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위기와 기회
찜통더위는 서서히 꼬리를 감추었다. 어느덧 시원한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불어오더니 산과 들이 누르스름하게 번져져 갔다. 저쪽에서 누런 잎이 벌써 락엽으로 우스스 지려고 팔짱을 끼고서 기다리고 있다.
가을하늘은 높고 푸르렀지만 광고회사의 사무실은 성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비좁게 느껴졌고 갑갑해나기만 했다.
굉팔은 품 속에서 칼을 뽑아들고 본격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거의 이틀이 멀다하게 회의를 열고 승호와 성호의 흠집을 들춰내 호되게 질책했다.
이날 아침에 또 시작했다.
“우리 회사는 광고회사지 정치회사 아니야. 정치를 하겠으면 기관으로 가라구.”
승호는 또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몸을 옹송그리고 굉팔을 쳐다보았다.
“어떤 동무들은 계속 묵은 그루에서 이밥 먹던 소릴 한단 말이유. 깨그루에 앉은 참새들처럼 주둥이만 까져서 입방아만 찧어대고 광고는 꼬물만치도 가져오지 못해. 광고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광고회사에서 나갈 준비를 해야지. 안 그래?”
굉팔은 우멍눈으로 힐끔 승호를 훔쳐보았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승호를 보고 속이 더 부글부글 괴번져졌다.
“어떤 치들은 광고회사를 전혀 책임지지 않는단 말이야. 뭔가? 백화상점 돈을 만원이나 훔친 도적년 그리 좋은가? 우리 회사 출납원을 도적년을 앉혀야 하는가? 말이나 돼?”
승호는 듣다못해 한마디 툭 내쏘았다.
“자꾸 빗대고 욕하지 마십시오. 그때 해연이 나오지 못해 소개한 건데. 왜 큰 꼬리나 밟은 것처럼 아침부터 재수없이 빈정거립니까.”
“뭐라고?”
“어쨌다고 날마다 야단칩니까?”
잔뜩 열이 오른 굉팔은 우멍눈 흰자위가 튀여나올듯이 부라리면서 실돌피처럼 가는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세우며 버럭 고함쳤다.
“듣기 싫으면 광고회사에서 나가란 말이야!”
“어디 쫓아보지.”
승호가 눈을 뚝 부릅뜨자 굉팔은 억지로 샐쭉 웃어보이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어디 쫓으려는 거요? 광고회사를 좀 잘 꾸리자는 건데.”
그는 승호와 성호의 눈길이 곱지 못한것을 보고 얼른 화제를 슬쩍 바꿨다.
“아래에 김경리 맡았던 광고를 나눠주겠네. 김경리 광고를 대부분 해연이 맡아야겠어. 출납이 내근만 해서야 몇푼 벌겠나? 우리 남자들이 바깥에 나가 더 뛰여다니더라도 하나 밖에 없는 녀자를 배려합세.”
진희는 슬그머니 질투에 찬 눈길로 해연을 쏘아보았다.
그러건말건 굉팔은 뒤말을 이었다.
“약방광고는 내 맡아해야겠네.”
“동의해요.”
이번에는 해연이 맞장구를 쳤다.
승호와 성호는 년놈들이 부르고 쓰고 하는 꼴이 보기 싫어 묵묵부답이였다.
“어째 아무 말도 없어?”
“마음대로 해보십시오.”
성호가 선뜻이 대답하자 승호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좋소.”
굉팔은 소학생들한테나 강의하듯이 이른바 “인생철학”을 퍼붓기 시작했다.
“사람이란 사심이 조금씩 있기 마련이야. 장차 너희들 가운데 누가 경리를 해도 경리체면은 세워야 하잖겠어? 에헴, 에헴.”
(개자식, 자기 능력으로 광고수입을 올릴게지. 김경리를 밀어내고 광고를 몽땅 빼앗아내?)
그때 굉팔은 계속 내리먹였다.
“성호는 농민의 아들과는 달리 술공장이랑 다니기 좋아하더구만. 전문 공장 제품광고만 맡게나. 누구나 이제부터 내 맡은 병원에 광고하러 다니지 말게나. 건 내 발등을 밟는 거야. 누가 병원에 얼씬거리기만 해봐. 그 놈의 대갈통을 까벌테야.”
그는 우멍눈으로 휘 둘러보았다.
굉팔은 뒤말을 이었다.
“승호는 백화상점의 광고를 맡게나.”
성호는 억이 막혔다. 절대 물러설 수 없었다.
“아니, 백화상점 광고는 내 개척한 건데 말도 안됩니다. 행정권력으로 마구 나누는 건 합리하지 않습니다.”
분명 승호와 성호를 리간을 놓으려는 더러운 수작이였다.
승호도 맞장구를 쳤다.
“성호 말에 도리 있습니다. 성호 하던 광고를 빼앗아서야 됩니까?”
꽝!
굉팔은 주먹으로 사무상을 꽝 내리치더니 벌떡 일어났다.
“무슨 허튼 소리야?! 총경리 하라는대로 하라구!”
성호는 굉팔과 더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저런 꼴 보기 싫어 산골에서 소궁둥이를 쳤는데. 재수 없어 어디 시내에서 살겠니?)
그는 김범수 경리를 보호하려고 나섰다가 보호하지도 못하고 위기감이 빈대처럼 스믈스믈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이래서 나처럼 현실과 정치를 외면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벌을 받는다고 하는 건가? 안되겠어. 광고회사만 믿고 어디 살겠니?)
성호는 저물어가는 흐리멍텅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버지 병치료는 뭘로 하는가? 소를 길러서 번 돈은 거덜나지 않았는가? 나머지 소 대여섯마리를 팔아서야 아버지 치료비 대기도 어렵잖은가. 언제 정희 요구대로 널직한 아빠트를 사고 아들을 봐?)
그는 주먹으로 강가에 서있는 버드나무를 꽝 쳤다.
(안돼, 굉팔한테 운명을 맡길 순 없어. 택시업이라도 해야지. 그런데 밑천이 있어야 아무거나 해보지.)
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누나네와 형님네를 쭉 훑어보아도 돈을 선대해줄만한 집은 하나도 없었다. 큰형님네는 이제 겨우 맏아들을 장가보내고 갓 살림집을 갖춰줬는데 무슨 돈이 있겠는가. 둘째누나네도 갓장가를 간 맏아들 살림집도 마련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외조카 정춘은 할빈공대 연구생원을 졸업하고 기어이 교수로 되는 길을 버리고 화동지구 한 한국기업 인사과에 취직했다.
정춘은 마음씨 착해 어려서부터 어려운 친구들을 잘 동정하고 도와주었다. 그는 할빈과학기술대학에서 공부할 때 한 한족동창생이 늘 우울해있는 것을 보고 조용히 찾아 속심을 나눴다. 알고보니 그 한족동창생은 한 학급의 녀동창생을 짝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처녀애를 사모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정춘은 평생 처음으로 한족동창생 대신 련애편지를 써주었다. 그런데 한족동창생은 련애편지마저 건넬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정춘은 별수 없이 직접 그 녀동창생한테 련애편지를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의 정성과는 달리 련애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자 정춘은 한족동창생을 데리고 대련에 유람하러 가서 “이담 꼭 더 좋은 처녀한테 장가들수 있다.”고 위안해주기까지 했다.
정춘은 낮에 밤을 이어 사업에만 열중하다나니 련애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자기를 따라 남하한 김미옥이란 처녀는 끝내 온다간다는 말도 없이 집으로 가버렸다. 돌아오라고 아무리 편지를 띄우고 전화를 쳐도 소식이 없었다.
(에이, 아마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없는가봐.)
그는 모진 마음을 먹고 한 인사과에 다니는 당지 한족처녀와 결혼하였다.
정춘의 결혼식에 성호와 정희는 귀빈석에 앉았다.
예로부터 소주와 항주에 미인이 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결혼 첫날에 외조카의 항주색시는 진짜 남방의 미녀였다.
