나는 오늘 부는 바람이 내일도 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 그것이 내일의 시다.  처음 만난 시의 화두가 바람이었기 때문일까. 나는 일찍부터 풍병이 들었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바람 같은, 바람병이 들었다. 나는 내 사주팔자를 보지 않았지만 내 사주와 팔자에는 세찬 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어 평생을 떠돌게 하는 역마살이 끼어 있을 것이다. 그런 바람들이 나를 시인으로 키웠다.  머무는 것은 바람이 아니다. 바람은 부는 것이다. 분다는 것은 움직임, 시는 그런 움직임이다. 시인은 바람이기 위해 늘 깨어있어야 한다. 고여있는 것들은 시인을 만들지 못한다. 바람이 불기에 살아야 한다고 노래한 시인도 있다. 나는 바람의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오는 동안 많은 사랑도 있었고 눈물도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부는 바람의 길을 따라 바람처럼 불어갈 것이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시인의 운명이다. 언제나 나는 바람이고 싶다. 그대에게로만 부는 뜨거운 바람이고 싶은 것이다, 그대 나의 시여. 길이 시인을 만든다  중학교 2학년 때 부산에서 진해까지 걸어온 적이 있다. 악동 친구들과 해운대 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차비마저 다 유흥비(?)로 날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여름이었고, 우기였다. 우리는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엄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엄궁에서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 명지로 가, 명지에서 다시 걸어 진해까지 갈 계획이었다.  친구 3명의 무사귀환을 책임져야 하는 내 주머니에는 1백20원이 숨어 있었다. 나는 그 돈으로 진해 인근인 웅천에서 버스를 탈 계획이었다. 다들 부모님에게 선생님과 함께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떠난 여행이었기에 우리는 어디에도 구원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걸어가자. 무슨 중대한 결정이라도 내리듯 친구들에게 그렇게 선언하자 눈물이 핑 돌았다. 염소란 별명을 가진 친구도 찔끔거렸다. 그 때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붉은 완행버스를 타고 떠나왔던 길. 그 먼길을 과연 걸어갈 수 있을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다른 길은 없었다. 믿는 것은 우리가 가진 A자형 군용 텐트, 알코올 버너, 라면 몇 봉지, 쌀 등과 열 다섯 살의 두 다리 뿐 이었다. 그래, 한 이틀 걸어가면 진해까지 갈 수 있을 거야. 가다가 어두워지면 길 위에서 자고 가지. 내가 앞장섰다. 결국 우리는 1박2일을 걸어서 진해로 돌아왔다. 내가 걸어본 최초의 장도였다. 그날 이후 나는 세상의 길에 대해 자신을 가졌다. 그리고 그 길을 걷고 난 후 내가 많이 성숙해졌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진해에서 자전거를 타고 진주까지 갔다왔다. 그 높은 마진고개를 넘고, 더 높은 진동고개를 넘어 진주로 갔다. 친구의 친척집 작은 골방에서 새우잠을 자고, 내리는 비를 피해 다리 밑에서 밥을 먹었다. 역시 집으로 돌아오니 나는 성숙해져 있었다.  진해에서 마산까지 버스통학을 하던 고등학교 3년. 하교 길 자주 마진터널 검문소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왔다. 어둠의 산길,홀로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오면 내 몸으로 스며든 길의 향기가 좋았다.  그 시절 우연히 목월 선생이 쓴 젊은 날의 비망록에서, 청년 박목월이 군용 모포 한 장만 들고 강원도에서 부산까지 걸어왔다는 글을 읽었다. 낮에는 해변에서 자고 밤에는 걸어서 동해의 길을 밟았다는 글을 읽고 전율했다. 나는 책을 읽다 일어서서 외쳤다. 떠나자. 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 길을 따라 떠나자. 그대, 길은 사람에게 사유의 시간을 가져다준다. 길을 걷는 사람은 누구나 혼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럿이, 함께 가는 길이라도 해도 어느 누구도 자신의 길을 걸어주지 않는다. 결국 길은 혼자 가는 길뿐이다. 혼자 가는 길이 사람을 성숙시켜 주고, 시를 깊어지게 만들어 준다. 길은 무엇보다도 그리움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다. 가보지 않은 저쪽에 대한 그리움이 길을 만들었으니, 그리움이 없다면 길도 없었다. 길 위에서 혼자임을 아는 사람은 언제나 그리움의 따뜻함을 꿈꾼다. 그 따뜻함을 나는 서정이라 말하고 싶다. 홀로 길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길 위에서 그리움을 꿈꾸지 않은 사람은 서정시인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길의 가장 큰 가르침은 고통이다. 그대, 길 위에서 혼자 맞는 저물 무렵과 일몰의 고통을 아는가. 타관을 지날 때 하나 둘씩 돋아나는 집들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떠나온 곳으로 등이 굽는 쓸쓸함. 아무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저녁이 찾아올 때 비로소 그리운 사람과 이름들. 저무는 길 위에서 고통을 느껴보지 않고서 사랑의 시를 쓸 수 없다. 등 배기는 길 위에서 고통의 칼날에 싹둑싹둑 잘리는 마디잠을 자보지 않은 사람 또한 시인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니, 그대 오늘 그 길 위에 서라.  유행가도 시인을 만든다 내가 제일 처음 배운 유행가는 배호의 노래였다. 제목은 ‘누가 울어’. 그 때 나는 아버지가 없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어느 비오는 오후, 어머니가 흥얼거리는 그 슬픈 노래가 어린 나를 울렸다. 어머니 몰래 연습장에 노래가사를 적었다. 지금도 생생한 그 노래 1절은 다음과 같다.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같은 이슬비 누가 울어 이 한밤 잊었던 추억인가 멀리 가버린 내 사랑은 돌아올 길 없는데 피가 맺히게 그 누가 울어 울어 검은 눈을 적시나.’  그날 밤 나는 이불 속에서 어머니의 노래를 조용조용 불러보았다. 그리고 정말 ‘피가 맺히게’ 울었다. 어렸지만 노래에 담긴 홀어머니의 마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어린 시절 배호의 노래가 슬픔이 어떤 가락이며 어떤 색깔인지를 가르친 것이다.  어머니의 술집에는 유행가가 끊이지 않았다. 내 유행가 교실은 그 술자리였다. 막걸리 술 주전자를 나르며 나는 손님들의 유행가를 배웠다. 가게에서 일하던 형들의 유행가 책을 훔쳐 가사를 외웠고 장난감 아코디언으로 서툴게 멜로디를 쳐보기도 했다. 영화관에서 ‘미워도 다시 한 번’ ‘가슴 아프게’ 같은 영화를 보며 주제가를 배웠고, 쇼 공연에서 늘 제일 마지막에 출연하는 이미자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나는 세상의 슬픈 유행가가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유행가 가사 같은 시를 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자의 “기러기 아빠”를 흉내낸 시를 적어 담임 선생님을 걱정시켜 드리기도 했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은 가난뿐이었지만 나는 뜻밖에도 아버지가 남기신 글을 읽었다.  아버지는 달필이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것 같은 고급노트에 아버지는 당신이 좋아하셨던 유행가 가사를 볼펜 글씨로 빽빽이 적어 놓으셨다. 나는 유품과 같은 아버지의 유행가 가사를 오랫동안 가슴에 담고 지우지 않았다.  30대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도 노래를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좋아하신 노래는 가곡이나 명곡이 아니라 유행가였다. 아버지는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축음기를 통해 노래를 듣기도 했고, 진공관 전축을 사서 노래를 자주 들으셨다. 무엇보다도 아버지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몇 십분 전에도 잠시 들른 아버지 친척 댁에서 전축을 틀어 놓고 누군가의 유행가를 열심히 들으셨다고 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의 유행가는 ‘갈대의 순정’뿐이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은 아버지의 지독한 애창곡이었다고 한다. 그런 유행가 만들어주는 60년대식 슬픔이 나에게 서정시를 쓰게 만들었고, 유행가는 내 서정의 자양분이 되었다.  나는 어느 자리에서 배호의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시인과 부르지 못하는 시인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유행가를 딴따라라 한다. 나는 그 딴따라가 좋다. 흔히 대중적, 통속적이라는 감상이 시인에게는 따뜻한 자양분이 된다.  한국 시단에는 3배호가 있다. 대구의 서지월 시인이 서배호, 부산의 최영철 시인이 최배호, 울산의 나는 정배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서배호는 배호와 똑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최배호는 배호와 똑같은 모습으로 노래를 한다. 나는 그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현재 우리 시단의 좋은 시인인 그들의 시가 유행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음치고 박치인 나는 폼만 배호다. 서배호, 최배호의 노래 뒤에는 앙코르가 있지만 내 노래는 앙코르가 없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유행가를 부르고 듣는다. 유행가에서 시를 배웠기 때문이다.  그 마지막엔 시만이 시인을 만든다 신문사는 새로 입사하는 수습기자에게 기사 작성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종이밥을 먹던 신문기자 시절, 어느 누구도 나에게 기사 쓰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이 들어 입사한 신문사라 후배를 선배로 모시고 경찰기자 생활이 시작됐다.1진은 서울 중부경찰서 기자실 소파에 앉아있고, 나는 남대문, 용산경찰서를 들개처럼 싸돌아다녔다.  내가 근무하는 신문사가 석간신문을 제작하고 있어 새벽같이 종합병원 영안실과 경찰서 형사계, 유치장을 돌고 1진에게 간밤의 사건과 사고를 전화로 보고한다. 그러면 1진은 뉴스가 될만한 것을 기사로 만들어 즉시 전화로 부르라고 한다. 교과서에서 배운 6하원칙을 적용하여 기사를 작성해 전화송고를 하면 욕설이 쏟아진다. 새벽부터 나이 어린 신문사 선배에게 듣는 욕은 사람을 참담하게 만들어준다. 남쪽에 두고 온 가족생각이 나고, 같이 욕설을 퍼붓고 때려치워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1진의 지적은 정확했다. 내가 놓친 부분을 보지도 않고서 정확하게 찾아냈다.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다. 1진은 그렇게 욕설로 지적을 할 뿐 3개월의 그 지독한 수습기간에 신문기사를 어떻게 쓰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강원도 백담사에 유배돼 있던 전두환 전대통령이 법회를 연다고 해서 취재지원을 나간 적이 있었다. 경쟁사의 기자들과 함께 취재를 하고 나는 끙끙대며 2백자 원고지 5장 정도 분량의 스케치 기사를 작성해 팩스로 보냈다.  그런데 경쟁사 모 선배기자는 기사를 작성하지도 않고 메모만 보고, 그것도 전화기를 들고 짧은 시간에 25장 분량의 기사를 송고하는 것을 보고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과연 나는 신문기자의 자질이 있는 가하는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내 그런 좌절을 안 한 선배가 ‘신문기자의 교과서는 신문이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 때서야 나는 신문을 통해 신문기사 쓰는 법을 새롭게 배우기 시작했다. 매일 매일 쏟아지는 신문을 펴놓고 좋은 기사는 옮겨 적어보고, 사건과 사고의 유형별로 좋은 기사들을 스크랩해 참고서를 만들었다. 신문 속에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이 숨어있었다.  시를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시 창작의 최고의 교과서는 시고, 시집이다. 그것도 좋은 시고 시집이어야 한다.  앞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시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좋은 시집을 권하고 무조건 필사할 것을 숙제로 내준다. 눈으로 읽는 리듬과 손으로 쓰며 배우는 리듬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도 신춘문예 당선 전까지 참으로 많은 선배시인들의 시를 옮겨 쓰며 시 쓰는 법을 배웠다. 시인이 되려는 제일 마지막 관문은 선배들의 좋은 시와 시집이 나에게 시가 무엇이며, 시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내 친구 최영철 시인은 내 시집 발문에 나를 ‘타고난 시인’이라고 쓴 적이 있다. 너무 일찍 배운 슬픔으로 감성은 타고 났을지 몰라도 나 역시 ‘만들어진 시인’임을 고백한다. 손에 펜혹이 생기도록 좋은 시를 옮겨 적는 연습을 통해 시를 배웠다.  시인이 되는 교과서는 시인들의 시에 있고, 시집에 모여 있다. 시인은 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받는 것이 아니다. 선배 시인들의 인정을 통해 시인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멀리서 혹은 엉뚱한 곳에서 시인의 길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이다.  나는 앞에서 많은 것들이 시인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 그런 것들 중 제일 마지막에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 준 것은 시다. 시인이 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후배라 할지라도 좋은 시를 발표하면 한 번 옮겨 적어보며 그 시의 비밀을 찾으려고 한다.  시인을 꿈꾸거나, 시인인 그대여. 시를 읽자. 시집을 읽자. 그것이 시인을 만들고, 시인의 깊이를 더욱 깊게 만들어준다.   
655    池龍과 芝溶 댓글:  조회:3969  추천:0  2015-08-03
                  시인 정지용(鄭芝溶) 1902. 5. 15 충북 옥천~?/ 아명은 지용(池龍).     생애와 활동 한의사인 아버지 태국(泰國)과 어머니 정미하(鄭美河)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12세 때 송재숙(宋在淑)과 결혼했으며, 1914년 아버지의 영향으로 가톨릭에 입문했다. 옥천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서 박종화·홍사용·정백 등과 사귀었고, 박팔양 등과 동인지 〈요람〉을 펴내기도 했으며, 신석우 등과 문우회(文友會) 활동에 참가하여 이병기·이일·이윤주 등의 지도를 받았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선근과 함께 '학교를 잘 만드는 운동'으로 반일(半日)수업제를 요구하는 학생대회를 열었고, 이로 인해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가 박종화·홍사용 등의 구명운동으로 풀려났다. 1923년 4월 도쿄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입학했으며, 유학시절인 1926년 6월 유학생 잡지인 〈학조 學潮〉에 시 〈카페 프란스〉 등을 발표했다.   1929년 졸업과 함께 귀국하여 이후 8·15해방 때까지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고, 독립운동가 김도태, 평론가 이헌구, 시조시인 이병기 등과 사귀었다.    1930년 김영랑과 박용철이 창간한 〈시문학〉의 동인으로 참가했으며,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고문으로 있으면서 이상(李箱)의 시를 세상에 알렸다. 같은 해 모더니즘 운동의 산실이었던 구인회(九人會)에 가담하여 문학 공개강좌 개최와 기관지 〈시와 소설〉 간행에 참여했다. 1939년에는 〈문장〉의 시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 박목월·조지훈·박두진 등의 청록파 시인을 등단시켰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이화여자대학으로 옮겨 교수 및 문과과장이 되었고,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 및 가톨릭계 신문인 〈경향신문〉 주간이 되어 고정란인 '여적'(餘適)과 사설을 맡아보았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했던 이유로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전향강연에 종사했다. 1950년 6·25전쟁 이후의 행적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월북했다가 1953년경 북한에서 사망한 것이 통설로 알려져 있다.   문학세계 그의 문학세계는 대략 3가지로 구분될 수 있으며, 섬세한 이미지 구사와 언어에 대한 각별한 배려를 보여준 것이 특징이다.   첫째는 1926~33년으로, 이미지를 중시하면서도 향토적 정서를 보인 모더니즘 계열의 시이다. 그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23년경이었다고 하나, 발표되기는 1926년
654    마음 열기 댓글:  조회:4366  추천:0  2015-07-30
올 여름도 그냥 가지는 않는구나  - 조정권(1949~ ) 눈 어두운 사람 귀밖에 없어 비야 부탁한다 라디오 좀 틀어보렴 전국에서 목숨의 대행진이 벌어지고 있다 부탁한다 저 저수지같이 어두운 텔레비전도 켜보렴 필요하다면 네 이빨을 써서라도 여름이 깊어간다. 가리왕산 자연휴양림에도, 해운대에도 피서 인파들로 북적인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탓에 도심은 한적해진다. 공중엔 해, 땅엔 붉고 둥근 토마토! 토마토는 대지의 작은 태양들이다. 토마토를 깨물어 먹는 것,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것,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것들은 여름의 보람 중 하나다. 땡볕 더위, 성가신 물것들, 잠 못 드는 열대야는 여름의 불청객들이다. 여름이 무사태평하게 조용히 지나가는 법은 없다. 태풍이 가로수를 뿌리째 뽑고, 강물을 범람시키며, 산사태를 일으키고, 풍랑으로 작은 배들을 뒤집어놓는다. 올해만은 제발 착한 사람들이 ‘목숨의 대행진’을 벌이는 일 따위는 없었으면! [ 2015년 07월 30일 08시 04분]    영국 '도시기획설계전문가 JT 싱(JT Singh)과 모션비디오 예술가 롭 윗워스(Rob Whitworth)는 두사람이 제작한  '평양에 들아가다(Enter Pyongyang)란 제목의 영상 임.
653    백자 항아리 댓글:  조회:5041  추천:0  2015-07-28
백자 항아리    - 허윤정(1939~ ) 너는 조선의 눈빛 거문고 소리로만 눈을 뜬다 어찌 보면 얼굴이 곱고 어찌 보면 무릎이 곱고 오백년 마음을 비워도 다 못 비운 달 항아리 백자 항아리는 비례와 대칭이 완벽하지 않다. 이 부정형의 백자 항아리는 크고 풍성한 보름달을 닮아 달항아리라고 부른다. 보는 이의 마음을 넉넉함으로 이끈다.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84)는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으로 이루어진 달항아리를 한국 미의 원형으로 꼽고 그 소박미를 찬미했다. 김환기(1913~74) 화백도 “내 예술의 모든 것은 달항아리에서 나왔다”고 말할 정도로 일그러진 백자 항아리를 사랑하고 즐겨 그렸다. “조선의 눈빛”이고 “거문고 소리”에만 반응하며 눈을 뜨는 이것! 이 달항아리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마음 비우기’다.
