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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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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26)
2015년 12월 15일 16시 17분  조회:2045  추천:0  작성자: 김장혁




                9. 무고한 백성들
        한길수는 스즈끼 국장을 등에 업고 영팔과 수길 등 졸개들을 시켜 병권일가의 사돈에 팔촌까지 몽땅 잡아들였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영월동과 운주동, 가마골, 신흥동, 신설동에서 경찰국 사무청사 짓기와 길닦이에 나오지 않은 사람, 일본 사람을 욕한 사람들을 붙잡아들였다. 심지어 어처구니도 없이 조선말을 한 서당방의 어린이들까지 마구 붙잡아 들이기로 했다.
       응삼과 영팔이가 운주동 최구장의 집으로 쳐들어갔을 때였다.
최구장은 한창 서당 방에서 근덕 등 손자들과 마을의 애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 영감이 또 조선 글을 가르쳐? 몽땅 잡아가라.”
최구장은 구부정한 허리를 펴면서 일어나 서당 방에 뛰어 들어오는 영팔을 쏘아보며 물었다.
“그래 조선 애들에게 조선 글을 가르치는데 안 되는가?”
응삼은 영팔의 뒤에 숨어 아니꼽게 쏘아보는 최구장의 눈길을 피하였다.
“자네들도 내게서 조선 글을 배우지 않았는가?”
응삼은 못들은 척 하였다.
무지막지한 영팔은 “이게 언제라고 묵은 그루에 이밥 먹던 얘기를 합니까? 이젠 대일본제국시대여서 조선어는 필요 없습니다.” 하고 지분거렸다.
응삼도 뾰족한 턱을 쳐들더니 한마디 보탰다.
“이젠 조선말을 해도 안 되고 조선어를 배워주거나 배우는 사람들도 몽땅 반일불온분자라고 잡아갑니다.”
최구장은 겁을 먹은 애들을 돌아보면서 “오늘 공부 이만하자. 집에 돌아가라.”라고 하였다.
그런데 영팔은 졸개들에게 홱 손짓하였다.
“애들까지 몽땅 붙잡아라!”
그때 아래 방에 있던 경숙이랑 아래 방에서 후닥닥 뛰어 들어왔다.
“이보, 영팔이, 한 고향 사람의 낯을 좀 봐주오. 서당 방이라도 꾸리지 않으면 우리 뭘 먹고 살겠소?"
“누가 반일활동을 하라고 했는가?!”
영팔이 고함치며 졸개들에게 손짓하였다.
“뭘 해?!”
최구장은 그 자리에 뻗치고 서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 무슨 죄 있느냐?”
영팔은 퉁명스레 한마디 내뱉었다.
“몰라서 묻습둥? 이젠 몇 번 와서 말렸습둥? 그래도 내내 애들에게 조선어를 배워주고 조선말을 합둥?”
그때 근형이 외까풀 눈을 부릅뜨고 말똥말똥 영팔을 쳐다보다 입을 오물거리더니 욕지거리하였다.
“별, 자기도 조선말을 하면서 검정개 돼지 흉을 한다 해라.”
애들은 깔깔 웃어댔다.
“정말 검정개 돼지 흉을 한다.”
“저게 검정개야.”
“호호호”
“깔깔깔”
영팔은 애들에게 놀림을 당하자 근형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딱 튕겨놓았다.
“아가! 왜 때려?”
영팔은 졸개들에게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 반일불온분자 새끼들을 몽땅 체포해 자동차에 실어라.”
애들은 잡혀가는 줄도 모르고 “아하, 자동차에 앉아보게 됐구나.” 하고 떠들며 좋아라고 스스로 자동차에 뛰어올랐다.
주춤주춤 하던 졸개들은 우르르 덮쳐들어 최구장과 경숙, 근형 그리고 애들까지 몽땅 붙잡아 자동차에 실었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자위대 놈들은 자동차를 몰고 온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최구장네 아들딸들과 며느리, 사위에 어린애들까지 몽땅 붙잡아 한자동차 꼴딱 싣고서도 모자라 마을에서 조선말을 한 사람들도 몽땅 붙잡아 실었다.
운전실에서 응삼은 영팔에게 “운주동에서만 너무 많이 붙잡지 않았는가?” 하고 물었다.
영팔은 “한 대대장은 많이 잡아올수록 좋다고 했네. 끼무라 대대장의 명령이라네.” 하고 대수롭잖게 말하였다.
“애들을 부린 후 어른들만 잡아가면 어때? 이제도 영월동과 신흥동, 가마골에 놈들도 잡아가야지. 괜히 감방이 모자라겠어.”
“에이, 아무래나 무고한 백성들이라도 반일불온분자들이라고 많이 잡아가면 공을 세우는 거야. 가마골에선 형만만 내놓고 다 잡아가야 돼.”
“그 놈은 왜?”
영팔은 운전수를 보고 차를 몰라 한 후 자기가 더 아는 상 했다.
“그것도 몰라? 형만은 포수대에 갔다가 도망쳐 돌아오지 않았어?”
응삼은 실 돌피 같은 몸뚱이를 영팔 쪽으로 기울이면서 귀속 말로 “너 혹시 형만과 함께 최구장에게서 글을 배운 동창생이라고 그러지 않니?” 라고 하며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찔렀다. 영팔은 응삼을 훌 밀어버렸다.
“아니야! 무슨 쓸데없는 소리! 끼무라 대대장이나 한 대대장이 수자가 모자란다고 하면 그 놈까지 붙잡아갈 예산이야. 필경 그 놈도 의병 포수대로 달아났던 놈이니까!”
그제야 응삼은 실 돌피 같은 목에 붙은 자그마한 머리를 끄덕였다.