부드러운 남방어조로 “외삼촌”, “외삼촌” 하며 어찌나 귀엽게 노는지 한족각시라도 얼마나 귀여운지 몰랐다…
누나들 중에서 그래도 넷째누나 봉금이 형편이 낫아보였다. 넷째매형 송준은 원래 중학교 체육과 생물 교편을 잡았다. 그는 과외시간에 기공과 침구를 익혀가지고 교편을 버리고 막내처남인 성호를 믿고 이 시내에 와서 의사질을 했다. 성호가 간판광고로 널리 선전해 환자를 끌어오고 송준이 침구와 기공안마를 결합해 경추병과 요추간판탈출에 지어 내과병까지 잘 치료한 덕에 한달에 3천원 내지 4천원씩 벌었다.
한번은 성호가 배구를 치다가 허리를 상해 침대에 들어누워 일어나지도 못했다. 심지어 누운 자리에서 돌아눕지도 못해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다. 그때 정희는 대소변을 받아내며 절망에 빠져 눈물을 흘렸고 가시어머니마저 몰래 딸의 신세가 가여워 눈물을 훔쳤다.
(중풍을 맞은 시아버지에 젊은 신랑까지 쓰러지면 딸이 고생할게 아닌가?)
그때 송준이 신통력을 발휘해 성호의 허리뼈를 맞춰넣은 후 허리에 부황을 댄다, 뜸을 뜬다, 기공안마를 한다하면서 사흘이나 치료해주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성호는 기적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절로 변소출입을 할 수 있게 됐다. 송준이 정성을 들여 한 일주일 치료하자 성호는 일어나 바깥출입까지 할 수 있었다.
성호는 넷째매형의 신세를 너무 많이 져서 손을 내밀기 구차했다. 황차 넷째누나네는 남개대학에 간 영희와 북경대학에 간 근봉의 뒤바라지를 하느라고 여간 힘들지 않았다.
넷째누나는 마음씨 착했지만 운명이 기구하기도 했다. 큰아들애 길봉은 9살 때 늪에 가서 목욕하다가 다른 애와 함께 빠져 불행히 죽었다. 사실 농민들이 겨우내 그 늪 밑바닥의 부식토를 곡괭이로 꺼 밭에 내다나니 여기 저기 깊은 웅덩이 함정처럼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글너데 애들은 늪가의 물이 얕은 것 같자 한발한발 더 들어가다가 물웅덩이에 허망 빠져 헤여나오지 못했다.
“야, 길봉이 죽느라고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니?”
영옥은 항상 외손자를 외우면서 주름진 볼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군 했다.
다 큰 애를 잃은 부모의 고통이야 오죽했으랴.
큰애를 잃은 넷째누나는 영희와 근봉이 오누이를 끔찍이 사랑했다. 토요일에 오누이 시내에서 집에 돌아올 때면 맛나는 음식을 해놓고 문 밖에 나서서 기다렸다. 눈보라가 치는 해질 녘에 애들이 언 논밭의 땅거미를 밟으면서 돌아오는 것이 눈에 뜨이면 마구 뛰여갔다.
그녀는 애들을 얼싸 안고 “얼마나 추웠니?” 하고 얼굴을 두 손바닥으로 감싸쥐고 녹여주군 했다. 그 모성애야 말로 천하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이었다.
성호는 누님네 귀여운 자식들 대학공부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
어느날 성호가 퇴근해 집에 돌아와 웃방을 보니 아버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와 물어보니 아버지는 병문안하러 온 넷째딸과 함께 갔다고 하지 않겠는가.
상진은 성호 허리병을 치료하는 것을 보고 넷째사위가 꽤나 용하다는 것을 알고 치료받고 싶었던 것이다. 황차 송준은 여섯 사위들 가운데서 마음씨 제일 착하다고 은근히 믿고 찾아갔다.
송준은 이불짐까지 가지고 온 가시아버지를 보자 생각 밖으로 인사마저 하지 않고 훌 나가버리지 않겠는가.
(아, 오늘 병원에 환자가 많아 그러겠지.)
그러나 사흘이 지나가도 송준은 퇴근해서도 병문안 한마디 하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의연히 병원에 나가 기공이나 련습하다가 밤중에야 돌아와 전등불을 절컥 꺼버리고 잠자리에 들군 했다.
봉금이 보다못해 “아버지를 좀 치료해주오.” 하고 사정해보았다.
그제야 송준은 마지못해 상진한테 침을 몇대 꽂아주었다. 그래도 상진은 중풍이 인차 나을 것만 같아 마음에 흡족했다. 그만큼 사위의 착한 마음과 의술을 믿었다.
어느날 성호가 찾아가자 그는 조용히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병원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는 철색얼굴에 아주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무거운 입을 뗐다.
“성호, 저도 알겠지만 우린 애들 둘을 대학공부 시키느라고 집도 없어 세집살이를 하네. 우린 아버지를 모시지 못하겠어. 부모는 아들이 모시는 법이지. 어디 출가집 외인이 모시는 법인가?”
성호는 단통 억이 막혔다.
“매형, 사실 부모를 모시는데 무슨 아들이고 딸이고 따질게 있소? 그래 딸은 우리 엄마 배아프게 낳은 자식이 아니오?”
“글쎄 누나들 가운데서도 둘째누나네 젤 낫소. 부부간이 다 대학졸업생이지 국가 로임 타잖소? 이젠 애들도 다 대학을 졸업했지. 우리보단 훨씬 형편이 낫지 않고 뭐요?”
성호는 코웃음쳤다.
“매형, 부모 때문에 근심하지 마오. 래일 굶어죽더라도 내 부모를 책임질테니.”
송준은 아버지가 이불짐까지 가지고 찾아가자 이젠 이 집에서 모시라는가고 오해했다.
송준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성호의 두 손을 굳게 잡았다.
“알았어. 처남은 불효자식이 아니야.”
그날부터 송준은 시름놓고 가시아버지 병치료를 착실히 해주었다.
상진의 병은 한달도 안돼 눈에 뜨이게 호전돼 이젠 지팽이를 버리고 쉬염쉬염 걸어다닐 수 있게 됐다.
성호와 형제들은 송준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랐다.
그때 막내누나 성숙한테서 편지가 날아왔다. 사연인 즉 가을철이 됐는데 벼가을을 좀 도와줄 수 없는가는 사연이였다.
…얘, 성호야, 지금 한시 급하다. 너도 알겠지만 우리 발해 입쌀은 청나라 때부터 황제가 먹던 쌀이 돼서 다른 쌀값의 두배나 한다. 하루라도 빨리 가을해서 남보다 일찍이 입쌀을 팔면 한근에 2원씩 받을 수 있다. 네가 사업이 바쁜 거 알면서도 렴치없이 손을 내밀어야 되겠구나. 인차 와서 가을을 도와줄 수 없니? 올해만 부탁하자. 명년에는 매형이 한국에 나갈 궁리하는데 농사를 지을 거 같지 않구나…
편지를 보고 성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이전에도 성호는 막내누나네 새 집을 짓고 수리할 때 동경성에 가서 매형을 도와 벽도 발라주고 구들도 놓아주었다. 그때 매형 명선은 성호의 매질솜씨를 몰랐기에 성호를 보고 앞에서 흙칼질을 하게 하고 자기는 뒤에서 재흙칼질을 했다.
성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함께 집의 벽을 발랐기에 흙칼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흙칼로 터덜터덜한 벽을 쓱쓱 긁어버리고 모래와 흙을 섞어 이겨서 척척 벽에 붙여놓고 썩썩 반듯하게 발랐다.
명선은 아예 흙칼을 버리고 흙을 떠주며 성호의 시중을 들었다. 하여 성호는 혼자 전담해 백평방메터도 더 되는 농촌 살림집 벽을 다 발랐다. 그때부터 명선은 성호가 비록 대학물을 먹은 선비였지만 그의 일솜씨만은 믿게 됐다.
성호는 낫을 놓은지 한 10여년 됐지만 막내누나가 고양이 손도 빌어쓸 지경인 것을 보고 백사를 불구하고 기차를 타고 동경성으로 달려갔다.
명선과 성숙은 진짜 감농군이였다. 벌써 동녘하늘이 푸름해서 일어나 밥을 지어 먹고 낫과 도시락을 둘러메고 논밭에 나갔다. 성호는 먼 길을 기차를 타고 달려가서 곤한대로 낫을 쥐고 뒤따라나갔다.
황금나락이 넘실거리는 무연한 논벌이 희붐히 밝아오는 해빛을 받으며 아득하게 누워 있었다. 낫을 쥐고 앞을 바라보기만 해도 아득했다.
(언제 저 앞까지 벨가?)