652    <달력> 시모음 댓글:  조회:5060  추천:0  2015-07-26
[ 2015년 07월 27일 08시 54분 ]     타이위안(太原) 무용단의 대형 무용극 "천수관음(千手觀音)" 달력 관한 시 모음 + 달력  헌 년  떼어내고  새 년  걸어 둔다  미안함도  죄책감도 없이  습관적으로. (이문조·시인) + 달력  달력 속에는  숫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요.  하루하루 지나 한 달이 되어  한 장을 넘기다 보면  계절에 맞춰  예쁜 그림도 바뀌지요.  새 달력이 나오면  먼저 기념일에다  동그라미를 넣고  공휴일도 세어요.  해마다  반복되는  숫자들의 배열  우리네 인생이에요. (이제민·시인, 충북 보은 출생) + 달력을 다시 걸며  임오년을 떼어내고 계미년을 건다  과거를 떼어내고 미래를 단다  후회를 거두어내고 소망을 건다  이별을 버리고 만남을 기대한다  올해도 달려갈  내 삶의 정거장에 동그라미를 친다  늘 같은 곳을 맴돌고 살면서도  늘 같지 않은 시간을 밀고 가는 수레바퀴  빈 공간마다 금빛 희망을 건다  (목필균·시인) + 새해 달력을 받고  한 장 한 장 넘겨보니  숫자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살아온 날들은 빈 껍질처럼  희로애락만 남겨놓고  저만치 흘러갔다  선물 받은 축복의 시간들  기쁘고 신나고 즐거워야 하는데  막상 계란 열두 판을 받고보니  흐뭇함보다는  겨울이라 그런지 마음이 시리다  욕심이 늘어서인지  계란 열두 판의 숫자가 자꾸 적어 보인다 (한상숙·시인) + 요리사의 달력  달력에는 갖가지  삶의 요리가 있지  요리사의 손맛 닿으면  어느 날은 짜거웁고  어느 날은 싱거웁고  어느 날은 달콤해서  버릴 수 없는 유산으로 남는다  그러다 어느 날은  지독히 매워 눈물샘이  고장난 듯  주룩주룩 눈물이 난다  우리는 누구나  주어지는 날에 나름대로  맛 나는 요리를 먹으려고  한 세상을 엮어간다 (남시호·시인, 경북 안동 출생) + 달력     끊을 수 없는 시간을  토막내어 염장해 놓고  긴 것  짧은 것을 꺼내 먹는다.  산들바람의  색깔과 모양을 보았는가.  보이지 않는 것을 만지기 위해  촉수를 더듬으며  찢어진 장수를 셀 뿐이다. (小石 정재영·시인) + 달력  미묘한 기억들을 지우고 싶다  말없이 지나치는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 나름대로의 책임이 있기에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자꾸 멀어져 가는 날들이  어느덧 뒷전으로 물러나더니  어저께 시작한 것 같은 일이 벌써 종점에 다다르니  또 한 장의 수만큼  그렇게 사각지대를 벗어나야 하는 오늘  거둔 만큼만 가지고  문을 닫는다  365일의 사연들이 숨죽이고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다.  (전병철·교사 시인, 1958-) + 달력    방에 걸려 있는 크로키 누드화 달력 오뉴월분 그림은 거꾸로 누운 여자 '여자도 흥분하면 발기한다'는 「바탕골」박의순 여사의 작품 "떼어버릴 수 없느냐"는 아내와 "예술이야!"로 맞서는 남편 외설과 예술의 차이는? 상스러움과 아름다움? 까만 선과 까만 점 몇 개 그 당당함으로 외설은 시간을 흘리고 예술은 세월을 잡는가. (홍해리·시인, 1942-) + 달력의 선택  모든 아름다움 찾아 헤매다  너를 택한 것은  거짓 없는 내일을 보이기 위해  너는 옷을 벗었기 때문이다  모든 아름다움 찾아 헤매다  너를 택한 것은  돌아온 길 되돌아 갈 수 없는  너만의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아름다움 찾아 헤매다  너를 택한 것은  계절 따라가며  미리 능선 위에 꽃피우는  너만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아름다움 찾아 헤매다  너를 택한 것은  기다림의 설렘 속에  내일의 약속으로  잊어버린 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아름다움 찾아 헤매다  너를 택한 것은  우리 곁을 비켜간 거리에서  힘겨운 사람 위해  자선의 달을 기록해 두었기 때문이다. (노태웅·시인) + 그녀의 달력        내 작은 방안의 달력은  그녀의 하얀 스커트 같아요  달력은 찢길 때마다  한 달치의 비명을 지르곤 하지요  스커트가 찢겨진 여자애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요  그렇지만 그 소리가 얼마나 기분 좋은지  또 묘한지는 저도 알고  사실 그녀도 잘 알고 있죠  매달 말일이면 누구에게 뺏길세라  내가 먼저 달력을 벗겨 놓지요  그리고 새 달력에서 일요일과 연휴를 확인하고  그녀와 만날 날을 미리 짜 보기도 하고,  또 어쩌다 먼저 다음 달을 들춰 볼 때면  치마 속을 훔쳐보는 것처럼  호기심으로 가슴이 마구 뛰기도 하고요,  늘어난 빨간 날을 헤며  그녀 몰래 즐거운 공상에 빠지기도 하지요.  청소를 하느라 창을 열어 두면  바람에 맞춰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는 아무도 모를 거예요  그래서인지 그녀는 스키장이나 사냥터에서도  해변에서처럼 언제나 시원한 비키니죠  다른 여자들에게 미안할 만큼 늘씬한 글래머죠  난 그런 그녀의 달력을 달마다 찢어요  하지만 단 한번 비명을 지를 뿐,  - 저를 그렇게 갖고 싶었나요?, 하며  아무 일 없는 듯 더 예쁜 옷을 입고  뒷장에 웃으며 앉아 있을 뿐이지  그녀처럼 울지는 않아요  나의 달력도 그녀처럼 매달 달갈이를 하지요  그때마다 잊혀질 듯한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요  난 또, 묘한 사랑에 빠지고요.  (김창진·시인, 1967-) + 해묵은 달력  지난 여름방학 때 나는  강원도 산골 할머니한테 다녀왔지요.  부채가 들었을 테니 찾아보라는 말씀에  할머니 쓰시는 장롱 속 뒤적이다가  오래 전 내가 보내 드린  묵은 달력을 보았지요.  "할머니, 이건 이제 못쓰는 거잖아요?"  "그냥 두어라."  "무엇에 쓰시려구요?"  "몰라도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속에서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지요.  "못 쓰는 달력 아끼며 사시는  할머니 마음 너는 알 수 없겠지.  너는 달력에서 그 날 그 날  날짜만 보고 말지만  할머니께서는 다르시단다.  해묵은 달력 꺼내 보시면서  그것을 챙겨 보내 준  너의 이쁜 마음과 정성을  읽으시는 거란다."  (아, 그러셨구나. 그래서 그렇게  이제는 소용없는 묵은 달력을  어여쁜 비단 끈으로 곱게곱게 묶어서  장롱 속 소중하게 넣어 두셨구나!)  벽에 한 번  걸려 보지도 못한  장롱 속 할머니 묵은 달력. (김구연·아동문학가, 서울 출생) + 달력  열두 장의 선물을 다 썼다.  무한의 자리를 무엇으로 채웠을까  주님 앞에 고개 숙여도  아무 할 말이 없다.  그의 가슴에 못이 박혀도  아픔은 늘 내 몫이 아닌 것 같이 부인하며  내 눈에 기쁨을 위해 꺾은  한 가지의 꽃도  행복은 다 내 몫인 줄 알았던 일들  죄 없는 사람이 있을까  무심코 걸어온 이 길이  무척이나 죄스럽다.  부스러기로 날리던 가로수 낙엽  흔적마저 어디론가 다 가버리고  알몸으로 서 있는 나목들  이 겨울을 견뎌 봄을 맞으리라.  나는 또 기도를 한다.  내 앞에 작은 일에도 감사하자  어제처럼 다짐을 한다.  열두 장의 선물을 안아 본다.  (박상희·시인, 1952-) + 마지막 달력  섣달 달력 한 장이  벽에 붙어 떨고 있다.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다.  달력이 한 장씩 떨어지면서  아이들은 자라고  철이 바뀌고  추억과 상처가 낙엽처럼 쌓인다.  마지막 달력이 떨어지면  나무는 나이테를 만들지만  인간의 이마엔 주름이 늘고  인간은 한해를 역사 속에 꽁꽁 묶어놓는다.  새 달력이 붙고  성장과 쇠퇴가 계속되고  그리하여 역사는 엮어진다.  크리스마스, 송년모임, 신년회  모임에 쫓겨 술에 취하다 보면  후회할 시간도 없이 훌쩍 세월은 넘어간다.  마지막 달력이 남으면  아이들은 들뜨고  어른들은 한숨짓는다.  그러면서 또 한해가 역사 속으로 떨어져 나간다.  (녹암 진장춘·시인) + 달력을 걷는다           달력을 걷는다 해마다 단조로움의 죄로 물든 달력을 벽에서 쓸쓸히 내리었듯이 이 해를 다 채우려면 아직 두어 달은 더 기다려야  벽에서 내릴 무위(無爲)의 죄로 물든 달력을 다시 나는 너에게 무얼 줄 수 있을까 주지 못한 야윈 손이 서럽게 부끄러운 단풍 짙게 물든 시월의 달력 한 장 걷으며 꿈을 꾼다 다시 나는 너에게 무얼 줄 수 있을까 지난 주일(主日) 거저 얻은  단감밖에  없는 내 손은 이 밤, 성자(聖者)의 비인 손을 다시 읽어야겠네 (홍수희·시인) + 달력의 마지막 장을 버리기 전에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는 지금은 하얀 눈을 내려주시는 하나님께 눈 같은 마음으로 더 깊이 경배드릴 때입니다.    바쁜 가운데 한 해 동안 잊었던 사람들의 싸락눈 은혜도 다 생각해내어 엽서만한 감사라도 보낼 때입니다.    오래 전 바자회에 2000원 짜리 오버코트를 내놓아 해마다 내 겨울을 따뜻하게 해준 분에게도 그 코트처럼 따뜻한 마음을 다시 보내드립니다.     아내와 내게 머플러며 맛있는 떡을 자주 선물하는 이 집사님 내외에게도 특별히 검정콩 한 말로 감사를 보냈답니다.    우리 동네 집배원이 누군지 모르지만 남달리 많은 내 우편물을 나르느라 한 해 동안 수고한 그 발걸음에 양말 한 켤레의 따뜻함이라도 드리고,    날마다 아파트 계단을 쓸고 닦는 청소부 아주머니의 수고에 장갑 한 켤레만한 고마운 마음이라도 드리도록 아내에게 일렀습니다.     이사를 자주 다녀서 우리 집 주소를 몰라 연락이 끊어진 어려운 형제들에게 사랑 한 상자라도 보내야겠습니다.    들판에 떨어진 이삭 같은 푼돈을 모아 보내는 우리 집 전통의 유니세프 저금통에는 밀가루포대가 두어 리어카쯤 들어있는지 꺼내봐야겠습니다.     될 수만 있다면 모두가 산타가 되어 사랑하는 우리의 손녀손자들에게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기쁨 한 자루씩 메고 찾아가야 할 때입니다.    달력의 마지막 장을 버리기 전에 지금은 모두들 마지막 생애를 보내듯이 찾아볼 곳들을 서둘러 찾아봐야 할 때입니다. (최진연·시인, 경북 예천 출생)
651    서정주와 보들레르 댓글:  조회:4953  추천:0  2015-07-21
오픈지식 미당 서정주의 초기시는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아 서정주(徐廷柱)   예술가명 : 서정주(徐廷柱)   다른이름 : 호 – 미당(未堂)   생몰년도 : 1915년~2000년   전공 : 시 미당 서정주의 초기시는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아 악마적이며 원색적인 시풍을 보여주고 있다. 첫 시집 에서 잘 드러나듯이 토속적인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여 인간의 원죄의식과 원초적인 생명력을 읊는 것이다. 하지만, 해방이 되면서 인간의 운명적 업고(業苦)에 대한 인식은 동양적인 사상의 세례를 받아 영겁의 생명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 시기의 시집 는 표제시에 있어서부터 동양적인 귀의를 시사해주는 것으로, 분열이 아니라 화해를 시적 주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갈등과 화해라는 심리적 리듬 이외에도 , 등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토착적인 정서와 고전적인 격조에의 지향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956년에 간행된 에서는 , 등의 작품으로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한과 자연과의 화해를 읊었고, , 등의 작품에서 원숙한 자기 통찰과 달관을 보여주고 있다. 서정주의 시는 에 이르면서 새로운 정신적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그의 초월적인 비전의 신화적인 거점이 되고 있는 신라는 역사적인 실체라기보다는 인간과 자연이 완전히 하나가 된 상상력의 고향과도 같다. 서정주는 에서 불교사상에 기초를 둔 신라의 설화를 제재로 하여 영원회귀의 이념과 선(禪)의 정서를 부활시켰고, 유치환과 더불어 생명파 시인으로 불려졌다. 그의 사상적 기조는 영원주의, 영생주의이며, 문화사조상의 배경은 주정적 낭만주의, 예술관은 심미주의적 입장이다. 이후에 더욱 진경을 보인 작품 50여 편을 모아 1968년에 펴낸 시집 에서는 불교의 상징세계에 대한 관심이 엿보인다. 이처럼 서정주의 시세계는 전통적인 서정세계에 대한 관심에 바탕을 두고 토착적인 언어의 시적 세련을 달성하였다는 점, 시 형태의 균형과 질서가 내재된 율조로부터 자연스럽게 조성되고 있는 점 등이 커다란 성과로 평가된다. - 참고: , 권영민 편, 누리미디어, 2002 ,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생애     전북 고창에서 출생한 서정주는 마을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줄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중앙고보·고창고보에서 수학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이 당선되고, 김동리·함형수 등과 함께 시전문동인지 을 창간하면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결혼 후 일제하의 암담한 현실에 떠밀려 서울을 중심으로 이곳저곳을 방랑하면서 기거했고, 한동안 만주에 가서 양곡주식회사 경리사원으로 일한 적도 있으며, 일제 말기에 귀국해 향리와 서울을 떠돌다가 광복을 맞이했다. 해방 후에는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에 앞장서 시분과위원장을 맡았고, 정부수립과 함께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에 취임하기도 하였다.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창립과 함께 시분과위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54년에는 예술원 종신회원으로 추대되었다. 전주의 전시연합대 강사, 서라벌예대 교수, 동국대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약력             1915년 전북 고창 출생 1935년 중앙불교 전문학교 입학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으로 당선 /  편집인 겸 발행인 1939년 만주 양곡주식회사 경리사원으로 입사 1941년 동대문여학교 교사 부임 1946년 동아대학교 전임강사 1948년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입사 후 문화부장으로 전임 /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 1951년 전주 전시연합대학 강사 겸 전주고등학교 교사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분과 위원장 역임 1954년~1960년 서라벌예술대학 교수  1960년 동국대학교 교수 1977년 한국문인협회장 취임 1983년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1984년 범세계한국예술인회의 이사장 취임     상훈     1955년 아세아자유문학상 1961년 5·16문학상 - 1966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80년 문화대상본상 개인상(중앙일보사)         저서       • 시집 (1941) (1946) (1955) (1960) (1968) (1975) (1976) (1980) (1982) (1983) (1984) (1988) (1991) (1993) (1997) (1994)                 • 평론집 (1949) (1959) (1969) • 수필집  (1980) (1985) (1992) (1993) (1994) (1995)  • 기타  (1991)                    작가의 말     (……) 그래 내, 아니 만 18세쯤 됐을 무렵에는 나는 어느새 서구적인 의미의 한 유치한 휴매니스트가 되어 있었고, 특히 프리디리히 니이체의 라는 책의 일역본은 내게는 참 매력적인 것이 되었었다. (……) 이와 아울러서 나는 보오들레에르 이후의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영향도 받었으니, 이 공부에서 내게 큰 보탬이 된 책은 일본의 이때의 대표적인 프랑스 시 번역자였던 호리구찌 다이가꾸의 방대한 역시집 이었다.  초현실주의 시와의 교류에 대해서도 여기 한 말씀 해두는 게 적합하겠다. 이것은 이 무렵에 일본에서 발간한 이라는 두두룩한 시잡지를 이어 읽으면서 읽힌 것이니, 그 흔적을 알고져 하는 이는 내 처녀시집 속의 같은 작품을 다시 한번 읽어 주시기 바랜다. 여기에서도 상상의 신개지를 마련하려는 의도는 확실히 보이고 있지 않은가? (……) 는 해방 뒤 3년만의 1948년에야 내게 되었으니 여기에는 자연히 일정 말기에 쓴 것들과 해방 뒤에 쓴 것들을 함께 수록할 수밖에 없었다. (……) 내 인생관과 시정신에도 암암리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으니, 그 요점을 간단히 말하면 ‘거북이처럼 끈질기고 유유하게 이 난세의 물결을 헤치고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 나의 이런 동양사상에의 회귀는 1945년의 해방 뒤에도 한동안 내 인생관과 시정신의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었으니, 가령 내가 1947년 가을에야 새로 쓴 같은 작품에서도 독자들은 그것을 알아차리기에 어려울 건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내 어느 시집에도 넣지 않고 내던져버린 소위 ‘친일적’이라는 시 몇 편이 있지만, 그것은 내가 징용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징용령에서 면제되는 잡지사였던 인문사에 편집기자로 있을 때 조선총독부의 또 하나의 새로 생긴 이름인 국민총동원연맹의 강제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쓴 것들이니, 이 점은 또 이만큼 이해해 주셨으면 고맙겠다. (……) 끝으로 말하려는 건 내 시의 표현의 문제인데, 나는 시를 제대로 하기 시작한 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내 인생 경험을 통해 실제로 감동한 내용 아니면 절대로 시로서 다루지 않은 그 전력을 앞으로도 꾸준히 지켜갈 것이다. 비록 그것이 독서의 내용에서 오는 것이라 할지라도 경우는 마찬가지였다. 시의 착상에서는 물론 그 표현에서도 남의 에피고넨이 된다는 것은 정말의 시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첫째 이점에서부터 시인의 출발은 제대로 시작되어야겠다.  그래서 시인다운 시인이 그 표현에서 애써야 할 일은 세계의 시에 한 새로운 패턴을 마련해 보여주는 일이다. - ‘나의 문학인생 7장’, 서정주, , 1996년 가을호               평론   (……) 초기의 에는 청년기 고유의 반항과 일탈 지향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후 미당은 세계와 우리의 어제 오늘에 대해서 너그러운 긍정의 관점을 견지해왔다고 할 수 있다. 에 보이는 ‘시골의 천치 같은 언동’조차 포옹하며 거기서 숨은 뜻을 읽어내는 데 드러난 긍정의 정신이 미당 시의 구심점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긍정의 정신은 미당의 현실주의에서 온다. 를 이야기하면서 김우창 씨는 ‘구부러짐의 형이상학’과 그것이 기초해 있는 현실주의를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굽음의 이존책(以存策)은 절대권력의 세계에서 눌린 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기 위하여 가져야 했던 현실주의’라고 부연하고 있다. 현실주의는 이상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이상의 실현을 기다리는 태도이기도 하다. 미당의 현실주의와 긍정의 정신은 역사와 역사 속의 인물을 다룬 속의 가령 에 잘 나타나 있다. (……) 미당은 청년기에 이란 동인지의 동인이었다고 한다. 반세기 후 그는 인용부호가 빠진 이 나라 시인부락의 족장이 되었다. 족장의 사상을 깊이 검토하는 일은 이 자리에서는 불가능하다. 이 족장에 대해서는 시인부락 쪽에서 이런저런 비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작품을 읽고 그 의미를 헤아리는 것은 그런 일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민중을 혐오하는 엘리트주의자라고 셰익스피어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급진파 비평가가 늘 셰익스피어를 읽고 논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어디서나 뛰어난 재능은 희귀하다. 20세기 한국과 같이 척박하고 풍파 많은 사회에 한길에 정진하여 전례 없는 성취를 보여준 재능은 존경받아야 하며, 그 성취는 널리 수용되고 음미되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살아 있는 고전이 영세한 우리 터전에서 전범이 될 만한 작품은 현대의 고전으로 숭상되어 마땅하다. 에디슨이 없었더라도 라디오와 축음기는 결국 누군가의 손으로 발명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없었다면 모차르트 음악 그 자체는 우리의 것이 못 되었을 것이다. 부족 방언의 요술사이자 시인부락 족장인 미당 시가 좀더 널리 향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이 글을 어디까지나 미당론의 일부임을 밝혀둔다. - ‘소리 지향과 산문 지향: 미당 시의 일면’, 유종호, , 민음사, 1994     서로간에 날카로운 갈등을 일으키는 경험의 여러 모순, 상반된 요소를 인정하지 않는, 직시초월의 전통이 한국 시인으로 하여금 오랫동안 자기 민족의 주관적인 세계에 가라앉아 있게 한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면, 박두진은 그의 기독교에 의하여 이 전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서구적인 사고에 힘입기는 했으나 기독교도는 아닌 서정주는 인간 상황의 분열된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 또 한 사람의 시인이다. 그의 초기시, 특히 을 특징짓는 것은 강렬한 관능이었다. 관능은 현대 한국시에서 반드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서구의 퇴폐 시인들의 영향을 받은 몇몇 시인들이 그 이전에 이미 관능의 나른한 기쁨을 시험한 바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시는 어디까지나 모방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서정주는, 앞에 간 시인들에게 배우면서 동시에 그들이 얻지 못한 진정성을 얻는다. 그는 경험의 몰입으로, 또 이해를 위한 탐구로 그를 끌어갈 수 있는 정열을 가졌다. 이러한 정열의 도움으로, 그는 관능의 표현을 스쳐가는 데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도덕의 상태까지 끌어올렸다. 그리하여 그의 도덕적인 의식은 그를 다른 퇴폐 시인과 구분하여 주고 그의 시를 모방이 아닌 진짜가 되게 한다.  그러나 그의 도덕주의가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의 인식의 방법 안에 함축되어 있을 뿐이다. 그는 감각적 경험 속에 벌써 모순의 요소가 들어 있음을 본다. 그는 아름다움 안에 추한 것, 추한 것 안에 아름다운 것, 또는 선 안에 악을, 악에서 선을 본다. (……) 서정주에게서 육체와 정신의 갈등도 이런 대립의 원리에 포괄될 수 있다. 사회와 개인,                                   관련도서   , 서정주, 민음사, 1994 , 이남호, 열림원, 2003 , 손진은, 새매, 2003 , 박호영, 건국대 출판부, 2003 , 엄경희, 보고사, 2003 , 오봉옥, 박이정, 2003 , 김윤식, 서울대 출판부, 2002 , 김정신, 국학자료원, 2002 , 김종호, 보고사, 2002 , 송하선, 국학자료원, 2000 , 윤재웅, 태학사, 1998 , 육근웅, 국학자료원, 1997 , 서정주, 민음사, 1994 , 이경수, 고려대 박사논문, 2003 , 김점용, 서울시립대 박사논문, 2003 , 최현식, 연세대 박사논문, 2003 , 최정숙, 경희대 박사논문, 2003 , 강영미, 고려대 박사논문, 2002 , 장창영, 전북대 박사논문, 2002 , 이명희, 건국대 박사논문, 2002 , 김종호, 상지대 박사논문, 2001  
