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수림 속에서 벌어진 강간사건
승복을 보고 택시를 몰지 못하게 한 후 성호는 인터넷광고매체와 신문광고지에 택시운전수초빙광고를 냈다. 광고가 나가자 숱한 남녀운전수들이 초빙에 응해 련계해왔다. 성호는 숱한 운전수 가운데서 서른살 푼한 녀운전수를 골라내 썼다.
화는 눈섭끝에서 떨어진다고 재수없이 첫날에 날강도한테 략탈당했다고 녀운전수한테서 전화가 왔다.
성호가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보니 문 앞에 빨간 택시가 서 있었다. 살펴보니 녀운전수는 상한데는 없는 것 같았고 택시도 파손된 곳이 없었다.
녀운전수는 성호를 보자 택시에서 내리면서 왕왕 대성통곡쳤다.
성호는 황급히 비칠거러는 녀운전수를 부축하며 문안했다.
“어데 상하진 않았소? 어떻게 된 일이요?”
“망아산 수림에서 돈을 몽땅 빼앗겼어요.”
“아니, 시퍼런 대낮에 강도질한단 말이요? 어디 다친데 없소? 얼마나 놀랐겠소?”
녀운전수는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성호와 함께 집으로 올라갔다.
“그 놈은 내 금목 걸이와 금반지를 다 빼앗아갔습니다. 그리고…으흐흐흐.”
“뭐라오?!”
“그래 공안국에 신고했소?”
“아니, 창피해서 어떻게 해요? 내 신랑과 절대 말하지 마세요. 알면 무조건 리혼당해요.”
“알았소. 공안국에 신고해야지. 그 놈을 붙잡아 원쑤를 갚아야지.”
성호는 인차 전화로 강운룡 부국장한테 신고했다.
“너네 집 앞에서 기다려라. 인차 수사대원들을 보낼게.”
이윽고 경찰차 두대나 달려왔다.
창남 대대장은 직접 수길 중대장과 수사대원들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녀운전수를 차에 싣고 사건현지로 달려가면서 강탈사건경과를 들었다.
녀운전수는 격분해서 사건경과를 쭉 이야기했다.
“오늘 오전 9시반쯤이죠. 택시를 몰고 백화상점 앞에 갔을 때 웬 훤칠한 한족사내가 손을 듭디다.”
“몇살이나 되는 놈이오?”
창남 대대장이 묻자 녀운전수는 두 눈을 살풋이 내리깔더니 기억을 더듬었다.
“한 마흔살 넘어 보이던데요.”
“얼굴에 무슨 특징이 없습데?”
“길죽하게 생겼던데요. 아차, 네, 덧이가 났습디다. 저, 코 밑에 꺼먼 사마귄지 짐인지 있었어요.”
수사대원은 일일이 적었다.
녀운전수는 계속 말했다.
“그 놈을 보고 어디로 가겠는가고 묻자 한숨을 푸~ 내쉬더니 ‘교외에 있는 합촌마을로 가자.’고 합디다. 그 마을로 가려면 망아산 수림 속을 지나 가야 되잖고 뭔가요? 무서워서 가지 않겠다고 했죠. 그 놈은 백원짜리 돈을 꺼내 주면서 기어이 가자고 하잖겠어요. 나는 손님도 별로 없지 무서운대로 요행을 바라고 떠났지요. 교외로 나가 수림 속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어귀에 이르렀을 때였어요. 그 놈은 불시에 비수를 빼들고 작은 갈림길로 몰라고 하지 않겠어요? 앞뒤 주위를 봐도 행인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차들만 씽씽 지나가는 걸 보고 이젠 꼼짝 못하고 죽었구나고 했어오.”
그 놈은 녀운전수의 옆구리를 비수로 푹푹 다치면서 “까딱 하면 죽을줄 알아!” 하고 을러메면서 수림 속 오솔길로 몰라고 위협했다.
녀운전수는 하는 수 없이 큰길을 벗어나 수림속 오솔길로 굽어들었다.
“바로 저기예요.”
수사대원들이 앞을 보니 큰길 량켠에는 돌언제를 쌓아놓았다. 합촌 마을로 가는 길은 그 돌언제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들은 경찰차에서 내려 사건현지 수림으로 들어가보았다. 울퉁불퉁한 오솔길을 따라 소나무숲 속으로 들어가다가 구뎅이가 나졌다.
금희는 그 구뎅이를 가리켰다.
“바로 여기서 그 놈이 금목걸이하구 금반지를 빼앗았죠.”
수길 중대장은 구뎅이를 들여다보니 발버등질을 한 것 같은 자리가 있었다. 그는 녀운전수한테 얼굴을 돌리며 물었다.
“그 놈이 금목걸이와 금반지만 뺏고 다른 짓은 하지 않았소?”
녀운전수는 대뜸 얼굴이 홍당무우가 된 채 머리를 숙이더니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 놈은 제 돈지갑을 둘춰보고 오전에 별로 벌지 못한 거 보고 홱 뿌리치더니 쥉쥉 수림 속으로 가버렸어요.”
수길 중대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지형을 둘러보았다.
차들이 씽씽 달아다니는 고속도로와 20여메터 떨어진 수림 속이기에 지나다니는 차들이 보이지 않았다. 돌언제굽인돌이를 빠져나와 수림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데다 행인도 하나도 없어 강탈사건을 벌이기는 안성맞춤한 지형이였다.
수사대원들은 사건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날강도놈은 이 곳 지형에 익숙한 놈입니다. 가능하게 이 곳에서 여러번 녀운전수들을 강탈했을 수도 있습니다.”
수길 중대장의 말에 창남 대대장도 머리를 끄덕였다.
“옳소.”
그는 수사대원을 보고 녀운전수의 핸드폰번호를 적어둔 후 경찰차에 실어 집에 데려다주게 했다.
뒤이어 그는 “수사대원들을 여기에 잠복시켜 강도놈을 나포해야 하오.”
“알았습니다.”
수길 중대장은 수사대원을 고속도로와 오솔길 어구에 잠복하게 하고 자기는 사건현지 부근 수림 속에 잠복해 있었다.
그런데 해가 사산으로 뉘엿뉘엿 져도 수림으로 들어오는 택시가 한대도 없었다.
밤에는 녀성운전수들이 일반적으로 외지로 가려고 하지 않기에 날강도가 유인할 기회가 없었다.
