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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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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3    김혁 / 김룡운 댓글:  조회:4364  추천:0  2015-09-17
 [ 2015년 09월 25일 08시 42분 ]     길이 300메터 수직 높이 180메터 되는 고공 유리 줄다리(玻璃吊桥) ㅡ 호남성 평강현 석우채(湖南平江县石牛寨) 국가지질공원內, 이 줄다리는 중국 첫 고공유리줄다리. ====================================================== . 평론 .   괴재(怪才) 이재(異才) 기재(奇才) - 김혁과 그의 문학   /김룡운     김혁 그는 누구인가?   김혁은 문학에 대한 끈질긴 투혼(投魂)으로 이미 중국조선족문단에서 모두가 공인하는 중견작가로서의 작가적 위상을 튼튼히 굳혔다. 그는 우선 다산작가로서 우리 문단에서 글을 가장 많이 발표한 사람중의 하나다. 19세에 처녀작 "피그미의 후손들"을 들고 문단에 데뷔한 이래 천부적인 기량으로 지금까지 "적", "천재 죽이기", "조모의 전설" "타인의 시간"등 중편소설 40여 편과 "겨울유흥장", "어떤 개의 순애보", "마담의 전성시대" 등 단편소설 30여 편과 300여수의 시 그리고 200여 편의 수필, 칼럼을 세상에 내 놓았다. 게다가 중편소설집 "천재 죽이기", 르포집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등 단행본들을 합치면 그 량은 엄청나다. 30대 작가로서 이만큼 한 량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경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2003년에는 한해만도 장편소설 "마마꽃, 응달에 피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2부를 발표 한외에 중편4편과 단편 2편을 발표했다. 한해에 이런 엄청난 수확을 거둔 것은 우리 문단에서 전례 없던 일이다. 그는 다산 작가일 뿐더러 다 쟝르 작가이기도 하다. 소설을 주로 하면서 시 수필 칼럼 아동문학 등 각 령역에도 족적을 남기며 골고루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1여년의 기자 생활중에서 1000여편에 달하는 기사도 발표했다. 창작기법의 창신에서도 언제나 맨 앞장에서 달려 쉐르알리즘 소설도 썼고 황당파 소설도 썼고 환상적 리얼리즘소설도 썼고 력사소설도 썼고 과학환상 소설도 썼고 추리소설도 썼다. 풍성한 창작은 찬란한 계관들을 안아 왔는바 해란강 수필문학상 아리랑 시문학상 장백산 시문학상 도라지 소설문학상 흑룡강신문 실화상 흑룡강출판사 동심컴 아동문학상. 라지오문학상, 연변작가협회문학상 한민족청년상 문단의 주요 상들을 거의 모조리 휩쓸이 하기도 했다. 김혁은 이미 문단이 주목할만한 탑을 쌓아 왔다. 그 탑의 진모를 살펴보는 것은 본인의 금후의 창작은 물론이려니와 우리 문단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결코 무의미한 작업은 아닐 것이다. 김혁은 창작에서는 누구보다 집요하고 창작욕구는 누구보다 강렬하고 창작에너지는 누구보다 풍부하다. 그의 가슴에는 이 세상에 대해 할말이 너무나 많다. 그것들은 뜨거운 암장으로 작가의 가슴속에서 굼실이다가 종당에는 문학이라는 형식으로 변모하여 뿜겨져 나온다. 그 들끓어 번지는 암장은 어떻게 생기는 것 일가? 암장이 이루는 엘리멘트(요소) 내지 모체는 어디에 있는 것 일가 ?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그의 인생프로필에서 찾는다.지금까지 밟아온 그의 삶의 그라프는 한마디로 아픔이요 상처다. 불운한 출생과 학구적인 대학을 나오지 못한 음영에 짓눌려 남보다 큰 성적가리를 쌓아올렸음에도 소외된 삶을 내내 살아 온 사람. 그에게 있어서 인간의 존재와 인간의 가치는 하나의 커다란 물음표였다. 그는 존재에 대한 확인과 가치에 대한 확인 그리고 그로부터 자아실현을 완성하고저 글 속에 파묻혀 인생을 탐구하고 문학을 탐구한다. 그 와중에 그가 벗으로 사귄 것이 삶과 문학의 우상이였던 리상(李箱)이였고 번뇌와 고통을 힘과 용기와 신심으로 변화 시켜주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였다. 상처와 아픔은 김혁 문학의 뿌리다. 누군가는 상처는 무궁한 문학적 자산이라고 하였다. 삶의 길우에는 복병(伏兵)같은 상처의 돌부리가 무수히 있어 우리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린다. 우리는 그 덫을 무사히 넘어갈 수 없다.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의 모든 풍경을 상처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혁은 자기의 인생 궤적우에 무수히 쓰러져 잇는 고통스런 시간의 쪼각들을 보면서 그 부서진 시간마다에 정성들이여 묘비를 세우고 묘비마다에 자기 나름대로의 비문을 써넣고 있다. 그 비문에서 이 구슬프고 고매한 가락을 뽑고 가 붉은 피를 토하고 가 네온사인이 드리운 거리를 방황하고 이 한 마리의 인어로 변하여 망망한 인간세상에서 헤염치고 이 오욕의 껍질을 벗고 승천하고, 불협화음에 질식하여 의 비극이 펼쳐진다. 그러나 김혁은 결코 주어진 삶 앞에 꿇어앉지는 앉는다. 그는 가치의 혼돈에 방황하고 도전하고 대전하고 잇으며 그 와중에 진정한 생명가치를 찾고 참다운 인성의 탑을 세우려 한다. 이러한 존재론적 인식은 리얼리즘문학만으로는 체현할수 없는바 그의 문학은 포스터모더니즘 내지 쉐르알리즘 쪽으로 경로 하게 된다. 포스터모더니즘의 리론가 모르스 페캄은 에서 이라고 말하며 고 주장한다. 모르스 페캄의 이 말은 김혁의 작품을 리해 하는 고리가 된다. 혼돈과 질서를 바로잡는데 엤어서 파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파괴가 거대한 파워를 발산하고 일반에게 잘 리해되지 않을 때 괴재(怪才), 이재(異才) 라는 말을 듣게 되며 그 파괴가 문학 예술적으로 승화했을 때 기재(奇才)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한편 또 해당시대로부터 이단으로 몰리기도 한다. 한마디로 문학예술에서의 괴재 이재 기재란 해당시대의 사유와는 벗어나가면서 엉뚱한 사유로 엉뚱한 작품을 쓰는 사람이라 하겠다. 조선문학사에 나오는 김시습과 허균, 김립이 그렇지 않았던가. 중국문학사에서는 또 리백이 그렇지 않았던가. 오늘 이 짧은 글에서 김혁의 모든 작품들에 대해 일일이 살펴볼 수는 없는바 몇편의 대표작들을 골라 례문에 올려 보기로 한다. 여기에는 사뮬레이션(모의실험)이라고 볼 수있는 , , , , , , 등이 속한다.   새로운 창작기법의 부단한 추구   1,력사 소설- “적”(도라지 94년 5호)은 력사제재로 현실제재를 체현하고 있다는데서 기법 상에서 새로우며 력사이야기로 오늘의 구겨진 삶을 매질하고 있다는데서 현실적 의의를 가진다. 금전과 권력의 소외를 받아 온 작자의 작품에는 누구보다도 금전욕과 권세욕에 대한 비판이 짙게 깔려 있다. “적”은 시종 아련하고 연연한 언어외피로 먼 력사이야기를 기술하다가 급기야는 하나의 고결한 인덕의 인간을 우뚝 세워놓고 오늘의 비뚤어진 삶에 강타를 안긴다. 금전만능과 권세지상이라는 거창한 괴물이 소설 앞에서는 한 낱 하잘것없는 존재로 무릎을 꿇고 만다. “적”에서 작자는 옛 악공(樂工)의 예술에 대한 구도(求道)의 길을 펼쳐 보이는 작업을 통해 현실 속의 금전과 권세와 명예를 위해서는 추구도 버리고 그 어떤 비렬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 구질구질한 인간들과 그들을 배태 한 세태에 대해 성찰, 질타하고 있다.   2,황당파 소설- 표현주의에 뿌리를 둔 황당파는 그 력사가 거의 80년이 됨으로 황당파소설이란 개념이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세상과 늦게 대화를 나눈 중국조선족문단으로 볼때는 낯선 개념이 아닐수 없다. 김혁은 90년대 중기에“바다에서 건진 바이올린”(도라지 95년 4호)을 내놓아 우리의 소설문학에 신선한 활력소를 주입해 주었다. 카프카에 의해 고봉에 이른 황당파소설의 특징은 인간의 의화와 소인물의 고통, 공포의 정서를 다루며 황당한 정절과 진실한 세절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에 굳이 황당파소설이라고 이름 붙힐 수 있는 것은 위에서 말한 이러한 특징을 너무나 잘 체현했기 때문이다. 작품의 주인공 방황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전도유망한 음악의 길을 걷다가 황금전이라는 녀자의 재부에 환혹되여 예술의 길을 떠나 속세의 길을 걷게 된다. 세상을 음악의 곡조처럼 아름답게만 보아왔던 주인공에게 있어서 갑작스레 들이닥친 상품경제시대는 물욕 명예욕 도전과 암투로 득실이는 가혹한 세계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극도로 절망하고 방황하던 끝에 마침내 바다를 영원한 안식처로 정하고 몸을 던져 한 마리의 인어로 변한다. 작중인물들의 이름은 모두가 뚜렷한 상징성을 띄고 있다. 방황하는 예술가와 금전만능의 대표인물과 사회의 병페를 보아내는 대변인으로 나선 사색 깊은 기자를 방황(彷徨), 황금전(黃金錢), 철인(哲人) 등 이름으로 상징화 했다. 이야기는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황당한 이야기 속에 물질만능시대에서 생성된 갖가지 의식형태에 대한 고찰과 분석이 엄숙하게 깔려 있다.   3,초현실주의 소설- “천재죽이기”(도라지 95년 5호)는 우리 문단에서 보기 드문 쉐르알리즘소설이며 김혁의 대표작의 하나이다.소설에는 리상의 소설과 시가 여러 곳에서 얼굴을 내민다. 김혁은 리상을 문학에서의 우상으로 모신다. 리상은 전통문학에 대한 요 요 이다. 그처럼 김혁도 소설에서 우선 파괴와 반역을 앞세운다. 이 작품에서 그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 난다. 소설 소제목달기에서 처음으로 9자로부터 거꾸로 마지막 -1에 까지 이른다. 정상적 법규를 파괴함으로써 첫 시작부터 자기 소설이 쉐르알리즘 소설임을 선포한다. 후기 구조주의 대가 츠베탕 토도로프는 구조주의적 연구의 자기 파괴적 특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여기서 김혁은 토도로프와 포옹한다. 주인공의 이름도 이왕과는 달리 영어로 되어있다. 남자라는 man. 필자의 독단인지 몰라도 주인공 man에 대하여 지식과 덕성으로서 골똑 찬 으로서의 인간이 아닐가고 생각해 본다. 이는 아이니 컬하게 붙인 이름일 것이다.소설은 환몽과 현실사이를 넘나드는 정절로 한 공무원이 겪고있는 불행한 삶을 남다르게 보여 준다. 사업에서도 실력가, 지식소유에서도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천재. 그러한 인간이 회사의 버림을 받고 녀편네의 버림을 받고 사회의 버림을 받는다. 천재로서의 응분의 대우를 받을 대신 모든 것을 다 잃고 이 시대 순결무구한 지식인의 비극적 운명을 작품은 무게있게 뼈아프게 펼쳐 보이고 있다. 그러면 김혁은 쉐르알리즘 소설을 쓰고싶어 썼을가? 아니다. 천재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천재를 살리기 위하여 이 작품을 썻던 것이다. 를 읽은 사람들은 작품에는 작자의 자화상 성분이 다분히 들어있지 않았나 느껴본다. 이 소설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리고 이 소설에서 김혁이 가장 빼여지게 완성하고있는 것은 정신적 가치에 가해오는 물질적 가치의 횡포를 질식과 단절을 상징하는 으로 예술적처리를 한데 있다. 작품을 읽은 이들이라며 누구나 하는 리상의 시구가 나오는 장절에서 주인공이 장면에서 숨막히는 무가내를 느꼈을 것이다. 주인공은 세상의 몰리해 속에서 천재로부터 정신질환자로 추락해 간다. 작자는 인간가치의 훼멸을 붓끝에 꿰 달고 세상에 흔들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비관적인 호소가 아니다. 비극을 통해 비극을 극복하고 지식본위시대를 찾으려는 적극적인 삶의 제스처가 작품의 맥락 속에 보인다.초현실주의에서 현실의 맛을 진하게 씹어보는 멋, 이것 역시 그만의 독특한 심미향연이 아닐가!   4,사이버 소설- “병독”은 우리문단에서 맨 처음으로 선을 보인 사이버소설이다. 언제나 새것에 민감한 김혁은 을 들고나와 사회의 을 없애려 시도한다. 은 불확실성, 몬따쥬수법,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불명확한 경계, 놀이성, 무작위성, 탈경전(脫經典) 등에서 추구를 보였기에 포스터모더니즘 계렬에 놓고 살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시종 꾀한 것은 사이버문학의 특징으로 되고있는 놀이성이고 무작위성이다. 그리고 몬따쥬수법이다. 하나 하나의 장면이 몬따쥬이며 놀이이며 작위가 없는 이 작품에서 모든 것이 바이러스에 걸려 추락한다. 작품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채팅 하면서 남긴 아이디고 되어있다. 애인 격이던 , 마음으로 추구하던 , 청매죽마, 딱친구 이들은 모두 주인공 의 곁을 떠나버린다. 돈 많은 남자와 붙어먹고 남의 컴을 어거지로 가져가고 일본남자에게 시집간다. 지어 애인의 애완견조차 죽어 버린다. 한마디로 떠오르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허무 속으로 추락해 버린다. 이들의 추락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 병독은 표면으로는 컴퓨터에 있는 것 같으나 실질 상에서는 작품중의 매 인간의 머리에 잠복해 있다고 짚어 낸다. 신 세대들의 무작위한 놀이를 통해 기성세대들의 부박한 엄숙주의, 기성세대들이 세운 기존질서를 충격하고 풍자하고 있다. 이러한 배격과 풍자는 기성세대는 병들어 있다. 그 병은 배고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배픔은 식욕, 성욕, 물욕으로부터 오는 욕구불만일뿐더러 주요하게는 에서 비롯된 것이다. 은 신세대들의 질서없고 자유자재적인 생활상, 그 놀이성 속에 큰 상징적 의미를 띄고 있다. 작자는 사이버소설의 특징을 능란하게 살려 작품사이에 류행가요를 끼워 이야기의 맥락을 이어나가는가 하면 소제목 짜기에서도 컴퓨터 키보드의 모든 영어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소설에서 간과할수 없는 것은 신세대들만의 조야한 언어방식으로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언어관습으로만 볼 것 아니라 비뚤어진 기성질서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스트레스의 해소와 반발의 표현을 위한 재치 있는 구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사이버제재 소설에 무감각하다 할 수 있는 우리 문단에서 맨 처음 나온 사이버제재소설로서 은 이례적인 매력을 뿜고 있다.   5,공포 소설- 새로운 추구에서 지칠줄 모르는 김혁은 이번에는 또 조선족문단에서 맨 처음으로 되는 공포설 “산장” (도라지 2003년 1호)을 내놓았다. 공포계렬소설의 제1탄인 소설에 대한 창작담에서 김혁은 “우화적인 이야기를 공포라는 액자속에 담는 이러한 작업들에서 단 개인취미에서 발설된 렵기위주의 흥감질이 아니라 산업화에 동조한 피페해진 우리의 농촌풍경. 리흔붐이 사회에 끼치는 심각성, 문화대혁명이 남긴 원자병 같은 후유증, 경쟁사회에 일그러진 고단한 자아와의 만남, 불신 시대의 너나의 일그러진 심태 등 심각한 주제의 숨은 메시지를 작품의 분위기에 아우르는 군형적인 감각으로 도출해내 자칫하면 싸구려로 읽혀질 작품에 깊이 있는 울림을 부여하고자 한다.”고 피력했다. 소설가란 이야기 군이다. 이야기를 통해 비희고락을 발설하는 인간이다. 그 이야기가 구수하면 진짜 이야기 군이고 미미하면 엉터리라고 힐난을 받는다. 필자는 “산장을” 읽으며 김혁은 진짜 이야기 군이라는 생각을 가져 보았다. 공포에 대한 탐구는 필요 적실하다. 사실 인간은 공포 속에서 사는 동물에 다름이 아니다. 공포 속에서 인간은 본질적 내함을 파헤치고 그로부터 현실 삶의 무게를 가늠해 보려는 작자의 의도는 기발하고 좋은 것이다. 그 시도가 창작개성이 무마되고 있는 우리 문학에 새로운 충격과 신선도를 알게 모르게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필자는 작품의 작은 허점을 아량하며 작품과 악수하고 싶다.   6, 대화체 소설- 마냥 열광적으로 생신 한 제재를 새로운 그릇에 담으려 꿈꾸기에 김혁의 작품에는 맨 처음이란 말이 많이 붙는다. 맨 처음으로 사이버소설을 썼는가 하면 맨 처음으로 공포소설을 썼고 이번에는 맨 처음으로 대화체 소설을 썼다. 중편소설 “화두”(장백산 2003년 3호)로 새로운 창작의 화두를 던졌다. 김혁은 담이 크다. 언감생심 서술이라고는 없이 순 말로만 된 대화소설을 썼다. 장난인가? 결코 아니다. 그는 문체의 이러한 창신을 통해 우리의 현실에 대한 우환의식이 담긴 대화를 끊임없이 펼친다. 그리고 그 대화 밖에서 각 인물 저 저마다가 겪는 각 류형의 이야기들을 만난다. 작품에서 김혁은 포스터모더니스가 아니라 알짜배기 리얼리스트로 주제를 밀어 나간다. 하지만 기법의 생신함은 작품 전체에 시종 관통된다. 기법의 생신함으로 무거운 주제를 깊이있게 갈파한 것이다.    상술한 작품 외에도 생태환경에 대해 환기시킨 “라이프 스페이스” , 의인화적 색채를 보인 “어떤 개의 순애보”,시나리오 특성을 채용한 “원죄”, 추리기법으로 이채를 보인 “요청”등등으로 좋은 작품들이 많으나 이미 임범송교수 전국권교수 윤윤진교수 김병활교수 등 분들이 세세한 평론을 가했음으로 이 작품들에 대한 평은 본문에 넣지 않았다. =========================================================== 김룡운 평론가  
722    詩碑에 是非를 걸다... 댓글:  조회:4730  추천:0  2015-09-17
김소월, 이상화, 이육사, 한용운, 윤동주, 정지용, 이상, 백석, 김수영, 박인환, 서정주, 조지훈, 유치환, 박목월, 박두진, 신동집, 구상, 김춘수…. 대시인(大詩人)은 오랫동안 대한민국에선 ‘국부(國父)적 존재’로 추앙받았다. 국어수업시간에 배웠던 국민적 애송시는 시인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  나름의 위상을 가진 시인은 자기 고향을 대표하는 존재로 대접받았다. 전국적 인지도를 갖게 되면 ‘계관시인’으로 인정돼 예술원 종신회원이 되는 등 초특급 예우도 받았다.  사후에는 작고시인 시비건립추진위를 결성, 죽은 시인을 기렸다. 이후 문학관 건립은 물론 문학상도 제정했다. 이걸 본 시민은 시인을 한없이 부러워했다. 시인은 당연히 그렇게 해도 되는 줄로만 알았다. 시인이 시민을 압도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해서 1948년 국내 최초의 근대 시비가 죽순문학회 주도로 대구 달성공원에 세워진다. 바로 민족시인 이상화를 위한 시비였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시비 건립에 엄격한 잣대와 기준이 있었다. ‘아무리 유명해도 살아 있을 때는 시비를 세워선 안 된다’ ‘작고시인 시비도 일정한 세월이 지난 뒤 정말 세울 만한 가치가 있고 지역민과의 공감이 되는 시인으로만 국한해야 한다’는 불문율이었다. 그토록 엄격하게 세워지는 시비는 결코 졸속일 수 없었다. 대표시와 그 시를 적을 서예가, 시를 돌에 새길 조각가가 삼위일체가 돼 돌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시도 감동이지만 시비도 감동이었다.  그 시절 시인에겐 최소한의 지조와 염치 같은 게 있었다. 시인이 되기도 힘들었다. 아무나 될 수도 없었다. 검증된 자질이 요구됐다. 신춘문예와 추천 등을 통하지 않으면 시인이 되기 힘들었다. 일제강점기~광복~6·25전쟁~3·15부정선거~군부독재 치하, 시인은 시대정신과 동고동락했다. 시집에 만족하지, 감히 생전에 시비를 세운다는 발상을 할 수가 없었다. 특히 선비들은 생전의 비석을 하나의 ‘수치’로 여겼다.  74년 5월19일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국내 생존 시인으로는 처음으로 미당 서정주 시비가 전남 고창 선운사 입구에 세워진 것이다. ‘선운사 동구’란 시를 새긴 것인데, 고창 라이온스클럽이 주도했다. 조금의 시비가 일었지만 미당이었기에 가능했다. 그 시비는 본격적 시비라기보다 선운사 분위기와 어울리는 조형물로 간주됐다. 하지만 생존 시인도 시비를 세울 수 있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30여년 우리 문단은 작고 문인 시비 세우기에 주력했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세상은 달라졌다.  시비는 만인의 몫이 아니라 ‘누구의 몫’으로 권위가 추락했다. 예전에는 지사적 시인의 시대였지만 이젠 유명한 시인의 세상이 도래했다. 신문과 방송을 타고 굵직한 문학상을 받으면 단번에 1급시인이 된다. 김용택·안도현·정호승 같은 시인은 시단의 ‘특급엔터테이너’로 등극했다. 곧 문단파워를 누리고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도 받는다. 지자체도 유명 시인이 필요했다. 시를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정표 같은 시비를 곳곳에 세운 것이다.  스토리텔링거리가 있는 유명 산·강·바다, 심지어 간이역까지 시비가 전주처럼 세워졌다. 전남 해남 땅끝마을 같은 데는 상징성 때문에 여러 유명 시인이 시비를 경쟁적으로 세워댔다. 심지어 시비 건립으로 사업을 하는 단체도 생겨났다. 김천시는 미당문학상을 받아 일약 스타가 된 문태준 시인을 위해 시인의 ‘생가 가는 길’이란 교통표지판까지 설치했다. 생존 시인의 시비 건립 문제 이상으로 고민해야 될 사안도 있다. ‘무조건 세워주자’ 식으로 치닫고 있는 작고문인 시비 건립 건이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기준과 원칙 없이 진행되고 있다. 시집을 여러 권 내고 이런저런 문학상을 받거나 문학단체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작고하자마자 서둘러 추모비를 세워준다.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유족과 문인단체 관계자가 간청하면 지자체는 시비 건립용 공공부지를 슬그머니 내놓는다. 시인들 사이에 유명하면 그만이지 시민과의 공감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시인공화국’. 시인 수가 1만3천명에 육박했다. 대구시에만 1천여명의 시인이 북적대고 있다. 시인 되는 길도 어렵지 않다. 상당수 문예지는 시인을 상품처럼 찍어내기도 한다. 시비가 워낙 흔해지다 보니 유명 트로트 가수들도 앞다퉈 노래비를 세우고 있다. 우리 강산이 ‘비공화국(碑共和國)’으로 변하고 있다.  유명한 시는 돌에 새기고 위대한 시는 인간의 맘에 새겨야 한다. 돌은 1천년 가지만 인간의 맘은 영원한 탓이다. 퇴계 이황은 별세하기 나흘 전인 1570년 음력 12월4일, 병세가 위독해지자 조카 영(寗)을 불러서 이같이 당부한다. “조정에서 예장(禮葬)을 하려고 하거든 사양하라. 비석을 세우지 말고, 단지 조그마한 돌에다 앞면에는 ‘퇴도 만은 진성이공지묘(退陶 晩隱 眞城李公之墓)’라고만 새기고, 뒷면에는 향리(鄕里)와 세계(世系), 지행(志行), 출처(出處)를 간단히 쓰고, 내가 초를 잡아둔 명(銘)을 쓰도록 하라.” 당시 퇴계는 종1품 정승의 지위에 있었으므로 사후에는 예조에서 도감을 설치해 예를 갖춰 장례를 치르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런데도 퇴계는 유언으로 이를 굳이 사양했다. 그리고 단지 4언(言) 24구(句)의 자명(自銘)으로 자신의 일생을 정리했다. 퇴계가 특별히 스스로 묘비명을 쓴 것은 제자나 다른 사람이 쓸 경우엔 실상을 지나치게 미화한 나머지 장황하게 쓸까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춘호
721    조선족문학의 개념에 대하여 댓글:  조회:4939  추천:0  2015-09-17
  조선족문학의 개념에 대하여 /장춘식   1. 문제의 제기   조선족문학이란 무엇인가? 그 개념과 범위는 어떻게 확정할것인가? 얼핏 생각하면 너무도 상식적인 질문이 될지도 모른다. 조선족이 만들어낸 문학적 생산물이라고 간단히 대답할수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조선족문학의 개념과 범위를 확정하고자 하면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중국조선족문학, 조선족문학, 조선민족문학, 간도문학, 만주문학, 재만문학, 이민문학, 망명문학, 대륙문학, 동포문학 등이 있는가 하면 지역 명칭에 “조선인”, “한인”, “동포”, “교포” 등의 개념이 첨부되여 또 수많은 개념을 파생시키고있다. 앞의 세 개념은 주로 중국에서, 특히 조선족학계에서 자주 사용되는 개념이고 그 외의 것은 주로 해외에서 많이 사용되는 개념인데, 여기서는 국내 조선족학계에서 주로 사용되는 개념, 즉 “중국조선족문학”, “조선족문학”, “조선민족문학” 등을 중심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2. 조선족문학과 관련된 개념들   윤윤진은 조성일․권철 주편으로 된 ꡔ중국조선족문학사ꡕ 등에서 사용된 “중국조선족문학”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그 리유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전까지는 “조선족”이라는 개념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건국 전후의 중국내 조선인문학은 《작품의 제재, 주제 나아가서는 거기에 반영된 의식 등 면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여주고있다》는 점을 들고있다. 그러면서 《광복전 문학을 조선족문학이라고 호칭하기보다 조선인문학이라고 하는것이 더 적절할뿐만아니라 사실에 접근된다고 생각한다. 더우기 조선족이란 호칭이 한반도에 거주하지 않은 중국국적을 가진 조선인을 호칭하는 대명사로서 그 전시기와는 좀 다른 성격을 갖고있다는 여건을 파악할 경우 사정은 더 자명해지는것이다.》1) 고 지적한다. 이런 견해는 윤윤진 한사람의 견해만은 아닌것 같다. 안수길이나 현경준, 김조규 등 건국전 이주민 문단에서 상당히 활약하다가 광복을 맞으며 한국이나 조선에 ぐ?작가들의 문학적 업적을 조선족문학사에서 다루기를 꺼려하는 학계의 상황을 감안하면 윤윤진의 이러한 견해는 상당히 대표성을 띤다고 볼수도 있을것이다. 앞에서 든 건국이전의 우리 문학을 조선족문학의 개념에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윤윤진의 견해에서 요점은 두가지다. 즉 “조선족”이라는 개념의 내외연과 건국전후 우리 문학의 차이의 문제이다. 지금까지 분명한 시기는 나와있지 않으나 “조선족”이라는 민족명칭이 정식 붙여진것은 건국직후인것으로 알려져있다. 지금은 공식적인 혹은 법적인 명칭으로 굳어졌고 조선이나 한국에서도 이 명칭은 중국에 거주하는 단군의 후예를 지칭하는 기호로 통용되고있기도 하다. “조선족”이라는 명칭이 있기전까지는 “조선인”, “선계만주인”, “만주조선인” 등으로 불려져왔다. 그때문에 현재도 한국에서는 이런 명칭들이 자주 쓰이고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조선족에 대해 “조선족”이라는 명칭 외에도 “재중동포”, “중국동포”, “중국교포” 2)등의 명칭을 사용하고있다. 이는 한국인의 립장에서 우리 조선족은 중국에 거주하는 “단군의 후예”로 인식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 경우 윤윤진이 건국이전의 우리 문학의 개념을 “조선족문학”이 아닌, “조선인문학”으로 정립하여야 한다는 견해는 중국적립장에서 력사를 파악한다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합리성을 가진다고 하겠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같은 차원에서 “조선족”이라는 명칭을 법적인 개념이 아닌, 중국에 거주하는 “단군의 후예”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사실을 확인할수가 있다. 그렇다면 윤윤진의 지적과는 달리 “조선인문학”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조선족문학”이라 개념하는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조선족”이라는 명칭을 건국전이나 건국후를 아울러서 사용했을 경우 하나의 관통된 전통을 가진 민족공동체로 인식할수 있다는 리점이 있다. 특히 민족정체성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민족공동체적 인식은 우리의 전통성 확인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큰 력사적흐름에서 보았을 때 건국전이나 건국후를 구분하는것은 별로 의미가 없기도 하다. 이러한 시기 구분은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인 요인이 작용하고있기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국전과 건국후의 문학이 그 특징상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것은 사실이다. 이점은 전반 중국문학의 경우와 별 다르지 않으며 우리의 경우 1949년이 계기가 된다기보다는 오히려 1945년 8.15해방이 뚜렷한 분기점이 된다고 보는것이 나을것이다. 그렇다면 1949년을 분기점으로 한 중국문학은 건국전과 건국후의 문학이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고 하여 건국전의것은 중국문학이 아니고 건국후의 문학만이 중국문학이라 할수 있을까? 그럴수는 없을것이다. 건국전후 문학의 차이는 이데올로기의 변화에서 기인된 문학의 변모를 말해줄뿐이다. 조선족문학 역시 이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또 창작주체의 물갈이를 리유로 건국전후 문학의 차이를 주장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1945년을 분기점으로 하여 우리 문단의 창작주체는 완전히 새사람으로 바뀌였다. 김창걸과 리욱 외에 소수 무명작가만이 례외가 될뿐 건국전 조선족문단에서 활약하던 창작주체는 거의 전부가 반도의 남과 북 내지는 다른 나라로 이주해갔다. 그 빈 자리를 차지한 창작주체는 주로 공산당 계렬의 지식인들과 건국후 문단에 진출한 신인들로 채워졌다. 이점은 전반 중국문단의 경우와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문학의 전통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수가 있을까? 우리는 건국후 우리 작가들의 구성으로부터 이 문제를 해명할 수 있을것 같다. 건국후 우리문단의 창작주체인 작가들은 크게 두가지 류형으로 분류할수 있다. 첫째는 공산당 부대나 항일군에서 문예활동을 하던 문예전사들이고 둘째는 이주민의 후예들이다. 이주민의 후예로서 건국전 우리 문학의 영향으로 문학적 수양을 닦았으리라는 사실은 별로 이의가 없을줄 안다. 당시에는 조선문학의 영향도 상당 정도 있었을것으로 보이므로 이들이 작가로 성장하기까지 영향을 미친 문학적전통은 조선문학과 우리 이주민의 문학이였음은 당연한 사실이라 하겠다. 문제는 건국초기 작가 대부분이 이러한 이주민의 후예가 아니였다는데 있을것인데, 가령 의용군 문예전사라 할수 있는 김학철의 경우 그의 문학적 수양은 주로 조선에서 형성되였고 의용군에서 활동하면서 점차 성숙되였다고 할수 있다. 다른 작가들의 경우도 대체로 상황은 비슷하다. 그렇다고 이들을 조선족문학에 편입시키지 않을수는 없을것이다. 한 지역문학, 혹은 민족문학의 성격을 이루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을수 있다. 창작주체, 소재원, 창작객체(즉 독자그룹) 등이 그 중심이 된다 하겠는데, 그중에서도 중요한것은 창작주체와 창작객체 두 요인이 될것이다. 앞에서 창작주체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해명이 되였으리라 믿고 다시 창작의 객체 즉 독자그룹의 경우, 이 또한 수용미학적 견지에서 보면 중요한 요인이 아닐수 없다. 독자의 수용자세와 반응이 창작주체의 창작적 개성과 경향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거의 결정적영향을 미친다고 보아도 대과는 없을것이다. 그런데 의심의 여지도 없이 우리 문학의 독자들은 그 다수가 건국전이나 건국후를 막론하고 이주민의 후예로 이루어진것 같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와 “조선인”이라는 개념과 “조선족”이라는 개념의 련관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가령 “조선”이라는 국명, “한국”이라는 국명과 우리 민족 명칭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두 국명은 주지하는바와 같이 이데올로기의 갈등에 의해 한 겨레가 두 국가를 설립한 경우다. 그런데 우리 겨레를 하나의 단일민족으로 보는데는 양국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명칭은 다르다. 조선에서는 “조선민족”으로 부르고 한국에서는 “한민족”으로 통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부르는 “조선민족”은 북쪽의 국민만을 지칭하고 “한민족”은 남쪽의 국민만을 가리키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서로가 반도의 민족을 아울러서 지칭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들이 부르는 “조선민족”이나 “한민족”은 현재 반도 남북에 거주하는 민족만을 지칭하는것이 아니라 남북 모두의 선조들까지를 아울러서 지칭한다. 물론 광복전 “만주”땅에 거주한 우리 민족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명칭을 사용한다. 조선에서는 “조선인”이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재만한인” 혹은 “재만조선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이는 이북의 국명인 “조선”이라는 개념을 피하려는 의도와 “한국”이라는 이남의 국명 개념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동시에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볼수 있다. 그리고 은연중에 일제하의 “조선총독부”라는 개념을 피하려는 의도마저 포함하고있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하여 이들이 광복전 “만주”에 거주한 우리 민족을 “조선민족”이나 “한민족”으로 호칭하는데는 지장이 없다. 이는 무엇을 말해주냐하면, “조선민족”이나 “한민족”이라는 명칭은 력사적으로 정통성을 부여한 개념이고 “재만조선인”이나 “재만한인”이라는 명칭은 특정한 경우에만 사용되는 특수한 개념임을 말해주는것이다. 그러니까 “조선족”이라는 명칭과 “재만조선인” 혹은 “조선인”의 경우, 위“만주국” 당대에 우리 민족이 “재만조선인”, “선계만주인”으로 불렸던 력사적개념을 사용한다(경우에 따라서는 당연히 사용할수 있다)고 하여 정통성을 부여한 개념인 “조선족”의 개념을 사용하여서는 안된다는 리유는 없는것이다.   3. 건국전 우리 작가들의 주장   확장된 조선족문학 개념의 타당성 여부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건국전, 그러니까 윤윤진이 “조선인문학”으로 분류하고자 했던 그 당대 우리 작가들의 견해를 살펴보는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을것 같다. 이러한 당대 문인들의 인식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례가 바로 당시 조선족문학의 거의 유일한 발표지면이였던 《만선일보(滿鮮日報)》에서 행해진 “만주조선문학건설신제의(滿洲朝鮮文學建設新提議)”라는 주제의 지상토론이라 하겠다. 이 지상토론에서는 1940년 1월 12일자에 먼저 《기자서문》이라는 것을 발표하고있는데 그 서문에서 기자는 《이곳에 사는 우리 수효가 百萬을 넘으며 우리에게는 말이 잇고, 글이 잇스니 거기에 따라서 文學이 업슬 수 업다.》고 하고는 《滿洲에 朝鮮文學을 建設하랴면 어떤 方面, 어떤 角度에서 어떤 形式 어떤 手法 等等으로 着手하며 開拓해나가야 될까. 여기에 對하야 滿洲안에 게신 여러분의 意見을 綜合하여 文學人의 參考에 이바지하며 우리 文壇의 向할바 길을 檢討해볼까 한다.》고 그 취지를 밝히고있다. 그리고 여기서는 당시 만주조선인문학이 하나의 독자적인 문학임을 전제로 하고있다. 그번 토론에는 당시 문단의 다수 문인들이 참여했는데 그 첫 토론으로 게재된 《滿洲朝鮮人文學의 特殊性》에서 황건(黃健)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있다. 《滿洲朝鮮人文學이란 끗까지 ‘朝鮮文學’이며 滿洲에 와잇는 滿洲國鮮系國民, 卽 滿洲朝鮮文學人만이 이룰수 잇는 文學이다. 다시 말하면 滿洲라는 國家와 그 歷史와 特異한 性格만이 가질수 잇는 獨自的文學, 卽 滿洲文學이여야 할것이며 그러기 爲하여서는 朝鮮文學의 傳統을 가장 잘 消化攝取하여야만 될것이다. 이로써만 비로서 그의 圓滿한 成就가 期待될것이다.》3) 그 구체적 추진의 방법으로 황건은 《1. 當面問題로 滿鮮日報를 通하여 有機的 文壇聯結을 圖謀할것》, 《2. 協和會文化部文藝班에 加入活動할것》, 《3. 同人誌의 出現을 企圖할것》, 《4. 作品集의 出版을 劃策할것》, 《5. 先輩大家들의 後輩를 爲한 參加와 引導를 바랄것》 등을 제안하고있다. 그는 만주조선인문학이 조선문학의 전통을 계승하고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조선내 조선문학과는 구별되는 독자적문학 즉 만주문학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으로 독자적문단의 결성 혹은 형성을 제안하고있는것이다. 윤도혁(尹道赫)은 《滿洲內에서 制作된 幾篇의 作品을 檢討해볼 때 朝鮮內에서의 文學形式, 거긔다가 若干의 滿洲的色彩를 糊塗하엿고 鄕愁的인 情緖를 加味하여노흔 作品이 大部分인것이다.》 라고 하여 아직은 독자적문학 형성이 미비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數年前의 移民文學이 現在는 開拓文學이 될수 잇》다고 하여 전자를 소위 “이민문학”으로 보고있는것 같다. 《昔日의 移民이 現在 開拓民으로 變遷을 보게된것이 時代의 要請》이라고 한것을 보면 또한 앞으로의 문학이 “개척문학”으로 되여야 한다는 의미인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독자적문학을 제창한데서는 황건과 별 차이가 없다. 《文學에 잇서서도 우리의 三十年間 傳統을 無視하야서는 안될것은 煩說을 要치 안흠으로 이것을 母體로 하기는 하되 더 廣汎한 世界觀이 잇서야 하고 좀더 스케-일이 큰 主觀을 가저야 할것이며 滿洲라는 特異性을 뚜렷하게 나타내지 안흐면 안될것이다.》4) 라고 하여 《滿洲라는 特異性》을 강조하고있다. 그런데 이 만주의 특이성이라는것을 그는 만주땅의 광활함과 수많은 민족의 잡거로 인한 생활의 특이미묘(特異微妙)함으로 파악하고있다. 《他民族과 協助生活을 하게 되는 運命에 잇게 됨으로 그만치 우리의 主觀이나 世界觀이 커》진다는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신서야(申曙野)는 《各民族이 제각금 所有하고잇는 固有의 傳統과 自主性을 尊敬하며 서로 理解하며 서로 民族的 苦痛을 除去하며 無差別하여 바야흐로 民族間의 紐帶를 結聯식혀 同化하며 때로 和하여 分化連綿하여 繼續하는데서만 비로소 民族間의 眞實한 協和는 永續性을 가질것이다.》5) 라고 하여 민족협화의 문제로 해석하고있다. 그리고 이러한 민족협화의 사상이 《滿洲國은 王道政治를 基礎로 한 民族協和의 國家인만큼 이곳에는 一强力民族의 獨斷이 存在할수 업스며 또한 過去의 米國의 建國當時와 갓치 宗敎的 信念下에 母國을 버리고 自由의 종소리에 憧憬하여 달여온 民族도, 더욱 母國延長을 賦與하는 殖民地도 안》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있다. 어쩌면 현실인식의 자세가 체제영합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소지가 없지 않으나 시각을 바꿔 살피면 오히려 리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즉 비록 만주국이라는것이 일제에 의해 조작된 괴뢰정부이긴 했으나 형식적으로는 하나의 독립국가라는 점을 감안할 때 당시의 문화인으로서는 주어진 환경에서 이주민의 생존문제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을것이다. 일제의 감시밑에서 오족협화라는 국책을 최대한 리용하여 민족의 생존권을 획득해야 했던것이 당시 지성인들의 립장이 아니였을까 한다. 김귀(金貴) 역시 《諸民族協和의 精神을 根幹으로 하여 超民族的인 特異의 滿洲國民文學의 樹立에 究極目的이 잇슬것》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滿洲朝鮮人의 文學은 朝鮮內地文學의 延長도 되지 못하며 模倣도 아님을 말하고십다.》6) 고 하여 역시 독자성을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좀더 大陸農民의 創造的精神, 말하자면 深刻한 人間的精神의 모든面을 分析하고 綜合하여 그것으로서 農民文學의 世界를 만드러야 할것을 밋는바이다.》고 하면서 그 창작방법에서는 《어떠한 架空的 妖術도 물리치며 어떠한 虛構도 드려놋치 말고 生新한 寫實主義方法으로 典型的인 滿洲農民의 性格을 創造》할것을 주장하며 《보담 더 長江流水와 갓흔 自由奔放한 飛躍으로써 가장 眞實하게 그 文學建設을 꾀하여야 할것》7) 이라 하여 진실성과 자유분방성을 강조하고있다. 박영준(朴榮濬)은 구체적인 지적은 하지 않고있으나 만주가 조선인의 일시적 거주지가 아니고 뼈를 묻고 살 영주지가 되였기때문에 만주조선인문학의 필요성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가튼 民族이 가튼 言語를 使用하며 두가지 文學을 가질수 잇느냐가 問題일것이나 이것은 滿洲朝鮮人文學의 槪念을 밝힐 때 自然 解決될것》8) 이라 하여 역시 독자적 문학이라는데 대해서는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볼수가 있다. 이상 제씨들의 주장을 우리는 조선문학의 전통과 “만주”현실이라는 이중성을 띤 독자적문학(黃健), 다민족의 협조공존과 오족협화라는 건국정신(윤도혁, 신서야); 대륙적 농민문학과 자유분방한 풍격(金貴) 등으로 귀납할수 있을것 같다. 만주조선인문학을 하나의 독자성을 가진 문학임을 강조한것이 이들의 공통된 견해인데 그렇다면 그 독자성이라는것이 무엇일까? 신서야의 다음 기술이 이에 대한 답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는 《우리는 이에서 우리 文學이 後天的으로 가지고 잇는 性格―自主性을 固執發揚하며 아울너 先天的 性格―朝鮮의 文學傳統을 批判的으로 繼承하여 兩者를 有機的으로 結合抑揚식혀 渾然一體의 完全한 一個의 性格을 形成》하여야 한다고 보았고 《今後 우리의 文學의 形態는 如上의 根本的 性格을 基準으로 할 때 大陸文學, 建設文學 及 移民文學 其外 엇던 形態를 가출지는 現階段의 文學人의 眞摯한 檢討와 氣焰의 輩出로써 決定된 問題》라고 하여 구체적인 성격 규명은 피하고있다. 그는 특히 만주조선인의 생활적근거가 태반수 개척민에 관한것이라고 하여 만주조선문학이 곧 농민문학이라야 한다는것은 너무 협애하고 근시안적편견이라고 비평하면서 이는 《어듸 까지던지 文學人 自體의 敎養形態와 性格, 素質 如何에 依하여》《滿洲文學으로써의 獨自的 性格을 體得創造할수》 있는것이라 보고있다.9) 그러니까 이들 건국전의 우리 작가들은 자신의 문학을 후천적성격으로서의 자주성과 선천적성격으로서의 조선문학의 전통이 비판적으로 계승된, 량자가 유기적으로 결합억양(結合抑揚)되여 혼연일체를 이룬 《完全한 一個의 性格》을 가진 문학으로 인식하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음 당시 조선내 기성문인들의 견해도 대동소이하였다. 《만선일보》에서 조선내 기성문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면 이점을 잘 알수 있다. 설문조사는 다음과 같은 3개의 질문으로 진행되었다.   一. 滿洲內에서 朝鮮文으로 發表된 作品을 읽어보신 일이 게십니까 一. 貴下께서 滿洲에 對한 作品을 쓰신다면 어느 方面에서 取材하시겟습니까 一. 將來 할 滿洲朝鮮文壇에 對한 希望을 말슴해주십시오.   여기에서 두번째와 세번째 질문이 이들의 만주조선인문학에 대한 견해와 관련이 될것인데 《滿洲朝鮮文學을 말함》이라는 표제로 1940년 1월 16일부터 2월 2일까지 5회에 걸쳐 도착순으로 발표된 유진오, 리기영, 안석영, 박영희, 최정희, 리찬, 방인근, 채만식, 로자영 등의 회답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물음에 대해서는 이민생활과 거치른 만주땅을 배경으로 한 이주민생활, 그중에서도 이주농민의 생활을 그리고싶다고 대답한 작가가 다수이고 두번째 물음에 대해서는 대부분 작가들이 역시 이주민의 생활반영과 스케일이 큰 대륙적인 문학을 희망한다고 대답하고있다. 그중에서도 채만식은 “朝鮮的인 滿洲性”을 가진 문학을 주장하여 만주조선인작가들의 주장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있음을 알수 있다. 그러니까 전래의 민족적인 전통을 토대로 새로운 생활환경에 적응될수 있는 새로운 문학을 개척해야 한다는것이 만주조선인작가들이나 조선작가들의 공통된 인식이 되는셈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당시 조선본토의 문학과는 어느모로든 구별된다고 생각했다는 얘기가 되겠다. 이러한 인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있는것이 재만조선인작품집 《싹트는 대지》에 쓴 렴상섭(廉想涉)의 서문이다. 《여긔에 나타난 作家 全部가 반드시 父祖代부터 이따에 뿌리박은 所謂 二世 三世가 아닌것이며, 個中에는 어제 越江하엿다가 來日이면 도라갈 사람도 잇슬것이나, 이 作品들만은 亦是 호미와 박아지와 피땀 以外에 아모것도 가진것 업는 “墾民”속에서 자라난것이다. 그속에서 呼吸하고 그속에서 살찌고 기름진 詩魂이 나흘수 잇는 滿洲朝鮮人의 文學이다. 一望無涯의 荒漠한 高梁바테서 진흙구덩이를 후벼파고 도다나온 開拓民의 文學이다. 開拓의 文學이라 하야 自卑하거나 侮蔑을 느끼지는 안흘것이다. 物質로 그리함과 가티 文化의 遺産을 분명히 지니지 못하고 現代의 文明文化에서 떠러저와서도, 오늘날 朝鮮 本土의 그것에 遜色업는 文藝의 싹시 도다낫다는데에 도리혀 커다란 矜持가 잇는것이다.》10) 그리고 신형철(申瑩澈)은 이 작품집의 편찬과 관련하여 《 뒤에》에서 《現地居住人의 現地取材의 現地作品으로서 現地發表를 中心 삼고 原稿를 모으기로 햇습니다.》고 하여 현지성을 특별히 강조하고있다. 물론 작품집에 수록한 작품도 모두 그런 원칙에 의해 편집되였다. 역시 조선본토의 문학과는 구별되는 문학으로 생각했다는것을 알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같이 당대 문인들이 자신의 문학의 독자성을 특별히 강조한 리면에는 정체성인식 즉 일정한 공동체에의 소속감에 대한 인식이 깔려있다고 하겠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조선족문학을 조선문학이나 한국문학과 구별하여 인식하고있는것과 같은 차원이다. 이는 1930-40년대에 우리 문단에서 활약하다가 건국직전에 조선이나 한국에 돌아간 작가들을 포함하여 모든 이주민작가들의 문학은 우리 문학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따라서 광복후 조선이나 한국에 나가 그곳에서 다시 문학활동을 계속하여 한국문학사나 조선문학사에서 다루어진(그들의 광복전 문학활동을 포함하여) 작가들의 문학을 “조선족문학사”에서 제외시키거나 “조선족문학”이 아닌 “재만조선문학”이나 한국작가(혹은 조선작가)들의 “재만시기의 문학”으로 보는 견해는 합리성이 없다 하겠다.   4. 결 론   이제 지금까지 론의된 내용을 총정리해야 할 때가 된것 같다. 이상에서 필자는 “조선족문학”이라는 개념의 합리성을 실증하기 위하여 우리의 건국전문학과 건국후문학의 명칭을 따로따로 구별하여 사용해야 한다는 윤윤진과 그 류사 주장들을 론박했다. 이상의 론의를 종합해보면 중국조선족문학, 조선족문학, 조선민족문학과 윤윤진이 주장한 조선인문학 등 여러 개념중에서 “중국조선족문학”은 “조선족문학”으로 대체하는것이 좋을것 같다. 왜냐하면 “조선족”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우리 민족 공동체는 중국에밖에 없기때문이다. 러시아에서는 “고려인”, 일본에서는 “재일조선인”, 미국에서는 “재미한인” 하는식으로 불려 조선족과는 구별되는것이다. “조선민족문학”이라는 말은 상당 정도 불확실성을 띠고있기때문에 우리의 문학을 아울러 표현하는데는 편하지만 조선에서 사용하고있는 “조선민족”이라는 개념과도 관련되고 또 “한민족문학”이라는 말과 더불어 한반도를 포함한 전세계 우리 겨레의 문학을 지칭하는 말로 인식되기가 십상이기때문에 역시 적당치는 않은것 같다. 따라서 우리의 립장에서 볼 때 “조선족문학”을 건국전이나 건국후 할것없이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문학의 개념으로 사용하는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겠다. 그러면 조선족문학의 범위는 자연히 건국전문학과 건국후 현재까지의 우리 문학, 즉 중국땅에서 이루어진 모든 우리 문학을 포함하게 되는것이다. 이를 뒤받침해주는것은 바로 정체성의 원리이다.   주 석 -------------------- 1) 윤윤진, 「중국조선인문학연구에 나서는 몇가지 문제」, 《문학과 예술》, 1993년 6호. 2) “중국교포”라는 말은 분명 잘못된 호칭이다. “교포”라는 명칭으로 불릴수 있는 “조교”들이 얼마간 있으나 현재 사용되고있는 “중국교포”라는 명칭은 이들 “조교”들만을 지칭하는것이 아니기때문에 오류가 분명하다. 3) 黃健, 「滿洲朝鮮人文學의 特殊性(中)」, 1940.1.13. 4) 尹道赫, 滿洲朝鮮文學의 傳統性과 特異性(上), 1940.1.17. 5) 申曙野, 「滿洲朝鮮文學의 性格과 特異性(上)」, 1940.1.30. 6) 金貴, 「農民文學의 方向으로(上)」, 1940.1.20. 7) 金貴, 「國民文學으로부터 世界에 進出토록(下)」, 1940.1.22. 8) 朴榮濬, 「作家의 輩出과 讀者의 向上을 緊急動議(上)」, 1940.1.23. 9) 申曙野, 「滿洲朝鮮文學의 性格과 特異性(下)」, 1940.1.31. 10) 廉想涉: 申瑩澈 編, 《싹트는 大地》, 新京, 滿鮮日報社, 1942.   [출처] 조선족문학의 개념에 대하여|작성자 반벽거사
720    김철 / 장춘식 댓글:  조회:5212  추천:0  2015-09-17
추억과 사랑 그리고 허무의 미 -2000년대 김철의 시 장춘식   1. 시작하면서   김철은 해방후 우리 문학의 대표적인 시인중의 한사람이다. 1955년 서정시 《지경돌》로 문명(文名)을 세상에 알린 이래 수많은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오늘날까지도 시창작을 멈추지 않고있다. “기발한 착상,강렬한 시대정신, 풋풋한 시형상 그리고 세련된 언어”라는 평가는 김철의 출세작인 《지경돌》에 대한 평가인 동시에 그의 초기작품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시집 《산향길》에 수록된 서정시들은 1979년이전시기의 김철의 시풍격을 보여주고있는바 명쾌한 격조, 랑만적인 색채, 풍부한 상상력, 다정다감한 언어, 류창한 운률이 그대로 보존되고있다”는 개혁개방 이전시기 시에 대한 평가는 사실상 《지경돌》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물론 개혁개방후 특히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시는 여러모로 변모를 시도하고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1980년대 김철의 시는 점차 싸구려랑만주의 시풍에서 해탈되여 참사실주의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생활의 표층에 대한 기계적인 모방이 없어지고 인생과 시대에 대한 심층사고가 많아졌다. 시표현수법이 보다 개방적이고 다양해졌으며 시인의 직관적인 통찰력에 기초한 간결하고 생동하고 개성적인 시형상을 창조하였다.”는 평가에서 그러한 변화의 모습을 감지할수 있다. 여기서 “싸구려랑만주의 시풍”이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해방후 개혁개방이전까지 우리 문학의식의 미숙상태에서 비롯된 리상주의적인 시풍을 지적하였을것인데 이는 김철시인 한사람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전반 조선족문학의 문제였다고 해야 옳을것이다. 그렇다면 로년기에 들어선후 씌여진 2000년대 김철의 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이고있을까? 본고에서는2003년부터 2007년까지 문예지들에 게재된 김철의 시작품을 통해 김철시인의 새로운 시적시도와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삶의 허무와 그 겸허한 수용   허무는 인간의 영원한 과제중의 하나이다. 이는 생명의 한계성과도 관련되거니와 문학작품으로서도 피할수 없는 주제분야가 된다. 특히 중로년기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삶에 대한 허무의식은 점차 강해지며 그래서인지 2000년대 김철의 시작품중에는 삶의 허무를 주제로 다룬 작품이 많다. 간접적으로 다뤄진것까지 하면 본고에서 론의대상으로 삼은 작품 다수가 이러한 허무의식을 다소간 내포하고있을 정도이다. 아무래도 시인이 이제 여든살에 가까운 로인이라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은것 같다. 어떤 측면에서 허무에 대한 서글픈 표현은 인간의 마음이 약해졌다는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그렇기때문에 일부 소극적인 정서를 띤다고 할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 공동의 과제라는 측면에서 시문학이라고 이를 외면할수가 없다. 문제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허무의 상황에 한탄하고 거기에 그냥 젖어버리고마느냐 아니면 이를 겸허히 수용하고 적극적인 극복의 의지를 보이느냐에 있을것이다. 김철의 2000년대 시작품들은 이 량자를 동시에 드러내고있다. 먼저 《리발소에서》라는 작품을 보자.   리발소 땅바닥에 내 하-얀 머리칼이 떨어진다 소리없이 쌓이는 서글픔 내 생이 잘린다 리발소에 드나드는 동안 이렇게 내 소년이 잘리고 청춘도 잘리고 지금은 가을, 늦가을 퇴색한 황혼이 싹둑싹둑 잘려나간다   내 생명을 잘라먹는 시간의 가위는 멈출줄을 모르는데 비상과 추락의 틈서리에서 만신창이 된 나의 꿈은 세월의 아쉬움 한자락 붙잡고 운다, 내- 삶이 먹혀가는 잔인한 리발소에서…   세월의 무정함과 삶의 무상함을 리발소에서 잘려나가는 머리칼에 비유하고있다. 여기서 특히 “리발소 땅바닥에”떨어지는 “내 하-얀 머리칼”은 “내 생이 잘린다”는 표현에 의해 잘리는 머리칼과 줄어드는 삶이 등치되였다. 소년과 청년, 중년, 로년이 머리칼을 자르는 가위에 의해 잘려나갔다고 믿는것이다.이는 일반인이 다 리해할수 있는 생명의 허무감이라 하겠다. 시인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비상과 추락의 틈서리에서/만신창이가 된 나의 꿈은/세월의 아쉬움 한자락 붙잡고”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꿈꾸었던 꿈을 다 이루고 복된 삶을 누리며 인생의 황혼에 이르렀다면 삶은 조금 덜 허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삶은 그 시대 다수인, 적어도 상당수의 중국인들이, 혹은 조선족인들이 겪었던것과 마찬가지로 “비상과 추락”을 거듭하며 젊은날 꾸었던 꿈은 “만신창이가”되였다.그래서 삶이 더욱 허무하다고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송화강변》이라는 작품에서는 그러한 력사의 기억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면서 좀더 서글픈 느낌을 준다.   송화강변 눈덮인 허허벌판 옛날, 만주 올 때 아버님 지게우에 달랑 앉아있던 깨진 밥솥 하나, 그리고 울보 내 녀동생, 지금은 모두 다 가버렸다   홀로 남은 내 가슴의 허허벌판 얼어붙은 추억은 녹을줄을 모른다…   여기서 화자는 이주민이다.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난을 겪고나서야 오늘의 조선족이 있었는지를 우리는 안다. 렬악한 동북땅의 자연환경은 “눈덮인 허허벌판”으로 묘사되였다. 그렇게 춥고 견디기 힘든 땅이 이민지요 이주민은 그러한 불모의 땅에 정착하여 삶의 터전을 가꿔야만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함께 왔던 녀동생도 가버렸으니 아버지, 어머니도 벌써 다 가버렸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화자는 이제 홀로 남았고 그러기에 가슴이 옛날 만주땅처럼 “허허벌판”이 되고 추억이 “얼어붙”었다고 했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과 얼어붙은 추억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수가 없는것. 그래서 인간은 허무할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깨진 사랑은》이라는 제하에 발표된 이 작품외에도 《북국설》(외10수)이라는 제하에 발표된 작품들 대부분은 사라지는것에 대한 허무의식을 담고있다. 이상 두편을 포함하여 허무의식이 표현된 김철의 근작시 작품은 어느 정도 허무에 젖어들거나 심지어 탐닉한듯한 면이 없지 않다. 그리고 이대로만 계속 나간다면 삶의 허무에 대한 소극적인 대응이 될수도 있다. 그러나 로시인은 여기에 머물지만은 않는다. 《겨울나무》에서 화자는 “흘러간 아쉬움을/갈기갈기 찢고있다”면서 삶의 허무에 반항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지만 결국 아무리 험한 삶이고 허무한 세월이라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련의 “아무렴,/기억은/상록수가 아니지!…”라는 표현에서는 “지금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의 운명을 그대로 겸허히 혹은 성실히 받아들인다. 여기서 겨울나무는 화자의 삶을 의미할것이다. 《내 인생 그대로가》에 오면 그러한 달관과 겸허가 삶자체의 궁극적인 모습에 대한 인식으로 심화된다.   거치른 바다 험한 파도를 헤치다보면 나, 소금물 많이도 먹었네   오장륙부가 다 절어 이제는 토해내도 쓴물밖에 없는 신세   바람부는 세월에 인생을 걸궈내면 짜고 쓴 소금 인생 그대로가 소금이 아니겠나   《내 인생 그대로가》의 전문이다. 여기서 화자는, 삶은 거치른 바다, 험한 파도를 헤치는것이라 전제하고나서 그런 과정에서 소금물을 많이 먹어 오장륙부가 다 절었다고 했다.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험했으면 바다물처럼 짜고 쓸까. 그러나 “인생 그대로가/소금이 아니겠나”에 오면 그러한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삶자체가 쓰고 짜다는 인식에 이른다. 삶자체가 쓰고 짤진대 이를 거부하고 분노할 리유가 있을수 없다. 허무에 직면해 교만하지 않고 당황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는 일종의 달관의 경지라 할수 있다. 허무가 피할수 없는것일진대 이에 분노하고 이를 거부하려는것은 옳바른 삶의 자세가 아닐것이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는것은 삶의 중요한 지혜가 되기도 한다.   3. 고향과 추억과 사랑, 그 애틋함   시인의 로년기 작품이여서 그렇겠지만 2000년대 김철의 시작품들은 기본적인 소재 혹은 주제의식면에서 추억에 많이 의존한다. 그리고 이러한 추억에는 고향과 사랑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등장한다.앞에서 이미 살펴본 《송화강변》에도 이민으로부터 시작된 화자 가족의 삶 전반이 슴배여있거니와《별》에서는 기억속의 잊지 못할 사람을 이제는 “저 멀리 날아”가버린 “별”에 비유한다. 그리고 《북국설》이라는 제하에 발표된 11편의 작품중 다수가 추억에서 취재하고있다. 특히 《해질무렵》이라는 작품에서는 어린날의 기억들이 세월의 무상함과 련관되여 알찐한 마음의 공감을 부른다.   옛날, 서산마루에 해가 지면은 엄마 곱돌장싸개에 장 지져놓고 돌쇠야 말순아 불러들였지   그것들 지금은 뿔뿔이 다 가고 해져도 불러들일놈 없는 쓸쓸한 저녁 부르면 바람만 우여-찬서리 몰고오네   토속적인 이미지들속에 묻어나는 아득한 옛날 삶의 모습은 그것이 우리의 고향이고 또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속에서 잊혀져가는 상황이여서 더구나 가슴아픈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래서 《고향길》이라는 작품에서 타향살이하다가 고향길에 나선 화자의 “나그네”처지에서 허무의식이 좀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고향의 추억은 《고향집》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절실하게 표현된다. 이 작품에서는 고향의 기억과 고향을 떠난 화자의 삶의 기억이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고향의 기억은 따스함과 행복함과 사랑 등으로 밝게 인식되는 반면 고향을 떠난 화자의 삶의 기억은 차가움과 서글픔과 패배감으로 어둡게 그려진다. 그리고 “아리숭한 기억속으로/증발해버린 고향의 정/그래도 고향엔 예와 다름없이/철이 되면 봄꽃이 물들고있다네요”라는 마지막련에서 알수 있는것처럼 고향은 어떤 신앙처럼 절대적인 선이 되기도 한다. 《달빛》이라는 작품에서도 이점은 다시 확인된다.   달이 우물에 잠겼습니다 퍼내도 퍼내도 천년을 퍼내도 달은 그냥 웃고만 있습니다   달처럼 이쁜것이 고향의 마음 천리를 가도 만리를 가도 갈증을 달래주는 샘물입니다   《달빛》의 전문이다. 여기서 달빛은 절대적 아름다움 혹은 진리로 표현되는데 이 달빛과 등치될만한것이 바로 “고향의 마음”이라 했다. 그만큼 시인에게 있어 고향은 삶의 중요한 내용이 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이 시인에게 있어 추억과 늘 함께 따라다니는 또다른 이미지는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의 이미지는 많은 작품에서 나타나지만 특히 《깨진 사랑은》과 《보리밥》에서 절실하게 표현된다. 먼저 《깨진 사랑은》에서는 사랑을 쉽게 깨지는 유리에 비유하고 “사랑도 깨지면/저렇게 아픔인것을”이라 하여 사랑의 깨짐을 뒤늦게야 후회하는 화자의 깨달음을 표현하고있다. 그리고 결국 “아물지 못한 어린 상처 하나가/세월의 물살우에/눈물처럼 떠있다”는 표현에서 느낄수 있는것처럼 사랑을 옛날의 추억과 련관시키고있다. 《보리밥》에서 사랑은 달콤함 혹은 행복함을 나타내는 이미지가 아니라 “깔깔한 보리밥”과 등치된다. “세상살이 마치도 보리끄스름같아”서이다. “깔깔한 그것을 삼켜야만 했었지/고운 정 미운 정/사랑은 덫…”이라는 마지막련의 표현은 긴 세파속을 헤쳐나온 사람만이 느끼는 사랑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세집사랑》도 시인의 사랑에 대한 어떤 깨달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사랑은 나의 세집, 정들어 사는동안 부엌에서 타버린 장작개비마냥 내 심장은 타고타서 재가 되였다   어느날 돈없어 쫓긴다 해도 네집의 삐뚤어진 문패만은 내 마음에 항시 걸어두리라!   시인은 남녀 두사람의 사랑을 세집살이로 표현한다음 사랑하는동안 “내 심장은 타고타서 재가 되였다”고 할 정도로 사랑을 아픈 과정으로 절실히 느끼면서도 그 사랑이 깨지면 오히려 항상 마음에 새겨두겠다고 한다. 김철의 시에서 사랑은 이처럼 세파속을 헤쳐나온후의 어떤 깨달음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다수의 경우《깨진 사랑은》에서처럼 지난 삶의 한 기억으로 인식된다. 가령 “봄 여름 끓던 시절도 다 보내고/잎보다 더 많은 가을의 애수/가랑잎을 밟지 마세요/단풍은 나의/멍든 사랑입니다”에서 사랑은 험한 세상을 지나온 삶의 한 기억이기에 더 소중한것으로 인식된다. 요컨대 김철은 세월의 덧없음과 삶의 허무를 서글퍼하면서 때로는 거부하고 분노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고희를 훨씬 넘긴 원로시인이 긴 세월 삶의 바다를 헤여오면서 건져낸 인생의 지혜라 할수 있다. 그리고 늙어서도 뗄수 없는 사랑에 대한 집착은 고향에 대한 드팀없는 사랑과 더불어 삶의 허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일종의 몸부림으로 리해된다. 그러한 사랑과 지나간 세월에 대한 애잔한 추억, 고향에 대한 애틋한 사랑으로 삶의 허무를 극복하려 했다는 말이다. 세월의 덧없음과 삶의 허무를 겸허히 수용하기 위해 필요했던 시인의 인생모색이 낳은 결과가 아닐까 한다. 이를 우리는 달관의 경지라 부를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4. 민족분단의 아픔에 대한 사명의식   2000년대 발표된 김철의 시작품중에는 특별한 주제의 작품 한편이 있다. 이 시기 김철의 대부분의 작품이 10행 내외의 단시인데 비해 이 작품은 20련 110행에 달하여 서정시로서는 장시라 할수 있다.《휴전선은 말이 없다》가 그것이다. 전성기 김철의 시중에는 장시가 더러 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였고 오랜 사색끝에 내놓은 력작인데 그 주제 또한 심상치가 않다. 여기서 휴전선은 당연히 조선반도 남북을 가로자른 이른바 “38선”을 말한다. 화자는 백발이 되여 휴전선 근처 어느 옛날의 전적지인 무명고지에 서있다. 시적표현도 원색적이고 강렬하다. “아물지 못한 상처들이/마음에 걸려서/석양도 벌겋게/피를 끓인다” 라는 표현이 그렇다. 그만큼 화자의 가슴이 아프다는 말이 될것이다. 그리고 휴전선이다.   바라보면 머얼리 휴전선은 여전하고 녹쓴 철조망을 넘어 새들만이 오가는데 피없이 터치지 못할 울분이 내 한가슴 가득 차있다.   꼭같은 배달민족이건만 휴전선 하나로 남북이 갈려 수십년을 혈맥이 끊겨 살아온다는것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고 분노할 일인가. 게다가 화자는 남과 북 어느쪽에도 편을 들수 없는 처지다. 다음의 례문에는 그러한 중간자적 립장이 잘 드러나있다.   높은 령마루에 올라 남북을 바라보는 내 마음 긁힌데없이 저리고 한점도 떼낼수 없는 아픈 살점들을 어루만지는 내 손길 천추의 한이 맺혀 서로의 아픔을 싣고 저기, 흰 구름만 조용히 흘러간다   그러나 그 중간자적 립장은 그냥 방관자로 지켜볼수만은 없는 립장이다. 화자역시 꼭같은 단군의 후예이기때문이다. 남북을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은 “긁힌데없이 저리고” 그래서 화자의 손은 저도모르게“한점도 떼낼수 없는/아픈 살점들을 어루만”진다. 이때 화자에게 있어 오늘까지 수십년간 이어져온 분단의 아픔을 만든 장본인인 이데올로기는 이제 먼 옛날의 얘기일뿐이다. 그러나 휴전선 이남과 이북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긴긴 불장마에 시달리는 이 나라 생각하면 진짜 환장하겠다 습관된 그 애환은 언제 끝나련? 어둡고 질긴 밤이 장장 반세기를 울부짖는 귀먹은 이 시대 절망하는 별들은 폭포로 무너져내리고   남과 북은 아직도 “긴긴 불장마에 시달”리고 이때문에 화자는 “환장하겠다”고 애탄 심정을 뱉어낸다.여기서 “귀먹은 이 시대”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장 반세기의 울부짖음에도 “귀먹은 이 시대”는 아마도 겨레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주지 못하는 혹은 치유해주려 하지 않는 모든것을 의미할것이다. “몸살난 절규를 넉두리하며/가도가도 끝없는 통일의 미로”는 그래서 현실이다. 책임이야 누구에게 있던지 “아무도 드틸수 없는/그 하나의 진실때문에/멍든 가슴들을 화독으로 달굴 때/숨기지 못하는 하나의 갈망이/온 강토에 메아리로 여울져간다” 그래서 화자는 그 책임을 자신이 짊어지기로 한다.   찬바람속에서도 뜨거운 입김이 흐르는 하늘이여 땅이여 기어이 오고야말 해동의 계절 어수선한 강토를 설걷이하고 내 여기 사랑을 심으리라 자유를 키우리라   겨레의 비극은 결국 사랑의 결핍으로 이루어졌다고 본셈이다. 그래서 “어수선한 강토를 설걷이하고”거기에 다시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사랑을 심고 자유를 키우겠다고 한다. 시인의 가슴에 쌓이고 쌓인 서러움이 그러한 결단을 가능케 한것이다. 그리고 화자는 그러한 자신의 결단에 자신감을 가진다. “나의 호소는 비수처럼/태양을 찔러 피흐르게 하였고/나의 념원은 천둥이 되여/잠든 우주를 흔들어 깨우리”라는 화자의 의지는 그러한 자신감의 표현일것이다. 그리고 다시 화자가 선 산정에 되돌아온다.   아, 분단의 절규가 피멍든 창공에 메아리로 솟고 삭이지 못하는 겨레의 한이 여기, 산정의 노을을 피로 끓인다.   이 마지막련은 앞의 시련들에 비해 직설적이다. 시인의 격한 가슴이 터쳐나올 출구를 찾은것이라 하겠는데 상당히 세련된 상징과 비유로 흐르던 정서가 결구부분에 와서 직설로 표현됨으로써 얼마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시의 흐름에는 큰 영향이 없는것 같다. 이 작품은 해외에 사는 단군의 후예라는 립장에서 민족분단의 상황을 아파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한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세련되고 때로는 원색적이고 충격적이기도 한 비유와 상징들은 시의 기품을 한결 돋워준다. 김철시인으로서뿐만이 아니라 우리 시단의 한 력작임에 틀림없다.   5. 시적 의미의 다중성   형식적측면에서 2000년대 김철의 시는 상당정도 전날의 특징들을 이어오고있으나 갈고 닦은 흔적들이 사라지고 좀더 솔직담백하며 성숙되고 달관한 모습을 보이고있다. 특히 시적상관물의 의미층이 보다 두텁고 다중성을 띠고있다는 점은 신중국 1세대 시인으로서 특기할만한 변화라 하겠다. 먼저 《깨진 사랑은》의 경우 사랑을 유리에 비유해 깨지면 아프고 다시 맞출수 없다는 리치를 보여주었다는 측면에서 과거 김철시인의 일관된 시작특징을 거의 그대로 이었다고 할수 있다. 《아기는》이라는 작품도 같은 경우가 된다. 아기의 웃음과 울음은 진실한데 “돈에 곯아빠진 순정때문에” 세상은 진짜로 울고 웃지 못한다고 하고는 진실한 아기의 웃음과 울음으로 때묻은 세상을 깨우친다고 했다. 하나의 속성으로 다른 하나의 속성을 비춰서 드러낸것이라 할수 있다. 이런 작품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앞항에서 론의한바 있는 《휴전선은 말이 없다》에서 다음의 표현들은 분단의 아픔과 그 해소 혹은 극복의 의지라는 주제의식을 나타내는데 효과적일뿐만아니라 그것 자체로서 의미의 두께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많은 추억들이 덕지덕지 쌓여서 봉우리를 이루고 아물지 못한 상처들이 마음에 걸려서 석양도 벌겋게 피를 끓인다   이 6행의 시구에서 표현의 대상은 “봉우리”와 “석양”이다. “하많은 추억들이 덕지덕지 쌓여서 봉우리를 이루”었다함은 저 봉우리에 오랜 력사의 기억이 쌓였다는 사실을 말하는 동시에 이를 바라보는 화자의 의식속에 수많은 력사의 기억이 쌓였다는 사실을 표현한것이 되기도 한다. 석양이 벌겋게 피를 끓인다는것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붉은빛의 석양을 보며 피로 얼룩진 력사의 흔적이 화자의 마음속에 떠올라 격한 감정을 유발했음을 의미하는데 이를 유발시킨 장본인은 바로 “아물지 못한 상처들”이다. 이는 물론 6.25전쟁으로 비롯된 민족분단의 력사를 두고 말할것이다. 그런데 전반작품의 주제를 떠나서 생각해보면 이러한 시적표현 혹은 상관물은 좀더 많은 련상을 가능케 한다. 이를 우리는 시적의미의 다중성이라 볼수가 있을것이다. 《뿌리》라는 작품은 좀더 복잡한 의미망을 형성하고있다. 일차적으로 “뿌리”는 나무의 뿌리를 지칭한것 같다. 땅에 살면서도 땅위의 가지와 잎과 열매를 사랑하는 마음은 계절도 없고 야심도 사욕도 없다고 했다. 나무뿌리의 속성이다. 2차적으로 뿌리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를 상징한것처럼 보인다. “거치른 광야에 자식을 세워놓고”나 “실성한 바람같은 무심한 세월/빨강꽃 노랑꽃 사랑이 주렁질 때”라는 표현들에서 우리는 상관물의 등가관계를 짐작할수 있다. 즉 나무뿌리의 가지와 잎, 열매에 대한 사심없는 사랑과 자식에 대한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련관시켜 표현하고있는데 이때 생기는 의미는 당연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초월한다. 상징과 비유의 속성에 의해 의미의 다중성이 만들어지기때문이다. 《락수물》에서는 이러한 의미의 다중성이 좀더 확대된다. 시적상관물의 불확실성때문이다.   한밤중, 나는 락수물소리 들으며, 저 사나운 바다를 생각한다 한사람 한사람이 모여서 이루는 데모의 바다, 그 엄청난 함성을 듣는다   강자를 만드는 락수물 짙푸른 바다의 효용 죽음에 도전하는 그 무서운 밤!   하-얗게 표백된 나의 꿈이 바다가 백사장에 슬픔으로 깔리고 자유를 갈망하는 저 몸부림 벌겋게 달아오른 갈증이 지구의 여윈 몸을 달군다   락수물은 그리움의 변주곡인지도 몰라 퍼렇게 멍든 내 가슴에 쬐고만 구멍 하나를 판다   이 작품에서는 시적상관물이 락수물과 물의 최후의 귀속처인 바다로 이루어졌다. 같은 물이면서도 그 속성이 뚜렷한 차이를 가지는것이 락수물과 바다이다. 문제는 이 두 시적상관물이 각각 나름대로의 의미층을 이룬다는데 있다. 그래서 시는 난해해진다. 첫련에서 화자는 락수물을 보며 바다를 생각하며 바다는 또 “데모의 바다”와 등치된다. 그리고 제 2련에 오면 락수물과 바다물 각각의 속성이 다른 힘이 부각되며 거기에 세상사의 흐름이라는 의미가 암시적으로 나타난다. 제 3련에서는 바다라는 시적상관물이 화자 개인의 삶에 련관된다. 그런데 그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화자의 바래진 꿈과 강력한 욕구가 겹쳐지면서 제3의 의미층을 이룬다. 다시 마지막련에 이르면 락수물에 되돌아와 연약하지만 끈질긴 힘을 가진 락수물의 속성이 화자개인의 운명에 관련되면서 또다른 의미층을 만들어낸다. 비록 락수물과 바다물이라는 관련성을 가지면서도 속성이 판이한 두 시적상관물이 화자의 삶에 비유되면서도 결과적으로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있기때문에 미완의 작품으로 인식될 소지가 있지만 바로 그렇기때문에 열려진 공간이 형성되여 독자의 상상이 개입될 여지가 생성되며 이때문에 오히려 의미의 다중성을 확대하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산사》라는 작품은 시적상관물이 단순하다.   오늘은 장날인가봐 개미들이 줄지어 장보러 가는 구멍빠진 퇴마루에서 봄볕이 잠간 놀다간 뒤 잠을 깬 풍경이 뫼바람에 왈랑절랑 수선을 피우면 면벽한 스님은 깜빡 졸다가 나무아미타불 헛갈린 념불에 다람쥐 깜짝 놀라 정적 하나 물고 달아나는 산사의 하오   보는바와 같이 별로 새로울것도 놀랄것도 없는 어느 산사 하오의 풍경이 엷은 수사적인 옷을 입고 담백하게 그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읽으며 의미의 다중성을 느낄수 있는것은 상관되는 주제의식이 분명하지 않기때문이다. 즉 여기에 그려진 이미지들과 이런 이미지들이 모이면서 이루어진 어떤 경지 모두가 열려있다는 말이 된다. 이제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질수밖에 없다. 의미의 다중성이 가능한 리유가 여기에 있다. 요컨대 2000년대 김철의 시는 시인이 일관되게 추구해왔던, 기발한 착상과 세련된 언어를 통한 철학적 의미의 창출이라는 시작특성을 이어오면서도 젊은 시절의 시작품들에서 흔히 볼수 있었던 조각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좀더 솔직담백하며 때로는 원색적이기까지한 모습을 보이고있다. 게다가 시적상관물의 불확실성을 통해 의미의 다중성도 획득하고있어 로시인의 달관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5. 끝내면서   2000년대 김철시인의 작품들은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삶의 허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허무에 직면하여 때로 거부하고 분노하기도 하지만 결국 겸허히 수용하며 고향과 추억과 사랑, 즉 추억속의 아름다운 고향과 아직도 끈질기게 지켜가는 사랑의 의지를 통해 극복하고자 한것처럼 보인다. 이는 로시인의 삶의 지혜인 동시에 달관의 경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현실에 대한 불만과 비판, 특히 민족분단의 비극에 대한 안타까움과 이를 타개하고자 하는 사명의식 또한 삶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한 노력이라 볼수도 있을것이다. 주제의식의 측면에서뿐만아니라 시작의 형식적측면에서도 로년기의 김철시인은 전날의 일관된 풍격을 이어오면서 동시에 그에 만족하지 않고 시적상관물의 불확실성을 통해 의미의 다중성을 꾀하기도 했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다 하지 않을수 없다.     * 에 게재한 글입니다. [출처] 추억과 사랑 그리고 허무의 미-2000년대 김철의 시|작성자 반벽거사  
719    김창영 / 장춘식 댓글:  조회:4743  추천:0  2015-09-17