일주일 동안 한길수의 포치대로 영팔과 응삼, 수길은 자동차를 몰고 영월동, 운주동, 가마골, 신흥동에 다니면서 숱한 “반일불온분자”들을 붙잡아 실어다가 우시장 자위대 감옥에 가둬 넣고 혹독한 고문을 들이댔다.
제일 먼저 병권 일가부터 고문했다.
졸개들이 관준과 태화영, 상철과 손비 박만식을 자위대 고문실에 끌어왔다.
영팔은 그들에게 겁을 주려고 호통 쳤다.
“몽땅 형틀에 처매라.”
“옛!”
졸개들은 우르를 덮쳐들어 병권일가를 몽땅 형틀에 달아맸다.
영팔은 채찍을 들어 손바닥을 툭툭 치면서 호통 쳤다.
“관준이, 아버지도 일본 헌병대에 갇혀 있다는 걸 알지? 여기 자위대에서 심문해 자네 애비 같은 엄중한 반일불온분자는 헌병대감옥에 들어가게 되였네. 자네 애비는 중범이야, 애비하구 온 일가를 살리겠는가? 죽이겠는가?"
영팔은 다가오더니 다짜고짜로 관준의 가슴을 채찍으로 짱짱 후려갈겼다.
“말해! 반일 파괴분자 병완이 어데 갔어?!”
관준은 머리도 들지 않고 “난 모르오?” 하고 대답하였다.
이때 기겁한 상철의 처 박만식이가 새된 소리를 쳤다.
“내 말하겠습니다. 전번에 기준 삼촌이 우리 집에 왔는데 간도로 간다고 했습꾸마.”
관준은 며느리에게 눈을 흘겼고 상철은 만식을 정신 나갔는가 욕하였다.
그래도 상철의 처는 자기 옳다고 우겼다.
“그래 병완을 살게 하노라고 우리 죽을게 뭐요?”
응삼은 실눈으로 그들 일가를 살피며 깨 고소해 했다.
“옳아, 병완을 살리느라고 하다가 사돈에 팔촌까지 고생할 게 있소? 말하오. 간도 어디로 간다고 했소?” 하고 만식에게 물었다.
만식은 자위대 놈들에게 총 탁에 얻어맞은 후 골병에 걸려 점점 주책없이 부실하게 번져갔다.
“내 문께서 다 들었다. 기준 시삼촌은 뭐 석은 영감을 따라 간도로 간다고 했소.”
“닥치지 못해?! 저 머저리 같은 년을 어쩌니?”
관준은 며느리 쪽을 가로 쏘아보며 고함쳤다.
그러나 상철의 처 만식은 계속 중얼거렸다.
“우리 무슨 시삼촌 때문에 죽을게 있습둥? 난 똑똑히 들었소. 간도로 간다고 했는데도. 모르는척하면서 무슨.”
상철도 욕설을 퍼부었다.
“여보, 그만 주둥이를 다물지 못하겠소?”
그래도 만식은 똑똑히 들었노라고 계속 우겼다.
영팔은 관준의 얼굴을 채찍으로 짱 후려갈겼다.
“오, 옳지. 그래 이제야 드러났구나. 네놈들이 병완을 삼촌이라고 간도로 빼돌렸구나.”
“확실히 그랬소. 장국을 끓여 먹이고 간도로 보냈습구마. 됐소? 다 말했으니 우릴 놔줍소.”
영팔의 호통소리는 만식의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이 반일불온분자를 헌병대감옥에 처넣어라!”
“옛!”
졸개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관준과 상철을 결박 지어 일본 헌병대 쪽으로 끌고 갔다.
상철의 처가 불기 시작해 병완 일가가 간도로 갔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하자 한길수는 어깨가 으쓱해 자위대 고문실에 나타났다.
그는 번들 이마의 땀을 손수건으로 쓱쓱 닦더니 사무 상에 거만하게 비뚤서 앉아 게슴츠레한 외눈깔로 관준의 처 태화영과 상철의 부실사한 처 만식을 쏘아보았다.
“살고 싶은가?”
상철의 처는 “살고 싶 잖고. 내 쉰도 안 돼 죽을 순 없지요. 시어머님도 빨리 얘기하오. 그래야 감옥에서 나가지. 날 풀어줍소.” 하고 애원하며 한길수를 쳐다보았다.
태화영은 옆으로 며느리를 흘겨보면서 말하였다.
“그 개 주둥이를 다물어라. 다 말했다고 놔주던? 남정네 잡혀간 걸 보고서도 계속 말하겠니?”
상철의 처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래도 말하면 놔준다는데도? 말하지 않고 어쩌겠소? 아버지엄마 가죽이 모자라 째개서 입을 만들었겠소? 말하라고 만들었지. 입 가진 게 말도 못하겠소?”
“그래, 말 잘했네. 이후에도 병완과 성칠이 나타나면 우리한테 알리오. 그럼 우린 상으로 황금까지 주겠소.”
한길수는 영팔을 보고 “상철의 처를 풀어주게.” 하고 인정을 베푸는 척 했다.
상철의 처는 바 줄을 풀어주자 손목을 만지면서 두덜거렸다.
“어찌나 꽉 동여매놓았는지 아파 죽겠다. 씨, 다 말했으니 집으로 보내줍소. 집만 보내주면 내 기장밥에 장국을 끓여 대접하겠소.”
한길수는 허무한 냉소를 피씩 지었다.
“허허허, 그래 좋소. 집에 보내주지.”
“감사합니다. 절을 해랍니까?”
상철의 처가 부실하게 절까지 꼽싹 하였다.