이튿날 그들은 또 경찰차를 타고 미리 사건현지에 잠복했다. 그런데 날강도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수사대원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수길 중대장은 맥을 버리지 않았다.
“그 놈을 나포하지 않으면 이제도 얼마나 많은 녀운전수들이 피해를 볼지 모르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우린 며칠이고 계속 잠복해야 하오.”
그들은 사흘째 수림에 잠복해 내심하게 기다렸다.
오전 10시 반에 택시 한대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천천히 돌온제굽인돌이를 빠져나와 차궁둥이를 들썩거리며 오솔길에 들어섰다.
수길 중대장이 마른 가둑나무 가지를 헤치고 살펴보니 녀운전수가 모는 빨간 택시 조수석에 한 사내가 한 팔로 녀운전수의 목을 끌어안고 있었다. 흉상궂게 생긴 그 놈은 뭐라고 위협하는 것 같았다.
녀운전수가 몸을 마구 비틀어대며 반항하는 것이 열린 차창으로 환히 들여다보였다.
“사람 살려요!”
날강도가 시퍼런 비수를 뽑아들고 목에 대며 위협했다.
“소리치지 마! 죽인다, 죽여!”
(날강도구나!)
수길 중대장은 숲 속에서 뛰쳐나가면서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들어 공중에 대고 쏘았다.
땅! 땅!
“꼼짝 말엇!”
깜짝 놀란 날강도는 녀성운전수를 활 밀어놓고 택시문을 열고 큰길 쪽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섯!”
“계속 도망치면 쏜다!”
그러나 날강도는 섶불 맞은 노루처럼 다리야 날 살려라고 소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빠지며 도망쳤다.
맞은 쪽 숲 속에서 수사대원이 뛰쳐나와 권총을 빼들고 막아나섰다.
“서라! 어디로 도망쳐?!”
날강도는 비수를 뽑아들더니 뒤쫓는 수사대원한테 마구 휘둘렀다.
수길이 쫓아가 발길을 날려 그 놈의 손목을 걷어찼다. 비수가 소나무에 꽂히며 부르르 떨었다.
“계속 발악해?!”
수길이 호통쳤다.
수사대원도 날강도의 등을 경찰차 쪽으로 떠밀었다.
“우린 네놈을 사흘이나 기다렸어!”
수사대원은 허리춤에서 쇠고랑이를 꺼내 날강도 손목에 쩔꺽 채웠다.
“아이쿠!”
날강도는 오만상을 찡그렸다.
“걸엇!”
날강도는 경찰차에 압송돼가면서 대가리를 툭 떨어뜨렸다.
수길 중대장이 그 놈의 험상궂게 길죽한 말대가리를 살펴보니 확실히 피해녀운전수가 말한대로 덫이가 입술 밖으로 튀여나고 코와 입 사이에 사마귄지 기미인지 붙어 있었다.
수사대원들은 형사대대에 돌아와 심문했다.
현행범으로 나포된 41세난 왕길군은 떼를 쓸래야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놈은 대가리를 푹 숙이더니 자기 범행을 낱낱이 교대하기 시작하였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사실 요즘 새파란 녀자 하나 찾았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금목걸이와 금반지를 욕심내는지 이런 짓을 했습니다.”
“녀성택시운전수를 몇이나 강탈했는가?”
“오늘 딱 첫번째입니다.”
“닥쳣!”
수길 중대장은 책상을 꽝 쳤다.
“네놈 죄행을 모르는가 해?!”
“뭘?”
“오늘 녀성운전수는 근본 금목걸이와 금반지가 없어.”
“그랬던가?”
왕길군은 혀를 훌렁 내밀었다. 덧이가 유표하게 드러났다.
수길 중대장은 그 놈을 쏘아보면서 호통쳤다.
“교활하게 놀지 말고 죄행을 낱낱이 교대하지 못하겠는가.”
왕길군은 길죽한 말상을 홰홰 저으며 잔 꾀를 부렸다.
“무슨 증거 있습니까?”
“네 놈이 더 잘 안다.”
송길수는 “생각해보지.” 하고 아닌 보살을 떨었다.
수길 중대장은 왕길군을 류치실에 처넣었다.
그는 왕길군의 죄행을 인증과 물증으로 밝혀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수사대원들을 데리고 교통운수관리소에 가서 운전수등록부를 찾아보았다.
그들은 녀운전수들의 명단을 일일이 기록한 후 교통운수관리소 소장을 보고 협조를 부탁했다.
“우리 수사대대에서 전문 녀성택시운전수들을 상대해 강탈, 강간범죄를 저지른 강탈, 강간 흉수를 나포했습니다. 그 놈은 여러번 류사한 범죄활동을 한 것 같은데 아직 증거가 부족합니다. 혹시 피해녀성운전수들이 더 있으면 그녀들 보고 신고하라고 부탁할 수 없겠습니까?”
교통운수관리소 소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예, 좋습니다. 우리 녀성운전수들과 련계해 보지요. 보통 녀성운전수들은 강탈사실은 신고하지만 강간당한 사실은 신고하길 꺼립니다.”
수길은 너무 안타까왔다.
“녀성운전수들의 딱한 사정도 리해됩니다. 가정이 있으니까 그럴테지. 그러나 강간, 강탈범을 법에 의해 호되게 타격하자면 범죄사실과 증거를 많이 밝혀내야 합니다. 피해녀성들의 정의감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소장은 힘써 협조해 조사하겠다고 답복했다.
수길 중대장은 교통운수관리소에서 나오자 그 길로 곧추 송길수의 세집에 찾아가 자물쇠를 부시고 들어가 수색했다.
그들은20평방메터도 되나마나 한 세집 옷장 서랍에서 금목걸이 4개에 금손목 걸이 2개, 금반지 5개, 인민페 4천 7백원이나 들춰냈다.
이튿날 오후, 교통운수관리소 소장한테서도 소식이 왔다.
보내온 서류에는 새로 3명의 녀성택시운전수들이 강간, 강탈당한 사건이 제보되여 있었다. 범죄자의 용모팍은 모두 왕길군이 틀림없었고 범죄수단과 지점은 모두 전번에 나포할 때 사건현지와 동일했다.
수길 중대장은 밤도와 재차 심문했다.
“몽땅 교대하지 못하겠는가?”
송길수는 아직도 아닌 보살을 떨었다.
“예, 나흘 전에 녀운전수를 소나무숲 속에서 강탈하고 강간했습니다.”