650    어머니의 꽃무늬 팬티 댓글:  조회:4874  추천:0  2015-07-20
김경주시인의 시 읽기와 해설  20대 후반의 젊은 시인 중에  요즈음 황병승과 김경주가 있다  오늘은 김경주의 詩를 보고 그 詩세계를 조명해보며  앞으로의 시적특질과 그의 서정 가늠을  기억하려한다  신예 중에서 선두 주자는 김경주 시인이다.  그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언어 조합의 진취력은  가히 상상을 넘는다.  행간을 달려가는 조련의 말 몰이는 뛰어 나다.  시를 읽어가노라면  어른의 심저에서 탁조된 호흡을 만난다.  시를 음미하고 속으로 기어 갈라 보면  이내 만난 것이  아이가 아닌 단단한 알맹이처럼 차 오른 시경이다.  그럴 수 있느냐의 반문과 문답을 주고 받는데  이럴 수 있는가  긍정과 부정의 이야기가 손사래를 젓는데  아 그렇구나의 동화가 이내 온다.  서정(분위기)과 실사(현재의 모습과 이야기)의  좋은 만남의 모습이다.  이가 곧 김경주의 모습이다.  몇 편의 시를 감상해 보자--이민영시인(2006.12.01)  .........................  드라이 아이스--김경주  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목숨으로서  이렇게 외로울 수 없는 법이다 *  문득 어머니의 필체가 기억나지 않을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고향과 나의 시간이  위독함을 12월의 창문으로부터 느낀다  낭만은 그런 것이다  이번 생은 내내 불편 할 것  골목 끝 수퍼마겟 냉장고에 고개를 넣고  냉동식품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만져버린 드라이아이스 한조각,  결빙의 시간들이 타 붙는다  저렇게 차게 살다가 뜨거운 먼지로 사라지는  삶이라는 것이 끝내 부정해버리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손끝에 닿은 그 짧은 순간에  내 적막한 열망보다도 순도 높은 저 시간이  내 몸에 뿌리내렸던 시간들을 살아버렸기 대문일까  온몸의 열을 다 빼앗긴 것처럼 진저리친다  내안의 야경(夜景)을 다 보여줘버린 듯  수은의 눈빛으로 골목에서 나는 잠시 빛난다  나는 내가 살지 못했던 시간속에서 순교할 것이다  달사이로 진흙 같은 바람이 지나가고  천천히 오늘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 공기들이  동상을 입은 채 집집마다 흘러 들어가고 있다  귀신처럼.  ..............................  꽃 피는 공중전화 --김경주  퇴근한 여공들 다닥다닥 세워 둔  차디찬 자전거 열쇠 풀고 있다  창 밖으로 흰쌀 같은 함박눈이 내리면  야근 중인 가발 공장 여공들은  틈만 나면 담을 뛰어넘어 공중전화로 달려간다  수첩 속 눈송이 하나씩 꾹꾹 누른다  치열齒列이 고르지 못한 이빨일수록 환하게 출렁이고  조립식 벽 틈으로 스며 들어온 바람  흐린 백열등 속에도 눈은 수북이 쌓인다  오래 된 번호의 순들을 툭툭 털어  수화기에 언 귀를 바짝 갖다 대면  손톱처럼 앗! 하고 잘려 나 갔던 첫사랑이며  서랍 속 손수건에 싸둔 어머니의 보청기까지  수화기를 타고 전해 오는 또박또박한 신호음  가슴에 고스란히 박혀 들어온다  작업반장 장씨가 챙챙 골목마다 체인 소리를  피워 놓고 사라지면 여공들은 흰 면 장갑 벗는다  시린 손끝에 보푸라기 일어나 있다  상처가 지나간 자리마다 뿌리내린 실밥들 삐뚤삐뚤하다  졸린 눈빛이 심다만 수북한 머리칼 위로 뿌옇다  밤새도록 미싱 아래서 가위, 바위, 보  순서를 정한 통화 한 송이씩 피었다 진다  라디오의 잡음이 싱싱하다  .....................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김경주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던, 그 속에서  하늘하늘한 팬티 한 장 꺼내들고 어머니  볼에 따뜻한 순면을 문지르고 있다  안감이 촉촉하게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 하는 한 무늬였음을  오늘은 죄 많게 그 꽃무늬가 내 볼에 어린다  어머니 몸소 세월로 증명했듯  삶은, 팬티를 다시 입고 시작하는 순간 순간  사람들이 아무리 만지작거려도  팬티들은 싱싱했던 것처럼  웬만해선 팬티 속 이 꽃들은 시들지 않았으리라  빨랫줄에 하나씩 열리는 팬티들로  뜬 눈 송이 몇 점 다가와 곱게 물든다  쪼글쪼글한 꽃 속에서 맑은 꽃물이 똑똑 떨어진다  눈덩이만한 나프탈렌과 함께  서랍 속에서 수줍어하곤 했을  어머니의 오래 된 팬티 한 장  푸르스름한 살 냄새 속으로 햇볕이 포근히 엉겨 붙는다  .................  나무에게 --김경주  매미는 우표였다  번지 없는 굴참나무나 은사시나무의 귀퉁이에  붙어살던 한 장 한 장의 우표였다 그가  여름 내내 보내던 울음의 소인을  저 나무들은 다 받아 보았을까  네가 그늘로 한 시절을 섬기는 동안  여름은 가고 뚝뚝 떨어져 나갔을 때에야  매미는 곁에 잠시 살다간 더운  바람쯤으로 기억될 것이지만  그가 울고 간 세월이 알알이  숲 속에 적혀 있는 한 우리는 또  무엇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것이냐  모든 우표는 봉투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연이다  허나 나무여 여름을 다 발송해 버린  그 숲에서 너는 구겨진 한 통의 편지로  얼마나 오래 땅 속에 잠겨 있어 보았느냐  개미떼 올라오는 사연들만 돌보지 말고  그토록 너를 뜨겁게 흔들리게 했던 자리를  한번 돌아보아라 콸콸콸 지금쯤 네 몸에서  강이 되어 풀리고 있을  저 울음의 마디들을 너도 한번  뿌리까지 잡아 당겨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굳어지기 전까지 울음은 떨어지지 않는 법이란다  ..................  오래 전 나는 휘파람이었다-1바다로 가는 길 --김경주  휘파람은 바람 위에 띄우는 가늘고 긴 섬이다  외로운 이들은 휘파람을 잘 분다  나무가 있는 그림들을 보면 휘파람을 불어 흔들어 주고  도화지 끝에서 푸른 물소 떼를 불러오고 싶다  대륙을 건너오는 바람들도 한때는 누군가의 휘파람이었으리라  어느 유년에 내가 불었던 휘파람이 내 곁을 지금 스치는 것이리라  죽어 가는 사람 입 속에 휘파람을 불어넣어 주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죽은 사람의 입에 휘파람을 불어넣어 주면 나는 잠시 그에게 옮겨가는 것이다  내 휘파람에선 아카시아 냄새가 난다  유년을 향해 휘파람을 불면 꼭 그 냄새가 난다  자전거위에서 부는 휘파람이 내 학업이었다  헌책방에 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골방에 엎드려  그 책 속에 불어넣었던 휘파람이 숨쉬고 있다 이스트에 부풀린 빵처럼  비 오는 날이면 휘파람은 방안 가득 부풀어올라 천장을 꽉 채웠다  휘파람이 데리고 가는 길로 끝까지 가지 마라  절벽은 휘파람의 성지이다 벼랑끝에서 다친 말을 버리면  말은 조용히 눈을 감고 마지막 휘파람을 불면서 내려간다  갈매기들이 휘파람을 불면서 날아간다  등대가 부는 휘파람은 절해고도의 음역이라 흉내내기가 어렵다  그러나 고래나 물고기들은 그 휘파람소리를 듣고 그물을 피하고  스스로 바다로 걸어 들어간 사람들은  내내 이 등대의 휘파람을 들으며 잔다  바다로 가는 길에서 나는 가끔 아버지의 옛날 휘파람소리를 듣곤 했다  ....................  폭설, 민박, 편지 2 --김경주  낡은 목선들이 제 무게를  바람에 놓아주며 흔들리고 있다  벽지까지 파도냄새가 벤 민박집  마을의 불빛들은 바람에도 쉽게 부서져  저마다 얼어서 반짝인다  창문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연필심이 뜨거워지도록  편지지에 바다소리를 받아 적는다  어쩌다 편지지 귀퉁이에 조금씩 풀어 넣은 그림들은  모두 내가 꿈꾼 푸른 죄는 아니었는지  새 ·나무· 별· 그리고 눈  사람이 누구하고도 할 수 없는 약속 같은  그러한 것들을 한 몸에 품고 잠드는  머언 섬 속의 어둠은  밤늦도록 눈 안에 떠있는데  어느 별들이 물이 되어 내 눈에 고이는 것인가  바람이 불면 바다는 가까운 곳의 숲 소리를 끌어안고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그러나  나무의 속을 열고 나온 그늘은 얼지 않고  바다의 높이까지 출렁인다  비로소 스스로의 깊이까지 들어가  어두운 속을 헤쳐 제 속을 뒤집는 바다,  누구에게나 폭설 같은 눈동자는 있어  나의 죽음은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눈동자를 잃는 것일 테지  가장 먼 곳에 있는 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프고  눈 안을 떠다니던 눈동자들,  오래 그대의 눈 속을 헤매일 때 사랑이다  뜨거운 밥물처럼 수평선이 끓는가  칼날이 연필 속에서 벗겨내는 목재의 물결 물결  숲을 털고 온 차디찬 종소리들이  눈 안에서 떨고 있다  죽기 전 단 한번이라도 내 심장을 볼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심장을 상상만 하다가  죽는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언젠간 세상을 향한 내 푸른 적의에도  그처럼 낯선 비유가 찾아오리라는 것  폭설을 끊고 숲으로 들어가  하늘의 일부분이었던 눈들을 주워 먹다보면  황홀하게 얻어맞는 기분이란 걸 아느냐  해변에 세워둔 의자하나 눈발에 푹푹 묻혀가는 지금  바라보면 하늘을 적시는 갈매기  그 푸른 눈동자가 바다에 비쳐 온통 타고 있다는 것을  .................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김경주  내 우주에 오면 위험하다  나는 네게 내 빵을 들켰다  기껏해야 생은 자기피를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한 겨울 얼어붙은 어미의 젖꼭지를 물고 늘어지며  눈동자에 살이 천천히 오르고 있는 늑대  엄마 왜 우리는 자꾸 이 생에서 희박해져가요  내가 태어날 때 나는 너를 핥아주었단다  사랑하는 그녀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싶어요  네 음모로 네가 죽을 수도 있는 게 삶이란다  눈이 쏟아지면 앞발을 들어  인간의 방문을 수없이 두드리다가  아버지와 나는 같은 곳에 똥을 누게 되었단다  너와 누이들을 이곳에 물어다 나르는데  삼십년 동안 침을 흘렸단다 그 사이  아버지는 인간 곁에 가기 위해 발이 두 개나 잘려나갔다  엄마 내 우주는 끙끙 앓아요  매일 발자국 소리하나 내지 않고  그녀의 창문을 서성거려요  자기 이빨 부딪히는 소리에 잠이 깨는 짐승은  너뿐이 아니란다  얘야 네가 다 자라면 나는 네 곁에서 길을 잃고 싶구나  엄마..  시원(詩를 원하는)한 시인의 작품들           연두의 시제             마지막으로 그 방의 형광등 수명을 기록한다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는 건 손톱이 자라고 있다는 느낌과 동일한 거 저녁에 잠들 곳을 찾는 다는 건 머리칼과 구름은 같은 성분이라는 거 처음 눈물이라는 것을 가졌을 때는 시제를 이해한다는 느낌, 내가 지금껏 이해한 시제는 오한에 걸려 누워 있을 때마다 머리맡에 놓인 숲,한 사람이 죽으면 태어날 것 같던 구름     사람을 만나면 입술만을 기억하고 구름 색깔의 벌레를 모으던 소녀가 몰래 보여준 납작한 가슴과 가장 마지막에 보여주던 일기장 속의 화원 같은 것을 생각한다 그곳에는 처음도 끝도 없는 위로를 위해 처음 본 사람의 눈이 필요했고 자신의 수명을 모르는 꽃들만 살아남았다     오늘 중얼거리던 이 방은 내가 배운 적 없는 시제에서 피는 또 하나의 시제, 오늘 자신의 수명을 모르는 꽃은 내일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된다     구름은 어느 쪽이건 죽은 자의 머리칼 냄새가 나고 중국수정 속으로 들어간 무심한 눈 같은 어느 날     사람의 눈으로 들어온 시차가 구름의 수명을 위로한다             수치심       화장을 하기 시작하면서 절대 집에서 오줌을 누지 않던 누이는 태어나서 한 번도 자신의 성기를 보여 주지 않았다   독서실에서 각성제를 제조하며 누이는 자신의 눈을 비 웃는 데에만 학창 시절을 다 쓰고 수십 군데 약국을 돌아 다니며 조금씩 수면제를 구하는 누이는 한쪽 팔이 등 뒤 로 오그라들 때까지 식물을 고집한다   지금 여기로 그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하나의 주술보다 하나의 친절이 필요하다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으러 다니다가 골목에서 돈을 뜯기 고 돌아오던 날, 만삭으로 언덕길을 오르던 여자의 배를 이 유 없이 차고 싶었던 때   주먹을 피할 수 있을 때까지 땀 흘리던 복싱 도장에서 어느 날 피하기 위해선 끝까지 눈을 감지 않는 것보다, 상 대 눈에서 내 눈을 찾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 았을 때   누이의 산통을 지켜보며 뒤란에서 가죽 공은 어두워진 다 나는 집으로 상류하는 무덤을 믿지 않는다 곤충을 쫓 다가 미궁에 갇혀서 결국은 곤충의 먹이가 되는 종(種)이 있다 그런 설치류는 수치심 때문에 죽는다           그러니까 이 생애를 밀월로만 보자면     어느 날 죽은 새의 눈으로 따라가 본 이 항해를 예감으 로 인정한다면 나는 지금까지 만난 가운데 가장 기묘한 장 례를 치르는 중이다   구슬 놀이란 해가 지기 전 이 구멍에서 저 구멍으로 다 건너가야 끝이 난다 그건 저녁이 스스로의 예감과 나누던 스산한 밀월, 이를테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주웠던 이 어폰 속 누군가의 귀 냄새 같은   어느 날 죽은 새의 눈으로 깨어나 본 이 생애를 밀월로 만 인정한다면 나는 지금까지 만난 가운데 가장 선명한 신 체를 치르는 중이다   노을을 이 세상의 모든 소름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해 내가 인연을 소름이라고 불렀을 때는 태어나 내 눈을 닮은 것들을 처음으로 악의라고 불렀을 때 내가 인연을 처음으 로 악의 없이 나누던 때는 태어나기 며칠 전 눈을 떴다 감 았다 하면서 자신의 눈과 나누던 밀월 같은 거   그러니까 이 생애를 밀월로만 보자면 밀월이란 밤과 물 사이의 화법 같은 것이거나 길에서 주운 이어폰 속 누군가 의 귀 냄새를 발표하는 한 여름의 청탁 시 같은 것이거나 온종일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검을 자르는 바람 같은 것을 상상하는 일이다   어느 날 예감을 내가 지금까지 만난 가장 권태로운 생명 체라 불렀을 때, 그만 두 발을 지도 위에서 멈추고 스스로 만든 밤도 있었다   그 밤을 무수한 눈들과 나누던 밀월이라 부른다                 개명改名 ​ ​ ​   오래전 문득 개명을 하고 작명집을 나오는 사람의 표정이 궁금한 오후가 있었다   그때 저녁은 분필을 눕혀 어두운 칠판에 북북 흩어 놓던 새 떼 같은 거 그때 기별은 점집 무녀가 사람들이 버리고 간 이름들을 하나 하나 불러 보는 거   오래전 문득 가계(家系)에 없는 언어로 개명을 한 후 묵은 이름을 잊기 위해 그 이름을 옮기고 있을 때   어느 문장 속에 떠오르던 내 무덤도 있다 그러나 그 무덤의 이름은 끝내 생각나지 않는다 그 곡해를 내 피로 흩어진 한 짐승의 동요童謠라고 불렀을 때 그 문장은 자신의 이름을 떠난 한 짐승의 숲이 되었다   저녁에 흰 뼈가 드러나는 바람과 함께 나는 묻힐 것이다 수십 개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단 하나의 곡마단을 생각해 이 이름을 사용 하고 잠든 날엔 저녁 무렵에만 깨어나기로 하고, 이 이름을 잊은 날엔 저녁으로만 만들어진 물병을 뒤집어 놓고, 발등 에 그린 새의 피를 빼내다가 잠들기로 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해 본 저녁의 개명은 분필로 칠판에 북북 흩어 놓던 그 새 떼의 분진粉塵이 궁금해지는 거   아무도 모르는 조금씩 바닥에 가루로 흘러내린 그 시차의 이름을 이제 나는 쓸 것이다   나의 가계家系엔 내 피가 안 통하는 구름이 있다             바늘의 무렵          바늘을 삼킨 자는 자신의 혈관을 타고 흘러 다니는 바늘을 느끼면서 죽는 다고 하는데      한밤에 가지고 놀다가 이불솜으로 들어가 버린 얇은 바늘의 근황 같은 것 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끝내 이불 속으로 흘러간 바늘을 찾지 못한 채 가족은 그 이불을 덮고 잠 들었다      그 이불을 하나씩 떠나면서 다른 이불 안에 흘러 있는 무렵이 되었다    이불 안으로 꼬옥 들어간 바늘처럼 누워 있다고, 가족에게 근황 같은 것 도 이야기하고 싶은 때가 되었는데      아직까지 그 바늘을 아무도 찾지 못했다 생각하면 입이 안 떨어지는 가 혹이 있다      발설해서는 안 되는 비밀을 알게 되면, 사인死因을 찾아내지 못하도록 궁녀들은 바늘을 삼키고 죽어야 했다는 옛 서적을 뒤적거리며      한 개의 문(門)에서 바늘로 흘러와 이불만 옮기고 살고 있는 생을, 한 개 의 문(文)에서 나온 사인과 혼동하지 않기로 한다      이불 속에서 누군가 손을 꼭 쥐어 줄 때는  그게 누구의 손이라도 눈물이 난다  하나의 이불로만 일생을 살고 있는 삶으로 기꺼이 범람하는 바늘들 의 곡선을 예우한다          모래의 순장           모래는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여도 움직이고 있다 멈추어 있는 모래를 본 적이 없다 직경 0.8밀리미터의 이 사각의 유동이란 무섭도록 완강하고 부드러운 것이어서 몇만 년 동안 가만있는 것처럼 보여도 가장 밀도 높은 이동을 하고 있다 모래는 자신이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조차 관심이 없다 자신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는 유력으로 모든 체형을 흡수하고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간다 거미가 남겨 놓은 파리의 다리 하나까지도 노린다 모래가 지나간 곳에서는 무덤 냄새가 난다 모래 속으로 천천히 잠겨 들어간 손을 보면 부드러움이 얼마나 공포일 수 있는지 이처럼 달콤한 애무 앞에서 저항이란 인간이 이해할 수 없었던 가장 아름다운 예의일지 모른다 모래는 순장을 원하는 것은 아닐까 모래는 스스로의 무덤을 갖지 못해 다른 것들의 몸을 빌려 자신을 묻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만 년 전부터 떠돌고 있는 자신의 무덤을 찾기 위해 자신의 유랑 속으로 끝도 없이 다른 것들을 데려가는 것은 아닐까   한 번도 자신의 무덤을 가져 보지 못한 모래들이 무수한 무덤을 만들어 내는 노래는 무섭고 서글픈 동요에 가깝다   이 별은 그 모래들의 무덤들을 기록하는 시간들과 그 모래에 잠겨 허우적거리던 눈이 큰 곤충들로 구분된다 때로 기이한 문장에도 이런 알 수 없는 모래가 흐른다 문장 속으로 모래들이 차오르고 이윽고 두 눈이 모래 속으로 잠겨 들어간다 모래가 빠져나갈 때가 되면 모래의 신체로 변해가는 언어 속에서 몇만 년 전 자신의 눈이 되었어야 했을 생몰을 발굴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모래 속에 잠긴 손을 꺼내 이렇게 다시 쓴다   인간을 닮은 문장은 수의를 여러 번 바꾸었지만 모래를 닮은 문장은 모든 것들에게 스르르 수의를 입힌다   운이 좋으면 삶은, 수의를 입은 채 흘러가는 여러 개의 유역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문장은 차곡차곡 자신에게 흘러온 모든 언어들과 함께 순장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기이한 균형으로 나른하게… 사라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김경주 시인의 시집 중에서             재가 된 절     그는 법당의 천장을 기어다니며 웃는다 가진 책을 모두 태운 후 불상의 등을 안고 자기 시작했다   섬 위에 세워진 절 섬은 절 안에도 있다   밤마다 불상의 뜨거운 이마를 닦아주다가 가위로 자신의 입술을 조금씩 잘라내었다   -섬이 바다의 넓이를 가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가 섬의 깊이를 가두고 있었다   승려들의 눈이 산수유 열매보다 붉어져간다   얘야 네 아이란다 어머니가 늙은 노인을 데려왔다 두고 가세요 전 이제 잘 먹지 않지만요   아이를 안고 있는 보살*이 까맣게 타 옆으로 누워 있다 바람의 화인火印이 새겨진 숲 참붕어가 돌 속을 헤엄치는 소리   동승이 염불을 외는 불상의 입안으로 횃불을 집어넣었다   절이 느글느글 무너지기 시작한다   *태안지장보살. 양수에서 성장하는 태아의 영을 태아령이라고 부르며 태아령의 천도를 위한 보살님을 태안지장이라고 부른다.                       