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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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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    대하소설 황혼 제3권(42) 쌍둥이 지문 김장혁 댓글:  조회:472  추천:0  2024-09-15
     대하소설 황혼 제3권           김장혁      42. 쌍둥이 지문      지영은 경찰서 앞에서 뺑소니치듯 빠져 달려가는 구급차를 보고 가슴에 두 손을 모아쥐고 발을 동동 굴렀다.    “저걸 어쩌나?”     그러나 나영의 정체를 안 종호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지영은 옆에 말뚝처럼 서 있는 종호를 돌아보며 애원했다.    “리사장님, 병원에 따라가 봅시다.”    “그럴까?”    종호는 어정쩡해 서 있다가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택시!”    그때 때마침 택시 한대가 미끄러워져 왔다.    지영과 종호는 재빨리 택시에 올라탔다.    “저 앞의 구급차를 뒤쫓아가세요."    "병원으로!”    “알았어요.”    택시는 경정소리를 들으며 구급차 뒤꽁무니를 물고 늘어졌다.    지영은 택시에 앉아 구급차를 응시하면서 어깨를 들먹이었다.    옆에 앉은 종호는 지영이 노는 꼴이 하도 우스워 입귀에 조소까지 흘렸다.    “어떤 때는 머리끄댕이를 끄당기면서 싸우더니 지금은 우오?”    그만 속으로 생각한다는게 빗나가고 말았다.    지영은 종호를 피끗 곁눈질하더니 나직이 말했다.    “리사장은 몰라요, 나영과 내 사이 이왕지사를.”    지영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중얼거렸다.    “우린 초중 때부터 한 학급에서 죽자 살자 한 딱친구였어요. 건데 고중을 졸업하고 나는 나영한테 마음의 큰 빚을 졌어요. 죽을 죄를 졌어요. 량심에 항상 걸린단 말입니다…”     종호는 그제야 지영이 마음의 빚을 갚으려고 천방백계로 나영을 보호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나 그는 지영과 나영, 춘영 사이에 무슨 말 못할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인터폴 지명수배도주범을 도울 순 없잖소?”   종호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괜히 속심을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아서였다.     구급차가 부근의 병원 문 앞에서 멈춰섰다. 구급대원들이 구급차 뒷문으로 뛰여내렸다. 그들은 아주 재빨리 나영을 담가차에 옮겨싣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춘영아!”    지영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황급히 담가를 뒤쫓아갔다.    나영은 그 목소리를 알아듣고 모로 돌아누우며 뒤쫓아오는 지영한테 얼굴을 쳐들었다.    “가만 누워 있어요. 떨어지겠어요.”    여경이 나영을 꽉 눌러 되눕혔다.    나영은 지영한테 손을 내밀었다.    춘영은 뛰어가 나영의 손을 잡고 연신 물었다 .    “어째 이렇게 바보 짓을 해? 괜찮니?”    나영은 지영의 손을 꼭 잡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성림을 부탁하자."    나영과 춘영은 또 한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성림이 한국에 나와 조선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뭐냐? 내 잡혀가면 어쩌니? 성림인 이젠  나영을 믿곤 못 살아. 나영은 맨날 경찰들한테 쫓겨다니다나면 언제 성림을 돌보겠니? 성림은 고향에 돌아가면  조선말을 또 다 잊어먹어.  호로자식이 되겠는지 오랑캐 새끼 되겠는지 어떻게 아니?”    지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근심하지 말라. 걔는 꼭 한국에서 조선말을 할줄 아는 애로 키워줄게.”    나영은 뒤따라온 종호한테 얼굴을 돌렸다.     그녀는 종호의 손을 꼭 잡고 신신당부했다.    “카시모도,곤경에 처한 에메랄드 불쌍하잖아요? 좀 도와 주세요.”    종호는 나영한테 허리를 굽히며 물었다.    “뭐요?”     나영은 카시모도 얼굴을 쳐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카시모도, 성림을 꼭 조선말을 할줄 아는 조선애로 키줘 주세요.”    나영의 그 한마디 말은 민족심이 강한 종호의 가슴에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종호는 담가를 따라 가면서 나영한테 머리를 끄덕이었다.    “근심하지 마오. 내가 살아 있는 한 성림은 꼭 조선족 애로 키울 거요. 세종대왕 옆에서 키우면 꼭 ㄱ, ㄴ, ㄷ, ㄹ 조상환상곡을 잊지 않을 게요.”      나영은 쌔무룩이 미소를 보내며 괴상한 소리를 했다.      "성림한테 조상들이 공부하던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를 황도 가릋쳐 주세요. 조선족 전통환상곡을 잊지 말게 길러 주세요."     "근심하지 마오."     종호는 죄인으로서의 나영은 도우려는 생각이 꼬물만치도 없었다. 그러나 나영이 성림한테 조선어를 배우 주려고 아득바득 애쓰는 극진한 모성애를 보고 가슴이 찡 해나면서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인간적으로는 또다시 나영이 뿔쌍해났다.     성림을 부탁하는 나영을 보고 지영은 고향에 두고 온 딸애 슬기 생각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었다.    (나도 슬기를 데려다 한글을 마음껏 배우게 해야지. 이런 좋은 언어환경이면 조상들이 남겨놓은 말을 제대로 배울 거 같아. 조선어로 글짓기도 하게 하고. 내 이루지 못한 동화작가 꿈도 슬기가 이루게 해야지. 성림과 슬기 함께 학교 다니면 얼마나 좋겠는가. 조선족애들끼리 서로 친구도 되고...)     여경은 시술실 앞에서 경계심에 찬 눈길로 지영과 종호를 되돌아보았다.     “돌아가세요.”    “병문안도 안되는가요?”    지영은 여경한테 눈을 흘기었다.    여경은 지영을 손가락질했다.    “경고해요. 전번에도 병실에서 이불을 들쓰고 나영인 척 하면서 나영을 도망치게 했잖아요? 이번에 나영의 도주를 도우면 엄벌을 면치 못할줄 아세요.”    지영도 물러서지 않았다.    “관두세요. 그때 나영이 날 침대에 쓰러눕히고 천오리로 묶어놓은 후 도망친 걸 낸들 어떻게 해요? 당신들이 무능하단 말이나 하세요.”    여경이 지영을 손가락질 하며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었다.    나영은 담가에 실려 시술실에 들어갔다.    “지영이, 무슨 일이오?"    지영이 얼굴을 돌려보니 함께 간병하던 혜련이 아니겠는가.    “친구가 시술하게 됐어.”    혜련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언니 또 간병하게 생겼구만. 무슨 도울 일이 있으면 알리오. 이럴 때 서로 도와야지.”    “그럴게.”    삽십대 초반 혜련은 한국에 나온지 몇달이 안됐다. 그녀는 원래 음식점에서 일했는데 밤중까지 숱한 주정뱅이들의 심부름 해도 돈은 얼마 생기지 않았다. 그녀는 더러운대로 간병하려고 병원에 찾아왔댔다. 병원 사정을 잘 모르는 혜련은 지영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녀는 간병하다가 무슨 일이 있기만 하면 지영을 찾군 했다. 지영은 간호장이 혜련을 깔보거나 괴롭히거나 일거리를 잘 주지 않으면 항상 나서서 시비하면서 혜련을 여동생처럼 챙겨줬다. 그래서 혜련은 지영을 언니처럼 믿고 간병해 이제야 병원에 발을 붙이고 간병에 적응됐다.    그때 한 남경이 황급히 공무가방을 들고 복도에 나타났다. 그 남경은 여경 둘을 데리고 한쪽 구석으로 가더니 공무가방에서 필림 같은 것을 꺼내는 것이었다.    여경은 힐끔 지영과 종호를 되돌아 보는 것이었다.    지영은 혜련의 팔소매를 쥐어당겨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녀는 경찰들이 모여선 쪽을 눈짓하면서 혜련한테 나직이 당부했다.    “저기 경찰들이 뭐라는가 좀 들어보겠소?”    혜련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곧추 경찰들이 모여 쑤근덕거리는 곳으로  스적스적 다가갔다.    여경은 남경과 뭐라고 쑤근덕거리더니 복도 굽인돌이에서 지영의 시선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혜련은 경찰들을 흘끔흘끔 살피면서 가까이에 다가가며 귀를 도사리었다.    사실 남경은 그 사이 출입국사무소에 달려가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의 협조하에 나영의 지문과 입국시 춘영이 출입국사무소에 남긴 지문을 대조해보았던 것이다.    남경은 남경장을 보고 쑤근거렸다.    “참 이상해. 이 지문을 좀 봐. 웃기잖아?”   여경도 필림을 전등불빛에 들고 이리저리 보고 나서 의아해 입을 함박만큼 쫙 벌렸다.    “이렇게 밋밋한 지문은 처음 보는데. 왜 지문이 똑똑하지 못할까요?”    “진짜 웃기는 지문이야. 쌍둥이라더니 지문도 밋밋한게 비슷하잖아?”    남경의 말에 여경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진짜 이 쌍둥이 지문은 미스터리야."     사실 나영과 춘영은 식지를 거의 다 밋밋하게 숫돌에 갈아 버렸던 것이다. 그녀들은 식지를 숫돌에 갈고는 손도장을 찍어보기까지 했다.    여경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시술실에 들어간 저 여자는 나영이 아닐 수도 있단 말인가요?”    남경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춘영일 수도 있어.”    나영과 춘영이, 쌍둥이자매의 음모궤계가 먹혀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혜련이 지영이 앞에 다가왔다. 그녀는 금방 경찰들이 주고 받은 말을 그대로 쭉 이야기했다.    지영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간나새끼들, 참 묘해. 누구도 그 쌍둥이 간나새끼들을 못 이겨.)    혜련은 자리를 떠나면서 지영을 보고 말했다.    “무슨 급한 일이 있으면 알리오.”    “그래, 수고했소.”    혜련은 간병하러 병실로 총총히 가버리었다.    지영은 나영과 지영이 뛰어난 기만술에 못내 개탄했다.    종호는 여경을 보고 부탁했다.    “이보세요. 춘영이 조카애 혼자 집에 있어요. 춘영이한테서 집의 키를 좀 가져다 주세요.”     여경은 미심한 눈길로 종호와 지영을 번갈아보았다.     “키를 가져다 주세요.”     그제야 여경을 시술실 문을 두드리었다.     한참 후에 간호원이 키를 내다주었다. 남경은 자리를 뜰 념을 하지도 않았다. 아마 나영이 자꾸 번마다 도망쳐서 오늘 밤에는 단단히 지킬 예산인 것 같았다.    (수술환자가 어디로 도망친다고 저럴까?)    종호는 키를 쥐고 아니꼬운 눈길로 경찰들을 쓸어보더니 지영한테 얼굴을 돌렸다.    “지영이, 여기 무슨 일이 있으면 련락주오.”    “네. 알았어요.”    종호는 먼저 애를 보러 갔다.    지영만 믿음에찬 눈길로 멀어져가는 카시모도의 뒤잔등을 눈바램했다.    지영은 종호가 간 뒤 혼자 복도 장의자에 앉아 나영이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지영은 나영이 병원에 온 후 기회를 타 도망치려고 머리비녀를 삼켰다는 것을 불 보듯 빤히 알고 있었다.    (나영이 도망치는데 무슨 도움이 필요하겠는지. 좀 기다려보자. 3층이니깐. 전번처럼 가스관이나 배수관을 타고 도망치긴 쉬울 거 같아.)     그때 갑자기 시술실 문이 활짝 열렸다.     의사와 간호원이 나영의 량팔을 붙잡고 걸어나왔다. 경찰들이 시술실 문께로 우르르 쓸어갔다.    지영은 자기 눈을 의심할 지경으로 놀랐다.    그녀는 나영한테 다가가며 물었다.    “아니, 어째 걸어나오니? 수술 다 했어?”    나영은 코웃음쳤다.    여경 둘이 달려나가 나영의 양팔을 붙잡았다.     남경장이 의사한테 물었다.    “수술 다 했는가요?”    “수술은 무슨? 복부 초음파검사를 아무리 해보아도 머리 비녀를 삼키지도 않았습디다.”     “네?!”     모두 놀라 초풍할 지경, 그들은 눈이 데꾼해 나영을 쏘아보았다.    “도망칠 궁리했구만!”     경찰이 어처구니 없어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그래도 지영의 머리 베아링처럼 잘 돌아갔다.      그녀는 경찰들 앞에 다가서며 고성을 질렀다.      “당장 춘영을 석방하세요. 어린애 밤중에 집에서 울면서 엄마를 찾아요!”     여경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     “안 돼요. 나영인지 춘영인지 완전히 밝혀지기 전엔 구치소에 가야겠어요.”     지영은 한발작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영은 한쪽에서 의아한 눈길로 지영의 입을 바라보았다.     “무죄한 중국 공민을 작작 가두세요. 출입국사무소에 가서 지문을 확인했잖았는가요? 춘영이 지문과 일치하면 이젠 석방해야죠.”     남경장은 지영을 마주 보며 부드러운 어조로 내심하게 해석했다.     “쌍둥이자매라면서요? 저쪽 나영인지 나포해 춘영인지, 아닌지를 확인해야 돼요. 그전엔 잠시 구치소에 가야겠습니다.”     그때에야 나영은 제정신이 펄쩍 들었다.     그녀는 여경들한테 붙잡힌 두 팔을 마구 뿌리치며 몸부림쳤다.     “이 한 밤중에 셋집에 어린 조카 애를 홀로 두고 왔는데요. 집에 가게 좀 놔주세요. 무죄한 여자를 억울하게 잡아 뒀다가 죄값을 치르게 될 겁니다.”     남경장은 내심하게 해석했다.     “무죄면 왜 비녀를 삼켰다고 거짓말 했어? 병원에 왔다가 기회를 보아 도망치려는게 아닌가?”     남경장은 나영을 돌아보며 똑똑히 말해두었다.     "도주혐의 있기에 구속영장을 신청해야겠어요."    여경은 나영의 잔등을 떠밀었다.    "걸엇!”      나영이 끌려가면서도 뭐라고 억울함을 호소하는데도 경찰들은 들었는둥 마는둥 나영을 마구 끌고 경찰차에 다가갔다.    
446    대하소설 황혼 제3권(41) 인터폴 지명수배 녀도주범 김장혁 댓글:  조회:561  추천:0  2024-09-11
        대하소설 황혼 제3권          김장혁         41. 인터폴 지명수배 녀도주범      남경장은 어둑시그레한 밀실에서 종호한테 물었다.     “성명?”    종호는 묻는 대로 대답했다.    “리종호입니다.”    “재직 직무”    “신문사 부사장”    “직함?”    “고급기자.”    남경장은 어깨를 잔뜩 살궈가지고 사무상 앞으로 두 팔굽을 내밀며 얼굴을 종호 앞에 가까이 접근해왔다.    “고급인테리에 지도급간부군요. 위증서면 위증죄를 질 수 있다는 걸 다 알 분이라고 믿는데요. 한가지 물읍시다.”    남경장은 책상등을 종호 얼굴 앞에 가져다 놓았다.    순간 전등불 직사광이 눈이 시리게 비춰졌다.    “금방 체포된 여자 박나영인가요? 박춘영인가요?”    종호는 남경장을 흘끔 쳐다보며 속궁리를 굴리었다.    그는 애를 데리고 아득바득 애쓰는 나영을 인간적으로 고발하긴 싫었다. 그러나 아까 말한 것처럼 확실히 인터폴 지명수배도주범이면 다르다고 생각했다.    (먼저 지명수배도주범이 옳은가 확인해 봐야지.)    종호는 천천히 입을 뗐다.    “한가지 물읍시다. 나영인 무슨 죄를 졌습니까?”    남경은 냉소했다.    “묻는 말에 대답하세요. 저 여자 박나영 맞죠?”    “제가 묻는 걸 대답하면 말하겠습니다.”    남경은 명확히 말했다.    “좋아요. 아까 말씀드렸는데요. 박나영씨는 공금 5만원 횡령한(탐오한) 인터폴 지명수배도주범입니다. 그는 다른 인터폴 지명수배 부패분자 최정호 문화국 국장과 함께 일본에 도주했다가 한국에 밀입국했습니다. 나영은 최정호와 함께 쪽박촌에서 나포됐댔는데 소변보러 모텔 화장실에 들어간 척하고 가스관을 타고 모텔에서 도망쳤지요.”     (5만원 탐오했으면 몇년 감옥살이 하면 될 걸 가지고. 세상 더러운 색마를 따라 도망치긴? 임신하고 낙태까지 해? 별 개고생을 다 해? 도망치면 도망칠 수록 죄는 점점 커지는데.)     종호는 저도 몰래 한마디 툭 내뱉었다.     “에잇 , 참. 바보!”     남경장은 종호를 째려보았다.      “뭔데요? 지금 누굴 욕하는가요? 공무방애죄를 적용할까요?”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나영을 두고 하는 말인데요. 5만원 탐오했으면 옥살이 몇년 하면 될 건데. 도망치긴?”      남경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저 여자 박나영 맞죠?”     종호는 대답은 하지 않고 속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렸다.      그는 여직껏 나영의 정체를 제대로 몰랐다. 그저 경찰에 쫓겨다니니깐. 그저 일본에서 밀입국해 불법체류라고 추적당하는가 했다. 그래서 나영을 숨겨주고 경제적으로도 도와주었던 것이다. 나영이 낙태시술을 할 때도 자기 집에 숨겨놓고 황선희박사와 지영이 시술하는 걸 여러모로 도와주었던 것이다.      그는 인간적으로 딸 같은 나영의 불운한 처지를 한없이 동정했다. 그러나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나영을 더 비호해줄 수 없었다.      그는 자기 삶의 좌우명을 어길 수 없었다.      “저 여자는 박나영 맞습니다.”      남경장은 우쭐 일어나 억센 손을 척 내밀어 종호의 손을 굳게 잡으며  악수했다.      “네, 감사합니다. 당신은 진짜 법과 상식을 지키는 분이군요. 진실이 허위를 이겼습니다. 허위로 아무리 진실을 가리려고 해도 그것은 가랑잎으로 눈을 가리고 야옹 하는 격이죠. 진실은 언제든 꼭 밝혀질기 마련이죠. 우리도 저 여자 박나영 틀림없다고 여깁니다. 이제 출입국사무소에 가서 지문을 확인하면 려권의 박춘영인가? 박나영인가 밝혀 질 거예요.”      그러나 카시모도는 한편으로 마음 한쪽 구석이 아팠다. 그 아픔과 함께 나영에 대해 환멸을 느꼈다. 이제까지 자기가 딸처럼 아끼고 사랑하고 보살폈던 나영이, 에메랄드가 그런 부패분자일 줄은 몰랐다. 그는 이젠 인간적으로 나영의 기구한 운명을 동정하지만 그녀의 범죄는 증오하고 심지어 격분해 했다.     여경은 밀실에서 지영과 물었다.     “저 여자 진짜 춘영인가요?”    “그래요. 춘영인데요.”    여경은 지영이 전번에 류려평을 신고했는지라 그녀의 말은 좀 믿었다.    “두 자매 용모는 똑 같던데요. 특히나 볼에 옴폭 파인 볼우물 퍽 인상적인데요.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어요.  볼우물도 똑 같더군요.”     박지영은 더는 종이장으로 불덩이를 싸서 감출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한참 궁리를 돌리다가 한마디 했다.     “한가지 제보하지요. 나영과 춘영은 쌍둥이자맨데요.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어요.”     “네?!”     여경은 저으기 놀랐다.     “쌍둥이자매라고요? 글쎄 저희도 그렇게 예감이 들긴 했는데요. 쌍둥이 자매 확실하군요.”     그제야 여경은 이른바 춘영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는 것을 느꼈다.     (그래, 나영은 바로 쌍둥이 자매라는 그 점을 이용해 자기 정체를 가리고 있었어.)     찰칵!     갑자기 밀실이 환하게 밝아졌다. 삼라만상이 환히 드러났다.     여경은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지영을 데리고 밀실에서 나가며 나직이 말했다.     “나영과 함께 경찰서에 련행해 미안해요. 그러잖으면 나영한테 제보자가 들켜날 수도 있지요.”     지영은 여경이 배려하는 마음에 고마웠다. 한편 마음 한쪽 구석에는 나영한테 또 량심상 한가지 마음의 빚을 더 지는 것 같아 죄송했다.     기실 지영은 나영한텐 미안한 마음이 앞서서 나영을 해치려는 마음은 꼬물만치도 없었다. 그것은 나영의 첫사랑 국현을 자기 신랑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지영은 자기 남편과 소낙비 내리는 싯허연 대낮에 공원 주차장에서 차 안에서 바람 피운 춘영을 증오하고 미워했다.    지영은 춘영을 생각만 해도 악이 나 이를 쁙쁙 갈았다. 그는 이번 기회에 나영을 춘영이라고 위증해 나영이 대신 춘영이 체포돼 개고생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편 나영은 지영의 그런 속셈도 전혀 모른 채 안도의 숨을 후- 내쉬었다.     (내 지영을 용서허기를 잘 했어. 이래서 관용과 용서는 살인도 멈추게 한다고 했는가.)     그녀는 삼검풀처럼 착잡한 고민에 빠졌다.     (박지영, 간나새끼, 내 첫사랑 국현을 도적질해 갔지. 저 간나새낀 지금 량심의 빚을 갚으려는 건가? 아니면 딱친구 정을 잊지 못해 머리끄댕이를 줴 뜯으면서 연극까지 놀았을까?)     나영은 고민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다.     (아니야, 이 세상에는 믿을게 하나도 없어. 정호를 봐라. 자기 야욕을 다 채우자 다 파 먹은 김치독처럼 날 차버리지 않았는가. 날 보호하는 척하면서 얼마 탐오했는가고 내 죄상을 장악한 후 심계국에 물어먹지 않았던가. 믿던 놈이 그렇게 내 뒤통수를 칠줄이야 꿈에도 생각 못했지. 색마와 부패타락한 자기 정체를 감추려고 그렇게 없으면 죽을 것 같아 하던 애인마저 감옥에 처넣으려고 하지 않았던가.”    여기까지 련상하자 나영은 온몸에 소름이 끼쳐 바르르 전률했다.    “절대 아무나 믿어선 안돼. 믿던 도끼등에 찍힌 일이 어디 한둘인가?”    나영은 우쭐 일어나 쇠살창을 부여잡고 꺼먼 구릅 속으로 헤염쳐 들어가는 달을 쳐다보면서 베아링처럼 속궁리를 굴리었다.     (종호랑 지영이랑 믿어선 절대 안돼.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리사장이 내 정체를 다 알면 계속 카시모도처럼 날 보호하자고 하겠는가. 그는 이제껏 그저 불법체류해 추적당했는가 해 보호했을 수도 있어. 지금 이 시각…)    여기까지 생각한 나영은 종호와 지영을 믿고 경찰서 림시 구치실에 가만히 앉아 수동적인 위치에서 기다릴 순 없다 것을 느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여기서 도망쳐야 해.)     그는 구치소 안을 두리번거리면서 도망칠 궁리를 했다.     이윽고 구치실에서는 비명소리가 귀청을 쨀듯이 울려퍼졌다.     “사람 살려요!”     나영은 구치실 널바닥에서 갑자기 배를 끌어안고 땔땔 구을며 연신 숨넘어가는 소리를 질렀다.     “아이구, 배야!”     여경이 열쇠를 쥐고 다급히 뛰어왔다.     여경은 열쇠를 쥐고 쇠살창 사이로 구치실 널바닥에서 땔땔 구으는 나영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뭔 일인가요?”     “아이구, 배야! 머리 비녀를 삼켰어요.”     옆에서 다른 수감자들이 소리쳤다.     “여경아씨, 빨리 병원에 호송해요!”     여경은 눈이 데꾼해졌다.     “뭘? 비녀를 삼켜?!”     여경은 황급히 자물쇠를 열고 뛰어들어갔다.     “언제 일인가요?”     나영은 손으로 목을 가리키며 숨 넘어가듯한 소리를 쳤다.     “금방, 아이고, 배야! 살려 줘요!”     나영이 애원하는 소리를 듣고도 여경은 좀처럼 움직일 념도 하지 않았다.     “병원에 이송됐다가 도망치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요?”    여경은 여러번 병원이나 모텔에서 도망친 나영의 전과를 생각해 경솔히 구치실에서 내놓기는 경계심이 앞섰다.      다른 여수감자들은 어이 없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요.”     여수감자들은 저희들끼리 눈짓을 찔끔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요. 손가락만큼 긴 비녀를 목에 걷어넣는 걸 똑똑히 봤는데요.”     그제야 여경은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느끼었다.     “어서 병원으로 갑시다.”     여경은 나영을 부축해 복도로 나갔다.     나영은 허리를 온전히 펴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여경의 몸에 기대여 간신히 경찰서 당직실까지 걸어갔다.     당직경찰이 긴급히 전화를 쳤다.     “119구호대, 여긴 XX경찰선데요. 긴급히 구호차를 보내주세요. 네. 여수감자가 비녀를 삼켰어요.”     이윽고 구호차가 경적소리 높이 울리며 밤 시가지를 꿰지르며 쏜살같이 달려왔다.     여경과 남경장은 나영을 구호차에 싣고 부근의 병원에 달려갔다.      경적소리가 무더운 밤하늘을 어지럽게 자르며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X        X         X         2013년 11월 20일 12시 16분  조회:1894  추천:27  작성자: 김장혁    민성 에피쏘드:    초중 1학년 때 학습위원도 하고 첫패로 "홍위병"에 가입해 로투구만인갱에 가서 전교 사생들 앞에서 빨간 "홍위병" 완장을 왼팔에 끼고 오른 주먹을 불끈 쳐들고 선서까지 했다.    중학시절 나어린 나는 당시 "독서벼슬론"이란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고 무슨 뜻인지도 전혀 몰랐다.그러나 "4인무리" 시대를 잘못 만나서 공부를 잘한 것도 죄로 돼 류소기 '독서벼글론'의 류독이 깊은 학생"으로 딱지 붙어다녔다. 너무나도 내 머리에 맞지 않는 커다란 꼬깔모자였다. 열심히 로동하면서 "사상개조"를 해 질투와 비방 속에서도 학교 단총지까진 입단이 비준됐다. 하지만 학교단총지 서기란 청년교원이 공사 공청단위에 가서 나를 "류소기 독서벼슬론'에 푹 물젖은 학생"이라고 음해하는 바람에 고중을 졸업할 때까지 끝내 공청단조직에 입단도 하지 못했다.    귀향해 1년 반 동안 목동으로 돼 소 궁둥이를 치면서 재교육을 잘 받아 동료목동 최희 단지부 서기와 박철수 단원의 소개로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서야 겨우 입단.    후에 방송국 기자시절에 입당도 하고 출판사에서도 당지부 조직위원으로 돼 활동에서 맹활약했다. 지금은 연변주조선족아동문학연구회 당지부 서기로 됐다. 나는 자그마한 정치자력이라도 애나게 얻은 정치생명이기에 아주 소중히 여겨왔다. ㅎㅎㅎ.    그러나 나는 어려서부터 시기와 질투를 많이 받고 무함과 음해를 당했기에 정치를 딱 싫어했다. 젊은 시절부터 귀향해 고향의 강에서 소나 방목하면서 량심적으로 글이나 쓸 소박한 푸른 꿈을 꿨댔다. ㅋㅋㅋ.           X           X            X                  김장혁 프로필        필명: 민성, 애명: 조왕돌      1958년 중국 길림성 연길현 조양공사 근로촌 시골 농민가정에서 출생.        1974년, 교하시 모 한족초중 졸업, 1976년 고향의 산골 5.7고중을 졸업,      1981년 12월 중국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1982년 1월- 1987년 중국 길림성 룡정시 룡정중학교 교원.     1988년-1996년 중국 길림성 연변인민방송국 기자. 1994년 36세에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입당.     1997년- 2016년 연변인민출판사 "청년생활"잡지사 부주필, "소년아동"잡지와 "별나라"잡지 련합편집부 부주필, "로년세계"잡지 주필 력임, 연변인민출판사 편심(교수급편집).      2018년 5월 정년퇴직.     료녕성조선족로인협회 부회장, 명예회장 력임.     현재 연변주조선족아동문학연구회 법인대표, 회장, 당지부 서기. 잡지 주필.                   주요저서: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총 7권, 350여만자)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총 4권, 120여만자)     대하소설 "졸혼"(총 6권, 150여만자)     대하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욕망의 천지", "황천의 유령"(총 3부작, 90여만자)     대하소설 "황혼"(총 4권)     장편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공저) 등        장편소설 26권.       그외.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한문)      중단편소설집 "사랑환상곡"      동화소설집 "멋쟁이 매옹이와 찍찍의 겨룸"      동화소설선집 "괴물 클론바우 모험기"      아동문학작품집 "호랑이와 사냥군"      문학작품집 "사랑은 요술쟁이야"       수필집 "리별"        실화작품집 "빨간 장미꽃 함정"등         저서  총 34권,  문학작품 총 1,000여만자.                 수상:      백두컵문학상,  아리랑문학상, 전국소수민족아동문학작품우수상 (수차), 한중옹달샘아동문학상, 한중동심컵아동문학상,  웰빙아동문학상, 한국 KBS방송 수기우수상, 한국 대전매일수필문학상, 두만강수필문학상 ,  동북3성우수도서상 (2차), 2010년 연변작가협회 선진작가상 등 30여개 수상.  
445    대하소설 황혼 제3권(40) 쌍둥이자매 김장혁 댓글:  조회:576  추천:0  2024-09-10
       대하소설 황혼 제3권           김장혁         40. 쌍둥이자매     쇠살창 속 경찰서 당직실은 에어콘을 틀어놓아 시원한 바람이 삼복지간의 찜통더위를 밀어내고 있다. 홧홧 달아오른 바깥에서 경찰서에 들어선 종호는 오히려 시원한 감이 들어 좋았다.     “항의해요!”     경찰서 당직실에 들어가자마자 나영이 고래고래 고함쳤다.     “무슨 죄 있다고 무고한 중국 공민을 체포해?”    종호도 동조했다.    그는 경장한테 다가가 항의했다.    “저 춘영이 무슨 죄 있다고 체포합니까? 나영인가 합니까? 당신들은 오해했습니다.”    “그만해요!”    여경은 종호와 나영을 손가락질했다.     “연극을 작작 노세요.”     여경은 종호와 나영의 앞에 손을 척 펴서 내밀었다.     “핸드폰을 내놓으세요.”     “왜?”     나영은 쌍까풀눈이 데꾼해졌다.     “어서 내놓으세요.”    여경은 매서운 눈길로 콕콕 찌를듯이 쏘아보며 명령했다.    “여긴 경찰서지 장마당 아닙니다.”    나영은 머리를 폭 숙이더니 핸드빽에서 핸드폰을 순순히 꺼내 주었다.    종호는 핸드폰을 건네주면서도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여경은 지영의 앞에 가서 손을 내밀었다.    “핸드폰을 내놓으세요.”    지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핸드폰을 훌 내주었다. 그러나 그의 눈길에는 내 것도 거두는가는 불만이 다분히 번쩍였다.    여경은 컴퓨터 앞에 가서 척 들어앉더니 나영을 쏘아보며 물었다.    “성명?”    “박춘영.”    종호의 눈길과 지영의 눈길이 마주치며 아주 미묘한 미소를 입귀로 흘리었다.    “제대로 말하세요,”    “성명 박춘영”    “안되겠군요.”    여경은 컴퓨터 건판에서 손을 떼더니 나영의 핸드폰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드디여 여경은 나영의 눈 앞에 핸드폰을 척 내들었다.    “이 문자 메시지 보세요.”    나영이 보니 지영이 자기한테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나영아, 보라매공원에 오라. 우리 항상 만나 앉아 한담하던 그 장의자에 오라.      “박나영이 아니라고 떼를 쓰겠나요?”    여경은 냉소하며 손을 또다시 건판에 가져다댔다.    “어서 성실히 말하세요. 박나영, 맞죠?”    “아니요. 난 춘영이오. 려권을 보세요. 명명백백히 박춘영이라고 찍혀 있어요. 에이, 참, 한국은 법이 밝다더니 경찰들은 왜 억지로  억울하게 굴어요?”     여경은 나영과 려권의 사진을 찬찬히 대조해 보았다. 아무리 올리훑고 내리훑어 봐도 진짜 볼에 옴폭 파인 볼우물도 똑 같았다. 비자도 문제 없었다.     “한국에 입국할 때 혼자 왔는가요?”     “저의 조카 성림을 데리고 왔는데요.”     “성림이 몇살이죠?”     “7세.”     “좋아요. 애를 데려다 물어도 다 드러날 걸. 어서 나영이라고 인정하죠?”     여경은 나영의 얼굴 표정의 미묘한 변화를 살폈다.     “이제 출입국 사무소에 가서 지문을 찍어보면 다 드러나요.”     순간 나영은 속에서 망돌짝이 쿵 떨어지는 감을 느꼈다. 그러나 나영은 이젠 경찰서고 뭐고 구을러먹을 대로 구을러먹어서 아주 태 연자약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직도 억울하다는 얼굴 표정에는 크게 변화 없었다.     갑자기 나영은 무릎을 탁 치며 발딱 일어났다.     “깜짝이야. 이걸 어쩌나?”    여경은 의아한 눈길로 나영을 경계하는 눈치었다.    “웬 일인가요?”    나영은 아닌 보살을 떨었다.    “애를 재워놓고 나왔는데요. 어서 놔 주세요. 애 혼자 밤중에 무서워 어쩌는가요?”    픽!    여경은 냉소했다.    “연극을 작작 노세요.”    여경은 나영을 데리고 밀실에 가서 지문을 채집했다.     “어서 로실히 탄백하세요. 박나영 맞죠?”     “아닌데요. 박춘영인데요.”     여경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꽤나 끈질기군요. 내일 오전을 넘기지 못해 다 밝혀지겠는데도. 참. 왜 이렇게 바보처럼 우둔해요? 출입국사무소에 가 지문을 대조하면 모든게 드러날 건데요. 어서 성실히 탄백하세요.”     나영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하나 시간을 벌어 도망칠 틈을 엿봐야 했다.     피뜩 춘영이 떠올랐다.     “정 믿지 못하겠으면 나영과 직접 통화해 보세요.”     여경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나영을 데리고 당직실에 나왔다.     여경은 나영의 핸드폰을 찾아 나영한테 건네며 명했다.     “나영인지 춘영인지 영상통화해요.”     나영은 춘영의 핸드폰을 쳤다.     여경은 옆에서 핸드폰을 지켜보았다. 드디여 핸드폰에 춘영이 떴다. 진짜 나영과 생김새 똑 같았다.     나영이 재빨리 선손을 쳤다.     “나영 언니, 잘 있니?”     “오- 그래. 전화 하지 말라더니 웬 일이냐? 한밤중에.”    핸드폰에 뜬 여성은 말할 때면 옴폭 패인 볼우물이 퍽 인상적이었다.    여경은 피뜩 령감이 떠올랐다.    (혹시 나영과 춘영인 쌍둥이자매 아닌지? 뭔가? 혹시 나영과 춘영은 똑 같은 쌍둥이자매 용모를 이용해 서로 신분을 바꿔 주어대고 있지 않는가?)    나영은 재빨리 춘영한테 위급한 자기 신변을 알렸다.     “지금 경찰서야. 여경이 날 나영이라고 억지 부려 그래.”     그러자 춘영도 나영의 신변이 위험한 걸 눈치챘다.     “그만 끊어. 난 경찰에 추적당하잖니? 핸드폰에 내 위치 드러나면 끝장이야!”     핸드폰이 툭 끊겼다.     경장이 춘영의 핸드폰 위치를 인차 추적해냈다. 그녀는 수원시 쪽에 있었다.     “어때요? 진짜 나영을 보았잖아요? 저를 어서 내놔요. 어린앤 이모 없으면 울어요.”     여경은 그 말꼬리를 제꺽 물고 놓지 않았다.     “어린애는 왜 엄마하고 함께 보내잖고 이모라는 당신과 함께 있는가요?”     나영은 그럴듯하게 꾸며 댔다.     “나영 언닌 항상 경찰들한테 추적당하기에 애를 저한테 맡겼는데요.”     여경도 더 어쩔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나영을 풀어줄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었다.     여경은 저쪽에 있는 남경장한테 다가가 한참 쑥떡거리더니 나영을 경찰서 림시 구치소에 데리고 갔다.     나영은 구치소에 끌려가면서 종호와 지영을 번갈아보며 기대에 찬 눈길을 보냈다.     “지영아, 내 혹시 못 나가면 조카애를 잘 부탁한다.”     지영도 또 그럴듯하게 연극을 놀아댔다.     “춘영아, 조카 근심하지 말라. 차마 대한민국 경찰들이 아무 죄도 없는 너를 나영이라고 구금하겠니?”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종호와 지영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며 손을 저었다.     그녀는 구치실에 스적스적 걸어가면서도 제 좋은 생각을 굴리었다.     (카시모도는 죽어도 날 물지 않을 거야. 저 지영은 좀 그런데. 간나야. 좀 도와달라.)     여경은 쇠살창문을 드르릉 열더니 나영의 잔등을 떠밀었다.     “들어가세요.”     “아니, 날 가두면 성림인 어쩌는가요?”    여경은 표독스런 눈길로 쏘아보며 물었다.    “저쪽, 이종호씨와 지영씨는 지인 아닌가요? 그들 보고 오늘 밤 봐달라고 하세요.”    나영은 쇠살창 사이로 종호를 내다보면서 부탁했다.    “이보세요. 카시모도, 오늘 밤 에메랄드네 애 좀 봐주세요. 이모 없으면 걔 울겠는데. 경찰 아가씨도 너무 무정해요.”     종호가 다가와 말했다.     “근심하지 마오. 내하구 지영이 돌봐 줄테니까.”    나영은 그제야 머리를 끄덕이었다.     남경장과 여경은 종호와 지영을 데리고 각기 다른 밀실로 들어갔다.     나영은 멀어져가는 발걸음소리를 들으며 구치소 벽에 기댄 채 모래무지처럼 스르르 무너져 앉고 말았다.     (끝장이야. 어쩐담? 임시 춘영하고 짜고 들어 연극을 놀면서 속여 넘겼는데. 내일 출입국 사무소에 가서 춘영의 지문과 대조해보면 모든게 들통날게 아닌가.)     그녀는 절망에 빠져 울상이 됐다.     (아니야. 오늘 밤 끝장날 수도 있어. 카시모도와 지영이 내 신분을 까밝히는 날엔 당장 끝장이야. 난 고향에 인도돼 추악한 죄값을 치르게 될 거야. 그럼 성림인 어쩐단 말인가? 성림을 어디까지나 훌륭한  한국어환경에서 공부를 시켜 참된 조선애로 키우려 했는데. 이젠 그 마지막 소박한 꿈도 끝장 아닌가?)     나영은 무릎을 주먹으로 탕탕 쳤다.     한참 후 그녀는 두 눈을 천천히 떴다. 그녀는 쇠살창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을 내다보았다.    순간 그녀의 눈앞에는 일루의 희망의 빛이 보이었다.     (그래도 지영을 한번 믿어보자. 아까 내 머리끄댕이를 줴 끄당기며 연극 논 걸 봐. 지영인 신고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고의로 날     춘영이라고 연극 놀았잖아. 글구 고의로 한어통인 여경이 들으라고 한어로 연극 놀지 않았어? 쟤가 내 첫사랑을 빼앗아간 마음의 빚을 갚자는 걸까? 춘영은 지영한테 보복했지만 지영이, 너도 내게 량심적으로 빚을 졌지 않았어? 안 그래?)     나영은 지영을 믿기로 했다.     그녀의 눈앞에는 종호의 외까풀 눈과 말상이 떠올랐다.     (아, 리사장님, 당신은 젤 믿을만한 사람이죠. 에메랄드를 보호한 카시모도처럼 여직껏 날 보호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내 한국에 들어온 후 마음이 고달프거나 역경에 처했을 때 기대고 싶었던 유일한 사람이었죠. 어버이 같고 오빠 같은 분이였지. 글구 나도 당신을 그만하면 푸대접은 하지 않았지요. 색마네 냉면집에서 애나게 번 한달 로임을 그채로 당신 책 내라고 주지 않았던가요? 당신은 날 배신할 수 없지요.)     순간 그녀의 눈앞에는 이전에 종호가 자기를 보호하고 도와주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우린 냉면집에서 처음 면목익혔지. 냉면을 잡수러 몇번 오더니 나와 친숙해졌지요. 내가 색마 허보수한테 능욕당하기 싫어 엄동설한에 눈풍설이 이는 날에 허망에 나앉아 트렁크를 끌고 종각역 부근에서 헤맬 때도 리사장은 어버이 따뜻한 손길을 뻗쳐 날 자기 집에 데려다 재웠지요. 날 시름놓고 자라고 리사장은 엄동설한에 종각역 층계에 가서 앉아서 쪽잠을 잤댔지요. 려향한테 오해를 사면서도 당신은 날 자기 집에서 계속 살게 했지. 내 배 점점 부어올라 락태수술할 때에도 자기 고중동기 여친구  황선희 박사를 불러 자기 집에서 락태시슬을 하게 했지. 그리고 날 보신시키려고 손수 닭곰도 해 대접했지요. 그때 그 어버이 같은 사랑을 내 어찌 잊으리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잊지 못해요. 내 경찰한테 추적당하는 걸 알고 항상 날 위안하면서 자기 집에 감춰놓았댔지요… 그런 리사장님이 날 고발할 사람이 아니지요? 맞죠?)     나영은 또다시 지영을 떠올렸다.     (지영도 그래. 만약 그가 날 고발할게면 진작 기회가 많았어. 내가 홍대입구 부근으로부터 경찰들한테 추적당해 병원으로 도망해 들어갔을 때였지.  넌 날 보고 자기 간호사복을 갈아입고 주사밀차를 밀고  뒤쫓아들어온 경찰들의 눈 앞에서 복도로 해 도망치게 했지. 넌 내 옷을 갈아입고 병실 침대에 이불을 들쓰고 누워 있다가 경찰들한테 붙잡혀 갖은 수모를 다 당했지. 지영이 고발할게면 그때 진작 했을 거야. 락태수술을 할 때도 지영인 시술칼과 마취약, 소독약, 핀센트를 가지고 와서 황선희 박사를 도와 수술해주지 않았던가… 그런 딱친구 지영이 날 물어먹을 수 있겠는가.)     나영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내 첫사랑 국현을 도적질해간 지영을 용서 잘했어. 이래서 관용과 용서는 살인도 멈추게 한다고 했는가?)  2013년 11월 20일 12시 16분  조회:1894  추천:27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프로필           필명: 민성, 애명: 조왕돌      1958년 중국 길림성 연길현 조양공사 근로대대 제8생산대에서 한 생산대 정치대장의 아홉번째 아들 조왕돌로 태여났음. 스님의 말을 듣고 부모는 앓지 말고 건실하게 자라라고  갓난애기 나를 보에 싸서 시퍼런 칼과 함께 함지에 담아 조왕간 덕대에 올려놓았음. 그래서 어릴 때 애명도 "조왕돌"이었음. 그러나 미신과는 달리 시시콜콜 앓기만 해 약골이었음.      1974년, 교하시 모 한족초중 졸업, 1976년 고향의 산골 5.7고중을 졸업하고 귀향해 1년 반 동안 소 궁둥이를 쳤음.심심산골 목동출신.     1981년 12월 중국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1982년 1월- 1987년 중국 길림성 룡정시 룡정중학교 교원.     1988년-1996년 중국 길림성 연변인민방송국 기자.     1997년- 2016년 연변인민출판사 "청년생활"잡지사 부주필, "소년아동"잡지와 "별나라"잡지 련합편집부 부주필, "농가"잡지와  "로년세계"잡지 련합편집부 주필 력임, 연변인민출판사 편심(교수급편집).      2018년 5월 정년퇴직.     료녕성조선족로인협회 부회장, 명예회장 력임.     현재 연변주아동문학연구회 사단법인대표, 회장, 당지부 서기.. 편집부 주필.                   주요저서: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총 7권, 350여만자)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총 4권, 120여만자)     대하소설 "졸혼"(총 6권, 150여만자)     대하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욕망의 천지", "황천의 유령"(총 3부작, 90여만자)     대하소설 "황혼"(총 4권)     장편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공저) 등        장편소설 26권.       그외.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한문)      중단편소설집 "사랑환상곡"      동화소설집 "멋쟁이 매옹이와 찍찍의 겨룸"      동화소설선집 "괴물 클론바우 모험기"      아동문학작품집 "호랑이와 사냥군"      문학작품집 "사랑은 요술쟁이야"       수필집 "리별"        실화작품집 "빨간 장미꽃 함정"등         저서  총 34권,  문학작품 총 1,000여만자.                 수상:      백두컵문학상,  아리랑문학상, 전국소수민족아동문학작품우수상 (수차), 한중옹달샘아동문학상, 한중동심컵아동문학상,  웰빙아동문학상, 한국 KBS방송 수기우수상, 한국 대전매일수필문학상, 두만강수필문학상 ,  동북3성우수도서상 (2차), 2010년 연변작가협회 선진작가상 등 30여개 수상.  