“뭐라고? 강간했다고?”
“예. 강간했습니다.”
수길은 창남 대대장과 눈길을 마주쳤다.
분명 그 녀운전수는 강탈당한 사건만 말하고 강간당한 사건은 창피해서 신고하지 않은 것 같았다.
“범죄사실이 더 있어. 몽땅 탄백하라.”
“다 탄백했는데 뭘 자꾸 따집니까? 전번엔 당장에서 잡혔는데.”
“이게 뭔가?!”
수길이 사무상 우에 금목걸이와 금반지, 금손목걸이를 내놓았다.
송길수는 단통 철색낯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렸다. 뒤이어 대가리를 두 다리 사이에 툭 떨어뜨렸다.
이윽고 그는 자기 죄행을 참대통에서 콩알을 굴려내듯이 탄백했다.
녀성택시운전수를 강간, 강탈한 송길수는 법률의 호된 징벌을 받게 됐다.
사건해명은 끝났다. 하지만 성호는 답답했다. 녀운전수가 정신상에서 모진 타격을 받았다고 위안하려고 한달 로임까지 줘보냈다.
그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녀성운전수가 더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였다.
불시에 택시를 몰 운전수가 없었다.
그때 송숙이 찾아왔다.
그녀는 손에 바나나랑 들고 와서 먼저 성호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 고모부터 인사했다. 건너방에 와서 눈물을 머금고 성호한테 비난사정을 했다.
“오빠, 우리 다섯식구가 뭘 먹고 살겠소? 우리 나그네 잘못했소. 한번만 용서하고 택시를 몰게 해주오.”
어머니마저 건너와서 역성을 들었다.
“얘야, 조카사위를 몰게 해라. 괜히 택시를 하다가 친척간에 이나겠다.”
성호는 어머니까지 사정하자 마음을 넓게 먹고 한번 용서해주기로 했다.
(별 수 없지. 이제 다시 한번만 그런 짓을 하면 용서없어. 세상에서 돈벌이 제일 어렵구나.)
63. 사위도 반자식
산과 들은 명화가가 큰 붓으로 누런 칠을 해놓은듯이 날따라 황금물결로 출렁인다. 마가을의 락엽은 아무런 아쉬움도 없이 뿌리에 우수수 떨어져 밑거름으로 될 차비를 한다. 그러나 뿌리는 락엽의 대공무사한 락하를 대자연의 법칙으로만 알고 있을뿐 락엽의 갸륵한 정성과 참된 사랑을 다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세상에서는 내리사랑이 있지 치사랑은 없다고 하는 걸가.
성호와 정희가 효성을 다해 좋다하는 약을 다 대접하고 보양음식을 대접한 덕분에 상진은 기적적으로 자리에서 겨우 일어나 바깥출입을 할 수 있게 되였다.
그는 성호를 보고 “얘야, 가을철인데 사위가 다리를 절면서 어떻게 혼자 가을하겠느냐?” 하고 근심했다.
성호는 인차 “근심하지 맙소. 전번에 가보니 고향에서 가을을 다 하고 이젠 탈곡을 합더구마.” 하고 알려주었다.
상진은 기어이 “고향에 가서 탈곡이라도 도와줘야지. 어떻게 가을에 그저 먹을 벼를 달라고 하겠니?” 하고 고집하면서 지팽이를 짚고 일어났다.
“아버지, 밭을 양도했으면 벼를 주지 않으리라고 그럽둥? 편찮은 몸으로 어떻게 탈곡을 돕는다고 그럽니까? 병이라도 도지면 어쩝니까?”
성호는 아버지 팔을 부축해 되앉히면서 말렸다.
“아버지, 우리 부부가 매형네 탈곡을 도와주겠습니다. 근심하지 마십소.”
어머니도 나섰다.
“얘, 우리 어떻게 집에 떡 들어앉아 햇입쌀이 입에 들어오기를 기다리겠니? 농사군들은 목에 걸려 그렇게 못한다. 바람도 쏘일 겸 고향에 가보면 좋을 거 같아.”
성호는 할 수 없이 부모를 택시에 모시고 고향으로 달려갔다.
경만은 성호가 목숨을 걸고 소장사를 해 번 돈으로 지은 새 벽돌집에 들어 입귀가 귀밑까지 째질 지경이였다. 벽돌토성을 두른 마당에서 그의 일가는 한창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탈곡을 하느라고 분주히 돌아치고 있었다.
성호네는 집을 매형한테 외상으로 팔고서도 부모가 쓰던 가대기랑 숱한 농기구를 그대로 밀어주었다. 심지어 수레까지도 다 그저 주었다. 경만과 은숙은 너무나도 좋아 입이 함박만큼 떡 벌어졌다.
은숙과 조카들은 성호가 부모를 모시고 온 것을 보고 탈곡기를 멈추고 우르르 모여와 인사했다.
정국은 달려와 할머니를 안아 한바퀴 빙 돌리면서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인사가 끝나자 경만은 스위치를 재차 넣었다. 탈곡기가 성수나게 윙윙 돌아가고 사람들은 또 분주히 서둘렀다.
은숙은 부모를 집에 모셔들여가려고 했다. 그러나 상진은 쩔뚝거리면서도 벼단을 나르고 영옥은 탈곡기에 벼단을 주어 먹였다. 통통 영근 벼알들이 짜르르 쏟아져나왔다.
성호는 옷을 갈아입고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선글라스까지 낀 후 탈곡기 앞에서 먼지를 새뽀얗게 들쓰면서 흩날리는 벼짚과 북데기를 깍쟁이로 걷어냈다…
그날 저녁 성호는 먼지 묻은 얼굴과 손이나 대충 씻고 부랴부랴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달려왔다.
부모들은 기어이 남아서 사위네 가을싣걱질과 탈곡을 돕겠다고 했다.
“사위도 반자식인데 도와줘야지. 여기 고향 마을에 돌아오니 공기도 좋고 물도 좋고 기분도 좋구나.”
성호는 흰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일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은숙은 보다 못해 “아버지, 일신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무슨 일을 한다고 그럽둥? 어서 집으로 들어갑소.” 하고 말렸다.
경만도 투박하게 동을 달았다.
“에이구, 제 몸도 이기지 못하면서 무슨 일을 온전히 하겠소? 재풍이라도 맞으면 어쩌자고? 우린 치료비를 대지 못합구마.”
상진은 속으로 애비없이 자라서 수양도 없이 말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저 허구프게 웃기만 했다.