서탑의 력사적의미와 시적인 상징성 ―김창영의 련작시 《서탑》 장춘식   1. 시작하면서   김창영의 시는 우리가 늘 먹는 된장이나 김치와도 같이 소박하면서 깊은 맛이 있다. 화려한 수사도 별로 없고 모더니즘의 특징이라 할수 있는 난해함도 없다. 그러나 술술 읽히면서 읽고나면 거기에서 뭔가 우리의 가슴을 저리게 하는 깊은 의미, 깊은 맛이 느껴진다. 이번에 묶은 시집 《서탑》 련작시 99편은 그의 이러한 소박하면서 깊은 맛을 집대성한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100편이 아닌 99편, 많다는 의미가 될것 같기도 하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으로 리해해도 될것이다. 하긴 저 서탑아래 도라지꽃이 피는 한, 즉 조선족의 흔적이 존재하는 한 김창영시인의 시상도 끝나지 않을것이다. 련작시는 우리 시단에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러나 김창영의 《서탑》 련작시처럼 방대한 규모의 련작시는 흔치 않다. 석화시인의 련작시 《연변》이 31편으로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김창영의《서탑》의 3분의 1밖에 안된다. 의미있는것은 두 련작시 모두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장르적으로 두 련작시는 전례가 없는것이여서 1980년대 리욱, 김철, 김성휘 등의 장편서사시가 하나의 붐을 이루었던것처럼 장르적혁신의 붐을 일으키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없지 않다. 시인이 관심을 두고있는 주제의식을 중심으로 시집의 의미와 가치를 살펴본다.   2. 공동체의 정체성 확인 욕구   련작시의 최초발상은 아무래도 조선족의 상징, 이주민의 상징으로서 비롯된것처럼 보인다. 서탑과 서탑거리는 료녕성 특히 심양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졌고 이는 사실상 연변과 마찬가지로 중국내 전반 조선족의 상징이기도 하기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99편에 달하는 련작시의 거의 반 이상이 민족 정체성의 리해와 확인의 경향을 드러낸다.   1) 기억속의 력사와 그 상징성 시집의 작품에는 기억속의 력사적 흔적들이 많이 나온다. 10여편이 이런 소재를 다루고있다. 가령 3번 작품의 량세봉장군에 대한 기억, 4번과 64번 작품의 조선족의 이민과 벼농사를 통한 정착의 력사적기억, 5번 작품의 새끼골목의 유래, 15번 작품의 백석시인의 기억, 16번 작품의 “봉천국밥집”의 유래 등이 이에 속한다. 15번 작품은 “시인 백석을 그리며”라는 부제를 달고 작품 전체적으로 북관 즉 우리의 이민지인 동북땅에 대한 백석시인의 인상과 느낌을 재현해내는데, 수십년이라는 시간적차이를 두고 하나의 같은 공간속에서 벌어졌던 두 시인의 느낌은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의 공간을 마련해준다. 어떤 의미에서는 력사와 현재의 시간을 하나의 공간속에서 통합시켰다고 보아도 대과는 없을것이다. 그러한 시인의 상상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 력사와 오늘의 삶을 동시에 느낄수 있기때문이다. “류치환의 ‘절도(絶島)’에 답하여”라는 부제목이 붙은 32번 작품에서는 일제강점기 이민시인 류치환의 이민지에 대한 느낌 혹은 정서와 김창영시인의 오늘의 이민지의 느낌을 대조시키고있다. “외로운 絶島”라는 류치환의 만주국치하 동북땅의 쓸쓸하고 고독한 느낌에 대해 시인은 “해빛 찬란한 광야의 하루”라는 표현으로 대조시킨다.력사와 오늘 현실의 시간적거리감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수십년이라는 시간이 지난후 바뀌여진 정착지의 삶의 양상이 체험적으로 다가온다. 《봉천국밥집》이라는 부제목이 붙은 16번 작품과 “화평구중흥가31번지”라는 부제목이 붙은 39번 작품에서는 조선족이 현재 살고있는 정착지의 력사적인 기억과 상징성이 보다 무게감있게 다가온다. 남편을 항일투쟁에서 잃은 8명의 독립군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개장했다는 “봉천국밥집”의 유래를 특별히 제시한 16번 작품에서는 오늘날 우리 조선족의 정착이 얼마나 뼈아픈 대가를 치렀는지를 기억하게 하며 39번 작품에서는 다시 옛 봉천의 조선인 부호 김창호가 살던 주택을 들어 그러한 력사적기억을 립체적으로 확산시킨다. 이런 기억이 시인의 상상력을 자극한것은 그것이 우리의 기억, 선조들을 통해 우리의 무의식속에까지 침투된, 수많은 상징과 암시를 동반한 기억이기때문이 아닐까 한다. “논밭을 바라보며”라는 부제목이 달린 4번 작품과 “새끼골목”이라는 부제목의 5번 작품, “북운하 서정”이라는 부제목의 64번 작품을 통해 우리는 시인의 그러한 인식을 확인할수 있다. 맨주먹으로 강을 넘어 남의 나라 땅에 몸을 맡긴 우리의 부조들은 거의 벼농사기술 한가지로 이땅에 정착할 밑천을 마련했고 그렇게 수많은 피와 땀을 이땅에 뿌리는 동안 몇세대를 걸쳐 오늘에 이르게 되였던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력사적기억을 끊임없이 더듬어보고 감개무량해한것은 력사적기억 그 자체만에 대한 관심때문은 아닌것 같다. 그러한 력사적기억의 재생에는 항상 오늘의 우리가 엮여지기때문이다.   2) “나”와 “우리” 확인의 콤플렉스 사실 시집 전체적으로 시인 김창영이 서탑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것은 오늘의 우리, 우리라고 표현되는 조선족의 존재감에 대한 확인 콤플렉스라 할수 있을 정도로 이 부분에 해당되는 작품이 량적으로도 많고(20편이 넘는다) 정서적으로도 가장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러니까 앞항에서 살펴본 력사적기억에 대한 관심은 이러한 “우리” 확인의 콤플렉스에서 비롯되였다고 볼수도 있을것이다. 련작의 첫편에서 이점은 벌써 확인된다. “어제밤 꿈속에서 부르던/할아버지가 그리워/이른 새벽 서탑을 찾는다”는 표현은 련작시 전체의 창작동기를 제시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태여나 얼굴조차 보지 못한 할아버지”의 목소리―“너 이놈, 서탑을 가슴에 심거라!”가 “탑아래서 탑의 언어에 귀 기울이다”는 표현과 겹쳐지면서 “나”와 “우리”의 정체성 확인의 욕구를 충분히 드러내고있기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서탑은 이민민족인 “우리”의 상징으로서 시인의 의식과 정서를 자극하고있다는 말이 되겠다. “묘향산 모란봉”(이북땅을 상징)을 거쳐 “한라산”(이남땅을 상징)에 이른다고 한것은 앞의 “현풍할매곰탕집”이라는 식당 이름과 련관시켜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상호(商號) 명칭이 분명하지만 이를 통해 고국의 산천, 고국땅을 표현하고자 한 시인의 의도 또한 뚜렷하다. 그렇게 보면 이 작품에서는 “나” 혹은“우리”를 조선반도에서 이주해 서탑으로 상징되는 중국땅의 정착지에 정착해 살아가는 공동체로 보고 이를 스스로 확인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다가온다. 이점은 2번 작품에서 “우리”를 가슴에 “하얀 도라지꽃”을 피운 공동체, 즉 고국의 동포와는 구별되는 존재로 인식하는 점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이 작품에서는 또한 서탑이 “행인들의 가슴속에 탑으로 우뚝 솟았다가” “거리로 드러누웠다”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탑이 “드러누웠다”는 표현은 련작시 전체적으로 5-6곳에 등장하는데, 이는 시인의 기교적인 기호와도 관련되겠지만 그 “드러누웠다”는 표현이 “우리”의 정착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고 할 때 거기에는 뜻깊은 상징성이 동반된다. 그리고 이 상징은 련작시 전체적인 상징―서탑=조선족=자랑스런 정착민공동체의 의미를 띠게 된다. 왜 서탑이 시인의 의식속에서 그토록 절실한 의미를 가지고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로서의 정체성 확인의 욕구는 다각적으로 이루어진다. 27번 작품에서 시인은 서탑이 “여기에 이렇게 서있음은/서러움인가 자랑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해놓고는 “쪽박차고 압록강 건너야 했던 비운”이 지금까지 남아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서러움이 되겠지만 “다시금 엮어가는 우리네 삶”은 오히려 자랑이 된다고 말한다. 정체성 확인의 한 방법이 될것이다. 그리고 다시 “조선문서점”이라는 부제목이 붙은 28번 작품에 오면 고국과의 관련, 혹은 민족적인 정체성을 인정한다. “서탑대랭면점”이라는 부제가 붙은 31번 작품에서는 랭면사랑을 통해 또다시 민족적정체성을 확인한다. “북릉공원놀이”라는 부제목의 42번 작품은 심양의 조선족들이 왜서 북릉공원놀이에 그처럼 애착을 가지는지를 통해 공동체의 자기확인의 욕구를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43번 작품에서 “백두에 이르는 진달래 꽃길과/한라에 이어지는 무궁화 꽃길이 보인다”는 표현은 우리 공동체의 이중적인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시인의 독특한 감수성의 소산이라 하겠다. 이처럼 시인은 “우리”로서 조선족공동체의 자기확인을 통해 우리 삶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있는바 여기에서 서탑은 항상 그 상징 혹은 가치의 중요한 이미지로서 독자의 정서를 자극한다.   3) 위기 맞아 다지는 마음 그러나 공동체로서의 자부심과 가치의식은 시인에게 있어서도 항상 자신감만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도시화를 맞아 분해되는 우리 공동체의 현실앞에서 이런 문제성은 자연스럽게 도출되는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그러한 위기상황을 맞아 좌절하고 한탄만 하지는 않는다. 서탑의 이미지 혹은 상징에는 그러한 위기를 해소하고자 하는 의욕, 혹은 자기다짐의 의식들이 다수 드러난다. 그런데 시인의 위기의식은 련작시의 초반에서는 별로 나타나지 않다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점차 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도시화시대를 맞아 민족공동체가 맞은 위기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있음을 말해준다. 가령 34번 작품에서 시인은 위기의식과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처음으로 드러내고있다. 그것도 “오랜세월 삼복 폭염아래/탑이 열병을 앓는다”는 표현에서 볼수 있듯이 최근의 위기만이 아닌, 조선족이 겪어온 시련과 고난의 전 과정을 포함하고있는것처럼 보인다. 거기에 오늘의 위기도 물론 포함될것이지만.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시련, 위기의 극복을 “흐린날 뼈속에 스며든 랭기를 삭히는 일”로 보고 “가린것 하나 없이 온몸 내맡기고/열받아 깡그리 녹아내렸다가/이 땅에 다시 일어서는것”이라 락관한다. 이런 시인의 락관에는 이민과 정착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른 우리의 력사적저정이 바탕이 되였을것이다. 37번 작품에서도 시인의 락관적인 정서에는 과거 백수십년의 력사적경력이 바탕에 깔려있지만 미래의 불투명성에 대한 시인의 걱정은 조금 깊어진것처럼 보인다. “시작이 보이지 않는것처럼/끝도 없을거야”라는 첫 2행이 은유하는것은 과거의 시련보다는 현재의 위기의식이다. 그러나 시인이 다지는 마음은 여전히 락관적이다. “보이지 않는 끝은/더 높이 솟아/보일 때까지 더 솟는것이야”라는 마지막 련의 표현이 그렇다. 물론 이런 시인의 락관은 “뒤돌아보면/지금 뒤돌아보이는것까지가/참으로 소중한거야” 라는 표현에서 볼수 있는것처럼 상당히 철학적인 자신감, 혹은 강력한 문화적능력이 뒤받침해주고있다. 그리고 40번 작품에서 그러한 위기극복의 다짐과 락관적인 정서는 고조를 이룬다. 비록 “떠나야 했던 걸음에/서러움 있었을망정” 즉 이민의 출발과 과정에는 고난과 시련, 그리고 그로 인한 서러움이 있었지만 “저 끝간데 없는 벌판에 피여난/복된 벼꽃파도”처럼 “저 서탑가에 정다운/‘나의 살던 고향’가락”처럼 이제 서러움은, 적어도 과거의 서러움은 아니며 “해빛고운 날 날마다/해빛처럼 살 일이다/여기서 고향처럼 살 일이다” 라는 표현에서 보는것처럼 우리의 삶, 공동체의 삶은 궁극적으로 락관적이라는 시인의 정서, 의식에는 변함이 없다. 50번 작품도 비슷한 정서를 드러낸다. “따스한 봄바람뿐이였다면 오늘의 이 모습/하늘아래 당당히 자랑할수 있었을가”는 오늘날 시인의 락관주의의 원인이 될것이고 “인제 또 언제까지 오늘까지 온것처럼/그냥 이대로 이럴수밖에 없을지 모르는거야”에서는 미래 공동체 운명의 불투명성에 대한 걱정과 반드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나고있다. 그리고 67번 작품에서는 다시 한번 “꽃처럼 웃으며 살아가는 일이다” 라는 마지막 시행이 의미하는것처럼 서러움 딛고 굳건히, 끈질기게 그리고 락관적으로 살아가려는 공동체의 의지가 시인의 정서에 녹아있다. 김창영에게 있어 서탑은 시련을 이겨낸 “우리”이고 “드러누운” 서탑은 이민지에 정착하고 뿌리내려 해빛처럼 밝게, 꽃처럼 웃으며 살아가는 조선족공동체의 다른 표현이다. 비록 도시화시대를 맞아 공동체의 분해라는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있는 서탑처럼 조선족공동체 또한 끝까지 버티고 살아갈것이라는것, 그리고 이런 끈기와 힘은 백수십년 시련과 고난의 력사적과정을 거쳐 형성된 정체성과 그 정체성을 결성시킨 문화적, 생활적 능력이라는 점, 이것이 김창영시인이 축조한 서탑의 상징성 혹은 이미지의 내포가 될것이다.   3. 돌아갈길 없는자의 서러움―향수   다시 돌아갈수 없는 혹은 돌아갈길 없는 고향, 이는 이민기 우리 시인들의 중요한 정서적표현이였다.이제 이민의 제3, 제4 심지어 제5 세가 우리 민족공동체의 주류가 된 상황에서도 이러한 고향상실의 서러움 혹은 향수는 여전히 무거운 삶의 짐이 되고있다. 디아스포라의 공통된 체험이요 정서라 하겠다.   1) 망향과 향수의 처절함 “바다물이 마를가/그리움은 끝없어라”로 시작되는 20번 작품은 그리움을 그냥 추상적으로 표현하고있다. 그러나 간절한 소망이 탑으로 굳어졌다는 표현은 그 상징적인 의미가 단순하지 않다. 개인적인 소망을 공동체의 소망으로 승화시키고있기때문이다. 특히 “내 간절한 소망은 탑으로 굳어지고”에서 굳어졌다는 표현은 소망의 간절함을 충분히 드러냈다 하겠다. 그렇다면 이처럼 간절한 소망은 무엇이며 또 왜 그토록 간절할까? 상기 작품의 마지막 련에 나오는 “아득한 수평선 우러러/눈 먼 마음 어찌할거나?”에서도 대개는 그 소망이 고국에 대한, 혹은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임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너무 추상적이여서 그냥“짐작”할수 있을뿐이다. 그러나 21번 작품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고국에 대한, 고향에 대한 망향 혹은 향수의 정서가 구체화되고있을뿐만아니라 대를 이어 유전되는 그리움을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의 “가고프다”와 “보고싶다”에서 화자 세대의 “그립다”로, 다시 “예서 태여나 자란 내 아들은/말없는 탑과 탑너머 저쪽산을/아버지처럼 나처럼 기억이나 할까?”라는 걱정까지를 포함한 그리움의 궁극으로 드러내고있다. 그러한 그리움, 향수는 22번과 44번 작품에 이르러 고조를 이룬다. 그리고 왜서 그러한 그리움이 그토록 절실한지를 확인시켜준다. “해와 달이 엇갈아 뜨고 져도/받아주지 않는 야속함에/돌아갈수 없는 아쉬움이 겹쳐” 가슴에 응어리지고 가시마저 끼여있다는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서러움은 력사적으로 응어리진것이다. 44번 작품에서 “서러움 하나는 하찮은것 같아도/내 가슴속 깊은 곳에 종기로 곪고 곪아 터져/닦아도 닦아도 아물길 없”다. 여기서 서러움은 바로 “아직도 남아있다 돌아갈길 없는 서러움이”라는 마지막 행에서 표현된 망향과 향수의 서러움이다. 결국 이것이다. “돌아갈수 없는 아쉬움”, 고국, 고향은 거기 그대로 있지만 세대가 바뀌고 강산마저 바뀌여 돌아갈수 없는 상황, 그것이 이민초기의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돌아갈수 없는 아쉬움”과는 또다른 “돌아갈수 없”음인것이다. 거기에서 서러움을 동반한 절실한 망향과 향수의 정서가 자라고 솟아나는것이다. 그리고 선조들의 서러움은 지금까지도 유전되여내려오고있는것이다.   2) 분단의 아픔을 앓는 디아스포라 돌아갈수 없는 고국에 대한, 고향에 대한 정서는 이제 고국과 고향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된다. 24번 작품에서 “탑 이쪽을 저쪽처럼 보고/탑 저쪽을 이쪽처럼 보리”라는 마지막 2행의 표현은 탑의 이쪽과 저쪽을 넌지시 고국땅의 남과 북으로 은유하고 그에 대한 화자의 관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48번 작품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고국의 아픈 현실에 대한 가슴앓이를 드러낸다. “탑이 소근대는 소리를 들으면/온통 겨울이야기 차가움이다”라는 첫 2행의 표현에서 “겨울이야기”는 고국땅의 안타까운 현실, 가령 분단의 현실이나 분단으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가지 안타까운 사건, 사실들을 은유할것이다. “참으로 오랜 세월/그리운 고향소식 듣는것조차 죄되여”라는 중간 2행과 마지막 3행 “고향의 봄바람이 아직도/여기에 불어오지 못하기때문/아득한 기다림이여라!”에서 이를 확인할수 있다. 여기서 특히 “아득한 기다림이여라!”는 마지막 시행은 시작자아가 얼마나 고국의 “봄바람” 혹은 그리운 소식을 기다리고있는지, 말을 바꾸면 얼마나 고국의 통일이나 눈부신 발전을 기대하고있는지를 드러내고있다. 시인의 향수속에 남북분단의 현실이 얼마나 가슴아프게 인각되여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51번 작품이다. 서탑아래서 귀를 기울이면 정답게 속삭이는 조선팔도 말씨, 사투리의 말잔치를 즐겁게 들을수 있고 친구하며 다정하게 지내지만 고국에 가면 서울과 평양, 각각 저들끼리 논다는것이다. 그 안타까운 마음은 “서울 평양 두분 특별 손님 모셔와/함께 더불어 사는 모습 보여주면 좋을까 몰라”라는 마지막 2행에서 잘 드러난다. 62번 작품에 가면 이런 분단의 아픔에 대한 가슴앓이는 남북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승격된다. “한라에서 백두 가는 길/언제면 열릴까나?”라는 첫 2행의 상징적의미는 구태여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거니와 시적자아는 남북통일의 위업을 그냥 열망에 그친것이 아니라 “꽃피는 탑의 고향에/한라 백두의 얼” 심고 “금강 설악의 혼 살리자”고 호소한다. “버려진 신세여도/버릴수 없는 그곳”이기때문이며 또 상기51번 작품에서 확인된 “탑이 낸 길”, “탑의 마음따라”, 즉 남북에 고향을 둔 조선족들이 “친구하며 다정하게 지”내는 공동체의 지혜를 모아 고국의 통일에 힘을 보태겠다는것이다. 물론 조선족공동체가 생존하며 쌓은 지혜가 남북통일에 충분히 귀감이 될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수십년간 얽히고설킨, 얼음처럼 얼고 돌처럼 굳어진 남북의 마음을 깨치고 녹여낼 힘이 우리에게 과연 있는지는 더러 의심되기도 하지만 시적자아의 소원과 열망, 그 소원과 열망의 간절함은 인정하지 않을수 없겠다. 고국과 고향에 대한 사랑, 그리움의 처절함은 49번 작품에서 다시 확인할수 있다. “아득한 외로움이여/아리랑 열두고개 불러 부르다/목까지 쉬여” 노래가락마저 쉴 정도로 시적자아는 그리움에 몸을 태운다. 그리고 “아지랑이 춤추는 봄날/봄의 노래는/가슴속에 묻어두었다”고 절규한다. 디아스포라의 슬픔이요 한맺힌 외로움이 여기에 있을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내기 어렵겠지만 보수적으로 짐작해도 조선족의 반수 정도가 한국에 다녀왔다고 볼수 있다. 그렇다면 고향에 “돌아갈길 없는 서러움” 혹은 최초의 이민으로 유발된 향수병은 기본적으로 해소되였다고 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것은 큰 착각이다. 미처 조상의 고향에 가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백년이상 유전되면서 오늘까지 내려온 “향수병”을 해소하기 위해 다녀온 고향이 사실상 상상속의 고향이 아니기때문이다. 고국도 변했지만 우리도 변했고 따라서 유전적으로 내려온 “향수병”은 어쩌면 영원히 치유될수 없는 디아스포라의 슬픔이 되고말았는지도 모른다. 다른 측면에서 망향과 향수, 고국의 분단을 아픔으로 앓는 마음은 사실상 조선족의 정체성의 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 항의 상징성 혹은 이미지 또한 앞항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공동체의 정체성 확인, 혹은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기확인의 의미가 될것이기때문이다.   4. 탑의 또 다른 이미지―삶의 진리의 상징   지금까지 우리는 서탑의 민족적상징의 문제에 대해 론의해왔다. 비록 련작시의 중심의제 혹은 핵심적인 주제가 공동체의 삶에 대한 관심인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한정된것은 아니다. 시집에서 서탑은 민족적상징의 문제외에도 일부 인류공동의 삶의 문제를 상징하기도 한다. 시인이 비록 서탑을 주로 조선족공동체의 상징체계로 인식하고있는것은 사실이지만 시인은 조선족공동체의 구성원이기 이전에 한 인간, 즉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와 의식을 가진 개체이기도 하기때문이다.   1) 력사의 무게감과 삶의 허무 그리고 달관 시인의 이러한 개체적인식 혹은 보편적인 가치는 력사의 무게감과 삶의 허무에 대한 정서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11번 작품에서 화자는 “스님들 떠나고/탑은 말이 없다”고 하고는 “내 눈에 보이는건/빈 하늘뿐”이라 하여 력사의 무게와 삶의 허무의식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허무는 공허나 상실감은 아닌것 같다. “내 마음 하늘처럼 비여/바람 한점 일지 않는/호수인양 고요하느니”에서는 삶의 공허나 역사의 허무함이 상실감으로가 아니라 달관적인 세계인식에 이르고자 하는 의식의 방향이 엿보인다. 그러나 첫 련을 거의 그대로 중복한듯한 마지막 련의 “이제 더는/탑도 없고/스님도 없어라” 라는 표현은 허무의식이 또다시 강화되면서 이른바 우주적인 괴로움을 드러내고있다. 이러한 허무의식이 불교적세계관과 닿게된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인지도 모른다. 14번 작품에서 이점은 잘 드러난다. “비우고서 있는듯 없는듯/서있는 일/누운듯이 서있는 일”이라는 마지막 3행의 표현은“심즉공”이나 “시즉공”처럼 비움과 무위를 추구하는 불교적세계관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것이“탑에서 눈길 거두고/마음에서 탑을 비우는 일이란/탑의 그 공간에/나를 세우는 것이다”라는 첫 4행의 의미와 서로 호응하여 집착을 버려야 무위정적(無爲靜寂)에 이를수 있다는 불교적가치, 어쩌면 달관의 경지에 대한 화자의 인식을 보여준것이라 할수도 있다. 25번 작품에서는 그러한 시인의 인식이 인간의 인식의 한계, 인간관계의 측면에까지 확대된다. 마음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읽지 않는다면 대상을 보지도, 읽지도 못할것이거니와 대상의 뒤켠에서 대상의 마음을 읽는 다른 마음이 있다는것은 더구나 알지 못한다는것, 그 마음의 눈이란 바로 무위나 달관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시인의 달관에 대한 인식, 삶에 대한 가치추구는 33번과 35번 작품에서도 불교적인 가치관과 겹쳐지면서 어떤 깨달음, “돈오(頓悟)”의 경지를 드러낸다. 33번 작품의 “미미한것 하나 하나도/해빛같은 귀중한 존재임을/조용히 일깨운다” 라는 표현에서 읽을수 있고 35번 작품에서는 “내 생각의 천만갈래 길들이 알고보니/내가 걸은 그 단 한갈래로 이어진것을”이라는 다분히 철학적인 상징으로 표현된다. 물론 이런 시인의 인식은 “탑”과 항상 련관성을 가진다. “그곳 내 생각의 끝마다에/탑 하나씩 서있을까?”가 그렇다. 달관에 이르고자 하는 시인의 집착 혹은 명상은 38번 작품에 이르러 다시 그 경지가 무엇인지를 확인해준다. “눈뜨고 하늘 올려다보면/참으로 높아보이나/눈감고 느끼면 내 손/하늘에 닿아있는것처럼”에서는 앞에서 언급했던 “마음의 눈”의 법칙을 재확인하고있고 “탑도 없고 하늘도 없고/나도 없어라” 라는 마지막 2행의 표현은 인간이 무에서 왔다가 무에로 되돌아가는 세상의 섭리를 상징할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은 “내 서탑가를 거닐다가 잠간 멈춰서서/그대 우러러 생각한것은/그대 딛고 선 이 땅의 기운과 하나되여/머리우 하늘에 닿아 마침내” 라는 불교적 명상을 통해 얻어진것처럼 보인다. 56번 작품에서 “언제 또 허물어지는 일 있더라도/리유도 묻지 말고 서러워도 말자/눈감고 생각마저 비우고/나마저 있는듯 없는듯, 또 무엇이 필요한가” 라는 첫 련의 상징성은 여전히 “공(空)”이라는 불교적세계관과 닿아있다. 결국 시인은 비움, 무위 등 불교적인 가치를 통해 달관의 경지를 실현할수 있다고 인식하고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탑의 묵묵부동에서, 탑의 불교적의미에서 명상을 통해 얻어진것처럼 보인다.   2) 일상탈출의 욕구 “공”이나 “무위”에 대한 가치인식에도 불구하고 현대문명의 끊임없는 유혹은 쉽사리 떨쳐버릴수 없는 모양이다. 물론 현대인의 삶은 문명의 추구와 탈출의 욕구라는 두가지 서로 모순된 정서를 배태하고있다는 사실을 상기살 때 이것 또한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먼저 17번 작품에서 밤과 낮이 바뀐 현대인의 삶은 상당정도 비판적인 시각에서 표현되고있다. “낮달이 눈물을 떨군다” 라는 표현이 그러한 시적자아의 정서를 대변해준다. 그리고 19번 작품에서는 그러한 문명비판의 정서가 일상탈출의 욕구와 비움과 무위에의 추구로 비약한다. 여기서 “가끔은 이사하는 생각을 가져본다”는것은 일상탈출 즉 현대문명에 대한 피로감을 드러낸것이 분명하다. 흔히 이런 류형의 일상탈출의 욕구는 그냥 욕구에 그치거나 잠시적인 일탈의 욕구로 변질하기도 하지만 김창영시인의 일상탈출은 “빈 공간 빈 터 찾아” “이사길에 버리고 버려/말끔히 비여서 마침내 가벼워진 마음”이라는 표현에서 확인할수 있는것처럼 “자기비움” 혹은 “무위”의 경지를 가상목표로 한다. “내 터는 따로 없다”는것은 속세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경지가 되기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이 애초에 정해놓은듯한 경지와는 달리 현대의 문명은 끊임없이 시인을 유혹한다. 46번 작품에서 “과욕이 한껏 부풀은 내 마음”이나 88번 작품에서 “무엇엔가 자주 흔들리는 내”가 그렇다. 그러나 화자의 이러한 세속적인 욕구, 현대문명의 대표적인 욕구인 물질에 대한 유혹은 동시에 탑의 “주어진 고만한것에 참으로 만족하는” “당당한 너의 모습”에 의해 제어되고 억제된다. “이제라도 값 따지지 말고 저당잡혀야 겠다”는 마음다짐이나 “더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흔들릴 때까지 흔들리기로 한다” 라는 자기 검증은 그러한 시인의 의지를 대변할것이다. 그러니까 김창영시인에게 있어 서탑은 공동체의 상징으로서만이 아니라, 탑이라는 보편적인 이미지로서도 중요한 시적인 상관물이 된다는 말이 되겠는데, 여기서 비움이나 무위라는 불교적인 가치관은 시인이 달관에 대한 인식을 대표하는 경지가 될것이다.   6. 마무리   전체적으로 김창영의 《서탑》 련작시에서 서탑은 우리의 선조들과 우리 자신들마저 포함한 이주민을 상징한다. 이주민의 력사적기억, 돌아갈수 없는 고향에 대한 향수, 심지어 일상의 탈출욕구와 우주적외로움마저 탑은 받아준다. 서탑의 상징적인 의미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도 하고 자랑스럽게도 하며 때로는 슬프게도 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99편의 시작품을 여러해를 두고 쓰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시인의 립장이나 주제의식은 거의 변화가 없다. 이 시들을 쓰기 시작한 동기가 오랜 세월 시인의 의식속에서 발효되다가 련작시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고 볼수가 있다. 하지만 무르익은 주제의식이라는 측면에서는 장점이 되기도 하겠지만, 시를 쓰면서 더러 의식의 변화가 있음직하기도 한데 너무 변화가 없다는것은 오히려 약점이 될수도 있다. 혹 력사의 무게를 담아내겠다는 시인의 강박의식이 주제의식의 변화를 제약한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더러 여유를 가지고 좀더 가벼워진 마음, 열린 마음으로 서탑의 새 력사를 쓸수는 없을까 기대해본다. 본고의 서두에서 김창영의 시는 된장이나 김치처럼 소박하면서 깊은 맛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소박하다는것은 다른 말로 하면 단순하다는 표현도 가능하여 약점이 될수도 있다. 화려함에 흔히 동반되는 거추장스러운 군더더기를 제거했다는 측면에서는 장점이 되지만 현대시의 많은 표현기교들이 결여되여있다는 측면에서는 약점이 될수도 있는것이다. 현대시의 핵심적인 특징은 이미지의 전략적인 사용이다. 리성적인 주제발굴로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창조적의미들이 시인의 감성을 통해 시인자신마저 감지하지 못하는 중에 드러날수 있는것이 바로 이미지즘의 장점이 아닐까 한다. 물론 기교라는것은 필수라기보다 선택의 문제가 되지만 오늘의 수준을 넘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다는 의미에서는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출처] 서탑의 력사적의미와 시적인 상징성-김창영의 련작시 |작성자 반벽거사  
718    리옥금 / 장춘식 댓글:  조회:5182  추천:0  2015-09-17
민족과 전통과 삶, 그리고 시 ―리옥금 시집 《별 줏는 녀인》 장춘식     문학작품창작에서 기교는 중요하다. 소재가 작품이 되기까지는 반드시 기교를 통한 가공을 거쳐야 하기때문이다. 시창작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시창작에 좀더 많은 기교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것을 우리는 《시적표현》이라 일컫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기교 혹은 표현에 집착하면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날수도 있다. 집착하다보면 의미가 기교에 덮여버릴 우려가 있기때문이다. 그렇다면 기교가 더 중요하냐 의미가 더 중요하냐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물음에 대답하기는 참 난감하다. 둘 다 중요하니까. 혹 이렇게 대답하면 어떨까? 기교를 사용했으나 그 흔적이 보이지 않을 때 좋은 작품이 완성된다고. 기교는 있으되 기교가 보이지 않는 작품이 훌륭한 작품이라고.   기교에 대한 얘기로 글을 시작한것은 당연히 그럴만한 리유가 있다. 리옥금의 시집을 읽고 첫 인상으로 기교라는 개념이 떠올랐기때문이다. 그렇다면 리옥금의 시작품들은 기교를 적절히 잘 리용하였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것도 있다. 아래에 작품을 분석하면서 이점을 좀더 구체적으로 확인해보도록 한다.     1. 전통적인 삶에의 지향, 그리고 정체성 확인     작품집에 수록된 리옥금의 시작품에서 《단오》《한복》《색동저고리》《북소리》《동지팥죽》과 같이 민족적전통 혹은 이주민과 그 후예의 정체성 확인에 관련된 시작품 제목만 하여도 20여개가 된다. 그외에도 제목은 그렇게 보이지 않으나 시행들에 류사 표현이 들어간것까지를 포함시키면 이 류형의 시들은 더 많다. 전체적으로 가장 많은 량을 차지하며 따라서 리옥금시의 다수가 하나의 큰 주제를 지향하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만큼 전통과 민족에 대한 시인의 관심이 크다는 말이 될것이다. 이는 동시에 시인의 삶에서 전통과 민족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말해주는것이 되기도 한다.   《마을앞 개울가에/맑은 물 돌돌돌/흘러 흐르네》로 시작되는 《과거2》에서 시인의 의식은 시골 개울가 아낙네들의 빨래터와 그 빨래터에서 벌어진 시골인의 삶에 닿아있다. 《무서운 시어머니 효도하는 며느리》라는 표현에서 알수 있듯이 시골의 삶이라고 행복만 있는것은 아니지만 첫련의 밝고 즐거운 표현에서 보여지듯 시인은 전체적으로 그러한 소박한 삶에 애정을 드러낸다. 이런 삶은 결국 오늘날 도시화, 세계화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전통적인 삶이다. 그러한 삶은 《색동저고리》에서 《평생 씻지 않아도/언제나 깨끗하도록/순수한/동년》으로 묘사됨으로써 한결 순수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를 다시 《옛말》이라는 작품에 련관시켜보면 시인이 지향하는 전통적인 삶의 모습은 대개가 과거의 추억에서 비롯됨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한여름/모기쑥을 태우며/어머님의 무릎을 베고/앞뜰 버들나무아래/누우면》이라는 첫련의 표현에서 이점은 곧 확인된다. 여기에 모기쑥, 어머니, 외뿔도깨비, 비자루귀신 등의 이미지가 더해지면 그 옛날 어린시절 우리의 삶이 생생히 되살아나기도 한다.   상기 작품들의 이미지가 일상사의 기억에서 비롯되였다면 《동지팥죽》이나 《세배》 등 작품의 분위기는 전통적인 명절을 통해 되살려낸 어린시절의 삶의 모습 혹은 느낌이다. 시인에게 있어 먼 옛날 어린시절의 《세배》는 《아빠의/뒷모습》이였고 《이웃집 할아바지의/담배쌈지에서 나오는/꼬깃꼬깃한 20전짜리/종이돈》이였으며 《앞집 할머님의 혼담》이였으나 세월이 흐른 오늘날 세배는 《아버지, 어머님 고향으로/날려 보내는/한자락 한숨에 담긴/눈물방울》이 된다. 전통적인 삶에의 지향과 그것에 되돌아갈수 없는 허전함이 은연중에 표현된 경우이다.(이상 시 《세배》) 《동지팥죽》 역시 전통적인 명절의 추억에서 취재한것인데 여기서 동지팥죽에 관련된 추억은 《강원도 고향마을에서/만주 오동성까지/동지팥죽의 김은/식을줄 모르고/모락모락 피여올랐어요》라는 제2련에서 보여지는바와 같이 민족적정체성과 부모세대의 이민추억에까지 연장된다. 제3련에 그려진 어머니의 꿈속에는 그러한 이민과 정착의 고난사가 응축되여있는것이다.   그러니까 시인은 현대를 살아가면서 전통적인 삶을 지향하며 애틋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과거의 삶에 되돌아가지 못하는 현실을 한탄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저 슬퍼만 하고 추억에만 젖어있는것은 아닌것 같다. 《장단을 배우며》에는 조금이라도 전통과 민족성에 접근하려는 실천의 의지가 담겨있다. 굿거리장단, 휘모리장단을 통해 《먼 옛날을 당겨다/내 손에 담아본다》는것은 그냥 추억에 만족하지 않음을 의미하는것이다. 《수천년 흘러온 소리는/잠잘 곳을 찾는/내 마음을 깨운다》는 마지막 3행의 표현은 우리 민족의 음악적특징으로 상징되는 장단을 통해 의식속에서나마 전통과 민족의 삶에 접근했음을 보여준것이다. 특히 마지막 2행은 이제 인생의 로년기에 접어드는 길목에서 얻어낸 깨달음임을 시사하고있어 어딘가 무거운 감상(感傷)을 자극하고있기도 하다.   이 류형의 시들은 시인의 추억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이는 시인의 현재 삶이 전통이 색바래져가는 도시에서 영위되고있는데서 비롯되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곧 현대인의 공통된 삶의 양상이여서 더구나 공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앞의 《동지팥죽》이라는 작품에서 우리는 시인의 전통지향성이 민족과 부모세대의 이민경력과도 맥이 닿아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시 《송화강》에서 《머리와 사슬이 이어지는/흐느낌》이요 《머나먼 고향의 부름이였》다는 표현은 부조(父祖)의 이주와 먼 조상의 땅(즉 고구려, 발해의 땅)간의 관계를 암시하고있고 《아버지》에서는 독립을 찾기 위해 만주땅에 이주해살던 아버지가 《오매불망/고향 그려》 결국 《한줌의 향연마저/동해로 떠나셨》다고 했다. 이주민의 후예임을 확인하고자 한 시인의 의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목단강》에서 그러한 시인의 의식은 좀더 절실한 형태로 표현된다. 《아버지가 두둥실/물결을 타시고/머나먼 동해바다/고향 찾아 떠나가신/길》은 이미 상기 《아버지》에서 제시된 상황이다. 이것을 우리는 아버지의 유골이 강을 따라 동해로 흘러갔다는 의미로 리해할수 있을것이다. 잎이 떨어져 뿌리에 되돌아간다(落葉歸根)는 중국의 성구를 떠올리는 상황이다. 아버지가 독립을 위해 중국 만주땅에 이주를 했고 이제 한줌의 재가 되여 동해를 거쳐 고국의 땅에 되돌아갔다는것. 그런데 여기서 마지막련의 표현은 의미심장한데가 있다. 《멀리 에돌아도/막힘이 없이/가깝게 가는/머나먼 고향 길》은 《목단강》이라는 표제와 련결시켜 생각해볼 때 고국과 이민지 삶은 동떨어진것이 아님을 시사한것으로 볼수 있는것이다. 이주민의 후예로서 고국과의 끈끈한 관계, 겨레의 동질성과 이를 통한 이주민의 정체성 확인을 엿볼수 있는것이다.   그러니까 시인의 의식은 항상 추억속의 삶을 더듬고있고 그러한 전통지향의 삶은 아버지의 과거와 죽은후의 《귀소(歸巢)》 상황을 계기로 아버지의 고향 즉 고국과 련결됨으로써 이주민의 후예로서 정체성의 확인의 차원에 이르고있는것이다. 이주민으로서 우리 조선족의 삶이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처해있고 그로 하여 정체성 상실의 위기의식이 팽배해있는 오늘의 우리 상황에서 이런 인식은 당연히 큰 의미를 지닌다.     2. 삶의 깨달음과 허무     앞에서 론의된 주제의 시작품을 빼고 완성도가 높은 시들을 이 항에서 다루고자 한다. 사실 리옥금의 시집에 수록된 작품에서 이 부분의 주제를 다룬 시들이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판단이다. 하긴 더러 필자의 개인적인 기호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고자 해도 이런 판단은 변함이 없다.   《함박눈2》라는 작품은 시행들이 조금은 어수룩한 면이 없지 않다. 호흡이 부자연스러운것이다. 그러나 느낌이 생생하고 새롭다. 우선 안개속을 눈이 내리다가 다시 안개사이로 피여오른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눈은 하늘에서 지면이나 수면우에 내려오게 되여있다. 혹 바람이 불면 하늘로 되올라가는 착시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피여오르네》라는 표현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시인은 함박눈이 피여오른다고 느끼고있다. 왜냐? 시인의 눈앞에 떠오른건 그 함박눈과 안개속에 피여오를 진달래였기때문이다. 그것도 《붉디붉은 꽃잎의/애절한 소원한마디》로 피여오를 진달였기때문이다. 흰눈과 역시 흰색계렬이라 할수 있는 자욱한 안개와 《붉게 타며》 피여오르는 진달래의 선명한 대조, 그 강렬한 색조의 충돌속에서 독자는 수많은 련상과 정서의 파동을 체험하게 되는것이다. 더구나 진달래가 우리 민족의 의식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감안할 때 이러한 정서의 파장은 지대하다. 이미지를 통한 생명의 상상을 동반함으로써 철학적인 의미는 제시하지 않고도 감흥을 준 경우가 된다. 《단풍1》 역시 색상의 대조에서 시적감흥이 이루어진 작품이다. 해빛에 영글은 빨간 단풍과 해빛을 쫓는 노란병아리의 대조, 그리고 푸른 하늘, 흰 구름과 빨간 단풍잎의 대조, 또 제3련에 숨겨둔, 얼핏 보면 시의 흐름과는 무관해보이는 《그리움 한송이》라는 표현이 마지막련의 《새빨간 추억으로》와 조응되면서 그리움과 추억과 이를 뒤받침해주는 사라져가는 혹은 스러져가는 이미지로서의 단풍잎의 분위기가 어우러져 서글픈 인생의 감흥을 생성하고있는것이다. 두 작품은 본질적인 련관성은 없지만 색조의 대조를 통한 생명의 느낌 혹은 깨달음이라는 측면에서는 공통성을 지니고있다.   《첫사랑》, 《다향(茶香)》 등 작품에서는 사랑의 아픔과 허무적인 느낌을 표현하고있다. 《첫사랑》에서는 《그 모습/다시 찾을길 없어라》라는 첫사랑의 아련한 아픔을 반복되는 《옛날》, 《옛적》의 이미지에 련결시킴으로써 삶의 허무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있다. 그에 반해 《다향(茶香)》에서는 사랑을 다향에 비유하고는 《다향의 애절한/가슴 찢어 잊을수 없는/연록색 심장의 고동소리》로 표현함으로써 앞의 《첫사랑》과도 련관되는 먼 옛날의 사랑을 되살려낸다. 그리고나서 마지막에 《노을은 불타는 다향이라네》라 함으로써 이제 나이가 든 현재 추억속 그 옛날 사랑의 느낌을 표현하고있는것이다.   《다향》에서의 노을은 인생의 로년기를 암시하고있음이 분명한데 《가을1》에서는 그러한 인생말년의 인식을 좀더 진일보한 허무의식으로 환원시킨다. 여기서 락엽은 곧 인생의 말년을 의미할것인데 그에 더하여 푸른 하늘은 화자에게 청량함이나 밝음이 아니라 아픈 《멍》으로 표현된다. 다시 밤이슬에 젖은 잠자리의 무거운 날개와 창공을 가르는 기러기의 울음소리가 대조되여 마음과 현실의 불일치, 즉 인생말년의 육체적인 한계와 정신적인 피곤을 드러낸것이다. 마지막 행의 《풀잎소리도 가냘프다》는 그러한 나약함을 강조한것이다. 어쩌면 소극적인 삶의 인식이 로출된것으로 볼수 있는데 사실 이것 또한 인간의 일상적인 느낌임에는 틀림이 없다.   《립춘1》, 《어느날 오후》 등은 녀자시인의 시적구성력과 표현의 섬세함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그래서 필자 개인적으로 점수를 많이 주고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립춘1》의 첫련에는 립춘을 맞은 자연의 풍경이 묘사되여있다. 마른나무가지에 하얀 꽃이 피여있다는것, 누구나 눈길을 빼앗길수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제3련에서는 그 아름답고 도고한 꽃이 추녀끝 고드름에서 떨어지는 하나의 물방울이 되여 《시린 마음을 녹여줍니다》고 했다. 차분하고 섬세하지만 별로 대단할것 없는 표현이다. 그러나 제2련 제1행의 《무서운 겨울의 이야기》와 련결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어두웠던 삶의 기억이 봄의 따뜻한 기운에 의해 해동되고 풀렸다는것. 조금은 빛바랜 소재이기는 하지만 깔끔한 표현이 인상적이다.   《어느날 오후》는 좀더 녀성적인 섬세함과 시적발견의 개성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품의 소재가 된 사실은 녀성들이 일상 하는 청소 즉 뭔가를 닦아내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 행위가 서투르다고 했다. 비록 숨어버린 시간들을 찾아내는 손이 서툴다고 표현했으나 여기서의 서툴음은 닦는 행위의 서툴음과도 련관될것인데 그 련관속에서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겹쳐서 느끼게 된다. 즉 가정주부로서의 일의 서툴음과 《마음속에 앉은 때》 즉 삶의 세월속에 쌓인 불결함 혹은 불순함에 대한 반성의 서툴음이 그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련의 《온 오후 하는일 없이/구석구석 먼지 오른 일상들을/흩어진 시간조각으로 닦아본다》는 화자의 행위 표현은 쏜살같이 내달리는 현대인의 빡빡한 삶의 시간과 그 시간속에서 마음속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는 반성의 어려움을 시사해준다 하겠다.   《등산》은 그러한 반성과 삶의 반추를 등산이라는 행위에 담아 잘 표현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애착이 가는 시인데 시인 리옥금의 시적능력이 최대한 발휘된 작품이라 할수 있다. 특히 제1련의 《주말이 되면/일상들이/더덕더덕 매달려/무거워진 몸》이라는 표현에 공감이 간다. 제2련에서는 힘겹게 산을 오르는 화자의 모습이 《더위 먹은 소》에 비유되였는데 나이 든 몸으로 산에 오르는 등산인의 이미지가 잘 각인되였다. 그러나 력점은 마지막 련에 있다. 《인생의 어려웠던 고비들을》《발걸음으로 재여보고》《희로애락을》《산마루로 헤여보며》《아팠던 마음들은/산골짜기에 던져본다》는 표현은 삶에 대한 상당한 경력이 쌓이지 않고는 깨달을수 없는것이다. 그러나 등산이라는 스포츠의 특성상 느끼는 성취감이나 상쾌함이 작품에서 간과되였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좀더 성숙된 삶의 깨달음과 시적인 심화가 가능했었는데 말이다.   《꿈》과 《당신》이라는 작품은 사랑의 느낌 혹은 인식을 표현하고있는데 《이 모습 이대로/당신의 눈동자에/사진으로 남길래요》라는 《꿈》의 제1련은 이 시인의 시적인 구성력을 보여준 경우가 된다. 그러나 《꿈은 이루어질수 있다는/희망 하나로》라는 제4련과 《존재의 리유는/항상 있는거래요》라는 마지막 련의 표현은 천박함을 로출시키고있다. 《당신》 역시 비슷한 경우이다. 삶의 느낌이나 인식을 좀더 시적인 형상의 승화를 통해 표현해야만 이런 태작을 피할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렇기는 해도 리옥금의 시작활동에서 일상적인 삶의 깨달음과 감흥을 다룬 작품이 완성도가 가장 높다는 사실은 부인할수 없다.     3. 기교와 무기교 사이     이 글의 시작에서 기교문제에 대해 언급한바 있지만 리옥금의 시작품에는 아직도 기교를 채 소화시키지 못한 흔적이 상당수 보인다. 특히 상기 《꿈》과 《당신》 류의 작품들은 재치는 인정되지만 시적감흥은 미미하다. 지나치게 기교에 기대여 덜익은 시적인 감수를 작품화한 결과라 하겠다. 《코스모스》나 《조롱박》 역시 비슷한 경우에 속하는데 대상의 특징을 공교한 비유로 표현한 점에서는 시인의 재기가 엿보이지만 현상자체의 묘사에 그쳐 좀더 깊은 의미의 창출에는 실패하고있다.   그러나 이 정도라면 그냥 넘어갈수도 있다. 이에 비해 《잠자리》나 《락엽의 소리》 같은 경우는 결코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것 같다. 유월 염천 논두렁아래 개울물에서 잠자리가 날아예고있는데 그 표현을 《한순간의 꿈에/연하게 익어/풋풋한 몸으로/하늘을 날아예다》고 했다. 꿈때문에 익는다는 표현도 적절하다 할수 없지만 《풋풋한 몸》이라는 표현은 아리숭함을 떠나 의미의 전달이 왜곡되기까지 한다. 《풋풋하다》는 사전적으로 《풋것처럼 싱싱하다》의 의미를 지닌다. 시적인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아무리 너그럽게 봐주더라도 식물에나 사용하는 표현을 잠자리에게 비유한것은 적절하다 할수 없다.   《락엽의 소리》 역시 비슷한 우를 범한 경우이다. 《단풍이 불을 지르는》이라고 한 제1련의 첫행에서 혹 단풍에 대한 불탄다는 표현을 좀더 강하게 표현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서 단풍의 의인화는 어색함을 넘어 무모하다고 볼수밖에 없다. 다음 제3련의 《저벅저벅/락엽이 가는 소리》에서 락엽이 간다는것은 적절한 표현이 될수가 없다. 《저벅저벅》이라고 하는 락엽 밟는 소리의 의성화는 락엽이라고 하는 대상이 걸어가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이나 동물이 걸어가면서 락엽을 밟는 소리에 해당되기때문이다. 표현의 교묘함에 집착하다보니 상식을 망각한 경우가 된다.   이밖에도 상당수의 작품에서 이와 같은 기교집착에서 비롯된 의미의 왜곡이나 부적절한 비유들이 보인다. 기교는 있으되 없는것처럼 작품속에 잘 삭혀서 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할것 같다. 청년시대의 시는 대체로 젊음의 감성에 의지하게 되지만 중로년의 시는 대체로 달관의 경지에서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시적기교의 소화 문제를 특별히 강조한것은 바로 이제 중로년기에 접어든 시인으로서 달관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모색해주십사 하는 주문때문이였다.     4. 마무리     주제적측면에서 리옥금은 민족과 전통, 이주민의 후예로서의 정체성 확인이라는 미리 설정된 주제와 일상적 삶속에서의 깨달음이나 삶의 느낌, 허무 등 체험적주제라는 두 방향에서 시를 쓰고있는것처럼 보인다. 상기의 분석에서 우리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경우 좀더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제작되였음을 알수 있었다. 이는 미리 설정된 주제방향에서 시작활동을 할 때에는 반드시 좀더 체험적인 느낌에 주목해야 함을 말해주기도 한다. 이 시인이 앞으로 명심해야 할 부분인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기교 리용에서의 인위성 극복이다. 기교를 기교처럼 보이지 않게 리용했을 때 그 기교가 기교로서의 역할이나 효과를 최대한 발휘할수 있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그러나 사실 시인이라면 항상 시시각각의 느낌을 시로써 표현하고싶은 충동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태작도 나오게 되는데 그것을 뭐라고 나무랄수는 없는것이다. 우리가 흔히 위대한 시인이라고 하는 시인에게도 태작은 존재하며 특히 잘된 시작품, 특히 위대한 작품은 어차피 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일부 평범한 작품이나 태작이 나왔다고 크게 나무랄 일은 아닐것이다. 다만 이것저것 흠집을 지적한것은 좀더 태작을 줄이고 수작을 많이 써달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여주기를 바랄뿐이다.   한편 시집에 수록한 시인의 언니 이점수의 시작품들은 순수성 그 자체를 표현하고있다. 《성인동요》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동요와도 같은 순수함으로 시골의 풍경과 농부의 삶과 넋두리를 소박하게 표현했다고 평가하고싶다. [출처] 민족과 전통과 삶, 그리고 시-리옥금시집 |작성자 반벽거사  
717    고 송정환 / 장춘식 댓글:  조회:4882  추천:0  2015-09-17
  송정환의 창작과 연구 다시 보기 장춘식     우리 시인이자 사학자인 송정환선생이 작고한지도 벌써 16년 세월이 흘렀다. 선생은 54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면서 우리에게 《풀피리》(연변인민출판사, 1982), 《사랑의 페허위에》(도서출판 高句麗, 2001) 등 시집 2권과 《짜리로씨야의 조선침략사 개요》(료녕인민출판사, 1982; 한국 범우사, 1990년 개정재판), 《조선사화총서》(전4권, 료녕인민출판사, 1983~1985), 《안중근전》(료녕민족출판사, 1985), 《조선갑오농민전쟁》(상무인서관, 1987) 등 7권의 력사서, 그리고 소설, 수필, 문학평론 등 기타 문학작품 및 사학론문 다수를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21세기라는 시점에서 선생의 문학적성과와 학문적업적을 되돌아보는것은 우리 민족성 보전과 정체성의 확인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시문학창작의 특징과 전개     송정환의 문학창작은 시를 중심으로 소설, 수필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이루어졌다. 시기별로는 크게 세 단계를 거치는데 첫째시기는 청년시절인 1950년대말~1960년대 초반이고 둘째시기는 개혁개방초기 즉 1970년대말 1980년대초반이며 세번째시기는 그후 작고하기전까지의 시기이다.   첫째시기의 시들은 청춘의 정열과 감성이 넘쳐나고 거기에 신중국 건국후 격정적이고 조금은 유아적인 정치적담론이 호응되여 표현되였다.   처녀작으로 알려진 시 《춘희의 초상》(1956)은 시인이 19세 되던 해에 발표한 작품인데 이 시에는 새시대 고향건설에 나선 춘희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희망에 가득찬 젊은이들의 삶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그려보이고있다.   제1련에서는 화가의 시각으로 춘희라는 새내기 농사군의 외적인 모습을 그리고나서 제2련에서는 행동하는 춘희의 정열적인 모습을 그린다. 상당히 서사적인 묘사속에 드러난 춘희의 이미지는 미래에 대해 희망과 기대로 충만되여있고 따라서 전반적인 시의 분위기는 밝다. 정열과 감성이 뚜렷하며 현실에 대한 인식은 매우 긍정적이다. 여기서 춘희의 초상은 동시대 청년들의 초상이라 할수가 있어 다분히 전형성을 지녔다 하겠다. 작품의 마지막 4행만 보더라도 이점은 잘 드러난다.     그렇습니다. 화가들은 못그릴것입니다   처녀의 새별눈동자에 담긴 모든것,   두드러진 앞가슴에 품은 모든것,   정녕 이것만은 그려내지 못할것입니다…     삶에 대한 기대감, 흥분 같은 정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조국의 모습에 대한 찬미에서도 잘 드러난다.     공장지구의 높은 굴뚝과 건물우로   동녘하늘은 구름과 연기로 자욱한데   구름새로 황금의 부채살 활짝 펼치며   타끓는 아침해 우렷이 솟아오르네     《장춘교외의 아침》의 첫 련인데 굴뚝과 연기는 력동적인 우리 사회의 상징이 될것이고 거기에 아침, 아침해는 생기에 넘치는 청춘의 정열을 상징한것이다. 이 작품뿐만아니라 《안강의 이른아침에》를 비롯하여 이 시기 다른 작품들도 비슷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장춘교외의 아침》의 마지막 련에서 그러한 시인의 기대와 희망은 직설적으로 표현된다.     생활이 바로 시며 노래인 여기   약동하는 교외의 대지 광활한 무대우에서   아침, 그것은 영예론 하루의 서막이여라   태양, 그것은 시대의 찬란한 조명이여라!     새사회, 새생활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그것을 가능케 해준 조국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조국》, 《조국의 수도에서》, 《영광이 있으라, 조국이여!》 이때 시인의 정체성은 민족성보다는 국민성에 맞추어져있다. 50-60년대 우리 시단에 조국에 대한 찬가가 류행했던 사실을 돌이켜볼 때 송정환의 작품들이 그러한 류행을 한층 고조시켰다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20대의 젊은 시인답게 이 시기 송정환의 시에는 사랑에 대한 어렴풋한 감정이 표현되기도 한다. 《무지개》, 《실련자에게》, 《사랑의 그림자》 등이 이에 속하는데, 이런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 밑바탕에 깔린 시에서마저 새사회에 대한 기대감이 강한 정서로 표현된다. 그만큼 당, 조국과 희망에 넘치는 새사회의 삶에 대한 시인의 감정은 진실했고 소박했다는 말이 될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정열과 기대에 부풀었던 시인의 정서는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한결 성숙해진다. 물론 제2단계 시창작도 문화대혁명이라는 암흑을 뚫고나온 해방감에서 시작된다. 첫번째 시집 《풀피리》중 《원혼이 된 시인에게》항에 수록된 작품들은 대부분 이 류형에 속한다.   우선 《좋다!》에서는 봄을 맞은 자연의 풍경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이 봄은 그냥 자연의 봄이여서 좋다고 한것만은 아니다. 첫 두 련을 인용해보이면 이점은 금방 알수 있다.     이른봄, 해빙기   집채같은 성에장 떠이고   봄물결 도도히 흘러가는데   들려와라 시성의 목소리   ―좋다!     겨우내 짓밟힌 강기슭   짐승들 쏘다니던 발자국은   아직도 저렇게 어지럽다만   산간을 울리며 굽이치는 봄물결   이 봄이 나는 좋다!     특히 제2련에서 어지러워진 강기슭에 대한 묘사는 4인무리에 의해 어지러워진 이 땅 겨울의 흔적이 분명하다. 그래서 더구나 시인은 이 봄이 좋다고 큰소리로 웨친것이다. 그러나 기쁨이나 즐거움만 있는것은 아니다. 《원혼이 된 시엔에게》라는 시에는 그 매서운 겨울이 우리 사회에 남겨준 뼈아픈 상처를 상기시키고있다. 《풀피리》의 《잊을수 없는 어제날의 생각》항에 수록된 작품들에서는 그러한 상처의 흔적을 원천적으로 규명하고자 한다. 문화대혁명속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일들, 비정상적인 현상들을 재현하여 검토하고 비판하고있는것이다. 심지어 몇편 안되는 단편소설중 《정인군자》라는 작품에서도 이러한 문화대혁명의 상처 혹은 그속에 로출된 인간성의 문제를 다루고있다. 이른바 혁명위원회 주임이라는 자의 마음속에 도사리고있는 《악마》를 끄집어내여 비판하고있는것이다.   이런 반성과 비판을 통한 력사인식을 표현하고나서야 비로소 시인은 이제 불혹의 나이에 느끼는 삶의 긍지감과 행복감을 드러낸다. 《사랑시를 두고》를 비롯하여 《풀피리》의 《사랑의 그림자》항에 수록된 작품들에는 이러한 시인의 삶에 대한 애착과 긍지감이 표현되여있다.   그러나 이때쯤에 와서 송정환의 시들은 왕년의 정열과 생기를 잃기 시작한다. 형식적인 모색의 기회를 놓친것이다. 이 시기에는 우리 문단에서도 모더니즘시운동이 확산되면서 시적인 지형의 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는데 송정환은 거기에 합류하지 못하였다. 아쉽다 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송정환은 또다른 측면에서 새로운 모색을 시도한다. 력사에 대한 재음미가 이에 속한다. 사학자라는 송정환의 또다른 신분과도 관련되는 이 모색은 송정환의 시창작에서 셋째 단계가 되는데, 이 시기에 오면 그의 작품들에는 지천명의 깨달음과 인생의 무게감에 대한 인식, 그리고 조선족으로서 정체성 확인의 욕구들이 끊임없이 표현된다.   《사랑의 페허위에》는 1988년에 쓴 사랑시이다. 그러나 제목에서도 시사해주는 바와 같이 꿈같은 환상적인 사랑의 애탄 그리움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아쉬움과 그를 통해 깨달은 삶의 무게감이다. 그런 무게감은 마지막 련에서 잘 드러난다.     꿈나라 무너진 돌각담위에   달빛은 이 밤도 춤추며 내리는데   이끼 돋은 사랑의 페허위에   추억은 다시 안개되어 꿈틀거린다     《용수평 작은 골목길》이나 《달처럼 별처럼》, 《가을밤에》와 같은 다른 사랑시들도 옛날의 사랑시와는 의미가 다르다. 오히려 인생의 무게감이 사랑시로 표현되였다고 하는것이 나을것이다.   사랑시에서뿐만이 아니다. 《이름 석자 아끼여》는 명예에 대한 시인의 깨달음을 시화한것인데 여기서도 삶의 무게감은 뚜렷하다. 《구름처럼 덧없는 일생에/강물처럼 부지런히 옥토를 적시며/짧은 생을 보람있게 살아가리라/이름 석자 때가 묻지 않게 하리라!》 짧은 삶을 값지게 보내려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있다. 《나 흙으로 돌아간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든 시인은 삶의 끝을 예감하기라도 한듯 1989년에 쓴 이 시에 삶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고백하고있다.   삶의 무게감은 정체성 확인의 욕구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욕구는 우선 시인이 사학자인 관계도 있겠으나 고구려와 발해국에 대한 남다른 감정으로 드러난다. 《고구려 옛터에서 읊은 시》라는 시묶음에 묶인 3편의 시에서는 집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고구려의 옛 흔적들을 이곳에 정착한 이주민의 후예의 시점에서 되새기고있다. 이보다 작품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바로 《발해국 옛터에서》라 하겠는데, 발해국 옛터의 폐허를 보며 망국의 설음과 인생의 무상함, 정체성의 문제를 두루 내포시키면서 담담한 어조로 시적인 감흥을 유발하고있다.   우리 조선족이 살고있는 땅에서 벌어진 우리 조상의 력사에 대한 되새김, 그것 자체가 조선족시인으로서는 하나의 정체성 확인 과정이다. 《할빈 역두의 아침》, 《역사는 울고있었네-안중근의사가 수감돼있던 여순감옥에서-》, 《장고봉 기슭을 지나면서》 등 우리의 현대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소재를 시속에 용해시킨것도 같은 리치라 하겠는데, 그러나 송정환은 자신의 정체성 확인 욕구를 력사 되새김이라는 의미에서만 드러낸것은 아니다. 이민의 이미지를 표현한 시작품에서는 좀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추억따라 세월따라-수필가 이계향여사 이게-》라는 작품은 일면 재미동포 수필가 리계향의 중국행을 그린것처럼 보인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지만 작품의 초점은 다른데 있다. 《고국을 등지고 쫓겨와 살던/저 먼 옛날 옛적엔/산설고 물설은 타향이었건만/오늘은 사무차게 정다운/사무차게 정다운 두번째고향…》 리계향의 운명이 우리 이주민의 운명과 같은 지평을 가졌다는 사실에 시인의 의식은 맞춰져있는것이다. 남을 통하여 자기를 드러낸셈이다. 《두만강의 여울소리》에서는 다시 그 매개체가 두만강이 되고있다. 《그것이 살길찾아 눈물의 강 건너/쪽박차고 쫓겨오던 그 시절/북간도 서간도 저 먼 북만벌/그리곤 바람세찬 시베리아에서/그것은 진정 겨레의 곡성이였다/두만강 철썩이는 여울소리…》 상기 《추억따라 세월따라》에서와 비슷한 시의식이지만 표현은 훨씬 직접적이다. 그만큼 시인 로년에 정체성 확인의 욕구가 강했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송정환 시창작의 전개과정을 3단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제1단계의 시들은 청춘의 정열과 감성속에 당대의 정치적인 담론들을 담아내고있고 제2단계의 시들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과 비판, 그리고 이를 탈출한 해방감을 표현하고있으며 제3단계에서는 인생의 무게감과 정체성 확인의 욕구들을 표현하고있다. 그런데 이러한 3단계의 문학적 전개과정과는 무관하게 송정환의 문학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시적인 맥락이 있다. 그것이 뭐냐면 바로 고향의식이다. 이러한 고향의식은 앞에서 론의된 정체성 확인의 욕구와도 관련되는바, 이중적 정체성을 소유한 조선족시인으로서 고향은 그러한 이중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한 모티브가 되기까지 한다. 송정환뿐만 아니라 우리 시인이나 문학인들이 항상 고향을 중요한 이미지로 문학작품에 표현하고있다는 점도 이런 측면에서 리해가 된다.   송정환은 시인이지만 단편소설도 3편 발표하였다. 뛰여난 성과작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시작활동의 한 보완의 형태로서 의미가 있다. 1986년 전반기부터 1987년 전반기까지 일년여 기간에 《주택문제》(《북두성》, 1986.2), 《정인군자》(《장백산》, 1986.5), 《빼앗긴 첫사랑》(《장백산》, 1987.3) 등 3편의 단편을 발표하는데 주제적측면에서는 기본적으로 시작활동에서 다룬것들과 다르지 않다. 《주택문제》에서는 제목에서 시사하는바와 같이 개혁개방초기 심각한 주택난의 문제를 바탕에 두고 개혁과 개방의 바람과 더불어 점차 바로잡혀가는 우리 사회 시비곡직의 문제를 재현하였다. 그리고 《정인군자》에서는 문화대혁명기간 한 5.7간부학교 혁명위원회 주임 오운룡의 겉 다르고 속 다른 《정인군자》의 이미지를 잘 그려냈다. 문화대혁명기간 존재했던 림시정권의 부당성과 부패상을 드러낸것이다. 또다른 소설 《빼앗긴 첫사랑》은 좀더 복잡한 소설적인 장치들을 동원하고있다. 출신제일주의 사회의식때문에 빼앗긴 사랑을 그리면서 첫 련인의 딸을 등장시킴으로써 현실과 과거의 삶이 얽혀지면서 소설적인 긴장감을 조성한것이다. 소설에서는 특히 두 련인이 모두 딸 이름을 《아려》 즉 하르빈 역두에서 이등방문을 쏜 독립투사 안중근 부인의 이름을 따옴으로써 안중근 투사에 대한 작가의 강한 존경심을 엿볼수가 있다.   그러니까 송정환은 잠간의 《외도》를 통해 시작활동으로 이어온 주제들을 소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시작활동에서 남겨진 아쉬움을 보완하고자 했던것으로 보인다.     력사연구와 정체성 확인     송정환은 시인이면서 동시에 사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직업도 사실은 사학도로서의 연구에 관련되는것이였다. 그만큼 그의 사학연구의 업적은 눈부시다.   송정환은 일생동안 7권의 사학 관련 저서를 출간하였다. 가장 먼저 출간한 저서는 오늘까지도 학계에서 중요 참고자료가 되는 《짜리로씨야의 조선침략사개요》이다. 한국 범우사에서 재판까지 한것을 보면 이 연구서의 가치가 상당수준임을 짐작할수가 있다.   이 저서는 책 서언을 쓴 박문일도 지적하고있는바와 같이 《짜리로씨야의 조선침략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는 오늘 이때까지도 기본상 처녀지로 남아있다고 말할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송정환동지의 이 저작은 …(중략)…하계의 공백을 미봉함에 있어서 초보적이나마 반가운 성과를 올렸다고 믿어진다.》 그렇다면 짜리로씨야의 조선침략 력사에 대한 연구는 왜 공백을 이루었을까? 저자 자신은 이러한 연구의 부진상태를 우선 짜리로씨야의 침략방식에서 찾고있다. 《조선에 대한 짜리로씨야의 침략과 팽창은 다른 렬강들이 조선에 대한 침략이나 또 짜리로씨야자신이 다른 나라들에 대한 적라라한 무력적침공정책과는 달리 대체로 하고 인 방식으로 진행되였다.》이처럼 조금은 《온화》하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기때문에 그 침략력사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절실하지 않았다는것이다. 그러나 사실 짜리로씨야의 조선침략은 중국이나 일제와의 각축을 동반하였던바 조선근대사의 진행과정에 짜리로씨야의 영향은 지대하였다.   이런 시각에서 송정환은 200쪽 남짓한 짧은 저서에서 짜리로씨야와 조선반도 및 주변국들간의 관계사를 추적하면서 일제의 조선 식민화 추진과정에서 짜리로씨야의 점진적인 침략이 미친 영향을 개괄적으로 제시하고있다. 우리의 근대사를 리해하는데, 특히 뼈아픈 망국사를 리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짜리로씨야의 조선침략사개요》가 순수 력사연구서라면 또다른 저서인 《조선사화총서》(전4권)는 문학자요 사학자인 저자의 신분에 걸맞는 작업이라 할수 있다. 우리 민족의 반만년 력사를 다분히 문학적인 표현방식으로 제시하고있기때문이다.   총서의 제1권은 제목을 《해동의 세나라》라 하고 고조선에서부터 삼국에 이르는 고대사를 문헌자료에 근거한 사화로써 풀어나가고있다. 제2권은 제목을 《송악산 줄기줄기》라 하고 통일신라에서 고려조에 이르는 시기의 력사를 기록한 사화를 제시하고 제3권은 《한양성의 종소리》라 하여 리조초기부터 리조중기에 이르는 력사를 펼쳐보이고있다. 제4권은 《피바다 삼천리》라 하고 리조후기부터 시작된 피비린 근대사, 봉건왕조의 종말과 근대식민지시대의 력사를 제시하고있다.   일부에서는 이 저서를 저평가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본격적인 력사연구서가 아니라 이야기 위주의 사화집으로 되여있다는 리유에서일것이다. 그러나 력사서가 꼭 딱딱해야 한다는 도리는 없다. 오히려 쉽게 읽으면서 력사를 알아가는것이 일반독자에게는 더 유익하다 해야 할것이다. 고조선에서 삼국시대를 지나 통일신라, 고려, 조선왕조를 거쳐 근대에 이르는 반만년 조선사를 대표적인 사화이야기를 통하여 재미있게 보여준것, 아직 우리 이민사마저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통속적인 력사교양의 방법은 어쩌면 딱딱한 력사서보다 더 유익할지도 모른다. 또 비록 비슷한 사화들이 여기저기에 수록되여있지만 그것을 송정환의 력사인식에 따라 배렬하고 엮어놓음으로써 력사저서로서의 의미를 충분히 갖추었다고 보여진다. 더구나 여기에는 문학에 깊은 조예를 갖춘 송정환의 독자적인 연구스타일이 반영되기도 하여 남다른 교양효과를 가지기도 한다.   《안중근전》과 《조선갑오농민전쟁》은 자료를 구하지 못해 좀더 자세한 론의는 접을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안중근에 관련된 자료는 력사실화 《할빈역두의 총소리》(《장백산》, 1982.4)가 있어 얼마간의 발언권을 얻었다.   사실 송정환의 안중근에 대한 관심은 남다른데가 있다. 단편소설 《빼앗긴 첫사랑》에서 주인공의 첫사랑 과정에는 안중근 관련 연극이 중요한 매개가 되여있다. 심지어 안중근 부인의 이름을 따서 자기들 딸의 이름을 《아려》라 짓기로 약속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실제로 두 련인은 결혼을 못하지만 각자의 딸들 이름을 《아려》로 짓기도 한다. 안중근에 대한 송정환의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뿐이 아니다. 송정환의 시작품에도 안중근을 기념한 작품이 2편이나 있다. 《역사는 울고있었네-안중근의사가 수감돼있던 려순감옥에서》와 《할빈역두의 아침》이 그것이다. 전자는 안중근의사가 의거를 단행한후 수감됐던 감옥을 돌아보며 의사의 업적을 기린 작품이고 후자는 안중근의사의 의거의 자리였던 하르빈 역두에서 의사의 장거를 노래한 작품이다. 그리고 력사실화의 형식으로 쓴 《할빈역두의 총소리》에서는 식민지 백성의 원한을 담아 원쑤의 가슴에 총탄을 안긴 안중근의사의 의거 과정을 거의 소설적인 구조를 통해 그려내고있다. 인물의 담대하고 의로운 성격과 장엄한 분위기를 잘 그려낸 이 작품을 통하여 우리는 어느 정도 《안중근전》의 모습을 짐작할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까 송정환의 력사연구는 력사연구의 가치로서뿐이 아니라 문학자로서의 개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조선사화총서》는 당연히 력사적 사실이나 야사의 사실들을 거의 문학적인 방식으로 드러냈다고 볼수 있거니와 안중근의 사적을 다룬 실화 《할빈역두의 총소리》, 그리고 그것을 좀더 심도있게 다룬 《안중근전》 역시 송정환의 문학적인 공력에 힘입은바 적지 않다.     문학과 력사학사이에서의 고민     송정환은 문학과 사학사이에서 항상 갈등을 겪어왔다. 그러한 갈등은 소년시대에 벌써 씨가 뿌려졌던것 같다. 소학교 5-6학년때부터 력사와 어문에 특별한 흥미를 가졌던것이다. 이런 그의 갈등과 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송정환 평생을 두고 이루어졌다. 《문학과 력사학의 갈림길에서》(《갈매기》, 1988.1)라는 글에는 그러한 송정환의 고민이 잘 드러나고있다.   비록 전통적으로 문학과 사학은 서로 얽혀있으나 학문이 세분된 현대사회에서 그러한 관련성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결국 송정환은 이 문학과 사학의 갈등을 정체성의 확인이라는 보다 높은 차원의 실천을 통해 극복했다. 시문학창작에서 정체성 확인은 이땅에 남겨진 고구려, 발해 등 조상의 력사 흔적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여 이민의 력사에 대한 관심에서 완성된다. 그리고 사학분야에서의 정체성 확인은 《조선사화총서》에서 민족력사지식이 전무한 우리의 신세대에게 민족사의 전통을 알기 쉽게 제시하고 《짜리로씨야의 조선침략사개요》에서 우리 삶의 현장과 관련된 현대사의 한 단면을 제시한데서, 그리고 《안중근전》을 통하여 이땅에서 이루어진 독립투사의 위업을 그려냄으로써 이루어진다. 혹 어느 한 분야에서 정진했더라면 보다 나은 업적을 쌓았을것이라 볼 사람도 있으나 두 분야의 관련성속에서 이민민족으로서의 정체성 확인을 통하여 겨레에게 삶의 한 좌표를 제시해주었다는것은 큰 기여가 아닐수 없다. 송정환의 창작과 연구를 되돌아보며 이점을 다시금 상기시키고싶다.   송정환 자신은 이점을 사학과 문학의 불가분리의 관계에서 찾고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더욱 민족의 얼, 민족의식, 민족전통 등 민족적인것을 고창하고있는데 민족의 력사를 모르고 어찌 민족적인것을 써낼수 있겠는가!》《우리 중국조선족문학도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전통에 대한 국가적 내지는 국제적인 공인을 받자면 반드시 자민족의 력사에 대한 투철한 리해가 있어야 할것이라고 생각된다.》(이상 《문학과 력사학의 갈림길에서》, 《갈매기》, 1988년 1기에서)   어떻든 송정환은 창작과 연구의 병행을 통하여 우리의 민족성 보전과 정체성의 확인에 초점을 맞춰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상의 론의를 통해 확인할수가 있다. 후학들이 본받을바라 하지 않을수 없다.          * 에 게재한 글입니다. [출처] 송정환의 창작과 연구 다시 보기-장춘식|작성자 반벽거사  
716    연변지역 시문학 뿌리 및 그 현황 댓글:  조회:4821  추천:0  2015-09-17
  연변지역 시문학의 뿌리와 그 현황 장춘식   연변지역의 문학이란 사실상 조선족의 문학이다. 이민시기 “간도”로 불렸던 연변을 중심으로 만주지역에서 이루어진 이주민 문학 전부를 흔히 “연변문학”으로 통칭하기도 한다. 본고에서도 이런 범주에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1. 연변지역 시문학의 뿌리   연변지역 시문학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당연히 한민족의 문화 전통과 문학유산, 특히 근, 현대 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민지에서 새로운 문학 전통을 쌓으며 상당 정도 변모를 보이기도 한다. 연변지역 시문학의 효시는 아무래도 창가와 항일가요라 할 수 있는데 창가는 주로 개화기 이후 이주민들이 설립한 학교들에서 불린 노래이고 항일가요는 일제강점기 동안 항일유격대와 유격구 항일민중들 속에서 불린 노래들이다. 창가는 주로 문명개화와 관련된 주제가 다수이고 항일가요에는 일제에 대한 투쟁의지를 고양시키려는 의도가 뚜렷이 표현되어 있다. 형식적 측면에서 이 두 유형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자유시의 형태를 띠지만 민요적인 요소도 일부 보인다. 이들 작품은 당대에는 상당히 많이 창작되었겠지만 현재 남아 내려온 텍스트는 별로 많지 않다. 그 밖에도 전통적인 장르인 한시도 상당 정도 창작되었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문단에서 떨어진 이들 시가작품 보다는 이민지 문단에서 창작된 시작품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문단을 통한 연변지역의 시문학은 당시 발행되던 , , , , , , 등 신문, 잡지들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것이 1940년대 초반에 ,  등 시집으로 집대성되기도 하였다. 이를 시기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시기의 시문학 먼저 시기의 시문학은 의 성격과도 관련되겠지만 계급문학적인 성격이 강하다. 에 게재되었던 시작품으로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은 겨우 9편이다. 3년여에 걸쳐 발행되었던 신문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작품들이 게재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겨우 9편의 작품으로 그 전모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 작품들은 를 통해 활동했던 우리 시작품의 한 단면을 보여줄 뿐이다. 백악산인(白岳山人)의 「朝鮮心」이 민족주의적인 이념이나 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외에 다수의 작품은 계급적 이념이 짙게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가령 초래생(初來生)의 「단오(端午)」나 김근타(金根朵)의「밤」, C.S.C의 「언니를 그리며」, 남문룡(南文龍)의 「백색테로」 등 작품이 그렇다. 초래생의 《단오(端午)》에서는 단오명절을 맞아서도 아이에게 새 옷은 물론 과자마저 사 먹이지 못하는 병든 어머니의 애탄 사정을 그리면서 “차라리 생명을 땅에 두며/인간의 모든날을 전취하야/우리의 명일(名日)을 만들 때까지” 투쟁하여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는 계급혁명의 이념과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김근타의 「밤」에서도 사회적약자인 어린애를 빈곤상징의 형상으로 이용하고 있고 또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좀 더 구체적이고 상황이 절실하다.   밤은 깊어 집집에 등불은 켜지고 하늘우에 별들도 반짝거리건만 맥없이 늘어진 그는 별조차 보지 못하였다 배고파 잉-잉 밥달라 우는 어린애 세네때 굶주린 어머님에게 어찌 젖이 있으랴 오! 우는 그 애를 어찌 달랠것인가?   곁집에선 저녁연기 끊은지 오라고 뒷산에 부엉새는 깊은밤을 노래하는데 때지난 이때 누구의 집에서 한술밥 얻어오랴 여전히 울고있는 어린애는 말끝마다 밥주-- 한숨짓는 부모의 간장 다 녹여내리나니 긴긴 여름밤 또 어찌나 새워보내랴 1930년 5월 7일 밤에   「밤」의 전문이다. 어린애는 배고파 밥 달라 하는데 어머니는 굶주려 맥없이 늘어져 있다. 게다가 밥 한술 얻어 올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이들 두 작품은 못가진자의 빈곤한 삶의 양상을 계급적 시각에서 그리고 있다 하겠다. 빈곤상황의 제시는 계급의식의 표현이나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념의 구현에서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다. 못사는 민중을 의식화시킴으로써 계급혁명을 이루려 하였던 것이 이때 사회주의운동의 기본적인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자료적인 한계 때문에 이 시기 시문학의 전모를 평가할 수는 없으나 현재 남아있는 작품으로만 보면 시기의 시문학은 예술적인 성취도가 높다고 보기 어렵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의식과잉,이념과잉의 문제점들도 노출되고 있다. 그러나 그 시기 열악했던 문화 환경에서 이 정도의 시문학이 이루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며 특히 일제가 “9.18사변”을 도발하여 중국의 동북 땅을 강점하기 직전에 이루어진 문학이여서 그 이후의 문학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측면에서 문학사적으로 충분히 의미를 지닌다 할 수 있을 것이다.   (2)  시기의 시문학: 다음, 1930년대 초반에는 주로 를 중심으로 문학작품들이 발표되었는데 현재 자료 유실로 하여 전해진 작품은 단 한편도 없다. 그 모습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들로 1930년대 중반 용정지역에서 발행된 지의 작품이 있다. 4호까지 낸 지에는 상당수의 시작품이 게재되어 있다. 그러나 다수의 작품들은 “학생시단”의 형태로 발표되었고 강경애, 박계주 등 기성문인들의 시작품도 더러 있지만 전반적으로 작품 수준은 낮은 편이다.   (3) 시기의 시문학: 이민지에서의 본격적인 문학 활동은 를 통해 이루어졌다. 시작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김조규, 함형수, 박팔양 등 당시 한국문단에서 두각을 드러낸 시인들이 이민해 오면서 이민지에서 성장한 신인들과 더불어 지방색과 이민문학적인 성격이 뚜렷한 시작품들을 창작하였다. 그것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과 이다. 은 1943년(康德九年) 9월에 당시 신경(현재의 장춘)의 제일협화구락부 문화부에서 간행했고 편집인은 박팔양(朴八陽)이다. 그리고 은 그 한 달 후인1943년 10월에 당시 간도 연길에 있던 예문당(藝文堂)에서 간행했고 편집인은 김조규(金朝奎)였다.두 편집인의 권위성으로 보나 간행 시간으로 보나 이 두 시집은 현존하는 의 자료보다 훨씬 대표성을 지닌다 하겠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 두 시집에 수록된 작품을 주요 텍스트로 하면서 에 게재된 여타 작품들도 참고하여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a. 이민지의 서정 조선족의 문학은 이민문학으로 출발하였다. 조선족의 역사가 이민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이민의 정서가 이민시인들의 시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시기 시작품에는 이민의 정서를 표현한 것들이 많이 있다. 가령 김조규(金朝奎)의 「胡弓」의 경우 이국적인 정서와 이민의 이미지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시인은 일차적으로 호궁이라는 중국인을 상징하는 악기를 등장시킴으로써 동북지역 중국인 이주민의 삶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주민인 조선족 이주민의 삶을 호궁이라는 이미지로써 표현한 것이라 해야 맞다. “어머니의 자장노래란다” “일어버린 南方에의鄕愁란다”라는 두 행의 의미는 오히려 조선인 이미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새 늣길려느뇨?胡弓”과 “어두운 늬의 들窓과 함께 영 슬프다.” 라는 마지막 행의 표현은 이주민들이 공유하는 암울한 삶과 슬픈 운명의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김달진(金達鎭)의 「룡정(龍井)」 또한 이민지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략) 黃昏 길거리로 허렁허렁 헤매이는 흰옷자락 그림자는 서른 내가슴에 허렁허렁 떠오르는 조상네의 그림자.   나는 江南 제비새끼처럼 새론 옛故鄕을 찾어 왔거니. 난생 처음으로 馬車도 타 보았다. 胡弓 소리도 들어 보았다. 어디 가서 나혼자라도 빼酒 한잔 마시고 싶고나   작품의 마지막 2연인데 여기서 “새론 옛故鄕”은 아마도 여기가 고구려의 옛 땅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점은 3연의 내용과 맞물려 있다. 소위 “호인(胡人)”들 속에서 발견한 “흰옷자락 그림자”를 보며 “조상네의 그림자”를 떠올린 것은 이주해온 이 땅이 전혀 낯설지만은 않으며 따라서 여기가 이주민이 뿌리를 내릴 새로운 고향이 될 수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비록 이민자의 처지는 “서른 내가슴”이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불행하고 서럽지만 그 서러움을 “나혼자라도 빼酒 한잔” 마시면서라도 달래면서 살아야 한다는 강한 생존의 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민시인들의 정서 속에는 이국땅과 이국인에 대한 편견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으며 그런 정서나 편견은 시작품에도 표현된다. 가령 상기 작품의 제2연에서 “한(하얀) 粉이 고루 먹히지않은 살찐 얼굴/당신은 저 넓은 들이 슬프지 않습니가/저 하늘바람이 슬프지 않습니다(가)” 라는 시구에는 이민지 원주민과 이민지의 자연과 기후에 대한 불쾌한 느낌이 표현되고 있는데 비록 이민자로서 그러한 사람과 자연에 적응하기 이전의 주관적인 느낌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일종의 선입견, 즉 “거치른 만주땅” “미련한 만주인”이라는 선입견이 은연중에 드러난 것이다. 유치환(柳致環)의 「哈爾濱道裡公園」도 비슷한 정서를 그리고 있다. 이러한 느낌과 정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김북원(金北原)의 「봄을 기다린다」에서 답을 찾을 수가 있다.   (전략) 꼬지깨의 草原이 故鄕의 平原이 되고 高梁의 平原이 벼이삭의 바다가 되는동안 내사 수염과 靑春을 바꾸었고 안해는 새아이의 어머니가 되였다.   잔뼈가 굵어진 故鄕말이뇨 洛東江물을 에워 젖처럼 마시며 아매사 할배사 살엇드란들 그것이야 아스런 옛이약이지.   오붓이 點點한 우중충한 집옹이 五色旗 揭揚臺아래 마을이 봄을 기다린다.   비록 오색기가 만주국의 국기였으니 “五色旗 揭揚臺아래 마을이/봄을 기다린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 땅에서의 삶이 이제 겨울이 가고 “봄을 기다”리는 희망찬 삶이 되였다고 하였으니 어느 정도 체제 협력적이라는 혐의가 있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가꾸고 제2의 고향을 건설하여 대를 이어 살아가려는 민족생존의 의지도 담겨있다. 그러니까 이민지의 자연환경과 기후에 대한 불쾌한 느낌은 다분히 적응의 문제였음을 확인시켜주는 셈이다. 따라서 이제 고향땅에서 쫓겨난 서러움이 조금씩 잊혀져감에 따라 그러한 불쾌감도 조금씩 색이 바래지며 심지어 이민지에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아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곧 정체성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제 “잔뼈가 굵어진 故鄕”은 “아스런 옛이약이”가 되었고 화자는“五色旗 揭揚臺아래 마을”에서 봄을 기다리며 살아야 할 운명이요 처지임을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숙명론적인 체념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의 형성을 확인하는 생존의 의지이다. 윤해영(尹海榮)이「海蘭江」에서 이민지의 대표적인 강인 해란강을 “寂寞한 江이로다./거룩한 江이로다.” 라고 하면서 자신의 강으로 인식하고 노래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차원이다. 이민지의 자연과 좀 더 가까워지고 이제 곧 하나가 되어 감을 뜻하는 것이다. 윤해영은 특별히 그러한 이주민으로서의 정체성 확인에 시적인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다. 앞의 「해란강」에서 화자자신의 현재 삶의 현장을 노래하고 있다면 「오랑캐고개」라는 작품에서는 오랑캐고개를 3단계 역사의 상징적 이미지로 그리고 있다. “二十年前”에 오랑캐고개는 “豆滿江 건너 北間島 이도군 들의/아담찬 한숨의 關門이엇다.”고 했다. 간도이주민들은 대개 두만강을 건넌 후 이 오랑캐고개를 넘어 북간도 땅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리고 “十年前”, 이 고개는 “밀수군 절믄이들의/恐怖의 關門”이었다고 했다. 그만큼 이주민의 삶이 어려웠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오날 이고개엔/五色旗 날부”낀다고 했다. 한숨도 공포도 다 흘러가고 희망의 기쁜 노래만이 넘치는 고개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다시 어용적인 작품의 혐의가 나타난다. 여기서는 그냥 현실에 순응하는 정도가 아니라 괴뢰 만주국의 현재 삶을 어느 정도 찬미하는 의미가 드러난다. 그만큼 만주국의 정치 문화적 담론의 영향이 심각했음을 말해준다 하겠다. 정체성 확인의 욕구는 천청송(千靑松)의 「先驅民」에서 선구민을 통한 역사의 회고로써 표현되기도 한다. 좀 더 궁극적인 확인의 방식이라 할 수가 있다. 특히 5장으로 된 이 작품의 마지막 장인 “墓地”는 너무나도 슬픈 이주민의 운명을 제시하고 있다.   靜穩의 집 무덤은 너무나 寂廖하다 하도 故鄕을 그렷기 넉시나마 南을 向했도다 외로운 밤엔 별빗치 慰撫의 손을 나린다는데 墓標업는 무덤들이 옹기 옹기 정잡(답)계(게) 둘너안젓구나! 눈보라 사나웁든 매듭만흔 歷史를 이얘기 하는거냐.   죽어서 마저 고향이, 고국 땅이 그리워 “넉시나마 남을 향”했다는 표현이야말로 이주민의 슬픈 운명의 상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墓標업는 무덤들이/옹기 옹기 정답게 둘너안젓구나!”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화자는 묘지를 또 다른 이주민의 삶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렇게 보았을 때 이는 곧 이주민의 제2의 고향이 바로 여기, 북간도 땅임을 확인시켜주고 있기도 하다. 함형수의 「歸國」만큼 이주민의 이중적 정체성을 뼈아프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도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여기서 귀국은 조선 땅에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화자는 고국의 사람들이 자신이 갔던 곳에 대해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까 생각하다가 상념은 오히려 “누가 알랴 여기 돌아온것은 한개 덧업는 그림자”이라는 데에 미친다. 이처럼 이제 자신은 더 이상 고국의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은 정체성의 분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먼- 하늘 테서/총과 칼의 수풀을 헤염처/이 손과 이 다리로 모-든 무리를 뭇럿스나/그것은 참으로  하나의 肉體엿도다”라는 표현은 정체성의 분열을 야기시킨 일종의 연옥(煉獄)행과도 같은 체험을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갔었던 그곳에서의 체험에 대한 개괄이 되겠는데, 그러나 그러한 살벌한 체험은 이제 삶 자체가 되어버렸다.   나는 거기서 새로운 言語를 배웟고 새로운 行動을 배웟고 새로운 나라(國)와 새로운 世界와 새로운 肉體와를 어덧나니 여기 도라온것은 實로 그의 그림자이로다   “여기 도라온것은 實로 그의 그림자”이라는 표현은 앞의 “누가 알랴 여기 돌아온것은 한개 덧업는 그림자”이라는 표현을 좀 더 강하게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는데 그만큼 화자의 삶은 새로운 정체성을 이루었음을 강조한 것이 된다. 다시 말하면 이제 화자는 고국의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삶의 현장에 적응된 새로운 정체성의 소유자가 되었다는 의미로 파악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이주민으로서의 조선족이 될 것이다. 이민시인들은 이민지의 서정을 통해 이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 확인은 향수의 표현에까지 연장되어 이주민의 이중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조선족 문학이 이민문학으로 출발했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동시에 조선족의 디아스포라적 성격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b. 암울한 현실에의 대응 일제강점기 괴뢰 만주국에서 생활했던 조선 이주민에게 있어 현실은 암울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암울한 현실을 느끼고 인식한 대로 표현할 수 없는 일제 괴뢰정부치하라는 정치적 환경이다. 즉 당대의 문학풍토가 현실에 대한 시인들의 느낌이나 인식을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시인들은 그러한 모순된 현실을 어떤 시적인 수단 혹은 방법으로 대응했을까? 먼저 함형수(咸亨洙)의 《비애(悲哀)》라는 작품을 보자.   나는 이 괴로운 地上에서 살기만은 조곰도 希望치는 안는다 어한 달가운 幸福과 快樂이 나를 부고 노치안는다 해도 그러나 나는 저 아득한 한눌을 치어다 볼 마음은 슬퍼지고 외로움으로 눈물이 작고 난다 저 나라에서도 나는  여기서처럼 이러케 孤獨할바   여기서 화자는 천상과 지상을 두개의 세계로 갈라놓고 있다. 그런데 화자는 첫 두 행에서 지상의 괴로운 삶을 조금도 희망치 않는다고 하면서도 천상의 세계에 가기를 두려워한다. 천상의 세계 또한 지상의 세계처럼 고독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 때문이다. 또한 지상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달가운 행복이나 쾌락이 잡고 놓지 않는다 해도 미련은 조금도 없다고 했다. 왜서 그런지를 확대 해석하지 않더라도 이는 현실에 대한 분명한 부정이다. 채정린(蔡禎麟)의 「밤」이나 손소희(孫素熙)의 「어둠속에서」 등 작품은 현실을 암흑으로 인식함으로써 현실을 부정한다. 그러한 현실의 삶에 대한 분노는 동시에 저항의 심리를 동반한다. 그래서 분노는 어둠이나 차가움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보다는 한 차원 높다고 할 수 있다. 유치환의 「怒한 山」은 그러한 분노를 울분으로 풀어낸다. 물론 유치환에게 있어 그러한 울분이나 분노는 메아리도 없이 사라지는 부질없는 외침만은 아니다. 강한 생명의 욕구가 내재해있다. 「生命의 書」에서 유치환은 그러한 생명력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리고 왜 분노하는지를 은근히 내비친다. 현실 부정은 현실 비판과 차이가 있지만 정상적인 언로가 막혀있던 일제강점기에 있어서는 같은 의미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 시인들은 용인할 수 없는 현실의 암흑을 부정함으로써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징적인 현실 비판도 자유롭지 못하였다. 그래서 모더니즘은 현실 비판의 또 다른 장치로 작용하였다. 초현실주의로 대표되는 “시현실” 동인의 시가 이에 속한다. “시현실” 동인의 작품 1은 이수형(李琇馨)과 신동철(申東哲)의 공동작인 「生活의 市街」이다.   밤의 피부 속에는 夜光筮의 神話가 피어난다 밤의 피부속에서 銀河가 發狂한다 發狂하는 銀河엔 白裝甲의 아츰의 呼吸이 亂舞한다 時間업는 時計는 모-든 現象의 生殖術을 구경한다 그럼으로 白裝甲의 이마에는 毒나븨가 안자 永遠한 午前을 遊戱한다 遊戱의 遊戱는 花粉의 倫理도 아닌 白晝의 太陽도 아닌 시커먼 새하얀 그것도 아닌 眞空의 液體 엿으나 液體도 아니엿다 자- 그러면 出發하자 許可된 現實의 眞空의 內臟에서 시커먼 그리고 새하얀 그것도아닌 聖母마리아의 微笑의 市場으로 가자 聖母마리아의 市場엔 白裝甲의 秩序가 市街에서 퍼덕일뿐이엿다   「생활의 시가」의 전문인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는 일차적으로 이 작품이 당시 조선족문단에서 일반적으로 대할 수 있던 여타의 시작품과는 뚜렷한 구별을 보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구별을 일단 (1) 현실적인 논리성의 파괴, (2) 사유의 순수한 자동기술성, (3) 이미지의 격리성과 기이성, (4) 신비적, 광란적 수법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을 보여주는 시작품의 경향을 우리는 초현실주의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시현실”동인의 초현실주의 작품들로는 이수형(李琇馨)·신동철(申東哲)의 「生活의 市街」, 김북원(金北原)의 「椅子」, 강욱(姜旭)의 「樂譜를 가젓다」, 이수형의 「娼婦의 運命的海洋圖」, 김북원의 「비들기 날으다」, 신동철의 「능금과 飛行機」 등 6편으로 6회에 걸쳐 지에 발표되었고, 동인으로는 이수형, 신동철, 김북원, 강욱 등 4명이 여기에 묶여있다. 물론 유사경향을 보인 S. S. Y, 송석영, 천청송(千靑松), 정야야(鄭野野), 함형수(咸亨洙) 등 5명을 포함해 보아야 총 9명 시인에 12편의 작품이 전부여서, 양적으로는 빈약하다 할 수 있고, 그 중 다수는 조선본토 문단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이다. 그러나 초현실주의문학에 관한한 문제는 달라진다.순수문학 중에서도 “정신의 폭발”로 압축되는 이 문예사조가 조선시가에서 하나의 성과로 평가되는 것은 이상 정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1940년 8월의 만주는 일제의 대륙침략전쟁의 일차적 후방이었고,따라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제의 강압적, 혹은 포용적 책략에 시달리다 못해 변절하고 투항했던 당시 조선족문단에서 “시현실”동인들이 이런 시대적 상황, 달라진 천지, 대동아공영의 신 풍토에서 눈을 딱 거두고 있는 것은 이변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詩現實” 同人集에 묶여 발표된 작품은 아니지만 이수형의 「白卵의 水仙花」, 金北原의 「胎動」, S. S. Y의 「氣焰」, 송석영의 「詩人」, 千靑松의 「愚感錄」, 鄭野野의 「거리의 碑文」, 咸亨洙의 「正午의 모-랄」등 에 발표된 다른 작품도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동인이라는 개념이 가지는 성격으로 보아도 그렇지만 그 주변에 유사한 문학적 경향을 가진 시인들이 비슷한 경향의 작품을 발표했다는 것은 초현실주의 실험이 하나의 유파를 형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하나 흥미있는 것은 이와 같은 초현실주의 성격의 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하여 3개월여 만에 “시현실” 동인이라는 그룹이 출현하여 동인특집을 연재한 점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를 통한 초현실주의 시작실험이 일정기간 진행되어 오다가 그것이 무르익으면서 동인그룹이 형성되었고 본격적인 동인활동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다른 측면에서 초현실주의 문학유파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셈이 된다. 그만큼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띤다 하겠다. “시현실”동인들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초현실주의시의 실험운동은 그 기법 실천이라는 의미에서 뿐만이 아니라 1940년 일제의 발악적인 식민통치라는 최악의 환경에서 우리 이민시인들이 자신의 정서를 문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치로서 상당히 효과적이었고 따라서 긍정적이었다 하겠다.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의 암울함을 표현하기 위한 시인들의 노력은 끊이지 않았으나 일부 시인들은 결국 현실에 머리를 숙이고 지극히 소수이기는 하나 심지어 체제협력적인 작품도 일부 발표하였다. 이를 인정해야만 조선족 문학의 뿌리를 제대로 파악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4) 사후에야 알려진 시인과 시작품: 광복 이전 연변지역 시문학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서 시인 생전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가 광복 후에야 그 진가를 드러낸 경우가 있다. 윤동주(尹東柱)와 심연수(沈連洙)가 바로 그 대표적인 시인이다. 윤동주는 널리 알려진 연변 출신 시인이다. 그러나 심연수는 최근에야 발굴되어 아직은 연구가 미진한 편이다. 그러나 두 시인 모두 이민지인 연변에서 성장하면서 감성을 키우고 그러한 체험을 시적 언어로 표현한 시인들이다. 그러나 윤동주는 벌써부터 널리 알려진 시인이고 심연수 또한 최근에 많이 소개된 시인이어서 여기서는 분량 관계로 더 전개하지 않기로 한다.   2. 연변지역 시문학의 현황 1945년 이후의 문학은 사실상 광복 후의 문학이라야 맞다. 현재와 조금 가까운 시기의 문학이라는 의미에서 “현황” 항에서 논의할 뿐이다. 이 시기의 시문학을 정치공명의 시문학과 다원화 시대의 시문학 두 부분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1) 정치공명의 시문학 오늘의 시문학, 다시 말하면 개혁개방 후 연변의 시문학이 있기까지 광복 후 30여 년간의 과정을 거쳐 왔다. 특이한 것은 이 30년의 문학이 오늘날의 시문학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 30년의 문학을 문학사가들은 흔히 “정치 공명의 문학”이라 부른다. 문학 창작 전반이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사건들과 공산당의 정책에 공명하여 이루어졌던 것이다. 가령 해방이 되자 해방의 환희를 노래하고 토지개혁 시대에는 땅을 나눠가진 기쁨과 이를 가능케 해준 공산당과 정부를 노래하며 사회주의개조를 실시하자 사회주의 제도를 노래했다. 특히 문화대혁명 동안에는 계급투쟁과 개인우상화에 우리 시가 한 몫을 톡톡히 했다.   (2) 다원화 시대의 시문학 a. 개혁개방의 시문학: 1970년대 말, 중국 땅에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면서 연변지역의 시문학은 점차 정치공명의 시대를 탈출하기 시작한다. 상처문학, 반성문학을 거치면서 점차 외래 사조들을 받아들이고 다원화 시대의 시문학을 위한 준비를 서두른다. 이 시기 시문학에서 주목할 부분은 장편서사시 창작의 성행이다. 그 대표시인은 김성휘시인... ... ... 