며느리의 그 추태를 보고 태화영은 눈을 무섭게 흘기었다. 한길수는 영팔을 불러 뭐라고 쑤군거렸다.
“예, 예~ 알았습구마.”
만식이가 고문실에서 슬몃슬몃 걸어 나가자고 할 때였다.
영팔이 뛰어와 만식의 팔을 잡고 옆 간으로 들어갔다.
한길수도 권총집을 뒤로 보내 잡으며 일어나더니 옆간으로 스적스적 걸어 나갔다.
“내 며느리를 다치는 날엔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거야!”
병권이 한길수를 욕설하자 한길수는 “퉤! 미친 연을 메스꺼워 왼눈으로 보지도 않는다.” 하고 욕하더니 문을 쾅 닫고 나갔다.
한길수는 자기 사무실 사무 상에 가 거만스럽게 앉아 만식에게 오른 손 편에 있는 걸상에 앉으라고 하였다.
그는 정신이 드나드는 만식을 돌파구로 삼아 병완과 성칠의 뒤를 캐려고 물었다.
“묻는 말만 대답하면 집에 돌려보내겠소. 병완이랑 석은 영감을 따라 간도에 갔다는데 석은 영감이란 누구요?”
만식은 절반은 정신 나간 사람이여서 놔주겠다고 하자 묻는 말을 고지고식대로 대답해버렸다.
“석은 영감은 운주동에 있는 우리 집안 작은 시할아버지 벌 됩꾸마.”
“음.”
한길수는 세수도 온전히 하지 못해 어수선한 만식의 낯과 헝클어진 머리를 두루 훑다가 물었다.
“간도 어디로 갔소?”
만식은 주전자를 보며 “에이씨, 집에 보내 준다고 해놓고 또 가둬? 씨, 목이 말라 죽겠다. 물 좀 주오.” 하고 말하며 목을 매만졌다.
한길수는 고의적으로 친절을 보여주느라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수 주전자를 들어 찬 물을 찰찰 넘치게 사발에 부어 주었다.
“말하오. 묻는 말을 대답만 하면 밭도 주고 돈도 주고 온 집 식구들을 몽땅 집에 돌려보내주겠소.”
만식은 물을 꿀떡꿀떡 마시고나서 사발을 상 위에 올려놓으면서 눈을 흘겼다.
“건데 왜 금방 저쪽 매단 칸에서 내 말했는데도 내 남정 잡아갔소? 이제 풀어주지?”
“오, 그래. 다 풀어주지. 말하오. 석은은 간도 어데 있소?”
그러자 만식은 신경질을 화닥닥 썼다.
“내 간도라는 데를 가보지도 못한 게 어떻게 아오? 간도가 어느 누구 궁둥이에 붙었는지 누가 아오? 해 넘어가는데 이젠 집으로 보내주오.”
한길수는 음흉한 눈길로 만식을 쏘아보면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혹시 그들이 간도 어디로 간다고 외운 적은 없소?”
만식은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뭣이 피뜩 떠올랐는지 말했다.
“오, 소서구 어쩌고 태평강이 어찌고 합더구마.”
“소서구? 태평강?”
한길수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천천히 냉정해지더니 억지로 상냥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말하오. 혹시 잘 못 듣지 못했소?”
만식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옳습구마. 이태 전에 우리 시할아버지 우리 남정과 소시거우 어쩌고 태평강이 저쩌고 합더구마.” 하고 대답하였다.
한길수와 영팔은 서로 눈길을 마주 치더니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올리 얹는 만식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어째 그렇게 보오? 무서워 죽겠다. 씨, 머절싸하게 뉘 아내를 그렇게 게걸스레 음충한 눈깔로 보오?”
한길수는 종이에 소시거우와 태평강을 적어놓은 후 만식에게 또 한 발자국 다가섰다.
“성칠은 어데 있는지 모르오?”
만식은 눈으로 한길수와 영팔을 번갈아보며 생각하더니 아무래나 중얼거렸다.
“아, 그 작은집 큰 시삼촌을 그러겠구나. 무슨 항일의병이라든가 독립군이라든가 하는데 들어서 뭐 총을 메고 사냥한다던데. 아마 어느 산에 있겠지 뭐?”
만식은 어둑어둑해지는 창문 밖을 내다보더니 “해 지는구나. 이젠 집에 보내주오. 애들이 기다리오.” 하고 애원하였다.
한길수는 횡설수설하는 만식을 쏘아보며 허무한 웃음을 씩 웃었다.
“좋소. 놓아주지.”
영팔은 황급히 “아니, 놓아주다니요?” 하고 만식의 앞을 가로 막아 나섰다.
한길수는 영팔을 쏘아보며 끼무라가 항상 자기를 욕하던 말을 써먹었다.
“에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 여기 오라.”
한길수는 다가온 영팔의 귀에 대고 “저년을 미끼로 내놔야 후에도 병완이나 성칠의 행방을 알지? 저런 미친년이 아니고서야 어데서 알아내겠니?” 하고 쑤군거렸다.
영팔은 연신 머리를 끄덕이면서 “예, 대대장, 참말 묘합니다. 예, 알았습니다.” 하고 감탄하였다.
한길수의 지시대로 영팔은 만식을 보고 가라고 하며 놓아주었다.
그러자 만식은 “내 남정두 놔주오.” 하고 애원하였다.
영팔은 희죽이 웃으면서 “조금 알아볼게 있어 그러는데 인차 보내 줄게.”하고 얼려 보냈다.
만식은 우시장자위대 사무실에서 나가면서 좋아 애들처럼 퐁퐁 뛰며 야단쳤다.
그는 빠금히 열린 고문실 문틈으로 안에 대고 소리쳤다.