444    대하소설 황혼 제3권(39) 체포 댓글:  조회:657  추천:0  2024-09-08
    대하소설 황혼 제3권             김장혁          39. 체포        지영은 장의자에서 우쭐 일어나더니 손으로 부채질했다.     “우와- 덥다. 저 지하철교 밑  개울에서 숱한 사람들이 개울물에 종아리를 시원히 불그고 놀더라. 우리도 거기가서 계속 얘기할까요?”    나영도 우쭐 일어나며 동감했다.    “그게 좋겠다.”    나영이 종호 손을 쥐여 일으켜 세웠다.    “갑시다. 리사장님, 달아오른 종아리를 개울물에 불구고 나란히 앉아 얘기하면 더욱 로맨틱할 거 같아요.”    지영은 너무 살갑게 구는 나영을 아니꼬운 눈길로 흘끔 쳐더보더니 눈을 흘기었다.    종호는 뜻밖에 심드렁 표정을 지었다. 계속 얘기해 봤자 한곬으로 흘러갈 수 없어 재미 없을 것 같았다. 괜히 화기애애한 기분만 깰 거 같았다.    “이젠 밤도 깊었는데. 집에 돌아가기오. 나영인 성림일 홀로 재워놓고 근심되지도 않소?”    나영은 핸드폰을 들어보더니 도리머리를 저었다.    “이제 나온지 반시간도 안됐는데요.”    지영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요. 우리 셋이 언제 이렇게 만날 새 있겠습니까?”    그러자 종호는 별 수 없어 그녀들을 따라 나섰다.    “그럼 글쎄 가보기오.    그때 종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종호가 핸드폰을 꺼내 보니 려향이 아니라 여경이었다.    “진짜 성가시게 구네. 웬 전화를 자꾸 쳐?”    “누군데요?”    지영은 종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종호는 대답 대신 나영을 힐끔 곁눈질하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는 인차 가까이에 있는 비닐장기하우스로 슬쩍 들어가버리었다. 밤중이여서 비닐하우스 안에는 장기를 노는 로이들도 하나도 없었다.    “여보세요! 이종호씨를 부탁드려요!”     “네, 종호인데요.”    “왜 전화 안 받아요. 진짜 꽉 막힌 사람이네요.”    “밤중에 무슨 일입니까?”    “지금 보라매공원에 있지요?”    여경들은 지금 위치추적기로 종호를 추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더는 속일 수 없었다.    “네. 건데 무슨 일로 밤중에 자꾸 전화질 합니까?”    “옆에 나영씨 있죠? 맞죠?”    “없습니다.”    “거짓말! 죄인을 감춰 주면 은닉죄를 지게 돼요. 사실대로 말하세요.”    “네. 여긴 나영이란 여자 없습니다.”    “전번에도 말하지 않았는가요? 나영일 발견하면 즉시 신고하라고 했는데요. 지금 뭔가요? 진짜 은닉죄를 지고 있군요. 지금 보라매공원 어디 있는지요? 이종호씨 지금 구체 위치를 말세요.”    “장기하우스에 있습니다.”    “알았어요.”    이때 장기하우스 밖에서 나영이 훌 들어왔다.    “리사장님, 누군데요? 어째 내 이름 들먹이는가요?”    “전번에 류려평을 체포하던 여경들이오. 나영일 자꾸 찾소. 어서 도망치오.”    종호는 그 소리를 들으면 나영은 그 자리로 부랴부랴 도망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영은 오히려 개의치도 않았다.    “재간 있으면 나영일 붙잡아 보라지. 뭐. 흥!”    나영인 콧방귀까지 뀌었다.    그녀는 못 박힌듯이 그 자리에 떡 뻗치고 서서 자리를 뜰 념도 하지 않았다.    “여경들이 하늘을 날고 뛰는 재간이 있답니까? 손오공이 와 봐. 흥! 나영일 붙잡는가. 두고 보자.”    “꼼짝 말엇!”    갑자기 남녀경찰 대여섯이 우르르 뛰어들었다.    나영은 꼼짝도 못하고 나포됐다.    갑자기 나영은 여경의 손을 홱 뿌리치며 고함쳤다.    “놓으세요! 왜 이래요?”    여경이 냉소하며 다가섰다.    “나영씨 맞죠?”    “그런데 왜요? 무슨 죽을 죄를 졌는가요?”    남경이 체포장을 꺼내 들었다.     “나영씨, 인터폴 지명수배도주범으로 체포합니다.”    종호는 아닌 보살을 떨었다.    “인터폴 지명수배도주범이라니요?”    여경이 피씩 냉소했다.    “이종호씨, 모르는 척 하지 마세요. 우리 몇번이나 말해 줬는데요.”    이종호는 때를 만났다고 물어 보았다.    “한가지 문의해도 괜찮겠습니까?”    “뭘?”    “나영씨 무슨 죄 있다고 인터폴에서 나왔는가요?”    남경이 똑똑히 까밝히었다.    “나영씬, 중국에서 전람관 부관장을 하면서 전람관 재건비용 5만원을 횡령한 죄를 졌습니다. 나영씬 횡령죄가 두려워 문화국 국장  최정호와 함께 일본을 경유해 한국에까지 밀입국했습니다.”     “뭐라고요?”    종호는 나영한테 이런 죄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저 불법체류자 돼서 경찰한테 추적당하는가 해 있는 힘껏 도와주었던 것이다.    “호호호.”    나영은 턱을 쳐들고 비닐장기하우스 천정을 쳐다보며 웃었다.    “나영이라고? 똑똑히 보라구? 내 나영인가?”    그 자리에 있는 경찰들은 깜짝 놀라 멍해 서로 쳐다보았다.    종호나 지영도 의아해 나영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나영인 자기 량팔을 꼭 붙잡은 여경들의 손을 홱 뿌리쳤다.    “이걸 놔요! 난 나영이 아닌데요.”    그녀는 핸드빽을 뒤적이더니 뭘 꺼내들었다.    “이 려권을 보세요. 난 나영이 아니라 춘영인데요.”    “뭐? 춘영이?”    여경들은 려권을 받아들고 황급히 나영의 얼굴과 대조해 보았다.    종호와 지영은 서로 쳐다보면서 어이없어했다.    여경들은 아무리 뜯어보아도 려권과 나영의 얼굴은 똑 같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나영은 턱을 쳐들고 떳떳하게 말했다.    “난 나영이 쌍둥이 여동생 춘영인데요.”    젤 놀란 것은 경찰들보다도 지영이었다.    “춘영아?!”    갑자기 지영은 욕설을 퍼부으며 씽드르 나영한테 달려들었다.    “이 개쌍년아! 내 남편 꼬시더니 여기까지 뒤쫓아와 사기를 쳐?”    지영은 나영이 머리끄댕이를 마구 줴 끄당기었다.    여경이 지영을 뜯어말리었다.    “이러지 마세요!”    경장인듯한 남경이 손을 홱 휘둘렀다.    “몽땅 경찰사에 연행하세요!”   경찰들은 나영과 지영 그리고 종호까지 경찰차에 압송해 경찰서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하늘에는 먹장구름이 덮쳐왔다. 경찰차 요란한 경적소리에 깜짝 놀란 보름달아가씨도 호수에서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아기별들도 놀란 금빛눈을 깜짝이며  아쉬운대로 하나, 둘 호수가 인간세상을 떠나 하늘로 솟아올가갔다.    종호는 의아해 고함쳤다.    “이보세요. 내 무슨 죄 있다고 련행합니까?”    남경이 대답했다.    “종호씬 성실하지 못하게 거짓말 하지 않았는가요? 나영이 있어도 신고하지 않았잖아요? 당신은 도주할 위험도 있는 인물입니다.”    나영은 종호를 변호했다.    “세상 법이 없어도 살 리사장님인데요. 작작 릉욕하세요.”    지영도 합세해 항의했다.    “우리 무슨 죄 있다고 련행해요?’   여경은 옆에 앉은 지영의 허벅지를 툭 쳤다.   “경찰서에 가면 알게 돼요.”   지영은 두덜거리었다.   “춘영이 나영인가 확인하면 될 건데요. 왜 우리까지 성가시게 굴어요?”   지영은 나영을 욕했다.   “춘영아, 언니 때문에 죄를 만났구나. 너네 언니 나영이 그 간나새끼 때문에 우리도 욕본다. 아이구, 스트레스다!”    나영은 경찰차에 압송돼가면서도 옆에 앉은 여경 건너 한어로 지영을 둘러보며 욕했다.    “초타마디, 왕바단! 개쌍년, 카시모도, 너네 둘 중 누가 날 물어먹었지?”    지영도 한어로 지껄이었다.   “간나새끼, 아무리 원쑤라도 난 고발 같은 거 그때위 짓거리 안해.”   나영은 횡설수설했다.   “거짓말 작작 해라. 네 문자를 받고 여기 오자마자 억울하게 나영 대신 나포됐잖았니? 니 고발 안했으면 어떻게 딱 만나는 장소에 와서 날 나포해?”    그녀들이 주고 받는 중국 말을 다 알아듣고 여경은 속궁리를 굴리었다.   (흥, 나영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면 나영인지, 춘영인지 밝혀지겠군. ㅎㅎ)   나영은 자꾸 단서를 남긴다는 것도 모르고 계속 중얼거렸다.   “ 내 리사장 전화 받는 거 다 들었어. 울 언니 리사장을 그렇게 도와 줬는데 왜 물어먹었어?”    종호는 억울해 입을 함박만큼 쫙 벌렸다. 그도 한어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좀 작작 억울하게 구오? 여경이 금방 나영이 있는가 묻는 것두 여기 없다고 했댔어. 내 저를 물어먹을 사람이오?”    지영도 한마디 보탰다.    “춘영아, 난 네년을 잡아먹어도 씨원찮다! 내 남편을 빼앗을 땐 어쨌니? 내 가슴이 억망진창이 된 거 아니? 가슴이 멍멍해 멍들었어. 어진간하면 내 슬기를 버리고 한국에 나왔겠니? 개쌍년, 그래도 살기를 바라니?”    그러자 나영은 맞대구를 했다.    “지영아, 니 그런 말 할 처지냐? 니 나영이 첫사랑 국현일 빼앗아 갈 땐 어쩌구.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용서 못해?!”    “간나새끼, 나영의 첫사랑을 빼앗아갔다고 나영을 대신해 내한테 보복했니?”    나영은 춘영인 척 하면서 연극을 놀았다.    “어째? 국현이 니한테 장가드는 거 보고 나영이 얼마나 울었는지 아니? 내 국현이하구 공원 차 안에서 오입한 걸 보고 어떻데? 니 간나새끼 고통스러워하는 거 보니 얼마나 깨고소했는지 모르겠더라. 어째?!”    옆에서 종호는 들을수록 오리무중에 빠졌다.    (딱친구라더니 생불을 켜는 라이벌이었어? 뭐? 국현인 나영이 첫사랑? 아님, 저 춘영이라는 나영이 여동생 첫사랑이랑 말인가? 언니 대신 보복했어? )    종호는 그녀들이 주고 받는 말을 들으면서 딱친구 사이 아니라 라이벌이라는 것을 서서히 느꼈다.    (그럼 저건 나영이 아니라 얘들의 말처럼 나영이 쌍둥이 여동생 춘영이란 말인가?)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영이나 지영이나 다 이 여경들이 한어를 다 알아듣는 것을 알기나 하는가? 아니면 한어를 다 알아듣는 경찰들 앞에서 지금 고의로 연극을 노는 건가? 지금 연행돼 가는 여자는 나영이 아니라 춘영이란 걸 보여주려고? 그렇다면 긴급돌발 상황에서 지영과 나영의 연극기교는 진짜 수준급이 아닌가?)    그제야 종호는 안도의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이제 경찰서에 가면 다 밝혀지겠지?)    나영이 또 입을 열었다.    “간나새끼, 어디 두고 보자. 남을 물어먹고 잘 되는가?”    “응, 넌, 남의 발등을 밟고 잘 될 거 같애?”    “성가셔! 입 다물지 못할가?!”    이때 여경이 꽥 소리쳤다.    그제야 나영과 지영은 입에 빗장을 지르고 말았다.    경찰차는 무더위를 뜷고 경찰서 앞에서 서서히 멈춰 섰다. 이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무시무시한 쇠찰상 속 경찰서였다.    이제 나영의 앞에는 어떤 운명이 차례질까?            김장혁 프로필     필명: 민성, 애명: 조왕돌     1958년 중국 길림성 연길현 조양공사 근로촌 출생.     1974년  교하시 모 한족초중 졸업, 1976년 고향의 모 고중 졸업한 후 1년 반동안 소 궁둥이를 쳤음. 목동 출신임.     1981년 12월 중국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1982년 1월- 1987년 중국 길림성 룡정시 룡정중학교 교원.     1988년-1996년 중국 길림성 연변인민방송국 기자.     1997년- 2016년 연변인민출판사 "청년생활"잡지사 부주필, "소년아동"잡지와 "별나라"잡지 련합편집부 부주필, "로년세계"잡지와 "농가"잡지 련합편집부 주필 력임, 연변인민출판사 편심(정교수급편집).      2018년 5월 정년퇴직.     료녕성조선족로인협회 부회장, 명예회장 력임.     현재 연변주아동문학연구회 사단법인대표, 회장, 당지부 서기.. 편집부 주필.                   주요저서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총 7권, 350여만자)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총 4권, 120여만자)     대하소설 "졸혼"(총 6권, 150여만자)     대하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욕망의 천지", "황천의 유령"(총 3부작, 90여만자)     대하소설 "황혼"(총 4권)     장편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공저) 등        장편소설 26권.       그외.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한문)      중단편소설집 "사랑환상곡"      동화소설집 "멋쟁이 매옹이와 찍찍의 겨룸"      동화소설선집 "괴물 클론바우 모험기"      아동문학작품집 "호랑이와 사냥군"      문학작품집 "사랑은 요술쟁이야"       수필집 "리별"        실화작품집 "빨간 장미꽃 함정"등      총 34권,  문학작품 총 1,000여만자.                 수상     백두컵문학상,  아리랑문학상, 전국소수민족아동문학작품우수상 (수차), 한중옹달샘아동문학상, 한중동심컵아동문학상,  웰빙아동문학상, 한국 KBS방송 수기우수상, 한국 대전매일수필문학상, 두만강수필문학상 ,  동북3성우수도서상 (2차), 2010년 연변작가협회 선진작가상 등       30여개 문학상 수상.
443    대하소설 황혼 제2권(38) 보라매공원 로맨스 김장혁 댓글:  조회:475  추천:0  2024-09-06
    대하소설 황혼 제2권             김장혁      38. 보라매공원 로맨스      눈 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강~   갑자기 종호의 핸드폰이 음악과 함께 울렸다.    “이 밤중에 누가 전화 해?”    종호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여보세요?”    핸드폰에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울리었다.    “리종호씨 부탁드려요.”    종호는 긴장된 표정으로 지영과 려향을 번갈아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면서 전화를 받았다.    “네. 저 리종호입니다. 누구신죠?”    “저희는 전번에 병실에 가서 류려평씨를 나포한 여경인데요. 종호씨, 며칠 채 전화 여러번 했는데요. 왜 글케 전화 안 받아요?”    “네? 그래요?”    종호는 지영이네 앉아 있는 방을 힐끔 되돌아보더니 커피숍에서 나가버렸다.    그는 주위를 살피면서 나직이 말했다.    “미안해요. 아마 제가 복잡한 냉면점에 있어 전화소리 못 들은 거 같아요.”    “내내 냉면점에 있었는가요? 참.”    “용건이 뭔데요?”    “지금 위치 어딘가요?”    종호는 두근닥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면서 대답했다.    “대림의 한 커피숍에 있습니다. 무슨 용건인가요?”    “옆에 나영씨 있는가요?”    (나영일 찾아 뭘 해?)    “없습니다.”    “냉면점에 함께 있었다는 걸 아는데요.”    “애가 너무 떼를 써서 먼저 집에 갔습니다.”    “지금 누구랑 함께 있는가요?”    (나영일 찾아 뭘 해? 려평의 일과 관계되는 건가?)    “저의 딸애와 함께 있는데요.”    “딸 말고 녀자 하나 더 있지요”    “네.”    “나영이죠?”    “아, 아니, 지영씨인데요.”    “이제야 제대로 말하는군요.”    놀라운 건 여경이 모든 걸 손금 보듯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종호의 핸드폰 위치추적을 하고 있었다.    “나영씨를 보면 경찰서에 알리세요. 핸드폰번호 적으세요.”   “잠간, 지금 바깥이어서 적지 못해요. 카운터에 들어가 적지요.”   “네.”   종호는 카운터에 가서 아가씨한테서 필과 종이장을 빌었다.   “전화번호 부탁드려요.”    “010-6668-XXXX. 이 전화번호는 련락 때만 쓰고 비밀로 해 주세요.”    종호는 손으로 이마에 돋은 땀을 쓱쓱 닦으며 대답했다.    “예. 알았습니다.”    대방의 핸드폰이 뚝 끊었다.    종호는 다방에 들어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눈길이 자기를 살피는 것 같아 불안했다.   그는 카운터에 다가가 조용히 결산까지 해버리고 부랴부랴 다방에 들어갔다.    “오늘 이만하기오.”    “아니, 금방 나영한테 전화 통했는데요. 애를 재워놓고 여기 다방에 오라고 했는데요.”    “그랬소?”   종호는 의아해 려향한테 눈길을 돌렸다.   려향이 머리를 끄덕이었다.   종호는 “관념 쁠랙홀”에서 기여나오자마자 발뺌할 수도 없어 쏘파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때 려향이 우쭐 일어났다.    “아빠하구 언니, 계속 얘기 나누세요.”    그녀는 면접 본 일도 잘 안돼 지루하게 온 밤 그들과 얘기할 기분이 없었다. 또 아빠와 지영이 대화하는데 보초군질 하기도 싫었다.    (아빠와 지영이 재혼해 살았으면 나도 시름놓겠다.)    사실 려향은 진작 항상 음침한 표정을 짓는 나영을 싫어했고 내내 밝은 모습의 지영을 좋아했던 것이다.    기실 종호가 친아빠 아니라는 청천벽력까지 맞고도 려향이  까무러치지 않은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나 좀 몸이 불편해 먼저 가야겠소.”    “그래? 주의해 가라.”    려향은 자라에서 일어나면서 종호를 쳐다보면서 훌쩍거렸다.    (녀자는 물로 만들었나 보다. 어쩜 어린 려향한테도 눈물이 저리 많을까?)    종호는 안되겠다 싶어 려향을 따라나가 바래다주고서야 다방에 되돌아왔다.    지영은 그새 카운터를 불러 맥주를 더 시켰다.    그녀는 맥주잔에 맥주를 찰찰 넘치게 따라 종호한테 드렸다.    “자, 맥주나 들면서 이야기 나누지요.”    그녀는 종호와 맥주잔을 마주치더니 맥주잔을 굽냈다.    종호도 굽내고 우쭐 일어섰다.    “우리 이 맥주를 가지고 자리를 옮겨 마시면서 얘기하기오.”    “어디로 가요?”    “보라매공원에 가기오.”    “밤중에 공원에서 달을 쳐다보면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한다? 거 참, 로맨틱할 거 같아요. 가지요.”    지영은 카운터로 가서 결산하려고 했다.    “얼만가요? 어째 요 건가요?”    카운터는 종호한테 거스름돈을 주면서 눈짓했다.    “이분이 미리 돈을 뒀다가 다 결산했어요.”    “이럼 안되는데요. 2차는 제가 한다고 했는데요.”    결산을 마치자 그들은 맥주를 비닐주머니에 넣어들고 택시를 타고 보라매공원으로 달려갔다.    지영은 택시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녀는 나영한테 핸드폰 위챗에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나영아, 보라매공원에 오라. 우리 항상 만나 앉아 한담하던 그 장의자에 오라.      이윽고 택시는 보라매공원 입구 부근에서 멈춰 섰다.    삼복지간이라 구리바라 같은 보름달도 홧홧 달아올라 열기를 뿜는 것 같았다. 보름달 아가씨도 무더운지 보래매공원 호수에 풍덩 뛰어들었다. 보름달 아가씨는 아기별들과 숨박곡질하며 자맥질한다. 이윽고 보름달 아가씨는 아기별들끼리 놀게 하고 혼자 호수 구석쪽으로 가서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거치장스러운 구름옷을 벗어버리고 하얀 알몸을 시원한 호수물에 불구고 씻는다.     달빛이 내리비추는 보라매공원 나무 밑에는 열대야를 피해 나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장난꾸러기 아기별들은 능청스레 호수가에 살금살금 기어나와 이쁜 밤아가씨들과 덜먹총각의 도란도란 주고 받는 밤이야기를 훔쳐 듣는다.      종호와 지영은 자그마한 호수가 장의자에 가서 한쌍의 련인처럼 나란히 앉았다. 그들은 호수에서 뛰노는 보름달과 금빛별들을 바라보면서 이 밤을 즐기기 시작했다.    지영은 맥주병을 하나 종호한테 건네주고 자기도 하나 들고 종호의 맥주병과 댕그랑 마주 쳤다.    “자, 보름달을 쳐다보며 맥주나 마시면서 얘기하지요.”    그들은 맥주병 채로 꿀떡꿀떡 마시였다.    지영은 나직이 물었다.    “듣는 말에 의하면요. 리사장님은 리혼하기로 했다던데요.”    리혼 말이 나오자 종호는 지영을 흘끔 곁눈질해보았다.    (왜 내 리혼을 관심할가?)    “맞소. 리혼하기로 했소. 이제 리혼수속하러 고향에 돌아가야겠소.”    지영은 맥주잔을 들어 권하면서 나직이 말했다.    “리사장님, 잘했어요.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리혼해야죠. 사랑하지 않으면서 리혼하지 않는 것도 도덕에 어긋나죠. 이제 리혼하고    나면 아마 새 세상이 열릴 거예요. 이건 저한테 하는 말이기도 해요.”    종호는 지영의 어두운 얼굴을 마주보며 넌지시 물었다.    “지영도 무슨 불쾌한 가정 사연이 있소? 저도 리혼하려는 건 아니지?”    지영은 무겁게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도 바람 피운 남편과 리혼해야겠어요. 이제껏 딸애 슬기 불쌍해 리혼할 결심을 내리지 못했어요. 슬기를 한쪽 날개 부러진 새로 만들고 싶잖았어요. 그래서 슬기까지 활 남편한테 맡겨놓고 한국에 나와 버렸지요. 그러나 남편이 바람 피운 걸 생각하면 하루라도 함께 살 생각이 없었어요.”     그녀는 종호를 쳐다보며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리사장님은 지성인인데요. 믿고 숨겨둔 비밀 싹 말합니다. 내 남편, 국현이란 놈이 글쎄 누구하구 바람 피웠는지 압니까?”     “?”    지영은 악이 나 이빨로 입술을 옥물고 공소했다.    “글쎄 저 나영이 여동생 춘영이란 년과 바람 피우지 않았겠습니까?”    그 청천벽력 같은 말에 종호는 저으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영인가 했지. 다행이야.)    지영은 말을 꺼낸 바하고는 모든 걸 토설하고 말았다.    “리사장님을 믿고 다 말하는데요. 널리 량해하세요. 매번 저 나영일 보면 춘영일 보는 거 같아 몹시 괴로웠습니다. 리사장님은 찬찬히 봤는지 모르겠는데요. 저 나영이 웃을 땐 볼우물을 옴폭 파는데요. 딱 춘영이, 그 갈보년의 볼우물과 똑 같아요. 고 놈의 볼우물로 숱한 사내들을 꼬셨지요. 개쌍년, 고걸 그저 갈기갈기 줴 뜯어 놓았으면 씨원하겠어.”     지영은 악이 나 솜소리마저 씨근거리며 어깨를 세차게 들먹이었다.    그녀는 분노를 억지로 억제하고나서 쓰라린 과거사를 쭉 이야기하고나서 남편 국현이 공원에서 차 안에서 춘영과 바람 피운 일까지 다 공소했다.    “미안해요. 리사장님, 리사장님을 오빠처럼 믿고 속이 타 별 말을 다 했어요.”    종호는 맥주잔을 들어 권했다.    그는 지영의 맥주잔과 마주치고 맥주잔을 비웠다.     “나젊은 지영이한테도 그렇게 아픈 사연이 있는 걸 몰랐소. 이제 지영이도 새 출발 해야지.”     지영도 맥주잔을 장의자에 내려놓으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네. 그래요. 저도 이제 리혼하고 새 출발을 해야겠어요.”    그녀는 종호를 마주 바라보며 희죽이 웃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당돌하게 물어 미안해요? 선생님은 재혼을 어떻게 생각해요?”    종호는 심드렁해 했다.     “아직 재혼까지 생각해보진 못했소. 첫 결혼에 한족악처를 만나 너무나도 참패를 당하다보니 재혼을 생각만 해도 몸서리치오.”    지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어찌 혼자 살아요? 리사장님은 아직 젊어요. 리사장님도 사랑하는 안해가 있어야죠. 특히나 황혼에는 그래도 살뜰한 안해가 제일이죠. 악처를 혹 떼듯 떼버린 다음 착한 녀성을 만나 남 보란듯이 행복하게 살아야죠.”     종호는 재혼 말에 신물이 났다. 려향이, 나영이 자기한테 하던 재혼 권고와 똑 같은 권고 아닌가.     지영은 나영이 부탁하던 말이 떠올라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리사장님, 당돌하게 묻는다고 욕하지 마세요. 나영이라면 재혼할 생각이 없는가요?”     “?!”     지영은 말을 뗀 바하고는 계속 떠밀었다.     “나영인 젊고 이쁘고 마음씨도 착하지요. 나영일 후처로 삼으면 리사장님한테 떡돌 같은 아들도 낳아줄 수 있지요. 그럼 전주 리씨 대도 잇고… 좀 좋아 그래요?”     종호는 들을수록 이상하게 오리무중에 빠졌다.     (전번에 나영은 지영을 후처로 삼으면 어떤가고 중매 서듯 묻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영은 또 나영을 중매서고? 이 두 녀자 무슨 궁리를 하고 있는 건가? 딸 같은 여자애들, 참 남의 간을 봐도 유분수지.)     종호가 머리를 숙이고 뭐라고 대답할가 궁리할 때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그때 딱 나영이 달빛을 밟으면서 다가왔다.     “미안해요. 두 분 얘기 깨서.”     두 여자는 종호의 량 옆에 앉아 맥주를 들면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나 종호는 그녀들의 수다를 떠는 걸 듣다나니 여경이 나영을 만나면 알리라던 말도 까맣게 잊고 말았다. 까마귀 고기 먹었는가. 금방 한 부탁도 다 잊어? ㅋㅋㅋ     나영은 맥주잔을 들어 종호한테 권하고나서 말했다.     “금방 오면서 그대들이 주고 받는 말을 피뜩 들었는데요. 리사장님, 결혼등록하고 재혼하자면 얼마나 복잡한가요? 재혼보다 마음이 맞으면 그저 이렇게 답답한 일이 있으면 자주 만나 얘기도 나누고 얼마나 좋아요. 만약 서로 사랑하면 아무런 구애도 없이 조용히 다방이나 모텔 같은데 가서 사랑도 나누면 되는 거지요. 모텔을 대신 맡으면 몇시간 맘껏 향수할 수 있어요. ㅎㅎㅎ.” 지영은 나영일 주책없다고 입귀로 풍선에서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픽 코웃음쳤다.     그러나 나영은 개의치 않고 계속 자기 말만 했다.     “진짜 가정이란 일종 쇠사슬에 묶인 정신감옥이예요. 지금 그래서 한국이나 일본의 숱한 리혼은 하지 않고  졸혼이란 걸 해 가지고  가정이란 거 유지하되 서로 갈라져 산다고 하지 않아요? 서로 상대방의 생활을 간섭하지 않아 얼마나 자유롭겠어요. 혹시 애들의 일이나 대사 같은 일 있으면 온 가족이 모여 한 가정처럼 움직이고 웃고 떠들면서 산대요.”      그러나 나영은 종호가 반기를 들고 나올줄은 몰랐다.     “졸혼이란 바람둥이들이 불륜을 가라기 위한 방패에 지나지 않소. 물론 졸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 불정당하다는 말은 아니오.”     그는 좌우를 번갈아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리혼하지 않는 건 잘못이라고 보오. 혼인도 맺고 끊고 명확해야 하오. 나를 보오. 악처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려향의 전도를 생각하고 리혼하지 않아서 이게 무슨 꼴이오. 나는 한뉘 평생 악처한테서 사랑도 없이 허울 밖에 남지 않은 정신감옥에서 살아왔소. 악처가 나중에 날 독약을 먹여 살해까지 하려고 하지 않았소? 그리고 등록도 하지 않고 모텔에 가서 사랑을 나눈다는 건 한국 사람들식   부정당한 패륜이라고 보오.”     종호는 나영과 지영을 번갈아보면서 말했다.     “듣기 싫은 소리로 말하면 바람쟁이들의 오입이 아니고 뭐요?”     나영과 지영은 종호를 너머 서로 마주 바라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윽고 나영이 마지못해 뒷수습을 했다.     “미안해요. 정인군자이신 리사장님을 모르고 횡설수설해 미안해요.”     종호도 부드럽게 그 말을 받았다.     “너무 언성을 높여 과격한 거 같애 미안하오. 내 딸처럼 생각하고 말한 거요. 널리 량해하리라 믿소.”     지영도 인사치례를 게발라했다.     “괜찮아요. 리사장님이야 우리 어버이 같은 분이죠. 우리 많이 가르침 받아야죠.”    그렇다. 전통파 종호와 현대파 나영의 혼인관은 판판 달랐다.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깊고 깊은 협곡이 있었다.  세상에 그 협곡을 졻힐 방법이 있는가?    그들 셋은 서로 보이지 않는 깊고 깊은 협곡을 페부로 은은히 느끼었다. 그들은 홧홧 달아오르는 달을 쳐다보며 한참 동안 애꿎은 맥주나 비우면서 한숨만 몰아쉬었다.      저자 주: 지금까지 저의 대하소설 "황혼" 제2권까지 감상하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계속하여 대하소설 "황혼" 제3권이 이어집니다. 여러분의 감상을 기대합니다. 2024.11. 5.         김장혁 프로필    필명: 민성, 애명: 조왕돌     1958년 중국 길림성 연길현 조양공사 근로촌 출생.     1974년 교하시 모 한족초중 졸업,1976년 고향의 모 고중을 졸업하고 귀향해 소 궁둥이를 쳤음. 목동 출신임.     1981년 12월 중국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1982년 1월- 1987년 중국 길림성 룡정시 룡정중학교 교원.     1988년-1996년 중국 길림성 연변인민방송국 기자.     1997년- 2016년 연변인민출판사 "청년생활"잡지사 부주필, "소년아동"잡지와 "별나라"잡지 련합편집부 부주필, "로년세계"잡지와 "농가"잡지 련합편집부 주필 력임, 연변인민출판사 편심(정교수급편집).      2018년 5월 정년퇴직.     료녕성조선족로인협회 명예회장 력임.     현재 연변주아동문학연구회 사단법인대표, 회장, 당지부 서기. 편집부 주필.                   주요저서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총 7권, 350여만자)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총 4권, 120여만자)     대하소설 "졸혼"(총 6권, 150여만자)     대하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욕망의 천지", "황천의 유령"(총 3부작, 90여만자)     대하소설 "황혼"(총 4권)     장편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공저) 등        장편소설 26권.       그외.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한문)      중단편소설집 "사랑환상곡"      동화소설집 "멋쟁이 매옹이와 찍찍의 겨룸"      동화소설선집 "괴물 클론바우 모험기"      아동문학작품집 "호랑이와 사냥군"      문학작품집 "사랑은 요술쟁이야"       수필집 "리별"        실화작품집 "빨간 장미꽃 함정"등          총 34권,  문학작품 총 1,000여만자.                 수상     백두컵문학상,  아리랑문학상, 전국소수민족아동문학작품우수상 (수차), 한중옹달샘아동문학상, 한중동심컵아동문학상,  웰빙아동문학상, 한국 KBS방송 수기우수상, 한국 대전매일수필문학상, 두만강수필문학상 ,  동북3성우수도서상 (2차), 2010년 연변작가협회 선진작가상 등       30여개 문학상 수상.