715    한영남 / 장춘식 댓글:  조회:4455  추천:0  2015-09-17
  한영남의 시에 대한 단평 장춘식       「그날의 커피향은 오늘도 입가에 머물고」: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더 아름답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왜 “비도 없이 축축한 날” 따뜻한 커피를 함께 마셨음에도 그대로 헤여지고 말았을까? 서로의 마음을 드러낼 용기 부족 때문에? 혹시나 당할 거절에 자존심이 상할까봐?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냥 현대인의 무심함 때문에? 하여간 헤여진 지금은 따뜻한 커피향기처럼 아름다운 추억이 되여있다.     「오늘은 왜 그 아픈 사람이 떠오르나」: 「커피향」의 이미지와 연관된 감수이다. 헤여진 사랑의 아름다움을 되뇌인다. 인생은 어쩌면 그러한 아쉬움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완성이 아닌, 부족함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항상 그 부족함을 채워넣기 위해서 말이다.     「어떤 저녁」: 중년남녀의 맛이 간 사랑에 대해 자조하고 있는 것 같다. 꽤 시일이 지난 부부의 사랑은 이제 격정과 애절함이 사라진 관습적인 사랑이 되여 버린다. 그러나 일부일처제를 거부하지 않는 한 그러한 관습에서 탈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격정이 사라진 부부의 사랑도 나름대로의 행복을 제공해준다. 귀속감과 안전감이다. 그래도 그것에만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니 어찌하랴. 이쯤에서 앞 두 편의 시에 표현된 아쉬움의 미학이 연유된 것은 아닐까?     「당신은 늘 비와 함께 온다」: 그래서 화자는 일상의 따분함과 사랑에 대한 상실감을 추적거리는 비와 함께 떠오르는 사랑에 기탁한다. “아무나를 향한 나의 사랑”이다. “세상이 보다 아름다워”진다는 것은 화자의 희망사항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세상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예 어떤 구체적인 그림이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언제나 그렇게 보다 아름다운 세상, 보다 아름다운 사랑을 원하는 것이니까.     상재한 한영남 시인의 시작품 4편 중 압권은 첫편 「그날의 커피향은 오늘도 입가에 머물고」이다. 여러가지 상상의 여백을 제공하면서 화자의 정서속에 독자의 정서를 이입시키는 매력이 돋보인다. 산문시로서의 장르적인 특성도 독자의 정서를 끌어들이는데 한몫 하고 있다. 그런데 나머지 3편은 주제의식에 비해 시적인 정서화가 미흡한 것 같다. 기우인지는 모르겠으나 시어의 지나친 통속화 또한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한다. 시어가 너무 어려워도 문제이지만 너무 쉬워도 문제이다. 너무 쉬우면 의미의 단순화가 걱정이고 너무 어려우면 의미 파악의 어려움이 걱정이다. 이른바 통속성과 난해성의 문제가 되겠다.     우리 시는 80년대 이전까지 의미의 단순화가 문제가 되었지만 아무래도 그 반동인 듯 80년대 이후에는 난해시가 점차 주류를 이루어 온 것 같다. 이런 문학사적인 흐름에서 볼 때는 통속성이 오히려 미덕이 될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도를 넘어서 요즘 유행하는 가요의 가사처럼 되어 버린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상대적으로 통속적인 시작품에서는 의미의 단순화를 극복해야 할 것이고 난해시의 경우에는 독자의 이해를 위한 배려 장치가 시인의 과제가 되지 않을까 한다.     한편 시 쓰기에서는 비유와 상징, 이미지 등의 여러 기법을 통하여 시인과 독자 사이의 정서적 공명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를 쓰는 시인 자신도 미처 생각지 못한 창조적 의미의 창출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론적으로 도출해내기 어려운 삶의 이치를 시인의 감성을 통해 창출해내는 것, 거기에 시라는 문학장르의 또다른 생명력이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출처] 한영남의 시에 대한 단평|작성자 반벽거사
714    전춘매 / 장춘식 댓글:  조회:4544  추천:0  2015-09-17
  일상과 꿈, 그 사이를 방황하는 시혼 ―전춘매의 시집 《느끼며 살아가며》―   장 춘 식     남성이 문단을 지배하던 시대는 이제 옛날이야기가 되여가는것 같다. 격세지감이다. 시단 역시 마찬가지다. 정확한 통계는 내보지 않았지만 신인중 거의 반은 녀류시인인것 같다. 수적으로만 그런것이 아니다. 녀류시인들은 당당한 력량과 기량을 자랑한다. 전춘매도 그중의 한사람이다. 첫 시집으로 펴낸 《느끼며 살아가며》(민족출판사, 2003년 5월)에도 그런 력량이 느껴진다. 전체 5부에 모두 101편의 시를 수록하고있는데 신인으로서는 소재별로 보나 주제별로 보나 또 량적으로 보나 상당히 풍성한편이다. 치렬한 시인의 삶의 궤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시집의 시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크게 동(상대적 움직임)과 정(상대적 정지)의 성격을 뚜렷이 드러낸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제3부 《등대지기》와 제4부 《장독》의 시들은 상대적으로 정적인 시상이 주체를 이루는 반면에 제2부 《도시비둘기》와 제5부 《리향(離鄕)》의 시들은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시상이 주체를 이룬다. 그리고 제1부 《무상》의 시들은 그러한 동과 정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있으면서 한차원 높은 경지를 개척하고있다. 이른바 도시적상상력의 소산이라 할수 있는데, 본고에서 주로 관심을 가진 부분은 바로 시인이 새로운 비상의 꿈을 펼치고있는 이 도시적상상력의 시들이다.   물론 인생의 철학적원리를 담고있는 《등대지기》의 시들과 민족적인 정체성이나 공동체의식을 담고있는 《장독》의 시들은 시어가 정제되고 상당 정도의 원숙미를 보이고있는게 사실이지만 동시에 참신성과 력동성이 떨어지는 약점을 드러내고있다. 어떻게 보면 습작기의 형식미집착에서 비롯된것이라 할수도 있다. 시인의 성장단계로 보면 산업화시대 도시인의 일상적삶을 약간은 자조적 혹은 비판적 시각으로 그리고있는 《도시비둘기》나 그러한 산업화의 부산물로서 빚어지고있는 농촌사회의 공동화(空洞化)를 문제삼고있는 《리향(離鄕)》의 시들은 제2단계에 속한다고 하겠다. 이제 이런 단계를 뛰여넘으려는 시도가 바로 이 제1부 《무상》의 작품이 되는것이다.     《무상》의 시들에서 일차적으로 발견되는것은 자신과의 대화이다. 즉 시적화자는 또다른 하나의 의식적존재와 대화하면서 삶의 의미와 무의미를 모색한다. 그러나 언제나 똑부러지는 답은 없다. 다만 존재한다는 자체가 진리일뿐이며 따라서 화자는 일상에 묻혀살다가 그 일상에 의하여 실존이 잊혀져가는것에 대해 몸부림치며 저항하기도 하고 때로는 체념하는듯이 보이기도 한다.   먼저 시집의 첫 작품으로 수록된 《무제》를 보자.   내 생에 십자가가 있어 내 삶이 죄 되였을가   나는 나를 마주하기 부끄러워 거울 하나 영원히 사이두는수밖에   시간으로 재일수 없고 공간으로 볼수 없었던 고집스런 옛 도로표식 마음에서 색바랜다   무너지는 울바자사이로 꿈틀대는 야망이 주렁지고 탐스러운 유혹에 나는 그만 나를 잃어버렸다   마지막 초불이 꺼지기전에 나는 나를 나같이 찾아야겠는데   그저 마음밖에서 서성일뿐이다.     《무제》의 전문이다. 이 시에서는 꿈과 삶의 신조로 삼았던것이 어느 순간 완전히 무의미해진다.(《고집스런 옛 도로표식/마음에서 색바랜다》) 이는 다시 말하면 과거의 도덕 혹은 가치기준이 무너졌다는 말이 되겠는데, 그러한 《무너지는 울바자사이로》 야망 혹은 유혹이 자라나고 그러한 야망과 유혹을 피하지 못해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즉 과거의 가치기준을 상실한채 새로운 가치기준은 확립하지 못하고있다. 그래서 추구의 동력이 사라지기전에(《초불이 꺼지기전에》) 나다운 나를 찾아야 하는데, 즉 스스로의 가치기준을 확립해야 할텐데 그러한 마음과는 달리 가치지향은 쉽사리 확립되지 않고있다. 그래서 방황한다. 시인의 표현을 원용하면 마냥 《그저 마음밖에서 서성일뿐이다.》 시인은 이 한행을 특별히 떼내여 하나의 련을 만들고있다. 주제도출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것이라 판단했다는 말이 되는데 이는 그만큼 방황의 정도가 절실함을 강조한것이기도 하겠다. 2천년대 벽두 우리의 자화상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지난날 우리가 지향했던 혹은 우리 사회가 지향했던 가치기준이나 인생의 목표는 분명 해체되였거나 해체되고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가치기준이나 삶의 목적이 확립돼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고 과거의 가치기준을 일부나마 대체하고있는 새로운 《가치기준》은 이른바 실용주의라는것인데, 사실 실용주의라고 하는 가치지향은 국가적인 개발제일주의에 의해 물신주의적인 성향을 드러내고있다. 이에서 비롯된것이 시인이 말하는 이른바 《꿈틀대는 야망》이고 《탐스러운 유혹》이라 하겠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에서 화자의 고민이나 방황이 곧 현대인의 자화상이라는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고민이나 방황을 또다른 형태로 드러낸것이 《역설》이다. 일상적인 모색이나 탐구의 방법을 뒤집어 생각해본것이라 하겠다. 하늘과 땅, 아침과 저녁, 자유와 속박, 생과 사 등 상반되는 개념들을 한번 거꾸로 생각했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시인의 이러한 역설은 그냥 이상한 생각 혹은 엉뚱한 설정이 아니다. 거기에는 진리를 보고자 하는 또다른 시각이 숨어있다. 즉 《한번쯤/옳은것을 그르다고 생각해본다면/거기에 진리가 잠들지도 모른다.》는 판단은 이러한 역설적인 발상을 가능케 해준다. 다시 말하면 생각을 뒤집으면, 혹은 고정관념을 깨뜨리면 또다른 세계가 보인다는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볼 때 생명 자체의 위대함을 제외하면 진리는 하나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특히 오늘과 같이 진리 여부의 판단이 지난한 전환기 우리 사회의 가치의식에서 이러한 역설은 우리의 삶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수도 있을것이다.   《걸인》에서 도시인의 걸인에 대한 구제가 동시에 자신에 대한 구제의 심리적 욕구를 동반한다는 발상 또한 이러한 역설적인 생각의 다른 한 측면이 될것이다. 사물 혹은 현상의 상대성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죄인과 천당》의 발상도 같은 차원이라 하겠다. 기독교적인 기준에서 보았을 때 죄인은 지옥에 가까운 존재이기때문에 천당과는 너무나 아득히 떨어져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 죄를 말끔히 씻었을 때 과연 천당에 도달할수 있을까? 아니다. 《죄인이 더는 죄인이 아닐 때/천당도 다시는 천당이 아니다.》 즉 지옥과 천당은 사람의 마음일뿐이라는것이다. 이러한 역설적인 발상은 《리유가 없다》에서 보다 극명하게 드러난다. 남들이 특히 녀자들이 다 이쁘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즐기고 감동하는 꽃에 대해 화자는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감동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처럼 특별한 생각을 가지면서도 거기에는 리유가 없다고 한다. 고정관념에 대해 부정하지만 무슨 리유가 있어서 그러는것이 아니라는 사상은 어떤 가치기준에 대한 부정일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현실에 대한, 혹은 현실의 가치기준에 대한 무감각의 의미가 더 짙게 표현된것 같다. 어떤 가치에 대해 부정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지도 않고 그냥 그 부정이 아무런 리유가 없다고 하는것은 현실의 타락, 인간성의 변이를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 팽배해있는 실용주의적인 사상의 치명적인 약점이라 하겠다.   그래서 시인은 무상을 느낀다. 《하늘밖은/하늘이지만/더는 어제의 하늘이 아니다》(《무상》의 일부). 즉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며 그 흐르는 시간속에 모든것은 변화한다. 세월의 무상함이다. 세월의 무상함은 곧 인생의 무상함을 의미한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러나 변화하는 과거나 미래를 현재의 립장에서 알수는 없다. 알수 있는것은 현재의 변화, 현재의 상황, 현재의 삶의 양상일뿐이다. 그래서 화자는 《마음이 흐린 날에는 기도보다/생각으로 죄를 범하여보자》고 자위한다. 하느님은 언제나 침묵하고 있고 마음속의 범죄는 스스로 용서하거나 합리화시키면 해소되기때문이다. 세월은 무상하며 인생 또한 무상하다. 그러므로 오늘 현재의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것이 이 시의 의미가 되겠다. 생명의 매 순간에 대한 애착이 있을 때 마음의 평온을 얻을수 있고 또 그러한 매 순간이 모여서 인생이 된다. 그렇게 인생을 파악했을 때 무상한 인생은 더이상 무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흐르는 강물》의 의미 또한 《무상》과 같은 발상이다. 오늘, 현재, 지금의 삶, 생명이 소중하다. 즉 살아있다는 자체가 소중하다는것이 시인의 현재 시점에서의 인생에 대한 인식이다. 이러한 생명 존재의 귀중함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 새로이 부상하고있는 생태미학의 시각에서도 바람직한 발상이라 할수 있다.   다른 한 측면에서 실존, 생명 자체에 대한 존중만으로 삶을 만족할수 없는것이 또한 인간의 심리이다. 생명에는 자아가 존재하기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명상해야만 한다.(《명상》) 꽃이 피는 원리는 우주의 원리다. 꽃씨를 마음의 터밭에 뿌렸을 때 피려는 꽃망울에는 욕망, 사랑, 죄와 벌이 모여든다. 그러나 그러한 강요된 리상때문에 노예가 된 나는 마음밖에 버려진다. 서성이다가 마음안으로 불러들였을 때 다시 우주적원리에 의해 꽃과 함께 원색으로 핀다. 시적인 상상속에서나마 삶의 본질에 도달한것이다. 가장 자연적인 삶에 대한 깨우침이라 하겠는데, 이러한 깨우침은 집념의 무의미함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그리고 자기 마음속에서마저 잊혀지려는 자신을 구해냈을 때 가능한것이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시인이 무상한 삶, 새로운 가치기준에 대한 미망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한것이 정적인것에 대한 애착이다. 《다도》가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지는것은 이때문이 아닐까 한다.   진실된 나를 조용히 부른다   바람 한점 없는 호수우에 하늘빛은 겸허히 잠들고 하나로 되는 사이 일상의 나는 사라진다   머문듯 부은 물에 사랑이 생명처럼 숨을 쉬면 소망이 없을만큼 빈 차잔에/ 마침내 피여오르는 마음의 향.     《다도》의 전문이다. 화자는 다도라는 거의 정지에 가까운 상황, 분위기를 지켜보며 그것과 하나가 된 분위기 즉 정적인 삶을 아름답다고 여긴다. 여기서 주목되는것은 《머문듯》, 《빈 차잔》은 《정》과 《공》의 이미지다. 행위자를 제외시키면 다도의 도구는 《물》과 《차잔》, 《차》이며 그것이 어울려서 《향》을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정》과 《공》이다. 정적인 환경속에서 마음을 비운자만이 다도의 진수를 체험할수 있기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시상의 핵심이미지는 《소망이 없을만큼 빈 차잔》이다. 이는 《일상의 나는 사라진다》는 그 앞의 이미지와 호응하면서 《공》의 경지 즉 한시학에서 말하는 시의 의경(意境)을 형성하는 모티프가 된다. 다도라는 행위와 그에 의해 만들어진 분위기를 잘 그렸다고 할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이처럼 다도의 분위기를 아름답게 묘사하고있는 시인이 지향하는 삶은 그러한 정적인 삶의 모습이라 하겠다. 그래서 그러한 분위기는 지선(至善)의 삶의 모습으로 환원된것이리라. 그런데 이러한 지선의 삶의 모습은 《일상의 나》가 사라진 상태에서만이 느낄수 있다고 시인은 본다. 구도자의 목욕재계의 통과의례와도 같다. 《진실된 나를/조용히 부》르기 위해서다. 그리하여 일상을 탈피한 진실된 나는 소망마저 비워버린채 숨쉬는 사랑속에 《마침내 피여오르는 마음의 향》을 만끽한다. 다도의 진수인 동시에 시인이 지향하는 삶의 지선의 경지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지선의 삶은 시인의 과거적삶 혹은 소년기의 체험에 깊이 뿌리내려있다. 모두(冒頭)에서 시집의 제4부인 《등대지기》와 제5부인《장독》은 정적인 삶의 양상으로 특징지어진다고 했다. 그런데 이 부분에 수록된 시들 특히 《장독》에 묶여진 시들은 정적인 삶의 양상들인 동시에 민족적, 전통적 혹은 과거지향적인 상상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이미지가 고향, 시골, 할머니, 외할머니가 되겠는데 그것들은 민족성 혹은 조선족성을 가장 보편적으로 상징하고있는 《장독》으로 집약된다. 특히 할머니, 외할머니의 이미지는 그 빈도가 상당히 높다. 그러니까 동적인 현재적삶에서의 무상과 방황의 상대적위치에 정적인 과거적삶의 애틋한 추억과 따스한 느낌이 놓인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이것을 다시 말을 바꾸면 현실적삶의 일상과 염원하는 혹은 꿈꾸는 삶의 모습은 항상 괴리 혹은 유리되여있다는 말이 된다. 그 꿈과 일상 사이에는 너무나도 힘겨운, 넘기 어려운 벽이 가로놓여있기때문이다.   사회가 너무 많이 변해서 그런것일까? 전춘매의 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야는 추억속의 세계가 될것 같다. 시집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좋은 시라고 느낀 작품도 이 《장독》이라는 표제의 제4부에 묶여진것이 가장 많다. 할머니에 대한 추억도 슬프고 고국에 대한 추억도 측은하다. 민족을 추억처럼 느끼는 시인의 자세는 어딘가 조금은 감상적인데가 있어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현실은 너무 많은 추억속의 아름다움을 색바래게 한다. 그래서 그 추억속의 상상력을 더듬어보면 시인이 왜 오늘의 삶을 《무상》으로 인식하는지를 더러 알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령 《옛9월》의 경우 추억의 세계속에 아로새겨진 민족적이미지를 아련한 정서속에 그려놓고있다.   젊은 엄마 머리우의 빨래함지에 삐죽이 고개 내민 빨래방치   달달달 어린아이 고무신 끌면 수레길에 제멋대로 뒹구는 락역   저녁연기 피는 굴뚝 사립문에선 외할머니 기다림이 석양에 물들었다.     《옛9월》의 전문인데 여기서 특히 빨래함지, 빨래방치, 저녁연기, 외할머니의 기다림 등의 이미지들은 농경시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이미지라고 할수 있는것들이여서 잊혀져가는 우리의 기억을 되살려준다.   《장독》에서는 장독과 할머니를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시키고있다. 《한생을/속 썩이는/할머니//그 마음/누가 엿볼라/꽁꽁 동이신다//안으로만/삭이는 심사는/궂은날 마른날이 따로없고//처마밑/외로운 마음은/헤아려주는이 없지만//언제나/정성에 뜨거운/우리 집 식탁//삭을수록/맛이 깊은/할머니의 향이여.》(《장독》 전문) 여기서 시인은 《속 썩이는》, 《안으로만/삭이는 심사는》, 《삭을수록/맛이 깊은》 등 된장의 일반적인 속성을 《한생을/속 썩이는/할머니》라는 우리 민족 전통적여성의 미덕과 일체화시킴으로써 시상의 시너지적 효과를 이끌어내고있으며 그것을 추억하며 상상하는 시인과 독자의 의식 또한 일체가 됨으로써 진한 감동을 유발시킨다.   이 두 편의 시에서 시인 혹은 화자의 시점은 오늘에 있지 않고 추억속에 들어가있다. 다시 말하면 적어도 시적화자는 오늘의 시점에서 추억속의 세계를 지켜보며 그리고있는것이 아니라 화자 자신이 추억속의 그때 그 세계에 들어감으로써 독자를 그 세계에 끌어들인다는 말이 되겠다. 그러나 《추석날의 애수》, 《산에서 자란 아이는》, 《두만강》, 《먼 고향은》 등 작품에서는 그러한 중간절차 없이 시인 혹은 화자 자신이 오늘의 시점에서 직접 추억속의 이미지를 그려내고있다. 따라서 이런 시들은 추억의 세계속 이미지를 그리는 동시에 화자의 감수와 정서도 더불어 드러난다.   가령 《추석날의 애수》의 경우 추억속에 들어가고자 하지만 세월에 바래진 기억때문에 더이상 들어갈수 없는 슬픔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그 잊혀진 기억만큼이나 외로움도 크다고 하면서 애수의 원인을 설파한다. 《산에서 자란 아이는》도 비슷한 경우이다. 화자는 자신은 산에서 자란 아이이기때문에 산을 《바라만 보아도 감격에 마음이 무저》진다고 했다. 그리고 산에 가면 《이미 흙이 되였을/그 누구의 부름소리 들리는듯하고/돌아가신지 오랜/외할머니의 하얀 치마자락이/기발처럼 날리는듯합니다》고 하여 산을 보며 감격하지 않을수 없는 원인을 드러낸다. 그리고 끝련에서 화자는 《산에서/자란 아이는/산을 못잊어/꿈에나마 가끔씩/산을 찾습니다.》고 추억과의 교감을 보여준다. 그러한 추억속 세계에 대한 동경의 의미를 가장 잘 형상화한 작품이 아마도 《먼 고향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먼 고향은/봄, 여름, 가을, 겨울 아닌/그 계절이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4계절 이외의 어떤 계절이다. 상상속의 세계이기때문에 가능한 이 제5의 계절, 그 계절은 4계절이 서로 뒤엉킨 애잔한 아름다움만이 남아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속에는 장국냄새 풍기는 어머니의 기다림이 있고 별같이 총총한 할머니의 옛말이 있다. 그리고 산처럼 무겁던 아버지가 있다. 그러나 그 고향은 이제 《먼 고향》이며 《내 꿈》일뿐이다. 이 《먼 고향》과 《내 꿈》의 이미지는 그래서 이제 가상의 시간과 공간속에 상대적으로 정지된 존재이다. 즉 시인이 《다도》에서 이미지화시킨 정적인 존재가 될것이다.     결국 시인은 일상을, 현대인의 삶을 살면서 항상 또다른 세계―순수의 세계를 꿈꾼다. 그 순수의 세계가 바로 추억속의 정적인 삶이 되겠는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현대의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데 시인의 고민이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시인이 념원하는 순수의 세계는 공업문명, 현대문명, 물욕이 란무하는 물신주의 등으로 대표되는 현실사회와는 상반되는 위치에 있고 가끔 지난날의 기억들이 그런 순수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다. 궁극적인 순수는 원시상태임을 암시한셈이다. 그리고 그 원시상태의 이미지로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있는데, 특히 외할머니의 이미지에는 고향, 때묻지 않음, 전통, 평화와 동경 등 모든 아름다움이 담겨있다. 그러니까 시인이 역설과도 같은 현실, 부대끼고 체념하며 회의하고 방황하며 살아가는 현실의 세계에서 항상 그리워하는 세계가 바로 앞에서 살펴본바 있는 가상의 시간과 공간속에 상대적으로 정지된채 존재하는 추억속의 세계가 되는셈이다.   그러나 시인이 간과하고있는것이 있는것 같다. 실존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을뿐이며 거기에서 생명존재의 의미를 구할수는 없다. 실존 자체만이 진리다 라는 답안은 정해진것이다. 동물이나 미물이 존재하는것과 같은 리치다. 다만 인간은 의식과 생각을 가지고있다는것이 다를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삶의 의미를 마냥 추억속의 세계에서 찾는것은 바람직하지만은 않을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갈수밖에 없기때문이다. 즉 삶의 가치는 자기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사회와의 관계속에서 찾는것이 바람직할것이라는 말이 된다. 삶은 원래 의미가 없고, 그래서 개개인이 의미를 부여하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싶다. 이와 동시에 인간이 그런 삶의 의미에 대한 생각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의미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시는 《나》를 대상화시킬 때 이루어진다는 이치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즉 시적화자와 시인이 지나치게 근접하게 되면 주관적인 사상이 시의 형상성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대상화되지 않은 시에는 넉두리 이상의 가치가 없다고 할수도 있다. 《나》를 최대한 대상화시켰을 때, 즉 사물이나 현상을 조금은 거리를 두고 관찰하고 묘사할 때 거기에서 새로운 시적인 의미가 창출될수 있다. 이는 의식의 차원을 넘은 무의식의 차원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 가능하기때문이다. 전혀 해명이 불가능할것 같은 초현실주의적인 《순간적인 떠오름》의 묘사에서 독자가 감동될수 있는것은 시인의 정서가 그러한 대상을 통하여 정서화되면서 보다 생신한 이미지나 사상, 의식, 감정이 생성될수 있기때문이 아닐까 한다.   끝으로 일상과 현실을 하나로 본것 또한 이 시인의 한계다. 현실의 삶에서도 지양해야 할것과 추구해야 할것들이 따로 있기때문이다. 그리고 앞에서도 더러 언급되였지만 《무상》에 묶여진 시작품들은 열린 사고와 치열한 주제의식, 현실적삶에 대한 인식의 절실함 등이 돋보이지만 시어의 정제나 비유의 치밀함 등 면에서는 《등대지기》나 《장독》에 못미치고있음이 아쉽다. 그밖에도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전체적으로 주제나 감정을 직접 나타내는 추상적인 어휘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시인이 하나씩 극복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된다 하겠다.   [출처] 일상과 꿈, 그 사이를 방황하는 시혼-전춘매의 시집 |작성자 반벽거사
713    ...끝 댓글:  조회:5867  추천:0  2015-09-17
    4) 전원시와 현실도피 그리고 현실순응     조선족 이주민의 다수가 농민이였으면서도 불구하고 이 시기 시작품에는 농민이 화자로 등장하는 경우가 별로 많지 않다. 이는 아마도 시인들 다수가 도시에 사는 직장인들이였고 또 중국땅에 이주해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때문에 사실상 농촌이나 전원의 체험이 절실하지 않았던것과 관련이 있을것으로 보인다. 이들 시속에 등장하는 농촌이나 전원의 풍경이 대개 조선땅의 고향이 되고있는 점은 이런 사실을 반증한다고 할수 있다. 앞의 항에서 이미 언급한바 있는 천청송의 《드메》나 《書堂》 등이 이런 류형에 속하는 전형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그렇기는 해도 가끔 화자가 농민으로 되여있는 이주민 작품들이 가끔 눈에 뜨인다. 신상보(申尙寶)의 《흑과 갓치 살갯소》가 그런 작품에 속한다.   화자는 흙은 나의 모든것, 내 뼈요, 재산이요 즐거움이라고 한다. 그래서 흙과 더불어 살고 죽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땅 이민지에 흙을 찾아왔다고 한다.   내 발에 미트리를 신고 내 머리에 수건을 쓰고 한 박아지에 목슴만 가지고 흘글 차저 여기 왓소 흘글 파러 여기 왓소   언제나 난 해와 함 일하기 즐거울 파기 즐거울 千萬年이 흘너도 흘너도 흑과 갓치 살갯소 흑과 갓치 죽갯소     《흑과 갓치 살갯소》의 후반 2련이다. 여기서 《한 박아지에 목숨만 가지고/흘글 차저 여기 왓소》라는 이미지는 앞의 항에서 언급한바 있는 윤해영의 《아리랑고개》에 나오는 《二十年前!/아버지 등뒤에 봇다리뒤에/박아지 두 은 방울이 커서》 류의 이미지와 동일하다. 이주농민의 이주의 모습인것이다. 이어서 화자는 그냥 일하기가 즐거워서, 땅 파기가 즐거워서 흙과 같이 살고 흙과 같이 죽겠다고 한다. 여기에는 당시 일제의 식민지 개발과 더불어 형성된 도시문명의 발전과 그러한 도시문명의 유혹에 현혹되지 않으려는, 혹은 도시문명에서 소외된 농민의 의식이 반영되여있을수도 있고 지식인으로서 암울한 식민지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의미도 없지 않은것 같다. 즉 이 시에서 시인은 도시문명의 반대편에 서있는 농민의 근원적인 이미지로서의 땅에의 귀속감을 드러내고있다는 말이 된다.   리학성(李鶴城)의 《五月》에서 그려진 전원풍경이나 전원 지향의 의지도 같은 차원에서 리해할수 있지 않을가 한다. 물론 이 작품의 기본적인 정서는 자연의 생명력과 그러한 생명력에 감동한 화자의 감흥이 된다. 자연에 대한 찬송가라 할 정도로 화자의 정서는 흥분되여있다.   五月은 초록물결이 넘치는 한낮 牧場을 꾸몃다. 들薔薇도 香氣 품은 넓은 둔덕위 염소등에 휘파람이 구운다. 연분홍빛 구름도 뭉기뭉기 피는데 종다리 그린 譜表를 처다보며 풀잎피리라도 불리라. 이 法悅- 이 멜로듸- 우리는 豊饒한 自然을 呼吸하는 太陽의 아들, 五月의 푸른 한울을 風俗하고. 五月의 푸른 大地를 習性한다.     《五月》의 전문이다. 5월 봄빛속에 생기활발한 자연의 모습을 초록의 물결속에 생동하는 하늘과 들과 들속의 생명들을 통해 표현하고있다. 암울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이한게 아니냐는 혐의가 있지만 암울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강한 생명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큰 흠은 되지 않는다 하겠다.   《五月》이라는 같은 표제의 송철리의 시작품은 그 시풍이 리학성의 그것과는 전혀 판이하다. 송철리는 소설문단의 안수길에 비견될 정도로 철저히 이주민문단에서 등단하여 성장한 향토시인이다. 그만치 그의 시에서 이민지 향토에 대한 애착은 특별한것이다. 시골 5월의 정취를 이 시만큼 부드럽고 아름다운 이미지로써 펼쳐놓은 작품도 별로 많지 않은것 같다.   새하-얀 비둘기 두어마리 은빛 금을 그으며 미끄러지는 하늘아래 마슬은 호졸곤-이 파-란 아즘에 쩌저 누었는데, 초록물결 부서지는 포푸라 가지에서는 채르렁 채르렁 가벼운 금방울 소리, 맑은 숨소리, 바람은 물고기 보다도 젊어 나물보구니 노래 부르는 두던위에 눈빛 고름끈을 춤추이고, 문둘레꽃 밟으며 흘러가는 염소귀에다 가마-ㄴ 가만 옥색 휘파람을 호이 호이 이 모다 五月의 아름다움이어니, 그곳 五月의 꼬임이어니, 나는 가고십노라 어데던지 풀잎 피리라도 하나 사-ㄹ작 따물고 호돌대는 어린 사슴처럼.1)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그리고 감각적으로 맑고 부드럽고 상큼한 이미지들만을 골라서 시골의 모습을 그린 이 시에서는 시인의 향토에 대한 애정이 절실하게 묻어나고있다. 송철리의 다른 작품인 《落鄕》2)에서 풍기는 분위기 혹은 정서 또한 《五月》에서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五月》에서는 화자의 립장이 객관적인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화자 자신이 직접 그러한 환경 혹은 분위기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있다는 점이 조금 다를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도 뚜렷한것은 아니다.   이상 살펴본 작품외에도 자연이나 향토, 전원에 대한 관심을 시화한 작품들은 많이 있다. 여기서 제시한 작품들이 좀더 전형적이고 순수하다고 할수 있을뿐이다. 그렇다면 일제식민지하 이민지의 현실에서 전원이나 향토에의 집착이 혹 현실도피의 성향을 보여준것은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런 측면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지만 이미 살펴본 작품에서 볼수 있는바와 같이 의식적인 도피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김조규(金朝奎)의 《室內》3)와 같은 작품에서 그러한 도피의 혐의가 더 두드러져보인다.   파아란 煙環속엔 天使가 산다 天使는 憂愁를 宿命 진엿다 오늘밤도 말업시 나의 室內로 天使를 조용이 불너들이다 天井으로 올으는 煙氣는 외로운 憂愁의 舞라한다 회오리 落葉도 안인 휘파람도 안인 天井과 벗하는 쓸쓸한 思想이라 한다 가슴을 콕 쑤신다 오란다 卓上時計 손을 드니 오오 열손가락이 透明코나 고양이도 안산다 花盆도 업다 울지도 안흘련다 외롭지도 안흘련다 室-內 우리 슬픈 天使는 숨소리 하나 업는 房속만이 좃탄다     이 작품에서 외로움 혹은 상실감이나 슬픔은 숙명으로 받아들여지며 그것마저도 폐쇄된 공간속에 갇혀버린다. 이 정도가 되면 일종의 도피라 볼수도 있겠는데, 《고양이도 안산다 花盆도 업다/울지도 안흘련다 외롭지도 안흘련다》라는 표현에서 그것은 반전된다. 즉 숙명이나 체념은 일종의 아이러니적인 표현이 되는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도피하려는 주체는 화자가 아닌, 《天使》이기때문이다. 결국 화자와 천사의 두 얼굴의 주체가 시속에서 충돌하고있는셈이다. 즉 암울하고 무정한 현실에서 폐쇄된 공간으로 도피하려는 의식과 그러한 타락에 반항하려는 의식의 충돌이 이 시의 기본적인 정서가 된다는 말이다. 시인의 모순된 사상 혹은 의식을 드러낸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모순이나 의식의 충돌은 김조규 한 시인에 한한것만은 아니였던것 같다. 이른바 친일시라고 불리는 현실순응의 작품들의 출현은 그러한 의식출돌의 결과로 비롯된 한 양상이라 하겠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인정할수 없던 시인들에게 있어 현실에 순응하고 괴뢰만주국이라는 일제의 식민지 통치방식을 인정하며 심지어 그들 통치에의 동조를 강요받던 시대적 환경에서 시인들이 선택할 길은 그리 많지 않았기때문이다.   그러나 《친일시》라는 개념은 이민시의 경우에 적절한 표현은 아닌것 같다. 비록 만주국이 일제에 의해 조작된 괴뢰정부이고 그 정책이나 정치적인 담론 모두가 일제에 의해 조작된것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국체이고 또 받아들이는 이주민들의 립장에서 보면 일제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고있던 조선의 경우와 꼭 같지만은 않았던것이다. 남의 나라 땅에 정착해사는 이민의 립장이기때문에 원주민인 현지 중국인들과 어울려야 하고 그들에게 받아들여져야 하며 하였던것이다. 따라서 만주국이라는 정치체제는 그들에게 있어서 일제의 꼭두각시로서 저항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받아들여져 그러한 국체의 강역내에서 생존해야 하는 이중적인 립장이였다고 하겠다. 따라서 친일시라는 개념보다는 현실순응의 시라는 개념이 좀더 적절하지 않을가 한다.   이 류형에 속하는 작품들로 흔히 지적되는 작품들은 별로 많지 않다. 흔히 전형적인 친일시라고 지적되는 윤해영(尹海榮)의 《樂土滿洲》4)와 작자미상의 민요인 《滿洲아리랑》, 그리고 최수복의 《滿洲메나리》를 보자.   五色旗 너울너울 樂土滿洲 부른다. 百萬의 拓士들이 너도나도 모였네. 우리는 이 나라의 福을 받은 백성들 希望이 넘치누나 넓은 땅에 사르리.     《樂土滿洲》의 제1련이다. 滿洲건국10주년기념문집 《半島史話와 樂土滿洲》에 처음 발표된 이 시에서 화자는 백만의 재만조선인을 《福을 받은 백성》, 《흙을 맡은 일군》, 《터를 닦는 선구자》라고 자랑스럽게 읊고있다. 특히 《五色旗 너울너울 樂土滿洲》나 《希望이 넘치누나 넓은 땅에 사르리》라는 표현은 괴뢰만주국을 미화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것이다. 만주국 건국리념이 오족협화와 락토만주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확실해진다. 그러나 여기에는 일제를 직접 미화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일제를 미화한것이나 일제의 괴뢰정부인 만주국을 미화한것이나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여기에는 당연히 차이가 있다. 만주국이 백만 척사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뜻도 되겠지만 만주국 강역이라는 이 땅이 희망을 주었다는, 이주민의 삶의 터전에 대한 애착이 보다 중요한 시적인 정서로 드러나기때문이다.   작자미상의 민요 《滿洲아리랑》이나 최수복의 《滿洲메나리》도 비슷한 상황이다. 《滿洲아리랑》의 경우 《젖꿀이 흐른 기름진 땅에/五族의 새 살림 평화롭네》는 만주국을 미화한듯하고 《비였던 곡간에 五穀이 차고/잎담배 주머니에 쇠소리 나네》라는 표현은 아마도 만주국의 현실에서 삶을 영위하는 이주민의 풍족한 모습을 보여준것이여서 현실을 왜곡하고 분식한것이라 할수 있다. 최수복의 《滿洲메나리》의 경우에도 《비개인 하늘에 오색이 영농/거츠른 이 강산에 새봄이 왔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봄마지 나서는 滿洲라네》 등의 표현들이 만주국 치하 이주민의 삶을 분식 미화한것이 분명해보인다.   이런 류형의 시들은 그외에도 더 있다. 기본적으로 만주국의 국체를 옹호하거나 만주국의 현실을 분식, 미화한것으로 요약된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들, 이를테면 현실순응 혹은 비민족적인 시작품들이 출현할수 있었던것일가? 적어도 두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할것이라 여겨진다.   첫째는 장기간에 걸친 일제의 식민주의담론에서 그 원인을 찾을수 있다. 우리의 시들이 제작되였던 1940년대 초반을 기준으로 거슬러올라가면 1910년 한일합방까지 계산해도 벌써 30년의 세월, 일제의 영향이 미치기 시작한 19세기말까지 계산하면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일제의 식민주의담론이 우리 민족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할수 있다. 그때까지도 항일투쟁이 계속되였으므로 전부는 아니더라도 우리 민족의 상당수가 2세대에 걸치는 일제 식민주의담론의 영향을 입으면서 점차 일제의 공모자가 되여갔던것이다. 즉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일제의 식민주의담론이 몸에 배이게 되였다는 말이 된다.   둘째는 정체성의 변화이다. 우리 이주민들은 만주국 강역내에 생존하면서 점차 조선본토의 조선인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였던것이다. 조선본토의 조선인과 스스로를 구분하고자 하는 정체성 확인의 욕구가 이들 시인들로 하여금 만주국의 현실을 분식하고 미화하는 우를 범하게 하였던것은 아닐가 한다.   4. 주제의식과 형식적 특징     이민지의 서정과 고국에 대한 향수, 암울한 현실에의 대응, 그리고 그러한 대응의 또다른 방식이라 할수 있는 초현실주의의 실험, 현실도피와 현실순응의 문제 등의 측면에서 《만선일보》시기 즉 해방전 우리 시의 전성기 시문학특징들을 살펴보았다.   우리 시인들은 이주민의 정체성의 문제에 대해 상당히 주목했던것으로 보여진다. 이민지의 현실과 이주 및 정착과정의 고난, 정착하고난후의 고향상실감과 짙은 향수 등이 시작품에 자주 등장하는것은 바로 이주민으로서, 이민시인으로서 정체성 확인의 한 징표로 리해된다. 단군의 후예로서의 민족적 정체성과 만주국 국민이라는 국민적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 이주민들은 항상 그러한 이중적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시달려야 했던것이다.   한편 해방전 우리 시는 일제말의 암흑기라고 하는 암담한 사회적 현실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뢰만주국의 정치적인 지향성때문에 그러한 암담한 현실을 그대로 표현할수 있는것도 아니였다. 그래서 우리 시인들은 현실의 모순에 직설적으로 저항할수 없는 상황에서 어두움, 차가움, 서러움, 괴로움 등의 이미지와 여러가지 상징적인 기법들을 동원하여 현실에 대한 부정을 나타냈고 그런 방식으로 소극적으로나마 현실에 저항하고자 했다. 그것도 어렵게 되자 초현실주의라는 서방의 문예사조를 받아들여 파괴적인 이미지들을 난해한 결합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표현하고자 했다. 조선문단에서는 20년대말에 등장하여 30년초반에 큰 성과없이 흐지부지해진 초현실주의의 실험이 40년대초반의 중국의 조선족문단에서 부활하고 한때 강한 세를 이룰수 있었던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현실적 상황과 그에 대한 지성인들의 시적인 대응의 결과였다고 할수 있다.   물론 현실에 대한 저항적대응을 삼가고 사회정치적인 문제와는 무관한 전원에의 지향성을 보여준 작품들도 일부 존재한다. 이들 작품은 상당정도 현실도피의 성격을 띠며 정신적인 타락의 정서마저 로출시키고있다. 이에서 더 진일보하여 심지어 현실을 미화하고 괴뢰만주국의 리념에 동조하는 작품마저 가끔 눈에 뜨인다. 그렇다고 이런 작품들을 친일작품이라고 보는것은 적절하지 않은것 같다. 만주국이 일제에 의해 조작된 괴뢰정부인것은 사실이지만 일부 이주민시인들이 만주국의 리념에 순응 혹은 동조한것은 일제에 대한 용납과는 차이가 나기때문이다. 물론 이런 현실미화나 만주국리념에의 동조가 야기된것은 장기간에 걸친 일제의 식민주의담론의 영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것 또한 사실이다. 한편, 이주민시인들이 일부 현실미화나 만주국리념에 동조하는 작품들을 제작한데는 정체성의 변화와도 깊은 련관성을 가진다. 이주민들의 이중적정체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앞부분에서 루루히 지적한바 있거니와 좋든 궂든 이제 우리 이주민은 만주국의 국민이 되였으며 따라서 이민지에서 끝까지 생존해가기 위해서는 현실에 순응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고초가 있었던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력사적인 불가피성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항일유격군들이 눈보라치는 장백의 밀림속에서 피를 흘리며 일제 및 괴뢰군들과 저항하고있던 현실에서 이러한 순응이나 동조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겠다.   장르적측면에서 이 시기 시문학유산들을 살펴보면 신시운동이래 점차 형성된 자유시 전통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러나 전통지향적성향이나 실험적성향을 무시할 수는 절대 없다. 이국타향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 한다는 이주민들의 생존환경을 감안하면 전통지향적성향이 끈질기게 이어져온 원인을 짐작할수가 있고 본토에서 여러 민족매체가 강제폐간되던 시기에 건너간 문인들의 경우 탈이념화의 순수서정을 표방한채 형태마저 비교적 짙은 실험성을 드러내였던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전통지향적성향을 드러내는 부류의 작품들은 시조와 민요를 들수 있다. 이런 부류의 작품들로부터 조선족 이민시인들이 보여준 전통시가 수용의 시각이 명백히 드러난다. 즉 조선본토에서는 전통지향적성향과 실험적성향이 대립되고, 김동환의 경우 민요시형을 7·5조나 4·4조 같은 평이한것을 답습하는것이 좋다5)고 하여 전통에 대한 복귀의 의지를 강하게 지니고있었던데 비해 비록 그보다는 썩 나중의 일이긴 하나 조선족 이민시인들은 민요조의 시가 아니라 아예 민요자체의 창작을 특별히 중요시했던것 같다. 신춘문예모집요강에 민요가 한 장르로 나와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사실을 뒤받침해준다.   실험적성향을 보여준 작품들은 여러 형태가 발견되지만 가장 전형적인것은 기법상의 실험이다. 《시현실》동인들을 중심으로 한 초현실주의 기법에 대한 실험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수 있다.   주제의식의 측면에서나 장르적측면 혹은 형식적측면에서나 우리 시인들이 지향했던것은 민족성의 보존이였다고 할수 있다. 여기에는 남의 나라 땅에 정착해산다는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자각이 한몫을 한것이지만 렬악한 문화환경에서지만 오히려 조선 본토의 시인들보다도 민족성 보존을 위해 더 많은 고민을 했던 조선족시인들의 노력은 반드시 인정해야 할것이다. 그러한 전통이 오늘날까지 연장되여 우리 조선족문학의 민족적개성이 존재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자긍심마저 든다.     덧붙이는 글:     을 6회에 걸쳐 연재하였습니다. 긴 논문을 읽어주신 분들께 경의를 드립니다. 그리고 관심 있으신 분들께서는 좋은 의견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 분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다음에는 이라는 논문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역시 긴 논문이어서 5-6회 정도에 걸쳐 연재할 생각이오니 관심 있으신 분들께서는 기대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좋은 지적도 미리 부탁합니다.                                                                              장춘식 [출처] 일제강점기 조선족 시문학의 갈래와 특징(6)|작성자 반벽거사
712    ...이어서 댓글:  조회:4769  추천:0  2015-09-17
    3) 초현실주의와 《시현실》동인의 시     모더니즘시의 의미   현실대응의 한 방법론적인 모색으로 모더니즘시 창작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모더니즘시의 특징들은 여러가지가 있을수 있으나 가장 쉽게 다가오는 특징은 아무래도 난해성이라 해야 할것이다. 전통적인 시의 감상방법으로는 도저히 리해가 불가능하기때문에 흔히 《몽롱시》라 불리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사실상 앞항에서 살펴본 작품들도 일부 난해성을 동반하고있다. 난해성은 결국 전통적인 시작방법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쉽게 받아들일수 있는 시의 개념을 깨뜨림으로써 느껴지는 낯설음이다. 그러한 깨뜨림의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을수 있다. 상징주의나 인상주의, 이미지즘, 그리고 초현실주의 등이 그것인데 초현실주의 시작품에 이르면 전통적인 감상방법으로는 거의 의미파악이 불가능할 정도로 시가 난해하다. 이에 비하면 앞항에서 살펴본 시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시작방법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있다 하겠다.   이번항에서는 그에서 좀더 진일보한, 모더니즘적인 요소들이 좀더 많이 가미된 작품들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먼저 함형수(咸亨洙)의 《家族》1)의 경우 어머니와 누이, 동생의 각이한 모습들, 그들의 관심과 희노애락을 그리고있음은 분명한데 도대체가 상호간의 련관성은 찾아낼수가 없다. 그리고 특히 《휘황한 電燈밑에서 누이는 밤마다/붉은알 푸른알 힌알 노-란알을 굴리느라고 눈길이 異常하여졌다/오늘 누이는 大理石 돌층계에서/競走練習을 한다/돌층계 밑에 떠러저있는/찢어진 찬송가와 때묻은 항케치》라는 누이의 행위와 련관되는 이미지는 그것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분명치 않다. 전체가 은유로 되여있기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작품의 의미를 우리는 대개 짐작은 한다. 《가족》이라는 표제가 그런 짐작을 가능케 한다. 어머니와 누이와 동생과 나로 구성된 한 가족의 삶의 양상이 이 《가족》이라는 하나의 키워드에 얽혀서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기때문이다. 이 시인의 또다른 작품인 《개아미와 같이》2)도 비슷한 경우지만 그 의미는 더욱 아리숭하다.   개아미들이 몬지길을 기어가는 것처럼 뜨거운 거리의 애스팔트우에 사람은 넘처났으나 白紙의 한울에 太陽은 한개의 붉은 쇳덩어리처럼 空然하다. 악착한 市場과 大學室의 試驗管에 어두운 밤은 찾어와 제各各의 內部에서 理論과 苦痛이 달렀다. 개꼬리와 쥐꼬리의 差異만치 一定한 法律과 一定한 流行은 一定한 生活에 象徵되고, 사람은 사람이오 憂鬱은 憂鬱에 不過한것이냐? 나무 풀은 쓸데없이 자라고, 시럽시 아이들은 울고, 女子는 帽子를 男子는 신짝을 찾고, 두터운 傳統의 眼鏡속으로 아버지는 조으럼오는 忠告를 느러놓을게다.     이 시에서 현실은, 혹은 현실의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냥 하나 혹은 여러 개의 현상에 불과하다. 화자의 시선도 무덤덤하며 거의 정감이 배제된것처럼 보인다. 《뜨거운 거리의 애스팔트우에 사람은 넘처났으나/白紙의 한울에 太陽은 한개의 붉은 쇳덩어리처럼 空然하다.》 하늘은 백지같고 태양은 붉은 쇠덩이같으니 공연(空然)할수밖에 없다. 꽉 차있으면서도 텅 비여있다는 표현이 되겠는데 이것 자체가 곧 역설이 된다. 악착같이 푼전을 다투는 시장의 흥정이나 대학교 실험실의 시험관이나 인간사회의 구석구석에는 각자 나름대로의 이치와 고통과 같은 삶이 진행되고있으나 그들 각자 사이에는 무슨 련관이 없는듯이 보인다. 《사람은 사람이오 憂鬱은 憂鬱에 不過한것이냐?》 라는 회의의 질문은 바로 그래서 강한 울림을 동반할것이다. 그러나 결국 나무나 풀과 같은 미물의 생장도 그냥 무의미하며 아이나 어른, 아버지의 충고마저도 부질없는 일이라고 했다. 인생무위의 인식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제 다시 이 시의 첫행에 돌아가보면 작품에서 렬거한 현실이나 현실의 삶 모두가 《개아미들이 몬지길을 기어가는 것처럼》 무의미하다는 화자의 인식을 리해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정말 현실이나 현실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한것은 아닌것 같다. 《사람은 사람이오 憂鬱은 憂鬱에 不過한것이냐?》라는 반문때문이다. 즉 화자는 현실을 무의미하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달갑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것이다. 그래서 현실이 무의미하다고 한 표현들은 역설이 된다. 현실이나 현실의 삶이 원래 무의미한것은 아니며 그것이 무의미해진데는 뭔가 원인이 있다는 의식이 바탕에 깔려있는것이다. 그 원인에 대한 불만의 정서가 이 작품에는 흐르고있다 하겠다.   상기 함형수의 시들도 난해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해석은 가능하다. 그에 비하면 김조규(金朝奎)의 《少年一代記》3)는 거의 해석이 불가능하다. 이 작품은 《墓碑銘의 一節》과 《少年의 遺稿日記의 一節》 두 소제목으로 나뉘어졌는데 긴 시여서 두번째 장이라 할수 있는 《少年의 遺稿日記의 一節》 부분만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少年의 遺稿日記의 一節    悔恨의 倫理는 必要업다. 나는 나의 房과 나의 壁과 나의 空氣가 무섭다   내가 엇지 못하는것은 花辨의 빗갈과 林檎의 味覺이다 少年의 喪輿는 늣가을 찬바람에 饌送되어 黃昏속에 잠기엇고 少年의 무덤압헤는 女人의 恥毛로 包裝한 林檎 한알을 고여노앗다. 女人은  한포기 고이지 안헛고 뭇俗物들의 무덤과 무덤새에 홀로 하이얀 墓碑만이 지터가는 黃昏 黃昏을 지키고잇섯다.    高邁한 精神少年의 殉死之地     도무지 해석이 불가능하다. 이럴 때 요긴하게 리용할수 있는 리해의 방법이 있다. 이미지의 분석이다. 이 작품에서 주목되는 이미지는 다음과 같은것이 되겠다. 《무섭다》《喪輿》《늣가을 찬바람》《黃昏》《무덤》《女人의 恥毛》《林檎》《墓碑》《殉死》…모두가 죽음과 어둠, 성(性)과 관련되는 이미지들이다. 여기에 인용하지 않은 첫번째 장의 이미지들, 가령 《로-마 廢墟의 風化헌 記憶》《가마귀의 豫告》《氷雨가 車窓을 두드리든 黃昏》《쥐새기의 搖籃인 女人의 불근 寢室》《가마귀의 華麗한 分列》《도마도와 갓튼 불근 피덩이를 吐하면서 운명할 》《허이연 한울이 문허지고》《地下室의 饗宴》《점잔은 殺戮》 등을 련결시켜보면 그러한 암울함의 정서는 보다 강하게 다가온다. 따라서 모더니즘시운동을 감정 및 의식의 퇴폐화와 관련시키는 주장은 일부 합리적인 면을 가지기도 한다 하겠다.     《시현실(詩現實)》동인과 그 주변   상기 김조규의 작품에서도 더러 초현실주의적인 요소들이 엿보이지만 아직은 상징과 은유, 이미지의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시현실》동인들의 초현실주의 실험은 그래서 한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시대적으로 이 시기는 조선 본토에서 민족문학이 거의 완전히 말살되면서 황민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발동하고 대동아 공영을 부르짖던 이른바 암흑기에 속한다. 따라서 조선족 이주민들의 문화환경도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나마 남아 있은 《만선일보》라는 발표 지면에서마저도 일제에의 동조를 강요받았고, 이제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이나 표현마저도 자유롭지 못하게 되였다. 이런 상황에서 모더니즘의 표방은 어쩌면 암묵적인 저항의지의 표현으로 볼수도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다음으로 민족 시사적인 맥락에서 30년대 리상(李箱)에서 중단되였던 모더니즘의 실험이 40년대 초반에 다시 맥을 이었다는 의미에서 그 중요성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시현실》 동인의 작품 1은 리수형(李琇馨)과 신동철(申東哲)의 공동작인 《생활의 시가(市街)》4)이다.     밤의 피부 속에는 夜光筮의 神話가 피어난다   밤의 피부속에서 銀河가 發狂한다   發狂하는 銀河엔 白裝甲의 아츰의 呼吸이 亂舞한다   時間업는 時計는 모-든 現象의 生殖術을 구경한다   그럼으로   白裝甲의 이마에는 毒나븨가 안자   永遠한 午前을 遊戱한다   遊戱의 遊戱는   花粉의 倫理도 아닌   白晝의 太陽도 아닌   시커먼 새하얀 그것도 아닌   眞空의 液體 엿으나 液體도 아니엿다   자- 그러면 出發하자   許可된 現實의 眞空의 內臟에서   시커먼 그리고 새하얀 그것도아닌   聖母마리아의 微笑의 市場으로 가자   聖母마리아의 市場엔   白裝甲의 秩序가 市街에서 퍼덕일뿐이엿다     《생활의 시가》의 전문인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는 일차적으로 이 작품이 당시 조선족문단에서 일반적으로 대할수 있었던 여타의 시작품과는 뚜렷한 구별을 보이고있음을 발견할수 있을것이다. 그 구별을 일단 (1) 현실적인 론리성의 파괴, (2) 사유의 순수한 자동기술성, (3) 이미지의 격리성과 기이성, (4) 신비적, 광란적 수법 등으로 나눠볼수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을 보여주는 시작품의 경향을 우리는 초현실주의라 볼수 있지 않을가 한다.   조선현대문학사에서 초현실주의의 수용양상은 1920년대 말부터 나타나며 초기에는 프랑스문단에서의 초현실주의 류파에 대한 소개로부터 시작되였다가 30년대에 들어서면서 리상(李箱), 김기림(金起林), 정지용(鄭芝溶), 장서언, 그리고 《삼사문학(三四文學)》의 동인인 리시우(李時雨), 신백수(申白秀), 한천(韓泉) 등의 작품으로 실천되며, 결국 리상의 작품을 정점으로 문단에서 사라졌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5) 그러나 1940년대에 동북지역 조선이주민 문단을 중심으로 초현실주의 순수시파가 일어나고있었음은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정작 이 시기 조선문단에는 보국주의라고 불린 친일문학만이 존재하던 시기에 말이다.   한편, 극언(克彦)이라는 필명을 쓴 사람은 《熾烈한 精神의 燃燒》라는 평문 5회 련재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호소하고있다.     現代性이란 現代의 文化創造力이 傳統과 蓄積에서 한 그것에 重壓當할 에 비로소 나타나는것이다. 그러타고 곳 모-든 詩人들이 푸-쉬킨의 詩精神을 體得하라는 注文은 아니다. 한 時代의 過渡되는 苦惱와 混亂에 否定이면 否定, 肯定이면 肯定의 深化된 意(識?)을 불태우라는것이다. 한 時代가 絶望할제 다음 時代는 삿삿치 헷처진 絶望의 深淵에서 建設과 前進의 烽火를 들고 뒤이어 올것을 우리가 밋을  모름직이 불길을 우리는 남겨야 할것이다. 그러기엔 詩人은 熾烈한 精神을 燃燒해야 하는것이다.   그러치 못한    諸君들은 稅關의 눈을 속이는 文化的密輸入者의 工人이 되고말 危險性을 가지는것이다.   自重합시다. 나도 自重하기 爲해 이 學說을 깊이 謝過하니 容恕하시요.6)     지금까지 발굴된 자료에 의하면 극언이라는 이름으로 《만선일보》에 발표된 작품은 2편인데, 상기 인용문의 글 외에 《돌》7)이라는 시 한편이 있을뿐이다. 그러나 이런 훈계조로 한 그룹 동인들의 시작활동을 평가한것으로 보아 신인은 아닌듯하며 그렇다면 당시 소위 《문화부대》로 들어온 조선의 어떤 기성문인의 필명일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평문 전편을 보면 다분히 체제영합적인 태도를 보이고있다. 비록 《부정이면 부정 긍정이면 긍정의 심화된 의식을 불태우라》고 표현하였지만 오족협화(五族協和)에 대등아공영을 웨치며 전시체제에 막 돌입하려고 하였던 당시 만주의 환경에서 현실을 부정한다는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였으므로 사실상 긍정의 의식을 불태우라는것이나 다를바 없는것이다. 그러니까 극언의 훈계는 《시현실》동인들의 작품이 당대의 현실을 너무 의식하지 않은데 대한 경고로 보인다. 1940년의 8월이 어떠한 시대인데 서양 나라 문학의 흉내나 내고있느냐는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이들 《시현실》동인들의 시작실험이 현실에 대한 불협화음을 동반하고있으며 심지어 저항적인 의미마저 내포하고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시현실》동인의 초현실주의 작품들로는 리수형(李琇馨)·신동철(申東哲)의 《生活의 市街》, 김북원(金北原)의 《椅子》8), 강욱(姜旭)의 《樂譜를 가젓다》9), 리수형의 《娼婦의 運命的海洋圖》10), 김북원의 《비들기 날으다》11), 신동철의 《능금과 飛行機》12) 등 6편으로 6회에 걸쳐 《만선일보》지에 발표되였고, 동인으로는 리수형, 신동철, 김북원, 강욱 등 4명이 여기에 묶여있다.   물론 류사경향을 보인 S. S. Y13), 송석영, 천청송(千靑松), 정야야(鄭野野), 함형수(咸亨洙) 등 5명을 포함해보아야 총 9명 시인에 12편의 작품이 전부여서, 량적으로는 빈약하다 할수 있고, 그중 다수는 조선본토문단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이다. 그러나 초현실주의문학에 관한한 문제는 달라진다. 순수문학중에서도 《정신의 폭발》로 압축되는 이 문예사조가 조선시가에서 하나의 성과로 평가되는것은 리상 정도이기때문이다. 더구나 1940년 8월의 만주는 일제의 대륙침략전쟁의 일차적 후방이였고, 따라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제의 강압적, 혹은 포용적 책략에 시달리다못해 변절하고 투항했던 당시 조선족문단에서14) 《시현실》동인들이 이런 시대적상황, 달라진 천지, 대동아공영의 신풍토에서 눈을 딱 거두고있는것은 이변이 아닐수가 없는것이다.   이수형의 《娼婦의 運命的 海洋圖》를 보자.     一萬系列의 齒科術時代는 밤의 海洋에서 섬의 하-모니카를 분다   一萬系列의 化粧術時代는 空港의 層階에서 근 추-립푸 저녁을 심포니한다 記念日 記念日의 추립푸는 送葬曲에 핀 紙花엿다   明日의 손락을 算術하는 츈-립푸는 머-ㄴ 푸디스코 압페   오르는 오르는 비누방울의 夜會服 記念日記念日의 幸福을 約束한 肉體의 女人이 雙頭의 假面을장식하는 날 七色의 슈미-즈가 孔雀의 미소를 워 나의 海洋의 蜃氣樓를 러 왓다   記念日 記念日 너의 장식에   너의 그 洋초와 갓튼 蒼白한 얼골에 너의 그 바다와 가튼 神話를 들여주는 눈동자에   나의 椅子는 溺流되엿다   나의 椅子는 溺流되엿다   그러나 娼婦는 울고만 잇엇다   肉體의 女人은 장식의 歷史가 슬펏다   假面의 女史는 살아잇는것이 슬펏다 雙頭의 怪物은 왜 울엇을?   明日을  장식하여야 할 運命을   明日도 그 다음날도 살아야 할것을   女人아 假面아 深夜의 어린애야   現實에 規約된 誠實보담도 阿片보담도 술보담도 밤의 秘密보담도 외健康術을 사랑한다     이 시는 서정시의 일반적 독법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문맥이 비론리적이고 내포가 복잡하기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대로 막연하기만 한것도 아니다. 우선 제목에서 무엇인가 시사되고있다. 《娼婦의 運命的海洋圖》. 다시 말하면 창부의 운명과 해양도가 관련이 되고있다는 얘기인데, 전체적으로 이 작품의 분위기는 암울하고 절망적이다. 그 절망감과 암울한 분위기를 형성한 이미지들을 추출해보면, 《밤의 海洋》《送葬曲에 핀 紙花》《海洋의 蜃氣樓를 러 왓다》《洋초와 갓튼 蒼白한 얼골》《나의 椅子는 溺流되엿다》《娼婦는 울고만 잇엇다》《장식의 歷史가 슬펏다》《살아잇는것이 슬펏다》《雙頭의 怪物》《現實에 規約된 誠實》《阿片》《술》《밤의 秘密》 등으로 되는데, 대체로 암흑과 타락과 슬픔으로 요약할수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들 자체도 암울하고 절망적이지만 이러한 이미지들을 《娼婦의 運命》과 련계시킬 때 그 암울함과 절망감은 배가된다. 이 작품의 시적 자아는 창부라 볼수 있는데, 창부란 말은 그 생존양태상 밤의 이미지와 련결되며 시인은 이런 이미지를 다시 죽음, 소멸, 사라짐의 이미지와 련결시키고있다. 그리고 시의 후반부는 《溺流되엿다》《울고만 잇엇다》《슬펏다》와 같은 소멸적 혹은 절망적내포의 서술어로 끝나고있다. 그렇다면 이 시는 사실상 형식에만 집착한 무의미의 시는 아닌셈이다. 상식적인 론리를 초월한 자동기술에 의하여 기존의 시적흐름을 파괴시키고있고 그래서 기존의 시읽기 방법으로 해석이 어려워졌을뿐이다.   자동기술법은 초현실주의 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법중의 하나이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상태에서의 자유련상을 시작과정에 리용하고있다고 보면 된다. 《발광하는 은하엔 백장갑의 아츰의 호흡이 난무한다》(《生活의 市街》)나 《포푸라 가지에 가벼웁게 바다가 넘친다》(《樂譜를 가젓다》), 《푸른 口腔속에 여러 비행기들이 몰려든다》(《능금과 飛行機》), 《안즈면 그대요 나인/굼실거리는 바다》(《椅子》) 등의 표현은 그 개념들사이에 필연적인 련계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다만 서로 이질적인 이미지가 병치되여 그 상호 충돌에 의해 돌발적인 의미의 충격이 일어나고 동시에 낯선 긴장감을 동반한 매력이 있을뿐이다. 이 충격, 이 매력이 바로 초현실주의 시인들이 노리는 인간 감성의 발굴이라 할수 있을것이다. 문학의 진정한 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이러한 인간 감성의 발굴에서 기인된다. 비록 이런 이미지들의 다발에서 우리는 실리적인 의미를 추출해내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시인이란 현실을 살아가는 력사적인 인간이므로 시인이 가지고있던 감정과 정서, 념원과 리상, 사랑과 증오 등의 감정은 무의식적인 상태에서도 드러나게 마련이며 어쩌면 이러한 무의식 상태에서 보다 진실하고 적라라하게 드러날지도 모른다. 이점은 인간의 사상의 진실이 꿈속에서 가장 확실하게 표현된다는 정신분석학의 리론으로도 해석이 가능한것이다. 우리가 이들 《시현실》동인들의 초현실주의 시작품에서 비록 론리적으로는 분명한 의미를 추출해낼 수 없으나 《어둠》이라든가, 《파멸》, 《상실》, 《복수》 따위 불만의 정서를 읽을수, 혹은 느낄수 있는것은 바로 이런 원인에서가 아닐가 한다.   《 同人集》에 묶여 발표된 작품은 아니지만 이수형의 《白卵의 水仙花》15), 金北原의 《胎動》16), S. S. Y의 《氣焰》17), 송석영의 《詩人》18), 千靑松의 《愚感錄》19), 鄭野野의 《거리의 碑文》20), 咸亨洙의 《正午의 모-랄》21) 등 《滿鮮日報》에 발표된 다른 작품도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있다. 동인이라는 개념이 가지는 성격으로 보아도 그렇지만 그 주변에 류사한 문학적경향을 가진 시인들이 비슷한 경향의 작품을 발표했다는것은 초현실주의 실험이 하나의 류파를 형성하고있음을 의미한다. 또 하나 흥미있는것은 이와 같은 초현실주의 성격의 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하여 3개월여만에 《시현실》동인이라는 그룹이 출현하여 동인특집을 련재한 점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만선일보》를 통한 초현실주의 시작실험이 일정기간 진행되여오다가 그것이 무르익으면서 동인그룹이 형성되였고 본격적인 동인활동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다른 측면에서 초현실주의 문학류파의 존재를 확인시키는셈이 된다. 그만큼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띤다 하겠다.   이런 사실을 진일보 확인하기 위하여 정야야(鄭野野)의 《거리의 碑文》를 더 제시한다.     大理石 딍에   神話가 油液처럼 흐르는 밤.   女人은 二十世紀의 傳說을   聖母처럼 受精한다.   明體의 彈力의 플니는 花房   閱華의 燭臺압헤는   獨生子의 來世를 비는 一族의   白金義齒로 별을 는 饗宴을 연다.   秘閱의 振律하는 한나지면   獨生子는 呪文을 流行歌처럼 부른다.   交叉點에는 礫死의 事故가 이럿다.   《靑進赤地(止)》 信號는 번가러 든다.   昇天하는 獨生子는 二萬七千群이 氣流를 헤간다   花房의 女人은 傳說을 다시 受精한다.     전형적인 초현실주의 시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초현실주의 실험시들이 추구하는 요소들은 두루 갖추고있다. 이미지들사이의 론리적인 련결성의 부재, 자유련상으로만 가능한 《정신의 폭발》 등이 그것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암울한 분위기 역시 초현실주의 시들과 류사하다. 따라서 정확한 의미파악은 불가능할뿐만아니라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다만 《거리의 碑文》이라는 표제를 키워드로 하여 시 전체적으로 풍기는 정서 혹은 분위기를 느낄수 있을따름이다. 여타의 류사 작품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 작품의 경우와 비슷하다. 1940년 당시 조선족문단에서 초현실주의 실험이 차지하는 문단적 영향력을 짐작할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와 같이 《시현실》동인들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초현실주의시의 실험운동은 그 기법 실천이라는 의미에서 뿐만이 아니라 1940년 일제의 발악적인 식민통치라는 최악의 환경에서 조선족 이민시인들이 민족의 지성인들로서 자신의 정서를 문학적으로 표현할수 있는 장치로서 상당히 효과적이였고 따라서 긍정적이였다 하겠다. 앞에서 제시한 극언의 평문은 오히려 반면적으로 이들 《시현실》동인들의 시작품의 적극적인 의의를 파악하게 하는 글이 될수도 있다.   [출처] 일제강점기 조선족 시문학의 갈래와 특징(5)|작성자 반벽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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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암울한 현실에의 대응     일제강점기 괴뢰만주국이라는 강역(疆域)내에서 생활해야 했던 우리 이주민에게 있어 현실은 암울했다. 이런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을줄 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암울한 현실을 느끼고 인식한대로 표현할수 없는 일제 괴뢰정부치하라는 정치적환경이다. 즉 우리의 문학풍토가 현실에 대한 시인들의 느낌이나 인식을 직설적으로 표현할수 있는 자유를 박탈했던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인들은 그러한 모순된 현실을 어떤 시적인 수단 혹은 방법으로 대응했을가?   먼저 함형수(咸亨洙)의 《비애(悲哀)》1)라는 작품을 보자.   나는 이 괴로운 地上에서 살기만은 조곰도 希望치는 안는다 어한 달가운 幸福과 快樂이 나를 부고 노치안는다 해도 그러나 나는 저 아득한 한눌을 치어다 볼 마음은 슬퍼지고 외로움으로 눈물이 작고 난다 저 나라에서도 나는  여기서처럼 이러케 孤獨할바     여기서 화자는 천상과 지상을 두개의 세계로 갈라놓고있다. 그런데 화자는 첫 두행에서 지상의 괴로운 삶을 조금도 희망치 않는다고 하면서도 천상의 세계에 가기를 두려워한다. 천상의 세계 또한 지상의 세계처럼 고독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때문이다. 또한 지상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달가운 행복이나 쾌락이 붓잡고 놓지 않는다 해도 미련은 조금도 없다고 했다. 왜서 그런지를 확대해석하지 않더라도 이는 현실에 대한 분명한 부정이다.   채정린(蔡禎麟)의 《밤》2)에서도 현실은 밤과 같은 두려움의 이미지이다. 특히 《나도 내가 업시 낫선 곳에/어디서 흉한 우슴이 히히 우슴인가.》라는 표현은 소름이 끼치는 섬찟한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마지막 행의 《허이연 이마는 별처럼 추웁다》는 밤이라는 어두움과 두려움의 이미지에 대응되여 차가움의 이미지를 드러냄으로써 역시 현실을 어둠과 두려움, 그리고 차가움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써 인식한다.   손소희(孫素熙)의 《어둠속에서》3)를 보면 제목부터 암울한 이미지이다. 그리고 《맥진한듯이 식컴언 밤 석냥 좀 주어라고 불숙 내미는 손/그 검은 얼골에 힌 잇발이 河馬와 같고》라는 싯구로 시작된다. 《식컴언 밤》, 《검은 얼골》 등 표현들에서 볼수 있는바와 같이 기본적인 이미지 또한 《암흑》이다. 석냥을 구걸하는 손은 물론 빛에 대한 갈구를 암시하겠지만 그렇게 빛을 갈구하는 손은 기진맥진한 걸인의 손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모습은 단순한 걸인이 아니라 귀기(鬼氣)가 음산한 광인의 이미지에 가깝다. 다음의 시구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蒼空을 向해/별빛의 우름을 엿듯는 눈물의 女人아/내가 怪物이면 너는 妖魔와 같다.》에서 이점은 쉽게 확인할수가 있다. 거기다가 《우슴 이리 흉측한 눈쌀》, 《깊은 골에서 키- 키- 하는 우슴소리》도 이점을 확인시켜준다. 그런데 화자에 의해 그려진 녀인과 화자 자신은 요마(妖魔) 대 괴물(怪物)로 광인중에서도 광인이다. 그리고 마지막 3행의 《主여 이건 당신의 音聲임니가 그 무서운 魔像의 嘲弄입니가?/아모튼 中毒이 너무 甚하외다./노래를 잊었구 우슴을 잃은지 벌서 오랜데!》 라는 표현은 암흑속에서 분출해낸 절규요 분노라 할수 있다. 전편이 암울한 이미지들로 넘쳐나지만 요마, 괴물 등의 표현들에서, 그리고 광기어린 웃음의 표현에서 아직은 그러한 암울함에 완전히 추락하지는 않은, 어떤 분노를 보여줌으로써 생명의 존재를 확인시키고있다.   그러한 현실의 삶에 대한 분노는 동시에 저항의 심리를 동반한다. 그래서 분노는 어둠이나 차가움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보다는 한차원 높다고 할수 있다. 류치환의 《怒한 山》4)은 그러한 분노를 울분으로 풀어낸다.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저항하고자 하는지를 분명히 밝히지는 않고있으나 이 작품의 화자는 어딘가에 울분을 토한다. 어쩌면 하늘과 산의 대결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그 하늘(寒天)과 그 산은 그냥 하늘과 산이 아니라 화자의 심상이 부여된 하늘이요 산이다. 그것을 우리는 《사람들은 다투어 貪람하기에 餘念없고》라는 표현에서 조금은 감을 잡을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늘도 노한 모습이다. 《陰寒히 雪意를 품》었다고 한것은 그런 하늘을 우러러 증오하는 사람에 대한 일종의 분노를 잉태한것이라 할수 있기때문이다. 그리고 화자는 산더러 더 높이 노하여 그러한 한천에 굽어들지 말라고 호소한다. 결국 화자 자신이 음한히 설의를 품은 하늘보다도, 그에 굽어들지 않고 분노하는 산보다도 더 울분에 차있음을 드러낸것이 아닐가 한다. 《神도 怒하시기를 그만두섰나니》나 《地獄의 惡靈같은 주린 그림자를 끌고/因果인양 피의 復讐를 헤이는/아아 너 이 슬픈 陰樹.》라는 류치환의 또다른 시 《陰獸》5)의 표현에서 이점은 좀더 뚜렷해지는것이다.   그러나 류치환에게 있어 그러한 울분이나 분노는 메아리도 없이 사라지는 부질없는 웨침만은 아니다. 강한 생명의 욕구가 내재해있다. 《生命의 書》6)에서 류치환은 그러한 생명력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리고 왜 분노하는지를 은근히 내비친다.   뻐치뻐치 亞細亞의 巨大한 地檗 알타이의 氣脈이 드디어 나의 故鄕의 조고마한 고흔 丘陵에 다었음과 같이 내 오늘 나의 핏대속에 脈脈히 줄기 흐른 저- 未開쩍 種族의 鬱蒼한 性格을 깨닷노니 人語鳥 우는 原始林의 안개 깊은 雄渾한 아침을 헤치고 털 깊은 나의 祖上이 그 廣漠한 鬪爭의 生活을 草創한 以來 敗殘은 오직 罪惡이었도다-. 내 오늘 人智의 蓄積한 文明의 어지러운 康昧에 서건대 오히려 未開人의 朦衡(?)와도 같은 勃勃한 生命의 몸부림이여 머리를 들어 우르르면 光明에 漂渺한 樹木우엔 한點 白雲! 내 절로 삶의 喜悅에 가만히 휘파람 불며 다음의 滿滿한 鬪志를 준비하여섰나니 행여 어느때 悔恨없는 나의 精悍한 피가 그 옛날 果敢한 種族의 野性을 본받어서 屍體로 업드린 나의 尺土를 새밝앟게 물드릴지라도 아아 해바라기같은 太陽이여 나의 좋은 怨讐와 大地우에 더 한층 强烈히 빛날지니라.     《生命의 書》 전문이다. 울분에 넘치는 생명의 원천을 화자는 알타이산맥과 닿아있는 종족의 피줄에서 찾는다. 《저- 未開쩍 種族의 鬱蒼한 性格》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말이 알타이어계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개 알고있는데, 그렇다면 인종도 알타이산에 뿌리를 두고있다고 볼수 있는것이다. 미개적 종족의 생명력은 패배를 모르며 오히려 패잔은 죄악이였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내 오늘 人智의 蓄積한 文明의 어지러운 康昧에 서건대/오히려 未開人의 朦衡(?)와도 같은 勃勃한 生命의 몸부림이여》 라는 두 구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인간의 지혜에 의해 축적된 현대의 문명은 《어지러운 康昧》인 반면에 미개인의 생명력은 발발하며 몸부림친다. 원시와 현대를 대결시키고있는 형국인데, 여기서 현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글자 그대로 이해한다고 해도 문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문명비판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수 있는데, 일제하의 현대 도시문명이라는 현실적인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문명비판의 의미는 그리 단순치가 않을것이다. 그것을 뒤에 나오는 悔恨없는 자신의 精悍의 피가 그 옛날 종족의 과감한 야성을 본받아서 죽으면서 자신이 없드린 작은 땅을 새빨갛게 물들일지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하는 의지와 련관시켜보면 현실에 대한 저항의 의미는 더욱 강해진다. 물론 그러한 저항을 일제의 식민지통치나 일제에 의해 조작된 괴뢰만주국의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비약하여 인식하기는 어려울것이지만 현실에 대한 부정인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마지막 행인 《나의 좋은 怨讐와 大地우에 더 한층 强烈히 빛날지니라.》에서 그러한 생명욕구와 과감한 야성의 죽음에 대한 환희는 절정을 이룬다. 다시 말하면 암울한 현실에서 시인 류치환이 추구했던것은 미개적 종족의 과감한 야성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본연적인 생명력이였다고 할수 있다.   류치환의 상기 작품에서 문명비판은 인간 지혜의 축적에 의해 이루어진 현대문명과 종족의 과감한 야성 사이의 대결을 통해 이루어짐으로써 작품의 중심은 오히려 미개인의 야성에 대한 지향성에 놓여지지만 조학래의 《街燈》7)에서 현대문명은 현실 부정의 한 상징물로 등장한다.   이 시에서 가등은 일종의 문명의 상징 내지는 징표로 설정된것 같다. 화자는 열두층계 높은 곳에 올라가서 그러한 가등을 내려다본다. 이때 가등은 《까놓은 병아리색기들처럼 조잘》댄다고 했다. 그리고 《…위선 무수한 불빛들이요/그다음에는 사랑이요 춤이요 울음이요 싸흠질이요/하루사리와 모기떼와 빈대와 파리와 심지어 이슬먹음은 뚝거비 노래까지/그 모-든것들이 한시도 쉴새없이 들복는판이다.》 즉 가등이라는 인공의 빛속에서 벌어지고있는 인간들의 행위는 모두 부정적이다. 하루살이나 모기떼, 빈대와 파리 그리고 뚝거비까지 비문명사회에서도 존재하는 부정적인 존재들이 이른바 문명사회의 인간의 행위들과 거의 등가를 이룰 정도로 화자에게 있어 문명인의 행위는 부정적이다. 《내 하는데 네 못하겟니 네가 하는데 내 못하겟니 하면서 들석들석 나는것처럼-.》이라는 표현은 그러한 부정적인 행위들이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서 비롯되였음을 암시한다. 한마디로 조학래에게 있어 문명의 이기에 속하는 가등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인간의 행위는 부정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부정적인 행위를 대신할 어떤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인의 이런 부정은 문명비판이라기보다 오히려 현실에 대한 불만이나 심지어 분노의 표현이라 보는것이 나을것 같다.   이 시인의 다른 작품 《心紋》8)에서는 그러한 불만이나 분노를 역설적인 방법으로 드러낸다. 이 작품의 화자는 심문(心紋) 즉 마음의 무늬 혹은 주름살이다. 확대해석하면 인간의 마음, 의식, 령혼 등이 될것이다. 그런데 이 마음의 무늬가 바람에 불려서 어느 나무가지에 앉고싶다고 했다. 나무가지에 앉아서 비를 맞은 까마귀같이 떨지라도 단지 《落葉만 지지 말었으면 좃켓다》고 한다. 즉 춥고 외롭더라도 락엽만 지지 않으면 된다고 했으니 여기서 락엽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락엽은 나무의 한 주기 생명의 끝을 의미한다. 가을이 되면 다수의 나무는 락엽이 지면서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가 겨울을 지나 다음해 봄이 되면 다시 새잎이 돋아나오고 새움이 트며 여름이 되면 록음이 우거지게 된다. 나무의 무성한 잎이 이루는 록음은 나무에게 있어서 생명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가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락엽이 지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는것은 강한 생명력의 보존을 의미할것이다.   이어서 화자는 락엽만 지지 않는다면, 즉 생명력만 보존한다면 《이 季節으(의) 勝利를 되는대로 宣傳하며/입이 아푸도록 휘파람이라도 불겠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역설보다도 은유에 가깝다. 그러나 다음 시행에서 그것을 부정한다. 승리한 기사의 과장한 심리가 아니여도 좋고 무지한 물체라도 좋다고 한다. 심지어 《光明이 머러지면 그저 검은 存在요/光明이 밀려들면 스산하계 을쓰녕한 動物이라도 무관하다.》고 한다. 그것으로 만족한다는것이다. 이쯤 되면 더러 체념한듯한 느낌도 없지 않다. 그러나 결코 그게 아니다. 다음의 례문은 이 작품의 주제를 도출한 부분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岩石갓튼 運命에 살어왓길내 오늘은 北西風이 불어서 눈보라 처도 來日은 東南風이 불어서 草花가 滿發한대도 나는 놀래지 안흐리라. 놀래지 안흐리라.     이 부분을 읽으면 앞에서 투정같이도, 체념같이도 내뱉은 넋두리가 일종의 역설적인 표현임을 금방 알수가 있다. 좀더 나은것을 추구하려는 욕구를 부정하고 다만 락엽만 지지 않으면 만족한다고 한것은 그만큼 현실의 암담함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마음의 무늬 즉 의식을 소유하고있다는, 혹은 지키겠다는 말이 되는것이다. 부정적인 현실에 저항할 힘은 없지만 그것을 감내할 인내력은 가지고있으며 그렇게 인내할 생명력도 가지고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생명력과 인내의 바탕에는 당연히 현실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저항의 의지가 깔려있을것이다.   현실 부정은 현실 비판과 차이가 있지만 정상적인 언로가 막혀있던 일제강점기에 있어서는 같은 의미로 리해해도 무방할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 시인들은 용인할수 없는 현실의 암흑을 부정함으로써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것이라 하겠다.   이 시기 시인들은 현실을 부정하는 또다른 방법으로 과거에 대한 추억을 즐겨 시화시킨다. 송철리(宋鐵利)의 시적상상력은 그러한 추억에 상당히 익숙해있다. 《追憶》9)이라는 표제의 작품이 대표적인 례가 될것이다.   새하-얀 눈위로 외사슴 울고간 자욱마다 언 달빗치 파라케 멍든다는 밤이면 닥도 업시 나의 추억은 슬픈 부헝새 슬픈 부헝새.     모두 6행으로 된 이 단시의 기본적인 정서는 차가움, 고독, 슬픔이다. 흰눈, 언 달빛, 파랗게 멍든 밤 등의 이미지는 차가움을 의미하는데, 그러한 차가움은 밤이라는 어둠의 이미지와 련결되여있다. 그러니까 차갑고 암울한 밤에 부엉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떠오른것이 추억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그 추억은 행복할수가 없다. 슬픈 추억이다. 그런데 추억 자체가 슬픈것은 결코 아닌것 같다. 시인의 또다른 시작품인 련작시 《爐邊吟》10)의 세번째 작품인 《反芻》에서 그것을 확인할수가 있다. 과거는 석류알같이 붉고 빛난다고 했다. 씹으면 씹을수록 향기롭다고 했다. 그래서 마구에 누워 청초를 모리는 황소처럼 《나는 過去의 反芻로 現在를 享樂》한다고 했다. 과거가 아름답고 향기롭다는것은 현재가 불행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그렇다면 비록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역시 현재에 대한 부정 내지는 현실에 대한 부정의 의미를 다분히 드러낸다. 그러나 이 시인의 다른 시작품인 《북하늘엔 별도나 서글퍼》11)에서는 그러한 부정이 내면으로 침잠하여버린다.   (전략)   옛날은 부서진 기둥인데 추억은 깨여진 란간(欄干)이여서 피무든 손으로 노아도 노아도 오작(烏鵲)의 다리는 허무러만지고   (중략)   북하늘엔 별도나 서글퍼   외로운 이 오들오들 는밤이다.     이 작품의 기본적인 정서는 차가움과 상실감이다. 앞의 《追憶》에서도 이점은 확인되고있다. 단 여기서는 보다 분명하게 드러날뿐이다. 이제 추억은 부서진 옛날이라는 기둥에 붙은 깨여진 란간에 불과하다. 과거의 삶은 그것이 슬픈것이였든 즐거운것이였든 이제 부서지고 해체되여 폐허가 되여버렸다. 따라서 외롭게 꿈꾸고 있는 꿈은 오들오들 떨수밖에 없다. 상실감을 넘어 거의 절망에 가까운 신음소리라 할수 있다.     문학인의 립장에서 보았을 때 일제의 중국 동북강점기간은 현실에 대한 부정이나 비판의 자유를 빼앗긴 시간이였다. 따라서 우리 시인들은 여러가지 시적인 장치를 리용하여 우회적인 방식으로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이나 인식을 표현할수밖에 없었다. 현대문명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한편 그것을 원시적인 삶의 야성과 대립시킴으로써 일종의 울분과 비분강개의 정서를 드러내고있다. 따라서 이 시기 시작품중에서 원시적인 야성을 생명력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환희로 표현한것은 저항적인 의미마저 지닌다고 할수 있다. 현실대응의 또다른 방법은 현실에 대한 암울한 느낌을 시화하는것이였다. 현실적인 삶의 고통을 어두움, 차가움, 외로움, 슬픔 등의 내적인 정서에 담아냄으로써 현실을 부정한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서는 전체적으로 어두움이라는 공간 환경속에서 드러냄으로써 현실 부정의 의미를 극대화하고있다.   그러나 어두움, 외로움, 슬픔 등 소극적인 정서는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느끼는 정신활동의 한 부분이기때문에 그것이 지나치게 반복되고 내면화되면 자페적인 성향을 동반하게 되며 그러한 자페적인 정서는 현실에 대한 부정이 될뿐만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심지어 삶 자체에 대한 부정에 빠질 위험을 안고있다. 따라서 현실에 대한 정서적인 부정은 이제 뒤에서 론의하게 될 현실도피라는 부정적인 시작현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꼭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 하겠다.   [출처] 일제강점기 조선족 시문학의 갈래와 특징(4)|작성자 반벽거사  
710    ...이어서 댓글:  조회:4613  추천:0  2015-09-17
    3. 《만선일보》시기의 시작품     《북향》시기가 막을 내려서부터 몇년후인 《만선일보》시기에 오면 우리 시의 수준은 질적인 변모를 보여준다. 따라서 광복전 우리 시문학의 전성기는 《만선일보》시기라 할수 있다.   《만선일보(滿鮮日報)》시기에는 당연히 《만주시인집(滿洲詩人集)》과 《재만조선시인집(在滿朝鮮詩人集)》에 수록된 시작품들이 포함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두 시선집이 중심이 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현재 발굴된 《만선일보》의 자료가 실제 발행되었던 전체량의 절반도 채 되지 않기때문에 선집의 대표성이 특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선일보》는 1937년 10월 21일 기존의 우리글신문이였던 《간도일보(間島日報)》(1920년대 창간)와 《만몽일보(滿蒙日報)》(1933년 창간)를 통합하여 창간한 신문으로 당시에는 유일하게 존재했던 우리글 신문이였다. 그러나 《일본의 국책적 견지에서 만주국에 있는 조선인의 지도기관》1)으로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그 내용 전부가 일본의 국책에 따른것은 물론 아니였다. 현존하는 자료는 1939년 12월 1일부터 1942년 10월분까지인데 그중에서도 1939년 12월 1일부터 1940년 9월 30일까지만 영인본으로 간행되여있고 나머지는 결호가 많은데다가 마이크로필림형태로 소수의 도서관에 소장되여있다. 따라서 이 신문만을 가지고 이 시기 조선족의 시가문학을 검토한다면 전반적인 고찰이라 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만선일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우리 시문학작품을 모아놓은 시선집 2권이 있어 그러한 결함을 다소나마 극복할수 있지 않을가 한다.   《만주시인집(滿洲詩人集)》은 1943년(康德九年) 9월에 당시 신경(현재의 장춘)의 제일협화구락부문화부에서 간행했고 편집자는 박팔양(朴八陽)이다. 그리고 《재만조선시인집(在滿朝鮮詩人集)》은 그 한달후인 1943년 10월에 당시 간도 연길에 있던 예문당(藝文堂)에서 간행했고 편집자는 김조규(金朝奎)였다. 두 편집자의 권위성으로 보나 간행된 시간으로 보나 이 두 시선집은 현존하는 《만선일보》의 자료보다 훨씬 대표성을 지닌다 하겠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 두 시선집에 수록된 시작품을 주요 텍스트로 하면서 《만선일보》에 게재된 여타 작품들도 참고하여 론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본격적인 론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같은 시기 평자들의 재만조선인시인과 시작품에 대한 평가를 짚고넘어가는것도 의미가 있을듯하다. 가장 전형적인 것이 김우철(金友哲)의 《만주 조선어시단과 시인》2)이다.   이 글에서 김우철은 《今日 우리가 作爲하고잇는 詩는 本能陶醉의 山새 울음도 안이오, 哀傷에 함초롬히 저저 時世를 詠嘆하는 風月調의 그것도 안이오ꠏꠏ 單純한 感情의 素朴한 表白도 안이다. 今日의 詩人은 自己가 營爲하고잇는 時代에 對하야 無意識일수 업스며 以後의 에 對해서 無關心일수 업스며 文字의 機能과 表現方法(形式)이며 그박게도 새로운 言語의 採擇 밋 創造에 骨머리를 알어야 한다.》고 전제하고나서 1939년과 1940년년초 사이에 《滿鮮日報》를 통해 발표된 재만조선인 시인과 시작품에 대해 일일이 평을 달고있다.   그는 1년간 약 40명에 가까운 시인들의 시작품 70여편이 선을 보였다고 하면서 그중에서 특히 咸永基, 李達根, 韓竹松, 鳴泉, 姜海心(姜彬) 등 5명 시인의 시작품이 그 량이나 질로 보아 《殊釉甲》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咸永基의 《養蜂》, 《안테나》, 《風景》, 《生活》, 《春雪》, 《肖像》 등 6편을 《회심의 가작》으로 보고 그중에서도 《養蜂》과 《風景》에 대해서는 《한 戱畵詩를 보는양십다. 哲學하는 詩人ꠏꠏ그의 詩는 쓰여진 部分보다 쓰여지지 안흔 部分에서 더 만히 讀者의 心絃을 울린다. 를 만히 가진 이 詩는 을 슬퍼하지 안흐매로 不幸한 詩人일다. 누구는 말하리라. 그의 詩에는 詩的音律이 업다고. 그러나 그의 詩엔 散文에서 區別할수 잇는 獨自의 內在的 音律이 潛流하고잇슴을 본다.》며 극찬하고있다. 여기에 그가 인용한 咸永基의 《肖像》 일부를 보면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다.     스물한해가 沙漠風가티 -야니 나려간 草原에 낫서른 女人 하나 玉指環을 내여 내 가슴에 뭇기로 情火는 보채여 貴한 선물을 태우는 季節을 宣하다.                                       -《肖像》의 일부     이어 리달근(李達根)의 작품에 대해서는 《코리탑은한 書齋의 詩帖이 안이라 健康한 生活의 詩》라 하면서 《健康한 生活이 잇고 素朴한, 그러나 剛直한 表現이 잇고 젊은이의 脈을 두다리는 感情의 山脈이 줄기차게 덧다》고 평가하고 “아프로 詩學에 對한 探究와 技法의 鍊磨를 企待려 조흔 結實을 하리라 밋는다.”고 희망사항도 놓치지 않고있다. 이런 평가와 더불어 인용한 《저물무렵》이라는 이달근의 작품은 역시 당시 재만조선인 시인들의 현실인식의 자세와 생활태도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저녁 煙香 妖女마냥 村落에 머리 불(풀)무렵 버섯가티 도다난 草舍는 夕映에 올라 손風琴 하나 펼 자리도 업는 좁은 欄干엔 潮水마냥 한 가난이 밀려오고 映窓을 고 흘러간 하늘가에는 鄕愁가 물새 되여 靜寂을 고 가난에 저리운 고닯은 얼골은 새로운 太陽을 마즈러 항아리에 빠진다. 思念의 馬車를 《오-로라-》로 몰고십허도 굴레를 쓴 가난한 말(馬)이 疲勞하다 아하 希望하는 思念아 툭 터져다오 저 山밋 옹달샘 솟듯이도 말발굽 달리는 七百里 遼東벌가티도!     이주민들이 겪어야 했던 고달픈 삶의 모습들-《潮水마냥 한 가난》, 《鄕愁》, 《굴레를 쓴 가난한 말(馬)》과도 같은 억눌린 의식, 그런속에서도 《希望하는 思念을 툭 터》쳐보려는 강한 욕구 등이 이 시작품에는 잘 형상화되여있다.   한죽송(韓竹松)의 요절에 대해 김우철은 《悲哀를 悲哀로박게 그러케박게 더 表白할줄을 모르는 이 歌人은 리마냥 울다가 울다가 제풀에 짓쳐 죽어갓다.》고 보면서 《詩人이 凡俗한 感傷에서 自己의 魂을 건지지 못하고 自己의 才致에 自己陶醉되여잇스면 平生 自己의 價値를 發見하야 向上시키지 못하고 安價한 詩的法悅에 生理되고마는게 일상》이라고 비판하고있다.3) 문학의 사회성 내지는 사회적가치를 강조하고있는셈이다.   그러니까 김우철은 시작품의 사회적 혹은 현실적인 의미를 강조한 동시에 미학적인 가치에 대해서도 상당히 의미를 두고있다는 얘기가 된다. 오늘에 보아도 공감이 가는 주장이다. 그러나 아직 이민시인으로서의 특수성에 대해서는 소흘히 다룬 한계를 보여주고있다. 사실 오늘의 입장에서 볼 때 조선족시인들의 시작행위에 있어서 문학적인 공통성보다는 오히려 지역적, 민족적 특수성이 강조되여야 하였고 그리고 실제에 있어서도 김우철의 한계성과는 관계없이 시인들의 시작행위에서는 이러한 경향들이 뚜렷이 드러나고있다.   따라서 《이민족의 틈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이어가려는 노력은 그들(조선족-필자)로 하여금 문화적유산에 대한 애착을 강하게 한것은 물론 외부의 변화로부터 비교적초연할수 있게 하였으며 그 결과 문화적유산을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할수 있었던것이다. 정작 본토인 한반도에서는 밀려드는 외래사조에 의해 원래의 문화가 상당부분 변질되고있었지만 만주에서는 그런 외풍으로부터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을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4)라는 조규익의 분석은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닌다고 보여진다.     1) 이민지의 서정     조선족의 문학은 이민문학으로 출발하였다. 우리의 력사가 이민의 력사이기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이민의 정서가 이민시인들의 시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쉽게 짐작할수 있다. 실제로 이 시기 시작품에는 이민의 정서를 표현한것들이 많이 있다.   가령 김조규(金朝奎)의 《胡弓》5)의 경우 이국적인 정서와 이민의 이미지를 동시에 담아내고있다.   胡弓 어두운 늬의 들窓과 함께 영 슬프다 山 하나 없다 둘러보아야 기인 地平線 슬픈 葬列처럼 黃昏이 흐느낀다. 저녁이 되여도 눈을 못뜨는 이마을의 들窓과 胡弓의 줄만 골으는 瞑目한 이 마을의 思想과 胡弓 아픈 傳說의 마디 마디 불상한 曲調 기집애야 웨 燈盞을 고일줄 몰으느뇨? 늬 노래 듯고 어둠이 점점 걸어오는 데 오호 胡弓 어두운 들窓을 그리는 記憶보다도 저녁이면 燈불을 받드는 風俗을 배워야 한다. 어머니의 자장노래란다 일어버린 南方에의 鄕愁란다 밤새 늣길려느뇨? 胡弓 (자기 山으로 가거라 바다로 黃河로 나리라) 어두운 늬의 들窓과 함께 영 슬프다.     《胡弓》의 전문이다. 이 작품의 키워드는 당연히 《胡弓》이다. 화자의 정감을 호궁에 기탁하여 토로하고있다 하겠는데 그 의미는 전통적인 시작품처럼 그렇게 쉽게 해석되지 않는다. 거의 전부가 상징과 은유로 되여있기때문이다. 그런데 그 의미를 암시하는 시행이 있다. 둘째행과 마지막행이다. 둘째행에서 화자는 호궁을 보며 《어두운 늬의 들窓과 함께 영 슬프다 山 하나 없다》고 했다. 이민지의 삶에서 느끼는 정서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마지막행에서는 《어두운 늬의 들窓과 함께 영 슬프다》까지를 반복한다. 이 시의 기본적인 정서요 느낌이라 하겠다. 이 두행의 기본적인 정서는 어둠과 슬픔이다. 그리고 이질감이다. 제3행의 이미지 또한 그러한 이질감과 슬픔의 반복이다. 그리고 《胡弓/아픈 傳說의 마디 마디 불상한 曲調》라는 두행을 통하여 슬픔의 강도를 높여놓고 이번에는 호궁을 《기집애》로 바꿔 부른다. 호궁이라는 사물을 의인화시킴으로써 등잔을 고르는 일과 호궁이라는 사물의 련관성을 돌출해내는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호궁이 울므로써 어둠을 끌어오는 행위는 고향의 추억이 되겠고 등잔을 골라 어둠을 밀어내는 행위는 반대로 《들窓》속에서의 삶이 될것이다. 이어지는 《胡弓 어두운 들窓을 그리는 記憶보다도/저녁이면 燈불을 받드는 風俗을 배워야 한다.》는 표현은 고향의 추억과 현재의 삶에 대한 적응이라는 의미를 대조시킴으로써 사실상 앞의 두행에 대한 반복이 된다.   아래의 《(자기 山으로 가거라 바다로 黃河로 나리라)》라는 표현에서 볼수 있듯이 결국 호궁의 고향은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황하가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이 시에서 시인은 일차적으로 호궁이라는 중국인을 상징하는 악기를 등장시킴으로써 동북지역 중국인 이주민의 삶을 념두에 두고있는것 같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주민인 조선족 이주민의 삶을 호궁이라는 이미지로써 표현한것이라 해야 맞다. 《어머니의 자장노래란다》《일어버린 南方에의 鄕愁란다》라는 두행의 의미는 오히려 조선인 이미지에 가깝기때문이다. 그래서 《밤새 늣길려느뇨? 胡弓》과 《어두운 늬의 들窓과 함께 영 슬프다.》 라는 마지막행의 표현은 이주민들이 공유하는 암울한 삶과 슬픈 운명의 이미지가 되는것이다.   김달진(金達鎭)의 《룡정(龍井)》6) 또한 이민지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있다.   車窓밖 豆滿江이 너무 빨러 섭섭했다 흐린 하늘 落葉이 날리는 늦가을 오후 馬車바퀴가 길을 내는 찔걱찔걱한 검은 진흙길 힌 조히쪽으로 네귀에 어찔러 발라놓은 창경 창경 알수 없는 말소리가 귀가로 지나가고 때묻은 검은 다부산즈자락이 나부끼고 어디서 호떡굽는 냄새가 난다.   시악시요 아 異國의 젊은 시악시요 아장아장 걸어오는 쪼막발 시악시요 한(하얀) 粉이 고루 먹히지않은 살찐 얼굴 당신은 저 넓은 들이 슬프지 않습니가 저 하늘바람이 슬프지 않습니다(가)   黃昏 길거리로 허렁허렁 헤매이는 흰옷자락 그림자는 서른 내가슴에 허렁허렁 떠오르는 조상네의 그림자.   나는 江南 제비새끼처럼 새론 옛故鄕을 찾어 왔거니. 난생 처음으로 馬車도 타 보았다. 胡弓 소리도 들어 보았다. 어디 가서 나혼자라도 빼酒 한잔 마시고 싶고나     1련과 2련에서는 이국적인 정서가 그대로 드러나는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첫행 《車窓밖 豆滿江이 너무 빨러 섭섭했다》의 이미지이다. 현실적으로 룡정에서는 두만강을 볼수가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두만강은 두만강을 건너온 이주민의 심경을 드러낸것이 된다. 그런데 《나는 江南 제비새끼처럼/새론 옛故鄕을 찾어 왔거니.》에서 《새론 옛故鄕》은 아마도 여기가 고구려의 옛땅이였다는 사실을 념두에 두었을것이다. 이점은 3련의 내용과 맞물려있다. 소위 《호인(胡人)》들속에서 발견한 《흰옷자락 그림자》를 보며 《조상네의 그림자》를 떠올린것은 이주해온 이땅이 전혀 낮설지만은 않으며 따라서 여기가 이주민이 뿌리를 내릴 새로운 고향이 될수가 있음을 암시하고있는것이다.   이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비록 이민자의 처지는 《서른 내가슴》이라는 표현에서 볼수 있는것처럼 불행하고 서럽지만 그 서러움을 《나혼자라도 빼酒 한잔》 마시면서라도 달래면서 살아야 한다는 강한 생존의 의지가 담겨있기때문이다.   그러나 이민시인들의 정서속에는 이국땅과 이국인에 대한 편견도 동시에 존재하고있으며 그런 정서나 편견은 시작품에도 표현된다. 가령 상기 작품의 제2련에서 《한(하얀) 粉이 고루 먹히지않은 살찐 얼굴/당신은 저 넓은 들이 슬프지 않습니가/저 하늘바람이 슬프지 않습니다(가)》라는 시구에는 이민지 원주민과 이민지의 자연과 기후에 대한 불쾌한 느낌이 표현되고있는데 비록 이민자로서 그러한 사람과 자연에 적응하기 이전의 주관적인 느낌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일종의 선입견, 즉 《거치른 만주땅》《미련한 만주인》이라는 선입견이 은연중에 드러난것이다.   유치환(柳致環)의 《합이빈도리공원(哈爾濱道裡公園)》7)에서는 그러한 이미지가 보다 뚜렷하게 표현된다. 《五月도 섯달갓치 흐리고 슬푼 季候/사람의 솜씨로 며진 밧 하나 업시/크나큰 느름나무만 하늘도 어두이 들어서서/머리우에 가마귀 終日을 바람에 우짓는》 등의 표현은 거치른 땅의 이미지다. 그만큼 이주민에게 있어 《만주》라고 하는 이민지는 춥고 거칠고 음산한 땅이였던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비록 자연현상 자체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래서 상대적으로 따뜻한 조선땅에서 이주해온 이들에게 있어 그러한 자연은 불모의 땅이고 차가운 기후가 되였겠지만 그보다도 중요한것은 이들이 이러한 춥고 거친 땅에 이주해올수밖에 없는 현실과 운명이 한결 더 춥고 외로웠을것이다.   그러한 느낌과 정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김북원(金北原)의 《봄을 기다린다》8)에서 답을 찾을수가 있다.   바라다 보아야 끝없는 地平이 끝없는 地平이 하이얀 눈속에 가로누어 봄을 기다린다. 도로기 쥐어매고 마음 거든이 벌판에 서면 눈부신 索漠이 視野에 서린다. 호졸하니 마을의 面貌가 그러나 덤직한 이야기가 마을의 斑史가 한줄기 香煙속에 풀린다.   꼬지깨의 草原이 故鄕의 平原이 되고 高梁의 平原이 벼이삭의 바다가 되는동안 내사 수염과 靑春을 바꾸었고 안해는 새아이의 어머니가 되였다.   잔뼈가 굵어진 故鄕말이뇨 洛東江물을 에워 젖처럼 마시며 아매사 할배사 살엇드란들 그것이야 아스런 옛이약이지.   오붓이 點點한 우중충한 집옹이 五色旗 揭揚臺아래 마을이 봄을 기다린다.     비록 오색기가 만주국의 국기였으니 《五色旗 揭揚臺아래 마을이/봄을 기다린다》는 표현에서 알수 있듯이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땅에서의 삶이 이제 겨울이 가고 《봄을 기다》리는 희망찬 삶이 되였다고 하였으니 조금은 현실순응적이라는 혐의가 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친일시라고 보면 안될것이다. 오히려 여기에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가꾸고 제2의 고향을 건설하여 대를 이어 살아가려는 민족생존의 의지가 담겨있다 해야 할것이다. 그러니까 이민지의 자연환경과 기후에 대한 불쾌한 느낌은 다분히 적응의 문제였음을 확인시켜주는셈이다. 따라서 이제 고향땅에서 쫓겨난 서러움이 조금씩 잊혀져감에 따라 그러한 불쾌감도 조금씩 색이 바래지며 심지어 이민지에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아낼수가 있었던것이다.   이는 곧 정체성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제 《잔뼈가 굵어진 故鄕》은 《아스런 옛이약이》가 되였고 화자는 《五色旗 揭揚臺아래 마을》에서 봄을 기다리며 살아야 할 운명이요 처지임을 자인하고있는것이다. 이것은 숙명적론인 체념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의 형성을 확인하는 생존의 의지이다. 윤해영(尹海榮)이 《해란강(海蘭江)》9)에서 이민지의 대표적인 강인 해란강을 《寂寞한 江이로다./거룩한 江이로다.》고 하면서 자신의 강으로 인식하고 노래하고있는것도 이와 같은 차원이라 하겠다. 이민지의 자연과 좀더 가까워지고 이제 곧 하나가 되여감을 뜻하는것이다.   윤해영은 특별히 그러한 이주민으로서의 정체성 확인에 시적인 관심을 많이 보이고있다. 앞의 《해란강》에서 화자는 자신의 현재 삶의 현장을 찬미하고있다면 《오랑캐고개》라는 작품에서는 오랑캐고개를 3단계 력사의 상징적이미지로 그리고있다. 《二十年前》에 오랑캐고개는 《豆滿江 건너 北間島 이도군 들의/아담찬 한숨의 關門이엇다.》고 했다. 간도이주민들은 대개 두만강을 건넌후 이 오랑캐고개를 넘어 북간도땅에 들어섰던것이다. 그리고 《十年前》, 이 고개는 《밀수군 절믄이들의/恐怖의 關門》이였다고 했다. 그만큼 이주민의 삶이 어려웠다는것을 의미할것이다. 그리고, 《오날 이고개엔/五色旗 날부》낀다고 했다. 한숨도 공포도 다 흘러가고 희망의 기쁜 노래만이 넘치는 고개가 되였다는것이다. 여기서 또다시 어용적인 작품의 혐의가 나타난다. 여기서는 그냥 현실에 순응하는 정도가 아니라 괴뢰만주국의 현재 삶을 어느 정도 찬미하는 의미가 드러난다. 그만큼 만주국의 정치문화적담론의 영향이 심각했음을 말해준다 하겠다. 1938년10)에 쓴 작품임을 전제하면 그 심각성이 짐작될것이다.   윤해영의 정체성 확인은 력사에 대한 감개 토로에서도 드러난다. 《발해고지(渤海古址)》11)라는 작품이 이에 속한다. 자신이 현재 영위하고있는 삶의 현장이 바로 옛날옛적 조상의 땅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과정은 곧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는것이다. 특히 《기와 片片 어루만저/懷古에 잠기우면/저 언덕 밧가는 農夫/그 時節 百姓인듯!》라는 표현은 시인의 정체성 확인의 욕구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체성 확인의 욕구는 천청송(千靑松)의 《先驅民》12)에서 선구민을 통한 력사의 회고로써 표현되기도 한다. 좀더 궁극적인 확인의 방식이라 할수가 있다. 작품에서는 《移住民》《酒幕》《雪夜》《江東》《墓地》 등 5장에 걸쳐 이주민의 고난사를 회고제시하고있다. 《移住民》과 《酒幕》에서는 이주민이 오랑캐령을 넘어 북간도에 들어와 불모의 땅을 개간하는 모습과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삶을 찾아 방황하는 사람들의 서러움을 표현하고있다. 특히 《낫선 첫이 서글푸기에/닭이 홰를 처도 날이 새어도/흑탕갓치 취할 胡酒가 되게 그리웟겟다.》는 표현에서 이주민의 외로움과 서러움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어 《雪夜》에서는 불모의 땅에 정착한 이주민의 단조롭고 고적한 삶의 양상들이 한 가정의 지극히 민족적인 표상들을 통해 드러난다. 사실 이 장에 나오는 가족의 삶은 조선의 어느 화전민가족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작연에도 그럭계도 이런날 밤/호우적이 마을에 들어 섯드라오.》라는 표현은 이들이 호우적이 득실거리는 불모지의 이주민 가족임을 금방 확인시켜준다. 그에 이은 《江東》이라는 장에서는 그러한 불모의 땅에서마저 삶을 보존하기 어려워 강동의 아라사(러시아)에 나간 랑군을 시름겹게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을 표현하고있다. 물론 화자의 랑군이 강동에 간것은 단순히 돈 벌기 위해 갔을수도 있지만 력사적으로 강동땅 즉 쏘련 원동지역에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랑군이 독립운동가 혹은 반일투사였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리고 마지막장인 《墓地》는 너무나도 슬픈 이주민의 운명을 제시하고있다.   靜穩의 집 무덤은 너무나 寂廖하다 하도 故鄕을 그렷기 넉시나마 南을 向했도다 외로운 밤엔 별빗치 慰撫의 손을 나린다는데 墓標업는 무덤들이 옹기 옹기 정잡(답)계(게) 둘너안젓구나! 눈보라 사나웁든 매듭만흔 歷史를 이얘기 하는거냐.13)     죽어서마저 고향이, 고국땅이 그리워 《넉시나마 남을 향》했다는 표현이야말로 이주민의 슬픈 운명의 상징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또한 《墓標업는 무덤들이/옹기 옹기 정답게 둘너안젓구나!》는 표현에서 알수 있듯 화자는 묘지를 또다른 이주민의 삶으로 인식하고있으며 그렇게 보았을 때 이는 곧 이주민의 제2의 고향이 바로 여기, 북간도땅임을 확인시켜주고있기도 하다.   함형수의 《歸國》14)만큼 이주민의 이중적 정체성을 뼈아프게 표현하고있는 작품도 그리 흔치 않을것이다. 여기서 귀국은 조선땅에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화자는 고국의 사람들이 자신이 갔던 곳에 대해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까 생각하다가 상념은 오히려 《누가 알랴 여기 돌아온것은 한개 덧업는 그림자》이라는데에 미친다. 이처럼 이제 자신은 더이상 고국의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은 정체성의 분렬에서 비롯되는것이다. 《먼- 하늘 테서/총과 칼의 수풀을 헤염처/이 손과 이 다리로 모-든 무리를 뭇럿스나/그것은 참으로  하나의 肉體엿도다》라는 표현은 정체성의 분렬을 야기시킨 일종의 련옥(煉獄)행과도 같은 체험을 보여준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갔었던 그곳에서의 체험에 대한 개괄이 되겠는데, 그러나 그러한 살벌한 체험은 이제 삶 자체가 되여버렸다.   나는 거기서 새로운 言語를 배웟고 새로운 行動을 배웟고 새로운 나라(國)와 새로운 世界와 새로운 肉體와를 어덧나니 여기 도라온것은 實로 그의 그림자이로다     《여기 도라온것은 實로 그의 그림자》이라는 표현은 앞의 《누가 알랴 여기 돌아온것은 한개 덧업는 그림자》이라는 표현을 좀더 강하게 드러낸것이라 볼수 있는데 그만큼 화자의 삶은 새로운 정체성을 이루었음을 강조한것이 된다. 다시 말하면 이제 화자는 고국의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삶의 현장에 적응된 새로운 정체성의 소유자가 되였다는 의미로 파악되는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이주민으로서의 조선족이 될것이다.   중국인 원주민과의 조화로운 상생은 이주민 생존의 중요한 요인이라 할수 있다. 조학래(趙鶴來)의 《滿洲에서》(獻詩)15)는 그러한 이주민의 지혜와 생존욕구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여기서 괄호안에 표기된 (獻詩)라는 메시지는 이 작품을 수록한 시집이 1943년에 간행된 것이고 또 기본적으로 만주국 건국 10돐을 기념하면서 편집된 시집이여서 괴뢰만주국 건국에 바치는 시라는 혐의가 있으나 그것과는 무관하게 작품에는 만주국이라는 국체에 대해서보다는 만주국내 중국인 원주민에 대한 감사의 메세지가 더 뚜렷하다.   가슴은 샛발간 장미로 얼켜 닙히 질가 두려워 대견히도 간직함니다 언덕은 숨고 작나무 바람잔 벌판 난대서 손수건 흔드는 당신들이어 고향도 집도 모두 버리엇슴니다. 언제든지 고웁고 아름다운 장미 송이를 안고 먼 동산으로 시들지 안는 세월을 차저왓슴니다. 당신들이 항용 조와하고 그리워 하시든……     이주민에게 있어 현재 삶의 현장은 사실 남의 나라 땅이다. 그리고 그 땅의 주인이 바로 중국인 원주민이다. 따라서 이주민의 립장에서 중국인 원주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인지상정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이 땅을 통치하는 정부가 고국의 땅을 강점한 일제에 의해 조작된 괴뢰정부라는데 문제가 있겠는데, 그러나 일제에 대해 추호의 불만이나 저항의 감정을 드러낼수 없던 당시의 상황에서, 오히려 일제의 식민통치를 찬양하라고 강요받는 상황에서 정부에게가 아닌 이땅의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드러낸것은 오히려 정직한 자세였다고 할수도 있을것이다.     한편 향수, 혹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이민지의 서정중에 빠뜨릴수 없는 내용이 된다. 또한 고국에 대한 향수는 정체성 확인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사상이요 정서이기도 하다. 이주민은 언제나 민족적정체성과 국민적정체성이라고 하는 2중의 정체성을 소유할수밖에 없기때문이다. 즉 우리 조선족이주민은 단군의 후예라는 민족적정체성을 타고났으면서 동시에 만주국이라고 하는 하나의 새로운 강역(疆域)내에 몸담고살면서 만주땅의 자연지리적환경과 만주국이 추구하는 정치와 문화적인 담론이라고 하는 인문적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따라서 향수, 혹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마음의 자연적인 로출이면서 동시에 정체성 확인의 한 형태가 되는것이다.   한편 향수는 인간에게 있어, 특히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보편적이라 할수 있는 정서이다. 누구나 고향을 떠나 오래 있게 되면 고향이 그리워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그리움은 강해지며 또 고향의 이미지는 오랜 시간이 흐를수록 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음속에 부각되는것이 자연스럽다. 이때의 고향은 아름다움의 상징이고 현실생활의 활력소로 작용할수도 있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온 원인이 고향을 잃었기때문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과거의 고향에 대비되는 현재의 시간과 공간은 부정적일수밖에 없다. 조선족 이주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있던것은 실향의식이였다. 타의나 혹은 자의라고 해도 근본적으로는 타의에 의해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한 안타까움으로 시화되고있는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애절함은 당연히 일종의 저항이나 적어도 현실에 대한 부정으로 볼수밖에 없게 된다. 다시 말하면 비록 이런 시작품속에서 드러난 저항의식은 발견되지 않더라도, 진한 향수 그 자체가 고향을 등지고 고국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 일제와 그 친일 특권계층에 대한 무언의 항거이고 분노의 표현이라는 말이 되겠다.   이 류형에 속하는 시들로서 제목이 고향이나 고국과 관련된 시작품만 해도 김병기(金炳基)의 《그리운 故鄕》16), 최봉록(崔奉錄)의 《思鄕》17), 조학래의 《鄕愁》18), 송철이(宋鐵伊)의 《故鄕》19), 박상훈(朴相勳)의 《離鄕》20), 유치환(柳致環)의 《歸故》21), 함형수(咸亨洙)의 《歸國》22), 김달진의 《鄕愁》23)를 비롯해 다수 있거니와 고향이나 고국의 이미지, 향수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다루고있는 시작품은 더구나 무수히 많다.   천청송의 《드메》와 《書堂》24)의 경우 고향의 이미지, 그리고 고향에서의 삶의 기억이 처절히도 아름답게 그려지고있다. 《드메》는 벽지에 있었던 화자 고향의 이미지가 되겠고 《書堂》은 그러한 춥지만 정다운 고향의 이미지와 어린시절 서당에서 경험한 아름다운 추억이 뻐꾸기의 울음소리와 더불어 재생된것이다. 《드메》의 《내 鄕愁도/차거운데//이런밤엔 으례 뻐꾸기가 울었다.》는 표현에 담겨진 차거움과 서러움의 이미지, 《書堂》의 《이런날밤엔 으례 마을처녀들이/서당방 사잇문에 옥수수처럼 열린다.》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운 추억의 편린은 특히 인상적이다. 그만큼 이주민의 향수가 절박했음을 말해준다 하겠다.   류치환의 《편지》25)는 편지라고 하는 고향 혹은 고국과의 통신수단을 매개체로 하여 향수의 정서를 표현하고있다.   (전략)   한나절 가도 드날이 업서 마을엔 그뉘나 사는지 마는지   개도 안짓고 닥도 안울고   앗든 消息 이봄 들어 두장이나 편지 왓단다     《편지》의 후반부이다. 앞부분의 정답던 추억에 이어지는 이 례문은 고향의 피폐상을 암시한것이라 할수 있다. 《개도 안짓고/닥도 안울고》라는 표현에는 영락한 고향의 이미지가 담겨있다 하겠는데, 마지막 련의 《앗든 消息/이봄 들어 두장이나 편지 왓단다》는 고향의 불길한 소식을 전해줄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걱정이 암시된다. 그리고 편지라는 표제가 이 마지막 행에서 제시되고있기때문에 그러한 예측은 한결 신빙성이 있어보인다. 흔히 말하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과는 전혀 반대의 암시이고 또 그러한 암시를 제시하기 이전의 표현들이 영락한 고향의 이미지이기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주민 시인의 시상속에는 이주민 자신들의 현재 삶의 환경, 생존의 문제와 고국에 두고온 고향땅과 고국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공존한다는 말이 된다. 그것이 이주민의 정체성이기때문이다.   송철리(宋鐵利)의 《도라지》는 고향과 고국에 대한 관심이 아름다운 이미지로 표현된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수 있다.   도라지 피면 八月도 피고 八月이 피면 향수도 피드라     산,   물,   길,   돌쇠,   갓난이,   삽살개,     하염업시 쓰러보는 파-란 송이에   무지개마냥 아롱지는 흘러간 옛마슬.   그러나  도라지 지면 八月도 지고 八月이 지면 향수도 지드라.     《도라지》의 전문이다. 이 작품의 화자에게 있어 팔월과 팔월에 피는 도라지꽃은 향수이다. 팔월의 도라지꽃에 무지개마냥 《흘러간 옛마슬(을)》이 아롱지기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팔월과 팔월에 피는 도라지꽃은 시인의 내면에 각인되여있던 옛날의 고향을 떠올리며 따라서 팔월과 팔월의 도라지꽃은 옛날의 고향으로 치환되면서 향수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그 옛날 고향의 모습은 다름아닌 《산,/물,/길,/돌쇠,/갓난이,/삽살개》인데 이는 고향을 떠난 사람에게 있어서는, 특히 고향을 떠난 이주농민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보편적인 의미를 지니는 이미지들이다. 다분히 개인적인 정서가 담겨진듯싶은 이 작품이 보다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할수 있는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한결 더 절박감과 근본적인 공감대를 형성할수 있는 원인은 그 마지막 련의 의미때문이 아닌가 한다. 도라지 지고 팔월이 짐과 아울러 향수도 진다 함은 이제 고향은 단순히 떠나온 고향이 아니라 다시는 갈수 없는 상실한 고향이 되고말았음을 의미하기때문이다. 이것을 좀더 확장해석하면 이와 같은 고향상실의 의미는 곧 고향을 상실하게 만든 일제와 친일지배층에 대한 일종의 불만 내지는 분노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우리 시인들은 이민지의 서정을 통해 이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 확인은 향수의 표현에까지 연장되여 이주민의 이중적정체성을 드러내고있다. 우리 문학이 이민문학으로 출발했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대목이다.   [출처] 일제강점기 조선족 시문학의 갈래와 특징(3)|작성자 반벽거사  