이튿날 상진은 지팽이를 버리고 경만이 싣걱질하는데 따라가서 벼단을 수레에 섬기겠다고 나섰다.
“에이구, 가시아버지, 온전히 걷지도 못하면서 어딜 온다고 그럽둥? 어디 상하면 치료비라도 내라면 어쩜둥?”
“다릴 상한 사위 일하는데 벼단이라도 섬겨줘야지.”
은숙도 말렸다.
“아버지, 집에서 구경이나 합소. 할만하면 엄마와 함께 돼지죽이나 끓여서 먹입소.”
“응, 그럼 그러지.”
경만은 욕심스레 성호네 소를 길렀던 우사에 굴암퇘지 10여마리나 치고 있었다.
딸과 사위가 수레를 몰고 떠나가자 늙은 량주는 사양실에 들어가서 커다란 가마에 돼지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영옥이 보드라운 벼겨랑 뜨물이랑 쏟아넣고 상진이 커다란 아궁이에 땔나무를 쑤셔넣고 불을 달자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씨뻘건 불길을 들여다보는 상진은 불시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시내에 있으면 영낙없이 화장터에 가서 불에 타 두번째 죽음을 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 따가워 어떻게 타겠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졌다.
“여보, 우리 고향 마을로 돌아오기요.”
영옥은 괴여올라오기 시작하는 돼지죽을 막대기로 훌훌 저으면서 말렸다.
“무슨 소리요? 막내아들며느리 얼마나 잘 대접하는데? 하루 삼시 돼지고기국에 생생한 남새를 먹으면 어째 배 부른 소릴 하오?”
상진은 탁탁 불찌가 튀면서 세차게 타오르는 시뻘건 불길을 불뚜지개로 뚜지며 계속 중얼거렸다.
“이 불길을 보오. 이 보다 더 센 휘발유불에 어떻게 따가와서 타죽겠소?”
영옥은 혀끝을 끌끌 찼다.
“에이구, 죽은게 타는지 따가운지 알 턱이 뭐요? 괜히 살았을 때 자꾸 타는 생각을 하지 말란 말이오. 쯧쯧쯧.”
“나는 죽어도 타지 못하겠소. 괜히 시내에 내려가서 타죽을게 있소. 시내는 화장하지 않으면 자식들 전도에 영향주게 되오. 우리 이 마을은 반산구니까 죽으면 태우지 않아도 된단 말이요.”
상진은 진작 오래동안 이 일을 궁리한 것 같았다.
“미리 돌아오기오. 괜히 막내아들과 며느리 전도를 그르치지 말고.”
영옥은 뜨끈뜨끈하게 끓은 돼지죽을 물초롱에 퍼담으면서 말했다.
“집이랑 사위한테 외상으로 다 팔아놓고 어디로 돌아온단 말이오? 엉치를 들여놓을 데나 있소?”
상진은 나무고챙이로 세차게 타는 장작을 이리저리 뚜져놓고 장작을 걷어넣으면서 말했다.
“사위도 반자식인데 돈 일전한푼 내지 않고 이 집에 들었으니 우리 돌아오겠다면 방 한칸이라도 내주겠지.”
영옥은 돼지죽을 뜨다 말고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안될 소릴 하지도 마오. 괜히 성질이 괴벽한 셋째사위와 말다툼이라도 생기겠소. 팔았으면 팔았지. 되찾으려니 하지도 마오.”
영옥은 돼지죽초롱을 들어 부뚜막에서 내리우면서 뒤말을 이었다.
“옛날 시아버지 항상 큰딸네 집으로 가서 버치랑 틀면서 얹혀 살 궁리를 하더니 심통하냥 하오. 그래도 아들을 믿고 살아야지 사위를 믿고 살겠소? 이제 막내아들집에서 나와 셋째딸집으로 나와 보오. 막내며느리 좋아하는가? 하루 삼시 생생한 남새채에 이밥을 대접받으면서 좋은줄 모르고 허망생각을 하지도 마오.”
상진은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사위도 반자식인데 믿어야지. 한 마을에서 20년이나 함께 산 때 묻은 사위 아니고 뭐요?”
영옥은 자기 생각이 따로 있었다.
“그런 소리 하지도 맙소. 몇해 전에 밭 반이랑 때문에 영상하게 생산대 대장을 데리고 가서 자대로 재고 그랬습둥? 그때 사위 뭐라고 합데? ‘이제부터 가시아버지고 개나발이고 다 모른다.’고 하지 않았소. 사위도 반자식이라지만 사위 믿고 산다는 게 말이나 되오? 마음씨 착하기로 법 없이 살 거 같던 넷째사위를 보오. 조강지처마저 죽이고 화냥년을 끼고 한국에 달아나자고 하지 않았소? 이 세월에 자기 난 아들딸이나 믿어야지. 사위들을 믿고 산다는 건 한지에 방아를 거는 격이요.”
상진은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시내에서 살면서 화장터에 가서 타고 싶지 않았고 고이 관에 들어가 부모가 묻힌 뒤산에 가서 묻히고 싶었다.
“송준은 말수가 적어서 속으로 무슨 궁리를 하는지 아무도 모르오. 공부까지 좀 한 놈일수록 더 교활하고 엉큼하지. 경만은 다르오. 투박한 농민이지만 솔직하오. 좋으면 좋고 나쁘면 나쁘다고 내놓고 솔직하게 떠들고 욕하지. 송준 같으면 그러겠소. 속으로는 죽어라고 욕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소. 그런 놈이 더 음험하고 교활하고 더 무섭소.”
상진은 말수가 적었다. 그런데 오늘처럼 말을 길게 하기는 처음이였다.
“개도 짖지 않는 개가 더 무섭지. 경만은 성질이 괴벽하고 거칠어 그렇지. 송준보다 로실하고 순박하오.”
늙은 량주는 한참 역사질해서 돼지죽을 끓여 둘이서 물초롱에 퍼담아 들고 간신히 돼지우리로 나갔다.
철러덩!
상진이 그만 돌부리에 걸려 허망 넘어졌다. 끓은 돼지죽이 넘어진 상진의 다리에 튀였다.
“에이구, 어디 데지 않았소? 좀 쉬라니까.”
상진은 손으로 땅바닥을 짚고 일어나면서 중얼거렸다.