442    대하소설 황혼 제2권(37) 케케 묵은 관념 쁠랙홀 김장혁 댓글:  조회:492  추천:0  2024-09-05
   대하소설 황혼 제2권                김장혁          37. 케케 묵은 관념 쁠랙홀       서울 대림의 랑만적인 밤거리는 연분홍 네온등이 반짝이면서 진짜 황홀한 불야성을 이루었다. 무더운 삼복지간 열대야에 찜통 같은 집 안에 갇혀 있을 수 없는지 에어콘을 시원히 틀어놓은 다방이나 백화점 같은 곳에 손님들로 붐빈다. 심지어 행인들은 무더위를 피해 지하철에도 쓸어들어갔다.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무료로 에어콘의 시원한 바람을 쏘이면서 열대야를 보내려고 했다.     나영은 아쉬운대로 종호와 지영과 갈라져 성림을 데리고 집으로 가야만 했다.     그녀는 종호와 려향을 둘러보면서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오늘 냉면도 맛있게 먹고 얘기도 잘 들었습니다. 아주 즐거운 저녁 고마워요.”    종호는 나영의 손을 살짝 잡아 주면서 말했다.     “종종 이런 파티 가지기오.”    나영은 볼우물을 옴폭 파면서 반겼다.    “네. 좋아요. 다음엔 제가 파티 마련하죠. 답답하면 서로 한담도 하고 좋을 거 같아요.”    지영은 옆에서 아니꼬운 표정으로 나영을 바라보았다.    허나 나영의 얼굴이 자기 쪽으로 돌아서자 지영은 화기애애한 표정을 지으며 아닌 보살을 떨었다.    “아쉬우면 성림이를 재워놓고 나오던지.”    “안돼!”    성림이 엄마를 손을 꽉 붙잡고 몸까지 탈면서 떼를 썼다.    “엄마, 날 혼자 두고 어딜 나와? 안돼!”    나영은 성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성림을 두고 어디로 나와? 자, 리사장님, 전 가요.”     나영은 지영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분부했다.     “오랜만에 리상님 만났을 때 전번에 내 하던 말도 좀 나누고 그래라.”     그녀는 지영이 뭐라고 말하려는 것을 손으로 입을 꽉 막고나서 종호 쪽을 찔끔 눈짓했다.     나영은 제자리에 돌아와 종호와 섭섭한 작별의 눈길을 보냈다. 그녀는 아쉬운대로 성림의 잡고 네온등불빛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지영은 나영한테서 눈길을 천천히 돌리더니 작별인사를 했다.     “저도 돌아가야겠어요.”     종호는 못내 아쉬웠다.     “아니, 오랜만에 만났는데 우리 려향까지 셋이 커피숍에 가서 한담 더 하면 어떻소? 금방 성림이 때문에 할 말을 다 한 거 같잖은데.”     “글쎄요.”     지영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좀 망설이다가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갑시다. 2차는 제가 쏘지요.”     “아니, 내 어찌 지하 아가씨들한테서 얻어먹겠소? 난 종래로 아가씨들의 돈지갑을 열게 하지 않았소. 가기오. 오늘은 내가 마련한 파티 아니고 뭐요.”     그들은 누가 쏘든간에 좌우간 보근의 근사한 커피숍에 들어갔다.     에어콘의 시원한 바람이 힐링이 될 정도로 열대야 무더위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확 해소해주었다.     연분홍네온등이 번쩍이는 어둑시그레한 음악커피숍에서는 심수봉의 쓸쓸한 노래소리가 은은히 흘렀다. 종호는 지영과 려향을 데리고 조용한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려향이 카운터에 가서 커피를 예약했다.     이윽고 짙은 화장을 한 아가씨가 쟁반에 커피 석잔을 들고 디똥디똥 다가왔다.     “맛있게 드세요.”     아가씨는 깎듯이 인사했다.     “네- 맛있게 들겠어요.”     종호는 탄력 있는 몸을 돌려 나가는 아가씨 잔등에 대고 인사말을 했다.     종호는 이쁜 지영과 마주 앉아 커피를 드노나리 어쩐지 저도 몰래 혈액순환이 잘 되고 기분도 저으기 좋은 감이 들었다.     종호는 바지 호주머니에서 접은 종이 몇장을 꺼냈다.      “아까 성림이 때문에 다 말하지 못했는데. 이걸 읽어보오. 이건 낡은 관념을 고치자는 취지에서 쓴 글이오. 초고인데 수개의견이나      보충할게 있으면  좀 얘기해주오.”     “네- 봅시다.”     지영은 속으로 리사장님은 진짜 관념 쁠랙홀에 빠졌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그녀는 종호의 손에서 종이 몇장을 받아들고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관념을 갱신하자       한 안로인은 딸이 차린 양고기산적점에서 청소를 하고 양고기점을 꿰주면서 딸을 도와주었다. 그 안로인은 손님들이 탔다고 남긴 양고기점을 아까워 주어뒀다가 먹군 하였다. 탄 양고기점에는 발암물질이 많았기에 안로인은 탄 양고기점을 아까워 장기간 먹다가 대장암에 걸려 사망하고 말았다.     한 안로인은 병원에 가서 별의별 환자들을 다 간병하였다. 그 안로인은 환자가 먹다가 남긴 밥과 채를 아까와 버리지 않고 먹었으며 림종환자들이 준 옷을 입고 다녔다. 옛날부터 어렵게 살아온 분이기에 옷값이나 밥값을 한푼이라도 남으려는 것이였다. 그러나 간병환자에게서 간염이 전염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결국 그 안로인은 간암과 간복수, 당뇨병합병증에까지 걸려 생명까지 잃고 말았다.     지금 로인들에게 돈이 없어 이런 비극이 벌어진 것이 아니다. 주요하게 일부 로인들의 낡아빠진 소비관념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로인들은 이런 색바래진 소비관념을 갱신해 눈앞에 돈이 나가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좀 돈을 팔더라도 편안하고 건강하게 살면 좋지 않겠는가? 밀치락거리는 뻐스에 앉지 말고 택시에 척 앉아 가면 얼마나 어르신답고 신사답게 멋지고 편안하겠는가?     일본에서 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해변가에는 보험궤가 페허 속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 보험궤는 일본 로인들이 생전에 쓰지 않고 한푼두푼 모은 돈을 넣은 유물이였다. 이 모든 것은 돈이 모자라 쓰지 못한 것이 아니라 목숨이 모자라 돈을 다 쓰지 못하고 이        세상을 총망히 떠나간 비극이 아니겠는가?     한번 가면 다시 못 오는 반디불 같은 짧은 한생에 아껴 먹고 쓰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나서야 무슨 락이 있겠는가! 인생이 얼마라고 우리가 인생의 황혼에 이렇게 아글타글 하다가 락도 누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한단 말인가?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 시대에 뒤떨어진 전통양로관념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로인들은 전통양로관념을 벗어나 자식들과 한 집에서 살려고 하지 않고 있다. 또 대부분 자식들도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지만 한 집에서 살기는 서로 불편하다고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로인들은 아직도 전통양로관념을 벗어나지 못해 자손들과 한 집에서 살면서 천륜지락을 누리려고 한다.      한 늙은 량주는 전통관념으로 맏아들과 한 집에서 살 예산으로 젊을 때 한국에서 뼈빠지게 일해 번 돈으로 맏아들에게 매 평방메터에 2만원도 넘게 주고 3개 침실에 널직한 객방을 갖춘 120평방메터 되는 집과 고급승용차까지 사주었다. 그러나 항상 부모를 모시고 살겠다던 맏며느리가 늙은 시부모가 한국에서 돌아온지 한달도 안돼 한집에서 살지 못하겠다고 나누울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시아버지가 샤와욕을 하고 머리카락과 때가 지저분하게 널려있다는지, 창문옆에서 담배를 피워 갓난애에게 피해를 입힌다는지, 잘 때 코를 구들고래 꺼질 지경으로 곤다는지 별의별 허물을 다 트집잡으면서 나가서 따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내놓고 떠들었다. 며느리는 시부모와 모든 관념이 맛지 않아 한시도 함께 살지 못하겠다면서 아예 반란이라도 일으킬 작정으로 갓난애를 싸업고 친정부모가 있는 한국으로 훌쩍 떠나 가버리였다.      설상가상으로 둘째아들며느리도 부모와 한 집에서 살지 못하겠다고 막아나섰다. 둘째아들과 며느리는 이전에 형과 보모의 돈을 빨아내는 경쟁을 벌린적이 있었다. 그들은 부모를 보고 “맏아들만 아들이고 둘째아들은 아들이 아닙니까? 늘그막에 두고봅시다.”라고 을러메면서 부모의 돈을 빨아내 100평방메터 되는 집을 샀다.  둘째아들은 부모를 보고 “부모의 돈을 더 많이 가진 맏아들이 모시지 않는데 둘째가 모실게 있는가?”라고 하면서 자기 집 근처에 세집을 맡고 살라고 하였다.     한국에서 애나게 번 돈을 몽땅 두 불효자에게 주고나니, 아니, 떼우고나니 주름살이 밭고랑처럼 파인 량주는 늘그막에 어느 아들 집에도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눈물겨운 처지로 돼버렸다. 뒤늦게야 정신을 펄쩍 차린 늙은 량주는 전통양로방식을 벗어나 과단성있게 아들 둘이나 사는 도시를 떠나 자기가 살던 마을로 돌아가 살기로 마음먹었다.     한족며느리를 삶은 한 늙은 량주는 전통양로방식대로 자식들과 살기 더욱 어렵다. 한족과 조선족의 음식습관이 다른데다가 동북과 남방의 모든 관념상 차이는 조선족시부모와 한족며느리 사이에 높은 장벽을 쌓아놓았다. 조선족시어머니는 조선족의 음식습관에 따라 항상 장국을 끓여 밥상에 올렸다. 그러나 한족며느리는 장국냄새를 맡기만 해도 상을 찡그리군 하였다. 한족며느리는 음식에 무슨 양념을 가득 넣고 기름에 볶아야 맛있어했다. 하지만 조선족시어머니는 양념냄새를 딱 싫어했고 아들이 살이 진다고 기름에 볶아 먹이지 않고 돼지고기도 물에 삶거나 고마이도 시루에 쪄서 먹였다. 늘 부동한 음식습관으로 해 고부 사이에는 날따라 깊은 금이 점점 실려갔다. 나중에 그 금은 서로 넘을 수 없는 깊고 깊은 협곡으로 되고 말았다. 며느리는 언제 시어머니가 주방을 떠나겠는가, 아니, 자기 집에서 언제 떠나가겠는가고 기다리는 눈치였다. 남방의 한족며느리들은 우리 조선족들과는 물론이고 동북의 한족들과도 관념과 습관이 달랐다. 남방의 한족들은 대대로 친정집어머니가 보모처럼 집안청소까지 날마다 다 해주면서 딸집의 가무를 거들어주는 전통관념이 있다. 그러나 조선족시아버지는 늘 틀을 차리고 앉아 술을 마시고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데다가 잔소리가 많았다. 남방의 한족며느리가 이런 대남자주의관념이 꽉 찬 시아버지를 좋아할리 있겠는가.      한 집이란 졻은 공간에서 부모자식들이 함께 생활하면 천륜지락을 누리는 좋은 점 외에 불편한 점도 많은것 같다.     한 안로인은 한국에서 한푼이라도 남으려고 세집도 해빛이 잘 들지 않는, 반토굴이나 다름없는 손바닥만한 월세집에서 살았다. 쌀도 항상 시장에서 누렇게 변질이 간 눅거리쌀을 사다 먹거나 곰팡이가 낀 쌀이거나 벌레가 먹은 쌀도 아까와 버리지 않고 벌레를 골라버리고 해볕에 말리워 먹군 하였다. 아들며느리가 오랜만에 한국에 놀러 갔을 때에도 시어머니는 돈을 남느라고 누렇게 뜬 쌀을 씻어 말리워 밥을 지어 밥상에 올렸다. 그러자 며느리는 밥을 먹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왈 쏟아버리였다. 또 샘물병을 주어다가 수도물을 받아 마시는 시어머니를 보다못해 며느리는 시부모 몰래 샘물병을 내다 버렸다. 그 일로 하여 고부 사이에 말다툼이 생겼다. 며느리는 소비관념이 맞지 않아 째째한 시부모와 한 집에서 한시도 살지 못하겠다고 신랑을 끌고 모텔로 달아난 일도 있다.     이뿐이 아니다.     로인들은 잠이 적어서 신새벽이면 일어나 집안에서 서성거리거나 덜커덕리면서 늘 아침식사를 일찍이 했으면 하고 자식을 도와 밥을 지어놓고 지루하게 기다리기가 일쑤이다. 그러나 젊은 자식들은 휴식일이면 늦잠을 자기 좋아하며 아침도 먹네마네한다. 부동환 관념으로 인해 부모자식간에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 아니며 심지어 말다툼이 생기기 일쑤이다.     반면에 조건이 허락되면 자식들과 한 시내에서 다른 집을 잡고 살면 편리하지 않겠는가는 생각이 든다. 부모와 자식이 멀리 떨어져있지 않고 지척에서 수시로 만나보고 로인들은 손자손녀들을 안아보면서 천륜지락을 누릴수 있어 좋다. 한 집이란 비좁은 공간에서 부모자식이 비비닥거리지 않고 일정한 공간을 두어서 말썽이 없어 좋다. 로인은 뭘 먹고싶은것이 있으면 내 손으로 사다가 끓여잡술수 있어 좋고 시장하면 아무 때나 식탁에서 훌훌 꺼내 잡술수 있어 좋다. 아무 때건 옷을 더 껴입지 않고서도 화장실에 갈수 있어 편리하다. 자식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밥을 지어먹을수 있어 좋다. 총적으로 자식들과 한집에서 살지 않으면 서로 편리해 좋을것 같다.     자식들이 효성을 다해 한집에서 잘 모시면 천륜지락을 누리면서 살수 있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러나 며느리들이나 사위가 효성을 하지 않을 때에는 믿던 정신기둥이 무너져 심지어 절망에 빠질수도 있다. 때문에 우리 로인들은 전통양로관념을 벗어나 자식들을 너무 믿거나 자식들에게 너무 기대여 살 생각을 버려야 한다. 로인들은 년세가 들어서도 자식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좀 젊어서부터 양로비를 푼푼히 마련해두는것이 선지선각적이며 명지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우리 로인들은 예로부터 아글타글 벌어서 아껴쓰면서 자식들을 키우면서 “자식들이 다 크면 행복하겠지.” 하고 아름다운 꿈을 꾸며 그날을 기다리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애들이 다 시집장가를 간후에는 또 손자손녀들을 돌보면서 “손자손녀들이 다 크면 행복하겠지.” 하고 아직도 채바퀴처럼 맴도는 분들이 적지 않다. 자식들이 다 시집장가를 가고 손자손녀들이 다 컸지만 우리 로인들이 자식들의 덕분에 행복하게 보내고있는가?     로인들은 자녀들에게서 독립해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 자녀들에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만년의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 관념은 한 사람, 한 가정의 행복과 생사존망을 지배한다. 우리 로인들은 소비와 양로방식 등 여러 면에서 시대에 발맞춰 낡은 관념을 부단히 고쳐야 한다.     황혼에 별게 있는가? 돈이란 거미줄에 너무 얽매우지 말고 쓸 일에는 푹푹 쓰면서 옥체  건강하게 살며 신사답게 살고 젊고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짧디 짧은 인생에 더 멋지게 향수하면서  황혼을 더 황홀하고 아름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케케 묵은 관념 쁠랙홀에서 헤여나와 황홀한 황혼을 더 붉게 물들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와- 참 좋아요. 낡은 관념은 로인들이나 젊은이들이나 다 고쳐야지요. 이 문장이 나가면 사람들이 눈을 뜨게 해 낡은 관념 쁠랙홀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 수 있게 이끌어줄 거 같아요.”     지영은 커피잔을 들어 종호한테 내밀었다.     “자, 축하해요. 히트칼럼이 세상에 태여난 걸. 이 칼럼을 잡지에 내면 좋을 거 같아요.”    려향이 말했다.     “저도 그 초고를 봤는데. 저희들 젊은 계층도 눈이 밝아지는 감이 들던데요. 잡지에 낸 후 온라인에도 널리 올리지요.”    지영은 박수까지 쳐댔다.    “참 좋아요. 꼭 온 사회 사람들 속에서 커다란 반향이 일어날 거예요.”    그녀는 뒷말을 이었다.     “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데요. 참고해 보충하면 좋을 거 같아요. 지금 로인들과 자녀들은 가치관, 소비관, 자녀교양관 그리고 생활습관, 양로방식 등 여러 면에서 관념 차이가 있지요. 옛날 로인들은 몇십년 아글타글 돈을 벌어서 년세 들어서야 집을 사고나서 백발을 휘날리면서 “아, 나에게도 끝내는 자기 집이 있게 됐구나.”라고 감탄하지요. 그러나 지금 젊은이들은 손에 쥔 돈이 없으면서도 부모의 돈을 가져가거나 몇백만원 대부금을 맡아서라도 근사한 집을 먼저 사놓고 들지요. 젊은이들은 으리으리하게 꾸려놓은 인생의 락을 향수하면서 돈을 벌어 몇십년 후에 천천히 집값을 갚을 궁리를 합니다. 빚을 다 문 날이면 “난 끝내 집값을 다 물었구나.”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옛날 로인들과 현시대 젊은이들의 소비관념이 다른 점이지요. 옛날 로인들은 낡은 소비관념에 의해 먼저 집값을 만드느라고 거의 반평생을 집 같은 집에서 살지 못하였습니다. 늙은이들이 자기 집을 마련했을 때는 좋은 세월이 다 흘러지나가고 황혼을 맞는 비극이 기수부지입니다. 때문에 로인들도 낡은 소비관념을 버리고 현시대 젊은이들에게서도 새로운 소비관념을 배울 필요가 있는것 같아요. 일생이 길면 얼마나 길다고 돈이란 거미줄에 얽매워 향수하지 못하고 살겠습니까!”      려향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었다.      “호호호. 그게 별로 아빠를 두고 하는 말인 거 같아요. 아빠는 손에 쥔 돈이 없다고 여직껏 벽에 곰팽이 끼는 반토굴 같은 셋집에서 살면서 이래요. 이전에 너네 엄마하구 아빠는 결혼초기에 이런 반토굴집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우린 남의 닭굴자리에 구들을 놓은 셋집에 첫날이불을 펴고  살았어. 이래요.”     종호는 머리를 점점 숙이었다.     한참 후 그는 머리를 천천히 들더니 무거운 입을 뗐다.      “이 칼럼을 꼭 세상에 공개해야겠소. 숱한 사람들이 낡은 관념의 쁠랙홀에서 기여나오게 해야겠소.”      나영은 커피잔을 내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잔 들지요.”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다방에서는 댕그랑 커피잔이 가볍게 부딪치는 소리 귀맛좋게 들리었다.
441    대하소설 황혼 제2권(36) 색바래진 관념 김장혁 댓글:  조회:414  추천:0  2024-09-04
    대하소설 황혼 제2권                   김장혁              36. 색바래진 관념       정인군자와 아가씨들이 모여 맥주를 드는 자리에는 한락이 넘쳐 흘렀다. 생각 밖의 아이디어도 불쑥 불쑥 바다 물 속에서 튀어나오는 고래처럼 맥주상에 튕겨 올랐다.      종호는 공용저가락으로 명태랑 오징어랑 나영과 지영이, 려향이한테 일일이 집어주고 나서 화제를 돌렸다.     “나영이랑 지영이랑 글을 쫌 쓰면 어떠오. 그 아까운 지식과 생활을 랑비하지 말았으면 좋겠소.”     그러자 지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요. 글을 써서야 어디 죽벌이라도 하겠습니까? 작품 발표는 진짜 하늘의 별따기인데요.”    그녀는 자기한테 눈길을 돌리는 종호와 나영을 둘러보며 뒷말을 이었다.     “한번은 동화를 하나 써가지고 한 잡지사 책임자를 찾아갔지요. 그러니 그 책임자는 내 동화를 보더니 이렇게 묻지 않겠어요. ‘고양이가 어떻게 핸드폰을 받소? 동화라면 고양이 특성에 맞게 써야 하오. 고양이가 나무에 바라올라간다거나 쥐를 잡는 건 괜찮지만. 그러나 고양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위치추적한다는 건 말도 안 되오.’ 그 편집은 그 리유로  동화를 못 낸다고 하잖겠어요. 저는 그 소리에 그만 억이 막히던데요.”    “호호호.”    “하하하.”    모두들 폭소를 터뜨렸다.    훌쩍이던 려향마저 희쭉 웃었다.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책임자란 분은 과학동화의 추세도 모르는구만요. 과학동화에서 고양이 핸드폰을 치고 볼수도 있지요.”    지영은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아마 시대에 뒤떨어진 이인화동화나 쓰라는 거겠지. 근본 과학동화를 모르더라구요.”    그녀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후부터 난 동화를 쓸 생각이 하나도 없어요. 어디 애나게 동화를 써도 파스될 수 있겠는가요? 애나 태웠지.”    그러자 나영도 한마디 보탰다.    “나도 그런 일은 있소. 내 대학을 금방 졸업한 후 소설을 쓰겠다고 나섰댔지. 그런데 련애소설이라고 썼는데 편집부마다 다른 이유로 수개의견만 제기하고 안 내주더란 말이오. 그 원고를 열여섯번이나 고쳤는데 끝내 발표하지 못했소.”    려향은 입을 짝 벌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 열여섯번이나 수개했다구요?”    “진짜 그랬어.”    “그 수개로 전람회라도 열수 있겠어요.”    지영은 한마디 했다.    “아마 편집들도 직권을 리용해 얻어먹으려는게 아닌지?”    나영도 동감을 표시했다.    “혹시 술 한잔이라도 사 먹였더라면 내주지 않았을까?’    지영은 손사래를 쳤다.    “어이유, 그만 둬. 술 사 먹이고 동화를 내 뭘 해? 나도 술이나 사먹이면 내주지 않을가고 생각해 보았댔어. 그런데 어쩐지 그 늙은 편집이 싫더란 말이야. 자꾸 음충한 눈길로 내 치마 밑 허벅다리를 흘끔흘끔 도적질해 보던게 술을 먹고 달려들면 어쩌겠소?”     “ㅋㅋㅋ”    나영은 낄낄낄 웃고나서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한국에서 내 그 소설을 냈단 말이오. 한국 편집은 술 한잔 먹잔 말도 하지 않고 아주 인기소설이라고 인차 내주지 않겠소?”    지영은 도리머리를 홰홰 내저었다.    “그러니 편집마다 편집관념이 다른 관계오. 작가는 진짜 뼈를 깎아 글을 써낸단 말이오. 편집들도 작가의 심혈이 깃든 작품을 존중했으면 얼마나 좋겠소?”     려향도 한마디 끼어들었다.     "저의 한국대 지도교수는 문학박사후인데요. 저를 보고 늘쌍 '3대를 문학을 하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어요.그의 아버지도 미국 하버드대 출신 문학 교수, 박사인데요. 두 대를 다 문학에 종사했는데요. 저의 지도교수는 자기 아들을 보고 '3대를 문학을 하면 집 안이 망한다.'면서 문학을 하지 말라고 했대요. 그의 아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두대를 이어 문학을 해도 그저 평론이나 쓰고 리론강의나  하는 걸 보고 끝내 문학을 하지 않고 의사 엄마의 말을 듣고 의학공부를 했대요. 한국에서 의학박사로 돼 의사를 하면 한해에 몇억씩 번대요. "      그러자 종호는 한숨을 후- 내쉬며 개탄했다.      "그게 바로 우리 문학의 현주소야. 그래도 한국에는 독자가 많아서 괜찮은데 우리 조선족문학은 어쩌니? 문학 책을 보는 독자가 몇이나 되니? 후- "     그는 맥주잔을 들어 여럿을 돌아보며 권했다.     “자, 맥주나 쭉쭉 들기오."     그는 화제를 바꾸었다.     "이번엔 이런 문제를 좀 얘기해 보기오. 요즘 내 황혼기에 들어선 로인들의 생활에 도움이 될가 해서 글을 좀 쓰려고 하오.”     나영과 지영이 종호한테 호기심에 찬 시선을 보냈다.     “현실생활을 다룬 칼럼이랄가, 수필이랄가. 그러루한 글 말이오.”     “네- 리사장님, 이제야 현실생활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군요. 꼭 희트를 칠 거예요.”     “들어도 보지않고 히트는 무슨 히트오? 그저 황혼기 인생에 실용적인 글을 쓰려고 할 뿐이오. 내 말을 들어보고 견해를 말해 보오.”     종호는 뒷말을 이었다.     “요즘 난 로인들의 생활을 찬찬히 관찰해보면서 낡은 관념을 갱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소.”     나영과 지영은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쳤다.     “낡은 관념을 고쳐야죠. ”    종호는 아주 심중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한 로인은 눈보라 휘몰아치는 그 추운 겨울에 5리나 떨어진 도서관에 가서 잡지를 빌어 보더구만. 물론 그 로인은 돈을 절약하고 걸으면 운동도 돼 일거량득이라 여겼소. 한해에 돈 얼마 안 내면 잡지를 집에까지 배달해주어 얼마나 편리하오? 그런데도 고만한 돈 때문에 달마다 힘들게 걸어다닐게 있는가? 눈이 내린 날 미끄러운 길을 걷다가 로년에 넘어지면 어쩌오? 골절이라도 생기면 치료비가 잡지값만큼만 들겠소? 골절로 오는 통증은 또 얼마나 고통스럽겠소? 이게 다 소비관념문제라고 보오. 우리 로인들은 옛날 가난한 환경에서 오래동안 살아와서 절약관념이 머리에 딱 박혀서 이러오.”      나영이 동감을 표시했다.     “그래요. 그런 낡은 관념을 개변해야 해요. 좀 말하기도 창피한데요. 저의 이모는 예순이 넘었는데요. 돈이 아까워 화장실에서 위생종이를 쓰지 않고 글쎄 낡은 옷을 가위로 벤 천쪼각을 쓴대요.”     지영은 저가락으로 락화생을 집다가 입을 딱 벌리며 나영을 쳐다보았다.     나영은 계속 뒷말을 이어나갔다.     “이모는 자식이거나 손님이 집에 오면 체면 때문에 천쪼각을 부랴부랴 치우고 아까운대로 위생지를 화장실에 갖춰 놓습니다. 돈 한푼이라도 절약하려고 그러겠지만 틀린 소비관념이죠. 별의별 세균이 다 슴배인 낡은 옷 천쪼각을 쓰면 항문과 하신에 세균이 침입해 염증이나 더 중한 병에 걸릴수도 있잖아요? 특히 안로인들은 천쪼각으로 소변을 보고 하신을 닦으면 부산과병에 걸릴수도 있지요.” 지영은 듣다못해 기 막혀 입을 열었다.     “옛날 해방 전처럼 생활이 가난해 위생지도 없을 때 녀성들이 위생지 대신 천쪼각을 썼다는 말은 들었소. 그런데 생활수준이 제고된 지금 천쪼각을 다 쓰다니오? 그런 문명치 못한 소비관념을 버려야죠.”     지영도 피뜩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도 한마디 했다.     “저에게는 칠순고개를 바라보는 고모가 있는데요. 저의 고모는 집 가까이에 남새상점이 있는데도 눅은 남새를 사려고 늘 자전거를 타고 몇킬로메터 떨어진 남새도매상점으로 다녔습니다. 일본에 있는 아들딸 셋이 어머니가 상할가 봐 말렸지요. 자식들은 남새를 살 돈을 푼푼히 부쳐보냈건만 고모의 소비관념은 개변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눈 내린 날에 자전거를 타고 남새도매상점으로 가다가 내리막길에서 미끌어넘어져 다리에 심한 골절상을 입었댔습니다. 결과 십여 년동안 남새도매상점으로 힘겹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절약한 돈을 골절상 치료비로 다  처넣고서도 치료비가 모자라 자식들의 신세를 입어야 했습니다. 돈도 돈이지만요. 고모는 골절로 인해 생활을 자립하지 못해 본인은 두말할 것 없이 고통스러웠고 로친을 간호하는 고모부도 얼마나 힘겨웠겠습니까?  이건 그릇된 소비관념이 낳은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종호는 너무 기차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지영은 뒷말을 이었다.     “우리 큰고모는 이른 남새철에 갓 장마당에 나온 생신한 오이나 가지는 비싸다고 사지 않고 저물어가는 늦가을이 다 돼 몇십전씩 할 때에야 늙고 시든 오이를 사서 먹었댔습니다. 고모부가 생신한 오이와 가지를 너무 먹고 싶어서 어쩌다 사오면 비싼 걸 사왔다고 야단쳤지요. 고모는 돈이 없어 그랬을까요? 아니죠. 부교수급 의사 로임이면 생신한 오이나 가지를 사 잡숫지 못할 가긍한 처지는 아니지요! 이뿐이 아닙니다. 고모는 고모부한테 항상 제일 눅고 질이 차한 근들이소주를 사서 대접했지요. 아들이 왔다가 몇십원짜리나 몇백원짜리 소주를 사다가 아버지를 대접하면 기가 넘어갈 지경이였죠. 심지어 아들 덕분에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친 후 고모는 먹다가 남긴 멀건 국물마저 비닐주머니를 달라고 해 퍼담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고모는 먹다 남은 멀건 국물이 아까운 건 알아도 어찌 아들며느리 낯이 깎이우는 건  생각지도 못했지요! 웃지도 울지도 못할 희극이죠.  모두다 그 놈의 시대에 뒤떨어지고 좀스러운 소비관념이 머리에 꽉 들이박혔기 때문이 아니고 무었이겠습니까!”     “집으 가자!”     갑자기 성림이 떼를 썼다.     “오, 그래. 조금만 더 듣고 가자.”    그 애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너무 지루했던 것이다.     나영은 성림을 달래려고 들었다.    “어른들이 얘기하는데 이럼 못 써!”     “안돼. 난 혼자 집에 가겠어.”     성림은 진짜 오쫄 일어나더니 문께로 쫑드르르 달아나갔다.     “안돼!”     나영은 문 밖에까지 뒤쫓아가 성림을 붙잡았다.     “혼자 어디로 가? 엄마를 잃어버리려고? 좀 이모 말을 더 듣고 가자.’    “안돼! 숙제 해야 해. 안 그럼 내일 선생님한테 혼빵 나.”    나영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성림을 안고 들어왔다.    그녀는 종호와 지영의 눈치를 곁눈질하면서 성림을 다독였다.     “조금만 더 듣자.”    종호는 제꺽 성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달래였다.    “성림이 이젠 다 컸구나. 성림의 말 맞아. 우리 말만 해 되오? 성림이 숙제 하는게 더 중요하지. 우리 냉면이나 먹고 일어서기오.”    뒤이어 려향을 보고 분부했다.    “냉면이나 가져 오라고 해라.”     “예."     려향이 저쪽으로 가서 점원과 뭐라고 말했다.     드디어 냉면이 올랐다.    종호는 성림의 볼을 매만져주었다.    “요놈이 이젠 제법 조선말을 잘하는구나. 갓왔을 땐 조선말을 잘 못하더니. 참. 기특하다. 성림이.”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래요. 고향에 있을 땐 조선족학교인데 애들이 한족말만 하고 조선말을 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조선말 잘 못했지요. 그런데 언어한경이란게 무섭죠. 한국에 나온 후 한어말을 써먹을 데 없으니깐요. 조선말을 하기 시작하잖겠어요.”     순간 사막의 마로토너는 대견한 눈길로 성림을 바라보았다. 그는 또 모래바람이 휘몰아 불어치는 사막을 련상하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나영은 냉면그릇을 성림이 앞에 놓고 자기 그릇의 냉면을 들어 주었다.     “아니, 랭면 한 그릇 더 가져오기오.”    성림은 냉면그릇을 되 엄마 앞에 밀어주었다.     “난 배불러 안 먹겠어. 빨리 먹고 가자!”     “그래. 그래.”     나영은 성림을 달래면서 바삐 저가락을 들어 냉면을 후루룩후루룩 먹었다.     “성림이 속산을 잘하지? 한국에 나와서 잊어먹지 않았지? 여기서 좀 표현해보라.”     지영이 불쑥 좋은 제안을 내놓았다.     성림은 이전 속산학원 선생님인 지영을 쳐다보면서 부르는 숫자를 귀담아 들으면서 속산법으로 암산하기 시작했다.     성림은 고사리손을 밥상에 올려놓고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건판을 치듯 밥상을 살짝살짝 치며 세자리수 20여개나 척척 암산했다.     지영은 숫자를 부르다가 딱 멈췄다.     “됐다. 합계 얼마냐?”     성림은 자리에서 일어나 우렁차게 대답했다.     “2989!”     지영은 환성을 질렀다.     “딱 맞구나!”     모두들 박수갈채를 보냈다.     다른 상 손님들도 성림이 속산하는 모양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그새 모두들 냉면을 맛있게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성림은 긴장했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을 활짝 꽃피웠다.