우주로 날아가는 방 1     ​   방을 밀며 나는 우주로 간다   땅속에 있던 지하 방들은 하나둘 풍선처럼 날아가기 시작하고 밤마다 우주의 바깥까지 날아가는 방은 외롭다 사람들아 배가 고프다   인간의 수많은 움막을 싣고 지구는 우주 속에 둥둥 날고 있다 그런 방에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편지를 쓰는 일은 자신의 분호을 밀랍하는 일이다 불씨가 제 정신을 떠돌며 떨고 있듯 북극의 냄새를 풍기며 입술을 떠나는 휘파람, 가슴에 몇천 평을 더 가꿀 수도 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들이, 이 세상을 희롱하는 방법은, 외로워 해주는 것이다   외롭다는 것은 바닥에 누워 두 눈의 음音을 듣는 일이다 제 몸의 음악을 이해하는데 걸리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외로움이란 한생을 이해하는데 걸리는 사랑이다 아버지는 병든 어머니를 평생 등 뒤에서만 안고 잤다 제정신으로 듣는 음악이란 없다   지구에서 떠올라온 그네 하나가 흘러다닌다 인간의 잠들이 우주를 떠다니는 동안 방에서 날아와 나는 그네를 탄다 내 눈 속의 아리아가 G선상을 떠다닐 때까지, 열을 가진 자만이 떠오를 수 있는 법 한 방울 한 방울 잠을 털며   밤이면 방을 밀고 나는 우주로 간다           먼생 -시간은 존재가 神과 갖는 관계인가*       골목 끝 노란색 헌옷 수거함에 오래 입던 옷이며 이불들을 구겨 넣고 돌아온다 곱게 접거나 개어 넣고 오지 못한 것이 걸린지라 돌아보니 언젠가 간장을 쏟았던 팔 한쪽이 녹슨 창문처럼 밖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어둠이 이 골목의 내외(內外)에도 쌓이면 어떤 그림자는 저 속을 뒤지며 타인의 온기를 이해하려 들 텐데 내가 타인의 눈에서 잠시 빌렸던 내부나 주머니처럼 자꾸 뒤집어보곤 하였던 시간 따위도 모두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 감추고 돌아와야 할 옷 몇 벌, 이불 몇 벌, 이 생을 지나는 동안 잠시 내 몸의 열을 입히는 것이다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종일 벽으로 돌아누워 있을 때에도 창문이 나를 한 장의 열로 깊게 덮고 살이 닿았던 자리마다 실밥들이 뜨고 부풀었다 내가 내려놓고 간 미색의 옷가지들, 내가 모르는 공간이 나에게 빌려주었던 시간으로 돌아와 다른 생을 윤리하고 있다   저녁의 타자들이 먼 생으로 붐비기 시작한다   *레미나스의 『시간과 타자』 중에서           폭설, 민박, 편지 1  -「죽음의 섬 Die Toteninsel」, 목판에 유채, 80×150㎝,1886 ​   주전자 속엔 파도소리들이 끓고 있었다 바다에 오래 소식 띄우지 못한 귀먹은 배들이 먼 곳의 물소리를 만지고 있었다 심해 속을 건너 오는 물고기 떼의 눈들이 꽁꽁 얼고 있구나 생각했다 등대의 먼 불빛들이 방 안에 엎질러지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푸른 멀미를 종이 위에 내려놓았다 목단 이불을 다리에 말고 편지片紙의 잠을 깨워나가기 시작했다 위독한 사생활들이 편지지의 옆구리에서 폭설이 되었다 쓰다 만 편지들이 불행해져갔다 빈 술병들처럼 차례로 그리운 것들이 쓰러지면 혼자서 폐선을 끽끽 흔들다가 돌아왔다 외로웠으므로 편지 몇 통 더 태웠다 바다는 화덕처럼 눈발에 다시 끓기 시작하고 방 안에 앉아 더운 수돗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면 몸은 핏속에서 눈물을 조용히 번식시켰다 이런 것이 아니었다 생각할수록 떼죽음 당하는 내면들, 불면은 몸속에 떠 있는 눈들이 꿈으로 내려가고 있는 건가 눈발은 마을의 불빛마저 하나씩 덮어가는데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 안 보인다는 혹성 곁에 아무도 모르는 무한無限을 그어주곤 하였다       목련木蓮     마루에 누워 자고 일어난다 12년 동안 자취自取 했다   삶이 영혼의 청중들이라고 생각한 이후 단 한 번만 사랑하고자 했으나 이 세상에 그늘로 자취하다가 간 나무와 인연을 맺는 일 또한 습하다 문득 목련은 그때 핀다   저 목련의 발가락들이 내 연인들을 기웃거렸다 이사 때마다 기차의 화물칸에 실어온 자전거처럼 나는 그 바람에 다시 접근한다 얼마나 많은 거미들이 나무의 성대에서 입을 벌리고 말라가고서야 꽃은 넘어오는 것인가 화상은 외상이 아니라 내상이다 문득 목련은 그때 보인다   이빨을 빨갛게 적시던 사랑이여 목련의 그늘이 너무 뜨거워서 우는가   나무에 목을 걸고 죽은 꽃을 본다 인질을 놓아주듯이 목련은 꽃잎의 목을 또 조용히 놓아준다 그늘이 비리다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내 우주에 오면 위험하다 나는 네게 내 빵을 들켰다   기껏해야 생은 자기 피를 어슬렁거리다가 가는 것이다   한겨울 얼어붙은 어미의 젖꼭지를 물고 늘어지며 눈동자에 살이 천천히 오르고 있는 늑대 엄마 왜 우리는 자꾸 이생에서 희박해져가요 내가 태어날 때 나는 너를 핥아주었단다 사랑하는 그녀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싶은걸요 네 음모로 네가 죽을 수도 있는 게 삶이란다 눈이 쏟아지면 앞발을 들어 인간의 방문을 수없이 두드리다가 아버지와 나는 같은 곳에 똥을 누게 되었단다 너와 누이들을 이곳에 물어다 나르는데 우리는 30년 동안 침을 흘렸다 그 사이 아버지는 인간 곁에 가기 위해 발이 두 개나 잘려나갔단다 엄마 내 우주는 끙끙 앓아요매일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녀의 창문을 서성거리는걸요 길 위에 피를 흘리고 다니지 마라 사람들은 네 피를 보고 발소리를 더 죽일 거다 알아요 이제 저는 불빛을 보고 달려들지 않는걸요자기 이빨 부딪치는 소리에 잠이 깨는 짐승은 너뿐이 아니란다   얘야, 네가 다 자라면 나는 네 곁에서 길을 잃고 싶구나             내 워크맨 속 갠지스         외로운 날엔 살을 만진다     내 몸의 내륙을 다 돌아다녀본 음악이 피부 속에 아직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열두 살이 되는 밤부터 라디오 속에 푸른 모닥불을 피운다 아주 사소한 바람에도 음악들은 꺼질 듯 꺼질 듯 흔들리지만 눅눅한 불빛을 흘리고 있는 낮은 스탠드 아래서 나는 지금 지구의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는 메아리 하나를 생각한다   나의 가장 반대편에서 날아오고 있는 영혼이라는 엽서 한 장을 기다린다     오늘 밤 불가능한 감수성에 대해서 말한 어느 예술가의 말을 떠올리며 스무 마리의 담배를 사오는 골목에서 나는 이 골목을 서성거리곤 했을 붓다의 찬 눈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고향을 기억해낼 수 없어 벽에 기대 떨곤 했을, 붓다의 속눈썹 하나가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나는 겨우 음악이 된다     나는 붓다의 수행 중 방랑을 가장 사랑했다 방랑이란 그런 것이다 쭈그려 앉아서 한 생을 떠는 것 사랑으로 가슴으로 무너지는 날에도 나는 깨어서 골방 속에 떨곤 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 눈은 강물 냄새가 난다     워크맨은 귓속에 몇천 년의 갠지스를 감고 돌리고 창틈으로 죽은 자들이 강물 속에서 꾸고 있는 꿈 냄새가 올라온다 혹은 그들이 살아서 미처 꾸지 못한 꿈 냄새가 도시의 창문마다 흘러내리고 있다 그런데 여관의 말뚝에 매인 산양은 왜 밤새 우는 것일까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표정 하나를 배우기 위해 산양은 그토록 많은 별자리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바바 게스트하우스 창턱에 걸터앉은 젊은 붓다가 비린 손가락을 물고 검은 물 안을 내려다보는 밤, 내 몸의 이역異域들은 울음들이었다고 쓰고 싶어지는 생이 있다 눈물은 눈 속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한 점 열이었다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어쩌면 박혀 있는 저 못은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깊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이쪽에서 보면 못은그냥 벽에 박혀 있는 것이지만벽 뒤의 어둠 한가운데서 보면내가 몇 세기가 지나도만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못은허공에 조용히 떠 있는 것이리라 바람이 벽에 스미면 못도 나무의 내연(內緣)을 간직한빈 가지처럼 허공의 희미함을 흔들고 있는 것인가 내가 그것을 알아본 건주머니 가득한 못을 내려놓고 간어느 낡은 여관의 일이다그리고 그 높은 여관방에서 나는 젖은 몸을 벗어두고빨간 거미 한 마리가입 밖으로 스르르 기어나올 때까지몸이 휘었다 못은 밤에 몰래 휜다는 것을 안다 사람은 울면서 비로소자기가 기르는 짐승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테레민을 위한 하나의 시놉시스(실체와 속성의 관점으로)         1.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사물   - 악기 테레민    2. 인물  안인희 : (남) 30.  직업 : 피아노 조율사.  그는 음악이면서 동시에 사람인 존재다. 전생에 음악이었지만 현세에 사람으로 다시 환생한다. 과거에 러시아 작곡가 아낙사고라스가 작곡했던 음악(테레민)이다.  따라서 이 극에서 음악으로 환생한 인희는 자아가 음악으로 이루어진 사람이다.   성스런 : (여) 26.  직업 : 피아노 연주자.  테레민을 만든 러시아 작곡가 아낙사고라스가 사랑했던 여자. 전생에도, 현세에도 피아노 연주자로 살아간다. 전생은 소냐였다. (동일인물.)     아낙사고라스 : (남) 48.  직업 : 전직 케이지비 출신 작곡가.  부인의 죽음을 계기로 케이지비 활동을 그만두고 작곡에 몰두한다. 자신의 제자이면서 피아노 연주자인 소냐를 사랑한 인물이자 인희의 전생이었던 음악을 작곡한 인물. 인희라는 자신의 음악을 깨우기 위해 자신은 현재에 인희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으로 환생한다. 진지하고 올곧으며 차분한 성격이다.   성애런 : (여) 29.  청각 장애인. 스런의 언니.  음악의 소리를 듣지는 못하지만 음악의 영혼을 들을 수 있는 인물. 이 극에서 그녀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다. 그녀의 눈은 음이 가지고 있는 음역을 바라보는 것처럼 하얗다. 어느 날 인희의 영혼이 음악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아보게 된다.   3. 작의(作意)와 극의 주요 모티프   - 인연에 대한 새로운 실체와 속성    전생과 환생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일테면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거나 사람이 어떤 생물로 태어난다는 자연발생적 환생론이 아니라 사람이 음악으로 태어날 수 있고 음악이 사람으로 다시 환생할 수 있다는. 일종의 중세의 후생설이다. 스피노자식으로 말하면 모든 것을 신에 대한 목적론적으로.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의인화된 편견을 버린다면 '실체'가 보인다. 칸트는 인간의 정신은 형이상학적인 소질을 타고났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성은 초월에 대한 경험 근거를 가지려고 한다고 보았다. 그 욕구를 그는 다만 오성과 확연히 분리하고 싶어할 뿐 자신의 생에선 다루고 싶어 하지 않았다. 형이상학은 그의 거주지였지만 그가 이성으로 세운 건축술은 테레민을 놓쳤다. 이 극에서 나는 그것을 쓴다.     이 극에서 작곡가 아낙사고라스는 사랑하는 한 여인을 위해 자신이 만들었던 음악을 사람으로 환생하게 하여 이루지 못한 사랑을 후생에 이루려 한다. 자신의 자아를 음악에 부여하며 살아간다.(이것은 칸트의 후생 체계를 환유한다.)*  즉 자신의 음악을 영원 속에 봉인하고 주술을 걸어 후일 자신의 음악으로 하여금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를 다시 사랑하게 한다.   4. 내러티브   - 프롤로그   - 자궁을 다녀온 손  전운이 감도는 황량한 모스크바 목조 가옥,  구름 속에 스며 있던 바람이 흘러나온다  바람 속에 창이 생긴다  방 안에서 아낙사고라스가 테레민을 연주하고 있다.  그의 눈이 구름의 속처럼 어둡다  테레민의 질서 속으로 서서히 들어가는 어두운 손이 늙기 시작한다.  공간 속을 다녀올 때마다 손은 점점 말라간다  뼈를 쥐고 있던 살들이 주름지고 살 안에 스며 있던 뼈가 하얗게 드러난다  음악을 남겨놓고 먼 곳을 다녀온 손이 주술을 끝낸 듯 푸른 연기에 싸여 있다    음악 속의 음악  인희는 스런을 만나 인연이 되고 사랑을 하게 된다. 피아노 조율사와 피아노 연주자 사이로 만나는 둘. 인희는 자신이 지금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음악 속의 음악 같은, 무언가 알 수 없는 다른 음악(자신의 전생인 테레민)이 떠오르지만 인희는 그것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음악이 흘러나올 때마다 마치 하나의 음악이 다른 하나의 음악을 부르는 듯하다.인희와 스런의 사랑은 점점 깊어가지만 둘 사이를 음악(아낙사고라스)은 질투가 흐르듯 바라본다. 인희와 스런과 음악 셋 사이에 알 수 없는 묘한 삼각관계가 점점 음악의 분위기와 함께 형성되고 스런의 언니 애런만이 그 서글픈 느낌을 감지하게 되는데......   어느 날 애런(스런의 언니)은 우연히 인희와 함께 있던 중 인희에게서 떠오르던 알 수 없는 음악의 선율을 흥얼거린다. 그리고 인희는 그 음악이 러시아에서 작곡된 하나의 음악이란 걸 알게 되고 일과 함께 모스크바로 떠난다. 모스크바의 한 허름한 저택에서 기억 속에서만 맴돌던 실제 음악을 듣게 되는 인희. 전생의 조각을 하나씩 되찾아가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부터는 서글프게 스런을 대하게 된다. 이때부터 극은 과거(러시아)와 현재(서울)가 서서히 교차되다가 과거(러시아)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열정  전직 KGB 출신의 음악가인 아낙사고라스는 첩보 활동으로 동구 유럽에 가 있던 중 부인의 임종을 듣게 된다. 부인의 죽음에 모든 것에 회의를 느낀 그, 일을 그만두고 한 저택에 숨어들어 음악에만 전념한다. 그가 작곡한 피아노 소품들을 연주하는 제자인 피아니스트 소냐. 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소냐에 대한 열정을 감추고 있던 아낙사고라스는 서서히 소냐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소냐는 아낙사고라스를 사랑하지 않고 다만 그를 존경할 뿐이다.    광기  인희는 전생의 비밀을 스런에게 들려준다. 스런과 함께 과거에 자신이었던 음악을 듣는 인희, 그리고 이들 주변을 떠도는 듯한 음악이 된 아낙사고라스. 전혀 만져본 적도 없던 테레민을 연주하게 되는 스런. 그러나 아낙사고라스의 광기가 가진 무서운 사랑을 알고 있는 스런의 언니 애런은 음악의 영혼들로부터 이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무서운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 주술  황량한 모스크바 목조 가옥. 창 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아낙사고라스는 지친 듯 낡은 소파에 앉아 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냐. 구름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새로운 음악을 작곡했소."그는 평상시처럼 피아노로 가지 않고 테레민 위에 손을 댄다.   "당신을 위해." 이윽고 아낙사고라스는 테레민의 음역 속으로 서서히 손을 집어넣는다. 늙은 손과 젊은 손이 시간의 질서를 휘저으며 흐른다  음악은 소냐의 몸으로 다가가 그녀의 몸 안에 공간을 만들기 시작한다 마치 아낙사고라스는 그 공간에 테마처럼 누워 있는 듯하다.  눈물을 흘리는 소냐. "왜 그러세요."  "우리가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요?"  그는 눈을 감고 자신의 음악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연다.   "다음 세상에서 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거라."      연민  이 부분은 피코 델라 만돌라(1463~1494)의 문서,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의 한 구절을 빌려서 상상해보고자 한다.  아담아 우리는 너에게 정해진 자리나 독특한 겉모습이나 유별난 재주를 주지 않았다 너는 네 자리와 겉모습과 재주를 네가 소원하고 판단하는 대로 선택하여야 한다 너는 어떤 제한을 받지 않을뿐더러 너의 본성은 너의 뜻에 맡겨두었다 네 자신이 그것을 정해야 한다 나는 너를 세계의 중앙에 두나니 네 주변을 둘러볼 때 세계에 무엇이 있는가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너를 하늘의 존재나 땅의 존재나 죽을 존재나 죽지 않을 존재로 만들지 않았다 너는 네 스스로 선택한 모습대로 너 자신을 만들어가는 조형자요 창조주가 되는 자유와 영예를 누릴 것이다 너는 네 자신을 비천하게 만들어 짐승이 될 수도 있고 네가 원한다면 더 고귀한 영적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그 생에도 내가 이루지 못한 사랑이 있을 테니. 내가 음악이 되어 너를 깨울 것이다."         *후생체계 : (이성만이 '조직'과 '체계'의 원리이며 주체이므로 현상계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지만 가상계는 사유할 수는 있되 우리가 인식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대상의 형식적 근거일 뿐이지 질료로서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질료로서의 근거는 신의 몫이다. 따라서 그러한 것들은 후생 체계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체계의 가능성과 능력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나는 관념론 시험 답안지에 썼지만 칸트가 말한 시간의 개념을 떠올려보자. 시간은 경험에 근거해서만 작용할 수 있다. 즉 내가 경험하지 않을 때 시간이라는 것은 작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지 이 말은 시적이다. 왜냐면 스피노자의 유일 실체 개념이나 그것에서 운동과 이율배반(안토노미)을 본 헤겔의 칸트를 넘고자 했던 시간의 의지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간이 이성의 경험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을 끝까지 부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극은 그 지점에 대한 나의 이율배반이다.           고등어 울음소리를 듣다       깊은 곳에서 자란 살들은 차다  고등어를 굽다 보면 제일 먼저 고등어의 입이 벌어진다 아...... 하고 벌어진다 주룩주룩 입에서 검은 허구들이 흘러나온다 찬 총알 하나가 불 속에서 울고 있듯이 몸 안의 해저를 천천히 쏟아낸다 등뼈가 불을 부풀리다가 녹아내린다  토막을 썰어놓고 둘러앉아 보라색들이 밥을 먹는다  뼈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운 후 입 안의 비린내를 품고 잠든다  이불 밖으로 머리를 내놓고 보라색 입을 쩝쩝거린다  어머니 지느러미로 바닥을 치며 등뼈를 세우고 있다 침 좀 그만 흘리세요 어머니 얘야 널 생각하면 눈을 제대로 못 감겠구나 옆구리가 벌어지면서 보라색 욕창이 흘러나온다 어머니 더 이상 혀가 가라앉았다가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어머니 몸에 물을 뿌려주며 혀가 가슴으로 헤엄쳐가는 언어 하나를 찾았다 생이 꼬리를 보여줄 때 나는 몸을 잘랐다  심해 속에 가라앉아 어머니 조용히 보라색 공기를 뱉고 있다 고등어가 울고 있다           구름의 조도照度         구멍가게는 매일 밤 마지막으로 양초를 판다 눈먼 안마사가 구석에서 면도날을 고르고 있다 일기예보를 보면서 주인은 유통 기한이 지난 통조림을 까먹는다 그렇지만 면도날은 유통 기한이 없지요 지나치게 날이 센 알들은 위험한 법입니다     오리들이 죽은 시궁쥐들을 물고 하수구 구멍으로 들어간다 하수구에서 방 안의 날씨들이 눈병처럼 흘러나온다 이 동네를 마지막으로 돌아야겠군     용달차 뒤칸에서 키 작은 여인들이 생선을 뒤적거린다 생선을 좀 더 싱싱하게 보이려고 사내는 주머니에서 마지막 남은 전구를 꺼내 갈아주면서 보았다     나무의 그림자가 조금씩 길어지는 것으로 보아 곧 밤이 온다는 것을 목이 없는 마론인형을 안고 있는 아이가 아까부터 멍하게 바라보는 하늘을 자신도 오늘 몇십 번은 올려다본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 하늘에서 푸른 비린내가 흘러내리고 있는 지금, 저 아이는 한번 이곳을 떠나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형의 얼굴은 어디로 간 것일까? 어쩌면 저 아이가 부엌칼로 웃고 있는 인형의 목을 잘라버렸는지도     사내가 도량을 향해 담뱃불을 툭 던진다 부엌에 알을 낳은 새들이 조금씩 알을 쪼아 먹는다     구름의 조도照度가 짙어지고 있다               드라이 아이스  -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목숨으로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문득 어머니의 필체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고향과 나 사이의 시간이 위독함을 12월의 창문으로부터 느낀다 낭만은 그런 것이다 이번 생은 내내 불편 할 것 골목 끝 슈퍼마켓 냉장고에 고개를 넣고 냉동식품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만져버린 드라이아이스 한 조각, 결빙의 시간들이 피부에 타 붙는다 저렇게 차게 살다가 뜨거운 먼지로 사라지는 삶이라는 것이 끝내 부정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손끝에 닿는 그 짧은 순간에 내 적막한 열망보다 순도 높은 저 시간이 내 몸에 뿌리내렸던 시간들을 살아버렸기 때문일까 온몸의 열을 다 빼앗긴 것처럼 진저리친다 내 안의 야경夜景을 다 보여줘 버린 듯 수은의 눈빛으로 골목에서 나는 잠시 빛난다 나는 내가 살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순교 할 것이다 달 사이로 진흙 같은 바람이 지나가고 천천히 오늘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 공기들이 동상을 입은 채 집집마다 흘러들어 가고 있다 귀신처럼   * 고대 시인 침연의 시 한 구절.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 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네 그 속에서 하늘하늘한 팬티 한 장 어머니 볼에 문질러 보네 안감이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 하는 무늬였음을 오늘은 그 적멸이 내 볼에 어리네 어머니 몸소 세월로 증명했듯 삶은, 팬티를 다시 입고 시작하는 순간순간이었네 사람들이 아무리 만지작거려도 팬티들은 싱싱했네 웬만해선 팬티 속 이 꽃들은 시들지 않았네 빨랫줄에 하나씩 열리는 팬티들로 뜬 눈송이 몇 점 다가와 물드네 쪼글쪼글한 꽃 속에서 꽃물이 똑똑 떨어지네 눈덩이만한 나프탈렌과 함께 서랍 속에서 일생을 수줍어하곤 했을 어머니의 오래된 팬티 한 장 푸르스름한 살 냄새 속으로 그 드물고 정하다는* 햇볕이 포근히 엉겨 붙나니 ​*백석의 시 중에서           아버지의 귀두   아무도 없는 놀이공원의 아침, 아버지가 혼자 공중에서 빙빙 도는 놀이기구를 타면서 손을 흔든다 아들아 인생이 왜 이러니 …… *     어느 날 아버지의 귀두가 내 것보다 작아졌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와 장난감 트럭을 들고 목욕탕에 가지 않고 나는 더 이상 아버지와 악어 벨트를 허리에 차고 밖에 나갈 수 없고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속주머니를 뒤져 오락실에 갈 수도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 30년 넘게 혼자 목욕탕에 가시고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 복권의 숫자를 고민하며 혼자 씩 웃는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 나와 같은 THIS를 산다   돗자리에 누워서 잠드신 아버지의 팬티 사이로 누름한 불알 두 쪽이 바닥에 흘러나온 것을 본다 자궁이 넓은 나무와 자고 돌아와 나는 누런 잎을 피웠다 잠든 내 옆으로 와 아버지가 귀뚜라미처럼 조용히 누웠다 나는 문득 자다가 일어나 삐져나온 아버지의 귀두가 저렇게 작았나 하는 생각에 움찔했다 귀두라는 것이 노려볼수록 자꾸 작아지는 것인가 귀두란 그런 게 아니지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민항기의 대가리처럼 푸르르 가열될 텐데 아버지와 나는 귀두가 닮은 나무, 한쪽으로만 일어서고 한쪽으로만 쓰러져서 잠드는, 축 늘어진 아버지의 THIS를 잡고 웃는다 씨벌 아비야 우리는 슬픈 귀두인 게지 죽은 귀두를 건드리면 뭐하니? 그런 생각 끝에 나는 튼튼 우유를 하나 사 가지고 와 잠드신 아버지 옆에 살짝 놓아드렸다   양쪽으로 여십시오/or 반대편으로 여십시오/     *인디밴드 아마추어증폭기 노래 가사를 변용.