“에이구, 옛날 해방전쟁 때 말이요. 기관총과 쌀짐에 이불짐까지 100여근씩이나 지고도 방공호를 훌쩍 뛰여넘어 돌격했는데. 허참, 힘이 싹 어디로 빠져나갔을가? 나이 정말 원쑤로구나.”
이때 경만과 은숙이 벼단을 산더미처럼 실은 소수레를 몰고 울 안에 들어섰다.
“일손이 많을줄 알았더라면 미리 벼를 많이 실어들여오는 건데.”
딸과 사위가 벼단을 부리워놓고 가자 령감과 로친은 돼지죽을 다 퍼주고나서 벼단을 무지기 시작했다.
령감이 벼단을 끌어다놓으면 로친이 허연 머리카락을 마가을바람에 흩날리면서 차곡차곡 벼낟가리에 무져놓았다.
흐리멍텅한 하늘에서 허연 눈송이들이 흩날려내렸다.
“에이구, 어쩜 딱 요때 눈이 내려?”
영옥이 벼단을 잽싸게 무지면서 눈송이 내리는 하늘을 원망했다.
상진은 벼단을 낱가리에 던져주면서 재촉했다.
“일손이나 다그치오!”
“원, 령감두, 항상 우물에 가서 숭늉을 달라 할 지경이오.”
“야따, 빨리 무지오. 온 한해 농사지은 거 몽땅 눈 밑에 넣겠소.”
벼수레를 몰고 돌아온 경만은 벼단을 무지는 가시부모를 보고 흐뭇해했다.
그때 외손녀들인 혜옥과 주옥이, 송옥이 줄줄이 들어섰다.
“야, 너네 할아버지를 도와 벼단을 날라라.”
“예~”
애들은 환성을 지르며 장난삼아 벼단을 날라왔다.
저 셋째딸 송옥을 보라. 언니네를 따라 제키만한 벼단을 끌어다 할아버지 손에 쥐워주느라고 입술을 옥물고 낑낑거렸다.
송옥은 경만이네 원래 아들을 낳자고 산아제한정책을 어겨 벌금으로 재봉침을 줘보내고 난 애였다. 그런데 낳고 보니 또 딸이여서 얼마나 실망했는지 몰랐다.
경만과 은숙은 늘 송옥을 두고 “아까운 재봉침과 바꿔온 애.”라고 롱담했다.
그때마다 송옥은 뾰로통해서 눈을 흘기면서 “내 그래 재봉침 값 밖에 안된단 말입니까? 이담 크면 꼭 재봉침을 사줄게.” 하고 엉뚱한 말로 웃기군 했다.
상진과 로친은 벼단을 한단한단 주어 낱가리에 보기 좋게 착착 무져놓았다. 흩날리는 눈을 무릎쓰고 키 넘는 벼낱가리에 올라가 흰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벼단을 무지는 령감로친의 정성어린 모습 참말 눈물겨웠다.
이튿날 오후에는 령감로친 덕분에 벼낱가리가 령감로친의 두 키는 넘어 올라갔다.
저녁에 영옥은 령감을 보고 타일렀다.
“여보, 당신은 이젠 낱가리에서 내려가오. 괜히 떨어져 상하면 어쩌오?"
“맞습니다. 할아버지, 내려오십시오. 우리 무지겠습니다.”
혜옥이 까만 쌍까풀눈으로 외할아버지를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말렸다.
“그래, 내려가지. 이젠 외손녀들 신세를 보게 됐구나.”
상진은 혜옥과 주옥의 부축을 받으면서 간신히 벼낟가리에서 내렸다.
주옥이 벼단을 부리우는 부모를 보고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엄마, 이게 뭐야? 칠순이 넘은 외할아버지를 부려먹다니? 두고 보십시오. 이담 우리도 크면 딱 엄마, 아빠 하던대로 하지 않는가?”
“이놈 가시나들이!”
경만은 퉁사발눈을 부라리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다 키워놓으니 배때 쑤셔나니? 이담 너넬 믿고 살 거 같니?”
“아들도 없어가지고 그래 누굴 믿고 살겠습니까? 흥!”
주옥이 빈정거리자 경만은 속이 써늘해 더 말하지 않았다.
그때 혜옥이 통장훈을 쳤다.
“진짜 딸이라고 업신여기지 맙소. 지금은 아버지 젊어서 힘이 있어 그렇지만 이제 늙어봅소. 외할아버지처럼 이 딸집 저 딸집 돌아다니면서 살지 않는가?”
주옥이 맞장구를 쳤다.
“아빠 외할아버지랑 잘 모셔야지. 우리 세 딸한테 모범을 잘 보여야죠.”
그때 어린 송옥이 뾰로통해 앵두입으로 종알거렸다.
“아버진 진짜 령점이야. 이전에 외할아버지와 밭 때문에 다 싸우지 않았어?”
“주둥이를 다물지 못해?!”
아버지가 퉁사발눈을 희번뜩이며 주먹을 쳐들자 애들은 “와야!” 하고 도망쳤다.
애들은 저만치 토성구석에까지 도망쳐서 배를 끌어안고 깔깔깔 웃었다.
상진과 영옥이 도와준 덕분에 경만과 은숙은 산더미 같던 벼낱가리를 며칠 사이에 몽땅 탈곡해버렸다.
산더미 같은 벼무지를 보는 늙은 량주의 가슴도 햇입쌀을 먹고 살 희망으로 부풀어올랐다.
그들은 딸과 사위를 도와 숱한 벼를 마대에 퍼담아 무져놓았다.
그런데 사위 경만이 글쎄 부모들의 식량마저 주지 않고 떼를 쓸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날 경만은 소수레를 몰고 시내로 쌀을 팔러 가면서 가시부모한테 무정하게 한마디 던졌다.
“올해 쌀값이 올라가서 원래 계획대로 쌀을 줄 게 없습구마. 정 쌀을 가져가겠으면 시장값만큼 우리 집에 거 삽소.”
“뭐라오?”
상진은 먹을 쌀마저 주지 않겠다고 하자 눈 앞이 캄캄해났다. 그는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더니 마루바닥에서 까무러쳐 허망 쓰러졌다.
영옥이 황급히 령감을 부축하면서 애타게 불렀다.
“여보! 여보! 아무렴 입을 가진 사람이 굶어죽겠소?”
은숙도 황망히 달려왔다.
“아버지!”
그녀는 아버지를 부축해 집 안에 모신고나서 나그네를 욕했다.
“저 미친 나그네, 어쩜 부모 보고 이럴 수 있소?”