440    대하소설 황혼 제2권(35) 정인군자와 아가씨들 김장혁 댓글:  조회:513  추천:1  2024-09-02
      대하소설 황혼 제2권                 김장혁           35. 정인군자와 아가씨들        조선족이 차린 냉면집은 대림에서는 꽤나 잘 됐다. 좀 이른 저녁 때인데 벌써 손님들이 붐비였다.      려향이 벌써 와서 좌석을 예약해놓고 기다리다가 반갑게 마중 나왔다.      “이모!”      성림이 젤 먼저 두 손 벌리고 환호하며 달려나갔다. 성림은 자주 려향과 종호를 만나다나니 이젠 아주 친해졌다.     려향은 성림을 두 손으로 안아 번쩍 들었다 놓고나서 나영과 지영을 마중해 반갑게 자리에 안내했다.     뒤이어 그녀는 성림의 손을 잡고 자리에 가면서 귀띔했다.     “성림아, 이젠 날 누나라고 불러라.”    성림은 포도청눈이 새똥그래졌다.    “이모를 누나라고 불러라고?”    성림은 엄마를 돌아보았다.    나영은 뭐라고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 어정쩡해 서 있다가 종호를 쳐다보았다.     “얘는 돌아가면서 이모라고 불러.”    나영은 려향이 종호와 자기를 진짜 카시모도와 에메랄드로 엮어나가려고 하는 것 같아 피곤해났다.     옆에서 지영은 나영을 시답잖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영과 만나기만 하면 춘영이 떠올라 스트레스를 받았다. 춘영은 그녀의 남편과 눈이 맞아 암암리에 공원에서 차 안에서 바람 피웠다. 그 일만 생각하면 춘영과 딱 같이 생긴 나영마저 곱지 않았다.    종호도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그도 속으로 려향이 고의로  자기와 나영을 카시모도와 에메랄드로 만들려고  벌수도 나란히 세워놓으려는 것을 직감했다.    (어림도 없어. 딸 같은 나영이하구 어찌?)    모두들 좌석을 정하고 앉았다.    이윽고 려향이 예약한대로 맥주도 오르고 맥주료리도 몇접시 올랐다.   나영은 맥주병을 보고 도리머리를 저었다.    “냉면집에 와서 냉면이나 먹으면 되지. 맥주를 마시고 어떻게 냉면을 먹겠는가요?”   종호는 나영을 마주 보며 우쭐 일어났다.   “무더운데 맥주나 먼저 시원히 들기오.”   종호가 맥주병을 들어 나영과 지영한테 돌아가면서 부었다.   나영이 려향 앞의 잔을 가져다 들었다.   “려향도 한잔 주세요.”   종호는 사람좋게 웃으며 려향의 잔에도 맥주를 부었다.   종호는 정중하게 좌석에서 일어나서 맥주잔을 들고 말했다.     “그간 이쁜 아가씨들 신세를 많이 졌소. 구명은인인 아가씨들과 또 이렇게 만나니 아주 기쁘오. 자, 우리 영원한 우정을 위해 오늘 맥  주나 한잔 들면서 즐겁게 보내기오.”    종호가 제의했다.    “내 ‘우리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하면 다 함께 ‘위하여!’ 하기오.”    모두들 일어났다.    종호가 맥주잔을 들고 소리쳤다.    “우리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위하여!”    그들은 기분좋게 시원한 맥주잔을 쭉 들이마셨다.    저쪽 다른 상 사람들의 눈길이 단통 이쪽으로 모였다. 허보수 같은 한국인 냉면집에서 시끌벅쩍 떠들었다간 큰 일 난다. 그러나 조선족 냉면집인데다가 대부분 다 같은 조선족손님들이어서 별로 개의치 않았다.    종호는 나영을 건너다 보며 제의했다.    “나영인 이 조선족집에 와서 일하면 좋겠는데.”    나영은 씨무룩이 웃었다. 그녀는 속으로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그 놈의 색마 허보수의 음충한 우멍눈이 역겨워 하루라도 그 냉면집에 더 있고 싶은 생각이 꼬물만치도 없었다. 게다가 인터폴 지명수배도주범이란 딱지가 딱 붙어서 한 곳에서 오래 있을 수 없는 처지 아닌가.    그러나 그녀는 허보수가 다른 집보다 더 많이 주는 로임의 유혹에 미련을 두고 하루하루 이를 악물고 벋티고 있었다.    나영은 자기 대답을 기다리면서 뚫어지게 바라보는 종호의 눈길을 보고 대충 대답했다.    “차차 좋은 일터를 알아보지요.”    “야, 배고파 죽겠다.”    이때 성림이 떼질썼다.     “아이구, 미안해. 언제나 어린애 입부터 챙겨야는데.”    종호는 우쭐 일어나 명태채접시를 성림이 앞에 가져다 놓으며 가리켰다.    “성림아, 뭘 먹고 싶니?”    성림은 숨김없이 말했다.    “새우깡 먹고 파요.”    “얘, 냉면부에 와서 무슨 생똥 같은 새우깡 소리야. 이제 집에 돌아갈 때 슈퍼에 들려서 할아버지 준 돈으로 새우깡 사줄게.”    성림은 단통 상을 이그려뜨리며 입이 뾰로통해졌다.    “안돼. 새우깡 먹개!”    나영은 부랴부랴 멜가방을 들추더니 감자깡을 꺼내 성림 앞에 내밀었다.    “요거 먹으면서 좀 기다려라. ”   종호는 려향한테 5만원권 한장 꺼내 내밀었다.    “려향아, 슈퍼에 가서 새우깡 사다 줘라.”    “네.”    려향은 두말 없이 5만원권을 받아들고 바깥으로 치마바람을 일구며 총총히 달음박질쳐나갔다.    그제야 성림은 저가락을 집어 명태고기를 뜯어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 먹기 시작했다.    “아이유. 요것아, 어쩜 이렇게 말을 일으켜.”    “애들이 다 그렇지. 뭐. 더 말하지 마오.”    이윽고 려향이 새우깡 두 봉지에 아이스크림까지 두루 애 먹어리 한 비닐주머니를 들고 왔다.    “우와-”    성림은 환성을 질렀다.    그는 려향의 손에서 새우깡을 받아 맛나게 먹으면서 생글방글 웃었다.    나영은 미안해 어쩔줄 몰라했다.    “성림아, 이모 감사하다고 해라.”    성림은 려향을 쳐다보면서 곱게 인사했다.    “누나, 감사해요.”    “호호호.”    모두들 웃음보를 터트렸다.    지영이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다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    “촌수 좀 별나다.”    종호와 나영의 눈길이 공중에서 마주치며 뼐찌가 튕기었다.    나영인 제꺽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며 화제를 돌렸다.    “려향인 이젠 문학박사공부 졸업했잖아?”    려향은 씨무룩이 웃으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네. 졸업했소.”    지영이 끼어들었다.    “려향이 문학박사학위 탔는데 언제 축하파티 열어야지.”    “절대 그러지 마오. 지금 취직이 어려워 속이 타 죽겠소. 파티 참가할 기분이 없소.”    나영이 넌지시 한마디 물었다.    “지금 취직방향은 어느 쪽이오?”    려향은 좀 시끄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지금 한국 한 반도체회사에 취직하려고 하는데. 전업도 맞지 않고 일이 꼬이오.”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학국인 석사, 박사생들도 취직하기 어려운데. 조선족이 한국에서 취직하기 그리 쉽겠소? 나를 보오. 문학석사생이지만 주방에서 냉면이나 만들고 있잖소?”    지영은 생각이 달랐다.    “문학박사니깐. 혹시 운수 좋으면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겠는지 몰라.”    지영의 말은 순전히 위안하는 말이라는 것을 려향도 말귀를 알아들었다.    종호는 일이 글러진 걸 눈치채고 다급해졌다.    “그래 오늘 면접 갔던 일은 어떻게 됐니?”    려향은 머뭇거리다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회장님 비서로 면접을 봤는데요. 내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면접이라는게 커피를 타서 회장님한테 드리는 거 시험치더군요. 그외  회장을 만나면 인사하는 것 등등 별의별 례의범절이랑 면접 보더군요.”    나영과 지영은 서로 눈길을 맞추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려향은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말했다.    “내 무슨 문학박사를 졸업하고 회장네 생활비서를 다 하겠습니까? 회장한테 커피나 타주고 따라 나니면서 옷이나 건사하면서 청춘  세월을 보내겠습니까? 모욕감을 다 느꼈습니다. 회장 비서는 제가 배운 문학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일입니다. 난 그런 생활노예비서 죽어도 못하겠습니다.”    종호는 무거운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그 속탄 한숨은 파란  연기로 뿜겨나와 공중을 헤맸다.    이윽고 그는 한마디 더 캐물었다.    “최전무 자기 비서로 쓸 예산이더니?”    려향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예요. 회사 총수 비서라던데요.”    “최전무라니? 누구요?”    나영이 뭔가 떠오른듯이 제꺽 물었다.    려향은 나영의 표정을 살피면서 대답했다.    “최군철이라고 부르는 전무인데. 최전무는 보라매공원 부근에서 저를 구한 구명은인이오.”    나영은 깜짝 놀라며 일어나기까지 하면서 물었다.   “혹시 최정호 국장 아들을 그러오?”   려향은 콕콕 찌르는듯한 예리한 눈길로 나영을 쏘아보며 물었다.    “언니, 최전무를 잘 아오?”    그러나 나영은 말끝을 얼버무렸다.    “이전에 국내 신문에서랑 리군철이라는 이름 본 거 같아 그러오. 그런데 내 좀 아는 군철은 리군철인데. 리군철은 아마 부총경리 한다던데…”    려향은 나영이 진작 최군철을 잘 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활딱 발가놓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나영의 옛 상처를 들추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래, 최전무는 원래 리씨였어. 그런데 리문걸이란 사람이 친아버지 아니란 걸 알고 친아버지 최정호의 성씨를 따라 최씨로 고친 거야. 최전무네 족보는 아주 복잡해. 건 차차 얘기하고."    종호는 얼굴을 옆에 앉은 려향한테 돌렸다. "면접엔 통과됐느냐?”    려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건데 왜 그래?”    려향은 종호를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최전무 비서면 구명은인이어서 그만한 심부름 쯤은 해 드릴 수 있겠는데요. 면목도 모르는 년세 많은 회장이라서 좀…”    “정 마음에 안 들면 그만 둬라.”    종호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좀 여유를 두고 싶었다.    “로임은 얼마나 준다더니?”    “한 350만원 준다더군요.”    나영과 지영은 입을 함박만큼이나 쫙 벌리었다.    “땡이구나.”    “대박!”    “호박이 넝쿨 채로 굴러떨어졌구나.”    종호도 한마디 했다.    “괜찮구나. 딱 문화단위에 들어가야 문학을 하니? 회사에 있으면서도 생활체험을 많이 하고 경험을 쌓아가노라면 자연히 문학   창작을 할 수 있겠지. 이건 네가 한 말 같은데. 넌 사회에 초보 아니냐? 고만한 것도 치개노릇이라고 하지 못하면 어디로 가도 일하기 힘들다.”     나영도 스스럼없이 말했다.    “저네 아빠를 보오. 신문사 사장님이 한국에 나와 그 위험한 건축공지에서 다 일하잖았소. 내랑 보오. 문학석사생에 전람관 부관장 출신도 한국서 냉면을 만들면서 살지 않소?"    지영도 머리를 끄덕이며 한마디 했다.    “이번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한국 선수 안세영을 보오. 7년 동안이나 선배들의 빨래를 하고 청소를 했다잖소. 회사에 들어가면 커피 타주는 일이겠소? 그보다 더 한 일도 해야지.”    지영은 자기 신세도 보태 말할가 하다가 그만뒀다. 자기가 종호의 대소변을 받아내면서도 350만원을 받던 일을 이 자리에서 꺼내긴 민망했던 것이다.    종호는 한마디 보탰다.    “회사에서 다시 찾으면 가 봐라.”    그러나 려향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에이, 그 회사에 가기도 싫어요.”    종호는 이맛살을 찌프렸다.    “어째?”    려향은 말을 꺼낸 바 하고는 속속들이 털어놓았다.    “그 최전무 밑에 불여우 같은 년 보기도 싫어 가기 싫습니다.”    “누군데?”    “마끼라는 녀잔데요. 최전무 비서죠. 오늘 면접 보러가니 고 녀자 면접관 자리에 딱 앉아 있지 않겠습니까? 그 녀자는 최전무를 내게 빼앗길가 봐 질투하는지 나를 꼿꼿한 눈길로 쏘아보면서 요것 조것 캐묻고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애먹이더란 말입니다. 그 녀자 꼴이 보기 싫어 그 회사에 갈 마음 없습니다.”     모두들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제야 종호는 주름살이 죽죽 간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기 흘렀다.    “들어보니 아무 일도 아니구나. 녀자 하나 때문에 취직을 포기하겠니? 그 녀자와도 이후에 관계개선을 하면 돼. 내게 좋은 방법이 있다.”    려향은 기대에 찬 눈길을 아빠한테 돌렸다.    “마끼라는 그 녀자는 김춘희박사네 딸이야. 일본 의과대학 석사생이야. 전번에 내 말하던 아빠 대학동기 딱친구 성호 기억나지?”    “네.”    종호는 뒷말을 이었다.    “성호네 딸 하나한테 물어봤어.  하나는 마끼하구 한 회사에 있는데 마끼 정황을 손금 보듯하더구나. 마끼는 그의 양아버지자 지도교수 야마구찌 다이로 교수가 지어준 이름이고 그의 아빠가 지어준 본명은 허가은이라더라. 최전무하구 마끼는 련인관계라더라. 열애 중에 처녀애들은 련인 주위 처녀들을 보통 아주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야. 이제 춘희 박사하구 잘 말해서 너네 관계를 개선하게 할게. 어느 회사나 가도 그런 일은 수두룩하다. 넌 아직 사회경험이 없어 그러는데. 사회에 나오면 그런 인간관계와 갈등을 잘 처리해나가야 해.”     러향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목석처럼 앉아 있었다.    나영이 맥주잔을 들고 말했다.    “자, 우리 려향씨가 한국 유명 반도체회사 회장님의 비서로 취직할 걸 미리 축하해 한잔 들자요.”    종호도 맥주잔을 높이 들었다.    “그게 좋겠소. 취직이든 뭐든 모든 건 관념문제라고 보오.”    지영은 맥주잔을 들고 옆에 앉은 려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려향은 마지못해 맥주잔을 들었다.    모두들 즐겁게 맥주를 쭉쭉 마시었다.    성림은 먼저 냉면을 쪼르륵쪼르륵 맛있게 먹으면서 희희닥거렸다.    종호는 오랜만에 젊고 이쁜 아가씨들과 만나니 맥주도 술술 넘어갔다.    그는 아가씨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혈액순환도 잘 되고 별나게 기분이 상쾌해짐을 은은히 느끼었다.    그러나 환락의 분위기에도 려향만은 만감이 교차했다. 눈앞이 캄캄해났다. 그녀는 아직도 자기가 친딸이 아니라는 참혹한 현실을 모르는아빠가 불쌍했다. 아직도 오리무중에 빠진 채 자기를 친딸처럼 관심하는 아빠의 지극정성에 오히려 죄송해 바늘방석에 앉은 것만 같았다.      순간 려향은 콧마루가 시큼해나 눈물이 글썽해 아빠를 쳐다보며 훌쩍거렸다.     종호는 황급히 손으로 려향의 들먹이는 려향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또, 또, 또. 무슨 일에 또 우니.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그러자 려향은 흑흑 흐느끼며 더 구슬프게 훌쩍훌쩍 울었다.
439    대하소설 황혼 제2권(34) 사랑 충고 김장혁 댓글:  조회:390  추천:0  2024-08-31
        대하소설 황혼 제2권                 김장혁          34. 사랑 충고       홧홧 달아오르는 삼복지간 무더위는 진짜 찜통더위였다.  종호는 반토굴 셋집에서 나와 무더위를 무릎쓰고 대림시장 부근으로 걸어갔다. 나영과 지영을 불러 저녁 한끼를 대접하려고 냉면부로 가는 길이었다.     대림시장은 한국 시장 같지 않게 한어로 사구려를 부르는 소리 여기저기서 들리었다. 한족 여성들은 순대, 만두기를 파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여기저기 매대를 살펴 봐도 맨 한족들이 득실거렸다. 진짜 한국에서 본 기괴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종호가 대림시장 부근을 지나갈 때였다. 소학교 대문 앞에서 성림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나영과 딱 마주쳤다.     “리사장님, 안녕하세요? 이리 일찍이 나오셨는가요?”     종호는 마주 인사하면서 지갑을 꺼내더니 5만원권 두장을 송림의 손에 쥐어주었다.    성림은 엄마 눈치를 할끔 쳐다보았다.    “옛다. 맛있는 거 사 먹어라.”    종호 말에 나영은 종호를 쳐다보면서 완곡하게 사양했다.     “어린애한테 뭘 이리 많이 주는가요? 한장만 줘도 돼요.”    종호는 지전을 성림의 손에 기어이 쥐어주었다.     “요 귀염둥이한테 돈을 준적도 없는데. 어서 받으라고 하오.”     나영은 마지못해 성림한테 머리를 끄덕여 보이었다.     “감사해요.”     성림은 돈을 받아 인차 엄마한테 주었다. 성림도 이젠 한국에 나온지 한 일년 돼 제법 한국 말투로 말했다.      나영은 돈을 받아 지갑에 넣으면서 수척한 볼에 볼우물을 옴폭 파면서  인사드렸다.      “리사장님, 잘 쓰겠어요.”      고 놈의 볼우물에 정호도 홀딱 반해 풍덩 뛰여들었지. ㅋㅋ     종호는 나영과 함께 량쪽에서 성림의 손을 하나씩 잡고 걸으면서 물었다.     “무더운데 저녁에 랭면이나 먹을까?”     나영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녀는 머리를 들어 종호를 쳐다보면서 인사치례를 했다.     “전번에도 숱한 돈을 팔았는데요. 오늘 또 무슨 돈을 파는가요?”    종호는 길죽한 얼굴에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나영하구 지영한테 숱한 신세를 졌는데 국수 한그릇을 대접못하겠소?”    나영은 얼굴에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지영도 불렀는가요?”    “불렀소. 마침 요즘 간병할 환자도 없는 모양이오.”    “잘 됐어요.”    이때 성림이 종호와 나영의 손을 홱 뿌리치고 놀이터로 뛰어가며 환성을 질렀다.    “엄마, 난 그네 뛰개.”    종호와 나영은 아직 시간이 있기에 놀이터로 가서 성림이 노는 걸 구경했다.    성림은 쇠사슬그네를 신나게 타면서 놀았다.    한참 후 종호는 미끄럼대에서 주르르 미끌면서 노는 성림한테 손짓했다.    “성림아, 이젠 냉면 먹으러 가자. 려향 누나 냉면부에서 기다릴 거야. 누나하고 안 놀개?”    “좀 더 놀구.”    성림은 미끄럼대에 또 올라가며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영은 종호의 너부죽한 잔등을 쳐다보며 상을 찡그리었다.    (뭐? 려향 누나? 촌수 개판이구나. 려향은 날 언니라는데. 리사장님은 왜 려향을 성림의 누나라고 해? 혹시 걔들을 오누이로 엮자고 그래는가? 참.)    녀자들은 문턱을 넘으면서도 열두가지 생각을 한다더니 나영도 례외가 아니었다.    나영은 종호를 쳐다보면서 슬며시 속뽀리를 해 볼 겸 한마디 충고해 보았다.   “리사장님, 이젠 혹시 그 한족 안해하구 리혼하고 재혼할 생각은 없는가요? 새 출발하는게 어때요?”    려향과 똑같은 충고를 하였다.    종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이젠 륙십대 중반인데 무슨 재혼이오?”   나영은 흠칫 놀라 주춤 멈춰 섰다.    “지금은 백세시대인데요. 지금 한창 사랑하면서 행복을 누리면서 살 년세지요. 왜 벌써 그렇게 자포자기하는가요? 그래 리혼할 생각 없는가요?”    “아니, 그건 아니오. 그런 악처하구 어떻게 살겠소. 이젠 리혼해야지.”    종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젠 악처하구 결렬할 때도 됐소. 전번에 려향이 면회하러 갔을 때 류려평도 리혼하겠다고 하더라오.”    그러자 나영은 종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잘 생각했어요. 리사장님도 사랑스런 젊은 안해를 만나 황혼을 행복하게 보내야죠.”    종호는 대답하기 난감해했다.    “빨리 가자! 더워 죽겠다.”    갑자기 성림이 달려와 나영의 손을 잡고 발을 동동 구르며 떼질썼다.    종호는 대답하기 어려운데 때마침 발뺌하기 잘 됐다고 성림을 내려다보면서 피씩 웃었다.    “오- 그래. 어서 가자. 지영 이모도 왔는지 모르겠다.”    성림은 종호를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물었다.    “박선생님도 오는가요?”    “그래.”    “와- 좋다! 빨리 가자!”    성림은 나영의 손을 잡아 끌었다.    나영은 성림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나가면서 부드럽게 타일렀다.    “오늘 박선생님이랑 말하는데 떼를 쓰지 말고 알만 하지?”    성림은 입이 뾰로통해 몸을 뒤탈며 울먹울먹했다.    종호는 성림을 와락 껴안아 추켜 올렸다.    “귀염둥아, 어서 가서 냉면이나 먹자.”    성림은 엄마를 건네다보면서 더는 떼를 못 썼다. 그러나 조꼬만 입만은 계속 뾰로통해 있었다.    나영은 지영이랑 오기 전에 종호와 충고를 더 하고 싶었다.     “리사장님, 사랑에 나이 차 무슨 큰 관계 있는가요? 둘이 서로 사랑하면 그만이죠. 리사장님한테 젊고 이쁜 색시감을 소개해드릴가요?”   종호는 나영의 말에 흠칠 놀랐다. 이전에 나영이 병실에서 려향한테 하던 말이 피뜩 떠올랐다.   "제면 아빠 같은 늙은이한테 시집가겠소?"   (건데 지금 혼사말을 해?)    이젠 큰길 저 앞에 대림에서 젤 랭면부 간판이 환히  보이었다.    그는 좀 사색하다가 슬그머니 이런 말을 흘리었다    “나처럼 돈도 없고 셋집도 온전한게 없는 늙은이한테 어떤 눈먼 여자 시집오자 하겠소?”    나영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어 발끝을 내려다보다가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리사장님은 행복지수가 높은 분이여서 재혼하자는 젊은 녀성 얼마든지 있을 거예요. 리사장님은 마음씨도 착하고 의리심도 있는 아주 좋은 분인데요. 조건도 아주 좋아요. 지금 정교수 퇴직로임 타지 않는가요?”    “그렇소. 한 9천여원 타오.”    나영은 입이 함박만해졌다.    “어마나. 한화로 170여만원은 되는군요. 그게면 한국에서도 기본생활유지금은 돼요. 이젠 출판비용도 크게 들 일도 없지. 근심할게 있는가요?”    종호는 씨무룩이 웃었다.   "그렇다고 책이야 어찌 내잖겠소?"   나영은 핸드폰을 들더니 뭘 찾아 종호 앞에 쳐들어 보였다.   "보세요. 나영이 숱한 위챗그룹에 리사장님 항일투쟁사 책 내용을 올렸던데요. 조회수가 몇천회나 돼요. 책을 몇백부 내서야 어떻게 위챗 조회수만큼 보겠습니까?"     종호도 조회수에 놀라하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나영은 아주 자신심이 생겨 종호를 정답게 쳐다보면서 물었다.    “지금은 온라인시대 아닙니까? 이젠 책 출판에 신경을 너무 쓰지 말고 위챗그룹과 인터넷홈페이지에 올리게 려향한테 맡기세요."   종호도 선선히 대답했다.   "알았소. 온라인이 이렇게 무서운 파급력을 넓을줄은 몰랐소. 이젠 늙어서 시대에 떨어졌소."    나영은 화제를 되돌렸다.   "이젠 새 가정을 차릴 거나 탐구하세요. 호호호."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더니 종호를 쳐다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40대 초반 녀성이면 어때요?”    종호는 성림을 안은 채 주춤 멈춰섰다.    “에이, 무슨 말이오? 안될 소리.”    그러나 나영은 계속 뒷말을 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애가 딸려서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죠. 허나 리사장님은 집 안에 젊은 현처량모를 두면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도 잘 할 수 있죠.”     종호는 저도 몰래 가슴이 설레이는 감이 들었다. 오랜만에, 아니, 수십년만에 이성한테서 들어보는 충격적인 짜릿짜릿한 말이 아닌가.    (나영은 지금 자기를 말하고 있잖는가? 허우, 이 일을 어쩌는가?)    종호는 갑자기 뜻밖의 말에 충격을 받아 어쩌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었다.     그는 젊음의 생기가 풍겨나는 나영의 탄력있는 몸매를 보면서 저으기 심리부담을 느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나영한테 상처를 입히기 싫었다.    이윽고 그는 이렇게 완곡하게 사양했다.    “난 아직 재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소. 첫 결혼에 너무나도 처참한 고배를 마시고나니 사실 말해 진짜 재혼할 생각이 하나도 없소.”     나영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그래요. 저도 같은 심정인데요. 저도 첫 결혼에 실망했지요. 그래서 이성의 찐 사랑을 받으려고 헤맸는데요. 결국 혼외련도 고배를 마셨지요.”     그녀는 이렇게 뒷말을 이으려다가 그만두었다.    “혼외련 해서 애까지 배서 락태하고. 참 말하기도 망신스러운데요. 저는 너무나도 타격을 받고 재혼할 생각이 꼬물만치도 없어졌지요.”    종호도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우린 계속 이렇게 따뜻한 가정도 없이 살 수야 없지 않는가요? 사랑도 없이 한뉘 아득바득 고독한 하루하루룰 보낼 수야 없지요.”    랭면집에 거의 이르러 나영은 주춤 멈춰서며 성림을 받아안아 내리워 놓았다.      그녀는 볼우물을 옴폭 파며 종호를 빤히 쳐다보면서 용기를 내 뒷말을 이었다.     “리사장님은 살뜰한 젊은 현처량모를 만나 아들을 낳고 대를 이어야죠. 그게 종신대사가 아닌가요? 리사장님의 민족을 위한 성스러운 력사정리 사업도 대를 이을 후대가 있어야죠. 지금 40대 초반 녀성은 얼마든지 애를 몇이라도 무우 뽑듯 할 수 있어요.”     나영은 종호의 한을 젤 잘 알고 있었다. 종호는 아들을 낳지 못해 전주 리씨 가문의 대를 끊은 것을 젤 마음이 아파했다. 그것이 바로 종호의 평생 한이었다.     때문에 나영의 말은 해일처럼 파도치며 종호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나영이 도대체 어째 이런 말을 하는지 통 오리무중에 빠졌다.     종호는 그저 한숨을 후- 길게 내쉴뿐이었다.    뿔은 단김에 뺀다고 나영은 계속 공격해왔다.    “리사장님, 시간이 많습니다. 충분히 곰곰히 생각해보고 행복과 사랑으로 통한 길을 선택하길 기대해요.”    종호는 씨무룩이 웃었다.    “나영인들 이런 카시모도 같은 사람하구 재혼하겠소?”    나영은 볼에 볼우물을 옴폭 파며 웃었다.    “호호호. 카시모도? 참 웃겨요. 어떻게 보면 리사장님은 불쌍한 여성들을 보호한 어리무던한 카시모도 같군요. 카시모도는 참 마음씨 착한 사람이죠. 허나 리사장님은 카시모도처럼 등곱쟁이 아니죠. 인물체격이 쭉 빠진 미남자지요. 성숙미가 다분한 지성인이죠.”     그 말에 종호는 용기를 얻고 능청스레 간을 보았다.      “려향도 날 카시모도라고 나영일 에메랄드라고 하지 않겠소. 무슨 카시모도하구 에메랄드 사랑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말도 안돼요. 려항인 웃겨도 한두가지 아니군요.”    나영은 자기 정체를 아직 잘 모르는 종호의 말을 중도무이했다.    “전 재가를 안해요. 전 가정이란 정신감옥에서 금방 해탈됐는데요. 또 그 정신감옥에 들어가겠는가요? 상상도 못할 일인데요.”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이젠 남자들이라면 다 발정난 수캐로 보여요. 왜 또 끌데없는 남자를 사귀겠어요?”     종호는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나영인 혼나긴 혼났구나.)    나영은 너무 한 것 같아 어조를 낮추며 부드럽게 말하려고 애썼다.    “금방 한 말은 절대 리사장님을 두고 한 말이 아닙니다. 리사장님이야 좋은 분이죠.”    그는 병 주고 약 주는 나영이 슬그머니 얄미웠다. 더구나 살짝 남의 마음을 뚜장질해 놓고 미꾸라지처럼 스리살짝 빠져나가는 나영이 더욱 얄미웠다.    “그걸 보오. 나영인 재혼하는 걸 싫어하면서, 허허, 어떤 눈 먼 바보 여성이 아무 쓸모 없는 늙은 카시모도한테 시집오겠소?"    그때 성림이 환성을 질렀다.    “저기 박선생님이 온다!”    “선생님이라니?”    종호는 의아해 성림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오, 박선생님이 오는구나.”    나영이 성림의 손을 잡으며 뒷말을 이었다.    얘는 지영이 고향에서 속산을 배워준 선생님이라고 계속 박선생님이라고 불러요.”    저쪽 골목길에서 지영이 양산을 쓰고 걀쭉한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선녀처럼 이쪽으로 디똥디똥 걸어오고 있었다.    아, 사뿐사뿐 사람들 속을 걸어오는 지영이, 파란 와이샤쯔를 입고 무릎을 가린 연두색치마자락를 휘날리면서 걸어오는 지영이, 그녀의 몸매는 이쁘기만 했다.    나영은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이중뿔나게 이런 말을 뿔쑥  꺼냈다.    “리사장님, 저 지영이 어때요?”    “뭐?”    종호는 외까풀눈이 화등잔만큼 데꾼졌다. 입도 함박만큼 쫙 벌렸다.    “지영이야 좋은 여자지.”    종호는 어망간에 나간 말에 인차 한마디 덧붙였다.    “장난 치지 마오.”    그러나 나영은 정색했다.    “지영은 중국에서 남편과 함께 속산학원 꾸렸는데요. 남편이 바람 피워서 애고 뭐고 다 뿌리치고 한국에 훌 나와 버렸어요.”    나영은 지영의 남편이 자기 여동생 춘영과 바람피운 일은 능청스레 제대로 밝히지도 않았다.    종호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나영의 말에 종호는 기쁘기는커녕 속이 비길데 없이 볶이었다.    “그만, 그만.”    그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때 지영이 다가와 종호한테 허리 굽히며 깎듯이 인사했다.     “리사장님, 건강 괜찮지요?”     종호는 황망히 인사를 받았다.     “오- 그래, 덕분에 이젠 건강이 완전히 회복됐소. 그래. 지영도 그간 잘 있었소?”     그는 손으로 냉면부 문을 가리켰다.     “어서 들어가기오.”    그들은 희희닥거리며 냉면부로 우르르 들어갔다.
438    대하소설 황혼 제2권(33) 카시모도와 에미랄드 김장혁 댓글:  조회:411  추천:0  2024-08-29
    대하소설 황혼 제2권                        김장혁        33. 카시모도와 에미랄드       콧구멍만한 셋집 안에서는 납덩이처럼 무거운 침묵이 한참 갑갑하게 흘렀다.     려향은 침대에 누워 눈물이 글썽한 외까풀눈으로 침침한 반토굴 천정의 한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벽 쪽에 눈물이 글썽한 눈길을 천천히 돌렸다. 벽 밑 책꽂이에는 영조사전과 한조사전, 한일사전 그리고 종호가 집필한 항일투쟁사 책들이 쓸쓸하게 꽂혀 있었다.     평소에 려향은 하학하기만 하면 아빠 부탁대로 그 사전들을 보풀이 일게 뒤지면서 항일투쟁사 책을 일어와 영어, 한어로 번역해 왔다. 일어판 항일투쟁사 책은 번역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오래지 않아 출판사에 교부할 수 있게 돼가고 있었다. 아직도 영어로 번역하자면 몇해 걸릴지 모를 일이였다.     책꽂이 옆에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과 대하소설 “태백산맥” 책이 두줄로 쌓여 있었다. 반토굴 같은 셋집이였지만 각종 력사책과 문학서적이 두루 보이었다.     종호는 침묵을 지키는 려향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침묵 속에서 뭔가 폭발할가 봐 두려웠다. 뭐가 온양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어떤 심리변화가 번져지고 있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바로 그것이 공포의 돛배와도 같아 향방을 분간하기 어려워 무서웠다.       “어험,”     종호는 건가래를 떼더니 무거운 입을 뗐다.     “얘, 이젠 졸업했는데 시간 있으면 저 조정래 대하소설도 읽어보렴. 참 읽을만한 대작이더구나.”     려향은 아빠를 향해 반쯤 모로 돌아누웠다.     “아빠, 저 책을 대학교 도서실에서 거진 읽어보았습니다.”    종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오- 그래?”    한참 후 려향은 침대에서 부시시 일어나더니 손으로 눈물에 절어 볼에 들어붙은 머리를 대충 쓸어올리고는 우쭐 일어났다.    그녀는 어디로 가겠는지 핸드빽을 들더니 출입문께에 가서 산다를 꿰 신었다.     “점심도 안 먹고 어디로 가니?”    려향은 아빠를 힐끔 돌아보며 억지로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었다.    “근심 말어요. 다 큰 딸이 굶어 죽지 않을게요.”    종호는 우쭐 일어섰다.    “얘, 아빠 끓여놓은 감자장국을 먹고 가라.”     려향은 핸드빽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여다보았다.     “그럴 시간이 없어요.”     “그리 급한 일이니?”     “네? 아니, 만날 사람이 있어요.”     종호는 한숨을 후-내쉬었다.     “혹시 최전무 만나러 가니?”    종호는 려향한텐 지도교수 내놓고 만날 사람이나 친구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다.     “네.”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최전무를 믿지 말라. 내 뭐라던? 최전무는…”     려향은 아빠 말에 시끄러워했다.     “그만 해요. 아빠 어떻게 최전무를 그렇게 아는가요?”     종호는 문꼬리를 잡은 려향의 손을 꽉 잡았다.     “내 대학교 동기 딱친구 성호하구 다 알아봤다. 성호네 딸 하나는 최전무네 강남 반도체회사 회장 비서야. 하나는 최전무네 일가 정  황을 손금 보듯 한다더라. 며칠 전에 성호를 만나 하나하고 최군철 전무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댔다. 국내 S시 한국 반도체유한회사는 미국 상업부의 간섭하에 메모리생산설비수입과 메모피판매마저 제한하는 바람에 망했다더구나. 그 회사는 베트남으로 이전해갔는 모양이더라. 최전무는 베트남엔 가지 않고 한국 본사에 들어왔다더라.”     려향은 픽 하고 코방귀를 뀌었다.     “누가 뭐라던지. 난 최전무를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요.”    종호는 저으기 놀랐다.    “뭘 보고?”     려향은 외까풀눈으로 아빠의 얼굴을 훑으며 정색했다.     “최군철 전무는 저를 목숨걸고 구해준 구명은인입니다. 그런 분을 믿지 않으면 세상 믿을 사람이 더 있는가요?”    종호는 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었다.    려향은 재차 문꼬리를 잡으면서 억지로 아빠 앞에서 덫이까지 살짝 드러내며 어두운 얼굴에 미소를 지어보이었다.     “아빠, 근심 말아요. 취직하자고 면접 보러 가지. 선 보러 가는 건  아니잖아요?”    려향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다른 궁리를 돌렸다.     (누가 뭐 시집가겠답디까? 아빠와 엄마처럼 살 거면 결혼해 뭘 해? 맨날 서로 티격태격 싸우구. 나중엔 독약을 먹여 죽이려고 미쳐 날뛰구. 결혼해 뭘 해요? 에이유, 참. 우리 집 일을 생각하면 골치 아파 죽겠다.)    종호는 려향의 속내는 티끌만치도 모르고 이렇게 한미디 보탰다.    “려향아, 내 유일한 희망은 네야. 네가 좋은 신랑감 만나 결혼해 애를 낳으면서 사는 걸 보았으면 두 눈을 꼭 감아도 한이 없을 거 같다.”     려향은 더는 아빠한테서 결혼하는 말을 듣기조차 싫었다. 에어콘도 없는 이 놈의 반토굴 셋집이 점차 싫어지기 시작했다.    (난 꼭 좋은 직장에 취직해 이 놈의 셋집에서 벗어나야 해. 이놈 반토굴 셋집에서 이대론 살 수 없어. 내 인생 다 망가진다.)    그녀는 아빠가 자꾸 결혼하라는 말에 슬그머니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그러나 아빠가 기분 상해할가 봐 그저 서글프게 웃어 보이었다.    려향이 문 밖으로 나서자 종호는 신도 안 신은 채 따라나가면서 물었다.    “저녁엔 돌아오겠지?”    “네. 돌아올 때 무더워서 좀 바람 쏘일까 해요. 어서 들어가요.”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보라매공원에 가는 지하철교 밑에 가라. 지하철교 밑엔 그늘이 진데다가 개울물이 흘러 바람 쏘이기는 좋더라.”    “네. 알겠어요. 근심말아요.”    종호는 려향의 어깨를 손으로 다독이면서 말했다.    “저녁엔 나영이랑 지영이랑 불러서 밥 한끼 먹을까 한다. 일찍이 돌아오라.”    “네. 알았습니다.”    려향은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천천히 돌아섰다.    “아빠, 이젠 나영이언니하구 작작 거래하십시오.”    “왜?”     “글쎄. 듣는 말에 의하면 나영은 경찰들한테 쫓기워다니는 신세라던데. 무슨 죄를 졌기에 쫓기워다니겠지요. 딸의 충고를 들으세요.”     종호는 허구푼 웃음을 지었다.     “어째? 나영이 날 빼앗아갈가 봐 그러니?”     려향은 아빠를 돌아보면서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죠. 오전에 엄마 보고 아빠하구 리혼하라고 했어요.”     “그래?”     “네.”     종호는 씨무룩이 웃었다.     “그래. 리혼해주겠다더니?’     “그래요.”     려향은 신을 벗더니 아빠 손을 잡고 말했다.     “내 이젠 몇번이나 당부했습니까? 아빠는 엄마하고 리혼하고 새 출발해라고. 이젠 사랑도 없는 이 가정이란 정신감옥을 끝장내세요. 아빠, 살뜰한 안해 없인 이대론 못 살아요. 젊고 이쁜 녀자 만나서 전주 리씨 대도 잇으세요.”     종호는 그저 허무한 표정을 지으면서 려향을 어서가라고 손짓했다.     삼복염천 무더위는 얼굴로부터 목 안까지 홧홧 달아오르게 했다.     려향은 양산도 쓰지 못하고 쨍쨍 내리쬐는 해볕을 완강한 의지로 이겨나가면서 끝내 대림역에 가서 지하철에 올랐다. 지하철 에어콘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려향은 시원한 바람을 쏘이자 기분이 확 바뀌었다.     그녀는 지하철에 앉아 달리면서 저도 몰래 아빠를 떠올리자 피씩 웃었다.     (어쩐지 아빠는 딱 카시모도 같아. 프랑스 대작가 빅또르 유고는  장편소설 (巴黎圣母院)에서 주인공 카시모도를 얼마나 개성이 독특한 인물로 형상적으로 부각했는가.)     려향은 유럽 고전문학까지 전공한 문학박사이기에 사유도 어느새 유럽 세계 명작 주인공 카시모도한테 련상이 닿았다.     (비록 아빠는 카시모도처럼 등곱쟁이도 아니고 못생기지도 않았지만 딱 카시모도를 닮았어. 카시모도는 집씨처녀 에메랄드를 얼마나 극진히 사랑하고 보살폈는가. 아빠는 카시모도가 에메랄드를 보호한 것처럼 나하구 나영이를 보살피지 않았는가? 나영도 집씨처녀 에메랄드와 비슷해. 한국에 나와 에메랄드처럼 쫓겨다니면서 살잖는가? 아빠는 또 내가 친딸도 아니라는 참혹한 현실을 모르고 바보처럼 나한테 딱 꽂혀 구석구석 보살피지 않는가?)     려향은 어처구니 없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카시모도처럼 노는 가긍한 바보, 아빠가 한없이 불쌍했다.     어느 하루 밤중에 나영은 집으로 돌아왔다가 깜짝 놀랐다.    전등불을 찰칵 켜자 침대에서 난생처음 본 젊은 녀자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어마나!”    려향은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놀래지 말라. 아빠 녀자친구야.”    아빠는 부엌 쪽에 맨 봉당에 누워 있다가 일어나 앉지 않겠는가.    "녀자친구?”    “그래여. 전 나영이라고 불러요.”    나영이란 그 젊은 40대 초반 녀자는 창피한줄도 모르고 자아소개를 했다.    려향은 아빠 동거녀인가 해 셋집에서 되나가려고 했다.    “가지 말라. 엄동설한에 어디로 간다고 그래?”    “아빠 불편할 건데.”    “아니야.”    종호는 딸의 손을 잡고 해석했다.    “우린 그런 관계 아니야. 저 나영인 연길냉면점에서 일하는데 불시에 보수와 수 틀려서 보스한테 냉면점포에서 쫓겨났다. 엄동설한에 트렁크를 끌고 바깥에서 헤매는 걸 내 우리 집에 데려다 재웠다.”    그렇게 돼 려향은 그날 밤에 나영과 함께 한 침대에서 자게 됐다.    후에 려향이 안 일이지만 아빠는 진짜 에메랄드를 보살피고 보호한 카시모도처럼 나영이를 보살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아빠는 연길냉면 먹으러 갔다가 나영이를 면목익혔다고 한다. 트렁크를 끌고 엄동설한에 지하철역에서 헤매는 나영이를 집에 데려다 자게 하고 자기는 종각 지하철 역 층계에 가서 물앉아 쪽잠을 잤다고 한다. 그러는 걸 나영이 뒤쫓아가 셋집에 데려왔다고 한다. 그때부터 려향이 오지 않는 날이면 나영이 침대에서 자고 아빠는 부엌 먼 발치에서 잤다고 한다. 이상해. 아빠 말을 믿어야 하는가? 남녀가 한 집에 들었는데 그런 일 절대 없었다면 누가 곧이듣겠는가? 그러나 아빠는 계속 절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에이, 참. 알고도 모를 일이야. 아빠 나젊고 이쁜 나영이를 데리고 살면 뭐라느냐?)     려향은 금방 아빠를 보고 나영과 작작 거래하라고 한 말을 되곱씹으면서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리종호, 당신은 우리 집 카시모도, 사랑도 안해도 없는 바보, 카시모도입니다! 아, 현시대 카시모도와 에메랄드의 로맨틱한 사랑, …얼마나 랑만적인가!) 그녀의 허구픈 웃음기가 차창 밖으로 날아나가면서 허깨비처럼 탈춤을 추며 광대놀음을 논다. 2013년 11월 20일 12시 16분  조회:1873  추천:27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프로필    필명: 민성, 애명: 조왕돌     1958년 중국 길림성 연길현 조양공사 근로촌 출생.     1981년 12월 중국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1982년 1월- 1987년 중국 길림성 룡정시 룡정중학교 교원.     1988년-1996년 중국 길림성 연변인민방송국 기자.     1997년- 2016년 연변인민출판사 "청년생활"잡지사 부주필, "소년아동"잡지와 "별나라"잡지 련합편집부 부주필, "농가"잡지와  "로년세계"잡지 련합편집부 주필 력임, 연변인민출판사 편심(교수급편집).      2018년 5월 정년퇴직.     료녕성조선족로인협회 부회장, 명예회장 력임.     현재 연변주아동문학연구회 사단법인대표, 회장, 당지부 서기, 잡지 주필.                   주요저서: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총 7권, 350여만자)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총 4권, 120여만자)     대하소설 "졸혼"(총 6권, 150여만자)     대하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욕망의 천지", "황천의 유령"(총 3부작, 90여만자)     대하소설 "황혼"(총 4권)     장편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공저) 등         장편소설 26권.         그외.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한문)      중단편소설집 "사랑환상곡"      동화소설집 "멋쟁이 매옹이와 찍찍의 겨룸"      동화소설선집 "괴물 클론바우 모험기"      아동문학작품집 "호랑이와 사냥군"      문학작품집 "사랑은 요술쟁이야"       수필집 "리별"        실화작품집 "빨간 장미꽃 함정"등         저서  총 34권,  문학작품 총 1,000여만자.                 수상:      백두컵문학상,  아리랑문학상, 전국소수민족아동문학작품우수상 (수차), 한중옹달샘아동문학상, 한중동심컵아동문학상,  웰빙아동문학상, 한국 KBS방송 수기우수상, 한국 대전매일수필문학상, 두만강수필문학상 ,  동북3성우수도서상 (2차), 2010년 연변작가협회 선진작가상 등 30여개 수상.  