“시아버님, 고집 쓰지 말구 얼른 말해버리구 집에 가깁소.”
그 소리에 관준은 정신 나간 며느리 쪽을 흘겨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만식이가 되돌아서며 뭐라고 또 말하려는 것을 옆에서 영팔이 마구 떠밀어 사무실에서 내보냈다.
만식은 황야에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둘째아들 용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걸음을 재우쳤다.
10. 혹독한 고문
한길수는 개를 잡은 포수처럼 우쭐해서 일본헌병대 고문실에 건너갔다. 거기에는 스즈끼 신임 경찰국장과 끼무라 헌병대대장이 위엄 있게 앉아있고 형틀에는 관준과 상철이가 묶여있었다. 끼무라는 득의양양해 스즈끼 국장의 귀에 대고 뭐라고 하는 한길수를 아니꼽게 흘겨보았다.
(개자식! 간에 가 붙었다 슬개에 가 붙었다 해봐라. 개똥이나 생기는가?)
끼무라는 위엄을 돋우느라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네놈들이 짜고 들어 기준과 병완을 간도에 빼돌린 죄악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살겠으면 묻는 말을 이실직고하라.”
류강철도 목청을 높여 통역하였다.
끼무라는 노기등등해 묻기 시작하였다.
“우린 다 알아! 병완이네가 들어간 간도 소시거우 어데 있쏘까?”
관준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우리 부자간이 간도로 가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아오? ”하고 대답하였다.
끼무라는 스즈끼 앞에서 잔인함을 보여주려고 악을 썼다.
“저 놈들을 족쳣!”
“하잇!”
가메다와 헌병졸개가 가죽채찍으로 관준과 상철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가죽채찍은 뱀처럼 휴~휴~ 비명을 지르며 그들 부자의 잔등이고 얼굴이고 사정없이 핥아갔다. 고문실안에는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반죽 져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살인악마 같은 끼무라와 스즈끼는 통쾌한 낯에 웃음이 넘실거렸다.
가까스로 견디던 관준과 상철은 끝내 까무러치며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끼무라가 손을 쳐들자 채찍질이 멈춰졌다.
“물을 쳐!”
“하이!”
가메다가 찬물을 퍼 치자 이윽고 상철이가 먼저 머리를 천천히 뜨고 고문실안을 두리번거렸다.
끼무라는 군도자루를 잡고 상철에게 다가가 물었다.
“말해! 병완 놈이 어데 갔는가? 소서구란 어딘가? 네 여편네가 이미 다 불었는데도 말하지 않겠는가? 엉?!”
상철은 입귀로 가는 신음소리를 흘리며 겨우 입을 열었다.
“간도로 가보지 못한 우리가 어떻게 아오?”
류강철에게서 통역받자 끼무라는 열이 후끈 올랐다. 그는 군도를 쓱 뽑아들더니 처맨 상철의 손을 탁 쳤다.
“앗!”
비명소리와 함께 상철의 손가락이 썩 뚝 잘리어 사처로 뿌리어 나갔다. 고문실벽에 뻘건 피가 휘 뿌리었다.
그 비명소리에 관준이 깨났다.
“우리 어떻게 아오? 기준은 한길수에게 쫓기어 정처 없이 떠나갔는데 우릴 보고 어델 간다고 말할 수 있었겠소?”
류강철이 관준의 말을 통역하자 스즈끼가 한마디 하였다.
“그래도 네놈은 맏조카 아닌가? 병완 놈이 꼭 네놈에게 어데서 산다고 기별했을 게 아닌가?”
관준은 한마디로 뚝 잘라 모르쇠를 댔다.
“모르오.”
“석은은 어디로 갔어?”
“모르오.”
“경찰국 감방에 끌어가!”
스쯔끼의 명령이 내리자 가메다와 졸개들은 관준과 상철을 경찰국 감옥에 끌어가뒀다.
감방 안에서 상철은 잘리어나간 왼손에 대고 오줌을 눴다. 그제야 지혈은 됐지만 밤중까지 너무 아파 참을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만 하였다.
한편 헌병대 고문실에서 스즈끼와 끼무라, 한길수가 모여앉아 쑤군거렸다. 끼무라는 병권이 혹시 관준과 상철을 혹독하게 고문한 일을 알면 자기에게 독약이라도 먹일까봐 슬그머니 근심됐다. 그러나 스즈끼에게 뭔가 보여주려고 잔혹한 본성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스즈끼는 한길수를 돌아보며 “참 수고 많았소. 진작 한대대장처럼 혹독하게 줴 짜야 뭔가 받아 낼 수 있어.” 하고나서 끼무라를 흘끔 곁눈질해보았다.
끼무라는 헛기침을 하며 한길수를 쏘아보며 물었다.
“석은의 친척이 누군지 알아냈는가?”
“예. 석은의 가시애비가 바로 운주동의 반일불온분자 최구장입니다.”
끼무라는 “잘 됐네. 최구장을 끌어오라.” 하고 명령하였다.
이윽고 고문실 철문이 쩔꺼덩 열리였다. 하얀 수염이 더부룩한 최구장이 결박당한 채 끌려 들어왔다.
끼무라는 도끼눈으로 최구장을 쏘아보았다.
“최 영감, 당신은 대일본제국에 무슨 죄를 졌는지 아는가?”
류강철이 통역해주면서 둬마디 보탰다.
“묻는 대로 대답하시오. 새 경찰국장은 독한 사람입니다. 목을 매달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옛 스승이라고 생각해 하는 말입니다.”
최구장은 피씩 코웃음을 쳤다.
“조선 애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친 게 무슨 죄냐? 그래 손자들에게 자기 말을 가르친 게 넌 죄라고 생각되니?”
