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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황혼 제1권(12) 조강지처 김장혁
2024년 07월 13일 10시 22분  조회:583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쟝혁 작 장편소설 황혼

        
      2
.조강지처


 
    려향은 엄마를 나포해간 병실을 눈물어린 눈길로 둘러보았다. 아빠마저 눈을 딱 감고 침묵을 지킨다. 숨막힐듯한 쓸쓸한 적막이 납덩이처럼 흘러갔다.
    려향은 아빠를 침대에 바로 눕혀주고 피기 없는 아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리었다.
   려향은 누구도 몰래 침대머리에 초미형몰카를 장치해 놓았던 것이다. 그녀는 병실이 비면 누구도 몰래 몰카를 뜯어내 돌리어보았던 것이다.  그녀는 엄마가 확실히 링겔 병에 뭔가 주사해 넣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엄마가 병실이 빈 틈을 타서 아빠 핸드폰 위에 침대보를 펴고 그 위에 엄마 핸드폰을 얹어놓는 것도 모두 몰카가 촬영한 동영상을 다보았던 것이다. 엄마는 분명 엄마를 살해하려고 했다. 엄마는 분명 아빠 핸드폰에서 모든 정보를 빼가서 돈을 훔쳐 쓰려는 것도 다 알았다.
    (엄마는 음험한 강도야. 지능도적놈이야.)
    그러나 려향은 엄마의 모든 것을 까밝힐 수 없었다. 그는 아빠가 쓰러졌는데 엄마마저 쓰러뜨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빠가 자기를 살해하려는 엄마를 비호해 말하지 않았는가. 하루 밤 부부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던데요.아빤 조강지처를 버리진  않았군요!)
  려향은 칼로 에이는듯이 마음이 아파났다.
  (엄만 어째 이렇게 도량이 넓고 착한 아빠를 살해하려고 해? 정말 나빠.)
  종호는 속으로 려향한테 이렇게 말했다.
  (려향아, 난 절대 네가 엄마까지 잃게 하고 싶잖아. 내가 훌 죽으면 그만인데...)
  그러나 려향은 아빠나 엄마 중 하나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부랴부랴 몰카에서 엄마 죄증을 몽땅 지워 버리었다.
  종호는 혼미상태에 빠졌다 정신 차렸다 하면서도 병실에서 벌어진 일을 거의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척했던 것이다.
  종호는 쓰라린 눈물을 눈귀로 주르르 흘릴뿐이었다.
  (아, 어쩜 조강지처가 날 살해하자고 할 지경까지 됐을까?)
  그는 눈을 스르르 감고 돌이키고도 싫은 옛 추억에 빠지었다.
  (우린 처음부터 악연인 건 아니었지.)
  종호가 처음 려평을 만났을 때 한족 처녀여서 좀 께름직했다. 하지만 우유빛얼굴에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이 퍽 매력적이어서 첫눈에 마음이 확 끌리었다. 쌍까풀눈에는 좀 숨은 심술기가 어린 것 같았지만 생글방글 웃는 모습이 퍽 이뻤다. 황차 류려평은 국장의 딸이었다. 종호는 류려평이란 바줄을 타고 국장의 힘을 빌어 자기 꿈대로 시내에서 신문사 기자로 되고 싶었다. 그리하여 눈을 질끈 감고 류려평과 약혼하고 결혼까지 했던 것이다.  
   류려평은 비록 농촌태생인 종호 가정 배경이 좀 마음에 걸리었다. 하지만 종호가 사내답게 생긴데다가 대학생 배찌를 달고 있어 그런대로 결혼했던 것이다.
   종호는 지금 후회막급이었다.
   (시내 녀자라고 대학 문도 나오지 못한 저 려평과 결혼한게 내 인생에 치명적인 잘 못이었지. 이렇게 악연이 될줄은 실로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종호는 시내 국장 집 공주 같은 딸을 콧구멍만한 세집에 데려다 고생시키는 것이 항상 마음 속으로 미안했다. 그리하여 려평이 임신해 배가 부러오를수록 가무를 전담하다싶이 거들어주었다.
   종호는 아침 일찌기 일어나 떵떵 얼어붙은 물독의 얼음을 깨고 바가지로 살얼음이 간 물을 퍼 가마에 넣고 석탄불을 피워 부글부글 끓이어 감자장물을 끓이었고 바가지로 쌀을 일어 전기밥가마에 넣고 전기를 넣었다.