437    대하소설 황혼 제2권 (32) 최전무 일가의 족보 김장혁 댓글:  조회:548  추천:0  2024-08-27
     대하소설 황혼 제2권 김장혁                          32. 최전무 일가 족보        쓸쓸한 반토굴 셋집에 구슬픈 울음파도가 스쳐지나가면서 부녀간의 마음은 황량한 쑥대밭으로 돼버렸다.     려향은 아빠가 끓여놓은 구수한 감자장국을 한술도 뜨지 않고 침대에 들어누웠다.     종호는 침대 머리께에 다가가 앉아 려향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열이 후꾼후꾼 났다.      “아차, 열이 모질 나는구나. 어디 아프진 않니?”     그는 려향이 혹시 신종코로나에 걸리지나 않았는가고 근심이 태산 같았다.     려향은 도리머리질 하더니 또 흐느끼기 시작했다.     “자꾸 울지 말라. 건강에 나쁘다.”     종호는 선풍기 스위치를 꺼버리고 눈물범벅이 된 려향의 얼굴을  내려다 보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그는 딸애의 보름달 같던 얼굴이 퍼그나 어둡고 수척해 보이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속시원히 아빠한테 말해라.”     려향은 아예 이불을 훌 들쓰고 돌아누워 버렸다.     이불이 가냘프게 잔잔히 파도쳤다.     종호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도 모르는지 려향의 등뒤에 대고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넌 내 하나 밖에 없는 무남독녀야. 넌 내 유일한 희망이야. 네가 자칫 잘 못되면 난 어떻게 사니? 세상의 풍운조화가 어떻게 변하든지, 하늘이 무너지든지 해도 근심하지 말라. 이 아빠 있잖니?”     려향은 이불을 들쓰고 아빠의 기구한 운명을 생각하면서 속으로 울었다.     종호는 려향의 속내는 티끌만치도 모르고 계속 제 좋은 생각을 털어놓았다.     “얘야, 내 말 좀 들어라. 그 최전무네 회사에 너무 미련을 가지지 말라. 오늘 최전무네 회사에 면접 간다더니 아마 일이 틀린 거 같은데. 괜찮아. 세상이 넓고도 넓다. 넌 문학박사인데 꼭 더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어.”     려향은 이불 속에서 아빠 말을 들으면서 저도 몰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분명 내 엄마와 면회하러 갔다 온 걸 모르고 있구나.)    종호는 계속 뒷말을 이었다.    “인터넷으로 최전무를 검색해보니 그닥잖은 사람이야. 최전무는 내 옛친구 최정호네 아들인 거 같더구나.”    려향은 이불을 활 제끼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네?! 아빠 친구 아들이던가요?”    그녀의 외까풀눈에서 이상한 빛이 반짝이였다.    “그래.”    종호는 괜한 소리를 해서 려향이 최전무한테 호감이 갈가봐 입술을 깨물었다.    려향은 아빠한테 다가앉으면서 다그쳐 물었다.    “최전무 아빠는 뭘 해요?”    종호는 려향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마주 바라보면서 정색했다.    “최전무 아버지 최정호는 원래 문화국 국장이였댔다. 그런데 숱한 돈을 얻어먹은 부패분자 죄로 14년 판결을 받고 공직까지 다 떼우고 성 감옥에 갇혔다.”    려향은 눈을 치켜 뜨며 저으기 놀라했다.    “그래요? 최전무 안됐군요.”    종호는 뒷말을 이었다.    “최정호는 남녀관계도 아주 복잡했다. 최정호 국장은 숱한 애인들을 데리고 바람을 피웠댔지. 애인들 속에는 별의별 이름난 녀자들이 수두룩했지. 황선희 박사, 명모델 정희, 문공단의 임하영 부단장, 모두 한다하는 녀자들이고 미녀들이었지. 최국장은 심지어 한국 기생마저 데리고 살았다더라.”     종호는 나영이도 정호 애인이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는지 호명하는 정호 애인가운데서 빠졌다.    “처제 영희와 그의 본댁 박순정은 사촌자매이자 정호의 예술학원 때 녀제자였단다. 그런데 최정호 국장은 영희라는 녀제자, 처제마저 애인으로 데리고 살아서 최전무를 낳았다고 한다. ”     려향은 의아해했다.    “그럼 최전무는 사생아란 말인가요?”    “그래.”    종호는 말을 꺼낸바 하고는 최군철 전무의 출신을 밑바닦까지 속속들이 까밝혔다.    “최전무의 원래 성은 리씨였지. 전주 리씨 리문걸은 최군철을 자기  아들인가 했댔지. 후에 하도 최국장과 최전무 생김새가 너무 비슷해 최국장의 본댁 박순정이 최국장과 최군철의 DNA 검사를 가만히 의학부문에 의뢰했단다. 결과 최군철은 리문걸의 아들이 아니라 최정호의  친아들이라는게 밝혀졌단다. 그래서 최전무는 원래 아버지 리문걸의 리씨 성을 버리고 친아버지 최정호의 성을 따라 최씨로 고쳤단다.”     종호가 힐끔 눈치보니 려향은 머리를 무겁게 끄덕이면서도 별로 개의치도 않는 눈치였다.    려향은 이런 속궁리를 돌리고 있었다.    (난 월래 결혼할 생각도 없었어. 다만 내 결혼하지 않으면 아빠 또 자살할가봐 결혼하겠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했을뿐이야.)    “아빠는 최전무 래력을 어쩜 그렇게 잘 아는가요?”    “최전무의 애비 리문걸하구 최정호는 모두 내 옛친구야. 난 대학교 때 동기친구 리성호를 통해 그들 부자의 래력을 알아냈다. 고향에선 그들 부자의 소문이 자자했단다. 인터넷에서도 최전무를 싹 다 검색했어.”    종호는 려향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최군철 전무는 물론 년로임도 백만원 넘고 유능한 젊은이지. 허나 최전무는 아들애 둘이나 달린 홀애비야.” 그 말에도 려향의 보름달 같은 얼굴에서 아무런 놀란 기색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빠, 난 최전무네 회사에 취직하려고 했지. 선 보러 최전무한테 가려고 한 건 아닌데요.”    려향의 말을 들었는둥 만둥 종호는 자기 말을 계속 했다.    “남자는 좋은 녀자한테 장가 가야 하고 녀자는 좋은 남자한테 시집을 잘 가야 해. 그게 최대 행복이야. 아빠를 봐라. 암펌 같은 네 에미한테 장가를 가서 얼마나 고생했니? 넌 꼭 마음씨 착하고 정파다운 총각한테 시집가야 해.”     종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할 말을 다 해놓고 나니 속이 한결 후련해났다.     그는 춘희박사가 최전무를 중매설 때부터 이 혼사말을 반대했다. 려향한텐 아예 말도 꺼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쩜 귀신이 곡할듯이 최군철 전무가 려향을 구해주지 않았겠는가? 우연한 일이지만 그 일로 려향은 지금 최군철네 회사에 면접 보겠다고 하지 않겠는가.     종호는 원래 춘희가 중매선 일을 아무도 몰래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오늘 미리 최군철을 가까이 하지도 말라고 려향한테 말해놓지 않으면 안되였다.    “싸리 그루에서 싸리 난다고 최전무도 애비 못잖게 남녀관계 복잡한 모양이더라. 최전무 본처는 리나라는 여자란다. 최전무는 본처한테서 송림이, 길림이란 두 아들애를 봤단다. 최전무는 리나가 자기 원래 아버지 리문걸과  엄마 박영희한테 불효를 저질렀다고 리혼했다더라. 리혼한 후 최전무는 심지어 애리싸라는 미국 류학생 애인을 데리고 질탕하게 놀았더더라. 심지어  애리싸를 집에까지 데려다가 몇해 동안 동거하기까지 했다더라. 그런데 애리싸가 최전무네 한국 반도체회사의 상업기밀을 절취한 일이 탄로났단다. 애리싸는 최전무의 배다른 여동생 리지예와 미국 하버드대 동기사이였단다. 그 금발미녀 애리싸는 지예 알선으로 중국 S시 한 의약회사에 기어든 미국 경제간첩이었단다. 그래서 최전무는 애리싸하구 갈라졌단다. 최전무한텐 리나와 애리싸 외에도 따르는 녀자들이 줄을 섰다더라. 최전무는 본처 리나와도 애들을 보고 복혼할 가능성도 있다더라.”     려향은 보라매공원 부근에서 비수를 뽑아든 흑인날강도한테서 자기를 구해준 최전무와 최전무 팔을 끼고 걷던 녀자를 떠올렸다.    (아빠 말이 맞아. 밤중에 팔을 끼고 단둘이 보라매공원 부근 강뚝을 산보하는 걸 보면 그저 동료관계는 아닌 거 같아. 뭐? 마끼라던가? 최전무한텐 따르는 녀자 많다는 아빠 말이 맞아.)    려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최전무는 날 구해주고 마지막까지 안전을 챙기려고 했지. 그러나 마끼라는 녀자는 시끄러워 하면서 최전무 팔을 끼고 빨리 가자고 했댔지? 그때 최전무는 마끼를 인성이 없다고 욕했던가?)    그때 다리 위에서 마끼는 다리 아래에 대고 고함쳤다.    “최전무! 작작 삐치고 어서 가자요!”    최전무는 다리 위 마끼를 나무랐다.    “같은 녀자인데 그게 할 말이오?”    최전무는 려향을 안전한 곳에까지 데려다 주고서야 그 자리를 떴다.    그 장면을 생각하자 려향은 최전무의 은혜를 되새겼다. 뒤이어 놀라운 눈길로 아빠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최전무 래력에 놀란 것이 아니라 최전무 일가의 족보를 몽땅 장악한 아빠의 정보수집능력에 놀랐던 것이다.     (아빠는 내 속내는 모르고 최전무와의 혼사를 반간 놓는구나. 에이유, 참.)     려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빠, 최전무네 집 얘기를 그만 하세요. 내 맘 속에는 목숨을 구해준 최전무 은혜 밖에 기억나지 않아요. 허나 최전무와의 혼사말에 대해선  아무런 흥취도 없어요.”       그녀는 연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속으로 아빠를 나무랐다.       (남의 얘기니깐, 그렇게 옛말처럼 술술 얘기하는데요. 아빠 무남독녀  아빠 딸이 아니란 걸 알면 아빤 어쩔텐가요? 아빠 딸의 성도   류씨라면 아빠 이 세상에서 머리 들고 살 수 있는가요?)     려향은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자기 전도 때문에 무등 애쓰는 아빠가 불쌍하기 그지 없었다. 그녀는 또다시 줄 끊어진 구슬처럼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쓸쓸히 흘리었다.     종호는, 려향의 삼검불처럼 복잡한 심정은 꼬물만치도 몰랐다. 그는 최전무 일가의 족보를 듣고 려향이 최전무와 그만두겠다고 하자 한숨을 후- 내쉬었다.     (시름 싹 놨다.)    그는 마음이 자못 홀가분해지는 감이 들었다.    종호는 딸이 어쩌다가 혼사말하는 남자를 만나자는 걸 반간 놓은 것이,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감이 마음 한쪽 구석에 스물스물 스며들어오면서 못내 근심스럽고 괴로워났다.    김장혁 프로필    필명: 민성, 애명: 조왕돌     1958년 중국 길림성 연길현 조양공사 근로촌 출생.     1981년 12월 중국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1982년 1월- 1987년 중국 길림성 룡정시 룡정중학교 교원.     1988년-1996년 중국 길림성 연변인민방송국 기자.     1997년- 2016년 연변인민출판사 "청년생활"잡지사 부주필, "소년아동"잡지와 "별나라"잡지 련합편집부 부주필, "농가"잡지와  "로년세계"잡지 련합편집부 주필 력임, 연변인민출판사 편심(교수급편집).      2018년 5월 정년퇴직.     료녕성조선족로인협회 부회장, 명예회장 력임.     현재 연변주아동문학연구회 사단법인대표, 회장, 당지부 서기.. 편집부 주필.                   주요저서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총 7권, 350여만자)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총 4권, 120여만자)     대하소설 "졸혼"(총 6권, 150여만자)     대하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욕망의 천지", "황천의 유령"(총 3부작, 90여만자)     대하소설 "황혼"(총 4권)     장편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공저) 등        장편소설 26권.       그외.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한문)      중단편소설집 "사랑환상곡"      동화소설집 "멋쟁이 매옹이와 찍찍의 겨룸"      동화소설선집 "괴물 클론바우 모험기"      아동문학작품집 "호랑이와 사냥군"      문학작품집 "사랑은 요술쟁이야"       수필집 "리별"        실화작품집 "빨간 장미꽃 함정"등          총 33권,  문학작품 총 1,000여만자.                 수상     백두컵문학상,  아리랑문학상, 전국소수민족아동문학작품우수상 (수차), 한중옹달샘아동문학상, 한중동심컵아동문학상,  웰빙아동문학상, 한국 KBS방송 수기우수상, 한국 대전매일수필문학상, 두만강수필문학상 ,  동북3성우수도서상 (2차), 2010년 연변작가협회 선진작가상 등       30여개 문학상 수상.
436    장편소설 황혼 제2권(31) 불쌍한 아빠 김장혁 댓글:  조회:504  추천:0  2024-08-25
    장편소설 황혼 제2권 김장혁          31. 불쌍한 아빠        갈수록 심산이라고 지하철은 깊고 깊은 텐넬 암흑천지로 깊숙이 달려들어가 몸부림쳤돼다. 다만 반디불 같은 지하철 조명등이 암흑을 물리치려고 아득바득 애쓴다. 그 덕분에 누가 누군지는 겨우 분간할 수 있었다.     깜빡!    갑자기 지하철 조명등마저 꺼벼버렸다.    정전사고였다.     설상가상으로 지하철도 먹칠한 듯한 텐넬 속에서 귀청을 자극하는 짜르륵 스톱 소리와 함께 천천히 멈춰섰다.     삼복지간인데다가 정전사고로 에어콘이 작동하지 않아 지하철 안은 찜통처럼 무더워났다. 정전사고로 지하철 안에서는 앞을 분간하기조차 어려웠다.     암흑 속에서 공포는 귀신의 곡성을 지르면서 스물스물 지하철에 기여들었다.    여기저기서 불만소리, 아우성소리 터지었다. 뒤이어 핸드폰 불빛이 어지럽게 지하철 안을 비춘다.    려향은 속이 터지는 것 같았다.    먹칠한듯이 새까만 지하철 안에서 려향은 손등으로 땀을 훔치고 눈물도 훔치었다.    정전사고로 인한 긴급한 상황은 그녀의 삼검불 같은 머리를 더욱 복잡하고 긴박하게 돌아가게 만들었다.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서 려향의 눈 앞에는 금방 구치소에서 본 엄마의 격노한 쌍까불눈이 삼삼거렸다.     귀전에는 철창 속 엄마의 고함소리가 아프게 들리는 상 싶었다.    “넌 꼭 성을 류씨로 고쳐라! 넌 근본 종호 딸이 아니야! 류덕재 행장 친딸이야!”     “민족도 고쳐라, 위대한 한고조 후대 한족으로.”    종호가 친아빠 아니라는 말은 려향에게 너무나도 큰 타격이었다.    그 놀라운 소리에 충격을 받은 려향은 면회실에서 나와 까무러칠번 했다. 여경이 간신히 부축해줘서야 구치소에서 간신히 나왔다.     려향은 한참 구치소 밖의 나무 그늘 알에에 앉아 울면서 쉬었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간신히 일어나서 비틀거리면서 지하철역에 이르렀던 것이다.    려향은 깜깜한 지하철 안에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빠 친딸이 아니라고? 엄마는 어쩜 그런 허튼 소릴 친단 말인가?)    그녀는 류려평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허튼 소리야! 아니, 엄만 미쳤어! 불길이 활활 타번지는 그 쌍까풀눈을 봐라. 아빠를 잡아먹을 상 이빨을 빡빡 가는 거 상통을 봐라. 도대체 아빠하구 무슨 원쑤를 졌다고 저럴까? 안락사시키려고 미쳐 날뛰더니 이젠 내가 아빠 친딸이 아니라고? 픽!)     려향은 덫이를 드러내며 입귀로 냉소를 흘리었다.     (창피하지도 않아? 뭘? 내가 류덕재 은행장의 친딸이라고? 그럼 엄마는 평소에 ‘오빠’, ‘오빠’ 하던  류덕재하구 불륜을 저질렀단 말인가? 난 사생아란 말인가?!)     려향은 너무 창피해 달아오른 통통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무릎 두새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래서 엄만 자꾸 날 보고 성을 류씨로 고치라고 했는가? 뭐, 한고조 류방의 후손이라면서? 그땐     엄마 성을 타라고 그러는가 했는데. 완전히 불륜아 류덕재 성을 따르라는게 아니고 뭔가? 진짜 엄만, 어쩜 종친 오누이 사이에 불륜을 저질렀단 말인가? 불륜이라도 세상 창피한 패륜이야. 세상 사람들이 알면 뭐라겠어? 창피해서 어떻게 머리를 들고 세상에서 산단 말인가?)     려향은 생각할수록 눈앞이 캄캄해났다.    그녀는 이 참혹하고 창피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빠가 이 진상을 알면 얼마나 정신상 큰 타격을 받겠는가? 자칫 또 자살 소동을 일으킬지도 몰라.)    순간, 려향은 아빠가 너무 불쌍한 나머지 앓음소리를 토해내기까지 했다.    그는 아파나는 가슴을 부여안고 신음소리마저 끙끙 냈다. 지하철이 시끌벅쩍 떠들어 그녀의 앓음  소리와 신음소리를 듣지 못해 다행이었다.     (아빠는 날 박사까지 만들자고 얼마나 고생했는가? 엄마는 날 본과를 졸업했으면 됐다면서 취직하라고 들볶았댔지. 허나 아빠는 본과만 졸업해선 지식과 경제 시대에 발도 붙이기 어렵다면서 기어이 날 데리고 한국에 나왔지. 날 문학박사를 만들려고 아빠는 앞당겨 신문사 부사장직무마저 내려놓고  내부퇴직하고 한국에 나와 7년 동안이나 토굴 같은 셋집에서 건축공지로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다했는가.)     려향은 별의별 고생을 다 한 아빠가 너무 불쌍해 두 볼에 줄 끊어진 구슬처럼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아빠는 건축공지에서 일하다가 쇠파이프오리발이 무너지면서 4층 높이에서 땅바닥에 떨어졌댔지. 그 바람에 쇠파이프에 찔려 그만 불행하게도 한쪽 신장과 그거 마저 잃었다. 그때 생명만 건진게 다행이었지. 후에는 건강상황으로 중한 일을 하지 못하게 되니 건축공지에 가서 하루 24시간 밤낮이 없이 보초당직을 섰지. 아빠는 그렇게  고생스레 번 돈으로 내 공부 뒤바라지를 했지.)     려향은 볼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닦으면서 흑흑 흐느끼었다.     (아빠는 그렇게 고생스레 내 공부 뒤바라지를 했지. 그런데 애나게 공부시킨 문학박사 딸이 자기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 그 절망적인 비극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아빠의 유일한 희망은 이 무남독녀인데 비극적인 진상을 알면 얼마나 절망에 빠지겠는가? 이 비극을 절대 아빠한테 말할 수 없어. 설마 아빠가 친아빠 아니라도 36년 동안 길러준 양아버지도 나한텐 아버지야.)     려향은 으스러지게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엄마는 나쁜 녀자야. 세상에 둘도 없는 마녀야, 불륜녀야. 아니, 세상에 둘도 없는 패륜녀야.)     엄마가 돈이 들까봐 주산알을 튕기면서 자기를 한국에 나가지 말라던 때로부터 려향은 그랑데 같은 엄마를 곱게 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불륜을 저지른 걸 안 후부터 려향은 증오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뭐? 날 보고 무슨 류씨 성을 따르라고? 퉤! 세상 더러운 류씨 오누이 성을 따르라고? 절대 안돼!)     려향은 자기 전도를 망친 엄마에 대한 격분으로 온몸을 부르르 전률했다.    (엄마는 깍쟁이야. 내 한국에 나와 공부하는 7년 동안 돈 일전한푼 보내지 않았어. 말론 아빠가 쓸가 봐 안 보낸다고 했지만. 너무 하잖아! 그랑데보다 더한 깍쟁이야. 엄만 진짜 사람을 잡아먹는 마녀야. 어쩜 아빠를 그렇게 헐뜯고 몰래 바람을 피워? 날 사생아로 만들어?)    뒤이어 그녀는 의문부호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엄만 어째 여태까지 줄곧 종호 아빠가 친아버지 아니라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까? 어째 이 시점에 불쑥 꺼냈을까?)    려향은 량미간을 찌프리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지하철 안의 조명등이 환하게 켜졌다.    그녀의 눈 앞에 뭔가 환하게 안겨왔다.    (엄만 혹시 역은 꾀를 쓰는게 아닐까? 외할아버지 산소에 뭘 묻어두었길래, 면회실에서 그리 신비하게 암시하는 걸까? 이제까지 딱 한번 외할어버지 산소에 데리고 갔댔지. 그것도 내가 한국에 나오게 되니까. 언제 올지 몰라 그랬을까? 아니면 언젠가는 거기 신비한 뭘 있다는 걸 암시하려고 미리 사전 포석한 걸까?)    려향은 엄마가 하던 말을 쭉 련계해 생각해보았다.    “할아버지 산소 비석을 찾아가 봐라”    “종호는 친아빠 아니다.”    려향은 무릎을 탁 치며 벌떡 일어났다.    (혹시 엄만 할아버지 산소에 걸 내 아빠한테 말할가봐 그러는게 아닐까? 산소에 걸 아빠와 공유하지 못하게 하자는 속셈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려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그때 텐넬에 전기 불이 환하게 켜졌다. 이윽고 지하철도 천천히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려향의 눈 앞도 점점 환해지기 시작했다.    (우선 친아빠인가  DNA 검사를 해 봐야지.)    려향은 여태까지 36년 동안 그렇게 따르던 아빠를, 그 아빠와  DNA검사 놀음까지 해야 되는 현실에 마음이 더 없이 쓰라려났다.    (별 수 없어.)    려향은 덫이로 입술을 옥물었다.    신도림역에서 려향은 대림으로 가는 지하철을 갈아타야 했다.    그녀는 신도림역의 높은 층계를 한 층계, 한 층게 올라가면서 문뜩 마음의 상처를 건드리는 뭔가 있었다.     (바로 신도림역 이 층계야. 아빠는 무거운 책짐을 메고 지고 이 층계를 오르다가 벨트가 툭 끊어져 괴춤마저 벗겨졌다고 하잖았던가.)     유서 깊은 신도림역 그 층계를 오르노라니 려향은 콧마루가 시큼해났다.     뒤이어 그녀는 만감이 교차했다.     (아빠는 조선민족 항일렬사와 항일영웅들의 사적을 만방에 홍보하고 우리 조선민족 력사에 남겨려고 한평생 얼마나 고생했는가? 그런아빠가 이 딸마저 잃어버린다면 얼마나 절망에 빠질까?)     려향은 민족투사 같은 아빠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신도림역 층계를 다 오르자두 손을 가슴에  모아안고 속으로 푸른 하늘에 빌었다.     (하느님이여, 우리 아빠를 보우해주옵소서. 제발 DNA검사를 해도 우리 부녀간을 갈라놓지 말아 주옵소서.)     려향은 기도를 마치자 지하철을 갈아 타고 곧추 대림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여느 때와는 달리 돈을 남으려고 대림 몇역전 앞 역에서 내리지 않고 대림역까지 곧추 달려가 내렸다.     그녀는 보라매공원에 가서 좀 돌면서 사색을 더 더듬을까 궁리하다가 그만두고 곧추 셋집으로 향했다.     뜻밖에 반토굴 같은 셋집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아빠, 안 나갔어?)     려향이 문을 뚝 떼고 들어서니 구수한 감자장국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빠는 려향이 젤 맛있게 먹는 감자장국을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가 우쭐 일어나 마주 나오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주름살이 얼기설기 간 거무스름한 얼굴에는 전에 없이 환하게 웃음까지 지었다.    “돌아왔니? 어서 올라오라.”    종호는 려향의 손에서 핸드빽까지 받아쥐고 손잡고 구들에 올라갔다.    려향은 아빠의 그 티없이 맑고 깨끗한 부애를 온 몸으로 한껏 느끼었다.     순간 려향은 콧마루가 시큼해났다. 가슴이 뭉클해났다.     려향은 입귀를 씰룩거리며 덫이를 드러내더니 더는 참지 못하고 아빠  품에 와락 안기며 울음보를 터뜨렸다.     “아빠!”     종호는 려향을 품에 받아안으며 오리무중에 빠진 채 눈을 치켜떴다. 눈섭 꼬리마저 쳐들리었다.     “왜 이래? 길에서 누구한테 괴롭힙당했니?”     려향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저 흐느끼며 대성통곡쳤다.     종호는 핸드빽을 침대 위에 훌 쥐어뿌리고 나서 두 손으로 품 속에서 려향의 얼굴을 받들더니 물었다.     “얘, 무슨 일이냐? 울긴 왜 울어? 오늘 면접 본다더니 혹시 글렀니?”     려향은 눈물이 글썽한 채 흐릿한 두 눈으로 아빠를 쳐다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무슨 일이냐? 어서 말해라.”     “아빠!”     려향은 또다시 종호 품에 안겨 대성통곡쳤다.     종호는 조급해났다.     “얘, 도대체 무슨 일이냐? 아빠하고 말해라.”    종호는 려향을 품에 꼭 끌어안고 다그쳐 물었다.     “혹시 최전무를 만났댔어? 최전무 일이 틀려도 괜찮아. 세상에 최전무보다 더 좋은 총각이 쌔고 버렸어. 문학박사 뭐 시집가지 못하겠니? 내 꼭 더 좋은 신랑감을 네 앞에 데려다 주마.”     아직도 딸을 걱정하는 아빠의 말에 려향은 오리무중에 빠진 아빠가 더욱 불쌍해났다. 그녀는 아빠의 얼굴을 매만지면서 더 구슬프게 엉엉 울었다.     콧구멍만한 반토굴 셋집에서는 쓸쓸한 울음소리 아빠의 속을 에이는듯이 다 파가며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435    장편소설 황혼 제2권(30) 고발 김장혁 댓글:  조회:467  추천:0  2024-08-23
     장편소설 황혼 제2권         김장혁           30. 고발       구치소 감방에서 류려평은 침대에 훌 들어누웠다. 그녀의 머리 속에는 삼검불 같은 착잡한 생각과 함께 의문이 뒤엉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구경 누가 날 고발했을까? 종호 그놈일 거야. 그 놈은 내 주사해 넣는 걸 다 봤을 수도 있어. 그 놈은 정신잃은 체 했어. 참 우무룩한 정인군자야. 날 구하는 척하면서 내 죄행을 덮어갚춰주려고 했어. 려향한테 엄마를 구하는 선량한 아빠라는 이미지를 남기려는 개수작이야. 분명 그놈이 날  물어먹었어. 내 모른 거 같애? 흥!”     류려평은 악이 나 이를 뻑뻑 갈면서 신음소리까지 냈다.     (어떻게 하면 이 원쑤를 갚을가?)     류려평은 궁리 끝에 종호를 감옥에 보내려고 궁리했다.     순간 종호 옆에서 알락거리던 나영과 지영의 걀죽한 얼굴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그년들도 편안하게 살게 놔둘 순 없어!)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녀는 구치소 감방 문을 마구 잡아 두드리며 고함쳤다.     “여보세요! 요긴한 일이 있습니다!”     “여보세요! 큰 일 났습니다!”    복도에서 다급히 뛰어오는 발자욱소리 어지럽게 들리었다.    드디어 여경 둘이 문께에 나타났다.     “무슨 일인가요?”     “요긴한 일이 있습니다. 사무실에 가서 조용히 말할 수 없습니까?”     여경은 의아한 눈길로 류려평의 아래위를 훑어보고나서 옆구리에서 열쇠를 꺼내 감방 문 자물쇠를  열었다.     “갑시다.”     여경들은 류려평의 손목에 쇠고랑을 절컥 채운 후 당직실에 데리고 갔다.     류려평은 당직실에 들어가자 여경을 보고 말했다.     “신고할 중대한 사안이 있습니다.”    여경은 사무상 맞은 켠에 쪽걸상을 들어다 주었다.     “자, 앉아서 천천히 말하세요.”     류려평은 쪽걸상에 앉자마자 사무상에 나란히 앉은 두 여경을 쳐다보며 고발하기 시작했다.     “리종호는 신문사 부사장으로 있을 때 신문사의 수많은 광고자금을 탐오했습니다. 또 수하 기자들과 취재대상들한테서 숱한 돈을 회뢰했습니다.”     두 여경은 컴퓨터에 일일이 기록하고 나서 류려평을 마주 바라보면서 말했다.     “중국에서 중국인이 저지른 죄행은 우린 수사할 권한도 처리할 방법도 없는데요. 한국 체류중 범한 죄행이 있으면 적발해요..”     류려평은 종호를 업고 똥구덩이에 훌쩍 뛰어들었다.    “어째 난 중국에서 범한 죄로 나포하는가요? 종호도 인터폴 적색수배에 올리게 할 순 없는가요?”    여경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중국 수사당국에서 인터폴 적색지명수배자로 올리면 협조해 나포할 순 있어요.”     류려평은 입술을 깨물었다. 종호를 물어뜯어 갈기갈기찢어놓고 싶은데 이빨이 잘 들어가지 않는 것이 한스러웠다.     “또 있습니다.”    여경은 류려평을 똑바로 바라보며 두 손이 컴퓨터 건판에 옮겨갔다.    “나영이란 년이 있습니다. 그년은 중국 수사당국에서 인터폴 적색지명수배명단에 오른 도주범입니다.”    “네? 잠간만요.”    여경은 컴퓨터 인터넷에 들어갔다.    “나영이라고 했지요?”    “네. 나영입니다.”     “확실히 인터폴 지명수배도주범이군요.”     류려평은 어깨 으쓱해 나영을 한바탕 물고 뜯었다.     “나영은 부패분자, 패륜녀입니다. 그년은 중국에 있을 때 문화국 국장 리정호란 놈과 함께 일본으로 해서 한국에 밀입국한 도주범입니다. 그 년놈들은 중국에서 숱한 돈을 떼먹은 부패범죄자들입니다. 나는 나영이 아님, 지영이 종호 링겔병에 염화칼리움을 넣었다고 의심합니다.”     여경이 머리를 끄덕이었다.     “나영이 지금 어데 있는지 아는가요?”     여경이 관심이 가 하자 류려평은 사기나 살기판 혀끝을 부지런히 놀렸다.      “내 딸이 말하던데. 나영은 연길냉면집에서 일한다고 합디다. 종호란 놈은 여러차례 도주범 나영을 여러차례 도주하게 도와줬고 숨겨준 죄 있습니다. 지어 나영을 자기 집에 데려다가 숨겨놓고 데리고 살기도 한 불륜도 저질렀습니다. 나영한테 숱한 수술비영과 도주비용을 대주었습니다. 그런 고로 나영은 종호가 앓을 때 그의  병실에도 자주 문안하러 나들었습니다.”      여경은 나영한테 물었다.      “더 고발할게 있는가요?”     류려평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없습니다. 이제 생각나는게 있으면 또 고발하겠습니다.”     여경은 컴퓨터를 끄고나서 사무상에서 일어났다.     “인터폴에서 추척하는 도주범 나영과 인터폴 적색지명수배자 도주범을 고발해 감사합니다. 자기 남편의 죄행마저 신고하는 그 용기 고맙습니다.”      류려평은 헤쭉 웃으면서 쇠고랑이 찬 손을 들어 보이면서 한술 더 떴다.      “한국에서도 범죄자를 신고하면 감형받을 수 있지 않는가요?”      두 여경은 눈길을 마주치더니 미소를 지었다.      “중대범죄자를 신고하면 판결할 때 감형을 고려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생각나는 족족 고발할텝니다.”      악마는 고발의 단맛을 본듯이 혀로 두툼한 입술을 다시었다.      “한가지 궁금한게 있습니다. 어째 아직도 질질 끌면서 날 판결하지 않습니까?”      여경은 흘끔 류려평을 째려보았다.      “좀 기다리세요. 당신 조사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요… 이제 곧 결론을 내릴 겁니다.” 류려평은 머리를 푹 숙이었다. 그녀는 여경을 돌아보며 간청했다.     “날 절대 중국에 인도하지 마세요. 제발 빕니다.”     여경들은 입에 빗장을 지른 채 묵묵부답했다.     마녀는 두 여경한테 압송돼 구치소 감방으로 비틀거리며 되돌아갔다.     류려평이 종호를 물어먹은데는 약은 계산이 따로 있었다.     (종호를 한바탕 무함하고 물어먹어야 종호가 보복하려고 내 죄행을 다  고발할게 아닌가. 종호 링겔병에 염화칼리움을 주사해넣었다고 증인으로 나설게 아닌가?)     류려평은 자기가 살해하려던 종호한테 자기 운명을 맡긴다는 것이 너무나도 가련하고 서글펐다. (그놈을 국내에서 수술대에서 의료사고로 썩어지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럼 킬러로 한국에까지 나올 필요는 없었는데. 참.)     그는 구치소 침대에 누워 눈을 스르르 감았다. 순간 자기를 한국에 킬러로 파견한 류덕재가 떠올랐다.     (아차, 깜빡 잊었구나. 그 놈도 의심스러워. 처음에는 중국은행을 통해 려향한테 내 용돈을 좀 보내더니. 어째 근자엔 일전한푼도 보내지 않을까? 려향이 자기 딸이란 걸 다 알면서도 돈을 안 보내? 깍쟁이 같은 놈. 흥!)     그녀는 범위를 넓혀 속궁리를 돌렸다.    (혹시 그 놈도 철창 속에 갇혔는가? 은행계좌도 차압당했는가? 그 놈이 나포되면 나도 편한 날 없는데. 내 죄행을 젤 잘 아는 놈은 종호보다도 류덕재, 그 놈이 잖아.)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혹시 그 놈이 체포되기 전에 날 고발하지 않았을까? 그 놈은 '적은 항상 자기 곁에 있다.'고 하잖았어. 그럼 나도 곁에 있는 적이라고 생각하고 제거하려고 들었어? 세상에 믿을 놈이 없어.)    그러나 인차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순 없어. 그럼 자기 꼬리도 드러나겠는데.)    마녀는 이를 옥물었다.    (늙은 너구리 같은 놈, 제 꼬리 드러날가 봐 겁났지? 자기 꼬리 밟힐가 봐 날 한국에 보냈지? 꼬리를 잘라버리려고?)     마녀는 눈치 도끼등이 아니었다.    (류덕재, 늙은 너구리 같은 놈, 네 놈이 날고발했으면 네놈도 살아남을 거 같아?)    그러나 류려평은 그렇게까지 류덕재를 추측하기 싫었다. 아직 아무런 증거도 없었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어쩐지 자꾸 류덕재도 미심해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 놈은 날 극력 보호해야지. 그 놈한텐 내가 시한폭탄과 같으니깐.)    류려평은 여기까지 생각하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한폭탄!)    그녀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한폭탄이면 제거해야 할게 아닌가? 그럼 그 놈이 내라는 이 시한폭탄을 한국에 멀리 보내놓고 제거하려고 하지 않았을가?)     류려평은 생각만 해도 섬찍했다.     (타국에 있는 날 무슨 수로 날 제거한단 말인가? 종호를 살해하려다가 내 한국 경찰에 체포돼 총살당하게 만들자는 거였어? 한국 법정의 칼을 빌어 날 살인죄로 총살당하게 하자고 들었어?)     마녀는 생각할수록 공포의 바다에 서서히 잠겨들어갔다.    (어쩜 좋은가? 류덕재 죄행도 훌 고발할가? 혹시 감형받겠는지 어떻게 알아? 허나 여경들은 중국에서의 범죄는 고발해도 심드렁한  표정이 아닌가? 한국에서 저지른 죄만 수사하고 있지 않는가?)     마녀는 이를 옥물었다.      (내 중국에 인도되는 날이면 류덕재 고발했다는게 증명돼. 류덕재, 늙은 너구리 같은 놈, 날 물어먹는 날엔 다 고발해버릴테야.)     마녀는 퉁사발눈으로 쇠살창 밖 퍼러덩덩한 하늘을 무섭게 쏘아보면서 이를 쁙쁙 갈았다. 퉁사발눈에서 불찌가 공포스럽게 툭툭 튕겨나고 있었다.     그 분노의 불찌는 구치소 바닥도 천정도 훌 불태울 것만 같았다.