709    ...계속 댓글:  조회:5028  추천:0  2015-09-17
  Ⅱ. 문단시가     현재까지 발굴된 자료에 의하면 우리의 문단시가는 1920년대의 《민성보(民聲報)》1) 등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것으로 알려졌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간도일보(間島日報)》 등에서 그 맥이 이어지지만 남아서 전해지고있는 작품은 극히 드물다. 따라서 본격적인 검토는 아무래도 자료가 많이 남아있는 《북향(北鄕)》지와 《만선일보(滿鮮日報)》 등 신문 잡지와 1940년대 초반에 간행된 《만주시인집(滿洲詩人集)》과 《재만조선시인집(在滿朝鮮詩人集)》 등 2권의 시선집에 근거하여 하는수밖에 없을것 같다. 그러다보니 당대에는 별로 인정받지 못하였고 작품도 몇편 발표하지 않았지만 그들 사후에 주옥같은 시편들이 발견되여 세상에 나온 시인들의 작품은 논외로 할수밖에 없었다. 윤동주와 심련수의 시가 이에 속하는데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약속할수밖에 없을것 같다.     1. 《민성보》시기의 시작품     《민성보》에 게재되였던 시작품으로 현재 전해지고있는것은 겨우 9편이다. 3년여에 걸쳐 발행되였던 신문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작품들이 게재되였을것으로 짐작되는데, 겨우 9편의 작품으로 그 전모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 작품들은 민성보를 통해 활동했던 우리 시작품의 한 단면을 보여줄뿐이다.   백악산인(白岳山人)의 《朝鮮心》에서는 이주민의 고국이 조선에 대한 절절한 애국심을 표현하고있다. 4련으로 된 이 작품의 3련과 4련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동무야 아느냐 조선의 마음은--- 겨레의 피를 한데 빚어서 곱곱이 옥맺힌 원한의 가슴에 신(新)의 꽃을 피우게 하려니 「님」의 빛갈이 아무리 고와도 온누리 사람이 죄다--따러도 님의 마음은 변할길 없노니 설음을 걸고 안위를 감(간)직해 조선의 「미(美)」를 깊이 맛보라   동무야 아느냐 조선의 마음은--- 겨레의 혼을 한데 뭉쳐서 나날이 빛나는 진역(震域)의 터전에 새로운 성탑(聖塔)을 높이 쌓려니 악마의 벽력이 되거퍼 내려쳐 희생의 선풍이 이땅을 삼키어도 님의 정화(精華)는 꺼질길 없노니 락망을 버리고 용기를 내여 한토(韓土)에 「한빛」(韓光)을 길이 밝히라2)     여기서 조선의 마음은 만고불변의 존재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조선의 마음이 변화의 위기를 맞고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악마의 벽력이 되거퍼 내려쳐/희생의 선풍이 이땅을 삼키어도》라는 표현에서 그점은 충분히 감지된다. 나라의 근본, 겨레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민족주의적인 의지가 잘 반영되였다 하겠다.   그러나 민족주의적인 사상리념이나 의식이 드러난 작품은 이 한편밖에 없다. 가령 초래생(初來生)의 《단오(端午)》나 김근타(金根朵)의 《밤》, C.S.C의 《언니를 그리며》, 남문룡(南文龍)의 《백색테로》 등 작품은 계급적리념이 짙게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초래생의 《단오(端午)》3)에서는 단오명절을 맞아서도 아이에게 새옷은 물론 과자마저 사먹이지 못하는 병든 어머니의 애탄 사정을 그리면서 《차라리 생명을 땅에 두며/인간의 모든날을 전취하야/우리의 명일(名日)을 만들 때까지》 투쟁하여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는 계급혁명의 리념과 의지를 표현하고있다. 김근타의 《밤》에서도 사회적약자인 어린애를 빈곤상징의 형상으로 리용하고있고 또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있으나 좀더 구체적이고 상황이 절실하다.   밤은 깊어 집집에 등불은 켜지고 하늘우에 별들도 반짝거리건만 맥없이 늘어진 그는 별조차 보지 못하였다 배고파 잉-잉 밥달라 우는 어린애 세네때 굶주린 어머님에게 어찌 젖이 있으랴 오! 우는 그 애를 어찌 달랠것인가?   곁집에선 저녁연기 끊은지 오라고 뒷산에 부엉새는 깊은밤을 노래하는데 때지난 이때 누구의 집에서 한술밥 얻어오랴 여전히 울고있는 어린애는 말끝마다 밥주-- 한숨짓는 부모의 간장 다 녹여내리나니 긴긴 여름밤 또 어찌나 새워보내랴   1930년 5월 7일 밤에4)     《밤》의 전문이다. 어린애는 배고파 밥달라 하는데 어머니는 굶주려 맥없이 늘어져있다. 게다가 밥 한술 얻어올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이들 두 작품은 못가진자의 빈곤한 삶의 양상을 계급적시각에서 그리고있다 하겠다. 빈곤상황의 제시는 계급의식의 표현이나 공산주의, 사회주의리념의 구현에서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다. 못사는 민중을 의식화시킴으로써 계급혁명을 이루려 하였던것이 이때 사회주의운동의 기본적인 목적이였기때문이다. 그것이 확장된 형태가 바로 녀성해방과 피압박민중의 국제적인 련대가 될것이다.   C.S.C의 《언니를 그리며》는 작품말미에 《이 글을 삼가 P.A.S.I.께 드립니다》《-1928.5.1 룡정을 떠나며》라는 부연설명을 붙일 정도로 사적인 정서를 나타내면서도 주제의식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녀성해방이라는 공적인 리념을 표현하고있다.   (전략)   언니는 멀리가서 돌아올길 없아오매 녀성층(女性層)--매인줄이 그나마 풀어질듯 내가슴에 피는 꽃도 웃음이 간곳없고 뭇아가씨 뛰는 그네줄 한가닭 또 처지네   선구의 저 멍에를 누가 바로 멜손고 해방의 질(길)삼을 누가 다시 짤런고 찬서리 어린몸을 둘곳조차 바이없어 악마의 푸른매를 내 홀로 맞으려니 철없은 뭇아가씨 내팔잡고 울고있네   동무야 우지마라 언니뜻을 지켜서도 녀성들아 무서워말라 언니용맹 간직해서 힘차게 뛰여올라 처진줄 다시잡고 한달음에--올라서리-녀권(女權)의 무대우로 (이 글을 삼가 P. A. S. I.께 드립니다) ---1928.5.1룡정을 떠나며5)     여기서 《언니는 멀리가서 돌아올길 없아오매/녀성층(女性層)-매인줄이 그나마 풀어질듯》이라는 표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니가 멀리 가서 돌아올길이 없다는것은 언니가 죽었다는 의미가 되겠고 녀성층에게 매인 줄이 그나마 풀어질듯하다는것은 언니가 그러한 녀성층에게 매인 줄을 풀어내기 위해 투쟁하다가 저세상 사람이 되였다는 말로 리해할수가 있다. 《선구의 저 멍에를 누가 바로 멜손고》라는 표현은 이런 사실을 뒤받침해준다. 또한 마지막련에서 언니의 뜻을 지키고 언니의 용맹을 간직하여 녀권의 무대우로 한달음에 올라서자는 다짐은 이런 추측을 또다시 확인해준다. 작품에 나오는 《줄》은 두가지 의미를 지니는것 같다. 《녀성층-매인줄》에서의 줄은 녀성의 정신과 행동을 졸라매고있는 봉건적인 질곡이나 억압을 의미할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풀어야 할 줄로 표현되고있는것이다. 줄의 또다른 의미는 《뭇아가씨 뛰는 그네줄 한가닭 또 처지네》에서의 줄이 되겠는데 《힘차게 뛰여올라 처진줄 다시잡고》라는 표현에서 알수 있는바와 같이 이때의 줄은 혁명의 의지와 용기, 신념 등을 상징하고있는것 같다. 그 줄을 잡고 녀권의 무대우로 한달음에 올라서자는 다짐이 그것을 반증해준다.    C.S.C의 《언니를 그리며》가 사회주의운동이 지향하는 녀성해방 혹은 녀권신장의 주제를 표현했다면 남문룡(南文龍)의 《백색테로》는 세계 피압박민중의 공동전선과 반파쑈투쟁의 주제를 다루고있다 하겠다.   지구의 우현(右弦)은 백색의 가을--- 반동의 불길이 탄다.   (중략)   《부르쥬아가 망하나 피압박민중이 망하나》 결전의 날은 갓까왔다. 인류의 최후의 스테로멘트 동경의 지옥!! 반도의 ○○!! 4억의 ○○!! 혁명의 전야는 왔다.6)     총 8련으로 되여있는 《백색테로》의 제1련과 제8련이다. 파쑈의 전쟁광적악행을 백색테로로 규정하고 피압박민중의 반전쟁, 반테러 혁명으로써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제의식을 표현하고있다. 이는 항일구역에서의 항일가요의 주제의식과 맥이 통하는것이다. 이 작품에서 근본적인 대결은 부르죠아와 피압박민중이다. 《인류의 최후의 스테로멘트》라는 표현에서 볼수 있는바와 같이 이 작품에서 부르죠아와 피압박민중의 대결은 어느 한 지역, 한 국가에 한정되지 않는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파쑈의 세계적련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피압박민중의 전세계적 련합전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사상이 바탕에 깔려있다 하겠다. 사회주의리념의 확장인셈이다.   이 작품에서 다시 주목되는 부분은 《반도의 ○○!!/4억의 ○○!!》라는 표현이다. 여기서 《○》로 표시된 부분은 해독불가부분인데 아무래도 《동경의 지옥》이라는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개념일것으로 짐작된다. 더 중요한것은 여기서 《반도》와 《4억》의 의미다. 반도는 아무래도 조선반도를 가리킬것이니 한민족을 지칭할것이다. 그리고 4억은 중국인을 가리킬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이주민으로서의 정체성 인식이 은연중에 드러난것이 된다. P.A.S의 《流浪人》7)에 나오는 《하발령》, 《호인옷》 등도 그러한 정체성의 인식을 드러낸것이라 할수 있다. 이 경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아무래도 근파(根坡)의 《님을 찾으며》8)가 될것 같다.   이 작품에서 화자는 님을 찾아 《이땅》을 찾아왔다고 했다. 여기서 《이땅》은 조선족의 이민지인 중국 동북땅임에 틀림없다. 《북관--천리길》, 《봄들은 여진땅》, 《동솟은 모아산》 등의 이미지가 이점을 확인시켜준다. 비록 화자는 님을 찾아 이민지에 왔다고 했지만 《불원천리 이 내마음 불현듯 꺼져질듯/되돌아가랴하니 눈물 먼저 앞을 서오》라는 마지막 두행의 하소연을 읽고나면 독자의 립장에서 느끼는것은 시적화자의 사적인 정감만이 아니라 이주민의 고난이라는 공적인 정서가 되는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님을 그리는 애절한 마음과 이민의 설움을 하나의 정서속에 담고있다 하겠다.   작자미상의 《燕歌解》는 병상에 누운 화자의 향수를 제비의 노래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고있다. 향수라는것은 고향 혹은 고국을 떠나온 이주민의 이중적정체성을 보여주는 한 현상이다. 즉 이주민에게 있어 향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자 곧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된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이 작품도 이주민의 정체성 인식을 보여준 작품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보다 주목되는 점은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실험이 아닐가 한다. 형식적실험의 흔적은 제비의 노래를 해석한 작품의 후반부에서 찾아볼수 있다.   (전략) 《배달의 청년아 청년아(솔솔솔 미미레 미미레) 우리는 옛집을 찾는데(미레도 솔솔솔 미레도) 너는 누워서 앓기만 하느냐(미레도 미레솔 미레미레도) 풍만루(風滿樓)하고 우장래(雨將來)한다(라라라 솔솔솔솔솔솔) 너는 장차 어디로 가려나(라라 솔솔 미레도 미레도) 너도 어서 집을 찾어라》(라라 솔솔 미레도 미레도)9)     그러니까 화자는 제비의 노래속에서 고향과 고국땅을 떠나 이민지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운명을 엿듣고있는셈이다. 《녕고탑동경성련화포 병상에서》라는 말미의 설명으로 보면 병상에서 쓴 작품이 되는데, 아마도 그러한 병상생활이 시인에게 이러한 기발한 실험의 계기를 마련해준것이 아닌가 한다. 그 실험의 의의가 얼마나 큰것인지를 떠나서 이런 실험 자체가 우리 시의 발전사에서는 의미가 있는것이다.   비록 자료적인 한계때문에 이 시기 시문학의 전모를 평가할수는 없으나 현재 남아있는 작품으로만 보면 《민성보》시기의 시문학은 예술적인 성취도가 높다고 보기 어렵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의식과잉, 리념과잉의 문제점들도 로출되고있다 하겠다. 그러나 그 시기 렬악했던 문화환경에서 이 정도의 시문학이 이루어졌다는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며 특히 일제가 《9.18사변》을 도발하여 중국의 동북땅을 강점하기 직전에 이루어진 문학이여서 그 이후의 문학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측면에서 문학사적으로 충분히 의미를 지닌다 할수 있을것이다.     2. 《북향》시기의 시작품     《민성보》이후 한동안은 당시 발행되였다고 하는 《간도일보(間島日報)》, 《만몽일보(滿蒙日報》 등 발표지면들이 산실되고 현재까지 발굴된것이 없으므로 시문학의 립장에서 보았을 때 《민성보》시기를 이어주는것은 1935년에 창간된 문예동인지 《북향(北鄕)》시기의 작품들이다.   룡정지역에서 발행된 문예동인지 《북향》은 1935년에 1호를 내고 1936년에 2-4호를 냈다고 하는데 현재 전해지고있는것은 1936년의 2호부터 4호까지 모두 3권이다. 문예종합지로서 시, 수필, 소설, 희곡, 비평 등 여러 쟝르의 작품들이 두루 게재되여있으나 편수를 따지면 역시 시작품이 가장 많다. 동요와 번역시까지 포함하여 모두 43편의 시작품이 게재되였다. 30쪽안팎의 문예지 3권에 43편의 시가 게재되였으니 시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 할수 있다. 그러나 거의 반 정도가 학생들 작품이고 성인의 작품이라 해도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강경애, 박계주, 천청송, 신상보 정도가 되는데, 강경애는 작가생애의 출발을 시로 시작했으나 소설로 성공한 경우이고 박계주 또한 소설로 성공한 작가이다. 그러면 천청송과 신상보가 시인으로는 알려진편이지만 이 시기에는 별로 좋은 작품이 없다. 이점은 《민성보》의 경우와 차이가 난다. 《민성보》의 시들도 시적인 세련미는 미흡하지만 주제의식의 측면에서는 현실성과 사회성이 뚜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향》시기의 시작품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것은 《학생시단》 코너에서 볼수 있는바처럼 시단의 예비시인층의 형성때문이 아닐가 한다. 나중에 《만선일보》시기에 들어서면서 시단이 활기를 띠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주민시문단을 형성할수 있었던것은 이른바 《문화부대(文化部隊)》로서 이주해온 기성문인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이와 같은 예비력량의 존재에도 크게 의존하고있는것이다.   먼저 강경애(姜敬愛)의 《斷章》10)을 보자. 화자는 함박눈이 내리는 밤에 님이 떠날 때 하던 말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래서 한밤중에 깨여나 뜨락을 헤매며 서성거렸다고 하고는 님께서 그토록 차고 매웠기에 눈길을 떠나신가 한다고 했다. 그리고 님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고 하면서 님이 그리운 마음을 소리없이 내리는 눈발속에 기탁하고있다. 어느 정도 감흥도 있고 시어들도 정제된편이지만 성숙된 주제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박계주(朴啓周)의 《엿장사》11)는 그와는 달리 주제의식이 매우 뚜렷하다. 차가운 눈보라치는 한밤중에 엿장수의 엿사구려소리가 울린다고 분위기를 잡아놓고는 다음과 같이 화자의 감흥을 표현한다.   (전략)   엿사구려 가위에 달빛이 절커ㄱ-절커ㄱ- 힘없이 떨리는 그소리 九天에 사모침이여 來日의 죽 한그릇도 이 밤의 勞苦에 잇것만.   차듸찬 달을 우러러 焦燥히 섯던 그의 눈瞳子에 妻子의 우름소리 기여들제 그 刹那의 한숨은 地心을 푸ㄱ- 푸ㄱ- 찌른다.     엿장수의 고단한 삶의 모습을 동정하는 화자의 의식을 쉽게 엿볼수 있다. 이런 의식은 《민성보》시기 시가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사회주의리념에 근거한 계급의식과 맥이 닿아있는것처럼 보인다. 일제강점이라고 하는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그런 리념의 표현이 숨어버리고 소외자에 대한 동정이라는 형태로 재현된것이라 할수 있다.   나중에 《만선일보》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렸던 시인 천청송(千靑松)은 이 시기에 《꿈 아닌 꿈》을, 신상보(申尙寶)는 《短詩三章》12)과 동요 《눈》13), 등 작품을 《북향》에 발표하고있다. 신상보의 작품은 미숙성이 뚜렷하므로 언급을 피하고 천청송의 《꿈 아닌 꿈》을 들어보이면 다음과 같다.   고요한 밤 날러드는 시산한 꿈길- 하-얀 이 손으로 흙무든 그 손길을 잡고 안놓기를 맹서하였드니만…… 때아닌 모진 추위에 그 손길을 놓시(치)리라고야! 차라리 그 손을 잡은채 이 손길이 얼엇든들 차디찬 이 손 그 손 찾어 헤매는 이 손길엔 빈 허공만이 만저질뿐…… 덧없는 꿈 아닌 꿈 이같은 꿈이 우리에겐 그 얼마나 많든가?                 一九三六. 二14)     박계주의 《엿장사》와는 주제적으로 같은 경향을 보이지만 좀더 은유적이고 세련된 시적언어로 표현되고있다. 이 시에서 키워드는 《손》과 《꿈》이다. 《하-얀 이 손》은 아무래도 지식인을 상징할것이고 《흙무든 그 손길》은 농민을 상징할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손의 맞잡음은 지식인과 농민의 결합을 의미할것인데 《때아닌 모진 추위》때문에 그 손을 놓치고말았다고 했다. 이때 《때아닌 모진 추위》는 이들의 결합을 방해한 어떤 힘이나 세력이 될것인데 1936년이라는 시대적상황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일제의 폭압에 의해 그러한 지식인과 농민의 련대가 파괴되였음을 의미할것이다. 그래서 이제 련대를 잃은 지식인의 고립된 처지를 한탄하고있는것이다. 상당히 혁명적이고 저항적인 주제의식을 드러냈다고 할수 있지만 여러가지 복잡한 시적인 장치를 동원한까닭에 일제의 검열을 피할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리고 그러한 검열이 없다고 해도 이러한 시적인 장치는 시가작품의 함축성과 표현력, 그리고 미학적인 효과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는것 같다.   《북향》지의 시작품중에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시》는 기본적으로 습작품의 수준을 넘지 않는다. 치기와 감정과잉, 표현의 단순화 등이 이들 학생시의 기본적인 특징이라 하겠는데 그중에서 시적인 표현을 시도하고 또 어느 정도 문제의식을 보여준 작품이라 할수 있는 대성중학교 최봉록(崔奉錄)의 《思鄕》을 들어보이면 다음과 같다.   故鄕!   나의 故鄕은!     나는 이같이 목메어 부른다오       그러나 故鄕은 對答좃차 없구려   ×  ×  × 이때나 저때나   故鄕消息 있을까 기달여도     기럭이 소래좃차       안들이나니 오! 우리는 永遠히 故鄕을 등저야 하는가!!15)     과잉된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것으로 특징지어지는 이 시기 학생시중에서는 그나마 시적인 표현이 얼마간 엿보인다 하겠다. 즉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소식을 들을길 없다는 의미를 기러기소리조차 안들린다는 비유로 표현함으로써 주제의식이 좀더 시화되였다 할수 있는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행에서 《우리는 永遠히 故鄕을 등저야 하는가!!》라는 격한 부르짖음은 이주민의 서러운 정서를 표현한것이여서 문제의식을 띠고있다 하겠다.   그러나 다수의 학생시 작품들은 이 정도의 표현이나 문제의식도 갖추지 못하고있다.   [출처] 일제강점기 조선족 시문학의 갈래와 특징(2)|작성자 반벽거사  
708    일제 강점기 조선족 시문학 댓글:  조회:4519  추천:0  2015-09-17
  일제강점기 조선족 시문학의 갈래와 특징                                                 /장춘식     들어가기 전에: 이 글은 본인의 저서 의 한 장입니다. 인용문의 글자가 웹문서에 부적격한 것들이 있어 가끔 탈락되는 수가 있습니다. 또 각주로 처리되었던 것들이 사라지는 것도 큰 유감이지만 현재까지는 무슨 방도가 없네요. 각주까지 꼭 필요한 분들께서는 덧글을 달고 메일 주소를 남겨 주시면 파일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일제강점기 우리의 시문학은 항일유격구의 항일시가와 일제강점지 문단시가 두갈래로 뚜렷하게 나뉘여진다. 이는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력사적상황에서 특이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항일유격구의 항일시가는 시가창작의 주체와 사회지배층의 정치적인 지향이 동일하였기때문에 당연하게도 일제에 저항하여 광복을 이루겠다는 정치적인 지향성이 작품속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일제강점지역의 문단시가는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시가창작의주체와 사회지배층의 정치적인 지향이 동일하지 않았기때문이다. 지배층의 정치적인 지향과 그에 반항하거나 적어도 동조하지 않으려는 시가창작주체들간의 모순된 환경에서 이루어진것이 일제강점지의 시가문학이다. 물론 시가창작의 주체내부에도 정치적인 지향은 다양하였고 따라서 시가작품에 드러나는 정치적인 지향이나 주제의식의 성향도 다양하다. 그러나 적어도 일제식민통치에 순응하거나 심지어 일제식민통치를 찬양하는 성향을 띤 작품은 아주 적은 부분을 차지한다. 동시에 일제에 대한 저항을 로골적으로 드러낸 작품도 매우 적거나 거의 없었던것 같다. 다수의 작품들은 현실에 대한 부적응이나 불만을 즐거움이나 기쁨이 아닌, 분노나 암울함, 슬픔 등 여러가지 부정적인 정서의 표현을 통해 드러내고있다.   Ⅰ. 항일시가     항일시가는 주로 항일유격투쟁중에 창작된 시가를 말한다. 조선족의 항일투쟁이 동북지역과 관내지역 두 부분으로 나뉘여지기때문에 항일시가 역시 이 두 지역의 항일시가로 나뉘여진다. 그리고 이들 두 지역 항일시가는 장르적으로 항일가요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따라서 이 항에서 항일시가로 분류된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항일가요들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항일가요의 가사 즉 노래말부분이다.     관내지역 항일시가   조선의용군, 광복군들이 활동했던 관내지역에서 창작된 가요들은 일제의 죄악에 대한 규탄과 항일군민들의 투쟁의지를 고양하는 내용들이 기본적인 주제를 이루고있다. 대표적인 작품들로 혁명가요 《최후결전》(석정), 《의용군행진곡》(리덕산), 《어둠을 뚫고》(김학철), 《광복군항일전투가》(송호성), 《민족해방가》(작자미상), 《자유는 빛난다》(작자미상), 《선봉대가》(이두산) 등을 들수 있다.1)     동아의 노예들 단결하여 일떠나   다같이 쳐부시자 일본군벌   우리는 동아의 참다운 주인공   다 앞으로 동무들아!     조선의 형제 대만의 동포   그 압박 또 어찌 받을소냐   혁명의 기발 높이 추켜들고   다 앞으로 동무들아!         ---《전가》     사회주의 공산주의 리념에 의한 혁명사상과 반침략투쟁의 의지를 동시에 구현하고있다. 계급적자각과 민족의식을 담고있음이다. 당시 항일무장투쟁에 나선 의용군이나 광복군들의 사상적리념이 그대로 반영된셈이다.     최후의 결전을 맞으러 나가자   생사적 운명의 판가리다   나가자 나가자 굳게 뭉치여   원쑤를 소탕해 나가자   [후렴] 총칼을 메고 혁명의 길로          다 앞으로 동무들아          혁명의 기는 우리앞에 날린다          다 앞으로 동무들아!        ---《최후결전가》에서     이 작품은 시적인 가공의 과정을 거의 거치지 않고 혁명의 의지를 직설적으로 표현하고있다. 항일혁명의 구호를 그대로 시적인 리듬만 갖추어서 표현하였다 하겠는데, 그러나 그만큼 직접적인 선전선동의 효과를 달성하고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수용자 대중의 수준에 맞춰진것으로 항일가요의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전부가 그런것은 아니고 일부 민중적인 수사법과 투사적격정을 두루 갖춘 작품들도 창작되였다. 가령,     사나운 비바람 치는 길에서   다 못가고 쓰러지는 너의 뜻을   이어서 이룰것을 맹세하노니   진리의 그늘밑에 길이길이 잠들어라   ……          ---《조선의용군추도가》에서     더럽던 동방하늘 전운을 뚫고   광명은 불꽃같이 굽이쳐 빛나   뛰노는 가슴파도 쇠북 치나니   사무친 원한 풀러 나가자   [후렴] 우리 자유 우리 행복 우리 나라          이 주먹 이 총칼로 빼앗아오자   ……           ---《진군가》에서   등 작품들은 시적인 공명과 력동성이 돋보인다. 주제사상의 표현에 맞는 문체와 수사를 적절히 사용한 외에 력동적인 운률을 조성함으로써 내용과 형식면에서 강한 표현력을 획득하고있는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선의용군들의 불굴의 의지와 투쟁정신을 드러내고 선전선동의 목적에 도달할수 있었던것이다.   이밖에도 당시 조선족인민이 처한 망국노의 운명을 통탄하고 고국의 고향산천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표현한 《망향가》, 《그리운 조선》, 《고향리별가》 등이 부대와 대중들속에서 널리 애창되였으며 연안의 대생산운동에 참여한 군민들의 정서를 반영한 《호미가》(류동호 작사), 《미나리 타령》(집체 작)과 같은 가요들도 군민의 사랑을 받았던것으로 전해졌다.   관내의 혁명부대내에서는 상기한 가요외에 시집 《자유의 노래》(프린트본, 작품을 찾지 못하고있음)를 인쇄한바 있고 일부 자유시들이 창작발표되기도 하였다. 이중에서 민족부흥에 대한 기원을 표현한 《조국을 부흥의 길로》(려전. 1940), 《너 또 왔는가―3.1절을 기념하여》(리두산, 1940), 《광복》(진구, 1941), 망국노의 삶을 통탄하며 민족의 재생을 위해 헌신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압록강》(백치, 1941), 《어머니를 그리며》(운청, 1940)와 중조 두 민족의 친선을 노래한 《양자강》(김유, 1941) 등이 주목을 받은것으로 알려졌다.     동북지역의 항일시가   관내지역 항일시가와 쌍벽을 이루며 동북지역의 항일시가도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관내지역의 항일시가는 량적으로 적다고 보기 어려우나 현재 남아내려오는 자료가 빈약하여 사실상 오늘날 우리 항일시가문학의 주요 업적은 동북지역의 항일시가라 해도 대과는 없을것이다.   그런데 동북지역 항일시가는 관내지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항일가요가 절대다수를 차지하지만 관내지역의 경우와는 달리 일반적으로 전문적인 작가들의 창작이 아니라는 뚜렷한 특징을 드러낸다. 무명시인들이나 집단창작에 의해 이러우진것으로 보인다.   주제성향의 측면에서는 일제의 만행과 죄행에 대한 폭로단죄, 나라 잃은 민족의 참상 표현, 그리고 일제타도와 국권회복에 민중을 궐기시키려는 선전선동의 내용들이 중심을 이루고있다.   가령 다음 례문은 이를 잘 보여주는 경우다.     1931년 9월 18일   일제놈이 만주를 강점하였다   대포와 비행기며 기관총으로   넓은 만주 피바다로 물들이였다     압박착취 강탈을 당하다못해   일어나는 3천만의 반일의 고함   만주벌판 몇천리를 진동하면서   거족적인 반일전쟁막은 열렸다     (중략)   일어나라 3천만의 로력대중아   우리앞에 무서운것 그 무엇이랴   굳고굳은 반일전선 힘있게 맺어   자유정권 건립하려 힘껏 싸우자         ―《9.18사변가》에서     일제가 동북땅을 강점한 이른바 《만주사변》이라 불리는 《9.18사변》을 상기시키면서 일제의 만행을 폭로규탄한 동시에 3천만 민족이 일떠나 일제를 몰아낼것을 호소하고있다. 아래의 례문들은 그러한 내용들을 좀더 구체화시키고있다 하겠다.     일제놈들이 말발굽소리 더욱 요란타   만주벌과 넓은 천지 횡행하면서   살인방화 착취략탈 도살의 만행   수천만의 우리 대중 유린하도다     나의 부모 너의 동생 그대의 처자   놈들의 총창끝에 피흘렸고나   나의 집과 너의 집, 놈들의 손에   재더미와 황무지로 변하였고나     (중략)   일어나라 단결하라 로력대중아   굳은 결심 변치 말고 살길을 찾아   붉은기아래 백색공포 뒤엎어놓고   승리의 개가높이 만세 부르자         ―《반일가》에서     1932년 4월 6일에   대감자의 반일전쟁 개막되였다.     (중략)   대두천의 불길은 하늘에 닿고   덕원리의 농촌은 재터뿐이다     무죄량민 주검은 들에 널리고   왕청벌엔 인적이 고요하구나     동북땅에 살고있는 중한대중아   일치단결 일어나서 싸워나가자         ―《인민의 처지》에서     이들 가요의 특징은 앞부분에서 일제의 만행을 렬거하여 민중의 분노를 촉발시키는 동시에 마지막부분에 이르면 그러한 일제의 만행을 그냥 두고볼수만은 없으니 모두모두 일떠나서 목숨 걸고 일제와 싸워 이겨야 한다는 원리를 직설적으로, 명료하게 표현하고있다. 다음의 례문들도 별로 큰 차이는 없으나 항일투쟁의 수요와 혁명구호의 변화를 반영한 반일의 통일전선정책을 가요속에 담고있다. 1930년 《붉은 5월투쟁》때에 널리 애창된 《총동원가》 등이 이에 속한다.     누구나 다 나오라   일제와 주구를 미워하는 동포   전 민족 혁명의 반일전선에   모두다 모여오라   내몰자 쳐없애자   일제놈을 우리의 손으로         ꠏꠏꠏ 《누구나 다 나오라》에서     만주의 벌판에 불이 붙는다   만주의 뫼봉우리에 불이 붙는다   시뻘건 화염이 치솟는 그속에서   반일하는 대중의 함성이 인다   나가라 싸우라 항일의 병민들   모두다 전선에 나가 싸우라         ꠏꠏꠏ 《총동원가》에서     이들 작품에는 계급, 계층, 성별, 신앙을 가리지 않고 전 민족적인 통일전선을 결성해야 한다는 중국공산당의 전략사상이 반영되여있다. 무산계급만이 아닌 일제의 망국노 되기를 원치 않는 모든 민족구성원이 반일투쟁에 궐기할것을 호소하고있는것이다. 《민족해방가》, 《로동자가》, 《농민혁명가》, 《혁명곡》, 《녀자투사가》, 《소년투사의 노래》 등 작품들도 같은 주제를 표현하고있다.   한편 항일가요의 또 하나 중요한 주제는 항일투쟁에서 굴함없이 싸운 투사들의 헌신성과 고결한 품성을 노래한것이다. 이런 작품들에서는 동시에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웠던 투사들의 의지와 긍지감도 표현되고있다. 《혁명군의 노래》, 《혁명군인 되련다》, 《혁명의 길》, 《끓는 피는 더 끓어》, 《혁명조의 노래》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남북만주 설한풍 휩쓰는 산중에   결심 품고 떠다니는 우리 혁명군   천신만고 모두다 달게 여기며   피와 땀을 흘린자 그 얼마더냐     몽골사막 지동치듯 거세찬 바람   사정없이 살점을 떼여갈 때에   산림속에 눈깔고 누워 잘 때면   끓는 피는 더욱더 뜨거워진다     지친 다리 끌고서 보보행진코   주린 배를 졸라매고 힘을 돋군다   무정하다 세월은 흘러가는데   목적하는 혁명사업 언제 이룰가         ꠏꠏꠏ 《혁명조의 노래》에서     비슷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항일전쟁의 가렬한 전투에서, 원쑤들의 철창속에서와 단두대에서 굴함없이 싸워 민족적정기를 떳떳이 떨친 항일투사들의 불굴의 의지와 희생정신을 구가한 작품들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연길감옥가》, 《추도가》, 《유격대추도가》 등이 이에 속하는데 특히 《연길감옥가》는 현재까지도 일부 불려지고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바람세찬 남북만주 광막한 들에   붉은기에 폭탄 차고 싸우던 몸이   연길감옥 갇힌 뒤에 몸은 여웨도   혁명으로 끓는 피야 어찌 식으랴     (중략)   너희는 짐승같은 강도놈이다   우리는 평화사회 찾는 혁명군   정의의 총칼은 용서없나니   정당히 판결하라 죄인이 누구냐를     팔다리에 족쇄 차고 자유 잃은 몸   너희놈들 호령에 굴복할소냐   오늘 비록 놈들에게 유린당하나   다음날엔 우리들이 사회의 주인     일제놈과 주구들아 안심말어라   너희 세력 강하다고 뽐내지 말라   70만리 넓은 들에 적기 날리고   열린다 감옥문 자유세계로!     《연길감옥가》의 일부이다. 적의 고문과 박해에 의해 몸은 비록 만신창이가 되였으나 미래에 대한 희망과 민족해방의 의지는 조금도 굽힘이 없다. 반일민족투사의 정신적인 풍모를 잘 그려낸 작품이라 하겠다.   이밖에도 10월사회주의혁명과 국제적친선을 노래한 《쏘련혁명가》, 《10월혁명의 노래》, 《메데가》, 《10진가》, 항일투사들의 다양한 감정의 세계를 드러낸 《유희곡》, 《딴스곡》, 《사랑의 축복》 등 작품들도 많이 창작되여 항일가요의 내포와 외연을 풍부하게 해준다.   한편 항일무장투쟁시기에는 민중들속에서 《유격대》, 《왜호박》, 《어이어이 앵고댕고》, 《왜놈병정 벼락맞았네》 등 항일민요들이 자생하여 불려졌던것으로 전해진다.     뒤동산의 딱따구리   참나무벌레만 잘 잡고요   동서남북 유격대 번쩍   왜놈의 대가리 잘도 까눕힌다네     앞마당의 함박꽃은   바람만 불어도 방긋 웃고요   언제나 잊지 못할 유격대는   인민에게는 언제나 웃음이라네               ―구전민요 《유격대》     동요의 형식을 리용한 이 민요는 그 특징상 구전민요라 보기보다는 오히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창작민요라 보는것이 더 나을것 같다. 하지만 작사자를 알길이 없으니 그냥 민요로 보아도 큰 문제는 없을것이다. 《왜호박》이라는 작품도 비슷한 경우이다.     호박은 가을에야 따는줄 알았더니   겨울에도 호박은 풍년이라네   공산군 《토벌》에 으르렁거리며   거뜰머뜰 떠났던 황군나리들   올적에는 그 위풍 어데로 갔나   수레마다 마대를 싣고 오기에   둥글둥글 무엇이냐 물어봤더니   백두산에 심어놨던 호박이라니   일년사철 잘도 따는 왜호박이라네               ―구전민요 《왜호박》     이는 일제군이 항일유격대《토벌》에 나갔다가 항일유격대에게 저격당해 무리죽음을 내자 급한김에 미처 시체를 운반해올수가 없어 대가리만 잘라 마대에 넣어가지고 오면서도 그것을 호박이라 부르며 민중의 눈을 속여넘기려 했던 랑패상을 신랄하게 풍자하고있다. 《어이어이 앵고댕고》라는 작품에서도 왜놈들의 랑패상을 드러냄으로써 일제멸망의 불가피성을 표현했다 하겠다.     형식적측면에서 항일시가들은 직설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했으며 력동성과 랑만성을 상당히 중요시했던것으로 보인다. 이들 작품은 대체로 단순하고 알기 쉬우며 생활적이고 선동적이다. 따라서 대중성과 투쟁성을 동시에 구비하고있다 하겠다. 그러나 이런 특징을 예술성의 결여로 보는 견해는 수긍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항일시가는 항일혁명투쟁에 민중을 궐기시킨다는 뚜렷한 목적성을 지니고있기때문이다.   이는 또한 항일시가의 존재방식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있는것 같다. 앞에서도 언급된바 있지만 항일시가중에서는 항일가요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항일가요의 주요 영향대상은 민중이며 민중에게 있어 가장 쉽게 받아들여질수 있는 형태가 바로 노래이며 평이하고 투쟁적인 항일가요였던것이다. 따라서 단순성이나 직설적인 표현은 오히려 작품창작의 목적성에 가장 적절한 형식이였다고 보는것이 옳을것 같다.     주 석 ------------------------------------------ 1) 항일시가작품들 다수는 현재까지 텍스트가 공개되지 않아 여기서는 조성일 권철 주필 《중국조선족문학사》(연변인민출판사, 1990)의 자료를 참고했다. [출처] 일제강점기 조선족 시문학의 갈래와 특징(1)|작성자 반벽거사  
707    리육사의 <<로신추도문>> 댓글:  조회:6120  추천:0  2015-09-16
  ...북경 옛 일본군 헌병대 건물. 이곳에 있는 감옥에서 청포도의 시인 이육사가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순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육사 순국지'로 알려진 옛 일본군 헌병대 건물은 관광객도 많이 찾는 베이징의 명소 왕푸징(王府井)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다.   건물 밖이나 안이나 아무런 표지도 없어 이 건물의 정체를 일반인이 알 길은 없어 보였다. 1925년 21살의 나이로 의열단에 가입해 일생을 오롯이 조국독립에 바친 육사는 1943년 체포돼 베이징으로 이송돼 모진 고문을 받았다. 그는 광복을 앞둔 1944년 40살의 나이로 이곳에서 옥사했다.   북경 옛 일본군 헌병대 건물.   옛 일본군 헌병대 건물은 지금 일부 공간이 개조돼 주거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건물의 상당 부분은 오래전에 폐쇄된 상태였다.   중국에서 해당관리 및 보존조치가 없다면 조만간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될 우려가 크다. 건물 앞에서 마주친 한 중국인 남성은 "이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다. 한국의 리루스(李陸史)가 여기서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연히 마주친 중국인의 입에서 이육사라는 이름을 듣게 된 것은 의외였다. "지금 눈 내리고/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이육사의 시 '광야' 중에서)라고 노래했던 저항시인 이육사의 자취는 이처럼 미약하게 남아있다... ...보존, 관리 되기만을... 그리고 력사를 잊지말기... 李 陸 史  출전 :《朝鮮日報》(l936·10·23∼29)  노신 약전-부저작 목록-  노신(魯迅)의 본명은 주수인이며 자(字)는 예재(豫才)다. 1881년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서 탄생. 남경에서 광산학교에 입학, 양학에 흥미를 가지고 자연과학에 몰두하였으며 그후 동경에 건너가서 홍문학원을 마치고 선대 의학전문학교와 동경독일협회학교에서 배운 일이 있다.  1917연에 귀국하야 절강성내의 사범학교와 소흥중학교 등에서 이화학 교사로 있으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이 높아졌다. 그리하여 오회문학운동후 중국문학사조가 최고조에 달하였을 시대에 북경에서 주작인 경제지(耿濟之) 심안영(沈雁永) 등과 함께 『문학연구회』를 조직하고 곽채약(郭採若) 등의 『로맨티시즘』문학에 대하야 자연주의문학운동에 종사하고 잡지 『어사(語絲)』를 주재하는 한편 북경 정부교육부문서 과장 및 국립북경대학 국립북경사범대학 북경여자사범대학 등의 강사로 있었으나 학생운동에 관계되어 북경을 탈출하였다.  1926연 도하문 대학교수로서 남하 그 후 광주중산대학 문과주임교수의 직에 있다가 1928년 이것을 사직하고 상해에서 저작에 종사하는 한편 {맹아일간』이란 잡지를 주재하였다.  이로부터 그의 문학태도는 점점 좌익으로 전향하여 1930년 『중국좌익작가련맹』이 결성되자 여기 가맹하여 활동하던 중 국민정부의 탄압을 받아서 1931年 상해에서 체포되었다. 그 뒤 끊임없는 국민정부의 간섭과 남의사(藍衣社)의 박해중에서 꾸준히 문학적 활동을 하고 국민정부의 가용단체인 {중국작가협회를 반대하던 중 지난 10월 19일 오전 5시 25분 상해시 고탑 자택에서 제거하였다. 형년 56.  주요한 작품으로는 {아Q정전(阿Q正傳)} {눌함( 喊)}{방황(彷徨)}{화개집(華蓋集)}{중국소설사략(中國小說史略)}{약(藥)}{공자기(孔子己)} 등이다.  1932년 6월초 어느 토요일 아침이었다. 식관에서 나온 나와 M은 네거리의 담배가게에서 조간신문을 사서 들고 근육신경이 떨리도록 굵은 활자를 한숨에 내려 읽은 것은 당시중국과학원 부주석이요 민국역명의 원로이던 양행불(楊杏佛)이 남의사원(藍衣社員)에게 암살을 당하였다는 기사이엿다.  우리들은 거리마다 삼엄하게 늘어선 불란서공무국 순경들의 예리한 눈초리를 등으로 하나 가득 느끼면서 여반로(侶伴路)의 서국까지 올 동안은 침점이 계속되었다.  문안에 들어서자마자 편집원 R씨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중국 좌익작가연맹의 발안에 의하여 전세계에 진보적인 학자와 작가들이 상해에 모여서 중국의 문화를 옹호할 대회를 그해 팔월에 갖게 된다는 것과 이에 불안을 느끼는 국민당 통치자들이 먼저 진보적 작가진영의 중요분자인 반재년(潘梓年)(현재남경유폐)과 인제는 고인이된 여류작가 정령(丁玲)을 체포하여 행방을 불명케한 것이며 여기 동정을 가지는 송경령(宋慶齡)여사를 중심으로한 일련의 자유주의자들과 작가연맹이 맹열한 구명운동을 한 사실이며 그것이 국민당통치자들의 눈에 거슬려서 양행불이 희생된 것과 그외에도 송경령 채원배(蔡元培) 노신 등등 상해안에서만 30명에 가까운 지명지사(知名之士)들이 남의사의 『블랙 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뒤 3일이 지난후 R씨와 내가 탄 자동자는 만국빈의사 앞에 다았다. 간단한 소향 의 예가 끝나고 돌아설때 젊은 두 여자의 수원과 함께 들어오는 송경령 여사의 일행과 같이 연회색 두루막에 검은 『마괘아(馬掛兒)』을 입은 중년 늙은이 생화에 싸인 관을 붙들고 통곡을 하던 그를 나는 문득 노신인 것을 알았으며 옆에 섰던 R씨도 그가 노신이라고 말하고난 십분쯤 뒤에 R씨는 나를 노신에게 소개하여주었다.  그때 노신은 R씨로부터 내가 조선 청년이란 것과 늘 한번 대면의 기회를 가지려고 했더란 말을 듣고 외국의 선배앞이며 처소가 처소인만치 다만 근신과 공손할 뿐인 나의 손을 다시한번 잡아줄때는 그는 매우 익숙하고 친절한 친구이었다.  아! 그가 벌써 56세를 일기로 상해시 고탑 9호에서 영서하였다는 부보를 받을 때에 암연 한줄기 눈물을 지우니 어찌 조선의 한사람 후배로써 이 붓을 잡는 나뿐이랴.  중국 문학사상에 남긴 그의 위치 {阿Q의 正傳을 다읽고 났을때 나는 아직까지 阿Q의 운명이 걱정되어 못견디겠다』고 한『로망·로-랑』의 말과 같이 현대중국문학의 아버지인 노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阿Q의 정전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의 阿Q들은 벌써 『로망·로-랑』으로하여금 그 운명을 걱정할 필요는 없이 되었다. 실로 수 많은 阿Q들은 벌써 자신들의 운명을 열어갈 길을 노신에게서 배웠다. 그래서 중국의 모든 노동층들은 남경로의 『아스팔트』가 자신들의 발밑에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시고탑노신촌의 9호로 그들이 가졌던 위대한 문호의 최후를 애도하는 마음들은 황포난의 붉은 파도와 같이 밀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阿Q시대를 고찰하여 보는데 따라서 노신정신의 삼단적 변천과 아울러 현대중국문학의 발전과정을 알아보는 것도 그를 추억하는 의미에서 그다지 허무한 일은 아닐 것이다.  중국에는 고래로 소설이라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완전한 예술적 형태는 존재하지못했다. 삼국연의나 수호지가 아니면 홍루몽(紅樓夢)쯤이 있었고 다소의 전기가 있었을 뿐으로서 일반교양있는 집 자제들은 과거제도에 화를 받아 문어체의 고문만 숭상하고 백화소설같은 것은 속인의 할 일이라 하여나치 않는 한편 소위 문단은 당송팔가와 팔고의 혼합체인 동성파와 사기당과 원수단의 유파를 따라가는 사륙병체문과 황산곡을 본존으로 하는 강서파 등등이 당시 정통파의 문학으로서 과장과 허위와 아유로서 고전문학을 모방한데 지나지 못하였으며 새로운 사회를 창생할 하등의 힘도 가지지 못한 것은 미루어알기도 어렵지 않은 분위기속에 중국문학사상에 찬연한 봉화가 일어난 것은 1915년 잡지 {신청년}의 창간이 그것이다.  이것이 처음 발간되자 당시 『아메리카』에 있던 호적지(胡適之)박사는 『문학개량 추의}라는『문학혁명론』을 1917年 신년호에 게재하여 진도수(陳獨秀)가 이에 찬의를 표하고 북경대학을 중심으로 한 진보적인 교수들이 합류하게되자 종래의 고문가들은 이운동을 방해코저 가진 야비한 정치적 수단을 써 보았으나 1918년 4월 호에 노신의『광인일기』란 백화소설이 발표되었을 때는 문학 화명운동은 실천의 거대보무를 옮기게되고 벌써 고문가들은 추악한 꼬리를 감추지 않으면 안되였다는 것은 그 후 얼마뒤에 노신이 광동에 갔을 때 어떤 흥분한 청년은 그를 맞이하는 문장속에 『광인일기(狂人日記)』를 처음 읽었을 때 문학이란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나는 차차 읽어내려가면서 이상한 흥분을 느꼈다. 그래서 동무를 만나기만하면 곳 붙들고 말하기를----- 중국의 문학은 이제 바야흐로 한 시대를 짓고있다. 그대는 『광인일기』를 읽어보았는가 또 거리를 걸어가면 길 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내 의견을 발표하리라고 생각한적도 있었다……』 (魯迅在廣東)  이 문제의 소설 『광인일기』의 내용은 한 개 망상광의 일기체의 소설로서 이 주인공은 실로 대담하게 또 명확하게 봉건적인 중국 구사회의 악폐를 통매한다. 자기의 이웃사람은 물론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자기 가정을 격열히 공격하는 것이다. 가정--------가족제도라는 것이 중국봉건사회의 사회적 단위로서 일반에 열마나한 해독을 끼처왔는가. 봉건적 가족제도는 고형화한 유교류의 송법 사회관념 하에 당연히 붕괴되어야할 것이면서 붕괴되지 못하고 근대적 사회의 성장에 가장 근본적인 장애로 되어있는 낡은 도덕과 인습을 여지없이 통매했다. 이에 『광인일기』중에 한절을 초하면  『나는 역사를 둬적거려 보았다. 역사란건 어느 시대에나 인의도덕이란 몇 줄로 치덕치덕  씨여져 있었다. 나는 밤잠도 안자고 뒹굴뒹굴 굴러가며 생각하여 보았으나 겨우 글자와 글자사이에서 『사람을 먹는다』는 몇자가 씌여 있었을 뿐이었다.』  이같이 추악한 사회면을 폭로한 다음 오는 시대의 건설은 젊은 사람들의 손에 맡겨져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이소설의 일편은『어린이를 구하자』는 말로서 끝을 맞는다. 실로 이 한말은 당시의 『어린이』인 중국 청년들에게는 사상적으로는 『폭탄선언』이상으로 충격을 주었으며 이러한 작품이 백화로 쓰여지는데따라 문학화명이 완전히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된 공적도 태반은 노신에 돌려야하는 것이다.  『광인일기』의 다음 연속해 나온 작품으로 『공을이(孔乙已)』『藥』『明日』『一個小事件} {두발적고사(頭髮的故事)』『풍파(風波)』{고향(故鄕)』등은 모두 신청년을 통해서 세상에 물의를 일으켰으나 그후 1921년 북경신보문학부간에 그유명한 『阿Q正傳』이 연재되면서부터는 노신 자타가 공인하는 문단 제1인적 작가였다.  그리고 이러한 대작은 모두 신현화명 전후의 봉건사회의 생활을 그린것으로 어떻게 필연적으로 붕괴하지 않으면 안될 특징을 가졌는가를 묘사하고 어떻게 새로운 사회를 살아갈가를 암시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당시의 혁명과 혁명적인 사조가 민중의 심리에 생활의 『디테일스』에 어떻게 표현되는가를 가장『레알』하게 묘사한 것이다. 더구나 그는 농민작가라고 할만큼 농민생활을 그리는데 교묘하다는 것도 한가지 조건이 되겠지만는 그의 소설에는 주장이 개념에 흐른다거나 조금도 무리가 없는 것은 그의 작가적 수완이 탁월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늘 농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것과 때로는 『인테리』일지라도 예를 들면 『孔乙己』의 공을기나 『阿Q正傳』의 阿Q가 모두 일파이 상통하는 성격을 가지는 것이니 孔乙己는 구시대의 지식인으로 시대에 떨어져서 무슨 일에도 쓰여지지 못하고 기품만은 높았으나 생활력은 없고 걸인이 되어 선술집 술상대에 이금십구적 주책가 어느때까지 쓰여져있는데로 언제인지 행방이 부명된 체로 나중에 죽어졌던 것이라던지 『룸펜』농민인 阿 Q가 또한 쑥스러운 녀석으로 혁명혁명 떠들어 놓고는 그것이 몹시 유쾌해서 반취한 기분이 폭동대의 일군에 참가는 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허풍만 치고 아무것도 못하다가 때마침 얼어난 폭도의 경탈사건에 도당으로 오해되어 (피의 평소 삼가지 못한 언동에 의하야) 피살되는 阿Q의 성격은 그때 중국의 누구라도가 전부 혹은 일부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阿Q가 공을 이가 모두 사고와 행동이 루-즈하고 확호한 한개의 정신도 없으며 우약하면서도 몹시 건방지고 남에게 한개 쥐여질리면 아무런 반항도 못하면서 남이 자신을 연민하면 제 도량이 커서 남이 못 덤비는 것이라고 제대로 도취하여 남을 되는대로 해치는 무지하고 우수면서도 가엷고 괴팍스러운 것을 노신은 그『레얄 리스틕}한 문장으로 폭로한 것이 특징이 였으니 당시 『阿Q正傳』이 發表될 때 평소 노신과 교분이 좋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자기를 모델로 고의로 쓴 것이라고들 떠드는 자가 있은 것을 보아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중국은 시대적으로 『阿Q 時代』이 였으며 노신의 『阿Q正傳』이 발표될 때는 비평계를 비롯하여 일반지식군들은 『阿Q相』이라거나 『阿Q時代』라는 말을 평상대화에 사용하기를 항상 다반으로 하게된 것은 중국문학사상에 남겨놓은 노신 위치를 짐작하기에 좋은 한개의 재료거니와 그의 작가로서의 태도를 통하야 일실하여있는 노신정신을 다시한번 음미해보는데 적지않은 흥미를 갖게된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조선문단에는 누구나 할것없이 예술과 정치의 혼동이니 분립이나 하나 문제가 엇지보면 결말이 난 듯도 하고 어찌보면 미해결 그대로 있는 듯도한 현상인데 노신같이 자기신념이 굳은 사람은 이 예술과정치란 것을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이문제는 그의작가로서의 출발점부터 구명해야한다.  노신은 본래 의사가 되려고 하였다 그것은 자기의 『할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때의 자기의 『할일』이란 것은 민족개량이라는 신념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後年『눌함』서문에 다음 같이 썼다.  『나의 학적은 일본 어느 지방의 의학전문학교에 두었다. 나의 꿈은 이것로으 매우 아름답고 만족했다 졸업만하고 고국에 돌아오면 아버지와 같이 치료 못하는 병자을 살리고 전쟁이 나면 출정도하려니와 국인의 유신에 대한 신앙에 까지 나아갈 것------』이라고  이것은 물론 소년다운 노신의 로맨틱한 인도주의적 흥분 이였겠지만은 이꿈도 결국은 깨여지고 말았다.  ------의학은 결코 긴요하지 않다. 우약한 국민은 체격이 아무리 좋다고해도 또 아무리강상해도 무의미한 구경거리나 또는 구경꾼이 되는 밖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中略---그럼으로 긴요한 것은 그들을 정신적으로 잘 개조할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때 당연 문예라고생각했다. 그리고 문예운동을 제창하기로 했다 (눌함자문)  이리하여 그가 당시 동경에 망명해 있는 중국사람들의 기관지인 『절강조』『하남』 등에 쓰든 과학사나 진화론의 해설을 집어치우고 문학서적을 번역한 것은 희납의 독립운동을 원조한 『빠이론』과 파란의 복수시인 『아담·미케뷧치』『항가리』의 애국시인『베트피 ·산더--』 『필립핀』의 문인으로 서반아 정부에 사형받은『리샬』등의 작품이였다.  그리고 이것은 노신의 문학행정에 있서서 가장 초기에 속하는 것이지만은 이러한 번역까지라도 그의 일정한 목적 즉 정치적 목적 밑에 수행된 것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위에 말한『광인일기』의 『어린이를 구하자』는 말도 순수한 청년들에 의하여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자는 그의 이상을 단적으로 고백한 것으로써 이 말은 당시 일반 청녀들에게 무거운 책임감을 깨닭게 한 것은 물론 이래기천년동안의 봉건사회로부터 청년을 해방하라는 슬로-건으로 널리 쓰여졌고 사실 그 뒤의 중국청년학생들은 모든 대중적 사회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발 과감한 지도와 조직을 하였으며 그 유명한 오사운동이나 오주운동이나 국민혁명까지도 늘 최전선에 서서 대중을 지도한 것은 이들 청년학생이였다.  그럼으로 노신에 있어서는 예술은 정치의 노예가 아닐뿐 아니라 적어도 예술이 정치의 선구자인 동시에 혼동도 분립도 아닌 즉 우수한 작품 진보적인 작품을 산출하는데만 문호 노신의 지위는 높아갔고 阿Q도 여기서 비로서 영생하였스며 일세의 비평가들도 감히 그에게는 함부로 머리를 들지못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한가지 좋은 예가 있다. 1928년항 무한을 쫓겨와서 상해에서 태양사를 조직한 청년비평가 전부촌이 때마침 프로 문학론이 드셀때인만큼 노신을 대담하게 공격을 시작해보았다. 그소론에 의하면 노신의 작품은 비계급적이다. 阿Q에게 어디 계급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정당한 말이다. 노신의 作品에서 우리는 눈딱고 보아도 푸로레타리아的 특성은 조금도 볼 수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사람의 작품을 비평할 때는 그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는것이서 노신이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을 때는 중국에는 오늘날 우리가 정의를 내릴수 있는 푸로레타리아는 없을 뿐 아니라 그때쯤은 부르조아민 민주주의적인 정치사조조차도 아직 계선이 분명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부르조아혁명이라는 소위 국민혁명도 정직하게 말하자면 사오운동을 전반전으로 한 것만큼 여기서 역시 중국의 비평가인 병신(丙申)은 재미있는 말을 하고 있다.  『그가 현재 중국좌익작가연맹을 지지하고 있다해서 그의『四五』전후의 작품을 프로 문학이라고 지목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를 우수한 농민작가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고---』  그러다. 이 말은 어느 정도까지 정당에 가까운 말로서 그를 프로 작가가 아니고 농민작가라고해서 작가 노신의 명의를 더럽힐 조건은 되지못하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그가 얼마나 창작에 있서서 진실하게 명확하게 묘사하는 태도를 가지는가 그의 한말을 써보기로 하자.  『--현재 좌익작가는 훌륭한 자신들의 문학을 쓸수있을까? 생각컨대 이것은 매우 곤난하다. 現在의 이런 부류의 작가들은 모두 『인테리』다. 그들은 현실의 진실한 정형은 쓸려고해도 용이치않다. 어떤 사람이 즉 이런 문제를 제출한것이 있었다. 『작가가 묘사하는 것은 반드시 자기가 경험한 것이라야만 될 것인가? 그러나 그는 스스로 답하기를 반드시 안그래도 좋다. 왜그러냐면 그들은 잘 추찰할 수가 있으므로 절도하는 양면을 묘사하려면 작가는 반드시 자신이 절도질할 필요도 없고 간통하는 장면을 묘사할 필요를 느낄때 작가 자신이 간통할 필요도 없다고』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작가가 구사회 속에서 생장해서 그 사회의 모든 일을 잘 알고 그 사회의 인간들에게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추찰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종래 아무런 관계도 없는 새 사회의 정형과 인물에 대해서는 작가가 무능하다면 아마 그릇된 묘사를 할 것이다. 그럼으로 프로 문학가는 반드시 참된 현실과 생명을 같이하고 혹은 보다기피 현실의 핏박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또 다시 말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사회를 조그만치 공격하는 작품일지라도 만약 그 결점을 분명히 모르고 그 병근을 투철히 파악치 못하면 그것은 유해할뿐이다. 애석한 일이나마 현재의 프로 작가들은 비평가까지도 왕왕 그것을 못한다. 혹 사회를 정시해서 진상을 알려고도 않고 그 中에는 상대자라고 생각하는 편의 실정도 알려고하지 않는다.  비근한 예로는 얼마전 모지상에 중국문학계를 비평한 문장을 한편 보았는데 중국문학계를 삼파에 나눠서 먼저 창조파를 들어 프로파라 하여 매우 상세하게 논급하고 다음 어사사를 소뿌르파라고 조그만치 말한 후 신월사를 뿌르 문학파라 해서 겨우 붓을 대다가만 젊은비평가가 있었다 이것은 젊은 기질의 상대자라고 생각는파에 대해서는 무엇 세밀하게 고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을 표명한 것이다. 물론 우리는 서적을 볼 때 상대자의 것을 보는 것은 동派의 것을 보는 안심과 유쾌와 유익한데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만약 일개전투자라면 나는 생각컨대 현실과 상대자를 이해하는 편의상 보담 만은 당면의 상대자에 대한 해부를 필요로 하지않으면 안될 것이다. 옛것을 분명히 알고 새로운 것에 간도하고 과거를 료해하야 장래를 추단하는데서만 우리들의 문학적 발전은 희망이 있다. 생각건대 이것만은 현재와 같은 환경에 있는 작가들은 부단히 노력할 것이고 그래야만 참된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라고  이 간단한 몇마디 말이 문호 노신의 창작에 대한 『모랄』인 것이다. 이 얼마나 우리의 뼈에 사무치고도 남을만한 시준인고! 이래서 현대중국문단의 父이며 비평가의 비평으로서 자타가 그 지위를 함께 긍정하든 그의 작가로서의 생애는 너무나 짧은 것이었으니 1926년 3월 『이혼』이란 작품을 최후로 남긴 그는 교수로서 작가로서의 화려한 生애는 종언을 고하지 않느면 안될때가 왔다. 그는 지금부터 『손으로 쓰기보다는 발로 달려나가기 더 바밨다.}1926년 북양군벌을 배경으로 한 안복파의 수령 단사서의 정부는 급진적인 좌파의 교수와 우수한 지식분자오십여명 체포령을 내렷다. 우리 노신은 이 오십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1924년 국민당의 연아용공책이 결정되어 그 익년 가을 『뽀로듼』等이 고문으로 광동에오고 『전국민적공사전선』이었던 국민혁명의 제 일계단인 광동시기에는 프로레타리아의 동맹자는 농민도시빈민 소프로지식계급 국민적 부르조아지 였다』  그래서 급진교수들은 교육부총장 군벌정부를 육박하였으며 이러한 신흥세력에게 낭패와 공포를 느낀 군벌정부는 이러한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체포령을 내리고 학생들의 행렬은 정부위병들의 발포로 인하여 남녀수백여명의 사상자가 낳다. 그때 노신은 북경동교민항의 공사관구역의 외국인병원이나 공장안으로 도라단이며 찬물로 기아를 참아가면서도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하여 군벌정부를 맹렬히 공격하였다 그중에도 『국민이래 최암흑일에 지』하였다는 명문은 단사서로 하여금 기자에 내려안게되었다.  ---붓으로 쓴 헛소리는 피로 쓴 사실을 간과하지 못한다--중략--붓으로 쓴 것이 무슨 힘이 있으랴 실탄을 쏘는 것은 오직 청년의 피다(속화개집)  오늘날까지 중국문단의 『막심 콜키-』이든 그는 지금부터는 문화의 전사로서 『양리 ·발뷰스』보다 비장한 생애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의 말과 같이 최암흑한 오십일이 지나고 그는 북경을 탈출했다. 하문대학에 초청을 받아갔으나 대학기업가의 음흉수단인 것을 안 그는 광동중산대학으로 갔다. 그러나 1926년 6월 15일 장개석의 쿠-폐타는 광동일성만 노동자 농민급진지식분자 삼천여명을----하였으며 한때는 『혁명의 전사』라고 간판을 지은 노신도 상해로 달아나야만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 번 그에게 흥미보다는 최대의 경의를 갖게되는 것은 다음의 일문이다  ----나의 일종 망상은 깨여졌다. 나는 지금까지 때때로 악관을 가졌었다. 청년을 압박하고---하는 것은 대권로인이다 이들 노물들이 다 죽어지면 중국은 보다더 생기있는 것이되리라고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러하지 않은 것을 알았다. 청년을----하는 것은 대개는 청년인듯하다 또 달리 재조할 수없는 생명과 청춘에 대해서 한층더 아낌이 없시------(而己集)  이 글은 그가 심묵하고 있는 것을 『공포』때문이라고 조소한 사람에게 답한 통신문의 일절로서 이때까지 진화론자이던 그 자신의 사상적 입장을 양기하고 새로운 성장의 일단계로보인것이라고 해석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  그가 상해에 왔을때는 국민당의 쿠-데타-로 혁명군서 쫓겨온 젊은 프로문학자가 만났다 『혁명문학론』이 불려지고 실제 정치행동의 전선을 떠난 그들은 총칼대신에 펜을 잡았다. 원기왕성하게 실제공작의 경험에서 매우 견실한 것도 있었으나 때로는 자부적인 영웅주의가 화를 끼치고---에 실패한 불만과 극좌적언 기회주의자들은 노신을 공격했다. 그러나 그는 프로문학이란 어떤것인가 또는 어찌해야 될 것인가를 알리기 위해 아버지같은 애무로서 『푸레하노프』 『루나찰스키--』들의 문학론과 『싸벳트』의 문예정책을 번역소개하여 중국 프로문학을 건설하고 있는 동안에 『노신을 타도치 않으면 중국에 프로문학은 생기지 못한다』던 문학소아병자들은 그 자신들이 먼저 넘어지고 이제 그가 마저가고 말았다. 이 위대한 중국문학가의 영 앞에 고요히 머리를 숙이면서 나의 개인적으로 곤난한 수형에 의하여문호 노신의 윤곽을 뚜렷이 그리지 못함을 점괴히 알며 붓을 놓기로 한다. -了-  ----------------------------------------------------------------   魯迅 1. 생애   1-1. 출생, 일본 유학, 귀국 이후의 활동 노신은 1881년 9월 25일 중국 저장성 소흥에서 태어났다. ‘노신’은 그의 필명이며, 본명은 주수인(周樹人)이다. 그는 지방에서 위세 있는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노신이 13세 때 할아버지가 뇌물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고 아버지가 병사함으로써 집안이 몰락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전통 교육을 받고 한 때 과거에도 응시했지만, 가정 형편을 고려해 학비가 무료인 남경의 수사학당(해군학교)에 진학했으며, 곧 광무철로학당(철도학교)로 옮겨 본격적으로 신학문을 접한다. 기본적인 어학공부를 마친 1904년에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지만, 강의도중에 중국인 처형장면을 보여주는 영화가 상영되자, 이에 분노해 의학공부를 파기하고 자퇴한다. 공부를 중단한 뒤에도 노신은 한동안 동경에 머물면서 현지의 중국인 유학생등과 교류했다.특히 문학을 통한 민족 계몽을 목표로 삼아 외국 작품을 널리 접하고 중국어로 번역하는 일에 매진했다. 그가 최초로 유학생 잡지에 투고한 글은 테르모필레 전투에 관한 번역소설 ‘스파르타의 혼’이었으며, 후에 동생 주작인과 함께 번역 단편집 ‘역외소설집’(1909)을 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정 형편이 악화되어 장남인 노신은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을 돌보아야하는 처지가 된다. 1909년 귀국한 노신은 항주에서 교사가 되었지만 보수적인 학교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사직하고, 1919년 우창봉기로 인해 소흥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면서 노신은 사범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지만, 역시 몇 개월 견디지 못하고 고위층과의 갈등으로 사직한다. 1912년 1월 1일 중화민국이 수립되자 남경 임시정부의 교육부 장관이 된 채원배가 노신을 찾아, 그 때부터 그는 교육부에서 일하게 되었고, 다음해 임시정부를 따라 북경으로 거처를 옮긴다.   1-2 본격적인 문학 활동 노신은 그 당시 허무와 자조 상태에 빠져, 교육부의 업무 외에는 거의 두문불출하며 고전 연구에만 전념했는데 , 이는 유학 시절에 품었던 계몽주의적 포부가 귀국 이후에 현실의 두꺼운 벽 앞에서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노신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문필활동을 하게 한 계기가 있었는데, 이에 관해 그는 첫 번째 작품집 ‘외침’(1923)의 서문에서 밝힌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찾아와서 잡지에 수록할 원고를 청탁하자 노신은 반론을 제기한다. “ 가령 창문이 없고 무너트리기 어려운 무쇠로 지은 방이 있는데, 만일 그 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이 들어 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막혀 죽을게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죽는다면 죽음의 슬픔을 느끼지는 않을 걸세. 지금 자네가 큰 소리를 쳐서 잠이 깊이 들지 않은 몇몇 사람을 깨워, 그 불행한 사람들에게 임종의 괴로움을 맛보게 한다면 오히려 더 미안하지 않은가?” 그러자 친구는 반문한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일어난 이상, 이 무쇠 방을 무너트릴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친구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노신은 글을 한 편 기고하게 되는데, 그것이 1918년 5월15일자 ‘신청년’에 실린 첫 단편소설 ‘광인일기’이다. 노신이라는 필명도 이때에 처음 사용한다. ‘문화 혁명’이후에 신문화운동이 한창이었던 당시 상황에서 노신의 작품은 곧 주목을 받게 된다. 노신의 동생 주작인도 뛰어난 글 솜씨로 명성을 얻지만, 1919년 노신과 주작인 사이에 큰 불화가 생겨 남은 평생 동안 서로 인연을 끊고 지내는 일이 발생했다. 1921년 12월 4일자‘신청년’에는 노신의 소설 ‘아Q정전’의 첫 회가 간행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아Q의 딱하고 어리석고 불운한 인생은 당신 노신이 절감한 중국과 중국의 현실을 집약한 것으로 평가되며,연재 당시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외에도 노신은 소설집 ‘방황’(1926), 산문집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1927), 산문시집 ‘들풀’(1929), 문학론 ‘중국소설사략’(1924)를 간행했으며, 70개가 넘는 수많은 필명으로 여러 잡지에 ‘잡문’ 또는 ‘잡감문’을 기고했다. 현대 중국 문학의 아버지로 손꼽히지만, 정작 그가 남긴 문학 작품은 중편 1편, 단편 32편으로 상당히 적은 편이며 수준도 들쑥날쑥하다.   1-3. 말년의 본격적인 투쟁 1920년부터 노신은 베이징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그중 한 곳인 베이징 여자사범대학에서의 한 가지 사건으로 인해 현실의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1924년 반동 성향의 학교 이사진이 개혁 성향의 학생 상당수를 퇴학시키자, 이에 반발하는 학내 투쟁이 지속되어,결국 교육부에서 폐교 조치를 단행한다. 우여곡절 끝에 학교가 다시 문을 열고 학생도 돌아올 수 있었지만 이 사건에서 공개적으로 학생들을 지지했던 노신은 결국 13년간 몸 담았던 교육부에서 파면된다. 그 즈음 노신과 인연을 끊은 동생 주작인과 동료 문인 임어당이 각각 “물에 빠진 개는 때릴 필요가 없다.” 그리고 “패배한 자를 더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 페어플레이 정신이 필요하다.”라는 요지로 논쟁의 자제를 요청하는 글을 발표했다. 이에 노신은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사람을 무는 개라면 물에 빠졌건 안 빠졌건 간에 무조건 때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페어플레이라는 말조차도 기득권 세력에게 유리하게 사용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불의에 항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27년 노신은 국민당 정권의 4/12대학살에 분노하고, 그해 가을 상하이로 거처를 옮겨 창작보다는 강연과 논쟁에 몰두한다. 신문학 운동의 대표자로 자리 잡은 노신을 향한 신세대 작가들의 비판이 거세었으며, 논쟁을 위해 뒤늦게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1932년 송경령과 채원배 등과 함께 ‘중국민권보장동맹’의 발기인이 되었으며, 같은 해에 동지인 양전이 국민당의 테러로 사망하자, 암살 위협에도 불구하고 문상을 다녀왔는데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우리나라 시인 이육사가 노신을 직접 만나고 감동했다는 일화가 있다. 1936년 노신은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어 그해 10월 19일 새벽에 상해의 자택에서 55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다. 사망 한 달 전에 발표한 ‘죽음’이라는 글에서 노신은 평소의 직선적인 성품에 걸맞는 유언을 남긴다. “장례 때 조의금을 받지 마라.”, “가급적 빨리 매장하라.”, “기념행사 치르지 마라.”, “나에 대해서는 얼른 잊고 당신들이나 열심히 살아가라.”, 등등의 내용이었다. 아울러 그는 임종에 직면해서 오랜 원수조차도 너그러이 용서하는 서양의 관습을 언급한 다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결코 원수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그들도 얼마든지 증오하게 내버려 두어라. 나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2. 노신의 사상   2-1. 노신과 계몽 노신은 5.4 계몽운동을 깊이 공감하고 진심으로 계몽을 후원했으며, 더 나아가 계몽의 본질을 깊이 통찰하고, 거기에서 인생과 세계의 어두운 심연을 발견한다. 따라서 노신은 계몽을 제창하고 계몽을 초월한다. 그는 제자들에게 계몽의 길로 가라고 권유를 했지만 그것이 진정 옳은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뇌했다. 왜냐하면 계몽의 길은 멀고도 험한 가시밭길이며, 혁명전쟁에 참여하면 아무런 댓가도 없이 이름 없는 산골에서, 들판에서 죽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계몽의 길은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자신은 이름 없이 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권해야 하는가? 노신은 계몽의 어둡고 깊은 심연 앞에서 계몽을 초월한다. 그의 소설 ‘아Q정전’에서 그는 중국의 국민성에 깃든 노예근성을 통렬하게 비난한다.아Q라는 근본 없는 야비한 인간의 ‘정신 승리법’, 그것이 중국인의 노예 근성이라는 것이다.아Q에서 벗어나 인간이 되는 계몽의 길을 그는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5.4운동 무렵 북경 여자사범학교 선생을 하면서 학생들의 데모와 경찰의 총격으로 유화진이 사망하고, 사범학교 교장과 다투고, 교육부 장관과 싸우고, 진원 등과의 설전을 벌이면서 그는 점점 계몽의 심연을 보게 된다. 그는 ‘들풀’이라는 시집에서 계몽의 본성과 계몽의 초월을 말한다.   2-2. 고독과 비애, 흡인력, 초인 사상 중국의 평균적인 국민성을 아Q로 설정해 통렬하게 비난한 노신은 아Q와 반대되는 초인을 설정한다. 계몽은 특별한 길이고, 험난한 가시밭길이며, 자신을 계몽하고 나서 세상을 바꾸려 나서는 길이다. 자신을 바꾸는 것도 힘들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더 힘들다. 이런 힘든 계몽의 심연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바로 초인인 것이다. 이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의무이고 당위이기에 계몽의 길로 가는 것이다. 노신의 문학 활동이 바로 그런 초인의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일생 동안 통속을 멸시하고 전통을 공격하며, 용맹하게 세상에 뛰어들어 국민성의 마비를 끊임없이 폭로하고 통렬하게 비판했고, 그에 대한 댓가는 계속되는 싸움, 비난, 멸시, 그리고 탄압이었다. 그가 초인을 외치는 것은 바로 이점, 자신의 계몽된 이성으로 볼 때 도저히 용납되지도 않고 이해도 되지 않는 이 세상의 냉혹한 반격, 차가운 세상, 인생에 대한 당혹스러움에 대한 통찰이 있는 지점이다. 이 지점에서 성립되는 그의 감수성은 고동과 비애의 감정이며, 생활의 근거이며 그의 작품 활동의 힘이 된다. 초인의 정서는 우울한 허무주의 사상인 것이다. 그가 일관되게 가지고 있었던 것은 신랄한 비판과 도독의 비애가 내비치는 현대적 인생의 의미인 것이다.   2-3. 실존의 느낌, 형이상학적 감수성 계몽의 길은 개인의 실존과 직면하는 길이다. 죽음으로 이르는 가시밭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존의 느낌을 노신은 ‘그림자의 작별 인사’에서 말한다. 어떤 그림자가 주인에게 ‘너는 계몽을 따르는 고상한 인간이다. 그러나 나는 평범한 그림자일 뿐이다. 너를 따라다니다 이제 지쳤다. 네가 천국에 간다 해도, 네가 지옥에 간다 해도 함께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빛과 어둠의 중간에서 서성대다가 한 잔의 술을 마시며 조용히 잠겨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림자는 계몽과 혁명의 길로 나서는 지식인들의 자의식을 나타낸 것이다. 그림자가 보았을 때, 너는 평범한 인간이다. 그런데 왜 편한 길을 버려두고 계몽의 길로 가려고 하느냐는 것을 그림자는 묻고 있다. 그림자는 그의 실존의 바닥일 것이다. 이런 일상의 평범함을 떨치고 계몽의 길로 나설 때 사람들은 차가운 현실, 당혹스런 세계와 부딪치게 된다. 이러한 비참한 생에 대한 황당함, 당혹감, 음랭함, 죽음과 삶에 대한 강렬한 감수성은 노신으로 하여금 보통 사람들의 감정을 넘어서 형이상학적 감수성인 비애와 고독으로 빠지게 했을 뿐 아니라, 일생 동안 지속된 노신의 고독과 비애에 형이상학적인 철학적 의미를 띄게 했다. 노신은 불교 이론을 진지하게 연구한 적이 있으며, 니체로부터 안드레예프에 이르는 현대 서구 문예 속에서 현대 의식을 느꼈으며, 일본 문학이 표방하는 인생의 비애감에도 영향을 받아, 노신의 고독과 비애가 일종의 철학적인 풍취를 갖게 된 것일 것이다. 그는 낡은 문화, 낡은 세력과의 싸움에서 느끼고 짊어지고 인식한 어두운 현실, 무거운 고난,고통스런 전투, 아득한 전망, 머나먼 길, 깨어나지 않는 인민 대중, 악의 세력의 거짓과 잔인성, 아는 사람들의 은밀한 공격 등등 이 모든 것이 그를 고독과 비애로 이끌었으나, 그는 기래도 경박한 ‘인도주의’, ‘집단주의’나 ‘과학주의’, ‘이성주의’에 빠져들지 않고, 개체의 ‘현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했다. 2-4. 귀신과 용사, 죽음과 용기의 변증법 계몽의 제창과 초월 속에서 그가 당면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그를 어둡운 곳으로 끌고 갔으며, 그는 늘 죽음을 생각했다. 이에 그는 결국 귀신과 죽음을 사랑하는 경지에 이른다. 그는 중국에서 대표적인 귀신인 무상(無常)과 여적( 女吊)을 찬양한다. 저승사자에 해당하는 무상과 처녀 귀신인 여적 모두 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죽음의 공포와 삶의 용기의 변중은 그의 문학의 기본적 분위기이다. 그는 계몽의 제창에서 세상의 차가움 속에 절대 고독과 비애를 맛보고, 초인사상으로 나아간다. 그는 고독과 비애 속에서 형이상학적 감수성으로 이 세상을 통찰한다. 그는 계몽의 끝에 있는 죽음을 보고, 귀신을 본다. 그는 그런 죽음과 귀신까지도 사랑할 정도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계몽을 향한 강한 의지를 가졌다.     [출처] 노신|작성자 min  
706    당신도 디카시 시인 댓글:  조회:4863  추천:0  2015-09-12
   나도 ‘디카시인’이 될 수 있을까. 단골술집 목포집 한 쪽엔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 야생초를 키우는 풍경이 있다. 주전자와 식물의 공존 방식이 다가왔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고 내 삶이 감정이입 되어 ‘권주가’라는 제목을 붙였다.       당신이 디카 시인이다    일간 경제지 머니투데이는 매주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를 연재하고 있다. 시인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이 사진이 불러오는 시상을 짧은 시로 표현한다. 시집 ‘도요새 요리’로 유명한 최광임 시인이 멋진 시 해설을 붙인다. 사진이 앞장서고 시가 뒤따르는 형식이 디카시(디지털카메라+詩)다. 이 디카시 코너가 모바일 세상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독특한 시선의 사진과 군더더기 없는 짧은 시가 결합했고, 이를 시평으로 풀어내는 최 시인의 디카시 칼럼은 네이버 프런트 페이지에 종종 오른다.   작금의 시는 문자성을 꼿꼿이 강조한 채 소수 문학인 집단의 향유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문자성을 본질로 삼고 이미지와 영상을 한 아름 품을 것인지를 결단해야만 한다. 고답적으로 자유시 산문시 정형시 서정시 서사시 등으로 분류되던 현대시는 새롭게 태어나야만 한다. 시 독자가 떠나버린 황량한 시단엔 시인들 푸념만 가득하다. 8000원 짜리 시집은 팔리지 않고 광화문 교보문고 시집 코너는 쓸쓸하기만 하다. 이 땅에 한글로 시를 쓰는 시인이 자칭 타칭 2만 명에 이른다. 시 전문 문예지는 수백 종에 다다른다. 하지만 시를 즐기는 독자군은 눈에 띄지 않는다. 시인은 어느 별에서 사라진 시 독자와 재회할 것인가. 가장 오래된 문학의 원조인 시는 어디에다 둥지를 틀 것인가.   바로 스마트폰이다. 모바일 네트워크 시대, 인류는 호모 디지쿠스를 지나 호모 모빌리쿠스로 진화했다. 현대인은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현대시가 SNS 소통환경에 최적화되어 다시 시의 깃발을 들어 올린 경우가 바로 디카시(dicapoem)다. ‘디카시’라는 용어는 2004년 이상옥 시인이 최초로 사용했고 공론화시켰다. 이 디카시가 사그라지는 현대시를 되살리고 있다. 멀티 언어예술로서 시의 언어 카테고리를 확장시킨 셈이다. 즉 시의 진화이다. 시는 사진과도 만나고 그림 애니메이션 플래시 동영상과도 만나야 한다. 문학 위기의 시대, 시가 스마트 미디어를 만나 문학의 본류를 부활시킬 수 있는 마지막 싹이 된 것이다.    디카시 칼럼의 한 사례. 냉면 사발에 오롯이 들어앉아 잠을 취하는 강아지의 모습이 애처롭다. 이 풍경에서 날선 이미지와 메시지를 포착해 디카시는 태어난다. ​   삶의 길을 걷던 시인(당신이 시인이다)이 주변 풍경과 사물을 일별하면서 영감을 주는 이미지를 포착한다. 자신의 휴대전화를 열어 찰칵 찍는다. 이때 가슴도 열어 심상의 필름에 새겨둔다. 감흥이 채 식기 전에 서너 줄의 시적 언어로 꿰고 엮어 편집해둔다. 독특한 이미지는 시상(詩想)을 열어주고 시 언어는 이미지의 날개를 달고서 하늘을 난다. 이때 시인은 기성 문단에 등단한 시인이 아니다. 바로 현대인 우리 자신이다. 저마다 휴대폰엔 수백 수천 장의 사진이 보관되어 있다. 이중에서 타인의 시선과 차별화된 사진 하나를 골라 나만의 서너 줄 문장을 보태보라. 깔끔하고 상징화된 시 제목을 한번 붙여보라. 바로 그것이 당신의 디카시다.   당신이 기르는 애완견 사진 한 장은 그 자체만으론 예술적 아우라를 갖지 못하지만 공감과 감수성을 장착한 시 문장을 갖추면 예술적 오브제로 승화된다. 당신의 '일상 역사' 수천 장을 휴대폰에 켜켜이 쌓아 놓고 사장시키지 말라.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열람하다 보면 수많은 사진과 만난다. 포스팅한 사진에 제 나름 감수성이 묻어나는 문장이 덧붙여진다. 사진에 깜찍한 캡션을 다는 일. 바로 디카시의 출발점이다. 이미지가 문자에 또는 문자가 이미지에 종속되지 않고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며 시 에너지를 증폭시킨다. 디카시는 진지함이나 근엄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가벼운 일상에서 이미지를 채취하므로 산책하는 기분처럼 상쾌하다. 관념적 사유가 아니라 일상을 즐기는 낭만정신을 앞세운다.   디카시가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끈 요인으로는 ‘열린 참여’라는 전제가 자리 잡고 있다. 디카시는 이미지라는 영상에 시의 압축성을 결합한 것이다. 4~5행 안팎에 시적 메시지를 압축한다. 1분이면 읽어내기에 이미지 전달력이 빠르고 강력하다. 고답적인 고담준론의 관념성은 발붙이지 못한다. 대신 일반인의 참여가 환영받는다. 이 지점에서 디카시의 향유층은 바다처럼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다. 향후 디카시는 소셜 네트워크 콘텐츠로 어떻게 자리매김될까. 인간 고유의 보편적 정서를 기반으로 일상을 스케치하는 이미지와 글월이 밀고 당기므로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나아가서 전 세계인의 보편 정서까지 노크할 수 있다. SNS 상 언어번역기능이 세밀히 작동된다면 한국어의 한계을 뛰어넘어 전 세계를 가로지르는 글로벌 문학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새 문학 장르가 열리는 셈이다. 당신이 ‘디카 시인’이다. [출처] 당신이 디카 시인이다 |작성자 해리슨 김용길  
705    <사진> 시모음 댓글:  조회:5099  추천:0  2015-09-12
[ 2015년 09월 14일 10시 05분 ]           + 사진사에게  웃으라 하시기에 웃기는 하였으나 울고 싶었던 적이 훨씬 더 많았지요. (유용선·시인, 1967-) + 사진寫眞     꽃도 찍히면  더 이상 시들지 않는다  나무도 찍히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새도 찍히면  더 이상 날지 않는다  사람도 찍히면  더 이상 늙지 않는다  (오정방·미국 거주 시인, 1941-) + 사진  멈추어 선  시간  머물러 있는  모습 속에서  그때  스미어 넣은  마음을 찾는다 (오보영·시인, 충북 옥천 출생) + 사진 삶의 한 순간이 멈추어져 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표정이 머물러 있다 나에겐 멈출 수가 없이 흐르고만 있는 삶의 시간이 인화지에 멈추어져 있다 아주 작은 삶의 한순간의 표정이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오래된 사진기  언제부턴가 렌즈는 흐려있었다  수건으로 꾹꾹 눌러 닦아도  부옇게 서린 김은 지지 않았다  들여다보면 군데군데  크고 작은 흠집이 나있었다  조리개를 열고  초점을 맞추고  앵글을 바짝 들이대도,                    세상에는  찍히지 않는 것들이  참 많았다  낡은 사진기로,  골목에서 종일  호기심에 걸려 넘어지는  아이를 찍는다  민들레꽃 닮은 노란 옷의 아이는  부지런한 두 발로, 아장아장  렌즈에서 멀어진다  오십 년을 사용한  흐린 두 눈에  찰칵,  아이의 울음이 찍힌다  (마경덕·시인, 1954-) + 사진사  내 사진은 내 삶 속에 있다고 공언했지요  사진 속에 삶을 담지 말고  삶 속에 사진을 담으라 했지요  그래야 좋은 사진이 된다고  좋은 사진사가 된다고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좋은 삶을 살아야겠지요  그러나 그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직도 익어가지 않는 삶  감동 없는 삶  그 삶을 찍으려니  카메라 파인더에  한숨으로 남아  상처로 남아  시간을 끊어내지 못합니다  회한에 서성이고  지나간 시간에 딴지 걸리어  멈춰버린 시간  고독한 남자의 고독한 고백  그것은 패배의 모습인가요  진실의 늪인가요  오늘도 사진은 한 컷도 누르지 못합니다  셔터는 영영 누르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그래도 찍어야 한다는 숙명적인 운명  이것은 무슨 지독한 전생의 업보인가요  좋은 삶은 아직도  내 머리 속에서만 잉잉거리는 것을.  (남경식·사진작가 시인, 1958-)  + 사진 예술가  아마 그들은 내리쬐는 햇살만 봐도  가슴이 울렁이겠지  크지 않은 오목 혹은 볼록 조리개 속에  가는 숨 가만히 가만히 멈추어  우주를 담는다  해를 담는다  달과 별을 담는다  고운 풍광을 담는다  몇백만 분의 일초 사이 그 짤막한 순간을 얻기 위해  심장 박동을 정지시킨다  미세한 신경 따라 흐르는 붉은 피마저 정지시켜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꿈을 꾼다  아마 그들은 하루에도 몇십 번 몇백 번씩  저승과 이승을 넘나들어 수도승보다 뜨거운  가슴을 갖고 있겠지  (이승익·시인, 1951-) + 사진사의 기도 이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창조하신 하느님, 당신의 아름다움을 온 세상에 전하려는 사진사들에게 별처럼 반짝이는 창조력과 당신 은총의 손길을 찾아내는  정성스런 추구의 눈길을 주소서. 빛을 창조하시어 어두움과 밝음을 주시고 계절을 창조하시어 다양한 색깔을 주시고 공간을 창조하시어 삶의 굴곡을 주시고  숨결을 창조하시어 생명력을 체험하게 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시어 생의 흔적들을 주시니 이 모든 것들을 삶의 그릇에 담으려는  사진사들의 정성에 함께 하소서. 사진사들의 노력으로 표현된 하나하나의 손길에서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게 하여 주시고, 사진사들에게 생의 존재 가치를 깨달아 생활 속에서 그리고 자연 속에서 당신 창조의 아름다움을 더욱 깊이 느껴 당신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지나간 삶의 흔적들을 믿음으로 키워내고 하루하루의 삶을 사랑으로 행동하며 더 나은 내일의 꿈을 희망으로 그려내는 그러한 사진사들의 움직임에 함께 하소서. (작자 미상) + 사진 한 장  항상 가지고 다니는 사진 한 장 이제는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것이 되어버린…… 손에 닿을만한 곳에 있으면 자주 보지 않는 이유는 바라만 봐야 좋다는 이야기 지금은 이해가 간다 (원태연·시인, 1971-) + 사진을 박다  내 속은 시커멀까?  구렁이 몇 마리 똬리 틀고 있을까?  욕심을 먹으면 왜 배탈이 날까?  궁금한 마음에 찍은 시티 사진  의사가 느물느물 사진에 담긴 내 뱃속을 헤엄친다  집안 잘 보이는 곳에 사진을 박아놓는다  굼실굼실 살아있는 내 속  그게 구렁이라도 좋다  그 말고 탓할 데 없는 모습  하여, 살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  벽에서 떨어질까 못을 박는다  (최범영·시인, 1958-) + 사진 한 장  너와 찍은 사진을 걸어 둔 날  내 마음도 얹어 걸어 놓았다  활짝 웃는 두 사람으로 인해  금새 벽이 환해졌다  몇 번이고 열어 보이던 네 마음이  내 生으로 걸어 들어오던 날을 생각했다  만발한 벚꽃 뒤로 숨어 버린  서로의 마음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무언의 약속조차 하지 않은 시간이  사진 속에서 탈속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진 한 장  오래도록 내 마음에 걸어 두기로 했다. (이정자·시인, 1964-) + 사진  열 일곱 소녀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책상 위에 세워 두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사진이 넘어졌다  무릎에 바람 날 나이도 아닌데 자꾸만 넘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람에 날리는 소녀들의 머리카락이 너무 가벼운 탓일까  배경으로 찍힌 철쭉이 너무 붉고 비탈은 숨가쁘게 가파르다  무게를 잡아도 옆으로 새는 웃음을 어쩌지 못할 때  넘어진 사진에 숨은 바람이 슬슬 새어 나온다 (강영환·시인, 1951-) + 사진 나이가 한 육십쯤 되고 보니  이래저래 찍은 사진이 여러 장 된다.  아름다움에 찍힌 풍경은 물론이려니와  마음 아리게 지켜 온 우리의 살림 얼룩들  그 츱츱함까지도  이제는 추억 삼아 아득해 보이지만  집 머리맡에 국기처럼 걸려있는 사람  아직도 어려 보인다고  쑥스러워 하고 있지만  그리움에 감광된 마음으로  속이란 속은 다 타서  늙지도 못하는 옛날이  천연색으로 보는 꽃 시절 한 폭  제가 죽은 사람인 줄도 모르고  산 사람처럼 웃고 있는 철없는 사진  가훈처럼 적혀있는 그리움으로  나 혼자 늙느라고 이리 바쁜가  (서봉석·시인) + 가족사진  그 사진 속에 나는 없다  나는 사진을 찍었나 보다 (강인호·시인) + 가족사진  벽에 걸린 사진을 바라보는  달랑 둘이 남은 부부  시집간 딸과 군대 간 아들  사랑이란 글자만 남아있는  썰렁한 체온들  자식들이 떠난 식탁에 차려진  찬밥에도 아무 불평이 없다  기어다니는 아기를 바라보며  입이 귀에 걸린 부부  사진만으로도 가득 찬 행복  아기가 흩어놓은  살림살이에 따뜻한 온기들  젖병, 이유식, 우유들이  즐비한 식탁에 차려진  찬밥에도 아무 불평이 없다 (목필균·시인) + 가족 사진 빗소리가 가늘게  문 밖에서 웅성거리는 날,  날개 달린 생각들이  밤늦도록 들락거리고  나와 함께, 방안에서  축축하게 눅지는 것들  그 중에서도 유독,  벽에 걸린 식구들 사진 몇 장이  두런두런 깨어나  소복이 모여, 나를 쳐다본다  내가 그들을 깨웠을까  쳐다보는 그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나 (신석종·시인, 1958-)  + 몰래 찍으신 사진 어머닌 웃고 계신다 80년 우시더니 몰래 찍으신 사진에선 웃고 계신다 젊어선 남편이 울리고 늙어선 자식들이 울리고 당신은 정녕 누굴 울려 보셨나 잠결에 가시고픈 어머니 이 세상 이렇게 웃고 간다 하실려고 머리맡 사진에선 웃고 계신다 끝까지 울지 말라고 웃고 계신다. (구광렬·시인, 1956-) + 사진첩  학교 때 앨범을  가만히 펼치면  흑백으로 나오는  앳된 얼굴들  자야, 숙이, 희야, 옥이..  술이, 범이, 식이, 열이..  지금은 어디  무얼 하구 사나,  종교같이 서러운 날도 있었는가,  산수유 꽃처럼 기쁜 날도 있었는가,  구겨진 마음 달구어  옛날을,  옛날을 다림질하면  묻어나는 산바람 향그러운 얼굴들  이별은 들꽃처럼 흔적만 남아  아른한 그리움에 세월만 따라왔다.  학교 때 앨범은  잊었던 젊은 날  꿈 어린 무지개. (차성우·시인, 경남 거창 출생) + 사진 속 어머니  엄마, 제 손으로 사진 한 장 찍을게요  그래 한 장 찍자!?  반가운 표정으로 말씀하시던 어머니  그 때 아무도 모르게 깊은 병 앓으시던 어머니  어떤 예감 같은 게 있었을까요  모처럼 모자 단둘이 집에 있던 날  어쩐지 천지 평화롭고 햇살 그럴 수없이 따사로와  마당의 몇 그루 나무의 숨결까지 선명히 들릴 것 같은 날  우둔한 이 아들도 어떤 예감 같은 게 있었을까요  장롱 속 깊숙이 들었던 한복 꺼내 단정히 입으시고  옷만큼이나 밝은 표정으로 사진 찍기에 응하신 어머니  자식 앞이라도 잠시 쑥스러워 하시며 카메라 바라보시더니  그날 이후 급작스레 기울어져  흙 되신 지도 까마득히 세월 흘렀네요  지금 어머니 사진 앞에서 석양의 이 아들  한숨 짓는 버릇이나 늘었을까요  어머니 생각하면 왜 이리 눈물 흐를까요 (오하룡·시인, 1940-) + 어떤 사진  새로 산 디지털 카메라로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를 배경 삼아  한 10년만일까.  몇 장의 부부 사진을 찍었다.  P.C에 꽂아 확대해보니  배경은 너무 선명하고 멋있는데  내 옆에 선 아내의 얼굴  자잘한 주름살 뚜렷이 드러나  가슴이 짠하다.     나는 주름살 제거를 클릭하고  주름진 부위에 마우스 칼을 움직여  정성스레 시술하는 성형외과 의사가 된다.  사각사각 주름살 갈리는 소리에  어느새 옛날의 고운 모습이 되살아나는 듯싶다.  그런데 완성된 사진 속에서  금방 서 있던 사람은 어디로 가 버리고  나는 딸아이와 어깨동무를 하고 서 있었다. (한승수·제주의 서정시인) + 오래된 사진  곱다한 초등학교 시절  달맞이꽃 웃음으로 다가서던  앞가슴 볼록한 여선생님과 함께 찍은  빛바랜 사진을 보면  눈물 뜨거워지는 소중한 추억이 된다  마을이장이 된 영철이,  무거운 가방을 늘 들어주던 갑석이의  딱 벌어진 어깨와,  맨발에 새끼줄을 동여매고 선  굳건한 내 의지의 발가락과,  접시꽃 설렘으로 서 있는  첫사랑 순임이의 윤기 나는 단말머리는  아직도 봄 햇살을 붙들고 있다  가난이 강물처럼 불어나  고향 등지던 어둠의 날,  동구 밖 아버지 헛기침소리는  메아리 되어 가슴 먹먹하게 차올랐고  슬픈 이별 손잡고 방황하던 시절,  밤 새워 퍼마신 복사꽃 그리움은  어디서 찾을까  (박종영·공무원 시인, 목포 거주) + 사진에 관한 보고서  몇 장의 사진을 봅니다  세월이란 점령군은  영웅의 가슴을 식게 만들고  미인의 눈가에 잔주름을 만드나 봅니다  사랑은 흘러가는 강물에 적셔지는  강변의 갈대와 같다고 누군가가 말했던가요  사랑은 가슴에 상처 입히기  쉬운 면도날이라 누군가가 말하지 않던가요  그대와 한 장의 사진을 찍고 싶지만  그러지 아니하는 깊은 맘을 이해해 주세요  그대가 내 곁에, 내가 그대 곁에  영원히 있다는 확률 1이 아닌 바에야  언젠가 그 사진을 들여다보고  인화지 속에서 그대 또는 내 곁에  없어질지도 모르는 서로를 그리워하며  우울해할 그대와 나의 마음을  가을 햇살 날려보내고 싶기 때문이죠  하지만 강변이 내려다 뵈는  커피숍 유리창에서  내려다보는 노을 속의 강물처럼  우리 인생도 흘러가고  몇 장의 사진만 남아 추억을  반추하는가 봅니다  그대와 나의 그림을 인화지에 남기고 싶지만  그러지 아니하는 깊은 맘을 이해해 주세요  그래도 그대와 함께 한 장의  사진을 찍어도 보고 싶습니다  (백운호·시인) + 희망사진관  단지 그렇게 기억되고 있을 뿐  결국 방향이 없는, 그리하여 종말이 없는, 단 한 번도 인화되지 않은 것들이 추억일까  어느 정지된 순간에 대한 덧없는 집착이 희망의 정체였을까  서울 출장길 늦은 귀가의 택시 속에서 만난 신안동 고갯길  희망사진관의 입간판이 낯설다; 아니, 정확히 말해  희망이란 낱말이 왠지 낡고 생소한 느낌이다  그런데도 길거리로 향한 형광 불빛 속에 드러난 사진의 얼굴들은  어찌하여 모두들 오래 행복한 표정들을 짓고 있는 것일까  어찌하여 그 많은 잊고 싶은 것들 속에서도  저처럼 끄떡없이 변치 않은 열망들로 살아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이제 죽도록 미워할 사람도  사랑할 사람마저도 없는 내게 지금 묻는다면,  내가 짓뭉개고 외면해온 시간의 흔적들밖에 더 말할 게 없다  심지어 죽음마저도 뚫고 들어가지 못한 마음속으로  여전히 아니라고 도리질치며 지나가는 매서운 북풍소리  가장 가까운 것들조차 따스하게 대하지 못했던 불구의 시간들을 고백하고 싶어진다  보라, 그러니 저 사진틀 속에 영원히 멈춰 있는 것들조차  이미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건 오히려 미처 드러나지 못한 요청이었을 뿐  여전히 우릴 살아 불타게 하는 것들은  저 스러질 듯 서 있는 현실의 희망사진관 너머  아직 기억되거나 생각나지 않은 낯설음 속에  모든 희망들이 추문이 된 바로 이 세월의 그리움 속에  끝내 지워지지 않을 무모한 절정의 섬광들로 빛날 뿐 (임동확·시인, 1959-)
704    디카시 모음 댓글:  조회:4399  추천:0  2015-09-12
  섬     마음을 비우고 미움을 버리고   섬으로 가는 배는 무겁지만 돌아오는 배는 가볍다     모두 거울 앞에서 달라진 모습을 비춰본다               섬 2   도심에 있을 땐 섬이 그립더니   망망한 바다에 떠 있으니 육지가 그립구나         섬 3     우리는 섬이었다 수많은 섬들이 떠돌았지만 그대를 놓을 수 없는 건 수면 아래 뿌리가 너무 깊어서이다             별   그 섬에 가면 별들이 내려와 어둠을 씻는다   지친 그들에게   하얀 포말이 몰려와 어루만진다             등대   그는 바위섬에 서서 어두운 항로를 멀리 비추는데 나는 벽 앞에서 앞가림에 급급하구나                                         海女 어머니                출렁이는 물결에 테왁 하나 띄워놓고              깊은 물질에, 길게 내뿜는 숨비소리                     아직도                  꽃무늬 몸뻬에 분홍 내복을 입는                 어머니의 마당은                   언제나 바다를 향해 열려 있다                              도시의 섬 city island       새 둥지보다 더 높은 그 곳 버튼만 누르면 스르르 사닥다리가 올라가는 곳       하늘과 더욱 가깝지만 밤이면 눈이 부셔 별은 잘 안 보이는 곳       나는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고 고기 몇 마리 잡아서 밤이면 노를 저어 그 섬으로 간다  
703    디카시란? 댓글:  조회:5174  추천:0  2015-09-10