스즈끼가 눈을 뚝 부릅떴다.
“뭐라고 지껄여?”
류강철은 그래도 옛날 최구장의 서당 방에서 “가, 갸, 거, 겨.”를 배운 사제 간의 정분이 남아있었는지 그대로 통역해주지 않았다.
“무슨 일로 우리 자손들까지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끼무라는 스즈끼 앞에서 직접 심문하면서 먼저 한바탕 노화교육연설을 퍼부었다.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지도 17년도 다 되어간다. 너희들의 이씨 조선의 왕이 자원해서 한일합병서에 도장을 찍었다. 일조합병 후 조선의 땅은 일본의 땅이 되였어. 조선의 백성들은 몽땅 대일본제국의 국민으로 된지 오래된다. 너희들의 조국은 대일본제국이다. 조선 땅의 일본 국민들은 마땅히 제국의 일본말을 해야 하지 조선말을 해선 안 돼. 최구장은 이젠 애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치지 말고 일본말을 배워줘야 돼.”
최구장은 억이 막혀 단마디로 거절해버렸다.
“난 일본 말 모르오.”
끼무라는 조금 부드러운 어조로 바꿔 속내를 내비췄다.
“이제부터 류 선생에게서 일어를 배우오. 당신의 제자한테서 일어를 배우면 좀 좋소. 이후에 운주동에 일본 서당을 차리면 최구장을 일어 선생 시킬 예산이오. 애들에게 일본 소설 같은 구수한 얘기를 해줘 보오. 얼마나 재미나 했쏘까? 당신도 애들의 자재 끝에 붙은 밥알이라도 더 뜯어먹는 게 일거양득이 아니겠쏘까?”
스즈끼는 옆에서 듣다 못 해 사무 상을 꽝 치며 벌떡 일어났다.
“나니까(뭔가)? 반일불온분자에게 일어 선생을 시켜?!”
스즈끼는 너무 격분해 군도를 잡고 씩씩거리며 헌병대고문실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을러멨다.
“항상 조선 놈들을 어루만지기만 하니 업신여겨 아무 짓이나 하지. 명천과 우시장이 뭔가? 조선어를 배워주는 서당이 사처에 와글거리고 대일본제국을 모독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우리 삼림파출소를 습격하고 경찰과 헌병들을 살해하기까지 했다. 이게 다 끼무라 대대장이 이제껏 조선 놈들을 어루만지기만 하구 무자비하게 진압하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
류강철은 스즈끼의 욕설만은 통역하지 않았다.
“하이! 마지가이오 와까리마시다(잘못을 알았습니다).”
끼무라는 숱한 졸개들 앞인 것도 있고 머리를 연신 조아렸다.
가메다나 한길수나 모두 평소에 안하무인격이던 끼무라의 그 모양을 보고 속으로 못내 우스워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아냈다.
시어미 역정에 개배때기를 찬다고 끼무라는 졸개들에게 고문실이 떠나가게 호령하였다.
"다다끼쯔께(호되게 족쳐라)!"
가메다와 졸개들은 최구장에게 우르르 덮쳐왔다. 그러자 경숙과 경욱이 양옆에서 아버지를 막아 나섰다.
“이 놈들이, 어디라고 언감?!”
한길수은 외눈깔을 번뜩거렸다. 영팔과 수길이 달려들어 경숙이네 형제들마저 형틀에 달아맸다.
“족쳐라!”
“하이!”
졸개들은 호랑이 같은 고함소리가 떨어지자 채찍으로 최구장 부자들을 짱짱 후려갈겼다. 성단과 애들은 비명소리를 치며 아우성쳤다. 여기저기에서 신음소리가 났다. 최구장과 경숙이, 경욱의 얼굴과 해어진 허연 홑옷으로 드러난 잔등과 허리, 가슴과 배에 피로 얼룩진 채찍자국이 얼럭 뱀처럼 쭉쭉 갔다.
끼무라는 성차지 않아 엉거주춤 일어나 직접 채찍을 휘둘렀다.
짱! 짱! 짱!
끼무라는 채찍질하며 욕질했다.
“이 놈! 먹물개나 먹었다고 상대접했더니.”
짱! 짱!
“늙다리 대갈통이 개X 같구나.”
짱! 짱!
“그만!”
끼무라가 하얀 장갑을 낀 손을 쳐들더니 최구장에게 다가갔다.
그 놈은 군도를 빼들더니 시퍼런 군도 끝으로 최구장의 턱을 쳐들었다.
“영감태기, 다시 조선말을 하겠소까?”
최구장은 피가 낭자한 얼굴을 겨우 쳐들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밑으로 독기어린 눈길로 끼무라를 쏘아보았다.
“조선 사람이 조선말을 하지 않으면 개소리를 치겠는가?”
끼무라는 이를 득득 갈며 “계속 애들에게 조선어를 배워 줄 텐가?” 하고 물었다.
최구장은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밭에다 나무를 몽땅 심게 했지. 서당 방도 없애면 뭘 먹고 살란 말인가?”
끼무라는 악이 날대로 나 “네놈은 조선어를 배워주는 척 하면서 애들에게 반일사상을 불어넣었단 말이야.” 하고 고래고래 고함치며 군도를 휘둘렀다.
“그만!”
스즈끼가 하얀 장갑을 낀 손을 들어 제지하였다.
그러나 군도는 최구장의 숫구멍을 빗 씻으며 상투를 썩둑 잘라버렸다. 허연 머리카락이 얼굴이고 어깨고 가슴이고 마구 덮으면서 땅바닥에 흩어져 내렸다.
“아버지!”
“할아버지!”
이윽고 군도에 숫구멍 가죽에서 피가 주르르 흘렀다. 뻘건 피는 얼굴과 볼을 뒤덮으며 흘러내렸다.