경만도 물러서지 않았다.
“뭐라고? 그래 언젠 밭고랑 반이랑도 양보하지 않다가 우리 집에 영 얹혀 살 작정인가?”
그 광경을 본 주옥은 아버지를 나무랐다.
“아버지, 어째 외할아버지 잡술 쌀마저 주지 않습니까? 어디 두고 보십시오. 우리 이담 크면 딱 아버지 하던대로 하지 않는가.”
“뭐라니? 다 키워놓으니 배은망덕하겠느냐? 내 쩔뚝거려도 너네 신세에 사는가 봐라.”
혜옥도 무정한 아버지한테 눈을 흘겼다.
“늙은 다음에 잘 되는가 봐라!”
송옥은 더 천진란만하면서도 돌직구를 퍼부어댔다.
“아버진, 아들도 없는게 이담 봐라, 누가 모시는가?”
“이 개쌍년들이, 한번만 주둥이를 더 놀리기만 해봐라! 흥!”
애들은 “와-야-” 하고 소리치며 도망갔다.
걔들은 저쪽 담장 밑에 가서 아버지한테 입귀를 비쭉거렸다.
“개쌍년들이, 이담 너네 신세에 살 거 같애?”
경만은 코방귀를 뀌였다.
그는 가시아버지 쓰러졌건 말건 쌀수레를 몰고 처자들의 쌀쌀한 눈길을 받으면서 울타리 대문을 나섰다.
동네 개들이 경만을 보고 왕왕왕 짖어댔다.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 백호가 맏아들 정국을 데리고 달려왔다. 그들의 뒤로 맏며느리 명희가 수건을 벗어 쥐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아버지, 이게 웬 일입둥?”
그는 은숙을 돌아보았다.
“저 썩어질 나그네새끼, 어쩜 부모 잡술 쌀도 주지 않고 몽땅 팔겠다고 저러오? 아버지 화김에 그만…으흐흑, 흑흑흑.”
은숙이 울면서 말끝을 맺지 못했다.
백호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경만이 가버린 쪽을 내다보면서 욕했다.
“어쩜 부모 밭을 붙이면서 잡술 쌀도 주지 않다니?”
은숙은 손으로 눈물을 씃으면서 넉두리를 했다.
“글쎄 말이요. 사람새끼 인정머리 없이. 흐흐흑, 흑흑흑, 저게 제 명에 썩어지지 못할게. 남이라도 어찌 저럴 수 있소? 에이구, 저런 것두 사위라구 믿구 밭을 붙이게 한 게 잘못이지. 에이구, 원, 동네 망신스러워서 어떻게 살겠소?”
백호는 정국과 함께 아버지를 업어 따뜻한 가마목에 눕혔다.
“이러고 있을 때 아니야, 빨리 성호한테 알려서 아버지를 병원에 모셔가야 해.”
정국과 혜옥은 할아버지 다리와 손을 주물러주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윽고 흰눈이 푸실푸실 흩날리는 해질 무렵에 성호와 정희가 이모사촌처남 경철이 모는 자동차에 앉아 쏜살같이 달려왔다.
“아버지, 아니, 펀펀하던 아버지 웬 일이요?”
성호는 은숙한테서 자초지종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안해와 함께 아버지를 자동차에 모셨다.
“나도 가겠다.”
영옥이 따라나섰다.
성호는 “어머니 여기 있습소.” 하고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무정한 매형네 집에 어머니를 두고 간다는 것은 말도 아니였다.
자동차는 상진을 싣고 시내로 쏜살같이 달렸다.
인사불성이 된 상진은 막내아들의 품에 안겨 고요히 잠들었다. 간혹 한숨을 길게 내쉬기도 하고 코를 드렁드렁 곯기도 하였다.
성호는 한평생 고생한 아버지가 불쌍했다.
한편 매형 경만이 야속했다. 사위도 반자식이라고 앓는 몸으로 탈곡을 돕느라고 했건만 어찌 쌀 한근도 주지 않는단 말인가?
성호는 동네 망신스러워서, 집 안 허물이 날가봐 한마디 원망도 하지 않고 울컥거리는 마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그는 이 시각에도 매형의 좋은 점만 생각하고 나쁜 건 떠올리지 말면서 형제간의 화목을 극력 유지하려고 모지름을 썼다.
그랬다. 경만은 막내처남인 성호가 학교에 가서 다른 애들한테 맞으면 항상 팔을 걷고 나서서 역성을 들어주었다. 집에서 기르는 소 고삐가 자꾸 끊어나서 성호가 찾아갔을 때도 매형은 낮잠도 자지 않고 코뚤레에 가죽고삐를 동여매주었다. 가시집이 길림 교외에 이사가서 성호가 한족학교를 다니기 어려워 조선족학교를 다니고 싶어할 때도 경만은 두말없이 나오라고 해서 자기 집에서 공부시켰다.
성호는 지금도 기억났다. 매형이 소수레를 몰고 15리나 떨어진 역에까지 마중나와서 성호의 이불짐이랑 싣고 자기 집으로 데려가던 일로, 면도칼날로 백로지를 쪽쪽 베여 필기장을 매주던 일로, 쌀고생을 그렇게 하면서도 청수수를 베여 방아에 찧어 밥을 지먹으면서도 성호한테 이밥을 지어먹이면서 공부시키던 일로 눈 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성호가 학과목마다 100점을 맞은 시험지를 가지고 집으로 달려오면 매형과 누나가 기뻐하던 일로, 매형과 셋째누나의 사랑을 한껏 받던 일들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런 내막을 다 알지 못한 정희의 생각은 달랐다.
재풍을 맞은 시아버지를 입원시켜놓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도도거렸다.
“어쩜 그렇게 무정합니까? 나어린 막내처남한테 가시부모를 맡겨놓고서 쌀마저 주지 않다니? 어디 사람이 할 짓입니까?”
성호는 어머니가 오시러워 할가봐 정희 팔을 잡아당겨 침대에 앉혀놓더니 입가에 식지를 댔다.
“쉿-”
그는 뒤방을 가리켰다.
정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계속 떠들어댔다.
“동무 그렇게 무골충인줄은 몰랐습니다. 어째 매형을 속시원히 툭 쏴주지 못합니까?”
성호는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자존심을 작작 건드리오.”