[ 2015년 09월 11일 08시 53분 ]     @@ "전쟁이 없었다면 난민도 없었을 것이다."  ------------------------------------------------------------------------------------------- ====================================================== 1. 시의 뜻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운율 있는 언어로 압축하여 표현한 글 2. 시의 3대 요소 ⑴  음악적 요소 : 시에 깃들어 있는 소리에 의해 나타나는 요소. 운율을 말한다. ⑵ 회화적 요소 : 시에 나타나는 형상에 의해 나타나는  요소. 심상을 말한다. ⑶ 의미적 요소 : 시에 담겨져 있는 뜻에 의해 나타나는 요소. 정서와 사상을 말한다. 3. 시의 형식적 요소 ⑴  시어 : 시에 쓰인 말. 운율, 심상, 함축적 의미를 지닌다. ⑵ 시행 : 시의 한 줄 한 줄 ⑶ 연 : 시에서 한 줄 띄어 쓴 한  덩어리 - : :시어  : :시행  : :연  : :시 ⑷  운율 : 시어들의 소리가 만들어 내는 가락  : : : : : 4. 시의 내용적  요소 ⑴ 주제 : 시에 담긴 지은이의 느낌이나 중심되는 생각. 주로 암시적으로 표현된다. ⑵ 소재 : 주제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한  글감 ⑶ 심상(image) : 사람의 여러 감각을 자극하여 마음 속에 감각했던 것을 다시 기억하여 재생시키는 것 5. 시의 운율 시에  있어서 음악성을 나타나 해 주는 것으로 자음과 모음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韻과 소리의 고저 장단 강약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律格으로  나뉜다. ⑴ 운율의 갈래 ① 외형률 : 시어의 일정한 규칙에 따라 생기는 운율로 시의 겉모습에 드러난다. 정형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 음수율 : 시어의 글자수나 행의 수가 일정한 규칙을 가지는 데에서 오는 운율 - 음위율 : 시의 일정한 위치에 일정한  음을 규칙적으로 배치하여 만드는 운율.  :일정한 음이 시행의 앞부분에 있는 것을 두운, 가운데 있는 것을 요운, 끝 부분에 있는 것을  각운이라고 한다. - 음성률 : 음의 길고 짧음이나, 높고 낮음, 또는 강하고 약함 등을 규칙적으로 배치하여 만드는  운율 - :음보(音步) : 우리 나라의 전통시에서 발음 시간의 길이가 같은 말의 단위가 반복됨으로써 생기는 음의 질서. 보통 띄어  읽는 단위가 되는데 일반적으로 평시조는 4음보격, 민요시는 3음보격으로 되어 있다. (즉, 3.4조니, 4.4조니 할 때의 시는 3 4음절이  하나의 음보를 이루고, 이것들이 3번 내지 4번 반복되어 하나의 큰 休止를 가져 온다는 뜻이다) ② 내재율 : 일정한 규칙이 없이 각각의  시에 따라 자유롭게 생기는 운율로 시의 내면에 흐르므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자유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⑵ 운율을 이루는  요소 ① 동음 반복 : 특정한 음운을 반복하여 사용 ② 음수 반복 : 일정한 음절 수를 반복하여 사용 ③ 의성어, 의태어 사용  : 감각적 반응을 일으킨다. ④ 통사적 구조 : 같거나 비슷한 문장의 짜임을 반복하여 사용 6. 심상의  갈래 ⑴ 시각적 심상 : 색깔, 모양, 명암, 동작 등의 눈을 통한 감각 : 알락달락 알록진 산새알 ⑵  청각적 심상 : 귀를 통한 소리의 감각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⑶ 후각적 심상 : 코를 통한 냄새의  감각 :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⑷ 미각적 심상 : 혀를 통한 맛의 감각 : 모밀묵이 먹고  싶다. 그 싱겁고도 구수하고  ⑸ 촉각적 심상 : 살갗을 통한 감촉의 감각 : 아름다운 영원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⑹ 공감각적 심상 : 동시에 두 감각을 느끼는 것 : 분수처럼 쏟아지는 푸른 종소리 7. 심상의 시적 기능   : : : ⑴ 구체성 : 단순한 서술에 비해 대상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다. ⑵  함축성 : 시어의 의미와 느낌을 한층 함축성 있게 나타낼 수 있다. ⑶ 직접성 : 감각을 직접적으로 뚜렷이 전달할 수 있다.   : : : : : : : 8. 시의 갈래 ⑴  형식상 갈래 ① 정형시 : 형식이 일정하게 굳어진 시 - 음수적 정형시 : 글자의 수가 일정한 시. 7·5조, 4·4조, 오언시  등 - 시행적 정형시 : 시행의 수가 일정한 시. 향가, 소네트(sonnet) 등 ② 자유시 : 특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지은 시 ③ 산문시 : 행의 구분이 없이 산문처럼 쓰여진 시. 운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산문과 구분된다. ⑵ 내용상  갈래 ① 서정시 : 개인적인 정서를 읊은 시 - : :서경시 : 자연 풍경을 주로 읊은 시로 서정시에  속한다. ② 서사시 : 신화나 역사, 영웅들의 이야기를 길게 읊은 시 ③ 극시 : 사건의 전개를 대화 형식으로 쓴 시. 운문으로 된  희곡 ⑶ 성격상 갈래  ① 순수시 : 개인의 순수한 서정을 중시한 시 ② 사회시(참여시) : 사회의 현실에 참여하여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 시 9. 서정적  자아 지은이와는 별도로 시 속에서 말을 하는 사람으로 1인칭으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에서는 어떤 남자  어린이가 서정적 자아가 될 것이고, 이육사의 [광야]에서는 지사적이고 예언자적인 남성이 서정적 자아가 될 것이며, 우리 민요 [아리랑]의 서정적  자아는 임과 이별하는 애달픈 여인이 될 것이다. 10. 어조 어조를 서정적 자아의 목소리라고 한다면 그 목소리는 강하거나 약하거나,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이거나 하는 어떤 가락을 지닌다. 이  때의 시의 서정적 목소리를 어조(Tone)라고 한다. 따라서 어조는 시인의 태도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시가 어떤 어조를 갖는냐에 따라  독자는 남성적 여성적, 또는 강건 온화 우아 비장 등의 다양한 목소리를 체험하게 된다. 11. 시의 상징 ⑴ 관습적 상징 : 한 사회에서 오랫동안 쓰여져서 널리 인정되는 상징 : 비둘기 → 평화, 십자가 →  기독교, 월계관 → 승리 등 ⑵ 창조적 상징 : 개인에 의해 만들어져서 문학적 효과를 발휘하는 상징.  :작품이나 작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12. 시적 허용 시에서 구사되는 어휘는 함축적이고 암시적일 뿐만 아니라, 문법적 측면에서 허용되지 않는 표현도 자유로이  사용된다.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그리움과 아쉬움에 ) 13. 시어의 모호성(다의성) 한 개의 시어, 또는 문장 구조 속에 두 개 이상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으로 시어가 하나의 의미로만 해석되지 않고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므로 오히려 시의 의미와 가치를 풍부하게 한다. ========================================================= '디카시'는 휴대전화나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거기서 얻은 영감들을 나열해 놓은 시로 보면 된다. 다시 말해 디카로 시적 형상을 찍어 문자로 재현한 새로운 장르의 시다.   곧, 사진매체와 시적 문자의 혼합이라 볼 수 있다. 이때 양자는 결코 다른 주와 부의 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것, 곧, 양자가 모두 주인 체로 연관성을 지니는 매체이다.   흔히,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 대한 시적 화자의 독백이 주를 이룬다. 현대세대에 들어와 만들어진, 신 장르라 할 수 있다. -----------------------------------------------------                                  SNS와 디카시(詩)                                                                                                                             이상옥         1. 들어가는 말   지난 8월말 현재 스마트폰 가입자가 3000만명 시대가 열린 가운데 한국에서는 12월 19일 대선을 앞두고 SNS를 활용한 온라인 표심몰이가 한창이다. SNS는 특히 2008년 미국의 대통령선거 때부터 이슈가 되었다. 당시 오바마 후보는 경쟁상대에 비해 조직이나 자금력에서 열세였지만 트위터를 이용, 13만 명 이상의 친구를 맺고 빠른 시간 내에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이 선도하는 SNS 시대에 정치를 비롯한 경제, 사회,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엄청남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SNS 시대가 되면서 문학작품도 한국에서는 이미,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의 메일링 서비스, 가령 ‘안도현의 시 배달’, ‘성석제의 소설 배달’ 등처럼 그림과 사진, 플래시, 애니메이션 등을 활용하여 영상과 문자가 결합되는 새로운 멀티미디어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가령, 카카오스토리(카톡)이나 트위트,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할 때 문자만으로 하는 것보다 영상+문자로 하는 것이 더욱 실감나는 SNS 시대에 새로운 시운동인 디카시에 대해서 논의해보기로 한다.   2. ‘디카시’의 공론화와 디카시집 『고성 가도(固城 街道)』   디카시라는 용어는, 2004년 4월에 인터넷 한국문학도서관 개인서재(필자) 연재코너에 서 최초로 ‘디카시’라는 이름으로 2달간 연재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필자는 동년 4월 2일부터 6월 19일까지 약 2달간 50편의 디카시를 발표했다. 이때는 스마트폰 같은 것이 나오지 않던 때라 디지털카메라로 찍고 문자로 옮겨서 그것을 컴퓨터로 서재에 올렸던 것이다.   얇은 속옷 같은                                                                                                                                             어둠이 은은히 드리워진 봄밤의 캠퍼스 늦은 강의동 몇몇 창들만 빤히 눈을 뜨고 -이상옥,   이 당시 필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고성에서 마산으로 출퇴근하던 시절이었다. 디지털카메라를 하나 사서 출퇴근하면서 특별한 느낌의 풍경을 디카로 찍고 그 느낌을 문자로 옮겨서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 서재에 탑재했다. 인용 작품이 디카시로서는 첫 작품이다. 왜 이런 작업을 했느냐 하면, 전부터 자연이나 사물 속에서 문득, 저건 문자의 옷을 입지 않아서 그렇지, 온전한 시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저걸 그대로 옮기면 시인데, 내가 화가라면 그대로 옮길 수 있을 텐데, 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질 때가 있었다. 그러는 중에 마침 디지털카메라가 일상화되면서 디카로 저걸 포착하면 되겠다싶어서 자연이나 사물에서 문득 시적 감흥이 떠오르면 그것을 디카로 찍고, 문자로 재현해내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작업이 2달 남짓 50편의 디카시를 쓰게 되고 그것을 2004년 9월에 문학의 전당에서 최초로 디카시집 『고성 가도(固城 街道)』를 출간하게 되었습다.           이 디카시집을 출간하면서 시집 후기에 나름대로 디카시가 무엇인지에 대한 소박하지만 역시 최초로 디카시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처음으로 밝혔니다. 좀 길지만 첫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을 인용하겠다.   문덕수 시인이 "시는 언어예술이면서도 언어를 넘어선다"고 지적한 바 있듯이, 오늘의 시는 기존의 시론이나 틀 속에 갇혀 있을 수만은 없다. 시는 언어를 넘어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디카시는 '언어 너머 시'를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문자로 재현한 시다. 따라서 '디카시'는 단순한 시와 사진이 조합된 시사진(시화)이 아니다. 디카로 찍은 사진은 '언어 너머 시'다. 다시 말해 시의 노다지다. 금은 금광 깊이 파고 들어가서 채취하기도 하지만 사금 같은 경우에는 금덩어리로서 산출되기도 한다. 문자시가 전자의 경우라고 하면, 디카시는 후자처럼 시의 노다지를 언어 너머에서 발견한 것이다. 시는 '언어 너머'에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출근하는 길 차창에 비치는 자연의 풍경이 어떤 때는 완연한 시의 형상인 것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그 때마다 언어 너머 존재하는 시의 형상, 저걸 어떻게든 담아야 할 텐데 하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러다 디지털카메라를 주목하게 된 것이다. 지난 4월초부터 디지털카메라로 '언어 너머 시'를 찍고 문자로 재현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디카로 '언어 너머 시'를 포착하고 나면 그 다음날 학교에서 문자로 재현하여 「한국문학도서관 이상옥 서재」에 올리는 작업을 신바람 나게 하면서, 그것을 '디카시'라고 명명하고 마치 '디카시'의 전도자라도 된 양 학생들에게나 일반인들에게 기회가 닿는 대로 디카시의 개념과 매혹을 선전·선동(?)했다. '디카'로 찍은 언어 밖의 시를 문자로 재현하는 작업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디카에 찍힌 시를 불러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문자시를 쓸 때의 상상력과는 다른 국면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신의 말씀을 듣는 예언자처럼 그대로 기록하고 전파하면 되는 일이다.   3. 개인 실험에서 장르개념으로 확대   2004년 9월 15일 디카시집『고성 가도(固城 街道)』를 출간하고 이어서 9월 17일 포털 다음에 ‘디카시 마니아’라는 카페를 개설하면서 개인의 실험을 넘어 디카시는 하나의 시문학 운동성을 띠게 되었다. 카페를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고, 디카시에 대한 공론화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디카시의 시론을 정립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2004년 10월 16일 목원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어문학회 가을 학술대회에서 「디카詩의 가능성과 창작방법」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디카시집 후기에서 소략하게 밝힌 디카시론을 좀더 진전시켰다. 작금의 문학의 위기가 문자문화에서 디지털 문화로 이행되는 과정에 발생한 것이라고 보고, 이에 문학은 변화된 환경에서 스스로 '몸 바꾸기'를 해야 한다면, 여기서 영상과 문자 결합의 디카시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그리고 디카시의 개념을 보다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디카시는 관념이나 언어 이전의 '날시(raw poem)'를 순수직관의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그대로 문자로 재현하는 것, 즉 날시(raw poem)'를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문자시와는 달리 짧고 압축된 문자로 드러내어 시사진(포토포엠)과는 달리, 날시성(feature of raw poem)을 띠면서 '극순간성', '극사실성', '극현장성', '극서정성'을 드러나게 하는 것었다. 디카시집에 대한 서평도 게재되었다. 2004년 《다층》겨울호에 김정희 시인이 「고성가도, 극순간을 달리다」를 발표했고, 2004년 《시와 상상》하반기호에 박서영 시인이 「직관이 불러온 詩를 받아쓰다」를 발표했다. 디카시가 문예지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공론화된 것은 2005년 《월간문학》2월호에서다.   범박하게 말해서 한 편의 시를 다양한 매체, 그러니까 음악이나 영화, 무용, 만화 등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일종의 종합적인 소통 방식이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방식과 경로를 통해 시를 전달한다는 것은 단순히 활자 매체의 전달 방식을 벗어났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방식에 맞춘다는 의미도 될 것이고요, 시 쓰기의 과정이 지닌 가치를 정당하게 경제적 이익으로 환치시키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장경기 시인이 ‘마고 신화’를 무대에 올린다거나 고창수 시인이 ‘시네 포엠’을 시도하는 것, 이상옥 시인이 ‘디카 시’라는 개념을 적극 차용하는 것도 모두 이러한 시도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1)     문예지 권두좌담에서 디카시가 공론화된 이후 디카시론 정립에 더욱 박차를 가했고, 다른 이론가들도 디카시 담론을 펼침으로써 디카시가 최근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 점차 정착된 것이다. 주2) 이와 같은 디카시의 진전은 그동안 디카시 운동에 기인한 바 크다. 가령 디카시전문 잡지의 창간과 디카시페스티벌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디카시를 하나의 장르개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시인들이 디카시를 써서 발표할 지면이 필요했다. 그래서 디카시 전문 무크지 《디카詩 마니아》를 2006년 6월 1일 창간하여 필자 편집인을 맡아 창간기념 대담으로 김열규 교수와 디카시 대담을 나누었고, 디카시 필진으로 시론 교수인 강희근, 양왕용, 윤석산, 박명용, 신진, 이승하, 박주택, 김완하, 오정국 교수와 문학잡지 편집인인 김규화, 정한용, 정일근, 변종태, 권갑하, 배한봉, 박강우 시인과 그리고 유안진, 박노정, 홍성란, 최춘희, 유성식 등 화제의 시인들을 선정했다. 이런 방식으로 무크지 2호를 한 번 더 내고는 또 한편 디카시 운동의 새로운 계기를 맞게 된 것은 도서출판 ‘디카시’라는 출판사 등록을 하고 2007년 12월 31일에 도서출판 디카시에서 기존의 무크지 《디카시 마니아》를 반년간 《디카詩》로 바꾸어 디카시 정기간행물 시대를 열어 2012년 현재 통권 10호를 발행했다. 디카시 전문지에 참여한 유수의 시인들이 200명은 된다. 2008년 9월 27일에는 제1회 경남 고성 디카시페스티벌 개최를 개최하여 디카시 대중화의 기치를 내걸었다 디카시는 지역문화운동으로 경남 고성을 발상지로 내세운 것이다. 고성군의 지원을 받아 디카시전, 디카시 백일장, 디카시의 밤 등을 콘텐츠로 하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것은 디카시 백일장이다. 종이와 펜 대신 디카 내장의 휴대폰으로 지정된 메일에 전송하는 방식이었는데, 디지털이 백일장 문화까지 바꾼다고 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이제는 스마트폰이 상용화되면서 디카시 백일장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는 환경을 맞았다.       가을바람이 살근살근 발바닥을 간질이나보다 푸하핫! -이은호, 「웃음」   2010년 경남 고성 디카시 페스티벌 초등부 최우수작이다. 순간 포착의 디카시의 특성이 잘 드러난 수작이다. 이렇듯 디카시 백일장은 기존의 아날로그에 의존한 문자시와는 달리 디지털 시대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한편 디카시 페스티벌 중에 강연회, 세미나 등도 개최하여 디카시 이론 정립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2008년 처음 시작한 디카시 페스티벌은 해마다 개최되면서 더욱 다양한 콘텐츠로 발전되었다. 디카시는 2009년, 2010년, 2011년에 걸쳐 서울시 주최의 ‘시가 흐르는 서울’에도 초정 받았고, 또한 농어촌희망재단의 지원을 받아 고성생명환경농업 디카시체험한마당, 2012 디카시-함안 등의 행사를 가졌다. 2012 경남 고성 공룡세계엑스포에서는 처음으로 디카시공모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너, 찾아오는데 수억 년의 시간 그림자 건너왔기에 너, 만나고 돌아가는데 다시 수억 년의 빛살 지나가야 하리 처음 만난 그 호숫가 떠나 자드락길 따라 백악기에 발자국 남기고 육탈골립(肉脫骨立)하여 당도한 초식 공룡의 오래된 사랑, 미래에서 찾아온 따뜻한 발 -김경식, 「따뜻한 발」   공모전 최우수작이다. 삼금이 500만원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이 작품은 뭉퉁하고 흰 공룡의 발을 통해서 “따뜻함”을 읽어내고, “오래된 사랑”을 읽어낸 후 그것을 “미래에서 온 따뜻한 발로”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무튼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디카시 이론도 차츰 정립이 되고, 또한 디카시가 유수의 시인들에서부터 애호가들에게 확산되었다.         더욱 주목할 것은 온라인상에 디카시 동호인 모임들이 자생적으로 생겨난다는 것이다. 대학의 문학개론 등의 강좌에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한 장르로 소개되면서 대학생들이 디카시 관련 리포트도 쓰게 되고, 또한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학생들이 디카시를 활용한 시창작 지도방법론을 모색해보는 등도 그 일례가 된다. 디카시는 필자 개인 실험을 넘어서 이제는 SNS 시대의 새로운 시의 한 장르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4. SNS와 시의 진화   우선 디카시는 포토포엠과 구별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온라인상에 유명 시인들이 쓴 시에다 그것과 어울리는 사진을 덧붙여 시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양식이 이른바 포토포엠이다. 많은 사람들이 디카시를 포토포엠과 혼동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포토포엠은 문자시와 사진의 단순 조합이기 때문에 시는 시대로 사진은 사진대로 독립성을 지닌다. 다시 말해 시는 시 자체로 완결성을 지니고 사진은 사진대로 완결성을 지니는 것이다. 그러나 디카시는 사진과 문자의 결합으로 완결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디카시에서 사진과 문자(시)는 각각 독립성을 지니지 못한다. 디카시는 SNS 시대의 시의 새로운 진화이다. 인간은 언어나 몸짓, 그림, 기호 따위로 서로의 의사나 감정, 생각을 주고받는 일, 즉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미디어를 사용해왔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미디어 기술의 진화사라고 말하는데, 멀리 고대의 그림문양에서부터 최근의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미디어 기술은 진화를 거듭해 온 것이다. 얼마 전까지 가장 영향력을 떨친 것은 역시 문자 미디어였으나 최근 스마트폰이 환기하듯이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새로운 소셜네트워크로 쌍방향 실시간 소통이 두드러지는, 단순 문자 미디어보다는 문자+영상을 기초로 멀티미디어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주3)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맥루언의 말처럼 SNS로 표상되는 뉴미디어 시대에는 시도 몸 바꾸기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면, 디카시는 SNS 시대의 새로운 시의 한 모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0월 8일(월) 창신대학교 채플 시간에, 전 세계 82개국 빈곤지역에 해외구호개발 봉사단인 기아봉사단을 파견하여 굶주린 이들에게 식량과 사랑을 전하고 생존과 자립을 돕는 국제구호개발NGO 기아대책을 소개하는 소울 싱어즈 공연이 있었다. 위 파일은 공연장소인 강당 앞에 전시한 액자를 찍은 사진이다. 이 액자는 사진과 짤막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른쪽 사진 밑에는 “필리핀 빠야따스 지역의 쓰레기 마을입니다./학교에 가고 싶지만 생계를 위해 오늘도 쓰레기를 주어야 합니다.”라는 글귀가 달려 있다. 이렇듯 근자에는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영상 글쓰기가 대세다. 디카시는 일상적인 영상 글쓰기를 예술 글쓰기로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라고 해도 좋다. 이런 점에서 최근 문덕수는 스마트폰을 활용한 디카시 쓰기에 대해서 주목할 만한 지적을 했다. 주4)  디카시에서 디카가 시쓰기의 주체인가, 아니면 단지 보조기구인가요? 정답은 주체라고도 할 수 있고 보조기구(원고지나 펜 같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TV나 컴퓨터가 안방에 들어와 있는 판에 과학기기가 시 쓰기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문덕수는 디카시는 기호시라고 본다. 디카시에서 사진도 기호이고 언어로 표현된 문자도 기호라는 공통점을 지닌다는 것이다. 기호에 대해서는 프랑스의 소쉬르와 미국의 퍼스를 든다만, 퍼스는 기호의 세계를 더욱 폭넓게 보았는데, 퍼스는 언어뿐만 아니라 사진을 포함한 영상이나 도상, 길바닥이나 눈 위의 발자국 같은 것을 모두 기호로 보았다는 점에서, 퍼스는 이 세계는 기호로 충반한 세계라고 인식했다. 그러니까 모든 사물이 다 기호인바, 퍼스는 “기호 처리의 프로세스로서 인간”을 이해했다는 점에서, 문덕수는 퍼스가 시인도 기호체계의 한 프로세스를 처리하는 자로 이해하지 않았는지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주지하다시피 기존의 시는 언어예술로서 언어기호만을 주된 대상으로 삼았다. 물론 시가 언어예술이라는 카테고리를 넘어서려는 시도는 없지 않았다. 구체시(concrete poetry)처럼 쇠를 비롯한 자연 재료를 이용해 시적 표현을 시도한 것 같은 과격한 시도도 있었다. 한국에도 80년대 황지우에 의해 실험되었던 형태시 같은 경우 독일의 구체시 운동에 뿌리를 두고 전통적인 시형식의 해체와 전복을 양식화함으로써 내용과 형식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전위적 성격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이러한 탈언어적 상상력은 디지털 환경과 만나면서 사진, 그림, 만화, 플래시, 동영상 등이 결합된 상호텍스트적 양상으로 더욱 심화되었는데, 이는 황지우 이후 지난 90년대 초반 대중문화 또는 하위문화의 시적 수용에 있어서 단순한 제재로서의 수용에 머물렀던 것과는 달리, 디지털 미디어를 매개로 한 현대시의 상화 텍스트성은 디지털 환경 자체를 시 쓰기의 도구로 활용하는 적극적인 교섭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바, 그 대표적인 양상이 디카시와 포토포엠이다. 주5) 문덕수와 하상일의 논의에서도 드러나듯이 SNS 소통환경에서 디카시는 언어예술을 넘어 멀티언어예술로서 시의 언어 카테고리를 확장한 분명한 시의 진화라 할 수 있다.   5. 맺는 말   디카시는 구체시 같은 서양적 전통 속에서도 이해할 수 있지만, 동양적 시학에서도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최근 홍용희도 지적한 대로 디카시는 회화와 시가 어우러진 시화본일률(詩畵本一律)에 바탕한 문인화의 전통을 환기한다. 문인화의 ‘시는 말하는 회화이고 그림은 말하지 않는 시’라는 미의식에서 그림의 자리에 디카 사진을 대체한 것으로 디카시를 이해할 수 있다. 주6) 김열규는 《디카시 마니아》 창간호 기념 대담에서 디카시에서 ‘즉흥(卽興)’을 주목했다. 김열규는 시에도 즉흥이 있고, 음악에도 즉흥이 있는데, 슈베르트의 피아노곡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것이 즉흥곡(卽興曲)으로, 인류예술사에 늘 즉흥이 존재되어 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오늘날 즉흥의 발언권이 디카詩를 통해서 문득 더 커진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 디카시가 기존의 문자시와 달리 시인이 머리 싸매고 상상해서 쓰는 게 아니라 자연이나 사물이 던지는 말을 그냥 순간 받아적듯 쓴 것으로, 디카시는 문자시에서 말하는 착상이 곧 완성이 되는 것이다. 문자시는 착상하고 그걸 묵혀서 상상하고 또 상상해서 빚어내면 그걸 다시 퇴고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지만, 디카시는 사물과 만난 순간의 감흥을 순간 포착하여 곧바로 SNS로 실시간 순간 소통하는 것이 이상이다. 이런 점에서 박찬일은 “시적 장면”(혹은 시적 형상)의 “포착”은 전통적인 창작미학적 관점에서 보면 ‘시적 충동’과, 혹은 ‘詩魔’와, 다를 바가 없다고도 했다.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 충동으로 시적 충동을 불러일으킨 자연이나 사물에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대게 하고, 시인은 그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문자(시)로 짧게 재현한다는 관점이다. 여기서 ‘시적 충동’이나 ‘자연이나 사물에서 포착한 시적 형상’에 대한 충동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로 신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다. 주7) 한편 디카시가 사물에서 촉발되는 감흥을 시적 언어로 재현해 이미지와의 의미 결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디지털카메라를 활용한 전통시론에서 말하는 ‘정경교융’의 새로운 시도라고도 볼 수 있다.  주8) 결론적으로 디카시는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디지털카메라로 포착하고, 다시 문자로 재현하여 ‘영상+문자’로 표현하는 SNS 시대의 새로운 시이다. 따라서 디카시는 단순히 사진과 시의 접목으로 구현되는 기존의 포토포엠과 뚜렷이 구분되는 새로운 예술 갈래이다. 문자시가 활자라는 하나의 대상에 의존하고 포토포엠이 이미지와 활자의 단순한 형태적 결합에 주력하는 것이라면 디카시는 활자와 이미지라는 두 개의 대상을 하나의 의미적 텍스트로 완성하는 표현 양식이다. 디카시는 이미지를 통해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메시지와 활자로 재현된 의미망 사이에 폭넓은 행간을 지니는 것이다. 그 행간의 의미를 정서적으로 창조해내는 것이 디카시가 추구하는 예술성이다. 앞으로 디카시가 SNS를 통해 예술의 일상화, 일상의 예술화를 주도하는 갈래로 자리잡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각주)     1)《월간문학》(2005년 2월호) 권두좌담 「21세기 우리 시, 다시 언어를 생각한다」 2)이후 나는 《시문학》(2005년 4월호)에 「디카詩의 쟁점과 정체성」 등의 디카시 담론을 여러 지면 펼쳐서 디카시론집 『디카詩를 말한다』(詩와 에세이, 2007), 『앙코르 디카詩』(국학자료원, 2010)을 펴냈다. 또한 문덕수의 「무사상시 이야기-이상옥의 디카詩를 중심으로」를 비롯하여 송용구, 강희근, 박찬일, 김종회, 김석준, 차민기, 홍용희 제씨들이 디카시에 대한 메타비평을 하여 디카시 담론이 확장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논의들의 결과 현대문학사로는 채호석의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가, 시론으로는 김혜니의 『현대시론 다시읽기』(푸른사상, 2012)가 각각 디카시를 새로운 장르로 다루었다. 3)이상옥, 「다문화 시대 대중문화 미디어로서 디카시」, 계간《시산맥 》2011년 여름호, 참조. 4)문덕수, 「디카시와 하이퍼시와의 관련성」, 월간《시문학》2012년 10월호 5)하상일, 「현대시의 디지털화와 소통양식의 변화」, 남송우 외, 『문학과 문화, 디지털을 만나다』(산지니, 2008),pp.134-135. 6)홍용희, 「네오휴머니즘의 생태 시학과 디카시의 가능성」, 2012 디카시(詩) 함안 세미나 자료집 참조. 7)박찬일, 「시와 소통」(창신대학 주관 디카시 세미나 발제문, 2007. 10. 26) 8)차민기, 「전통 시론詩論으로 풀어본 ‘디카시’」, 계간《시와 경계》2012. 가을호.         참고문헌   《월간문학》, 2005, 2. 문덕수, 「디카시와 하이퍼시와의 관련성」, 월간《시문학》,2012. 10. 박찬일, 「시와 소통」, 창신대학 주관 디카시 세미나 발제문, 2007. 10. 26. 차민기, 「전통 시론詩論으로 풀어본 ‘디카시’」, 계간《시와 경계》,2012. 가을. 이상옥, 「다문화 시대 대중문화 미디어로서 디카시」, 계간《시산맥 》, 2011년 여름. 하상일, 「현대시의 디지털화와 소통양식의 변화」, 남송우 외, 『문학과 문화, 디지털을 만나다』, 산지니, 2008. 홍용희, 「네오휴머니즘의 생태 시학과 디카시의 가능성」, 2012 디카시(詩) 함안 세미나 발제문.  
702    하이퍼시 - 역설의 시 댓글:  조회:4485  추천:0  2015-09-10
디카시와 하이퍼시와의 관련성   문덕수     [1] ‘디카詩’의 창시자는 누구일까. 신(神)의 유무보다는 디카시의 창시자의 누구냐의 물음엔 한 가지 대답밖에 없으니 더 쉽습니다. 디카시의 창시자라는 말에 “창시자” 그 동격어 “이상옥”이라고 하면 대답하면 되겠습니다만 말하자면 디카시의 창업자는 이상옥입니다.   [2] 디카는 “디지털 카메라‘의 준말입니다. 우니라에도 생산되고 있고, 이제는 스마트폰에도 장착되어 있으므로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과학기기인 이 디카가 시쓰기의 주체인가, 아니며 단지 보조기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정답은 주체라고도 할 수 있고 보조기구(원고지나 펜같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TV나 컴퓨터가 안방에 들어와 있는 판에 과학기기가 시쓰기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버스, 지하철, 비행기, 승용차 등 인간은 과학기기의 사용이 없으면 생활이 안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디지털 카메라가 시와 결부될 수 있음도 불가피한 시대의 요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에 등 돌려서 현대시를 쓸 수 있겠습니까?   [3] 가만히 들여다보면 디카시는 기호시임을 깨닫게 됩니다. 『디카시마니아 24인사화집』(2012, 도서출판 디카시)에는 이상옥의 디카시 「숙명」(The Fare)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의 시는 망가지고 있는 나무 뿌리 등의 사진 옆 페이지에 “이제 내 몸 부수어 너에게로 간다”(Breaking down mybody now I go to you)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에서는 “내 몸 부수어” “너” 가 가장 요점이 되는 어구인 것 같습니다. “내 몸 부수어”는 많은 함축(含蓄)을 연상하게 합니다. 사랑의 주체인 “나”, 가장(家長)으로서의 나, 제자들의 스승으로서의 나, 역사(歷史) 속의 한 주체로서의 나, 주인이 아닌 봉사자로서의 나 등이 그러한 연상의 목록입니다. 이렇게 제시해 내놓고 보니 그 나열이 대단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기호화해 가는 목적적 존재를 “너”라고 했습니다. “너”는 분명히 남(他者)입니다만, 우리의 삶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우수한 “남”으로 둘러싸여 공생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의 의지를 내가 마음대로 좌우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실존적 삶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것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타자의 의지에 의해 사는 존재입니다. 어쨌든 이 “나”는 앞에서 “나”의 경우에 열거한 그러한 나와 대등되는 존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너”의 대응 관계로 수용할 때 이상옥의 디카시는 1차시입니다만, 그 함축과 내포는 다양하고 풍성한 의미세계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디카시가 언어로 기록되건 사진영상으로 촬영되건 그것의 1차적, 기본적으로 사물시와 동질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디카는 하이퍼 시와 첫걸음을 함께 내딛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하이퍼와 디카는 같은 스타트라인에서 같은 신호로 함께 출발합니다. 여기서 사물시와 디카시는 일치합니다.   [4] 그런데, 문제는 제시된 ‘사진’도 기호(記號)이고, 언어로 표현된 디카시 문자도 “기호”라는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기호라고 하면 프랑스의 소쉬르(1857~1913)와 미국인 퍼스(1839~1914)의 두 사람을 듭니다만 기호의 세계를 더욱 폭넓게 본 사람은 퍼스인 것 같습니다. 퍼스는 언어 뿐만 아니라 “사진”을 포함한 영상이나 도상, 길바닥이나 눈 위의 발자국 같은 것을 모두 기호로 보았습니다. 퍼스는 이 세계는 기호로 충만한 세계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물이 다 기호이지요. 퍼스는 다만 “기호 처리의 프로세스로서 인간”을 이해했습니다. 아마 시인도 기호체계의 한 프로세스를 처리하는 자로 이해하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그림이나 사진으로 반사된 빛이 눈의 망막에 도달하는 순간, 일련의 감각이나 인지적(認知的) 기능이 마치 연못의 둑을 끊은 것처럼 흐르는 것— 이것이 경험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눈이 사진의 어떤 부분에 집중하는 것은, 이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어지럽게 이동하는 색이나 윤곽이나 형태를 즉시 감각신호로 변환시켜 후두부에 있는 시각야(視覺野)라고 불리는 뇌의 영역에 보내집니다. 거기서 특징들이 분석되어 그 결과가 대뇌피질(大腦皮質)의 많은 영역을 이동시킵니다. 그러한 활동분야의 하나가 피질의 중앙에 위치하고 근운동(筋運動)의 중추 역할을 맡은 운동야(運動野)입니다. 여기서 눈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근육을 움직이는 지령이 나와, 눈은 사진 쪽으로 향하게 됩니다. 눈이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향하게 하는 과정이 몇 백 번 되풀이됩니다. 한 번 얻은 상(像)은 피질의 뉴런 네트워크로 보여지며, 그때까지 저장되어 있는 정보와 연결되고, 사진에 대한 해석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뇌가 행하는 사진(그림 포함) 이해의 프로세스를 인지 과학자 R L. 소쉬르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빛이라는 물리 현상에서 시작하는 ‘그것이 감각 신호로 바뀌는 그 처리를 거친 특징이 추출되어 세계에 대한 여러 가지 사전 지식도 참조하면서 해석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이상옥의 디카시가 망가지고 있는 「숙명」이라는 디키시는 많은 내포가 다양하게 응축된 디카시의 전형인 것 같습니다. 사화집 『너머』(Beyond Over)는 대분분 이와 같은 보편적 레벨에 도달한 디카시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5] 그런데 이상옥의 「숙명」을 잘 들여다보면, 그 해석은 단지 나무 밑둥이 부서지고 있는 붕괴현상만이 아니라 현상이 형이하(形而下)의 세계와 형이상의 세계(形而上世界)를 연결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이러한 현상의 이해는 디카시의 형이하적 특징과 형이상적 특징을 연결하는 것으로 보여 무척 흥미롭습니다. 나무 밑둥의 붕괴는 풍화작용인지, 세균의 잠식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시간의 먼 지평 속에서 변호마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현상을 발견한 인도인(특히 힌두교도)은 모든 만물은 시간상에서 변화하며 여러 가지 존재의 직접적, 간접적 조건과 원인에 의해 생겨서 변화한다라고 한, 그 위대한 사상체계의 “연기설”(緣起說, Pratitiya-samurāda)을 발견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독교에서 사람은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중국에서 한(漢)나라를 세운 유비도 사람은 흙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상옥의 디카 사진을 잘 봅시다. 산에서나 길가에서, 나무 밑둥지가 부서져가는 현상을 흔히 발견할 수 있고, 이 현상에서 흙구덩이 속의 인체도 결국 이런 과정을 밟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인체의 경유, 균이나 박테리아가 흙 속에서 겨드랑이나 허벅지 등을 먼저 먹게 되겠지요. 사물인식은 가정, 사회, 역사, 문화에 대한 지식과 결부되어 나무밑둥이라는 물체의 내면의식세계가 형성됩니다. 사물은 감각성, 시각성, 외부성 등의 욉줙 존재입니다만, 동시에 내면의 영혼적 무의식적 무한성을 가지고 있음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존재(있음 esse)는 있는 것(ens, 개별 사물 존재)의 시간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우리가 사물을 외면이나 내면의 한 측면에서만 보지 않고 외부적 존재로 보고 동시에 내면세계를 본다는 것은, 모든 사물이 지닌 α위상과 β위상의 이중을 본다는 뜻이 되고, 또 이렇게 보아야만 사물 전체를 본다는 것이 됩니다. 이상옥이 있는 것(ens), 즉 「숙명」을 통해서, 우리가 가정→역사의 영역에서 가지고 있는 정보와 연결시킨다는 것은, 사물의 내면성도 동시에 본다는 의미입니다. 이상옥의 「숙명」의 밑둥은 흙 속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꽤 깊이 박힌 듯합니다. 지표에서의 윗부분이 갈라져 부서지고 있으나, 아마 그 뿌리는 여전히 땅속에서 꿈쩍 않고 대지(大地)를 물고 호흡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것은「숙명」이 지닌 형이하적(形而下的) 특질인 것입니다만, 한편 부서짐의 과정을 통하여 껍질이 벗겨지고 나무의 육질이 파삭파삭해지면서 그 영혼이라고 할까 정신이라고 할까 그런 것은 형이상적(形而上的) 세계로 차원이 다른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역사 너머에서 역사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해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즉「숙명」이라는 디카 영상은 형이하와 형이상에서 초월을 동시에 공존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디카시는 이러한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고, 여기서 디카시와 하이퍼시와의 짙은 공통 관련성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내 몸 부수어 너에게로 간다”라는 일행시에서도 형이하와 더불어 여기서 초월하려고 하는 형이상의 몸짓을 감지하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부서진다”(망가지다, 붕괴핟, 변화한다)라는 말의 뉘앙스가 매우 다채롭고 풍부하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6] 마지막으로 두 장르의 통합단계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즉 디카 영상과 언어예술의 두 단계를 하나의 세계로 통합해야 하는 단계입니다. 디카시는 디카 영상과 언어시와의 두 존재를 포함하고 있고 두 단계가 통합해서 다르나 같은 의식적 이미지의 세계를 이룩합니다. 통합 단계는 두 장르가 “서로 관계”를 가지고 하나의 세계(시 세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두 장르의 관계는 접근, 영향, 융합 등의 상생(相生) 공발(共發)의 관계입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정복하거나 먹어버리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어디까지 상생공존의 발전 관계를 맺고 더 높은 하나의 통합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형이하적 관계와 형이상적 관계가 엄존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먼저 형이하적 관계부터 보겠습니다. 형이하적 관계는 사물의 감각적, 가시적, 외부적 관계에서 연관을 맺게 됩니다. 그러한 외부적 배치에 의하여 하나의 가시적 이미지(즉 사물존재로서의 이미지, 그러니까 β위상의 관계에서 형성된 이미지)를 이루게 되면, 그러한 가시적인 두 이미지가 융합되어서 서로 보완하여 하나의 더 높은, 더 완성된 이미지의 세계를 이룩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단계는 형이하적 세계, 즉 물질세계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높은 형이상적 단계로 상승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디카시라고 하는 통합적 장르가 비로소 “의의”(意義: 의미보다는 높은 의미의 세계로 연결된다는 뜻)의 단계에 이르게 되고, 그 의의주제에 접근한 가장 높은 뜻으로 뭉치게 됩니다. 이렇게 형성된 형이상적 통합의 의의는 첫째 형이상적(신적) 뜻을 이루고, 둘째 그 뜻은 형이하적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그 영향을 미치게 하고, 어떤 미세하거나 광대한 움직임에 의해 영향력을 공급하는 에너지 역할도 합니다. 우리의 삶은 방향과 방법을 정립시켜 주기도 합니다. 흔히 ‘섭리’라고도 하고, ‘천명’(天命)이라고도 하는 그런 차원의 뜻입니다. 모든 디카시는 여상과 언어의 두 단계가 통합된 형이하적, 형이상적인 미학적 뜻으로 통합, 형성되어 완료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단계적 통합을 거쳐, 두 장르는 장르적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이미지 세계를 이룩하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하이퍼적이라고 하고, 이 점에서 디카시가 하이퍼시의 또 한번의 강력한 유대와 그 관련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7] 여기서 간단히 결론을 내리고 그칠까 합니다. 디카시가 가진 기호성, 디카시의 이중성(형이하와 형이상) 등을 토대로 디카시와 하이퍼시의 관련성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밖에 디카시의 사진과 언어는 사진과 언어라는 장르적 경계를 허물면서 디카시의 특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하이퍼적 패러독스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이퍼시에서는 진실과 허위의 두 세계가 비유의 본의(本義)와 유의(喩義)의 양 항에 관련되어 있고, 그 관련에서 진실과 허위의 두 세계를 역설적으로 사사해 준다는 점이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런 점에서 디카시나 하이퍼시는 파라독스의 언어로 된 역설의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701    하이퍼시 창작기법 댓글:  조회:4846  추천:1  2015-09-09
하이퍼시 창작기법 연구 -회화적 요소를 중심으로   이선     Ⅰ. 서론     1. 하이퍼시의 정의     ‘하이퍼시란 무엇인가?’   거부와 부정을 하면서도 하이퍼시는 시인들의 관심을 집중하게 하고 있다.  하이퍼시는 기존의 시와 어떤 변별력을 갖는지 아날로그 시인들은 증명해보이라고 한다. 새로운 실험시의 존재증명을 위하여, 본 논문에서는 하이퍼시의 창작기법을 논의하고자 한다. 논문에서 소개하는 하이퍼시 창작 기법은 미술의 회화적 요소를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하이퍼텍스트 문학(Hypertext literature)은 컴퓨터 용어인 하이퍼와 텍스트를 합한 단어로서 1960년대 컴퓨터 개척자 테오도르 넬슨이 만든 말이다. 미국작가 조지 피 랜도(George P. Landow)의 저서 『Hypertext』(1992)에서 유래된 문학이론이다. 넬슨은“하이퍼텍스트는 종이 위에서 손쉽게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방법으로 상호 연결된 글이나 그림 자료들의 조직체”라고 했다. 이 조직체들은 컴퓨터의 link(연결) 과정을 통해서 서로 결속된다. 링크는 컴퓨터에서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하나로 연결시킨다. 링크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에서 ‘연결 편집기’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하이퍼링크와 쌍방향성이라는 컴퓨터의 특성을 결합한 용어를 문덕수가 시에 처음 도입하였다. 하이퍼 시인은 머릿속에서‘연결 편집기’기능을 하여 결합과 삭제, 교환, 편집을 자유자재로 하여야 한다. 컴퓨터의 링크는 기존의 텍스트의 선형성, 고정성, 유한성의 제약을 벗어나 마음대로 검색할 수 있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리좀이라고 불리는 그물상태를 구축하여 단어와 이미지를 연결한다.   문덕수는 하이퍼시를‘탈관념’과‘무의미’로 정의하였다. 문덕수의 시「탁자가 있는 풍경」은 냉정한 관찰자의 시점으로 ‘사물’을 풍경화 기법으로 그리고 있다. 철저하게 내용과 의미를 배제하고 ‘무의미’한 상황만 제시하여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심상운은 컴퓨터의 최소단위(unit)들의‘합성’과‘분리’인‘모듈’이론을 하이퍼 시론에 도입하였다. 인터넷의 ‘링크’의 기능과 ‘리좀’을 하이퍼 시론에 도입하여‘양방향성’의 ‘교환’ 이론을 정립하였다. 심상운은 문덕수가 주장한 하이퍼 텍스트 시론을 객관적 정의를 내려 구체성을 부여하였다. 심상운은 그의 논문 에서 하이퍼시의 요소를 9가지로 정의하였다. 그는 옴니버스 형식의 사물 실험시를 여러 편 창작하였다. 자신의 실험시를 통하여‘다초점’과‘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을 하이퍼시의 성립조건으로 제시하였다.    심상운과 김규화, 작고시인 오남구는 ‘하이퍼시 동인’을 결성하여 한국에 하이퍼시를 처음 보급시켰다. 또한 지금은 시문학 시인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하이퍼시 확산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하이퍼시에 대한 여러 정의를 위에서 살펴보았다. 문예사조는 작품이 선행하고, 작품에 이름이 붙여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하이퍼시는 시론이 먼저 주장되고 시가 후속으로 창작되었다. 하이퍼시는 새로운 구조를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본 논문에서 주장하는 필자의 하이퍼시 창작 방법론도 그 과정 중 하나일 것이다.    앞으로 실험시가 계속 생산되어 하이퍼 시론이 정립될 때까지 후속적인 많은 연구가 있길 바란다. 본 논문에서 주장하는 하이퍼 시 창작 기법은 미술의 회화적 요소를 차용하였음을 밝혀둔다.        2. 하이퍼시 창작기법     하이퍼시의 정의는 문덕수, 심상운, 오남구의 시론을 토대로 간략하게 위에서 언급하였다. 그러나‘하이퍼시는 어떻게 쓰는가?’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본 논문은 하이퍼시를 구성하는 조건을 밝혀 새로운 하이퍼시 창작기법을 정립하고자 한다. 아날로그 시와 하이퍼시의 차별화된 분류의 기점을 세우려는 것이다. “도대체 하이퍼시가 뭐냐?”라는 질문에 대한 객관성을 가진 구체적인 답변자료가 되길 바란다. 본 논문은 미술의 회화 기법을 차용하여 새로운 시창작 기법7가지를 소개한다.     정보화 시대가 가속화되면서 매일 새로운 전자제품들이 사람들의 구매욕을 충동하고 있다. 디지털시계, 디지털 계산기, 디지털 사진, 디지털이란 말이 들어간 전자제품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디지털은 컴퓨터 시스템을 적용하여 연속적이며 분절적인 오차가 없는 정확한 시스템이다. 디지털은 무한 반복적이며 합성과 재결합이 가능하다. 자기의 기본적인 본질을 버리지 않으면서 다른 시스템과 만나 새로운 합성구성, 새로운 시스템으로 변화할 수 있다. 반면 아날로그는 연속적이지만 조금씩 오차가 난다. 아날로그가 직선이라면 디지털은 점선이다. 또한 모자이크다.   디지털 그림은 점묘화 기법으로 여러 스타일로 합성되기도 하고 형태를 아주 바꾸기도 하고, 다른 이질적인 그림이 들어와 덮어버리기도 하면서 ‘움직이는 그림’을 그린다. 네모 박스 안에서 물고기가 모였다가 흩어지고, 물풀이 돋아나 바람에 흔들린다. 그 물풀 사이로 무수히 많은 고기떼가 지나간다. 빠르게 화면이 바뀌면서 새로운 그림들이 나타난다. 디지털 그림의 중요한 포인트는 화면이 빠르고 운동감 있게 움직이며, 장면이 계속 전환되며, 사물도 임의로 바꿀 수 있는 편집기능이 있다. 즉 고정적 정물화가 아니다. 움직이며 변화하는 그림을 무한정 반복 감상할 수 있는 ‘움직이는 그림’이다.       아날로그 시를 지향하여 새로운 감각의 젊은 시, 곧 하이퍼시를 쓰는 시인들의 감각도 디지털 그림과 다르지 않다. 그 화면이 빠르게 전개되고 장면 전환이 빠르다. 아날로그 시가 검정과 흰색. 빨강, 파랑색으로 구성된 ‘보여주기’ 위주의 정지된 단일구성의 시라면 하이퍼시는‘다초점’‘다시점’의 복합적 구조를 갖는다. 여러 방향의 상상력에 움직임을 가미하여 ‘상상력의 이동’을 한다. 하이퍼시는 한 마디로 ‘움직이는 그림’, 또는 ‘움직이는 영상’이다.   젝슨 플록의 페인팅 기법이나 미술의 표현기법처럼 시인의 ‘상상력의 이동’이 생각지도 않았던 기하학 무늬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무의미한 ‘단어던지기’나 ‘언어충돌‘로 미술기법처럼 예술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무의미한 ‘단어’의 ‘결합’과 ‘분리’가 만든 ‘모자이크 이미지’가 시에 ‘낯설게하기’를 실현한다. 또한 사물을 각각 다른 독립된 연에 임의적으로 배치하여, ‘병렬배치’된 사물들이 서로 다른 질서와 의미로 재탄생한다. 한 폭의 ‘추상화’가 그려진다. 의도성을 가지고 쓴 의미추구의 ‘아날로그 시’보다 새로운 감각의 시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하이퍼시는 ‘디지털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새로운 감각’이다. 새로운 감각의 시는 ’시스템의 혁명’이 필수적이다. 새로운 기법의 실험을 하여 보다 새로운 ‘무엇’을 추구한다.   아날로그 시가 ‘보여주기’ 의 평면적인 그림이라면 디지털 시는 ‘움직이는 그림’으로 입체적이며 운동감이 있는 그림이다. ‘움직이는 그림’은 정지된 그림이 아니라, ‘시간 이동’과 ‘공간 이동을 한다. 또한 ‘상상력의 이동’을 하여 새로운 공감각적 시로 탄생한다.   공간이동은 그림의 내용물인 화면이 변화한다. 합성사진처럼 합성과 분리, 삽입이 가능하다. 즉 ‘시간, 공간, 상상력의 이동’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시의 새로운 디자인이 만들어진다. 새로운 디자인은 새로운 시스템이다. 시스템의 변화가 새로운 시창작 기법의 주요 이슈다. 새로운 구조, 새로운 의미, 새로운 상상력, 즉 시에서의 새로움은 새로운 철학이다.    본 논문에서는 하이퍼시의 새로운 시 창작 기법 7가지를 소개한다. 이 기법은 하이퍼시의 성립요건을 함의하고 있다.   첫째, 정물화 기법- ‘탈관념’   둘째, 겹쳐 그리기 기법- ‘다시점’‘다초점’   셋째, 움직이는 그림 기법- ‘상상력의 이동’   넷째, 옴니버스 기법- ‘낯설게하기’   다섯째, 기호시 기법- ‘무의미’   여섯째, 모자이크 기법- ‘이미지 결합’   일곱째, 추상화(구성) 기법- ‘시스템(디자인) 바꾸기’     본 논문은 위의 7가지 하이퍼시 창작기법을 예시된 하이퍼시 작품을 통하여 논의해 보고자 한다. 미술의 회화적 기법을 중심으로 하이퍼시의 요소를 분석하여 형식과 내용, 디자인과 구성에서 하이퍼시의 성립조건을 찾아보고 하이퍼시의 창작기법을 조명하고자 한다.   ∏. 정물화 기법-‘탈관념’     문덕수가 하이퍼시에서 강조하는 것은
700    하이퍼시의 목표 - 고정틀 벗어나기 댓글:  조회:4723  추천:0  2015-09-09
    심상운 시론집 서평 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                                                                                    이   선 (시인)       Ⅰ. 서론   심상운의 디지털시와 하이퍼시의 시론집 『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는 2006년부터『시문학』에 실렸던 그의 시론과 대담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내놓은 것이다. 이 시론집은 디지털시와 하이퍼시의 이론서로서 앞으로 한국현대시에서 의미 있는 준거의 역할을 할 것 같다. ‘디지털시’는 지금까지의 ‘아날로그 시’를 거부하고 차별화된 새로운 감각의 ‘탈관념 시’를 제시하는 시론이다. 이 시론집의 중심이 되는 는 오남구의 염사 접사의 디지털리즘의 시론에 과학적인 디지털의 기능을 도입하여 보완하고, 디지털시의 개념을 정립하여 한국 현대시의 공간을 확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론집의 표제가 된 는 디지털시의 시론과 하이퍼시의 시론을 결합시키고 있다. 따라서 디지털시의 모듈(module) 이론과 하이퍼시의 리좀(rhizome)을 같은 맥락으로 인식하게 한다. 또한 하이퍼시의 핵심이론인 ‘다선구조’, ‘상상적 기능의 확대’를 이론만이 아닌 실제의 창작된 작품으로 제시함으로써 하이퍼시의 시론이 성립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는 무의미와 사물성 이미지의 사물시(事物詩)의 세계에서 탈출하여 하이퍼시의 이론을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객관화하여 정의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이론의 전개에 문덕수의 시론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하이브리드(잡종결합)가 들어간 ‘다선구조론’으로 확대하고 있다. 그는 시론에서 불교 교리를 응용하고 있다. 그 예로 불교의 기본사상 ‘제법무아(諸法無我)' ’는 디지털시의 언어를 설명하는데 중심개념으로 활용된다. 이는 1930년대 이상(李箱)의 시를 언어의 기호성으로 해석하는 핵심이론이 되고 있다. 불교의 ‘다르게 생각하기’와 ‘회의하기’는 사물의 본질적이며 확정적이지 않은 기표의 ‘무의미’성과 사물의 ‘불고정성’을 사유의 기초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는 21세기의 한국 현대시의 현장에서 ‘디지털시론’과 ‘하이퍼시론’을 생산하여 보여주는 ‘새로운 시론의 묶음’이다. 이 시론집은 저자의 독창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문덕수의 시론, 김규화와의 대담 등은『시문학』을 중심축으로 한 집단적 사고의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심도 있는 토의과정과 여러 편의 예시된 시 작품들 (오남구, 김규화, 신규호 등)이 그것을 증명한다. 문덕수의 장시『우체부』에 대한 평설은 하이퍼시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평설로 평가 된다. 에서부터 까지 읽으면 현대시의 역동적이며 다각적인 모습을 조망하게 된다. 이는 심상운의 탐구력과 열정과 열린 사유의 결과라는 점에서 동시대의 시인으로서 경이감을 느끼게 한다.   Ⅱ 하이퍼 시의 개념과 정의     1965년 테드 넬슨(Ted Nelson)은 “하이퍼텍스트는 종이 위에서 손쉽게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방법으로 상호 연결된 글이나 그림 자료들의 조직체”라고 했다. 그는 이 조직체들이 연결(link)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서로 결속된다는 하이퍼텍스트이론을 발표함으로써 문서의 열람을 자유롭게 하는 방법을 창안했다. 링크는 컴퓨터에서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일을 뜻한다. 문덕수는 넬슨의 하이퍼텍스트 이론을 1930년대의 이상(李箱)의 시에 대입하여 새로운 하이퍼시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그것이 이 시론집에 인용된 문덕수의 의 시론이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시론은 이미지의 가지치기를 가능하게 하는 컴퓨터의 링크(link)이론이다. 이 링크(link)시론은 디지털시론에 없는 새로운 시론이다. 심상운은 이런 시론의 개발을 적극수용하고 그 시론을 근간으로 하여 하이퍼시의 시론을 종합하여 구체화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론집은 하이퍼 시론 정립의 중요 자료가 된다. 그는 하이퍼시는 가장 발전된 상태의 디지털시라고 정의한다.(217쪽) 그 이유는 디지털시의 모듈(module)과 하이퍼시의 리좀(rhizome)이 서로 결합할 수 있는 공통점을 통찰하였기 때문이다. 모듈은 컴퓨터의 최소 단위(unit)의 결합과 단절로 이루어진다. 모듈이론은 시에서의 단어와 단어의 결합과 분리, 연과 연에서의 단절과 분리를 의미한다. 어떤 단어로 대체되어도 의미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다른 단어로 교환 가능한 시의 구성 기법이다. 따라서 ‘하이퍼시’는 최소 단위(unit)가 결합과 분리를 자유자재로 하여 새로운 모듈 체계로 합성된다. 이 합성된 단어나 이미지들은 분리와 결합, 교환, 삭제가 자유롭다. ‘하이퍼 시’의 링크 기능은 ‘연결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서 자유로운 편집기능을 갖는다. 리좀은 사방으로의 링크의 기능을 의미한다. 병렬 배치하여 평면상에서 교체 가능한 이미지들의 연결을 의미한다.       Ⅲ. 하이퍼 시의 성립 조건   심상운은 에서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문학형태인 하이퍼시의 성립조건을 아래와 같이 9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이 9가지 조건은 하이퍼시가 어떤 형태의 시를 지향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1.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하이브리드의 구현)을 기본으로 한다. 2. 시어의 링크 또는 의식의 흐름이 통하는 이미지의 네트워크(리좀)를 형성한다. 3. 다시점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캐릭터는 사물도 될 수 있다. 4. 가상현실의 보여주기는 소설적인 서사를 활용한다. 5.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현실을 초월한 상상, 또는 공상의 세계로 시의 영역을 확장한다. 6. 정지된 이미지를 동영상의 이미지로 변환시킨다. 7. 시인의 의식이 어떤 관념에도 묶이지 않게 한다. 8. 의식세계와 무의식 세계의 이중구조가 들어가게 한다. 9. 시인은 연출자의 입장에서 시를 제작한다.   이 하이퍼시의 9가지 조건들은 디지털시의 10가지 조건과 맥락을 같이 함을 알 수 있다.   1,분리와 결합이 가능한 탈관념의 언어와 집합적 결합 2, 인지단계의 관념수용 3, 현실의 샘플링과 가상현실 4, 영상성, 동시성, 정밀성을 바탕으로 한 사물 이미지의 충돌과 융합 5, 심리적 현상 속의 관념허용 6, 직관을 통한 염사 접사 7,순수한 가상현실의 증류수 같은 정서와 순수한 현실감각의 지장수 같은 정서 8,다시점 다감각의 세계지향 9, 독자 참여의 열린 시 지향 10, 동적인 영상의 시 구현   하이퍼시 성립조건의 중심을 이루는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 가상현실의 보여주기, 다시점과 동영상의 이미지, 탈관념 등은 디지털시 조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시어의 링크 또는 의식의 흐름이 통하는 이미지의 네트워크와 시인은 연출자의 입장에서 시를 제작한다는 두 가지 조건이 하이퍼텍스트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자신이 제시한 조건에 맞는 하이퍼시를 창작하여 시론의 중간에 인용 형식으로 발표함으로써 실험시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그가 시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모듈과 리좀의 옴니버스적 구성형식은 기존의 논리적이고 설득적인 시와 비교할 때 분명한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논리적인 인과의 틀을 벗어난 연과 연의 불연속적인 관계가 열어주는 가상현실이 영화적인 공간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심상운의 하이퍼시론의 성립조건을 수렴하고 필자가 하이퍼시를 쓰면서 현장에서 느낀 개인 경험을 토대로 다음의 5가지를 하이퍼시 성립조건으로 추가 제안해본다. 하이퍼시의 성립조건은 하이퍼시의 창작 기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첫째, 새로운 감각의 설명적이지 않은 제목과 내용 둘째,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 셋째, 추상화 기법의 디자인과 구성 넷째, 환타지성 다섯째, 실험성   필자도 2004년「물고기의 레이스 전봇대 위를 날다」라는 시를 썼는데, 그 시속에 ‘환타지성’과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을 도입하였다. 환타지성은 분리와 결합, 디자인에서 새로운 감각의 추상화기법으로 하이퍼시의 성립조건을 가지고 있다. 하이퍼시는 제목과 내용이 설명적이지 않아야 하며 새로운 감각의 구성과 디자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써 먹었던 방법이 아닌 새로운 실험성이 하이퍼적 요소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이퍼시의 성립조건은 새롭고 감각적이며 실험적이어야 하지만, 무목적성의 단어 던지기 식으로 양산된 ‘무의미’와 구별된다. 그것은 치열한 작가정신에 의한 새로운 디자인과 구성의 신선함이다. 그러므로 하이퍼시는 고정적인 시의 성립조건을 제시하여 창의성에 제한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변화를 추구하면서 끊임없이 새롭고 감각적으로 바뀌어 가는 ‘창조성’이 하이퍼시의 기본조건이기 때문이다.       Ⅳ. 단선구조의 세계에서 다선구조의 세계로     이 시론집에서 주장하는 ‘다선구조론’은 하이퍼시에서 보여주는 ‘다시점’에만 초점을 맞춘 이론은 아니다. 다선구조론은 시창작 과정을 총체적이며 다각적인 복합 텍스트 이론으로 확장시킨다. 그러나 심상운의 다선구조론이 모든 하이퍼시 이론을 수용할 수 있는지는 앞으로 논의되어야 할 과제로 남을 것 같다. 필자는 시론집에 실린 심상운의 아래 시를 통하여 그의 다선구조의 한 형태를 살펴보기로 한다.   어두컴컴한 매립지埋立地에서는 새벽안개가 흰 광목처럼 펼쳐져서 나뭇가지를 흐늘쩍흐늘쩍 먹고 있다. 나무들은 뿌연 안개의 입 속에서도 하 늘을 향해 아우성치듯 수십 개의 팔과 손가락을 뻗고 있다.   그는 봄비 내리는 대학로 큰길에서 시위대들이 장대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   나는 그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끌려가다가 그가 찍어온 ‘안개 속의 나 무들’을 벽에 붙여놓고 식탁에 앉아 푸른 채野菜를 먹는다. 마른 벽 이 축축한 물기에 젖어들고 깊은 잠 속에 잠겨 있던 실내의 가구들이 조금씩 몸을 움직거린다. 그때 TV에서는 파도 위 작은 동력선의 퉁퉁대는 소리가 지워지고, 지느러미를 번쩍이던 은빛 갈치의 膾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싱싱해서 좋다고 떠드는 여자 리포터의 붉은 입이 화면 가득 확대되었다.                                                            ―심상운, 「안개 속의 나무 또는 봄비」전문     위의 시는 ‘먹는다’는 동사를 중심어로 하고 있다. 하이퍼시의 링크의 기능을 살려 1연은 3연을 링크하고, 4연을 계속 링크한다. ‘먹는다’는 중심어는 1연의 ‘나뭇가지를 먹고 있는 새벽안개’에서 3연의 ‘야채를 먹는다’를 링크하고, 4연의 ‘은빛 갈치의 회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여자 리포터’를 링크한다. 각각 다른 사물과 사건을 링크하면서 ‘다시점’ 구조를 형성한다. 2연은 전혀 낯선 ‘행진하는 시위대’를 등장시켰다. 복합적 구조를 가지고 다른 연과 독립적이다. 그러나 ‘먹는다’는 행위를 직접 행동으로 취하지는 않지만, ‘행진하는 시위대의 구호’는 ‘먹고 살게 해 달라’는 1차적인 생존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먹는다’와 포괄적으로 통합된다. 작가가 연출자의 입장에서 시를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무의식의 자동기술 기법으로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의도성’을 가지고 디자인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의 아날로그 시와 차별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1-4연은 각각 독립된 내용으로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상현실의 사건과 소설적인 서사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각 연들이 결합하여 삶의 생생한 ‘현장성’을 부각시킨다. 특히 무생물과 사물에 ‘인식’과 ‘의식화’를 시켜 ‘행동성’과 ‘운동성’을 갖게 하였다. 1연의 ‘새벽안개’가 ‘나뭇가지를 흐늘쩍흐늘쩍 먹고 있’고 3연의 ‘실내의 가구들’이 ‘조금씩 몸을 움직거리고’ 4연의 ‘여자 리포트의 붉은 입’은 ‘확대’ 된다. 사물에 ‘움직임’이라는 동작을 줌으로써 무생물에 생기와 운동감을 주어 시를 감각적이게 한다. 또한 위의 시는 작가의 주제를 부각시키려는 목적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실과 상황만을 그대로 ‘보여주기’하고 있다. 왜? 무엇을? 이라는 질문을 할 수가 없다. 작가의 주관과 주제의식이 배제되었다. 아니 혹은 숨겼을지도 모르지만 현장을 객관적 ‘리포터’의 입장으로 전달할 뿐이다. 이 시는 4연의 시를 독립적으로 분리하여도 한 편의 시가 될 정도로 복합적인 구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뉴스를 보는 것처럼 생생한 ‘현장성’이 있다. 이 시는 ‘먹는다’와 ‘뻗는다’의 중심어가 여러 상황을 ‘파생적’으로 ‘보여주기’하고 있다. 상상력과 연상작용을 하여 공상의 세계로 독자를 인도한다.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의 새로운 감각의 ‘보여주기‘ 하이퍼시다. 「안개 속의 나무 또는 봄비」는 그가 주장하고 있는 하이퍼시의 요건인 9가지 다선구조론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새로운 시가 먼저 탄생하고 후세에 비평가들이 ‘문예사조’와 '이즘(-주의)을 붙이는 것이 순서인데, 심상운은 자신이 쓴 시를 자신이 직접 분석하여 자신이 창안한 시창작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새로운 기법의 더 많은 하이퍼시들이 창작될 것이고, 그 시들은 또 새로운 ‘-이즘’으로 이름이 붙여질 것이 때문에 하이퍼시의 창작 기법은 ‘과정 중’에 있고 말할 수 있다.   Ⅴ. 이슈- 공연시의 특성과 전망   은 ‘경계 허물기’와 ‘통합하기’를 통해 시를 언어(문자)에서 해방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다. 시는 문자(문학)만을 고집하지 않고, 연극과 무용, 음악과 통합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술작품을 비롯한 문화현상들은 형식이 내용을 만들고 변화시킨다고 한다. 형식은 내용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용기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전문가적인 정신과 열정으로 온몸으로 공연하여 ‘열린 시 운동’을 펴서 시를 표현예술로 승화시켜 종이에서 해방된 시는 뜨겁고 빛나는 행위예술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가 창안한 각색시(脚色詩)는 하이퍼시와는 다른 관점에서 시와 연극을 결합한 독창적인 시 형태라는 점에서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의 공연시의 특성과 전망은 현실 속에서 구현되고 있다. 신규호가 에서 라는 타이틀을 걸고 시와 무용, 연극, 음악, 퍼포먼스와 결합시켜 통합예술로 승격시켜 선각자로 공연시 보급 운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으며, 종각역 전시실에서는 시와 사진의 만남인 의 전시회를 세 번째 개최하고 있다. 앞으로 이와 같은 통합예술의 기회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필자도 회원으로 를 발표하며 시의 공연화에 고심하고 있다.   시의 낭송도 이제는 목소리만으로 전달하던 아날로그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연기와 무용, 서화, 미술, 노래, 퍼포먼스 등 자신의 끼와 재능을 하이퍼적으로 발휘하여 통합예술로 승격시켜야할 것이다. 가수의 무대공연처럼 조명과 무대장치, 백댄서까지 동원하여 버라이어티 쇼를 꾸밀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시인들도 펜을 몰고 다니며 공연할 날을 꿈꿔본다. 은 시의 사회적 영역을 확대하는데 큰 에너지를 주고 있다.   Ⅵ. 결론   심상운의 시론집『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는 1930년대 이상(李箱)의 시, 1960년대의 조향의 시와 문덕수의『선· 공간』의 시편들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초현실적인 모더니즘의 시론이다. 2000년대 오남구와 심상운의 대화는 디지털시론을 생산하는 원천이 되었으며, 문덕수의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은 하이퍼시의 이론적 모태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여기에 「시문학 」출신 시인들의 집중적인 토론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이 시론집에 실린 , , 등은 하이퍼시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과 논의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보여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심상운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직접 실험시를 창작하여 새로운 하이퍼시의 성립조건 9가지를 제시하여 하이퍼시의 구조를 정리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그는 디지털시와 하이퍼시를 말하기 전에 를 통해서 관념(의미)과 탈관념(무의미)의 경계선을 분명히그었으며, 에서는 하이퍼시의 바탕이 상상과 공상이라는 것과 정서의 표현 방법을 예시하고 있다. 앞으로 이 하이퍼시의 영역이 한국현대시에 머물지 않고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것을 상상해본다. 그 근거는 하이퍼시가 새로운 감각과 자극을 주는 앞서가는 시 창작 기법이기 때문이다. 하이퍼시를 생산하기 위한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심상운의 『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시론집은 한국시사에서 ‘하이퍼시의 공간’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도전을 받을 것이다. 고정된 시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 하이퍼시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699    하이퍼시 - 새롭게 디자인한 시 댓글:  조회:4659  추천:0  2015-09-09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                                                      심상운    밤 12시 05분. 흰 가운의 젊은 의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을지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40대의 사내. 눈을 감고 꼬부리고 누워있는 그의 검붉은 얼굴을 때리며 “재희 아빠 재희 아빠 눈 떠 봐요! 눈 좀 떠 봐요!“ 중년 여자가 울고 있다. 그때 건너편 방에서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소리.     그는 허연 비닐봉지에 싸여진 채 냉동고 구석에서 딱딱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밥을 꺼내 후끈후끈한 수증기가 솟구치는 찜 통에 넣고 녹이고 있다. 얼굴을 가슴에 묻고 웅크리고 있던 밥 덩이는 수증기 속에서 다시 끈적끈적한 입김을 토해 내고, 차 갑고 어두운 기억들이 응고된 검붉은 뼈가 단단히 박혀 있던 밥의 가슴도 끝내 축축하게 풀어지기 시작한다. 푸른 옷을 입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는 그는 나무젓가락으로 밥의 살을 찔러 보며 웃고 있다.     이집트의 미라들은 햇빛 찬란한 잠속에서 물질의 꿈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미라의 얼굴이 검붉은 색으로 그려진 둥근 무화과나무 목관木棺의 사진을 본다. 고대古代의 숲 속에서 날아온 새들이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5월의 청계산 숲을 휘젓고 다니는 오전 11시.       평론: 이선 시 읽기     하이퍼텍스트 이론은 컴퓨터 용어인 하이퍼와 텍스트를 합한 단어로서 1960년대 컴퓨터 개척자 테오도르 넬슨이 만든 말이다. 미국작가 조지 피 랜도(George P. Landow)의 저서 『Hypertext』(1992)에서 유래된 문학이론이다. 하이퍼링크와 쌍방향성이라는 컴퓨터의 특성을 결합한 용어를 문덕수 시인이 시에 처음 도입하였다. 컴퓨터의 링크 기능으로 블록에서 다른 블록으로 이동하며 건너뛰기한다. 하이퍼텍스트의 병렬구조는 탈중심적으로 텍스트를 링크하며 무한한 상상력을 한 공간에 집합한다.   은 심상운이 하이퍼텍스트 시론에 입각하여 쓴 새로운 디자인의 시다. 심상운 시인은 컴퓨터의 모듈(module)과 리좀 용어를 시론에 도입하여 하이퍼텍스트 시의 정의를 이론으로 정립한 시인이다.   은 3연이 각각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1연은 병원 응급실, 2연은 밥, 3연은 이집트 미라, 세 개의 이야기를 짜깁기 하였다. 시적 거리가 먼 각각 독립된 이야기를 한 공간에 펼쳐 놓았다. 소설의 옴니버스 구조를 도입한 짧은 이야기는 극적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시에서 다루고 있는 ‘병’과 ‘밥’, ‘죽음’의 문제는 인간과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큰 관심 주제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인생’과 ‘인간’이라는 큰 그림 속에 그려진 또 작은 세 개의 그림이다.   심상운의 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한다. ‘고대미이라 목관 사진’과 ‘고대숲’에서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현대의 새들이 ‘5월의 청계산 숲을 휘젓고‘ 울고 있다.   시인은 그림 한 장을 감상하다가 상상력의 줄기를 우주까지 뻗어서 한편의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1연, 2연, 3연이 각각 다른 그림이다. 1연의 병원 응급실과 2연의 냉장고 밥과 3연의 미이라 목관은 각각 다른 그림이지만 링크되어 연관성을 갖는다. 과거면서 현재를 조명하고 있다.   심상운은 에서 하이퍼텍스트 시의 한계성으로 지적된 사유와 철학의 부재를 극복하고 있다. 하이퍼시에서 문제로 지적되었던 시의 ‘진정성’을 증명하였다.   이선 약력: 2007년 시문학 등단, 2011년 백인 선정, 2011년 제8회 푸른시학상 수상. 시집: 외 동인지 20여권 논문집: 평론: 심상운 서평, 및 평론 다수 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국장 좋은시공연문학회 사무차장 한국시문학문인회 이사    
698    하이퍼시란? 댓글:  조회:4384  추천:1  2015-09-09
    Ⅱ 하이퍼 시의 개념과 정의     1965년 테드 넬슨(Ted Nelson)은 “하이퍼텍스트는 종이 위에서 손쉽게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방법으로 상호 연결된 글이나 그림 자료들의 조직체”라고 했다. 그는 이 조직체들이 연결(link)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서로 결속된다는 하이퍼텍스트이론을 발표함으로써 문서의 열람을 자유롭게 하는 방법을 창안했다. 링크는 컴퓨터에서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일을 뜻한다. 문덕수는 넬슨의 하이퍼텍스트 이론을 1930년대의 이상(李箱)의 시에 대입하여 새로운 하이퍼시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그것이 이 시론집에 인용된 문덕수의 의 시론이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시론은 이미지의 가지치기를 가능하게 하는 컴퓨터의 링크(link)이론이다. 이 링크(link)시론은 디지털시론에 없는 새로운 시론이다. 심상운은 이런 시론의 개발을 적극수용하고 그 시론을 근간으로 하여 하이퍼시의 시론을 종합하여 구체화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론집은 하이퍼 시론 정립의 중요 자료가 된다. Ⅳ. 단선구조의 세계에서 다선구조의 세계로     이 시론집에서 주장하는 ‘다선구조론’은 하이퍼시에서 보여주는 ‘다시점’에만 초점을 맞춘 이론은 아니다. 다선구조론은 시창작 과정을 총체적이며 다각적인 복합 텍스트 이론으로 확장시킨다. 그러나 심상운의 다선구조론이 모든 하이퍼시 이론을 수용할 수 있는지는 앞으로 논의되어야 할 과제로 남을 것 같다. 필자는 시론집에 실린 심상운의 아래 시를 통하여 그의 다선구조의 한 형태를 살펴보기로 한다.     어두컴컴한 매립지埋立地에서는 새벽안개가 흰 광목처럼 펼쳐져서 나뭇   가지를 흐늘쩍흐늘쩍 먹고 있다. 나무들은 뿌연 안개의 입 속에서도 하늘을 향해 아우성치듯 수십 개의 팔과 손가락을 뻗고 있다.     그는 봄비 내리는 대학로 큰길에서 시위대들이 장대 깃발을 들고 구호   를 외치며 행진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     나는 그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끌려가다가 그가 찍어온 ‘안개 속의 나    무들’을 벽에 붙여놓고 식탁에 앉아 푸른 채野菜를 먹는다. 마른 벽       이 축축한 물기에 젖어들고 깊은 잠 속에 잠겨 있던 실내의 가구들이     조금씩 몸을 움직거린다.      그때 TV에서는 파도 위 작은 동력선動力線의 퉁퉁대는 소리가 지워지   고, 지느러미를 번쩍이던 은빛 갈치의 膾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싱   싱해서 좋다고 떠드는 여자 리포터의 붉은 입이 화면 가득 확대되었다.                           ―심상운, 「안개 속의 나무 또는 봄비」전문 정리하고 있다. 이 9가지 조건은 하이퍼시가 어떤 형태의 시를 지향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1,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하이브리드의 구현)을 기본으로 한다.  2, 시어의 링크 또는 의식의 흐름이 통하는 이미지의 네트워크(리좀)를 형성한다.  3, 다시점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캐릭터는 사물도 될 수 있다.  4, 가상현실의 보여주기는 소설적인 서사를 활용한다.  5,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현실을 초월한 상상, 또는 공상의 세계로 시의 영역을 확장한다.  6, 정지된 이미지를 동영상의 이미지로 변환시킨다.  7, 시인의 의식이 어떤 관념에도 묶이지 않게 한다.  8, 의식세계와 무의식 세계의 이중구조가 들어가게 한다.  9, 시인은 연출자의 입장에서 시를 제작한다.   이 하이퍼시의 9가지 조건들은 디지털시의 10가지 조건과 맥락을 같이 함을 알 수 있다.   1, 분리와 결합이 가능한 탈관념의 언어와 집합적 결합 2, 인지단계의 관념수용 3, 현실의 샘플링과 가상현실 4, 영상성, 동시성, 정밀성을 바탕으로 한 사물 이미지의 충돌과 융합 5, 심리적 현상 속의 관념허용 6, 직관을 통한 염사 접사 7, 순수한 가상현실의 증류수 같은 정서와 순수한 현실감각의 지장수 같은 정서 8, 다시점 다감각의 세계지향 9, 독자 참여의 열린 시 지향 10, 동적인 영상의 시 구현   하이퍼시 성립조건의 중심을 이루는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 가상현실의 보여주기, 다시점과 동영상의 이미지, 탈관념 등은 디지털시 조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시어의 링크 또는 의식의 흐름이 통하는 이미지의 네트워크와 시인은 연출자의 입장에서 시를 제작한다는 두 가지 조건이 하이퍼텍스트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앞의 서술 내용을 요약하면 단선구조의 세계에서 다선구조의 세계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다음에 열거한 9가지 방법이 유효할 것으로 생각된다.   1,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하이브리드의 구현)을 기본으로 한다. 2, 시어의 링크 또는 의식의 흐름이 통하는 이미지의 네트워크(리좀)를 형성한다. 3, 다시점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캐릭터는 사물도 될 수 있다. 4, 가상현실의 보여주기는 소설적인 서사(敍事)를 활용한다. 5,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현실을 초월한 상상 또는 공상의 세계로 시의 영역을 확장한다. 6, 정지된 이미지를 동영상의 이미지로 변환(變換)시킨다.  7, 시인의 의식이 어떤 관념에도 묶이지 않게 한다. 8,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의 이중구조가 들어가게 한다. 9, 시인은 연출자의 입장에서 시를 제작한다.    이 9가지 방법은 하이퍼 시의 창작방법이 되기도 한다. 하이퍼텍스트(hypertext)의 하이퍼(hyper)에는 불가시적인 세계를 가시적인 세계로 전환시키기 위한 무한한 상상의 변화와 에너지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하이퍼텍스트 시의 다선구조는 시대적 성향변화에 대한 현대시인의 적극적이며 창조적 대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697    글쓰기 0도 댓글:  조회:3989  추천:0  2015-09-09
[ 2015년 09월 14일 10시 05분 ]       글쓰기의 0도                      /롤랑 바르트     영어단어해석-   도그마 ;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 데크닉;데크니크, 수법, 기술 아우라;예술작품에서 흉내낼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 다른것과 구별되는 개성적분위기. 파롤(빠롤); 소쉬르의 언어, 말, 가변적개인적 랑그;체계속 언어, 구조적 사회적 메커니즘;어떤 대상의 작동원리나 구조 그래픽;그림이나 사진을 위주로 편집한 지면이나 인쇄 물 시퀀즈; 시간,장소, 사건으로 한개의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단위 ----------------------------------------------- @@ 사유는 어떤 무속에서 말을 배경으로 행복하게 솟아오르는것 같았는데, 이런 무로부터 출발한 글쓰기는 점진적인 응결의 모든 상태들을 통과했다. 그 다음으로 그 만듬의 대상, 끝으로 파괴의 대상이였던 글쓰기는 오늘날 마지막 변신인 부재에 도달하고 있는것이다. 10   언어체는 한시대의 모든 작가들에게 공통적인 규정들 및 습관들의 조직체이다. .. 언어체가 작가의 파롤에 어떤 형태를 주는것은 결코 아니며 자양을 주는것도 아니다. 그것은 진실들의 추상적인 원과 같은것이며, 이원을 벗어날 때 비로소 밀도 있는 고독한 언어가 쌓여지기 때문이다. 15   글쓰기는 언어를 넘어선 지점에서 언제나 뿌리내리고 있으며, 하나의 선이 아니라 싹처럼 전개되고 , 어떤 본질을 나타낸다. 어떤 비밀의 위협인 그것은 반소통이며 위압갑을 준다 23   지식인의 이런 글쓰기들은 불안정하며 여전히 문학적이다. 왜냐 하면 그것들은 무력하게 참여에 대한 강박에 의해서만 정치적이 기때문이다. 요컨대 그것들은 여전히 윤리적 글쓰기들이며, 그속 에서 필자(우리는 더이상 감히 작가라고 말할수 없다)의 의식은 집단적구원의 안심시키는 이미지를 찾아낸다. 30   중국전통을 보면 예술은 현실의 모방에 있는 완벽에 다름 아니다… 례컨대 나무로 만든 이 호두는 그것을 탄생시킨 예술을 나에게환기시키겠다는 의도를 어떤 호두의 이미지와 함께 전달해서는 안된다. 소설적글쓰기가 수행하는것은 그 반대이다. 35   언어는 당연히 그자체의 파괴를 향하고있기 때문이다. 38   모든 시는 자신을 표현하는 그 방식이 어떠하든지 본질의 상태로 , 힘의 상태로 존재하고있는 잠재적산문의 장식적 암시적 혹은과장된 방정식에 불과하다… 시적언어와 산문적 언어는 그것들의 타자성을 나타내는 기호들자체가 필요없을만큼 충분히 분리되여있다… 고전주의사유는 지속이 없으며 고전주의적시는 자신의 기교적배치에 필요한 사유만을 지닌다. 그 반대로근대적시학에서 낱말들은 일종의 형식적연속체를 생산하며 이 연속체로부터 낱말들 없이는 불가능한 지적 혹은 감정적밀도가 조금씩 비롯된다. 따라서 말은 보다 정신적인 배태의 빽빽한 시간이며, 이 배태속에서 ‘사유’가 준비되고 낱말 들의 우연을 통해서 조금씩 자리잡힌다.따라서 의미작용의 무르익은 열매를 떨어뜨리게 되는 이와같은 언어적기회는 시적시간을 상정하는데, 이 시간은더 이상 제작의 시간이 아니라 어떤 기호와 어떤 의도의 만남이라는 가능한 모험의 시간이다. 근대적시는 언어의 모든 구조를 포착하는 차이를 통해서 고전주의적예술과 대립되며, 이 두시사이에는 동일한 사회학적의도이외에는 다른 공통점을 남기지 않는다.43   고전주의적연속체는 밀도가 동등한 요소들의 연속인데, 이 요소 들은 차안된것같은 개인적의미작용에 대한 모든 성향을 제거하고 동일한 감각적압력을 받지 않을수가 없다. 시적어휘 자체는 창안이 아니라 관례의 어휘이다. 그속에서 이미지들은 창조를 통해서가 아니라 관습을 통해 고립되지 않고 함께 있음으로써 특수하다.… 고전주의적인 기교적수식은 낱말들이 아니라 관계들의 기교적수식이다. 그것은 창작의 기교가 아니라 표현의 기교이다. 44   낱말은 무한한 자유로 빛을 발하며 불확실하고 가능한 수많은 관계를 향하여 빛날준비를 하고있다. 고정된 관게가 무너짐 으로써낱말은 어떤 수직적인 기회만을 지닌다. 그것은 의미들, 반사들, 잔상들로 이루어진 어떤 총체속에 잠기는 덩어리이고 기둥이다. 요컨대 그것은 서있는 기로이다. 여기서 시적인 낱말은 직접적인 과거가 없는 행위이고, 그것에 결부된 모든 기원들의 반사들이 드리우는 두터운 그림자만을 제안하는 주변없는 해위이다… 각각의 시적인 낱말들은 예기치 않은 대상이고 , 언어의 모든 잠재적가능성들이  날아오르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특별한 호기심, 일종의 신성한 식도락을 가지고 생산되고 소비된다. 대문자 낱말의 이와같은 절대적갈망은 모든 근대적시에 공통적인데, 시적인 말을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말로 만든다. 그것은 구멍들과 빛들이 가득하고 , 지나치게 풍부함을 주는 기호들과 부재들로 가득한 담화를 확립하지만. 이 담화는 의도의 예상도 연속성도 없으며 따라서 언어의 사회적기능에 매우 대립되기때문에 어떤 불연속적인 말에 단순히 의존하기만 해도 모든고유한 초자연들의 길이 열리게 된다. 46-47   근대적시는 언어의 관게를 파괴했고, 담화를 낱말들의 정거장으 로 규결시켰다. 이런 현상은 대자연에 대한 인식에서 전복을 함축한다. 새로운 시적언어의 불연속체는 덩어리들로서만 드러나는 어떤 불연속적 대자연을 확립한다. 기능들의 후퇴가 세계의 관계들에 대해 어둠을 드리우는 바로 그 시점에서 대상은 담화에서 높아진 위치를 차지한다. 그래서 근대적시는 객관적시가 된다. 그속에서 대자연은 고독하고 끔직한 대상들의 불연속체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잠재적관게들만 있기때 문이다.아무도 그것들을위해 어떤 특권적의미나 사용 혹은 서비스를 선택하지 않으며 아무도 그것들에 어떤 계층체계를 감지하지 않고 아무도 그것들을 정신적행동이나 의도의 의미, 작용, 다시말해 요컨대 어떤 애정의 의미작용으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시적언어의 파렬은 절대적대상을 성립시킨다. 대자연은 수직들의 련속이 되고 대상은 그것의 모든 가능성들로 채워진채 갑자기 일어선다. 그것은 메워지지 않는 따라서 끔직한 하나의 세계를 구획할뿐이다. 낱말들 대상들은 관계가 없으며 그것들이 파렬하는 모든 폭력으로 치장되고이 폭력의 순전히 기계적인 떨림은 다음 낱말에 기이하게 충격을 주지만 곧바로 소멸한다. 이런 시적낱말들은 인간들을 배제시킨다.결국 근대성의 시적인본주의는 없다. 이처럼 수직적으로 서있는 담화는 공포로 가득한 담화이다. 다시말해 그것은 인간을 다른인간들과 연관시키는게 아니라 하늘 지옥 불가침한것, 어린시절, 순수한 질료 등 대자연의 더없이 비 인간적인 이미지들과 련관시킨다. 이 시점에서 시적인 글쓰기에 대해 나갈수 있다는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윤리적중요성을 파괴해버리는 자률의 폭력을 지닌언어가 문제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어적몸짓은 대자연을 수정하는것을 목표로 한다. 그것은 하나의 조물주와 같다.그것은 의식의 태도가 아니라 관계의 행위이다. 이것이 바로 최소한 근대적시인들,자신들의 의도를 끝까지 밀고 가는 그 시인들의 언어이다. 그들은 시를 정신적인 실천, 령혼의 상태 혹은 립장의 계시로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꿈꾸어진 언어의 찬란함과 신선함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시인들에게는 시적감 정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것 역시 쓸데 없다. 48-49   고전주의 작가들 역시 형태의 문제를 알고있었겠지만, 론쟁은 글쓰기들의 다양성 및 의미와 전혀 관련이 없었으며, 언어의 구조와는 더욱 관련이 없었다. 다시 말해 어떤 설득목적에 따라 생각된 담화의 질서만이 문제가 되였다. 따라서 부르죠아적 글쓰기의 특이성이 대응하는것은 수사학의 다양성이였다. 54   모파상, 졸라, 도데의 그 글쓰기는 문학의 형식적기호들 (단순 과거 , 간접화법, 씌여지는 리듬)과 사실주의의   역시 형식적인 기호들(민중언어의 덧붙혀진 조각들, 거친 말, 방언 등)의 결합체이다. 62   공산주의작가들은 부르주아작가들이 오래전부터 단죄했던 부르 주아적글쓰기를 요지부동으로 지지하는 유일한자들이 된다.67   언어의 어떤 질서에의 모든 예속에서 해방된 백색의 글쓰기를 창도하는것이다. 70   의식적인 작가는 이제 조상 전래의 전능한 기호들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 78   근대적예술전체가 그렇듯이, 문학적글쓰기는 역사의 소외와 역사의 꿈을 동시에 지니고있다. 필연성으로서 그것은 언어들의 찢김, 계급들의 찢김과 분리할수 없는 찢김을 증언한다, 자유로서 그것은 이런 찢김의 의식이고 그것을 뛰여넘고자 하는 노력자체이다. 그것은 그것자체의 고독에 대해 끊임없이 죄의식을 느끼고 있음에도,여전히 낱말들의 행복에 탐식하는 상상력이며, 어떤 꿈꾸어진 언어를 향해 달려간다. 언어가 더이상 소외되지 않는 새로운 아담적인 세계의 완벽함을 일종의 리상적인 예견을 통해서 나타내는 신선함을 지닌 그런 언어를 향해. 글쓰기들의 다양화는 새로운 문학을 확립한다. 왜냐하면 이 새로운 문학은 오로지 하나의기획이 되기 위해서만 자신의 언어를 창안한다는 점때문이다. 이 기획은 문학이 언어의 유토피아가 되는것이다.79   작품의 불연속성과 무질서가 낳는 열매자체는 각각의 잠언이 이를테면 모든 잠언들의 원형이라는것이다. 유일하면서도 변주되는하나의 구조가 있다… 성찰들은 담론의 단상들이고 , 구조와 광경이 없는 텍스트들이다. 84   잠언은 개별적인 덩어리들로 구성된 전체적인 불덩어리이다. 뼈대는 뚜렷한 모습이상으로 광경적이며- 그리고 뼈들은 단단한것들이다. 잠언의 모든 구조는 그것이 고정되여 있지 않다는 바로 그점에서 가시적이다. 85   수직성을 통해서만 질서가 잡히는 하나의 세계가 드러난 셈이다. 미덕들, 다시말해 외관들의 유일한 수준에서는 그 어떠한 구조도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구조는 바로 명백한것과 감추어진것 사이의 진실관계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97   무질서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98   지극히 뛰여난 명철성에 지극히 대단한 비현실성이 흔히 대응한다.100   이미지들은 텍스트와 분리시킴으로써 는 대상의 하나의 자율적인 도상학에 진입하고 있었다. … 의 도판들은 대상을 제시하고 이 제시는 예시의 교육적목표에 보다 무상한 미학적 혹은 모상적 정당화를 덧붙이고 있다.105   일반적으로 대상의 생산은 이미지를 거의 신성하다할 단순성으로 이끈다… 창조의 간결한 엄겨겅, 거래의 화려함, 이것이 백과전서적 대상의 이중적체제이다. 109   기계의 도판, 곧 이미지는 … 우선 대상 혹은 작업의 분산된 요소들을 분석하고 열거하며, 그것들을 독자의 눈앞에 테이블위에던지듯 던지고, 이어서 마무리하기 위해 생활장면, 다시 말해 삶의 두께를 덧붙이면서 그것들을 재구성한다. 116   당신이 재현하는것은 분석적정신의 여정이다. 세계는  당신에게 통상적인것, 분명한것(이것은 생활의 장면이다)을 제시한다. 백과전서파와 함께 당신은 점진적으로 원인들, 물질들, 원요소들로 내려가며 , 체험적인것으로부터 인과적인것으로 가고 , 대상을 지적으로만든다. 일직선적인 글쓰기와 이 점에서 반대되는 이미지의 특권은 그 어떠한 독서의 미로도 강제하지 않는다는것이다. 왜냐하면 이미지는 론리적인 백커가 언제나 결핍되여 있기 때문이다.117   특이한 떨림은 무엇보다도 놀라움이다.118   백과전서적인 시적세게는 언제나 어떤 비현실주의로 규정된다. 따라서 객관성(‘현실’)의 엄격한 요구에 토대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 다른 무엇(타자는 모든 신비의 기호이다)이 끊임없이 현실을 넘어서는 시적작품이 되는것이 의 계획 이다. 121   객관적으로 이야기된 단순한 대상의 은유자체는 무한히 떨리는 대상이 된다. 122   이미지는 대부분의 경우 그것으로 하여금 본질적으로 터무니없는 대상을 재구성하지 않을수 없게 만든다. 첫번째 자연이 일단 분해되고 나면 첫번째것처럼 형성된 또 다른 자연이 출현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세계를 부순다는것은 불가능하다. 세계가 영원히 차있기 위해서는 하나의 시선- 우리 시선- 이면 족하다  123   자신(을 쓴 샤토브리앙)의 마지막 그림속에 그 최상의 신비한 불완전성을 담아놓은 푸생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불완전성은 완성된 예술보다 더 아름다운데, 시간의 떨림 이다. 추억은 글쓰기의 시작이고 차례로 글쓰기는 죽음의 시작 인것이다.(그것이 아무리 젊은때 시작된다 하더라도 말이다)128   은유      사실 파격구문은 거리의 시학으로 이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문학적노력이 친화성들, 상응들, 유사성들을 추구하는데 있으며, 작가의 기능이 자연과 인간을 단 하나의 세게로 통합하는것이라 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가 공감각적인 기능이라고 부를 수있는것이다.) 그러나 문학의 근본적인 문채인 은유 역시 분리의 강력한 도구로서 리해될수 있다. 특히 은유는 샤토브리앙의 경우 풍부한데 , 두성분뿐 아니라 비소통을 우리에게 표상한다. 마치 하나는 다른 하나에 대한 향수에 불과한것처럼 말이다. 이야기는문자적요소들, 다시 말해 은유적인 방법을 통해 갑자기 덥석 물리고 ,쳐들려지며, 떼어내지고, 분리된 뒤후 일화의 자연스러움에내맡겨지는 문자적요소들을 제공한다. (그것은 심지어 그렇게 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보았듯이,준비도 없이 폭력적인파격구문에 따라 억지로 도입된 새로운 말은 환원불가능한 어떤 다른 곳과 갑작스럽게  이 요소들을 대면시킨다. 샤토부리앙은 죽어가는 어떤 젊은 수도사의 미소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캐시미르계곡에서 여행자를 위로하는 그 이름모를 새소리를 듣고있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대목도 있다.“이곳에서 누가 태여났고, 누가 죽었으며, 누가 울었는가? 저 하늘 높이 있는 새들은 다른 고장들을 향해서 날아간다” 샤토브리앙의 작품에서 은유는 사물들을 접근시키는게 전혀 아니다. 그것은 세계들을 분리시킨다. 기교적으로 말하며 (왜냐하면 기교나 형의상학을 말하는것은 같은것이기때문이다), 오늘날 은유는 (시적자유에서와는 달리)단 하나의 기표에만 관련되는게 아니라, 담화의 커다란 단위들에 확장되여 연사莲词생명력자체에 참여하는것 같다. 언어학자들은 연사가 언제나 말과 가깝다고 말한다.샤토브리앙의 커다란 은유는 사물들을 분활하는 여신인데, 언제나 향수적이다. 그것은반향을 증식시키 는것처럼 나타나면서도 인간을 자연속에 불투명한것처럼 남겨두고있고 그에게 결국 직접적인 진정성의 기만을 면제해 준다. 문학은 분리시키고 일탈시킨다. 133-134   대립들이 엄격하도록하기 위해 그것들을 두개이상의 상이한 풍경이 아래로 쫙 펼쳐지는 산정상의 능선처럼 얇고 날카로우며 결정적인 일회식사건을 통해 분리시켜야 한다.   문학은 우연적인 진실을 영원한 개연성(필연성)으로 대체 한다135   근대의 작가는 아브라함이면서 아브라함이 아니다. 그는 도덕을 벗어나 있으면서 동시에 언어속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환원불가능한것을 가지고 일반적인것을 만들어야 하고 , 언어의 도덕적인 일반성을 통해서 자기존재의 부도덕성을 되찾아야 한다. 그래서 문학이라는것은 이와같은 위험을 감수한 통과이다. 138   고유명사는… 보통명사의 모든 특징들을 부여받고 있지만 모든 투사적법칙을 넘어서 존재하고 기능할수 있기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고유명사를 근거지로 하는 하이퍼의미성현상의 대가 –혹은 날쁜점-이다. 이 현상이 고유명사를 시적인 낱말과 매우 유사하게만들고 있음은 물론이다.146   사실 고유명사는 촉매작용을 할수있다. 우리는 그것을 채울수 있고, 확장할수 있으며 , 그것의 의소적골격이 지닌 사이들을 무한한 추가물들로 메울수 있다. 고유명사의 이와같은 의소적 확장은 다음과 같이 다른 방식으로 규정될수 있다. 각각의 이름은 우선불연속적이고 고정되지 않은 방식으로 출현하는 여러장면들을 포함하지만,이것들은 련합하여 하나의 작은 이야기로 되기만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이야기하는것은 일정수의 충만한 단위들을 환유적방식을 통해 련결시키는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148   고유명사는 흉내이고, 아니면 플라톤이 말했듯이 환영이다. (이것은 의구심이 들지만 맞다)150                         프로베르보다 훨씬 전에 작가는 문체의 혹독한 작업, 끊임없는 수정의 피곤함, 미미한 수확을 얻기위한 과도한 시간의 슬픈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표현했다… 플로베르에게는 문체는 절대적인 아픔이고, 무한한 아픔이며, 불필요한 아픔이다. 집필은 터무니없게 완만하다(‘일주일에 네페지’ ’한페지를 쓰는데 닷새’ ’두줄을 쓰는데 이틀’) 그것은 “삶과의 돌이킬수 없는 고별” 무자비한 자기 감금을 요구 한다.157   수직적축에는 대체 낱말들이(이것들은 정정들이나 낱말들이다) 기입된다. 수평적축에는 통합체들의 삭제들이나 첨가들 (이것 들은 개정들)이 기입된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을 패러디한 시 모음  꽃의 패러디                           오규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왜곡될 순간을 기다리는 기다림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내가 부른 이름대로 모습을 바꾸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내게로 와서 풀, 꽃, 시멘트, 길, 담배꽁초, 아스피린, 아달린이 아닌 금잔화, 작약, 포인세치아, 개밥풀, 인동, 황국 등등의 보통명사나 수명사가 아닌 의미의 틀을 만들었다.   우리들은 모두 명명하고 싶어 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그리고 그는 그대로 의미의 틀이 완성되면 다시 다른 모습이 될 그 순간 그리고 기다림 그것이 되었다.       주제 : 존재를 왜곡시키는 인식행위 특징 : ①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하여 유사한 형식과 구절을 반복하고 있다.           ② 사물을 인식하는 행위를 통해 존재의 본질에 대한 독특한 의식을 보이고 있다.         이 시는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이름을 붙이는 순간 존재는 왜곡된 모습을 보임을 노래하고 있다. 무의미한 존재였던 대상이 명명과 인식의 과정을 통해 의미 있는 존재로 변화하고, 이어 '나'와 '너'의 상호 인식을 통해 관계가 '우리'로 확산되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김춘수의 ‘꽃’은 명명행위를 통해 대상이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서로 그러한 관계를 맺기를 바라지만, 이 시에서 화자는 명명 행위가 곧 대상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것(존재의 본질은 인간의 부여에 의해 달라질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해서 형성되는 것이다)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는 존재의 본질은 파악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 / 장정일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 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성격 : 패러디, 해체적 어조 : 풍자적, 반어적 특징 : 김춘수의 시 '꽃'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표현과 구성에 있어서 원작의 틀을 따르고 있음. 구성 : 1연 - 접근이 허락되지 않은 존재          2연 - 접근이 허락된 존재          3연 - 타인에게 접근의 허락을 받고 싶은 화자의 소망          4연 - 편리한 사랑을 원하는 '우리'의 소망 제재 : 라디오(김춘수의 시 '꽃'), 현대 도시 문명 주제 : 현대인들의 가볍고 경박한 세태에 대한 풍자       이 시는 김춘수의 시 '꽃'을 패러디(parody)하여 재창작함으로써 원작과는 다른, 작가의 독특한 관점을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원작인 '꽃'의 의미를 뒤집어 현대 사회의 인스턴트 식(式) 사랑을 나타내고 있고,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한 다른 작품으로 오규원의 '꽃의 패러디'가 있다. 이 시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인 '꽃'의 의미를 작가 특유의 방법으로 뒤집어 현대 사회의 풍속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타인과의 지속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원하지 않는 메마른 태도로 나타나며, 또한 자신이 내킬 때는 애정을 나누다가도 마음이 바뀌면 상대가 곧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태도로 그려져 있다. 김춘수의 시 '꽃'을 패러디함으로써 작가는, '꽃'에 나타나 있는 것과 같은 진지하고 친밀한 인간 관계가 오늘날에도 감동과 갈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느냐는 반문을 던지고 있다.  