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이 말을 타고 모든 음악의 출생지로 가볼 수는 없을까     오늘 밤은 취한 말들만 생각하기로 한다 잠든 말들을 깨워서 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술을 먹인다 구유를 당겨 물 안에 차가운 술을 부어준다 무시무시한 바람과 산맥이 있는 국경을 넘기 위해 나는 말의 잔등을 쓸어주며 시간의 체위體位를 바라본다 암환자들이 새벽에 병실을 빠져나와 수돗가에서 고개를 박은 채 엉덩이를 들고 물을 마시듯 갈증은, 이미지 하나 육체로 무시무시하게 넘어오는 거다   말들이 거품을 뱉어내며 고원을 넘는다 눈 속에 빨간 김이 피어오른다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취한 말들이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이 말들의 고삐를 놓치면 전속력으로 취해버릴 것을 알기에 나는 잠시 설원 위에 나의 말을 눕힌다 말들이 뱃살에 머리를 베고 (우리는 몇 가지 호흡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둥둥둥 북을 울리듯 고동치는 말의 염통! 말의 배 안에서 또 다른 개인들이 숨 쉬는 소리 들여오는 것이다 밤하늘, 동굴의 내벽에서 들려오는 바람의 연령 나를 조금씩 인용하고 있는 이 침묵은 바닥에 널브러진 말들의 독해처럼 나에게 있는 또 하나의 육체,이미지인 것이다 나는 말의 등에서 몇 개의 짐들을 떼어내준다   말들이 다시 눈 덮인 고비 사막을 넘기 시작한다 그중엔 터벅터벅 내가 아는 말들도 있고 터벅터벅 내가 모르는 말들도 있다 그렇지만 오늘 밤엔 취한 말들만 생각하기로 한다 음악 속으로 날아가는 태어날 때부터 바퀴가 없는 비행기랄지 본능으로 초행을 떠난 內感 같은 거, 말이 비틀거리고 쓰러져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분만을 시작하려는 것인지 의식을 향해 말은 제 깊은 성기를 꺼낸다 기미機微란 얼마나 육체의 슬픈 메아리던가   그 사랑은 인간에게 갇힌 세계였다               -김경주 시인의 시집중에서               기담奇談       지도를 태운다 묻혀 있던 지진은 모두,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태어나고 나서야 다시 꾸게 되는 태몽이 있다 그 잠을 이식한 화술은 내 무덤이 될까   방에 앉아 이상한 줄을 통하는 인형人形을 본다   지상으로 흘러와 자신의 태몽으로 천천히 떠가는   인간에겐 자신의 태내로 기어 들어가서야 다시 흐를 수 있는 피가 있다             우리들의 변성기   ​ ​ ​ 혁명가들은 모두 여기서 기록으로 떠났다 기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곳은 당과(糖菓)로 기어가는 벌레들이 자라지 않는 곳이라 했다 ​ 안개꽃이 들어 올리는 새벽의 맨발 냄새를 기억하며 나는 사람들에게 기록이 있는 곳을 묻는다 기록이 사는 곳엔 몇 가지 혈청이 몰래 운반된다고 했다 ​ 사람들은 다투어서 짐을 싸고 기록으로 떠난다 기록이 어디인지 모르고 움직이는 기록이 있고 기록을 묻기 위해 모래시계 속 새벽으로 간다고 하는 자도 있다 ​ 기록에 관한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기록은 하등 세계의 수조이거나 옆길로 새버린 물고기, 침니를 가득 머금고 일시적으로 급류로 흘러버린 동물의 기름기, 진흙층을 파헤치는 입가의 촉수거나 패턴과 왜곡의 친화, 종잡을 수 없는 지혜의 변덕 그러고 나면 언젠가 다시 '장난감 자동차에 여행 가방을 넣고 식탁 밑으로 떠난*' 여행이 보인다는 것이다 ​ 기록으로 가면 몇 달 후 콧속이 붉은 아이를 업고 나타날 수도 있어 기록으로 가면 우린 은밀한 윤곽을 나누어 가지고 살 수도 있지 ​ 나의 기록은 고아들의 무덤이 있는 곳에 와 있다 그대가 이해할 수 없는 탈골, 밤마다 그곳으로 불어오는 식물원 기록은 흔들리고 살기에 참 좋은 무덤이다 ​ ​ ​ * 어니스 모쥬가니의 시 중에서. ​ ​ ​       연필의 간     연필 속에서 간이 흘러나온다   간 속의 노란 돌가루들 ​ ​ ​ ​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란 돌가루   연필 속에서 탄광이 쏟아져 나온다 탄광을 말려서 간을 빚는 자, 시를 쓴다 해골이 물고 있는 꽃잎 혈액이 돌아오는 시간   연필은 잡념의 생식기 푸른 먼지 하나 허리를 흔들며 사라져가고 헐리고 있는 촛불 그 안에 번식 중인 빨간 간들 문어처럼 미궁을 많이 알지도 못해서 연필은 대가리를 디밀며 해저를 뒤집고 다닌다   연필을 두 쪽으로 쫙 갈라내어 간을 본다 이끼가 자라고 있는 해, 보도블록에 떨어진 혀들, 입속으로 퇴근하는 머리칼, 어항 속으로 들어가 웃는 쥐, 구름과 구름 사이 희미한 돌가루들, 아픈 배, 죽어서 일어나 강낭콩을 먹는 비둘기, 저녁을 빗방울 속으로 밀어 올리는 맥박들, 구슬,구슬 속을 흘러 다니는 허공   그건 간의 색인데 그믐을 그리는 건 간의 색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간의 색을 전부 지우는 일이었다고   더 천해져야 한다 이것저것 간間을 보면서              당신의 눈 속엔 내 멀미가 산다          벽 틈으로 들어간 달팽이가 사흘이 지나도  밖으로 나오지 않을 때  벽에서 일어나는 붉은 비린내를  빛을 외로워한 그 달팽이가  안에서 혀를 깨물고 있을 것 같다고 여길 때  물기의 층을 거쳐 태어난 목젖이 자기 음악을 알아보고  집 안에 뜨거운 물을 받아 놓을 때    옥상의 노란 정화조 탱크 속에  지친 새 한 마리 눈을 감고 떠 있을 때,  구슬처럼 행불이 된 연인을 찾아  투명한 뼈를 가진 벌레들을 가방에 모으며 여행할 때  남몰래 아주 긴 피로 별자리를 물들이고  너무나 많은 달걀 안의 수도를 알고 있지만  방에 귀만 넣어두고 자야 할 때    오래된 미라의 귓속에 가만히 내 귀를 대어보았을 때    내 귓속의 죽을 당신에게 다 흘려준다고 생각했을 때  오래 비운 집에 돌아와보니 집이 헐리고 있을 때  구멍 속에서 고운 가루가 된 달팽이를 발견하고  목으로 인어들이 우루룩 밀려올 때    유리에 금이 오른다  번지는 일로만 여러 번  당신의 손가락을 물고 잠들고 싶었는데    그대를 더 연하게 만드는 여행들         쇄골이 닮은 가계家係 -여섯개의 종         이제 부터 내가 쓸 소설小說은 이야기를 써내려가면서 동시에 이야기의 끝을 지워가는 거야 아직은 만지지 마 지금은 구름이 지저분한 물을 흘리는 시간이니까 종鍾 속으로 들어간 구름은 물에서 실패한 자들이 육肉에서 떨고 있는 쪽으로, 종 밖으로 나온 구름은 흐르는 면에서 누운 선으로      구름이 지저분한 물을 흘리면 폴라로이드는 노을과 종에 물기를 많이 담을 수 있어 좋았다 나는 그곳을 각오하고 지나간다      멀리서 바라보면 기다리는 자들의 눈동자로 어두운 골목의 환충이 환하게 울렁이던 밤, 우리는 촛농을 향해 소리 질렀고 매일 밤 아무도 살지 않는 종 속으로 들어가 흔들린다      우리는 모두 그곳에서 서로의 일기를 대신 써주었어 잠은 몸속의 저수지들이 제 수위를 흔드는 것에 불과해 시간이 되면 우리는 그곳으로 내려가 가라앉힌 종을 꺼내 들고 어두운 비둘기처럼 절뚝거려야 해 우리는 모두 한 번씩은 그 방에서 돌아누우며 쇄골에 고인 물을 반대쪽으로 흘려주곤 했지      아버지가 입선하지 못한 그림 중 하나는 임신 중姙娠中이던 신의 배에서 들리던 종소리를 그렸던 일이다 한 골목과 한 고압선高壓線에 연결된 종이 당신의 몸을 건너가고 있다는 걸 알아 지금은 구름이 지저분한 물을 흘리는 시간이니까      어미가 여행을 시작하면 네 몸속에 불을 다 꺼놓고 돌아올 거야 넌 모를 거다 지평선 아래서 마른 물고기로 식사를 하는 동안 우리의 식탁은 소설小雪에 물들고 식탁이 젖는 동안 우리는 종이 위에 입술을 그리고 종소리를 꺼낸다         주저흔       몇 세기 전 지층이 발견되었다   그는 지층에 묻혀 있던 짐승의 울음소리를 조심히 벗겨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발굴된 화석의 연대기를 물었고 다투어서 생몰 연대를 찾았다 그는 다시 몇 세기 전 돌 속으로 스민 빗방울을 조금씩 긁어내면서 자꾸만 캄캄한 동굴 속에서 자신이 흐느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굴 밖에선 횃불이 마구 날아들었고 눈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을 오래 가진 돌들은 역한 냄새를 풍기는 법인데 그것은 돌 속으로 들어간 몇 세기 전 바람과 빛 덩이들이 곤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썩지 못하고 땅이 뒤집어져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일 시간에 귀속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서로 전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화석의 내부에서 빗방울과 햇빛과 바람을 다 빼내면 이 화석은 죽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어머니와 나는 같은 피를 나누어 가진 것이 아니라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김경주 시인의 시집  중에서        너무 오래된 이별     불 피운 흔적이 남아 있는 숲이 좋다 햇볕에 그을린 거미들 냄새가   부스러기가 많은 풀이 좋다 화석은 인정이 많아 텅 빈 시간에만 나타난다 그 속에 누군가 잠시 피운  불은 수척하다   네가 두고 간 운동화 속에 심은 벤자민이 좋다 눈을 뜨면 나는 커다란 항아리로 들어가 구르다가 언제나 언덕 앞에서 멈춘다   고요로 가득한, 그러나 텅 빈 내 어미語尾들이 좋다 벽지 속에 사는 기린의 목처럼    철봉에 희미하게 남은 손가락 자국이, 악력이 스르르 빠져나가던 침묵이 좋다 내가 어두운 운동장이라서 너는 엄지를 가만히 내 입속에 넣어주었다         비어들     거울 앞에서 입을 벌린다 입안은 저승이다   저승은 거울 속에 있다   입을 벌리고 우두커니 거울 앞에 서 있는 그는 잠시 저승을 엿본다   오직 그의 한 눈만이 입안의 저승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한 눈은 아직 이쪽에 있으므로 저승의 언어는 입안에 있다   입을 닫으면 저승은 닫힌다   지금 저승은 저곳의 세계가 아니라 이곳의 언어다   거울은 우리에게 저승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물성이다 우리의 눈은 거울 속 입으로 걸어가는 이승의 언어다   언어가 피해갈 수 없는 저승은 그 사람의 입안에 있다 침묵처럼           한밤의 형광펜          자음은 금방 고독해진다 노랑은 내 마음으로 지쳐가도 좋아 새가 죽으면 부리가 가장 먼저 파랗게 변해가는 것처럼, 물속의 자기 코를 들여다보면 오늘밤엔 물속에서도 코로 숨 쉰다는 해마처럼 잠들 수 있어 입술을 조금 지우고, 어린 시절 가족의 종아리 모양을 떠올려본다 새로운 단어를 발명했어 이 세상에서 가장 긴 선로를 놓는 철로공의 망치 소리들, 모음들을, 우리의 세계는 밑줄을 긋고 그 위를 산책하는 자들의 세계, 빈손으로 사로잡은 모기 몸 전체에 형광펜을 칠해주고 날려주듯이, 불화여! 가슴뼈여! 안부여! 캄캄하게 오시라 내 시는 비눗방울 속에 세 내어주기             햇볕에 살이 지나가네     나에겐 당신이 좋아하는 바다표범의 가죽이 있다 언젠가 나는 바다표범을 보러 갈 것이다 빙하 위에 앉아 앞발을 베고 누운 바다표범처럼 길고 느린 하품을 하러 갈 것이다 봉우리가 아닌 심해어들의 이름을 외우며 쓸쓸한 날 까만 살을 가진 너처럼 달은 물을 머금으면 더 희다 느리게 흘러가다 나는 새 떼에 번졌다 너를 기다리며 작은 빙산에 올라 날아온 갈매기를 입속에 넣어 재울 것이다 햇볕에 살이 지나갈 때까지     -김경주 시인의 시집 중에서                       꽃 피는 공중전화 ​ ​   퇴근한 여공들 다닥다닥 세워 둔 차디찬 자전거 열쇠 풀고 있다 창 밖으로 흰쌀 같은 함박눈이 내리면 야근 중인 가발 공장 여공들은 틈만 나면 담을 뛰어넘어 공중전화로 달려간다 수첩 속 눈송이 하나씩 꾹꾹 누른다 치열齒列이 고르지 못한 이빨일수록 환하게 출렁이고 조립식 벽 틈으로 스며 들어온 바람 흐린 백열등 속에도 눈은 수북이 쌓인다 오래 된 번호의 순들을 툭툭 털어 수화기에 언 귀를 바짝 갖다 대면 손톱처럼 앗! 하고 잘려 나 갔던 첫사랑이며 서랍 속 손수건에 싸둔 어머니의 보청기까지 수화기를 타고 전해 오는 또박또박한 신호음 가슴에 고스란히 박혀 들어온다 작업반장 장씨가 챙챙 골목마다 체인 소리를 피워 놓고 사라지면 여공들은 흰 면 장갑 벗는다 시린 손끝에 보푸라기 일어나 있다 상처가 지나간 자리마다 뿌리내린 실밥들 삐뚤삐뚤하다 졸린 눈빛이 심다만 수북한 머리칼 위로 뿌옇다 밤새도록 미싱 아래서 가위, 바위, 보 순서를 정한 통화 한 송이씩 피었다 진다 라디오의 잡음이 싱싱하다      
649    우리 詩의 문제점 댓글:  조회:4363  추천:0  2015-07-20
[ 2015년 07월 21일 09시 23분 ]     (미국 버클리주에서 산림화재로 인한 벌목계획제정을 반대하는 라체시위)     지금 우리 시 무엇이 문제인가   권혁웅(시인, 문학평론가)   어슷비슷한 시, 상투적인 시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신춘문예 제도에서 보듯이 공식과 전형으로 만들어진 타락한 미의 형식, 키치에 가까운 시가 판을 치고 있다. 진정한 미학에서는 중심과 주변이 뒤집혀 있다. 안팎을 뒤집은 영역이 미의 영역이다. 미학에서 주류란 대개는 전복의 대상이고 아주 잠깐 동안은 전복의 결과다. 전위란 앞서 있는 게 아니라 밀려나 있는 것이다.    우리 시의 중심이 서정시에 있다는 것은 계량적인 진실이며, 우리 시의 주변이 서정시 일색이라는 것은 균질적인 진실이다. 안팎을 뒤섞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팎이 존재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미학의 비유적 실체는 소라고둥이다. 그것은 소용돌이처럼 혼란스럽지만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거칠게 튀어나가서는 덧없이 사라지는 거품이 늘 더 많은 법이다.    우리는 이 거품의 족보를 알지 못한다. 시에 실험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순간, 시는 실패와 좌절을 제 안에 아로새긴다. 현대성과 감상성을 통합하려 했던 박인환이 실패했고, 지적인 조작으로 해학을 실험했던 송욱이 좌절했다. 그러나 그 원심력을 통해서만 미학은 제 영역을 넓혀나간다. 시도의 방법은 시행착오일 수밖에 없다. 없는 중심에서 배회하지 말고 있는 힘껏 박차고 나가야 한다. 가장 높은 데서 시도한 번지점프가, 가장 먼 반탄력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실험만이 중심으로 돌아온다.    실험에 성공한 시들이 새로운 서정을 만든다. 멀게는 기하학과 수학으로 욕망을 설명한 이상이 그랬고, 가깝게는 중얼거림과 중언부언으로 운율을 만든 김수영과 중성적인 문체에 개인의 발언을 싣고자 했던 김춘수가 그랬다.    그것은 완성된 시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그것을 비스듬히 횡단하는 일, 거기에서 새로운 미의 곡선이 그려진다. 그 선은 늘 모자라거나 넘치지만, 그 자리가 비너스를 낳은 조개껍질이 놓인 곳이다.    누가 횡단했는가? 가령 80년대에는 허물어진 가족으로 사회를 축약한 이성복이 있었고, 허물어진 몸과 언어를 들여다본 황지우가 있었고, 의식으로 무의식의 저 아래를 탐색한 박남철이 있었고, 격렬한 발언을 하는 소심한 화자를 내세운 장석주가 있었고, 공적인 언어를 극한까지 밀고 갔던 김남주와 백무산이 있었고, 시에 악보를 그려 넣은 박태일이 있었고, 서술적 상상의 지도를 그려 보인 김혜순이 있었고, 들끓는 자의식을 가장 단순한 명제로 요약했던 최승자가 있었고, 物과 物物과 헛것을 이야기한 최승호가 있었다. 그 다음 시기에는 정교한 언어 세공사인 송재학이 있었고, 대중적 감성을 파토스로 삼은 유하가 있었고, 일상의 해부학자인 김기택이 있었고, 物主의 서정을 적어간 기형도가 있었고, 시의 에스페란토어를 썼던 장정일이 있었다.    대가들의 횡단 역시 그치지 않았다. 장려한 정신의 인공 낙원을 건축한 조정권이 있었고, 날것으로 사물을 채집한 오규원이 있었고, 극서정의 영역을 선회한 황동규가 있었고, 한국인의 족보를 작성하려했던 고은이 있었고, 아득하고 막막한 그리움 저편을 호명한 김명이 있었고, 담시와 대설의 시인 김지하가 있었고, 바다 저편에서 시의 몸을 대신 보내어 살게 한 마종기가 있었다.    실험의 결과가 괴물이라는 것은, 실험 이후에나 이전에나 우리가 그 결과물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걸 암시한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비너스는 모두 전 시대의 추물이었다. 미적 성과에 우리가 동의하기 어려운 많은 작품들은, 사실 미래로 뻗은 우리 미의 촉수와 같은 것이다. 미래의 거울로서의 작품들은, 우리의 자화상을 일그러뜨린다. 어쩌면 그렇게 일그러진 모습이 우리의 참모습일지도 모른다. 파격은 정격의 반대로만, 부정어로만 정의될 수 있다. 실험을 그렇게 잘라내고 절단하는 작업이다.    최근의 예를 보자. 박상순은 남성, 여성의 말을 버리고 중성어를 시에 실험했고, 이수명은 사물에서 인간화된 의미를 도려내고 사물들끼리의 인과적 관련을 드러냈으며, 함성호는 서정의 어법을 파기하고 관습화된 전문용어들로 이루어진 서정을 구현했고, 차창룡은 이것과 저것을 이것 아님과 저젓 아님의(교차 부정의) 대상들로 드러냈고, 김참은 상상적 풍경을 서사화했고, 함기석은 기호 내용을 박탈한 기호 표현들의 놀이를 조작했다. 이들의 작품들은 당대의 미적 기준에서는 무엇인가 부족하지만, 같은 말로 무엇인가 잉여적이다. 그 부족분과 잉여분이 이 작품들의 미적 효과다.    새로운 시도 앞에서 우리가 가지는 불평/불편함은 각질의 표면 아래서 꿈틀거리는, 새로운 미에 대한 기운과 통한다. 굳은살을 터뜨리고 나온 새 살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648    추천하고싶은 詩論書 댓글:  조회:6193  추천:0  2015-07-20
               시론詩論, 시학詩學은 시를 이론적이고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분야이다. 가끔 시를 읽고 싶어져서 시를 읽으려고 하면 보통 시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시를 읽다가 머리를 싸매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냥 시만이 있는 시집이 아니라 시를 해석하고 해설하는 책을 찾았는데 보통 시와 그 시만을 해석하는 책은 따로 없고 이렇게 시론이나 시학이라는 이름으로 시를 체계적이고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책들만이 있었다. 그래서 그냥 시의 이론과 함께 시 해설이 덧붙여있는 시론과 시학을 읽기로 하고 책을 고르다가 이 책을 골라서 읽게 되었다. 여러 시론, 시학 중에 이 책을 고른 이유는 고등학교 때부터 익히 배워왔던 근대시보다는 시대적으로 비교적 현재와 가까운 현대시를 이론에 대한 예로 들면서 해설을 한 것을 읽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한 것처럼 이 책에서는 근대시보다는 현대시의 해석에 중점을 두고 있고 또 예로서 비교적 많은 수의 시를 책에 싣고 있다. 이 책을 다 읽는데 시간이 비교적 오래 걸렸다. 이 책은 분량이 많기도 하지만(687P) 많은 수의 시(대략 200편 정도가 넘는)와 그 시의 해설을 한 번 읽고서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고 이해하려고 여러 번을 읽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 책의 저자는 대학의 문예창작학과 교수이자 등단한 시인이다. 강단에 있으면서 기존의 시학이 변화하고 변모하고 있는 현재의 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이 책의 집필동기라고 밝히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을 구상한지 8년, 조금씩 써 내려간 지 5년이 걸렸다고 말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읽음의 즐거움도 있었고 또 이 책을 읽음으로 시에 관한 이해력이 확실히 예전보다는 넓어진 것 같다고 느낀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시학의 기본적 토대에 관한 내용으로 주체(화자), 대상, 언술, 서정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2부는 시학의 여러 영역에 대한 탐색으로 거리, 이중화(반어와 역설), 비유, 비교(은유), 체계(제유와 환유), 좌표(상징과 알레고리), 역피라미드, 음악, 소리-뜻, 인용(인유와 패러디), 감각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3부는 보론적 성격의 장으로 환상, 추醜, 전위(아방가드르), 변화(최근 시의 수사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많은 각각의 개별적 내용을 여기에 다 정리할 수는 없겠고 2부에서의 시학의 주요 기법에 대한 것 몇 가지를 추려서 간단히 한 번 정리해볼까 한다.   어조의 기본 형식       ⓛ풍자/ A가 B를 비판하다, 우스꽝스럽게 하다 ②예찬/ A가 B를 칭찬하다(주체가 대상보다 열등하다) ③연민/ A가 B를 동정하다(주체가 대상보다 우월하다) ④반성/ A가 A를 생각하다 ⑤해학/ B가 B를 우스꽝스럽게 하다 역설(paradox)/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이중화, 이 이중화 장치가 수평적 언어에 구현(비교가능성) A가 B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칭찬하다(A+B, A≠B) 반어(irony)/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이중화, 이 이중화 장치가 수직적 언어에 구현(체계성) A가 겉으로는 B를 칭찬(비판)하면서 속으로는 비판(칭찬)하다(A/B, A≠B) (+ : 두 요소가 공존,  / : 두 요소가 배리,  ≠ : 두 요소가 상반됨) 은유(metaphor)/ 어떤 사물에다가 다른 사물에 속하는 이름을 전용하는 것(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유사성, 수평적 이동 ex)내 마음은 호수(마음=호수, 마음과 호수는 청명함을 공통요소로 연결) 환유(metonomy)/ 은유와 비슷하게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하지만 둘 사이에 의미적인 공통부분이 없고 실용적이고 사회적 문맥에 근거하여 교환됨, 인접성, 수직적 이동 ex) 꽃다발을 받다 → 축하를 받다, 그는 펜을 꺽었다 → 글을 쓰지 않다, 그는 김소월을 읽고 있다 → 김소월이 지은 시 제유(synecdoche)/ 부분으로 전체를 전체로 부분을 종種을 유類로 유를 종으로 나타냄, 상위/하위 관계, 포괄성(종속성) ex) ‘오십 척의 배’대신 ‘오십 개의 닻’(전체대신 부분), ‘봄’대신 ‘미소짓는 해’(부분대신 전체), ‘암살자’대신 ‘살인자’(종대신 유), ‘인간’대신 ‘피조물’(유대신 종) 은유, 환유, 제유를 벤다이어그램으로 포함관계를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상징(symbol)/ 비교의 차원에서 생성되어서 체계의 차원으로 올라선 것, 체계화된 은유,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여럿 대 하나이며 하나의 원관념이 여러 개의 보조관념을 거느리는 은유적 병렬의 역상逆像 ​ 알레고리(allegory)/ 체계의 차원에서 생성되어서 비교의 차원으로 내려온 것, 작품 바깥의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의미가 작품에 개입되며 대개 교훈적 의미를 갖음, 원관념 대 보조관념이 하나 대 하나이며 표면의 의미가 이면의 의미와 상반되는 반어의 역상 마지막으로 은유, 환유, 제유, 상징, 알레고리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위 도표에서와 같이 은유-제유-환유의 삼각형, 상징-알레고리-환유의 삼각형, 은유-알레고리-제유의 삼각형, 제유-상징-환유의 삼각형, 4개의 삼각형이 만들어짐, 각 삼각형에서 환유는 나머지 둘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을 함.   