정희도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집에서는 우쭐렁거리고 어째 매형과는 ‘쌀을 달라.’고 한마디도 짯짯이 하지 못합니까? 매형이 그렇게 무섭습니까? 부모를 모셔왔는데 명년엔 뭘 먹고 산단 말인가요? 참 코 막고 답답해요.”
“됐소, 됐어. 그래 매형과 주먹다짐이라도 해야 한단 말이오? 아무리 그럼 오늘 이 세상에서 우리 다섯식구 입가지고 굶어죽겠소? 배급이 모자라면 쌀을 고가로 사먹으면 되지.”
성호는 뒤방에 엄마도 있고 하나도 공부하는지라 그만두었다.
정희는 뾰로통해서 두덜거렸다.
“좋은 제 땅을 붙이게 하고서도 가을에 쌀도 받아오지 못하고 이게 뭔가요? 아무리 형제간이라도 그렇지. 마을에 내놓고 시비해도 어디 그런 법이 있어요?”
“알았소. 동네 망신스럽게 떠들지 마오. 웃마을에 큰형님도 있으니까. 타당하게 처리하겠지. 새 해에는 먹을 쌀을 주겠는지 안주겠는지 계약을 똑똑히 맺고 밭을 주지. 안되면 다른 사람한테 주면 되지.”
성호는 정희의 손을 잡고 당부했다.
“절대 이 일로 형제간에 이 벌어져선 안되오. 꾹 참고 나서지 마오. 엄마 항상 말하지 않았소? 남이 밑지게 하는 거보다 내 밑지는 게 낫소.”
정희는 실망한 눈길로 성호를 바라보았다.
“항상 밑진 노릇만 하세요. 동물 믿고 어떻게 애 둘을 기르겠는가 걱정돼요.”
성호는 눈이 데꾼해졌다.
“무슨 소리요?”
정희도 정색했다.
“보세요. 그 좋은 벽돌집과 소사양장까지 팔데 없어 그랬는가요? 인정, 사정도 없는 매형한테 눅거리로 팔았죠. 그것도 외상으로 팔다니요? 농기구를 몽땅 무상으로 밀어주다니요? 아무리 형제간이라도 그렇지. 옛날부터 부모형제간에도 돈은 세여 주고 세여 받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남을 주기는 쉬워도 찾기는 힘들죠.”
성호는 기분이 상했지만 꾹 참았다.
“됐소. 됐다는데. 형제간도 그렇고. 세상 사람들한테 좀 밑진다 하면 좋소. 어째 계속 이러오? 뒤방에서 한나가 공부하오.”
정희는 말문이 터지자 걷잡지 못했다.
“이제 후회해도 어쩌는가요? 부모는 자꾸 농촌으로 되돌아가겠다는데요. 아버진 이 막내며느리 효성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그러는지. 아니면 며느리보다 딸이 더 좋은지 자꾸 딸집으로 가겠다고 하지 않아요? 이제까지 난 그래도 시부모를 잘 모시느라고 노력할만큼 노력했어요. 정말 섭섭해요. 이래서 모두 시집식구들이 싫어서 ‘시’자 들어간 시금치마저 사먹지 않는다고들 하죠?”
성호는 억이 막혔지만 눈물을 줄줄 흘리는 정희를 보기 안쓰러워 와락 끌어안더니 손으로 볼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닦아주었다.
“진짜 시부모를 잘 모시자고 해도 막내아들며느리 마음을 리해하고 우리 말을 좀 들어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요? 기실 부모를 모시는 사람이 고생은 하고 허물만 나기 마련이죠.”
정희는 너무나도 섭섭해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울었다.
성호는 꼭 끌어안고 뽀뽀까지 해주면서 구슬렸다.
“정희, 제 고생한 걸 내 알아주면 됐잖소?”
“픽, 빈 말뿐이지. 이날 이때까지 해준 게 뭔가요? 숱한 시누이들이나 시형들이 어디 꼬물만치나 알아줬는가요?”
정희는 진짜 이날 이때까지 하지 못한 섭섭함을 다 털어놓을 예산인 것 같았다.
“시누이들이나 시형들이나 부모를 모셔본 사람이 몇이 되는가요? 큰시형과 큰형님은 그래도 큰아버지를 모셨으니까 리해하겠지만요. 쭉 훑어보세요. 큰누나로부터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누나까지. 어느 누나 시집살이를 해보았는가요? 시부모를 모셔보지 못한 누나들은 시집살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가를 래해하지 못해요. 그저 일년에 설이나 생일에 한두번 뭘 사가지고 와서 주고 갔지. 언제 한두달이라도 부모를 모시고 있어본 적이 있는가요? 우리 아무리 잘해도 허물만 났지. 잘했다고 할 거 같은가요?”
“내 다 알고 있소. 밤이 깊어가는데 병원에 가봐야겠소.”
“어째 내 말이 듣기 싫은가요?”
“아니, 날 내놓고 누구와 하소연할 사람이 어디 있소? 내 리해하니까. 이만하기요.”
성호는 바깥으로 나가면서 정희의 복숭아이마에 뻑 하고 키스를 해주었다.
“보기 싫어. 세살 먹은 어린앤가?”
정희가 몸을 탈면서 떼를 쓸 때다.
한나가 숙제책을 들고 들어오다가 손벽을 치면서 새된 소리를 쳤다.
“아, 웃으워라. 아빠, 엄마 뽀뽀하더라.”
한나는 뒤방을 향해 소리쳤다.
“할머니, 와서 구경하쇼. 아빠하구 엄마 뽀뽀 하면서 논다.”
정희는 그제야 한나를 끌어안고 해시시 웃었다.
“야, 못 쓴다. 못 써. 떠들지 말라.”
성호는 바깥에 나와 눈가루가 흩날리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였다.
고향 마을 경만이네 집에서는 백호와 경만이 맞상을 하고 앉아 한창 애꿎은 술만 꿀꺽꿀꺽 마시고 있었다.
술이 서너순배 돌자 백호가 무거운 입에서 빗장을 훌 뽑았다.
“매부, 올해 농사를 짓느라고 고생했소. 그런데 양, 그게 뭐요?”
경만은 그 말귀를 알아듣지 못할 사람이 아니였다.
“양, 부모네 먹을 쌀줄게 한근도 없소.”
경만은 투박하게 한마디 툭 내쏘아싿.
백호는 성이 꼭두까지 울컥 치멀었지만 가까스로 참으면서 따지고 들었다.