695    ...계속 댓글:  조회:4233  추천:0  2015-09-07
6.역사유로 추출해낸 이미지   시를 쓰자면, 특히 좋은 시를 쓰자면 사유문제와 언어문제를 꼭 해결하여야 한다. 사유를 어떻게 하는가에의하여 시가 어떻게 되는가가 결정된다. 사유는 시를 쓰는 기본 골격이다. 시에서 언어가 홀시할수 없는중요성이 있지만 더욱 중요한것은 사유이다. 골격이 바르지 못하면 좋은 시가 나올수 없다. 어떤 사유가시적사유인가? 공개념, 공감각을 벗어난 사유가 시적사유라고 할수 있다. 시적사유는 또 공리를 추구하는길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 공리를 추구하게 되면 시가 공구의 역할을 놀기 위하여 씌여진 시로 된다. 필자가 말하는 공리란 협소한 관념으로 눈앞의 공리을 추구하는것을 말한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가 좋다는것은 그의 사유의 기점이 인류적이라는데 큰 의의가 있다. 그러하기때문에 그의 사유는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는 자유분방한 사유이다. 우에서 남영전시인의 토템시의 이미지를 몇가지 방면으로 규납하여보았는데 실질을 따지고 보면 남영전시인의 시적사유를 해부해보았다고 할수 있다. 이번에는 남영전시인이 토템시를 쓰면서 역사유로 이미지를 어떻게 창출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저 한다. 필자가 말하는 역사유란 간단히 말하면 일상적인 사유와는 반대되는 사유를 말한다. 까치 하고 말하면 우리들은 일상적으로 까치가 울면 좋은 일이 생기오, 까치가 아침에 집앞에 와 울면 손님이 오겠소, 혹은 좋은 소식이 있겠소 하고 말한다. 그런데 남영전시인의 사유는 그렇지 않다. 그는 를 이렇게 쓰고있다.   조상이 남긴 고훈을 날마다 경건히 흞조리는가   들불이 타번질 때 날려온 칼과 창과 화살, 그리고 방울방울 흐르던 피눈물 잊으려 했건만 온역을 쫓아낼 때 들려온 저주와 욕설과 웨침, 그리고 목갈린 부르짖음 잊으려 했건만 어허 잊을수 없다 지울수 없다   까치는 왜 우는가?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우는것이 아니라  알려주노라고 있다. 시적발상이 우리가 이제까지 생각하고있던 까치에 대한 개념을 짓뭉개버리였다. 는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일이 있어 방울방울 피눈물 울음을 운다. 이 그냥 생각나서 운다. 그에게는 잊지 못할 일이 또 있다. 을 잊을래야 잊을수 없어 운다. 이미 력사가 되여버린 일을 가지고 까치는 왜 우는가? 시인은 이에 이런 대답을 한다.  할말이 없다. 까치가 우는것을 유전자라고 하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유전자니까 오늘에 울뿐만아니라 머나먼 장래에도 울것이다. 무엇을 그렇게 집요하게 우는가? 조상의 고훈을 운다. 어느때인지도 모르는 옛날에 이 세상이 들불에 타번질 때 날아오던 칼과 창과 화살을 기억시키기 위하여 울고 온역을 몰아낼 때 받은 저주와욕설과 웨침을 기억하라고 운다. 더 해석하자면 할말이 많지만 여기서 우리는 남영전시인의 시적사유가어떤 대세를 따라가거나, 일상적인 사유에서 머무르지 않는 개성적인 사유라는것을 알수 있겠다. 시인은 를 쓰면서 일상적인 사유와는 정반대되는 사유를 하고있다. 항간에서는 까마귀가 울면 나쁜 일이 생긴다고 하면서 집두리에 와서 까마귀가우는것을 제일 꺼린다. 그런데 남영전시인은 를 아주 좋은 새로 이미지화하고있다.   침침한 밤중에 숲이나 들에서 날아올라 수상한 조짐 보고 까욱까욱 짐승의 주검 보고 까욱까욱 재화를 물리치라 까욱까욱 소식을 전하느라 까욱까욱 까욱까욱, 까욱까욱 다급한 우짖음에 숨었던 위협이 가셔지면 한시름 놓인다는듯 나무초리에 되돌아가 앉는다   보는바와 같이 까마귀는 나쁜 새인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아주 좋은 일을 하는 새이다. 인간과 가축들의 안전을 위하여 이며 를 알려주는, 안전을 책임진 미더운 경찰과 같은 존재다. 전문적으로 위험한 소식만 알려주면서 위협이 가셔지면 한시름 놓고  휴식의 한때를 보내는 까마귀다. 이런 까마귀가 새롭게 탄생하게 된것은 남영전시인의역사유에 의하여 탄생한것이다. 역사유는 일종 시인만의 사유이다. 사물에 대한 시인의 개성적인 사유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시를 탄생시키게 된다. 개성적인 사유가 안받침되지 못한 시는 필연적으로 일반성을 면치 못하게 된다. 그래서 시를쓸 때 사유가 개성적이면 개성적일수록 좋다고 하겠다. 사유의 개성화를 실현하자면 일상적인 의식과 관념과 론리를 뒤엎어야 할뿐만아니라 시인자신이 물젖어있는 그런 의식과 관념과 론리를 뒤엎어야 한다.시쓰기가 바쁘다는 말은 그래서 하는 말이 되겠다.   7.의인화의 수법으로 그린이미지     시를 쓸 때 의인화의 수법으로 쓸수있다는것은 초보자도 아는 일이다. 그러나 의인화의 수법으로 새로운이미지를 창출하는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를 쓰면서 의인화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였는데 그것은 시인의 기량을 보여주는 한방면이라고 해야겠다. 남시인의 토템시에서 의인화이미지가 집중적으로 잘 표현된 시는 과 다.   아득한 수림은 흙의 손가락이요 넓은 초원은 흙의 머리칼이다 출렁이는 호수는 흙의 눈동자요 바다는 흙의 가슴팍에 박힌 거울이다 흙의 신령은 날마다 창천을 우러러 경건한 기도를 드린다 천만년 길이길이 인류의 창성을 빌어 만물의 번영을 빌어   흙의 손가락을 찍지 말자 흙의 머리카락을 헝클지 말자 흙의 눈동자를 더럽히지 말자 영원불멸할 흙의 신령은 모든 생령의 항구한 복음이여라   시는 으로 된 흙에 있는 나무, 풀, 호수, 바다를 의인화적인 이미지로 짜놓음으로써 생신성과 기이성을 기하고있다. 의인화수법으로 그려진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친절하게 다가오며독자들의 리해에도 난해한감을 적게 준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에는 의인화적인 시구도 있고 두개련을할당한 도 있지만 시 전체가 의인화로 이미지한 시도 있다 가 그런것이다   하루밤사이에 비는 손가락을 잘리웠네 하루밤사이에 비는 두다리를 끊기였네 하루밤사이에 비는 옷을 홀랑 벗기웠네 하루밤사이에 비는 머리 하나만 달랑 남았네   손가락은 자신이 적셔준 풀잎에 잘리웠고 두다리는 자신이 키워준 수풀에 끊기였고 옷은 자신이 가꾼 초원에 홀딱 벗겨졌네 비는 한바탕 울고싶었지만 눈물이 말라 천둥만 쳤다   비는 급해서 서성거린다 비는 처절하게 부른다 초원에서 수림에서 사막에서 어수선한 세계를 향하여 손가락 찾는다 두다리 찾는다 옷을 찾는다 찾아 부르는 그 부름소리 사람의 마음 잡아비튼다   는 하루밤새에 손가락, 다리를 잘리우고 웃을 벗기운다. 자기가 자래워준 나무와 풀, 초원에게 억울하게 당한다. 그래서 비는 초원에서 수림에서 사막에서 손가락과 다리 그리고 웃을 찾으려고 헤매면서부르짖는다. 그 부르짖음이 . 시인 남영전은 이런 를 보고 가슴이 아파한다. 필자는 묻고싶습니다. 를 보고 당신의 마음도 잡아비트는것처럼 아픕니까? 우리는 남영전시인의 이나 의 의인화된 이미지를 보고 이런 이미지는 새롭고도 신비하다는것을 느끼게 된다. 시의 내함도 깊지만 고로한 의인화수법으로 참신한 이미지를 추출하여낸 시인의 지혜를 느끼게 되며 그의 예술성에 탄복하게 된다. 그것은 새로움과 신비성이 있기때문이다. 한수의 시는 시마다 새로운 창조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창조가 없는 시는 시라는 명칭에 부끄러운 시이며 엄격히 따지고보면 시가 아니다. 새로운 창조란 이제까지 없던것을 시인자신만이 발굴하고 창조한것이다. 의인화의 수법으로 이미지화한 남영전시인의 이나 는 바로 이런 창조에 도착하고있다겠다.   8.형태이미지   형태이미지란 시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고찰하는것으로서 필자가 자의적으로 주장하는것이다. 왜이런 주장을 세우는가? 시는 태여나면 하나의 사물이 된다. 사물은 모양이 있고 특성이 있고 생명이 있기마련이다. 시의 모양이란 시의 생김새이고 시의 특성이란 예술성이고 시의 생명이란 시의 내함이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에는 우리들이 사고해볼만한 형태이미지가 동안뜨게 나타나고있는데 몇가지만 고찰해보려고 한다. 시 의 첫머리를 남영전시인은 이렇게 시작하고있다.   우람한 산그림자 끄을고 엉기적 엉기적 엉기적   첫줄에 를 쓰고 아래에 을 세번 반복하였다. 첫시구가 뒤에 오는보다 길며 은 우로부터 아래로 반복되여 나타나고있는데 아래로 내려올수록 오른쪽으로 떨어지고있다. 이 형태이미지에는 무거운 내함이 내포되여있다. 첫줄이 길게 을 막은것은 곰의 머리우를 막아놓은것으로써 곰의 전진을 막는 장벽을 의미한다. 장벽우에는 푸른 하늘이 있다.곰은 푸는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 을 세번 반복하면서 오른쪽으로 떨어지게 쓴것은 은장벽을 뚫을수 없어 올라가야 할 하늘과 점점 멀어지고있다는 표현으로써 의 추락을 의미한다. 은 앞으로 전진하려 하지만 장벽이 막혀서 전진하지 못하며 은 하늘에 오르려 하지만 오르지 못하고 그냥 뒤걸음질만치는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보아낼수있다. 이것은 토템의 추락을 의미하며인류가 걸어온 길이 비틀비틀하다는것을 의미하며 시인이 원하는 원융의 세계의 실현이 간고하다는것을이미지와한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비슷한 내함을 가진 형대이미지는 , , 등 여러곳에서 나타나고있다. 에서는 를 한글자씩 수직으로 세우고, 에서는 이라는 언어를한글자씩 수직으로 세우고, 에서는 이라는 소리를 수직으로 세우고있다. 앞에서를 론할 때 의 수직에 대하여 말하였으므로 더 언급하지 않고 구체적인 해석은 관심있는 독자에게 맡긴다. 시인은 을 쓸 때 마지막련을 이렇게 쓰고있다.   산 산 산   우선 우리는 산이라는 석자가 기하학적 삼각형을 이룬것을 볼수 있다. 삼각형은 안정성을 반영한다. 아무리 모진 세월의 풍파가 일어난다 하여도 웅위로운 산은 끄떡하지 않을것이며 산에 슴배인 토템의미는 변하지 않을것이라는 시인의 확신이 침투되여있다. 또한 작자가 산의 깊은 침묵, 산의 넓은 흉금, 산의 고상한 풍격이 영원할것이라는 찬양의 의미가 내포되여있다고 할수 있다 이 시가 처음에는 한어로 씌여졌다는데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한어로 산(山)자에는 내리금이세개가있다. 어찌보면 이것은 세개의 홰불이다. 산자가 세개이니 이 형태이미지에는 홰불이 아홉개가 있다. 불은 태양이다. 그러므로 아홉개의 해가 떠있다. 전설에 의하면 워낙 하늘에는 해가 열개였는데 대지가 너무 무덥고 가물어서 예가 나타나서 활을 쏘아 아홉개의 해를 떨구었다고 한다. 그 아홉개의 해가 지금도 산에서 불타고있는지도 모른다. 시에서 형태이미지는 그 내함이 풍부하여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는것만은 확실하다. 시인이 어떤 모양의 형태이미지를 설계할 때에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때문에 시에 표현된 형태이미지를 결코 가볍게볼일이 아니다. 이외에도 신선하고 아름다운 를 이미지한것과 같은 이미지들이 많지만 필자는 이것으로 남영전토템시의 이미지에 대한 사고를 마치면서 한가지 할말이 있다. 시는 비유로서 이미지를 유추하게 되는데두 사물의 어떤 상사성만으로 비유를 설정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비유의 상사성의 울타리속에서 뛰쳐나와 이질적인 사물의 비교로 이미지화하는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두 사물의 질이 다르면 다를수록 그 거리가 멀면 멀수록 창출되는 이미지는 더 훌륭한 이미지로 된다. 이런것을 시에서 강압조합이라고 한다. 강압조합은 현대시의 핵심으로서 이미지조합에서뿐만아니라 언어조합에서도 나타난다. 남영전의 토템시에서 강압조합이 많이 나타나고있는데 관심있는 독자라면 한번 천착해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된다. 총적으로 남영전의 토템시는 새로운 시의 령역을 독자적으로 개척하였고 시를 예술적으로 다룸에 있어서빼여난 성취를 획득한 시라고 하겠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는것도 아니다. 시들의 구성이 류사성이 있고 이미지화함에 있어서 단일성이 보이고 언어가 세부화되지 못한 흠이 있는것 같다. 이런 흠은 옥에 티와같은것으로서 남영전토템시가 이룩한 성과를 흐리우지는 않는다. 남영전시인은 우리 민족시단의 전위적인 훌륭한 시인이며 개혁개방후 중국시단의 전렬에 서있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우리 민족의 문화보물고에, 중화민족의 시보물고에 하나의 찬란한 진주를 선사한다. 그의토템시는 세계적이고 인류적인 시점에서 쓴것이다. 그가 조선족이기때문에 조선족한테 전하여 내려오는토템의식이 시에 나타난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쓴 토템시를 조선족이라는 울타리에 국한시키는것은 미상불 리해의 한계를 너무 좁히는것일것 같다. 남영전시인의 새로운 정진을 믿는다.              
694    남영전 / 최룡관 댓글:  조회:4277  추천:0  2015-09-07
시는 문학적으로 시적으로 고찰해 보아야 한다. 필자의 일가견으로 남영전 토템시에 대한 고찰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구조   18년동안에 남영전시인은 처럼 하게 42수의 토템시를 창출하였다. 우에서 남영전시인의 토템시의 정신ㅡ 원융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하였다. 우리는 남영전토템시의 구조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러가지 각도로 살펴볼수 있겠지만 필자는 제재들의 구조와 토템시에 일관된 정신에 대하여 천착해보려 한다. 제재적인 각도에서 남영전시인의 토템시를 보면 하늘과 대지와 그 사이에서 활동하는 사물들을 취급함으로써 천지인화의 경지를 구축하고있다겠다. 하늘의 제재로서는 해, 달, 별, 구름과 같은것이고 대지의 제재로서는 산, 물, 흙, 바다와 같은것이고 대지와 하늘을 이어주는 작용을 하는 제재들로는 두루미, 백조, 매, 바람 등등이다. 다른 방면으로 보면 전설적인 사물과 현실적인 사물들의 교차이기도 하다. 룡, 봉황, 신단수들은 순 전설적인 사물에 속하고 기타의 사물들은 현실적이면서도 토템적인 사물에 속한다고 할수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토템시의 시간과 공간의 호한성을 감안하게 된다. 시간적으로 말하면 인류력사의 수십만년을 포괄하고있으며 공간적으로 말하면 우주를 포용하고있다. 그러므로 토템시의 구축은 하나의 전례없던 방대한 작업으로서 소설로 쓰자해도 몇십권을 써야 할분량으로 되여있다는것을 알수 있다. 남영전시인이 이런 방대한 작업을 42수의 시로 완성하였다는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할수 없다.   남영전토템시의 정신은 세가지로 구축되였다고 볼수 있다. 첫째는 모성사상으로 관통되였고 둘째는 자존자강의 사상으로 관통되였고 셋째는 더불어 살자는 사상으로 관통되였다. 이 세가지는 모두가 원융이라는 핵을 받쳐주는 세개의 기둥이라고 할수 있다. 모성사상은 어머니마음이다. 토템의 뿌리는 모계사회에 있다. 토템자체가 모성이다. 모성은 인간에게서 가장 위대한 도덕이며 륜리이며 기치이며 응집력이다. 자연은 이 세상사물의 어머니이고 이 세상 모든 사물이 자연의 자식들이다. 자연은 자식들을 사랑한다. 불효한 자식이 있을뿐이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는 없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자식이 형제들과 싸우면서 어머니한테 많은 상처를 입히고있다. 남영전시인은 이러한 인간들의 불효를 타매하고 바로 잡기 위하여 토템시를 썼다. 토템시 모두가 모성을 위하여, 모성의 복구를 위하여 씌여졌다고 할수 있겠다. , , ,… 등에서 모성이 집중적으로 표현되고있다.   생명을 낳아키우고 중생을 품에 안은 바다는 세상의 무궁변천과 인간의 창상지변을 낱낱이 엿보아왔다 그 가슴 넓고도 깊어 골육상쟁이 피묻은 칼과 세인이 모르는 비밀도 깊숙이 감추고 언제나 하냥 입을 꼬옥 다물고있다   시 에서 절록한것이다. 바다는 중생을 낳아키우면서 세상의 변천과 인간의 창상지변을 본다. 바다의 흉금은 넓고도 넓어 싸움에서 떨어진 피묻은 칼도 품어주고 세인의 비밀도 말하지 않으면서 침묵속에서 묵묵히 지켜본다. 이것이 어머니 품성이 아니고 무엇이랴. 세상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식이 잘못을 저질러도 안아주고 달래주고 가르쳐주는 어머니의 정과 마음이 바다를 통하여 우리의 가슴을 치고있다.   설렁 버림을 당한대도 설사 알몸이 된다 해도 설약 만신창이 된다 해도 설혹 불구의 몸이 된다 해도 굽히지 않는 신념으로 충천하는 기백으로 우뚝 솟으리   자신의 피 자신의 살 자신의 정기 자신의 팔로 날고 기는 생명 품에 안아주고 춤추고 노래하는 령혼 어루만져준다 쓸쓸하고 차가운 세상에 그래서 활기가 넘쳐나고 그래서 화목한 분위기가 돈다   의 이미지다. 우리는 이 이미지를 통하여 어머니 품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자신이 아무리 큰 타격과 상처를 입어도 그것을 속으로 묵묵히 새기며 자신의 팔로 자신의 가슴으로 생명을 안아 보듬어주고 이 세상에 활기가 넘치게 하기 위하여, 화목이 무르녹게 하기 위하여 비바람과 눈보라속에서도 우뚝 서있는 산! 그것은 동구밖에 나가서 집 떠난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그런 모습을 떠올리고, 때거리가 없어도 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죽이라도 따뜻하게 끓여주는 그런 녀인을 떠올린다.   아득히 먼 해궁전에 조상의 흰 대문이 열려있다   조상의 흰 령광 검은 도깨비와 사악을 붙잡고 조상의 흰 온정 첩첩 설산과 원하를 녹이고 조상의 흰 자애 귀여운 자손들의 외로움을 달래준다 그리하여 까무라진 혼백들 어둠에서 깨여나고 상서로운 부락들 어둠속에 태여난다   에서 나오는 이 조상이 누구인가? 인류사회를 탄생시킨 어머니이다. 광의적으로 말하면 세상만물을 낳아준 자연이고, 협의적으로 말하면 모계씨족사회라고도 할수 있다. 모두어 말하면 원초적인 어머니이다. 어머니의 령광은 도깨비와 사악을 물리치고, 어머니의 온정은 이 세상의 차거움을 녹여주고, 원한을 삭여주고, 어머니의 자애는 자손들의 외로움을 달래준다. 어머니는 까무라진 흔백을 깨워주고,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살림을 꾸려가고 가세를 일으켜 세우면서 자신의 모든것을 헌신하고있다. 이 모성은 조상과 자손을 이어주는 로 되여 눈부신 빛을 뿌리면서 언제나 이 열려져있는 원융의 궁전으로 우리를 불러들이고있다. , , 의 너그러움과 포옹, 그리고 헌신정신이 바로 어머니 정신이며 남영전토템시의 골격을 이루는 사상의 하나라겟다. 자존과 자강은 모든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정신이다. 자존과 자강이 없는 사물은 이 세상에서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자존하고 자강하는것은 분발을 의미하며,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과 행위를 의미한다. 남영전토템시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원융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하여 분발하고있으며 자강하고있다.   신비한 불 신비한 빛 날짐승도 얼씬 못하고 길짐승도 얼씬 못하고 도깨비도 얼씬 못한다 주눅이 든 혼백도 그래서 얼어붙은 날개 퍼덕인다 그래서 악마의 공포를 털어버린다   시 의 제2련이다. 생존도, 풍년도, 정결도, 강녕도 불을 떠나서는 이룩될수 없다. 불은 이렇게 위력이 있고 이렇게 신성하다. 날짐승도 막고 길짐승도 막고 도깨비도 막는 불의 힘은 위대하다. 불은 인류의 문명을 창조해준 천지신명이며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며 어두운 밤을 태우고 태양을 불러오는 존재이다. 시 도 자존자강하기 위하여 폭력과 싸우며 따사로움을 위하여 기도를 드리는 생령이다. , , , 이 삼대산의 잔혹한 형벌속에서 압제속에서 먹지 못하고 보지 못하지만 뛰쳐나온다. 왜 뛰쳐나오는가? 시는 이렇게 말하고있다.   다시는 묻히우기 싫어 다시는 어둠이 싫어 다시는 외로움과 굶주림이 싫어 논밭에서 련못에서 나무가지에서 밤낮 울며 노래한다 밤에는 어제날의 운명을 울고 낮에는 영원한 봄과 함께 따사로움이 그리워 기도를 드린다.   자존과 자강을 위하여 하늘에 기도드리는 개구리는 잔혹한 압력에 굽어들지 않고 자신의 생존을 개척해나가는 완강한 의지의 실천자이다. 사실 개구리에게도 찬란한 력사가 있었다. 부어신화를 보면 부여왕 해부루의 뒤를 이은 왕은 금와왕이였다. 금와왕은 추방당한 물의 녀신 류화를 도와 궁에 있게 함으로써 고구려의 건국시조 주몽을 낳게 하였다. 이것을 물의 생명력(류화의 잉태)과 개구리의 보호(금와왕의 행동)에의해 탄생한 영웅(주몽)신화로 본다면, 금와왕의 행위는 산파(产婆)의 기능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였다. 물과 같이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그가 어찌 력사에 의하여 맥없이 무너지며 매몰될수 있으랴. 시에 등장하는 도 자손자강의 한 전범이라겠다.   망망수해 어디나 명명황야 어디나 날고 날 비범한 담력과 흥분으로 우주의 바람 일으킨다…   한생 변함없는 큰 포부 안고 한생 두려움 모르는 추구로 경계의 노를 천지간에 저어간다 싸우지 않으면 망하고 강하지 못하면 망하거늘 날개 돋쳐 나는것만이 이 세상 살아가는 길이다   매는 수림의 바다와 어슴푸레한 황야를 난다. 그는 평상치 않은 담력과 흥분으로 우주에다 바람을 일으킨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경계의 노를 젓는다. 사냥물을 덮칠 때 그의 눈은 예리하고 그의 속도는 번개속도다. 강하기 위하여 싸운다. 매가 싸운다는것은 나는것이다. 날아야 매는 살고 날지 않으면 매는 죽는다. 매는 난다는 자체가 자기에 대한 존중이고 자기의 의무와 희망에 충성하는 길이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것이 아니고 만물은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도와주고 서로 엉키여서 더불어 살아가기마련이다. 더불어 살아간다는것은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며 도덕이며 륜리이다. 더불어살아간다는것은 이 세상이 화목해진다는 표징이며 평화로와진다는 표징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이 더불어 화목하게 살아가는 때면 토템시대가 다시 오는 때이며 원융의 희망이 실현되는 때이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에서 더불어 화목하게 살아가는 정신이 체현되고있다. 더불어 화목하게 살아가자는 사상이 시인의 시에 체현된주요한 사상의 하나라겠다. 시 는 피타게 웨친다. 이 세상이 어두워간다고 피타게 절규한다. , 은 기에. 이런 절규를 시인은 이렇게 무드화하고있다.   피 터지는 울부짖음 방울방울 빨간 피로 설설 끓는 피눈물로 갈라터진 가슴을 녹여주고 말라죽는 목숨을 살려준다 화창한 봄을 불러오고 아롱진 색채를 입히여 세상이 목마르게 바라는 금빛동산을 일떠세운다.   피! 피를 바치는것은 최고의 헌신이며 충성이다. 피를 바친다는것은 희생을 각오한 일이며 생명의 마지막연소를 의미한다. 뻐꾸기는 그런 마음과 의지와 자세로  주려하고,  주려하고, 봄을 불러다 아름답게 장식하려고 하고, 한다. 더불어 화목하게 살기 위한 뻐꾸기정신은 아름다운 정신이며 비장한 정신이다. 뻐꾸기울음소리는 횡적으로울리는것이 아니라 종적으로 하늘에서 떨어지고있다. 하늘에서 떨어진다는것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것으로써 신성한 하늘의 숙원을 전달하는것이며, 하늘과 땅을 하나로 융합시키려는것이다. 이것이 뻐꾸기의 더불어 화목하게 살려하는 정신이다. 남영전시인의 이고 이라 부르는 에서도 더불어 화목하게 살아가자는 의지가 빛발치고있다.   돌은 가장 거룩한 거인이여라 그의 말은 불과 우뢰, 비와 바람이 엮어주고 그의 마음은 천지간의 차고 더움을 헤아려주노라 그의 손은 해와 달을 받쳐들고 그의 힘은 끝없이 뻗쳐 수없이 많고 많은 령체를 움직이노라 돌은 분신쇄골이 되여도 알알이 모래로 되여 대천세계를 끌어안노라   남영전시인은 하늘과 돌의 신비하면서도 상서로운 만남과 어울림을 격조높이 노래하고있다. 거룩한 거인돌의 말은  돌의 마음은  돌은  불, 우뢰, 바람, 비, 해, 달, 령체와 돌의 조화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서로 감싸주고 서로 받들어주고 서로 도와주면서 살아가는 그 순리가 바로 더불어 살아가는 화목이다. 그래서 돌은 산산이 부서져 알알의 모래로 되여도 대천세계를 달가이 끌어안는다. 생각할수록 그들의 마음의 어울림은 가슴을 찡하게 한다. 토템시를 극성스럽게 쓴 남영전시인의 바람이 바로 이러한것일것이고 이 세상 순박한 사람들의 마음이 바로 이런것이리라. 아무 곳에나 똥오줌을 갈기는 개, 애기의 똥도 맛갈스럽게 먹는 개다. 벼슬도, 명성도, 명예도  인 개도 서로 어울려 화목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지조 하나만은 잊지 않고있다.   과분한 요구가 없고 주인집 못산다 꺼리지 않는다 예민한 코 밝은 귀 재빠른 네다리 집을 지켜주고 집주인 바래준다 주인의 버림을 당해도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다 죽어서도 세월의 뒤꼬리에 달려 누울자리 하나면 만족이다   개는 왜 이렇게 바보질하는가?  있으면 되는 개, 애들의 똥이나 맛있게 먹으면 되는 개, 하지만 언제나 주인을 섬기는 개다. 주인이 부자든 빈자던 개는 관계하지 않는다. 주인이기만 하면  함께 더불어 살면 되는것을 개는 영광으로 행복으로 숙명으로 간주하고있기때문이다. 인류의 력사에서 개의 공헌은 컸다. 사냥군을 도와 짐승잡이에 나서서 목숨을 걸고 주인을 도와주다가 죽은 개는 얼마이며 군견이 되여 전쟁에서 희생된 개는 그얼마이랴. 생각해보면 인간중에는 개보다 못한 사람들이 많고도 많다. 어찌보면 개는 바보 같지만 실제상개는 령물이고 신령한 영웅이다. 그러기에 인간이 원융에 도착하는 날 시인은 고 했으리라. 모성으로, 자존자강으로, 더불어 사는 정신은 에 도달하려는 남영전시인의 토템시의 정신이라고 필자는 말하고싶다. 인간이 이런 정신으로 삶을 대하고 자연을 대하고 인간 서로를 대하면 마음이 편하게 평화의 향연을 누리게 되리라고 필자는 믿고있다. =================   남영전토템시의 이미지성과   남영전시인이 토템시를 쓴것은 하나의 장거이다. 중국현대사에서 토템시를 계통적으로 체계적으로 쓴 시인은 없었다. 일부 시인들이 토템에 관한 시들을 좀 쓰기는 하였으나 토템적자각이 없이 썼던것이다. 그들의 시는 선조를 노래하고 선조의 문화를 노래하는것으로 썼을뿐이였다. 한 시인이 하나의 새로운 시령역을 개척하여 쓴다는것은 그 령역에 대한 심각한 연구와 철학적사고가 안받침되여야 하는것으로서 아무나하는 일이 아니다. 황차 토템령역은 원시사회의 문화로써 아무나 접근할수 있는 령역이 아니다. 사학적연구가 따라서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다. 남영전은 바로 이러한 일을 시적으로 해내였다. 그러하기에 쎄맨이 남영전시인을 이라고 평가한것은 결코 과분한 평가가 아니며 명실에 부합되는 평가이다. 시는 하나의 새로운 령역만 개척하면 다 되는일이 아니다. 시가 시로 되여야 한다. 시가 시로 된다는것은 시적예술이 시에 무르녹아있어야 한다는 말이겠다. 이미지는 시라는 예술의 근본이며 핵심이라고 하겠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를 쓰면서 이미지창출에 모를 박고 신선하고 아름답고 충격적인 새로운 이미지를 많이 창출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와 계발을 주었다.   1.신 화 적 이 미 지   신화는 인류의 최초의 문화로서 인류의 뿌리를 증언하는 보물이다. 신화적 이미지를 창출한다는것은 인류의 원초적인 문화의 맥을 잇는 작업이라고 할수 있고, 인류의 뿌리에서 보물을 캐고, 화폭을 창출하는 그 자체가 예술이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는 곳곳에서 신화적화폭이 펼쳐지고있으며 신화적향기가 그윽하게 피여오르고있다.   산 넘어 바다 건너 저 멀리 박쥐의 날개죽지에 숨었다가 아장아장 걸어오는가 고운 얼굴 가리운 얇은 베일 너울너울 어깨를 감싸고 머리우에 팔락이는데 정겹게 방긋 웃으며 흐리마리한 마음의 요람 나무추리에서 흐느적거리네   삼라만상 무게를 잃은 이 순간 산그림자 해솜마냥 부풀고 바다물결 실타래 풀리듯 넘실거리네 돌멩이도 불룩한 가슴 헤치고 젖을 빨듯 으스름 달빛 빨아들이는데 둥글넘적 환하게 부드러운 빛살속에 상상의 푸른 날개 펼쳐지네 의 첫두련   달이 떠오르는 경상을 쓴것이다. 우리앞으로 신화같은 아름다운 화폭이 잔잔하고도 부드럽게 흘러지나가고있다. 우리는 이 시구들을 읽으면서 아늑한 환상세계로 빨려들어간다. 달이란 언어 한마디도 없이 달의이미지를 신화적으로 써놓음으로써 우리는 시를 보고있는것이 아니라 신비하고 아름다운 신화를 읽고있게 된다. 달이 뜨고있는것이 아니라  얇은 베일을 날리는 절세의 미인이 우리 앞으로 아장아장 걸어오고있다. 박쥐의 날개밑에 숨었던 아가씨가 상상의 푸른 날개를 저으며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는모습은 얼마나 황홀한가!  절세의 미인을 바라보는 향연과 미인의 향기를맡는 모든 사물들이 붕 뜬다. 그 무거운 산도  바다물결도  가볍게 설레이고 돌멩이도 가슴을 헤치고 단젖을 빠느라고 여념이 없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이미지를 남영전은 신화적인 색채로 펼쳐주고있다. 남영전신인은 에서 아늑한 황홀을 펼쳐주었다면 에서는 가을바람과 같은 시원한 전설적인 이미지를 우리앞에 그려보이고있다.   짙은 안개 헤치고 타래치는 먹장구름 꿰뚫고 아득한 창천에서 달려오는가   눈부신 번개불 번쩍이고 류황내 배인 향기를 휘몰아 쏜살같이 달려온다 칡덩쿨 뻗은 숲을 지나 가시덤불 우거진 거친 들판을 지나 한낮의 흑풍백우 몰아내고 오밤의 검은 장막 열어제치며 지동치듯 달려온다 해빛 안고 달빛 안고 발길 닿는 곳마다 흰 빛이 깨여난다   의 신화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녀성의 신화라면 의 신화는 거치르고 날파람이 있는 남성의 신화이다. , , 라고 달려오는 모습을 세층차로 나누어 표현함으로써 저 요원한 곳에서 지척으로 박근하는 천하무적 백마의 무드로 하여 긴박성과 긴장성을 가지게 되며 손에 땀을 쥐게 된다. 안개도, 타래치는 먹장구름도, 칡덩굴숲에 깔린 산도, 가시덤불 우거진 들판도 백마의 전진을 막지 못한다. 백마가 번개불을 번쩍이며 령기를 휘몰아오며 흑풍백우를 몰아치고 오밤의 검은 장막을 활활 열어제끼는데 뉘감히 앞길을 막으며 뉘 감히 하늘에 사무치는 그 기세를 당한다던가. 백마의 회오리치는 발자국마다에서 해빛이 깨여나고 달빛이 깨여나고있음에랴. 에서도 신화적인 색채가 추호도 그 기세를 눅잦히지 않는다. 남영전시인은 우뢰를 소나기속에서 묘사하는 일상적인 표현을 떠나서 신화적인 방법으로 다루고있다.   대붕과 룡 하늘을 찢고 땅을 쪼갠다   어둑컴컴한 대지 흐린 하늘에 덩지 큰 대붕은 날개를 퍼덕이며 쇠발톱 번쩍인다   당지 큰 룡은 하늘에 치솟아올라 귀청 째듯 포효한다 우뢰의 화살 우뢰의 도끼 우뢰의 돌멩이 창망한 하늘땅을 짓쪼긴다.   시인은 우뢰를 대붕과 룡이 하늘땅을 갈갈이 찢어버리는것으로 표현하고있다. 대붕과 룡은 모두 신화적인 사물이다. 를 신화적인 사물의 운동으로 표현함으로써 시의 신화적색채와 의미를 풍만하게한 력작이다. 하늘과 땅을 찢어버리는 대붕과 룡의 힘은 언어로써는 표현하기 어렵다. 시인의 표현은 너무핍진하다. 날개를 퍼덕이며 쇠발톱을 번쩍이는 대붕, 구중천에 솟아올라 귀청이 짜개지는 함성을 지르는룡, 그들의 동작과 웨침은 이고 이고 이다. 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신화적색채로 씌여진 남영전시인의 는 밥인것이아니라 술이다. 술중에서도 독하고도 향기로운 술이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를 쓰면서 이밖에도 신화적인 이미지를 창출한 시들이 많다. 그의 신화적이미지는왕왕 시의 서두를 차지하고있다. 신화적인 이미지를 배치하는것은 필자가 보기에도 안성맞춤의 자리인것같다. 이렇게 하면 독자에게 돌연적인 신선한 충격을 주게 되여 독자는 느닷없이 상상의 새로운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어가서 시적향수를 누리게 된다.   2.철 리 적 이 미 지   철학은 시의 기초이다. 시는 철학우에 놓여진 건물이다. 때론 시자체가 철학의 표상이 되기도 한다. 철학이 없는 시는 기초가 없는 시로서 항구성을 가지지 못한다. 시는 정치에 의하여 지배되는것이 아니라 철학에 의하여 지배된다. 구라파의 현대시들이 이것을 증명하였다. 남영전시인이 토템을 우상으로 이 세상의원융을 부르짖는 자체가 력사유물주의와 변증법적관점에 발을 붙인 일종 찰학이다. 그는 토템으로 세계를 해석하려 하고 토템으로 인류력사를 해석하려 하고 토템으로 시의 리상국을 주조하고있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에서 철리가 두드러지게 안받침된 시구들을 착중해서 보기로 하자. 의 제4련을 시인은 이렇게 읊조리고있다.   심령의 요람과 날개와 그리고 신전문에 걸린 달은 이지러졌다 둥글어지고 둥글어졌다 이지러지는데 둥글어짐은 이지러지기 위함이요 이지러짐은 둥글어지기 위함이라 둥글고 이지러짐은 영생에로 나아가는 산길이라네   얼핏 보기에는 달이 이지러지고 둥글어지는 현상을 쓴것 같지만 결코 그런것이 아니다. 시인은 를 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고있다. 달을 쓰는것 같지만 실제상에서는 심령의 요람과 심령의 날개를 쓰고있다. 심령의 요람이란 마음의 리상이요 심령의 날개란 마음의 요람을 향하여 가는 인간의 움직임을 표현한것이다. 달이 둥글어졌다 이지러졌다 하는것은 그 리상을 향하여가는 로정의 풍파를 암시하며 간고성을 암시하는것이다. 그러기때문에 시인은 이라고 읊조리고있다. 세상에는 여러가지 길이 있다. 오솔길, 신작로, 대통로, 들길, 산길, 이런 길들중에서 가장 걷기 어려운 길이 산길이다. 산길을 걸어간다는것은 여느 길을 걸어가기 보다 맥이 들고 숨이 차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산길은 령을 넘어가는 길로서 가파롭고 구비가 많을뿐만아니라 위험한 짐승도 있을수 있고, 정글도 있을수 있고, 가시덤불도 있을수 있다. 은 기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훌떡 가는 길이 아니다. 달의 둥글고 이지러짐이말하려는것이 바로 이런 길인것이다. 둥글어지는것과 이지러지는것은 모순되는 대립면으로서 그들은 일정한 조건하에서 전의한다. 달에 대한 시인이 이런 표현은 현실과 상상과 철리가 혼연일체를 이룬 이미지라고 우리는 명명해주어야 할것으로 알고있다. 시 에서도 남영전시인은 이미지를 직조하는데 철리를 부어넣는 배려를 돌리고있다. 의 제2련의 앞부분이 이렇게 이미지화되고있다.   틈만 있으면 파고들어 어디서나 볼수 있지마 발도 없고 날개도 없고 형색 또한 없어라 없는 발이 가장 큰 발이고 없는 날개 가장 큰 날개란다 없는 형상 가장 큰 형상이고 없는 빛이 가장 현란한 빛이란다 땅우를 흐르고 모래밭에 스며들면 하늘에 날리고 …   이 이미지는 일상적인 사유로 보면 모순투성이고 말도 맞지 않는다. 땅속에 스며든 물이 보인다고하는가하면, 발이 없기때문에 가장 큰 발이라고하는가 하면, 날개가 없는게 가장 큰 날개라고하는가 하면, 형상이 없는게 가장 자유로운 형상이라고 하는가 하면, 빛이 없어야 가장 현란한 빛이 된다고 하는가 하면, 물이 땅에 스며들면 하늘에 날린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황당무계한 소리가 시로 된다면 누구나 다 시인이되겠다고 혹자는 말할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시이며 철리가 무르녹은 이미지이다. 없는것에 있고 있는것에 없고, 차가움에 더움이 있고 더움에 차가움이 있고, 땅땅한것에 무름이 있고 무름에 땅땅한것이 있고하늘에 땅이 있고 땅에 하늘이 있고, 물음속에 대답이 있고 대답속에 물음이 있고 악함속에 착함이 있고착함속에 악함이 있고, 강함속에 연약함이 있고 연약함속에 강함이 있고, 무리속에 흩어짐이 있고 흩어짐속에 무리가 있다 … 이것이 세상이고 이것이 세월이고 이것이 절대적진리이다 이러한것을 감지해내는사람이 현인이다. 이러한것을 이미지화 하는 사람은 시인이다. 랭보도 말했다. 일반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소리를 듣고 보지 못하는것을 보아내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남영전시인의 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한것은 황당한것 같으면서도 철리가 담겨져있고 헛소리 같은데 예술이 꽉 차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철리의 힘이며 시인의 상상의 힘이다. 자아완성을 표현하는 시 도 철리가 용해된 걸작이다. 대는 땅을 비집고 나오는 강자로서 감히 꽃과아름다움을 비기고 휘우둥대는 바람과 맞서서 탄탄함을 비기면서 자신을 갈고 벼린다. 그런 대를 시인은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한자루의 칼로 한자루의 검으로 자신의 속살을 베여내고 자신의 염통을 끄집에내여 끊임없이 피를 흘리네 참을수 없는 아픔을 참으며 자신에게 모질어 자신에게 무자비하여 한마디 속이 비면 그만큼 허리가 실해지네 마음도 속이 빌수록 성결해지고 속이 빌수록 더 충실해지네   의 일생은 자학의 일생이다. 로 으로 . 피를 흘리며 언어로서는 표달할수 없는 아픔을 감내하는 독한 놈이다. 왜 참대는 독한 놈으로 되는가? 속이 비여야 키가 커지고 속이 비여야 허리가 실해지기때문이다. 속이 빌수록 마음도 성결해지고 속이 빌수록 마음이 충실해진다. 대는 속을 비우며 자라나서 휘여든 몸뚱이가 아니라 로 을 받치고  받친다. 속을 비워야 함은 그의 운명이고 숙명인지도 모른다. 불교에 마음을 비우라는 말이 있다. 마음을 비워야 심령이 깨끗해지고 마음을 비워야 심신이 건강해지고마음을 비워야 모든것을 포옹할수 있는것이다. 욕심이 꽉 들어찬 마음에는 아무것도 받아들일수 없다. 오직 빈 마음이라야 어디를 가나 어떠한 일을 하나 떳떳하게 된다. 시인은 에서 바로 이런 마음을 추구하지 않았나싶다 는 불교의 성전같은 경지에 도착하기 위하여 모질고 무자비하게 마음을 비우며 자아완성을 하고있다. 비여야 채울수 있는것은 철리이다. 이런 철리로서 남영전시인의 대는 우리들에게  전범을 보여주고있으며 후세사람들도 찾아들어갈 수 있는 대숲을 마련하였다.   3.환 상 적 이 미 지   모든 토템 자체가 환상적이다. 환상은 남영전시인을 토템의 전당으로 부르고 남영전시인은 환상의 전당에 가서 토템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희희닥거리며 롱지거리도 한다. 남영전의 가장 친한 친구는 토템이고토템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남영전이다. 시인은 18년동안 토템들과 막역지우로 보내면서 토템들의 속내를알아보았고 토템들의 소원과 희망을 알아보고 토템시를 썼다. 그 시가 우리가 보는 42수의 토템시다. 시인들은 상상으로 시를 쓴다. 환상은 상상의 최고 류형이다. 시인은 환상의 차를 타고 일초동안에 수억만리 달릴수 있으며, 환상의 나래를 저어 일초동안에 구만리 하늘을 날수 있다. 모종 의미로 말하면 환상이시인을 예술의 최고봉으로 끌어올린다고 할수 있겠다. 필자는 남영전시인이 쓴 환상적이미지에서 , , 의 이미지 일부만을 살펴보고저 한다.   창천을 쪼각쪼각 받쳐들고 대지를 갈래갈래 거머쥐고 씨비리의 돌개바람 안고 회오리쳤네 회오리쳤네 회오리쳤네 장대 같은 사닥다리 받치고 높다란 기둥을 세워 대지의 배꼽과 북국성을 이어 해와 달을 긴 가지에 휘감아 넋새에게 보금자리를 지어주었다   의 제1련이다. 시는 이렇게 쓴다. 빈소리가 한마디도 없다. 하늘과 땅을 이어놓은 신단수가 장쾌하고도 억찬 자신의 모습을 우리들의 눈앞에 그림처럼 낱낱이 보여주고있다.  신단수!  신단수! 에 기둥을 세워 에 닿은기둥,  신단수! 실존적인 언어는 한글자도 없는 환상이 끓어번지는 이미지다. 이런 이미지가 바로 시의 고차원을 이루는 이미지가 아닐가. 신단수가 하늘과 땅을 이어놓고 해와 달을 가지에 걸고 웅장하게 서있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입을 딱 벌리게 된다. 신단수가 왜 하늘과 땅 사이에 기둥을 세우는가? 왜 사닥다리로 되는가? 신단수가 하늘과 땅을 통하는 다린것이다. 시인은 신단수로써 하늘과 땅의 혼연일체, 아니 우주의 혼연일체를 시도하고있다겠다. 천지인화의 위대한 사상이 신단수를 통하여 우리앞에 흐리마리한것이 아니라 확고하고 확연한 이미지로 떠오르고있다. 시인의 흉금은 무연하다. 시인의 흉금속에서 해 달 별들이 모래알처럼 작은 사물이 되여 빙글빙글돌아가고있다. 환상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정서를 쏟아부을수 있으랴.   바람의 날개처럼 형체없이 나비의 날개처럼 화려하게 새의 날개처럼 가볍게 … 바람의 날개 없는 곳에서도 바람의 날개 퍼덕이고 나비의 날개 없는 곳에서도 나비의 날개 퍼덕이고 새의 날개 없는 곳에서도 새의 날개 퍼덕이네   시 에서 절록하여 온 환상적이미지이다. 부드럽고 우아한 언어로 우리앞에 얼마나 아름다운 이미지를 펼쳐주고있는가! 구름을 바람날개, 나비날개, 새의 날개라고 누가 말한적이있었던가. 날개들이 모여 구름이 되였다는 이 기기묘묘한 이미지야말로 환상이라도 야릇하면서도 우미한 환상이다. 시란 참 이상한 물건이다. 없는것도 있게하고 (바람의 날개) 그렇지 않은것도 그렇다고 (나비날개, 새날개) 해야 수작이 되니 말이다. 시인은 환상에 잠기기만 하면 마치 요술사마냥 언어의 광산에서 언어를 캐여다가 제련하여 아름다운 이미지를 자유롭게 만들어낸다. 그래서 시인은 사치스럽고 신비한 예술인일것이다. 남영전시인이 에서 창출해낸 환상적이미지가 이를 말해주고있다고 하지 않을수 없다. 날개들은 날개로 황페한 산천에 단비를 쏟아주며 말한다.  이 말은 구름들의 노란자위이며 날개들의 노란자위이다.  하나를 갖지 못하여 불쌍한 토끼는 도망치고 도망치다가 뒤다리가 길어지고 두귀가 커진다. 이런토끼는 도망치다가 어디로 갔는가?   도망, 도망치다가 나중엔 월궁에 뛰여들었다 외로운 넋이 월궁에 뛰여들었다 평생 숙원은 귀향 귀향하려는 소망을 돌절구에 넣어 빻고 찧는다   시 에서 나오는 옛말이다. 참 구수하고 감칠맛이 난다. 퍼그나 유모아적이고 해학적인 옛말이다.이런 옛말은 어디에서 나올가? 환상에서 나온다. 환상이 없다면 어떻게 이런 구수한 옛말을 만들어낼수있단 말인가. 너무 도망치다보니 뒤다리가 길어진 토끼, 두귀가 길어진 토끼다. 뛰고 뛰다가 어망결에 월궁으로 들어갔다는것이다. 이런것이 환상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 환상이라는 존재가 없을지도 모른다. 월궁은 하늘의 궁전이여서 좋으련만 토끼는 뿌리를 잊을수 없어 귀향하려는 평생의 소원을 돌절구에다 넣고  남영전시인도 토끼처럼 돌절구를 차지하고 절구속에다 원융의 숙원을 날마다 빻고 짓찧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환상가이고 환상은 시인을 만든다. 그러기때문에 환상으로 짜놓은 이미지가 신비하고 아름답고리상적이다.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싶다. 시를 배우려면 환상을 수렴하여야 하고 시간의 검증을 받을수 있는 시를 쓰려면 환상을 날개로 삼아 하늘을 날아보고 땅속을 날아보며 시를 쓰라고   4. 은 유 적 이 미 지   42수의 남영전시인의 토템시가 줄을 지어 검열대앞을 지나간다. 앞장에는 과 이 신단수가지를 다듬어 만든 기대를 들었다. 그뒤로 한줄에 토템물이 열씩 넉줄로 섰다. 발자국소리가 쿵쿵 울린다. 원융의 노래소리 우렁차다. 앞장에 선 룡은 하얀 기발을 들고 봉황은 파란 기발을 들었다. 하얀 기발에는 상징이라는 글발이 눈부시고 파란 기발에는 은유라는 글발이 눈시리다. 검열대우에서는 남영전시인이 자애로운 모습으로 손을 흔들며 가슴 벅찬 감동으로 대오을 사열하고있다.그들의 검열을 보는 관중은 독자들이다. 독자들의 얼굴마다에 웃음이 넘친다. 대오는 검열대를 벗어나며 물이 된다. 상징과 은유의 물결이 너울너울 춤추기도 하고 하늘에 솟구쳤다가와르르 무너지며 금보라 은보라를 날린다. 쌍무지개 일기도 하고 외무지개 일기도 하면서 매혹스러운 광경을 펼친다. 그래서 남영전시인의 토템시는 가벼운것 같으면서도 무거웁고, 소박한것 같으면서도 화려하고, 확연한것같으면서도 몽롱하고, 얕은것 같으면서도 깊이가 있다. 필자는 상징에 대하여서는 말하지 않고 은유에 대하여서만 살펴보고저 한다.   이 세상 울창한 수림을 드나드는 사슴 수해속에 흔들리는 홍산호런가 설야에 피여난 인삼꽃이런가 ㅡ 에서   하늘에서 춤추면 아롱진 노을 땅에 내리면 아름다운 산꽃 ㅡ 에서   남영전시인은 을 라고 하기도 하고 이라하기도 한다. 이런 은유로 사슴의 귀중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이는 토템의 아름다움과 귀중함의 표현이라고 하겠다. 에서는 날아다니는 나비를 이라 하고 풀이나 꽃에 앉은 나비는 이라고 은유하고있다. 에서도 시인은 아름다운 은유의 꽃을 창조하여 향기가 그윽하게 풍기게 하고있다. 에서는 백조가 불안한 운명의 길을 떠날 때 이런 은유로 표현하고있다.   바람은 길잡이 별은 길표지 번개는 길동무   명명식으로 제시된 이러한 시구들은 은유의 표현이라겠다. 눈물을 흘리며 백조는 고향을 떠나지만 바람은 길잡이가 되여 그와 함께 가고, 별은 길표지가 되여 그의 길을 안내해주고, 번개는 친구가 되여 그와 함께 간다. 자연이 그를 품어주고 자연이 그를 다독여주는 경상을 그리고있다. 더불어 함께 하는 아름다운모습이다. 상기한 은유들은 아기자기한 점이 있다면 에서의 은유는 돌발적이다. 사자가 질주하는것을 보고 하고 서두를 떼고있다. 이 은유는 우리 눈앞에다 푸른 풀이 무성한 무연한 벌판에서 태양이 달리고있는 정경을 펼쳐주고있다. 달리는 사자의 용맹과 기세 그리고 사자의용왕매진의 눈시린 빛발이 일시에 독자들 충격하고있다. 시적정서 흐름의 분위기에 따라 시인은 은유를 재치스럽게 배렬하고있다. 에서 이 하늘에 올라서 포효하는것을 이렇게 쓰고있다.   우뢰의 화살 우뢰의 도끼 우뢰의 돌멩이 창망한 하늘땅을 짓조긴다   이 은유는 쌍중의 의미를 가진다. 한가지는 우뢰를 화살, 도끼 돌멩이로 은유한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소나기가 내리는것을 화살, 도끼, 돌멩이로 상징하였다. 때문에 은유의 앞에다 쓴 와은유의 마지막에 쓴 는 시구가 은유의 표현과 아주 잘 어울린다. 물샐틈없이 치밀하게 짠 은유조합과 은유마다 행갈이를 하였기에 는격렬한 시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여 쟁쟁한 소리를 낼뿐만아니라 천하무적인 우뢰의 기세와 위력을 확실하게 하여주고있다.   5.사물의 특성을 잡은 이미지   세상의 사물은 특성이 있다. 사물의 특성은 사물존재의 내함으로서 여러가지 방면으로 표현되면서 존재의 가치를 나타낸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를 쓰면서 시종 사물의 특성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 특성을 집요하게 붙잡고 이미지화를 하고있다. 짐승의 류형에 속하는 토템을 쓸 때면 성칼지고 완강하고 거치른 성격을 이미지화하기에 력점을 두는 경향이 다분하고, 조류의 류형에 속하는 토템시를 쓸 때면 날개나 나는것을 틀어쥐고 이미지화하는데 집착하였고, 하늘의 사물을 토템시로 쓸 때에도 그 사물의 특성에 배려를 돌리였다. 아래에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신단수초리에서 회오리쳐 해상천하에 신비왕국 이어놓고 짐승이 덮쳐도 보라매 노려도 갈범이 울부짖어도 겁내지 않았다 큰물이 밀려와도 광야가 한적해도 공포가 휩쓸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언제나 머리 번쩍 쳐들고 두 날개 퍼덕이며 하늘을 날았거늘 영원히 안일을 모르는 자유의 넋 백의 혼이여   날아다니는것은 조류의 특성이다. 두루미는 조류에 속하는 사물로서 두루미도 나는 특성이 있겠다. 시인은 두루미가 하늘에 날아올라 대지를 부감하는 장면으로 이미지를 만들어가고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대지는 살풍경이다. 짐승들은 덮치며 날치고, 보라매는 먹거리를 찾느라고 예리한 눈길로 노려보고, 갈범은 울부짖는다. 홍수는 대지에 범람하고 광야는 쓸쓸하고 적막하다. 공포가 폭풍처럼 대지를 휩쓸고있다.왜 이런 살풍경이 하늘에 뜬 두루미의 눈으로 들어오는가? 그것은 현대문명과 발달이 빚어내는 악과인것이다. 그 악과를 두루미눈을 통하여 시인은 적라라하게 발가놓고있다. 두루미는 시인의 리상의 체현물이다.  나온 두루미는  신령이다. 을 건설하려는 웅심을 품은 두루미기에 살풍경속에서도 머리를 번쩍 쳐들고 훨훨날아예고있다. 살풍경과 대조를 이루는 두루미형상은 우리들에게 원융의 희망의 등불을 밝혀 어두움을가시는 정경을 보여주고있으며 신심을 북돋아주고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시인의 머리에 떠오른 의식을 어떻게 이미지화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시인은 자신의 사유를 시로써 표현할 때 개념적인 언어를 사용할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언어, 구상적인언어를 써야 하며 사물들의 운동으로써 표현하여야 한다. 그래야 명확하고 정확하고 확연하고 탄탄한 이미지를 떠올릴수 있다. 남영전신인의 시 에서는 이런 발휘가 잘되고있어 우리앞에 나타난 이미지가 얼빤한 그림인것이 아니라 한폭한폭이 아주 똑똑하게 안겨온다. 시 에 대한 이미지를 살펴보자. 바다에서도 살고 륙지에서도 사는 거북의 눈은 특별하다. 그 눈은 일반적인 눈이 아니라 바다속에서도 볼수 있고 륙지에서도 볼수 있는 특별한 눈이다. 거북의 껍질 또한특별하게 딴딴하다. 시인은 거북을 쓸 때 거북의 이 특점을 노리였다.   수정눈때문에 철갑등때문에 매발톱도 두렵지 않았다 산짐승의 발굽도 두렵지 않았다 칼날도 활촉도 꿰뚫지 못하고 화염불길도 당해내지 못했다 넓은 모래불에서, 수풀속에서 깨뜨릴수도 태울수도 없는 불사불면의 넋이여 해적무리 달려들면 등허리에서 칼날이 수풀처럼 곤두서고 아가리에선 불길을 활활 내뿜었다 해적들은 꼼짝 못하고 바다에 쳐박혔다 바다에 뒤엎였다 바다에 삼키웠다    거북이를 이미지화한 부분이다. 시인은 이 을 시화할 때 거북의 특성인 껍질에서 시를 찾아내고있다. 땅우에서 바다속에서 그 껍질이가지는 의미는 찬하무적이다. 그가 천하무적으로 될수 있는것은 껍질이 딴딴하다는 성질에서 류추해내여이미지화한데 있다. 시인은 륙지에서는 매발톱, 산짐승의 발굽, 칼날, 활촉, 화염불길을 리용하여 껍질의작용을 보여주고 바다에서는  는 이미지로 거북껍질의 위력을 현시하고있다. 모종 의미에서 말하면 시는 어떤 사물의 특성에 대한 새로운 표현의 발굴이라고 할수 있다. 시인은 에서 바로 이런 시작업을 훌륭하게 하고있다.   사자의 포효소리는 천둥치듯 팔방에 울려퍼졌고 사자의 금빛 눈부신 갈기는 번개불이 번쩍이듯 하늘을 후려쳤다 그바람에 눈사태 와르르 무너지고 둥근해 뱅뱅 돌고 별똥이 쏟아지며 어둠이 멀리로 쫓겨났다 악마는 바다끝에 쳐박히고 요귀는 십팔층지옥에 갇혔다   시 에서 짐승의 왕인 사자를 표현한 이미지다. 이 이미지는 사자는 짐승들중에서 가장 힘이 장사이고 가장 날파람이 있고 가장 무서운 짐승이라는 사자의 특성에 착안점을 두고 표현한 이미지다. 천둥 같은 사자의 포효, 번개불처럼 하늘을 후려치는 갈기, 이러한 표현들은 짐승의 대왕인 사자를 표현함에 충분하다. 시인은 이런 사자의 위력을 효시하기 위하여 무너지는 눈사태, 뱅뱅 도는 태양, 쏟아지는 별무리, 바다에 처박히는 악마, 십팔층 지옥에 갇히는 요귀 등을 동원시킨다. 정면과 반면의 동시적인 움직임을 통하여 사자의 위력에 대한 이미지를 강대하게 보여주고있다.   사자의 특성을 틀어쥐고 이미지화한 이 이미지에서 우리는 세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미지를 만들 때 시적대상과 련계시킬수 있는 사물들을 찾아 표현하는 방법이 그 하나요, 관계되지 않는 사물이라도 표현에유조할 때 빌어다 표현하는 방법이 그 둘이고, 이질적인 사물로 변형시켜 표현하는것이 그 셋이다. , , 들은 직접 혹은 간접으로 사자와 관계되는 사물이니 하나에 속하고, 와는 관계없는, 허망개입시킨 사물이니 둘에 속하고, 와 불은 성질이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사물의 변형으로서 셋에 속한다. ================================
693    한춘시평 댓글:  조회:4228  추천:0  2015-09-07
[ 2015년 09월 16일 09시 10분 ]     호남평강석우채(湖南平江石牛寨) 국가지질공원내 산봉우리 사이에 걸쳐놓은 길이 300메터, 수직높이 180메터 되는 널판자 줄다리(木板吊桥) ----------------------- 한춘시인의 3년제를 맞으며 고인의 령전에 드리는 시평   한춘시평 한춘시의 사물에 대한 리해 ㅡ의 소평               /최흔   한춘시인은 개혁개방후에 는 기발을 들고 우리 시단의 앞장에서 현대시의 혈로를 줄기차게 달려온 선두주자다. 그는 열렬한 현대시의 창작자였고 열렬한 현장평론 가였다.(아래는 까치둥지로 략함)는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내놓은 시집이다.   . 1.   한춘시의 기둥수법   애기의 첫울음처럼 요란하게 터지던 꽃망울 한로의 음절너머 바줄을 놓쳐버린 코스모스 숨차게 달려온 그 길에 눈부시게 세워놓은 기발 그아래에서 외우던 영어단어 한나절 나비 되였는데 돛배우에 기발이 되였는데 서리우에 달빛이 비끼는 밤 기러기는 남으로 날아간다.   이 시는 세한도(2)에 실린 2010년 9월 16일 작이다.시속에서 사물들이 강렬하게 태여나고 변화하고 움직이고 있다. 애기, 꽃망울, 바줄, 코스모스, 길, 기발, 영어단어, 나비, 돛배, 서리, 달빛, 밤, 기러기 등 시각적인 사물이 있는가 하면, 첫울음,  음절 등 청각적인 사물도 있다. 시는 한행이 길어서344음보로 된 11행이다.(한춘시는 대부분 이런 시행이다) 이 짧은 시에 행마다에 새로운 사물들이 태여나고있으며 태여난 사물들은 변형으로 이루어지고있다. 한춘의 시는 거이다가 이런 시기교로 씌여진 시들이다. 세상은 물질로 구성되고 물질이 없는 세상은 없다. 시속에서의 물질은 바로 이미지인것이다. 시인의 상상속에서는 이 이 되고, 놓친이되고, 이 되고, 길에는  이 세워져있고,    는 >, .  이러한 되기는 한사물이 그와 다른 성질을 가진 사물로의 이동이며 한물질이 그와 성질이 다른 물질로 되기이며, 한사물이 다른 사물로 도주한 행선지이기도 하다. 이질적인 두 사물들은 짝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현대시의 핵심적인 수법인 변형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라고 하겠다. 엘리어트는 이렇게 짝을 짓는것을 시적상관물이라고 하면서 예술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되기는 가스통 바슐라르가 이라는 저서 112쪽에서 지적한것처럼 한춘시인은 자기의 시를 이라고 하면서 (세한도1)고 하였다. 시인의 는 는 한수의 시에 속하리라 필자는 생각한다.  여기서 해야 할 말이 또 있다. 왜 이렇게 맘대로 변형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시인의 상상은 자유로운 상상이다. 자유로운 상상은 외계의 그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는 시인만의 상상인것이다. 기성론리도, 도덕도, 그어떤 진리의 한계와는 관계없이 시인은 생각하고 상상할 권한이 있는것이다. 그 상상은 한계가 없으며 한계를 가질 필요도 없는것이다. 아무리 변형시켜 보았자 지구우의 한사물이 다른 사물로 되기이며 우주속의 한사물이 다른 사물이 되기일뿐이다. 지구나 우주가 사물들이 변할수 있는 공분모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이렇게 변하는가 하는 물음은 임신한 녀자가 왜 아이를 낳는가고 묻는것처럼 소용없는 일이라겠다. 물질과 물질의 변형은 한춘의 시기법의 기둥수법이라고 할것 같다. 한춘은 이런 기법으로 자신이 개척한 현대시의 길을 총화하고있는 하고있는것 같다. 시인이 한사물을 다른 사물로 변형시키는것은 한사물의 리면에 있는 새로운 사물을 찾아서 보여주는것으로써 원초적인 사물을 들여다 보기라고 할수 있다. 인류는 원초적인것을 숭상한다. 시인도 원초적인것에 접근하려고 시를 쓰는것이다. 때묻지 않는 그 원초적인 순수를 시인이 꿈꾸고있는것은 거기에 유토피아가 있기때문일것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시들   에는 좋은 시들이 많은데 필자가 특별히 즐기는 시는 과 이다. 이 두편의 시들은 언어가 새롭고 의미가 깊어 흔상할 가치가 많은 시들이다. 그중 (아래는 3으로 략칭)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시인은 마른 우물에서 물을 긷는다 망가진 용드레 용드레소리는 들려도 시인은 천둥소리를 기다린다   주추돌에 깨여지는 비방울 두손으로 받아들고 지난겨울 찬 바람에 씻기던 잣나무의 노래소리를 또다시 꼼꼼히 검색한다.   하늘가로 비껴가는 새 그 부리에 화석 한점 물었다 2010.9.16.   우선 내용이 제목과 이질적이여서 좋다. 세한도란 추운겨울 지도라고 말할수 있는데 시인은 추운 겨울철을 말하는것이 아니라  물을 긷는것을 말하고 있다. 시는 항상 제목과 내용이 분리되거나 내용이 제목에서 일탈되는것이 좋다. 시는 어디까지나 상징이기에. 물이란 무엇인가? 물이란 시다. 물도 마르고 룡드레도 망가졌으니 물을 길을수 없는것이다. 시인은 시를 떠나면 물을 떠난 물고기 신세가 되는것이다. 달가닥거리는 용드레소리는 들려도 물은 한방울도 길어올릴수 없는 답답함과 근심걱정이 속을 다 말리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소나기 오기를 학수고대한다. 소나기 오면 우물에 물을 길어올릴수 있는것이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천둥소리는 령혼에 갑자기 솟구치는 령감이며 시인것이다. 는 시를 짓는 시인의 욕망이 좌절되는것을 표현한 언어로서 가히 언어속에 새로운 언어가 있음을 암시하는것이라겠다. 이것이 3의 내용인것 같아서 음미할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3의 2련은 가련한 시인이 시를 찾는 과정을 묘사한 단락이다. 고대하던 비는 내리지만 시인한테는 비방울도 차례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주추돌에서 깨여지는 부서진 비방울을 손에 받아들었다. 시인은 그 부서진 비방울속에서 지난 겨울에 찬바람에 씻기던 잣나무의 노래소리를 꼼꼼히 검색한다. 절창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왜냐하면 돌발적이고 기습적인 이미지를 떠올린것이다. 한사물에서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새로운 사물을 떠올리는것이 시가 아닌가. 부서진 비방울이 잣나무의 노래로 둔갑된다는것은 시인이 아니고서는 근본적으로 상상할수 없는것이다. 시는 직선적으로 씌여지는것이 아니라 직선을 떠나서 씌여지는것으로서 탈직선화라고 말할수 있다. 진짜 . (아리스토 텔레스 [시학] 127페지)라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말이 떠오르게 하는 이미지창출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련도 이채롭다. 우의 내용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새로운 이미지로 표현된다.   하늘가로 비껴가는 새 그 부리에 화석 한점 물려있다.   물과도, 주추돌에서 깨여지는 비와도, 잣나무노래와도 관계없는 하늘로 비껴가는 새, 부리에 화석 한점이 물려있는새, 와>의 출현은 불연속이며 원인과 결과와는 관계없는것이다.  새는 시인이 추구하는 상징물로서 시라고 말해도 되고 희망이라고 말해도 된다. 그런데 은 또 무엇인가? 화석이란 단단한 돌이다. 이 돌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음미의 가치가 있는 사물로서 각자나름의 판단을 허용하는 화석이라고 아니할수 없다. 화석은 의미를 직설적으로 말하는것이 아니라 의미를 감춤이며 에둘러 말하는것으로써 1500년전에 류협이 >에서 말하듯이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사물에 의탁하고있다고 하겠다. 한춘시인의 이 시는 그저 현대시라는 이름으로 말할수 있는것이 아니다. 다양한 이미지들이 기습적으로 돌발적으로 아무런 련계도 없이 집성되고 있다. 이 시의 구성은 재래의 현대시구성을 넘어서는 신선한 구성이다. 이 시는 조지p 란도가 말하는 하이퍼텍스트에 속하는 시라고 할수 있고,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리좀이며 다양체이다.  련과 련사이의 이미지들은 물론 2련의 과 도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상호련결인것이 아니라 분리이며 성질이 다른 이미지들의 집합으로 되여있다고 하겠다. 이미지들은 서로 인과관계인것이 아니라 대등한 독립성을 갖고있다고 하겠다. 물론 한춘시인은 하이퍼시에 대한 리해가 있었던 시인이였다고 할수는 없다. 하지만 에는 이런 시들이 여러수 있다.    3.언어의 특성   까치는 나무가지를 물어다 집을 만들고 한춘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서 를 만들었다. 에는 여러가지 언어표현수법이 있겠으나 필자는 아래와 같은 두가지 방면으로 살펴보고저한다.   1)    낯선 언어 만들기   낯설기란 말은 지난 세기20-30년대에 쏘련의 포르마리즘에서 나온 말이다. 낯설기란 언어자체의 의미 그대로 보지 않았던 생소한, 처음으로 보는 언어를 말하는것이다. 한춘시인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여 낯설기를 하고있다.  (3쪽), (17쪽), (20쪽),(24쪽) (28쪽)…. 앞머리만 대충 훑어보아도 이렇게 여러가지가 있다. 일상적으로 말하면 모두 말이 되는 말인것이 아니라 말이 안되는 말이다. 이런 언어들의 조합을 폭력적조합 혹은 강압적조합이라고 할수 있다. 시가 이렇게 말을 조작할수 있는것은 시어는 언어의 기능에 기대여 조합되기 때문이다. 언어의 기능이란 우리 조선어로 말할 때 자음과 모음이 자유로이 어울려 글자를 만들고 단어를 만드는 일면도 있지만 또 중요한것은 시속의 사물은 상상속의 사물이지 현실속의 사물이 아니기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어는 영상을 떠올릴뿐이지 어느한 사물이 되는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언어는 사물과 떨어져있으며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사물과 언어는 별개의 존재라고 할수 있는것이다. 이것은 언어의 실질이며 본능이다. 언어가 일상적인 언어조합의 궤도를 벗어나서 생산될 때야라만이 시적언어라고 할수 있는것이다. (들뢰즈. 가타리작 83쪽)   2)    언어의 몽롱성;   는 몽롱한 언어들이 이곳저곳에 많이도 산재하여 있다. 필자가 좋다고 말한  의 제1련을 아래에 적어본다.   지난 모든 일들을 작두날로 다 잘라버리고 모든 소란스런 말들을 만뢰구적으로 다 밀어버리고 모든  내던진 돌맹이를 디지털흡수기로 다 거둬들이고   3개의 짝이 있는데 현실과 초월이 결합된 시행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여기에다 이런 의문들을 제기할수 있다. 작두날이란 무엇을 지칭하며 작두날로 잘라버렸다는 일들은 어떤 일들인가? 만뢰구적으로 다 밀어버렸다는 소란스런 말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디지털흡수기로 다 거둬들인 돌맹이들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디지털이 돌맹이를 거둬들일수 있기나 하는가…제2련도 1년처럼 모를 말들이다.   그래도 적들은 쳐들어온다 모든 벽을 다 허물고 모든 괴물을 다 격파하고 모든 기관을 다 폭파가하고 손녀가 가지고 놀던 사기인형은 다 깨지고   여기서 말하는 적들이란 누구인가, 혹은 무엇인가, 벽, 괴물, 기관, 사기인형이란 무엇을 표현한것인가… 적들이란 잠이 들지 못하게 하는 엉킨 삼오리뭉치같은 잡념이고, 벽이요 괴물이요 기관이요 사기인형이요 하는것들은 잠을 잘 오게 하는 환경물인것 같다.  필자도 이런 언어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다는 모른다. 시는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거리는 심리를 쓰고있다. 잠은 밥과 함께 인간의 일상을 유지하는 주요한 수단이며 욕망이다.시인은 잠이라는 욕망을 달성하지 못하는 애모쁨을 쓰고있는것이다. 최저의 욕망도 실현하기 어렵게 살아가는것이 인간이 아닐가 하고 나름대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시는 리해되지 않아도 통한다는 특성이 있다. 시인의 상상을 밑바닥까지 알이는 아무도 없을것이다. 시인은 왜 맞지도 않는 이런 말, 들어보지도 못했던 이런 말을 하는가? 바로 여기에 시의 본색이 있는것이다. 시는 몽롱해야 하는것이다. 몽롱한것은 아름다움이며 예술이다. 흘러가는 내물처럼 밑바닥 모래알이 다보이는 시가 아니라 강이깊숙하여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시, 그래서 시는 음미하게 된다. 시는 의사를 전달하는 산문이 아니라 시인의 창조한 새로운 세계를 물질로 즉 이미지로 보여주려고 하는것이다. 그래서 시는 리성을 중시하는것이 아니라 감각을 중시하게 된다. 종래로 리해하기 어려운 시들이 많았다. 밀턴과 단테는 과 을 쓴다음에 자신들의 시는 100년후에야 알아볼것이라고 하였고, 1500년전의 류협은 지인은 천년에 한번 통한다고 하였으리라. 좋은 시는 독해를 요구하지만 독해되기를 거부하는것이다. 그 거부로 인해서 시는  매혹을 잃지 않게 되며 독자나름의 해석을 요청한다. 우리가 지금도 리상의 시를 각자가 나름대로 리해하는것도 이때문이다 . 시인이 시를 쓰기 시작하면 이미지가 련속적으로 그것도 아주 빠르게 번쩍번쩍 령혼속으로 온다. 시인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고려할사이가 없이 시를 써내려가게 된다. 한수의 단시를 쓰는 시간은 10분이면 족하다. 쓴 다음 두었다가 언어를 다듬어 놓으면 된다.  1996년의 노벨문학상수상자 비스가와 쉼보르스카는  (450쪽) 라고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개혁개방초기에 한춘시인은 유령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현대시를 위하여 몸을 던진 시인이였다. 는 그의 시창작에서 성과를 올린 작품집이라도 할수 있다. 시행이 344조 한격식이여서 딱딱한 감도 없지 않지만 는 우리 시단에서 현대시의 한 본보기로 되기에는 손색이 없다. 한춘시인이여!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2015.5.15.  
692    토템시에 한마디 댓글:  조회:4594  추천:0  2015-09-07
  나도 에 한마디        ----김관웅교수님의 을 읽고                                     /허동식  1 도템시 개념존재의 합리성에 대하여        남영전시인의 에 다루어지는 시적대상이 도템의 범주를 초월한듯한 자연물(현상)이 존재한다 .(례를 들면 시  )  도템이란 원시씨족 또는 원시부족들이 동물이라든가 자연물을 씨족과 부족의 혈연과 관련시키고  구체적인 동물과 자연물을 씨족 또는 부족의 표식물로 간주하고 숭배하는 미신을 일컫는다면 남영전시인의 가 분명 도템만을 다룬것이 아니므로 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남영전시인의 를 대하면서 우선 도템시가 임을 전제로 한다. 때문에 시인이 자아명명한  개념이 과학적인가 합리한가보다도 의 詩意가 어떠한가에 관심을 두고싶다. 라는 개념은 필경은 학술적인 개념이 아니고 詩적이고 개인적이고 随意적인 개념이므로. 라 해도 좋고 라 해도 좋다.  어떻게 명명한다 하여도, 또  명명하는 목적과도 전혀 련관이 없이 남영전시인의 는 종국에는 詩作으로 될뿐이다. 따라서 오늘날 에 도템이 아닌 자연물이 다루어졌기에  라는 개념이 론쟁을 만들고는 있지만,   개념은 學理와 거리를 둔 詩理상에서의 성립과 존재의 합리성을 보여준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작품을 대함에 있어서 학리적인 연구도 있어야 하지만 문학창작의 창조적本性인 文理와 藝理에 대한 수긍도 문학연구의 출발점이 아닐가는 생각을 해본다.(산천선생님의 평론에도 비슷한 견해가 있음) 魔幻주의, 표현주의, 상징주의, 인상주의, 초현실주의 등등의 문학사조 개념을 두고 볼때에도 그 명명이 과학적인 학리적인 명명이 아닌 흔적이 보인다. 그 원인은 문학예술창작의 내재본질과 관련이 되며 또 번역과정(서방어로부터 중국어로의 전환)에서의 표현습관과 표현력과도 관련이 된다고 생각된다. 남영전시인의 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적이고 학리적인 명명은 아니지만 문리적으로 藝理적으로 시리적으로는 합리성을 보이는 개념이고 또 중국어로부터 조선어로의 語境의 전환에서도 장애를 받은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2 조선족도템과 시집       조선민족의 도템을 해명하려면 시간상에서는 조선민족이 통일민족(나라통일이 아님)으로 완전형성된 시기로부터 그 형성과정을 거슬러올라야한다. 조선민족이 통일민족으로의 완전형성시대가 삼국시대라는 조선시대라는 또는 다른 설이 있기도 하겠지만 그런 설들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이 우리 조선민족도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씨족과 부족들이 부단히 융합된 산물이 아닐수가 없다. 한다면 조선족을 구성해온 여러 씨족들과 부족들의 도템들을 조선족도템의 구성부분에 속한다고도 인정할수 있다.              또 살펴보면 어느 나라도 민족도 통일형성과정에 여러가지 도템에 대한 보존과 舍弃를 과정을 지니게 되여있다. 다시 말하면 민족응집력을 만들고 민족내의 모순을 완화시키는 수단으로서 민족내 어느 강대부족의 도템을 인위적수단으로(행정 문화 등) 전민족도템으로 모셨다던가  혹은  민족내 어느 부족과도 련관이 없는 새로운 도템을 구상해서 전민족적인 도템으로 만듬은 력사진전중에 사용되는 상투수단이다. 중국의 도템史도   바로 수많은 도템들이 龍도템으로 통일되는 과정이라고 보여진다. 단군신화도 통일민족완성이라는 리념을 앞두었다는 흔적이 보인다고 나는 억측해본다.   문헌자료결핍과 도템연구부족 등 원인으로 말미암아 어느 민족과도 마찬가지로 우리도 조선족도템에 대한 진실한(고증을 거친) 결론을 내리기는 아주 어렵다.  인류에게 있어서 先史시대란 지금도 謎의 존재이고 도템이란 몽롱한 불확정적인 과거이다. 이런 조건하에서 남영전의 를 조선족도템을 다룬 시가 아니다 론함은 남영전시인이 자신의 에 다루어진 들이 조선족도템들이라고 언설함과 마찬가지로 모두가 불확실한 一言일뿐이다. 남영전시인의 로 편성된 시집 은 시적대상의 단조로움과 詩意의 편애성으로 손상을 받았다는 평의(羅侃平 평)를 지닌 시집이다. 만일 남영전시인더러 확정된 조선족도템만 시적대상으로 하라 한다면 (물론 그런 요구는 읽어보지 못했다)  불정당한 요구일것이며 시인의 창작자유와 창작활보를 제한한다는 의심을 받을 언행일지도 모른다. 남영전시인이 조선족을  대표한 시인이라 할지라도 필경은 은 시인 개인의 시집이고 그 다음에야 조선족시인의 시집임을 알아야한다. 3  민족정체성과  민족정체성에 대한 론의가 계속되고 있다.  혈연을 크게 여기는 유학의식이 에 열중하는 주관원인이라고 한다면 조선반도의 장기적인 분렬상태와 우리와 한국과의 거래급증중에 발생하는 충돌과 위기 그리고 중국조선족이 중국에서의 劣勢에로의 전환 등등이 사회객관원인으로 보여진다. 감정적으로는 조선반도인들이 반겨주든 싫어하든 우리는 조선반도와 혈연을 끊어버리는게 싫다 . 또 그들과 對等하게 지내고 싶다.  그리고 세계 어디 있는 배달의 족속과도 마찬가지이다 . 현실적으로는 우리는 중국에서 버젓하게 살고싶다. 흩어지지 말고 싸우지도 말고 인구감소도 없이 나날이 번창하게 살고싶다. 주관원인과 객관원인의 교차작용으로 하여 또  리상과 현실사이의 격차는 조선족사회더러 민족정체성에 대한 반성을 거듭 진행하게 한다. 언론도 좋고 지성인들도 좋고 민족정체성에 론의를 모음은 민족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자각성을 높이는데 훌륭한 작용을 하여 왔다. 헌데 와 민족정체성이 어떤 련관존재일가? 나는  42수의 가 민족정체성을 혼동하게 한다는 설은 성립불가능이라 생각한다. 민족정체성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로서, 우리의 인식수준하에서 불투명한 부분도 존재하지만은 누구의 생각이나 작품에 의하여 변하는 사물은 아니다. 민족정체성이란 기나긴 력사의 흐름으로 형성된 이다. 나는 세계 각지에 살고 있는 배달족속들 모두가 우리의 민족정체성에 대하여서 개인적으로 인식수준의 차이를 보일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共認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혈연적인 문화적인 력사적인 정체성).  또한 주위에 사는 다른 민족들도 우리 배달민족에 대한 정체성을 부인하려는 부인하는 사실은 없는듯하다. 우리의 민족정체성이 자아인지와 타인인지를 받는 객관존재인 사실앞에서  가 어떤 시일지라도 또 그 가 여차여차 할지라도 배달민족의 정체성에 대해서 추호의 영향을 줄수가 없음은 아주 명백한 일이다. 의 사회효력에 대한 과대억측은 나로서는 杞人忧天이라 생각된다. 남영전시인의 도템에 대한 연구와 詩作은 조선족정체성의 기나긴 형성과정에 대한  시적인 표현이고  서술이며 그것을 통하여 각 형제민족과 여러 나라의 화목과 공동번영을 기원했다는게 근본특징이다. 김관웅교수의 조선족도템에 대한 주장과 민족정체성에 대한 주장은 조선족공동도템과 민족정체성형성의 종극적인 결과에 착안점을 둔 주장이고 해석이다. 그러므로 두분의 주장은 다만 민족력사과정과 민족력사결과에, 문화진행과정과 문화진행결과에  부동한 착안점을 두었다는 구별점을 지니게 된다.  4  나의 작은 항의  나도 자아비애에 걸린 사람인것 같다. 그래서 현재 나를 포함한 중국조선족들은 여러가지 원인으로  하여 을 보인다 생각된다. 조금은 먹고 입는 흉내는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현재가 비상시기가 아닐수가 없다. 이런 비상시기에 조성일회장님 김관웅교수님 남영전시인 등 지성인들이 민족을 위한 몸부림치는 모습이 아주 돋보인다. 특별히 문학계 분들은 이 점을 잘 알리라 믿는다. 비상시기에 쟁론은 불가피적이다. 하지만 쟁론방식의 선택이 중요하다.  라든가 는 개인이 운영하는 싸이트이기는 하지만 현재는 거의 공용자원으로 사용되고 있고 , 화합이라는 낱말의 거력을 알고 있는 한 , 나는 누구든지 쟁론을 편격적이고 인격침입적이고 사인적인 면으로 돌리는데 견결한 항의를 표한다. ==========================   詩의 도템化와 도템의 詩化(역고)               罗侃平  남영전의 도템시는 좋은 문학적가치와 문학사적가치를 지니고 있다. 소수민족시단에 아름다운 시작을가첨하였고 중국시단에 하나의 시가형식을 주입하였다. 남씨의 도템시 창작은 민족령혼을 구현하는 개인적인 행위이며 또한 시적 이미지가 넘치는 독창적인 광적인 과감한 행위이다. 하기에 그의 시작들에 대한연구도 여러가지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 우리는 남씨의 도템시를 대함에 있어서 도템과 시라는 명제를 갈라놓아서는 아니된다. 도템시란 시의 도템화이고 도템의 詩化이며 두 명제의 중겹적인 융합물이다. 우선 도템시란 전통적인 철리시(혹은 玄言시)와 詠物시(혹은事物시) 와는 다르다.도템시란 개념의 창출은 시인의 개인적인 命名행위에 속하며 아직은 집체의식에 의한 귀납적인 과학적인 개념에 속하지 않는다. 때문에 도템시는 기존하는 定中구조의 개념이 아니다. 철리시와 詠物시라는 개념은 쉽게 리해할수는 있지만 그 개념에 대한 언어적인 해석은 무의미한 언어함정일수도 있다. 하지만 도템시라는 새로운 개념은 시인본인이 명명한 독특한 조건하에서 도템시라는 개념에 대한 언어적인 해석은 실존의 의미가 있다. 도템시에 있어서 도템이라는 개념이 시에 대하여 절대적인 지배를 할수는 없다. 도템시라는 개념창조는 도템이라는 개념창조와 마찬가지로 随意적인개념창조이다. 도템이란 개념의 원초적인 내용은 인류의 친속관계 또는 개인과 씨족의 표징이지 인류의보호신이 아닌것처럼.(维 斯特劳斯는 라는 저서에서 도템과 보호신에 대한 오해적인 혼동에 대하여 상세한 분석서술을 하였다.) 도템시도 시인이 命名한 개념으로서 시인의 원초적인 본의가있을것이다. 도템시라 하여도 도템의 문화이미지를 완전 내포한 시라고 말하기는 아직 어렵다. 비록 시인이 도템문화라는 전제하에 시창작을 실천한 주관적인 의도가 분명하지만 배태된 시작품은 시인의 창작목적과 완연일치를 이루었다고는 판단하기도 힘든 일이다. 도템시란 시창작으로부터 출발한 개념이며 종국적인 개념이 아니다. 때문에 시의 도템화와 도템의 詩化라는 개념을 도입하여도 어느 의미에서는 무방하다고 생각된다. 다음으로는 도템시와 史詩는 부동한 개념이다. 사시는 민족과 력사를 대변하는 본질적인 특징을 지니고있으며 시의 형식으로 력사를 서술한다. 사시의 이러한 형식과 내용의 상대분리는 사시를 연구함에 있어서 력사적인 시각에서 연구할수도 있고 詩학의 시각에서도 연구할수 있다. 사시를 연구하는 세번째 방법은 시속의 력사와 력사속의 시를 유기적인 결합시키는 방법이다. 이 세번째 방법이 아주 주요하지만은 필경은 사시를 연구하는 세가지 방법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도템시는 사시와 다르다. 도템시를 연구함에 있어서 도템만을 연구할수도 없고 시만을 연구할수도 없다. 왜냐하면 도템시는 도템에 대한 기록적인 설명문이 아니며 도템의 력사와 문화특징 등에 대하여 언술할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도템이라는 개념이 학자 朗格으로부터 시작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시대적인 함의가 부단히 가첨되고 있는 전제하에서남영전시인이 도템시에 사용한 도템개념은 원초적인 도템개념과 거리를 둔 몽롱한 개념이며 문화적인 차원에서의 개념이므로 상술한 분리연구법을 사용할수 없다. 시인은 개인적인 립장에서 도템문화의 의미에대한 추측과 추구를 하였을뿐이다. 이런 주관목적의식을 전제로 도템시에 존재하는 도템의 객곽적인 함의를 연구한다면 오독이 될수도 있다. 그러므로 도템시를 대함에 있어서 도템과 시를 분리하고 단 도템이라는 시각에서 도템의 내용과 민족정신관계를 고안한다든가 단 시의 시각에서 도템시의 예술성과를 고안한는 일은 편면적인 해석로 될수 있다. 도템시를 대함에 있어서 반드시 시와 도템을 융합시키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도템시더러 민족정신을 완전무결하게 구현하라는것은 도템시에 대한 오독이며 도템과 민족상징을 혼동하는 행위이다. 남씨는 나름대로 도템의 본질을 알고 있으며 친속형제와 보호자의 구별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도템시는 민족성의 일부분을 표현하는 시일뿐 민족의 전부적인 代言일수는 없다. 이러한시적표현은 남영전의 방식이며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론리가 아니다. 도템이란 추상적인 개념이고 시란언어의 개념이다. 도템시에 있어서 도템과 시라는 개념은 동등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모두가 일종 표현화신호이다. 때문에 도템시를 연구함에 있어서 시의 도템화와 도템의 시화라는 개념을 사용할  필요성이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물론 시의 도템화든지 도템의 시화이든지 모두가 도템시의 표현화신호에 대한두가지 劃정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개념이다. 시의 도템화와 도템의 시화라는 개념이 공구적인 사용적인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 생각한다면 도템시에대한 지속된 해석을 할수 있다. 남씨의 도템시는 기묘한 조합물이다. 한방면으로는 자연과 人群과 개인의3조합이다. 도템이란 자연군체와 인간군체가 상호련관된 개념으로서 사람과 자연의 통일이다. 시의 개념은 개인적인 서술특징를 지니고 있지만은 시인이 다루는 문화배경을 초월하지는 못한다. 때문에 도템시는 개인적인 시각에서 자연과 인군을 결합시키는 방법으로서 詩작에는 개인적인 감상과 인群의 객관실존상태와의 모순이 도출된다. 따라서 시인으로서 群적인 민족적인 도템시를 창작한다는 행위가 아주 어렵고 흥미있는 현상으로 된다. 다른 한 방면으로 볼 때 도템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장래의 기묘한 3조합이다. 도템은 인류의 요원한 과거에서 내려온 원시야성과 자유성을 지닌 사물로서 현재의 시인에 의하여 시적표현을 이루면서 현실적인 가치와 후세를 격려하는 미래지향성을 표현하는 시의 수단과 내용으로 된다. 그리하여 도템시는 원초적인 문화근성에서 출발하여 인간정신세계의 탈출과 령혼의 승화를 노린 시로 전변한다.. 또 한 방면으로부터 보면 도템시는 내용과 형식 그리고 가치의 기묘한 3조합이다. 시와 도템이 유기적인 조합을 이루는 과정에 내용과 형식 그리고 그 시적가치가 3조합을 이루었으며 매 한수의 시마다 새로운 을 구축하였다. 일개인으로서 하나의 민족 지어는 인류의 품위를 표현하려고 할 때, 그 용기와 결심이 크면 클수록 실천중에 만나는 저애력과 장애가 크게 된다. 비록 시인이 자신이 소속된 민족문화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하여도자신이 소속된 민족문화를 언술하려면 개인적인 시야의 국한성을 받게 된다. 때문에 민족문화성에 대한구현도 주관적인 색채를 다소 지니게 된다. 남영전 시인의 도템시도 표현상에서 일정한 제한을 받고 있으며 민족특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민족특성에만 머무른 제한성이 있다. 이러한 국한성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결과이며 매력적인 결과이다. 개인적인 시인적인 시각으로 민족과 인류의 과거 현재 그리고 장래를 언술한다는 작업은 상술한 국한성의 조건하에서 여러가지 변증통일의 모순체를 이룬다.         1  시적 이미지가 개인의식과 집체의식의 모순과 통일속에 구현된다. 도템이란 옛날 씨족의 상징물로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현대인의 리지적인 사유를 도입하여 그 내용과 문화성에 대하여 해석한다는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능한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도템문화에 대한 추측과 해석이 도템문화의 원초적인 내용과 거리를 두었다 하더라도 필경은 공인하는 대체적인통일적인 집체의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도템문화에 대한 인지를 집체의식이라 본다면 그 집단적인 지혜가 우리에게 도템시를 연구하는 공중화원식의 문화장소를 마련해준다. 이러한 공중화원식의 집체의식을 전제로 우리는 잠시나마 도템을 민족성격과 관련된 사물로 인정할수도 있다. 남씨의 도템시는집체의식이 공인하는 도템내용과 도템형식을 선택하였다.례를 들면 산왕인 호랑이, 속력의 상징인 백마,백수지왕인 사자, 인내의 상징인 황소, 도고의 상징인 매, 피를 쏟아 진정을 바치는 상징인 뻐꾸기 등이다.남씨가 도템형상을 리용하여 민족품위를 표현하는 중에 부득불 집체의식이 공인하는 시적意象을 선택하였지만 따라서 詩作에 로출될수 있는 詩意의 로쇠와 단조로움을 피면하기 위하여 새로운 돌파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돌파의식은 시의 언어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미소하게 나타나는 돌파가 나중에는 시어의생소화가 시적대상과 시意象의 비약을 도래한다.  등 시작에서 볼수 있지만 집체의식이 공인하는 도템형상과 의상을 벗어나 심지어는 역설적인 구축을 통하여 새로운 시적형상과 시적예술성과를 이루었다. 도템시는 민족의 대언이 아니다. 다만 남씨식의 민족정신에 대한 구현이며 민족정신의 化身일뿐이다. 이처럼 도템시는 남씨의 개인적인 창작사유와집체의식이 공인하는 기존도템문화가 이루는 변증통일의 산물이다. 2 시언어가 웅대한 서술형식과 시적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의 변증통일속에 체현된다. 비록 시의상의 새로운 구축이 있기는 하지만 남씨는 보수적인 시인으로서 민족을 다룬 시의 언어와 형식이 거창하고 드넓고 격정적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도템시에 나타나는 언어와 서술이 웅대하고거창하며 일상생활어휘와 거리를 둔 半文半白의 특징을 지닌다. 정교로움을 만드는 기법을 버린 원시적이고 광란적인 현대식 楚辭라고 칭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시는 낭송시가 지닌 부족점을 지니게 된다. 례를 들면 도템시의 흔적을 보이는 곽말약의 도 좋은 시작이지만 詩적 審美성이 허약함을 남씨도 잘 알고 있는줄로 추측된다. 때문에 남씨는 전통적인 시언어와 형식을 많이 더나 새로운 언어풍격을 도입하여 시적 심미성 특징이 뚜렷한 구축을 하게 된다. 전통적인 심미습관으로 볼 때에는 도템시가 시적언어가 평범하고 새로운 기교가 없으며 시적여운이 결여하다는 평판을 받을수도 있겠지만 필경은 새로운 시적구축을 한 시작들이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창작과정에서 웅대한 시적서술이가져오는 시적이미지의 결여성을 극복하여야 한다.