   거기까지 회상하자 종호는 피씩 웃었다.
  (려평은 시내 국장집에서 공주처럼 곱게 자라서 스물넷에 시집왔건만 쌀을 일줄도 몰랐지. ㅎㅎ.)
   그래도 농촌에서 자란 종호는 엄마한테서 배워서 쌀을 일줄 알았다. 아빠랑 엄마랑 일밭에 가면 종호는 제법 쌀을 일어 솥에 넣고 벼집단을 쑤시어넣고 불을 때 밥을 지어 점심상에 올리군 했다.
   종호는 려평의 하얀 손을 잡고 쌀바가지로 쌀을 이는 걸 배워주었다.
  류려평은 하얀 입쌀에 까만 돌싸락이 가득한 쌀바가지를 들여다보며 뒤저참하며 물앉으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못해! 이 숱한 돌을 어떻게 다 골라내?”
  려평은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에 벌써 눈물이 글썽해지었다.
   “그럼 내 할게. 넌 밥 짓지 말아도 돼.”
  그후부터 종호는 아예 려평을 시킬 념도 하지 않고 밥짓기는 도맡아했다.
  종호는 려평이 뚱뚱한 배를 안고 병원에 가서 밤당직을 서러 가야 될 때에는 혹시 얼음강판에 넘어질가 봐 항상 려평의 팔을 껴안고 데려다 주군 했다.
   (지금처럼 승용차라도 있었더라면 려평을 그렇게 고생시키지는 않았겠는데. 80년대에는 차도 그렇게 귀했지.)
   종호는 절레절레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했다.류려평이 애를 낳던 그 날의 정경이…
  종호가 집에 가서 애 포대기를 가지고 산부인과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산실에서 애의 울음소리 간간히 들리지 않겠는가.
 (아들을 낳았을까?아니면?)
   그는 설레이는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 산부인과 산실 문 앞에서 서성거리었다.
   그때 어머니가 나오면서 반색했다.
  "애 아버지, 축하하오."
  종호는 엄마 손을 잡으면서 다급히 물었다.
  "아들입둥?"
  엄마는 산부인과 산실 쪽을 뒤돌아보더니 나직이 귀속말로 알려주었다.
  "딸이오."
   종호는 엄마가 입귀를 삐쭉해 보이는 것을 보고 엄마 손을 활 놓아주며 무릎을 탁 치었다.
  "재수없군."
  "딸이 좀 좋아 그러오? 아들들이 어디 부모를 돌볼 새 있소? 딸들이 그래도 부모를 꼼꼼히 챙기지."
   종호는 눈을 흘기었다.
  "우리 전주 리씨 대를 끊겠습구마."
  "지금 세월에 대를 이어 뭘 해? 잘 살면 되지.흥."
   종호는 엄마가 지금 불효를 저지른 아들을 빗대고 꾸짖는다고 느끼었다. 그후 종호는 대를 잇지 못한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입 에 빗장을 지르고 말았다.
   그는 산실에서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나오는 류려평의 피기 없는 창백한 얼굴을 보는 순간 콧마루가 시큼해났다.
   "당신 수고 많았소."
   려평은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을 흘기었다.
  "아들을 낳지 못했는데 수고는 무슨 수고?흥!"
  그러나 종호는 려평을 더는 나무리지 못했다.피가 즐벅한 그녀의 바지를 보는 순간,대를 끊을 위기, 아들을 낳지 못한 모든 꼬까운 생각 등등이 몽땅 연소돼 사라지어 버리었다.
  (애도 낳고 살기 힘 드니깐. 날따라 류려평의 불평소리는 높아만 갔지.)
   지금도 종호는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콧구멍만한 세집에, 그것도 남이 닭을 치던 창고에 구들을 놓은 셋집에서 애를 데리고 셋집살이를 한다는 것은 진짜 눈물겨웠다.
새도 둥지 있는데.대졸생이 남의 닭굴자리 창고에서 산다는 것에 릉욕감까지 생겼다.주인 집에 가서 물초롱으로 물을 길어올 때면  려평은 항상 종호를 욕하면서 두덜거리었다.