성호는 한숨을 후~ 길게 내쉬면서 허리를 굽혀 뚱뚱한 배를 내리누르며 부지런히 낫을 놀렸다. 허리를 굽히고 가을할 때 뚱뚱한 배가 눌리워 밸이 당장 목구멍으로 울컥 나올 것만 같아 한시간도 견디기 힘들었다. 한시급히 쉼시간이 돼서 논바닥에 물앉고 들눕고 싶었다.
그때 봉금도 가을을 방조하러 갔다. 그 허약한 몸으로 입술이 다 새파랗게 질려도 이를 꼭 옥물고 가을걷이를 견지해나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쉼이 되자 성호와 봉금은 낫을 훌 쥐어뿌리고 베놓은 벼 우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맑고 드높은 가을 하늘에서 흘러가는 하얀 솜뭉치 같은 구름을 바라보니 서글프기만 했다.
(언제면 가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가?)
그는 모로 돌아누워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논밭을 바라보다가 피뜩 엉뚱한 궁리가 떠올랐다.
(막내누나네 쌀을 판 돈을 꿔서 택시를 사면 어떨까?)
그는 벌떡 일어나 매형한테 머리를 돌렸다.
“매형네 밭이 몇헥타르 되오?”
매형은 숫돌에 낫을 썩썩 갈다가 손가락으로 낫날을 쓱쓱 문질러보며 대답했다.
“두헥타르 밖에 안되오.”
“한헥타르에 쌀이 얼마나 나오?”
“만근이야 나겠지.”
“올해 입쌀 한근에 2원씩 팔 수 있소?”
“오, 그래.”
“매형네는 돈낟가리에 앉겠구만.”
“에이구, 지금 한국에 나갈 수속비를 한 3만원 내야 하오. 재촉이 성화 같아서 죽겠소.”
쉼이라야 낫을 네자루 가는 새다.
성호는 매형네 돈도 희망이 없는 것 같아 맥이 풀렸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해질 녘까지 가을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다. 명선은 소를 풀러 강가로 갔다. 봉금은 소변을 보러 강냉이밭으로 들어가고 옆에 없었다.
그 틈에 성호는 성숙한테 넌지시 말을 꺼내보았다.
“햇쌀을 팔면 한 4만원 꿔줄 수 있소?”
성숙이 대답하기도 전에 “국가리자만큼 줄게.” 하고 덧붙였다.
“뭘 하려고?”
성숙은 저으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택시업을 할가 해서 그러오.”
“택시업을?”
“양, 어디 광고회사에만 출근해서야 살겠소? 아버지 치료비도 벌어야지, 널직한 집을 갖춰야 아들도 보지.”
성숙은 한참 궁리하다가 진심어린 대답을 했다.
“글쎄 택시라도 해서 돈을 벌면 얼마나 좋겠니? 저 매형이 한국에 나가지 말고 농사를 지었으면 좋겠는데 한국 바람에 진짜 혼을 싹 빼앗겼다. 미치겠어, 미쳐.”
성호도 맞장구를 쳤다.
“한국에 나가 뭘 하오? 수속비를 3만원이나 내고 한국에 가서 몇푼 벌겠다고. 여기서 농사만 잘 지어도 한해에 4만원은 벌겠구만.”
성숙은 봉금을 부축해 질척질척한 도랑을 건너면서 중얼거렸다.
“화학비료랑 산 거 떼고도 한 3만 5천원이야 벌지. 저 나그넨 한국 밖에 모른다. 손재간이 많아서 두루 목수질에 야장질하면 한 만원은 식은죽먹기로 벌 수 있다.”
“그럼 한국에 가서 뭘 한다오?”
“몰라. 한국에 가면 덕대 우의 돈을 내리울 것처럼 고집을 쓴다. 저 나그넨 성질이 급하고 고집이 어떻게 센지 뭐나 딱 하자고 마음 딱 먹으면 벽이라도 차고 나가는 성질이야.”
그때 명선이 소를 몰고 어둠 속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정지에서 두 누나는 저녁밥을 짓느라고 분주히 서둘렀다.
성호는 뒤칸에 들어누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면서 어떻게 하면 막내누나네 돈을 꾸겠는가 궁리했다. 그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성호는 매형과 누나들과 함께 퍼런 벼단을 논드럼에 무져놓았다.
일요일에 외조카 경남과 경춘까지 돌아와서 벼를 실어다 학교 마당 탈곡장을 닦고 탈곡을 시작했다.
성호는 날마다 매형과 함께 근 100마대나 되는 벼를 정미소 마당에 날라다 펴서 말리우고 저녁이면 마대에 담아 무져놓았다.
“저녁에 벼를 마대에 담지 말고 그대로 모아놓으면 어떨가? 아무튼 래일 아침이면 또 마대 걸 쏟아 널어야겠는데.”
명선은 손재간은 있어도 핵산은 성숙을 따라가지 못했다.
“안 되오. 마대에 담아둬야 누가 가져갔는가 안 가져갔는가 알지.”
도적을 막으려고 날마다 백마대나 되는 벼를 담았다 쏟았다 하기란 실로 쉬운 일이 아니였다. 기실 마대에 담아 무져놓으면 도적이 도적질하기 더 쉽지 않겠는가.
성호는 너무 기막혀 말렸다.
“저녁에 여기서 자면서 지킬게.”
고집이 센 명선도 어쩌다 그 말에 도리 있는게 알리는지 더 고집을 쓰지 않았다.
며칠 후 싹 마른 벼를 정미소에서 찧게 됐다. 한국 정미기계는 그저 쏟아넣는대로 네벌 정미해서 곧추 하얀 입쌀로 쏟아져나왔다.
성호는 부지런히 벼마대를 날라다 정미기입구에 쏟아부어넣었다. 온 하루 거의 백마대나 되는 산더미 같은 벼마대를 혼자 날라다 쏟아붓고나니 기진맥진할 지경이였다.
설상가상 70여마대나 되는 입쌀을 몽땅 집에 실어가야 된다고 하지 않겠는가. 명선과 성호는 저녁을 먹기 바쁘게 수레로 온 밤 입쌀을 집에 실어들여 쌀창고에 척척 쌓아놓았다.
로동이 사랑이라고 막내매형 명선은 저으기 감동됐다.
성호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 매형이 손잡고 말했다.
“처남, 수고했소. 쌀을 팔면 택시를 사게 뀌워줄게.”
뜻밖의 말에 성호는 막내누나를 돌아보았다.
“저 나그네 처남 일이라면 순순히 대답한다.”
성호는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감사하오. 그런데 매형은 무슨 돈으로 출국수속비를 내겠소?”
명선은 개의치 않았다.
“그때 가서 다시 보지.”
“감사하오. 그럼 쌀을 팔면 전화하오.”
성호는 날듯이 기뻤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 앉아서도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누님네 쌀장사가 잘 돼야겠는데…)
성호는 두손 모아 기도라도 드리고 싶었다.
며칠 후 누나네 발해입쌀을 한근에 2원 50전씩 북경에서 다 사갔다고 전보가 왔다.
성호는 가정의 중대사여서 정희한테 택시업을 할 예산이라고 했다.
“그만두세요.”
정희가 대뜸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반기를 들고 나설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성호는 단통 피가 꺼꾸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광고회사만 믿어선 아버지 치료비도 대기 힘든데 언제 널직한 아들 보겠소?”
정희는 정색했다.
“싹 걷어치우세요. 아들을 보지 못하면 말라죠. 지금 택시 운전수들이 강도들한테 살해되는 일이 부지기수인데요. 사람 빚을 지자고 그래요? 돈도 벌지 못하고 인명사고라도 치면 어떻게 해요?”
성호는 화났다.
“좀 재수 없는 말을 작작 하오. 아낙네들이 사전에 댕댕거리면 일이 잘 안된다니까.”
정희는 한발자욱도 물러서지 않았다.
“동무 차를 몰줄도 모르면서 어떻게 택시업을 해요?”
“차를 모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겠지. 어려운 대학공부도 4년 동안에 다 했을라니 차운전을 배워내지 못하겠소? 먼저 남을 고용해서라도 택시업을 기어이 해내고 말테오.”
성호는 정희가 반대하건 말건 발해행차에 나섰다.