691    토템시 - 민족문화브랜드 댓글:  조회:5476  추천:0  2015-09-07
남영전 시 세미나]《시인》《친구》《형님》 [길림신문] 위챗(微信)에 공유 ○신봉철(길림공상학원 당위서기,연구원) 오늘 《인간과 자연의 대화》―남영전 시 세미나에 참가하게 된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세미나가 원만하고 성공적으로 개최되기를 충심으로 축원합니다. 남영전선생을 알게 된것은 제가 그의 시를 배독하면서부터입니다.지난세기 80년대 중기,당시 연변에서 사업하던 나는 업여애호로 각종 문예작품을 섭렵하기를 즐겼는데 그중에서도 남영전의 작품을 애독하면서 그의 시와 그를 주목하게 되였습니다. 1995년,제가 성으로 전근해 온후 친구의 소개로 남영전선생을 만나게 되였고 후에 그의 초청에 의해 선후로 《길림신문》발전연구회 회장과 《장백산》발전연구회 회장을 맡게 되였습니다.그와의 교제차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의 능력수준과 인품에 대해 더욱 전면적이고 계통적으로 료해할수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그의 친구와 형제로서 3가지를 얘기하고저 합니다. 첫째, 남영전선생은 탁월한 성과를 이룬 시인입니다. 그는 지난세기 70년대초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여러 부의 시집과 번역저서들을 출판했는바 여러 차례나 전국소수민족문학 창작상과 연구상을 받았고 2010년에는 중국당대10대걸출민족시인에 입선됐으며 중국당대걸출민족시인시가상을 수여받았습니다.그외에도 그는 국제시인대상을 수여받았고 그의 이름은 미국과 영국의 《국제명인사전》 등 국내외 40여부의 사전에 기입되였습니다. 남영전선생은 시인으로서 개성이 있는 시가창작을 탐색해왔습니다.지난세기 80년대 중기부터 그는 시가를 캐리어로 삼고 토템을 제재로 하여 개인감정과 민족감정을 융합시켜 원시선조의 토템사유와 현대인의 심미문화사유를 융합시켜 자신의 자연과 인성과 세계본질에 대한 사고를 시에 융합시켜 토템시의 선례를 개척했습니다.그는 진정으로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융합시킨 시인이고 현실주의서법을 갖춘 시인이며 소수민족시인중에서 한어습작으로 돌출한 성과를 이룬 시인입니다. 남영전선생은 시인으로서 매력적인 독특한 현상을 갖추었습니다.그의 토템시가 발표된후 국내시단의 주목을 받았는바 그의 토템시를 둘러싸고 여러번의 세미나를 조직했고 연구론문집,토템시흔상분석,전문저서출판이 줄을 이었습니다.《남영전토템시연구》는 이미 모 대학교의 전교 공선과목으로 되여 정식으로 수업하고있으며 열렬한 환영을 받고있습니다.그의 시들은 국외의 시간행물에도 여러건 게재되여 국제시단의 주목을 받고있습니다.보시다싶이 남영전선생의 토템시 및 시학리론은 이미 일종의 문화를 형성하여 국내외 해당 전문가,학자 및 대학교의 주목을 받고 연구를 불러일으키고있습니다. 남영전선생은 시인으로서 창의가 짙은 문화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그는 우리 나라 당대 시가창작을 풍부히 하기 위해 토템시라는 일종의 새로운 시가문본을 건립하였을뿐만아니라 당대인이 인간과 자연,인간과 세계,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인식하며 공동으로 인생생존위기를 극복하는데 중요한 문화적가치를 창조하였습니다. 그의 토템시는 우리 성에 하나뿐인 독특한 하나의 부호이고 하나의 상징이며 선명한 하이라이트로서 우리는 충분한 인식과 고도로 되는 중시를 돌려야 합니다. 둘째, 남영전선생은 믿음직한 친구입니다.그의 신변에는 수많은 친구가 있습니다. 어떤 친구는 한평생을 두고 사귀여도 모자란다는 느낌이 드는데 남영전선생이 바로 그런 친구입니다. 남영전선생은 친구로서 흉금이 넓습니다.해양은 륙지보다 넓고 하늘은 해양보다 넓으며 사람의 마음은 하늘보다 더 넓고 큽니다.남영전선생은 넓은 흉금을 가졌기에 락관적이고 진취적인 인생태도를 형성할수 있었고 시야가 넓고 사로가 넓은 창작특색을 형성할수 있었으며 부단히 탐색발견하고 부단히 사고전진할수 있었습니다.그는 《민족은 문화의 개념이지 혈통의 개념이 아니다.민족은 문화의 구분이지 혈통의 구분이 아니다》는 론술을 제기했는데 이는 민족개념에 대한 심각한 해석이며 민족개념에 대한 표달을 새로운 경지에로 이끌었는바 매우 식견이 있고 가치가 있는것입니다. 남영전선생은 친구로서 매우 풍도가 있습니다.그와 다년간의 교제중에서 리지적이고 침착하며 사업과 생활속의 크고작은 일들을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그를 보면서 심각한 인상을 받았습니다.《길림신문》발전연구회 회장과 《장백산》발전연구회 회장으로서 나는 그와 함께 일련의 문학과 사회공익 활동을 조직하여 신문사와 잡지사를 위해 선후로 100여만원의 자금곤난문제를 해결해주어 경영난관을 넘기게 했습니다. 남영전선생은 친구로서 은혜에 감사히 생각하고 포용할줄 아는 사람입니다.은혜에 감사히 생각하는것은 큰 학문이고 포용은 일종의 큰 지혜입니다.그는 큰 학문을 장악하였고 큰 지혜를 갖춘 사람입니다.그는 친구로서 할수 있는 일들을 다 해냈습니다. 셋째, 남영전선생은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형님입니다. 나이로 보면 그는 저보다 8살 년상으로서 나의 형님이고 인생경력으로 봐도 그는 나의 형님입니다. 남영전선생은 형님으로서 진정한 재능과 견실한 학식을 구비하였습니다.그의 토템시 창작과 연구에서의 지명도와 영향력은 조작해낸것이 아니라 20여년간 창작에 몰두하고 연구해낸 진짜 솜씨,진짜 수준,진짜 실력이며 그의 시작품들은 국내외 전문가,학자의 주목과 연구토론을 불러일으켰는바 이는 그의 20여년간의 창작과 연구에 대한 제일 좋은 보답입니다.《글의 풍격은 그 사람과 같다》는 말도 있듯이 남영전선생과 오래 사귈수록 그의 인격매력과 풍부한 학식을 감수할수 있습니다. 남영전선생은 형님으로서 겸허하고 사람을 정중히 대합니다.미국 세계문화예술원의 영예문학박사이고 국무원의 특수수당금대우를 받고있으며 길림성의 고급전문가로서 일찍 길림신문사와 장백산잡지사의 사장 겸 총편집을 담임한적 있는 그는 명망높고 지체가 높다고 할수 있습니다.하지만 종래로 떠벌리지 않으며 뽐내지 않고 본색으로 사람을 대하며 시작품으로 이름을 날려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있습니다. 남영전선생은 형님으로서 언제나 진솔하고 성심성의를 다합니다.인지상식은 귀재상지요.인지상지는 귀재지심((人之相识,贵在相知。人之相识,贵在知心。)이라고 했습니다.영전형님과 나는 절친한 지기라고 할수 있습니다.장기간의 교제에서 우정에 대한 리해와 우의에 대해 소중히 여기는 영전형님의 인품을 알고있는 나로서는 영전형님과의 우정과 우의를 더욱 돈독히 하면서 오래동안 유지해나가고싶습니다. 시인이고 친구이며 형님인 남영전선생이 토템시 창작과 연구에서 더욱 큰 성과를 따내고 문단의 《상록수》로 거듭나길 기원합니다.   남영전시인이 장춘공업대학에서 자신의 토템시에 대해 소개하고있다 우리 나라 저명한 조선족시인 남영전의 토템시가 대학교정에서 화제로 되여 대학생들의 인기를 끌고있다. 제19번째 《세계독서의 날(4월 23일)》을 맞으면서《명작감상, 명인과의 대화-장춘공업대학남영전작품독서회》가 4월 20일에 길림성전민열독협회, 길림성작가협회의 주최로 장춘공업대학 강당에서 개최되였다. 길림성정협 전임부주석이며 길림성전민열독협회 조가치(趙家治)회장, 길림성작가협회, 장춘공업대학의 해당 지도자들과 대학생 도합 300여명이 독서회에 참가했다. 남영전시인과의 교류는 대학생들의 비전,인생관 등 여러 방면에 큰 계발을 주었다 독서회에서 남영전시인은 토템문화에 대한 감오(感悟)와 토템시의 시학리념, 토템시의 추구에 대해 자신의 문학관을 이야기했다.《 선조들이 자신에 대한 이런 물음은 인간과 동물의 근본구별이기도 하다》며《선조들의 이런 물음이 있었기에 인류사회에 토템숭배가 생겼고 토템숭배가 있기에 노래, 춤, 그림이 나타났고 사람들은 성씨가 있게 되였으며 인류는 문화가 있게 되였다.》 《토템관념의 핵심관념은 천인합일(天人合一), 이 사상은 선조의 세계관이였고 그들의 행위준칙이였다. 중국은 선조들의 이러한 전통문화가 대를 이었기에 조대(朝代)가 어떻게 바뀌여도 세계 고대 4대 문명국중 유독 중국만이 지금까지 세계의 동방에 우뚝 서있다. 이것이 바로 전통문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독서회에서 조가치회장이《남영전토템시의 문화가치》, 길림성당위 선전부 문예처 처장 주강(周剛)이《남영전토템시, 뿌리찾기와 비전에 대한 사고》, 길림성작가협회 부주석 장순부(張順富)가《남영전과 그의 토템시》란 제목으로 론문을 발표하여 대학생들이 남영전토템시를 리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학자와 전문가들은《남영전시인의 토템시는 원시토템과 현대의식을 창조적으로 결합했고 그속에 자신의 신선한 경험과 깨달음을 부여하여 새로운 시창작으로 문화시야를 넓혔다》, 《그의 토템시집 에서 시인은 자신의 탐색의 길을 대만의 원주민 그리고 북아메리카 인디안인의 토템문화까지 확장하면서 시가로 광활한 인류생존의 문화공간을 만들어갔다》고 평했다. 현장에서 많은 대학생들이 앞다투어 남영전토템시를 읽은 감수, 깨달음 등과 함께 그동안 궁금했던 물음을 제기하며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자신이 즐기는 남영전토템시를 랑송하면서 문학적감성을 한껏 북돋았다. 대학생들은 남영전시인의 토템시를 통해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관계의 깨달음으로 우리들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것이라고》말했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는 일찍 국내 기타 대학교에서도 주목받았었다 장춘공업대학에 앞서 남영전시인의 토템시는 벌써 국내 대학생, 연구생들의 흥취와 주목을 받았다. 2003년이래 중남민족대학, 수도사범대학, 장춘사범대학 등 8개 고등학교에서 선후로 《남연전토템시세미나》를 개최했고 2009년 절강호주사범학원에서《남영전토템시연구》공동학과를 개설했으며 2011년에는 남영전토템시내용이 대학입시모의작문시험제목으로도 선정되였다. 또한 남영전토템시연구는 국내 부분적 대학의 석사생, 박사생들의 졸업론문 제목으로도 선정, 지금까지 300여편의 토템시 관련 론문이 나왔다. 남영전시인은 1971년 문단에 데뷔한후《원융》등 16여부의 시집을 출판했고 3차례 국가급문학상인《준마상》등 각종 문학상을 50여차 수상했다. 1986년부터 그는 계렬토템시창작으로 《토템시 명명(命名)자, 실천자》,중국문학의 새로운 쟝르를 개척했다는 평판과 함께 목전 국내외문학계에서 큰 관심과 주목을 받고있다. 남영전시인이 독서회에 참석한 해당 지도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 길림시조선족들이 남영전시인을 환영하고있다/신승우  남영전토템시를 둘러싸고 펼쳐진 신선한 토템문화제가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조선족사회문화발전의 화제로 되고있다. 9일, 길림시조선족군중예술관에서 남영전토템시를 둘러싸고 민족복장 전시, 시랑송, 노래, 무용, 학술세미나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이날 토템문화제 오전행사는 장춘대표팀 한복전시로 막을 펼쳤다. 이어 남영전토템시《희망과 꿈》 등 시를 시랑송으로 무대에 올려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남영전토템시《백마》는 박력감있는 노래로 변신해 관람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으며 남영전토템시 《달》,《학》은 우아한 무용으로 관람자들한테 다가가 보는이들의 눈, 귀, 마음을 잡았다. 또한 남영전토템시는 서예가, 화가 등의 붓끝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면서 문화제에 향연을 더했고 토템시에 대한 참석자들의 리해를 돕기도 했다. 《도라지》잡지사 리상학주필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신봉철회장이 개회사를, 《장백산》잡지사 리여천사장이 행사계기 및 인사말을, 중앙민족대학 오상순교수, 길림시문화국 왕영길부국장, 연변작가협회 우광훈주임이 축사를 했다. 신봉철회장은《남영전토템시는 민족문화브랜드이고 민족문학정품,민족단결의 좋은 처방》이라고 높이 평가하며 그의 토템시는《심오한 력사성, 선명한 민족성, 깊은 포용성》등 특성을 갖고있다고 소개했다. 토템문화제 남영전토템시세미나 현장/신승우  오후 오상순교수의 사회하에 진행된 남영전토템시세미나에서 연변대학 김관웅교수가 《남영전토템시 을 통해 본 조선민족과 만-퉁구스 제 민족의 곰토템숭배의 련관성》, 길림대학 윤윤진교수가《생태주의시학으로 분석한 남영전시가》, 북경제2외국어대학 김영옥교수가 《남영전시연구-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중심으로》, 문학평론가 김룡운이《-재확인과 재증명 그리고 시로 쓰는 론문》등을 제목으로 론문을 발표했다. 론문발표에 이어 자유토론에서 세미나 참가자들은 중국 주류문단에서의 남영전토템시 위치와 역할, 남영전시인의 인격매력, 조선족문화사회발전에 대한 그의 기여 등을 두고 각자 소감을 밝혔다. 토템문화제에 참가한 북경, 연변, 길림시 등 몇몇 관람자들은《문학과 예술을 결합시킨 아이디어가 참 좋은 행사이다》,《남영전토템시 매력에 푹 빠졌다》,《민족문화를 지키고 조선족들을 한데 묶는 문화잔치이다》라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남영전시인은《토템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한층 높아졌음을 이번 행사에서 느낄수 있었다.》며 큰 감동과 고무를 받게 되였다고 했다. 길림시조선족군중예술관 전경업관장은 이번 행사를 마감하며《이번 행사는 문학과 군중문화예술의 여러 령역을 접목시킨 시도이다.》며《앞으로도 문학인, 예술인들이 외롭지 않고 조화로운 어울림속에서 우리 문화가 한층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주최로 펼쳐진 이번 토템문화제는《도라지》잡지사,《장백산》잡지사에서 맡아했고 해당 부문 지도자, 대학교 교수, 문학인, 길림시, 장춘시 조선족 사회각계 인사 및《민족화보》, 《연변위성TV》, 《길림신문》 등 12개 북경, 동북3성 조선족 신문사, 잡지사 총 300여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루었다.
690    감자 캐는 즐거운 농부 - 남영전시인 댓글:  조회:4187  추천:0  2015-09-07
남영전의 토템시가 현대인류에게 주는 계시                                                   윤한윤 ...다년간 조선족 시인 남영전의 토템시와 토템문화에 관하여 깊이 연구하고있는 중국작가협회 창작련락부 부주임 윤한윤선생과의 인터뷰---   기자: 이번 “성세민족정 작품공모”에서 유일한 시가형식으로 우수상을 수상한 남영전의 토템시 “중화형제정”에 대해 평가해주세요. 윤한윤: 남영전의 시는 문화의 시각에서 인류관과 민족관을 다시금 해석했는데 작자는 민족은 문화의 개념이지 혈통의 개념이 아니고 민족은 문화의 구별이지 혈통의 구별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우리 모두가 서로 떠날수 없는 중화형제임을 설명했다. 또한 이 시는 “오늘”이라는 개념에 착안한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야와 사색을 원고시대로 뻗쳐 사람들의 그 시대에 대한 단체기억(集体记忆)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어떠한 민족에 속하든 어떠한 나라에 속하든 근본적으로 모두 ‘한가정”이라고 했다. 이는 국내 각 민족이 성심성의로 단결하고 세계 각 민족지간에 서로 단결하며 손을 맞잡고 인류의 생존위기에 대처함에 있어서 중요한 문화적가치와 현실적의의를 가지고있다. 기자: 남영전시인은 1986년부터 원시토템문화를 고심히 연구해오면서 토템시창작에 전념하여 52수의 토템시를 창출시켰고 국내외의 광범한 각광을 받고있다. 남영전의 토템시는 이미 중국시단에서 독특한 “남영전현상”을 형성했다고 볼수 있는데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윤한윤: 토템은 인류가 원시사회에 처해있을 당시의 본 씨족과 혈연관계를 가지고있는 동물 혹은 자연물로서 사람들은 토템을 본 씨족의 표지로 했다. 인류사회의 진화발전에 따라 현대사회에 들어선후 토템은 점차적으로 신비한 색채를 가셨지만 오늘날 사람들에게 있어서 토템은 의연히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새겨진 인장이라고 할수 있다. 토템은 부동한 민족의 마음속에서 원고씨족의 독특한 문화유전자를 지속하고있으며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민족, 력사, 문화, 종교의 한개 상징으로 되고있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에 대한 다년간의 전념과 창작은 절대로 기발한 생각과 근거없는 상상에서 온것이 아닌바 토템에 대한 심각한 인식과 해독이라고 볼수 있다. 알다싶이 남영전시인은 십여년간 52수의 토템시를 창작해냈다. 우리가 그의 토템시를 자세히 읽어본다면 그가 토템시에서 찾고있는 핵심은 무엇이고 왜 토템을 자신의 시의 형상으로 선택했는지를 알수 있다. 그것은 바로 현대인의 생존환경에 대한 시인 자신의 초조한 마음과 련민의 정, 기대의 심경이라고 볼수 있다. 기자: 토템문화는 현대인류에 어떤 계시 어떤 영향을 준다고 보는가 윤한윤: 현대사회에 들어선후 과학기술의 신속한 발전으로 하여 현대문명은 근본상에서 인류의 생존환경을 개변시켰고 인류의 끊임없는 탐욕과 횡령은 억만년이 흘러야 형성될수 있는 자연환경과 각종 자원을 소비하고있다. 시인 남영전은 인류토템의 원시적화면인 달, 흙, 물, 불, 룡, 학, 곰, 물고기, 독수리 등을 토템시에 부각시켜 인류원고의 발자취와 안목으로 인류가 생존해온 청순했던 세계를 돌이켜보았고 토템시에서 묘사한 토템세계에서는 인류를 위해 심령을 깨울수 있는 일종의 가능성과 머나먼 조화사회로 돌아갈수 있는 동경을 제공해줌과 동시에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속으로부터 종종의 유감과 “오늘날 우리의 생활은 무엇을 잃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이런 의문은 우리가 현대사회에 들어선후 시종 인류자신의 생존발전을 괴롭히는 “모제(母题)”이다. 시인 남영전은 철학적사상과 우화식 시구로 우리들에게 원고토템의 정경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오늘날 어리석은 사람들을 일깨울수 있는 웨침임이 틀림없다. 그의 토템시에서 우리는 만물생령이 상호 의존하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수 있을뿐만아니라 또한 토템 본신의 령혼적인 원 모습을 볼수가 있는바 오래전 인류생명의 “수호신”이였던 토템으로 인류가 생명에 대한 돌이킴과 사색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 남영전 략력 남영전 시인 남영전, 조선족, 1948년 출생. 미국 세계문화예술학원 영예문학박사, 중국작가협회 소수민족문학위원회 위원, 중국당대소수민족문학연구회 부회장, 세계시인대회 종신회원, 영국 국제전기협회 종신회원, 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연구원, 길림대학 문학원, 동북사범대학 상학원, 연변대학 사범학원 겸직교수, 중국조선족발전위원회 회장. 1971년부터 시, 소설, 수필, 기행문, 실화문학, 평론, 민간문학, 번역 등 작품 발표. 시집 《상사집》,《푸른 꿈》,《산혼》,《신단수》,《뻐꾹새》,《원융》,《꽃이 없는 이 봄날에》 등 15부, 수필집 《잊지 못할 사람들》,《존경스런 사람들》 등 3부, 번역으로 《당송전기전》,《봉신방》,《파금단편소설》 등 3부. 전국 소수민족문학창작상 3차, 전국 당대소수민족문학연구상 4차, 중국작가협회 《민족문학》상 3차, 길림성소수민족문학상 3차, 길림성정부 최고문예상 장백산문예상 2차 등 도합 44차의 문학상 수상. 국무원 특수수당금 향수. 1986년이래 창작한 계렬토템시는 날이 갈수록 국내외 문학예술계와 학술계의 관심을 받아 국내외에서 이미 100여편 론문이 지상에 발표되였음. 국외에서 한국 《세계인교향시》 계관시인작품상 등 4차 문학상과 영국 켐브리지국제명인전기센터, 미국 세계명인전기센터 4매 메달 수상. 영국, 미국의 《세계명시인백과사전》, 《국제명인록》, 《국제명인 500명사전》, 《제일 500인사전》 등 40여부 사전에 등재.     / 인민넷 김홍화기자 ======================================================= 감자 캐는 즐거운 농부 근간에 남영전선생을 만나본이들은 대개 이렇게들 인사말을 한다고 한다. 《얼굴이 참 좋아보입니다.》 버릇처럼 활짝 웃음으로 인사를 받는 남영전선생의 얼굴은 편안하게 피여있고 어린애처럼 해맑다. 《이제는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되여 내가 하고싶은 시간에 하고싶은 일을 하는 이 자유가 이렇게 좋은지 진맛을 알게 된거요.》 잔뜩 즐거운 표정이다. 재직시에는 시간에 쫓기고 얽매이고 문득문득 창작사유의 절주가 깨지고… 지금은 책을 아무때건 아무때까지나 읽고 쓰고싶을 때 쓸수 있는 이 자유가 너무너무 좋다고 남영전선생은 말한다. 남영전선생은 신이 난 어린애처럼 단일문으로 줄줄 말타래를 푼다. 퇴직후 3년간에 토템시를 50여수나 썼다. 재직시인 1986년부터 2009년까지 23년간에 쓴 토템시가 도합 52수였다고 한다. 그는 《지금은 너무 쓸것이 많아 매일 책을 보고 사색을 한다. 인류학, 민족학, 민속학, 생태학… 토템문화와 관련된 학문은 깊이 팔수록 모를것이 더 많고 모를수록 더 보고… 하지만 이렇게 하나를 깨우치면 시 한수가 나온다.》라고 말한다. 감자를 캐는 농부처럼 캘수록 주렁주렁 달려나오는것이다. 지금의 그의 일상은 매일 바쁘고 충실하고 재미있다. 《내 시간,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한다는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물음 하나》가 준 사명 인생의 목표를 물었더니 남영전선생의 어조는 확고했다. 《나한테는 사명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에 대답하는것이다! 세마디로 되여있지만 결국 하나라 할수 있다.》 바로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我们从哪里来)? 우리는 누구인가(我们是谁)?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我们向哪里去)?》이다. 그는 《나는 어쩌면 이 물음에 대답을 주고저 이 세상에 왔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동안 내가 걸어온 지름길이나 풍파, 고난 이 모두가 나더러 이 물음의 답을 찾게 하는 과정이 아닐가? 나는 이 물음에 대답하는 시를 내놓아야 한다!》 남영전선생은 금방 인쇄공장에서 가져온 길림출판사 출판의 시집 양본을 꺼내보였다. 토템도형을 배경으로 시집의 앞표지에는 《남영전,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南永前 我们从哪里来)》라고 씌여있다. 퇴직후에 새로 쓴 토템시중에서 43수를 골라 이미 발표되였던 52수의 토템시와 함께 총 95수의 시를 이 책에 수록한것이다. 이 시집을 시작으로 《물음》에 대답하는 창작이 본격 가동되였음을 알려준다. 《제1집이 나왔으니 내 인생의 3분의 1의 사명을 완성한셈이다.》 이제 올해부터 3년은 《우리가 누구인가》에 답을 주게 된다. 따라서 제2집은 《우리는 누구인가(我们是谁)》가 시집 제목이다. 올해 1월 1일부터 제2집에 대한 창작을 시작했는데 벌써 시 몇수의 창작을 마쳤다. 그다음 3년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我们向哪里去?)》에 대답하는것이다. 《그때면 나는 70이 넘는다. 다 쓰고난후에도 정력이 되는 때까지 그 시들을 조명하고 다시 승화하고 만족될 때가지 소처럼 새김질할것이다. 이 사명을 완성하면 죽는다 해도 내 할 일을 하고 간다는것으로 만족이다. 시인으로서 나의 몫을 하고 가는것이다.》 중국문단에서 남영전의 토템시는 시인, 시평가(诗评家), 전문가, 학자들의 광범한 주목과 높은 평가를 받고있다. 할머니와 장닭이 말하려고 한것은 구경… 남영전의 파란만장 인생과 심오한 토템시의 자초지종을 들어보노라니 문득 그의 인생과 시창작에서 가장 깊은 영향을 준 인물이 다름아닌 그의 할머니라는 생각이 든다. 전쟁은 한 조선족가정인 남씨가문을 말 그대로 멸족하다싶이한다. 광복때 투항하던 일본군이 세균쥐를 풀어놓아 동네에 생긴 무서운 온역때문에 남영전의 할아버지와 두 고모가 3일 안으로다 사망한다. 남영전의 아버지와 삼촌은 해방전쟁에 참가했다가 두장의 렬사증으로 돌아오면서 남씨 두 형제가 모두 희생된다. 참으로 남영전의 초년운은 불운의 련속이였다. 아버지가 참군해 전사하면서 남영전은 엄마배속에서 다섯달이 된 유복자로 되였다. 련속되는 타격에 나젊은 어머니까지 한 많은 세상을 떠나면서 남씨가문 외독자인 어린 남영전은 이 세상에서 할머니와 달랑 둘만 남게 된다. 남영전은 특별한 경력을 되새긴다. 가족을 아래우로 잃은 할머니에게서 홀로 남은 손자 남영전은 가문의 유일한 뿌리였고 실날같은 희망이였고 전부였으리라. 그런데 무심한 하늘은 유일한 남씨가문의 그 어린 싹도 뽑으려 했다. 세살쯤 되던 해 남영전은 갑자기 눈을 감은채 물 한모금 못 넘기고 《죽어》갔다. 갖은 방법끝에 할머니는 마지막 희망으로 멀리에 있는 유명한 《도사》라는 사람을 찾아가 살생부를 받아왔다. 마을 길어구에 있는 산신당에 제사상을 차리고 다리를 묶은 건장한 장닭 한마리를 올려놓고는 시켜준대로 주문을 외우고 또 외웠다. 도사는 《닭이 가면 애가 살고 닭이 죽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라고 한것이다. 하늘의 별따기지만 지푸래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할머니는 주문을 외우고 또 외우고... 과학으로는 설명할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 펀펀하던 장닭이 갑자기 세마디 꾸욱 꾸욱 꾸욱 하더니 빨갛던 볏이 까맣게 변하면서 숨이 끊어졌다. 또 기적같이 앓던 애는 차차 얼굴에 화색이 돌고 눈을 뜨더니 물을 찾고 밥을 찾고, 며칠후에는 거짓말같이 일어났다… 할머니는 이 이야기를 늘 손자에게 들려주셨단다. 밤이면 할머니는 하늘의 별 같이 많은 옛말들을 어린 손자에게 늘 해주셨고 손님이 오면 식사를 대접하고는 밥값을 받듯이 손자에게 옛말 몇컬레씩 들려주도록 하셨다. 날마다 소학교 교실창문을 통해 내다보이는, 쌀을 장만할 큰 나무짐을 메고 학교앞 산길을 내려오는 할머니의 모습은 어린 남영전의 가슴속 제일 깊은 곳에 박힌 영원한 기념비로 자리잡았다. 그런 할머니는 남영전에게 깨달음의 씨앗을 심어준 계몽스승이고 철학적사색의 길을 틔워준 도사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남영전의 첫 토템이지 않았을가? 적어도 할머니는 남영전 시 성공의 태모였다. 그 할머니의 모습을 담아 지은 시 《할머니》(1984년)는 남영전의 첫 국가급상으로 1985년 제2차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시가 1등상을 수상하였고 이 시가 수록된 남영전의 첫 시집 《상사집》(相思集)이 1990년 제3차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상을 받으면서 남영전은 시인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한다. 2011년 《인민일보》, 중국작가협회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성세민족정》공모에서 남영전의 토템시 《중화민족정》은 유일한 시가형식으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토템에서 그 답을 찾는 시인 전쟁의 참상은 어릴 때부터 남영전의 세계관 형성에 깊은 영향을 준다. 현시대에도 끊기지 않는 종교와 민족의 갈등, 전쟁과 테러 등 심각한 사람간의 갈등 그리고 사람과 자연간의 갈등으로 인간의 생존위기가 그 어느때보다도 심각하다. 남영전은 《이는 오늘을 살고있는 현대인들이 정신의 고향을 잃어버렸기때문이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갈등을 해결하는 대안을 인류 공동문화의 하나인 토템에서 찾게 된다. 그는 토템문화는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준다고 생각한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 물음은 줄곧 이어지며 이 물음에서 예로부터 토템숭배가 생긴것이다. 그때로부터 남영전은 토템 관련 서적과 신화전설을 탐독한다. 그리고 인류와 세계에 대한 사색과 탐색을 시에 담는 시도를 했다. 1986년 겨울의 어느날부터 남영전은 토템물인 달, 곰, 사슴, 백학에 이 사색을 담아 시로 써보았다. 중국시단의 친구들의 높은 찬사를 받고 다시 수정해서 첫 4편의 토템시가 완성되였다. 이 참신한 쟝르의 시 4수가 1987년 9월-10월호 《시인》( 诗人) 잡지의 톱자리에 발표되면서 중국시단에서 큰 반향을 불러온다. 《세상에 둘도 없는》토템시가 이렇게 나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18년의 각고끝에 2003년, 남영전의 42수의 토템시가 완성되여 토템시집 《원융》(圆融)이 세상에 나온다. 이 시집은 2005년 1월 길림성정부 최고상인 장백산문예상을 받은 뒤 7월에는 국가급상인 제8차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을 받는다. 이어 2009년 추가 완성한 10수까지 넣어 총 52수의 시로 작가출판사에서 《남영전토템시집》이 출판되면서 토템시는 명실공히 중국문단에서 립지를 선언한다. 또 토템시로 남영전은 《중국 10대 걸출 민족시인》칭호를 받으며 중국시단에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토템시는 또 남영전을 세계적인 시인으로 그 명성을 가지게 한다. 1991년 이후 토템시는 미국시인이 영문으로 번역하여 영향력있는 《세계시가》, 《현대시가》, 《대표시인》 등 영문간행물에 발표하면서 1993년 미국세계문화예술원의 문학영예박사 학위도 받았고 그의 이름은 《세계명시인백과사전》에 올랐다. 또한 토템시는 한국에서도 3차 문학상을 받는다. 토템시는 중국 주류문단과 학술계를 통해 그 무게와 함금량이 현시된다. 중국문단에서 《토템시의 명명자, 실천가》로 공인되면서 중국시단의 권위평론가인 오사경으로부터 《토템시는 중국시가발전의 일종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력사적인 평가까지 받는다. 현재까지 국내 대학들에서 토템시 관련 론문 300여편이 나오고 국내외 8개 대학과 학술단체에서 전문세미나 10차가 있었으며 남영전 토템시 연구 저서 13권이 출판되였다. 2009년 절강 호주사범학원은 《남영전토템시연구》를 공공학과로 설치해 교수했고 남영전 토템시 연구는 국내 일부 대학 석,박사 연구생의 졸업론문제목이 되였다. 2011년에는 남영전 토템시내용이 대학입시모의작문시험 제목으로도 선정되였다. 중국시단에서 《남영전현상》으로 불리우고있는 남영전토템시 및 관련 문학작품에 대한 연구와 발전에 중시를 돌려 이를 길림성 문학브랜드로 육성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있다. 나는 어디까지나 시인이다 얼마전 중국 조선족 주요언론들에서 련합으로 사상 처음으로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을 평선, 각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조선족 20명을 선정했다. 남영전은 문학계의 유일한 작가로 선정되였다. 그 선정리유는 《남영전은 시창작에서 세운 기념비적인 성과만이 아니라 중국조선족문화 발전에 대한 걸출한 기여를 한 문화거장이기때문이다》고 평심원들은 화제를 모았다. 남영전은 개혁개방이후 잡지발행인, 언론인 그리고 조선족사회활동 등 다분야에서 뛰여난 안목과 창신적인 개척능력 그리고 독특한 인격매력으로 조선족문화발전사에 확실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문학지 《장백산》은 남영전의 부호이며 상징이다. 이 잡지는 3차의 위기를 모두 전화위복의 도약판으로 만들며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조력, 위기대처능력, 뛰여난 교제능력을 잘 보여준 남영전의 브랜드이다. 1982년 지구재정 압축으로 경비가 없어지는 페간위기를 매년 3만원 운영경비에 독립간행물번호까지 가진 호사로 전환시킨다. 1985년 정책조정으로 귀속단위가 상실되자 잡지를 성작가협회 소속으로 만들면서 성급간행물로 부상시킨다. 1987년 전국간행물정돈 정간명단에 들자 남영전은 《장백산》잡지를 성민위로 귀속되게 하고 성도회지에 옮겨오는 도약을 가져온다. 장백산은《길림성10대 간행물》에 선정된데 이어 2005년 국가신문출판총서에서 선정한 《국가백종중점간행물》행렬에 진입, 조선족문학지가 중국 수만종 간행물업종의 최정상 영예의 전당에 올라선다. 남영전은 길림신문사 사장 겸 주필로 인생에 5년이란 언론인경력도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이 짧은 기간에 중국조선족언론사에 아주 귀중하고 무게있는 유산을 남긴다. 2005년 6월 길림신문사에 온지 두달만에 당보 책임자로서 정치적수준과 민족언론인으로서 민족적사명감을 시험하는 사건이 터진다. 바로 장춘공항에서 벌어진 한국귀국로무자 벌금사건이다. 장춘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조선족귀국로무자 몇천명이 일부 집법부문의 위법행위로 인당 5000여원씩 벌금당하는 중대한 집법사건이였다. 많은 매체들 그리고 나섰던 변호사들까지 《감히 범의 코수염을 건드리지 못》하고 손을 들고 나앉을 때 남영전은 신문사 취재팀을 직접 진두지휘했다. 위협과 공갈에 배짱있게 정면대결로 맞선데서 끝내 해당 기관은 잘못을 승인하고 피해자들에게 벌금을 돌려주었다. 벌금을 돌려받은 피해자만 600여명에 달한다. 이 사건 해결은 장춘공항이 입국써비스를 적극 개선하는 계기가 되였고 주류사회에서 민족신문의 위상 정립, 조선어신문 금후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준 계기가 된다. 그해 11월, 길림성당위 부서기인 전철수는 성당위와 성정부의 해당 책임자들과 함께 길림신문사에서 현장사무를 보면서 신문사의 간고분투하는 정신과 공항벌금사건 해결 등 백성들에게 실제적 봉사를 한 실적을 높이 평가하면서 력사적으로 남아내려온 길림신문의 체제문제, 재정문제 등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그해 12월 길림성 당위와 정부는 길림신문사를 2006년부터 성재정 전액지불단위로 격상시켜 길림신문사는 중국 조선어신문 4대 신문지에서 유일하게 전액공익성사업단위로 되였다. 그해 10월 성당위와 성정부 판공청은 련합문건을 내려 길림신문을《성급 소수민족언어당보》로 정식 명명해 성급당보로 확정하였다. 《당신이 그때(1995년) 그렇게 오라고 할 때 북경에 왔으면 벌써 부부급(副部级 )이였겠는데…》 지금도 북경의 한 문단 로간부는 남영전만 보면 타령이다. 일찍 지난 1970년대 후반부터 길림성의 중점후비간부로 지정된 남영전, 그의 뒤순위에 있던 다른 2명은 언녕 성부급(省部级)이상 간부로 되였다. 수차 길림성 정계에서 부임요청 담화가 있을 때마다, 북경의 모 잡지사 주필, 중국작가협회 전직간부로 요청이 왔을 때에도 남영전의 거절리유는 똑같았다. 나는 《장백산》을 떠날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템시의 오늘을 말하며 남영전은 《시를 선택한것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명함장을 보면 《남영전 시인(南永前诗人)》이라고 큰 활자로 찍혀있다. 남영전은 《나는 어디까지나 시인이다》라고 말한다. 중국 문단이나 정계에서 넓은 인맥으로 소문난 그에게 사교능력의 비결을 물었더니 남영전은 이렇게 대답한다. 《시인은 어디까지나 진정을 추구하고 진심과 관용으로 사람을 대한다. 시인은 선지선각자이며 사유가 트이고 모든것을 포용하는 흉금이 있다. 나는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지만 언제나 시인의 신분으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인의 품위를 지킨다. 그것이 아주 잘 통했다.》,《나는 시로 세계와 대화한다.》 남영전시인은 문학계의 유일한 작가로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에 평선되였다. 사진은 시상식에서. (/김성걸기자 촬영)  남영전의 한계와 고민은 무엇일가? 기자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남영전선생과 아래의 대담을 주고받았다. 기자: 지금 가장 큰 고민과 한계가 있다면? 남영전: 깊어지고 넓어질수록 재간이 못 따라가는것이 고민이다. 책을 많이 보고 사색의 령역이 넓어지고 깊어진다. 쓸 내용도 많아진다. 지금 어떻게 쓰는가가 가장 큰 고민이다. 표현양식을 두고 이렇게 깊이 고민한적이 없다. 내 토템시를 두고 어떤이는 남영전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상징적표현이 많기에 리해가 힘들다고 한다. 내 목적이 토템문화로 많은 사람과 대화하려는것인데… 어떻게 하면 누구나 쉽게 편히 읽고 받아들이도록 토템시를 쓸것인가 하는것이 내 고민이다. 그래서 퇴직후 새로 쓰는 시들은 토템의 이야기이고 토템문화를 해석하는 시라고 할수 있다. 기자: 토템문화와 관련 남영전의 주장에 대해 여러가지 이의도 제기되고는데… 남영전: 나는 절대 토템학자가 아니다. 나는 토템문화를 시로 리해하고 시로 이야기하는 시인이지 학자가 아니다. 토템문화 학습과 연구는 어디까지나 토템시를 쓰기 위한것이다. 시를 쓰기 위해 학자들보다도 더 깊이 연구해야 한다. 토템 관련 학술연구는 국제적으로 200년, 중국은 100년 정도다. 당대에 와서 관련 서적만 수십종 된다. 모두가 학문이나 리론차원이다. 진정 감오와 깨우침으로 쓴 내용과 실천은 아직 없다. 토템시는 남영전 나름의 감오와 깨우침이라고 생각한다. 시로 그 토템의 정신세계를 파는것이다. 토템시는 인류와 자연,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시로 이야기하는것이다.  길림신문 한정일 최화 기자
689    ...계속 댓글:  조회:5995  추천:0  2015-09-07
12. “거북” 考 남영전 씨의 시「거북」((남영전 『백학』, 민족출판사, 1992년, 29-31쪽)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바다를 집으로 륙지를 집으로 한뉘 시원함과 따사로움 꿈꾸어왔건만 탁류의 충격과 모래불 사장속에 날마다 해마다 괴로움도 쓰라림도 답답함도 속시원히 터놓을 곳 없어라 행여나 돛대에 별무리 걸고 행여나 돛폭에 금노을 펼치려니 천만년 바래여 눈동자 수정알로 벼려우고 등허린 철갑으로 굳어졌어라 수정눈 까닭인가 철갑등 까닭인가 매발톱, 짐승발도 어림없어라 칼끝도 활촉도 튕겨나와라 화약의 불길도 어찌지 못해라 모래톱, 수풀속에 깨뜨릴수 없고 태울수 없는 넋 해적들이 침노할제 그대 등에선 무수한 칼날 곤두섰더라 그대 입에선 사나운 불구름 내뿜었어라 쳐오는자 뒤엎어 쳐박아 파묻어버렸더라 바다를 집으로 륙지를 집으로 살고푸지만 구름안개 가시고 물파도 잦아들젠 외로이 흐느껴운다 바다밑이나 모래불에서 운명의 막고비엔 고달픈 몸 끄을고 쓰러지는 성곽 바쳐주누나 우람진 비석 업어주누나 다만 몸으로 무언의 말로 끝없는 명상에 잠겨 깊은 사색 굴리며. 거북은 조선민족의 상징계통 속에서 神의 使者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를테면 조선민족의 신화에서 흔히 神의 使者로서 신의 뜻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三國遺事』권2, 紀異二 駕洛國記의 기록에 따르면 거북은 신성한 군주의 출현을 촉구하는 백성의 뜻을 신에게 전달하는 매개자였다. 『三國史記』권13, 高句麗本紀 東明王에 의하면 주몽이 금와왕 군사들의 추격을 피해 남쪽으로 갈 때에 다리를 놓은 자라도 이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한국의 무속이나 민속에서 거북은 그 등딱지를 태워 앞날의 일을 미리 점쳐 주는 동물로 인식되었다. 이것이 바로 龜卜점이다. 거북은 이처럼 신령스러운 동물로 생각해왔으나 조선민족의 어느 씨족이나 부족이 토템으로 숭배했다는 문헌적인 기록이나 고고학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므로 남영전 씨의 시「거북」을 “조선민족의 토템시”라고 할 수 없다. 13. “白鳥” 考 남영전 씨의 시「백조」((남영전 『백학』, 민족출판사, 1992년, 32-34쪽)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식솔 데리고 부락 데리고 어렴풋한 풍경 데리고 평생 불안한 운명 데리고 이사갑니다 이사갑니다 이사갑니다 애오라지 북국의 눈채찍 바람채찍 와락 몰려와 그들의 보금자리 묻어버리고 그들의 식량조차 빼앗아가며 욕질하고 매질하고 내쫓기에 단꿈을 기르던 요람을 떠나 발떼기 서운한 호수를 떠나 고향에 고이는 눈물을 떠나 이사를 갑니다 바람이 길이 되고 별이 리정표 되고 번개가 길동무 되어 끝없는 창망한 밤에 하늘밖에 하늘에 기대를 걸고 애오라지 남국의 불혀바닥 비혀바닥 왈칵 달려와 그들을 태우며 삶으며 그들을 막으며 절구며 집에도 갈수 없게 하거늘 하는수없이 다시금 크나큰 기대 품던 그 땅을 떠나 저으기 기쁨 주던 그 땅을 떠나 또다른 고향 떠나 이사를 갑니다 눈물 머금고 한을 품고 구슬픈 그 몸을 이끌어 끊임없이 이사갑니다 쉬임없이 오고갑니다 끝끝내 몸 붙일 곳 찾지 못했건만 목숨이 붙어있는한 날개를 퍼덕일수 있는한 영원한 온기 찾으려고 따스한 영원 지키려고 이사갑니다 이사갑니다 이사갑니다. 백조는 서양의 신화, 전설, 민담, 동화에서 아주 빈번하게 등장하는 중요한 물새이기는 하지만 조선민족의 설화에서는 그리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조선민족과 혈연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부여라는 부족이 물새를 족명(族名)으로 삼았다고는 하나 그 물새가 백조인지 기러기인지 학인지는 분명히 분별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남영전 씨의 시「백조」를 “조선민족의 토템시”라고 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 14. “물” 考 남영전 씨의 시「물」((남영전 『백학』, 민족출판사, 1992년, 12-14쪽)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보이다가도 안보이고 크다가도 작은 신령 물은 어디라 없이 다 있어도 날개 없고 발이 없고 형색조차 없습니다 없는 날개 가장 큰 날개이고 없는 발이 가장 큰 발입니다 없는 형상 가장 자유로운 형상이고 없는 빛깔 가장 현란한 빛깔입니다 대지우에 모래밭에 크나큰 사막에 하늘우에 산마루에 깊다란 협곡에 안개 되고 구름 되고 비가 되고 눈이 되고 냇물 되고 강이 되고 호수 되고 바다 되고 뿌리에 줄기에 잎속에 꽃과 열매에 파고들어 인간과 자연을 낳아 기르는 인간의 시원입니다 만상의 시원입니다 물은 가장 온화합니다 물은 가장 흉맹합니다 수양버들 봄바람에 흐느적이듯 호수우에 새들이 지저귀듯 물은 마냥 부드러워도 독을 쓰면 사나운 맹수도 당해 못내고 타오르는 령화도 못당합니다. 부드러운 음기로 사나운 양기로 마른 가지 움터나고 여린 가지 억세 지고 벼랑도 무너지고 메부리도 깎입니다 생령의 명멸도 대지의 부침도 손안에 꽈악 거머쥐고 있습니다 물의 신비 물의 신성 눈부시게 무궁무진 퍼져갑다 사람은 물 우에 가고 고기는 물 속에 놀아 물우이나 물밑이나 생명의 락원 하여  물거품도 정액인듯 떠벋들리고 우물속 달조차 룡의 알로 보이고 물할미는 약수의 신으로 불리웁니다 하여 녀인들은 아들 잉태 물에다 빌고 풍요함을 기원하여 물에다 빌고 무병장수 기원하여 물에 빕니다 인류와 더불어 물의 신화 살아있고 하늘과 더불어 물의 위엄 공존합니다 물, 물, 물, 모든 생명 모든 령혼의 온갖 문을 여닫는 신령입니다 1991.6 조선민족의 신화에서 물은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를테면 고구려와 신라 그리고 고려의 국모(國母)들은 모두 물에서 태여나서 높이 섬겨졌다. 고구려의 국모격인 柳花는 水神 河伯의 딸이요, 신라의 국모는 우물에서 태여나지 않았던가. 天神과 地母神을 겸한 水神의 결합으로 흔히 나라가 형성되는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조선민족신화의 “天父地母”의 큰 틀이 형성되는 것이다.  산에 산신령이 있어 치성을 받았듯이 물에는 물할미가 있어서 믿음으로 받아들여졌다. 고구려에서는 “水神祭”라고 일컬어지는 나라의 큰 굿이 있었거니와, 굿을 올릴 때면 온 나라 사람이 어울려 그 水神을 강가에 모셔서 큰 잔치를 베풀었다고 전해져 있다. 다 같은 물신앙이라고 해도 민속에서는 강물보다 우물이나 샘터를 두고 더 많은, 더 진한 믿음이 바쳐져왔다. 우물신앙의 사례는 신라 국초의 박혁거세왕의 전설에까지 소급된다. 혁거세왕은 나정(羅井)이라는 우물곁에서 태여났지만 그의 왕비는 아예 알영정(閼英井)이란 우물에서 태여났다고 해서 閼英이라고 한다. 알영은 또 鷄龍과 출산한 것으로 되었으니 태양새인 닭과도 혈연적인 관계가 있는 셈이다. 사실 물에 대한 숭배는 전 인류적이고 물과 유명한 녀성의 탄생을 련과짓는 것은 전 인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의 신화중의 중요한 녀신 아프로티테는 바다의 거품에서 탄생했다고 하니 역시 물과 밀접한 련관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천고의 영웅 아킬레우슬 낳은 테티스도 바다의 녀신이 아니던가. 이런 의미에서 물은 어쩌면 카를 융이 말한 것처럼 전 인류의 원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전 인류적인 원형이 어는 특정한 씨족이나 부족 혹은 민족의 토템으로 되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조선민족이 선인들이 물을 자기의 씨족이나 부족 또는 민족적인 토템으로 숭배했다는 증거는 아직까지는 찾을 수 없다. 물은 조선민족에게 있어서 어디까지나 자연신으로 숭배되였거나 신앙되여 온것 같다. 그러므로 남영전 씨의 시「물」을 “조선민족의 토템시”라고 하는데는 무리가 따른다. 15. “山” 考 남영전 씨의 시「산」((남영전 『圓融』, 료녕민족출판사, 2003년, 51-52쪽)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因愚昧 因混沌 被擠出 被壓出 巨大之筋肉 巨大之肉塊 巨大之血流 卽便被遺棄 卽便赤身裸體 卽便傷痕累累 卽便殘缺不全 却以不屈之信念 却以博大之氣魄 昻 首 挺 立 以自身之血 以自身之血 以自身之精氣 以自身之臂膀 擁抱一切能爬能走能飛之精靈 養育一切能吟能歌能舞之靈魂 冷寞的世界 因之而充滿生機 因之而走進和諧 崇敬山 膜拜山 山之沈黙爲最深沈之沈黙 山之胸襟爲最寬廣之胸襟 山之品格爲最高尙之品格 山爲生靈永恒之歸宿 山 山 山 1994.9 한국의 신화학자이며 민속학자인 김열규 교수는 조선민족의 자연신앙체계속에서의 산의 위상을 다음과 같이 형상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 “산과 물 그리고 나무와 바위는 이 땅의 겨레들이 만들어온 ‘자연신앙’의 4대 요소이다. 그 넷을 이어서 그려질 사각형 속에 이 땅에 자연신앙의 성역이 마련되는 것이다. 그 사각형 중에서도 다시 산과 물을 으뜸으로 쳐야한다.”(김열규 저『한국 문화와 역사를 위한 신화론- 한그루 우주나무와 신화 』, 한국학술정보, 2003년, 263) 산 많은 지역에서 원시문화와 고대문명을 창조한 고조선과 가락 그리고 신라의 국조가 각기 산에 내렸고, 단군과 탈해왕은 산신이 되여 나라를 지켰다. 산은 신이 하강하는 곳이고 또 산은 민족의 발생과 근거라는 상징성을 가진다. 특히 신이 하강하는 산은 신을 모시는 성역으로서 산악숭배의 바탕이 되며 산신의 존재를 파생시킨다. 서양에서도 산은 신이 내리는 곳으로서 산은 천국을 상징하며, 신들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스신화에서 올리포스산은 신들이 사는 곳이고, 성경에서는 “여호와의 집이서 있는 산이 모든 묏부리 위에 우뚝 서고 모든 언덕 위에 드높이 만국이 그리로 물밀듯이 밀려 들더라” (구약 성서 이사야 2)고 하였다. 유태인들의 청년수령 모세도 시내산 정상에서 하나님과 만나서 하나님의 선민이 되지 않았던가. 이런 의미에서 산은 역시 물이나 땅처럼 카를 융이 말한 것처럼 전 인류의 원형이라고 해야 것이다.  물론 이런 전 인류적인 원형이 어는 특정한 씨족이나 부족 혹은 민족의 토템으로 되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조선민족이 선인들이 산을 자기의 씨족이나 부족 또는 민족적인 토템으로 숭배했다는 증거는 아직까지는 찾을 수 없다. 물은 조선민족에게 있어서 어디까지나 자연신으로 숭배되였거나 신앙되여 온 것 같다. 그러므로 남영전 씨의 시「산」을 “조선민족의 토템시”라고 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16. “토끼” 考 남영전 씨의 시「토끼」((남영전 『圓融』, 료녕민족출판사, 2003년, 79-80쪽)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總想築個溫馨的窩 却總有惡魔襲擊 一個善良溫順的生靈 被迫逃離 逃離逃離 兩條後腿越逃越長 總想睡個安穩的覺 却總被陰謀警醒 一個不願爭鬪的生靈 被迫逃離 逃離逃離 兩只耳朶越竪越長 日日月月逃離 春夏秋冬逃離 逃得妻離子算 逃得沒有寧日 逃離逃離 最終逃進月宮 一個孤獨迷茫的遊魂 將平生的宿願 將歸鄕的企劃盼 置入石臼  搗啊搗 搗得鄕情綿綿 搗得月色朦朧 2000.1 토끼는 조선 전설이나 민담에서 등장하지만 곰이나 범이나 사슴처럼 중요한 위치에 있는 동물은 아니다. 남영전 씨의 해석과는 달리 조선민족 상징계통에서의 토끼는 “속임수의 명수”, “꾀쟁이”이다. 인도불경설화의 영향으로 생긴 삼국시대의 “구토설화”에서 토끼는 꾀쟁이로 등장하여 조선조의 판소리계소설 『토끼전』에 이르기까지 토기형상은 “속임수의 명수”, “꾀쟁이”이로 일관하고 있다. 조선민족의 설화에서의 월궁에서 약방아를 찧는 토끼의 형상은 중국 仙話인 “姮娥奔月”의 양향으로 생겨난 것으로 사료된다.  한마디로 토끼를 조서민족의 토템으로 칠 수 없으므로 남영전 씨의 시 「토끼」는 “조선민족의 토템시”가 될 수 없다. ============ 17. “蟾蜍” 考 남영전 씨의 시「蟾蜍(두꺼비)」(남영전 『圓融』, 료녕민족출판사, 2003년, 77-78쪽)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所受的蔑視都溶入眼珠 所受的虐待都滲溶進肌膚 千年萬年 被誤解了却沒有怨恨 遭呪罵了却沒有惱怒 以岸的寧靜水的淡漠 品味滄桑 品味滄桑 從不炫耀自己的智慧 從不聲張自己的豫知 育兒女于坎坷鑄煉風骨 敎子孫于逆境獻媚俗 若遇善良可憐的弱者 若遇解救自己的恩人 寧愿犧牲自身 也要鼎力相助 世世代代被扭曲 世世代代却執著 終于在生命的盡頭 馱回了一輪明月 渾濁的月 爲蟾蜍不止的淚 1999.9 두꺼비는 조선민족의 설화에서 은혜를 입으면 꼭 보답하는 의로운 동물형상으로 등장하고, 조선조의 우화소설 『두껍전』같은 데서는 가장 지혜로운 동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조선민족이 두꺼비를 토템으로 신앙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달 속에 두꺼비가 있다는 설은 중국의 대학자 계선림 선생의 연구에 따르면 인도에서 유래되여 중국에 전해졌고, 그것이 다시 조선에 전해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역시 조선민족의 토템신앙과는 무관하다. 그러므로 남영전 씨의 시 「蟾蜍」는 “조선민족의 토템시”가 될 수 없다. 18."犬"考 남영전 씨의 시「犬」(남영전 『圓融』, 료녕민족출판사, 2003년, 73-74쪽)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人從樹上爬下來便與之爲伍 是獵者 是追捕禽獸的好幇手 是衛士 是守護主人的精靈 也曾有過舜位 也曾威風凜凜 有舜位 已成爲斑駁的化石 顯赫與榮耀 只在遺忘的史冊里 唯有褒貶交替的称謂 伴着歲月的尾巴 仍在搖擺 聖潔嗎? 隨地撒尿 隨地撒屎 有時還戱살鷄鴨鵝 餓急了 便將孩童的糞便當作美餐 時而聚群 狂叫亂走 攪得農家小院不寧 醜陋嗎? 從未有過分的奢求 從未嫌主人的貧寒 靈敏的嗅覺 警覺的耳朶 快捷的四肢 爲守家園盡責 爲護主人遠行 卽使主人舍棄了它 它却從不背叛主人 卽使死了 也不求有一塊安身之地 遠處又聞犬吠聲 人與犬又出現在地平線了 2002.7 본인은 한국 전남대에서 객원교수로 근무를 할 때 한국 “義犬설화”의 본고장인 전북 임실군에 가서 관광을 한 적도 있다. 개는 남영전 씨의 우의 시에서처럼 조선민족의 여러 가지 상징적의미를 갖고 있지만 어느 씨족이나 부족이 토템으로 신앙했다는 기록은 문헌에서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남영전 씨의 시 「犬」을 “조선민족의 토템시”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2007년 9월 24일 연길에서 19. “豚” 考 남영전 씨의 시「豚(돼지)」(남영전 『圓融』, 료녕민족출판사, 2003년, 75-76쪽)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有一双慧眼 哪兒風水好 哪兒是建城的好地方 蹄印停留處爲寶地 有一個善心 爲良緣搭橋 守護被遺棄的生靈 甘愿畿天不吃不睡 有一副雄建的體魄 踏荒山躍雪谷與山同樂 年年豊衣足食 因之也曾得到舜位 也曾名聲遠揚 自從被囚進圍欄 鎖住了智慧 鎖住了勤勞 一個勤勞智慧的精靈 有了醜陋的託號 而風雲沒能抹去 豚之古時的風采 豚之聚財的能力 當今流行的貯蓄箱 仍爲豚的便便大腹 一條剪不斷的臍帶 流溏着遠古洪荒的血液 1999.9 조선반도 북부, 특히는 함경북도 신석기시대 말기의 유적지들에서 돼지 陶俑들을 많이 발견하였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신석기시대로부터 돼지가 조선민족 선민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재산으로 되었음을 보여준다. 수렵단계에서 농업단계로 진입한 예족, 맥족과 읍루, 말갈 등 만퉁구스 민족의 선민들이 돼지를 중요시했음은 많은 사료와 고고학적발견에 의해 증명되었다. 조선민족은 지금도 큰 제사에서 돼지머리를 제물로 올리군 한다. 돼지는 조선민족의 신화전설, 민담에서 자주 등장하고 또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동물형상이다. 『三國史記』권13 高句麗本紀 琉璃王 조목에는 하늘에 제물로 바치기 위해 기르던 돼지가 달아서 명당자리에 가서 누웠는데 그곳에 성을 세운 것이 바로 고구려의 환도산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三國史記』권16 高句麗本紀 山上王 조목에 따르면 돼지가 임금과 시골처녀사이의 좋은 인연을 맺게 하여 산상왕이 태여나게 하였다고 한다. 돼지에 대한 이런 신앙은 고려왕조에까지 이어져서 고려의 도읍지도 돼지가 잡아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남영전 씨는 바로 이런 역사기록에 의해 이 시를 창작한 것 같다. 조선민족의 고대사회에 있어서 돼지는 서양에서의 양과 비슷하게 천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이용되었으며 따라서 돼지는 신통력을 갖고 있는 신의 使者 같은 기능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돼지가 이런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여 조선민족이 토템으로 숭배하였다는 확실한 기록은 없다. 일반적으로 천신에게 재물로 바치는 犧牲을 토템으로 숭배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런 까닭에 남영전 씨의 시 「豚」을 “조선민족의 토템시”로 인정하기 어렵다.  =========== 20. “燕子” 考 남영전 씨의 시「燕子(제비)」(남영전 『圓融』, 료녕민족출판사, 2003년, 81-82쪽)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驚愕- 春風暖暖的麗日 一條貪婪的黑蟒 偸襲鼾睡的小兎 驚愕- 風雪咆哮的冬日 一對란生灰狼 爲爭一只死猫撕咬 撕咬得皮開育綻 撕咬得天昏地暗  驚愕- 春夏秋冬 一股黑潮般的瘟疫 總是悄悄漫延 漫延進山漫延進河 漫延進草原蔓漫進森林 只因驚愕 只栖止于樹梢于房지 只栖止于遠離毒菌的天空 日日啼叫 只因驚愕 從南到北從北到南 爲尋一片淨土 年年遷徙 遷徙 遷徙 遷徙了 幾百年幾千年了 也不愿落地 2002.5 제비는 많은 해충을 잡아먹는 익조이기에 농가에 들어와 둥지를 짓는 것을 말리지 않고, 제비도 그것을 알고 사람가까이 집짓기를 꺼리지 않는다. 이처럼 제비는 농경문화권, 특히는 도작문화권에서 사람들과 친근한 새이다. 중국 은나라의 시조 설의 모친 간적이 목욕을 하다가 제비가 떨어뜨린 알을 삼키고 그로 임신해서 설을 낳았다는 “玄鳥生商”의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민족의 설화나 소설에서 제비는 사람의 은혜에 보답하는 새로 등장하는데, 조선조 말기의 판소리계소설 『흥보전』에서 보배박씨를 물어왔다는 제비는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그러나 제비가 조선민족의 토템이였다는 증거는 없다.  21. “雄獅” 考 남영전 씨의 시「雄獅(사자)」(남영전 『圓融』, 료녕민족출판사, 2003년, 23-24쪽)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茫茫草原上壹顆疾馳的太陽 草原暝暝 草原昏暗 草原于暝暝里沈睡 草原于昏暗里沈睡 億萬年往昔 惡魔于草叢里橫行 妖怪于湖泊里作蘖 雄獅之吼 雄獅振顫八方之吼 雄獅之鬣 雄獅鎏金之鬣 爲炸雷爲雪崩 爲旋轉的太陽 爲疾 的流星 令沈沈黑暗遠遁 令惡魔遠逃于海之盡頭 令妖怪難尋蔽身之所 草原明明 雄獅 漫舞于曠曠 漫舞于勃勃生機的草原 因之被尊爲百獸之王 因之被尊爲大德之大聖 因之被尊爲希冀之百使者 立于高高的橋頭 立于威嚴的石塔 守護永恒的光明 茫茫草原壹顆疾馳的太陽 1993.6 사자는 동북아에 없는 동물로서 인도로부터 불교가 전파되면서 중국과 조선반도에 알려졌다. 주로는 호법 신장, 성전의 수호신으로 등장하였다. 조선민족의 민속예술에 사자춤이 등장한 것도 썩 뒤의 일이었다. 조선민족이 동북아세아의 중국 료동, 료서, 조선반도에서 살았던 원시시대나 노예제시기에 사자는 조선민족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러므로 사자를 조선민족의 토템이라고 할 수 없다. 조선민족의 조상들이 본적도 없는 사자를 어떻게 토템으로 숭배한단 말인가?  22. “鯨” 考 남영전 씨의 시「鯨(고래)」(남영전 『圓融』, 료녕민족출판사, 2003년, 47-48쪽)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背負大海 背負無際無涯之沈重 緩行 與人爲伍 與人親近 爲人鼎力相助 却遭人之嫉妬人之唾棄 携壹腔悲哀 隱居于大海 隱居于大海 慢慢타嚼苦澀 嚼億萬年之人情世故 讎恨愚昧 讎恨混沌 實在忍不住了 吐壹口長長之문氣 隱居于大海 不想與世有爭 將壹双靈敏之耳朶 扣進自身之肉里 勃發的四肢 退化爲鰭肢 然而巨大的心房 却鼓張得越來越大 成浮動之山 成飄移之島 時時過濾沈沈之暮色 期待着陽光 期待着光明 背負大海 背負無際無涯之沈重 隱居于大海 最凶恨的鯊魚 最凶猛的海豹 也從它臍下 慌慌張張 逃전 1999.5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고래를 보고 원시인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자연신으로 숭배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고래를 조선반도 남해의 해변가 동굴 속의 암벽화에서 발견하기도 했지만 조선민족의 선민들이 고래를 토템으로 숭배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남영전 씨의 시 「鯨」을 “조선민족의 토템시”로 인정하기 어렵다.  23. "雲 ․ 風 ․ 雷 ․ 雨 ․ 火" 考 1990년대 초반기에 출간된 남영전 씨의 시집『백학』에서는 그래도 조선민족의 신화, 전설, 민담, 민속 등에서 자주 등장하고 또 토템으로 모셨을 가능성이 십분 많은 14개의 자연대상들만을 시적인 소재로 하였다면, 새천년에 들어서서 출간된 남영전 씨의 시집『圓融』에서는 이른바 “조선민족의 토템”이 42개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남영전 씨의 시 「火(불)」,「雲(구름)」, 「風(바람)」,「雷(번개)」,「雨(비)」(남영전 『圓融』, 료녕민족출판사, 2003년) 등 작품은 적지 않은 자연현상들마저 조선민족의 토템으로 인정하여 시로 창작하였다. 불, 구름, 바람, 번개, 비 같은 자연현상은 조선민족의 신화, 전설, 민담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를 테면 단군신화에서 천제의 아들 환웅이 천상에서 땅우에 내릴 때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내렸다고 한 것을 보면 고조선시대의 사람들은 바람, 비, 구름 같은 자연현상을 신격화하여 자연신으로 숭배하거나 신앙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 리치로 번개나 불 같은 자연현상도 인간들이 자연신으로 모시고 신앙했을 가능성이 십분 많다. 그러나 상술한 자연현상을 자연신으로 숭배했다는 증거는 있으나 토템신으로 신앙했다는 증거는 희박하다. 그러므로 남영전 씨의 시「火(불)」,「雲(구름)」, 「風(바람)」,「雷(번개)」,「雨(비)」를 “조선민족의 토템시”로 인정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24. “太陽” 考 남영전의 토템시 중에는 태양, 달, 별을 조선족의 토템으로 상정하여 창작한 이른바 “조선민족의 토템시”들이 있다. 아래에 남영전 씨의 시「太陽」(남영전 『圓融』, 료녕민족출판사, 2003년, 55-56쪽)을 옮겨 보기로 하자. 祖先的白色之門鑲在遙遠的太陽上 祖先的白色靈光 正悄悄捕捉黑色的鬼魅黑色的邪惡 祖先的白色溫馨 正緩緩融化重疊的雪山堆積的怨恨 祖先的白色慈祥 正輕輕撫마可愛的子孫寂寞的心靈 于是于曠野于莽林 冥冥里復蘇暈厥的精靈 冥冥里誕生吉祥的部落 祖先的白色靈光 來自祖先神秘的智慧 祖先的白色溫馨 來自祖先灼熱的胸膛 祖先的白色慈祥 來自祖先神聖的博愛 祖先每日勞作之後 傍晩返回家園 總有壹條貪婪的黑影偸偸尾隨 將祖先 白色的靈光 白色的溫馨 白色的慈祥 融進肌膚融進血液 融進精髓融進靈魂 着一身最美的潔白 是對祖先最虔誠的膜拜 盡管有過禁令 盡管有過挫折 連接祖先與子孫的白色之橋 總是熠熠生輝 祖先的白色之門鑲在遙遠的太陽上 那永不鎖閉的祖先之門 是子孫世代享不盡的福之源頭 1994.8 태양은 조선민족의 원시종교신앙계통 속에서 가장 중요한 자연신이자 동시에 조상신이였다. 그러므로 태양을 조선민족의 토템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조선민족의 개국신화에서 태양은 현대인이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불덩이 형태가 아니라 알(卵)이나 일광(日光) 등으로 나타나며, 하느님(天帝) 또는 그 아들(天帝之子)이나 국조(國祖)을 의미한다. 조선민족의 형성과정에서 중요한 한 갈래라고 인정되고 있는 부여족의 해모수신화에서 해모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분명이 태양신의 형상을 갖고 있다, 하기에 해모수는 낮에는 인간 세상에 나와서 살고 저녁에는 천궁으로 돌아갔다. 이는 하루 동안의 태양의 운행을 상징한다.  고구려의 개국주인 주몽은 해모수의 아들로서 해빗의 작용으로 잉태를 하며, 낳았을 때는 태양의 모양을 닮아 알(卵)로 태여나며, 어른이 되어서는 서는 자신을 “태양의 아들(日之子)”라고 자칭하고 있다. 신라의 개국주인 박혁거세도 마찬가지로 태양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그는 하늘에서 전광(電光) 같은 태양빛이 비추는 곳에서 알로 태여나며, 赫居世라는 이름은 “빛과 광명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삼국유사』에 수록된 “延烏郞과 細烏女”는 태양과 달의 精이다. 그리고 그 이름에 나타나는 까마귀 오(烏)는 태양의 사자인 三足烏인것이다. 태양은 조선민족의 원시종교신앙계통 속에서 가장 중요한 자연신이자 동시에 조상신이였다. 그러므로 태양을 조선민족의 토템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특히 태양신은 조선민족의 왕권신화에서 많이 나타나는바 조선민족의 부족국가들인 부여국이나 고구려나 신라국의 토템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이상의 문헌적인 근거로 태양을 조선민족의 부족국가 창건단계에서의 단계에서의 토템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동시에 태양은 전 인류적인 원시적 이미지이기도 하다. 일본의 국조도 태양신이고 고대애급, 고대 인디안들의 국조도 태양과 깊은 련관을 지니고 있다. 태양숭배는 전 인류적인 원시신앙이었다. 25. “달” 考 남영전의 토템시 중에는 태양, 달, 별을 조선족의 토템으로 상정하여 창작한 이른바 “조선민족의 토템시”들이 있다. 아래에 남영전 씨의 시「太陽」(남영전 『白鶴』, 민족출판사, 2003년, 15-17쪽)을 옮겨 보기로 하자. 박쥐의 날개에 은신했다가 바다건너 산넘어 저 멀리서 걸어옵니다 사푼사푼 걸어옵니다 얇은 베일 가리운 어여쁜 얼굴 어깨우에 출렁이는 부드러운 머리채 미소와 더불어 친철함과 더불어 은밀한 아지우에 아련한 마음 흔듭니다 세상만물이 무게를 잃습니다 희붐한 산그림잔 햇솜마냥 부풀고 퍼어런 바닷물결은 은실마냥 날립니다 말없는 울룽바위도 온몸으로 달콤한 달빛젖을 머금습니다. 원활함과 더불어 남몰래 남몰래 상상의 푸른 날개 펼쳐줍니다 살며시 비껴 내리는 달의 이슬 가벼이 떠오르는 달의 향연 보이잖는 이슬 만질수 없는 연기 심산유곡의 신비한 점괘이고 암시입니다 인간세상의 아득한 예시이고 계시입니다 몽롱함과 더불어 아리숭함과 더불어 우렷이 우렷이 심령이 포복하는 성결한 전당 쌓아줍니다 마음의 요람과 성황당의 대문에 달은 기울었다가 둥글고 둥글었다가 이지러져 둥그스름은 기울어지려 기울어짐은 둥글려고 둥글고 기울어짐은 영생에로 통하는 길 하여, 교교한 달밤- 아들낳이 원하는 아낙네들은 수집어도 우물가에 사뿐 사뿐 샘물도 살짝, 보름달도 살짝 고요한 잔디밭- 백의숙녀 둘레둘레 나리꽃 원무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설레이는 원은 하늘에서 내린 달 펄렁이는 사람은 하늘우의 선녀 풍요의 원리는 그래서 밀물이고 녀성의 원리는 그래서 륜회이고 생명의 원리는 그래서 지속됩니다 집요하고 지성어린 그 신앙 그 숙원 은은히 은은히 천지간에 흐릿한 환영으로 빛납니다 달춤판의 나리꽃 억만번 피고 지고 우물속의 보름달 억만번 마셨습니다 긴긴세월 달이되여 긴긴세월 맛보아도 련달린 넝쿨은 상기도 시나브로 달의 사닥다리 줄줄이 자랍니다 생명과 령혼의 문에 혼탁한 비방울 흩날리며 떨어집니다 떨어져 흩날립니다 달  영원한 달 마음의 신비와 환상의 몽롱을 영원히  영원히 길러주는 달입니다 1986.12-1987.5 조선민족의 巫俗에서 달은 천신이고 여성신이고 조상신이기도 하다. 태양과 숭배와 더불어 달숭배도 그 연원이 아주 길다. 그것은 달은 차서 기울고, 기울었다가 다시 차기에 “죽음과 재생”의 원형으로서 영생과 재생의 상징성을 갖고 있었으며 따라서 전 인류적인 원형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조선민족의 신화 “연오랑과 세오녀”에서 해와 달은 부부로 되어 있고, 조선민족의 구전동화 “해와 달”에서 해와 달은 오랍, 누이이다. 유교와 불교에서도 달의 이미지는 대단히 고결하다. 유교에서 달은 군자의덕을 상징하고 불교에서 달은 원융(圓融)자재한 불교적인 이념의 구현을 상징하므로 조선민족의 문화가 유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게 됨으로써 조선민족의 원초적인 신앙으로서의 달숭배는 더욱 고조되여 왔다. 동시에 달은 전 인류적인 원시적 이미지이기도 하다. 달숭배는 전 인류적인 원시신앙이었다. 이상의 문헌적인 근거로 달을 조선민족의 씨족단계나 부족국가 창건단계에서 어느 씨족이나 부족이 토템으로 숭배했을 가능성도 십분 많다고 사료된다. 그러나 달을 “조선민족의 토템”이라고는 할 수 없다.
688    남영전 / 김관웅 댓글:  조회:4631  추천:1  2015-09-07
남영전 씨의 이른바 “조선민족의 토템시”에 대한 문헌 및 고고학적 고증         /김관웅 1. 들어가는 말 “조선민족의 토템물”을 소재를 하여 쓴 시라야 “조선민족의 토템시”라고 할 수 있으며 “조선민족의 토템”이 아닌 자연대상물을 소재로 하여 쓴 시는 토템시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남영전 씨의 42수의 이른바 “토템시”들에서 소재로 이용한 자연대상물이 “조선민족의 토템”이였는가를 문헌 및 고고학적으로 고증하여 그 진위를 밝혀내는 것은 필수적인 작업이다. 이는 남영전 씨의 토템시 연구에서 반드시 선행시켜야 할 자연스러운 순서이다. 조선민족의 선인(先人)들도 원시시대에 자연숭배, 자연신앙 그리고 그것과 련관되어 있는 많은 자연신을 신앙하여 왔으며 따라서 이런 자연신들속에는 많은 토템숭배나 토템신앙의 대상들인 토템신들도 많이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이러한 수많은 자연신들 속에서 토템신들을 가려낸다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의 민간문학연구가이며 신화학자인 김렬규(金烈圭)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바 있다. “… 달리 또 계산(鷄神) ․ 웅신(熊神) ․ 용신(龍神) 등 동물신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신이 동물자체의 신격화인지 안면 동물의 수호령(守護靈)인지를 엄격히 가리기 힘들다. 혁거세신화의 천마(天馬) ․ 동명왕신화의 비둘기들은 이를 동물신에 준한 존재로 이해하여야 할 것 같다. 다만, 이들과 관련되여 많은 토테미즘의 논의가 있기는 하나, 워낙 토테미즘 개념이 환상적인 만큼 다양하다는 장벽이 있는 데다 그 가운데 어느 기준을 채용한다고 해도 연역의 필연성이나 귀납의 개연성이 인정될 만큼 주어진 기록들의 기술(記述)이 분명치 못하다는 장벽이 있어 토테미즘 논의는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 김열규 저 『한국 문화와 역사를 위한 신화론-한 그루 우주나무와 신화』, 한국학술정보, 2003년, 135쪽) 한국 상고시대나 고대 사회에 있어서의 동물신을 위수로 한 수많은 자연신들 속에서 토템신만을 골라낸다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지만 명확한 기록이 있는 것들만을 먼저 골라내고 토템신이라는 명확한 기록이 없는 것들은 따로 분류함으로써 남영전 씨의 이른바 “조선민족의 토템시”의 진면목을 밝혀보려고 한다.  남영전 씨의 42수의 “조선민족의 토템시”들에 대한 문헌 및 고고학적인 고증은 본인의 시야에 들어올 수 있는 문헌이나 고고학적인 재료에만 의존했음을 먼저 성명하며 남영전 씨, 박문희 씨, 한춘 씨를 포함한 많은 석학들의 기탄없는 반박, 비판, 지적과 보완을 모두 진심으로 환영한다.  2. 곰에 대한 고증 남영전 씨의 “조선민족의 토템시”에서 흔히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은 「곰」이다. 산악 같은 그림자를 끄을고 엉기정 엉기정 엉기정 가시넝쿨 우거진 심산밀림 지나 갈대버들 음침한 벌방늪을 지나 긴긴 세월 엉기정기 걸어오다가 컴컴하고 적막한 동굴 속엔 왜 들었수? 쓰고 떫은 약쑥 신물 나게 맛보고 맵고 알알한 마늘 몸서리나게 씹을제 별을 눈으로 달을 볼로 이슬을 피로 받아 아리땁고 날씬한 웅녀로 변해 이 세상 인간들의 시조모 되었니라 도도한 물줄기 현금삼아 틍기고 망망한 태백산 신방 삼아서 신단수 그늘 밑에 천신 모셔 합환하여 수림속, 들판, 해변가에서 오롱이 조롱이 아들딸 길렀네 사냥질, 고기잡이, 길쌈하면서 춤 절로 노래 절로 웃음도 절로 그때부터 세상은 일월처럼 환하고 금수강산 어디나 흥성했어라 끓는 피와 답즘을 젖으로 무던한 성미와 도량을 풍채로 끈질긴 의지와 강기를 뼈대로 날카론 발톱마다 도끼와 활촉 삼아 인간의 초행길 떳떳이 헤쳤나니 한숨도 구걸도 없이 길 아닌 길을 찾아 첩첩 천험도 꿰뚫어 나갔더라 해와 달을 휘여잡는 자유혼으로 신단수 아래서 장고소리 울리던 시조모 시조모여 엉기정 엉기정 엉기정 산악은 그림자 끄을고 태고의 전설 백의의 영혼을 더듬어 오늘도 내일도 엉기정 엉기정 엉기정 1987.4-5(남영전 『백학』, 민족출판사, 1992년, 9-11쪽) 이 시에서 등장하는 “곰”이란 이 동물형상은 조선민족의 고전인 일연의 『삼국유사』중의 단군신화를 소재로 하여 창작했으며 ,곰은 분명히 고조선의 건국주인 단군의 생모로 등장하는바 고조선 부족과 혈연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고 기록되였다. 고조선만이 아니라 고조선 문화의 창조주체로 추정되는 예족, 맥족과 친근한 관계를 갖고 있는 동북아세아 만퉁구스와 시베리아의 여러 민족의 신화, 전설, 민담에서도 곰이 녀신으로, 조상신으로 신앙되였던 토테미즘의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남영전 씨의「곰」을 토템시라고 하는 것은 증거가 있는 것이다. 다만 곰은 고조선 시대의 토템이었지만 그것이 민족토템으로 이어져 내려왔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 4340년 전의 고조선 시대에 조선민족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삼국시대 초까지 곰토템 숭배의 유풍(遺風)이 널리 이어지고 있었음은 백제초기의 상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지금 충청남도에 있는 금강(錦江)과 공주(公州)는 각각 백제시대의 곰강(즉 熊川)과 곰나루(熊津)에서 유래했다. 곰나루은 지금도 지명이 남아있는데, “곰나루전설”에는 인간세상의 총각과 암콤과의 결혼이 그 기본 이야기줄거리로 되었으며, 이와 거의 같은 전설은 오른촌족 같은 만퉁구스 제민족의 민간문학에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충남부여 구아리에서 출토된 토제 곰도 역시 백제시대에 곰토템 숭배의 유풍이 잔존해 있었을 증명해준다. 이로부터 곰은 조선민족의 씨족, 부족, 부족국가 시대에서의 일부 씨족이나 부족들의 토템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남영전 씨의 시 「곰」은 토템을 소재로 한 조선민족의 토템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조선민족의 문화에서 곰은 중국 한족의 문화에서 룡처럼 민족적인 토템으로 승화되어 지금까지 전해 전해지지는 못했다. 3. “神檀樹: 考 남영전 씨의 시 「신단수」((남영전 『백학』, 민족출판사, 1992년, 6-8쪽)는 고조선의 단군신화에서 나오는 신단수를 소재로 하여 쓴 시다. 시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파아란 하늘 조각조각 받쳐들고 무연한 땅 갈래갈래 갈마쥐고 시베리아 마파람 휘감아 회오리칩니다. 회오리칩니다. 회오리칩니다.  천국의 사닥다리 지상의 푸른 기둥 대지의 배꼽과 북두성 이어놓고 해와 달을 간 아지에 꿰여 광막한 우주에서 지성을 깨칩니다 지혜를 부릅니다 먹장구름 몰아내고 덧쌓인 세상 먼지 가시며 땅속의 정기 하늘로 올려 회오리칩니다. 회오리칩니다 회오리칩니다 잎새마다 넓은 지역 가지마다 높은 공간 무연한 록음 뭉게뭉게 펼치면서 환생의 힘을 부릅니다 부활의 넋을 부릅니다 만물의 령험과 정수를 모아 세상의 패기와 의지를 모아 의젓하게 영준한 신으로 화해 아릿다운 웅녀와 인연 맺었습니다. 하여 무인지경에 밥 짓는 연기 오르고 명산대천에 노래가락 울렸습니다. 수렵하는 사나이들 직포하는 아기씨들 정 좋고 힘 좋고 섭리도 깨쳐 아늑한 인간 낙원 펼치였습니다. 신비론 신단수 천년간들 만년간들 칼바람에 찍히랴 불갈기에 먹히우랴 물사태에 쓰러지랴 눈보라에서 죽으랴 그 언제나 언제나 창천을 떠이고 대지를 거머쥐고 떳떳이  떳떳이 솟았습니다 1988.1 신단수는 기능주의 神話學의 리론으로 분석을 한다면 단군신화에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천제(天梯) 구실을 하는데 신화학에서는 이를 우주나무(宇宙木)이라고 한다. 우주나무로서의 신단수는 솟아있는 상태는 형태상 지상에서 천성을 향해 높이 솟았기 때문에 지상의 온갖 소원을 천상의 신들에게 전하는 매개채로서 상징성을 지닌다. 단군신화에서 천제의 아들인 환웅이 지상으로 내려올 때 태백산 꼭대기의 신령스러운 박달나무 - 신단수를 타고 내린다. 여기서 신단수는 하늘신이 지상으로 내려올 때 리용하는 사닥다리나 통로(通路) 같은 기능을 갖고 있다. 후세의 조선민속에서의 솟대나 만주족의 신간(神竿) 같은 것도 이러한 우주나무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였기에 신앙의 대상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토템으로 신앙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토템으로 숭배하지 않았다. 고조선인들이 곰도 토템으로 신단수도 토템으로 신앙했다는 증거는 더욱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신단수를 자연신으로서의 수목신(樹木神)으로 인정할 수는 있지만 고조선의 토템신으로 인정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 4. “白鶴” 考  남영전 씨의 시 「백학」((남영전 『백학』, 민족출판사, 1992년, 6-8쪽)은 시집의 제목으로 삼은 것으로부터도 작자의 중시정도를 알 수 있다. 시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하얀 학의 깨끗한 얼이 백의넋입니다 백의넋 루루천만년 깊이 묻힌 피비림에 젖었습니다. 숨 막히는 질식속에 몸부림쳤습니다. 묵중한 층암밑에서 터져나왔습니다. 검은 삿갓 흰 두르마기 하야얀 명주  몽땅 태워 재로 남은 천지간의 희고 흰 결정체입니다. 백의넋 신단수 끝초리에서 너울거립니다. 신비로운 천국을 이어놓습니다. 야수가 덮쳐도 보라매 노려도 갈범이 포효해도 겁낼것 없어 너울너울합니다  깊은 골에 홍수 넘치고 적막한 광야에 가물이 타번져도 두렵지 않아 너울너울 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오연히 고개를 들고 날아옙니다 영원히 구걸을 모르는 자유의 얼입니다 백학의 결백한 깃을 명주치마로 백학의 사품 치는 날음을 춤으로 백학의 굳센 날개를 뼈와 힘줄로 백학의 맑은 눈을 해와 달로 하늘 땅 사이 그 어디나 백의넋이 너울너울합니다. 구름처럼 모였다가 흩어지고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갑니다 백의넋 눈보라 몰아치는 허허벌판 꿰지릅니다 소나기 쏟아지는 만경창파 헤가릅니다 쇠붙이에 부싯돌 불꽃 일구고 관솔불에 그물질 별무리결던 시절 동족상쟁 죄과를 가시고 독수리발톱을 경계합니다 결백속에 붉은피 방울방울 백두의 빙설속에 스며도 목 놓아 울지 않습니다 돌틈에서 숲속에서 더더욱 많고 많은 백의 넋을 기르웁니다 백의넋 언제나 언제나 강자를 약자로 보고 약자를 강자로 봅니다 세월의 눈비에 덤불길 험하다한들 아슬한 산발 바다속에 잠긴다 한들 한번 메운 화살 또다시 살통에 걷어 넣지 않습니다. 창천이 부릅니다 강산이 부릅니 백의넋 백의넋 백의넋이여! 1987.4-5 백학은 승화, 초월, 창수의 상징으로서 조선민족을 비롯한 동양의 각 민족들 속에서 신성시되여 왔다. 흔히 백학을 호의현상(縞衣玄裳,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이라고 일컬으면서 흰색과 검은 색의 배합이 신선함과 고고(孤高)함을 상징하며 백의민족의 상징적 형상으로 내세우기에 아주 적합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조선민족의 선민들은 신라 국초에 신령스러운 닭을 신앙했듯이 각종 새를 좋아하여 새를 토템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십분 많다. 그리고 고구려의 시조모인 류화 부인의 부리가 너무 길어서 세 번 칼로 잘라서야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하는 전설로 보아서 류화 부인이 바로 학이나 두루미 같은 새가 아니였을까 하는 추측도 해보게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문헌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백학을 조선민족의 선인들이 토템으로 삼았었다는 명확한 증거는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남영전의 시 「백학」을 “조선민족의 토템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5. “사슴” 考  남영전 씨의 시「사슴」((남영전 『백학』, 민족출판사, 1992년, 18-19쪽)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실안개 감도는 신비로운 천국에 울울창창한 인간세상 밀림에 오르내리고 넘나들어 첩첩림해속에 숨을 젠 빨간 산호 망망백설우에 달리젠 타는 인삼꽃 천국과 항간사이 림해와 백설 속에서 온순한 천사로 지치도록 지치도록 경건한 소망 기도 드리며 풍요한 푸르름 찾기도 하고 각축하는 신으로 날쌔게 달리여 사악한 도깨비 쫓아버리고 아늑한 락토도 이룩해간다 홍산호, 인삼꽃 추락하면 령험한 푸른 넋 받쳐올리고 재생하여 서리치는 위험을 떨친다 생명은 엉키여 가루가 되고 몸체가 찢기면 선혈로 적신다 때문에  그 발굽은 장업한 신당에서 춤추고 두 뿔은 호신칼로 억세게 솟고 울음은 축전의 창구소리 울린다 때문에 대붕의 날개, 신단수 가지와 함께 숭엄한 왕관에도 우거지고 장려한 전당에도 솟아오른다 때문에 움직이는 교량으로 신성한 비석으로 언제나 언제나 림해에 구름에 어둠속에 치솟고 신앙에 소망에 마음속에 깃든다 발자욱소리 오늘도 퐁퐁 뛰는 발자욱소리 깊이 잠든 심금을 울려주고 백두의 뭇별들을 밝힌다 하늘 가득 뭇별을 1987.4-5 조선민족의 신화, 전설, 민담이나 민속 등에서 사슴은 아주 중요한 상징적의미를 갖고 있는 동물형상으로서 증장한다. 이를테면 동명황 전설에서 흰 사슴은 지상과 천상을 매개하는 우주동물로 상징되여 있다. 동명왕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나서 이웃나라인 비류국을 합병하려고 할 때 흰 사슴을 해원의 큰 나무에 거꾸로 달아매고 주문을 외우자, 사슴의 울음소리는 밤낮 길게 하늘에 메아리쳤고 결국은 하늘에서 큰비가 쏟아져 비류국이 삽시에 물바다가 되여 비류국은 동명왕에게 투항하게 된다. 오른촌전설에서 대흥안령 제일 높은 정상에서 사는 신령스러운 사슴의 뿔은 하늘까지 뻗어 올라가서 우주나무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데 천신들은 사슴의 뿔을 타고 지상에 내린다고 한다. 바로 이런 까닭에 신라의 왕관은 사슴의 뿔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이는 록각숭배와 더불어 왕권의 신성함을 나타내고자 하였던 것으로 풀이를 할 수 있다.  조선민족과 만-퉁구스 제민족의 문화상징 체계 속에서 사슴은 영생과 재생의 상징이기도 한데, 그 원인은 다음과 같다. “사슴을 대지의 동물로 믿었기 때문이다. 사슴뿔은 나뭇가지의 모양을 하고 있고, 봄에 돋아나 자라면서 딱딱한 각질로 되었다가 이듬해 봄이면 떨어진다. 그리고 다시 뿔이 돋는다. 이러한 순환기능과 나뭇가지 같은 뿔을 머리에 돋게하여 카울수있는 능력을 지닌 동물은 사슴뿐이다. 따라서, 사슴은 대지의 동물로 여겼다고 할 수 있다.”(『한국문화상징사전』, 동서출판사, 1992년, 393쪽) 동서양의 신화를 막론하고 신화중의 가장 중요한 원형 중의 하나는 바로 “죽음과 재생(death and rebirth)"의 원형인데, 서양의 게르만인들이 이 원형을 토끼에게 기탁했다면 조선민족과 만 -퉁구스 여러 민족은 대지의 짐승인 사슴뿔에 부쳤던 것이다. 조선민족이 만-퉁구스 여러 민족과 깊은 문화적련관성이 있음을 감안할 때 사슴은 조선민족의 형성과정에서 어떤 씨족이나 부족의 토템이였을 가능성은 십분 많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존의 문헌으로는 사슴이 조선민족의 선인들의 토템이었다는 명확한 기록이 없다. 6. “白馬” 考 남영전 씨의 시「백마」((남영전 『백학』, 민족출판사, 1992년, 18-19쪽)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뭉게뭉게 타래치는 매지구름 헤치며 아득한 창천에서 줄달음쳐 내린다 지축을 울리며 살같이 달려 눈부신 번개불 일으키고 황홀한 서기를 실어온다 칡넝쿨 엉킨 수림을 꿰질러 더물 우거진 들판을 달려 한낮의 불 먼지 털고 오밤의 흑장막 찢어 헤빛을 안고 달빛을 안고 발자욱 닿는 곳에 하얀빛 뿌려준 살같이 달려온다 하연 보슴털은 부드런 탄자 넓직한 등허린 편안한 안장 갈망과 숙원 싣고 지성과 신념 싣고 자유의 령지 향해 아름다운 산천과 리상의 언덕 향해 살같이 달려간다 끝없이 씽씽 네 먼저 내 먼저 나래쳐 가는 피로를 모르는 개척자 끓는 피 멎더라도 날개와 발굽 접을줄 모르고 비장한 운명의 호용소린 광막한 우주에 망망한 광야에 메아리친다 메아리친다 메아리친다 1980.1 조선민족의 신화나 전설에서 말은 제왕의 출현의 징표로서 신성시한 동물신으로서 숭배되였다. 이를테면 부여의 금와왕의 탄생담에서 해부루가 탄말이 곤연(鯤淵)에서 큰 돌을 보고 마주서서 눈물을 흘리므로 이상하게 생각한 해부루가 신하를 시켜서 그 돌을 굴리게 했다. 거기서 금와를 발견했다는 기록 역시 초자연적인 세계와 감응하여 제왕의 탄생을 알리는 말의 신성성을 말해 준다. 그리고 신라 벽화중의 천마는 하늘과 교통하는 신성한 령물이고 박혁세의 탄생담에도 나타나는데, 신라의 첫임금 박혁거세는 말이 전해준 알에서 태여난다. 하지만 한국 김렬규 교수의 말처럼 “혁거세신화의 천마(天馬) ․ 동명왕신화의 비둘기들은 이를 동물신에 준한 존재로 이해하여야 할 것 같으며”( 김열규 저 『한국 문화와 역사를 위한 신화론-한 그루 우주나무와 신화』, 한국학술정보, 2003년, 135쪽) 신라인들의 토템이었다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남영전 씨의 시「백마」역시 “조선민족의 토템시”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 7. “까마귀” 考 남영전 씨의 시「까마귀」((남영전 『백학』, 민족출판사, 1992년, 37-38쪽)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날씬한 몸맵시 밤에다 맡겼습니다 어예쁜 옷차림 밤에다 맡겼습니다 구성진 목소리 밤에다 맡겼습니다 세인들의 경모와 찬탄을 죄다 밤에다 맡겼습니다 가장 잔혹하고 가장 무자비한 밤에다 맡겼습니다 하건만 눈물 없이 락심 없이 실망도 없이 밤을 꾸짖지 않습니다 가슴 아픈 시연과 문득 깨달음은 다만 반짝이는 눈동자가 되었습니다 경계하는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침침한 밤 림해와 황야에 날아올라 사람 사는 마을가를 날아예며 이상스러운 징조를 우짖습니다 야수들의 주검을 우짖습니다 재앙을 물리치자 우짖습니다 소식을 전하느라 우짖습니다 숨은 사정 사라지면 곧 시름없이 나무우에 되돌아갑니다 욕하지 마시라 죽이지 마시라 그에게 높다란 막대기 세워주고 그에게 쌀알을 뿌려주고 그에게 마실 술 주고 그에게 고기를 주고 그에게 향불 올려 숭경하시라 그는 인축 위해 순시하는 신령입니다 그는 밤에 경보를 알려주는 신령입니다 1991.10 까마귀는 조선민족과 만 - 퉁구스 제민족의 민간문학이나 민속에서 아주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신령스러운 새이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는 해속에 세발 달린 까마귀-삼족오(三足烏)가 아주 유명하다. 『삼국사기』에는 까마귀가 국가를 상징하는 대목이 있는데, 고구려의 대무신왕은 북부여와 한창 전쟁을 벌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 날 북부여의 대소왕이 머리하나에 몸이 둘이 달린 붉은 까마귀를 얻었다. 이것은 본 북부여의 신하가 “까마뀌가 검은 색인데, 붉은 색으로 변하였고, 머리 하나에 몸이 둘이니, 아것은 두 나라가 합병될 징조이므로 왕께서 고구려를 정복하겠습니다.”고 말했다. 이를 받아본 고구려왕은 오히려 기뻐했다. “검정색은 북방의 빛인데, 남방의 빛인 붉은색으로 되었다. 붉은 까마귀는 상서로운 것이다”(『삼국사기』 권14 고구려본기 대무신왕)여기사 붉은 까마귀는 곧 고구려를 상징한다.『삼국유사』에는 그 이름이 까마귀를 뜻하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부부의 신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까마귀와 태양숭배와 달숭배 사이의 깊은 련관성을 시사해준다. 그리고 신라의 사금갑(射琴匣)의 전설도 신(神)의 사자로서의 까마귀의 신령성 및 까마귀숭배의 신라민속을 잘 보여준다. 까마귀는 하늘과 땅, 땅과 저승 사이를 이어주는 사자의 역할을 하고 있고 우주조(宇宙鳥)라고 할 수 있다. 조선민족과 만족을 비롯한 만-퉁구스 제 민족들이 까마귀를 아주 중요한 자연신으로 숭배하거나 신앙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설사 이렇다고 하더라도 까마귀가 조선민족의 어느 씨족이나 부족이나 부락련맹의 토템이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리고 더구나 까마귀가 “조선민족의 토템”으로 된 적은 없었다고 단정할 수 있다. 8. “범” 考 남영전 씨의 시「범」((남영전 『백학』, 민족출판사, 1992년, 20-21쪽)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독버섯의 향취 매콤한 수림속 수리개의 피발톱 비릿한 청바위굽에 시퍼런 두 눈알 불여우 간교한 얼림수도 승냥이 어리석은 둔갑질도 속속히 조명하는 환한 대낮 캄캄한 오밤 속세의 음향 뚫어지게 통찰하고 불의와 사악을 원쑤로 분노하노라 고함치노라 너절하고 어리석음이 꼴사나와 뒤쫓노라 덮치노라 물어뜯노라 잔뼈 하나 남기잖고…… 선량한 은총을 베풀려 숲속에 숨고 동굴에 들기도 한다 탐욕스런 무리 쫓아버리고 경사로운 인연 맺어주고도 자취없이 소리도 없이 고요속에 묵묵히 산중으로 돌아간다 산속에서 산 지키고 산을 아끼는 산중지왕 산중신령 피와 살 풍우에 썩더라도 골격은 하냥 꿋꿋해 그 위풍 름름하고 그 기세 도도하다 독버섯의 향취 매콤한 수림속 수리개의 피발톱 비릿한 청바위굽에 범 범 범 새파란 한 쌍의 눈길이여. 범은 단군신화에서부터 조선민족의 신화, 전설, 민담 등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형상이다. 단군신화의 범은 곰과 함께 사람이 되고자 원했으나 조급하여 금기를 지키지 못하고 실패했다. 이를 부족 토템으로 보아 범 부족이 곰 부족에게 패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중국의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예족은 범의 사당을 지어 범을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토템숭배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토템일 가능성은 십분 있다. 조선조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조시기에 조선반도의 일부 지역들에서는 범을 산군(山君)이라고 하여 무당들이 도당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리하여 범숭배 신앙은 산악숭배사상과 융합되여 山神 또는 山神의 死者를 상징하게 되었다. 이는 조선반도 지방 도처에서 신봉하는 山神을 모신 산신당의 산신도(山神圖)에 나타나 있다. 한국의 여러 지방들에서 필자는 이런 산신도를 직접 산신당에서 본적 있다. 이와 같이 범은 조선민족의 신수(神獸)로 받들어진 것은 오래며 이런 범 신앙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를테면 1988년 24차 서울 올림픽 때 한국에서 상징물로 호돌이, 즉 새끼 범을 정한 것으로부터 알 수 있다, 범은 조선민족의 선사시대에 어느 씨족이나 부족이 토템으로 숭배했을 가능성이 십분 많으나 후에 와서는 오래 동안 자연신, 즉 산신 혹의 산신의 사자로 신앙되었으나 결코 “조선민족의 토템”으로 승화된 적은 없다. 9. “장닭” 考 남영전 씨의 시「장닭」((남영전 『백학』, 민족출판사, 1992년, 35-36쪽)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어미 품속 받아안은 소망에 스스로의 생의 목마름에 꽈악 닫힌 요람을 흐리터분 숨막힘을 단단하게 갇힘을 쪼아냅니다 자유의 꿈을 솟는 해 떠올리며 온세상을 흔들며 홰를 칩니다 귀신이 물러가는 때 밤의 장막을 제치는 때 부드러운 털 강포를 비웃고 눈부신 날개 몽매를 가시고 사나이 성미 나약함을 다잡아 볏의 불길 얼음도 녹이고 볏의 빛발 어둠도 밝히여 광막한 우주 소생합니다 왕성한 생명이 태여납니다 홰를 칩니다 힘찬 목으로 뜨거운 피로 우렁찬 목청으로 날마다 날마다 세세대대로 머얼리 아스라한 바다가에서 으슥하니 우거진 수림속에서 사람이 사는 곳 어디라없이 지지 않는 태양을 붉게 타는 태양을 머리 우에 떠이고 홰를 칩니다 어둠 빛이 가시지 않는 한 혼돈이 가시지 않는 한 쪼애냅시다 홰를 칩시다 1991.5 닭은 울음으로 새벽을 알리는 태양빛의 도래를 예고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닭은 태양의 새이다. 태양을 숭배하는 조선민족의 선민들이 태양의 새 닭을 아주 중요한 자연신으로 숭배하게 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닭은 태양관련 상징성은 그 자체 속에 신성성을 함축시키고 있다. 그,리하야 닭은 신성한 새로 구체화 된다. 신리의 심알지도 닭이우는 수풀속에서 태여났다고 하닌 달과 련관되고 신라의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은 계룡(鷄龍) 낳았다고 하니 닭과 사람사이에는 혈연적인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고대 신라인들의 원시적 신앙의 일단을 보아낼 수 있다. 그래서 신라는 숫제 계림(鷄林)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닭은 조선민족의 상고시대나 고대에 조선민족의 어느 씨족이나 부족의 토템이었을 가능성이 십분 많으나 민족적인 토템으로는 승화되지 못했다. 10. “황소” 考 남영전 씨의 시「황소」((남영전 『백학』, 민족출판사, 1992년, 24-26쪽)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묵묵히, 묵묵히 걸어갑니다 솔 내음이 흐르는 공간에서 도두룩한 언덕뿐인 고장에서 그 맑은 눈동자 번쩍 뜬 순간부터 사색이 없어서랴 기개가 없어서랴 커다란 위속에다 온갖 어둠 삭이며 아스라이 머나먼 길 떠났습니다 하늘은 창창하고 물은 망망한데 그는 자그마한 섬의 밑받침 그는 이 땅이 뻗어가는 시조입니다 그의 흔들림은 땅의 진동이고 그의 숨결은 땅의 호흡입니다 그는 꿈에도 한사코 땅을 그립니다 물은 망망하고 땅은 광막한데 그는 쓸쓸한 황야의 희망이고 그는 희망이 무르익을 징조입니다 돌밭과 더불어 눈얼음과 더불어 가시밭과 더불어 진흙탕과 더불어 땀과 피와 눈물을 흘리면서 움직이는 골짜기를 싣습니다 눈부신 빛발을 싣습니다 밤낮없이 언제나 가고갑니다 춘하추동 언제나 가고갑니다 가시길, 벼랑길도 아랑곳없이 운명의 파란곡절 탓함이 없이 풀포기만 있으면 씹어삼키며 그보다 더 큰 욕망 없답니다 하건만 겨레붙이 살해된 곳이면 피자국이 진작 들풀에 잠겼어도 눈에는 대뜸 피발이 서고 굽을 차며 사납게 영각합니다 분노한 웨침 격노한 웨침 구슬픈 심혼을 불쌍한 령혼을 다시금 불러 깨웁니다 묵묵히 묵묵히 걸어갑니다 넘어지지 않는한 숨이 붙어있는한 아스라이 머나먼 길 가고갑니다. “아버지 없어서는 살아도 소 없어서는 못 산다”는 속담처럼 농경사회에 일찍 진입했고 또 그것도 도작문화권에 속한 조선민족에게 있어서 소는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존재였다. 육축가운데서도 소는 조선족에게 있어서는 으뜸 가는 존재였다. 그래서 조선민족은 소를 생구(生口)라고 불렀고 실제로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았다. 소를 생구라 함은 그만큼 소를 소중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농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가축이자, 재산의 중요한 일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소가 조선민족의 생활에서 지극히 중요한 위치에 있기는 했지만 소를 토템으로 숭배했다는 문헌적이나 고고학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므로 남영전 씨의 시「황소」를 “조선민족의 토템시”라고 할 수 없다. 11. “羊” 考 남영전 씨의 시「양」((남영전 『백학』, 민족출판사, 1992년, 27-28쪽)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피여오른 향불연기 흰 구름의 정갈함 그리고 경건한 기도가 하아얗게 새하얗게 차림새와 마음으로 엉켰습니다 잡초가 광야에 우거직 돌부리 황산에 웅크려도 아득히 머나먼 하늘밖의 하늘에서 큼직한 곡식이삭 물어와 마른 땅에 싹이 터 푸르른 강이 되고 굶주린자 푸짐하게 밥사발을 들었건만 제만은 낟알과 인연이 없어 저물녘 풀들이 서식하는 그 곳에 저홀로 바장입니다 풍설은 드러난 등어리 후려치고 얼음은 떨리는 몸뚱이 묻으려는데 따스한 제몸의 털옷으로 차디찬 세상에다 봉헌해 헐벗은자 몸을 감쌀 옷이 생기고 체류자는 먼길 떠날 노래 생겨도 제만은 몸 둘 곳 찾지도 않고 차디찬 밤 별들이 사학하는 그 곳에 저홀로 사색합니다 줄 정은 죄다 주었건만 봉헌할건 죄다 바쳤건만 마감에는  사람들의 혼암한 죄 대신해 사람들의 불선한 악 대신해 쫓겨갑니다 황막한 들판으로 눈 쌓인 골짜기로 더더욱 위엄스런 제단 앞에 죽음을 당합니다 기도하는 아침녘에 죽음을 당합니다 양, 양, 양 하아얀 차림새와 마음으로 구슬프게 웁니다. 양은 조선민족의 신화, 전설, 민담에 별로 등장하지 않는 형상이다. 그것은 아마도 조선민족의 문화가 양을 치는 유목문화와는 별로 인연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이는 유목문화와 많은 련관성을 가진 서양문화권의 상징계통에서 양이 차지하는 비중과는 아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특히 기독교문화에서 그리스도의 보살핌을 받는 사람들이 목자가 돌보는 양떼에 비유되고 있다. 그러므로 남영전 씨의 시「양」을 “조선민족의 토템시”라고 할 수 없다.