그러면 위와 같은 수사학의 몇 가지 이론들의 예가 되는 2개의 시와 그 해설을 적어본다.       설파제를 먹어도 설사가 막히지 않는다 하루동안 겨우 막히다가 다시 뒤가 들먹들먹한다 꾸루룩거리는 배에는 푸른색도 흰색도 적(敵)이다   배가 모조리 설사를 하는 것은 머리가 설사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성(性)도 윤리(倫理)도 약이 되지 않는 머리가 불을 토한다   여름이 끝난 벽(壁) 저쪽에 서 있는 낯선 얼굴 가을이 설사를 하려고 약을 먹는다 성과 윤리의 약을 먹는다 꽃을 거두어 들인다   문명(文明)의 하늘은 무엇인가로 채워지기를 원한다 나는 지금 규제(規制)로 시를 쓰고 있다 타의(他意)의 규제(規制) 아슬아슬한 설사다   언어(言語)가 벽을 뚫고 나가기 위한 숙제는 오래된다 이 숙제를 노상 방해하는 것이 성의 윤리와 윤리의 윤리다 중요한 것은   괴로움과 괴로움의 이행(履行)이다 우리의 행동(行動) 이것을 우리의 시로 옮겨놓으려는 생각은 단념하라 괴로운 설사   괴로운 설사가 끝나거든 입을 다물어라 누가 보았는가 무엇을 보았는가 일절 말하지 말아라 그것이 우리의 증명이다        ―김수영, (중략)   (P317~ P320)     ​     ​자작나무 숲에서     최초의 사랑이 있었다       장미의 벼락 속에서     바다와 사막을 지나     여섯 시에 온 여자     모래의 여자     너를 본 순간     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악마의 침     오, 행복한 날들       멀리 있는 죽음       하얀 거짓말       뜨겁고 바람 한 점 없는 밤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에서     파괴된 사나이 *소개된 16권의 책의 저자들: 맨 위로부터 밀란 쿤데라, 세르게이 예세닌, 스테판 츠바이크, 잉게보르그 바하만, 앙리 미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아베 고보, 이승훈, 준 비에브 브리작, 훌리오 코스타사르, 사무엘 베케트, 호세 에밀리오 파체코, 폴 테로, 훌리오 라몬 리베이로, 사가구치 안고, 알프레드 베스터                                                                                                                 ―함기석,       “이것은 전면적인 패러디의 예이다. 시를 이루는 제목과 행이 모두 다른 저자의 책 제목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이어 붙였더니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이것은 일종의 모자이크화 같은 것이다. 인용만으로 전언을 완성했는데, 그 전언은 인용된 각 행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자.   자작나무 숲에서 태초에 사랑이 싹텄다. 숲은 여성성이고 신비이며 시원이다. 그곳은 사랑의 대상이고, 해명되지 않는 사랑의 힘이며, 최초로 사랑이 발원한 바로 그곳이다. 장미의 벼락은 그 사랑의 만개를 뜻한다. 벼락 치듯 사랑이 꽃을 피웠다.그러나 그 사랑은 바다와 사막을 지나야 한다. 바다와 사막은 사랑의 아픔(바닷물처럼 쓰리게 울다)과 소멸(눈물이 사막처럼 말라버리다)을 대신하는 상징이다. 그곳을 지나 한 여자가 내게로 왔다. 밤과 낮의 경계, 빛과 어둠을 가르는 미명(未明)이거나 박명(薄明)의 시간에 그 여자는 모래의 여자, 곧 석녀(石女)다. 바다와 사막을 거쳤으니 그 여자가 푸석푸석한 몸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할 만하다. 여자 앞에 선 사나이의 말은 직접화법으로 바뀐다. “너를 본 순간/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식음을 전폐하게 만드는 힘 역시 사랑의 힘이다. 그런 탐닉을 악마의 침이라 부른다. 탐닉의 극한은 늘 악마적이다. 그녀와의 키스는 악마의 침처럼―타액이거나 바늘이었을테니―달콤했고 고통스러웠다. 여전한 사내의 감탄, “오, 행복한 날들”! 죽음은 그들에게 멀리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순간의 열락이 지난 후에 무섭도록 오래된 손님이 찾아온다. 순간의 영원성이, 바꾸어 말해 영원할 것 같던 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 순간 우리는 죽음의 저 아늑하고 무서운 품에 안겨 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내지른 기쁨의 감탄문들이 실은 “하얀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이 “뜨겁고 바람 한 점 없는 밤”, 불타오르는 열정이 있으되 그 격정을 옮길 수 없는 텅 빈 밤. “활짝 핀 벚꽃나무”는 그렇게 환하게 피어올랐다가 속절없이 우수수지고 만다. 물론 사나이도 그렇게 파괴된다. “(P507~P509)           이 책은 시론이지만 다른 많은 시론과 시학 서적들 중에서도 학술적 성격이 강한 편인 책 같다. 특히 책에는 많은 각주가 있는데, 그 각주들은 문예비평가들보다는 철학자들의 책(특히 들뢰즈가 많았음)에서 인용하고 참조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참 문예비평도 공부를 많이 해야 되는 거구나 느끼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책에 평점을 붙이기가 조금 그렇지만 나에게 도움을 준 측면에서 평점을 매겨보면, 5점 만점에 4점을 주고 싶다.      ========================================================================       정끝별의 짧은 시 산책, (2001, 이레) 《행복》은 쉰다섯 편의 짧은 시를 독특한 가창법으로 읽어주고 있는 아름다운 시 해설서이다. 그 자신 시인이기도 한 정끝별의 ‘짧은 시 산책’은 요설과 객설을 용납하지 않는 서정적 문체로 시의 묘미를 풍부하게 살려낸 한 편의 시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까다로운 문학 이론의 논리를 과감하게 배제하고 삶의 체험과 직관으로 작품의 의미를 풀어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시적 몽상의 세계로 길을 열어 준다는 데 있으며, 이미 잃었던 시의 진정한 매혹을 되찾아 준다는 데 있다. 그런 만큼 《행복》은 간결하고 쉬우면서 동시에 지극한 깊이를 지니고 있다.  우선 정끝별은 지식인의 근엄함과 권위적인 화법을 자제하고 정감과 유머가 넘치는 친근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의 언어들은 현학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다. 구어체의 정겨움 속에서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살아있는 음성으로 구현해낸다.  총각 냄새 물씬 풍기는 무밭 곁에  웃음소리 소란스런 배추밭  아낙들 머리에 쓴 흰 수건처럼 환한  달빛 웃음 밤새워 참느라고  배추 고갱이 노랗게 속이 밸 때  무들은 흙 속에서  수음하며 몸집을 불린다  신병 훈련소 같은 무밭  신참 이등병 일개 소대 출소 준비 끝  - 〈채마밭〉, 김영무  한여름밤의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事로군요. 무밭에서 총각 냄새를 맡고, 배추밭에서 아낙들 웃음소리를 듣는 시인의 감각이 압권이네요. 무청을 드러내 놓고 종횡대로 사열해 있는 무밭의 무들을 ‘출소 준비 끝낸’ 일개 소대의 신참 이등병들로 비유하는 것도 즐겁지 않습니까? 출소 준비를 끝마쳤으니 곧, 툭 불거진 푸른 심줄 같은 무 밑동을 내로란 듯 드러내 놓겠지요? 무밭 곁에 배추밭이 이웃해 있는 이유, 무 몸집이 그렇게 불어 있는 이유,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추밭 곁에 상추밭이, 오이나 가지밭 곁에 깻잎밭이 이웃해 있는 이유, 그게 다 섭리였군요! 궁합이었군요!  김영무의 〈채마밭〉 해설의 첫 구절 “한여름밤의 남녀상열지사로군요”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정끝별은 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나 정황을 설명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보는 자’의 위치에 놓음으로써 현재화시킨다. 이를 통해 시적 정황은 장면화되고 독자는 그 생생한 현장에 동참하게 된다. 예를 들어 조운의 〈상치쌈〉 해설에서 “입을 크게 벌리자니 눈도 크게 벌어지겠죠. 크게 벌어진 눈의 동자들이 울 너머로 쏠려 있군요”라든가, “그러니까 이 시는 해질 무렵 ‘건들’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순간의 ‘건들’ 풍경이로군요.”(〈건들장마〉, 박용래), “스스로는 물론 단 한 사람의 가슴이라도 따뜻하게 지펴줄 수 있는 마음의 군불, 아니 시의 군불을 지피고 있군요”(〈序詩〉, 나희덕)와 같은 해설 방식을 통해 그는 시적 정황과 독자를 밀착시키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그의 ‘짧은 시 산책’에서 두드러지는 또 다른 화법은 ‘의문’과 ‘감탄’이다. “즐겁지 않습니까?” “드러내 놓겠지요?”와 같은 의문형은 직접적으로 독자에게 반응과 동의를 구함으로써 독자와의 관계를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대화적인 것으로 유도해 간다. 그리고 여러 개의 물음 끝에 정끝별은 “무밭 곁에 배추밭이 이웃해 있는 이유, 무 몸집이 그렇게 불어 있는 이유, 이제야 알겠습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는 ‘알겠습니까?’가 아니라 ‘알겠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시와 교감해 가는 과정을, 그 깨달음의 과정을 공공의 것으로 환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또 다른 해설에서도 이러한 태도는 지속된다. “그렇군요! 힘이 약한 벌레는 뼈가 밖에 있고 살이 속에 있고, 사람을 비롯한 힘센 동물들은 뼈가 속에 있고 털과 살이 밖에 있었군요”(〈힘센 사랑〉, 정진규), “그러고 보니 우리는 ‘우연히’ 죽은 것들은 먹지 않는군요.”(〈우연한 나의〉, 허수경)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그는 처음 시적 진실과 대면한 자의 입장을 취하거나 때로 “전 백로와 두루미와 왜가리를 구별하지 못합니다”(〈왜가리〉, 천양희)라고 자신의 부족을 겸손하게 드러내 놓기도 한다. 따라서 그가 “그게 다 섭리였군요! 궁합이었군요!”라고 말할 때의 감탄은 시에 대한 주관적 도취의 발현이 아니라 발견의 기쁨에 대한 표현이다. 그 기쁨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독자와 공유적인 것이다. 시적 정황의 장면화, 의문과 감탄 외에 청유와 가정, 유머 등 다양한 어법 구사 또한 독자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이끌어 가는 그의 해설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어법을 통해서 그는 시 너머로 의미를 확장해 가는 몽상의 힘을 보여준다.  사랑도 만질 수 있어야 사랑이다  아지랭이  아지랭이  아지랭이  길게 손을 내밀어  햇빛 속 가장 깊은 속살을  만지니  그 물컹거림으로  나는 할말을 다 했어라  〈7번국도 - 등명燈明이라는 곳〉, 이홍섭  7번국도 변에는 등명해수욕장도 있고 등명낙가사라는 큰 절집도 있습니다. 등명燈明! 참 예쁘죠? 등불로(처럼) 밝힌다! 참 깊기도 하지요? 시인은 등명을 사랑으로 밝혀내고 있군요. 만질 수 있어야 사랑이라니 사랑은 만지는 것이라는 말도 되겠군요. 그러니 시인은 물컹거리는 아지랑이의 속살까지 만져보는 것이겠죠. 아지랑이 그 피어오름이 안타깝고, 아지랑이 그 바장임이 서럽고, 아지랑이 그 농이 아픕니다. 나른한 봄날, 등명에서 만져본 아지랑이 속살이 바로 사랑의 속살이었겠죠? 허나, 만질 수 있으니 상할 수도 있는 거겠죠?  이홍섭의 시 〈7번국도 - 등명燈明이라는 곳〉에는 안타까움이나 설움, 아픔이라는 단어가 없다. 이런 사랑의 감정을 시인은 모두 ‘아지랑이’라는 사물성에 응집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 시의 담박한 아름다움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다시 아지랑이의 ‘바장임’이나 ‘농’으로 구체화하는 해설자의 혜안 또한 그에 견줄 만하다. 중요한 것은 해설의 마지막 부분에 “허나, 만질 수 있으니 상할 수도 있는 거겠죠?”가 남기는 의미와 여운의 깊이이다. 만질 수 있는 것을 통해 감각되어지는 기쁨과 충만함은 한편 순간적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자칫하면 상함이나 덧없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끝별은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지랑이의 속성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속성이기도 하다. 아지랑이의 ‘속살’을 만지고 있는 시적 화자의 정황을 그는 자기의 몽상 속에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시는 아름다운 것, 시는 매혹적인 것, 혹은 시는 낭만적인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만큼 그것에 빠져드는 일은 쉽지 않다. 시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이유는 시의 참맛을 느끼기도 전에 대부분의 독자들이 낭패감부터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상의 언어와 다를 바 없는 말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시는 언제나 해석을 요구하는 언어의 함축적 집합물로 느껴지곤 한다. 이것이 시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없는 시의 매력이기도 하다. 시가 따분한 일상의 재현이라면 우리는 굳이 시를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물의 비밀을 꿰뚫는 떨림의 언어, 깊은 내면으로부터 울려나오는 고뇌의 언어와 만나기 위해 우리의 감성은 섬세하고도 역동적으로 움직여야만 한다. 그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위로받으며 풍부해지고 넘쳐나며, 그리고 삶의 진실에 도달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끝별의 《행복》은 시와의 즐거운 만남을 주선해주는 정감의 시학이라 할 수 있다. ■  엄경희  1963년 서울 출생. 200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으로 등단. 현재 숭실대 및 이화여대 강사.  
647    기침 댓글:  조회:4301  추천:0  2015-07-20
[ 2015년 07월 16일 10시 07분 ]      기침의 현상학      - 권혁웅(1967~ ) 할머니가 흉곽에서 오래된 기침 하나를 꺼낸다 물먹은 성냥처럼 까무룩 꺼지는 파찰음이다 질 낮은 담배와의 물물교환이다 이 기침의 연대는 석탄기다 부엌 한쪽에 쌓아두었다가 원천징수하듯 차곡차곡 꺼내어 쓴 그을음이다 할머니는 가만가만 아랫목으로 구들장으로 아궁이로 내려간다 구공탄 구멍마다 폐(廢), 적(寂), 요(寥) 같은 단어가 숨어 있다 (하략) 노인들은 자주 아프다. 기억력도 나빠진다. 한 작가가 얘기했듯 노인의 기억이란 “아무 데서나 드러눕는 개”다. 겁먹을 필요는 없다. 노경(老境)에는 거기 어울리는 삶이 있다. 늙음이 곧 병은 아니지만 병이 오래 머물다 간다. 흉곽에서 기침을 꺼내는 할머니는 오래된 흡연자다. 담배를 피운 지 오래되었으니 기침의 연대도 오래되고, 폐도 온통 까맣겠다. 할머니는 기침을 하며 고적한 나날들을 견딘다. 노경의 뒤안길에 펼쳐진 폐(廢), 적(寂), 요(寥)라는 둥지 속에서 죽음이 부화(孵化)를 기다린다. ================================================== 권혁웅 시모음   1967년 충북 충주 출생  고려대 국문과와 대학원 졸업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평론) 199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시)으로 등단 2000년 제6회 '현대시 동인상' 수상 저서 2001년 시집   문학세계사 2005년  창비 현재 한양여대 문창과 교수 편집 동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그해 여름 정말 돼지가 우물에 빠졌다 멱을 따기 위해 우리에서 끌어낸 중돈이었다 어설프게 쳐낸 목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돼지는 우아하게 몸을 날렸다 자진하는 슬픔을 아는 돼지였다 사람들이 놀라서 칼을 든 채 달려들었으나 꼬리가 몸을 들어올릴 수는 없는 법이다 일렁이는 물살을 위로하고 돼지는 천천히 가라앉았다    가을이 되어도 우물 속에는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그리고 돼지가 있었다 사람들은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는 슬픈 얼굴로 혀를 찼다 틀렸어. 저 퉁퉁 불은 얼굴 좀 봐 겨울이 가기 전에 사람들은 결국 입구를 돌과 흙으로 덮었다 삼겹살처럼 눈이 내리고 쌓이고 다시 내리면서 우물 있던 자리는 창백한 낯빛을 띠어갔다    칼들은 녹이 슬었고 식욕은 사라졌다 사람들은 어디에 우물이 있었는지 기억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봄이 되자 작고 노란 꽃들이 꿀꿀거리며 지천으로 피어났다 초록의 상(床)위에서, 지전을 먹은 듯 꽃들이 웃었다 숨어있던 우물이 선지 같은 냇물을 흘려보내는, 정말 봄이었다    지문     네가 만질 때마다 내 몸에선 회오리바람이 인다 온몸의 돌기들이 초여름 도움닫기 하는 담쟁이처럼 일제히 네게로 건너뛴다 내 손등에 돋은 엽맥(葉脈)은 구석구석을 훑는 네 손의 기억, 혹은 구불구불 흘러간 네 손의 사본이다 이 모래땅을 달구는 대류의 행로를 기록하느라 저 담쟁이에게서도 잎이 돋고 그늘이 번지고 또 잎이 지곤 하는 것이다   마징가 계보학    1. 마징가 Z    기운 센 천하장사가 우리 옆집에 살았다 밤만 되면 갈지자로 걸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고철을 수집하는 사람이었지만 고철보다는 진로를 더 많이 모았다 아내가 밤마다 우리 집에 도망을 왔는데, 새벽이 되면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돌아가곤 했다 그는 무쇠로 만든 사람, 지칠 줄 모르고 그릇과 프라이팬과 화장품을 창문으로 던졌다 계란 한 판이 금세 없어졌다    2. 그레이트 마징가    어느 날 천하장사가 흠씬 얻어맞았다 아내와 가재를 번갈아 두들겨 패는 소란을 참다못해 옆집 남자가 나섰던 것이다 오방떡을 만들어 파는 사내였는데, 오방떡 만드는 무쇠 틀로 천하장사의 얼굴에 타원형 무늬를 여럿 새겨 넣었다고 한다 오방떡 기계로 계란빵도 만든다 그가 옆집의 계란 사용법을 유감스러워 했음에 틀림이 없다    3. 짱가    위대한 그 이름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가 오후에 나가서 한밤에 돌아오는 동안, 그의 아내는 한밤에 나가서 오후에 돌아오더니 마침내 집을 나와 먼 산을 넘어 날아갔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겼다 그 일이 사내의 집에서가 아니라 먼 산 너머에서 생겼다는 게 문제였다 사내는 오방떡 장사를 때려치우고, 엄청난 기운으로, 여자를 찾아다녔다 계란으로 먼 산 치기였다    4. 그랜다이저    여자는 날아서 어디로 갔을까? 내가 아는 4대 명산은 낙산, 성북산, 개운산 그리고 미아리 고개, 그 너머가 외계였다 수많은 버스가 UFO 군단처럼 고개를 넘어왔다가 고개를 넘어갔다 사내에게 역마(驛馬)가 있었다면 여자에게는 도화( 桃花)가 있었다 말 타고 찾아간 계곡, 복숭아꽃 시냇물에 떠내려 오니… 그들이 거기서 세월과 계란을 잊은 채… 초록빛 자연과 푸른 하늘과… 내내 행복하기를 바란다   왕십리   새로 두 시에 산등성이를 건너온 비는 내 방 창을 두드린다 창문에 조팝나무 잎이 우표처럼 붙어 있었다 먼 데 있는 것들이 문득 소식을 전하는 때가 있다 지나쳐온 것들이 중국집 스티커나 세금 고지서처럼 문 앞에 부려져 있을 때 그걸 묵은 신문지와 함께 버릴 수 있나? 웃기고 있네. 나는 과금별납처럼 살았어 내 자리 어디선가 조금씩 내가 빠져나간 거지 세 시가 되니 비는 더 심해져서 파도치는 소리를 낸다 창문을 여니 먼 데 불빛이 어렵게 깜박인다 누군가 구조신호를 보내는 게지 구름 뒤에 둥글게 빛나는 달이 있듯이 저곳 어디에 왕십리가 있을 것이다 나는 외도가 지나쳤다,라고 목월은 말했지만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저 길 너머에 있었다 새로 세시에서 네 시로 지나가는 저 비처럼 나는 세상을 건너갈 수 없었다 왕십리, 십리가 멀다 하고 찾아갔던 곳 하지만 늘 십리는 더 가야 하던 곳 내게도 밤을 디디고 가야 할 곳이 있다 몰론 왕십리에 가기 전에, 왕십리도 못 가서 나는 발병이 날지도 모르지만    서울시 신림동 산77 성 김복례의 하루   1    부엌 지붕 새로 스며든 빗물이 판자를 휘어놓았다 식기들이 비스듬히 걸터앉아 아침햇살에 이 빠진 웃음을 웃는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구를 계산하는 그릇들도 이 집 식솔들이다   2    지나는 곳마다 고개턱이어서 길들도 한숨을 부려놓는 곳 그 길을 091021-2023527 김복례 할머니가 오른다 마을의 수도꼭지들이 할머니를 따라 쇳물을 쿨럭거린다 소리의 음계를 밟으며 할머니 길을 오르신다   3    이곳에 시멘트 숲이 얼기설기 솟았을 때 김복례 할머니가 왔다 고려 때도 고려장은 없었다는데 자식들은 끈 떨어진 구슬처럼 흩어졌다 아니 구슬이 끈을 놓아버린 것이다 저녁마다 할머니는 방바닥에 대고 걸레 잡은 손을 휘휘 젓는다 아무도 못 보게 손사래를 치는 것이다   4    산 아래는 지금 영구 임대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포크레인은 술 취한 애비를 닮았다 마구 가산을 부수어 놓는다 레미콘이 임신한 여인네처럼 뒤뚱거리며 뒤를 따라온다 흙발로 여기저기 쿵쾅거리며 뛰어 다니는 트럭들....시끄러운 이웃이다   5    바람만 따라오던 넌출 가로등 돌아가고 건너편 산등성이 불빛들도 까무룩 조는 초여름 저녁, 김복례 할머니 형광등 값을 아끼려 일찍 자리에 든다 벌써 눕느냐고 칭얼대며 은초롱꽃들이 등을 켜들고 슬레이트 처마 아래를 들여다본다   6    야채나 생선차도 이곳엔 들르지 않는다 해서 이곳엔 기다림이 없다 그저 마른 방구들 풀썩이며 노는 먼지들뿐이다 그 위로 햇살이 부서진다 하늘에 제일 가까운 곳에 세워진 빛의 고딕 성당 서울시 신림동 산 77번지, 거기 김복례 할머니가 산다       애마부인 약사(略史) 1대  고개를 좌우로 꼬며 말을 달리는 고난도 기술을 선보인 안소영(1982)에 관해선 이미 말한 바 있다 침대에 누운 그녀가 말 탄 꿈을 꾸는 것인지, 말을 모는 그녀가 침실 꿈을 꾸는 것인지를 중3이 다 말할 수야 없었지만, 동시상영관은 돌아온 외팔이와 안소영 때문에 후끈 달아올랐다   2대  오수비(1983)는 바다로 갔다 그녀는 젖은 몸으로, 몰려오는 파도를 다리 사이로 받으며, 파도보다 큰 소리를 지르곤 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청마(靑馬)의 시구를 그때 배웠다 고1때 일이다   3대  김부선이 말죽거리 떡볶이 집에서 권상우를 유혹할 때(2004) 나는 기절할 뻔했다 나도 권씨지만 그녀를 피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씨름선수 장승화의 들배지기에 자지러지는 그녀(1985)를 본 고3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그렇다   4대  이후의 애마부인(1990∼ )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나는 더 이상 연소자가 아니었으니까, 도처에서 여자들이 말 타고 출몰했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다만 김호진(1990)처럼 ROTC 애마보이가 되고 싶기는 했다 그 후로는 나도 애마도 주마간산이었다   9대  진주희(1993)의 운명처럼 말이다 아, 어찌하여 애마의 도(道)는 일본으로 흘러갔는가? 