스즈끼가 명령했다.
“저 반일불온분자를 경찰국 지옥에 처넣어!”
“하이!”
놈들은 최구장과 경숙, 경욱을 경찰국 감옥으로 끌고 가 처넣었다.
스즈끼는 안경 너머 끼무라와 한길수를 둘러보면서 물었다.
“저런 불온분자들을 모두 몇 명이나 체포했는가?”
끼무라는 한길수에게 눈을 찔끔 해보였다.
한길수는 외눈깔로도 눈치 챘다.
“백여명 체포했습니다.”
스즈끼는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참 좋소. 저런 악질 놈부터 없애 버려야 하네. 이걸 두고 닭을 잡아 원숭이를 길들인다는 거네.”
스즈끼는 열 살도 안 되는 근형과 근덕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이 철부지 애들도 백명 속에 든 반일불온분자란 말인가?”
한길수은 “하이! 요놈 새끼들도 몽땅 최구장 놈의 물을 먹어서 반일불온분자로 됐습니다.” 하고 되는대로 고해바쳤다.
“무슨 죄장인가?”
“조선 글을 배우고 자위대와 헌병을 욕했습니다.”
스즈끼는 군도자루를 툭툭 치더니 한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대사는 대사야. 조선 땅의 요런 조선 놈 새끼들마저 반일기치를 들게 하면 큰일이다. 당장 풀어줘라!”
한길수은 외눈깔 통이 떼꾼해 졌다.
“풀어주다니요? 어떻게 잡은 놈들인데 풀어줬쏘까?”
끼무라는 눈알을 떼굴 굴렸다.
“풀어주라면 풀어 줄 게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들. 스즈끼 경찰국장께서는 너무 압박하면 반항할 까봐 걱정한다. 요까지 도리도 몰라?”
그러나 한길수는 이를 뻑뻑 갈면서 납득돼하지 않았다.
“저런 놈 새끼들에게 무슨 선정을 베풀었쏘까?”
스쯔끼는 끼무라와 한길수를 둘러보며 말하였다.
“악질반일분자만 잡으면 돼? 경찰국마저 무너졌는데 저런 놈 새끼들마저 다 붙잡아 넣자면 감옥이 모자라겠다.”
근형과 근덕은 성단이 등을 따라 감옥에서 풀려나갔다.
한길수는 아쉬운 눈길로 감옥에서 나가는 아녀자들과 애들을 노려보았다. 그는 끼무라와 스즈끼에게 끝없이 병완과 최구장네 일가를 비롯한 고향의 무고한 사람들을 물어먹었다.
“최구장과 병완은 사돈 간입니다. 에, 최구장의 둘째며느리는 병완의 큰손녀입니다. 병완놈의 맏아들은 우시장 부근 상우남면 일대에서 포수대를 조직해 항일의병대에 들어간 놈입니다. 지금 그 의병은 몽땅 간도 항일유격대로 번져 먹었습니다. 듣는 말에 의하면 병완 일가는 지금 간도 소시거우란 곳으로 갔다고 합니다.”
스즈끼는 끼무라를 쏘아보며 책망하였다.
“음, 언제부터 끼무라 대대장은 그물을 널리 쳐서 큰 고기를 잡은 전술을 쓴다더니. 아직도 고기는 잡지 못하고 그물만 계속 칠 예산인가? 그물도 물에 던져봐서 고기가 없으면 고기가 있음직한 자리를 옮겨 그물을 쳐야 한단 말이오?”
“옛, 알았습니다.”
끼무라는 가메다에게 명령했다.
“간도 소서구나 소시거우란 지명을 알아보도록 하라.”
그러자 옆에서 류강철이 끼어들었다.
“제가 어려서부터 한자를 배워 좀 압니다만. ‘소시거우’라면 가능하게 작을 ‘소’ 자에 서쪽 ‘서’ 자, 골짜기란 ‘구’ 자라 ‘소시거우’란 ‘소서구’란 지명인 것 같습니다."
그는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한자로 “소서구(小西沟)”라고 쓰기까지 하였다.
그때 응삼이 나섰다.
“‘구’가 어디 골짜기 ‘구’ 자냐? 도랑 ‘구’지.”
난처하게 된 강철이 반격을 가했다.
“도랑 ‘구’자가 그래 골짜기를 말하지 않니? 국장 앞에서 작작 아는 척 해.”
뒤이어 그는 끼무라와 스즈끼 국장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간도 지명이기에 한어음대로 발음에 서쪽 골짜기를 ‘소시거우’, ‘소시거우’라고 부른 거 같습니다.”
그러자 스즈끼와 끼무라는 이구동성으로 “소시거우”, “소서구.” 하고 되 뇌였다.
“좋아, 우리 관동군과 간도 헌병대에 소서구를 찾아봐달라고 기별하지.”
끼무라의 말에 스즈끼가 도리머리 질 하였다.
“에이고. 또 넓은 물에 큰 그물을 치구 마는 격이 될 거야.”
끼무라마저 눈이 떼꾼해졌다.
“건 무슨 말입니까?”
스즈끼는 “간도에 서쪽 골짜기가 얼마나 많다고 어느 서쪽 골짜기에 병완이 자빠져있는지 알겠는가?” 하고 한숨을 후 내쉬었다.
끼무라는 “소서구를 찾는 건 간도 헌병이 할 일이죠. 우린 명천과 우시장 일대 반일분자부터 숙청하면 됩니다.” 하고 말하였다.
“무슨 소린가?”
스즈끼는 버럭 성을 냈다.