  "나그네 어찌 제 구실을 잘 했으면 이런 셋집살이를 다 해?그러고도 남편이느라고 틀을 차려?남편이 가정 기둥을 떠메야 하는데 이건 뭔가? 한푼도 차례지지 않는 글을 맨날 써선 뭘 해?"
   밥상 하나를 놓으면 돌아누울 자리도 없는 콧구멍만한 셋집은 아무리 불을 때도 엄동설한에 견디기 어려웠다.
   죄꼬만 려향은 너무 추워서 아빠와 엄마 사이에 누웠다가도 고사리손을 뻗치어 아빠를 가리키며 종알거리었다.
  "아빠는 그 쪽이 추워 어쩌겠니? 내하고 바꿔 누워 볼까?"
  "응? 그래자."
  종호는 너무 추워 꾀를 부리는 려향을 보고 콧마루 시큼해났다.
  바꿔 누워 봐도 춥자 려향은 또 꾀를 부리었다.
  "아빠, 그 쪽이 덥겠다.바꿔 누워 잘까?"
  "그래자."
  어린 딸애도 살자고 꾀를 쓰는 걸 보고 종호나 려평이나 칼로 에이는듯이 가슴이 아파났다.
  려평은 본가집에 들어가서 살자고 했다. 그러나 종호는 가시집에는 절대 들어가 얹혀 살지 않겠다고 했다.
  "이 주제에 사내느라고 바보처럼 자존심을 세워? 그걸 떼 개를 줘라."
  (80년대 초기는 개혁개방 초기어서 주택건설이 따라가지 못해 진짜 석탄창고 자리 셋집도 얻기 힘들었지.)
   종호는 국장 집 공주를 데려다가 고생시킨 것에 항상 미안했고 마음이 아팠다. 대신 려평을 인간적으로 잘해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려평은 항상 본가집 신세에 집을 샀다는지, 시집 식구들을 몽땅 시내에 들여왔다는지 하면서 행악질하며 종호를 돈을 팔아 책을 낸다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괴롭혔다.
   심지어 종호가 술을 마시고 늦어 집에 들어가면 의심해 행적을 추궁하었다.누구와 술 마셨는가 따지고도 모자라 주먹코를 벌름거리면서 종호의 몸 아래 위를 냄새를 맡아댔다.지어 그것까지 이리저리 번지면서 살피고 냄새까지 맡아댔다. 
   그래도 종호는 이날 이때까지 조강지처라고 참고 참으면서 인간적으로 잘해주려고 애쓰면서 살아왔다.
  (오,이젠 려평은 날 안락사시키려고까지 하지 않는가?)
   종호는 쓰라린 피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빠,왜 울어?"
  옆에서 지켜보던 려향이 아빠 볼의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다.
  "우린 조강지처인데 왜 이 지경이 됐지? 마음이 아프다, 아파."
  려향은 옆에 지영도 없는지라 조용히 물었다.
  "아빠,왜 엄마를 두고 나영하고 바람 피웠어?"
  그때 나영은 병실 문 앞에 와서 노크하려고 하다가 병실에서 들리는 려향의 말소리에 쳐들었던 손을 내리었다. 그녀는 복도 사위를 살피더니  병실에서 두런두런 주고 받는 부녀의 말소리에 귀를 도사리었다.
   그 말에 종호는 벌떡 일어났다.
  "그런 일 털끝만치도 없어? 누가 그래? 이건 무함이야."
   려향은 진실을 알고 싶었다.
  "아빠는 신문사 부사장 재직 때 나영을 인터뷰 하는 기회에 사무실에서 나영을 재꼈다던데요."
  "개소리!근본 나영을 인터뷰 한 적도 없어.바람 피운 일도 없어."
   종호는 격노해 침대를 마구 쳐댔다.
   뒤이어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나영이 홀로 들집도 없이 헤매는 걸 동정해 우리 셋집에 데려다 재운 것 뿐이야.나영이 불편해 할가 봐  나영이를 셋집에서 자게 하고 종각역 층계에서 쪽잠을 잤댔어. 그후 나영이 날 보고 셋집에서 자지 않으면 자기가 나가겠다고 해서 한 집에서 잤지만 그런 일은 절대 없다."
    려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녀가 한 집에서 잤는데 그런 일 없다면 세상에 누가 믿겠는가요? 병신이 아니고서야 젊은 여자를 가만 놔둘 수 있겠나요? 흥!”