애견부인(1990)은 또 뭐란 말인가? 드라큘라 애마(1994), 애마와 백수건달(1995), 애마와 변강쇠(1995)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끝없는 연애담과 지리멸렬 속으로 빠져들었다   외전(外傳)  애마는 파리에도 가고(1988) 집시도 되었지만(1990) 정작 애마부인을 가르친 정인엽은 지금 삼겹살집 주인이다 애마 아래 남편, 애마 위에 애마보이, 그 위에 나…… 우리는 그렇게 불판 위에서, 납작하게, 지글거렸다 어마 뜨거라, 소리 지르며 한 시절을 지나왔다     ---2------   밀실의 역사                   집 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는 말이                  참으로 거짓이 아니로구나. (이곡 「소포기」)   1. 사막   방에 위도와 경도를 매겨, 지상과 일대일 축척을 실현 한 이모에 관해선 방금 말했다 외할머니가 부를 때마다,  이모는  고비 사막을 넘어  달아났다  대상도 낙타도 없 이……그곳을 건너가는 데 한 뼘이 걸렸다   2. 벼랑                    형은 여름 한낮이면  다락에 올라가 오수를 즐겼다  가 끔 벼락 치는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면 디딤판 위에서  코피를 흘리며 코를 고는 형이 있었다  거기가 낙화암도  아닌데, 형은 삼천 번 정도는 몸을 날렸을 것이다   3. 전장   주인집 작은형은 평생을 그늘에서만 산 군주였다 형의  유일한 적수는 나였다  형은 기병과 포병과 보병과 전차 와 코끼리 부대를 앞세워 내게 쳐들어왔다 나는 자주 말 발굽에 밟히거나 코끼리와 수레바퀴에 깔려 신음했다   4. 탑   우리는 주인집 막내를 동장군(冬將軍)이라 불렀다 한밤 에 변소에 갔다가  구멍에 빠졌던 애다  한겨울이어서 그  애는 똥탑을 기어올라  방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우리는  그 애를 피해다녔다  추위와 똥독을 이겨낸  불굴의 장수 였으므로    5. 식당   주인집 작은누나는 가출한 후에  도루코 면도날 위에서  위태롭게 청춘을 보냈다 한번은 면도칼을 씹다가 주먹에  맞아  입 안이 통째로 날아갔다 한다  그래서 삼양라면을  한 올씩 삼키며 두 달을 살았다 입이 좁은 문이었던 거다       입술 3 한 겹 풍경을 열고 들어가면 촘촘히 심어진 가로수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지나간 쪽으로 나무들이 앞 다퉈 잎을 내곤 했습니다 웃음이거나 울음인 것들  을 매달고 나무는 지금 무성합니다 거기엔 분절도 단락도 없어서, 물관을 바  쁘게 오르내리는 홀소리들만 분주했습니다 나는 몇 번이고 그곳을 지나갔습  니다 그때마다 내 손끝은 생장점을 품은 듯 저려왔지만, 그것이 목측目測을  가로막는 목책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촘촘하던 이유마저는 몰랐습니다  현대시 3월호     지문 내가 모르는 일이 몇 가지 있으니 바위에 뱀 지나간 자리와 물 위에 배 지나간 자리와 하늘에 독수리가 지나간 자리 그리고 여자 위에 남자가 지나간 자리 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도무지 모르지, 손가락마다 소용돌이를 감추어두고 사는 일 손잡을 때마다 타인의 격정에 휘말리는 일 내 삶의 알리바이가 여기에 없다고 생각할 때마다 개들은 짖고 먼지는 손에 묻고 버스는 떠나고 비행기는 하늘에 실금을 그으며 날아간다   나는 개를 먹고 개처럼 짖고 개털은 날리고 나를 따라 먼지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다니고 내가 손을 흔들어도 버스는 떠나가고 비행기는 활주로에 길고 긴 타이어자국을 남긴다   누웠다 일어난 자리에 흩어진 머리카락, 여기에 내가 아니면 네가 누워 있었을 것이다   내게는 느티나무가 있다 느티, 하고 부르면 내 안에 그늘을 드리우는 게 있다 느릿느릿 얼룩이 진다 눈물을 훔치듯 가지는 지상을 슬슬 쓸어 담고 있다 이런 건 아니었다, 느티가 흔드는 건 가지일 뿐 제 둥치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느티는 넓은 잎과 주름 많은 껍질을 가졌다 초근목피(草根木皮)를 발음하면 내 안의 어린 것이 칭얼대며 걸어온다 바닥이 닿지 않는 쌀통이나 부엌 한쪽 벽에 쌓아둔 연탄처럼 느티의 안쪽은 어둡다 하지만 이런 것도 아니다, 느티는 밥을 먹지도 않고 온기를 쐬지도 않는다 할머니는 한 번도 동네 노인들과 어울리지 않으셨다 그저 현관 앞에 나와 담배를 태우며 하루종일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런 얘기도 아니다, 느티는 정자나무지만 할머니처럼 집안에 들어와 있지는 않으며 우리 집 가계(家系)는 계통수보다 복잡하다 느티 잎들은 지금도 고개를 젓는다 바람 부는 대로, 좌우로, 들썩이며, 부정의 힘으로 나는 왔다 나는 아니다 나는 아니다 여기에 느티나무 잎 넓은 그늘이 그득하다 (문학사상 5월) 오래 전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파문      어느 집 좁은 처마 아래서 비를 그어 보라, 파문    부재와 부재 사이에서 당신 발목 아래 피어나는    작은 동그라미를 바라보라    당신이 걸어온 동그란 행복 안에서    당신은 늘 오른쪽 아니면 왼쪽이 젖었을 것인데    그 사람은 당신과 늘 반대편 세상이 젖었을 것인데    이제 빗살이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    어떤 간격을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하다면    어느 집 처마 아래 서보라    동그라미와 동그라미 사이에 촘촘히 꽂히는    저 부재에 주파수를 맞춰 보라    그러면 당신은 오래된 라디오처럼 잡음이 많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파문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   국수 넓은 마당 옆에 국수집이 있다고 내가 말했던가 우리 이모네 집이다 저녁이면 어머니는 나를 그리로 마실 보내곤 했다 우리는 국수보다 삼양라면이 좋았는데 이를테면 꼬불꼬불한 면발을 다 먹고 나서야 아버지는 상을 엎었던 것인데 국수 뽑는 기계는 쉴새없이 국수를 뽑았다 동어반복을 거기서 배웠다 목포는 항구고 흥남은 부두지만 국수는 국수다 국물을 우려내는 멸치처럼 나는 작았고 말랐고 부어 있었다 나는 저녁마다 국물 속을 헤엄쳐 다녔다 어느 날 아버지가 고춧가루를 뿌렸다 좋아요 형님, 다 신 안 와요 보증을 잘못 섰다고 한다 거길 떠난 후에 내가 먹은 국수는 어머니가 반죽해서 식칼로 썰어낸 손칼국수다 면발이 빼뚤빼뚤해서 이모네 국수처럼 가지런하지 않았다 내가 보증한다 그때 내가 좋아한 건 이틀에 한 번씩 오는 번데기 리어카와 솜틀집 문에 치여 죽은 병아리 그리고 전도관의 풍금소리, 결단코 국수는 아니었는데 그 후로도 눈이 내렸다 밀린 연탄재를 한 길에 내다버릴 수 있다고 어머니가 좋아하던 그 눈, 국수가 나올 때 그 위에 뿌리는 밀가루처럼 하얗고 퍽퍽한 그 눈, 우리는 면발처럼 줄줄이 넓은 마당에 나오곤 했던 것인데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진하게 우려낸 하늘은 무엇인가 번데기처럼 구수하고 병아리처럼 노랗고 풍금의 건반처럼 가지런한 이것은 무엇인가 (문예중앙 2003년 겨울호)  스파이더맨    1   거미인간에 관해 말하자 넓은 마당의 위아래, 전후좌우, 동서남북을 샅샅이 훑던 그의 거미손에는 걸리지 않는 게 없었다 그가 손바닥을 펴면 문짝, 신문지, 고장 난 석유난로, 콜라병 같은게 손에 와서 척척 붙었다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리어카를 끌고 그는 수도 없이 골목을 오르내렸다      2   넓은 마당은 방사형으로 가지를 친 수많은 길과 골목의 중심이다 거기서 동쪽 능선을 넘어가면 보문사가, 남쪽 고갯마루를 타넘으면 배성여상이, 서쪽 산정에 오르면 낙산아파트가 나온다 북쪽 길로 내려가면 삼선초등학교다 거기에 수많은 골목과 골목이 들러붙어 새끼를 쳤다   3   사실 내가 말하고 싶었떤 이는 인자仁子다 건너편 등성이에 사는 성신여중 학생이다 좁다란 시멘트 길을 걸어 올라가던 그 아이의 실루엣을 이쪽 건너편에서 볼 때마다, 나는 거미인간이 되고 싶었따 그를 따라 리어카를 따라 소녀의 집까지 가보고 싶었다 다족류多足類의 발하나를 거기 걸쳐두고 싶었다   4   거미인간은 넓은 마당 한구석에 모아온 것들을 쌓아두었다 그 아이를 고치처럼 둘둘 말아 종이뭉치와 고철더미와 나무토막 옆에 두었다 이십 년 동안 모아두었다 이십 년 동안 소녀는 나처럼 낡아갔을까 거기서 방문을 드나들고 폐지를 학교에 내고 난로를 쬐고 콜라를 마셨을까   5   모든 길은 넓은 마당으로 모이고 넓은 마당에서 갈라졌다 우리는 골목에서 태어나 넓은 마당으로 갔다 우리는 거기서 걸렸다 거미인간만이 보문사와 낙산을, 배성여상과 삼선초등학교를, 나와 안자 시이를 넘나들었따 그는 자유인이었고 독재자였다 그의 많은 재산 가운데 약간을 대출 받아 이렇게 쓴다   세상의 끝    동도극장을 아십니까?     만약 아신다면 당신은 저 오랜 독재자가 말년을 보낼 즈음에 삼선동과 동소문동 어디쯤에서 살았던 것이 틀림없군요   넓은 마당을 곧장 내려가면 삼선초등학교가 나오고 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가면 경동고등학교가, 왼편으로 가면 한성여고가 나옵니다 삼거리는 어디나 연애담을 담고 있습니다 형들과 누나들이 거기서 만나 동도극장에 가곤 했답니다 학생주임이 몽둥이를 들고 그곳을 급습했지만, 아시다시피 필름은 하루에 다섯 번이나 돌아가고 극장 안은 아주 어둡습니다   내가 동도극장을 처음 본 건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두 번째 독재자의 취임기념우표를 사러 새벽길을 가는데, 머리가 떨어져나간 시체가 소복을 입은 채 으스스하게 서 있는 거였습니다 란 프로였죠 귀신은 우처국 앞까지 쫓아왔다가 날이 밝아서야 돌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죠 얼굴이 없었는데 미녀인 건 어떻게 알았으며 소복을 입었는데 몸매는 또 어떻게 보았을까요?   나중에야 그게 세상 끝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운명이란 걸 알았습니다 어슴프레 서 있긴 한데 도무지 얼굴은 보이지 않는 이들 말이죠 동도극장이 꼭 그랬습니다 내가 철이 들 무렵 동도극장은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내가 연소자 관람불가를 넘어설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거지요 나는 지금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동도극장엔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세상의 끝까지 가보지 못했답니다    쑥대머리    제가 다니던 삼선교회엔 유난히 숙이 많았죠   은숙(恩淑)이, 애숙(愛淑)이, 양숙(良淑)이, 현숙(賢淑)이, 경숙(京淑)이, 남숙(南淑)이, 난숙(蘭淑)이, 미숙(美淑)이, 정숙(貞淑)이……    그야말로 쑥밭이었죠제일 믿음이 좋았던 애는 은숙이,   애숙이는 잠시 나를 사랑했고   양숙이와 현숙이는 정말로 현모양처가 되었죠   경숙이는 지금도 서울에 살지만, 남숙이는    먼데로 이사 갔답니다   난숙이는 청초했고 미숙이는 예뻤는데   지금도 제일 기억나는 애는 정숙이에요   어렸을 때 귤껍질 넣은 주전자 물을 뒤집어 썼지만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던 아이   그러던 어느 성탄절에 성극을 하다가   두건과 함께 가발이 홀랑 벗겨진   울지도 않고 끝까지 마리아 역할을 하고는   그 길로 교회를 떠난 아이, 지금도 어디선가   단정한 자세로 앉아   거지꼴을 한 동박박사들을 기다리는 거나 아닌지요        
646    한석윤 동시인 = 동시화집 댓글:  조회:4923  추천:0  2015-07-20
한석윤선생님의 동시화집 《걀걀 웃음 겯는 아이》(그림 신순칠)가 일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되여 독자들과 대면했다. 이 책은 한석윤옹이 6년간 써신 동시중에서 선정하여 묶은것이다. 이 책에는 도합 60수의 동시가 들어있는데 행마다 련마다에서 작자가 많은 심혈을 들였음이 력력히 엿보인다. 이 책은 작자가 원래의 자아를 뛰여넘어 또 한차원 껑충 올라섰다는것, 비교적 성공작이라는 평판을 받게 된다. 특히 어린이들의 구미에 맞게 그리고 주변의 생소하지 않은 사물이나 현상을 잡고 해학적으로 그 흐름자체가 내물 같게끔 색채와 운률을 시맥에 부여한것은 일종 아무도 흉내낼수 없는 특이한 기법이라 아니 할수 없다. 이면에서 한석윤의 동시화집은 남다른 매력을 과시하고있다. 이외에도 그림이 곁들여진것도 앙증스럽고 애들 주목을 충분히 끌수 있도록이 안받침되여 글을 한층 빛나게 해주고있다. 두분의 시와 그림의 치밀한 합작은 이 책의 인기에 점수를 더해주고있다. 한석윤옹은 중국작가협회회원으로서 선후로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중국소년보사 사장 등을 력임하였으며 펴낸 시집으로는 “별과 꽃과 아이와”, “내가 만약 노벨상을 만든다면” 등 다수가 있다. 수상경력으로는 엽성도상, 중국소수민족문학상, 진달래문학상, 연변작가협회문학상, 한국방정환문학상 등이 있다. 한편 그는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를 운영해나가면서 청소년사업에 유조한 대량의 사업들을 활발히 펼쳐나가고있다. 조글로미디어 전춘식
645    되돌아오는 세월... 댓글:  조회:5529  추천:0  2015-07-18
[ 2015년 07월 13일 07시 34분 ]     (력사의 한 페이지... 천안문성루 보수작업, 항일전쟁승리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대보수.) 되돌아오다 - 조승래(1958~ ) 바다를 강이 끌어당기고 강을 시냇물이 끌고 가고 시냇물을 빗줄기가 데려가고 빗줄기를 녹차가 우려내고 우려낸 향기를 한 사내가 받아 마신다 찰랑이는 찻잔 속 바다 찻잔 안에 물이 찰랑인다. 이 물은 어디에서 왔는가? 물의 기원은 빗줄기에서 시냇물로, 시냇물에서 강물로, 강물에서 바다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은 돌고 도는 긴 순환 끝에 찻잔으로 돌아온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순환하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한다. 물은 순환하며 세계를 비옥하고 풍요롭게 만든다. 세계가 순환할 때 우리는 날마다 변한다. 이것은 우리가 순환하는 자연과 우주의 일부라는 뜻이다.
644    <아내> 시모음 댓글:  조회:4994  추천:0  2015-07-18
                아내의 얼굴 / 李 誠             아름다운 금잔화꽃밭을       무거운 수레가 깊은       자국을 남기며 지나갔다                           아내 / 윤수천        아내는 거울 앞에 앉을때마다 억울하다며 나를 돌아다본다 아무개 집안에 시집 와서  늘은 거라고는 밭고랑 같은 주름살과  하얀 머리카락뿐이라고 한다   아내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모두가 올바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내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슬그머니 돌아앉아 신문을 뒤적인다   내 등에는  아내의 눈딱지가 껌처럼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잠시 후면  아내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발딱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환하도록 문지르고 닦아  윤을 반짝반짝 내놓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내에게 / 유용주      90밀리 못 하나가  무게 1톤을 감당한다고 하는데  75킬로그램 내 한 몸이 지탱하는  생의 하중은 얼마나 될까  얼마나 무겁게 이끌고 왔는지  하찮은 내 무게에 늘 삐그덕 삐그덕댔지  타이어가 뭉개지도록 가득 실은 모래와 자갈,  그 위에 시멘트를 얹고  길은 어둡고 날은 사납다  .........  오오 아내여  뒤를 미는 아내여                아내 / 공 광규 아내를 들어올리는데  마른 풀단처럼 가볍다  두 마리 짐승이 몸을 찢고 나와  꿰맨 적이 있고  또 한 마리 수컷인 내가  여기저기 사냥터로 끌고 다녔다  먹이를 구하다  지치고 병든 암사자를 업고  병원을 뛰는데  누가 속을 파먹었는지  헌 가죽부대처럼 가볍다.                무량사 한 채 / 공 광 규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얘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무량한 만큼’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이라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 주방에서 요리하고 화장실서 청소하고 거실에서 티비를 봅니다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은 목탁처럼 큰소리를 치다가도 아이들이 공부 잘 하고 들어온 날은 맑은 풍경소리를 냅니다 나름대로 침대 위가 훈훈한 밤에는 대웅전 나무문살 꽃무늬단청 스치는 바람소리를 냅니다                      아내의 구두 / 박정원      아내의 구두굽을 몰래 훔쳐본다 닳아 없어진 두께는 곧 아내가 움직였을 거리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한쪽으로만 기대었던 굽이 다른 한쪽 굽을 더 깊게 파이게 했다 덜 파인 쪽에 힘을 주면 굽의 높이가 같아질까 나를 받아주기 위해 제 몸만 넓혀갔지 헐렁헐렁한 건강 한 번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구두 밑창을 갈면 왠지 낯설 것 같은 구두, 버리면 지나간 가난이 서리발처럼 일어설 것 같아 신발장에 슬며시 들여놓는다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으며 눈물 흘렸을 때 군말없이 동행해주었던 구두 핼쑥해진 아내의 얼굴처럼 광택이 나지 않는 구두 아무렇게나 신어도 쑥쑥 들어가는 구두가 보약 한 번 먹이지 못한 아내 같다 키를 맞추겠다면서 높은 구두는 고르지도 않던 아내에게 숫처녀 같은 구두 한 켤레 사주고 싶다               잠모습 아내 / 천상병      어이없게 어이없게 깊게 짙게  영! 영! 여천사 같구나야!  시간 어이없게 이른 새벽!  8월 19일 2시 15분이니  모름지기 이러리라 짐작 되지만  목순옥 아내는  다만 혼자서 아주 형편없이 조그만  찻집 귀천을 경영하면서  다달이 이십만원 안팎의 순이익(純利益)올려서  충분히 우리 부부와 동거하고 있는  어머니(사실은 장모님)와 조카  스무살짜리 귀엽기 짝없는 목영진  애기 아가씨와  합계 네사람 생활, 보장해 주고  또 다달이 약 오만원 가량  다달이 저금하니  우리 네 가족 초소시민층(超小市民層)밖에 안돼도  그래도 말입니다!  나는 담배 - 그것도 내 목구멍에  제일 순수한 담배 골라 피울 수 있고요!  술은 춘천의료원 511호실에서  보낸 날수로 따져서 말해요!  1월 20일에서 1월 17일까지니  담배 더러 피우긴 했었지만  그러니 불법(不法)적으로  피운긴 했어도  간호원이나 기분 언짢고 그래서 지금 금연중이고  소설가인 이외수(李外秀)씨와 이름잊은 제수씨가 퇴원때  집에 와서  한달동안 지기들 집에서 머물러 달라고 부부끼리 간청했지만......  다 무시하고  어머니와 영진이가 있는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직귀(直歸)했습니다!  아내야 아내야 잠자는 아내야!  그렇잖니 그렇잖니.                이십대 마지막 아내 / 전남진     이십대 마지막 아내가 잠들어 있다  손을 뻗어 이십대 마지막 아내의 얼굴을 만진다  이십대 마지막 아내가 따뜻하다  이십대 마지막 아내는 아이를 갖고 있다  아이는 엄마의 마지막 이십대에 태어날 것이다  아내의 마지막 이십대는 분만의 고통에 바쳐질 것이다  이십대 마지막 아내의 볼이 붉다  붉어서 황홀하다  나의 황홀한 비애에도 아내는 눈을 뜨지 않는다  아내의 마지막 이십대는 늦잠처럼 느리게 갈 것이지만  일요일처럼 빨리 가버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십대 마지막 아내의 잠든 얼굴에  햇살이 선을 긋는다  손을 뻗어 선의 골짜기를 쓸어내리면  지나간 연애가 만져질까  이십대 마지막 아내가 내 손을 걷어내고 돌아눕는다  내 이십대의 마지막에도  그 누군가에게서 돌아누웠던 것처럼  일요일 아침,  이십대 마지막 아내의 잠이 느리게 간다.                 아내의 가방 / 김륭 아내에겐 가방이 많다  시집올 때 가져온 악어가죽 핸드백이 새끼를 친다. 평범한 디자인의  손가방만 네 개에다 보헤미안 스타일의 크로스백과 토끼털 고급 토트  백 벨로체 다용도 보조가방 루이비통 복조리백이 있다.  여우꼬리가 장식으로 달린 김희선 숄더백은 지난달 카드로 긁었다.  쥐꼬리 월급에 목을 매고 사는 나는  언제나 성性에 차지 않는 아내의 가방 욕심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시뻘건 고무장갑을 끼고 매일 아침 찌-익, 여행용가방 지퍼를 열듯  방바닥에 눌러 붙은 내 배를 가르는 아내, 음매음매 눈으로 우는 소가  죽지갑을 꺼내고 회사근처 지하노래방 마이크와 맥주병을 찾아내고  아뿔싸! 미스 金 입술도장까지 꺼낸다.  할부금처럼 밀린 섹스에게 잽싸게 칫솔을 물리자  지글거리는 프라이팬, 신이 났다.  속까지 부실하면 안 된다고 우유 한잔에 토스트 한 조각 물려주는  아내, 넥타이 꽉 졸라매면 루이비통 스타일의 복조리백이 되는 얼굴  에 쪽쪽 뽀뽀도 해준다.  아침에 꺼낸 것들, 검은 비닐봉지나 장바구니로 담아올 수 없는 그것들  빳빳하고 싱싱하게 다시 채워오라고  날이 갈수록 배 불룩해지는 비닐가죽가방 하나  문밖으로 떠밀어놓는다.                아내의 재봉틀 / 김 신용     수의를 만들면서도 아내의 재봉틀은 토담 귀퉁이의 조그만 텃밭을 깁는다  죽은 사람이 입는 옷, 수의를 만들면서도  아내의 재봉틀은 푸성귀가 자라고  발갛게 익은 고추들이 널린 햇빛 넓은 마당을 깁는다  아내의 가내공장, 반지하방의 방 한 칸  방 한 가운데, 다른 가구들은 다 밀어내고  그 방의 주인처럼 앉아 있는 아내의 재봉틀,  양철 지붕 위를 뛰어다니는 맨발의 빗소리 같은 경쾌함으로  최소한의 생활을 자급자족할, 지상의 집 한 칸을 꿈꾸고 있다  지금, 토담 안의 마당에서는 하늘의 재봉틀인 구름이  비의 빛나는 바늘로 풀잎을 깁고,  그 속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을 깁고 있을 것이다  모든 생명들을 기운 자국 하나 없이 깁는 고요한 구름의 재봉틀,  그 천의무봉의 손이듯, 아내의 구름인 재봉틀은  지상의 마지막 옷, 수의를 지으면서도  완강한 생활의 가위로 시간의 자투리까지 재단해  가계(家計)의 끈질긴 성질을 깁는다                   아내 / 박제영     다림질 하던 아내가 이야기 하나 해주겠단다.   