“그런 지역적인 생각을 버리란 말이야. 반일불온분자들을 소탕하는 전반 국면을 고려해야 해. 알만한가? 빠까 요로!”
“하이!”
끼무라는 차렷 자세로 군례까지 붙였다.
“이제 간도 수도로 불리는 용정 간도파출소 사이또 소장에게 연락해서 간도를 서캐 훑듯 해서라도 반일 괴수 병완 놈과 기준 놈, 성칠 놈을 줄줄이 체포해 서울 남대문감옥에 보내야 해! 밥통 같은 놈들.”
“하이!”
끼무라를 따라 한길수, 가메다, 응삼, 영팔, 수길 등 졸개들이 차렷하고 군례를 올렸다.
스즈끼는 끼무라와 한길수이 이른바 “반일불온분자”라고 들씌워 무고한 백성들을 수태 체포해 수자를 채우느라고 감옥에 압송해 온 것도 모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흐린 하늘에 먹장구름이 어지러이 흩날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궂은 가을비가 구질구질 내렸다.
11. 닭을 잡아 원숭이를 훈계
스즈끼는 끼무라가 숱한 “반일불온분자”를 체포해오자 끼무라의 숙청에 머리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적으로 보아 이전에 비해 낫다는 평판이지 절대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었다.
끼무라는 그저 무고한 백성들로 “반일불온분자” 수자를 채워 체포만 해서는 스즈끼의 눈에 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시 경찰국장에 복귀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닭을 잡아 원숭이를 길들어야지.)
한편 그는 스즈끼 국장이 업동 경찰총국 부국장이기에 여기 몇 해고 우시장에 눌러 앉아있을 놈은 아니라고 생각되면서도 자기의 표현을 지켜보고 있는 그 눈길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는 시골의 유학자선비로 알려진 최구장이 그렇게 강하게 반발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항상 중용지도를 선양한다던 최구장이 군도 앞에서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맞장을 뜰 줄은 몰랐다.
(최구장을 교수형에 처한다? 아니야, 그는 우리 명천과 우시장에서 너무나도 영향력이 있는 시골선비야.)
착잡한 생각에 잠겼던 끼무라는 사무상에서 일어나 헌병대 사무실 안에서 뚜벅뚜벅 거닐면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누굴 없애 치우면 좋을가?"
그때 한길수가 헌병대 사무실에 들어왔다.
“한 대대장, 중대항일불온분자를 체포한 놈 없는가? 스즈끼 앞에서 처형해야겠네.”
이때라고 한길수는 단도직입적으로 “병권 영감을 죽여 버리시오.” 하고 들이댔다.
그러나 끼무라는 도리머리 질 했다.
“안 되오. 그 영감을 무슨 죄로 죽이겠는가?”
한길수는 이를 빡빡 갈면서 말했다.
“몰라 묻습니까? 그 영감은 병완의 형이고 성칠의 큰아버집니다. 반일괴수를 돕거나 덮어 감추는 자는 사돈에 팔촌까지 몽땅 처단해야 합니다.”
“단지 반일괴수의 형이라는 것만으로 병권을 처단하면 안 돼. 숱한 원수를 만들 게 아닌가? 여긴 대일본제국이지 이씨 조선이 아니야. 자네들 이씨 조선에서는 한사람이 죄를 범하면 사돈의 팔촌까지 처형하였지만 우린 아니야. 우린 서양문명을 받아들인 문명한 제국이야. 법도 사리 밝게 집행하네.”
한길수는 말상으로 도리머리 질 하며 외눈깔을 번뜩거리자 끼무라는 슬슬 구슬렸다.
“한 대대장, 병권을 곱다고 살려두는 거 같은가? 아니야. 내 병을 치료한 후 처형하자는 거네. 그 영감태기를 숙사에 인질로 연금해두면 그 엄청난 미끼로 성칠 같은 포수대 출신 항일유격대를 유인해 무자비한 타격을 가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끼무라는 한길수가 외눈깔을 판들거리면서 흥미진진하게 듣는 것을 보고 속내를 더 드러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아. 조선인들은 마구 압박하고 진압만 하기보다는 얼리고 닥치고 기동영활하게 다스려야 해. 자네의 아들 철주의 주장이 맞네. 핍박하면 할수록 반항이 드세게 되는 법이지. 철주의 말처럼 문명하게 조선인을 다스리는 게 상책이야. 우리 대일본 제국에서는 이젠 무치로부터 문치로 넘어 갔어. 말하자면 일본 문화로 조선 사ㄹ마들을 다스린단 말이네. 장차 내 계획대로 운주동에 일본학교를 차리고 최구장을 회유해서 일어 선생을 시켜. 우리는 한손에 총칼을 들고 한손으로 붓을 들고 조선인들을 다스려야 해. 무력진압도 중요하지만 조선인들의 반일사상을 무너뜨리고 마음을 굴복시켜야 하네. 그장차 노화교육도 염두에 둬야 해. 스즈끼 국장은 사무라이에 불과해. 무사는 싸울 줄 밖에 몰라. 두고 보게. 내 말이 맞지 않는가.”
한길수는 한순간에 납득되지 않았다. 시골의 조직폭력배나 다름없는 그가 어찌 전문훈련을 받은 사무라이 끼무라의 능글스런 계책을 다 터득하랴. 자기 아들도 따라가지 못하는 주제에.
한참 후 한길수는 “최구장을 죽이십시오.” 하고 불쑥 내뱉었다.
“최구장도 안 돼.”
한길수는 외눈깔을 내리깔았다.
하여 끼무라는 또 한사람을 물어냈다.