며칠 후 그는 성숙이네 집에 가서 돈 4만원을 얻어가지고 헐금씨금 돌아왔다. 그런데 그 돈으로는 근본 9만원 내지 10만원 하는 택시를 견줄 수 없었다.
성호가 애나서 애를 태울 때 뜻밖에도 기회가 찾아왔다.
시내 어느 한 택시회사에서 은행의 대부금을 내주면서 택시를 판다고 했다.
성호는 당장 택시회사로 찾아가 알아보았다.
택시회사 경리는 남방에서 온 사람 같았다. 그는 선불금 4만 5천원을 내면 나머지 택시 값은 가옥소유증을 차압해두고 은행대부금을 맡을 수 있다고 했다. 달마다 본금과 리자를 합쳐 3천 5백원씩 갚으면 된다고 했다.
(OK!)
성호는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칠 수 없다. 그런데 그의 살림집은 아직 가옥소유증이 나오지 않아 은행에 눌러둘 수 없었다.
그때 정희가 나서서 이모사촌오빠네 가옥소유증을 얻어왔다.
성호는 끝내 하리표택시를 사게 됐다.
그가 운전을 할줄 몰라 이모사촌처남이 눈풍설을 무릎쓰고 집에까지 몰아왔다.
택시는 사왔는데 운전수가 하나도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하여 그날부터 성호는 누구도 몰래 처이모사촌오빠한테서 운전을 배웠다.
정희는 정작 택시를 사오자 신랑을 도와나섰다.
“이모사촌동생 둘이 집에서 노는데 우리 차를 몰겠는가 물어볼가요?”
그러나 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처남네도 택시업을 하는데 그래서야 되오? 괜히 남의 담장을 허문다는 말을 듣겠소.”
“호호호. 그 이모사촌동생을 그러지 않아요.”
“그럼 누굴?”
정희는 쌔물쌔물 웃었다.
“작은 이모네 동생 말이예요.”
“그 앤 큰 이모네 차를 몰 소리를 하던데.”
“오빠와 말해 우리 차를 몰게 할게.”
성호는 한숨이 후~ 나왔다.
“운전수 하나는 해결됐구만. 그런데 밤에 몰 운전수도 있어야겠는데.”
그때 웃방에서 어머니가 귀띔해주었다.
“외가집 송숙이네 나그네 승복을 보고 몰아달라면 어떻니?”
성호는 그제야 무릎을 탁 쳤다.
“깜박 잊었군. 그 매부야 통나무차를 다 몰았으니 훌륭한 운전수지.”
택시를 사서 이틀만에 모든 수속을 마치고 운전수도 면담이 끝났다.
사흘만에 택시는 밤낮으로 뛰면서 영업하게 되였다.
첫날에 승복이 낮영업액 200원을 가져오고 가시이모사촌동생 철수가 밤 영업액 150원을 가져왔다. 주유소에 가서 휘발유를 43원어치 넣고도 순 수입 300원을 쥐였다. 하루에 두달 로임을 척 번 셈이 아닌가.
그달 말에 성호와 정희가 택시영업을 해 벌어들인 돈을 계산해보니 운전수들의 로임까지 주고도 5천 500원이나 떨어졌다.
“야-호-”
그들 부부는 당장 부자로 될 듯한 꿈에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성호는 목돈을 쥐자 그 자리로 택시회사에 가서 대부금 본금과 리자 3천 5백원을 갚았다.
택시회사를 나온 성호는 홀가분한 감이 났다.
“빚을 무는 재미도 있구나. 한해 버둑질하면 대부금을 다 물겠지.”
그는 언제면 4만원 본금에 리자까지 다 갚을가는 막연한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세상 일이 어디 다 식은죽 먹기겠는가.
택시를 산지 한달도 안돼 성숙이 찾아왔다.
“얘, 미안하구나. 저 나그네 기어이 한국에 가겠단다. 일주일 내로 수속비 3만원을 내야 한국에 간단다. 나머지 만원은 한국에 도착한 후에 내야 하고. 저 나그네 돈을 찾아오라고 생야단이구나. 어쩜 좋겠니?”
그때 때마침 봉금이 부모를 보러 왔다가 나섰다.
“우리 집 돈을 먼저 가지고 가라.”
“언니네 무슨 돈이 있소?”
마음씨 착한 봉금은 항상 형제자매들을 정성을 다해 돕군 했다.
“아저씨 병치료 해서 2만원 푼히 있다. 막내오래비도 택시를 사겠으면 우리 돈도 꿀게지. 그 먼데 가서 꿔왔니?”
성숙은 그늘이 졌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을 피웠다.
“그럼 얼마나 좋겠소? 그런데 아저씨 애나게 번 돈을 드텨서 좋아하겠소?”
“괜찮아, 형부도 동의할 거야.”
그제야 성호는 한숨이 후~ 나왔다.
그는 두 누나가 진짜 고마웠다.
그는 막내누나한테 말한대로 리자라는 말은 하지 않고 감사비로 5백원을, 매형이 한국에 간다고 100원을 더 얹어주었다.
성숙은 되밀어주었다.
“형제간에 감사비까지 받겠느냐? 성의는 받았다. 아버지 병치료에 보태 써라.”
성호가 받지 않자 성숙은 기어이 올케한테 쥐워주었다.
정희도 시누이 호주머니에 되쑤셔넣었다.
성숙은 훌 일어나 바깥에 나가면서 구들에 꼬깃꼬깃해진 돈말이를 훌 뿌려주고 달아나다싶이 했다.
“누나~ 가지고 가오~”
성호가 쫓아나왔으나 성숙은 택시를 잡아타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택시업을 벌려서 두달 동안 그런대로 달마다 5천원 좌우씩 순 수입을 올려 성호는 웃음주머니가 흔들거렸다.
택시업은 진짜 속을 썩인 값을 번다. 성호는 택시가 어디 가서 사고라도 칠가봐 근심, 운전수들이 강도한테 강탈당하가봐 근심, 심지어 인명사고라도 생길가봐 근심하다나니 이 근심, 저근심, 근심이 태산 같았다.
택시업은 모험성이 많은 영업이다. 고정된 영업집에서 영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네바퀴가 달린 놈이여서 수시로 교통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고 어슥한 골목에서 강도를 만날 수도 있었다.
성호는 택시를 집 앞에서 내보내고는 항상 근심에 싸여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봄날이 오자 항상 밤중까지 가로등 밑에서 장기군들과 함께 장기를 두면서 시간을 보내면서 태산 같은 근심에서 해탈되려고 애썼다.
집에 돌아와도 택시와 운전수 근심에 발편잠을 자지 못했다.
(2년반 로임을 한달에 버는게 그리 쉽겠는가?)
성호는 스스로 위안하면서 하루, 하루 속을 태우며 지냈다.
어느 하루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성호가 한창 승복한테서 낮에 번 돈을 받아 셀 때였다.
“야, 돈을 많이 벌었구나. 날마다 한달 로임을 넘어 버는 것 같구나.”
생각지도 않은 철주가 뜻밖에 찾아오지 않았겠는가.
“오, 어떻게 돼 왔니?”
성호는 돈을 대충 세여 호주머니에 챙겨넣고 택시를 보내고 철주의 철색얼굴을 쳐다보았다.
철주는 멀어져가는 빨간 택시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야, 돈을 좀 뀌워달라.”
성호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는 철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호야, 우린 고향친구가 아니냐? 양고기뀀점도 잘 되지 않지. 싹 걷어치우고 안마원을 좀 차릴가 한다. 조용한 거리에 영업집은 세를 맡아놓았는데 돈이 딸려서 그래. 도와주기만 하면 이담 안마는 무료로 할 수 있어.”
성호는 희죽이 웃었다.
“야, 나도 은행대부금을 맡아서 빚을 갚는게 죽을 지경이야. 누나네 돈도 숱해 꿨지. 가시집 가옥소유권마저 은행에 눌러둔 처지야.”
“됐다, 됐어. 꿔주지 않겠으면 말아라.”
철주는 화를 냈다.
철주는 정미소를 차리면서 아버지가 꿔간 돈을 아직도 갚지 못한 일도 기억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볼 부은 소리를 줴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휑 하니 가버렸다.
“철주, 명년에 빚을 다 갚으면 좀 뀌워줄게.”
성호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누군가 타이르는 목소리가 귀방울이 때끔하게 울리는 상 싶었다.