“그것두 말이라고 하오? 그래 부모 밭을 붙여 산더미 같은 벼를 쌓아두고서도 부모가 잡술 쌀도 주지 않을 작정인가? 그저 달라는 것두 아니구. 밭을 붙힌 값으로 달라는 건데.”
경만은 술잔을 굽내더니 의연히 외고집을 부렸다.
“년초하구 정황이 판판 다르오. 지금 장마당에서 쌀 한근에 얼마나 하는지 아오? 년초보다 30전이나 올랐소. 부모네를 줄 쌀 700근이면 210원이나 나드오. 송아지 한마리 나드는데 정신있소?”
백호는 너무 억이 막혀 술잔을 내려놓았다.
“경만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늙은이들이 잡술 쌀이야 줘야지. 그럼 웃돈을 주면 안되오?”
경만은 제쪽에서 억울한듯이 두덜거렸다.
“작작 삐치오. 가시부모한테서 웃돈을 받았다면 동네 사람들이 뭐라겠소?”
백호는 직통배기를 날렸다.
“매부, 정말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구만. 어째 가시부모 잡술 쌀을 주지 않으면 동네에서 웃는 건 모르오? 양? 한사코 쌀을 주지 않겠다고 우기오?”
경만은 천정이 날아갈듯이 떠들었다.
“아니, 지주라도 그런 지주 어디 있소? 온 한해 고생스레 농사를 지어놓으니 어째 한사코 쌀을 달라고 하오? 양? 진짜 시끄러워 못 살겠다.”
“시끄럽다고? 동네 나가 시비해보오. 매부 옳다는가?”
“옳으면 어쩌고 틀리면 어째? 내 주지 않으면 다요. 이전에 가시아버지 그게 뭐요? 밭고랑 반이랑 때문에 허대장을 데리고 가서 자대로 쟁기면서 생야단치지 않았는가? 얼마나 챙피했는지? 이젠 가시아버지고 뭐고 다 모른다, 몰라. 다신 쌀말을 입 밖에 내지도 마오.”
백호는 더 참지 못하고 밥상을 꽝 치며 고함쳤다.
“야, 너도 사람새끼야?! 새 해부터 우리 부모 밭을 붙일 거 같니? 이 집이랑 몽땅 내놔라. 너 같은 개새끼한테 외상으로 줄게 없다. 우리 부모 집이니까. 래일 당장 내놓고 나가라!”
경만은 술잔을 구들에 탕 팽개치면서 버럭 고함쳤다.
“뭐라고?! 가라는 소리 죽으라는 소리보다 더 하다구. 누굴 감히 나가라는가?! 어째 맞고 싶은가?!”
백호도 물러서지 않고 고함쳤다.
“호로자식, 어디서 덜 돼먹은 개짓 해?!”
경만은 벌떡 일어나 백호의 멱살을 거머쥐고 주먹을 날렸다.
“야, 어째 이러오? 이상오빠한테 주먹질인가? 동네 영상하게!”
은숙이 황급히 일어나 경만의 팔에 매달려 멱살을 쥔 손을 풀려고 했다.
“물러나지 못해?!”
경만은 은숙을 활 밀어버리고 주먹을 날렸다.
백호도 날아드는 주먹을 피하면서 발로 경만의 쩔뚝거리는 오른다리를 걷어찼다. 경만은 저만치 뿌리워나가 쓰러졌다.
경만은 다리는 절어도 팔힘만은 셌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백호의 허리를 안고 허망 쓰러뜨렸다. 백호는 구들에 누운 채 경만의 다리를 잡아당겨 넘어뜨렸다. 그들 둘은 구들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구을며 한참 싸웠다.
애들이 놀라 울며 소리쳤다.
“아버지!”
“엄마!”
아녀자 은숙의 힘으로는 호랑이들처럼 으르릉거리며 싸우는 그들을 뜯어말릴 수 없었다.
그때 백호의 맏아들 일복과 둘째아들 정국이 뛰여들어왔다.
그들 둘은 엉켜붙어 구들에서 한창 뒹구는 아버지와 고모부를 뜯어말렸다.
“야, 동네 영상해 못살겠소.”
은숙의 말에 경만은 버럭 고함쳤다.
“나가! 애비 역성을 들겠으면 나가!”
일복과 정국은 아버지를 말려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백호는 집으로 가면서도 경만한테 손삿대질을 했다.
“너네 쌀을 주지 않으면 우리 부모 잡술 쌀이 없을 거 같니? 명년에 밭을 붙히은가 봐라. 당장 이 집을 내라. 이건 부모 집이야!”
경만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 집에 불을 콱 지르지 않는가 봐라. 낼 거 같은가!”
백호는 떠나가면서도 고함쳤다.
“어디 감옥에 가고 싶으면 그래 봐라! 쌍놈의 호로자식! 애비 없이 자란게 어디서 덜돼먹은 개새끼!”
그 소리는 경만의 제일 아픈 상처를 찔렀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렵게 자랐던 것이다.
경만은 부엌에 씽 달려가더니 시퍼런 식칼을 주어들고 쩔뚝거리면서 백호한테로 덮쳐갔다.
다행히 일복과 정국이 달려들어 식칼을 빼앗아내고 구들에 물앉혀놓았다…
며칠 후 병원에서 상진은 아들며느리의 살뜰한 보살핌 속에서 점차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눈을 천천히 뜨고 천정을 쳐다보더니 첫마디에 이렇게 외웠다.
“사위도 반자식인데 어쩜…”
상진은 뒷말을 잇지 못하고 밭고랑처럼 파인 얼굴 주름살에 씁쓸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 처량한 모습을 본 성호는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아 눈물을 펑펑 쏟았다. 영옥도 령감이 불쌍해 외면해 어깨를 들먹이면서 저고리고름으로 눈물을 닦았다.
“내 뭐라고 합데? 사위를 믿고 여길가 저길가 하지 말고 막내아들며느리를 믿고 가만 있자는데두.”
시어머니 말에 감동을 먹은 정희는 구석에 돌아서서 손수 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어깨를 가늘게 들먹였다.
저자 주: 저의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이 출판된 후 수많은 애독자들이 연길시 신화서점 2층에 가서 사갔는가 하면 저의 위쳇에 책값 120원에 우편료 20원까지 보내 책을 택배로 받아 보고 있습니다. 택배구독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위쳇번호는 핸드폰번호 13844352157입니다.
저 은행계좌:우정은행카드 6217 9824 0000 0003 408 金长赫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