434    장편소설 황혼 제2권 (29) 살인멸구(杀人灭口) 김장혁 댓글:  조회:615  추천:0  2024-08-20
     장편소설 황혼 제2권            김장혁          29.  살인멸구(杀人灭口)       구치소 철문이 드르릉 닫히는 소리가 귀청을 아프게 때린다.     여경의 구두발 소리가 디똑디똑 멀어져가는 소리 들린다.     류려평은 감방 돌아와 침대에 털썩 드러누워 두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녀는 금방 면회실에서 갈라질 때 딸애의 처량한 모습이 떠올라 괴로워 참을 길이 없었다.      순간 속으로 무엇이 울컥 치밀어올라와 왈칵 토했다.      “앗, 더러워!”      다른 여수감자들이 손으로 코를 막고 구석으로 피한다. 어떤 여수감자는 표독스런 눈길로 류려평을 흘겨 보았다.      류려평은 빗자루와 쓰레바퀴를 들고 와서 개먹어리를 쓸어 담아 구석에 쓰레기통에 훌 쏟아넣었다. 그러나 더러운 악취가 온 감방 안에 풍기었다.      여기저기서 여수감자들의 불평의 목소리가 귀전을 시끄럽게 굴었다.      (짖어대겠으면 콱 짖어대라. 개는 짖어도 의연히 필림은 돌아간다.)     류려평은 여수감자들이 두덜대는 소리에도 개의치 않고 침대에 돌아와 훌 들어누웠다.     순간, 류려평은 삼검풀처럼 착잡한 만감이 교차했다.     금방 면회실에서 려향한테 마지막 부탁을 해놨기에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났다.     (문학박사니깐. 엄마 암시를 알아들었겠지.)     류려평은 마지막 부탁까지 해놨기에 시름을 싹 놓았다.     그러나 류려평은 금방 려향한테 종호를 친아버지 아니라고 말해 버린 것이 마음에 좀 걸렸다.     (실수했는가? 려향은 지금 쯤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겠는가? 허나 아무 때건 말해줘야 해.)     류려평은 려향한테 종호가 친아빠 아니란 말을 이제까지 줄곧 하지 못했다. 그것은 딸애 앞에서 창피한 자기 사생활을, 세상에 보기 드문 불륜을 드러내놓기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이른 이 시각, 생명의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르는 이 시각에 더는 말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친애비 아니란 걸 알려줘야 해. 그러잖으면 려향은 효녀여서 내 인생 전부를 파다가 종호 놈새끼하구 함께 향수할게 아닌가? 안돼. 종호가 려향과 함께 그걸 쓰게 해선 절대 안돼. 계집애두 엄마 절반만 돼도 제 노릇 할 건데. 참.)     그러나 류려평은 한편 스스로 위안되기도 했다.     (친애비 아니란 걸 알면 려향은 한평생 엄마 인생 전부를 혼자 향수할 거야. )     류려평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근심이 산산히 사라져갔다.     그러나 한국에 도망나와 얼마 안돼 귀신이 곡할 지경으로  여경들한테 납짝 나포된 일을 생각하니 또 억이 막혔다.     (참, 한심해. 한국에 나온지 일주일도 안돼 구치소에 갇히다니?”     그녀는 퉁사발눈을 스르르 감는 순간 류덕재의 말상이 눈앞에 떠올랐다.     (류덕재 말이 맞아. ‘젤 위험한 적은 항상 내 곁에 있어.’ 내 은행 지행장을 하면서 대부금을 내주고 아파트랑 얻어먹은 일은 종호 밖에 모르잖는가. 그 놈새끼를 내놓고 누가 날 또 물어먹겠는가.)     류려평은 마녀처럼 상통이 흉측하게 이그러졌다.      마녀는 퉁사발눈을 부릅뜨더니 이빨을 쁙쁙 갈며 윽별렀다.     “내 저승에 가서라도 네놈을 물어뜯어놓을 테야.”     류려평은 또 류덕재도 원망하기 시작했다.     (류행장, 당신은 날 한국에 도망치게 했지. 당신 말을 듣지 않고 중국에 있었으면 내가 무슨 이런 고해를 겪겠는가.)     어느 하루 류덕재 행장은 류려평을 항상 은밀히 만나던 다방에 오라고 불렀다.     류려평은 벤츠를 몰고 불안한 심정으로 교외 산기슭에 자리잡은 별장 같은 다방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 벤츠도 류덕재가 류려평한테 선물로 준 것이었다. 류덕재는 아빠트에 벤츠까지 류려평한테 주었고 지행장이란  권력도 주었던 것이다. 때문에 류려평은 죽으라는 말 외 류덕재 말은 다 고분고분 들었다.      교외 산기슭 울창한 수림 속에 자리잡은 별장 다방은 류덕재가 암암리에 마련한 것인데 아가씨들과 은밀히 만나는 장소였다.      류덕재는 근년에는 보통 큰 일이 없이는 류려평을 그리 부르지도  않았다. 류려평도 이젠 60대 초반이 다 돼 녀자로 써먹기는 글렀다고 여겼던 것이다.     “늙어 쭉쭉 한게 이젠 짜릿한 자극도 없어. 진짜 늙어빠진 페허암소야. 메스껍다. 퉤!  같은 값에 분홍치마라고 초두부처럼 야들야들한 아가씨들을 데리고 놀아야지.”     류덕재는 이젠 류려평을 애인으로 보는게 아니라 부담거리로 여겼다. 그런 줄도 모르고 류려평은     류덕재를 보고 쩍하면 금목걸이를 달라, 금팔찌 달라 한다.     (그년은 내 밑바닥을 잘 아는 시한폭탄이야.)     류덕재는 이 시한폭탄 꼬리를 천방백계로, 시급히 잘라버려야 했다.     류려평이 어둑시그레 음침한 다방에 들어서자 류덕재는 쏘파에 틀스레 앉아 머리짓으로 맞은 켠 쏘파를 가리켰다.      “앉아.”     류려평은 쏘파에 앉아 류덕재 두툼한 입술에서 무슨 말이 떨어질가 조마조마해 마음을 조이면서 하회를 기다렸다.     류덕재는 거만하게 말상을 기웃거리며 커피를 훌훌 불어 마시면서 량미간을 찌프리었다. 답답한 침묵이 류려평의 가슴을 괴롭히며 일분, 일초 재깍재깍 흘러 지나갔다.     류덕재는 커피잔을 들고 류려평을 힐끔 곁눈질했다. 이윽고 뻐드렁이빨을 드러내며 살기 찬 혓바닥을 날름거리었다.     “려평아, 당장 한국에 도망가라. 수사부문 한 친구 말하던데, 수사부문에서 널 암암리에  수사한다더라. 아마, 종호, 그 놈새끼 고발했는지도 몰라.”     류덕재는 곁에 있는 이 시한폭탄을 멀리 날려보내려고 작심했다.     류려평은 깜짝 놀랐다.     “네?! 종호? 그 놈새끼. 명색이 부부인데 차마 그럴 수 있을까요?”    류덕재는 코웃음쳤다.    “픽, 부부는 돌아누우면 남이란 걸 몰라? 적은 항상 자기 곁에 있어.”    “오빠, 이걸 어쩌오?”    류려평은 류덕재 곁에 옮겨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류덕재 한 팔을 붙잡고 매달리면서 애원했다.     “오빠, 날 살려 주오. 오빤 정법계통에 친구가 많잖소?”    류덕재는 우멍눈에 간사한 미소를 게바르면서 장담했다.     “그래,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널 구할 거야. 네가 잘 못되면 내 인생도 살멋이 없게 돼.”    류덕재는 류려평이 나포되면 수사부문에서 류려평이란 이 넝쿨을 따라  자기 밑을 들추게 된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것이 두려웠던다.    (이년 시한폭탄을 멀리 한국에 내보내 제거해야 해.)   류덕재는 류려평이란 후환을 제거할 묘수를 꾀했다.    “나포되기 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한국에 도망쳐라.”    “네?”    류려평은 눈 앞이 캄캄해났다.     “한국에 나간다고 나포되지 않는다는 담보는 없잖소? 인터폴 적색지명수배가 따라 붙으면 한국에 나가도 나포돼 중국에 인도되겠는데.”    류덕재는 개의치도 않았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널 한국에 어선으로 밀항해 내보낼게. 그럼 누가 한국에 간 걸 안다더니?”     “네-”     그제야 류려평은 절반 마음을 놓게 되었다.     “그럼 오빠만 믿겠소.”     그녀는 류덕재 팔을 붙잡고 당황한 얼굴을 그의 어깨에 얹었다.     류덕재는 류려평의 얼굴을 매만져 주면서 안정시켰다.     “그래. 내 있는 한 근심하지 말라. 네가 한국에 도망가면 중국은행을 통해 네 딸한테 생활용돈을 보내줄게.”     뒤이어 류덕재는 더욱 악독한 궤계를 내놓았다.     “한국에 가면 좋기는 려향네 집에 가지 말라. 종호도 있으니까. 그 놈은 시한폭탄이야. 그 놈 후환을 없애야 하겠는데.”    류려평은 섬찍해났다. 그녀는 류덕재 어깨에서 머리를 쳐들더니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부 정은 없어도 어찌 종호를 살해까지 하오? 안되오. 살인죄를 지면 총살당할 거 아니오?”    “흥!”    류덕재는 코방귀를 뀌었다.    “그 놈이 살아 있는 한 넌 편안한 날이 없어. 한국에 나가 그 놈을 꼭  없애치워라.”    “무슨 소리? 괜히 살인죄까지 져 총살맞겠소. 난 종호를 살해까진  못하겠소.”    류덕재는 려평의 허리를 껴안고 음흉한 꿍꿍이를 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종호를 없앨 묘책이 있어.”    “어떻게?”    류덕재는 말상을 류려평의 귀에 대고 음흉하게 귀속말을 지껄이었다.     “안락사를 시킨단 말이야. 그럼 넌 살인죄도 안 쓰고 후환을 없애치우게 되잖아. 일거량득 아니야?”    류려평은 그때 고개를 숙이며 커피잔을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잡았다.    “안락사?”    이윽고 그녀는 큰 마음을 먹고 쓰디쓴 아메리칸커피를 한잔 쭉 냈다.    “어떻게 안락사시킨단 말이오? 좀 구체적으로 말하오.”    “염화칼리움으로 안락사시키지. 넌 집이 빈 기회를 타서 날마다 종호 먹는 장국에 염화칼리움을 몇방울씩 떨궈 넣어라. 그럼 그 놈은 천천히 죽게 되지. 그럼 어째 죽었는지도 모르고 천천히 죽게 돼.”    “염화칼리움? 그게 묘책이군요.”    “그래, 내 미리 준비해뒀어.”    류덕재는 벽 궤에 가더니 까만 병을 꺼내 류려평한테 주었다. 살인마 류덕재  우멍한 눈에서 살기가 무섭게 번쩍였다.     류덕재는 류려평의 손을 빌어 종호란 시한폭탄을 제거하고 또 나중에 한국 수사당국의 손을 빌어 살인죄를 쓴 류려평이란 시한폭탄을 제거하려고 들었다. 그는 류려평이란 꼬리를 잘라버려야 자기 죄행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고 궁리했던 것이다.    얼마나 음험한 놈인가! …    그러나 류려평은 류덕재의 음흉한 음모궤계는 하나도 모르고 류덕재 면밀한 배치에 따라 움직여 왔다.    그녀는 한달 전에 천신만고 끝에 어선을 타고 한국에 나왔다. 그런데 려향한테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니 알려주지도 않아 손 쓸 기회가 없었다. 종호가 생사선에서 헤맬 때에야 려향은 엄마한테 아빠 병실을 알려주었다. 그제야 천재일우의 손 쓸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살인마녀 류려평은 종호가 쓰러져 링겔을 맞을 때 염화칼리움을 링겔병에 직접 주사해 안락사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종호가 정신 잃은 척 하면서 지혜롭게 대처하는 바람에 안락사 암살은 실패했고 류려평은  나포돼 구치소에 갇히고 말았던 것이다.      류려평은 구치소에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뭐야? 종호를 안락사시켜 살인멸구(杀人灭口)하지도 못하고, 참, 재수없어. 종호, 그 놈 후환을 없애기 전엔 무사할 날이 없는데.)     마녀는 구치소에 갇힌 몸인지라 용빼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악처는 실패를 달가워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사람을 죽여 입을 틀어막겠는가고 베아링처럼 궁리를 돌렸다.
433    장편소설 황혼 제2권(28) 철창 속 밀담 김장혁 댓글:  조회:509  추천:0  2024-08-17
           장편소설 황혼                               김장혁            28. 철창 속의 밀담       철문이 삐꺽 열리더니 구치소에 두 여경이 들어섰다.     여경은 날카로운 눈길로 구치소 방 안을 쓸어보았다. 그 날카로운 눈길은 류려평한테 가서 뚝 멈춰섰다.     “류려평, 어서 나오세요.”     류려평은 겁기 띤 퉁방울눈으로 두 여경을 흘끔흘끔 번갈아 쳐다보며 천천히 일어났다.     “중국으로 끌어가는가요?”    류려평은 좀 서툴렀지만 그래도 한국말로 물었다.    “가보면 알 거요.”    두 여경은 류려평한테 다가와 손목에 쇠고랑이를 채웠다.    갑자기 류려평은 몸부림치며 야단쳤다.    “난 안가! 중국에 안가! 중국에 가면 죽어!”     류려평은 도살장에 들어가는 황소처럼 두 발로 떡 벋치며 몸부림쳤다.    “걸엇!”     두 여경은 량쪽에서 류려평의 량팔을 끼었다.    “겁내지 마세요. 면회하러 가는 거야.”     “면회?”     그제야 류려평은 몸부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여경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날 살짝 얼려 놓고 중국에 인도하는 거야 아니겠죠?”    “아닌데요. 면회예요.”    류려평은 그제야 순순히 여경들을 따라 스적스적 복도로 나갔다.    (누가 면회하러 왔을까? 려향 밖에  올 사람이 더 있겠는가?)    류려평은 려향과 무슨 말을 할가고 궁리해 둬야 했다.    혹시 이번 면회가 딸과의 마지막 면회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때문에 제한된 시간 안에 딱 부탁할 말을 미리 잘 준비해둬야 했다. 긴 복도지였만 복도를 나가는 사이에 숱한 부탁을 준비한다는 것은 판 부족이었다.     그러나 류려평의 머리에 피뜩 떠오른 것이 있었다. 부탁해야 할 젤 중요한 일이 피뜩 떠올랐다.     (맞다. 그걸 부탁해야지.)    어느새 면회실에 이르러 철문이 열렸다.    류려평은 철창을 두른 자그만 면회실에 성큼 들어섰다.    커다란 유리창 중간에 난 자그마한 구멍으로 건너쪽을 내다보니 려향이 퍼러스름한 핸드빽을 들고 면회실에 들어서는 것이었다.    "핸드빽은 가지고 들어가지 못해요. 인줘요."    여경이 려향의 손에서  핸드빽을 받아 들더니 면회실 맞은켠 감시실에 들어갔다. 여경들은 불투명 유리판을 통해 면회실의 일거일동을 다 감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면회실 류려평과 려향은 불투명 유리판 건너 감시실 안의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려향아!”      “엄마!”     면회실에는 울음바다가 파도쳤다.     모녀간은 철창 속에서 만나자마자 투명 유리판에 난 구멍으로 두 손을 맞잡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엄마, 그간 잘 있었지요? 어디 아픈 덴 없지요?”     려향은 손수건을 꺼내 엄마 두 볼의 눈물을 닦아드리었다.    “그래, 난 아무 일도 없어. 금방 핸드빽은 왜 빼앗아갔어? 안에 뭐 있었니?”    려향은 불투명 유리판을 눈짓하며 조심스레 말했다.    "면회실에 핸드빽을 들고 들어오지 못한대요? 엄마한테 주자고 편지도 써왔는데요. 여경이 먼저 보고 전하겠다더군요."    "넌 아직 소비자인데 웬 핸드빽이냐? 브랜드 핸드빽 같던데."    "네. 악어표 핸드빽인데요. 아빠가 사준 겁니다."    "그 깍쟁이? 해 서산에서 뜨겠다. 내한텐 언제 핸드빽이겠니? 손가락에 감을 천 오리 하나 사 준 적도 없어."    “아빤, 내 박사학위를 탔다고 사 줬습니다.”    "리박사, 아니, 류려향 박사, 축하한다."     "또, 또, 또."    류려평 모녀간은 첫마디부터 한어로 주고받았다. 한국 여경들의 귀를 피하려는 수작이었다.    그러나 두 여경은 중국통일줄이야. 지금 면회실 감시실에서 그들 모녀간이 주고 받는 한어말을 다 감청하고 있었다.     류려평은 진작 그럴줄 알고 말을 주의해 하기로 작심했다.     려향은 엄마와 면회하러 오기 전에 아빠와 아침을 먹으면서 넌지시 물어보았다.    “아빠, 한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종호는 숟가락으로 장국을 뜨려다가 주춤 멈추더니 의아한 눈길로 딸을 마주 바라보았다.    “아빠는 아주 도량이 넓게 엄마를 구하려고 하는데요. 어째 엄마는 아빠를 해치려고 들까요? 이젠 아빠와 엄마 사이에 봉합할 방법없는 깊은 협곡이 파이었다고 보는데요. 언제부터 엄마 아빠 사이에 금이 실리기 시작했는가요?”     종호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면서 장국을 떠 후루룩, 후루룩 먹었다.     “그걸 알아 뭘 하니?”     그러나 려향은 지꿎게 고집을 부리었다.     “아빠는 날 보고 시집가라고 자꾸 재촉하면서. 딸도 어째 엄마 아빠 이 지경이 됐는가 알아야죠. 그래야 교훈을 섭취하고 좋은 데 시집가고 가정을 잘 운영할 수 있지 않는가요?’     그제야 종호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숟가락을 놓고 정색했다.     “아마 결혼 초기부터 금이 실린 거 같다.”     “네?”    려향은 외까풀눈이 데꾼해지더니 쌍까풀이 돼버리었다.    “결혼 초기에?”    “그래.”    종호는 딸에게 참고되겠는가 해 말문을 열었다.    “결혼한 이튿날 삼일이 돼서 너네 엄마 본가집에 가게 됐어. 우리 집에선 너네 외할머니한테 젖값을 줘 보내게 됐다. 그런데 너네 할머니 글쎄 너네 엄마 앞에서 너네 고모하구 네 외할머니한테 나를 기른 값으로, 너네 조선족들이 말하는 이른바 “젖값”을 줄 토론을 했지. 고모는 젖값으로 옷감 두벌 주자고 했다. 그런데 너네  할머닌 한벌 줘 보내기로 고집했지. 그때 너네 엄마 보름달처럼 이쁘던 얼굴이 단통 불그락프르락해지더란 말이야. 심지어 젖값이라고 준 옷감을 훌 던지면서 가지고 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엉엉 울더란 말이다. 너네 엄만 자기 엄마한테 젖갑을 적게 줬다고 속에 옹이 박혔지. 그때부터 너네 할머니와 이 벌어졌다. 너네 할머니라면 너네 엄마는 미워 눈을 흘기고 죽어도 주사 한대 놔주지 않았다.”     종호는 마음이 아파 비길데 없었다.     “네- 옷감 한벌 때문에 원쑤처럼 벌어진단 말인가요?”    “그래. 젖값 문제는 확실히 우리 집에서 잘못 처리했다.”    종호는 마음의 상처가 아파났다. 하지만 려향한테 제대로 알려줘야 했다.    “난 너네 엄마한테 큰 마음의 빚을 졌다. 그래서 조용할 때면 너네 엄마를 위안해주면서 ‘대신 내 꼭 잘해주겠다.’고 다짐했지. 내 신문사 부사장 할 때 광고를 해 돈을 좀 버니 금반지와 금목걸이도 사주고 팔찌도 사주었지. 그래도 너네 엄만 네 할머니를 계속 미워하더라. 나중엔 나까지 미워했지. 너네 엄마는 내 조강지처야. 결혼해서 물독이 떵떵 어는 셋집에서 나와 함께 고생하면서 살아온 조강지처야. 난 절대 조강지처를 버릴 수 없다. 조강지처를 버리면 집안이 망한다. 생벼락을 맞게 돼.”    려향은 아침에 아빠하던 말이 떠올라 철창 속에서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아빠는 엄마한테 마음의 빚을 많이 졌다면서 한평생 미안하다고 하던데요. 엄마를 조강지처라고 버리지못한다데요. 엄마는  왜 아빠를 살해까지 하려고 들었는가요?”     “닥쳐! 넌 그 놈[H1] , 위군자놈 거짓말을 다 믿니?”    류려평은 악이 나 이를 쁙쁙 갈았다.     “그놈한테 시집 왔기에 내 팔자를 다 망쳤어. 네 외할어버지도 눈이 멀었지. 날 그런 놈 집에 시집 보내다니. 참, 한평생 두고 두고 원망스럽다. 넌 절대 종호 같은  나쁜 조선족 놈한테 시집가지 말라. 신랑을 잘 만나야 행복해.  시집 잘 못 가면 한뉘 개고생한다. 알만해?”     려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녀는 궁금해 물었다.    “혹시 결혼 때 삼일에 본가집에 갈 때 할머니한테 젖값을 적게 줬다고 그래요? 옷 한벌 적게 준게 그렇게도 원쑤치부 할 지경인가요?”    려평은 눈이 데꾼해 려향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애비한테서 뭘 들었니?”    “네. 고까짓 젖값 때문인가요?”    “닥쳐!”    류려평의 퉁사발눈에서는 불찌가 튕기었다.    “생각해 봐. 내 얼마나 기분 상했겠는가. 글쎄 결혼 이튿날에 본가집에 가는데 너네 할머니 젖값도 온전히 주지 않겠단다. 옷 한벌 남아서 더 잘 살겠니? 너네 할민 세상에 둘도 없는 무서운 깍쟁이야.”     려향은 의아해 했다.    “그 잘난 옷 한벌 때문에 할머니와 아빠까지 미워할 거까지야 없잖습니까?”   류려평도 이게 딸과의 마지막 대화일지도 모르기에 다 털어놓기로 했다.     “시간 없어서 간단히 말하자. 젖값뿐만이 아니야. 우리 한족 결혼풍속에는  결혼할 때 신랑 쪽에서 신부 집에 미리 彩礼로 숱한 纳采례물과 结纳金을가져 간다. 너네 외할아버진 시골에 있는 종호네 가난하다고 대학생 사위를 삶으면 된다고 하면서 彩礼를 하나도 받지 않았다. 도리여 조선족 혼인풍속대로 내 혼수 외에 례단으로 숱한 옷감에 비단필까지 나한테 주어 사돈집에 보내주었다. 그런데 너네 할머닌 彩礼는커녕 결혼 날 조선족 혼인풍속대로 가져가는 대장함에도 애 포대기와 애기옷 몇벌 밖에 넣지 않았더란 말이다.  젖값마저 외할머니 옷감 한벌을 딱 보냈단 말이야. 그것도 너네 고모는 두벌 보내자는데 네 할미가 옷감을 한벌 훌 줴내더란 말이다. 네 애빈 곁에서 보면서도 한마디 말도 안하더라. 결혼 이튿날에 내 심정이 오죽했겠느냐?”     려향도 엄마를 동정해 콧마루가 시큼해나며 눈물이 글썽해졌다.    “세상에 깍쟁이라구. 세상에 그렇게 인정머리도 없는 깍쟁이 또 어디 있겠느냐? 결혼할 때 우리 한족들은 신부한테 결혼금반지, 금귀걸이, 금목걸이, 금팔지를 사준다. 그런데 너네 아빤 결혼할 때 결혼금반지도 끼지 못하고 결혼했다. 난 약혼해도 약혼반지 하나 끼어본 적이 없다. 세상에 이런 값 없는 녀자, 불쌍한 녀자 세상에  더 있느냐?”    류려평은 억울해 퉁사발눈에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러나 려향은 아빠를 대신해 반론했다.   “후에 아버진 광고를 해 번 돈으로 엄마한테 금반지에 금목걸이, 금팔찌까지 사줬다던데요.”   류려평은 피씩 코웃음쳤다.    “건 썩 후에 일이야. 때늦은 보상이었어. 그걸로는 판 부족이야. 내 종호를 따라 물독이 얼어 탁탁 튀는 셋집에서 널 낳고 사느라고 얼마나 개고생했는지 아니?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진저리난다. 가슴 속에서 피눈물이 터져나온다.”    려향은 류려평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도 불쌍해요. 그러나 고런 일로 한뉘 할머니와 아빠를 증오하고 지어 살해하려고까지 할 것까지야 있는가요?”    류려평은 그 말에는 입에 빗장을 질렀다.    기실 류려평은 종호가 자기를 고발했다고 의심하고 죽여버리자고 작심했던 것이다.    려향은 엄마를 유리구멍 가까이에 오라고 손짓했다.    류려평은 제꺽 눈치 채고 귀를 유리 구멍에 대고 하회를 기다렸다.    려향은 나직이 귓속말로 밀담했다.    “이젠 과거사는 그만 말합시다. 엄마를 어떻게 구할 방도를 대 봅시다. 아빠는 내 부탁대로  엄마가 중국에 인도되지 않게 엄마 살인    미수죄 인증을 서겠다고 합디다.”   류려평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놈은 날 물어먹잖으면 다행이야. 그 놈은 청개구리야. 메라면 지고 지라면 멜 놈이야."    류려평은 또 종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종호 그놈새끼 날 물어먹었어. 그러잖으면 중국 수사당국에서 어떻게 날 그리 빨리 수사해냈겟어? 한국 경찰들도 어떻게 내 한국 병원에 있는 걸 딱 알고 나포해? 한국 여경들이 어떻게 내 인터폴 적색지명수배도주범인 걸 알겠어?"    악처는 악이 나 이를 쁙쁙 갈았다.    "내 그 놈을 죽이자고 했잖아. 때문에 이 기회에 중국과 한국 법의 칼을 빌어 날 죽이자고 할 거야. 그 놈새끼는 꼭 수사당국에 내게 불리한 인증을  설 거야."     류려평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종호와 난 원쑤지간이 됐다. 그 놈을 믿지도 말라. 한지에 방아를 걸겠다.”     려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빤 이제 엄마가 자기를 안락시키자고 염화칼리움을 아빠 링겔병에 주사했다고 증명서겠답디다. 그럼 엄만 한국에서 극상해야 살임미수죄로 한 3년 좌우 판결받게 될 겁니다. 내 취직해 돈 벌면 벌금 좀 하면 엄만 기한 전에 보석될 수도 있을 겁니다.”     류려평은 또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려향의 귀에 대고 나직이 귀속말을 했다.    “넌 애비를 그렇게 믿니? 그 놈은 이 기회에 날 죽음의 구렁텅이에 처넣어 잡아 죽이려고 할 거야.”    순간 려향은 엄마가 엄마 아니라 마녀 같아 보이었다.     려향이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다.     류려평은 려향의 손을 꼭 잡고 들릴락 말락한 귀속말로 밀담을 계속했다.    “난 중국에서 국제 인터폴에 올린 적색수배도주범이야. 중국 수사당국에선 천방백계로 날 중국에로 인도해갈 거야.”    류려평은 도적눈으로 면회실 천정과 구석구석에 달린 몰카를 힐끔힐끔 살펴보았다.     뒤이어 그녀는 려향을 유리구멍에 더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하더니 나직이 뒷말을 이었다.    “난 언제 죽을지도 몰라. 한가지 부탁하자. 할아버지 산소를 잘 지켜달라. 산소에 가면 비석을 잘 보살펴라,"     류려평은 면회실 구석구석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두툼한 입술을 려향의 귀에 대다싶이 하고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귀속말을 이었다.     "비석에 네 할아버지와 내 인생 전부가 묻혀 있다. 이제 엄마가 총살당한 후 바람이 잠잠할 때 엄마 생각나면 비석을 가 봐라. 이건 엄마 유언이야.”     려평은 부탁을 마치자  쓰라린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려향은 의아해하다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엄마 손을 꼭 잡았다.     “엄마, 나도 한가지 부탁합시다. 아빠와 리혼하세요. 아빠를 살려 주세요. 아빠는 이젠 더는 사랑도 안해도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류려평은 속으로 려향이 애비를 챙기는게 괘씸했다. 하지만 별수없다고 생각했다.    “네 애비 리혼하자겠니? 리혼하면 그 놈이 날 살리자고 인증을 서 주겠니? 남남이 되는데.”    류려평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전에 내 리혼하자고 그렇게 떠들어대도 그놈이 리혼해주지 않았어. 널 리혼한 집 애로 만들 수 없다면서. 날 한뉘 악어처럼 꽉 물고 놔주지 않았어.”    려향은 확신에 차 말했다.    “아빠는 리혼해도 꼭 엄마의 살인미수죄행을 인증 서 줄겁니다. 나도 인증을 서겠습니다. 난 아빠 병실 침대머리에 장치한 몰카로       엄마 살인미수 죄행을 촬형한 동영상을 다 보았습니다.”     류려평은 속이 섬찍했다.     “네가…”     면회실 철문이 드르릉 열렸다.     “시간이 됐어요!”     여경 둘이 들어왔다.     류려평은 려향의 손을 꽉 잡고 고함쳤다.     “넌 성씨를 꼭 류씨로 고쳐라! 넌 종호 딸이 아니야! 넌 류덕재 행장 친딸이야! 한족집 딸이야!”     려향은 깜짝 놀랐다.     “허튼 소리!”     리려향은 정수리를 철퇴에 딱 맞아댄 것 같았다. 그녀는 갑자기 까무러칠 지경이 됐다. 여경이 비칠거리는 그녀를 부충했다.     려향은 간신히 몸을 가누더니 막다른 골목에 이른 엄마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엄마가  미쳤다고 여겼다.      모녀간은 철창 속에서 밀모를 채하지 못한 채 생리별하듯 울고 불며 갈라지지 않으면 안되였다.      면회실 량쪽으로 갈라진 복도는 그들 모녀간의 통곡바다가 세차게 파도쳐 시끄러워졌다.  [H1]
432    장편소설 황혼 제2권(27) 약속 김장혁 댓글:  조회:483  추천:0  2024-08-11
  김장혁 장편소설 황혼         27. 약속       억수로 쏟아지는 소낙비를 피해 종호와 려향은 광화문 앞 과화지하철역으로 부랴부랴 달려들어갔다.     그들 부녀간은 지꿎게 쏟아지는 소낙비와 으르렁거리던 우뢰소리를 뒤로 하고 개찰구로 나가면서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었다.     서울은 다른 건 몰라도 지하철이 사통발달해 좋았다. 지하철에는 소낙비를 피해 달려 들어온 행인들로 발 내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붐비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철이 달려왔다.     종호와 려향은 책짐을 갈라 들고 붐비는 지하철에 올랐다. 뜻밖에도 지하철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구석 쪽으로 해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종호는 책짐을 보배처럼 품 안에 꼭 껴안고 얼굴을 반쯤 돌려 려향을 보고 물었다.     “취직 방향은 고려해봤니?”     려향은 한숨을 호- 내쉬었다.      “시간 좀 주세요. 이젠 제가 벌어서 아빠한테 효도해야죠.”    종호는 려향을 보면서 자기 의향을 넌지시 꺼냈다.    "교보문보 같은 큰 출판사 편집이나 하면 좋겠는데. 작품이나 책이나 내기도 편리하겠는데. 아니면, 어느 신문사 기자질을 하면 어떻니?"    려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자기 도사인 허교수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 시대에 삼대로 문학을 하면 집안이 망할 거야."   그러나 아빠를 실망하게 할가 봐 그 말은 못하고 에둘러 완곡하게 말했다.     "아빠 한뉘 기자질 했는데 지겹지도 않아요? 아빠는 출판사에 책을 내러 다녀보지 않아 그래는가요? 지금 출판사도 책이 잘 팔리지 않아 힘들어요.딱 출판사나 신문사에  들어앉아야 글을 잘 쓸 수 있는게 아니라고 봅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생활을 축적하면 얼마든지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고 봐요."     종호는 의아한 눈길로 딸애를 마주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떤 데 취직하려고 그래?”     려향은 아빠한테 속속들이 말했다.     “어제 최전무한테서 전화 왔는데요. 자기네 회사 회장 비서에 취직하지 않겠는가고 묻습디다.”    “최전무라니? 잘 아는 사람이냐?”    “내 구명은인입니다. 밤중에 보라매공원 부근에서 흑인강도한테서 날 구해준 구명은인입니다. 절대 믿을 수 있습니다.”    려향은 그날 밤중에 있은 섬찍한 일을 들으면 아빠가 놀랄가 봐 이제껏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경우에 따라 쭉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됐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는데요. 최군철 전무는 원래 중국 S시 한국 한 반도체회사 부총경리, 전무입디다. 그는 대공무사한 당대표던데요. 지금 한국 본사 지회사에서 전무 겸 기술팀 팀장을 겸해 주관하더군요. 최군철 전무는 믿을만한 분입니다.”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는 딸애의 취직에 대해 자기 의견을 너무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생존이 우선이지. 네가 알아서 취직해라. 민족의 얼을 지키려는 마음만 있으면 어떤 취직을 하더라도 잘 해나갈 수 있지.”    종호는 려향이 선선히 대답하자 자기 꿈이 이뤄지는 것 같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려향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자기 뒤를 이어 민족의 얼을 지키고 전주 리씨 집안의 대를 잇게 하는 것만이 종호의 유일한 꿈이었다.    그는 전번에 춘희가 하던 혼사말을 꺼낼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우리 귀한 딸을 어떻게 애 둘이나 달린 홀애비한테 시집 보낸단 말인가. 안돼, 절대 안돼.)    지하철을 몇번 갈아타고 대림역에서 내렸다. 이날만은 예전처럼 단돈 백원이라도 남으려고 몇 역 먼저 내리지 않았다. 뜻밖에도 언제 소낙비가 쏟아졌는가 싶이 하늘이 활짝 개이지 않았겠는가.    그들은 책짐을 들고 콧구멍만한 셋집도 제 집이라고 돌아왔다.    종호는 딸을 데리고 셋집에 들어서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며 막연한 생각을 했다.    (반토굴이나 다름없는 셋집에도 쨍 하고 해 뜰 날이 있을까?)    려향은 아빠의 책짐을 받아 옷궤 위에 높이 정중히 올려놓았다. 뒤이어 팔을 걷고 구들부터 말끔히 닦았다.    려향은 아빠를 침대에 모셔놓고 부엌에 다가가며 생글 웃어 보이었다.    “누워  쉬세요. 맛있는 밥을 지어 아빠한테 드릴테니 기다리세요.”    종호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얘, 먹을데 없다. 우리 얘기나 하자.”    “좀 기다리세요.”     한참 후 부엌에서 감자장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 들리었다. 구수한 감자장 냄새가 풍겨왔다. 전기밥가마에서 쌕- 쌕김이 새나오는 소리 듣기좋게 들리었다.    이윽고 밥상에 감자장국에 고들고들한 밥 두그릇이 올랐다. 김치접시도 따라올라 왔다.    “맛있게 드세요.”    종호는 숟가락을 쥐어 감자장국 한숟가락 퍼서 후루룩 들이켜보았다.    “야- 참 맛있구나. 효녀 덕분에 오랜만에 감자장국을 맛있게 먹겠다.”    려향의 걀죽한 얼굴에도 기쁨이 넘쳤다.    “네- 호호. 맛있게 많이 드세요.”    종호는 연신 치하하면서 넌지시 이런 말을 꺼냈다.    “너도 이젠 시집가도 되겠다. 장국도 맛잇게 끓이지. 문학박사지. 뭣이 모자라니? 내게 손자를 좀 안겨주렴. 사람 인생에 자식들 일     이 잘 풀려야 행복한 거야.”    “또, 또. 아빤 어째 세마디 안팎에 또 결혼 말을 못 떠나는가요?”    “내 실패한 인생을 네나 좀 만회해 줬으면 해서 그런다.”    려향은 아빠한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아빠 자살 원인의 하나가 내가 결혼하지 않은 것과 관계될 거야. 아빠는 우리 전주 리씨 대를 끊는 걸 칠거지악에 속한다고 하잖았는가. 아빠는 나를 보고 재생을 결심했을 수도 있다. 무남독녀인데 절대 실망하게 할 수 없다. 황차 오늘 아빠한테 중대한 부탁을 하자면 이벤트를 해야지.)    려향은 아빠와 한차례 중대한 거래를 하려고 작정했다.    “아빠, 좋은 총각 만나면 결혼하지요.”    종호는 의아한 눈길로 려향을 마주 바라보며 려향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진짜? 결혼하겠니?”    려향은 활짝 웃는 얼굴로 아빠를 마주 보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그래요. 결혼해 아빠한테 숱한 손주도 낳아주겠어요.”    종호는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반가운 말인가.    활짝 웃는 아빠를 보는 순간, 려향은 아빠가 가여워 보였다. 사랑도 행복도 없이 수십년 동안 살아온 아빠가 너무나도 불쌍해났다.    (엄마는 이젠 날 보고 전주 리씨를 따르지 말고 한고조 류방의 류씨 성을 따르라고 했는데. 민족도 한족으로 고치라는데. 그래야 광활한 중국 대지에서 전도 있다고 하던데. 그런줄도 모르고 아빠는 딸한테 기대다니...)    려향은 아빠를 보고 진심으로 권고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녀는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다.    “아빠, 이제라도 엄마와 리혼하고 젊고 이쁜 색시를 만나 행복하게 사세요. 혹시  우리 전주 리씨 집안 대를 잇겟는지 아는가요?”     종호는 너무나도 뜻밖의 말에 숟가락을 쥔 채 휑하니 딸애를 마주 바라보았다.     그는 한참만에야 밥숟가락을 뜨며 무거운 입을 뗐다.     “무슨 롱담이냐? 대를 잇는 일이야 네가 해야지.”    그러나 려향은 걀죽한 얼굴에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아빠는 아직 젊어요. 사랑하는 안해가 필요해요. 한평생 이렇게 사랑도 없고 안해도 없이 살 순 없잖은가요?”     종호는 장국을 후후 불어들면서 말했다.     “부탁이야. 더 미루지 말고 결혼해라.”    려향은 인차 대답했다.    “아빠 부탁대로 꼭 결혼하겠어요.”    그러자 종호는 희죽이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이었다.    려향은 아빠가 기분이 한결 좋아진 것을 보고 자기 결혼승낙을 앞세워 아빠와 거래하려고 들었다.    “아빠, 한가지 중대한 일을 부탁드립시다.”    종호는 려향을 돌아보며 물었다.    “중대한 일이라니? 뭐든지 부탁해라.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할 거야.”    려향은 아빠를 마주 바라보며 정색했다.    “엄마는 필경 나를 낳은 친엄마 아니고 뭔가요? 난 절대 엄마를 중국에 보내 총살당하게 놔둘 순 없습니다.”    려향은 아빠의 손을 잡고 말했다.    “지금 엄마를 구하려면 한국 인터폴에서 중국에 인도하지 말게 막아야 합니다.”    종호는 눈이 데꾼해졌다.    “류려평이 죽을 죄라도 졌다더니? 죽을 죄를 졌으면 한국에도 법이 있는데 가만 놔두겠느냐? 우리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느냐?”    려향은 아빠한테 다가앉으면서 말했다.    “한국 법은 중국 법에 비해 좀 무르잖습니까? 엄마는 한국에서 판결받으면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구나.”    종호는 동정어린 눈길로 려향을 마주 바라보았다.     “낸들 조강지처가 죽기를 바라겠느냐? 그래서 전번에도 려평이 링겔병에 뭘 주사해 넣은 것도 덮어주었다. 내 자살하자고 탄 거라고 했지.”     려향은 절절한 눈길로 아빠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그걸 뒤집어야 엄마는 한국에서 판결받고 중국에 인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종호는 의아해 했다.     “무슨 소리냐?”     려향은 나직이 차근차근 말했다.     “한국에서 판결받으려면 엄마가 아빠를 죽이려고 염화칼리움을 링겔병에 주사해넣었다고 해야 합니다.”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엄마는 살인미수죄로 한국에서 처형당하지 않을가? 괜히 구하려다가 해치지 않알까?”     “절대 아닙니다.  한국에서 고의살인이 아니면 한 5년 판결받죠. 길어도 15년이나 받을 수 있지요. 황차 어머닌 살인미수죄기에 극상해 몇해 감옥살이 하면 되지요.”     “그거야 그렇지.”     려향은 아빠 두 손을 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아빠는 엄마 살인미수 죄행을 사실대로 경찰에 인증을 서 주십시오. 그러면 엄마를 구할 수 있습니다.”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알았다. 너네 엄마를 구할 수만 있다면야 못할 일이 뭐겠느냐?”    려향은 기뻐 아빠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고마워요. 아빠, 엄마를 구해준다면 이 딸은 절대 아빠 은공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겁니다. 아빠 부탁대로 결혼해 손자도 낳아주고 아빠를 계승해 항일투쟁사도 써나가겠습니다.”     “그럼 약속하자.”     그들 부녀간은 빼끼손가락으로 깍지걸이까지 하면서 약속을 다짐했다.     “백년동안 오늘 약속을 뒤집지 못해요.”     “그래, 너도 꼭 결혼햐야 해.”     이 시각 아빠와 딸은 한차례 특별한 거래를 벌이었다. 그들은 각자 제 좋은 꿈을 꾸면서 약속을 다짐하면서 황홀한 환상에 잠겼다.      단칸방 셋집에서는 밤늦도록 부녀간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 받는 말소리가 들리었다.     종호는 잠자리에 들어 눈을 살며시 감자 마치 끌끌한 백마왕자가 려향한테 성큼 성큼 다가오는 황홀한 그 날을 방불히 보는 것만 같았다.     그는 이 반토굴 같은 셋집에도 쨍 하고 해 뜰 날이 돌아오는 것만 같아 자못 흐뭇해났다.