“친구끼리 절대 돈거래를 하지 말라.”
“친구끼리 돈거래 하면 언젠가는 벌어지게 된다.”
그는 땅꺼미가 어둑어둑 지는 가로등불 밑으로 성이 나서 씩씩거리면서 멀어져가는 철주 뒤모습을 바라보며 도리머리질했다.
57. 정미소특대참살사건
유유히 흐르는 천혜의 부르하통하는 어머니 젖줄기마냥 부르하통하강반을 적시면서 오곡백과를 우르익혀 평화로운 이 곳 백성들을 키워왔다.
마을 서쪽에 숱한 검을 깎아지른 듯한 천지꽃산이 병풍처럼 둘러섰고 마을 서쪽변두리를 흰 비단띠 같은 태평강이 유유히 고향 마을을 감돌아 흘렀다. 밋밋한 말무덤산을 북쪽에 등지고 드넓은 황금들판을 내다보며 언덕 우에 들어앉은 고향 마을, 백여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성호의 고향 마을에는 이제껏 형사사건이 생긴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향 마을 정미소의 곽재령감과 로친이 백주에 살해당한 참살사건이 발생했다.
성호는 비보를 듣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칠순이 되도록 자기 힘으로 살아보겠다고 정미소를 차려놓고 아글타글 하던 곽재령감이 아닌가.
그런데 로친과 함께 백주에 자기 집 마당에서 동시에 살해당하지 않았겠는가.
(실로 한심하구나. 어떤 놈이 살해했을가?)
성호는 황급히 자전거를 타고 고향마을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가 고향마을 정미소 마당에 들어섰을 때다.
강운룡 부국장은 한창 숱한 수사대원들을 지휘해 현지수사하느라고 정미소와 집 안을 들락날락하며 분주히 서둘렀다. 정미소 토성 밖에서는 숱한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렸다.
강운룡 부국장을 비롯한 수사대원들은 진수해파출소 소장과 함께 먼저 신고자인 곽재령감의 둘째아들 만주한테서 정황을 료해했다.
만주는 줄줄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쓱쓱 닦더니 떠듬떠듬 이야기했다.
“어제 오후 3시쯤에 나는 부모가 이렇게, 이렇게 참살, 참살당한 것도 모르고 정미소에 왔댔습니다…”
사실, 만주가 전날 오후에 정미소 울 안에 들어섰을 때였다. 아버지가 글쎄 장작더미 옆에 쓰러져 있지 않겠는가.
그는 혹시 뇌출혈에나 걸려 쓰러졌는가 해 황급히 달려가 아버지를 안아일으켰다. 그런데 피못이 된 머리가 글쎄 땅바닥에 뚝 떨어지지 않겠는가.
“아이구, 아버지, 이게 웬 일입니까?”
그는 아버지를 놓고 황급히 집으로 달려가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안으로 걸려 있었다.
“엄마, 엄마! 문을 여오!”
그러나 아무리 소리치면서 문고리를 잡아당겨도 집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참살사건을 해명한 후에 안 일이였지만 당시 살인악마는 안으로 문을 걸고 집 안에서 한창 돈이 있는가고 옷장과 이불장, 궤와 쌀독마저 들추고 있었다. 그때 만주가 찾아와 문 밖에서 소리치자 살인악마는 황급히 뒤창문의 모기장을 식칼로 째고 창문을 뛰여넘은 후 서쪽토성을 넘어 도망쳤던 것이다.
일이 심상찮음을 느낀 만주는 뒤울 안으로 달려가 활짝 열린 뒤창문으로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구들 우에 어머니가 피못 속에 쓰러져 있지 않겠는가.
“엄마! 이게 웬 일이요?”
기실 그때 만주가 조금만 더 빨리 뒤울 안에 뛰여갔더라면 뒤창문을 뛰여넘어 도망친 살인악마와 마주쳤을 것이다.
만주는 집 안에 뛰여들어가 엄마를 끌어안고 엉엉 대성통곡쳤다.
그때 정미소에서 북으로 서른메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늙은 비술나무 아래에서 장기를 두던 동불사령감과 조양천령감, 세린하령감이 통곡소리에 놀라 령감들과 함께 삼삼오오 정미소에 모여들어 야단쳤다.
“에이고, 어쩜 잘 살아보겠다고 아글타글 애쓰던 령감이 죽었소?”
“글쎄 말이요. 두부장사로, 정미소 일로 눈코 뜰새 없이 보내더니. 쯧쯧쯧.”
“어느 놈이 살해했는지. 이제 생벼락을 맞을게요.”
“어쩌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미소에서 번 돈을 아들이 안마원을 차리게 주겠다더니. 쯧쯧쯧.”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장산이네 쌀을 찧어줬는데. 헛참, 이런 봉변을 당하다니.”
곽재령감은 한푼이라도 더 벌어서 두 아들을 대주려고 정미소 앞에 전기톱과 전기대패까지 놓고 목재가공소까지 차려 손이 놀새 없었다…
수사대원들은 정미소 울안의 서쪽편에 무져놓은 장작무지 옆에 엎딘채 쓰러진 곽재령감의 시체를 세밀히 관찰하고 촬영했다. 곽재령감의 온 몸은 뻘 건 피투성이로 됐고 피가 랑자한 머리는 목에서 떨어져 있었다. 그의 끊어진 목에서 흐른 피가 5메터 밖에까지 흘러 자그마한 피못을 이루었다. 누군가 그 피자국에 톱밥을 퍼다 덮어놓았다. 두 발이 끌리운 흔적을 따라 가보니 나무를 패던 도끼와 패다가 만 장작이 도끼도마 우에 놓여 있었다. 곽재령감이 정미소 마당에서 장작을 팰 때 웬 놈이 둔기로 머리를 쳐 쓰러뜨린 후 칼로 목을 자른것 같았다. 톱밥주머니 옆에 삽 두자루가 놓여 있었다. 그 중 남쪽에 놓인 삽날에 피와 톱밥이 묻어 있었다.
정미소와 붙은 살림집 앞의 세멘트마루바닥에 피방울이 몇방울 떨어져 있었고 출입문 높이 1.1메터 되는 곳에 피 묻은 손가락자리가 있었다. 집 안의 옷장과 이불장이 몽땅 열려 있고 그 안의 옷과 이불이 구들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심지어 랭장고마저 활 열려 있었다. 구들 동남쪽 구석에 놓인 재봉침틀 우에 놓인 까만 가죽상자에 무슨 도구로 열어젖힌 흔적이 나 있었다.
동쪽벽에서 반메터 떨어진 구둘 우에 피투성이 된 로친 박옥금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목은 칼에 둬번 찍힌 상처자국이 있었고 마지막 순간에도 반항하면서 흉수를 쏘아본듯이 두 눈을 부릅뜬채 천정을 쳐다보며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녀의 하신은 넘어진 궤짝에 짓눌려 있었다. 마구 널린 옷장의 이불 옆에 놓인 사우나상자도 문이 열려 있었고 사우나상자 우에 펴놓았던 비닐박막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세심한 수사대원들은 그 비닐박막에서 완정한 지문 하나를 채집하였다. 그 지문은 이 사건을 해명하는데 중요한 증거로 될 수도 있었다. 부엌 북쪽의 창문에 댄 모기장이 예리한 비수에 째진채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수사대원들이 집 북쪽 울 안에 들어가 북쪽에 난 창문 아래를 살펴보니 창문 아래로부터 서북쪽으로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수사대원들은 가능하게 흉수가 뒤창문으로 뛰여내려 토성을 넘어 달아났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그때 철주가 집 안에서 뛰쳐나와 성호의 손을 잡고 엉~ 엉~ 대성통곡쳤다.
“야, 정의용사야, 우리 아버지 원쑤를 갚아달라. 살인악마를 꼭 붙잡아달라.”
성호는 철주의 손을 잡고 어떻게 위안했으면 좋을지 몰라했다.
그때 순희도 다가와 눈물이 글썽해 부탁했다.
“성호야, 꼭 경찰들과 잘 말해서 흉수를 붙잡아달라.”
성호는 그저 머리를 끄덕였다.
“인민경찰들이 있는 한 철주 부모를 살해한 놈은 도망치지 못해.”
그때 강운룡 부국장이 성호를 불렀다.
성호는 강국장을 따라 정미소 안에 들어갔다.