“최구장네 막내아들 경석이란 놈이 약 담배장사를 한답디다. 약 담배가 만연되면 대일본제국의 담장을 썩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엄청 큰 청나라도 말기에 아편으로 해 망하나 다름없었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 놈도 처단하자. 스즈끼 앞에서 무자비하게 학살해야겠어. 으흐흐. 그놈이 어데 있는가?”
“갑산에 감자농사를 지으러 갔다가 약 담배 인이 너무 올라 운주동에 돌아와 최구장네 집에 들어있습니다.”
끼무라는 군도자루를 잡으면서 명령했다.
“당장 체포해!”
“하이!”
류강철이 옆에서 통역해주자 한길수는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해 군례를 올리고 바깥으로 나갔다.
당날로 경석이가 일본헌병대 자동차에 압송돼 우시장헌병대 고문실에 끌려 들어왔다.
그때까지도 경석은 약 담배에 취해 흐리터분한 정신상태였다.
한길수은 경석의 집에서 둘 춰 낸 약 담배를 수태 꺼내 끼무라의 책상 앞에 가져다놓았다.
경석은 “내 약 담배를 가져오라!” 하고 손을 내밀었다.
끼무라는 경석의 약 담배 인이 올라 괴죄죄한 낯을 보고 사무상을 땅 쳤다.
“심문이 필요 없다. 스즈끼 국장을 모셔오라.”
스즈끼 국장이 헐금씨금 뛰어왔다. 그가 자리를 잡고 앉자 끼무라는 고문실에서 선포했다.
“아편의 만연은 온역처럼 우리 대일본제국을 붕괴에 몰아갈 수 있다. 아편장사를 일삼은 최경석을 교수형에 처한다! 즉시 끌어내 처형하라!”
“하이!”
일본 헌병들은 다짜고짜로 경석을 끌고 무너진 새 경찰 사무 청사 자리로 끌고 갔다. 거기에는 벌써 명천과 우시장의 숱한 조선 사람들이 끌려와있었다.
교수대에 벌써 두 팔을 꽁꽁 결박당한 경석이가 목에 올가미를 건채 비틀거리면서 쪽걸상 위에 서있었다. 양옆에서 일본헌병들이 팔을 딱 붙잡고 서있었다.
끼무라와 스즈끼는 높은 둔덕 위에 군도자루를 잡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한길수가 조선말로 고래고래 고함쳤다.
“약 담배의 만연은 온역처럼 우리 대일본제국을 붕괴에 몰아갈 수 있다. 약 담배를 심고 약 담배장사를 한데다가 약 담배를 피우는데 인이 박힌 최경석을 교수형에 처한다! 이후에 누가 감히 아편을 심거나 아편장사를 하거나 아편을 흡인하면 최경석처럼 무자비하게 교수형에 처한다!”
끼무라가 하얀 장갑을 낀 오른손을 홱 휘둘렀다. 영팔은 경석이가 밟고 선 발밑의 걸상을 툭 차버렸다. 경석은 올가미에 목이 조여지면서 두 다리를 뻐둑거렸다. 사형장에 끌려나온 최구장과 경인이, 경숙이, 경민은 모두 차마 눈 뜨고 볼수 없어 머리를 숙였다.
“경석아!”
“경석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경숙과 경인이가 참다못해 교수대에서 버둑거리는 경석쪽으로 마구 떠밀고 나가려고 했다.
자위대 놈들이 총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최구장과 경민이, 경욱은 모두 구슬픈 눈물을 줄줄 흘리며 어깨들 들먹였다.
그러나 스즈끼는 안경을 낀 잔혹한 눈깔을 깜짝하지 않고 얼굴에 살인마의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옆에서 지하상전의 눈치를 살피던 끼무라는 깨 고소해 하더니 사무상을 짚고 벌떡 일어났다.
“명천과 우시장의 조선인들은 들어라! 누구든 항일유격대 괴수 김성칠 놈과 김병완 놈을 따라 우리 대일본제국과 맞선다면 저 교수대에 매달린 경석 놈처럼 처단할 것이다. 사돈에 팔촌까지 몽땅 처단한다! 만약 누가 장백산 항일유격대 김용천, 최진달래, 김성칠, 김병완, 김기준을 고발하면 평생 복을 누릴 상금을 줄 것이다.”
교수형은 끝났지만 끼무라는 경석의 아내와 최구장, 경석의 형제들이 경석의 시체를 풀어 내리지 못하게 했다.
“썩어 떨어질 때까지 효시해!”
“하이!”
한길수는 자위대 놈들에게 “아무도 시체를 다치지 못하게 주야로 지키라.”
“예!”
자위대 놈들과 일본 헌병 놈들은 그날부터 교수대에 매단 경석의 시체를 번갈아 지켰다. 끼무라와 한길수는 헌병대와 자위대 졸개들을 풀어 날마다 명천과 우시장 일대 조선 사람들을 강제로 끌어다가 교수대에 둥둥 매달린 채 효시된 경석의 유체를 구경시키면서 겁을 먹였다.
“누구든지 항일하고 약 담배에 손을 대면 저렇게 처형할 것이다!”
놈들은 조선백성들로 하여금 죽음으로 공포에 떨게 하려고 획책했다.
한길수는 교수대에 매달린 경석의 유체를 올려다보더니 말 이발을 부득부득 갈면서 끼무라와 지껄였다.
“이전에 엄상호와 엄은희도 저렇게 효시했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끼무라는 겁에 질린 조선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지껄여댔다.
“으흐흐, 이게 바로 닭을 잡아 원숭이들을 훈계한다는 걸세! 허허허.”
땅거미가 어둑어둑 지는 우시장 뒷산 기슭 둔덕에 쑥대밭이 돼버린 무너진 경찰국 자리 교수대에 매달린 채 경석의 유체가 가을바람에 처량하게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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