431    대하소설 황혼 제2권(26) 조상 환상곡 김장혁 댓글:  조회:904  추천:5  2024-08-08
   김장혁 대하소설 황혼         26. 조상 환상곡     종호는 나영과 지영을 한때 잘 접대해 택시에 앉혀 보내고 나서 려향을 돌아보았다.   “우리 경복궁 구경하러 갈까?”   려향은 책보따리를 들어보이면서 상을 찡그리었다.   “삼복지간에 이 무거운 책짐을 들고 어데로 가겠습니까?”   그러나 그녀는 상을 찡그리는 아빠를 보고 인차 생각을 바꾸었다. 감방 같은 병실에 오래동안 갇혀 있던 아빠가 시원히 바람을 쏘이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그녀는 마지못해 책짐을 들고 아빠를 뒤따라 광화문 거리에 갔다.   “아빠, 아빠 한국에서 책짐을 메고 다니면서 고생했습니다. 아빠를 고생하게 해 미안합니다.”   종호는 려향을 되돌아보면서 외까풀눈이 데꾼해졌다.   “왜?”   려향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었다.   “아빠, 내 진작 아빠 글을 온라인에 올려 드렸더라면 아빠 무슨 책짐을 메고 다니면서 그런 고생을 다 했겠습니까?”   종호는 개의치도 않았다.   “아니야, 다 내가 사서 한 고생이야. 목숨 바쳐 싸운 선렬들에 비하면 아무 고생도 아니야. 다 달가운 고생이야.”   종호는 려향의 손에서 책짐을 나눠 들면서 말했다.   “나는 항일투쟁사를 쓴 력사이야기는 그래도 책에 내야 한다고 본다. 책에 내야 력사에 길이 남을 수 있어. 특히 력사책은 말이야.”   려향은 외까풀눈이 데꾼해졌다.   그녀는 주춤 멈춰서 아빠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   “왜서요?”   종호는 려향을 마주 바라보며 정색했다.   “아까는 나영과 지영이 앞인지라 속심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책에 낸 글이야 말로 정통문화를 대표할 수 있다. 책은 소장가치도 있다. 책은 독자 가가호호뿐만아니라 국내외 여러 도서관에 소장해 둘 수 있다. 전번에 낸 ‘동만 항일렬사영웅 이야기’책은 국립도서관에 보관됐어. 그 책은 이제 국립도서관과 함께 력사에 영원히 남을 수 있다. 물론 온라인에 올린 전자책은 전파 속도가 빠르고 전파범위도 넓을 수 있다. 허나 전자책은 싸이버문화에 속한다고 본다. 온라인에 올린 전자책은 정(전)통문화에 비해 격이 낮아지지 않느냐? 물론 전자책을 써서 온라인에 올리기도 쉽고 책짐을 메고 다니지 않고 책 출판과 발행 하느라고 고생은 덜 하겠지. 그러나 어쩐지 목숨 바쳐 싸운 항일 렬사들과 영웅들에게 격이 낮은 사이버문학으로 푸대접하는 것 같아 량심상 미안하다. 사이버문학은 어쨌든 사이비문학이니깐.”    려향은 아빠 말에 일부 일리가 있다고 여기면서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시대에 뒤처진 묵은 관념으로 온라인시대를 보는데는 통 리해되지 않았다.    (온라인시대에는 무슨 글이든  온라인을 통해야 널리 전파되는데... 참. 이게 아마 아빠랑 우리 젊은이들이랑 세대차이겠지. 아빠도 천천히 온라인의 위력을 알게 되겠지.)     그녀는 전파매체는 뭐든 백성들한테 널리 전파되면 그것이 성공적인 전파매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빠의 관념을 한날 한시에 개변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여 아빠와 더 쟁론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 그럼 이러면 어때요? 아빠 글을 책에도 내고 온라인에도 올립시다. 그러면 아빠 글이 널리 전파될 수도 있고 력사에도 영원히 남길 수 있어 좋을 거 같아요.”    “그래. 네 말대로 정통문화와 싸이버문학을 결부하면 항일투쟁사를 홍보하는데 좋을 거 같다.”    려향은 종호를 따라 가면서 물었다.    “아빠, 이전에 왜 국내에서 출판하지 않고 자꾸 한국에 나와 책을 냈습니까? 출판비용도 비싼데다가 그 무거운 책짐을 메고 중국으로 가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가요? 국내 출판사에서 본판도서로 내면 원고료도 있고 좀 좋아서 그래요?”   종호는 려향을 힐끔 돌아보면서 한마디 했다.   “내라고 국내에서 내면 좋은줄 몰라 한국에서 애나게 책을 냈겠니? 조선족은 180만명인데 지금 한국에 80여만명이나 나와 있다. 그것도 젤 끌끌한 로동력이. 그들도 국내 조선족들과 마찬가지로 생존경쟁 외에 민족의 전통력사를 알 필요있고 문화생활이 필요하다.”   려향은 의아해 했다.   “우리 민족의 항일투쟁사인데 당당하게 국내에서 낼 수 있잖은가요? 우리 중국 조선민족의 항일투쟁사도 전반 중화민족 항일투쟁사의 일부분이 아닌가요?”   종호는 주춤 멈춰서더니 려향의 잔등을 다독여주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너도 이제 책을 내자고 출판사에 가 봐라. 그럼 차차 내  어째 자살까지 하자고 했겠는가도 알게 될 거야.”   려향은 그 말을 듣고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아빠 손목의 칼에 벤 흉터를 보고 가슴을 칼로 어이는듯 아파났다.   (어진간히 고통스러우면 저 손목을 칼로 베 자살하려고까지 했겠는가!)   종호는 려향의 비통한 심정을 읽었는지 한참이나 입에 빗장을 질렀다.   그들 부녀간은 한참이나 무거운 침묵을 지키면서 묵묵히 걸었다.   종호는 재생의 기쁨을 만끽하면서 오늘 따라 려향을 데리고 조상왕님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옛 궁전으로 데리고 갔다. 맑게 개인 푸르른 하늘 아래, 수림이 울울창창한 잔등을 드러낸 북한산을 배경으로 웅장한 광화문이 활짤 열려 있었다.   삼복염천에도 조상왕의 숨결이 살아숨쉬는 경복궁은 그들 부녀간을 반기며 넓은 품으로 안아 주었다.   그들 부녀는 경건한 마음으로 경복궁 앞마당에서 웅위로운 궁전을 돌아보았다. 웅장한 궁전 룡마루가 푸르른 하늘 아래 도고히 우뚝 솟아 있고 궁전 추녀 끝초리가 도고히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들 부녀간은 조상왕들이 정사를 보던 궁전 앞에 다가갔다.    궁전 앞마당 정면에는 터덜터덜한 돌바닥길 량쪽에 정1품, 정2품. 정3품… 서렬순으로  나라 량반나으리들의  립지 돌비석들이 줄느런히 늘어서 있었다.    종호는 그 돌비석들을 보노라니 궁전 앞마당에서 태조 리성계 대왕님, 그리고 조선조에서 제일 현명한 세종대왕님의 사열을 받던 나라 관리들과 량반 나으리들의 름름한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순간 종호는 가슴이 뭉클해났다.   궁정으로 올라가는 돌층계는 옛 궁정 대신들과 황관들, 량반나으리들, 금위군 위사들, 궁중 궁녀들의 발바닥에 다슬고 다슬어 반들반들하였다.    종호는 려향을 데리고 그 돌층계를 한 층계, 한층계 밟으면서 궁전 정전 가까이에 다가갔다.   종호는 조상들의 손길에 다슨 터덜터덜한 문선을 매만지노라니 콧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는 려향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긴 우리 전주 리씨 조상왕님들이 정사를 보던 궁전이야."   려향이 커다란 문짝 안으로 궁전 안을 들여다보니 정면에 력대 대왕님들이 앉아 정사를 보던 황금빛 룡의가 그대로 높으직이 모셔져 있었다. 벌거스름한 아름드리 기둥들이 줄느런히 늘어서서 궁전 천정의 황금룡을 받들고 서 있었다. 높디높은 궁전 천정 황금룡은  의연히 하늘을 날아예며 황금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종호는 려향을 돌아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저 아름드리기둥들을 봐라. 옛날 궁전 관료들이 임금을 받들듯이 몸바쳐 대들보와 천정 황금룡을 받치고 서 있지 않는가. 나라와 민족에도 저렇게 몸바쳐 받드는 기둥 같은 충신이 필요해.”   려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궁전 안을 들여다보노라니 현명한 세종대왕님이 궁전 관료들과 함께 정사를 보는 장면을 보는 것만 같았다.   “바로 이 궁전에서 세종대왕님은 조선 전국에서 ‘훈민정음’을 널리 사용할데 관한 왕령을 공포하셨단다.”   그러나 정사들을 돌보던 세종대왕님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려향은 적막한 궁전은 쓸쓸하기만 했다.    이때 종호는 경복궁을 둘러보며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동궁으로 가보니 왕자들이 공부하던 서당방이 안겨왔다.    “이 동궁에서 왕자들은 ‘공자’와 ‘맹자’, ‘대학’, ‘중용’ 등 유교학설을 배웠고 장차 집정을 계승하기 위해  왕도를 배웠단다.”    려향은 머리를 끄덕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종호는 조상왕들의 궁전을 돌아보노라니 저도 몰래 콧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는 려향을 돌아보며 즉흥시를 읊었다.        야속하다 야속해      어디로 갔는가     그제날 천하를 호소하던 세종대왕님        아직도 귀전에는 들리는구나      훈민정음 반포하던     세종대왕님 우렁찬 그 목소리       가슴을 칼로 어이는구나     궁녀들의 치마자락 소리     둥기당당 가야금 소리      나를 울리네        쓸쓸하고 비통하구나      텅텅 비여버린 궁전      적막강산이여,         애닲고 원통하구나       세종 대왕님 계시지 않는 황금룡의       무너진 리씨 조선이여        경희루 아래 연못도        슬픔에 겨워 흐니끼는데       그젯날 궁녀들 춤사위 나를 울리누나       아, 달도 뜨지 말고 해도 뜨지 말라!      “참 좋아요.”   려향은 박수까지 쳐대며 환호했다.    “조상왕님들을 기린 즉흥시 탄생을 축하해요.”   종호는 려향의 손바닥을 쨩 마주치었다.    “생각나는대로 직설했을뿐이야.”    그들 부녀간이 높다란 토성에 난 문으로 해 후궁에 들어서니 왕후의 대조전이  마중했다. 대조전에는 왕후의 커다란 침대가 정중히 누워 있었다.    종호는 한국에 나오기만 하면 조상왕들에 대한 긍지감을 안고 번마다 경복궁을 찾군 했기에 대조전에 대해서도 얼마간 알고 있었다.    그는 려향을 돌아보며 설명해주었다.     “대조전에서 왕후는 숱한 왕자와 공주를 낳았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대왕님들은 대를 잇는 일을 대단히 중시해왔다. 애를 낳지 못하는 건 ‘7거지악’을 지었다고 해 왕후나 왕비나 가차없이 페해버렸다.”    종호는 대조전 옆에 줄느런히 늘어서 있는 왕비궁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왕후가 애를 낳지 못할가 봐. 그걸 대비해 왕들은 숱한 왕비들에게서라도  후손을 보려고 숱한 왕비를 두었지.”    려향은 아빠가 또 옛 조상대왕님과 왕후 이왕지사를 빌어 자기를 보고 결혼하라고 재촉할가 봐 조마조마했다.   “아빠, ‘칠거지악’이란 뭔가요?”   “’7거지악’이란 일곱가지 큰 죄악이란 말이다. 그만큼 애를 낳지 못한 죄는 대를 끊게 한 젤 큰 죄란 말이야. 옛날 중국에선 애를 못 낳는 녀자는 ‘칠거지악’을 지었다고 극형에 처했다고 한다. 지금도 대를 끊는 죄는 대죄에 속한다. 나도 전주 리씨 집 안에 칠거지악을 졌다. 딸이라도 있어 천만다행이다. 내 한평생은 실패한 인생이야. 조상왕님들을 볼 면목도 없는 불효자야.”    그제야 려향은 확실히 옛날 일을 빌어 시집가지 않고 애도 낳으려고 하지 않는 자기를 찔러주려고 그런다는 것을 재삼 알게 됐다.    종호는 려향을 돌아보면서 입을 무겁게 열었다.    “경복궁은 우리 전주 리씨 조상왕들의 숨결이 살아숨쉬는 곳이야. 강대하던 리씨 조선은 500년이나 조선을 통치해왔다. 그런데 뭣  때문에 무너졌는지 아느냐?”    려향은 제꺽 대답했다.    “일본 침략자 놈들 때문 아닌가요?”   종호는 려향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말했다.   “그래. 일본 놈들이 조선을 침략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강대했던 리씨 조선이 망할 수 있었겠느냐? 일본 놈들은 조선을 먹이치운 후 우리 조선민족의 얼을 일본 대화민족의 얼로 바꾸려고 미쳐 날뛰었어. 세종대왕님이 창제한 조선어를 쓰지 못하게 하고 이름맘저 창씨개명해 일본식 이름으로 지으라고 강박했다. 그 놈들은 우리 조선민족을 정치와 경제, 문화를 야수처럼 유린할대로 다 했다. 일본 놈들은 이 궁전 뒤에 지은 창덕궁에 돼지까지 치면서 조상왕들을 멸시하고 릉욕했다. 때문에 나는 일본 침략자들을 더없이 증오한다. 그래서 항일투쟁이야기 책을 자꾸 써서 낸다. 알만하니?”   려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네. 알만해요. 아빠,”   종호는 려향을 마주보면서 정색했다.    “한 민족이 얼이 빠져선 절대 안된다. 얼빠지면 사지가 멀쩡해도 헛깨비들이야. 우린 필을 들어 민족의 령혼을 지켜야 한다. 령혼과 전통력사 그리고 문화가 없는 나라와 민족은  아무리 강대해도 아무 때나 망하게 돼. 우린 한 조선족 장군의 생전 말씀대로 급변하는 세월에 이젠 지혜롭게 살줄 알아야 한다. 벽에도 귀가 있고 눈이 있다. 아무리 한국은 언론자유라지만 말을 조심해 해야 한다. 특히 민감한 문제에 대해 삐쩍도 하지 말라. 넌 문학박사인데 우리 민족을 위한 성스러운 사업에 동참하지 않겠니?”     려향의 얼굴에는 검은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아빠는 저 보고 아빠를 계승해 글을 쓰라는 겁니까?”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래, 넌 문학박사인데 민족의 얼을 지키는데 힘써라. 강렬한 민족심과 열정만 있으면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조선족애들한테 조선어와 조선민족문학사를 잘 가르칠 수 있고 조선어로 글도 아주 예술적으로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종호는 려향의 두 어깨를 잡고 기대에 찬 눈길로 마주 바라보며 부탁했다.    “아빠가 채쓰지 못한 항일투쟁사를 네가 써라. 아직도 이름모를 항일 렬사들과 영웅들이 누구도 모르는 어느 산 어느 기슭에, 나무 밑에 묻혀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 나지면 김학철 작가랑 참가한 태항산 호가장항일전투 전적지도 아빠와 함깨 답사했으면 얼마나 좋겠니?”    려향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아빠를 따라가면서 한참이나 궁리했다. 아빠처럼 한뉘 글만 쓰면서 쪽방촌에서 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빠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릴  수는 없었다. 아빠한테 뭘 부탁하려면 우선 아빠 말을 들어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었다. 황차 아빠는 금방 퇴원했는데 정신타격을 줄 수도 없었다.    그녀는 머리를 천천히 들더니 아빠를 정색해 마주 보았다.    “아빠, 알겠습니다. 아빠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나라와 민족을 위한 성스러운 사업을 계승해 나가고 싶습니다.”    종호는 너무나 기뻐 려향을 꽉 안아 번쩍 들어 한고패 빙 돌렸다.    “내려놓으세요. 숱한 사람들이 웃습니다.”    그들 부녀간이 희희락락거리며 경복궁을 나와 광화거리에 나섰다. 광화거리 저 앞에 리씨 조선의 현명한 세종대왕님 동상이 눈에 뜨이었다.      종호는 려향을 데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세종대왕 동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숙연한 마음으로 오래도록 세종대왕 동상을 우러러 보며 묵념했다.    려향도 아버지 뜻을 알아채고 옷깃을 여미고 세종대왕님의 동상에 머리를 숙였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려향은 요즘 세상에 세종대왕의 동상을 참배하는 뜻을 알 것 같았다. 아빠의 묵념 속에 뭔가 자못 무거운 의미가 숨어 있다는 것을 마음 속으로 깊이 느꼈다.    웬 일인가?    환각인가?    갑자기 어디에선가 감탄소리인지 뭔지 들리어왔다.    “아- 야-”    세종대왕 동상이 입을 열었는가?    려향이 머리를 쳐들어보아도 세종대왕 동상은 기대에 찬 눈길로 그들을 내려다볼뿐이었다.    “오-우= 으- 이- 가로사되…”    려향은 이상해 세종대왕 동상 주위를 둘러보았다.   붐비는 행인들이 광호문지하철역 쪽으로 걸어갈뿐 다른 이상 정황은 없었다.   민족심이 한가슴 가득 부풀어오른 탓인가?   아니면 환상인가?!       푸르른 하늘에는 조상들이 물려준 ㄱ, ㄴ, ㄷ, ㄹ  아름다운 환상곡이 오래도록 메아리치고 있지 않겠는가!      먹장구름이 뒤덮여 온다. 불뱀이 먹장구름 속에서 궁전 룡마루에 쭉 뻗쳐오더니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궁전 기와지붕을 핥아간다.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더니 궁전 추녀 끝에서 실폭포가 쏴르르 쏟아진다.      아무리 번개가 내리치고 우뢰가 우르릉거려도, 아무리 빗바람이 미친듯이 휘몰아 쳐도,  설악산의 무궁화, 금강산의 연분홍철쭉꽃, 백두산의 연분홍 진달래꽃이   조상 환상곡의 아름다운 선률에 맞춰 치마폭을 나풀거리며 도라지춤을 한들한들 춘다.              김장혁 프로필    필명: 민성, 애명: 조왕돌     1958년 중국 길림성 연길현 조양공사 근로촌 출생.     1981년 12월 중국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1982년 1월- 1987년 중국 길림성 룡정시 룡정중학교 교원.     1988년-1996년 중국 길림성 연변인민방송국 기자.     1997년- 2016년 연변인민출판사 "청년생활"잡지사 부주필, "소년아동"잡지와 "별나라"잡지 련합편집부 부주필, "농가"잡지와  "로년세계"잡지 련합편집부 주필 력임, 연변인민출판사 편심(교수급편집).      2018년 5월 정년퇴직.     료녕성조선족로인협회 부회장, 명예회장 력임.     현재 연변주아동문학연구회 사단법인대표, 회장, 당지부 서기.. 편집부 주필.                   주요저서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총 7권, 350여만자)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총 4권, 120여만자)     대하소설 "졸혼"(총 6권, 150여만자)     대하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욕망의 천지", "황천의 유령"(총 3부작, 90여만자)     대하소설 "황혼"(총 4권)     장편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공저) 등        장편소설 26권.       그외.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한문)      중단편소설집 "사랑환상곡"      동화소설집 "멋쟁이 매옹이와 찍찍의 겨룸"      동화소설선집 "괴물 클론바우 모험기"      아동문학작품집 "호랑이와 사냥군"      문학작품집 "사랑은 요술쟁이야"       수필집 "리별"        실화작품집 "빨간 장미꽃 함정"등          총 33권,  문학작품 총 1,000여만자.                 수상     백두컵문학상,  아리랑문학상, 전국소수민족아동문학작품우수상 (수차), 한중옹달샘아동문학상, 한중동심컵아동문학상,  웰빙아동문학상, 한국 KBS방송 수기우수상, 한국 대전매일수필문학상, 두만강수필문학상 ,  동북3성우수도서상 (2차), 2010년 연변작가협회 선진작가상 등       30여개 문학상 수상.
430    장편소설 황혼 제2권(25) 문학의 향연 김장혁 댓글:  조회:539  추천:0  2024-08-03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25. 문학의 향연       아침해살은 나무이파리 끝초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이슬을 꿰 옥구슬을 만들어 퇴원하는 종호의 목에 걸어준다. 병원 울안 수림에서는 새들의 지저귐소리 귀를 간지르며 재생을 노래한다. 알락달락한 코스모스 꽃들이 하느작거리며 춤추며 반긴다. 어디에서인가 재생의 찬가가 은은히 들리어 기분이 한결 상쾌하게 한다.     오늘은 종호가 퇴원하는 날, 종호는 병원 울안을 떠나면서 재생의 기쁨에 겨워 가슴마저 설레이었다. 그는 그간 자기를 보살피2권느라고 수고 많은 지영과 려향, 나영한테 한턱 쏘기로 했다.     그들은 려향의 제안대로 택시를 타고 광화거리 종각역 부근에 가서 내리었다.    려향은 점심식사는 아직 너무 일찍해 아빠랑 언니들을 데리고 교보문고로 들어갔다.    서점은 종호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병실에서 항상 우울했던 종호는 서점에 줄느런히 진렬된 새 책들을 둘러보면서 기분이 확 바뀌어 활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    려향은 얼굴의 주름살마저 쫙 펴진 것을 보고 무등 기뻤다.    종호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어떤 책은 자꾸 펼쳐보고 책꽂이에 되꽂아 넣었다가도 다시 꺼내 펼쳐 보았다. 려향은 아빠한테 다가가 무슨 책을 보는가 여겨보았다.    리종호 작 “동만 항일영웅 이야기” 아니겠는가.    려향은 여점원한테 그 책을 들어보이면서 물었다.    “이 책이 잘 팔리는가요?”    여점원은 피끗 려향을 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잘 나가지 않아요. 동만 항일력사를 관심하는 한국인들이 몇이나 있겠어요?”    종호는 실망스러워 머리를 툭 떨어뜨리었다. 고향에서도 그의 책의 운명은 마찬가지였다.    (아, 어쩜 이럴가? 동만 조선족의 항일력사는 전반 조선민족 항일력사의 일부분이 아닌가? 얼마나 고생스레 취재해 쓴 책인가. 엄동설한에 삼도만에서도 몇십리 떨어진 평강촌에 가서 토비숙청전투를 취재할 때 죽다 살지 않았던가. 평강촌에서 취재하고나니 그만 뻐스를 놓쳐 점심도 못 먹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무인지경 수림 속 길을 걸어 새까만 밤에야 삼도만까지 돌아왔댔지. 배고프면 길 옆의 눈을 웅켜 먹으면서 승냥이들이 우는 소리 여거저기 들리는 산길을 걸어 간신히 돌아왔댔지. 그렇게 애나게 력사이야기를 하나, 하나 취재해 쓴 책인데. 보는 사람이 없다니? 참 야속하다, 야속해.)    종호는 책을 매만지면서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옆에서 려향은 어두운 그림자가 흐르는 아빠 얼굴을 지켜보면서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녀는 아빠가 또 정식자극을 심하게 받아 병이 도질가 봐 부쩍 겁났다.    그때 나영이 종호의 기분을 전환시키려고 다가섰다.     “리사장님, 전번에 제가 서점에 왔을 땐 숱한 사람들이 리사장님 책을 사 가던데요.”    여점원은 어이없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나영을 흘끔 쳐다보았다. 전번에 책을 사가던 나영이 눈에 익었던 모양이다.    "전번 날엔 잘 팔렸지요?"    나영은 여점원한테 눈까지 찔끔 해보였다.    눈치챈 여점원은 제꺽 말을 바꾸었다.   "네. 그래요. 간혹 이 책을 사가는 중국에서 온 조선족들이 많았어요."   여점원은 나영을 가리키면서 "이 분은 단골인데요." 하고 덧붙였다.    사실, 나영은 교보문고에 와서 종호의 책이 잘 팔리는가 알아보았다. 책이 잘 팔리지 않은 걸 알면 종호가 정신타격을 받을가 봐 몇번이고 책을 사다가 연길랭면점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종호의 책을 보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훌훌 무료로 나눠주었던 것이다.     여점원은 눈치를 좀 챘든지 제꺽 사과했다.     “죄송해요. 이 책의 저자님인줄도 모르고 그만…이제 잘 팔릴겁니다.”    나영은 종호를 돌아보며 어색한 분위기를 제꺽 돌렸다.    “저기 다른 책 보러 갑시다.”    그녀는 어정쩡해 서 있는 종호의 팔까지 끼고 다른 책꽂이 앞에 다가갔다.    지영은 종호한테 지나친 친절을 보이는 나영을 곁눈질하면서 아니꼬운 표정을 지었다.    (춘영이 상을 할래? 리사장을 꼬시려는건가?)    기실 지영은 나영이 자꾸 종호를 보러 오는 것도 속으로 내켜하지 않았다. 나영을 보면 자꾸 여우 같은 춘영이 떠올라 괴로웠던 것이다. 그러나 수십년 극진하게 친해온 친구라고, 마음의 빚을 진 친구라고 항상 나영이 앞에서 한발 물러서군 했다. 그녀는 춘영이 때문에 오랜 지기까지 잃기는 싫었다.    나영도 그런 눈치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춘영이 때문에 지영이 한테 죄를 자기가 지은듯한 심정이었다. 그리하여 항상 지영이한테 잘해주려고 했다. 기실 한국에 도망쳐 온 후에는 지영한테 해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영은 나영이 낙태수술 할 때도 극진히 도와나섰고 시술후 친자매처럼  살뜰히 해주었다. 또 부탁대로 성림을 한국에 데려다 주었던 것이다. 나영은 지영의 얄미워하는 표정에 개의치 않고 종호를 데리고 가서 책을 여러개 뽑아보이었다.    “리사장님은 이 책을 보면 좋을 거 같아요.”    지영이 보니 한국의 대작가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아리랑”이었다.    지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열권씩이나 되는구나. 그리 긴 소설을 언제 다 보겠니?”   옆에서 려향은 종호한테 물었다.    “아빠, 이 책을 사고 싶은가요?”    지영이 옆에서 또 끼어들었다.    “아니, 이리 긴 책을 언제 다 보겠느냐? 리사장님은 언론인이기에 수필이나 칼럼 같은 짧은 글을 보는게 좋은 거 같애.”    려향도 한마디 했다.    “그래요. 아빠, 아빠는 언론인이란 장기를 살려서 짤막한 수필이나 칼럼 같은 걸 쓰면 좋을 거 같아요.”    지영도 또 께끼었다.    “지금 모두 생활의 절주가 빨라져서 핸드폰으로 짤막한 글을 보기 좋아해요. 지하철에서도 몇역 가는 시간 내에 볼 수 있는 짤막하고 재미나는 글을 보기 좋아하죠. 짧은 글에 철리를 담으면 얼마나 매력적인가요. 저는 그런 멋진 수필을 음미하기 좋아해요.”    나영은 시답잖은 눈길로 지영한테 눈짓했다.    (간호원 출신이 뭐 안다고 자꾸 끼어들어?)   눈치 챈 지영은 입을 꼭 다물어버렸다.   옆에서 나영이 어색한 기분을 풀어주었다.   “지영은 그래도 고향에서 어머니수필콩쿠르 수필문학상 대상을 탄 적이 다 있소.”   종호는 지영이 앞에 엄지를 척 내들었다.    “참 대단하오. 이전에 나도 칼럼을 썼댔소. 그런데 백성들을 위한 여론감독 작용이 별로 없어서 그만뒀소.”   려향은 옆에서 엄지를 내둘렀다.   “그만두길 잘했습니다. 아빠는 전문 백성들이 관심사나 사회 문제성 비판보도나 칼럼을 쓰기 좋아했댔소. 헌데 그런 글을 쓰면 항상 비판받은 자들한테서 시끄러움을 당해야 했지요. 아빠는 비판보도를 쓰다나니 항상 편안한 날이 없었소. 어떤 자들은 신문사에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리었지요. 심지어 폭력으로 보복하려고 들기까지 했댔소. 누가 먹을 알도 없는데 그런 말썽거리 글을 쓰겟소?”    종호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을뿐 가타부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정치에 민감한 그는 습관처럼 남의 말을 듣기만 좋아하고 혀끝을 주의하고 있었다.    나영은 지영과 려향의 말에 반론을 내놓았다.    “리사장님은 력사 인물과 이야기를 쓰기 좋아하기에 이런 력사대하소설을 보는게 좋을 거 같아요. 력사 한페지를 다룬 이런 대하소설은 거대한 원자탄과 같단 말이예요. 수필이나 칼럼은 소총이나 경기관총에 불과하다고 봐요. 력사대하소설을 보면 력사 인물이나 이야기를 쓰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종호는 그녀들의 말을 듣기만 하고 묵묵부답했다.    한참 후에야 그는 나영을 보고 물었다.    “이건 무슨 력사를 쓴 책이오?”    “이 대하소설 은 조선반도와 동북, 태평양 연안 하와이와 동남아 등지를 넓은 배경으로 항일력사이야기를 쓴 소설이죠. 은 광복후부터 1949년 사이 남조선로동당 지도아래 태백산맥에서 유격대들이 한국 독재정권에 맞서 괴뢰군과 유격전을 벌린 피어린 력사이야기들 쓴 소설인데요.”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며 그 책을 다시 펼쳐보면서 만지작거리었다.    나영은 종호가 사고 싶어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제가 리사장님께 사드리죠. 시간 나지면 한번 보세요.”    나영은 기어이 조정래의 대하소설책을 사서 종호한테 선물했다.    지영은 머리가 베아링처럼 잘 돌아갔다.    그녀는 제꺽 수필집을 하나 사서 종호한테 드리었다.    종호는 사양하다가 책을 감사히 받았다.    “감사하오. 잘 보겠소. 그런데 애나게 번 돈을 많이 팔게 해 미안하오.”    나영은 걀죽한 얼굴에 볼우물까지 옴폭 파며 웃었다.    “천만에 말씀을요.”    려향은 아빠한테 문학리론책을 사 드리고 나서 이렇게 제의했다.    “아빠, 우리 커피나 마시면서 언니들과 함께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어때요?”    이건 려향이 미리 계획했던 스케줄이었다.    종호는 인차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러자. 글이야 문학석사 나영이나 대상수상자 지영이가 선생님이지. 글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다.”     그는 문학박사 학위를 탄 려향도 시험치고 싶었다.     나영은 지영과 눈길을 마주치고나서 종호를 마주 바라보며 볼우물을 옴폭 팠다.    “황송해요.”    지영은 나영의 우유빛볼에 옴폭 파이는 볼우물을 보고 온몸을 전률했다. 나영의 옴폭 파인 볼우물을 보는 순간 춘영의 볼우물이 눈앞에 피뜩 떠올랐다.    (바로 저 살인볼우물이야. 사내들의 눈깔을 빼가는 저 볼우물, 간을 녹이는 저 살인 볼우물이야. 국현도 저 춘영의 옴폭 파인 볼우물에 풍덩 빠찌고 말았지. 저 볼우물에 뽀뽀하면 별란가? 개 같은 국현 새끼, 씨.)    순간 지영은 나영마저 미워났다.    나영은 그런 눈치는 채지 못하고 지영의 손을 잡고 려향의 부녀간을 따라 커피숍에 다가갔다.    커피숍은 처녀총각들로 활기 넘치었다. 숱한 젊은이들이 키피숍에서 차탁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보고 있었다.    (얼마나 짙은 문학의 향연이 풍기는 곳인가?)    종호는 새 세상이 열리는 것만 같아 기분이 한결 상쾌했다. 그는 딸이 고마웠다. 이런 서향이 풍기는 곳에 다 데려다 주어 내심 고마웠다.    사실, 그는 이제껏 책 출판비용을 벌려고 건설현지에나 다니면서 고생하다나니 이런 문화적인 공간에 언제 와 본 적도 없었다.    그들은 유리창문 곁으로 해 자리를 잡았다. 종호와 려향이 나란히 앉고 나영과 지영이 맞은 쪽에 앉았다.    이윽고 그들은 아메리칸 커피 한잔씩 들면서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종호는 커피숍에서 책을 골똘히 보는 젊은이들을 둘러보면서 입을 뗐다.    “여기 와 보니까. 한국 젊은이들은 아직도 책을 잘 보고 있구만."    려향은 어깨 으쓱해 말했다.    "이게 한국의 선진적인 문화풍경선이죠."    종호는 여간 감탄해마지 않으며 혀끝을 끌끌 찼다.   "우리 고향에도 이런 문화분위기 있어야는데."    려향은 반색했다.    "우리 고향 대학가 부근 커피점에 가면 이러루한 풍경이 보이는데요. 대학생들은 이젠 책을 봐도 커피숍에 와서 보기 좋아하죠."    종호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 고향 젊은이들은 서점을 별로 찾지 않는 것 같던데. 내 모교 대학 도서관에 가보았는데 도서관이 텅텅 비었더구나. 도서관의 그 싯누런 명작도서가 그저 썩어빠지는게 아깝다, 아까워. 우리 대학을 다닐 때엔 진짜도서관 책을 빌려내다가 목마른 사람이 물 마시듯 보았는데.”     “그래요.”    나영이 동감을 표시했다.    “제랑 대학에서 공부할 때도 간혹 학사나 석사 론문 자료를  찾느라고 도서관을 찾았지요. 평소에는 별로 책을 보지 않았어요.”    지영이 또 끼어들었다.     “지금은 온라인시대이기에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글을 보는 사람이 더 많아요. 리사장님도 이젠 아까운 돈을 팔아 자꾸 책을 내기보다 인터넷홈페이지나 핸드폰 위챗동아리에 글을 올리세요.”    나영도 동감했다.    “맞아요. 온라인에 올리면 책에 내기보다 더 많은 분들이 볼 수 있지요.”    나영은 종호의 눈치를 힐끔 건너다보았다.   그녀는 종호가 골똘히 귀담아 듣는 것을 보고 뒤말을 이었다.    “책은 소장가치와 사회 작용이 있지만요. 제한성도 있지요. 책에 내면 그저 우리 고향 분들만 보겠지만요. 온라인에 올리면 우리 중    국 뿐만아니라 한국, 일본, 지어 미국의 우리 동포들이 다 볼 수 있지요.”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지영은 종호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리사장님이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겠는가 해서 스스럼없이 말씀 드리는데요. 널리 량해하세요.”   종호는 흔쾌히 대답했다.   “좋소. 오늘 우리 스스럼없이 자유토론을 하기오. 내 관념이 형세에 뒤떨어진 것 같소. 저네 힌트를 접수해야겠소. 대단히 좋은 아이디어요.”    려향이 종호의 태도가 바뀐 것을 보고 반색했다.    “이제야 아빠 새 시대를 따르는 대작가 같아요.”   그녀는 지영과 나영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언니들 충고 정말 고맙소. 이전에 내 말하면 아빠는 돈이 아까워 책을 내지 말라는가고 오해했댔소. 내 말을 곧이듣지도 않았댔소.”    종호는 나영과 지영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저넨 문학지식과 글쓰기 실력이 있는데 왜 글을 쓰지 않소? 난 려향하구 글을 쓰라고 말하다 못해 이젠 맥이 진했소.”    나영과 지영은 서로 눈길을 마주치며 새무룩이 웃었다.    나영은 대답하지 않으면 실례인 거 같았다.    “저 처지에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제가 언제 글을 쓰겠는가요?”    지영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요. 제가 글을 써서 어디 죽벌이나 하겠는가요? 어떤 땐 좋은 글감을 만나면 짤막한 수필이라도 쓰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만요. 어데 그런 여가가 있어야죠.”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나는 한평생 우리 민족 력사 인물과 이야기를 썼소. 그런데 그런 책을 보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어 참 실망스럽소. 어떤 사람들은 항일력사이야기 책을 증송하려고 하면 어쩌는지 아오? 리사장, 이런 력사책은 이젠 때 지났소. 좀 짜릿짜릿한 사랑이야기를 쓴 책이 없소? 이런단 말이오.”    려향이 스스럼없이 말했다.    “아빠는 이젠 력사이야기만 쓰지 말고 현실생활에 눈길을 돌려 현실문제를 해결하는 글도 썼으면 좋겠습니다.”    순간 나영과 지영의 눈길은 동시에 종호의 표정을 살피었다.    종호의 표정은 확 바뀌었다. 눈섭꼬리가 치켜올라가고 외까풀눈이 데꾼해 려향을 쏘아보는 것이었다.    종호는 려향의 한마디 말에 한뉘 쌓아온 닭알무지가 단번에 와그르르 무너지는 감이 들었다.    “력사이야기를 쓰지 말고 어떤 걸 쓰란 말이냐? 애잡짤한 련애나 사랑 이야기나 쓰라니? 말초신경까지 짜릿짜릿해나는 그런 련애소설을? 나보고 언어장난이나 하거나 음풍영월이나 하라고? 어림도 없어. 나는 정치학부 졸업생이 돼서 소설을 못 써. 그런 건 네나 써라.”    려향은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아빠라고 해도 분촌은 따져야 했다.    “아빠, 력사이야기를 쓰지 말라는 건 절대 아닌데요. 우리 민족의 력사이야기를 써서 민족의 혼을 지켜야죠. 민족의 전통력사책을 써서 우리 민족의 기념비를 세워 천추에 길이 빛나게 해야지요.”    그제야 종호의 눈섭꼬리가 느슨히 처지었다.   나영과 지영은 려향이기에 그렇게 터놓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고 여겼다.   려향은 계속 충고했다.    “아빠는 이젠 황혼기에 들어섰는데요. 력사이야기도 계속 쓰고 황혼기에 들어선 중로년들의 현실생활에 눈길을 좀 돌리세요. 황혼기에 들어선 분들의 실제문제를 풀어주는 글도 쓰면 좋을 거 같아요. 아빠는 언론인이기에 충분히 인기 수필이나 칼럼을 잘 쓸 수 있다고 봐요.”    종호는 한숨을 푸 쉬었다.    “너네 말에 눈앞이 탁 트이는 거 같구나. 한 조선족 장군은 생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조선족들은 이젠 묵은 그루에 이밥 먹을 생각을 하지 말고 새 시대에 지혜롭게 살아갈줄 알아야 한다.'고. 나이 들면 고집이 많고 새 관념과 신생사물을 잘 접수하지 못하는게 흠이지. 내 자살하지 않았기에 또 할 일이 생긴 것 같구나. 조선족들을 위해 력사도 쓰고 현실과 미래를 위해 짤막한 칼럼이나 수필도 써야지. ”    지영은 자기 말도 먹힌 것 같아 반색했다.    려향의 충고는 끝나지 않았다.    “아빠, 무슨 글이나 내용도 중요하지만 예술성도 아주 중요해요. 아빠는 어떻게 독자들이 재미나게 읽을 수 있게 하겠는가, 머리 쓰면서 글을 써야 해요. 지금까지 쓴 력사이야기를 보면 예술성이 너무 차해요. 읽는 사람들이 재미없을 수 있어요.”    종호는 생각 밖으로 이번에도 흔쾌히 접수했다.    “그래. 이젠 글을 써도 예술성도 고려해야지. 이전에 책을 내려고 출판사에 갔다가 내 글이 ‘예술성이 낫다’, ‘화약냄새와 피냄새만 짙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이젠 그대들이 사 준 문학리론 책도 읽고 소설책도 읽고 힘써 예술기량도 제고해야지.”    종호가 오늘 따라 려향의 충고를 모두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지영도 용기를 내서 한마디 했다.   “몽실이나 전상무 수필은 짤막해도 현실생활에서 부딪친 많은 문제를 아주 생동하고 재미나게 다뤘지요. 나름대로 생활철리도 폭폭 쏟아냈지요. 이런 수필은 숱한 독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어요. 리사장님은 생활경험이 풍부하고 민감하고  예리한 관찰력이 있지요. 때문에 우리 생활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문제를 발견해내 콕콕 찔러주고 눈을 틔워 주는 철리도 개괄해 보여줄 수 있다고 믿어요.”    나영은 말할가 말가 하다가 한마디 했다.   “제 말은 귀에 거슬릴 수도 있는데요. 그저 저의 문학에 대한 취미를 말할 뿐인데요. 괜찮겠는지요?”   종호는 너부죽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기대에 찬 눈길을 나영한테 보냈다.     “스스럼없이 말하오. 문학석사생이니까. 문학이야 나영이 전문이지.”    나영은 손사래를 쳐댔다.    “아니, 천만에 말씀을요.”    그녀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    “제 생각에는요. 사랑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라고 생각해요. 사랑은 모든 사람의  관심사지요. 사랑, 련애, 혼인, 가정을 제재로 글을 쓰면 숱한 사람들이 즐겨 볼 거 같아요. 사랑을 쓴 글은 시대가 변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재미나게 읽으리라고 봐요. 그런 작품은 진짜 시대가 변해도 영원히 명작으로 남게 되지요.”    종호가 머리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나영은 계속 뒷말을 이었다.    “가정이 화목해야 만사가 흥성할 수 있다고 해요. 가정은 사회의 젤 작은 세포인데요. 가정이 깨지면 사회도 혼란해지고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 수 없지요. 가정이 깨지면 천길만길 깊은 고통의 쁠랙홀에서 헤매게 되지요. 당면해서 사랑과 가정 문제만큼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는가요?”    나영은 어두워지는 종호의 표정을 보고 말미를 감추었다.    “그렇다고 리사장님을 보고 사랑이야기만 쓰라는 말은 아닌데요. 그저 인기글을 쓰려면 그래도 사랑이야기를 쓰는게 좋을 거 같다는 말이예요.”    종호는 커피잔을 들어 쭉 마시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오늘 돈을 주고도 어디서 듣지 못할 보귀한 말을 잘 들었소. 나영과 지영 덕분에 이젠 출판비용도 더 팔지 않게 됐소. 이젠 무거운 책짐을 벗어메게 돼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르겠소.”    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더니 뒷말을 이었다.    “이전에 수원에 나와 책을 낸 적이 있소. 그때 무거운 책짐을 메고 다니던 일을 생각하면 신물이 날 지경이오. 신도림역에선 어쩌겠소. 책배낭을 어깨에 메고 무거운 책트렁크를 안고 그 높은 층계를 올라가다가 그만 허리띠 툭 끊어지지 않았겠소.”    그 말에 나영과 지영은 입을 함박만큼 쫙 벌리었다.    “숱한 행인들 앞에서 괴춤이 다 훌 내려갔댔소. 그때 얼마나 창피했던지. 다행히 지나가던 마음씨 착한 녀대생을 만나서 책짐을 봐주었기에 신도림역매장에서 허리띠를 사 띠고 책짐을 지고 안고 지하철을 탔지. 그렇게 애나게 책짐을 메고 지하철을 타고 비행기를 타고 국내에 가져갔댔지. 그렇게 애나게 가져간 책을 증송하겠다니 어떤 이는 어쩌는지 아오? 서재공간을 차지한다고 안 가지겠다오. 또 어떤 이는 책을 증송하겠다니 긴 글이라면 딱 질색이라면서 짐이 된다고 거부하더란 말이오.  또 어떤 이들은 책을 받긴 해도 근본 보지도 않고 앞에 쓴 서명을 쭉 찢어버리고 쓰레기통에 남몰래 버린단 말이오. 혹은 낡은 책장사한테 페지로 팔아먹기도 한단 말이오. 그래서 수상시장에서 책장사가 낡은 책으로 팔기도 하더란 말이오. 이젠 온라인시대를 따라야지.”     나영과 지영은 못내 감탄하며 긴 한숨을 호- 내쉬었다.    종호는 내심을 남김없이 솔직히 털어놓았다.    “나영의 말이 맞소. 나는 절대 사랑과 가정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소. 나도 산산히 파탄난 내 가정을 생각할 때면, 그 소설 같은 비극적인 이야기를 회상할 때면  글로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군 하오. 그러나 나는 소설을 쓰는 재간이 없어 못 쓰오.”    그는 몸을 반쯤 돌려 옆에 앉은 려향을 돌아보며 넌지시 말을 건넸다.    “려향이나 아빠와 엄마 비극을 가지고 장편소설을 좀 쓰렴.”    려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산산 박산난 우리 집  일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여지는 거 같은데. 어떻게 소설로 씁니까?…”    려향은 어찌나 마음이 아픈지 쓰라린 두 볼에 눈물을 줄 끊어진 구슬처럼 줄줄 흘렸다.    나영과 지영도 각자 깨어진 자기 가정을 떠올리면서 가슴이 아픈 나머지 눈굽을 찍었다.    커피숍의 문학의 향연은 여전히 그들의 사이에서  솔솔 풍기는데 활기찼던 자유토론 분위기는 가뭇없이 사라져간다.    쓸쓸한 괴로움이 한숨소리를 반주하여 구슬프게 흐느낀다.    커피숍 유리창문에 서글픈 황혼의 피빛락조가  쓸쓸히 비끼어든다.