강국장은 성호를 보고 부탁했다.
“마을에 피해자와 척진 사람이거나 경제관계가 있는 사람이 없는가 알아봐달라.”
“예.”
성호는 인차 철주를 데리고 정미소 서쪽에 있는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순희도 뒤따라왔다.
그때 성호네 집 소사양을 하는 지괴룡이 소를 몰고 나가다가 헤쭉거리며 인사했다.
“헤이, 도련님 어쩌다 왔소?”
성호도 알은 체했다.
“그래. 소방목을 나가는가?”
“그래. 어쩜 아래집 곽재령감 부부가 살해당한단 말이오?”
성호는 살진 소들을 보고 까마잡잡한 지괴호가 일만은 잘한다고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는 철주와 순희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 다그쳐 물었다.
“철주, 혹시 요즘 너 부모와 경제거래 있거나 척진 사람이 없니?”
철주는 머리를 푹 숙이고 한참 속으로 올리훑고 내리훑었다.
이윽고 그는 머리를 들더니 성호를 마주바라보면서 말했다.
“있긴 있다. 그러나 걔가 그럴 수 있겠니?”
“누가?”
성호는 철주한테 다가가 앉았다.
철주는 두툼한 입술을 무겁게 열었다.
“장산이 우리 아버지와 척졌지.”
성호는 한족학교를 다닐 때 동창생 장산의 네모난 얼굴과 쌍까풀눈이 피뜩 떠올랐다.
“걔가 무슨 일로 척졌니?”
“정미소를 차리는 일 때문이야. 걔도 마을 뒤에 정미소를 차리려고 했는데 우리 집에서 마을 앞에 먼저 정미소를 차리지 않았니? 그래서 우리 아버지 멱살을 틀어잡기까지 하며 대판 싸운 적이 있다.”
“오~”
성호는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소홀히 결론을 내리려고 하지 않았다.
“또 척진 사람은 없니?”
철주는 도리머리를 가로저었다.
“너도 알지만 우리 아버진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 아니고 뭐냐?”
순희는 눈물이 글썽해 동을 달았다.
“평생 누구와 싸울분이 아니지.”
“이제 생각나는구나.”
철주가 성호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그 동불사령감과 세린하령감은 항상 우리 아버지 하는 일이라면 빈정거리고 헐뜯었단 말이야…”
순희가 철주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그 령감들이 질투심은 많지만… 말도 안돼.”
성호는 화제를 돌렸다.
“혹시 너네 부모와 돈거래 있는 사람은 없니?”
“없어.”
철주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우리 집에 무슨 돈이 있니? 돈이 있었으면 너한테 꾸러 갔겠니?”
그때 순희가 무릎을 탁 쳤다.
“깜빡 했다. 우리 며칠 전에 정미소를 팔지 않았고 뭐야? 혹시 그 돈을 탐내서 어떤 놈이 손쓴게 아닐가?”
성호와 철주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가능해.”
철주는 손벽까지 마주 치면서 성호한테 다가가 앉았다.
“너도 알지만 우리 양고기뀀점이 잘 되지 않아 안마원을 차리자고 정미소를 팔잖았니?”
그의 눈 앞에서는 번개같이 숱한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대체 어느 놈이 그랬을가? 꼭 내부 실정을 아는 놈이 한짓이야.”
성호는 한마디 물었다.
“그래 정미소를 판 돈을 너네 부모 건사했니?”
“아니.”
철주는 즉답했다.
“정미소하구 살림집까지 3만 5천원에 팔자마자 우리 가져갔지.”
“음~”
성호는 단서가 좀 잡히는 것 같았다.
“정미소를 판 일을 우리 마을에서 누구랑 아니?”
철주는 단마디에 “장산이지.” 하고 짚었다.
“또 장산이냐?”
성호는 이마살을 찌프리며 물었다.
“그래. 장산이 우리 정미소를 샀으니까.”
“걘 너네 돈을 가져간 걸 아니?”
“모를 거야. 그 새끼 정미소 값을 주고 간 다음에 우리 저녁을 먹고 가지고 갔으니까.”
“정미소 판 거 또 누가 아니”
성호의 물음에 철주는 “이젠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알 거야.” 라고 했다.
성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혹시 의심스러운 사람이 없니?”
철주와 순희는 성호의 얼굴에서 눈을 떼더니 서로 마주보며 머리를 숙이였다.
성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부탁했다.
“의심스러운 자가 떠오르면 인차 수사대대에 알려라.”
“응.”
철주는 이를 쁙쁙 갈았다.
“콩가루로 만들어놔도 원쑤를 다 갚지 못할 거 같애.”
성호는 철주와 순희를 보낸 후 인차 강운룡 부국장을 찾아갔다.
강운룡 부국장은 김창남 대대장을 불러 함께 성호네 집으로 올라갔다. 자연히 성호네 집은 이번 특대살인사건을 해명하는 수사지휘부로 되나 다름없었다.
성호한테서 정황을 회보받은 강운룡 부국장은 한참 사색에 잠기더니 무거운 입을 천천히 열었다.
“이번 사건은 가능하게 정미소를 판 걸 아는 놈이 그 돈을 노린 특대살인강탈사건인 거 같소.”
김창남 대대장도 머리를 끄덕였다.
“예. 흉수는 정미소 마당에서 곽재령감을 비수로 목을 잘라 살해한 후 집 안에 들어가서 로친의 머리를 잘라 살해한 거 같습니다. 그리고 옷장이랑 이불장이랑 궤짝이랑 다 들춘 걸 보면 확실히 정미소 판 돈을 찾은 것 같습니다.”
강운룡 부국장은 과단성있게 지시했다.
“범죄시간에 마을 사람들의 행적을 몽땅 조사해야 하오.”
“예, 알았습니다.”
그날 저녁으로 수사대대에서는 온 마을 사람들을 하나 하나 불러 조사하는 한편 의심스러운 단서를 제공받았다.
수사대원들은 제일 의심스러웠던 장산을 성호네 집에 불러다 조사했다.
장산은 성호네 집에 들어서자 네모진 얼굴이 새까매났다.
“날 왜 조사합니까? 난 곽재령감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수사대원은 피씩 랭소했다.
“우리 언제 자네가 곽재령감을 살해했다고 했소? 묻는 말이나 대답하오.”
“난 정말 억울합니다…”
“사건이 발생한 7월 11일 오후 3시쯤에 어디서 뭘 했소?”
“11일이면 어젠데. 어제 난 마을에 없었습니다.”
“어데 갔댔소?”
장산은 굳어졌던 네모얼굴의 근육이 풀리면서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쌀을 팔러 시내로 갔댔습니다.”
“쌀은 왜 팔았소?”
“정미소 값 4만원에서 3천원을 채 물지 못했습니다. 형제들한테서 꾼 것도 모자라서 쌀을 팔러 다녔습니다.”
“누가 증명설 수 있소?”
“가만 있으십시오. 좀 생각해봅시다.”
장산은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무릎을 탁 쳤다.
“어제 오후에 비술나무 밑에서 장기를 놀던 세린하령감도 내가 쌀수레를 몰고 지나가는 걸 봤습니다. 저 서쪽 성호네 집에서 소사양하던 지괴룡도 날 보았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됐소. 곽재령감을 살해했다고 의심스런 사람은 없소?”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지문을 찍고 가오.”
장산은 아무런 긴장감도 없이 다섯 손가락과 손바닥을 빨간 도장집에 푹푹 찍어 새하얀 종이에 탁, 탁, 탁 세번 찍었다. 오히려 한숨을 후- 내쉬더니 홀가분해하는 상싶었다.
“혹시 의심스런 자가 있으면 말하오.”
“예.”
동불사령감과 세린하령감은 확실히 그 전날 오후에 늙은 비술나무 그늘 아래에서 해질 때까지 장기를 놀다가 장산이 쌀장사를 하러 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지괴룡을 찾아 물어봐야 하겠는데 소방목하러 가고 없어 그만두었다. 그리하여 장산과 동불사령감 그리고 세린하령감까지 혐의에서 배제되였다.
그럼 흉수는 누구란 말인가?
수사대원들이나 성호나 모두 오리무중에 빠졌다.
강운룡 부국장은 창문 밖을 내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이 마을을 벗어나 수사범위를 확대해야 하오.”
이때 어둑어둑해지는 바깥에서 황소의 영각소리가 길게 울렸다.