부부가 있었어요. 아내가 사고로 눈이 멀었는데, 남편이 그러더래요. 언제까지 내가 당신을 돌봐줄 수는 없을 테니까 이제 당신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아내는 섭섭하면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혼자 시장도 가고 버스도 타고 제법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는데,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마침 청취자 사연을 읽어주는 라디오 방송이 나오더래요. 남편의 지극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아내가 혼잣말로 그랬대요. 저 여자 참 부럽다. 그랬더니 버스 기사가 그러는 거예요. 아주머니도 참 뭐가 부러워요. 아주머니 남편이 더 대단하지. 하루도 안거르고 아주머니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구만. 아내의 뒷자리에 글쎄 남편이 앉아 있었던 거지요.   기운내요. 여보. 이럴 때 오히려 당당하게 보여야 해요.   실업자 남편의 어깨를 빳빳이 다려주는 아내가 있다. 영하의 겨울 아침이 따뜻하다.                아내의 문신 / 박완호 1 아내의 몸 속엔 내가 지나온 길들이 들어 있다 얼마 전부터 아내는 제 속에 감추고 있던 길들을 꺼내 한 번 들어가 보라며 내게 입구를 보여준다 함께 산 지 십 수 년 동안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길들, 어느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세상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낯설지 않은 길들의 벌어진 아가리가 꼬리를 물고 달려든다 주춤거리는 내게 아내는 자꾸 그 위에 발을 얹으라며, 그 길들을 따라가면 내 그리움의 뿌리를 만질 수도 있을 거라며 자꾸 나를 몰아 세운다  2 여자는 몸 속에 지나온 날들의 내력을 숨기고 있다  사랑을 나눌 때 그녀의 몸에는  남자가 걸어온 길들이 문신처럼 새겨진다  아내의 몸 속 길들 위에는 기억나지 않는  내 삶의 이력이 적힌 문장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 길들을 따라 걸으며 나는 문장들을 주워 읽는다  한 번도 들키지 않았으리라  여겼던 비밀들이 주워 담을 수 없는 고백처럼  수런거리며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걸 본다  그녀는 언제 이 많은 문장들을 써 온 걸까  아내와 나누었던 그 많은 사랑의 순간들이 결국  내 속의 문장들을 그녀에게 옮겨 적는 작업이었다니  아무도 몰래 그녀가 내 은밀한 속을 들여다보는 동안  내 몸에도 어느새 그녀의 상처가 새겨지고 있었다니                 잠자는 아내를 보며 / 박재삼      깨어 있을 때는  그리 일이 많던 아내가  잠에 골아 떨어지고 보면  세상천지는 내 몰라라  숨쉬는 소리만이  새록새록 들리는데,  이렇게 늘 가까이서  살을 대고 산 것이  벌써 30년이 되었구나.  이 인연을 어찌하고  각각 이승을 뜨고  억울하게 땅 밑에 묻히는  숱한 세월을 생각하면  그 虛無를 어쩔거나.                아내와 다툰 날 밤 / 복효근     새로 얻은 전셋집 마당엔  편지 대신 들꽃씨가 자주 날아와 앉았지  봄 내내 우린  싸움닭처럼 다투었고 그런 날이면  마당귀 가득 달맞이꽃이 피었지  전세값이 삼백이나 더 오른 날 밤도  달은 뜨고 달맞이꽃은 피었지  하많은 날 수많은 꽃들이 피었다 져도  세상은 아직 그렇게 아름다워지지 않았으므로  밤이 되어  어둠이 세상을 온통 지워버려도  지워지지 않는 아픔과 그 아픔으로  깨어있는 들꽃 같은 우리네 소망  그리고 아직은  가슴 가득 정정한 그리움도 있어  별이 어두울수록 빛나듯  달 없는 밤에도 꽃은 피는지  우리 긴긴 싸움의 나날  아내여, 귀 기울여봐  온갖 것 다 놓아버리고 싶은 밤이면  어둠 가득한 마당귀에  귀 기울여 들어봐  아아, 달맞이꽃 터지는 소리 들어봐                   내 아내 / 서정주        나 바람 나지 말라고   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 놓은   삼천 사발의 냉숫물     내 남루(襤褸)와 피리 옆에서    삼천 사발의 냉수 냄새로   항시 숨쉬는 그 숨결 소리     그녀 먼저 숨을 거둬 떠날 때에는   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아     내 먼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면   내 숨은 그녀 빈 사발에 담을까                   여편네의 방에 와서 / 김수영   - 신귀거래(新歸去來) 1  여편네의 방에 와서 기거를 같이해도  나는 이렇듯 소년처럼 되었다  흥분해도 소년  계산해도 소년  애무해도 소년  어린 놈 너야  네가 성을 내지 않게 해주마  네가 무어라 보채더라도  나는 너와 함께 성을 내지 않는 소년  바다의 물결 작년의 나무의 체취  그래 우리 이 성하(盛夏)에  온갖 나무의 추억과  물의 체취라도  다해서  어린 놈 너야  죽음이 오더라도  이제 성을 내지 않는 법을 배워주마  여편네의 방에 와서 기거를 같이해도  나는 점점 어린애  나는 점점 어린애  태양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죽음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언덕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애정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사유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간단(間斷)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점(點)의 어린애  베개의 어린애  고민의 어린애  여편네의 방에 와서 기거를 같이해도  나는 점점 어린애  너를 더 사랑하고  오히려 너를 더 사랑하고  너는 내 눈을 알고  어린 놈도 내 눈을 안다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아내의 꽃 / 김경진   꽃들은 얼굴을 마주볼 때 아름답다  술패랭이꽃이 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아내의 얼굴에 핀 기미꽃을 본다  햇볕의 직사포를 피하기 위해  푹 눌러쓴 모자에도 아랑곳없이  자꾸 얼굴에 번져가는 아내의 꽃,  사시사철 햇볕이 없을 수 없듯 피할 수 없이  아내의 얼굴엔 피어난 꽃이 늘어간다  아내는 몸 꼭대기에 꽃밭을 이고 다니는 것이다  기미꽃, 죽은깨꽃, 주름꽃  다양한 아내의 꽃밭에서 그래도 볼 위에  살짝 얹어진 웃음꽃이 가끔씩 위안으로 피어난다  술패랭이꽃들이 몸을 부비는 산책로를 걸으며  나는 아내의 손바닥에 글씨를 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항상 내 곁에 있다고                      내외 / 윤성학     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조붓한 산길을 오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나를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 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가릴 곳을 찾다가  적당한 바위틈을 찾아 몸을 숨겼다  나를 바위 뒤편에 세워둔 채  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돼  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안돼 딱 거기 서서 누가 오나 봐봐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고  그녀는 보여줄 수 없으면서도  아예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고  그 거리, 1cm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 바위를 사이에 두고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내통(內通)하기 적당한 거리                  그 여자 발 / 김영승     말간 소주  놋쇠 대야에 부어 놓고  그 여자 발 하얀 그 발  조심스레 씻겨 주며  내 한 잔씩 떠 마시면  아름답기에 갖는 번뇌  내 혀에 와 닿겠네.                    마누라와 마늘 / 임정일     장마가 오기 전  김치를 담아야 한다고  마누라는 마늘을 깐다  옹기종기 다닥다닥 야무지게 엮어  바람 좋은 뒷 베란다에 내어 걸더니  못난 서방 멱살이나 낚아채듯  후둑후둑 대차게 뽑아낸  마늘 대여섯 통  마누라 쭈욱 뻗은 팔자 다리 사이  불량만두 제조업체사장은  종적도 없이 한강에 투신을 하고  900억 국회 건물은 신축을 한다  한 접에 만오천 원하는 육종 마늘 값을 아끼려  경동시장을 다녀온 마누라의 알통은  마늘쪽보다 더 다글다글 하다  휘발유 냄새 가시지 않은 신문을 깔고 앉아  마누라가 마늘을 깐다  풋마늘 냄새 손톱 밑을 파고들어  첫 봉숭아 물들이기 전까지 아릿할 텐데  마늘냄새 풍기며 바가지 긁는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아내의 젖을 보다 / 이승하      나이 쉰이 되어 볼품없이 된  아내의 두 젖가슴이  아버지 어머니 나란히 모신 무덤 같다  유방암이란다  두 아이 모유로 키웠고  내가 아기인 양 빨기도 했던  아내의 젖가슴을 이제  메스로 도려내야 한다  나이 쉰이 다 되어 그대  관계를 도려내고  기억을 도려내고  그 숱한 인연을 도려내듯이  암이 찾아왔으니 암담하다  젖가슴 없이 살아야 할 세월의 길이를  생명자가 있어 잴 수가 있나  거듭되는 항암 치료로 입덧할 때처럼  토하고 또 토하는 아내여  그대 몇 십 년 동안 내 앞에서  무덤 보이며 살아왔구나  두 자식에게 무덤 물리며 살아왔구나  항암 치료로 대머리가 되니  저 머리야말로 둥그런 무덤 같다  벌초할 필요가 없다  조부 무덤 앞 비석이  발기된 내 성기 닮았다                 아내의 봄비 / 김해화    순천 웃장 파장 무렵 봄비 내렸습니다.  우산 들고 싼거리 하러 간 아내 따라 갔는데  파장 바닥 한 바퀴 휘돌아  생선 오천원 조갯살 오천원  도사리 배추 천원  장짐 내게 들리고 뒤따라오던 아내  앞 서 가다보니 따라오지 않습니다  시장 벗어나 버스 정류장 지나쳐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비닐 조각 뒤집어 쓴 할머니  몇 걸음 지나쳐서 돌아보고 서 있던 아내  손짓해 나를 부릅니다  냉이 감자 한 바구니씩  이천 원에 떨이미 해가시오 아줌씨  할머니 전부 담아주세요  빗방울 맺힌 냉이가 너무 싱그러운데  봄비 값까지 이천 원이면 너무 싸네요  마다하는 할머니 손에 삼천원 꼭꼭 쥐어주는 아내  횡단보도 건너와 돌아보았더니  꾸부정한 허리로 할머니  아직도 아내를 바라보고 서있습니다  꽃 피겠습니다                 처 자 / 고형렬   주방 옆 화장실에서  아내가 아들을 목욕시킨다  엄마는 젖이 작아 하는 소리가  가만히 들린다  백열등 켜진 욕실에서 아내는  발가벗었을 것이다  물소리가 쏴아 하다 그치고  아내가 이런다 얘,너 엄마 젖 만져봐  만져도 돼? 그러엄. 그러고 조용하다  아들이 아내의 젖을 만지는 모양이다  곧장 웃음소리가 터진다  아파 아놈아!  그렇게 아프게 만지면 어떡해!  욕실에 들어가고 싶다  셋이 놀고 싶다  우리가 떠난 훗날에도  아이는 사랑을 기억하겠지                 나의 아내 / 문정희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봄날 환한 웃음으로 피어난 꽃 같은 아내 꼭 껴안고 자고 나면 나의 씨를 제 몸 속에 키워 자식을 낳아주는 아내 내가 돈을 벌어다 주면 밥을 지어주고 밖에서 일할 때나 술을 마실 때 내 방을 치워놓고 기다리는 아내 또 시를 쓸 때나 소파에서 신문을 보고 있을 때면 살며시 차 한잔을 끓여다주는 아내 나 바람나지 말라고* 매일 나의 거울을 닦아주고 늘 서방님을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내 소유의 식민지 명분은 우리 집안의 해 나를 아버지로 할아버지로 만들어주고 내 성씨와 족보를 이어주는 아내 오래 전 밀림 속에 살았다는 한 동물처럼 이제 멸종되어간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아직 절대 유용한 19세기의 발명품 같은** 오오,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 미당의 시  **매릴린 옐름,                아내는 늘 돈이 모자라다 /전기철       아내는 나를 조금씩 바꾼다. 쇼핑몰을 다녀올 때마다  처음에는 장갑이나 양말을 사오더니  양복을 사오고 가발을 사오고  이제는 내 팔과 다리까지도 사온다. 그때마다  내 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투덜거리지만 아내는 막무가내다.  당신, 이렇게 케케묵게 살 거예요, 하면  젊은 아내에게 기가 죽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만다.  얼마 전에는 술을 많이 마셔 눈이 흐릿하다고 했더니  쇼핑몰에 다녀온 아내가 눈을 바꿔 끼라고 한다.  까무러칠 듯 놀라며 어떻게 눈까지 바꾸려고 하느냐, 그렇지 않아도 걸음걸이가 이상하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린다고 해도  그건 그 사람들이 구식이라 그래요, 한다.  내 심장이나 성기까지도 바꾸고 싶어 하는  아내는 늘 돈이 모자라서 쩔쩔맨다.  열심히 운동을 하여 아직 젊다고 해도  아내는 나를 비웃으며 나무란다.  옆집 남자는 새 신랑이 되었어요. 당신은 나를 위해서 그것도 못 참아요, 한다.  그때마다 시무룩해진 아내가 안쓰러워 그냥 넘어가곤 하는데  아침 일찍 아내보다 먼저 일어나  거울 속에서 내 자신이었을 흔적을 찾느라  얼굴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내 모습이 없으니  밖에 나가면 검문에 걸릴까 두려워 일찍 귀가하곤 한다.                 처의 바가지 / 고형렬       서울서 한 20년 잘 살아내더니 여편네가  어느날 갑자기 아주 멀리 가고 싶다고 한다  길이 돌로 된 독일은 안돼도 방콕이나 인도쯤  석양이나 초원을 보고 싶다고 투정이다  길바닥에 앉아 변을 누어도 괜찮다는 곳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고 내버려둔다는 곳  그러나 여편네는 왜 자신이 이러는지를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할 수 없다 불평이다  남편이 싫어서도 아이들이 싫어서도 아닌데  왠지 낯선 세상을 보고 싶다니 왠일일까  여편네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사는 재미가 싹 사라져버린 것 아닐까                  아내의 브래지어 / 박영희   누구나 한번쯤  브래지어 호크 풀어보았겠지  그래, 사랑을 해본 놈이라면  풀었던 호크 채워도 봤겠지  하지만 그녀의 브래지어 빨아본 사람  몇이나 될까, 나 오늘 아침에  아내의 브래지어 빨면서 이런 생각해보았다  한 남자만을 위해  처지는 가슴 일으켜세우고자 애썼을  아내 생각하자니 왈칵,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남자도 때로는 눈물로 아내의 슬픔을 빠는 것이다  이처럼 아내는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동굴처럼 옹크리고 산 것을  그 시간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던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나 오늘 아침에  피죤 두 방울 떨어뜨렸다  그렇게라도 향기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 전윤호 짐을 싸는 데 익숙해진 그녀는  내가 없어도  쉽게 떠날 준비를 끝낸다  내 몫으로 남겨진 가구나 이불들은  너무 낡거나 무거워서  버리고 가도 괜찮은 것들이다  필요하다면 가볍게  그녀는 기르던 개도 이웃에 준다  함께 산 지난 오 년 동안 기른 머리를  새로 이사한 동네에서 싹둑 자른 그녀는  요즘 취한 내 옆에서 자지 않고  슬그머니 부엌으로 빠져나와  주소를 쓰지 않은 편지를 쓴다  송곳니가 빠진 날 무표정한 얼굴로  오래 살펴보면서  냉장고와 함께 밤을 새는 그녀는  낯설게 아름답다                    아내에게 / 김지하       내가 뒤늦게  나무를 사랑하는 건  깨달아서가 아니다  외로워서다  외로움은 병  병은  병균을 보는 현미경  오해였다  내가 뒤늦게  당신을 사랑하는 건  외로워서가 아니다  깨달아서다.                 아내의 등 / 하재영   어느 날부턴가 잠에서 깨면 아내는 등을 보이고 있다  내 바람을 눈치 챈 것은 아닐까  함께 이부자리 들어 신혼을 보낸 지 십년이 넘었어도  나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숨결에  으레 내 쪽을 향해 잠을 자던 아내  거웃도 자란 자식들 키우며  눈가 주름 잡히도록 눈물 흘리며 인생살이 터득해 가는데   며칠 전 내 어느 애인이랑 바람이 지난 길 따라  오래 묵은 은행나무 푸른 그늘 아래서  나뭇잎 흔들리게 책장을 넘겼는데  그 때 그 바람 아내가 눈치 챈 것 아닐까  아니면 오래 전 산 넘고 강 건너  꽃길 펴 놓았으니 오라는 전갈 받고  자동차 몰고 찾아가 외박하며 끌어안은  꽃향기와 바람소리와 별  그 불륜이 아내의 귀에 들어간 것은 아닐까  어느 날부턴가 잠에서 깨면  아내는 등을 보이며 한 걸음 한 걸음 저쪽으로 가고  나는 아내를 자꾸 쫓아가며  아내의 등에 붙어 있는 검은 점도 새롭게 발견하고  등 돌린 아내  슬며시 나를 향해 돌아눕게 하는데  돌아눕는 사이 늘어난 새치도 눈에 띠고  화장하지 않은 이마 주름도 살아온 길처럼 보여   예전보다 더 아름다워지는 아내를  아내의 등 뒤에서 넓은 아내를 본다                아내들 / 육봉수    직각으로 완강하던 어깨 반쯤 무너진 채  상경 투쟁 마치고 돌아와 열없이  두살배기 아들 어르고 있는 그이의 무릎 앞  관리비 고지서 모르는 척 들이민 날 밤엔  등 돌리고 누워 잠들기 십상입니다  일 년하고도 석 달을 넘긴 날들  눈앞의 돈 몇 푼보다는 노동자로서의 내  자존심 먼저라던 그 말에 꺼뻑죽어  노동자 아내의 자존심도 있긴 있지 그래  당신 멋있어 멋있어 박수치던 날들  속상해 억울해 뒤척뒤척  뒤척이기도 십상입니다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러나  바람 닥칠 조짐일자 텅 빈 공장 휑하니  제 밥그릇 뚝딱 챙겨 발 빠르게 떠났다는  돈 되면 삼키고 돈 안 되면 뱉어내는  사장님 족속들의 밉살맞은 행태보다  돈 안 되는 일 부여잡고도 행복한 사람들  더욱 사랑하고 싶어진다 뚬벅하게 말문 닫고  어느 틈 드르렁 코 골고 있는 아이의 아버지와  무너진 어깨 다시 일으켜 세우려 곰곰이  아침 밥상 위에 올릴 고등어자반 뒤집을 생각으로  아슴아슴 잠들기도 십상인 그런 젊은  밤이기도 합니다 돌아눕긴 했지만……                 아내의 종종걸음 / 고증식       진종일 치맛자락 날리는  그녀의 종종걸음을 보고 있노라면 집안 가득 반짝이는 햇살들이   공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푸른 몸 슬슬 물들기 시작하는 화단의 단풍나무 잎새 위로 이제 마흔줄 그녀의  언뜻언뜻 흔들리며 가는 눈빛,  숭숭 뼛속을 훑고가는 바람조차도 저 종종걸음에 나가떨어지는 걸 보면 방안 가득 들어선 푸른 하늘이 절대 공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제 발걸음이 햇살이고 하늘인 걸 종종거리는 그녀만 모르고 있다                   아내의 생일 / 김두일     생일이라고 들뜬 아내에게 깜짝 선물을 하고 싶어, 아내가 며칠 전에 벗어 장롱 속에 감춰둔 속옷을 꺼내 빨았다. 얼마나 오래 입었는지 후크가 너덜 대는 브레이지어와 잔 구멍이 숭숭 뚫려 거미줄처럼 얇아진 팬티. 그토록 오래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도 아내가 저런 속옷을 입고 사는지 모르고 산  무딘 손이 비누를 벅벅 문질러댔다. 수돗물을 틀지 않았는데도 속옷이 젖 고. 시장에서 악착같이 값을 깎던 아내의 힘이 저기 숭숭 뚫린 구멍을 지나 나온 것 같아 늑골이 묵직했다   자꾸 고관절이 아프다는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갔더니,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보던 의사는 골다공증이라며 구멍이 숭숭뚫린 아내의 뼈사진을 보여 주었다. 뼈에 뚫린 구멍들을 자세히 보니 사나운 이빨자국이 선명했다. 아들녀석이 한 입씩 베어문 흔적 옆에 승냥이보다 더 예리하게 뜯어낸 내 이빨자국이 무수하게 널려있었다. 깊은 밤에 마시고 버린 술병이 아내의 뼈속에서 파편처럼 박혀 신경을 누르고 있었다. 아마도 아내는 수렵의 시대를 지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모처럼 일찍 퇴근하는 날, 뼈에 좋다는 사골을 넉넉히 사고, 티비에서 광고해대던 속옷을 세트로 사들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내는 바늘을 쥐고 앉아 너덜너덜한 속옷 구멍을 빈틈없이 메우고 있었다. 속옷의 구멍이야 바늘로 깁지만 뼈에 난 구멍을 무엇으로 메우려는지. 한무더기 시간이 내 뼈속에서 휘파람을 불며 빠져나가는 오후. 뽀얗게 우러난 사골 국물 속에서 아내의 허벅지 뼈 한덩이를 건져올렸다.                        '보기에 좋았더라' / 최병무                  처음 만나던 날 발갛게 익은 당신의 볼과 단정한              모습이 어제처럼 선명한데, 아무래도 우리가              한바탕 꿈을 꾸었지 싶어. 그날 돌아오는 길에              코스모스는 유난히 상냥했었지             지금 다시는 오르지 못할 山을 추억하는 일.             당신은 늙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할머니의             시절이 왔다고 한다             함께 산 날이 많아졌다!             아직도 나는 당신이 그리워.             늙어가는 우리가 아름다워.             살아있는 것들은 열매를 위하여 소멸을             준비하는 것, 뽐내기 위하여 꽃은              피지 않았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우리끼리 '보기에 좋았더라'                                   꿈 이야기, 아내에게 / 최병무                      - 이른 아침 나는 윤회의 꿈을 꾸었다                  영혼여행이 시작되는 설계가 이루어지면                과제를 실어나른다  지금 우리 그룹은                 역할을 새로 맡았다                 미리 배역을 정하고 집을 만든다                진화를 꿈꾸는 동안                선사시대에 살기도 했을 우리가                지금 밀접한 부부의 실험을 한다                동행하는 안내자이자 한때는 오누이였다가                아들과 딸이였다가 어머니였다가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우리가 이렇게 자리를                 바꾼다  윤회는 과학이다                존재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우리가                 지금 이 별에 머물고 있다                소꿉장난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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