687    민족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댓글:  조회:4153  추천:0  2015-09-07
―토템시 창작을 시도한 동기            /남영전 1. 토템은 우리 민족 영혼의 뿌리 1971년 23세 때, 한문시로 중국문단에 데뷔한 후 지방지로부터 중앙지에 이르기까지의 청탁원고를 부지런히 써내는 행운이 있었으나 8년이란 이 시기의 글들은 뿌리없이 허공에 떠도는 구름이란것을 후에 깨달았다. 80년대를 한 해 앞두고 꿈에서 깨여난 나는 진정한 시의 의미를 찾는 탐구의 길에 올랐다. 한수의 시를 위해 늘 비지땀을 흘린 보상인지 나의 시「할머니」와 첫시집 『상사집』은 선후로 전국문학상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에 대한 탐구는 이것으로 만족할수는 없었다. 80년대 중반 내가 또 새로운 출발을 시도할 무렵, 중국시단으로부터 나의 부러움을 자아내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뿌리를 찾는 열, 그중 토템신화를 문화적으로 다룬 시가 밤하늘의 왕별마냥 나의 이목을 끌었다. 따져보면, 민족은 사실상 문화로 구별된다. 민족문화심리를 깊이 파고들면 토템신화를 론의하지 않을수 없다. 토템신화는 여러 가지 소박한 원시적 관념이 침전되고 응결된 민족문화심리의 심층구성의 원시적 축적층이다. 여기서 민족령혼의 본원이 있으며 근원이 있으며 인간성의 본연이 있다는것은 학자들의 일치된 결론이다. 때문에 20세기는 다른 위대한 발견과 함께 신화의 의미를 발견한 시대로 주목되기도 한다. 형제민족 시인들의 선지선각이 나에게 준 큰 충격이였다. 우리도 뒤떨어져서는 안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이 나를 신비의 세계로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2. 우리 민족도 토템들이 적지 않다 예전에 나는 줄곧 한개 민족은 하나의 토템만 가진것으로 여겼다. 염황후손으로 자칭하는 한족은 룡을 토템으로, 단군을 모시는 우리 민족은 곰할머니를 토템으로 숭배한다는것만 알고있었다. 토템에 대한 나의 천박한 지식은 학문에 대한 나의 수양도 문제가 되지만 실상 이 면에 관심을 갖고 유관자료를 찾을래야 찾을 길이 없었던것이 국한성이기도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중국이 개방정책을 실행하면서 서방철학가 사르트르, 레위스트로스, 프로이드, 도그라스, 풀레이세 등의 토템연구성과가 중국학자들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하였던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80년대 심지어 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중국학자들이 펴낸 토템연구 저서들은 퍽이나 어설프고 미숙하였지만 그래도 그들의 연구성과를 참조하여 우리 민족의 토템물을 찾는데는 큰 도움이 되였다. 안타까웠던것은 그때도 그랬거니와 지금까지도 우리 민족토템저서는 공백이란 점이다. 어쨌든 우리 민족의 토템을 찾는것은 우리 민족문화의 뿌리를 찾는 중요한 일이였기에 나는 소수민족의 토템, 그리고 세계 여러 민족의 토템물을 돌아보면서 우리 민족 시조탄생신화에서 우리 민족의 토템을 하나하나 찾아내였다. 지금에 와서 중국 권위학자들의 심도있는 토템연구저서를 읽으면서 자신이 찾아낸 우리 민족의 토템이 틀리지 않았다는것이 립증되여 마음이 놓인다. 1996년에 발행된 중국의 권위학자 리병해박사의 고대부족문화연구 저서에서는 부여족의 후예인 고구려 시조 주몽의 탄생 신화를 론하면서 고구려는 태초에 새토템, 태양토템으로부터 후에 또 닭, 양, 소, 말 등 육축토템까지 분화되였다고 자상하게 서술하였다. 오직 원시인들의 원초적인 사유방식에 준하여 조상들의 탄생이 천체, 동물, 식물과의 혈연관계, 친족관계가 밝혀진다면 우리는 곧 토템을 찾은것이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은 하늘신을 상징, 아름다운 녀인이 된 웅녀, 단군왕검의 출생과 관계가 있는 신단수, 신라시조신화에서 박혁거세를 탄생시킨 백마, 왕비 알영을 낳은 계룡 또한 사소왕녀가 박혁거세와 알영을 탄생할 때 큰 도움을 주었던 솔개, 신라 석탈해와의 탄생과 관련이 있는 까치, 미추왕의 조상 김알지의 탄생과 관계가 있는 닭, 고려시조전설에서 왕건의 조상 호경을 구해준 호랑이, 호경산신의 아들 강충, 강충의 증손자 작제건의 안해는 룡왕의 딸 룡녀, 아달라왕 때 영호랑과 오세녀부부는 해와 달의 정(精)인 일월신…. 신비한 신화의 표현을 보면 우리의 조상은 하늘이 내려주었고 생명, 혼,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연과의 조화로 탄생하였으며 형형색색의 다종다양한 생명형식을 소통하여 모든 생명형식이 서로 친족관계가 있다는것을 말해준다. 때문에 우리 민족도 족조발상신화가 풍부한 민족이며 씨족이나 부족의 토템 또한 다종다양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3. 토템은 과거뿐이 아닌 오늘과 미래 현대에 와서 많은 철학대가들이 토템에 관심을 돌리는것은 토템이 현실사회와 미래지향성에 자못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있기때문이다. 프로이드는 정신분석을 통해 현대인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지울수 없는 옛날 토템의 력사흔적이 남아있다고 하였고, 레위스트로스는 가장 현대적인 과학정신조차 토템식 원시적 사유원칙을 “합법화하고 또 그 권력을 회복”하는데 유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0년 4월 15일에 세상을 고별한 사르트르는 림종 직전에 이란 문장으로 상고시대의 토템관념을 극찬하면서 토템식 형제관계의 관념으로 현실을 재조명하여 현대인의 생활의 새로운 질서를 재건함으로써 “매개인이 모두 사람이 되게”하는 목표에 이르기를 갈망하였다. 대가들의 연구성과는 나로 하여금 토템신화는 그저 꾸며낸 허황한 이야기라는 무지몽매에서 뛰쳐나오게 하였으며 이것이야말로 과학이나 력사가 제시 못하는 사실 즉 가장 근원적인 진실이라는것을 알았으며 토템숭배가 형성한 민족문화원형이 민족문화의 력사적 발전에서 일으키는 영구한 의의를 보았고 민족문화심리의 심층구조로서의 원시적 침적층이 현대문명건설에서 일으키는 활성과 자양분 역할을 보았다. 그래서 내가 토템신화를 시에 도입한것은 토템의 영원한 가치원소를 환기하여 초기 인간의 아름다움과 착함에 대한 관념을 현실에 융합시키며 토템숭배의 풍만한 생명력이 현실적의의를 가지게 함으로써 잃어버린것을 다시 회복시키고 다시 주조하여 민족문화정신의 성장과 발전을 추진시키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토템시를 통해 우선 내가 찬미하고 싶었던것은 천인합일체(天人合一體)인 우리 조상의 숭고한 품성과 정신이다. 긴긴 세월 엉기엉기 걸어오다가 / 컴컴하고 적막한 동굴 속엔 왜 들었누? / 쓰고 떫은 약쑥 신물나게 맛보고 / 맵고 알알한 마늘 몸서리나게 씹을제 / 별을 눈으로 / 달을 불로 / 이슬을 피로 받아 / 아릿답고 날씬한 웅녀로 변해 / 이 세상인간들의 시조모 되였느니라 …… 끓는 피와 담즙을 젖으로 / 무던한 성미와 도량을 풍채로 / 끈질긴 의지와 강기를 뼈대로 / 날카론 발톱마저 도끼와 활촉 삼아 / 한숨도 구걸도 없이 / 길 아닌 길을 찾아 / 첩첩 천험도 꿰뚫고 나갔더라 「곰」에서 의식적인 생명진화과정, 민족의 영광스런 생명의 해돋이 그리고 그 심리, 성격, 령혼의 발생을 통해 우리 민족은 덕성과 심신의 수련을 거쳐 순결하고 선량하고 수양 있는 민족, 하늘의 뭇별을 한눈에 받아들이고 마음에 우주를 품어 안는 흉금이 드넓은 민족, 천성적으로 진보와 정복을 추구할 뿐더러 완강하고 견인하고 백절불굴의 의지를 지닌 민족이라는 것을 현시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민족토템관념의 원천에서 현실과 연결고리를 찾아 옛날, 오늘, 미래를 다채로운 인생화폭에 조화롭게 응결시켜 인간의 본성이란 높이에서 민족의 넋을 다시 주조하고 새 우주를 이룩하는데 모를 박았다. 첫째, 도덕가치에 대한 토템묘사에서 착함을 구가하여 순결하고 선량한 인간성의 본연을 환기. 지금의 인류사회는 과학기술이 날로 발전하지만 사람들의 도덕은 날로 쇠퇴하여 사람들이 갈수록 자아를 상실하고있는 현실이 심각하다. 이런 현실에 직면한 우리는 가치 있는 전통적 도덕관념을 제창하지 않을수 없다. 한 것은 이런 전통관념은 자체의 영구한 생명력으로 자연스럽게 현대화 미래에로 진입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있기때문이다. 바로 이런 리해에 근거하여 나는 토템숭배에서 인성의 본연을 끄집어내여 도덕적 진리에로 나아가는 언어로 승화시켰다. 침묵해야 할데는 침묵하고 참고 견디여야 할데는 참고 견디는〈흙〉, 화를 받고 오해를 받으면서도 선행에 집착하는 〈까마귀〉, 인간의 평화와 복지를 영위하기 위한 존재인 〈범〉, 집안 사람까지 다투지 말라는〈뻐꾹새〉 등은 모두 깨우침의 상징이다. 둘째, 륜리환경에 대한 조명으로 토템묘사에서 생명의 경난과 고통을 묘사하여 정의와 동정과 우애와 호조의 정신을 환기. 오늘날 사람들에게 결여한 것은 바로 민족 유년기시기의 박애와 정과 호조정신이다. 우리는 물론 인간세상에는 아직도 진정이 있다고 말할수 있으나 민족의 유년기에 비하면 그 말은 반디불을 밝은 달에 비기는데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토템묘사로 심령의 량지(良知)를 부르고 정의와 동정을 부르고 화목과 온기를 불렀다. 〈인간〉에 대한 〈힘껏 도움〉이 오히려 〈인간〉의 질투와 배척을 당하고 인애(仁愛)와 선량은 도리어 랭혹과 증오를 초래한 〈고래〉, 괴로움도 쓰라림도 답답함도 속시원히 터놓을 곳 없는 〈거북〉, 인간세상의 〈가장 잔혹한 무게〉,〈가장 잔인한 질식〉에 매몰되여 눈과 입이 봉해진 〈개구리〉는 우리에게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상징물이고 〈산〉은 인간세상에서 소외되고 배척받았으나 자신의 힘으로 환경을 개변하고 화목과 온기를 창조하는 덕행 높은 형상이다. 셋째, 인생의 의의에 대한 사고로 토템묘사에서 사심 없는 헌신정신을 찬송하여 인간활동의 진실한 가치를 환기. 도덕관념의 위기는 필연코 가치판단과 가치선택의 오류를 가져오게 되여 인간의 정신적 결함과 실책을 조성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을 〈이화〉하는 환경을 창조해 낼수 있다면 이런 환경을 성공적으로 개조할수도 있어 이화현상을 제지할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관념과 신념으로 나는 인생의 가치방향과 가치원칙을 내세워 인간의 진실한 가치를 가송하고 인생의 진정한 의의를 웨쳤다. 꾸준하게 일하고 사심 없이 봉헌하는 〈황소〉, 생명이 훼멸될 위험이 기다려도 격정 가득히 정의를 위해 주저 없이 앞으로 달리는〈사슴〉, 굶주림과 추위는 자기에게 남겨 세상과 사람을 구원하는〈양〉은 봉헌정신의 상징이다. 넷째, 민족과 인류의 희망에 대한 열렬한 추구로 토템묘사에서 원시적 력도감을 전시하여 창업의 원대한 포부, 격정, 힘을 환기. 토템숭배의 중요한 가치의 하나가 바로 작렬하는 격정, 놀라운 용감성, 무비의 견인성, 두려움 없는 모험성, 빼여난 상상력과 암흑을 물리치는 광명의 수호신이자 희망의 사신인 〈사자〉, 리상을 추구하고 또 그것을 위해 헌신하는 〈백마〉, 목표를 향해 번개나 우뢰와 같이 돌진하는〈솔개〉등은 모두 미래를 향한 상징물이다. 둔재인 내가 분에 넘치는 일을 시도한 탓으로 12, 3년이란 시간을 거쳐서야 비로소 31수의 토템시를 세상에 내놓았다. 문단의 인정으로 수확의 기쁨도 있지만 채 못 완성한 토템시 때문에 줄곧 골머리를 짜고있는것이 또한 나의 사정이기도 하다. 1999년 4월 18일 장춘에서
686    중국 조선족 시문학의 위상(자료) 댓글:  조회:5166  추천:0  2015-09-07
중국 조선족 시문학의 위상         /들우물  ◈ 이 글은 2000년 5월 26일, 중국 연길시 대우호텔에서 가졌던 문학세미나  주제 발표문이다.   1. 들어가는 말  솔직히 말해, 나는 중국 조선족 시문학의 위상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물론, 한국 문단사회에서야 문단데뷰 이래 현재까지 15년 동안 시 창작과 문학평론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지만, 그동안 중국 조선족 시문학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을 갖거나 어떤 구체적인 연구 노력을 기울여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찌기, 한국의 여러 문학 단체에서 주관하는 문학행사를 통해 중국을 방문할 기회가 여러 차례 주어졌었지만 그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자격을 묻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지 못해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난 1998년 2월부로 격월간 문학 종합지 「동방문학」을 창간, 발행해 오면서 중국 조선족 문학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러던 중 한춘․장지민․장정일․정세봉․석화 씨 등 몇몇 문학인들을 만나게 되었고, 허련순․류순호 씨 외 몇몇 시인․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작은 만남이 계기가 되어 문학 세미나를 함께 하는, 적극적인 문학 교류 차원의 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에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또 동족의 일원으로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며, 동시에 동포로서의 이해와 사랑을 전제로 하는 화합과 대동단결을 이루어야 한다는 희망도 갖게 되었다.  특히, 중국 조선족 시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약 3개월 동안에 걸쳐 월간 「연변문학」 11권(1999년 1월호부터 11월호까지)과 대표시인선집인 듯한 합동시집의 일부(21명의 110편), 그리고 격월간 「장백산」 1권(1999년 2월호)과 개인 시집 등을 통하여 전체 73명의 시인 작품 580여 편1) 정도를 정독했다는 사실이 그나마 이 글을 쓰는 데에 용기가 되어 주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2. 조국광복(1945. 8. 15) 전에 태어난 시인군  우리 한민족(韓民族)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곧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기(1910~1945)일 것이다. 이 시기를 청․장년기로 살던 우리 선대(先代)가 가장 고생을 많이 했을 터이고, 그 다음이 바로 이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가슴 속에 ꡐ바위ꡑ(리 욱, 1935년 작) 같은 응어리를 품고 살았으며, 동시에 새로운 삶에 대한 꿈과 희망을 안고 조국을 떠나 멀리 러시아, 중국, 일본 등지로 유랑하여 정착하기까지 갖은 고초를 겪었으리라.  굶주린 창자  헐벗은 알몸들  지금 엄동설한 이 삼경에  누구의 집 모퉁이에서 지낼가  없나?  누가 그들에게  따스한 물 한모금  김나는 밥 한숟갈  그들에게 줄 사람  없는가, 없는가……  모대기다 못해  급기야 기한에 지는  한 맺힌 이슬  누구 탓일가?  누구 탓일가?  이 밤이  왜 이다지 찰고?  아,  왜 이다지 찰고……  ■ 설인의 작품 「한야에」 전문, 1940년 작  오늘도 끝없이  울부짖는 소리 들었나니  언제나  가시 덤불속에서  아득한 지평선 너머의  아름다운 신화를 찾는  순례자의 발끝에  피방울이 맺힌  서글픈 소식  ■ 설인의 작품 「소식」 전문, 1942년 작  먼 지평선에 가뭇없이 사라진  두가닥 수레길은  벌겋게 입을 벌린  황야의 어두운 추억  젊음이 주름살에 옥매인  홀로 난 어머니의  기박한 운명을 끌고 가던  달구지의 그 삐걱소리  울어서 실성하던 산  얼어서 그만 굳어진 하늘  내 더벅머리우에 떨어지던  오, 불쌍한 어머니의 눈물……  세월은 가고  겨울뒤끝에 봄은 오고  벌판 저 끝 어딘가서  생명의 파란 곡선이  수레길을 지우며 조용히 오건만  내 서러운 가슴속에  멀리 뻗어간 두가닥 수레길엔  달구지의 그 삐걱소리  오늘도 깊이깊이 패여온다.  ■ 임효원의 작품 「황야의 추억」 전문  앞의 두 편은 1940년과 1942년에 창작된 설인의 작품이다. 일본인들의 칼날(가시덤불)과 가난을 피해 살고 싶어도(아름다운 신화를 찾는) 살 수 없었던 절망적 상황을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비록, 시적화자(話者)는 같은 상황에 있지는 않지만 당시 우리 선대(先代)가 어떻게 살았으며 어떻게 죽어갔는가를 비유적인 표현으로 고발하고 있다.  뒤의 작품은 임효원의 「황야의 추억」 전문으로 시적화자인 ꡐ내ꡑ가 어머니와 함께 꿈(봄)을 찾아 달구지를 끌고 어디론가 가야했던, 어린 시절의 눈물어린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나보다도 어머니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는데, ꡐ어머니의 기구한 운명ꡑ이란 것이 겉으로 드러나기는 역시 배고픔과 추위이지만 그 진실은 ꡐ황야의 어두움ꡑ과 ꡐ내 서러운 가슴 속ꡑ에 숨어 있다.  위에 거명한 시인들은 1907년으로부터 1944년도 사이에 중국․한국․일본․러시아 등에서 태어나 중국 대륙에 정착한 세대로, 일제 강점기를 유아기로만, 혹은 아동기까지, 혹은 청소년기까지, 혹은 청년기까지 보내야 했던 세대다. 따라서 이들의 부모세대보다는 고생을 덜했다고 판단되지만 역시 당대의 가난과 문화 풍속이 다른 중국이라는 나라의 낯선 사회제도에 의해 양육되고, 적응해야 했던 시련과 고통을 감당해내야만 했으리라.  그러나, 조국이 해방되고 나서 50년이란 긴 세월이 이미 흘렀고, 중국을 구성하는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아 오면서 이들은 과거의 아픈 역사에 집착할 수만도 없었다. 가난과 적응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고, 미래 사회에 대한 꿈을 또한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ꡐ새 화원ꡑ(리 욱, 1940년 작)에 꽃씨를 뿌려야 했고, 땅속 깊이 뿌리박은 ꡐ질경이ꡑ(임효원, 1956년 작)처럼 억세게, 그리고 무성하게 자라나야 했다. 그러는 가운데 한반도에서는 동족상잔의 남북전쟁이 터지고, 자의든 타의든 전쟁터에 나아가 싸워야 했다.(김철의 「통행금지」, 「생의 노래」 등) 그리고 3년 1개월 동안 지속된 그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동포들이 죽어야 했던가를 뼈 아프게 반성하면서(임효원의 「아, 민들레……」, 1979년 작) 남북이 분단된 채 오늘날까지도 적대시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김철의 「동강난 지도 앞에서」 1989년 작) 또 그러면서 역사의식이 싹트게 되었으리라.(설인의 「호태왕비」 1995년 작)  이들은, 줄곧 80년대 중후반까지 북한과 교류하면서 우리 말과 우리 글로 문학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한족(漢族)의 문화로 흡수되지 않고 소수민족 가운데 가장 정체성이 강한 자치주를 형성해 올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특히, 중국과 한국의 수교로 오늘날은 남한의 문학인들과 교류를 보다 왕성히 하면서 어느 정도는 남과 북을 이해하게 되었고, 또 자신의 뿌리도 의식하게 되면서 비로소 마음 속의 고향인 조국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아가, 한민족의 대동단결과 화합을, 그리고 통일을 염원하고 모색하는 새로운 바람이 일기도 했다.  오, 고향의 언덕 마음의 탑아  너는 말없이 내 가슴에 솟아있고  나는 네 혈관을 흐르는 한방울 피  너로 하여 내 가슴은 언제나 끓고 있다.  ■ 김성휘의 작품 「고향의 언덕 마음의 탑」 제11연  고향이 고향이 아니다. 내가 태어나 자란, 그런 단순한 고향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하고 나의 어머니를 있게 했던 우리의 뿌리로서의 고향이다.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선대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살던 곳, 바로 내 마음 속에나 있는 고향이고, 내 혈관 속을 흐르는 피와 같은 생명 그 자체로서의 고향이다.  병든 마음  무서운 설음  바람에 덜라  들국화 곱게 웃는  저 벌로 산으로  해의 문안을 가자  남에서 북으로  서에서 동으로  거침없이 부는 바람  가시를 뽑으며  가슴을 헤치고  바람타고 가자  바람타고 오자  동서남북 하나로 일어나  백두의 존엄을 안고  동해의 기량을 보이며  갈매기도 가자  수리개도 가자  두 날개 한 몸뚱이  흰옷 입은 사람아  떳떳이 떳떳이  하나로 가자.  ■ 김성휘의 작품 「하나로 가자」 전문  우리는 비록 남북이 갈라져 있고, 또 중국에, 일본에, 러시아에, 저 남미에, 지구촌 곳곳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지만 백의민족(白衣民族)으로서 똘똘 뭉쳐 하나로, 당당하게 살자는 것이다.  조국이란  내 잠들었을 때에도  후둑후둑 뛰는 내 심방 가까이에 앉아  맥박을 세여보는 보모입니다.  ■ 김성휘의 작품 「조국, 나의 영원한 보모」 제1연  이처럼 ꡐ고향ꡑ에 대해 눈을 뜸으로써, 바꿔 말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 의식하면서 ꡐ조국ꡑ이 나를 키워주고, 지켜주는 보모로서 다가오는 것이리라. 허룡구의 「먼동」, 리임원의 「동해바다」 등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물론, 같은 세대라 해서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갖는 것은 아니다. 주의․주장이 다르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이들 가운데에는,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해서 느끼는 생활정서를 중심으로 노래하는 시인들(강효삼․김문회․한춘)도 있고, 자연적 요소나 현상을 통해서 인간 삶의 지혜나 진리 혹은 아름다움을 유추해 내는 시인들(김응준․리삼월․리상각)도 있다. 또한 인간의 사랑을 중심으로 노래하는 시인(김태갑)도 있고, ꡐ대중적 정서ꡑ 읽기에 발 빠르게 움직이는 시인(석화)도 있고, 대자연의 외형적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인(김경석)도 있고, 인간 존재나 현실적인 삶에 대한 관심을 보이되 사유세계 속의 주관적 언어표현을 즐기는(?) 시인(박화․한춘)들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3. 조국광복 후에 태어난 시인군  1945년 이후에 출생한 세대는 그 앞 세대보다는 고생을 덜했음에 틀림없다.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크게 방황하지도 않았고, 제국주의 일본에 의한 직접적인 압제와 수탈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생이 있었다면, 5, 6, 70년대의 가난과 중국내 정치 사상적 변화와 함께 ꡐ적응ꡑ해야 했던 시행착오와 그 시련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80년대 전까지 비교적 제한된 국가들과만 교류를 해왔기 때문에 상대적 빈곤과 허탈감을 크게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런 환경상의 여건 때문인지 조선족 시인들은 자국내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을 소재로 취하여 시를 쓰는 일이 드물었다. 그리고 앞 세대들이 가졌던 역사나 뿌리 의식이 또한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일상 생활속에서 부딪치고 경험해야 하는 데에서 갖게 되는 개인의 솔직한 느낌이나 감정, 생각이나 사상 등을 드러내는 시들이 흔치 않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실 문제를 비판하거나 간접적으로 풍자하는 작품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한소리의 「고무풍선」 「자멸」 「방황」이라든가, 리송주의 「멀고도 가까운 별」이라든가, 전홍일의 「온실효과」 「참새들」 「시골의 설」 등은 그 내용과 표현 방법면에서 미숙하긴 하나 사회비판의식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개는 천편 일률적으로 자연현상이나 그 구성물에 대한 외양묘사나 감정이법으로 사회적 목적성을 띠는 객관화된 인간 삶의 유형을 환기시키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점에서 우리는 분명히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 하나는, 자신의 작품 안에서 시인들이 점점 솔직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시를 쓰는 근본 목적과 관련된 문제인데, 이해하기 쉽게 빗대어 말하면, 지금 붓나무를 소재로 시를 쓴다 할 때 붓나무의 모양새나 빛깔 그 밖에 생태학적 특징 등을 중심으로 묘사하기 마련인데, 이 때 붓나무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어떤 특성 자체를 들어낼 목적은 결코 아닐 것이다. 만약, 그것이 목적이라면 ꡐ식물학ꡑ이라는 과학에서나 해야 할 일이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시를 쓰는 시인 자신의 개인적인 정서를 드러내기 위해 끌어들여진 대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옛 시들이 대체로 어떤 대상 자체를 표현 목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많았다면 오늘날의 시들은 그 대상들을 통해서 다름아닌 시인 자신의 주관적 정서를 드러내고, 또 그럼으로써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적 반응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속으로 끌어들여지는 다양한 대상들은 시인의 주관적 정서를 드러내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잠시 빌려 쓰이는 것인데, 이런 현상이 ­바꿔 말해, 시를 쓰는 근본 목적이 어떤 대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인 자신을 포함한 인간을 위한다는 시각과 태도 변화가­ 6, 70년대 출생한 김경희․허련화․리해룡․김충 등 적지 아니한 젊은 시인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일광산 봄 푸를 때  강건너 높은 산 불타오르데  두만강 물에 나래 적셔  저 불 사그릴  큰 새는 없는가?  내 사랑 토끼와 사슴들이여  내 마음 무성한 숲에 몸을 숨겨라  아, 진달래 스러진 산  산은 타도 여름은 오려나  끌 수 없다면  차라리 불산이 되거라  저 불길 어느새 옮았는가  나도 뜨겁게 불타고 있네  ■ 허련화의 작품 「산불」 전문  위 작품에서, 강건너 높은 산이 불타오른다는 말이 진달래 꽃이 만발하여 이루어진 붉은 물결을 빗댄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봄에 산불이 난 것인지 모호하게 표현되고 있다. 물론, 시제와 앞뒤 문맥상으로는 후자일 것이라는 판단이 앞서지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산불을 소재로 하여 시를 썼지만 결국은 시적 화자인 시인 자신의 몸속에서 일고 있는 불, 곧 넓은 의미의 생명력을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체내의 생화학적인 변화를 수반하는 애욕인지 아니면 어떤 목표 달성에 대한 의욕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이처럼, 산불이라는 자연현상이 시적 표현의 대상이 되더라도 그것은 결국 시인 자신을 드러내는 종속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시작(詩作)에 있어 그만큼 시인 자신 곧 인간을 우선시 여긴다는 증거다. 바꿔 말해, 대상을 위해 시를 쓰는 것이 아니고 시인 자신을 포함한 인간들을 위해 쓴다는 사실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시인들의 시적 관심이 인간 외부에서 내부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겠다. 또 그것은 시인이 처해 있는 현실적 여건의 변화, 곧 환경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환경의 변화와 함께 시인의 관심․미의식․언어 등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 다른 하나의 희망은, 다양한 형식 실험과 함께 다양한 주제를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시가 꼭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묘사하고, 또 그것과 관련해서 시인이 갖는 감정과 사상을 정서적이고 음악적이고 비유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다양하게 바뀔 뿐 아니라 그것을 담아내는 방식 또한 여러가지 형태로 시도되고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해, 달, 흙, 곰 등과 같이 대자연을 구성하는 대상들이 저마다 정령을 가지고 있고, 그들간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호흡함으로써 생명현상이 가능하다고 믿는 물활론적(物活論的) 사고를 바탕으로 해서 시를 쓰고 있는 남영전의 ꡐ토템ꡑ시라든가, 다양한 꽃들의 모양과 빛깔과 생태학적 특징들과 관련하여 인간의 삶이나 존재를 유추해 내는 리해룡의 꽃 연작시라든가, 운문이 아닌 산문으로 특정 이야기를 구성해 냄으로써 시에 재미라는 기능을 배가시키고 있는 김성우의 산문시라든가, 일상생활 속에서 직간접으로 경험하는, 또는 의식되는 사유세계의 단편들을 그대로 진술하는 박화의 모더니티 등이 그것이다.  물론, 세계의 시가 실험, 실습되고 있는 한국 현대시의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고려한다면 미미하기 짝이 없지만 이런 실험적인 노력이 진지하게 지속되는 과정에서 중국 조선족 시문학이 좀더 다양하고 좀더 풍성하게 발전해 나아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4. 나오는 말  90여 명 내외가 되는 중국 조선족 시인들 가운데에서 일부 시인의 일부 작품을 읽고 시문학의 위상이나 그 성격을 운운하는 것은 극히 위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시인이란 개인의 사사로운 느낌이나 감정, 생각이나 사상 등을 정서적이고 함축적이고 음악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을 한다 해서 모두가 시인인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해, 그저 시 몇 편, 시 비슷한 글 몇 십 편 썼다해서 시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적어도 시인이란, 인간의 본질과 그 인간들이 엮어가는 사회와, 그리고 인간의 삶(생명)과 그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자연과, 그것들이 어우러진 세계를 꿰뚫어 보는 눈을 가져야 하는 것이고, 그 눈에 비쳐진 진실을 자신의 감정이 배인 정서적이고 함축적이고 비유적인 언어로 표현해 내는 일과 관련하여 일정한 질서와 수준을 갖추어야 한다. 바로 그랬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한 시인의 탄생과 그 존재를 기억하고, 그를 우러러 보는 것이리라.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시인이란 그리 많을 수가 없다. 어쩌면 우리는 진정한 시인이 되기 위해서 부단히 시를 쓰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73명의 작품 580여 편을 읽으면서 이들이 공유하는 정신적 세계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소재이자 제재가 되기도 하는 단어(key word)를 10개 정도로 정리한다면 이렇다. 곧, ①그리움 ②고향 ③조국 ④별 ⑤달 ⑥산 ⑦강 ⑧나무 ⑨바람 ⑩바위 등이 그것이다. 이들 중요 단어들로 시를 짓고 있는 시인들의 정서를 색깔로 친다면 두루미나 백학으로 대표되는 흰색일 것이고, 계절로 친다면 생명력이 약동하기 시작하는 봄일 것이다.  표현 수단은 한글이지만 조국이 해방되면서 중국내 조선족으로서 정착, 30여 년 동안 줄곧 북한과 교류해 왔기 때문에 북한의 언어와 가깝다. 그리고 80년대 개방화 물결에 따라 그 후 15여 년 동안은 남한과 교류를 적극적으로 해오고 있는 과정에 있다. 그런 탓인지 그들은 남한이나 북한의 시문학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으면서 나름대로 자신들의 시문학을 다듬어 가고 있다 할 것이다. 인구 200만 가운데 시인 90여 명이 중국 조선족 시문학이란 나무를 가꾸어 오고 있는 셈인데2), 50년이란 세월이 흐르긴 했지만 중국의 정치 체제와 관련, 극히 제한적인 교류와 감시의 눈 탓으로 흐른 세월에 비하면 그 나무가지와 줄기가 무성하게 자라나진 못한 것 같다.  그러나, 그동안의 중국만의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한다면 그 시문학이라는 나무를 키워올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많은 시인들의 각고의 노력이 밑거름이 되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시문학은 인간의 주관적인 정서를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예술형태이므로 대사회적 대인간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또한 적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뿌리 깊고, 잎 무성하고, 열매 또한 상큼한 우람한 나무로 키워 나가아야 할 것이다.  이 일을 돕기 위해 굳이 한 가지만 조언한다면, 모방이나 흉내내기가 시문학에서의 능력이고 진실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모방은 어디까지나 습작기에 있을 수 있는 과정일 뿐이지 그 자체가 목표이어서는 안 된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빛깔과 향기와 열매를 위해 충분히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하면 가지치기도 해야 하고, 영양분도 공급해 주어야 함에 틀림없지만, 철저하게 내가 서 있는 토양과 그 기후에 잘 자랄 수 있는 수종(樹種)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  1) 필자가 읽은 중국 조선족 시인 명단---  리 욱․임효원․설 인․김 철․김성휘․리삼월․리상각․김경석  김응준․김태갑․허룡구․박 화․김문회․김동진․남영전․리성비  석 화․리임원․주성화․신현철․박설매․김응룡․리근영․리해룡  마송학․최진성․리 중․박성훈․김 충․남철심․김 욱․허련화  전홍일․강효삼․윤청남․김경희․남상수․허창열․김창영․리 복  박천교․박은호․정 철․김동석․한 춘․채택룡․황장석․전경업  최정수․김기덕․리범수․김철호․한소리․김영수․김해룡․신창수  현규동․전광훈․황춘옥․김승종․양용철․리동권․리송주․한수봉  한동해․한석윤․김성우․류전영․황령향․장련춘․림 철․심정호  송정환 외(이상 73명의 580편)  2) 월간 「연변문학」 1999년 1월호에 실린 중국 조선족 문학인 주소록에 의하면 전체 문학인 375명 가운데 시인이 약 90명 내외가 되지 않을까 추산된다. 그 근거로는 연변지구에만 268명의 문학인 가운데 24%인 64명이 시인임을 감안한다면 나머지 북경․흑룡강․료녕․길림․장춘․통화 지구도 같거나 비슷하다고 전제,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26명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 명단에는 작고한 문인도 몇 분 포함되어 있고, 필자가 이미 읽었지만 현재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은 흑룡강 신문 지상에 발표된 상당수의 시작품 등은 포함시키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73명 580편이란 숫자는 편의상의 숫자임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연변작가협회는, 金浩根씨에 의하면 2000년 4월 현재, 505명의 회원에 87명의 이사, 주석 1명, 상무 부주석 1명, 겸직 부주석 11명으로 구성되었다 함. 
685    중국 조선족시문학 정초자 - 리욱 댓글:  조회:5030  추천:0  2015-09-07
중국 조선족시문학 정초자 리욱   시인 리욱(1907-1984)은 중국 조선족문학 정초자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 조선족문학의 첫 페지를 열어 중국 조선족문학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한 저명한 시인이다.   생애: 리욱 (李旭 원명; 리장원 李章源)은 1907년 7월 1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안촌(고려촌)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부모와 가족들은 일찍 중국 길림성 화룡현 강장동 일대에 이주하여 살았는데 생활난으로 이리저리 떠돌며 러시아 원동지역에 까지 흘러갔다가 리욱이 3 살 나던 해인 1910년 봄,다시 중국 길림성 화룡현 로과향 서호촌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리욱의 할아버지는 원근에 이름이 높은 한학자로서 마을아이들을 모아 서당을 꾸렸는데 리욱은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의 슬하에서 《천자문》과 《소학》 및 한시를 공부하였다.   리욱은 1923년 4월 룡정 동흥중학교에 편입하여 공부하였고 이듬해인 1924년, 훈춘 창동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는 한편 농촌의 계몽운동에 참여하였다. 그해 처녀작 시 《생명의 례물》을 《간도일보》 발표하며 시작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시기 그는 또 지역신문 《민성보》의 기자로 활약하기도 하였으며 시 《눈》, 《봄비》, 《죄수》, 《분노의 노래》, 소설《파경(破鏡)》을 쓰고 일부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1931년에는 부모님이 계시는 서호촌 마을에 돌아와 1935년까지 농사도 짓고 서당도 꾸리고 마을의 야학을 돕기도 하면서 문학공부에 정진하였다. 1930년대에 들어서며 그의 시 창작도 일약 전성기에 진입하였는데 초기 시 대표작들도 이 시기에 완성되였다.   이 시기 그는 시《님 찾는 마음》(1930), 《송년사》(1935), 《북두성》(1937), 《금붕어》(1939), 《모아산》(1939), 《새 화원》(1940)등을 창작하여 신문 《만선일보》, 잡지《조광》, 《조선지광》등에 발표하였다. 이 시기 그는 학성(鶴城), 월촌(月村), 홍엽(紅葉), 단림(丹林),산금(汕琴), 월파(月波) 등 다양한 필명을 사용하였다.   리욱은 1936년 《조선일보》 간도특파기자가 되였고 일제에 의해 1940년 8월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이 폐간되자 다시 고향에 돌아왔다. 1942년 그는 리학성(李鶴城)이라는 이름으로 연길에서 간도와 만주지역 시인들의 합동시집 《재만시인선》을 편찬하여 발간하였으며 김조규가 편집한 종합시집《재만조선인시집》에 리학성의 이름으로 시 《나의 노래》, 《철쭉화》, 《오월》,《락엽》, 《별》 등을 발표하였다.   1945년, 고향에서 광복을 맞은 그는 자기의 필명을 다시 “해 뜨는 모양”, “득의(得意)한 모양”의 “아침 해 욱(旭)”으로 바꾸고 새로운 시대의 문단에 등장하였다. 이 시기 그는 《간도예문협회》 문학부장, 《동라(銅喇)문인동맹》 시문학분과 책임자, 《연길중소한문회협회》 문화국장 등 직을 맡으며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1946년부터 1948년까지 동북군정대학에 다녔고 1947년 첫 서정시집《북두성》 간행하였다. 1948년 동북군정대학을 졸업한 그는 연길 《대중》잡지 주필 겸 연변도서관 관장을 맡았으며1949년 두 번째 서정시집 《북륜의 서정》을 간행하였다.   리욱은 1951년부터 연변대학에서 《세계문학사》를 강의하면서 시인과 교육자의 길을 함께 걸으며 우리 문학의 후대양성에 일생을 다하였다. 1956년 중국작가협회에 가입하고 1957년 시집 《고향사람들》(북경 민족출판사), 장시《연변의 노래(한문)》(북경 작가출판사)를 간행하였고 1959년 시집《장백산하》(북경 작가출판사)를 간행하였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진행된 중국에서의 “10년 대 동란”으로 일컫는 문화대혁명 기간 시인 리욱은 《반동문인》, 《반동학술권위》등으로 몰려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1980년 칠십 고령에 이른 시인은 자신이 일생동안 진행해온 시창작의 정수를 모아《리욱시선집》(연변인민출판사)을 엮었다.   1982년 장편서사시《풍운기(1부)》 발표하였고 이 작품 제2부의 집필 중 1984년 2월 26일 뇌익혈이 발생하여 향년77세로 세상을 떠났다. 시인의 추도식은 전례 없이 장중한 규모로 연변대학 대강당에서 진행되었으며 1988년 7월 25일 시인의 탄신 81돐을 기념하여 시인이 세 살 때 강보에 쌓여 두만강을 넘어온 화룡 로과 호곡령 산상에 시인의 시비가 세워졌다.   리욱시문학의 작품세계: 시인 리욱은 1924년에 처녀작인 서정시《생명의 례물》을 내놓은 때로부터 시가창작의 길에 들어섰다. 1930년대와 40년대 전반기, 특히 40년대 전반기에 이르러 그는 시인으로서의 자태를 뚜렷이 나타내기 시작하였는데 이 시기에 그가 내놓은 주요 작품으로는 《금붕어》(1936년), 《철촉화》(1942년), 《새 화원》(1942년), 《모아산》(1944년), 《오월의 붉은 맘씨》(1944년), 《북두성》(1944년)과 같은 서정시가 있다.   이 시기에 쓴 그의 시편에서는 질곡적인 암흑사회를 혐오하고 자유를 갈망하며 진리를 추구하여 마지않는 시인의 미학적 열망을 구김 없이 펼쳐 보여주고 있다. 시 《금붕어》에서 리욱은 일제 통치하의 암담한 현실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시인의 의지와 리상을 간곡히 표출하고 있다. 이 시편에서의 금붕어는 시인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닫혀있음과 열려있음의 이항대립구조를 설정하여 어항에 갇힌 금붕어의 이미지와 무한한 자유를 표상하는 넓은 바다의 이미지의 대립으로 식민지치하의 젊은 지식인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갈구를 선명하게 드러내고있다. 금붕어는 항시 자유 없는 자기의 기구한 운명을 달가워하지 않고 “칠색무지개를 그리며”, “붉은 산호림”을 “까만 안공에 불을 켜고” 애타게 찾고 있다. 대해 속에서의 “붉은 산호림” 그것은 시인이 못내 동경하던 자유로운 리상의 동산을 상징한 것이다.   1940년대에 들어선 후 그같이 암흑한 현실 하에서도 줄곧 시 창작에 힘써 서정시 《철촉화》와 《새 화원》 등을 창작한데 이어 또한 《모아산》과 같은 역작을 내놓았다. 1944년 이른 봄에 쓴 서정시 《모아산》에서 시인은 모아산을 “대지의 정열을 안은” 창세기의 “위대한 거인”으로 형상화하면서 격정에 넘쳐 “네 머리 위에 해와 달이 흘러흘러/ 쌓은 정 녹아 터지는 날은/ 자유의 깃발이 날리리니”하고 사무치게 고대하였다. 이렇게 미래의 밝은 전망을 펼쳐 보이고 시의 마지막에 이르러 시인은 모아산을 종래로 “굴한 일 없”는 조선족반일투사의 강인한 투쟁정신의 상징으로 승리의 깃발로 찬송하고 있다. 그의 이런 시적 사상과 미학적 추구는 항일전쟁승리전야에 이르러 더욱 분명해지고 명랑하여졌다. 시《북두성》은 광복 바로전야인 1944년에 쓴 작품으로서 시인의 이 시기 창작풍모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작의 하나이다.   시《북두성》에서 시인은 끝없는 동경심에 찬 눈길로 멀리 하늘에서 반짝이는 밝은 북두성을 바라보면서 “어둠의 홍수가 범람하는” 암울한 시대는 조만간에 지나가고 대지에 새봄이 돌아오리라는 신념을 가지게 된다. 이에 시인은 우리 민족이 수천 년 두고 그려온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숙원을 “장미원”으로 상징하고 위와 같이 노래하는 것이다. 이 시는 다소 표현에 있어 모호하고 추상적인 부분은 있으나 전체적으로 호방한 낭만시로서 시인의 신념을 충실하게 드러낸 시라 할 수 있다.   시인은 끝없는 동경심에 찬 눈매로 멀리 하늘가에 반짝이는 밝은 북두성을 바라보면서 하나하나 정겹게 헤아리며 새봄은 꼭 오리라는 굳은 신념에 잠기며 다가올 승리에 무한히 고무된다. 이에 시인은 우리 민족이 수천 년을 두고 그려온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숙원을 《장미원》으로 상징하고 이 서정시의 결말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자유의 려명이 곧 돌아오며 그 미래는 우리의 것이란것을 확신하고 있는것이다.시인은 일찍 이 시에 담은 시적경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머나먼 북두성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잠겨 별들을 헤아리고 있노라니 나도 그 별들과 함께 빛나며 별무리들이 북두성을 향해 반짝이듯이 느껴졌다. 이 경상은 나에게 피눈물 겨운 생활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며 누렇게 말라빠진 대지에는 봄이 올 날이 있음을 깨우치게 하였다. 그래서 나는 ‘새벽이 올 것이다’, ‘내일은 우리 것이다’라고 소리 높이 외쳤다”   이와 같이 이 시기 리욱의 시작품은 호방하고 우미한 랑만적 색채를 보이며 주로 은유적 수법을 애용하면서 잠재의식에 의한 형상적 표현들을 많이 보이고있다. 또한 그의 서정시들은 광명한 미래를 동경하고 있으나 그것이 아직도 몽롱하고 추상적인 것으로 흐르고 있는 약점도 발로 시켰다.   1945년 “8․15”광복과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등 력사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리욱의 시세계도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민족의 일제에 의한 압제와 굴욕에서부터의 해방을 그는 중국공산당이 가져다 준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특히 백여년간 이 땅을 개척하고 가꾸어 온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주고 새 생활의 희망을 열어준 새로운 중국과 중국공산당에게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1949년 1월에 간행한 그의 두 번째 시집《북륜의 서정》 서문에 명료하게 나타나 있다.   “시대의 행정에 력사의 지표가 뚜렷이 서서 나의 전진을 재촉하매 나는 고스란히 이 땅의 선구자의 발자국을 더듬어 나가며 인민과 조국에의 충성을 피로써 다할 것을 진정으로 고백한다.”   따라서 이 시기 시인의 작품주제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찬미에 바쳐지게 되었다. 1956년에 쓴 서정시《해란강의 봄철》, 1963년에 쓴 《사랑하는 고향으로 오라!》, 《정월담》 등 작품은 모두 상기 주제를 담고 있다.   시인 리욱은 또한 이와 같은 민족적 해방과 인민들의 새 생활은 모두가 수십년간 백두밀림에서 모든 것 다 바쳐 일제와 싸운 항일투사들의 생명으로 바꿔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찬양을 아낌없이 토로하였다. 산문시《연변찬사》(1954년), 서정시 《유격대를 회억하며》(1959년), 《홍군전사의 묘》(1961년) 등 작품들이 바로 이 주제에 바쳐진 것들이다.   시인은 1957년에 창작한 시 《장백산》에서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성성한 백발을 날리면서도/ 가슴은 꺼질 줄 모르는 청춘의 불길에 타서/ 항시 두 어깨에 칠색무지개를 걸고/ 목청을 돋구어 꽝꽝 대택을 울리”는 장백산의 거인적 형상을 빌어 자손만대의 행복을 위해 산을 주름잡아 달리며 싸워온 반일투사들의 빛나는 력사를 노래하면서 그들의 반일혁명전통이 어떻게 우리시대인민들에게 뿌리를 내리고 거대한 원동력이 되는 가를 밝힌다.   그 천년수림 속에서 타오르던 화톳불이/ 오늘 우리의 힘으로 뻗히고/ 그 동서 봉우리에서 반짝이던 초병의 눈이/ 오늘 우리의 정신으로 빛난다네 ― 시 《장백산》 부분   이와 같이 거대한 상상의 힘과 웅건한 감정의 폭을 가지고 펼친 이 서정시의 심상은 력사와 반일혁명전통의 소재를 다룬 다른 시들에서도 감동적으로 표출되었다.   시인 리욱은 이외 다양한 시 형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작품의 내용과 예술성에서 모두 독보적인 경지를 이루어 내었는바 특히 율시, 절구, 사(詞) 등 한시(漢詩)는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시 《노시인》(1959년), 《독수리》(1960년), 《랑도사 도문강(浪淘沙 圖門江)》(1978년)와 1964년 훈춘에세 창작한 한시 작품 《고성(古城)》 등이 그의 한시대표작들이다. 이 시에서 묘사된 고성은 훈춘 중쏘국경에 있는데 해방전후 토비와 싸움이 여러차레 있었다.   고성의 절반 하늘 둘러 옛 풍진은 아득하구나   다섯번 진공한 요새요 세번 전승한 진지라네   천추에 밝은 달 창공에 걸렸고 만고에 의론 배 큰 강에 비꼈네   영웅 달리던 곳 물으니 멀리 큰 산봉을 가리키네   시인은 유고로 한시 108수가 수록된 한시집《협중시사(篋中詩詞)》를 남기였다. 그의 한시에 대해 연변대학 교수 김동훈은 “리욱선생은 우리 민족 한시문학의 마지막장을 휘황하게 장식한 자랑스러운 시인이다.”라고 말하였고 한국 숭실대학 교수 조규익은 “리욱의 한시문학은 결코 중국문학의 아류거나 단순한 습작품이 아니라 중국 현대 상류문학에 속하는, 선명한 독자적 개성을 띤 하나의 정신적 재부이다”라고 평가하였다.   시인 리욱은 또한 서사시, 서정서사시의 창작에서도 큰 업적을 남기었다. 서정서사시《장백산의 전설》(1957년), 《고향사람들》(1957년), 서사시《풍운기(제1부)》(1982년) 등이 바로 그것이다.그중 서정서사시 《고향사람들》은 바로 “간도” 의 조선족들이 일제와 맞받아 싸운 빛나는 력사를 그려내고 있다. 작품은 “삼득이”와 “정숙이”를 주인공으로 19세기말 이조 말 조정의 폭정과 자연재해로 수많은 이재민들이 북간도로 이주하고 이곳 청국 지주의 압박과 착취와 왜놈의 탄압과 만행으로 고역과 학대에 시달리게 되고 민족의 운명이 칠성판에 오르게 되자 각성한 인민들이 유격대를 조직하여 일제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렇게 작품은 만강의 열정으로 항일무장투쟁과 유격대를 노래하면서 민족전설을 빌어 반일유격대의 형상창조를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력사의 거시적 개괄과 항일유격대 형상 창조 그리고 기백 있고 세련된 시적 표현 및 생략과 함축, 비약의 수법 등 다양한 시적 표현방법을 동원하였고 민간전설의 생동한 도입과 호기로운 서정성의 발로 등으로 높은 사상, 예술적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   리욱시문학의 예술특징 1) 그의 작품에서 력사제재에 대한 흥취가 각별하고 거인적 형상창조에 유능하며 격조가 높고 뜻이 깊고 서정이 짙고 낭만적 색채와 민족적 특색이 강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시인은 력사의식에 기초하여 조선족의 운명에 깊은 관심을 돌리면서 일생동안 조선족인민들의 생활과 투쟁의 력사라는 기본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의 작품목록에서 우리는 민족의 력사에 바쳐진 작품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서정시《옛말》은 기사년 흉년에 남녀로소가 쪽박차고 샛섬에 건너와 진대나무 속에 구틀막집 짓고 부대를 일구어 감자씨를 박던 개척초기생활을 쓰고 있으며 서정시《오월의 붉은 맘씨》은 샛노랗게 익은 벼이삭이 소작인들의 눈물에 젖던 가을의 정경을 그리고 있다. 서정시《장백산》, 《유격대를 회억하여》등은 반일투쟁과 유격대의 영웅적 모습을 담고 있으며 서정시《젊은 내외》,《석양의 농촌》, 《황소야》 등에서는 세기적 소원을 이뤄 토지 얻은 조선족농민들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서정시《배나무를 심으며》, 《배낭》, 《봄은 어디에 먼저 왔느냐》등 작품에서는 조선족인민들이 신근한 노동으로 새로운 생활을 건설하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2) 리욱시인의 작품에서 우리는 그가 심오한 사상과 낭만에 바탕을 둔 거인적 형상의 창조에 큰 성취를 이룩하였음을 찾아 볼 수 있다.   시인은 예민한 감수와 깊은 철학적 사색으로 생활의 본질과 특징을 발견하고 심오한 철학적 진리와 숭고한 인민적 지향을 포착하여 거인적 형상을 창조하였는데 그의 작품 속에서 거인의 영웅적 형상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며 산이나 강과 같은 자연현상도 노상 거인적 형상으로 노래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반일투사의 형상창조에서도 장백산의 웅장한 자연을 배경으로 초인간적인 영웅성을 훌륭하게 부여하였다. 다음과 같은 작품 속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나래 돋힌 용마를 타고/ 고산대하를 주름잡아 넘나들며/ 머리위에/ 하늘이 쪼각쪼각 갈라지고/ 발밑에/ 구름이 실실 흩어지는” ― 서정서사시《장백산의 전설》에서   “변강의 천봉만학을 거느리고/ 창공에 우뚝 솟은 장백산” ― 서정시《장백산》에서   “천험의 골짜기/ 만고의 숲을 뚫고/ 몇 천만년을” ― 서정시《두만강》에서   시인의 이러한 “거인의 영웅적 형상창조”의 예술추구는 일찍 《모아산》(1944년), 《북두성》(1944년)과 같은 초기작품에서부터 나타난다.   3) 선명한 민족적 색채가 작품에 두드러지게 표현됨을 지적할 수 있다. 리욱시인은 조선족인민들의 구전문학을 깊이 연구하고 그것을 선택적으로 계승하고 발양하여 생동한 예술적 형상을 창조하였다.   서정시《장백산》에서는 “달밤에 백호가 바위 위에서 울면 동해의 룡왕도 소스라쳐 깨여서는 거센 물결을 타고 헤매었다”는 구전설화를 작품 속에 이용하였고 서정시《오월의 붉은 맘씨》는 “죽은 누나를 불러도 아니 오는 누나는 옛 둥지에 제비를 보냈다”는 전설을 인용하였다. 서정시《황소야》는 “별을 이고 나가고 달을 밟고 들어온다.”는 우리 민족의 속담과 숙어를 도입하여 조선족농민들의 근면한 노동생활을 형상적으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시어의 선택에서 우리 민족의 고유어에 바탕을 둔 언어구사를 주로 택하였고 과정법과 비유법, 생략과 함축 등 다양한 표현수법의 사용하였으며 이로써 간결성을 이뤄내었다. 그의 시어는 또 대담한 함축과 생략이 특징적이며 조선족민요에 많이 사용되는 음조, 조흥구 등을 창조적으로 도입하여 시의 운치를 돋웠고 민족적 생활의 체취가 풍기는 고유어의 선택과 생활화된 민중언어의 사용에도 각별한 주의를 돌렸다.   결론: 시인 리욱은 1924년 처녀작 서정시 “생명의 례물”을 《간도일보》 발표하며 시작활동을 시작하여1984년 장편서사시《풍운기》 제2부의 집필 중 뇌익혈로 돌아가셨다. 향년77세였다. 이와 같이 시인은 70여년의 인생에서 옹근 60년간 진행한 시창작활동 전부를 중국 조선족시문학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중국 조선족시문학 정초자로서 시인 리욱의 작품은 우리문학연구의 소중한 텍스트가 되며 이에 대한 진일보의 연구는 중국 조선족시문학의 정확하고 진실한 텍스트를 확인하고 과거와 현재를 올바로 기록하는것과 함께 미래에 책임지는 과제와 겹쳐있다. 따라서 리욱시문학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는 우선 이와 같은 문제의 제기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시사(示唆)한다.       리욱대표시 6수   척촉화(躑躅花)   봄은 파일고개를 넘어 탐탁한 척촉(躑躅)꽃이 하염없이 지길래 시드는 꽃송이에 내 진정한 이야기를 부치오   꽃보라속에 나비가 놀라오 나도 늙소   그래도 내 마음 장미(薔薇)에는 푸른 꿈이 깃들어 슬프지 않소   오! 전설의 나라 척촉(躑躅)아 이제 성장(盛裝)을 버린 너는 여름철에 백합(百合)꽃을 부러워할테냐? 산국화(山菊花)도 부러워할테냐? -아니오 -아니오 그렇길래 나는 너의 짧은 청춘을 사랑했다 나는 너의 타는 정열을 사랑했다   1935년 시집《재만조선인시집》     금붕어   백공작이 날개 펴는 바다가 그립고 그리워 항시 칠색무지개를 그리며 련꽃항아리에서 까무러진 상념에 툭―툭― 꼬리를 친다   안타까운 운명에 애가 타고나서 까만 안공에 자주 황금갑옷을 떨치나니   붉은 산호림 속에서 맘대로 진주를 굴리고 싶어 줄곧 창 너머로 푸른 남천에 희망의 기폭을 날린다   1938년 연길에서     새 화원   북천의 오로라 드리우면 싱싱한 광야를 헤치며 섬어하던 미친동무 있었다   애꿎이 의도를 등지고 상화에 사는 동안 비는 말라 화석된 동무 있었다   몇번 쇠그물을 뛰쳐나 지상 제하에서 싸우던 구사일생의 정한한 동무 있었다   그는 노도였고 그는 제전이였고 그는 표범이였고   때는 회한의 그림자를 감추고 력사는 옛 위치를 바꾸어도 잃어진 생리를 찾아 빼앗긴 청춘을 찾아 인생의 대하에 나리거니 생활에 밀림에 들거니   오오! 새 화원에 나가 씨를 뿌리자 그리고 봄을 불러 꽃을 피우자 붉은 꽃을 피우자   1940. 시집 《북륜의 서정》 룡정에서           북두성   백웅(白熊)이 우는 북방하늘에 경경(耿耿)한 일곱 성진 무연한 항구에 기발을 저으며저으며 슬픈 계절― 이 거리와 저― 먼 광야에 —불멸의 빛을 드리우다   어둠의 홍수가 범람하는 우주의 한복판에 홀로 선 나도 한 개의 작은 별이런가?   네 이름 부르노니 괴(魁) 요광(搖光)아 대답하여라   그윽이 피어오르는 자연(紫煙)속에 천문(天文)이 움직이다 신화가 바서지다   보아 천년 생각해 만년 줄기줄기 흐른 꿈은 지금 내 맘속에 장미원(薔薇園)을 이룩하고   구름을 밟고 기러기 나간 뒤 은하는 지고 달도 기울어 오오, 밤은 상아(象牙)처럼 고요한데 우러러 두병(斗柄)을 재촉해 아세아산맥 너머서 이 강산 새벽을 소리쳐 일으킨다   1945년 봄 시집《북두성》     황소야   오늘 석양도 공원삼각정에 들렸다가 홍조속에 넘어간다   야학실 가는 길 문을 나서면서 말아문 엽초담배 아직도 반대나 남기까지 령이어 들어오는 공량차 서른대는 되나부다   황소야 너 제법 뽐내는판에 두 뿔에 빨간 술을 달아주고싶구나 바로 공량은 만재란다   황소야 너 별을 이고나가면 달을 밟고 돌아오는 습성을 즐기더라 황소야 너 계명성이 들리자 느슨히 일어서나니 진정 외양간을 나고고 싶었지   황소야 너 뻐꾸기 울어 밭갈이 재촉하면 서리 내려 가을걷이 생활을 배웠나니 지금 공량을 가득 싣고 너는 기뻐서 영각도 하는구나   1949년 시집《북륜의 서정》 룡정에서     할아버지의 마음   칠순 할아버지 나무를 심으며 어린 손자를 보고 싱그레 웃는 그 마음, 그 마음…   1957. 1 시집《고향사람들》 연길에서   (화룡시 로과향{현재 남평진} 호곡령에 세워진 시비의 새겨진 시)   =============================== 중국 조선족시문학 정초자 리욱   석화 1. 서론   시인 리욱(1907-1984)은 중국 조선족문학 정초자의 한 사람으로서 소설가 김창걸 등과 함께 중국 조선족문학의 첫 페지를 열어 중국 조선족문학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한 저명한 시인1)이다. 중국 조선족은 19세기 후반, 특히는 일제강점기 한반도내에서 대량의 “류이민”2)이 발생하여 조선반도 각지 수많은 파산농민들이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들어오면서 형성되였다. 지난 세기 초, “간도”로 불린 길림성 연변지역을 중심으로 중국 동북부 여러 지역에 살고 있는 중국 조선족은 이주 초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00년이 넘는 개척과 정착의 력사를 기록하면서 우리의 민족문화유산을 계승, 발전시키고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오고 또한 동시에 중국 내 한족, 만족을 비롯한 기타 민족과 공동히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이뤄왔다. 중국 조선족문학은 바로 이와 같은 조선민족이 중국에 이주하여 새롭게 이뤄낸 삶과 정서를 우리의 언어로 담은 문학이다. 현재 중국 조선족문학에 대하여 그 성격과 특징을 규명하면서 국내외 학계에서는 “중국 조선족문학”3), “중국 조선인문학”4), “조선족이민문학”5), “만주 조선어문학”6), “재중 조선족문학”7), “간도문학”8)  등 여러 가지로 지칭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담론은 중국 조선족이 월경이민민족으로서 민족과 국가가 불일치되는 이중성에서 비롯되는 특수한 현상이 그 원인으로 된다. 중국 조선족문학이“중국 조선족과 조선반도의 인민들은 한 핏줄을 타고난 동족으로” 여러 “사회력사발전단계를 함께 경유하면서 민족문학을 찬란하게 꽃피워 왔”9)으며 또한 19세기 후반기 특히 일제에 의한 국권찬탈이 사실화 되던 1910년대를 기점으로 차츰 중국대륙의 여러 민족인민들과 삶이 밀착되면서 상호간의 수용과 변화의 독특한 발전일로를 걷게 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특수성은 중국 조선족문학사를 서술할 때 그 시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1990년 조성일, 권철 주편으로 발간된 《중국조선족문학사》(연변인민출판사)를 비롯하여 최근에 출간된 문학사10)들에 이르기까지 중국 조선족문학의 시작을 19세기 초, 조선민족이 중국에로의 이주초기로부터 보면서 김택영, 신정, 신채호의 한시작품들을 제시하고있다. 김택영은 1850년 조선개성에서 태여나 1905년 중국에 왔으며 1927년 아편자살로 생을 마감하였고 남통시 랑산에 그의 묘소가 있다. 신정은 1879년 조선 충북에서 태여나 1911년 봄, 중국에 왔다가 1922년 돌아가셨는데 당시 상해홍교만국 공동묘지에 묻혔다. 신채호는 1880년 조선 충남에서 태여나 1910년 중국에 왔으며 그후 일제에게 체포되여 려순감옥에 갇혔다가 1936년 옥사하였다. 이들은 모두 원인이 여하하든 그 족적이 중국에서의 조선민족이주사와 맥을 같이 하였으며 중국에 와서도 끝임없는 민족광복운동과 더불어 활발한 문학활동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김택영의 시에 대하여 당시 양계초선생도 탄복하였으며 엄복은 그에 대하여 “시재는 리백, 두보와 흠사하며 사부는 추앙, 매승을 따른다.”고 격찬하였고 신정도 사후 지인들이 그의 탄신 60세를 기념하여 시집 《아목루(我目淚)》를 간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대부분의 작품이 우리글이 아닌 한문으로 즉 한시(漢詩)로  창작되였다는데 있다. 물론 고려, 조선조 시기부터 창작된 한시도 우리문학의 소중한 유산의 한부분이 되고있다. 그러나 우리 시문학의 흐름은 그래도 신라향가와 고려가요 및 조선조에 와서 시조와 가사로 이어지는 우리말, 우리글로 이루어진 작품이라고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 조선족시문학의 시작도 현재 우리문학의 전통이 될수 있는 우리글로 창작된 시작품과 그 작품을 창작한 시인에게서 찾아야할 것이다. 즉 처음부터 한문으로 창작된 이들 김택영, 신정, 신채호의 시작품을 중국 조선족시문학의 시작으로 보기에는 의론의 소지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이다. 혹자는 중국의 소수민족문학을 거론하면서 해당 민족구성원 시인, 작가가 창작한 작품은 비록 본 민족언어가 아닌 한문으로 씌여졌다하더라도 그 시인, 작가가 속한 민족의 민족문학이라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이런 제기법에는 상당하게 론의되여야할 문제들이 내포된다. 그 실례를 우리는 로사와 그의 소설 《락타샹즈》, 희곡《차집》등에서 찾아볼수 있다. 로사는 분명히 민족적으로는 만족작가이지만 상기 한문으로 창작된 그의 작품들은 중국 한문문학으로서 중국 한문문학의 수작으로 인정하지 이미 자신의 언어문자를 상실한 만족민족의 문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언어, 문자에는 그 민족의 문화, 력사, 관습 등 모든 정보가 다 들어있다는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5천년 중화민족의 력사에서 위대한 한족문화의 흐름을 이어온 힘이 바로 위대한 한자문화(漢字文化)에 있음을 똑똑히 보게 된다. 당나라와 송나라 다음 중원대륙에 펼쳐진 료, 금, 원 및 청에 이르는 천년세월의 이민족문화속에서 바로 한자문화가 한족문화를 견실하게 지켜 내였던 것이다. 거란, 여진, 몽골 등 북방 이민족의 사나운 말발굽과 서리발치는 칼날, 그 거세찬 폭풍취우의 충격속에서 바로 이 위대한 한자문화가 중원의 광활한 땅에 한족(漢族)문화를 지켜내고 끝끝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오게 하였던것이다. 현재 우리 조선족시인, 작가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한 구성원으로 물론 한문(漢文)문학으로 대표되는 중국 주류문학에 기여하여야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우리 조선족시인, 작가들이 우리말, 우리글로 창작되는 민족문학의 번영과 발전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것이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중국 조선족시문학은 반드시 우리글로 창작된 작품과 시인에서 그 시작을 찾아야할 것이다. 여기에는 또한 문학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우선 텍스트(Text, 原文, 本文)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리유가 있다. 리욱시문학에 대한 연구는 바로 이와 같은 문제의 제기로부터 시작되여야할 것이다. 일제가 전체 조선반도 내에서 조선의 기존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의 질서를 모조리 뒤엎어 버리고 조선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민족의식을 뿌리째 뽑아버리며 전체 조선민족을 일거에 말살하려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여 우리말교육을 철폐하고 악명 높은 창씨개명을 진행하며 우리글 신문, 잡지를 폐간시키던 1930년대 중반에서 4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 조선반도에서 흘러온 류이민들의 집거지역인 중국 동북삼성에서는 오히려 우리글 문학지와 작품집들이 륙속 발간되었고 따라서 이곳은 우리 민족문학이 맥을 이어가는 장소가 되였다. 당시 “간도”와 “만주”지역은 “거대한 허상 속에 주어진 제한된 자유의 공간”11)으로 우리 민족문학이 생존할 수 있는 마지막 숨통이었고 최후의 근거지였던 것이다.1930년대에 걸쳐서 일제에 의하여 이루어진 우리민족의 동북삼성에로의 류입은 조선반도에서 활동하던 시인, 작가 등 문학인들의 대거 류입을 불러왔다. 당시 “만주”에 체류하였던 문인들 속에는 김조규, 류치환, 박팔양 등 시인과 안수길, 강경애, 최서해와 같은 많은 소설가들이 있었다. 이 시기 형성된 우리민족시인, 작가들의 문단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이어지는 중국 조선족문학의 형성에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 사실이며 이들의 음으로 양으로 되는 영향이 건국 후 중국 조선족문학의 형성에 큰 기여가 되었던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찍 조성일선생이 서술한바와 같이 중국 조선족문학은 어디까지나 이 땅에 남아 이 땅에서 삶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이 땅의 시인, 작가들에 의하여 이뤄진것이다. “1945년 8월 15일은 우리가 일제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된 날로 우리민족의 현대사에 있어서의 ‘창상지변(滄桑之變)’이라고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해방을 맞은 ‘간도’를 비롯한 ‘만주’전역의 우리민족 이주민 210만명중 절반에 이르는 다시 말하면 100여만에 달하는 이주민들이 중화인민공화국 탄생 직전까지 기간내에 조선반도로 돌아갔다. 조선반도로 돌아간 100만중에는 해방전 특히 30년대에 ‘간도’지역에서 창작활동을 벌렸던 ‘문화부대’의 많은 성원도 망라되여있다. 이 ‘문화부대’의 조선반도에로의 대이동으로 말미암아 해방전 ‘간도’를 중심으로한 우리민족의 이민문단은 거의 해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정세하에서 치렬한 민족의식을 갖고있는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던 작가들은 조선족문학의 번영와 창창한 앞날을 위하여 건국전야와 직후 당시 조선족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였던 연변의 연길시에 집결하기 시작하였다.”12) 바로 이와 같이 중국 조선족문학은 1945년 “8․15”광복 이후의 기간에 력사적인 재정비를 거치며 성장하여 왔고 그 중심에 리욱시인과 그의 시작품이 있었다. 리욱시문학에 대한 진일보의 연구는 중국 조선족시문학의 정확하고 진실한 텍스트를 확인하고 과거와 현재를 올바로 기록하는것과 함께 미래에 책임지는 과제와 겹쳐있다.   2. 리욱의 생애와 문학 활동   리욱 (李旭 원명; 리장원 李章源)은 1907년 7월 1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안촌(고려촌)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부모와 가족들은 일찍 중국 길림성 화룡현 강장동 일대에 이주하여 살았는데 생활난으로 이리저리 떠돌며 러시아 원동지역에 까지 흘러갔다가 리욱이 3 살 나던 해인 1910년 봄, 다시 중국 길림성 화룡현 로과향 서호촌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리욱의 할아버지는 원근에 이름이 높은 한학자로서 마을아이들을 모아 서당을 꾸렸는데 리욱은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의 슬하에서 《천자문》과 《소학》 및 한시를 공부하였다. 리욱은 1923년 4월 룡정 동흥중학교에 편입하여 공부하였고 이듬해인 1924년, 훈춘 창동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는 한편 농촌의 계몽운동에 참여하였다. 그해 처녀작 시 《생명의 례물》을 《간도일보》 발표하며 시작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시기 그는 또 지역신문 《민성보》의 기자로 활약하기도 하였으며 시 《눈》, 《봄비》, 《죄수》, 《분노의 노래》, 소설《파경(破鏡)》을 쓰고 일부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1931년에는 부모님이 계시는 서호촌 마을에 돌아와 1935년까지 농사도 짓고 서당도 꾸리고 마을의 야학을 돕기도 하면서 문학공부에 정진하였다. 1930년대에 들어서며 그의 시 창작도 일약 전성기에 진입하였는데 초기 시 대표작들도 이 시기에 완성되였다. 이 시기 그는 시《님 찾는 마음》(1930), 《송년사》(1935), 《북두성》(1937), 《금붕어》(1939), 《모아산》(1939), 《새 화원》(1940)등을 창작하여 신문 《만선일보》, 잡지《조광》, 《조선지광》등에 발표하였다. 이 시기 그는 학성(鶴城), 월촌(月村), 홍엽(紅葉), 단림(丹林), 산금(汕琴), 월파(月波) 등 다양한 필명을 사용하였다. 이 시기 그의 작품에 대하여 당시 평단에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그 지향! 그것만으로 신진시인의 명예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과 케케묵은 감각의 울타리 안에서 시를 창조하는 대신 시를 복제(모방)하는 이미 퇴색한 청년시인들에 비해 볼 때 아직 체내에 미숙한 오관을 가지고 떨리는 두 손과 두 팔을 한껏 벌리어 새로운 “포에지”의 세계로! 항시 비상을 익망하는 젊은 시인― 신세대 시인들의 활기를 나는 높이 사고 싶다. 그러나 지나친 비상은 오히려 허망과 “넌센스”를 동반하는 수가 있지 않을까? 무의미의 탐미성을 강조하는 슐레알리스트들의 시로에는 경복할 수 없으므로 의미의 혼란으로 충만되어 그것이 반대로 무의미한 시작품으로 화해버리는 이런 유의 시를 쓰는 무의미를 월촌씨에게 삼가 경고하고 싶다. 의미의 남용으로 시인자신이 나중에 판타지병에 걸려 자기도 이해하지 못하는 무의미한 푸념과 넉두리와 언어의 유희로 충만된 시를 쓰는 수가 많고 이런 시를 우리는 재능 있는 신인들에게서 간혹 볼 수 있다. 그러나 월촌씨는 아직 그런 환상병에 걸리지 않을 만한 자성과 건강을 가지고 있다.13)   리욱은 1936년 《조선일보》 간도특파기자가 되였고 일제에 의해 1940년 8월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이 폐간되자 다시 고향에 돌아왔다. 1942년 그는 리학성(李鶴城)이라는 이름으로 연길에서 간도와 만주지역 시인들의 합동시집 《재만시인선》을 편찬하여 발간하였으며 김조규가 편집한 종합시집《재만조선인시집》에 리학성의 이름으로 시 《나의 노래》, 《철쭉화》, 《오월》, 《락엽》, 《별》 등을 발표하였다. 1945년, 고향에서 광복을 맞은 그는 자기의 필명을 다시 “해 뜨는 모양”, “득의(得意)한 모양”의 “아침 해 욱(旭)”으로 바꾸고 새로운 시대의 문단에 등장하였다. 이 시기 그는 《간도예문협회》 문학부장, 《동라(銅喇)문인동맹》 시문학분과 책임자, 《연길중소한문회협회》 문화국장 등 직을 맡으며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1946년부터 1948년까지 동북군정대학에 다녔고 1947년 첫 서정시집《북두성》 간행하였다. 1948년 동북군정대학을 졸업한 그는 연길 《대중》잡지 주필 겸 연변도서관 관장을 맡았으며 1949년 두 번째 서정시집 《북륜의 서정》을 간행하였다. 리욱은 1951년부터 연변대학에서 《세계문학사》를 강의하면서 시인과 교육자의 길을 함께 걸으며 우리 문학의 후대양성에 일생을 다하였다. 1956년 중국작가협회에 가입하고 1957년 시집 《고향사람들》(북경 민족출판사), 장시《연변의 노래(한문)》(북경 작가출판사)를 간행하였고 1959년 시집《장백산하》(북경 작가출판사)를  간행하였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진행된 중국에서의 “10년 대 동란”으로 일컫는 문화대혁명 기간 시인 리욱은 《반동문인》, 《반동학술권위》등으로 몰려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1980년 칠십 고령에 이른 시인은 자신이 일생동안 진행해온 시창작의 정수를 모아《리욱시선집》(연변인민출판사)을 엮었다. 1982년 장편서사시《풍운기(1부)》 발표하였고 이 작품 제2부의 집필 중 1984년 2월 26일 뇌익혈이 발생하여 향년77세로 세상을 떠났다. 시인의  추도식은 전례 없이 장중한 규모로 연변대학 대강당에서 진행되었으며 1988년 7월 25일 시인의 탄신 81돐을 기념하여 시인이 세 살 때 강보에 쌓여 두만강을 넘어온 화룡 로과 호곡령 산상에 시인의 시비가 세워졌다.   3. 리욱의 작품세계와 예술특징   시인 리욱은 1924년에 처녀작인 서정시《생명의 례물》을 내놓은 때로부터 시가창작의 길에 들어섰다. 1930년대와 40년대 전반기, 특히 40년대 전반기에 이르러 그는 시인으로서의 자태를 뚜렷이 나타내기 시작하였는데 이 시기에 그가 내놓은 주요 작품으로는 《금붕어》(1936년), 《철쭉화》(1942년), 《새 화원》(1942년), 《모아산》(1944년), 《오월의 붉은 맘씨》(1944년), 《북두성》(1944년)과 같은 서정시가 있다. 이 시기에 쓴 그의 시편에서는 질곡적인 암흑사회를 혐오하고 자유를 갈망하며 진리를 추구하여 마지않는 시인의 미학적 열망을 구김 없이 펼쳐 보여주고 있다. 시 《금붕어》에서 리욱은 일제 통치하의 암담한 현실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시인의 의지와 리상을 간곡히 표출하고 있다.   백공작이 날개 펴는 바다가 그립고 그리워 항시 칠색무지개를 그리며 련꽃항아리에서 까무러진 상념에 툭―툭― 꼬리를 친다   안타까운 운명에 애가 타고나서 까만 안공에 자주 황금갑옷을 떨치나니   붉은 산호림 속에서 맘대로 진주를 굴리고 싶어 줄곧 창 너머로 푸른 남천에 희망의 기폭을 날린다   ― 시《금붕어》 전문   이 시편에서의 금붕어는 시인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닫혀있음과 열려있음의 이항대립구조를 설정하여 어항에 갇힌 금붕어의 이미지와 무한한 자유를 표상하는 넓은 바다의 이미지의 대립으로 식민지치하의 젊은 지식인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갈구를 선명하게 드러내고있다. 금붕어는 항시 자유 없는 자기의 기구한 운명을 달가워하지 않고 “칠색무지개를 그리며”, “붉은 산호림”을 “까만 안공에 불을 켜고” 애타게 찾고 있다. 대해 속에서의 “붉은 산호림” 그것은 시인이 못내 동경하던 자유로운 리상의 동산을 상징한 것이다. 1940년대에 들어선 후 그같이 암흑한 현실 하에서도 줄곧 시 창작에 힘써 서정시 《철쭉화》와 《새 화원》등 을 창작한 데 이어 또한 《모아산》과 같은 역작을 내놓았다. 1944년 이른 봄에 쓴 서정시 《모아산》에서 시인은 모아산을 “대지의 정열을 안은” 창세기의 “위대한 거인”으로 형상화하면서 격정에 넘쳐 “네 머리 위에 해와 달이 흘러흘러/ 쌓은 정 녹아 터지는 날은/ 자유의 깃발이 날리리니”하고 사무치게 고대한다. 이렇게 미래의 밝은 전망을 펼쳐 보이고 시의 마지막에 이르러 시인은 모아산을 종래로 “굴한 일 없”는 조선족반일투사의 강인한 투쟁정신의 상징으로 승리의 깃발로 찬송하고 있다. 그의 이런 시적 사상과 미학적 추구는 항일전쟁승리전야에 이르러 더욱 분명해지고 명랑하여졌다. 시《북두성》은 광복 바로전야인 1944년에 쓴 작품으로서 시인의 이시기 창작풍모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작의 하나이다.   백웅(白熊)이 우는 북방하늘에  경경(耿耿)한 일곱 성진 무연한 항구에 기발을 저으며저으며 슬픈 계절― 이 거리와 저― 먼 광야에 ―불멸의 빛을 드리우다   어둠의 홍수가 범람하는 우주의 한복판에 홀로 선 나도 한 개의 작은 별님이런가?   네 이름 부르노니 괴(魁)  요광(搖光)이 먼저 대답하여라   그윽이 피어오르는 자연(紫煙)속에 천문(天文)이 움직이다 신화가 바서지다   ― 시《북두성》 제1련-제4련   시인은 끝없는 동경심에 찬 눈으로 멀리 하늘에서 반짝이는 밝은 북두성을 바라보면서 “어둠의 홍수가 범람하는” 암울한 시대는 조만간에 지나가고 대지에 새봄이 돌아오리라는 신념을 가지게 된다. 이에 시인은 우리 민족이 수천 년 두고 그려온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숙원을 “장미원”으로 상징하고 위와 같이 노래하는 것이다. 다소 표현에 있어 모호하고 추상적인 부분은 있으나 전체적으로 호방한 낭만 시로서 시인의 신념을 충실하게 드러낸 시라 할 수 있다. 시인은 끝없는 동경심에 찬 눈매로 멀리 하늘가에 반짝이는 밝은 북두성을 바라보면서 하나하나 정겹게 헤아리며 새봄은 꼭 오리라는 굳은 신념에 잠기며 다가올 승리에 무한히 고무된다. 이에 시인은 우리 민족이 수천 년을 두고 그려온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숙원을 《장미원》으로 상징하고 이 서정시의 결말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보아 천년 생각해 만년 줄기줄기 흐른 꿈은 지금 내 맘속에 장미원을 이룩하고   구름을 밟고 기러기 나간 뒤 은하는 지고 달도 기울어   오오, 밤은 상아(象牙)처럼 고요한데 우러러 두병(斗柄)을 재촉해 아세아산맥 너머서 이 강산 새벽을 소리쳐 일으킨다   ― 《북두성》 제5련-제7련   이 시에서 시인은 자유의 려명이 곧 돌아오며 그 미래는 우리의 것이란것을 확신하고 있는것이다. 시인은 일찍 이 시에 담은 사상경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머나먼 북두성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잠겨 별들을 헤아리고 있노라니 나도 그 별들과 함께 빛나며 별무리들이 북두성을 향해 반짝이듯이 느껴졌다. 이 경상은 나에게 피눈물 겨운 생활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며 누렇게 말라빠진 대지에는 봄이 올 날이 있음을 깨우치게 하였다. 그래서 나는 ‘새벽이 올 것이다’, ‘내일은 우리 것이다’라고 소리 높이 외쳤다”14)   상술한 인용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이 시기 리욱의 시작품은 호방하고 우미한 랑만적 색채를 보이며 주로 은유적 수법을 애용하면서 잠재의식에 의한 형상적 표현들을 많이 보이고있다. 또한 그의 서정시들은 광명한 미래를 동경하고 있으나 그것이 아직도 몽롱하고 추상적인 것으로 흐르고 있는 약점도 발로 시켰다. 1945년 “8․15”광복과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등 력사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리욱의 시세계도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민족의 일제에 의한 압제와 굴욕에서부터의 해방을 그는 중국공산당이 가져다 준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특히 백여 년 간 이 땅을 개척하고 가꾸어 온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주고 새 생활의 희망을 열어준 새로운 중국과 중국공산당에게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1949년 1월에 간행한 그의 두 번째 시집《북륜의 서정》 서문에 명료하게 나타나 있다.   “시대의 행정에 력사의 지표가 뚜렷이 서서 나의 전진을 재촉하매 나는 고스란히 이 땅의 선구자의 발자국을 더듬어 나가며 인민과 조국에의 충성을 피로써 다할 것을 진정으로 고백한다.”   따라서 이 시기 시인의 작품주제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찬미에 바쳐지게 되었다. 1956년에 쓴 서정시《해란강의 봄철》,  1963년에 쓴 《사랑하는 고향으로 오라!》, 《정월담》 등 작품은 모두 상기 주제를 담고 있다. 시인 리욱은 또한 이와 같은 민족적 해방과 인민들의 새 생활은 모두가 수  십년간 백두밀림에서 모든 것 다 바쳐 일제와 싸운 항일투사들의 생명으로 바꿔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찬양을 아낌없이 토로하였다. 산문시《연변찬사》(1954년), 서정시 《유격대를 회억하며》(1959년), 《홍군전사의 묘》(1961년) 등 작품들이 바로 이 주제에 바쳐진 것들이다. 시인은 1957년에 창작한 시 《장백산》에서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성성한 백발을 날리면서도/ 가슴은 꺼질 줄 모르는 청춘의 불길에 타서/ 항시 두 어깨에 칠색무지개를 걸고/ 목청을 돋구어 꽝꽝 대택을 울리”는 장백산의 거인적 형상을 빌어 자손만대의 행복을 위해 산을 주름잡아 달리며 싸워온 반일투사들의 빛나는 력사를 노래하면서 그들의 반일혁명전통이 어떻게 우리시대인민들에게 뿌리를 내리고 거대한 원동력이 되는 가를 밝힌다.   그 천년수림 속에서 타오르던 화톳불이 오늘 우리의 힘으로 뻗히고 그 동서 봉우리에서 반짝이던 초병의 눈이 오늘 우리의 정신으로 빛난다네.   이제 천지의 젖줄이 흘러 기름진 전야마다 오곡의 백과가 탐스럽게 무르익고 장백산 기슭에 늘어선 웅장한 공장마다 기계와 비단이 수두룩이 쌓이거니   백옥으로 쌓아올린 장백의 상상봉이여 백발을 구름높이 날리고 웃음을 폭포소리에 터치며 이 나라 아들딸~ 영웅호걸들을 굽어보라   ― 시 《장백산》 부분   이와 같이 거대한 상상의 힘과 웅건한 감정의 폭을 가지고 펼친 이 서정시의 심상은 력사와 반일혁명전통의 소재를 다룬 다른 시들에서도 감동적으로 표출되었다. 시인 리욱은 이외 다양한 시 형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작품의 내용과 예술성에서 모두 독보적인 경지를 이루어 내었는바 특히 율시, 절구, 사(詞) 등 한시(漢詩)는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시 《노시인》(1959년), 《독수리》(1960년), 《랑도사 도문강(浪淘沙 圖門江)》(1978년) 등이 그의 한시대표작들인데 그중 1964년에 창작한 한시 작품 《옛 성(古城)》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멀리 보니 옛 성은 절반하늘 둘러싸 그제 날의 풍진은 저으기 아득하네.   녹수의 고기비누 세 번 전승한 진지요, 청산의 호랑날개 아홉 번 진공한 창이라네   창공을 우러러 달은 천추에 걸렸고 물결을 헤치며 배는 대강에 비꼈네.   영웅 달리던 곳 어딘가 물으니 늙은이 저 멀리 큰 물기슭 가리키네.   遙看古城半分天  昔日風塵已渺然  綠水魚鱗三捷陳  靑山虎翼九攻鞭  霜天寥廊千秋月  秋水波潤一葉船  借問英雄馳騁地  笑指融融大江邊    ―  시《옛 성(古城)》 전문   시인은 유고로 한시 108수가 수록된 한시집《협중시사(篋中詩詞)》를 남기였다. 그의 한시에 대해 연변대학 교수 김동훈은 “리욱선생은 우리 민족 한시문학의 마지막장을 휘황하게 장식한 자랑스러운 시인이다.”라고 말하였고 한국 숭실대학 교수 조규익은 “리욱의 한시문학은 결코 중국문학의 아류거나 단순한 습작품이 아니라 중국 현대 상류문학에 속하는, 선명한 독자적 개성을 띤 하나의 정신적 재부이다”라고 평가하였다. 시인 리욱은 또한 서사시, 서정서사시의 창작에서도 큰 업적을 남기었다. 서정서사시《장백산의 전설》(1957년), 《고향사람들》(1957년), 서사시《풍운기(제1부)》(1982년)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중 서정서사시 《고향사람들》은 바로 “간도” 의 조선족들이 일제와 맞받아 싸운 빛나는 력사를 그려내고 있다. 작품은 “삼득이”와 “정숙이”를 주인공으로 19세기말 이조 말 조정의 폭정과 자연재해로 수많은 이재민들이 북간도로 이주하고 이곳 청국 지주의 압박과 착취와 왜놈의 탄압과 만행으로 고역과 학대에 시달리게 되고 민족의 운명이 칠성판에 오르게 되자 각성한 인민들이 유격대를 조직하여 일제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렇게 작품은 만강의 열정으로 항일무장투쟁과 유격대를 노래하면서 민족전설을 빌어 반일유격대의 형상창조를 완성하였다.   아!  백성들이  천만대에 전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유격대에는  나는 장수와 뛰는 장수가 있어 장백산 대택속 해와 달이 질줄 모르는 별천지에서  천하 력사들을 모아 보검을 치고 대포를 만들면서 때로는  해왕국 공주들이 여름마다  목욕하러   동새에서   천지로 다니는 무지개 다리를 더듬어 봉래  방장  영루에 노릴고   제틀로  수림속에 나오면 천리 련봉~ 나뭇가지를 더우잡고 나래 돋친 룡마인양 일행 천리 청운장을 휘둘러 산삼과  사항과  지초가 녹아내리는 압록간  두만강  송화강을 넘나들며 마음대로  풍운조화를 부려 불시에   놈들을  마른 날에 번개치듯 쳐엎는다 하나니   이렇듯  유격대들이  때로는  침실에서   잠든놈들을  꿈속에 잡아가고 대낮에  길가는 놈들도 무망중에 쓸어눕힌다   ― 서정서사시 《고향사람들》 부분   이 작품은 력사의 거시적 개괄과 항일유격대 형상 창조 그리고 기백 있고 세련된 시적 표현 및 생략과 함축, 비약의 수법 등 다양한 시적 표현방법을 동원하였고 민간전설의 생동한 도입과 호기로운 서정성의 발로 등으로 높은 사상, 예술적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 리욱시문학의 예술특징을 살펴보면 우선 그의 작품에서 력사제재에 대한 흥취가 각별하고 거인적 형상창조에 유능하며 격조가 높고 뜻이 깊고 서정이 짙고 낭만적 색채와 민족적 특생이 강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시인은 력사의식에 기초하여 조선족의 운명에 깊은 관심을 돌리면서 일생동안 조선족인민들의 생활과 투쟁의 력사라는 기본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의 작품목록에서 우리는 민족의 력사에 바쳐진 작품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서정시《옛말》은 기사년 흉년에 남녀로소가 쪽박차고 샛섬에 건너와 진대나무 속에 구틀막집 짓고 부대를 일구어 감자씨를 박던 개척초기생활을 쓰고 있으며 서정시《오월의 붉은 맘씨》은 샛노랗게 익은 벼이삭이 소작인들의 눈물에 젖던 가을의 정경을 그리고 있다. 서정시《장백산》, 《유격대를 회억하여》등은 반일투쟁과 유격대의 영웅적 모습을 담고 있으며 서정시《젊은 내외》, 《석양의 농촌》, 《황소야》 등에서는 세기적 소원을 이뤄 토지 얻은 조선족농민들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서정시《배나무를 심으며》, 《배낭》, 《봄은 어디에 먼저 왔느냐》등 작품에서는 조선족인민들이 신근한 노동으로 새로운 생활을 건설하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다음, 리욱시인의 작품에서 우리는 그가 심오한 사상과 낭만에 바탕을 둔 거인적 형상의 창조에 큰 성취를 이룩하였음을 찾아 볼 수 있다. 시인은 예민한 감수와 깊은 철학적 사색으로 생활의 본질과 특징을 발견하고 심오한 철학적 진리와 숭고한 인민적 지향을 포착하여 거인적 형상을 창조하였는데 그의 작품 속에서 거인의 영웅적 형상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며 산이나 강과 같은 자연현상도 노상 거인적 형상으로 노래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반일투사의 형상창조에서도 장백산의 웅장한 자연을 배경으로 초인간적인 영웅성을 훌륭하게 부여하였다. 다음과 같은 작품 속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나래 돋힌 용마를 타고/ 고산대하를 주름잡아 넘나들며/ 머리위에/ 하늘이 쪼각쪼각 갈라지고/ 발밑에/ 구름이 실실 흩어지는” ― 서정서사시《장백산의 전설》에서   “변강의 천봉만학을 거느리고/ 창공에 우뚝 솟은 장백산” ― 서정시《장백산》에서   “천험의 골짜기/ 만고의 숲을 뚫고/ 몇 천만년을” ― 서정시《두만강》에서   시인의 이러한 “거인의 영웅적 형상창조”의 예술추구는 일찍 《모아산》(1944년), 《북두성》(1944년)과 같은 초기작품에서부터 나타난다. 리욱시문학의 또 다른 예술적 특징으로 선명한 민족적 색채가 작품에 두드러지게 표현됨을 지적할 수 있다. 리욱시인은 조선족인민들의 구전문학을 깊이 연구하고 그것을 선택적으로 계승하고 발양하여 생동한 예술적 형상을 창조하였다. 서정시《장백산》에서는 “달밤에 백호가 바위 위에서 울면 동해의 룡왕도 소스라쳐 깨여서는 거센 물결을 타고 헤매었다”는 구전설화를 작품 속에 이용하였고 서정시《오월의 붉은 맘씨》는 “죽은 누나를 불러도 아니 오는 누나는 옛 둥지에 제비를 보냈다”는 전설을 인용하였다. 서정시《황소야》는 “별을 이고 나가고 달을 밟고 들어온다.”는 우리 민족의 속담과 숙어를 도입하여 조선족농민들의 근면한 노동생활을 형상적으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시어의 선택에서 우리 민족의 고유어에 바탕을 둔 언어구사를 주로 택하였고 과정법과 비유법, 생략과 함축 등 다양한 표현수법의 사용하였으며 이로써 간결성을 이뤄내었다. 그의 시어는 또 대담한 함축과 생략이 특징적이며 조선족민요에 많이 사용되는 음조, 조흥구 등을 창조적으로 도입하여 시의 운치를 돋웠고 민족적 생활의 체취가 풍기는 고유어의 선택과 생활화된 민중언어의 사용에도 각별한 주의를 돌렸다.   4. 결어   본문은 중국 조선족시문학 정초자인 시인 리욱(1907~1984)의 생애와 문학 활동 및 그의 작품세계와 예술특징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리욱시문학의 의의와 예술적 가치를 진일보 확인하였다. 시인 리욱은 1924년 처녀작 서정시 “생명의 례물”을 《간도일보》 발표하며 시작활동을 시작하여 1984년 장편서사시《풍운기》 제2부의 집필 중 뇌익혈로 돌아가셨다. 향년77세였다. 이와 같이 시인은 70여년의 인생에서 옹근 60년간 진행한 시창작활동 전부를 중국 조선족시문학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중국 조선족시문학 정초자로서 시인 리욱의 작품은 우리문학연구의 소중한 텍스트가 되며 이에 대한 진일보의 연구는 중국 조선족시문학의 정확하고 진실한 텍스트를 확인하고 과거와 현재를 올바로 기록하는것과 함께 미래에 책임지는 과제와 겹쳐있다. 따라서 리욱시문학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는 우선 이와 같은 문제의 제기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시사(示唆)한다.   2011년 6월 2일  
684    시의 가치란? 댓글:  조회:4935  추천:0  2015-09-06
  (조병화, )   이 짧은 글에는 논증이 없다. 어떤 의미에서 이 글은 논증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그 생각 혹은 느낌이 무엇인가? 나에게 해당되는 이 생각을 더 일반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진짜 시는 모든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유종호의 (민음사, 1994)는 그의 말처럼 을 의도하고 쓴 책이다. 그는 피터 버거의 (문예출판사, 1995)에서 느낀 매력, 즉 되어, 문학을 그런 방식으로 소개하고자 한 책이다. 이 책의 한 장이 이다.   플라톤은 그의 이상 국가에서 시인이나 화가를 추방하고자 한다. 왜 추방하고자 하는가? 잘 알려진 논거가 예술가들이 진리로부터 두 단계 떨어진 모방의 모방을 모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예술가에게 진리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이런 의미에서 시는 우리에게 그렇게 대단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예술가에 대한 플라톤의 이러한 비판은 그의 이데아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실재와 현상, 이데아와 경험적 현상의 이분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만큼 예술에 대한 플라톤의 공박은 약화될 것이다.   예술가, 시인을 공박하는 플라톤의 다른 논거는 는 것이다. 그런데 감정은 이성보다 열등한 영혼의 부위이며, 우리 감각처럼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비극 시인들은 과도한 감정을 억제하기 커녕 부추기고 있다. 따라서 무대 주인공의 기쁨이나 슬픔에 몰입하는 사이 우리의 이성은 정지 상태에 빠진다.   그러나 과연 인간의 감정이 이성보다 열등한가? 그것들은 어떤 위계질서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되는 기능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닌가? 분명히 지나친 감정이 부작용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지나친 이성의 작용도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지 못하다.   유종호는 플라톤에 대한 몇 가지 비판을 소개하고 있다. 첫째, 그의 예술관이 소박한 사실주의나 모사주의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에 대한 그의 비판이 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낭만주의에게 제기하는 비판이기도 하다. 둘째, 오히려 플라톤이 진정하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참다운 예술은 이데아를 직접 모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플라톤의 생각을 이런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플라톤이 했던 것은 당대의 잘못된 예술에 대한 비판일 뿐이다. 셋째, 해블락크라는 고전학자의 재해석이다. 플라톤이 비판했던 것은 구두(口頭) 문화에 대한 비판이다. 새롭게 문자적 기록이 가능한 시대에 플라톤은 를 강조하는 의 정신을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시에 대한 그의 비판은 단지 구두로 전승해 되어온 시를 의미하는 것이다.   유종호가 소개하는 둘째, 셋째 비판은 시나 예술이 갖는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플라톤을 해석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비판은 시나 예술이 충분히 이성적인 것과 양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의 앞 부분에 나온 비판을 본다면 플라톤의 생각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일방적인 것처럼 보인다.     유명한 영웅들의 통곡과 애도가 바로 문학 작품, 에 나온다. 플라톤은 이런 것들을 젊은이들이 읽으면 해롭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나중에, 스스로 성숙하게 된 나중에 읽어야 하는가? 그러나 성숙하게 된다는 것은 바로 영웅들조차 보여주는 통곡과 애도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그가 생각하고 있듯이 비천한 사내들이나 여자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싸움터에서 용기 있게 죽을 것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용기와 함께 나약함, 죽음과 함께 두려움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성숙하게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왜 시나 문학 작품은 중요한가? 바로 이런 것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출처] 시의 가치|작성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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