성호는 우쭐 일어나 창문 밖을 내다보다가 울안으로 밀려드는 소떼를 보자 강운룡 부국장과 김창남 대대장한테 머리를 돌렸다.
“저 지괴룡을 조사해 보았습니까?”
그 자리에 있던 수사대원이 제꺽 대답했다.
“소방목하러 가서 미처 조사하지 못했소.”
“조사해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김창남 대대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수사대원들은 크게 희망을 걸지 않고 지괴룡을 불러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어째 오늘 늦었구나.”
성호의 말에 지괴룡은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더니
“소들이 어찌나 밭으로 뛰여들어가는지.” 하고 대충 대답하면서 수사대원들을 힐끔 도적질해보았다.
“어제 오후에 뭘 했소?”
“예? 소방목을 했습니다.”
지괴룡은 먼 천정을 쳐다보았다.
저으기 긴장해하는 눈치.
“어데 가서 소방목을 했소?”
“장개골에 가서 방목했습니다.”
지괴룡은 자꾸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며 대답하다가 천정에서 눈을 떼고 수사대원들을 쏘아보았다.
“뭐 어쨌다고 이럽니까? 곽재령감과 로친을 살해하고 돈을 빼앗았다고 의심합니까?”
“묻는 말이나 순순히 대답하라.”
“에이, 씨, 별난 사람들을 다 보겠다. 원, 참.”
수사대원들은 지괴룡이 이상해 몇마디 더 물어보았다.
“소방목을 간 걸 누가 증명설 수 있소?”
“가만 있자.”
지괴룡은 한참 사색을 더듬더니
“아, 옳지. 장산이 봤습니다. 장산이 쌀수레를 몰고 저 아래 길로 나오다가 내 소를 몰고 가는거 봤습니다.” 하고 대답하면서 허구픈 웃음까지 지어보였다.
“그게 몇신가?”
“오후 한시 쯤인가.”
“의심스러운 사람을 발견했소?”
뜻밖에 지괴룡은 “장산이 의심스럽습니다.” 하고 나섰다.
“왜?”
지괴룡은 장산을 물고 늘어졌다.
“장산은 곽재령감이 정미소를 차려 자기와 경쟁한다면서 한바탕 싸웠댔습니다. 또 정미소를 판 일은 장산이 알지 누가 압니까? 혹시 장산이 정미소를 사고 자기 준 돈이 아까와서 손을 썼는지 어떻게 압니까?”
누구도 그런 의심을 가질 수도 있었다.
“장산은 그날 쌀 팔러 가지 않았는가?”
괴룡은 선 자리에서 손삿대질까지 해대면서 의심스러운 점을 주어댔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쌀수레를 몰고 쌀 팔러 가는 걸 본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중도에 쌀수레를 감춰놓고 정미소에 뛰여들어 살인했는지 누가 압니까?”
수사대원들과 강운룡 부국장 등은 서로 눈길을 맞췄다.
창남 대대장은 지괴룡을 보고 지문을 찍으라고 했다.
지괴룡이 그럴듯하게 적발할수록 수사대원들은 그의 말마디마다 주의를 돌리게 됐다.
지괴룡은 지문을 찍을 때 좀 긴장한 것 같았다. 거멓게 때묻은 손가락이 바르르 떨렸다.
그는 지문을 찍고나서 종이로 빨간 도장집을 손으로 쓱쓱 닦으면서 힐끔힐끔 수사대원들의 눈치를 보며 나갔다.
강운룡 부국장은 먼 발치에서 지괴룡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머리를 이쪽으로 돌렸다.
“저자를 잘 감시하오. 흔히 등잔불 밑이 어둡다고 하잖소. 저 괴룡은 대단히 의심스러운 자요.”
창남 대대장도 동을 달았다.
“예, 장산이 쌀 팔러 간 척하고 중도에 살인할 범행시간이 있었다고 하잖았습니까? 저 괴룡도 산에 소방목하러 간 척하고 중도에 마을에 기여들어 범행할 시간이 있잖겠습니까?”
그 말에 강룡운 부국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성호, 저 자가 방목하러 간 산에 소들을 풀어놓고 마을에 돌아와 일을 볼 여가가 있니?”
“예, 있습니다.”
성호의 대답은 명확했다.
“저 산은 동쪽과 서쪽, 북쪽 삼면은 깎아지른 바람벽 같은 절벽이 둘러서고 있어 소들이 달아나지 못합니다. 지괴룡은 범행할 시간이 푼합니다.”
수사대원들은 이 마을에서 지괴룡과 장산을 중요혐의자로 정하고 채취한 지문을 시공안국 형사정찰대대 본부에 가지고 가서 대조해보기로 결정한 한편 재차 그들을 조사하기로 하였다.
수사대원들은 먼저 장산을 불러 심문했다.
“어제 오 후에 쌀을 팔러 간 걸 누가 증명할 수 있는가?”
장산은 억이 막힌듯이 입을 쫙 벌렸다.
“지금 날 의심하는겁니까? 동불사령감과 세린하령감이 장기를 두면서 보았습니다. 지괴룡도 보았는데.”
수길 중대장은 창남대장과 강운룡 부국장과 눈길을 마주치고 나서 한마디 더 물었다.
“쌀을 어느 마을에 가서 팔았는가?”
“태양촌에 가서 팔았다고 하잖았습니까?”
“어느 집에 팔았소?”
“예, 정 믿지 못하겠으면 태양촌에 가서 삼조대면을 해봅시다.”
“좋소. 의심스러운 사람은 없소?”
“잘 모르겠습니다.”
수길 중대장은 손을 저었다.
“그럼 함께 삼조대면을 해보러 태양촌에 가기오.”
“이건 버섯목이니 벗어보이겠는가? 정말 억울합니다.”
수길 중대장은 수사대원과 함께 장산을 데리고 태양촌으로 떠나갔다.
한편 성호는 소사양실에서 지괴룡과 함께 묵은 밥을 먹고나서 이 말 저 말 하면서 뒤다리를 붙잡고 앉아 있었다.
지괴룡은 이불을 베고 누워 천정만 말뚱말뚱 쳐다보면서 무슨 궁리를 했다.
갑자기 지괴룡이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배를 끌어안고 “아이구, 배야!” 하고 소리치면서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성호는 벌떡 일어나 몸을 날려 바깥에 뛰여나갔다.
“서라! 어디 가?!”
“변소에 간다!”
지괴룡은 괴변을 부렸다. 변소와는 반대쪽인 서쪽 토성으로 뛰였다.
성호가 바싹 쫓아가 토성에 뛰여오르는 그자의 뒤다리를 잡아 홱 나꿔챘다.
“앗!”
비명소리와 함께 지괴룡이 허망 옥수수밭에 나동그라졌다.
“어디로 도망쳐?!”
그때 토성 바깥에서 경계하던 수사대원이 뛰여와 쇠고랑이를 채웠다.
이윽고 괴룡은 수사지휘부인 성호네 웃방에 끌려들어갔다.
창남 대대장이 직접 심문했다.
“죄행을 낱낱이 탄백햇!”
지괴룡은 요행을 바라고 변명했다.
“무슨 죄 있다고 이럽니까?”
“왜 토성 넘어 도망치려고 했어?”
“배 아픈데 똥도 못 싸는가?”
그때 때마침 공안국에 지문을 대조하러 갔던 수사대원이 들어섰다. 그가 지문대조결과를 창남 대대장 앞에 내밀었다.
강운룡 부국장과 수길 중대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증거가 있는데도 떼 쓸테냐?”
“픽!”
지괴룡은 코웃음치면서도 철색낯이 새까맣게 재빛으로 변하는 것이 확연했다.
창남 대대장은 지괴룡 앞에 지문대조결과서를 내밀었다.
“봐라! 살인현장 사우나상자 우에 덮어놓았던 비닐박막에 남긴 지문과 네 지문은 4개 똑같은 특징이 있어.”
지괴룡은 들여다보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거기에 지문이 남아있을 리 없겠는데.”
그 말에는 혐의가 아주 크게 묻어나왔다.
“이젠 생떼를 쓰지 말고 자기 죄행을 낱낱이 교대하라. 사건현지엔 네놈이 돈을 들추느라고 여기저기 숱한 지문을 남겼어.”