429    장편소설 황혼 제2권(24) 졸혼 풍경선 김장혁 댓글:  조회:554  추천:0  2024-07-25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24. 졸혼 풍경선        어둠의 장막이 깃들자 병실에는 또다시 적막강산이 고독하게 찾아와 종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종호는 피를 말리는 고독을 말리려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눈이 시려서 내리어놓고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의 뇌리에는 또착잡한 생각이 삼겁불처럼 갈마들었다.     아마 사람은 황혼에 이르면 회상에 잠겨 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드니 젊은이들처럼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살아온 옛날 일이 떠올랐다. 끝없는 회억에 푹 잠겨 있느라면 잠시나마 고독을 말릴 수 있어 좋았다.     종호는 자기 기구한 운명과 곡절적인 졸혼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는 류려평과 졸혼하고 우리 민족의 렬사들과 영웅인물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책을 내면서 살았다.     그러나 녀탐관 류려평은 졸혼한 후 무슨 멋에 살았는가? 그녀는 미인계 등 갖은 비렬한 수단을 다해 금은보화를 모으는 멋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녀탐관 류려평은 처음에는 각방을 쓰면서 암암리에 종호 몰래 자기 침실에 금고까지 두고 류덕재한테서 얻어먹은 돈과 금은장신구,  탐오한 검은 돈까지 치워두었다. 류려평은 자기 침실에 자물쇠를 꽁꽁 채워놓고 다니면서 종호가 자기 각방 언저리에 얼씬하지도 못하게 했다.     어느날 집이 빈 틈에, 자물쇠를 채우지 못한 침실에 들어가 보았다.    려평의 체취가 풍기는 침대를 내려다 보면서 쓸쓸한 생각도 들었다.    이전에 종호는 이 침대에서 열렬하게 속살도 섞으면서 산 적도 있었다. 그런데 점점 커가는 려향 때문에 부부 생활에 불편할 때도 있었다.     려향은 열살도 다 됐는데 혼자 뒷방에 가서 할머니와 함께 자려고 하지 않고 계속 엄마 귀를 붙잡고 자려고 했다.    종호는 하는 수 없이 려향이 잠이 들기를 기다려 뒷방에 안아다가 할머니 옆에 재워놓군 하였다. 그러고도 류려평이 옆을 주어야, 악처의 비준을 받아야 여자라고 맛을 볼 기회가 차례질 판이었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려향이 깨나 엄마, 아빠 자는 앞방에 뛰어와 고래고래 고함쳤다.     “내 어제 밤에 엄마 귀를 잡고 잤는데 어째 누가 할머니 옆에 안아 갔습니까?”     “허허허. 아마 신선아바이 안아 갔는 모양이야?’     려향은 눈을 흘기면서 종알거렸다.     “거짓말, 아빠 안아갔지?”     “이젠 크다만게 아직도 엄마하고 자겠니?”     려향은 아빠를 쳐다보면서 종알거렸다.    “허허허.”    “호호호.”     그때 일만 생각해도 허구픈 웃음이 절로 났다.     (우리도 그런 때 있었던가?)    종호는 이전 일을 회상하면서 침대머리 서랍을 열고 두루 이것저것 들춰보다가 깜짝 놀랐다. 서랍에 숱한 피임약과 콘돔이 있지 않겠는가.    "이년, 나하구 한번도 살지 않는데 콘돔을 해 뭘 해? 진짜 바람 났구나."    종호는 이번엔 벽궤 문을 활짝 열었다.    “이게 뭔가?”    종호는 깜짝 놀라 입을 함박만큼 쫙 벌리었다.    벽궤 밑바닥에 놓인 자그마한 금고 위에 금은장신구가 수두룩이 쌓여 있지 않겠는가.    (탐욕스런 년, 금고까지 사다 놨어?)    그때 문소리가 덜컥 났다.    류려평이 황망히 들어섰다. 그녀는 자기 각방에 서 있는 종호를 보고 퉁사발이 데꾼해졌다.    “아니, 당신 왜 내 침실에 들어왔어? 지금 뭘 해?!”    “려향이 두고 간 책을 가져오라고 해서 책을 찼소.”    려평은 쌍까풀눈이 휘둥그래진 채 옷궤를 훌 열어보았다.    그녀는 몸을 홱 돌리더니 꽥 소리쳤다.    “당신 다 들춰봤지?”    “뭘 그러오?”    류려평은 종호한테 손삿대질하며 고함쳤다.    “당장 나갓!”    종호는 려향의 책을 아무거나 쥐고 나가면서 한마디 때끔하게 해주고 나갔다.    “충고할게. 절대 부정당한 돈을 벌지 마오. 쇠살창문을 단 벽돌집이 기다린다는 거 아오.’    “주둥일 다물지 못해?! 내 감옥에 들어가면 씨원하겠구나. 내 감옥에 가면 당신도 지옥에 갈줄 알아라.”    류려평은 그날로 일군을 고용해 금고를 본가집에 실어가 감춰 두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종호는 류려평과 졸혼 계약을 맺고 려향을 데리고 한국에 나온 걸 아주 잘했다고 생각했다.     (부부 정도 없이 허울 밖에 없는 가정에서 살아서 뭘 해? 정신감옥에서 살 멋이야 없지. 한국에 나왔기에 려향은 어엿한 문학박사로 되지 않았는가. 집에 있으면야 려평의 품에 안겨 서적이나 쓰고 만족도 아니고 조선족도 아닌 짜궁배를 만들었을 거야.)     그는 불타던 저녁노을이 사라져가고 어둑어둑해지는 병실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내 인생은 너무 허무해. 글농사를 내놓고는 실패한 인생이야. 졸혼한 후 가정은 허울뿐이고. 안해는…)    그는 류려평을 다시 떠올리기도 싫었다.    (사람이 사는게 다 그렇겠지.)    그는 아주 자연스레 친구와 동료들의 얼굴이 삼삼히 떠올랐다. 이국타향 병실에 누워 있으니 친구들이 퍽 그리워났다. 적막강산에서 이렇게까지 친구들이 그리워 보기는 처음이었다.    젤 먼저 떠오르는 친구는 그래도 성호가 아니겠는가.   성호는 종호의 대학 동기이자 제일 친하는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놈이 그래도 사내답고 인간답지. 성호와 승호는 동기었는데 은영을 두고 사랑의 라이벌이었지. 눈 덮인 학교 뒤산 소나무숲에서 주먹치기를 하면서 결투까지 했지. 그날 은영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둘 다 모질 상했을 거야. 그런데 승호가 성호 친조카일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ㅋㅋㅋ)    종호는 대학 시절 성호와 승호를 생각하자 저도 몰래 혼자 웃었다.    원래 승호한테는 배다른 형이 있었는데 유복자로 태여난 형을 시내 남의 집에 주었다. 그후 서로 련계가 끊어져서 성호는 승호 아버지와 만나본적도 없었다. 그래서 숙질간인 줄도 모르고 시장네 귀공주 은영을 두고 서로 결투까지 했던 것이다.    (승호는 세상 바람둥이었지. 대학에 오기 전에 벌써 중학교 동기인 약혼녀와 량성관계까지 벌렸지. 대학에 입학하자 차버리고 우리 반 홍희를 재꼈지. 그러고도 모자라 은영과 엄정희를 넘써 봤지. 그 일로 홍희는 자살까지 했지. 녀대생이 자살한 일은 대학 울안을 벗어나 온 시내를 들썽했지.)    종호는 동기생 은영을 떠올리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은영은 처음에는 승호가 홍희를 자살하게 한 주범인줄도 모르고 반장이라고 승호를 따랐지. 건데 밤중에 승호와 소나무숲에서 그 짓을 하다가 강도들한테 붙잡혔지. 은영은 강도들한테 륜간당해 죽다 살아났지. 그번 여대생 륜간사건은 또다시 온 시내를 뒤흔들었지. 우리 반은 그런 일로 대학교와  공안국의 중시를 받게 댔지. 비록 륜간범들은 몽땅 총살당했지만 은영은 심한 심신상처를 받은 충격에 몇번이고 자살하려고 했지. 그래도 후에 지인들의 보살핌을 받아 대학을 졸업하고 최혜영으로 변성명 하고 타현 검찰원에 졸업배치를 받아 검사로 됐지. 후에 은영은 상급검찰원에 전근됐고 나중에 반탐오회뢰국 국장이 돼 탐관 정호랑 붙잡아내 여검사 본때를 보여주었지. 혜영은 후에 승호의 몰골을 다 알고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왔지. 승호는 그 후에도 계속 바람 피우다가 에이즈에 걸려 새파란 사십대 초반에 죽고 말았지.)     허연 병실 적막강산에 그래도 지영이 때마침 찾아와서 옆에서 살뜰히 보살피어 고독은 저도 몰래 사라져갔다.    노크소리 조용히 울리더니 려향이 사뿐 들어섰다. 병실 분위기는 대번에 확 바뀌어 친혈육의 정이 부녀 사이에서 훈훈하게 감돌았다. 딸이 자주 찾아와 종호의 우울증 저울추를  얼마간이라도 내려놓아 주어 다행이었다.    려향은 활짝 웃는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면서 과일구럭을 들고 다가왔다.    “아빠, 저 박사론문이 통과됐어요.”    “그래?”    종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축하한다. 우리 집 문학박사님.”    종호는 지영이 옆에 있는 것도 다 잊고 려향을 덥썩 끌어안아 주었다.    “다 아빠 고생하면서 뒤시중을 잘해 준 덕분이예요.”    려향은 머리를 들더니 물었다.    “아빠, 바람 쏘이러 나갈가요?”    “아니, 금방 지영이하구 나갔댔다.”    종호는 침대에 앉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리었다.    (이젠 려향을 보고 사는게지. 홀애비로 살아도 아직 다하지 못한 일을 계속 하면서.) 종호는 노처녀로 숙성해가는 려향을 보고 궁금해 물었다.    “졸혼에 대해 생각해보았니?”    려향은 의아한 눈길을 보내면서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졸혼?”   그녀는 “결혼문제를 묻지 않아 다행이군요.” 하고 말하려다가 옆에 걸상에 앉아 그들 부녀를 바라보는 지영을 보고 그만두었다.    종호는 지영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지영인 졸혼을 어떻게 생각하오?”    지영은 려향을 돌아보며 희죽이 웃어 보이었다.    “글쎄요. 지금 한국과 일본에서 졸혼이 류행된다는데요. 졸혼은 리혼을 하지 않고 갈라서 사는 혼인풍속이라던데요. 서로 상대방 생활을 간섭하지 않고 자기 삶을 살 수 있어 좋아도 보이는데요. 졸혼은 새로운 혼인풍속인 거 같은데요. 제가 뭘 알아서 사장님과 박사님 앞에서 왈가불가 하겠는가요?”    지영은 종호와 려향의 눈치를 번갈아보았다.    “괜찮소. 스스럼 없이 이야기를 나누기오.”   종호는 려향을 돌아보았다.   “려향아, 너도 말해보렴.”   려향은 단도직입해 말했다.   “아빠와 엄마처럼 졸혼하고 살라면 좋지 않은 거 같아요. 부부라면 한 가정에서 살아야지요. 안 그럴러면 씨원히 리혼하고 살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뭔가요?”    지영도 자기 비극적인 혼인을 떠올리면서 동감했다.   “맞아요.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씨원히 리혼해야지요.”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혼이 어디 그리 간단하오? 애들 전도에 영향주게 되는데…”    종호는 지영이 리혼녀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지영은 개의치 않고 용기를 내서 내심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부모가 리혼하면 잠신 어린 애들한텐 영향을 주겠지요. 그러나 애들이 다 크면 괜찮을 거 같아요. 자식들도 장성하면 자기 삶을 살테니까요.”    종호는 뭐가 찔리는데 있는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성호란 대학 때 동기친구 있지. 성호는 우리 반 엄정희란 여동기하구 결혼했지. 엄정희는 대학교 교수네 귀공주오. 농촌 태생인 성호와 총망히 결혼 후에 살기 어려우니 엄정희는 다단계판매에 휘말려들었댔소. 정희는 숱한 사람들의 돈을 한국 사기군한테 떼워서 감옥살이를 다 했소. 출옥하자 정희는 시내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들고 살기 어려웠지. 그래서 정희는 성호와 졸혼하고 미국에 가서 때밀이하면서 돈을 아글타글 벌었지. 성호는 졸혼한 후 정희와 20여년 동안이나 혼자 광고업을 하면서 살았지.”    지영은 호기심에 차 물었다.    “그래 지금도 리혼하지 않고 사는가요?”    종호는 아주 친구 일을 자랑삼아 이얘기했다.    “그래, 둘 다 이날 이때까지 다른 짝을 찾지 않았지. 그들 부부간은 대학교 시절에 자유련애해 사랑을 맺았소. 그들의 사랑은 그들 둘의 마음 속에 얼기설기 아주 깊게 뿌리를 내렸지. 그들은 몇십년 동안 갈라 살았지만 갈라지지 않았소. 그들은 아글타글 경제건설을 잘 해놓 후 지금 졸혼 계약을 거두고 둘 다 한국에 나와 아파트까지 사놓고 아주 깨알이 쏟아지게 살고 있어. 하나라던가, 딸애도 미국 하버드대를 석사학위를 타고 남방 한국 반도체기회사에서 한자리 하는데 잘 나가는 모양입데. 이젠 성호와 정희는 시름 싹 놓고 살고 있어.”     종호는 지영과 려향을 둘러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결혼과 졸혼, 이 사이에서 명지한 선택을 하려면 좀 여지를 두는게 좋은 것 같애. 인생은 언제나 여지를 두면서 살아야 해.” 려향은 허구픈 웃음이 나왔다.    (아빠는 바로 그렇게 여지를 두고 살아왔지요. 그래서 인생을 비극에로 이끌어가지 않았는가요? 륙십이 넘도록 질질 끌면서 리혼도 하지 않고 졸혼하고 살았지요. 그래서 아빠나 엄마나 불행하게 살게 된 거죠.)    그녀는 이렇게 툭 까놓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빠한테 너무 큰  심리타격을 줄가 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그만 꼴깍 삼키고 말았다.     뒤이어 병실에는 납덩이 같은 침묵이 졸혼 여운을 핥으면서 지지리 답답한 가슴들을 노크하고 있었다.
428    장편소설 황혼 제2권(23) 홀애비의 고민 김장혁 댓글:  조회:699  추천:0  2024-07-19
               김장혁 장편소설 황혼                 23. 홀애비의 고민      장마철이 돌아오자 하늘이 구멍이 났는지 거의 날마다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었다. 그런데 오늘 어쩌다가 아침해가 병원 뜰안의 수림을 유난히 비추었다. 나무이파리에 맺힌 비방울이 해빛을 반사해 반짝이며 삶의 미련으로 맺혀 도르르 굴러 떨어진다.    종호는 지영과 함께 병원 뜰 안 수림에 나가 긴 장의장에 앉았다. 훈훈한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간지럽히었다. 종호는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햇볕이 어찌나 쨍쨍 내리쬐는지 종호는 무더위를 피해 지영과 함께 병실에 돌아왔다.    종호는 환갑 나이도 지난 인생의 황혼을 생각하자 어쩐지 한없이 쓸쓸하고 서글프고 앞길이 캄캄해났다.    나이가 들수록 기력이 쇠역해지고 인적 관계는 소원해진다. 남녀 사랑은 사막처럼 삭막해져간다. 여자들도 머리 허연 늙은이를 보면 눈초리 꼿꼿해서 기시하는 눈길을 보낸다. 연지꼰지 바른 젊은 아가씨들은 허연 수염을 보기만 해도 입귀로 비웃음을 흩날린다. 늙으면 진짜 섧섧한 일이 많기도 많았다.    사실 종호는 암범 같은 악처와 부부 생활을 해본지도 20여년이 됐다. 그러다나니 여자가 어떻게 생기었는지 모를 지영이 된지도 오래다. 성욕도 인간의 본능인데. 허참, 인간의 잠재적 본능인 성욕도 제대로 만족보지 못하고 하루, 한달, 한해 자원을 낭비하면서 세월을 허송세월해 보냈다. 세상에 이런 바보도 있다면 누가 믿겠는가.    “쳇, 현퇀급 부사장님이 여자친구 하나도 없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글쎄. 숱한 애인을 감춰뒀을 거야.”   "여자친구 많은 놈은 여자 하나도 없는 상한다는데."   "찍 소리 없는 여끼 부뚜막에서 엉덩이로 호박씨 깐다고 하잖아? 흥!"    “황차 본댁이 옆으로 오지 못하게 하는데. ㅋㅋ”   구경 우리 세상에는 이런 바보 홀애비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류려평은 30대 초반부터 은행에 들어가 저금소 주임으로 된 후부터 남들의 눈을 피해 암암리에 류덕배와 속살을 섞어댔다. 물론 더러운 교역 뒤에는 빨깍빨깍하는 돈 묶음이거나 금은장신구가 차례지었다.    자기 밑구멍이 치치해 가지고 류려평은 쩍하면 종호를 의심하면서 잠자리에서도 곁을 잘 주지 않았다. 어쩌다 몸을 주어도 콘돔을 끼고 살자고 했다. 안 그러면 아예 생각도 말라고 했다.    종호는 콘돔을 끼면 뻘꺽거리고 감각이 좋지 않았지만 굶은 놈이 별 수 없었다. 한달에 둬번 밖에 차례지지 않는 그 기회도 놓칠 순 없었다. 진짜 간신히 근근득식하면서 정욕을 말리군 해야 했다.    류려평은 지행장으로 된 후 부터는 류덕재 행장한테 찰싹 달라붙어 미친듯이 더로운 교역을 해대면서 종호를 남편으로, 아니, 사람으로 보지도 않고 저돌적으로 푸대접했다.    그녀는 어쩌다가 잠자리에 다가오는 종호를 보고 퉁사발눈을 흘기면서 핀잔을 주군 했다.    “당신, 거기서  고약한 냄새 나오. 래일 병원에 가서 화험해야겠소.”   “왜?   종호는 외까풀눈이 데꾼해지었다.   악처는 왕청 같은 소리를 쳤다.   “에이즈에 걸렸는지 누가 알아요?”   종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뭐라고? 억이 막힌 소릴 하지도 마오. 내 바람 피운 일도 없는데 어디서 에이즈에 걸린단 말이오?”   오히려 류려평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한심한 소리를 다 치었다.   “청백한 척 말라고. 시내 몇몇 병원에 돌아다니면서 당신 병력서류를 다 꺼내 보면 진상이 다 밝혀질 수 있어.”    악처는 종호를 마구 밀어내고 침실 문을 쾅 닫아버리었다.   “옳소. 래일 당장 뒷조사를 하란 말이오. 더러운 년, 제 밑구멍이 치칫해 전탕 청백한 사람을 의심한단 말이야.”   악처의 악담은 더욱 혹독해갔다.   “지금 한자리 하는 놈 치고 애인 한, 둘이 없는 바보 어디 있어? 리사장님이라고 례외일 수 있겠어?! 흥!”   기실 류려평은 류덕재 행장과 더러운 교역을 벌린 후부터 색안경을 끼고 종호를 보고 있었다.     요즘 그녀는 류덕재와 더러운 교역을 벌린 후 하신이 벌겋게 번지더니 어쩐지 자꾸 하신이 가려워났다. 나중에는 아랫배까지 띠끔띠끔 아파났다.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해보니 의사가 성병피부과에 가보라고 했다.   류려평은 대개 짐작이 가서 자기 출근하던 병원의 눈을 피해 다른 병원 피부과로 갔다.    녀의사는 류려평의 하신을 검사하더니 안경 너머로 이상하게 멸시하는 눈길로 류려평을 피뜩 곁눈질하더니 화험처방지를 떼 주었다.   류려평은 두근닥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면서 화험실에 가서 팔을 걷고 피를 뽑았다.   오후에 화험 결과가 나왔다.   더러운 매독에 덜컥 걸리지 않았겠는가.   “이걸 어쩌는가?”   류려평은 화험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기실 검진 결과 류려평은 매독에 걸린지 오래 자궁이 썩어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추악한 몰골이 들키울가 봐 류독재하고나 종호하고도 콘돔을 써왔다. 그런데 콘돔을 끼어도 쓸데 없었다.    "콘돔이 구멍나 샜는가?"    려평은 깜짝 놀라 퉁사발눈깔이 뒤집힐 정도였다.     종호도 거기가 벌겋게 부어오르더니 가렵고 나중에는 띠끔띠끔 아파났다. 병원 피부과에 가서 검사하니 매독에 걸렸다고 했다. 화험결과도 역시 매독으로 나왔다.    "더러운 년, 어데 가서 매독을 묻혀다 내게 전염시켜 놔?!"     종호는 매독에 걸린 일은 속이고 치료하면서 려평을 다른 안목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류려평은 매독, 자궁미란에 걸린 걸 안 다음부터는  종호한테 곁을 주지 않았다.    그건 뭣 때문인가?     추악한 몰골이 탄로날가 봐 두려웠다. 그보다도 장기간 혹독한 성징벌을 하면 종호가 혹시 리혼에 동의하지 않겠는가는 계산도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리종호는 사회 사업의 수요로 리혼해주지 않았다. 조직부에서 신문사에 내려와 가정형편이랑 조사할 때 리혼한 정황을 알면 장차 조직발전에 문제로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가정을 깨면 부모가 리혼한 집 애라고 려향의 전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고민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류려평의 리혼요구를 귀에 못이 박히게 해도 한사코 질질 끌면서 리혼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려향을 데리고 한국에 훌 나와 버렸던 것이다.    한편 류려평은 류덕재가 사흘이 멀다하게 달려들기에 매독을 가만가만 치료해 나을 새도 없었다.   (류덕재, 나쁜 놈, 어쩜 이렇게 더러운 전염병을 내한테 옮아놓는단 말인가? 그러고도 콘돔을 쓰지도 않고. 나쁜 놈새끼.) 한편 류려평은 바보 같은 홀애비 남편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언제까지 저 바보를 속이면서 살 수 있을가? 아예 훌 리혼하고 말가?)   그런데 전통파 종호는 려향의 전도를 보고 절대 리혼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악처는 심지어 각방을 쓰면서 살기 시작했다.    문을 꼭 잠궈 버리고 려향을 데리고 자면서 종호를 언저리에 오지도 못하게 했다. 그것은 종호에 대한 류려평의 일종 가혹한 성징벌이기도 했다.   이전에 부부 금술이 좋을 때는 종호와 류려평은 찰떡부부처럼 들어붙어 하루에도 서너번씩 부부 생활을 했다.   어떤 때에는 부부 생활을 해야겠는데 점점 커가는 려향이 애를 먹이었다. 점심에 제꺽 그래고 출근해야겠는데 학교에 갔던 려향이 불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바빠맞은 종호는 려향한테 용돈을 쥐어주면서 얼리었다.   “이걸 가지고 양꼬치나 먹어라.”   “아- 좋아라!”   려향은 돈을 받아쥐고 양꼬치 먹으러 달아갔다.   그새면 그들 부부는 오후 출근시간을 맞춰 제꺽 콩닦개를 닦아 먹군 하듯 재빨리 일을 끝냈다.   (그때는 얼마나 열렬했던가? 그런데 몇달이 되도록 한번도 부부생활을 못하게 하니. 이거 원, 참.)   종호는 널직한 세칸들이 새 아파트에서 살아도 행복한 감을 느끼지 못했다. 콧구멍만한 닭굴자리 셋집에서 뜨거운 사랑으로 몸을 달구면서 추위를 이기며 살아가던 때가 그리워났다.   (글도 쓰지 못하고 사랑이 없이야 무슨 사는 재미 있는가?)   종호는 여직껏 류려평이 류덕재와 오래동안 간통한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류덕재 덕분에 류려평이 저금소 주임, 지행장으로 된 것을 알뿐이지 아파트까지 사주었다는 것까찌는 모르고 있었다. 류려평과 아파트를 무슨 돈으로 샀는가고 물어보니 본가집에서 준 돈으로 샀다고 했다.   그때 종호는 류려평을 보고 엄숙하게 말했다.   “우린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도 절대 부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지 말아야 하오.”   류려평은 퉁사발눈을 뒤집힐 지경으로 흡뜨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오- 당신이야 이 세상에서 혼자 청렴한 간부인게 무슨. 제 노릇을 하나도 못하는 리사장님을 믿고야 언제 새 아파트에서 산다오? 가시집 신세에 사는 주제에 잔소리를 작작 하라고. 흥!”    종호도 육정칠욕이 있는 열혈 사나이었다. 그는 어떤 때에는 끓어오르는 정욕을 참을 길 없어 려향이 쌔근쌔근 잠든 다음에 발끝걸음으로 려평이 각방으로 사는 침실 문에 다가가 귀를 기울이다가도 조용히 노크했다.       “여보, 문을 좀 여오.”    그러나 려평은 문을 꽁꽁 잠궈 놓은 채 두덜거리었다.   “왜? 시끄럽게 굴어? 애를 깨우겠다. 썩 가지 못해?!”    (오늘 밤에도 끝이구나.)   그러나 종호는 미련을 버리지 않고 문꼬리를 쥐고 려평을 설득하려고 들었다.    “려평이, 도대체 무엇 때문이오. 이 문을 여오. 좀 대화하기오.”    “당신과 할 말이 없어. 내일 굴암돼지 엉덩이를 사다줄게. 정 하고 싶으면 돼지 옹고지에 대고 해라. ㅋㅋ”    종호는 당장 문을 박차고 들어가 려평의 주둥이를 막 막아 쳐놓고 싶었다. 그러나 겨우 참아가면서 내심하게 말했다.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우린 부부가 아니오? 부부라면 성적인 의무를 다 해야 하오. 대방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단 말이오. 그러잖으면 무슨 부부요?”     “흥! 생활이 령점이 돼가지고서도 누굴 교육해? 무슨 대방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켜줄 의무 있다고? 그래 안해는 남편의 정욕을 해소하는 도구인가 하니? 퉤, 더럽다, 더러워. 너도 남편이냐? 널 믿고 살다간 한지에 방아를 걸겠다. 남자 구실도 온전히 못하면서. 내 보고 옥 같은 몸을 들이대라고? 픽, 기름개구리 학의 고기를 먹으려고 든다고나 해라? 꿈도 꾸지 말라.”    종호는 문고리를 맥없이 놓고 돌아섰다.    격분과 정욕을 이기지 못해 그는 소낙비 쏟아지는 날에 우산을 들고 바깥에 나가 돌아다니었다.    먹장구름이 뒤덮인 하늘을 바라보니 슬픔과 고독이 싸늘한 가슴에 창창 쏟아져 겹겹이 쌓인다.    그는 공원 수림에 들어가 돌아다니면서 끓어번지는 격분과 몸을 식이려고 들었다. 허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는 우산을 쓰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는 대변실에서 우산을 걸개에 걸어놓고 앓음소리를 내면서 변기를 마주 하고 섰다. 뒤이어 그는 눈을 지긋이 감고 열렬히 살 때 류려평의 우유빛 엉덩이를 상상하면서 그걸 꺼내 주물주물 주물렀다. 숨소리 거칠어진다. 손놀림이 빨라지자 한참 후에 열기가 쑥 빠져나가면서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핸드폰이 나오면서 종호는 류려평이 점점 더 곁을 주지 않아도 개의치 않았다. 그의 자위는 더 현대화로 발전했다. 그는 삼복철에 더워서 류려평이 문을 걸지 않고 빠끔히 열어놓고 잘 때면 가만히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가 류려평의 하연 허벅다리와 우유빛 젖무덤 그리고 탄탄한 엉덩이를 핸드폰으로 촬영해  3류동영상처럼 저장해두었다.    고독한 밤이면 종호는 행인이 없는 공원 화장실이거가 강가 버드나무숲 속에 가서 그 동영상을 보면서, 려평과 열렬히 속살을 섞던 장면을  련상하면서 정열을 배설하군 했던 것이다.    어떤 때에는 수영장에 가서 잠수해 여인들의 하얗고 야들야들한 허벅다리를 훔쳐보면서 자위를 하기도 했다.    (아, 오늘도 고독하게 자위했구나. 불쌍한 홀애비 신세.)    종호는 자기 불운한 팔자,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기도 했다.    그것도 우연히 한두번이면 모르겠다. 내내 정욕만 끓어번지면 습관처럼 손으로 수음(手淫)하면서 자위를 하니 이젠 그것도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이젠 진짜 콩물에 불궈놓은 果子처럼 시들어서 거의 고자나 다름없게 됐다. 이젠 각일각 페남자로 돼버려가고 있었다.    부부 음양조화가 잘 안되니 엔돌핀도 생성되지 않았고 건강에도 여기 저기 자주 이상이 생겼다. 륙십대  중반인데 머리가 파뿌리처럼 돼버렸다. 말하긴 좀 그런데 어데라 없이 털은 거의 다 싯허얘져 대중욕탕에 가서 샤와 하기도 민망했다. 얼굴도 주글주글해지고 이마에는 주름살이 밭고랑처럼 패여갔다. 겉보기에도 나이보다 퍽 겉늙어서 칠순을 훨씬 넘긴 령감처럼 보이었다. 거리에 나서면 모두 "아바이,",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아바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는 인생 황혼이 너무나도 서글프고 쓸쓸하기만 했다.     (아직 세상에 해놓은 일도 없고 손자도 안아 보지 못했는데. 벌써 아바이라니? 원, 참. 세월도 한심하지. 내 인생아, 황혼아, 야속하다, 야속해.)      아니, 세월을 탓하기보다 악처를 만난 악연을 탓해야 할 거야. 가정불화로 인해 얼마나 속을 태웠는가?     리종호 사장님은 우점도 많고 아는 것도 많지만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혹시 그는 가정이 화목해야 만사가 잘 풀린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은 아닌지?       종호는 정열이 끓어번지는 젊은 시절에 사랑이 없는 가정, 허울 밖에 없는 이 놈의 가정에서 딸애의 전도를 망칠가 봐 남모르게 이렇게 수십년을 자위로 달아오르는 몸을 식여왔다. 바보처럼 홀애비 아닌 홀애비로 살아왔다. 그는 바보처럼 금욕주의자로 살아왔다.       사랑하는 안해가 없고 음양조화가 잘 안된 것도 종호가 자살하려고 한 원인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려향이 다 큰 다음에도 말할 수 없었다. 딸한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    어떤 때에는 부부의 살뜰한 정도 없는 류려평과 리혼할가고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려향이 리혼한 집 애라고 놀림을 받으면서 고생스레 자랄가 봐, 려향이 한쪽 날개 끊어진 새처럼 될가봐, 이날 이때까지 참기도 어려운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리혼하려는 생각을 눅잦히며 단념했던 것이다.    그는 리혼은 단념하고 류려평과 졸혼하고 각기 완전히 자기 삶을 살아 왔다. 그러자 자유로워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그는 한국에 나와 글을 써 책을 내면서 살았다. 류려평은 려향까지 한국에 류학보내 애비한테 맡겨놓고 고삐 끊은 들말처럼 제 마음껏 마작이나 놀로 마사지방이나 술집에 드나들면서 미친듯이 류덕재와 바람을 피우면서 살았다.    종호는 사람이 사는 의의는 성생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유익한 글을 쓰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때문에 류려평과의 사랑이 사막화돼가도 개의치 않고 모든 정력과 재력을 영웅과 렬사들의 사적을 써서 책으로 묶어 내는데 쏟아부으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수전노 같은 류려평은 미인계와 직권을 빌어 돈을 긁어모으는 재미에 살았다. 그는 심지어 부정축재를 은행에 저금하면 탄로날가 봐 황금으로 바꿔 집에 놓은 커다란 금고에 감춰 두었다. 나중에 종호한테 들키울가 봐 종호 몰래 다른 곳에 본가집 엄마 이름으로 아파트를 따로 사놓고 황금과 현금을 치워 두고 아무도 얼씬하지 못하게 하고 혼자 가만히 한주일에 둬번 누가 다치지 않았는가 살펴 보군 하였다.    녀탐관은 쇠살창에 갇힌 후에야, 중국 수사기관에 차압된 후에야  숱한 돈을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려향한테도 주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한국에 류학간 려향한테 주면 애비한테 줄가 봐 학비도 일전한푼 대주지 않았던 것이다.    종호는 장의자에 앉아 쓸쓸히 자살하려고 베었던 왼손목을 내려다 보았다. 칼로 벤 흉터가 마음이 아프게 시야에 들어왔다. 이젠 혼은 올똘해져 주글주글하게 늙어가고 쇠약해가는 육체에서 떠나지는 않았다.    (사회에 아무 유익한 일을 하지 못하면서 늙어만 간다면야 무슨 사는 의의가 있는가? 그저 허연 밥을 먹고 소화시켜 누런 똥을 만들어 배출하는 일 밖에 더 있겠는가?)    종호는 또 우울해지며 별다른 곳으로 혼을 몰고 갔다. 누구도 인생의 황혼을 피해 갈 수 없다. 황혼이 다가올수록 이일 저일 섭섭한 일이 삼검풀처럼 엉켜 가슴을 조여 침침해나고 서글프게 한다.   저물어 가는 저녁에도 삼복지간 씨뻘건 태양은 서산 마루의 누르스름한 구름을 뻘겋게 불태운다. 피빛으로 물든 황혼빛 락조가 비낀 병원 뜰 안은 쓸쓸한 적막이 콧노래를 부르며 잠꼬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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