  려향은 외까풀눈을 슴벅이며 종호 눈을 들여다보며 진가를 가르려고 들었다.
   “아빤 나영과 함께 살자고 엄마하고 리혼하자는건 아닌가요?"
  종호는 억울하고 너무 한심해 푸념질했다.
  "건 아니야.이건 버선 목이니 번져 보이겠니? 난 의지가지 없는 나영을 불쌍해 딸처럼 생각해 줬지. 함께 살자고 도운 건 절대 아니야. 그런 음충한 마음을 가진 적도 없어.이건 참, 착한 마음으로 의지가지 없는 여자를 돕다가 억울하게 의심받다니? 너마저 의심해? 진짜 세상이 더러워서 못 살겠다.그래서 자살하자고 했어."
  려향은 황급히 손사래를 저었다.
  "자살하긴요? 미안해요? 저도 아빠 진실을 알고 싶었어요. 아빠, 착한 아빠를 줄곧 믿어 왔어요.우리 아빤 절대 그런 나쁜 바람둥이 아니죠. 정인군자지요.우리 부녀간 서로 믿고 도우면서 험악한 세상에서 굳세게 살자요."
   딸이 울면서 말하자 종호는 침대에 쓰러지더니 눈을 스르르 감아버리었다.      
  똑,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나영이 병실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섰다.
  "맞아요. 리사장님은 세상에 둘도 없이 청백하고 착한 분인데요. 세상이 아무리 더러워도 우린 서로 도우면서 굳세게 살아야 해요."
   나영의 목소리를 듣자 종호는 두 눈을 번쩍 떴다.나영은 그들 부녀간이 주고 받는 말을 복도에서 다 들은 것 같았다.
   나영은 바나나랑 사과랑 꺼내 침대 머리 차탁에 놓아 주었다.
   그녀는 바나나 껍질을 손수 벗겨 종호한테 드리며 살뜰히 문안했다.
  "몸은 괜찮지요? 리사장님 정신 차린 걸 보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종호는 천천히 일어나 앉아 나영의 손에서 바나나를 받아 천천히 한 입 떼 먹었다.
  그는 보름 너머 쌀알 한 알 먹지 못하고 링겔로 연명해 왔다.  오늘 어쩌다 처음 바나나라도 먹는 걸 보고 나영과 려향은 무척 기뻤다.
  종호는 바나나를 달콤하게 먹으면서 수척한 외씨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콧마루가 찡해나 눈물이 글썽해지었다.
  려향은 손수건을 꺼내 아빠 볼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닦아드리었다.
   나영은 멜가방에서 책 몇개 꺼내 종호의 눈 앞에 내밀었다.
  "선생님이 한국에서 출판한 책을 가져 왔어요.”
   나영은 종호가 젤 좋아하는 선물이 책이란 걸 알고 종호의 새로 출간한 책을 가지고 와서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었다.
   “한국 서점에서도 선생님이 애나게 쓴 책을 팔더군요. 이 좋은 세상에서 왜 죽겠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내고 싶은 책을 출판해내면서 빛나게 살아야죠."
   종호는 나영의 열기 띤 열변을 듣기만 해도 사는 재미 있을 것 같았다.
   나영은 자그마한 핸드빽에서 5만원 지페 한 묶음이나 꺼내 척 내밀었다.
  "자, 적은대로 받으세요.
   종호는 눈이 데꾼해지었다.
  "아니, 이건?"
   려향도 저으기 놀랐다.
   "아니, 전번에도 병문안 오면서 숱한 돈을 내놓고 또…"
   "선생님의 책 출판할 비용으로 쓰세요."
    나영은 손으로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더니 쌍까풀눈에 웃음꽃을 곱게 피우면서 종알거리었다.
   "리사장님은 저의 구명은인인데요.선생님 은공에 비하면 요만한 건 아무 것도 아닌데요.이전에 짧은 생각을 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죽을 용기 있으면 왜 살 용기는 없는가?' 이젠 그 말씀 선생님한테 돌리어 드립니다. 용기를 내서 우리 굳세게 살아봅시다."
   종호는 나영의 보들보들한 따뜻한 손을 잡는 순간,새 삶에 대한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감이 들었다.
  웬 일일가?
   조강지처고 뭐고 다 허깨비처럼 다 날아가고 새 삶에 대한 동경이 옹달샘처럼 퐁퐁 솟는 순간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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