지괴룡은 벌떡 일어나 미친듯이 고함쳤다.
“야, 저 성호새끼네 일가를 몽땅 죽이지 못한게 원통하다! 저승에 가서라도 널 물어뜯어 놓겠다. 으흐흐, 하하하!”
강운룡 부국장은 지랄발광하는 괴룡을 쏘아보았다.
“성호네와 무슨 원쑤 있어?”
“해방 전에 우리 일가는 지주였어. 그래서 저 성호 애비한테 청산맞고 항상 투쟁맞았어. 이번에도 저 새끼 아니면 도망쳤을 거야. 아, 어떻게 하면 이 원쑤를 다 갚을가?”
“곽재령감 량주를 살해한 죄를 승인하는가?”
“그래. 내 죽였다. 난 성호네 소궁둥이를 치면서 살고 싶지 않았어. 곽재령감네 정미소를 팔았다는 말을 듣고 그 돈을 빼앗으려고 했어.”
괴룡은 죄행을 낱낱이 교대하기 시작했다.
전날 괴룡은 시퍼런 비수를 품 속에 품고 어슬렁어슬렁 토성에 다가와 정미소 마당을 살폈다. 그때 곽재령감은 한창 도끼로 장작을 패고 있었다. 사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괴룡은 도적고양이처럼 토성을 뛰여넘어 슬금슬금 뒤로 가서 장작더미에 세워놓은 삽을 들고 곽재령감의 뒤로 슬금슬금 다가가서 뒤통수를 탁 내리쳤다.
“앗!”
비명과 함께 곽재령감은 머리로 땅바닥을 쪼으면서 쓰러졌다. 미친 야수 같은 괴룡은 곽재령감을 장작더미 쪽으로 끌고 가서 품 속에서 비수를 뽑아 목을 썩뚝 잘랐다. 곽재령감은 목에서 시뻘건 피를 뿜으면서 당장에서 숨을 거뒀다. 곽재령감의 목에서 뿜긴 피가 줄줄 흐르자 괴룡은 누구한테 발각될가봐 삽으로 톱밥을 퍼다 피를 덮어놓았다.
그는 인차 정미소와 붙은 살림집에 뛰여들어갔다.
집 안에서 곽재령감네 로친 박옥금이 한창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었다. 괴룡은 집 안으로 문을 잠그고 박옥금의 목을 끌어안고 구들에 올라가 쓰러뜨린 후 비수로 목을 두번이나 찔러 살해했다.
그는 이불장이고 옷장이고 번지면서 돈을 찾았다. 옷장 밑에서 겨우 4천원을 들춰냈다. 사실 박옥음은 전날 정미소 값을 받자마자 시내에 내려가 저금해두고 림시 쓸 돈 4천원만 집에 두었던 것이다.
괴룡은 나머지 돈을 어데 뒀을가고 사우나상자랑 찬장이랑 뒤번지면서 계속 찾았다. 그리하여 사우나상자 우에 덮어놓았던 비닐박막에 숱한 지문을 남겼다.
그때 바깥에서 만주가 문을 탕탕 두드리면서 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만약 앞창문에 카텐과 모기장을 치지 않았더라도 만주는 지괴룡을 발견했을 것이다. 당황해난 괴룡은 겁을 집어먹고 뒤창문 모기장을 비수로 쫙 째고 열어젖치고 뛰여내렸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 서쪽으로 뛰여가 토성을 넘어 도망쳤다.
만주가 뒤울 안에 달려가 열린 뒤창문으로 집 안을 들여다보니 어머니가 구들위에 피못 속에 쓰러져 까딱하지 않았다. 만약 만주가 좀 일찍 뒤울 안에 뛰여왔더라면 괴룡과 딱 마주쳤을 것이다.
소를 방목하는 산으로 도망쳐간 지괴룡은 범행했을 때 입은 옷과 신, 범행도구인 비수를 몽땅 태워버렸다. 그러나 지괴룡은 슬기로운 수사대원들에게 납짝 나포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수사대원들은 살인강탈혐의자 지괴룡은 쇠고랑이를 차고 찌푸차에 오르면서도 성호를 돌아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개놈 새끼, 네놈의 소를 판 돈도 빼앗으려고 했어. 그러나 네놈의 주먹이 무서워 손을 쓰지 못했어. 사양실에 들어가봐라. 이불 밑에 시퍼런 비수가 있을 거야. 오늘 저녁에 네놈새끼를 비수로 찔러 죽이고 도망치지 못한게 천추의 한이야.”
“개소릴 작작 쳣!”
수길 중대장이 괴룡의 등을 떠밀었다.
“허허허.”
괴룡은 미친듯이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고함쳤다.
“내 먼저 저승에 가서 기다릴게! 저승에서라도 네놈 일가를 물어뜯을테다!”
한차례 특대참살사건은 서서히 막을 내렸다.
괴룡을 쏘아보는 성호의 마음은 무겁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진짜 승냥이를 집에 끌어들이고서도 눈치채지 못했구나. 부모들과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했는가!)
철주와 만주는 지괴룡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것이 밝혀지자 아연실색했다.
며칠 전에 괴룡은 그를 보고 “왜 돈벌이 잘되는 정미소를 파는가?”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철주는 아무런 궁리도 없이 “양고기뀀점이 잘 되지 않아서 안마원을 차리자고 그래.”라고 대답했다.
(그때 괴룡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정미소를 팔겠으면 나한테 팔아라.” 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정미소를 파는 걸 눈치채고 손을 쓸 기회를 노린게 분명했어. 그런데 정미소를 장산에게 판다고 알려주지 않았던가.)
“야~ 저 괴룡을 칼탕을 쳐놓아도 원쑤를 다 갚지 못하겠다.”
철주는 찌프에 압송돼가는 괴룡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대성통곡쳤다.
순희도 줄줄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철주는 갑자기 성호 멱살을 잡아 흔들며 꽥꽥 고함쳤다.
“야, 이 개새끼야, 네놈새끼 우리 아버지한테 인심을 내는 척하면서 돈을 꿔주지 않았더라면 우리 부모 살해되지 않았을 거야.”
성호는 너무나도 억울해 머리를 홰홰 저었다.
옆에서 순희가 리지를 상실한 철주를 뜯어 말렸다.
“정신 나간 소릴 작작 해라. 살인범과 해낼게지. 왕청 같은 성호와 해낼게 뭐야?”
철주는 괴룡을 압송해가는 찌프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행악질했다.
그는 순희를 성호한테 활 밀어버렸다.
“원래 너네 둘이 좋아하지 않았구 뭐야?”
“야, 어째 이래니?”
순희가 철주한테 눈을 흘기자 철주는 숱한 마을 사람들 앞에서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너네 둘이 콱 살아라.”
철주는 성호한테 씽 달려들었다.
“철주야, 왜 이래니? 좀 정신 차려라!”
성호는 순희를 보고 “철주를 데려가라.”라고 했다.
“내 힘으로 되겠니?”
순희가 철주한테 채워 저만치 나가 넘어졌다.
성호는 철주를 말리면서 뒤에 말뚝처럼 꽂혀 있는 만주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야, 뭘 하니? 어서 집에 뎌려가라!”
철주는 만주와 순희한테 량팔을 잡혀 끌려가면서도 계속 고함쳐댔다.
“성호야, 순희와 첫사랑이라고 항상 외우지 않았니? 네 대학에 가지 못해도 둘이 살았겠는데. 아니야, 아니. 순희 대학에 갔더라면 너네 둘이 살았을게 아니냐?”
“야, 오늘 어째 이래니?”
순희는 철주를 마구 줴흔들면서 눈물을 흘렸다.
“어서 입 다물지 못해?”
“성호야, 이 개새끼야, 이제라도 괜찮아. 내 이젠 아무것도 없잖아? 돈이 있니? 뭐 있니? 이젠 부모마저 없어. 정미소도 없어. 이제라도 순희를 데려다 살아라. 순희만 행복하면 다 된다, 돼! 어, 허허허.”
철주는 실성한 것 같았다.
성호는 부모를 잃은 철주의 비통한 심정을 리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는 무쇠주먹으로 토성을 꽝꽝 내리쳤다. 애꿎은 흙과 자갈이 풀썩풀썩 무너져내렸다.
천지꽃산의 나무들이 놀라 우스스 떨고 태평강물도 치를 떨며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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